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부산지구 본부에 모인 식구들과이 시간을 갖고자 하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각자의 사정과 형편은 다를 지라도 뜻을 위하는 마음과 당신이 소원하시는 목적은 저희들과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의 경륜 하심으로 저희들의 생활과 저희들의 세태를 두루 살피시어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전체를 당신의 사랑 가운데 품으시어서, 일체를 당신만이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서로 그리워하던 식구들을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고, 당신의 기쁘심만이 여기에 나타나시기를 바라옵니다.

전국에 널리어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식구들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이 시간은 '통일식구의 사명'이란 제목을 가지고 터놓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목이 좀 쉬었습니다.말소리가 저 뒤에까지 잘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뒤에 잘 들려요?「예, 들립니다」잘 안 들리죠? 앞으로 좀 나오세요.

실례지만 오늘 저를 처음 보는 분들 한번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오늘 처음 온 분들은 '통일식구의 사명' 하게 되면 잘 모를 것입니다. 기성교회 다니던 분들은 조금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또, 중간 부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전과 후가 연결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양해하시고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요셉 가정을 세운 목적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교인들끼리 공통으로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 하면 식구라는 말입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교인이라고 말하 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식구라는 말을 쓰느냐 하는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걸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식구라는 명사는 원래 한 부모를 중심삼고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가족을 두고 쓰는 말인데 통일교회에서는 부모라든가, 자식이라든가, 혹은 그런 관계에 있지 않은,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남남인 사람에게도 식구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면 혈연적으로 형제가 아닌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식구라는 말을 쓰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어요. 식구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이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과 통일교인간의 어떠한 인연된 관계를 두고 식구라는 명사를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본래 예수님 때부터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응당히 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사명이 어떠한 것인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최후에는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만민을 위해 서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성교회에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와가지고 사명을 다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들은 이것을 오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기 때문에 설명을 구체적으로 들어야 그 내용을 전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데에 대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알고 있는 분야는 이러했는데, 그 배후에 숨겨진 내용이 있는 모양이다' 하고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여러분, 예를 들어 어떤 회사 직원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 해야 할 사명을 다 완결했다 하면 다시 그곳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 이후 4천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예수님 한분을 이 땅 위에 보내기 위해서 숱한 수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땅 위에 이스라엘 나라를 건국하게 한 목적도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더 높고 큰 뜻에서, 미래에 이스라엘을 위주로 해서 세계를 영도할 수 있는 한 중심을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메시아를 보낸 것도 메시아를 위해서라기보다 더 큰 세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보낸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유대교를 어려운 가운데 세워 나온 것도 결국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유대교 자체만으로 남아지게 하기 위한 것보다도 이 땅 위에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 보낸 메시아를 위해서, 그 메시아의 발판이 되고 또 메시아의 생활환경과 그의 생애에 있어서 활동의 배경으로 삼기 위해서임이 틀림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서도 특정한 씨족을 택했습니다. 유대민족에도 김씨, 박씨, 문씨, 혹은 조씨 같은 여러 씨족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특별히 중심이 될 수 있는 씨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씨족으로 하여금 역사 이래 이 땅 위에 처음 오시는 한 분, 주인공 되시는 메시아를 탄생토록 하신 것입니다. 그 씨족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나라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교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씨족, 안팎으로 철두철미한 기준을 갖춘 대표적인 씨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 가정이요, 사가랴 가정 일파, 즉 우리 한국으로 보면 한 씨족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의심나는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자기 부모를 사랑했고 자기 씨족을 사랑했는가? 그 씨족은 유대교를 대표해 택했던 것이요, 유대교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 택했던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는 세계를 대표해서 택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필요한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요. 교회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으로 요셉 가정을 택하여 마리아를 통해 메시아인 예수님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도 자기의 아들이 태어날 때는 잔치를 하고, 또 자기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그것에 대한 제반 준비를 철저히 해 가지고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결과가 전체의 이익으로 결부될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 한다 할진대,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모든 것을 운행하신다는 겁니다. 만의 하나 사랑하는 아들이 이 땅에 와서 뜻을 완성하지 못하고 보내신 본의에 일치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까봐 염려하시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랜 기간 동안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을 통보해 나오신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는 소망의 나라가 될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민족이 되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이러한 고차적인 소망을 주입시켜 나가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키우고 유대교를 키우셨습니다. 그 가운데에 요셉 가정을 선택하여 마리아를 통해 메시아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홀로 공생애 노정을 걸으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

그러면 그렇게 오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실 것이냐, 망하게 하실것이냐?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구하러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으면 일반 사회를 구하는 것보다도 먼저 자기 가정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는 요셉과 마리아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었고, 그 직계 형제뿐만 아니라 사촌 형제, 육촌 형제, 외사촌 형제 등을 중심한 일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사가랴 가정을 보게 되면, 사가랴의 부인이 세례 요한을 잉태하게 될 때, 사가랴는 자기들 부부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도 아기를 잉태 하게 된다는 천사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어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가랴 가정에게는 놀라운, 소문날 수 있는 가정적인 배후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세례 요한을 보면 유대교 전체가 따를 수 있는, 즉 세례를 받는 일에 있어서도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세례를 받을 정도로 그 시대의 선지자로서 환영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정을 배후에 연결시켜 놓은 것이 예수님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이종 형제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형님, 나는 이런 사명을 갖고 있소이다. 그러니 형님은 죽든지 살든지 나를 받들어 주어야 합니다'라고 강력하게 협조를 요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나이가 서른 세살쯤 됐으면 세상을 다 알 수 있는 나이입니다. 전후·좌우·상하를 가려 가지고 사회에 있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살필 수 있는 연령이었기 때문에 천의의 대명을 받은 예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형제와 요셉과 마리아를 대해 가지고 뜻은 틀림없이 이렇게 받들어야 된다고 눈물을 머금고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그들을 이끌고 나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요셉 가정의 일파는 한 사람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목이 좀 쉬어서 목소리가 이상한데, 듣기에 거북하지 않아요? 저뒤에 계신 분들, 좀 거북하지 않아요?「괜찮습니다」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 이상한 소리가 날 거예요. 말을 많이 해보신 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듣기에 좀 거북하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지요? 요셉에게도 예수님이 의붓자식이라 해도 자식은 자식입니다. 형제들에게 있어서도 의붓 형제이지만 형제는 형제라는 거예요. 여하튼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근 친척들 모두가 알았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라든가, 어머니 마리아의 환경에 나타난 것을 보면 알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가문 전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문의라도 해보아야 했던 겁니다. '네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소신을 한번 피력해 봐라.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서 마음을 터놓고 문중회의를 열어 전후 좌우를 가릴 수 있는 놀음을 했더라면 예수님이 그렇게 외톨이로 집을 나갈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로 알고 예수님을 믿어야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생애는 3년 공생애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전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라든가 열 두 살에 예루살렘에 갔다 왔다는 약간의 기록은 있습니다만, 그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거예요. 그것보다도 서른 살이 되기까지 그동안 뭘 했는지, 집안에서는 화목하게 자랐는지,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해 주었는지, 헝제간에 의가 좋았는지, 사돈의 팔촌 까지 예수님을 존경했는지, 그러한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고 뚝 잘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그렇게 알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역사는 바로 밝혀야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바로 밝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부모가 나라의 역적이라면 역적이라고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분의 역사에 대해서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배후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 배후가 올바르게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게 되어 있느냐? 과거 역사를 알아야만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올바른 결과로 결하게 될지를 헤아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0년 생애노정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4복음서라든가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예수님 사후에 사도들이 기록한 3년 공생애노정만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도 작아서 차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데 여섯 시간 반밖에 안 걸립니다. 누가 한쪽 끝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 다른 한쪽 끝에서 산울림으로 울려서 다 들을 수있을 정도로 좁은 곳입니다.

성경 66권을 대조해 보면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불과 20리 안팎의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20리 안팎에서 일어난 사실만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장황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야말로 형편없다는 겁니다. 앞집 사람, 뒷집 사람이 누군지 전부다 빤히 알 수 있고 무슨 문제가 벌어지면 일시에 소문이 퍼질 수 있는 그런 지역입니다. 미국 같이 50개 주나 되어 가지고 동쪽에서 서쪽까지 가는데 그 시차가 서너 시간이 되는 지역이라면 모르지만, 그곳은 뭐 엎드리면 코 닿을 곳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3년노정에서 베드로 야고보 등 사도들을 데리고 다니는 데에 있어서, 언제나 친척들을 만날 수 있고 모든 사실을 다 알 수 있는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요셉 가정의 족속들은 한 사람도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사촌이나 육촌, 이종 형제들이 있었을 텐데 그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게 기가 막힌 사실이라는 거예요.

만약 어떤 집에 맏아들이 있다고 하면 그 맏아들이 의붓자식이라 해도 그가 집을 나가 3년 동안 어떠한 뜻을 품고 새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를 따라 다니는데 그것을 본 친척 패거리들이 거기에 하나도 안 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일이나 한다면 모르지만, 뭇사람들로부터 놀라운 추대를 받으며 또 그 배후에 나타난 이적기사라든가 역사에 없었던 놀라운 일을 하고 다니는 예수님인데도 불구하고 친적들이 그렇게도 빤빤하게 모른 척할 수 있어요? 예수님도 친구가 있었을 것인데 도와주는 형제나 친구 한 사람 있었으며, 가정을 중심삼고 누이 동생이나 혹은 이모 등 진정으로 예수를 염려하면서 울고불고 하던 사람이 어느 누구 하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수수께끼라는 겁니다.

여기 서울교회 목사님도 한 분 오셨는데 기독교 믿는 사람들, '목사님' 하면 무조건 우러러보지요? 그저 이름이 좋아서 목사라는 거예요. 만약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따랐더라면 목사 됐겠습니까? 또, 목사가 될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진짜 목사가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한꺼 번에 많은 사람들이 섬기기만 했으면 될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만일 예수님의 친척들이 베드로 야고보보다 생명을 내놓고 예수님을 따랐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랬다면 예수님이 무식한 사도들을 선택했겠어요? 그 무식한 사도들보다도 명문가 출신인 요셉의 친족들이 그렇게도 못났더란 말입니까? 세례 요한을 보더라도, 그는 당대에 얼마나 잘난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실 때까지는 그래도 근본적으로 틀거리가 그만한, 환경에 신임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으면 되었지 그렇게 쫄딱 망하는 따라지 모양으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성교회가 믿고 있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지 잘 믿으라는 것입니다. 다만 좀더 헤치고 뿌리를 파가지고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늘의 뜻이 어떻게 된 연유에서 이러한 사연으로 저끄러졌으며, 또 그러한 사연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행로와 결과가 맺어졌느냐 하는 것을 알고서, 과연 그 결과가 천의에 일치 되는 결과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감정하고 비판하여 그것의 책임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 기간 중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사도들도 예수님이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되자 다 배반하고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죽은 지 40일 만에 부활했을 때 다시 모여 가지고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러한 무리들이 살기 어려워 못 견디는 환경을 거쳐 나가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사도행전이요, 바울 서한입니다. 전부 다 그러한 놀음을 한 기록이에요. 이게 기가 막힌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기가 막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 처음 온 분들은 자기 자신을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면서 기분 나빠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하늘 앞에 공적인 기관이고 그 책임자가 누구이더라도 공적인 기관의 책임자는 공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일컬어 선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 예수님이 잘난 사람인지 못난 사람인지를 분석해 보아야겠습니다. 참 심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뭐 소학교도 못 나왔고 달리 배우지도 못 했으니 대학 나오고 박사인 내가 예수님보다 나을지도 모르지'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분이 역사적인 인물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을 전부다 헤치고 분석해 봐야 할 내용이 많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을 출발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마리아가 '나죽기 전에는 너는 집을 못 나간다' 하며 매달렸으면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했습니까? '하늘의 뜻이 있어 내 품을 통해 나왔는데, 큰 대명을 받아 합동공사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집에 왔는데 어째서 떠나려고 하느냐'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동네방네 소문내던 마리아라고 하는 그런 내용이 성경의 어느 한 페이지에라도 기록되어 있어요? 그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요셉은 의붓아버지이니까 그렇다치고 어머니인 마리아가 악착같이 울고불고 예수를 따라가겠다고 했더라면 그 아들딸도 '나도 따라갈래'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밥을 얻어먹는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배고플 것을 염려하면서 어머니가 얻어 주고 형제들이 얻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머니나 형제들이 얻어 주는 것이 낫겠습니까, 일자무식의 어부들이 얻어 주는 것이 낫겠습니까? 그때 어부들은 형편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베드로의 장인 장모가 살던 집을 가 보니까 뭐 두더지 굴 같더라고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의 그 사도들을 내가 안 좋게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높이 알고 있는 이상 나도 높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엮어내 가지고 해명 하려니 할수없다는 겁니다. 그 밑창을 전부다 밝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물을 깁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베드로야! 그물을 던지고 나를 따르라. 이제부터는 고기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했을 때 베드로가 대번에 따랐던 게 아니라구요. 동네에서 안팎으로 보고 듣고 해서 알았던 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따랐던 것이지, 누가 예수님을 따랐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능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6천년 전에 다 이루어졌게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바닷가 하게 되면, 팔도의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사는 곳입니다. 뜨내기들이 모여 사는 거라구요. 부산 식구들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사실이니까. 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할 것 없이 팔도의 뜨내기들이 모여 사는 거라구요. 그러니 지역의 전통적인 풍습도 가질 수 없는 거예요. 사람의 계층으로 본다면 하류계층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니까 아무리 부인해도 그렇다는 거예요. 여기 부산에도 아가씨 들이 많지만 지금도 뱃사람한테 시집가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

갈릴리 바다를 실지로 가 보면 사막은 저리 가라입니다. 어찌나 황량하고 스산한지 정 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2천년 전 그곳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 배를 상상해 보세요. 가지고 있는 배 형편이 어떠했겠습니까? 간신히 뒤집어지지 않고 겨우 뜨는 정도의 배였을 것입니다. 이런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겠다고 그물을 지고 가는 베드로의 신세는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을 데리고 그래도 뜻을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예수님은 얼마나 처량한 입장이었겠느냐는 거예요.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이겁니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오셨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랑이 많아서 죽으러 왔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러 왔다면 이스라엘에 오지 않고, 저 아프리카 식인종 소굴에 왔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죽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리의 전후를 가려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전부 다 대 보고, 큰지 작은지 넓은지 좁은지 높은지 낮은지 두꺼운지 얇은지를 다 알고 나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쓱 보니까 기성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번에 알겠어요. 벌써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이렇게 내밀고 있습니다. 그러지 말자고 했는데도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은 친척들이 따르지 않아서 혼자 집을 뛰쳐 나가서 한 일이에요, 아니면 '어머니 아버지, 저 내일 들어옵니다. 동생들아, 내일 모레 들어올께 기다려라' 하며 근거지를 집에다 두고 한 일이에요? 어디 생각해 보세요. 모두가 사이좋게 의논하여서 이빨이 맞게끔 되어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에게 다녀오겠다고 하며 나갔습니까, 아니면 어디에다가도 근거지를 삼을 수 없는 외톨이가 되어 나갔습니까? 오히려 친척들에게 미쳤다고 핀잔만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친척들이 미쳤다고 하니, 유대교인들이 안 미쳤다고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안 미쳤다고 하겠어요? 바리새 교인들은 더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 친척들이 전부다 빈정대는 날에는 큰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을 소문낸 것도, 통일교회 문선생과 상대되는 사람이 소문을 냈기 때문에 선생님이 골탕을 먹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선생님을 죽도록 모시고 충성을 했으면 내가 지금쯤은 얼마나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지금 이 부산교회에 있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만나 볼래야 만나 볼 수 없는 자리에서 세계를 주름잡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할수없이 환영받아야 된 배경을 남겨 두고 집을 떠나서 왔다 갔다하면서 3년 공생애노정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쫓겨났든가, 아니면 뛰쳐나왔든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만, 어떡하겠어요? 내가 영적 세계에서 예수님을 만나 보니, 그런 내용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물론 여러분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싫어할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예수님이 알려 주기를 바라니 죽고 망하든, 욕을 먹든 말든간에 얘기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선생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기가 막혔던 예수의 사정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집을 나와 가지고 혼자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하나님이 4천년에 걸쳐 준비한 그 나라는 어디 갔는고. 그래도 4천년 동안 나라를 세운 것은 그 터전 위에 나를 보내 가지고 나를 중심삼고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배척하고, 4천년 동안 준비한 이 유대교가 배척한다 이거예요.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신뢰의 초점으로 알고 따라와 주기를 바랐는데 배척을 하니 어떻겠어요? 그러니 예수님이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그들이 환영하지 않는 입장에 섰으니 어떻게 되었겠느냐 이겁니다. 나라를 바라보아도 소망이 끊기고, 교회를 바라보아도 소망이 끊기고, 친척들을 바라보아도 소망이 끊겨서 갈래야 갈 수 없게끔 다 막혀 버렸기에 할수없이 토굴을 찾아가고 빈민굴을 찾아가야 할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기가 막혔겠어요, 안 막혔겠어요?

그를 따르는 데에 있어서, 출세하여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면 엄마 아빠 동생 할 것 없이 가족들이 전부 '나도 가겠소. 날 버리고 가면 안 돼요' 했을 것입니다. 한 자리 해먹을 것 같았으면 자기를 빼놓으면 안 된다고 서로 싸우면서 따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량한 내리닫이 길을 홀로 석양길을 더듬어 가면서 눈물과 더불어 슬픔을 품고 가는 예수님을 그 누가 환영했을 거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불학무식한 어부들을 찾아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불평이 많지만 그래도 오직 소원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들, 그래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은 순수한 사람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만나가지고 손해 안 볼 것 같고, 그래도 우리보다 예수님이 낫다고 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신뢰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의 어부들을 찾아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자기 집을 나와 가지고 혼자서 다니시니 얼마나 굶주렸겠습니까? 그러한 자신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나마 집이라는 데서 나왔으니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자신이 행했던 이적 기사를 자랑했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런 내용이 어디에 있어요? 3년 동안 그렇게 헐벗고 돌아다니면서 자기 친척들을 부여안고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향 산천을 찾아가 30평생 자기를 길러 주고 정을 준 그 어머니와 밤을 새워 가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왔다고 해서 어느 한 날 어머니가 떡을 하고 잔치를 벌여 예수를 환영했다는 내용이 성경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집을 나왔으니 배도 고프고 처량했겠지요? 그때 자기 가까운 친척 집에서 혼인잔치가 열린다고 해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집이였습니다. 그 집은 어머니 마리아하고 아주 가까운 친척집인데 예수님이 배도 고프고 하니까 밥을 얻어먹고 떡도 얻어먹고 하려고 갔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 기사를 행한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과방(果房)에 술이 떨어진 것을 알고 예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리아가 예수님이 좋아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능력이 많으니 포도주를 만들어 줄 줄 알고 부탁한 줄로 아십니까? 그래 마리아가 예수를 능력 많으신 하나님의 훌륭한 아들, 능력을 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는 거룩한 예수로 알고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한 줄 알아요? 처량하게 얻어먹으러 와 가지고 그것을 바라고 있는 신세 같아서 바라지 말라고 그런 말을 한 것이라구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좋게 해석하려면 좋게 해석 하고, 나쁘게 해석하려면 나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당시 예수님이 배가 고팠겠어요, 안 고팠겠어요. 누가 따라다니며 끼니를 대준 사람이 있었어요? 복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예수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플세라, 어려우면 어려울세라 앞을 다투어 나가면서 매를 맞아도 내가 맞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내가 뒤집어 쓰고, 예수님의 비운을 대신해서 담당하겠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예수님께서 정말로 배가 고팠겠어요, 안 고팠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예수의 어머니가 배고픈 사정은 물어 보지도 않고 포도주가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들이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할 때 예수가 한 말을 생각해 보세요. '아 그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데 예수가 얼마나 불효자냐는 것입니다.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대들었어요, 안 대들었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인 거룩한 왕자님의 입에서 마리아에 대해 욕을 하기 위해 한 말이에요? 하늘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그랬어요? 여기에는 말 못할 가슴을 찢는 사연과 곡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터놓고 싶고, 투정하고 싶은 심정이 솟구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선생님이 하는 말이 옳다면 큰일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이 이치에 가당치 않는 것은 아니지요?

예수가 3년 공생애 때 떠돌이로 돌아다니며 어느 동네에 이르렀을 때,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까 어머니가 그래도 아들이라고 동생들을 충동질해서 같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만나려고 밖에 섰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기가 막혀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며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와 동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어요, 안 했어요? 대답해 보세요. 뜻대로 했는데도 그렇게 말했겠어요, 안 했는데 그렇게 말했겠어요? 「뜻대로 안 했으니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딱 걸려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열 두 살 때 마리아와 요셉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있는데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버려 두고 집에 돌아갔다가 예수님을 찾으러 사흘만에 다시 와 가지고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그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참 좋게 해석을 하지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성경 토론을 하고 있는 예수님에게 마리아가 와서 하는 말이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하니 예수께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 2:4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말했겠어요, 기분이 나빠서 말했겠어요?

열 두살짜리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열 두 살 난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그 아이를 놔두고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아들을 놓고 가는 것을 몰랐겠어요, 알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여기 아주머니, 어때요? 아들을 놓고 갈 때에 마리아가 몰랐겠어요? 그걸 몰랐다면 어머 니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하여 마리아가 요셉을 향하여 '영감님, 예수를 데려올래요' 하고 데려오지 못했느냐?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그들 부부 사이에는 가를래야 가를 수 없고, 뽑아낼래야 뽑아낼 수 없는 불평과 마찰이 계속되었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마리아가 가만히 요셉의 눈치를 보니까 예수 때문에 필경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된 입장에서 예수 때문에 요셉한테 지금까지 고충을 당하고 있는데, 여기에 요셉의 눈을 바라 보니 여자의 입장으로서는 말할래야 말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딱한 사정에 놓여 있던 마리아를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이런 실정에서 예수를 두고 고향 집에 마리아와 요셉만 돌아가게 되면 동네방네 소문이 나겠거든요. '아들은 어떻게 했느냐'고 다들 물어 보겠고 의붓자식이라서 내버리고 왔다는 소문이 나겠는데, 고향은 가까와지니 아니 데려갈래야 아니 데려갈 수 없어, 할수없이 요셉과 마리아가 되돌아와서 예수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배후에 잠들어 있는 곡절을 알아야

여러분이 모르는 이러한 곡절이 기독교의 배후에 잠들어 있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천당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역사를 모르면서 그저 좋은 예수, 몰려다녀도 좋고, 집을 나가도 좋고, 쫓겨 다녀도 좋고, 죽은 것도 좋아서 죽었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 통일교회 문선생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바로잡아 새로운 방향으로, 전후좌우의 가리새가 맞게끔 해결해 가지고 안팎을 들이 맞추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때가 돌아오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명사를 붙인 교단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쁘다면 나쁘게 생각하세요. 내가 참이라면 여러분이 안 될 것이고 내가 거짓말했으면 내 목이 잘릴 것입니다. 이런 말들이 거짓말 같으면 지금까지 목을 내놓고 이렇게 생애를 바쳐 싸우지 않습니다. 뭐 어디서 주워다가 이럭 저럭 꿰어 맞춘 것 같으면 난 시시해서 이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자, 이제 그만 했으면 '아하, 그렇소. 그 말씀이 옳소' 할 것입니다.

여기 총각들, 예수님의 역사를 가만히 훑어 봅시다. 총각들은 손 좀 들어 보세요.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총각들, 얼마나 되나 봅시다. 내려요. 자, 총각들 이 다음에 결혼하기 전에 약혼해야지요? 약혼하게 될 때자기 맘에 맞지 않는 사람하고 약혼하겠어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합니다」 그러나 얼굴을 보나, 속을 보나, 집안 환경을 보나, 또는 사돈의 친척까지 안팎을 다 갖추어 보나 그래도 그만하면 되겠다,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 찾아가 인연맺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떤 총각이 약혼을 했다고 합시다. 약혼을 척 했는데 약혼녀가 애기를 뱄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얘기를 계속 들어 보세요. 우리가 예수님을 흉보자는 게 아닙니다. 사실대로 들어 보라요. 내가 나쁜 의미 에서 평하는 것이 아니예요. 사실대로 생각해 보자 그말입니다. 그래, 철석같이 믿고 약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약혼녀가 애기를 뱄다고 하니 이 말을 들은 총각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시원하겠어요, 왕창 꽝하겠어요?

어떻겠어요? 목사님들 대답해 보세요. 저 맨 뒤에 서 있는 양반, 어떻겠어요? 총각들 한번 생각해 봐요. '그저 기분만 조금 잡칠 뿐이지 그거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웃음) 생각해 보세요. 어떻겠어요? 가슴이 '꽝'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꽝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꽝' 했는지 큰일날 지경이라고요. 큰일날 지경이라는 겁니다.

내가 이런 말까지 한다고 해서 기성교회의 신앙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성교회 신앙도 한 사람이고 신학도 아는 사람입니다. 뭐 임자네들만큼 몰라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예요. 그러니 처음 온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더라도 들어 두는 게 좋을 것입니다.

난시(亂時)에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피난가야 돼. 아 인민군대가 내려 온대. 그러니 서울 사람들도 피난간다는 구만' 하는 말을 들으면 좋아요, 안 좋아요? 안 들은 것보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지나가는 말이었다고 해도 정말로 피난을 가야 할 때라면 듣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럴수 있는 거라구요.

여기 아가씨들도 많이 왔구만요. 기성교회 다니던 아가씨들이 왔으면 '아이구, 우리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는데 …'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역시 그런 생각도 해봤고 그런 고민도 다 해봤습니다. (웃음)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믿어 보겠다고 생명을 내놓고 50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감옥생활을 하면서까지 줄달음질하며 헤쳐나온 것은 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시하게 밖의 사람들이 말하듯 벌거벗고 춤이나 추는, 그따위 수작 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선생님을 잘 몰랐다는 거라고요. 뭐 벌거벗고 춤춘다고? 도깨비 감투를 거꾸로 씌워야 될 녀석들. (웃음) 춤이라도 한번 추겠다고 들이 맞서 가지고 발이라도 들었다 놨다면 그래도 모르겠는데, 구경도 안하고 생각도 안한 사람에게 그런 생떼를 쓰고 뒤집어 씌워요? 그러니까 좋다는 거예요. 누구나 다 와 보면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거든요. 누구나가 '생사람 잡는 놈들' 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들이 뭐라고 하든지 선생님은 지금까지…. 내가 말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기성교회를 때려잡으려면 때려잡을 수 있는 실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비상한 작전을 하여 사탄을 녹여 먹던 그런 지혜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어디 신문에 내 가지고 기성교회 목사들이 죽으라고 하는 것에 대해 변명하는 것 봤습니까? 못난 척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못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아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라고요. 두고 보세요. 꼭대기에서부터 바짝 바짝 조일 테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볼트 너트 알지요? 아래를 꼭 잡고 위에서 돌려 조이면 꼼짝 못하지요? (웃음) 자꾸 조이면 조일수록 '아이고, 아이고' 소리지르며 아우성일 것입니다. 그러니 붙어 있으려면 납작해지든가 끊어지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거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기분 나쁘더라도 나보고 나쁘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뱃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기에 기분 나쁜 얼굴을 하느냐는 거예요. 선생님만큼 못 들어가 있을 게 아니냐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저렇게 방망이질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선생이라는 사람이…' 할 거예요, 그러나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이렇게 만나 한집안이 되었으니까요. 우리가 처음에 좋아서 만났습니까? 싫어서 만났지요. 그러나 다 살림살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좋게 하는 방법이 있으면 후려 맞으면서라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리아를 데려온 요셉의 처지

이제 목이 많이 가라앉았으니 빨리 끝내야겠습니다. 목이 쉬어서 야단났어요.

마리아가 그랬으니 총각님 요셉의 신세가 처량했겠어요, 처량하지 않았겠어요?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기성교회 장로 되시는 분이 왔으면 '내가 총각 때 그 지경이 됐으면 어떻게 했을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아마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그렇게 고민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천사를 보내서 '요셉아, 마리아를 데려와라' 했습니다. 성경에 천사가 꿈에 그런 말을 했다고 했어요, 요셉이 눈을 뜨고 있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했어요? 꿈에 그랬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꿈속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너의 아내 마리아를 찾아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 말을 듣고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꿈은 꿈꾸나 마나입니다. 꿈 가운데는 잡꿈도 있고 또 무슨 꿈요? 「개꿈」(웃음) 그런 꿈도 있고 그 다음엔 ? 「용꿈」(웃음) 이처럼 여러 가지 형태의 꿈이 있어서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신경과민이 되어서 그런 꿈도 꿀 수 있지. 그건 꾸나마나야' 하면서 얼마든지 지워 버릴 수도 있는 거라고요.

그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요셉은 역사과정을 거쳐 오시면서 그렇게 수고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워 지금까지 보호육성하여 오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국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누구보다도 애국애족하는 심정을 지니고 나라를 염려한 요셉이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그래도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에 보내 주겠다고 하신 그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알려 주거나, 혹은 비몽사몽간에 천사가 나타나서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자기처럼 미천하고 순박한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는 길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며 마음으로 바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했을 때 아무 말없이 마리아를 데려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때 요셉은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 이해됩니까? 요셉은 칼날 같은 신경질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결혼도 하기 전에 애를 뱄다고 하면 그때의 법으로는 당장에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죽게 마련이라고요. 그래서 그때의 요셉은 자기와 인연되었던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마리아를 보호할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그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연이 있었기에 요셉은 나라의 법을 어기더라도 하나님 앞에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요셉은 선량한 남자였다는 겁니다. 요셉이 신경질적인 성격이었다면 당장에 달려가서 무슨 끝장을 보았을 텐데 그러지 않고 천사의 말에 따른 것을 보면 묵직하고 용한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안그래요? 여러분 중에도 신경질직인 남자가 있지요? 그런 사람하고는 질이 다를 거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데려오라 하니까 마리아를 데리러 갑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도 어머니 아버지가 있었겠지요? 사돈의 팔촌들도 다 있었을 것입니다. 없다면 말이 안 되지요. 그런데 요셉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인사하면서 '어머니 아버지, 마리아가 이렇게 됐는데 천사가 이렇게 말하니 마리아를 지금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십시오' 하며 어머니 아버지에게 마리아를 데리러 간다고 통고하고 갔겠어요? 사돈의 팔촌 형님 누나 모두에게 통고하고 마리아를 데리러 갔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됐어요, 못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누가 알세라 슬쩍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낮에 데려왔겠어요, 밤에 데려왔겠어요? 생각해 보라고요. 여기 총각들, 아가씨들, 어떻게 했겠어요? 틀림없이 밤에 데리고 왔을 거라고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모르게 데려 왔을 것입니다. 데려와서도 안방에 이불 펴고 포대기 펴고 했겠어요? 새색시 왔다고 떠들썩하니 기름 냄새 피워 가며 떡하고 지짐질해 가지고 뭐 동네방네 다 알게 잔치하고 그랬을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누가 알세라, 인기척만 나도 골방이 있으면 골방으로 들어가 숨어 있으라고 할 그런 판국에서 떡 데려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고민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의 집을 보면 집 구조가 참 해괴합니다. 거기에다 대면 우리 한국은 문화가 아주 발달한 선진국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집을 보게 되면 지붕도 없습니다. 비가 잘 안 와서 그런지 몰라도 그나마 있는 지붕도 여기저기 뚫려 있어서 비가 오면 샐 데가 많은 아주 형편없는 집이라구요. 그런데 2천년 전이었으니 그 형편을 보면 생각할 정도도 못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런 데에다 마리아를 데려다 놓긴 했는데, 오늘날처럼 몇층 되는 빌딩이 있어 가지고 수세식 변소도 있고, 혼자 세면도 할 수 있는 아파트 같은 데에다 데려다 놓았으면 감쪽같이 속일 수 있지만 그들 집이 그렇게 돼 있어요? 그들 신세가 어쩌면 우리의 피난 때 실정보다 더했을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판자집 같은 데서 속닥거리면 밖에서 다 알아들을수 있는 형편이라는 겁니다. 요즘과 같이 수세식 변소로 되어 있어서 집안에서 자유롭게 용변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천만부당한 생각이라는 겁니다. 한국식과 같이 들락날락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요셉의 집이 방 하나였다면 마리아 때문에 당장에 동네방네 소문이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이 소식은 빨리 알지요. 이사라도 가게 되면 아이들이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거든요, 그럭저럭하다가 좋지 않은 소문이 동네방네에 금새 퍼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요셉 저 녀석 언제 아가씨를 데려다 놨대' 하고 속닥거렸을 것입니다.

요셉의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방안에서 이상한 말을 서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무언가 다짐을 하고, 마리아는 안 그렇다고 우기며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 싸움질도 했을 겁니다. 왜냐? 데려다 놓았는데 대관절 복중에 있는 아기가 누구의 아기냐고 요셉이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어디, 남자들 대답해 보세요.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보면 그건 남자도 아니고 동물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얄궂고 복잡한 사연이 엉클어지고 헝클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갖추고 살래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자기의 생명의 은인이고, 또 약혼를 했기 때문에 남편도 되는지라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는 입장에 몰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완강하게 물어 보니 어떻게 됐겠어요? 여기 있는 아가씨에게 물어 보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뱃속에 있는 애기가 누구 애라고 솔직하게 대답해야 되지 않아요?

'대관절 애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을 때 '누구긴 누구예요. 성령으로 잉태했어요' 하고 대답하면 그 말을 남편인 요셉이 믿겠어요, 안 믿겠어요? 대답해 봐요. 「글쎄요」 글쎄요가 뭡니까? 믿었겠는가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웃음)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고요. 글쎄요가 뭡니까?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디 믿겠다는 여자나 남자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 한 가지 물어볼 테니…. 없구만요.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마리아가 쩔쩔매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신이 와서 아기를 배게 했어요' 하면 요셉이 '이 요사스리운 것아. 내가 그래도 너의 생명의 은인인데 네가 솔직히 이야기하지 앉고 그렇게 슬쩍 넘기려고 수작을 하는 구나'라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자구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는 마리아를 사지에서 구해 주었고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가려 가면서 가슴이 콩알만해 가지고 쉬쉬하면서 지내는데 말입니다.

그래, 동네방네에 소문이 이상하게 다 났을 게 아니예요? 동네 아이들을 통해서 말이에요. 그러니 요셉의 어머니 아버지가 못 들었겠어요? 요셉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붙들려서 '이 녀석아, 그 여자가 누구냐', '누군 누구예요. 약혼녀 마리아를 데려왔지요', '왜 데려왔느냐', '그게 이차여차 해서 데리고 왔어요' 이렇게 꽁무니를 뺐을 겁니다. 또한 요셉의 사촌 누이 형님들이 '이놈의 자식. 너 소문이 수상하더니 그대로구나'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게 어떻게 된 거야', '아이들이 그저…' 하며 그저 말 끝도 못 맺고 우물우물하면서 가슴을 졸였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슬쩍 감아 넘기려고 성령으로 잉태됐다고 한 말은 불신 중에서도 기가 막힌 불신밖에 안 된다는 거에요. 그 말을 듣고 요셉이 '우리 마리아는 참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야' 그랬겠어요? 수작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도 벌써 몇 번이나 달라졌을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내심으로 고민을 했겠습니까? 그러니 둘 사이에는 트러블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트러블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런 일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도 살다 보면 싸움을 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얄궂은 인연 가운데 맺혀진, 엉클어지고 헝클어져 풀 수 없는 골치덩어리인데 싸웠겠어요, 안 싸웠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 열 달이 거의 다 되어 가지고 아기를 낳을 때가 되면 막달이 어느때인지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분들, 그거 몰라요? 다 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낳을 날이 돌아오게 될 때 사정이야 어떻든간에 애지중지하며 서로 위하고 염려하며 '이제 며칠 남았지' 하고 그랬을까요? 첫 아기에 대해서 관심이 큰 것입니다. 처녀 총각들도 결혼해 보라구요. 누구나 첫 아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둘이 만나기만 하면 서로 '며칠 남았지' 하면서 꼬박꼬박 그날을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고민

그런데 요셉이 애기 낳을 날짜를 꼬박꼬박 기다리게 되어 있어요? 생각만 해도 왈카닥 기분 나쁜 거라고요. 기분 좋았겠어요? 요셉이 그렇게 의심을 할 적마다 천사가 매일 아침 다시 나타나 '야, 이 녀석아. 하늘 나라 천사가 그렇다고 일러주었는데 왜 그런 수작 하고 의심하느냐'고 했을 것 같아요 ?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했는데 하늘의 특사가 내린 통고문을 매일 반복할 줄 알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깜깜 천지가 돼 가지고, 지나 놓고 보니 요사스런 꿈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별의별 해석을 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기를 낳을 막달이 다가오니 큰일났다는 겁니다. 여기 처녀들이나 아주머니들 그런 입장이 되었다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어떻게 했겠어요? '하나님, 나 이러이러해서 여기서는 아기를 못 낳겠습니다'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소문은 벌써 동네에 자자하게 났고, 친구들도 요셉에게 '야 이 녀석아, 어떻게 된 거야' 하면서 수상하게 여기고 시원치 않게 생각하는, 그렇게 몰리는 입장에 있었는데, 마리아가 그 동네에서 아기를 낳을 배짱이 있었겠어요?

여자들, 이렇게 물어 보면 미안하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그까짓 것 반대하면 했지 하나님 뜻대로 낳는다' 하고 낳을 자신이 있겠어요? (웃음) 생각해 보세요. 간혹 그럴 수 있는 배짱이 있는 여자가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낳을 자신이 있겠어요? 그럴 수 있다는 여자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기도할 밖에요. '하나님이시여. 이 동네를 벗어나서 타향살이라도 좋고, 이국 땅이라도 좋으니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제 몸을 은신해 가지고 아이를 낳아 키을 수만 있게 해주세요' 하고 그러한 마음 가지고 하늘 앞에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길거리의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게 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그녀에게 있어서는 감사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비참한 사연입니다. 하늘의 왕자님이 길거리에 있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덮을 요 하나 없고, 바지저고리는 커녕 강보도 없어서 그들이 콧물 눈물 땀 닦던 그런 것을 강보로 썼을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걸로 아이를 싸야만 하는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은 기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이 만우주의 주인이시며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만인의 참된 부모님으로 오시는 거룩한 분을 그와 같은 비참한 자리에 모시면 안 되겠기에 하늘이 통찰하시사 동방에 있는 박사들을 보내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땅이 비록 환영할 수 있는 환경은 못 되었지만 그래도 인간 세상에 있어서 하늘의 체통을 세워 주기 위해서 이웃 나라에서 손꼽을수 있는 사람들인 동방박사들을 보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예수님 앞에 인사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대번에-당시에 전보는 없었겠지만-사람을 사서라도 그들의 친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헤롯왕이 요사스럽게 행동하여 아기를 잡아죽이려고 할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삯군을 사서라도 자기 동네에 연락해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도망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어머니 아버지에게 통보해 주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했어요?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 꿈도 꾸지 못한 마리아

이런 것 저런 것 보면 그 배후가 얼마나 복잡다단했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때 요셉이 부모가 알세라 친척이 알세라, 그 누구도 모르게 살짝 야간 도주해 가지고 어디로 갔어요? 애급으로 갔지요? 거기서 3년 동안 살다가 이스라엘 땅 갈릴리 해변가의 나사렛 동네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곳은 친척이 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그러니 요셉은 그러한 사연을 가지고 할수없이 마리아와 그곳에서 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한 내용이 요셉의 가정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요셉은 의붓아버지이지요? 의붓어미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잡아 죽이듯이 하는데 의붓아버지인 요셉이 그 자식을 사랑해서 사지에서 구해 주었겠어요? 사람 마음은 다 마찬가지라고요. 예수는 철이 들면서 자기 때문에 어머니하고 아버지의 관계가 좋지 못한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어머니인 마리아 품에 가서 안기고 싶어도 열 서너 살 철들 무렵부터는 아버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기가 막힌 사연이라는 겁니다.

또, 예수가 아버지 무릎에 앉으려고 한번이라도 가까이 갈 수가 있었겠어요? 호랑이같이 무서운 아버지였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이었으니 예수는 의붓자식으로서의 생활을 톡톡히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목수로 살아갈 때 그 목수의 조수로서, 처량한 생계의 보조자로서, 그야말로 더벅머리 총각 예수는 신세타령 할 데조차 없이 외로운 사정을 안고 3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친족을 바라볼 수 없는 입장에서 자라났던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의 친척인 세례 요한 일파라든, 요셉의 혈족들은 괜찮은 가문이었습니다. 그 가문을 중심삼고 유대교와 연결될 수 있는 기반도 돼 있었고, 유대교단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역사적 배경도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조건은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고독 단신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처량합니까?

그래서 떠꺼머리 총각 예수는 밤이 되면 별을 바라보며 사연을 토로하고 동녘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자기의 지난날을 회상하고, 미래의 소망인 하늘의 뜻을 가슴 깊이 다짐하면서 외로운 신세로 지냈던 것입니다. 어느 한 날 동생들을 데리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노래 부르던 것과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도 있었을 텐데, 예수님에게는 그런 즐거움도 없었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7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오히려 동생들이 비웃었습니다. 형님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고 또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모양인데 그게 뭐냐고 하면서 동생들까지도 이렇게 시비했습니다. 기가 막힌 사연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는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묵묵부답으로 30여년의 생애를 지냈으니, 어머니에 대해서 한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자기 아들이 세상의 아이 같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자식을 위해서 비운의 행로를 거슬러 가야 할 운명을 지녔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기르는 환경, 가정환경을 혁명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혁명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못 됐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지 못하고 환경에 몰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10대가 지나고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면서 어머니에게 달려들어서 '나의 어머니는 이런 어머니가 아닙니다. 나는 하늘나라의 왕자가 아닙니까?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하늘의 아들로 태어난 아들, 만인을 위한 참다운 도리, 만민을 구하기 위한 천도를 갖고 온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날 때부터 그렇게 알지 않았습니까' 하고 따졌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그날부터 천법을 통한 가정의 도리를 세워야 했습니다. 요셉도 끌어당겨 설득시켜야 했습니다. 매를 맞든 천대를 받든 죽음을 당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을 설득하고 권고해서 예수가 태어난 날부터 하늘나라의 가정의 법도로써 예수를 모셔야 했다는 거예요. 아침마다 목욕재계하고 예수 앞에 경배하는 생활, 가정생활 전체를 보고하는 생활을 하는 등의 천도를 세워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은 꿈도 안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동네의 총각들처럼 시시하게 생각해 가지고 세상적인 생활권내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고립되고 마리아의 가정도 고립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혀져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이요, 아버지가 있어도 물론 의붓아버지라 사랑을 못 받은 사람입니다. 동생과 형이 있고 친척들이 있어도 사랑을 할 수도 없고 받지도 못한 외롭고 불쌍한 예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의 교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무도 몰랐던 비운이었습니다.

오늘날 소위 기독교 목사들이 통일교회를 이단 괴수로 낙인을 찍어 가지고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죽으라고 별의별 짓을 다 하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당당하게 하늘의 뜻과 이런 내용을 그들 앞에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망하든 흥하든 역사는 바로잡아야 됩니다. 족보는 바로잡아야 된다는 거라구요.

조상 가운데 역적이 있었다면 누구 대에서 역적질을 했었다고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죄 지은 것을 모두 알아야만 하늘의 공평한 심판정에 나가서 자기 스스로 사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사죄를 구할 수 없는 불쌍한 민족이 되고, 불쌍한 기독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이 시대에 있어서 그야말로 필요 적절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 다니는 분들, 문선생 때문에 말이 많다는데 오늘 잘 만났소. 그래 솔직이 이야기해 봅시다. 통일교회에서 무엇이라고 말해요? 예수가 사랑해야 할 어머니 아버지, 가정이요, 예수가 사랑해야 할 친척이요, 예수가 사랑해야 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다 사탄의 꼬임에 의해 흘러가는 비운의 역사와 보조를 맞추어 예수를 버리고 예수만을 홀로 남기고, 이 모두가 사탄권내에 포위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운의 행로를 다시 개척하여 잃어버린 나라, 잃어버린 교회를 수습하고 씨족과 가정의 서러움을 풀 수 있는 한 길을 찾기 위하여 철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그들을 길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예수는 부모의 입장에 서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그 반대의 입장에서 사랑받았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사랑하기에 힘썼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형님 누나들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대신하기 위하여 예수는 제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며, 자기 친척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대신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제자들을 사랑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민족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자기 자신을 한탄하면서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의 사도들이 사랑받을 수 있게끔 개척의 길을 나선 것이 3년 공생애노정이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실패한 것을 다시 막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처량한 행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3년 공적 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몰아대고, 교회가 몰아대고, 친족이 몰아대는 그런 입장에 처하여 예수는 갈 데도 없이 되었으니 판세도 틀려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예수님을 위해 이스라엘 나라를 준비했고, 교단을 준비 했고, 가정을 준비했으나 다 틀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미 판국이 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 가지고 변화산상에서 장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통고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돌변지책으로서 하나님이 내릴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영적이건 육적이건 완전히 다 깨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난을 당한 이유

본시 육적인 이스라엘 나라, 육적인 이스라엘 땅,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땅이요, 하나님의 선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세계의 나라와 사탄세계의 땅과 사탄세계의 백성을 점령하기 위한 제 1차적인 계획이 예수님이 불신당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깨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발판은 땅위에 다 떨어져 없어진 것이요, 백성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던 것이며. 주권도 남아나지 않고 흘러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끄러뜨린 이스라엘 민족이었기 때문에 그 민족은 주권을 가질수 없는 것이요, 백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요, 땅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도처에서 유리고객하는 집시의 무리가 되었고, 서방 민족의 말발굽 아래 사라지고 총칼에 사라지는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피를 대가로 탕감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때가 점점 가까와 왔는데도 아직까지 예수를 죽인 죄를 다 탕감할 수 없기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서방에 널려 있던 이스라엘 민족 6백만이 히틀러의 손에 학살당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이스라엘은 여기에서 모든 죄의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탕감을 치렀기 때문에 해방 이후 유엔의 협조에 의해 1948년 5월 하나의 독립국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재봉춘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죽어 없어져야 할 민족, 하늘의 벌을 받아 사라져야 할 민족이었지만, 그래도 주님이 다시 올 때가 됐기 때문에 땅 위에서 주님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잃어버리고, 백성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해결짓지 않고서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뜻을 못 이루기 때문에 그러한 독립의 운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죄로 이스라엘 민족 앞에 아랍권이 총칼을 쥐어 잡고 '이놈아, 예수를 죽인 반대의 입장에 서 봐라' 하는 입장에 몰려 있으니, 금후에 가야 할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쥐어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이 한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민족 앞에 물의를 일으켰고, 스스로의 뜻을 품고 하늘의 도리를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사랑 한다는 그런 무리들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염려의 대상은 안 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도 통일교회가 있기 때문에 이제 한국의 고민거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거예요.

예수가 십자가에 잘 죽었습니까?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영육 완성의 길을 못 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이 땅에 걸려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감으로써 예수님의 몸을 위주한 땅의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인 부활의 터전이라도 마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거라구요.

예수님이 죽었던 그 터전에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생긴 것입니다. 기독교는 원래 부활의 종교이지, 십자가의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이라구요. 그런데 십자가가 인간을 구원해요? 예수님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그 근본이 틀려서 나온 것입니다. 전부 다 부활의 도리를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영적인 이스라엘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흩어져 버린 사도들을 다시 수습해 가지고 70문도와 120문도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지상에 나라도 없고 땅의 기반도 잃어버린 채 뜬구름과 같이 영적인 천국을 소망하면서 발전해 나온 것이 제 2이스라엘인 민주세계권의 기독교입니다. 여기에는 아직 나라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국가는 많지만 기독교 주권 국가는 없습니다. 교구장이 왕의 자리를 대표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왕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자와 교법사와 제사장이 각기 달랐다는 것입니다. 명실공히 주권이 하늘 앞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권자 앞에 언제나 목이 잘리고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교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 가운데에서 성장해 나온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비운의 기독교 역사를 탕감해야 할 통일교회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 1차 이스라엘 나라가 잃어버린 주권을 이 땅 위에서 다시 찾아 그 땅에서 자기의 땅에 주권을 중심삼고 백성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치 단결하여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사탄의 주권을 당당히 쳐부수고 하늘편 사람들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한 명이라도 놓칠세라, 한 명이라도 상할세라 전체적으로 보호육성하고 치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주권이 있었더라면 기독교인들이 왜 죽었겠습니까? 왜 죽었겠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탕감해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한이 하늘땅에 사무치고 인류역사의 고빗길 가운데 사무친 것입니다. 이렇게 사무친 한을 다시 그와 같은 실정에서 뿌리를 뽑아 풀어 놓기 전에는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을 순리적으로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맺힌 한을 풀어 놓아야합니다.

이러한 한을 풀기 위한 사명을 짊어지고 통일교단이 이 땅에 나와 가지고 희생하며 한을 품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냥도 못 주면서 쪽박을 깨뜨리는 격의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왜정 때도 일본 놈들한테 고문을 당하고, 북한 공산당한테도 고문을 당하고, 민주세계에서도 역시 당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나오는 우리가 악당보다 깡패들보다 나빴느냐는 거예요.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열 한 형제가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 받는다고 미워하고 급기야는 요셉을 팔아먹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거와 마찬가지의 격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아요. 통일교회는 그렇게 시시한 패가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님은 작전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있을 때 주위 환경이 칼날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욕을 먹으면서도 묵묵부답, 말없이 나오면서 이제는 세계적인 기반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없애려면 없애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못할 만한 기반을 세계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실력으로 대결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패들,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자들처럼 왜 그렇게 약하게 말해요?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땅에 뚝 떨어지도록 대답해도 시원치 않은데 병자들처럼 그게 뭡니까?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정신 번쩍 들도록 이야기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부산교회에 찾아왔는데 손님을 그렇게 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놈의 경상도 패들, 내가 손님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손님 대접을 잘 해야 될 게 아니예요? 오늘 저녁 밥은 어떻게 했길래 그럽니까? 물기가 질척하게 있고 뜸도 안 들여진 밥을 먹으라고 가져 왔더군요. 그래서 내가 한 숟갈 밖에 안 먹었어요. 손님 대접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 부산패들, (웃음) 그렇다고 울진 말라구요. 내가 한번 얘기해 본 것입니다.

자, 여러분이 주인이에요, 내가 주인이에요? 누가 주인이에요? 「선생님입니다」 내가 주인이에요? 「예」 왜 내가 주인입니까? 내가 부산 사람 입니까? 나는 지나가는 손님이예요. 초청해서 온 게 아니예요? 손님이라구요. 그러니 손님 대접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목이 쉬어 가지고 목이 아픈데도 이야기를 해주면 잘 듣고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사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쉰 목으로 말하더라도 잘 들어야지, 사정해 가지고 잘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손님 대접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 조는 사람이 있으면 가만 안 두겠어요. 선생님은 조는 사람 놓고 얘기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이제 조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저기 보니까, 이제 정신이 아주 퍼뜩 드는 것 같군. 졸 때는 이런 말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 예법입니다. 한 사람이 졸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도깨비 바람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송사리 때문에 흙탕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아주 빨리 퍼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통일식구가 뭡니까? 식구가 뭐예요? 식구가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긴 뭐가 좋아요? 이놈의 식구가 사람을 망쳤습니다. 식구가 예수님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뭘해야 되느냐? 통일교회 원리에 따라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잃어버렸으니 잃어버린 것을 그대로의 모양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멍을 잘못 뚫어서 그 뚫어진 곳을 때우려면 그 구멍에 맞추어 땜질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크고 작은 모양의 결정체와 마찬가지로, 장석이면 오각, 수정이면 육각인 것과 같은 형의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것은 알고 있지요?

예수님의 해원을 위한 일가(一家)가 되라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로 끝나는 단체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아니라 통일가(家)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통일교회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간판은 언제든지 뗄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대신 통일가입니다. 통일가(統一家)할 때 '가'자는 무슨 '가' 자입니까? 「집 '가' 입니다」 집 '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통일교회 식구의 성은 무엇이겠어요? 「통일가요」 통일가입니다. 통일가이니 길게 읽어 보면 한 '일'자 일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래도 일가요. 저래도 일가라구요. (웃음) 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가가 없어서 죽었으니 일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일가를 다시 찾지 못하면 사랑할 수 있는 기반과 사랑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추지 못하면 해원성사, 즉 한을 풀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굿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요? '배뱅이굿' 이라는 말 들어 봤지요? 배뱅이를 불러 가지고 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처녀가 죽어서 된 귀신을 무슨 귀신이라 하던가요? 「몽달귀신」 몽달귀신인지 낯짝귀신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그러더구만. 그 귀신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볏단으로 남편을 만들고 잔치상을 차려 가지고 후루룩 날려 보내는 놀음을 합니다. 그렇지요? 한을 풀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 차원이 조금 다를 뿐이지, 거기에는 통하는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죄를 지으면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죄지은 사람 대신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림으로써 탕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 뜻을 다 못 이루었습니다. 영적으로만 이루었던 거예요. 예수님은 영적 육적의 실체를 중심삼은 이 땅 위의 만군 만왕의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천하의 사명을 갖고,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호화찬란한 생활을 거쳐 가지고 생애를 마치는 그날 만민이 추모하는 가운데 고이 가야 할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다니…. 그러려면 왜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겠어요? 괜히 만들어 가지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까? 죽이려면 한 날 전부 다 강변에 떼거리로 모아 놓고 죽여 버리지, 왜 그렇게 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당시 유대교의 교법사 제사장들, 니고데모 같은 작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도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교의 교법사 같은 인물들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있었어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전부다 세리의 친구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마시고 먹기를 즐긴다고 비난했습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그런 것은 생각도 안 하는구만. 마찬가지라구요. 주님이 오실 때도 마찬가지로 딱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목사 가운데는 간판 붙어 있는 목사가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도 없어요? 그것은 통일교회에 누구나 못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여기 기성교회 목사가 있다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색다른 목사, 다시 말해 기성교회의 이단 사촌쯤 되는 그런 목사들이 들어올는지는 모르지만 기성교회의 간판 있는 목사들은 전부 예수 잡아 죽이는 데에 날인해서 공문 돌리는 그런 패들밖에 안 되니 못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래 통일교회가 그들의 원수지요?

하기야 선생님이 잘났으니 그렇지 내가 못났으면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며칠 떠들다가 떨어질 사람 같으면 가만히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두고 보니까 자기네들의 똑똑한 패들을 빼 가는데 나중에는 자기네 패들을 시켜 가지고 대들보까지 소리없이 몽땅 빼가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서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왜 무섭다는 것입니까? 내가 뭐 칼 가지고 대포를 걸어놓고 목사들한테 겨누고 있습니까? 그렇지만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나이가 놀음할 판국을 짜고 나오게 될 때는 자기들이 어느 사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어떤 배지기에 들려 넘어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애국애족하는 교회가 되어야

예수님은 유대교가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그들을 자기 일당으로 만들어 가지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의 목을 조르려던 작전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와 같은 비운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와 같은 작전을 기필코 성사시키겠다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기성교회가 우리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민주세계에 있는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있으나, 이제는 기독교가 반대하더라도, 기독교가 없더라도 나라를 받들 수 있는 통일교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요셉의 족속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할수 있는 통일가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애국애족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예수님을 중심한 유대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을 중심삼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그런 나라를 가져야 하겠기 때문에 그 나라를 가지기 위해서, 애국애족하기 위해서 우리는 별의별 놀음을 다 해 나왔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피를 팔아서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그랬기에 이제는 명실공히 애국애족하는 단체라고 나라가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종교계에 있어서도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기성교회는 썩고 망할지언정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고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두드러진 승리의 권을 갖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 비운의 사나이로 몰려갈 수 있는 하늘편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계획했던 소망을 재현시켜 가지고 도리어 공인을 얻어 가지고 승리의 패권을 쥐고 호령할 수 있는 기반을 세계적으로 착착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통일교단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는 무엇이냐? 유대교를 대표하는 예수님 일가,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는 유대교 대신 재편성한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하여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한 소위 축복받은 가정들입니다. 이러한 통일교회 식구는 수두룩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상이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을 정도의 절정의 장면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나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교회,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은 결국 이스라엘과 유대교와 요셉의 가정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옹위하며 모실 수 있는 환경, 그러한 발판이 될 수 있는 요셉 가정의 일파를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무엇이냐? 예수님의 한을 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대받음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이 한을 풀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맺혔고, 하나님의 한이 맺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망하여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랑하는 혈족을 남기고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누구에게 한이 맺혔다고요? 「하나님에게 한이 맺혔습니다」 불쌍한 예수님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사랑받고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될 수 있는 한날을 바라보고 4천년을 한날같이 이스라엘 민족을 길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희생시켜 가지고 어둠의 세 시간이 가로놓여지는 그 비운의 장면을 보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냈단 말입니까? 이게 무슨 도깨비 수작입니까?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뜻이 다 이루어졌으면 왜 하나님이 한탄해요?

하나님의 한을 누가 풀어 드릴 것인가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은 영육을 중심한 지상천국의 개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육을 중심한 터전을 만들어야 되지만 그렇지 못해 둘 다 망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영적인 하늘나라의 문이라도 열기 위해서 작전을 한 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천국문을 열 수 있는 길을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하나님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요, 유대교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요, 요셉 일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한을 누가 풀어드릴 것이냐? 오늘날 민주세계의 중심적인 주도권을 갖고 있는 기독교가 풀어 드려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 책임을 못하니 우리 통일교단이 중심이 되어 풀어 드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애국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애국자. 둘도 없는 애국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제 1이스라엘을 팔아먹던 민족, 원한의 터전이 되고 불신 불충의 민족이 되어 하늘나라의 한을 맺히게 했던 것을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해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모두가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애국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사랑하지 못한 예수를 나라를 사랑함으로써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국자라는 레테르를 받으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충성을 하고 효성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불신한 유대교도들 같은 그런 패거리가 아니라 하늘의 일이라면 의심하지 않고 절대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 바칠 것을 각오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통일교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가 사랑하지 못했던 그 예수님을 우리 통일교인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요셉의 일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사돈의 팔촌과 같은 이런 모든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십년 정성들여 가지고 닦아 놓은 것이 통일교단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무엇 하기 위한 것이냐?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의 기원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가정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한 식구가 한을 맺히게 한 것이 예수님의 죽음의 동기였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교회와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한을 풀 기반을 닦아 나온 것이 오늘의 통일교회, 통일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바랐지만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통일교회 식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입장 또는 예수님의 형제, 누나,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조카 등 친척권을 대신할 수 있는, 이 땅 위에 규합되어 있는 무리들이 우리 통일교회 식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를 들어 여기 열 두 살난 어린 소년이 있다고 합시다. 이 열 두 살난 소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재현한 것입니다. 그의 과거가 어떻든간에,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 예수로 재현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한 나라의 대표자로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 일을 다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 하는 데는 나라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하지 못한 것을, 가정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하지 못한 것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렇게 3단계 내용을 대신한, 충효의 도리를 갖춘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도 풀어져야

요셉의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언제 예수를 사랑해 봤습니까?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추방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로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의 개문을 위해서는 사랑 못받은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 재현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통일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한 아저씨 아주머니가 언제 예수를 사랑해 봤습니까? 못했다는 것입니다. 형님 누나가 사랑해 봤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 사랑해 봤습니까? 동생들이 사랑해 봤어요?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의 동생들은 형님 예수를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중심삼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철석같이 뭉쳐 나라의 칼이나 어떠한 권세의 힘을 가지고도 깨뜨릴래야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심정적인 식구의 인연으로 결속된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정말로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만 하나님의 한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꾸며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 대신 입장에서 사랑하려면 깊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천년 동안 몰리고 쫓기던 민족, 비운에 처해 근근히 세계에 남아진 민족이 된 것은 천륜을 어겨 나오던 로마의 수하에서 그 절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천륜을 알지 못하고 개인의 사정과 가정환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비판하고 천륜을 배반했던 요셉 일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의붓 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사랑하고 싶었고, 또 어머니인 마리아를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하고 싶었고, 또 형제를 누구 보다도 안고 싶었고, 격식을 갖추고 살지 못하더라도 같이 살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그렇게도 수고해서 남겨 놓은 최후의 한분이기 때문에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는 의인으로서 뼛골이 녹아 지고, 힘줄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피살을 다 쏟더라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사랑하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찾아서 이제까지 사랑하지 못한 동생들을 사랑하고, 생명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들을 붙들고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종족과 나라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통일가에서 재현시켜 가지고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한을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한을 풀자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대교가 믿고 이스라엘 나라가 믿고 요셉 족속이 믿었더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자밥이 되었겠습니까? 믿었더라면 세례 요한도 어쩔 수 없이 에수님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는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국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마 11:7-9)"라고 세례 요한의 무리들을 책망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생각하니 자기는 명분이 있는 하늘의 선지자로서 가는 입장인데 헤롯왕, 즉 사탄한테 모가지가 걸려 가지고 감옥에 갇혀 있는 따라지 팔자가 되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준 적이 있는, 지금까지 나쁘게 소문났던 사생아 같은 자기의 동생 뻘 되는 예수에 대해 별의별 의심을 다 품었고 내가 형님인데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그가 어떻다는 소문을 듣고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보내 가지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이 괴물단지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하시면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식한 베드로가, 수제자가 될 수 있는 세례 요한의 권한을 몽땅 빼앗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을 일컬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천국은 시시껄렁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했더라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사도가 되고 70문도 120문도가 다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박사와 목사 그리고 수많은 사도들이 있었어도 여기에는 꿈에도 생각 못한 이러한 역사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나왔으니 이런 내용을 다 밝히는 거라구요.

