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아버님, 이 한 순간을 기하여 1970년도는 지나가고, 이제 1971년도 새해, 새날, 새 시간을 맞게 되었으니, 이 시점 위에 당신이 소망하시는 이상의 세계가 밝아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통일교회가 1970년을 잊을 수 없는 승리의 한 해로 남기고자 많은 일들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고, 거룩한 승리의 노정을 개척하시기 위해 수고해 주신 당신의 은혜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그 노정 위에 남겨진 모든 추억들로 인하여 새로운 1971년도를 구상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이 아침부터 1972년도를 맞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과 주관과 보호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이 한 해에는 저희들이 이 민족 앞에 제시해야 할 제반 여건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과 사명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이 시간부터 출발된 1971년도 전체가 당신의 해가 되게 하시옵고, 당신의 뜻과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역사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고도 심각한 해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려 있는 비참한 이 한반도의 운명을 당신은 이미 아시옵니다. 반만년 역사를 걸어오면서 아직까지 수난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두운 끝날에 최후의 장벽을 맞대고 있는 이 나라를,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남과 북이 갈라져 서로 합할래야 합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사옵고,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장벽이 막혀 있는 이 나라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여기에서는 오직 당신만이 승패를 주관하실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믿사옵니다.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이 민족의 통일의 한 날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택하여 키워 오신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운명을 앞에 놓고 저희들은 1971년도를 맞이하였사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되어야 되겠사옵고, 저희들의 소원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되어야 되겠사오며, 저희들의 이상이 아버지의 창조 이상과 일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는 그러기만을 바라옵니다.

효자 되지 못하였던 역사를 넘어서서 당신 앞에 진실된 효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주관하실 수 있는 나라를 갖지 못하여 충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간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주관하실 수 있는 나라가 있어서 저희들이 충신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면 그 길은 인간으로 태어나 최고의 소망을 이루는 보람된 길인 줄 알고 있사오니, 나라와 주권을 위해 일신을 다 바쳐 그 나라를 당신 앞에 찾아드리는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그러한 길을 저희에게 열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그날부터 어느 한 날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자녀를 세워 놓고 당신의 유업을 이루어 달라고 손들어 축복해준 날이 없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유구한 역사노정을 그 한 때를 바라시며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갈급한 심정을 다시 한 번 그리워하면서 오늘 새해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여 불초한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아버지, 이 무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들의 마음은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한 날을 갖추어 드리고, 당신의 심정이 어릴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를 바라는 것은 물론이고, 당신이 영원히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땅과 하나의 백성의 권위와 하나의 주권국가를 가지고 당신 앞에 충신의 도리를 다하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들이 소원하는 것을 아시옵소서. 이 1971년도에는 남한 땅이라도 기필코 아버지의 뜻 앞에 세우기 위해 저희들이 생명과 모든 것을 다바쳐 아버지의 뜻 앞에 온전히 묶어 바쳐 드릴 수 있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좀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지는 해와 같이 흘러가는 1971년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하나의 중심을 정하여 하늘의 터전을 마련하고, 아버지의 해원 성사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거룩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1971년도를 맞이하였사옵니다. 1971년도의 365일을 지내는 과정에 있어서 저희 각자의 생활환경은 각자가 다르리라는 것을 아옵니다. 하오나 생활환경은 천태만상으로 다를지라도 뜻을 중심삼고 가는 길만은 오직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와야 되겠사옵니다. 개인으로서는 패하는 자리에 있고, 슬픈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늘을 중심한 뜻의 길에서는 슬픔이 아닌 승리의 결과만을 남겨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 아버지의 뜻 앞에 승리를 다짐하는 아들딸들이 되고, 당신의 뜻을 받드는 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요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당신의 사랑을 여기에 베푸시옵소서. 저희들은 에덴에 있던 아담 해와의 본래의 순진한 모습을 그리워하옵니다. 당신 앞에 있어서 아무런 흠과 티가 없는 저희들이 되어, 당신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고, 부르고 싶으면 부를 수 있고, 저희들이 요구만 하면 당신이 언제나 응하실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자리를 찾아가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이 1971년도의 새로이 첫발을 내딛는 이 아침에 이들이 옛날 에덴에서 당신의 사랑을 받던 귀여운 자녀들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언제든지 당신을 부르고, 언제나 같이 화하고, 같이 생활하고, 같이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의 주관권내에서 직접 치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을 거룩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런 새해를 여러 번 맞았사오나 아직까지 아버지의 승리의 한날로서 맞지 못한 한을 품고 있고 또한 이것이 당신의 한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아오니, 이 1971년도에는 당신의 뜻을 위한 노정에 있어서 온갖 정성과 충성을 다 바쳐 승리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한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간,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이들과 영원히 같이 하여 주시옵고,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풍족하신 당신의 사랑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본부를 그리워하며 이 시간 당신 앞에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그들에게 천만 배의 복을 내려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국에 널리어 하늘 뜻을 염려하며 한국을 그리워하고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새해를 맞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비록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거처해 있는 지역은 다를지라도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은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뜻을 위하는 마음 또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보다 기뻐하실 수 있는 성과를 가지고 온 만민 앞에 자랑하고 남음이 있는 1971년도가 되고, 온 만민 앞에 자랑하고도 남음이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맞는 이해로부터 앞으로 10년간 저희들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간은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귀중한 기간이옵니다. 이 한국을 바라볼 때, 누가 이 나라를 사랑하고, 누가 이 나라를 지키고, 누가 이 나라를 구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보호하시고 주도하시고 키우시어서 당신이 원하는 나라를 건국하는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누구보다도 하늘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이 나라를 사랑해야 되겠고,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되겠고, 이 나라의 주권을 사랑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이 나라 전체를 주관하시어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거룩한 한국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이 당신의 백성으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질 수 있는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나라가 당신의 땅으로서 당신 앞에 영원한 승리의 발판으로 바쳐질 수 있는 강토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한 해의 전체를 당신의 경륜에서 벗어날 수 없게끔 친히 주도하시고, 저희들이 승리의 일로를 개척할 수 있게끔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찾아온 해를 기쁨으로 맞아 아버지 앞에 충성과 효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저희들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새해를 맞이한 만민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시고, 영계에 가있는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과 아버지의 뜻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이 땅의 후손들을 통하여 뜻 앞에 더더욱 협조할 수 있게끔 축복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왔다 간 후 2천년의 역사가 지난 이 때에 있어서 역사 이래 하늘을 위하여 희생한 수많은 자들이 이해를 중심삼고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온 지구성을 통하여 활동할 수 있고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자유의 환경에 동참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어 당신의 거룩하신 보좌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시위(施威)의 거룩함을 드러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길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새해를 맞이하여 이 새해가 여러분에게 의의있는 해가 되어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금년 노정에 거룩한 뜻과 더불어 만복이 같이하길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금년 연두 표어는 여기 쓴 것(칠판에 판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 기반 확보'입니다. 다시 말하여 통일의 기반을 확보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 표어를 설정했습니다.

자체의 공고한 터전을 닦아야 할 1970년대

지금까지는 '전면적 진격'이니 혹은 '승리적 통일전선'이니 하는 표어를 설정해 놓고 외부를 향하여 진격하고, 뜻이 외부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하는 일을 1960년도 이후서부터 지금까지 10년간 해왔습니다. 1960년도 이후에서부터 1970년도까지 그야말로 소모전을 해온 것입니다.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싸운 것이 아니라 외적인 환경의 어려움, 다시 말하면 우리 통일교가 가는 길 앞에 가로막혀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울이면 서울, 중앙이면 중앙의 최고의 위치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 즉 뜻이 바라는 표준을 놓고 볼 때는, 최고의 기준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민족과 수많은 교계로부터 반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와 반대로 최저의 말단, 하부에서 출발하여 상부로 지금까지 발전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 기간에 수많은 개인이 희생된 것은 물론이고, 우리 통일교회의 가정들도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한국에서만도 통일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중심삼고 그 배후에 있는 친척이라든가 심정적인 터전을 통하여 관계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고 이 나라에 있어서 필요 적절한 때를 맞기 위하여, 외부에 벌어져 있는 모든 핍박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기 위해 1960년으로부터 한 10년간을 온갖 노력을 투입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1970년대에 들어서서 볼 때, 1971년도부터 1980년도까지 10년간은 우리 자체내에 있어서 공고한 터전을 닦지 않으면 안 될 사정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외부를 대하여 싸우는 것보다도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이라든가,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이라든가, 교회면 교회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이라든가, 혹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심의 기준을 어떻게 새로운 전통으로 설정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

지금까지 싸워 나오던 형태와는 달리 이제부터는 자기 스스로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것을 자기 개체에 깊이 뿌리를 박음과 동시에 자기 환경에도 깊이 뿌리 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이 그래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도 물론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기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을 하는 데는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고 통일해야할 것이며, 또 그 통일의 기반이 어디에 놓여져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기반이 어디에 놓여져야 되느냐 하면 교회를 중심삼고 놓여져야 됩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놓여지기 전에는 나라를 중심삼고 놓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중심삼고 통일기반이 놓여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뜻과 일치되는 가정을 중심삼고 통일의 기반이 놓여져야 됩니다. 가정에 이 통일적인 기반이 놓여지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들이 합하여 하나의 이상적인 민족적 형태를 갖출 수 있는 도장이 교회이고, 이상적인 교회의 기반이 되는 것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이 하나의 통일기반을 세우지 않고는 교회나 국가도 통일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가정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적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통일의 기반 위에 서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각자가 세워야 할 통일적 기반이 무엇이냐? 본래 각자가 세워야 할 통일적 기반은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에서부터 세워져야 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야 했고, 그 인류시조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사장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의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우리 인류 시조와 천사장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준을 오늘 날에 대입시켜 가지고 내 자체에 승리적 기반을 확보하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기반은 가정에서도 형성될 수 없고, 교회에서도 형성될 수없고, 나라와 세계에서도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개체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하나된 후에 천사장과 하나되는 기준을 어떻게 세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 오늘에 처해 있는 우리 개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틀어지게 될 때에는 다른 모든 것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된 결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인류 시조가 실패했던 그 기준을 나 자신을 중심삼고 일으킴과 동시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가 하나되고, 나를 중심삼고 천사장이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천사장은 천사세계를 대표한 것이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아들을 대신한 입장입니다. 천사장이 종의 입장이라면 우리 인간은 그 종의 입장을 벗어나서 아들의 입장을 대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들에 대하여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며 또 천사장을 대하여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생명의 인연을 갖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인류가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타락 때문이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게 된 것이 타락 때문이므로, 오늘날 우리 개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과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천사장 누시엘을 중심삼고 혈연 관계를 맺은 것이 타락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그러한 기반에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바라던 생명의 인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바라던 인연이 아니고, 천사장 역시 본래 바라던 인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천사장을 중심 삼고 사망의 인연을 맺은 것이 동기가 되어 실패의 결과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도 한이 맺혔고, 이러한 결과를 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하나님 또한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 세계와의 인연을 끊고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게 하여 타락 이전의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자리로 복귀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인 소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누구를 먼저 복귀시켜야 되느냐? 아담을 먼저 복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을 복귀시키는 데 있어서 아담 혼자서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타락할 때도 아담과 천사장 둘이 했기 때문에 아담을 복귀시키는 데 있어서도 천사장 입장의 인물과 아담 입장의 인물을 세워 놓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을 가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원리가 제시하는 가인 아벨 중심한 복귀원리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목표밑에서 규합되지 않고는 오늘날 인류의 해방과, 우리 개인의 완성과, 천사세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 되는 것은 천사장 누시엘의 피를 받아 가지고 타락 권내에 태어난 이 생명의 인연을 어떻게 끊고 하나님편으로 돌아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끊는 데는 아담 혼자서는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아니한 천사장이 아담을 협조하여 아담을 타락시킬 때와는 반대로 아담을 해방시켜야 됩니다.

천사장과 아담이 잘못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으므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복귀된 입장에 선 천사장이 아담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천사장의 입장이 있는 가인이 아담 입장에 있는 아벨과 하나되어야만 복귀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역사과정에서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방해가 되고, 통일의 인연을 파탄시킨 기원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기필코 가인과 하나되어 통일의 기원을 마련해야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의 기원은 누구를 중심삼고 마련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을 중심삼고 하나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마련해야 됩니다. 그것은 아담 자체만으로는 마련할 수 없습니다. 타락은 천사장과 아담 둘이서 할 수 있었지만, 복귀는 아담과 천사장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에 인연된 기반 위에 선 아담을 대신한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된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한 가인이 하나되어야 비로소 통일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시고 예수님 때까지 4천년 동안을 역사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아담의 입장에 선 예수님이 하나님과는 하나되었지만 천사장의 입장에 선 세례 요한과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재차 파탄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문제가 다시 연장되어 2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이 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 문제를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하지 않고서는 통일의 기반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것도 필요하겠고, 나라를 위하여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되는 것은 나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대신한 입장에 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하나된 기반 위에서 이루려고 했던 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각 개인이 이것을 다시 한 번 재현시켜 가지고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그 내용을 우리 일대에 결부시켜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은 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에게 머무른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개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은 먼저 누구와 하나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의 모든 사연과 뜻이 연장된 것에 대한 모든 한을 오늘날 우리 개인이 풀어 드리지 않고는 예수님이 이루려 했던 그 뜻의 기반을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예수님 자신과 하나님에게도 원한이 맺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도 원한이 맺혔고, 예수님 자신에게도 원한이 맺혔고, 4천년 동안 준비해 나온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나라에게도 원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까지도 수난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 맺힌 내용을 오늘날 우리 개체가 해원성사해 드리지 않고는 통일의 기반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2천년 전에 왔다 갔던 예수님이 2천년 동안 수고의 길을 걸어서 다시 우리 시대까지 찾아온 것은 '나' 하나를 예수 자신의 대신자로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대신한 존재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생명체로, 혹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계승자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은 무엇을 위해서냐? 외적인 가인 세계를 아벨 앞에 굴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개인적인 싸움으로부터 가정적인 싸움, 종족적인 싸움, 민족적인 싸움, 국가적인 싸움으로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1960년대의 역사입니다. 1960년대에는 아벨의 입장에 일치되지 못하는 가인 입장의 외적인 모든 여건을 제거시키기 위해 싸워 나왔다면 1970년대에는 아담을 중심삼고 이루지 못하였던 모든 안팎의 사정들을 연결시키고 일치시키기 위해 싸워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인적인 아담 승리의 기반과 가정적인 아담 승리의 기반과 교회적인 아담 승리의 기반과 국가적인 아담 승리의 기반을 갖출 수 없습니다.

1960년대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활동한 것은 외적인 가인 세계를 규합시키기 위한 소모전이었습니다. 가인은 강제로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을 중심삼아 가지고 끈기 있게 사탄 세계의 생명력을 극복해 나가야 되고, 하나님 세계의 사랑을 가지고 사탄 세계보다도 끈기 있게 가인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사장 세계, 즉 가인 세계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1960년대로부터 1970년도 말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제부터 갖추어야 할 통일기반

그럼 이제부터 갖추어야 할 통일기반은 어떤 것이냐? 아담을 중심삼고 갖추어야 했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적인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싸워 나왔지만, 과연 이런 외적인 기반이 아담을 중심삼고 천사장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느냐 할 때에 아직까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외적인 형태, 윤곽은 잡혀졌지만 아직까지 결정적인 한 자리로 수습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과 가인이 있지만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 있지 못합니다. 즉, 대한민국 국민과 우리 교회가 하나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개인 아벨과 개인 가인이 싸워 가지고 아벨을 반대하던 가인을 개인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놓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적인 아벨과 가정적인 가인이 싸워 가지고 가인적인 대표 가정이 아벨 가정 앞에 굴복할 수 있게 되었을는지는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안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도 가인적인 교단이 기성교회요 아벨적인 교단이 통일교회라면, 가인의 입장인 기성교회가 아직까지 통일교회에 굴복할 단계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를 맞이하면서부터 개인적인 가인과, 가정적인 가인은 어느 정도까지 굴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자신보다도 선생님이 결정적으로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과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시대와 비교해 본다면, 예수님은 가정적인 기틀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돌아가셨습니다. 가정적인 기틀을 가졌더라면 십자가에 돌아가지 않았을 것인데 가정적인 기틀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 역사적인 환경을 그냥 그대로 재현시켜 가지고 승리의 기반을 이루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적 터전 위에 가정적 승리의 기반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 가지고 승리의 결과를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1970년도 말까지의 역사입니다.

해방과 더불어 이 길을 출발할 때 교회와 민족을 중심삼은 가정의 기틀이 세워졌더라면 한민족과 기성교단은 그 가정을 중심삼고 뜻과 일치화될 것이었는데, 선생님이 몰림을 받고 쫓김받음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개인적인 탕감, 가정적인 탕감, 교회적인 탕감, 민족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개인적인 탕감과 가정적인 탕감의 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교회적인 탕감의 길과 국가적인 탕감의 길

그러면 이제부터 가야 할 탕감의 길은 무엇이냐? 교회적인 탕감의 노정과 국가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 종족적 터전 위에 가정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더라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일시에 복귀될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남으로 말미암아 이방을 중심삼고 영적인 기반을 통하여 개인복귀, 가정복귀를 바라보면서 나가던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도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의 천국 대문은 아직까지 열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으로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아벨의 승리의 기반을 마련했고, 가정적으로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아벨의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았으므로, 예수님 시대에 마련하지 못한 종족을 터전으로 한 가정적 승리의 기준을 마련한 입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이 가정적인 기반을 통하여서 어떻게 교회적인 기반을 흡수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탕감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간이 1970년도 후반부터 1972년도 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종족을 찾고 교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인 중심이었기 때문에 교회만 예수님과 일치되면 민족은 자동적으로 끌려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종족적 기반 위에 선 가정적인 승리의 기틀을 마련해 가지고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교회 기반을 계승해 넘어가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아벨적인 교단과 가인적인 교단이 승패를 결정지어서 주체적인 입장을 결하지 않으면 안될 때라는 것입니다. 1971년서부터 1972년까지가 이것을 해야 할 기간이고 그 기간이 뜻이 바라는 기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가정과 예수님의 종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는 자동적으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교회는 내적인 중심이기 때문에 내적인 중심만 하나되면 외적인 이스라엘 나라는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기성교회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되면 이 남한 땅을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 나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승리의 기반을 결정지어야 할 입장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축복가정들을 중심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공고한 기반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의 가정이 이러한 기반 위에 섰다 하더라도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는 날에는 종족적 기반은 자동적으로 결성되는 것입니다.

가인 가정과 가인 교단을 굴복시키려면

이제 문제는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뜻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치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 안되고서는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가인적인 교단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패의 결정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어떻게 완전히 하나되느냐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천사장이 일치되지 않고는 타락하기 전의 본연의 기준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아담 가정의 입장이 선생님의 가정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은 천사장 가정의 입장에 서서 선생님의 가정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의 기준을 형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야 이 민족을 움직여 나갈 수 있는 통일의 기반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민족 해방도 불가능한 것이요, 기성교단을 아버지 뜻 앞에 세울 수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이제 1910년대는 무엇을 중심삼고 나가야 하느냐? 가인적인 교단인 기성교회를 규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성교회 앞에 아벨적인 교단으로서 형성될 수 있는 가정적 종족권을 편성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기성교회를 굴복시키고 이 나라를 뜻 앞에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기반을 확보하려면 축복가정에 그 발판을 두어야 합니다. 또 축복가정이 통일적인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 세계에 나가 가지고 사탄 세계의 가정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통일교회의 종족적 가정권을 중심삼고 그 가정들을 이끌어서 뜻 앞에 일치시키기 위한 노정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어떻게 선생님이 승리한 전통과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가정이 걸어온 과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벗어나서는 하나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과정은 결국 여러분의 가정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입니다. 선생님은 그 길의 선두에 서서 개척의 사명을 겸하여 걸어 나왔지만, 여러분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따라 나오는 입장이므로 선생님 가정과 일치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일치시키려면 어디에서부터 일치시켜야 되느냐? 교회내에서 일치시키는 것보다도, 가정내에서 일치시키는 것보다도, 후방에서 일치시키는 것보다도 최일선에서 일치시켜야 합니다. 최일선에 선 자리에서 일치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그 앞에는 선생님 가정과 하나님이 있고, 그 뒤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 가정은 아벨 적인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도 아벨권에 서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천사장의 세계권인 타락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설령 아벨적 가정의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반드시 가인 가정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 가정을 굴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벨적인 가정이 간 길을 되풀이해서 가지 않으면 가인적인 가정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되풀이해서 가는 길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 길을 가는 공식은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나, 가정에 있어서나, 혹은 교단에 있어서나, 민족에 있어서나 범위가 넓어질 뿐이지, 가는 공식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공식의 동기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과 천사장의 관계에 있습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천사장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천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아담이 천사장에게 끌려감으로 말미 암아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는 반대로 아담이 천사장을 끌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담 가정의 입장에서 천사장 입장에 있는 가정을 굴복시켜 끌어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끌어오는 데는 강제로 끌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력을 투입해야 되고 사랑을 투입 해야 됩니다. 사랑을 소모하고 생명력을 소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자식까지 해서 사위기대가 여기에 생명력과 사랑을 투입하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1년도로 넘어서면서 우리 축복가정들을 일선에 내세운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의 사명

가정을 일선에 내세우는 데는 남편보다도 아내를 내세워야 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타락의 동기가 된 것이 누구냐 하면 남편인 아담이 아니라 해와였습니다. 해와가 천사장과 비원리적으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을 깨뜨려 버렸고, 하나님의 자녀될 수있는 길도 깨뜨려 버렸으며, 아담과 영원한 이상적인 부부가 될 수 있는 길도 깨뜨려 버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세계까지 완전히 파탄시켜 버렸습니다. 이러한 장본인이 해와였습니다. 해와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축복가정의 여자들이 사탄세계의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일선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해와가 천사장과 타락하기 전 단계의 입장을 가정을 대표해서 재현해 가지고 나선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해와를 대신한 축복가정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축복받은 가정 1,200명을 120곳에 파송한 것은 전체의 수를 대표해 가지고 파송한 것입니다. 파송된 곳이 대한민국 땅이지만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한계된 땅이 아니라 세계 전체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파송된 가정 부인들은 해와의 입장에서 천사장의 꼬임에 넘어가는 해와가 아니라 천사장 세계의 가인적인 가정을 꼬여 넘길 수 있는 해와의 입장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떠나게 되었고, 아담과 원수가 되었으며, 아담과 원수가 됨으로 말미암아 자녀와도 원수가 된 것입니다. 부모와 원수가 되고, 부부끼리 원수가 되고, 자녀와 원수가 된 것이 타락의 보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수많은 가정들은 부부끼리 원수의 입장이요, 부자관계나 형제관계에서도 하나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타락한 세계의 가정입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우리 축복가정의 여자들이 아담 가정을 대표한 해와의 입장에서 천사장 세계의 원수가 될 수 있는 수많은 가정들을 원수가 되지 않게끔 하나되게 하는 데에 주체적인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일신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인 가정을 굴복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떠났고, 아담이 떠났고, 참된 부부의 인연이 떠났고, 참된 자녀의 인연이 떠났고, 참된 민족과 국가의 인연이 다 떠났기 때문에 이것을 일시에 복귀할 수 있는 운세를 마련하려고 이번에 1,200명의 축복가정 부인들을 일선에 내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떠났던 하나님이 관심을 갖게 되고, 떠났던 남편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녀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떠났던 부부의 인연, 부모의 인연, 민족의 인연, 국가의 인연, 세계의 인연을 한 자리로 집결시킬 수 있는 한 시대점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인들은 타락한 해와의 입장이 아니라 복귀된 해와의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러한 부인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부인이 열성을 다하면 남편도 따라서 같이 열성을 다하면서 보조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녀들도 같이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축복받은 종족권내에 있는 통일교회 전체의 가정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동원되어 있는 부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또 가정을 갖지 않은 처녀 총각들도 나가 있는 그들을 언니와 누나 같은 입장에서 정성을 다해 모시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벨 가정의 대표로서 가인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 축복가정 부인들이 일선에 나가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과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되는 데는 누구를 내세워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해와의 입장에 선 부인을 내세워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타락할 때 해와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기점을 내세워 일시에 통일적인 기반을 형성하고 가정적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 일선에 출동되어 있는 축복받은 가정의 주부들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연례적인 행사처럼 습관적으로 전도 나가던 것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동원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도, 가정도, 남편도, 아들딸도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이들이 나가서 희생 봉사하고 생명을 투입하고 사랑을 소모하게될 때, 사탄 세계에 있는 가정들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해와가 천사장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천사장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해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천사장 세계에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천사장 세계에 새로운 생명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명의 인연이 하늘 가정을 통하여 연결되고, 그 연결된 가정의 부인을 중심삼고 남편과 아들딸이 연결되는 동시에 가인적인 가정들이 굴복될 수 있는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연결되고, 가인적인 가정까지 연결되어 여기에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이 결부되게 될 때, 이것이 가정을 중심삼은 통일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들이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 이것은 한민족 앞에 새로운 역사적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역사과정에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사건은 전무후무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정들이 하나되면 틀림없이 아벨적인 종족권이 형성되는 것이요, 비로소 통일교회에 있어서 아벨적인 교단의 기틀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을 기반으로 기성교회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도는 기성교회 가정을 중심으로

지금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가정적 대표로서 가인 가정을 굴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개인적 승리, 가정적 승리의 기반을 닦아서 종족적 터전 위에 서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축복가정 부인들이 사탄 세계에 나가서 가인을 굴복시켜 가지고 개인적인 가인과 가정적인 가인을 연결시킴과 동시에 가인적 종족권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끼리 하나되면 하나된 그 기반으로써 사탄세계의 종족적인 가인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 통일 교단을 대표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믿지 않는 가정보다도 기성교인들의 가정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교단적인 가인 기반까지 굴복시킬 수 있는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이 이미 일선에 나가 있기 때문에 그 일선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어 종족적 기반이 되어 있고, 통일교회가 아벨적인 교단으로서 가정형태의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이 기준을 중심삼고 일선에 나가서 기성교회 가정을 전도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믿지 않는 가정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가정을 대신하는 입장이 되므로 가인적인 교회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차 말했지만 금번에 축복가정 부인들이 전도 나간 것은 기성교단, 기성 교인을 전도하기 위해서 나간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기성 교단들이 우리 교회와 자동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 자기들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통일교회에서 뜻을 중심 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통일교회가 가는 것을 본받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려운 복귀노정이 되지 않고 순응의 복귀노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간에는 될 수 있으면 기성교단을 중심삼고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의 가정을 소생급으로 본다면 기성교회 가정은 장성급입니다.

사탄 세계의 가정을 사탄편 천사장 가정형으로 본다면 기성교회의 가정은 하늘편에 복귀될 수 있는 천사장의 가정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기성교단을 위주로 해서 우리의 방향을 세워 나가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 내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기성교단을 중심삼고 반응을 일으키게 해서 어느 정도의 수를 넘어서게 되면 기성교단과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사회에 물을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물이 들게 되면 대한민국이 이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현재가 그러한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는 10일부터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대학가의 권위 있는 학자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문제를 제시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원수된 입장에서 싸우는 풍토를 해소시키는 환경만 개척하게 되면 기성교단이 빨리 복귀될 수 있는 권내로 넘어갈 것입니다. 만일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와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기성교회 자체도 통일교회가 걸어온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성교회를 믿는 가정들이 대한민국을 복귀하는 데 선두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한국을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의 동원은 이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대한민국을 뜻 앞에 세우게 될때는 남북을 가인 아벨 관계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가 남한에 있는 삼천만 국민을 대하여 싸우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교단이 결부되고 민족이 결부된 그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그와 같은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남한은 아벨의 입장이요, 북한은 가인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입장인 북한과 남한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에 하나님의 사랑을 투입하고, 하나님의 생명력을 투입시켜야 됩니다.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을 나누어 주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키던 것과 같은 작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도 하나밖에 없는 것이요, 사랑도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을 원수를 위해서 넘겨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통일의 기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통일되는 데 있어서는 서로가 자기를 주장해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아벨은 주장할 수 있는 아담의 입장에서 주관받아야 할 천사장의 입장을 생명적인 가치와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에게 넘겨 줄 수 있어야만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이 원칙이 성립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제 1971년도, 1972년도 이 2년 동안 1970년도부터 하면 햇수로는 3년이지만, 이 2년 기간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나가 있는 일선이 고립된 일선이 아니라 보편화된 일선으로 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통일교단은 움직여야 합니다. 그 부인들이 움직이는 데에 있어서 본부(本部)도 주력해야 되고, 지구(地區)도 주력해야 되고, 가정의 남편과 자녀들도 주력해야 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기에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될 수만 있으면 반대하지 않는 이웃의 가정이나 친척들까지도 여기에 투입하게 해서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가정의 어린 아들딸들을 본가나 시가에 맡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친척들이 반대는 하더라도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이들을 맡음으로 말미암아 반대하던 그 친척들까지도 협조했다는 조건을 세우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부작용이 있을 것도 알았습니다. 그것을 각오했지만 뜻이 원하는 불가피한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면 일선에 나가 있는 부인들은 어떠한 입장이냐?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는 가정적 전통을 세워야 할 입장입니다. 새로운 국가를 하늘 뜻 앞에 복귀시켜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가정의 새로운 전통적 사상을 마련한다면 이것이 앞으로 가정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새로운 통일기반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을 거쳐서 남북한이 갈라져 있는 한을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남북한으로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부모와 자식도 갈라졌고, 형제끼리도 갈라졌습니다. 또 나라도 갈라졌고 종족도 갈라 졌습니다. 안 갈라진 것 없이 다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진 것이 어떻게 해야 하나될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나라와 나라, 종족과 종족,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가 하나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 땅을 두고 볼 때 남한 땅은 아담의 입장이요, 북한 땅은 천사장의 입장인데, 지금은 서로가 반대하고 반대받는 입장입니다. 반대하고 반대받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반대하고 반대받는 자리는 통일기반이 될 수 없습니다. 서로 화합하고 하나되어야 통일기반이 되는 것인데, 현재 이북이 남한을 대하여 혹은 남한이 이북을 대하여 서로 반대하고 반대받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이스라엘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3이스라엘의 소망을 품고 통일의 방안을 갖춰 나감으로 말미암아 제3이스라엘로 탄생하는 것이지, 한국 자체가 제3이스라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기반 형성은 가정에서부터

그러면 제3이스라엘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일기반을 형성해야 되는데, 그것을 누가 해야 되느냐? 가정에 있어서 남편이 해야 되고, 아내가 해야 되고, 아들이 해야 되고, 딸이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된 가정이 아니고는 아벨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가정이 하나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 증거하느냐? 그것은 자기의 생명과 같은 대상을 하늘 앞에 제시할 수 있고 자기의 최고의 사랑의 실체를 하늘 앞에 바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내를 일선에 내보낸 것은 여러분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끌어내 가지고 보낸 것입니다. 아내는 일면 남편의 생명의 연장입니다. 부부는 일심이기 때문에 상격(相隔)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부부는 하나이지만 이 길은 안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원치 않는 자리에 불가피하게 아내를 내보냈다 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불평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바쳐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가인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희생해서 가인에게 넘겨 주고, 내 사랑을 소모시켜서 가인 앞에 넘겨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하고 사랑을 다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가인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원칙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일선에 내세웠지만, 이것은 여러분이 본래 원해서 한것이 아닙니다. 이 일을 시행하기 전에 혹자는 '통일교회의 40일 전도 기간에 나간 사람도 있고 안 나간 사람도 있으니 이번에도 안 나가도 되겠지'하고 생각했을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안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40일 기간이라는 것은 잠깐 지나가지만 이번에는 3년, 정확히 말하면 2년 6개월이라는 기간에 통일교회 가정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석해 가지고 그 기간을 다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게 될 때,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앞에 역사적인 새로운 사건의 기원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여러분을 향하여 별의별 비난을 다 할 것이지만 여러분들은 부인들이 동원된 것을 슬프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777쌍을 축복해 줄 때, 자격이 없는 사람도 많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자격을 완전히 갖춘 입장에서 축복받은 사람이 몇 사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이번 이 작전에 동참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들도 살고, 그들에게 관계되어 있는 친척들도 여기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국적인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777쌍 축복에 동참을 시킨 것입니다. 이번에 777쌍 축복을 받은 신랑들은 신부가 응당히 자기 집으로 올 줄 알았을 것입니다. 관습에 따라 틀림없이 자기 집에 와 가지고 시부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같이 살 줄 알았는데 웬걸 소식도 없이 전부다 일선에 파송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부작용이 있으리라는 것도 압니다. 그렇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1960년대와 같이 반대하고 나설 때는 지나간 것입니다. 이제는 옛날에 개인들을 뽑아서 일선에 파송할 때 반대하던 것과 같은 그런 반대는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는 이미 통일권내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원된 축복가정 부인들을 반대하고 폭행할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폭행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과거 개인시대에 아들딸들을 파송할 때 통일교회를 반대했던 것을 탕감복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아들딸을 중심삼고 반대하던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반대받는 입장에서 우리 축복가정들은 축복을 받아 아들딸을 낳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아들딸을 반대하던 부모들이 손자를 맞아들이고 손녀를 맞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로 말미암아 옛날에 반대했던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동원되는 것이 대한민국이 하늘을 배반했던 역사적인 죄상을 탕감하고 복귀시킬 수 있는 단 한번밖에 없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1971년도에 해야 할 일─단적 통일기반 완성

통일교회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기성교회는 왜 찾아가야 하느냐? 부모들과 친척들은 자기 아들딸을 빼앗아 가니까 반대를 했고, 기성교회는 자기 교인들을 전도해 가니까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통일교회의 외적인 환경이 현재와 같은 입장에까지 올라옴으로 말미암아 세력에 있어서 대등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인들도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에 대해 알아보아야 되겠다고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전부 우리를 반대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 기성교회 목사가 들어온 일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지금에 와 가지고는 여러분은 모르지만 어떤 교단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고, 금년 1월에는 7백 명 이상의 목사들이 통일교회 원리를 듣기로 했습니다. 기성교회 연합회 회장이 뜻을 중심삼고 이미 각오하고 선생님 앞에 맹세를 하고 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갑니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종교협의회에 기성교단이 가입을 안 하겠다고 야단들이지만 그만두겠으면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기성교단이 차버리더라도 다른 교단을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성교단을 대해 가지고 강력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당당한 교단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보다도 수가 많습니다. 전체를 동원하면 20만이 넘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반대했지만 이런 수효의 교단이 통일교회를 지지하고 나선다는 것은 복귀될 수 있는 운명권내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1960년대에 대학가를 복귀하기 위해서 주력했을 때 건국대학과 연세대학이 극성맞게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재미있는 것은 연세대학교 서남동 학장을 중심삼은 사건이라든가, 건국대학교의 동태를 보면 이제 재봉춘 시대가 온 것이 여실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은 가인 교단과 아벨 교단이 안팎으로 하나된 기준을 형성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교단과 교단끼리는 안 됩니다. 먼저 가정과 가정이 해야 됩니다. 교단 책임자들이 굴복하는 것보다도 먼저 가정과 가정이 화합해 가지고 굴복해야 됩니다. 기성교단을 대해서 개인적인 가인 승리의 기반이 있어야 되고, 가정적 가인 승리의 기반이 있어야 되며, 교단적 가인 승리의 기반과 종족적 가인 승리의 기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금 우리 축복가정 부인들이 나가서 기성교회 가정들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뜻을 중심삼고 아벨 앞에 가인을 굴복시키는 동시에 아벨 가정 앞에 가인 가정을 굴복시키고 그 수를 많이 해서 가인적인 종족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교단을 중심삼은 통일기반으로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971년도에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기성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교단적 통일기반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의 연두표어를 '통일기반 확보'라고 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원수와 같이 영영 대할 수 없는 남과 북과 같은 입장에 있던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이제 상봉할 수 있는 시대권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자기 고향에 돌아가 에서를 만날 수 있는 때와 마찬가지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는 전체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성교회와 하나되는 데에 주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야곱은 형님 에서와 하나되기 위해서 종을 보내고, 재물을 보내고, 자기 아들딸과 아내까지 형님 에서에게 보내 가지고 외적으로는 형 에서 앞에 굴복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그런 외적인 모든 것은 주었지만 야곱 자신만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즉 하늘 앞에 축복받은 장자의 기업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에서를 굴복시켜 가지고 이스라엘의 통일기반을 형성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여러분은 오늘날 이 문제를 어떻게 추진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1971년도는 기성 교회를 중심삼은 '통일기반 확보'를 표방하고 나서는 해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도 나온 부인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라

그러면 여러분 개체 개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남자들도 개인적인 아벨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가인을 굴복시킨 승리권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가인이 믿음의 아들입니다. 가정이 믿음의 아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아벨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벨 가정은 선생님이 간 길, 즉 탕감노정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탕감노정의 길을 나설 때는 가정을 버리고 나섰습니다. 선생님이 남자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처자를 뒤에 두고 이북을 향하여 나섰던 것을 여러분은 반대로 여자가 이남을 위해 집을 떠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북 사탄 세계를 대하여서는 남자가 떠났고 이남 가인을 대하여서는 상대적으로 여자가 떠났습니다.

왜 그러냐? 3년 공생애노정 중에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가정적인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후아담이라면 후아담 앞에 후해와의 기반이 형성되어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후해와가 뜻을 갖추어 역사적인 예수님을 모셔 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3년 기간을 탕감하는 기간이 이번 축복가정 부인들의 3년 전도 기간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을 3년 동안 출동시키는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지구장, 지역장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축복가정 부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지구장도 가정을 갖고 있지 않고 지역장도 가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장도 지역장도 가정을 갖지 않고 자기 아내를 일선에 내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어느 편이 아벨이냐 하면 지구장 이나 지역장이 아벨이 아니라 일선에 나가 있는 축복가정 부인들이 아벨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구장도 지역장도 그들을 잘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가정 부인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통일종족의 가정적인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하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전통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남편이 아내를 따라가야 되고, 아들딸이 어머니를 따라가야 되는 때입니다. 해와가 타락의 전통을 세웠던 것을 이제는 반대로 축복가정 부인들이 복귀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쫓아 버렸고, 참부모의 인연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부부의 인연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잃어 버렸으며, 가정의 인연, 종족의 인연, 민족의 인연, 국가의 인연을 전부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반대로 해와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셔 드리고, 참부모를 모셔 드리고, 참다운 부부의 인연을 세우고,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세워야 됩니다. 또,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과 참다운 국가의 인연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이것을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시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1971년도는 1970년대의 제2차년도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금년에 전국에 널려 있는 지역본부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지구본부는 물론, 지역본부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는 앞으로 통일교단이 아벨 교단으로서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도로 지구, 지역은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우리의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일선도상에서 게릴라전을 하는 것과 같이 동(東)에서 싸우다 서(西)로 가서 싸우고 했기 때문에, 이 집 저 집 빌려서 교회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자리를 잡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소유할 수 있는 아벨 가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입장인 기성교회가 교회를 가지고 있는데, 아벨 입장인 우리가 교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제 지구장 회의에서 지역본부 확보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본부가 협력하는 가운데에서 지역본부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교회기반 밑에서 우리 식구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그 나라, 그 도시, 그 마을, 그 부락의 본이 되어 가지고 기성교회가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동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동기만 마련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것을 위해 동원되어 활동하는 축복가정 부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될 수 있으면 지구장들도 함께 활동해야 되겠습니다. 이들이 새벽기도를 하게 되면 지구장 지역장도 함께 해야 되고, 한 사람이라도 성지에 가서 정성을 들이면 지역장은 남편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그 뒤를 따라가서 보호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이들이 하늘 앞에 가정의 대신자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원된 가정 부인들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나간 축복가정 부인이 아벨 입장이라면 남편들은 가인 입장인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할 때 해와의 유인을 받아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즉, 타락 시킬 때에는 아벨이 해와였기 때문에, 복귀시키는 데 있어서도 해와의 입장인 여자가 아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들, 혹은 지구장, 지역장들은 가인의 입장에서 축복가정 부인들이 새벽기도를 하면 같이 새벽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빠지면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에 지구장들 돌아가면 다른 지구장 지역장들에게 이것을 철저히 시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 식구 전원에게 전통으로 세워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벌어지리라고 봅니다. 이런 뜻이 있었기에 1971년의 연두표어를 '통일기반 확보' 라고 정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도, 교회를 중심삼고도, 민족을 중심삼고도 이와 같은 관계로 연결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명의 일체 사랑의 일체를 이루어 가지고 개인 가인과 개인 아벨이 하나되어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이 하나될 수 있고, 가인 교단과 아벨 교단이 하나될 수 있고, 가인 나라와 아벨 나라가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우리가 남한 땅에서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된 남북한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중요한 사명을 짊어진 축복가정 부인들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총단결하여 아벨 교단인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가인 교단을 복귀하고, 제3 이스라엘 복귀를 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 금년 표어와 더불어 통일의 방안은 여기서부터 벌어질 것이요, 통일 기반은 여기서부터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고 총주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1960년대에 개인을 중심삼은 개척도상에 연약한 여자들을 내세워야 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면서도 1970년대에 가정적인 가인 아벨을 중심삼은 복귀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또 다시 가정의 주부들을 일선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한편으로는 분하고, 한편으로는 원통하옵니다.

이제 이와 같은 인연을 통하여 부부가 하나되고 자녀가 하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벨 가정을 형성하여 가인 가정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가인 가정을 대하게 될때, 특히 기성 기독교 가정을 중심삼고 그 아내들과 그 남편들과 그 자녀들과 접선할 때, 그것을 도화선으로 삼아 복귀의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선에 서 있는 당신의 딸들이오니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교단적인 가인 아벨의 기준을 복귀하여 하나되게 될 때 민족적인 터전이 갖추어져 국가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가인 아벨권을 형성해 가지고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 일치화되면 남한 땅이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남한 땅이 아벨 입장에서 북한 땅을 굴복시키는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남한이 북한보다 배 이상의 국민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여기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는 것인 줄을 알게 되옵니다.

가정을 여자들이 개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의 여성들이 북한을 구원하고 개척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서는 운동이 뜻을 통하여 벌어지게 될 때, 아들딸은 물론이요. 남편들도 자연히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여기에 하나의 국가를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뜻이 있는 것을 저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통일된 아벨 국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남성적 국가를 대표한 나라로 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아담 국가를 협조할 수 있는 해와 국가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해와 국가를 세워야 할 현재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또 아담 해와 국가가 결정되고 나면 천사장 국가가 결정되어야 하므로 이 모든 것을 횡적으로 묶어야 될 사명까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들을 입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 때가 목전에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기성교단과 우리 통일교단이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 시대에 있어서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이 하나되고, 그 하나된 친척을 중심삼은 종족기반 위에 유대교가 하나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아벨형의 통일된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었더라면 가인형의 아랍권을 통일하고 로마 제국을 하늘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역사적 기원이 마련될 것이었는 데, 예수님이 가정적 기반을 갖지 못하고 종족과 교단과 민족 앞에 몰림받아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원한의 씨가 뿌려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이것을 해원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운유(雲遊)의 길, 혹은 석양길을 걸었던 수십년의 슬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망망한 비운의 역사를 붙안고 새로운 소망을 품고 개척자의 노정을 가는 데는 원수의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었고, 원수들의 조롱과 원수들의 농락을 생명을 걸고 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처량한 역사를 지내 왔사옵니다. 이 모두가 아버지가 하시는 경륜 가운데 불가피한 사정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비운의 자리에서 밟힘을 당하면서 죽은 자와 같이 입이 있어도 말할 줄을 몰랐고, 감각이 있어도 그 감각을 표현할 줄 몰랐으며, 오직 뜻 하나를 염려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흠모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이 자리까지 남아졌사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제 재봉춘할 수 있는 시대권을 갖게 하여 주신 은사를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6천년의 한은 뿌리를 박아 오늘날 저희의 앞뒤에까지 연결되어 수난이 거듭되어 나왔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해와의 입장에서 예수님 앞에 한 터전을 마련해 드리지 못하였던 것을 대신 1970년대를 중심삼고 통일교회의 자녀 앞에 예수님께 바쳐 드릴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을 상속해 주신 은사를 진실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수많은 국가 앞에 아버지의 아들딸의 인연을 펼쳐 놓으셔서 아버지를 시봉할 수 있는 터전을 이 지구성에 갖추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1970년대를 맞이하기까지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기성교회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들 스스로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에서는 살 길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아버지의 긍휼과 은사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야곱의 시대에 7년 흉년이 들어 야곱 가정이 먹을 것을 찾아 애급 땅으로 갔을 때 총리대신이 되어 있던 요셉을 만난 것과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죽으라고 팔았던 요셉이 원수의 땅에 가 가지고 총리대신이 되어 부모 형제가 망하여 애급 민족 앞에 비탄을 당하고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여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의 부모형제들은 죽으라고 팔았던 요셉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7년의 환란을 당하여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극한 경지에서 우왕좌왕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때에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가정과 이스라엘 형제를 구하기 위하여 요셉을 수난 가운데 두셨던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가정을 구하게 하신 것은 후대하신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를 죽음길로 몰아내신 경륜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엿보게 되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를 요셉과 같은 자리에 몰아내신 것은 저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셉의 열 한 명의 형제와 같은 기성교단을 구하기 위한 뜻이 있기 때문임을 저희가 아옵니다. 저희들은 강하고 당당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벅찬 소망의 자리에 서 있지만, 기성교단은 생사의 기로에 서서 저희를 공포의 대상으로 알고 저희와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입장을 취하려 하지만 저들이 통일교회를 아니 만날래야 아니 만날 수 없는 불가피한 입장으로 몰려 들어가는 현시점을 바라보게 되옵니다.

요셉이 자기를 죽음길로 내버린 열 한 형제를 대할 때 마음 가운데에서는 참을 수 없는 격분이 강하게 솟구쳤지만, 그래도 자기가 없는 동안에 부모님을 모신 형제라는 것을 생각하고 과거의 슬펐던 사연을 잊어버리고 형제들을 대했던 것처럼 저희들도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성교회가 아버지를 모시고 효성의 도리를 다했던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저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울타리의 사명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해 나온 인연이 있는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고, 그들을 구하기 위한 사랑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저희들이 가는 길을 환영하게 될 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가 갈라져 원수와 같은 입장에 있지만, 알고 보면 형제요, 나눌래야 나눌 수 없는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어서, 이런 사연을 붙안고 둘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맺혔던 아버지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러한 승리의 기점을 아버지 앞에 복귀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통일교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일을 위하여 통일교단을 대신하여 일선에 선 가냘픈 축복가정 부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스승의 뜻을 위하고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앞으로의 대한의 운명을 해결하는 데는 자기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그러한 사명을 위해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무릎을 꿇고 하늘 앞에 기도할 적마다 당신은 무심하게 대하실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개척의 행로를 더듬어 나올 때에 대하시던 그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환경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제 여기에 모여 있는 지구장들과 지역장들이 그들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구가 그들과 더불어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지구장이 밥을 먹고 있을때에 그들이 밥을 못 먹거든 지구장은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먹여야 할 책임이 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정적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다. 또 자기는 쉴 수 있는 자리가 있고 그들은 쉴 수 있는 자리가 없거들랑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잠자리를 넘겨 줄 수 있고, 자기가 입을 것이 있고 그들이 입을 것이 없거들랑 자기의 입을 것을 그들에게 줄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 가정에 있어서 남편이 천사장의 사명을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천사장에게 유인되었던 것을 남편을 중심삼고 복귀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요, 그 아들딸들이 천사장의 아들딸의 입장에서 하늘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을 거쳐 탕감을 통한 가정적 승리의 기반을 완성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새로운 아들딸로 입적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이 개척자의 행로를 책임지고 나선 그 길 앞에 아버님이 같이하시어서 강하고 담대하게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중심삼고 1971년도의 표어를 '통일기반 확보' 라고 하였사옵니다. 통일기반을 확보하는 닻은 지구장도 아니요, 지역장도 아닙니다. 불쌍한 이들이 그것을 책임지고 있사오니, 이들을 중심 삼고 기성교단도 통일교단도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을 본부도 후원해야 되겠고, 남편도 후원해야 되겠고, 지방에 있는 식구들도 후원해야 되겠습니다. 기성교단도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여기에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전에 잃어버렸던 인연을 여기에서 회생시킬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의 칭호를 결정짓고 딸의 칭호를 결정지을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들과 하나되는 것이 '통일기반 확보'의 터전이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가인의 입장에 있는 기성교단과 하나되려면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축복가정 부인들과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을 중심삼고 '통일기반 확보' 성취의 내용을 삼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민족 앞에 새로운 주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기성교단 앞에 새로운 주체성을 제시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과 기성교회를 통하여서 역사적인 예수님의 한의 해원을 완결짓고, 유대교의 한을 풀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풀어 하늘에 품길 수 있는 대한민국과 기성교회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이 남조 10지파, 북조 2지파로 갈라졌다가 다시 통합되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이 가냘픈 여성들이 희생하는 그 터전으로 말미암아 남북이 통일되어 제3이스라엘이 창건될수 있게끔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에 이 1971년도에는 본부도 일선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되겠사옵고, 지구장도 지역장도 통일교회 전식구들도 일선을 후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총주력하고, 그들이 가는 길을 대신 상속받은 후에 그들이 환고향할 수 있게 해야 되겠습니다. 기성교회가 아버지 앞에 품길 수 있는 인연을 마련해 주어서 그들과 화합할 수 있는 다리를 넓혀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이 연두에 통일교회 무리들 앞에 제시한 '통일기반 확보'의 내용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 주제하에서 안팎으로 하나되어 1971년과 1972년도를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이 터전 위에 저희들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총동원되어 하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한국 기성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한을 풀고 유대교의 한을 풂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중심한 영계가 지상의 기독교를 터전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재림을 성취하게 되면 대대적인 통일의 분위기가 형성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일이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또한 중대한 하나님의 날이옵니다. 오늘 이 복된 날을 기쁨으로 맞게 된 것을 저희들이 진실로 감사드리면서, '통일기반 확보' 라는 문제를 중심삼은 역사적인 시대권내에 있어서 일선에 선 아녀자들을 존중시하고 그들과 일치화될 수 있는 총진군의 행보가 벌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것이 이 민족에게 있어서 새로운 가정의 전통이 되고,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교육의 새로운 전통적 내용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편들은 자기의 아내를 자랑하고, 자녀들은 어머니를 자랑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가정 앞에 모범이 되는 어머니가 되어 하늘의 역사를 복귀하는 데 모범이 되는 여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늘 나라를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서 개척자의 사명을 함으로 말미암아 역사과정에서 혁명의 대열에 여자들이 가담하지 못하였던 기준을 탕감복귀해야 되겠습니다. 이 기간을 그럴 수 있는 한 때밖에 없는 귀한 시기로서 의의있게 맞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선두에 선 이들을 중심삼아 일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온전히 하나의 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총진군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자체도 하나될 것이요, 기성교회와 통일교단도 하나될 수 있는 통일의 기원이 되어질 것을 아오니, 이 뜻을 금년을 중심삼고 1972년도까지는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맡으시어 영광 가운데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오늘은 3주년을 맞이하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3주년을 맞이하는 `하나님의 날'이어서 3시에 식을 거행할까 생각했었는데 1971년을 상징하는 7시 10분에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1971년의 하나님의 날

금년은 3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예년과 달리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입적식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풀지 못했던 그 한을 풀어 주는 내용 의식도 있어야 하는데 그건 기도로 해주려고 합니다.

여기 지승도 할머니를 비롯해서 계시받는 할머니들이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춤이라고 추면서 지내야 된다고 했기 때문에, 무용복을 만들고, 축하의 의미를 나타내는 준비도 하고 있어요. 이런 것을 보더라도 오늘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날'과는 다릅니다. 이번 하나님의 날은 세 돌을 맞이하는 날이니만큼 참 큰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모든 기성교단은 통일교회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계에 있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도들과 기성교단을 믿고 갔던 수많은 낙원급의 영인들을 지상에 동원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성교단이 뜻에 상당한 협조를 할 것이라고 선생님은 믿고 있습니다.

개인의 역할이 지극히 중요한 때

지금 이북에서는 김일성이가 최고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에서 최고 악질 분자가 북괴입니다. 공산세계에서 제일 지독한 패가 북괴요, 민주세계에서 제일 지독한 패가 통일교회 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편인 공산세계에서도 제일 지독한 패의 대표자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늘편인 민주세계에서 제일 지독한 통일교회에서도 그 대표자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삼팔선을 경계로 해서 삼천리 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북은 생명에 위협을 가해가지고 강제적으로 체계화시켜서 이루어진 국가인데 비하여, 통일교회는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 다른 누구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간섭을 받는 권내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자유 분방한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강제가 아닌 자유 분방한 자리에서 생명을 자율적으로 바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참부모를 중심삼고 복귀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에 판문점이 있는데 그곳은 주인이 없습니다. 그곳은 남한의 땅도 북한의 땅도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판문(板門)입니다. 즉 널판으로 만든 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쇠문이나 황금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인이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만 주인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사탄과 하나님이 세계의 나라를 중심삼고 참소할 수 있고, 민족을 중심삼고 참소할 수 있고, 개인을 중심삼고 참소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걸고 참소할때에는 개인이 잘못해도 대한민국이 걸리게 되고, 가정이 잘못해도 대한민국이 걸리게 됩니다. 또, 이북의 개인이나 가정이 잘못하면 이북의 주권이 참소받게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가 잘못하게 되면 그로 인하여 나라의 주권이 저울질받게 되는,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개인이 잘못해도 나라를 때리고, 가정이 잘못해도 나라를 때리고, 단체가 잘못해도 나라를 때린다는 것입니다. 그 누가 잘못했던 간에 그와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볼 때, 이제는 개인이 국가를 저울질할 수 있는 하늘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왔다갔다하고, 가정의 잘잘못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왔다갔다하고, 교회의 잘잘못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이 그러한 때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러한 분기점을 중심삼아 사탄과 대결하고 있는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북괴는 남한으로 간첩들을 내려 보내고 있습니다. 간첩들을 남한으로 내려 보내는 데 만약 그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껴 `안가겠다고 하면 생명이 날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것은 남한에서도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거국적인 사상 재무장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도 사상적인 재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제들을 현재 착수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바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앞으로 몇 년 동안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해 나온 중심과제입니다. 이것이 은연중에 돌아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뜻의 때가 가까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야말로 1970년대부터는 통일교회의 운세권내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통일교회가 자리잡을 수 있는 때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특히 젊은이들은 뜻을 위해서라면 이북에 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데 있어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자기의 사랑을 바치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수세계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야 할 때가 옵니다. 선생님이 요즈음 청평에 땅을 사는 것도 그런 훈련 장소를 준비하기 위한 내적인 뜻이 있어서입니다.

통일사상의 내용과 통일교회의 의의

대한민국에 있어서 현재 제일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부패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부패하느냐? 공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 사적인 입장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사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 공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공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켜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희생시켜 가지고 자기의 가정을 위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퇴폐적인 사상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것을 앞으로 통일교회가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민족의 주체성을 찾고자들 하고 있지만 우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불원한 장래에 반드시 올 것입니다.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공적인 사상에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선은 가정을 희생시켜 종족을 구하는 것이요,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구하는 것이요, 민족을 희생시켜 국가를 구하는 것이요, 국가를 희생시켜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의 사상과 같은 것입니다.

국가를 희생시켜면서라도 세계를 구하려고 한 대표적인 입장의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알겠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자기 나라를 희생시켜 가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선도적인 입장에서 그 역할을 해 나왔지만 지금은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누가 그 역할을 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가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하늘은 통일교회에 막대한 부를 안겨다 주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내적으로 하늘의 뜻을 계승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원조해 주고 최고로 후원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디에서부터 하느냐 하면 대한민국부터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초교파운동을 비롯한 경제적 분야에 후원하는 문제라든가 종교계에 대한 경제적 후원은 대한민국의 기독교를 위한 것이 아니요, 대한민국의 다른 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종교를 위하는 것이고, 민주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기에 우리가 비록 밥을 굶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교회를 건립해야 한다는 중요한 시대에 들어와 있지만 교회 건립이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지 못하더라도 나라와 세계를 위해야 하며, 세워져 있는 교회를 팔아서라도 충신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다. 가정을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다.

이런 사상과 일치된 통일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오늘날 이 나라의 부패를 뿌리 뽑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맡겨라 이겁니다. 선생님은 아주 간단하게 씨알머리 없이 뽑아 버릴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만을 바라보고 계속 저자세로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실력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자연 굴복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활동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선에 나가야 할 축복가정 부인들

그런 의미에서 오늘 3주년이 되는 하나님의 날의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통일교회 가정들은 아직까지 하늘에 입적이 안 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선생님 가정도 아직까지 그런 과정을 못 거쳤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종족적 기반 위에 가정적 기반이 완전히 닦여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교회와 민족을 구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적으로 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입적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축복가정들이 앞으로 2년만 싸우게 되면 3년노정을 마치게 되는데, 만일 이 노정에 동참하지 않은 가정이 있으면 무자비하게 잘라 버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원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동원이 끝남으로 말미암아 기성교회를 포섭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이스라엘권이 이루어지므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입적권이 벌어지게 되고 열두 지파 편성이 벌어지게 됩니다.

축복가정들은 지금 어느 지파에 속해 있습니까? 속해 있어요, 안 속해 있어요? 아무데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 뜻의 때가 얼마만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3주년을 맞이하는 이 `하나님의 날'은 지극히 의미 있는 날입니다. 1971년도를 새롭게 출발하는 첫날이자 하나님의 날이므로 의의가 깊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마음속 깊이 이날을 축하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날을 지내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그리고 여러분은 각자가 `뜻은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일선에서 강력히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북괴는 삼팔선을 중심삼고 일선에 인민군대를 내세워 단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자 군인들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그들과는 반대로 여자 군인들을 일선에 내세워 단결합니다. 그들과 반대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의 타락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해와가 천사장을 끌여들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해와로 말미암아 천사장을 굴복시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한의 여자들을 내세워 가지고 이북의 인민 군대를 소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여자가 혁명에 가담하여 나라를 세운 적이 있어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나라를 망치는 데 비료 노릇은 했지만, 나라를 창건하는데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은 못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중요한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천국을 복귀하려면 여자들이 일선에 서서 가인적 세계, 천사장적 세계, 사탄 세계에 해당하는 인민군대를 하늘편으로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번 더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먼저 교회를 위해서 동원해야 되겠고, 그 후에는 종족을 일치시키고, 민족을 일치시키기 위해 동원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체내에 있어서는 종족 기반을 닦기 위해 일치시키는 동원을 해야겠고, 기성교단 앞에 있어서는 그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일치화되는 동원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국가를 위하여 동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삼팔선 이북을 대신해서, 가인국가를 대신해서 동원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여러분들이 총칼을 들고 나서야 됩니다. 여자들도 내세울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사령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북으로 진군 명령을 하여 여자들을 내보낼는지 모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수적으로 많습니다. 천사장은 하나고 아담 해와는 둘이기 때문에 2배가 되어야 하니까 여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 남한 인구가 북한 인구의 2배가 되었느냐? 이북에 있던 사람들이 왜 전부 남한으로 피해 나왔느냐? 그 원인은 출산을 많이 하기 위해서입니다. (웃음) 웃을 일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여자들을 중심삼고 강력한 통일사상을 주입시키면 통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탱크도 운전해야 되고 곡사포도 쏠 줄 알아야 됩니다. 남들이 3년 동안 해야 될 일을 우리는 석 달 동안에 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 할 수 있어요, 없어요?「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될 때가 반드시 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두 번째로 여자들을 동원했습니다. 첫번째는 1960년대에 동원하여 일선에 세웠습니다. 선생님은 그때도 3년 동안 여자들이 일선에 서야 된다는 얘기를 했지요? 「예」 이번에도 3년 동안 동원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3년 동안 여자들을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9년 과정을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각오를 새롭게 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1972년부터 3년간 동안하면 1974년이 됩니다. 2차 7년노정이 무사히 넘어갈 때까지 여자들을 동원해서 일을 하면 틀림없이 목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차 7년노정은 예수님이 가야 할 7년노정에 해당하는 것이요, 통일교회의 아들딸의 가정이 생겨날 수 있는 2차 년도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힘차게 싸울 수 있는 때가 얼마 안 남았다.

평면적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부자의 관계입니다. 종적인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부자의 관계인 것처럼 선생님과 여러분도 부자의 관계입니다. 2차 7년노정은 가정적인 입장에서 예수 가정권을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을 넓히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지 않고 이스라엘권을 갖추게 되었다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될 수 있었고, 나아가 아랍권을 규합할 수 있는 권내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우리들이 처해 있는 시대가 이러한 때와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가 그때와 얼마나 가까운 실정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망상이 아닙니다. 공포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는지 안 되는지 두고 보세요.

이제 통일교회가 진짜로 힘차게 싸울 수 있는 때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나설 때에는 지금 나서 있는 가정보다 나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뜻의 때가 앞으로 점점 가까와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여러분들은 2차7년노정 기간 중에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년 넘어 4년째 접어들었는데, 2차7년노정이 끝나는 1974년까지는 앞으로 4년이 남아 있습니다. 이 4년간이 중요한 기간이에요. 이 기간이 땅에 기반을 닦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런 의미에서 오늘 3주년을 맞는 `하나님의 날'이 의미가 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와 육계의 놀라운 인연이 맺어지고 벌어질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여러분은 정성을 다해야되겠습니다.

