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오늘은 1970년 9월 27일이옵니다.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하여 이 아침 이곳에 모인 자녀들과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그 모습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역사시대를 거쳐오신 아버지의 노고 앞에 저희들이 현실을 책임지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하나의 승리의 제물이 되겠다고 스스로 맹세하고 다짐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저희 선조들은 아버지 앞에 십자가를 지워 드렸사옵고, 슬픔의 대상으로서 그 생애를 살다 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에 이 시대의 저희들만은 아버지 앞에 빚을 갚고, 아버지 앞에 그 무엇을 남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의 마음 바탕을 살피시옵소서. 진정 당신이 임재하실 수 있는 마음 바탕을 지닌 자신이 되어 있는가를 스스로 살피게 하옵소서. 당신이 저희들 가운데 임하는 데 있어서 누구에게 먼저 찾아오시겠사오며, 당신이 저희들은 바라보고 움직이는 데 있어서 누가 당신의 주목을 받겠사옵니까? 찾아오시는 당신의 마음에 일치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은 누구도 그 동기가 되지 못하고 당신이 어느때나 그 동기가 되었사옵니다. 그와 같이 당신이 언제나 그 동기가 되어 저희들을 바라보고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과연 불쌍한 분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인류가 역사노정의 수많은 서글픔을 당하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당하신 것은 저희들이 다 갚아드릴 수 없는 빚인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그와 같은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고 있는 때가 얼마나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또 그렇지 못한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불초한 자식들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그 역사적 섭리의 노고가 언제나 이렇게도 일방적인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께서는 저희 시대뿐만 아니라 대대로 그러하였고, 저희 후손들에게까지도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는 과연 불쌍하신 아버지요, 외로우신 아버지요, 또한 슬픔과 어려움을 당하시는 아버지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그런 아버지이심을 저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있게 될 때에, 자신을 스스로 한하면서 아버지께서 어려워하실 것을 염려할 수 있는 마음 바탕을 지닌 아들과 딸이 있다고 할진대,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승리와 더불어 그 모습을 바라보시며 자랑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사지에서 자기의 생명이 최후의 경각에 놓여 있을지라도, 당신이 먼저 이러한 자리를 거쳤고,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염려하기에 앞서 아버지를 위로하며 최후의 생명길을 가는 아들과 딸이 있다 할진대, 당신은 그러한 아들딸을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간곡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시간을 통하여 저희들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복귀도상에 왔다 갔던 많은 선조들을 생각해 볼 때에, 아담 가정의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또한 모세, 세례 요한 시대를 거쳐 예수시대 이후의 수많은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피를 흘리던 그때 그때마다 당신의 슬픔이 얼마나 얼마나 쌓여졌고, 당신의 탄식이 얼마나 얼마나 남겨졌사옵니까? 이 모든 슬픔과 탄식이 당신에게만 남겨졌으면 모르겠으나 그럴 수 없는 아버지의 슬픔의 사정이 도리어 저희의 생애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의 슬픔을 슬픔으로서 인간 앞에 남겨 주시지 않으려는 당신의 딱한 사정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혹자는 60세로서, 혹자는 40세로서, 혹자는 젊은 청년으로서, 혹자는 소년으로서 새로운 생애를 엮어 가기 위해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겠노라고 몸부림치고 있사오니, 그러한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어떠한 십자가의 환경 가운데서 저희들을 지켜주시기보다도 그 십자가를 이겨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외로움 가운데서 그 외로움을 막아주시기보다도 저희들이 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목전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현 실상을 바라볼 때, 이 대한민국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그 누구도 책임져 줄 것 같지 않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저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 의지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축복해 주기를 바랄 수 없는, 그러한 현재의 환경이옵니다. 아버지여, 그렇지만 아버지만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버릴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그 안타까운 사정 앞에 그래도 이 나라 이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며 당신을 위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는 아들과 딸이 있다 할진대는 천만 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들과 딸에게 사정하고 싶은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위하고 세상에서 높임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외로운 자리에서 수고의 길을 겪어 나오는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는 분인 것을 진정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기쁨이 있으면 그것을 이 민족의 자랑으로 삼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보다도, 그 기쁨을 아버지의 것으로 돌려 드리기 위하여 당신을 생각하며 묵묵히 수고하는 아들과 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로우신 아버지, 외로우신 아버지, 슬픔에 극한 사정을 참으시기 위하여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고, 혀를 깨물면서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사정을 진정으로 아는 아들딸이라 할진대, 천년의 한을 품으신 아버지께서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을 통하여서는 위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 온유겸손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참된 생활은 물론이요, 생애를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을 금할 수 없는 감격의 생활, 황공의 생활, 개심의 생활을 하여야 할, 역사시대를 거쳐 나가는 인류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아버지를 수고롭게 하고, 아버지께 더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안겨 드리며, 아버지를 외로운 길로 몰아넣은 저희들이었음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하늘편의 사람을 치는 선봉의 자리에 섰던 우리의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온 천지간의 그 무엇으로서도 당신 앞에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탄식과 서러움 가운데 아버지의 뜻 앞에 한 맺히게 한 자기 생명을 아버지 앞에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진정 아버지를 찾을 수 있고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저희 자신인 것을 이 시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중대사인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 통일교회는 외로운 자리에 있습니다. 통일의 인연을 따라 나온 수많은 선조의 핏줄이 오늘 이 제단을 통하여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에, 선조들의 핏줄이 연한 이 자리는 황공한 자리요, 심각한 자리요, 엄숙한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의 저희 자신들이 당신 앞에 너무나 경솔하고 너무나 무게 없는 모습이었던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때, 그러한 저희 자신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아버지 앞에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회개를 하여도 스스로 죄인된 모습을 감출 수 없는 모습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망각해 버리고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의 행복만을 갈망했던 자신들이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아들딸들은 자기의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하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의논할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갖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불쌍한 무리들을 동무삼고, 외로운 무리들을 친구삼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생애노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자식들을 깨우쳐 나오시는 아버지의 서글픈 형상을 생각해 보면서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도, 이미 당신의 아들이 되었고, 딸이 되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아버지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참을 수 없는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 할 저희의 입장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이 극에 달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외로운 자리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는 스승을 붙안고 이 길로 가시자고, 이렇게 가야 된다고 권고할 수 있는 아들은 없습니까? 그런 딸은 없습니까? 그러기에 아버지는 불쌍한 분이심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면서 저희의 죄악된 모습을 아버지 앞에 맡기고, 외로와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내가 이끌고 험한 산정을 넘어 책임을 지고 모시고 가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여기에 몇 명이나 되옵니까? 아버지, 자기 스스로 다시 한 번 과거를 회상하고, 현실을 비판하고, 내일을 직시하면서 스스로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외로우신 아버지를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길이 없고, 슬픔과 근심에 싸인 아버지를 그 무엇 가지고도 위로할 길이 없는 것을 깨달을 적마다 통곡의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참혹함과 외로움이 내 자체를 망각하게 하더라도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당신께서 기억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으로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것으로서 아버지는 나를 찾아 주실 것이고, 아버지와 인연맺어진다는 사실을 생애 가운데 어떤 것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한 많았던 1960년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한 저희들은 진정한 의미의 효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말뿐인 효자가 되어서는 자기의 모습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과거를 생각하여 볼 때에, 후회가 앞을 가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앞에 서서 가야할 저희들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 저희가 된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아버지가 걸으신 그 길을 대신해서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 이들은 광명한 앞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이들의 장래는 당신의 소원과 더불어 발전하게 될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경거망동하여 아버지 앞에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 아버지 대신자라고 주장하는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디 당신만을 모시고, 당신만을 따라갈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를 갖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깊고, 넓고, 높고, 거룩하고, 존엄하신 아버지의 형상을 저희들은 마음으로 흠모하옵나이다. 초라하고, 슬프고, 외로우신 아버지보다도 영광 가운데 계시는 존엄하신 아버지의 형상을 저희들은 추구하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는 우리 아버지가 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만으로는 이것을 해결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그럴 수 있는 바탕과 발판을 만들기 위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오늘도 아버지의 길을 곧게 하고, 아버지의 생활 환경을 중시하며, 아버지의 승리의 노정 앞에 화려한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하여 더욱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이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도 망하고, 자기 자신이 소모되는 것은 망각해 버리고, 아버지가 커지고, 아버지가 기뻐하고 아버지가 찬양받는 것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참된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찾아오시옵소서. 이 자리에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임재하시옵소서. 저희에게 새로운 소망의 빛을 가지고 찾아와 주시옵소서. 당신의 소망이 매일같이 저희의 마음 가운데 있게 하시어서 아버지앞에 가까이 끌려갈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이 되고, 아버지가 거기에 업히울 수있는 흠모의 심정이 되게 하시어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자각하고, 아버지의 대신자인 것을 자각하는 이 시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못하거든 아버지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사 저희들을 죄악의 손길에서 벗어나게 하시어서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본성의 인연과 바탕만이 흡수되고 통합될 수 있도록,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삼천만 민족의 금후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남북한이 갈라져 가지고 서러운 피의 역사를 엮어 나온 이 민족의 처참상을 당신은 아시오니, 이들이 삼팔선으로 갈라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삼팔선보다 높고 깊어야만 되겠습니다. 북한 땅을 자기의 손발같이 생각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를 책임질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통일교회 무리요, 이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한 많은 이 민족의 한을 붙들고 헤쳐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금후에 삼천만 민족이 남아질 운명을 염려하면서 저희들이 정성의 기간을 정해 놓고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은 누구를 믿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가까이 서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저희가 그럴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불쌍한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소망을 찾아가시는 아버지 앞에 한의 역사를 남겼던 이 백성을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잘못하는 것이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미끼처럼 되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이민족의 잘못함을 용서하여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찾아오는 그 길을 예비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남들 앞에 업신여김을 받더라도 눈물로써 과거를 회개하고 현세에 있어서 새로이 당신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마음으로 당신을 다시 찾는 이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까지 그러한 민족이 되지 못했사옵기에 이민족을 그러한 민족으로 만들어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이 교단을 중심삼고 저희들은 최후의 죽음길을 넘어가는 그순간, 아버지 앞에 남기고 갈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아들딸을 모아놓고, 혹은 자기를 따르고 있는 제자를 모아 놓고, 혹은 동역자와 민족을 대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말하게 될 때에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남긴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저희 통일교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이 시대의 환경을 무작정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할 무리들이오니,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걸어 나온 저희들의 발자취와 지금까지 싸워 왔던 저희들의 모습이 너무나 빈약하였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지치고 고달픈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다시 수습하여 당신 앞에 돌구비치는 모습으로 가야 할 저희들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한 몸의 기력도 갖추지 못하는 입장에 있거든, 아버지여, 당신이 책임져 주시어서 다시 기력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70년대를 의미 있게 지내 가지고 아버지 앞에 승리적 통일전선을 이루어 드려야 할 저희들의 사명이 있기에 저희들은 개인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통일의 깃발을 들고 지금까지 따라왔습니다. 일본을 중심삼고 움직인 와클(WACL)대회를 통하여 남겨져야 할 저희의 사명이 그 민족에 달려 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시아의 장벽을 넘고, 세계의 장벽을 넘어서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참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이 서로 그리워할 수 있는 인연을 맺게 하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원수들이 항복하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한 곳으로 묶어 바칠 수 있는 행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마음이 승리의 터전으로써 그들이 민족 앞에 남아질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어린 자식들을 때려 몬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들이 무한히 불쌍하게도 느껴지지만, 이들보다도 이들을 또다시 때려 몰아내고 또다시 가라고 명령해야 할 아버지가 더 불쌍하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민족간의 외로운 간격보다도 하늘과 세계 사이에 벌어져 있는 그 간격이 얼마나 더 외로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옵니다. 다시 달려가라고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위로와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이 이들의 생애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많은 비판을 당하면서도 정성을 쌓으며 발걸음을 옮겨 나왔습니다. 혹자는 거리에서 비판을 당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당신앞에 호소한 적도 있사옵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들을 아버지께서 염려하시어서 저희 앞에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승리가 이 민족을 통하여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이 사활의 조건을 넘어 아버지 앞에 저주를 받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이기 때문에, 금후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의 아시아를 책임져야 할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아시아의 제국가와 힘을 합하여 공산당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방향을 제시할뿐만 아니라 공존 공의의 사회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어떤 일을 당하였을 때,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탄식이 있게되는 것을 절절이 느끼게 되옵니다. 노력하지 아니한 민족은 침범을 받아 자유권을 잃게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도 마음의 기준이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노력해야만 되겠습니다. 밤낮없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남들이 잠잘 때도 저희들은 잠자는 시간을 아껴 가면서 준비하여야만 되겠습니다. 남들은 자기 스스로의 길을 걸어 스스로의 생애를 남길지라도, 저희들은 아끼고 또 아껴서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다하도록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이 아침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제 며칠만 지나면 10월이 옵니다. 10월에는 777쌍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없었던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남겨져 있사오니, 이것을 위하여, 이 문제를 위하여, 밤을 새워 가며 정성들이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거든, 그들을 천배 만배 거듭 보살펴 주시옵소서.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하여 주시옵고, 은사의 손길로써 그들을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이미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당신이 경륜한 대로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당신이 허락하신 약속을 따라 이리 지구를 들려 오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본부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스승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세상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만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당신의 사정을 느낄 수 있고 70년대에 있어 새로운 승리를 남길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신앙의 조국이라고 흠모하는 외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청파동 본부가 얼마나 책임이 막중한가 하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아버지 앞에 눈물로써 정성들이며 호소하며 살아 가는 그들 앞에 저희들은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 데 당신들은 뭐하고 있느냐고 그들로부터 권고받는 본부의 식구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시간 시간을 아껴 가면서 당신을 중심삼고 뜻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생애를 남기기 위하여 몸부림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생애를 대신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금년 한 해를 당신이 보호하시는 가운데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1971년도는 저희들이 손수 맡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축복의 날이 지난 후에는 전국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더우기 당신의 아들딸들을 앞세워 갈 길을 재촉하지 않으면 안 될 기간이 남아 있사오니, 아버지여, 당신이 직접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사가 형통하게 하시옵고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이 아침을 통하여 권고하여 주시옵길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이달에 들어 마지막으로 맞는 주일입니다. 이 9월달은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우리 한국에 있어서, 혹은 일본에 있어서도 잊을 수 없는 와클(WACL)대회를 놓고 정성들인 기간입니다.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통일교인들