만일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와 요셉 가정이 예수를 모셨다면

앞으로 세계적으로 이러한 내용이 개방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때 가서는 목사들 그저 허리를 굽신거리며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잘못되었다고 할 때가 불원간에 올 것입니다. 안 되면 선생님이 어떻게든지 그렇게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만약 예수를 이스라엘 나라가 받들고, 유대교단이 받들고, 요셉 가정이 받들었으면 예수가 죽었겠습니까? 세상에 악당 괴물이라 해도 그런 괴물들이 없다는 거예요. 자기 스승을 은 삼십 냥에 팔아먹어요? 그게 사람 새끼입니까? 여기에 문선생 팔아먹을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팔아먹을래요? 무슨 원수 졌다고…. '선생님을 팔아먹어야 돼' 하는 사람은 거지 영신이 붙은 사람인 모양이지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종자가 있는 사람 같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와 요셉 가정이 예수님을 받들고 모셨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재미있나…. 예수께서 그 나라의 왕이 됐겠습니까, 안 됐겠습니까? 「됐겠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세력 판도는 지중해 일대에 걸쳐 있습니다. 속국을 가지고 있었고 충분한 기반을 이룰 수 있는 사회상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부터 예수가 불만 잘 질러 놓으면 아랍권 전체가 동원되어 로마와 싸워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좋은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그 통에 밀려날까봐 떨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입장인데 예수님이 죽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겠지요? 왕이 됐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누구라도 충성하겠으니 나 좀 끌어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인의 조상들까지도 출세 길이 열렸다고 야단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나라의 왕이 되었으면 예수 중심삼은 내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내각이 있겠어요? 「예」 그럼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한 삼십년만 왕노릇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수한 족속이 남아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한, 즉 이스라엘이 망했던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가정을 못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신부와 신랑의 인연을 가지고 모든 족속을 거느리고 사랑하고, 교단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결혼도 못하고 따라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죽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어떠했습니까? 남의 시집 장가가는데 가서는 수작하고 걱정 했지만 예수 장가드는 것에 대해서 염려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마리아를 들이 때린 거라구요. 남의 잔치집에 와서 수작하면서 아들 장가 가는 것을 생각이나 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들이 때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장가가야 할 예수의 입장을 알아서 사돈네 팔촌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까지 전부 다 동원해 가지고 처녀라는 처녀는 전부 다 불러서 예수의 신부를 간택해야 했던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이스라엘의 한을 풀기 위해 모인 무리

하늘나라의 왕자인 예수의 계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딸, 즉 후계자를 남길 수 있게끔 정성을 다하고 예수의 내심을 따라 지도를 받아 그 판도를 넓히면서 터전을 마련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한 거예요. 남의 집 잔치하는 데에 가서 수작은 하면서도 자기 아들 예수를 위해서 언제 한번 그런 생각이나 해보았어요?

그것은 노총각 분풀이의 말입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어요? 예수 잘 믿는 양반들, '에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장가를 가? 그렇다면 그거 이단이잖아' 할 것입니다. 그게 이단입니까? 여러분, 예수가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입니다」 거 왜 남자로 태어났습니까? 보십시오. 예수께서 죽으면서 다시 올 때는 무엇으로 온다고 했습니까? 신랑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신랑으로 오는데 무엇하러 온다고요? 신부를 차 버리기 위해서 온다고 했습니까, 신부를 찾아서 온다고 했습니까? 「신부 찾아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신부가 무엇입니까? 색시예요, 다른 뭐예요? 「색시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목사들은 '남자도 신부 된다' 합니다. 남자가 신부 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할 종교입니다. 예수가 왜 죽었느냐? 하늘땅이 허락할 수 있는 아내를 못 찾아서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면 누구를 맞는 다고요? 신부를 맞는다고 했습니다. 일등신부. 예수님이 신부를 맞지 못하면 어린양 잔치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저 주먹 구구식으로, 엉터리 망터리 어거지 떼거지로 해 가지고 '나 천국간다' 하는데 전부다 가보라구요, 어떻게 되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됩니다.

이스라엘의 한이 뭐냐?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 가정을 이룬 그 일가는 그야말로 하늘나라의 왕가입니다. 지상에 하늘나라의 왕가가 벌어졌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늘나라의 왕자님이기 때문에 그 왕자님을 중심삼은 가정이 지상에 벌어졌으면 하늘나라의 혈족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족속은 이 땅에 영원히 주권을 가지고 치리할 수 있는 하늘 나라의 족속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일가를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 부모가 되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손자손녀들까지 사랑하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이 땅에 온 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예수님 일대에 가정을 이루어 아내와 자녀와 손자들과 그 일가를 거느려 보지 못하고 사랑해 보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한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예수님의 그러한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한 무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 바로 그런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소망 하던 신랑신부에 부합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한을 풀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 왕가의 혈족을, 이 땅 위에서 실체를 쓰고 예수를 믿지 않고 천국갈 수 있는 아들딸, 그 족속을 모셔 보자고 등장한 것이 바로 통일교회 식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지긋지긋하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류를 대신하여 기쁜 소식을 중심삼고 하늘 가정의 터전,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와 그 혈족을 중심삼고 예수 믿지 않고도 천국갈 수 있게 하늘 나라의 직접적인 관리 밑에서 새로운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나라의 혈족 기반을 넓혀 나가는 일을 못한 것이 이스라엘의 한이요, 역사적인 인류의 한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해방의 한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 민족의 한과 인류의 한을 푼 승리적인 가정과 승리적인 종족과 승리적인 민족과 승리적인 새로운 국가로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통일가의 소망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는 그 마음을 세계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을 대하여 그 나라의 백성에 대해 예수님이 원수들을 용서하셨던 그 마음을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에 내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예수님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아저씨 아주머니한테도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느냐?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님이나 누나의 입장에 있는 사람한테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종족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넘어 저 원수 나라인 일본의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느냐, 일본의 아저씨 아줌마라도 우리의 한 혈족을 대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자유롭게 맺는 곳이 천국

예수님의 가정에 있어서 맺지 못하였던 그 사랑의 인연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자유롭게 맺을 수 있다 할 때,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한 것을 가려 나와 이런 엄청난 천주의 한을 해원성사하고 가로막힌 인류의 갈 길을 터놓기 위해서 오늘 통일교회가 세계의 기수로 등장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들은 하나님을 누구 보다도 사랑하고 인류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잃어버린 것도 한이지만 그 민족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찾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회를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잃어버렸고, 종족을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잃어버렸고, 가정을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종족을 잃어버렸고, 어머니를 찾지 못하여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식구의 인연과 부자의 인연과 형제의 인연을 갖고 부모님을 모셔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인류의 한을 몽땅 풀 수 있고 또 어떠한 악한 것이라도 끼어들 수가 없도록 사랑의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해야만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어떻게 해야 가느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처자보다도 혹은 자기 형제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심정으로 하나님 중심삼고 통일가정권내에서 피를 분립한 하늘의 혈족을 이루어, 혈연적인 형제들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내적인 강건함을 갖추어 인연맺을 것을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 이상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심정과 모심의 도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훗날 본연의 나라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가 아닌 이 세계를 우리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길에 깃발을 꽂고 그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을 지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통일가의 심정의 씨를 뿌려 만민을 전부다 포괄해 가지고 참부모의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의 형제의 인연을 맺어 공동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는 데는 흰둥이고 검둥이고 황인종이고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합동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다 알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민족이 달라도 결혼을 시키고 있습니다.

가령 영국과 독일은 국가적인 원수입니다. 또 영국 사람들은 인테리니 뭐 젠틀맨이니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교만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미남자와 독일의 지지리 못난 여자가 원수지간의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어 결혼을 함으로써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새로운 전통과 하늘의 법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사명인 것입니다.

세계를 밟고 올라서서 우리가 이런 일을 실천하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독일 처녀와 영국의 청년하고 결혼시켜 줬습니다. 거기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은 너희가 두 나라의 국경 때문에 외적인 사탄세계의 담으로 가로놓일 수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뜻은 꼼짝도 못한다. 그러니 너희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가정의 봉화를 들고 세계에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선각자가 되어라' 하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멋지게 깨끗이 살라는 것입니다. 2, 3년만 같이 지내게 되면 말은 통하는 것입니다. 그들 부부가 아들딸 낳고 사는 것을 볼 때에 그 이상의 행복을 그리워하면서 천년의 해원을 바라보고 천륜의 도리를 세우고자 다짐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원수지간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제일 잘난 사람과 한국의 제일 못난 사람하고 혹은 일본의 잘난 여자하고 한국의 못난 남자와 짝을 맺어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너는 한국사람을 사랑하느냐'고 하면 '사랑합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맺어 주고 통역을 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러냐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정의 인연을 짓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내심으로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통일교회의 이런 사상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망의 운세가 감돌수 있는 원수들간의 국경이 여기서 허물어지고 인류의 비참했던 절대적인 권세가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한의 구렁텅이는 메워지는 것이요, 가정과 가정 사이의 벽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통일교회가 있기까지의 하늘의 수고를 알라

이 놀라운 역사, 이러한 찬란한 역사, 찬란한 새로운 문화의 창건을 위해서 서로 서로가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기필코 올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수난의 길을 걸어왔다 하더라도 여기에 당당히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렇게 멋진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인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뭉쳐야 되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는 식구들, 여기 지구장이면 지구장, 또는 여러분에게 내가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이 통일교회 선생이라는 사람은 여러분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껄렁껄렁한 가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늘 열과 성을 다하여 통일교회 여러분을 사랑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내 어머니의 하소연도 뿌리치고 처자식까지도 발길로 차고 나온 사람입니다. 식구들을 원수로밖에 대할 수 없기에 옆눈으로 흘기면서 혹은 침을 뱉으면서 나온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후계자의 이름을 절대 더럽히지 않으려고 부모의 정을 끊기 위해서 혀를 깨물었던 사람입니다. 첫아들이 눈물짓는 것을 바라보며 악착같은 사나이가 되라고 하면서 하늘 가는 길에 있어서는 피를 흘릴 수 있는 한 대표자가 나와야 된다고 박차고 나선 사나이입니다.

선생님은 이렇듯 부모를 버리고 처자를 다 버리고, 이 보잘것없는 통일교회 무리들을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세상에서 월급을 받으며 사는 사람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사람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통일교인은 이러한 뼛골에 사무친 사실을 보고 듣고 느꼈기 때문에 부정 못 할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않는 생활을 하여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사상과 전통만은 남겨야 됩니다.

꺼져간 예수, 흘러간 예수의 비운의 원한을 내 일신에서 다시 소생시켜 천륜의 새로운 희망봉을 향하여 새로운 기수가 되어 가지고 당당히 직행해 나갈 수 있는 용사의 모습을 갖추고 나섰다고 자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부르게 될 때 당당히 부를 수 있는 것이요, 하늘의 사랑은 나와 더불어 관계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충신의 도리와 철석 같은 효성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맹세의 절정에 서서 외치며 나설 수 있는 사나이, 아낙네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인이 하늘 뜻 안에 가져야 할 절개요, 우리의 뜻 앞에 가져야 할 절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난길을 걸어오고 남이 헤아릴 수 없는 비참한 운명길에서 혹은 영계에 부딪치는 사연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앞에 내가 어떠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것으로서 내가 당해야 할 수난이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남겨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런 수난길을 뼛골을 녹이며, 원리의 길은 바로 이러한 길이라고 여러분을 가르치며 나온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무지의 세계에서 허덕이면서 이 길이 누구든지 알 수 있는 공식노정으로서 밟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심혈을 다 투입한 사나이입니다. 이런 비운의 사나이가 비운의 시대에 이 대한민국에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 한국 민족으로부터 화살 같은 핍박을 받으며 악운 가운데서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이 고을 저 고을로 도피하는 길손의 걸음걸이를 재촉하면서 나왔습니다.

오늘날의 통일교회의 이만한 교인들이 있기까지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으로 말미암아 하늘땅에 사무친 한이 또 남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푸는 것은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닦아 나온 생애노정을 여러분이 책임지지 않으면 비운의 역사적인 한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이 한을 내 일대에, 내 자신의 가정에서 탕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승의 마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인류를 자기의 혈족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하늘 가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이단입니까? 선을 쳐 가지고 남아지는 악의 무리는 없습니다. 선은 맞아서 흥하지 않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선이 손을 들어 치는 날에는 악은 흔적도 없이 영영 깨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이도 참아 왔습니다. 하늘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통일의 무리가 나오기 전에는 기성교회가 지금까지 형님의 자리에서 하늘을 모시고 나왔습니다.

우리가 없었던 때에도 하늘 아버지를 모시는 형의 인연을 이어 나왔기에, 내가 없는 동안에 그들이 하늘의 혈족을 남길 수 있도록 공을 들여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있어서 그러한 형님을 몰라볼 수는 없어서 눈물로 호소하며 빚을 져 가면서까지 전부 투입해 가지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도 미워하고 있다는 거예요. 만일 기성교회가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앞으로 일세는 망하게 됩니다.

앞으로 기성교회 목사들이 전부다 끝까지 버틸지 모르지만 그들의 2세는 전부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르게 되는 거라구요. 내가 악한 복수의 마음이 있다면 그들에게 자기 어미 아비의 무덤을 파 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한을 우리가 풀 것이 아닙니다.

참은 국경을 초월하는 것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참된 사람이 있느냐? 참된 사람이 있느냐는 거예요. 오늘날 위인들은 많습니다. 이 나라의 위인은 누구냐?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을 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을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좋아 합니다」 선생님은 싫어합니다. 싫어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 선생님 말을 들어 보세요.

참은 국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참은 원수의 나라에서도 참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은 한국에서도 참이요, 영국에 가도 참이요, 독일에 가도 참이요, 미국에 가도 참이요, 아프리카에 가도 참입니다. 우리편 사람만이 아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참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이 참된 사람이라면 우리 민족도 좋아하고, 일본 사람도 좋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을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데, 일본 사람들도 좋아합니까? 일본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느냐는 거예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책에는 원수라고 쓰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참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애국자로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하늘땅 위에 공적인 특권을 가지고 천추만대의 만민과 더불어 원수를 관할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무릎을 꿇고 찬양하도록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상 성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은 참된 사람의 반열에 드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자기의 생명을 잃는 자리에서도 원수들을 위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34)" 라고 했습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그 자리에서도 사랑을 선포하던 그분의 그러한 사실을 알고 난 뒤 로마제국의 병사들도 뼛골이 녹아나서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가 400년 후에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라도 그분을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들도 좋아하고 존경해야만 참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인류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까지도 그분을 사랑하고 숭배할 수 있는 터전을 가졌기 때문에 그분은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통일교회에 기독교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원수를 갚는 다 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집을 떠나 3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왔지만, 어느 한 날 하나님 앞에 '복 주십시오. 보호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한마디도 안 한 사람입니다. 처자를 버리고 7년간의 길손 노정을 거쳐왔지만 처자를 위해서 기도 한마디 안 했습니다. 돼지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대신 세계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대신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 나오신 길이 아니잖소. 나를 세웠으면 어떤 일가를 망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오' 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당한 정의에 입각한 논리라는 것입니다. 돼지 새끼처럼 자기나 잘되는 복을 갖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북에 계시는 부모님에 대해서 기도하면 순식간에 알 수 있습니다. 팔 남매 중 나를 위해서 충성스럽게 돌봐주시던 형님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동생인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몰랐지만 이 세상에 동생밖에 없다는 것을 영계를 통해서 알았던 분입니다. 해방될 것도 미리 알았고 신앙면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고차적인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형님이었습니다.

그렇게 동생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고 움직이던 그 형님에게 선생님은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자기 혈족을 통한 한을 품고 죽은 예수님의 그 한을 풀어 주어아 할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머니 아버지와 형님에게 이야기 한번 못하는 한을 그대로 품고 나온 것입니다. 세상 같으면 자기 부모와 형님 누나를 중심삼고 자기 혈족을 통해서 교회 간판을 붙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빈손으로 와 가지고 자기 혈족을 희생시키고 난데없는 거지 떼거리들을 중심삼고 자기 혈족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것이 천도를 상속할 수 있는 터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지금까지 사랑하는 아들딸, 사랑하는 종족, 사랑하는 나라를 희생시켜 가면서 이 악당의 무리를 사랑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이 되고 그 계대를 잇는 입장에서는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지금까지 선생님이 죽을 고비에서도 망하지 않고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나가는 데 망하거든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내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이렇게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몰아낸 목사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들의 후손까지도 다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공산당 치하에서 3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도 매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사연을 풀고 그 원수들을 친히 사랑했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하려고 알아봤더니 모두 다 흔적도 없이 죽고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게도 악바리 같은 사람들이 다 꺾여 나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산 증거를 지금까지 보이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무섭다면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가 망하면 천도가 깨져 나갑니다. 남을 위해 피를 토하고, 남을 위해 밤잠을 안 자고, 남을 위하여 거짓말을 안 하며 남의 일생을 거름 삼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망한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받는 노정에서도 하나님은 '네 갈 길은 또 있다'고 하시며 독려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상에도 이스라엘편에 7천의 무리가 숨겨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단이 가는 길에 있어서 준비된 이 민족이 받들면, 세계 도처에서 그 길을 환영할 수있는 날이 올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 우리 단체를 등록하려고 했으나 등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이미 세계 5개국의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을 마친 때였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판도가 되었으니 결국 등록허가를 내주지 않은 우리 나라가 창피하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상대로 싸워 가지고 대한민국 국가 입장에서 등록거부라고 공고했던 것을 일주일 이내에 철회하게 하는 운동도 내가 시켰습니다. 다 그럴 줄 알고 지금까지 이렇게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매정한 우리의 행로 앞에 언제나 슬픔만이 깃드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를 거슬러 가는 것입니다. 밤은 자정이 지나면서 새 아침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의 광명한 아침이 되어 세계를 향하여 7천년 역사의 운세를 가지고 이 한민족 앞에 찾아오고 있는데 한 번밖에 맞을 수 없는 이 운세를 놓쳐 버리는 불쌍한 이 민족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고귀한 천륜의 사명을 여러분이 뼛골에 이어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한과 참부모의 한과 지금까지 온 인류가 풀지 못한 한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통일가뿐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천상세계의 승리적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도 춤을 추고, 영계에 간 모든 선한 영들도 춤을 추며, 천사와 땅 위의 만인이 춤을 출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해 돌진할지어다. 여러분.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도 이와 같은 자리에서 당신의 서글픈 심정을 회상해 볼 적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 아픔을 절절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 이와 같은 비운에 사로잡힌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로 인하여 아버지께서는 억만천세 뼛골에 사무치는 분통과 공분을 느끼시며 천추에 이를 데 없는 슬픈 심정을 품고 나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통일가의 부족한 무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의 피어린 심정 가운데 당신만을 사모할 수 있는 마음이 고조되게 하여 주시옵고, 등 뒤에서 울려 나오는 천명을 들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기말 시대에 있어서 우리 통일가에 맡겨진 중대한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아버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 부산지구 본부까지 순회하는 가운데,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오늘도 이곳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무리들이 만날 때는 기뻐하고 헤어질 때는 눈물로 엇갈린 사정을 나누는 것을 보게 될 때에, 불쌍한 이 무리들을 버리지 말라고 당신 앞에 이들을 의탁하지 않을 수 없는 사연을 아시옵소서. 외로운 길가에서 누구도 모르는 눈물을 흘릴 적마다 이들에게 깊은 심정의 아버지가 되시옵소서. 쫓기는 자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깊은 가슴의 사연을 터놓고 내 딸아 내 아들아, 부르시어 분부 하시고 권고하시던 당신은 아들과 딸이 그런 자리에 설 적마다 언제나 같이하실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험한 길에 부딪치게 되어도 당신의 마음 졸이는 사정을 알고 저희들 스스로가 그 길을 회피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들어갈 적마다 아버님은 언제나 승리의 결과를 남겨 주었던 사실을 저희들은 또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부산지구 본부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대한민국이 단말마적인 상황에 놓여 있사옵니다. 국가가 비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 아버지여, 내일의 아시아 정세를 염려하시는 아버지시여, 승공을 표제로 삼고 나오는 통일교회에는 이제 세계 공산당과 일선에 서서 피살을 뿌려 가면서 담판의 해결을 지어야 할 과정이 남아 있사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들이지만 오직 당신의 제물로서 몽땅 바칠 것을 결의하고 나섰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고, 이 시간도 눈물어린 심정으로 대한민국의 앞길을 맡기 위하여 자기의 생을 제물삼겠다고 하는 이국의 자녀들에게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서로 원수로서 맞대고 있는 민족의 담벽을 헐어 버리고 세계에 없는 역사적인 새로운 미래의 기원을 이루고자, 아버님을 위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나가는 통일가의 형제들이오니, 아버지, 그들 위에 사랑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외로운 눈물의 골짜기를 메우시어 당신의 위로와 사랑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의 아시아의 정세를 지키시옵소서. 아버님이 걸어가셔야 할 세계적인 행복의 노정을 위하여 저희들은 착실히 가야 되겠습니다. 이몸 마음을 다 바쳐 아버님을 위하여 미치고 또 미치는 미치광이가 되어야 겠습니다.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까지, 불행과 고난이 끝날 때까지, 당신을 위하여 정진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고, 오늘의 비참한 운명을 가름할 수 있는 이 몸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내일은 부산교회를 떠나 서울을 향하여 올라가겠사오니 스승을 보내고 나서 가는 길을 염려하여 마음으로 기도하고 외로와하는 이곳의 자녀들 위에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의 소원은 죽을 때까지 빚지지 않는 것이오니, 이들도 절대로 빛을 지지 않고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이 이러한 행로를 가는 데 있어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가기를 맹세하며 갈 수 있도록, 아버지여,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산 전통의 인연을 이 민족 전부와 더불어 세계인에게까지 맺을수 있는 사랑의 삼천만 민중의 삼천리 반도, 거룩한 남북통일된 주권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일구월심 꿈에라도 잊지 않고 자나깨나 일편단심의 성심을 다함으로써 승리하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땅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승리의 태극기를 들고 아버지 앞에 영광의 한날이 되었다고 승리의 개선가를 드높이 부를 그때까지 저희들은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쳐서도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에게 힘을 주시어서 그 자리에 동참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들에게 통일식구의 사명이 이렇게 엄청난 것임을 알려 주었사오니, 이 내용이 뼈살에 사무치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기어이 아버님의 한을 풀고 죽겠다고 다짐하며 천년 만년 가중된 십자가의 길을 생애에 가야 할 책임노정으로 알고 달려갈 줄 아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일도 당신의 깊으신 뜻 가운데에서 맡아 주관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해 들어 네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분부와 사랑과 긍휼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한 많은 복귀노정에 남아진 섭리의 뜻을 인간이 기필코 받아들여 그것을 생활노정에서 체득해 가지고, 온 만민을 아버지 앞에 복귀해 드려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희들은 시간이 바쁘고 또한 그 길을 배로 바쁘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게 되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이 저희 개체에 머무르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이 저희 개개인과 더불어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인류와 온 천주까지 미쳐질 수 있도록 하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승리의 한 날을 표방하기 위하여 길이길이 참아 나오신 그 슬픔의 노정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은 하루빨리 맡은 바의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을 더욱더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더욱더 절실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되겠으며, 그 일을 위해 언제나 아버지께 의논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 뜻은 저희들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뜻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써 저희들을 부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 머리를 조아리고, 또 당신을 향하여 축수(祝手)를 드리고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하여 참고 기도하며 어려움과 싸우고 있는 줄 아오니,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가정을 대표하여 나가 있는 어린 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느끼고, 그들이 싸우고, 그들이 생활하는 가운데서 아버님을 알고, 아버님을 모시고,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의 거룩한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이 아버지 앞에 품길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을 넓히게 하여 주시옵고, 만민으로 하여금 당신이 남기신 뜻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이어 받을 수 있는 승리의 전통을 만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해에 저희들을 놓고 섭리할 거룩한 뜻을 어서 속히 이루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벌어져 오는 뜻 앞에 있어서 충성을 다짐하고,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제거하며, 참된 모습으로써 아버지 앞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줄 아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어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풍성하신 은혜로써 저희들과 같이 품어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오며, 모든 전체가 뜻하신 대로 성취되기를 재삼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와 육계가 합하여서 통일의 세계를 이루고, 만민과 피조세계가 합하여서 아버지의 영광의 나라를 창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많되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되어 그 뜻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더우기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자녀의 인연을 맺어서 그러한 개인으로 하여금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엄청난 과중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심정적인 인연을 생애노정에 남기고 가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가는 사람이 이 땅 위에는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할때 그런 사람이 그리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때와 소명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어떠한 선택을 받게 되면, 그 선택받은 자리에서 참된 승리자가 되려고 하고 더 빛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그렇지만 이 욕망이 우리에게 소망을 자극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노력만 하면 누구나 다 성공할 줄로 알고 있지만, 성공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소명을 받는다는 사실도 어려운 것이지만, 소명을 받아 가지고 감당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교회를 보더라도 1956년부터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거치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모든 과정을 생각해 볼때 그 길은 평탄하지 않은 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귀의 길을 가는 데는 스스로 노력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개인이 찾아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각자 각자의 성품이 다르니만큼 반드시 원리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응용하면서 자기 생활에 적용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 환경이 달라지고, 시대의 차이가 벌어짐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 앞에 있어서 상대되는 입장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노력하며 나가야 할 책임분담 5퍼센트의 노정이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을 중심삼고도 그렇고, 교회를 중심삼고도 그렇고, 나라나 세계를 중심삼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오면 이 아침을 다같이 맞이합니다, 낮이 오면 이 낮도 다같이 맞이하고, 밤이면 밤도 다같이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심령을 중심삼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 시간상으로는 아침 나절을 맞는 사람이 심령상으로는 낮을 맞는다거나, 낮을 맞는 사람이 심령상으로는 저녁을 맞는 것같이 엇갈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애노정은 그 사람의 성품에 따라 엇갈려서 달리 받고 있고 달리 가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공식과 같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맞지 않는 부분은 자기 스스로 맞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침부터 출발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저녁이나 밤부터 출발했다면, 이 밤 시간이라는 과정에서 자기의 갈 길을 암중모색해 가지고 올바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절기상으로 봄절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름 절기에서부터 시작했다면, 이 여름절기를 지내고 겨울절기를 지내 가지고 다시 새로운 봄절기를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엇갈려 있는 자기 개체의 심성이면 심성, 소성이면 소성이 뜻의 노정과 차이가 나는 것을 결부시키기 위한 싸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백 퍼센트 하나되어 가지고, 그때에 적응될 수 있게끔 아침이면 아침, 점심이면 점심, 밤이면 밤, 하루 24시간이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소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을 받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루에 있어서 아침이면 아침, 낮이면 낮, 밤이면 밤, 계절로 말하면 춘하추동과 같은 입장으로 사람이 타고난 소성과 그가 뜻길을 출발할 때의 기준이 뜻의 때와 맞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탕감지어야 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탕감을 해야 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뜻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입장에 서서 따라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의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상충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자기가 만일에 가을절기면 가을절기, 겨울절기면 겨울절기와 같은 때에 출발했는데 그 출발한 때가 어느 때인지를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입춘이 찾아오게 되는데, 이 입춘이 어느 때에 자기의 생활권 내에 찾아오는지 알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그와 같은 때를 맞추지 못하니까 자꾸 엇갈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때를 우리가 어떻게 포착해 가지고 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신앙생활에서 깨닫게 될 때, 여러분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때를 어떻게 잘 조절해 가지고 맞추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맞추게 되면 하루가 엇갈리고, 일년이 엇갈리고, 십년, 혹은 수십 년이 엇갈려 가지고 하는 일에 모두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상충적인 결과만 나타나는 생애노정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뜻을 따라가는 우리들이 이런 때를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깊은 신앙생활, 다시 말하면 깊은 기도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신앙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문제를 대하든가 혹은 어떠한 사건을 당하게 될 때, 이것이 자기에게 환영하는 입장으로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은 언제나 마음의 선이나 혹은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비교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친구가 와서 신앙길에 있어서 문제 되는 것을 중심삼고 말하게 되면 그의 말을 처음 듣는 그 자리에서 그 말에 내 본심이 화동하고, 내 본심이 순탄하게 화합하느냐 하는 것을 언제든지 분석하고 비판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자기의 처음 인상, 처음 감정, 그 느끼는 감각이 어떠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언제든지 스스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말을 하게 될 때에는 그 말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기 전에 그 말을 들을 때에 먼저 나 자신의 마음과 몸이 어떠한 느낌을 갖느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스스로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어떤 일이 있을때, 그것을 처음 대하게 되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자기에게 마이너스가 될지 플러스가 될지를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일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그것이 요구하는 방향의 반대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는 사연을 전달받게 될 때 거기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반대로 느껴지게 되면 반드시 그 길을 그냥 가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반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가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만큼 가게 되면 가고 있는 그 자체에 대해서 스스로의 마음 가운데에서 또다시 반대로 느껴질 해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맨 처음에 말해 준 그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해야 됩니다. 이런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은 전후관계에 있어서 앞서 나가는 입장에 설 수도 있고, 떨어져 나가는 입장에 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든지 이것을 조종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뜻이 원하는 최종적인 정점까지 가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어떤 일에 대해 보고를 받을 때, 그 보고의 내용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보고를 받으면서 그 사건 자체에 대해 하나님께서 보시는 감정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합니다. 그 감정이 나와 어떠한 관계를 맺겠느냐? 좋을 것이냐, 나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비교 검토해 가지고 느껴지는 감각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일 때에는 전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느껴질 때에는 그 행동을 주저하고 반대적인 입장에서 다시 그것을 비교 검토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직접적으로 행동할 문제가 아니라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그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기도하면서 조정해 나가게 되면 반드시 자기가 바라던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그 때가 어떤 때라는 것을 전한 사람, 즉 보고한 사람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길에서는 소명을 받기도 어렵지만 그 소명을 받아 가지고 따라간다는 것도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언제나 원만하게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됩니다. 공기를 팽팽히 집어넣은 고무공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둥글게 가지고 누구에게나 치우치지 않고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취해 나가지 않고서는 신앙길에 반드시 모험이 벌어지고, 뒤넘이치는 노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왕왕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조정할 수 있어야

마음이 언제나 우그러지지 않고 주체적인 입장에 있음과 동시에 원만한 자리에 서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 닦아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격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격함으로 말미암아 다음이 치우침을 받게 됩니다. 슬픈 자리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어 자기의 본성과 맞지 않게 마음이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의 심성을 중앙에 위치하게 하면서 자기의 심성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이 기구(氣球)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기구와 같이 높이 떠올라 있게 될 때는 모든 것이 관철됩니다. 그렇지만 이 기구가 저기압이 되면 쭉 내려오듯이 마음도 내려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 기준에서 그냥 옛날과 같은 자세를 갖고 있으면 이것은 반드시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더 내려가든지, 반대로 밀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려오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내려와야 되느냐? 밑창까지 내려와야 됩니다. 밑창까지 내려오게 되면 반작용에 의해서 다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압이 자꾸 내려가는 입장에서 어느 기준까지 내려가게 되면 도리어 반작용에 의해서 올라가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려가는 자리를 지키든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입장에서 밀고 올라가는 작용을 하든가 해서 언제나 마음의 기준을 조정할수 있는 신앙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갑이라는 사람을 대할 때는 갑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한 시간 대하고 난 후에 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두 시간 대하고 나서 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하루종일 대하고 나서 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중심삼아서 그 사람과 내가 상대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플러스이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플러스 입장으로서 열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상대적인 마이너스 입장으로서 하나밖에 안 가지고 있다고 할때 그 사람과 마음이 기뻐 가지고 주고받게 되면 나의 영적인 그릇이 비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의 가진 것을 3분의 1이상 소모시켰다가는 보충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언제든지 심성,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에 자기 마음의 기준이 그 기준을 넘어 가지고 자기 중심의 위치의 변동이 벌어지게 될 때는 그것을 조정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극히 어렵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탕감적인 입장에 내려갔으면 그것은 빨리 보충이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또는 기뻐하시지 않는 환경에서 소모가 되어서 자기의 중심 위치가 이동되었다 할때는 그것을 바로잡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한 시간쯤 주고받고 나서 자기의 마음에 미쳐진 영향이나 혹은 타격받은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 소모시킨 시간보다도 몇십 배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타격받으면 힘이 쭉 빠지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그것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을 1차 당하고, 2차 당하고, 3차 당하게 되면 나 자신의 위치가 어느 한계선을 벗어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 한계선을 벗어났을때 그것을 다시 보충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왜냐하면 본성이 그렇게 되는 것을 환영하는 것도 아니요, 그 한계선을 벗어나게 된 것은 본성과 심성에 대해서 상충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이요, 심성을 제쳐놓고 그와 같은 자리에 나갔기 때문에 다시 넘어와 가지고 자리잡는 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대인 관계나 혹은 사업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지 자기의 신앙 자세를 올바로 잡아 가지고 모든 문제들을 비교 검토하면서 자기가 가야 할 방향에 한 시간 한 시간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소명을 받들어 가지고 그 소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곳까지 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더더구나 타락한 인간들이 생활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우리만이, 혹은 나만이 이 길을 갈 수 있게끔 되어 있진 않습니다. 여기에 협조를 받아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의 초심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이 길은 누구나 다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협력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열 사람이면 그 열 사람 전부가 동료라기 보다는 오히려나 자신을 소모시킬 수 있는 상충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기초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떠한 책임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책임자를 따라가는 입장에 서서 자기의 심정 기준을 그와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지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도하는 사람이 나에게 명령할 때 좋은 명령도 하고 싫은 명령도 합니다. 그러면 좋은 명령을 받았을 때 자기의 마음의 느낌과 싫은 명령을 받았을 때 자기의 마음의 느낌을 언제든지 감지해 봐야 됩니다.

책임자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을 때 그쪽으로 가 본 자기의 마음이 어떠했는가, 또 그 명령을 한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했는가 하는 것을 비교 검토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 앞에 좋은 목적으로 오른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했다면 그 뜻을 따라 내가 오른쪽으로 따라갈 때의 마음의 느낌이 어떠하냐, 또 책임자가 뜻 앞에 나쁜 목적으로 왼쪽으로 가라고 명령을 했을 때, 그 명령한 사람의 목적이 무엇이냐, 과연 나를 위하고 나의 신앙길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 명령을 했느냐 하는 것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을 실지로 행하여 느껴 보면서 비교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그의 명령을 실행하면서 그를 숭배하고 따라가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를 위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뜻이 지향하는 길이 이렇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심이 없이 공적인 마음만으로 쭉 움직여 봐야 됩니다. 움직이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라는 겁니다. 움직여 보고 난 다음에 이것이 자기에게 출발할 때와 출발하고 난 후에 어떠한 차이를 가져 왔느냐 하는 것을 비교 검토해야 됩니다. 출발하고 난 후가 출발할 때보다도 좋았다 하게 될 때는 가라는 명령을 따라 간 그 일의 내용과 내 소성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도전하여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 신앙길을 가는 초심자들이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맨 처음 신앙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계시라든가 환상이라든가, 혹은 몽시라든가 암시로써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즉각적으로 그 누구한테든지 이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가만히 볼 때, 그것이 자기의 일생에 대한 문제가 된다고 하면 못해도 3년 이상의 기간을 실천하고 나서 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가르쳐 준 그 뜻이 이루어지겠느냐 안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볼 때에, 그 가르쳐 준 계시든가 몽시라든가 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3일이라고 했던 내용이 3개윌 만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요, 혹은 3년만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50세 된 사람이 받은 계시가 30년 후에 이루어진다면 그 사람의 나이가 80이 되어 너무 늦기 때문에 그렇게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3개월이나 3년은 두고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기 전에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책임없이 말하게 되면 기운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말씀한 내용의 대상이 자기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어떠한 대상적인 내용을 이루어 놓지 않고 느끼는 것을 말해 버리면 그 말씀이 나갈 때 그냥 나가지 않습니 다. 반드시 자기가 가진 선의 양을 끌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명문가에서는 자식을 교육을 시킬 때 아침에는 될 수 있는 대로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침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먼저 말하지 말고 들으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생활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자기의 본심을 살펴보라

말을 듣고 대답하는 것은, 우주적인 원칙을 적용하여 말하는 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다면 대상의 입장에 선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것이 존재세계의 자연법칙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럴 때에는 대답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말씀하게 될 때에 말씀을 듣는 상대가 이 100이란 말씀 앞에 100이라는 대상으로 나타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스스로 그 말씀한 내용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진 사람일수록 더욱더 먼저 실천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교단을 책임졌다든가, 한 나라를 책임졌다든가, 혹은 세계를 책임진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구나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를 통해서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즉각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려면 반드시 먼저 실천하고 나서 말해야 됩니다. 어느 단계까지 실천을 하여 자기와 관계를 맺어 놓고 그 누구와도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빼앗아 갈 수 없다 하는 자리에서 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빼앗아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실천한 것을 능가하지 않고서는 못 가져간다 하는 진척된 기준을 세워 놓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것을 넘겨 주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 할 때에 그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특정한 사명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계속적인 은사를 퍼부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준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함부로 기도해 주다가는 오히려 자기가 치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 기도해 주고 나면 말할 수 없는 탕감을 받게 됩니다. 지나친 탕감을 받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보다도 선의 기준이 높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면 자기가 도움을 받습니다.

자기보다도 못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면 반드시 탕감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준 그 사람이 받아야 할 탕감을 내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도해 주는 사람이 받는 탕감으로 말미암아 기도받는 사람이 좋아지면 모르지만, 도리어 그 사람이 하늘에 손해를 끼치게 되고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가의 탕감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세계의 반응적인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중심삼고 우리는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 자기의 소성이 제반 사건을 대할 적마다 언제든지 그 일에 직접 풍덩 들어가는 자세보다도 그 일에 대해 첫감정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감지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말을 듣게 될 때 이것이 뜻 앞에 있어서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이것이 내 앞에 플라스되는 것이냐, 마이너스되는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게 될 때, 말을 하는 그 사람의 태도라든가 그 사람의 외형이라든가 그 사람의 심각성이라든가 하는 것을 도외시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첫마디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릴 때 내 감정이나 내 본심이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스스로 비교 검토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세계에 포위되어 있는 이 환경을 타개해 나가면서 자기의 본성의 길을 올바로 개척해 나가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때 이 기준을 찾지 못하고, 이것을 분간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 3년이면 3년, 7년이면 7년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기간에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검토해야 됩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한 번 기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신중하게 장기적으로 계속해 나가야 됩니다. 계속해서 나가게 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떤 일을 기도로 이루어지게 하려면 3개월이라든가 3년, 혹은 몇 년씩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걸고 기도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또 자기 일대(一代)뿐만 아니라, 미래에 저나라에 가서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복귀 문제와 같은 전체적인 문제는 그렇게 정성을 들이며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성은 뜻의 목적에 따라 들여야 한다.

개인적인 운세는 가정적인 운세를 막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운세는 가정적인 운세권내에서 지배를 받습니다. 또, 가정적인 운세라는 것은 그 동네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즉 그 동네의 친척이면 친척, 종족이면 종족적인 운세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종족적인 운세는 민족적인 운세의 지배를 받고, 민족적인 운세는 국가적인 운세의 지배를 받으며, 국가적인 운세는 세계적인 운세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해 나간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운세가 불운한 입장에서 몰아치게 된다면 대한민국 자체로서는 그 운세를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자체가 세계의 운세를 넘어 가지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대한 민국이 현재 세계 운세로 말미암아 침범받을 때의 운세보다도 정성들이는 운세가 더 크게 되면 세계의 운세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미래를 걸어 놓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반드시 더 큰 분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나라라든가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나라의 운세가 찾아 오게 될 때 모든 국민에게 평균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이름으로서 누구나 노력하게 되면 그 운세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운세권내에서 세계적인 운세를 맞이하려고 할때, 아무리 그 나라에 충신이 많이 있고 선한 사람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맞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운세를 맞이하려면 그 나라권내에 살더라도 세계적인 운세를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 세계적인 운세권내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거기에 국경이 있고, 혹은 지형적인 차이가 있어서 떨어져 있더라도 그 세계적인 운세는 자기 가정과 더불어 자기가 기도한 터전과 더불어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한 때 인연이 되면 10년이나 20년, 혹은 1대, 2대, 3대까지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성들여 가지고 세계적인 운세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지형적인 조건이라든가 국경, 혹은 민족적 관이라든가 하는 문제 때문에, 세계적인 운세와 인연맺지 못하고, 대할 수 없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정성의 기간이 1년 혹은 10년이 소모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많은 기간이 경과했다 하더라도 어느 한 때에는 반드시 그 세계적인 운세는 국가를 휩쓸고 세계를 넘게 되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전부다 규합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정성들인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후손권내에 있어서 일시에 찾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생각해야 될 것은 언제든지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찾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 스스로도 생각할 수 없는 초조한 자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감지해 나가느냐? 자기 마음에 있어서나 심정에 있어서 욕심을 가지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해보겠다. 내가 무엇을 해보겠다' 하면서 어떠한 계획을 딱 세워 가지고 3년이면 3년 계획을 세워 가지고 요렇게 한다 하게 될 때, 그것은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계획대로 되었더라도 이것은 인간적인 관에서 벌어진 계획이기 때문에 섭리와 상충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충적인 때를 조정하려면 반드시 그런 보고라든가, 되어지는 실상이라든가, 그 환경의 일원에 대한 전체적인 분위기라든가 하는 것을 통해서 지금 내가 나가는 방향이 그 운세와 대등한 입장에서 가느냐, 상충된 입장에서 가느냐 하는 것을 비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가게 될 때는 보조를 맞추어 가고, 상충적인 입장에 있을 때에는 반드시 맞추어 가기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떨어졌을 때 그 신앙심을 회복하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구는 고기압일 때에는 올라가지만 저기압일 때에는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기준이 내려왔으면 이것은 자기의 정상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기압이라는 것은 평기압권내보다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즉 정상적인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기준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우울감과 말하기 싫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 자체내에 영적인 힘을 가져 가지고 올라갈 수 있는 자력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기압대에 서게 되면 작은 일도 작은 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큰 일이 시작되었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끌어내린다는 것입니다. 기구는 평균점에서 머무는 것인데 끌고 내려가면 반대로 끌어 올리는 반대적인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중심삼고 놓아 주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특별한 사람으로부터 충고를 받는다든가 지도를 받는다든가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본래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정을 여러분이 스스로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흥남 감옥에 있을 때, 그때는 내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시련기였다고 할까, 최후의 판결을 해야 할 그런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누가 무엇을 한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열두 시간 이상 열 일곱 시간까지 일할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만 빼놓고는 하루 종일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영계에서 힘을 전부 빼가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모든 의식과 관념까지도 몽땅 빼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마음까지 없어집니다. 마음이란 것이 생각조차 안 날만큼 빼간다는 것입니다. 순전히 몸만 남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옆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다 듣지만 대답할 기력이 없습니다. 그러한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경지를 어떻게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여 넘어가느냐? 그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회복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고빗길을 연장시킬 때는 누구의 힘을 빌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이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힘을 어떻게 보충하느냐? 그 자리에서는 절대 보충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과거를 회상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러한 신앙길을 걸어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나 하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나름의 체험이라든가, 역사과정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을 생각하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감정을 어떻게 회복시키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언젠가 남이 모르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해결점을 가르쳐 주셔서 기뻐하던 기억을 떠올리든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는 현재의 시점에 있지만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일생에 있어서 뜻과 인연되면서부터 있었던 고빗길을 전부 모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내놓고 사정을 구하면, 그것은 근량이 나갈 수 있는 무엇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가치의 대가로 내 영적인 분위기를 허락해 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를 들고 나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있지 않느냐'고 할 만한 내용을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고 밍밍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대적인 일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은혜의 생활을 했던 때보다도 반대를 했던 때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싸움을 했다든가. 혹은 불쾌한 일이 있었다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반대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현재의 입장보다도 더 떨어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내가 어느 한계선을 넘어서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다 떨어져 내려가려고 하게 될 때 거기서부터 마음의 자중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느껴야 됩니다. 갑자기 떨어져 내려가게 되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반작용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여러분은 그 작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 그래도 나를 이 자리에서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사의 손길이 떠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그것을 붙들고 지금까지 자기의 과거의 은사의 때를 가미시켜 가지고 살려 올라가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데는 수십 시간이 필요한 때도 있는 것입니다.

소명은 누구나 받을 수 있으나 소명을 따라가는 것은 힘들어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때, 신앙길을 간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너 무엇을 하라' 하는 소명은 누구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명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뒤에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앞서서 가십니다. 얼마나 바쁘게 앞서 가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보조를 맞추지 못하리만큼 앞서서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의 계획적인 섭리, 계획적인 사업은 힘든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안팎으로 계획을 세워 가지고 공식적으로 '이것은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면서 365일이면 365일, 그 기간에 대한 전체의 평균적인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통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을 타고 넘으면서 탕감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순리적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뛰어 올라가기 때문에, 여기에는 1년이면 1년이라는 일정한 기간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일을 하다가는 막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때에 뒤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볼 때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초조한 마음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과 내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조정해 나가면서 자기 위치를 찾아 가지고 그때를 맞추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를 적절히 포착해 가지고 행동을 개시하기는 심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틀림없다고 할 때 행동하는 데 있어서 뒤져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회가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총매진하여 돌진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야말로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공기가 하나도 없는 고무공에다가 컴프레셔로 순식간에 공기를 집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은 계획적으로 점차적인 단계를 거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특정적인 일을 통해 가지고 비약적인 발전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움직이는 책임자도 그렇겠지만 여러분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대표한 중심이나 국가를 대표한 중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가정을 움직이는 사람이나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이나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나 하루를 염려하면서 나가는 생활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하루를 중심삼고 보면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되어져 나가고, 일년을 중심삼고 보면 춘하추동과 같이 되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또, 일생을 중심삼고서는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되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어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에 개인적이든 국가적이든 세계적이든 범위는 다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같은 공식의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봄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봄절기에 맞게 출발하는 일도 있지만 봄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가을절기에 출발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절기를 잘 맞추어야 됩니다.

그리고 모두가 봄절기에서 출발하지만 춘하추동과 같은 사절기의 형태를 모두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봄절기에 출발을 해 가지고 여름절기, 가을절기까지는 같이 간다 해도 겨울절기에 들어가면 상충적인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해 봄절기에서부터 터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다이얼을 조정해 가지고 싸이클을 맞추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신앙길을 간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걸 조정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의 기준에 맞게 대해야

누가 척 말을 했다고 하면 말을 하는 사람과 하나님과 나 사이는 삼각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이 삼각관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위기대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그 사람과의 삼각관계는 3점인데, 그 3점이 목적하는 바를 하나님이 보시고 내가 보고 그 사람이 보았을 때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맞으면 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틀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아무리 정성을 열렬히 들이더라도 뜻에 합당치 않으면 기운이 쪽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여러분이 습관을 길러 나가야 됩니다. 첫번 느끼는 인상을 중심하고 감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뻐하시지 않게 되면 여기에는 반드시 상충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속이 상해서 생각지도 않았는데 벼락같이 욕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단계까지 나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조정을 해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비판적인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느냐, 즉 말하지 않더라도 척 대했을 때 나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느냐, 저 사람이 말하는 첫번째 어음(語音)과 더불어 내 마음이 어떻게 동하느냐 하는 것을 검토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나에게 맞느냐 안 맞느냐, 그 감각 각도를 조정해 가지고 나의 위치가 어떤 위치냐,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선을 그어 거기에 플러스되는 것이냐, 마이너스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플러스되는 것이다 하게 될 때는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보통 사람이 보는 것과 달리 그러한 체험을 쭉 발전시켜 나가면 우리 식구들을 감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부에서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할머니가 있다면 그 할머니가 말하는 어감만 가지고도 그 할머니에 대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기분이 메스껍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하던 일까지 전부 잡쳐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교회에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오래 되었다고 해서 권위의식을 갖고 충고하면 속이 막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느낌을 감정하지 않고서 뜻을 따라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조심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나, 더우기 영계를 통해 가지고 특별한 기도를 많이 하고 찾아온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떠한 단계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낮다고 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온 공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백이면 그 백에 대한 것을 그 사람 자신이 알 수 있게끔 대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건적으로 백이 되지 못하게 대해 주게 되거나, 백만큼 대해 줄 형편이 못 되면 마음에 플러스되는 그 어떤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백의 기준을 넘게끔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온 손님을 푸대접하는 것은 도의 세계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가서도 자기의 위신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집에 온 손님을 대할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기준을 알아 가지고 그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내 성심을 다해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게 되면 그 사람이 정성들인 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내가 세워야 할 조건으로써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대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귀한 물건을 준다든가, 자기는 비록 어려운 입장에 섰지만 자기도 하지 못한 일을 도와준다든가 해 가지고 자기가 할 책임을 백 퍼센트 이상 했다고 할 때는 반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느날까지는 자기가 하나에서 열까지 뭣이든지 요구하기만 하면 전부 들어주시던 선생님이었지만 어느 날은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 느낌이나 분위기에서부터 백 퍼센트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상대방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가지고 도의 세계의 심판이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질서와 법도에 의해 생활하라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지만 통일교회는 절대로 손해 보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손해봤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내가 할 책임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다하는 것도 질서를 따라서 했기 때문에 손해 안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잔칫날에 온 손님은 잔치하는 그 날의 법도를 세워 가지고 그 법도에 따라서 처신하는 것입니다. 잔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다 오더라도 같이 마음껏 대해 줘도 괜찮지만 잔치의식이 시작되는 그 식장에 가서는 질서에 의해서 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거기에서 불평하고 불만을 품게 되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닦은 모든 선의 실적을 완전히 보따리 풀어 놓고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성을 들이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들이는 것이냐? 하나님은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에게 무엇을 주었다 할 때 절대로 김 아무개만을 위해서 주었다고는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그 김 아무개도 나라를 위한 존재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운세에 대한 뜻과 더불어 준 것이지 개인을 중심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세계 운세면 세계 운세의 뜻과 더불어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했고 행동시킨 것이지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혜택을 입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에는 도의 세계에 있어서 반드시 심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들을 진지한 입장에서 지도하고 얘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기서부터 완전히 탕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10년이면 10년 동안 도를 닦은 보따리를 완전히 풀어 놓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도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심판이 벌어집니다. 여기에는 언제나 전후좌우가 엇갈릴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자기 스스로가 자리를 잡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도의 세계에서 '아, 내가 중심이다'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지으시기 위해서 지극히 작은 미물에서부터 지어 올라가신 것입니다. 다른 환경을 다 만들어 놓으시고 거기에 대표할 수있는 존재로서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을 먼저 지어 놓으시고 다른 만물을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작은 것부터 지어 올라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귀역사는 재창조 역사니만큼 여러분도 자신이 설 자리를 만들어 놓고 서야지 자기 혼자 독불장군처럼 이래야 된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리 잘 서 있다 하더라도 탕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누구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기반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시련 고통을 받더라도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희생하고 봉사하면

도의 세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가지고는 연결이 안 됩니다. 그런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정성과 의리와 참을 통해서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접붙이는 데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쓰는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지고 서로 빼앗아 가지려고 하는 놀음이 벌어 지지만 참된 세계에서 참되지 않고서는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수단과 방법이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된 입장에서 남을 위하는 자리에서 이것을 연결시키지 않고서는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소명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명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소명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겠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개개인의 때가 전부 다릅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보면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단계의 복귀노정을 가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에 협조하고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 한 단계 앞서서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왜 선생님을 따라 가려고 하고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려고 하느냐? 그것은 벌써 여러분들의 영인체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가는 그 길은 뒤에서 돌아나가는 길이 아니라 한 단계 앞서 나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여러분은 소생단계밖에 안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완성단계의 장성급에서 출발 명령을 하셨다면 그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납니까?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소생단계를 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완성 단계의 장성급에서 명령하셨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비약해야 합니다. 비약도 이만저만한 비약이 아닙니다. 그 기준까지 비약을 하려니 얼마나 무리입니까? 여러분이 소생단계인 3분의 1밖에 안 갔는데도 불구하고 완성단계의 장성급의 명령을 받았다면, 무리는 있지만 있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나가게 되면 비약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인계받아야 되느냐? 본래 소생단계에 있는 사람은 완성단계의 장성급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되는 자리에는 설 수 없지만, 전체를 위하는 자리에는 아무라도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대에 하늘 나라의 보좌를 위해서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부름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위하는 자리에서는 단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단계를 초월하는 것은 자기라는 입장을 고수해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단계의 장성급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백 사람이 있는데 그 백 사람을 위해서 간다 할 때는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참하는 데는 참가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사역하는 입장에서 참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생단계의 소생급에 있는 사람이 완성단계의 장성급에 가담해서 출발해 가지고 소생단계의 소생급 이상의 노력과 그 기간에 필요한 소모를 해서 전체를 위해서 나간다면 그 사람이 설 자리는 어느 단계냐? 소생 단계의 소생급 자리에 서야 되느냐, 아니면 완성단계의 장성급 자리에 서야 되는냐? 그가 설 자리는 완성단계의 장성급 자리라는 것입니다.

소생단계의 소생급에서 정성을 들이고 노력하게 되면 1단계씩밖에 못 올라가지만, 완성단계의 장성급에서 2단계까지 나갈 수 있게끔 정성을 들이고 봉사하면 2단계를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마이너스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정성을 다 한 사람이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닦은 터전을 통하여 높은 자리에 인연을 맺었으면, 그 자리에 얼마든지 놓아 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비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친분을 갖고 그 환경에서 희생하면서 친구들을 위한다면 그들 전체가 받들어 가지고 올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계에서 제일 빠른 길은 무엇이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영계로부터 계시받는 것을 전부다 알고 있습니다. 영계에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남이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을 것을 그들이 대신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가르쳐 준 것이 어떠한 단계의 것이냐 하는 것을 쭉 검토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일 나와 관계를 맺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나와 관계 맺어서 대신 해줘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인들은 자기가 가르쳐 주는 것을 누구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느냐 하면 선생님을 통해서 이루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영인들이라도 그러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을 통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반드시 선생님과 인연맺어서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이러한 복잡다단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시받기는 쉬우나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 없어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자리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이틀도 안 되어 가지고 무슨 말을 듣고는 뭐 이러고 저러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씨가 되어 가지고 심어져서 싹이 트려면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직 뿌리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나돌아다니면서 이러고 저러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영계에서 가르쳐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이 길을 나설 때에 하나님께서 출발하기 전부터 굉장히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명과 이러이러한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는 반드시 탕감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꺾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영통인 중에는 영계에서 가르쳐 주면 그것이 가만히 있어도 그냥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자기는 다 된 사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묵시록을 해석해서 가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과정을 두고 지내가야 할 탕감노정이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탕감노정을 모르면서 뜻만 알고 있으면 뭘 합니까?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계룡산 신도안이라는 곳에는 현재 수많은 유사 종교의 책임자들이 앉아 가지고 앞으로는 자기들에게 때가 찾아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찾아온다고 해도 그렇게 그냥 앉아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탕감노정을 두고 체험해 가야 되는 것입니다. 때를 맞이하기 위한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때가 오기만 바라는 것은 망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따라가면서 자기가 설 자리를 정지(整地)해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검토의 대상인 것입니다. 누구든 나에게 선하지 않으면 악한 것입니다. 나에게 플러스가 아니면 마이너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아니면 플러스가 된다는, 전부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척 듣게 되면 그 말이 플러스되는 말이냐, 아니면 마이너스되는 말이냐? 무슨 행동을 할 때에도 이것이 플러스되는 행동이냐, 마이너스되는 행동이냐 하는 것을 검토해 봐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하늘 뜻과 신앙길 앞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것이냐 하는 문제를 검토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내가 가는 길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가는 길이 하늘 뜻 앞에 마이너스가 되는지 플러스가 되는지 대번에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친구가 뭐라 해도 검토해 봐야 됩니다. 이것을 감정해 가지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팔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뜻을 따라 가는 데 있어서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느니만큼 여러분 자신들이 다이얼의 조정법을 알아 가지고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 하면서 조정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참 많은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변천기에는 삼면이 다 아득하게 막혀 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뜻의 길을 따라왔는데도 삼면이 다 막혀버릴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막힌 것을 타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 막혀 버린 것을 뚫고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새로운 길로 출발하게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넘어가야 되느냐? 그것을 넘으려면 비약을 해야 됩니다. 비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의 척도를 재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담이 정상적인 코스에서 막혔느냐, 비정상적인 코스에서 막혔느냐, 비정상적인 코스에서 막혔다면 완전히 방향을 전환해야 됩니다. 비정상적인 코스에서는 뚫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해결이 안 됩니다. 소모전만 벌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반드시 방향을 전환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방향을 전환한다고 해서 협조해 주신다거나 따라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감정을 잘해야 하고 행동개시를 잘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이런 것을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년시대면 소년시대, 청년시대면 청년시대, 장년시대면 장년시대, 노년시대면 노년시대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서 검토해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 분야를 알아야

그 다음에 나는 어떠한 타입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이러한 타입이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에 맞는다. 나는 이러한 일방적인 소성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위해서 가야 된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봉사해야 할 사명이 있고, 어떤 사람은 교육의 책임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업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기의 본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의 소리, 즉 첫번째에 느끼는 그 감각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봄을 맞이하면, 그 봄날이 덥다든가, 혹은 춥다든가 하는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아침은 기분이 어떻다고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 온도의 차이에 따라 피부에 접촉되는 감촉이 틀리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를 척 대하면 그 사람의 신앙 정도가 얼마나 올라갔느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정도가 낮은 사람들을 몇 번만 대하게 되면 금방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닙니다. 싫어지는 그 마음을 두고 보면 내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기의 마음의 감정을 통해 가지고 몇 퍼센트의 자신을 갖느냐 하는 것을 감각을 통해서 검증해 가지고 그 실적기준을 세우고 생활적인 표준을 세워서 조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한테는 선생님이 언제나 같이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도 언제나 같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떠났다가도 봄이 되면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심령동산이 열리게 되면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 외에는 누구나 자연적인 법도와 순리적인 환경을 따라 가지고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특정한 사람은 제재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은혜의 역사를 하는 것을 보면, 뜨거운 역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차가운 역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하는 것도 여름 같은 역사나 겨울 같은 역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봄 같은 역사나 가을 같은 역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처음으로 은혜의 역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고통을 받으면서 역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는 꽃과 같은 얼굴 모습을 하며 역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사람을 대하면 '아, 저런 사람은 저런 타입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책임자가 되고 영계를 바로 잡으려면 그런 것을 전부 감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것을 감정하려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의 기준을 갖추어야 됩니다. 마음의 기준을 갖추지 않고서는 황막한 영계에서 기준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의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정면에 서는 것도 아닙니다. 복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사람이 정면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내 갈 길을 관리하실 수 있는 원리 주관권내에 계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앞장서서 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장성기까지는 하나님께서 협조해 주시지만 그 이후의 길은 전부 개척의 길입니다.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여러분들이 모르는 그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수난의 길을 겪어 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섭리는 아벨적인 사람을 찾기 위한 것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가 이만큼 기반을 닦았고. 여러분들도 가르침을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없더라도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내적 외적인 투쟁이 말할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원리를 공부할 때 복귀원리라는 것을 배우지만, 이 복귀원리라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부활사입니다. 통일교회의 부활사인 동시에 선생님 일생에 있어서 탕감해 나온 선생님의 일대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것을 음미해야 됩니다.