기 도

무한하신 당신의 자비와 손길이 부족한 무리들 위에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한스러운 노정에서도 오늘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 당신의 은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1971년도의 새 아침, 통일기반 확립이라는 과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각자의 사명을 촉구하는 이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이 전통이 되어, 1961년도의 전통을 계승하여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도까지 왔듯이, 이제 1971년도의 전통을 계승하여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도를 넘어설 수 있을 때까지 달려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의 이와 같은 은사를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저희들의 가는 길 앞에 무한한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곳곳에서 간곡히 정성들이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당신께서 직접 주관하시옵고 은사의 자리를 떠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복을 내려 주시옵고,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거룩하신 당신의 축복의 손길을 펴시어서 복을 내려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통일기반 확보라는 이 엄청난 과제를 당신으로부터 받은 것을 저희의 몸과 마음에 새겨 가지고 이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갈 것을 맹세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님, 이날을 이 민족과 더불어 찬양하고, 세계와 더불어 그리고 수많은 영인들과 더불어 찬양하는 기쁨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로써 `하나님의 날'을 4회째 맞게 되옵니다. 이제 5회, 10회, 100회, 1,000회, 10,000회를 거쳐 나가는 수많은 이날을 통하여 인간들의 가슴 가슴 위에 새로운 생명의 불길을 퍼부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을 넘고 국가를 초월하여 하나의 형제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로 말미암아 개개인을 묶어 아버지 앞에 바치는 중요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물론이려니와 지방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아시아의 동방 한국 땅을 마음 모아 우러러보면서 기도드리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곳 위에도 당신의 거룩하심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승리의 인연이 거기에 두터이 맺어지게 하여 주시어 후대의 수많은 민족과 더불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발판을 이루시어서, 어서 속히 이 70년대에 세계무대로 뻗어 나갈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부족한 정성을 모아 새벽부터 이 시간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써 이날을 찬양하고 축하하였사옵니다. 부족하나마 정성으로 드리는 이 축하의 날을 기쁨의 날로 받아주시옵고, 영광의 세계에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 앞에 기쁨이 될 수 있고 저희의 후손들 앞에도 기쁨이될 수 있는 이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만민을 거느려 이날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 가운데도 이날의 인연을 기쁨으로 찬송할 수 있고 상속받을 수 있는 자녀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하루로부터 시작되는 이 1971년도를 저희들이 힘차게 갈 것을 아버지 앞에 맹세하오니, 각자가 마음속으로 강하고 담대한 결의를 하여 선두에 서서 이 민족을 이끌고, 이 나라를 이끌고, 이 세계를 이끌고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부터 저희들이 하는 전부를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앞으로 이러한 날을 다시 맞이할 때까지 이날로부터 시작되는 이 한 해를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역사과정에서 기념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이 1971년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뜻대로 모든 것을 일치화시키어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오며, 전체 위에 당신의 사랑과 동정의 마음이 떠나지 않는 자녀들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이 활동하고 있는 제2차 7년노정, 이 기간은 여러분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위해서 제2차 7년노정에 활동한 것은 여러분의 후손들 앞에 남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종족이면 종족, 씨족이면 씨족, 문중이면 문중에 있어서 후손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교재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선조로서 후손들 앞에 남겨줄 귀물(貴物), 혹은 보물(寶物)이나 가보(家寶)가 바로 여러분이 활동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이 때가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과 여러분이 같은 자리에서 공동작전을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는 이때밖에 없습니다. 통일교인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가치가 있겠어요? 뜻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함께 활동을 했다는 것이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중요하고도 가치있는 제2차 7년노정

기성교회를 위해서 이재석 목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외적 환경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다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신학에 있어서 삼위일체 등의 난문제들을 원리를 중심사고 해결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학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통일교회 이재석 목사가 책임진 입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안팎의 중간적인 입장에서 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교인이나 어떤 교파의 목사보다도 그는 중간적인 입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번 기간에 책임자의 입장에 서서 공동운명권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생활이 일체화될 수 있는 천적인 조건을 갖출 수 있는 때이기에 얼마나 귀한 때인지 모릅니다. 이때에 여러분은 다른 것을 바라지 말라는 거예요. 뜻이 지향하는 전통적인 노정을 그르칠수 있는 것을 부인에게 절대로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인이 지방으로 전도를 나갔으면 그 부인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특명 없이는 절대 안 됩니다. 전도 나간 자기 부인을 집에 오라고 하는 남편은 틀려 먹었다는 거예요. 남편이 오라고 해서 집에 오는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말한 바와 같이 특별 교차시대가 있는데, 그때를 1970년 전후로 보니까 바로 지금이 그때로서 여자들이 권위를 세울 수 있는 때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몇 년이 되었습니까? 52년쯤 되었지요? 이때가 여자들이 비로소 여권운동, 여성해방의 운세를 총결집할 수 있는 때입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역사시대에 있어서는 복귀노정을 남자들이 종의 종시대로부터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를 거쳐 직계 자녀의 시대까지 찾아 나왔습니다. 지금 부모님의 시대를 찾아 나오기까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까? 지금까지 뜻을 세워 나오는 데는 남자들이 희생을 치러 나왔지 여자들은 희생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들도 정신적인 면에서 희생을 치렀겠지만 남자들처럼 선두에 서 가지고 뜻 앞에 제물적인 입장이 되어 나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여자들이 그러한 입장에 나아갈, 역사상에 다시 없는 한때라는 것입니다. 이 때가 21년노정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예요? 아담 해와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 즉 원리결과주관권을 넘어가지 못한 것이지요? 해와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중간의 책임이 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해와의 실수를 여자들이 탕감해야 할 시대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차로 여자들에게 개척전도 3년노정을 나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그 뜻을 따랐잖아요? 그렇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차를 지나 언제나 2차가 문제입니다. 뜻을 중심한 세계복귀노정의 운명은 언제나 2차에서 좌우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계승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물론 남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역사를 계승해 내려온 것도 틀림없지만, 통일교회만이 여자를 중심으로 하늘 길을 출발해 가지고 하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신부라는 것은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여자를 말하는 겁니다. 신부가 민족을 대신하는 새로운 섭리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의 말씀은 이것을 두고 한 것입니다. 이때가 마지막 때라는 거예요. 이 기간이 역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사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여기서 왕창 무너지고 민주주의도 여기에서 왕창 무너진다는 거예요. 이렇게 21년노정 기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안 된다면 원리가 틀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어서 여자들이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국가의 운세라든가 교회의 운세를 좌우할 수 있는 사명과 책임을 지고 실천하여 나간 때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통일교단을 중심삼아 이것이 설정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기간이 중요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생명과 사랑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때

선생님이 엊저녁에도 얘기했지만, 모든 일의 성패가 여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자들이 일선에 서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지구장들이 여자들에게 이 사상을 심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럼, 지구장들이 이제 지구본부에 가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여자들은 이러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을 다 퍼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와 생명이 직결된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인들이 자식을 버리고 전도 나간다는 것은 하늘 앞에 생명을 다 바친다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 다음 사랑을 다 바쳤다는 조건이 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랑하는 남편을 버리고 뜻을 위해 임지에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남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이 되는 거예요.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자식과 남편을 생각하지 말고 전도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이북에 가서 집에 편지 한 장 안 했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나선 몸이 뜻을 이루지 못하면 집에 안 돌아간다는 각오를 하고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사상을 집어넣어 주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어제 아침에 말한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통일사상이 무엇이냐? 생명과 사랑을 다 바칠 수 있는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여러분이 확고히 심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확고히 갖추어 생명과 사랑을 하늘 앞에 바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개인 복귀를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나가야만 개인이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의 생명을 부정하고 사탄 세계의 사랑을 부정했으니 하늘 세계의 생명으로 출발할 수 있고, 하늘 세계의 사랑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완성 기준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완성이 아니라 개인완성입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부인들이 개인적인 사랑의 손실과 개인적인 생명의 손실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뜨려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깨뜨려 버린 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지금이 그러한 때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저 그런 부인과 하나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해와의 주권 회복을 위해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남편은 3년 전도 기간에 아내에게 잘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년 동안 여자를 섬기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 3년 동안 여자를 섬겨 봤어요? 이번 기간이 3년 동안 여자를 섬길 수 있는 기간입니다. 또한 이 기간은 예수님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완성권으로 넘어서는 기간에 해당됩니다.

뜻으로 본 해방 직후의 시대

예수님은 종족적 메시아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일시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에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적인 기반만을 이루어 놓았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이남에 와 있던 때인 해방 직후는 예수님이 완성권을 넘어서고자 했던 때와 같은 시대였습니다. 그때의 기성교회는 예수님 당신의 유대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나라도 없었습니다. 교회가 나라를 대신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내적으로 이기붕 씨가 이승만 박사를 업고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나도 거기에 중요한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알았지만 작은 할아버지가 이박사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줄 그땐 몰랐습니다. 평안도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문 아무개'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우리 작은 할아버지이셨습니다. 이박사라든가 독립운동을 하던 지도자들과 함께 역사적 시련을 지고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까 우리 작은 할아버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셨더라구요.

내가 여덟살 땐가에 6.10만세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작은 할아버지는 일본 경찰로부터 갑종 요주의 인물로 주목받고 피신해 다녔습니다. 강원도, 경상도 등의 산악지대로 피신해 다녔습니다. 항상 피신해 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오래 못 살았던 것입니다. 보따리 싸가지고 해방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전국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셨습니다. 작은 할아버지는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배할 때부터 반기를 들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외지(外地)를 떠돌아다니며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집이 큰집이었는데 증조할아버지 때에는 참 잘살았다고 합니다. 하늘로부터 많은 재산을 축복받았기 때문에 그 인근 지역에서는 이름난 집안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재산이 할아버지한테 상속되었는데 할아버지 동생 되시는 목사였던 작은 할아버지께서 그 재산을 저당 잡혀 가지고 어디에 써 버리는 바람에 전부다 파산돼 버렸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 집은 일시에 파탄되어 버린 꼴이 됐습니다. 그런 일로 말미암아 우리 집안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고, 조카들 앞에도 면목이 없게 되어 어느날 온데간데없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 뒤에 어떤 소문이 났느냐 하면 남의 광산까지 팔아먹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때 교인들 가운데 광산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 교인의 광산까지 팔아먹고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게 남의 광산까지 팔아먹고 도망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목사가 패가망신해 가지고 고향에 도저히 있을 수 없으니까 도망가 버렸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그렇게 알고 계셨고, 조카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문중 전체, 동네 전체, 인근 동네에서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모두 그런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 노릇을 한다고 하면서 교인들 못살게 하고 식구들 못살게 해놓고 어디로 도망을 갔으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작은 할아버지에 대해 나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집안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전부다 작은 할아버지를 원망하던 처지였으니까.

그런데 작은 할아버지가 가져간 돈이 어디로 갔느냐 하면 상해임시정부로 갔던 것입니다. 그때 돈으로 7만원이면 상당히 큰 돈이었는데 그 돈을 전부 상해임시정부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고 다니시다 결국 외지(外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일을 했기에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기의 전체를 희생시키고, 교인들을 희생시키고, 문중을 희생시키는 입장에 서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일생을 방랑객으로 지냈던것입니다.

선생님이 남한에 내려왔을 때 친척이라곤 그분밖에 없었습니다. 꿈에 그분이 혈족(文龍基장로)에게 나타나 가지고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주소를 알려 주어서 그 주소를 가지고 사촌동생 용기가 그곳을 찾아갔었습니다. 찾아갔더니, 그때는 이미 작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모든 것이 현몽한 그대로 틀림없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할아버지를 해방 직후 이북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가 워낙 바빠서 얘기도 제대로 다 못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때 그 내용을 전부다 얘기했었다면 뜻은 급속도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뜻이 그렇게 출발하게끔 되어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에게 이박사가 헬립콥터를 세 번씩이나 보내 가지고 데리고 가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남한에서 소리없이 죽은 듯이 조용히 살려는 생각에서였던지 나타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 할아버지가 뜻을 알아서 앞장섰더라면 우리 길은 활짝 트였을 것입니다.

이렇듯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게끔 하나님이 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잘못해 가지고 인연을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기반이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작은 할아버지는 한학자(漢學者)로서도 이름이 나 있었고, 목사이기도 했으니까 그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기만 했었다면, 틀림없이 한자리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게 아니예요? 그런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기회를 놓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결국은 이 나라와 선생님과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을 거쳐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해방 직후는 나라도 없는 때였습니다. 그러니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여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때가 가까와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때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선생님과 인연을 맺고 앞에 나서서 일하던 사람이 기성교회의 유명한 목사였는데 그는 자기가 앞으로 권력을 쥐겠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선생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문제가 벌어지고 우리 통일교회가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온 통일교회

그때에 나는 김백문씨와 같이 출발하게 되었던 거예요. 김백문씨와 나는 가인과 아벨,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김백문이란 이름이 그래서 나온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뭐 선생님이 김백문의 제자니 뭐니 하는데, 선생님이 그의 제자가 될 게 뭐예요?

그 사람은 기독교의 신앙을 하고 있었는데 기독론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위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근본을 잘 모르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신령한 면에서는 당시 기성교회의 최고 신앙 기준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출발하려던 것이 다 틀어져 나가버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김백문씨의 수제자들이 전부다 영계를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도하는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영계에서 가르쳐 주기는 전부다 문선생을 따라가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김백문씨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수도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거기에 모여든 교인들이 신령한 은혜만 받으면 전부다 문선생을 따라가라고 계시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랬지만 선생님은 거기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기반에 들어가 공작을 해서 그 기반을 무너뜨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자연적으로 굴복시켜야 되는 겁니다. 공작을 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굴복시켜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눈물도 많이 흘리면서 모범적인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말없이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결심을 하게 되니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곳을 떠난 후 선생님은 기성교회로부터 그 사람들이 반대받던 것을 몽땅 인계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쓰고 있던 누명을 몽땅 인계받은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누명을 쓰지 않고 나왔을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지 않고 정부의 반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관계를 맺은 연고로 반대를 받게 되어 할 수 없이 이북에 가서 재차 복귀노정을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개인 복귀의 기준을 찾아 세우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남한에서는 사탄이 앞장서서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남한에서 교인 몇 명을 모아 가지고 부산에서부터 전도활동을 시작하여 대구와 김천을 거쳐 서울에 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자리를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 협회장을 만나 새로운 집에서 협회 창립을 했습니다. 통일교회 역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정부와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으니까 할 수 없이 민족의 낙오자들을 규합해 가지고 터를 닦아 나온 것입니다. 어찌 보면 공산당식이에요. 횡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 이 나라로부터 버림받고 기성교회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을 규합하고 인생의 낙오자들을 수습해 가지고 나온 겁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그런 사람들을 키워 가지고 1968년까지 서울에서 어떻게 성공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선생님이 작전을 세워 나왔습니다. 1969년 1년 동안에는 우리가 바라던 목표를 백 퍼센트 달성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를 기점으로 서서히 꼭대기에서부터 우리를 인정하게 됨으로써 한국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벌어질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기성교단과 이 나라가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사랑하고 설득시켜야 했습니다. 이들이 우리의 가는 길을 반대하는 것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 가는 길을 막던 것과 같은 형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그들의 힘을 기반으로 예수님이 가는 길을 막던 것과 같이 대한민국과 기성교회가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기성교회가 우리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반대하는 한계권을 넘기 위해서 내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통일기반 확보'라는 표어를 내건 것입니다.

가정적 사위기대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60년대 이전의 심정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소생이 없는 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소생 없이는 장성이 없고, 정성 없이는 완성이 없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장성적 심정은 소생적 심정을 접한 것이어야 합니다. 소생적 심정보다도 장성적 심정이 더 나아야 됩니다. 장성적 심정이 소생적 심정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은 개인 완성을 표준해 가지고 나오는 소생적 심정시대가 가정을 찾아 나가는 장성적 심정시대에 연결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생 심정 부활시대는 개인완성을 위한 것이요, 그 시대에는 개인완성을 표준해 가지고 가정완성의 터전이 닦아지기를 바라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장성 심정 부활시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공인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 가정이 되어서 가인 가정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의 심정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는 여자들이 남자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지요?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여자는 남자의 지배를 받고 나와야 되지만 타락함으로 인하여 반대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여자의 신세를 져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1970년대에 있어서는 여자들과 여러분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7년노정을 반드시 가야 됩니다. 본래는 제2차 7년노정 출발부터 선생님 가정과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랬다면 희진이가 희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의 희진이는 예수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성진이가 첫째인 아담이요. 희진이가 둘째이기 때문에 후아담인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3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책임을 하였더라면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있는 희진이는 희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희진이가 희생된 것은 가정이 책임 못 한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책임 못한 입장에서는 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은 제2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에 여자들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제2차 7년노정 출발 당시부터 전부 일치되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이 지상과제로 남아지게 된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노정을 거치지 않고 뜻길을 간다면 원리결과주관권내에 그냥 그대로 있게 됩니다.

원리결과주관권을 넘어서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적 심정 일치를 이루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은 역사적인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권내에 있어도 별로 걸리지는 않지만, 언제나 하나님과 사탄의 중간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가정 기준을 이루게 되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가정적 사위기대가 결정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가 설정되고 축복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반적으로 사위기대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특정한 대표자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설정했습니다. 그것은 전가정을 가정기준에까지 끌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설정된 사위기대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2차 7년노정이 끝나면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하고 모든 가정이 사방에서 사위기대를 설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입장이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아들의 입장입니다. 선생님은 아버지의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아버지는 어떤 입장이냐?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적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축복가정이 전부 이 7년노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완성단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즉 가인 아벨이 필요치 않은 자연적인 종족완성권내에 들어선 종족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거기에 비로소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잖아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완전히 하나된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들이 선생님 대신 축복해 줄 수 있게 됩니다. 선생님이 축복을 안 해줘도 여러분들이 축복해 줄 수 있습니다. 완성기준에 서게 되면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자기의 후손들을 축복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적 사위기대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 사위기대를 어떻게 찾아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셋 이렇게 세 가정을 찾아 가정적 사위기대를 이뤄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직까지 후손들을 축복해줄 수 있는 단계에 못들어간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족장들을 중심으로 사위기대를 세워 나왔습니다. 그 족장들이 지구장들이지요? 앞으로 지구장인 족장들을 중심삼고 지파를 편성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파 편성을 함으로써 종족적 사위기대권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주체적 사위기대를 세워 나오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선생님 대신한 입장에 서서 세계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환경적으로 종족적 축복권을 세우게 됨으로써 여러분의 가정이 조상의 자리에 서게 되고 출발의 기원을 이루게 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성교회와 한국 정부를 대해 가지고 장자복귀하는 일을 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가인 아벨을 복귀하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중심한 가인 아벨을 복귀할 수 있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있어서 가인은 북한이요, 아벨은 남한입니다. 이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남자가 완성됐다고 하는 것은 벌써 중심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중심 자리에서는 내가 빨리 커야 되겠다고 하는 소원이 없는 것입니다. 다 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까지는 빨리 커야 되는데 20년은 상당히 길지요? 20세까지 빨리 올라가자는 거예요. 다 올라갔다 할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상대를 찾아야 하는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남북이 통일되어서 일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편을 사랑하지 않고는 복귀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복귀노정을 세워야 합니다. 사탄편으로 세운 나라가 일본이기에 원수인 일본을 사랑해야 합니다. 해와와 천사장이 짝자꿍하여 원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해와 국가인 일본과 천사장 입장의 공산 국가인 중공을 복귀해야 합니다.

일본은 전후 20년 동안에 경제부흥을 크게 이루었습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한국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일본이 산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죄지은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복귀노정을 그렇게 거쳐야합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딱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 선생님이 계획을 세워서 미국에 간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면 중공을 요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하나되기만 하면 중공을 요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만으로도 안 되고 소련만으로도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과 소련을 어떻게 하나되게 만드느냐? 이것이 앞으로 선생님이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것만 해놓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되어 활동하라

섭리적으로 볼 때 지금 때가 어떤 때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번에 가정을 동원한 일은 역사 이래 한번밖에 없는 중대사건입니다. 동원 안 하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돌봐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이 가정을 중심삼고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권내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가정을 이루었으니 법적 질서를 세워 바로잡아야 합니다. 법으로 다스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가정이 이루어지기까지 복귀역사는 빼앗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빼앗겼다가 빼앗았다가 하면서 하나님은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방향을 취해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로부터 빼앗아 왔는데 그것을 다시 빼앗기더라도, 또 다시 빼앗아 올 때에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게 되면 그건 하나님이 취해 나온다는 거예요. 후퇴하면 거기서 끊어지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면 그 사람을 통해서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태어난 후손이기에 수천년 동안 숱한 수난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그렇게 밟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 역사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못을 하더라도 용서해 주었지만 이제부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저지른 죄는 용서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 해와를 지옥에 안 보낼 수 있겠어요? 아담 해와 이후 지금까지 인간들이 수난의 길, 고통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은 확실한 전통적 기반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책임을 다 했다는 자신을 가질 수 있는 단계가 되면 딱 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입니다. 대한민국, 이 한반도를 중심삼고, 4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여러분이 돌아가면 일선에 나가 있는 아주머니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인 이 시대를 중심삼고 그들과 여러분이 원리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이 서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열 가정의 아주머니들이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열 가정의 아주머니들이 하나되면 열 집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요? 여자들끼리 하나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수님을 중심삼고 본 여성의 책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 여러분들은 예수님 시대에 책임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입니다. 예수님 시대를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여자)들은 예수님의 누나요, 동생의 입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은 것은 여자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마리아가 예수님의 신부를 찾아 주어야 할 책임을 못 했다는 거예요. 마리아만이라도 책임을 했다면, 요셉이야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 두고 예수를 복중에서부터 한 3년만이라도 잘 모셨더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이 첫째는 어머니의 책임을 못 했고, 둘째는 신부의 책임을 못 했으며, 세째는 종의 책임을 못 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책임을 못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붙들고 얘기한 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을 종으로 삼고자 해서 그랬던 거예요.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신부를 찾지 못하고 종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서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이니까 종 아닙니까? 그런데 이 종도 책임을 못 한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종 중에서도 누더기 같은 종년이라는 거예요. 다섯 남편을 섬기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가정 형편없고 더러운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여인이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길만이 나의 살 길이라고 하면서 보따리 싸들고 예수님을 따랐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막달라 마리아보다도 훌륭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했더라면 그 사마리아 여인은 마르다나 마리아 이상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죽게 된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어머니, 딸, 종, 3단계의 여자입니다. 타락한 아담을 중심삼고 보면, 아담의 여편네는 종년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여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종의 몸뚱이를 빌어 가지고 예수가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옴으로 말미암아 양자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양자권은 직계권에 가깝지요? 종은 직계 아들인 예수님하고 관계를 맺어야만 양자권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양자인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시대인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종의 몸뚱이를 빌어서 주인(하나님)의 씨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종의 입장이었습니다. 주인의 땅이 없으니까 종 밭에 가서 주인의 씨를 받아 온것입니다. 종 밭에서 받아 온 씨라 하더라도 씨만 옳으면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씨를 종 밭에 심어 가지고 받아 오는데 그 밭이 마리아의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성모로 모시고 야단이지요?

이처럼 종의 몸을 거쳐 가지고 나온 예수를 아들의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이리하여 아들의 자리에 선 예수님을 중심삼고 인연된 사도들은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한 단계 높이 올라간다는 거예요. 예수님과 더불어 일체가 되면 종의 자리에서 한 단계 높은 양자의 자리에 그냥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한 단계 올라왔으니 딸이 나와야 합니다. 종의 몸을 빌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나왔으니 다음엔 하나님에게 필요한 딸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 딸을 예수가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되었으니 예수의 아내가 될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해와가 있어야지요? 후아담, 즉 복귀된 본연의 아담 예수가 나왔으니 복귀된 해와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가 어떻게 나와야 하느냐? 창조원칙에 의해 해와는 아담을 통해서 지어져야 합니다. 예수는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났지만 해와가 태어나는 데는 그런 원칙이 없습니다. 해와가 종의 입장에 탕감복귀하려면 예수가 아담을 복귀완성한 후에 예수로 말미암아 지음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해와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어졌기 때문에 복귀된 해와도 아담을 대신한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중심삼고 복귀된 해와를 짓는 데에 누구의 협조를 받아야 되느냐?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남자 천사장의 협조를 받으면 안 됩니다. 왜냐? 남자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해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남자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여자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해와가 창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타락한 해와를 누가 복귀해야 하느냐면, 아담이 책임지고 복귀해야 됩니다. 즉, 예수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예수의 상대적 존재 해와를 창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아가 먼저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뜻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 천사장의 입장에 선 요셉이 협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종의 입장으로 떨어졌던 아담 해와가 아들딸의 입장으로 복귀되는 겁니다.

아담 해와가 천사장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기 때문에 천사장이 복귀된 입장에 서야만 예수도 예수의 아내도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복귀된 입장에 서야 하는 천사장 부부가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완성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어야 했습니다. 예수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쁨 가운데서 완성될 수 있게끔 협조해 주고, 그의 신부를 선택하는 데 온 정성을 다하여 협조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천사장 부부의 입장으로서 예수와 그의 대상을 본연의 아들딸과 같이 완성시켜 주어야 할 게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마리아를 중심으로 천사장격인 요셉은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해와 앞에 천사장이 굴복했으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요셉이 불평하며 복종을 하지 않은 것은 마리아의 책임입니다. 예수를 완성시키는 데는 마리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천사장과 아담이 실수했던 것을 복귀해 주어야 합니다. 해와가 천사장과 아담, 두 남자를 타락시켰지요? 그러니 해와 입장인 마리아가 천사장과 아담을 복귀해야 됩니다.

해와에 대한 아담의 주관성을 복귀하려면

그러기에 마리아 자신은 천사장 입장인 요셉을 복귀하는 예수와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와 요셉의 관계는 외적으로는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이지만 내적으로는 예수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을 예수가 축복해 주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완전복귀가 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천사장권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복귀된 천사입니다. 요셉은 종의 새끼예요. 종이니까 천사장 아니예요? 복귀된 천사장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요셉을 예수가 축복해 주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살더라도 예수의 동생들을 낳으면 안 됩니다. 낳기 전에 예수가 낳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고 싶으면 해주고 안 해주고 싶으면 안 해주는 것입니다.

해와 때문에 아담 해와 둘 다 깨졌지요? 해와 때문에 본래 이상적인 아담 해와 둘 다 깨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 후아담으로 온 예수 앞에 타락한 해와, 즉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가 될 해와를 복귀시켜 주어야 하는 거예요. 복귀하는 데는 마리아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주께서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지을 때도 천사장이 협조했기 때문에, 복귀역사 완성을 위해서도 후아담을 본따 해와를 지을 때도 천사장이 협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복귀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복귀된 해와가 하나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천사와 천사장의 입장인 종들이 아담의 입장인 예수를 중심삼고 해와의 입장인 딸을 창조했다면 그 딸은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딸이 아니겠어요? 원칙적으로 그렇잖아요? 마리아와 요셉이 그 하나님의 딸과 예수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되기 전에 뭘 해야 하느냐? 예수를 중심삼아서 주관성 전도(主菅性顚倒)를 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주관성이 거꿀잡이가 되었지요? 그러니 주관성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가 3년 노정을 가야 됩니다.

주관성 전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아기가 없으면 주관성을 전도하지 못합니다. 아기를 낳아서 사위기대를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관성 전도가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서로 사랑하는 데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을 맺어 부부를 이루어 가지고 아들딸 낳아 사위기대를 완성함으로써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관성 전도 문제는 해와가 저질러 놓은 일이기 때문에 여자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가 천사장도 복귀해 줘야 하고, 아담도 복귀해 줘야 하고, 해와도 타락 전의 해와로 복귀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겠어요? 마리아가 이 전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주관성을 전도해야 됩니다. 마리아는 천사장과 아담과 해와 이 셋을 복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까지 전부 찾아 세우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원해 나오신 뜻과 인류가 앞으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기원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인류의 목적점이 되어 왔고 하나님의 목적점이 되어 왔습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을 맺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게 되면 거기에서 완전한 것으로의 출발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성 전도를 반드시 해야됩니다.

주관성 전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주관성 전도가 안 되는 거예요. 무엇을 주관하려는 거예요? 생명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탕감복귀노정이라는 이런 길을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아들딸을 사랑하지 못하면 가정적 사랑의 권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주관성이 완전히 복귀되는 겁니다.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주관성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게 복잡하게 생각되지만 사실은 간단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3년노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3년 기간에 믿음의 아들딸을 세워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하여 사랑의 인연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단계는 완성 단계가 아닙니다. 장성기 완성급 단계입니다. 따라서 완전히 탕감을 짓고 완성 단계로 올라갈 수 있게끔 축복가정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 축복가정의 권은 반대한 천사장권이 아니라 하늘편에 선 종적 가정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가정 완성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하나 안 되면 망한다

여러분만 하나되면 전도는 됩니다. 여러분만 하나되어 같이 살면 가만 두어도 모든 것이 잘 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리적인 관이 그래야 될 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사는 권내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완성권내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되어 `우리는 이렇게 재미있게 삽니다. 밥을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고, 나라를 위해 죽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을 구경해 보세요'라고 선전해 보십시오. 누구나 다 그렇게 살기를 원할게 아니겠어요? 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그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하나 안 되면 망합니다. 알겠어요? 「예」

세 사람이 하나되면 지구장은 그들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지구장은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래서 이렇다'고 하면 `예' 해야 합니다. (웃음) 이것이 지구장의 정상적인 전통인 것입니다. 세 사람만 하나되어 있으면 지구장 부부는 그들에게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겁니다. 알겠지요? 세 사람이 하나되면 그것은 완성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준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구장들 큰소리 말라는 거예요.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 한 사람을 중심삼고 세 사람이 딱 하나되어 있으면 지구장은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기분 나쁘겠지만 할 수 없어요.

아담이 완성된 후에 죽었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다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완성을 못 하고 죽었기 때문에 못 만든 거예요. 완성하면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선생님과 하나되어 책임을 다해 가지고 국가 기준까지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면 대한민국을 버리게 되더라도 어디 가서든지 일시에 국가권을 넘을 수 있습니다. 내가 축복만 해주면 그 권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운명에 처해 있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모든 성패가 좌우되는 때가 지금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때를 선생님이 중요시해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중요시해야 되겠어요? 한번 물어 보자구요. 말해 보세요. 여러분이 중요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다 원리적으로 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을 한 십년쯤 지나면…. 지금은 벙벙하지요? (웃음)

우리는 세계를 걸고 복귀해야 합니다. 국가 복귀는 가정만 복귀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생명을 내걸고 넘어가지 않으면 복귀는 안 되는 거예요.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런 것도 모르고서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대왕이 물에 빠져 죽을 입장이 되었을 때, 신하들이 사람들의 옷자락을 찢어서 그걸 이어 가지고 왕에게 던져 왕이 그 줄을 잡고 살아났다고 하면, 왕에게는 그것이 생명줄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줄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말미암아 관계맺은 자가 누구냐가 문제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구장들? 「예」 임자네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가정완성을 이룰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닦아 나온 것과 같은 길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50평생 세 살 난 어린이부터 모든 사람을 모셔 가지고 이 길을 닦아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원래 종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려면 맨 밑창에서부터 거쳐 올라와야 합니다. 탕감노정을 거쳐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원래는 반대받게 되어 있지 않은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얼굴이 과격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만은 명주실처럼 고와야 합니다. 얼굴이 강해 보이면 말은 여자처럼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나임렬이 같은 사람은 얼굴이 여자처럼 생겨서 그런지 말을 해도 사근사근하게 하는데, 요즘 남자들 보면 그저 왕왕왕 시끄럽게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여자처럼 상냥하게 해야 대하려고 하지, 왕왕왕 시끄럽게 하는 녀석들하고는 누구도 안 대하려고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누가 무엇을 잘못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들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비법

이제까지는 여자들이 많이 희생해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남자들을 전부다 동원할 것입니다. 세계 남자들을 전부 다 동원할 수 있는 원리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앞으로 세계 남자들은 전부다 군왕까지도 동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국의 왕도 우리의 뜻을 알게 되면 3년노정을 안 갈 수 없다는 거예요.

나라의 왕이 동원되면 그 나라의 국민 전체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체가 동원되면 그들은 어디로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켜야 되겠습니까? 한국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데려다가 천국사상을 번식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전세계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원리가 안팎으로 딱 갖추어져 있다는 거예요. 이 고귀한 전통적 사상을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이 세계 사람들에게 심어 주지 못하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대한민국의 가정관은 대통령을 위주해 가지고 모든 고관들의 가정에서부터 길이 막혀 있습니다.

통일교회 축복가정의 아기들이 임지에 나가 있는 엄마와 만나 가지고 엄마를 부르며 바라보고 서 있는 비참한 모습들을 전부다 사진 찍어 두어야 합니다. 그 사진을 후손들이 보면 선조들이 이렇게 했노라며 무릎을 꿇고 따라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문화부장이 해야 되는데, 자료가 있어야지요. 우리가 1960년대에 활동했던 자료를 남겨 놓았으면, 금후에 말보다도 실감이 나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텐데, 그때의 자료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 참….

이제 지구장들이 지방에 가서 아주머니들을 선생님 대신자로 알고 모셔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리고 여자들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죽게 된 것은 어머니와 딸과 종의 입장에 있는 여자들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종이 하나님을 믿고 안 믿는 것은 여러분 세가정(36,72,124가정)의 대표들이 하나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나 만드는 비법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먼저 주라는 거예요. 사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주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밑바탕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지니게 되면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을 바탕으로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은혜를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은혜의 표시는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환상이나 꿈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실체의 하나님의 입장에 있는 참부모가 그리워서 울어야 합니다. 자꾸만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밥이라도 한 그릇 지어놓고, 물이라도 한 그릇 떠 놓고 모시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물이 앞설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심정일치가 되고 선생님과 같이 호흡함으로써 선생님의 인격 기준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선생님의 과거와 거기에 얽힌 사연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알게되고, 나아가 그것을 상속받고 인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 가인을 사랑하라

심정 일치점에 서는 것은 생명 일치점에 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생명의 일치점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과 선생님의 사랑권에 반드시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된 사랑권을 이루어서 가인을 위하여 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참소하는 것은 뭐냐? 여러분이 완성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야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적 사랑을 하나님에게서 받아야 했는데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해와는 완성한 후에 천사장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성한 후에 해와와 함께 천사장을 사랑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주기 전에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요, 완성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완성한 자리에서, 즉 하나님의 생명권에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참부모의 사랑으로 일체화된 완성 기준에서 부부를 이루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했다 할 때 사탄은 참소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 세계와 하늘 세계를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이요, 사탄 세계와 하늘 세계 사이에 구렁텅이를 메우게 하는 것입니다. 가인을 사랑할 때 누가 먼저 가인을 사랑해야 하느냐? 해와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자들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인은 천사장이지요? 천사장에는 영적 천사장과 육적 천사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천사장편인 가인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사탄이 참소하게 됩니다. 사탄이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거예요. 사탄의 참소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완성한 자리에서 천사장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해 가지고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한 기준이 남아 있기에 이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복귀된 에덴의 이상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틀림없이 가인을 사랑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인을 사랑하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느냐? 세상의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탄도 도망치는 겁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생명을 다해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생명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사랑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딸을 대신해서 생명을 다해 천사장을 사랑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권을 완전히 사랑했다는 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에 가인적인 존재는 아벨적인 존재 앞에 자연 굴복하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은 고생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새 식구를 찾아 세울 때 세명 이하면 걸린다는 것입니다. 세 명 이상의 가인적 세계의 사람들이 아들딸을 대신해서 가정의 부인을 모시고 협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가정의 부인들을 내세운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주는 천사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있어야만 가정복귀가 완전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리적인 거예요. 왜 그러냐? 천사장이 배반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려면 천사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이 말씀을 잘 수행해야 됩니다. 언제 여러분의 실적을 보고받기 위해 수련회를 한번 가지려고 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지역장과 지구장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 시대가 오기 때문에 그 이전에 지역장 지구장들이 책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축복받은 가정들이 일해야 될 때입니다. 60년대에는 축복을 기다리는 처녀 총각들이 동원을 했습니다. 좀더 이야기할까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주게 되면 머리가 멍해지지 않아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아디 가서 종결되느냐? 가정에서 종결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어떤 때는 배가 고파서 아들도 잊어버리고, 딸도 잊어버리고, 아내도 잊어버리고 그저 먹는 것만 생각하게 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밥을 그리워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해야 되느냐? 그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그리워해야 됩니다.

다른 데는 아들딸을 동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가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까지 일시에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남아져야 합니다.

아들딸은 부모가 책임져야 합니다. 저들은 아들딸을 동원하고 있지만 우리가 거기에 앞서 부모까지도 동원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도 탕감조건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도 불가피한 것입니다.

자기 아내 이상으로 동원된 부인들을 위해 줘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 1971년도 표어인 `통일기반 확보'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그 계획에 대해서 써 줄까요? 「예」 선생님이 오늘 얘기한 것의 중심적인 내용만 하더라도 상당히 많습니다.

통일기반 확보(천의)

통일기반은 인간만으로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一. 주체적 자체확립(원리)

자신이 주관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주관적인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1) 아담을 중심한 주체적 통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주체적 자체의 확립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 생명의 통일성

하나님과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되려면 생명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되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은 생명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기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에 연결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통일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타락한 생명을 버리는 자리, 즉 자기 생명을 희생시키는 자리의 끝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 길은 뜻을 위해 가는 길, 하나되기 위한 길, 생명을 걸고 가는 길입니다.

나) 사랑의 통일화

생명의 통일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통일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 통일애의 주관화

가인과 아벨, 하나님과 아벨, 하나님과 가인의 관계에서 통일애의 주관화가 벌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상대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입니다. 통일애의 주관화라는 것은 두 사람만의 상대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세 사람 사이의 삼각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천사장과 아담과 해와는 삼각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담만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해와도 주관해야 되기 때문에 삼각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도 상대를 사랑으로 주관하는 동시에 만물까지 주관해야 합니다. 인간과 만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니 삼각관계라는 것입니다. 이 관계에서 통일애의 주관화가 벌어지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통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했다고 해서 무조건 아내가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에 속한 일체를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만이 아내가 자동적으로 여러분의 주관권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왜그래야 되느냐? 원리적으로 보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하나되고 거기에 번식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번식이 없다면 제3의 사랑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지은 것도 아담과 하나님만 주고받으면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제3의 사랑의 기점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와를 지음으로 인해 제3의 사랑의 기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주관이 벌어지는데 이것은 소유가 횡적인 동시에 입체적으로 벌어지는 거예요.

소유가 요구하는 것은 점(點)도 아니요, 선(線)도 아닙니다. 면과 입체를 요구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3점 사랑권을 거치지 않고서는 소유의 면과 입체성은 생겨날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입체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의 행복의 폭은 보다 더 커질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어 있어요?

통일애의 주관화라는 것은 결국 부부끼리 둘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 만물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통일애의 주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소유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여러분이 아내를 가졌다고 해서 소유욕이 없나요? 사랑의 대상으로서 아들딸을 갖고 싶지요? 아들딸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심정적 소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잖아요? 통일애의 주관화라는 것은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삼각관계의 사랑의 인연을 갖추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평면적 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면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땅을 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가 사랑하는 것까지도 일체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애의 주관권은 이상권입니다. 그러한 삼각의 인연을 얼마만큼 확대시켜 가지고 사랑의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으로 사랑권이 얼마만큼 크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라) 천국의 생활화

통일애의 주관화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천국의 생활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생활은 나 자신뿐만이 아니고 전체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주체적 통일성, 생명의 통일성, 사랑의 통일성, 통일애의 주관화, 천국의 생활화, 이것이 주체 자체를 확립하는 기본 요건입니다. 알겠어요?

(2) 가인

二. 원리와 통일된 가정 확립

혼자일 때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둘 이상일 때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거기에 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은 복합체이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는 복합체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원리원칙을 중심삼은 법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원리와 통일된 가정확립이 벌어지지요.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생활해야 합니다. 이 생활권을 어디에 적용시킬 것이냐? 복귀도상에 있는 우리는 아담 해와를 찾아가기보다는 예수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가 소원하던 그 가정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원리와 통일된 가정 확립이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하면 앞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통일성과 사랑의 통일화가 되는 곳입니다. 이것은 원리원칙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을 어떻게 해서 우리 가정에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원칙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와 통일된 가정확립을 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인들은 그 전통적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되느냐? 예수님의 가정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정이 있어요? 예수님의 가정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이 두어야 되는데 예수님의 가정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개인의 기준은 아담에게 두었지요? 그 다음에는 예수를 복귀하기 위해 예수에게 기준을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통일된 가정 확립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예수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도 그것을 중심삼고 하나되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복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의 표준은 예수님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가정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가정을 이루어 놓은 입장에 서게 되면 예수님의 소원 성취의 자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정을 확립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하고, 둘째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하고, 세째 이스라엘과 유대교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한을 푸는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벌어졌느냐 하면 하나님에게 한이 맺혀졌고 예수님 자신에게 한이 맺혀졌으며,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망하게 됐습니다. 그렇지요? 유대교와 이스라엘이 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찾아 세운 이스라엘 선민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인류의 한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을 통일시킬 수 있는 전통적 통일기반이 이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을 어떻게 푸느냐? 예수님의 한을 어떻게 푸느냐? 이스라엘의 한을 어떻게 푸느냐?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면서 바라신 소원이 무엇이냐? 세계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세계를 구하기 전에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나라를 구해야 됩니다. 나라를 구하기 전에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교회를 구해야 됩니다. 교회를 구하기 전에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가정을 구해야 됩니다. 가정을 구하기 전에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개인을 구해야 됩니다. 통일기반이 확보될 수 있는 기준에 제일 먼저 개인을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못 찾으면 가정이 안 나오는 것이요, 가정을 못 찾으면 종족이 안 나오는 것이요, 종족을 못 찾으면 민족이 안 나오는 것이요, 민족을 못 찾으면 국가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민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연결시켜서 국가 복귀를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즉, 민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하나님권에 몰아넣어 가지고 국가 복귀의 사명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을 먼저 풀어야합니다.

하나님의 한을 풀려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한을 국가가 풀어 주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 한은 국가가 풀어야 풀리지, 세계 자체로서는 풀지 못하는 겁니다. 국가의 한은 민족이 풀어 주어야 풀리고, 민족의 한은 종족이 풀어 주어야 풀리는 것입니다. 전부다 이렇게 쭉 연결되는 거예요.

그러니 세계의 대표요, 국가의 대표요, 민족의 대표요, 그 다음 종족의 대표요, 가정의 대표요, 개인의 대표로 세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유대교라는 것입니다. 유대교만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그 나라는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를 탕감시켜 해원성사시킬 수 있는 기준은 자동적으로 설정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유대교 안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시는 주님은 무엇을 하려고 오시느냐? 이 한을 풀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오시는 데는 누구를 찾아오시느냐? 세계의 대표, 국가의 대표, 민족의 대표, 종족의 대표, 가정의 대표, 개인의 대표들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곳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냐? 교회입니다. 예수시대로 말하면 유대교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로 말하면 유대교라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찾아오신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거기서 개인적인 완성도 가정적인 완성도 종족적인 완성도 민족적인 완성도 전부 다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평면적으로 한꺼번에 다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단이 주님이 틀림없이 이 땅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베들레헴에 날 것을 알아 가지고 하나되어 협조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 당시 유대교는 사상적으로 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는 내적, 마음적 주인이 되고 유대 나라는 외적, 몸적 기준이 되어 자동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지상 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중심을 찾아 오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유대교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교가 예수님을 반대한 것은 국가가 반대한 것이요, 세계가 반대한 것이요, 전부다 반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 걸려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잃어버렸고, 나라를 잃어버렸고,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을 전부다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원수 사탄에게 전부다 넘어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전부다 예수님과 원수의 입장에 서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이 죽게 된 것입니다. 원수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중심삼고 해서 실패한 것을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로 전개시켜 재차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독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당했던 고통 이상의 죽음의 권내에 들어가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은 싸운다고 해야 말도 풍습도 같은 아랍권내의 이방 사람과 싸웠지만 기독교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적 싸움을 거쳐 기반을 닦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세계적인 이스라엘권과 세계적인 유대교권을 영적으로 형성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지요? 영적인 이스라엘권이 민주세계요, 영적인 유대교권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디로 오시느냐. 그곳이 어디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한국으로 오실 것이냐? 한국은 옛날의 로마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옛날 로마는 원수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기독교권 로마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하늘편 로마라는 거예요. 섭리적인 역사과정을 통해서 로마의 입장인 세계적인 기독교권 국가와 천사장권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만 한번 뒤넘이치게 되면 천사장권인 민주주의권은 그냥 하나로 부흥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만 하나되었더라면 로마를 중심삼고 아랍권과 싸워 나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세계적 판국이 되었습니다. 민주 세계가 반대하는 천사장권이 아니라 하나님편인 기독교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의 권을 형성할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은 복귀된 천국을 대신할 수 있는 세계적인 아벨 국가 입장에 서 가지고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을 복귀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제3이스라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3이스라엘 내에 있는 기독교는 제1이스라엘의 유대교를 대표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 외곽적인 판도를 보면 과거 로마는 제1이스라엘의 원수였지만, 오늘날의 민주 세계는 기독교 문화권, 즉 협조하는 천사장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이처럼 한국과 세계가 연결되어 가인 아벨로서 협조할 수 있는 기준이 다 갖추어졌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한국이 아벨이면 미국은 가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의 독립을 협조해 줌으로 말미암아 자연적으로 가인이 아벨을 협조한 기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기에 오시는 주님과 한국 기독교가 하나만 되면 미국은 대번에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을 한국이 지지하고 새로운 국가 창건의 사상으로서 등장시켰더라면 미국이 여기에 하나되어 들어왔겠어요, 안 들어왔겠어요? 그렇게 됐더라면 통일교회는 대번에 세계로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졌을 거예요.

영계의 예수님이 2천년 동안 해 나오신 일이 무엇이냐? 영적 구원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천사장 세계를 실현시키기 위한 운동을 해 나왔습니다. 오시는 주님 앞에 가인권 세계형을 이루어 주기 위한 운동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자체의 입장은 천사장 세계가 지상에 군림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지상의 기반을 가진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맞을 수 있는 입장에서 민주세계권을 주님 앞에 연결시켜 줌으로써 세계는 주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은 대번에 세계 정상에 앉게 되는 거예요.

이 세계에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있습니다. 공산세계는 뭡니까? 사탄입니다.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사탄은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섭리는 다 끝나는 거예요. 공산세계의 독립이 아니라 민주세계의 독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를 구하고 공산세계권을 해방해 주어야 할 책임을 통일교회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종교 중의 종교로 기독교 가운데서도 제일이 되어야 합니다. 반공사상을 지니고 나가는 데 있어서도 통일교회가 제일이 되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국가를 중심삼고 그렇게 제일이 되면 우리 때가 가까와 온 줄 알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재봉춘(再奉春)의 세계권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를 기성교회가 전부 다 반대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연유에서 선생님은 세계적인 가인을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그 세계적인 가인이 이북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 이북에 갔다 와야 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삼팔선을 경계선으로 민주세계 최고의 공산세계 최고가 맞붙어 있기 때문에 그 이북에만 갔다 오면 세계적인 사탄권에 가서 가인을 찾아오는 조건이 세워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노정 가운데서 효과적인 판도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삼팔선을 갈라 이북에 악한 북괴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이북에서 네 사람을 찾아 나왔습니다. 원필이와 여자 세 사람을 찾느라고 감옥생활을 하고 햇수로 5년을 고생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들을 못 찾아 나오면 안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누구누구냐면, 승도노친네, 원필이, 정달옥씨, 옥씨 할머니 등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앞으로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세계로부터 빼앗아 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겼던 것을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소유권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냐? 완성한 아담의 입장이요, 완성한 예수의 입장이요, 재림주 자체의 입장으로서 이 시대의 남자 실체로서 완성한 분입니다.

선생님이 세 여자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3시대의 여자들이 잘못한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원필이가 20세 전에 선생님을 모셨다는 것은 지극히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공산권 가인 세계를 대표한 가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해 절대 복종해야 되는 거예요. 여기에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의 명령에 대해서 핑계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남에 내려와 가지고 재차 출발할 수 있었던 겁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출발할 수 있지요? 그렇잖아요? 가인적인 외적 내적 모든 조건을 찾은 입장에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원필이가 전부다 뒷바라지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나왔는데 기성교회가 반대하니 뜻을 받들 수 있는 교단을 만들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러한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세계를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그런 교단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목적은 무엇이냐?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세계에 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하자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것을 위해 통일교단이 제1차, 제2차, 제3차의 탕감노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과 모든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 자신이 그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럴 게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 전체가 선생님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교회가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선생님이 죽고자 하면 죽을 수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죽을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같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감옥에 갔을 때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다 보따리 싸 가지고 몰려오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본래는 뜻을 이북에서 이루어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내가 감옥살이하게 되었을 때도 반대하는 무리들을 대해서 모두가 하나되어 싸워 나왔더라면 선생님이 출옥하지마자 모두다 데리고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이북이 빨리 해방될 수 있었을 것이며, 선생님이 빨리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 거예요. 야곱이 돌아올 때처럼 거기서 가정을 전부다 편성해 가지고 나왔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조건만 세워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단체를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래 그런 내용의 하나님의 뜻이 있었고 사탄세계에 사상적으로 준비된 단체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탄권내에서 찾아와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해 이북 땅에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찾지 못하고 다 잃어버리고 나왔으니 할 수 없이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1960년대에 재출발을 한 거예요.

유협회장이 교회에 들어온 게 언제지요? 「1953년입니다」 1953년부터 7년노정을 준비하여 1960년부터 재출발을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준비하는 7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유협회장은 편지로써 제자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가인 세계, 사탄 세계로부터 개인적인 가인을 굴복시켜 복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대표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가 불구의 몸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지만, 그를 대표자로 세워 가지고 출발했던 거예요. 있는 정성을 다하게 되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초창기에는 우리 교회가 부산, 대구, 서울 세 곳에 있었습니다. 이 세곳에 있는 교회가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반을 통해서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서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지 않고는 완전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해 놓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해원성사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세계의 대표요, 국가의 대표요, 민족의 대표요, 종족, 가정, 개인, 등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서 그러한 교회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6천년 한의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당시에 나라와 민족과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교회 전체가 하나되어 오시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고 자식이 반대하더라도 나라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남편, 아내, 자식 할 것 없이 다 버리고서 선생님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때가 60년대였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이 탕감되느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4천년 동안 길러 온 것은 그 기반 위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어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차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예수님을 완전히 사랑했다는 입장에서야만 하나님의 한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의 한이 무엇이냐? 민족과 교회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민족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면 무엇을 하실 것이냐? 정성을 다하여 개인을 사랑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가정을 사랑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종족을 사랑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사랑하실 것이 아니겠어요? 사랑하지 못한 것을 사랑받는 자리에서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해원성사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맞지요? 「예」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과 통일교인과의 관계에서 통일교인들이 자기 생명 이상으로 선생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선생님도 생명을 바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서 무엇이 성립되느냐? 승리적 교회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승리적 교회권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기틀과 통일교회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도해 나오는 교회가 이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따라서 선생님이 교회 하나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해성성사를 하여 이스라엘과 유대교의 잘못을 한꺼번에 탕감복귀해야 하는 때가 60년대입니다. 그것을 해원성사하였기 때문에 가정의 축복기준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할머니들이 선생님을 참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두고 보면 예수님에게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고, 형님 누나가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사돈네 팔촌 등 친척들이 있습니다. (이하 필기첩을 정리한 것임)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님의 한이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이 이것을 복귀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연결시켜 사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지상천국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명을 인계받은 예수님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또는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진정으로 예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입장에서 골고루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서 통일교회의 모든 식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탕감복귀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한, 예수님의 한, 이스라엘의 한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혀를 깨무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라도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해원, 복귀,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천국은 여러분의 가정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 직계의 사랑권을 이 땅 위에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독신 예수와 같은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건으로 믿음의 세 아들을 세우고, 12가정을 세우고, 70종족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국 가정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三. 원리와 통일된 교회 확보

1) 교회의 형성은 모든 형제가 통일의 기반을 확보하는 데서

2) 가정 통일화의 실현을 위하는 데서

3) 70문도(장로)와 주님(예수)과의 일체화

하나님과 통일교회가 하나되어 기성교회를 사랑하면 통일된다.

4) 기독교와 기타 종교와의 통일화

5) 교회 천국 생활화

四. 원리와 일치된 이스라엘의 주권 확립

1) 신의(神薏)에 따라 교회가 통일된 기반에서 형성됨

2) 통일사상의 국민 무장화

3) 120국가 통일화

4) 통일애의 실천, 보편화(남북통일)

5) 천국생활 전국화

五. 원리와 통일된 세계확립

1) 개체 국가 통일화와 주체화

2) 상대국가와의 일체화

3) 3국가 일체화

4) 12국가 일체화

5) 70국가 일체화

6) 120국가 일체화

결론적으로 통일사상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 교회 국가 세계를 일체화 및 통일애의 주체성 확립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일체화 및 통일은 신과 개인 가정 국가 세계가 동일한 부자관계의 정을 체휼하는 데서 확립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하는 개인, 종족을 위하는 가정, 민족을 위하는 종족, 국가를 위하는 민족, 세계를 위하는 국가, 천주를 위한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천주를 위한 세계, 즉 통일세계는 하나님의 위한 세계로서 전체 주관과 절대목적 상대목적을 이루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1-21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1971년 1월 3일, 역사적인 예수의 탄생일을 축하할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을 갖게 하여 주신 데 대해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1970여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 나오시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터전 위에 가정을 세워,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찾고 가인적인 국가로 로마를 굴복시켜 세계를 복귀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사명을 앞에 놓고 홀로 애쓰다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정을 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슬픈 날들을 보낸 것을 그 누구도 몰랐사오나 아버님만은 아셨사옵니다.

외로운 행로를 개척하시느라고 슬픈 마음을 품고 나오시던 예수님은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과 교단의 배반을 받았사옵고, 마리아가 천적인 내적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죽음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원통한 죽음을 저희들은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3일노정을 거쳐서라도 하늘 보좌는 물론이고 지옥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구원해야 할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부모의 인연을 갖고 왔던 외로운 예수님의 사정을 그 당시에는 누구도 몰랐습니다. 따르고 있던 제자들도 몰랐고, 예수님을 소망으로 바라보던 만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쳐 충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저희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깨닫고, 그때에 맺힌 예수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리는 오늘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편이 되어야 할 마리아가 예수님편이 되지 못하였고,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친척권내의 동생 한 사람도, 누이 한 사람도 갖지 못하였던 것이 얼마나 한스러웠던가!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제 통일교단은 당시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연결시켜야 했던 것처럼, 기성교회 앞에 아벨적인 교단 형태를 갖춘 입장에서 기독교 전체 교단을 가인의 입장에 세워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 시점에서 땅 위에 맺혀진 원한의 사연들을 풀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 일이 되어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땅 위에서 횡적인 기반을 세우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연을 이 시간에 실체를 세워 탕감할 수 있는 한 터전을 마련하는 시간으로서, 아버지, 저희들에게 역사과정에 없었던 크리스마스 축하의 밤을 갖게 된 것을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여, 여기에 있는 한 실체를 세우시어서 땅 위에서 풀지 못하였던 역사적인 한을 푸시옵소서.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갖추지 못하였던 영적인 기반을 저희 통일교단이 갖추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통일교단이 기성교단과 한국의 터전을 넓혀야 할 1971년도, 중요한 이 때를 맞아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귀한 시간으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예수님은 기성교회를 대신한 영적 세계의 선조들과 땅 위에 있는 10억 가까운 기독교인들을 당신 앞에 모아 놓고 땅 위의 한 실체와 더불어 하나의 인연을 갖추어서 해원성사하시기를 바라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는 엄숙한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예수님이 죽음길을 가면서까지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며 효자의 도리, 충신의 도리를 지켰듯이 오늘의 한 실체도 그와 같이 외로운 생애 노정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절개와 지조를 갖추어 하늘의 도리를 세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명을 다할 수 있게끔,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여기에 있는 식구들이 이제까지는 이러한 내용을 다 알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늘의 뜻이 이렇게 남모르는 사연을 거치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께서 저희의 갈 길을 닦기에 입체적인 수고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진정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마음과 몸을 다 갖추어 역사적인 하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과 유대교의 한을 풀어 줌으로써, 이것이 이 시대에 있어서 민주세계의 한과 기독교의 한을 풀 수 있는 평면적인 조건이 되고, 지상에서 악을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내연으로 결정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말없이 아버지 앞에 감사하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존중시하면서, 이 날을 내심에 넓게 깊게 은은하게 축하하면서 아버지를 길이길이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침묵 가운데서 이 시간을 마음 깊이 찬양하고 이러한 날들을 기억하면서 금후에 아버지를 숭상하여 아버지가 기뻐하는 자리에서 저희들의 생활을 반성해 나갈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약속한 대로 부모님의 이름을 통하여 영계에 있는 예수님을 우리가정의 하나의 아들로서 세우는 동시에 땅위에 하나의 실체를 찾아 아버지 앞에 세워 영계와 육계가 가인 아벨의 가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자녀복귀의 결정적인 인연을 갖추는 엄숙한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1971년도에는 `통일 기반 확보'라는 엄청난 표제를 중심삼고 저희들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는 것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이 풀려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고, 가인 아벨의 역사적인 한도 여기에서 풀려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것이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체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제 지상의 한 분이 성신의 실체로서 예수님과 일체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부모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보다도 하늘 가정을 받드는 데 있어서 본이 될 수 있고, 하늘의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영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고, 육적인 상대의 기반을 거쳐 충성의 도리를 다하는 효성스런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충신열녀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기독교 전체가 하늘 앞에 흡수되는 데 있어서 중간 역할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영계에 있는 예수는 12사도와 지금까지 왔다 갔던, 기독교 역사상의 선한 조상들을 거느리고 땅 위에 남아 있는 기독교를 품고 새로운 세계의 통일교단 앞에 완전히 봉헌할 것을 상대 실체와 더불어 이 시간 약속하며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여! 참부모의 이름을 따라 여기 한 분이 예수님과 상대로서 인연을 맺어 가정의 명분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하나되지 못하였던 영계와 육계를 하나되게 하시옵고, 하나되지 못하였던 가인과 아벨을 하나되게 하시사 복귀세계에 있어서 천사세계와 아담세계의 권한이 이 시간을 기하여 새로이 발족할 수 있는 내용을 아버지의 권위와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생명과 아버지의 전능이 권한을 통하여 성립시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앞에 간절히 아뢰옵니다.

오늘 이 축하의 크리스마스가 역사적인 열매가 되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모심의 도리의 표준이 될 수 있게끔,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예수님이 바라던 실체적인 생활권을, 이제부터는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늘을 대신하여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표본을 이어받아, 하늘 가정의 거룩한 터전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인 개개인이 일체가 되어 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을 받들어 나가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날이 복되고, 이 시간이 거룩하게 허락하여 주시어 기쁘신 가운데서 받아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안타까운 생애노정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가정적 기틀을 갖지 못한 그 한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피의 탕감을 거쳐왔던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오늘 이 시간을 그 모든 것이 탕감되고 하늘의 모든 소원의 기점이 결정되는 기쁨의 시간으로서 맞아 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내가 기도하는 내용을 듣고 대강 알았겠지만 1971년도는 역사적인 새로운 해가 되어야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제 지구장회의 때도 지구장들한테 소상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시삼은 섭리와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느냐? 현재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루려 하던 뜻, 그 소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셨기 때문에 다시 올 때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시 이루어야 할 때를 소망으로 남기고 가셨기 때문에 그 소망의 기점을, 그 소망의 때를, 그 소망의 터전을 우리들이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준비하셨던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는 영적인 이스라엘 나라가 아닙니다. 땅 위에 하나의 주권을 갖고 있고 땅 위에 하나의 민족을 갖고 있는 동시에 땅위에 하나의 정신적인 중심인 유대교를 갖고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유대교를 중심삼아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씨족을 세웠습니다. 그 씨족이 어떤 씨족이냐 하면 요셉 씨족입니다. 요셉 일가를 유대교의 중심 되는 하나의 씨족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유대교의 중심 씨족으로 세워진 요셉 가정은 유대 나라의 중심이요, 교회의 중심이요, 씨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맞는 데 있어서는 마리아와 요셉은 물론이고 요셉 일가 전체가 그때의 이스라엘 사람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신봉하는 어떠한 교인보다도 정성 어린 마음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메시아를 바라던 그 누구보다도 기쁜 자리에서 예수를 맞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 요셉 씨족이 예수를 기쁜 자리에서 맞았느냐? 성경을 보면 그들은 그렇게 맞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모인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했을 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 가운데는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한의 심정이, 모친인 마리아가 교회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씨족을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의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못한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친까지도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친척들은 물론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도리어 예수님이 미쳤다고 소문을 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오셨지만 이스라엘 나라가 배반하고, 유대교를 중심삼아 찾아오셨지만 유대교가 배반하고,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찾아오셨지만 요셉 가정이 배반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자신도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적인 입장에서 자기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의 법도를 세우고 하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는 발판을 닦아 줬어야 할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책임을 못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인 마리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요셉을 수습하고 그 형제들을 수습하고 친척들을 수습하고 유대교를 수습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예수님의 휘하에 들였더라면 그때 예수님을 중심삼고 아벨적인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으면 예수님은 그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로마를 대해 가인 아벨 기준의 복귀를 시킬 것이 아니라 아랍권을 중심으로 그때에 같은 말을 쓰는 이방의 사람들을 전부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복귀시키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옛날 이스라엘의 족속들로 같은 혈족이었다 이겁니다.