우리가 바라보며 정성들인 그날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와클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게 된 데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려야만 되겠습니다. 금후에 있어서 우리들 자신이 새로운 각도에서 뜻을 생각하고 더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우기 아시아 정세가 급변하여 긴박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에게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들여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70년대에 어떻게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볼 수 있겠느냐, 이 민족이 소원하는 해원의 한 날을 언제 성취하느냐 하는 문제가 민족적으로 거쳐나가야 할 큰 십자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통일 문제는 한국 민족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에 걸려 있는 문제요,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의 주도적인 책임은 어떤 세계가 지는 것도 아니요, 아시아가 지는 것도 아니요, 우리 이 한민족이 져야 되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책임을 지는 데는 북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우리 국민들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남한에 있는 우리 국민이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있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이냐? 일반 사회의 사람들은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에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교 단체가 그 책임을 져야 될 것입니다. 혹은 지금까지 역사와 더불어 인연을 같이해 나온 어떤 종교가 이 현실을 책임져야 될 것입니다. 어떠한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는 무리들이 이 민족의 갈 길을 책임져야 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단체가 책임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현재 일반 사람들도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자세나 우리의 생활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에 대하여 충성하는 그런 충성이 아니면 안 된다. 만 가지의 일들이 실현될 수 있는 내용의 동기가 우리를 중심삼고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단체가 짊어진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시작이나 결과도 결국은 우리 통일교인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문제라는 겁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비록 작은 내 한 자신이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 내일의 민족의 정기를 새로이 발전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민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새롭게 자각하고 다짐해야 할 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생애를 두고 볼 때, 혹자는 60세에 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요, 혹은 40세가 넘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아주 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민족의 갈 길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자신들이 해야 할 사명을 스스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해 볼 때 자신은 과거의 생애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이제 아무리 노력하고 몸부림을 친다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그 한계점까지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면 알수록, 느끼면 느낄수록 거기에서 낙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남은 짧은 생애에 가일층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하여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남아진 생애를 전부 다 집약시켜 가지고, 이 민족과 역사 앞에 어떻게 투입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이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젊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 청소년의 입장에서 희망에 부푼 가슴을 부여안고 이 민족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새로운 희망을 가진 그런 젊은이가 있다 할 때, 그 희망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희망이 이루어지느냐? 내 주위의 환경을 헤쳐 가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자기의 소원을 달성할 수 있는 내가 될 것이냐? 그 환경을 이끌어 나가면서 그 환경에 영향을 미쳐 주고,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위로해 주고, 무력한 사람을 만나면 힘을 주입시켜 주고, 그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심어주고, 자기의 남아진 생애를 어떻게 지내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여러분이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간단히 생각해서 지내는 그런 생활, 생애노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에는 사방에 미쳐져 있는 가중된 인연을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어려운 사람, 고통스런 사람 등 우리가 동정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동정해 주며 내 일생에 있어서의 보람된 여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의 젊은 입장을 자랑하고 내일을 꿈꾸는 희망에 벅찬 청소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꿈은 자기 일신만을 위해서는 달성할는지 모르지만, 민족이나 이시대 앞에 자기의 사명을 책임진 입장에는 서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우리 통일교회가 천명을 받았으니 그 책임을 해야겠다고 자각하여 소명받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스스로가 다짐해 나가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의 생애를 어떻게 보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들은 역사의 부활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을 두고 볼 때,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시아에 있어서 약소 국가가 아닌 부강한 나라가 되어지기를 바라지 않은 선조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때에 그 소망을 이루어 오늘에야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 선조들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그 선조들이 염려해 나온 역사적인 소원을 성사시킬 수 있는 희망적인 실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현재의 삼천만 민족에게 앞으로 한국이 이러이러해야 되고, 혹은 경제 부흥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 태평양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고, 이 나라 민중 앞에 내일의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새로이 그 마음을 다짐할 수 있도록 자극시켜 주는 주체성을 지닌 우리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다. 그 문제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내가 처한 분야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무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틀림없이 우리의 중심기반과 협력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민족 앞에 있어서 현실의 주체성을 대신할 수 있는 자각된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탄한 길을 갈 수 없는 우리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나 현시대적으로 이러한 입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민족 앞에 미래에 있어서 소망을 줄 수 있는 단체가 어디 있고 개인 앞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개인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이민족으로부터 '이들이 아니면 안 되겠다. 반드시 이 사람들이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여러분이 삼팔선을 바라볼 때, 그 삼팔선은 대한민국의 삼팔선이 아니라 그 삼팔선은 우리 통일교회의 삼팔선입니다.

