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 여러분 가정에서의 개인적인 십자가는 떠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가고 있는 길 앞에는 아직 십자가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여러분 개인을 대해 가지고 지도했던 선생님의 입장과, 오늘의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대하는 선생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러면 어느때가 더 심각한 때냐? 그때도 심각했지만 지금 이때가 더 심각합니다.

교회는 발전했으나 식구들은 후퇴한 이유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의 심정적인 자세가 그때보다 많이 변하였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이 달라지면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변화 발전된 것 같지만, 이것은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점진적인 후퇴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통일교회는 점진적인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옛날보다 선생님이 더 심각한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먼 훗날을 중심삼고 국가와 민족을 대해 일해 나왔었습니다. 해원성사해야 할 한때가 기필코 온다는 것을 알고 그때를 바라면서 어려움을 참아 나온 것입니다. 이제 바라던 그때가 왔습니다. 그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 중심인물을 두 번 택해 가지고 역사한 때가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을 두 번 택해 가지고 역사를 했지만 그것은 조건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한 번 택하시고 그 중심인물이 때를 놓쳐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다시 세워 두 번, 세 번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때를 한 번 놓치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초창기에 핍박박던 외로운 식구들보다 더 비장한 심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촌보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에서 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인으로 말미암아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왜 이런 차이가 있게 되었느냐? 여러분은 선생님과 같이 심각한 입장에 서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일체를 하나님과 동화되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기의 어려움을 중심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려움을 더 생각하고 동정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어려움은 잊어버리고 자기만을 동정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에 서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갈 길이 막혀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의 속성

여러분, 참다운 효자는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보통의 환경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기반 위에서 응당히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서 예법을 갖추어 효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의 유산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는 입장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하여 자식된 도리로써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환경에서 효도하는 자와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 스스로 개척하여 효도하는 자를 비교할 때, 이것은 천양지차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생명이라는 것은 둘이 타협해서 되어지거나 환경과 인연을 맺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자리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인 자리는 모든 사람이 바라보고 춤추며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자리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입니다. 절대라는 것은 상대요건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 자리는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답답하고, 지극히 고독하고, 위험하다면 지극히 위험한 자리입니다.

그 절대적인 것이 진행할 수 있는 방향은 어떨 것이냐? 두 방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위한 절대존재는 악 때문에 후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 앞에는 갈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선한 자리에서의 절대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 하고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과 제사장까지도 바알신 앞으로 가 버렸지만,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서 있는 사람은 엘리야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귀한 것입니다. `나밖에 없습니다' 하는 자리, `이 땅 위에 많은 인류가 있지만 그 가운데 아버지 앞에 남아진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하는 자리가 절대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자각해 가지고 독자적으로 새로운 창조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어려운 길도 개척해 나가겠다고 각오하고 나설 수 있어야만 하나님이 재창조역사를 출발하는 데 있어서 상대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런 자리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독자적인 자리에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창조원칙을 따라 재창조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독자적인 기준을 어떻게 자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절대적인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무엇 때문에 외로우냐? 인간이 타락하여 악하게 되었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슬프냐? 악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그것이 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리는 무엇 때문에 비참한 것이냐? 악한 세상 가운데 하나의 점밖에 안 되는 선한 자리이기 때문에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비참함이 비참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참한 환경을 개척하고 고독한 환경을 타파하게 되면 거기에서 고독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선의 기쁨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의 기쁨은 어디에서 발생하느냐? 여러분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자랑을 합니다. 예를 들어 시험 점수가 10점밖에 안 되는 학생들 가운데 11점 맞은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어떻게 하겠어요? 자랑하겠어요, 안하겠어요?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11점이 제일입니까? 그것을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볼 때는 10점밖에 안 되는 수많은 교파와 수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낫다고 `통일교인이 이만하면 자랑해도 되겠지' 하면 되겠습니까? 그 절대적인 기준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는데 자기가 낫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난 사람이에요, 못난 사람이에요? 절대적 기준에서 봤을 때는 미쳐도 대낮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또, 90점 맞은 사람들 가운데 91점 맞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신을 자랑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절대적 기준에서 보면 그 사람도 미친 사람입니다. 조금 덜 미친 노이로제 현상권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100점을 중심삼고 볼 때 99, 999 하고 여기에 9자를 십만 개, 일억 개 이상 아무리 갖다 붙여도 100점에 대할 수 있습니까? 100점에는 대하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털끝만큼도 없어 보입니다. 눈으로 보면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과 여러분의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같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절대 틀리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절대 존재의 속성은 유일해야 되고, 불변해야 되고, 영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생명

생명이 절대적이에요, 상대적이에요?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것으로 하고 싶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것은 누구나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 앞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에 절대적인 요소가 있다면 절대자가 절대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절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절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생명체를 절대시하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내 생명체를 상대적 입장에 두고 좋아하시기 때문에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 해도 외발 가지고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외발로 암만 움직이려고 해도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좋기는 뭐가 좋겠습니까? 여러분도 혼자 앉아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좋습니까? 혼자서 `아, 나는 백만장자가 되어 돈이 이렇게 많다. 아이구 좋다' 하면서 좋아 할 수 있습니까? 한편으로는 좋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 좋아해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 이것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절대자의 자리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거기에 자기의 기쁨이 있다 하더라도 안팎으로 지니고 있는 그 기쁨은 자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의 자극을 받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절대자의 상대적 입장이요, 그 절대자는 우리의 상대적 입장에 섰는데도 상대를 절대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좋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속닥속닥 이야기할 수 있고, 웃고,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좋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상대적으로 주고 받으면 그때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상대적 입장에서 우리를 절대시하는 입장에 세운 것은 좋아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아하기 위해서…. 창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하느냐? 손으로 만지는 것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비둘기를 만져 보았어요? 비둘기를 잡아서 만져 보면 보들보들하고 아주 말랑말랑합니다. 만져 볼수록 정이 듭니다. 한번 잡아서 만져 보세요, 어떤가. 손으로 만질 때 좋다고 느껴지는 것이 손으로만 좋은 거예요? 무엇이 어떻게 좋은 거예요? 만지고 있는 손만 좋아해요, 보고 있는 눈만 좋아해요? 그것만이 아니라 내 몸 전체가 좋아합니다. 그러니 밥먹는 것도, 냄새맡는 것도, 보는 것도 몸 전체가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좋기는 다 좋은데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상대자밖에 없습니다. 내가 `얘야' 하고 부르게 되면 상대적으로 `네에' 하고 대답하고, `야' 하고 부르면 `응'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다정스럽고 부드럽게 `여보오'하고 부르면 다정하고 부드럽게 `왜 그래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퉁명스럽게 `여보' 하고 부르면 똑같이 `왜 불러'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산울림과 마찬가지로 다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먹는 것입니까?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밥을 보면 좋다고 먹지만 그런 것은 일시적이라는 거예요. 실컷 먹고 나면 먹을 것을 더 주어도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대해 가지고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잊어버릴래. 싫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봐도 봐도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네가 앞에 서고 내가 뒤에 서고 하면서 수레바퀴같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다가는 현재의 입장까지 언제 오겠나? 지금 6천년 역사가 출발했던 자리에서부터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니 빨리빨리 이야기하자구요? 「천천히 해주십시오」 천천히 하자구? 「예」 아침 못 먹게 되면 배가 고프잖아요? 「먹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나도마찬가지예요? (웃음)

하나님의 상대의 자리에 서려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공인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창조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사람하고 비슷한 원숭이를 하나님의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공인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원숭이를 보고 `원숭이님' 할 수 있도록 원숭이가 그런 소성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숭이님, 이리로 왕림하십시오'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체는 신비의 왕궁

과학에서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모든 존재물은 자연 발생하여 진화발전한 것이다. 창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이 맞습니까? 원숭이와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인식 기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 세계에 꿈이 있을 수 있어요? 인륜 도덕과 같은 내용이 있을 수 있어요? 없다는 겁니다. 원숭이의 생활은 일방적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입체적입니다. `그러면 일방적인 것이 어떻게 입체적이 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적응해서 그렇다'고 할 겁니다. 수작이 좋지, 적응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한 가지 물어봅시다. 여러분, 하나님 봤어요? 하나님을 못 본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님은 언제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요? 「예」

여러분, 눈이 어떻게 생겼어요? 새까맣게 생겼지요? 이 눈이 깜박깜박하면서 윙크하기도 하는데 얄궂은 것입니다. 이 눈이 태어날 때부터 `나 눈으로 태어난다' 하면서 태어났겠어요, 태어나다보니 눈으로 태어났겠어요? 「태어나다 보니 눈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눈이 생길 때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이 눈이 모태 안에 있을 때 내가 태어나게 되면 태양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몰랐다면 눈이 어떻게 이 태양을 볼 수 있게 생겨났을까요? 「선천적이기 때문입니다」 선천적인 것?

그러면 종지조상인 아담 해와의 눈이 생겨날 때도 `나는 그저 태어나다 보니 이렇게 생겨났다' 했겠어요, 아니면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생겨나야 되겠다' 해서 생겨났겠어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만약 눈 자체가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생겨나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 눈에게 물어보면 `내가 눈으로 생겨나면서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알았다는 것이 태양보다 먼저겠어요, 나중이겠어요? 「알았으면 먼저 있어야 됩니다」 먼저여야 되는 것입니다. 다 알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눈이 이렇게 생긴 것은 밖으로 나오면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안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귀가 생겨나면서 이 땅 위에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이 귀가 무엇 때문에 밖으로 이렇게 만들어졌겠어요? 공기가 도망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공기 속의 음파를 잘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멋진 화음통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장난감처럼 `얘 귀야, 네 마음대로 이렇게 돼라'해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렇게 되는 것이 있어요?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겠어요?

그러니 귀 자체가 이런 화음통을 달고 나올 때에는 이 땅 위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알았습니다」 귀 자체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본체는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모두 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귀가 뒷쪽으로 거꾸로 붙었다면 어떻겠어요? 뒤집혀 붙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말이 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일날 것입니다.

또, 코를 생각해 봅시다. 이 코가 이 땅 위에 태어나서 공기를 통해서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다 알고 나왔지요? 「예」 그런데 만약 코가 거꾸로 붙었다면 어떨까요? 소낙비가 오는 날에는 큰일나겠죠? 생각해 보세요. (웃음) 그러니 코가 얼마나 멋지게 생겼어요? 소낙비도 자연히 방지하면서 냄새도 맡을 수 있게끔 코가 나발 모양으로 얼마나 잘 되어 있습니까? 공기가 들어오면 코가 잘 감독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기 중의 불순물들을 놓치지 않고 감독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보다 잘 알았나요, 못 알았나요? 여러분들보다 코가 나아요, 안 나아요? 「낫습니다」

또, 입은 밥도 잘 먹어야 하지만 말도 해야 합니다. 이 입술을 보면 말을 할 때 얼마나 찰감태기처럼 합니까? 위로 올라가라 하게 되면 생각과 동시에 쑥 올라가고, 내려가라 하게 되면 생각과 동시에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하고 나서 말하려고 하는데 이게 닫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말할 수 있어요? `야'하고 누구를 부르려고 생각하고 나서 입이 닫히려고 하는데 벌어져 있으면 되겠습니까? 생각과 더불어 박자가 척척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또, 혀를 보면 그 무슨 재간이 있는지 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멋없이 생겼습니다. 손바닥 같은 혀가 어디에 쓸 데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놈의 혀가 천지에 비상한 재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혀가 없으면 말할 수 있어요, 없어요? 어떤 경우에는 길게도 되고, 어떤 경우에는 납작하게도 되고, 어떤 경우에는 동그랗게도 되고, 여러가지로 변합니다. 사람이 발음할 때도 뭉퉁, 뭉퉁, 미끈, 불쑥, 찔숙 이렇게 제멋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이빨이 나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위험합니다. 얼마나 위험한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린애 손보다 더 연한 것이 혀입니다. 그런데 이빨이 밤낮 마주치는 그 사이를 혀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위험한가. 아마, 혀는 이빨이 움직일 적마다 원자탄이 지금 내 앞에서 부딪치는 것 같을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아무 사고가 없다는 거예요. 이빨과 가끔 서로 마주치면서 끝이 조금 물리는 때는 있지만 혀를 깨물어서 잘리는 것은 없습니다. 이게 어쩌면 그렇게도 잘 알고 서로 박자를 잘맞추면서 잘 놀아나느냐 이겁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혀야, 너 이런 말을 할 때는 큰소리 내면 큰일난다' 하고 생각하면서 말하고, 이빨이 마주칠 때는 `주의해라. 주의해라' 하면서 주의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혀는 밥 먹을 것을 알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또한 이빨도 반드시 무엇을 깨물어 먹어야 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손을 보더라도 이것이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뒤로 구부러진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래도 이것이 앞으로 구부러져서 무엇이든지 전부 다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손이 생겨나면서 그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신비의 왕궁. 무슨 과학자니 무슨 학자니 하는 사람들이 뭐라 해도 그것은 다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손가락 하나를 연구해서 책을 쓴다면 몇천만 권의 책을 써도 다 못 쓴다는 것입니다. 인체가 신비의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400조 이상 되는 세포가 전부 다른 작용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대시키면 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 충돌없이 조화를 이루어 하루의 생활, 일년의 생활, 일생의 생애를 영위할 수 있는 신비로운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그것이 그냥 그대로 자연히 적응하고, 자연이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이놈의 자식들….

힘의 작용 법칙과 진화론

하나에서 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에서 둘이 되려면 여기에 플러스되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을 누가 보태 주느냐? 그 자체가 힘을 파생시켜 나가면 발전하는 거예요? 그런 원칙은 없는 거예요. 제3의 힘이 부가되지 않으면 커지지 않는 것입니다. 시일이 갈수록 힘은 소모되는 것입니다. 전기에서 입력과 출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입력과 출력이 같아지는 법이 있습니까? 입력된 전기가 출력되어 나가면 그 힘이 커지겠어요, 작아지겠어요? 절대 작아지는 것입니다.

진화론에서는 발전이 어떻게 됩니까? 진화론은 입력과 출력의 법칙과 반대입니다. 세상에 이런 원칙이 어디 있습니까? 진화론은 절대 커지는 것이지요? 「작아집니다」 진화가 작아진다는 말이에요?

진화론에서는 아메바가 자연 발생해 가지고 점점 커 올라가서 원숭이로 진화발전하고 사람으로 진화발전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그것이 커지는 거예요, 작아지는 거에요?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의 원칙에 있어서는 입력과 출력이 같을 때 절대로 커질 수 없습니다. 작아지는 것입니다. 힘의 소모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힘이라는 것은 작용을 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작용 없이는 힘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을 부정해요? 힘이 작은 데서부터 생겨서 커졌다고요? 그런 논법은 이제 끝나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체를 두고 보면 태어날 때부터 전부 다 알고 태어났습니다. 그렇지요? 나는 몰랐지만 내 아버지 어머니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만들어 놓고 `너는 태양 빛이 있기 때문에 요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눈이 몇 층으로 되어 있습니까? 흰 자위, 검은자위, 눈동자로 되어 있습니다. 소생 장성 완성으로 딱 들어맞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코도 보면 구멍이 하나, 둘 있고 안쪽에서 하나로 합해집니다.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귀도 보면 그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종합되어 가지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손가락도 접어 보면 이렇게 하나 둘 셋입니다. 전부 살펴보면 이렇게 셋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질서정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징하고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눈

여러분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내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눈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한가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눈을 보면 눈까풀이 창살같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것을 만들었을까요? 이것이 필요한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눈은 쓰레기통이 되는 것입니다. 동풍이 불고, 서풍이 불고, 남풍이 불고, 북풍이 불게 되면 먼지들이 다 눈에 들어갈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눈썹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깜박깜박해서 눈에 먼지가 들어가더라도 깨끗이 청소해 준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뻣뻣하게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나는 것입니다. 이 눈까풀이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걸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눈썹은 뭐예요? 송충이같이 시커멓게 생겨 가지고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이마에 떡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것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야, 잘 붙었구만' 하고 기분 좋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떡 버티고 있으면서 필요하지 않는 것을 제거시킨다는 거예요. 그 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눈썹이 없다면 이마에서 땀이 흐르면 어디로 가겠어요? 눈속으로 직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썹이 있기 때문에 피해 가는 것입니다.

또, 눈은 안으로 약간 들어갔지만 가장자리는 드러나게 해 놓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눈물이 흐를 때에는 그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쪽으로는 절대 못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으로 설명하심) 그렇지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것을 가만히 보면서 `하나님이 눈썹을 만들더라도 이렇게 기묘한 재간으로 만드셨구나' 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쓸 데 있는 거예요, 쓸 데 없는 거예요? 「쓸 데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갖다 붙였습니까? `이것도 자연 발생이다' 하겠어요? 눈썹도 자연히 발생한 것입니까? 자연히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눈을 이렇게 배치했습니까? 만약 이 눈이 머리 뒤에 붙었으면 어떻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목이 무엇 때문에 왔다갔다하고 움직입니까? 눈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무슨 생물이든지 생겨날 때 가만히 보게 되면 눈부터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개구리도 알에서 생겨날때 보게 되면 눈이 아주 큽니다. 눈부터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것 이상하지요? 그래서 눈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코는 아담 해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얼굴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얼굴 중앙에 있는 코가 아담 해와를 상징한다는 거예요. 코가 잘생겨야 잘산다고 그러지요? 코가 못생겼으면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코가 잘 생겼으면 아무리 못난 얼굴이라 해도 균형이 잡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가 납작하게 생긴 사람을 보면 `아이구 재수없어' 그럽니다. 벌렁코를 보면 흉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코가 잘 생겨야 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코를 자꾸 바라보면 기분 나쁩니다. (웃음)

사람의 성격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성품은 천성을 따라오기 때문에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도둑놈 사촌쯤 되는 사람 고르라고 하면 대번에 골라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 선생님이 전문가입니다. 관상쟁이는 아지니만 말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시집 장가 보낼 때 좋은 신랑도 만나게 해주고 나쁜 신랑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정성을 많이 들인 사람에게는 좋은 신랑을, 정성을 안 들인 사람에게는 얼굴이 잘생겼어도 나쁜 신랑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의 선조가 선하고 후손이 뜻을 위해 충성했으면 좋은 신랑을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기에 대해서 반대합니까? 아가씨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해요?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품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얼굴을 보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또, 머리를 한번 봅시다. 이건 고슴도치 같은 머리카락으로 싸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잘 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보자기로는 쌀 수 없으니까…. (웃음) 중요한 부분은 싸 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참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른 부분은 다 내놨는데, 왜 머리만 쌌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겨드랑에도 털이 다 나 있지요? 그게 무엇인 줄 알아요? 펌프통이예요, 펌프통. 발산작용을 하는 나발통이라는 것입니다. 다 필요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되면 사지백체가 긴요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설계가 중의 설계 대왕님이 설계한 것입니다. 그러니 눈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겠어요, 안 계신다고 하겠어요?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굳이 갖다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다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날 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알고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가지고 남자 혼자라면 기분이 나쁠 것 아니예요? 또, 여자로 태어나고 보니 여자 혼자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여자가 태어날 때 남자가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나는 비록 모르고 태어났지만, 나를 낳아준 분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자로 이렇게 태어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다 알고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셔요, 안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생각해 보세요.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를 보면, 코 속에 코털이 나 있습니다. 파이프에 뭐 막힌 것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파이프가 막혀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원리 파이프는 미끈하게 생겨 가지고 그저 훅 불면 공기가 휙 나갈 수 있어야 하는 데 거기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콧구멍도 그렇게 무사통과하게 되어 있으면 좋은데, 왜 복잡하게 털이 막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멍이 보이는가 한번 들여다보세요. 거꾸로 해서 들여다보아도 안 보입니다. 안 본 사람은 이따가 밥먹기 전에 친구의 콧 구멍을 들여다봐요. 선생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털로써 잘 막아 놓았거든요. 털이 전부 다 가운데를 향하여 나 있어 가지고 잘 막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주로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먼지는 들어가면 안 되니까 털이 가운데로 향해 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같애요. 안 그런 것 같애요? 한번 들여다 보세요. 아직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구만…. (웃음) 이것을 볼 때 우리 인체가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머리카락은 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머리카락을 잡고 비벼보면 어디가 뿌리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뭇잎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 전부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하나가 긴요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백과사전을 통해 가지고 연구하고 결정해 가지고 설계하여 백 퍼센트의 가치를 가진 걸작품으로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사람이 자연 발생하여 그냥 생겨났어요? 이놈의 자식들….

여러분, 손톱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요? 손톱이 없으면 어떻게 물건을 잡겠어요? 손톱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려면 손톱을 한번 빼보세요. 얼마나 귀한지 알 거예요. 그리고 손바닥과 손등을 보세요. 가죽이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가만히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적합하게 잘 배치 배열되어 가지고 잘 만들어져 있는지 보면 볼수록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자체가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한번 물어 봅시다. 통일교회 원리와 관계없는 입장에서 나 자신을 놓고 보았을 때 나를 만든 주인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다고 생각합니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공산당들에게 물어 봐도 꼼짝 못할 것입니다.

남자에게 `너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하면 `내가 왜 여자냐 나는 남자다' 할 것입니다. `정말이냐?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르게 생겼느냐' 이렇게 물으면 대답을 못 하는 거예요. `이것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 하고 묻게 되면 공산당도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코가 왜 이렇게 생겼어? 그것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 하면 꼼짝 못하는 겁니다. 이런 작전으로 나가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안 계신다고 한다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은 무엇을 보아야 되느냐? 눈은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영화를 보는 데도 나쁜 영화를 보려고 합니까,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합니까?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기 위해서 갑니까, 무엇을 느끼기 위해서 갑니까? 좋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귀도 좋은 것을 들으려고 합니다. 나쁜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들으려면 음악감상은 왜 합니까? 차라리 변소에 가서 나팔 부는 소리나 듣지. (웃음) 그래 음악감상은 무슨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까?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리 중에서도 최고의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보고, 듣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듣고, 냄새 맡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맡고, 만지는 것도 최고의 좋은 것을 만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좋은 것의 최고는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주인, 사라의 대왕님은 누구시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나이가 20세쯤 되면 사춘기인데, 그때가 되면 남자는 여자가 어떠한지 알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 가지고 선한 아버지가 되어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안 합니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색시를 얻는 데 있어서 나쁜 색시를 얻겠다고 하는 총각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구만. (웃음) 또, 여자들 중에 나쁜 신랑에게 시집가겠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기분 잡치는 것입니다. 뭐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먹는 것, 만지는 것 등 모든 것에서 좋은 것만을 느끼려고 합니다.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끼는 데에 있어서 좋은 것을 느끼게끔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이 뭐냐? 행복이란 말을 하는데 그것은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를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보면 볼수록 보고 싶고 영원히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좋았다 나빠졌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이여'라고 하지요? `나는 당신을 일년 동안만 사랑하겠소' 하는 부부가 있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것이 좋습니까? 영원히 사랑한다고 해야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백 년도 못 산다고 `당신을 삼백 년만 사랑하겠오' 할 것입니까? 백 년도 못 산다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을 삼백 년만 사랑하겠오' 한다면 그 부인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기분 잡쳐요, 안 잡쳐요? 아가씨들 대답해 보세요? 기분 잡쳐요, 안 잡쳐요? 「잡칩니다.」 (웃음) 삼백 년 사랑한다 하면 되겠지 하면 돼요? 삼백 년 살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말은 듣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렇게 폭이 넓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사랑하는데 오늘은 좋고, 내일은 나빠지는 것이냐? 아닙니다. 점점 입체적으로 되어 갑니다. 피라미드같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수정체 같다는 것입니다. 수정체는 깨져서 가루가 되어도 같은 결정체 모양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을 수정의 결정체와 마찬가지입니다. 붙이면 붙일수록 그 모습은 피라미드가 되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로 말하게 되면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의 모양은 같습니다. 크고 작은 것의 차이는 있지만 모양과 본질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인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사람의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좋은 것에 있습니다. 그 좋은 것은 어디에 있느냐? 눈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요, 입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닙니다. 코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요, 귀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요, 촉감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감각이 총동원해서 `아이고 좋아' 할 수 있는 자리가 행복의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가게 되면 시고, 짜고, 쓰고, 맵고, 단맛이 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미라는 것이 있지요? 오미와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적인 욕망을 끊을래야 끊고 싶지 않은 기쁨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되면 그런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먹은 것보다 좋고, 캄캄한 밤이라 해도 대낮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만일에 어떤 부부가 훅 불기만 해도 두루룩 굴러가는 꽁보리밥을 한 알 한 알 주어 먹더라도 사랑하고 웃으면서 산다면 그들이 행복하겠습니까, 불행하겠습니까? 「행복합니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불행을 극복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행복은 죽음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느 때까지 사랑하겠느냐고 묻게될 때, 젊었을 때까지만 사랑하겠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어느 때까지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영원히」 `영원히' 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 다음에 영원히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영원은 미래를 중심삼고 전체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몽땅 주어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영원히'는 전체적이요, `죽을 때' 까지는 몽땅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가씨들은 이제 시집가게 되면 남편에게 틀림없이 `당신, 날 사랑하오' 하고 물어 볼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 `나를 몽땅 사랑하오, 조금 사랑하오' (웃음) 이렇게 물었을 때 몽땅 사랑한다고 대답해야 기분 좋아한다는 겁니다. 남자도 그렇다는 거예요. 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조화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보고, 듣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듣고, 냄새 맡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냄새 맡고, 먹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먹고, 만지고 행동하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만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중심삼은 것이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분이므로 욕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일 욕심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미워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킬 것 중의 첫째가 무엇이라고요? 「계명」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제일 법칙이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법칙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에게 사랑이 없으면 사랑의 주인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 주면 그 사랑이 여자의 것입니까? 그 사랑이 여자의 것이에요, 남자의 것이에요? 여자의 것도 아니고 남자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의 것이냐? 그것은 뿌리의 것입니다. 뿌리에 달린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뿌리와 하나되어 붙들고 있으면 그 사랑이 누구의 것이 됩니까? 「내 것 됩니다」 내 것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에 달라붙으라는 것입니다. 달라붙으면 그 사랑이 자기 것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느냐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인데 사랑하는 데는 죽도록 사랑해야 됩니까, 일시적으로 사랑해야 됩니까? 「죽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할래요, 죽도록 사랑하지 않을래요? 「사랑하겠습니다」 어디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면 죽기 전까지는 못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에 있는 반석을 갈아 밭을 일군 후 감자를 심어서 그 감자로 하나님을 봉양할 수 있어요?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거 해야 합니다. 그때는 소가 없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소 삼아 가지고 밭을 일구었다면 벼락을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아내를 소 삼아서 밭을 일군다 할 때 하나님이 `야야! 그만둬라' 한다면 하겠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정성을 다 하라 했으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의 아내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이제는 너의 아들을 소 삼아 일 시키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기 아들을 잡아 제사지내려 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놀음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서로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는 말과 `죽─' 하고 10년, 100년, 억만 년 하다가 `도록 사랑한다'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을 원합니까?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원합니까? 여기 여자들 대답해 보세요.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보다 `죽─' 하고 억만년 하다가 `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더 좋아할 것입니다.

이것이 십년 백년 천년, 이렇게 길수록 더 좋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만나 가지고 `죽─' 그 다음에 10년이 지나 가지고도 `죽─' 또, 50살 늙어 가지고도 `죽─도록 사랑한다'고 할 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아내는 자기 영감님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배가 나와서 낑낑거리더라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죽지' 하고 죽는다면 그것은 싸구려입니다. 죽더라도 이 세계를 몽땅 내 것 만드는 주인의 자리에서 죽는다면, 쓰레기통에 나가 자빠져 죽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의 가치를 지닌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랏님도 베옷을 입고 제단을 쌓아 천제(天祭)를 드리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삼천만 민족의 마음을 전부다 한마음으로 묶어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일을 한다면 그럴수록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하느냐? 천하에 둘도 없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된 자리에서 죽도록 사랑하기를 하나님이 바랄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다니니까,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으니까 몰리고 쫓겨다니면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아들딸이 되겠어요, 아니면 통일교회를 믿고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어떠한 나라의 왕들 앞에 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그들을 전부 굴복시킬 수 있는 권위와 가치를 지녀 가지고, 만세가 찬양할 수 있는 단 한 분의 자격자가 되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아들딸이 되겠어요? 여러분들 같으면 어떤 아들딸을 원합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천주적인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정성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이 고맙게 생각하겠어요, 안 고맙게 생각하겠어요? 여러분들이 현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위해 죽기를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상태로 죽겠다고 해도 반가와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여러분이 죽어도 영계에서는 골치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컸을 때, 하나님이 필요로 하실 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점이 어디냐? 이것을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언제 현재 우리의 입장까지 이야기하지요? 에덴 동산의 상대적 관계의 내용을 중심삼고 시작해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일부분 중략)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지 않는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남자에게는 여자, 여자에게는 남자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랑은 남자의 것이 아니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사랑도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혼자 있을 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안 생기지요?

여자대학교에서 축제 때 제일 예쁜 여학생을 뽑는 데 퀸(queen)이라고 하나요? 여왕이 된 사람을 여자들이, `나의 애인이여, 당신이 나를 몰라 주게 되면 큰일난다' 하면서 러브 레터(love letter)를 보내고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합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여자들이 남자들에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오. 날 살려주시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사춘기의 여자들이 17, 8세쯤 되면 남자가 쓱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좀 부끄러워하기는 하지만 여자가 그러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솔직히 그렇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렇지요? 처녀들은 잘난 총각들이 지나가게 되면 마음속으로 저런 남자를 내 남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에게는 솔직히 대답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 도깨비 같은 남자들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중화적 주체이시고, 이성성상의 주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님이 이성성상의 주체가 아니고 단성성상의 주체로 계셨다면 큰일날 뻔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에게는 남자나 여자나 다 좋아할수 있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를 다 좋아하시고 그들을 보고 만족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한번 알아보고 싶지 않아요? 알아보고 싶어요, 알아보고 싶지 않아요?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심각해야 합니다. 얼마만큼 심각해야 되느냐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은 이 길을 나오면서 일주일 동안 밤을 밝힌은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칼을 꽂고 생명을 내걸고 그런 일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눈이 물크러질때까지 하나님을 그리워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솟는 태양 빛을 제대로 못 볼 정도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수고하면서 이 길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뭐예요? 다 건달꾼들이지요? 건달꾼. 이 `건'자는 마를 `건'(乾)자라 해야 될 거예요. 마른 것이 도달했다는 거예요. 이것은 깨깨 말라죽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습달(濕達)꾼이 되어야 됩니다. 윤달(潤達)꾼이 되어야 됩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쌓고 있는 공적인 일은 가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믿고 있는 기준에 있는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알려면 몇천 년을 연구한다 해도 다 알지 못할 겁니다.

내가 아직까지 하지 않은 말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무리 선생님에 대해 알려고 해도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얼마나 심각해야 되겠어요? 여기에 비해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왜정 때부터 고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동네를 사랑하지 못하고는 군(郡)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사선을 넘어서서 사랑해야 합니다. 내 자체가 사선에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의 힘으로는 무사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어야 합니다. 그 선 이상에서부터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을 가진 데서부터 새로운 역사적인 사랑의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라서 여러분이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들어 두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행복

그러니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알아봐요.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땅에는 아지랭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 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 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모를 겁니다. (웃음) 기분 좋다는 거예요.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손을 꽉 쥐고 악수를 합니다. 악수할 때 반갑다고 `아하, 이거 오래간만이군' 하면서 손을 꽉 잡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에라, 이 자식아' 하면서 발로 차버리라는 것입니다. (웃음) 반가우면 손을 꽉 쥐어요, 안 쥐어요? 「꽉 쥡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싶은 것이지 좋아하기는 뭘 좋아해요? 알아야 좋아하는 것이지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합니까? 그렇게 좋아하며 잡으면 손을 풀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기 있는 아가씨들, 시집가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 주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사람은 솔직해야 되는 것입니다. (웃음) 사랑해 준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남편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사는 거예요. 남자가 소 앞발 같은 손으로 여자 손을 꽉 잡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아이고, 당신 손은 참으로 곱소'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커플을 이루어 사랑을 하면 딱 맞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 이상의 심정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전부 다 하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세계에서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 가서 살려고 합니까?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선생님은 그런 경지에서 언제나 춤추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목을 잘라 죽인다고 하고 뭐 어떻게 한다고 협박을 하고 핍박을 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와 기분좋게 정신들게 해주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밥을 굶는 자리에 있어도 그 고통이 나를 정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이냐? 전후 좌우 상하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관할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자리라고 해서 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런 자리라 해서 비참한 자리가 아닙니다.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자기의 자세를 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는 앞으로 시련이 클 것입니다. 그런 깊은 내용을 이야기는 안 하지만, 여러분이 `아,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고생하셨고, 이렇게 수난의 길을 거쳐서 만민을 위해 개척자의 주인공이 되어 이러한 전통을 세웠다' 할 때 그 자리는 뭇 사람들이 `아이구 좋아라'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는 비장한 자리입니다. 죽고 사는 경계선에 접해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역사시대에 한 번밖에 태어날 수 없는 주연배우입니다. 그러니 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독이시고 사탄은 참소조건을 거는 자요, 여기에서 나는 멋진 주연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가야 됩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역사를 둘러메고, 모든 시대를 거치면서 억천만세의 인류를 거느려 가지고 시대를 초월한 자리에서 이것을 몽땅 같은 심정권내로 일치화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한한 가치가 여기에서 발굴되는 것입니다.

진짜 자랑할 수 있는 것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면 거기에서 역사를 정복할 수 있는 가치가 발굴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지나갔고 실체는 없다 하더라도 그 사연만은 천년 만년 양심세계에서 계속적으로 웅변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연이 얼마나 고귀한 것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자랑할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겠습니까? 내가 어느 때에 세상에 없는 진수성찬을 대접받아서 잘 먹었다고 자랑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 배를 위한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자랑하게끔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다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싸워 왔다 하는 내용입니다. 자랑할 것은 그것 밖에 없다는 거예요.

본래 사랑이 가는 길, 좋은 것을 찾아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나를 위해 가는 길이 아니라 남을 위해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느냐?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들딸을 위하여 사시는 분입니다. 그 아들달이 만민이니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시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하나님이 아들딸에게 준 계명이요,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계명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들딸 아무개를 사랑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도둑놈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들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첫째 계명으로 삼고 나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온갖 희생을 다하여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시지 못하고, 주고 싶어도 주시지 못하는 한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입장에 계시기에 그분에 대해 항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주어야 할 선물이 있는데, 조금밖에 주지 못하니 약소하다 이겁니다. 너무 약소하여 줄 수 없으니 몽땅 하늘편 사람 되는 그때를 바라시면서 참고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끝날까지 참고 나가기 위해서 한계선으로 그어 놓은 것이 바로 말세입니다.

그러면 하늘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도 부끄러워하고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무슨 국이에요? 「천국입니다」

여기 있는 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백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다 주었다 할 때, 백 사람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돌려주어야 되겠어요, 안 돌려주어야 되겠어요? 「돌려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누가 부자예요? 그러니 백 명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방법에는 자기 하나를 희생하며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또다시 점령이 없습니다. 완전히 점령하는 비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 주었다 할 때는 점령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진정 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죽었다 할 때는 나머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다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전통

1960년대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을 생각했느냐? 첫째는 하나님을 생각했고, 둘째는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청춘시대를 이 뜻을 위해 바친 것을 위로해 주었고, 수난의 길에서 홀로 참아 나가면서 개척자의 선봉에 섰던 것을 불쌍히 여겼고, 이러한 선생님을 중심삼고 같이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괴로움과 고독을 놓고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눈물 흘렸던 사람들이 1960년대의 통일교회 식구들이었습니다.

효자는 자기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부모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며 눈물어린 마음으로 부모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국가가 난세에 처해 있을때,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군왕의 어려움을 먼저 염려하면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의 이익과 모든 것을 희생하는 데서 충효의 극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출발 당시에 하나의 전통적인 극이라면 극, 발원이라면 발원, 모체라면 모체, 발생이라면 발생의 동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식구들에게는 하나님이 첫번째였고, 두번째는 선생님이었고, 자기들이 세번째였던 것입니다. 이게 원칙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싶어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했고, 선생님이 없을 때는 선생님이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가졌던 때가 핍박받았던 초창기의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전통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만 한다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간에 같이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워할 때에도 하나님을 첫번째로 그리워하고, 두번째로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세번째로 식구들을 그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것이 내 마음이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떻게 나왔느냐?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선생님도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그리움이 있었다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청년 시절에도 여자를 그리워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자의 위신을 가지고 시시하게 여자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느니 뭐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공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주인을 그리워하고,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성현들을 그리워하고 존중시했습니다. 하나님을 무한히 존중시한 동시에 역사를 지탱할 수 있는 중심적인 사상의 주인공이 있으면 그 주인공을 존중시했습니다. 존중시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에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찾아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최고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라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하느냐? 자신의 의식이 몽롱하게 될 때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미쳐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한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극에까지 가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극은 망하지 않으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동지를 거치면서 추위가 극한 동삼의 때가 지나면 자연히 봄의 때를 맞는 것처럼 새봄을 향하여 재봉춘할 수 있는 한 길이 틀림없이 모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해 보라는 거예요.

영계에는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 간 수십 조 되는 영인들이 있고 이 땅위에도 수십 억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선생님은 그 사람들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싫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이렇게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하는 자리, 어떠한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 하느냐?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하다고 성품을 다하여 내 자신이 천번 만번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절개를 지니고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결정적 자아를 어떻게 발굴해 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가는 선생님의 길은 핍박의 길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라여 나를 핍박하라. 세계여 나를 핍박하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악령들아 모두 동원되어 나를 핍박하라. 핍박을 할 때에는 일시에 총동원해서 하라' 하며 나왔습니다. 그런 초점 속에서 항거를 받는 입장에 서더라도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을 미칠 듯이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고 증거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자' 이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시시껄렁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꽃다운 청춘시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재촉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 때에는 머리를 안 들고 다녔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선생님에게 반한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곤란한 점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보기에는 얌전해 보이는데 얄궂다는 거예요. 여자들 배짱이 남자보다 더 두둑합니다. 뭐 좋은 상대가 있으면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이예요….

여자들 가운데는 선생님을 협조해 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다 당해 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선생님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여러분들처럼 새옷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전부다 고물상에 가서 헌옷을 사서 입었습니다. 천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나이가 어찌 뻔뻔스럽게 갖출 것을 다 갖추어 대로를 활보하며 다닐 수 있느냐 하면서 나왔습니다. 천리의 공법 앞에 치러야 할 대가를 청산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좋은 것을 먹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식당에 가더라도 고급 식당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식당에 가더라도 제일 말석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런 놀음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학생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복을 벗어 던지고 노동판에 가서 일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석탄을 나르는 일도 해보았고, 배도 타 보았고, 머슴살이도 해봤습니다. 온갖 일을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고락이 어떤 것인가를 다 알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고락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책임자가 되어 이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부모의 심정권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으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 그러한 뒷골목도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술집 아가씨와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가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녀의 부모 이상 슬퍼하고, 그녀의 오빠 이상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어떻게 유발시키느냐를 생각하며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자의 옷을 입고 빌어먹은 때도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여자도 되어 본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인생철학이 아닌 인간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노동자도 되어 보고 농민도 되어 보아야 합니다. 농촌에 가서 농사일을 하더라도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김을 매라면 김을 못 매나 밭을 갈라면 밭을 못 가나 다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직장 생활도 해봤습니다.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다는 거예요. 구들장도 놓아 보았고, 벽돌도 쌓아 보았고, 굴뚝도 쌓아 보았습니다. 무엇이든 하라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주 봐주는 것까지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때 어떤 위험이 닥쳐 온다 해도 내 일신이 먹고 사는 문제로 하나님 앞에 염려를 끼치고 살 그런 졸장부가 아닙니다. 지금도 발벗고 나서면 문제없습니다.

여러분도 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지게꾼 노릇, 구루마꾼 노릇도 해보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을 때도 그런 노릇을 해보았습니다. 외국 사람의 종살이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려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일본 동경에 가면 긴자(銀座)라는 번화가가 있습니다. 그 거리는 선남선녀들이 아주 잘 차려입고 다니는 일본에서 제일 번화한 곳인데, 선생님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전신주를 실은 구루마를 끌고 가면서 `너 이 녀석들 길을 내주나, 안 내주나 보자'는 생각을 하고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신주 실은 구루마에 치이면 손해인데 비켜야지 별 수 있어요?

인생에 있어서 심각한 입장에 부딪쳐 보아야 인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노동자냐, 너는 어떤 사람이냐? 그 자리는 어떠한 위대한 영웅들이, 위대한 위인들이 웅변을 하고 설교를 해도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멋진 자리라는 것입니다. 힘차게 땅을 딛고 서는 그 한 발자국에는 역사가 주름잡히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치달을 수 있는 길이 있거든 땀을 흘리며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산 철학입니다.

고난의 길을 걸어온 통일교회

통일교회가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에 대한 선생님의 지도방법은 30세 전까지는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절망의 도가니에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 절망의 도가니 가운데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햐' 하고 환희의 함성을 지르면서 `오늘이 없었더라면…' 하며 결의를 새롭게 다지며 함성을 지르는 사나이나 아낙네가 되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 맺기 위해서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외로운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가서도 자기를 위해 통곡하지 말고 수난의 길을 가는, 복귀의 운명권내에 있는 인류를 대신하여 슬퍼하면서 하나님을 대하기 좋은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모든 계급을 초월하여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담판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 그런 때를 가져 봤어요? 그저 조금이라도 편한 자리만 찾아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사망의 구덩이를 지키는 데 필요한 파수꾼으로서 이 어려운 고빗길을 내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지금까지 선생님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는 길을 막던 사람들은 다 망해 버렸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선생님의 친구란 친구는 하나님이 다 데려갔습니다. 내가 세상에 미련만 갖게 되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죽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나이 서른 살 전후에 다 데려갔습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 않고 사람을 믿으면 못 가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뜻을 앞에 놓고 인간 끼리끼리 가까와지는 자리에만 서면 하나님은 그들을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함부로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식구들에 대해서는 부자의 관계로 인연맺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렇게 싸우고 그렇게 격리시켰던 그 순정을 전부다 퍼부을 곳을 지금까지 지니고 나온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참으로 처량한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매맞고 쫓기며 핍박받았던 사람들은 천하의 그 누구보다도 선생님 앞에 가까운 심정적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선생님을 전부다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가게 되면 어디에서 살든 간에 전부다 선생님이 가는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여러분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그럴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3년 이상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자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3년노정이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는 자리

그러면 그 심정을 어디에서 맺어야 하느냐? 여러분의 안방에서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일선에서 맺어야 합니다. 그 타락한 세계의 일선이 어디냐? 하나님과 사탄이 판가리를 짓는 판문점과 같은 자리인데 인간이 사탄 앞에 참소를 받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일선입니다. 그런 일선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생님이 사랑하는 백성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전부다 수습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뜻을 중심삼고 나오는 데 있어서 과거 초창기에 통일교회 교인만이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고, 다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나라도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세계는 지금과 같은 사탄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는 심판의 과정을 거쳐 청산을 지어 가지고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러면 청산은 누가 짓느냐? 나 자신이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것을 청산지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심판 기준은 다릅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해 나온 것이 무엇이냐? 우리를 반대하던 높은 담벽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해 나오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담벽, 가정적인 담벽, 종족적인 담벽, 민족적인 담벽, 국가적인 담벽입니다. 3정권의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3시대 3정권 3주권의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되고, 3국가의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3대 종파의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대를 받아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쭉 개척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1960년대는 어떤 때냐? 개인적으로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이 반대하지 않는 터전을 닦는 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반대의 담벽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때였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1970년대는 어떤 때냐? 가정적으로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핍박의 담벽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하는 때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의 목적은 무엇이냐? 개인의 목적은 나라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지금 처녀 총각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나라입니까, 가정입니까? 「가정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가정입니다」 가정의 목적은 국가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국가를 향해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든지 가정이 없는 사람은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그렇지요? 「예」

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가정」 가정의 목적은? 「국가」 국가의 목적은? 「세계」 세계의 목적은? 「천주」 천주의 목적은? 「하나님」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이 무엇이예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이 무엇이에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진대 그 중의 제일은 무엇이라고요? 「사랑」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제일 귀한 선물을 주시려고 `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서로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이 말이 좋은 말이에요, 나쁜 말이에요? 이 말은 누가 사랑하자고 하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살림살이를 하려니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던 것을 인간이 배반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탕감원칙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조건을 들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자리에 섰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원리 중에서도 깊은 내용은 앞으로 자세히 가르쳐 줄 겁니다. 아직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에 다니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3분의 1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다니다가 `아이고 난 이제 지쳤소. 대학원이나 가야지. 출세가 좋지. 하나님이 뭐야.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한데 뭘 아나? 더 가봐야 알지' 하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대해 3분의 1도 모르고 떨어진 것입니다.

왜 3분의 1밖에 모른다고 하느냐 하면 선생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 그 내용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원리는 예수님을 중심삼은 내용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원리가 가르쳐 주고 있는 표준이 어디까지냐 하면 예수님을 해원성사해 드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을 해원성사해 주는 내용을 가르쳐 주었지, 통일교회 문 선생을 해원성사해 주는 내용은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르쳐 주었어요, 안가르쳐 주었어요?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니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하는 내용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다가 낙심해서 떨어진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3분의 1도 모르고 떨어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점수로 말하면 33.333…점도 못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1학년을 거쳐 2학년, 3학년, 4학년 과정을 다 마쳐야 됩니다. 그런데 1학년 반쯤 다니다가 그만두었다면 그 대학교와 관계가 있어요, 없어요?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가정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생각해 보세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믿으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그 예수님이 얼마나 못나고 불쌍한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사랑해 봤습니까, 나라를 사랑해 봤습니까, 천주를 사랑해 봤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 봤습니까? 못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사랑하려고 애썼지만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못났습니까?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 예수님

그러면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만났느냐? 가정은 그만두고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만났느냐?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해 봤어요? 못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 동안 천신만고끝에 모은 그의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죽느냐 사느냐의 판가리를 짓는 심각한 기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라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동산 아래서 코를 골며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 하고 깨워 놓고 가서 기도하고 와 보니 또 졸고 있고, 또 깨워 놓으면 또 졸고 있으니 예수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러한 제자들을 사랑했겠어요, 못 했겠어요? 개인도 사랑하지 못한 입장의 예수님이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못 해본 것도 한인데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 하면 받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었으면 예수님이 왜 죽습니까? 뜻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사랑은 영생인데….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해 줄 수 있는 기준까지 올라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이 천주의 사랑을 받아 봤어요? 영계 육계의 사랑을 받아 봤느냐는 거예요? 받았아요, 못 받았아요? 「못 받았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사랑을 받아 보았어요? 나라의 사랑을 받아 보았어요? 가정의 사랑을 받아 보았어요?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는 거예요. 어머니의 사랑도 받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못받아 보았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붓자식이었기 때문에 복중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매일 싸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마리아의 눈치를 보고, 요셉의 눈치를 보면서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었어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예수님이었습니다. 또, 아버지가 있다 해도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형제의 사랑도 받아 보지 못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데 형제들이 사랑하겠어요? 밥을 먹어도 찬밥을 먹어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요셉은 더운 밥이 있으면 한 그릇이라도 자기 아들딸에게 더 주려고 했지 예수님한테 주려고 안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러니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이 전부다 예수님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처량한 예수님이었기에 누가 알아 주었겠습니까? 쫓기고 몰림받는 서글픈 자리에서 어느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한과 인간의 구원 완성

통일교회 식구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복귀원리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때까지 인간들이 실수한 것입니다. 그 이상은 안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는가? 구원이 안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을 알아 가지고 탕감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유대교가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그 다음은 세례 요한 가정과 요셉 가정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다음은 요셉 가정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가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원이 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가 하나되지 못하였는데 형제들이 하나될 수 있어요? 친척이 하나될 수 있어요? 교회가 하나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구원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는데 누가 하나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동생들도 하나되지 못했는데 누가 하나될 수 있겠으며, 친척이 하나되지 못했는데 누가 그와 하나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무엇 때문에 세웠으며, 유대교를 무엇 때문에 세웠으며, 요셉 가정과 세례 요한 가정을 무엇 때문에 세웠습니까? 모두다 예수님을 위해서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패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다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해 놓았던 기반이 송두리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만 남아졌느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본래 서야할 곳은 가정의 기반 위에, 교회의 기반 위에, 나라의 기반 위에 서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기반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마음대로 그를 집어삼켰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설 수 있는 기반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운명에 처함으로 말미암아 죽음길밖에 갈 길이 없었으니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냐? 가정을 못 가진 것이 한이요, 종족을 못 가진 것이 한이요, 교회를 못 가진 것이 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여 세계를 찾고 천주를 찾은 후 하나님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상세계에서 이것이 예수님의 한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이 한을 풀지 않고서는 인간의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우리는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예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가져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에 달린 형제를 가져 가지고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가정을 사랑해야 되고, 친척을 사랑해야 됩니다. 친척 가운데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있을 것이고, 이들의 자녀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재 입장과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예수님이 언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 봤느냐? 못 해 봤다는 거예요. 아저씨 아주머니를 사랑해 보았느냐? 못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직계가 아닌 고모나 고모부를 사랑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연결되어 있는 사돈의 팔촌까지 사랑해보지 못한 불완전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해보지 못한 그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종족을 사랑해야 되고, 예수님이 사랑해 보지 못한 유대교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통일교회는 이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천국에 가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이방의 백성도 사랑해야 합니다. 가인과 같은 이스라엘의 입장에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것을 필생의 생업으로 알고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했다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은 이 원칙에서 맺어진 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역사시대의 어떠한 부모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역사사대의 어떠한 형제보다도 어떠한 종족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역사시대에 하나님 앞에 충성을 했던 교법사들보다도 선두에 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데는 그들이 머리 숙일 수 있는 충성을 하여, 교회를 완전히 사랑했다는 결정적인 권한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갖고 오신 책임과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만 주권 국가를 대표하여 4천년 수난의 길을 거쳐 공들인 터전으로 말미암아 찾아진 이스라엘 나라의 주권자로서 하늘 나라의 주권을 상속받아야 할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주권자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굴복하였더라면 로마와 직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로마는 지중해 일대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로마와 연결되어 세계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더라면 세계는 예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여 통일적인 기반을 완전히 형성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의 속국이 된 것은 더 큰 로마를 물고 있는 이스라엘 나라만을 끌고 들어가게 되면 로마를 비롯한 세계를 다 낚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한이 맺혀 있으니 그 한을 풀어야 됩니다. 탕감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참부모의 도리입니다. 이처럼 통일교회에서는 다른 어떤 종교가 하지 못한 참부모의 인연을 가르쳐 줍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여러분에게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참가정이 있어야 되고, 참종족이 있어야되고, 참국가, 참세계, 참 하나님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의 하나님은 본연의 하나님의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참하나님이 있어야 된다는거예요.

예수님이 자기의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겠느냐? 그러니 여러분은 역사를 대표한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를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겠느냐? 그러니 여러분은 형님 중의 최고의 형님이 되어야 하며, 오빠 중의 최고의 오빠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수많은 종족들이 죽을 입장에 처했을 때 우리 종족을 살려달라고 할 수 있는 종족적인 대표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교회가 빠졌는데 이것은 민족권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유대교의 대제사장보다 더 사랑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섰었어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유대교를 통해 가지고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수난의 길에서 망해야 할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유대교를 붙들고 그 메시아를 고대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남아졌던 것입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메시아와 하나되지 못한 사연이 얼마나 서글프고 괴로왔겠습니까? 이것이 틀어지는 날에는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모든 것이 헛것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지 못했지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지요? 우리가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 못한 것도 원통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것도 원통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자기 일신의 체면과 사정을 넘어 예수님을 위하여 쫓겨나고 매맞아 객사하는 신세가 되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미쳐서 사랑하다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 앞에 세 번씩이나 통곡하면서 하소연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자기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집을 나와 공생애 노정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

그러면 어머니인 마리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예수님이 장가갈 수 있는 상대적 인연을 갖추게끔 역사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런 기반을 완결짓기 위해서는 모자 협조가 이뤄진 가운데 아들이 가야 할 한스러운 길을 어머니가 전부다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나서 예수님의 신부를 택정하여 요셉 가정 기반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올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꿈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리아 자신은 자기의 생활문제, 자기의 상대문제에 얽매여 살기에 급급했습니다.

본래 마리아는 요셉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이런 깊은 원리적인 이야기는 언제 시간을 내서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싸우다가 지쳐 돌아오면 기합을 줘서 다시 돌려보낼 때 선물로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알아야 무엇을 하지요.