이들을 가인 입장에 세워 가지고 복귀하여 아랍권을 통일시켰더라면 로마는 틀림없이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천국이념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셨더랬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뜻 앞에 있어서, 또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뜻 앞에 있어서 지상의 터전을 갖추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갈래야 갈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 앞에 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품고 뜻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수님은 원치 않았던 비참한 운명이 자기 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 자신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애달픈 마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간곡하고도 피어린 기도를 하신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환경적으로 기울어져 이 길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임을 아시는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육적인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영적인 이스라엘까지도 잃어버리게 되어 하나님의 4천년 역사는 안팎으로 실패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적인 승리의 기반이라도 지상에 남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자녀, 영적인 가정, 영적인 종족, 영적인 국가, 영적인 세계형을 표방하고 남겨야 할 입장에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해 가지고 새로이 섭리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 것이 기독교입니다.

재림역사의 과제

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예수님이 영적으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영육을 중심삼고 찾아 세워야 할 부모를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종족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고, 국가를 수습하는 일을 재현시킨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는 길은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예수님을 맞을 수 있게끔 영육을 중심삼고 수난길을 개척해 나오셨으나 이스라엘 나라의 불신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이것을 되돌아가 영적으로나마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해 나오는 길입니다. 이렇게 발전해 나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그때 예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특정한 나라를 중심삼고 출발했지만, 예수님은 오셨다가 가신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는 그 나라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한 단계 더 높은 세계적인 기반을 목표로 삼고 지금까지 발전하여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실패한 민족적인 모든 기준을 세계의 기준에서 복귀하기 위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갖추어진 개별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기반이 아니라 영적이지만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들어 놓고 그 기반 위에서 국가가 실패한 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소망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태에 있어서 국가의 소망을 넘은 세계적인 발판을 형성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이스라엘권은 민주세계요, 영적 이스라엘에 대해서 영적 유대교권은 기독교인 것입니다.

전세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는 제2이스라엘권이 되는 것이요, 기독교는 제2이스라엘권의 사상적인 지도를 맡아야 할 입장, 즉 이스라엘 나라 앞에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이스라엘과 기독교는 이렇게 영적으로 쭉 연결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역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적이 이스라엘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갖춘 터 위에서 해야 됩니다. 영적인 개인에서부터 영적인 가정, 영적인 종족, 영적인 민족, 영적인 국가, 영적인 세계권까지 승리적인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지상에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지상 수습 작전을 할 수 없는 것이 재림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영적 세계에 있어서 승리적 이스라엘 왕권을 갖추어 가지고 지상에 군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계를 완전히 굴복시켜 휘하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상에 군림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지상에서는 실체적인 재탕감노정을 거쳐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적으로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이 승리했습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이 세계적 이스라엘권은 무엇에 해당하느냐 하면 세계적인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천사가 아담 앞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세 천사를 중심삼은 천사세계가 아담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그렇게 굴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영적 이스라엘 기반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제3아담이기 때문에 제2아담인 예수님이 영적으로 승리한 영적 이스라엘권의 발판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제3아담은 제2아담이 닦아 놓은 영적 승리 기반을 계승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반을 계승해 가지고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세계는 전부다 지상에 자리를 잡고 실체적인 기준을 통하여 예수님이 당시에 세계적인 복귀의 터전을 승리적 기반으로써 결정지으려 했던 것을 재차 탕감하는 노정이 실체적인 재림주님이 오셔서 가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그러한 노정을 거치면서 이 땅 위에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주에 대한 기독교와 민주세계의 책임

예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죽었느냐? 세계를 중심삼고 죽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제물로서 죽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스라엘 나라 때문에 죽었어요. 세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예요. 세계까지는 못 갔다는 거예요. 세계는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과 하나된 후에야 갈 수 있기 때문에 못 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죽게 된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유대교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유대교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유대교의 중심인 요셉 족속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요셉 가정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까지도 예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오시는 주님은 영적인 세계적 승리기반을 터전으로 해서 그것을 지상에 연결하여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뜻이 어떻게 이루어져 나가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것은 영적 승리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이렇게 죽 연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본다면, 예수님이 죽은 것은 지상에서 나라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교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종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가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부모가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연결 안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자리밖에 못 나갔다 이겁니다.

영적인 이스라엘권의 승리적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상에 기독교가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승리적 기반의 터전 위에 이 세계를 표준해 가지고 세워진 것이 세계의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즉, 세계적인 영적 승리의 기반 위에 실체적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 오늘날의 세계적 기독교입니다.(칠판에다 도표를 그리고 설명하심)

세계적 기독교권은 외적으로는 민주세계요, 내적으로는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봤을 때, 외적으로는 이스라엘 나라가 민주세계의 입장이고, 내적으로는 유대교가 기독교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 이스라엘권을 상속받지 않고는 지상에 올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권을 전부 상속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적으로만 맺을 수 있지 육적으로는 관계맺지 못합니다.

그러면 영적 이스라엘권은 뭐냐? 그것은 영적 세계에 있어서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권입니다. 아담은 실체세계요, 천사는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적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한 일이 뭐냐 하면 천사세계를 복귀했다는 것입니다. 천사세계의 권을 지상에 이루어 놓은 것이 기독교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나 영적인 천사세계권을 이루어 놓았다 해도 영적 천사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영적인 천사들이 협력해 가지고 육적 아담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육적 아담 복귀의 실체로서 오시는 분은 재림주다 이거예요.

재림주님은 왜 오셔야 되는가? 이스라엘 나라가 이 기준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안팎이 완전히 하나되었으면 죽지 않고 영육을 중심삼고 거기서부터 세계적인 가인 아벨 탕감복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가인을 아벨 앞에 굴복시키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고 뜻을 이루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기반 전체가 무너졌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던 이것을 재현시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권내에서 이 기준을 재현시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패하였던 것을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을 발전시켜 육적인 권의 세계로 연결시키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영적인 권을 상대될 수 있는 육적 권의 기준까지 세우기 위해서는 다시 이와 같은 내용을 실체적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세계 기독교를 통합하기 위해서 오셔야 하지만 세계 기독교를 통합하기에 앞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뜻을 이루어야 했으나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 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지상에 발판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 발판을 다시 찾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한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면 한국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민족과 기독교의 실패를 수습해야 할 통일교회

한국이라는 나라는 실체적 주권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땅위에서 승리한 실체적 이스라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이루려다 실패했던 당신의 제1차 이스라엘 나라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3이스라엘권인 한국내에서 내적인 지도의 책임을 진 종교가 기독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놓인 한국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나라가 아직 형성되지 않고 미국의 관리하에서 미국이 주권을 대신 행사해 나오던 군정시대였습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 있어서 천사장의 모든 권한을 복귀할 수 있는, 영적인 이스라엘권을 육적인 이스라엘권으로 넘겨받을 수 있는, 그러한 주권 형태가 막 이루어지려고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본래 주권 국가는 어디에서부터 출발되어야 되느냐 하면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가 시작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세계권인 미국에서부터 출발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 나라가 세계적인 기반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는 것이 재림역사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주님은 해방 직후에 기독교의 기반 위에서 이스라엘 왕권과 기독교의 제사장권을 상속받아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더라면 거기에서 그냥 그대로 예수님의 한을 탕감할 수있는 기반이 연결되었을 텐데 여기에 반대가 벌어졌다 이겁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계적 영적 이스라엘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요, 영적으로 내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를 잃어버리고, 분립된 입장에 있기는 하지만 이 대한민국도 잃어버린 입장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수난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갔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아직까지 UN에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나라 축에도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도 수난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재봉춘할 수 있는 국가가 시대권을 향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봉춘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자체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통일교회를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나중에는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잃어버리고 피난민이 되는 것입니다. 피난민도 어떤 피난민이 되느냐? 사막을 향하여 걷는 피난민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백성의 규탄을 받고 나라의 규탄을 받음과 동시에 불신임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명무실한 결과의 자리에 안 떨어질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더불어 비참한 운명길을 걸어오면서 결실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입장에 선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반대를 받았기 때문에 제3이스라엘 나라도 주권을 찾아 나오고 있고, 기독교도 반대를 했기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배반된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시 하늘편에서 탕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대신 망하는 운명의 자리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벨의 입장에 선 재림주입니다. 또, 기독교가 망하는 운세권내에 몰린 것과 마찬가지 입장에 서야 할 것이,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유대교대신 주장하던 기독교와 마찬가지 입장에 서야 할 것이 오늘날 한국의 통일교단입니다. 이 통일교단이 민족의 모든 실패를 수습하는 자리에 서야 되고, 기독교를 수습하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뜻을 이룬 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 나라가 그런 운명에 처해 있고 그 교단이 그런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나라를 위하고 그 교단을 위해서 책임을 인수받아 가지고 그 책임을 해야 할 교단도 그와 같은 운명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참한 노정에서부터 재차 수습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게 된 원인

지금 한국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단계를 넘어서 제3차까지 바라보면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와 맞먹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 계획이 1976년을 향해 나가고 있지만 이것은 외적인 면에서 우리가 가는 것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나라 없는 통일교회요, 교회없는 통일교회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교회를 다시 창건하고 나라를 다시 창건하는 노정을 개척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역사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렇게 나왔는데 어느 단계까지 나왔느냐? 예수님이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요셉 친척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되고,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단계를 거쳐 나가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만일 교회가 예수님을 받들지 않더라도 교회의 중심이 되는 종족이 받들면 예수님은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교회가 받들지 않고 나라가 받들지 않더라도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이요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요셉 씨족이 받들었더라면 예수님은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와 책임 못 했다 하더라도 종족권내에서 예수님의 가정적 기틀을 마련하였더라면, 외적으로는 요셉 가정의 일파를 중심삼은 가인 족속이 벌어질 것이고, 내적으로는 예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하늘의 족속이 탄생되었을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의 상대인 신부도 결정되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소망인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아들딸도 가졌을 것이요,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입장도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면 손자도 가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족속권이 이루어졌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반대하고 이스라엘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것만 하나되면 예수님이 죽더라도 이스라엘 교단의 중심으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교단의 중심으로 서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 나라를 수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기독교 역사노정에 비운의 역사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예수님 앞에 십자가의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2천년 역사는 전부가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한 탕감역사입니다. 탕감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도 다 예수님의 소원 성취가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세계적으로 개척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원의 기반이 영적으로만 세워졌기 때문에 죽음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범위를 넓혀서 세계무대까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무엇 때문에 죽었느냐? 물론 유대교 때문에 죽었고, 이스라엘 나라 때문에 죽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요셉 씨족 때문에 죽었다 이겁니다. 요셉 씨족을 중심삼고 보면 사가리아 가정과 요셉 가정은 친척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셨다 이겁니다. 예수님을 보내기 전에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 가지고 유대교와 잘 통할 수 있는, 즉 세례 요한을 유대교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선지자로서 등장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있어서 거국적, 거교적으로 모든 이들이 세례 요한을 따를 수 있는 권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시면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무난히 연결시킬 수 있는 자연적인 기반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씨족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게 했던 요인이 된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탕감복귀의 표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탕감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무엇을 표준하고 나오느냐 하면 요셉 족속과 같은 친척을 중심삼은 종족복귀의 기반을 표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죽지 않았던 기반을 땅위에 닦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종족복귀를 먼저 표준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축복을 해주고 있는데, 이 축복을 통하여 씨족 관계를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게 된 근본적인 동기인 씨족 기반을 잃어버린 것은 통일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씨족기반을 닦아서 전적으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놓기 위하여 오늘날 한국을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 씨족권을 다시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말이에요. 이러한 기반이 닦여졌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시대는 이미 왔다는 말이예요.

그래서 1968년도부터 1970년도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종족권을 이스라엘 국가내에만 연결시켜 탕감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안팎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까지 연결시켜 탕감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에 몇 개 국가를 동원해서 결혼식에 가담시켰느냐 하면 10개 국가를 동원해서 결혼식에 가담시켰습니다. 10개 국가의 민족들을 가담시켜 가지고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이번 합동결혼식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 가운데 대표적인 나라 10개 국을 선정하여 한국내에서 안팎으로 결정지었다고 하는 것은 종족적 세계권을 10개 국을 중심삼고 형성했다는 결과를 이루어 놓은 것이 됩니다. 알겠어요? 지구장들은 특히 잘 알아두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종족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종족이 하나되어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자리에 섰더라면, 그 종족을 중심삼고 유대교는 자동적으로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유대교가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그때 이스라엘 나라도 자동적으로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 권내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과 가정, 종족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제3이스라엘권에 있어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이 예수님인 것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이 기독교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통일교단이 아벨적인 입장에 서서 제3이스라엘 나라의 인연을 계승해 가지고 이것을 재차 민족과 교계에 적응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은 개인 구원이 목적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유대교회를 대표하고 기독교를 대표한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찾으시려던 입장과 유대교를 찾으시려던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찾는 운동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교단을 중심삼고 전체의 사명을 연결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활동은 김씨면 김씨 문중을 중심한 활동이 아니었다 이겁니다. 출발 당시부터 전국적인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교회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내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유대교의 입장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제3이스라엘 나라를 바라보고 전국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지 않고는 제3이스라엘권의 승리를 다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사람이 적으면서도 지금까지 지역적인 전도가 아닌 전국적인 전도를 해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전에 유협회장도 우리가 전국적인 소모전을 하지 말고 특정한 한 도면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르는 말입니다. 전국적인 인연을 맺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대표요 유대교의 대표였습니다. 종족권내에 있었지만 유대교의 중심이요, 이스라엘의 중심이요,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도 그러한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활동하는 것은 자기 구원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기 구원은 물론 가정 구원, 종족 구원, 교회 구원, 나라 구원, 세계 구원까지 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 복귀와 더불어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복귀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재의 통일교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중요한 역사적 기원을 마련하는 날

이것이 예수님이 가졌던 사상입니다.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통일교단이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어느 권까지 이루었느냐 하면 종족권까지 이루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430가정을 축복해 주면서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축복받은 식구들을 대해 가지고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것은 430쌍을 중심삼고 종족권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종족권 중심의 자리에선 선생님이 책임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선생님을 중심삼고 뜻을 이룬 것을 전체 가정들 앞에 결부시켜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수많은 종족권을 확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국적으로 수많은 씨족이 단결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함으로 말미암아 교회 복귀와 나라 복귀권을 넓혀 나가자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의 활동 형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로부터 반대를 받고 이 나라로부터 반대를 받아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 입장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뜻을 못 이루고 이방에 쫓겨갔다가 뜻을 이루어 가지고 다시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따라서 오늘날 실체를 가지고 이 땅 위에서 2천년 역사의 내용을 다시 되풀이하는 과정을 거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죽음길에서 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생명을 다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도 생명을 걸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남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부모들한테 핍박을 받고, 형제들한테 반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까지 그런 수난의 길을 거침으로써 반대하던 부모 형제들과 반대하던 친구들과 반대하던 교회와 반대하던 나라와 평평한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상충이 벌어지지 않고 이제는 알아봐야 되겠다고 하며 관심을 갖고 접근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1970년부터 1971년, 1972년까지 3년간에 정상을 향해 넘어갈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예수님이 종족 기반을 통하여 교회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넘어갔더라면 죽지 않고 예수님의 상대인 신부가 지상에 현현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종족의 중심, 교회의 중심, 민족의 중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재탕감해야 할 시대권내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1971년은 3년 기간중 두번째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장성권인 두번째 아들로 이 땅에 왔기 때문에 장성권인 둘째 해는 가장 귀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2년째 되는 금년 크리스마스를 중심삼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 예수님은 왜 죽었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는 물론 교회가 받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종족이 받들지 못하고 가정이 받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예수님이 신부를 택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예수님의 신부, 즉 예수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신부를 찾으려면 영육을 중심삼고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상대 인연이 맺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을 만들어 놓아야 되기 때문에 이 내용을 결정짓고 넘어가는 날이 이 1971년도 크리스마스날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수님이 승천한 후에 이 땅 위에 누가 왔느냐 하면 성신이 왔지요?

성신은 신부의 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육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입장에서 싸워 나왔습니다. 즉, 실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상에 연결시켜야 되는데, 그러려면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해원성사하기 위해서는 실체적으로 하나의 성신과 같은 분을 지상에 대표적으로 세워 가지고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적 천사세계의 대표 입장인 예수님이 이 땅위에 발판을 가질 수 있고, 사도들과 영적 천사세계의 기독교권과 전체 영적 천사장권이 지상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비로소 아담을 모실 수 있는 교단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인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고 넘어가는 날이 오늘 이 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종족권을 중심삼고 아벨 교단과 이스라엘을 형성할 수 있는 때

우리는 안팎으로 피장파장인 입장에 있습니다. 형제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때려죽이려고 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때려죽이려다 못해서 이제는 `이거 왜 안 죽나. 왜 안 죽나'하고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반대하다가 이것이 왜 안 없어지나 하고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공산세계도 우리를 알아봐야 되고 민주세계도 우리를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움직여 온 것을 가인적인 사탄세계까지도 다시 알아봐야 됩니다. 재검증을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옳으냐, 저들이 옳으냐? 저들이 그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가 옳은 것이 아니라 저들이 옳은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자'하게 하는 권을 만들어 놓는 기간이 1970년부터 72년까지의 3년 기간입니다. 따라서 세계정세는 이 기간에 급격한 변화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종족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인 아벨 교단 편성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어 오고,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머리를 들 수 있는 때가 되어 오기 때문에 사탄세상을 중심삼고 대가리를 드는 녀석은 하늘이 내리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정객들, 세계적인 인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다가는 꺾여 나간다 이겁니다. 두고 보세요. 1970년대부터는 유명한 사람들이 자꾸 꺾여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높던 것이 내려가고 내려가던 것이 올라가게 된다 이겁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자꾸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때로 접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탕감복귀라는 것은 가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 역사과정에 있어서 세계정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한 내용을 결정지어 나가면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통일교회가 어떻게 결정짓느냐에 따라서 외적 세계가 왔다갔다하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을 세상 사람은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통일교회내에 있으면서 세계적인 운세가 이렇게 조정되어 나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보조를 맞추고 거기에 대해 열심을 다하여 정성을 다 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입장에서 정성을 다하는 통일교인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절대 복종하는 데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성교회와 힘이 비슷해지는 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7개월 동안은 상당히 복잡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금년 7월까지는 최고의 고비를 넘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싸움을 선생님이 전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기 싫더라도 안 할 수가 없다 이겁니다. 정초부터 작전을 짜서 교회와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안팎 작전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지요? 언젠가요? 4월인가요? 그때가 중요한 고비인데 이 고비를 딛고 넘어서야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이가 그 때를 노려 남한을 침범하려고 하고 있으니 중요한 고비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대가리를 쳐들고 주먹을 쥐고 치려고 하는 때요, 이 나라에서는 여당 야당이 죽느냐 사느냐를 판가리지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때입니다. 하늘의 운세는 나이 많은 세대보다는 젊은 세대를 향해 들어오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잘 협조해 주어야 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또, 그들이 통일교회의 협조를 받으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운세도, 기성교회의 운세도 통일교회가 협조해 주면 수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기성교회가 힘이 비슷해지는 때

내 한 가지 이야기를 하지요. 경기도 경찰국의 정보과정이 있는데 그가 하는 말이 경기도가 금년에는 좋은 운이 들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고정 간첩을 60명 이상 잡았다는 거예요. 또 남파된 간첩을 18명이나 잡았다는 거예요. 이것은 기록이라는 거예요. 역사에 없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기도가 운이 트였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런데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경기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서울만 움직이게 되면 9백만이 움직인다는 겁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서울을 내적 이스라엘권으로 보게 된다면 그 외의 지역은 외적인 것입니다. 이 내적 외적이 하나될 수 있는 운세는 통일교회 운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수택리 수련소 운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복귀노정에 있어서 경기도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서울을 움직이게 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정보과에서 승공강의를 해야 되겠다고 하길래 내가 빚을 내 가지고 이 수련소를 지은 것입니다. 어차피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들이치면 맞아야지 별 수있어요? 다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가 한국을 중심삼고 안팎이 하나되어 왕래할 수 있는 운세권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운세권은 승공사상을 중심삼고 만드는 것입니다. 이 승공사상은 통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승공은 사탄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 개인의 바램이요, 이스라엘 가정의 바램이요, 이스라엘 교회의 바람이요, 이스라엘 나라의 바람입니다. 승공은 전체가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통일교회가 선두에 서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권을 벌여 놨기 때문에 나라 전체가 여기에 휘말려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권이 수택리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부패해 있습니다. 국가 재산을 횡령해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이 마당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바쳐가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몸뚱이를 위해서,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나라든 무엇이든 전부다 강도질해 먹자는 것이지만,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교회건 가정이건 개인이건 전부 다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정반대입니다. 이렇게 엇갈리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1971년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공화당이면 공화당, 혹은 각의(閣議)가 어떻게 하고 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는 승공연합이 문제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장파장인 권내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우리를 대해서 총칼을 들고 망치를 들고 눈을 부릅뜨던 그런 환경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우리를 대할 수 있는 환경권이 안팎으로 갖추어져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우리를 안 맞아들이더라도 나라권내에 포괄되어 있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의 말을 안 들으면 나라가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꺽여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권이 되어오기 때문에 유대교 입장인 기독교와 이스라엘 나라 입장인 한국이 우리뜻을 중심삼고 교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거국적인 차원에서 전국민을 통일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금년에 이것을 바라며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군대와 국민을 무장시켜 놓으면 공산당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장된 통일교회 패들을 공산당으로 만들 재간이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패들은 공산당을 통일교 패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이미 승패가 결판지어진 시대권내로 넘어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 개인과 가인적 개인이 있어야 하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 가정과 가인적 가정이 있어야 하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 종족과 가인적 종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아벨적 종족이 통일교회에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는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성이 참 많은데 통일교인은 전부 다 한 성(姓)입니다. 성(姓)이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박가 김가는 다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이 무엇이냐? 통일가입니다. 통일가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웃음) 통일가라는 거예요. 김가 박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김씨네 떼거리하고 통일가 떼거리하고 싸운다면 누가 이기나 봅시다. 싸우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싸우느냐? 현재는 무엇을 중심삼고 챔피언이 되고자 하느냐 하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챔피언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그렇지요? 그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통일교회 통일가하고 일반 씨족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결의로 1971년을 맞이하라

종족을 대표한 통일교회이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물론이요, 일반 종교중에서도 제일 문제의 종교가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많지 않지만 챔피언입니다. 링 위에 올라가서 싸우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사람이 많아서 챔피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12명만 남아 있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있으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기성교회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1970년도 종교계에 있어서 최고의 뉴스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종교협의회를 중심삼고 이재석 목사와 박양운 신부가 손을 잡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대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통일교회가 현재 종협을 중심삼고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통일교회가 관계 안 되어 있는 곳이 없습니다. 만약 관계가 되어 있으면 그 핵심요원들은 통일교회 계획권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기성교회의 NCC(기독교회협의회)라든가 그에 관계된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권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도 기성교회가 부럽지 않습니다. 기성교회가 부러워요? 「부럽지 않습니다」 기성교회 유명한 목사 누구누구도 부럽지 않다 이겁니다. 또 대한민국의 누구도 부럽지 않다 이겁니다. 세계의 누구도 부럽지 않다 이겁니다. 공산당도 무섭지 않다 이겁니다.

세계에서 제일 무섭고 문제 되는 사상권이 무엇이냐 공산권이지요? 그 공산당도 무섭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통일원리가 세계적인 승리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가에서는 건국대학이 우리와 아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통일교회 다니다가 떨어져 나간 이대위 박사는, 일부 사람들의 중상모략에 따라 치안 당국에서 우리 교회에 무슨 문제성이 없나 하고 조사할 때 우리 없어지라고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반대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유효원 협회장이 `이놈의 영감, 가만두지 않다'고 하는 걸 `아, 그러지 마라. 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고 말린 적이 있습니다.(웃음) 교회가 다 그렇게 반대를 하니 대학 기관도 다 반대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연세대학이 그렇게도 반대를 했지만…. 이화여대는 반대를 하나마나입니다. 남자 대학만 물려 들어가게 되면 이화여대는 그냥 물려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연세대학교에서 신과대학장인 서남동 교수가 어떻게 걸려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늘의 역사라구요.(웃음) 건국대학교도 그렇게 악착같이 반대하여 제일 염려했는데, 이젠 제일 희망적인 대학이 되었다 이겁니다. 1970년도에 연세대학교 서남동교수가 이런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통일교회에 협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 지금 때가 묘한 때가 아니냐 이겁니다. 이렇게 안 되어 가면 원리는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때는 1970년을 넘어서면서 통일교회 운세권내로 들어오고 있으니만큼 이제는 우리가 포섭할 수 없고 수습할 수 없는 일도 안고 출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정세가 급변할 것입니다. 이러한 초점에 선 우리가 새로운 결의를 가지고 1971년도를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게 1971년도를 맞음과 동시에 또 71년도의 크리스마스를 새로운 의미를 갖고 맞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새로운 의미의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제하고 오늘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환경에서 역사적인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합해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이 죽고 살고 망하고 흥하는 것이 뭐 시간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날이 흐렸다 맑았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마찬가지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생사화복이 교차되어 들어가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목적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제시할 수 있고 그런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선지자의 왕권의 자리에 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지자를 치리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들도 예언은 하지만 그 내용은 모릅니다. `한국이 1971년도에는 이렇게 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선지자의 왕권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결정지어 나가는 엄숙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 가지고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알겠어요?

여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을 맞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후손들은 그를 지상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천상세계에서도 자랑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는 하나님이 바라는 그 기준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서 심각한 마음으로 이날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천태만상일 거예요. 여기 모인 사람이 한 2백명 되니까 2백단계가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2백 단계 가운데에서 1등은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이 날을 축하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크리스마스도 가인 크리스마스가 있고 아벨 크리스마스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웃음) 금년에는 가인 크리스마스를 아벨 크리스마스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사실 오늘은 잔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잔치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내심에서 가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과의 약속과 조건을 탕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몰라요. 뭘 했는지 그건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인권 크리스마스가 암만 좋은 날이라 해도 바로 오늘을 빼면 아벨권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한 초점이 지금 이 시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우리가 지금까지 나라를 중심삼고 반대를 받아 나왔습니다. 이 한국은 기독교를 중심한 외적인 한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통일교회를 중심하여 소망의 나라인 내적 한국을 추구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적과 내적으로 지금까지 상충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화합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 최고의 정상을 향해서 문제의 해결점을 포착해야 할 시점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통일교단은, 예수님이 교회를 중심삼고, 국가를 중심삼고 해원성사하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해결짓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종족이 하나되어 종족적 승리의 기반을 닦았더라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자연적으로 예수님과 하나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는 종족권을 만들었지만 아벨 탕감노정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통일교회가 반대받아 쫓겨남으로써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은 누가 제시해야 되느냐? 가인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벨이 제시해야 됩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금번에 축복가정이 부인들을 전부 지방에 내보내는 것은 기성교회를 위해서입니다.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탕감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유대교를 잃어버렸고, 왜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렸느냐 하면 여자가 책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 여자들이 나가 활동함으로써 유대교가 책임 못하고 이스라엘 나라가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해 줘야 한다 이겁니다.

탕감해 주면 통일교회의 종족적인 승리의 기반이 유대교에 적용되고 이스라엘 나라에 적용되어 그냥 자연적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탕감이 남아 있고 나라에 대한 탕감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조로 갈라졌기 때문에 그와 마찬가지의 입장인 한국에 국가적인 가인 아벨의 탕감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복귀의 기준만 세워지게 되면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았으면 공산당은 이 땅 위에 발도 못 들여놓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 위에는 거짓 아버지가 생겨나고 거짓 나라가 생겨나고 거짓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즉, 가인 아버지가 생겨나고 가인 주권이 생겨나고 가인 교권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될 것이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되게 하기 위해 싸워 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한국이 통일교회를 반대한 죄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예수를 몰아낸 이스라엘 나라도 지금은 독립이 됐지요? 독립은 되었지만 아랍권이 자동적으로 통일될 수 있는 방법으로 통일해야 됩니다. 탕감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탕감조건은 누가 제시해야 되느냐? 이스라엘 나라가 해야 됩니다. 그 방법은 이스라엘이 나라를 가졌으면 아랍권을 어떻게 해서든지 잘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점령당한 그 지역 사람들이 원수일 것이지만 고맙게 생각하고 머리숙이는 놀음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아랍 통일은 못합니다. 이런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앞으로 선생님이 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벨적 입장에 있고 기성교회는 가인적 입장에 있으니 여기에서 무슨 작전을 해야 하느냐 하면 야곱이 에서에게 했던 작전을 해야 합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종과 많은 재물을 보내 에서를 굴복시키던 것과 같은 작전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은 밥목사들이 다 되었습니다. 그저 주기만 하면 좋아한다는 거예요. 지금 그런 때가 되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하기 위한 하나의 섭리로서 다 맞아들어가는 것입니다. 어제 지구장회의 때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기성교단인 장로교와 감리교가 아무리 우리를 반대해도 문제가 없다 이겁니다. 이미 통일교단은 승리적인 가인 교단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것은 발표를 안 합니다. 1월말까지 지나가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어가는 가운데, 즉 방 안에서 생각하고 교회 안에서 움직이는 일이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으로 맞아떨어지는 환경이 눈앞에 착착 벌어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은 걱정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고생시킬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생하는 것도 72년이 넘어가게 되면 3년 연장해서 3차 7년노정 가운데 1년을 물고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만 고생하면 우리가 소원한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다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세계는 이제 급변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국가 기준만 벌어지게 되면 세계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아랍권의 통일이 벌어졌다면, 로마는 자동적으로 망운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뜻을 위해 갈 때, 이미 로마는 부패하여 망운 시대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 이것은 가인 아벨 관계입니다. 따라서 한국을 찾아 나올 때까지는 나라를 중심삼고 올라가야 합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복귀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올라가는 운세에 있기 때문에 주체국가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찾아지게 되면 한국이 주체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국가가 된다는 거예요.

아담 앞에는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해와가 있어야지요. 한국이 아담 국가라면 일본은 해와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 아담 국가와 해와 국가가 하나만 되면 천사장은 자동적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천사장 국가가 어느 나라냐? 중국입니다.

중국은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했다가 공산당한테 빼앗기고 지금은 대만을 중심삼고 나라의 명백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자유중국과 중공이라는 두나라로 분립되어 두 주인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생겨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만을 중심삼은 중국의 살 길은 일본을 붙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딴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보다 일본을 붙들어야 됩니다. 천사장이 누구로 말미암아 구원되어야 합니까? 해와로 말미암아 구원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자기가 잘났다고 꺼떡거리다가는 구원이 안 됩니다. 이제는 중국이 할 수 없이 일본에서 살려 주소 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오거든요. 그러한 때가 오거든 우리의 때가 가까와 온 것을 알라는 겁니다. (웃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일·중 삼국 관계와 통일교회의 사명

일본이 지금까지 발전한 것은 한국이 발전할 것을 계승해서 축복받은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데는 무슨 축복을 받았느냐? 내적인 축복이 아니라 외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외적인 축복이 뭐냐 하면 물질적인 축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역사상에 없는 경제적 발전을 20년 동안에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오실 제3차 아담의 신부 국가로서 단장하기 위해서는 빨리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급속도로 발전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부강한국가가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일본을 요리해야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겠지만 일본 사람이 들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습니다. 일본 사람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일본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게다 있지요? 게다를 신을 때, 엄지 발가락과두 번째 발가락 사이에 물리고 신고 다니지요?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진 것을 말하는 거라구요.(웃음) 이 게다를 벗겨 놓으면 하나가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누가벗기느냐? 선생님밖에 벗길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이 왜 해와 국가냐 하면, 이름이 넉 자인데 여자를 부를 때는 무슨 꼬(子)합니다. 무슨 여(女)라는 이름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여자 이름에 아들 자(子)를 갖다 붙였느냐? 여자가 바라는 소원이 남자거든요.(웃음) 그게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그래서 여자들의 이름에는 무슨 꼬(子), 무슨 꼬(子)라고 아들 자(子)자를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아마 일본의 여자들 이름에는 전체 여성의 3분의 2가 꼬(子)가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전부다 그게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또 남자들의 이름에는 사내 랑(郞)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무슨 로우(郞), 무슨 로우(郞)…. 참 많습니다. 그것은 남자가 천사장이기 때문에 `신랑이여, 어서 오소서'하는 기다림입니다. 남자는 천사장 형(形)이잖아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넉 자(字)로 되어 있으니 여자인 해와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이름은 석 자(字)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소생 장성 완성 3수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남자 국가가 아니될래야 아니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어때요? 기분이 좋지요?(웃음)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은 하늘에서 복을 가지고 오십니다. 복을 가지고 오는데 어떤 복을 가지고 오시느냐? 천운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돈 가지고 오는 남자를 원하느냐, 천운을 가지고 오는 남자를 원하느냐 할 때, 돈 가지고 오는 남자를 원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천운을 가지고 오는 분을 원해야 합니다. 돈은 이미 땅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돈은 있기 때문에 돈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 돈은 있기 때문에 잘난 남자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일본이 그런 입장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통일교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거룩한 신랑님들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총각들은 일본 아가씨들이 홀딱 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세 쌍을 축복해 주었는데 그것은 한국과 일본을 다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해준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바꿔치는 입장에서 세 사람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래서 일본이 한국을 돕지 않으면 망한다 이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미국에 섬유문제라든가 복잡한 문제가 나오는것이 왜그러냐 하면 일본이 한국을 돕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점 쪼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만 붙들고 도와주게 되면 미국이 아무리 일본을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새로운 차원의 경제적 기반이 다른 각도에서 벌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을 안 돕겠다고 발버둥치면서 자기 발을 점점 꽁꽁 묶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본이 한국이 돕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가 한국을 도와야 합니다.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는 일본을 대표한 입장입니다. 일본 국민 1억을 대표한 것이요, 일본 정부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간 통일사상을 신봉하는 일본 통일교인들이 적극적으로 한국을 도움으로써 일본 정부가 돕지 않은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아무것도 없지만 앞으로 일본 나라의 돈을 갖다 써야 됩니다.

7천년 역사의 탕감의 기원을 마련해야 할 70년대

선생님은 지시를 하는 데 있어서도 미국 사람이나 구라파 사람들에게는 지시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에게는 본부를 위해 정성을 다하라고 당당코 지시를 합니다. 또, 일본 사람은 그 지시를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지금 그런 입장이 아닙니다. 조금 더 있어야 합니다. 지금 중국도 한 오백만 원 이상 헌금해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고 나에게 편지가 왔더구먼요. 중국에 있는 통일교인이 몇사람 안 되는데 오백만원을 헌금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있는 정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아! 그 녀석들, 천사장 국가로서 책임을 다하며 잘 따라오는구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웃음)

이번에 우리 기지문제라든가 그밖의 여러 가지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일본은 어차피 천명에 의해서 통일교회의 모든 경제적인 문제를 후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국 정부에 대해서 어떠한 일로 기부하게 될 때도 그 기부하는 돈을 일본으로부터 기부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줄 수 있습니다.한국 정부에서도 일본의 통일교회인들이 협조하는데 있어서는 내적으로 경제적인 길을 터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뜻은 이미 이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뜻은 이미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70년대에는 7천년 역사의 탕감의 기원을 만들어야 되고, 한국 자체에 있어서는 남자의 위신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집을 안 사주면 책임 못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777쌍을 세워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777쌍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의 최고 좋은 집을 사겠다는 조건을 세웠고, 차도 최고 좋은 차를 사겠다는 조건을 세웠습니다. 선생님이 집을 사려고 하니까 사탄들이 얼마나 반대를 하는지 서울에서 제일 복잡한 집인가 봐요. 그래서 `야, 이것도 탕감복귀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집을 사긴 사야 되겠는데 그게 얼마나 복잡한지 그 집하나 가지고 여태껏 싸우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팔기로 약속이 다 되어 있는데, 국가법에 걸려 가지고 돈을 치르지도 못하고 지금 기다리고 있는 판입니다. 이것도 탕감복귀해야 될 모양이지요?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도 때가 되었기 때문에 본부를 지어야 됩니다. 지어야 되겠어요, 안 지어야 되겠어요? 「지어야 됩니다」 본부를 지어야지요? 누가 지어야 되요? 「우리가 지어야 됩니다」 `누가 짓긴 누가 지어 선생님이 지어야지' 할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할 도리는 다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래도 책임했다는 조건이라도 세우려면 선생님의 집하나는 마련해 주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하기 전에 나는 앞으로 하늘의 계획하는 큰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들어와서 여의도 땅 사는 문제, 청평 땅 사는 문제, 교회 땅 사는 문제 등 네곳의 땅을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경제적 터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모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국가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착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못해도 현재 절반 이상은 착수된 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교회를 중심삼고 여의도에 땅을 마련했습니다. 원래는 만 평을 더 사려고 했는데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 삼천 평은 더 사야 될 것입니다.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으니 그것을 더 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회도 지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물론 이곳이 세계본부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도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곳은 반드시 세계 본부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주도적인 역할을 해가지고 땅을 샀는데, 재정상 만 몇 평 사가지고 세계본부를 짓는 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보세요. 이제 10년, 20년, 30년, 한 50년후가 되면 그때는 이곳이 역사적인 전당으로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와 가지고 여의도에는 철수문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여의도 전부를 우리의 한 정원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을 지으려면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짓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시(市)에서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그곳이 지금보다 더 좋은 곳이 된다는데 나쁠 게 뭐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부 건립에 따른 식구의 책임

앞으로 수많은 나라에서 한국을 왕래하게 되면 한꺼번에 몇대씩 비행기가 이착륙해야 할 텐데, 이거 좁아 가지고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안 그래요? 만 몇천 평 가지고 되겠어요? 못해도 수백 대의 비행기를 수용하고, 세계를 요리해야 할 전당인데 만 몇천 평 가지고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그마치 이만 천 평은 사야 되는데 살래야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만 사천 평에 해당하는 땅이라도 사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통일교회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사야 됩니다. 알겠어요? 한 사람이 땅 한 평씩은 무슨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뼈다귀를 하나 팔든가 해서라도 사야 됩니다. 땅한 평 안 사면 역사적으로 후손들이 탄식할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선생님은 있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나라를 넘고 넘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뜻을 안 사람으로서 여기에 가담 못 하게 된다면 천추만대에 한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 한다고 해서 내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담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하겠습니다」 가담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될 수 있으면 여러분이 여기에 가담해야 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평수를 많이 잡아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이 집을 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마음은 섭섭하다 못해 기가 막힙니다. 외국 식구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집을 사야 할 때가 됐다는 거예요. 언젠가 일본 선박회사 회장 되는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너무 뚱뚱해 가지고 베란다에 올라갈 때 바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이렇게 옆으로 올라갔다구요.(웃음)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 위신이 서겠어요? 여자들, 위신이 서겠어요, 안 서겠어요?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니예요? 선생님이 잘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 식구들이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본부에 본부교회로서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선생님이 계신 곳이 이게 뭐예요?'하면 기분이 좋아요? 지금까지는 우리 집안끼리였으니까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외국 손님들에 대해 가지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끼리니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집은 어차피 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청파동 본부교회가 참 근사하지요? 기둥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이것은 역사적인 전당으로 남겨 놓아야 됩니다. 만일 여기에다 교회를 크게 짓는다 해도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적인 전당으로 남겨 놓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장소에서 우리가 살기가 불편하게 되면 수택리나 청평으로 갈지 모릅니다. 거기에 세계적인 클럽도시를 만들어 이 교회를 역사적인 전당으로서 그냥 그대로 옮겨 놓고, 이 자리에다 좋은 빌딩을 지을지도 모릅니다. 여기 올라오려면 길이 나빠서 안 좋기 때문에 생각중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겉치레는 안 했습니다. 속치레만 해 나오던 우리에게도 이제는 겉치레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악착같이 벌고 악착같이 살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이런 환경을 두고 볼 때 뜻길을 가는 것이 참으로 꿈 같은 이야기라구요. 1960년대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7년노정을 다 가면 이렇게 된다고 했을 때 그것이 꿈같은 이야기였지요? 이제는 내가 이야기한 것이 실감나지요? 여러분 자신이 실감나게 `아! 그렇구나' 하고 믿을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여러분이 금년에 있어서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단결입니다. 내가 지구장들한테도 단결에 대해서 전부 이야기해 줬습니다. 지구장들, 하나님의 한과 예수의 한과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된다고 이야기해 줬지요? 「예」 그것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고, 가정적으로도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전체가 하나되어 충성하라

이북 공산당은 하나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합니다. 총칼로 생명을 위협하여 강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간섭하지 않는 데에서 뜻이 이렇다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자발적인 입장에서 그 이상 실천할 수 있는 정성의 도수만 여러분이 갖추면 이북은 망합니다. 김일성이가 죽든가 한다는 거예요. 오늘 저녁에라도 영계에서 호출 명령을 내리면 김일성이도 가야지 별수 있어요? 가게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안 될 때는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래서 금년에는 정부와 우리가 앞으로의 이 나라를 위해서 협조하는 단계에 들어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견입니다.

김일성이를 아버지라 하지요? 그러면 진짜 아버지가 가짜 아버지보다 못해서 되겠어요? 「안 됩니다」 또, 진짜 자식들이 가짜 자식들보다 못해서 되겠나 말이에요. (웃음) 웃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원수인 사탄이 저와 같이 강제로 하나 만들고 있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6천년 원수를 퇴치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이상으로 단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도 전부 다 군대 이상 돼야 됩니다. 그것이 하늘이 바라는 원칙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전통을 남기기 위해 축복가정들이 선두에 선 것입니다. 이번에 축복가정을 내세움으로 말미암아 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 축복가정들, 전에는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껍고,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먹여 주는 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빴다구요. 그렇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웃음) 거 기분이 이상하지요. `저 불쌍한 것, 내가 뭐 준 것이 있어야지. 뭐 있으면 더 주어야지' 해야 할 텐데…. 그 결과가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책임이 못 했다는 것입니다.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10년 기간에 있어서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하는 외부의 수많은 영통인들이 이러다가는 다 망한다고 선생님에게 얼마나 참소를 해오는지…. 그러나 그 방안이 있으니, 그때에 가서 다 처리할 것입니다. 다 썩고 못 쓰게 되면 잘라 버리는 겁니다. 지금은 수술할 때가 아니거든요. 그 박자에 딱 들어맞는 때가 70년부터 71년 72년까지 3년간입니다. 요 기간에 전부 다 걸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만 쑥 뽑아 가지고 해부해 버리면 병의 근원을 완전히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점에 몰아넣기 위해 이번에 부인들을 동원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인들을 동원한다고 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땅을 치고 통곡하며 회개해야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지구장들이 잘 설명해 줄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때가 목전에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피와 땀과 눈물로 정성들인 것은 전부 소모전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정성들이는 것은 탕감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탕감의 시대를 넘어 우리의 소유권을 확정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충성하는 것은 여러분의 후손 앞에 길이 남아질 것이고, 여러분이 영계에 가면 그 수고의 공적을 길이 찬양받을 것입니다. 이제 탕감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여러분이 움직이는 것만큼 빛나는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놓인 것을 알고, 있는 정성을 다 바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70년도보다 가중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70년도는 뿔뿔이 헤어져 가지고 개인 개인이 혼자서 충성하는 때였지만, 이제는 가정이 합해 가지고 하늘 앞에 가정적 효자권을 갖춰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 기간이 지금부터 72년도까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아기 때문에 밤잠 못 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기가 오줌이 마렵다면 오줌도 누여야 되고, 배고프다면 밥도 먹여 줘야 할겁니다. 그래야 여자가 고마운 줄 알게 되는 거라구요. 이제부터는 여자를 왕으로 모셔야 된다 이겁니다. 아들딸 키우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았는가를 느끼며 아이들의 시중을 들면서 감사히 생각하라는 겁니다. 똥을 싸면 똥맛도 보고 똥을 주무르면서 살던 여자들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맨 처음에 남자들이 아기가 똥을 누면 싫어하지요? 그런거 느껴요, 안 느껴요? 느끼지요? 기분 나쁘지요? 그러나 엄마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남자들은 그런 입장에서 아들을 얼마만큼 사랑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들을 엄마만큼 사랑하지 못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기다려요, 어머니 기다려요?「어머니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천사장 아버지라는 거예요. (웃음) 그렇잖아요? 아버지 기다리게 하려면 어머니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러한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과정을 통해서 어머니가 아들딸을 사랑하던 것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이때라는 거예요. 그러한 역사적인 의의를 갖고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키울 수 있는 때가 이때라는 것입니다. 이때가 지나가면 어머니가 돌아온 다음에 아무리 사랑해도 이때에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또, 실체적인 계승자로서 모든 것을 넘어 심정적 인연을 맺어 놓을 수 있는 때도 이때라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본연의 아버지의 기준을 복귀해야 됩니다. 전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고 그러한 뜻을 바라보면서 힘차게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뜻의 선두에 서야 할 여자들

오늘 우리가 이런 식을 하고 이런 날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세계 기독교는 영계가 협조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71년도를 의의 있게 보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예수님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자리에 서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종족적 시대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 세계를 향해서 직접적인 운세를 대해 가지고 설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던 그 시대보다도 혜택받은, 나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자리는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혜택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보다 정성을 더 들여야 되겠어요, 덜 들여야 되겠어요? 「더 들여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에서 '할수만 있으면'이란 말을 빼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할 수만 있으면 이자리를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라고 했는데 `할 수만 있으면'이 뭡니까? 안 해도 되는데 하는 뜻이잖아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던 그런 기도의 내용을 시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처럼 그렇게 조건적으로 뜻을 대하는 입장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우리가 죽어야 되겠습니다. 뜻이 원하면 우리가 먼저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책임을 해야 할 시대인 것을 알고 오늘 이날을 중심삼고 재차 결의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이날을 축하하는 데 있어서 자신있는 축하 요원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남자들, 알겠지요? 「예」 남자들은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죽이던 그 모든 입장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하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신부 하나를 못 찾아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여자된 사람들은 죽을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기도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날 도와주소서.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는 말은 하지도 말라는 거예요. 여자는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자들은 뜻 앞에 있어서 불평불만하지 말라 이겁니다. 여자들, 기분 나빠요?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축복받은 가정들은 3년간 고생하는데, 축복받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뭐 가라 마라 할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편안히 낮잠을 자면서 지내고 싶으면 그렇게 해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다 빼앗겨 버린다 이겁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따라 나오면서 수고한 모든 것이 전부 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다 빼앗겨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전도 나가라 말아라 하지 않습니다. 나가겠으면 나가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각자의 책임입니다. 축복가정들이 고생하니 가정적 목표를 바라보고 나가야 할 축복 못 받은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충성해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요. 북한 인민군대의 여자들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 여자들보다 더 충성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이제부터 싸운다면 예수님이 죽어야 되겠어요, 예수님을 죽게 한 사람들이 죽어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예수님을 죽게 한 사람들이 죽어야 합니다.」 그건 뭐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게 한 사람이 죽어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선에 여자를 내보내야 되겠어요, 남자를 내보내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여자요」 (웃음) 웃을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여자들과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랬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밤잠도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릎이 소가죽처럼 되도록 기도하고 정성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입니다. 뜻의 길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동원되어 단결하여 가지고 정부의 관리들을 만나 `이놈의 자식들, 나라를 팔아먹어?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나라를 썩게 해?' 하고 호통도 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승공연합은 금년 7월에 부녀국을 창성할 것입니다. 여자들을 선두에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 부인들이 장관(長官)들을 붙들고도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여자들이 전부 선두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남자들 추방운동을 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어때요?

남자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면 여자 국회의원들만 국회에 들어가면 좋겠지요? 또 행정부는 여자 장관들로 전부 바꾸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웃음) 그거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구요. 남자들은 전부다 도둑놈 사촌 되는 천사장이니 할수없다는 겁니다. 그들은 도둑질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웃음) 그렇잖아요? 남자는 자기 집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거기까지 생각하는 겁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여자들을 잘 교육시켜 가지고 대한민국을 요리하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이 백발백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한테 이 부패한 사람들을 맡기게 되면 3년 안에 전부 해결됩니다. 지금 현 정부에서는 걱정하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사상만 무장시킨다면 문제가 없는 거라구요. 부패는 무슨 부패예요? 그러니까 여자들은 새로이 단결해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예수님보다 나아야 되겠고, 예수님을 죽게 한 그 한을 풀어야 되겠습니다.

비참한 예수님의 길을 이어받았으니 불평이 있을 수 없다

아까 성경에서 읽었지만, 여러분들에게 이것 하나만 더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헤롯 왕 때, 예수님이 태어나 가지고 왜 애급에 갔느냐? 애급에 안 가면 살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헤롯 왕이 무서워서 애급에 간 것이 아니라구요. 마리아가 사생아를 잉태하였다고 요셉도 반대했고, 그것을 요셉 일파가 전부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친척을 의지해서 살데가 없어 가지고 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마리아는 해산할 일이 큰 고통이었다는 겁니다. 편안히 해산할 곳이 없었습니다. 친척 사이에는 마리아가 사생아를 뱄다고 소문이 나서 전부다 알고 있는데 그 동네 어느 문중에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었겠어요? 낳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야간도주해서 어느 산골 바위틈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것이 마리아에게는 더 편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사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베들레햄으로 가는 나그네 신세에 있을 때 갑작스럽게 아기를 낳아 버린 것입니다. 낳아 가지고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가서 편안히 살 데가 없으니까 할수없이 애급 땅에 간 것입니다. 고향보다 애급이 더 편안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이 예수님의 행로인 것을 기독교인들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그저 천당만 가겠다고 하니, 전부 도둑놈들이라는 거예요. 이렇듯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고생하고 나면서부터 원수의 국가 앞에 가서 참제물의 생활을 거쳐나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예수님의 길을 이어받아 가지고 성사시켜야 할 우리에게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것을 알기 때문에 쇠고랑을 차고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도 불평 한번 안 해봤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들을 내보내는데 이것도 모르고 불평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입을 찢어 버려야 한다구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그 시대의 환경을 전부 탕감복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나만은 이스라엘의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편의 한 개인이요, 유대교의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편의 한 개인이요, 요셉 가정을 비롯한 친척 전부가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나만은 그 친척 가운데 누구보다도 예수님편에 선 한 사람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위험에 처할 때는 방어해 주고, 죽음에 처할 때에는 그를 대신하여 내가 제물이 되겠다'고 하는 자각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아진 교회와 남아진 나라와 남아진 세계를 위해 총진군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노정인 것을 자각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명령하면 공산당 이상 충성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날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하늘의 운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것이 불가피한 운명길인 것을 알고, 그 길을 위해서 돌아가지 말고 직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직행할 길을 선생님이 틀림없이 지시할 테니까 지시하는 대로 절대 복종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반대하고 뭐라고 해봤자 다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의 말과 여러분의 지도 방법대로 선생님이 따른다면 탕감복귀노정은 갈 수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나온 노정을 생각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복귀의 노정까지도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이 가주기를 이 아침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해원성사와 예수님의 해원성사와 이스라엘 민족의 해원성사가 오늘날 우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그러한 기준을 갖고 감사한 마음으로 죽음길을 가더라도 웃고 죽을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가야 할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가 주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지, 하나의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해 이렇게 수고롭고 복잡다단한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귀의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한 때 한 사람씩을 통하여 한 가지 한 가지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지만, 가르쳐 주고 나서 조건도 못 세우고 실패하게 될 때는 그것을 재차 탕감하기 위해서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가 연장될 것을 염려하여, 가르쳐 주지 못하고 지금까지 숨기고 품고 나오신 아버지의 노고를 저희들은 진정 알아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통일교단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철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길을 개척하게 하신 은사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원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원하시는 길이기에 몰아치는 시련 도상에 이 아들을 세워 놓고 당신은 마음 졸이시면서 내가 가야 할 개척자의 길에 있어서 더 큰 복을 주기 위해서는 협조해야 할 입장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고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내 놓고 보니 그것은 더 큰 뜻을 촉진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요, 더 큰 복을 주기 위한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인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제는 우리가 거쳐야 할 시련과정도 어지간히 지나가고 우리가 소원하던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야말로 아버지 앞에 마음 다하여 경배드리고 아버지께서 상속해 주시려는 상금과 예물을 받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마음을 굽히고 몸을 바쳐 진정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세계 섭리 위에 찾아온 것을 생각할 때에, 70년도부터 72년도까지의 기간을 정하여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대한민국과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면서 국가적인 예물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민족이 이 목적을 위하여 죽었고,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 목적을 위하여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의 한을 해원성사 할 수 있는 시점이 오늘 이 자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엄청난 사실 앞에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날은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지만 세계의 어떠한 국가의 어떠한 모임 가운데서도 진정한 의미에서 이날을 축하하는 무리가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아진 통일의 무리가 이 시간을 기념하면서 이 엄청난 내연적 사실을 지상에서 탕감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다시 한 번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소원하시던 일념이 생애의 한을 넘어 제3이스라엘권에 연결할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을 마련하여 주신 아버지의 수고와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이 수고한 희생의 대가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사의 마음을 이 시간 가졌사오니, 여기에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저희들이 맞이하는 아침 햇빛은 과거의 아침 햇빛과 다릅니다. 이제부터 저희들이 맺는 식구의 인연은 과거에 맺었던 식구의 인연과 다릅니다. 이제부터 저희들이 느끼는 모든 감각과 자극은 과거에 느꼈던 것과 다릅니다. 아버지의 허락하신 사랑을 받고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마음 놓고 나라와 세계 앞에 자랑하며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권내에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행동 다하고 살고 싶은 삶을 다바쳐 아버지 앞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무대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권내에 고이고이 계승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 이날을 기해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예수를 중심삼은 기독교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들이, 땅 위에서 그야말로 참부모님을 가정에서부터 모실 수 있는 환경으로 나아가게 하시사 횡적인 천사적 승리권의 세계, 즉 민주세계권을 넘어서 공산세계권까지 환영할 수있는 시대권으로 넘어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날을 맞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하게 생각하옵니다. 이제 저희 가정이 가는 길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뜻을 위해 책임진 모든 책임자들이 아버지 앞에 충신이 되고 열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지금 외로운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축복가정의 어린 자녀들이 하늘이 기뻐하시는 가운데 자라 하늘의 복을 이어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다시 가정을 중심삼고 상봉하여 온 통일의 족속들이 그야말로 민족이 우러러보고 국가가 우러러보고 교단이 머리 숙이는 자리에서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하나님의 해원성사를 때를 맞게끔, 아버지, 책임져 주시옵고 수고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니 부디 이들을 맡으셔서 이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부족한 효성의 마음,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충성의 마음, 당신의 진정한 생명과 인연맺기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고이 품으시어서 받아 주시옵소서. 아들된 저희들은 예수님만 못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는 죽어야 할 자리에 가더라도 그 죽음을 감사히 맞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결의를 하지 않고는 북한 땅에 널려 있는 악의 도당을, 사탄 세계의 중심형으로 나타나 있는 북괴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통일사상의 결속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기 모인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상을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기독교적으로 적응시켜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번 기간을 통하여 어서 속히 이 사명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북한 땅을 해방하여 하늘이 찾아 나왔던 소원의 나라, 아버지께서 축복하였던 승리의 이스라엘 주권국가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방에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국가적 통일의 운세권내에서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 앞에 품길 수 있는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시대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내연의 책임을 해주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의 입장을 저희들은 감사히 생각하고 있사오니, 부디 동정과 자비의 심정을 언제나 저희 앞에 베풀어 주시옵소서. 가는 길을 아버지와 더불어, 승리의 찬양과 영광의 은사를 만세계와 영계와 더불어 갖추어 나갈 수 있는 통일의 움직임이 71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오늘을 지내고 나서는 배나 바쁜 날을 보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왔던 지구장들이 대망의 70년대의 주인공으로서, 축복가정의 전통을 갖춘 하늘 족속의 족장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위기대의 터전을 갖출 수 있게끔, 온갖 충성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죽지 않고 가정을 이루시기를 얼마나 기대했고 그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고 싶어했습니까? 알면 그 가치 이상으로 가정을 대표하여 서로 사랑하고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일선에 나가 있는 딸들을 더더욱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치거들랑 아버지도 그러한 심정으로 인간들을 사랑하고 사모하였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바꾸어 땅 위에서 아버지의 인연을 돌려드릴 수 있는 미의 실체를 갖출 수 있는 거룩한 때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들이 남편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시대적인 권을 갖추어 3차노정을 거쳐서는 자유롭게 만나라고 허락하였사오니, 만나는 그 자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사옵고, 나라를 위해 애국하는 부부의 인연을 중심하고 손을 잡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부디 나라를 위해 뼈골을 다 바쳐, 가문을 빛내고 남편의 위신을 세우고 아들딸의 전통을 고이 세워 달라고 부탁하고,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하는 인연들이 아름다운 삼천리 반도 위에 찬양의 꽃과 같이 아름답게 피어 그 향기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기쁨의 생활 터전이 아버지를 중심삼고 소망과 자랑으로서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들이 가는 길 앞에 안팎의 모든 내연의 슬픔은 다 사라지고 기쁨의 인연이 안팎으로 결정적으로 나타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기준을 결하는 데에 있어서 온갖 충성과 정성을 다하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 날을 지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소망과 더불어 아버지의 영원하신 약속이 땅 위에 성취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기쁘신 날로서 땅 위에 승리적 기반을 세우시어 통일기반 확보라는 엄청난 소원이 이 70년대에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 경륜하시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1971년을 맞이하여 3일째 되는 날인 동시에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성탄절이기도 합니다. 또 금년 들어서 처음 맞는 주일입니다.

원래는 초하룻날에 성지를 방문해야 하는데 그날은 식도 있고 해서 오늘 성일을 맞이하여 성지를 방문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지만 역사적인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우리 식구들이 하나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됨과 동시에 축복가정들이 하나되고, 축복가정들이 하나됨과 동시에 우리 교회가 완전히 하나되면 하나님께서 크나큰 역사를 해주시리라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위신과 권을 세워 드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한 개인을 놓고 생각할 때, 박 아무개, 김 아무개의 `나'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하늘가정을 대표한 나요, 하늘나라를 대표한 나요, 한국을 대표한 나요,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한 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더 빛날 수 있고, 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입장에 있음을 알고, 부모님 앞에 언제나 자랑할 수 있는 위신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와 같은 위신을 세우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권위가 성립된다. 하나님의 주체적 권위가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내가 움직이는 곳곳마다 반드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다'하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한 해에 하나님 앞에 온갖 충성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대하는 일에나 여러분이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나 여러분이 대하는 어떠한 환경에라도 하나님의 위신과 권위를 세워야 할 대표적인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고, 또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나가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다 하늘의 심정만 갖추게 된다면, 하나님은 기필코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승리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1971년도에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생활을 해주어야 되겠다는 것을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기 도]

아버님, 2천년 전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했던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개개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백성이 될 수 있는 거룩하고도 놀라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어느누구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생활을 하셨고, 아버님만이 아시는 심정을 더듬으시면서 믿을 수 없는 인간은 대하여 믿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배반하는 무리들을 생명을 걸고 아버님 앞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쌍한 예수 그리스도의 한과, 그가 그러한 자리에 놓여짐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아버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탕감의 대가를 무한히도 치러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탕감노정이 저희 일신에서 빚어지지 아니하고, 역사시대 선조들의 살을 저미고 피 흘리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사오며, 그 모든 희생의 대가를 치른 공로로 말미암아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아버지 뜻 앞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만민을 품으시기 위하여 얼마나 피를 흘리셨사옵니까? 또, 이 땅에서 뜻을 따라나오던 수많은 백성들은 얼마나 숱하게 죽음의 길에서 사라져 갔사옵니까?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한스럽게 이끌어져 온 기독교 역사 위에 오늘날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 선 통일의 무리, 삼천리 반도에서 민족의 환경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하여 외로움의 길을 더듬어 오던 불쌍한 통일의 무리들을 중심삼고 이와 같이 모일 수 있게된 것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공적의 터전과 이 모든 실적의 내용은 아버지가 하신 수고요, 아들이 흘린 피요, 수많은 우리 조상들과 형제들이 치른 순교의 대가인 것을 아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그와 같은 결과적 존재인 나 자신은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을 죽이는 그러한 정경을 제삼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형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내 일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길을 막고 그 길을 대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과 같은 운명의 길을 가지 못한 한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노아는 뜻 하나를 중심삼고 그렇게도 처참했던 환경 속에서 외로움의 행보를 10년 세월도 아닌 120년간 걸으며 아버지 앞에 소망의 한날을 돌려드리기 위하여 효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한 날들이 오늘날 다시 나타나게 된다면, 저희들은 틀림없이 역사시대에 하늘을 배반했던 노아의 친척권내에 있는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노아를 환영하지 못했던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음을 저희들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하던 입장은 아버님의 심정과 인간의 심정이 맺어져야 할 엄청나고도 역사적인 정상이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자리에서 아브라함의 생명과 이삭의 생명을 하늘과 땅의 생명을 대신하여 묶으려 하는 찰나에 저희들과 같은 제삼자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것을 환영하면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자신들이 되지 못하였을 것임을 이 시간 느끼게 되옵니다.