그럼 아담 가정이면 아담 가정을 어떻게 아느냐? 또한 노아 가정이면 노아 가정을 어떻게 아느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어떻게 아느냐? 만약 알았으면 아는 것으로만 해결되느냐? 아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다 하더라도 실체기대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실체기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실체기대를 가져야 됩니다.

실체기대란 가인 아벨의 문제를 중심한 기대인데, 실체기대를 세우려면 사탄 앞에 아벨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아벨적인 입장인 사람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즉 계대를 이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고 나서 아벨의 자리에 섰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노아 가정이면 노아 가정을 대신해서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려면 노아 가정과 같은 아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아 가정에 대한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 가정도 아브라함 가정을 복귀시킬 수 있는 사명을 가진 아벨적인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노아 가정이 실수한 것을 탕감하고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부다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모세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재차 아벨적인 탕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아 가정적인 아벨 기준을 닦은 후 사탄세계에서 노아 가정적인 기준의 실체기반을 닦아 가지고 탕감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전부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이 지금 원리를 배우고 있지만 여러분은 이런 원리와 관계가 덜 되어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런 방대하고도 엄청난 노정에 있어서 그러한 것을 가려 가면서 이와 같은 기반을 닦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원리는 선생님의 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맞춰 나가야 되는 원리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도 맞춰 나가야 되는 원리인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가인과 아벨의 탕감역사

1970년부터 1972년도까지는 국가적으로 볼 때 최절정의 수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은 북괴의 남침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절정에 와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사탄 세계는 하늘 세계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편 세계가 이렇게 뾰쪽하게 생겼으면 사탄편 세계는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편 세계가 왼손처럼 이렇게 되어 있다면 하늘편 세계는 이와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차되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설명하심)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는 아벨과 가인의 입장입니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마음과 몸이 갈라져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갈라져서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갈라진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언제나 두 세계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하나를 중심삼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설명하심)

그러면 이들이 내려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그냥은 안 내려가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둘로 갈라져야 되고, 공산주의도 둘로 갈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갈라져서 어떻게 되느냐? 세계적인 이원화시대에서 다원화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갈라지게 되고, 세계적인 민주주의가 민족적인 민주주의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민주주의는 이 단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통해서 세계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족적, 국가적인 민주주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떨어져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교차될 때가 되어 온다는 징조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교차되느냐? 예수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를 보면 교회를 중심삼은 국가적 체제에서 교차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교차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탕감복귀 역사시대에 있어서도 교회를 중심삼은 국가적 체제에서 교차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는 아벨과 가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교회와 나라가 하나만 되는 날에는 하나의 새로운 국가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교차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세계적인 새로운 체제인 제국주의, 민족주의 형태로 떨어져 내려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냐? 그것은 섭리적으로 볼 때에 새로운 민족주의의 출발의 시대가 우리 눈 앞에 다가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두고 볼 때, 탕감복귀역사는 가인과 아벨의 탕감복귀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실체복귀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여러분 개인의 생활에서도 반드시 벌어집니다. 여러분 개인이 아벨적인 입장입니다. 자기가 아벨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적 입장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야곱이 부모와 하나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부모하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아버지와 하나되었느냐 할 때, 야곱은 아버지와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하고 하나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어머니하고 하나되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하나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축복의 계대가 이어졌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모자협조의 노정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모자협조가 잘 되었기 때문에 축복의 계대가 이어진 것입니다.

모자협조는 하나님의 아들을 탄생시키기 위한 것

그러면 이삭은 어떠한 입장이냐? 천사장형입니다. 천사장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맞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배반한 천사장은 사탄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환영하는 천사장은 에덴 동산을 맞을 수 있는 복귀형 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귀형 천사장이 나타나면 결과적으로 무엇이 나타나느냐 하면 타락하지 않은 입장의 해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입장의 해와가 나타나야만 타락하지 않는 본연의 아들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지금까지 종교는 남자들을 세워서 역사해 나왔습니다. 여자는 지금까지 하나도 관계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남자들을 통해 가지고 무엇을 하셨느냐? 여자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맞이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하늘의 아들을 탄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세상은 전부 사탄의 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의 땅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땅은 하나도 없고 종의 땅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늘의 땅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아들을 보내려면 종의 땅을 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의 세계에서 여자의 몸을 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여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생명은 물론 모든 것을 언제든지 바칠 수 있는 여자라야 됩니다. 벌받을 각오를 하고, 망할 각오를 하는 여자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장자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는 것을 알고 야곱에게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한다'고 이야기해 가지고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 대신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이것은 가정 싸움입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 했고, 에서는 이삭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리브가는 내적인 면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리브가 자신은 희생하더라도 하늘의 뜻을 위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해 주기 위해서, 자기가 좋기 위해서 에서를 사냥을 내보냈지만 아내되는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쫓겨날 각오를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 바탕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그랬느냐? 이삭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에서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사탄 세계의 남자들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관계되어 있는 먼저 난 아들을 전부 부정하는 것이 었습니다. 먼저 난 그 남편과 아들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뭣 때문에 그렇게 했느냐? 뜻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삭이 에서를 축복해 주기 위해서 사냥 보낸 것은 부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긍정하는 자리에서 에서를 사냥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심정적 자세에 있어서 리브가는 자기의 희생을 각오한 것입니다. 내가 이 집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사랑하는 아들이 하늘의 축복의 계대를 이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심정과 일치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무리를 해서라도, 희생을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계승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섭리적 심정과 일치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계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이것을 뜻적으로 볼 때 천사장은 해와를 꾀어 가지고 타락시켰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해와의 입장에 있는 리브가가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이삭을 살짝 속임으로 말미암아 탕감복귀를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내적인 모든 것이 일치됨으로써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리브가는 그와 같은 싸움을 해 가지고 결국은 아벨 입장에 있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남편보다도, 맏아들 에서보다도 야곱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자기 남편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자기 맏아들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망의 가치적 존재로 야곱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여자는 복귀섭리의 뜻을 위해서 자기 남편과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있는 심정적 자세가 되어 있지 않고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리브가가 야곱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뜻의 기반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훗날에 오실 예수님과 마리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역시 뜻을 이루려면 자기 부모라든가 형제라든가 환경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뜻만을 염두에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에서 본이 되었던 여인들

마태복음 1장을 보게 되면 4대 여인이 나옵니다. 그 중에 밧세바는 솔로몬의 어머니인데, 그 밧세바가 끝까지 다윗 왕을 미워했느냐? 만일 그랬다면 그녀는 솔로몬의 어머니가 못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쫓고 계획적으로 자기를 점령했지만, 그렇게 된 것을 운명으로 돌림과 동시에 그것을 도리어 하늘의 크나큰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이렇게 하는 것은 나쁜 의미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크나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고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자기 남편이 희생되더라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한 열녀였다는 것입니다.

만일 밧세바가 다윗왕을 미워하는 입장에 섰었다면 그녀에게서 절대 솔로몬 같은 왕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자기 남편을 죽인 다윗왕에게 품고 원한을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면 절대로 솔로몬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밧세바는 자기 남편이 죽었지만 그 남편이 충신되기 위해서는 그 일신이 망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내인 자기까지도 군왕을 위해서 바쳐지는 것을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는 고차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밧세바는 남편이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군왕을 위해 일신을 다 바치고, 정성과 절개를 다 바쳐 가지고 가는 것이 본 남편에 대한 의리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다윗왕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솔로몬왕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다음에 기생 라합을 보면, 그녀는 거리의 여인인데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조상으로 올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갔던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라합은 술집 여인이었지만 생명을 각오하고 그들을 숨겨주었던 것입니다.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의 어떠한 남자들을 위하는 것보다도 생명을 걸고 그들을 보호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해 나가는 금후의 세계에 있어서 여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라합이 하늘의 계대를 이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정탐꾼들을 대해 가지고 본심에 있어서 '어떠한 남자들보다 이들을 생명을 걸고 도와줘야겠다' 하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외면하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 단 하나의 소망의 뜻 앞에 있어서 필요한 여성이 되어야겠다 하는 마음의 자세를 깊은 마음 가운데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그 민족이 축복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서 협조하고 동조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그 무엇이 그녀의 생애노정에 언제나 같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룻을 보게 되면 그녀는 남편이 죽어서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 시어머니가 보아스의 첩이 되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룻은 '시어머님이 나보다도 더 고차적인 입장에서 내 갈 길을 염려해 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염려해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어머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자기의 안팎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희생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험하는 것과는 타입이 다릅니다. 이렇게 순응해 가지고 하는 타입은 앞으로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여성의 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두고 볼 때, 신앙길에는 반드시 그와 같은 사명의 분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자체가 가야 할 길에는 모험적인 것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걸어나온 노정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모험적인 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소명의 길에서의 책임자의 중요성

소명의 길을 따라나오는 데는 내적인 투쟁이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투쟁을 가려 가는 것은 책임자가 잘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책임자가 잘못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잘못하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고, 나쁜 것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자기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아 가지고 정부(正否)를 가려 가면서 조심스럽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로 선두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일을 해 나가더라도 1차 작전, 2차 작전, 3차 작전을 펴가지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귀역사는 거꾸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복귀역사는 아담의 아들과 아담과 하나님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3단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온 것이며, 이 3단계는 결국 한 케이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되지 않으면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작전을 해 나가야 하느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은 완성의 자리에 있고 여러분들은 아들의 자리, 즉 장성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들어오는 사람들은 소생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3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선두에 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천사장과 아담이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천사세계와 사람이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이와 같은 입장에서 작전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작전을 해 나가게 되면 선생님이 직접 나서지 않습니다. 반드시 식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식구를 통해 예고시켜 가지고 그 일을 실천하는데, 명령은 내가 하지 않고 식구를 시켜서 명령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만일 그 일이 잘못되었다 하게 될 때는 누가 책임지느냐? 선생님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식구가 잘못될 때 그 식구의 잘못을 선생님이 지도할 책임은 있습니다. 일을 실패해 가지고 선생님에게 보고하게 될 때는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그런 작전을 해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두에 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전체의 안전 작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신령한 집단의 책임자들은 직접 선두에 서 가지고 야단하고 있습니다. 책임자가 직접 선두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이 정면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적 정비를 해야 하는 때

우리도 1960년도 개척시대에는 할수없이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정면적으로 부딪쳤습니다. 선생님이 정면적으로 부딪칠 때는 위험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작전을 진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을 포섭할 수 있는 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식구들로부터 그들이 한 일에 대하여 보고를 받아 가지고 감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감정할 줄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를 감정할 줄 모르면 그 일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수습하지 못하면 나하고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을 시키고 난 뒤에는 그 일에 대한 보고를 받아 가지고 그 결과가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감정해 나가면서 자꾸자꾸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발전의 원칙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세계에서는 동지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는 삼위기대라는 조직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삼위기대라는 조직은 메시아격으로 서로가 도움을 주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삼위기대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삼위기대가 단짝이 되어 가지고 서로가 자기의 신앙생활을 고백하면서 횡적인 기반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 서로가 받은 은혜의 소성이 다른 것을 전부 총합해 가지고 기반을 닦아 나가면 빨리 발전할 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것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앞으로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더구나 금년부터는 과거와는 달리 내적인 정비를 해 나갈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축복가정 부인들을 전도하라고 임지로 내보낸 것입니다. 부인들을 내보냈으면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리적으로 볼 때,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전부 내보냈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부인들이 앞장설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거 1960년 대에 여자들이 앞장섰던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할 때 해와가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가 아담 해와가 천사장하고 타락하기 직전의 시대라면, 지금의 시대는 해와가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떨어진 것을 복귀하는 , 행동의 출발자로서 나서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에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 나가서 정성 들이는 여자들한테 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보다 편안한 생활을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끄러워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일선에 나가 움직이는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저들이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내가 움직여 나가야 되겠다. 저들이 정성들이는 것 이상으로 내가 정성들여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자들과 평등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도 지금 그들에 대하여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움직이는 결과에 따라 그들의 남편이나 그들의 가정이 앞으로 축복의 자리에 서고 못 서고가 결정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정을 중심삼은 내적인 정비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자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총괄적으로 볼때 나 자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느냐, 다시 말하면 나는 어떠한 소성을 가지고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문제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1970년도부터는 하나님이 어떠한 입장에 서 계시느냐 하면, 우리를 고립된 입장에 세우기 시작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위해 주는 때였지만, 이제부터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떨어져서 따라오지 못하면 내가 내려가서 안타까와하면서 끌어올려 가지고 따라오게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뚜기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 세워 놓으면 또다시 넘어지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옛날과 같은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벌써 누구라는 감이 들어옵니다. 선생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싫은 감이 들어오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감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때는 상당히 절박한 때입니다. 옛날에 이 뜻길을 출발하면서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자꾸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도 질서를 잡아 가지고 엄격하게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계를 통하는 색다른 사람들을 선생님에게 관계를 맺어 주시는 것을 보면 지금 때가 상당히 바쁜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왕에 소명을 받았으니 열심히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은 선조의 공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아무나 못 들어오는 곳입니다. 또, 선생님이 아무나 만나 주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아무나 만나는 것을 꺼려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을 받고 따라가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교회에 와서 이렇게 모인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국민에게는 나라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듯이 여러분에게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반드시 나라 앞에 새로운 실적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인 실적의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사위기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라도 갖다 주려고 합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냥 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갖다 주려고 하느냐? 무엇이든지 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결부되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반드시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반드시 번식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의 결과를 가져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가져오면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작은 것이지만 이것을 중심삼고 자기 본체가 좋아하는 것보다도 사상을 심는 것이 사위기대의 목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사위기대의 결과, 사위기대의 이상을 찾아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정성 다하라

지금까지는 복귀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탕감해 나왔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탕감시대는 지나갑니다. 다시 말해서 통일교회 자체가 탕감할 때는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통일교회를 반대 하는 사람들은 전부 정리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기만 높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데려갑니다. 콧대 높은 사람들은 다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금년에 들어와서도 우리 뜻에 상충되고, 우리 뜻과 대적하고, 뜻과 더불어 약속했던 것을 실천하지 않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얘기는 안 했지만 벌써 그런 사람들을 몇 사람 봤습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철없이 나오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질서를 세워서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점점 성인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딸의 책임을 다하여 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시대권으로 들어가느니만큼 여러분은 때에 대한 것을 잘 알아서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위치를 결정지어 가지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다짐하면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여러분들도 발전할 수 있고, 뜻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에 있어서의 내가 이것을 해야 이익이 돌아오지 하고 생각을 합니다. '3년노정을 가라' 하면 '이 노정을 가야만 내가 축복을 받지' 합니다. 이렇게 '받지' 하는 마음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3년노정이라는 이 기간에 정성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찾고 싶어하시는 아들딸을 만나야지' 하는 것이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이 노정을 가야만 내가 축복받지'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벌써 다른 것입니다.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아들딸을 찾아야겠다 해야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새 사람을 찾아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축복받는다는 것은 사랑하고 난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거꿀잡이가 되어 가지고 축복부터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일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사람을 만났으면 있는 정성을 다하여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나겠다는 것과 사랑하겠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랑들의 협조를 받기 때문에 나는 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내 것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번 일했다가는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먼저 상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열 두 형제가 있으면, 그 열 두 형제 가운데서 가장 먼저 상을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먼저 상을 받아 가지고 거기에서 좋아하는 입장에 서려고 하지 말고, 나중에 상을 받아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열 두 형제 가운데서 먼저 열 한 형제가 상을 받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울어야 되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 형제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저 것은 내가 받을 상을 대신해서 받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노력하고 정성을 들임으로 말미암아 형제들이 저 상을 타게 되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열 한 형제가 전부 상을 받게 된 것은 내가 협조를 했고, 내가 숨어서 노력을 했다는 입장에서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후에 자기가 상을 받게 될 때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이 상은 내 상이 아니다. 열 두 사람을 대표한 상이다'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내가 상을 받는다 해도 미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부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갈림길

선과 악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다른 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과 악은 두 갈래 길인데 그 두 갈래 길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마음과 몸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내 자체에 있어서 몸과 마음의 두 갈래 길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몸을 따라가는 것은 악이요, 마음을 따라가는 것은 선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은 무엇을 중심으로 하느냐? 어떤 가정에 부모와 세 형제가 한 방에서 산다고 했을 때, 추운 날이 되면 몸은 '아, 춥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자리에 가서 자야지'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몸에 대해서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먹을 것이 있으면 몸은 좋은 것을 어머니 아버지보다 먼저 먹고 싶어합니다. 손이 먼저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마음이 브레이크를 걸게 됩니다.

몸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몸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면 부모를 잃어버리게 되고, 형제들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해보십시오. 몸이 하자는 대로 하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어 보십시오. 그렇게 몇번 안 하면 전부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점점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맨 나중에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까지도 떠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주해 가지고 나가는 사람에게 일어서는 그 아내까지도 떠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떠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몸이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도망가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같이 살게 되어 있었던 식구들이 전부 떨어져 나가게 되어 혼자 고독 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주로 해 가지고 살게 되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야, 이 녀석아, 너는 막내 아들이니까 여기 추운 데서 자야 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한 달, 두 달, 석 달 해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부모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 녀석들아, 동생이 저렇게 추운 데서 자고 있는데 너희들만 따뜻한 데서 잠을 자느냐? ' 하면서 자기 편을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외로운 것 같지만은 결국 편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편이 많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다섯 식구가 사는 데 있어서 그 전체 식구가 자기 편이 되었다 하면 어떻게 되느냐?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주위에 엉겨 붙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엉기게 되면 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중심존재로 세우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서 끝까지 나가는 사람은 아무리 고독단신이 되려 하고, 와서 엉기는 것이 싫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따라가서 엉기게 됩니다. 그렇게 엉겨 가지고 그 사람을 추방하고 바꿔치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중심된 자리에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중심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 끝까지 희생한 사람은 반드시 중심인물이 됩니다. 중심인물뿐만이 아니라 주관자가 되고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은 물론 모든 것을 그 사람과 의논해 가지고 그 사람이 좋다는 대로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을 위주해서 끝까지 나가는 사람은 환경으로부터 배척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사람에게 모여드는 것입니다.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더라도 그것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불리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통일될 수 있는 동기가 벌어져서 그 사람은 자연히 중심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뭇사람들이 원해서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주인 되는 주체로 모시려고 하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중심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을 위해서 가는 길은 중심과 주인이 되는 자리를 결정하지만 악을 위해서 가는 길은 고립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종의 입장, 종의 입장에서 고립된 입장으로 되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나'라는 한 몸을 중심삼고 언제나 이와 같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

선생님이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은 아무 실적도 없지만 잘 대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선조의 공적이 있기 때문에 잘 대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오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처음 들어왔는데 선생님이 잘 대해 주신다'고 하면서 반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틀린 것이냐?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은 예약적인 주관입니다. 아담 해와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것도 예약적인 주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약적인 주관권내에서 실질적인 주관권내로 들어가려면 탕감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피어린 투쟁을 통하여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선한 길을 통해서 가야 됩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하지 않았다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상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러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이러한 경계선에서 좌우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올바른 심성을 가지고 비판할 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어떤 사람을 잘못 비판했다 할 때는 그 사람을 보면 머리가 숙여집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식구간이라 하더라도 잘못 비판했을 때는 머리가 숙여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저런 모든 것을 알고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그러한 기준을 찾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대인관계입니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사탄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유협회장한테도 얘기했지만, 선생님이 지금까지 밤을 새워 가면서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싫어해 가지고는 복귀역사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좋아해야 하고 선한 사람도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왜 모든 사람을 좋아해야 하느냐 하면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은 하나님 세계에서 반대되는 자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계를 나쁘다고 하는 자리로 떨어진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리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도 이 세계가 나쁘다고 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귀역사를 못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좋다고 하시면서 지으신 세계인데 타락해서 이 세상이 나쁘다고 하는 입장으로 내려오시게 된다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일도 좋게 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나쁜 일도 좋게 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뭐냐 하면 원수가 없는 자리에 서라는 말입니다. 원수가 없는 자리에 서라고 하는 것은 에덴 동산에서 타락권을 맞이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상태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맨 처음 사람을 대할 때에는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쁘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참 좋은 체험을 했다고 봅니다. 사형수들과 한방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그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안 그래요? 세상에서 보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형수를 대해 가지고 어떻게 보느냐? 사형수로 보느냐, 아니면 한 방에 있을때는 한 형제로 보느냐? 내가 먹던 밥을 같이 나눠먹고, 그가 먹던 밥도 내가 같이 먹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결국 뭐냐 하면 신앙과 인격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한 원칙적인 기준에 설 수 있는 내용을 결정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악한 문제를 취급하고, 하나님은 선한 문제만을 취급합니다. 그러니 선했다 악했다, 또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살라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신앙노정에서 상심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심을 하게 되면 손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심하게 되면 아무리 꿈이 크고 좋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멀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소명받고 가는 데 있어서 잼대를 가지고 전후 좌우를 가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겠으면 여러분들은 언제나 기도하며 정성들여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진실되고 겸손한 자리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하면서 전체를 모시며 나가는 자리에는 발전이 있으면 있지 타락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에게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을 표방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여러분은 끝까지 식구들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나가게 될 때는 그 정상적인 때를 맞아 가지고 여러분이 설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언제나 자기도 모르게 탕감적인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의 결과에 대해서 세 번까지는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세 번까지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올래야 나올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인 가운데서 오래 된 사람들이 병이 난다든가, 혹은 다른 어떤 문제에 부딪히는 것을 보게 될 때 '저 사람이 저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쓱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말을 해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위해서 희생했는데,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자기의 재산 다 팔아먹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고 원망하는 조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직접적으로 탕감하지 못하면 반드시 그의 아들딸에게서 탕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탕감이 없으면 아들딸들이 개구장이로 태어나 가지고 자기 속을 태우는 일이 벌어집니다.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타격이라든가, 그 다음엔 심정을 중심삼고 남편이나 아들딸에 대한 문제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다 틀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못 받게 될 때는 자기 몸에 대한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에 대한 제물시대이고, 신약시대는 아들딸에 대한 제물시대이며, 성약시대는 부모에 대한 제물시대입니다. 이런 3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뜻 앞에 불림을 받은 사람이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제일 먼저 물질에 대한 탕감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현재 다 어렵게 사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어렵게 사는 생활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뜻을 위해서 더 어렵게 살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생활이 펴온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 원칙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어렵게 산다고 해서 그것을 붙들고 암만 바둥바둥거려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이 이상 더 어렵게 살더라도 뜻을 위해서 살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가게 되면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그 문제에 붙들려 뜻도 다 놓쳐 버리게 되고, 자기 선조들이 쌓아 놓은 공적까지도 전부 다 팔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물질에 대한 문제나 자식에 대한 문제,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다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년간 신앙 생활을 해 나가게 되면 다 아는 것입니다. 내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잘못 했어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해서 열만큼 책망을 했다 할 때는 그 사람에게 3배 이상의 축복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 신앙의 위치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생활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한많은 복귀노정의 앞을 가로막는 사건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장면을 대하실 적마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저희들이 이 고비를 넘어 주기를 얼마나 간곡히 바라셨사옵니까?

당신의 뜻을 따라 나오던 수많은 인간들이 수많은 고빗길에서 그걸 넘기를 바라시는 당신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넘지 못하고 스스로 흘러가 버린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모든 것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욕망을 중심삼은 것이라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바치고 또 바치면서 내일의 소원 앞에 제물의 자리를 끌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의의 자리에서 제물 되기를 바라는 생활을 스스로 가릴줄 알게끔, 아버지의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이미 어젯날의 계속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습관적인 하루가 아닌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당신 앞에 더 가깝고 다정함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높고 예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뜻과 더불어 생각하고 뜻과 더불어 행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사는 생애노정이 뜻과 더불어 살았다는 기준을 언제나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체이시기 때문에 저희들은 절대적인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가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그 방향이 일치된 3점을 중심삼고 볼 때, 나 자체는 언제나 유동하는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가 중심인 두 번째 자리이고 오늘날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이 두 번째 자리는 언제나 심판의 요건과 생사의 결판을 좌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나를 위하는 것은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언제나 원수요, 남을 위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갈 길 앞에 있는 모든 어려움과 수난의 길을 평탄케 하는 노정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남을 위하는 길을 가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심령이 고갈되면 그것을 저희들 스스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남을 위해서 더 희생하든가, 남을 위해서 더 고통받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반작용적인 행로를 개척할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당신을 위하여 정성을 들여 가지고 보다 가치적인 충성의 도수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당신 앞에 접근할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문제는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 오더라도 나 자체가 옷을 잘 갖추어 입게 될 때는 그 찬바람도 상관없이 지나가지만, 나 자체가 여기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병이 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치우침을 받는 것이 현상세계에서 되어지는 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생활도 이런 원칙을 기준삼아 가지고 생활을 개선하여 자기 생애의 노정에 빛날 수 있는, 하늘이 바라는 가치를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옛날에 기뻐하던 자극적인 아들딸의 입장을 가지고는 오늘의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옛날보다도 오늘이 더 기쁠 수 있고, 가치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힘들고, 보다 더 높고, 보다 더 가치 있고, 보다 더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이 믿을 수 있고, 하늘이 바랄 수 있고, 하늘이 직접 의논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보다 중요한 책임을 지는 것이 영광이요, 남보다도 더 힘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자랑이요, 남보다도 봉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인으로서 때는 가까이 왔지만 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지 심히도 걱정이 되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는 때대로 가고 있지만, 오늘날 사람은 사람대로, 옛날 그 모양대로 있어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는 때로서 씨를 뿌리면 싹이 날 것이요, 여름이 되면 그 싹이 자랄 것이며,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어 가지고 겨울이 되기 직전에는 거두어들이는 수확기가 있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자연현상의 법칙에 의해 가지고 하나의 생존체가 전생애의 과정을 통해 거쳐 나가야 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자기 자체의 일생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봄절기를 맞은 자가 있으면 여름절기를 맞게 하여 주옵소서. 여름절기에는 무성하게 자라는 잎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잎을 피게 하는 한 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줄기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줄기로서 꽃이 피고 열매 맺어 가지고 그 열매가 일년이면 일년 전체의 가치를 종합할 수 있는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신앙 생활도 그런 때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 일생을 통해서, 뜻을 안 과정에 있어서, 어느 때가 봄절기고, 어느 때가 여름절기며, 어느 때가 가을절기이고, 어느 때가 수확기인가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수확기를 맞을 때에는 뜻을 중심삼고 전체를 바치고 정성을 다하여 수확을 해야겠사옵니다. 그리고 수확한 것을 저희의 것으로 할것이 아니라, 아버지 것으로 하였다가 저희의 것으로 받게 된다면 아버지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고 관계 맺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복귀의 노정을 가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을 먼저 내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버지의 것으로 해야 되겠습니다. 먼저 내 인격과 내 생활을 닦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격과 아버지의 생활을 먼저 닦아 드려야 될 것이 오늘날 소명을 받아 가지고 따라가는 자들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무엇보다도 하루의 생활을 통한 싸움에서 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한달의 생활을 통한 싸움에 있어서도 지지 말게,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금번 순회노정을 마치고 처음 맞는 주일이옵니다. 이번 순회노정을 통해서 아버지의 말씀을 많이 들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그 말씀을 이해에 새로운 출발의 동기로 삼아 가지고 새로운 역사적인 기수가 되어, 빛나는 한해의 성과를 아버지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기쁨의 해가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당신의 수많은 자녀들과, 외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과, 천상세계에서 탕감 해원을 바라고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3시대의 한을 풀어 나가야 할 자기 자신들의 입장을 알고, 공고한 자리에서 내일의 소망 앞에 현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사가 당신의 승리의 표준과 더불어 함께하고, 저희의 마음이 언제나 그것을 향하여 용맹스럽고 담대하게 달려가서 최후의 승리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 ! 한국에 처음 온 사람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에 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연구를 많이 해 가지고 돌아갈 것을 바랍니다.

지금 얘기하려는 제목은 '나라를 구(求)하여'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 최초의 목적

이 세계에는 현재 수많은 나라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수백 이상의 민족을 중심으로 하여 백 개 이상 되는 국가들이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국가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정말 사랑을 받는 나라는 도대체 있는가 없는가를 생각할 때에 그런 나라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나라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한 국가군(國家群)으로 되어 있는 것은 타락의 결과로 초래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원하시는 바의 양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타락세계를 부인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6천년간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목적입니다.

그 나라를 구하려면 구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씨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씨족을 중심으로 해서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 편성 후에는 주권국가로서의 한 나라를 찾아야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최고 목적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의 씨족은 하나의 가정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사람의 남편과 한 사람의 아내라고 하는 부부관계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천년간 섭리해 오신 목적은 커다란 국가를 찾아 나오시는 것이지만, 그 대본(大本)이 되는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의 부부를 이 지상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최초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 최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섭리해 오셨습니다. 그것을 수행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통과하면서 수고에 수고를 거듭하면서 찾아 나오신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하나님 편에 서고,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믿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할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한사람, 사탄권내에 있어서 어떠한 참소조건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승리의 기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세운 것이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장과 싸워 승리한 기반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은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야곱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섭리는 출발됐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가정을 편성하고, 그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씨족을 편성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국가까지 편성하는데 4천년의 섭리과정이 소요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한 사람이 그 주권의 권위를 가지고 와야 했는데, 그 세계적인 주권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보내어진 분이 메시아인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예수님을 나라의 주권자로 세우고 만국에 그 주권을 펼 수 있는 출발점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지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이룩한 수고의 길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면 기독교를 중심으로 해서 지상을 기반으로 영육이 하나되어 나라를 세웠을 텐데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기준으로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재림기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영적 개인 기준에서 가정 기준, 씨족 기준, 민족 기준, 국가 기준, 세계 기준, 이런 식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 기독교의 2천년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그 영적 기준의 내용을 상속하여 지상에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나 재림주님이 지상에 오실 때 영적 국가권과 세계 국가권이 민주주의 국가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어떤 특정한 나라를 중심으로 한 기반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지금 수많은 나라의 기독 교인들이 기독교를 자기의 국교로서 믿고 있는데, 그러한 나라는 많이 있지만 모두 기독교인이 믿고 있는 교부라든가 교주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치는 정치 체제를 중심으로 하고, 기독교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해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입장에서 지금까지 계속 역사과정을 통과하여 내려오지만 하나님편에 서 있는 사람이 그 나라의 주권자로는 지금까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국가가 지상에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종말의 시기에 있어서 재림주님은 지상에 있는 특정한 나라를 인정하고 오지만, 지상에 되어진 기반을 이어받아 서서는 안 되고, 영계의 기반을 중심으로 해서 지상에 새롭게 그 실체적 기반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입장이 되어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재림주님이 오셔서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아무리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 국가 기준을 통과했다고 해도 그 실체적 지상기반이 없으면 영육 완성기준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할 때, 세계에 수많은 식구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국가에 있어서, 그 나라의 반 수의 사람들이 통일교회 식구가 되었다 해도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식구가 많은 것에 우선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지상에 주권 국가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기독교인이 학살되어 왔습니다. 순교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주권국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떠한 나라가 반대해도 그 반대하는 나라에 대해 당당히 대응할 수 있는 국가가 있었다면, 기독교인이 지금까지 그러한 박해의 길, 또는 순교의 길을 더듬어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비참한 순교의 길을 더듬어 온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만일 재림시기에 있어서도 지상에 그러한 주권국가를 만들지 않을 경우에는, 재림주님을 믿는 신도들이 그러한 박해를 받더라도 물리칠 수 없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박해를 해올 때 그에 대치하고 공격할 수 있는 하늘편 국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재림시대에 있어서 재림주님을 믿는 신도들도 박해를 어디에서나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비하고 그것을 보호하고 그것에 대항해서 세계적으로 밀고 가는 데는 뭐라 해도 나라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 보면, 한국에 있어서도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계속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박해의 길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 반대의 길에서 그것을 밀어 제치고 올라오기 위해 수십년간의 싸움의 길을 통과해 왔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비참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민주주의 시대가 되어 있어서, 종교, 혹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권에 들어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이미 지상에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스런 환경에서 자유로운 행동, 활동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주권을 찾아오셨는데, 그 외적 환경이 민주주의 국가권인 것입니다. 이 권내에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의 나라를 하나님편에 복귀시키지 않으면 금후의 세계 작전에 있어서는 언제나 불리한 입장에서 싸워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국가 주권을 가진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편에서 외교적 권위의 기준을 세워서 어느 나라를 대해서도 평등한 입장에서 국가대 국가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공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국가를 어떻게 하나님편에 복귀 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만일 그 국가가 섰을 경우에는 민주주의 국가권은 기독교 문화권에 들어 있으니까 바로 연결되어집니다. 그래서 이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하나의 나라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이 세계에 있어서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단체는 종래의 기독교가 아니고 우리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일본 식구들에게 바라는 것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 사명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을 중심으로 해서 싸워 왔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싸워 왔습니다. 혹은 씨족, 민족을 중심으로 해서 싸워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국가 전체에 대해서 힘의 균등을 이룰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있어서 만일 하나의 나라가 하나님에게 복귀될 경우에는 그 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제 2의 국가는 어떤 나라가 되겠는가 하는 것이 역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제 1의 나라가 복귀됐을 경우에 제 2의 나라는 어떠한 민족이 될 것인가. 그것이 제 1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상대적 관계에 있던, 즉 이웃 나라와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움직임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해도 하나가 되지 않았었는데,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서로 다른 두 나라가 하나가 된다면 이것은 역사상에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그것을 바라보며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 볼 때, 일본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일본에 있어도 일본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금후에 얼마든지 박해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즉, 현실적으로 볼 때 일본은 지하의 길을 취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해서 국가복귀의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통일사상은 한 국민, 한 국가주의가 아닙니다. 세계주의인 것입니다.

지금의 일본 국민에게 있어서 공산당은 사회주의이므로 공산당이 문제가 됩니다. 통일교회가 만일 공산당 이상의 기반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일본 국민에게 반대받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공산당을 일본에서 내쫓을 경우에 공산당은 전체적, 세계적으로 세계주의가 되어 있는 통일교회에 대해 반대의 깃발을 올리고 나올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통일의 식구가 소수이면 한번에 당하고 맙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시대가 오기 전에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내에 있는 통일교회를 일본국가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에 반항할수 있는 하나의 나라 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면 반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국내에서 반대해도 정정당당히 반항할 수 있는 국가기준이 서있다면 국내의 박해를 방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일본에 있는 통일식구를 놓고 생각해 보더라도 가장 바라게 되는 것은 하나의 나라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세아 정세를 놓고 보았을 때, 지금의 일본의 정세를 놓고 볼 때 우리들 통일교회 식구를 중심으로 해서 일본을 복귀한다고 하는 것은 수적으로 너무 미치지 못합니다. 일억이라고 하는 국민 전체를 복귀시킨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거기에 상응되는 박해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뭐라 해도 한국이 가장 빠르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이 가장 빠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 자체가 통일교회의 나라는 아닌 것입니다.

가인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완전복귀는 안 돼

한국의 4천만 가까운 국민이 통일교회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모두 반대해 왔습니다. 그런 나라를 반대 방향으로 되돌려 우리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조용히 올라왔습니다. 기성교회는 통일교회와 하나가 되어 한국 복귀라고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통일교회를 박해해 왔습니다. 반대해 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반대한 기성교회를 잘라 버리면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손을 마주잡고서 한국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인과 아벨의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만일 통일교회가 아벨 교회이면 가인 교회, 즉 기성교회를 먼저 복귀하지 않으면 나라를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원리적 조건이 남아 있으므로 지금 통일교회는 이중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해하는 기성교회에 대해 화합의 방책을 취하면서, 우리들은 봉사라든가 여러 가지 희생적 대가를 지불하면서 환영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점차 평형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올라왔습니다.

만일 남한이 완전히 복귀된다 하더라도, 한국은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남쪽이 아벨국가로서 하나님편에 섰다고 해도 북쪽편이 가인의 국가로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하지 않으면 하나의 나라가 복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오시는 나라는 두개로 나누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가 그렇게 둘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소원에 일치되지 않았던 기준을 넘어 일치되는 상태를 이루는 국가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복귀의 조건을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이 갈라져 있습니다. 만일 남쪽을 복귀했다고 해도, 북쪽을 어떻게 해서 복귀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전쟁으로 복귀하려 한다면 절대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전쟁없이 자유 복귀라고 하는 결과가 어떻게 해야 나올 것인가. 여기에 난문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악편은 언제나 자기쪽에서 우세하다고 생각되면 공격을 취하는 것이 역사의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쪽편이 실력에 있어서 유리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혜택을 저편에 베풀어 주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저편을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저편에 무엇인가 의지하는 입장에 선다면 완전복귀는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저편에 대비해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리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북쪽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남과 북이 만일 하나가 되면, 그것은 처음으로 예수님이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로마제국이면 로마제국, 그외의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 중심적인, 하나의 당당한 주권자로 서서 통치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이스라엘이 그런 입장에 섰었다면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러한 험난한 길을 밟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금후에 통일세계를 향한 통일식구의 갈 길에 있어서 박해를 방비하는 데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의 국가를 하나님 쪽으로 빨리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한국을 중심삼은 섭리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3분의 2쯤의 단계까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한국 자체가 완전히 복귀되어 있지 않은 이러한 때에 만일 일본 자체가 원조해 주는 입장에 선다면 한국 자체의 복귀가 빨리 됩니다. 만일 일본의 국가 자체가 원조해 준다면 자연히 한국 자체의 복귀가 빨라집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해와에 의해 타락됐기 때문에 해와에 의해 복귀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일본이 전후에 그런 패전 상태에서 재기하는 것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 20년 사이에 그렇게 발전을 해 왔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한국동란 때문인 것입니다. 한국과 연결되어진 결과예요. 그렇게 해서 지금 세계적인 국가가 되어 있는 거예요. 만일 일본이 해와 국가의 입장에서 한국을 원조하면, 한국의 금후의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어서 원조해 준다고 하면 남북복귀는 자연적으로 이룰 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일본 작전을 서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될 수 있으면 빨리 일본 전국에 통일식구의 활동을 전개시켜서 전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기반이 섭리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므로 그 목적을 향해 여러분들을 지금 까지 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자체를 두고 보면 남쪽의 주권뿐만이 아니라 북쪽의 주권까지 복귀해야 하는데, 북쪽의 주권은 여기에 공산당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김일성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북은 사탄세계에서 맨 끝까지 남을 집단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차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후의 원수의 입장에서 있는 것이 공산주의인 것입니다.

한·일 통일 식구의 사명

공산주의자 가운데 가장 악랄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김일성인 것입니다. 그 김일성 자신도 일본과 한국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만일 하나가 될 경우 남쪽으로 침략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의 아시아의 정세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 통일교회 식구들은, 일본의 통일교회와 한국의 통일교회가 어떻게 하면 양국간에 있어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역사적인 국가적 감정을 초윌해서 형제와 같은 심정권을 만들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일본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 하는 나라를 개재시켜 생각하는 입장에 섰을 경우에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국과 일본의 식구들은 일체가 되어 새로운 국가복귀라고 하는 목표를 정해서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그 나라를 전체적으로 복귀시킬 때까지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통일식구의 세계적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한국의 통일식구는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그 역사적 전통을 일본 식구들에게 전해 주고, 일본 식구들을 같은 입장에 여하히 세우겠는가 하는 것이 지금 현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역사의 배후를 달리하는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의 나라, 자신의 국내권에 있어서는 언제든지 일본이면 일본을 생각하게 되고, 한국이면 한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국가를 초월해서 한국도 일본도, 한국 통일교회의 식구도 일본 통일교회의 식구도 함께 지금까지의 국가의 관념을 초윌해서 새로운 국가 편성이라는 목적으로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나라를 위한 매개체로서 노력한다면, 이것은 하나님편으로서 영광스러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탄이 역사하던 세계에는 그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의 나라, 그 나라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 두 민족이 함께 협력해서 하나의 민족의 주권을 만들었다고 하는 역사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두 국민이 하나의 나라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 희생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투입하여 거기에 보조를 맞춘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편에서 자랑하는 조건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해 그 선두에 서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굉장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한국의 통일교회와 일본의 통일교회가 만일 하나가 되어 하나의 나라를 복귀했다고 하는 경우에는, 두 국민이 결합되어진 그 전통은 금후의 역사과정에서 여러 나라들에게 모범이 되는 전통적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통을 어떻게 해서든지 깨끗하고 참된 전통으로서 하나님편에 세우는 것이 일본과 한국이 지금부터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통일식구의 사명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감정적 틈새 즉 경계선을 엿볼 수 있도록, 어떻게 그 장애요소들을 빨리 타파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축복을 중심으로 한 국제결혼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내에 일본 여자는 한국 남자와, 한국 여자는 일본 남자와, 이렇게 감정적 결합을 하는 축복의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러한 기반을 빨리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증요한 것이 됩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이번에 3백명 가까이 이곳에 와서 수련을 받고 있는 것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에 왔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교포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본국에 온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사상을 심어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빠른 시일내에 우리들은 주권국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선 한국을 복귀하지 않으면 일본이 복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한국을 하나님의 섭리권에 세워야

여러분들이 국가로부터 반대받는 경우에는 누가 보호하는가. 지금 일본에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보호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켜 줄 사람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쫓으면 쫓기고, 공격하면 공격당하고, 죽이면 죽음을 당하는 그러한 입장이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생각할 때, 만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여러분들의 배후가 되어 있다면 일본 자체가 반대하더라도 밀선이라도 타고 한국에 들어오면 됩니다. 한국 식구들이 보호하면 여러분들이 숨을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일본에는 60만 가까운 한국의 교포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함께 손을 마주잡고 일본정부에 밀어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밀어댄다고 하면 일본 통일교회 식구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적인 문제가 되는 동시에 국제적인 문제도 됩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생각을 해 보면 빠른 시일내에 한국 자체를 하나님의 섭리권내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희망하는 것이며, 또한 섭리의 목적으로서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통일식구의 사명인 것입니다.

나라를 복귀하는 데는 동시에 두 나라를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둘은 되지 않습니다. 하나를 먼저 복귀하고 나서 다른 하나를 복귀해야 합니다. 만일 한국이 복귀될 경우 일본 복귀는 문제없습니다. 국가 예산을 투입하여 일본 복귀 운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볼때, 어차피 한 나라부터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과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환경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본은 불교 국가이며, 한국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지도계급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서양문화에 따라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서양과 통합니다. 전국적으로 통하는 배후의 기반이 기성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성교회를 통합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고 하면, 국가복귀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일본복귀를 중심으로 해서 이룩된 기반을 어느 한 때에 한국복귀를 위해 전면적으로 투입하는 때가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가 70년, 71년, 72년까지의 3년간입니다. 이 기간에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와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가 일체가 되어 하나의 나라를 복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일본 자체는 한국과 같은 횡적인 입장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세우기 위해서 작년부터 선생님은 일본 지구장들에게 지구장의 사명을 선서시키면서 직접 일본에 대해 손을 대어 간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더욱 가깝게, 더욱 깊게 통치적인 기반까지 연결지어서 하나의 목적의 방향에 투입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찾고 있는 기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아직 나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세계 각국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들도 모두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별개의 하나의 씨족권을 이루고 있지 못하므로 그 국가 자체가 반대하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한국에 있어서 사방팔방으로 어떤 작전을 펴서 계속 한국의 최고의 기준까지 어떻게 그것을 연결할 것인가를 강구해 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지금에 와서는 평균치 이상의 단계에까지 진전됐습니다. 그러므로 70년부터 71년, 72년까지의 3년 사이에는 어떻게 해서든 어느 기준을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상적으로 보면 국민들에게 공산주의에 지지 않는다고 하는 자신을 갖게끔 하는 것이 섭리적 관점인 것입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들 통일의 식구는 전체의 활동을 집중시켜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내에 여러분들이 한국에 와서 수련을 받는 것은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모든 활동은 국가 복귀를 위해서 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지금 여러분들은 아직 축복을 받지 않은 젊은이들이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3년 미만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이 최일선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사상 통일이 문제인 것입니다. 전체가 새로운 방향을 향하도록 사상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에 내한한 이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 수련회에서 한국 식구들과 심정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서, 한국과 일본이라고 하는 인상을 다 제거하고 우리의 나라를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일본에서 싸우더라도 그 목적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가 되든지 빨리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우는 것이 우리들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본 자체에 있어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입장과 보조를 정비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지금 일본 통일식구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렇게 어떠한 회생을 치르더라도 하나의 나라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하나의 나라가 복귀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당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미국이 크다 해도 일대 일의 자격을 가지고 공격할 수가 있습니다. 접촉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세계적이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들은 고생길을 면치 못합니다. 나라 없는 국민의 슬픔, 나라 없는 씨족의 슬픔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국민의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비참한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쫓기고 쫓기면서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과정에서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 있어서도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걸 볼 때 그들은 위대한 국민인 것입니다. 아무리 박해를 받아도 그 전통적 사상을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죽어가도 자손에게 유언을 남겨서 전통을 이어왔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전통적 사상을 지금까지 남겨왔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훌륭한 민족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에 있어서 문제의 민족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 복귀를 위해 모인 새로운 하늘의 씨족인 것이며, 하늘의 민족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씨족과 민족이 돌아갈 주권국가가 없습니다. 일본도 전쟁 후에 패했을 때는 비참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권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계속 희생을 치르고 탕감의 길을 통과하면서 발전의 목적으로서 찾아온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목표로 해서 지금까지 싸워 왔습니다. 그 나라를 위해 희생을 해 왔습니다. 그 나라를 현세에 있어서 우리들이 찾아야 할 단계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일이 자신권내에서 전개되어진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이것이야말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단 한번밖에 없는 이러한 시대권에 서서 그것을 맞이할 수가 있다,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때,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를 도와 일체가 되어 목숨을 걸고 그 목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통일식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것도 우리들의 주권복귀 때문이며, 장사를 하는 것도, 회사에 근무하는 것도, 전도하는 것 등 일체가 그 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통일식구들은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 자체로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전국민이 반대했습니다. 한국에서 3주권이 반대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주권의 종말이 오기를 어떠한 내심으로 기다렸던가. 우리들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시대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제 진정코 그런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환경을 맞이한 이때에 있어서 아낄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하고, 모든 세력을 다하여, 그 하나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여하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들은 기쁘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번 교육의 목적

일본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일본은 그다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궁극적인 박해를 아직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상적인 시대가, 그런 환경이 언제나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만일 천황을 중심하고, 거기에 우익이 하나되면 일본은 신도(神道)가 중심이 되어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신도(神道)와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반대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일본의 복귀섭리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일본작전에 있어서 선생님은 그러한 배후의 관계를 일괄하여 생각해 가지고 지금까지 지도해 왔습니다. 일본은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통과해서, 이러한 시대에 쫓겨서, 이러한 정책적인 방침을 진행시켜 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잘못됐을 경우에는 어처구니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 양쪽편을 서로 맞추면서, 아직 시작해 보지 않은 새로운 중간의 위치를 취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발전하는 길은 어떤 길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서 자민당에 대한 작전, 혹은 기시(岸)에 대한 여러 가지 작전을 지금 강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투입시키더라도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로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의 주권국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 식구나 유럽 통일교회 식구 전체의 소원도 그것인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지 않으면 세계적 기반을 일시에 구축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국가적인 기준이 이루어지면 그때엔 일시에 세계적, 평면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우리들은 선전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위험을 거쳐서 그것을 수행하고 이룩하면 자유스러운 세계권이 됩니다. 만일 그러한 기준이 된다면 3년 이내에 세계를 어떤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기준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 복귀라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 더한층 생각하지 않아선 안 될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중대하냐 하는 것, 여러분들은 그것을 염두에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나 깨나 혹은 일을 하는 중에라도 이러한 정신의 모토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있는 바의 모든 힘을 그 일에 다 쏟아야 합니다. 때가 왔을 때는 전체가 행동해서 한꺼번에 그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다는, 그러한 결의를 언제나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서 일본 민족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감정이 남아 있어 가지고는 절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한국민족이면 한국민족에 대해 지위라든가 하는 그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를 초월해서 가인과 아벨처럼 자신의 혈통 이상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끼리 사랑하는 것보다 한국의 식구와 일본의 식구가 사랑하는 것이 더욱 강한 사랑이 되지 않으면, 이것은 세계적 전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중대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하고 지금부터 방향을 전환해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이 찾아 오신 나라를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자체만으로서는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는 환경에 쫓기고 있습니다. 어차피 삼각작전을 해서 외부로 하여금 원조를 하게 하는 국가적 기반을 만들지 않으면 북쪽을 밀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서 여러분들은 그러한 방향에 마음을 맞추어 그러한 목표에 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에 여러분들이 내한하게 된 주된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언제든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나라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본의 정책이 한국에 반대하는 정책이면, 우리 일본 식구들은 정부에 반항할 수 있고 항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으려면 그를 위한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은 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우리는 반대하는 정책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든 국가 복귀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일본식구 자체로써 되지 않을 경우, 세계의 모든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행동일선에 내세워 보조를 맞추어 그러한 항의를 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세계 각국의 여론을 동원해서라도 영향을 미치도록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든지 국가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필요한 것입니다. 통일이념을 중심으로 해서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그러한 우위적 입장에 어떻게 서느냐 하는 것은 통일교회의 식구로서 언제나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상인 것입니다.

만일 지상의 국가를 복귀하는 일을 자기 생애에 다하지 못할 경우에 여러분들은 영계에 가더라도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가 없습니다. 지상에서 하나님의 주권권내에서 통치된 실적을 가지고 영계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본래의 창조기준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애에 있어서 여하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목표인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도 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빨리 빨리 좋은 사람들을 복귀하여 영향력을 빨리 파급하도록 하고 모든 힘을 한 곳, 주권복귀를 향해서 쏟아 넣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한 나라의 주권이 복귀되면 제 2의 나라를 복귀해서 전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만일 두 나라가 복귀된 경우에는 또 두 나라가 제 3의 나라를 향해서 집중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하나의 나라들을 복귀해 가지 않으면 전세계는 복귀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시작한 이러한 사상이, 만일 한국과 일본과 중국 삼국이 하나가 되었을 경우에는 이것은 아시아적 문제가 됩니다.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 기준이 평면적으로 복귀될 경우에 이것은 아시아적 문제가 됩니다. 이 세 나라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선두에 서서 세우려는 전통기준은 민족의 기준을 초월해서, 국가의 기준을 초월해서 새로운 이념으로 결합해야 합니다. 결합한 그 전통이 어떠한 나라에서 보아도 자신의 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전통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인정되어진다고 하면 아시아의 모든 국가는 결합되어 집니다. 그러한 전통 기반을 여하히 만드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한국 내부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전통은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본 내부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전통은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별적 민족을 중심한 전통은 문제가 안 됩니다. 서로 다른 민족이 합해서 새로운 전통을 세웠을 때, 이 전통이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전통보다 더 힘이 센 보다 더 가치있는, 보다 더 훌륭한 기준이라면 그 기준으로부터 아시아에서의 문제, 세계적인 문제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갑니다.

이러한 전통을 만들기 위해 일본과 한국의 식구들은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역사편성을 위한 전통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이러한 집회는 실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 집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국의 모든 환경을 보고 일본의 환경과 다르다거나 문화기준에서 보아 뒤떨어져 있다고 해서 비판적인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자신의 형님이면 형님, 누님이면 누님, 동생이면 동생, 누이면 누이와 같이 생각하고 결점을 자신이 채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보충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일인 것입니다. 같은 부모의 형제인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눈을 흘기고, 서로 몰아 때리고, 서로 반목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불행인 것입니다. 형제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수치와 같이 생각하는, 그러한 사람이 된다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딸인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국가를 초월해서 이룩할 수 있는 심정적 기반을 지금부터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된다면, 선생님의 생각으로는 금후에 일본식구들이 한국 등지에서 개척전도를 한다든가, 한국사람이 일본을 상대로 개척전도를 한다든가 하는 그러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국가의 배후를 의지해서 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멋있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일본식구들과 한국식구들이 같은 생활권내에 있어서, 같은 심정권내에 있어서 교류가 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우리들은 언제나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이 새로운 세계 주권으로서의 국가를 편성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새시대를 대비하라

여러분들은 지금 대개 20대이겠지? 지금부터 10년이나 20년 후의 30대 40대를 생각해 봅시다. 그 이후의 통일교회의 세계적 판도는 어떻게 될것인가.

세계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갈 곳이 없습니다. 벌써 갈 길이 막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양국가가 깃발을 올리고 세계에 웅비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한꺼번에 세계적 문제가 됩니다. 또, 미국은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를 대단한 문제의 나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 2차 대전 후 미국에 의하여 부흥되어진 일본이면서도 미국은 일본 자체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중공과 미국의 중간에 있지만 미국보다 중공에 더 가까이 서 있습니다. 자칫하면 공산권에 휩쓸려 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만일 한국을 중심으로, 통일사상을 그 배후의 사상으로 해서 새로운 하나의 통일국가권을 만들어 아시아에 그 깃발을 올리고 나온다고 한다면, 미국은 또다시 태연히 찾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볼 때, 일본과 한국은 하나가 되어 새로운 판도의 기반을 만들어 아시아에 영향을 끼치고, 세계복귀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에서 열, 혹은 하나에서 백, 일체의 생각은 주권국가를 복귀하기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라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라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러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아주 참혹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지상에 선생님을 보내신 목적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그것을 빨리 이루지 않으면 금후에 비참한 종교 전쟁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러한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적 방향의 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를 구원하는 중대한 위치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하고, 이번 기간에 그러한 사상을 심신에 함께 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원하는 바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더라도 한국복귀, 천국복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일본을 해와국가라고 한다면, 해와는 아담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는 경우에는 그 가문의 모든 규칙, 습관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시집을 갔다면 간 날부터 남편의 가풍을 자신의 가풍으로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의 국민성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방에 있어서는 일본이 세계적입니다. (웃음)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일본에 있어도 일본에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은 한국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해와가 본가에 돌아와도 생각은 언제나 자신의 남편에게 있지 않으면 그 남편에게서 쫓겨납니다. 쫓겨난 부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갖고 일체가 되어 목적완성을 위해 여러 분들이 공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한국에 대해서 관계가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때가 왔으므로 양국이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한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같은 입장에 선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본부 건설을 위해 여러분들을 선두에 세워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외적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힘을 투입하라,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라, 그리고 고민하며 기도하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통일 교회의 식구로서 활동한 모든 활동보다도, 이 기간에 있어서 진심을 다 바친, 그 기준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할 만큼 최고의 기준으로 한국을 향해서 힘을 기울이면 일본도 금후에 빨리 복귀될 길이 열립니다. 양쪽이 다같이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0년부터 선생님이 일본에 대해 직접 지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본부에 와서 교육받는 것을 원해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번에 한국에 와서 교육받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일본에 돌아가 일본 국민들을 복귀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선 하나의 국가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한국교포와 여러분들이 빠른 시일내에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초민족적 전통을 수립하라

지금 일본국민은 한국 교포에 대해 모두 반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경면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형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권을 일본내에서 이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통일식구가 그렇게 함에 따라서 통일사상은 세계적인 사상이 되어집니다. 이것은 자기의 나라를 의식한 사상이 아닙니다. 일본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한국 교포들을 성의를 다해서, 국가를 초월해서, 심정적으로 형제보다 더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한국 교포끼리 의논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일본 통일교회 식구들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교포가 총동원해서 얻는다고 하면 이것은 멋있는 일입니다. 아시아적인 새로운 전통의 조건도 됩니다. 그렇게 하여 중국의 교포와 일본의 통일교회가 하나가 되고, 이 세계와 하나가 된다고 한다면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에는 동남아시아 일대로부터 와 있는 대사관들이 있습니다. 그 대사관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에 유학 와 있는 수많은 유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유학생들을 우리의 사상권에 투입한다면 아시아적 조직을 편성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면에서 활용이 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일본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본국에 돌아가면 상당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아시아 작전에 있어서 우리들은 그들과 지금은 손을 잡고 있지 않지만 5년, 10년 후에는 반드시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때가 옵니다. 일본 내에 있어서 그러한 기반을 지금 만들어 두려는 까닭은 여러분들과 한국교포와 중국 화교가 결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체가 되어 아시아적 사상의 결합권을 이룰 수 있다면 이것은 멋있는 일이 됩니다. 그렇게 결합되면 한 나라 한 나라가 복귀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본과 한국이 복귀된다고 한다면 중국을 위해 국가 예산을 잘라서 돌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3개국이 복귀된다고 한다면 그 나라 자체의 예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예산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국이 함께 예산에 반영시킨다면 한 국가의 예산보다 더 많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나라들을 복귀해 간다면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완전히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적인 민족의 기준을 초월한 사상의 결합체, 그러한 결합권을 여하히 만드는가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거기에 민족을 초월한 물적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국민적 조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적 기준이 만일 이루어질 경우에 그것은 굉장한 것이 됩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대한 기간, 이국민(異國民)이 함께 새로이 하늘을 중심으로 해서 전통을 세우는 출발의 기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이상의 나라 복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입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마음속으로 결심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나라를 찾아서, 우리들은 나라를 찾아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간 섭리를 해 오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나 그들의 불신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후 2천년간 기독교회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많은 희생을 지불하고, 지금까지 수천년의 탕감의 대가를 지불하고 성취한 이 기독교 문화권을 통합시키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초민족적인 전통적 정신의 기반이 우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세계적인 역사가 여기에서부터 새로이 출발됩니다. 금후에도 이러한 사명감에 불타며 일해 주기를 선생님은 마음속으로부터 원하는 바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당신이 원하시고 원하시는 최고의 목적은 당신께서 직접 지도할 수 있는, 그 나라 하나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는 우선 무엇보다도 타락권내에 아버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아들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그 아들을 중심으로 해서 환경이 주관되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씨족권을 만들어 민족권, 국가권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년 역사과정을 통과하셔서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나라의 주권자로 보내어진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그분이 이 지상에 오셔서 나라에서 쫓기고, 종교로부터 쫓기고, 씨족으로부터 쫓기어 가지 않으면 안 되었고, 십자가의 길에 의해 최후의 길을 마치신 일을 생각할 때에, 하늘에 있어 그만큼 슬픈 일은 없었고, 지상에 있어 역사에 없는 비참한 슬픈 장면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또다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해서 영적 기반을 세계적 기반까지 연장시켜서 새로운 지상의 국가주권 기반을 찾아 오는 것이 재림의 이상이라고 생각할 때, 이것을 다시 승리의 기반으로 만들어가는 데는 야곱이 승리한 길, 또는 모세가 승리하여 얻은 길, 예수님이 실패하여 얻은 그 모든 길을 생애에 걸쳐 획득하고 승리하여 역사적 실적의 기반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줄 아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실체적 주권국가의 기반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사명의 길을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수행해 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모든 희생을 치르더라도 여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식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모두들 자각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일본에서 온 3백명 가까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 한 무리들을 당신께서 직접 주관하셔서 원하시는 바의 기본이 되는, 그 나라를 구하시는 방향에 일치될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에 있어서 세우신 전통을 지금 직접 일본의 식구와 함께 이이받아, 함께 그 나라를 바라보며 보조를 맞추어 하나의 나라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러한 중대한 기준을 힘을 합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될 수 있도록, 각자가 노력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생명을 다하도록, 각자가 맹세할 수 있도록 축복하고 격려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부터 2주간 여기에 머무는 기간에 많은 보살핌을 주심에 있어서도, 아버님께서 직접 주관하셔서 최후까지 당신의 주관내에 두셔서 최상의 복귀의 기준을 찾아낼 수가 있도록, 그래서 돌아갈 때는 올 때 이상의 결의를 가지고 일본을 위해 일함과 동시에 아시아를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러한 중대한 사명을 인식할 수 있는 각자가 되도록 아버님께서 직접 지도해 주실 것을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살아 남은 이상은 아버님이 찾으시는 나라를 향해 충성을 다하는, 혹은 충효를 다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결의를 세울 수 있도록 직접 격려해 주실 것을 바라옵나이다. 금후의 모든 것을 아버님께서 직접 지도하여 완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아버님 앞에 바치겠사오니 아버님이 책임져서 지도하여 지켜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원하오며, 이 모든 기도를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당신 앞에 바치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지, 오늘은 1971년 1월 31일, 벌써 새해 새달의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성일이오니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저희에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역군들이 남겨진 복귀의 노정을 침착하게 확실히 달려가야 할 때는 지나고 있습니다. 서둘지 않으면 안 될 촉박한 시기가 저희 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 느낄수록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교회면 교회, 나라면 나라가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야말로 저희들이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할 때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찾으시고 그렇게도 고대하시는 승리의 나라를 저희들이 찾아 바쳐 드릴 수 있는 그때와 그날을 위하여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절감하여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자기 개체만을 위해 사는 저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나라와 세계를 위하고 아버님을 위해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저희들이 이 사명을 감당해내는 것이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부르신 바의 목적인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이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냄으로써 아버지의 신뢰를 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이곳을 향하여 아버지 앞에 마음 모아 축수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물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긍휼히 보시어서 자비롭게 그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이 남아진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다 거쳐가는 데 있어서 핍박과 외로움이 닥쳐 오더라도 참고 견디어낼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저희 앞에서 홀로 사탄과 싸워 나가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일상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편히 모셔야 할 아버지께서 지금껏 쉬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생애를 다짐하면서, 아버지 앞에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림으로써 자녀의 도리를 다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거룩한 이날을 맞이하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늘 같이하여 주옵소서. 이들과 같이 살고 이들과 같이 일하고 이들과 같이 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얻은 그 승리는 당신의 승리요, 그 승리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러한 증거적인 실적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높으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특별히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도 외로운 자리에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더 외로운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외로움을 극복하며 싸워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내일을 기해 새로운 달을 맞게 되오니 새로운 달에도 한 날을 통해서 기념할 수 있는 한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마음으로 이 시간, 한국 식구들 뿐만 아니라 일본 식구들까지 모였사오니 아버지, 여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수택리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전체 환경과 전후의 모든 인연을 아버지께서 직접 인도하심으로써 승리와 통일의 한 터전이 되게 하시어서 만민이 이곳을 흠모할 수 있고, 또한 이곳이 아버지의 뜻의 판도를 넓힐 수 있는 절대적인 한 기관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2월에 저희들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이 나라 이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로서, 이것을 이달에 결정지어야 할 소명으로 받았사오니, 아버지께서 계획하시고 소망하시는 뜻을 기필코 성사시켜 드리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어려움이 있거든 그 어려움을 제거시켜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내달에도 그렇게 같이하여 주시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세움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수 있는 2월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50세를 넘기고 새로이 51세가 되는 기념의 한 날을 맞이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복을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하나의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어 이 민족이 새로운 말씀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새로운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낼수 있는 1971년도가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를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저희 단체에 아버지의 기쁨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을 향해 나가는 길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숨어 있는 자녀들을 불러 일으켜 세우시어서 아버지의 소원하시는 뜻앞에 귀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복귀의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서로서로 협조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아버지 앞에 영광이 될 수 있는 터전을 넓혀 가는 데 있어서 불가결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 앞에 본이 되고 세계 앞에 본이 되는,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증거적인 존재로서, 아버지의 사정을 느끼며 아버지의 동정과 인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보시는 아버지시여 ! 아버지를 향하여 흠모의 마음이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사모의 심정이 나날이, 시간시간마다 사무침으로써 저희 자체를 수습하여 아버지의 마음속에 잠겨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자체를 아버지께 온전히 바쳐 드림으로써 책임 다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향한 사모의 심정이 저희의 모든 생활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를 빼놓고는 살 수 없고, 아버지의 경륜의 자리를 떠나서는 갈 수 없사오니, 아버지께 속하여서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귀여운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에 저희들이 계획하는 행사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자비로운 아버지의 은사가 저희들에게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1971년의 새해가 벌써 오늘로써 1월의 마지막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루하루 생활하는 가운데서 계획을 세우면서 실천하여 나가고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때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1971년 이 한 해는 이 민족에게도 중요한 해이고,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중요한 해입니다.