예수님은 요셉의 사랑을 못 받았고 마리아의 사랑도 못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을 했을 때, 예수님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장가갈 것은 염려하지 않고 남의 잔치에 와서 뭐가 어째요? 마리아가 천륜의 해원성사를 이루어야 할 고비에 개인으로 온 예수님이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륜의 해원을 풀어야 할 것은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백번 천번 있을 수 있는 시시한 잔치에 와서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보고 제자들이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나이다' 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만이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지금 기독교가 그것을 모르니까 눈감고 아옹하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사랑했느냐? 사랑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초막절이 가까와졌을 때 동생들까지도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데 형님은 왜 이러고 있소' 라고 비난했습니다. 제자들이 바라고 있는데 자기들과 틀어박혀 있다고 하면서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요한복음 7장에 나와 있습니다. 친척들도 예수님에게 바알세불이 들려서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랬어요, 안그랬어요? 유대교회도 예수님이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했고, 나라까지 예수님을 선동분자로 몰아쳤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동원되고, 교회가 동원되고, 종족과 가정의 부모 형제가 모두 동원되어 가지고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절대 복종하겠다고, 천년 만년 충신의 도리를 다하며 하늘의 법도를 따르겠다고 맹세를 해야 할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부다 예수님을 멸시했고 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원성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고난의 길을 걸은 통일교회

사랑을 받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고, 사랑을 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은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니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정을 버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8남매나 되었던 형제자매를 다 버렸습니다. 처자까지도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리는 것은 영원히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탕감노정을 거쳐 가지고 재봉춘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입니다. 울음으로 갈라지는 것은 기쁨으로 상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늘 부모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이별하였던 역사적인 한을 풀려니 지상에서 평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개척하여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4천년 역사의 기반 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유대 나라를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다시 2천년 동안 기반을 닦게 하여서 6천년 역사를 종합하여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에 한국을 세웠고, 유대교의 입장에 기독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기독교권내의 택한 무리들을 중심삼고, 수많은 민족과 종파를 중심삼고 연결시킬 수 있는 재림사상을 고취하는 동시에 신령역사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준비시켜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지와 열두 제자와 같은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과 열두 제자가 규합하여 예수님을 받들어 모셨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를 중심삼고 벌어져 나왔지만 세례 요한과 열두 제자가 돌아서서 뿔뿔이 흩어진 것과 같이 이들도 역시 그렇게 돌아섰습니다. 지금까지 신령한 집단은 그와 같은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 선생이 그러한 역사적인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수많은 교회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려면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요셉 가정과 같은 그런 기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팎의 모든 문제를 내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심정적 기준이 엇그러진 것을 다 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시대적 환경은 못 갖추더라도 역사에 상충되지 않게끔 순리적 법도에 따라 가정적 기틀을 기성교회가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성교회에서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령한 사람들을 통해서 다 준비했지만 그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 더벅머리 총각인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누가 믿겠느냐는 거예요. 선생님이 한번 말을 하였는데 믿지 않게 되면 나라가 꺾여져 나가고, 민족이 꺾여져 나가고, 종족이 꺾여져 나가고, 가정이 꺾여져 나가고, 교회까지도 꺾여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수난의 길을 극복하면서 그런 환경이 될 때를 바라보면서 싸워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이 오늘 복귀의 책임을 지고 있는 통일교회 문 선생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해방 후 기독교를 중심삼고 출발하려 했지만 틀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수습하기 위한 결정적 기회를 잡아서 출발하려 했지만 틀어져 나갔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교회와 나라를 연결시키려 했던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갔습니다. 기성교회가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수님이 반대를 받아 이방 종교를 통하고 이방 민족을 거쳐서 다시 돌아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 선생도 그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원수의 나라를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북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전부가 원수입니다. 적국이었습니다. 발을 디디는 곳이 전부가 원수였다는 것입니다. 나라와 교회는 물론 백성까지도 선생님을 때려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주먹으로 대하게 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희생 봉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열번 맞고도 그들을 위해 복빌어 주고, 천번 천대를 받더라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작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이와 같은 작전을 해 나온 것입니다. 천번 만번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참아 나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떤 시험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오셔야 했으니, 지금까지 억울한 분을 풀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험이라도 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극복해 나온 것입니다. 천년 한스런 사연이 일년 동안에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극복해 나오는 것입니다.

원수의 창끝 앞에 서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원수로부터 가해지는 어떠한 욕도 감수하면서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원수 앞에 굴욕을 당하는 것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신 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는데 고생을 한다 해도 10년, 20년, 1대밖에 더 고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년 생애에 그런 길이 첩첩이 가로 놓여져 있어도 이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이걸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나라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가정도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린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정을 버렸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으로 떠날 때 성진 어머니와 성진이를 버리고 갔습니다. 선생님이 가정을 가지게 된 것은 교회를 연결시키고 나라를 연결시켜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와 연결되지 못했고 교회와도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가정의 기반은 가졌지만 이스라엘 나라, 유대교와 연결되지 못한 입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가정을 모르는 입장에서 모든 인연을 끊고 원수의 세계인 이북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탕감역사를 거쳐오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길에 섰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부모 처자를 다 버리고 그런 길을 갔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가 아니요,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가 아니요, 형제가 있어도 형제가 아니요, 처자가 있어도 처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갖지 못하고 맞이하지 못한 한을 품은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부모를 만나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었고, 처자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형제들은 선생님을 위해서 희생하던 형제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만고의 어떤 효자보다도 나은 모습으로서 직행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 2차 대전 직후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교계와 나라에 연결시켜 아시아에서부터 세계로 전개시킬 수 있는 경계선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일족을 중심삼고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었지만 교회가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하니 선생님은 할수없이 예수님이 갔던 길을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겠어요?

뜻을 위해서 선생님이 걸어야 했던 노정

선생님의 그 장면을 보면 예수보다 더 비참하고 서러웠습니다. 사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형제들이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서 선생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사랑을 못 받았고 나라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이게 한이 라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받고도 교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나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에 연결시키는 일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식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성진 어머니가 천년 사연의 한을 극복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참아 나왔더라면 오늘 선생님 가정에 불상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끝날에는 자기 부모라고 해서 부모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남한 땅에 발을 들여 놓을 때도 처자를 먼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다시 탕감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그래서 성진이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다시 닦아 1960년에 성혼식을 할 때까지, 부모의 자리에 설 때까지 성진이와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성진이를 김원필이한테 맡긴 것입니다. 그것은 성진이가 가인적인 장자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통한 역사가 벌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아내가 있어도 아내를 만날 수 없었고, 자식이 있어도 자식을 만날 수 없었으며, 부모가 있어도 부모를 찾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갔을 때 거기서 한 시간 반이면 고향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집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나오기를 그렇게 고대하고 정성을 다하여 기다리던 부모 형제를 찾아가지 못하는 서글픈 탕감의 노정을 걸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사랑하고 처자를 사랑하는 것 이상 사탄의 아들딸을 더 사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편성하는 데 있어서도 나와 더불어 부모도 그들을 사랑해야 하고 처자도 그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만 이들이 종족의 틀이 되는 것이요, 교회의 틀이 되는 것이요, 민족의 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다시 소생시켜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에서 성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통일교인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북에 있었어도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소문이 난 것은 바로 그것에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당하지 못할 심정의 십자가를 선생님이 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서러움, 교회를 잃어버린 서러움도 서러움이었지만, 그것보다도 6천년의 한을 풀기 위한, 가정적인 기반을 못 가졌던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세웠던 가정적 기틀을 다시 잃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이것이 더 서럽고 분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재차 편성해서 가정적 기반을 다시 세운 것이 현재의 가정입니다. 알겠어요?

돌고 돌아온 탕감역사

1960년도에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정의 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를 했기 때문에 이 가정의 틀을 중심삼고 이러한 역사적인 소생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안 되면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진 어머니가 해와의 입장이고, 희진이 어머니는 마리아 입장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애급으로 간 것처럼 희진 어머니도 희진이를 데리고 일본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탕감복귀역사는 이렇게 돌았습니다. 그래 철부지한 여러분들이 스승에 대해서 알아요?

희진이는 일본 오무라 수용소에서 3년 이상을 자랐습니다. 원수의 철창에서 자랐습니다. 희진이는 세상의 어떠한 아들보다도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도를 세우기 전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진이 손목 한번 안 잡아 주었습니다. 아버지로서 한번 똑바로 대해 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냉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을 사랑하기 전에 가인을 먼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아 세운 제2 이스라엘을 먼저 사랑하고 난 후에 아들딸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섭리는 원칙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귀역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마리아가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죽을 고비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1960년대에 있어서 희진 어머니를 중심삼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희진 어머니는 바다를 건너가 일본에서 모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적응하고 다시 돌아올 때는 민족이 환영하면서 맞이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실패한 것과 같은 결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진이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진이는 객향에서 태어나 객향에서 죽었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객향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햄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십자가에 돌아갔던 것입니다. 희진이도 어머니가 책임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운명길을 갔습니다.

1969년도에 통일교회 식구 전체를 동원시켰을 때 식구들은 여기에 별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통일교회 식구들이 안 나가면 나라도 나가야 되지 않느냐' 하면서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갔지만 지금도 희진이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진이가 손해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30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30대 이하 10대, 20대에서 죽은 영인들은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들을 누가 연결시키느냐? 그들은 영계에 가더라도 십자가의 혜택권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희진이가 타계함으로 말미암아 10대, 20대권의 영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 권내의 영인들에게 크나큰 복귀의 혜택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죽었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정했다는 것입니다. 천법은 엄하고도 매정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게 되었습니다. 6천년의 역사 가운데 아담, 예수, 재림주 시대에까지 탕감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해와에 해당하는 것이 성진 어머니이고, 마리아에 해당하는 것이 희진 어머니이며, 재림시대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어머니입니다. 알겠어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그런 어머니가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사위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국진이까지 태어남으로 인해 하늘의 운세가 통일교회로 온다는 거예요. 복귀역사는 여러분도 모르는 가운데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려가는 데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십자가의 길을 가느냐? 지금까지 심정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의 길을 갔지만 선생님은 심정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참고로 알아 두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을 선생님의 아들 성진이보다 더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내 자신과 혈족을 희생시켜서라도 대한민국과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한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교회가 어떤 교회냐? 기성교회입니다. 선생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는 이 한국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랑할래야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사랑할 수 있는 권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단입니다. 만약 기성교회가 선생님을 믿고 따랐다면 통일교단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 혼자 직접 아벨 교단으로 통일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가인적인 교단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벨 혼자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가인을 데리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자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얘기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가인과 하나되어 부모를 모시고 가야 합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가인 아벨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둘이 되었다는 거예요. 천국에는 사랑의 열매가 둘이라는 말도 없거니와 그런 모양도 볼 수 없습니다.

본래 천국은 사랑의 열매가 하나로 인연되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가인 아벨로 갈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와 같은 입장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입장에 서야 하는데 아벨은 두번째 열매입니다. 이 두번째 열매가 첫번째 열매의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형님 자리에 서서 첫번째 사랑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형님은 동생의 자리에 서서 동생이 하는 일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에는 계통적으로 형이 있고 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형이 되겠다고 우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하면 부모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복귀되지 않으면 부모를 못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가인이 누구냐? 여러분이 아벨이 되려면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무엇이 될 수 없다고요? 「아벨요」 따라서 개인적인 아벨이 되려면 개인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적인 아벨이 되려면 가정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종족적인 아벨이 되려면 종족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민족적인 아벨이 되려면 민족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국가적인 아벨이 되려면 국가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아벨이 되려면 세계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공산주의, 통일주의

그러면 세계적인 가인이 누구냐? 공산당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중에 어느 것이 먼저 나왔느냐? 민주주의가 먼저 나왔습니다. 공산주의, 즉 마르크시즘(Marxism)은 120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데모크라시(Democracy)는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형이예요? 아벨이 형이 되면 됩니까? 민주주의는 아벨의 터전을 계승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나온 것이지 아벨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가인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 천사장입니다. 그 천사장형 세계를 이룬 것이 민주주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세계는 아들된 아담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아담을 중심삼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형제가 다 같을 수 있어요? 형이 있고 동생이 있어야 질서가 잡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님 될 수 있는 주인된 아벨이 와야만 민주세계에 질서적인 형제의 인연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적인 사조가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전승 국가들이 수많은 패전국가를 해방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상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형제적 인연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질서를 세우려면 모든 국가가 다 같은 자리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 질서는 누가 결정하느냐? 주인의 입장인 아벨이 와서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 결정을 받으려면 다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식민지 국가를 해방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다 들어 맞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내용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참고로 대충 알아 두길 바랍니다.

공산당은 무엇이냐? 오시는 재림주님 앞에 무엇이라고요? 가인입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언제 오셔야 되느냐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재림주님은 무슨 주의를 가지고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주의를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처럼 `노동자 농민은 단결할지어다' 하는 주의가 아닙니다.

통일사상은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단결할지어다' 하는 주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입장은 `세계의 양심 인사는 동원할지어다' 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사상의 표어입니다. 이것은 계급을 초월한 것이요, 종족을 초월한 것이요, 흑백 인종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공산당은 오시는 주님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통일사상은 노동자 농민을 위주한 것이 아닙니다. 하류계급이지만 상류계급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상류계급은 양심을 위주로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 인사 해방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주의는 동네에 양심적인 사람이 천대를 받으며 못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들의 앞날을 보장해 주고, 이들에게 출세의 길을 마련해 주며 세계로 갈 수 있게끔 길을 닦아 주자는 주의입니다. 알겠어요? 「예」

탕감복귀역사의 성취와 가인 아벨

세계적인 가인인 공산당이 생겨났으니 세계적인 아벨이 나와야 됩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벨이 오기 전에 가인이 먼저 왔지요? 「예」 이것은 세계적인 가인 아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인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적인 가인 아벨이 누구냐? 아담 가정에서 형제가 갈라진 것은 한 몸이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몸이 갈라진 것과 같은 나라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벨적인 나라가 있어야 되고 가인적인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가인 주권이 먼저 세워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면 대한민국입니다. 이북이 남한보다 주권을 먼저 세웠어요, 나중에 세웠어요? 이북의 주권이 먼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런 나라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나라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가인적인 교회가 있어야 되고 아벨적인 교회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가인적인 교회고 통일교회는 아벨적인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가인 종족이 있어야 되고 아벨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아벨 종족은 축복받은 가정들이요, 가인 종족은 축복받지 않은 가정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벨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인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아벨 가정은 현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요, 가인 가정은 축복가정 이외의 가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벨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인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되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되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하나님까지 치면 모두 8단계입니다.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탕감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요? 여러분은 어떤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있지? 알아요, 몰라요?

1960년대는 어떤 때냐? 1960년대 이전부터 60년도까지는 개인의 탕감복귀를 위해서 나온 때입니다. 하나님이 개인적인 아벨을 세우기 위해서 4천년이 걸렸습니다. 4천년이 걸려서 개인적인 아벨을 세웠지만 탕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아벨인 예수님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가인인 세례 요한이 하나되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에 탕감했어요, 못했어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개인적 탕감을 하지 못한 하나님의 슬픈 역사가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 시대에 와 가지고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일을 탕감복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천사장과 하나되어야 한다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생명을 버리고 자기의 사랑을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이 탕감복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사랑을 예수님 앞에 몽땅 바쳐 드렸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 앞에 가인이 갖고 있는 가정과 가인이 갖고있는 종족과, 가인이 갖고 있는 나라와, 가인이 갖고 있는 세계를 바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누구의 것이야? 아담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전부 다 가져 갔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것은 천사장이 가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주인인 아담이 달라고 하면 전부다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생명도 내 것이요, 네 사랑도 내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천사장이 사랑과 생명을 유린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입장의 가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 생명을 아벨 앞에 바쳐라. 네 사랑을 아벨앞에 바쳐라' 할 때, `예이'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만 되는 날에는 틀림없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아 넘겼는지 알아요? 예수님 앞에 생명을 바쳐야 되고 사랑을 바쳐야 될 텐데 거기에서 틀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돈 같은 것이 문제였겠어요? 내 나라가 문제고, 내 가정이 문제고, 내 형제가 문제고, 내 자신이 문제인데 교회가 문제가 됩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생명을 바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참사랑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먼저 알아야 되겠구만. 세밀하게 얘기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아벨은 아담의 입장입니다. 아담의 입장인 아벨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못 맺은 것이 타락입니다. 둘째는 천사장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벨에게 있어서 천사장격 인물은 가인입니다.

아담이 있기 전에 천사장이 먼저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있기 전에 가인이 먼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담 대신 아벨을 세우신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본래는 하나님 앞에 아담이 하나되고, 아담 앞에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는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되지 못하고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되지 못한 것을 하나될 수 있게 땜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벨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어요, 못 섰어요? 「못 섰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뭐예요? 그래도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믿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섰습니까, 못섰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못 받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것 같다면 아예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웃음)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없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엊그제도 얘기했는데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고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 절대 복종하지 않고 사탄과 속닥속닥했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밖에 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외에는 어느 것도 안중에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됐어요?

먼저 여러분이 선의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사랑도 받을 수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구장은 선생님을 대신한 심부름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지구장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선생님이 사랑해 준다는 약속 밑에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이 선생님과 여러분에게 어떤 관계가 있느냐?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냐? 부자의 도리입니다.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면 선생님은 아버지이고 여러분은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맺어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들의 모든 소유물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죽기 전에 아들 앞에 물려주고 싶어합니다. 아들을 잘 키워 가지고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잘 키우기 위해서 새벽같이 나와서 이 놀음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은 내 아버지이고 나는 틀림없이 택함받은 아들이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은 칼이 목에 들어오더라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신념만 가지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 말 들으니 기분이 조금 좋지요? (웃음)

어떤 면에서는 내가 기분이 나쁩니다. 이것을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을 종처럼 부려먹을 수 있을 텐데, 이것을 가르쳐 주었으니 종처럼 부려먹지 못할 것입니다. 부려먹더라도 아들과 같이 사랑하면서 코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해 주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죽어도 선생님, 살아도 선생님, 좋아도 선생님 해야 합니다.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해야 된다는 거에요.

참부모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그러면 선생님을 얼마만큼 좋아해야 되느냐? 자기 색시보다 더 좋아하고 자기 남편보다 더 좋아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자기 남편보다 자기 색시보다 더 먼저 좋아해야 할 것 아니예요? 먼저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몽땅 내 사랑으로 하고 나서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부모로서 오시는 참부모를 누구보다도 몽땅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외의 사랑은 일체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것과 같은데 어떻게 사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태어나지도 않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르면 태어나지 않은 입장과 같다는 거예요.

참부모를 알고 난 후에는 좋아도 부모님, 슬퍼도 부모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체의 관심이 참부모에게만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공부에 관심이 있지'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녀석이 벌써 그렇게 말하면 그는 망할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나 대학 가야지' 하는 것은 법도에 틀어진 것입니다. 또,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 언제 청춘시대가 또 있겠느냐. 원리고 무엇이고 내 멋대로 살겠다' 하는 녀석들은 다 원리에 벗어난 녀석들입니다. 이 정도로 말하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겠지요? 「예」

자격은 없지만 참부모와 그런 관계를 맺으면 여러분이 자녀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녀가 될 수 있는 첫째 조건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지요? 하나님과 선생님은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관계에 있지만, 선생님과 여러분은 횡적인 기준에서 부자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인정을 받은 선생님은 종적인 인정을 계승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횡적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의 종적인 아들의 위치에서 사랑을 받아 종적인 중심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횡적인 사랑을 받게 되면 횡적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복 있는 사람

그 종적인 중심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걸 알아요? 여러분들은 머리가 부족하여 몰라서 그렇지, 통일교회의 교리는 앞으로 학문적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빼놓고는 이론이 성립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도 통일교회 교리는 이상이 없다는 거예요. 앞으로 신학교에서 문제가 될 것이고, 대학교의 철학과에서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년 1월 10일경부터 대학교수 한 50명이 아카데미 하우스에 와 가지고 통일교회 원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복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복있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해? 여러분들은 왕가집에 태어났는데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만 크게 떠 가지고 껌벅껌벅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 시골에도 나가 보고, 세상에도 나가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철없이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 울타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기가 좋은 줄은 모르고 세상으로 한번 나가 보겠다고 머리를 내밀고 기웃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모가지가 잘린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얼마만큼 복이 있어요?

예수님이 훌륭해요, 안 훌륭해요? 「훌륭합니다」 예수님은 장가도 못 가고 후손도 못 남기고 죽었습니다. 자식도 못 남겼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후손을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아요? 「우리가 나아요.」 (웃음) 그럴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의 생활자세

아들이 되려면 첫째로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아담이 완전한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사랑을 못 받았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출세라든가 자기를 중심삼은 생각을 하다가 타락을 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중심삼은 생활이나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일체를 부모한테 문의하고 부모를 중심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대학을 가려면 누구한테 물어 봐야 되겠어요? 「선생님께요」 여러분을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한테 물어 봐야지요? 누구한테 물어 봐야 되겠어요? `물어 보기는 누구한테 물어 봐. 나 혼자서 결정하지. 어머니가 고생하든지, 아버지가 고생하든지 간에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불효예요, 효예요? 「불효입니다」 불효입니다. 그런 사람은 혓바닥 내 가지고…. (행동으로 설명하심. 웃음) 기분 나빠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 코에 걸려서 이 놀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었으면 내가 얼마나 해방적이었겠나 생각해 보세요. 출세를 했다면 세계적으로 출세했을 것입니다. 돈을 모았다면 이병철이나 조중훈이보다 더 많이 모았을 거예요. 일본 사람들 껍데기도 벗겨다가 팔았을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성격에 몇천만 원, 몇억 원 가지고 만족할 것 같습니까? 한번 벌었다면 수천 억씩 벌어야지, 그런 놀음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세계의 돈을 전부다 벌어들이든가 세계를 망하게 하든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만족해 했을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에게 그런 머리도 있다구요. 세상 사람 전부가 하늘 맞은편에서 선생님을 죽이겠다고 하는데도 슬쩍슬쩍 피해 가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다 만들어 놨거든요. 그렇지요?

앞으로 기성교회 목사들을 한 700명 정도 초청해서 원리강의를 해주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때는 `아이구, 내가 통일교회 잘 들어왔구나' 할 것입니다. (웃음) 병신 자식이라도 우리 아버님이 훌륭한 분이구나 할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모르고 있는 가운데 선생님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이예요, 가인이예요? 「아벨입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아벨이야, 가인이야? 「아벨입니다」 아벨이야, 가인이야? 「아벨입니다」 어째서 아벨이예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먼저 역사의 한의 풀어야

그러니 먼저 역사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복귀 원리가 이렇기 때문에 부모도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눈물도 진짜 눈물, 사랑도 진짜 사랑, 주는 것도 진짜 주어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 진짜 주었어요? 그렇다면 사탄 앞에 증거를 보여 주어야 됩니다. 사탄이 `네가 어째서 아벨이냐' 할 때 `나는 이래서 아벨이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해야 됩니다」 사탄한테 져야 되겠지요? 「이겨야 됩니다」 사탄이 나에게 이렇게 하면 나는 요렇게 해서 때려 부수어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의 목을 잡아 끌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근성은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백 퍼센트이니까, 내 본성은 낮아지고자 하는 것이 천 퍼센트 되어야 합니다. (웃음) 남들은 전부 다 올라가자고 하지만 통일교인은 세계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내려가자는 거예요. 여러분, 내려가는 것이 쉬워요, 올라가는 것이 쉬워요? 「내려가는 것이 쉽습니다」

통일교회는 올라와 있습니다. 사상으로 보면 통일사상이 제일 높습니다. 선생님은 나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나빠서 잠을 못자요. (웃음) 하나님을 모시는 데도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잠을 자지, 그렇지 않고는 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나는 남에게 지고는 잠을 안 자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씨름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선생님보다도 나이가 많고 힘이 센 사람과 씨름할 때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선생님보다 세 살 많은 사람이었는데 4개월 걸려서 내가 깔아 넘겼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선생님 집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붙잡고 씨름 연습을 했습니다. 이 아카시아 나무는 고질통이어서 여간해서는 꺾이지 않습니다. 그 나무의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어떻게 하면 넘어뜨릴 수 있을까 하고 밤새도록 궁리를 하면서 씨름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나무를 기어코 쓰러뜨리고 나서야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연습한 끝에 그 사람과 씨름을 해서 이겨 가지고 그 면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씨름이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 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한번 한다 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내 성격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손만 대면 다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 우리 어린이 무용단도 세계적이 됐지요? 미국의 백악관에 가서도 춤을 추고 왔지만, 이제 일본에 가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 승공연합도 세계적이 됐지? 그렇게 다 되는 거라구요. 안 되면 내가 안 먹고 안 자고서라도 되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장도 국가적인 기준에서 앞으로 세계적인 기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군수산업도 우리 공장을 빼놓고는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내년 12월 쯤 가면 청와대에서 싸인을 해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 것은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돈 생길 것을 생각하게 되면 입이 벌어지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통일교회가 돈이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있습니다」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다는 것입니다. 그거 보면 도깨비 같아요. (웃음)

통일교인이 지녀야 할 처신법

통일교인은 정신적으로는 제일 높은 곳에 올라와 있습니다. 만약 육체적으로도 올라가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제일 밑창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영적으로는 최고인 동시에 육적으로는 최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번에 내가 한번 시험해 본 것입니다. 통일사상이 얼마나 위대한지 테스트해 본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가정 부인들에게 남편이나 아내나 아들딸을 다 버리고 `출동하라'고 한 것입니다. 가는 데는 어디로 가느냐? 호화로운 청와대나 고관의 자리와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제일 낮은 자리에 종살이 하러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 간다고 하는 사람은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갈 것 같아요, 안 갈 것 같아요? 「갈 것 같습니다」 역사 이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 외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일을 대통령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통령이 이렇게 한다면 이틀도 못 가서 불평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게 되면 기가 막히지만 소리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는 생활을 한다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꼬물꼬물거리면서 시시하게 아이들 장난질 치듯이 살림하는 사람들, 남들이야 전도를 하든지 말든지 몇 해만 더 하면 자리 잡겠다고 하는 여자들은 왕창 부숴 버려야 합니다. 탁 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들이면 그 정성은 들이나마나 한 것입니다.

전도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면 그릇도 없고 숟가락도 없어서 별수없이 밥을 바가지에다 퍼서 손으로 집어 먹게 될 것입니다. 또, 반찬이 없어서 소금에 찍어 먹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여러분을 못살게, 망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남편이 몽둥이를 들고 와서 나를 때려잡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웃음) 그게 잘 될 징조예요, 못 될 징조예요? 「잘 될 징조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좋다고 찬양할 거예요, 싫다고 나빠할 거예요?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우리 엄마 아빠 미쳤어'라고 할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이 그렇게 안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겠어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된 것은 여러분이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려간 사람들은 잘 내려갔어요, 못 내려갔어요? 내려갔다면 얼마만큼 내려갔어요? 밥을 얻어먹는 자리까지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남편 품에서 `사랑 안 해주면 나 못 살겠소 '하던 자들이 이런 거러지 신세가 웬 말이뇨…. (웃음)

통일의 방안과 통일의 의지

그러면 동원된 사람이 `우리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어디 가셨나. 밥은 누가 주나. 아이쿠 큰일 났구나' 하고 자식만 생각하는 그런 어머니보다 꿰맨 옷을 입고도 당당히 나가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했던 어머니라고 아들딸을 대해서 교육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자식을 대해서, 너희 어머니는 역사적인 어떤 위인의 아내보다 훌륭한 아내요,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어머니와는 다르다. 비록 남보다 못한 가난한 초가집에서 살지만 너의 어머니는 세계 제일의 어머니다 하는 것을 교육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어머니를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자식들이 우리 엄마는 제일 훌륭한 엄마라고, 나라 위해 떠나가신 우리 엄마 복받아라 하고 엄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남편도 아무개 엄마 복받아라 하고 아내를 위해 눈물 흘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구덩이로 내려가는 데는 어떻게 내려가야 하느냐? 전부 다 차버리고 내려가야 합니다. 구덩이로 들어가면 전부 다 도망갑니다. 여기에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구덩이로 내려갈 때 같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통일교회 문 선생은 통일교회 아줌마들이 전부 다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고 신난다고 하지요? 「아닙니다」 내가 지금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아닙니다」

부인들이 내려간 거기에 따라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자리에서는 `너의 나와 이별이 있을소냐. 네가 가는 데 내가 가고, 내가 가는 데 네가 가는 것이다' 하면서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를 따라 내려가고, 선생님도 그를 따라 내려가고, 남편도 따라 내려가고, 아내면 아내도 따라 내려가고, 기성교회도 따라 내려가고, 대한민국도 따라 내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 앞에는 모두 따라 내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우리가 가지고 나갈 때 대통령이 머리 숙이겠어요, 안 숙이겠어요? 기성교회가 머리 숙이겠어요, 안 숙이겠어요? 그런 사상을 가지고 그런 자리에 가게 되면 그들은 머리 숙이면서 지금까지 잘못 되었다고, 자신들이 엉터리라고 인정하면서 자연히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굴복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것이 통일 방안이요, 통일의 의지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승리의 깃발을 들게 되는 날에는 삼천만 국민과, 수많은 교회와, 수많은 가정과, 수많은 개인들이 받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꺾거나 칠 원수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화의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서 충절의 심정을 가해 가지고 아버지의 명령을 다 못 따라가거든 내가 거기에 미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내 생활이 무엇이냐, 밥을 굶으면 어떻고 헐벗으면 어떠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랑하는 작은 마음이 승리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기에 행복이 깃들 수 있고 그것이 만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갖고 슬퍼하면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의 안식처와 미래의 소망의 터전이 내 앞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귀함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승리자 중의 최고의 승리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가야 합니다. 전법 중에서 그 이상의 무서운 전법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전법입니다. 누구의 작전법이라구요? 하나님의 작전법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젊은 처녀 총각들도 하나님의 작전법에 말려들어서 여기에 왔으니, 이제 갈 곳이 어디일 것이냐? 어머니 아버지의 따뜻한 품속이 아닙니다. 진수성찬이 기다리는 환갑잔치나 생일잔치하는 곳과 같은 자리가 아닙니다. 폭풍우가 사정없이 몰아치는 그런 곳, 집도 없이 석양길을 재촉하는 나그네 신세가 되어 찾아갈 곳도 없으면서 갈 길을 재촉하는 그런 자리, 오늘밤은 어디에서… `노을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김삿갓 노래 잠시 부르심) 그거 멋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비록 쇠고랑을 차고 갈망정 이렇게 멋지게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쇠고랑을 차고 평양 형무소에 갈 때 그런 노래가 나왔던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길을 갈 때 탄식과 비운 속에서도 행보를 갖추어 가지 않았는가. 천하의 모든 사람의 심정을 낚아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모든 심정 가운데에서 사랑의 동기를 감아쥐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내가 잡아채면 천하가 모두 뺑뺑이 끌려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끌고 왔는데,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여러분을 그런 자리로 내몰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예.」 (웃음)

내가 욕심이 많다면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지독하다면 지긋지긋하게 지독한 사람입니다. 또, 끈질기다면 지긋지긋하게 끈질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뻐떡이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젊은 사람한테 안 집니다. 말을 해도 `하나님 가라사대' 하고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다다다…' 하고 아주 빨리 말합니다. (웃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참 잘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식하다면 무식한데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을 참 잘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결론을 다 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죽겠다고 하는 일이예요, 살겠다고 하는 일이예요? 사실대로 말하면 죽겠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망한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망할 녀석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 여러분도 생각할 때 통일교회가 망하고, 여러분이 망할 녀석들입니까? (웃음)

요즈음 선생님의 주가가 상당히 많이 올라갔습니다. 정보부라든가 혹은 다른 단체에서도 `승공연합의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쁜 사람이지만, 나라를 위하려니 할 수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를 빼놓고는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상세계에서도 우리를 빼놓고는 안 됩니다. 따라서 사상계가 완전히 내려가면 그때는 우리 천지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도 내려가고, 나라도 내려가고, 교회도 내려가면 세상은 지상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우리의 뜻을 따라 내려가는 운동을 한다면 천국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려가라!' 내려가는 데는 하나님을 업고, 세계를 업고, 나라를 업고, 민족을 업고, 교회를 업고, 가정을 업고, 만민이 머리 숙일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를 통일시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작전을 해 나오셨습니다. 따라서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주고자 하는 자는 받을 것이요, 받고자 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웃음) 이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밑창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집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지금 교회(전본부교회) 2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집도 없이 교회에 얹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도 집을 하나 사야 되겠지요? 「예」 무엇으로 살까? 너를 팔아 살까? 그러면 기분 나쁘겠지. (웃음) 집살까 하면 `예' 하고, 너 팔까 하면 인상을 쓰고…. 그러면 잡아서 팔까, 그냥 팔까? 「그냥 팝시다.」 (웃음) 잡아서 팔면 많이 받을 텐데…. 그러니 가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진 것은 없지만, 금년에 땅을 많이 샀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선생님이 비참한 가운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맨손으로 벌거숭이요, 외톨이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보리밥 가운데 도토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보리밥 속에 들어 있는 도토리 알맹이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닌다는 것입니다. 개도 밥을 다 먹고 나서 심심할 때 한번 깨물어 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나왔습니다.

통일교회가 그렇게 나왔는데 이 고빗길을 얼마만큼 온 것 같아요? 한 5부 정도 왔을까요? 얼마만큼 왔을까요? 5부까지 왔다면 돌아갈 가망성이 있지만 5부를 넘어서 이제 뜻이 이루어져 간다 하게 될 때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낮잠도 잘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낮잠은 나의 원수였습니다. 침구하고 나하고 원수입니다. 최고의 긴장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눈을 뜨게 되면 죄인과 같이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모르지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편하게 지냈는가 생각해 보세요.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이는 생활을 해왔지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다르다는 거예요. 나쁜 의미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낫습니다. 그렇지요? (웃음) 고생하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더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은 거예요? 「선생님이 낫습니다」

선생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더 나아요? 「더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선생님을 두고 볼 때는 누가 낫습니까? 그건 틀림없이 하나님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왜? 선생님보다 더 고생했기 때문에. 그러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하나님같이 좋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선생님보다 더 고생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을 선생님보다 더 고생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전부 꽁지를 끌고 다녀야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별의별 고문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못 믿겠다고 하면 선생님이 여러분의 목에다 칼을 들이대서라도 믿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믿겠다고 해야 되겠나, 안 믿겠다고 해야 되겠나? 「믿겠다고 해야 됩니다」

앞으로 선생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상속을 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한 것의 10배 고생한 사람과 12배 고생한 사람이 있다 할 때 누가 일등이겠어요? 12배 고생한 사람이 일등입니다. 만일 선생님의 20배 고생한 사람이 있다면 12배 고생한 사람은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선생님의 종손과 여러분의 종손이 사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거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은 머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말을 듣고 생각해 보고 계산해 보니 손해 안 나겠으니까 `생각해 봤습니다' 한다는 거예요? (웃음) 이런 걸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같았으면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작전을 세우고 `아들딸 낳으면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착착 진행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말해 주어도 눈만 크게 뜨고 멍하게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는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살살 해 가면서 일을 시키고 나중에는 본전도 못 찾게 하려고 한다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유익한 것이 뭐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밥을 못 먹고 살아요, 돈이 없어요? 선생님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 미국 식구들에게 벤츠 차나 링컨 차를 사 보내라고 말만 하면 바로 차를 사 보낸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몇억짜리 집을 살 테니 돈을 보내라고 하면 바로 돈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을 고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기분이 나쁘지요? 「아닙니다」 `차라리 그 돈이 있으면 우리를 고생시키지 말고 좀 나눠 주지' (웃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데도 기분이 좋다는 말이예요? 「예」 별수없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작전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간판을 걸고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는 하라고 해도 아무나 못하는 자리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를 맡아 하라고 세계에 광고를 내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는 나만이 절대적으로 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 외에 다른 사람이 통일교회 선생님을 한다면 나를 좋아하듯 이렇게 좋아할래요, 안 할래요? 그러면 여러분들 나 좋아해요? 「예」 여자들도 그래요? 「예」 여자들이 날 좋아한다면 곤란한데…. (웃음) 이런 얘기는 시간이 오래 되어서 여러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듣고 하려고 눈치 봐 가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얘기로 알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밑창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인간의 불복종으로 인한 한을 풀려면

그러면 이제 어느 정도까지 왔느냐? 아시아 정세로부터 세계정세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데까지 왔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잠을 잘 자는데 선생님이 네시 반에 깨우려고 벨을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울렸습니다. 여러분 중에 벨 소리를 세 번 다 들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 「들었습니다」 아주 곤하게 잠자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일어나라고 벨을 누를 때, 누를까 말까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사실 선생님도 고달프거든. 어제 나도 일찌감치 자지 않았더랬어요. 세 시가 넘어 기도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다섯시 채 못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깨울까 말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벨을 울렸습니다. 맨 첫번에는 벨을 길게 울렸어요? 「다 같은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 소리를 다 들었다고요?

그러면 여러분이 잠에서 깨 가지고 뭘 했나? 일어날 때 기분 나빴지요? 「눈 뜨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기분이 나쁘니까 가만히 있었던 것 아니예요? (웃음) 잠을 자는데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는 것은 무슨 문제가 벌어졌다는 것 아니예요? 불이 났다든가 무슨 일이 있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인 새벽에 벨이 울리는 것 아니냐 이거에요. 그런데도 눈 뜨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는 것 아니야. 그렇지요? 「조금 나빴습니다」 조금 나쁜 것도 나쁜 것입니다. (웃음) 기분이 나빴을 거라구요. 선생님이 성전에 들어서서 여러분의 표정을 보니, 꼭 공동묘지 뒷골목에 들어선 기분이었습니다. (웃음) 선생님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여러분도 우울해 가지고 앉아 있더라는 거예요. 지금은 기분이 어때요? 「싹 바뀌었습니다」 기분이 싹바뀌었어요? 뭐 춤출 정도는 안 되지만 나쁘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손해 안 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안 봤습니다」 둘 다 손해 안 봤다면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아벨입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아벨편입니다. 어느 편이라구요? 「아벨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아벨인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입장과는 달라야 합니다. 나는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고해야 합니다. 제일의 선결조건이 이것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순종도 자연히, 복종도 자연히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불복종으로 인한 한을 풀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틀림없이 나는 무엇이라구요? 아벨입니다.

세계적인 아벨이 되려면

그러면 아벨이 나오기 전에 가인이 있어야 되는데 가인은 누구냐? 세계의 36억의 인류입니다. 가인은 36억이요, 아벨은 한 명입니다. 즉 36억 대 1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관입니다. 메시아가 보는 사명관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메시아가 보는 세계관이 아니라 메시아가 보는 사명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졌던 사명관입니다.

세계 인류의 아벨이 되려면 개인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교회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종족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민족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국가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세계적인 아벨로서 공산당 앞에 승리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관입니다. 예수님의 사명관인 동시에 오시는 재림주님의 사명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가인을 굴복시키려면 국가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민족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교회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종족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가정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개인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하여 전체를 한꺼번에 굴복시키는 일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재세시에, 메시아가 이 땅에 사는 시대에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 세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기반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세계적인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승공사상으로 그러한 기반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승공사상으로, 외적으로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내적으로는 개인적인 사탄과 가정적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심정을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어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느 부부의 사랑보다, 어떤 자식을 향한 사랑보다도 더 높은 사랑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입니다.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통일교회

통일교회의 주의는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는 물론 하늘과 땅을 하나로 합하는 주의지만 천주에서 주자는 `집 주(宙)'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주의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로 통일되면 천지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심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가정을 철옹성같이 묶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이 문제가 아니고, 종족이 문제가 아니고,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묶을 수 있다 하게 되면 세계는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싸우지 않고 공산당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없다 하게 되면 양면작전을 펴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의 이 작전권내에 세계 공산당이 말려 들었어요, 안 말려 들었어요? 지금 일본에 있는 공산당의 연차계획 제1조가 승공연합 타도라는 것입니다.

지난번 몇 차였나? 15차였나? 하여튼 조총련 자체내의 전당대회를 할 때도 북한 김일성이의 메시지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아시아에 있어서 승공연합을 완전히 철폐시켜라. 그러지 않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잘된 것이예요, 못된 것이에요? 「잘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가 무섭다는 거예요, 안 무섭다는 거예요? 「무섭다는 것입니다」 승공연합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요, 몰라요? 그만큼 크게 되었는데 여러분들이 세계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지려면 먼저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념을 가지려면 이론적인 체계가 서 있어야 됩니다. 사상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강한 사상 가운데는 강한 신념이 있는 것이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면 강한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수 있는 자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소련의 기관지인 `프라우다'에도 우리 승공연합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아까하다(赤旗)'에도 우리 승공연합을 때리는 기사가 매일 실립니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느냐면, `미제국주의가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후퇴하자 이를 계승하여 나온 대표적인 신우익 단체가 승공연합이다. 그런데 승공연합은 앞으로 정책적인 모든 것을 계승받아 아시아에 방어진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파동의 보잘것 없는 판자집에서 살고 있는 소수의 무리지만 여기에서 뻗쳐진 움직임이 세계 공산당들로 하여금 치마폭을 좁혀야 할 단계에 들어오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주의가 지독한 주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벌써 그만큼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에서도 `통일교회 문선생' 하게 되면 무서운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1967년도에 선생님이 미국에 가려고 할 때 미국무성에서 주한 미대사관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훈령을 보냈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에 오게 되면 미국 주권을 말아 먹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 입국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고…. 이렇게 미국이 선생님을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들어가려고 할 때도 일본 외무성이 세계에 있는 일본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가지고 선생님이 일본에 못 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어린이 무용단이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3일만에 백안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들어가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국가의 행정대표도 가서 백악관에 들어가 면담하려면 6개월에서 일년쯤 전에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 갈 때마다 본가집 찾아 들어가듯이 백악관에 들어가 마음대로 춤도 출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안방까지 들어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대학과 국제수련소 건립 계획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보낼 수 있는 대학을 짓기 위해서 수십만 평 이상의 땅도 사 놓았습니다. 요즈음 보면 `선생님 지도 방법이야 어떻든간에, 대학 가겠다. 공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대학교나 대학원을 나오게 되면 선생님이 내 신세를 지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시시하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내가 대학을 만들어 놓고 길러서 쓰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대학부지를 구입하는데 지금 한 8천만 원을 투입해서 14만평의 땅을 샀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땅이 약 120만 평 정도 되니까 통일대학은 그것보다 한 평이라도 더 많아야지 더 적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서 땅을 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선 한 10억을 투자해 가지고 40만 평 정도 사야 되겠습니다. 그 이상 살 수 있게 되기 전에는 건물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40만 평 이상 사지 않으면 건물 공사를 착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대학만 만들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수련소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청평에 65만 평 정도의 땅을 사 놓았습니다. 서울 근교의 땅값하고 같습니다. 한 평에 500원 이상씩 주고 샀습니다. 500원씩만 해도 얼마예요. 한 3억쯤 되겠지? 60여만 평이면 얼마나 크겠나? 굉장히 크지. 앞으로 거기에다 무엇을 할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 도시를 만들려고 합니다. 각국의 통일교회 선교부가 있을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은 한국에 와서 최소한 한 달 동안 만이라도 살다가 가고 싶은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러니 그들에게 살고 싶으면 와서 살아라 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도시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국제 중앙수련소를 짓고, 고속도로를 만들어 벨을 울리면 오색인종이 최고 속력으로 차를 몰아 일시에 한 자리에 집합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둘러 모여 춤도 추고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벌거벗고 춤추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웃음) 그동안 우리가 벌거벗겠다는 말도 못해 보고 벌거벗고 춤춘다고 수없이 욕을 많이 먹었는데 그 욕을 잘 먹었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통일교회가 진짜 그런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짜배기들은 못 들어오고 진짜배기들만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벌거벗고 패가망신하더라도 한번 가 봐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이 아니고는 못 들어오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 심각해요, 안 해요? 「심각합니다」 들어올 때는 구경삼아 왔을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심각해야 되는 거예요. 심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현재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식구들이 심정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혈족 아닌 혈족들이 혈족 이상의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혼란한 민주사회나 공산사회의 말기를 수습하여 위험천만한 세계의 종말의 때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은 통일사상뿐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게 될 때, 심령과학이 발달함으로써 영적인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증거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진으로 영계가 있다는 자료를 수집해 가지고 세계적인 활동을 벌이는 그런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 문선생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동원되어 있고, 역사도 동원되어 있고, 안팎으로 전부가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 신이 납니까, 기가 막힙니까? 「신납니다」 신나요? 「예」 신이 나고 그 다음엔 기가 막히고 또 그 다음엔?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만 좋아요? 기분도 좋지만 심각하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돌아쳐 들어오는 이때를 어떻게 안고추어 가지고 상처를 입히지 않고, 흘러 버리지 않고, 전부 다 고이고이 옮겨 가지고 피해 없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통일교회 앞으로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아무리 어쩌구저쩌구해도 통일교회 밥이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개인을 전도 했지만 앞으로는 교단이 몽땅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나라가 몽땅 넘어올 때가 오는 것입니다. 돌아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시대가 오게 된다는 거에요.

세계선교본부 건립계획

선생님이 공포를 잘놔요, 실포를 잘 놔요? 「실포를 잘 놓습니다.」 (웃음) 보기에는 공포 같지만 내용은 실포입니다. 이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믿어져요? 「예」 공포를 놓게 되면 그것이 실포가 되기 때문에 안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웃음)

이제는 내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여의도에 땅을 사 놨습니다. 만이백여 평을 샀는데 작아서 만 평을 더 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며칠 전 조선일보에 난 기사를 봤어요? 「예」 거기에 무엇이라고 했던가? 세계기독교심령부흥회라고 했던가? 이 녀석들은 남의 이름도 모르고 간판을 갖다 썼다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선생님이 산 땅이 제일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 장소 외에는 좋은 데가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 땅이 제일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만 평을 더 사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다 선생님이 세계선교본부를 지으려고 합니다. 우리 세계본부를 짓는 데는 얼마나 높이 지으면 좋겠어요? 한 120층, 210층 정도 지을까요? 한1200층 지으면 어떻겠어요? 그렇게 지으려면 지을 수 있다는 거에요. 높이 지을 수는 있지만 거기 올라가는 사람이 죽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높이 지어서 뭘 하겠어요. 그래서 세계 선교본부를 120층으로 지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땅을 한 만평 정도 더 사려고 교섭을 하라 했더니 그 주위가 전부 다 시의 관할인데 시의 계획이 갑자기 변경됨으로써 살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현재 사 놓은 땅 값이 약 3억 5천만 원이 되었는데 선생님에게는 돈 한 푼 없었어요. 돈 한 푼 없이 맨손으로 땅을 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했어요, 안 했어요? 「했습니다」

오늘이 몇일이예요? 「22일입니다」 이달 30일까지 땅 값 1억 2천만 원을 은행에 납부해야 됩니다. 지금 선생님 지갑에는 몇천 원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눈깔사탕 사줄 돈밖에 안 돼요. 그런데도 이렇게 태평스럽게 가만히 있다는 것입니다. 1년만 지나면 2억 4천만 원을 납부해야 되는데 그때 가면 납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얼마 안 남아요.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여의도에 땅을 샀습니다. 그 돈을 어디서 나서 샀겠습니까? 선생님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금년 일년 동안 쓴 돈이 7억 원 정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한테 돈 한푼이라도 갖다 줘 봤어요? 선생님은 돈이 없어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돈을 조폐공사 뒷문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예요. (웃음)

여러분을 고생시키고 있는 것은 앞날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세계를 동원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선생님이 쉬는날 없이 불철주야 준비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몇 백 교회가 넘어올 것이었는데도 그것을 보류시켰습니다. 왜? 여러분들의 위신을 세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우리가 우리 통일교회를 짓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른 교단이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될 때 그 교단에 비해서 여러분이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생한 여러분들이 그때 가서 그들 앞에 위신을 못 세우면 선생님은 죽어도 그 꼴을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모든 기준을 세워 위신과 체면을 세워 놓자는 것입니다. 그건 왜?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벨의 가치와, 아벨의 자세와, 아벨의 권위와 긍지를 높여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꿈에서라도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래서 금년에 될 수 있으면 교회를 지으려고 했는데, 못해도 명년 6월까지는 어떻게 하든지 각 군 소재지에 지역본부를 지으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설계해서 여러분의 등골을 빼서라도 지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예」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청평은 최적의 국제도시 건립부지

여러분 청평에도 한번 가 보고 싶지요? 「예」 거기에다 씨름장 같은 것들도 만들 것입니다. 선생님이 팔도강산을 다 다녀봤습니다. 1960년대에 여러분들을 전국 각지에다 배치해 놓고 전국의 명산을 전부 답사해 봤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도시의 닻을 어디에 내릴 것이냐? 이 기반을 어디에 닦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장소는 반드시 호수를 끼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동해안은 서울에서 너무 멉니다. 서해안은 몇몇 도시가 집중되어 있고, 간만의 차가 상당히 심하여 물이 빠지면 간석지가 되고, 또 감탕 물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기분이 안 난다는 거예요. 기분이 나려면 못해도 배를 타고 한시간 이상 소요되는 덕적도라든지, 팔미도 같은 곳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니 서해안도 관광지로서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서울에서 멀지 않고 제일 적격인 곳은 청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팔당도 좀 답사해 봤지만 팔당은 앞으로 도시가 확장되면 시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람가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30분이상 걸리는 장소로 택하다 보니 청평 송산리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지역은 참 멋있습니다. 내가 청평 지역을 중심삼고 제일 좋은 장소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선생님이 땅을 사겠다 하면 하나님이 협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려고 하는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땅을 갑자기 살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선생님이 청평 땅을 산 것입니다. 내가 이 땅을 사겠다 하면 틀림없이 주인이 팔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땅 주인이 자기도 모르게 땅을 팔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 놓은 땅이 굉장히 넓은 땅입니다. 10리에서 15리 되는 청평호수를 중심한 중요한 지역은 우리가 다 샀습니다. 별장지대로서 좋은 곳은 모두 우리가 잡았어요. 앞으로 그곳에서 장사를 하더라도 2,3년내에 수십 배 이상 남길 수 있는 곳입니다. 첫눈에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산 땅이 금년에는 10배 올랐습니다.

구라파 같은 곳을 가 보면 알겠지만 앞으로 도심지에서는 사람이 많이 안 살게 될 것입니다. 도심은 공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공기가 나쁜데 누가 살겠어요? 구라파 같은 데는 하이웨이가 되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교외에서 산보 삼아 출퇴근하기가 좋습니다. 직장에서 4백리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을 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출퇴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아주 기분 난다는 거예요. 앞으로 교통이 발달되면 거리의 차이는 점점 축소되어 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은 도심지에서 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위스만 가 보더라도 자연의 경치가 좋은 호수가의 땅 값이 도심지의 땅값보다 비싼 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서울 근교에서는 청평이 제일 좋고, 청평에서도 우리가 제일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놨다 하고 알면 틀림없는 것입니다. 산수도 사람 얼굴이 잘난 것 같이 갖추어야 좋습니다. 기도할 장소도 아주 좋은 곳이 있고, 수영할 장소도 있고, 스키를 탈 장소도 있습니다. 그 스케일(scale)이 굉장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상적인 세계적인 도시를 청평에다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데는 여러분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만드는 것을 감독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영어 공부를 좀 하라는 거예요. 죽기 전에 영어 공부를 해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독이라도 한번 하고 죽어야 저나라에 가서도 체면이 선다는 거예요. 세계 사람들을 감독했다는 명찰이라도 붙이고 가야 여러분 위신이 선다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뒤로 밀려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앞으로 내가 여러분을 공부를 하도록 몰아 넣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학교를 졸업했을망정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야 되겠습니다.

청평은 영계를 통해서 보더라도 좋은 장소입니다. 발전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세계적인 도시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한 3년 이내에 몇 백만 평의 땅을 더 사려고 합니다.

복귀섭리에 있어서 돈과 사람은 언제나 있으나 때는 한때밖에 없다

여러분, 이곳 본부에 오면 기분 나쁘지요? 내가 하려고만 하면 이 건물을 당장에 쓰러뜨리고 서울 시내의 어떤 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좋은 교회를 지을 자신이 있습니다. 350평이나 되는 수택리 수련소도 우리가 28일만에 지었는데…. 그렇지요? 지을 수 잇는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수십개 국을 순회할 때 보니 조그만 사내 녀석들이 큰 궁전을 가지고 있고 나라를 다 팔아먹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세계를 말아먹겠다는 것입니다. 나쁜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말아먹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가 컸어요, 안컸어요? 「컸습니다」

우리에게 대학교가 필요하면 대학교를 만들 것입니다. 대학교를 만들려면 대학교 총장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총장들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내가 놀러 다니는 것 같지만 우리 식구들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울대학교나 다른 몇 개 대학교를 중심삼고 기반을 닦아 놓으면 반대했던 학교 전체가 원리연구회 모임을 자기네 학교에서 갖겠다고 총장끼리 싸우게 될 단계에까지 들어왔다는 거예요. 결국은 머리 싸움입니다. 실력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적인 입장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지구장들은 40대 전후 한 사람들입니다. 이 지구장들과 중앙의 승공연합 국장들은 정계의 어디건 간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요즈음 보면 나이 많은 장관들을 위시해 가지고 공화당 국회의원이나 간부들이 승공연합에 출입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승공연합에 대통령도 왔다 가야 됩니다. 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기반을 닦아 놨습니다.

이제 한국의 승공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경기도 내의 향토예비군 소대장들을 데려다가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중대장들과 여자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직원들도 전부 다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우리 수련소가 닳을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작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중이 떠중이를 데려다가 교육받게 하는 것보다도 좀 똑똑하고 나은 사람을 교육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1억 원 정도만 수표를 끊어서 한 사람 앞에 천원씩 해서 하루에 2백 원씩 들여 닷새만 교육하면 얼마든지 교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돈만 투입하면 양심적인 지방의 공무원들 10만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10만 명을 교육시켜 놓으면 나중에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당신들 교육받을 때 천원씩 신세를 졌으니 갚으라고 한다면 천원의 세 배인 3천 원씩은 받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장사도 된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은 돈 들 곳이 없어서 걱정이지요? 선생님은 이것 저것 돈 들 곳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지난번에 통일교회의 아주머니들을 1,200명 동원했는데, 이 사람들에게 여의도에다가 집을 하나씩 사준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한 200만 원이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00만 원씩 1,200명이면 얼마예요? 24억 원이지요? 24억 원만 가지면 그들에게 여의도에다 집을 한 채씩 사줄 수 있다는 거예요.