모세 시대를 놓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가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가지고 이렇게 해야만 죽음의 고빗길에 선 모세를 살릴 수 있다고 외칠 때 어는 누가 그것을 믿고, 어느 누가 그것을 환영했사옵니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이 불신의 보고를 했지만, 그래도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아버님이 엄연히 살아 계심을 강조하고,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외치며 외로운 자리에 있던 모세의 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의 책임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60만 대군이 광야에서 다 쓰러지는 입장에 놓였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망의 권을 뚫고 올라와 생명의 인연을 수습하고 새로운 이스라엘 창건에 주도적인 역군들이 되었던 것을 아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었는데 협조하는 입장에서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입장에서 번번히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무리였던 것을 아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오늘의 저희 자신들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배반할 수 있는 일단의 무리였사오나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공로의 인연을 터로 하여 아니 따라갈래야 아니 따라갈 수 없고, 아니 믿을래야 아니 믿을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내셨음을 아옵니다. 더우기 저희 개개인 자체는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없는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과정에서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땅을 위하여 탕감의 제물로서 대가를 치른 그 공적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저희를 붙들어 주신 역사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저희들이 통일의 무리로서 남아진 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3년 이상 10년, 20년 노정을 걸어나온 식구들을 중심삼고 볼 때, 스스로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을 위해 충성하는 자신이 되지 못하고 뜻을 의심하고, 하늘을 배반하고, 하늘을 헐뜯고, 하늘을 불신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자신들이 되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듯 면목을 세울수 없는 자신이요, 얼굴을 들고 거룩하신 성상을 대할 수 없는 자신임을 스스로 발견해야만 되겠습니다.

고귀하시고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절대자이신 당신을 저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신들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저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 대가요, 억천만세 외로이 자식을 찾아 나오신 당신의 노고의 대가로 말미암은 것을 알게 될 때, 당신의 은사 앞에 저희들은 천만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하늘 앞에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은 물론이요, 뼛골이 녹아 나더라도 충효의 절개를 남기고 죽겠다고 하늘땅을 대해서 맹세하는 것은 물론이요, 온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맹세하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아들딸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이 시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암흑이 깃든 이 땅위에 광명한 천국의 길을 개방시키기 위하여,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갖고 외로운 자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2천년전 유다지파에서부터 곡절이 엇갈리는 비운의 역사를 통하여 태어나신 것을 아옵니다.

마리아 시대까지 나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수난의 고빗길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 속에 느끼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부모가 있어도 진정한 부모가 아니었고, 형제가 있어도 진정한 형제가 아니었고, 친척이 있어도 진정한 친척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교회가 아니었고, 나라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나라가 아니었고, 세계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으로 외로왔던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참아 나오신 예수님을 이 시간 저희들은 높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불쌍하신 예수님을 붙안고 형제지정을 가지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그 불쌍한 모습을 대신하여 친척의 사명을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위하여 목을 놓고 탄식하고, 이스라엘이 책임 못한 죄를 탄식하고, 문중의 장래가 이즈러진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통곡했던 친척들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여기 모인 저희들은 예수님의 친척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편이 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교회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유대 교단과 수많은 제사장들은 스스로 하늘을 받들고 하늘의 내정적 인연을 생활에 나타내어 하늘의 규범을 세운다고 하면서 나가던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중심이요, 생명의 결정체요, 사랑의 중심이요,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냉정하게 모른체했사옵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적인 책임을 진 유대 교단 중에 예수님의 편이 되었던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통한 아버지의 4천년 수난의 결과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눈물로써 아버지를 대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때 그러한 예수님 앞에 아버님의 뜻을 알고 찾아온 사람은 밤길을 더듬어 찾아온 니고데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또,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갈보리 산상을 향하여 걸어가는 예수님을 도왔던 사람은 강제로 끌려나온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저물어 가는 석양길에서 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처량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이 이렇게도 억울하고 비참하였던 사실을 회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원한에 사무친 마음으로 과거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쌓아 놓으신 이스라엘권이 무너질까봐 혀를 깨물고 죽음길을 가면서까지도 그들의 복을 빌어 주어야 했으니, 그런 예수님의 원통한 심정을 저희들은 기필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떠나는 한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생명을 걸고 울부짖으며 슬픔과 원한의 역사를 가로막고 나선 형제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마저도 예수님의 죽음길을 `내가 대신 가겠다'고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진정 불쌍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도 동정을 받지 못한 예수님은 고독한 고아의 신세요, 인생노정에 있어서 낙오자의 신세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 시간절절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친척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교단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누나, 혹은 동생이 되어야 할 입장에 선 무리가 바로 이 역사시대에 홀로 남아진 통일교단이요, 저희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탄생하신 분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말을 놓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이토록 예수님은 역사적 슬픔 가운데 고독하게 태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시간 저희들은 통곡을 하고, 그런 예수님의 슬펐던 내심의 정경을 통곡하며 위로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예수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버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날까지 싸워 나와 오늘 이 통일교단을 형성하였사옵니다. 이와 같이 슬펐던 아버지의 사연을 드러내어 가르쳐 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인연과 터전이 이 지구성에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곳은 그야말로 아버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한 곳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심정이 여기에서 다시 묶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목을 안고 눈물 흘릴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 갔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고 사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에게만은 아버지의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슬픈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고,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고 사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며 올렸던 기도는 예수님 자신이 올려서는 안 될 기도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도는 예수님의 천척과 형제들이 올려야 했고, 예수님의 신부가 올려야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도 예수님이 질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원수의 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갔던 최후의 운명길도 예수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가 가야 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가야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시대권내에서 예수님을 동정한 사람은 천지간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그러한 슬픔의 권이 이 시대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하기 위하여 모여진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통일의 기치를 들고 통일의 말씀과 통일의 노정이 나타난지 수십 년, 그 동안 아버님께서는 기쁨의 날이 아니라 슬픔의 날을 지내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한을 풀기 위해서 소망의 한때, 6천년 역사의 종말의 한때를 세우시려는 아버지의 뜻은 오늘날 한국 강토에서 슬픔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있음은 오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그를 모시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죽음의 길로 내몰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한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하면서 아들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을 붙들고, 저희 통일교단을 남아 있게 하여 주신 당신의 은사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는 통일교단이라는 이름을 갖추지 못하고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연장시키며 수난의 노정을 벗어나지 못한 채 20여 성상을 지내고 또 지냈나이다. 죽음길 가운데서도 생명줄을 이어 놓고, 몰리는 자리에 서서도 생명줄을 이어 놓고, 고아의 자리에서도 생명줄을 이어 나오면서 이 민족의 심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온갖 죽음길과 희생의 길을 거쳐왔습니다.

아버님, 제사장의 직분과 제물의 직분을 겸하여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인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곳에 모인 통일의 무리들은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찬양해야 할 일이 있을진대 먼저 아버지의 수고를 찬양해야 되겠고, 역사시대에 선지선열들이 피 흘린 대가를 찬양해야 되겠고,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거쳐 나왔지만 아직도 갈 길을 다 못갔다고 몸부림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정성을 다하는 통일의 무리들을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통일교단은 이와 같은 하나의 전통을 세워 이 땅위의 모든 인류에게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을 똑바로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서러우신 아버님이신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억울했던 예수님이신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불쌍했던 이스라엘 민족인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한을 다 풀어 드리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통일교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불쌍한 무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와 더불어 생활하며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삼고 형제지정을 맺지 못하였던 한의 이스라엘권을 오늘 저희들이 우애의 정으로써 복귀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족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고 위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스스로 자각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아버지 앞에 새로운 결의를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 역사적인 기쁜 날을 맞아 과거의 슬펐던 전체의 생애를 승리로서 거둘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 기독교 역사를 승리의 결과로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통일교회의 역사는 슬펐던 역사였지만 오늘 이 한날을 맞이함으로써 기쁨의 역사로 종결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1년도는 당신께서 허락하신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의 해입니다. 7년 대환난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해요, 예수님이 넘지 못했던 7년노정을 넘어서서 8년 수로 접어들어 가는 첫출발의 해입니다. 이제부터 기독교의 슬픈 역사는 해방과 더불어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세계 만민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하늘을 찬양할 수 있는 희망의 1970년대가 되고, 새로운 기쁨의 오늘 3일의 역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왔다 간 기독교의 순교 열사들이 사정이 다른 죽음길을 갔지만, 기독교를 믿고 나오면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느라고 고생하였던 역사시대의 교직자들이 비록 뜻과 일치된 길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이날을 기하여 이들의 행적을 뜻과 일치된 가치로서 인정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지금까지 기독교 교단이 뜻 앞에 어긋난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오늘 이 아들의 기도를 통하여 일치된 자리에 설 수 있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후 12사도를 중심삼고 로마 박해시대를 거치고, 수많은 국경을 넘으며 복음을 전파할 적마다 죽음의 교량을 연이어 나온 피의 대가를 긍휼히 보시어서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님도 환희의 표정을 지으시고 아버지께서 기쁜 날이라고 공인하는 자리에 서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사도들을 규합하여 하늘 잔치를 베푸는 이 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통일교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 자식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수난의 역사를 걷어치워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저희들이 수난의 길에 서서 그 슬픔을 탕감하였사옵고, 죽음길이 있을 때는 하늘의 혈족을 통하여 탕감하는 놀음을 했었으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통일교인들 앞에 있어서는 수난의 길이 탕감의 시대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 탕감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날을 기하여 저희 통일교인들이 슬픔의 조건들을 탕감하는 시대가 넘어가게 하시옵소서.

오늘을 그럴 수 있는 거룩한 날로 아버지 앞에 봉헌하였사옵니다. 이날을 높이 찬양하면서, 하나의 한계점을 바라보고 생애를 바쳐 지금까지 투쟁해 나온 아들딸의 한을 풀 수 있고 전인류가 천국을 개문할 수 있는 한 시점이 육계와 영계가 합동 귀일한 일치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늘 새벽에 통고하였사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도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할 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부터 그들 스스로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모아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경배드려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인연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오늘 기성교회를 대표한 한 아들이 이 통일교단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 것을 아옵니다.

하늘의 일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께서 저희들이 모르는 가운데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은 정말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 상처와 허물을 가진 서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을 상속받고 나선 불쌍한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오니 받아 주시옵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대업을 완수하여, 이 지구성이 당신의 품에 안기게 되는 날까지 생명을 다하고 사랑을 다 바쳐 나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옵니다. 과거는 탕감의 서러움과 더불어 갔지만 이제는 환희와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만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인들이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사옵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사옵고 통일교단도 그러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제 광명한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화기애애한 기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천되는 승리의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의 아들딸 된 무한한 가치를 찬양하면서, 마음 놓고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희들이 정성을 모아 오늘 이날을 기쁜 날로서 아버지 앞에 고이 묶어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통일교단으로 말미암아 뜻 앞에 원통한 자리에 선 사람도 많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잔칫날에는 지나가는 행인도 거기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요, 지나가는 걸인도 그늘 아래서 잔칫상을 받게 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는 혜택을 남한의 삼천만 민족과 북한의 천오백만 민족들에게까지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공산권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지옥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에게까지도 아버지의 특권을 부여하시는 특사의 한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모든 전체를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갖추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통일교인들은 뜻의 노정에 있어서 반드시 탕감을 하지 않고서는 전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악하고 슬픈 이 세상

아담 해와의 타락은 아담 해와만의 타락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류역사를 총합한 입장에서의 타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은 선한 부모가 되지 못하고 악한 부모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악한 부모로 말미암아 악한 자녀가 태어났고, 악한 자녀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악한 종족, 악한 국가, 악한 세계가 형성되어 이 세계권내에 30억 인류가 존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락권내에 있는 오늘의 인류역사는 기쁨의 역사가 아니라 슬픔의 역사요, 인류도 기쁨의 인류가 아니라 슬픔의 인류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개인이 이루고 있는 가정은 항상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슬픔의 내용이 깃들어 있습니다. 가정은 서로서로 화친할 수 없는 상충적인 응결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그것이 기반이 되어 가지고 그러한 모순을 내포한 환경이 되었고, 완전히 통일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또, 그러한 사회가 뭉쳐서 이루어진 국가 역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선을 중심삼은 소망스런 국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그런 국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기쁨의 세상이 아니라 슬픔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은 고해의 행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러한 나라와 세계의 환경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세계가 악하다면 그 세계를 찾아 나가는 길에 있어서 선이 있을 수 있겠느냐, 우리는 미래의 소망을 찾아 나가고 있는데 그냥 이대로 발전해 나가면 세계의 종말에 선의 세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현재의 세계는 소망을 갖고 전진할 수 있는 세계가 되지 못한다고 단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계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나갈 것이 아니라, 이 세계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려고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할 길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는 소망으로 삼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 과연 대한민국을 최고의 소망의 나라로 모실 수 있겠느냐? 소망의 나라로서 앞으로 선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겠느냐? 또한 이 나라가 선의 주권을 유지하고,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실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도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나라를 뒤로 두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이 오늘날의 우리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나라를 뒤로 두는 것은 물론이지만 친척을 중심삼고 볼 때, 이 친척을 통하여 우리 가정이 행복할 수 있고, 우리 가정으로 말미암아 전체 친척이 행복할 수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악한 기반에서 출발한 친척이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에서는 선한 친척을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부모 형제 처자를 중심삼은 가정을 두고 볼 때, 나 자신이 소망하는 이상적인 선한 가정을 현재 이 환경 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그것도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통해서도 불가능하다면 하나의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한 남자가 이 지상에서 그냥 이대로 완성하여 선한 개인으로서 등장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하나의 선한 남자로서 하나의 선한 여성을 하늘땅이 인정하는 자리에서 선한 신부로 맞아들이는 것은 악한 터전 위에서 심어졌고 악한 터전 위에서 이루어진 이 천지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모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오늘의 인류역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는 자리에서 인간들을 다시 불러 모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역사적인 종말 시대를 맞게 될것인즉, 이 세계는 선을 중심삼고 승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중심삼고 패배의 여건을 드러내고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관으로 보는 세계의 종말은 심판이라는 비참한 결론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명사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때는 망하는 것이요, 이것을 취소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때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이란 명사에 밀려 나가는 무리들은 멸망하게 되는 것이요, 심판이란 명사를 놓고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무리는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이란 명사를 놓고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무리로 말미암아 피조세계는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반 위에서 선을 찬양할 수 있는 터전을 가지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참다운 개인이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형제가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부부가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부모가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생겨날래야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내용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선한 나라요, 이 세계가 선한 세계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슬픈 운명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냥 그대로 긍정하는 사람을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니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선한 사람을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지금의 세계를 붙안고 이 세계속에서 자기의 꿈을 이루겠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해야 됩니다. 세계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하고, 종족을 부정하고, 가정을 부정하고, 개인까지도 부정해야 합니다. 이토록 원통하고 슬픈 운명이 엉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현세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단 일점의 긍정도 용납할 수 없는 슬픈 운명에 사로잡혀 비탄스럽고 원망스러운 인생의 행각을 더듬어 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각성할 줄모르는 인류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니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권내에 심어진 나무가 자라서 결실되는 때가 종말시대이기 때문에 종말시대에는 악한 것은 처단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선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세계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하고, 자기의 종족을 부정하고, 자기의 가정을 부정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절대라는 것은 하나 외의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자의 생각은 둘이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절대자의 생각은 하나입니다. 그 생각은 출발에서부터 끝까지 영원히 절대적인 하나입니다. 그것은 누가 시정을 요구할 수 없으며, 가감을 요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자가 창조한 이 천지간의 창조물 자체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절대자와 떨어질 수 없는 상대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절대자를 중심삼고 `상대적인 절대'의 자리를 찾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한분밖에 없는 절대자에게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상대적 절대'형을 갖춘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 자체만으로는 기쁨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것은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혼자로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힘이 좋은 레슬링 챔피언이 있다 해도 그 챔피언이 가만히 혼자 앉아 있을 때에는 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는 있는데 없는 것 같고 없는 것 같은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상대가 없이 혼자 가만히 있을 때에는 자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천지를 지으셨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계 대통령이 되었는데 세계 인류가 전부다 없어졌다고 한다면 무슨 기쁨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춤을 출 수가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이해돼요? 사랑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세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바라고 나왔던 것이 오늘에야 이루어졌노라고 기뻐하며 그 사람과 둘이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 대통령의 족속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어화둥둥 내 사랑아 하면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맞지요? 「예」

하나님도 별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장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나님도 고독단신의 절대자는 싫기 때문에 같이 지낼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 좀 살맛 날 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뭐 좀 더듬어 보고 다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신비로운 인체

사람의 눈 코 입 귀를 보면 전부다 이상하지요? 여기 처음 나온 사람들이 있으면 하나 알아 두세요. 여러분의 눈이 태어날 때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났습니까, 모르고 태어났습니까? 눈이 태어날 때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아니면 태양이 있는 것을 모르고 태어났어요? 그래, 눈이 태어나기 전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이거예요.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몰랐으면 뭣하러 이렇게 태어났어요?(웃음) 생각을 잘 해 보고 대답을 해보세요. 「태양이 없더라도 눈은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글쎄 눈이 태어나긴 태어나야 되는데 누가 내든지 냈기 때문에 태어났을 것이 아니겠어요? 눈 자체는 몰랐지만 어느 누가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눈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만들어 놓았든지, 아니면 눈 자체가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생겨났든지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눈자체든 다른 존재든 누군가 눈이 태어날 때 태양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귀는 어떻게 해서 이처럼 멋지게 생겨났느냐? 귀가 생겨나기 전에 누군가 공기가 있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코를 보세요. 무엇 때문에 코가 이렇게 생겨났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눈, 코, 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녀석은 눈알을 빼 보고, 귀를 막아 보고, 코를 잘라 보라는 거예요.

사람의 얼굴 중에서 이 코가 제일 보기 싫은 것입니다. 세수할 때도 이 코 때문에 언제나 엎드려서 해야 됩니다. 이 코가 왜 이렇게 생겼느냐 하면 얼굴을 씻을 적마다 고맙다고 인사하라는 것입니다.(웃음) 코가 이렇게 생긴 것은 이 땅에 풍상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소낙비도 내리고 이슬도 내릴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만일 코가 거꾸로 붙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웃음) 그런 위험물을 피할 수 있도록 미리 방지를 해 놓은 것입니다.

또,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콧구멍 속에 이렇게 창살같이 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공기 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도 참 뭐라고 할까요? 평안도 말 중에는 `쌈바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도 짓궂다면 짓궂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참 짓궂다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실감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 콧구멍을 보라는 거예요. 콧구멍 안에 이렇게 털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털이 전부 한쪽으로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로 모여 있습니다. 그렇지요? 콧구멍에 먼지가 들어오면 이 털에 걸리게 되어 흘러나오는 콧물과 섞여 코딱지로 굳어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웃음) 웃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별다르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體)를 만점에 또 만점을 줄 수 있는 자연적인 체로 만드셨습니다. 머리카락을 자세히 보면 나무같이 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삭삭 비벼 보면 어느 쪽이 뿌리쪽이고 어느 쪽이 그 반대쪽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손으로 비벼 보면 반대쪽에서 뿌리쪽으로 손이 움직일 때 까끌까끌한 감촉이 있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까끌까끌하기 때문에 무엇에 걸리면 영락없이 달라붙게 되어 있습니다.

얼굴을 보면, 멀쑥한 가운데 이 시커먼 것이 무엇입니까? 눈썹이지요? 이것을 왜 붙였겠습니까? 이 눈썹이 없으면 땀이 흘러내려 그 밑에 있는 귀여운 눈은 하수도와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땀이 흘러내리면 틀림없이 눈으로 들어갈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눈썹은 눈 위에 이렇게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썹도 하나였으면 곤란했을 것입니다. 두 개가 있기 때문에 눈을 피해서 흘러내릴 수 있는 겁니다. 또 혹시 교통정리가 잘못되어 땀이 눈 쪽으로 흐른다 해도 눈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눈 가장자리를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눈은 움푹 들어갔고 가장자리는 드러나 있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그러니 예술작품으로는 그만이지요. (웃음)

또 입을 봅시다. 혀는 70년 80년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도 아무 사고도 없습니다. 참 잘 만들어져 있다는 겁니다. 밥을 먹는 것을 보아도 신비하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참 신비합니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작용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슬쩍슬쩍 박자를 맞추어서 거침없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참 신비한 거예요. 여러분은 혀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혀가 없으면 어떻게 밥을 먹고 말을 하겠어요?

신의 실존성

이렇게 모든 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이것들이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전부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물론자들은 `신이 뭐야. 물질이 전체의 중심이지' 라고 합니다. 그런 녀석들은 눈알을 빼버리라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모든 자연물은 적응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도피적인 표현으로 적응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이거에요. 그런 논리가 어디 있어요? 과학적이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아메바가 점차 진화해 가지고 고등동물인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 힘을 어디서 보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힘이 작용을 하게 되면 반드시 소모가 됩니다. 여기에 힘을 보충해 주어야 또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전기를 두고 보면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있는데 나가는 힘은 들어오는 힘보다 적습니다.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힘의 세계에 있어서 혁명입니다. 여기에 휘발유를 공급하는 것도 힘이 자꾸 소모되니까 그 힘을 보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작용을 하게 되면 소모가 벌어지는데 아메바가 작용을 해서 발전할 수 있어요? 그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아메바에서는 고등동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제삼권에서 보강해 주고 보급해 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신이 모든 것을 알고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손이 하나는 바르게 되고 하나는 거꾸로 되어 있어 가지고 따로따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 인체는 신비의 왕궁이요, 무궁무진한 지식의 원천이며, 힘의 조화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조는 전부 다 과학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이란 것은 이론과 상충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에 대한 연구를 해서 책을 쓴다고 해도 몇만 권을 써도 못 다 쓸 것입니다. 학박사라는 사람들, 지극히 시시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기 학박사님들이 왔으면 섭섭할는지 모르지만, 학박사들이 알고 있다고 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창조의 대진리 앞에 있어서는 하나의 먼지만도 못한 것입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도 상식적으로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조화라는 것은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도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 또한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자 앞에는 절대적인 상대자가 있어야 되고, 절대적인 주체 앞에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행복이니, 조화니, 기쁨이니, 춤이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있는것입니다.

상대가 없는 조화와 미와 행복은 없다

노래를 보게 되면 사랑의 노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혼자 있다고 하면 아무리 사랑의 노래라고 해도 부르면 부를수록 맥이 빠질 것입니다. 한 번 부르고 나면 다시는 사랑의 노래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웃음이 자기 혼자 웃는 것이라면 이 웃음도 역사상에서 없어져야 됩니다. 여러분 혼자 웃을 줄 알지요? 「예」 그러나 혼자 웃으면 뭐라고 합니까? 혼자 웃으면 미친놈이라고 합니다.(웃음) 또 혼자 중얼거리면 뭐라고 그래요? 미친놈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혼자 웃되 웃음에 해당할 수 있는 상대를 갖고 웃게 될 때는 멋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권을 조성하는 데는 천주의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창조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부인이 `당신과 나 둘이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다. 만 년 억만 년 우리 둘이만 있자'라고 한다면 그 부부는 망할 지니라! 자식이 없으면 1세기도 못 가서 나가 자빠집니다. 아무리 단짝인 부처(夫妻)라도 제3의 절대적인 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존재가 누구냐? 바로 아들딸입니다. 아들만 있어도 망합니다. 딸도 있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도 남자만 모였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통일교회에 갔더니 전부 다 건달 같은 남자들만 있더라…!' 그것은 오래지 않아 망할지니라!(웃음) 또 `여자들만 모였더라. 전부 다 미인들만 모였더라…!' 그것도 망할지어다! 미인이든 추남이든 섞여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권이 없는 곳에는 조화의 미와 행복의 요인과 희락의 표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웃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걸어다니고 행동을 하고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명동에 간다'할 때 `나 울기 위해서 갑니다' 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라도 상대적인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좋을 수 있는 상대, 내게 필요한 요건을 충당시켜 줄 수 있는 상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돈을 한 십만 원 벌려고 간다 할 때는 내심 기분이 좋아서 가는 것입니다.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나 가지고 이제 오늘 나가게 되면 틀림없이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억만장자가 된다고 하게 되면, 택시고 고급 승용차고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안 타고 걸어가도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내가 바라고 움직이는 상대적 가치가 나와 얼마만큼 큰 내용을 가지고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별수 없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본래부터 영광 중의 영광의 주체요, 행복 중의 행복의 주체요, 모든 사랑과 생명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절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망해 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할수없이 상대적인 존재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방안에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나는 만국의 대왕이니 이렇게 거룩하게 앉아 버티고 있는 것이 나의 업이다. 손이라도 하나 까딱하면 큰일난다' 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밥을 먹으니 좋다 할 때는 밥이 자기 전체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일에 대해서 재미있다고 한다면 그 일이 자기 전체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방으로 절대적인 상대권을 넓혀 나가는 과정속에서 행복의 기틀이 조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의 절대 대상은 인간

그러면 천지 만물 가운데 절대자 되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물은 어떤 것이냐? 생각해 보세요. 곤충일 것이냐? 아니면 우리집 뒷뜰에서 콜콜 자는 예쁘장한 강아지일 것이냐? 이러한 것들이 절대적인 상대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강아지보다 더 지혜로운 원숭이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면 원숭이일 것이냐? 오늘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요? 앞으로 내가 대학생들을 설득해서 교수들한테 전부다 `원숭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사하라고 시켜 보면 어떨까요?(웃음) `교수님은 원숭이의 머리하고 원숭이의 뼈다귀를 갖고 계시죠?' (웃음) 그랬다가는 `예끼놈!' 할 것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와 같은 뼈다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영적 존재가 아닌 원숭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의 손과 발의 모양은 사람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사람과 닮았기 때문에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숭이는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숭이 띠입니다.(웃음) 그거 생각하면 내가 원숭이 띠로 잘못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내가 원숭이를 싫어한다구요.(웃음)

인간과 원숭이를 해부학적으로 보면 48가지가 틀립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이 원숭이가 비약적인 발전, 즉 돌연변이에 의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논법은 그럴 듯하지만 여기에는 전부다 무신론자들의 마술적인 요인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승공이념을 들고 나와서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원숭이를 절대적인 창조주 앞에 절대적인 상대로 세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상대가 저게 뭐야! 대변도 가리지 못하는구만. 다니는 것이 저게 뭐야. 네 발로 다니는구만' 하면서 참소할 것입니다. 네 발로 다니는 것은 아직까지 미완성한 것입니다.

인간도 아기 때에는 네 발로 다닙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형(形)으로 보아서도 미완성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네 발로 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은 두 발로 다닙니다. 그것은 벌써 원숭이보다는 입체적인 안전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하늘과 땅의 연락기관입니다.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왔다갔다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와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자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상대적 존재를 피조만물 가운데서 찾아 세우신다면 어떤 존재를 찾아 세우시겠습니까? 틀림없이 두 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원숭이가 영통해서 방언한다는 말 들어 봤어요?(웃음) 발람에게 나귀새끼를 통해 가지고 증거한 것은 돌변적인 역사를 한 것입니다. 거기에 영이 들어가서 그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책임 못하니까 할 수 없이 나귀를 통하여 역사한 것이지 본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만이 영계를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통일교회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별의별 반대와 지탄을 받은 것은 이런 초감각적인 기관이 발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발전된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이룩한 내용의 차원이 너무나 높기 때문에 앞으로 그 내용이 세계 학계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노벨상을 탄 사람이 없었지만 앞으로 틀림없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타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학계는 망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섭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라구요.(웃음) 대한민국의 위신을 세워주는 데 무슨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원리를 보게 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둑의 심보를 가진 학자가 이것을 빼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실컷 써 먹어도 좋다 이겁니다.(웃음) 그런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표창을 받았다고 좋아하고 야단들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표창 하나 받지 않아도 나라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충신의 도리를 다 갖추고 갑니다. 그까짓 상을 타서 뭘 해요. 내가 상을 주면 줬지 뭐하러 받아요!(웃음)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상을 받고 좋아해요? 상을 주고 좋아해야지. 그러나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지금까지 통일교인들이 나로부터 수천 장의 상장을 받았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앞으로는 받지 말라고 통고를 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기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문선생한테 노벨상을 준다고 할지라도 나는 받지 않겠다고 이미 결정을 했습니다.(웃음)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통일교회 문선생에게는 노벨상을 안 줄 수 없소. 하나님께서 받으실 상을 당신이 대신 받아서 하나님께 드리시오'하는 입장에서 준다면 내가 받겠지만, 그렇지 않고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준다면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의 진리는 문선생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했나요?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진리가 나온 곳은 한 곳밖에 없는 거라고요. (웃음) 그곳은 절대적인 곳이라면 절대적인 곳이요, 최고 꼭대기라면 최고 꼭대기지, 데데한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 선생님의 기질은 싸움을 해도 하루 싸워서는 직성이 안 풀려요.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싸워서 끝을 보아야 됩니다. (웃음) 이런 이야기 하면 좀 창피한 일이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어릴 적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한 번 남에게 맞고 나면 잠을 못 잤습니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때린 녀석을 굴복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그의 부모 형제까지도 와서 빌어야만 마음이 편했습니다.(웃음) 내 앞에 꼬투리잡고 껍적대는 녀석을 두고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악당이 됐으면 악당 중의 최고 악당 괴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선생님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독출파(獨出派)입니다.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이 혼자서 지금까지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없다는 말이냐? 하나님은 안 보이는 분이니 계셔도 안 계시는 것과 같은 것이요, 안 계셔도 계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다시 맺어야 할 인간

하나님께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인간을 빼놓고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지혜의 왕자이기 때문에 떡 버티고 서서 `하나님!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해도 동물이나 식물이나 어떤 것이라도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조금만 더 지혜로운 존재가 있다면 참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천사장의 타락이 개재될 수 있는 상대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타락론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萬物之中 唯人最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으냐? 필요하다면 얼마나 필요하냐? 하나님이 계시는 한, 하나님이 절대자이신 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필요하냐?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계시면 상대 되는 사람도 살아 있어야 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되면 상대 되는 사람도 좋아해야 되고, 하나님이 슬퍼하시게 되면 상대 되는 사람도 슬퍼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은 좋아하시는데 상대 되는 사람은 울고 있고, 또 하나님은 슬퍼 우시는데 상대 되는 사람은 좋아서 웃고 있다면 같이 있을수 있겠어요? 그 사람은 여지없이 추방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은 짝자꿍입니다. 이 짝자꿍이라는 말을 놓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에게는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상이 남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 좋아하시느냐? 사람이 주관하는 만물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전부 데데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손수건 한 장과 양복 한 벌을 놓고 어떤 것을 가지겠느냐고 물어보게 되면 그 대답은 뻔한 것입니다. 높고 낮고, 귀하고 천한 것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라도 좋은 것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핏줄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인연이 하나님과 분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듯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었더라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이 벌어졌겠습니까? 또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어 하나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자동적으로 받을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만일 없다면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야 된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줄을 물고 나왔던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것, 곧 우리 인간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출발할 수 있고 발원될 수 있는 초점이 어디냐? 그것은 장사를 통한 인연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생명의 인연이 연결된 곳이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에 연결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사는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생명의 인연이 틀어져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 끊겨져 나갔기 때문에 인간들의 생애 노정에서 절망이니 탄식이니 비애니 하는 것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은 자동적으로 인간과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거기에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와 관계를 맺게 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다시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게 되면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권내에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이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도 맺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타락의 내용과 구원의 방법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타락이란 뭐냐? 앞에서 말한 논리로 탐구해 보면 타락이란 혈통적인 실패를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원리의 타락론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원수인가? 하나님의 원수 중의 제일의 원수는 누구냐? 6천년 동안 수많은 인간이 죽고 수많은 성현이 죽음을 당하면서도 바라던 인류의 소망을 이룰 수 없게 한 원수는 누구냐? 이렇게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인간의 소망을 한번도 이루지 못하게 한 원수의 종자는 어떤 존재냐? 원수 중에서도 최고의 원수가 누구냐?

물건 훔쳐간 원수나, 장사하다가 자기한테 사기를 친 원수는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자기 집에 불을 놓아 파괴시킨 원수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잡아 죽인 원수나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아간 원수는 용서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원수는 용서하려고 암만 결심을 해도 저절로 이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적 조건으로 말미암은 원수는 해가 지나감에 따라서 다 잊어버립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한 20년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원수만큼은 시일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픔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있어서 크나큰 슬픔의 원흉이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마 18:22)'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만일 예수님한테 `예수님, 당신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도 용서한다면 사탄도 그렇게 용서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당신의 교리 가운데 사탄을 용서하라는 주(註)를 달아 놓은 것이 있습니까?'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아 나는 사랑의 주니 그것도 가능하다'고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기독교에서는 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고 합니다. 그 선악과에 독약이 들어 있었어요? 만일 그렇다면 그런 얄궂은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들에게 따져 묻게 되면 세 마디도 답변하지 못하고 캄캄 천지가 되어 가지고 쩔쩔매게 됩니다. 그들은 그런 질문을 피하기 위한 방비책으로 `오! 신성한 절대자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죄인된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 수염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다고 하면 `오! 그래' 하며 수염을 펴 가지고 보여 주고, 이빨을 보고자 하면 `오! 그래라' 하면서 보여 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궂은 이론을 갖다 붙여 놓고 `너 이놈 더 이상 묻지 마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내가 믿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자식이 아버지 겨드랑이의 털을 보고서 `아빠 나 요것 같고 싶어요' 하고 뽑았을때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렸다가도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다시 웃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웃음)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인간과 하나님이 무슨 원수가 되었길래 모든 것을 다 가려 놓고 `이것밖에 모른다' 하겠어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자라면 절대 안 막습니다. 비밀이 없게끔 골짜기를 전부 헐어서 평지를 만들어 놓고 `너와 나와는 서로 안팎이다. 바깥(外)이 안(內)도 될 수 있고 안(內)이 바깥(外)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만 `네 이놈. 효도해라 효도해라' 해서는 안 됩니다. 10년만 그렇게 해 봐요. 효도할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보따리로 자꾸 갖다 씌워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식이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자관계는 깨지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면 복귀도 하루 아침에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선악과 보다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좋은 것을 만들어서 먹이면 탕감이 된다는 것입니다.(웃음) 이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핏줄이 달라졌습니다. 사랑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이미 핏줄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이것을 개조하려다가는 전부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인연이 핏줄을 중심삼고 잘못 맺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탄의 역사를 거쳐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활이 엉터리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부활이라는 말이 있지만 결국 인간은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려면 핏줄을 올바로 타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얘기하자면 한이 없으니 이 정도만 얘기하도록 합시다.

우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사랑해야

기성교회 교인들이 오면 `거 통일교회 문선생이 누구야?' 그러는데 내가 문선생이요.(웃음) `그 양반 말은 그럴듯 하구만' 그러는데 어디 한번 가서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여러분만큼 생각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선생님이 종교 통일을 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치고 있지만, 종교 통일이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구요! 앞으로 기독교인들이 통일교회를 안 믿으면 내가 가만히 안 놔둘 겁니다. 그렇다고 뭐 대포를 걸어 놓고 공격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이 이념을 몰라 가지고는 말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나 천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상대관계를 통하여 인간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느냐? 사랑입니다. 이 사랑도 힘입니다. 사랑 자체도 작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작용하게 되면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것이 힘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힘의 작용은 작용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되지만, 사랑은 작용을 하면 할수록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남편의 사랑 앞에 `아이구 나는 함락됐소. 이제 나에게는 사랑이 필요없소' 이렇게 외치는 아내는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보다 더 깊은 사랑을 당신에게 드리겠노라'고 나서는 것이 아내의 사랑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어떤 사람이 진실된 사랑을 백 냥 정도 받았다고 했을 때, 구십구냥 쯤 갚아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갚을 때에는 단 한 냥이라도 더 보태서 갚아주고 싶은 것이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플러스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사랑에만 있기 때문에 사랑을 통하여 영생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사랑은 작용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힘의 모체로서 세계를 품을 수 있고 천지간의 거리를 축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도 이 사랑을 통해서만이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본질에서 사랑을 빼게 되면 하나님도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장 중심이 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데는 영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자기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는 내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꼭 갚아 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희생시켜서라도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사랑의 도리에 순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당신과 가까운 편에 있는 사람들과 종족, 나라에까지 사랑을 주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돌려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적거나 돌려드리지 않더라도 그냥 차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오냐 네가 작다면 더 많이 주마'하면서 주셨습니다. 맨 나중에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독생자까지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셔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도 맺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수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다고 받지 않을까봐 보태고 또 보태어 이스라엘의 개인과 종족과 나라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사 축복해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래도 받지 않자 그 아들의 생명까지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나서도 또 다시 사랑을 보태 주려고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돌아오게 되는 날에는 천지가 몽땅 이상적인 천국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하나님은 사랑을 받기만 하시는 독재자이냐? 사랑을 받으면 더 많이 갚아 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지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백의 사랑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천의 사랑, 만의 사랑으로 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기원으로 하지 않은 사랑은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생명의 기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 대해 사랑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을 통한 생명의 인연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으려면

생명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육신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짓 원수의 피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으니 이 원수의 피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사탄도 나가 자빠질 만큼의 수난의 길, 죽음의 경지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떨어진 후에 하나님께서 수술대에 올려 놓고 고쳐서 써먹겠다고 하시는 놀음이 구원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부정의 원칙을 설정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고 발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역사 가운데, 종교의 이름을 가진 단체 가운데 순교의 역사를 단장한 기독교만이 부정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사탄의 아들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이라고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사탄의 아들은 무엇이 다르냐? 핏줄이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핏줄이 바뀜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통일교회의 타락론을 모른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론적으로 추론해서 누구든지 대답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사람은 솔직해야 됩니다.(웃음) 좀 섭섭하지만 할 수 없잖아요? 인사를 하려면 자기의 밑바닥을 드러내 놓고 해야 인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서 있지 않는 것입니다. 타락이라는 것이 무엇이예요?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아버지와 살 텐데요 뭘.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뭐 예수 믿기가 쉬운 줄 압니까? 아마 기도하기가 제일 힘들 거라구요. (웃음) 기도하기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어디 여기 목사가 왔으면 손들어 보세요. 나도 종교 지도자이지만 정말 기도하기 힘들어요.(웃음)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알고 보니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기도를 못 하겠어요. 한바탕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나면 배가 굳어져서 허리를 펴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힘드는데 예수 믿기가 좋다는 녀석들은 전부다 죽어야 돼요. 할수없으니 믿는 것이지.(웃음) 병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병이 나는 것이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왜 올라가야 하느냐? 타락하여 사탄의 아들로 떨어졌으니 본래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누더기를 걸친 거지 같은 신세가 된 것은 핏줄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낳은 자녀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당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부모의 자녀라고 해서 예수를 안 믿고 천당갈 수 있어요? 또 믿어야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태어났으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안 했으면 예수님이 필요없습니다. 구주가 필요없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주(救主)란 `구해 주는 주인'이란 뜻이지요? 병이 났으니 의사가 필요한 것이고, 물에 빠졌으니 구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무슨 의사가 필요하고 물에 빠지지 않았는데 무슨 구해 줄 사람이 필요하겠습니까? 자동차가 고장이 나지 않았는데 전부 다 뜯어 고치는 것은 어리석은 낭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그렇지…. 그래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고 사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쥐새끼도 불이 날 것을 알면 도망가는데 인간이 그런 걸 모르겠어요?(웃음)

`하나님이 네 아버지냐'할 때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그때 옆에서 누가 `야 이녀석아. 뭐가 하나님 아버지야'라고 한다면 거기에 여러분은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럴 자신 있습니까? 또 `야 이 녀석아, 하나님이 보여?' 할 때 `글쎄,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것이지 뭐' 해서는 안 됩니다.(웃음) 그렇게 하는 녀석이 하나님의 아들이예요? 그게 하나님의 아들의 꼴이 됐습니까? 아들과 부모와의 관계는 원자탄을 퍼붓고, 천하의 모든 힘을 일시에 투입시킨다 해도 부정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가지를 자르려 하면서 `이 녀석아, 그래도 네 아버지야?' 할 때 `아 잠깐' 하는 사람이 아들이예요?(웃음) 아들이 그래요? 모가지를 잘라서 열 동강이를 낸다 하더라도 내 아버지가 틀림없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그 잘 모르겠는데….' 그래 가지고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면 그거 잘 불렀어요, 못 불렀어요? 그렇게 대하는 아버지는 사촌의 아버지, 의붓 아버지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지어 놓은 행복의 동산인 천국에는 먼저 가서 살겠다고 야단하고 있으니 이들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거기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핏줄이 틀려졌습니다. 아버지가 둘이 생겼으니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틀림없이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사탄이는 뭐냐?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세밀히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은 뭘 하려고 사람을 만드셨느냐? 영원히 같이 살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좋은 것 중에는 봐서 좋은 것이 있고, 먹어서 좋은 것이 있고, 만져서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먹어서 좋고, 보아서 좋고, 만져서 좋은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짜좋은 것은 영원히 가지고 살면서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점포 앞에 가게 되면 좋은 것이 참 많지요? 그것을 볼 때는 기분이 참 좋지요? 그러나 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가지고 살면서 좋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나를 닮았기 때문에, 좋은 것을 가지고 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일 좋은 것이 있으면 안방에 갖다 놓고 싶어요, 창고에 갖다 놓고 싶어요? 「안방에요」 제일 좋은 것은 틀림없이 안방에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제일 좋은 분이니 누구나 자기 집 안방에 갖다 놓으려 할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형제들이 훔쳐갈 것 같아 안심이 안 되면 어디에다 숨겨요? 허리춤에 숨기는 것입니다. 보물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에 도둑들이 득실거리면 장롱에 자물쇠를 열 개씩이나 채워 놓고도 안심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것을 허리춤에 달고 다녀야 안심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훔쳐갈까봐 걱정이 되면 그 보물을 뱃속에 집어 넣을 수 있으면 집어 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도둑놈의 왕국에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길까 봐 뼈속에라도 집어 넣고 싶어하는 것은 제일 귀한 것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어디에 갖다 두려고 하시겠습니까? 「품속요」 그렇지요, 품속입니다. 품속 중에서도 어느 품속이예요? 마음의 품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네 마음에 있고 하나님은 네 마음에 있나니라' 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보물 중의 보물이니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내 마음에 갖다 놓으면 내 마음을 누가 주관하느냐? 뭐, 내 마음이 나를 주관하지…. 그래요? 우리가 생활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마음이 좋더라. 혹은 나쁘더라'고 말을 하지요? 본래 사람은 마음이 몸을 지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때요? 하나님이 내 마음보다 못해요, 나아요? 「낫습니다」 그 나은 가치를 장식하고 싶고, 그 나은 가치를 나타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 내 육신을 당신의 소원대로 써 가지고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놀음을 하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내 육신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그 주인의 명령을 듣는 몸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자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자 나요, 내 육신이자 내 마음의 상대요, 내 마음이자 하나님의 절대적인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천지 통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는 것을 꿈꾸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했느냐? 아담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고, 해와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너와 나와는 싸워 가며 패권다툼할 것이 아니라 천정으로 하나되자' 해 가지고 하나됐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됐어야 한다고요? 「하나님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힘을 지배할 상대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태어났더라면 천하는 태평왕국이 아니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에 무형의 하나님이 완전히 보물 주인으로 강림하시어 아담이 표시하고 싶고 나타내고 싶은 무한한 가치권을 형성하게 되면, 몸은 마음의 상대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담의 소원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3장을 보게 되면 타락한 죄인 떼거리, 용서받을 수 없는 부정의 요인으로 화한 인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저 3:16)'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집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그렇다 할진대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땠겠습니까? 본래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체를 쓴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위한 존재가 인류의 선한 시조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몸과 하나된 가운데서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니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동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돌고 또 돌아 완전히 통일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자를 뿌렸더라면 그러한 종자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므로, 그 씨는 아무리 쪼개어 보아도 그러한 내용을 갖춘 종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뜯어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시 모셔들여 가지고 종자를 개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이렇게 얘기하다간 종일 해야 끝나겠구먼. 오늘 제목이 해원성사인데….

자 좀 건너뛰자요. 여러분, 이것은 확실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천지를 무엇하기 위해서 창조하셨느냐? 생명을 같이 나누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요, 사랑을 같이하기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무형의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의 실체로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이 인류의 선한 참조상,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교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는 참부모가 없으니 참다운 형제가 없고, 참다운 형제가 없으니 참다운 가정이 없습니다. 또한 참다운 가정이 없으니 참다운 종족이 없고, 참다운 종족이 없으니 참다운 민족이 없고, 참다운 민족이 없으니 참다운 국가가 없고, 참다운 국가가 없으니 참다운 세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아들이 되겠어요, 종이 되겠어요?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종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참감람나무 되어야 할 것이 돌감람나무가 되었으니 접붙여서 참감람나무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잡스러운 사상을 일소해 버리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접붙인다는 것은 곧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접붙이려면 죽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걸지 않고 예수 믿는 패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북한 인민군들이 남한에 내려와 목사에게 총을 대고 `이놈의 목사, 네가 하나님을 믿을래?' 라고 했을 때 `예, 잠시 생각 좀 해보고….' 했던 자들은 전부 가짜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예수님을 참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준 교리는 어떻게 보면 엉터리 중에도 그런 엉터리가 없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으니 이게 엉터리가 아니예요? 세상에 이런 교육이 어디 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것은 죽으라는 교훈입니다. 그렇지요? 이 말씀은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을 놀음을 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살 놀음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전부 반대라는 거예요.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남편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 집안 식구가 원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고질통이 심정적 인연을 맺고 있는 부모요, 처자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질통이 바로 여러분이 살아 나가고 있는 생활 밑창에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무엇을 해도 성취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실체가 되어야 했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던 아담 해와가 사춘기도 되기 전에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봄에 씨앗을 뿌렸는데 이것이 가을까지 가지 못하고 여름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바로 이렇게 중도에서 탈락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러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속의 아버지입니다. 즉 마음을 중심삼은 보배로운 아버지인 것입니다. 또, 인류 조상인 아담 해와는 몸뚱이를 중심삼은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마음의 아버지와 몸뚱이의 아버지 두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되어야 할 그들 부부는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되지 못하게 브레이크를 건 것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그것은 제3의 불법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제3의 불법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탈락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상충이 벌어지는 이유

그러면 사탄은 대관절 어떤 존재냐?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사탄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이 뭐예요? 간부, 간부(姦夫)라는 것입니다. 요놈의 자식이…. 그 사탄이 아버지를 때려 죽이고 어머니를 겁탈해 가지고 낳은 자녀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정 믿을 수 없다면 선생님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생명을 걸고서 하나님 앞에 담판 기도를 한번 해보세요.

그래, 여러분은 누구의 자식이라구요? 통일교회 간부(幹部)의 자식이예요?(웃음) 여러분들은 바로 불법적인 사랑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소리입니까? 그러한 요소를 뽑아 버리고 그러한 입장을 부정하려니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아버지권과 몸뚱이의 아버지권의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둘 다 플러스만 되었으니 상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주체가 되는 마음은 플러스가 되고 대상이 되는 몸뚱이는 마이너스가 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억천만년 뗄 수 없는 철두철미한 통일의 기원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사탄이 우거하는 집이 되고, 마음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되어 서로가 주인이라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심신이 편할 리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앞에서도 말했지만 절대적인 하나님은 생각이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이 둘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구상으로 지은 인간이라면 생각도 하나요, 방향도 하나요, 목적도 하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자체는 마음의 목적과 몸뚱이의 목적이 상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렇게 두 주인이 싸우는 싸움은 선조에서부터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싸움의 고빗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탐지하고 수색하여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방법은 발견하지 못한 채 역사의 운명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두 목적권내에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한 목적권으로 통합된 하나의 사랑의 세계가 되어야만 천국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의 진수요 골자가 무엇이냐 하면, 두 목적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들이 그중의 하나를 공격하여 처치할 수 있도록 충동하고 격려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구도의 경서(經書)에 있어서 필요한 교훈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는 몸뚱이를 때려 잡아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말고, 받고 싶은 것을 받지 말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말고, 자고 싶은 것을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몸뚱이가 좋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부정의 도리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마음에 대하여 강하게 또는 대등하게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몸뚱이를 약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뚱이를 끌고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식하는 것이 좋아요? 통일교인이 되려면 일주일 금식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니예요.

선을 중심삼고 악착같이 활동하라

우리 나라를 두고 볼 때도 이북과 이남이 두 목적을 지향하며 나누어져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진 씨가 되지 못하고 두 목적을 가진 씨가 되어 뿌려졌기 때문에 열매인 가정도 둘이요, 사회도 둘이요, 국가도 둘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당과 야당이 있는 것이 좋은 줄로 알고 있지요? 그것이 하나의 절대당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둘로 갈라져 있는 것이 좋은 줄 알아요? 좋지 않다는 겁니다. 둘로 갈라진 사람이 과정을 거쳐 맨 마지막에 민주와 공산 양대 진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그 자체의 기력이 쇠해진 것은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가 껍데기가 시들고 그 빛이 약해져 쇠퇴권내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새로운 역사시대를 출발하기 위한 천운이 가까와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산당도 통일교회를 없애지 못하고, 민주세계도 통일교회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통일교회는 공산당을 때려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 세계에서 제일 악착같은 무리가 통일교회 패요, 공산세계에서 제일 악착같은 무리가 북한의 김일성 패입니다. 통일교회 패는 김일성 패보다 더 악착같아야 됩니다. 나쁜 의미에서 악착같으라는 것이 아니예요. 좋은 의미에서 악착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당을 중심한 악착이 아니라 선당을 중심한 악착이 되어 악의 기력을 완전히 상실시킬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악착의 도수를 가지고 악당을 지배할 수 있는 권이 이루어지게 되면 세계는 하나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 통일은 종교적인 바탕을 벗어나서는 불가능합니다.

요사이 폴리티컬 파워(politica power)니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니 하며 야단들이지만 청소년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규합해 가지고 초민족적, 초국가적인 단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계 만민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들은 동원할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노동자 농민을 해방할지어다'라고 하는 공산당식이 아닙니다. `나라를 팔아먹는 패들, 부패한 악당 공무원들을 다 때려잡아라. 계급을 초월하여 양심적인 세계 만민을 동원할지어다'하면서 태초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던 참된 종교의 기치를 세계에 드높여 행군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망하라고 한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역사적인 종말은 반드시 이러한 운세를 거쳐 가야 천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독교 통일을 표방하고 종교 통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입니다. 가게 될지 못 가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생각만큼은 거룩한 생각이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이런 주장을 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두고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을 것을 시작했다면 그것은 천지 바보입니다. 미욱한 사람이요, 욕심장이입니다. 반드시 분석 비판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때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바보 천지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자유당 정권, 민주당 정권, 혁명정부가 나를 때려 잡으려고 쇠고랑을 채워 가며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또한 기성교회에서는 목사가 신령한 단 위에서 통일교회는 이단이요, 문 아무개 따라가면 망한다고 야단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망한다고 야단하던 그들이 망했습니다. 죽어라 하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죽지 않고 죽지 말라는 그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망하기를 바랐던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큰소리칠 수 있는 때가 되었고, 큰소리로 `세계여! 나좀 봐라'하던 그들은 이제 작은집 살림살이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인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기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좋아만 하다가는 기성교인들 다 죽어 버리게?(웃음)

통일교회가 그만큼이나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패들은, 통일교회 영신들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들은 철석 같은 신념을 가지고 한 발로는 악을 밟고 한 발로는 선을 넘으며 하늘의 용사로서, 하늘의 투사로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소원이 뭐냐?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원수를 처단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있는 사탄의 핏줄을 전부다 끊어 버리자는 것입니다. 소탕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 소탕 작전은 내가 코치할 것이고, 그 방법도 내가 제시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원리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은 통일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판서하시면서) 이게 사과가 되었구먼. 여러분, 사과 같습니까? 이게 가지라구요. 그런데 지금 천지가 깜깜해 가지고 적막강산이 되었어요. 자, 여기에 큰 사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과 가운데 무슨 사과가 제일이예요? 「대구사과요」 대구사과는 `대구 먹으라'고 대구사과가 됐나요? (웃음) 그래 내 몸뚱이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세계의 싸움이 없어지겠어요? 아무리 정객들이 나와 가지고 세계 통일이 어떻고 저떻고 하지만 그런 것은 다 꿈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은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배워 가라는 거예요.

이제는 선생님도 간판을 내붙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다고 선전할 때가 됐습니다. 또 수천 명의 기성교회 목사들을 모아 놓고 한번 나서서 `이녀석들 잘 만났다'고 하면서 죄기려고 합니다. 혹시 기성교회 목사들이 이 자리에 왔으면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죄긴다고 해도 좋은 의미에서 죄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허리 부러진 호랑이처럼 안방에서나 큰소리쳤지요.(웃음) 그렇지만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요? 이 불쌍한 사나이도 동정 좀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웃음) 떡을 먹다가 배 부르면 그대로 남겨 놓고 갈 일이지 남은 떡을 땅에 묻어 놓고 가면 되겠어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기성교인들이 한 25년쯤 그렇게 선생님을 반대하고 욕을 하며 못살게 굴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신문에 변명 한마디 실은 적이 있습니까? 선생님이 말을 하려고 한다면 어느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졸장부가 되어 가지고 시시하게 안방에서 귀신 놀음을 하고 있느냐?(웃음)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땅의 운세를 잘못 움직였다가는 큰일납니다. 한 번 잘못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된다' 한 것이 한 번 틀어져 나가고, 두 번 거짓말 되고, 세 번만 거듭 된다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따라오라고 해도 안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신이 행치 않았던 일은 절대로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게 다릅니다.

오늘 내가 장엄하고 거창한 말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서 듣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부다 체험을 통하여 느끼고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점이 선생님과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모를 때에는 `나는 모른다. 네가 연구해서 알아보아라'고 가르쳐 줘야 하는 것입니다. 종한테야 거짓말을 해도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말입니다.(잠시 녹음이 중단됨)

참된 한 남자를 찾아온 복귀역사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아들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종 자리에서 종의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참된 아들이 되어서 책임을 다해야 참된 부모가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참된 부모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신랑 신부를 편성해 가지고 인류 조상의 기원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참된 부모의 혈통적 기반을 만세 만민들에게 새로이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나라를 형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놀음을 계속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남자 한 사람을 찾아 나왔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해와보다 아담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남자에게 수염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없는 것이 좋습니까? 여자들 얘기해 봐요. 「있는 게 좋아요」 또 남자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있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왜 수염을 안 길러요?(웃음) 수염이 있는 것이 좋은 때도 있습니다. 지금 때는 바쁜 때이기 때문에 없는 것이 좋지만. 자연스럽게 놀 때에는 수염을 기르고 노는 것이 멋지다는 거예요.(웃음)

일본 사람들은 정원을 만들어 놓고 깍고 다듬고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자연적인 정원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연적인 것을 좋아합니까, 가공적인 것을 좋아합니까? 「자연적인 겁니다」 이렇게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염을 기르게 되면 백불씩 봉급을 받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법을 그렇게 만드는 세계가 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겁니다. 앞으로 수염을 길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자는 왜 수염이 없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시고 기분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해와를 만드실 때는 수염이 없게 만드셨다는 거예요.(웃음)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걸작품은 누구냐? 여자들입니다. 여자들 기분 좋아요? 이 여자들이 걸작품은 걸작품인데 누구를 위한 걸작품이냐? 바로 남자를 위한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기분이 나쁘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걸작품을 만드셨느냐? 남자를 중심삼고 멋진 자극을 받으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같은 살결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죽을지어다. 또 남자같이 억세고 멋대가리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죽을지어다.(웃음)

남자와 여자는 상대적입니다. 여자는 보들보들하고 남자는 억세기 때문에 억센 놈들은 보들보들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또 보들보들한 아가씨들은 억센 남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악돌이만 사는 악한 세상을 해부하여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처단할 것이냐? 우선 하나님은 사탄에게 전부 빼앗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찾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찾아오기 전에 제1단계 계획을 얼마만큼 세워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제1단계 계획은 절반 조금 넘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 계획이 완성될 때까지는 못난 체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나돌다가 야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작전을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목적을 위해서 이미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사탄권내에서 이런 점령 작전을 펴시고 있는 것입니다.

악당 무리가 세계를 전부다 망하게 만드니 이 세계를 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권내에 어느 곳엔가 하나님의 기점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하나의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있어야 여자를 찾을 수 있고, 여자를 교육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자를 먼저 찾아 세운다면 어떻게 여자가 남자를 교육시킬 수 있겠습니까? 도망을 가더라도 여자는 남자를 업고 도망 못 가지만, 남자는 여자를 업고 도망을 갈 수 있다는 거예요.(웃음)

지금까지는 어느 종교이건 종주(宗主)가 여자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종교의 종주는 전부 다 남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억센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억센 남자를 세워서 일을 시켜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또 창조원칙에 의해서도 남자를 먼저 찾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를 찾아 세우기 위한 챔피언 경기가 이 지구성에 벌어졌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챔피언을 선발하기 위해 동쪽에 챔피언 훈련장, 서쪽에 챔피언 훈련장, 남쪽에 챔피언 훈련장, 그리고 중앙에 챔피언 훈련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 힌두교 문화권이 세계의 사상적인 지주가 된 것입니다.

종교라는 말은 사람만을 위주로 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 즉 신을 모체로 한 가르침이 종교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발원이요, 본원이기 때문에 신을 빼놓은 종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종교를 중심삼은 권내에서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의를 받들어야 되고 천정을 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일컫는 4대 성인들은 전부다 종주(宗主)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느냐?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사람이 만들었다면 사람을 위주로 할 텐데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빚어진 것이 종교 문화권 세계인 것입니다.

야곱의 승리

이처럼 악한 세상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권내에 하나님의 기지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계에서 사탄과 싸워서 이겼다 하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세계의 판정관 앞에서 사탄과 힘 내기를 하든가 무슨 내기를 하든가 싸워서 `내가 이겼다'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갈라 세워 두 패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기점을 마련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하여 이겼습니다. 이 천사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 앞에 졌던 사람이 사탄과 다시 싸워 이길 수 있는 기준을 갖추지 않고는 승리라는 명사는 인간 세상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에서 밤새껏 천사하고 환도뼈가 불거지도록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지독해요, 안 지독해요? 밤새껏 싸웠으니 손이 굳어졌겠습니까, 안 굳어졌겠습니까? 여러분 손 같으면 몇 시간 정도 견딜것 같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야곱은 지독하고 악착같았다는 것입니다. 지독하고, 그 다음엔 악착같았다는 것입니다. 밤을 새워 씨름을 했으니 눈엔들 무엇이 안 들어갔겠으며, 몸뚱이는 또 어디든 안 다쳤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했는데 져서야 되겠습니까? 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됩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인간을 세워 놓고 판가리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응원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합니다」 사탄은 응원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응원하다가 만약 지게 되면 절대자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기 때문에 응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 편이 잘 하라고 응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은 고독단신이고 천사는 응원을 받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야곱은 홀로 자신의 힘으로 싸워 천사를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놈, 네가 졌으면 승리의 권은 나에게 축복해 주어야 돼. 천사세계의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나에게 축복해 주어야 돼'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세계의 축복권을 이어받은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곧 승리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희소식이예요, 비희소식이에요? 「희소식입니다」 여러분도 희소식이요? 기뻐요? 「예」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눈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웃음) 심각하니까 그렇겠지요.

야곱과 천사장의 싸움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있었던, 영계와 육계가 최후의 결판을 내야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거기에 야곱이 한 남자로 등장하여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 판가리 싸움이니, 만일 이 광경을 야곱의 부모나 친척들이 지켜봤다면 얼마나 마음 졸였겠습니까?