때의 종류

우리들이 '때'라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때'에는 하늘의 운세의 때, 개인의 운세의 때, 나라의 운세의 때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라는 것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에 예고를 하고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언제나 찾아오지만 연이어 나가기 때문에, 즉 어제의 계승이 오늘이고 오늘의 계승이 내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때의 확실한 분기점을 인식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 때가 아침이 될는지 낮이 될는지 저녁이 될는지 혹은 밤이 될는지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시점을 지나가는 그 때에 자기 스스로 상대적 기준과 생활적인 기반을 맞춘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쳐 온 역사과정에는 섭리의 때가 많았습니다. 개인을 위한 때, 가정을 위한 때, 민족을 위한 때, 국가를 위한 때 등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그런 때도 있었지만 수많은 국가의 전후좌우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가 그 배후나 전후 관계에 있어서 지나가는 필요 적절한 때에 맞추어 가지고 과연 그 때가 그 민족이 맞이할 수 있는 때요, 그 때의 시점이 오늘 하늘의 운세가 찾아오는 때라는 것을 알고 그 때를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 할 때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대부분 어느 한 때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예언한 그 때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는 것의 중심은 몇 달 며칠 동안이 아니라 하루의 어느 한 순간 바로 한 때의 초점을 중심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분수령과 같은 한 시점을 넘어가는데 거기에 정확히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은 대부분 이루어졌지만, 거기에 대해서 직접적인 시대에 그 때를 알고 거기에 대비하여 상대적인 입장에서 맞이하여 이루어진 사실은 실로 적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 나서야 '아, 그때 봄이 왔었구나. 우리 나라에 좋은 운세가 왔었구나. 어느 누가 예언했던 그 때가 지나갔구나' 하면서 지나간 때를 회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했던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서 그때를 다시 회상하는 것이 늘 우리 인간이 생활해 온 방식이요, 지금까지 엮어온 인류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 자신들의 일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일생에 있어서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점이 어느 한때를 중심삼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날을 중심삼고 그 때가 반드시 찾아와서 고개를 넘어갈 것입니다.

그 때를 아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

그런데 문제는 그 때를 우리가 즉각 발견해서 맞출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점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정확히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그날을 준비해 오신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상대적인 그 시점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 할 때 받아야 할 그 사람이 시간에 맞추어 정성을 다해 양 손을 내밀어 주시는 그것을 받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번번히 인간에 대해서 섭리의 뜻을 추진시키지만 인간이 그 때를 정확히 알아서 섭리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됩니다.

인간은 일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늘의 은사의 때가 오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하여 놓쳐 버리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때를 바라보고 그 때가 언제 올 것인가 하고 기다리면서, 하루를 다짐하고 한 달을 다짐하는 가운데 그러한 때가 언제 지나갈 것인가를 마음을 통하여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만일 그 때가 지났음을 며칠 후에라도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자기 스스로 책임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그 때를 놓친 것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으로 지나치셔야 하겠지만 그 모습을 보시고 그 섭섭한 마음을 돌이켜 다시 그 때를 연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연장시켜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비록 그 때를 알지 못하고 보냈지만, 지나쳐 버린 후에라도 그것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바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은 제 1차의 때는 지나갔을지라도 제 2차의 때를 다시 준비하여 그 길을 개척해 주시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일생을 중심삼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필요적절한 하늘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하셨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에게 상관하지 않고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몇 번이고 몇 수십 번이고 우리를 위해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어 무엇이든지 주시려고 하지만, 그것을 받아야 할 우리들이 그 박자에 맞추어 가지고 받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된다는 것은 심히도 어려운 문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조심하고 그 때가 언제 올 것이냐, 그 때가 밤이냐 낮이냐, 혹은 내가 길을 가고 있을 때냐, 일을 할 때냐 하는 문제를 수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번번이 놓쳐 버린 인류역사

그런데 그 때가 왔을 때는 자신 스스로가 기쁜 마음으로 그 때를 맞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자리에서 그러한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악한 자리에서 맞이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하면서 그 때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의 여러 사정을 볼 때에 하늘이 마련해 주신 그 때를 배반하고 무시하면서 놓쳐 버린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때가 몇십 번, 몇백 번 있었지만 그 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그러고도 그런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다시는 새로운 때를 허락하시지 않고 다시는 준비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매일매일의 생활이 얼마나 신중히 해야 하는 생활이요, 하루하루의 시간시간이 우리의 운명의 힘줄을 당기는 얼마나 중요한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때가 매일매일의 시간을 통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하루 한시간도 마음을 놓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놓아 방심하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졸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간이든지 어느 때든지 또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상대를 통하여서든지 그 때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고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서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정성들여 가지고 스스로가 마음을 통하여 그 때를 안다든가 혹은 어떤 사람, 어떤 시간권내의 환경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때와 인연을 맺겠다고 자기 스스로 바라고 스스로 찾는 마음을 갖고 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일생 동안 그 때를 적중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시간은 틀림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중요한 시간은 지나간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수천 대, 수천만 대의 선조가 있고, 그 선조들이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선조들은 바라던 소원이 그 일대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반드시 후손 대에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들이며 그 때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조들이 정성들인다고 해서 찾아오는 그 때를 그 후손이 맞아 가지고 주인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선조들이 자기 후손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또 그들이 이 땅 위에서 선한 일을 하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후손을 통하여서 그 때를 주려고 하지만, 그 후손이 그 때를 맞이하여 하늘의 영광의 실체로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수많은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 거기에는 수많은 선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을 중심삼고 보면 수많은 애국자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나라를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고, 나라를 위해 하늘 앞에 기구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수많은 선지자와 애국자들이 소원하던 것이 때를 맞이 하여 우리 앞에 찾아왔지만 그것을 우리 혹은 후손들이 그 때를 맞아 우리 민족의 것이나 후손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후손들은 번번이 그 때를 놓쳐 버리고 맙니다. 대한민국에 백 명의 선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백 명의 선한 사람 전체 운세를 합해 가지고 그것을 그의 후손이 받을 수 있게 하면 좋겠지만 번번이 그 때를 놓쳐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는 특정한 하나의 무리를 통하여 이것을 계승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이 바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 때를 예언하셨다

하나님은 수많은 종족들이 합하여서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종교단체라든가, 대한민국에 있어서 하늘 앞에 특수한 사명을 짊어진 종교단체를 통해서 수많은 선한 사람이나 애국자들이 세웠던 선의 공적을 세우면서 그들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주고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늘의 운세를 맞게 하려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종교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그래도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정성들이려는 마음의 방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통해서 연결시키려 하는 것은 때를 알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많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무리를 통해서 연결시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그 나라의 애국자들이 정성들여 가지고 바라던 것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그 나라의 종족들이 받아들여서 계승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알지 못하여 번번이 놓쳐 버리고 계승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국가를 대표한 종교단체를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총합해 가지고 국가의 운세를 주려고 하시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 단체의 지도자, 종교인이 있느냐 할 때 있다고 대답하기가 심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서 선한 공적의 터전을 쌓아 놓은 사람과 관계맺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래도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종교권내에 많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 운세가 이 땅에 찾아오는 데 있어서도, 하늘의 운세가 천지에 찾아오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선한 선조들이 선의 공적을 세워 그 때가 찾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그 때를 기쁨 가운데에서 맞아들이지 못하고 번번이 놓치는 실수를 범해 왔습니다. 그렇게 인간들로부터 서러움을 당해 나오신 하나님은 될 수 있으면 세계 운세를 세계를 대표할수 있는 어느 특정한 종교를 통해서 연결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방향입니다.

그런 세계적 운세가 자기 종교 단체를 통해서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종교 단체에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심히 적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그때가 이 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심히 적다는 것입니다. 제삿날이면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있어야 되고, 그 시간에는 제사에 맞는 규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간권내에서 이런 은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으로서 하나의 예(禮)를 갖추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예를 갖춘 종교단체나 종교 지도자가 없다면 하늘의 운세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번번이 놓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떠한 종교단체가 한 민족을 대표하여 세계 운세를 맞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차, 2차, 3차 계속 놓치게 되면, 그 운세는 다른 종교단체 또는 다른 민족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으로 생활하는 사람, 혹은 그 무엇인가 새로운 섭리가 자기와 자기 가정과 인연맺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찾아오는 배후의 복이라는 것은 자기 선조나 자기 민족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전체의 선한 사람들이 소망하였던 전체 운세가 어떤 특정한 도인이라든가 정성을 들인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다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 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인 천운을 맞이할 수 있는 높은 심령 기준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여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그 시대의 대표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기필코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미래의 때를 예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때가 반드시 옵니다.

개인적인 때와 가정적인 때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그 때가 오게 되면 하나님은 그 민족의 운세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세계의 운세가 온다는 것까지 그 사람을 통하여 예고하게 하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예언하게 하지만 그 때를 정확히 알고 맞아 가지고 그 때와 인연짓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때를 예언하는 것은 쉽지만 그 때에 맞춰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시대를 상속하게 해서 땅 위에 하나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심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복귀되어 나간다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 교리입니다. 6천년 역사를 오늘날 평면적인 시대권내에서 횡적으로 탕감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은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 몇백 년 몇천 년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종교를 세워 가지고 싸워 나온 것은 메시아 한 분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런 남자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수천년 동안 준비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명을 해야 할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에 그 중심인물이 와야 한다는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이란 어떤 분이냐? 하늘땅이 소원하던 전체 운세를 맞아 가지고 그 운세를 어느 한 때에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땅 위에 보낸 대표적인 분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그분을 대표적인 가치의 존재로서 맞이할 수 있고, 그 때 앞에 있어서 틀림없이 상대적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 할 때 그것은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번번이 하나님의 역사를 놓쳐 버린 것을 후회하며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탕감해 가지고 그 때의 인연을 인간과 다시 관계맺게 하기 위해서 사명을 다하려 하는 것이 그 시대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진 교회가 통일교회요, 그러한 사람이 이 통일교회를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이라 하면, 여기에는 개인적인 때를 어떻게 맞추고 또 가정적인 때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씨족이면 씨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그 때에 맞추지 않고서는 이 땅 위에 결정적인 기반을 닦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통일교회에 다님으로 해서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 내적으로 뒤넘이쳐 나가 하나님이 주시하고, 세계가 주시하고, 영계가 총동원하여 주시하는 그 때에 진실로 자기 자신이 보조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정성을 들이고, 또 '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이 때를 바라고 나오시던 당신의 그 뜻을 우리 교단과 더불어 오늘 이 땅 위에 이루소서' 하며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의 섭리권내에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정확히 그 때를 중심삼아 가지고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정성을 들인다면, 그 때의 사명을 짊어지고 책임다하는 그 중심존재와 더불어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1차 2차 3차 회수를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때의 혜택을 받으므로 하나님이 그 일대의 기반으로써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정성을 들이더라도 때를 맞추어서 들여야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복의 줄이라고 할까, 하늘의 운세의 줄이라고 할까 하는 줄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줄을 중심 존재와 내가 서로 잡아 당겨 줄이 늦추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복스러운 자리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과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시간을 그 때에 박자와 도수를 맞추기 위해서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은 통일교회의 운세와 더불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들도 가다가 지쳐서 쓰러질지 모르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 때에 맞추기 위해 정성을 들인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하루아침에 다 쓰러져 버린다 할지라도 그 사람만은 남아질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여러분들에게는 '내가 그 때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틀림없이 맞추었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여러분 일생에서 과연 몇 번이나 맞추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개인의 때도 맞추어야 되겠지만 가정의 때도 놓치지 않고 거기에 맞추어야 됩니다. 또, 가정의 때도 맞추어야 되겠지만 종족의 때, 민족의 때, 국가의 때도 맞추어야 합니다. 그 때를 내가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때는 하나의 분수령과 같은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넘어가는 겁니다. 그것은 똑딱하는 순간입니다. 한 시간권내면 한 시간권내에서 넘어갈 것이며 세 시간권내면 세 시간권내, 24시간권내이면 24시간권내에서 넘어갈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그 24시간권내에서 열 두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혹은 여섯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세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아니면 바로 '이 시간이다'라고 할 수 있는 순간에 때를 맞추었느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등분적 구분(等分的 區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내 일생에서 이 때를 정확히 맞춰 '아버지이시여,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할 수 있는 아들의 사명, 딸의 사명을 자기 일대에서 얼마나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잔치집에 갔다 하더라도 잔치하는 그 시간에 맞춰서 동참하지 않았다면 잔치를 치르고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 옆을 지나가던 행객이라 하더라도 그 집에서 잔치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잔치에 동참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섭리의 도상에 있어서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 때를 알고 정성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려면 때를 맞춰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무턱대고 정성을 들여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일 때는 그 때가 어느 때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서 온갖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합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때에 대한 정확도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맞추어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왔지만, 그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여러분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때를 얼마나 맞췄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에게는 40일 전도의 때, 혹은 7년노정의 때가 있습니다. 7년노정의 의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여러분이 가야 할 탕감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저울눈과 같이 여러분을 앞놓아가면서 여러분의 생활에 맞춰지기를 바라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심자와 보조를 맞추어 나가자

그렇게 여러분의 눈앞에 움직여 나가면서 여러분과 맞춰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있는데, 여러분은 상대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느껴 보았느냐 할 때 번번이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다 하는 자리에서 그 때를 맞추었다 할 수 있는, 지극히 심각하고 긴장되고 노력할 수 있는 그 순간을 7년노정이면 7년노정 가운데 가져 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내면서 그저 그날도 그날이요, 금년도 작년과 마찬가지요, 섭리의 때가 발전한다고 하지만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사람은 떨어지는 낙엽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의 인연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을이 되기 전에 떨어지기 쉬운 낙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에 대해서 더 생각해야 합니다. 아침이면 밥을 먹는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기 시작한 때, 한창 밥을 먹는 때, 밥을 먹는 것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때를 매일매일 맞춘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때도 우리의 생활과정을 통해서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번번이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무턱대고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어느때일 것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 목표를 정해 놓고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세계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들여야 됩니다. 지구상에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때 그 순간, 그 초점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집중해서 정성들임으로써 그 정성의 도수가 수십억 인류 앞에 으뜸이 되게 될 때, 하나님은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신앙노정에서 우리들은 먼저 잘했다고 자랑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뜻을 중싱삼고 이렇게 움직였더라도 그것은 절대 자랑거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섭리역사는 개인적인 때에서부터 가정적인 때,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로 이렇게 발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전해 가면 갈수록 하늘의 때는 더 큰 데에 목표를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 큰 때가 찾아오면 지금까지 갖춘 때를 기반으로 하여 어떻게 연결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과거보다도 현재에 더 심각하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때를 바라고 나가는 우리 신앙자의 태도는 이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10년간 하나님을 믿고 20년간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 생명이 하늘과 더불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언제였더냐,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나님이 사명적인 분담을 자신에게 상속시켜 주는 시간이 언제였더냐고 할 때, 그저 그래하면서 어물쩍 한다면 그것은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섭리의 때는 개인적인 때, 가정적인 때,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로 단계적으로 발전의 도를 높여 가며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거기에 어떻게 보조를 맞춰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하거든 그 때를 중심삼은 제사장의 책임을 진, 시대적인 책임을 짊어진 중심 존재와 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그 때를 가리지 못하게 되면 그런 사명을 책임진 자와 더불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성을 들이면 나도 정성을 들이고, 그가 심각하면 나도 심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심각한 것은 이웃 사람이 아닌 나 대신 심각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호흡이나, 그의 뛰는 맥박에까지도 나를 일치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놓침으로 해서 천추의 한을 남길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의 사도들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 때의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를 총결산짓는 시간이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가 비운의 역사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고비의 때였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예수의 수난길에 동참할 수 있는 단 몇 시간 단 몇 초라는 시간은 둘도 없이 귀중한 때요,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이 때를 놓침으로써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한이 아니라 만민의 한으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주려고 했던 전체의 복을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구렁텅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때 대표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던 사도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했었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의 폐단은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일을 하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일을 하고, 또 우리는 우리대로 갈 길을 가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 이 사고방식이 아주 틀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가면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때를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맞출 것이냐 하면 민족사를 중심삼고 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맞춰지게 하는 것입니다. 출발한 그 각도는 다를지라도 진행하여 어느 한 초점에서 상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치라이트를 양쪽에서 비추면 서로 교차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 지점에서 맞추어져서 교차되는 그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방향을 갖추더라도 한번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교차되는 지점에 들어가 이곳이 내 자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빛나는 그런 자리에 서야 스스로의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교차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생애노정에 뜻과 더불어 어떻게 보조를 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들을 보면 자기들 멋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과 무슨 관계가 있고, 통일교회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늘의 때에 대한 생각은 다 떠나가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하며 자기 생활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때와 관계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쉬워하고 아무리 한탄하더라도 하늘의 때를 맞는 그 가치 있는 자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광경이 오늘날 여러분이 생활권내에서, 무심하게 생활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여러분의 선조들은 여러분이 거기에 동참하기를 얼마나 바라겠어요? 여러분 자신 일대에 있어서도 그 때를 놓치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원통한 사실이냐는 거예요. 그런 때가 여러분의 생애 노정에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올 수 없는 중요한 때가 여러분 생활권내에서, 시간권내에서 자꾸 넘어가는 것을 스톱시켜 가지고 내 생활과 더불어 내 시간권과 더불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 이상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고 주일이면 주일의 공식집회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이런 것을 등한히 하는 여러분의 행동이 스스로가 때를 놓쳐 버릴 수 있는 행동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서 때와 보조를 맞추라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 한 때를 위해 찾아오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한 때를 맞게 하기 위해 수천년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 피의 대가, 희생의 대가를 치르시면서 탕감노정을 개척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걸어오신 한스러운 노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한스러운 노정을 거치시면서도 삼천만 민족을 대표한 무리들을 천운과 인연맺게 해서, 그것을 온 세계 앞에 연결시키신다는 엄숙한 과제를 붙들고 나오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그 시간이 단축되기를 바라면서 '하늘이여, 제가 여기 있으니 저와 더불어 같이 가시옵소서. 저도 그 때를 맞게 해 주시옵소서' 하며 아우성쳐야 하고 또 그만큼 수고하시는 하나님에게 보조를 맞추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꿈도 꾸지 않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여러분은 얼마나 생활을 낭비하고 허비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원통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조들만큼 수고하지 않아도 그들이 쌓은 공적(功績)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그들 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영계에서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선조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여러분을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해야 함은 물론 과거의 선조들을 해방해야 하고, 더불어 세계적인 운세를 연결시켜 이 시대의 인류를 해방시켜야 할 엄숙한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고한 터전을 갖추어서 선한 후손들 앞에 상속시켜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비록 지금 서 있는 자리는 한 곳이요, 서 있는 사람은 한 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체는 새 시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합적인 중심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은 공적인 생활 중에서도 공적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때를 놓쳐 버렸으면 가정적인 때를 맞추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복귀노정은 개인적인 때, 가정적인 때,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 국가적인 때, 세계적인 때로 확대되어 나갑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인적인 때, 가정적인 때를 놓쳤으면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를 향해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민족적인 때에서 국가적인 때를 향해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일 것이냐? 지금까지 정성을 들이지 못하여 그 때를 놓친 것에 대해 서러움을 느끼고, 한스러움을 자탄하면서 이제라도 한 때를 갖추어 가지고 과거에 하나님을 서글프게 했던 모든 내용을 앞으로 오는 그 한 때에 있어서는 몇십 배의 기쁜 마음과 환희의 심정을 가지고 그 때를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탕감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간시간을 투철하게 생활하지 않고서는 그날이 의의있게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때를 알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

언제나 그 때를 맞추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밤에 잠을 자더라도 심령적인 안테나를 그곳을 향해서 맞추어, 하늘의 박자에 맞출 수 있는 공적인 입장이 되어 가지고, 자기의 고집이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은은하고 평화스러운 가운데, 마음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느낀 감정을 통해서 가려고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내온 하루면 하루의 생활을 총평가하고, 한 달이면 한 달을 총평가하여 지난날의 때가 오르막길이냐 내리막길이냐 하는 것을 수시로 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올라가는 길이라면 오는 때를 어떻게 맞이하고, 내려가는 길이라면 제 1차의 때는 지나갔으니 제 2차의 때를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지나간 달이면 지나간 달을 돌아볼 때 내가 부족하여 그 때를 놓쳤다면, 이제 배가의 노력을 하여 앞으로 올 제 2차의 때는 필시 놓치지 않고 정확히 적중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가 그 때에 맞춰 적중시킬 것이냐? 그 누가 그 때에 맞추어 갈 것이냐? 만일 여러분이 못 맞추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서라도 그 때는 맞춰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사명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연결되는지도 모릅니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같이 보이고, 웃음거리로 보이고, 교회에 있는지 없는지 유명무실하고 무가치한 존재와 같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을 통해서 천적인 때가 넘어가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때가 넘어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발판 혹은 징검다리와 같은 사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일이 어디서 벌어질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특별히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고 보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자신이 기도해서 받은 것 이상으로 여기고 묵묵히 실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외적으로는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 앞에 찾아온 운세의 줄을 감아 쥐어 가지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맞추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누구보다도 영리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역사가 지금 이 과중에서도 계속 엮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는 과중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에서 그런 일이 결정되어 나가는데 밖에서 아무리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때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를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가 때를 아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빚진 사람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를 맞추어 충성하면 복받으나 그렇지 못하면 탄식이 벌어져

선생님은 언제나 자유 분방하지만 나의 주장을 갖고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는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 올 것이냐? 그 때를 놓치게 되는 날에는 하늘땅이 뒤넘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의 운세와 더불어 때를 맞추어 가지고 조정하여 그 한 시간권내로 압축시켜 가지고 그 클라이막스 되는 때를 알아서 거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오게 되면 그 때를 통일교회 전체의 때로서, 전국 식구의 때로서, 세계에 널려 있는 전식구의 때로서 맞이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지도자인 선생님의 욕망인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여러 분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보조를 맞추게 되면 복을 받는 것이요,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탄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나는 나의 있는 정성을 다해 이렇게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통일교회의 사람 가운데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일치화되는 기준이 어느 정도냐, 또 그 수와 양에 따라서, 천운을 얼마나 많이 흡수하느냐에 따라서 지상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넓은 터전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넓은 터전이 되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개인을 중심삼고 그런 발자취라도 남겨 가지고서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느 때, 어느 시간에 그러한 일이 교회면 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뒤넘이치면서 발전의 도수를 더하여 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온갖 정성을 들이고 온갖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이렇게 비운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도 오늘날 이만한 기준까지 발전해 나온 것은 여기에 때를 맞추어 나온 여러분의 실적이 컸기 때문이냐, 선생님의 공적이 컸기 때문이냐 할 때 내심에 있어서 선생님이 때를 맞춰 나감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때를 맞추기가 지극히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안팎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책임을 진 중심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러분의 생활 전부를 보고하려고 하고, 그의 감정권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실 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이 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생각될는지 모르지만, 그 어떠한 곳보다도 오고 싶은 마음의 집이요, 자기 전체를 부정하더라도 여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깃들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래된 사람에게 그러한 감정이 없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때의 운세와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때가 수습되고 때가 진척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해서 통일교회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요, 때의 협조자냐 하면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느 시간에 그 때가 내 옆으로 지나가고 있느냐, 앞으로 지나가고 있느냐, 근처를 지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거머쥐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여러분 자신을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내 일생의 신앙길에 있어서 나의 때가 어느 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때가 있는 줄 알았다면 온갖 정성을 다함으로써 선생님을 통해서 특별한 지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시를 받는 데 있어서는 얼마나 심각하냐, 그 가야 할 길을 대해 얼마나 심각하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에 대한 책임을 명령받은 사람으로서 얼마만큼 심각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책임 맡은 그 일은 그 때의 시점과 더불어 반드시 결정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자의에 의한 비판과 자의에 의한 조건을 첨부시켜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해서 결과되어졌다 하더라도 하늘의 것으로 남아지지 않으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서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용이 벌어져서 번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전히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때를 맞이한다는 것은 심히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에게 때를 맞추어 주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하나님

하늘의 뜻을 받들고 나가는 사람은 죄인 아닌 죄인입니다. 언제나 남이 모르는 근심을 품고 사는 사람이요, 남이 모르는 외로움을 품고 사는 사람이요, 가고 오는 길 가운데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 때를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입니다. 언제나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면적으로 조정하여 맞춰 나간다는 것은 심히도 어려운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볼 때,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고 오늘날 이만한 단계에까지 올라온 그 배후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숨은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어떤 분야를 책임지고 나가 그 일의 발전과 그 일의 성과를 찬양할 수 있는 그 결과를 가졌다 할진대는, 찬양하는 그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그 때를 맞추어 주기 위해 배후에서 하나님이 수고를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수택리에 수련소를 지은 것은 벌써 때가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다 할 때는 밤잠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때야말로 정성을 다 퍼부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수십년 아니 일생을 통해 바라던 그 때, 국가와 연결될 수 있는 그 때는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오는 데는 크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이 불 때 일시에 폭풍우가 몰아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바람이 불기 시작함으로써 태풍의 징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때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심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그 때를 놓쳐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하늘땅을 대표해서 그가 세워 놓은 단 하나의 때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때가 오지 않더라도 그 때를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성에 의해서 개인적인 시기에 가정적인 때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중 삼중 몇 배의 수난길을 가면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귀역사를 분립해서 섭리하시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한꺼번에 개인, 가정, 종족을 복귀하여 편성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가 되면 먹고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초긴장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반 식구들은 모릅니다. 그 때가 되면 밤이나 낮이나 있는 정성을 다 퍼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놓쳐 버리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때는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애에 남아질 수 있는 귀한 해로 만들자

우리는 거국적인 활동을 앞에 놓고 1971년도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3년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때임을 선포하고, 선생님은 그 길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 1월 8일부터 선생님은 순회를 했는데, 이 순회는 내 생애 있어서 크나큰 투쟁의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달랐습니다.

과거에는 하루에 한 지역에 한번만 가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하루에 두 곳씩 갔습니다. 두 곳씩 갔다고 해서 정성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목이 쉬고 지치고 힘이 들고,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있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돌아봤는데 첫번이라고 해서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첫번에서부터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971년도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장 귀한 때입니다. 그래서 예년과 달리 복잡한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때를 모르거든 그때를 가려 가면서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 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앞에서 달리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뒤에서 짐이 된다거나 갈고리가 되어서 선생님을 잡아당기는 사람인지, 아니면 밀어 주는 사람인지, 또 선생님 가는 길 앞에 장애물을 앞장서서 치워 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더 장애물이 되고 있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다. 선생님의 측근자면 측근자들이 더 비판적인 입장에서 있는데, 과거에는 용서를 해주며 그들을 대했지만 이제는 직접 일대일로 대하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될 때 무서운 때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서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라고 마음대로 동정할 수 없고, 부모라고 마음대로 위할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때를 맞이하기 위해 이런 냉혹하고 공식적인 원칙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1971년에는 그야말로 정성을 들여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우기나 국가운세를 중심삼고 하나의 교차점을 맞이하는 중요한 시점에 들어갔습니다. 3년노정이 1970년부터 1972년까지인데 국가 운세나 아시아 정세를 두고 볼 때, 한국의 운세와 통일교회 운세가 교차되어 상봉하는 시기입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감으로써 상봉할 수 있는 때가 이때라는 것입니다.

정상을 넘어가려면 반드시 3점을 통해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3년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금년은 2차 년도에 해당되기 때문에 결사적인 투쟁을 해야 할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생에서 어느 때가 제일 귀할 것이냐? 금년을 일생에 있어서 클라이막스의 때로 생각하고 그 뜻을 아는 여러분은 자신을 비판하면서 나가야겠습니다. 또한 이 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선조의 피를 받은 후손된 입장에서 이 민족 앞에 선조들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위로는 역사상의 선조 앞에 옆으로는 이 민족 앞에 책임을 다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이 한때를 맞이하기 위해 총궐기, 총진군해야 할 때가 지금 이 때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기질이 다를 것입니다. 봄 절기와 같은 사람, 여름 절기와 같은 사람, 가을 절기와 같은 사람, 겨울 절기와 같은 사람 등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이 어느 때를 중심삼고 총공세를 해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때에 대한 정성의 도를 중심삼고 본다면 1971년도는 나에게 있어 어떤 때냐 하면,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어 준 귀한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때이므로, 이 해를 여러분의 생애에 남아질 수 있는 그런 두드러진 때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명길은 여러분 자신이 책임지고 가야 합니다. 밥을 먹는 것도 여러분 자신이 먹는 것이지 남이 대신 먹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소화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세를 져서 몸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모든 것을 영위함으로써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뜻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도 여러분 스스로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 중요한 때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때를 맞아서 그 이상의 정성을 쌓으면 하늘도 기뻐한다

그러면 이 3년노정에서 어느 때가 하나님이 바라는 바를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그 때일 것이냐? 책장을 넘길 때에 책장이 90도 각도를 넘어 가는 순간이 있듯이 이 순간이다 할 수 있는 그 때가 어느 때일 것이냐? 그 때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점을 여러분이 생각해 가지고 여러분의 신앙노정에 있어서 그 날들을 덧없이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계곡과 같은 때가 있고 정상과 같은 때가 있는데 거기에서 그 최고 정상의 때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게 되면 먹고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심혈을 기울이고 생명을 투입해야 합니다. 투입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100을 바란다면 그 이하로 투입해서는 안 됩니다. 110, 120이상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 때에 무한히 정성을 들여 투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100을 바라는데 120을 투입했다면, 20이 그 사람을 계속 달고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발전해 나가더라도 그는 100의 대가만 청산지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20만큼 그에게 빚진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를 끌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무엇을 바라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하늘이 복을 주면 그 복이 그 사람을 치고 가는 것입니다. 그 복은 때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려고 하는데, 정성의 기반 없이 그가 복을 붙들고 있으면 그 복이 그를 치고 간다는 것입니다. 복이 치고 갈 때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닦아 놓은 기반까지 다 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도(道)의 세계에 이런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개인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저사람은 어떠한 타입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하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언제 내적인 결정이 있어 가지고 관계를 맺게끔 전달되는 기간을 통해서 나에게 미쳐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내용을 알고,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 보조를 맞출 수 있기만 하면, 영계에 가서도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의 종합적인 운세에 맞춰 움직였기 때문에 거기에 해당하는 자리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히 그 자리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가라, 가지 마라'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어떤 기구가 되어 있는 것같이 자동적으로 층층의 계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에 의하여 벌어지느냐 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공신이 되어 있느냐, 때에 맞춰 얼마만큼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을 자신의 생애노정에 남겼느냐에 따라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양에 따라 영계에서 처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에누리가 없는 뜻길

우리가 자는 시간에 그 때가 지나갈지 모릅니다. 노는 시간에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혹은 여행하는 시간에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반성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지내고 나서 '아버지, 오늘은 이렇게 지냈습니다' 하고 하늘 앞에 보고드리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마음도 살과 같이 그런 촉감을 느낄 수 있고, 영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생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는데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심각하고 긴장된 무엇이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슬픔이 올 때는 자기 스스로 무릎을 꿇고 통회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나의 때에 대해 섭섭함을 느꼈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때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을 보았다든가 하는 때이니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해결을 짓고 넘어가야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이 찾아오는 것은 내가 기쁠 수 있는 사명을 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께 기쁜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관계로 찾아왔느냐, 간접적인 관계로 찾아왔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간접적인 관계에 있더라도 그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 가지고 거기에 박자를 맞춰 그 운세, 그 때에 있어서 동참자의 인연을 잃지 않고 나간다면 여러분 자신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이 황막한 신앙길을 홀로 갈 수 있는 겁니다.

신앙길은 매정한 길이요, 냉정한 길입니다. 에누리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사정을 봐주고 도와주는 경우가 있지만, 복귀의 길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를 한번 놓치면 그 때는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누구누구에게는 선생님으로서 바라보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떠한 타입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명을 맡겨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책임자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 스스로가 그 때가 어느 때가 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때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박자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되기를 바라시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발은 그럴듯하게 했으면서도 하나님이 박자를 맞추려고 하는 때에 다른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출발하지 않은 것보다 못합니다. 완전히 이율배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 뜻 앞에 있어서 이미 실패자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는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자기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그 때와 어떻게 주파수를 맞춰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뜻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뜻이 그냥 이루질 것 같아요? 가만히 두면 뜻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으냐 말이에요? 뜻은 어떤 동기가 있어 가지고 관계를 맺고 끌어 주기 때문에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뜻은 그냥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냥 된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시지 않았을 게 아니예요 ?

때를 맞추어서 생활하는 사람이 되자

이 땅 위에서 그 누군가 이 뜻을 중심삼고 맺어 주고 끌어 주고 밀어 줄 수 있는 발전적인 요인이 되고 그 터전을 마련해 주는 그런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이 섭리의 시대권내로 진척 발전돼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시대권내에서 같은 생을 살고 있고, 또 개체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전후관계를 대해 가지고 선생님이 그러한 때를 개척해 나가는데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추에 한이 될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영인들이 이것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원통해 하겠습니까? '내가 이 시대에 바꿔쳐서 태어났으면 안 그럴 것인데…' 그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모르는 가운데 같은 환경권내에 살고 있지만 천지가 갈라지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 곳에서는 여기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와 다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환경권내에서 바꿔치고 서로 옮겨받는 이런 서글픈 일이 지금도 통일교회내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대해 나가는 사람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점점 나아진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더 긴장해야 합니다. 이제는 옛날 같은 핍박도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핍박을 받을 때는 도리어 안전한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때지만 안전할 때는 내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됩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지만, 핍박이 없을 때는 내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준 때와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때와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었다 해도 불안한 것입니다. 안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나를 붙들어 준 때는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핍박받고, 외롭고, 서글픈 때가 신앙길에 있어서는 복된 때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태도가 자기의 안일을 생각하여, 자기의 출세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터전을 이용하여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고 바라면 그 모든 것은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절대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한 계획권내에서는 하나님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신을 재정비하여 정상적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식구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최고로 바라보는 그 때를 놓쳐 버리고 고립된 입장에 있는 식구가 많다는 거예요.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때를 맞추는 여러분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모진 상황 아래서도 때를 맞추기 위해 마음을 졸이면서 가는 민족이 있게 되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그냥 지나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런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면 비록 수는 적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다른 종교보다도 하나라도 많게 되면 천운은 이 종단을 중심삼고, 세계의 많은 종교, 많은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외롭고 보잘것 없는 무리인 우리를 통해 직행해서 날아올 것입니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그 때를 이어주기만 하면 천상세계의 환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을 초월하기 때문에 환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몇 천년 동안을 또다시 허비할 것이지만, 이것을 맞추게 될 경우에는 몇 천년 승리한 가치로서 천상세계에서는 찬양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런 때를 맞춤으로 말미암아 천상세계에 기쁨을 줄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은 그 기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인이 되고 지휘자가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 보세요.

그런 입장에서 영계에 가게 되면 수많은 영인들이 얼마나 고마와하겠습니까?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얼마나 고마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환희의 군중이 될 것이요, 찬양의 군중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길을 가는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개인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3시대를 단장하고 3시대의 승리권을 이 시대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그야말로 총합적인 생활관을 갖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누구보다도, 현재의 그 누구보다도, 미래의 그 누구보다도 때에 대해서 확실히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충효의 도리를 다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이 가야 할 신앙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때를 알고 때를 맞추어 생활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 서 있는 아들이 50년 생애를 지내고, 이제 내일이면 51년째를 맞이하게 되옵니다. 반백년 노정 위에서 아버님을 중심한 저 자신의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때, 제 개인의 목적과 제 개인의 사명을 자랑하면서 나오지 않은 과거를 갖게 해주신 하늘 아버지 앞에 감사드립니다. 져야 할 십자가가 있으면 그것을 도맡아 지기 위해 몸부림쳤던 과거가 있었던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51세를 넘어 반세기의 한때를 맞이하는 1970년대를 어떻게 갈 것이냐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45세부터 60세까지 15년 기간을 완성기로 정했지만, 벌써 5년을 보내고 이제 10년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10년을 어떻게 결속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이제야말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진정한 효자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사옵고, 충신의 도리를 다해야 될 것을 재삼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50세까지 아버님 앞에 부족함이 있었다면 다 청산지어 주시옵소서. 저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탄식과 한을 품게되고, 도리어 아버지 앞에 원한의 조건이 있었다면, 아버지, 축복의 은사를 배가하시어서 그들 앞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내일이면 다시 반세기의 내림길을 가야 할 여생이오니, 다시금 아버지 뜻 앞에 각오하고 맹세하지 않으면 안 될 1970년대를 지켜 주시옵소서. 1971년도부터 통일교회는 빛날 수 있는 사명을 다짐하며 가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탕감의 시절을 한과 더불어 보냈기에 한의 날들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어서 새로운 때가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는 바랄 수 없는 때가 저희 앞에 다가왔사오니, 이 1970년대를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거룩한 기간으로 보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과 이 세계를 아버지 앞에 이어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세상의 외적인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하늘의 때에 맞추는 거룩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할 절절한 과정이 저희 생활 가운데에 남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저희와 같이하시고 협조해 주셨듯이 금후의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아버지 앞에 서러움과 슬픔을 남기는 일이 없게끔 저희들을 다시 붙들어 주실 것을 바라옵니다. 이렇듯 언제나 아버지께서 일으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될 부족한 저희 인간들을, 아버지, 다시 한 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통일의 무리들을 당신의 마음속에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애절히 간구하고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충성을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제물삼기 위하여 죽음길을 가고자 하는 무리가 있거든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들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알게 하시고, 또 아버지께서 버릴 수 없는 자신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그 높고 큰 은사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을 버릴 수 없게끔, 스스로가 제사장의 책임과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불리움 받은 통일의 무리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에는 때를 아는 자가 되자고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과연 힘든 것이었습니다. 때를 아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인 중의 죄인의 모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외로운 자의 모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슬픈 자의 입장에서, 배고픈 자의 입장에서, 배고픈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그런 사모의 심정을 갖지 않으면 때를 맞춘다는 것이 심히도 어려운 것을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일생에 있어서 하늘의 때를 몇 번이나 맞추었으며, 아버님으로 하여금 찾아오셨다가 눈물을 흘리고 돌아서게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효자가 되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효자효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효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효자가 되기를 그리워하며 자기 일신을 망각하고 아버님 앞에 몸부림치는 자로서 남아지겠다는 각오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버님을 따라가는, 때의 사명을 이어받아야 할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절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어느 한때에 내가 살고 죽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언제나 조심하고, 언제나 겸손하고, 언제나 희생하기 위한 마음으로 나가는 길만이 자기를 보강하고 보호할 수 있는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명령이 있거든 자기의 일체를 망각하고 나서야 할 것이 아버님으로부터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걸음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1971년 1월을 보냅니다. 이제 내일은 이 해의 2월을 맞는 동시에 역사적인 한 기념 행사를 갖게 되오니, 통일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의 한때를 아버님과 더불어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 이 해는 50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해요, 통일세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나라를 위한 축복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되는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하늘길을 가기를 다짐하고 하늘의 갈 길의 터전을 닦기 위해 축복받은 가정의 부인들을 일선에 내세웠습니다. 이들이 이런 사명을 이어받고 때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 나섰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그 생활이 보람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 딸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스스로가 실적을 거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님의 마음을 사고 동정의 인연을 남길 수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온갖 정성과 지조를 다 바쳐 아버님의 한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서글픔으로 빈 아버님의 마음을 채워 드릴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선에 부인들을 내보낸 당신의 아들들이 밤이든 낮이든 그들의 마음 앞에 빚진 자가 되지 않겠다고, 그들을 통하여 찾아오는 자기 가정의 복을 순수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받을 수 있는 축복의 터전을 만들겠다고 온갖 지성과 정성을 다 바치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고, 그러한 가정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1년도에 있어서의 저희들에게는 아버님과 더불어 외로운 자리에서 이 나라와 판결을 짓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늘 길을 가면 갈수록 그 길은 언제나 가인 아벨의 투쟁의 길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한때가 지나가면, 또다시 하나의 원수가 가인의 입장에서 저희들을 공박하고 저희의 길을 막지만 저희가 정성을 들여가게 될 때는 맞고 빼앗아 나갈 수 있다는 증거적인 발전적 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신 분이요, 하늘의 때를 알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은 아버님이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불쌍한 무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그러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있는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을 언제나 동정하고 같은 운명의 환경권내에서 기거 동작을 같이 하게 하시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빚진 자리에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는 자리에서 모셔야 할 책임이 오늘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러한 책임을 다하여야 할 사명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스스로의 기쁨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앞날에 찾아올 수 있는 슬픔을 염려하면서 오늘의 기쁨을 억제하여 아버님 앞에 보관시켜 놓고, 미래의 한스러운 길을 탕감해 달라고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이들이 가는 길에는 발전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러한 생활 터전을 남긴 사람은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러한 길과 이러한 생활을 스스로 기뻐하면서 갈 줄 아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때를 맞추고 때를 아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이 찬양하고 영계의 수많은 선조들이 저희에게 영광의 찬양을 돌리면서 이 땅 위의 아무개 이름을 찬양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귀한 무리가, 통일의 무리 가운데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안일한 하루의 생활권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기보다 가야 할 내일의 탕감의 노정이 가중된 시련무대로서 찾아올 것을 염려하면서, 오늘도 빛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아버님 앞에 남기고 내일의 승리의 조건을 다짐하기 위하여 시련길을 앞당겨서 나갈 줄 아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때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찾아오는 때를 맞이할 수 있도록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거기에 저희들을 언제나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자가 되게 하시어서 하나님을 외로이 모시지 아니하고 아버님 앞에 슬픔의 터전을 남기지 않는, 아버님 앞에 기필코 있어야 될 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겠다고 다짐했사옵니다. 그러나 어느 한때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에 있어서 책임을 다했느냐고 묻게 될 때, 저희들은 아무 책임도 하지 못했다고밖에 할 수 없사오니, 이런 스스로를 비판하고 내일에 있어서는 스스로 비판을 받지않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때를 아는 자가 되어서 기필코 때를 놓치지 않는, 하늘과 땅이 기억할 수 있는 무리로서 남아질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은 1971년 2월 1일, 새벽 1시를 기하여 역사적인 새로운 한 시간이 저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땅 위에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지 51년을 맞이하는 찰나, 51년 전의 그 순간이 되살아오는 까닭에 마음 깊숙이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아버님이 바라고 소망하는 뜻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여기 모인 소수의 무리들만이라도 이 날을 축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오랜 역사의 소원의 한 기점이 되고,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한 시대가 되고, 아버지께서 창세 이후부터 지금까지 엮어 온 슬픔의 역사를 딛고 승리한 터전이 될 수 있는 그 자리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이 민족과 이 나라에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세워 놓으시고 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는 아버지의 뜻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거룩하신 은사 앞에 저희들이 지난날을 회고해 볼 때, 이 민족을 복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뜻을 따라나오던 수많은 재단이 아버지 앞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슬픈 역사만 남긴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서러운 사연이, 사무친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형제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앞에 동생들이 구하고 있는 심정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세우신 뜻을 대하는 아들들을 보시옵고 딸들을 보시옵소서. 이들에게 긍휼의 심정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아버지 앞에 천지창조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영광의 한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과거에 책임하지 못한 실수로 말미암아 이 세계에 가져온 그 피해가 얼마나 컸사옵니까? 아직까지도 그 상처가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이제라도 이 민족이 아버지 앞에 베옷을 입고 무릎을 꿇어 통곡하며 과거지사를 후회함과 동시에 회개할 수 있는 인연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의 정신적 지도의 책임을 짊어졌던 수많은 교단들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사연 가운데서 책임을 다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못다 한 것을 다시 한 번 통회의 눈물로써 아버지 앞에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그들을 다시 일깨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당신의 사랑하는 수많은 자녀들을 품고 아버지를 위해 따라 나온다고 했지만, 당신이 이 땅 위에 경륜하시는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을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인연의 터전을 떠나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한 사람 두 사람 들어가게 되어, 이제는 수습할 수 없고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바라볼 때, 하늘을 배반한 그 길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1970년대를 맞이하여 그들을 다시 한 번 수습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저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당신의 뜻 앞에 그들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느끼는 통일의 제단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슬펐던 수십여 성상의 노정 가운데 아버지의 외로움에 동참해 오면서 저희들의 일을 놓고 슬퍼하기 전에 아버지의 일을 놓고 슬퍼하였던 과거지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반세기의 생애를 지내 놓고 다시 남은 반세기의 후반기를 맞이하며 50대의 고개로 넘어가는 이 아침, 지금까지의 한 많았던 역사적 서러움의 과거를 씻어 버리고 이제는 영광의 터전에서 모든 것을 다 합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자유와 평화가 깃드는 자리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을 대하게 될 때 이러한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신 것은 참된 아들과 참된 딸이라는 사실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그 참된 아들과 딸이 참된 부부를 이루어 참된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고 참된 자녀들을 거느리어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을 형성하여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소원의 노정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까지 묶어 맺어 놓은 통일의 무리들이 참된 가정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참된 부모의 인연을 갖추고, 참된 자녀를 거느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소원의 터전이 되고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승리의 가정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가정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서러움이 될 가정이 저희 통일교단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책임 못하였던 모든 사실들을 아버지께서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무리들은 참된 종족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직까지 하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는 불쌍한 무리요, 하나의 민족을 대하여 환영받지 못하는 불쌍한 무리이오니,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참된 종족을 펀성하여 참된 민족을 이루어야 할 것이 이들의 갈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1년, 금년을 중심삼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할 때가 저희에게 찾아왔사오니, 저희들의 정성이 이 민족의 한을 넘고 수많은 교단들이 실수했던 모든 조건을 넘어 통일교단으로서 해야 할 책임적 사명을 충당하고 남음이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환희의 심정과 더불어, 기쁜 천주와 더불어, 이 땅 위에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그들이 재인식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1년도부터 새로운 10년 기간에 저희들이 가정을 중심삼고 영광의 아버지를 모셔야 되겠습니다. 저희 각자의 가정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모셔 드리면서 하늘 규범을 따르는 가정들이 되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참된 부부의 인연을 가진 개개의 가정이 되고, 거기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선한 자녀가 되어서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함으로써, 아버지께서 택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부디 통일가에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를 이 시간 다시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기념하며 이 곳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바라는 소망이 온전히 하나의 생명으로 인연된 귀로에 모이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을 아버지의 사랑의 인연 가운데로 품어 주시옵소서. 죽든지 살든지 뜻을 위하여 기도 드리며 갈 수 있는 참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 남한 각지에 널려 수고하고 있는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시옵소서. 그들이 자기가 처한 자리를 한(恨)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내어 드리고, 자기 스스로 부족한 것을 탕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동시에 이 민족과 수많은 교단들이 실수한 것을 탕감하여 기필코 이 기간에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복귀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처해 있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생명을 기울여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그 충성의 도수가 하늘에 사무쳐서 이북에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까지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러한 새로운 계기가 남한에 있는 당신의 딸들을 통하고 축복가정과 그 자녀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북에서 김일성을 중심삼은 괴뢰 일당이 단결되어 있는 그 이상 저희들은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김일성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저희들이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겠고, 그들이 김일성을 위하여 생명을 각오한 이상으로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생명을 각오함으로써, 당신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는 당신의 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이들로 말미암아 외로운 역사적인 하나의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선에 나가 있는 부인들을 중심삼고 남편들과 자녀들과 통일교단이 일치가 되어야겠습니다.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고 하늘의 운세를 맞아들일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을 마련하여, 당신이 사모하며 찾아 나오시던 참된 종족을 편성하여 아버지 앞에 민족을 거느리고 부복시켜 드릴 수 있는 대제사장의 책임과 종족적 메시아로서의 시대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날, 이 시간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하나의 한계점을 넘어가는 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10년 기간에 있어서 모든 전체가 아버지 앞에 기쁨의 결과만을 가져오고 승리의 결과만을 가져오기 위해서 보다 가중된 충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50평생 이후의 남은 생애를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수고시킨 사사건건의 모든 일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될 때, 이 민족이 잘못하였고 조상들이 잘못하였으나 오늘의 현 시대를 책임진 저희들도 책임 못하였다는 사실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후부터 저희들이 새로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기쁨으로 맞아주셔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동고동락하며 아버지가 저희들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고,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와 열녀의 도리를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 가정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인연을 책임진 저희 두 사람이 얼마나 지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절실히 느끼고 있사옵니다. 여생을 다하여서라도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뜻 앞에 마이너스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아버지 앞에 다짐하는 시간으로서 기억하겠사오니, 부디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길이길이 밝혀 주시옵고, 길이길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여생의 힘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이 민족과 더불어 이 세계와 더불어 남겨야 하는 것이 금후에 저희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해마다 찾아오는 이날을 함부로 맞이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1971년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무리들을, 아버지여, 사랑하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고, 이제 수난의 역로를 제거시키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들을 세계적으로 가는 길 앞에 온 영계를 아버님이 친히 동원하시어서 금년부터는 아버지께서 직접 저희와 같이하신다는 것을 증거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는 악한 무리들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탕감받았지만 이제는 저희들을 대신하여 악한 무리들이 탕감받을 때가 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승리의 방패를 세우시어서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뜻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움직여서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게끔 직접 역사하고 주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수택리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 식구 가운데는 일본에서 온 3백 명에 가까운 식구들도 동참하고 있사오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 일본이란 나라는 저희 나라가 용납할 수 없는 원수의 나라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의 품 가운데에서는 원수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형제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지금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보시어서 이날을 기쁨의 날로 받아 주시옵고, 이 달을 자랑과 칭찬의 달로서 기념할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천상세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과 지금까지 후손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적인 승리를 바라며 협조해 왔던 수많은 선한 영들 위에도, 아버지, 이 시간을 통하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땅 위에 있는 후손들을 통하여 직접적인 재림부활의 역사를 할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특사의 권한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땅 위에 승리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하나의 행사를 치렀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영계와 지상과의 직접적 관계를 맺는 출발의 기점을 만들기 위함이었사오니, 예수님을 의지한 사도, 천천만 성도,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삼고 희생하여 왔던 수많은 영인들이 땅 위에 그의 후손과 그 뜻을 따르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움직이게 하시어서 통일교회에 결속시키는 역사에 직접적인 협조를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땅 위에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영계의 협조를 받아 온 만민이 하나로 일치된 대가족을 이루어, 한 부모 밑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승리의 세계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 땅 위에 있는 수많은 나라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민주세계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을 당한 이때에 있어서 하늘의 때가 점점 지나가는 자리에 있사오니, 아버지, 흘러가는 역사를 가로막아 주시옵소서. 새로이 아버지 앞으로 돌리시어 아버지 품에 품을 수 있도록 아버지의 직접적인 사랑의 불길을 땅 위에 던지시옵고, 만민의 가슴 가운데 아버지를 새로이 추앙할 수 있는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통일의 문으로, 통일의 제단으로, 통일식구의 은사의 터전으로 그들을 품으시어서 당신이 거룩히 축복할 수 있는 만백성으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북한은 물론이요, 공산 위성국가까지도 자유의 동산권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배반하고 아버지를 반대하는 수많은 무리를 직접 치시어서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대해 따라갈 수 있게끔 하시옵소서. 수많은 국가 국가가 연결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1971년 음력 1월 6일 이 아침, 저희들이 각각 51회와 28회 생일을 맞이하는 이 시간 위에 당신께서 기쁨으로 저희에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가정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이 될 것을 이 시간 맹세하옵니다. 저희 자녀들은 아버지의 축복받은 수많은 가정들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거룩한 자녀로서 교육해야 할 것을 아옵니다. 정성에 정성을 기울여 민족과 세계를 아버지 앞에 복귀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를 돌려드릴 때까지, 있는 힘과 열을 다하여 충성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맹세하오니, 아버지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바라는 마음을 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난날의 슬펐던 모든 일들을 다 지워 버리고, 이제부터는 기쁜 일로써 아버지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노정이 1971년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경륜하는 모든 사실들이 아버지의 승리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저희들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밀고 나갈 것을 아버지 앞에 결의하오니, 온 전체가 한 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각자의 마음을 아버지 앞에 바쳐 놓고 그 몸을 끌고 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일치단결하여 이 민족 앞에 책임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그 책임을 금년과 내년에 완결지을 수 있게끔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그 책임을 다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직접 주도하여 주시옵고, 약한 자가 있거든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악을 대하여 옹졸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선을 입증시키는 데에 강하고, 악을 제거시키는 데에 무정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인 출발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오니, 아버지, 친히 주관하시어 인도하여 주시옵고, 맡으시어 관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는 길 앞에 반대되는 모든 여건들을 제압하시어서 승리의 천국을 향해 가는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마음 모아 정성들이는 무리 위에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1년후 다시 맞이하는 그날까지 저희가 온갖 정성과 성의를 다 기울여 싸워, 위로는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아래로는 온 만민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계 해방과 지상 해방의 운세가 어서 속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 이 시간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역군들 위에 일률적인 사랑으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기쁨의 날로서 맞이하기 위해 모인 자녀들을, 아버지, 기꺼이 맞아 주시옵고, 이날을 축하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만복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희망과 소망이 길이길이 그들의 생활 과정과 생애 노정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음력으로 1971년 1월 6일이 되는 날입니다. 나에게는 51번째 맞이하는 생일이 되겠고, 어머니에게는 28번째 맞이하는 생일이 되겠습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이 해는 인생의 반세기를 지내고, 새로운 반세기를 출발하는 첫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오늘을 새로운 반세기의 첫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통일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책임

지금까지 한국에서 복귀섭리를 담당해 나온 발자취를 돌이켜볼 때, 그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때가 예수님이 바라던 어느 한계선을 오늘날에 이어받아 가지고 이것을 이룰 수 있는 선까지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앞에는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가 염려하고 있는 이북이 문제인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1970년대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단이 해야 할 중요한 책임은 이 나라 이 민족에 대하여 맡겨진 책임을 해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이북의 김일성 도당을 어떻게 제압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그들이 남침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대한민국을 노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이것을 방비할 수 있는 인연을 우리가 어떻게 갖추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1970년부터 1972년까지 3년 기간을 설정해 놓고 싸워 나가는 그 중요한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남한을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지만 그것보다도 악의 세력을 중심한 북한이 남한의 선한 세력권내를 침범하려는 것을 어떻게 방지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적입니다. 따라서 이 기간은 통일교단에 있어서 내적 기반을 공고화시키고 그것을 외적 환경의 인연으로 연결시켜서 이 나라의 기성교단과 평등할 수 있는 기준까지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이 기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수많은 공산 도배들이 김일성을 중심하고 단결되어 있는 힘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되어 있는 통일교단의 힘을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의 힘이 더 셀 것이냐? 그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탄을 중심삼고 단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하고 있는 통일교단이 얼마만큼 그들보다 내적으로 강력히 단결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지 않고는, 남한은 언제나 어려운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2년도까지 우리는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남한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책임을 못하면 우리들만이라도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 영적인 힘을 가중시켜 가지고, 육적인 면으로 단결되어 있는 사탄의 세력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인 단결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 단결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들은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과거와 같은 습관적인 생활 방식으로 모셔서는 안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위해서 매일같이 제사 드리는 제사장의 가정을 대신했다는 심정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일선에 나가 있습니다. 그들이 나가 있는 일선은 한국에 있어서의 일선이 아니라 영적으로 사탄 세계의 침범을 방비하기 위한 일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자기 부인이 일선에 나가 있는 입장을 생각할 적마다 아이들을 거느리고 제사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추운 날이 찾아오면 민족을 대신하여 속죄의 마음으로 민족의 추움을 먼저 염려해야 하고, 자기에게 어려움이 부딪히거든 그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이 아니라 민족의 어려움으로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연 맺기 위해 제사장으로서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노정을 간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축복가정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축복가정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입장에서 자기 가정 나름대로의 길을 갔지만, 그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이번 3년 기간내에 수습하지 못하면 그 가정은 통일교단과는 관계 없는 입장이 될는지 모릅니다. 선생님 가정과는, 혹은 뜻이 가는 길과는 상관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될는지 모를 중요한 시점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든 축복가정은 중심가정과 하나되어야 한다

우리 통일교회는 선생님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축복가정을 하나의 종족이라 하는데, 이들이 하나의 중심에서부터 열 두 지파면 열 두 지파로서의 입장을 대신하여 순차적인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36가정, 72가정, 124가정, 430가정, 777가정들을 축복했지만, 이 가정들이 전부 하나로 연결된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이 조직화된 단결체로써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자기 개체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뿔뿔이 나누어진 입장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뜻길을 가는 생활을 태연히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가정과 연결되어 있지 못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것을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중심가정과 외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적으로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일치시킬 수 있는 내적인 심정기준을 세워야만 그 다음에 외적으로 가정의 환경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정적 기준을 어디에서 결합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처해 온 그 가정 자체로서는 선생님 가정에 연결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선상에서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연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인들을 일선에 내세워 가지고 부인들이 간 길을 남편들이 따라가게 하고, 또 아들딸들도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후방에 있는 가정은 후방에 있는 가정이 아닙니다. 그 가정은 일선 가정을 대표한 가정으로서 3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선두에 서서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새로이 심정의 불을 엮어 가지고 이것이 나누어질 수 없는 서로서로의 피의 인연을 갖고 있고, 생애의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여 새롭게 결의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가지고는, 이 민족을 한 품에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승리의 기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 가정과 지방에 나가 있는 부인들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그 거리는 거리로써 측정할 것이 아닙니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을수록 더 가까와질 수 있는 입장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울의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그 어떤 식구보다도 가까울 수 있는 심정적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일선에 나가 있는 부인의 남편으로서, 혹은 자녀를 거느리고 있는 어버이로서 이제 해야 할 것은 뭐냐? 그와 더불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민족을 품고 하나님의 중심 가정과 하나되지 않으면 제사장의 책임을 진 가정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36가정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복귀섭리의 사명을 담당했던 시대시대의 수많은 선한 선조들을 대표한 가정이요, 그 선조들이 종적으로 실패했던 것을 횡적으로 실체 복귀하기 위해 선조들의 부활체로서의 책임을 가진 선택받은 가정입니다. 이 36가정은 36억이라는 세계 인류를 대표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36가정이 36억이라는 인류를 대표한 조상의 입장에 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36억의 인류를 대신해서 자기의 책임은 못하더라도 36억 인류가 살고 있는 국가들의 중심이 되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이 중심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장의 책임을 해야 합니다.