빌딩도 산다면 살 수 있어요, 없어요? 「살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해 수십억 원도 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 행정부의 12개 부에 1억 원씩 3년간만 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3년만 그렇게 하면 그들은 선생님 앞에 자연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36억 원만 들이면 3년이면 굴복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때는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사람도 언제나 있지만 때는 한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왔는데 돈 36억 원이 문제겠어요?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달려가는 젊은이가 되라

우리가 그때를 맞았기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호랑이 새끼가 되어야지 고양이 새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래 호랑이 새끼 될래요? 「예」 그러면 호랑이 소리 한번 내 보세요? 「어흐흥」 작더라도 호랑이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옹하고 고양이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고양이 새끼가 아니라 호랑이 새끼가 되어 가지고 삼천리 반도의 쭈그리고 있는 고양이 새끼들을 다 쓸어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이제 여러분들이 출동할지어다! 이것이 젊은 가슴에 새로운 희망과 포부를 품고 목적하는 곳을 향해 달려가야 할 용사의 모습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가당해요, 가당치 않아요? 「가당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할 때 내가 여러분과 같았던 때를 생각합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싸움질하고 그랬겠느냐? 어떠했을까 궁금하지요? 젊을 때에는 하나의 결심을 중심삼고 착실히 나가야 합니다.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고,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고,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이렇게 결판을 지어 나갈 것이다. 역적이 아니면 충신이 되는 두 길 중에서 한 길을 갈 것이다' 하는 결심을 하고 나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있는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였는데도 안 될 때는 깨끗이 가야 되겠다고 각오한 사람입니다. 아주 심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같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결심한 것은 절대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는 면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훌륭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이 길을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어도 가야 됩니다. 실패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미쳐지는 피해가 얼마만큼 막대하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어때요? 이 길을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었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낫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이 길에서 후퇴하겠어요, 후퇴하지 않겠어요? 「후퇴하지 않겠습니다」 않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몇 년간이나 이 길을 가겠어요? 「죽을때까지요」 죽고 나서도 다 못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재림부활해서 가야 합니다. 손 내려요.

축복가정 부인들이 동원된 이유

이제 현재의 선생님 입장과 여러분의 입장만 말하고 끝내겠습니다. 선생님의 현재 입장이 어떤 것이냐? 내가 앞으로 한국에 오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는 오래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정해서 얘기해 주는 거예요. 내가 한국에서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다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기성교회를 어떻게 뜻 앞에 세우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어떻게 뜻 앞에 세우느냐? 나아가 아벨 국가인 남한을 중심삼고 가인 국가인 북한을 어떻게 하나로 규합시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없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기성교회만 우리와 하나되면 남한은 문제 없고, 남한만 우리와 하나되면 북한은 문제가 없습니다.

타락은 여자가 천사장을 유인함으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여자를 동원해서 북한의 인민군대를 전멸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전법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북한의 인민군이 얼마나 될까요? 노동적위대가 작년에 130만 명이었는데 올해는 140만 명이 되었고, 또 정규군이 40만 명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합해서 200만 명에 가까운 북괴군을 대하여 남한의 여군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 앞에 나가서 싸우게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원리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천사장이 누가 유인해서 들어왔느냐 하면 해와가 유인해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 하지요? 「예」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하지요? 「예」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인 아버지와 아벨 아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아담형이요, 하나는 천사장형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천사장이 아담을 추방할 수 있도록 그 동기를 누가 만들었느냐? 해와가 만들었습니다. 가짜 아버지가 생겨난 것은 여자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자를 내세워서 복귀해야 되는 거예요. 여자들 기가 막혀요?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960년대에 개인복귀 십자가 노정의 문을 열게 될 때에도 그 문을 여자가 열었던 것입니다. 여자가 십자가를 먼저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복귀 십자가 노정에서 1차로 여자 선발대 출동해서 개인 복귀의 십자가 노정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2차로 가정 복귀 십자가의 탕감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정복귀 십자가 노정의 문을 여는 데도 가정의 아주머니들이 선두에 서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가정의 아주머니들을 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3차는 무엇이냐? 나라를 위하여 동원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통일하기 위해 삼팔선상에 나설 때 남한의 수많은 가정들이 선발대로 일선에 출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2차 동원기간인 이번이 제일 중요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되겠습니다.

마리아의 책임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모자협조를 통해서 나온 역사였습니다. 모자협조를 왜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도 쓰지 못하게 되었고 해와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둘 다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주인은 누가 되었느냐 하면 천사장이 아담의 입장을 대신하여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뿌리가 되는 새로운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남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를 다 잃어버렸으니 하나님이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발판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찾는데는 누구를 먼저 찾아야 되느냐? 아담을 먼저 찾아야 됩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이 창조를 하실 때 아담을 먼저 창조해 놓고 해와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본떠서 해와를 창조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종교를 세워 복귀해 나오는데, 그 종교의 종주들은 전부 남자였습니다. 그러면 그 남자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남자들의 소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그렇지요? 기독교의 소원이 무엇이냐? 신부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를 찾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자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없어 가지고는 신부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를 찾는 운동을 해 나와 그 기반 위에 하나의 여자를 택해서 그 여자의 몸을 통해 가지고 아들을 보내셔야 할 입장에 계셨던 것입니다. 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의 이 세상의 남자들은 천사장시대의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 후부터는 하나님의 아들시대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어난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누구냐? 하나님이 즐겁게 품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종의 딸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종의 몸이라도 빌려 가지고 종자를 받아야 되겠으니 할수없이 종의 딸을 통해서 아들을 태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알겠어요? 마리아는 누구라고요? 종의 딸입니다.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종의 몸을 빌려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남긴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몸으로서 명목상 예수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는 예수님이 철이 들면 들수록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마음대로 모실 수 없는 예수님의 입장을 만들어 준 것에 한을 품고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버리고, 자기 일신을 잃어버리는 자리까지 각오하며 전력을 기울여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편에 서야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요셉의 편에 섰고, 요셉의 아들딸의 편에 섰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느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어 놓은 후에 그 아담을 본따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 창조원칙에 의하면 해와를 누가 만들어야 되느냐? 즉 예수님의 상대를 누가 만들어 줘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들어야 되느냐? 하나님은 만들 수 없습니다. 땅 위의 부모의 입장에 있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대신 예수님의 신부를 만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계승하여 부모의 인연을 갖춘 자리에서, 해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입장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신부창조운동에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하여 마리아는 그 신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풍습 중에서 좋은 것을 상속시켜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여자를 예수님의 상대로 구해 주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상대를 구해 결혼시켜 주었더라면 거기에서 천륜의 한을 품고 에덴 동산으로 복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상대를 구하지 못함으로써 에덴 동산으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래서 첫째번 소원도 여자요, 둘째번 소원도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소임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가정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리아는 비로소 모자협조의 기준에 의한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요, 아들 예수는 하늘의 옥좌에 오를 수 있는 황태자의 위신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준비를 마리아가 해줘야 했는데 이것을 못 해줬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정을 갖는데 있어 마리아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자협조 문제도 미해결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다시 찾아야 할 이스라엘 나라도 잃어버렸고, 유대교도 잃어버렸고, 세계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룬 역사적인 승리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한 것이 무엇이냐? 많은 사람들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축복을 해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닦지 못했던 종족적 기반을 닦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단이 책임 못한 것을 우리교단이 대신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혜택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보다 행복한 입장에서 요셉 가정의 마리아가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참부모를 중심삼고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신랑 신부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승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상대를 결정해 주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한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모자협조 기준을 자동적으로 완결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부녀협조의 기준도 완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사위기대를 중심삼은 자녀협조 기준인 가인 아벨 기준도 완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부부가 협조할 수 있는 자유스런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을 가진 것은 교회를 갖기 위한 것이요, 교회를 가진 것은 나라를 갖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가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예수를 죽게 한 요셉가정의 실패를 복귀하는 기준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가정은 교회를 찾아 세우기 위해 희생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 입장인 기성교단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지금 남한 땅 120곳에서 축복가정을 대표하여 1,200명의 축복가정 부인들이 고생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년노정의 중요성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일선상에서 이 천지를 갈라놓았기 때문에 다시 일선상에서 갈라진 심정을 규합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녀, 모자, 모녀, 부부, 자녀의 심정적 인연이 일시에 파탄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가정을 중심삼고 규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 이번에 축복가정 부인들이 출발한 것입니다.

해와 한 사람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도 잃어버렸고, 세계도 잃어버렸고, 하나님도 잃어버렸고, 부모도 잃어버렸고, 남편도 잃어버렸고, 아들딸까지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여러분이 심정적 기준을 중심심고 한꺼번에 결속시켰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우지 않고는 가정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정 부인들이 가정을 버리고, 자녀를 버리고 전도 임지로 떠나게 되면 하나님이 이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면 갈라졌던 부모의 심정이 여기에서 결합되는 것이요, 갈라졌던 남편과 아내의 심정이 여기에서 결합되는 것이요, 갈라졌던 부모와 자녀의 심정이 여기에서 결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상에 해와가 타락하여 파탄시켰던 것을 한꺼번에 심정을 중심삼고 복귀하여 연결시킬 수 있는 마지막 고비가 되는 것이 이번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3년 전도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이 3년 노정에서 한을 남겼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3년 노정에서 맺힌 한을 풀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누가 해야 하느냐?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가정에서 심정적 일치 기준을 가지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런 심정적 일치 기준을 가질 수 있는 해와, 즉 여자를 찾아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현시대적 환경에서 횡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탕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내세워 가지고 심정적 일치의 기준을 세움으로써, 종족적 기반을 닦고 교회와 국가를 향해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번 3년 기간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대한민국이 아벨국이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통일되어야

교회는 교회로서 탕감이 있는 것이요, 종족은 종족으로서의 탕감이 있는 것이요, 가정은 가정으로서의 탕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제2차로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동원된 것은 제1차로 처녀들이 동원되었던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복귀섭리역사는 가정을 찾아 세우기 위한 역사입니다. 천국은 가정에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통일교회 운세시대로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이 가정들을 교회를 중심삼고 규합해야겠습니다. 교회와 나라를 중심삼고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도 분립되어 있습니다. 이 분립된 대한민국을 하나로 규합시켜야 합니다. 하나로 규합시키지 않고는 승리적 이스라엘 국가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 통일방안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단결하고, 여군을 강력히 만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아주머니와 아가씨들 할 것 없이 모두 동원하면 북한군의 배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삼천만이 넘으니까, 이북 국민 천 삼백 만의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여자만으로도 이북 국민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를 모두 동원해서 군대를 만들면 이북 군대도 때려 부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믿고 들어오고, 세상의 가정들이 통일교회를 믿게 되면, 선생님이 축복의 가치를 그들에게 설명해 주어서 골수가 새빨갛게 불이 달도록 만들어 놓고 동원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동원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때에는 대학교 운동장을 군대 연병장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들을 훈련시킬 것입니다. 내가 총사령관이 되어 `차렷, 앞으로 갓!' 하면 여자들이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훈련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북진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북 인민군들과 싸울 때 여러분, 이기겠어요, 지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이기겠습니다」 절대로 이겨야 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나라의 승리를 다짐하고 `여자의 해방의 깃발을 세계만방에 드높일 수 있게끔 세계에 널려 있는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할지어다. 그리하여 여권을 옹호해 줄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을 위해 세계에 널려 있는 여성들은 갈지어다' 이렇게 선전하는 날에는 모든 여자들이 남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지고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그 여자 장군들의 왕군이 될 거예요. (웃음) 여자들이 틀림없이 남자들의 보물을 도적질해 가지고 오게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전부 도적질해 가지고 나왔지요? 앞으로는 여자들이 가정을 나올 때 남자들의 보물단지를 전부 가지고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명령만 듣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이 옳소, 안 옳소? 「옳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보물은 전부 여자의 주머니 안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다이아몬드 반지가 누구에게 있어요? 여자 품에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한 때에 써먹기 위해서입니다. 또, 보물함은 누가 맡고 있습니까? 남자가 맡고 있어요? 대통령이 맡고 있어요? 여자가 생명을 걸고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의 여자들에게 `세계의 보물은 모두 한국으로 가져올지어다' 하면 가져 오겠어요, 안 가져 오겠어요?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60장을 읽어 보세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승리를 하는 날에는 세계의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남자들은 절대 일선에 안 세웁니다. 역사상 지금까지의 싸움을 누가 했습니까? 남자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여자들이 한번쯤은 싸워서 이겨야 여자의 위신이 설 게 아니예요? 그러면 남자들은 뭐해야 하느냐? 집에서 밥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해 봐야 합니다. (웃음)

우리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

앞으로의 때는 어떤 때냐? 그렇게 되어 가지고 아벨 국가가 찾아 세워지는 때입니다. 아벨 국가가 찾아 세워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아담 국가가 세워지고, 아담 국가가 찾아 세워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해와 국가가 세워지고, 해와 국가가 찾아 세워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 국가가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국가가 세워진 후에 천사장 국가와 해와 국가를 세우려면 어렵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을 중심삼고 횡적인 준비를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낸 첩자가 지금 중국 장개석 총통의 안방까지 출입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있지요? 또, 일본에서도 사또 수상의 안방까지 출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독일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우리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여러분 같으면 잠을 안 잘 것입니다. 밥을 안 먹을 것입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거예요. 한번 멋지게 일하고, 싸우더라도 가장 멋지게 싸우다 죽지, 죽더라도 시시하게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죽어도 제일 멋지게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미안합니다. 여자들을 치켜 줄 때는 언제고 남자들 얘기로 돌아간다고 기분나빠 할 필요없어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이렇게 한번 해볼 만 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꽃다운 청춘시절을 다 보내고 50 넘어 지금까지 누굴 위해 장사를 했느냐? 하다 보니 여러분을 위해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껍데기 타령만 하고 알맹이는 여러분이 다 갖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내가 세계적인 복을 받아 가지고 흥청거리게 한번 쓰고 또 출세해 가지고 여기서 `왕' 호령하면 저기서 `웅' 할 수 있게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내 나이 50이 넘도록 여러분을 위해 해준 결과밖에 못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만큼 일하라는 것입니다.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야 됩니다.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고서라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혼자서도 이만큼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제 이만큼 됐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아들로 잘 두었어요, 못 두었어요? 「잘 두었습니다」 어디 잘 두었는지 두고 볼까요? 「예」 그럼 두고 보자구요. 또, 딸들을 잘 두었어요, 못 두었어요 「잘 두었습니다」 잘 두었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을 거쳐 오면서 여러분 같은 때에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생각했었습니다. 원리가 얼마나 방대합니까? 여러분은 돼지 우리에서 기르는 돼지 새끼 한 마리 몰기도 힘들지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사탄을 몰고 하나님도 모는 놀음입니다.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제멋대로 요리하던 교활한 사탄을 모는 놀음입니다. 하나님을 6천년 동안이나 골탕먹여 온 사탄을 모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독경무(讀經巫)가 경을 읽으면서 귀신을 잡아서 병에다 넣고 흔들고 하는 격입니다. 강아지 새끼 하나 맘대로 하는 것도 어려운데 세계를 녹여먹던 사탄을 몰아내고 하나님이 행차하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내가 몇 년 동안 고생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몇 십년 동안 고생한 것은 너무도 작다는 것입니다. 티끌만큼도 못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러한 고생을 통해 가지고 이러한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선생님이 지금 하나님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리려면

여러분이 영계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그런 의미에서는 나보다도 문선생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 일대에 있어서의 성공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선생님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영계에 가서 당당하게 영인들에게 `여봐라' 하게 되더라도 모든 영인들이 `예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 가까이서 살고 싶어요, 멀리서 살고 싶어요? 「가까이에서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가까이에서 살게 된다면 걱정이예요. (웃음) 여러분이 지금 같아서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눈만 크게 뜨고 좋은 것은 전부 다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인연을 갖고 가게 되면 전부다 낙제감입니다. 믿고 자랑삼아 소개하겠다고 하다가 전부 다 낙제감을 소개한다면 선생님의 위신이 서겠어요? 선생님의 위신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뭔가 다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들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 대신 여러분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종족복귀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종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북에 남아 있다가 공산당한테 밟혀 죽어서 다 지하에 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나 선생님이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일대에서 사랑하지 못한 것을 여러분과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고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고 내가 못한 것을 기쁜 자리에서 만국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고, 수많은 종족을 대신해서 사랑할 수 있는 종족권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종족권을 찾아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해원성사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해원을 해줄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고 싶으면 하루에 열 통, 백통씩이라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에게는 쓸래야 쓸 수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형님은 하나님을 잘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형님은 가인 중의 가인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해방될 것을 알았고, 기도하면 영계에서 중요한 문제를 가르쳐 주었고, 영계로부터 명령을 받은 대로 행동하던 형님이었습니다. 그 형님이 동생인 나에 대해서 한 가지만 알았습니다. 동생이 무슨 사명을 가졌는지 그것만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명이 무슨 사명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 동생은 세계 역사상에 제일이라는 그것만은 확실히 알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

그렇기 때문에 동생인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보내 달라고 하면 틀림없이 보내 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가인복귀의 기반을 자동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나왔던 형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 형님에게 내가 이런 사명을 가졌다고 말 한마디 못하였습니다. 원리라는 말조차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몰라서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향에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 형님을 모시고 가정에서 아침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경풀이는 기가 막히게 잘 했습니다. 어느 목사에게도 지지 않는 성경풀이를 하였지만 원리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 나는 이런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부모 앞에도, 형제 앞에도 통고할 수 없었던 가련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서 해원성사하지 않고는 그것을 통고할 수 없는 그런 운명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길을 전부 다 닦아 놓았기에 여러분들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종족복귀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하고 선생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들을 옛날보다 천만 배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복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친척을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6천년의 한을 품고 수난의 길을 걸어 찾아온 것은 이 가족과 종족을 만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갖 정성을 다해 자기 동네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동네의 어느 곳이든 내 발길과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마을을 품고 사랑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무한히 행복스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특명을 한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봤지요? 「예」

종족적 메시아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6천년의 피의 대가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도 거둘 수 없었던 종족적 메시아의 시대적 혜택권내에 아무 공로없이 적수(赤手)로서 여러분이 섰다는 사실은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보기에 부끄럽고, 땅을 보기에도 부끄럽고, 흘러가는 물결을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잔의 물을 마시는 것, 한술의 밥을 먹는 것에도 부끄러운 자신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들에게 `네가 내 편이냐' 하고 물었을 때 그것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공인을 받고 나서야 그들을 기쁨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담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만물들이 수고하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산을 바라 볼 때, `네가 주인을 잃어버리고 풍상에 얼마나 고생했느냐, 내가 이제 너를 사랑하니 나무를 심어 주겠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황폐한 땅을 바라보게 될 때, `얼마나 원수들에게 짓밟혔느냐? 내가 이제 너를 정성을 다하여 옥토로 만들어 주겠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식구가 가져야 할 사상입니다.

예수님 대신 나라와 민족과 가정을 사랑하라

그런 반면에 지금까지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했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누나를 잃어버리고, 형님을 잃어버리고 고아의 신세로 6천년 동안을 거쳐오면서 사탄에게 얼마나 유린당했습니까? 등에는 원수의 칼자국이 남아 있고, 앞길에는 아직도 원수의 철문이 가로막혀 있는데, 이 길을 가야 하는 우리 인간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려 주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는 것으로 알고 밤이나 낮이나 눈물 흘리며 가야 하는 것이 통일 용사들의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인류 역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천리 반도를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삼천만 민중을 자기 부모 형제나 처자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는 말은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되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중심삼고 되어진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한을 해원하고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 않고는 축복도 받을 수 없는 것이요, 천국도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수가 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하고, 예수가 사랑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보다 낫기 때문에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님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요셉 가정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을 사랑하던 것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부모님을 가졌고 형제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형제끼리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서로 비난 비소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아버지 어머니도 있었고, 동생도 있었고, 삼촌도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고, 사돈의 팔촌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전부다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내가 사랑해야 되고, 예수님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내가 받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세워야 되느냐? 여기에서 우리 식구끼리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입니다.

남자들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처녀를 보게 될 때 `야, 예쁘게 생겼으니 이 다음에 내 상대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자들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있으면 오빠같이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대신한 사람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저 사람도 예수님처럼 사랑을 하지도 못했고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으니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자기 동생 이상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예수님이 형님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마음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그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받지 못한 예수님을 생각하며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은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식구가 어디를 간다 할 때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헤어지기 싫어하고 항상 같은 집에서 살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싶고, 한 벌의 옷이 있으면 비록 내가 못 입더라도 상대에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통일교회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으면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할아버지로 생각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그 할아버지를 예수님의 할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모셔야 합니다. 또, 천대 만대 수많은 종족 가운데서 내가 이 자리에 택함을 입어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조상으로 알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해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그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저씨 아주머니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사돈의 팔촌을 대해서도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더 나아가서 예수님 당시 유대교인을 대신한 것이 기독교인이면 기독교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전부 다 사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예수님의 운명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대신 그 뜻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 이 민족을 사랑하기에 생명을 걸고 허덕이면서라도 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성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사랑해야 되겠고, 사랑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나이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소년을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 되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어린 소년을 대하게 될 때에 예수의 할아버지로서 손자 예수를 대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할아버지로서 손자인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로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손자와 같은 사람 앞에 경배를 하면서 하늘같이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또한 아주머니의 입장에서 어린 조카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예수님 대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주머니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했고, 예수님 또한 아주머니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기 때문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자기 조카와 같은 어린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을 대신해서 자기 아들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천국은 심정의 인연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곳

형님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자기 손아래 동생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될 때, 그를 형님이 동생을 사랑하듯이 사랑해 줌으로써 예수님이 동생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가 싫다고 하든 좋다고 하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누나가 동생 되는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기 때문에 누나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을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사내 동생같은 입장에서 극진히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또, 동생과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형님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님 같은 사람을 예수님처럼 모시면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안팎으로 서로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의 인연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라의 사랑을 축소시킨 것이요, 세계의 사랑을 축소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심정적인 훈련을 받아 그것이 본질적으로 여러분에게 생활화되고, 그 심정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간절한 심정으로 동화되어 가지고 그 마음을 가정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대 국가적 기준 앞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를 대해서도 그 할아버지를 예수님이 고대하며 만나고 싶어했던 할아버지를 만난 것과 같이 반겨줄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의 인연이 국가간에 민족간에 사회간에 연결되어 가지고 하나로 결속되어 생겨나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짐을 지고 가게 되면 예수님이 도와 주던 거와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지고 젊은 사람이 그 사람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걸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참으로 천상의 복을 받은 노인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찬양하고 오늘의 기쁨을 놓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환경을 이루려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천국이념입니다. 또한 이것이 천주주의입니다.

따라서 가정의 형제와 같은 심정을 보편화시켜 가지고 국가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종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인 기준으로 세계 앞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의 인연의 바탕이 나로부터 시작하여 세계 끝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딸들은 천상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무사 통과할 수 있습니다. 열두 진주문을 한꺼번에 열두 번을 들락날락하더라도 그 앞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유 천국의 왕자 왕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통일교회요,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 식구라는 명사의 뜻을 알겠어요? 「예」 지금 안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예수님은 밥을 얻어서라도 사랑하는 어버이를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밥을 얻어서라도 삼촌을 대접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얻어 온 밥으로라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척들 앞에 모범이 되고 사랑의 중심이 되지 못한 것이 한이었습니다. 얻어 온 밥을 가지고라도 민족을 위하고,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정성들이고 싶어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자신은 나그네 신세가 되고, 한푼도 갖지 못하여 밥을 얻어먹는 걸인이 되어 길가에서 떨고 있는 신세가 되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자기 자신 이상 사랑하고 싶어서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의 가슴이 녹아나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복장이 녹아나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가 고대하던 사랑하던 어떤 사람보다도 더 반갑게 맞아 가지고 그 사람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인계해 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같이 또는 자기 아저씨같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움의 노정을 걸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를 붙들고 통곡하였고, 감옥에 가면 죄수들을 붙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서 눈물이 앞서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의 것인가

선생님은 이런 생활 감정으로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사무친 흠모와 사모의 인연을 어디에 남기고 가야 하느냐? 부락을 넘고, 국경을 넘어 세계의 인종을 초월해 가지고 천상에 있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에게까지 연결하여 하나의 심정적인 인연권에 이들을 동화시키고 통일시켜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심정세계의 창조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의 소원이요, 만인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이요,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고, 만민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심정해방의 봉화가 세계 만천지 앞에 들려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천국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겠어요? 천국은 예수님의 심정을 가정에서 형성하여 가지고 그것을 전세계에 적용시켜 보편화된 세계가 천국입니다.알겠어요? 「예」

예수님이 사랑을 못 하고 죽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사랑받기 전에 먼저 남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이 나라 앞에 사랑 못 받았고, 교계 앞에 사랑받지 못했지만, 나는 사랑하기 위해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를 투입했고, 형제를 투입했고, 처자식을 다 투입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선생님의 이러한 사상을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믿었다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비판하여 이 말씀을 통해 자각과 결의를 하고 나선다면 금후의 나 자체는 달라지게 되고, 내가 바라온 세계, 내가 꿈꾸던 이상세계는 이제부터 결실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여러분들 다 식구가 될 거예요? 「예」 될 거예요, 안 될 거예요? 「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예수님이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요셉을 원망하던 그런 마음을 넘어서서 누구보다도 효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거느리고 있는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느냐, 내 교회를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느냐, 내 사랑하는 나라를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느냐, 세계를 위해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을 위해 그럴 수 있느냐 할 때, `그렇다. 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국은 그 사람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더라도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했고 식구들을 사랑했습니까?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봤습니까? 이 나라 이 민족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밤을 새워 기도해 봤느냐는 거예요?

옷을 마련해 놓고,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사람을 기다려 봤습니까? 사람이 그리워서 통곡할 정도의 심정을 느껴 보았느냐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거리가 멉니다. 현재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사상을 갖춘 통일교회 식구가 아닙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사상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을 해원성사하지 않고는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복귀원리와 식구라는 말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낫지 못해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언제 뜻을 위해 손가락 한번이라도 까딱해 봤으며, 내가 언제 뜻을 위해 발가락 한번, 머리카락 한번이라도 까딱해 봤느냐? 내가 뜻을 위해 뭘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심정을 가지고 기도해 보세요.

죽어 나자빠지고 스러져도 가당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찾아 주시어 이런 복된 자리를 주시고, 천년 만년 동안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이 복음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사 앞에, 이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에 부끄러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오냐, 너 같은 사람을 찾아 나왔으니 그러지 말라' 하는 하나님의 권고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야 비로소 부끄러운 얼굴이라도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젊은 청년 남녀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청춘시대에 순정을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한을 밟고 탕감할 수 있는 귀한 때인 사춘기에 순정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순정을 깨끗하고 귀하게 보존해 가지고 `천세 만세 혼자 가더라도 사랑이 유린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지조와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난 후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천국은 내 가정에 있다

그러면 축복은 누구를 위해서 받는 것이냐? 하나님과 세계를 위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세계를 대표한 제일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아버지를 대신하고 남편을 대신하고 오빠를 대신하고 동생을 대신한 입장으로 사랑해야 하고, 또 남자는 여자를, 어머니를 대신하고 아내를 대신하고 누나를 대신하고 동생을 대신한 입장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이 4대 입장을 대신하여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서로서로가 그 자극을 느끼게끔 묶어 준 인연이 부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를 사랑하는 대신 입장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제일 기본 단위적인 기반이 부부입니다. 그 기반을 예수님이 못 세웠기 때문에 그것을 세우기 위해 세계를 대표한 인간으로 사랑할 수 있는 두 남녀가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만나는 자리가 어린양잔치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면 아내를 어머니 대신으로, 누나 대신으로, 동생 대신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남편을 아버지 대신으로, 오빠 대신으로, 동생 대신으로, 그 이상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상상대를 중심삼은 가정적 부부의 사랑입니다.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결혼은 왜 하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는 훈련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또,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이것이 가정에서 끝났고, 너와 나 사이에서 끝났기 때문에 갈래갈래 나뉘어져 모래알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세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와 나만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하늘땅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터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새로운 혈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맨 나중에는 현재의 입장이 통일교회의 가정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가정은 가정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천국을 이루게 되면 틀림없이 지상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왜 그러냐? 미래의 천국에 대한 실감을 현재의 입장에서 자극시키려니 불가피하게 상대가 필요한데, 가정에서 상대로 말미암아 그 자극을 받음으로써 미래의 천국이념을 오늘의 생활 감정에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체득하기 위해서 부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자극으로 말미암아 부부가 영생할 수 있습니다. 발전은 자극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이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기쁨을 현재권내로 끌어다가 자극을 주어 가지고 추진력을 보급시켜 그 자리까지 가게 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가운데는 나라의 사랑도 들어가 있고, 세계의 사랑도 들어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랑은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결국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언제나 천국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네 마음 속에 있다'고 했지요? 「예」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네 가정에 천국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천국을 이룰 수 없다 할 때는 통일교회의 뜻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다 할 때는 그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리를 중심삼고 정도의 길을 가려 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기 도

아버지, 여기 모인 어린 소년 소녀들의 마음 가운데에 무엇을 심어 주셨습니까?

이들은 현재의 통일교회의 입장이 저울의 어느 눈금을 가리키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평을 이루고 있는 저울은 눈금 하나로 좌우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눈금의 촌푼 하나가 전체를 좌우하여 결정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외적인 세계와 수평이 이루어지는 때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은 저울의 눈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기점에 있사옵니다. 이 젊은이들이 하나로 합하여서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 세계로 기울어져 가는 것이요, 한 눈금이라도 왼쪽으로 옮겨가게 되면 사탄세게로 기울어져 갈 수밖에 없는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과 차원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이들 스스로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서 저희들에게 아버님이 거쳐 오신 노고의 길과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통일역군들이 현재 취해야 할 심정의 자세를 깨닫게 하여 주시어서, 나 자신을 중심삼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염려하고 스승을 염려하고, 나라를 염려하고, 세계를 염려하는 자리에 서야만 아버님께서 언제나 같이하신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자기 자신이 원수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것을 전부다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가는 그들 앞에는 무한한 발전이 있을 것이요, 그 배후에 있는 아버님께서는 희열이 공고히 다져진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이 마음의 방향을 새로이 정하여 이 민족이 가야 할 운명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뜻이 지향하는 결정적 방향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그것을 안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실천궁행함으로써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번 이 기간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새롭게 자각된 자리에서 스스로를 각오함과 동시에 아버님 앞에 맹세하여 실체로서 봉헌할 수 있는 귀한 시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 갈 방향 전체를 아버지께서 장중에 장악하시어서 일일이 간섭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결과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게끔 이들을 몰아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의 무리들이 가는 길 앞에 수고의 길이 많을 것이지만, 그 길을 저희들이 가고 난 후에는 민족이 바라보며 환호하고, 세계 인류가 바라보고 부르짖으며 환호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이 내일의 창건자로서 힘차게 나갈 수 있고, 새롭게 다짐하여 현실을 극복하고 타개해 나가는 승리의 용자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강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권고하시옵소서. 양육하시옵소서. 당신의 기쁘신 뜻 앞에 자랑하고,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장시간을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일체를 당신이 부관하시어 기쁘신 뜻과 기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맡기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소망의 한 시점까지 끌어 올리기 위하여 마음을 돌이켜 손을 대셔야 할 불쌍한 입장에 계십니다. 어떠한 역사과정을 거치더라도 하나님이 손을 대셔서 인간들로 하여금 본래 이상하셨던 창조 본연의 가치를 그대로 지니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내적인 고통이 무한히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인간

인류의 시조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역대의 선조들이 걸어오는 동안 우리 조상들은 맨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할 때의 슬픔보다도 몇 천 배 몇만 배의 슬픔을 하나님께 가중시키며 나왔습니다. 그러한 조상의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현재의 나 자신임을 생각하게 될 때, 나 자신 역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족한 입장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될 우리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우리를 이끄시어 당신의 아들 딸로, 더 나아가 둘도 없는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로 회복시켜야 할 하나님의 고충이 얼마나 크시겠는가를 우리들은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관계지어 생각하기 쉽습니다.자기가 기쁠 때에는 세상이 다 기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쁠 때에는 이 세상이 기쁨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반면에 하나님이 슬플 때에는 이 세상이 슬픔의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하듯이 하나님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해 나오시는 역사과정에서 기쁨의 한때를 가져 보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런 한때를 갖지 못하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의 자리에서 그 슬픔을 극복하면서 기쁨의 한 날을 소원하시며 지금까지 싸워 나오십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을 중심삼고 계속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노정입니다.

개인적인 섭리노정을 거쳐 가지고 가정적인 섭리노정으로 확대시키고, 종족적인 섭리노정, 민족적인 섭리노정, 국가적인 섭리노정을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섭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통해서 이 천주를 창조본연의 모습으로 원상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구상함과 동시에 전피조세계를 복귀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노정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청난 수난의 노정이요,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의 노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갖고 나오신 하나님인데도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그러한 하나님을 더 슬프게 한 선조도 있을 것이고 덜 슬프게 한 선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선조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 앞에 슬픔을 가중시키고 슬픔의 조건을 남겨 놓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오늘날 한 생명체로서, 한 인생으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출발하려는 여러분 자신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입장에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의 대가를 치러 쌓아 가지고 남겨 상속해 준 선의 실적으로 말미암은 승리적인 터전 위에 선 입장이기에,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된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사실에 대해 여러분은 진실로 하나님 앞에 감사드려야 됩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느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역사적으로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거리는 심정세계에서 6천년 역사 이상에 해당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기쁨의 역사를 영위해 나온 세계가 아니라 슬픔의 역사, 비극의 역사를 극복하며 거쳐 나온 세계였습니다. 이러한 6천년이라는 기간은 하나님의 심정세계에서는 몇 천년 억만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과거의 우리의 개체와 현재의 우리의 개체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여기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과 들어온 후의 모습을 두고 볼 때,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보게 될 때 그 모습은 전과 같은 모습이요, 마음도 전과 같은 마음으로 변함없는 것 같지만 그 안팎의 내용에 있어서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나에 비해서 현재의 나는 이렇게 달라졌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 가치의 기준을 비교해 볼 때, 현재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기준 위에 섰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느끼는 자극이, 그 느낌의 정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금후의 여러분의 생활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될 것입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되기까지는 순탄한 노정만 거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탕감노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노정은 나에게 있어서는 극복의 노정이요, 수난의 노정이요, 슬픔의 노정이요, 곡절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설혹 여러분 자신에게는 그런 곡절과 수난의 노정이 없었다 할지라도 현재 여러분의 가치의 기준에 차이를 가져오기까지에는 역사적인 비극과 역사적인 고통이 개재되었던 것입니다. 그 비운의 역사를 여러분이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얻어진 가치에 대해서 탄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지만 금후에 있어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사와 가호의 손길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현재의 내 가치 기준이 과거에 비하여 높아지게 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내일에는 오늘보다도 현격하게 높아진 자리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생활에서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여러분은 정당한 하늘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표준을 향하여 직행해 갈 수 있는 노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흐려지는 마음의 방향을 따라 난데없는 딴 목적의 결과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은 두 말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기준

그러면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한계점은 어디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은 내 개체의 가치 추구의 한계권내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개체의 가치의 한계권을 넘어 환경에 적응하고, 환경뿐만 아니라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더 나아가 세계에 적응하여 세계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인간이 표준으로 하고 있는 가치 추구의 기준은 절대선에 가까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바라는 인생 최고의 기점이 어디일 것이냐? 이는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 즉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와 상봉할 수 있는 기준까지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절대자와 상봉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자와 나와 영원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하나된 자리에까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독차지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독차지하는 데에서 우리 인생이 추구하는 욕망이 비로소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달성하기 전에는 우리의 마음에는 언제나 바람이 남아 있는 것이요, 따라서 우리 인간 개체의 가치는 미완성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가치 완성과 욕망 추구의 한계점, 그 목적점은 어디에가서 맞이할 수 있느냐?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상봉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점령하여 그 사랑이 나와 더불어 있고, 그 사랑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가야 비로소 인간이 최고의 욕망을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으로 갈라지게 하는 것

오늘날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식하기 위한 내 인격 형성의 바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마음은 무한히 광대하고 엄청난 것입니다. 이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도 모시어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올바른 마음을 가지게 되면 만민을 일시에 평화의 왕궁으로 옮겨 놓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방향과 방법에 따라 선의 방향도 생겨나게 되는 것이요, 악의 방향도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바탕을 중심삼고 바라는 목적은 엄청난데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어떤 방향과 어떤 방법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선의 방향과 악의 방향이 각각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이 행한 방법이 우리와 조금 틀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이렇게 해야 목적을 빨리 달성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그런 방법을 취했을 뿐이지 목적은 같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형무소 같은 데 가면 얼마든지 만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방향과 방법에 따라 선과 악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투쟁의 노정을 거쳐 가야 합니다. 차원 높은 경쟁의 마당으로 들어가야 할 여러분이 승리의 표준을 바라보고 영광의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의 나 자체를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직시해 볼 때, 과연 나는 어떠한 길로 가야 하느냐, 어떠한 행로를 선택해서 어떠한 방향을 취해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알아야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두고 나 자신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방향을 거쳐 갈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도 나 자신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둘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목적을 중심삼고 싸우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내 마음도 나요 내 몸도 분명히 나지만, 거기에는 진짜 `나'와 가짜 `나'가 있다는 겁니다. 나에게 필요한 `나'가 있고 필요치 않는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나는 마음의 사람이요, 하나는 몸의 사람입니다. 마음의 사람이 가는 방향과 몸의 사람이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경계선에 서서 둘 중에 어느 사람을 따라가야 되는가를 결정지어 가지고 하나의 방향을 잡아 가야 하는 운명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싫든 좋든 하루 하루를 생활하는 가운데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야 하는 자신의 과정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한 분이므로 그분이 구상하신 모든 창조물도, 창조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가치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둘이 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타락된 자리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마음의 사람을 따라가느냐, 몸의 사람을 따라가느냐, 어떠한 방향과 어떠한 방법을 취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틀림없이 마음의 사람의 방향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른 하나를 극복해야 합니다. 제거해야 된다는 겁니다. 둘 다 좋게 해서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는 부정하고 하나는 긍정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긍정해야 할 것과 부정해야 할 것을 공히 갖고 있는 자신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내게 필요한 말이 있는 것이요, 필요치 않은 말이 있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내 본연의 가치를 이루는 데 있어 절대 필요한 것이 있는 반면에 그 반대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듣는 데 있어서도 그런 것이요,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인식을 하는 그 순간 영원히 잊혀져야 할 인식과 영원히 잊혀져서는 안 될 인식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방향의 결과에 따라, 나와 관계되는 방향의 결과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선한 인사를 하고 첫 출발을 합니다. 내 일체에 선한 것을 남기고 악한 것은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면 내 생활 방편은 어떻게 취해야 하느냐? 선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인식을 하게 되면 하루의 출발을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하기 위한 인사를 갖추어야 되고, 아울러 오늘 하루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가지고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이런 다짐으로 출발하여 저녁에는 그 계획에 일치된 하루로서 지냈는가를 비판해 보아야 합니다. 잠자리에 들 때에는 이렇게 하루를 반성하고 청산지을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달이면 한달, 일년이면 일년, 십년이면 십년을 살아가는 동안 선의 양과 악의 양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았는가, 다시 말해서 마음세계의 목적을 위했던 양과 몸세계의 목적을 위했던 양 가운데 나에게 있어 어느 쪽이 더 많았는가에 따라 내가 그 동안 선을 남겼느냐 악을 남겼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이렇게 가중해 나가면 자신의 일생에 선한 기준을 더 많이 남겼느냐 악한 기준을 더 많이 남겼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의 복귀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의 생활을 시작하게 될 때, 전체를 이어받고 선악의 분별점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내 개체는 두 목적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싸움의 운명을 피할 수 없으니 평안이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기서부터 `인생은 고통'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 자신은 이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택일한 그 면을 절대시하며 밀고 나가겠다고 새로이 결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

내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반대되는 것이 몸뚱이이기 때문에 그 몸뚱이의 방향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마음의 방향과 일치시키기 위한 싸움은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뿐만 아니라 영계에 가서까지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한계점을 살아 생전에 어떻게 넘을 것이냐? 복귀의 한계점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러한 입장에서 추구해 나가기 때문에 마음의 사람편이 되어 몸의 사람을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는 복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순응의 길이 아니라 복종의 길입니다. 그 노정은 순리적인 노정이 아니라 역설적인 노정입니다. 긍정적인 노정이 아니라 부정적인 노정입니다. 부정의 일면을 개재시켜 가지고 긍정의 면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노정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온유겸손하라,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온유겸손하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천하를 내 마음대로 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높아지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성근성입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최고 목적을 바라며 점핑해 오르려는 입장에서 인류 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점핑해 내려가야 됩니다. 여기에는 부정의 결정적 요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언제 하느냐? 언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일년 후에나 십년 후에 하겠다고 미루게 되면 안 됩니다. 해야 된다고 생각한 지금 해야 됩니다. 이 때를 놓치게 되면 상습화되기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부정적인 입장을 결정지으려면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편에 서서 양심과 의논하고 양심의 편이 되어 몸과 더불어 직행해야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마음이 좋아하는 면은 일체 용허하고 마음이 좋아하지 않는 면은 일체 용허하지 않아야 됩니다. 몸이 좋아하는 것은 전부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잘먹이면 먹일수록 더 좋은 것을 먹고 싶어하고, 잘입히면 입힐수록 더 좋은 것을 입고 싶어하는 겁니다. 위함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받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선악의 결정

그러면 선악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선과 악은 다른 데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말하기를 `사회가 그렇기 때문에……' 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청소년 문제인데 그것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환경이 악하기 때문에, 환경이 내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것이냐?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롭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어떠한 한계선이 없는 자유가 아닙니다. 법칙을 떠난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눈이 자유롭겠다고 해서 뛰쳐 나오면 되겠느냐는 겁니다. 눈은 눈으로서 인연되어 있는 법칙을 떠나서는 존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법칙을 떠나게 되면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선악은 대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요, 대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체들이 36억이나 모여 사는 것이 오늘날 세계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악의 기원은 어디에 있느냐? 가정도 아니요, 사회도 아니요,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그 악의 기원이 어디에 있다구요? 악의 기원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같은 연령에는 이것을 철저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내 마음에 선과 악의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두 사람이 만나면 네 사람이 되는 것이요, 36억 인류는 72억 인류가 되어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는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싸워 나오기 때문에 몸을 위주로 한 몸의 목적의 세계와 마음을 위주로 한 마음의 목적의 세계, 이 두 세계가 기필코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 추수 때가 되면 그 전체가 결실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인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공존은 상대를 서로 부정하려는 싸움이 계속되는 상태에서의 공존입니다. 싸움을 떠난 상태에서의 공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가 평화를 유지하며 좋아하는 상태에서의 공존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의 투쟁은 근본에서부터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선을 어느 위치에 세우느냐? 먼저 원칙적인 기준을 확고히 세운 후에 그 기준을 중심삼고 나중된 입장을 처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심이므로 유심사관을 중심삼고 유물사관을 처리해야 됩니다.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뭐냐? 먼저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를 가르쳐 줘야 합니다. 어느 것이 위고 어느 것이 아래인지, 어느 것이 남아져야 되고 어느 것이 없어져야 되는지를 확실히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르침이 공산주의보다 민주주의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에 그것은 반드시 시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확실히 알려 주지 않게 될 때에는 시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선악의 세계는 개인에서 뿌려진 것이 점점 확대되어 가지고 세계로 열매 맺혀진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 하나를 전개시켜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회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울타리권내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여기에서의 내 범위가 얼마나 크냐가 문제입니다. 혹자는 이렇게도 가고, 혹자는 이와 반대로 가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자신의 선조들이 엮어 온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 쪽으로 가는 것은 몸을 따라가는 것이요, 선 쪽으로 가는 것은 마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개인이 출발해 가는 데 있어 100을 기준으로 할 때 마음을 중심한 선이 50을 넘어 60만큼에 해당하게 되면 그 종족을 통해서 세계는 지배될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뭘 해 나왔느냐? 이 세상에서 정복해야 할 일이 단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가정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요, 민족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요,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나를 정복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 자신은 선악의 경계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으면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서 출발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각자가 지향하는 양이 100이라 할 때,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50대 50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 머물게 됩니다. 완충지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일 몸이 60이면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 그늘진 곳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빛나는 곳입니다. 그렇게 알면 되는 거에요.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늘진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내려가면 갈수록 캄캄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나'라는 존재는 선악의 모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은 연령일 때 이런 내용으로 고심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세운 표어가 뭐냐 하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1조입니다. 이런 면에서 자아를 완성하여 자아를 주관할 수 있게 될 때, 즉 내 몸을 제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갖게 될 때부터는 내 몸과 마음의 상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1년 혹은 몇 해 동안을 계속 생활하게 되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영적으로 상당히 민감해집니다.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면 마음이 곧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으면 어떻게 되느냐? 전파가 90도 각도로 오면 곧바로 90도 각도로 반사시킬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곧으면 오는 전파를 순수하게 그대로 반사시킨다는 것입니다. 전파가 45도 각도로 오면 틀림없이 45도 각도로 반사시킵니다. 전파가 90도 각도로 오면 90도 각도로 100퍼센트 다 반사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찌그러져 있으면 45도 각도로 들어오는 전파를 그대로 반사시키지 못하고 30도 각도나 되게 흘러가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영적인 느낌이 자동적으로 마음에 그렇게 반응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재미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기도를 하든가 정성을 들이게 되면 무엇인지 모르게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을 초월한 힘이 여러분을 찾아온 다는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전파를 안테나를 통해 수신하는 것과 같이 그것이 자기 마음에 와서 접선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마음이 곧으면 곧을수록 들어오는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마음이 반사작용을 함에 따라 몸도 같이 반사작용을 해야 소모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전파가 들어왔는데 그 들어오는 전파를 몸이 가로 막으면 반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전파가 들어온 그대로 통할 수 있게 되면 우리의 몸은 진동하는 거와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영적인 체험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체험을 하고 싶어요?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어요? 「예」 갑자기 체험하게 되면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자연적으로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나무에서 꽃이 피는데, 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꽃을 피울 수 있을 만큼 자라야 됩니다. 이제 겨우 싹이 트는데 거기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겠어요? 꽃이 피기를 바라면서 빨리 커야 한다고 나무를 잡아당기면 되겠어요? 뽑혀지면 그것으로 끝이예요. 꽃은 자연적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길은 조급하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년사를 창조해 내는 길이기에 조급하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극복해야 할 의식주의 문제

그러면 지금 여러분에게 문제가 무엇이냐? 양심을 강화시켜 가지고 그 강화된 양심이 몸을 치리할 수 있는, 즉 마음이 몸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기준까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몸뚱이의 한계점은 어디까지냐? 마음이 몸뚱이와 싸울 때 제일 이기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그게 있을 겁니다. 그것이 뭐냐? 식욕입니다. 먹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식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밥 먹고 살지요? 「예」 밥은 먹어야 되지만 인간은 밥 때문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를 하실 때 사탄으로부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걸작이었어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던 것입니다. 뭘로 산다고요? 말씀으로 산다는 겁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진리로, 즉 이치대로, 법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탄에게 하신 그 말씀은 너는 왜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면서 사느냐고 때리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라고요?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게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실감이 날 것입니다. 첫째의 원수는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원수는 뭐냐? 입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뭐냐? 사는 것입니다. 의식주가 문제라는 거예요. 몸은 까딱 잘못하면 여기에 굴러 떨어집니다. 몸은 좋은 음식이 있으면 두말없이 먹으려고 합니다. 또 좋은 옷이 있으면 입으려고 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본래부터 창조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분의 2만 먹어야 됩니다. 3분의 1은 취해서는 안 됩니다. 3분의 3을 전부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또 옷을 입되 좋은 것, 최고의 것을 입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사탄 세계의 완성품을 입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으로 먹고 입고 살라

몸은 사는 것도 언제나 제일 좋은 자리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마음은 어떠하냐? 먹되 좋은 것은 혼자만 먹지 않고 같이 먹자는 거예요.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갑과 을이 있으면, 마음은 내가 조금 더 먹으면 네가 덜 먹지 않느냐며 조금만 더 먹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형제간에도 양심적인 형제는 하나 더 먹었어도 내가 하나 더 먹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자랑하다가는 사고가 생기게 되는 거에요. 아이들 세계에서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서로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 교육시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람은 입는 것도 좋은 것을 입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순전히 양심적인 사람은 좋은 옷을 입으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마음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그건 왜냐? 같이 좋은 옷을 입지 못한 것을 안됐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렇지요?

또한 사는 것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나만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마음은 다른 사람을 전부 좋게 해주고 난 다음에 내가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은 괜찮지만 그러지 않고 나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것을 부정하는 날에는 마음의 사람에서 몸의 사람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일등 부자가 있다면 그가 일등 부자로 오래 갈 것이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냐 하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돈을 자랑하기 위해서 버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돈도 그런 사람한테는 있기를 싫어한다는 거에요. 알겠어요? 그것은 왜냐? 본래 만물은 사람에게 지배받게 되어 있는데, 사람의 중심은 마음이기 때문에 돈도 마음 앞에 지배 받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돈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긴 했지만 물질을 제일시하는 그런 사람과는 돈도 이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말로가 비참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데에 있어서 자기를 위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혹은 세계를 위해서 벌면 어떻게 될 것이냐? 내가 돈을 벌어서 그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공적으로 쓰겠다고 하면 어떨 것이냐? 그런 사람을 돈이 좋아하겠어요, 좋아하지 않겠어요? 나를 위해서는 천만 원을 쓰고 남을 위해서는 한푼도 안 쓴다 할 때는 어떠하겠어요? 반면에 나를 위해서는 한푼도 안 쓰고 남을 위해서는 천만 원을 쓴다 하면 어떠하겠어요? 돈이 슬퍼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좋아해요? 「예」

밥을 먹는 데도 나는 나쁜 밥 먹고 남에게는 좋은 밥을 주어야겠다고 하면 마음이 싫어하나요, 좋아하나요? 그렇게 남에게 주고 난 기분은 내가 좋은 밥 한 그릇 먹고 난 기분보다 더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해보라구요. 실제로 그렇다는 겁니다. 주게 되면 몇 사람이 좋아하느냐? 받는 사람도 좋아하고 주는 나도 좋아한다는 겁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는 내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사람이 지배하게 되기 때문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에서도 실제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은 서로가 위하는 데에서 생긴다

큰 단체가 깨지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 깨지느냐? 가깝던 친구관계가 깨지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 깨지느냐? 서로가 위해 주는 자리에서 깨지느냐, 아니면 서로가 위해 달라고 하는 자리에서 깨지느냐? 어떤 자리에서 깨집니까? 큰 단체도 서로 위하는 자리에서는 발전하지 말래도? 「발전합니다」 알긴 다 아는구만. 그러나 서로 위하려 하지 않을 땐 망하지 말래도? 「망합니다」 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서로가 위하는 데에서는 선이 발생하는 것이요, 서로 위하지 않는 데에서는 악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데에서는 흥하는 것이요, 서로 위하지 않는 데에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백성이 자기 개인보다 전체를 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는 흥하고 전체든 뭐든 내가 제일이라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적용시켜 볼 때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세계의 어떠한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모래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모래알 같은 민족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흥하겠습니까, 망하겠습니까? 「망합니다」 후진국을 모면할 길이 없는 거에요. 그렇지만 서로 위하는 운동이 벌어질 때에는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이 위한다는 것은 혁명입니다. 위대한 혁명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몸이 마음을 위하고 있어요, 반대하고 있어요? 「반대하고 있습니다」 또 마음이 몸을 위하고 있어요, 반대하고 있어요? 「반대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위하려고 하는데 몸이 반대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몸은 마음을 완전히 부정하고 나옵니다. 전혀 위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식대로 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마음이 몸을 한 번 위해주고 두 번 위해 주고 세 번 위해 주게 될 때 몸이 한번이라도 마음을 위해 주어야 위해주는 것이 계속될 수 있을 텐데, 몸이 마음을 한번도 위해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고독한 사람이 됩니다. 고독이 흥하게 되면 깨져 버려야 됩니다. 끝장이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화합하는 사람이 발전한다

한국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좋아도 `아이구 죽겠다' 나빠도 `아이구 죽겠다' 합니다. 또 맛있어 죽겠다, 재미있어 죽겠다, 가고 싶어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고 합니다. 이걸 보면 한국 민족은 참 기가막힌 민족이라는 거예요. 말끝마다 전부 죽겠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말하지요? 세계 어느 나라의 말에도 그런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자체는 뭐냐? 한국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지만 큰일날 민족이라는 겁니다. 모래알 민족이라는 거예요. 하나로 화합하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깨지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니 죽을 수 있는 운명길에 가까이 서 있는 민족이 한국 민족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각 개인을 보면 전부다 영웅이예요.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기쁨도 자기를 잊어 주고 받아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있으면 웃어도 처량하게 웃는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쁠 수 있어요? 자기를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할 텐데 자기를 딱 세워 놓고서 호호호호 한다고 기쁠 수 있어요? 기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백성의 민족성을 어떻게 개조하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제일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이 민족성을 어떻게 개조하느냐? 이것이 큰 문제라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지요? 좋아해요, 싫어해요? 「싫어합니다」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발전이 더딥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그러나 남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발전하는 겁니다. 더구나 좋은 말이라면 전부다 들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무한히 발전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서양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발전이 상당히 빠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세계가 수백 년 동안에 발전시켜 놓은 것을 백년 기간에 걸쳐 전부다 흡수하고도 남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모방 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것은 모방해야 합니다. 공부도 하나의 모방입니다. 그렇지요? 배우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모방하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어느 기준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모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방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화목은 좋은 겁니다. 가화(家和)는 만사성(萬事成)이라 했습니다. 가화는 뭐라고요? 「만사성입니다」 가화는 만사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나 자신에게는 하나될래야 하나될 수 없고, 화합할래야 화합할 수 없는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위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위하려고 하지도 않고, 위해 주는 것을 순순히 받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이것이 고질통이라는 거예요. 이 몸뚱이가 고질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을 때려 잡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는 몸을 때려 잡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금식을 해라, 잠을 자지 말라, 거지 노릇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의 길을 가려면 얻어먹는 생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방랑생활을 하라는 거에요. 정처없이 떠돌아다녀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을 때려 잡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몸뚱이, 즉 외적인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고 나서는 종교일수록 고차적인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전부를 부정하고 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냐면 예수님이 절대적인 사랑에 접해 있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너희들도 절대적인 사랑과 관계맺을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항상 온유겸손하고 법도대로 살라

마음 역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마음은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몸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마음이 왔다갔다했습니다. 마음이 방향을 못 잡았다는 거예요. 가야 할 방향이 동쪽인지 서쪽인지를 몰랐다는 겁니다. 마음이 가야할 곳은 세계입니다. 마음은 의식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기 때문에 마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방향을 정할 수 있고, 마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고, 마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완전 주관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요건을 마음이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무엇을 주관하려고 하느냐? 세계를 주관하려고 합니다. 주관하는 데는 어떻게 주관하려고 하느냐?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고 타협하고 순응하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주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과 다르다는 거예요. 선악은 여기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사회가 악한 것이 아니요, 나라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면 타락이 무엇이냐? 선이 올라가야 할 텐데 반대로 내려온 것이 타락입니다. 악이 올라간 것이 타락입니다. 선이 먼저 출발해야 되는 데도 불구하고 악이 먼저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출발한 악이 요구하는 목적은 뭐냐?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양면, 즉 몸과 마음의 경계선에 있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중간에 양심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악은 자기 스스로가 높아지기 위해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본성인 교만입니다. 이 교만은 둘 다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교만한 사람을 친구 삼으려고 하는 사람 있어요? 교만한 사람은 때려 잡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타락은 악이 먼저 출발하여 올라간 것이므로 악을 끌어내리고 선을 끌어올리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이 작전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걸 알아야 됩니다. 먼저 교만를 때려 잡아야 됩니다. 타락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기가 높아지고자 한 데서 되었습니다. 사탄의 본성이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자기만 높아지겠다는 것, 환경이야 어떻든 질서야 어떻든 법도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만을 주장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거기에는 의리도 없고 법도도 없다는 것입니다.