얼만 전 아시아 경기대회가 태국 방콕에서 열렸었는데 한국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곳 교포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죽기 살기로 응원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 여러분 같으면 야곱에게 응원을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침에만 할래요, 낮에만 할래요? 「온종일 하겠습니다」 이 싸움은 24시간 계속되는데 응원하다가 졸면 이기겠어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새벽이 가까와질수록 승패의 결정적 찬스가 가까이 오는 것이니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어쩌면 야곱이 넘어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 가슴이 우그러지겠어요, 안 우그러지겠어요? 여러분도 `내가 그 당시에 있었다면 야곱을 도와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야곱은 `비록 허리가 끊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눈알이 빠져도 네가 나를 축복하는 것만이 내 생명을 대신할 것이다'라는 각오로서 밤새껏 천사와 싸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야곱이 얼마나 힘이 들고, 진땀을 흘렸겠습니까? 천사도 밤새껏 싸우다 보니 야곱이 보통이 아니거든. `이러다간 천륜대사를 다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수없이 축복해 준 것입니다. 천사가 좋아서 축복해 주었겠어요? 세계 챔피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때 기분이 좋아서 넘겨주나요, 할 수 없이 넘겨 주나요? 「할 수 없이 넘겨줍니다」 할 수 없이 넘겨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사도 할 수 없이 야곱에게 져 가지고 자신의 권한을 야곱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 천사의 권한을 지상 위에 옮겨놓은 챔피언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 야곱이란 이름의 `곱'이라고 하는 것은 곱배기로 씨름을 했다는 거예요.(웃음) 그렇게 생각해야 실감이 나지요? 야─곱! 그것은 왜냐? 사람들끼리의 씨름도 힘든 것인데 천사와 씨름을 했으니 곱배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을 받을 만해요, 안 해요? 「받을 만합니다」 이래서 이스라엘이란 말은 곧 승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메시아는 세계적 챔피언

이렇게 인류 역사에 있어서 비로소 이러한 하나의 남성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무한한 기쁨입니다. 그리고 하늘땅이 환영할 수 있는 복음의 터가 그로 인하여 찾아 세워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야곱을 중심삼고 그의 아내가 그의 말에 순종굴복하게 될 때는 그녀는 이스라엘권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요, 그의 아들딸도 그의 말에 순종굴복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할 때는 그들 또한 이스라엘권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벌어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나라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누구를 중심삼고 이겼다구요? 「하나님요」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을 붙잡고 한덩어리가 되어 이겼으니,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입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라입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이스라엘 나라로 인하여 이 땅위에는 비로소 선민권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선민권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에 뜻을 세워 가지고 살림살이를 해결 방법을 실현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유대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특출한 민족입니다. 지금까지 미국과 소련을 배후에서 움직여 나온 사람들이 유대민족이요, 미국 경제력의 5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유대 민족입니다. 선생님은 그 유대 민족과 한국 민족을 친구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 친구로 만들자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떠한 위치에 있느냐? 수많은 사탄 나라 가운데에 있습니다. 사탄권에 둘러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보기에 좋고, 생각하기에 좋고, 같이 살고 싶고, 같이 의논하고 싶은 나라가 되어 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또 멋지게 훈련시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 놓고 싶어하신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하십니다」 이왕에 시작했으면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 놓아야 하나님의 위신이 서지 않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계 챔피언 지도자를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는 사탄의 괴수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챔피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탄의 괴수들이 때리고 찢고 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계 챔피언을 보내 가지고 이놈들을 때려부수려는 것입니다. 세계적 이스라엘 챔피언, 천지의 챔피언, 심정 챔피언, 통일 챔피언, 평화 챔피언, 행복 챔피언, 사랑 챔피언을 세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 원치 않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살아 있어 봤자 비료 공장밖에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원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아무리 전술전략을 세워 가지고 챔피언 자리에 서려고 싸워도 챔피언 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악당 무리 가운에 챔피언을 보내 주마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그러한 챔피언으로 오신 메시아입니다. 지금 모두 위신이 졸병 신세가 돼 가지고 허리띠를 풀어 제치고 기운이 다 빠져 죽을 지경에 놓여 있으니 이들을 구해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 사탄세계권내에 천상의 왕권, 즉 챔피언의 권위를 가진 메시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모셔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를 보내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메시아가 오기를 바랐겠습니까, 안 바랐겠습니까? 얼마나 바랐겠습니까? 야곱이 천사와 싸워 이스라엘권을 빼앗을 때에 들였던 그 악착같은 정성과 이스라엘 왕권을 가지고 천지의 악당을 전부 때려잡을 수 있는 세계 챔피언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성을 비교할 때 어떤 것이 더 크겠습니까?

이스라엘한테 메시아가 끌려가야 되겠어요, 메시아한테 이스라엘이 끌려가야 되겠어요? 또 야곱보다 메시아가 못해야 되겠어요, 나아야 되겠어요? 「나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메시아를 맞이하려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정성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할 때 노력하고 피땀흘린 정성보다 컸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가 왔는지 갔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메시아는 왔다가 갔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가 올 수 있는 터전을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있는 힘 다 모아서, 죽을 힘을 다해서 마련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터전은 누구를 위해서 만든 것이었겠습니까? 메시아를 위해 만들었지요?「예」

메시아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세계의 사탄국가를 전부 다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 「하나되어야 됩니다」

레슬링 선수가 링 위에서 자기 나라를 위해 경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수가 자기를 바라는 국민이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국민이 있다면 때려 죽여야 합니다. 이기기를 바라고 그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라면, 열심히 응원하다가 일생에 처음 해 입은 양복이 의자에 걸려 찢어지더라도 `이까짓 양복이야 찢어지면 찢어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또 `내 아버지야 죽겠으면 죽고, 까짓것 내 집안이야 어떻게 되든간에 이 싸움에서 우리 선수가 승리하면 된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체면, 내 위신, 내 경험, 내 발판 등 이런 것을 다 집어 던지고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흥분하여 정열적이요, 모험적이요, 데모적으로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좋았겠습니다」 그런데 헤롯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놓고 `유대인들의 왕이 어디서 나겠느뇨' 하고 물었을 때 유대 나라의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가 베들레헴 성안에 왔든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당신의 교법사 대제사장이었던 녀석들은 모두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들이 앉아 가지고 하는 수작들이 꼴 좋다는 거예요.

그 교법사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한테 적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소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적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소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적극적이어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적극적으로 자기 남편을 모시고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남편이 안 가겠다고 하면? 「끌고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렇게 끌어서도 안 가겠다고 하면? 「혼자 가야지요」 버리고 가야 합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도 자기 부인이 끝까지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 부인을 차버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주의(主義)입니다. 통일교회 믿으면 가정 파괴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자연적인 법도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는 아내는 아내가 아닙니다. 남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아내가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면 남편도 가서 알아 봐야지. 알아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반대하는 남편은 남편이 아니라 악당입니다. 와보지도 않고 반대를 해요? 그런 것들은 사람 축에도 못 끼는 것들입니다. 그런 사람하고 같이 살아서 뭐 합니까? 그래도 살아야 되겠다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웃음)

김구 선생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처자식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는 자기 아내보다, 자기 자식보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 원칙은 대한민국의 어떤 주권자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요, 어떤 국가도 제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배되면 망합니다. 만일 이것을 쳤다가는 자신이 꺾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몰리는 자리에서도 그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들이 통일교회에 나간다고 그렇게도 반대하던 부모들이 그 아들딸들에게 선생님이 축복을 해줬더니 `통일교 문선생이 나쁘긴 나쁜데 우리 아들딸들의 배필을 저토록 잘 맺어 줬으니 조금 낫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낫다고 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좋으면 됐지요. 그런데도 나쁘다고 생각했으니 회개하라는 거예요. 이래서 부모들이 통일교인 많이 되려고 해요.

요전에 777쌍 축복식을 거행할 때, 어떤 부모들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통일교회 문교주님, 우리 딸의 이름이 아무개인데 좋은 사윗감을 골라 주시기를 진실로 바랍니다' 하더라구요. 나 이것 참 수작은…. 언제 그렇게 됐노?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느 사이에 이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왔어요?(웃음) 세상도 변하기는 변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봄이라는 거예요. 살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재미도 없다면 어떻게 선생님이 살아가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한 장본인

여러분들은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일등으로 빼앗겠다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모시려고 하면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를 모실수 있는 일등을 미리 뽑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준비를 해 놓아야 되겠어요, 안 해 놓아야 되겠어요? 「해 놓아야 됩니다」 그러니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챔피언을 뽑기 위한 챔피언 후보전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유대교는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인데 그러한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줄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동방의 박사들이 먼저 알고 황금, 유향, 몰약을 낙타에 싣고 국경을 넘어와 예수님이 탄생한 곳을 헤롯왕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예수님 태어난 것이 헤롯왕에게 알려졌고, 헤롯왕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제사장, 교법사,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난다고 헤롯왕에게 알려줬는데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여기 혹시 기성교회 목사가 있으면 대답해 봐요.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잘했다고 대답한다면 내가 가만 안 놔둘 겁니다.

통일교인들의 생각은 어때요? 「잘못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가 이 자리에 있다면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할수없습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빠서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하더라도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오면 살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 국가를 중심삼고 챔피언 후보까지 만들어 놨으면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했을 때 달려가야 되겠어요, 안 달려가야 되겠어요?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달려갔어요? 「안 달려갔습니다」 또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몇 천 년만에 한번 오는 귀한 손님, 즉 메시아를 맞기 위한 일등 호텔을 준비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그런데 준비했어요? 「안 했습니다」 예수님을 말구유에서 탄생하게 해 놓고 뭐 `거룩한 메시아 탄생, 이러고 있어요? 거 시시하다는 거라구. 그런 시시한 수작들은 그만두라는 거에요. 이런 사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알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왕자요, 만세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왕자님이 군림하시는데 말구유라니 말이나 됩니까?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준비하고 수고해서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어디 갔느냐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그들은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떠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에 와 가지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치니 이웃에 있는 예루살렘에도 소문이 난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시오리도 못 됩니다. 십리 조금 넘지. 그런 이웃동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인들은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쌓아온 챔피언 후보로서의 선민이란 명사가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게 한 것은 잘한 일이예요, 못한 일이예요? 「못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기가 막혔다는 것에 대해서 상세히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을 당함으로써 구원이 된다면 선민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악당 소굴에 집어넣으며 당장 때려 죽일 텐데…. 그렇게 안타깝게 십자가에 매달아 피를 흘려 죽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 입니까? 하나님이 왜 그렇게 잔인해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런 모든 문제를 분석 비판해 가지고 믿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주먹구구 시대는 지나간 것입니다. 엽전을 가지고 천하를 사고 팔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도 안 되는 패들이 우리가 학사모 석사모를 높이 쓰고 차림새와 거동을 달리 하니 우리를 가짜로 보고 이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아이고, 저 옷이 뭐야? 가짜다. 저 모자가 저게 뭐야? 이단이다. 행차하는 것도 거룩하게 해야지 저게 뭐야? 양반의 걸음걸이가 아니다'라고 하며 별의별 수작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는 어느 것이 진짜입니까?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 중에 누가 챔피언인지 실력대결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대답해 봐요. 누구예요? 「유대 민족입니다」 이런 사실도 모르면서 목사들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려 대고 있으니, 목사들은 섭리적인 뜻을 잘 알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죽으러 왔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4천년 역사를 준비했겠습니까? 예언자들의 예언이 다 거짓말이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예언했어요? 생각도 안 해보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헤롯왕을 중심삼은 이스라엘의 최고 간부들과 가야바를 비롯한 제사장들이 한패가 되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요놈의 예수는 우리들의 모든 생활기반을 빼앗아 갈 위험분자다'라고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예수 그냥 놔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한 것입니다.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예수님을 모시는 챔피언이 되었어야 할 텐데 도리어 에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과 그들이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간이 사탄의 재간보다 못하겠습니까? 나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왔지만 결국 그들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녹음이 잠시 중단되었음)

예수님의 딱한 사정

예수님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발판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틀어 버리고, 가는 곳곳마다 쫓아 버리니 최고의 자리에서 소원을 이루려 했던 것이 다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위 계급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중위계급으로 내려왔고, 중위 계급에서도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천한 계급인 어부 베드로를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미욱한 사람입니다. 요즘에야 기독교인들이 베드로를 사도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맨 말단 계급의 어부로서 고기 잡는 일밖에 몰랐습니다. 고기 잡는다 하는 정신만은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그렇게 우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택한 것입니다.

처녀들에게 남자를 소개할 때 얼굴도 미남이고 괜찮은데 직업이 뱃놈이라고 할 때는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하는 여자가 있어요? 뱃놈이라면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에서도 이러한데 2천년 전의 뱃놈의 형편이야 어떠했겠습니까? 갈릴리 해변가는 황막한 사막지대라 발을 붙이고 앉아 있을 곳도 없는 곳입니다. 더우기 베드로와 그의 장모가 살았던 집은 형편없는 토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을 차지해 가지고 만국의 악한 왕권을 전부 점령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할 주인공이 이런 빈민굴까지 쫓김을 당하여 신세타령을 하게되었으니 잘된 일입니까, 잘못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가 믿는 예수님의 신세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몇시나 됐습니까? 이제 겨우 3분의 1밖에 못 했으니까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가시오. 안 가겠다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라구요. 말은 듣는 사람보다도 하는 사람이 더 힘든 것입니다. 아직 3분의 2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말을 하지 못 하겠어요? 이 이야기를 들어 두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들을래요, 안 들을래요? 「듣겠습니다」 듣기 싫다면 5분 안에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웃음) 그러나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가지겠습니까? 선생님이 언제나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한번 들어 보겠습니까? 「예」 그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번 해봅시다.

자, 예수님의 신세가 잘됐습니까, 못 됐습니까? 「못됐습니다.」 그런데 소위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여 가지고 나온 통일교회가 비록 예수님이 잘못됐다 할지라도 덮어줄 일이지 왜 자꾸 들추어내느냐? 그것은 역사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를 확실히 알아야 새로운 전통을 올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밝혀내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도 이 비통한 사실을 밝혀 주기를 바라시니, 그 뜻을 세워 드려야 할 사명을 짊어진 내가 불가피한 입장에서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성혼시켜 드리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

자, 예수님이 죽기 위해 왔습니까, 살기 위해 왔습니까? 살기 위해 왔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총각이예요, 아저씨예요?「총각입니다」 또 예수님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다」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은 중성이다'라고 큰소리쳐도 여러분의 마음속으로는 전부다 예수님은 남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예수님은 분명히 남자입니다.

그럼 남자인데 감각이나 감정이 모두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무감각적인 남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감각적입니다. 안테나로 말하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 챔피언입니다. 그러니까 안테나가 예민하여 원거리 소식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이니만큼 남자의 감정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있었습니다」 그러면 장가도 가고 싶었겠어요, 안 가고 싶었겠어요? 「가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장가가야 한다고 말하면 기절하여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에게 `당신은 천년 만년 독신으로 살다 죽을지어다'라고 축복하겠다고 해보십시오. 그랬다가는 예수님이 `야 이녀석아' 하며 주먹으로 칠 것입니다. 한번 물어 보자구요. 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치겠습니다」 치게 마련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장가가고 싶었을까요, 안 가고 싶었을까요? 「가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되어 봤어요? 그저 `가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거예요.(웃음)

예수님이 장가를 간다고 한다면 어떤 색시를 얻겠어요? 이제부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미인을 얻겠습니까, 추녀를 얻겠습니까? 「미인을 얻을 겁니다」 미인 중에서도 왕족 미인이겠어요, 노동자 미인이겠어요? 「왕족 미인일 겁니다」 그 나라 주권자의 천하일색인 외딸을 색시로 얻겠다고 한다면 죄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그러면 헤롯왕이나 대제사장 가야바의 맏딸이 예수님과 혼인잔치를 벌였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가야바가 예수님을 잡아 죽이자고 선동했겠어요, 살리자고 했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살라자고 했을 겁니다」 햐, 내가 그때 있었으면 예수 장가 보낼거라.

그런데 예수님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으면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낙망이요, 절망이요, 탄식이요, 하소연이요? 그것은 낙망이요, 절망이요, 탄식이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노총각이신 예수님 장가가라고 권했다면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좋았겠습니까? 「좋았을 것입니다」

자, 솔직히 얘기해 보자구요. 베드로, 야고보와 같은 12제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보리개떡만 먹는다며 배고픈 타령만 했지, 예수님 장가 보내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연구하고, 결사적으로 중매하는 놀음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런 놀음을 했었다면 예수님이 그들을 미워했겠어요, 사랑했겠어요? 「사랑했겠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또 예수님의 중신아비가 됐으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중신아비는 누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장가 갈 수 있는 상대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신아비를 원할 때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종이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형님이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정적인 면으로 보게 되면 이왕지사 될 바에야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됐으면 예수님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노총각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자식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해야 됩니다. 자식의 허리띠를 붙들고 장가가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한번이라도 그렇게 해봤습니까? 해봤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부모의 책임을 다했습니까?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더벅머리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목수의 조수 노릇을 하던 예수님은 자신이 처량했겠어요, 신이 났겠어요? 처량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게 되면 참 재미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왜 갔습니까?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갔느냐는 것입니다. 병이 나서 나갔습니까? 기성교회에서는 여기에 얽혀 있는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은 거룩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하는 수작들은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으로 세운 것이 유대교요, 유대교를 믿는 씨족 가운데 선민을 대표할 수 있는 씨족으로 세운 것이 요셉과 사가랴 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모시고,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택해 놓은 대표적 씨족이 요셉 일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모셨습니까? 해원성사라는, 천륜에 의한 사명과 뜻을 펼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예수님의 가슴에서 끌어내어 협조하기 위해 노력했느냐 할 때,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하나의 남성으로 왔기 때문에 역사적인 하나의 여성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일천 남자 중에서는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 7:28)"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여인을 찾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뇨?'라고 결론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열매인 예수님이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서는 엉클어져 누더기 판이 된 역사시대의 모든 실패의 요인들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그 실패의 요인으로 생겨난 천사세계의 비운의 감옥인 지옥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구세주의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예수님의 역사적인 사정을 꿈에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예수님이 그릇된 역사적인 허물을 바로잡아 가지고, 그 기대 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했던 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믿고 마리아를 맞아들인 요셉

4천년 공적의 터전 위에 세워진 요셉의 씨족 중에 `당신의 뜻이 무엇이며 당신의 숨은 내정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요셉과 마리아가 누구보다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입장에서 사정 중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느냐는 거예요. 요셉은 의붓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통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잘 들어 보세요.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을 했는데 마리아가 아기를 배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아이고 잘했구만' 이럴 남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덮어 놓고 믿지 말고 족보를 파헤쳐 가지고 확실히 알고 믿자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의 뱃속에는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셉이 용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칼날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 요셉이 이 소문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철렁했겠습니다」 얼마만큼 철렁했을까요? 천지가 아득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고민이 생긴 거예요. 율법에 아이 밴 처녀는 돌로 때려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요셉이 발을 빼면 마리아는 옥살박살될 것이고, 그냥 모른 체하자니 남자인 자기의 마음이 죽을 지경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요셉의 심정이 죽을 지경이었겠어요, 살 지경이었겠어요?

여러분이 한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의 아내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죽을 지경이겠습니까?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을 겁니다. 그 지경이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겠다고 세수할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세수가 다 뭡니까?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며 축 늘어졌을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서…. 천사가 나타나더라도 대낮에 나처럼 이렇게 눈을 뜨고 물을 쭈욱 마시고 있을 때(물을 마심) 나타나서 `문선생, 당신 마누라가 지금 아이를 뱄는데 안 데려오면 즉살맞을 것이오' 이렇게 말했다면 알아들을 만도 하고 그렇게 할 만도 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하고 반문하면 `그것은 이 다음에 아이를 낳은 후에 잘 설명해 줄 것이오. 그렇지만 이 일은 당신의 가문에 천세만세에 걸쳐서 하늘땅의 그 누구보다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시오. 그때 가서 결혼식 안 올리면 될 것 아니오' 라고 말했더라면 그거 멋진 일이라고 하며 한번 기다릴 만하지요. 걱정거리 다 잊고 한번 기다릴 만하지 않아요? 나 같아도 기다리겠습니다. 그거 가능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했더라면 요셉도 의인이기 때문에 `얼싸 좋구나'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사는 이렇게 물 마시고 있을 때, 이런 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꿈 가운데 나타나서 `요셉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너라'고 슬쩍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누가 믿겠어요? 누가 해명해 주느냐 말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경지에서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요셉은 의인이었습니다.

꿈 중에는 개꿈이 있고 사된 꿈이 있고 그럴 듯한 꿈이 있고 빙자꿈이 있고 진짜 꿈이 있는데, 진짜 꿈은 수십 번의 꿈 가운데 한번 있을 둥 말둥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남자들 같으면 가슴이 터질 판인데 그런 꿈을 믿고 정혼한 처녀의 집에 가려고 생각하겠어요? 가려고 하면 발이 꼬여 죽을 지경일 거라구요. 그렇지만 요셉은 꿈을 믿고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그걸 보면, 요셉이 내심으로 이스라엘 나라에 하나님께서 보내 주마고 약속하신 메시아가 올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검부러기만 바람에 날려도 그것을 통하여 하늘의 소식이 있기를 기다릴 만큼 내면적 심정이 두둑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요셉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를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여러 모로 곤란했던 마리아

요셉은 그것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고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데려오긴 했지만 기왕이면 또 한 번 가르쳐 주고 두 번 세 번 꿈속에서 매일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요셉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는 거예요. `남아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일언은 몇억천금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지 시시하게 솔개 새끼처럼 자꾸 다짐해서야 되겠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한번 가르쳐 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은 마리아의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가 사내애인지 계집애인지 몰라도 대관절 누구의 아이일까 하고 궁금했겠어요, 안 궁금했겠어요? 여기 목사 양반들 있다면 대답해 보세요. 만약 목사의 부인이 그렇게 됐다고 할때, 거룩한 하늘나라에 가겠다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부인에게 묻겠어요, 안 묻겠어요? 안 묻겠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묻겠습니다. 물어도 직격탄으로 물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때요? 대답해 봐요. 「묻기 마련입니다」 남자들은 어때요? 「묻겠습니다」 묻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가슴속에 궁금증이 일고 염려대상이 되는 이 사건이 멍울져 남아 있는데 마리아에게 물어봤겠어요, 안 물어봤겠어요? 「물어봤겠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순하고 사랑스런 표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어조로 `하나님은 이렇게 가르쳐 주었고, 또 뜻이 있는 줄 알고 있지만 대관절 아기를 배게 한 사람이 누구요?'라고 물어봤겠지요?

그렇게 물어볼 때 마리아의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사실 그런 질문은 응당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난 몰라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어요? 요셉은 마리아의 생명의 은인인데 그럴 수 있었겠어요? 아니면 `예, 애기하지요' 그랬겠어요? 마리아의 신세를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떠했겠나. 틀림없이 낑낑거리며 안절부절 못했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심정이 통할 텐데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랬겠습니다」 여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면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래, 그것이 대답할 수 있는 내용입니까, 아닙니까? 만일 대답하는 날에는 천지가 요동을 치고 세계가 뒤집히고 일족이 망한다면 아무리 요셉이 물어 본다고 하더라도 대답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그만큼 할 자신이 있어요? 「예」 그러면 입을 어떻게 다물어야 되겠어요? 입술 선이 안 보이게끔 꽉 다물어야 하겠지요?

옆에서 입을 꽉 다무는 마리아를 보고 있던 요셉의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참 좋은 아내를 맞았구만' 그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리고 물어 보는 말에 대답을 안 하고 있는 마리아를 보고 요셉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여보, 누구 애기요?'하고 또 물어 봤겠지요. 그래도 대답을 안 하니 세 번째 물어 볼 때는 노기를 띠어 가지고 `당신 정말 말 못하겠어?' 하고 물어 봤겠지요. 그러니 가정불화가 일어났겠어요, 안 일어났겠어요? 사나이가 한번 물었다가 대답을 못 들으면 기분 나쁜거라구요.

그렇기 되니 방안에 들어가서도 요셉이 버티고 앉아 있으면 마리아가 똑바로 앉을 수 있었겠어요? 요셉이 마리아를 쳐다보는 시선이 옛날같이 다정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러한 판국이나 요셉과 마리아가 수많은 언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볼 때, 혼사날이 지났는데 요셉이 혼인잔치도 안하고 처녀를 데려와 사는 것도 수상한데 매일 싸움을 하니, 요셉이 순한 사람인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구만 해 가지고 쑥덕공론을 벌였을 겁니다. 그렇게 십개월을 보내는 동안 마리아가 예수님을 낙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저기 저 아저씨 같으면 가만 놔뒀겠어요? 때리겠어요, 안 때리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대답을 못하는 것 보니까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뜻이군요.(웃음) 그럼 요셉에게 매맞고 산 마리아가 분했겠어요, 안 분했겠어요? 분했겠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면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누가 썼습니까?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썼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썼습니까? 제자들이 썼지요? 그러니 그들이 `우리 선생님은 이런 나쁜 흠을 가지고 있었다'하고 쓰겠어요? 좋은 것만을 죽 쓰다가 나쁜 흠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게 될 때 할 수 없이 아주 조금만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안팎으로 엇그러진 곡절들이 기록이 안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한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조상중에 강도가 있으면 그 조상의 이름도 족보에 기록해 놓아야 올바른 족보가 되는 것입니다. 족보가 틀렸기 때문에 이 틀어진 족보를 바로잡기 위한 챔피언이 통일교회 문선생인 것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이치가 통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안 통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자, 요셉이 마리아의 뺨을 때렸겠어요, 안 때렸겠어요? 왼뺨 오른뺨을 다 갈겼을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왁자지껄한 판국인데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하며 싸우는 소리가 동네에 소문이 났다는 거예요. 그러니 요셉의 친구들이 `요셉아, 네 안 사람이 이렇게 됐다는데 어떻게 된 사실이냐'고 물어볼 때 요셉이 부끄러워했겠습니까, 안 부끄러워했겠습니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열 달씩이나 끌고 나간 걸 보면 요셉은 배짱이 있는 사나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일을 저질러 놓고 결과를 기다려야지 열 달 동안 망신을 당했으니 요셉이 결단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니 그 사회에서 못난이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친구들이 `야, 요셉아. 들리는 말에 의하면 네 마누라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데 사실이냐?'할 때 요셉이 어땠겠어요? 얼굴이 빨개졌겠어요, 안 빨개졌겠어요? 우물쭈물하며 뭐라고 변명을 하더라도 표정에 다 나타냈고 행동으로 다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소문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그러면 요셉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 소문을 안 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야 요셉아 이런 소문이 들리는데 어떻게 된거야?'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글쎄 어머니, 모르는 소리 마세요. 소문이란 믿을 것이 못 되잖아요?' 하면서 당당히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또, 동생들이 `형님 이런 소문이 들리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하고 물어 봐도 `형님이 하는 일에 무슨 상관이야'하고 대답하고, 형님이 물어 봐도 `왜 나를 자꾸 못 살게 굴어요' 하면서 버텨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배짱으로 버텨 나가기에는 너무나 자신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어오니 답변을 우물쭈물했을 것입니다. 배짱이 있는 사람도 우물우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문이 쫙 퍼졌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이 가당한 말입니까, 부당한 말입니까? 「가당한 말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것없이 가당한 말이라고 결론을 안 내린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심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런 상태에서 7개월쯤 되어 불룩해진 배를 내놓고 바깥에 나갈 위신이 서겠습니까, 안 섰겠습니까? 사생아를 밴 마리아의 신세가 처량합니까, 당당합니까? 「처량합니다」 그렇게 처량한 마리아가 철면피 같은 마음을 가져 가지고 문을 활짝 열고 나가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 하였으니 나에게 와서 인사할지어다'라고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끄러워서 방을 나갈래야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화장실까지도 방안에 있으면 했을 것입니다. 구들장을 파고 살 수 있었으면, 이불을 쓰고 잊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늘로 날아 올라가 도망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 마리아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마리아는 예수님과 요셉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다

아기를 낳자니 뭇사람들이 쳐다볼 것이고, 명문의 딸이 사생아를 배어 배가 불룩해 가지고 뒤뚱뒤뚱 걷는 것을 그 부모들이 볼 수 있었겠습니까? 체면과 위신을 모를 리 없는 마리아는 그렇다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다고 했으니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연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고독한 심정을 홀로 부등켜 안고 여자로서의 최고의 사지권(死地圈)에서 허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이 군중 앞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정이 못 됩니다. 내가 아기를 낳아야 한다면 나그네 신세도 좋고, 짚시의 신세도 놓으니 국경을 넘는 일이 있을지라도 이 지역을 벗어나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했을 겁니다. 일구월심 이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호적하러 가는 길에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뜻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후대하신 사랑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이래서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으면 부모는 손주를 보았으니 기뻐하고, 형제와 친척들은 모두 기쁨으로 환영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입장이 안 되어 있으니 예수님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헤롯왕이 예수님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려주어 애급으로 피신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등지고 애급에 가서 3년 동안 지내다가 헤롯왕이 죽은 후 다시 갈릴리 해변가로 돌아와 살면서 예수님은 남모르는 성장과정을 거쳐 왔던 것입니다. 의붓자식의 몸으로 태어난 예수님이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편안한 생활을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정이 틀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정을 하나에서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알아줄 수 있는 가정이 못 됐던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사정권내에 살면서 남편 요셉을 바라볼 적마다 과거의 모든 일들을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품고 요셉 앞에서 자랑스럽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입장이 못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엇갈리는 심정을 예수님이 자라면서 체득하게 될 때에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가서 앉으려 해도 요셉의 눈치를 봐야 되었던 것입니다. 의붓자식은 의붓부모를 안 따르는 법입니다. 또한 동생들한테까지도 환영받지 못하는 판국이 벌어지게 되니 예수님이 얼마나 고독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서 세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누구를 위해서 세운 것이냐? 예수님 하나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하여 유대 지파의 요셉 족속을 택한 이유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를 택해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고,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진정한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깊은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가 금후의 할 일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과 의논하면서 요셉과 예수님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 가정에서 예수님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주도적인 역할은 예수님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과거로부터 요셉과 엇갈린 심정이 누적되어 있는 사정에 몰린 마리아는 알면서도 요셉의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보셨습니다.

예수를 모시고 하늘의 법도를 세워야 했던 요셉 가정

본래 요셉 가정은 예수님을 모시고 하늘의 법도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왕자를 모시는 마리아는 어떠한 사람이냐?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지만 하나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딸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해와 자체가 완성하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결과 밑에서 딸로 결정되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종의 몸을 빌려서라도 아들의 씨를 남겨야 했습니다. 그런 운명에서 종의 입장인 마리아를 통하여 비로소 하늘의 왕자가 나왔던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가 나왔으면 그 다음에 하늘의 왕녀가 있어야 할 텐데 왕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리아가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이냐? 종에서 딸로, 딸에서 어머니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본따 가지고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마리아도 창조원칙에 의하여 예수님을 따라 복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소원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형과 누나가 있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쌍하게도 세상에서 믿을 수 없는 종의 몸을 빌어서 나왔기 때문에, 그래도 예수님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마리아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가지고 천만사의 죽음길을 가더라도 하늘의 왕자인 그 아들이 거동할 수 있게 가정이면 가정, 사회면 사회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천도를 세울 수 있는 생활의 법도가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에서 벌어져야 되고, 그 사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리아는 요셉을 끌고 들어와 예수님의 뜻에 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책임이었지만, 마리아의 입장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입장이 아니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환경에 몰려 있었습니다. 요셉을 버리고 뜻만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요, 자기의 아들딸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라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가운데에서 예수님 홀로 때와 사명을 다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마리아는 하늘의 생활적인 규범을 중심삼고 종의 몸으로서 아들이 갈수 있는 하늘의 규범을 세워야 되고, 딸이 갈 수 있는 하늘의 규범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왕자 앞에 있어서 왕녀로서 계대를 이을 수 있는 접붙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접붙임을 받는 것은 아담의 몸을 통해서 해와가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과 예수님의 사상과 예수님의 소원에 마리아가 일치되어 복귀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이런 일을 심고 거두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신부를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마리아의 정성의 터전 위에 결정해 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리아를 붙들고 눈물 흘리면서 당신은 천륜에 의해서 나와 인연 맺어졌기 때문에 하늘 뜻을 세워야 한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받아 들여 가지고 협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를 갖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땅 위의 어머니로서 누구보다도 하늘의 은총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종의 몸이지만 종 중에서 최고의 사랑을 하늘 왕자로부터 받아야 할 어머니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입장에 마리아가 서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30세에 집을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년 생애를 살아오면서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다하기를 기다렸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허송세월을 할 수 없어 30세 때에 공적인 노정을 출발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재차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종족 편성에 나선 것입니다.

누가 나의 모친이요 동생이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생명을 내던지고 죽음길을 향하여 어떤 일이든지 주저하지 않는 무리를 형성하여, 그 권내에서 마리아가 책임하지 못한 모든 실수의 내용을 다시 수습하기 위한 노정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마리아는 이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집을 떠난 뒤 처음 어머니를 만난 곳이 물로 포도주를 만든 역사를 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집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와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남의 잔치에 와 가지고 잔치 준비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없느냐? 아들이 서른이 넘었는데 천륜에 따라 가정을 갖도록 상대를 정해 주어야 할 본연의 책임을 상실해 버리고 남의 잔치집에 와서 포도주타령만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이요 한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역사가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한테 와 가지고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찾나이다 할 때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이 누구뇨?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나의 모친이요 동생이다(마 12:48-50)'고 했습니다. 마리아와 동생들이 하나님 뜻대로 했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못 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요셉과 마리아는 열두살된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는 수모와 역경 가운데서 천대를 받으며 자라나온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남겨 놓고 갔다가 사흘 후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거리는 삼백리가 넘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가 역사적인 한을 품고 길러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예루살렘에 남겨 놓고 사흘길을 그냥 따라가겠습니까? 그런 어머니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돌아가려는 순간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자기 집안에 문제가 벌어지고 예수님이 불화의 화근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서 데려가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요셉의 눈치를 보며 모르는 체 떨어뜨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따라가는 마리아의 에이는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집에 가는 도중에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동네에 소문이 날 것 같아 할수없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찾아 성전에 가보니 예수는 제사장, 교법사들과 성경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보고 여기서 뭘 하느냐 할 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말했습니다. 반발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의 안개 속에 흘러간 예수님의 슬픈 사정을 그 누가 알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의 품에 안길 수 없었고, 아버지가 있어도 품에 안길 수 없는 의붓 아버지요, 형제가 있어도 의붓 형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늘 왕자로 와 가지고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는데 요셉 가정에서 이렇게 엇갈리는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소문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의 강원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니 소문이 안 퍼지겠습니까? 그렇게 소문이 퍼지게 되니 예수님은 어디를 가나 유대교의 반대를 받고 이스라엘 나라의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적인 혈족으로 요셉 가정을 세워 그 터전 위에 예수님을 중심적인 존재로 보냈지만 그들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잃어버린 예수, 민족을 잃어버린 예수, 교회를 잃어버린 예수, 친척을 잃어버린 예수, 부모를 잃어버린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이루어 드려야 할 기반까지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디 가서 그 기반을 닦을 것이뇨? 그 기반을 닦기 위해 무지몽매한 사람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삼고 수고했던 예수님의 내적 고심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밀밭 사이로 가다가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할수없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은 이러한 것들이 선동적인 요인이 되어 가지고 국가의 반역자, 민족의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비운의 십자가노정을 걸으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뜻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다 이루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형제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친척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교회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나라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본래 나라의 사랑, 종족의 사랑, 교회의 사랑, 친척의 사랑, 부모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한 그 말이 뜻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기가 막힌 일입니다.

예수님은 민족 해원의 길이 먼 역사적 거리를 두고 연장될지라도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노정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십자가의 노정을 통해서 이스라엘권을 중심삼고 소망의 출발을 하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소원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와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4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원이 왕창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다음엔 누구의 한이 맺혔느냐? 예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또 그 다음엔 메시아를 맞이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한이 맺혔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철천지 한이 맺혔고, 하나님의 가슴에 못이 박혔기 때문에, 낙원에 가서 때를 기다리며 2천년을 보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한을 풀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면서 기독교는 2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의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죽음의 피를 뿌리며 나온 것입니다. 피로 물들이지 않고는 구원의 도리를 남길 수 없는 역사적인 인연을 연이어 가지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이룬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님편에서 볼 때는 예수님의 한이요, 이스라엘 나라로 볼 때는 이스라엘 나라의 한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예수님의 한, 이스라엘의 한

땅 위에 하나님의 주권국가의 발판으로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주권국가의 발판을 잃어버렸고, 이스라엘 민족도 산산조각이 나서 2천년 동안 세계를 유리고객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2차대전 당시에 히틀러에 의해 6백만 유태인이 학살된 것도 예수님을 죽인 죄로 말미암은 민족적인 탕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 벌어졌지만, 하나님의 환영과 천사세계의 환영과 만민의 환영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앞에 햇불의 권한을 자랑해야 할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몰아내고 예수님을 죽인 죄로 말미암아, 옛날의 원수 나라인 아랍권에 둘러싸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자기 나라보다 모든 면에서 몇십배가 넘는 아랍권을 누르지 않고는 이스라엘권을 찾을 수 없는 비운의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의 뜻과 세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평화의 때를 맞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하나님의 한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까지도 하나님의 한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는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과 세계 인류의 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이 뭐냐?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유대교가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요셉족속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되어 가지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이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 중심삼고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재현시켜 가지고 다시 이루지 않고는 이 한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한이 뭐냐? 그것은 예수님이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족속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유대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이것들도 한이지만 가장 큰 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어 진실된 심정을 가지고 사랑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은 예수가 사랑받지 못한 것이요, 예수님의 한은 사랑받지 못한 것보다도 진정으로 사랑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의 한은 무엇이냐? 교회를 잃어버린 것이요,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요, 갈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는 예수님의 아들딸을 못 모신 것이요, 예수님의 손자를 못 모신 것이요, 예수님의 씨족을 왕족 중의 왕족으로 모셔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예수님의 혈족을 남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한입니다.

예수님도 할아버지가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 사랑의 인연을 땅 위에 남겨 놓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한은 세계 인류의 한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혈족을 지상에 맞아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뜻을 중심삼고 전부 수습해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갈 길

오늘날 유대교회를 대표한 입장에 선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한을 풀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또 대한민국은 옛날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 미국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독립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는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였지만 미국은 원수의 나라가 아니라 천사장 국가입니다. 천사장이 아담을 반대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기독교 문화권에 있는 미국이 아담 국가인 한국과 하나되는 주권회복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주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천사장에게는 복귀하여 아담의 주권을 찾아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유엔군이 진주함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주권의 기원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을 풀어야 하고, 유대교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임을 짊어진 것이 기독교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기독교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유로이 출발했더라면, 해방 이후의 25년 수난기간이 없었을 것이고, 북한 공산당의 마수가 남침을 노릴 수 있는 역사적인 결과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이기만 했더라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40대에 미국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50살이 넘어 가지고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반대를 받은 예수님이 이방인 애급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대한민국의 반대를 받은 선생님도 예수님이 걸었던 길을 되풀이하여 원수국가인 이북 공산당의 소굴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이북에는 세계적인 원수인 공산당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북에 들어간 것은 세계적인 원수권내에 들어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남한 땅을 복귀하기 위해서 맨 밑바닥 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민족의 거지떼거리 같은 것들한테 핍박받고 밟히면서 처량한 역사의 운명을 거쳐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반대를 받으면서 이방 종교로서 원수의 무리들을 수습하여 가지고 기독교권을 형성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말단 종교로서 출발하여 민족과 기독교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서 거슬러 올라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비운의 행각을 거쳐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아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밟히면서도, 또 죽음길에 몰리면서도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없었다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자유당 정권, 민주당 정권, 공화당 정권 이렇게 3정권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 3국의 핍박을 받고 세계의 수많은 무리 앞에 핍박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한 그늘 아래서 반대받는 터전을 통하여 가지고 개척의 일로는 물론, 발전의 일로를 거듭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70년대에 들어와서는 통일교회가 기성교회와 동등할 정도로 기반이 갖추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챔피언이 될 수 있나 실력대결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망해 없어질 줄 알았던 통일교회 문선생이었지만 이렇게 서울 도성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대한민국이 우리 통일교회를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기독교가 통일교회 문선생은 나쁘고 통일교회는 분명히 사탄이지만 통일교회가 하는 행동과 신념과 적극적인 전도 방법은 배워야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니게 될때 비로소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점심때와 같은 때입니다. 시계를 보기 전에는 점심때가 언제 넘어가는 줄 모르게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도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고 마는 시대인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까 넘어가 버렸다고 하는 이런 후회의 행각을 거듭하는 때가 역사적인 교차점인 1970년대인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는 세계를 위해서 모인 제단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요, 천운을 맞이해 가지고 기성교단과 역사의 뒤안길에서 종교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권한을 갖고 나온 제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이스라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인류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이것들을 해원하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갈 길이 막혀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려면

오늘 1971년도를 맞이한 연두에 있어서 우리들이 반드시 다짐해야 할 것은 뭐냐?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의 핵심이요,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주님의 사상을 하루 빨리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10개 국을 중심삼은 터전 위에서 우리는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권을 연하는데 책임 다하고,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표방하기 위한 것이 이번 777쌍 결혼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이스라엘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 나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요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식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식구가 되어서 요셉 종족권을 만들어 이 민족의 친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끼리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전부다 한 족속, 한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입니다.

요셉 가정에 있어서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 못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 종족의 기원이 파탄되어 버렸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차 종족을 편성하여 하나님의 억천만세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내 생명을 바치고 내 가정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를 위하여 민족 해방의 기수의 사명을 하여 세계 만방의 인류 앞에 새로운 천국 이론을 제시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요, 그것이 통일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한을 해원할 수 없는 것이요, 이스라엘의 한을 해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위해서 이런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은 나라를 대표한 축소체요, 종족을 대표한 축소체요, 교회를 대표한 축소체입니다. 즉, 가정을 대표한 축소체, 부모 형제를 대표한 식구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식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보다 못해 가지고는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여러분들은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엇이 나아야 하느냐? 식구끼리 하나되는 것이 예수님보다 나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종족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중심삼고 종족이 하나되었습니까? 못 되었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되어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럼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중심 존재라면 선생님이 이렇게 하자 할 때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예수님 대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가 나라로부터 사랑을 받아 봤습니까? 기성교회로부터 사랑을 받아 봤어요? 「못 받아 봤습니다」 못 받아 봤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외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기성교회보다 못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기성교회는 뜻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유대교보다 못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들보다 못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 나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 나은가?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부인들을 전도 일선에 내보내고 기분 좋아하는 패들입니까, 나빠하는 패들입니까? 「좋아하는 패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이 갖지 못했던 식구를 가졌고, 예수님이 갖지 못했던 친척을 가졌고, 예수님이 갖지 못했던 통일교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뭘 해야 되느냐?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한을 해원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종족을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정을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예수님을 미칠듯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친척으로서 서로 미칠듯이 사랑하자

통일교회를 알게 되면 미칠듯이 반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말들어 보았어요? 통일교회에 가면 전기장치를 해서 사람을 홀린다는 말은 들어 봤지요? 그거 홀려야 돼요. 예수님한테 홀렸으면 망할 징조예요, 흥할 징조예요? 「흥할 징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좋아합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체하는 것인지, 진짜 좋아하는 것인지 선생님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을 좋아합니까? 「예」 얼마나 좋아합니까? 자기 목을 내놓고 가라고 해도 선생님을 따를 수 있어요? 「예」 여러분의 목을 잘라 버려도 좋아요? 그래도 선생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그럴 수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손을 드니 내가 이렇게 땀을 흘려도 괜찮습니다.(웃음)

이제 우리에게 기쁜 것이 뭐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식구가 생겨났으니 천상천하에 슬픔의 본원지가 되었던 탄식의 기원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나이가 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형이 되는 것이요, 아저씨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저씨가 되는 것이요, 아주머니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주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할머니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요, 할아버지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요, 동생 나이가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동생이 되는 것이요, 누이 나이가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누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통일의 사랑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민족 대신, 종족 대신, 교회 대신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종족과 교회와 부모를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것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통해서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친척입니다. 예수님의 친척이기 때문에 예수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동생으로서 미칠 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생명을 다 투입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령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전체가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북한 사람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나라와 교회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세계적인 친척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미국 식구도 있지만 이들이 우리집에 가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식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좋습니다」 국경을 넘고, 민족을 넘어 한 식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자기 스스로 예수님 이상 식구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요, 하늘나라 교회의 교인이 될 수 없는 것이요, 통일가의 식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체휼하여 `어허둥둥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산하(山河)여 머리를 들어 나를 봐라. 천상의 모든 뭇영인들이여 나의 기쁨을 본받을지어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고 이렇게 유복하고 이렇게 행복스런 환경에서 나는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내 사랑은 참이니라!'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식구를 높이 들고, 교회를 높이 들고, 나라를 높이 들어 하나님 앞에 열매로서 바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 할아버지를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아저씨나 형님이 있거든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한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천정과 인정이 하나되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교단을 만들자

예수님은 부모 협조의 인연을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가진 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오늘날 이 한을 풀기 위해서 통일교회에서 여러분들이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가지기 위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아내는 예수가 갖고 싶었던 아내요, 그 축복을 받아 낳은 아들딸은 예수님이 갖고 싶었던 아들딸이요, 가정은 예수님이 갖고 싶었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가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본받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을 총합하여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적으로 패배한 이스라엘을 다시 찾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류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승리의 주체를 중심삼은 부부와 가족과 일족과 교회와 나라의 성사를 바랄 수 있는 승리권이 통일교회에서 확정됐다는 사실은 천륜의 운세가 우리 통일교회에 같이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오늘 어머니가 말하기를 이상한 일이래요. 뭐냐하면 선생님의 성혼식이 60년도 음력3월 16일, 양력으로는 4월 11일에 거행되었는데 금년에도 음력3월 16일, 양력으로는 4월 11일이라는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들어맞는 것이 신기합니다.

금년에 가정적 운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비운의 독신 행각의 노정을 넘어서 가정의 평화와 왕국을 향하여 진출할 수 있는 70년대를 향했다는 사실은, 7단계의 안식 기간을 넘어 가지고 8단계로 넘어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막연하였던 지상천국을 과연 우리 통일교회 통일관, 실천관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겠느냐?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다면 무엇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 인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이웃끼리 사랑하던 입장에서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미국을 가나 영국을 가나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져서 세계화된 것이 지상천국입니다. 오늘날 지상천국이 어떠한 것인지 잘 몰랐지요? 이렇게 된 것이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자는 예수님 대신이 되어야 하고, 여자는 예수님 신부 대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연령을 넘은 남자들은 예수님의 형님이 되고, 예수님의 아저씨가 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할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여자들도 예수님의 연령보다 많으면 예수님의 누나가 되고, 예수님의 아줌마가 되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할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일가 친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디에 가든지 한자리에서 떨어질 수 없는 천륜 천애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정과 인정이 통일되고 영원히 여기에서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 교단이 된다면 그 교단은 날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은사가 가중되어 가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것이 천지의 기원이요, 영생의 기원이요, 영세토록 흥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기원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무리가 되라

이 나라 이 민족은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재봉춘(再逢春)되어 나타난 민족입니다. 그러한 민족이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님들인 것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피눈물을 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런 진실된 사랑을 받게 되면 거기에 더 플러스시켜 가지고 우리에게 복을 옮겨 주는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먼저 맞고, 위해 주고, 사랑해 주고 나서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하십니다. 사탄세계에서 강제로 빼앗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고 맞고 희생하며 죽음을 당해 가지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하지 않고는 세계 평화의 기원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국 강토에서 횡적인 세계를 향하여 이미 진군하고 있고, 출동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중심과 연결되어 있는, 기쁘고 행복스러운 이때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때는 한번 가면 억천만세가 지나더라도 다시 오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 때에 복귀의 국가적 한계권내에서 벌어지는 이것이 새 세대와 새 천국시대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고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보탬이 되고 사랑의 요건을 남기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고생해야 하고, 누구보다도 희생해야 하고, 누구보다도 죽음의 경계선에서 앞장서서 하늘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잘사는 사람이 복받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못살고 망하고 쫓기고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 복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 앞에 어려운 환경이 닥치더라도 도망가지 말고 부딪쳐 나아가야 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이 나오는 것이요, 집안이 어려울 때 효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전통은 하늘세계나 사탄세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좀더 어려운 길을 자청해서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세계를 대신해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게 되고, 모든 한이 풀리고 하늘의 왕권과 승리의 영광을 우리 통일교회가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틀리면 선생님 목을 자르세요. 이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수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죽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 죽으면 죽었지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하여 진군하고 용진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며 그가 남기고 간 서글픔의 한을 풀어 주려는 의미 있는 무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 대신 모든 여건을 승리의 결과로서 나타내 주길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게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할 사람들은 손 들자구.

기 도

아버님!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의 한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한이 무엇인지, 이스라엘의 한이 무엇인지, 인류의 한이 무엇인지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예수 가정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졌던 모든 것을 식구의 사연 가운데 재현시켜 탕감하기 위한 충효의 도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 목적도 이것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죽은 것도 이것을 성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필코 죽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세계적인 판도를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평면적으로 진군할 수 있고 총출동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사옵고 부끄러운 전투가 아니라 영광의 전투를 할 수 있는 때가 왔사옵니다. 힘과 기력을 다하여서 71년도에는 아버지 앞에 더더욱 충성하고 효도하는 모습이 될 것을 약속하였사오니 이 약속을 받아 주시옵소서. 부디 그 마음과 몸을 친히 당신의 장중에 두시어서 최후의 승리를 결할 수 있는 아들딸의 인연을 고이 남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1년 들어 첫번째 맞는 이 거룩한 성일을 저희들이 찬양하고,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같은 은사로서 품어 주시옵고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생의 갈 길 Ⅰ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새해를 맞이하여 8일째 되는 이 아침에 의정부에 있는 식구들과 지원 요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만난 것도 뜻을 중심삼고 만난 인연 때문이요, 저희들이 가야 할길도 뜻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을 모시고 집회를 갖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모든 인연과 동기는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끼리 인연되어 모이는 자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분열이 벌어지는 것이지만, 하늘을 중심삼고 모이는 자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새로운 목적을 위해 전진하게 되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뜻을 아는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부디 이 의정부 지구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이 의정부 지구를 중심삼고 전체 요원들이 일치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의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분열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개개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서 사방에 흩어졌던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였사오니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사연을 털어 놓고 그 다음에 아버지의 사연을 바꾸어 가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런 목적을 위하여 모인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임이 저희들 끼리끼리의 모임, 저희들 끼리끼리의 인연으로써만 끝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고, 개개인의 심령 심령을 친히 살피시옵소서. 스스로가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모색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개개인을 찾아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사옵니다. 이제 진정 그러한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앎으로써 저희들이 이 땅 위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 앞에는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충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렇게 모였사오니 말씀을 나누는 시간도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어둠의 세력이 침범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모든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한 날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연이 되게 하시어 이 민족과 세계 앞에 필요 적절한 하나의 자아를 발견하고, 하늘 앞에 도움을 가해 드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첫시간서부터 끝시간까지 당신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은 어디 한번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지 않다가 오늘 처음으로 통일교회에 온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오늘은 `인생의 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해 보겠습니다.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인간의 마음과 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보나, 혹은 사회를 보나 선한 세계와 사회가 되지 못한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두고 보더라도 역시 선한 가정이 되어 있지 못합니다. 누구나 다 사회의 영향과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더 들어가서 우리 개인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해야 할 텐데 선하기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악한 환경에 사로잡혀 가지고 선이 요구하는 그런 자리를 벗어나서 살려고 하는 자신인 것을 생활 가운데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인간을 두고 보면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즉 몸과 마음이 합해서 `나'라는 개체, 즉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과 몸이 진정으로 하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에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가기를 원하는데 몸은 그와 반대로 가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이런 싸움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후세의 우리 자손들도 역시 그런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는 가운데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싸움의 노정을 거쳐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외적인 싸움보다도 대내적인 자기 몸과 마음의 싸움도 해결하지 못하고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 자신인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인간들은 세계가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고 평화의 세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체가 하나되지 못한 개인들로서 묶어진 사회요 나라인데, 어떻게 하나될 수 있는 평화의 세계를 모색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동기가 되고 근원이 될 수 있는 내 개인이 하나되지 못한 입장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 목적의 세계, 즉 결과의 세계도 하나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데 이 싸움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철이 들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을 두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몸이 마음을 굴복시킬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마음이 몸을 굴복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뒤넘이치면서 10년, 20년, 30년, 혹은 50년의 생애를 거쳐 가지고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볼 때, 오늘날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는 사회악이나 세계악을 제거하는 것보다도 나 자신에게 미쳐져 있는, 혹은 나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악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그 악에서부터 사회악도 출발하는 것이요, 세계악도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물론 세계에까지 그 결과가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악의 기원이 각자에게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

역사과정에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싸운 목적은 무엇이냐? 먼저 참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중심삼고 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사회악을 대하여 싸우기 전에 먼저 모순된 자아를 타파하기 위한 싸움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싸움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매정하고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싸워 가지고 선한 입장에 섰다고 마음이 주장할 수 있음과 동시에 몸이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고, 마음이 지향하는 선의 목적 앞에 몸이 언제나 절대 순종하는 그 자리에서부터 역사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현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대외적으로 선을 주장해 봤자 그 밑바닥이 흐려 있기 때문에 선의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과정에서는 좋은 결과가 날 것 같지만 나중에 나타나는 열매는 악의 열매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나 자신입니다.

내가 완전한 선을 갖추기 전에는 가정의 선을 가져 올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이 완전한 선의 기반을 닦기 전에는 친척이면 친척, 종족이면 종족의 선의 기반을 닦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김씨면 김씨의 한 종족권을 중심삼고 선한 권내에 서지 못하면 선한 민족이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민족이 형성되지 않고는 선한 국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요, 선한 국가가 형성되지 않고는 선한 세계가 형성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세계를 이상으로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라는 목적은 될지 모르지만 성사될 수 있는 목적으로는 우리가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 있느냐?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개체를 보게 되면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다릅니다. 서로 싸우는 두 사람이 내 개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를 중심삼고 보면 이건 네 사람이 싸우는 입장입니다. 열 식구가 있다면 스무 사람이 싸우는 입장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로서 구성된 삼천만 민족, 혹은 세계 인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세계 가운데 과연 행복의 터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문제를 중심삼고 고심하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싸우는 데 있어서도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기 전에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는 `선을 행하라' 하거나 `좋은 일을 행하라'할 때도 남을 위해서 선을 행하기 전에, 남을 위해서 좋은 것을 행하기 전에 자기 자신 앞에 선을 행할 수 있는 자리, 좋은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올바른 씨를 심어야 올바른 싹이 나오는 것이요, 올바른 싹이 나와야만 올바른 가지와 잎이 생기고 꽃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다운 인간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인가

어느 한 동네를 두고 볼 때,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 있어서 `누구는 착한 사람이야. 선한 사람이야. 그래도 저분만은 우리 동네에서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게 될 때, 신임한다고 하는 그 신임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측정하느냐?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가지고 합니다. 틀림없는 것 가지고 합니다. 틀림없다는 것은 시종여일 하다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좋아지면 더 좋아졌지 나빠지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사람은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은 무엇이냐? 변하지 않고 틀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물이라 할 때 색깔이나 질에 있어서 변하는 것은 보물이 될 수 없습니다. 색깔이나 질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시종여일해야 됩니다. 십년 후에도 백년 후에도 천년 만년 후에도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심입니다. 그런데 이 양심이 절대적으로 선하냐 하면, 양심도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양심은 악을 싫어합니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악이 나타날 때에는 `이놈'하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제재를 가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악을 대해서는 투쟁하려고 합니다. 이 작용에 있어서는 여러분의 양심이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에 동생의 먹을 것이라든가 입을 것을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하면 양심은 `야 이놈아, 그건 동생 것이 아니냐. 동생에게 물어 보고 해야지' 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양심은 원리원칙에 어긋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언제나 제재하는 작용을 합니다. 이 작용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밤에 혼자 있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이 악한 입장에 설 때는 양심은 그것은 좋지 않다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이 작용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다음 또 한 가지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몇천년 전 사람이나 몇천년 후 사람이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마찬가지입니다. 못난 사람이 못난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잘난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차이 있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못나고 비참한 자리일수록 긍휼의 마음, 불쌍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마음은 천년 전 사람이나 천년 후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런 사랑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심 작용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사랑합니까?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 아기를 낳아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어디에 사랑을 가르치는 소학교가 있어요, 중학교가 있어요? 무슨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어요? 거기에 무슨 학박사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만 누구나 그 기준은 만점입니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 완전하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완전한 것은 손댈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가감이 필요하지 않을수록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은 변치 않는 것이요, 변치 않는 것은 영원히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조금만 잘못하면 양심은 야단입니다. 잘못하는 것도 야단이지만 잘하지 않으면 이것도 야단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양심은 `너는 옷을 두둑히 입고 배도 부르고 부러운 것이 없으니 저 길가에 있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건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정직한 사람, 선량한 사람 , 좋은 사람일수록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렇게 하라'고 하는데 몸은 `난 싫어'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대관절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마음이 하자는 대로 `예' 하고 거기에 이의가 없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한 60대 되는 소매치기 왕초가 있다고 합시다. 그 왕초가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데 스크린에 소매치기 소년이 어떤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려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걸 보는 소매치기 왕초는 `요놈의 자식아' 하면서 그 영화 속의 소매치기 소년의 손목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때는 자기가 소매치기 왕초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겁니다.(웃음) 그 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소매치기 소년을 잡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벌써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소매치기의 왕초이니 소매치기 소년쯤이야 용서해 주고도 남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심각하게 봅니다. 그 녀석을 나꿔채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적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리를 지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누가 교육합니까? `나는 마음 소학교 다녔소. 나는 마음 중학교 다녔소' 하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이것은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법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마음 이상의 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요? 양심은 바른 것입니다. 대개 관념이 그렇습니다. 양심이 꼬부라졌느냐 반듯하냐 할 때, 양심이 꼬부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양심은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바르면 얼마나 바르냐? 똑바르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려가는 바름이냐, 올라가는 바름이냐, 혹은 수평선을 중심삼은 바름이냐? 이렇듯 바른 것도 다릅니다. 양심은 올라가는 바름입니다.

그러면 올라가는 바름은 뭐냐? 올라가는 각도가 작으면 하는 일도 작습니다. 좋은 일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하는 식으로 작용 자체도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도가 크면 클수록 그 작용도 커집니다. 양심이 올라가면서 바른 각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강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심은 올라가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한두 번 작용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하려고 합니다. 양심은 명령할 때 오늘만 잘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잘하라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마음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어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양심은 `이제 이만했으면 남들을 도와 줘야 될 게 아니냐'고 하는 겁니다. 즉 양심은 혼자 갖고 살지 말고 좋은 것은 전부다 나눠 주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나누어 주는 데에는 어떻게 나눠 주고 싶으냐? 집안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좋으면 좋을수록 넓고 높고 멀고 깊게 나눠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은 넓고 높고 깊게 주고자 하는 양심을 중심삼은 인격 내용과 결부된 기준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선한 일을 얼마만큼 하라고 하느냐? 선한 것을 전부다 이룰 때까지 하라고 합니다. 여기 의정부 시민이 얼마나 됩니까? 「8만 명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8만 명 전부를 잘살게 만들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마음은 그렇습니다. 자기의 모양은 초라하더라도 마음만은 자기보다 남을 더 잘살게 해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백만장자가 되어 가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대로 모든 의정부 시민들을 외적으로 풍부하게 해주었다고 할 때, 양심은 `야,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 자, 너도 같이 잘살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정부 시민 8만 명뿐만 아니라 삼천만 민족을 다 잘살게 해줘야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응당 그럴 것 같지 않아요? 8만 명밖에 안 되는 이 조그만 의정부시를 위해서 마음이 하자는 대로 했다고 해서 거기에서 보따리 풀고 잠이나 자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정부시를 도와줬으면 그 다음에는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족을 도와줘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삼천만 민중이 전부다 나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고 잘살게 됐다면 양심은 이 이상 행복이 없다 하면서 `이젠 낮잠 자고 쉬어도 돼'이렇게 명령하겠어요? 절대 안 한다는 거예요. 쉬려고 하면 `어허 세계를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더 해' 하고 명령을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합니다」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양심은 나하고 원수입니다. 폭군이라면 최고의 폭군입니다. 그만했으면 됐지, 여기에서 더 하려면 얼마나 뼛골이 빠지겠느냐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정성을 들이느라 잠 못자고 피땀 흘리며 수고를 했는데도 그 수고를 한꺼번에 집어던지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동네를 위하고 나면 그 동네뿐만 아니라 `삼천리 반도를 위하라'하고, 삼천리 반도를 위하고 나면 또 `세계를 위해서 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30억 인류를 전부 잘살게 했다 하더라도 양심은 `야, 이제 됐다'고 하지 않습니다. 또 옛날에 왔다 갔던 사람들을 위하라고 합니다. 죽었더라도 그 사람들을 잘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또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잘살고 있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수천만대의 선조로부터 왔다간 수천 억 되는 인류들,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도 잘살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못살고 죽으면 한이 맺힌다고 하잖아요. 그러한 맺힌 한까지 풀 수 있으면 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이 못 살면 되겠느냐, 그 기반까지 닦아 놓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양심이라는 것은 종자가 어디서 생겨났고, 뿌리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길래 이러는지 이게 문제입니다.

인간이 귀한 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

그러면 이 양심은 어디까지 갈 것이냐? 마음은 어떻게 생겼느냐? 둥글둥글한 거예요, 넓적한 거예요? 마음은 어떤 모양을 닮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납작하다면 지극히 납작하고, 좁다면 지극히 좁습니다. 또 길다면 무한히 길고, 넓다면 무한히 넓고, 높다면 무한히 높은 것입니다. 또 빠르다면 비행기보다도 더 빠릅니다. 빛이 빠른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인공위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 여하에 따라서 천하가 놀아나면 놀아났지 마음이 놀아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보따리가 얼마나 큰지 이 세계의 모든 대통령을 자기 배 안에 집어넣고 운전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안 그래요?