제사장에게는 나라가 수난길에 있게 될 때, 자기의 생명을 대신하여 양을 잡아서 하늘 앞에 제물을 드림으로써 그 민족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뜻 앞에 먼저 불리움을 받은 가정들은 제사장과 같은 입장이므로 3천만 민족은 물론이요 36억 인류를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들은 국가와 민족을 대신하여 그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그들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의 어려움으로, 그들이 회개할 일이 있으면 자기가 회개해야 할 일로 그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제사장의 책임을 졌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책임을 지는 데는 편안한 자리에서 짐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자리는 반드시 양을 잡아 가지고 양의 피를 바르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오늘날 제사장 입장에 있는 축복가정들이 기필코 수난의 첨단에 서지 않고는 제 2 해방을 바라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제사장의 책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유

과거 이스라엘 시대에 있어서는 남자들이 제사장이 되었었는데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왜 여자들을 선두에 내세웠느냐? 제 1차 이스라엘 시대에 있어서 유대교는 천사장형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을 중심삼고 제사장의 책임을 했지만, 오늘날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해와의 입장에 있는 여자들이 제사장의 책임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단에서는 여자들을 내세워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세계적인 제사장의 책임을 진 입장에 내세운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도 타락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인류를 멸망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와의 입장에 있는 여자를 앞에 세우고 아담의 입장에 있는 남자가 여기에 하나되어 가지고 부부가 전체 인류를 대신하고, 혹은 대한민국과 민족을 대신하여 제사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부부뿐만이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자기 어머니를 걱정하고 자기 아버지를 걱정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만 사위기대가 갖추어지게 되고 하늘 앞에 제사장의 책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상에 없었던 가정적 제사장의 책임을 함으로써, 오늘날 민족적 가정복귀의 터전이 이루어져 타락했던 아담 가정을 용서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기반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사명을 하기 위해서 축복가정 부인들이 일선에 나가 있는 것을 아는 통일식구들은 그들보다 더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보다 잘먹고, 그들보다 편안히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내심에 있어서 그들보다 더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들보다 더 정성을 들이는 그 무엇도 없이 편안히 지내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남편은 아내 이상으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아들 딸들이 부모가 가는 길이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하기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마음으로 흠모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겨우 말할 수 있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그뜻을 하나님이여, 이루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어린 아이가 통일교회의 축복가정 가운데서 많으면 많을수록 새로운 역사를 부활시킬 수 있는 사위기대의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3년 도상에 있어서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김일성 도당을 중심한 이북의 무리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 강제로 하나되었지만, 우리는 그 이상으로 자유와 평화가 있는 이 환경에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투입하며 하늘 가정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 있어서는 김일성을 중심삼고 하나된 공산당 이상의 자리를 우리가 갖추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사탄세계를 제압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기준을 통일교단이 감당해 내게 될 때는 공산세계에서는 분립이 벌어질 것이고, 지금까지 문제 되는 그런 인물이 있다 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필코 그를 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이때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의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시대의 탕감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가정들이 책임을 다하고 나면 탕감할 기반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탕감복귀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아들을 찾기 위해 천사장권 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양자권내에 있지만 오실 주님 앞에 있어서 형(型)으로 보면 천사장권 즉, 천사와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희생시켜 대가를 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가정을 희생시키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일체가 되어 정성들여야 할 3년기간

오늘날 섭리적으로 볼 때, 통일교회는 아들이 설 수 있는 자리, 딸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거쳐 왔습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의 기준을 편성하였습니다. 만일 이 편성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대신하여 제물될 수 있는 사위기대의 터전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써 봉헌해 드리게 될 때는, 역사상에 없는 하나의 제물을 갖추어 드린 것과 같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탕감시킬 기반이 없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기간을 지내고 난 후에는 통일교회가 탕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갑니다. 하나님편에서 탕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가정들을 중심삼고 탕감 조건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사탄가정을 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역사시대가 멀지 않아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때가 얼마나 중요한 과정을 거쳐 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와 같은 견지에서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받은 가정의 남편이 홀로 그 애기들을 키우는 것을 보게 될 때, 외적으로 보고 흉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비참한 지경에 처하거나 스스로 고충을 느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응당히 그 가정이 치러야 할 하나의 고비로 알고 넘겨야 하겠습니다.

우리 일대에 가정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치러 가지고 민족적 가정을 해방시켜 주기 위한 제사장 가정의 책임을,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한한 영광으로 알고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자녀를 거느려 가지고 아내와 같이 가야 할 탕감노정을 순수히 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책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선생님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어 움직이게 되면 틀림없이 3년 노정이 끝나게 될 때, 이 나라도 가야 할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이 가시는 길을 향하여 따라올 것입니다. 이렇게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갖추어 나가게 되면, 북괴도 자연히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게 되고, 문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주세계가 소련과 중공을 중심하고 염려하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역사적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정성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정성을 들여 가지고 악을 물리쳐 나오신 것과 같이 정성을 들여 최후의 작전을 해야 할 사명이 오늘날 통일교단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엄청나고도 엄중한 시대에 처해 있는 각자는 스스로의 책임분야를 감당하기에 온갖 정성과 충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 가정이 이번 기간에 있어서 하늘 앞에 섭섭한 조건을 남겼다 할 때에는, 그 가정은 반드시 어떠한 벌이든지 탕감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이요, 하늘의 기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연약한 아내들이 일선에 나가서 뜻을 위해 충성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남편들이 딴 놀음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아들딸들이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부 자체보다도 그의 아들딸들에게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부모가 잘못하면 그 아들딸을 탕감시켜서라도 용서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여러분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편들은 지금 일선에 나가 있는 자기 부인과 일체가 되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혹은 꿈 가운데나 잠꼬대에서도 사랑하는 아내가 승리의 딸이 되고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는 열녀가 되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번 3년 기간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내와 더불어 잘 넘어가야 할 가정적 수난 기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3년노정

예수님이 3년 공생애 노정을 간 것은 하나의 가정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3년 기간은 예수님께서 가정을 갖지 못한 한을 역사시대를 통해서 송두리째 탕감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기간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축복가정이 탕감할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을 이루어 이와 같은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은 여러분 조상들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복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777가정을 축복해 줄 때, 제 1차 7년 노정에 가담한 사람은 한 사람도 빼지 않고 축복해 주고자 했던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왜냐? 이와 같은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의 축복행사에 한 가정이라도 더 참가하면 영계에 있는 그의 선조들이 굉장히 기뻐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선조들이 지상에 협조할 수 있는 판도가 넓어지기 때문에, 제 1차 7년 노정에 가담한 사람이라면 그 신앙의 정도를 보지 않고 무조건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한 번밖에 없는 이 복된 시기를 맞이 해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이북에서 남편도 공산당원이요, 아내도 공산당원인 열성분자 가정의 부부가 김일성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보다도, 여러분 가정의 부부가 하나님을 위해 뜻을 중심삼고 더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그들에게 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길이 있더라도 언제나 하나된 가운데 이 3년 기간을 넘어가야 됩니다. 1970년대를 지향해 가는 이때에 있어서 바라던 터전이 1970년부터 1972년까지 3년 기간에 닦아지는 날에는 한국은 걱정할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을 협조해 줄 분도 하나님뿐이요, 믿을 분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북을 보면 지금 그들은 무력으로 한국을 남침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으며, 더구나 중공과 소련이 배후에서 가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산권을 동북부에서 맞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실정입니다. 여기에 일본은 지금 중공과 손을 잡고 나가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한국이 갈 수 있는 길은 앞뒤로 꽉 막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이 주변 국가에 포위된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아는 한국 백성이 안일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더우기 뜻을 아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아무리 주위의 원수 국가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을 들여 그 정성의 도가 세계 만민을 움직여 낼 수 있는 정성의 도로서 남아지게 될 때는, 아무리 억센 사탄 세계의 권한도 여기에 손을 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3년 기간에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3년 기간이 가정 전체를 제물로 삼아 바쳐 드릴 수 있는 기간으로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가정이 이것을 다 치렀다 할 때는 사탄에게 아들을 빼앗기지 않게 되고 딸도 빼앗기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축복의 기반을 또 닦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아 가지고 아들딸까지 갖추어서 탕감적인 제물로써 가정을 바쳐 하나님 앞에 승리의 터전을 세우는 사명을 다하게 될 때, 여기서 완전히 사탄의 고비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때가 멀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이제 우리의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되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야겠지만 여러분의 자녀들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3년 동안 있는 힘을 다하여 해봅시다. 해보자는 겁니다. 금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중심삼고 보게 될때,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망성은 이미 다 열려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되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 하나님은 내외 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성을 가해 밀고 나가게 되면 이것이 밀려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 있어서 미국이라든가 그외의 국가에서도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내적 승리의 기준을 갖추게 되면 외적인 기준은 저절로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편은 내적이요 사탄편은 외적이라고 볼 때, 내적인 면이 외적인 면보다 강하게 되면 외적인 면은 내적인 면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면보다 외적인 면이 강하게 될 때는 내적인 면은 외적인 면에 굴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의 관계를 두고 보더라도 몸이 강하게 되면, 마음은 몸 앞에 굴복당하게 됩니다. 악에 사무친 몸이 되었을 때는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의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면 몸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같이하는 자리에 마음이 있게 될 때는 몸을 문제없이 하나님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한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적인 책임을 다했을 때는, 하나님은 이것을 중심삼고 외적인 사탄세계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밀고 넘어갈 수 있는 주체적 능력을 달성시키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원리적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결과가 되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어느 때보다도 정성을 들여야 할 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때를 아는 사람이 되자

선생님이 어제 아침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때를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등 수많은 단계를 거쳐 나왔지만 어느 한때에 자기의 생활권내에서 그때가 넘어가는 것을 알고 지냈느냐 하면, 모르고 지냈습니다.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때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느냐 하면 갖출 수 없습니다. 그러한 때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때의 책임을 진 사람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동(東)으로 가면 동으로 같이 가고, 서(西)로 가면 서로 같이 가고, 사지에 들어가면 같이 사지에 들어가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을 따르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내심적인 사정은 모르지만, 예수님의 내적인 탕감노정에 보조를 맞추어 동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를 따라가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음길을 가게 되면 그 길도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장에 서야 할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기도하던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다 기울여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계속 잠만 잤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역사적인 한이 되었고, 그들이 일생 동안 하나님을 모셔 나왔던 전체를 뒤집어 놓는 하나의 순간적 기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때를 알지 못하여 잠든 짧은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인류가 하나님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없게 되고,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움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와 같은 일들이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딴 일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나, 혹은 잠자는 과정에 있어서나.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나 어느 한때에라도 하나님의 때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모르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뜻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하루하루의 생활을 수습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가운데 있어서 하늘의 중심적 책임을 짊어진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가고 있느냐, 또 그가 생활하고 움직이는 것은 내 생활을 대신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이 언제나 그분을 따라가고, 언제나 그분과 같이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때에 대한 모든 탕감노정을 마쳤다 하더라도 그 마쳐진 탕감의 내용이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남한 각지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축복가정의 부인들은 이 3년기간이 어떠한 때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일선에 나갔습니다. 이번에 순회 하면서 그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3년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었으니,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그 때에 대한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일치 단결하여 1971년을 넘어가자

그러나 그 때에 대한 내용을 알더라도 자기 스스로는 탕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마음이 하나되지 않고는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인들이 나가서 일하는 데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남편을 더 사랑하느냐 뜻을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들딸을 더 사랑하느냐 뜻을 더 사랑하느냐, 남편을 더 생각하느냐 중심자를 더 생각하느냐, 자기 아들딸을 더 생각하느냐 중심자를 더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선에 나간 것은 남편을 중심삼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나간 것입니다. 자기 가정에 있어서는 아무리 생각할래야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자기 남편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이 전부 갈래갈래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 자체가 그럴 수 있느냐 하면 남편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년 기간을 설정해 가지고 일선에 나가 있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내내 자기 마음의 방향이 한 중심과 인연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넘어가는 때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여기에 동참함으로써 이 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피적으로 이런 입장에 축복가정 부인들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때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내자신이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전부 중심자와 더불어 같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북에서는 김일성을 중심삼고서 밥 먹는 것도 김일성의 은혜이고, 사는 것도 김일성의 은혜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아들딸을 낳는 것까지 김일성 수령이 낳게 했다고 하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것은 형(型)으로 봐서는 거짓 형(型)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원리형을 따르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들 이상으로 하나된 마음을 가지고 중심 가정과 일체가 되어서 이 기간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60만 민족이 애급에서 나오게 될 때, 그들은 전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르는 일을 했습니다. 그 순간은 전부다 한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애급의 장자 되는 모든 것을 치셨던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수많은 가정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마음이 되어 가지고 이 때를 넘어가야 합니다. 사탄이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할 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우기 1971년도는 3년 노정에서 2년째를 맞는 해입니다. 언제나 둘째번은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날을 맞으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새로운 약속을 했습니다. 1971년도가 내 일생의 남은 반세기를 새롭게 출발하는 데 있어서의 한 고개를 넘는 해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71년은 한 고개를 넘는 해요, 3년노정을 출발해서 둘째 해로 넘어가는 기간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는 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해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이 중심가정과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인이라면 반드시 새벽 기도로 정성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새벽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본부에 있으면 반드시 본부로 일찍 와서 기도하고, 갈 때는 인사드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오늘날 세상이 악하고 사탄세계가 우리를 조롱하기 때문에 못 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일을 다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부인들이 지방에서 수고하고 있는 남편들은 부인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만일에 이 자리에 못 오게 되면 새벽에 예복으로 갈아 입고 이곳을 향해 인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강화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안될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1971년도는 우리가 마음과 마음의 줄을 중심삼고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어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71년도를 넘어가면 1972년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성의 도수를 중심삼고 볼 때, 북괴의 어떠한 단결력보다도 우리가 더 강하게 단결하지 않고는 악의 세계를 물리칠 수 없고, 선이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여러분이 이 아침에 새로이 결의하고 1971년도를 의의있게 하기 위해서 보다 뜻 앞에 충성하고, 뜻 앞에 하나되는 활동을 전개해 주기를 바랍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 저희들은 아버님이 찾아 나오시는 터전이 사위기대의 복귀라는 것을 원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하나의 완전한 종(宗)에서부터 분립된 것이 다시 합일(合一)됨으로 말미암아 사위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사옵니다. 사위기대의 권을 벗어나고, 비껴나서는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창조이상의 세계를 다른 어떠한 것으로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원리를 통하여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창조목적의 완성이 무엇이냐 하고 묻게 될 때, 저희들은 사위기대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 이제 남편과 아내가 하나된 자리에 있어야 그 아들과 딸이 하나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고이 바쳐질 수 있는 책임을 하기 위한 사명이 통일가 앞에 맡겨졌사오니, 아버지, 이 무리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 통일가의 가정들이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가정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수천년간 수난의 길을 극복해 오신 것도 이와 같은 가정들을 내세워서 가정이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상대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가의 가정들이 전원 동원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가정으로서 넘어야 할 탕감노정을 넘어야만 비로소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유의 천지에서 지파편성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 저희들은 이제 스스로 설 자리를 잡아서 영원히 아버지의 백성으로 남아질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와 하늘세계가 판가리 싸움을 하는 순간에 있어서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승리를 위한 정성의 도리를 다하여 사탄세계에서 탕감짓고, 떳떳이 넘어설 수 있는 이 3년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자나 깨나 어떠한 입장에 있더라도 스스로의 생애에 보람 있는 가치의 한 시대를 매듭지을 수 있는 마지막 때를 맞았다는 것이 기쁨이옵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한때를 위하여 소망을 갖고 나오다가 죽어갔고, 그들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 뜻과 더불어 싸우지 못하고 죽어간 것이 천추의 한이 된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은 누구보다 복될 수 있는 입장에 선 가정이 되고, 승리의 인연을 가진 가정이된 것을 지극히 감사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오직 아버지만을 생각하고 아버지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드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남편과 자식을 뒤에 두고 일선을 책임지고 하루하루 개척해 나가는 것은 증거적인 실적을 갖추기 위한 것이오니, 아버지께서 기필코 여기에 같이하여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가 전도하는 것보다도 아버지 앞에 효성을 바쳐 드리는 것이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들이 36억 인류를 대신하고 이 민족을 대신해 원수의 세계로 가는 길에 있어서 맺고 끊을 줄 아는 거룩한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6천년의 한으로 말미암아 여자들이 권위를 찾을 수 없었던 부끄러움의 역사를 이제 밟고 올라서서 승리의 한 날을 맞을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이번 기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로부터 돌려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 1971년도에는 생각하시는 모든 문제를 기꺼이 제시시키시옵소서. 이제 아버지에서 기뻐하실 수 있는 뜻을 세울 수 있게끔 마음 마음을 개척하시옵고, 여기에 인연된 무리들을 이끄시옵소서. 기필코 거룩한 시대 이상으로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무리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의 특사의 권한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 것을 알고 마음 졸이며 이때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제한된 기간내에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한때에 있어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충정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며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서, 스스로 귀한 가치의 내용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 감사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축하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복의 인연이 두루두루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만은 주인된 입장에 있는 저희가 아버지 뜻 앞에 있어서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인연을 갖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일 것을 다시 다짐하였사오니, 아버지, 부디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딸들과 더불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늘과 땅을 거느리고 민족과 세계 앞에 정성의 실체를 세우면서 탕감짓고 넘어갈 것을 약속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 저희들의 3년 노정 위에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1970년대에 승리의 영광을 길이길이 뻗쳐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와 땅위 만민들의 해방을 이루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1년 2윌 1일, 음력으로는 1월 6일입니다. 이 자리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참부모의 태어난 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였사옵니다. 이날은 여기에 서 있는 이 아들이 만 51세가 되는 날이요, 또한 사랑하는 딸이 28세가 되는 날을 기념하는 날이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오랜 역사노정을 이끌어 오시느라 수고하신 목적은, 이 땅에 사랑하는 아들을 세워 가지고 사랑하는 딸과 더불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아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거룩한 역사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오랜 역사를 배회하시며 찾아 나오신 당신의 거룩한 발걸음이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한민족,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 머무시고, 보잘것없는 저희 가정을 중심삼고 통일교단을 세우시어 새로운 역사창건의 노정을 출발하신 거룩한 은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한 기간인 지금까지의 50여 년의 생애인 것을 생각하게 될때, 아버님이 오늘까지 이날을 맞기 위해서 수고하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던 기쁨의 한날을 찾기 위해 수난과 역경의 역로를 거쳐서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 민족 앞에 있어서 통일의 무리들이 어엿이 아버지의 권위와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릴 수 있는 자유스러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사옵니다. 이러한 것도 당신의 수고와 노고의 결과 때문인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그간 20여 년간 피눈물나는 투쟁의 노정에 있어서 어느 한날도 마음 놓을 수 없어, 마음을 졸여 가면서 이 가정을 세워 키워 나오시기에 슬픔이 많았던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와 같은 자리에 부름받은 저희 가정은 진정한 의미에서 효성을 아버지 앞에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이날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다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가정으로 말미암아 연결되어 있는 당신의 수많은 사랑하는 자녀들과 새로이 성립된 통일교단이 오늘날 이 세계에 새로운 문화사를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제 제가 반세기를 넘기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첫순간이오니, 아버지여, 저희 가정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을 기하여 하늘의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고, 새로운 나라의 이미지를 세우고, 영계와 이 땅의 인류가 합하여 조국 광복을 위한 하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는 특별한 날로서 기념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에는 3백명에 가까운 일본 식구들이 있사옵니다. 수많은 나라를 대표해서 이제 이 두 나라에게 아버지의 소원인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고, 평화의 세계를 창건해야 할 사명과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전통을 세워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을 일치시키어서 마음만으로 남아지지 말고, 당신이 그 중심에 계셔 가지고 당신이 뜻하신 바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야말로 원수의 입장에서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양국의 인연이 벌어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을 공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이 자리를 흠모하면서도 참석하지 못한 식구들이 많이 있고, 또한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 널려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아버지 앞에 축하드리는 형제가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런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하신 생명의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시옵소서. 하나의 새로운 민족으로서 이 땅을 움직일 수 있는 직접적인 주도적 역할을 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을 기하여 천상세계에 있는 억조창생과 천천만 성도들, 또한 하늘을 위해 생명을 바쳐 공헌하였던 수많은 애혼들이 이 땅을 통하여 탕감복귀를 성사(成事)할 수 있도록, 특별한 계기로 삼으시옵소서. 그러한 고로 저희들이 이 해에 들어서 예수님을 중심한 12사도와 천천만 성도들이 움직일 수 있는 땅의 한 기원을 마련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세상에서는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저희들을 통하여 천상의 인연을 땅 위에 설정하게 하신 당신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영계도 땅을 대신하여 경배를 드리고 순응의 도리와 법도를 갖출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온 것을 감사드리오며, 어둠의 세력권을 움직이고 있는 사탄에 대해서도 일선에서 방어하고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직접적인 주도적 움직임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통일의 심정을 가르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로서, 대한민국을 향하여 싸워 나가는 이런 행로 앞에 있어서 보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의분심(義憤心)에 불타고 정의에 입각하여 악을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는 공분(公憤)의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참다운 방패가 되고 정병들이 되어서 하늘의 육천년의 한을 일시에 풀고도 남을 수 있고 이 나라를 복귀할 수 있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하여 직행해 나갈 수 있는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날을 축하하는 모든 행사가 아버지의 깊으신 뜻을 나타내고 영광의 상징으로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저희들은 70년대를 중심삼고 진정한 의미에서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된 아들딸이 되고 참다운 가정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된 제단을 갖추어 민족복귀의 사명을 다해내는, 아버지께서 믿을만한 제단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행사 일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기쁘신 뜻 가운데 받아 주시옵소서. 또한 축하의 내용에 부족한 것은 기쁘신 것으로서 아버지께서 친히 받아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 시간 이후의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에게는 51주년을 맞이하는 생일이고, 또 어머님에게는 28주년을 맞이하는 생일입니다. 여러분이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것을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집회에 와 있는 여러분뿐만이 아니라, 남한 각지에 널려있는 식구들과 더 나아가서 일본을 위주하여 세계 각국에 이날을 축하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들 앞에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또한 영계에서도 이날을 기념하며, 이날이 있음과 이날이 갖추어진 은사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축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더욱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특정한 민족과 국가를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

1971년은 1970년부터 1972년까지의 3년 기간 중 제 2년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더우기나 보통 때와 다른 중요한 시점에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은 그 의의가 더욱더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식을 지내는 데에 있어서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세계를 대표해서 중요한 식을 거행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알고, 일본 식구가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금 말씀할 내용을 일본 식구들에게 간략히 얘기해 주고 다시 이야기하겠으니, 잠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조용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본식구들에게 일본어로 말씀하심)

우리 한국식구들에게 있어서 1970년과 1971년, 1972년, 이 3년 기간은 역사상에 없었던 가장 귀한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 주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을 하늘나라에 예속시켜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찾기 위해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와 요셉 족속이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역사적인 소원의 터전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다시금 영적인 기반을 통하여 재차 개인적인 탕감노정, 가정적인 탕감노정, 종족적인 탕감노정, 민족적인 탕감노정. 국가적인 탕감노정을 거치고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거쳐서, 오늘날 기독교 문화권인 민주세계가 형성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권내에 있는 민주세계의 어떤 나라에서는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움직이는 나라라 하더라도 그 나라의 교단을 움직이는 중심 존재가 그 나라의 주권자는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권자는 어디까지나 다르다는 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지상에 있는 나라는 아직까지 사탄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의 특정한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의 주권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주권적 승리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이 남성을 대표한 국가라면 여성을 대표한 국가와 중간적인 입장의 천사장 국가, 이 3국을 연합시키는 것입니다. 이 3개 주권국가는 하늘의 통치를 받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어떤 특정한 민족과 국가를 복귀시키는 주동적인 역할을 하여 세계를 하늘나라로 옮겨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섭리역사로 보는 관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몇몇 사람으로 인하여 수난길을 걸은 통일교회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수많은 국가 가운데 과연 하늘이 특정한 민족과 특정한 국가를 찾아 세워 가지고 직접 통치할 수 있는 터전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단일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형성하지 않으면 제 1이스라엘 국가를 잃어버렸고 유대교단 기반을 잃어버렸고 종족기반을 잃어버린 것을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과 국가를 택해서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복귀 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우리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한국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독립되고 해방된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 해방의 운세를 타고 민주세계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해방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영적인 기독교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입은 대표적인 국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그때 형성된 국가의 핵심적인 인물들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자유당 때를 보면 그때의 대한민국은 기독교인들을 중심삼은 주권국가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바탕이 해방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년이라는 기간을 거치며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에 통일교회는 국가 최고의 기준을 중심삼고 안팎으로 갖출 수 있는 내용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는 몇몇 사람으로 인하여 그 길이 완전히 봉쇄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을 중심삼고 섭리하려던 뜻이 어긋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수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전부 사탄권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수난길을 가야 합니다. 수난길을 걷는 데 있어서 그 사탄권은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권이 아니라 세계적 권입니다. 즉, 세계적 사탄권 앞에 넘겨진 국가와 같은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하늘편으로 찾아 세우려면, 개인도 세계적 사탄권과 대결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북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북에 가서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에 사위기대를 복귀해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남한에 내려와 가지고 핍박의 노정을 거쳐 지금까지 발전의 일로를 거듭하여 도달한 것이 1971년 현재의 입장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닦아 나온 기반

지금까지 수십년의 역사를 흘려 보냈지만…. 그 역사과정에 있어서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재차 가야 했습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여야 되겠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실패한 것을 개인적인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그것을 횡적으로 재현시켜 가지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싸워 이겼어도 개인을 환영할 수 있는 가정적 터전이 없기 때문에, 그 가정을 다시 형성하여 가정으로서의 대표적 탕감노정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또, 가정을 탕감했다 하더라도 씨족적인 환경이 없기 때문에 이 씨족을 다시 형성해서 씨족적인 복귀운동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중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개인복귀 기준이 완결되면 다시 가정복귀 탕감노정을 세워 가정복귀 완결을 위해서 나가고, 가정복귀 기준이 완결되면 씨족적인 탕감노정을 겸해 나가면서 이것을 한단계, 한단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적으로 실패한 역사적인 모든 단계를 거쳐 가지고 하나의 국가 기준, 즉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성사 하고자 했던 모든 기준을 성사했다는 기준까지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넘어갈 수 있는 때를 향하여, 횡적인 발전의 터전을 넓히기 위하여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부단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이것이 비로소 1960년 성혼식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부의 인연을 맺어서 가정의 출발을 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본격적으로 횡적인 출발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많은 가정을 축복해 줌으로 말미암아 친척이 생기고, 하나의 씨족이 형성되어 그 씨족과 더불어 외적인 기성교회를 대비한 하나의 통일교단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 통일교단은 옛날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했던 유대교를 대신하여 복귀한 입장에 선 교단이요, 또한 기성교단이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하늘의 뜻을 배반하여 사탄편으로 몰려난 입장을 다시 찾아 세웠다는 내용을 갖춘 교단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통일교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가 실패한 것을 통일교단이 탕감해서 복귀해야 됩니다. 또, 기성교회가 뜻을 받들지 못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통일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섭리를 추진시켜야 됩니다. 이런 결정적 기반을 세워 나온 것이 통일교단입니다.

3년노정은 예수님의 공생애노정을 대신하는 것

통일교단에는 수많은 씨족들이 있습니다. 그 여러 씨족 가운데 특정한 씨족으로 형성된 형태가 오늘날 축복해서 이루어 놓은 가정들입니다. 이 가정들로 말미암아 요셉 씨족과 사가리아 가정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하여 잃어버린 씨족권이 찾아진 기준으로 결정되었고, 유대교가 반대했던 그 기준을 복귀한 교단의 기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라가 반대하는 그런 입장이 아니라, 반대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우리 통일교회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는 씨족적 기준, 교단적 기준, 국가적 기준이 재봉춘할 수 있는 전면적 시대권에 당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70년대가 그러한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갔습니다. 그러면 그 3년 공생애노정의 목적은 무엇이냐?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냐? 해와를 찾기 위한 것, 즉 가정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 가지고 씨족을 찾기 위한 것이고, 씨족을 찾아 가지고 교회를 찾기 위한 것이며, 교회를 찾아 가지고 나라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서 바라던 최고의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의 한계점이 이제부터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온 때가 1971년도 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 통일 교회에는 36가정, 72가정, 120가정, 430가정, 777가정 등 축복받은 가정들이 많이 있는데 이 가정들이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완전히 단결되어 하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국경선을 넘어야 합니다. 사탄과 싸워서 최후의 경계선을 돌파해야 된다는 겁니다. 단결하여 총진격을 개시해야 될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1971년 이 기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모든 소망을 일시에 찾을 수 있는 한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그러한 소원의 표준을 중심삼고 3년노정을 가다가 죽어갔지만, 통일교회 자체로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의 신부와 같은 입장에 있는 해와들이 예수 대신 일선에 나서서 3년노정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적으로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게 된 것은 신부를 택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신부들이 십자가를 대신 져야겠습니다. 지금은 사탄세계의 일선에 서서 사탄을 굴복시키킬 수 있는 기수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하기 위하여 3년 기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인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가정 부인 동원의 의의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됐느냐 하면 천사장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또, 아담과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해와 하나에게 두 남자가 원수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 두 남자의 원수는 해와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지 않았다면 아담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해와 자신이 주인의 입장에서 책임을 감당하고 종을 대해서 명령할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면 천사장도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해와도 천사장이 아무리 유인한다 하더라도 천사장과 함께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천사장 자신도 하늘 앞에 배반된 입장에서 다시 하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돌아가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인류를 대해 주기를 바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 이상으로 하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정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군왕 앞에 있어서 간신이 충신을 죽여 놓고 자기와 더불어 가자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도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자세를 다시 취해 가지고, 즉 아담 해와를 세워 천사장을 지배할 수 있는 그 기준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해와의 실수가 천사장을 타락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와가 천사장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또, 해와는 아담이 만일 자기의 사명을 다했더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나를 주관해야 하는 것이 본래 창조원칙이 아니냐. 그러니 아무리 여자가 유인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응하지 않아야 될 게 아니냐. 그런데 거기에 응하여 줌으로 말미암아 나까지 요렇게 타락하게 된 것이니 결국 아담 자신이 잘못했어. 아담이 더 나빠' 하면서 원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해와 하나를 중심삼고 안팎의 남자들이 녹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안팎의 남자들은 해와 하나와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한 여자를 중심삼고 쌍방의 두 남자에게 맺혀진 한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가 죽어가면서 한이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물론 세 제자가 뜻과 더불어 하나되지 못한 것도 한이 되겠지만, 해와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해와 한 사람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축복해 가지고 여자들을 일선에 내세운다는 것은, 해와가 하늘을 대신해 가지고 전체적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 선두에 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아담과 천사장이 원한을 맺은 것을 복귀역사과정에 있어서 다시 한 여자를 중심삼고 두 남자의 원한을 풀어 놓아야 완전히 복귀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동기로 하여 한 여자를 중심삼고 두 남자가 원한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악의 가정으로 출발된 이 원한의 결과가 육천년 역사에 사무쳐 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선한 입장에 있는 한 여자를 중심삼고 삼각관계에 놓여 있는 두 남자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선한 가정적 기반을 통한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두 남자의 원한 관계를 풀어줌으로 말미암아 전체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3년 기간 동안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3년 기간은 역사상에 단 한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기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기간에 한국은 최고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시아면 아시아, 세계 정세면 세계 정세가 전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북괴가 최고의 발악을 할 때입니다. 사탄편은 이때가 최고의 발악을 할 때입니다. 사탄편으로서는 최고의 고난의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편도 이때를 중심삼고 그에 대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되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을 닦아 가려 하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움직임인 것입니다.

타락은 천사장으로부터 해와, 해와로부터 아담에까지 미쳐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아담, 해와, 천사장급까지 일괄된 한 가정을 중심삼고 통치될 수 있는 본연의 기준으로 갖추어 놓지 않고는 타락하지 않은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의 축복받은 터전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 「예」 아담 해와가 축복받는 자리는 천사장이 순응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자리는 순응하는 자리이지 반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일체가 되고, 사랑의 일체가 된 그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가 하나되어야 하고, 하나된 그 부부 앞에 천사장이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타락하지 않은 상태, 에덴동산에서 축복받고 난 후의 상태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상태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오늘 여기에 축복가정의 남편들이 많이 왔습니다. 여자들은 안 왔지만. 그 남편이 어떤 입장이냐? 남편이라고 하지만 아담 입장은 아닙니다. 아담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입장이냐? 해와와 두 남자와 원수가 된 그 원한을 풀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되느냐? 반대로…. 즉, 아담과 맺혀진 원한을 먼저 풀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을 푸는 데 있어서는 자기가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선에서, 첨단에 서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그 아담의 대역은 누가 담당해서 넘어서겠느냐? 이 나라의 중심인 서울에 그 아담이 있으면 서울이 하나의 중심이 되고, 그 다음엔 지방 맨 끝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흩어진 부인들이 상대가 되어 가지고 이 국가의 환경적 구렁텅이를 메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자들은 천상세계에 대표적으로 불리운 남자들이요, 그의 아들딸은 이 삼천만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형(型)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가 되어 하늘편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정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여러분의 아내들은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남편들이 편지질해 가지고 돌아오라고 그러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너는 내 여편네니 돌아오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법에 걸려 같이 타락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 통일교단의 가정 가운데에서 완전히 추방당합니다. 원리가 그렇잖아요? 자기들이 간섭할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오라, 말라, 무엇이 어떻다' 하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설사 자식들이 앓더라도 편지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연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뜻을 위해 선생님 휘하에서 이 기간에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내에게 절대 복종 해야 됩니다.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 입장이기 때문에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어야 됩니다. 그 장본인이기 때문에 죽으라면 죽어야 할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거쳐 가는 때이므로 여자들 한테 '보고 싶소, 무엇이 어떻소' 하며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정성이 삭감될 수 있는 그런 내용의 편지를 전달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을 전적으로 받들어야 하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금번에 선생님이 물질적으로 협조해 주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 나가는데 본부에서 도와준 것은 통일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왜 해주었느냐 하면,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안 해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서 안팎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책임을 완수한 그때에 비로소 선생님의 명령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3년 기간은 역사상에 없던 기간

지금까지는 예수님 개인이 십자가를 져 가지고 성신을 끌어내어 탕감역사를 제시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느냐 하면 아내를 내세워 남편을 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여자가 선두에 서 가지고 누구를 끌어내느냐 하면 남자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선생님의 명령에 의해서입니다. 남자인 천사장이 해와를 끌어냈지요? 그걸 탕감하려면 반대로 해야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끌어내야 된다는 거예요, 완전히 끌려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러분 가정에 의해 역사상에 없던 새로운 시대상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자가 사명을 맡은 적은 성경에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육천년 동안 남자의 이용물이요, 사탄 세계의 제물로서의 도구밖에 안 되던 여자들이 비로소 하늘 남성을 대신하여 사명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당당히 하늘 땅 앞에 요건을 세울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물론 조국 광복의 시대를 맞이하여 그 개문을 하는 데 있어서 하늘을 중심삼고는 선생님이 하였지만, 횡적인 가정에 있어서 개문한 사람은 남자가 아닌 여러분의 아내들, 즉 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절대적으로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닙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습니다」 육천년 동안 숨겨져 있다가 이때에 와서 비로소 드러내어 거국적으로 여러분 가정의 아내들을 내세워 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나 세계의 각 나라에서는 메시아라면 남자 메시아가 오길 바랐지요?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에는 여자 메시아가 온 것입니다. 이것은 무얼 뜻하느냐 하면 땅 위에 실체를 쓴 성신의 형태가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영육을 통한 성신 부활 실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복귀를 해도 일시에 복귀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3년간을 정성을 다하여 정절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아내에 대해서 오라 가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이 기간에 엉뚱한 행동을 하다가는 얼굴을 못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내 사랑하는 아내다' 하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라에 바친 아내요, 하늘의 왕녀로서의 권위를 가진 여성이요, 내 소망의 태양이요' 이러면서 칭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자기 아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때가 그런 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공격을 하여 하늘나라의 남자들을 죽여 왔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남자를 전부다 죽일 수 있는 특권까지 가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여자를 죽여야 되겠다고 하게 되면 곤란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딸까지 죽인다면 다시는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 성신이 체를 입고 오지 않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싸움판에서 남자 여자 둘을 사탄이 때려잡아 버리면 하나님은 완전히 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2천년 전에는 예수님을 침범한 사탄의 세력이 오늘 이 통일교단 앞에 나타난 여자들을 잡아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 못한 것은 하늘이 승리할 수 있는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이러한 사실을 자랑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이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아내와 하나되고 여러분과 하나되는 것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 천사장이 완전히 하나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된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이 출발되어야 하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설정해 놓고 나서 하늘 앞에 사랑을 중심한 부부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고 사랑을 하여야만 정상적인 가정의 출발, 즉 타락하지 않는 세계의 가정의 출발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에 자격을 가진 사위기대 기반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유

지금까지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한 것은 거짓 사랑입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사랑하고, 사랑한 그 기준을 중심삼고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전부 다 법에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이 책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책임 못한 자리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십년 동안 뜻을 알았다면, 선생님을 선두에 세워 가지고 고생하게 한 것이 통일교단의 축복받은 가정들이 할 일이에요, 아니예요? 그것은 가정들의 책임입니다. 절대 고생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들이 책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가 그 전통을 세우느냐? 남자는 못 세웁니다. 남자는 본래 도둑놈입니다. 천사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게 된다면 선생님에 대해 기분 나빠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기 아내를 끌어다가 마음대로 시켜먹고 부려먹고 하게 된다면 기분 나빠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축복해 주고 이건 또 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습니다. 책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책임 못하고 가정, 종족, 교회를 찾아 나오는 과정에서도 책임 못했으므로, 나라를 찾을 수 있는 이 한때만이라도 책임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에서 책임 못하고 가정에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국의 기수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이 한때를 중심삼고 여러분의 아내들이 나서는 것은 대한민국을 복귀하고, 이 나라의 여성들이 가야 할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어머니로서의 전통을 세워야 되고, 새로운 가정으로서의 전통을 세워야되고, 새로운 남자들로서의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할 중요한 때라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시점에 놓여진 것을 생각하게 될때, 1971년도는 3년 기간 가운데서 제 2년에 해당하는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에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이제 반세기를 살아 오늘까지가 51세고 내일부터는 52세가 됩니다. 그렇죠? 지금까지는 탕감고개를 올라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세기를 꺽어 버리고, 이제는 내려가는 코스에서의 2차년도를 맞는 해입니다. 이런 기간과 3년 노정의 2차 년도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금년에 있어서의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지대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위기대적 메시아 가정

사탄은 예수를 공격하고 예수를 침범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상대 존재까지 침범하려고 했지만 그 상대로서의 성신은 체(體)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해와의 신성 형태로 왔기 때문에 그 권위는 사탄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공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실체를 가졌다 하더라도 나라나 교회나 그 누구라도 생명을 노리고 침범할 수 있는 시대권이 넘어갔기 때문에, 그야말로 여자 해방의 때가 온 것입니다. 여자가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두 남자 앞에 맺혀진 한을 풀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자 해방의 때가 왔다는 말은 두 남자가 원수로 맺혀 있던 원한이 풀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자의 해방과 동시에 남자가 해방되고 동시에 천사장 세계의 해방권이 이 땅 위에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악한 사탄 세계에 처해 있는 종교, 즉 천사장 세계권내에 처해 있는 종교들이 오늘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새로운 통일의 방안과 운세 앞에 접촉되어 들어올 수 있는 시대 권으로 넘어간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지금이 그와 같은 때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여러분이 3년 기간을 맞았다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셋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의 아내와 여러분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 셋이 하나된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의 아들딸을 하나 만드는 겁니다. 그래야 그 자체가 바로 '사위기대적 메시아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사위기대적'이라는 말은 사위기대의 중심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적'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의 아들딸까지 완전히 하나됐다 할진대는 그 가정은 비로소 씨족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메시아 사명을 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씨족들이 통일교회에 많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을 개방하고 해방시킬 수 있는 자유인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하나된 가운데 태어난 아들딸들을 사랑한다 하게 될 때는, 이것이 타락권내에 있는 형(型)이야, 타락하지 않은 권내의 형(型)이야? 이것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자리에 선 부부의 아들딸과 같은 자리이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즉 가정적인 메시아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여 나올 때는―지금까지는 예수님도 사탄의 침범을 받았고, 또 그의 아들딸, 즉 예수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인들도 사탄의 침범을 받을 권내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탄이 지배할 수 있었지만―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 천사장이 하나된 기반에서 아들이 태어나 인정을 받은 가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가정을 중심으로 절대 전능의 전권을 가지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들딸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 반대라든가 핍박이 있으면 직접 부딪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정적 메시아의 기반을 닦을 때

지금까지는 우리가 탕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탕감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탕감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완전한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습니다. 민족 앞에 완전히 반대를 받아야 완전한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완전한 아들이 되어 가지고 가인을 완전히 복귀시킬 수 있는 책임을 해야만 하늘이 원하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볼 때, 선생님은 해와를 복귀하고 천사장을 복귀했으니 결국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은 환경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때가 되게 되면, 그때는 선한 사람이 탕감하는 시대가 아니라 악한 사람을 탕감시켜서 선이 이익을 보는 시대로 바꿔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가공적인 말이 아닙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이제부터는 통일교회의 운세권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고 하나되어 가지고 씨족적 메시아로서 가정적 사위기대의 기반을 갖추어, 이 가정들이 선생님같이 사방으로 올라서게 될 때는 천운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귀섭리는 이 원리를 안 거치고는 안 됩니다. 이러한 세계를 중심삼지 않고는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들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누구의 가정과? 「부모님 가정」 중심을 떠난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430가정을 축복할 때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성신과 같은 사명, 즉 부활한 예수와 성신의 실체로서 그 씨족을 구하는 역사를 하는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영적이 아닌 실체로서의 종족적 메시아 사명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 메시아가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가정적 메시아의 기반을 닦아 넘어가야 하는 때입니다. 가정적 메시아 즉, 사위기대 메시아권을 형성할 때입니다. 과거에는 개인적 메시아 기반을 닦아야 할 때였기 때문에 반대당하고 핍박당했지만, 이제는 가정적 메시아 기반을 닦고 나설 때이므로 굴복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맞춰 왔습니다. 돌아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한도 그렇고 북한도 그렇고,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하늘이 때려부수게 됩니다. 데려가는 겁니다. 두 번만 데려가면 그 주권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북한에 있어서도 김일성이를 데려가고 그 다음 후계자를 다시 데려가면 분열되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거기에 한 번만 더 데려가면 4파 5파 되어 가지고 다 깨져 날아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날에는 하늘이 탕감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탕감하는 겁니다. 몇 배 탕감시킬 수 있느냐? 7배 이상 탕감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죽을 경지까지 모가지를 졸라 매서라도 강제로 굴복시켜서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보내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렇게라도 해서 천국 보내 주기를 바라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반을 닦아 가지고 한 나라만 하늘 뜻 앞에 세우는 날에는 세계복귀는 문제없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앞으로 펼쳐질 세계의 판도

이렇게 하여 남한이 통일사상으로 방향을 갖출 수 있는 시대권을 만들면 그 다음엔 가인과 같은 입장인 북한이 남아 있어, 북한이. 그러면 이 북한을 굴복시켜 남북한을 통일시킬 수 있는 책임을 누가 져야 될 것이냐? 현 정부는 우리가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고 행락을 바라는 이런 부패한 실상을 갖춘 무리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가 마르고 살을 에이는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남북 한을 통일하는 데 있어서 기수가 되어야겠습니다.

한국은 70년대를 넘어서면서 비로소…. 제 1차 7년노정은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요, 제 2차 7년노정은 종족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요,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입니다. 제3차 7년노정은 민족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입니다. 이때에 여자들이 또 한번 동원된다 했지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3차 7년노정 이내에는 보이지 않던 수평선이 보일 것이고, 보이지 않던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때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의 아담 국가가 있다면 그 아담 국가 앞에는 해와 국가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또한 천사장 국가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을 여기에 가입시켜 공동적인 작전체제를 강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때 가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꼭지를 묶어 돌려 놓기 위한 하늘의 작전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내에서 활동하는 여러분은 일본에 지지 않는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배후에는 일본이, 또 그 배후에는 중국이 있습니다. 이 3개 국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3개 국은 횡적 기준에 있어서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가 됩니다. 그런데 해와는 두 남자의 원수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국가에 있어서도 그러한 입장을 갖지 않고는 해와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기에 일본을 보면, 일본은 한국의 원수요, 중국의 원수입니다. 그렇지요? 국가적인 입장으로 볼 때 일본은 틀림없는 해와 국가입니다. (일본 식구들에게 한국 식구들에게 해주신 말씀과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일본어로 해주심)

일본은 해와 국가로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원수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북이 통일된 기준을 만들어 가지고 해와 국가와 천사장 국가까지, 이 두 상대적 기준을 묶어서 아시아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 천사장 국가인 미국까지도 하나로 묶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방에 있어서 이 3개 국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개문(開門)을 하게 되면 아시아의 새로운 방향이 열리게 되고, 또 새로운 문화국의 형태가 갖춰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섭리로 보는 관점(觀點)입니다.

경제적인 면으로 구라파를 보게 되면, 현재 불란서와 독일이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 공동화폐를 사용할 것을 제의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한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가 가지고 공장을 만들 수 있고, 세금도 같은 입장에서 내며 공동적인 책임 밑에서 민족적 기준으로 배당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가게 되면, 저절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화적 배경이 다 같아지는 것입니다. 전부 기독교 사상권내에 있기에 생활 체제가 양쪽 다 마찬가지입니다. 언어에 있어서도 이들은 서로 배우기만 하면 약 반년이면 다 통할 수 있는 거라구요. 외적으로 이와 같이 되어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풍조로 보아 틀림 없이…. 더우기나 소련 공산당이 경제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제패를 꿈꾸고 나오는 이때에 있어서 경제공동체인 EEC(유럽경제공동체)가 이와 같은 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은 선수(先手)를 친 것입니다. 먼저 길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공산당은 모가지가 잘린 꼴이 되어 허덕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라파에서 이루어진 이 체제가 여러 국가 앞에 이익을 주는 실질적인 결과가 틀림없다 하게 될 때에는, 아시아도 그러한 쪽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세계 정세가 그러한 시대권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지금 아시아 공동시장을 주장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안 하려고 합니다. 이태리 같은 나라도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독일이나 프랑스와 공동시장을 이루게 되면 자기 나라가 침식당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독일과 불란서의 재벌가들이 많은 투자를 하게 됐고, 그렇게 되니 산업이 전체적으로 돌아가게 되고 놀고 있던 실업자들이 전부 일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국가 수입이 배가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실제적 사실을 보더라도, 그것은 서로가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타나면 아시아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통일사상 앞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경제적 체제는 그렇게 되지만, 민족감정을 융화시키고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초민족성을 중심삼고 구라파 전체가 서로 품고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상을 요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통일사상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낚는 낚시꾼의 사명을 하라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멀리서부터 이미 백방으로 완전히 준비를 해 가지고 준비한 것을 보따리에 싸서 우리 손에 쥐어 주려고 손을 내밀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 손을 탁 차버리고 받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손을 잡겠어요, 안 잡겠어요? 「잡겠습니다」 잡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거기에 주목을 하고 손을 내미는 것을 봐야 되겠어요, 안 봐야 되겠어요? 「봐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잡아야 됩니다. 그때가 지금 이때입니다. 이때가 바로 그때라는 겁니다.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발꿈치를 들고 발가락으로 서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그러고 있는데, 남자들은 구경만 할 겁니까? 남자들은 못나긴 했지만, 여자들에게 편지해 가지고 잘하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남의 부인들에게 절대로 지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남의 부인들이 몇 시간 일했으면 그보다 한 시간 더 일하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은 몇 시간 활동했느냐 하는 이런 편지를 하라는 겁니다. 남자들이 이렇게 하면서 나갈 때입니다. 남자들 괜히 편안하게 뒷전에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로서 그만한 것쯤은 주관할 수 있는 책임이 있는데, 여자보다 못해서 되겠어요? 여자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질 거예요, 안 질 거예요? 「안 지겠습니다」 안 지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이제 우리의 때는 왔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던 한때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류가, 혹은 수많은 선열들이 피의 길을 가려 가면서 닦아 왔던 소망의 한시대, 바라던 그 시대가 우리 목전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어떻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큰 고기 앞에 미끼가 되어 가지고 맛있는 냄새를 피우며 꼬리를 흔들면서 빙빙 돌고 있는 기분이라는 겁니다. 그 미끼를 선생님이 쥐고 앉아 있다가 물고기가 덥석 물 때에는 잡아채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입니다. (웃음) 그러니 언제 지치고 꾸물대고 무슨 시시한 생각하겠어요? 아이고, 나 일주일금식 했으니 고기야 물겠으면 물고 말겠으면 마소 그러겠어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뼛골이 녹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신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낚시질이라는 취미가 참 멋지다는 것입니다. 열두 시가 넘고 새벽 3시, 4시가 지나 노곤해지면 잠이 쏟아지고 먼 동네에서는 닭우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고기가 미끼를 물어 방울이 따르르 울리게 되면, 그 정신이 어디 갔다 오는지 번쩍 듭니다. 정말 빠르다는 겁니다. 벼락도 그렇게 빠를 수 없을 겁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정신만 있으면 세계 통일은 틀림없습니다. (웃음) 눈을 감고 코를 골고 있다가도 어느새 정자세를 해 가지고 낚시채를 쥐고 있는지 자기도 모르게 다 한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때의 기쁨, 그 맛이 도(道)입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식 도라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되면, 사방의 갈 길이 막혀 있는 현재의 한국 실정에서 단 하나의 소망이라면 우리들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소망은 하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그저 캄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광명한 새아침에 태양이 솟아 오르는 그 방향을 바라보며 '누가 먼저 가느냐' 하며 겨루는 판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에 벅차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정신을 빼놓고 있으니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낮도깨비들은 무얼 하는지, 이런 녀석들 다 잡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장들, 젊은 녀석들 정신 차리라구요.

때가 이런 때이니만큼 돌아가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판 해보라는 겁니다. 잡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걸어는 봐야 할 게 아니예요? 그래야 그 맛을 안다 이겁니다. 그렇잖아요? 잡지는 못하더라도 낚시대를 한번 걸어 놓고 해보다가 끊어지든가 힘이 부족해서 도중에 놓든가 둘 중의 하나는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어지면 보강하고, 힘이 없으면 힘을 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뭔가 할 수 있는 재출발의 동기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에 모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이런 입장을 결의해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겁니다.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삼천리 반도는 동네방네 붙들고 소리만 질러도 다 연락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곳이기에 동네의 꽁무니에 줄을 꿰어 끌어 내게 되면 전부다 끌려오게 됩니다. 가을에 고구마 뽑아 올리듯, 하나를 들게 되면 3천만 민중이 달랑달랑 달려 나오게끔 그렇게 만들어 놔야겠다는 자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의미에서 71년도는 지극히 의의가 큽니다. 정월에 들어서면서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일들을 지휘하느라 사실 상당히 피곤했습니다. 감기가 들어 앓으면서까지 돌아다녔습니다. 지금도 목이 쉰 상태로 있지만, 그래도 순회하고 돌아오게 될 때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71년도를 일심해서 총진군하며 맞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 민족을 통해서 맺혀 있는 하나님의 모든 한을 풀고 새로운 세계로 힘차게 나가는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고, 중심국가의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통일교단이 되고 통일 가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러분의 가정들은 사위기대를 통한 메시아적 사명을 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통일교회가 바라는 소망의 때가 가까와 왔으며, 통일교회가 하고자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지금 우리가 여의도에 땅을 샀지요? 신문에 나기는 120층 건물을 짓는다고 했죠? 120층 건물 짓고 싶어요, 안 짓고 싶어요? 「짓고 싶습니다」 120층 건물만 짓겠어요, 1200층 건물을 지을래요? 「1200층이오」 그럼 1200층으로 짓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여러분은 약속을 한 것입니다. 지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짓겠다고 손들었어요. (웃음) 여기 천명 가까이 모였으니 한층씩 책임지면 그것은 문제없겠지요? (웃음) 이 땅을 살 때도 선생님 주머니에 돈 한푼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통일교회 선생님은 갑부입니다. 그런 것은 다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일본 식구들에게 한국 식구에게 해주신 말씀과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일본어로 말씀하심)

일본 여자들이 저렇게 하겠다는데(일본 식구에게 말씀하신 후) 우리 한국 남자들은 구경만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입술을 깨물고 할 수 있겠어요? 「예」 생명을 걸고 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준비해 나왔습니다. 어떤 한계선상을 두고 해 온 것이 아닙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단결하고 정신적으로 하나되어 완전한 플러스가 되면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하게 됩니다.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생명을 바쳐야 됩니다. 신념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일주일 동안 밥을 굶고 앉아 물을 마시면서도 이거 누구 죽이려고 이러나 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의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이런 것도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는 부부가 있다면, 그들은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이때가 어떤 때인가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3년 기간을 참고 일선에서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원리의 모든 내용과 말씀을 통하여서 종합적인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을 응시하면서 투쟁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투쟁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한때로서의 이 귀한 찬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느 해보다도 이 71년도에는 부부가 자녀들을 거느려 가지고 사위기대로서 하나가 되어 하늘의 사랑을 받는 가정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 이 민족이 우리의 뒤를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전통적인 사상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부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자녀로서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다하는 가정들이 되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1971년 이 해를 저희들이 맞이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지금부터 수십년 전에 이 길을 앞에 놓고 하늘을 향하여 맹세하고 최후의 판가리 걸음을 내딛던 그때, 그 순간의 마음이 다시 회상되옵니다. 있어서는 안 될 그 슬픔의 역사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단은 한 많은 생활 가운데 개척해 나왔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생활 가운데 개척해 나왔고 몰리는 핍박의 도상에서 하늘의 한을 품고 나오던 무리들이, 이제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명적인 터전을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연고로 저희가 갖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진실로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이제 저희는 아버지를 진정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진정 위하는 효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천만세를 대신한 부활의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선조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다하지 못한 효성을 다할 수 있는 효의 왕자가 되게 하여 주옵고, 충의 대왕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우리가 걸어나온 걸음이 아버님을 위주한 것보다도 자기를 위주하여 살았던, 더럽고 추악한 자신을 적나라하게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화와 벌을 받기에 마땅한 과거의 삶을 스스로 심판하고 아버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염없는 눈물로 회개의 호소를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71년도와 72년도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판가리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지고 있는 이 민족의 장래를, 아버지여, 맡아 주시옵소서. 통일제단이 가야 할 길에 수많은 원수들이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아버님이 기필코 승리의 결정을 다짐할 수 있는 기점을 세워 주실 것을 믿고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 있사오니, 알지 못하고 가는 불쌍한 자녀들을, 아버지여,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알고 가는 책임노정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마음과 심정을 조이며 한순간 한순간을 전념해야 하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모르고 가는 자리가 얼마나 복된 자리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것을 깨닫고 아버님의 명령을 중심삼고 스스로 거름이 되기 위해 다투어 앞에 나서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스러웠던 숱한 역사의 노정이 이제 우리의 생활권으로 좁혀졌사옵고, 그것이 오늘날 통일의 역사 가운데에 생사의 판가리의 운명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의 전체를 책임진 저희의 한때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느낄 줄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진정한 당신의 크신 사랑에 안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몸에 걸친 옷을 벗고 당신의 젖가슴에 살을 대고 입을 맞추며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들과 딸의 인연이 그립사옵니다. 슬픈 역사노정에서 잃어버렸던 자식을 당신의 진정한 사랑의 인연 가운데서 찾았다 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통일교회의 무리 가운데 많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난의 역로를 거쳐 승리의 한날을 맞는 과정에 있어서는 내가 염려하기 전에 아버님이 얼마나 염려했고, 내가 걱정하기 전에 아버님께서 천만배 더 걱정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자리도 아버님께서 준비하신 시대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 나 스스로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이 수고한 연고였사옵고, 당신의 끊임없는 동정과 가호의 손길이 같이 한 연고였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부디 오늘에 축복의 은사를 베푸시려거든 이 민족과 더불어 베푸시옵고, 만방에 널리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통일의 무리들과 더불어 베푸시옵고, 이 나라에 머물러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과 더불어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대표로 이 자리에 온 저희들은 이제부터 아버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때를 향하여 희망에 벅찬 걸음으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고, 그 뜻을 위하여 가는 것을 생애의 영광으로 삼고 갈 줄 아는, 아버님이 믿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오며, 오늘 이날의 축하의 모든 내용과 기쁨을 당신이 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해가 가고 나면 세상에는 하여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희들은 앞으로 길지 않은 생애를 앞에 놓고 바라보며 오늘 현재의 시점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살아 있을 때, 아버님 앞에 해방의 모든 행적을 갖추어 가지고 만민이 축하하는 가운데 거룩한 승리의 왕자의 자리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자랑할 수 있고, 아버님의 위신을 세워 드릴수 있는 왕자 왕녀들로서 아버님 앞에 효성과 모든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석케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71년도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고 친히 주도하시어 승리의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북괴가 노리고 있는 악랄한 모든 소행을 막으시옵소서. 당신이 직접적으로 북한을 주관하시어서 하늘의 승리의 결정적 기준이 갖추어질 때까지, 아버님만이 그 위에 서서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최후의 싸움터를 밝히는 책임을 해내어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일선에서 싸우는 아낙네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의 피눈물과 모든 정성이 아버지의 깊으신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게 하여 이 민족과 더불어 세계가 다시 부활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데에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또한 그 아내들과 더불어 인연되어 있는 남편과 자식들이 완전히 하나 되어 새로운 사위기대를 중심삼은 가정적 메시아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이제부터는 탕감의 요인을 선한 편에서가 아니라, 악한 편에 대해서도 지도적인 역할로써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통일교회 2세 세계를 어서 속히 맞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금후의 시간 일체를 당신이 친히 기쁘신 가운데서 맡아 주시어서 승리의 결과와 영광의 은사만이 여기에 충만히 갖추어지게 하여 주옵고, 일본의 식구들도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긍지를 느낄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길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치우치지 않는, 동요되지 않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즉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가치가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신념과 이념

결국은 나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게 하는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환경에 치우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주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다음은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가치적인 내용이 나에게 보람을 갖다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람이 결부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사람은 누구나 다 잘하기 마련입니다.