법도를 따라 법대로 사는 사람을 어떻다고 합니까? 교만하다고 해요, 뭐라고 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정직은 바를 정(正)하고 곧을 직(直)입니다. 바르고 곧다, 똑바르다는 거예요. 법이라는 것은 뭐냐? 똑바른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은 무엇으로 가르느냐? 법으로 가르는 것입니다. 교만은 법도를 무시하는 겁니다. 법도를 무시하고 위치와 환경을 무시하며 행동하는 것을 꺾어 놔야 합니다. 교만을 제어하고 겸손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학교 친구들 가운데도 돼먹지 않게 자기의 위치와 처지도 모르고 까딱까딱하고 다니면서 주먹질이나 하는 녀석들이 있지요? 이런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겸손한 사람, 자기가 실력이 있어도 교만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엇인지 모르게 그에게서 위압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주관성이 깃들어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의 친구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지요? 가까이 하고 싶지만 그는 가만히 있어도 왠지 무섭다는 것입니다. 친구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과 고집은 사탄의 본질

선생님도 옛날에 그런 무엇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시절에는 말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절대 재잘재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얘기를 하지 않는 날도 있었어요. 그래서 동급생들이 나를 참 어려워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보다 더 어려워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공갈이나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주먹질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게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일까지 있었느냐 하면 학교 변소에서 친구들이 소변을 보려고 기다리다가도 내가 가게 되면 자리를 내주는 것입니다. 또 고민이 있으면 전부 나에게 와서 의논을 했습니다. 주먹질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을 전부 점령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고로 겸손한 자는 남아지고 교만한 자는 꺾어지는 겁니다. 오래가는 것은 겸손이요, 오래 못 가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면 온유겸손한 사람과 희생봉사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출세가 빠를까요? 「희생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알긴 아는구만. 온유겸손한 사람보다 희생봉사하는 사람이 더 적극적입니다. 선을 세우는 데 있어서 희생봉사하는 것이 적극적이고 온유겸손한 것은 소극적입니다.

기독교는 선을 세우는 데 있어 적극적인 방법을 내세워야 되겠기 때문에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생명까지도 바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도리입니다. 생명을 누구를 위해 희생하느냐?

자기 때문에 희생한다면 그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자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말이 있어요? 온유겸손하기 위해서 자살하고 희생봉사하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말이 있어요? 자살은 그런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파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는 것은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흥하게 하는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교만은 원수입니다. 교만과 고집은 사탄의 본질이요, 사탄의 요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만 대신 겸손, 고집 대신 화합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화이유친(和而有親)입니다. 화동하는 사람, 이 사람도 좋게 해주고 저 사람도 좋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모든 일이 통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더 큰것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화합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탄의 본질에는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도 있지만 지금은 이것만 알아두라구요. 교만과 고집은 우리에게 용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집부리는 사람도 자신의 마음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자신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다 안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마음세계에는 교육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마음세계는 자기가 해 놓은 일에 대해서 잘했는지 못했는지 다 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알겠던가요, 모르겠던가요? 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그런데도 떼를 쓰며 고집을 부리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된다구요? 거기에는 사탄상속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독사가 와서 물고 있다는 거예요. 독사가 물고 있는 데도 가만히 있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거예요. 독사에게 물리면 자기 일대만 망하지만 마음세계가 잘못되면 수천만대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선악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겠지요? 「예」

사람이 웃는 데도 가짜 웃음이 있고 진짜 웃음이 있습니다.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알긴 아는구만. 말하는 데도 진짜 말 가짜 말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행동하는 데도 진짜 행동 가짜 행동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냐? 그것을 무엇으로 재느냐?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는 손해보더라도 남을 위주로 하고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진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진짜 행동과 참된 교육

자기는 손해보더라도 남을 위해서 하는 말은 진짜 말이고, 자기는 손해보더라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은 진짜 행동입니다. 나를 희생시키더라도 전체를 위해서 말하는 것은 진짜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반대로 나를 위주로 하고, 전체를 부정하면서도 나를 위해서 말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여기에서 구별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속닥속닥 얘기해 가지고 좋은 것을 살짝 빼가는 사람을 진짜 사람이라고 합니까, 가짜 사람이라고 합니까? 그런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사기꾼. 재간이 비상하여 상대방이 눈뜨고 있어도 사바사바해 가지고 좋은 것을 싹 빼가는 겁니다. 그것이 전라도 사람들의 인심인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웃음) 전라도 사람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뻔히 눈뜨고 있는데도 속닥속닥해 가지고 빼가고 나서 네가 잘못했느니 내가 잘못했느니 한다는 겁니다. 눈뜨고 당했는데 누구 잘못이냐는 거예요. 전라도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그런 데는 소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인들은 달라야지요. (웃음) 여러분은 이런 모든 면에 있어서 빨리 깨달아 가지고 관이 뚜렷이 서 있어야 될 텐데 그것이 희미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하는 말에도 진짜 말과 가짜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 알겠지요? 「예」 행동하는 데에도 진짜 행동과 가짜 행동이 있는 것을 알아라. 알겠어요? 「예」 공부를 하는 데에도 진짜 공부와 가짜 공부가 있는 것을 알아라. 전도하는 데에도 진짜 전도와 가짜 전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라. 진짜와 가짜를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확실히 알겠어요? 「예」 나를 희생시켜서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진짜요, 전체를 희생시켜서 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그렇게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받고 있는 교육중에 참된 교육이 뭐냐? 진짜 교육, 참된 교육은 남을 위해서 죽으라고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그 이상 최고의 교육이 없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런 교육을 하는 겁니다. 여기에 찬성이에요, 반대예요? 「찬성입니다」

참되면 흥하고 거짓되면 망한다

여러분이 형제를 위해서 한번 희생해 보라는 겁니다. 희생할 때는 어렵지만 희생하고 난 후에 오는 기쁨을 맛보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희생하고 난 후의 기쁨을 맛보기 전에는 희생하는 것이 싫을 것이지만 희생하고 나서는 사방을 돌아봐도 부끄러움이 없는 겁니다. 하늘땅을 둘러봐도 꺼릴 것이 없는 거에요.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 희생했을 때는 어깨가 올라가는 거예요. 날개깃이 비상천(飛上天)하는 거에요. 어떤 환경에 휘저어 들어가더라도 거칠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전체가 희생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땅으로 찾아 들어가 할 수 없이 버티고 있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지옥입니다.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겁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길을 떠나야 됩니다. 그러니 진짜와 가짜, 참과 거짓, 선과 악, 흥하고 망하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성립되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진짜는 가만히 두어도 흥하게 되고 가짜는 가만히 두어도 망하게 됩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앞을 지나가게 되면 사람들은 할수없이 인사를 하지만 그가 지나가고 나면 `저놈의 영감, 언제 죽을는지…' 하는 겁니다. (웃음)

사람의 마음도 그러한데 천운은 어떻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천심을 대신한 것입니다. 천운을 중심삼고는 어떻냐? 들이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꺾여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아들딸을 보게 될 때 `그놈 참 잘생겼다'고 그러겠어요? `저놈의 자식, 또 누굴 녹여 먹으려고 저렇게 얼굴이 뻔뻔하고 뻔질뻔질하게 생겼나' 그런 다는 거에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럽니다.」 틀림없이 그런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망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구만. 그러면 흥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욕심들은 많구만. 흥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거예요. 참되면 흥하는 것입니다. 왜 흥하느냐? 전부가 그 사람편이 되어 주니까 흥하는 것입니다. 전부를 위해 주겠다고 하니까 흥하는 거예요. 그러면 망하는 것은 왜 망하느냐? 전부가 뜯어 가려고 하고 깎아 내리려고 하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로 해 가지고 설치게 되면 오래 못 갑니다. 반면에 남을 위주로 해서 나가게 될 때는 오래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틀림없이 그렇지요? 「예」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여러분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교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선악의 기원은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공적인 의식이 몸에 배어 있어야

이것을 단적으로 결론 맺어 말하면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것은 공적이요, 자기를 위하는 것은 사적입니다. 알겠지요? 틀림없지요? 「예」 공적인 것은 선한 것이요, 사적인 것은 악한 것입니다. 공적인 것은 흥하는 것이요, 사적인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할 자식 될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면 흥할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드는구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뚱이에 이것이 배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어디에 가려고 한 발을 척 내디딜 때 그 발걸음이 사적인지 공적인지를 대번에 생각해야 됩니다. 사적인 것이면 손도 내밀지 말고 발도 내밀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사적인 것을 완전히 거부하면 그것도 안 됩니다. 반드시 사적인 일은 공적인 일 때문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괜찮은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지금 돈을 버는 것은 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은 사적인 관계에서 버는 것이지만 돈을 벌어서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 공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이 나라의 아들딸을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은 곧 이 나라의 아들딸입니다. 자기 아내도 자기 아내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딸이요, 인류의 딸입니다. 이 나라를 대신한 아들딸이요, 인류를 대신한 아들딸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는 생사의 고개를 넘어서라도 진실되게 돈을 벌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뜻을 다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번 돈을 그들을 위해서 쓰고 나라를 위해서 써야 하는 겁니다.

사적인 입장이지만 이런 공적인 마음을 가지고 돈을 버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은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적인 일이기 때문에 부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정이 뭐냐? 사적인 것이 부정입니다. 자기의 둘도 없는 아내와 아들딸, 즉 나라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아내와 아들딸에게 부정된 마음을 가지고 갖다 먹이는 것은 독약을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리에서는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겁니다. 친구들하고 말을 할 때도 절대 선을 말을 하라는 겁니다. 선한 말이 어떤 말인지 알아요? 그것은 전체에 이익될 수 있는 말입니다. 행동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보다 공적인 것입니다. 개인보다 가정이 더 공적인 것이고 가정보다는 종족이 더 공적인 것입니다. 종족보다는 민족, 민족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가 더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위하는 사람은 충신이요, 가정을 위하는 사람은 효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느냐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느냐?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성현의 도리는 세계를 위해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세계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위하면서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내용을 갖추지 않은 성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종주들이 성인이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되느냐? 천주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천주주의라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지요? 차원이 높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보다 높은 공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땅 위의 그 무엇보다도 공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지금까지의 어느누구보다도 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게끔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부인들이 가정을 버리고 전도 나가는 것은 가정을 위하는 것보다 민족을 위하는 것이 더 공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악이예요, 선이예요? 「선입니다」 흥하는 거예요, 망하는 거예요? 「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 문화사에 반드시 기재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커다란 사건입니다. 이미 벌어졌습니다. 이 운동사는 이 민족이 남아지는 한 천년 만년 민족과 더불어 길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보다 공적인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겁니다.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팔자에 타고 난 사람이 대학을 가게 되어 있는 데도 대학까지 포기하고 꽃다운 청춘시대, 자기의 모두를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다면 그것이 공적이예요, 사적이예요? 「공적입니다」 공적인 일을 하고는 후회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대학을 포기하고 한 1년쯤 임지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나서는 `내 친구들은 지금 대학 2학년 3학년이 되어 내년이면 졸업할 텐데 난 뭐냐, 옛날에는 옷도 좋은 옷을 입었는데 이제 남은 것은 누더기 보따리밖에 없구나' (웃음) `옛날에는 그렇게 사랑해 주시며 따뜻한 밥을 해주시던 어머니도 이제는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난 뭐냐, 사랑하던 형제, 친구도 다 없어지고 외톨이가 된 난 뭐냐, 아이구 나 죽는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가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어 자빠지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기준을 가졌으면 공적인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왜 야단이냐는 겁니다.

만약 대학을 갔다면 대학을 나와서 뭐가 되겠다는 겁니까? 어디 가서 몇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되겠어요, 아니면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대학을 못가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못 되었을 망정 여러분의 아들딸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여러분은 일대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까, 수천 대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수천 대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렇다고 대학을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 가고 싶으면 가라는 겁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대학 나온 사람들은 전부 다 아프리카 같은 데로 개척 전도를 내보낼 겁니다. 보다 세계를 위하려니 남이 가기 싫은 데도 가야 된다는 겁니다. 가서 개척해야 됩니다. 앞으로 그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통일사상으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공적 생활의 한계선

앞으로 이민은 누가 가야 되느냐? 공적인 일을 위해서 학교를 포기한 사람들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 나온 사람들이 가는 겁니다. 지금 현재는 공부도 못하고 지지리 못난 사람들이 이민을 가지요? 남의 나라에 가서 신세를 지고 살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자신의 신세를 지게끔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 겁니다. 모든 사고 방식이 이렇게 벌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한다'의 한계가 어디냐? 여덟 시간 일하게 되어 있는데 그 여덟 시간의 일을 다했다고 해서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했다고 할 수 있어요? 다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이 어디냐? 공적인 일을 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이 어디냐? 어디에서 끝을 맺을 것이냐?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복귀의 한계점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점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 말씀이 참 진리라는 거예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놓고 하신 말씀입니다. 공적인 일을 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워요? 죽기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워요? 공부도 죽지 못해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공부를 한다면 죽기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놀 것도 못 놀고, 이것도 부정, 저것도 부정, 모든 걸 부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따뜻한 봄날을 맞아 남들은 전부다 소풍을 가는데 난 혼자 방에 앉아서 이 놀음을 해야 하니 이게 무슨 팔자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하지 않고서는 공적인 목적이 성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극복해야 되느냐? 내 생명의 한계까지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 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내 뜻은 사적이고 아버지의 뜻은 공적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딱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적인 한계선이 어디라고요?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하는 데는 대한민국 안방 구석에서 바느질하는 아주머니에게까지도 통합니다. 세계 끝까지도 통합니다. 마음을 다하는 데는 다 적용됩니다. 평등입니다. 여기에는 절대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겁니다.

나무를 두고 볼 때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이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해요? 「뿌리가 중요합니다」 뿌리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잎이 없는 겨울에 자라요, 안 자라요? 안 자랍니다. 왜 안 자라요? 나무는 잎이 없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잎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자라는 데는 뿌리가 중요해요, 잎이 중요해요? 어떤 것이 중요해요? 「똑같이 중요합니다」 뿌리가 중요한 것 같지만 잎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대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생명을 걸고 있는 거예요. 뿌리도 잎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대등한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뿌리가 잎사귀와 서로 상관이 없다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살아요, 죽어요? 「죽습니다」 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평등한 것입니다. 생명을 같이 걸고 있는 데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눈과 머리카락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똑같이 중요합니다」 왜 똑같이 중요해요? 머리카락은 몇개 뽑아도 관계없지 않아요? 그러나 머리카락이 없으면 머리속이 열을 받지요? (웃음) 하나님은 인간을 참 잘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 열을 막는 작용을 해야 되지 않아요? 그러니 머리카락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거에요.

생명을 다하는 데는 뭐라구요? 평등합니다. 아무리 깊은 골짜기의 안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더라도 공적인 입장일 때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다해서 가는 사람은 나라의 중책을 진 좌정승 우정승이 못되고 충신의 칭호를 받지 않더라도 당당히 충신과 대등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앞으로 이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위험하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공적인 눈으로 보라

이제 여러분은 선과 악을 완전히 정리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무엇을 볼 때에도 공적인 눈으로 보라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와 연결시키고 세계와 연결시키고 하나님의 뜻과 연결시킬 수 있느냐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이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책 한 페이지 가지고 몇 달 동안 연구하고, 한 제목 가지고도 몇 달 동안 생각하며 들여다본 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인생의 근본문제, 실존문제를 놓고 그랬습니다. 그런 문제는 생명을 다해 가지고 대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내 개체 뿐만 아니라 만민이 해방될 수 있고 하늘땅의 해원성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그 죽음은 탄식의 죽음이 아니라 멋지고 영광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전후좌우를 가려서 참된 결과가 어디에서부터 결정될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신념을 가지고 대들라는 것입니다. 이렇다는 것을 알겠어요.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그렇게 보아야 됩니다. 총각들, 예쁜 처녀가 지나가면 눈이 그쪽으로 쏠려 가지고 그 처녀 내 색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웃음) 사회적으로 물의가 되든 말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선이예요, 악이예요? 「악입니다」 공적이예요, 사적이예요? 「사적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웃음) 그러나 그럴 때에는 그 여자가 나를 좋아해서 따라오게끔 하라는 겁니다. 무슨 표시를 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예요. 진실된 마음을 통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여자가 말은 안 하지만 지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인사할 수 있는 그런 자기 자신을 갖추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자연히 그 여자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 살더라도 처녀가 그런 진실된 총각 앞을 그냥 성큼 못 지나가는 거에요. 동네에서 서로 점잖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그 처녀는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는 겁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는 것은 망하라는 거예요, 흥하라는 거예요? 잘 모시겠다는 거예요, 침을 뱉겠다는 거예요? 「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라구.

그런데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 궁둥이나 따라다니면서 휘파람을 불며 뭐 어쩌고 저쩌구 합니까? 못된 녀석들. 그런 녀석들은 때려 죽여야 됩니다. 앞으로 그런 때가 온다는 겁니다. 남자의 체통이 있지. 그렇지 않아요? 우주보다도 큰 자격을 가진 남자인데 한낱 여자들을 대해서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보면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남자들은 안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남자로서, 총각으로서 공적으로 당당히 나가 보라는 겁니다. 동네 처녀들이 홀딱 반해 가지고 혈서를 쓰고 나 살려 달라고 법석을 떨고 영감에게 아줌마에게 다리 놓아 달라며 분주살스럽게 돌아다니게끔 해야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당당하고 권위있게 해야지, 절대 시시한 짓은 하지 말라는 거에요. 알겠어요? 「예」 그런 도깨비 같은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가씨들은 웃을 때 원숭이 같이 헤헤헤 웃지 말아요. 또 남자들은 그런 웃음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진짜 웃음이예요, 가짜 웃음이예요? 그것이 진짜 웃음인지 가짜 웃음인지 알려면 한 번 더 시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이 싸구려감인지 어쩐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나 `나는 공적인 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공적인 몸이다'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보는 것도 그래야 됩니다. 공부하는 것도 무엇을 만드는 것도, 느끼는 것도 그래야 된다는 겁니다. 음악감상을 하는 데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기가 험난한 투쟁을 하면서 공적인 수난의 길을 걸어갔다면 내가 싫다고 해도 만민이 나를 끌어다가 영광된 자리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공석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환영하는 자리는 무서운 자리요, 심판의 자리인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환영하는 자리는 무서운 자리라는 거예요. 그들을 이용하려고 하면 나설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바라지 않는다는 거예요. 공적인 자리에 서면 나타내지 않으려고 산골에 있어도 산골에까지 찾아와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보게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요전에도 우리가 교수들을 중심삼고 무슨 모임을 갖는데 그 프로그램 목록을 주니까 `왜 우리 학교 이름이 맨 나중이냐? 왜 내 이름이 맨 나중에 나와 있느냐? 축사는 누가 하느냐? 윗자리는 누가 앉느냐' 하면서 싸우는 거예요. 선생님이 보기에는 시시하다는 거예요. 그게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도 이제 어느 것이 사적이고 어느 것이 공적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결혼도 공적으로 해야

여자가 시집을 가는 데도 공적으로 가느냐, 사적으로 가느냐? 본래는 남편을 고르는 데도 공적인 기준을 두고 골라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시집을 가느냐? 대답해 보세요.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자신을 위해서 가는 거에요? (웃음) 결혼식장에서 웨딩마치를 울리는 그 순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당신들이 찾던 상대를 만나는 순간인 거에요.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수천년의 역사를 그리워하는 인연의 길을 따라 골짜기를 올라가고 내려가고 돌아가는 등 수천만사의 사연을 거쳐서 부부로서 인연이 되어 가지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축복은 선생님 중심삼고 하지요? 세상 사람들에게는 욕을 먹고 있는 선생님이지만 여러분에겐 귀한 선생님이죠? 「예」 여러분은 선생님이 진짜 귀한 줄을 알아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이 교만하다고 할지 모르겠구만. (웃음) 그렇지만 선생님을 통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는 거에요. 이러한 사실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꿈같은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놀라운 뜻을 가진 선생님 앞에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십년 이십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그래야 됩니다. 만약 몇년 이내에 갚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며칠 이내에 탕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이 죽음의 길일지라도 우리 모두가 고생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도 탕감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아들딸을 길러서라도 선생님 앞에 충성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부모의 모습은 형편없더라도 목숨을 바쳐가며 정성들여 간절히 소망하는 그 부모의 지성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늘의 복을 가진 아들딸을 주신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는 겁니다.

선생님은 아기들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 집이 망할 것인가, 흥할 것인가는 그 집의 아들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집의 종자들이 좋은 종자인지, 좋지 않은 종자인지 그 아들딸을 보고 판단해 보는 거에요. 그 집안의 가계를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죄를 후대의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못한 것입니다. 부모가 진 빚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천지에 용납받을 수 없는 죄인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잘못하여 지은 용납받을 수 없는 죄를 무엇으로 청산지을 것인가?

지금까지 아담 해와의 후손들은 수천년 동안 아담 해와를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들은 저주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도 공적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결혼하는 데 있어서 미인은 미남과 결혼하는 것이 공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미남이 흔히 남들이 말하는 추녀를 사랑한다고 합시다. 그 추녀를 대하여 미남이 `아 사랑하는 그대여' 하면서 이상적인 남편 노릇을 잘 할 수 있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짝이 기운 것을 아시겠어요, 모르시겠어요? 「아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이 보시면 모르시겠어요? 그런데도 그 남자가 변함이 없다면 쓸 만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들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절대 어머니를 닮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닮는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굵은 수도 파이프와 가는 수도 파이프가 있는데 물이 흐른다면 어디로 흘러가겠습니까? 가는데로 흘러갑니까, 굵은 데로 흘러갑니까? 「굵은 대로 흘러갑니다」 굵은 데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큰 데로 통하려고 할까요, 작은 데로 통하려고 할까요? 「큰 데로요」 그러니 그 남자는 얼마나 보람을 느끼겠습니까? 그렇지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얼굴이 잘나고 못난 것은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에요. 역사를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좋고 나쁘다는 결론을 현재 입장에서 함부로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보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탕감이 벌어지는 자리

선생님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 선조가 좋은지 나쁜지 대개 압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선조가 있어서 복을 받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나쁜 선조가 있어서 지지리 고생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전도하러 임지에 나가서도 지지리 고생만 합니다.

인간들은 세상을 볼 때, 기껏 보았자 몇십 년밖에 못 내다봅니다. 그러니 그저 복작거리며 사는 거에요. 그런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자신이 비참하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영원합니다.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이자 순간입니다. 영원한 세계에서의 십년 백년은 똑딱하는 순간입니다. 천년 2천년도 똑딱하는 순간보다는 조금 긴 몇 초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몇천년을 한꺼번에 내다본다는 거예요.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좁게 바라보면 얼마나 복잡하고 답답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앞으로 좋은 때를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좋은 때를 맞으려면, 좋은 운세를 타려면, 몇천 년 동안의 나쁜 운세, 희생하는 운세를 거쳐야 합니다. 밟히는 운세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반만년에 가까운 4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계를 한 번이라도 다스려 보았어요? 아직까지 못해 보았다는 겁니다. 이제 4천년 역사를 거쳐 올라가는 운세를 타자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올라가는 운세가 몇 천년이나 계속되어야 하겠어요? 4천년 가다가 또 4천년을 내려가야 되겠어요? 「영원히 가야 합니다」 영원히 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이 나라가 바로 서야 됩니다. 직선으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직선으로 갈 때는 무엇엔가 닿지 않으면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직선으로 가는데 그 운세가 돌아갈 수 있어요? 그것 역시 선회할 수 없습니다. 직선으로, 정직(正直)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안테나에서 나가거나 들어오는 전파가 곡선으로 움직여요? 그러지 않는다는 겁니다. 직선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주주의는 이러한 직선주의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대만을 중심삼고 보면 불쌍하지만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다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탄식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선조들은 몇천 년 전부터 잘살았으니 지금 내려가는 때에 처해 있는 우리는 조금 못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감옥에 들어가고 몰리는 입장에 있다 할 때, 그것은 옛날에 선조들이 다른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 넣고 그렇게 한 보응으로 가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민족이 감옥에 들어가야 할 것을 대신 탕감하는 입장에서 가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요, 하나는 하늘이 관여해 가지고 민족을 살려주기 위한 탕감으로 받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느 길을 가자는 것이냐? 자기 죄로 말미암아 벌을 받는 보응의 자리를 피해서 천운을 따라 전체를 대신한 탕감의 보응법을 찾아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방법입니다. 이것을 탕감하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그때부터는 직선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가는 데 있어서 복귀의 한계점이 어디냐? 여기에서 여러분이 선악의 한계점을 확실히 알지 않고는 복귀의 한계점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선악의 한계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지요? 누구에게 있다고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겁니다. 또 선과 참은 어디를 목표하고 나가는 데서 나타난다고? 공적인 것을 목표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간단한 거예요. 따라서 나에게 선악의 기점이 있고, 선은 공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은 어떠한 자리에서 벌어지느냐? 반드시 죽고 사는 자리에서 벌어집니다. 죽음과 삶의 교차로에서 탕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도표 설명하심) 싸인 곡선에서 보게 되면 교차점에서 탕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 벌어지느냐? 계속적으로 내려가던 운세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밑에서 올라갈 수 있게 부추겨 주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때 반드시 탕감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격동하는 시대에는 반드시 탕감법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에 혼란이 벌어질 때에는 어디에서 인연되어 나오는지는 잘 모르지만 무자비한 탕감의 역사가 뒤넘이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뒤넘이치는 역사의 탕감법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60년대에는 이 세계가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간다고 말했지요? 세상은 모르지만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렇게 된다는 논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1970년도를 중심삼고 1974년도까지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어 넘어갑니다. 공산주의도 기울어 가고, 민주주의도 기울어 갑니다. 알겠어요? 미국이 지금 아시아에서 자꾸 후퇴하는 것은 미국이 기울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공과 소련이 지금 싸우는 것도 공산주의가 자꾸 기울어져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미국과 소련이 손 잡는 것도 서로 망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공산세계는 망해도 민주세계는 남아집니다. 모든 탕감이 그러한 입장에 맞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탕감법에 걸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

오늘날 통일교회도 이러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60년대와 70년대는 다릅니다. 그러면 60년대와 70년대 시대권을 두고 볼때, 통일교회는 어느 정도에까지 올라왔느냐? 종족권에서 승리하고 민족권을 세워서 탕감시켜야 할 시대권내에까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멀지 않았다는 거예요. 빠른 길을 갈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이것은 원리 내용이기 때문에 다르게 이야기할 수도 없지만 그런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복귀의 한계점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선악의 기점을 중심삼고 출발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걸어 나온 공적인 노정은 어느때든지 탕감법에 적용될 수 있는 자연적인 형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공적인 길을 가는 것은 여러분 일생에 있어서의 탕감법을 적용시켜 나가는 일입니다.

그러면 탕감법이 왜 필요하냐? 사탄편에서 하늘편으로 돌아가려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탄편에 그냥 그대로 있으려면 탕감법이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아요? 필요하지 않아요? 「예」 탕감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는 언제나 탕감의 대가를 치르는 자리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공적인 사람은 공적인 것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공적인 것에 생애의 목적을 두고 가는 사람은 탕감법에 걸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주님이 올 때에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맞기 위한 탕감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한 공적인 기준에서 살아온 사람은 주님이 오실 때에도 탕감이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탕감의 역사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탕감받는 길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천만한 가치의 공적인 뜻을 품고 생애의 목적을 정하고 나가는 사람이 탕감법에 적용되는 날에는, 그 천만한 가치가 하나의 선과 같은 가치로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가치로서 적용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개인으로 볼 때, 하나의 선과 같은 입장의 사람이지만 입체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천만한 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탕감법에 적용될 때에는 천과 같은 입체적인 환경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공적인 사람은 이래도 흥하고, 저래도 흥하는 것입니다. 탕감을 받아도 복이요, 받지 않아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 선생님 말씀을 듣고 따라 나가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전부 같아야 될 게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여러분의 그릇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기 선조의 공적에 따라 웬만큼 자란 사람도 있고 자라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예를 들면, 산 위의 맨 꼭대기에 우뚝 선 사람이 있고 평지에 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 위에 서 있으면 태양 빛을 남보다 먼저 받을 수 있지요? 산 아래 평지에 있는 사람보다 먼저 빛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로, 선조가 선한 사람은 공적인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탕감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인들이 고생을 하고 있지만 고생을 안 해도 모든 노정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만일 이런 사람이 전도를 나갔는데 그 동네에서 핍박을 받고 희생되는 날에는 당장 그 동네는 망하게 됩니다. 그 사람을 반대하고 핍박하면 대번에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하나님은 참으시면서 그 사람이 핍박받은 것을 중심삼고 망할 수 있는 사탄세계에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입체적인 탕감의 양을 많이 세워 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선한 사람의 후손들을 세워서 개척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할수록 빨리 탕감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죄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길

선은 언제나 용서합니다. 공적인 것은 언제나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탕감을 한다고 나쁜 것이 아니고, 안 한다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사탄세계에서 승리적인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입장이 공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사람은 공적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길을 가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은 어디냐? 그것은 아까 생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생명을 다하는 데는 어떻게 다 하느냐? 개인적으로 생명을 다하는 데는 개인적으로 세계를 대신하여 공적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개인의 입장에서 공적인 길을 가는 것으로 전세계를 거쳐나갈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 세계적으로 가는 데에는 개인의 입장에서 공적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가정을 공적인 입장에 세워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 개인이 세계적으로 가는 길이 있고, 가정이 세계적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 길이 다릅니다. 개인이 가는 길은 단조롭지만 가정이 가는 길은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내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적인 길에는 개인이 가는 공적인 길이 있고 공적인 길을 가는 사람끼리 만나 부부가 되어 가지고 그들의 아들딸까지도 공적인 길을 가는, 즉 가정적으로 가는 공적인 길이 있습니다. 또 가정 중에도 보다 공적인 길을 가는 가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적인 길을 가는 그 목적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한다는 그 목적은 같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공적인 길을 가지 못한 사람이라도 가정적으로 공적인 길을 가게 될 때에는 개인적으로 공적인 길을 가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개인보다는 가정이 보다 공적이요, 개인보다 가정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보다 어려운 것이 더 공적인 것입니다. 덜 공적인 것은 보다 공적인 것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까지 세상에서 깡패로 살아온 사람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을 때, 그 사람 개인으로는 아무리 잘해도 과거의 잘못을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축복을 받아 가지고 가정을 이루어 뜻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고 화합하게 될 때에는 과거의 모든 죄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과거에는 못됐던 사람이 지금은 참 훌륭하게 변했다고 칭찬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가정을 통하여서 탕감복귀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가정, 종족, 민족의 죄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길

그 다음엔 가정만으로는 탕감복귀할 수 없는 가정이 있습니다. 축복을 받아 가정은 이루었지만 자기들만 위하고 싸움이나 하고 짓궂기 한이 없는 그런 가정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가정은 종족을 통해야만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종족은 뭐냐?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는 부부가 자기 주장을 하며 생활했지만 한 부락 전체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는 거기에 순응하며 전체 앞에 본이 되고, 민족 앞에 공신이 될 때에는 가정이 탕감복귀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악한 종족이라 하더라도 이 종족이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보다 큰 공적인 길에서, 그 민족이 공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민족 복귀와 더불어 그 종족은 탕감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이 잘못했더라도 그 국가의 주권자가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세계의 어떠한 민족보다도 어떠한 주권 국가보다도 하늘의 뜻을 받들고 충성을 다하게 될 때에는 그 주권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잘못한 죄도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한 사람을 중심삼고 국가면 국가를 탕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주권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주권자를 통해서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종족의 족장이 잘함으로써 그 종족 전체가 혜택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한 나라의 주권자가 책임을 다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과거지사가 전부다 청산되느냐, 못 되느냐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나라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이 문제되느냐? 그것은 나라의 주권자 한 사람에게 나라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권자로, 만왕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주권자가 세계의 나라를 대표한 주권자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게 될 때에는 세계의 수많은 주권자들은 반드시 그 주권자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국가 복귀의 중요성

세계를 움직이는 주권자는 불과 몇 사람밖에 안 됩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은 열 명 이내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를 요리하는 사람은 서너 명 정도입니다. 이 서너 명을 중심삼고 일곱 명 정도가 세계를 움직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대개 대표적인 선진국가 몇 나라가 주동이 되어 몇 개국이 합해 가지고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어 나오지요? 그건 많은 수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30억 인류가 가담하는 게 아니라 몇 사람의 주권자가 세계를 움직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복귀역사에 있어서 제일 힘든 것은 국가기준까지의 복귀입니다. 이 국가기준까지 복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복귀된 주권자가 세계적인 자격자면 되면 세계는 그 주권자로 말미암아 수습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올 때 로마의 황제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 이스라엘의 주권자의 자리에 등장해 가지고 그의 주장과 방향이 세계의 주장과 방향을 대신할 수 있게 되기만 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흡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복귀에는 세계 복귀를 내적인 면에서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이 개재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우리 복귀의 한계점은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 물론 세계에 두고 천주에 두어야 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 즉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역사를 두고 한계점으로 세워 나온 것은 국가의 복귀입니다. 이 국가만 복귀되면 세계는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세계가 1일생활권내로 들어옴으로써 만민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돈을 내고서라도 배워 가려는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각 국가가 이렇게 문화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1일생활권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참된 승리적 주권 국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민이 되게 될 때에는 탕감된 섭리의 기반은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 대한민국이 복귀의 사명을 책임진 나라라 할 때에는 대한민국의 복귀는 세계의 복귀보다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세계 복귀보다도 대한민국의 복귀가 더 힘들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복귀가 제일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현재 얼마나 올라와 있느냐 하면 능선으로 치면 7부 능선, 8부 능성에 올라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올라와 있다고요? 8부 능선에 올라와 있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이런 때에 여러분이 젊은 시절을 맞이해서 정열을 다 바쳐 충성한다는 것은 지극히 의의가 있는 일입니다. 1부 능선 때 하는 것보다도, 2부 능선 때 하는 것보다도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이때에 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릴레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사람이 아무리 잘 뛴다 하더라도 마지막 사람이 잘 뛰느냐 못 뛰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나기 때문에 마지막 사람이 잘 못 뛰면 지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8부 능선, 9부 능선을 오르고 있는 여러분이 어떻게 10부 능선에 골인하느냐 하는 문제가 오늘날 복귀의 한계점을 해결짓는 데에 있어서 중차대한 문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본향으로 돌아가려면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우리의 본향땅이 어디냐?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본래 본향땅에서 태어났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향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럼 우리가 다시 본향땅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옛날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었다면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요, 종족의 족장도 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의 지도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의 지도자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세계의 지도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사상이 세계적인 사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본향땅은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은 사랑을 천지의 어디에도 서슴지 않고 펼 수 있는 곳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아니 한 인간 앞에 부여해 준특권적인 권한입니다. 그 곳이 우리 본향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참부모를 중심삼은 사랑을 세계에 펼 수 있는 권이 되어 있느냐 할 때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어디냐? 대한민국이 그럴 수 있는 곳이 되어 있느냐?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적으로 여당, 야당으로 갈라져 있고, 종교도 수많은 종교가 수많은 종파로 갈라져 있습니다. 또한 나라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세계에서 제일 복잡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복잡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제일 복잡한 가운데서 제일 천대받고 있는 통일교회가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이런 환경을 다 수습해서 앞으로 모든 종교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나라를 주도할 수 있는 입장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를 테스트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자리잡아 가지고 하나의 부부가 되어야 하고,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종족의 족장이 되고, 민족의 족장이 되어 주권자를 대표한 세계의 중심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세상 만민들이 그 품에 품길 수 있어야 그곳이 세계적인 본향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본향땅을 창조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참부모를 천지에 둘도 없는 부모로서, 만민이 모실 수 있는 부모로서 모셔야 합니다. 또 모든 주권자가 이 부모앞에 굴복할 수 있고 주권자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터전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을 대한민국에 이루어 놓지 않고는 이상적인 본향의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것이 현재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길이요, 단 하나밖에 없는 복귀의 한계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결정되면 그것을 중심삼고 무엇이 벌어지느냐? 여러분, 아기를 낳게 되면 입적을 시키지요? 「예」 마찬가지로 주권국가가 없어 가지고는 입적을 할 수 없는 겁니다. 또 민족들만 있게 되면 서로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권자가 결정되면 싸움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 민족권내에서 주권자가 나오기 전에는 상대권을 벗어날 수 없지만 주권자가 나온 다음에는 상대권으로부터 벗어나 절대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여러분도 입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긴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름은 가졌지만 그 이름을 공인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긴 했지만 그 생명의 가치를 공인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담 해와 둘이만 있었을 뿐 그 배후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되면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것이 되었겠지만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것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주권국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세계적으로 탕감해 가지고 대한민국에 있어서 하나의 본향땅을 중심삼은 부모와 종족장과 민족장과 나라의 주권자를 결정지어 가지고 세계 전체가 우러러볼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나라, 새로운 종교, 새로운 민족이 편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이요, 통일교회가 가야 할 복귀의 한계점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절대적인 사명

선생님은 이 일을 위해서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선의 실적을 쌓아 가지고 공적인 가치를 보유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공인을 받아서 자동적으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러한 뜻을 받들어서 뭘 해야 되느냐 하면 나라가 없기 때문에 나라를 편성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전도하라는 것은 나라를 편성하는 데 있어서의 족장이 되라는 것입니다. 족장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출생신고를 다시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총을 갖고 모병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등록을 시키는 책임자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등록이 나중에는 입적이 되는 것입니다. 호적에 오른다는 것입니다. 입적 알지요? 여러분, 다 입적되었어요? 안 되었으니 그 족보에 따라서 입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아직까지 입적이 되지 않았습니다. 입적을 하려면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주권 국가가 성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입적을 못 할 때에는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 복귀를 해야합니다.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대한민국을 통일시켜야 합니다. 통일하는 데는 우리의 피와 땀을 대가로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절대적인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통일교회의 이름을 떼어버릴 수 있는 때도 통일된 그때부터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가 해야 할 최상의 복귀의 한계점은 주권복귀인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대한민국을 통일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의 주권자를 세워서 새로운 법도를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 새로운 교육방식등 새로운 제도가 형성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뜻이 세계적인 모국의 뜻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공헌한다는 것은 역사시대에 한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생전 이러한 뜻의 환경권에서 공헌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이 좋은 시기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여기 있는 당신의 젊은 자녀들이 산지사방하여 본향을 찾기 위해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사옵니다.

이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잘 모르고 있사옵니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민족이 우거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이요, 민족이 우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안식할 수 있는 한치의 땅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그러한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남아진 종교단체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더우기나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게 비참한 역사과정을 거쳐온 걸 생각하면, 이제 저희들의 소원은 이 나라, 이 민족의 복귀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의 소원도 이것이요, 예수님의 소원도 이것이요,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의 소원도 이것이요, 통일교회 교인의 소원도 이것이요, 만민의 소원도 이것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나라를 복귀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어 나왔습니다. 많은 인간들이 그 소원을 바라보며 절규해 나왔지만 그 한계점을 꿈 가운데 그리면서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습니다. 하오나 오늘날 저희들은 이 한계점을 목전에 두고 싸울 수 있는 가장 귀한 때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몸 마음이 공적인 실체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져야 되겠사옵니다. 서로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기 중심삼은 것을 완전히 버리고 전체를 위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인 것을 알았사오니, 여기에 남아진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제부터는 그런 생애노정을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시점에서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가 저희들 스스로 결정해야 할 중대한 문제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망하는 것은 사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요 흥하는 것은 공적인 입장에 선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흥할 수 있는 공적인 나라를 찾아야 되겠고, 공적인 주권을 찾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공적인 하나의 주권국가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중심국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중심국가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세계적인 탕감의 내용을 내포하고 발전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당신의 눈물과 예수님의 희생의 핏줄기와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죽음의 고빗길과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해 내려온 우리 선조들의 혈통적인 인연들이 연결되어 가지고 오늘의 저희들 앞에 상속된 것이오니, 이 전통을 저희들이 진실된 입장에서 받아들여 가지고 스스로가 이 전통을 상실하지 않고 보다 가치있게 빛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 민족의 바람도 이것이요, 이 나라 삼천리 동산의 바람도 이것이요,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바람도 이것이오니, 이문제 해결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저희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고 만민 해방의 기치를 들고 세계적으로 제2해방, 제3해방을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그 선봉에 선 기수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젊은 가슴에 아버지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적인 세계 인류를 찾기 위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하나의 대표적인 주권 국가로 세우기 위하여 전체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있사오니, 사적인 자기를 희생시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생명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자기 자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드리는 생축의 제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번 기간을 통하여서 저희들이 깨닫고 느낀 모든 것들을 실천궁행해야 되겠사옵니다. 선한 것은 영원히 저희들이 짝해야 될 것이고 악한 것은 영원히 저희들이 분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모든 언행심사에 있어서 선악의 분기점을 갖고 선악을 분별해 가지고 선한 이 나라의 본향땅, 세계의 본향땅을 창건해야 할 사명을 책임지고 자기의 모든 일체를 투입하여 희생하면서 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이들을 보호하시옵고, 영광 가운데 양육하여 주시어서, 이들에게 보람된 아들딸이라는 긍지를 세워 주시옵소서. 금후의 모든 전체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지, 지금은 1970년 12월 25일 0시이옵니다. 이 시간 온 천지에 당신께서 경륜하시는 뜻이 새로운 영광 가운데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수난을 참으시며, 이스라엘 선민을 새로이 수습하여 당신께서 소망하는 새로운 천국을 건설하는 책임을 짊어지시고, 당신의 사랑을 홀로 지니시고 이 땅에 오시어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이날을 경축하는 만민 위에 당신의 긍휼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나온 수천년 동안 이땅을 대하는 당신께서는 얼마나 슬프셨고, 또 이 땅에서 수난의 노정을 거치면서 만민을 구원하시려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외로왔겠는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피의 길을 개척하고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면서 한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여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민주세계로까지 발전시켜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가를 저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배후에 아버지의 수고로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로우심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되옵니다.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의 배후를 더듬어 오신 아버지의 수난의 행로를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움과 외로움만 가해 드렸던 지난날의 모든 일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와 같은 수난의 노정을 거쳐 오신 당신의 발걸음이 수많은 민족을 넘어 보잘것없는 한민족 위에, 보잘것없는 이 땅 위에 찾아오시어 좌정하실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이땅 위에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을 기하는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자들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피를 흘리면서 개척해 온 그 뜻을 저희들이 받들 수 있게끔 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이 한국 강토 위에 통일교단이 설립되기까지 당신께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이 얼마나 많이 동반되었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통일교단이 아버지께 영광의 대가로 받아지게 허락하시옵고,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시켜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을 축하하는 수많은 신도와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저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아는 자리에서 그때를 회상하면서, 내일의 그리스도의 세계를 바라보며 이 시간을 축하하는 무리가 얼마나 되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참으로 귀하고 복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축하하지만 그 축하는 내용을 알지 못하고 하는 축하일진대, 이 보잘것없는 저희들은 아버지의 수고와 노고의 공로로 말미암아 기쁜 가운데서 당신의 사정을 알고 당신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이날을 축하하고 있사오니, 이와 같은 은사를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지 못했던 한의 노정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수고하는 당신의 자녀들이오니 그들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영광과 사랑과 자비가 떠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맞이하여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크리스찬들이 축하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영광의 손길이 같이하시옵소서. 그들도 하루속히 당신의 사정을 알 수 있고, 당신의 뜻을 살필 수 있게끔 어서 속히 한 곳으로 몰으시사 당신께서 원하시는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형성하여, 만민이 해방되는 새로운 세계가 현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의 역군들이 새로운 기수가 되어 남아진 싸움터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확실한 사실을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어제는 원주를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남아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이 시간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곳에 함께 하여 주시옵고, 뜻을 위하여 충성하고자 제물된 입장에서 개척의 노정을 가고 있는 당신의 딸들 위에도 일률적인 은사를 가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정성들이고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의 은사가 그들 위에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시간 부족한 소수의 무리들이 당신 앞에 이렇게 모여 이날을 기념하는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뜻 앞에 자랑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아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행로가 소망의 한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의 일체를 당신께서 사랑과 은사로써 지켜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영광의 한때를 마련할 수 있게끔, 당신의 은사 가운데에 사무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찾아오는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크리스찬이 되게 하시옵고, 부끄러움이 없는 삼천만 민족이 되게 하시옵고, 부끄러움이 없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오며, 이 시간 아버님의 은사를 일률적으로 내려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지상의 수많은 성도들과 수많은 선한 자녀들과 연결되어 해원성사할 수 있는 그러한 뜻을 당신께서 세워 주시옵고, 앞으로 오게 될 후손들 위에도 이날을 기하여 새로이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저희들이 이와 같이 마음을 모아 기념하는 전부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위로의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크리스마스로서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 신자들이 기념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가장 가치있게 예수님의 탄신일을 축하하는 일

오늘날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는 기독교인은 많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산 생애를 축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그분의 행방을 더듬어 보거나, 지금까지 기독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수고하신 노고를 두고 축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축하함과 동시에 그분의 생애를 축하해야 되겠고, 그와 동시에 그분이 왔다 가신 이후에 역사과정을 통해서 남기신 업적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로부터 그 생애를 거치고 역사시대를 거쳐오신 목적은 뭐냐? 그것은 단 하나, 아버지의 뜻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태어나셨고, 싸우셨고, 개척의 노정을 쉬지 않고 걸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이러한 개인들로 합하여진 가정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이러한 가정으로 합하여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나오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은 이루어야 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보람있는 생애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뜻 앞에 모든 생애를 바쳐서 예수님의 거룩한 소원의 실체로서 뜻 앞에 필요한 개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날을 축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의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되어 그런 가정을 찾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해야 되겠고, 또한 그런 종족을 찾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해야 되겠고,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를 찾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해야만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는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찾아 나오시던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어떻게든지 찾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 거룩한 날을 축하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받들지 못하고, 종족이 받들지 못하고, 민족이 받들지 못하고, 국가가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준비되었던 그 모든 터전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 터전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세우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거룩한 날을 축하하는 우리에게는 이날이 더욱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려 했지만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국 강토와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아버지 앞에 제3이스라엘로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지금이 그럴 수 있는 때이므로 우리가 이 일을 성공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서부터 그 생애를 거쳐 지금까지 수고의 역로를 거쳐 찾아오신 이 보람 있는 뜻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나라를 예수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예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날을 축하하기에 앞서서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생활과 환경을 개척하는 데 가일층 노력하겠다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이날이 보다 가치있는 축하의 날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나라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으며,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교회를 얼마나 그리워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하셨겠으며, 뜻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얼마나 그리워하셨고 그 형제를 얼마나 그리워하셨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가정에서부터 종족, 교회, 민족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그리움을 채워 드릴 수 있는 집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도 그리고 바라던 개인과 가정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이 바라던 종족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고, 그와 같이 바라던 교회를 이루어 드려야 되겠고, 그와 같이 바라던 민족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정과 내심을 아는 우리로서 응당히 해야할 책임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거국적으로 온갖 희생을 치러서라도 이 일을 계승하여 성취해 놓지 않으면 예수님의 뜻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을 더더욱 깊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통일교인들

1970년도와 1971년도는, 세기말적인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니만큼 우리 통일교인에게 있어서도 오늘 1970년 12월 25일을 축하하는 이 성탄절이 지나간 시대와 새로운 시대로 나누어지는 그 최후의 축하의 날이 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1970년도와 1971년도는 현격히 다른 시대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날을 보내면서 새로운 1971년도를 맞이하기 위해 충성의 마음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에 태어난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길러진 유대 나라의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사랑도 받아야 했고 요셉 가정 전체의 사랑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와 종족과 요셉 가정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입장이었지만 결국은 사랑할 수 없는 부모가 되었고, 형제가 되었고, 종족이 되었고, 교회가 되었고,민족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사실입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입장에서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세워 놓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한과 하나님의 한을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십자가라는 이 원통한 길로 말미암아 생겨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크리스찬들은 끝날을 맞이하여 이 한을 풀어 드리지 않고는 천국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 나오신 목적은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유대교를 4천년 동안 길러 온 것도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모시어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유대교를 중심삼은 수많은 종족 가운데서 특별히 요셉 가정을 택한 것도 그 민족으로 하여금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통하여 예수를 사랑하고, 교회를 통하여 예수를 사랑하고, 종족을 통하여 예수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준비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사랑을 받고 나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요셉 가정을 사랑하고, 유대교를 사랑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고 싶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게끔 준비하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와 요셉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간 예수님이기에 그것들이 예수님의 한으로 남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한은 예수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준비한 그 나라와 교회와 종족이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요, 예수님의 한은 이렇게 사랑하게끔 준비해 놓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과 요셉 가정을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이 한을 풀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를 가져야 되겠고, 유대교와 같은 교단을 가져야 되겠고, 또 그러한 종족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이스라엘 나라,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유대교,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요셉 종족, 이러한 종족과 교회와 나라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이루어 놓아야만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이 제3 이스라엘이라면 대한민국 자체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또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그리고 요셉 가정과 같이 주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그런 특정한 가정이 있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끝날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터전을 통하여서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이루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백성이 이스라엘과 같은 선민이 되었느냐? 오늘날의 한민족은 선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또,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옛날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섰느냐?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합니다. 또, 요셉 가정과 같은 가정들을 가진 종족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이 재림 역사를 보게 될 때, 오시는 주님은 비통한 운명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인은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래야 사랑받을 수 없는 이런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한 번 찾아 세우고,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다시 한 번 찾아 세우고, 사랑할 수 있는 종족을 다시 한 번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대신하고 유대교단을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인인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하셨던 모든 나라의 사람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하셨던 종족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하셨던 교회를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바로 그러한 나라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고,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으며, 요셉의 족속, 혹은 사가리아 가정과 같은 씨족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이 통일교회 자체 내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 그리고 요셉 가정과 같은 내용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하여 활동하는 데에 있어서는 교회를 희생시켜야 하고, 통일 족속을 희생시켜야 하며, 우리 개개인과 가정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라와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당시에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고, 가정을 사랑하지 못하고, 종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택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대신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서서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정을 사랑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바쳐 가면서 사랑을 위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은 입장에서 제2차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한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한 이 세계를 사랑해야 되고, 영계의 영인들과 천주까지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나라를 찾지 못하고, 교회를 찾지 못하고, 종족을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한 종족과 교회와 나라를 찾아야만 비로소 예수님이 돌아가셨던 그 기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표준은 세계를 복귀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찾아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셨는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요셉 가정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요셉 가정과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셨느냐?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고 핍박했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같은 환경을 다시 찾아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만민을 사랑하자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가정을 구해야 되고, 가정을 희생시켜 가지고 씨족을 구해야 되고, 씨족을 희생시켜 가지고 교회를 구해야 되고, 교회를 희생시켜 가지고 나라를 구해야 할 것이 예수님이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인데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이 길을 상속받아서 이런 길을 갔다고 하는 승리의 결과를 다짐해 놓아야만 하나님과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새로운 나라를 가진 가정, 새로운 나라를 가진 교회, 새로운 나라인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라가 없게 될 때는 아무리 교회가 있다 하더라도 그 교회는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라가 없게 될 때는 아무리 종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종족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이 원하는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제1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을 제3이스라엘을 통하여 복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민족을 중심삼고 개인을 통하여, 가정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혹은 민족 전체, 국가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을 하고 가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랑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직 개인으로서 민족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또 우리 가정들도 아직까지 가정으로서 이 민족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교단도 역시 아직까지 수많은 교단으로부터, 혹은 나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는 못 갔습니다. 아직까지도 핍박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있는 가정적인 기반이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을 통하여 사랑하고, 가정을 통하여 사랑하고, 종족을 통하여 사랑하고, 교회를 통하여 사랑할 수 있는 기준까지 가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단은 우리를 반대하여 분립된 입장에 있지만, 통일교단 자체로서는 개인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요, 가정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들은 옛날의 요셉 가정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씨족을 대표할 수 있고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사랑하고자 했던 씨족을 우리가 대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이 갖추어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뜻을 계승하여 예수님이 이루시지 못한 그 뜻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결과적 기반 위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 개개인들의 만남이라는 것은 우연한 상봉이 아니라 필연적이요, 결정적이요, 절대적인 상봉인 것입니다. 이 만남은 나 하나의 생명을 해방시키는 데에 서로서로가 기반이 되고, 서로서로가 필요한 상대적인 기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고, 아무리 사정을 통할래야 통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한스러운 입장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 이상의 자리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교단을 가졌다는 것이 무한한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단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축복가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축복받은 가정을 중심삼고 하늘의 깊은 사연을 나눌 수 있고 예수님이 사정만 하면 들어줄 수 있는 그런 가정의 기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에게는 무한한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우리는 유대교를 대신할 수 있는 통일교단을 가진 것입니다.