수가 많지 않은 통일의 무리를 통하여 1천 3백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북한 땅을 탈환해야 됩니다. 우리들은 그곳은 탈환하기 위한 하나의 길을 모색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 사람도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총동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삼팔선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작전을 해야 할 것이냐? 정상적인 작전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사상과 이러이러한 배경을 갖추어 가지고 선전포고를 해서 우리 힘을 중심삼고 무엇으로든지 대들 테면 대들어라 하면서 당당히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작전을 어떻게 할 것이냐?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전법이 있다면, 그것은 곧 기습작전입니다. 기습작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때 기습작전을 시도할 것이냐? 대낮에 할 것이냐? 대낮에 기습작전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밤중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밤중도 고요한 밤이 아니라 거센 태풍이 몰아치고, 폭풍우가 퍼붓는 밤이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싫어하는 그런 밤에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가는 길은 하이웨이일 것이냐? 아닙니다. 그 길은 험산 유곡의 길입니다. 어느누구도 가지 못하여 발자국을 남지기 못했던 깊은 산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은 산길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가시밭길이 있다면 그 길은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그 길을 누가 갈 것이냐? 일선에 나가 싸우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도중에 많은 희생자를 내는 환경에도 당연히 맞서서 넘어갈 수 있는 특공대가 아니면 그 길을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가가 그 사명을 짊어졌다 할 때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여기에서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출발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행군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 새로이 부활하겠다는 소망을 갖지 않고는 이 전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이, 통일교단이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미 죽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일의 희망의 길을 닦아 나가는 개척자가 되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생애노정이 1년, 혹은 10년을 거쳐 가고, 가다가 혹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할 것입니다. 이 책임을 내가 다하지 못하면, 내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이 길을 가라고 다짐하고,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지 않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다하여 스스로 이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입장에 처해있다면 희망찬 내일을 위하여 내 최후를 지켜보는 동지면 동지, 혹은 아들딸이면 아들딸의 손을 붙들고 유언이라도 하고, 권고라도 남겨야 합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자기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그 이상 달릴 수 있는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는 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러한 사명을 짊어졌다고 할진대 통일교회는 일반 사람들이 지금까지 걸어 나왔던 그런 평탄한 길을 걸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평범한 교회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결의를 가지고 가서는 안 됩니다. 그 환경을 뛰어 넘어서 생각도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교회라고, 우리의 일을 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할 수 있는 길을 가야만 내일의 승리의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 우리들은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자기를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될 현재의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용기 있게 살다 가신 예수

그러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많은 사람이 한 초점에 귀결되어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사는 것도 그것을 완성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며, 죽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투입해야 됩니다. 싸움에 필요한 모든 장비는 이것을 위해 정비해야 된다고 하는 문제가 여기에 귀착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목적을 향하여 여러분을 내몰 때에는 최후의 극한 지경에까지 내몰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거기서 모두다 쓰러지고 한 사람이 남는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지막 남은 그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람은 그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던 실체다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몰리면서도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 천명을 받들어 자기의 생명을 걸고 싸워 나가야 할 그런 자리에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싸우다가 후퇴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역사는 언제나 변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개인이 그런 역사과정에서 희생되었다면 그 역사적 소망과 더불어 반드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한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의 마음속에 그 소망에 대한 신념을 철투철미하게 가지고 자기의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여야 합니다. 원수와 더불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죽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생애를 살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전체를 책임지고 몰고 가려고 했으나 전부 다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길을 자기의 제자들과 더불어 가기를 바랐지만, 끝내 그 제자들은 전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주한, 자기가 소망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을 목숨을 내어 놓고 가야 할 사람은 예수님 혼자뿐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십자가의 길을 누구와 더불어 갔느냐?

인간과 더불어 갈 수 없었던 예수님의 정성은 하나님을 따라 나왔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수고한 어떤 사람보다도 더 수고해야 하는 책임을 느끼고 있었으며, 목적관을 중심삼고도 어떤 사람보다도 강한 목적관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갔던 것입니다.

그 길만이 역사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의 인연을 사망의 세계에, 원수의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되는 과정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했던 여기에는 모든 내용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 앞에 갑니다. 가는 데는 비굴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가게 하시옵소서. 지금까지 갔던 수많은 인류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모습으로 가지 못했지만 저는 당신의 소원하시는 모습으로 깨끗이 가게 해 주십시오. 가는 데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당신이 바라시는 아들로서 이렇게 가야 된다는 그 기준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기점을 남기고 가게 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외로운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언제나 늠름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은 패자의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만, 세계를 제패할 때가 기필코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승리의 그때가 오더라도 이 세계를 원수와 같이 취급하지 않고 원수를 용납할 수 있는 세계관을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을 가진 자기 자체는 죽어서 물러가지만, 미래의 승리권을 자신하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미래에 패자의 서러움을 당하게 될 로마 악당의 무리를 대해서, 반대한 무리들을 대해서 여유있게 축복을 해줌으로써 그들을 안팎으로 점령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생애에 무엇을 남기려면

이러한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 앞에서나, 역사적인 모든 전통을 두고 보나, 용서의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머리숙여 존경할 만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팎으로 보더라도 걸리지 않는 생애를 살고 간 분이 예수님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그 일대 30여년의 생애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생애로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예수님이 남기고 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전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셨기 때문에, 그 방향이 목적점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어떠한 핍박 도상을 거쳐 갔더라도 그것이 망하는 운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망할 운명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오히려 승리의 터전이 되고, 전통의 요인이 되어서 세계적인 새로운 터전으로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과 세계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위하여, 세계의 생사권을 해결짓기 위하여 내가 태어났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팔선을 넘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큰 삼팔선이 있더라도 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것은 한민족의 삼팔선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타파하여 통일 민족을 형성했을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공과 소련과의 삼팔선이 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 앞에 남북을 갈라 놓은 삼팔선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은 그리 큰 시련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을 중심삼은 살팔선이지만, 다음에는 소련과 중공과의 더 강하고 더 극한 삼팔선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이 해결지어야 할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더 큰 삼팔선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승리적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삼팔선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한민족이 우리의 삼팔선을 해결하고 소련과 중공과의 국경에 접해 있는 세계적인 삼팔선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할진대는, 이 민족은 세계에 새로운 주체성을 심어 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민족이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졌습니까?

공산주의 세력이 세계적인 발판을 갖추어 가지고 우리를 향해 습격해 온다 하더라도, 그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몰리지 않고 그들과 대결하여 승리 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진 그런 단체와 개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는 단체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찾아 나오셨습니다.

공산당은 지금까지 위장전술로써 정책을 수행해 나왔습니다. 이것은 언젠가는 지탄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이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는 데는 정상적인 활동 체제를 갖추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은폐와 위장전술을 터로 해 가지고 침략을 가해 나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것은 사탄이 악을 중심삼고 하는 놀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 해결의 관건은 우리 통일교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통일교단을 통하여 나 자신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우리가 추구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여러분 개인이 주도해서 개인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도 방대하고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 천주사적인 내용을 포함해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명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사명까지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과연 약자가 되지 않고 그 환경을 처리하고, 그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통일교인 개개인이 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떤 생활을 하여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남기기 위해서는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길 수 없습니다. 그저 밥먹고 그럭저럭 살다가 가는 그런 생애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북에 있는 사람이나 이남에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도하는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과 여건을 갖추는 것이 문제

어떤 생애를 남길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남길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적인 것으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방식, 통일교회식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식이지만 세계적인 것이면 남아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20세기인 현대에 있어서, 30억 인류, 그 누구든지 바라보고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방식이면 되는 겁니다. 30억 인류가 무관심하고 30억 인류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아무런 힘이 없는 그런 방식은 전부 흘러가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주최한 9월의 와클(WACL)대회를 중심삼고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역사에 남을 수 있는 활동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어느 민족, 어느 종교가 하지 못한 내용을 내 보이고, 그 활동 모습을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와클(WACL)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는데, 일본에서 하면 아주 잘 됩니다. 일본의 역사 이래에 없었던 거국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거국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공산당들도 우리 통일교회의 움직임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걱정의 도가 자기들의 갖추어진 환경보다도 더 강하게 될 때에는 이들은 제2전선을 준비하고 제3전선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승리만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는 군인이 많을 때는, 그러한 약한 전투력을 가진 군대는 승리보다 패배하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기에서 지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지는 데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기는 것이 철칙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군사력에 있어서 이겨야 됩니다. 또한 장비에 있어서도 강해야 되며, 정신적인 자세에 있어서도 더 강해야 됩니다. 그리고 생활력에 있어서도 강해야 됩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모든 면에서 이길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실제적으로 그런 여건을 갖추었을 때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추지 못했을 때가 문제인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전선이라는 목표를 놓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다고 하는 이런 망상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긴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져도 이기는 것입니다. 져도 이긴다는 그런 의미의 통일전선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역설적인 말이 아니냐? 말은 역설적인 것 같지만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인 것입니다. 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성인이나 선한 사람들은 지탄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공짜배기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지탄받지 않은 성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화롭고 행복이 깃든 그러한 국가와 민족 앞에 역사적인 인물이 탄생한 예가 없습니다. 반드시 국운이 기울어 가고, 사회의 질서가 파탄적인 상황에 빠져드는 경계선에서 역사적인 새로운 인물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길은 거친 바위산이지만, 그 땅 위에 비가 내리고, 환경이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그 바위는 점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의 여건이 나쁜 것이 도리어 바위산을 드러나게 하고 반석의 터전이 생겨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요란스러운 환경이 도리어 새 시대를 창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나는 과연 그 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살았는가를 돌이켜 봐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았다면, 내가 지금은 이 길을 가면서 죽지만, 부활의 가능성을 백퍼센트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해 가는 모든 국민 가운데 한사람이라도 살아 남는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이 전통은 계승될 것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그 전통을 따라 충성을 하겠다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다짐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더라도 부활합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전통을 세우셨습니다.