공산당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먼저 무엇을 넣어 주느냐?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을 사람들에게 집어 넣어 줍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 그리고 그 신념에 반대되는 모든 여건을 타파해 버리고 환경에 부합하지 않고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체제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같은 자리에서 평등하게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온 인류가 바라는 복지사회가 형성된다고 하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통일이념, 통일사상을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우주관과 새로운 인생관과 새로운 생활관을 놓고 '이것이 최고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확고하고 강력한 신념에 차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신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면 이념에서 나옵니다. 그 이념은 개인만이 아니라 세계를 중심삼고 포괄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즉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을 갖춘 사상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상적인 이념에서 신념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념을 가졌다든가 사상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신념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사상적 분열로 인해 공산세계와 민주세계의 양대진영으로 갈라져서 서로가 스스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인지 저것이 선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이 옳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얼마만큼 갈 수 있느냐? 거기에 있어서 개인을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인이 방해하는 모든 환경적인 여건을 극복할 수 있느냐? 그것을 틀림없이 극복할 수 있고, 그 다음에는 가정이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느냐? 그 다음에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이념에 일치되지 않는 여건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극복함으로써 그것이 가상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의 가치로서 나와 더불어 관계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실증적인 내용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해 나오면서 일면으로는 희생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서 얻는 가치가 무한하다 할 때는, 즉 희생하는 것보다 얻는 가치가 크게 될 때 사람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환경을 거부하고 이념적인 행로를 개척해 나가는 데에는 반드시 반대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개인이면 개인을 중심삼고 모두 반대하고,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모두 반대하고, 사회면 사회적으로 모두가 반대하고, 국가면 국가적으로 모두가 반대하고, 세계면 세계 자체가 반대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반대하는 여건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밀고 나간 결과가 내일에 후회할 수 있는 조건이면 반드시 거기에서 멀어집니다. 한 고개를 밀고 나갔을 때 밀고 나간 그 결과가 자기의 신념이 주장하던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은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반드시 후퇴하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환경을 극복하라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두고 볼 때, 신앙생활에 있어서 은혜가 있으면 그 은혜를 중심삼고 환경적인 요건을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핍박이 많더라도 뜻을 반드시 이뤄야 되겠다고 하면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환경이 가로막으면 환경과 투쟁하면서 밀고 나가 그 환경을 극복했다고 해도 그 결과에서 얻어진 보답이 자기에게 낙망의 조건들이 될때는 더 밀고 나갈 수 없습니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얻어진 결과가 '그러면 그렇지'라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치임을 발견하고, 자아를 그런 보람된 결과와 관계를 맺고 기뻐할 수 있게 될 때는 내일을 향해 더욱 힘차게 활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은 결코 생활환경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생활환경과 투쟁하여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하는 데에서 자신이 마이너스의 결과를 갖게 되면 낙심하고 망하는 것이요, 거기에서 보다 더 가치적인 내용을 타진하면서 행복과 기쁨을 소생시킬 수 있는 사람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생활환경을 어떻게 타개하며 극복해 나갈 것이냐? 생활환경을 타개하며 극복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무가치한 결과를 얻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후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당들을 볼 때, 세계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그들이 왜 민족적 공산주의로 떨어져 내려오느냐? 거기에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세계 노동자 농민들을 중심한 공산세계가 민주세계와 대항하게 되면, 공산세계의 노동자 농민들이 자기 국가를 넘어 세계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면에서 협조를 해야 하는데 협조를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실례를 보면 프랑스나 독일의 공산세력인 노동자 농민들은 소련을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을 협조했고 프랑스를 협조했습니다. 그 이념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그렇다' 할 수 있는 결과가 되지 않고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후퇴의 요인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느냐? 이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념을 실천한 후에 그것이 사실이냐, 그 결과가 나와 더불어 보다 기쁠 수 있는 내용으로 전개되어 있느냐 했을 때 아니다 하는 데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이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생활을 중심삼고 전후가 갈라지고, 생활을 중심삼고 안팎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뜻 생활을 합니다. 즉,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해 나갑니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는 어디서 부터 모색해야 되느냐 하면 개인에서부터입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까지 모색해야 됩니다.

그런데 개인에 있어서 이념을 중심삼은 방향과 사회를 중심삼은 방향은 다릅니다. 내 개인을 중심삼고는 두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에서 습관에 젖은 생활방법과 새 이념을 중심삼고 제시된 생활방법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상충이 벌어집니다.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여러분의 생활 안팎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 과거의 생활은 습관적으로 해왔는데 이제는 이렇게 해 나가야 되겠다 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개인의 몸과 마음을 증심삼고 볼 때,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치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몸을 치고 감으로써 어떻게 되느냐? 몸을 완전히 정복하고 몸을 완전히 굴복시킨 후의 결과가 나에게 망할 수 있는 결과가 될 때는 옛날 상태대로 돌아갑니다. 그 반면 과거에 느끼지 못하고 과거에 갖지 못한 내 스스로의 가치적인 내용을 찾았다 할 때는 발전합니다. 거기에서는 틀림없이 중심이 세워지고 이념을 중심삼은 개인의 승리적 기반이 공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나라는 자체가 비로소 인간들 앞에 하나의 주체성을 가진 개체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게 복귀의 원칙입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비로소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벨적인 개인이 되고 개인으로서의 주체가 되어 가정을 중심삼고 상대를 취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주체가 되어 여자와 하나되어 가지고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 가정은 플러스, 즉 주체적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벨 가정이 되어 뜻 앞에 플러스되자

그 다음에는 이 가정이 가인 아벨 관계를 중심삼고 다시 관계를 맺을 때 아벨 가정과 가인 가정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아벨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입장이 되어 가지고 마이너스를 플러스권내에 세우게 하는 작전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되면 또 하나의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마이너스와 하나되어 가지고 플러스시켜 나가면서 커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복귀는 이렇게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도 그렇게 되어졌던 것입니다.

하나의 작은 것이 어떻게 큰 것으로 발전해 나가느냐? 이와 같은 발전적 작용에 의해서 발전해 나갑니다. 하나의 국가와 국가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입장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의 주체로 서게 되면 그 주체를 중심삼고 전체가 하나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이상적인 국가가 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공식적 과정을 거쳐 나가는데, 여기에서 마음을 중심삼고 이념을 세워 가지고 몸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 몸이 갖고 있는 것보다 마이너스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힘이 드는 겁니다. 오히려 뒤집어져 나갑니다. 몸을 침으로써 몸에서 잃어버린 그 이상의 것을 마음이 얻게 되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압니다. '햐, 이럴 줄 알았다'고 하는 겁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자기 개체의 싸움에서도 후퇴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뜻을 중심삼고 외부에 나가더라도 보다 큰 가정적인 주체의 입장에는 서지 못합니다.

하나의 개체가 주체로 선 후에 상대를 취하여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가 되어 가정으로서 주체성을 가짐으로써 하나의 아벨적 가정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도상에 있어서 먼저 이념을 중심삼고 개인에서부터 완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개인의 몸과 마음이 완전하게 관계맺고, 그러한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관계맺고, 그 하나된 가족을 중심삼은 가정이 다른 가정들과 가인 아벨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가인 아벨의 투쟁역사가 벌어집니다. 개인에 있어서 몸과 마음이 투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관계에서도 반드시 투쟁이 벌어집니다.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완성한 남성과 완성한 여성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뜻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지만, 뜻 앞에 하나되지 못한 부부라면 반드시 투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가지고서야 비로소 종족을 대해 아벨적 가정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반드시 가인적 가정과 투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충하는 것입니다. 물론, 싸우는 것이 소모이지만 여기에서 이것을 극복해 가지고 소모된 이상의 기쁨과 가치를 발견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상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념이 좋다 하더라도 더 나가지 못합니다.

현재의 '나'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승패를 어디에서 결정짓느냐 하면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상응적이 아니고 상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상충적인 관계에서 싸워 가지고 내가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싸우는 과정에서 그만두면 나중에 가서 마이너스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반드시 마이너스를 가져옵니다. 싸우는 과정에서 그만두면 절대 안 됩니다. 만약 3년을 예상하고 싸웠는데 그 싸움이 3년에 끝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 싸움을 중간에서 그만두고 후퇴하는 날에는 반드시 패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계속해서 끌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주관을 받으려면

여러분이 가는 복귀도상에는 한바퀴 돌아오는 코오스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기간을 맞춰야 됩니다. 그 기간까지 일을 성사하지 못할 때는 연장되어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실감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알고 나서 지방에 가게 되면, 그 당시에는 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의 입장에 있어서는 언제나 나를 중심삼고 친가를 생각하고, 나를 중심삼고 가정을 생각하고, 나를 중심삼고 국가를 생각하고, 나를 중심삼고 세계를 생각하고, 나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완전한 자리에 서지 못한 입장에서 친가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지 못하고 협조를 받게 되면 그 협조받은 데 대해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정성을 다해서 나에게 협조를 해주었다면 나도 정성을 다하여 보답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신앙길에 있어서 탕감길은 둘이 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가는 것입니다. 혼자 가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데 반대하는 사탄과 투쟁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입장이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아담은 천사장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타락하기 전, 본래의 아담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찾이하는 복귀도상에는 하나님과 나, 그리고 사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른 누가 없어요. 하나님과 인간과 천사장, 이렇게 셋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안 여러분들이 통일사상의 이념을 중심삼고 볼 때, 현재에 있어서의 '나'는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타락한 후손인데 과연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나'예요?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나'예요, 대할 수 없는 '나'예요? 말할 수 없이 고독한 '나'라는 것입니다. 더우기 마음과 몸이 상충되어 싸우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는 설 수 없는 '나'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준을 넘어서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을 보면 중앙선이 있는데, 이 중앙선을 중심삼고 마음이 어느 기준까지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내려가게 되면 사탄이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고 나는 세상에서 편안히 살겠다' 이럽니다. 편안하게 살겠다고 하면 그 마음의 기준이 올라가요, 내려가요? 그것은 개인을 중심삼은 것밖에 안 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하고 좋게 한다고 하더라도 타락하기 전 본래의 양심적인 선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타락하기 전 본래의 양심적인 선의 기준에 올라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못하는 결과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의 이 선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마음이 올라가야 합니다.

인간의 생활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한다

본래의 인간의 마음과 현재의 인간의 마음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메워 나가느냐?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 때, 승리한 개인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승리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런 가정, 영광스런 종족, 영광스런 국가, 영광스러운 세계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념이 필요합니다. 영광스러운 개인, 영광스러운 가정, 영광스러운 종족, 영광스러운 국가, 영광스러운 세계가 우리 인간이 추구해 가야 할 이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불가피한 욕구입니다. 그런 욕구로 찾아진 이념이 있다면 그 이념을 절대 실행해야 합니다. 그 이념을 중심삼고 절대 실행함으로써 양심의 기준을 그 기준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이념을 중심삼고 접붙여 가지고 자신과 관계되어 있는 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매달려 내려가게 하는 모든 요소를 전부 끊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끊으면 끊을수록 사탄은 떨어지게 되고, 사람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이 몸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면 그 마음은 타락하기 전 아담과 해와의 본래의 마음의 기준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여러분들은 어떤 입장에 있느냐? 오늘날 인간은 타락하여 저급한 양심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을 가지고는 자기 스스로 아무리 선과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국가기준을 절대 못 넘는 것입니다. 국가기준을 못 넘기 때문에 자기가 사탄권내의 나라에 있을 때는 아무리 선으로서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사탄권내에서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국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나에게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이념이 뭐냐 하면 분열된 세계를 하나님 뜻 앞에 통일 시킬 수 있는 이념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이념을 가졌으면 그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일치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이 생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마음과 몸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몸이 원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됩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하고자 하는 절대적 기준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이념의 그 기준 앞에는 가야 할 공식이 있습니다. 그 공식이 탕감노정입니다. 탕감노정은 한 단위 한 단위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 있어 그냥 한꺼번에 올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발걸음을 내딛듯이 하나하나 옮겨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옮기는 데에는 소모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서지 못한 통일교인들은 현재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전에도 어떤 지구장이 전도를 나가는 데 있어서 본부에서 몇천 원씩 몇 개월 동안만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어떻겠느냐고 건의를 해왔습니다. 그것 참 좋은 건의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가지고 탕감복귀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는 사탄을 이겨야만 하나님이 협조하신다

하나님하고 천사장의 주관을 동시에 받고 있는 입장인데 누가 도와주겠어요? 도움을 받으려면 사탄을 이기고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기 전에는 하나님도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내려온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고 나와야 하나님께서도 도와주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사탄을 끌어들였어요? 하나님께서 끌어들였어요? 내가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사탄을 끌어들였으니 여러분이 사탄을 청산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는 것입니다. 생사의 길, 즉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는데 의논하며 갈 수 있어요? 죽고 사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앞질러서 나를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에 현재의 나에 대한 하나님의 신념이 있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으로 되어진 신념이 있다는 겁니다. 재창조의 복귀노정을 거쳐야 되니 하나님께는 새로운 창조이념으로서의 신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창조의 목적관이요, 재창조의 가치관 입니다. 이것이 이념으로 나타나고 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은 새로운 이상을 찾아 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재창조에 있어서 표준적인 노정입니다. 나를 부정하고 그 표준에 맞춰야 됩니다. 모든 여건을 부정하여 공식에 일치되도록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해야 공식 앞에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입장은 어떠냐? 하나님과 나 그리고 천사장이 있는데, 원래 천사장은 나를 도와주는 입장이었는데 타락권내에 떨어짐으로써 반대로 사탄이 되어 나의 목을 꿰고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해줘서 되는 것이라면 벌써 다 했을 것입니다. 몇천 년이나 걸리겠어요? 그러나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중심삼고 볼 때, 자주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인간 스스로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개재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승리하고 나설 때에는 하나님께서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기고 나야 하나님이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무엇으로 협조하시느냐? 마음이 몸하고 싸우고 있는데 무엇으로 협조하시겠어요? 협조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떨어졌기 때문에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해야 됩니다. 말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새로운 진리를 찾아 나왔습니다. 진리를 찾았으면 그 진리에 따라 실천해야 됩니다.

실천이 부합되지 않는 진리는 나와는 관계가 없다는 부정적인 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부정적인 권을 만들려고 하는데 사탄이 긍정적인 권을 딱 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권을 쳐내지 않고는 부정적인 권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때려부수는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게 공식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현재의 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하는 사업주 입장에서 통일교인들이 움직일 때마다 돈을 얼마씩 쓰고 월급도 주고 했으니 이제는 그 대가를 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썩은 사상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차피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공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원리를 아는 입장에서 볼 때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코에 원리를 걸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사탄이 낚아채 가지고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사탄이 끌고 가더라도 하나님은 꼼짝을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협조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에게 승리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싸워야 됩니다. 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새로운 종교는 '하지 말라'는 말씀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말라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죽더라도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뜻 앞에서 이념의 길을 가고자 하거든 일선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최일선으로 가라…. 최일선에 나가 싸워서 승리한 사람이 아니고는 후방에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는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은 누가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협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떼어서 보태어 주마, 그럴 수 있어요? 네가 죽을 때 대신 죽어 주마, 그럴 수 있어요? 그 길은 혼자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복귀의 길을 선두에 서서 혼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만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구요, 범위가 넓고 클 뿐이지 선생님도 이 원칙을 중심삼고 세계면 세계를 중심삼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협조받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 간부들이 아무리 할 일이 많다 하더라도 누가 협조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협조받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조상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 기반을 닦는 데는 어차피 홀로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현재의 나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 것이냐? 하나되게 하는 방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안한 곳을 찾아가야 되겠어요, 괴로운 곳을 찾아가야 되겠어요? 편안한 자리에서 탕감되는 법이 있어요? 「없습니다」 피를 흘려야 탕감되는 것입니다. 땀과 눈물만 흘려 가지고는 안 됩니다. 피를 흘려야 탕감이 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내가 나라를 대신해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그 나라의 대수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외로운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의 기준을 세우려면 민족이 당하지 못한 어려움을 내가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나만이 아니라 사탄도 '그렇다, 네가 그런 결심을 했으니 됐다. 인정한다'고 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도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해서 '나 갑니다' 할 때 하나님과 사탄으로부터 '그래라' 하는 인증서를 받고 나서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하는 데는 조건과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계약서를 써 놓은 것과 같습니다. 아무 때부터 아무 때까지 한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 보따리를 싸 들고 가는 것입니다. 그 기간과 조건에 승리해야만 아벨적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대신자로서 승리한 아벨적 존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어느 단계까지 있게 되느냐 하면, 개인적인 싸움에서도 있고 가정적인 싸움에서도 있습니다. 즉, 개인적 탕감기간, 가정적 탕감기간, 종족적 탕감기간, 이렇게 올라갈 때마다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는 한꺼번에 쉽게 올라갈 것이었지만 타락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못 올라가고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올라갈 때마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탕감노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적인 노정이 도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요, 본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종교는 이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생이 걸려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종적 입장의 모든 것을 여러분이 7년 동안에 탕감할 수 있는 시대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와 같은 탕감노정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사실인가를 한번이라도 체험하여 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감사해할 것입니다.

이 7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7개월도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부다 '남이 해주겠지' 하고 있으니 언제 가겠어요? 조금이라도 편안한 자리에서 가려고 옆사람 눈치만 보고 쓱 빠져 나가니 그래 가지고 갈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가망이 없습니다. 탕감노정은 이와 같은 입장에서 피를 흘리면서 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탕감노정을 가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한 것

여러분은 사탄하고 인연이 되었건 안 되었건 사탄과 싸워야 됩니다. 마음이 이념을 중심삼고 몸을 들이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몸은 노는 데에 있으면 있을수록 좋아하고, 놀게 해주면 놀게 해줄수록 좋아합니다. 체면이고 위신이고 없는 사탄의 몸이요, 사탄의 핏줄을 받은, 당장에 심판을 받아야 할 몸뚱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타락론을 통해서 내 몸에는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억천만세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 용서할 수 없는 그 원수의 피가 몸에 들어 있어서 충동질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만큼 무시무시한데도 불구하고 몸을 고이 먹이겠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뚱이는 고생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을 고생 시켜야 되겠어요, 안 시켜야 되겠어요? 「시켜야 됩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원칙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눈물을 흘리고 땀만 흘려도 안 됩니다. 피를 흘려야 됩니다. 피를 흘리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죽을 때에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든가, 부활하기 위해서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부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당 가기 위해서 죽어야지 하면 천당에 못 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고 무엇 때문에 죽느냐?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타락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해야만 그 사랑을 찾으러 오신 하나님이 사랑과 하나되어 있는 나를 끌고 감으로 말미암아 부활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느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죽더라도 하늘의 아들인 나를 사랑해야 된다. 어느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 자기 식구보다 자기 자식보다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 그러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자기가 죽어 가지고 천당가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천당 때문에 타락했나요? 무엇 때문에 타락했어요? 사랑 때문이지요? 사랑은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니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으니 아들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아들의 사랑을 잃어버렸으니 아들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자기의 생명을 버리라는 것은 아들의 사랑을 통해서 새생명을 찾기 위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역설적인 논리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가 뒤집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가장 가까운 식구가 누구입니까? 「부모입니다」 몸을 중심삼고는? 「마음입니다」 자기 마음을 중심삼고는? 「몸입니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원수는 몸입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이 원수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것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왜냐? 사랑의 길을 중심삼고 생사판결을 해야 되는데 이것이 언제나 방해하며 판결을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믿는다고 부모들이 얼마나 반대했습니까?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가 원수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세계의 사랑을 끊고 하늘 세계의 사랑에 돌아가려니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 한순간에 긍정되었던 사랑이 부정됨과 동시에 부정되었던 사랑이 긍정적인 사랑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내 자체에 있어서 타락한 세계에서의 긍정했던 사랑을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부정했던 하나님의 사랑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 세계의 사랑을 부정했다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긍정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 전도가 원수입니까, 몸이 원수입니까? 「몸이 원수입니다」 전도도 여러분이 마음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도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사탄 앞에 공인받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공인받기 위해서 전도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증서를 받고 또 사탄의 인증서를 받아 놓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벨이 되려면

여러분이 전도하러 가는 것은 구원해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구원받기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현재의 내가 그러한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구원을 받아야 남을 구원할 수 있는 겁니다. 먼저 아벨이 되어야 가인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어요? 아직 못 됐지요?

아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둘째는 생명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세째는 가인을 가르쳐야 됩니다. 이게 공식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데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요, 못 받아요? 사랑은 어떻게 받느냐? 사탄을 쫓아내는 만큼 거기에 비례하여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을 제거시킨 분량에 해당되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내가 악을 제거시키는 분량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게 되면 생명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입니다. 저울추와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쪽은 올라가게 되는 거예요. 악을 많이 제거시키면 선이 올라가고 악을 많이 갖게 되면 선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악을 제거하는 만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더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했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상의 것을 다 부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자기의 생명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력이 비례적으로 투입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이 일체가 되면 비로소 타락 하기 전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아들로서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믿음의 기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조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을 믿을 수 있는 아담의 자리, 즉 소망적인 아담의 자리에 다시 선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는 사탄과 싸워 실체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벨의 자리에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는 데는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사랑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만약 사탄이 열만큼 사랑하면 나는 열 다섯만큼 사랑하고, 사탄이 열 다섯만큼 사랑하면 나는 스물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또, 사탄이 100만큼 사랑하면 나는 120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더 사랑하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싸움을 하느냐 하면 생명을 걸어 놓고 누가 더 상대를 사랑하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사탄이 더 사랑하면 내가 아벨이라 하더라도 가인을 복귀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더 사랑했을 때는 사탄이 내가 사랑한 분량만큼 후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복귀되는 겁니다.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사랑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식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를 능욕하던 원수들인 로마병정들을 하나님께 어떻게 해달라고 했어요? 요즘 말로 한다면 기관총으로 쏴 갈기라고 했습니까? 그러지 않고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으로 그러하오니 용서하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누가 더 사랑했어요? 사탄이 예수님을 더 사랑했나요, 예수님이 사탄을 더 사랑했나요? 「예수님이요」 그러니까 사탄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공식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아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자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추운 날 더러는 굶고 동네에서 욕을 먹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누구 때문에 그럽니까? 누구 때문에 욕을 먹습니까? 나도 살고 가인도 살려 주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시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도 살고 사탄도 살리자는 겁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더라도 가인이 없으면 아벨이 될 수 있어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절대 가인이 있어야 합니다. 아벨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생명의 일체가 되었다 하더라도 가인이 없으면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벨의 자리에 서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자리는 사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이 사람의 생명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인연을 두고 따라와야 사랑의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을 위하고 가인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이 아니라 아담 가정과 천사장이 하나되어 서로가 화동하고 서로가 협조하는, 타락이 없는 천사장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과 가인이 하나 되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주인은 아담이기 때문에 천사장은 아담의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리를 중심삼은 이 공식은 개인에 적용되고, 가정에 적용되고, 종족에 적용되고, 민족에 적용되고, 세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니 가인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인을 맡는 데 있어서 세계적 가인을 맡고 싶어요, 국가적 가인을 맡고 싶어요? 종족적 가인을 맡고 싶어요, 개인적 가인을 맡고 싶어요? 「세계적 가인을 맡고 싶습니다」 욕심들은 많구만. (웃음) 그러면 끝날은 언제 오느냐? 세계적인 때가 오면 끝날이 됩니다. 세계가 자기 생활권내에 들어오면 여러분은 국제적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렇게 세계적 기준의 아벨적 기준 위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주의시대입니다. 국가적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국가적인 관념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상이 문제 되는 때가 왔다는 겁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한 사상을 가져야 한 나라의 왕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도지사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세계적인 것 중에서도 세계적인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 아벨이 되는 것보다 세계적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적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의 모든 국가의 문제를 어떻게든지 내가 책임지고 해결짓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의 이념은 이렇다. 나라가 나를 밀어내 봐라. 나라가 밀려 나가면 나갔지 나는 남을 것이다'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삼천만이 반대 하더라도 문제없다는 결의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적 아벨권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세계적 아벨이 되려면 국가가 승인한 기반 위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즉, 국가적으로 승리한 터전 위에 서야 세계적인 아벨권이 출발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모든 여건을 넘어섰다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생활하게 되면

지금 고마운 것은 모든 민족이 세계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세계적인 인물, 세계적으로 중요한 것을 요구하는 시대권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자리에 섰다고 해서 반대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세계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게 되면 전부다 잡아죽였습니다. 예수님도 세계주의자였기 때문에 민족에게 몰려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뜻을 이룰 수 있는 자연적 환경이 되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세계적인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가는 곳이 비록 대한 민국에 국한된 어느 마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나선 그 자리는 세계적인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 동네가 몇 군데 있으면, 저것은 미국 동네이고, 이것은 일본 동네이고, 이것은 중국 동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활동하는 것을 모든 부락 사람들이 아무리 치열하게 반대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휩쓸어 가지고 밟고 나아간다는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12수가 문제 됩니다. 횡적인 수인 4수하고 3대상 목적수인 3수해서 12수가 문제 되는 겁니다. 먼저는 사위기대가 문제이지요? 사위기대가 정상적인 형을 갖추려면 12수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4수는 동서남북 사방과 일년에 있어서의 춘하추동 4계절을 말합니다. 춘하추동 4계절에 열두 달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사방 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12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12제자를 택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느 제한된 환경에서 세계적인 무슨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것을 농촌의 어느 조그만 구석 방에서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계적인 박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까? 세계적인 박사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그가 무엇을 먹으며 연구했든가, 누더기를 입고 연구를 했든 똥 냄새가 나는 방에 앉아 연구했든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내가 비록 작고 제한된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어떠한 민족도 가지 못한 초월적이고 우월적인 세계적 탕감노정을 가기 때문에, 이 나라가 반대하고 이 부락이 반대해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동네의 몇몇 사람이 반대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 전부가 핍박하고 데모하겠다고 나서더라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너희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나는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충성의 도수가 아직 다 차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그걸 간절히 바라고 계시고 나도 간절히 바라는데 내가 죽겠어요? 절대자가 간절히 바라는 기준 앞에 선 절대적인 상대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만약 없어지게 된다면 하나님이 망하게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신념의 기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대개의 사람들은 개인을 중심삼고 살려고 큰소리치며 싸우고 야단입니다. 먹는 것을 손에 쥐고 '아이고, 하나님이고 뭣이고 배고파 죽겠다'고 하면서 도둑질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들키면 그 이튿날로 쫓겨나는 것입니다. 쫓겨나기만 해요?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꺾여지는 겁니다. (웃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현재 어떤 입장이냐? 현재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사람에게는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때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내가 이 횡적 환경권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갖는 여하에 따라서 비례적으로 탕감하는 환경을 갖출 수 있는 좋은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크면 클수록, 탕감적인 시련이 많이 부딪쳐 오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 있다면, 그것을 당당히 밀어낼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약한 사람이지만 그런 신념만 갖고 나가게 된다면, 사탄이 백만큼 공격하면 하나님도 백만한 기준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이 천만큼 대해 나오면 하나님도 천만큼의 기준을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민족이 민족적인 힘으로 반대하면 민족적인 힘으로써 탕감해야 하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민족이 말려들어 갈 때는 그 민족은 완전히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사랑으로 하는 것

여러분은 지금 경계선에 딱 올라서 있습니다. 우리 성화 청년들, 이제 내일이면 나가야 한다고 했지요? 「예」 어디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아야 돼요? 내 개인만 복귀하기 위한 자리냐, 가정을 복귀하기 위한 자리냐, 아니면 예수님과 같이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가는 자리냐? 여러분이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따라 어느 자리든지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욕심이 있거든 세계적 탕감노정에 있어서 그 욕심에 비례해서 수난과 탕감의 결과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야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사탄이 지긋지긋하게 공세를 취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밀고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감으로써 패자가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 가지고 3년만 버티고 나가 보세요. 3년 반만 밀고 나가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기간에 절대 남의 신세를 지지 말라는 겁니다. 그 기간에 신세를 지게 되면 갚아야 합니다. 신세를 지면 복귀가 안 되게 되어 있지요? 「예」

인간이면 누구나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국가적 기준을 탕감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국가적 기준 앞에 종족적 탕감을 해야 하는 데,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으면 종족이 반대하는 것을 그가 막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세워 놓으면 가정들이 반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종족 대표를 세워 놓으면 다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높이 올라가더라도 후계자를 세워 가지고 그가 내 갈 길에 동참하여 반대하는 것을 막아 줄 수 있게 하는 터전을 넓히려니 전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세계적인 기준 앞에 탕감하고 나서려면 120명을 전도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120명을 전도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0문도를 세웠지요? 이것은 세계적인 끝날에 있어서의 120개 국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엔 회원 국가들이 127개국이 되었지요? 여러분은 일생 동안 120명을 전도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일년에 세 사람씩 전도한다 해도 40년이 걸립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매해 세 사람씩 한다 해도 40년이 걸립니다. 나이가 30세인 사람은 매년 세 사람씩 전도해도 70세가 다 되어야 120명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언제 하나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자기 종족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부터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럴 때가 왔습니다. 옛날에는 남을 전도해서 종족을 만들었지만 이제 그런 때는 지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한 친척을 중심삼고 전도하면 12년도 안 걸립니다. 정성껏 해보라는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전부다 쌍수를 들어 찬양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년, 4년만 해보라는 거예요. 부락 전체가 솔가(率家)하여 지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사랑으로 가인을 구한 승리의 터전을 통하여 거짓 사랑으로 점령당한 것을 참사랑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충이 없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단 방법을 통해서 했다가는 또다시 사탄이 수단 방법을 가지고 나오는 전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은 죽음길 위에서도, 생명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의 도리를 세워 나온 것은, 완전한 가인 구원의 도리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가인 구원의 도리의 문을 열 수 있는 증거를 죽음을 통해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으면서도 복을 빌어 주어 가지고 발전해 나온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적인 길을 걸어 나오는 종교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떠한 종교보다 순교의 종교가 기독교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를 구하려 하신다는 틀림없는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예」

전도활동의 목적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여러분을 후원해 준다고 하면 받아야 되겠어요, 안 받아야 되겠어요? 「안 받아야 됩니다」 안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고 도와주고 싶어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상에 눈물을 흘리며 도와주려는 사람 가운데 악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눈물을 흘리며 정성들이면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사탄이 여러분을 참소하지 못합니다. '사탄아 네가 내편에 서서 눈물 흘리며 도와준 적이 있느냐? 없지 않느냐? 사탄아 네가 하지 못한 것을 이렇게 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는 사탄 네가 양보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너희 사탄종자와 다르지 않느냐' 이렇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정성을 다하여 희생하는 입장에서 나를 도와주려고 할 때는 그 도움을 받아도 괜찮지만 내가 도와 달라고 해 가지고 도움을 받게 되면 참소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전도했는데 전도사를 몰라봐' 이러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도와 달라고 해서, 연보를 하라고 해서 도움을 받게 되면 천법에 걸립니다. 이 법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의 타락한 이 세계에서는 사탄이 물질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복귀하는 데 그렇게 해서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로 사탄의 놀음에 얽매이게 되니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진해서 도움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이 나가서 전도한다고 해도 왜 전도가 안 되는지 알아요? 전도를 하려 할 때 이 동네에 사는 저 사람을 전도하면 내가 아주 편하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했어요, 돈을 사랑했어요? 동네 사람을 사랑 했어요, 자신을 사랑했어요? 누구를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면 강도입니다. 자기를 위해 좋은 세계를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도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연보하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연보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를 지나 종족적인 시대에는 가정들이 연보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미 탕감하여 사탄세계에서는 벗어났기 때문에 연보하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때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움을 받고 탕감되는 법이 없습니다. 도움을 받더라도 나와 같이 정성 들이는 입장에서 주는 도움은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나와 한 계통인 것입니다. 한 계통은 수습해 줘야 합니다. 끼리끼리는 서로 수습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도움을 받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보호육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연보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에게 축복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알 만해요?

전도 나가는 것은 나도 살고 가인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는 하나님과 사탄 앞에 인증서를 받아 놓고 실천하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내가 싸우는 것은 인증서를 받기 위해 세워 놓은 조건대로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그걸 알고 길을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간 사람이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갔다했지요?

그러므로 제일의 원수가 무엇이냐 하면은 사탄이 아닙니다. 제일의 원수는 사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제일의 원수냐? 내가 제일의 원수 입니다. 내가 원수된 입장에 서 있으니까 사탄인 원수가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원수는 아니지만 자신이 언제나 원수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수는 우리의 몸뚱이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핏줄을 통해서 사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원수의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신념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까 말하였듯이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하늘 땅이 전부다 뭉그러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신념은 절대로 뭉그러지는 법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고 사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절대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탄도 부정할 도리가 없으니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자신이 있어요? 그렇게 나갈 자신이 있어요? 「예」

여러분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까? 추운 겨울에 전도 나갔다 돌아오면 찬 방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방에 이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문지 한 장도 때지 않은 찬 방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방에 들어가면 궁둥이도 못 대고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데, 앉아 있으면 두 발이 시리니까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때도 있을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정도나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극복할 수 있는 신념을 어느 정도나 가졌습니까? 손발이 얼고 무릎도 부어오르고 먹지 못해서 정신이 희미해져 가지고 죽음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 하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 나 죽소'라고 암만 기도해 봐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승리해 가지고 '아버지, 나 이렇게 했습니다' 하고 결과를 가지고 보고해야지 행하지도 않고, 결과도 없이 기도만 하면 뭘 합니까? 그런 기도를 들어주다가는 하나님만 망하게요? 그렇지 않아요? 기도하고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맹세하고 나서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안 했겠어요? 맛있는 것을 먹기는 다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맛있는 것을 좋아하지요?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좋아합니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하나마나입니다. 복귀는 무슨 복귀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입으로 먹는 것은 개나 돼지도 좋아합니다. 사탄도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먹는 것을 좋아해서는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에 하나님만은 반대의 길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극히 반대입니다.

세상에는 굶어 죽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굶어 죽으면서 억울한 마음을 갖고 '이놈의 세상, 죽기 전에 쌀 몇 가마니만 도둑질해다 놓았으면 굶어 죽지 않을 텐데, 아이고 분해라' 하면서 죽으면 지옥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굶어 죽어도 좋다. 인간 세상에 왔다가 인생노정에서 깨끗이 뜻을 위해 한번 굶어 죽어 보자' 이런 사람은 천국가는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그렇게 굶어 죽으면 천국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전부 굶어 죽겠다고 하면 곤란해요. (웃음)

굶어 죽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얼어 죽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한번 얼어 죽어 보라는 겁니다. 얼어 죽을 때도 자기 욕심을 위해서 살다가 얼어 죽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영계를 추모하면서, 하나님과 의논하면서 살다가 얼어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옥에 가겠어요? 그런 사람은 죽더라도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있는 힘을 다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는데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생명을 다 바치면서 있는 힘을 다했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힘을 다했을 때는 죽을 자리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사탄을 무서워할 게 없는 것입니다. 사탄도 그런 사람은 천당에 가도 좋다고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의 노정을 가면서 남의 등을 쳐먹고 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을 한다고 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는 순식간에 세계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그런 것은 생각지 않는 거라구. 그렇게 올라갔다가는 꺼꾸로 내리 꽂힌다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만 하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곳에도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늘이 어디 따로 있어요? 현재의 기준을 중심삼고 반대로 한바퀴 돌려 놓으면 최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제일 낮은 데로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고받는 데에서 상대적인 공식이 벌어지는 것이 원리라고 생각할 때, 높은 곳에서만 공식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원리로 볼 때 높은 곳은 낮은 곳의 주체입니다. 그런데 상대를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은 낮은 데로 내려가고 낮은 곳은 높은 데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님은 낮은 데에 있는 인간에게로 내려오려고 하시기 때문에 우주가 돌고 복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다 좋은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모두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가운데서 제일 낮은 자리에 서도 좋아하는 통일교회가 있기 때문에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하늘의 운세를 몰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에 서야 부활된다

여러분은 어떻게 갈 것입니까? 친구와 둘이 갈래요? 바울 같은 분은 그런 면에서 참 성인입니다. 남이 쌓은 터전 위에서 가기를 절대 바라지 않았습니다. 새로 개척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누구를 믿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나를 믿게끔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믿어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몸과 마음의 싸움에 있어서, 몸을 치고 마음을 그 위에 세우기만 하면 하나님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여러분이 전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은 동네에서 개인을 대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개인 가인과 개인 아벨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앞에 본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통일교회 가정들은 전부다 아벨의 입장에서 싸웁니다. 그게 쉬운 일이에요?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런 일을 놓고는 기성교회에서는 사탄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아요, 몰라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우리 통일교회 가정들은 선생님이 자기 아내를 빼앗아 전부다 전도임지로 쫓아냈는데도 남편들 중에 선생님을 때려죽이겠다고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이것이 세계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명령은 선생님이 했지만, 실천은 누가 합니까? 선생님이 해요? 여러분들이 하니까 아벨 앞에 가인이 굴복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일본 식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너희 나라와 너희 민족을 부정할 수 있느냐'라고 할 때, 통일교회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니까 부정하지 못한다고 하면 일본은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있다고 할 때는 직통입니다. 일본의 천황부터 한국에서 빼앗아 갔던 일을 놓고 뉘우치는 일이 벌어져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금년부터는 그런 일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을 교육하려고 합니다. 일본 식구들은 한국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들은 한국에 올 때도 그냥 와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전부다 가지고 와야 합니다. 가인이 전부다 도둑질 해 가지고 갔지요? 그렇지요? 도둑질을 해서 가인 것으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전부 소급해 가지고 아벨에게 갖다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될 게 아닙니까? 그렇게 해야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전도되어 생명이 부활된 후에는 가진 것을 전부 다 그 자리에서 바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집도 선생님의 것이요, 자기 친구도 아내도 남편도 다 선생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부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 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가인들이 도둑놈이 되어 가지고 빼앗아 갔으니 그 주인이 나타나면 거기에 이자를 첨부해 가지고 다시 돌려 바쳐야만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의 환경이 통일교회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지요? 「예」 여러분 그때까지만 참으라구요. (웃음) 그러니 통일교회가 얼마나 멋져요. 앞으로 세계 인류를 모아 가지고 이 원칙을 알게 하여 생명시 하게끔 해놓게 되면 바치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바칠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원수 중의 원수가 되었지요? 우리 대한민국이 침략을 해 가지고 원수가 되었다면 모르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있어요? 「없습니다」 이렇게 콧대 높은 양반인데, 일본이 그 양반의 궁둥이를 쑤셔 놓았으니 이건 천지가 인정하는 진짜 원수지간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를 갚는 데는 총이나 주먹으로 갚을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갚으라고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갚으니 아시아에서 세계를 이끄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국제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왔으니 정보부가 먼저 알아서 우리를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무엇을 하려면 따라다니면서 부탁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달팠어요. 그러나 요즈음에는 우리가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자청해서 몇 번이고 전화를 해서 귀빈 대접을 합니다. 이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가 주먹을 가지고 싸웠습니까? 노략질하면서 싸웠어요?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들한테 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을 사랑하는 데는 사탄보다도 내가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자보다 내가 더 나라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할 때는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제 그럴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으니 이런 일이 벌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은 성장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냐? 선생님이 이날까지 나온 여러분들에게 자그마치 개인복귀와 가정복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을 중심삼고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했지요? 「예」 여러분이 메시아가 될 자격은 없지만, 메시아에 의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메시아의 아들이 될 자격은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여러분이 그런 사명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사명을 위해 가는 기간에는 민족으로부터 국가로부터 기성교회로부터 핍박받는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가라는데 못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인을 흠뻑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 가야 할 그 길이 여러분이 가야 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여러분들 앞에 멀지 않아 벌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의지하고 자기 고향을 찾아가는데, 원래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가정들을 중심삼고 복귀운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정이 원수의 가정을 찾아가 복귀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가 되려면 한 곳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군으로 말하면 세 군(郡) 이상을 넘어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부락으로 말하면 세 부락 이상을 지나가서 해야되고, 도(道)로 말하면 세 도 이상을 지나가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생, 장성,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에 자기 고향에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고향에 찾아가 가지고 전도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리 전도하더라도 탕감조건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왜 그러냐? 면이면 세 개의 면, 군이면 세 개의 군을 거쳐 자기의 거리를 넓혀 가지고 가야 됩니다. 복귀역사가 그것입니다. 탕감복귀역사가 그런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3단계를 거쳐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면이라면 세 개의 면을 넓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면을 거쳤으면 장성 단계인 군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군도 세 개의 군을 넘어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도를 넘어 가는데, 세 개의 도를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원칙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9단계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인들을 전부다 전국적으로 활동시키는 것입니다. 세 개의 면을 지나는 것보다도 세 개의 군을 지나는 것보다도 세 개의 도를 지나가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 면을 지나가는 것보다도 세 군을 넘어가는 것보다도 세 도를 넘어가는 것보다도, 다른 나라를 지나가는 것이 더 보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면, 군, 도, 나라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3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북한 땅에서, 일본에서 사탄세계의 원수들한테 핍박받고, 그 다음에는 민주세계인 대한민국에서 제일의 원수들한테 핍박받고 감옥살이를 한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싸운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의 3정권을 거쳤습니다.

혁명정부는 천사장 입장의 주권인데 천사장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고 협조할 수 있기 때문에 혁명정부는 화합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그리고 종교로 말하면 세 종교, 즉 불교, 유교, 기독교에게 반대를 받은 것입니다. 씨족으로 말하면 대표적인 씨족이 전부다 반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복귀역사가 되어지는데, 이제 여러분이 확실한 신념만 갖게 되면 어려움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어려운 길을 극복해 갈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옥에 갇혔었지요? 선생님도 옥에 갇혔었지요? 「네」 선을 행하다가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옥에 갇혀 보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 가지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번 갇혀 보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자원해서 그렇게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자진해서 한 달쯤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고생하고 있는데 부모보다 고생을 덜하는 사람이 효자가 될 수 있어요?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7년 이상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걸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자진해서 그런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지 못하는 대신 탕감조건으로 7년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이게 싫어요? 「좋습니다」 이게 싫다는 사람들은 죽으라는 것입니다. 나하고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만 못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줄 알아요? 그런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교회장들끼리 얘기해 보면 서로가 잘 알 것입니다. 답답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할수없습니다. 하나님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이제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현재는 어떤 때인가, 현재의 나의 입장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현재 입장은 어떠한가? 지금 통일교회는 어떤 때에 있느냐 하면, 지금까지는 종족탕감을 이루었으니 이제부터는 교회와 민족을 탕감하는 시대입니다. 이때는 무엇을 중심삼고 나가느냐 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를 보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고 그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적인 지도의 책임은 유대교가 지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대교는 주체요, 이스라엘 나라는 대상입니다. 이들이 원리 원칙에 의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고받으면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완전히 주고받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즉,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오시는 자리요,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올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몸으로서 나타나는 그런 분이 임재할 자리가 그 자리라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주고받아 완전히 하나되어 있어야만 하나님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바라고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4천년 역사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모든 교회가 한꺼번에 하나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되는 데는 한 사람에서부터 하나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하여 한 가정이 하나되고, 다음에는 교회의 한 가정과 나라의 한 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두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국가의 출발과 새로운 교회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부터 하나되어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이러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교회의 주인으로 온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주인으로 왔으면 당연히 주인 노릇을 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교회의 주인 노릇을 못 했습니다. 그러면 가정의 주인이 됐어요, 못 됐어요? 「못 됐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못 되었고 가정의 주인도 못 되었던 것입니다. 가정의 주인이 못 되었는데 형제간의 주인 노릇을 했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는 가정의 주인 노릇도 못했고 형제관계에서도 형님 노릇도 못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을 중심하고 사제의 관계에서 스승 노릇을 했습니까? 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습니다」

다 못했습니다. 나라의 주인도 못 되고 교회의 주인도 못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씨족의 주인도 못 되고, 가정의 주인도 못 되고, 형제의 주인도 못 되고, 사제의 관계에서도 주인이 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가서 발을 붙였겠어요? 사탄이 먼저 주인이 되었으니 갈 데가 어디 있었겠느냐는 겁니다. 어디 있었겠어요?

모아진 제자들은 전부다 거지 같은 패들이었습니다. 그런 패들을 이끌고 세상 천지를 다녔지만 주인의 자리를 찾을 도리가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갈 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종의 입장에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주인에서부터 복귀해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이 되려면 절대적인 주체의 입장에 서야 할 텐데 예수님은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무엇을 해야하느냐?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참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민족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심정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한국이 제3 이스라엘이 된 이유

이러한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재차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이러한 판도를 만드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기독교 역사는 영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습니다. 제 1 이스라엘 대신 입장인 제 2 이스라엘이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이 기독교 문화권은 영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문화가 세계적 국가형을 이루었고 거기에서 정신적인 중심형이 기독교 국가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기독교 문화권이 영적이기 때문에 탕감복귀를 하려면 그와 같은 형태를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복귀를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이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제 1 이스라엘 시대에 있어서 영육을 중심한 이스라엘 국가와 같은 국가 형태를 찾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형태의 기반을 갖춘 나라가 있으면 하나님도 그 나라를 주력해서 취하려 하고 사탄도 그 나라를 취하여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을 둘로 갈라 놓은 입장에서 싸운 것과 같이 둘로 갈라 놓고 싸우는 것과 같은 형태의 나라가 생겨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이 두 세계가 접전해 있는 지대가 삼팔선입니다. 이런 나라가 네 나라인데 중국, 베트남, 한국, 독일입니다. 이 네 나라가 곧 사위기대입니다. 이들만 통일하면 모든 문제를 처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 제일 어려운 나라가 한국과 독일입니다. 이 두 나라만 통일하게 되면 세계는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판문점은 무엇입니까? 남한과 북한이 서로가 내가 잘했느니 네가 잘했느니 하며 싸우는 장소이지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는 곳입니다. 이러한 실체적인 싸움터가 판문점입니다. 이 판문점의 주인이 훌륭하다면 그 문을 닫지 왜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주인은 남북한이 아닙니다. 판문점은 주인이 없는 상징적인 문입니다. 그렇다면 집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지 왜 문에서 얘기를 하느냐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곳은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의 문이라는 것입니다. 남한으로 넘어오면 천국세계요, 이북으로 가게 되면 사탄세계입니다.

이 판문점은 하나님께서 영계를 중심삼고 개인을 빼앗는 싸움에서 나라를 중심삼고 빼앗는 싸움을 할 수 있는 기준까지 끌어올려 놓은 싸움판입니다. 즉, 개인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싸워오던 판국을 나라를 빼앗기 위한 싸움으로 끌어올려 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 삼고 싸우던 것이 재현된 것이 육적으로 제 3 이스라엘을 복귀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한국입니다. 딱 들어맞지요?

이게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얘기하자면 길다구요. 그러면 한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기독교는 크고 세계적입니다. 이 기독교권은 민주세계로서 영적인 제 2 이스라엘입니다. 그렇다면 제 3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나라는 제 1, 제 2, 제 3 이스라엘을 완전히 복귀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귀를 하는 데는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를 거쳐야 합니다. 소생기 다음은 장성기인데 장성기는 소생기 기반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완성기는 장성기 기반이 없으면 이룰 수가 없습니다. 즉, 소생기 완성과 장성기 완성을 하지 않고는 완성기 완성에 설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 1 이스라엘과 제 2 이스라엘을 완성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제 3 이스라엘의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원래는 하나의 세계였는데 왜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로 갈라졌느냐? 제 2 이스라엘권을 영적으로 만들게 될 때 종적인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형을 세계적으로 영적으로 탕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민주세계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 2 이스라엘을 영적이라고 하느냐? 영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와 국가와 천사장 국가의 입장

현재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는 많지만 그 나라의 주권자가 기독교의 교황들입니까? 또, 기독교의 신부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마땅한 위치에 세워진 주권자예요? 정치와 종교는 딱 분립해서 못 박아 왔지요? 그들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영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를 중심삼고 육적인 여건이 성립됐어요, 안 됐어요? 「안 됐습니다」 안 됐으니까 영적이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여건이 성립되어야 제 1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국이 해방이 되었을 때 그 시대권내에 있어서 민주세계권내가 아닌 기독교권내로 들어갔더라면 영적인 여건과 육적인 여건이 한꺼번에 다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한국이 누구 때문에 해방되었습니까? 타락은 천사장 때문에 했지만, 천사장은 해와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늘편 천사장 국가가 사탄편 해와 국가를 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본을 중심삼은 삼국동맹입니다. 종말에는 한국에 맺어지니까 이 한국에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은 천사장 국가이고 아시아에 있는 한국은 아담 국가이고 일본은 해와 국가입니다. 천사장은 종이지요? 그 천사장이 해와를 꼬여서 타락시켰고, 그 해와가 아담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결국 천사장은 아담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유엔군의 협조를 받아 해방이 됨으로써 자주국가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를 찾는 데는 혼자서는 되지 않습니다. 해와와 더불어 찾아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시 찾는 데 있어서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해와가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 국가인 미국을 중심삼고 보면 본래 그 해와 국가인 영국과 민주세계가 한국과 합하여 가지고 공산세력과 부딪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는 영국과 미국의 열매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한국에 하나의 주권을 세워 가지고 오시는 주님과 완전히 하나 되었다면 한꺼번에 다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세에 있었던 때가 해방 직후였습니다.

한국의 독립은 누가 이루었느냐 하면 기독교인들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이 기독교권내에 생겼나요, 안 생겼나요? 민주세계권내에도 생겼지만 기독교권내에 한국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로마제국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는 로마제국 앞에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원수들에게 내준 것입니다. 로마는 하늘편적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한 천사장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천사장 입장에 있는 민주세계가 기독교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민주세계와 기독교가 한국을 품었기 때문에 한국을 중심으로 주님이 오시면, 그 주님을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일시에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게 틀림없지요? 「예」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 스승이 되어야 했는데도 스승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주님이 오시면 만민은 스승 중의 스승으로 모시고 형님 중의 형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물론 가인 아벨의 입장으로 두고 볼 때 가인이 먼저 태어났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로 볼 때는 예수님이 형님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최고의 형님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것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의 입장에 서야 되고 제사장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대제사장의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나라의 주권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가 한꺼번에 연결되어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개인으로부터 개인 스승으로, 개인 형제로, 개인 자녀로, 개인 신자로, 개인 충신으로 다 연결하여 한꺼번에 쭈욱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통일교회는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선생님 나이가 이쯤 되었으면 세계의 어떤 잘난 사람도 내 손에 녹아났을 겁니다. 그때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다 되었을 것입니다. 원래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원수 사탄과의 싸움이 연장되어 가면서 이 세계에는 막대한 물질의 피해와 사람의 피해와 교회의 피해가 생긴 것입니다. 먼저 물질이 피해를 입고, 그 다음에는 사람이 피해를 입고, 그 다음에는 교회가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틈에서는 사상도 모두 깨져 나갑니다. 민주세계 자체도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다 깨지는 것입니다. 미국도 프랑스도 영국도 투쟁하다 그랬지요? 이런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되었으면 통일 되었을 텐데 한국은 아직까지 유엔에 가입하지 못했지요? 나라 구실을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조금 가다가 통일교회가 손을 잡고 가서 유엔 회원국들을 움직여 주면 유엔에 가입도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한국이 어떻게 나왔어요? 쫓겨 나왔지요? 왜 쫓겨 나왔어요.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가 그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민주세계의 축소요, 기독교의 축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반대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쫓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 다시 점차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먼저 민주세계의 가인권에 들어가서 쳐 올라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대신 통일교회가 민주세계를 인계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통일교회가 대신 민주세계를 다 포함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끼 민주세계 국가라고 해도 말이 됩니다. 지금은 통일교 사상이 새끼처럼 작지만 민주 세계에 대하여 커 올라가면 세계는 전부 다 거꾸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은 새끼지만 크게 되면 기독교가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보다 크겠어요, 작겠어요? 「큽니다」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크는 날을 위해서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라는 거라구요.

양반은 굶어 죽어도 뭐 어쩐다고요? 큰소리치는 겁니다. 얻어먹더라도 큰소리치면서 얻어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암행어사와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하늘나라의 암행어사입니다. 우리가 전도 나가는 것은 암행어사가 행차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요? 통일교회는 이남에 있습니다. 이남이 민주세계지요?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통일교회와 기독교 판도가 어떻게 되어 있어요?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바꿔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적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사상적으로도 승공사상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북 공산당들은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지요?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하지요? 딱 맞습니다. (웃음) 이북은 구체적으로 결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기정적으로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원수가 악착같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살 길을 모색하려니 할 수 없이 통일교회를 잡아 끌고 있고, 우리는 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옛날 예수님을 쫓아낸 유대교처럼 기독교가 쫓아낸 통일교회이지만, 기독교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고, 한국이 반대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진 무리들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이런 무리들이 한국을 잡고 나가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반대하다가 자기들이 망해 들어가고 기진맥진하니까 고개 숙이면서 '살길이 있다'고 하는 우리에게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 원리를 듣기 위해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원리를 먹어 보니 맛있거든요. 이래 가지고 그들이 치료받아 살아가는 겁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이제 우리는 저 밑창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다 올라왔습니다. 양면의 때가 되면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와 기독교를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크게 둘로 나누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민주세계는 기독교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공산세계를 굴복시키고 민주세계를 굴복시키려면 기독교를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굴복시킬 수 있는 원리와 공산주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원리를 가지고 꼭대기에만 앉게 되는 날에는 '에헴'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아래에서 꼭대기를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를 이길 수 있는 열쇠를 가진 통일교회

나라는 외적인 것만 쫓다 보니 종교적인 것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공사상을 주창하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전부다 여기에 걸려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기성교회가 우리에게 잡히게 되어 있어요, 안잡히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 말씀은 듣지 않지만, 통일교회 사람들이 하는 것은 본받으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본받으려면 통일교회 사상을 알아야 되는데 그것을 모르니 잘 안 되거든요? 그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틀렸으니 통일교회 원리는 듣지 말고 통일교인들이 하는 행동은 본받으라는 겁니다. (웃음) 그렇게 되나요? 이것은 결국 통일교회를 따라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만큼 올라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이 지극히 작은 나라 같지만 우리의 열쇠로 남북의 문만 열어 놓으면 세계가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 열쇠가 커요, 작아요? 기성교회보다 커요, 작아요? 「큽니다」 기가 막히다는 겁니다. 시합하나마나라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 이 문만 열어 놓는 날에는 그것을 통하여 소련도 미국도 쌍바늘 낚시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쌍바늘 낚시 알아요?

그러면 내가 낚시질 가서 재미보는 겁니다. (웃음) 낚시에 고기가 걸리면 잡아당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낚시줄을 그 고기보다 강하고 든든한 데에 얽어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기보다 작은 사람이 고기를 잡겠다고 하다가는 고기한테 먹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사람은 어떤 사람들보다도 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념과 사상이 김일성 일당들의 당성을 중심삼고 교육을 받은 그 단체의 사상보다도 강하지 못해 가지고 통일을 하겠어요? 절대 못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부락마다 전부 깨워 가지고 사상을 통일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정비할 때가 온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사탄을 이기고,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상을 삼천만 민족에게 무장시키는 날에는 틀림없이 공산당 앞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은 이북 국민의 두 배입니다. 천사장은 혼자지요? 아담 해와는 둘입니다. 그러니까 두 배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어쩌면 그렇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지…. 나라도 그렇게 되어 있고 세계도 그렇게 되어 있지요? 딱 맞아떨어져요, 안 맞아떨어져요? 「맞아떨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얼마만큼 왔느냐?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어요, 없어요? 통일교단이 있지요? 예수님에게는 교회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축복가정이 있지요? 예수님에게는 그와 같은 가정이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종족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수많은 종족의 메시아가 되라 했으니, 즉 종족적인 메시아들이 다 모였으니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미래의 기반을 가졌다는 겁니다. 또 통일교회에 애국자가 있어요, 없어요?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에 대한 충신도 있고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를 통일하려면

예수님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으로부터 받고자 하셨던 내용을 우리 통일교단 하나 가지고 보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다 있습니다. 원칙만 알면 복귀는 간단합니다. 오시는 주님 한 사람을 스승 중의 스승으로 모실 수 있고, 형제 중의 형제로 위할 수 있고, 부모 중의 부모로 모실수 있고, 종족 중의 종족으로 모실 수 있고, 교회 중의 교회의 제사장으로 모실 수 있고, 나라 중의 나라의 군왕으로 모실 수 있는, 이와 같이 그 사람을 전체 사람들이 '옳소' 하고 인정해 가지고 그렇게 믿고 모실 수 있는 기반만 갖추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중심삼고 이스라엘에 예수님을 보내서 이루려 하셨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탕감복귀를 하면 어떻게 되느냐? 이스라엘이 남조 유대와 북조 이스라엘로 갈라졌던 것과 같이 실상적으로 재현시켜 갈라 놓은 곳이 남북한입니다. 한 민족이지요? 다른 사상이 들어와 가지고 갈라졌던 것입니다. 한국은 혼합된 사상에 의해서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사상을 가지고 남쪽부터 하나되게 해 가지고 남북을 통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통일교회가 기독교로부터 반대받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져 있지 반대만 안 했으면 벌써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만 안 받았으면 벌써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60만 국군과 250만이 되는 향군을 합한 300만 이상의 군대를 통일사상으로 무장시키는 날에는 아시아에서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중공군이 무서워요? 그들보다 10배 100배 이상 강력한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도 말할 것이 없습니다. 전부다 우리에게 채이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단시일내에 우리가 사상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군인들도 사상무장을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군대만 승리하게 되면 삼천만 민족은 자동적으로 한쌍의 그물을 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가 멀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1970년, 1971년, 1972년 이 3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3년노정에서 복귀운동을 하다 죽어갔던 원한을, 국가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과 개인과 형제와 스승을 두고 맺힌 원한을 해원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섭리의 사정이 우리 앞에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철통같이 뭉치게 될 때 김일성이는 영계에서 데려갑니다. 엊그제도 라디오 방송이 있었지만 중공에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내적인 혁명이 벌어진 것입니다. 세계에서 이제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이도 한 번 내려가고 두 번만 내려가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의 시대는 하늘편이지요? 한 번 교체되고 두 번만 교체되는 날에는 세계적인 복귀가 벌어집니다. 김일성이를 데려가게 되면 교차가 벌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교차되게 되면 강한 편으로 전부 다 옮겨가는 것입니다.