지금은 일치 단결하여 나라를 구해야 할 때

그러면 이 교단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이 교단을 통하여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여 맺혔던 십자가의 한을 풀 수 있고, 이 한이 풀려 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와 종족을 찾아왔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마련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국가 대신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수많은 가정들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회와 요셉 민족을 세워 가지고 예수를 사랑하도록 준비하셨지만 사랑하지 못하여 맺힌 한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탕감의 노정이나 십자가의 노정이 아닙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환희에 찬 입장에서 서로가 기뻐하는 자리가 예수님이 사랑을 받는 자리이며 그런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어야 정상적인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핍박의 환경을 넘어가야 하고 핍박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지금 우리의 자리는 예수님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요,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자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몰리셨지만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삼고 희생의 대가를 치르며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해서 엮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핍박을 받으며 추방당하던 그 걸음을 돌이켜서 개인을 사랑하려고 애썼고, 가정을 사랑하려고 애썼고, 종족과 민족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의 환영을 받으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닦은 것이 아니라 탕감적인 사랑의 행로를 거쳐 오면서 닦은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일치 단결하여 나라를 우리 교회의 뜻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 생전에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의 노정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라가 우리를 반겨 주고, 기성교단이 우리를 반겨 주고, 수많은 종족들이 우리를 반겨 줄 수 있는 그 한 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나라 앞에 환영받아야 했었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것이요, 유대교가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지 않고 환영하며 맞이해야 했었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것이며,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이 예수님 앞에 있어서 불신의 입장에 서지 않고 천륜을 따라 기쁨으로 시봉해야 했던 가정적 기반을 표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나라를 찾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라를 찾으려면 우선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데도 무한히 사랑해야 합니다. 무한히 사랑하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해 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자연굴복할 수 있게 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 앞에 추방당했던 이스라엘권을 다시 찾고, 유대교권을 다시 기독교에 인계시키고, 수많은 씨족을 중심삼아 요셉 가정과 같은 가정의 인연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찾은 나라가 교회는 물론 수많은 씨족들과 일치되어서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나라는 비로소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 자리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의 의미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까지 나왔느냐? 우리는 통일교단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유대교를 다시 찾아 세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오늘날 통일 족속들은 잃어버렸던 씨족을 찾아 세운 것과 마찬가지요, 잃어버렸던 형제들을 다시 찾아 세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들은 한 형제입니다. 그 형제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씨족이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형제의 인연에 연결시키기 전에는 교회도, 민족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 통일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식구라는 명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식구를 통해야 형제의 인연이 맺어지므로 이 식구라는 말이야말로 천국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본바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식구들은 식구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끼리는 서로서로가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던 그 사랑을 주고받아야 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을 볼 때,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입장을 대신하여 그 어린 사람을 예수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유대교가 사랑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민족이 사랑하지 못했던 그 나이 많은 사람의 입장을 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님과 아우의 입장에 있는 식구끼리는 또 예수님의 형님이 예수님을 사랑해 보지 못한 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형님과 사랑을 나누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러므로 형님 되는 연령의 사람은 동생과 같은 사람을 예수님과 같이 생각하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맺힌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이며 형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하였던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요셉 가정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소원은 사랑을 받고 나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소원은 사랑하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소원은 사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소원과 사랑을 하려는 예수님의 소원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깨져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한을 맺히게 했고 예수님의 한을 맺히게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것을 재현시켜 재탕감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통일교인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의 형님이 예수님을 대하듯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동생과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이 예수님을 형님으로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형님과 같은 사람을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할머니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으니, 예수님의 할머니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손자와 같은 통일교회 식구들을 예수님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손자와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은 할머니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할머니를 예수님의 할머니와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년에서부터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식구들은 전체가 예수님 한분을 놓고 인연을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할 이스라엘 민족,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할 유대교,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할 요셉 씨족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해원하기 위해서 하나의 울타리 속에 모여진 것이 오늘날 이 통일교회 교인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할 예수님이 안 계시니 손아래 사람을 예수님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손아래 사람은 예수님이 손위의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니 이것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입장에서 손위의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한이 풀리고,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결되어 가지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씨족과 새로운 가정을 편성해 나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들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추자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못하였던 모든 사연을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인연을 세계화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족과 인종을 초월하고, 피부색깔이나 전통을 초월하고, 자식이 있고 없음이나 빈부의 차이를 초월하여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을 자유롭게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떻게 이룰 것이냐? 천국을 이루는 기본원칙은, 식구라는 인연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사랑하실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심정적인 유대를 공고히 해야만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은 서로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서로서로가 위하고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심정이 점점 식어 가고, 이와 같은 마음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고 싶었던 예수님의 입장을 몰각한 사람이요, 예수님이 유대교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심정을 몰각한 사람이요, 이스라엘 씨족을 대신한 요셉 가정을 사랑하고 싶었던 예수님의 마음과는 반대 되는 입장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모든 정성을 다 들여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고 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까지도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십자가를 무너뜨리고, 십자가의 길을 해소시키고, 십자가의 담을 파괴하여 정복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 인연만 갖추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거기에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그 누구도 점령할 수 없기 때문에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심정이 떠난 곳은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것은 그러한 한 개인을 만드는 것이요, 그러한 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그러한 한 종족을 만드는 것이요, 그러한 한 교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교단이 형성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 정상적인 입장에서 싸워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하셨던 이스라엘권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본연의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도 아니요, 교단을 대표할 수 있는 유대교단의 입장도 아니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수많은 씨족들의 입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받는 입장에서부터 끌어다가 적응시켜 가지고, 우리끼리 모여서 한 교단을 형성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교가 반대했던 것을 넘기 위하여 우리는 반대하지 않은 교단을 형성하고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여, 예수님을 반대하던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싸워 나온 행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언제 끝날 것인가? 대한민국이 뜻 앞에 서서 통일교회를 기쁨으로 맞이해 주고, 기성교단이 통일교회를 기쁨으로 맞이해 주고, 수많은 씨족들이 통일교단을 기쁨으로 맞이해 줄 수 있는 그때가 되어야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않고 하나님의 본연의 뜻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아직 그 자리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2천년 동안 제2 이스라엘권을 형성해 나오면서 영적으로만 개인을 다시 찾고, 가정을 다시 찾고, 종족을 다시 찾고, 교회를 다시 찾기 위한 노정을 지금까지 되풀이하여 걸으셨지만 우리는 영육을 중심삼고 이와 같은 교회의 기반과 나라의 기반을 세워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와 더불어, 민족과 더불어 교회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서 맞아 주는 그런 때를 맞이하지 않고는 이스라엘 천국 이념은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완전히 식구이기 때문에 우리 자체내에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수많은 종족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나가야 됩니다. 또,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서로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으로 전부다 연결시켜야 됩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가정은 가정끼리 연결하고 종족은 종족끼리 연결하여 예수님과 일체된 유대교와 같은 교단을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온 목적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 이스라엘 나라는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교단의 모든 것을 전부 투입하여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해 나가는 길만이 천국의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시봉하며 나가는 것이 천국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교회는 천국을 개척해 나가는 도상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와 교회와 수많은 종족이 환희하는 자리에서 맞이할 수 있는 우리 교단이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해서 새로이 형성된 교단을 하늘 앞에 세우는 것과 같은 입장을 만들었다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모든 내적인 사연을 알고, 이 사명을 성취하고 이런 뜻을 세우기 위해서 내심 다시 한 번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하는 데에 있어서 의의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결의가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식구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식구 하나가 없게 될 때는 6천년 역사과정에서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개인을 못 가진 것이요,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못 가진 것이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형제를 못 가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 했을 때의 그 한 사람은 개인도 될 수 있는 것이요, 가정에 있어서의 한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이요, 형제에 있어서의 한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식구를 서로서로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한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나이 어린 사람들을 예수님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듯 자기의 부모와 아저씨와 아줌마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함으로써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천상 세계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찬양하고 천주의 모든 만민과 만물이 굴복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게 되면, 여기서부터 본연의 천국 이념이 출발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까지 나아가려면 내가 지금 어느 한계권내에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교회를 투입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고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책임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고 그분의 생의 목적을 우리 자신들이 이루어 드리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 번 다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오늘 이날을 맞는 의의가 더욱 크지 않겠느냐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지,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걸어나온 길을 회고해 보게 될 때에, 이 교단은 그 누구도 사랑해 주지 않던 교단이었습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고, 개개인이 반대하던 그 입장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의 도상까지 몰렸던 것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몰리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2천년 노정에 있어서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고, 세계를 찾아 오셨으나 영적 기준에서만 찾아 나왔습니다. 이 영적 기준을 계승하여 실체 기준까지 연결시키는 것이 당신께서 바라시던 소원의 일념이었고, 당신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수고의 결과가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걸어온 것은 예수님의 한스러웠던 내정의 인연을 상속받아서 실체적으로 이 민족 앞에 쫓김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교회를 다시 한 번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에 이 나라 이 민족에 있어서 교단끼리 서로서로가 같은 기준을 취하여 도리어 유대교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시대권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유대교 무리보다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된 무리가 더 강한 입장에 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저희를 그러한 입장에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를 넘어서서 민족 기준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필생의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길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저희가 살 길이 있고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성탄일을 맞아 자나깨나 이것만을 위해서 저희들이 온갖 정성을 투입하겠다고 다시 한 번 결의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멀지 않은 장래에 필승의 한 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예수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되겠고, 예수님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와 같은 일이 통일교단에서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을 통하여 아버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해원성사된다는 이 엄청난 역사적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고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이 귀한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되겠사옵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오늘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새롭게 결의하고, 새로이 식구의 관념을 공고히 하여 1960년도에 가졌던 사랑 이상의 강한 사랑의 마음으로 다시 결합하고, 새로운 민족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온갖 충성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스스로 결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각자의 마음에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맹세를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그때까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참고 극복하여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와 같은 은사의 자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고, 앞으로 올 나라와 세계 앞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안팎의 모든 내용을 다 해원시켜 드릴 것을 다짐하고 결심하는 각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새벽에 뜻을 염려하는 자들이나 아버님께 감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고,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자들과 온 세계 만민 위에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을 살피시옵소서. 오늘은 역사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1970년도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일년 동안 저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흘 후면 1971년도를 맞이하게 되는 이 자리에 당신께서 친히 강림하시옵소서.

1970년도까지 한 많은 복귀의 역사를 엮어 오시면서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생각해 볼 때, 이해에는 기필코 승리적 기반을 조성하여 하늘의 영광의 한때를 맞이하고자 출발하였는데, 벌써 금년 한 해를 다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년을 지내고 보니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부족했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음을 또다시 뉘우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새해에 있어서는 좀더 보람 있는 생애의 일편을 남기기 위하여 새로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족한 자신을 개탄하면서,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 주시기를 바라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청파동 본부를 마음으로 그리워할 것이옵니다. 그중에는 아버지 앞에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짓는 자녀도 있을 것이옵니다. 또한 자기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아버지의 내적 사정과 외적 사연을 스스로 체휼하면서 일년을 보내고 아버지 앞에 감사하는 자녀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하여 있는 환경과 머물러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몸 마음 조아리며 아버지의 큰 은사를 바라고 있는 자녀들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고 더더욱 아버지의 사랑을 베푸시어서 그들을 동정하시옵고, 그들을 친히 주관하시어서 내일의 역군으로서 보람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흘러가는 세월 속에 저희의 생애도 묻혀 그저 넘어가는 그러한 무의미한 하루, 무의미한 한 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생애노정, 한 번밖에 오지 않는 날들과 해를 맞이할 적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줄 아는 아들딸이 되고, 하늘이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0년도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서울을 중심삼고 움직여진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때는 아버지께서 마음으로 염려하는 때도 있었사옵고, 어떤 때는 당신께서 저희들과 함께 필승의 기반을 닦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것을 직접 대할 때도 있었사옵니다. 지내고 나니 이 모두를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1970년도의 기반 위에서 1970년대를 장식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뜻 앞에 자랑이 되고,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로써 장식할 수 있는 중요한 이 1970년 한 해를 저희들에게 마련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서울 도성을 중심으로 해야 할 책임을 아직까지 다하지 못하고 있사오니, 이제부터라도 550만이나 되는 이 서울 시민들이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도록 마음과 몸으로 불철주야 지성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시민이 하늘의 자녀가 되고, 이 도성이 하늘의 축복받는 도성이 되어 만세계의 수많은 도성에 자랑할 수 있는 도성이 되게 해야겠사오니, 언제나 당신의 마음이 같이하시는 중심 수도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자랑하실 수 있고 당신께서 찾아온 보람이 있는 백성이 되게 하시어 세계 만민의 마음이 집중될 수 있는 본향의 도성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민들의 마음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천운의 방향과 일치되게 하시어서,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나라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선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 도성의 시민들이 아버지 앞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 그 마음이 천상세계의 수많은 선조들은 물론이요, 천천만 성도들이 바라는 소원과 서로 화합하여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와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서울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당신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아직도 통일교단의 저희들 모두가 책임져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1970년을 보내는 이 아침에 당신의 사랑이 더욱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지난 일년 동안 가호하여 주신 당신의 그 사랑 앞에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도 당신께서 저희들이 기거동작(起居動作)하는 모든 일체를 친히 주도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싸워 나가고 개척하는 노정에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의 마음이 풍부하게 깃들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다시 올 수 없는 1970년도에 마지막으로 맞는 거룩한 안식일이오니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에게 새로운 결의를 요구하시려거든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은밀히 찾아오시어서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하여 저희들을 불러 모으셨사오니, 각자의 결의와 각자의 자각과 각자의 맹세로 다시 한 번 다짐 하는 가운데 1971년도를 맞이하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서울 도성에는 수많은 교단의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늘의 뜻을 바라보면서 끝날에 자기들이 행할 바의 길을 알지 못하여 얼마나 애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갈 길을 명시하여 주시옵고, 들려오는 소문을 통하여, 혹은 나타나는 결과를 통하여 당신의 품에 품겨질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아진 날들 위에도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곳을 위하여 마음을 묶어 정성들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외로이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이렇게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신의 모든 사정을 그들이 알게 됨으로써 아버지여, 그들이 소원하는 것이 당신께서 소원하는 것과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개척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당신께서 개척하고 있는 그 입장과 같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당신의 일을 그들에게 인계하시어서, 이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선두에 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더우기 지금은 40일 개척기간이오니, 이 기간에 하늘을 위하여 뜻의 길을 가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뜻은 결코 정지할 수 없사옵고, 결코 주저할 수 없사옵기에 저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강하고 담대한 입장에서 통일시켜야 되겠고 하늘의 입장을 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 한 해동안 저희들을 살펴 주시고 저희들의 전후 좌우 상하를 관찰하시어 이끌어 주신 당신의 은사에 진정으로 감사드리옵니다. 또한 이 한 해로 말미암아 큰 결과를 거두게 하여 주심과 오늘의 통일교회의 입장을 정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 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 가정에 있어서도 어린 자녀들의 마음에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기수가 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도 아버지 뜻 앞에 있어서 같은 반열에 동참함으로써 영원하신 아버지의 후예가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축복받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가정들 위에 당신께서 다시 한 번 새로이 통고하시어서, 그들이 하나되어 그들이 원하는 하나의 민족을 편성하고 나라를 편성하여, 그 나라를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과 충성을 기울이게 하시옵소서. 이 한국 강토를 위하여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내일의 승리를 찬양할 줄 알고 조국을 그리워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뜻을 사모하고 뜻을 위해 싸워 나가는 모든 생활환경이 아버지의 사랑권에서 벗어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일치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아버지 앞에 완전히 바쳐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고, 통일의 족속이 되고, 통일의 세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 여기에 당신의 부족한 자녀들이 엎드렸사오니, 이들이 누구를 위한 자신인가를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움직였고, 무엇을 느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덧없는 나 자신을 위해서, 아무런 결과도 찾지 못한 외로운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입시켰던 것을 슬퍼하고,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유업을 위하여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몽땅 바쳐드릴 수 있는 거룩한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모습이 되기 위하여 다시금 아버지 앞에 마음 깊이 결심 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각자를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시대에 있어서 맡겨진 사명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끔 당신께서 보호하고 육성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해에 있었던 모든 일을 감사드리옵니다. 남아진 며칠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신년의 계획을 세우는 그와 같은 모든 자리가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어 움직일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과거가 연결되어 있고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즉, 현재라는 것은 현재 그 자체만으로서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한 개체를 두고 볼 때, 나라는 존재는 과거의 결실체요, 미래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나 자신이라는 것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이 아니라, 한국을 연결시키고 세계를 연결시켜 모두가 관련된 입장에 있어서의 중심의 자리를 요구하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현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자기를 중심삼고 미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떠나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과거를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현재를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나쁜 것을 중심삼고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을 중심삼고 과거를 생각하려 하고, 현재를 생각하려 하고, 미래를 생각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좋은 과거를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도 좋을 수 있는 입장을 개척해야 되는 것이며, 또한 그 이루어진 터전 위에 미래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결과를 그리며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결과가 자기 자체의 생활뿐만 아니라 민족과 세계에 좋은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 인간들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이 그러하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창조물이 설정되는 과정을 거쳐 창조목적 완성의 중심체로서 인간을 지으시던 과거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원치 아니했던 타락의 결과를 가져온 뒤부터 지금까지의 비참한 복귀역사를 거쳐 나온 것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과거를 중심삼고 볼 때, 그 회고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처음에는 물론 창조의 위업이 성사되어 나가는 결과를 두고 무한히 기뻐하셨겠지만, 무한한 소망과 무한한 기대를 가지고, 내일의 창조의 실현을 과시할 수 있는 중심인 사람을 보고 온갖 희망과 희열의 대상으로 바라보시던 기쁨의 한때가 있었겠지만 그러한 기쁨이 변하여 생긴 생각지도 않았던 이 엄청난 타락의 결과 때문에 천세 만세를 거쳐오면서 한스러운 투쟁의 역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다시 개척자의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 자신의 입장, 그것도 소망을 두고 하는 개척이 아니라 그 마음마음마다, 대하는 사사건건마다 슬픔을 개재시켜 슬픔의 한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나오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과거는 회상하면 할수록, 회고하면 할수록 슬픔을 가중시키는 회상이요, 회고가 될 수 있었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짐작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복귀를 개척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현재의 입장을 두고 볼 때, 과거와 현재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넓은 천지 가운데에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 지금까지 슬픔을 지니고 나오신 하나님 앞에, 과연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소원을 되찾아 드릴 수 있는 종교단체나 혹은 그런 종교를 믿는 자녀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막막한 현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재에 계신 하나님은 기쁜 하나님이 되시기는 커녕 도리어 슬프신 하나님,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하나님, 낙망 속에서 후회하시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중요한 현시점

그러면 이런 실상을 두고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세계를 관찰한다면 이 지구상에 새로운 소망의 일점, 새로운 소망의 한 터전이 과연 어디에 있겠느냐?

이 지구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선진국으로서의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도 있고, 혹은 나름대로 자기 나라가 세계에서 축복받은 나라요, 자기 민족이 축복받는 민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나라와 민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입장을 넘어 가지고 본다면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땅에서 핍박의 노정을 걸어온 보잘것없는 이 통일교회의 무리가 하나님께서 현재 세계를 놓고 바라보시는 소원의 중심이 되는 한 자체라고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뜻을 중심삼은 현재의 입장에서 말할 수 없이 막중하고도 놀라운 은사라면 은사일 수도 있는 반면 두려운 일이라면 두려운 일이라고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런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통일교회의 현재는 귀중하고도 엄청난 세계적인 사건을 맞이한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들을 회고해 볼 때 그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연속되었지만, 오늘날 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나타난 현재는 슬픔의 역사로 연결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전환시켜 가지고 기쁨의 결과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그야말로 역사시대에 없는 가장 중요한 현재 이 시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흘러간 역사시대에 뜻의 길, 혹은 섭리의 뜻을 따라 나온 역사상의 수많은 선조들과 오늘날 이 뜻을 대하고 나오는 통일교회의 우리 식구들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지난날의 선조들이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한 그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소원 앞에 기대할 수 없는 역사를 남기고 오히려 슬픔을 가중시킨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재현시켜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다 할진대 통일교인 개개인에게 맡겨진 사명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다시 낙심시켜서는 안 될 것이며, 기쁨과 소망의 일념을 하나님 앞에 제시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자기의 과거를 회고해 본다면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다 흘려버려야 할 과거입니다. 또, 역사시대에 자기 민족이 훌륭했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문화권을 가진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 좋았던 과거는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슬픔 가운데 사라져 버릴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시대의 귀하던 모든 문명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뜻을 대하여 충효의 정열을 다 퍼부으며 죽음길을 가면서까지 수고하여 이룩해 놓은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깊은 마음 가운데 기쁨으로 남길 수 있고 회고의 조건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할진대, 오늘날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의 책임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왔다 갔던 세계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남겨 놓은 사건들, 즉 추억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그런 사건들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의 생활과 살아 나가는 일년의 기간, 혹은 앞으로 살아갈 10년 20년을 더 중요하게 보고 계시다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의 역사를 재현시키고, 되풀이하는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슬픔의 역사를 탕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식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현재가 흘러간 하나님의 슬픔을 동반하는 그런 현재가 되지 않고, 또한 앞으로 올 미래의 어느 한때에 찬양할 수 있는 그러한 현재가 되지 않는다면, 기쁠 수 있는 역사라는 것은 미래에 남아질 수 없고, 또 미래에 가서 현재를 되돌아볼 때 회고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조건으로도 남아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현재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시간과 기간이 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 온갖 규탄을 받고 슬픔의 역사를 이어주는, 원통하고도 비통한 사실(史實)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현재 우리가 처한 입장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여러분이 깨달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남겨야 할 것

사람이라는 존재를 두고 볼 때, 현재의 사람이나 과거에 왔다 간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치의 중심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에서 본다면 선을 그리워하고, 선을 위해 투쟁하는 데 있어서는 옛날 사람들보다 도리어 현재가 못한 입장에 있지만, 우리에게 지워진 시대적인 사명이나 역사가 요구하는 그 표준은 엄청난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가는 걸음이 역사의 주추가 되고, 역사의 정신이 되고, 과거의 모든 슬픔을 해원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볼 때, 그 길을 가고 있는 여러분의 생애야말로 무의미한 생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향진(向進)하는 그런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한 선(線)으로의 향진이 아니라 평면적인, 더 나아가서는 입체적인 향진인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기를 역사시대의 모든 선지선열들은 바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우리 자체에 대해서 그와 같은 역사의 중심으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중심적 존재가 되기를 고대하실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개체는 그 한 개체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인 중심과 역사적인 소원과 역사적인 기대 가운데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1970년대, 1980년대, 혹은 2천년대, 나아가 3천년대의 많은 역사과정을 거치겠지만,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이냐? 1970년도, 1970년도에 통일교회가 거쳐 나오는 데 있어서 시기적 한계선이 있을 것입니다. 또, 현재라고 하는 시점에 있어서 넘어가야 할 정상이 있을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개인적인 정상이 있을 것이고, 가정적인 정상이 있을 것이고, 민족, 국가, 세계적인 정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상을 넘어갈 수 있는 한때라는 것은 세계의 시대에 있어서, 혹은 하나님의 섭리역사시대에 있어서 두 번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 번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한번밖에 없는 그 시점을 어느때, 어느 누가 거쳐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때를 맞는 과정에 있지만, `그 어느때보다 확실히 이때다'라고 단정하고 자신하고 넘어 가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정상의 한 순간이 현재 우리의 생활권내에서 굽이치면서 내 생활과 내마음이 세계를 거쳐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한번 밖에 없는 이때를 놓칠소냐 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현 중의 성현의 마음을 대표할 것이요, 의인 중의 의인의 생활을 대표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떤 이상을 추구해 나온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최고봉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 현재는 평범한 현재가 아닙니다. 특히 통일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이 1970년대라는 기간은 평범한 시대권의 한 파동이나, 어떠한 하나의 지표, 또는 주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시대에 있어서 최고봉을 이룰 수 있는 그런 기간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재가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엄청난 때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여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욕구라든가 자기의 가중된 충성이라든가 자기의 정성의 일념을 투입시켜 충만하고 원만한 한때, 전후좌우로 어떠한 빈틈도 없이 꽉 찰 수 있는 현재의 한때를 남겨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의 선조들이 바라던 소원일 것이며, 오늘날 세계인들이 마음으로 추구하는 표준이 될 것이며, 또한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바라는 선조에 대한 최고의 기대가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렇겠지만, 복귀섭리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현재를 바라보시면서 후회스럽던 지난 과거를 청산짓고 미래를 향하여 자랑스럽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원으로 만들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때, 어느 한 순간을 중심삼고 면면을 결정짓고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없다고 하면 슬픈 과거의 역사는 청산될 수 없는 것이요, 기쁠 수 있는 현재는 미래에 남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픈 역사 그대로를 계승할 수 밖에 없다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그 어떠한 수난의 곡절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서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주저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바라는 하나의 정상을 위해 결정타를 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의 결정적인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결의에 찬 개인, 결의에 찬 통일제단이 되었다 할진대 이는 전세계의 역사를 종합하여 해원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기반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기반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우리 자체, 우리 교회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민족의 불신사를 기쁨으로 결실시켜야 하는 통일의 무리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는 2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 20여 년의 역사 가운데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혹은 하나님의 섭리사 가운데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거기에는 민족의 불신사(不信史), 즉 민족이 불신했다는 과거밖에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3정권을 거치면서 수많은 교단으로부터, 혹은 민족으로부터 규탄을 받고 생활환경에 있어서 몰림받았던 그 사실이 과연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겠느냐 할 때, 그것은 자랑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그 역사는 슬픔의 역사를 이어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에 불신의 배반사를 계승한 슬픈 기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그 역사는 이 민족의 수치를 자극시키고, 민족의 미완성을 자극시키고, 각자의 불신을 자극시켜 각자가 다시 한 번 소망을 희구하도록 하는 슬픔의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교단의 슬픈 역사를 어느 한때의 기쁨의 역사로 바꿔치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원하실 것이고, 지금까지 배반하고 반대했던 대한민국 자체도 원할 것이며, 대한민국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도 원할 것입니다. 하늘의 운세가 한국을 중심삼고 결정적인 위치를 정하게끔 섭리의 닻이 내려진 입장에서, 하늘의 뜻을 대해 나오던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은 물론 지상에 있는 피조세계가 슬픔의 결과를 남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가 기쁜 결과를 남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니요, 다른 민족도 아니요,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오늘날 보기에 부족하고, 보기에 지쳐 있고, 보기에 미숙한 우리 통일교단의 통일의 무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뛰는 맥박 소리와 울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평상시와 같지 않은 그런 맥박, 그런 고동소리로 느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생애에 있어서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최고의 한계선을 넘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지냈다면 그 알지 못한 것이 슬픔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알 수 있는 그 기준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정상과 인연맺을수 있게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자기도 그 정상을 넘었다는 가치를 지니지 않고 이상세계에 같이 참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기준을 품고 싶으신 하나님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은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그런 때가 오게 될 때, 혼자 넘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든지 선생님을 따르는 무리와 더불어, 축복받은 가정과 더불어 넘을 것 같습니까? 선생님은 통일교회뿐만 아니라 통일교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과 국가와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와 함께 넘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봄날이면 봄날의 환경에서, 그 중심의 자리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그 범위를 개인에게 국한시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 넓히고, 종족으로 넓히고, 국가로, 전세계로, 천주까지로 넓혀 가지고 그 한때를 같이 넘고 싶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기쁜 날을 갖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그런 날이 단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한때를 온 세계 만민과 더불어 맞이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또 지도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개인의 승리를 들어 세계적으로 찬양할 수 있는 때를 못 가지셨습니다. 또한 가정을 들어 세계적으로 찬양할 수 있는 때도 못 가지셨고, 어떤 특정한 종족을 통해서도 세계적인 승리의 때를 갖지 못하셨고, 민족을 중심삼고도 승리의 입장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개인이 잘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세계와 연결시키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가정이 잘하고 있으면 그 가정만을 칭송하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이 잘한 것을 세계가 잘한 것으로 연결하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종족이 잘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세계에 연결시키고 싶어하시고, 또 민족이 잘한 것이 있으면 특정한 민족에만 남아지게 하는 것보다도 세계의 특정한 국제인으로 남아지기를 바라고 세계인으로 남아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때 기쁜 마음으로 개인을 칭송할 수 없었고, 가정을 칭송할 수도 없었으며,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들어 찬양할 수도 없었던 입장에서 지금까지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보다 가까이 설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생각해 볼 때, 어느 한때 통일교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느냐 하면 통일교회도 역시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한때도 없었으며 종족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한때도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가 우리를 환영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두고 볼때, 대한민국만 환영해 가지고는 세계에 기쁘게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대한민국 자체를 그런 자리에 세우기 전에 대한민국이 세계화될 수 있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한 터전을 바라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서 있는 통일교회를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은 어떻게 보면 슬픈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에 가장 가까이 설 수 있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개인을 자랑하고 싶은 때가 있거든 그것을 개인의 때로만 맞으려 할 것이 아니라 가정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한때로 맞이해야 하며, 가정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종족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고, 또한 민족과 더불어 국가와 세계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한때로 연결시켜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즉, 개인과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일시에 자랑할 수 있는 한때를 맞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깊고 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통일교회가 그런 때까지 남아질 수 있고, 또한 통일교회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생애를 바쳐 수난의 길을 간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통하게 생각해 가지고는 그런 한때를 연결시켜서 세계의 때로서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결의하고 다짐하면서 신앙길을 나온 우리 통일의 무리들은 다시 혁신적인 내용을 갖추어 재차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작전해 나온 것은 오늘의 희생의 대가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만민, 만세의 인연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가치를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지향해 나가는 방향이요, 노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 해방을 찬양함과 동시에 만가정과 만민족, 만국가를 찬양할 수 있는 그런 해방을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의 기쁨을 미래의 기쁨으로 남길 수 있는 사람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 합당한 전통적 사상이나 정신적인 뒷받침을 가진 문화와 문명권이 있었느냐? 지금까지 그러한 문화와 문명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적인 사상이나 정신적인 뒷받침을 가지지 못한 문명권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흘러가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통일사상으로 말미암은 이런 사상적 뒷받침, 즉 전체의 공익을 위하고 전체의 공의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기쁨을 전체의 가치에 결부시키기 위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와 더불어 생명을 다짐하고, 세계와 더불어 인연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주장을 가지고 나아가는 새로운 문명권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문화가 창건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문명권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역사를 빛내고 찬란한 문화를 자랑할 수 있었던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새롭고 입체적인 문화권을 계승, 상속시킬 수 있는 문명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잘살아야 되겠다, 잘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잘살고 잘되어야 되겠다는 것이 김씨면 김씨를 중심삼은 어느 가정의 울타리권내에서 잘살아야 되겠다, 잘되어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세계권내에 있어서 잘되어야 되고 잘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것과는 천지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전자는 과거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이요, 후자는 미래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한계권내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오늘만의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일과 맞부딪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쁨은 내일이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쁨을 오늘의 기쁨으로만 지내 버릴 것이 아니라, 오늘의 기쁨을 미래에 남길 수 있도록 지니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무한한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그런 사상,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로 한 승리의 정상을 추구하는 사상을 지니고 하늘땅과, 과거에 왔다 간 영인들과, 현재의 인류와, 미래의 후손들이 공히 쌍수를 들어 이곳은 세계적인 정상이요 세계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봄날을 맞고 있는 곳이라고 찬양할수 있는 그런 곳을 바라고 나간다 할진대는, 오늘날의 삶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고통은 정상을 극복하고, 정상을 점령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겠느냐. 정상을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 남길 수 있는 생활은 그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보다 귀하냐 할 때,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로 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느 역사시대를 통하여서도 그러한 한때를 들어 자랑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으신 한때는 어떤 때일 것이냐?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이 와서 유향을 드리고 경배드리던 기쁨이나 혹은 천군천사가 기뻐하던 그 기쁨은 탄생의 기쁨은 될는지 모르지만 위업 상속의 기쁨은 못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창조의 위업을 완결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에 충만하시고, 만천하 피조세계가 호응하고 동조하는 찬양과 경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출발하는 데 있어서의 찬양과 경배였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출발을 통하여 과정을 거쳐 가지고 미래의 기쁨을 다짐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출발하는 자리에서의 기쁨이었지, 미래의 목적을 이룬 세계적인 정상에 있어서의 기쁨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바라던 예수님을 맞아 기쁨으로 출발했지만 출발했던 목적을 지니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비참한 운명이 남아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에 두 번 다시 없는 슬픔을 가중시킨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인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의 타락 때보다도 더 큰 슬픔 곡절에 부딪치셨기 때문에 그 아득함을 세 시간 동안의 어둠으로 나타내셨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정상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 소원을 기필코 이루셔야 하셨기에 어느 한때 어느 한 곳에서 한 분을 중심삼고 결정지어야 할 것을 다짐하시고 지금까지 수천년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양육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난의 대가로 찾아진 기독교요, 수난의 역사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신자 가운데에 수난의 역사를 장식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으며, 수난의 대가로 찾을 수 있는 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천주사적인 인연이 있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여기에서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없습니다. 그러나 절망을 느끼면서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절망에서 하늘의 소명의식을 스스로 느껴 더욱 분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기원이 이 지구성의 그 어떤 곳에서 모색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 성취와 인류의 소원 성취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한때를 위하여 몸부림치고, 이런 한때를 위하여 고생하고, 이런 한때의 출현을 고대하고 염려하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내가 다시 오겠다. 신랑으로 틀림없이 올 것이니 너희는 신부로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만민과 만세 앞에 자랑으로 남길 수 있는 혼인잔치의 한 날을 약속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럼 그 혼인잔치가 한국적이냐? 그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적인 것이 아니라 초민족적인 것입니다. 또, 그것은 종파적이 아니라 초종파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땅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이며, 그 중심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중심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슬픔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기쁨과 희열이 충만된 모습으로 그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소원인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세계적인 정상의 때요, 만민이 희망의 봉우리를 맞는 때요, 슬픈 역사를 종결짓는 때인 것입니다. 또, 이때야말로 모든 전체의 중심을 결하고, 모든 슬픈 역사를 제거하고, 새로운 기쁨의 역사가 출발할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과연 오늘날 통일교회가 바라는 이 이상노정에 있어서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가져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내온 길은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수많은 무리들의 눈을 피해 가며 그늘에서, 혹은 몰림길에서 이 길을 다짐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시고 바라시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들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이상으로 각성해야 되고, 유대교단 이상으로 각성해야 되며, 예수를 따르던 사도들 이상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 엄청난 천주사적인 인연이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 맺어져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역사의 꽃으로서 등장할 수 있고,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가 역사의 향기로 풍길 수 있는 것을 알고, 우리는 만민의 탄식을 전부 다 제거시킬 수 있는 청소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랑의 심정에 주름살이 잡혀 있고, 그 누구도 빼드릴 수 없는 마음에 못이 박혀 있는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역사적인 대표자라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외적으로 차림이 초라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인 내 모습이 초라하거든 역사시대에 내적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걸어가던 성현들을 생각하며 세계사적인 대표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해원성사하겠다고, 그들을 탕감복귀하겠다고 하늘 앞에 스스로 다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가 만족하는 어떤 입장에 있게 된다면 그 만족은 내 개인의 만족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만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더듬어 나온 것이 복귀섭리요, 인류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고 이것을 위해서 수많은 피의 역사를 남기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은 나 하나만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재창조역사를 하시려면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진정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아느냐? 진정 하나님이 내 생활권내에 계신 것을 감촉으로 느낄 수 있으며 내 세포와 접촉되어 역사하시는 것을 확실히 아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슬프셨던 하나님이요, 현재에도 슬프신 하나님이시라면 이 슬픔을 누군가가 가로막아야만 기쁠 수 있는 미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인데, 누가 하나님의 이 슬픔을 가로막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전환시키겠습니까? 어떠한 개인이 그렇게 하고, 어떠한 가정이 그렇게 하고, 어떠한 종족, 민족, 국가가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국가는 세계의 사조권내에 휩쓸려 가는 국가가 아니라, 그 권내에서 싸워 가지고 세계사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선두에 선 입장의 국가라야 됩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각을 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이때의 나라는 존재는 단순히 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부활을 대신한 나요, 시대의 맨 정상에 선 나입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종대 끝에 달려 하나의 열매가 될수 있는 나입니다. 즉, 슬퍼하고 지지리 못났다며 탄식하는 나가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과 어떠한 고충이 있더라도 그것을 희열로 소화시켜 가지고 하나님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그 생활을 보증할 수 있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나가 되었습니까?

과거에 슬픔의 고빗길에서 후퇴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 내가 아무리 슬픔이 가중되는 억울한 자리에 부딪치더라도 후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후퇴라는 것을 생각하셨다면 오늘날 이 인류는 어떻게 됐을 것인가? 그런 자리를 지켜 나가신 그분이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 아버지의 혈육을 받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빚을 갚아 드리고 청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를 위해서 노력과 희생이 하나님이 하시던 것의 몇 배가 되더라도 응당히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나갈 때, 여러분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소원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하신 것과 같은 슬픈 자리에 몰리게 될 때, `나 죽겠다'고 한다면 기쁨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그와 같은 자리, 죽음길이 교차되는 그런 자리에 처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당신께서 가시는 수난길을 힘차게 넘어 보람 있는 내일의 희망의 일점으로 남겨 드리기 위해 내 피살을 그 터전 위에 남기며 가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서 역사가 넘어가지 못하고 역사가 뭉그러뜨리지 못하는 그 마음의 터전을 남겨 준다면, 거기서부터 하나님은 소원하시던 재창조 역사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기필코 내가 이루어 드리겠다고 하는 데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손길이 임하실 수 있는 동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십자가 노정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신 것이고, 또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면서 피살을 녹이는 죽음길에서도 원수를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고 그렇게 가신 예수님의 마음 앞에 하나님은 제2 이스라엘권이 현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도 그럴 수 있는 신앙 자세로 생애를 걸고 하나님을 붙들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천상의 위업을 이 시대와 미래의 후손 앞에 고이 남겨줄 수 있는 선한 조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행복이 찾아 온다면 그 행복을 통일교회만 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만민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승리를 하는 데 있어서도 통일교회만의 승리로 남기겠다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의 지탄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새로운 미래의 소망을 계승시킬 수 있는 입장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만의 승리, 우리만의 영광, 우리만의 기쁨을 누리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 중에 자기의 상대가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자기는 불행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래의 천국을 위해서 걸어 나오신 하나님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가정 가운데 내 상대가 이런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걸 보시고 상대의 기준과 내 기준의 차이를 아실 것이니, 그 상대가 만족해 하지 않더라도 자기는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오래지 않는 장래에 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일생에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의 길이 나타나게 될 때, 여기에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 한스럽고 분하다고 탄식하기보다는 나에게 다시 오지 않는 한 기회로, 내 자체가 하늘과 더불어 같이 갈 수 있는 영광의 한 기회로서 고이 맞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여, 내 생명을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그 사람의 종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죽음과 고통과 탄식은 역사와 더불어 청산되고 소망이 거기서부터 재출발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정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일선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지시한 것은 우리 앞에 때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의 승리가 축복가정만의 승리로 결정지어져서는 안됩니다. 통일교회의 영광은 축복받은 사람만의 영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의 승리는 축복받은 가정을 위주로 한 승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승리를 어떻게 해서 민족의 승리로 연결시킬 것이냐? 승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권내에서 하는 승리가 아니라 밖에 나가 중요한 짐을 짊어지고 하는 승리라야 합니다.

가정에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들이 아주머니들입니다. 그런 아주머니들을 일선에 내세우는 것은 그 가정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의 승리 이전에 민족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민족의 승리로 남아지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새로운 전통을 세워서 세계의 승리의 기원으로 남아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이번 일을 결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지금 당장은 비참하게 느껴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 나가는 시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사의 조건으로서, 역사적인 승리의 전통으로서, 민족적인 새로운 전기가 되는 것으로서 남아질 것입니다. 전후 좌우 안팎으로 비판해 보고 타진해 봐도 그 모든 기준의 승리의 결과는 초국가적이요, 초역사적인 것으로 남아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 며느리가 핍박받는다고 반대하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제야, 자기들이 소원하던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타격을 가한다고 돌아서서 저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어떻게 하늘 앞에 남아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가야 되겠다는 무리와 이 길을 막아야겠다는 무리, 이 두 군상 가운데 어느 무리가 남아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어느 무리를 남기시겠습니까? 반대하는 무리를 남기시겠습니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뜻의 길을 따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 가겠다고 하는 무리를 남기시겠습니까? 남아져야 할 한때인 이 시대의 주인공을 찾아 세워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면 이와 같이 남편을 뒤에 두고, 자식을 뒤에 두고 연약한 아낙네로서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선두에 서서 나가는 걸음 앞에 하나님께서는 같이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런 일을 단행하면서 내심에 조금도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편안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내세워 가지고 내가 이익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익이 있다면 내 이익이 아니라 나라의 이익으로, 세계의 이익으로, 역사의 이익으로, 인류의 이익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며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정상의 표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수 있는 기쁨이 통일교회 내의 기쁨으로만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기쁨으로 남아져서 추모의 대상, 기억의 대상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길밖에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일을 단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그칠 것이냐? 오늘날 통일교단의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중심삼고 이런 일을 한 것이 하나님이 축하할 수 있는 기원이 됐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남편도 그러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 보내고 싶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보내는 그 자체는 비참하더라도 역사적인 전체의 비참함이 나를 넘어서 앞으로 세계 전체 앞에 미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길을 명령해야만 되는 하늘의 입장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천국 노정에 있어서 통일교회 교인들의 그 결의가 어떠해야 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 보고, 현재 내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확실하게 규명지어야 할 때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섭리적으로 중요했던 1970년

오늘 `회고와 현재'라는 이런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볼 때, 1970년도는 역사적인 7천년에 해당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던 바대로 최고의 정상이 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끊임없이 흘러 나갈 것입니다. 이해가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을 중심삼고 국가를 넘어 세계 전체, 하늘 전체를 통합하여 최고의 정상이 되었다면 그것은 1971년을 지나가도 1972년에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도에 그런 자리를 갖지 못했다면 1971년도에는 1970년도에 갖지 못한 수난의 길까지 가중된 수난의 길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서 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1971년도에도 그런 자리를 못 가졌으면 1972년도를 맞게 될 때 1971년도에 가지 못한 수난의 길을 달갑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춰서 가야 됩니다.

1970년대를 통하여 1980년대를 바라보는 그 기간에 정상의 한때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했다면, 지나가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의 기간에 있어서, 정상의 한때를 갖지 못하여 가중된 수난을 감수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늠름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제단을 묶어 바쳐 가지고 제사장의 제복을 입고 만민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던 자리를 넘어서 희열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자리, 즉 `아버지' 하면서 목을 붙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승리는 너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 앞에 너를 자랑하고 싶다고 하며 내세워서 만피조세계 앞에서 축복해 주시고 자랑하며 내가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이라고 공인해 주실 수 있는 세계적인 한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통일교인에게는 이처럼 필히 맞이하여야 할 정상의 한때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종족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나라의 주권을 찾아야 되고,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세계의 주권을 찾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뜻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금년 197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많은 일을 이루어 왔으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1970년을 맞으면서 지금이 이 나라와 결판할 수 있는 한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을 맞으면서 부랴부랴 아시아 승공대회를 계획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비장한 결의로 그 일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원래 이것은 1970년도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일시적 계획으로 이 일을 한 것은 돌발적 사태를 방비하기 위한 내적인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급히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때 모든 기관들은 우리를 미워했습니다. 그런 환경을 뚫고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기 시작해 가지고 선생님이 염려하던 국가에 대한 모든 기준을 4월, 5월을 지나면서 모두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6월 초하룻날에는 결정적인 승리의 내용을 가지고 정보부장이 대통령 앞에서 승공연합을 중심삼은 통리교회의 모든 내용을 38분 동안 보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간에 있어서의 반공연맹과의 싸움, 그 기간에 있어서의 정부의 최고 기관들의 우리에 대한 오해를 전부 무마시키는 공작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6월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한 고비를 넘기고 7월을 승리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로 삼아 가지고 9월을 정상으로 해서 10월에는 우리가 한국에 있어서의 승리적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즉 새로운 역사시대, 새로운 세계 문화권 시대에 승리적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축복행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축복행사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이 민족 앞에, 수많은 종파 앞에, 더구나 기성교회에게는 비수를 가하는 충격적인 사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수십년의 역사를 일년 동안에 서울을 위주로 하여 이 수택리 수련소를 중심삼고 작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목표를 중심삼고 과정을 거쳐왔는데 이제는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앞으로 통일교단이 결정지어야 할 일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로부터, 민족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추방된 민족, 원수의 족속과 같은 맨 끝의 입장에서 삼천리 반도 남한 땅에 한 기준, 한 점을 마련해 가지고 그 점에서부터 지방으로 올라와 가지고 분파적인 점작전을 전개시켜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서울에서 우리가 바라던 균등한 승리의 터전을 닦게끔 된 것입니다. 서울이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는 사실은 정상적으로 1970년대의 출발코스를 달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여러분은 금년 한 해를 무의미하게 지내왔을지 모르지만,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선생님에게는 심각한 해였습니다. 슬픈 과거를 잊을 수 있는 한때를 맞이하여, 이 한때를 통하여서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그 기쁨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기쁨으로만 남아지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민족의 기쁨으로 세계의 기쁨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우리는 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정의 부인들을 동원한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내가 엊그제 지방의 몇몇 집을 돌아보며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어떠한가 살펴보았습니다. 벌성벌성한 그 아이들을 볼 때 기가 막혔어요. 마음으로만 `너희들, 엄마가 보고 싶을 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엄마는 뜻을 위하여 3년 기간을 탕감해야 된다. 이 기간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에서, 대상을 맞이한 기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여성으로서 탕감복귀해야 할 책임분담의 기간이다. 그래서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전체를 탕감시킬 수 있는 내용의 심정적 터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엄마가 동원된 것이다. 너희가 지금은 모르지만 앞으로 이것은 너희의 자랑이요, 너의 가정의 자랑이 될 것이다. 앞으로 너희의 입을 통해서 어머니를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 너희는 외로운 고아가 아니다. 마음속에 길이길이 높고 귀한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너희는 얼마나 행복하냐' 하고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보기에 그것은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런 길을 안 가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통일교회를 현재 입장에서의 정상으로 귀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정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런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정상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제일 높은 전통을 남겨 놓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정상의 인연을 세워야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1970년을 지내오면서 여러분 마음 가운데 가장 기억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순간이 어느때였습니까? 여러분이 걸어나온 1960년대는 하나님의 슬픔을 중심삼은 개척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슬픔의 개척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쁨의 개척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새 기준의 세계로 달려가야 할 현재 입장에서 세계를 감동시키고 세계의 전통과 세계의 사상의 기원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쁨을 느낀다면 그 기쁨을 우리만의 기쁨이 아니라 세계의 기쁨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며, 그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는 세계의 슬픔을 도리어 눈물로 바꿔칠 수 있는 마음을 앞놓아 나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정상적인 생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 나가는 사람은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요, 시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의 승리를 이어나가는 것이요, 시대의 승리를 계승시켜 나가는 것이요, 미래의 승리를 결정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느끼는 보람은 역사의 보람이요, 시대의 보람이요, 미래의 보람인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될때 역사상의 선조들은 내편이 되는 것이요, 현세계의 인류는 나를 중심삼고 움직일 것입니다. 또 그러한 내가 됨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후손들은 나를 중심삼고 모든 역사의 기쁨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단에서 결정지어야 할 일입니다.

슬픔으로 엮어 오던 역사를 기쁨의 역사로 바꿔 놓아야 합니다. 그 기쁨을 내 개인적인 승리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기쁨으로 연결시켜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최고의 정상이니만큼 최고의 정성을 다짐해야 합니다. 최고의 인내와 극복을 다짐하면서 스스로의 신앙길을 비판하며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해 나가게 될 때는,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슬픔으로만 지내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쁨으로 장식해 가지고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지옥에서의 생활일지라도,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생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Ⅰ)

아버님, 어제 수택리에서 어느 교수의 말을 듣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기독교의 새로운 면을 모색하였고, 불교의 핵심적인 내용을 결함없이 내포하였으며, 유교와 도교의 내용보다도 더 고차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그 교수는 말하였습니다. 또한 통일교회의 원리는 이론적이고 과학적이며, 오늘날 세계의 어떠한 학문보다도 최고의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름있는 교수를 통하여 칭송받을 수 있는 한때를 가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보잘것없는 코흘리개와 같은 이 철부지 통일의 무리들이 한을 풀 수 있는 때가 목전에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이렇게 귀한 것을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일러 주셨기에 저희들은 그것을 다 흘려 버릴 줄 알았는데, 기필코 이 민족의 지식인을 통하여 그것을 고귀하게 찬양받을 수 있는 의인의 역사를 남겼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에 남아 있는 모습들이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무식하고, 헐벗고, 또 아무리 철부지라 하더라도 이들이 전면적으로 이런 실적을 거두기 위해 싸워 나온 역사적인 이 사실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불쌍하였던 통일의 무리들이 이제 한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그런 실적이 10년, 20년 전에만 있게 되었던들 오늘날 인류는 신음하는 역사의 비운권내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의 침범을 받아 갈 길을 잃고 회개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자기 자신을 분석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자리도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탄식과 절망에 부딪쳐 가지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자기 자체를 두고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이 처량한 종말은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모든 사연은 대한민국이 책임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한민족이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시간도 아버지 앞에 이 민족의 부족한 모든 점을 용납해 달라고 사연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간 20년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천상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었으나 그렇지 못하고 한을 품고 영계에 가서 한민족의 선조들을 얼마나 참소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이날을 위하여 일하다 죽은 충신열녀들이 얼마나 딱한 사정에 몰려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들은 이 자리를 떠나서는 결코 새로운 뜻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영계에 있는 선조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수난을 당하며 고생길을 가는 것을 놓고 우리가 잘못한 것을 풀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조건을 남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렇게 선조들을 얼굴을 들 수 있는 자리에 세우지 않고는 그 후손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눈물의 길을 걸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지난날의 슬픔에 대해서도 저희들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선조들이 잘못하게 될 때에는 그 후손도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선조의 인연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부끄럽지 않는 소원의 일념을 다질 수 있었고, 또한 오늘날까지 이렇게 걸어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한민족 가운데에는 저개발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탄식하는 무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통일교회의 무리들은 피눈물나는 이 길을 가면서도 내일의 천국을 소망하며 구김살없이 늠름하고 씩씩하게 투쟁해 나왔습니다. 이것은 막막하였던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소망의 일념을 주고, 장한 민족 창건의 기원을 만들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이 민족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동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여기에는 눈물어린 통일교회의 역사시대가 있었기 때문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한스러운 어려운 길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상에 탄식과 비애와 핍박의 화살들은 다 지나갔사오나, 통일교회 역사만은 슬픈 역사로 남아졌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 만민의 가슴 위에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 기원이 되어 복귀도상에 있어서 세계인이 아버지와 눈물로 상봉하도록 가까운 거리로 인도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해 주기 위함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 지나가버린 눈물의 길, 낙심의 길, 고독의 길, 처량했던 길이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를 장식할 수 있고, 미래에 작용되어 선한 종족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될 것으로 아옵니다. 그러기에 전통을 세우고자 부르짖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전통을 남기라고 하셨고, 저희들은 이러한 당신의 사랑을 올바로 가르쳐 줄 수있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수고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산 전통을 세움으로써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민족정기가 종족과 민족을 넘어 초세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원이 세워졌고 이제는 핍박하는 사탄들의 화살촉을 견뎌내고 남아지게 되었사옵니다.