공산당과 대결할 것에 대비하라

여러분이 피를 흘리게 될 때는 깨깨 흘리라는 겁니다. 땀을 흘릴 때도 깨깨 흘려라, 죽어가도 깨깨 흘리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에 어떠한 미련을 남기지 말고 깨끗이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청산했을 때는 돌아오는 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이냐? 대한민국을 거쳐 어디로 갈 것이냐? 자기 앞에 수난이 없고, 고통이 없는 그러한 평화의 나라를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민족의 반역자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마을 마을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보면, 재벌들은 전부 다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해 놓고 돈이 있으면 스위스라든가 외국의 은행에 예금해 놓는 등 대한민국에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가라! 갔다가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갔다가 들어올 때는 민족의 갈림길이 어디며, 경계선이 어디냐 하는 문제가 벌어질 것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겨레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장차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의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입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있는 정성을 다해 투쟁하며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 혹은 무리들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그 무리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고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전부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유학을 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외국에 유학 가야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삼팔선을 향해서 가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삼팔선을 향해서 가야 할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선생은 아직까지 때를 맞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몰림길에서 응당히 사라져야 할 사나이였겠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어찌된 영문이냐? 그것을 연구해야 되는 거예요. 모두가 망하기를 바라고 길을 막는 데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점점 그 폭이 넓어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도 문 선생님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볼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삼켜져 버리고 역사적 환경에 휩싸이더라도 자신의 자세를 잃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말은 하지 않고 나가더라도 그 생각하는 폭과 신념에 있어서는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틀림없이 그들과 대결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 길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 지난날 감옥 생활하던 처량한 사나이가 코웃음치며 날 저버렸던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그날을 맞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질 것입니다. 내 생애에서 구경하지 못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복귀섭리노정을 거쳐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하늘편을 배반하고 원수편이 되겠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별의별 원수들이 많았겠지만 영원을 향해서 진군하는 하나님의 행로를 정지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을 정지시키기 위해서 원수들이 작전은 하였을망정 정지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발전과정을 거쳐온 것을 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런 전법과 그런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이 갈 길

그러면 나는 어떤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혹자는 외적인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외적인 세계로 흘러갈 것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 나오던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미래세계의 한 개척자로서의 사명을 완결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참다운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누가 보아주는 데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깊은 내정적인 심정의 골수에서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하여 자기 홀로 피땀 흘리며 책임지고 수고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천적인 섭리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요,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야만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데도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일 때도 남모르게 들여야 됩니다. 끝날이 되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바람이 불고 요동이 벌어져서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쓰러진다 해도 나 자신이 뚜렷이 남아지는 그런 역사적 인연이라도 남겨 놓고 죽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인들이 살아야 할 생애요, 남겨야 할 생애노정입니다.

여러분, 남겨지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유물로 남겨 주는 데 있어서 다 쓰다 남은, 버릴 수밖에 없는 걸레 조각을 남겨 주는 부모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들여 가지고 가꾸던 물건, 엄마 아빠만이 알고 있는 보물, 그런 보물을 남겨 주는 것입니다. 다 골라서 팔아먹고 남은 쓸모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팔더라도 그것만은 최후까지 남겨 가지고 이제까지 판 것 전체보다도 더 가치있게 여기는 그런 보물을 남겨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보물로 남긴 그것이 무엇이냐? 보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보물에 깃들어 있는 보모의 사랑, 철석같이 정성들인 그 부모의 마음과 하나되어서, 그 마음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하늘땅을 감동시키고, 역사적인 인물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정성어린 마음이 깃들어 있을 때, 이것이 역사상에 없는 위대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러한 보물을 자기 집안에서 지니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보물을 취하기 위해서는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거듭되는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어려운 생사의 교차로를 몇 번이고 지나 가지고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물이 됩니다. 이런 것을 아들딸에게 물려주면 그 보물은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러한 길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손을 대는 것은 중간에 실패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을 대어 가지고도 안 되는 날에는 열심히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거든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정성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커서 어떠한 분야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가 될 때에는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이 땅 위에 실질적인 대상의 존재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현현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드러나게 하십니다. 드러나게 되면 평화의 왕궁이 되지 않겠느냐? 최후를 결하여 최후의 고지 선상에서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그 나라의 영웅이 되어 국가의 운명을 승리로 결정하였던 그 장소는 왕궁이 아닙니다. 도회지의 중심가가 아닙니다. 그곳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에, 삼각지대 아니면 험한 산골짜기, 아니면 험한 산정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자신의 보람찬 생의 가치를 드러낸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게 한 위대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 통일교회는 그러한 자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고생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그 고생 앞에 쓰러지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 갈 수 있는 강한 포탄과 같고 총탄과 같은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나뿐인 삼팔선이 아닌 겹겹이 나오는 입체적인 삼팔선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도 나오다가 쑥 들어갑니다. 자신의 마음이 변하여 마음을 놓게 되면 자신의 온 몸이 오그라드는 그런 입장에서 '너 이녀석' 하면서 박차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은 멀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의 갈 길입니다.

세계와 하늘땅을 위해 살아야 영원히 남는다

흘러갈 테면 다 흘러가라! 몇 사람이나 남을 것이냐? 생명이 끝나는 자리에서 '주여, 나만 남았나이다'하고 엘리야가 말했던 것처럼 그런 자리는 한 번뿐이라는 겁니다. 개인으로서 믿고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다 물러갈 때, 나는 한 개인으로 남아질 것이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가정들을 중심삼고 내가 축복해 주고 믿었던 수많은 가정들이 물러간다면 나는 가정적인 패자의 입장에서 실패했다고 할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단을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을 중심삼고 나가다 다 쓰러지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로 돌아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만일 한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은 바로 통일교회를 대표한 사람이요, 천만인을 대신하는 희망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와 내가 하나되면, 다시 말하면 창조원리에서 말하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실제적인 창조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가는 길 앞에 실패란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을 요구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결심을 못 가졌다고 하면 그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행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아무리 초췌하고 미미하더라도 그런 결심을 가졌다고 하면, 그 사람을 통하여 하늘의 새로운 기틀이 마련되고, 새로운 역사의 창건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감옥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온갖 정성을 들이며 가야 됩니다. 핍박을 당하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의 도리를 다하며 가야 됩니다. 그렇게 가는 사람은 가다가 아무리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온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같이 하셨습니다. 나를 사지에 몰아넣는 원수가 있다면 그 원수 두고 보자 이겁니다. 그 원수의 아들딸이 나를 구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작전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했지만, 앞으로 그 목사 장로의 아들딸들은 선생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를 반대했던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무덤까지 파 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게 될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데는 그 이상 좋은 작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강제적으로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앞에 반역한 사람을 숙청하는데 그 아들딸들이 총칼을 겨누어 자기 부모를 숙청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총칼을 겨누어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눈물로써 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방법은 같은 것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다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역사시대뿐만 아니라, 사탄세계에도 남길 수 있고, 하늘 세계에도 남길 수 있는 유물을 남겨야 합니다. 그 유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생애가 아닌 것입니다. 그 생애는 세계를 위한 생애요, 하늘땅을 위한 생애이어야만 역사에 길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하루 하루의 생활을 거치지 않고는 여러분의 생애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생활을 남길 수 있는 생활로서, 그때 그때의 시간을 남길 수 있는 시간으로서 보내기 위해 우리 앞에 어떠한 고빗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내 일대에 어떤 고빗길이 있다 해도 어떤 탄력을 이용해서 그 고빗길을 넘어 제2의 고지를 일시에 탈환하고 넘어가기 위한 작전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년에, 혹은 자기 일대에서만 끝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길은 무궁한 것입니다. 그 고빗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빗길을 넘으면서 당하는 시련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 후에 찾아올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금하다는 겁니다. 시련을 겪는 그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련 후에는 반드시 무엇이 온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당하고 있는 시련보다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난 결과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될 때, 감동과 감격이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보다 더 클 때 우리는 언제나 승리의 자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자리에서도 하늘과 더불어 승리의 길을 가라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기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해야 되느냐? 그런 기도해 봤어요?

여러분이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나서는 데 있어서 자신이 받은 밥상이 최후의 밥상이라면 그 밥을 어떻게 먹겠습니까? 나는 어떻게 할것이냐?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은 자신의 생애를 걸어 놓고 정성 들이는 마지막 길이라면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과거에 들인 정성이 아무리 컸더라도 마지막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충성해야 할 것이 뜻을 품은 사나이와 아낙네들이 갈 길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자신을 몰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짊어진 십자가는 태산을 넘어오는 빛입니다. 그 십자가와 더불어 흘러갈 것이냐? 이 십자가를 품고 뒤넘이칠 수 있는 생애일지라도 민족과 더불어, 세계와 더불어, 하늘과 더불어 승리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 무엇으로 쳐 버리면 모든 것이 깨져 나가도 그 사람의 충성, 그 자체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제 세계를 향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망상적인 것 같지만 망상적이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나갈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냐? 세계 인류를 교육하는 그 이상의 정성을 투입하라 이겁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주체가 대상보다 클 때에는 대상은 더욱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자나깨나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 생활의 목표요, 자기 생애의 목표인 것을 알고 나가다 힘이 들 때에는 '아버님, 제가 이 책임을 다해야 당신이 해방될 것이요, 당신의 아들딸들이 해방될 것이오니, 이 해방을 위해서 나 한 사람을 거름삼아 후대의 해방의 기틀이 되게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혈혈단신 외로운 환경 가운데서 눈물짓는 그 자리는 세계에 평화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찬양하는 그 자리보다 더 엄숙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십자가를 앞에 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3차 기도는 어떠한 기도보다도 심각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는 그 자리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상의 인연을 따르는 수많은 인류의 소망을 호소하는 그 자리는 직접적인 자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뜻을 품고 그런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소망을 찾기 위해서는 그와 더불어 죽음의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망을 찾으려 하는 것이 살아 있는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자고 하면 옆사람만 바라봅니다. 망할 녀석들. 그런 녀석이 남아지나 두고 보라구요. 무엇이든 나를 빼놓고는 할 수 없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최후의 결판을 짓는 데도 나를 빼놓고는 할 수 없다 하는 그런 목적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하지 않아요. 이익이 생기는 일에는 살짝 나타나고 손해 나는 일에는 살짝 빠져 나가면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여자들,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안 좋아합니다」 여자들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좋아해요? 「안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팔선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칼을 뽑아 들고 진군해야 할 때는 진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질 것이냐? 통일교단이 70년도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활동해 나오고 있는 데 그것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 것이냐?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와 더불어 끝까지 남아질 사람이 누구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망하게 해도 안 망합니다.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망하지 않는 다고 해서 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천륜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을 따라서 여러분이 살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을 하는 데는 십년 동안 희생한다고 하는 것보다도 천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순교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당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일을 결정하고 나서는 행동해야 됩니다. 결정하고 나서 우물쭈물하면 안 됩니다. 또 행동하는 중간에는 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일을 끝내 놓고 쉬어야 됩니다. 끝낼 때에는 하나님 앞에 축하잔치를 하고 나서 끝내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이 많은 남자들은 앞으로 삼팔선을 지켜야 할 때가 오면 소대장도 하고 대대장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때가 점점 접근해 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민족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민족의 운명을 자기 생활권내에서 감지하고 분석 비판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일의 창건자가 되고 역사의 구도자가 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도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겨야 되겠다 이겁니다.