이 마음이 사고뭉치라면 지극히 큰 사고뭉치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같은데 빼 버리려 해도 빼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게 보기에는 시시한 것 같은데 잘났다고 들고 나오면 천하가 이것을 당할 수 없을이만큼 엄청난 존재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못났다면 지극히 못났고, 잘났다면 지극히 잘난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잘났으면 좋겠어요, 못났으면 좋겠어요? 잘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자, 마음의 지시에 따라 수고를 해 가지고 세계 사람들을 전부 다 잘살게 해준 사람이 있다면, 세계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반기를 들고 데모를 하겠어요, 고맙다고 머리를 숙이고 따라가겠어요? 「따라갑니다」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온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잘살게 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살라고 내쫓아도 따라온다는 겁니다. 관계를 안 맺겠다고 해도 맺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왜 이렇게 작용하느냐?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고 나면 내가 손해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준 것도 내 것으로 화할 수 있음과 동시에 받은 것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마음은 이러한 비법을 배우지 않고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명령을 따른 사람은 주인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萬物之衆唯人最貴)'라는 말도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물과 다르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귀합니까, 귀하지 않습니까? 「귀합니다」 무엇이 있어서 귀합니까? 몸뚱이가 있어서 귀합니까, 마음이 있어서 귀합니까? 「마음이 있어서 귀합니다」 사람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몸뚱이가 있어서 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살라

나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외적인 대외관계에 있어서 마음은 선한 일을 하도록 폭군처럼 명령을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실천하고 보면 폭군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선군의 권한을 가지고 천하 앞에 영광을 발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과연 싸우지 않고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공산주의자들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공산당식입니다. 여기에 공산당 사촌되는 아저씨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공산당 사촌인가 친척인가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없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 것은 내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고 하는 사람은 공산당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산당 사촌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온 아저씨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부락에 욕심장이 아저씨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배도 좀 나오고 신수도 멀끔하게 잘 생겼는데, 그 생김새와는 반대로 마음이 아주 욕심꾸러기라는 겁니다. 동네에 지나가다가 무슨 좋은 것이 있으면 `내 것' 하면서 잡아채려고 한다는 거예요. 어린 아이들이 빵 조각을 들고 있는 것을 봐도 `내 빵 조각'하면서 잡아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간에 체면불구하고 자기 배에 넣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을 동네 사람들이 환영하겠어요, 쫓아내려고 하겠어요?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도 그렇습니다. 분석할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지만 의분에 사무친 사나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땅이 옳다고 할때는 대한민국이 반대해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 교인들을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들이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통일교회 다니더니 부모도 몰라 보니, 무슨 교회가 그러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좋고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그들도 배워야 됩니다. 아무리 여든 살이 되었거나 늙어 죽을 나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인생행로에 있어서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라든가 해결해야 할 내용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아들딸들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탐구하려고 하는데 그 길을 막는다는 것은 틀려 먹은 것입니다. 진정한 부모라면 어서 가서 참다운 인생의 가치를 찾으라고 격려해 주고 그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네방네에서 쫓겨나고, 혹은 나라에서 규탄을 받지만 그것으로 흘러가 버리고 망하게 되면 그건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봤을 때에 안 된다고 때리던 사람들이 여러분이 제재도 가하지 않았는데 자연히 그 결과에 따라 머리 숙일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 앞에 완전히 항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고 해서 여러분과 뭐 다른 것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은 조금 뚱뚱할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가 좋은 몸뚱이로 태어나게 해줬으니 뚱뚱한 겁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닙니다. 몸뚱이는 여러분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추울 때는 춥고, 바늘로 찌르면 아프고, 섭섭한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해합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르냐? 양심을 중심삼고 보는 관이 다르다는 겁니다. 행동하는 그 결과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아들 딸을 낳아 키우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늙어서 잘살기 위하여 공부시키는 부모와, 자기 동네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공부시키는 부모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부모가 더 선한 부모이겠습니까? 「동네를 위하여 공부시키는 부모입니다」 그건 다 아는 것이니 교육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동네를 위해서 공부를 시키는 부모와 나라를 위해 공부시키는 부모 중 어느 부모가 선한 부모입니까? 다시 말해 `네가 공부하는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후대 만민의 복귀의 터전을 개척하기 위한 하나의 선각자로 서기 위한 것이다' 하면서 정성들여 아들딸의 장래를 추구하는 부모와 동네를 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아들딸의 장래를 추구하는 부모 중 어느 부모가 훌륭한 부모입니까? 어디 대답해 보세요. 얘기는 주고 받아야 재미있는 것이지 혼자서만 얘기하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 어느 부모가 훌륭한 부모예요? 저쪽에 앉아 있는 아저씨 한번 대답해 보세요. 「나라를 위하여 공부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나라보다도 세계를 위해 살라

나라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만민을 위주로 태어난 세계적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성은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 있어서도 `네가 공부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하는 것이지만 앞으로의 세계를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민족을 넘어 종족과 인종을 초월한 박애사상과 형제의 심정을 가지고 네 몸과 네 일생을 고이 만민을 위해서 희생하고 만민의 복지를 위한 개척자가 되라'고 다짐시키며 공부시켜야 합니다. 그런 부모와 나라를 위한 충신의 도리를 가르치면서 공부시키는 부모 중에 어느 부모가 더 훌륭한 부모입니까? 우리 아주머니들, 이야기해 보세요. 여기 얼굴 둥글게 생긴 아주머니 대답해 보세요. 어느 부모가 더 훌륭합니까? 「세계를 위해서 공부시키는 부모입니다」 다 아시는구만.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기 나라만을 위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또 자기 가정만의 운세를 주장하는 사람은 나라의 운세가 다가올 때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일등 국가가 되겠다고 했지만 세계의 운세가 몰아치게 되니 할 수 없이 남북으로 갈라지더라 이겁니다. 그렇지요? 민족의 충신들이 죽음길을 가며 소원하던 해방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은 왔는데, 세계의 운세가 몰아치니 대한민국의 운세는 세계의 운세를 안고 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의 운세가 다가온다고 할 때에, 세계 운세에 박자를 맞춰서 준비를 하는 사람과 나라의 운세에 박자를 맞춰서 준비하는 사람과 가정의 운세에 박자를 맞춰서 준비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먼저 망하겠습니까? 대답해 보세요, 누가 먼저 망하겠느냐는 거예요. 개인의 운세는 가정의 운세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또 가정의 운세는 동네의 운세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 동네에서 잘산다고 큰소리 해봤자 동네가 망하게 될 때는 그 가정도 망하는 겁니다. 종족의 운세는 민족의 운세를 못 막아내고, 민족의 운세는 국가의 운세를 못 막아냅니다. 또한 국가의 운세는 세계의 운세를 못 막아내는 것이요, 세계의 운세는 천운을 못 막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재수가 좋기를 바라지요?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봤는데 기분 나쁘다, 또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한테 갔다 왔는데 참 재수가 좋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재수가 좋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갈 때는 아홉 냥을 가져갔는데 올 때 보니 여덟 냥이 되었을 때 그것을 보고 재수 좋다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아야 재수가 좋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 갈 때보다 올 때 더 크면 좋다고 하는 겁니다. 갈 때보다 더 나아야 좋다고 하는 것이지, 나빠졌는데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자연법도라든가 화학작용이라든가 모든 작용이라는 것은 손해 나는 데서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기 의정부까지 뭐하러 왔겠어요? 나는 아주 바쁜 사람입니다. 시골 양반들에게 몇 시간 이야기해 봤자 당장에 두드러진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바에야 서울에서 유명한 사람들 만나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있어서 그런 사람들만이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같은 한 몸뚱이라는 것입니다. 한 몸뚱이에서 이마는 번듯이 잘생겼는데 코가 못 생기거나, 또 코와 이마는 잘 생겼는데 눈이 애꾸라면 안 됩니다. 또 입이 찌그러져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기 위한 전체적인 가치를 보게 될 때는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귀하기는 같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선생님이 오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끝이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루하다면 5분 내에 결론을 맺고 끝마치겠습니다. 오늘 선생님은 의정부에서 말씀이 끝나게 되면 춘천으로 가야 합니다. 3백리 길을 앞에 놓고 지금 여기 와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빨리 끝낼까요? 조금 더 세밀하게 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할까요? 「좀더 세밀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처음 오신 분들도 그런 생각이예요? 나도 옛날에는 남의 말 듣기를 참 싫어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실례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예」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봅시다.

그러면 세계에서 잘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어느 동네에 어수룩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봄철이 되어도 발갈이할 줄 모르고, 여름이 와도 김을 맬 줄도 모른다는 거예요. 또 가을에 추수해 가지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곡식을 말리고 있는데 소낙비가 쏟아져도 눈만 꺼벅꺼벅하면서 곡식을 담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김새는 아주 잘생겼고 말도 바로 하고 행동도 바로 하더라 이겁니다. 한 십년쯤 지내면서 그 사람이 하는 짓을 보니 무용지물과 같더라 이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인민군이 쳐내려오기 전날 보따리를 싸 가지고 피난을 가버렸다면 그 사람이 잘난 사람입니까, 못난 사람입니까? 「잘난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서 형편없는 빵점이었지만, 인민군이 오기 전날 살짝 보따리를 싸 가지고 어디론가 피난을 갔다는 겁니다.(웃음)

이것을 두고 볼 때, 그 동네에서 제일 잘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소와 말을 키우며 `소야, 말아, 새끼를 한 마리만 낳지 말고 쌍동이를 낳아라' 하면서 너저분하게 닻줄을 내려 가지고 운신도 못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다가 인민군한테 죽은 사람과 `그런 것 다 뭘해. 내 생명만 붙어 있으면 되지' 하면서 섭섭한 마음 없이 살짝 보따리 싸 가지고 피난간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잘난 사람입니까? 「인민군한테 죽은 사람이요. 웃음」 죽은 사람이 잘난 사람이예요? 너 고등학생 같은데 그렇게 대답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 간 사람이 잘난 사람이지요? 「예」 틀림없지요? 도닦는 사람들이 그런 패입니다.(웃음)

기독교 예수장이들, 나도 예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것 좋아서 붙인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붙인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어수룩하게 생겼지만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수판으로 이리저리 전부다 따져보고 손해 안 나겠기에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잘살겠다고 생각 안 합니다. 예수 믿고 천당간다는 겁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간다는 말이 기분 나쁜 말이 되었지요? 왜 기분 나쁜 말이 되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거짓말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기분 나쁜 말이 된 것입니다. 원래 그 말의 뜻은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고 쉬소' 하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 그렇지요? `밥먹고 쉬소' 하는 사람은 그런 말 안 하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쉬라는 것은 벌써 배고픈 사람을 동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배고픈 줄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고 친구될 수 있는 사람이며,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밥을 먹고 쉬시오'라고 했을 때 `예, 쉬지요. 그렇지만 밥이 있어야 먹지요'하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렇지만'이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래요? 이걸로 잡수소' 하면서 돈 천 원이라도 주게 된다면 허리를 굽히며 `예, 고맙습니다'하는 거예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세상 사는 데에 재미를 붙이지 말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다 불심판을 당하여 망할 것이다. 심판하면 다 죽지만 예수 잘 믿는 사람들만 살아 남는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 봤지요? 「예」 이렇게 기분 나쁜 말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이냐? 여러분은 그러한 순간에 보따리 싸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리에 갈 자신이 있어요? 문제는 이것입니다. 말세가 오면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전부다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할 테지만, 인민군이 삼팔선을 넘어올 때에 보따리 싸 가지고 자기가 살 곳으로 찾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에 보따리 싸들고 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잘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앞날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날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은 나라가 망해도 남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 이 세계가 망하더라도 남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남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능성에서 출발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는 출발할 수조차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을 중심삼고 가능성이 있는 출발이 천지간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벌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동네에서도 보면 대학을 나와서 남을 슬쩍쓸쩍 속여 가지고 잘사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소위 잘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국제간의 외교 문제를 두고 볼 때에도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신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항시 그래 왔습니다. 한마디로 공산당식입니다. `내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는 거예요. 그러나 양심 세계의 올바른 울부짖음과 부르짖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세계의 것이고,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는 거예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양심이 원하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만민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가장 귀한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더 높고 크신 분의 것입니다. 이것이 양심이 찾아가는 정도(正道)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인생의 갈 길'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갈 길, 인생의 정도(正道)는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무엇이냐? 개인보다는 가정이 더 크지요? 더 큰 것을 위하여 희생하게 될 때 그것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에 `사람이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을 위하라는 것은 동네의 울타리가 아니라 세계 만민을 대해 형제의 정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동네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보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보다 더 큰 사람이요,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더더욱 큰 사람입니다. 이웃이라는 것은 세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계만민이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까, 아니면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까?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저 덤벙덤벙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갈 길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 대관절 무엇입니까? 자기 개인을 위해서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을 전부다 희생시키는 게 선입니까? 아니면 부모 앞에 효도하고 형제들과 화목하고 모든 식구가 잘살 수 있는 길을 가기 위해서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까? 「가정을 위해서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동네를 중심삼고 친척이면 친척, 씨족이면 씨족권의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다 자기를 위해 희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선입니까?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삼 년 아니 이틀도 못 가서 망한다는 거예요. 동네방네 사람들이 몰려와 가지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통일교회를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삼천만 민족이 반대해 왔는데 어떻게 망하지 않고 남아졌느냐? 이 법도를 적용하여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통일교회가 망한다면 문선생이란 사람이 말한 것은 전부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그마치 세계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세계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려 왔습니다.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이러한 입장에서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가지고 부르짖을 때는 대한민국을 끌고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종족을 위하여 하나의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과 가정을 위하여 종족을 희생시키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선한 것이냐? 이런 문제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가정이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선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

선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선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이나 동네의 책임자나 혹은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악한 사람을 중심자로 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을 중심자로 세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이 중심이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위하지 못하는 중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 가정의 중심의 자리에 서려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희생했다 할 때는 그 사람을 가정에서는 중심으로 세우는 겁니다. 중심에 세워져요, 안 세워져요? 중심에 안 세워지면 그 집은 망하는 겁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희생한다는 것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어디 대답해 보세요. 「좋은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인데, 어떻게 좋으냐? 희생하는 것은 주인이 되는 방법이요, 중심이 되는 방법입니다. 또 영원한 패권과 영원한 권한을 갖고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이 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희생이라는 것은 선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완용을 두고 조국을 팔아먹은 역적이라고 합니다. 팔기는 이완용 혼자서 팔았지만 이씨 전체가 걸려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 이런 것을 보더라도 종족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김씨면 김씨 문중을 위해서 나라를 움직이려 한다면 그건 망하는 겁니다. 여러분, 현정부가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세요. 흥할 정부인지 망할 정부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일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를 움직여 나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한 곳에 원수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걸 보게 될 때 씨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그리고 세계는 보다 더 큰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우주의 절대자로서 존재의 기원이요, 행복의 기원이요, 모든 것의 중심적 내용을 가진 분이 있다면 그분이 제일 큰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선의 법도를 중심삼고 모든 경서가 잘됐는지 못 됐는지 비판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생활이 잘됐는지 못됐는지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이 잘됐는지 못 됐는지 알아 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말입니까? 천하가 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내 생명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천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물건이라든가 땅덩어리인 나라를 가지면 뭘 하느냐는 거예요. 가지더라도 그 나라의 사람과 그 나라의 정신을 하나로 못 묶는다면 허탕이라는 것입니다. 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나라와 물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문제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구를 사랑하라는 말입니까? 형님도 사랑하지 말고 부모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뭐 하라고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 다 집어치우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교훈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그 이상 뭐 무엇이 있어요? 내 마음 끝이 어디겠어요.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뜻을 다하라는 것도 정성을 다하라는 것도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성의 한계점이 어디겠어요?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이라는 겁니다. 목을 내놓고, 죽을 각오를 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제일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을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 도둑 같은 분입니다. 그렇잖아요? 다 집어던지고 자기만 사랑하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가까울수록 모르는 법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냐? 우리 인간의 조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통일교 문선생도 기독교인이니까 무턱대고 하나님이 있다고 하지. 하나님 봤어? 하나님 보지도 못했는데 있긴 뭐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고 싶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 봤어요? 마음이 어디 있어요? 머리에 있어요, 심장에 있어요? 마음은 없는 것 같지만 있다는 거예요.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있다면 한 몸과 같은 인연을 가진 세계이기 때문에 없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실감나게 가르쳐 줄까요? 「예」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간단한 거예요. 여러분이 거울을 보게 되면 자신의 얼굴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입니다」 자기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예」 내가 내 얼굴을 아는데 그리려고 하면 잘 못 그립니다. 화가도 자기 얼굴은 잘 못 그린다는 거예요. 사진을 보고는 자기 얼굴을 그릴 수 있더라도 매일같이 거울에서 자기 얼굴을 보지만 보고 돌아서서 그리려면 못 그린다는 겁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릴 자신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은 자기 얼굴 알기를 아들 얼굴만큼 알아요? 더 잘 안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웃음) 매일 거울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잘 알텐데 잘 모른다는 거예요. 기분 나쁠 때보면 제일 못생긴 얼굴 같지만, 기분 좋을 때 웃는 것을 보면 `이렇게 저렇게 생겼으니까 복이 붙었구나'하면서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얼굴을 똑똑히 안다면 큰일납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못생긴 사람은 어떻게 살겠어요? 돌아다닐 때마다 그 못생긴 얼굴이 앞에 보이게 된다면 살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모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찾아 다니니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수평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화상태라는 것이 있지요? 포화상태라는 것은 경계선에서 내려가면 내려갔지 그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는 최고의 절정상태인 것입니다. 절정상태에서 내려가면 포화상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화도 아니요, 절정도 아니요, 내려가는 것도 아닌 그런 경지, 이렇다면 이렇고 저렇다면 저런 두루뭉수리한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혼자 가만히 있을 때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마음이 있는지 몸이 있는지 두루뭉수리입니다. 그것은 제일 가깝기 때문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왜냐? 같은 감정권내에서 하나되면 될수록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감정이나 감각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시각이란 자체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안 보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미인으로 맵시 있게 생겼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얼굴이 매일 똑같다면 기분 나쁜 것입니다. 남자로서 일생 동안 매일 똑같은 그 얼굴만 대하고 살겠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얼굴이란 것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웃을 때는 웃는 표정으로 장단 맞추고, 성날때는 얄궂은 표정으로 장단 맞추고, 감정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넓적해졌다 길어졌다 하는 표정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은 모른 것이 원칙입니다. 아내의 얼굴이 동네 어느 총각의 얼굴보다 더 확실하게 보인다고 말하는 남편은 아내와 재미있는 생활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권에서는 서로 하나되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취했다고 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백을 백으로 보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백을 열로, 또는 백을 천으로 보는 자리입니까? 취했다고 하는 자리는 백을 열로 볼 수도 있고 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취하게 되면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천하의 미남이요, 천하의 미인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기둥에 못을 박아 얽어매어 놓은 것처럼 얼굴에 변화가 없다면 기분 나빠서 못 사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시집가서 처음엔 신랑 못생겼다고 타박을 하지만, 살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이런 데가 있구나' 하는 인정을 하게 되면 못생길수록 더 맛이 난다는 거예요. 팥밥과 쌀밥이 있을 때 보기에는 쌀밥이 더 먹음직스럽지만 팥밥이 오히려 더 구수하고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조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오히려 다행

자, 하나님을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가르쳐 줘야겠군요. 가까울수록 모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가깝습니까, 멉니까? 하나님은 이 우주에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가깝습니까, 멉니까? 「가깝습니다」 여러분들은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까, 모릅니까? 「압니다」 알기는 뭘 알아요? 숨이 막혀야 알 수 있지 그냥 알 수있어요? 또 맥박이 1분에 칠십 번 정도 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모르고 있어요? 걸어갈 때 맥박이 뛰는 것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걸어갑니까? 그리고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감아라, 떠라, 감아라, 떠라 합니까?(웃음)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는 신경이 쇠약해져서 사흘도 못 가서 나자빠지는 것입니다. 사흘도 못 산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알기를 잘 했어요, 모르기를 잘했어요? 「모르기를 잘했습니다」 모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도 구멍을 낼 수있는 능력의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살 수 있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다는 거예요.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이 쇄약해져서 한 시간도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웃음)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모두다 내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남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 보고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 보니까 틀림없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태양빛을 받고 살지만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게 고맙다고 해서 `태양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합니까? 우리는 큰 것은 모르고 삽니다. 큰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공기를 얼마에 살 것 같아요? 하나님이 짓궂은 분이시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 없을 것입니다. 아마 5분 이내에 통일이 될 거예요.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가 가지고 `너희들 통일할래, 안 할래?' 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를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이 고맙다는 거예요.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기에 대해서 고맙다고 생각합니까? 도둑놈들같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먹어 치운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몸은 4분의 3이 물입니다. 사람의 몸은 물주머니라는 거예요. 그런 우리들이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요? 오뉴월 복더위에 순회다니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어느 산등성이를 올라가면 그 얼마나 갈증이 납니까? 산등성에는 대개 과수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냉수 한 그릇 얻어 먹는 맛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물을 먹고 나서도 물을 떠다 준 이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하지만 물한테는 고마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물님 고맙습니다'라고 합니까? 안 합니다.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태양빛이 얼마나 귀합니까? 만일 태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대번에 얼어 죽어 버릴 것입니다. 햇빛이 생명을 지탱하는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요소인데 불구하고 고맙게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제일 귀한 것을 공짜로 받고 있습니다. 물과 공기와 태양빛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밥은 일주일 동안 안 먹어도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보통 3주일 금식도 하고 40일 금식도 합니다. 그래도 안 죽습니다. 그러나 공기 없이 40일간 살 수 있어요? 물 없이 40일간 살 수 있어요? 밥 없이는 정신력으로 살 수도 있지만 물과 공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태양 없이 40일간 살 수 있어요? 모든 것이 대번에 얼어버리기 때문에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크나큰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체의 신비를 통해서 본 하나님의 실존성

내가 하나님을 보여 준다고 했지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가르쳐 준다고 했지요? 「예」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들고 눈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 우리 종지조상(宗之祖上)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눈이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왔겠어요, 모르고 나왔겠어요? 「모르고 나왔습니다」 모르고 나왔으면 눈이 뭐하러 이렇게 생겨났겠습니까? 이렇게 생긴 것은 눈은 몰랐지만 어떻든지 그렇게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대답해 보세요. 태어날 때 태양이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다는 거예요.

보기 위해서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볼 수있기 위해서는 태양이 있는 것을 벌써 알고 봐야만 될 수 있게끔 인간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태양이 있는지 나는 몰랐지만 어떻게든지간에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 한번 손들어 보세요. 당초부터 우리의 종지조상이 눈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 나가면 태양빛을 보아야만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거예요. 자신은 몰랐지만 누군가가 알게끔 조작을 했고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것은 어떤 가설 밑에서 실험을 거친 다음 그 결과에 따라 논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누가 원자라는 것을 봤어요? 누가 봤냐는 거예요? 그렇다 하는 것을 실험해 가지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결과로 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가설 밑에서 된 것입니까? 본래 눈이 볼 수 있게 태어난 것은 가설 밑에서가 아니라 태양이 있다는 것을 본래부터 알았다는 겁니다. 여기 앞에 앉은 아저씨, 눈이 이렇게 생겨난 것은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으니까 눈이 생겼죠」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것은 적응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내가 깜깜한 밤에 막 다녀도 가로막는 나무가 다 없어지고 구덩이가 다 메워진다는 말입니다. 그래,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적응이 뭐예요?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예요? 적응이라는 것은 원리원칙에 따라 거기에 부딪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요인의 바탕을 지녀 가지고 행동을 해야만 적응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귀를 한번 보세요. 귓바퀴가 이렇게 생겼는데, 그렇지 않고 반대로 생겼다면 어떻겠어요? 이 귓바퀴가 없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앞에서 오는 소리가 그냥 휙 지나가 버린다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말하는 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또 귀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나는 말 소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상대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뒤통수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를 만나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니까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귓바퀴가 이렇게 생긴 것은 앞에서 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귀가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이 귓바퀴를 뭐하러 이렇게 만들어 놨겠습니까? 그것은 공기가 가다 거기에 걸려 가지고 화음이 되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귀를 한번 잘 보세요. 큰 바퀴가 있고 작은 바퀴가 있어 가지고 소리를 잘 거릅니다. 큰 소리가 들려오면 이 큰 바퀴에서 그 소리를 슬쩍 죽여 놓는다는 거예요. 큰 소리가 그냥 그대로 귀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니 큰 바퀴에서 소리를 한번 죽였다가 작은 바퀴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자,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정면으로 전파된다는 사실을 귀가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귀는 몰랐지만 본래부터 알 수 있는 내용의 동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귀가 그런 것을 전부 알고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본인이 누구예요? 조물주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눈썹을 한번 보세요. 얼굴에 시커먼 눈썹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적마다 `왜이렇게 서커먼 게 있지' 하면서 기분나빠할지 모릅니다. 이게 없으면 얼굴이 얼마나 희멀끔하고 좋겠어요. 그런데 왜 이걸 여기에다 붙여 놨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털이 나 있으면 눈썹이 필요하겠어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안 필요합니다」 짐승들은 엎드려 기어다니니까 눈썹이 필요없습니다. 그래도 그 형태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서서 다니니까 눈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나 있는 자리는 대개 살짝 높습니다. 높지 않은 사람은 팔자가 좋지 않습니다.(웃음) 출세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관상장이는 아니지만 그렇다는 겁니다. 남자는 눈썹 부위가 조금 높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높으면 팔자가 셉니다. 여자들은 약간 낮은 것이 좋다는 거예요.

눈썹 부위가 슬쩍 높아져 가지고 산맥을 잘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명당 중에서도 왕 명당자리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겠어요? 사람이 서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꾸로 다닌다면 눈썹이 필요하겠어요? 거꾸로 다닌다면 눈 밑에 있어야 될 게 아닙니까? 정말 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썹이 한쪽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이거 왜 이럴까요? 물이 흐를 때 한 곳으로 흘려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눈썹이 한쪽 방향을 향해서 나 있고 살짝 옆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흘러내릴 때 영락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세요.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땅이나 빗물이 눈으로 다 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눈이 쓰려서 어떻게 살겠어요? 못 산다는 겁니다. 눈을 가만 보면 그것도 미덥지가 못해서 눈꺼풀로 둘러 놓았습니다. 눈꺼풀로 둘러 놨어요, 안 놨어요? 눈꺼풀로 둘러 가지고 눈을 보호하게끔 해 놨습니다. 눈물은 음푹한 곳을 통하여 옆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몇천 년 몇만 년 연구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 코가 만약 뒤집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웃음) 소낙비라도 오게 되면 큰일납니다. (웃음)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생각해 보세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냉정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코가 마도로스 파이프처럼 붙어 있다면 어떠했겠느냐는 거예요. 정말 코가 제대로 잘 붙어 있다는 겁니다. 또 코는 얼굴 중앙에 붙어 있습니다. 보기 싫다면 정말 보기 싫은 것입니다. 코가 이렇게 붙어 가지고 세수할 때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우하심에 감사하며 모든 것에 대해서 인사하라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인사하고, 일하고 나서도 인사하고, 그러니까 세수할 때도 고개를 숙여서 한다는 것입니다.

콧대는 만물 가운데서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에게는 천도가 있는 것입니다. 상하관계 질서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코는 왜 밑으로 내려오면서 넓어졌느냐?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입이 큰일 난다는 거예요.

입으로 전부 흘러 들어가게 되면 입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 못 해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못 살았다는 거예요. 재미있게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코가 밑으로 넓어진 것은 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런데 코가 이렇게 넓어진 것만 가지고 의심쩍어서 입가에 여덟 팔자 모양으로 금을 그어 놨습니다. 그 선을 따라서 흘러가도록 해놨다는 거예요. 이렇게 참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여덟 팔자 모양으로 금이 그어진 부분이 넓을수록 먹을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입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지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밥 먹을 걱정 안 해도 되겠는가, 아니면 밥 먹을 걱정을 하겠는가 하는 것을 얼굴만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관상학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의 이치를 캐보면 다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는 왜 수염이 났을까요? 여자는 수염이 안 났는데 남자는 왜 수염이 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수염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는 일을 하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립니다. 그래서 그 땀이 번지지 않도록 방어체로서 수염이 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수염 난 남편을 푸대접하는 아내는 잘 못사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 없든가, 딸이 하나 없든가 하는 거예요. 남편이 수염을 기르거든 잘 모셔야 합니다.잘 대접해야 됩니다. 우리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술을 보게 되면 그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술하고 이빨하고 잘 어울려요, 안 어울려요? 「어울립니다」 그런데 입술하고 이빨하고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불과 몇 미리미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이 위험하다면 이 이상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아차 잘못하게되면 큰일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불안을 느낍니까? 「안 느낍니다」 먹을 때는 그저 먹는 것에 바쁘지 불안을 안 느낀다는 것입니다.

혀도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속에서 끌어 당기고 밀고 하면서 작두같은 이빨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도 충돌없이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춥니까? 조화통이라는 거예요. 지금 내가 말을 참 빨리 합니다. 이렇게 빨리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처음 만난 여러분들과 정들 수 있게끔 말하게 하는지 정말 기기묘묘한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혀가 손가락과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나는 거예요.

입술도 보면, 고무 중의 최고의 고무입니다. 벌릴 때는 한껏 벌릴 수 있고, 오므릴 때는 아주 작게 오므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자유자재입니다. 가죽보다 낫고 생고무보다 낫다는 거예요. 말을 할 때나 먹을 때나 한 울안에서 입술과 이빨과 혀의 박자가 어쩌면 그렇게도 잘맞는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신비하다는 거예요.

또 콧구멍 속에도 털을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코털이 전부 가운데로 다 모여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먼지 같은 것이 콧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코가 생겨나고 귀가 생겨나고 눈이 생겨나고 입이 생겨나고 손이 생겨난 것이 그렇게 해야 할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그 자체는 몰랐었는지 모르지만 내용적으로는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렇게 해놨습니까? 주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야 통일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대답할 수 있지만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까? 안 믿으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웃는 것하고 우는 것하고 몇 촌간입니까?(웃음)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웃는 것과 우는 것을 보면 가죽살이 쭈그러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이렇게 우는 모습과 웃는 모습은 눈이 조금 다를 뿐인데 천지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천지 차이라는 것이예요.

여러분이 손가락 하나에 대해서 책을 몇만 권을 써도 이 손가락 하나를 다 모르는 것입니다. 소위 박사라는 사람들이 안다는 것은 겨우 손톱 밑의 때만큼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앉아 가지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내가 이런 이야기 한다고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공산당 패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그들을 모아 `이 녀석들아! 너희들 눈은 어떻게 생겼어? 또 눈이 왜 깜박거려? 안 깜박거리면 너희들의 눈은 쓰레기통이 되고 말거다. 이것은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또 속눈썹은 왜 눈꺼풀에 꼭 달라 붙어 있어? 속눈썹으로 창살을 만들어 방어를 얼마나 잘 하게 돼 있어. 이런 것들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단 말이야?' 하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학생시절에는 공산당 패들이 선생님을 싫어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세계를 걸고 싸울 훈련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을 잘 살펴 보세요. 눈을 보면 눈꺼풀이 하루에 수천 번씩 깜박거립니다. 이것이 하루만 깜박이는 걸 그만둔다면 눈이 어떻게 되겠어요? 눈꺼풀이 깜박거림으로 말미암아 눈을 말끔히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으로 기기묘묘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물샐틈없는 대비를 해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이렇게 태어난 결과의 기반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동기의 주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기의 주체는 무한한 지식의 주인공이요, 무한한 능력의 주인공으로 미래와 우리 인생의 전체를 완전히 알고 설계한 주인임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의 이름이 하나님이든 바위든 거북이든 두꺼비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분이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라

이제 하나님이 있다고 느껴져요? 아직도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르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없어요? 「예」 오늘 여러분이 여기서 해야 할 것은 자기를 보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가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의 목이 만일 나무처럼 되어 있다면 어떻겠어요?(웃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정말 신기하다는 거예요.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는지 알고 태어났습니까, 모르고 태어났습니까? 「자체는 몰랐지만 조물주는 알았습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근본적으로 안 분에 의해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태어날 때도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습니까, 모르고 태어났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이만큼 이야기했으면 여러분들하고 여기 서 있는 사람하고 처음 만났지만 상당히 가까와졌지요, 그렇지요? 「예」 그래서 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자세히 보십시오. 눈을 보면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원리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원리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원칙이 3단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손가락도 세 마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완전한 것은 삼합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손가락도 완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처녀 총각들에게 하나 물어 보겠어요. 여러분은 시집가고 장가가서 남매를 낳겠어요, 3남매를 낳겠어요? 어느 것을 원해요? 「3남매요」 (웃음)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번째 안 되면 세번째에는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말 잘 씁니다. 삼합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삼합이 맞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어른들께는 무엇을 드릴 때 받들어 드리지요?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할 때에도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지요. 왜 이렇게 하는지 알아요? 하나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셋이 되면 다 하나를 이루게 된다는 거예요. 서양식은 모두 가짜입니다. 내가 책을 하나 써 가지고 서양식을 고쳐 놓을 겁니다. 그거 좋겠죠?「예」

우리 몸의 구조를 보면 코, 귀, 입 이렇게 세 구멍이 한 구멍에 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臟器)도 폐장, 위장, 간장의 세 기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코는 인간을 상징하고,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입은 뭘 먹으니까 만물을 상징하는 겁니다. 옛말에도 코가 잘생기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코는 인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코가 잘 생기면 복이 있다는 겁니다. 둘이서 하나되는 인간인 것처럼 코도 두 개의 구멍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와 같이 전부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얼굴에는 구멍이 몇 개입니까? 일곱 개입니다. 이것은 7수를 상징합니다. 단계로 보면 눈, 코, 입 이렇게 3단계요, 귀까지 합치면 사방으로 통합니다. 그래서 이건 사방을 말합니다. 그렇지요? 이처럼 천지의 이치가 인간 하나를 중심삼고 전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한 겹 두 겹 세 겹을 벗겨야 보입니다.

이것은 밤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시가 있는 껍질, 밤껍질, 떫은 껍질을 벗겨야 밤 알맹이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인간의 성품을 뜻합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가 생길 때 눈알이 생깁니다. 그렇지요? 왜 그런 줄 알아요?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넘버원'할 때에 엄지 손가락을 이렇게 세우지요? 그렇지 않고 집게 손가락을 세우는 사람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엄지 손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뜻합니다. 엄지 손가락을 보면 두 마디입니다. 그것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거예요. 아기가 태어날 때 주먹을 쥐고 있을 것을 보면 엄지 손가락을 나머지 네 손가락이 밖에서 싸고 있지요? 이 네 개의 손가락은 천지를 뜻합니다. 그래서 3(세마디)곱하기 4(손가락 수) 해서 12마디입니다. 이것은 일년이 춘하추동 4계절과 열두 달로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상징인 엄지 손가락을 천지를 상징하는 네 손가락이 싸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원리에 딱 들어 맞는다는 거예요.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사람이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주조화에 박자를 맞추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맞추느냐 하면 사람이 맞추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맞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주가 맞추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좀더 할까요?「예」 지루하지 않아요? 「예」 여러분이 지루하다면 그만 하겠어요. 여러 사람이 싫다는데 하는 것은 악이예요. 더 할까요? 「예」

선이 가야 할 본연의 길이라는 것은 소수를 희생시켜서 대수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법도요, 인간이 순응해야 할 법도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의 마음은 욕심이 많습니다. 사람은 욕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욕심이 어디까지 갈 것이냐, 사람의 마음이 갈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나서 그보다 더 큰 가치의 것이 있다면 그것도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저기 앉아 계시는 할머니도 비록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그런 것이 있다면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못 하는 것이지, 할 수만 있다면 내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이 천지간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우주의 대주재이신 절대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이라는 말은 한국말로 하나밖에 없는 `님'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한분밖에 없는 주인, 그분이 최고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생겼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존속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도 그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그분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날뛰고 뒤넘이 치느냐? 최후에는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세계하고 하나님하고 어느 것이 귀합니까? 사람은 최고의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계명이 뭐예요? 법률입니다. 경계해서 절대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이 계명이라는 거예요. 규범이 아니라 계명입니다. 경계하는 절대적인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 외에는 그 이상의 뭐가 없다는 겁니다.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것은 그 이상은 없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그러면 양심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내 집안에 모시고 산다 하더라도 하나님 가슴속 깊이 숨겨져 있는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을 내것으로 만들기 전에는 하나님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찾아가서 안식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게 될 때 마음은 `아! 내 뜻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미남자가 세계적인 미녀를 사랑의 상대로 맞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미녀를 맞았을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앞에 대통령의 아들과 같은 자리에 들어가면 장관보다도 더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결국 마음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무엇이 되느냐?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절대자 앞에 상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절대적인 상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 상대로 설 수 있는,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 생활할 수 있는 상대적인 절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선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 묶기 위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과 인간은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통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지요?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으로 전부다 반대입니다. 여자들은 일방적인데 비하여 남자들은 삼방 사방적입니다. 또 여자들은 집안에만 있지만 남자들은 이리저리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이와 같이 성격이 전부다 반대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남성과 상대적인 여성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거예요.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예요. 사랑.

자녀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인간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면 어떤 자리에서 맺겠는가? 하나님도 생각하실 텐데 여러분도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종의 자리에서 맺고 싶은 사람 있어요? 그러길 원해요? 「원치 않습니다」 그럼 양자의 자리에서 맺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도 없구만. 어떤 자리에서 관계맺고 싶어요? 아들딸의 자리에서 맺고 싶은 것입니다. 틀림없다는 거예요.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은 곧 인간을 사랑하는 주인공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했다는 그 사랑은 어떤 자리에서의 사랑이냐? 그것은 종의 자리에서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시시한 사랑은 싫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종의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자리에서 모시고 싶습니까? 양자의 자리에서도 싫다는 것입니다. 양부모로 모시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나는 그분의 참다운 아들딸이 된 그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은 세상 인간들 앞에 어느 자리에 서겠다는 말이냐? 아버지의 자리에 서겠다는 말입니다. 즉, 부자의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하되 첫사랑을 하고 싶은 겁니다. 진짜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첫사랑의 출발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아들과 딸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딸들이예요? 또 남자들은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아들이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첫사랑을 못받았기 때문에 받으려고 허덕이는 아들딸들인 것입니다. 아들딸이 아니라 종의 자식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심은 태어날 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태어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종교 가운데 최고의 종교가 어떤 종교냐? 종교 가운데서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종교가 좋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가 좋습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가 좋습니다」 이 세상 천지에 종교가 많은데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종교가 아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도주들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들 중에서도 독생자다'라고 부르짖고 나온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아들도 여럿이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는 나밖에 없다. 독생녀도 필요없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한 독생자다'라고 주장하는 그런 도주가 있다면 그 사람은 도주 중에서도 왕 도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 문선생이 그런 종교를 찾아보니 기독교의 예수님이더라는 거예요. 예수님만이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기독교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말미암은 종교로서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이 세계를 지배할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 문화권이 명실공히 민주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중심 종교가 된 이유

하나님은 아들딸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가정을 만드시려는 겁니다. 또 그 가정을 만들어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의 친척을 만들고, 족속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또 우리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이 일치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전부가 하나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한 세상에서 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나 자신을 그 고귀한 최고봉까지 순식간에 끌고 올라가고 싶지만 오늘날 우리의 역사적인 환경이라든가, 타락의 성품에 인연되어 태어난 자신이기 때문에 이것을 박차고 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독재자의 입장에서 나를 때려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마음이 나를 올바른 길로 지도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인생 6, 70년에 하나님 앞에 가기에는 내가 너무도 먼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려몬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설파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또, `나는 맏형이고 너희는 동생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권위를 가지고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부모와 형제와 부부와 자녀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가르쳐 준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사랑을 안팎으로 갖춘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중심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를 믿는 분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알아 둘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위인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에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이순신 장군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위인은 될 수 있지만 성인은 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성인이예요, 위인이예요? 「성인입니다」 그러면 세계 4대 성인을 일컬을 때 소크라테스가 들어갑니까? 안들어갑니까? 「들어갑니다」 세계 4대 성인은 누구 누구에요?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마호메트는? 소크라테스예요, 마호메트예요? 마호메트를 성인으로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4대 성인은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 가운데 최고의 철인이지만 성인은 될 수 없습니다. 왜그러냐?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사문제를 좌우하지 못합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종교는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룹니다. 종교는 생사문제를 해결한다는 거예요. 종교를 믿음으로써 살겠다는 거예요, 죽겠다는 거예요? 종교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종교에는 생사의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와 지식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아요? 종교적인 내용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호메트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에도 위인이 많지요? 유관순 같은 사람도 위인이라고 합니다. 유관순 처녀가 열 여섯 살에 죽었지만 위인이라고 해도 누가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위인이라는 명사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애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위인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에서는 위인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위인입니까?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원수입니다. 따라서 일국에 있어서는 애국자 혹은 위인의 명패를 주지만 타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모든 국가를 초월하여 총망라한 입장에서 숭배하는 세계적인 인물이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일국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도(天道)와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나가야

그러면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륜도덕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중심삼고는 나라를 넘지 못합니다. 나라를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사상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명단에 들어간 사람은 전부다 종교의 교주라는 것입니다.

공자 같은 분은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라고 했는데 이것은 막연합니다. 천(天)이 뭐냐 할 때 이것은 막연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불교는 너무나 영적입니다. 너무 허황해서 근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 같으면서도 법적이고, 법이란 진리를 말하는 것인데 진리 같은데도 부정하니 아주 막연합니다. 또, 마호메트의 회회교는 종합적인 산물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한 계승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이 땅위에 왔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형제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 종교가 되는 겁니다. 이렇듯 종교의 교주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무슨 뜻이냐? 인간은 인정만 가지고는 세계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인륜만 가지고는 세계의 참된 뜻을 못 세운다는 거예요. 왜냐 하면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뜻에 따라서 가르쳐야 되느냐? 그것은 자기의 뜻을 중심삼고는 절대 못 하는 것입니다. 공의의 뜻, 세계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라는 도리를 알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를 따라서 천도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천도를 따라서 인도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즉, 인정을 따라서 천정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따라서 인정이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정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인정을 없애야 합니다. 천도(天道)를 세우기 위해서는 인도(人道)를 흡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핍박받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라를 굳건히 세운 인도가 있고, 그 인정의 도리에 따라 사회적 기반과 모든 체제가 갖추어져 있는 상황인데도 천도를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천정의 도리를 알고 그 도리를 중심삼고 인정에 들어가면 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목이 잘려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것입니다. 천정을 어기고 인정을 따를 수 없다 해서 종교인들은 죽음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의 운세는 국가의 운세를 좌우하되 국가의 운세는 세계의 운세를 좌우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세계의 운세를 타기 위해서 믿고 나가는데 그것이 종교입니다. 개인이나 국가의 운세는 몇백 년이면 다시 올 수있지만 종교의 운세는 몇천 년만에 한 번 오는 운세입니다. 그 한 때의 운세를 맞기 위하여 오랜 역사시대에 과중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정성을 들여 나온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이 흘러가도 종교는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예」

그러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인도와 인정을 따라갈 것이냐, 천도와 천정을 따라갈 것이냐? 둘 모두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정과 천정을 한꺼번에 쥘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하나는 버려야 하니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인도와 인정, 천정과 천도를 우리가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예요.

선과 악은 반드시 가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을 위하여 나가는 것이 천도와 천정이요, 인간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인도와 인정입니다. 이 천정과 인정이 하나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어디냐 하면, 거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하나된 자리, 즉 인정의 종착점, 천정의 발원점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면 인정의 종착점과 천정의 발원점은 어디냐?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아들로서 등극하는 그날이 천정과 인정이 개문하는 때입니다. 이때가 천지개벽의 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라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이 망하고 선한 세상이 되어 선한 사람이 부상하는 때라는 거예요. 종교는 지금까지 이 한때를 바라면서 몇천 년 만에 오는 이 운세를 타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나라들은 수천 년을 지내 오면서 망하기도 했지만 종교는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싸워 나가면 나갈수록 발전해 나왔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망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성인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

성인이란 국가적이 아니라 세계적입니다. 또한 세계적인데 인간만을 중심삼은 세계적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앞으로 아들딸을 낳을 때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고 싶어요, 그냥 그대로 역사과정에 흘러가는 인종지말(人種之末) 같은 아들딸을 낳고 싶어요? 「성인이 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고 싶습니다」 성인의 아들딸을 낳기 위해서는 천의에 의한 세계적인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천의에 의한 세계적인 사상, 이게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위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위인 앞에는 원수가 있지만 성인 앞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위인은 자기 민족만 사랑한 사람이지만 성인은 인류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위인이 하나님 앞에 나서게 될 때 `너는 네 민족은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가 찾는 세계인류를 사랑하지 못했지 않느냐'고 하면 나갈 수 없지만, 성인의 도리를 따라간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거라구요? 위인 만들자는 거예요, 성인 만들자는 거예요? 「성인이요」 성인은 이룰 `성(成)'자가 아니라 이룩할 `성(聖)'자를 씁니다. (테이프 끊김)

통일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상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더 낳아요, 못해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진짜 알게 되면 모가지가 잘려도 괜찮다고 할 겁니다. 자르는 것이 아니라 몽땅 빼 버린다고 해도 괜찮다고 할 겁니다. 사람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렇지요?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참 지독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고 살을 물어뜯는 건 아니지만 지독하긴 지독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집안 식구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에 어떻게 합니까? 솔직이 대답해 보세요.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물론 집안 식구의 생계도 걱정해야겠지만 이왕지사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하나밖에 없는 이 생명은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일생에 청춘시기는 한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식구를 위해서 살겠느냐, 자기 나라를 위해서 살겠느냐, 세계를 위해서 살겠느냐 할 때 통일교회 패들은 세계를 위해서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들은 `야 이놈의 자식아. 내가 너를 대학 공부시키기 위하여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했는데 인정 사정도 없이 도망을 가? 통일교회가 뭐냐'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야단입니다. 이렇게 하는 부모가 잘하는 부모예요, 못하는 부모예요? 어떤가 솔직이 애기해 보세요. 그런 원칙으로 볼 때 어때요? 그런 부모가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여기 처음 왔다고 하는 아저씨 잘한 거예요? 「원칙에 위반됩니다」 그 부모는 잘못한 거예요. 틀림없이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그 아들딸이 세계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데 자기 가정을 위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예요. 자식으로서 아버지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것이 도리인 줄은 알지만, 나라가 망하게 되면 가정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망할 때는 언제 나라가 망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큰 것이 살게 되면, 즉 세계가 살게 되면 나라가 사는 것이요, 민족이 사는 것이요, 종족이 사는 것이요, 가정이 사는 것이요, 부모가 사는 것이요, 형제가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것이 완전히 살게 되면 작은 것들도 자연히 완전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세계를 위하는 사상입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통일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세상으로부터 욕먹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선생님이 하는 것을 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을 보면 하는 것은 거창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 10개국의 사람들을 모아다가 합동결혼식을 했습니다. 원래는 777쌍을 한다고 약속을 했지만 실지로는 791쌍을 해주었습니다. 약속은 그렇게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약혼하고 축복행사를 치를 때 군대 간다거나 아파 가지고 참석 못하는 사람이 생겨서 수가 적게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791쌍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일본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수백 명씩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겠습니까? 일본 사람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가치를 가졌지만 세계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결혼이라는 사상만 박히면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치를 인식만 하게 되면 장소가 어디가 되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국으로 오라고 하면 일본 사람이고 미국 사람이고 다 `예'하고 오는 겁니다. 이의가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앞으로는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할 것 없이 세계 모든 사람들을 한국으로 오게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불쌍한 나라 한국에 관광호텔을 지어서 많은 달러가 들어오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대한민국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해방 직후부터 맞아 들였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내가 다 먹여 살리고 잘살게 했을 것입니다. 현재 경제개발 5개년계획 2차년도 다 하면서 야단하고 있지만 선생님만 맞아들였더라면 벌써 수십년 전에 그렇게 되었을 거예요. 선생님을 맞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지지리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뜻과 나라를 위해 자신과 가정을 희생시키라

선생님은 때가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791쌍 합동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전부다 동원시킨 것입니다.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들, 동네방네에서는 이 문선생을 욕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욕을 할 테면 해라. 나는 양심적으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어지러운 이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고 앞으로 막혀 있는 이 나라의 길을 세계로 나갈 수 있게 열기 위해서는 천리공법에 의해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 때문에 못 하겠다는 사람은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걸 분명하게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종교입니다. 이번에 축복받은 가정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세상에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또 자기 처자식을 거느리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예요. 여기 서 있는 선생님도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부모 앞에 불효자입니다.

선생님은 왜정때부터 감옥살이를 했어요. 그때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찾아와 가지고 눈물을 쏟는 어머니에게 `나는 졸장부가 아닙니다. 아녀자의 눈물은 원치 않아요. 자식을 사랑하거든 자식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자식이 나라를 위하다 죽을 고비에 있더라도 어머니로서 당당히 나타나서 힘껏 싸우라고 권고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야 어머니로서 당당하지 않겠습니까? 아들은 이렇게 하고자 하는데 하늘땅 앞에 위신이 있지요' 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나를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내 앞에 와서는 언제나 눈치만 봅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용서가 없거든요. 조여대는 거예요. 이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불효 중의 불효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는 다르다는 거예요. 아들은 천법과 천도를 아는 가치적인 어머니를 보고자 하는데 그 꼴이 뭐냐는 것입니다. 용서를 안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공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머니라 할지라도 모르는 한 아녀자로서, 한 여자로서 충고하는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까? `아이구, 어머니 나 살려줘요.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이런 사람이 효자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는 못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북 공산당 치하에서 감옥생활을 했고 이남에 내려와서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통일교회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자신의 아들딸이 감옥생활하는 것보다 더 애석한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과 눈물어린 상봉의 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별의별 놀음을 다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차원이 어디서부터 벌어졌느냐는 겁니다. 만일 선생님이 내 행복을 위하여, 내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감옥생활을 했다면 그들이 그런 일을 했겠어요? 그랬다면 그들은 벌써 떨어져 나갔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키라'고 말합니다. 선생님 가정은 완전히 희생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버렸고, 처자를 버렸고, 친척을 버렸습니다. 뜻을 위해서는 이용하자는 겁니다. 있는 재산도 다 털어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내 가정을 희생시킴으로서 나라가 주권을 찾아서 부흥하게 될 때는 그 나라는 그런 사람과 그런 가정의 역사를 밟고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만 년 미래의 행복과 더불어 그 가정을 추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의 부흥과 더불어 그 가정도 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업혀가는 가정이 아니라 나라를 업고 갈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인은 누구나 그런 길을 거쳐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을 사랑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용하려고 합니까, 사랑합니까?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매일 떡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을 통일교인들은 다 압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예」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선생님 가정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교단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유

삼천만 민중이 잠들어 있는 이 땅 위에, 주인이 없는 이 황막한 사막과 같은 삼천리 반도 위에 사막의 태풍이 불어오면 모든 옥토가 일시에 모래산으로 변해 버릴 것입니다. 이 나라가 이런 위험천만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고스란히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선입니다」 만일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가 망한다고 내 목을 잘라도 좋습니다. 오직 네 생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하라는 거예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러니 자기 생명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고, 자기 사식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러한 나라를 자르는 천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가정이 단 한 가정이라도 있다면 이 대한민국이 아무리 공산당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공산당이 오는 길을 막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일발의 국내 및 아시아 정세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일선에서 피눈물을 뿌려서라도 앞으로 이 민족에게 닥쳐올 수 있는 비참사를 막아내는 제물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통일교회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무슨 원수예요? 언제는 잘살라고 축복해 주더니 이제는 근근득생(僅僅得生)으로 살고 있는 살림살이를 발로 탁 차 버리고 가라니 이건 마적 중에서도 그런 마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황마적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선생님에게 불평하는 통일교인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거예요. 불평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불평 없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이게 무섭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의 아들딸도 문선생을 위하여 살게끔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문선생을 위하여 살도록 아들딸을 만든다면 칼로 내 옆구리를 찌르라는 거예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하는 아들딸로 만들어야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아들딸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부모가 있다면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런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며 움직이고 있지만 나라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초국가적이요, 초민족적이요, 초인종적인 입장에서 국경을 넘어서 서로가 사랑하고 생명까지도 엇바꿀 수 있는 대가정을 만들자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피가 통하고 생명이 통할 수 있고 사랑으로 엉길 수 있는 하나의 대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통일교회의 사상이요, 세계적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종교라는 명찰도 떼고 하나님도 빼 버리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빼놓고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인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정이 동해야 되는 거예요. 하늘이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러한 세계적 사상을 지녀야 합니다.

인간이 가야 할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 다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총수습하여 결론을 짓겠습니다. `나'를 두고 봅시다. 여러분이 세계적 사상을 가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워요, 안 싸워요? 싸우지요? 「예」 그러면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생각이 둘이 될 수 있어요?

하나겠어요, 둘이겠어요? 절대자의 생각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자의 생각은 법도를 따라서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세워집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인격자일수록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갑니다. 그것은 천년이 가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격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천(山川)은 고금동(古今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조석으로 변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폐품으로도 이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목적하는 바도 하나입니다.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목적을 두고 사람을 지었다면 그 지음받은 사람이 어찌해서 두 목적의 사람이 되었느냐는 거예요. 마음이 목적하는 것과 몸이 목적하는 것이 왜 다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는 타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목적이 하나일 텐데 그런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목적은 몸의 몸적과 마음의 목적, 둘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목적의 길을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절대적인 목적의 자리에 가야 할 텐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그 길을 가려면 먼저 몸과 마음 중에서 어느 것에 치중해야 되는가가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 가운데 어느 것이 선한 것입니까? 마음이 선합니까, 몸이 선합니까? 「마음이 선합니다」 마음이 선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마음을 위주로 해 가지고 몸뚱이를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뭐냐?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갖추어서 하나님을 숭상하고 천도를 숭상하면서 천정을 따르라, 천도를 중심삼고 천정을 따라 마음의 방향을 일치시켜 가지고 거기에 배치되는 일체의 몸의 욕망을 끊어 버리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절대적인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도를 숭상하면서 천정을 따라간 분들이 예수 같은 성인들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므로 종교가 치리하는 것은 마음을 제거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즉 육정(肉情)을 제거시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난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두 주인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복잡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교리입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갖게 되었는데 어떻게 갖게 되었느냐? 혈통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시키느냐? 천의를 중심삼고 천정을 따라 마음이 하나된 기반 위에서 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종교는 몸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몸을 주관할 수 있는 첫번째 방안

그러면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기 위한 첫째 방안은 무엇이냐? 몸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몸을 치라는 거예요. 몸이 하자는 것 일체를 완전히 부정하라는 거예요. 어느 정도 부정해야 되느냐? 완전 부정하라는 겁니다.

죽었다 하는 자리까지 부정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이런 역설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완전히 죽어서 마음화되어 마음이 완전히 살아 있는 형태의 입장에 서지 못하면 하나로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을 완전히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완전히 사는 것이요, 마음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몸은 살아 있지만 완전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처자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천정의 대표자로서 오셨기에 천정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에게 천정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육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는 육(肉)을 중심삼은 관계입니다. 이 육정을 끊지 않으면 천정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천정을 따라가려면 육정을 부정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모보다도, 처자식보다도, 형제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천국에 갈 수 있는 공식적인 표를 어디서 받느냐?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데에서 받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육정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첫째 목적은 강제로라도 때려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몸뚱이가 온유겸손할까요? 몸뚱이는 자꾸 올라가려하고 교만하려고 합니다. 먹여 주면 자꾸 더 먹으려 하고, 쉬게 해주면 자꾸 더 쉬려 하고, 위해 주면 자꾸 더 위해 달라고 합니다. 따라서 몸뚱이는 악의 바탕이요, 악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악과 선의 뿌리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되고, 악한 데는 가지도 말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는 천도와 천정의 도리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정과 인도는 모든 일에서 사탄과 악을 중심삼고 출발시키기 쉽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부정할 수 있는 첫째 방안은 육신을 구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정성들이면 몸뚱이가 기운이 쭉 빠져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희생봉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전부 육신이 싫어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육신과의 모든 관계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모든 종교의 경서를 보십시오. 잘먹고 잘살라는 내용이 있는 경서가 있습니까? 그런 경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는 희생봉사,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서도 남을 위해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뚱이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육체를 때려 잡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대등하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몸뚱이를 약하게 함으로써 마음이 득세해 가지고 약하게 된 몸뚱이를 몇 달 동안 끌고 넘어가게 되면 몸뚱이를 다시 올려 놓아도 올라올 수 없게끔 습관화 되어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하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잘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냥 놔두어도 돌아 갈래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을 위주로 한 절대적인 자리에서 생애를 엮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생활의 목적입니다.