오늘 통일교회 위업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일면 보면 이것은 아버님의 슬픔이었사오나 저희들은 거기에서 새로운 소망을 갖고 내일의 승리의 세계를 향하여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이러한 시점을 맞게 하여 주신 당신의 은사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터전이 있기 때문이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한 대가인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저희들은 거기에 감사드리면서 다시 살아 남은 현재의 조상들로서 후손 앞에 비판받는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의 승리는 통일교회만의 승리가 아니라, 민족의 승리요 한국의 승리요 세계의 승리로 남기게 하여 주시옵고, 그것을 다짐하고 나아가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민족 앞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선봉에 서게 하시옵고, 세계 앞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세계를 끌고 가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천상세계의 조상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찬양을 받는 무리, 아버지의 사랑 앞에 부끄러움의 눈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회의 눈물로 아버지를 위해 드리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 기쁨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내 슬픈 모습을 잊고서 효자, 충신의 모습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슬픔의 1960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를 맞이하여 이 70년대에는 기쁨의 한 날을 맞을 수 있게끔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 되어진 모든 전부가 아버님의 자랑이 되고 아버님의 영원한 승리가 되어 통일교회를 자랑할 수 있는 기점으로 삼아 주시옵고, 이 기점이 만민의 가슴 가슴에 이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상속의 터전이 되도록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회고와 현재'라는 말씀을 중심삼고 저희들의 가치적인 내용이 이러한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보람있는 1971년도를 맞고 보람있는 1970년대를 맞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최고의 정상의 기쁨을 저희가 죽기 전에 저희 일대에 맞을 수 있게끔 저희들은 분발하고 총동원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아버님, 이 몸이 생애를 바쳐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몸이 이 생명을 다 바쳐서 충성의 도리의 전통을 세우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진정한 의미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둘도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당신을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모시고 다닐 수 있고, 당신의 마음이 떠날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부디부디 그럴 수 있는 이들이 되게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사오니 부디 붙들어 주시옵고, 당신의 마음 세계에 품으시어 교육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와 1970년대가 교차되는 1970년도를 넘기는 시점에 서 있는 이 아침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 아침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을 심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흠모의 심정만이 저희에게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효성을 다하게 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고 싶은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아침 통일의 자녀들이 부족한 자신들을 뒤돌아보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께서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에 서 있는 딸이 있거든, 제가 외로울 때 권고해 주시던 것처럼 아버지여,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마음으로 염려하는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 품에서 양육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딸들을 생각하는 남편들이 아버지 앞에 진정 효도를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에는 축복받은 가정들이 문제되었지만, 1970년대를 맞으면서는 개문할 수 있는 영광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스러운 역사적인 서러움을 떨쳐 버리고 소망으로 찾아오는 당신의 기쁘신 날, 당신의 승리의 날을 고이 맞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복되게 받으시옵고, 이 1970년도에 슬픔이 있었거든 이 시간 저희들이 간곡히 요구하는 것을 들으시옵고 떨쳐 버리시옵소서.

6천년 역사를 통하여 해원성사하지 못하신 당신의 한을 해원성사하고, 1971년을 힘차게 맞이함으로써 최고의 정상의 길, 최고의 수난길도 달갑게 맞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모든 전체를 당신의 긍휼 가운데서 인정하시옵고 공인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동정과 자비와 긍휼이 이들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2:1-4

[기 도(Ⅰ)]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0년도에 있어서 마지막 성일이옵니다. 이 날을 맞아 이 아침에 이렇게 모였사오니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임하시옵소서.

한 많은 복귀도상에서 당신이 얼마나 참으셨으며,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얼마나 억울하셨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타락의 후손인 저희들이 당신께서 수고하신 공로로 말미암아 오늘 은사를 받는 이와 같은 자리에 있게 되었사오니, 저희들은 당신 앞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느껴 사죄할 줄 아는 마음에 벅차야만 되겠사옵니다.

이제 1970년도도 다 기울어 가는 이 순간이요, 이해에 있어서 마지막 성일을 맞이하는 이 아침이옵니다. 당신께서는 이해에 저희들을 위해 염려하셨던 모든 것이 기쁨의 결과로 맺혀질 수 있는 한 날이 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되어 있지 못한가를 확실히 명시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살펴 주시옵소서. 당신이 보시기에 저희들에게 옳지 못한 것이 있으면 안팎을 깨끗이 분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당신께 흡수되고 당신과 일체화됨으로써 저희들의 모든 것이 가꾸어져서, 당신께서 찾아오시던 하나의 모습으로 맞아들여질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특권적인 은사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이 한 해에 바라던 모든 일들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시는 가운데 무난히 해왔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4일을 남겨둔 이해의 끝을 바라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1970년 초에 다짐하였던 `승리적 통일전선'이란 엄청난 과제를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무엇을 제시해 드렸으며 무엇을 봉헌해 드렸는가를 다시 한 번 스스로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연두에 새롭게 각오하였던 것을 저희들이 당신 앞에 바쳐 드리지 못하였을진대, 당신 앞에 면목없는 부끄러운 자신이 된 것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또다시 당신의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과 동정의 마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마음과 몸을 친히 살펴 주시는 아버님이여! 저희의 마음 가운데 있는 사악한 죄악의 쓴 뿌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해 주시옵소서. 당신이 직접 저희의 몸과 마음에 거하실 수 있는 하나의 성전을 완성하고, 당신의 목적과 당신이 현현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완비하여 바쳐 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당신을 성전에 모실 수 있는 주체가 되게끔 각별히 성별하여 주시고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 놓고 낱낱이 비판 분석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금년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이 성일을 넘기고 새해의 첫 성일을 맞이할 때까지를 중대한 성별기간으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기간이 당신이 바라는 새로운 시대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과 딸의 마음을 저희들에게서 느끼시어서 손에 손을 잡게 하시고, 마음에 마음을 연결시키시옵소서. 저희들 전체가 모두 하나의 아들과 딸의 모습을 갖추어, 에덴에서 맺혔던 당신의 한을 풀어 드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실체들로 바쳐질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날도 서울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고 친히 주도하시어서, 당신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끔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더우기 지금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신의 딸들을 지키시옵소서. 그들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버님을 사랑하기 위해 최일선에 있사오니, 그들이 정성들이는 것을 긍휼히 보시옵고 부족한 정성이라도 받아 주시옵소서. 그들이 민족을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세계 만민을 대표한 자리에서 아버지와 직접 상의하여 소원하는 길을 개척할 수 있게끔, 아버지, 안팎으로 지켜 주시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0년대와는 달리 1970년대에는 아버지의 긍휼과 아버지의 사랑을 흠모하는 무리들이 많이 나타나게 하시어서, 외로운 자리에서 싸우는 그들이 저주받는 자리에 서지 않게 각자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내적 충실을 바라보면서 내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이번 기간이 절대 헛되이 지나가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 앞에 맡겨진 사명과 세계 앞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이 민족을 통하여 해야 할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이제 1970년도를 보내고 1971년도를 새로이 맞이하는 이때에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스스로를 다짐하여, 새해에는 가일층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끔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충동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후의 시간을 당신이 친히 장중에 두시어서 주관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승리의 결과만을 가져올 수 있게끔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Ⅱ)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있을지라도 저희의 마음은 천태만상의 형상을 빚어 놓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즐겨 취할수 있는 자리가 어떠한 곳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깨끗하시고, 지극히 선하시고, 지극히 의로우시고 중심되시는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자리를 찾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저희들의 마음이 되고, 그럴 수 있는 저희들의 몸이 되고, 그럴 수 있는 이 모임이 되어야만 이 청중 가운데 아버지께서 임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 가운데 아버지의 직접적인 상대기준으로 뜻 앞에 세워 놓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몇 명이나 있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부족한 자들뿐이옵니다. 당신이 분부하신 뜻 앞에 소명을 받아 크나큰 사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없으면, 거기는 사막과 같은 흑암의 세계요 지옥의 세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은 당신의 귀여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사랑의 마음을 지닌 당신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저희를 보는 그 기준과 현재 저희들이 처한 위치와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앞서면 앞설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과거를 뉘우치고 현재의 입장이 부족함을 뉘우치는 회개의 심정이 저희 일신을 점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간절한 마음만이 저희 일체를 통찰하게 하여 당신의 소원과 더불어 당신의 긍휼하신 마음에 응할 수 있는 화동의 실체로서 전체를 바쳐 드릴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겠사오니, 그 자체에 반대 되는 요소를 부정할 수 있게 당신의 직접적인 주도와 권한이 여기에 현현하시어서 각자의 몸 마음을 통찰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스스로가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고 아버지의 긍휼하신 마음에 안길 수 있는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도를 보내야 할 마지막 주일인 이 시간에 당신의 긍휼하신 사랑을 다시 한 번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있사오면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어서 죄악의 쓴 뿌리를 뽑아 주시옵소서.

저희 각자의 마음과 몸을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좌우할 수 있는 실체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처지가 다르고 환경과 배경이 다른 것처럼 그런 마음을 가진 자체로 여기에 나왔사오니, 아버지 앞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어린아이의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아버지의 후한 사랑의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한 개인을 부르시어서 친히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그와 생명의 인연을 맺고 당신의 사랑의 줄에 매일 수 있는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추운 이때에 남한 각지에 널리어 일선에서 싸우는 당신의 딸들과 이 시간에 모여서 당신 앞에 예배드리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이 떠나지 않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개척의 노정에서 자기 생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싸워 나오는 것은 당신을 안 연고입니다.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저희가 당신을 안 연고요, 당신의 뜻 때문이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하오니 당신께서 그 처지와 환경을 알아주셔야 그들이 위로가 되고 그들이 보람있게 생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친히 그 환경을 지키시옵고 그들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풍성한 은혜로써 그 환경을 채울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이 시간 한국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 수많은 자녀들에게도 같은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당신이 바라신 소원의 뜻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민족적 제단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고로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고대하는 해원성사의 터전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늘에서 기뻐하고 땅에서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봉헌하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편과 하늘편의 경계선상에 가로놓여 있는 저희들을 언제나 하늘편에 기울어지게 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당신의 원수이므로 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체휼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새로이 성별된 실체로서 아버지께 바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저희 몸 마음을 생축의 제물로 온전히 아버지께 바치오니 친히 받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의 부족함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교계의 잘못을 저희들로 말미암은 축복의 은사로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 날에 아버지 앞에 드리는 부족한 예배로 말미암아 하늘땅이 화합할 수 있는 당신의 특별한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날을 보냄과 더불어 약속된 새로운 한 해를 의의있게 맞이하여 은혜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친히 역사하시옵소서. 저희 각자가 몸 마음을 뜻 앞에 부복하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 허락하신 이 시간에 말씀의 일면을 전하고자 원하오니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일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여기에 아버지의 마음이 감돌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사정을 직감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이 되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나라의 충신 열녀들이 될 수 있게끔 저희들의 마음을 올바로 잡아 주시옵고, 저희들이 새로운 결의와 결심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새해에는 보람있는 아들딸의 입장을 세워 나갈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나머지 시간도 친히 뜻 가운데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지낸 지 이틀째 되는 날이고, 연말중의 하루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1970년도를 넘기고 새로운 1971년도를 맞는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본 신앙자의 바른 생활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뜻과 나', `나와 뜻'과의 관계를 언제나 붙들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자의 생활태도입니다. 즉, 뜻은 뜻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일치된 개인, 뜻과 일치된 가정, 뜻과 일치된 교회, 더 나아가서는 뜻과 일치된 민족, 뜻과 일치된 국가, 뜻과 일치된 세계를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뜻과 연결시키고 일치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는 뜻을 위해 생겨났고 뜻을 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뜻을 위해 생겨났고 뜻을 위해 가고 있다면, 통일교회에 속한 사람들도 뜻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뜻을 위해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교회가 가는 길, 교회가 처해 있는 입장도 뜻 이외의 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뜻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 뜻으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수십 평생의 생애를 지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과거의 생애가 찬란했고 과거의 생애를 자랑할 수 있고, 혹은 그 민족 앞에 추앙받을 수 있는 애국지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뜻은 그 민족이 바라는 뜻은 될는지 모르지만 이 민족을 중심삼고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현재 나라를 위해서는 보람있는 자리에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지 못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가의 추대를 받고 수많은 민족의 추앙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입장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일치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상하고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떠한 계급을 막론하고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되는 형태를 갖추지 않고는 뜻이 요구하는 개인, 뜻이 요구하는 가정, 뜻이 요구하는 사회, 뜻이 요구하는 국가, 뜻이 요구하는 세계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3)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그의 나라는 뜻과 상충된 나라가 아닙니다. 뜻과 더불어 출발하고, 뜻과 더불어 과정을 거치고, 뜻과 더불어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일체가 뜻과 더불어 생겨나고, 뜻과 더불어 있어야 되고, 뜻과 더불어 끝을 맺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뜻 앞에 설 수 있는 하늘나라, 그 나라의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의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와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나라는 어차피 작별을 고해야 할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나라와 인연이 있다면 죄악의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나라와 뜻과 하나님의 뜻이 결부될 수 있는 선의 인연을 본래부터 맺지 못한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살고 있는 이런 환경의 인연을 혁신하여,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일체의 방향을 새로이 모색하지 않고는 뜻의 나라에 속한 개인의 생활권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요, 뜻의 나라에 속한 가정권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요, 뜻의 나라에 속한 교회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교회를 거쳐서 이루어져야 할 나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런 나라가 현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중심삼고 볼 때 먼저 우리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그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그 뜻이 이루어지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를 중심삼고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루의 생활권내에서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신앙자의 바른 생활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를 중심삼은 요셉 가정까지 4천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된 동기는 어느 한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년, 혹은 몇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온 그 나라를 팔아먹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오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뜻을 따라가지 않는 수많은 민족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의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지내고 있는 하루의 생활권내의 한 시간 한 시간도 무섭지만 한 시간권내의 똑딱 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무서운 순간인가 하는 것을 느끼며 싸워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난 순간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초의 순간이라도 시간적 관계를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금년에 못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못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못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못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못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못 가면 50대에….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일생을 거쳐서 뜻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하루의 생활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으며, 일년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에 있어서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앞서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어떻게 악을 청산짓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척만세의 한을 맺어 놓았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벽을 무너뜨려 가지고 하나의 가정의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졌던 아벨이 죽었던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년 걸려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수고의 노정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제 내 소원성취의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고 하신 명령도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내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하여 만국을 덮고 남으리라'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몇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는 시간권내였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권내였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져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못되면 그 기원이 파탄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찾아오는 시간 시간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뜻을 중심삼고 그 시간을 승리로 이끄는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중심삼고 고심하며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모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석판을 깨뜨렸던 것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억천만세 이스라엘의 형성을 근본적으로 파탄시킬 수 있는 화근이 되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순간의 일이 역사의 흥망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시대에 있어서도 마리아와 요셉 가정에서 자라던 예수가 30세가 되던 해에 공적인 생활을 하겠다고 결의를 하고 집을 떠났던 것도 순간이었습니다. 공적인 3년노정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비운의 자리에선 예수는 집을 뒤로 하고 믿을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는 황막한 광야와 같은 길을 향해 나섰습니다. 예수가 그러한 곳을 향하여 나서기로 다짐하던 시간은 순간이었고, 집에서 나가는 발걸음은 한 걸음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이 비운의 6천년 역사로 연장시켰고 기독교를 2천년의 수난의 길로 가게 할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수가 그 집을 나가기 전에 마리아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맺어져 있고, 요셉이 자기 일가 친척을 모아 공동회의를 하여 예수님이 자기 사연을 털어 놓고 토로라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는 무지몽매한 어부들인 베드로·요한·야고보와 같은, 그 시대에 있어서 맨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 애달픈 3년 공생애노정을 가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먼 세계에서 이루어질 뜻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서 이루어질 뜻이요, 나를 중심삼은 가정에서 뜻이 이루어져야만 먼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복귀의 순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요셉 가정이 예수를 중심삼고 울타리가 되었던들 예수에게 십자가의 길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못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해 오신 목적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규탄을 받아 왔고, 대한민국의 규탄을 받아 왔고, 민족의 반역자라고 비난을 받아 왔지만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뜻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 망하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은 남겨 주어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속해 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천번 만번 죽음의 길이나 어려운 고빗길에 부딪쳤지만, 응당히 망할 수밖에 없는 면이 안팎으로 갖추어진 환경을 거쳐왔지만 망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냐? 뜻의 한 때를 기약하고 그 기약된 날과 더불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한 초점을 바라고 나오시는 하나님의 내심적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남아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섭리해 오셨지만,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통일교회의 종착점이 어디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시할 때 그것은 몇 년을 기준삼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통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지극히 우연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고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연하고 상식적인 그 순간에 천지가 뒤넘이칠 수 있는 것이요, 동서의 모든 나라가 운명을 걸고 뒤넘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간들의 생사를 판결지을 수 있는 한 초점이 될 것이요,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역사가 상봉할 수 있는 한 초점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순간은 비애의 인류역사를 타고 넘어가서 새로운 희열을 맛보는 천지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한 곳과 한 분을 통하여 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한 때라는 것은 길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누가 맞이할 것이냐, 그러한 때를 누가 포착할 것이냐 하는 것이 귀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 가지고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라는 말은 잘합니다. 말하기는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복귀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그 내용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종교를 세워 찾아 나오신 길에서, 수억천만 세를 거쳐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에게 피를 뿌리는 죽음길을 가라고 다짐시키면서 하나를 만들고자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한 아들을 찾기 위한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6천년의 기나긴 역사를 무엇 때문에 소모시켜 오셨느냐? 그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아들 하나를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하나의 출발은 똑딱 하는 순간과 더불어 일치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의 종주들은 전부 다 남자들입니다. 여자는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여자는 밟히어 오고 남자는 마음대로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여자 중에서는 성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비로소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졌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여성으로서 갖출 수 있는 한 때가 마련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오랜 역사를 두고 볼 때, 70년은 짧은 것입니다. 70년이란 역사가 결정되는 데에는 7년이 필요한 것이요, 7년이 결정되는 데에는 7개월이 필요한 것이요, 뿐만 아니라 7일, 7시간, 나아가 7초까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넘어가는 것을 그 누가 알 것이냐? 7년을 바라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또 70년을 바라는 사람은 그것을 상관할 수도 없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한 순간도 빼지 말고 한 푼도 빼지 말고 한 초도 빼지 말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시간도 잠을 자는 시간도 어젯날에 살던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녁에는 `나는 이렇게 잡니다' 아침에는 `곧 계속 합니다'라고 하며 살아야 될게 아니겠습니까?

탄식이란 한꺼번에 세계와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가 한꺼번에 세계와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탄식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밤을 새워 공부합니다. 그들은 눈을 감아도 훤히 내용을 알고 있지만 시험을 치르는 그 순간 한 장의 시험지가 그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10년 공부한 모든 노력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한 장의 종이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짧은 자기 생애에 있어서 출세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고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아닙니다. 시험치는 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링 위에서 세계 레슬링 챔피언 쟁탈전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자기 나라를 대표하고 동서의 거리를 초월하여 겨루게 되기까지 그 시간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승패가 결정되는 때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동참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동참하여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동참한 내용을 철저히 수행할 수 있는 필요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통일교회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는 일을 볼 때, 거국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전체가 한꺼번에 일을 하는데, 그런 일을 할 때는 한 순간과 관계가 없습니다. 멀고 먼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강의 기원은 태백산맥의 어떤 한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 흘러 나오는 물방울은 천번 만번 곡절의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그 물방울은 여러 계통을 통해 나오지만 주류는 하나입니다. 아무리 한강이 길고 수많은 지류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의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의 출발이 나무 뿌리가 될지 풀포기가 될지 모르지만 주류는 하나입니다.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강의 주류는 풀뿌리에 맺힌 물방울이라든가 혹은 한 방울도 못 되는 한점의 습기로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습기가 모여 한 방울의 물을 이루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은 역사시대의 진리와 같고 주체와 같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큰 한강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근원이 희미한 것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강도 시작과 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물방울이지만 주류를 이루어 대해로 나갈 때 그것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 물방울이 서해바다로 들어가게 될 때 주류를 이루어 가지고 선두로 들어가면 한강의 골수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가 올 때 조그만 회초리로 마당 바닥을 싹 긁어 놓으면 조그만 물줄기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물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물방울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어 주류의 행로를 거쳐서 바다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했다면 그 물방울은 그 강을 창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흐름에 있어서 미미하고 가치가 없고 자격이 없게 보이겠지만, 그 물의 흐름이 역사적인 대강(大江)의 운명을 판결하는 사명을 짊어질지 누가 압니까?

내가 2월 말경에 대관령 고개를 올라가는데 정상도 아닌 고개가 왜 그리 높은지, 차를 타고 달리는데 자꾸자꾸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대관령 고개에 막상 올라가 보니 이것이 높은 고개인지 저것이 높은 고개인지, 높은 고개가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이쪽이 높은 고개라고 가 보면 저쪽이 더 높은 고개 같고, 저쪽이 높은 고개라고 가 보면 이 쪽이 더 높은 고개 같았습니다. 이것이 높은 고개 같고 저것이 높은 고개 같아서 어느 것이 높은 고개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높은 고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개는 있습니다.

고개 가운데 제일 높은 곳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어디냐? 잘 모르겠어요. 높은 고개라고 그 고개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평평합니다. 그런데 산봉우리에 얼어붙었던 눈이 녹아 가지고 물이 되어 술술 내려오는 것을 보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갈라져 흘러갑니다. 산봉우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니까 동쪽이 이렇고 서쪽이 이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줄기를 이루는 물 자체는 모르지만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까 동쪽과 서쪽의 경계선이 확실히 드러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관령 꼭대기에 서 있어도 그 경계선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 곳인지 저 곳인지 왔다갔다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물을 붓지 않고 이쪽이 서쪽이고 저쪽이 동쪽이다 하고 경계선을 구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고 제3의 여건을 통해 그것을 찾는 것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경계선을 찾는 것이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경계선을 찾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를 규합할 수 있는 통일원리

서울대학교인가 고려대학교인가의 정경대학 학장이란 사람이 와서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감격해 가지고 은혜받은 소감을 얘기하겠다고 했는데, 그의 결론이 뭐냐 하면 `통일교회 원리는 새로운 기독교의 발견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통일원리는 새로운 기독교의 발견을 제시했다는 아주 멋진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뭘 모르고 제멋대로였지만, 통일교회는 틀림없이 안팎을 갖춘 논리적 체계 아래서 새로운 기독교를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원리에는 기독교의 내용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내용도 새로이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으로서 불교의 골수를 보게 될 때 애매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통일원리에는 불교에서 갖추지 못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더 확실하게 완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유교 사상은 물론, 정치적인 내용이라든가 그밖의 모든 내용이 전부다 통일원리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노자의 도교에 있어서 꽃의 향기와 같은 내용도 통일원리에 들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내용이 갖추어진 것이 통일원리입니다. 이처럼 통일원리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종교를 규합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가 하는 말이, `종교라면 반드시 자기의 고집스런 특정한 주장을 갖고 있는데,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로서 새로이 주장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기독교를 재현하는 데 불과한 교회라고 하는 편이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통일교회는 전부 다 성경의 새로운 분야를 제시했지만 제시한 많은 내용이 통일교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절대시할 수 있는 내용이 자체 내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결론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현재의 과학시대에 있어서 이렇게 과학적인 논리체계를 가진 원리는 아직 없다는 겁니다. 그런 칭찬을 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그는 한국에 있어서 정치사에 관한 한 권위자입니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에서 통일원리를 바라볼 때, 통일원리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아니고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학자들도 통일원리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적극적인 입장에서 주장했습니다. 선생님은 이에 대해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좋았겠습니다.」 (웃음)

이런 날이 빨리 오지 않고 어쩌다 1970년도 마지막이 되어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꼬부라지게 못살고 헐벗고 지쳐서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 데 대해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웃음) 석양에 장단을 맞춰 춤추니 기분 좋을 게 뭐예요? 아침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대낮까지 진탕 먹고 낮잠을 잘 수 있을 텐데 그것이 밤에 이루어졌으니 낮잠을 잘 수 있겠어요? 이래 가지고 밤잠 자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낮잠을 자지 못한 채 행복을 노래해야 할 통일교회를 생각하면서 서글픈 감을 느껴 보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학문적인 면에서 자기들이 연구했기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의 문전에 와 있습니다. 문전에 와 있는데 경계선이 어디인가를 모른다는 겁니다. 즉, 대관령 고개는 누구나 올라갈 수 있지만 경계선이 어디인지 모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물을 부어 흐르게 해서 경계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게 되면 경계선이 여기다 하면서 어느 누구나 앞에 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 일렬로 서겠어요, 안서겠어요? 서지 말래도 서는 것입니다. 서지 않는 사람은 대관령 고개의 꼭대기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올라올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올라오게 되면 내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류가 가야 할 길

종교 가운데에서도 통일교회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습니다. 많은 물의를 일으킨 통일교회에 괴수(?) 같은 문선생이 있어요. (웃음) 그래 어쩌라는 것입니까? 어쩌란 말이에요? 여러분들의 입장 같아서는 손목을 자르더라도 지상천국을 빨리 이뤄 버리지 왜 이렇게 질질 끌면서 사람을 죽이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는 겁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화병에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하기야 나도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말이 빠르거든요. 그러나 선생님은 성질이 가장 누그러운 왕초입니다. 만약 이런 일에 참지 못하고 화를 한번 잘못 냈다가는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 순간으로 말미암아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자리에 가게 되면 오히려 느긋하게 후퇴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사람들은 선생님이 좀 몰라주게 되면 `내가 누구만큼 일을 못하나, 원리강의를 못하나, 얼굴이 못생겼나. 저 사람은 저렇게 대해 주면서 난 왜 이렇게 대해 주나?' 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개척 당시에 중차대한 책임을 감당할 때 어떻게 하면 성공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느냐로 고민했던 것입니다. 잘못 날뛰다가는 먼저 고래한테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못났으면 바위 틈에 가만히 들어가 숨어 있어야 죽지 않을 텐데 바위 틈에 숨어 있지 않고 꼬리를 젓고 다니다가는 후딱 잡혀 먹힌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올 때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그때 틀림없이 사태가 불리할 것을 예감했는데, 넘어가야 할 때가 언제가 될지 몰랐습니다. 그때가 새벽이 될는지 낮이 될는지 밤이 될는지 혹은 안개낀 아침이 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북한땅에서 고생한 것도 원통한데, 더 남아 있으면 큰일난다는 생각이 들어 삼팔선 접경까지 갔습니다. 거기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발짝만 가면 이남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별의별 냄새가 났지만 그곳이 복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위급한 때 한 걸음만 옮겨 놓으면 선생님은 이남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 누가 먼저 이남에 가게 되느냐 하면 선생님이 제일 먼저 간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따리를 싸는 데 거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민군들이 몰려오게 되면 모가지가 잘릴 것이니 삼팔선에서 도망가야 빨리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거기서 머물다가 용매도로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선생님에게 있었습니다.

이 지상에 살려면 종합적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갑(甲)자, 을(乙)자, 병(丙)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옳고 이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틀렸으면 다시 찾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멍텅구리 같애요. 여러분은 멍텅구리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웃음) 이것은 평안도 말인데 구수한 말이에요. 바보 천치란 말입니다. 그러나 바보 천치에도 안 바보, 안 천치가 있습니다. (웃음)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모두 같아요? 천만에요. 절대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 수백 명이 모여 있더라도 수백 명이 절대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 2백 명이 있으면 2백 명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2백 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길을 가면서 둘이 한꺼번에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어요? 「없습니다」 한꺼번에 설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녀석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거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여러분이 경쟁하는 장소요, 분석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될 곳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 주류입니까? 주류를 알겠어요? 술 주(酒)자가 아닙니다. 공화당에서도 주류라는 말을 하지요? 주류는 골수를 말합니다. 그러면 주류의 중심이 누구입니까?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 힘든 것은 다 남에게 주고 좋은 것은 다 자기의 것으로 하면서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주류이겠습니까? 교회건 무엇이건 자기만 좋겠다면 주류가 될 수 있겠어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골수분자가 아닙니다.

골수분자는 비가 온다고 해서 흘러가는 물과 같은 사람이겠어요, 흘러가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물과 같은 사람이겠어요, 아니면 담겨 있는 물과 같은 사람이겠어요? 골수가 흘러가는 물입니까, 담겨 있는 물입니까? 골수는 담겨 있는 물입니다. 담겨 있는데 어떻게 주류가 될 수 있겠어요? 담겨 있지만 가는 데도 담겨서 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류는 뼈 가운데 있는 골수와 같은 것입니다. 뼈 속에 담겨져 있는 이 골수를 누가 뚫고 마실 수 있겠습니까? 마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아니고는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과 더불어 골수를 지닌 사람, 그 사람이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은 어디냐? 주류 사상이 있는 곳이요, 주류의 방향과 일치되는 곳입니다. 공화당의 주류가 부패될 때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손발이 잘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망하는 이상의 고통을 느끼면서 밤낮없이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천만인과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박대통령이 있다 하더라도 통일교인이 잠을 자지 않고 이 나라를 위해 있으면, 틀림없이 박대통령보다 주류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대통령이 물러갈 때 그 사람한테 상속을 안 해 주었다가는 큰일납니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연결시켜야 할 통일교회

금년 한 해도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1970년도 연초에 선생님이 말씀한 것은 승리적 통일전선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도 모릅니다. 승리적 통일전선이 여러분과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이것은 국가의 운명과 천운이 결해야 형성됩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3국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안팎으로 짜 가지고 강경권내에 몰아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무슨 관계가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통일교회 책임자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시켰고, 대만을 갔다 올 때에는 장개석 총통에게 그 문제를 주입시키는 일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대한민국은 물론 여러분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남이 생각지 않을 때 생각해야 되고, 남이 고생하지 않을 때 고생하면서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이 가야 할 입장과 방향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미워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일본의 우에노 공원에 있는 사이고오 다까모리(西鄕降盛)동상을 허물고 문선생 동상을 세워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게 소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선생님을 원수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기만 하면 일본을 말아먹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출입국관리국 사람들을 생각할 때 기분이 나쁩니다. 그들은 문아무개가 일본에 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을 말아먹는 괴수라고 합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미국도 미스터 문이 미국을 말아먹는 괴수라는 것입니다. 좋든 나쁘든 한국의 한 사나이를 일본이 무서워하고 있고, 미국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되긴 됐구만요.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돌아올 때 홍콩에까지 정보원을 딸려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그걸 알았습니다. 뭘 먹겠다고 그렇게 선생님을 따라다녀요? 여러분은 왜 따라다니는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류의 정상에 설 수 있으려면

세계로 가는 주류를 찾아가려니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주류의 정상을 향하여 넘어갈 때는 고개를 완전히 넘어가야 됩니다. 골짜기에 있을 때는 주류를 돌파시키기 위한 운명의 길로서 그 골짜기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이 길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어려운 수난의 길도 기쁨으로 소화하면서 가야만 최후의 정상에 있는 분기점을 자기가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하다 기성교회가 망했고, 이박사 정권도 망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장면정부는 통일교회를 보호했습니까? 없애기 위해 특명을 내리고 별의별 오명을 뒤집어 씌우는 등 별의별 일을 다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고 자기들이 미안하니까 우리에게 보따리를 펴놓고 사정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주권이 바뀌게 되고, 나라가 흘러가고, 재능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석양길의 나그네가 되어 흑암권내에서 살아야 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쫓기고 몰리는 신세가 된다면 대낮과 같은 새로운 역사시대에 중심요원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망하는 길을 가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다른 게 뭐냐 하면, 만민을 통일하자는 주류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주류는 무엇이냐? 아무리 개인의 힘이 세다 하더라도 국가의 운세를 마음대로 막아낼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국가적인 운세가 세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운세, 또는 다가오는 세계의 운세를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이나 미국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 하더라도 세계의 운세를 막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세계의 주류를 따라야 하고, 민주 세계의 정상을 주장해 나오던 미국도 세계 운세를 막을 수 없게 되면 낙오자가 됩니다. 후대 앞에 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실패자의 참피언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극대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소원하는 독재적 입장에 선 공산주의는 넘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정상에 설 수 있는 선수가 되려면 모험을 자기의 생활무대에서 소화시킬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이 가고 와도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면, 다른 사람과 그 어려운 고비에서 일등을 겨루는 때가 될 때 그는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년 동안 도를 닦고, 연속 백승을 한 기록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다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약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봄을 맞는 통일교회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도 통일교회 원리가 얼마나 방대합니까? 이것은 종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성교회 목사들은 통일교회에서 춤을 추고, 무슨 피가름을 한다더라고 하며 떠들고 야단입니다. 또, 통일교회에 문 예수가 나왔다고 야단입니다. 많은 나라 가운데 한국에서 문 예수가 나오면 나쁠 게 뭐예요? 그 사람들은 문 예수가 못 될까봐 걱정하지 않고 문 예수가 될까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한국인이 문 예수가 되면 대한민국을 팔아먹을까봐 그러는 거예요? 도적질을 해서라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것입니다. 내가 언제 문 예수라고 광고를 했어요? 자기들이 이름 붙여 가지고 찍고 헐뜯고 별의별 수작을 다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누더기 보따리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겨울이 되었으니까 누더기 보따리를 다 갖다 씌우라고 했습니다. 동삼삭 시베리아 북한풍이 몰아치는 때이니, 폭탄의 폭격이 빈번한 전쟁시대이니 누더기 보따리를 갖도 씌우라고 했더니 이제는 더 씌울 것이 없는가 봅니다. 나쁜 보따리는 선생님에게 다 짊어지웠습니다.

몇십 년 전에 철산에서 감사패들이 기뻐서 춤추었는데 그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른 곳에서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을 나에게 전부 다 뒤집어 씌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추울 때는 덮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누더기라도 씌워서 덮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선생님이 그 격이 되었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욕먹기를 잘했습니다. 이제 봄철이 되면 빙빙 돌려서 싸매었던 것들을 한 꺼풀씩 벗어서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렇게 한 겹씩 얻어 가지고 물러가라 할 판국입니다. 죽을지 살지 모르고 집어 던진 수십 년 전의 자기들 보따리를 보면 그것을 붙들고 통곡할 겁니다. 그때는 동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볼장을 다 보고, 갈 길을 다 간 후이기 때문입니다. 행차 후에는 나발꾼이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려운 일을 누가 시켜서 했습니까?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기 때문에 참새가 우는 소리도 짹짹! 짹짹! 바쁜 것입니다. 봄날이 되면 참새는 째액 째액 하면서 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그렇게 울라고 해서 우는 것입니까? 자연의 이치가 그런 것입니다.

봄철이 되면 개구리가 울기 마련입니다. 이때 울지 말라고 아무리 제사를 올려 봐요. 울지 않나. 개구리가 울면 동네방네에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육십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봄날이 왔으니 서로 사이좋게 인연맺기 위해 속닥거리며 사랑한다고 동경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을 못 자는 사람들에게는 원수들의 울음소리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개구리에게 울지 말라고 아무리 협박을 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끊임없이 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울 때가 되었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때가 되었으니까 서남동씨가 연결이 된 것입니다. (웃음) 서남동씨가 나왔으니까, 이제 서북동씨만 나오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제 서쪽 남쪽 동쪽이 우리 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북동아! 어디갔나. (웃음) 한문으로 볼 때 비슷하지요? 그렇지요? (웃음) 그거 일리 있는 말입니다. (웃음) 이것은 우스운 말이 아닙니다. 세상은 다 계시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시를 그냥 그대로 가르쳐 주는 법이 있어요? 서남동, 여기 서쪽의 운명이 남쪽으로 향해서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남·동, 만약 동·남·서라고 했으면 거꾸로이겠지만 서남동이라고 하니까 동쪽에서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이름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계시적인 이름을 가졌으니까 그런 사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웃음)

핍박을 받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말라

한국 속담에 사촌이 밭 사고 논 사고 하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선생님이 기분이 좋으면 배앓이를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기성교회에서는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빠요」 왜 나빠요? 동생이 땅을 사는데 왜 기분이 나쁘냐는 말이예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막내 동생이 아니예요? 못생겼지만 막내 동생입니다. 통일교회는 잘생겼다는 사람들이 걸러먹고 빨아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아 먹으면서 설사를 하더라도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피를 팔고 논 한 뙈기라도 팔아서 서남동씨를 맞이했는데 왜 배 아파하느냐는 말이예요? (웃음) 이게 망조예요, 흉조예요? 통일교회는 흉조가 아니라 흥조요, 기성교회는 망조요 흉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배지를 달고 학교에 들어가는데 교문 앞에서 낯선 사람이 무슨 학교에 다니냐고 물어보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물어보기 전에 간판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가 제일인 것처럼 너도 제일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데는 천양지차가 있을 것입니다. 묻는 사람이, 꼬락서니가 그래 가지고 네가 그런 학교에 다닐 자격이 있느냐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듣고 기분 나빠하게 되면 끝장입니다. 그것을 듣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인으로서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신을 차려야 되겠습니다. 반대를 하고 모른 체하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걸 볼 때 우리는 정신차려야 되겠습니다. 남들이 반대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대받는 과정에 있더라도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길, 선한 자리에서는 핍박을 받고 반대받는다 해도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망하는 꼴이 되거나 반대받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하려면 하라는 거예요. 내가 망하는 날에는 하늘나라의 역적이 될것이요, 흥하는 날에는 하늘나라의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받는 과정에는 망하는 법이 없는 것이 역사의 철리가 아니겠어요? 반대받는다고 망하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으며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가 망조입니까, 흥조입니까? 「흥조입니다」

기성교회가 지금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있지만 선생님이 나서면 오히려 그들이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학박사라 해도 문제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들만큼 못하는게 없습니다. 머리로도 지지 않고 힘으로도 지지 않습니다. 씨름을 해도 그들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씨름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못나게도 15년 20년 동안 욕을 먹고도 가만히 있느냐? 가만히 있어도 그들이 망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조심해서 행동하라

통일교회 문선생을 처음 본 사람이 있어요? 오늘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을 보고, `아 저 사람이 소위 그 유명한 문 아무개로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유명해졌습니다. 일면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양면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나쁜 데로도 유명해졌고 좋은 데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쁜 면도 있고 좋은 면도 있기 마련입니다. 생명이 되는 씨는 똥거름에 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거름을 흡수하여 생명력으로 소화시켜 크면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가 망하기를 아무리 바라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때리고 못살게 해서 잘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남을 때리면 똑똑한 사람,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유리고객이 되어 전부 다 영신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1세는 망해서 광야의 독수리밥이 될는지 모르지만 2세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 11일에 권위 있는 학박사들을 50여 명 모셔 놓고 통일원리를 듣게 했습니다. 이제는 무슨 박사라 해도 원리를 듣지 않으면 창피할 것입니다. 통일원리를 연구하는 학박사의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듣지 않으면 일본의 수십 명 수백 명의 학자들을 데려다가 통일원리를 듣게 할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안 되면 미국의 학자들을 데려다 할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입에서 냄새가 나고 코가 깨지고 귀가 찢어지고 눈알이 빠지더라도 할 것입니다.

지금 만반의 준비를 하여 이제 1차 완료권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기만 해서 되겠어요? (웃음) 그것 가지고는 섭섭하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선생님은 무골충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수많은 고문을 당하며 피를 토하면서도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뼈가 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때가 올 줄 알고 그 처리방법을 수십 년 전에 벌써 다 모색해 놓았습니다. 그래 놓고 이 일을 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될 것 같애요? 통일교회를 못 당하는 거라구요. 절대 누구도 못 당하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통일교회에 대해 야단이지만 한번 걸려 보라는 거예요. 방안에 앉아 가지고 협박 공갈을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해원풀이를 하려면 이런 말이라도 하고 잊어버려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래야 1971년을 새롭게 맞이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직도 기성교회 장로나 목사들이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선생님은 요셉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선생님을 팔아먹고 죽으라고 했지만 선생님이 죽어요? 차마 이런 이야기까지 내가 할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보면 동으로 보나 서로 보나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와서 뜻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자리잡은 사람도 있고, 자리를 못 잡은 사람도 있고, 보따리 싸 가지고 왔다가 보따리를 처치하지 못해서 그 보따리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들 다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누구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웃음)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기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먹어 보고 달아 보고 재 보고 전부다 나누어 줘 보고 나서 좋은 때에 거기에 뿌리를 박고 죽자 살자 하라는 거예요. 먼저 재 보지도 않고 씹어 보지도 않고 들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날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한계점에서 싸워 보았는가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뭘 할 것이냐? 여기는 수련도장입니다. 여기서부터 경쟁을 해 나가야 합니다. 최고 챔피언전을 벌여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라고 큰소리쳐서는 안 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한계선이 어디입니까? 다하라는 한계선이 어디입니까? 그러기에 통일교회 문 선생의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개인을 걸고 마음을 다하고, 가정을 걸고 마음을 다하고, 통일교단을 걸어 놓고 마음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민족과 세계를 걸고 마음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소원성취의 길은 아직도 멀리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과거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내일을 자랑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희망찬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승리자로서 늠름한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후퇴일로에서 고난길을 더듬는 패자나 방랑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이 기질에 맞지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 개인을 걸고 싸우는 것이요, 가정을 걸고 싸우는 것이요, 교회를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민족을 걸고 싸우고, 나라를 걸고 싸우고, 세계를 걸고 싸우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세계를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 할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이라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런 입장에서 대하려면 뭐가 필요하냐? 기성교단과 통일교회가 같은 자리에서 마음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그렇게 하여 자랑할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게 될 때 우리는 절름발이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주제에 `나를 몰라준다, 나를 알아달라'고 하면서 수작하게 되어 있습니까? 이것을 원리적으로 전부다 설명해 줄 시간 없어요.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원수세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6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원수가 영광을 누리던 사탄세계를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을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믿고 나오면서 언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했습니까? 사랑해 보았습니까? 어느때가 출발점이며, 어느때가 한계점입니까? 내 일생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도수가 충만되어 포화상태와 같은 절정의 때가 있었습니다. 천상세계에 가서 수많은 영인들 앞에서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있었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개인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뜻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거느리고 나가야 되고, 교회를 거느리고 나가야 되고, 나라를 거느리고 나가야 되고, 세계를 거느리고 나가야 됩니다.

여기 미스터 문이 통일교회의 선생이란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 민족에게 도와준 것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 사랑하고 싶어했고,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한계점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어느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성심성의를 다했고, 피눈물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둘째 가지 않겠다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망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붙들고 안식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희생시켜 종족을 구하고, 종족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또, 나라의 주권을 찾기 위해서라면 민족을 제물로 바쳐야 하고, 이 국가의 4천만이면 4천만 동포를 뜻 앞에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30억 인류를 위하여 이 동포를 기꺼이 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영원한 심정세계에 깃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종교생활에 물들지 말라

선한 사람은 묻혀 있더라도 역사과정에서 추앙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역사적인 생활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선한 사람들이 행하는 전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1970년도는 더욱 바쁜 해였습니다. 새벽같이 공장에 나갔습니다. 나는 한번도 편안히 낮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기계소리가 들려오는데 활개를 펴고 누워 있는다는 것은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자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입니다. 그렇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생활을 두고 볼 때 여러분에게 빚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한 푼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빚을 졌습니다. 교회를 중심삼고도 그렇고 여러분이 살아온 생애를 중심삼고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잠을 자더라도 선생님은 잠을 못 자고 하나님과 담판해야 할 때가 많았고, 외로와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앞날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 나온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보고 느끼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입니다. 내 마음을 드러내 놓고 봐도 여러분에게 한점 빚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빚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선생님이 만든 단체에 대하여 얼마나 반대가 심했어요. 어린이 무용단만 하더라도 기성교회에서 말하기를 전에는 발가벗고 춤추더니 이제는 어린 자식들까지 모아다가 춤추게 한다고 야단입니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다시피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쌀밥을 먹을 때 보리밥을 먹으며 한 푼 한 푼 저축한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부다 나눠주었습니다. 또, 전도대원들이 임지로 가기 위해 여비도 없이 차를 타고 가다가 잡혀 감옥살이를 한다는 등 별의별 소식을 들으면서도 선생님은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고대 문명국가의 권위를 20세기의 현대 문명국가인 미국에 가서 소개해 줄 것을 생각하면서, 어린이 무용단을 만들어 빚을 져 가면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을 단계에까지 들어갔지만 말입니다.

또, 반공연맹이 승공연합을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반공연맹이 세계적인 단체니, 뭐 어떻게 된다느니 하는데, 하지만 두고 보라는 겁니다. 명실상부한 승공연합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승공연합이 발전하는 데 주먹질을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중상모략을 할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맞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사탄 앞에서 당당하고 양심에 가책이 없는 실적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 전도단입니다. 학사들이 농촌 부락에 가서 논고랑 밭고랑을 오가며 김을 매고 뙤약볕에 그을리면서 목초를 베었습니다.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나 굶는 사람이 있을 때는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고 밥을 얻어다 먹이며 그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이미 그런 일을 다 했습니다. 이에 대한 산 은덕을 갚아야 하는 것이 자기들이 가야 할 운명길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선생님이 안다는 것입니다.

먼저 개척의 길을 간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말라

그런데 오늘날의 통일교인들 가운데는 건달꾼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바람을 피우고 자기 멋대로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기성교인들처럼 습관적인 종교생활에 물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머리를 숙이고 저 말단에서부터 처분을 바라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이제 그럴 때가 곧 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 내가 어떤 자리를 향해가고 있느냐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정상의 고빗길, 즉 탕감복귀 노정에서 선두가 누구냐? 먼저는 아벨이요,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모세요, 예수님입니다. 통일교단에서는 통일교회 문 선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선생님이 갔던 그 고개를 따라 넘어가야 됩니다. 맨 처음 개척자가 피살을 깎아 산골짜기를 개척하면서 가시밭길을 전부다 치워 주고 평탄한 하이웨이를 닦아 놨으면 뒤따르는 자는 자동차로 가든가 걸어서 가든가 그 고개를 자기 자신이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고개를 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개척자는 어렵게 넘는 것이요, 그 다음 사람은 쉽게 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형제자매들이 터를 닦다가 피눈물로 얼룩진 죽음을 남겨 놓은 그 자리를 보고 차를 타고 가다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험한 절벽과 아슬아슬한 바위를 깎으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을망정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기분좋게 감상하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있으니 멋지구만. 저기에서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멋지겠나' 하는 생각은 해도 저기를 깎으면서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가는 꿈에도 생각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순식간에 통과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기분만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먼저 가는 사람이 죽고 못사는 고빗길을 걸어온 것이 나중 사람에게 좋고 흥겨운 조건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도의 본위(本位)에 서는 사람

통일교회의 역사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죽고 못사는 그런 고빗길을 걸어 나왔지만 그것이 여러분들에게는 찬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고생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여러분은 등골이 오싹하고 뼛골이 으스러지는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여러분의 생명이 부활할 수 있는 터전이 거기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분립된 상태에서 규합된 인연이 싹터 나올 수 있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엄숙하고 귀중한 순간이 거기에서 교차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망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도리어 사탄세계를 잡아삼키는 폭발적인 원동력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을 7년 이상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4천만 한국 민족이 7년 동안 힘을 발휘하면 한국에 천국을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한국 사람을 빼 놓고서, 일본 국민이 1억이나 되는데 그 인구의 3분의 1인 3천만 명만 동원하게 되면 한국 땅에 천국을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미국 국민이 1억 8천이나 되는데 그 인구의 3분의 1인 6천만을 끌어온다면 한국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는 의도의 본론을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어떤 일을 하느냐 할 때, 선생님이 여러분을 매일 매일 따라다니면서 감정하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잠자는 데에 일등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먹는 데에 일등을 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비판하는 데에 일등을 할 것입니다. 수천만 사람들의 등수나 등급은 모양과 차이에 따라 두루두루 다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잡상점에 물건이 진열되어 있듯이 다 모양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 어느 것을 주인이 일등품이라고 하면 그것은 일등품일 것입니다. 찢어지고 못생긴 고물을 놓고도 그 주인이 그 물건 좋다고 하면 그 집 사람도 그 아들도 그 물건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도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우리가 왜 나쁘냐고 하면서 우리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도 초라한 통일교인들을 보면 다 좋다고 칭찬하고 싶어합니다. 선생님이 좋다는 것에도 천만 계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어떤 중고품, 재생품으로 등장한 것이냐, 혹은 신생품, 일등 특허품으로 나온 물건이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도의 길에서는 부잡스러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아는지 모르는지 남들을 위해 숨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천상에 고인돌을 높이 쌓고 그 자리에서 앞을 바라보고 먼저 하나님께 찬양하고 내 스스로의 기쁨을 즐겨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도의 본위에 선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은 나 때문에 있다고 하면서 `나 때문에 수고했기에 내가 하나님을 좋아하면 되지 않소? 하나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소'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에서는 일을 해놓고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남에게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고 나서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기가 막혀 울어 본 적이 있어요? 지금 이런 것을 줘서 미안하지만 주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할수없이 줘야 하는 안타까움을 느껴야 합니다.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사무친 심정을 가져야 도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부끄러움을 보게 될 때 사무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길가에서 술을 먹고 싸우는 사람을 볼 때 자기의 형님과 동생이 싸우는 것 같은 아픔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자기의 부끄러움으로 느끼면서 그들의 수치를 감싸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수치를 자기 자신도 보고 싶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그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정성들이며 부끄러움을 자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데는 하나님께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고 정상적인 길을 가려면

이제 여러분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의 제단을 고이 쌓아 가지고 최후의 판결을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개인이 그 나라를 위하여, 가정이 그 나라를 위하여, 종족이 그 나라를 위하여 나가다 망하게 되면 그 나라는 민족을 못 갖는 것입니다. 민족을 못 갖게 되면 그 나라는 주권을 못 갖는 것이요, 주권을 못 가지면 세계도 못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우리의 이상과 우리의 바람은 크지만, 우리 개체는 만국이 치하할 수 있는 곳에 하나님을 모셔 놓고 기쁨의 영광과 기쁨의 찬사를 돌리고 기쁨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자리를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리는 순간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따라가는 통일교회 문 선생이 가는 길에서는 어느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어느때에 개인적으로 연락이 되어 이 길을 가면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형태를 갖추고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런 외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세계와 더불어 승리의 한 날을 맞기 위해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것이 궁금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초창기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제 기력이 다 빠져서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모습이 되고 있지만, 꽃다운 청년들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해 가는 통일교회의 운세 앞에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합니다. 통일시킬 수 있는 때가 점점 가까와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자각하는 젊은 무리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망하지 않고 정상적인 길을 가려면, 즉 주류를 따라 앞질러 가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가인 아벨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도리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법을 지키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벨이든 가인이든 나는 모른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은 천국과도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지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타락의 내용과 완전복귀

이제 1970년도에는 선생님이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전부다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복귀란 완전복귀를 뜻합니다. 에덴 동산에는 아담과 해와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이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고 해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셋이 문제였습니다. 아담은 이들을 대표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주체로 하여 아담과 해와 천사장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했는데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담에게 나타나고, 아담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합해 가지고 천사장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천사장은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분열의 요인을 가진 것이 사탄입니다. 세워진 법칙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분열은 무엇 때문에 나타났느냐? 불신 때문입니다. 누구에 대한 불신이냐? 중심자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 중심자는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불신한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불신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리에서 불신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지 못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자기 자신을 불신하는 자리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귀노정을 가려면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영원히 믿을 수 있습니까? `천지가 갈라지고 망할지라도 나 자신은 믿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김장로!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점점 해가 갈수록 갈 날이 가까와 오는데, 내가 나를 절대로 믿고 하나님도 나를 절대로 믿고 천사장도 나를 믿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귀해야 할 운명을 가진 인간이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다가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부동입니다. 절대부동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믿어 주고 사탄도 믿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누구예요? 천사장이지요? 그 천사장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사람이다'라고 할 만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방법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아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보아야 됩니다. 어떻게 알아볼 것이냐? 이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그 한계점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데 돈으로 하는 것이냐? 돈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나라의 책임이 크다고 해도 내가 나를 믿게 하는 데 나라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렇지요? 사회나 친척들도 나를 믿는 데에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관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내가 나를 믿는 데에는 나 자신을 스스로 믿을 수 있어야 됩니다. 다 집어치우고 독자적으로 내가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믿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거할 것이냐? 이 나라도 아니요, 친척도 아니요, 물질도 아닙니다. 제일 귀한 내 생명을 가지고 증거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데 있어서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믿겠느냐?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길을 가리지 않고 따먹었던 것이 타락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자진해서 생명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믿는 것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없으면 그것을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할 뿐만 아니라, 내 생명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정성을 다하는 한계점에서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생명을 뜻 때문에 바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뭇사람들이 칭찬 해도 바칠 수 있고, 뭇사람들이 배척해도 바칠 수 있고, 원수의 올무에 끌려가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뭇사람의 시련을 받는 자리에서도 당당히 생명을 바치고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왕이냐 이 자식아' 하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퍼붓고 침을 뱉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루 잃어버리고 골고루 사라진 자리에서 골고루 다 바쳤습니다. 제일 억울하고 분통한 자리에서, 불신이 극에 달하는 환경에서, 일 점도 남아질 수 없는 아무런 여유가 없는 자리에서 믿음으로 불신의 환경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믿음만이 본이 되어서 섬길수 있는 자리에 깃대를 꽂고자 했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길을 필연적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느냐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까? 여러분이 임지에 돌아가게 되면 현지의 자기 입장에서 뜻을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원수들이 `뜻을 위한다면 한번 해봐라' 하고 시련을 주게 되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깊은 시련이 있더라도, 악어 떼가 입을 벌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힘을 다하여 달리는 맹수처럼 뜻을 위해 각오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원수들이 조롱하는 가운데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지키고, 수많은 인간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특권적인 권한을 중심삼고 하나님과의 신의를 세우고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사탄이 그런 절개를 시험해 보고자 할 때 원수들의 총칼에 의해 몸뚱이가 벌집이 되더라도 당당코 뚫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추호의 용서도 없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라면 비난과 비소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의 비난과 비소를 받으면서도 죽기를 각오했던 운명을 지닌 자체인데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입장이라면 하나님께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의(信義)의 법도를 생애노정 위에 공고히 닦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을 남기고 가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돌아갈래야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이 손목을 잡고 울고불고하는 데서 생명을 버릴 것이냐? 아닙니다. 원수들이 죽인다고 하더라도 감사하며 자진해서 도의 길을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저의 생명을 맡아 주십시오. 제 생명은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오니 십자가의 고빗길도 기꺼이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의 후손인 여러분은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원한을 해원하는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는 본향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늘로 가는 노정인 것을 알고 기필코 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특사로서,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씨족으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어 믿음의 절개를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칭찬해 줄는지 모르지만, 칭찬받기를 바라지 않고 가는 길이 되어야 믿음을 증거시킬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만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겠다고 하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생명을 다하며 별의별 수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지옥 같았지만 내가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고 목숨이 남아 있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느냐 하며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내 가슴에 붉은 총탄이 들어가지 않았고, 시퍼런 창끝에 찔리지 않았는데 무슨 불평입니까?