남기려면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라볼 때에도 남길 만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냄새를 맡을 때에도 남길 만한 것을 냄새 맡아야 되고, 무엇을 맛볼 때에도 남길 만한 것을 맛보아야 합니다. 듣는 것도 남길 만한 것을 듣고, 남기는 것도 남길 만한 것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내 몸 전체가 대하는 모든 것은 남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계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세계적이라는 것은 인간 중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하나님 것으로 남겨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발판으로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세워 나가며, 그 누구를 대하더라도 즉각적으로 그를 감지하여 그에게 동화될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가진 자리에서 심정의 인연을 남기고 가는 사람은 망하지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때가 가까워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집을 짓는 데는 모래도 필요하고 깨진 조각돌까지도 필요합니다. 굴러다니는 블록 조각까지도 모두 필요해서 다 긁어 모으게 되나 집이 완성되면 남아 있는 모래알이나 깨진 조각들은 치워야 됩니다. 그때는 깨진 블록 조각들은 방해가 되는 거예요.

이와 같이, 때가 되면 될수록 내가 그들을 믿어 온 것처럼 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생각해 볼 때 행동의 방향이 자꾸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는 데도 그렇습니다. 밀실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세계적인 일을 놓고 일대일의 자리에서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 앞에 훈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통해서 훈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통일교회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일대일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과의 일대일의 깊은 자리에 어떻게 탐구해 들어가느냐,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거기에 남아지는 기수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평범한 생활 기준으로써는 안 됩니다. 모든 껍질이 떨어지고 썩어 버리면 생명의 내용을 지닌 것만이 남아지게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은 죽더라도 맨 나중에 죽고, 망하더라도 맨 나중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더라도 맨 나중에 망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누구냐? 통일교회와 더불어 맨 나중까지 남아질 그 사람이 누구냐? 나 자신이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았으니 각자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 스스로가 민족과 세계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인물이 되려면

선생님은 공부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으로 합니다. 공부를 할 때에 왜 피곤을 느끼느냐? 자기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피곤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 이 한 페이지에 달려 있고 한 문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단어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살고 한 단어를 감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망한다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 들여 그 한 단어를 가하자 하는 심각한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겁니다. 머리가 나쁘긴 왜 나빠요? 여러분, 심각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어요? 생명을 걸고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때가 있지요? 심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여러분이 결심한 것을 잊을 수 있어요? 머리 나쁘다는 것도 다 정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산만하기 때문에 기억이 안 되지, 사지에서 자기가 죽게 될 순간이 다가오는 데 살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른다 할 때 그 묘안을 기억하겠어요, 못하겠어요? 여러분이 공부를 할 때에 책 한 페이지를 한 페이지를 붙들고 생명을 걸고 거기에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볼 때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년, 2년, 3년이라도 정성들입니다. '아, 그것은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할 때까지 뿌리를 뽑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길을 갈 때는 언제나 낙망만이 남습니다.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 민족과 세계는 부활되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활동하며 생애를 살아간다면 현재 자기에게 남아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역사적인 인물로서 남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통이 역사적인 고통이 되어 수많은 인류의 가슴속에 남아지고, 그의 생애에 당한 모든 사연들이 수많은 인류사회에 옮겨지기를 원하는 것이 참의 인연을 따라 나오는 인류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비참한 생애를 살다 갔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10여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오다가 다 잃어버리고, 그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로마 병정, 원수들 앞에 피 흘리며 죽은 처량한 사나이의 행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

예수님은 옆 강도들과 같은 모습으로 죽었지만 그가 생각한 내용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가슴 가슴에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필요한 내용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활의 터전이 되어 가지고 역사를 수습해 나온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남기기 위해서는 편안한 현실 속에서보다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것도 남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남기려는 것은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족의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싸워 나가는 그 길만이 반드시 역사에 남아진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그런 관점에서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삼팔선을 넘어 세계 평화의 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돌아갈 것이 아니라 직행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습니다. 우리 승공연합을 창설하게 될 때, 정보부면 정보부 관계 당국자들은 '통일교회도 이제는 그렇게 뛰어들지 말고 사회 명망 있는 인사들을 내세워 가지고 슬쩍슬쩍 해 가면 될 것이 아니냐. 하필이면 통일교 패들이 해서 오해를 받고 미움을 받을 게 뭐냐. 그것 잘못한 것 아니냐'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출발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끝내야 됩니다. 도피하지 말고 십자가로 시작했으니, 십자가로 거두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방침입니다.

수난과 고생으로 엮어 온 생애에 있어서 우리들이 염려해야 될 것은 환난 과정을 통해서 승리의 결과를 어떻게 남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길을 가야 됩니다. 여러분 일대에서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도 못살게되면 영계에 가서라도 나에게 참소받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잘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을 가면 틀림없이 세계적 승리의 터전이 마련될 것이니 이 길을 가는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가야 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나만 남았나이다'하고 말했을 때, 하나님은 '바알에 굴하지 않은 7천여 무리가 있다(왕상 19:18)'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도 '나만 남았나이다' 할 수 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만 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편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우리 편은 많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의 수가 여기 몇몇 있는 이들만이 아닙니다.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난길보다도 가중된 수난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에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더불어 세계인류와 더불어 있는 정성을 다하게 되면, 여러분의 생애는 기필코 남아질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런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기 도

사랑의 아버님, 높은 태산이 앞에 놓여 있을 때에, 그 산정을 오르려는 사람의 수고도 클 것이겠지만, 그 높고 장엄한 하나의 봉우리로 남아지기까지 역사적인 수난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 자체가 남아지기까지의 수난과 역사의 고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봉우리를 사랑으로 오를 수 있고 사랑으로 넘을 수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또한 남아진 그 큰 봉우리가 평지가 되기 위해서는 억천 만시대의 수난길을 거쳐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가치는 높고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앞에 놓여 있는 세계적인 산정과 같이 남아지기 위해서는 자기의 환경에서부터 역사적인 인연의 범위를 넓혀 나가서 복잡다단한 그 내용을 하나의 형태로 묶어버릴 수 있는 스스로의 역량과 도량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아담 해와의 타락 전에서부터 타락한 이후, 미래에 선한 세계로 복귀될 때까지를 잘 관찰하여 그 내용에 있어서 뼈대가 되어야 할 자신들인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되겠으며,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높은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미래에 자기의 모습을 지탱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형으로서 남아지는 입장에서게 될 때는 높은 산정과 같이 남아질 수 있다 할지라도 그 내용들을 자기와 관계없이 무너뜨리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평지 형태의 인간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적으로 남겨진 모든 유물들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역사적으로 외로운 가운데에 승리를 다짐했던 모든 전부를 우리들의 것으로 수습할 수 있는 엄청난 인격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세계적인 정상을 바라보게 될 때에, 어려운 자리를 피해 갈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나가는 , 세계적인 하나의 개인이 되고, 하나의 가정이 되고, 하나의 민족이 되어서 그런 하나의 주권 국가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진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억조창생이 망하더라도 역사적 종말시대에 승리의 깃발을 꽂고도 남음이 있는 무리가 되겠다는 저희들이라 할 진대, 기필코 당신은 저희들을 통하여 승리의 역사로서 수습해 나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아버지의 섭리역사요, 그렇게 남겨야 할 것이 당신이 남기고자 하시는 사실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도 저희들이 그런 다짐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면한 시련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통일사상에 입각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미치고,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기에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하고, 인류를 사랑하기에 자신을 망각하는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당연히 인류역사의 시련과정을 책임질 수 있고, 어려운 문제들을 자기 스스로 몸부림치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결할 수 있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이런 사람을 통해서 세계의 인륜이 수습되고 역사가 수습되며,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기필코 하나의 중심 기틀이 마련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은 이제 어떠한 생애를 남겨야 할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저희의 생애가 나 홀로 남아지는 생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의 선조들과 더불어, 현시대의 위인들과 더불어, 미래의 선한 후손들과 더불어,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공히 남아질 수 있는 생애를 살아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갖추는 데는 평안한 자리에서 그러한 내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비애의 곡절이 서린 처참한 행각승과 같은 자리를 넘나들면서 그런 내용을 갖추어야겠습니다. 승리할 때에도 그와 같은 자리에, 어려울 때에도 그와 같은 자리에 동참하고 함께 행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최고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물려받을 수 없고, 아버지의 영광을 자기의 영광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 저희들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소한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역사적인 인물로서 책임을 지고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그렇게 나가는 자리는 흥하는 자리가 아니옵니다. 경솔히 했던 자기의 생활을 반성하면서, 그와 같은 감정을 중심삼고 그와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고 앞으로 다가올 세계와 더불어 의논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도 그러한 관점에서 생애를 바치고 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역사로부터 지배받는 생애가 되지 않고, 역사를 지배하는 생애로 남아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통일의 사상권내에 선 당신의 아들딸들 중에서도 그와 같은 생애를 남길 수 있는 아들딸들이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이 민족의 운명을 저희들이 결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삼팔선 이북에 있는 원수 악당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가 깃든 안식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온갖 정성과 온갖 수고를 개의치 않고 나가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정성들여 나온 저희들을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은 어떤 나라를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복의 근원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만인의 가르침의 근본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사오니, 아버지를 아는 것만으로써 전체를 누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지에서도 아들딸이요, 평화의 제단에서도 아들딸이요, 모든 입장에서 아들딸이라고 공인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자리에서도 깊이 인정하고 서로서로 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복귀노정을 떠맡은 전체를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고 맞추며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남겨지는 생애가 자기의 현실보다 수하에 있는 것으로서 남겨질 것이 아니라 더 큰무대를 통하여 자기 스스로 거기에 흡수되는 자리에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가는 자리에서 값진 생애가 남아진다는 것을 알고, 오늘날 이들이 뜻있는 천국창건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런 관점에서 저희들이 과거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비판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현재의 입장을 비판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소망을 중심삼고 영광 가운데 남아질 수 있는 보람찬 생애의 기준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사오니, 그런 기준을 가지고 이제부터 남아지기 위한 생애를 다짐해 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 하루의 전체를 아버지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선이 먼저 나왔느냐, 악이 먼저 나왔느냐 하면 악이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불륜의 사랑으로 출발한 악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악이 출발했느냐?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물질적 조건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랑 문제를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불륜의 사랑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혈통적인 인연이 동기가 되어 악이 출발한 것이 인류의 한이요, 그것이 역사적인 선악의 기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개체는 부모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반드시 부모의 사랑을 기원으로 하여 부모의 핏줄을 통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형성된 것입니다. 자기의 부모를 닮은 그 소성을 어느누구도 갈라 가지고 다른 소성을 갖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원칙을 두고 볼 때, 불가능한 것입니다.