현재 나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을 확실히 알자

그래서 1970년대 말기부터는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콧대가 높은 사람들은 다 박살나는 것입니다. 콧대가 높아서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아는 사람들은 영계에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이나 각국에 있어서 높은 자리에서 우리 뜻을 반대하는 녀석들은 전부다 데려간다는 겁니다. 김일성은 앞으로 더 남아 있어야 되겠지요? 그래야 우리가 뒤바꿔 치기가 좋다는 겁니다. 요전에 일본에 있는 교포 납북미수사건이 생겼지요? 이런 걸 보면 사상전입니다.

이북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공산주의 사상이 종교로 되어 있습니다. 공산 종교예요. 그러니 이남은 앞으로 통일교를 내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는 종교와 신이 있다는 종교 중에 어느 종교가 나을 것인가, 어느 종교가 참 진리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가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전부다 이북에 갔다 와야 됩니다. 선생님도 이북에 갔다 왔지요? 「예」 그러니까 여러분도 이북에 갔다 와야 될 게 아녜요? 이북에 가면 잡혀 죽을 것입니다. 죽는다 해도 가겠어요? 「예」 그렇게 죽으면 천국으로 직행할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놀음도 하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정보과장이 와 가지고 하는 말이 몸을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바쁘게 되면 형사가 대문 밖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을 노리는 놈을 잡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일만 하면 죽는 것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는 것을 무서워 하면 어떻게 큰일을 하겠어요? 이미 사생결단을 하고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했으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이런 결심을 해야겠어요, 안 해야겠어요? 「해야겠습니다」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구요.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일본 사람들에게 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없으면 선생님이 어디 갔나 하고 찾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현재의 우리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것은 도장을 찍어 놓고 들여다보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알겠어요? (웃음) 세상은 답답하게 주먹구구식으로 하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도장찍어 놓고 그걸 들여다보면서 합니다. 그러니 누가 빠르겠어요? 기성교회가 반대한답시고 발이 닳도록 다니고 했지만, 통일교인들은 이미 외국에 건너가서 자리잡고 있다 이겁니다. 외국은 크기 때문에 조그만 게 들어가게 되어 있거든요. 생각하면 멋지지요?

여러분, 현재의 나의 입장을 알았지요? 「예」 현재의 우리의 입장도 알았지요? 「예」 현재 우리나라의 입장도 알았습니다. 현재 세계의 입장까지도 완전히 알아서 한 점을 중심삼고 맺힌 것을 풀어 헤치는 날에는 와르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훌쩍 뛰어서 처치하여 쟁취하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굉장하지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번 할 만한 일입니다.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딱 잡아 가지고 하나 만들면 세계가 하나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라는 명사가 있으려면 '나'라는 명사를 해결해야 합니다. '나'라는 명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가 있으면 '우리'는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 탕감을 하고 재차 우리를 탕감해 가지고 나아가 나라와 세계 앞에 공헌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이 이 자리에서 출발을 다짐하고 내일의 소망을 염려하며 저희들의 입장을 공고화시키고 새로운 신념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생활의 한계권내에서 극복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서러움의 패자의 쓴 잔을 마시는 자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승리의 영광으로 소화시키어서 무한한 가치의 자기의 인격을 개척하는 보람 있는 자신을 느끼면서 보람 있는 생애노정을 갖출 수 있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 나라와 저희 가정과 저희 자신들이 일치가 되어 이 시기를 저희 장성기의 인격을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하겠으며, 또한 그러한 놀라운 세상임을 직시하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보장을 받을 수 있고, 내일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들이 틀림없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지금 일선에서 싸우고 있사오니, 이들한테 지지 않는 참다운 남성들로서 칭찬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사업분야를 책임졌던 아들들이 뜻 앞에 있어서 새로이 다짐하여 과거와는 달리 있는 정성을 다하고, 현재의 입장에 있는 자신을 아버지께 완전히 바쳐 드림으로써 민족 앞에 본이 되며 당신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후에 되어지는 모든 일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내일 이들을 만나지 못하겠사오니 일선에 가더라도 이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해서 끝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 이들이 이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누구를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아버님이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7년노정을 하늘것으로 귀하게 여기고 이를 악물고 자신을 다 바쳐 감으로써 시련을 즐거움으로 극복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되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보람 있는 인생의 가치를 남기고 후세에 자랑할 수 있는 보람된 터전을 남길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오늘은 2월 들어 처음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달에 저희들이 계획하고 경영하려는 모든 일들이 당신의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달 한 달 지나감으로 말미암아 71년도에는 하늘의 모든 섭리의 프로 위에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겨진 복귀의 사명을 책임지고 나라와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 들이오니, 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 가지 한 가지 일에 있어서 저희들이 하늘의 뜻을 세우고 그 뜻의 내용을 활용하면서 스스로의 인생길을 밝혀 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경배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때의 사명을 짊어지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당신의 아들딸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내 당신이 같이하신다는 사실을 사탄세계의 모든 사람들 앞에 나타내시어서, 아버지 앞에 굴복할 수 있는 승리의 판도를 넓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이번 달에는 저희들이 계획하는 두 가지 큰 행사가 있사오니, 아버지, 여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희들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나타나는 일이나 나타나지 않는 일이나, 아버지의 내적인 인연을 따라서 이 땅 위에 승리의 터전을 세워 가지고,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을 넓혀 나갈 수 있는 우리 통일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의 운명을 지키시옵소서. 모든 일이 아버지의 경륜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선의 기준을 넓히시사 당신이 친히 주관하시옵소서. 당신이 친히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그날까지 저희들이 충성의 도수를 높이고, 정성의 도수를 높이고, 효성의 도수를 높일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교계에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도 생명길을 흠모하면서 모여서 기도하는 줄 알고 있사오니, 모인 곳곳마다 당신이 친히 역사를 일으키시어서 당신이 친히 찾아오시는 섭리의 때를 예고시키시옵소서. 그들도 한 곳, 통일의 은사권에 모여 하나의 제단을 쌓아 가지고 아버지 아들딸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린 자녀들이 모인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앉은 이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 시간을 흘러가는 역사의 한 토막, 한 순간이 아니오라 아버지의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장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는 책임을 진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절차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시간에는 '체휼신앙의 중요성'이란 제목으로 잠깐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은 벌써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대상으로 삼고 가는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어져서 주체에게서 되어지는 사실이 대상에 미쳐지고, 대상에게서 이루어지는 사실이 주체에게 관계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맺어지지 않으면 뜻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나 자신이 될 수 없는 것이요, 뜻을 위해서 움직였다고 하는 그 결과가 하늘의 섭리 앞에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를 가져 가지고 묶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수수작용을 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정도에 따라 우리 생활환경에 변천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천된 내용을 우리 자체의 생활면에서 봐 가지고 그것이 과거보다도 더 가치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될 때 우리는 신앙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움직인다고 느낄 때 체휼신앙이 시작돼

사람은 대개 상대적 관계를 통해 의식을 하게 됩니다. 물론 자기 마음 속에서도 생각은 하겠지만 대다수는 감각적인 기관을 통해서 자극을 받아 가지고,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의식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의 마음 생활뿐만 아니라, 그 마음에 느껴진 사실을 상대적 생활환경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어떤 신앙의 기준 밑에서 일 년이면 일 년 동안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면, 그 계획이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그리고 주체 되시는 하나님과 대상 되는 내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를 이 환경에 어떻게 맺히게 하느냐 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받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새로운 번식, 곧 제 3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제 3의 결과라는 것은 주체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대상의 목적, 즉 이중목적을 지닌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로 나타난 것이 내 자체에서 주체와 대상의 인연을 맺기 전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 되어야만 보다 자극을 느낄 수 있고 보다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2월이면 2월 한 달을 중심삼고 신앙적인 면에서라든가 각기 나름대로의 어떠한 목표를 세워 실천해 나간다고 하면 그 목표를 자기 개인의 목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목표는 언제나 주체와 대상의 공동목표로, 그 결과도 언제나 주체와 대상의 공동적인 가치의 결과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하는 일이라 해도 그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반해서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같이 움직이고 계신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 여기에서 체휼신앙이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무의미하게 생활할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어떤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의 생각과 내 생각이 병행해 가지고, 자기의 하루의 생활 과정이 자기에 한한 과정이 아니라 주체와 더불은 과정으로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체휼신앙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의 방향에 어떻게 일치시키느냐가 문제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는 마음문, 즉 심문(心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나면 나를 대해 줄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대하고 계시지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우리를 대해 주시는 그 방향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마음문을 어떻게 갖다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게 되면 춘하추동이 있고, 아침 점심 저녁 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성격도 전부가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봄절기에 해당하고, 어떤 사람은 여름절기에 해당하고, 어떤 사람은 가을절기에 해당하고, 어떤 사람은 겨울절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아침과 같은 형의 사람, 낮과 같은 형의 사람, 저녁과 같은 형의 사람, 밤과 같은 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 모습을 보더라도 각양각이합니다. 이렇게 모습이 각양각이한 것은 서 있는 바탕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해 있는 위치가 전부 다른 동기에서 빚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그 서 있는 기준에 따라 결과되어진 우리의 모습도 전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봄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한 중심을 중심삼고 춘하추동과 같은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봄절기와 여름 절기의 중간형의 사람, 여름절기와 가을절기의 중간형의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방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 개체 개체가 서 있는 위치는 전부 다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중심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어야 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중심이 무엇이냐? 이 중심은 하나님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중심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만 되기 때문에 이 기준이 우리의 주체적인 입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주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주체 자신도 돌지만 대상인 우리 인간도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봄절기와 같은 성품으로 나를 대한다면 나도 그 성품을 따라서 언제나 환경적으로 조절해 가지고 거기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게 된다면 반드시 체휼적인 자극을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천운이 협조해 가지고,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그 환경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세포로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체휼적인 감각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신앙자가 주의해야 할 것

그러면 신앙자로서 제일 주의할 것이 무엇이냐? 일을 대하는 데 있어서 사소한 일이든 큰 일이든, 어떠한 일을 막론하고 개인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팽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팽팽하게 공기를 넣어 완전히 둥글게 된 공과 같은 마음 자세를 가지라 이거예요. 찌그러지지 않고 완전히 팽팽한 공과 같은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라든가 혹은 개인의 욕심을 중심삼은 사(邪)된 마음을 가지면 둥그런 공과 같은 마음에 모가 생깁니다.

이 마음이 돌 때에는 평면적으로 전부다 접촉되어야 할 텐데, 모가 생기면 모난 끝부분부터 접촉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를 원활히 자극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반대적인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런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우리의 양심은 가책을 받고, 양심의 기준이 점점 삭감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원만한 공처럼 팽팽한 마음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에 어떠한 자극이 들어오면 마음 전체가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유 진동수가 서로 같은 음차 두 개를 놓고 하나를 울리면 다른 하나는 치지 않아도 그 음파에 자극되어 같은 진동수로 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공명체가 될 수 있는 원만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한 주체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영적인 파동을 감지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명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것을 그리며 명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명상을 할 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 마음을 둥글게 해서,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본성과 내 본성이, 봄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봄절기의 주체 되는 하나님과 더불어 그 성품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완전히 공명될 수 있는 마음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이렇게 공명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자기가 요구하는 목적을 대하게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십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명을 느끼지 못하는 자리에서 어떠한 일을 대하게 될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일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내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일에 하나님이 먼저 개입해 계신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박혀 있다, 지금은 그 뜻을 중심삼고 내가 접선하는 순간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나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일이면 일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먼저 성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가 있는 뜻을 따라가서 그 뜻과의 일치점을 기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종합해 보면 그렇습니다.

뜻과 일치되려면

뜻의 일치점을 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비양심적인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순결한 마음으로 그 일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마음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완전히 공명될 수 있는 생활 태도를 키워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그 어려운 일이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처해 있던 입장보다도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더불어 주체와 대상의 입장에서, 마음과 몸이 주고받는 느낌을 느껴 가지고 그 일을 대하여 나가게 될 때는 하늘이 따라옵니다. 이러한 느낌이 없게 될 때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 거기에 가 있다는 그러한 실감 있는 감정을 가지고 어떠한 사물을 대하고 일을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일에는 이미 뜻이 와 있기 때문에 그 뜻과 더불어 나는 완전히 일체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양심적 기준으로는 안 됩니다. 순결한 양심을 가지고 일을 대하게 되면 그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을 얻게 될 때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가 마음에 체휼되어 가지고 일을 하거나 상대를 대하지 않으면 뜻이 여기에 와 있으니 나는 뜻을 이루는 자리에 간다 하는 입장에서, 상대적인 일이면 그 일이 동기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라는 거야. 그래 가지고 나 자체가 그 동기와 일체가 되어서 결과적 입장을 가져오게 될 때, 그것이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적인 목적에 결부되게 될 때는 그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보람을 느끼고 힘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게 될 때 그 사람들은 기도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기도생활을 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하고 있는 것이 대개 어떻게 구분이 되느냐? 첫째, 물건을 대하는 일, 둘째, 사람을 대하는 일, 세째, 말을 대하는 일, 다시 말하면 물건을 대하는 대물관계, 다음에 사람을 대하는 대인관계, 다음에는 대인관계에서의 말을 하는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말은 간접적인 목적, 즉 제 3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건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 천법, 혹은 하나님 앞에 걸리지 말라 ! 사람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도 걸리지 말라 ! 그 다음에 말하는 관계에 있어서도 걸리지 말라 !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말하는 관계에 있어서, 그 말한 것에 대하여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을 촉구시켜야 됩니다. 말은 행동의 동기가 되기 때문에 말하는 데 있어서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대하는 대물관계, 사람을 대하는 대인관계, 그리고 말하는 데 있어서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말은 반드시 행동을 촉구합니다. 이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관계인 것입니다.

물건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러면, 대물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늘화시키느냐? 즉, 그 일을 타락한 나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대했다는 입장을 어떻게 세우느냐?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나 자체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대하느냐? 또, 말을 하더라도 나 혼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늘의 말을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말한 것은 말만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동을 동반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권내에서 관계되어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직장 생활이 벌어질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인륜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하는 관계에 있어서는 행동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활권내에서 관계맺고 있는 여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 원칙적인 법도에 어긋나지 말라 !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말라 ! 말을 하고 행하는 데 있어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대하나 사람을 대하나…. 물론 사람을 중심삼고 대물관계가 성립되지만, 이러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신앙자로서 물건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대하는데 그 물건이 열만한 가치가 있다면 열만한 가치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천만한 가치로 보느냐, 이 가치를 어떻게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물건의 가치가 미미하다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개재해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가치를 천만의 비중으로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물건 가운데 하나님이 관계되어 있다고 할 때 이 물건의 가치는 무한한 비중을 갖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물건을 대하게 되면 그 물건이 참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나 여러분의 마음의 세계에서 느낌 가운데 그러한 감응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자기 혼자 바라보던 것보다도 더 입체적인 가치의 내용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의 일이나 물건을 대했던 것이 나에게 환경적으로 큰 가치의 결과를 느끼게 해줬다는 그 사실은 뭐냐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적인 내적 가치를 보다 높은 의미에서 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자신이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일을 하고 나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수고보다도 몇백 배, 몇천 배의 가치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하늘적으로 그러한 가치를 느끼면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려운 그 일이 오히려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일신을 두고 보더라도 대인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운 일에 몰려 가지고 피해를 받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고역을 극복해야 할 수난의 길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그 수난의 길을 자기 혼자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수난의 길을 무한한 가치의 중심인 하나님과 더불어 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같이하는 수난의 길 앞에 자기가 동참한 사실이 얼마나 큰 가치인가를 느끼게 될 때, 그 고통의 대가보다도 감사의 대가가 더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그 어떠한 고통의 길도 감사의 길이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영광의 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그러한 자리까지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대할 때 아무 생각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 물건은 나에게 플러스가 아니면 마이너스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나에게 있어 복이 되든가 아니면 화가 되든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열의 자리에서 내가 저 물건을 대하면 열 하나의 가치가 되느냐 아홉의 가치가 되느냐, 즉 마이너스를 가져오느냐 플러스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여기에서 마이너스되는 자리를 피하고 플러스 될 수 있는 입장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의미하게 사물을 대하지 말고 원칙을 중심삼고 대하라

이렇게 여러분이 찾아 나가게 되면 무슨 일을 대하든 벌써 마음이 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나 물건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내 마음과 뜻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데 있어서 일체가 되어야만 3점이 되어서 본래의 동기, 즉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일치되는 사위기대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하여 그 물건이 나와 주체와 대상의 결과에 부합된다는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결과가 거두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대상의 물건으로서 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선의 결과를 내 주위에 많이 놔두면 놔둘수록 나 자체에 있어서는 재창조 과정의 자리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요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면 설수록, 그런 생활을 하면 어떤 물건을 대해도 벌써 그 물건 자체에서 나에게 파장이 옵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원만한 마음으로, 사심을 떠나서 공명할 수 있는 음차와 같은 마음으로 그 물건을 심각하게 대하게 되면, 그것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감정이 우러납니다.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되느냐, 아니면 마이너스가 되느냐…. 이렇게 언제나 타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파장이 오지 않으면, 공적인 입장에서 사심을 떠나 가지고 마음을 둥근 다이얼과 같이 해 가지고 일이면 일, 물건이면 물건을 척 대했을 때 첫 인상이나 처음 들어오는 감정을 통해, 이것은 틀림없이 플러스된다 하는 느낌을 가지고 그 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무의미한 자리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진실된 입장에서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면 좋고 나쁜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가 감정한 것이 몇 퍼센트나 적중하느냐 하는 것을 생활 가운데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생활 가운데서 플러스된다고 느꼈던 첫 감정이 몇 퍼센트나 적중하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주시해야 됩니다. 그러한 생활태도를 점점 습관화시키면 열 가지 일 가운데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이렇게 점점 그 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걸 키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도가 높아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나쁘다 하는 것을, 좋지 않다 하는 것을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게 될 때는 그것은 뜻이 같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는 무의미하게 대하지 말고, 반드시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대해야 합니다. 사위기대 형태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체휼적인 감정을 어떻게 계발하느냐 하는 문제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장생활에서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물건은 공적인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 마이너스되는 사람입니다. 그 물건은 나라의 물건이요, 하나님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종이 한 장도 그렇게 허술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술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그 대가를 추구하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심정적인 체휼의 도를 넓히기 위한 조건물로서 찾기 위해 노력하고 생활적인 감정을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 생활권내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하면 대할수록 내가 대하는 그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같이했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은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생각없이 돌아다니다가 손해를 보고, 그 손해가 현재의 입장보다 막중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 타격을 받아 가지고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휼신앙의 개발을 위해서는 여러분이 언제나 물건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신앙길 전체가 걸려 넘어갈 수 있는 조건도 거기에서 성립된다는 거예요.

일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바느질을 한다 할 때, 거기에는 자기 남편을 위한 바느질이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바느질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원치 않는 사람을 위한 바느질도 있을 텐데 한결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혹은 삯바느질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받기 위해서,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저 아무렇게나 가지 수나 늘려 일하게 되면 반드시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일도 내 일과 같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옷과 같이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옷을 대할 때 '이것은 선한 물건이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체휼신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성을 들였는지 안 들였는지 대번에 감정해 낸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을 그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체휼신앙을 개발하는 생활

여러분이 방 안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벌써 느낌이 다 들어옵니다. 이 웃음이 어떤 웃음이냐? 하나님 앞에 플러스되는 웃음이냐, 마이너스되는 웃음이냐? 느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되어지는 주위의 모든 요건들은 무의미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를 개발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교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혼자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를 중심삼고 살게 되면 처음 보는 사람이든 안면이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아무렇게나 대하면 되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체휼적인 환경을 개발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사사건건에 있어 틀림없이 효과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꼈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앙생활이요,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사는 신앙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만일에 죽음길을 간다 하더라도 이 죽음이 뜻 앞에 합당한 죽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벌써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마이너스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길을 가더라도 그것이 모든 체휼적인 감정에 접해서 가는 길이라면 웬지 든든하고 희망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만일에 반대하는 함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것이 충격이 되고 자극이 되어 나 자체의 중심이 꺾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회로 더 폭발적인 힘이 작용하게 되고 선의의 투쟁의 힘이 솟구쳐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같이하는 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느낌을 가지고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권내에서 타락이 벌어지고, 생활권내에서 실패가 벌어지고, 생활권내에서 하나님 앞에 배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을 잘 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활동하면서 사사건건을 대하는 상대적 요건을 중심삼고 내가 발전도 할 수 있고 후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이 관계를 어떻게 잘 조정해서 하늘화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느냐 하는 것을 수시로 연구해야 됩니다.

물건을 대해서도 그렇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척 볼 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사람의 성질에 따라서 전부 다릅니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저 사람이 나보다 심정기준이 낮다 할 때는, 내 기준을 낮게 조정해서 상대를 대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타격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느낌으로써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금방 알아야 합니다. 첫인상에서 무슨 감이 오느냐, 마음의 안테나를 통하여 이 둥근 마음에 어떤 느낌이 오느냐, 내 선입감이 아니라 공정한 입장에서 잼대와 같은 마음에 무슨 느낌이 오느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지 말고 느낌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가야 됩니다. 주체 앞에 나는 대상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좋은 결과의 기준을 중심삼아서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이 주체의 소원이요, 상대인 우리 인간의 소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개체가 타진한 결과를 중심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척 보면서 첫번 느낌과 더불어 그 마음에 비춰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번 감이 '아하' 하고 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아하,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데 어떻게 좋으냐? 그것은 여러분이 점점 그러한 도수를 높여 가게 되면 한 번만 척 보아도 마음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것이 척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약혼을 해줄 때는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의 윤곽을 똑똑히 안 보려고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죽 돌아가며 봅니다. 어떤 느낌이 오는지 마음의 잼대로 쭉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이 둘이 어떠냐? 맞느냐, 안 맞느냐? 어떤 때는 쓱 보면 두 사람이 하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하나되는 느낌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천생배필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둘이 등을 집니다.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서로가 좋아하려고 관심을 갖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시일이 지나면 참 좋은 상대가 됩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느낌이 몇 퍼센트 적중하느냐? 그건 여러분이 생활과정을 분석해서 결과를 타진해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은 몇 퍼센트는 맞는다, 몇 퍼센트는 틀림없다 하는 이러한 내적인 인연을 여러분이 환경권 내에서 맺어 가지고 타진할 수 있는, 그러한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같이하고 계시는지 악이 같이하고 있는지 분석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런 신앙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키워 나가면 틀림없이 체휼되어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나설 때 기도를 안 해도 괜찮습니다. 첫 걸음을 내디딜 때, 이 길이 어떤 길이냐, 좋은 길이냐, 가면 하나님이 좋을 수 있는 길이냐, 섭섭한 길이냐…. 첫번에 느껴져 오는 감이, '아 이건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쁘다 할 때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환경적으로 체휼신앙에 대한 것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사람을 볼 때도 무심히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개의 정상적인 표정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분석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개의 정상적인 태도는 저런 태도다, 또 정상적인 말의 음색은 저런 것이다, 웃는 것도 정상적인 것은 저런 것이다, 고충도 안 느끼고 기쁨도 안 느끼는 보통 때의 정상적인 모습은 저런 것이다….

신앙자들이 지치는 이유

여러분이 앞으로 많은 사람을 대하게 될 때, 더우기 지도자가 되려면 그래요. 그 사람의 정상적인 기준과 비정상적인 기준, 다시 말하면 슬플 때의 기준과 기쁠 때의 기준을 가려야 합니다. 정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위로 올라갔을 때는 기쁜 것이요, 아래로 내려갔을 때는 슬픈 것이다. 이렇게 눈만 보고도 표정 하나만 보고도 금방 짐작해야 합니다. 벌써 말소리가 정상적인 때는 이렇고, 기쁠 때의 말소리는 저렇더라, 좋지 않을 때는 눈빛이 어떻더라 하는 것을 가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어조라든가 억양, 태도를 보고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배후에는 좋지 않은 무엇이 있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과 더불어 내가 감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둘이 만나러 가는 표정만 봐도 쓱 들어온다 이거야. 무슨 일이 있구만…. 아니나 달라. 이렇게 여러분이 쭉 감정한 것을 실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부합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부합되었다고 느껴질 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권내에서 내 감정이 하나님과 밀착되어 가지고 동화될 수 있느냐, 반대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예감을 통해 분석해 가지고 내 생활권내에 어떻게 좋은 결과를 많이 남겨 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앙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복잡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을 척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오늘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하고 앉아 있지만, 맥이 있구나 없구나 하는 감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그 감이 오고, 어떤 일이나 물건에 대한 감정도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내가 공명체와 같은 입장에 서서 이것이 파격적이냐, 아니면 순화적이냐, 즉 화합하기 위한 것이냐하는 것을 대번에 측정해야 됩니다. 또한 몇 퍼센트나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는 것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여러분이 개발하면 누구나 체휼신앙권내에 들어갈 수있습니다. 그런 것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전부 하늘에 끌려 다니다가 하늘이 떠나 버리면 지쳐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체휼신앙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승리적 결과, 즉 생활권내에서 신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결과를 타진시킬 수 있는 가치적 내용이, 내가 대하기 전보다 대하고 난 후에 더 좋은 결과로 찾아진다 할 때는 아무리 핍박이 와도 그냥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한 결과가 마이너스 될 때는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후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후퇴할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피해가 어떻겠습니까? 한 번 후퇴하고 난 다음에 그것을 바로잡기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한 번 실수하게 되면 그것을 보충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떨어질 수 있는, 즉 마이너스 될 수 있는 것은 생각조차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물건은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대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은혜받게 될 때는 사람을 많이 꺼리게 됩니다. 물건도 함부로 이것 저것 접하지 못하고 단조로운 것만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상적으로 욕심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은 절대 대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물건, 즉 무관심하게 대하던 물건들만 대하게 합니다. 대하게 되면 욕심이 앞서는 물건들은 절대 못 대하게 합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변명하려고 하는 말은 못하게 합니다.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 체험은 그렇게 해 놓고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영적인 체험은 못하더라도 생활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분석하는 도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단계에 이르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삼각적인 관계에서 직접적인 결과를 타진하는 놀음이 많이 벌어집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제 3의 일로서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계획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 체휼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력하게 되면 제 3점의 일로서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도, 척 느껴지는 느낌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생활권내에 있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체휼적인 감도를 넓혀 가라

그리고 여러분이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때는 절대 마이너스되어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아침에 나갈 때보다 기쁜 입장, 즉 플러스된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안에 불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마이너스되어 들어온다면 자기 아내든지 아들딸에게도 마이너스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선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입장에 서는 것은 선을 깎아내리는 입장이 되므로 이것은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지 못하고 서러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집을 나갔다 돌아올 때는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어려움을 탕감시켜 놓고 기쁨의 조건을 들고 들어와야 합니다. 만일 직장에서 분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집에 와서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풀든가, 아니면 다른 일로 대체해서 그 이상의 기쁨의 조건으로 탕감시켰다는 놀음을 해 놓고 집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술 같은 것이 일면의 보충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런 것을 보강할 수 있는 간접적 자기의 비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일부러 전신주에 이마를 부딪쳐서 그 아픈 것으로라도 탕감의 조건을 걸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탕감받는다는 회개의 기도를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줄 눈깔 사탕이라도 사 가지고 아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고 그 기쁨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혹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옛날에 자기가 좋아하던 봄 노래라든가 가을 노래를 불러서 오늘의 슬픈 감정을 넘어 옛날의 기쁘던 감정을 살려서 그걸 중심삼고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아내를 대하나 아들딸을 대하나 그런 기쁜 표정과 기쁜 마음으로 주고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상이 결정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까지 직장에서 타격받았던 슬픔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망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 전체를 중심삼고 이러한 생활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작전입니다. 하루를 무심코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을 대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이면 산을 보게 될 때도 그 산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창조성에 대한 느낌, 아름답다든가 신비스럽다는 느낌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 한 가치를 이렇게 고귀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렇게 훌륭한 상대적 물건을 지으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하나님 앞에 찬양을 돌려 드리게 될 때, 거기에서 충격적인 자극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완전히 주고받으면 하나되기 때문에 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떠나고 싶지가 않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뒹굴고 싶은, 애기와 같은 마음이 되고, 또 부모와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을 아무것도 아닌 자연을 보는 가운데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흘러가는 물을 중심삼고도 얼마든지 사색에 잠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휼적인 감도를 넓혀 가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느끼시던 기쁨까지도 공명해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이 아무 생각없이 기도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생활권내에서 이러한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체휼적인 감도를 어떻게 배양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를 대하게 되면 어떠한 표정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연구해 나가게 되면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 나가야 되겠다, 이렇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소화시키라

우리가 대하는 모든 만물은 교재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인 세계의 직접적인 감응이 아니면 간접적인 감응을 일으킬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 창조물은 하나님의 성상을 닮아난 것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는 간접적이나마 그 성상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에는 우리가 반드시 관계 맺을 수 있는 선의 요소, 내적인 성품이 있기 때문에 그 성품을 따라 움직여서 연결시키기 위한 생활을 넓혀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어떠한 일도 지장이 없고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우기 여러분은 탕감법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중심적인 존재가 되려면 공적인 입장에서 탕감시켜 놓는 환경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심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밑천을 많이 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밑천을 내주는 것은 손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려움을 당한다, 피해를 입었다 할 때에는 탕감법으로 소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함에 있어서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도 주지만 원수를 위해서 참되게 주니 이것이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사지에 가더라도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동기의 존재는 원수가 되었더라도 나는 공적인 입장에서 소화시키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서도 원수를 원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를 보다 양면적인 가치를 차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자리로 알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깊은 가치를 탐구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수난길이라 하더라도 그 수난길이 자기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걸리면 사지에 빠져 헤맬 수 있는 어떠한 사탄의 올무라 하더라도 그 올무와는 하등의 관계없는, 오히려 사탄이 원수시 할 수 있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사탄이 아무리 작용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것으로 화해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세계에 있더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분입니다. 어떠한 핍박,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들이 나 자체를 꺾어 버리고 망하게 하지는 못합니 다. 오히려 승리의 자료로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6천년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사탄이 아무리 반대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승리의 결과로 체득시키고 소화시켜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를 여러분이 관계지어 나가야 됩니다.

물건을 대할 때보다 사람을 대할 때 감정이 더 빠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말로 표현해야 되는데 말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행하지 못할 말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서로서로가 주고받는 자리에서 교류하고 서로서로가 주고받는 자리에서 하나의 공통목표를 추구해 나가게 될 때는, 반드시 실천될 것으로 알고 그렇게 느끼고 그것이 사실이 됐다 할 때는 그 두 사람 사이는 말하고 행한 그 결과가 있어서 서로 좋아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맺어진 친구는 같은 영계에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습니다. 친구를 잘 두면 그 친구가 높은 영계에 가게 될 때, 나도 그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나 그와 같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연이 맺어졌다면 그 친구가 간 영계를 나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가 나를 상대로 하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하게 되면 내 부족한 것을 보충시켜서 좋을 수 있는 주체 앞에 상대적 자리를 결정짓고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선생, 좋은 친구를 구하는 것입니다. 좋은 선생과 더불어 가까이하고 주고받아서 기뻐할 수 있는 기준만 되면, 그 선생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 선생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체휼적인 환경을 발전시켜 나가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동네에 들어가게 되면 개가 짖는데, 그 짖는 소리를 무심코 들으면 음색이 다 같아요. 그 멍멍 하는 소리는 마찬가지지만 영적인 분위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있다는 입장에서 들어 보면 그것이 천태만상으로 다르게 들립니다. 동네에서 짖는 그 개가 부잣집 개인지 가난뱅이 집 개인지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집의 개짖는 소리는 그른 기분이 납니다. 그렇지만 부잣집 개가 짖는 소리는 선하게 들려서 그 짖는 소리에 취하게 됩니다.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개가 짖으면 성이 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충격적이고 기분 나쁜 소리로 들려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박자가 맞는, 화음을 이룬 소리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쓱 가 보면 아니나 달라, 틀림없이 흥하는 부잣집 개입니다.

또, 아기들이 울어도 그 아기가 흥하는 집의 아기냐 아니냐 하는 것을 그러한 습관적인 입장에서 들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척 들어 보면 '아하, 저 아기는 어째서 우는 구나 ! 그게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온 느낌이 맞는지 확인해 보면서 체험을 하면 점점 적중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감도를 키워 나가야 됩니다.

선악은 생활 속에서 결정된다

선악이라는 것은 생각 가운데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선악이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결정되어집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러분의 관념 세계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무대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전차를 타고 사람들을 둘러보면 기분 나쁜 사람과 기분 좋은 사람을 대번에 압니다. 기분 나쁜 사람은 나보다 영력이 낮거든요. 그러나 기분 좋다는 사람은 그 상대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만일 영적인 체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쓱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동물도 자기가 죽고 사는 것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의 일생을 모르고 살겠어요? 전부다 사리사욕에 얽매여 가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사니까 그렇게 되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되면 알게 됩니다. 말을 하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이렇게 살게 되면 어떤 때는 설교도 아무 제목도 안 가지고 나와서 그냥 해보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공명체가 되어 말을 하게 되면 입이 움직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설교입니다. 저절로 제목이 떠오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서 말을 하다가 질문에 딱 부딪히게 되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이 들어옵니다. 빠르다는 거예요. 저 사람이 나를 깎아 먹으려고 하는지 어떤지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미국 가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어느 두 딸의 어머니가 찾아 왔어요. 아주 좋은 예물을 사 가지고 와서 '우리 딸이 좋아하는 동양에서 온 통일교회 선생님을 보러 왔습니다' 하는데 척 대하자 기분이 나빠요. 속이 뒤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서자마자 뭐냐고 하면서 들이 쏘았습니다. 아예 기분 나쁘게 들이 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어떻게 알고 그러느냐는 것입니다. '알기는 어떻게 알어 ? 당신 마음 보고 물어봐. 그런가, 안 그런가? 천벌이 내릴 거라구' 이 한마디에 때려잡은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를 분별하지 못하고는 하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틀림없다 하는 일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무엇이 있어야 앞으로 남이 모르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키워 나가느냐? 생활에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체휼적 신앙이 중요하기 때문에 체휼신앙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하고 관계되었던 사람을 절대 그냥 돌려보내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대하기 전보다 플러스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가 나를 공격하더라도 플러스됐다는 조건을 남겨라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장사해서 밑지지 않고 남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남긴다 이거야.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이 나를 이용해 먹으려다 목적이 틀어질 때는 내가 그 사람에게 빼앗겼던 것을 몽땅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게 될 때는 그 결과는 주체와 대상의 것이 되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내가 대상이 되게 되면 악한 사람에게 절대 지배를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배후에는 그를 후원하는 선조들의 선한 공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생활 가운데에서 배후를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첫번 느낌을 살펴 심령을 개발시키라

그렇기 때문에 하루의 생활을 그렇게 하고 대하는 일을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은 전부다 하늘이 실제 생활을 중심삼아 천국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재료로써 하나의 교재로써 나에게 접근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그것을 좋은 결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데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감, 그 첫번 느낌을 아버지 앞에 언제나 의논하고 공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하늘을 대할 수 있는 그런 기준만 되면 반드시 영파(靈波)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이것을 차차 통계적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키워서 '아! 내가 감정한 것이 몇 퍼센트 맞았다' 하는 자신을 가질 수 있기까지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체휼이 안 되면 내가 정성을 안 들이고 완전한 공명체가 못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안 들어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테나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안테나와 같은 입장에 서서 영계의 파장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계는 언제나 영적인 파장을 송신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내가 아들의 입장에서 하려는 데는 반드시 주체적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주체와 대상 앞에서 필요한 이중목적의 가치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첫번 느끼는 감을 통하여 분석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면 자연히 자기 스스로가 실제 생활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됩니다.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적인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아야만 이 험악한 세상에서 비로소 타락하지 않고 천국의 인격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신령의 역사를 통해서 은혜의 기준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영계에서 영인들이 협조해 주어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우리 인간은 생명체라든가 생령체를 갖게 되어 있습니다. 나 자체에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협조받지 않은 영력을 중심삼아 가지고 영의 작용을 계발만 해 놓으면 영인들이 지도해 주지 않아도 나 자체의 생령체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어느 기준만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서러워하실 때 나에게도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다가 떠나 보내는데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이 벌어진다 하게 되면,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제물의 길이 아니면 하나님이 긍휼히 보시는 길입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 놀음이 벌어져요. 그런 일을 실제로 느끼고 실제로 생활권내에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라야 체휼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을 항상 감별하면서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될래야 될 수 없고, 하늘의 법도에 어긋날래야 어긋날 수 없습니다. 그런 남자는 아무리 미인이 유혹하더라도 안 넘어갑니다. 거기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사람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자기의 이익을 중심삼고 판단하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양보하는 사람입니다. 양보는 무엇이냐 하면 내가 자꾸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가 하자는 대로 자꾸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꾸 따라가면 돌게 되고, 돌다 보면 나중에는 내가 그 자리를 점령하게 됩니다. 결국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온유겸손하고,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순종, 복종, 굴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만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전체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세계에 있어서는 자기를 부정하고 대신 상대방의 요구에 완전히 순응해 들어가는 작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나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한 하나의 작전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생활에서 감지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요즘은 그러지 않지만 옛날에는 그런 일을 많이 했어요. 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어떤 느낌이 오느냐 알아보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틀림없이 이렇다'고 생각이 될 때, 그것이 진짜 맞는지 안 맞는지 따라가면서 타진을 해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랬지요? '하고 물어 봅니다. 그것은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벌써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런 사람이지요?' 하고 물어 보면 '어떻게 알지요?' 하고 놀랍니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틀림없이 맞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저 방에 누가 있느냐, 좋은 일 하고 있느냐 나쁜 일 하고 있느냐, 좋은 사람이 살고 있느냐 나쁜 사람이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안테나를 점점점 높여서 그렇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인연을 따라 가지고 감별하는 감별사의 생활이 신앙자의 생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무심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여러분이 맨 처음 들어와서 느꼈던 그 인상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아서 좋아하던 기분과 지금 상태와의 차이를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대했을 때 벌써 마이너스가 되어 있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제는 내가 책임지고 키워 줄 수 있는 때가 지나갔습니다. 가을 절기가 되었는데 이제야 영양분을 날라다 주는 그런 놀음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서 되겠습니까? 그러나 봄이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봄은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줘도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을은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말라 들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나누어주면 둘 다 미완성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안수 기도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기도할 필요도 없이 말만 하면 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놀음을 안 합니다. 왜냐? 그것은 자체가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다른 일을 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했으면 실천해야

그렇기 때문에 체휼신앙이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기도를 했으면 실천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공약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공약이니 이것은 맹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했으면 반드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매일같이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한번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10년이고 20년이고 기도하는 자세로 만나기를 그리워하고 찾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가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아버지 앞에 선서하고 맹세했기 때문에 10년, 아니 일생 동안 그 일이 오기를 환영할 수 있는 자세로서 그 일을 어디서 만날까 찾는 사람은 기도한 것을 이루는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만 10년 하는 사람보다 한 번 찾아가는 사람이 지혜롭기 때문에 10년 돼서 찾았다 할 때는 그 사람은 이미 기도의 목적을 이룬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천이 문제입니다.

그 실천이 어디 있느냐 하면, 하늘나라의 하나님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권내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권내에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집니다. 생활권내에서 천국이 이루어지고 지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거동하는 여기에 플러스 세계와 마이너스 세계가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다 둥둥 떠서 뿌리 없는 부평초와 같습니다.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말을 하나 무엇을 하나, 이 삼각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위기대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창조목적이 무엇입니까? 사위기대 완성이지요? 사위기대는 어디나 통하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도 마음과 몸이 중심과 하나되어 일체를 이루어 가지고 붙들지 못하면 이것은 악입니다. 마음과 몸이 진정하게 붙들면 그것이 사위기대 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위기대가 목적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그 일과 일체되지 않으면 사위기대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감독이 있다고 해서, 누가 본다고 해서 일을 합니까? 천국과 지옥은 공중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삼대상 목적권을 중심삼고 창조원리 법도에 의해서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마이너스될 수 있는 사람인가, 플러스될 수 있는 사람인가…. 척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첫 인상만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선생님이 빠릅니다.

선생님이 수택리에서 260쌍, 5백명이 넘는 일본 사람들을 열 시간 이내에 전부다 상대를 맺어 주었습니다. 그럴 때는 안테나를 최고로 높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서 틀림없다 할 때는 천생배필이 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신앙이라는 것은 영계에서 협조해서 하는 것보다 생활권내에서 감정해 가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피해받지 않고 전진적인 신앙과정, 생활과정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발전한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면 틀림없기 때문에 그가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도만 하고 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가도 손해보기 때문에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적 신앙의 기반을 생활권내에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은 모든 생활에 있어서 당신과 더불어 대상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일생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 길이길이 아버님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가는 길을 온전히 아버님 뜻 가운데서 이루어 영광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부디 이와 같은 체휼적인 신앙의 중요성을 느끼는 생활을 계발하고,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내정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은사가 저희들의 생활 가운데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 저녁에는 마포교회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버님을 모셔 놓고, 서로의 마음이 아버지 앞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까이 나아가 아버지의 품안에 품기려는 소망을 가지고 나왔사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모인 개개인의 사정과 심정은 다를지라도 생명을 지닌 가치의 내용을 스스로 알고 있는 같은 형제들이옵기에, 이 귀한 설명을 아버지 앞에 귀의 시키고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서의 가치를 찾기 위하여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험악한 이 땅 위에서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저희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하늘 앞에 부족한 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가야 할 길을 가고자 하는 진정한 참의 모습으로서 아버지를 모시고 싶은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가 아버지 뜻 앞에 보장받지 못할 자신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찾아오는 당신의 섭리의 뜻 앞에 저희들이 어찌 겸손히 엎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 아버지의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저희 일신에 머물러야만 되겠습니다. 당신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어서 저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쓴 뿌리를 몽땅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아버님의 긍휼의 사랑을 바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부복하였사오니 악은 악대로 처단하시고 선은 선대로 키우시옵소서.

당신이 계실 수 있는 하나의 개인과 당신이 계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과 당신이 계실 수 있는 하나의 씨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당신이 소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개인을 흠모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자비의 손길을 펴시어 부족한 저희들을 어루만져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고아와 같은 생애노정에서 지친 무리들이기 때문에 하늘의 참다운 사랑의 손길을 고대하고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앞에 나올 적마다 포근함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고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으로써 이자리를 흠모하고 나온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 개체 개체의 마음을 살피시옵소서. 뭇사람들이 하나의 참된 형상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선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랫동안 만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만나지 못하였던 저희들에게 사정을 털어 놓고 서로서로 만날 수 있게 이 자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아버지의 각별한 은사를 베푸시사 이 만남이 인간만으로 인연되는 만남이 아니라 아버님이 중개가 되시고 저희 중심에 좌정하시어서, 저희가 하나의 인연을 갖출 수 있게 하시옵고, 의인을 따라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내일의 무한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거룩한 행각이 여기에서 벌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이 어린 사람의 마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의 마음이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순종하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솔직이 다 내보여야 되겠습니다. 좋으면 좋다고 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전후 좌우에 거리낄 것 없이 아버지 앞에 몽땅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긍휼의 마음과 생명의 인연이 여기에 연결되어 개개인을 재부활시킬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엄중하신 생명의 판결을 내리시는 아버지시여, 생사화복의 주권을 좌우하시는 아버지의 권한으로 죄악을 물리치시옵고 선의 기세를 넓히시어서, 스스로 해방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린 자녀들과 더불어 허락하신 시간을 갖고자 하오니, 아버지, 친히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악이 틈타지 말게 하시고 선만이 저희들과 인연맺게 하시어서, 아버지가 그리워하고 사모하던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서로서로 의지하고, 서로서로 하나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첫 시간부터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앞에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내가 여기 왔다 간 지가 일년이 넘었나요? 안 넘었지요? 「반년 됐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자주 못 온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에 이렇게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기 처음 오신 분도 계시리라고 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말씀드릴 것은 칠판에 써 놓은 것과 같이 '참된 사람들'이란 제목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크다면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을 중심삼고 보나 전체를 중심삼고 보나 자기를 존중시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좋고 나쁘고 슬프고 기쁜 이런 모든 사연들을 말하게 될 때에 제 3자를 중심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좋다고 할때 그 중심이 누구냐하면 자기인 것입니다. 혹은 슬프다고 할 때도 그 중심이 누구냐 하면 어디까지나 자기라는 것입니다. 그 자기라는 것이 언제나 주체가 되어 가지고 자기 일생에 있어서 행불행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자기'라는 위치가 올바른 자리에 섰다면 좋겠지만, 올바르지 못하고 그릇된 자리에 서서 좋고 나쁘다고 한다면 그 일생은 비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참된 자리라면, 하늘이 있고 혹은 땅이 있고 역사적인 어떤 선(善)이 있어 가지고 악을 비판할 수 있고 참되지 않은 것을 제거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할진대, 그 힘은 참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참되지 못한 것은 제거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요, 자기를 중심삼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좋고 나쁘다 하는 판가리를 하는 입장에 있게 될 때는, 참을 옹호할 수 있는 우주적인 어떤 힘은 자기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적이요 상충적인 힘으로써 작용할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다고 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좋다고 하는 그 자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자리냐, 그렇지 않으면 나쁜 자리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하루를 사는 데 있어서 모든 사람이 일상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이러한 일은 그러할 때는 좋은 것이고, 저러할 때는 나쁜 것이다' 하고 막연하게 판단하는 입장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막연한 주체성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위치에 있다 이겁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사회단체면 사회단체도 반드시 어떠한 중심을 중심삼고 관계된 환경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사회단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놓고 볼 때 국가의 한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삼천리 반도 전역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은 너나할것없이 어떤 지역이면 지역, 어떤 환경이면 환경에서 그 위치와 처해 있는 입장을 반드시 설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이 남쪽이냐 서쪽이냐 혹은 동쪽이냐 북쪽이냐 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중앙이면 중앙을 중심삼고 어떠한 거리에 위치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반드시 설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자기가 주체와 관계를 맺게 될 때에, 그 관계가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있고 사방이 공인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자체를 두고 볼 때도 나 자체가 중심적인 입장에서 하루하루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있어서 좋고 나쁜 것, 혹은 선하고 악한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 어떤 참된 중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 중심에 대하여 내가 어떤 방향과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좋고 나쁜 것을 판가리해야 하느냐?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참사람의 표준

자기가 국가를 대신한 중심적인 입장에서 참된 모습으로서 주체성을 가졌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대한민국에 있어서 과연 참된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수많은 나라들은 지나온 역사가 다르고 형성된 문화와 환경이 다르지만, 각각 그 나라들의 환경을 중심삼고 그 나라의 어떤 주권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권자가 그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그 나라의 참된 중심이 되느냐 할 때 그것도 그렇게 우리가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듯 개개 국가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한 주권자를 참된 중심 존재라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전세계를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중심삼고 참된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현재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 혹은 어떤 학문적인 일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진정한 의미의 참된 사람이냐 할 때 이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어서 참된 인생으로서 이것이 옳은 것이다, 그른 것이다 하는 하나의 표준적이고 중심적이고 가치적인 존재는 어떤 존재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어떠한 학교의 학생들이 있다면 그 학생들 가운데서 제일 참된 학생이 누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학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학교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학교에서 현재 가장 참되다고 하는 학생이 과거도 대표할 수 있느냐? 현재의 수많은 학교의 학생들 가운데 으뜸가는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수많은 학생들 앞에 있어서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참된 사람이라고 공인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사람이 과거를 대표할 수 있느냐, 현재를 대표할 수 있느냐, 미래를 대표할 수 있느냐 하는 등등의 문제가 연결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참된 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 하루를 중심삼고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주체라는 것은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에도 변함이 없고, 미래와 연결되는 데 있어서도 상충이나 가로막히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참된 존재는 오늘 현실을 대표해서도 참이 되어야 하고, 미래를 대표해서도 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미래라는 것은 시간적인 한계를 넘어 무한한 세계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이 참되다고 하는 것은 어디에 표준을 두고 하는 말이겠느냐? 그 자체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 수십억 인류 가운데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한 주권자가 있고, 일본이면 일본, 미국이면 미국, 독일이면 독일을 중심삼고 주권자들이 있습니다. 그 주권자들 가운데 수십억 인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참된 주권자는 누구일 것이냐? 주권자라는 것은 그 나라의 민족성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그 나라가 지나온 역사과정,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풍습과 환경에 따라서 주권자의 입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주권자가 제창하는 정책이라든가 사상적인 방향이 역사발전과 더불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진적인 발전현상을 우리는 역사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박대통령을 중심삼고 볼 때도 박대통령이 역사과정에 있어서 점진적인 발전 과정에 있는 것이지, 전체를 대표한 어떤 고착된 입장에 있어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미국의 대통령 닉슨을 중심삼고 볼 때 닉슨 대통령도 역시 발전하는 사회형편에 따라서 그 풍습과 환경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 정책은 어디까지나 변천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입장에 있음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가 참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과연 그가 역사를 대표하고 이 세계의 30억 인류를 대표하고 미래의 수천억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해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양심의 가책이 없으면 누구에게나 떳떳한 자세를 갖게 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 ' 하며 당당코 그 환경 있어서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을 부정하면 부정하는 그 여건과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입장에서 주장하는 그 자리가 과연 역사가 보장하고 시대가 보장하고 미래가 입증할 수 있는 참된 자리냐? 이런 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보면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 기분하고 낮 기분하고 저녁 기분하고 밤 기분하고 사람 자체는 마찬가지인데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태양이 아침에 동녘에서 솟아오르게 될 때 그 광명한 빛을 바라보는 기분은 저녁에 석양을 바라보던 기분과는 다릅니다. 그때의 내 마음과 내 모든 감정은 그 태양과 더불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내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 감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낮이면 낮을 중심삼고 다르고, 저녁이면 저녁을 중심삼고 다르고, 밤이면 밤을 중심삼고 다릅니다. 또 보통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하고 명승지에 가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혹은 산꼭대기에서 느끼는 감정, 산골짜기에서 느끼는 감정, 평지에서 느끼는 감정, 광야에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하고 좋고 나쁜 것을 판가리할 수 있는 주체성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와 그 뿌리는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늘의 이 시대에 산다고 해서 갑자기 비약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역사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과거로부터 역사성을 지니고 오늘 현재의 자기라는 존재가 형성된 것입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여기에는 반드시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인연의 세계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반드시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됩니다. 또,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친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친척이라는 인연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넓혀 가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씨족이 되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고, 또 더 넓혀 가면 세계가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주장한다는 것은 그러한 인연을 부정하고 그러한 관계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연과 관계된 석상에서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그 주장하는 표준이 달라지고, 국가적인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표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선악에 대한 관도 그 입장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왜정 때에 일본에서 공산당은 용허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정당을 갖고 백주에 공산당을 선전할 수 있는 자유환경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느냐? 공산당 자체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일본 민족이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때의 정치적인 방향이라든가 환경이 달라지면 그 결과에 미쳐지는 내용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학창시절에는 공산주의자하고 친구였습니다. 일본 천황 유일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에 있어서 공동 목표 아래 공동전선을 펴나갔습니다. 그때는 그들이 친구 중의 친구요, 없어서는 안 될 동지 중의 동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갈라졌느냐? 그들과 우리가 대하는 방향과 목적이 상반되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일생 동안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는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났다. 아무 문중의 아들딸로 태어나서 남부럽지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양심적으로 볼 때 가책받을 아무런 내용이 없다. 이렇게 살면 옳지 않으냐'라고 판단한다고 합시다.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은 그때의 환경적인 인연과 내용을 중심삼고 말할 뿐이지 전체의 환경 적인 내용과는 관계없는 자리에서 말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루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좋다 나쁘다 하는 말을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나는 이것으로 만족이다. 이 이상 더 좋은 것은 원치 않는다' 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다다. 이것만으로 나는 그만이다'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보다 좀더 가치있는 것, 좀더 행복스러운 것, 좀더 귀한 것, 좀더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지닌 것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데는 자기의 생활권내에서, 집안에서, 사소한 살림살이에서, 아내와 자식과 사는 그런 관계에서 찾지를 않아요. 안목을 크게 가지고 대한민국적으로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그것을 찾지 않은 사람보다 그 시대에 있어서 뭇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중심이 될 수 있고, 뭇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중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찾지는 못했지만 찾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나은 자리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느낀 바와 자기 나름대로의 아는 바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환경 앞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 생활을 살펴보면 현재의 입장에서 행복해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확대시켜 가지고 세계적으로 행복해하려고 합니다. 더우기나 요즈음 세계적인 정세가 우리의 생활권내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20분 남짓한 시간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직접 우리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에 우리가 살아 나가야 할 인생행로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을 위주한 내용을 가지고 '좋다'고 확정한다면 이건 세계적인 축에도 못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때가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적이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부흥을 중심삼고 중진국을 표준해서 나가고 있으니까 1975년도를 넘어설 때는 중진국이 될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진국이 결정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중진국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거예요.

진정한 행복

역사는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 개인의 소신이 일치되어 가지고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가정 가정의 주장이 서로 일치될 때는 씨족을 중싱삼은 하나의 공동사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씨족 씨족 끼리 서로 주장한 내용이 같게 될 때는 서로 규합해 가지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 민족이 주장하는 것이 전부다 다르게 될 때는 세계를 표준해 가지고 인류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대한민국이 주장하는 것이 제일이다. 딴 나라가 주장하는 것은 모두 나쁘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이 보다 가치 있는 상대 나라와 합하게 되면 더 큰 가치가 나올 것이거늘, 이 둘이 합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만 위주한 주장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주장하는 것이 공동목적으로서 보다 나을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게 될 때, 그 둘이 합하면 합하기 전보다도 손해가 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합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하루의 생활을 통해서 친구를 대한다든가, 혹은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사건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그와 관계를 맺는다고 할 때는 서로서로의 목적이 일치되는 기점에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는 기쁘고 자기는 슬픈 자리에서 맺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우리의 개인생활은 서로가 공동목적의 표준이 현실의 자기 입장보다도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하는 내용만 발견되면 갈라질래도 갈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어떤 개인이 행복하다고 했을 때, 그 행복이 그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행복이라면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갑이라는 어떤 특정한 사람을 중심삼고 '행복하다'고 한다면, 즉 전부를 부정하고 나만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들한테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그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내용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높은 위치에 있지만 모두에게 가망이 있는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너만 그럴 것이 아니라 만민이 전부다 그럴 수 있다. 네가 가는 길을 따라가게 될 때는 너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사람이나, 서쪽에 있는 사람이나, 남쪽에 있는 사람이나, 북쪽에 있는 사람이나 전부다 행복할 수 있다' 하게 될 때는 그 사람이 주장하지 않아도 그를 중심삼고 자동적으로 전부다 하나되려고 하는 거예요.

천태만상인 사람의 생각

선한 것이 무엇이고 악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알 게 뭐야? 그런 말은 종교인들이나 하는 말이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오늘 저녁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도 마찬가지지 뭐 여느 목사가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예수장이들, 뭐 믿는다는 패들 다 공식적으로 하는 말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인간에게 과연 선이 필요하냐? 왜 선만 필요하고 악은 필요하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생활습성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그것을 물어 볼 필요가 뭐 있느냐? 물어 보는 사람이 좀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저 상을 찡그리고 '아이구, 나 죽는다'고 하면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그런 것을 좋아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웃고 노래하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손들지 말라고 해도 들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째서 우는 것은 나쁘고 웃는 것은 좋으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천태만상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은 괜히 가을날 찬바람이 불어와 스산할 때, 앞뜰의 감나무에 감이 누렇게 익어 있고 잎사귀가 누렇게 단풍이 들어 있어서 울었는데, 찬바람이 불어 감나무 잎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면 그 감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눈물 흘린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슬퍼하는 사람하고 속이 상해 가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매를 맞았다든가 무슨 걱정이 있어서 눈물을 흘리는 그 눈물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 같지 않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시적(詩的)인 감정이 풍부해 가지고 인간에게 감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인생의 처량함을 생각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인생이 저렇게 한 끝에 가면 낙엽처럼 떨어지겠구나' 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눈물짓는 사람하고 자기 고집을 부리다가 남편에게 매를 맞아 아프다고 울고 있는 사람하고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우는 데에도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거 부인들 대해서 이런 이야기 해서 안됐소만 눈물은 부인들이 잘 흘리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남자들, 좋아하지 마세요. 부인들 중에는 남편한테 매를 맞고 울면서 '이거 억울해서 죽겠다. 내가 이러기 위해서 시집을 왔느냐? 이놈의 남편, 며칠 못 가서 다리가 부러지고 망해 자빠지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이 이럴 수 있겠느냐? 오히려 당신 손이 아프지 않겠는가? 나는 그래도 괜찮지만, 당신이 날 이렇게 해 가지고 기쁠 게 뭐 있느냐? '고 하면서 남편을 위해 동정의 눈물을 홀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눈물 흘리는 데에도 종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일을 굶을 수밖에 없는 아주 처량하고 형편없고 불쌍한 가정이 있다고 합시다. 먹지 못하고 사흘간이나 굶고 사는 처지가 얼마나 불쌍해요? 여기에는 자기들이 불쌍한 것을 느끼고 사는 아들도 있을 것이고, 아버지도 있을 것이고, 어머니도 있을 것이고, 손자도 있을 것입니다. 열 식구라면 열 식구가 전부다 사흘씩 굶었으니 오죽하겠어요. 불행 중의 불행이라고 느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 가족들이 사흘만 굶으면 어떻게 된다는 어떤 소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끝장이 난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이런 자리에서는 기가 막힐 거라구요.

기가 막힐 것이지만 여기에도 눈물의 가락이 식구마다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수양을 많이 쌓은 할아버지는 '내가 80여년의 생애를 사는 동안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몰랐는데 이렇게 3일 동안 밥을 못 먹는 자리에 처해 보니 인생에 이러한 골짜기도 있구나. 이야! 참 좋은 교훈을 내가 체험했다'고 하면서 그런 자리에서도 멋진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저놈의 영감, 정신이 나갔어. 먹을 것이 없어 죽겠는데 가만히 들어앉아서 무슨 공상하노? '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식구들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겁니다.

이것을 열 사람을 딱 벌려 놓으면 거기에는 세계적인 정상이 다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것은 한가지인데 그 내적인 깊이와 모양과 사정은 열 사람 모두 다르다 이겁니다.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전부다 눈물을 흘리고 탄식과 절망 가운데서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통곡해야 할 사정이지만, 어떤 사람은 도리어 거기에서 인생의 깊은 골짜기의 맛, 인정의 깊은 인연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찬스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회에서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정서적인 흐름이 여기에서 뿌리를 박을 수 있는 단 한 번밖에 없는 귀한 찬스로 소화시킬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런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 못살겠다고 몸부림치고 그것을 저주와 원망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이 웃고 사는 데만 있느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일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나는 모르겠다' 하면서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인생은 덧없지만 이런 생활 가운데서 보람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것을 찾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할 때, 여러분은 두말할 것 없이 전부다 후자처럼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게 이상하지요. 그걸 보면 기분 나쁩니다.