제1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 16:26)"라는 말씀은 천하보다 귀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이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절대자는 그 생명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절대자에게 봉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조 가운데 제1조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의 수많은 사람들이 4백년간 로마제국 지배하에서 사자 밥이 되고 호랑이 밥이 되어 쓰러졌지만, 예수님을 기준하여 천대받았기 때문에 탕감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놀라우신 길을 체험하고 죽기를 각오하며 따라갈 수 있는 영광을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냐? 이것을 생각하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겠지만 생명을 바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가 보세요. 생명을 바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있나 없나. 신앙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사지에 들어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빗길의 마지막 순간에 들어설 때마다 구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결의를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적 기사가 벌어진 자리가 현세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생명을 저울질하는 마당에 물질을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뜻을 위해 몸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으면서 나왔습니까? 그런 결심을 했습니까?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한의 구덩이를 메우려면

믿는다는 것은 영원한 주체성을 확립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불신의 터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되는 문제는 뭐냐 하면 내 마음을 다하고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이요, 둘째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는 생명이요, 둘째는 뭐라고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외아들을 제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아버지 어머니를 제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부모든 처자든 누구든 천명을 위해 제물로 바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사랑하는 전부를 한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서 바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상에서 별의별 고난을 치르더라도 그 고비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냐? 원수를 대해서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원수를 나 같은 입장에 옮겨 놓을 수 있을 때까지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천사장과 아담 해와가 거꾸로 된 것을 무엇으로 바르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정된 것을 회개하게 하고 긍정하게 하려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의 역사를 무엇으로 풀어 놓느냐? 아담과 해와의 하나 못 된 사랑을, 또 천사장과 하나 못 된 사랑을 무엇으로 풀 것이냐? 죄를 지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 애절한 사랑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을 잊어버리고 해방시켜 주고 싶고 복빌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구덩이는 사랑을 가지고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실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어디에 적용해야 하느냐?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통일을 하려면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불량하거나 방탕한 아들이 부모의 사랑의 품에 들어오면 소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불량했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새로운 결심을 할 때는 옛날에 하지 못했던 지극한 효성을 다하는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아들에게 `너는 헌법 제 몇 조에 걸렸으니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들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은 사랑이 아니면 절대로 소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어떤 입장에까지 들어가야 하느냐? 나는 천하의 죄를 조성한 장본인이며 망하는 구덩이를 판 장본인이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덩이를 메우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 하나님이 사랑할 것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려는 사람이 누구냐? 아담 해와입니다. 아담 해와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누구를 사랑해야 하느냐? 천사장입니다. 첫째는 아담이요, 둘째는 천사장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원리에서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아담 대신 아벨이요, 천사장 대신이 가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둘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어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인군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 땅 위에서 아벨과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 앞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사랑의 순서

아담 해와는 타락했습니다. 이들은 타락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이 복귀의 터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들을 분립한 것입니다. 왜 분립하느냐? 창조본연의 기준을 다시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천사장 자리에 가인, 아담 자리에 아벨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느냐? 사랑의 열매란 두 종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의 주인은 하나입니다. 사랑의 주인공인 그 하나는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담에게 옮겨지고 아담의 사랑이 해와에게 연결되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제1의 손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결과가 무엇이냐면 종자가 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이 횡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뜻으로 볼 때 사랑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이 장자를 먼저 사랑해야 할 텐데 거꾸로 되었습니다. 천리에 어긋난 원칙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뒤집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역사를 보면 장자는 망하고 차자가 축복을 받아 이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종적으로 해야 됩니다. 타락은 횡적인 입장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횡적으로 벌어진 것이 발단이 되어 세계적으로도 두 세계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가인이 있고 개인 아벨이 있고, 가정 가인이 있고 가정 아벨이 있으며, 종족 가인 종족 아벨, 민족 가인 아벨, 국가 가인 국가 아벨, 세계 가인 세계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벨과 가인이 오늘날 민주와 공산입니다. 전부다 두패로 갈라져 있습니다. 각 국가도 여당 야당의 두패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몸 마음이 하나되지 않고 두 패로 갈라져 있지요? 그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먼저냐 할 때, 몸이 먼저인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먼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질서를 아직까지 세우지 못했습니다. 유심이 먼저인지 유물이 먼저인지 질서를 아직까지 세우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옳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도 싸우고 내려가도 싸우고 있습니다.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 부모의 혈육을 통한 사랑의 형제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같은 입장, 대등한 입장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횡적인 형제지간이 종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냐? 동생인 아벨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동생인 아벨이 먼저 되고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 앞에 굴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겠지만 이게 역설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 가는 데 둘이 서로 옳다고 하면 절대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둘이 서로 내가 옳다고 싸우면 절대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전후관계를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자, 즉 메시아의 뒤를 따라서 직선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른편에도 나설 수 없고 주님의 왼편에도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짊어졌으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르는 길에는 하나는 세계적이요, 하나는 국가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계와 국가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 가는 길은 직선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사랑의 순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담에게 나타나야 하고, 아담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천사장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아벨에게 나타나야 되고 아벨의 사랑은 가인에게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다시 가야 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천국 가는 비법

복귀노정에 있어서 천국 가는 비법이 뭣이냐? 예수님은 왜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왜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까지 내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전부다 못나서 그런 것입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앞에 6천년간 버티고 나왔습니까? 원리를 보면 아담은 원리결과주관권에서 천사장의 침범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아담이 복귀될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탄은 이제까지 하나님 앞에 원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를 처벌할 수 있습니까? 나를 처벌하려면 먼저 이 천지를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비록 천사장이 받는 사랑이지만 완성기준에서 사랑해 주시려고 창조하시지 않았습니까?'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도 천사장급 완성기준에서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천사장은 하나님께 언제 나를 완성단계에서 사랑해 보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기에 딱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성단계의 사랑을 천사장에게 해보았습니까, 못 해보았습니까?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유천지인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에게도 완성단계의 사랑을 다 해줘야 책임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꼼짝 못하고 걸려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 사탄은 하나님께 당신이 아들딸을 찾지만 못 데려간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먼저 사탄 자신을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대신 완성한 자리에서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서는 하나님도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후사로서 상속을 받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랑하지 못한 것을 해원성사해야만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이걸 하려다 걸려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면서도 피눈물을 흘리며 `아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4천년 동안 인류를 농락하고, 하나님께 참소하려던 최후의 고비가 완전히 막을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축복하면 하나님도 축복하여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조건, 즉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하는 조건을 들고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바쳤듯이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데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 이상 바칠 것이 없다고 할 때 생명권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자기의 사랑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것이 십자가의 노정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선 사람은 사탄의 참소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세울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제2이스라엘권은 사탄과 관계없는 해방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원리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덮어놓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하고는 주인의 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은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을 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종된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부모의 상속을 받는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를 모셔 나오던 종도 아들을 부모와 같이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야만 천도가 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면서 예수님을 보내어 믿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가 하나되지 않으면 해원성사와 구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둘이 하나되어야 부모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형제끼리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해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고 부모를 해방하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될 수 없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부모를 복귀한 후에 하나님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시에 복귀해야 됩니다. 타락이란 사탄과 비원리적인 사랑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일시에 형제를 잃어버리고 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일시에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고 넘어선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법에 걸리지 않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법에 의해 못 들어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도 천법에 걸려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다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니 생령체급 영계에 간다고 꿈꾸겠지만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는 한 가지 비법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인 여러분이 승리적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아벨의 입장에 서려면

만약 이 땅 위에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 땅 위에는 가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가인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오시는 주님은 부모이기 때문에, 원칙에 의해서 가인을 복귀할 것입니다. 가인을 복귀하려면 아벨이 출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전도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전도를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 나가야 하느냐? 제일 고생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이 제일 비참했기 때문에 통일교인은 생사가 교차되는 감옥과 같은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어 가면서도 원수를 용서했기에 통일교회는 감옥 중의 감옥에서 부터 출발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여러분이 아벨적 입장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라는 것이요,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받아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 심정에 그냥 그대로 접붙이라는 말입니다. 접붙이고 난 후에는 무얼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커 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가운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벨은 누구입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통일교회 교인들을 소위 아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벨의 자격이 있습니까? 그것도 시험에 합격해야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낙제하면 신입생보다 못합니다. 그게 뭐예요? 재수생이지요? 기분 나쁜 것입니다. 아벨이 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려면 먼저 아버지의 생명에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이려면

통일교회 식구들은 문 선생과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느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좋든 싫든 문 선생의 사상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통일사상을 강제로라도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렇게 집어넣어 접을 붙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접붙지 못한 사람은 말라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패스해야 하는 것이 절대적 요인입니다. 원리시험에 패스한 것은 말씀에만 패스한 것이기 때문에 실천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탕감해야 합니다. 어떻게 행해야 하느냐? 편안한 자리에서 먹고 누워 잠만 자는 것이 아닙니다. 일선에 가서 싸워야 합니다. 사탄이 내 형제를 빼앗아 갔고, 내 가정을 빼앗아 갔고, 내 종족을 빼앗아 갔고, 내 민족을 빼앗아 갔고, 내 나라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다시 빼앗아 와야 합니다. 빼앗아 오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외톨이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음의 세 자녀를 찾아 세우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접붙이고 나서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아벨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았으니 사랑해 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담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느냐 하면 천사장을 사랑해야 합니다. 천사장의 입장이 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가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얼마만큼 사랑해야 하느냐? 자기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시키는 데는 강제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동시켜 뼛골이 녹아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에 감동하여 굴복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자기에게 접붙여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자를 대신할 수 있는 아벨은 그와 같은 심정으로 가인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담을 위해서 종도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인 아담을 위해서 종이 희생하는 것은 천리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어떻게 했느냐? 종의 입장에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가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으면 예수가 사지사판에 있을 때 예수의 죽음길을 막고 대신 죽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들이 종으로서 책임을 다 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도라고요?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베드로는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 갔던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 이렇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이 물은 것은 베드로가 개척자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길을 감사하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길을 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비로소 이 세상에 복음의 자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 구원을 받아요?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형틀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뽑아내고 생명을 끊는 데 쓰인 십자가가 구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잃어버린 사랑의 인연을 다시 맺는 자리에서 복음이 출발되는 것이요, 생명이 부활되는 자리에서부터 복음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건달 지도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나중에 아무 알맹이도 없는 거지 팔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끝날에 망할 운명을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정통이니 하면서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해요? 상놈들이 양반을 알아본 다음에는 돌아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까지 양반 행세를 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진짜 양반이 나오니 분하고 원통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종자를 모르고 동생의 씨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망하나 한번 보세요.

지금 여러분들은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이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다음에 가인인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복귀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할 통일교회

통일교회 교인들은 가인 입장인 형님된 기성교회를 찾아서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안 받아 주면 망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탕자의 비유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형이 기뻐했어요, 슬퍼했어요? 거기에서 탕자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형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면 부모가 동생에게 준 것까지도 자기 것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 나중에 나왔으니 동생인 아벨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사랑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70년도까지 입이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분한 것을 분풀이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 참아 온 것입니다.

형님들이 동생들에게 분풀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수습하여 환고향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날이 와야만 천국통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기성교회에서 나에게 욕을 하고 죽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을 위해서 정성들였고, 아무리 억울해도 일체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심판을 받고 망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러한 일을 해온 것입니다.

누가 아벨입니까? 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가인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사랑을 하며 좋아하십니다. 가인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다하면 하나님의 공법은 자연히 그를 중심삼고 벌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생명이 결부되고 아담의 자리와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원리를 알든 모르든 일선에 나가서 죽도록 가인을 위해 고생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생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의 길을 통해 가인을 사랑하는 데에 미쳐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우리는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일선에 나가 가인을 사랑하고 세 사람 이상 전도해야

여러분은 일선에 나가야 되겠어요, 안 나가야 되겠어요? 「나가야 됩니다」 저기 아주머니도 나가야 되겠어요, 안 나가야 되겠어요? 만약 나가지 않았다가 죽어 보세요. 어떻게 되는지…. 이제 선생님은 책임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다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왜 안 가르쳐 주었느냐고 하지 마세요. 가르쳐 주었어요, 안 가르쳐 주었어요? 지금이 1970년 12월 27일 오후 2시 10분 전이지요? 선생님은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은 지금까지 숨겨졌던 비밀입니다. 이것이 수천년 동안 인간이 알고 싶었던 비밀의 골자입니다. 이것을 형편없는 무리들을 모아놓고 공짜로 전부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아직도 이것이 진짜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가짜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복귀노정을 가는 사람은 개인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가정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종족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민족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국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남북으로 갈라지는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는 개인 개인이 갈라져 있고, 가정이 갈라져 있고, 종족이 갈라져 있고, 민족이 갈라져 있습니다. 한국의 판문점을 중심삼고 남쪽은 민주권으로 북쪽은 공산권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곳이 세계의 혈(穴)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혈로 등장한 이 한국은 숙명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중심삼고 민족과 종족이 갈라지고, 민족과 가정이 갈라지고, 가정과 개인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무리가 되어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아벨 입장인 민주세계의 남한을 중심으로 가인 입장인 공산세계의 북한이 따라오게 되면 세계평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풀고 처리하며 교육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통일원리요 통일사상이라는 것입니다, 통일사상. 이 통일사상이 지지리 못난 한국 민족 가운데에서 나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서글픈 역사와 더불어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몇 사람의 가인을 굴복시켜야 되느냐? 세 사람입니다. 아담 시대의 가인, 예수 시대의 가인, 재림주님 시대에 핍박하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천사장은 몇이 있었느냐? 3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할 때도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왔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뜻하느냐? 에덴 동산의 가브리엘 천사, 미가엘 천사, 루시엘 천사, 이 3대 천사가 아담의 탄생을 기뻐했던 것처럼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의 탄생을 세계적으로 환영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은 자기 시대에 있어서 이방 사람을 대표한 동방박사 세 사람과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를 중심삼고 민족적 기반을 구성하여 자기를 중심한 세 아들딸을 세움으로써 10수를 완성하여 천국을 개문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언제 가인을 사랑하기에 미쳐 보았느냐

여러분은 언제 가인을 사랑하기에 미쳐 보았습니까? 가인 하나를 찾았을 때 나라를 찾은 것보다 더 기뻐했습니까? 가인 한 사람을 찾게 되면 대한민국을 찾은 것보다 더 기뻐해야 합니다. 세계를 찾은 것보다 더 기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시집간 색시가 아기를 낳게 되면 신랑은 싫어해도 아기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아기도 그 신랑의 씨이니까 미워해야 할 텐데 아기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엄마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가인 한 사람을 찾고도 그렇게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아들딸을 하나라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 보았어요?

통일교회 문 선생은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알아요? 보고 싶어서 눈이 붉어지도록 운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운 것처럼 사람들이 그리웠습니다. 선생님이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를 그리워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 때문에 통일교회 문 선생이 욕을 먹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종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대해 좀 더 세밀히 얘기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다 하면 그 사람들에게 지장이 있을 것 같으니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발표할 것이 많고 많지만 조금 더 있다가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건달과 같은 멍청이들입니다. 먼저 간 유협회장도 그래요. 원리책만 써 놓았다구요. 그게 다예요? 선생님이 어디에서 무슨 말씀을 했는지 먼저 알아서 행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슨 부장이니 무슨 지역장이니 하는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원리 가운데 나타나는 선생님이예요? 원리에는 예수님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말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도 원리만 중요시하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마음으로 따르고 동고동조하면서, 그 생활에 감격하여 내일의 역사 창조의 기수로서 책임 다할 수 있는 통일교회 신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심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계속 가진다면 여러분 가정에는 삭풍(朔風)이 불어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북으로 가게 될 때 남아서 낄낄거리고 딴 짓 하는 그런 사람은 다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라고요! 눈만 뜨면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이 몇 시에 나가고 몇 시에 들어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단체를 책임진 사람들은 선생님과 호흡을 같이하고 맥박을 같이 느끼고 행보를 같이해야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소위 오래 되었다는 통일교회 교인들, 지금의 선생님은 여러분이 옛날에 알던 선생님과는 다릅니다. 천양지판입니다. 지금은 옛날 그대로 대할수 있는 때도 아니거니와 앞으로는 선생님이 언제나 한국에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1974년 제2차 7년노정까지는 통일교회가 적어도 수십이 아니라 백이 넘는 선교지를 택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에 선교지를 70곳만 만들어 놓고 선생님이 한 곳에 석 달씩만 가 있게 되더라도 한번 떠나면 17년이 지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17년이 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제 나이가 50을 넘었습니다. 얼른 보면 50을 넘은 사람 같지 않지요. 선생님은 불의를 보면 용서하지 못합니다. 또한 지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뼈 없는 사람처럼, 허리가 부러진 호랑이 새끼같이 지지리도 못나게 이러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한번 잘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구들이 잘못하면 부모가 처리할 수 있지만, 부모가 잘못하면 아들딸까지 전부다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잘못할 때는 부모가 수습작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선에 서지 않고 작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조심 조심하면서 이 일을 해 나왔지만 낭패입니다, 낭패. 맹탕, 맹탕이라지만 이런 맹탕이 또 어디 있어요?

우리가 소망의 기점까지 나아가려면

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들이 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다 되고 싶다고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뭘 하셨느냐 하면 사랑할 수 있는 아들 한 사람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자협조를 위한 섭리를 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모자협조에 승리하게 하여 하늘의 길을 안내하는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마리아격 존재를 세운 후 이 땅 위에 주님을 탄생시키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모자협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모자협조을 이루려면 부녀협조, 그리고 부부협조가 이루어진 다음에 모자협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꾸로 섭리해 오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관계가 없는데 모자관계가 있어요? 부부협조가 있기도 전에 모자협조가 있을 수 있어요? 성경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모자협조만 해 나왔습니다. 비정상적이지요? 거꾸로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부부협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자(母子)관계가 아버지가 없이 나타날 수 있어요? 모자협조가 있기 전에 부부협조의 기반이 어디에 있었느냐? 부부협조가 있기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녀협조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녀협조, 부부협조의 과정을 거치고 모자협조가 나와야 할 텐데 지금은 모자협조가 한 사람밖에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부녀협조, 부부협조는 통일교회 가정부인들을 내세워서 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주머니들을 왜 사지에 내보내야 되느냐? 이제까지의 모자협조의 기준을 탕감하려면 그 길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자협조의 기준을 다시 얽어매고, 부부협조 기준을 얽어매고, 부모협조 기준을 얽어매야 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전도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가지지요? 통일교회 문 선생도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져요, 안가져요? 갖지요? 어머님이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갖지요? 여러분의 아내도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또, 여러분의 아들딸이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모두 관심을 가지니까 비로소 6천년 전에 해와가 일시에 파탄시켰던 환경을 지상에 있는 하늘편의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이제부터 가정이 책임지고 넘어가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어간 후에야 입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내를 내보내지 않는 사람은 걸립니다. 만약 걸리게 될 때 아무리 선생님께 사정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소망의 한 기점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녀가 되어 어떠한 역사노정을 거쳐서라도 하나님께서 이상하셨던 창조본연의 가치를 그냥 그대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을 이러한 모습으로 유지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내적인 고통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여자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입장에서 한 단계 올라왔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여자를 일선에 출동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자를 중심한 가정적 탕감복귀시대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 3차적으로 삼팔선을 중심삼고 여자가 해야 할 국가적 탕감복귀시대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남한에 있는 여자들을 여군으로 만들어서 인민군들을 때려잡아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의 남자들은 시시합니다.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이북 공산당들이 무서워서 야단입니다. 여자들을 중심삼고 공산당을 때려잡아야만 여자가 유인했던 사탄세계를 추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을 여자가 때려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우리가 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의 뒤를 따라올 것입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의 가정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쉬고 다시 그들을 남한 땅에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 전체가 통일사상으로 일원화되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축복가정들의 여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킬 것입니다. 30세 이상 33세 미만까지 전부 다 동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축복가정들은 40세까지 이러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는 40세를 중심삼고 볼 때 7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40세까지 전체가 동원되어 일선에서 공산당들을 전부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자가 언제 나라를 해방하는 데 동참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세상은 남자들이 전부 다 꾸며 놓았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여자가 이런 일을 하여 세계적으로 통일의 한 때를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찾아진 나라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이 삼팔선의 파수병으로 선두에 설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부인들이 그런 자리에 설 때 여러분은 후방에서 탄알을 날라야 됩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죽으면 되겠어요? 먹을 것을 날라 주고 탄알을 밤새도록 날라다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겠으면 아내 대신 나가 싸우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나가서 싸우겠다고 전후방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든 선생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꺼번에 동원하여 공산당을 무찌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나라를 위해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가정을 위해 싸우고 있지요? 통일교회 축복을 받으면 가정을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아벨의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대한 민국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소생여자작전시대, 장성여자작전시대 그리고 완성여자작전시대, 이렇게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복귀 완성과 상대이념을 완성하여 선을 번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의 번식은 국가기준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의 자녀를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세계를 통과하는 국가가 없으면 3대 여자복귀를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남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왜 여군을 만들고 있는지 압니까? 이것은 앞으로 여자들이 공산 세력을 무찔러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통일교회 부인들, 여군에 동참하겠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할래요, 흥할래요? 망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다 흥하겠다는 거예요? 어디에서? 치마밑에서? 그것은 안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이 일을 여자들이 해야 되는 거예요. 여자들은 어차피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전부다 천사장 패들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내가 여자들을 한번 싸우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내가 전도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이 녀석들 남을 볼 게 뭐야? (웃음) 지금까지 얘기했는데, 자기가 갈 길은 자기가 가야지 남을 보면서 갈 거예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동원해야 할 3년 전도기간

선생님이 가정들을 동원할 때, `설마 선생님이 그럴 수 있나? 40일 전도기간에도 가만히 두셨는데 이번에도 그러겠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40일 전도기간에는 어물어물 지나갔지만 이 3년기간은 안 가면 안 됩니다. 빠져 나갈 데가 없다는 거에요. 남들은 다 나가는데 혼자 남아서 사업하겠다는 사람은 죽었으면 죽었지 못 산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나간 사람들은 햇수 날수를 다 채우고 들어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림없습니다. 그 길은 어차피 가야 될 길입니다. 가지 않은 사람은 선생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거꾸로 출동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뜻을 이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뜻을 위해야 선의 조상이 되고 선의 가정이 되어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천도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가야지 자기 개인의 욕망과 사적인 행복을 꿈꾸며 가서는 안 됩니다. 공산당이 말하는 것처럼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식은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아버지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누구의 것이라구요? 결론은 아버지 것이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식은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것인데, 통일교회식은 나 대신 아버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산당식은 자기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자기 개인의 이익에 결부시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문 선생님의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귀한 것을 행하고, 그 귀한 것이 얼마나 큰지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공적이면 흥한다

좋아하는 곳은 혼자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인을 찾아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의 세상을 누가 지배하고 있습니까? 천사장인 사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천사장형이지요? 그러니 이 세상을 누가 하나님 앞에 돌려주어야 하나요? 가인이 기쁨으로 회개하고 돌려주어야 합니다. 아벨의 자리에 선 나의 것은 가인을 통하여 복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으면 망하는 것이요, 남을 중심삼으면 흥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망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남아지고 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것은 하늘편을 위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공적인 결혼을 했습니까, 사적인 결혼을 했습니까? 「공적인 결혼식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40세에 18세 소녀와 결혼을 했는데 여자에게 반해서 그런 결혼을 한 줄 알아요? 선생님이 40세가 될 때 대학을 나온 30세 되는 여자들이 결혼하겠다고 줄을 섰고, 밤이든 낮이든 선생님이 받아주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 저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를 데려다가 재교육을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내를 위해서 7년 동안 피눈물나는 정성을 들였습니다. 지금까지 열녀는 있었지만 열남은 없었습니다. 역사에 대표적인 열남을 남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얘기할 때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다 해보고 틀림없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데 눈알이 뒤집혀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공적으로 믿습니까, 사적으로 믿습니까? 「공적으로 믿습니다」 그래요. 나라 때문에 믿고 세계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 나라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라가 없는데 천국에 가서 뭘해요? 천국이라고 해서 견디어 낼 것 같아요? 대한민국이 나라를 잃었을 때 일본이 어떻게 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한테 꼼짝도 못했습니다. 아들딸을 마음대로 사랑하며 살 수 있었습니까?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끌고 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공적으로 믿는가, 사적으로 믿는가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온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의를 세우려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마실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일체 그 나라에 적응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를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이제 후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후퇴하더라도 선생님은 후퇴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갈 길을 한 단계 앞서서 개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불원한 장래에 한국을 떠나겠다는 것도 여러분이 닦아야 할 세계적인 기반을 미리 앞서서 마련해야 되겠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에게 한국에 오시라고 울고불고 기도를 하고 별의별 일을 다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그럴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성교회 목사들도 몰라서 통일교회를 반대했으니까 이제는 선생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고 사정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갈 길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즘도 철없는 여자들은 소식도 없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때가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상당히 바쁘다는 겁니다. 지금도 다섯 사람만 만나면 하루가 지나갑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세월 가는 줄 모릅니다. 아침에 와서는 점심 저녁까지 얻어먹고 쭉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하루에도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말이예요. 그렇다고 쫓아내면 기분 나빠하고 입을 삐쭉거립니다. 선생님이 어디를 나가면 곧 들어오겠거니 하고, 저녁 때가 지나고 밤 열두 시가 될 때까지 선생님을 보고 나서 가야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에게는 그럴 수 있는 개인적인 때가 다 지나갔습니다. 전부 달라졌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렇게 전진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전진하기 위해 개인적인 복귀시대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하더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개인적 시대의 일을 하면 여러분도 여기에 협조하여 같이 정성들이면 하나님께서 같은 가치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정적시대, 종족적 시대, 민족적 시대, 국가적 시대의 일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 시대에 따라 충성해 나가며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기에 여러분을 여기에 동참시키기 위해서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기분 나빠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콧대를 세워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때를 놓치지 말라

어느때 한 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때가 지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한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싫든 좋든 선생님이 하라는 일을 영광으로 알고 선생님을 좇아야 됩니다. 뜻은 싫든 좋든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 뜻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법도를 세워 조직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입장이라면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자는 시간에, 내가 길가는 시간에, 내가 놀거나 쉬는 시간에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비운이 깃드는지 행복이 깃드는지 그 시운을 몰라 가지고 어떻게 그 나라의 충신이요 백성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있는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뜻의 때를 상속받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뜻을 대한 때, 가정이 뜻을 대한 때, 민족이 국가 세계가 뜻을 대한 때가 일직선상에 서게 되어 가지고 그 자리에서 세계 만민의 평등권이 이루어지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고, 가정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고, 종족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고 민족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습니다. 통일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자랑할 전통을 다 짜 가지고 나왔는데 그것을 상속받아야 할 여러분을 보니까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합격될 수 있는 가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가정이 될 수 있게끔 훈련과 시련을 거치게 하고 연단시켜 준비해야 할 책임을 선생님이 짊어졌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개인구원의 목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구원의 목적을 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그 말에 담긴 의미뿐만이 아니라 기나긴 시대를 거쳐오면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기독교인을 학살할 사람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 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때가 역사적인 초점을 바라보고 넘어가는 정상에 서서 좌우를 판가름해야 할 시점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으며, 그 나라에서 자랑할 수 있는 전통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아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원리를 따라 안팎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이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부족한 저희들을 거느리고 무지한 백성들을 치리하면서 당신이 원하는 소망의 나라에까지 갈 수 있는 그때를 바라시며 마음 졸이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뜻은 기필코 성사될 수 있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나이다. 나라가 바뀌어 가고 세계가 바뀌어 가더라도 이 뜻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생애노정을 다 바쳐 이 뜻을 받들어 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충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사옵니다.

앞으로 대하는 환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당신을 대한 정열에 불타고 의에 불타는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고 용기백배하여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젊은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못 당신 앞에 민망함을 느끼고 이 민족이 책임하지 못한 과거지사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후회하면서 용서를 빌지 않을 수 없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이 해방될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대한민국 자체로서는 해방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을 움직이고 중국을 움직여서 하나의 연방체제를 갖추어야 하겠사옵니다. 중국 민족 앞에 이 뜻을 제시하기 위해서 8억에 가까운 중공 백성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체내의 중심을 마련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저 북쪽에 소련이 저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김일성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옵니다. 배후에 소련과 중공이 배수진을 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뜻을 따라 나오는 통일의 무리들이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문제임을 아옵니다. 아시아의 안보문제는 정치가들이 염려하는 것보다 뜻을 따르는 저희들이 직접 일선에 서서 염려해야 되겠사옵고, 저희들이 아시아의 전역에 걸쳐 반공태세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의 이러한 시급한 사연을 당신께서 아시옵소서.

아버지시여, 명년을 중심삼고 일본에서 계획하는 작전을 당신의 장중에 넣으셔서 살피시옵소서. 수많은 민족을 규합하고자 동경에서 계획하였사옵니다. 제가 이런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하니 하였사오나 당신의 경륜 가운데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일을 위해 피눈물나는 골고다의 자리를 거쳐 나가야 할 일본 식구들을 위해 저희들은 몸과 마음으로 협조해 줘야 되겠사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원수가 되었던 한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를 방어할 수 있는 방파제가 되고, 태평양 문화권 시대에 있어서 한국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파제로서 거룩한 문화적인 터전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것은 미래의 한국에 천국을 보장하고 공적인 터전을 넓히기 위한 아버님의 후하신 사랑의 은덕임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통일교회의 기치를 드높여서 일억의 일본 국민을 아버지 품에 품으시옵소서. 해와의 국민성을 대신한 일본 땅에서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을 빛낼 수 있는 한 무리로 택하여 주신 그들이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중국은 이분된 운명에서 신음하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중공의 유엔 가입 문제를 목전에 놓고 중공을 시인하는 체제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최후의 접경선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당신은 올라가고 사탄은 굴복되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대립 상태로 나아가는 이 때에 있어서 세계적인 시운을 붙안고 당신께 겸손히 제물드려야 할 무리가 오늘날 핍박받고 쫓기는 저희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생애과정을 바쳐 나왔던 길도 서러운 길이었지만 앞으로 가야 할 행로가 더 심각하고 긴장된 행로라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이 저희들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눈물 흘리는 길을 가야 되고 슬픈 사정을 안고 몸부림쳐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자식을 많이 가진 부모의 괴로움과 서글픔을 알려면 자식을 가져 봐야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의 자녀들은 아직 당신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이제 일선에서 당신을 대신하여 싸워 본 후에는 당신의 심정을 느끼고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새로 조성되는 통일교단의 빛이 만방에 빛날 수 있는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생명보다 더 귀한 아내를 바치고 자식을 바치는 운동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1200가정을 대표한 아낙네들을 일선에 파송하였사오니, 아버지,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민족애에 사무친 뜨거운 눈물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리거리를 헤매는 그들의 모습이 처량했던 예수님의 행각의 노정을 대신하게 하시옵고, 그들이 그렇게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희망의 천국이 약속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서글픈 자리를 동정하시어서 당신을 모시는 그 자리가 보금자리의 터전이 될 수 있게 하시고, 그 자리에 새로운 역사적 창조의 인연이 벌어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일찌기 감옥에서 서글픈 골짜기의 길을 개척할 당시에 당신이 분부하신 명령을 아직 잊지 않고 있사옵니다. 수십 년의 역사를 지내 왔지만 그때의 그 심정적 인연은 아직까지 시간과 공간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를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으면 저를 대신하여 그들을 사랑하여 주시옵고, 제가 세운 공적의 터전이 있어서 당신이 자랑하고 칭찬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 민족과 세계에 나누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해방의 은사를 받아 내일의 희망의 기수가 되어 아버지의 존전에 영광과 기쁨을 돌려 드리는 무리로 남아질 수 있게 하시옵고, 그 수를 더욱 가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 정월 초하루, 새로운 아침을 맞게 되었을 때 1970년도에 이루겠다던 소원을 넘치도록 이루어 놓았사옵니다. 아버님,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아니옵니다. 슬펐던 아버지이옵고, 외로왔던 아버지이옵고, 불쌍한 아버지이옵니다. 상처받은 핏자국을 아직까지 씻지 못한 서글픈 심정을 가지고 계시지만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뜻에 미쳐서 망할 수밖에 없는 아들딸을 찾아 나오신 당신의 발걸음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얼마 남지 않은 1970년도를 거룩하게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 동안 국제적인 행사가 많았습니다. 염려하던 그 기간을 당신이 보호하여 주셨고, 그런 일들을 통하여 민족의 자세를 올바로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목표점에 결합시켜 주신 은사에 감사하옵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새로운 시운을 천운과 더불어 짝할 수 있는 가운데 맞이한 사실들을 생각하게 될 때 모두가 아버지의 은덕임을 알고 감사드립니다.

보기에는 복이 없는 통일교단이요 외롭고 처량한 통일교단이지만, 은은한 가운데 미래의 약속과 장래의 소망이 그 배후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오니, 낙오자의 서러움에 부딪치는 불쌍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낙오자의 서러움과 패배자의 슬픔을 당할까봐 이를 악물고 눈을 똑바로 뜨고 이 길을 갔듯이, 이들도 이를 악물고 눈을 똑바로 뜨고 내일의 소망의 기준을 자기의 것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후사들이 되게끔, 아버지, 채찍으로 몰아치시옵소서. 사랑하는 것보다 냉정하고 매정하게 몰아치시옵소서.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적 권한을 갖추어 가지고 2차적 해방, 3차적 해방을 맞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품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단과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을 붙들고 나오신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큰 은덕을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이제 1970년을 넘기고 1971년부터는 분망한 자리에서 기쁨의 천지를 바라보며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당신께 효할 수 있는 한 때를 가져야 되겠기 때문에, 저희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어려움을 헤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성전을 마련해야 되겠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집들도 마련해야 되겠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교육기관이나 수련소도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1970년도를 중심삼고 온갖 노력을 다하게 하신 아버지의 후하신 사랑에 감사하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당신의 축복의 은사를 받고 보니 무한히 감사하옵니다.

제가 사람을 의지하고 이 일을 경륜하지 않았사옵니다. 당신을 의지하여 일을 시작하였고 당신을 의지하여 결과를 맺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거기에 통일의 무리들이 가담하여 당신과 더불어 감사할 수 있는 동참의 조건을 세우지 못한 책임을 서럽게 생각하오나, 조건이라도 남기기 위해 약속을 세워 놓았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환희에 벅찬 1970년대에는 저희들의 깃발이 천지를 뒤덮고 아시아의 전지역을 진동시킬 수 있으며, 세계 전인류의 가슴에 새로운 소식과 새로운 경종이 될 자극을 남겨 주기 위한 승리의 행렬이 갖추어져 당신이 명령하신 목적에 따라 직행할 수 있고 의에 불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선을 옹호하는 데에 선의 용장들이 되고 정병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도를 보내는 마당에 기성교회의 수많은 무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사옵니까? 암담한 미래의 암초를 향해 진군하는 그들의 방향을 돌려야 할텐데, 아버지, 방향을 모르는 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망한다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저희들에게는 기쁨이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 피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한 때가 남아져 있음을 느끼옵니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찾아 거룩한 아버지의 제단에 바치지 않고는,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만민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권을 세우지 않고는 해원성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만약 저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역사적인 제단의 터전이 부끄러워 당신 앞에서 통회와 탄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통일교단이 소원하는 것은 저희들의 소원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감정이 앞서고 가슴이 막히고 목이 메이고 안타까움과 분함과 원통함이 사무치오나, 당신께서는 분하거나 원망스럽더라도 참으시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들도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아가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몸부림쳐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세상의 교계를 긍휼히 보시옵고, 기독교권내에 있는 민주세계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만민이 하늘의 승리를 찬양하고 그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의 무리들을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일선에 서 있는 딸들을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가서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오나 그럴 수 없는 환경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싸우는 길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싸우게 하시어서 당신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딸로서 남아지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이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기원이 당신을 모시는 내심의 결정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이번 기간에 부디 후덕하신 당신의 뜻이 그들과 연결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세계의 수많은 국가권에 파송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원하신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재삼 바라옵니다.

오늘 이 시간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제 새롭게 느끼고 결심한 바를 통하여 1971년도를 환희의 해로 맞이하여 뜻 앞에 졸장부가 되지 않고 용장이 되게 하시옵고, 불효와 불충의 모습이 되지 않고 효성과 충성의 길을 다 가게 하시옵소서. 만백성을 위해 추억과 전통으로 고이 물려 받을 수 있는 날을 설정하기 위해 온갖 정성과 생명과 사랑을 다 기울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제물은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고, 그 사람의 이념을 대신합니다. 제물로 드릴 물건을 살 때는 값을 깎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주기 바랍니다. 예복감을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픈 일은 사탄에게 몽땅 넘겨 주고 기쁜 일은 사탄으로부터 몽땅 빼앗아 하나님께 넘겨 드려야 합니다.

대체로 작용의 힘은 나아갈수록 줄어듭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일단 주게 되면 다시 돌아올 때는 더 크게 되어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천국이 벌어지고 영생이 나옵니다. 영생은 사랑에 의해서만 생길 수 있습니다.

생명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힘의 작용입니다.

믿음의 아들은 믿음의 부모의 사랑에 비례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쳐 옵니다.

복귀를 하려면 하나님과 아담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여기에서 천사장과 사랑으로 하나 되면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문제는 부자의 인연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잃어버린 것을 종족 복귀로써 탕감하였습니다.

사랑의 길도 하나밖에 없고, 생명의 길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갈라지는 마음을 가지면 사탄이 됩니다.

공산세계에서도 김일성이 제일 악당입니다. 민주세계에서도 좋은 면의 극단이 통일교회입니다. 김일성은 생명을 위협하면서 내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내보냅니다. 그 대신 자진해서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충신된 아들과 효자된 아들입니다.

부모는 식구들의 좋은 보고를 들을 때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방안에서 죽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도 이미 각오하고 뜻길을 나섰습니다.

[말씀 요지]

말씀을 전함과 동시에 사람을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생명체를 키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올바로 가르쳐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2의 창조, 즉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활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 표준이 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생활을 보여 주는 데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여러분 개인이 생활적인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에 나서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공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사상으로 전국민이 무장해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말씀하시고 나서 피곤함이나 가벼운 병을 손쉽게 제거하는 보건 비법에 대하여 말씀하심)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1년 새해를 맞이한 날이며, 동시에 저희들이 귀한 명절로 지키는 하나님의 날로서 제3주년을 맞이한 날이옵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식구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영광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한많은 복귀의 노정에서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교회와 당신의 나라를 찾기 위하여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쳐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선조가 잘못했던 한 날의 실수가 이렇게도 한스러운 역사노정이 될줄이야…. 그 길은 그 누구도 모르는 서러움의 길이었습니다. 당신만이 그것을 책임지고 무지한 자녀들을 수습하시기에 얼마나 애쓰셨사옵니까? 무지한 백성과 무지한 인류를 뜻의 세계로 끌어오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사옵니까?

저희들이 민주세계를 놓고 볼 때, 기독교를 중심삼고 피의 대가를 치러서 최후로 이 세계 앞에 찾아진 하늘편 국가들이 있는 반면에 반대의 세계도 있어 가지고 이제 안팎이 이분된 실체로서 마음이 몸을 지배하듯이 아버지께서 피조세계를 지배하실 때가 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민주세계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현재의 입장을 직시해 볼 때에, 만민들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과 낙망의 와중에서 신음하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처참상을 바라보시고 아버지께서 이들에게 그 길을 제시해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아 나온 소망의 아들딸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과 국가를 이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위한 종교가 수없이 많았사오나, 이렇게 통일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적인 노정을 걸어 나오시기에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통일교단이 수고해 나오는 과정에서 저희 앞에 서시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셨사옵고, 싸움의 일선에서 사탄과 대결하시면서 아들딸이 침해를 받을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나오셨는가를 알고 있사옵니다. 그와 같은 보호와 염려의 결실로서 당신께서는 오늘날 이 땅 위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게 하여 주셨사옵고, 참다운 가정의 인연을 세우게 하여 주셨사옵니다. 또한 참다운 종족의 인연을 갖추게 하심과 동시에 교회와 민족을 대신하여 예수가 풀지 못하였던 한을 풀 수 있는 승리의 단계에까지 끌어올린 아버지의 수고 앞에 저희들은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여, 하나님의 날인 이 아침, 1971년도를 당신께서 품으시옵소서. 이 해는 역사상에 두 번 다시 없는 중요한 해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늘 가정이 아버지 앞에 새로이 봉헌해야 되겠사옵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영계에 있는 모든 사도들과 영적 이스라엘 세계권내에 있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의 인류를 통하여 해원성사할 수 있는 상봉의 한 날로 설정하였사오니, 아버님께서 이 날을 거룩히 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영계를 대표하는 영적인 가정과 땅의 가정이 하나되고, 영적인 종족과 땅의 종족이 하나되고, 영적인 민족과 땅의 민족이 하나되고, 영적인 나라와 땅의 나라가 하나되어 아버지를 중심삼고 일치된 가운데 승리의 통일왕국을 건설해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저희의 소원이요, 영계의 소원이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아버님과 천사장이 결렬되었던 것을 원상으로 복귀하는 세계사적인 중요한 기점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 해에 `통일기반 확보'라는 거룩한 목표 아래 일치단결하여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중심삼고 개인을 규합시키고 가정과 종족과 민족을 규합시켜서, 이 나라가 당신 앞에 승리의 깃발을 들고 세계 만방에 주체적인 국가의 권위를 갖출 수 있게 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저희의 목표로서 다가오고 있사오니 거룩히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을 관념적으로 모실 것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모셔야겠고, 소망의 가정을 관념적으로 모실 것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있는 정성과 사랑을 다 퍼부어서 모실 수 있고, 땅 위에 승리의 기대를 마련할수 있는 하나님의 날을 가졌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오늘의 축복을 두터이하시어 만민 앞에 해원성사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한 날이 되게 하시옵고, 만국의 탄식권을 해소시킬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부복한 자녀들이 부족한 정성을 모아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이 자리에 아버지께서 찾아오시어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은 삼천만 민족을 대표하고 수많은 종족을 대표한 자녀들이옵니다. 비록 이 자리가 제한된 자리라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전체의 중심으로 바라보시는 곳이고 사랑의 중심의 곳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는 당신의 생명이 우거하는 동시에 당신의 사랑도 우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귀한 가치의 기준을 결정지으셔서 남한의 삼천만 민중의 마음 가운데에 아버님의 마음이 깃들게 하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이 함께하시옵고, 아버님의 생명의 인연이 뻗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과 북으로 분립된 현재의 이 나라도 통일의 기원을 이룰 수 있게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반대되는 일당들이 있을진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그들을 제거시킬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남한 각지에 있는 저희 통일의 역군들이 제단을 꾸며 놓고 거룩히 제단과 일체가 되어 사탄을 분별시킬 수 있는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북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아버지 앞에 제물로서 바쳐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의 책임을 통일교단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영계와 통일교단을 일치되게 하시옵소서. 영적인 사탄을 분별시키고 땅위의 사탄을 분별시켜서 영육세계에 분별의 기반을 갖출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전체를 통일의 목적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거룩한 제물로 바쳐드려야 하겠사옵니다. 이것을 위하여 가정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이요, 자녀를 중심삼은 사위기대의 기초를 이룬 내적 가정과 외적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이러한 교회를 중심삼고, 이러한 나라를 중심삼을 수 있는 대표적 형태가 이제 여기에 마련되었사오니, 아버지, 받으시옵소서. 이것을 기점으로 하여 당신의 능력을 펴시옵고,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핍박의 노정을 눈물 어린 걸음으로 걸어나왔사오나 아버지께서는 저희들편이 되시어서 그들을 처리할 수 없으셨던 슬픈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보게 될 때에, 이제 1971년도의 전후를 중심삼아서 당신이 저편에 서서 악을 제거시켜야 할 때가 되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선한 아들딸을 쳐서 탕감의 노정을 거쳐왔사오나, 이제는 악을 쳐 가지고 탕감시켜야 할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세계가 달라지는 때가 왔사옵니다. 악을 탕감하여 제거시킬 수 있는 때로 설정할 수 있는 1971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제3주년이 되는 하나님의 날을 맞은 이날부터 영광된 아버지의 권한을 이 땅 위에 펴시옵소서.

아버지를 모르고 스스로 높다 하는 무리들을 굴복시키시옵소서. 아버지의 주권을 무시하고 높다 하는 자들을 굴복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만이 주관하시어 아버지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1980년대를 중심삼고는 그와 같은 것을 저희가 목격한 일들이 많이 나타날 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에서 높다 하는 무리들을 낮아지게 하여 주시옵고, 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을 빙자하는 거짓된 무리들을 제거시키시옵소서. 낮은 자리에 있던 당신의 아들딸들을 높은 자리에 세워야 할 당신의 본의를 성취하게 하시옵소서. 선한 자리에서 밟히던 무리들이 해방과 더불어 자유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만천하 앞에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시기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시대적인 혜택권이 저희들 앞에 전개되는 이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날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감사한 날인가를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날 제3주년을 맞고, 회수로는 4회째 맞는 하나님의 날이옵니다. 이 아침 이 자리에 당신의 영광이 깃드시옵소서. 이 자리를 빌어 당신의 해원이 성사되시옵소서. 당신의 해원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들이 해원되고, 당신이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해원이 오늘 저희 교회와 저희 나라와 저희 가정을 중심삼고 성사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80년대로 향해 가는 1970년대는 이제부터 7수를 넘어 안식권에 해당하는 권으로 넘어갈 수 있는 1970년대가 되어야겠사오니 이 기간에 사탄이 침범하는 일을, 아버지, 방지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아들의 권위와 딸의 권위와 가정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와 나라의 권위를 갖추고 있거든 그 책임을 다하여야겠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나라가 책임을 못 하고 교회가 책임을 못 하거든 나라와 교회의 사명을 계승받을 수 있는 종족과 가정들만이라도 책임 다하게 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들이면 여기에서 사탄이 요구하는 뜻은 제거될 것이요, 아버님이 원하시는 뜻은 성취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통일의 무리들은 이북에 있는 김일성 도당들보다 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고, 아버님을 위한 정의와 의리 앞에 서로가 단결하여 아버지께서 어떠한 무리보다도 자랑할 수 있고, 자랑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결정권이 마련돼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금년에 있어서 저희들이 달성해야 할 목적이요, 통일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신 것은 생명을 다 하라는 말이옵고,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것은 생명과 사랑을 투입하여 아버님을 모시는 것이 아버님 앞에 있어서 첫째 되는 계명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의 사랑과 생명을 받아 가지고 이것을 몇백 배, 몇천 배, 몇만 배로 배가해서 저희들에게 생명의 인연과 사랑을 퍼부어 주기위한 은사라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은사의 역사가 1971년부터 1980년도까지, 아버지, 베풀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수습하고 가꾸어 나가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저희 앞에 남아 있사오니, 저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선을 대변하는 데 있어서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악을 대항하는 데 있어서도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 저희들은 통일기반의 대열을 정비해 가지고 이 나라 앞에 기수가 되어야겠사옵니다. 하오니 선봉에 설 수 있는 개척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당신께서 기쁘신 날로 받으시옵고, 당신의 아들딸들이 기쁨의 은사로 보답하고, 내일의 소망에 벅차서 가야 할 노정을 달려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천성을 향하여 직행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한 땅에 널리어서 이 시간을 기념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서 이 시간을 기념하고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천 배 만 배 가중한 은사를 내리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기꺼이 새해의 첫날로 맞음과 동시에 새 천지에서 하나님의 날로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저희들의 자랑스런 명절로 맞게 하여 주신 것을 더욱더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한 날의 모든 일체를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세상에는 나라를 중심삼고 축하하는 날들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그러하듯이 어떠한 단체면 단체에도 축하하는 날들이 있는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에도 축하하는 날들이 있는 것이요, 또한 개인에 있어서도 자기가 축하하는 날들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이와 같이 축하했던 모든 날들은 우리 인간세계에 한정되어서 이루어졌던 날이었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하했던 날들은 하나도 없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하하는 날들을 설정한 곳이 있다면, 그곳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4대 명절이 있습니다. 부모의 날이 있고 자녀의 날이 있고 만물의 날이 있으며, 이 세 날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날이 있습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최고의 날이라고 축하하는 날들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가 되는 날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날이요, 만물에게 있어서도 최고의 날이 됩니다. 피조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날임과 동시에 피조세계를 지으신 하나님께도 최고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이러한 최고의 날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고, 이러한 최고의 축복권을 갖지 못하고 출발하게 된 것은 타락 때문이요, 그로 인하여 오늘날과 같은 타락의 역사와 타락의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좋은 날들을 자기 일대에서 축하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씨족이면 씨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또는 전세계에까지 전달시켜 가지고 세계적인 날로 축하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적은 본래 최고의 날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소원하는 것은 그러한 축하의 날들을 더 큰 날로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날들을 설정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날들은 우연히 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역사적인 내용과 더불어 설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인연의 결과로써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뜻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켰고, 그러한 기반 위에 비로소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본래 인간 시조인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완성의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축복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최고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은 부모의 날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즉, 가장 먼저 되어지는 날이 하나님의 날이요, 그 다음에는 부모의 날, 그 다음에는 자녀의 날, 그 다음이 만물의 날입니다. 순서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날에서부터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하나되는 입장에서 순차적으로 되어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류가 복귀의 도상에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축하의 날을 갖추는 데 있어서 먼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설정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먼저 세워 놓은 후 그로 말미암은 하나의 승리적 터전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지키는 명절들을 두고 볼 때도 이 명절들이 이러한 복귀의 과정을 거치면서 찾아진 날임을 알 수 있는것입니다. 만약에 타락 하지 않았다면,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그날이 하나님의 날인 동시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날 한 시간권내에서 모든 날들이 결정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까지의 역사의 내용

인류역사를 보게 될 때에,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온 역사였느냐? 부모를 찾아 나온 역사였습니다. 그 부모는 무슨 부모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모와 땅을 중심삼은 부모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부모를 찾아 나오는 역사인데, 아담 해와가 에덴 동산에서 그 부모를 중심삼지 못하고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한없이 먼 거리에서부터 반대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 시조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참다운 부모의 혈육으로 태어나 가지고 거기에서부터 참다운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개인으로부터 거짓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외적인 세계를 볼 때 타락한 인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세계가 있으며, 이 권내에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개인이 있습니다.우리 인간은 이러한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연된 세계에 개인이 살고 있다 할지라도 그 세계는 개인만의 세계가 아닙니다. 세계와 연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엉클어진 세계권내에서 참다운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려면 이러한 세계를 잃어버려야 됩니다. 이러한 세계와 짝해 가지고는 참다운 본연의 자리를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를 잃어버려야 됩니다. 그 나라와 짝해 가지고는 참다운 본연의 자리를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참다운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역사과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가 밖이 되면 될수록 더욱더 악한 권내에 처할 수 있는고로 하나님 앞에 더더욱 염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염려의 대상이 되고, 나라가 염려의 대상이 되었으며, 민족이 염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복귀도상에 있어서 세계를 복귀할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요, 나라를 복귀할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며, 민족을 복귀할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두를 복귀하려면 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먼 거리에 떨어진 인간을 복귀하기 위하여 이 세계 끝에 있는 인간들을 하늘편으로 끌어올리는 역사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늘 뜻과 멀수록 이방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특정한 나라, 이스라엘 선민이면 이스라엘 선민을 중심삼고 볼 때 거기에서 먼 나라일수록 하나님과는 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다는 것은 사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뜻을 품은 사람,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게 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계를 부정하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잊고, 나라를 잊고, 종족을 잊고, 가정을 잊고, 개인까지 완전히 잊게 해서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자아의 출발을 보게끔 해 가지고 그 승리의 터전 위에 서면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의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가정을 형성하고, 그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하나의 종족을 형성하고, 이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해 가는 것이요, 이 하나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국가권까지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울타리를 잃어버리게 했다가 반대로 찾아 세우기 위한 역사가 예수님이 올 때까지의 4천년 역사입니다.