몸을 주관할 수 있는 두번째 방안

그 다음에 몸을 주관할 수 있는 두번째 방안이 무엇이냐? 마음과 몸이 비슷비슷하니까 싸움을 한다는 거예요. 레슬링 세계 챔피언하고 유치원 어린이하고 상대가 됩니까? 그것은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서로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방안은 마음에다 힘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쌓아 올리면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 마음 문이 열리기만 하면 아주 강력한 힘이 나오기 때문에 몸뚱이 같은 건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그걸 모를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비슷비슷한데 마음의 힘이 몸의 3배만 되어도 몸뚱이는 문제가 안 됩니다. 몸을 그냥 그대로 두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힘을 압축시켜 가지고 몸을 일시에 끌고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통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도를 통하게 되면 마음에서 강력한 힘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 할수록 메슥메슥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도를 통한 사람은 마음에 강력한 힘이 옴으로 말미암아 그냥 그대로 놓아 두더라도 몸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방법 이외에는 몸뚱이를 조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몸의 지배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러한 작전을 펴 나오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도 지금 그러한 공식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자연히 인간으로서 가야 할 고차적인 자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스스로 자각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의 권위에 미칠 사람이 없습니다. 홀로 스스로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홀로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 하나님이 지은 피조세계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되니 홀로 높다고 자각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까지 가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존의 바탕

여기에서 한 가지 첨부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영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면 할수록 힘이 소모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힘은 작용하게 되면 소모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작용을 했는데 오히려 힘이 솟아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현상세계, 자연세계의 공식입니다. 그런데 이 공식에 어긋나고 상충되는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힘이라는 것이 뭐예요? 전기 모터나 발전기를 중심삼고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을 보면 들어오는 힘이 나가는 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는 힘은 언제나 작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운동을 하는 가운데 힘의 소모가 벌어지기 때문에 나가는 힘은 들어오는 힘보다 언제나 작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힘의 원칙입니다. 들어가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작기 때문에 그 힘을 같게 해주기 위해서 휘발유를 태우고 하는 것입니다. 작용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보충을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는 영속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나 단 한가지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해 주었다 할 때는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보다 적게 마이너스시켜 가지고 돌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진정한 사랑을 열만큼 받았으면 돌려줄 때는 더 보태서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부모는 천번 만번 희생하면서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되돌려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은 아들딸은 더 보태서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순전한, 완전한 사랑은 주면 줄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면 줄수록 플러스가 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용하면 할수록 들어오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작용하고 나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지 않고서는 영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태 주는 힘의 작용이 없으면 영존할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영존할 수 있는 바탕이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큰 힘이 내재할 수 있으므로, 그런 입장에 선 존재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고 사랑 가운데서 죽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을 이상의 요소로 삼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민족과 인종을 넘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보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사랑하게 되면 끝날에는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알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중심사상이요, 우리가 바라는 목적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이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갈 길'입니다. 거기에 비로소 소망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인생의 갈 길에는 이렇게 고차적인 내용이 앞놓아져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망권내에 있는 저희들의 모습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던 과거를 뉘우쳐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인생이 추구해야 할 본연의 기준을 잃어버린 자체를 스스로 탄식하고 내일의 소망의 실체를 계발하기 위하여 온갖 충성과 정성을 다하여 그 길을 타개해 갈 수 있게끔 역사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인연된 의정부 지구권내의 식구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시옵소서. 이렇게 만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배후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세월 동안 섭리적인 내연을 통해 엮어진 사연을 현실적인 결과를 통하여 열매로 거두게 하시려는 아버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만남의 은사를 내려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들이 마음 마음을 묶으시어서 천정의 인연을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만나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또다시 가야 하라 길이 있사오니 갈 길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이들과 다시 만날 때까지 이들의 생활과 환경을 아버지께서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큰 소망과 즐거움을 가지고 민족의 해방과 세계의 해방을 맞이하여 당신 앞에 영광을 돌릴 때까지 저희들은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고 새로운 맹세와 결의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주관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아왔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나라를 바라보고 이 땅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반대를 받고 이방으로 쫓겨났던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도 기독교를 중심삼고 선생님과 하나되게끔 하늘이 준비를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이 나라가 반대하여 선생님을 쫓아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합하여 예수님을 반대하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북에 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주체로 서지 못하게 되면 원수 세계에 갔다 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도 애급에 갔다 왔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원수 세계에 갔다 와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받았으나 발전해 온 통일교회

옛날 유대 나라의 원수는 애급이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원수는 공산당입니다. 공산당들이 내게는 마지막 원수라는 거예요. 이 공산당들은 세계적입니다. 그렇지요? 민족적인 원수가 아닌 세계적인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 원수 세계에 가서 예수님이 찾아야 할 원칙적인 조건을 찾아 가지고 남한에 내려와 통일교회를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남한땅도 결국은 사탄권내에 전부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기독교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따르고, 아무리 하나님을 불렀더라도 전부다 썩어져 내린 것입니다. 결국 통일교회의 21년노정이 끝나게 되면 기성교회에 내리던 은혜는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30년이 못 가서 통일교회 앞에 완전히 항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두고 보세요. 그런가, 안 그런가. 통일교회가 반대를 받고 있지만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실패했던 것을 통일교회가 다시 민족과 교회를 중심삼고, 즉 대한민국과 기독교를 중심삼고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이 해방시켜야 할 차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반대를 받았지만, 원수세계인 이북에서 돌아온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출발했습니다. 선생님을 잡아 죽이려고 자유당 정부, 민주당 정부, 혁명정부 전부다 별의별 수작을 다 했습니다. 그 바람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과 기독교가 사탄권내로 넘어갔기 때문에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나오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유대교가 예수님을 반대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교 대신 새로운 교단을 세우려고 하다가 죽어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통일교회도 몰림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예수처럼 죽는 그런 졸장부는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운명길을 걸어오면서도 죽지 않고, 기독교가 반대했지만 그 반대한 기독교를 집어치우고 새로이 통일교단이라는 하나의 종단을 편성했던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반대하면 그들이 없더라도 선생님은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환영할 수 있는 종단으로서 통일교회를 만들어 가지고, 옛날 예수님을 반대하던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반대하던 대한민국의 기성교회와 대등한 단계까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점점 번성할 것이요, 기성교회는 점점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기성교회는 지금 나 때문에 큰 야단이 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알지요? 종교협의회의 7대 종교에서 지금 통일교회 하나앞에 질질 매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그들과 대등한 자리에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하는 대한민국을 승공활동을 통해서 안팎으로 꽉 잡아 놨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의 승공이론, 통일사상을 몰라 가지고는 승공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반공사상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택리 소련소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반공은 통일사상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라가 우리를 반대할 길을 딱 막아 놓았습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해서 예수를 죽였지요?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는 나라가 반대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반대하던 기독교 대신 통일교단을 앞에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천운을 맞아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던 길을 벗어나서 부활의 행로를 거쳐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70년대는 여자들이 탕감복귀해야 할 때

선생님이 뜻길을 처음 출발할 때, 기독교가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자리를 잡았을 것이며, 그와 더불어 기독교와 대한민국과 미국이 한꺼번에 기반이 되어서 세계를 중심삼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를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사탄권내에 돌아 들어오느니만큼 계속 반대하게 되면 나라의 갈 길과, 교회의 갈 길과, 세계의 갈 길이 전부다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반대를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반대된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와 하나만 되면, 대한민국은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문제가 무엇이냐?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을 중심한 종족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예수를 받들지 못하고 반대함으로써 결국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와 같은 때를 맞아 잃어버린 종족권을 찾아야 할 입장에 세워진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잃어버린 종족복귀의 터전이 갖춰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면 교회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냐면, 여자들이 일해야 할 때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여자가 먼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는 개인을 대표한 여자들을 앞에 세워 가지고 개척하는 때였고, 70년대는 가정을 대표한 여자들을 앞에 세워 가지고 가정의 갈 길을 탕감복귀하는 때인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것이 무엇이냐? 종족이 가야 할 탕감의 길이 아니라 민족이 가야 할 탕감의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앞으로 한번 더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때는 여러분만 동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부모와 아들딸 전부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한때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여자들만 동원되었지만 민족복귀시대는 가정 전체가 들어가기 때문에 남편도, 아들딸도 다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나라를 찾는 데에 가정 전체가 동원되어 찾았다는 입장에 서야만 천국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두에는 누가 서야 되느냐? 여자가 서야 합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이 북한의 인민군대에 남자들을 때려잡지 못하면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상적으로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따라서 통일교회 여자들은 인민군들을 산 채로 삼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착같고 지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섭다는 여자들은 아예 통일교회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솔직이 얘기하지만,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래야 하느냐하면, 누구로 인하여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습니까? 천사장을 누가 끌어들였어요? 해와가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면 세계적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것이 누구입니까? 「공산당」 공산당입니다. 이것은 여자로 말미암아 들어온 최고의 괴물이기 때문에 최고의 괴물된 여자가 최고의 괴물된 남자들을 삼켜 버려야 됩니다. 최고의 괴물된 여자들은 선편에 선 여자이면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최고의 괴물된 여성을 만들어 가지고, 사탄인 공산당을 삼켜버릴 수 있는 사상으로 무장하게끔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훈련과정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의정부 지역에서 여러분이 전도하기 위해 밤에 돌아다니면 때로 양공주로 오해를 받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여러분을 보고 기분이 나쁘다고 침도 뱉을 것입니다. 똑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입장에서는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는 천지차이라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어떤 여자한테 걸리면 사는 것이요, 어떤 여자한테 걸리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정부라든가, 서울 북방 지역에 있는 통일교회 여자들은 맹렬히 싸울지어다! 그래서 의정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정부가 무엇 하는 곳인지 알아요? 의정부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예요? 의정부는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곳입니다. 이 의정부 지역 여자들은 골동품같이 잘 살아야 됩니다. 이제 여자들이 얼마나 강해야 되는지 알겠지요? 「예」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군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갑니다. 어떠한 남자도 통일교회 여자들은 이기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다 칼을 품고 다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무서운 패들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절개는 여자의 생명이예요.

전체가 하나되어 예수를 모셨더라면

예수가 왜 죽게 되었느냐? 예수가 장가를 들었다면 죽었겠어요, 안 죽었겠어요? 기성교회 아줌마가 와서 이 말을 듣는다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를 들다니….' 할 겁니다. 여러분, 예수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다」 남자로 태어났는데 남자의 소성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여자가 있으면 `내 신부로 삼았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건 물어 보나마나라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이 있으면 여러분들의 의심나는 것을 전부 풀어 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이 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 다시 한번 만나자구요. 이런 내용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 겁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여자가 있는 줄 알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로 태어난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로 온 예수가 장가가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들은 뭐가 되겠어요? 하나님의 손자, 손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손자 손녀를 보고 싫어하겠습니까, 좋아하시겠습니까? 물어 볼 것도 없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죽은 동기가 어디 있느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장가 보내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이 맺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갈릴리의 남의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말하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때렸던 것입니다. 시시하다는 거예요. 자식이 가야 할 앞 길은 닦아 주지 않고 무슨 수작이냐는 거예요. 예수의 사정이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믿고 있습니다. 뭐 천당가고, 신부가 되겠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신랑의 사정이 어떻고 신랑의 역사가 어떠한가, 신랑이 어떠한 외로움을 느끼고, 어떠한 고통을 당했는가 하는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모셔야 될 것 아니예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예수가 고생했거니….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싱겁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런 기성교인들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예수가 죽게 된 것은 이 땅에 신부로 맞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부는 누가 되느냐?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신부될 수 있어요? 예수님이 남자인데, 남자가 신부가 될 수 있어요? 신부는 여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자가 예수님을 죽게 한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자는 죄가 많다는 거예요. 여자는 고생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자들에게 유린을 당하고 위협을 당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도 절개를 지켜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남자가 절개를 지키지 않고 잘못하게 되면 그 문중이 뜻 앞에 중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감님들이라고 해서 바람을 피워도 괜찮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잘못하면 그 문중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통일사상을 알게 되면 그럴 수 없습니다.

결국 신랑으로 받들 수 있는 하나의 신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어머니가 책임을 못 했고, 할머니가 책임을 못 했고, 동네 아줌마들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가 죽게 된 것입니다. 자기 친척이나 동네 총각 중에 30세가 넘은 사람이 있으면 장가 보낼 준비를 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요?

예수가 장가가는 데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수속을 거쳐야 됩니다. 원리에서 배운 것처럼 예수는 역사적 대표로 승리해야 할 주인이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실패한 것을 전부 바로잡아 놓은 자리에서 결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협조자가 얼마나 많아야 되겠어요? 절대적으로 문중 전체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가 하자는 대로 전부 순응하며 받들어 주어야만 가능한 것인데, 가정과 친척이 전부 다 나가자빠졌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들만이라도 단결해 가지고 예수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뜻을 이루려고 바라봤던 문중이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이 집을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가 왜 집을 나갔겠어요?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가 죽은 것은 여자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남자, 즉 할아버지라든가 아버지라든가 아저씨들이 그것을 알아 가지고 예수를 협조하는 입장에 섰다면 안 죽었을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여자들이 먼저 잘못했지만, 남자들도 따라 잘못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할 통일교회 식구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은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잘 길러 가지고 그 터전 위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 그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예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중심존재가 오면 그와 하나되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게끔, 예수를 지독하게 사랑하게끔 만들어 주기 위해서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이 유대 나라요, 유대교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가 그를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가 그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의 한은 무엇이냐? 나라를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고, 교회를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 한입니다. 또 부모를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고, 형제를 사랑할래야 할 수 없었고, 친척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자기를 배척하고 내몰았기 때문에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한은 무엇이냐?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아들 딸을 가진 아저씨로, 손자 손녀를 가진 할아버지로 모셔야 됩니다. 이렇듯 예수의 족속을 모셔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의 한입니다. 그 한을 여러분이 풀어야 됩니다. 남자는 예수의 자리에 서고 여자는 예수의 아내의 자리에 서 가지고 예수를 중심삼고 맺힌 하나님의 한, 예수의 한,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일시에 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못갑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말은 누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를 실패하게 했던 식구가 아니라 성사시킬 수 있는 식구요, 예수를 반대했던 종족이 아니라 환영하는 종족이요, 예수를 반대했던 유대교단이 아니라 예수를 환영하는 통일교단이다, 또한 예수를 반대했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를 환영할 수 있는 대한민국인 것입니다. 이런 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대한민국도 환영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고, 통일교회도 기독교를 대신한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종족도 갖게 되었고, 가정도 개인도 부모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자는 예수의 신부 대신 자리에, 남자는 예수 대신의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하지 못한 것을 해야 됩니다. 예수가 하지 못한 것이 뭐냐? 나라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요, 교회를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나라도 사랑해야 하지만, 비록 우리를 반대하는 나라라 해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이 아무리 지껄여야 선생님이 반박 성명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벌거벗고 춤추고, 뭐가 어떻고, 별의별 세상의 잘못한 것은 다 뒤집어 쓰고 부당한 소리를 듣고도 다 참았지 선생님이 언제 한마디 반박하는 성명을 내는 것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못난이 모양으로 가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못나서 그러겠어요? 원수를 끝까지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수십년 동안 반대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사랑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피땀 흘리며 나온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별의별 짓을 다한 용서 못할 원수들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기성교회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가지고 초교파 운동이니, 종교협의회 운동이니, 그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려면 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망하나? 통일교회는 절대 안 망합니다. 악이 선을 쳐 가지고 선이 망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이 악을 치는 날에는 마지막입니다. 앞으로 조금만 지나면 우리가 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을 칠 때가 오는 거예요. 그때는 심판하는 때입니다. 마지막 때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선생님이 참고 나온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참고 나왔기에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발전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선은 맞을수록 번식해

내가 지금 박대통령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병철, 조중훈 이런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나라를 업고 발전하였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도 그들이 먹고 사는 것 이상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전도만 하게 되면 집도 생기고 차도 얼마든지 생기는 것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기반이 닦여 있습니다. 누가 더 훌륭해요? 누가 더 좋겠어요?

그 사람들은 전부 다 속이고 강제적으로 해서 자리를 잡은 것이지만 선생님은 진정으로 내 생명을 위하는 이상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명령에 따라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걸 볼 때, 누가 승리한 거예요? 선생님이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승리를 했는데 어떻게 승리를 했느냐? 주먹으로 싸워 승리한 것이 아니라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서 승리한 것입니다. 욕을 먹지만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은 맞으면 맞을수록 번식하는 것입니다. 동네에 선한 사람이 있는데 악한 사람 한 사람이 그를 반대하게 되면, 선한 사람한테는 두 사람의 친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반대하게 되면 그 몇 배의 사람이 협조하는 것이요, 세 사람이 반대하게 될 때에는 그 동네 전체가 협조하면서 반대하는 그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선은 맞으면 맞을수록 흥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에게는 가정도 있고 친척도 있습니다. 그 친척 가운데는 예수를 사랑하지 못했던 연령의 친척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통일교회 안에서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식구 중에 자기 아들 같은 연령의 사람이 있으면 그를 예수로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처럼 보지 말라는 거예요. 예수를 중심삼고 아저씨 입장에서, 할아버지 입장에서, 교회 입장에서, 나라를 대표한 입장에서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삼아 아저씨 입장에서, 할아버지 입장에서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해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통일교회의 젊은 사람들은 그들을 대해서 예수의 누나와 같이, 아저씨와 같이, 할아버지와 같이, 할머니와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동생 같은 사람들이 있걸랑 예수가 사랑하지 못하였던 동생같이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맺힌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 끼리끼리는 뭘 하느냐? 예수의 아들딸을 못 모신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기 때문에, 나 자신은 희생하고 죽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선한 예수의 아들딸과 같은 아들딸을 남겨냐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민족적 한을 풀 수 있는 예수의 아들딸과 같은 아들딸을 남기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완전히 벗어나야 되므로 믿음의 세 아들딸을 중심삼고, 열 두 제자를 세우고, 그들을 중심삼고 72수와 120수를 거쳐야 된다는 원리적인 가르침이 있지요. 알겠어요? 「예」 전부 다 공적인 노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한과 예수의 한과 민족의 한을 풀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통일교회가 승리적 기독교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승리적 국가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승리적 세계의 권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세계는 통일교회 운세권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기성교회를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만 굴복시키게 되면 대한민국은 복귀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원칙

하나님께서 하나의 아벨권 국가를 만들기 위해 남한과 북한으로 분립시켜 놓은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몸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갈라진 입장에 있지 않은 나라에는 주님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을 보더라도 몸과 마음 두 갈래이듯이 가정도 두 갈래고, 종족도 두 갈래고, 민족도 두 갈래고, 국가도 두 갈래고, 세계도 두 갈래고, 전부다 두 갈래로 갈라진 것입니다. 개인이 몸과 마음으로 갈라져 있고, 가정도 두 파로 갈라져 있고, 종족도 두 파로 갈라져 있고, 국가의 정당을 보더라도 여당과 야당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당이 아니라 서로 믿지 못하는 당이기 때문에 서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봐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두 패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모두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느냐? 몸과 마음이 갈라진 사람으로부터 출발했으니 세계적으로 그렇게 거두어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심기를 그렇게 심었으니 거둘때도 그렇게 거두어야 되는 거예요.

아담 해와가 십대의 청소년 시절에 타락의 씨를 뿌렸지요? 나무 그늘 아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사랑의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거두어질 때가 왔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십대의 청소년들이 그늘 아래에서 윤락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었으니 그렇게 거두는 거예요. 사랑으로 타락했으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 바람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여기에 말려 들어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다 바로잡고, 지구성에서 몰아내기 위해 등장한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알겠어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오늘날의 트위시트 춤은 뱀 춤입니다. 꼬이는 사탄의 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통일교회 청년들에게 그런 춤을 추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연예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특히 남자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의 위신이 있지 여자를 따라다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따라가게 되어 있지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서 타락했지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을 때 아담이 해와한테 홀려서 따 먹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 궁둥이 따라다니는 사람은 전부 다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망운에 휘말려 쓰러지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따라가야 됩니까? 여자가 남자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다는 거예요. 나는 지금까지 여자를 따라다니는 법이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여자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시시하게 여자 궁둥이나 따라다니는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그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여자가 추파를 보내도 내가 한번 돌아보지도 않아요. 그래도 여러분은 선생님이 좋아요? 「예」 여러분들이 섭섭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다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이나 선생님 말을 자기 남편의 말보다 더 잘 듣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야단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전부 다 바람이 났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바람은 바람인데 무슨 바람이냐? 세상 바람이 아니라 하늘 바람입니다. 그 바람이 안나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청소년 문제가 크게 문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나라도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대학가에서 데모할까봐 제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선생님이 콘트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학가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전부 요리할 거라구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궁둥이 따라다니는 남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여자의 절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자의 절개도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의 절개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집을 갔으면 신랑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선생님 말보다도 신랑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원칙인데 왜 말 안 듣고 나왔어요? (웃음) 남편의 말을 안 들을까봐 선생님이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선생님이 동원 안 시켜 줄까봐 걱정하는 남편은 있을 수 있지만 동원시킨다고 걱정하는 남편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남자가 있다면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나아요.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사람 외에는 한 사람도 동원시키지 않았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라

여기 부인이 동원되어 나간 사람 손들어 보세요. 많구만. 그런데 아내를 내보내고 밥해 먹고 사는 맛이 어때요?(웃음) 색시가 귀한 줄 이제 알겠지요? 자기의 아내가 천만금보다 귀한 아내라는 걸 알게 된다는 거예요. 남편들이 애기를 안고 우유병에 우유를 넣어 먹여도 보고, 울고 불고 하면서 똥 싸고 오줌 싸는 애기를 보는 맛을 잘 보고 있다는 거예요. 3개월 이상 이렇게 남편들이 피땀 흘리고 하다 보면 `하나님 나 좀 도와 주십시오'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아내가 돌아오면 그간의 사정을 주욱 얘기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내가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렸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거꾸로입니다. 지금까지는 `주여, 오시옵소서'했지만 이제는 '신부여, 오시옵소서'해야 합니다. (웃음) 이렇게 탕감복귀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삼년 동안 지낼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겠지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런 일을 시키겠어요? 안 하면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물론이고, 동네방네 사람들 전부가 선생님한테 별의별 욕을 다 해도 좋다는 거예요. 욕을 얻어먹어도 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뭘 몰라서 욕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간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기간에 축복가정들은 자녀들을 전부 다 할머니 할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맡기는 거예요. 그 손자 손녀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맡아 기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옛날에는 반대한 부모들이었지만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 부모들을 복받게 하려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욕먹을 것을 몰라서 그 일을 시키겠어요? 이치가 훤한데 말예요. 욕을 먹을 것을 알지만 미운 손자 손녀 녀석들 기른 것으로 그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가서 십년이 가도록 명절 때에도 한번 찾아오지 않는 그 불효자식의 새끼들을 기른 것으로, 불효하는 것 때문에 하늘 가는 길을 반대하며 원한 맺히게 했던 그 어머니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살려 주려니까 욕을 먹더라도 불가피하다는 것이요, 내가 선한 입장에서 서려니 그 일을 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살려 주기 위해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번 때에 피땀 흘리고 수고한 여러분들의 아버지 어머니, 즉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선생님이 표창할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딸을 고생시키고 제물삼아서 나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게 될 때, 통일교인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또 남편들은 3년 동안 여자의 치마를 붙들고 정성들여야 되는 거예요. 3년 동안 아들딸을 맡아 기르면서 아내를 위해 정성들여 주어야 그 가정이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중심삼고 가정적 원한이 맺혔던 것이 다시 땅 위에서 풀리겠기에 천도를 바로잡기 위한 이것은 불가피하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동원 되었으니 생명을 다해서 충성하라는 겁니다. 물론 선생님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은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아내가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내가 되라는 겁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사랑했고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자격을 갖춘, 그런 패스권을 얻은 후에 자기 남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내가 이상적인 아내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아내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으니, 그 소망을 이루게 될 때 비로소 역사상에 없던 그 부부는 선의 조상으로서 새로이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 할머니, 데리고 있는 아이가 외손녀예요? 「네, 외손녀입니다」 그래야지요. 이렇게 늙은 할머니가 애기들을 돌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 됐지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축복가정들을 동원시킨 이유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욕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대한민국 사람치고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느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한 가지만 얘기하겠어요.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을 못 갑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을 못 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해서 찾아 축복해 준 그야말로 사랑받아야 될, 고생해서는 안 될 통일교회 축복가정이지만, 천국 백성을 만들려니 그들을 전부다 고아 신세의 자리에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백성 앞에 제물로 삼아서 그들이 싫다 하더라도 품에 품고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 줌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원한의 터전을 허물어 버리고 하늘 앞에 방향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생님 앞에 `황공 하옵니다'하고 감사해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남편을 버리고, 아들딸을 버리고 나온 몸입니다. 오직 한 길밖에 없는 충성의 길을 찾아 따라 나선 여러분들이니 피눈물을 흘리면서 정성을 다하고 생명력을 다 기울여서 그 땅을 붙들고, 그 나라를 붙들고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무릎이 소가죽처럼 되고, 얼굴이 야위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여자로서 한 맺히게 했던, 타락의 원한을 탕감해야만 합니다.

타락 이후 지금까지 6천년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모자협조 노정밖에 못 찾아 나왔습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자협조 노정밖에 찾아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볼때, 여러분은 해와의 입장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지금까지 모자협조를 했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아들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뜻을 중심삼은 일선이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면 하나님과 하나되고, 부모와 하나되지요? 즉, 하나님이 협조하시고 부모가 여러분을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여러분들의 아들딸이 돌아오게 되고 여러분의 남편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가정 전체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반대를 하지만 외손녀를 품에 안고 `아이고, 이 원수야' 하면서도 `언제 돌아올 것인가' 하여 초조하게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가 여기에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해와 한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버렸고, 부모의 길이 끊어져 버렸고, 친척과 종족과 아들딸과 아내의 길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해와 하나가 잃어버렸던 것을 한꺼번에 탕감하려니 축복가정을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통일교회 선생님이 관심을 갖고, 어머니가 관심을 갖고, 여러분의 친척이 관심을 갖고, 여러분의 남편과 아들딸이 전부 다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통일된 심정의 일치점을 가질 수 있는 때는 이런 한때밖에 없기에, 이것을 해원성사하려니 불가피하게 여러분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모자협조를 할 수 있는 그 한 길만을 찾아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해와로 말미암아 부모와 처자와 친족과 종족과 민족 전체가 갈라지게 되었던 한을 풀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를 거쳐 나온 통일교회가 동서남북 사방을 중심삼고 그 전체를 한꺼번에 총합하여 일체의 한을 풀 수 있는 심정적 통일의 기원을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지금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터전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알겠어요? 「예」

남편들의 책임

그러니 남편들은 아들딸들에게 교육을 해야 됩니다. `너의 엄마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룩한 일을 위해 나가셨다. 이 아빠도 엄마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고 너도 엄마 아빠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된다'고 눈물 어린 교육을 해야 합니다.

`엄마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수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 겨울 밤에도 엄마는 추운 방에 누워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이렇게 따뜻한 방에서 이불 덥고 자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해야 한다. 엄마가 저렇게 하는 것은 우리를 살펴 주고, 우리의 갈길을 닦아 주기 위해서이며, 아빠가 잘되고, 너희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너의 엄마는 세계에도 없는 엄마다' 이렇게 남편들은 자녀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이 다음엔 아빠도 그 길을 가야 하는데, 너도 크거든 엄마가 가는 길을 이어받아서 우리 같이 가자' 하면서 엄마를 중심삼고 부자지간에 혹은 부녀지간에 눈물어린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가정이 엄마의 길을 상속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들 알겠습니까? 「예」

그런데 남편들이 집에서 `이 여자가 언제 올 거야? 선생님만은 잘모시는구만' 이런 말을 자녀들이 들으면 그 집안은 망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런 말을 듣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똑똑히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기 때문에 선생님도 처자를 버리고 일선에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은 남자로서 그런 길을 가셨지만 이제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녀의 입장에서 여자들도 그런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자들은 선생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해와 입장이고, 남자들은 천사장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섭섭하겠지만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남자들은 아내를 3년 동안 정성껏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차 7년 노정의 21년을 중심삼고 1년을 백 원씩으로 계산하여 21년 분, 2천원 이상을 한 달 생활비로 아내한테 보내 주라는 것입니다. 지금 보내 주고 있어요? 「예」 안 보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가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동시에 예수의 아내가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자를 일선에 내보낸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만 잘하게 되면 기성교회와 한국 앞에 통일교회 사상이 민족적 주체사상으로서 등장할 날이 불원간에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안 했을 때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한테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빼앗기기 싫지요? 「예」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물의 입장에서 정성을 다해 이 나라를 사랑하라

이제는 선생님도 대한민국에 대해서 해야 할 책임을 다했습니다. 전에는 책임을 다 못 했지만, 이제는 선생님이 해야 할 책임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대한민국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선생님은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날 것입니다. 선생님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나라는 천지에 더 없는 복받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울고 불고 하면서 국가에서 교섭을 하고 학자들을 보내 가지고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 이 한때가 마지막 고비인 것을 알고 선생님이 이 민족을 사랑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하라는 겁니다. 선생님이 피땀을 흘리며 생애를 바쳐 투쟁하던 것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계승받아서 거국적인 기반을 갖추게 될 때는, 선생님도 이 민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갔다가도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 여러분이 했다할 때는, 다시 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갔다가도 다시 오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선생님이 미국에 갈 것입니다. 금년에도 미국을 가야 되지만 가서 안 올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1972년까지 선생님이 계획한 대로 완성하지 못하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을 전부다 재차 편성해야 되는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를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일선에 나가서 뛰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앞으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남한을 일체화시키고 북한땅의 인민군 남자들을 굴복시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오늘날 이북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예」 통일교회에서는 선생님을 아버님이라고 합니다. 그 둘 중에 누가 진짜 아버지고, 누가 가짜 아버지이겠어요? 어느 하나가 진짜 아버지요, 다른 하나는 가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지금 세계적으로 맞선 것입니다. 민주세계에서 제일 악착같은 패들이 누구입니까? 통일교회지요? 또 공산세계에서 제일 악착같은 집단이 누구입니까? 북한 김일성 집단입니다. 악착같기는 둘 다 악착같은데 하나는 하늘을 중심삼고 악착같고, 하나는 사탄을 중심삼고 악착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이겨야 되느냐? 하늘편이 이겨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김일성 집단 이상으로 악착같아야 합니다. 그래 선생님도 악착같지요? 지금까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가만이 있거든요. 자신만만하게 이놈들 두고 보자 하면서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실력으로 대결하자 하면서 기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 인민군대와 싸우면 지겠습니까, 이기겠습니까? 「이기겠습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여러분에게 전부다 군사훈련시키겠습니다. 그럼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지겠습니까, 안 지겠습니까? 「안 집니다」 여자한테 지는 남자는 때려죽이는 것입니다. 여자들을 동원해서 민족을 강력한 사상으로 무장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총칼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김일성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먹여 주고 입혀 주면 전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기반을 닦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동원된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이 민족에게 새로운 가정적인 사상을 불어넣어 주어야 할 때인만큼 밤이나 낮이나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보고 싶다고 남편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며 눈물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눈물 흘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한 여자를 참다운 어머니로 세우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한 남자를 참다운 아버지로 세우지 못한 것이 타락의 한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하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고 종족이고 다 그만두고 나만 사랑해 주소'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따위 여편네는 절대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여자들 많았지요? `하나님의 뜻이 뭐야. 나하고 뜻 맞으면 됐지' 하는 여자들은 절대 사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남자들, 알겠습니까? 「예」 그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어머니에 대해서 교육을 하는 게 그겁니다.

그러한 통일교회 교인들이 됐다고 할 때, 20세기 30세기로 역사는 계속 흘러 세계의 정세는 변천하더라도 이러한 통일사상으로 무장된 사람만은 어느 민족이든지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라가 없고 민족이 없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 국가가 새로이 탄생될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역사적인 인류의 한을 풀기 위해 우리 스스로 제물의 입장에 서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사랑을 다 기울여 가지고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한 생명을 붙들고서도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면 갈수록 흥하고 가면 갈수록 주체자로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천운이 함께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러한 것은 선생님이 실험을 해보고, 경험을 통해서 틀림없다고 깨달은 사실이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 똑똑히 가르쳐 주는 것이니만큼, 선생님의 말대로 실천해 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지금까지 기나긴 세월 동안 시련과 고통을 참으시면서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오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과 가정과 씨족과 민족과 국가, 그리고 온 세계가 아버지를 부정하더라도 아버지는 이 인류를 잃어버릴 수 없기에 찾아 나오셔야만 하는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러한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외로운 입장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사정을 다시 한 번 동정하고 염려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는 춘천지구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이 모였사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저희들 개개인의 사정과 심정은 서로 다를지라도 저희들이 필시 가야 할 하나의 목적은 모두 같사옵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버지를 다시 찾아야 되고, 하늘 부모와 관계가 없는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늘 부모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엄청나고도 엄중한 목적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이 도상에 서서 스스로의 입장을 자각하여 하루하루 개척자의 노정을 가야 할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개척자의 노정에서 싸움을 계속해야 되겠고, 내일도 또한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오늘날 세계의 그 누구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길이기 때문에, 오늘 저희들이 일생을 걸고 개척해 나가고 있사오니 이 길에, 아버지시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외로운 처지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홀로 책임지고 오셨기 때문에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그와 같은 아버지의 동정을 바라고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다시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은 땅 위에 있는 그 무엇을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엄청난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아버지의 슬픔을 저희들의 슬픔으로, 아버지의 기쁨을 저희들의 기쁨으로, 아버지의 소망을 저희들의 소망으로, 또한 악을 대하여 싸워야 할 아버지의 싸움을 저희들의 싸움으로 상속받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러한 저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 자신의 모습들을 아버지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오니, 자체자체의 부족함을 관찰하시사 당신 앞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의 요건을 제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아버지 앞에 순응할 수 있는 본성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몸을 통하여 생활과 환경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천의에 의한 천명이 있는 것을 알고 생애를 바쳐 이 길을 가고자 하오니, 아버지시여,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저희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길에 나선 것이 아니옵니다. 저희 자신보다는 가정의 구원을 위하고, 가정보다는 종족의 구원을 위하고, 종족보다는 민족, 민족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 나아가서는 천주까지 구원하겠다는 엄청난 표준을 중심삼고 나섰사오니, 아버지, 이러한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천륜의 노정을 앞에 놓고 짧은 인생길을 달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오늘날 신앙길을 찾아 나온 저희들의 의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더욱 박차를 가하여서 가정과 종족과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떠한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저희들은 그 목적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싸우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아버지, 다시 한 번 분부하여주시옵소서.

자기 자신만의 입장을 떠나 아버지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의 자리에 선 모습이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시는 아들의 모습이요, 딸의 모습이 아니옵니까? 그런 것을 알고 그와 같은 자리, 그와 같은 환경을 늘 생각하면서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이 길을 개척해 나오던 이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오늘 저녁 당신의 품에 품으시어서 넘치는 사랑과 은사로써 보호 육성하여 주시옵고, 이들과 더불어 동역동사(同役同事)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여기에 모인 이들 가운데는 오늘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과 인연을 맺게 된 자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의 사정과 처지는 각기 다를지라도 생명이 바라는 하나의 고귀한 소원과 목적은 귀일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한 인간의 목적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목적을 귀일시켜야 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긍휼하신 당신의 품에 품으시어서 오늘 한 날이 이들의 생활에 있어서 빛날 수 있는 전환기가 되고 빛될 수 있는 영광의 한 기회로 남아질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워하던 마음 마음을 모두 아버지 앞에 풀어 놓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사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공고히 해야 할 자기 스스로의 입장을 자각하여 자신을 가질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실체가 되어 몽땅 아버지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거룩한 생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당신의 장중에 쥐시어서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나를 처음 보는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얼마나 되는지 봅시다. 남자분들이 많군요. 여기에 처음 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대했을 때 하는 것처럼 말을 하게 되면, 잘 이해하지 못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할 수도 없고, 중요한 부분이라든가, 혹은 전체 가운데에서 한토막을 잘라다가 얘기를 하면 서로 연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곤란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 온 분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약간 드린 다음에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여기에 기성교회를 믿다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분들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얼마 안되는군요. 그러면 처음 오신 분들은 대개 무종교자, 그러니까 종교를 갖지 않았던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러니 그러한 입장에서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목을 크게 잡으면 그 범위가 커져서 말씀이 장황해 지겠고…. `인생의 갈 길'이란 내용을 가지고 잠깐 얘기해 보겠습니다. `인생의 갈 길', 혹은 `인간의 갈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하지 못한 이 세상

혹자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세상이니 이 이상의 세계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할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 행복한 세상이 못 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섞여 살고 있으며, 망하는 사람과 흥하는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 복잡한 세계가 되면 될수록 그런 환경을 맞이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이 끝날이 다 됐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 선한 세상 같아 보이고, 또 선한 세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이 선한 세상이 못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도리어 선보다 악이 팽창해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들은 선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선한 나라가 되기 전에 이미 악한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모든 나라는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라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도 그렇고, 또한 어떤 단체면 단체도 그렇습니다. 그 단체가 선한 자리에 서 있는 단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다 나은 선한 단체가 되기 위하여 전진해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을 두고 볼 때, 모든 가정들이 다 흥하는 가정이 되면 좋겠지만 우리는 망하는 가정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가정을 영원한 행복의 터전이요, 그냥 그대로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가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한 가정보다 악한 가정이 많고, 평화스러운 가정보다 불화한 가정이 많습니다. 가정이 그러함과 동시에 우리 개체를 두고 봐도 그렇습니다. 내 개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한 요건보다 불행한 요건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행복하지 못한 인간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 세계가 행복한 하나의 세계가 되어 너와 나를 초월하고 민족이나 인종을 초월해서 다같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아직 그러한 세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두고 염려하는 마음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류가 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를 형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류가 선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한사람 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입장에 서서 평화의 동기가 되든가, 혹은 선한 결과의 입장에 변함없이 영원히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평화로운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선해지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 개체 개체가 선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전체가 좋아지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 개체 개체가 좋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내 개체에 악한 것보다도 선한 것이 많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선을 중심삼고 일체의 생활이라든가, 생애를 영위해 나가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럴 수 있는 내가 못 됐다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선에서부터 출발하여 선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가면 갈수록 발전이 있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선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악이 와서 짓누르고, 가는 길을 막게 될 때는 그 사람의 가는 길은 뒤넘이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 볼 때에, 인생 자체가 행복하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행한 인생이요, 인간입니다. 왜 불행하냐? 행복하다면 내가 중심이 되어 사방으로 주고 싶을 때 마음대로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마음대로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든지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는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주고 싶을 때 마음대로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마음대로 받을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으나, 그럴 수 없을 때는 거기에 비례하는 불행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음과 몸이 싸우는 모순된 존재

우리 인간 자체를 가만히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선한 요소도 있고 악한 요소도 있는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한 개체를 두고보면 몸이라는 것도 있고 마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이 언제나 화목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이렇게 가자고 하는데 몸뚱이는 저렇게 가자고 합니다. `난 그렇지 않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가라고 하는데 몸뚱이는 언제나 마음이 가자고 하는 방향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그리 가지 말고 이리갑시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마음과 몸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로 고심했던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는 동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다른 하나가 서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로 상충된 결과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면 타락한 오늘날의 우리 인간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요, 몸뚱이가 가자는 곳으로 가면 타락한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무엇을 먹여 주면 더 잘 먹여 달라고 하고, 놀려 주면 더 잘 놀려 달라고 하며, 남의 것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자기 위주로 하여 나만 제일이라는 식입니다. 남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몸과 반대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명령합니다. `남을 위해 살아라.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못사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줘라. 공적인 입장에서 대중을 위해 몸을 바쳐라. 몸을 희생시켜라'하면서 마음은 항상 몸과는 다른 방향으로 지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고민하게 됩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는 거예요. 몸은 이렇게 가려하고 마음은 저렇게 가려 하는 가운데에서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혼자 있다고 해서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마음이 `어서 해라. 어서 해' 하면서 좋다고 부채질합니까? 혼자서 살짝 해 버리려고 해도 마음이 `네 이놈, 그렇게 하면 안 돼' 하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명령을 들었으면 몸뚱이는 청천벽력같이 생각하여 `아이쿠 잘못했습니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몸뚱이는 `에이, 하려고 했으면 해야지 왜 그러느냐?'라고 하면서 끝내 하려고 할 것입니다. 마음은 하지 말라고 `이놈아, 이놈아' 하는데 몸뚱이는 기필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되는 거예요, 못 되는 거예요? 「못 되는 것입니다」 왜? 왜 못 되는 거예요? 「악한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게 왜 악한 곳으로 가느냐는 말입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데 그것이 왜 악한 데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데로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잖아요? 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걸 왜 악한 곳으로 가도록 놔 두겠습니까? 몸뚱이가 선한 곳으로 가도록 만들었으면 얼마나 편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악에 교육이 필요한가요, 필요하지 않은가요? 악하게 만드는 데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자연히 악한 사람이 됩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돼요, 안 돼요? 「됩니다」 저기 할아버지 어때요?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악한 사람이 됩니까, 선한 사람이 됩니까? 「악한 사람이 됩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는 생각지도 못합니다.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악한 사람이 되고 불행해져

그러면 악한 사람이 되면 왜 나쁩니까? 고독 단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무소에서도 제일 악한 녀석은 독방에 가두어 놓습니다. 형무소 안에 또 형무소가 있는데 거기에 가두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악할수록 고독 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악할수록 친구가 많은 거다'라는 말이 맞아요? 「안 맞습니다」 알긴 아는구만. 악할수록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서는 어머니 아버지도 떠나갑니다. 형님 누나도 떠나갑니다. 동생들도 다 떠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의 사람도 떠나갑니다. 마음의 사람도 보따리를 싸 가지고 떠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모두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도 없어지고 형제도 다 없어지는데, 그런 사람 앞에 나라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있겠어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눈에는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또 나라가 없는데 세계가 있겠어요? 「없습니다」 세계도 없습니다. 세계를 지은 조물주고,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다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나'만 있습니다. 자기만 있다는 거예요. 자기만 있다고 하는 것은 뭐냐? 자기 한 사람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자기 혼자밖에 없는 고독 단신이라는 거예요. 세상 만유 가운데 어떤 한 존재가 있다면 그는 그런 사람을 남겨 두고 싶겠어요, 없애버리고 싶겠어요? 「없애 버리고 싶어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잘 알고 있군요. 그 역시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치우고 싶어하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찬동하는 사람은 그 존재와 사촌쯤 되는 사람입니다. (웃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야 되겠어요, 미워해야 되겠어요? 「미워해야 됩니다」 얼마나 미워해야 되겠어요? 「최고로 미워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그 최고라고 하는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 한계점은 생명이 다하도록 미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하지요? 그런 녀석들은 씨알맹이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녀석은 장가도 보내서는 안 돼요. 그런 여자가 있다면 시집도 못 가게 해야 한다는 거지요? 「예」 그런데 대한민국에 그런 법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 법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법이 나와야 됩니다. 사실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뚱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되는데 그러면 그렇게 되고 난 후에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불행합니다」 아무리 미남인 남편을 가진 아내라 하더라도 남편이 그렇게 된 후에는 보따리를 싸 들고 도망갈 것입니다. 이혼장은 커녕 소식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또한 그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그 어머니 아버지가 저주하며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이 천지간에 없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누구나 좋아해

그러면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마음을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습니다」 못 봤는데 어떻게 있는 줄 알아요? 「행동으로요」 행동으로? 「결과를 보고서 압니다」 그렇지요, 결과를 보아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있지요? 「예」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나쁜 것입니다.

더 세밀히 이야기하다가는 목이 쉬어서 안 되겠습니다. 정초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목이 쉬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목쉰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 실례인 줄은 알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지요? 「예」 목이 쉬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를 하면 좋겠는데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이렇게 목이 쉬었습니다. 용서하라구요. 이렇게 목이 쉬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 목이 아픕니다. 이번에 의정부를 거쳐 왔지만 거기서 목이 쉰 게 아닙니다. 그 전에 쉬었지. 그러니 이야기 팔아 먹고 사는 사람은 불쌍한 거라구요.(웃음)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 즉 마음이 좋은 사람이 있다 하면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가져요, 안 가져요? 「갖습니다」 생기기는 박쪼가리같이 생겼어도 마음만은 그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관심을 가져서 뭘 하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은 그 사람을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꾸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또, 마음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하고 짝하고 싶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기 딸은 못났어도 잘나고 마음 좋은 사람을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예」 몸도 잘났으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잘난 사람을 사위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마음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매부를 삼고 싶어하고 형수를 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쁜 생각입니까, 좋은 생각입니까?「좋은 생각입니다」 마음 좋은 사람을 중심삼고는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그 사람과 하나되려 하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묶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좋으면 좋을수록 더 가까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진짜 마음, 참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를 누구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을까요? 대답해 보세요. 누구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아내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아들 사람 만들고 싶겠어요, 내 사람 만들고 싶겠어요?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 사람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럼 아들이 자기만 못하다는 말 아닙니까? (웃음)

어쨌든 전부다 좋은 것이 남의 것이 되면 싫은 것입니다. 아들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들도 못 믿을 때가 있습니다. 쌈지 돈이나 주머니 돈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버지 쌈지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어 두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누구나 다 그런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예」 그건 나이 많은 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더 큰 것을 위해 산다

세상에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다 하면, 그 가운데에는 제일 양심적인 사람, 일등 가는 양심적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의 등급을 매겨 보면 일등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사람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위해서 희생봉사하겠다는 사람을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이 더 양심적인 사람입니까? 「세계를 위해서 희생봉사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더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애국자는 못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동시에 다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등급이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나라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사람보다는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사람이 더 양심적인 사람이다'라는 말이 맞아요, 틀려요? 「맞습니다」 이 얘기를 똑똑히 알아들으십시오.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이 더 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다 할 때, `나는 그 분을 위해서 희생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계보다 더 높고 귀한 그 분을 위해 세계를 버리고 나를 희생하겠다 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희생을 하는 데는 주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주인이 갖고 있는 물건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좋아요?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알긴 아는구만요.

그러면 세계의 주인, 즉 세계를 지으신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를 위해서 희생봉사하는 것과 그가 만든 피조물을 중심삼고 희생봉사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선한 것입니까? 「절대자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버리더라도 이 세계보다 더 높은 분을 위해 생명을 던져 희생봉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양심세계에서도 최고의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를 바라는 마음

이런 얘기 들으니까 처음 오신 분들 기분 나빠요? `저 양반 별수없구만, 저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소개하려고 그러는 거지' 이러고들 앉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할수없어요.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을 하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이니 나도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문제는 그 중심존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위해 생명을 바쳐 희생봉사하게 되면 수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심존재가 없는데 그렇게 했다면 아예 왕창 망하는 거예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위가 된다면 이왕이면 대통령의 사위가 되고 싶어하고 며느리가 되더라도 대통령이 며느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요? 「예」 그거 왜 그래요? 대통령의 며느리가 되면 대통령이 닦아 놓은 모든 기반과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위도 역시 그럴 수 있는 가망권내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없으면 딸이 그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에 사람들은 누구나 대통령이라는 분 앞에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대통령이면 다 잘났어요? 대통령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다 잘났어요? 못났더라도 그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천지의 주인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천지의 주인이 있다면 여러분의 생(生)에 있어서 제일 가는 원이 무엇이 되겠어요? 그 주인이 여러분의 마음에게 `얘, 마음아, 이 세상에서 제일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마음이 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겠어요?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의 아들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그 주인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될 수 있다면, 딸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겠다고 할것입니다.

자격이야 어떻든간에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자가 시집가는 데도 자기 얼굴이야 어떻든간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남자에게 가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얼굴이야 어떻든간에 미녀한테 장가를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얘기부터 한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얘기를 안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은 최고입니다.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최고입니다. 나는 남자만 최고이고 여자는 최고가 아닌 줄 알았는데, 여자도 최고가 되는구만.(웃음) 그래야 섭섭하지 않거든요. 그렇지요? 여자도 최고요, 남자도 최고예요. 그러면 이러한 최고끼리 만나게 되면 무엇이 될까요? 최고 부처(夫妻)가 되는 거라구요. (웃음) 둘밖에 없으니까 부처(夫妻)가 되는 거지요. 세상의 남자 중에 최고의 남자요, 여자 중에 최고의 여자가 있다면 그 주인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을까요? 아마도 결혼식을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럴 거예요.

`이 세상 최고의 남자 등장할지어다!' 또, `이 세상 최고의 여자 등장할지어다' 했을 때 `등장했소이다'하면 그 주인이 `오냐 조금만 기다려라. 얼굴 좀 구경하자' 하겠어요? 아닙니다. `그래 너희들 수고했구나' 하면서 결혼식을 해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을 무엇으로 삼겠어요? 「아들딸요」 아들딸뿐이 아닙니다. 아들딸은 물론이요, 인간의 조상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인간 조상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종지조상(宗之祖上)은 오빠하고 누이동생하고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것 아닙니까? 지금은 뭐 사람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니까 서로 다른 성끼리 결혼을 하지만 옛날에는 어머니 아버지, 즉 인간 조상 둘밖에 없는 데서 자녀가 번식되었으니 전부 다 형님 누나 아니냐 이겁니다.

형님과 누나가 전부인데 일등 미남, 일등 미녀가 따로 있었겠어요? 그들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남자요, 제일 가는 여자였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모두 일등 미인이요, 일등 미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딸을 낳은 아버지가 `너희들 그저 그렇게 혼자 늙어 죽어라' 그랬겠어요? 「아닙니다」 어떻게 했겠어요? 「오누이라도 결혼식을 해줘야지요」 그렇습니다. 오누이끼리라도 결혼식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식을 해줬는데도 그들이 결혼생활을 할 줄 모르면 그것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인생의 갈 길은 인간 혼자서는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인간' 할 때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예요? `사람'하게 되면 몸뚱이를 생각하게 됩니까,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까? 「마음을 생각합니다」 몸뚱이를 생각하지 마음은 무슨 마음을 생각해요. 마음이 이렇게 생겼으니 몸뚱이도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하나요. 얼굴이 그렇게 생겼으니 마음도 그렇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지. `사람'하면 대개 몸뚱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몸뚱이를 중심삼고 만나 가지고 슬쩍슬쩍하는 패가 있고, 마음을 중심삼고 만나서 살짝살짝 살아가는 패가 있습니다. 두 갈래의 패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둘이라는 거예요. 이게 탈입니다. 아까 양심은 항상 최고의 기준, 절대적인 기준을 추구해 나간다고 말했는데, 이 절대라는 말은 둘이라는 말이예요, 하나라는 말이예요?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좋다'할 수 있는 것은 둘이예요, 하나예요? 「하나입니다」 또 `참사랑' 하면 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두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 세상의 몸뚱이를 중심한 길과 마음을 중심한 길, 이 두 갈래 길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참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머물러 살다가 죽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된 사람을 찾아가려면 마음이 가자는 곳을 향해 굳건히 가야 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보장하고,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는 요건을 가려 처리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생행로를 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의 세계, 즉 기쁨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고 참다운 선과 참다운 사람의 가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이 땅에 와서 수고하여 찾으려 한 내용은 하나같이 몸의 사람을 굴복시켜 가지고 마음의 사람이 추구하는, 인간이 가야 할 완전하고 참된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생애를 바쳐 연구하고, 생명을 걸고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문제를 과학이나 수학처럼 어떤 공식을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풀면 이런 답이 나온다는 식으로 명확히 풀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 가운데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 가지고 이런 말을 듣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살면 불행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놓여진 문제, 즉 인생의 갈 길은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인간들의 갈 길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마음도 할수없이 따라가므로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생각될 뿐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선한 편에 서 있는데 변하는 사람을 따라 행동하다 보니 마음도 악하고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고 말한 것은 잘못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원하는 길과 몸이 원하는 길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마음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는 길을 보장해 주고 마음이 원하는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도록 유인할 수 있는 여건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선한 세상이 아니라 악한 세상이 틀림없습니다. 무슨 세상이라구요? 「악한 세상입니다」

악의 구렁이가 여러분의 꽁무니에다가 닻을 꽂아 길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여러분이 가는 길을 틀어막고 있는 원수가 있다면 용서할 수 있어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가다가는 말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인생의 갈 길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인생과 관계없는 금수와 같은 처량한 운명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생 행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든지 악의 침범을 받지 않고,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경계선을 밟고 넘어가야 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륜도덕이니 무슨 종교니 하는 것들이 나왔지만, 그것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런 길을 완벽하고 틀림없이 가도록 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실 것인가, 안 계실 것인가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통일교회 교인들이야 있다고 말하겠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 모르는 사람은 귀찮으니까 없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웃음) `아, 이거 나이도 많은데 하나님이 있으면 어떡해. 없으면 좋겠다' 그러는 사람도 있을거라구요.(웃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가까울수록 확실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의식기관도 가까울수록 또렷하게 느끼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매일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지요?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매일 보지는 못하겠지만 손으로 쓸어 보기라도 할 것입니다. 어디에 뭐가 묻지는 않았나 하면서 만져 볼 거예요. 그리고 세수할 때에도 물에다 얼굴을 쓰윽 비추어 보지요. 뭐 까만 것이라도 묻지 않았나 하고 들여다본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얼굴이 보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도 보고 싶지요? 나도 보고 싶으니까. 여기에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으신 분들도 틀림없이 자기 얼굴을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보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아가씨들도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요? 「예」 거울이 없어서 그렇지, 자기 앞에 잘 보이는 거울이 있으면 쓱 한번 보고, 돌아섰다가 또 보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 표정을 지어 보는 겁니다. 웃는 표정도 지어 보고 성난 표정도 지어 보고(웃음) 내 얼굴이 대관절 몇 푼짜리나 될까 하면서 들여다보는 거예요.

특히 아가씨들은 얼굴이 잘못 생겼으면 안 되거든요. 뜯어고치지도 못하고, 그림처럼 지워 버리고 다시 그리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본판이 그러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생겼으면 좋지만, 못생겼다면 큰 일이라는 거예요. 못생긴 여자들은 자기의 못생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에이' 할 거라구요. (웃음) 내가 여자는 안 되어 보았지만 남자들도 그런 걸 보면 비슷할 것입니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좋은 거울이 있으면 한번 쓱 보고도 다시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웃어 보기도 하고, 내 얼굴이 성나면 얼마나 무섭겠나 하면서 성난 표정을 지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거라구요.(웃음)

이렇게 두 가지 표정을 지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자기를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웃는 표정이 좋아요, 성난 표정이 좋아요? 「웃는 표정요」 웃는 표정이 좋지요? 그러면 웃는 표정이 좋아요, 우는 표정이 좋아요? 「웃는 표정요」 웃는 표정하고 우는 표정은 주름살 몇개 차이밖에는 안 나요. 주름살이 약간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차이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천지차이입니다. 끝과 끝이라는 거예요. 그것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거울에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아 이렇게 생겼구나'해 놓고 돌아서서 자기 얼굴을 그릴 자신이 있는 사람 있어요? 화가도 자기 얼굴을 거울에 한번만 비춰 봐 가지고는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누이동생은 한번만 보더라도 그 윤곽이 확실히 들어옵니다. 들어와요, 안 들어와요? 「들어옵니다」 밤에 봐도 어떻게 생겼는가를 안다는 거예요.(웃음) `어제 시장에 갔을 때 만났던 그 기분 나쁜 사내녀석 이렇게 생겼지. 전에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생겼지'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은 한번만 쓱 보아도 그 윤곽이 기억나는데 자기 얼굴은 흐리멍덩합니다. 나는 얼굴이 못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어때요? 확실해요, 흐리멍덩해요?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입니다」 (웃음) 그것은 왜 그러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려고 한다면 나를 버려라

그러므로 하나되려고 할 때는 내가 없어야 됩니다. 내가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그런 경지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둘이 하나되려 할 때 자기를 고집하면 절대 하나가 못 됩니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네 안에 있는지 네가 내 안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희미한 경지가 되어야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와 제일 가까운 것은 바로 `나'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제일 가까운 나를 왜 모르느냐? 만약에 누가 와서 `네 얼굴은 이렇다'고 하게 되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사람의 기분도 천태만상이거든요. 웃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저씨를 만났을 때 웃는 웃음과 누나를 만났을 때 웃는 웃음의 맛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분석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르다는 거예요. 새콤하든가, 시든가, 짜든가, 시큼털털하든가, 여러 가지 맛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웃는 표정도 천태만상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웃는 얼굴이라도 때에 따라 다릅니다. 눈만 살짝 웃을 때도 있고, 코만 살짝 웃을 때도 있고, 입술만 살짝 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귀만 살짝 웃을 때도 있고 머리만 살짝 웃을 때도 있습니다. (웃음) 모두 하하 웃으니까 같게 보이지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포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웃을 때도 천태만상의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한 가지로만 웃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자기 아내가 웃을 때마다 언제나 `하후후'하고 웃으면 어떻겠어요? 한 서너 번, 열 번만 그렇게 웃어 보라구요, 어떤지. 일년, 혹은 십년씩 그걸 보고 살 수 있겠어요? 정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히히히' 하고 웃고. 어떤 때는 `헤헤헤', 어떤 때는 `후후후'하고, 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맛이 있고 재미가 있지, 항상 똑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자기 얼굴이 언제나 똑같다고만 하면서 들여다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어제 아침에 볼 때는 못생긴 것 같더니 오늘 아침에 보니 그래도 근사한 축에 들어가는군' 하면서 보게 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모르면 모를수록 행복의 요인과 접할 수 있는 인연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와 가까운 상대일수록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 남편과 아내에게 `나는 당신 때문에 당신은 나 때문에 있으니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여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서로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서로를 좋아하며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쿠, 우리 남편은 수염이 있으니 남자지'하는 생각도 안 듭니다. 수염이 났더라도 남자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거라구요. 그저 좋기만 하지요. 좋아할 때는 수염 같은 것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화상태라는 말을 알고 있지요? 다 올라갔다가 내려오려고 해도 더 이상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는 상태 말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확실히 아는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 「모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확실히 아는 것보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을 모실 수 있을 만큼 큰 인간의 마음

하나님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하나님이 먼 곳에 있기를 바랍니까, 가까운 곳에 있기를 바랍니까? 「가까운 곳이요」 하나님은 천지간에 최고의 분이며 양심의 절대자이므로 그 분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나하고 짝짜꿍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겠지만 사람은 자극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과 자기의 마음 제일 깊은 데서부터 얕은 데까지 하나되고 싶어요, 하나되고 싶지 않아요? 「하나되고 싶습니다」 그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가까울수록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언제든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보'할 때는 `예이'하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어디에 나타납니까? 가만히 있을 때 파리 한 마리가 날라와서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면 그 마음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그때는 마음이 머리 끝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누가 자기 손등을 스치면 그때는 마음이 손등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심장에만 있겠습니까? 몸 가운데 마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무엇이 눈썹만 살짝 건드려도 마음이 `요것 봐라'합니다. 파리가 와서 앉으면 마음이 그것을 감정하는 거예요.

이와 같이 마음이 우리의 몸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마음이 자신과 가까와요, 멀어요? 가깝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중에라도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마음이 `네 이놈' 하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제일 가깝지만 그 마음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없는 것 같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너무 가깝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도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생겨났겠어요. 먼 데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겠어요? 어느 한계권에 있는 것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갖다 대면 보여요? 있어도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눈이 상대를 보기 위해 생겼기 때문입니다. 눈은 상대가 있는 곳을 중심삼고 그 상대와 관계를 맺어 상대를 볼 수 있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그 상대의 권을 벗어나 가지고는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귀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틀림없지요? 「예」 그러니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려면 나의 마음집이 그만큼 커야 됩니다. 하나님이 들어가실 수 있을 만큼 마음의 보따리가 커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은 어때요? 하나님 한 분이 들어가면 꽉 차겠어요, 모자라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의 욕망이 얼마나 커요? 크지요? 「예」 하나님이 열 분 계신다면 그 열 분을 모두 내 하나님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만들고 싶지 않겠어요?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 보따리가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예」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들일 수 있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렇게 큰 것입니다.

그러나 좁다면 아주 좁습니다. 틈바구니가 없어서 서성거리기는 커녕 김도 못 쐬고 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좁습니다. 넓을 때는 무한히 넓고 좁을 때는 무한히 좁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넓어지고 어느 때에 좁아지느냐?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넓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세계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세계를 버리고 그것을 갖고 싶어합니까, 안 갖고 싶어합니까? 「갖고 싶어합니다」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 우주의 절대자로서 제일 귀한 분이라면 그분은 인간의 마음에 잡혀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더 좋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고, 더 나쁜 것을 대해서는 얼마든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기에 여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례지만 할수없습니다. 욕을 해도 할수없어요. 여자들의 마음이 넓어요, 좁아요? 「좁습니다」 그것은 인정하는구만. (웃음) 그러면 좁을 때는 좁지만, 넓을 때는 어때요? 남자에게 져요, 안 져요? 「안 져요. 웃음」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마음이 좁을 때는 좁아서 그렇게 막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주루룩 다 새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좋고 나쁜 것의 결정 기준

마음이 너무 좋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람은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습니다. (웃음)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더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덮어 놓고 다 좋아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얼마만큼 좋은 자리에 올라갔는데 그걸 버리고 더 낮은 것을 취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찾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슬픔은 어느 때에 생기느냐? 슬픔은 좋은 입장에서 나쁜 입장으로 떨어지게 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좋은 것이란 무엇이냐? 보다 선한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되느냐? 최고의 가치를 지닌 절대적인 그분에게 더 가까이 가느냐, 멀어지느냐 하는 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가게 되면 더 좋아지고 기뻐지는 것이요, 한 발자국이라도 멀어지면 나빠지고 슬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절대적인 주인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인을 중심삼고 우리 인간이 기쁨과 슬픔의 저울대가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주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좁긴 좁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잘 가려 냅니다. 그것이 여자입니다. 남자들은 마음이 넓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탈이 있습니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둘 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하지 않은 그 남자들의 밑바닥에 여자를 갖다 맞추면 딱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딱 맞춰 놓으면 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합동 공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일 좋은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두어서는 큰일납니다. 귀한 것일수록 제일 깊은 곳에, 뼛골 속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보물이 있다고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여기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으니 와서 구경하소'라고 간판 붙여서 광고하는 사람 있어요? 여자들은 귀한 것일수록 `아이쿠, 도둑놈이 많은데' 하면서 지갑에 넣어 두어도 믿지를 못해서 허리춤에 차고 다니기도 하고 앞가슴에 넣어 두고도 손으로 이렇게 가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고서도 안심을 못하고 `아이쿠 뼛속 깊이 넣어 두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이것을 어떻게 할꼬' 하면서 잠을 잘 때도 그것을 품고 잡니다. 왜 그러느냐? 사람에게는 누구나 귀한 것일수록 아무도 모르게 깊이 감춰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깊이 묻어 두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래 가지고 그것과 더불어 의논하고, 그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것과 더불어 웃고, 그것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거 얼마나 좋겠어요?

가장 귀한 것은 가장 깊은 곳에, 비밀의 골수에 넣어 두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근사하지요? 가치 없는 것일수록 겉에다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우주의 최고의 가치인 하나님은 어디에 모셔 두면 좋을까요? 인간 도적떼가 살고 있는 이 인간세계에 모셔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서로 빼앗기 위해서 나라를 걸고 싸우고, 세계를 걸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기를 잘했지요.(웃음) 그런가 안 그런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오히려 다행

남아연방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는 지금 다이아몬드 산출을 중심삼고 큰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알게 되면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싸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놓고 몇 천 년의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생각을 참 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안 보이게끔 하신 것이 지극히 가당한 처사라는 말입니다.(웃음)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 외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비밀의 길잡이로서 비밀의 내용을 가진 사람 이외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 외에는 모르는 거라구요. 그것을 안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땡전 한 푼없이 맨 주먹으로 다니더라도 기분이 좋을 것이고 밥을 한끼쯤 굶어도 그 까짓 것은 문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루밤쯤 잠을 못 자더라도 그 까짓 것은 문제도 안 된다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좋거든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남들이 나 죽는다고 야단하더라도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아라 한다는 것입니다.(웃음)

앞으로 여기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자꾸 날 것입니다. 여러분 동네의 할아버지들도 손자들의 귀에다 대고 `문선생' 손자들도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문선생'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올지도 모르겠고요. 그렇지만 나는 그런 때가 오기를 바라고, 그런 때가 오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기분 나빠요? 「좋습니다」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요. 세계 사람들이 모두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다고 하게 되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자랑거리가 되지 망할거리가 되겠어요?

그러므로 통일교회 아가씨나 총각들이 할아버지들에게 `할아버지, 오늘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무슨 말씀하시는지 한번 가서 들어 보세요. 재미 없는 말씀은 하지 않을 것이예요. 무슨 말씀을 하는지 가만히 들어 보세요' 라고 해서 모시고 오신 분들, 들어 보니까 어때요? 뭐왔다가 가는 것이 손해는 안 날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면 손해를 볼 지도 모르지만(웃음) 이거 동정 좀 하시라요.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 사랑하는 남편의 편지가 있으면 그 편지를 서랍 안에다 넣어 둡니까, 서랍 밖에 놔 둡니까? 「안에요」 겉옷에다 넣어 둬요, 속옷에다 넣어 둬요? 「속옷에요」 우리 아주머니들 솔직히 얘기해 보세요. 치마 깃에 싸둬요, 속옷 안에 싸 둬요? 틀림없이 속옷 중에서도 비밀스런 속옷 안에 넣어 둘 것입니다.(웃음)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짜입니다. 진짜가 아니라구요.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비밀은 전혀 남이 모르는 곳에 냄새도 모양도 사정도 불통하는 곳에다 저장해 두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런 법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우주적인 귀한 존재이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아는 날에는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한꺼번에 난리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번에 영국에서 일어난 압사 사건 알지요?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그 시합을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압사 사건이 일어났다고 신문에 났잖아요. 그렇게 공을 차고 운동하는 데서도 압사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있는 줄을 알면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고 전시했다가는 그 나중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처리할 수 있겠어요?