악의 뿌리도 부모의 소성을 근거로 하여 심어졌기 때문에 이 뿌리를 빼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창조원칙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계선을 넘지 않고는 빼낼 수 없는 것이 혈통적 근거를 중심삼은 죄의 뿌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도 이런 혈통적인 것이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시정하느냐? 거짓, 악은 선에 반대되기 때문에 선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같은 계열이라든가, 같은 방향이라든가, 같은 목적을 중심삼고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선의 세계를 추구하고, 선의 인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재래에 엮어오던 역사적인 방향, 재래에 형성되었던 사회적인 체제 그냥 그대로를 가지고는 새로운 선의 목적세계를 추구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방향을 근본적으로 달리해야 합니다. 하나가 동으로 가면 하나는 서로 가고, 하나가 남으로 가면 하나는 북으로 가고, 하나가 내려가면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야 됩니다.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모순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성의 심정을 통하여 그 희망을 달성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심정이지만, 포위된 환경권내에서는 정상적인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을 다시 갖는 다는 것은 일대 혁명적인 세계를 갖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일치되어야 할 신의 섭리와 인간의 소망의 귀결점

종교가 추구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선입니다. 그리고 종교의 중심으로 추구하는 대상은 누구냐? 신입니다. 그 신과 참된 선의 사람이 목적하는 바는 오늘날 죄악된 가운데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 가지고 선한 가치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혹은 신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소망의 귀결점은 일치되어야 하는 데 그것이 일치되는 귀결점이 완성점이요, 완결점입니다. 그 완결점은 외적인 조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물질 문명이 팽배한 황금만능시대에 있어서 물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류의 소망의 귀결점과 신의 섭리의 귀결점을 결정지을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과 참된 하나님이 생명을 가지고 참된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서 참된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된 새로운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요인, 희망의 요인, 행복의 요인은 무엇이냐 하면 참된 사람과 참된 신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 이상의 기쁨이 인류역사상에 혹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세계에 나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도 희망하고 신도 희망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우리가 바라는 소원의 결정적 포인트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신의 섭리 가운데서 인간을 교육해야 합니다. 교육하는 데는 그것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그것과 인연을 맺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이 종교를 통하여 펴려고 하는 최후의 골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성서라든가 각 종교의 경서를 살펴보면 반드시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하늘을 사랑해야 합니다. 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천지인(天地人)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땅을 먼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땅은 사랑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먼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은 사랑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사랑의 기원은 무엇이냐? 절대자 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땅과 만물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의 최고의 표준이 무엇이냐? 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엔 만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물자를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려고 하는 것도 다 거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를 존중하고 인류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준 위에서 경제기반을 갖춘 사랑의 기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최고의 이상, 인간에게 있어서 외적인 이상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솟구쳐 오르는 내적인 모든 심정문제를 중심삼은 신앙까지도 보호하고 주관할 수 있는 모체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심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적인 분야에 있어서 상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았더라면

이러한 모든 것을 두고 볼 때,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가르쳐 주는 첫마디는 무슨 말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신이 사람을 사랑해야 되느냐, 사람이 신을 사랑해야 되느냐, 어느 것이 원칙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세계에 있어서는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사랑의 한계가 어느 정도까지냐? 완전한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우리 인간이 요구할 것입니다. 이런 완전한 사랑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완전한 사랑의 터전 위에서 우리의 생명이 결정되고, 그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외적인 생활무대가 전개되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터전이 되었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럴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절대적인 신 앞에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절대적인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했을 것이냐? 이것은 생명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생명도 그 사랑의 힘 앞에 지배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제일 어려운 일을 행함에 있어서 권위있는 힘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떤 외적인 세계의 권력이 아닙니다.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죽고 사는 것을 일상생활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사랑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법도권내에서 신이 우리 인간을 완전히 사랑했느냐? 또 인간이 본래 아들딸의 인연으로 지음받을 때는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런 사랑을 받았느냐? 받았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깊이 사랑했던 그 사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고로도 어떤 스승의 교훈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신과 우리 인간이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한 사랑을 했고 완전한 사랑을 받았다면 얼마나 기뻤을 것이냐? 그리고 얼마나 좋았을 것이냐? 만약 그랬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비운의 역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힘을 총합한 주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집중된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것과는 일체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자살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끌려들어갈 때는 외적인 그 무엇이 그를 간섭할 수 없고,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힘이 총합된 주체적 혹은 주관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게 될 때는 그 무엇도 그를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 인간 시조가 이러한 기원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다' 하시면서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는 그러한 입장에 인간이 섰더라면, 인간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겠느냐 말입니다.

여러분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겁니다. 우리에게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역사적인 비참상인 것입니다. 만일 인간과 신이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맺었더라면 신이 있고 없고가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존재의식을 초월한 감정권에서 관계맺고 있는 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신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모두 인간이 타락하여 딴 인연 가운데서 태어나게 된 서글픔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수많은 경서나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목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아요.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부모의 사랑을 백 퍼센트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거 부모의 사랑 보따리를 수자로 표시해서는 안 되지만, 부모가 천만큼의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 자식에게 구백만큼의 사랑만 주고 백 만큼의 사랑은 남겨 두었다고 하면, 아무리 사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식은 사랑을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구백만큼의 사랑에 나머지 백만큼의 사랑을 다 채워 주어야 그제서야 비로소 사랑을 다 받았구나 하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결혼해 가지고 색시나 신랑되는 사람이 '당신 날 사랑하오' 하고 물었을 때, '99퍼센트만 사랑하오' 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백 퍼센트 사랑하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사랑만이 전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사랑만이 전체를 줄 수 있고 전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주고 전체를 받아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통일이 된다면 완전 통일이 아니겠느냐 말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분이냐

그러면 신은 대관절 어떤 분이냐? 신은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냐? 나를 만들어 준 분입니다. 그러면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면 얼마나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 것인가?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눈에 속눈썹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속눈썹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바람에 몰려 들어오는 먼지가 눈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속눈썹이 칸막이같이 떡 버티고 있어서 들어오는 먼지를 다 막는 것입니다. 또 눈이 매일같이 깜박깜박하는데, 그것이 누가 시킨 것입니까? 자기 스스로 눈을 깜박깜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태어났어요? 그런 것 생각해 본적 있어요? 눈이 몇 초마다 깜박거리는데 누가 그러라고 했어요? 자기 아버지가 그랬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 아버지의 엄마 아빠, 그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절대자에게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분이 그렇게 만든 거다 이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태어날 때에 눈이 이렇게 생겨야 되고, 깜박깜박해야 되고, 속눈썹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태어났어요? 시커멓고 허여멀건 것이 가만히 보면 꼴불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그저 생각 없이, 설계 없이, 계획 없이, 멋대로 붙은 것 같아요? 눈썹이 없으면 소낙비를 맞으면 그 빗물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 빗물은 전부 다 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땀이 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눈썹이 산맥같이 가로막고 있으니, 빗물이나 땀이 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눈알이 움푹 들어갔다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 동그란 눈 알을 눈꺼풀로 싹 덮어 놓았기 때문에 빗물이 흘러도 요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과학적인 계획밑에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코를 한번 보세요. 이놈의 코가 왜 여기에 붙어 있어요? 자기 멋대로 생겨났다면 거꾸로 붙지. 만일 거꾸로 붙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소낙비 오는 날 참 좋겠구만. 어쩌자고 이렇게 붙었어요?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코털은 어쩌자고 이렇게 붙었어요? 이것이 얄궂다면 얄궂고, 재수없다면 재수없고, 기묘하다면 기기묘묘하다 이겁니다. 이것이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어요.」 몰랐으면 왜 여기에 붙었겠어요?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는 것을 코털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눈은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또, 이놈의 입이 이 땅에 준비된 만물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누가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았어요? 소위 대학생이라는 사람들이 신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하는데 그런 작자들이 알았다는 거예요?