예수의 강림 목적

그러면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오셔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4천년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준비한 것은 예수님이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마음대로 올 수 있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음대로 간섭할 수 있고 마음대로 치리할 수 있는 권을 만드시려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낼 때까지의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를 키워 나오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면서도 자기 나라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중심존재를 고대해 나왔습니다. 그 고대해 나온 사상이 바로 메시아를 대망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중심삼고 교회가 하나되고, 나라가 하나되고, 민족이 하나되고, 종족이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두가 하나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이 수고해서 이루어 놓은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수고의 결과로 세워진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반드시 예수님과 안팎의 관계가 되어야 됩니다. 창조원리 가운데 성상과 형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서도 성상적인 종족이 있어야 되고, 그 종족가운데에서도 중심이 될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그 가정 가운데에서도 중심이 될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개인의 입장을 결실해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개인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요,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요,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며, 또한 교회를 대표할수 있는 개인이요, 민족과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입니다. 이 전체를 종합한 중심적인 개인의 자격을 결정해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의 소원과 유대 민족의 불신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이었느냐? 나라를 거느리고, 민족을 거느리고, 교회를 거느리고, 친척과 가정을 거느려 가지고 거기에서 기쁨의 한 날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그 한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인류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부모의 날을 설정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그가 맞이해야 할 기쁨의 한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한 날을 맞기 위해서 30여년의 생애를 통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였지만,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배반했고 요셉가정을 중심삼은 친척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길러 준 양부(養父)의 품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이 이후의 생활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나라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울타리삼아 가지고 철옹성같이 된 거기에서 한 중심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중심이 동으로 가면 전체가 동으로, 서로 가면 전체가 서로, 남으로 가면 전체가 남으로, 북으로 가면 전체가 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그 중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해 놓은 이스라엘권에 예수님은 들어갈래야 들어갈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나라를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고, 교회를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고, 종족을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고, 가정을 기반으로 삼기 위해 왔으나 그 모든 터전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으므로 예수님이 설 수 있는 발판은 완전히 없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설 수 있는 발판이 없어졌기 때문에 나라 없는 군왕과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망명객과 같은 입장에도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망명하려고 해도 누가 환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망명을 하지요. 이렇듯 예수님은 고독단신의 운명으로 몰린 입장에서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서러웠겠으며, 친척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리린 것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그런 입장의 예수님은 어디로 피신해 가지고 자기의 제2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까지도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노리고 있던 사탄이 예수님에게 `이제 네가 갈 길은 단지 한 길밖에 없다. 죽어서 다시 돌아오는 길 외에는 없다. 살아서는 하나님의 뜻을 계승할 수 없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노정을 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소망하고 왔던, 즉 예수님을 중심삼고 전체를 통합하여 하나님께서 소망하시고 인류가 축하할 수 있는 부모의 날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한 노정이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의 탕감노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날을 맞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기쁨의 역사를 엮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런 기쁨의 날을 맞았더라면, 그 후의 인류역사는 기쁨의 역사로 연결되어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몰아냄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찾아 나오던 기쁨의 날인 부모의 날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평화의 기준을 완전히 상실한 채 신음하는 역사를 엮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의 사명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 예수님은 `다시 오겠다' 하는 말씀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에는 지금까지 반대했던 이스라엘 그 자체를 그냥 그대로 놓고서는 오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승리한 터전 위에, 승리한 개인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연결될 수 있는 무리를 모아서 민족을 이끌고 세계를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 놓은 것이 기독교 문화권인 민주주의 세계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는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2천년 동안 영적인 권을 통한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기반으로 발전시켜 나왔습니다. 이 기반은 옛날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린 때와는 달리 2천년 동안 수난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루어진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권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영적인 기준만 가지고는 안되겠으니 예수님이 재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은 영적 세계의 이스라엘권을 갖춘 터 위에 육적 세계의 이스라엘권을 갖출 수 있는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의 사명은 예수님이 이루어 놓은 영적 승리의 터전과 땅 위에 있는 영적 승리의 터전권내에 있는 이 민주세계를 규합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완결지어 놓아야 되느냐? 영적 세계에서 소망하는 승리적 조건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땅 위에도 영적인 승리의 결과와 같은 결과를 이루어서 지상 실체세계에 결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상에서의 통일된 하나의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의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원리가 가르쳐 주는 것은 지상에서 이것을 완결하기 전에 먼저 영적 세계에서 실패된 내용을 탕감하고 나서 지상에 나타나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오늘날까지의 통일교회의 역사는 영적 탕감노정을 걸어 나온 역사가 아니라 영적 탕감노정을 승리한 기반 위에 육적 탕감노정을 걸어 나오면서 남아진 역사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수십년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영적 승리의 기반을 상속받아 가지고 이 지상에 오시게 될 때에, 그를 받들기 위한 영적인 입장과 실체적인 대상의 입장에 선 그 나라가 민주세계의 국가요, 그 나라에 있어서 사상적, 정신적인 지도의 책임을 해야 할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그 나라가 영적인 입장에 섰지만 하나되어 가지고 실체적인 주님을 완전히 모신다면, 거기에서 영적 세계를 바라는 기독교와 실체적인 입장에 선 나라가 다시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영육을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을 완전히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성한 실체의 중심으로 오신 그 주님에게 접붙여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영육을 중심삼은 승리적 터전을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연결시키고, 종족을 연결시키고, 민족을 연결시키고, 국가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재림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세계에 있는 모든 국가와 기독교는 새로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어야 하는데 까딱 잘못하게 되면 제1이스라엘이나 유대교와 같은 운명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적인 뜻을 위하겠다는 일념이 그 사회의 문화와 생활 환경에서 갖추어져 있으면 모르겠지만, 자기 민족이나 자기의 국가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에 고착되어 그것을 제일시하는 입장에 있으면 번번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자기네들이 신봉하던 교리가 제일이라면서 그것만을 위주해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충을 일으키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 하늘의 섭리는 반대받는 노정을 모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되돌아와 가지고 처음부터 탕감해 나오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로마를 중심삼고 싸움을 전개하여 지금까지 천국 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이북을 중심삼고, 즉 한국 이외의 원수의 나라에 가서 되돌아오는 운명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북은 세계적인 사탄국가를 연결하는 입장에서 공산당이 주권을 세워 가지고 하늘국가를 연결하는 입장의 남한과 대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한국의 기성교회와 미주정부가 반대하지 않고 하나되었더라면 전세계의 민주세계도 한국과 하나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때가 군정시대이기는 하지만 완충기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교계와 인연을 맺었더라면, 그 인연을 통해 가지고 가정과 종족을 터전을 닦을 때까지 드러내지 않고도 내적인 기반을 갖추어 가지고 기성교회를 흡수하고 민족을 흡수해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작전을 기성교회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몰리고 쫓기는 가운데, 땅에 묻혀 가지고 나타낼 래야 나타낼 수 없는 입장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의 입장이요,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가서 이 민족이 뜻을 배반하였던 모든 내적인 탕감을 일신에 짊어지고, 또한 영적인 이스라엘권인 민주세계가 하지 못한 세계 모든 국가의 내적인 일을 일신에 짊어지고 영적으로 재차 탕감해야 되고 육적으로 재차 탕감해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영적 사탄의 공격을 받아야 되고, 육적 사탄의 공격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성교회의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요, 대한민국의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사탄과 일체가 되어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부모의 날을 설정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

우리가 이러한 노정을 거쳐 나와 가지고 비로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모의 날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비로소 땅 위에서 소망하는 참된 부모를 가질 수 있는 한 날을 가졌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이 날은 역사적인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 부모가 부모 자체만으로 남아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녀의 인연까지도 가졌다는 사실은 더욱 의의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와 자녀의 인연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어버렸고, 자녀를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먼저 부모의 기준을 복귀하고 그 터전 위에 자녀의 기준을 복귀해 놓은 것입니다.

자녀에는 양자와 직계자녀가 있는데 양자로서는 하늘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양자는 두 사랑의 결실체입니다. 두 사랑의 결실체인 자녀로서는 안 됩니다. 횡적인 입장에 있는 자녀로는 안 되기 때문에 직계의 자녀를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탕감의 노정, 즉 가인과 아벨을 복귀하는 탕감 노정을 거쳐서 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입장에서 전후관계가 이루어져야지 횡적인 입장에서 좌우관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좌우관계에 선 형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나 형님이 있으면 동생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향하는 데 있어서도 맏형으로부터 순차적으로 방향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인연을 달리해서 태어난 형제들이 횡적인 입장에 서서 두 사랑의 상대로서 하나님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본연의 이상세계인 에덴 동산에서 참부모를 중심삼은 자녀된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는 형의 입장으로 태어난 사람이 가인이요, 동생의 입장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벨인데 본래는 사랑의 결실체가 하늘편을 중심삼고 첫번째로 맺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안 되었기 때문에 다시 찾는 데 있어서는 두번째로 태어난 동생을 택해 가지고 형님의 자리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투쟁의 노정입니다. 그러한 인연이 개인으로부터 전개되어 가지고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확대된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공산세계는 먼저 이 세계의 주권을 소유하기를 꿈꾸며 나왔습니다.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일을 사탄편에서 먼저 외적인 형태를 갖추어 나온 맏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중에 나온 입장에 서서 이것을 탕감복귀하여 장자의 입장을 찾아 나가지 않고는 세계는 통일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가인과 아벨의 입장으로 분립하여 장자권을 복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단된 국가가 되지 않고서는 뜻의 기반을 이룰 수 없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과 같이 분립된 입장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계는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으로 갈라진 나라를 중심삼고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그런 나라로는 한국과 중국과 월남과 독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분단된 입장에 있는 나라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주세계를 통일하고 공산세계를 굴복시켜서 수습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주체국이 어느 나라냐? 그 주체국은 한국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는 한국에서 삼팔선과 판문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남은 민주세계의 초점이 되는 곳이요, 이북은 공산세계의 초점이 되는 곳입니다. 민주세계를 하늘편이라고 하고 공산세계를 사탄편이라고 한다면, 한국 땅은 하나님과 대사탄이 서로 맞붙어서 싸움을 하는 곳입니다. 거기에 개인을 걸고, 가정을 걸고, 종족을 걸고, 민족을 걸고, 국가를 걸어 가지고 싸움을 하는 초점이 되는 곳이 판문점입니다. 이런 곳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 세계에 있어서 참소할 수 있는 인연이 지상세계에 실체적으로 현현된 곳이 판문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공산세계의 모든 국가가 평화의 기치를 들고 안팎으로 자기의 모든 환경과 권한을 버리고 스스로 패자의 입장에 섰다고 직고할 수 있는 때를 갖지 않고서는 이 땅위에 평화의 천국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누구나 가야 할 7년 노정

여기에서 여러분은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설정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도표를 그려 가면서 설명하심)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습니다. 여기에서 거짓 부모가 생겨났습니다. 거짓 부모가 생겨나서 악이 초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대로 선한 부모인 참부모를 현현시켜 가지고 선으로 대치시켜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기반이 되어야 하느냐? 가정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거짓 사랑의 인연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악의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잃어버린 선의 결과를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재림주님은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부모의 인연을 하늘편과 다시 하나된 자리에서 대신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연결지어 가지고 축복의 기반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부모의 인연이 설정되어 선의 가정적 출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여 참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찾아지는 가정도 장성기 완성급의 자리에서 참부모의 인연을 가져야만 그 가정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7년노정은 어떤 사람이든 가야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직 인간이 가야 할 완성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원리주관권내에는 3단계의 성장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은 완성기까지 21년, 즉 20수에 해당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담이 완성하기 위해서는 완성기까지의 20수에 해당하는 만 20세를 중심삼고 완성기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기 완성급까지 올라가려면 7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장기간이 3단계이고 한 단계는 7년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 해와가 장성기(2단계×7년=14년)에서 완성기까지 올라가 완성하려면 7년이 남아 있으므로 아직 7년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7년씩 세 번에 걸쳐 21년노정을 걸은 것도 뜻을 대할수 있는 하나의 가정적 승리의 기점이 되는 기간이 21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완성기까지의 기간이 21년 노정이라는 것은 여기에서 다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인간들이 가야 할 노정 앞에는 무엇이 남아 있느냐? 참부모를 맞음으로 대승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는 어디까지나 완성기에서 현현하는 것이 아니라 장성기 완성급에서 현현해야 하기 때문에 이 7년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완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 세상에서 세계적인 말세를 맞기 전에 거쳐야 할 7년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7년 대환란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7년노정은 싫든 좋든 가지 않으면 안 될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의 의의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1960년도부터 제1차 7년노정을 걸어와 가지고 1967년을 다 보내고 1968년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참된 부모의 인연을 끌고 올라가서 하나님의 날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圈)까지는 아직 사탄이 주관하기 때문에 가정이 나가는 도상에 사탄이 총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간이 그런 기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정적인 내연(內緣)을 중심삼아 가지고 1963년부터 통일교단에서 한걸음 물러섰습니다. 왜 물러섰느냐 하면 사탄의 공세를 받고 있기 때문에 후방으로 물러섬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늘의 작전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직접 교회를 이끌지 않고 유협회장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7년노정 동안에 무엇을 했느냐? 가정에 스며들 수 있는 사탄의 내연을 전부다 잘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1968년을 맞으면서는 하나님이 찾아가실 수 있는 이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사탄의 참소조건을 안팎으로 전부다 가려야 했습니다. 그것을 평면적인 입장에서 가림과 동시에 과거 역사노정에 왔다 간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과 모세와 예수님이 못다 이룬 것을 중심삼고 내적인 탕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십자가의 노정을 걸어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이것을 내적으로, 혹은 실체적으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기간이 7년노정입니다. 이렇게 하여 1967년도를 넘기고 1968년도를 맞는 정월 초하루를 기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날을 설정했던 것입니다.

이날은 어떤 날이냐? 인간 시조가 꿈에도 소원하고 바랐던 완성단계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날이요, 창조본연의 세계가 소원하는 날이요, 하나님이 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소원하시던 그러한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조물이 소원하던 그날이 이날이요, 창조주가 소원하던 그날이 이날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 해와가 축복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그날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날은 선한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아담과 해와가 비록 개체는 다르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명의 일체를 이룰 수있는 기점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은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권을 넘어서 해방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분리된 입장에서 다른 생명의 인연을 계승하여 악한 조상으로 출발했던 모든 한의 여건을 넘어서 선한 이 자리에 올라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재출발할 수 있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날이 설정된 것입니다.

부모의 날도 이 자리에서 잃어버렸고, 자녀의 날도 이 자리에서 잃어버렸고, 만물의 날도 이 자리에서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날도 이 자리에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날은 왜 이 자리에서 복귀할 수 없느냐? 하나님의 날은 어디까지나 완성 이상의 날이기 때문에, 다른 날들은 이 자리에서 찾았지만 하나님의 날을 찾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963년도에 만물의 날을 책정한 후 거리를 두고 가정적 내적 탕감을 완결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입니다. 사탄이 가정을 중심삼고 침범한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선생님 가정이 새로운 가정으로 출현하여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완전히 절단시켜 놓고, 하나님만이 간섭하시고 주관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결정지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날이 설정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이렇게 해서만이 설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설정됨으로써 기쁨을 누리실 수 있게 되신 하나님

여러분이 이와 같이 제4회 하나님의 날을 맞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을 맞기 전과 맞은 후의 차이에 대하여 별로 못 느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제와 이 날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천지의 차이가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세상에서는 누구의 생일을 맞아서 축하하고 누구의 결혼기념일 등을 맞아서 축하하고 그러지만 하나님의 날을 맞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는 축하의 날들을 맞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축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런 날들을 축하할수 있었던 것은 더 좋은 날을 국가적인 날로더 좋은 날을 세계적인 날로 세워 나왔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노동의 날이니, 무슨 여성해방의 날이니 하는 이런 날들은 전부다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한 방편적인 축하의 날들입니다. 그 축하의 날들은 그날 자체로서 기쁨을 누리기 위한 날이 아니라 지금까지 하나님의 날을 찾아 나오는 과정에서 필요한 방편적이고 조건적인 축하의 날이지, 절대적인 명사를 쓸 수 있는 축하의 날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최고로 축하할 수 있는 날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축하하는 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그날을 맞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날이 있더라도 그 날을 축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랄 수 있는 한 날을 앞에 두고 그 날을 동경하면서, 그 날을 세계적인 기쁜 날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축하하는 기념의 날이라면 그 날은 허용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고 축하하는 날이 있으면 그날은 하나님 앞에 배반 중의 배반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도 1960년도에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설정하고, 1963년도에 만물의 날을 설정할 때까지 생일을 쇠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어머니의 생일이라든가 누나의 생일 등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있더라도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날이 설정되어야 비로소 그런 날들을 기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날은 이런 날들을 축하할 수 있는 기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다 흘려버리고 하나님의 날을 추구해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념할 수 있는 수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혹은 예수님이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을 기념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예수님에 대해 슬픈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을 축하하는 것을 도리어 큰 아픔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기쁜 축하의 날을 못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서 이와같이 기쁜 하나님의 날을 설정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비로소 역사시대에 있어서 이 땅을 대하여 혹은 인간을 대하여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천지창조 이후 처음으로 이 땅 위에 기쁨의 세계가 깃들 수 있는 때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표방하는 것

월남 전쟁에서 미국이 후퇴하는 문제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졌느냐 하면 1968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점차적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세계는 그때부터 다각적인 시대로, 다원화 시대권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민주주의 이념이나 공산주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상을 추구하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가 버리고, 색다른 민족주의적 국가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날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 아닙니다. 국가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날과는 다른 국가주의 세계권내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색다른 국가주의라는 것은, 옛날의 국가주의는 소생의 입장이요 이번의 국가주의는 장성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의 국가주의가 첫번째라면 이번의 국가주의는 두번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국가주의적인 국가는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가인적 시대권의 국가였지만, 지금의 국가주의적인 국가는 사탄의 권한이 물러가는 새로운 국가주의적 국가입니다. 그것은 지금의 국가주의적 국가는 아벨적, 동생격인 국가주의적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표방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계주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통일적인 사상 세계를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주의를 표방하고 나가는 과정에서 국가를 계승받아야 할 시대가 와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주의적 국가 시대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차원에 놓여 있고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이러한 역사적인 현실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에 우리의 앞길이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민을 새롭게 단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내셔널리즘을 미국도 모색하고 있고, 소련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색하고 있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이념을 중심삼고 앞으로 세계의 모든 국가를 흡수할 수 있는 좋은 시대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에, 이제야말로 6천년의 한의 역사가 끝나고 국가적 기준과 세계적인 기준이 일시에 접붙여 들어가는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기에서 정성들이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나라보다도 더 강력하게 하나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볼 때에,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집권자들이 하나되어 있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공산당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리에 있어서 하나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어떠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소망의 나라를 바라고 전체가 일치되어 철두철미하게 통일의 기반을 형성하여 어떠한 국가보다도 우월한 자리를 결하고 나가게 된다면 여기에서부터 세계 국가는 풀려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관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봉헌해야 지상에 천국가정이 세워진다

오늘 우리가 3주년 하나님의 날을 맞고 있는데 지금 이때는 어떤 때냐? 제1차 7년노정을 거치고 나서 제2차 7년노정의 3년을 지내는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나오던 때가 있었습니다.(1963년) 그때는 선생님은 가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개인을 중심삼고 나오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여러분이 가정을 중심삼고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때 선생님이 가정을 중심삼고 나가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적 주관 가정권을 형성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러한 가정권을 마련하기 위해서 앞으로 4년간 총진군해야 할 시기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가정이 철옹성같이 하나되는 날에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하나님만이 전후좌우로 사방을 통솔하고 관리할 수 있는 완전한 하나의 중심 가정이 되면 그 가정은 국가를 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국가가 몽땅 움직여 나갈 수 있는 권이 벌어지는 날에는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운세가 새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를 중심삼고 이 시대를 보는 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교리는 따로 있고 탕감역사는 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세상의 운세를 넘겨 버리고, 하늘의 운세로 접어들어가게 하기 위한 탕감역사를 현재 땅 위에서 영계와 실체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판가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 전에 무엇을 했느냐 하면 봉헌식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의 가정 자체도 하나님 앞에 입적하지 못했습니다. 입적하려면 가인적인 가정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여러분이 제일 사랑하고, 심정적 기반이 되는 아내를 빼내어 동원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중에 반대하거나 데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가 최일선에 나가서 상봉할 수 있는 가정적인 일치의 터전이 연결되었다는, 승리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조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선생님의 가정이 비로소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승리적 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식도 했고 이층에서 선생님의 가정 봉헌식을 치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애기들에게도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봉헌을 하는 데 있어서 질서를 세워야 됩니다. 하늘의 가정의 있기 전에 천사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가정을 봉헌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한도 해원해 드리고 땅 위의 소원도 풀어 주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는 예수님의 상대격, 혹은 죽어간 사도들의 상대격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마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내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횡적인 입장에 있는 영계의 영인들을 모두 땅 위에 재림시켜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기준을 연결시켜야만 비로소 지상에 천국가정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의 책임

이것을 하게 되면…. 기성교회를 중심삼은 교단은 전부 가인권입니다. 즉, 천사장권이라는 것입니다. 천사장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고 죽어간 영인들이 땅에서 하늘권, 즉 아담 가정권을 신봉하고 직접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인연이 지상에 맺어짐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기성교회는 터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통일교회를 극성스럽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영계에서 데려갈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다가 나가서 반대하는 사람은 데려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해 볼 때 그런 사람이 세 명이 있었는데 세 명 다 영계에서 데려갔습니다. 원래 두 사람은 남겨 놓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앞으로 그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원리적인 면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앞놓아 가면서 처리해 주시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은 과연 무서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무서운 곳이예요.

오늘 제3주년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으로 이와 같은 운을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횡적인 이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이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도 그래요.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생겼고, 예수님의 한이 생겼고, 이스라엘의 한과 유대교회의 한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려면 통일교회의 가정들이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여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도 풀어 드려야 되고 예수님의 한도 풀어 주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한이 어디에까지 맺혀졌느냐? 개인, 가정, 종족권에 맺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교회권에까지 맺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를 용서해 주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우리를 원수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원수시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들을 원수시하면 하나님이 지상에 복귀섭리를 하실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원수시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원수시할 것이 아니라 같은 형제요, 같은 자매의 인연을 찾아 나가고, 그들도 같은 민족 같은 국가의 백성이요, 같은 세계의 한 형제라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반대하는 그들을 따라가야 되는데 그것은 그들과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부터는 공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방비하면서 수세를 취했지만 이제는 따라가면서 공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뜻 앞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기성교회를 더욱 사랑하라

그런데 우리가 따라갈 때 그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머리를 숙이면 그들이 복을 받지만, 반대해서 밀려가게 되면 자기들이 닦아 놓은 그 기반을 몽땅 우리에게 인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세는 망해 떨어질는지 모르지만 2세는 통일교회에 바치고 가야 합니다. 가는 데는 그냥은 못 갑니다. 우리가 수고한 것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고 탕감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들딸을 탕감했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가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늘 부모 앞에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부모는 처단되더라도 그 자녀는 하늘 자녀를 대신해서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자녀를 바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악이 최후에 심판을 받아 추방당하게 될 때에는 악이 선의 세계에서 도적질해와서 갖고 있던 것은 전부다 내놓고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마찬가지 이치인 것입니다. 악한 녀석이 선의 것을 침범하여 선의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처벌당하게 될 때에는 그 선의 것을 모두 남겨 놓고, 그 나라 앞에 바쳐 놓고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기성교단의 책임자들이 통일교회가 같이 가자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그들은 점점 쫓겨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가지고 공들여 쌓아둔 복은 후손에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쌓은 공적이지만 그 공적은 아들딸 앞에 열매맺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딸은 찾아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이 장자를 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나오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가 기성교회를 대하여 본격적으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에서는 죽겠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날에는 자기의 아들딸을 바치고 가야 됩니다. 그러니 1세는 망하더라도 2세는 하늘권내로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래서 지금은 기성교회의 똑똑한 사람들이나 대학가의 젊은이들을 통일교회의 원리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권내로 몰아넣기 위한 작전을 사방으로 세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970년도를 넘어서 가지고 1971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한 6,7개월 동안은 상당히 복잡할 것입니다. 6,7개월 동안은 상당히 복잡하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그런가 두고 보십시오. 이제는 기성교회에 새로운 움직임이 하나의 깃발같이 나타나 가지고 전체 교계에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시대권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말하는 통일운세의 세계가 우리의 목전에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예언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원리적인 관입니다.

3년 동안은 아담 해와를 찾는 기간

통일교회의 원리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역사세계와 더불어 일치화되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정세와 더불어, 세계의 역사와 더불어 일치화되어서 풀려 나가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대를 외적인 세계 역사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1970년대는 내적인 세계역사시대라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내외적으로 20년간입니다. 이 20년 기간에 세계는 급변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세계로부터 밟히고 시궁창에서 허덕이는 것 같지만 한 바퀴를 빙 돌고 나면 시궁창과 같이 가장 낮았던 자리가 제일 높은 꼭대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이제야말로 1970년대가 왔고, 1971년이 우리앞에 왔으니 이제부터 7년간을 싸워 나가야 됩니다. 이 1971년부터 7년간만 싸우면 제3차 7년노정에서의 3년노정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1974년까지가 제2차 7년노정이므로 지금부터 7년이면 제3차 7년노정에 있어서의 3년노정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7년노정을 싸우며 나가는 데 있어서 충성하고 효도하는 것은 이 땅 위의 탕감을 위한 충성이나 효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100일을 충성하고 효도하면 그 100일의 열매를 여러분 자신이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잃어버린 원한의 터전을 가정을 중심삼고 몽땅 다시 찾을 수 있는 해원의 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원한의 터전은 해와로 인해 생겼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아벨적인 가정의 부인들이 일선에 나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0시에 말한 통일기반 확보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느냐? 그것은 가정 주부들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결과는 간단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여권(女權)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운세권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1970년대는 여자의 최고의 한 때, 여자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때입니다. 또한 이때는 6천년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여성이 꽃필 수 있는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때는 인류역사가 생겨난 이후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하늘 나라를 창건하는 데 제1의 충녀가 될 수 있고 열녀가 될 수 있고 효녀가 될 수 있는 한번밖에 없는 때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이 기간에 여자들은 동원에 응하고 싶으면 응하고 응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받지 않은 가정은 내가 간섭할 책임이 없습니다. 그럴 사명이 없어요. 왜냐? 아직 탕감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탕감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주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탕감된 사람만 주관할 수 있기 때문에 탕감조건을 세운 입장의 축복받는 사람은 주관할 수 있지만, 탕감권을 넘지 못한 축복받지 않은 사람들은 가라 말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이 기간이 남자들에게는 어떤 기간이냐? 예수님은 공생애의 3년노정을 승리로 끝내고 가정을 형성하려고 했었는데, 남자들에게는 이 기간이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해와를 복귀하는 기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부를 복귀하는 평면적 기간이요, 가정을 이루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고 탕감하는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남편들은 부인들을 함부로 찾아가면 걸리는 것입니다. (웃음)

일시적인 마음을 먹고 행동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인들은 수고하는데 남편들은 구경만 해서도 안 됩니다.

해와가 타락할 때에 천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인들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천사장격인 남편들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본래 그 원동력이 되는 사람은 누구였느냐? 아담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러한 아담격 대표자로 서서 지금도 부인들을 후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천사장이 후원하고, 아담이 후원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아담 해와를 재창조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천사장과 아담이 하나되어서 신부를 찾는 데 있어서 후원을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본래는 그랬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 되었기 때문에 아담격 대표자와 천사장격인 여러분이 하나되어 가지고 공동작전을 해서 본연의 해와를 찾을 수 있는 탕감노정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지금이 마지막 고비입니다. 알겠어요? 「예」

동원된 부인들을 후원해야 할 남편들

원리관으로 볼 때에, 이렇게 동원되고 후원해 주어야 하는데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대답해 봐요. 「그래야 됩니다」 축복받은 남자들, 손들어 봐요. 그래 여러분들은 그런 일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라도 섭섭하게 생각하면 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과거에 왔다 갔던 선한 선조들이 주먹을 들고 `이놈의 자식' 하고 호통을 친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천법에 의해서 용서할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 인류는 소망의 무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축복가정들은 과거의 선조들이 `이놈' 하고, 현재의 세계 인류가 `이놈' 하고, 미래의 후손들까지도 `이놈' 하면서 3시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거룩한 제물로 등장하여야 할 하나의 가정인데도 불구하고 가정에 불신의 요건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둘로 딱 갈라 놓는 것입니다.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분립상태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도 갈라놓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통일교회에는 지금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에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에 무슨 일이 생겼고, 현재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고,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이고, 천국에도 무슨 일이 생길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이 기간에 매달 열 사람당 보리쌀을 한 가마니씩 보내 주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 되는 사람들은 자기가 밥을 먹고 있는 한 부인들을 후원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걸립니다. 그러니 후원해야 되겠어요, 안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부인을 임지로 보낸 지구장들이 소위 말하기를 `아, 이거 비록 우리 여편네가 나가 있지만 우리도 먹지 못하는데 뭐가 있어야 후원하지' 하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웃음)

남편들이 후원을 못 해주면 해와는 창조가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그러면 다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프리카 오지에 보내서 그 일을 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진짜 하늘의 법도를 적용할 것입니다. 만약 이 기간에 탕감하지 못하면 이 역사에 있어서 제일 비참한 오지에 가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탕감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12월 한 달이 지나갔는데 왜 부인들에게 2천원을 보내라고 했겠어요? 그것을 수리적으로 말하면…. 삼 칠은 이십 일(3×7=21)입니다. 21수는 완성수입니다. 그래서 본래는 2천백원을 보내야 하는데 만으로 해서 2천원을 보내라고 한 거예요. 한국식 나이로 스물 한 살이 만으로 하면 스무 살입니다. 그러나 2천원이 재수 없다고 느껴지면 2천 백원으로 채워서 보내세요. 그렇게 채워 가지고 부인에게 보내 주라는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났는데 이번에 2천원을 보내지 못한 남편들, 손들어 봐요. 이녀석들! 도적놈들 같으니라구. 그러고도 밥을 먹었어! 돈이 없거든 거지 행세를 해서라도 벌어다가 보내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거지 행세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어떠한 위신과 체면을 가리지 않고 해야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러분이 후원하지 못한다면 부인들이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서로 형제의 인연이 맺어져 있지만, 기름을 준비해야 했던 열 처녀의 입장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즉, 열처녀 중에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준비하지 못해서 신랑을 맞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동료들에게 `나 좀 도와주소'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지금 곤란하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신랑을 맞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사연이 맺혀져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조금 전에 손든 녀석들, 보내겠어요, 안보내겠어요?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통일교인이 된 사람들은 정성을 모아 가지고, 형님이 됐든 누나가 됐든 전도 나간 가정을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동원해간 부인들의 애기들을 돌봐 주든가 그 남편을 후원하든가 누구든지 한 사람씩 붙들고 후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전도 나간 사람들을 후원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도 교회를 후원하고, 나가 있는 사람들을 후원하기 위하여 어제 집을 얻으려고 준비했던 720만원을 수표로 떼어 각 지구에 보내 주었습니다. 전체를 도와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전체를 대표해서 각 지구에 성전을 마련하라고 돈을 보내 준 것입니다.

그러면 왜 교회를 환경적으로 후원해야 되느냐? 부모의 책임은 집을 마련해 놓고 세간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조건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나라가 해야 될 것인데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년에 선생님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런 의무를 중심삼아 가지고 교회를 후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제 지구장들에게 돈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지구가 딱 24개였다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그래서 `24수는 천상세계의 24장로에 해당하는 수다' 하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720만원을 나누어 주었는데, 어떻게 72가정과 같은 수인 72수로 맞아떨어지느냐는 것입니다. 야! 이거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아주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야!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이렇게 수리적인 기준까지 모두 맞추면서 나가시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지구장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책임을 백 퍼센트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이면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백 퍼센트 해야 되고 자녀면 자녀로서의 책임을 백 퍼센트 해야 됩니다.

동원에 동참하여 전통을 세우자

축복가정에는 이번 일로 해서 통일가정으로서의 전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통일교회의 가정은 이렇게 가야 된다고 하는 전통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년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여기에서 교육적인 내용이 생겨납니다. 자식들이 `우리 엄마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엄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는 `우리 인류의 엄마는 세계에 둘도 없는 나쁜 엄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타락했기 때문에 해와는 세계에 없는 나쁜 년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 조상 어떤 할머니는 밟아 버리고 싶은 할머니라 할지라도 우리 어머니는 세계에 둘도 없는 어머니요 아내라고 하면서 자기 아들딸이 추대하고 남편이 추대하고 세계인류가 추대하고, 역사가 추대하는 그러한 어머니요 아내가 되어야만 몽땅 해원성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팔자가 사나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역사에 없는 일을 해 놓고, 여자들을 쫓아 내보내고 성공하겠다고 이러고서 있는 것이 얼마나 처량한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러나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들 때문에 욕먹은 것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욕이라도 먹었기 때문에 이 인연이 있게 되었고, 여자들을 내세운 것입니다. 여자들을 내세운 것은 그들을 탕감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배후를 세밀히 알게되면 오늘날 우리의 때가 어느 권내에 와 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탕감역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니 얼마나 복잡합니까? 이러한 한 시대에 여자들이 일선에 나서서 인류 앞에 `하늘 길은 이렇게 가야 됩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앞으로 올 남편들이여! 앞으로 올 자녀들이여! 하늘은 이렇게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교훈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좋은 교육의 원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열녀의 절개가 통일종족권내에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녀비를 세워야 되는데 몇백 개는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몇천 개 이상은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효녀는 이 땅 위에서 열녀가 되어야만 부모의 딸로서 효녀의 명칭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효녀는 되었지만 열녀가 못 되면 그 효녀의 이름이 삭감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열녀가 되면 그로 말미암아 효녀의 기준을 완결할 수 있고, 남편에게만 열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대해서는 충녀가 될 수 있는 기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자는 여기에서 비로소 여자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최고의 교육의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이 영광된 자리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가는 여자들은 복이 있을지어다' 내가 `복이 있을지어다' 하면 여러분들은 `아멘!' 해야지요. (웃음)

복잡다단한 사연을 거치며 복귀섭리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라

선생님에게는 `이제부터 7년노정, 1974년까지 4년노정과 제3차 7년노정의 3년까지 가게 되면 어떻게 되어야 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관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것을 중심삼고 기도하고 또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싸우겠으면 싸우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위해서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통일교회의 운세권을 원리에 의해 안팎으로 이만큼 갖추어 가지고 이 자리까지 끌고 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보기에는 선생님이 쓱쓱쓱쓱 하는 것 같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미리 짜서 그것을 실천해 가지고 그 결과가 외부에 나타난 후에야 여러분에게 세밀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임지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미쳤지' 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편하니까 이런 놀음을 하지' 하면서 `힘이 달랑달랑하는데도 힘을 다해서 이렇게 터를 만들어 놓으니 또 무슨 심보가 사나와서 발길로 차 버리는 거야' 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전도를 안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부처끼리 의논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 앞에서 아나니아 부부가 땅을 판 돈을 바칠까 말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웃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늘 법도에 안 걸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도 나간 사람은 나오지 않는 식구들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편지를 하고, 될 수 있으면 출장 요원을 파송해 가지고 목을 끌고서라도, 넥타이를 끌고서라도 데리고 와야 됩니다. 안 오려고 하고 꾸물대거든 억지로라도 끌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굴 망하게 하려고 이런 놀음을 하느냐' 하면서 전부 다 끌어다가 합동작전을 해 가지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전도대원들의 책임자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련회 할 때 교육시킨다고 하면 부리나케 가서 데려올 것입니다. 이미 한 달은 지나갔지요? 전도 안 나간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천대를 받으면서 체면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움 가운데 이 3년노정을 가야 할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잃어버린 사람은 언제나 저렇게 비참하다는 사실을 교육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알겠어요? 「예」

만약 그러한 여편네가 있다면 그 여자는 사탄 중의 사탄이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편네가 무슨 여자입니까? 그러한 여자가 한방에 같이 있으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라는 거예요. 그러니 그 여자를 위해서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말을 퍼부으라는 겁니다. `이년, 너는 남편을 잡아먹고, 자식을 잡아먹고, 우리 선한 선조를 잡아먹는 요귀다'라고 욕을 하라는 겁니다. 그런 아내를 옆에 두고 흥얼거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 길을 출발할 때에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이 길을 출발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잡다단한 역사적인 내용을 가려 나가면서 복귀섭리가 진행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전도를 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7년노정에 내재된 사연들이 얼마나 복잡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계에 가서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통일교회 원리에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 빚을 갚으려 해도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해 주시는 통일교회

이렇게 되어서 하나님의 날이 설정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오늘로써 3주년을 맞아 가지고 앞으로 7년 고비를 넘어서게 될 때는 어떻게 될 것이며, 제3차 7년노정을 넘어서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면, 참 흥미진진한 놀음이예요. 한 점에서 되어지는 그 사실에 세계가 좌우되더라는 겁니다. 중앙은 언제나 한 점인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가 넓다 하더라도 그 세계, 혹은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 이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중앙인 이 한 점에 연결되지 않고 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중심의 한 점에 서 있게 되면 그 한 사람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슬픔은 세계 전체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세계의 중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에 둘도 없는 단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 단체를 때려 부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그 사람들을 전부다 그냥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대 정부 작전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우리의 일을 반대하면서 깐질깐질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 그 사람 안 되겠는데…' 하고 생각만 해도 누가 바꾸는지 대번에 인사조치되더라는 것입니다. 참 신비스러우리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겁니다.

이와 같이 이 나라를 중심삼고 실증적인 역사를 보여 주시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구하시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음을 느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는데도 그렇게 깐질거리는 사람은 어차피 날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세계의 정객들도 자기가 높다고 꺼떡거리면 영계에서 다 데려가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이제 중공의 모택동이나 북한의 김일성이는 통일교회가 어느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되면 가지 말라고 해도 영계에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앞으로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싸움을 일대일의 입장에 올라올 때까지 미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대등하지요? 플러스(+)와 플러스(+)라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와 이북을 비교해 보면 플러스와 플러스가 못 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는 마이너스(-)꼴입니다. 우리가 약하다는 거에요. 김일성이는 그때까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라를 붙안고 거리에 나서서 김일성이에게 충성하는 이북의 당원 이상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붙들고 우리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면 김일성이는 절대로 못 내려옵니다. 내려오려고 하다가는 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신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3년 기간 동안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김일성이가 못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과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성경말씀과 같이 우리 전체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우리의 생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 한계점이 곧 생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다하면 그것이 곧 정성을 다한 것이요, 마음을 다한 것이요, 뜻을 다한 것입니다. 생명을 다하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서 생명을 다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를 하면서도 `이렇게 죽어야 천국에 가지' 하면서 죽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예수님이 남기고 간 뜻을 이루고, 만민을 살려주기 위한 것이다' 할 때는 예수님의 자리에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이 일치된 점에서 우리가 하나되는 것도 내가 살기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가 살기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라를 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속되면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고 무엇이고 오직 통일교회만 잘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 교파 제일주의로 나가면 자기 교파를 사랑하는 교파가 망하는가 망하지 않는가 보십시오.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하지 않는 교파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교파가 남아진다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한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통일의 소망의 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의 소망의 나라는 통일교회만을 위한 소망의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소망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공산당은 `네 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식입니다. `네 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식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개인주의 중에서도 최고의 악질적인 개인주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대하면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김일성이가 취해 나온 독재정권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반대하면 자기가 사랑하는 친구나 동기도 다 목을 자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결국은 모두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무엇이냐?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고, 네 것은 네 집안의 것이 아니요, 네 나라의 것도 아니요, 세계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네 것은 곧 세계의 것이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식과 사탄식의 다른 점이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이 여기에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공산당식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지만 하나님식은 `내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은 세계의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원! 나라를 복귀하고 다음에 또 세계를 복귀해야 되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라만 복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빠르면 3년 이내에 세계가 머리 숙이며 들어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매스컴이나 전신망이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스위치만 누르면 30분 이내에 세계 어디에든지 전부다 원하는 대로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정세권내에 한국이 평화적 남북통일을 하여 세계에 없는 승리적 복지 국가를 창건하였다 하게 될 때에는, 세계 만민은 보지 말라고 해도 보려고 할 것이요, 오지 말라고 해도 오려고 할 것이요,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결해야 됩니다.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됩니다.

통일기반 확보를 위해 다함께 수고하고 투쟁하자

선생님은 이런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많은 몰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발전한 것입니다. 나를 치려고 할 때는 얼마든지 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세 번만 치고 나면 더 이상 못 치고 후퇴합니다. 후퇴할 때에는 자기가 갖고 있던 선의 열매를 나에게 상속해 주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작전은 처음에는 때리고 찾아 나오지만 나중에는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제1차 세계대전도 사탄편 국가가 3분의 2쯤 이기다가 망했고, 제2차 세계대전도 먼저 친 사탄편 국가들이 이기다가 망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오늘날 사상을 중심삼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탄편인 공산당들이 먼저 치고 나오고 있는데 이젠 그들이 망할 단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의 내용을 볼 때에, 우리가 핍박받는다고 서러워하지 말고 외롭다고 서러워하지 말고, 불쌍한 입장에 있다고 서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이러한 핵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중심삼고 최고의 극한 수난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면 전체의 중심으로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칠판에 쓰시면서 말씀하심)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럴 수 있는 가치와 내용이 있는 것을 알고 가진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하고 나오면 어떻게 되겠어요? 세계를 빙 돌아서 내 뒤에 달린다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꽁무니에 수두룩하게 달려 있기 때문에 수속만 밟으면 세계의 일등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미국의 월가(Wall Street)의 재벌들을 부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그 돈들이 전부다 누구에게로 갈 것이냐? 미국 녀석들 아무리 해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들을 전부 다 통일사상권내에 들어오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그들을 한 점으로 몰아넣기 위하여 세계적인 조직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여러분은 한번뿐인 이때를 의의있게 보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금년에 세운 `통일기반 확보'라는 엄청난 기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보잘것없는 가냘픈 여자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면 교회도 통일되는 것이요, 나라도 통일될수 있는 운세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가정도 완성되는 것이요, 개인도 사망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통일적 기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내용을 알고 그 기준 앞에 일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통일기반 확보'라는 연두표어를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여기에서 적합한 결과를 가져다 주기를 이 하나님의 날을 기해서 재삼 바라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1971년도를 맞이하였사옵니다. 이 새로운 날을 맞고 이러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통일교회의 짧은 역사가 슬픔의 역사만은 아니었사옵니다. 창세에 아버지의 대업을 중심삼고 소원하시던 그 소원의 일념이 파탄된 그 순간부터 당신은 몇천만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해 인간 하나를 찾기 위해 수난의 노정을 걸어오신, 거짓말 같은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잃어버린 아들 하나를 부활시키기에 이렇게 힘을 들였다는 사실과 믿지 못하는 인간들을 통하여 새로운 복귀의 터전을 닦기 위해 뼛골에 파고드는 많은 수고를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이러한 갖가지의 사연을 생각하고 더듬어 보게 될 때, 저희들은 부족한 선조를 가진 타락의 후예들인 것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아버지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자신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원망스럽고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하오나 아버지께서는 이와같은 자리에 있는 불쌍한 무리들을 지금까지 배후에서 간섭하시면서 믿을 수 없는 자를 믿어야 했고, 따라올 수 없는 자를 따라오게 해야 하셨사옵니다. 이러한 처참한 길을 걸어오신 아버님의 그 모든 정상(情狀)을 생각하게 될 때에, `어이하여 역사과정을 이렇게 엮어야만 했던가' 하면서 우리 선조 가운데에 좀더 잘난 사람이 있어서 몇천 년 몇만 년 전에 당신의 심정을 통하여 가지고, 당신의 심정을 가르쳐 주고 당신의 감정을 느껴 당신에게 효성한 조상이 없었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오늘에 처해 있는 저희들의 한도 되옵니다.

하오나 당신은 지나온 역사과정에서 당신이 찾고 싶은 사람을 찾지 못하셨고, 발붙일 수 있는 한 지역을 찾지 못하셨던 것을 아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이렇게 찾아오시던 그 노정 위에 선민권을 만들어 놓으시고 이방의 침범을 받을 때에 그렇게도 보호하고 그렇게도 육성해 오신 이스라엘을 중심삼아 가지고 당신의 실체적 대상으로 이 땅 위에 보내심을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그 민족과 그 교단과 수많은 종족 앞에 몰림을 당하여 십자가에 죽었던 원한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거기서 아담이 타락하였던 것보다도 더 원통한 사건이 인류역사상에 반복되었는 사실을 저희들은 진정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로부터 수난의 역로를 거듭하면서 2천년의 역사를 거쳐왔사옵니다. 그간에 기독교인들은 피를 흘리며 비참하게 순교의 행각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제단이 연면해 나온 것은 이름난 그 어떤 교구장 때문에 아니요, 어떠한 교역자 때문도 아니었사옵니다. 하늘을 위하여 이름도 없이 죽어간 숭고한 선열들의 피를 통하여 연면해 나온 것을 아옵니다. 정성을 다하는 가냘픈 여자들의 몸을 통하여, 정성을 다짐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성장해 왔고, 기독교가 가는 비참의 길을 그 여성들의 눈물로 덮어 나왔사옵니다.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탕감의 해원을 간절하게 바라고 나왔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저희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걸어 나가는 노정에서 여자들을 세워 놓고 엄청난 역사적인 축복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한때를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진정으로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소원의 한때가 찾아왔사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시대가 저희앞에 찾아왔사오나, 저희들이 무지하기에 자칫 잘못하여 그때를 모르고 그냥 넘겨 버릴 뻔했는데 당신의 고마우신 은사로 말미암아 역사적 배경이 이렇게 엮어졌고, 이러한 인연을 통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아옵니다. 하늘을 통하여 가르쳐 주고, 아버지를 보여 줄 수 있으며, 저희의 생활을 통하여 증거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신 은사에 저희들은 천만 번 감사를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적인 창조의 깃발은 이미 올려졌사옵니다. 이미 새로운 발걸음 소리는 울려 나오고 있사옵니다. 가냘픈 여자의 이름을 갖고, 비운의 운명을 가름하기 위한 싸움에 칼을 들고 나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에게 강하고 담대한 당신의 힘을 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들을 불신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옛날과 다른 입장에 서게 될 것이오니 누구든지 부디 두려운 마음을 갖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이들을 환영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아버지는 즐거운 한 날을 그들 앞에 허락하여 만민이 복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민족의 해원성사의 기틀은 물론이요 만민의 해원성사의 제물적인 기반을 삼천리 반도와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마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루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게 해주시옵소서. 이 삼천리 반도 위에 한민족을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권을 이루고 제3이스라엘 교단을 형성할 수 있는 통일교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하나님의 날을 맞는 이 시점에 있어서 영광의 자리에 계신 아버지여! 전체를 주도하시는 주인 되시는 아버지여! 전능의 실체요 절대자이신 아버지시여! 생명과 사랑의 이상 되시는 아버지시여! 오늘 땅 위에 있는 부족한 무리를 이미 당신의 혈족으로 책정하셨고, 당신의 후예로서 이미 세우셨사오니 부디 마음에 품고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버리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이들을 버리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아벨적인 교단이 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럼으로 말미암아 기성교회를 품을 것이옵니다. 우리와 그들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아벨 기준을 통하여 민족이 아버지 품에 품기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의 해방의 터전을 이룩할 수 있는 한민족과 삼천리 반도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스승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스승은 아버지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자기의 욕심을 위하여 태어났고 자기의 욕심을 위하여 사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미래를 위하여 태어났고 아버님을 위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저희로 하여금 미래의 세계를 위하여 살고 아버지를 위해 살 수 있는 거룩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 저희의 부족한 마음들을 한데 묶어 당신 앞에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은 당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넘어 일체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마음을 갖고 모였사오니, 아버지,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주고받는 곳에서는 번식이 된다고 했사옵고, 주고받는 곳에는 아버님께서 임재하신다고 했사오니, 아버지여, 이제 스승의 가정과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가정들이 하나되어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덜 개화한 이 나라가 새로운 운기를 받아 가지고 해방의 개문을 할 수 있는 축복의 터전이 교계와 이 민족 위에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나라와 이 강토 위에 연결되게 하시옵소서.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과 중국을 축복하시어서, 미국과 독일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탕감노정이 어서 속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부터 출발하는 1971년도의 365일간을 아버지의 장중에 쥐시옵고, 당신께서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이 승리의 결과로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이 나라는 올해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사오니, 이해를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무사히 넘기고, 당신이 경륜하시는 뜻 앞에 어긋나지 않는 국가가 되게 하시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직행할 수 있게끔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세계에 있는 모든 신령한 사람들이 한국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여기에 연결되어 당신의 후예가 되고 실체가 되는 지상의 무리들을 아버지 앞에 연결시킬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직접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새벽부터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 시간 이후에 되어질 이날의 모든 전체를 기쁨의 한 날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저희들도 오늘을 새로운 명절로 맞이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지금 동원되어 나가 있는 부인의 남편들은 아내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서로의 만남을 허락하기는 하는데 다른 두 곳을 방문한 후에 세번째에 가서 만나는 것은 허락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부인의 임지를 방문하려면

아내가 있는 곳을 찾아가기는 가되 한 곳을 방문하고, 또 다른 한 곳을 방문한 후에 세번째로 찾아가서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소생 장성 완성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만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한 곳은 부인이 있는 곳과 가까운 곳을 방문하여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방문할 때에는 그냥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자 한 봉지라도 사 가지고 가고, 쌀 한 되라도 사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웃음) 그냥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아들이나 딸이나 하나를 데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모두 데리고 갔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한 곳을 가 보고 두번째에 다른 곳을 간 다음 세 번 만에 가라는 것입니다. 또, 갔다 온 다음부터 닐리리동동으로 매번 가는 것은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또 가 보려면 한 곳 가 보고 두 곳 가보고 나서…. (웃음) 이거 공문을 내라구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복귀역사를 하는 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색시를 찾아보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찾아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소생은 종의 입장입니다. 타락한 아담, 종을 찾아 주는 입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장성은 형제의 입장입니다. 즉, 예수님의 형제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첫번째에 찾아왔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면 안 됩니다. 종과 같은 입장에서 찾아왔다고 기분 나빠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몇번째에 찾아왔는지를 물어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번은 소생이요, 둘째번은 장성이요, 세째번은 완성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6천년 복귀섭리역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해와를 찾는 일인데 그것이 3시대를 거쳐 나왔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 시대를 거치고, 예수 시대를 거쳐 재림주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상봉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탕감노정이니 만큼 여러분은 자기 마음대로 가지 말고 반드시 소생과정, 장성과정, 완성과정을 거쳐가서 만나라는 것입니다. 갈 때는 `아이쿠 좋다! 우리 집사람 만나러 간다'고 좋아하다가 실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처음 방문할 때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방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주 가면 갈수록 탕감권내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정성을 들이고 가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뜻 일선에서 수고하는 부인들을 정성으로 후원하라

그렇게 알고 금년부터는 여러분이 매일 찾아가려면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괜찮아요. 그렇다고 자기의 할 일을 못 하면 안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시간을 내 가지고 세 번 만에 가서 자기 아내를 만나는 것은 허락하겠습니다. 현재 여러분의 기분이 대단히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런데 다른 사람은 가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이제는 방문을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시간이 있으면 금년부터는 지방에 자주 갈 것입니다. 미국에 가봐야 할 뜻적인 내용이 있습니다만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지방에 자주 내려가 볼 예정입니다. 또한 본부에 있는 부장들도 될 수 있으면 지방을 자주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본부에 있는 식구들도, 지방에 있는 식구들도 될 수 있으면 일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후방이 부패하면 망하는 법입니다. 그렇지요? 나라도 후방이 부패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전방과 후방을 비교해 보면 후방은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장병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입니다. '요놈들 전부 다 모가지 잘라 죽여야 한다'고 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부패해 가는 사실이 드러나면 망하는 것입니다. 후방에 있는 우리들이 일선의 장병들보다 밤잠을 덜 자면서 더 노력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정성을 모아서 기도하고 후원해 주어야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를테면, 다섯 시간 자는 사람은 다섯 시간에 대한 배가의 일을 하고, 열 시간 자는 사람은 열 시간에 대한 배가의 일을 해서 더 정성을 많이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더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체가 전도 나간 부인들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이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전도를 해야 됩니다.

교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라

한 사람 전도하게 되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후방에서도 일선에서와 같은 마음을 중심삼고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을 제일 처음 맞아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모셔 주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해주면 그 사람과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열 사람 이상 맺은 사람이 만일 사지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는 그와 연관된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해방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복은 여기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밥을 먹고 가더라도 웃으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절대 먹는 것 가지고 인색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인이 아닌데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해서 누가 밥을 먹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팔도강산의 그 누구도, 통일교인은 물론이요, 통일교인이 아닌 어느 누구라도 여기에서 밥을 먹고 가지 않았느냐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한계점에 도달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회에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을 여러분의 형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먼 타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형제처럼 맞아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협회장도 이렇게 못하면 협회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걸리게 되는 거예요. 각 부장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부에서 그런 것을 두고 통일교회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그런 일로 하나님에게 말할 수 없이 원통한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1971년도에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찾아온 손님이 있으면 서로 맞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아벨 입장에 서서 가인 복귀의 생활권을 사방으로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천국의 중심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인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고 이제부터라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절대 무시해 보내지 말아야 됩니다. 또, 교회의 책임자는 찾아온 이들을 그냥 돌려 보내지 말고 배 한 조각이라도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해서 보내는 것이 주인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지구장들 알겠습니까? 「예」 찾아오는 손님들을 교만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그들에게 나가게 되었을 때 그들이 우리를 놓고 복을 받게 해달라고 축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원수의 자식들이 그렇게 하게 되면 사탄도 참소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참소를 하려면 자기 아들딸을 때려 죽이고 나서 참소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다시 말하면 사탄의 자식들까지도 와서 복을 빌어 준 사람을 사탄이 참소해 가지고 죽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을 복 빌어 준 사탄 자신의 아들딸부터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그 사람을 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님 대접을 많이 하고 외부 사람들에게 신세를 많이 지워 준 사람이 있는 자리는 사탄이 넘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통일교인들을 가만히 보면 `나는 축복받았으니 제일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축복이 원수입니다. 지구장의 자리가 원수입니다. 책임자의 자리가 원수입니다.

자신의 위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빚을 가려 가야 됩니다. 선의의 빚진 것을 갚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 도

아버지, 이 거룩한 날에 당신이 분부하신 말씀을 통하여 당신을 똑똑히 알았사옵니다. 또한 생활 속에서 당신을 보여 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할 것과 당신의 생활에 친숙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이 다짐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왔다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한이었사옵니다. 이러한 1971년도를 맞이한 저희 통일의 무리들은 입으로는 아버님을 똑똑히 가르쳐 주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는 아버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책임자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시옵소서.

교회를 중심삼고 인연되어진 모든 일체는 당신의 긍휼의 사랑으로 알고, 당신의 특별한 은사로 알아서 어느누구든지 어떠한 조건도 넘어서 나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잔칫날이 오고 기쁜 날이 오거든 지나가는 걸인들도 동참하여 그들이 혜택받고 돌아가게 될 때, 그날을 축복하고 우리를 향해 복을 빌고 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복스러운 것인가를 저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통일의 무리들이 이와 같은 생활을 하게 하여 주시옵고 통일교단을 움직이는 책임자들이 이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서.

자기를 세우는 자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요, 자아의 입장에 도취하는 것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길인 것을 알고, 저희들이 이제 당신의 작전법을 배워 모든 공적인 노정에 따라살고 공적인 인연을 따라 죽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어 자손 만대까지 천상의 상속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거룩한 날 여러 가지 내용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축복의 은사를 감사드립니다.

이것을 안 저희들이 거룩한 승리의 제물로서, 생축의 제물로서, 아버지께서 쓰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했사옵니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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