얼마 전에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왔을 때도 늙은이 병신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악수 한번 하겠다고 몰려들어서 길을 막아 버리니까 할 수 없이 뒤로 돌아가던데 하나님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보이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만약 하나님을 그렇게 전시해 놓았다가는 아마도 미국과 소련이 이마를 맞대고 싸울 것입니다. 그것도 대포와 원자탄을 동원해서 싸울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안 보이는 자리에 계시기로 한 것입니다. 이거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웃음) 잘됐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알아내고 들추어낼 수 있는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상봉하는 자리

인간에게는 인정과 인륜도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륜도덕의 기준은 남자만 있어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인정은 남자만 있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혼자 있는 데서도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세계가 있어야 되는데, 그 출발이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어야 나라가 생겨납니다. 나라가 생기면 가정은 나라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인간들은 나라를 위해서는 충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을 위해서는 효자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륜도덕관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와 같은, 인간을 중심한 인륜과 하늘을 중심한 천륜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인정이 있고, 인생이 갈 길을 가르쳐 주는 법이 있고, 인륜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그저 두리뭉실하게 감각도 없고 무슨 정서도 없을까요?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많습니다. 최고로 많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천정, 하늘의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인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륜이 있습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륜, 인정과 천정이 따로따로 있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천륜은 언제 인륜과 상봉할 것이며, 천정은 언제 인정과 상봉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인간을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겠느냐? 또 그 신은 누구를 필요로 할 것이냐?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최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신이 있다면 그 신도 사랑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그 신이 누구와 사랑을 하겠습니까? 다른 신이 있다면 신끼리도 사랑을 할는지 모르지만 신은 사랑을 인간과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신이 어떤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신도 좋아하고 인간도 좋아하겠느냐? 둘 다 좋을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데, 종의 입장에서 사랑받는게 좋겠어요? 「아닙니다」 종의 입장에서 사랑받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하나님의 양자의 입장에서 사랑받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도 없군요. 그러면 어디까지 올라가야 되느냐 이겁니다. 천정과 인정이 상봉할 수 있는 하나의 결합점, 하나의 정착점이 어디 겠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의 주체시라면 그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겠는가? 여러분의 마음에게 물어 보고 하나님께 물어 보라는 거예요. 그 자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아들로 사랑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는 그런 자리일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이외의 자리는 우리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럴 거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종교 중의 위대한 종교는 절대자인 신에 대하여 `내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곧 세계적인 종교요, 그러한 도주가 세계적인 도주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정과 천정이 하나로 상봉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사람이 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요, 신이 인간을 아들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증명 되는 사실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여러분 앞에 원수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냐고 묻게 되면 종의 자리도 싫고, 양자의 자리도 싫고, 딸이나 아들의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아가씨들도 그래요? 「예」 여자들도 그렇지요? 「예」 그렇지 않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죽으라고요. 없으니까 죽으라고 해도 괜찮은 것입니다.(웃음) 이 말에 손든 사람은 벼락을 맞아야 됩니다.

인정이 찾아가는 최고의 종착점

여기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딸이 될래요, 종이 될래요? 「딸이 되겠습니다」 양녀가 될래요, 진짜 딸이 될래요? 「진짜 딸이 되겠습니다」 딸 중에서도 새빨간, 진짜 새빨간 딸이 되라는 거예요. 불이 타는 데도 활활 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 딸 될 거예요? 「예」 틀림없지요? 난 흐리멍덩한 것은 싫습니다. 흐리멍덩한 딸은 싫어요. 또 여기 아들 양반들, 하나님의 종이 될래요, 양자가 될래요, 아들이 될래요? 「아들이 되겠습니다」 전부 다 아들이 되겠다고 대답하는구만. 그럼 아들이 되고 딸이 되라구!(웃음) 이러면 또`아이쿠, 야단났군' 하지요. 여기 아가씨들, 하나님의 딸이 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또 남자들, 아들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습니다」 본래는 될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패가 되었으니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거라구요. 목을 비틀어도 그렇게 될 자신이 있지요? 「예」

통일교회를 믿지 않고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세요. `하나님의 종을 긍휼히 여기사….'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의 종이 가라사대 용서하시옵소서. 이 못난 종은 언제나 잘못하고….' 이러고들 있다고요.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런 기도를 했다가는 나한테 기합받습니다. 뭐가 되겠다고요? 「아들딸요」 `못난 모습이지만 내 뼈는 당신의 뼈를 닮아 났고, 내 살은 당신의 살과 연결되어 있사오며, 내 피의 고동소리는 당신의 피의 고동소리와 박자가 맞습니다.(웃음) 이 아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도가 더 멋져요? 하나님이 들으실 때도 어떤 것이 더 실감나겠어요? 하나님의 종 어쩌고 하면 기분이 잡친다는 것입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인정이 찾아가는 최고의 종착점이 어디냐 할 때,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여 나만이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거 찬성입니까, 불찬성입니까? 「찬성입니다」 쌍수를 들어 찬성할지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이나 인간을 붙들고 야단을 해왔겠습니까? 이 몹쓸 인간들을 그냥 한 구덩이에 처넣어 버리지 왜 종교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혼란상이 벌어지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복잡할까!

여러분, 더워요? 나도 덥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더 덥겠지요.

하나님도 별수없습니다. 하나님이 별수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도 인간이 없으면 무미건조하다는 말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서 절대의 가치를 지닌 것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고등동물이 어떻고 원숭이가 뭐 어떻다고 하는데, 여러분, 대학교수나 혹은 생물학박사에게 가서 `원숭이의 몇 대 손 안녕하십니까'라고 해보세요. 좋아하는지.(웃음) 아마도 `예끼, 이놈' 할 것입니다. 그런데 뭐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요? 원숭이는 사람과 차원이 다릅니다. 원숭이의 골통으로는 하나님을 생각도 못 하는 거예요.(웃음) 돌연변이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수작들은 다 틀립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공동사회를 중심삼은 이상이니, 윤리도덕이니 하는 것은 물론, 천륜과 천정을 논의하고 신과 인연을 맺겠다고 하는 생각은 원숭이의 골통에서는 나올 수 없는 거예요. 상상도 못 하는 것입니다. 죽일 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구.(웃음) 그런 부잡스런 녀석들은 내가 전부 소탕해 버릴 것입니다.

오늘 이 20세기 말기에 내가 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왔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래도 할수없습니다. 기분이 나빠서 죽겠으면 죽으라는 거예요.(웃음) 그렇다고 정말 죽지는 마소.(웃음) 하나님이 절대적인 자신 앞에 상대적 입장의 절대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절대형을 누구로 선택할 것이냐 하고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마만한 위치에 등장했다는 거예요, 못했다는 거예요?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절대적인 상대의 위치에 세우기 위해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고 해도 인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데 절대자면 뭘 해요? `나는 절대자다. 세계 대통령이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부인도 없고, 아들도 없는 절대자다'(웃음) 그러면 행복하겠어요? 「불행합니다」 하나님도 혼자 있으면 땅 위의 거지만도 못합니다. 아이들 손을 붙들고 다니면서 `찬 밥 얻으러 왔습니다. 한 술 줍쇼' 해 가지고 밥을 얻어 먹는 거지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에 어떤 인격자가 있다고 합시다. `내가 그래도 이 동네에서 이만하면 됐지. 할아버지고 이장이고 내 앞에서 쩔쩔매고, 면장도 아침마다 내게 와서 인사하는데 이만하면 됐지'(웃음) 하는 사람이라도 혼자 있게 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기쁨이라는 것은 고독단신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최고봉에 있다고 해도 혼자라면 기쁨이 있을 수 없어요. 세계적으로 이름난 학자들이 아무리 명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혼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그 분야에 상대적인 존재가 없어 가지고 혼자 앉아서 이렇고 저렇고 `아, 좋다' `좋다'라고 하면 뭐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물과 사람을 왜 지으셨겠습니까? 보고 즐기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데리고 놀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아니면 몽땅 사랑하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하나님께 `어째서 우리를 지었소'하고 물어 보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보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인형을 보고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예요. 인형을 보고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뭘 하려고 우리를 지었소?' 하고 물으면 대답하시기를 `이 녀석아, 그것도 모르니? 재미있게 살려고 지었지. 손을 붙들고 재미있게 살려고 지었지'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었을 것 같습니까? 내가 기뻐하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웃으면 나도 웃으면서 같이 살기 위해 지었다는 것입니다. 방에 혼자 있는 사람이 `하하하' 웃으면 재수 없어 보이고 소름이 돋아납니다. 도깨비 바람이 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웃음) 그렇지만 허재비 중의 허재비라도, 병신 중의 병신이라도 애기를 데리고 `헤헤헤….' 하고 웃으면 어때요? 그것이 격에 맞아요, 안 맞아요? 그것은 격에 맞는 거라구요.

이런 모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좋은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나쁜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좋은 것요」 또 웃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우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웃는 것요」 좋은 말을 하고 싶겠어요, 나쁜 말을 하고 싶겠어요? 「좋은 말요」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

나는 8남매의 형제를 다 버린 사람입니다. 이북에서 감옥생활을 할 때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상했던 사람입니다. 평양에 나와서 40일 동안 있었는데 거기에서 280리만 가면 나의 고향입니다. 이틀이면 고향에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들은 찾아 가지 않고 뜻을 대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것입니다.

고향에 있는 부모와 친척을 돌보지 않고 지지리 못한 통일교회 식구 한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찾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패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거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알면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구요. 선생님은 공포(空砲)를 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다고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느냐? 통일교인들을 승리한 성인의 반열에 동참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루려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또 다시 올 필요가 없도록 모든 것을 해결짓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출장을 간 사람이 일을 다 봤으면 다시 출장갈 필요가 있어요? 필요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완결짓기 위한 것이 통일교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길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갈 최후의 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욕망이 무엇입니까? 세계를 점령하고 나서도 그보다도 더 높은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까지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을 놓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최고의 욕망과 희망, 우리 양심의 최고의 욕망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하나님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 하나님의 사랑까지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심은 `내 소원 다 이루었다'고 춤을 춘다는 거예요. 더 이상 참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양심이 가야 할 한계점입니다. 종착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자리, 이 자리는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너나할것없이 누구나 정통의 길을 따라가게 되면 차지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가는 길의 최고의 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행복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무리 소망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망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한 행복이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힘이라는 것을 보면 작용을 하게 될 때는 반드시 소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터 같은 것을 보더라도 `입력 이퀄 출력'이 아닙니다.(판서하심) 언제나 입력이 큰 것입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거기에서 소모되는 만큼 보급해 줘야 그 힘이 지탱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원칙을 볼 때에, 작용하는 물건이라든가, 동물이라든가 혹은 아메바와 같은 것이라도 작용하여 더 큰 것이 나온다는 논리는 있을 수없습니다. 공산당 식으로 하면 아메바가 작용하면 발전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존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제3의 힘이 가입되지 않고는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에 벗어나는 한 가지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작용만은 이 원칙을 벗어납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진실한 사랑을 열만큼 주었는데, 나는 아홉 만큼의 사랑만을 돌려줘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진실로 나를 사랑한 줄 알게 되었다면, 내가 사랑을 돌려줄 때는 보태서 돌려주고 싶어요, 떼어먹고 돌려주고 싶어요? 떼어먹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하게 사랑을 열만큼 받았으면 거기에 가하여 열 하나, 열 둘만큼으로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힘은 주고 나서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큰 것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다른 힘과 반대라구요. 사랑의 힘은 더 커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이 없으면 영존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는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주고 나서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그렇지요? 부모는 자식에게 옷을 해 입히고 나서도 더 좋은 옷을 해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주면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을 통해서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게 주지만 완전한 것으로 보답해 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지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이는 흥하는 법이 없다는 거예요.

사랑이 없이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마 22:37-3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과 사랑의 도리에서만 흥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벗어나면 전부다 망합니다.

사랑을 벗어나 가지고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망해 들어갑니다.

통일사상─하나님주의

가정이 왜 좋으냐? 가정에서는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어서 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사랑의 인연이 있어서 그 사랑 가운데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날 수 있겠어요? 안 그렇지요?

예수님은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부모와 주고받는 것은 타락한 세계의 사랑으로 주고받는 것이고 그것이 한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은 한(恨)을 걷어치우고 만민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받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처자나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알겠지요? 이것은 역설적인 교리입니다. 그렇지만 참입니다. 거짓된 세상의 인연보다도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도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타락권은 어디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권 밖입니다. 여기에서는 받으면 받을수록, 주면 줄수록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주면 줄수록 천치요 바보로 생각해서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받았으면 거기에 보태서 갚아 주는 것이 사랑의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진실하게 주는 사람을 이용해 먹다가는 3대도 못 갑니다. 두고 보라구요. 그 후손이 어떻게 되는지.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이 전도하러 나가는 것은 그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겠어요,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겠어요?

그들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를 따라서 말하게 되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공산당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이런 식입니다. 그게 공산당 식이예요. 알겠어요? 공산당식은 전부가 자기를 중심삼은 거라구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식, 즉 하나님의 식은 어떠한 것이냐?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런 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이예요.

내 것은 누구의 것이라구요? 「부모의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 교리의 원칙적인 사상이 나오는 거예요. 내 것은 네 것인데 무슨 자리에서 네 것이 되느냐 하면 나는 아버지요 너는 자녀라는 부모의 심정을 지닌 자리에서 그렇게 됩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해 뿌려라!' 이것이 통일사상의 중심이자 하나님주의의 골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시고 종의 몸을 쓰시고, 땅을 위하여 땀을 흘리시고,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고, 천주를 위해서 피를 흘리며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숭상하는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인류를 위해 아벨의 입장에서 희생봉사하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주라는 것입니다. 주면서 자랑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주의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통일교회 여자들 전도를 나갔는데,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고 세 번이나 찾아갔는데도 배척을 받는다고 해서 발뒤꿈치로 문을 꽝 차고 `이놈의 집 망해라' 그래야 되겠어요?(웃음) 세 번 갔는데도 안 되면 네번, 네번도 안 되면 다섯 번이라도 있는 정성을 다해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생명을 바쳐 했다 할 때는 다 돌아가는 거라구요. 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쓰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도 지금은 맞고 있지만 나중에 가서 때린 녀석들이 통일교회를 잘못 때렸다 하며 걸려듭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치게 되면 기성교회는 망합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닦아 놓은 복을 통일교회에게다 넘겨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누가 바로잡을 것이냐? 그것을 통일교회 패들이 해야 합니다. 통일사상만 도입해 보십시오. 일년 이내에 깨끗이 청산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대통령도 나를 만나야 될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알겠어요?

인간 세상에 맺혀 있는 3대 한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교를 사랑했느냐? 유대교를 사랑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었느냐?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유대 나라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아들딸을 모셔 보았느냐? 모셔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한입니다. 이렇게 인간 세상에는 3대 한이 맺혀 있는데, 이 3대 한을 풀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는 일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지만, 통일교인은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둘째는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세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3대한이 가로막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고이고이 준비했던 이스라엘 나라에 아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는데,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회가 그를 배반하여 죽음 길로 보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회와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했는데, 사랑을 못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한이 맺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한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유대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아야 했는데, 사랑을 하지도 못했고, 보지도 받지도 못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한은 무엇이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신랑이 되어 신부를 맞이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 아저씨를 모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뿐만 아니라 예수 아주머니도 모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뜻을 이루었다면 장가를 갔겠어요, 안 갔겠어요?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아주머니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저씨가 되었겠어요, 안 되었겠어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민족이 예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모셔 보았어요, 못 모셔 보았어요? 「못 모셔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할아버지가 되어 보아야 되겠어요, 안 되어 보아야 되겠어요? 「되어 보아야 합니다」 또 예수 할머니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 예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셔 보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면서 그 한을 풀기 위해 회개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독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의 나라들이 포위해 예수님을 지지리 못 살게 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웃 나라가 그 나라를 지지리 못 살게 하게 되면 거기에서 싸워 가지고 이겨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운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그 방법은 선생님이 지도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죽인 죄로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한은 예수 할아버지와 할머니, 예수 아저씨와 아주머니, 예수님의 아들딸, 예수님의 1대 손, 10대 손, 20대 손을 인류 역사과정에서 모셔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려면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예수님보다 낫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교단,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교단을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통일교회가 해방 직후에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출발했더라면, 기성교회와 더불어 대한민국은 일시에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공산당들은 모두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에 슬픈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폭탄 하나 떨어지지 않던 이 나라가 왜 분단국이 되었느냐? 그것은 기성교회가 전부다 통일교회의 가는 길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북이 갈린 거예요. 그들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잃어버리고 나라 앞에 몰리는 입장에 섰지만, 거기에서 쫓겨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운명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고 난 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방인 애급에서부터 다시 출발해 가지고 돌아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세계적인 사탄세계인 이북의 공산세계에 들어가 되돌아오는 길을 거쳐 남한 땅의 맨밑바닥을 통하여 우리 교단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교 입장에선 기성교회가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그 기성교회가 없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계승할 수 있고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마련한 것이 우리 통일교단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때가 어떤 때인지 보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통일교단이 형성된 때입니다. 통일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은 나라와 민족을 대표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혹은 아저씨와 아주머니 등 전부다 종합한 형입니다. 모든 형이 다 들어왔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이와 같이 통일교회는 종족적인 입장, 혹은 씨족적인 입장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팔도강산에서 몰려든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은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것이요, 이스라엘 국민들이 서로서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현재에 탕감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닦는 길은 통일교단이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사랑해 왔고, 이제 사회인이나 국가의 중요한 인물들로부터 통일교회는 애국애족하는 단체라는 것을 공인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살아 있는 종교단체는 통일교회밖에 없다고 할 만큼 올라왔다 이겁니다. 이제는 통일교회에 나간다고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는 기성교회가 반대하면 오히려 그들이 추풍낙엽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을 품고 십자가의 길을 가던 시대와는 달리 핍박의 노정을 벗어나 그들보다 우위에 서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과 전교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잘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잘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루지 못했던 종족권을 복귀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축복해 가지고 결혼시켜 준 무리로서 선생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예」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할 통일교회

예수가 죽어간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형제들이 죽고 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친척이 죽고 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했기 때문에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합하는 데 있어서는 구렁텅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것을 메우기 위해서 막대한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투입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이 고향땅으로 에서를 찾아갈 때, 모든 것을 에서에게 주더라도 하나님의 축복만은 줄 수 없다는 야곱의 입장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기성교회의 밥 목사들을 선생님이 전부 타작해야 되겠어요. 일제히 처리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할까요, 그만둘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웃음)

우리는 요셉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요셉의 열 한 형제는 요셉을 물없는 우물속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다가, 그의 맏형이 죽이는 것보다 애급 상인들에게 팔아먹자고 하여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보디발 아내의 간교한 수법에 걸려 가지고 감옥에 갇히게 되어 죽을 뻔했다가 해몽을 잘해 가지고 풀려 나와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형제들 때문에 죽을 뻔했던 서글픈 요셉이 애급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7년 대환난을 만나게 되어 애급땅 전역은 물론 이스라엘 전역과 중동지역 전역에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애급에는 먹을 것이 많다고 하여 요셉의 열 한 형제가 나귀를 끌고 곡식을 사러 왔지요? 요셉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자기 형제들이거든요. 그래서 벌어진 일화가 있지요?

요셉은 원수의 분을 풀려고 `이놈들 잘 만났다'라고 하며 밟아 죽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없을 때에 어머니 아버지를 봉양한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고향을 떠나 이웃 땅에서 서글픈 타향살이를 할 때 어머니 아버지를 연명시키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온 형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머니 아버지를 모신 그들의 성의를 봐서 효심을 가진 아들 요셉은 형들을 원수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음을 돌려 그 형제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기성교회는 전부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게걸이 들린 것처럼 되지만 통일교회는 돈이 많이 생깁니다. 이미 통일교회는 돈이 많다고 소문났습니다. 기성교인 한 사람에게 몇만 원씩 주고도 남을 수 있는 문진장한 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흉년이 들면 거지떼거리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런 때는 그들을 때려 죽이고 싶지만, 그래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오기 전, 해방되기 40, 50여년 전부터 요셉의 형님들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셔온 성의를 생각해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고맙지!

이런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까, 선한 사람입니까?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이 망해야 되겠어요, 선한 사람이 망해야 되겠어요? 「악한 사람요」 기성교회 목사들하고 통일교회 문선생하고 비교할 때 누가 악하고 누가 선해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악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선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기꾼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문선생은 그저 여자들 등쳐 먹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 내가 등쳐 먹었어요? 오히려 내가 등쳐 먹히는 걸. 선생님이 여자들 때문에 얼마나 수모를 당했고, 얼마나 욕을 얻어 먹었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자들을 못살게 부려먹는 것입니다. 괜찮소? 「예」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 마음이 놓이고 시원합니다.

축복받는 자리는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리

예수님은 한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그 한을 풀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한을 맺히게 했고 예수님 자신의 한은 물론 민족의 한을 맺히게 했지만, 이 시대의 나는 내 일신을 통하여 그 원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만민을 백성으로 거느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예수님보다 나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자리는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예」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결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뜻 앞에 세움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을 하고 나서 아들딸이 태어나게 될 때, 그 아들딸은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국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아들딸을 낳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신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기 있는 남자들 대답해 봐요. 여러분은 모두 예수를 안 믿고도 천당갈 수 있는 아들딸을 낳겠어요, 못 낳겠어요? 대답해 봐요. 낳아요, 못 낳아요? 「낳습니다」 이렇게 별스런 패가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기독교와 다릅니다. 전진적 기독교요, 발전적 기독교요, 초월적 기독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하고 예수하고 씨름하면 누가 이길까요?(웃음) 나는 예수에게 지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영계에 들어가 가지고 예수에게 물어 보게 되면 꼼짝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계적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어요?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도 마음도 나한테 그 챔피언의 자리를 돌려줘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도인들도, 영계를 주름잡는 영통한 패들도 통일교회 문선생 앞에서 꼼짝 못합니다. 내 제자들 가운데에는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통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제자축에도 못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들은 오늘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선생님의 숨소리가 어떤지를 보지도 않고 알아 가지고 기도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제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여러분들을 치리할 때가 옵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법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통일교회

통일교회의 전도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영통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그들을 도통한 사람들의 꼭대기에 딱 붙들어 놓으면 틀림없이 걸려듭니다. 재미있는 놀음이 벌어지지요? 내가 지금 여기에서 있지만 세계를 영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모르지요? 눈이 시퍼런 미국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한국의 문선생이 죽으라면 죽겠다고 하면서 야단하겠어요? 코를 꿰어 가지고 잡아채면 꼼짝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식구들은 자기 집도 마음대로 팔지 못합니다. 내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미국 식구들이 자기 멋대로 집을 팔아먹으면 영계에서 호출명령이 내려가지고 `이놈의 자식아, 그게 네 집이냐' 하게 되면 `아이쿠,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문의를 하면 선생님이 `너희들끼리 세 사람 이상 잘 의논해 가지고 파는 것이 좋다고 하면 팔라구' 이렇게 여기서 특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집을 팔 때도 자기 마음대로 못 파는 거라구요. 좋지요?

앞으로 미국의 세 사람이 한국의 못 사는 한 사람을 도와주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세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 살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현재 미국 사람이 1억 8천만명이지요? 한국 사람이 3천만명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미국 사람은 몇 사람이 됩니까? 여섯 사람입니다. 미국의 여섯 가정이 한국의 한 가정쯤은 잘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라 이겁니다. 3천만이 모두 통일사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내가 잘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해도 믿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얘기를 하면`저 녀석 미친 녀석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의도에 땅을 사 놓았지요? 「예」 1만 5천 평을 계약할 터인데 먼저 1만 2백 평을 사 놓았습니다. 앞으로 5천평을 더 살 계획입니다. 이것이 5억이 넘습니다. 지갑에 돈은 한푼도 없지만 땅은 샀습니다.(웃음)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여러분은 몇 푼이나 나갑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우리가 일년 동안 쓰고 있는 돈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가 그만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하려고만 하면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여러분 통일교 패들은 모두다 1만원씩 벌어대라고 하면 대겠어요? 「대겠습니다」 여러분도 여의도 땅을 한 평씩 사기로 했지요? 돈을 벌어 대라는 거예요. 안 벌어 대면 영계에 있는 여러분의 조상들이 `이 녀석아, 무슨 밤잠이냐'고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러한 뭐가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통일교회에 대하여 함부로 말을 하며 악착같이 반대하다가 잘된 사람 있어요? 잘된 사람이 있나 알아보라구요. 다 망했어요. 더구나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반대하던 사람, 내가 두고 보자고 생각했던 사람은 금년에 다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 남았습니다. 이들은 제물로 남겨 두고 있어요. 악한 사람은 이렇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꼼짝 못하고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무섭지 않으면 선생님이 뭣 하려고 이런 일을 하겠어요? 보라구요. 내가 이만큼 생겼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밥 걱정 안 하는 사람입니다. 머리도 있는 사람이라구요. 남이 한 가지 생각할 때 열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영계를 전부 내 손안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조직되어 있는 영적 세계의 수많은 도인들, 예수, 공자, 석가모니 같은 양반들이 전부다 내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어제도 예진이의 생일이었지만, 생일 때마다 매번 불교의 최고 책임자가 케이크를 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잔치 때마다 알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석가모니도 하늘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면 영계에서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들 생일이나, 혹은 우리가 기념하는 날에는 케이크나 패물 같은 것을 해 가지고 오는 거라구요. 그것도 무거운 것은 들고 오기가 힘드니까 조그만 것을 갖고 오라고 내가 얘기를 해서 그렇지, 그렇지 않았으면 제일 큰 것을 들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둘이서 아니면 못 들고 오는 것을 말이에요. 불교도 별수 있어요, 조공을 바쳐야지. 그러니 하늘이 석가모니보다 높아요, 낮아요? 「높습니다」 석가모니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보다 몇 곱은 많습니다. 재미있지요? 내 이 손이 작지요? 「예」 그러나 이 작은 손으로 영계를 통일했습니다. 영계를 통일하지 않고 지상의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선생님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선생님의 역사가 얼마나 복잡다단했을 것인가 생각해 보라구요.여러분들은 일생 동안 정성들여 연구해도 못다합니다. 그럼 배워야 되겠어요, 안 배워야 되겠어요? 「배워야 됩니다」 그러니 절대 순종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잘 만났어요, 못 만났어요? 「잘 만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간판을 붙이고 해보자 해 가지고 한 20년 동안 나온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선생님이 왔다 하게 되면 옛날 한국 사람이 이등박문을 무서워하듯이 무서워합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우리 애국자 양반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미국 국무성에서도 미스터 문이 미국에 가게 되면 정보원을 달아 놓습니다. 이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랬으면 됐지. 한국 사람 중에 어느 누가 그런 대우를 받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나 되니까 세계가 골탕을 먹지.

여러분, 한국이 잘되는 게 좋아요, 못되는 게 좋아요? 「잘되는 게 좋습니다」 그런 한국의 통일교회가 잘되는 게 좋아요, 못되는 게 좋아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잘되는 게 좋으면 믿으라구요.(웃음) 이유를 따지지 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웃음) 말을 하다 보면 이런 말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사는데 그만한 얘기한다고 섭섭해할 것 없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섭섭하면 섭섭하다고 해요. 내가 다 풀어 주고 갈 테니까.(웃음)

우리가 서로 식구라고 하는 뜻

우리 아주머니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 아저씨 후보자들은 이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역사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상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왜 식구라는 이름을 사용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에게는 사랑받을 수 있는 식구가 없었고, 예수님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럴 수 있는 종족이 없었고, 민족이 없었고,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식구에서부터 출발하여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종족과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교회와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인류의 한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울타리를 중심삼고 식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는 사내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사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의붓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디서인지 모르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리아를 막상 데려다 놓고 보니 진짜로 애기를 배고 있었다는 거예요. 처녀가 애기를 뱄다면 잘한 것이예요, 못한 것이예요? 그 당신의 풍습으로 보아 잘한 것이예요, 못한 것이예요? 「못한 것입니다」 못했다는 것예요. 그 당신의 모세의 법에 의하면 돌로 때려죽여야 되는 거라구요. 마리아가 박살이 나서 죽어야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래도 참으로 용하고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약혼녀가 아기를 배었으니 기분이 좋았겠어요, 잡쳤겠어요? 「잡쳤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남자분들, 나이많은 할아버지라 해도 자기 상대 될 처녀가 애기를 배어 가지고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을 본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요셉이 그 꼴이 됐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요셉이 고심을 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마리아를 죽일 수도 없고 큰일났거든요. 이렇게 요셉이 혼자 끙끙 앓으면서 밤잠 못 자고 고심하고 있는데 꿈 가운데에서 `야, 요셉아! 무엇 때문에 그리 걱정하니? 마리아를 데리고 가려무나' 하는 음성을 듣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데려다가 자기 안방에 모셔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올 때, 자기 어머니 아버지하고 의논해서 데려왔겠어요? 아저씨 아주머니나 삼촌, 혹은 사촌 형님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을 모아놓고 의논한 뒤에 데려왔겠어요, 살짝 몰래 데려왔겠어요? 몰래 살짝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총각 녀석이 잔치도 하지 않고 난데없이 처녀를 끌고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내 녀석이 소식도 없이 처녀를 끌고 오면 그 녀석을 보고 잘한 자식이라고 해요, 망할 자식이라고 해요? 「망할 자식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망할 자식이라고 하는데 2천년 전 시대에야 형편무인지경일 것 아니겠어요?

요셉이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 동네방네 소문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소문이 나 가지고 별의별 요지경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저것 봐라, 저 미욱한 녀석! 결혼잔치도 안 하고 안방에다 처녀를 모셔 놓았네'하며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요셉이 기분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그러나 기분이 좋든지 나쁘든지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도 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불행했던 예수님의 어린 시절

천사의 말 때문에 할수없이 마리아를 데려다 놓았지만 `대관절 당신 뱃속의 애기는 누구의 애기야'라고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여기 남자들,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물어 보겠어요, 안 물어 보겠어요? 「물어 봅니다」 하나님이건 대왕님이건 덮어놓고 그거 누구 애기인지 알고 싶겠지요? 대관절 그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거예요.

요셉이 마리아를 사지에서 구해낸 구주의 입장에서 다정스럽게 물어 보았을 때 마리아가 `여보 내 뱃속의 아기는 성신으로 잉태했소이다'(웃음)라고 한다고 해서 요셉이 그 말을 믿었겠어요? 요셉은 `무슨 수작이야. 성신으로 잉태하는 법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이것 봐라, 내가 너를 사지에서 구해준 은인인데 발뺌하기 위해서 그런 수작을 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싸움도 했을 것입니다. 남자의 성격에 한번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하면서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가만히 다가가서 속삭속삭 물어보고 하는 것이 그 동네방네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잔치도 안 하고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 첫날밤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서 구경하는 것과 같이 동네방네 총각 녀석들이 `저거 이상하다'하며 궁금해 가지고 엿듣는 별의별 판국이 다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통해서 동네방네 소문이 퍼지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마리아가 밴 아이의 아버지가 요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방네에서 소근소근하니까 마리아의 신세가 어땠겠어요? 배가 점점 뚱뚱해질수록 밖에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대낮에 오줌 누러도 못 나갔을 것입니다.(웃음) 고개를 내밀고 뻔뻔스럽게 돌아다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배가 점점 불러오면 불러올수록 `하나님이시여, 내가 이런 처지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어떻게 애기를 낳겠습니까? 동네방네에 발붙일 곳 없는 가냘픈 이 마리아의 신세를 아버지여 도우시옵소서'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될 수 있으면 이방에 가 가지고 흔적도 없이 살짝 애기를 낳아서 기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소문난 그 환경에서 애기를 낳을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그네 행로에 올랐다가 말구유에 예수님을 낳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님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가고, 삼촌 아저씨는 어디 갔습니까. 형님 누나가 왜 없었겠습니까? 또 만삭이 된 배를 해 가지고 가는 마리아가 어찌하여 유사시에 방비할 수 있는 포대기 하나 준비하지 못하고 옷 한 벌 준비하지 못한 채로 갔겠습니까? 요셉이 기분 나빠할까봐 할 수 없이 달랑달랑 빈 몸으로 아이를 낳으러 갔던 것입니다. 강보가 보자기지요? 말구유에 보자기로 예수님을 싸 놓은 것이 기독교의 자랑입니까? 기가 막히게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달려가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알려야 될 것 아니예요? 거기에서 베들레헴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하루 저녁이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이 급보로 달려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온다 간다는 소식도 없이 애급으로 도망가야 할 처량한 신세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의붓자식으로 태어난 것으로 인하여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 무릎에 안길 때에도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하여 앉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의붓자식으로 자란 예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와 진정한 사랑을 못 해봤고 아버지가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갔고, 형님 누나 동생 엄마 아빠 친척은 다 어디에 갔습니까?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어디에 갔습니까? 자기 친척으로부터 몰림받는 예수가 유대교로부터도 몰림받지 않을 수 없으니 예수가 몰린 것은 모두 친척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친척이 예수님을 창조주같이 모셨으면 예수님은 그 친척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결혼을 하고, 그렇게 되면 일족들이 예수님의 열 배 되는 일을 해놓는 것이 됩니다. 예수가 베드로 야곱 요한과 같은 어부들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찾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맺혀 있는 이러한 모든 한을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예수의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손자같이 사랑해야 됩니다.(잠깐 녹음되어 있지 않음)

사랑은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

잘살자는 말하고 사랑하자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잘살자는 것은 어떻게 잘살자는 거예요? 서로서로 싸우면서 잘살자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것은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답은 간단합니다. 사랑하고 잘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사랑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엄마 아빠들이 자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와요, 미워요? 아주머니들 대답해 봐요? 「고와요」 얼마나 고울까? 내가 한번 아주머니가 되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무리 연구해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좋을까? 젖을 먹이는 것을 보게 되면, 어머니들은 젖을 더 주려고 하고, 애들은 엄마 젖을 더 빨려고 하고.(웃음) 그것은 호스를 걸어 놓고 자기의 귀한 피를 뽑아 가라는 것과 같다 이겁니다. 아기가 줄기차게 빨아들이면 어머니는 그저 좋다고 끌어안고 그럴수록 좋다고 어서 먹으라고 합니다.(웃음) 아주머니들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 얼굴은 못 생겼더라도 자식은 전부 다 마찬가지라구요. 그렇지요?

자식에게 젖을 주는 것이 고와서 줘요, 미워서 줘요? 어디 그뿐입니까? 뭐 오줌 싸지, 똥 싸지, 밤새도록 뒤치다꺼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애기들을 보게 되면 몇 시간만 지나도 `엥 밥 줘' 하면서 밤 두 시고 세 시고 아랑곳없어요. 어머니는 허리가 끊어지고 등골이 아파 단잠을 자고 있는데, 아앙 울면서 일어나라 이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단잠을 깨워도 `옜다 먹어라'하고 젖을 줍니다. 그게 좋아서 그래요, 나빠서 그래요? 「좋아서 그럽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면서도 더 주고 싶고 주고 나서도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만족하게 먹였지만 더 먹이고 싶은 것입니다. 다 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젖을 먹일 때도 크게 불렸다가 전부가 시원하게 빨아먹여야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들 그렇지요? 이것은 내가 들은 말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럴 거라구요.

타락한 인간끼리의 엄마와 아빠 자식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참다운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하겠어요? 그 사랑은 전세계가 구경하리만큼, 동네방네 세계가 깨질 만큼 소리치고 싶어서 `아이쿠 좋아'하고 소리치게 되면, 세계 사람들도 `그렇소. 나도 좋소'라고 소리칠 수 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좋아서 웃을 때면 천지가 다 흔들거릴 정도로 웃어 젖힐지도 모를 거라구요. 그럴 거 아닙니까? `대관절 하나님 당신은 한번 그래 봤소?' 라고 묻고 싶은 생각 안 해봤어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해 봤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여러분의 결론은 뭐예요? 인정과 천정이 교차되는 자리, 인륜이 완성되는 자리요, 천륜이 시작되는 그러한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들 가운데에 미남이고 딸들 가운데 미녀인, 역사이래 천상천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요, 딸이라고 하며, 이런 아들딸을 모셔 놓고 온 세계를 거느리고서 먹고 춤을 추며 놀아 보고 싶겠어요, 안 놀아 보고 싶겠어요? 「놀아 보고 싶겠습니다」 대답해 봐요? 그러고 싶겠어요, 안 그래 보고 싶겠어요? 「그래 보고 싶겠습니다」

여기에 할아버지도 왔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왔지만…. 자기가 할 수 없이 강원도 산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사람들을 모아다가 노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저 깊은 산중에서 아무리 땅을 파고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만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아들이 장가가고 딸이 시집가는 날을 맞으면 삼천리 반도에 잔치가 벌어져 천하가 온통 거기에 박자를 맞춰 가지고 한바탕 놀아 줄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사람들도 이것을 바랍니다. 그럴 수 없어서 못할 뿐이지. 그러면 능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데도 안 하시겠어요?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참다운 인류를 대표한 세계적인 챔피언, 인정을 대표한 세계적인 챔피언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 안팎으로 챔피언의 자격을 갖춘 분이 와야 됩니다. 이것이 뭐냐? 메시아사상, 구주사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런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를 멈추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작전

여러분들에게 실례의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몸과 마음에 삼팔경계선을 맞추어 놓고 완충지대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운명길을 해결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목이 걸려 가지고 본향땅을 찾아갈래야 찾아갈 수 없는 비운의 사나이와 아낙네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엮어 온 선조들이요, 현재에 살고 있는 인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삼팔선이 놓여 있으면 그것을 부숴 버리고 부산에서부터 신의주까지 고속도로를 놓듯이 밤낮으로 왕래할 수 있는 대로를 닦아야 됩니다. 그것을 닦기 위해서 인간들의 그릇된 도리 가운데에서 메울 데는 메우고 깎을 데는 깎아서 재차 공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지구성의 인간세계에 그 공사를 누가 착공해야 되느냐? 주인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해야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그러한 공사를 시작하여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데를 깎아 평지를 만들어 나오고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마루되는 가르침입니다. 집에 마루가 중요해요, 서까래가 중요해요? 「마루가 중요합니다」 이름은 참 잘 갖다 붙였어요. 마루 되는 가르침, 그 이상의 가르침이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성서라고 하는데, 왜 그러한 이름을 갖다 붙인 줄알아요? 인간의 마음은 천륜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역사과정의 환경에서 전부다 망해 사라져 버릴 악한 인간들인데도 하나님은 아들딸로 만들기 위해 다시 공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악하게 되었느냐?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는데, 도중에서 사탄 마귀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절대자인 하나님을 통하여 지음받은 인간이라면,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이념권내에서 마음과 몸이 일치된 자아의 자리로부터 갈림길이 없는 생애노정을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두 가지 노선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몸뚱이를 통해서는 사탄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고 마음을 통해서는 본성의 신이 연결되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신과 육의 사람은 씨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며 고향이 다른 입장인데 하나로 묶여져 있으니 이 둘은 영원을 두고 계속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을 어떻게 평정시키느냐 하는 것이 인생문제입니다.

수많은 철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철인들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에게 맡겼지만 종교인들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역사는 미완성의 수레바퀴로서 굴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고 스톱을 시켜서 해부공작에 착수하려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방법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이것은 거창한 사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브레이크를 어떻게 거느냐? 여러분, 자동차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춰요, 안 멈춰요? 혹은 기차가 아무리 빨리 달리다가도 브레이크를 걸면 멈춰요, 안 멈춰요?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굴러가는 악의 세계, 인류가 가는 역사의 방향을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고 거꾸로 들이치느냐? 이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식은 전부 거꾸로입니다. 알겠어요? 거꾸로 치는 거라구요. 남들은 겨울에는 감기들기 때문에 나가 일하면 큰일난다고 하여 `애야, 거 뭐하냐. 들어와라' 하지만, 통일교회는 나가 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아주머니들은 다 나와 있지요?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남자들을 부려먹지 않고, 일도 못하는 가냘픈 여자들을 부려먹으려고 이 동절기에 다 쫓아냈습니다.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보이게는 잘했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못한 거라구요. 이런 일은 통일교회 문선생 외에는 세계의 어느누구도 못하는 일입니다. 대통령도 못 하고 공산당도 못 하는 거예요. 문선생은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곧잘 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합동결혼식도 그렇지요? 미국 녀석들도 합동결혼식을 한다고 오라고 하면 오게 되어 있어요. 안 오면 자기가 망하게 되어 있거든요. 사람은 손해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나라에서 결혼하게 되면 백 냥쯤의 가치밖에 없고, 한국에서 결혼하게 되면 만 냥쯤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만 알려 주면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옵니다」 오는 거라구요.

무엇 때문에 그래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아니면 결혼할 데가 없어서 그래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 아니면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게 사고라구요. 병이 들기는 들었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말은 안 듣더라도 통일교회 문선생 말은 들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이 자기들 어머니 아버지보다 좋아서 그러는 거요, 나빠서 그러는 거요? 「좋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과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보다 선입니까?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리고 친척과 씨족을 살리기 위해서 가정을 희생시키면 이것은 선이지요? 「예」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선한 가정을 만들었으면 그 가정을 그대로 놔 두면 좋겠는데…. 씨족을 구하기 위해서 그 가정을 희생시키면 그것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선입니다」 자기 씨족은 망하더라도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씨족을 희생시키는 것은 악이예요, 선이예요? 「선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더라도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를 희생시키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사상이 무섭다는 거라구요.

보다 큰 것을 위해 희생하라

여러분이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희생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가정을 완전히 구했다면 다시 친척을 구해야 되기 때문에 가정은 친척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친척을 구하고 난 후에는 그 씨족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이 희생되는 것이 선의 길을 닦아 나가는 공법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 공법을 따라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공부시킬 때에 `얘야, 우리 집이 이렇게 못사니까 너는 엄마 아빠 팔자를 고쳐 주기 위해 공부해라' 하는 부모하고, `네가 공부하는 데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지 말고 네 형제와 가정을 위해서 하거라'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느 부모가 선한 부모입니까? 그리고, `너의 가정은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싸우기 위해 공부해야 된다'하는 부모가 있다 할 때, 가정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하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하고 어느 편이 선한 부모입니까?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입니다」 그건 틀림없지요? 「예」

그러면 `너는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쳐 인간들이 하지 못했던 성인의 도리를 다하라'고 가르치고 권고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와 나라를 위해서 충신이 되라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부모 중에 어떤 부모가 더 선해요? 「세계를 위하라는 부모입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는 부모가 더 선한 부모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이 관이 딱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태어난 것은 누구를 위해 태어났느냐 할 때, `나는 세계를 위해 태어났다' 나아가 `세계를 지도하는 하나님을 위해 태어났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는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면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세계에서 맨 꼴지하는 사람을 사랑하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세계 챔피언이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나라의 챔피언이 아니고는 안 대해 주는데 지지리 못난 병신 짜박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아들로 대해 주시겠어요? 그러므로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라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무엇을 사랑할 것이냐? 하나님의 뜻은 인류를 구하는 것인데, 대한민국만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게 하나님의 뜻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내 어머니 아버지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기의 처자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처자도 위하고 세계도 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이자택일을 해야 됩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는 운명권내에 서 있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며 살지 않고서는 멀고 먼 크나큰 세계적인 권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쁘고 급한 짧은 인생 행로를 가는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내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구 선생 같은 분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북만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에, 어머니 아버지 혹은 처자가 눈물을 흘려도 아랑곳없이 매정하게 돌아섰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나라를 살리는 충신의 길을 달려 가려고 할 때 아내가 그 길을 반대하면 아내의 목을 치고서라도 가는 것이 충신의 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말이 틀림없지요? 「예」 이것만 알면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는,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니까 누구보다도 효도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지도해야 할 나라, 세계국가 즉, 개인적인 국가도 아니고 대한민국과 같은 하나의 민족적인 국가도 아닌 세계국가입니다. 그 세계국가를 위하는 충신이 되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위인과 성인의 차이

여러분이 세상을 보면 위인들이 많이 있지요? 세상에 위인은 많습니다. 대한민국도 위인이 있습니다. 누구예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국민사상을 고취시키고 민족정기를 지향시키는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국민들이 추모하고 숭배하는 위인이지만 대한민국내에서뿐입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어떻게 됩니까? 「원수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놈의 이순신 잘 죽었다고 했을 것입니다.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위인은 하나의 국경을 넘지 못합니다. 일개국을 중심삼고는 위인은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과 위인의 차이는 무엇이냐? 국가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은 애국자의 이름과 더불어 위인의 이름은 얻을 수 있지만 성인은 못 됩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성인은 국경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성인은 민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종족을 위해 산사람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를 위해 산 사람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만민을 위해서요, 억조창생의 모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이요, 초종파적이요, 초인종적인 입장에서 죽는다고 하면서 온 세계 인류와 세계적인 입장에서 인연을 맺고 죽음길을 판가리하고 간 사람들이 성인이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위인이 될래요, 성인이 될래요? 「성인요」 이제는 일개의 국가를 위주한 제국주의적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의 때는 사상시대입니다. 그러면 사상시대는 뭐예요? 그것은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세계적 인격이 등장해야 할 시대이기 때문에 국가를 초월한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산당들은 단합하자고 하면 잘 단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를 초월한 세계적인 시대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인들의 소망이 무엇이냐? 성인들의 소망은 `만국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만민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제가 될지어다'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도리를 따라 성인이 되면 완전한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 소크라테스가 성인이예요?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니라 철인입니다. 성인 축에는 못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생명문제를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식은 생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거예요. 지식이나 철학이라는 것은 생명문제를 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문제는 논의할 수 있지만 생명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못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명문제를 논의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인간의 지식문제를 초월하여 생명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반열에 동참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나온 종교 중에서 인륜만 가르쳐 주는 종교는 없습니다. 인정만을 중심삼은 도리를 갖춘 입장에서 성인이 된 사람이 있는가 보십시오.

공자는 유교의 도주지요? 공자의 가르침 가운데는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먼저 천(天)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공자가 말한 천(天)은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합니다. 막연하지만 하늘을 위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하늘을 위하지 않으면 화를 받는다는 근본을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구체적이 아니고 막연하긴 하지만 하늘을 위주하여 천리를 따라 천륜을 본받아 가지고 인륜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하나님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륜을 주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신을 빼놓은 성인은 없습니다. 신의 뜻을 벗어난 입장에서는 성인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4대 성인은 누구누구예요. 전부 다 종교의 종주들이지요? 석가도 그렇지요? 그는 너무 영적입니다. 거기에는 근거를 잡을 수 없어요. 그 다음 마호메트를 보면 그는 표방종교 교주입니다. 4대 성인이라 하면 이 네 사람이지요? 여기에 소크라테스는 빠집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성인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했느냐?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모두 성인이 되어야 하는 통일교인들

종교의 길은 생명을 걸고 지켜 나온 길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과 천륜과 천정을 빼놓은 가르침은 성인의 가르침이 못됩니다. 신과 천륜과 천정을 중심삼고 천륜과 철두철미한 내용 밑에서 인륜과 인정의 도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데에 보다 가치적인 성현의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누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소망하는 최고의 자리인 `나는 아버지의 독생자다. 하나님의 사랑을 홀로 몽땅 차지할 수 있는 독생자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핵심된 내용을 선포했습니다.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니, 너와 내가 신랑 신부와 같이 영원한 세계에서 함께 살자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는 형이고 너희들은 동생이다'라고 형제지연의 관계를 표현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신을 중심삼은 성스러운 가정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한 내용인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이처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무엇을 만들자는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고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신랑되시는 주님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면 어린양 혼인잔치를 한다고 하였는데, 혼인잔치가 뭡니까? 세계의 남자와 여자를 대표한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잔치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허둥둥 내 사랑아' 하면서 기쁨이 충만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천상천하 모든 피조만물도 거기에 화답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보시기 위해서 신랑 신부를 보내 가지고 어린양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고 하며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명실공히 하나님의 가정 살림살이를 기반으로 하여 남아진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세계 문화권은 기필코 이루어져야 됩니다. 현재의 민주주의 세계는 명실공히 기독교 문화권이지요? 이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위인이 될 거예요, 성인이 될 거예요? 「성인이 될 겁니다」 예수님과 같은 분이 뜻을 다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뜻을 못 이루었다 이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나야 되겠어요? 「나아야 됩니다」 예수님보다 나아야 합니다. 봄에 씨를 뿌렸으면 그 씨가 자라서 꽃이 핀 다음 열매가 맺힐 때는 더 완전한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것이 뿌린 자의 욕망이요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씨를 뿌렸으면 예수님보다 훌륭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좋아할까요, 나빠할까요? 「좋아합니다」 나빠하면 그 하나님은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보다 나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해 가지고 4대 성인들에게 `야 너는 이러이러한 점에서 탈락하여 실패한 것이 아니냐' 할 때, 그들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라구요. 세계적인 학자를 두고 볼 때, 몇백 년 전 학자하고 지금의 학자하고 어느 학자가 더 훌륭해요? 「지금의 학자들입니다」 지금의 학자가 옛날의 학자보다 못하면 되겠어요? 그러면 옛날의 예수님의 도리와 사상보다 지금 예수님을 중심한 도리와 사상이 예수님만 못해 가지고 되겠어요? 못하다면 망해야 됩니다. 어떤 집안에 부모보다도 못한 아들딸이 자꾸 태어나게 되면 그 집안이 망해요, 흥해요? 「망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망하게 된다면 모두가 `예수 그까짓 거'하며 침을 뱉을 거라구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반대하고 침을 뱉았다가는 누가 망하나 보십시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 전체가 망하라고 하고 기성교인들이 망하라고 빌고 야단을 하지만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성교인보다 내가 잘났거든요. 그렇지요? 「예」 아무리 감정을 해봐도 기성교회 목사보다 내가 잘났다는 것입니다. 내가 교만해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내가 앞서 있고, 또한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도 누구보다도 내가 앞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났지. 그렇지요? 그러니까 통일교인들이 으스대는 거라구요. 욕은 먹지만. (웃음)

오늘의 고생은 내일의 영광이 된다

통일교인들은 비록 꽁꽁 언 보리떡을 갖고 나가 전도를 하지만 그 보리떡은 왕궁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보리떡입니다. 그 보리떡은 언젠가는 세계 만민의 가슴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후대의 어느 왕국에서 상감마마가 수라상을 대할 때는, 선대에 우리 통일사상을 갖추고 개척했던 아주머니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수고한 사상 앞에는 무릎을 끓고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듯 못난 녀석이 이런 밥을 먹어서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거예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 말을 잘 듣게 돼 있어요, 안 듣게 돼 있어요?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강제로? 「아닙니다. 스스로 그럽니다. 웃음」 내가 무슨 요술을 해서 그래요, 여러분이 요술을 해서 그래요? 나는 요술을 하지만 여러분이 자동적인 요술을 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가자하면 `예이 갑시다' 라고 합니다. 재미있게 살림살이하다가도 `아가씨 아주머니들,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었으니까 짐을 꾸려서 등에 걸머메고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나섭시다' 하면 `그래요 그럽시다'한다는 거예요.

이번에 축복받은 가정의 남자들 손들어 보라구요. 이 사람들밖에 없어요? 손들어 보라구요. 여러분들 다 아니예요? 내려요. 이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미쳤었다는 거예요.(웃음) 여러분이 선생님을 언제 봤다고…. 선생님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노골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문선생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요? 그거 모르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제일 추운 동삼삭에 아내를 거리에 내보내자 하면 `그러십시오'라고 합니다. 이거 정신 나간 사람이지. 미친 사람들이라구요. 미쳤다는 것은 도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미쳤다고 할 때 그냥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미쳤다는 말은 도달했다는 말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런 의미에서 미쳤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여러분들이 애기를 보느라고 팔자가 좋겠구만.(웃음)

어느 교단의 지도자가 무슨 원수가 졌다고 남편과 아내가 재미있게 사는 가정을 파탄시키고 못살게 하겠어요? 그렇지만 가정은 그렇더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선에 나서야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끌어내야 되겠어요, 안 끌어내야 되겠어요? 「끌어내야 됩니다」 끌어내야 된다구요. 일선에 나가 있는 아가씨들, 아주머니 후보자들도 많지요? 아주머니들은 일선에 나가서 활동하다 보면 남편도 생각나고 아들딸도 생각나지요? 그럴 때마다 `이 요망스러운 무엇아'라고 욕하지요?(웃음) 그런 생각이 나면 그 생각을 지워 버리고 회개기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지독한 파입니다. 통일교파는 무슨 파라구요? 「지독파입니다」 지독파! (웃음) 여러분, 공산당도 지독하다고 하지요? 「예」 그런데 공산당은 생명에 위협을 가하여 가지고 강제로 지독하게 만들지만, 통일교파는 내 손에 와 가지고 자기들 스스로 지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게 더 지독한 거예요? 「스스로 지독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세계에서 제일 지독파가 누구냐면 통일교회입니다. 그리고 공산 세계에서 제일 지독파는 누구라고요? 「북괴입니다」 (웃음) 둘 다 지독하니 둘이 싸움을 해서 챔피언을 가려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싸워서 이겨야 할 패는 누구입니까? 「통일교회입니다」 통일사상을 가진 패입니다. 이미 그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어떠했어요? 자유당 때도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문선생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민주당도 그랬고, 혁명정부도 샅샅이 통일교회의 뿌리를 빼려고 형사단을 파송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뺄 테면 빼라' 했지만 빼긴 뭘 빼요. 와서 보니까 뺄 게 뭐가 있어야지요. 오히려 자기들이 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좋소이다'하며 나오다 보니 오늘날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놓았습니다.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통일교회가 닦아 놓은 터전

이런 사람이 난 사람이라구요. 시시하게 집안에 들어앉아 가지고 고생하는 아내에게 주먹질이나 하고 아이들 앞에서 호령이나 하는 사람은 밖에 나가면 비실비실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한국에서는 그저 못난 놀음을 하지만 외국에서는 어때요? 여러분, 이번에 어린이 무용단이 일본의 사또(佐藤)수상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봤지요? 그 무용단은 내가 만든 거예요.(웃음) 선생님이 그 무용단을 만들 때 사람들은 별의별 소리를 다 했습니다. ‘통일교 무리들이 벌고벗고 춤추더니 이제 그 새끼들도 춤추지 않느냐. 저것봐라. 틀림없지 않느냐' (웃음)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너희들은 뭐냐. 동네 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더 짖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짖으라고 해, 계속 (웃음)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가지고 멕시코 한 교회의 단체보다도 나라의 단체로 만들면 좋겠는데 어떻소'하면서 이 사람도 편들고 저 사람도 편들며 서로서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여기에 돈을 많이 들였습니다.

통일교회는 오늘날 예술분야에서 세계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링컨 센터에서 선보이기 위해 수많은 예술인들이 수십년 동안 정성을 들이는 것을 우리는 3년 동안에 닦았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노력했습니다. 낮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밤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때려 몰아 가지고 3년만에 숨어 있던 고대의 한국문화를 미국 전역에 자랑한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승공연합을 만들어 가지고 일본에서 한바탕 세계 사람들을 불러다가 전부다 감투를 씌웠습니다. 이것도 다 내가 한 거라구요. 이렇게 하는 것은 지지리 못난 한국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개한 사람들이 똥싸게 만들어 놓으면 선생님이 배후에서 전부 다 수습해 나온 거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이쯤 되니까 이제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에 합동결혼식을 한번 치르고 났더니, 기관에서는 통일교회의 중요한 행사라든가 이런 것 가지고 한국을 선전합니다. 김포공항에서 대한민국을 선전할 때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한 것을 갖다가 선전하더군요. 여러분, 섭섭합니까? 「섭섭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지요? 대한민국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빨리 대한민국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승공사상이 대한민국 것이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합니다. 누가 할 사람이 없어요.

반공연맹이 우리를 때려잡으려고 재작년까지만 해도 별의별 공작을 다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우습게 알았다는 거예요. 그들은 우리를 훅 불면 날아가는 거품 짜박지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정보부나 청와대에서도 별의별 수작을 다 해 가지고 우리를 걸려고 했습니다. 뭐 자기들만 손이 있나요? 그럴 때는 이미 지나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자기들의 농간에 뿌리가 뽑혀 가지고 굴러갈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백안관까지도 침을 놓을 수 있는 기반까지 닦아 놓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내 손에 말려 들어가는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기반까지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그런데 이 한국은 민족성이 틀려먹었다는 것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수십년 동안 반대하고 신문이 야단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해명하고 싸우는 것 봤어요? 못난 패들이 상대가 되어야지요. 내가 갈 길이 바쁜데 동네 개들이 짖는다고 멈추겠어요? `개들이 짖는다고 양반이 뭐라고 하겠느냐? 어서 지나가자'이러고 나오는 것입니다. 잘했지요? 「예」

통일교회는 기반을 다 잡았어요. 내가 터전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부러운 것이 없어요. 링컨 차를 가져 오라면 가져올 수 있고, 벤츠 차를 가져오라 하면 당장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할 뿐이지. 알겠어요? 내가 지금 교회 2층에서 살고 있지만 몇억짜리 집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당장에 몇 억의 수표도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따라지 모양 이렇게 살고 있다구요. 천당에 가면 `통일교회 거룩하시다'라고 하겠어요? 이게 뭐예요. 이게 강원도 본부로구나. 그렇지만 좋다는 거예요.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

귀한 새일수록 둥지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둥지에서 자라지만 나중에는 둥지는 없고 그냥 나뭇가지에서 자랍니다. 보통 새들은 대부분 2주일 내지 3주일이면 둥지에서 다 날아갑니다. 그러나 귀한 새는 한달 반은 걸려야 날 수 있으니 둥지가 있더라도 그 둥지가 남아 납니까? 그러니 둥지가 있을 게 뭐예요. 나뭇가지에서 어미의 먹이를 척척 받아 먹다가 때가 되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날아갔다 할 때는 인공위성이라구요. 인공위성. 인공위성을 타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젊은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라구요. 통일교회가 날아갈 때는 무엇을 탄다구요? 「인공위성」 인공위성을 탄다는 것입니다. 무슨 나라로? 달나라로 날아가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그런 판국에서, 이만 했으면 이제 통일교회는 기반을 닦을 대로 닦았습니다. 60년도하고 지금 때하고 보면 얼마나 달라요. 달라졌지요? 「예」 이제는 우리가 조금만 더하게 되면 다섯 발, 여섯 발 되는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지 않고는 못살 때가 옵니다. 통일교인들 보라구요. 이렇게 악착 같은 떼거리들인 데 그들이 견디어 낼 것 같아요?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버려 두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깃발을 들고 나서는 사상을 가진 무리인데, 동네에서 이런 무리에게 보조를 맞추지 않고 살 수 있어요?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안으면 죽든가 도망가든가 아니면 통일교회를 믿든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웃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그럴 날이 온다는 거예요.

내가 춘천에 오니까 섭섭합니다. 내가 올 때에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얘기한다는 것이 기분이 조금 섭섭하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있을까 딸이 있을까 해서 내가 심각한 입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찾아와서 얘기할 게 뭐예요?

통일교회 주의는 뭐냐? 예수가 되기 위한 사상입니다. 예수님보다 못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사상이 아니라구요.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을 만들자는 거예요.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나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없어요? 「있습니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려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보면 큰일납니다.(웃음) 여러분이 전부다 예수보다 더 낫기를 바라니 얼마나 배포들이 커졌느냐는 것입니다. 이것 보면 얼마나 야단나겠어요. 예수보다 더 낫게 되면 여자로 말하면 예수를 지도하는 여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로 말하게 되면 예수보다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집안이 잘 되려면 아들딸이 잘나야지요. 그렇지요? 「예」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보다 나은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통일교회 무리에게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모가지가 걸려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협의회(NCC)에서는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기를 바랐던 통일교회가 살아 가지고 저러고 있구나. 옛날에는 그저 동네 개 짓는 줄 알았고, 지나가는 까마귀 소리인 줄 알았더니 아이쿠 까마귀 소리가 학소리로 변했구나. 학소리가 아니라 암닭소리, 아니 수탉 소리로 변했구먼'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꼬끼오'하고 새벽을 알리는 닭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이제 그 소리에 잠을 깨어야 할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야단났구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구요. 얼마나 밥이 귀하면 밥줄을 붙들고 그렇게까지 처량하게 나오겠어요? 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이제 그들에게 밥통이 없어지면 밥통을 달아 줘 가지고 `옛다 먹고 물러가라'하고 한바탕 먹여 주려고 합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이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양반도 별수없구만. 자기 선전하는 데는 소질 있는데'(웃음) 그럴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이만큼 자기선전하는 것은 가짜가 아닙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3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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