또, 손을 한번 봐요. 손이 반대로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안 되지요. 또, 손이 하나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것이 다 거꾸로는 안 되게 되어있거든? 거꾸로 돼요? 그러면 이것이 잡아야 할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다 이겁니다. 발은 어때요? 발가락이 이렇게 앞에 붙어 있지 않고 뒤에 붙었다면 걸을 수 있겠어요? 생각해보세요. 이걸 볼 때 발가락이 생겨난 것은 걸어다닐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전부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코털은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눈은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입은 먹을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다 알고 나온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알았느냐 이겁니다. 백두산이나 히말라야 산맥이나 에베레스트산이 알았어요? 산이 안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생겨날 수 있어요? 내가 이렇게 생겨난 것을 보면 나 이전에 어떠한 인격적인 내용을 갖춘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미 원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존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하든지 돌멩이라고 하든지 벽돌이라고 하든지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자체만은 시인해야 됩니다. 그러나 공산당들은 귀찮으니까 이것을 부인합니다.

인간의 몸은 신비의 왕궁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는 어떻게 밥을 먹습니까? 숨은 어떻게 쉽니까? 만일 태아가 뱃속에서 코로 숨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데 거기서 코로 숨을 쉬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숨을 쉬느냐? 탯줄로 숨을 쉬는 것입니다. 밥도 탯줄을 통해서 먹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물 없는 세상에 나오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탯줄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됩니다. 나오자마자 이것을 체인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기가 태어날 때 거기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 가지고 나오느냐, 안 해 가지고 나오느냐? 해 가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공기도 맡기 전에 죽어 가지고 도로아미타불 되라구요? 만반의 준비를 해 가지고 '응아' 하며 새로운 생명체로 뛰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다 알았어요?

누가 그렇게 준비해 놓았어요? 어머니의 배가 그렇게 준비해 놓았어요? 이런 것 저런 것을 볼 때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설계된 아주 멋진 제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어요? 부정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하나의 결과적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어떠한 제3 존재가 있어서 준비를 했다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 부정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부정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여러분도 꼼짝 못하고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끝이 없겠구만.

몸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요 손톱 하나 가지고도 의학적으로 몇천 년, 몇만 년 연구해도 끝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박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건달꾼들입니다. 박사들이 연구하는 것과 전우주를 비교해 보면 몇억천만분지 일에도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소위 박사라는 사람들이 신이 없고 뭐 어떻다고 결론짓는 것을 믿을 수 있어요?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무슨 공식이니 법칙이니 하지만 그런 것을 초월한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공식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무슨 고등수학의 공식들은 우주의 공식세계에 있어서 몇 단계에 속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환경에 대비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다고 생각하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모르겠다고 대답하겠어요?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 물을 필요도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신이 없다고 할 사람이 많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주체와 대상

완전한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은 사랑을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 관계가 아니고는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이고, 우주의 중심되는 주인인데, 그 주인이 사랑이라니 그 하나님은 혼자 있어야 되겠어요, 둘이 있어야 되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혼자 있어야 되겠어요, 둘이 있어야 되겠어요?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사랑이 성립되면 거기에서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번식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즉, 사랑의 문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인연을 주장하고 살려면 주체와 대상의 기준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냐? 존재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출발되느냐?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발생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연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거예요? 대답해 봐요. 여기 세계 챔피언이 있다면 그가 가만히 있을 때 힘이 나타나요? 상대가 있어야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힘이라는 것은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그 상대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반드시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은 무엇이냐? 중심과 외형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유의 현상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어야 됩니다.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의 상대관계가 형성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주체입니다. 주체는 무엇이냐? 핵입니다. 그러면 핵은 사각형이에요, 원형이예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한정이 없지만, 하여튼 들어 보라구요. 오늘 이야기 다 못하면 이 다음에 또 하지요. 핵은 정지하고 있느냐, 운동하고 있느냐? 항상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운동을 하려면 사각형이어야 되느냐, 원형이어야 되느냐? 원형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하는 핵을 중심삼은 결과적인 존재는 반드시 원형을 닮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끝이 뾰족해요, 둥글어요? 둥글지요. 그것은 전부 다 원형을 닮아났기 때문입니다. 주먹을 쥐면 둥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잘살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은 퉁퉁한 사람입니다. 원형에 가까운 타입일수록 완성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만(圓滿)한 것을 좋아해요, 각만(角滿)한 것을 좋아해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원형입니다.

인간 가운데 제일 귀한 부분이 뭐냐? 제일 동그랗게 생긴 부분입니다. 그러면 동그랗게 생긴 것이 뭐냐? 눈, 심장, 중요한 기관은 전부 다 둥글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람의 모체이며 만유의 핵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존재의 핵 되시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셔야만 했느냐? 그것은 핵 혼자만 있어 가지고는 핵 자체가 망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전기로 말하면 아무리 완전한 플러스라 해도 플러스만 있고 마이너스가 없을 때는 없어지지 말라고 해도 전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플러스가 없어지지 않으려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창조의 역사를 거쳐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왜? 서로가 주고 받아야 존재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호흡해야만 생명이 유지되지요? 심장의 피가 주고받아서 돌아가야만 생명이 유지되지요? 외짝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것을 주고받으면 재미있겠어요, 재미없겠어요?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주체의 모양과 대상의 모양이 다른 것입니다. 알겠어요? 밥을 먹을 때도 매일같이 김치 깍두기만 먹으면 다른 것이 먹고 싶어요, 안 먹고 싶어요? 음식도 매일같이 다른 것을 갖다 넣어야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조미료가 발달된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평범하면 시시하거든요.

주체와 대상이 같으면 재미있겠어요, 재미없겠어요? 만일 여자가 수염이 났다면 어땠을까요? (웃음) 여자와 남자가 같으면 서로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가치적 존재로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대적 관계라는 거예요. 그 내용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 색다른 자극적인 요건을 갖추어야만 상대적 존재로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좀 어려워서 여러분은 이해하기가 힘들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고 싶어서 창조했느냐? 주체가 혼자 있으면 어떻게 돼요? 해체됩니다. 그러니까 존재하기 위해서는 할수없이 피조세계를 안 만들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세계의 중심은 무엇이냐? 나무도 호랑이 새끼도 사자 새끼도 원숭이 새끼도 아니더라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사람이더라 이겁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창조를 어디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냐? 양전기와 음전기가 서로 만나려고 할 때는 높은 꼭대기에 모이지요? 제일 높은 꼭대기에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는 무엇과 합하고자 할 것이냐? 제일 높은 꼭대기에 있는 것하고 합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 높은 꼭대기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입니다.

자유를 다시 찾고자 하지요? 자유를 다시 찾고자 하는 것은 자유를 가졌다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자유를 다시 찾자는 것 아니예요?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세계를 수습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완전한 핵의 주체라면, 그 주체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핵과 사랑이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에 있다면 영존하는 것입니다. 핵의 중심인 사랑과 핵이 서로 주고받는 데 불안이 있을 수 있겠으며, 불평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러한 주체의 상대적 존재로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몸이 그 주체를 닮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정적 사랑이 하나님의 외형적 핵과 일체가 되어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내적인 마음과 외적인 몸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불행의 요인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상대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본성을 받아 태어난 인간도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대상의 입장에 놓인 몸뚱이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 이해되지요? 이렇게 되었더라면 틀림없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의좋은 부부를 갈라 놓을 수 있어요? 가령, 지금 애인과 함께 죽으러 가는 여자가 있는데, 다른 남자가 나타나서 너의 남자 따라가서 죽지 말고 나하고 같이 가자 한다면 그 말이 그 여자에게 통하겠습니까? 사랑 때문에 죽으러 가는 청년 남녀가 있는 데 남자를 보니까 못생겼어요. 그래서 거기에 어떤 미남이 나타나서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이 남자보다 내가 더 훌륭하고, 모든 일에도 내가 더 능하니 나를 따라오시오. 죽기는 왜 죽어요?' 한다면, 그 여자가 '그러겠소' 하겠어요? 도리어 그 남자에게 '뭐야 이놈'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바탕의 근원이 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죽음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폭발하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해되지요?