자기가 지금 처해 있는 딱한 사정으로 볼 때는 기분 나쁜 거라구요. 당장에 죽을 지경이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될 텐데 거기엔 관심 없는 사람처럼 딴청을 부리니,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그 어떤 것이 그래도 나쁜 것들 가운데서 한 발자국이라도 참에 가까우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는 천태 만상의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표창받은 사람들 종류를 한번 통계 내 보세요. 국가에서 표창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대개 그들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삼천만 민중이 전부다 '나도 가겠다. 나도 가겠다. 그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표창받을 대상이 못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다 표창받게요? 표창이라는 것은 단 한 사람, 일등한 자에게 주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표창받을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국가를 배반하고, 누구나 다 민족을 배반하고 나라고 뭣이고 안중에 둘 수 없는 절망상태의 환경에 떨어졌을 때, 다 도망가고 다 배반하고 다 싫다고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중심적인 지조를 갖고 충신의 도리를 심으려 하고, 애국정신을 심으려고 하는 사람, 거기에서 자기의 몸이 찢기고 어떠한 환난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는 사람에게 표창을 주는 것입니다.

다 도망을 가고 없어졌지만 거기에서 남아 가지고 '나만 남았구만. 내가 일등 상 타겠구만'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남아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국가에서 표창을 받겠지' 하는 욕심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붙어 있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상을 타서 뭘해요. 상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붙어 있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가려 내 가지고 여기에 없어지지 않을 하나의 민족정신을 남겨 놓아야 되겠다'고 하면서 자기 생명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고, 자기 생명보다도 더 질긴 인내력을 갖고 사지를 고수한 결과 그 실천한 내용이 대중 앞에서 공인받을 수 있는 실적으로 나타나게 될 때는 자기가 싫다고 도망을 가더라도 수상자로 추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상자로 추대받게 되는 그 동기와 내용들은 비참한 거라구요. 너와 내가 좋아서 희희낙낙하면서 웃고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과 고독이 자기를 침범하고 자기 생명을 노리는 위험한 자리에서 그 환경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확립시킨 사람이라면 그는 그 국가를 대표한 충신이면 충신의 이름이 남을 것이고, 국가에서 표창 대상자로 선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생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충신은 평시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충신은 초비상상태에, 국가 운명이 경각에 봉착해 가지고 너나할것없이 전부다 책임을 질 수 없는 환경에서, 역사적인 절박한 내용을 내포한 것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책임지고 나서려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아무리 미래 과거 현실이 악한 세상이라도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대표적 충신으로 남아지는 것이요, 미래세계의 충신들을 통솔할 수 있는 중심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국가에서는 충신들을 중심삼고 제 1의 충신, 제 2의 충신, 제 3의 충신, 제 4의 충신…. 이렇게 순번을 매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표준을 세워서 그보다 나으냐 못하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등급을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행복이 웃고 사는 데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현생활에 있어서 인간 자체로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곤궁에 사로잡혀 있다 하더라도 그 곤궁을 보람 있게 개척하고 생명을 투입하여 거기에서 남이 지니지 못하는 보람 있는 가치를 갖고 나선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일로써 보다 차원 높게 수습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상이라든가 모든 주의(主義)는 그러한 기반 위에서 형성되어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을 수 있는 그 사상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보다 나은 사회환경, 중심 자리에 서 가지고 보다 잘먹고 잘사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사회환경의 복판에 있지만 보다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서 비참한 내용을 소화시킬 수 있고, 비참한 내용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태한 사회를 혁신하고 미래에 있어서 차원 높은 세계로 혁명을 제시할 수 있었던 동기는 보다 나쁜 자리에서 출발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태어난 성현치고 그 나라와 민족 앞에 환영받은 성현이 없습니다. 그런 성현은 가짜 성현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과 좋은 것

여러분이 출세를 하는 데 있어서 '그 동네에서 유명해질 것이냐, 나라에서 유명해질 것이냐' 하고 물어 보면 그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이 '나라에서 유명해져야지' 한다는 것입니다. 또 '나라에서 유명해질 것이냐,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냐'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 가운데는 잘난 양반들도 계시겠지만 못난 양반들도 계실 것입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헤쳐 보게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다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안 갖고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구요.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기분 나쁜 사람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사람이 기분 나쁘겠으면 나쁘고 말겠으면 말고…. (웃음) 그것을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지요?

아마 코를 흘리는 아이한테도 '너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래, 세계 대통령이 될래? ' 하고 물어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집어치우고 세계 대통령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보고, '이 녀석아, 대한민국 대통령한테는 인사도 하지 않고 세계 대통령한테 가려고 그래? 그러면 매국노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물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물이 아무리 세차게 흐른다 하더라도 반석의 모서리를 한순간에 닳게 할 수는 없습니다. 천년을 계속해서 물이 흐르고 흘러서 닳고 닳아 가지고 동그래질지는 모르지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흘러가는 물과 반석 중에 어느 것이 되겠느냐고 묻게 될때, 반석이 되겠다고 하지 흘러가는 물이 되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반석이 왜 좋으냐? 요동이 없고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귀하고 좋은 것은 어떤 것이냐? 한번 좋았으면 그것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영속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참된 행복인 것입니다. 오늘 좋다가 내일 안 좋으면 뭘 해요?

강도들이 남의 생명을 노리면서 금은 보화를 탈취해 가지고 며칠 동안은 좋았지만 그 다음에는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아요? 안 좋은 것입니다. 한번 좋은 것은 영원히 좋은 것으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보다도 내일에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가중돼야 합니다. 금년보다도 내년이 60년대보다도 70년대가, 70년대보다도 80년대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느끼고 산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여러분은 행복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이것을 하면 좋겠다' 했을 때 그것을 했다면, '아, 좋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목적을 이루었을 때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지극히 주의해야 됩니다. 목적을 이루었을 때 그것이 목적으로 끝나게 되면 그 사람은 벌써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었지만 그 목적보다도 더 고차적인 목적을 세워 놓고 그것을 향해 '야, 또 간다' 할 수 있는 터전에 서야 합니다. 제 1차 목적은 훈련적인 목적으로 소화시켜 가지고 그것을 하나의 재료로 삼아 내일의 제 2차적인 목적을 향해서 달려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피곤함을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1차적인 목적만 딱 계획해 가지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그 다음은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부패하는 이유도 그거라구요. 권력을 잡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을 끝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민족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민족이 못 됩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은 무서운 민족입니다. 2천년 동안 그 민족은 세계에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니 자기 나라라는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나라도 없고 민족도 없지만, 나라를 잃어버린 개인이요 민족을 잃어버린 개인이지만, 그 개인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나라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상이냐? 자기들이 선민이라고 하는 사상입니다. 이게 무서운 사상이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이다.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신이 있는데 이 절대적인 신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있다. 이러한 시련 고통을 주는 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시련시켜 가지고 역사적인 최후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사상인 것입니다.

참의 본질

우리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이 '탕감'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제일 위대한 말입니다. 죽을 자리에 가서도 '탕감이다' 기쁜 자리에 갈 때도 '탕감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기쁜 자리에서도 혼자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쁠 때는 제사를 드려야 되는 거라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그 민족은 '우주의 중심 되시는 절대자는 계신다. 아무리 히틀러가 유대인의 생명을 노린다 할지라도 하늘은 반드시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남더라도 그 축복은 옮겨갈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다 죽고 한 사람만 남아도 그 민족은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다 죽고 한 사람만 남게 되더라도 그 나라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흩어졌던 죽고 남은 무리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가 소원하던 그곳으로 가자' 할 때 그 나라는 다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이겠어요?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의 나라입니다. 만민을 지도할 수 있는 주체국으로서, 태평왕국을 창설하는 그 민족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시련보다 더 큰 시련이 있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3백여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이 1억에 가까운 아랍권내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렸다고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재기시킬 수 있고 민족을 재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적인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떤 민족이나 어떤 국가가 지닌 사상보다도 우위에 선 주체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세 사람이 단결하고 또 그 수가 가중되게 될 때는 그들의 움직임이 세계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러면 과거에 겪은 그 시련과 고통이 불행이었더냐? 아닙니다. 그 불행이 미래의 행복을 소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예요.

이러한 점에서 참사람을 찾아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참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참사람 되겠다고 하는 생각이 처음부터 출발했느냐, 중간쯤에서 출발했느냐, 맨 나중에 출발했느냐? 그것을 찾아 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참사람이 되겠다고 하기 전에 먼저 참사람을 찾아 보자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참사람이 누구냐를 찾는 데에는 오늘에서만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역사의 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람을 찾을 때는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참사람은 누구였더냐, 오늘날의 참사람은 누구냐, 그리고 미래의 참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겠느냐? 그것을 모르고 미래의 참사람이 될 수 있겠어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참사람이라고 주장해도 그 사람은 참사람이 못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참사람은 이래야 된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달라지거나 환경적인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동대문에서 참이던 것이 서대문에 가면 참이 아니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대문 시장과 서대문 시장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변하는 물건은 참 물건이 아닙니다. 동대문에 가도 그것이요, 서대문에 가도 그것이요, 서울에 가도 그것이요, 산골에 가도 그것이 변함이 없어야 됩니다. 사람들이 금도 순금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금 좋아하지요? 황금덩이 좋아하지요? 금 중에도 순금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왜 순금을 좋아하느냐? 그것은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초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 초월적인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슬픈 사람이 보아도 그 빛이요, 기쁜 사람이 보아도 그 빛이라는 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그 속성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우선 변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물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조 다이아몬드하고 진짜 다이아몬드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인조 다이아몬드가 티도 없고 금도 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장에는 인조 다이아몬드가 더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변색이 될 수 있고 형태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다이아몬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의 여건에 지배를 받지 않는 초윌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의 본질을 타진하게 될 때, 우선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참이라는 것은, 아무리 참이라고 해도 그것이 한 일년쯤 가다가 없어지면 뭘 합니까? 참의 본질 가운데는 반드시 불변성과 더불어 영원성이 있어야 됩니다. 불변성도 있어야 되지만 영원성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유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만이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주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모든 비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순금을 표준으로 가짜 금에 순금이 몇 퍼센트 있다고 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만이 지니고 있는 자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원기(原器)라는 것은 불란서의 만국미터법동맹도량형국에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계 수많은 국가가 길이나 거리를 측정하는 어떤 도구를 만들어 가지고 자기네 것이 좋다고 아무리 큰소리쳐도 그것을 미터 원기로 감정했을때 몇천 분의 일, 몇만 분의 일 틀려도 그게 가짜예요, 진짜예요? 몇억만 분의 일 틀려도 그것은 가짜라는 거예요. 그쯤이야 괜찮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엄격히 따지면 몇억만 분의 일 아니라 몇 수십억만 분의 일 틀려도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참된 인간이 있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대한민국에도 위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위인으로 누구를 쳐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지금까지 전통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충신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누구를 위인으로 쳐요? 「이순신요」 그건 다 알고 있구만. 혹시 이씨가 많아서 이순신이라고 한 것 아니예요? 거 대답한 사람이 이씨라면 기분 나쁩니다. (웃음) 그래 이순신이면 다예요?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어쩌려고 저래? '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참사람은 못 된다구요. 위인은 되지만 참사람은 못 됩니다. 왜 참 사람이 못 되느냐? 참이라는 것은 지역적인 한계를 초월해야 됩니다.

위인, 성인, 참사람

이순신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는 충신이지만, 일본을 중심삼고는 뭐예요? 역적, 원수라는 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일본의 맨 졸장부라도 이순신만 잡는 날에는 일본 민족 앞에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은 위인은 되지만 성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전부다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저 아무래도 좋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길을 건너가려면 건너갈 길을 가려 가지고 한 발자국씩 건너가야 하고,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하나 둘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다 가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추대할 만한 애국자이지만 성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성인과 위인은 다릅니다. 참사람이라면 지역적인 환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참사람이라면 일본에서도 참사람이라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에서 명장은 될는지 모르지만 그건 한 가닥이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명장의 권위를 가진 위인의 입장에 설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본연의 인간, 참된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불합격자라는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은 우리가 표준으로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은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성인이 크냐, 위인이 크냐 하면 성인이 크지요? 그건 알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성인 될래요, 위인 될래요? '하고 물어 보게 될 때 위인 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인이 되지'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려면 몇십 년 전부터 위인 명패를 따두고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위인 사촌 축에도 못 들어 가지고는 '성인이 되지. 그걸 물어 볼 필요가 뭐 있어? '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 그것 알아야 돼요. 성인은 민족을 초월합니다. 세계적이지 않고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 성인의 마음 가운데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의 꿈이 있다면 그는 독재자는 될는지 모르지만 성인은 못 됩니다. 그런 유의 사람은 독재자입니다. 여러분, 파시즘 잘 알지요? 그것은 자기 일개 민족을 중심삼고 그 민족의 욕망을 세계화시키려고 칼을 휘두르고 별의별 짓을 다 하다가 나가자빠진 그런 역사적인 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히틀러 같은 사람은 게르만 민족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조상을 따져 보면 그 조상이 백정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독재자는 될는지 모르지만 성인은 못 됩니다.

성인이 어떠한 사람이냐? 성인은 세계적입니다. 국가를 초월한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가치와 세계의 가치를 그리면서 자기의 생명을 심고 간 사람이 아니고는 성인이 못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성인은 세계적입니다. 그런데 위인은 일국에서 환영받는 무리입니다. 위인의 죽음길에는 민족의 눈물이 연결되어 민족 전체가 따라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길은 민족도 배반했더라 이겁니다. 저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전체가 욕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나라를 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민족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민족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몰렸고, 만민의 행복을 소개할 수 있는 중심존재이지만 행복의 터전을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갖지 못하여 이슬같이 살다 갔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더 고귀한 성인의 자리에 접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인은 그 국가의 국민들이 반이라도 동정할 수 있는 눈물의 길을 남기면서 죽어갈 수 있으되, 성인은 그런 길을 못 간 사람들이에요. 그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더벅머리 총각은 30세가 되어도 장가도 못 가고 돌아다니다가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역사적인 원수인 로마 병정들, 그때 당시 식민지 국가로서 흡혈귀마냥 자기 민족의 피를 빨아먹던 원수 중의 원수 로마의 졸장들, 자기의 가슴을 창으로 찌르고 생명을 노린 그런 원수들을 대해 죽으면서까지 '아버지여, 저들이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게 미친 수작 한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로마 나라를 초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로마 나라든 무슨 나라든 그 표준을 넘어선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고 있는 인격 형성과 국가 형성을 초월한 자리에 당당하게 섰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그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고, 내가 태어난 것은 그 나라를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 나라의 절개를 지닌 충신이요, 그러한 한 사람의 책임자로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현재는 망하더라도, 아무리 주위에서 똥감태기 씌운다 하더라도 순수한 금빛, 순금 빛은 변할소냐? 지금 이 악한 환경에서 빛은 안 나지만 그것이 그런 환경에 싸여서 그렇게 보일 뿐이지, 언젠가는 만천하에 빛날 수 있는 순색을 보여 줄 때가 올 것이다' 하고 늠름히 생각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밟고 넘어가던 멋진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세계를 제패하고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게 된 것을 여러분은 잘 알지요? 그의 사상은 민족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일개 민족의 성공을 중심삼고 나오던 위인들의 주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성인의 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의 도리요, 우리 인간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도 있을 텐데 실례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대개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나는 내 신념으로 살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도 그런 신념을 가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똑똑하다면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있었던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왜 하필 종교 책임자가 되었느냐? 통일교회 문아무개 하면 말은 많이 들었을 거예요. 보기는 처음 보지만. 내가 바로 문 아무개입니다. (웃음) 나에 대해 기분 좋지 않은 말도 많이 들었지요? 사람들이 '문 아무개는 기분 좋지 않은 사람이야' 하며 색안경을 쓰고 보는데 과거를 생각해 보더라도 나는 부끄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아니면 내가 그렇게 되었느냐?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만든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사람은 흥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악한 것은 망하는 것이요, 선한 것은 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똥감태기 안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순수하고 천하의 역사가 공증할 수 있는 참된 자리에 섰을 때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쇠고랑을 차고 갈 때, 지나가는 행인 여자들까지도 곁눈질을 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보고 '오냐, 너희들이 걷는 그 걸음걸이는 거룩해 보이고 여기 이 사나이는 불쌍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비교 기준이 안 나왔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됐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드러나게 될 때는 옳고 그른 것이 판결난다' 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과히 좋지 않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도 기분 나쁘다구요. 여러분만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나도 기분이 나쁘다 이겁니다. 혹자는 '모두 잘사는 세상에서 뭐 욕먹고 살 필요가 있어'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 아주머니들, 내가 통일교회 여자들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어요. 내가 무슨 편지 한 통을 했나, 전화 한 통을 했나? 어디 비밀리에 만나자고 말이라도 한번 해보고 욕먹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웃음)

왜 선생님이 욕을 먹었느냐 하면 말예요, 여자들이 밤중이나 새벽에 남편과 가장 재미 있을 시간에 예배 보러 간다고 보따리 싸니까 이것이 싫다는 겁니다. 여러분, 꿀맛은 밤에도 좋고 낮에도 좋지요? 꿀맛을 본 사람에게 '야, 낮에만 가지 밤에도 가느냐' 한다면 그 사람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꿀맛을 못 봤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구요. (웃음) 요것을 싹 맛만 들여 놓으면 혓바닥이 감쳐 들어갈 것 같은데 맛만 보다가 돌아가서 자려니 잠이 안 오거든요? 그러니까 할수없이 자다 말고 눈을 번쩍 뜨고 그대로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남편도 눈에 안 보이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남편들이 문선생한테 홀딱 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선생한테 홀딱 반할 게 뭐예요? (웃음)

모든 것은 사필귀정

봄이 되면 형편없이 말랐던 풀에서도 회생의 기운이 돕니다. 그렇지 않아요? 봄볕이 내려 쬐게 되면 땅에서는 거기에 화동하여 발아합니다. 땅은 솟아오르고 하늘은 낮아져 천지의 조화 이치로 인해 가지고 잠들었던 생명이 발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싹이 나고 생태변화가 벌어지는 겁니다. 내적으로 운동을 하고 외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주니까 크는 겁니다. 커지면 껍데기를 터치고 나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아주머니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껍데기가 되어 있으면 남편을 터치고 나가려 하고, 집안이 껍데기가 되어 있으면 집안을 터치고 나가려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인생의 봄을 못 봐서 그렇지 인생의 봄만 보게 된다면 가을을 찾아갈 사람 어디 있겠느냐 말입니다. 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지 말래도 와 가지고 지금까지 욕을 먹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욕을 먹었습니다. 팔자가 사나와서 별의별 꼴을 다 봤구만요.

여자들이 머리를 박박 깎여서 오질 않나, 밤송이처럼 깎여져 가지고 오질 않나. 이렇게 와 가지고는 훌쩍훌쩍 우는 걸 보면 꼴사나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또, 다리가 부러져 가지고 오질 않나, 머리가 깨져 가지고 오질 않나, 벌거벗긴채 쫓겨나서 오질 않나. 세상에 별의별 꼴을 다 봤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안 만들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니, '좋다. 일이 그렇게 됐으니 내가 책임지겠다'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사필귀정이라고 했습니다. 참과 거짓은 반드시 부딪치게 됩니다. 한 번 부딪치고, 두 번 부딪치고, 세 번 부딪치고, 네 번 부딪치고….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짓은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저 때려부수려고 하는데 부수려고 하면 할수록 참은 철옹성같이 단결하는 것입니다. 쇠도 그렇습니다. 쇠를 불에 달구어 두들기면 가짜는 다 떨어져 나가지만 진짜는 남아서 다져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그 놀음을 했습니다. 3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별의별 수난을 다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아직까지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듣고 기분 나빠서 반기를 들겠으면 죽을 각오를 하고 반기를 드십시오. 그러지 않으려면 아예 그만두라는 겁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벌써 죽을 각오를 몇백 번 몇천 번 한 사람이기 때문에 뭐 시시하게 해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건 이미 진 거라구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구요. 기분 나쁘겠지만. (웃음) 사람은 만나면 사정이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정입니다.

여기 기성교회 다니는 양반이 있다면 내가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실례긴 실례입니다만, 그들이 나보고 하는 말이 '통일교회 문선생, 당신은 대관절 뭐야? 당신 그래도 되는 거야? ' 또, 인상을 보고는 '야, 저 사람은 천사장 같아 가지고 전부 싫어하겠군' 하는데 그거 그러지 말라 이겁니다. 기분 나쁘다구요. 쓱 앉아서 불만스런 얼굴을 해 가지고 왜들 그럽니까? 그렇게 앉아 있는 사람은 내가 척 보면 다 압니다. 안 그러는 척하고 있지만 속 마음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나는 많은 청중을 대해 보았고 지도해 보았기 때문에, 감추고 앉아 있어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 심통을 다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찔리게 만들면 나한테는 못 당합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지요? 그렇지요? 굳고 무른 것은 부딪쳐 봐야 되는 거라구요. 악하고 선한 것은 부딪쳐서 결판을 가려 보아야 아는 겁니다. 오늘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죽으라고 별의별 놀음을 하지만 통일교회는 만만히 죽지 않는단 말입니다. 나를 대해서도 죽으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영계에서 '아무개 목사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니 좀 들어 봐라'고 라디오 소리처럼 들려 줍니다. 들어 보면 참 거룩한 기도를 많이 한다는 목사님이…. (웃음)

그런 경우를 당할 때는 내가 그렇게 지독히도 나쁜 사람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늘나라 옥좌 앞에 가더라도 나는 당당하게 하나님을 공격할 자신이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을 이렇게 고생시키시오. 절대자라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인간을 도탄 중에 넣고 신음하게 하고 이러한 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를 왜 두셨소' 하고 큰소리칠 수 있는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지금은 모르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아침인지 낮인지 밤인지, 막대기인지 쇠꼬챙이인지, 모르니까 쥐고 휘둘러치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자기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방패로 알고 있는데 그것마저 위협당해 빼앗길것 같으니까 안 빼앗기겠다고 눈을 감고 들이치는 겁니다. 그러니 그 눈에 장인 장모를 어떻게 알아볼 것이며, 사돈의 팔촌 그 누구를 헤아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핍박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자라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예요.

보다 가치 있는 것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도 참된 사람, 참된 종교인들로서 결합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제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모두 믿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기술자는 그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일는지 모르지만 인간 전체를 대표한 중심적 가치를 두고 비교해 볼 때, 그는 중심이 될 수 없다 이겁니다. 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분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여 그래도 참에 가까운 사람을 헤아려 보면, 위인은 참된 사람이 못 됩니다. 성인은 그래도 차원이 높아서 참된 사람 축에 참여시킬 만합니다. 왜? 그 사람들의 주장은 세계적이기 때문입니다. 잘살되 자기만 잘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부가 같이 잘살자, 행복하되 전체가 행복하자는 것입니다. 전체가 행복하자는 데 있어서도 자기는 가만히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면 그때 살짝 들어가서 행복하겠다는 사람이 아닙니다. 피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행복하게 되는 데 자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그 목적에 투입시켜 가지고 생사결단 하고 간 사람들이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보세요. 성인 가운데 소크라테스가 성인 축에 들어가요? 어때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소크라테스는 철인은 되지만 성인은 못 됩니다. 그는 지식과 지혜의 왕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의 왕자는 못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과 생명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지식에는 유물론을 가지고 생명의 가치 유무를 주장하는데 그 주장은 지나가는 거예요. 심판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은 지식을 중심삼고 사람을 전부다 재지요? 대학교 총장이면 제일이지 하는 식입니다. 대학교 총장이 생명의 제일이에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지식의 비중을 중심삼고 인간을 재는 세계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귀한 것이냐?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제일 귀합니다. 생명이 위협받게 될 때가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불행한 자리에서 해방될 때가 가장 즐거운 것입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이 좌우하느냐? 여러분, 지식이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어요? 그건 팔부 사람입니다. 행복의 주축은 무엇 가지고? 생명 갖고 좌우하는 거예요. 생명이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가치가 나라와 민족을 넘고 세계 인류를 넘게 되면, 그 사람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인치고 박사 아닌 사람 없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성인은 박사라는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양반들은 사람 때문에 죽었지, 지식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 틀림없지요? 나라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구요. 아무 나라를 걸고 죽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을 걸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참된 인간을 걸고 죽는데, 참된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죽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생명을 걸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그게 다릅니다.

여러분들, 제일 위협적인 말은 죽여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놈의 자식, 죽여 버린다'고 그러지요? 그거 알기는 아는 거라구요. '요 녀석, 옷을 빼앗아 버린다'고는 아무리 얘기해도 괜찮지만 죽인다고 하면 심각하지요? 80세의 할머니도 죽는다고 하면 '나야 이제 곧 죽을 나이니까 괜찮아' 하지만 심각하다는 거예요. 제일 심각한 것이 무엇이냐? 지식 보따리예요? 천 개 만 개가 빵꾸가 나건, 흘러가든, 그건 문제시하지 않지만 생명 하나만은 절대시합니다.

성인의 도리는 신을 중심삼은 도리

성인은 무엇을 가지고 터치(touch)했느냐? 성인이 터치한 그 내용은 지식이 아닙니다. 보다 가치 있는 생명, 보다 보람 있는 생명을 중심삼고, 그 생명이 국가적이 아니라 세계적인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초환경적인 생명의 가치를 그리면서 그것을 실천하고, 그 주위 환경 속에서 그 생명이 뒤넘이치면서 세계적인 국가를 바라며 죽어 갔다면 그는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가요. 오늘날의 사조는 무엇이 움직이느냐? 철학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철학은 생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철학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근원적인 입장은 못 되는 겁니다. 생명의 대상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지식의 기원은 되지만, 생명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체는 못됩니다. 그러므로 철학은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철학자가 아닙니다. 성인들은 분석해 볼 때, 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살았느냐? 무슨 전법을 가지고 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식을 가르쳐 주기야 했지요. 인생의 도리의 일면을 가르쳐 주긴 했지만, 그것을 무엇을 중심삼고 가르쳐 주었느냐? 세상을 점령하기 위한 전략적인 것을 가르쳐 준 것이냐? 이들이 가르친 내용은 달라요. 전부 다르다는 겁니다.

지식은 알면 알수록 점령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서구철학이라는 것은 점령적인 철학입니다. 알면 알수록 점령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자기를 넘어 가지고 그 판도를 세계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자기를 중심삼고?

세계를 위하는 길을 따라 나간다고는 하지만 누구를 중심삼느냐 하면 어디까지나 자기 자체를 중심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는 반드시 유물사상에 결집되어 버리고 맙니다. 자기가 중심이다 이겁니다. 철학은 인생의 생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상적인 가치에는 속할는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결정 요인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엇을 추구했느냐?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탐구하되 평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만이 아니라 양면적인 면에서 탐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반드시 무엇이 중심이 되어 있느냐? 자기가 중심이 안 되어 있어요. 알겠어요. 그런데 철학은 무엇이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학(學)이돼 그 학을 주장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인은 주장하되 주장하는 그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달라요.

철학이라는 것은 주장한 사람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마르크스주의면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주동적인 역할을 하는 거라구요. 그 사상권내에 전부다 융합시키기 위해서 세계로 발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누구냐 하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은 환경적인 내용을 결속시키는 데 있어서 내재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 오늘날의 철학사조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성인의 도리는 그렇지 않아요. 성인의 도리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 아니라 신(神)입니다. 이것이 다른 겁니다. 따라서 신을 소개하지 못한 사람은 성인의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는 겁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보면 막연하지만 무엇을 중심삼고 가르쳤느냐? 천(天)을 중심삼고 가르쳤습니다.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 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 즉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이에 보답하고,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이에 보답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공자 중심이에요, 하늘 중심이에요? 「하늘 중심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철인은 어떤 사람이냐? 구별해야 되겠지요? 철인은 자기를 중심삼고 뭘 알라, 인간의 오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본체론이니 인식론이니 하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인간을 중심삼고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한계점을 못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런 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일시에 넘어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치고 신을 소개하지 않는 성인이 없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보면 거기에는 철학적인 근거도 있지만 막연하나마 천(天)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이 아니예요. 구체적인 시대에 구체적인 신의 섭리를 추구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지나가게 됩니다.

석가도 막연하나마 천학(天學)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소개했지요. 마호메트교는 종합 종교예요. 그것도 역시 하늘을 중심삼고, 신을 중심삼고 나온 거예요. 예수님도 역시 신을 중심삼고 나온다는 거예요. 그의 가르침은 신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게 달라요. 중심이 인륜이 아니예요. 천륜을 위주로 해 가지고 도를 펴려고 나왔다는 거예요. 그 가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천을 중심삼고 가르쳐 나오면 성인이 되는데, 그 성인의 도리는 무엇을 따르려고 하느냐? 인의의 도리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의의 도리를 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절대적인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바라는 뜻이 무엇일 것이냐? 대한민국만 구하는 것이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대한민국만이 아니다 이거예요. 자그마치 그 뜻은 세계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가르침은 세계적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종교인은 하늘을, 천륜을 중심삼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륜과 천륜이 있습니다. 인륜 도덕이란 문제는 중요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제 2차 경제개발계획이니 뭐니 이래 가지고 거기에만 치중하고 있는데, 물질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여기에는 인륜이 있으면 인정이 있고 천륜이 있으면 천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행복은 정서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행복이 정서적인 분야를 떠나서 있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행복이란 상대적 여건을 존중하는 자리에서만 벌어지는 것이므로 홀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 나는 백만장자이므로 홀로 있어도 행복하다'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반드시 정서적 입장을 논의할 수 있는 상대 요건이 필요합니다. 내가 천하를 얻더라도, 아무리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더라도 반드시 상대적인 요건을 중심삼고 정서적인 감정이 통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닌 게 있더라도 거기에 정서적인 내용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 도덕에도 정서적인 문제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인륜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인정의 내용을 샅샅이 느끼고 감지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인륜의 근본이라는 것은 인정이 아닙니다. 인정이 근본이 아닙니다. 인정이라는 정(情)의 뿌리는 사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어떤 동기에서 벌어진 거예요. 그 동기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결과입니다. 그 동기가 무엇이냐 하면 하늘입니다. 천륜이 인륜의 동기가 되고 천정(天情)이 인정(人情)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정에 대해 가르쳐 준 성인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중심삼고 정서적인 문제를 가르쳐 준 내용 여하에 따라 성인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남자가 있으면 반드시 누가 있어야 돼요? 행복한 집안에 주인 양반이 있으면 누가 있어야 돼요? 주인 마나님이 있어야 됩니다.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있어야 됩니다」 그건 절대적입니다. 주인 양반 부부가 있으면 또 누가 있어야 돼요? 아들딸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인륜을 중심삼은 도덕 관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도덕 관념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의 인연을 맺어가는 데 있어서 도덕 관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어떤 영감 부부가 있으면 '우리 둘이 정답게 만났으니 우리 둘이 정답게 살다가 죽으면 돼' 그래요?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는다면 자기 재산을 생각하며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며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들딸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있어야 됩니다」 몇 명쯤 있어야 되겠어요? '뭐 아들딸 많이 낳아서 뭘 해. 아들도 하나 딸도 하나면 되지'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많기를 바래요? 나무에 가지가 많은 것이 좋아요, 적은 것이 좋아요? 「많은 것이 좋습니다」 좋은 재목을 구하려고 하는데 가지가 적은 나무에서 좋은 재목이 나와요? 가지가 많을수록 그 확률이 커지는 거라구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못사니까 할수없이 아들딸 적게 낳자고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천지간에 꽉 찼다면 아들딸을 많이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산아제한하는 것도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러지 먹을 것이 남아 가지고 개한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는 입장만 되어 보라는 거예요. 여기 안경 낀 영감님은 아들 하나 갖고 싶어요, 백 명을 갖고 싶어요? 백명의 아들이 다 대학교 총장 되어도 싫어요? 백 명의 자식을 다 공부 못 시키니까 할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구요. 자, 그러면 국민이 많은 게 좋아요, 적은 게 좋아요?

요즈음 중공을 왜 세계가 무서워해요? 인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밥을 굶고 있지만 식구가 많으면 그 동네 부자집 영감도 무시하지 못하는 거라구요. 내기를 하는 데도 한 번 하는 것보다도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번 하는 것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많아지지 않느냐 이거에요. 그런 관점에서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돈도 적은 것이 좋아요? 많은 것이 좋지. 학문도 많은 것이 좋아요, 적은 것이 좋아요? 많은 것이 좋지요. 자기편도 많은 게 좋아요, 적은 게 좋아요? 많은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도 많은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통일교회 처녀 총각들은 축복받고 자녀를 낳게 되면 한다스 이상 낳으십시오. (웃음) 전도 안 하고도 자꾸 낳아 가지고 대한민국 국민보다 많아지게 되면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먹혀 들지 별수 있어요? 간단하다구요.

우리 교회 식구와 결혼하게 되면 전부다 우리편이 되는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3천만이고 우리가 3천 백만이라면 일대일로 결혼해도 우리 패가 많다는 것입니다. 투표를 해도 우리편에서 대통령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낳아야 되는 거예요. (웃음) 그것은 결국 무슨 말이냐 하면 많은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을 중심삼고 볼 때 인정이라는 것은 혼자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정이라는 것은 전후, 좌우, 상하 동료도 많아야 되고, 풍부한 정서적인 터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한 것입니다.

천정(天情)을 가르쳐 준 예수

그러면 인륜만 가지고 되느냐? 인정만 가지고 되느냐? 안 됩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천륜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천정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왔다 갔던 성인들 가운데서 천정을 가르쳐 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분은 인정은 다 집어치우고 천정만 논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대 총각 때까지 목수의 조수였습니다. 그러니까 뭐 옷이라도 여러분들같이 양복을 입었겠어요? 양복이 다 뭐예요? 그저 베로 만든 유대나라 옷을 뒤집어쓰고 다녔다구요. 그것을 잘 감고 다녀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라도 불면 속이 다 보이게 됩니다. 그런 총각 신세였습니다. 여러분이 잘 몰라서 그렇지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귀엽게 기른 줄 알아요? 의붓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랐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붓 아버지 밑에서 목수의 조수 노릇을 하면서 형편없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30세까지 장가를 못 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은 아주 배포가 컸습니다. 생각을 많이 한 양반이라구요. '내가 출세를 하면 어떻게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답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의 사위가 되지 않으면 아들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근사하지요? 여러분도 할수없어서 그렇지, 현재 박대통령 중심삼아 가지고 그의 조카 사위만 되어도 야단할 것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를 중심삼고 정서적으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서고자 하는 것이 그 나라 백성들의 욕망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예수님도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천지에서 제일 훌륭한 분이 있으면 그분을 딴 사람에게 양보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참의 기원

아까 하던 이야기 되돌아가서 한번 더 해 보자구요. 여기에 늙은 양반 하고 젊은 양반 둘이 앉아서 서로 자기가 참사람이라며 입씨름을 한다고 합시다. 우리 인간들의 입장으로 봐서는 같은 값이라면 나이 많은 사람을 참사람으로 추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된 사람의 얼굴을 하루라도 더 보기를 원하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은 하루라도 더 빨리 죽으니까 곤란하다고 조건을 걸게 될 때는 젊은 사람이 얼마든지 추대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을 해도 젊은 사람이 더 오래 많은 일을 할 테니까 젊은 사람을 추대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둘 가운데서 한 사람을 빼내야 합니다. 만일 젊은 사람을 추대하게 된다면 나이 많은 사람은 '저 녀석은 나보다 나이가 20년이나 아래인데 이거 뭐 이래' 한다는 것입니다. 또, 나이 많은 사람이 추대되면 젊은 사람들은 '저 늙은이, 걸러 먹을 대로 다 걸러 먹고 껍데기만 남아 가지고 이제 갈 데도 없으면서 저거 뭐 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자기가 낫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와 오는데 여당 야당이 서로 잘났다고 하지요? 그러면 누가 더 잘났어요? 서로 잘났다는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잘났다고 판정을 하면 그것이 진짜 판정이에요, 가짜 판정이에요? 심각한 문제라는 겁니다. 만일 인간들 끼리끼리 잘났다는 사람을 결정하게 되면 최고라고 결정된 사람 다음 사람이 불평을 한다는 겁니다. '뭐 키로 보나 수완으로 보나 나보다 못하다'고 불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파당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인간끼리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끝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국이 벌어질 거라구요.

그러면 이것을 누가 결정하느냐? 잘났다고 하는 두 사람끼리도 결정하지 못하는데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끼리는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끼리끼리의 결정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보다도 월등하고 초월적인 입장에 있어 가지고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그 앞에 순응할 수 있고, 그 환경을 공인할 수 있고 공증할 수 있는 어떤 주체자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주체자의 판정을 바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주체자가 누구일 것이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 외에는 등장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적인 신이라는 면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신이 감정하여서 판정하여 세워 놓으면 그것은 절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부터 인간세상에 있어서 새로운 질서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질서를 못 잡는다는 것이 우리의 이론 추구에 대한 결론입니다.

만일 절대자가 있고 절대자가 옳다고 판정한 사람이 있다면, 인간은 절대자를 따라갈 것이냐, 절대자가 옳다고 판정한 사람을 따라갈 것이냐? 여러분은 누구를 따라갈래요? 대답해 보세요.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절대자를 따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서는 사람을 넘어서 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바라고 있는 최고의 행복을 그려 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언제나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 신(神)입니다. 신(神)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고 신(神)만이 우리의 행복의 요건을 가져올 수 있으니, 신을 중심으로 삼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종교사상이 떠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위주해 가지고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참이라는 것은 사람을 위주해 가지고 출발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참이 출발해야 되느냐? 절대적인 신으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절대적인 신을 위주하고 천륜을 위주하여 인륜의 내용을 제시한 천정과 인정이 상봉할 수 있는 결합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우리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우리 인간이 기뻐하는 것은 천의에 일치되기 때문입니다―그것을 찾아서 상봉하게 될 때, 인간의 행복이자 하나님의 행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의와 인의가 합하고, 천륜과 인륜이 합하고, 천정과 인정이 합할 때만이 모든 것이 결정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종교를 중심삼고 절대적인 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성인은 신을 소개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를 소개하지 않았어요. 신을 뒤로 하고 인간이 앞에 나와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신을 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절대자는 이렇다' 하고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들 가운데 누가 신(神)을 제일 정확하게 파헤쳤느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예수님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참 잘 결론지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절대자 앞에 최고로 가 머무를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절대적 신 앞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당신은 아버지요, 나는 아들이다'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예수님의 그 한마디는 인류를 대표한 선각지권을 가지고 설파한 내용입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요' 할 때, 저쪽에서 '오냐 !' 할 수 있게 된다면 천하는 다 해결됩니다. 절대자가 자기의 장인만 되어도 천하가 왔다갔다할 텐데 아들이라는 겁니다.

아들의 특권은 뭐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을 수 있어요? 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칼날이든 권세든 그 무엇을 가지고도 아들의 인연은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녀석은 내 아들이 아니야' 하는 그날부터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아픔이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권세가 있고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자식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을 수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힘도, 하나님도 못 끊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설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했습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뭐냐 하면 정서적인 인연에 있어서는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천륜과 천정의 내용이 이 한마디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천륜을 통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부자의 관계요, 천정을 통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부자의 사랑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를 맺고 살려고 생명을 버리고 갔기 때문에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민주세계는 기독교 문화권내에 부식(扶植)되어 가지고 그 터전에서 앞으로 새로운 세계는 연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으로 연결되어 나가지요?

여러분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사위가 되겠느냐, 아들이 되겠느냐? ' 하고 묻게 된다면 아들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또, '세계 대통령의 사위가 되겠느냐. 양자가 되겠느냐?'하고 물어 보떤 양(養)자가 붙어도 사위보다도 양자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아들이 되겠느냐고 물어 보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거라구요. 사람의 마음은 최고점을 바라고 있습니다. 전부다 세계에서 일등이 되려고 하고 하늘땅을 자기 것 만들려는 욕심을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소질을 다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이 열 분, 백 분이라도 다 집어넣고도 남을 만큼 큽니다. 이렇게 멋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여자들은 하나님의 딸이 되겠어요,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겠어요? 「딸이 되겠습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하나님의 딸이라면 틀림없지요? 눈이 애꾸눈이라도 딸이라면 할 수 없는 거라구요. 잘생기고 못생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딸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고,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밖에 없으면 외톨이가 되므로 거기서는 나라가 나올 수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남자만 택해 가지고는 세계가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남자 혼자만 있으면 백년 이내에 죽어 버리면 그만이거든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딸을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라고 했습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수 있는 독생자가 되어,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중심삼고 악한 세상을 분별시켜 여기에 일치될 수 있는 딸을 한 사람 구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계적입니다. 째째하지 않다는 겁니다. 세계적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무대를 이끌어 가지고 하나의 신부를 택해 역사이래 전무후무한 세계적인 대잔치를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들과 며느리를 중심삼고 잔치를 할 수 있는 그날이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날이요. 타락한 인간들이 찾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재림사상이라구요. 어린양 잔치 입니다. 어린양 잔치가 뭔지 알아요? 신랑 신부 잔치라는 거예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신랑 신부도 되지만 나는 형이고 너희는 동생이라는 거예요. 형제다 이겁니다. 결국은 신과 인간이 합작을 하여야 이상적인 가정의 기반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주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한 사람이 참사람

그러면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람은 단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점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니까 하나님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면 절대자는 못 되지만 상대적 절대자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남자 하나님은 못 되어도 여자 하나님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웃음)

하나님이 절대자라고 하지만 하나님 자신도 별수 있어요? 아무리 높다 해도 혼자서 재미있겠어요? 혼자서는 재미없는 거라구요. 천하를 다 가졌다 한들 혼자 '허허' 웃는 다면 그걸 정상적이라고 하겠어요? 하나님이 어떻다고 그러겠어요? 돌았다고 하겠어요, 미쳤다고 하겠어요? 돌았거나 미쳤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돌긴 돌고 미치긴 미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일등 가는 대통령이 방에 혼자 앉아 가지고 아무도 없는데 웃는다면 뭐라고 해요? 돌았다고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치만 요만한 종이 한 장을 들여다보고 히히한다면 안 돈 것입니다. 상대가 있으면 무한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상대가 없으면 아무런 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가 필요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상대가 누구냐 하면 인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상대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그저 보기만 하겠다는 것이냐? 보고 뭘 하자는 것이냐?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살면 어떻게 사느냐? 싸우며 살자는 것이냐?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나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 이래 하나님을 완전히 점령한 사람입니다. 공자, 석가, 예수님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을 점령하려고 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점령은 못했습니다. 내용을 발표하려고는 했지만 실천은 못했습니다. 실천을 해서 '이렇다' 할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완전히 점령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을 점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속에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 완전히 점령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인정과 천정을 자기 일신에서 결속시켜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끼리 참된 사람이라고 판정한 그 사람을 따라간다면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그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위인이 될 것이냐, 성인이 될 것이냐 하게 될 때, 여러분, 성인이 될래요, 위인이 될래요? 「성인이요」 그럼 예수님이 뜻을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 공자가 뜻을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 석가가 뜻을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 모두다 이렇게 된다고 소망을 걸었지만 다 못 이루었다 이겁니다. 이들이 뜻을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 그 종착점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결해야 되는데 그런 자리를 찾았느냐 하면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찾기 위해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보다도 못해야 되는 거예요, 나아야 되는 거예요? 만일 예수님이 밀알을 심고 그 거두어지는 밀알을 바라보며 너는 나보다 못생겨서 됐다고 했다면 그 예수님도 망해야 된다 이겁니다. 찌꺼기 밀알 하나를 뿌렸어도 거두게 될 때는 완전한 결실로서 거두기를 바라는 것이 밀알을 뿌린 사람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번창시켜 놨으면, 기독교를 통해서 되어지는 그 결과인 사람들이 예수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대한민국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또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내 나라같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될 때, 이는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하다는 겁니다.

생활 속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은 유대 나라를 통해서 로마를 향해 뜻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과정에서 죽어갔습니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무대가 되어 민주세계의 생활권내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좋다는 내용이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세계는 한품에 안길 수 있는 시대상이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세계를 품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오색 인종을 초월하고 모든 국경과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초윌하여 새로운 문화세계 창건, 다시 말하면 현재 발전하고 있는 과정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최고의 문화, 결과적인 문화를 바라보면서 하늘땅이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최고의 기준을 중심삼고 현재의 생활무대에서 그러한 이론적인 환경을 감미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먼 거리에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생활권내에서 직접 나와 동반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인정이자 천정이요 천정이자 인정으로, 종적 관계가 아니라 횡적인 관계에서 대등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살게 될 때, 비로소 여기에서 참된 인간이 결정되는 것이요, 참된 인간을 중심 삼고 가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종적 관계는 격위로 볼 때 상하 관계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잘나기를 바랍니까, 못나기를 바랍니까? 대답해 보세요.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자기보다 잘난 것을 기분 나빠합니까,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랍니까? 「잘나기를 바랍니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나이 많고 못생긴 아저씨가 아들을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아들이 그렇게 잘생기지도 않고 아버지와 비슷비슷한데 '그녀석 잘생겼구만, 아버지보다 백만 배 이상 잘생겼구만' 하고 말한다면 그 아버지는 괜히 좋아한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백만 분의 일만큼 못생겼다는 말이 아니예요? 그래도 그 아버지는 좋아 하거든요. 그 아들이 누구를 닮았겠어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의 아버지이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인간 대해서 '하나님보다 잘생겼구만' 하면 하나님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웃음) 나쁘다면 하나님은 인간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만 못해요. (웃음) 틀림없이 하나님도 좋아하실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잘나고 싶어요, 못나고 싶어요? 대답해 보세요. 「잘나고 싶어요」(웃음) 너무 그러면 실례가 되지요. 미안하지만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옛날 동양에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한테 문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내가 아버지 한번 되어 보고, 아버지가 나와 같이 한번 되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위에 있고 나는 언제나 아래에 있으란 말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상하관계가 좋긴 좋지만 언제나 그러면 싫다는 겁니다. 자기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때가 있으면 괜찮지만 말이에요. 언제나 아버지는 윗 자리, 아들은 아랫 자리이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안 들어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부자의 관계는 격위에 있어서 상하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자리 나 한번 주소. 아버지 자리에 한번 가 보고 싶소' 할 때, '야 이놈아, 안 된다' 하면 거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그것까지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어떤 자리에 세워 놓을 것이냐 하는 것이 하나님편에서 볼 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어떤 자리에 세워 놓으려고 했느냐 하면 격위에 있어서는 상하관계이지만 사는 데 있어서는 전후 관계요, 내외관계에 세워 놓으려 하셨습니다. 이런 문제를 추구해 들어가야 하나님이 어디에 계셔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곳에 모셔야 할 하나님

그러면 내외관계가 되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셔야 되느냐? 하나님은 무형의 신(神)인데 인간과 어떤 자리에 있어야 되느냐? 언제나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지요? 위에만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부자의 관계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제일 귀한 분이십니다. 한 분밖에 없는 귀한 분인데 이 귀한 분을 어디에다 감춰 둬야 되느냐? 보물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을 빼앗기면 세계가 왕창 무너질 만큼의 가치를 가졌다면, 그것을 어디에다 감춰 두면 좋겠어요? 금고에 넣어 놨다고 안심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 스파이 영화 같은 것을 가끔 보게 되면 금고를 파괴하고 그러지요? 그것도 훔쳐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만 빼앗아 가는 날에는 이 세계가 몽땅 왔다갔다하게 된다면 그건 문제없이 훔쳐간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된다면 그걸 자기 지갑에다 넣어 두겠나, 방에 두겠나…. 둘 데가 없어요. 땅에다 파묻어 둬도 또 누가 훔쳐가겠고, 그렇다고 자기 몸뚱이 뼛골 안에 집어넣거나 다리 안에 갖다 넣을 수도 없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면 잠잘 때 잘라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일 귀한 분이고 제일 좋은 분을 어디에다 건사할 것이냐?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고 내 눈에만 보이면 좋겠다' 요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했다면 그건 최고의 발견이예요. 그 길밖에 다른 길이 있겠어요? 보통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고 자기 눈에만 보이면 좋겠다는 것은 자기만이 알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디에다 건사할 것이냐 할 때에, 그 좋고 귀하신 분을 언제나 안고 다니고 싶고 갖고 다니고 싶지 떼어 두고 다니고 싶어요? 우리 아주머니들도 할수없어서 아기를 떼어 놓고 다니지, 마음은 늘 안고 다니고 싶지요? 사람들이 없으면 항상 볼에다 입을 대고 다니고 싶은 거라구요. 떼어 놓기 싫은 거라구요.

하물며 그렇게 귀한 하나님을 저 하늘 꼭대기에 모셔 놓고 보면 그거 좋겠어요? 싫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 몸뚱이에 지니고 다니고 싶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고 싶으냐 할 때,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나만이 알 수 있는 장소에 모시고 싶다 이겁니다. 그런 장소가 내 마음과 몸뚱이 가운데 있느냐 할 때,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 한복판에 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빼앗아 가겠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보이기를 잘했어요, 안 보이기를 잘했어요? (웃음) 안 보이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인다면 '저기에도 들어가 있구만, 아이구 저기도…' 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거라구요. 안 보이니까 가치가 있는 거라구요. 나만이 아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이 그걸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래부터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안 보이기를 잘했어요, 못했어요? (웃음) 안 보이길 잘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지금 하나님이 보이는 분으로 계신다면 어떻겠어요? 매일 도둑이 침범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미국과 소련이 땅덩어리 가지고 죽기 살기로 겨루고 있는데, 천지를 창조한 분이 떡 버티고 있다면 그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원자포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나님이 보였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평화를 위해서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못했어요, 잘했어요? 하나님은 그런 것을 다 알았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하고는 상하관계에 있지만 내외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누가 빼앗아 갈 수 있어요? 나를 죽여도 못 빼앗아 갑니다. 죽여도 마음은 남는 거라구요.

나이가 많은 80세 영감님도 그 마음은 16세의 젊은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장로도 그렇지요? 「예」 머리가 허옇게 된 노인들도 장가가게 된다면 열 다섯 살 처녀한테 장가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겁니다. 싫을 게 뭐예요? 마음은 다 그런 거지. 마음은 늙지 않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영영 청년이요, 영영 사춘기요, 영영 봄동산이요, 영영 희망에 벅찰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우리 인간의 마음에 있다 이겁니다.

마음은 큽니다. 마음은 대한민국을 잘살게 해주더라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 인류를 잘살게 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세계 인류를 잘살게 해주더라도 영계에 가면 옛날에 못살았던 사람까지도 잘살게 해주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터가 되려면 박자가 맞아야지요. 종도 종 노릇을 해먹으려면 눈치 코치가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런 박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예 하나님을 보려고 생각도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참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나만이 하나님과 연락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됐지요? 속삭일 수 있는 길은 있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 맛은 꿀맛과 같은 것입니다.

참된 사람과 천국 건설

여러분, 벌은 꿀맛만 보게 되면 말예요. 겨울에는 벌들이 잘해야 설탕물만 먹거든요. 그런데 해동기가 지나고 봄날에 꿀맛을 보게 되면 아무리 꽁무니를 잡아당겨도 안 떨어집니다. 곤충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죽자 사자 하는 판국에 누가 목을 잘라 간들 그거 알겠어요? 그런 멋진 길이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데는 셋이 아니고 단 둘이지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마음에 계시고, 나와는 내외관계라는 겁니다. 우리 몸뚱이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조상 아담 해와는 어떤 사람이냐? 몸뚱이를 쓴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몸뚱이를 쓴 하나님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적인 주인과 외적 주인 둘이 서로서로가 만사 일치되어 우주의 평화의 기준이 되고, 행복의 절대 안정기준이 되어 가지고 거기에서부터 천하의 행복을 전부다 저울질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해서 그렇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우리 인간 조상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로서, 실체를 쓴 하나님과 내적 하나님이 하나되어 서로서로 사랑하고 뜻이 일치한 자리에서 생활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마음의 세계로 돌아가는 겁니다.

죽는 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우리가 제한받는 세계가 아니라 무한한 활동무대를 상속받기 위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체(體)를 벗는 때가 죽는 때입니다. 요것만 죽지 않는다면 죽음의 공포는 문제없이 초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이 되어야 참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자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도주 가운데 여자가 있었어요? 없었지요? 그거 안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도주 중에 여자 도주도 나와야 됩니다. 남자 도주와 여자 도주가 나와서 서로 자기가 높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도주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이상세계요, 천하가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출발의 기원이 된다는 것만 알라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지 않습니다. 외짝이기 때문에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하고 기도합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거짓 부모를 가진 것이지요? 그렇지요? 여러분은 실수한 거짓 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올바로 되려면 참된 부모가 와서 다시 낳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혼자예요, 둘이에요? 「둘입니다」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하면 기독교인들도 할 수 없어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보다 가치 있는 길, 보다 이익이 되는 길이 있다면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누가 가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가라 말라 하지 않아도 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지금까지 50이 넘도록 이 놀음을 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누가 가라고 해서 가나요? 안가면 안 되기 때문에 가지요.

여러분도 알겠지만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가지고 하나님과 내외관계를 세워 안팎이 하나된 그런 자리에 선 사람입니다. '당신이자 나요, 나자 당신이다' 둘이 하나되게 될 때는 부부일심이라고 하지요? 내외일심이라고 하는 것은 사위기대가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 입장인 것입니다.

인륜과 천륜, 인정과 천정으로 결속된 참된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 땅위에 가정이 조성되게 될 때 참된 가정이 나오고, 그 참된 가정으로 말미암아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나오지요? 참된 개인만 나와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전부다 자기 혼자만 믿고 천당 가겠다고 생각하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으로 오는 거라구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거라구요. 예수님도 참된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낙원에 가있어요. 천국 못 들어갔다는 거예요.

본래 인간이 이와 같은 자리에 있어서 선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그냥 그대로 가정 전체가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지,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고, 아들은 지옥 가고, 딸은 천국 가면 그것이 무슨 천국이에요? 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하면, 이렇게 솔가(率家)해 가지고 가정뿐만 아니라 법도에 일치될 수 있는 민족과 국가 전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날 그런 나라가 이 땅 위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 나라도 아직 천국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천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된 참된 사람들로 이룬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 편성, 민족 편성, 세계 편성을 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천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땅에서 천국을 만들어야만 저나라의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비로소 역사상의 모든 것을 초월한 우월한 입장에 서서 승리의 권한을 세워 가지고 하늘 앞에, 온 인류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이 찾아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게 될 때, 그 귀착점은 오로지 아버지와 저희가 상면하는 자리가 되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님이 말할 수 있고 저희가 말할 수 있는 최후의 결정적인 말이 무엇이냐 하게 될 때 그것은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는 말일 것이옵니다. 그것만이 인류가 바라는 소원의 말이요, 당신이 찾아오신 인류를 만나기 위한 결정적인 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들과 딸로서 상봉하는 것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아들과 딸은 당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서 바꿔칠 수 있어 가지고, 그 내연적인 소원이 저희에게 나타나고, 저희에게 나타난 한 개인의 욕구가 한 가정에 나타나고, 가정의 욕구가 사회와 국가를 넘고 세계 만민을 넘어서서, 그것이 아버지의 진정한 내정적인 체휼의 감정이 되어 보편타당한 세계적인 기준까지 넘쳐 흐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세계가 당신이 찾아오는 소망의 세계요, 인간들이 찾아가는 단 하나의 세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과연 이런 길을 찾는 무리가 있는 지 저희들은 찾아 보아야 되겠습니다. 알아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과 모든 성인들이 가르치신 그 도리의 기원을 파헤쳐 가지고 저희 자체에 있어서는 얼마만한 가치로 하늘의 가치를 찾아야 되며, 하늘과 저희들이 어떠한 대등한 위치에 서야 되느냐 하는 것을 분석하고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결정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만민과 만세계와 새로운 사조 앞에 나타나서 이들을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참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참의 모습이란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현실에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수 있는, 그 누구도 이것을 점령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타락한 인간도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이요, 부부의 인연을 따라 사는 것이요, 자녀로 말미암아 미래의 소원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가정 제도는 타락한 세계의 심정을 결속시킬 수 있는 하나의 모체가 되고, 인륜과 인정의 기반이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결속되려면 성인들이 찾아 나가던 표준을 오늘의 인륜과 결속시킬 수 있는 승리적인 하나의 가정제도를 이 땅 위에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보게 될 때에 남자된 자와 여자된 자는 과거와 같은 그런 남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여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저희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저희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거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신념 뿐만 아니라 체휼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와 나는 전후관계, 좌우관계에 있음을 입증하고 그런 입장에서 영원히 같이 있었고, 영원히 같이 살고 있고, 영원히 같이 살 것이라는, 변함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논증의 기원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누구보다도 귀한 당신을 저희 마음 가운데 모셔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마음의 자리에 절대자이신 아버지를 모셔 가지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하고, 아버지와 더불어 상응적인 입장에서 주체적인 아버지와 더불어 상대적인 나 자체의 무한한 가치의 입체성을 발견하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있다 할진대,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그 악한 권내에서 무한한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는 역사 창조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나가는 다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요, 그는 사망의 물결이 충만된 이 땅 위에 있어서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요 행복을 위한 사람인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은 이와 같은 길을 가야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수난의 길이요 핍박의 길이요 외로운 길이었지만, 그 핍박과 외로움이 엇갈리는 교차로에서는 그때마다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은 뚜렷했습니다. 인간들이 가져야 할 가치의 인연을 심어 놓는 데는 자기의 행로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뻗쳐 교차되는 그 길까지 흘러 넘어갈 수 있는 선의 인연을 남기기 위해서 사방으로 몸부림쳐 나온 통일교회의 역사적인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비참하였지만 그 가운데 남이 모르는 감사의 심정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준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뿌리를 박고 연마하여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벅찬 희망과 더불어 아시아를 바라보며 세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애국자의 심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 가운데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버님의 가정과 아버님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가지고 살겠다는 천정을 따라서 충신의 도리를 배우려고 하고, 천정을 따라서 효성의 도리를 배우려고 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를 찾아 나가는 이들의 가는 길 앞에 축복의 손길이 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 생활에 있어서 가중된 가치는 오늘날 평면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의 어떤 가치보다도 비할 데 없는 고차원적인 내용임을 알고 나가는 이들 위에, 당신의 긍휼과 사랑이 더더욱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이 악한 세상을 끌고 가야 할 주체적인 힘은 보다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외로울 때도 아버지의 힘과 능력을 대신하여 우리는 외로워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이 세상 앞에 영향을 끼치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 마포 지구에 참석한 당신의 어린 자녀들, 오늘 저녁 말씀을 통해서 당신이 이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시옵고, 그 누구도 추구할 수 없는 최고의 차원에서 제정된 원칙적인 가치를 지니는 새로운 존재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 결정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도 분립시킬 수 없는 세계를 중심삼고 엉클어질 수 있는 가정이 되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고, 세계 인류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강하게 느낀 무리가 오늘 이 시대의 통일의 무리들이옵니다.

과거에 원수였던 일본 사람들도 식구의 이름을 갖게 될 때는 형제가 되는 것이요, 수많은 색깔이 다른 인종들도 식구라는 이름을 중심삼고 어느 민족 가운데서도 찾지 못하고 찾을 수도 없는 형제의 우애를 갖고 살 수 있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움직임이 오늘 이 땅 위에서 기반을 잡고 실천적 단계를 향하여 돌진하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셔서 여기에 무한한 힘과 능력을 가중시키시어 내일의 승리의 판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 졸장부가 되지 말고 승리자의 모습을 갖춰, 강하고 담대하게 직행하고 전진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오니 남아진 시간도 친히 당신의 뜻가운데서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4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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