그러한 사랑의 핵적인 존재가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이 하나님을 닮은 상대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성에 대응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핵적인 내용과 마찬가지의 성품을 대신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 뿌리가 어디냐? 사랑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서 평화가 나오고, 그 사랑에서 행복이 나오며, 그 사랑에서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돈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플러스가 완전한 사랑을 체득했다 하게 되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난다 그랬지요? 생겨나 가지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할 텐데 요것이 완전한 플러스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또 다른 사랑이 몸뚱이를 통해서 주입되어 플러스가 생겨났습니다. 플러스 대시(+')가 생겨났다는 거예요.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겠어요? 서로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에는 서로 다른 사랑의 목적을 중심삼은 마음과 몸이 서로 상반된 인연 가운데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행복하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있다면 그는 아마 미친 녀석일 것입니다. 행복은 무슨 행복이에요? 행복하지도 못한 녀석들이 뭐가 잘났다고 눈을 껌벅껌벅거리며 먹고 살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웃음) 고아 중에서도 처량한 고아가 되어 가지고 그래도 살겠다고 하니, 그것이 인생의 불행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투쟁해요, 안 해요? 「투쟁합니다」 여러분의 개체는 밤낮없이 싸웁니다. 이 싸우는 개체가 둘이 되면 가정이 되고, 열이 되면 마을이 되고, 천, 만이 되면 민족이 되고, 수백만 수억이 되면 인류가 되는 것 아니예요? 이 싸움의 누더기판을 벌여 놓은 곳에 평화가 있겠어요?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의 기원은 개인에서부터 회복해야 됩니다. 육적인 것들을 처치하고 마음의 욕망을 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육적인 모든 조건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교를 믿더라도 이러한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통일교회 들어올 때 그런 자리에서 들어왔어요? 그런 마음을 갖고 들어왔어요? 통일교회도 종교인데 여기에 들어올 때 그런 근본 문제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 올 수 있느냐, 부정의 과정을 거쳐야 하느냐? 종교는 완전히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입교하는 그날부터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무엇까지? 사랑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도의 길을 닦아 나가는 데 있어서 남자에게는 여자가 원수요, 여자에게는 남자가 원수입니다. 심을 때 잘못 심었기 때문에, 그릇된 사랑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려면 그 길을 다시 거쳐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릇된 사랑의 상대가 나타나서 유혹을 하는 것은 복귀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사랑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요인을 추방해야 됩니다. 이것이 종교의 과제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가을에 밤나무의 밤송이가 완전히 여물어서 껍데기가 벌어져 떨어지는 알밤과 같으면 양심이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은 아직까지 미숙한 밤톨과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성숙되어 타락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때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재차 문을 열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그 마음에 충당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산수도하여 정성들인다는 말 들어 봤지요? 그렇게 정성을 들여 문이 열리는 것을 영통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 문이 열리면, 지금까지 마음에 있던 힘보다 몇 배 강한 힘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을 무엇이라 할까? 우주력이라 할까? 전체를 규합시키고 주관할 수 있는 자제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생기게 되면 힘으로 볼 때는 상대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음에 사랑의 힘을 다시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취하게 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친 사람이 혼자 웃지요? 미친 사람도 웃는 데,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면 얼마나 웃겠냐 말입니다. 웃어도 웃어도 자꾸 웃음이 나와서 입이 말려들어갈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기분이 좋고 눈을 떠도 기분이 좋고 천년 만년 살아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여러분에게 그런 사랑의 힘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대번에 세포 전체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한꺼번에 그 사랑에 귀결되어 가지고 그 품에 품겨 거기에서 춤이라도 추게 될 것입니다. 그 춤을 자기 혼자 추는 것 같지만, 세계가 거기에 박자를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힘을 보강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정성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본향, 즉 타락의 한계선 이상 올라가서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면 여기에 완전한 플러스가 오게 됩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

사랑의 힘을 보강하는 방법의 하나는 내적인 힘을 뚫고 들어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몸뚱이를 때려잡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금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 금식을 못 하면 통일교회 정식회원이 못 됩니다.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예수님이 며칠 금식을 했어요? 40일 금식을 했습니다. 성인이란 이름을 가진 예수님도 40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본연의 자리로 좁혀 들어갔던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찾기 위하여 불완전한 것을 밀치고 40일 금식도 했다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사탄의 사랑을 통했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높아지겠다고 들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교만이 사탄의 본질이요, 반발이 사탄의 본성입니다. 그러한 사탄의 핏줄을 받았으니 언제나 자기 중심삼고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때려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정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 상대의 인격자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의 보따리는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간의 소원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대통령이 되고 싶지요? 대통령이 못 된다면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되고 싶지요? 그것도 못 되면 대통령의 사위라도 되고 싶지요?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다는 사람은 바보 천치입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대학 가요? 여러분, 출세하고 싶어요, 출세 안하고 싶어요? 출세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세계 대통령이 되고 싶을 만큼. 하나님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 있어서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은 그곳을 향하여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릇된 혈육과 혼합된 욕망으로 나타나 가지고 본성의 욕망을 파탄시키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정령하는 날에는 소원을 다 이루게 되어 다른 것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딱 집어 넣고 쇠를 딸까닥 채운 후에는 낮잠을 자지 말래도 자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갖다 준다고 해도 귀찮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욕망의 안착점이 있을 거 아녜요?

같은 극끼리 반발하는 이유

힘은 상대적 관계에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에서 바라는 욕망의 힘은 주체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후에는 또다시 반발하는 것입니다. 일체가 되었는데 왜 반발하느냐? 반발 안 한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반발 하는지 반발 안 하는지 보라구요.

전기 원리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하나되지만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는 반발하지요? 그것이 왜 반발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반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발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소나기가 내리려고 할 때는 시커먼 구름이 몰려 오면서 우르르쾅쾅 하지요? 바로 그 원리예요. 그것이 무슨 작용에 의해서 그래요? 전기 작용에 의해서 그런 것입니다. 수억 볼트되는 플러스 힘과 마이너스 힘이 서로 그리워하다가 부딪치면서 빛을 내는 것입니다. 사랑도 빛이 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수억 볼트에 해당하는 플러스 힘이 한꺼번에 화다닥 튀어나오는 거냐? 아닙니다. 조금 플러스 플러스끼리 합동공세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큰 플러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그만 플러스들이 합해 가지고 큰플러스권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플러스의 총합권을 거치지 않고는 대(大) 플러스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아니냐? 그 이론이 맞지요?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안 되었더라면 이것을 가지고 박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플러스끼리 합해져서 대플러스가 생겨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플러스 앞에는 마이너스가 생겨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마이너스가 생겨나기 전에 플러스가 생기면 그 플러스끼리 합한다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막 부딪치려는 순간에 조금 앞서서 다른 플러스가 생기게 되면 그 플러스끼리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이너스는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몇억만 분의 일 정도라도 떨어져서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플러스가 합하여 완전한 플러스권을 이루고, 거기에 대등한 마이너스권이 형성되면 빛이 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플러스 앞에 마이너스가 결정된 후부터는 같은 극끼리 만나면 서로 반발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실감이 나지요? 장가가기 전에는 총각과 총각끼리 합할 수 있습니다. 또, 시집가기 전에는 처녀와 처녀끼리 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달라집니다. 미남과 결혼한 추녀가 있다면 그녀는 자기의 친구들 가운데 미인이 자기 남편 앞에 얼씬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친구들이 오면 싫어하는 것입니다. 반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실감이 나지요? 이것은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에 없는 미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는 데 친구들이 수두룩이 와 가지고 농담을 하거나 조금 눈치만 달라도 그 남자는 친구들에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연고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원칙을 보게 되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지 못한 존재는 영속하지 못합니다.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존재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영속적인 형을 닮았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영속할 수 있을 것이로되 마이너스나 플러스가 혼자 있게 된다면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물우물하지 말고 상대를 만들어 가지고 존속하라는 것입니다.

천지는, 모든 작용의 세계는 반발과 융합의 작용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반발작용이 영원히 반발하는 것이라면 그건 모순입니다. 존속하기 위한 제2의 권을 형성하기 위한 배척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되지요? 「예」 이런 것은 대학생쯤 되면 알아 두어야 됩니다. 이걸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배워야 돼요. 이런 얘기를 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안 들은 것보다 나을 테니 알아 두라는 것입니다.

타락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법도

우리 인간은 완전한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에게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데 딴 것이 와서 부딪치면 얼마나 배척하겠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요 원칙에 의해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되었다 하는 날에는 얼마나 배척하겠나 말입니다. 다른 것들이 와 붙을 수 있겠어요? 왔다가는 들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 구조가 실감이 나지요?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다 떠돌이패라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가 붙지 않으면 자기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옥 가게 됩니다. 지옥은 폐물 보관소예요. 그러니 어디에 가 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어디에 붙어야 하느냐? 그래서 여러 종교를 헤쳐 보니 제일 멋진 가르침이 성경 가운데 있더라 이겁니다. 그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의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이 천칙(天則)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실감이 날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모든 존재의 법도 중에서 최고의 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전체의 가치와 전체의 본질을 전부 다 상대에게 옮겨주기 위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또 다른 플러스 대시(+')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반발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것을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후손이냐? 혈통적으로 본질적 플러스의 사랑의 인연을 통한 아들딸이냐, 그렇지 않으면 플러스 대시의 사랑의 인연을 통한 아들딸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플러스 대시예요, 플러스예요? 플러스 대시입니다. 플러스 대시가 틀림없지요? 「예」 또 우리 아가씨들도 플러스 대시가 틀림없지요? 「예」 그러면 이제부터는 처리방법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할 거예요? 선택의 자유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망하는 것은 싫지요? 망할 자식이라는 욕은 하지만, 잘될 자식이라는 욕은 없거든요? 욕중에서도 망할 자식이라는 욕이 제일 나쁜 욕입니다. 그러니까 망하지 않으려면 전부 다 하나님하고 관계를 맺어야 되겠어요, 안 맺어야 되겠어요? 「맺어야 됩니다」 하나님하고 관계를 맺는데 종교의 내용을 통하지 않고 맺을 수 있느냐? 맺을 수 없습니다. 없으니 종교가 있어야 되느냐, 없어야 되느냐? 종교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것을 현재 대학가의 젊은이들에게 일깨워서 그들의 뇌수에 틀어 박혀 있는 고리타분한 걸레 짜박지 같은 생각들을 말끔히 청소해 버리고 종교를 믿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으로만 만들어 놓으면 공산당은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플러스 대시의 후손입니다. 그 플러스 대시는 어떤 놈이냐? 악의 주체입니다. 그 악의 주체가 대관절 어떻게 생겨났느냐? 어저께도 간단히 얘기했지만 하나님이 아들딸을 결혼시켜 가지고 재미있게 살려는 준비를 하는데 그 집에 있는 나이 많은 노련한 종이 하나님이 키워나온 장차 인류의 어머니가 될 해와를 유혹해 가지고 겁탈하여 딴 사랑의 핏줄을 맺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해라. 중생해라. 다시 태어나야 된다. 다시 살아야 된다'고 하는 말들이 나오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중생해서 다시 태어나야 되겠나, 그냥 그대로 있어야 되겠나?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중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인류가 거짓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뿌리를 잘못 뻗었다는 것입니다. 뿌리의 모양은 갖고 있으되 부정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존할 수 없습니다. 영존할 수 있는 인연은 갖고 있지만 영존할 수 없기 때문에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생창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민을 회생시키려면 참부모의 자리를 재현시켜야

참부모가 나오려면 먼저 참된 남자가 나와야 되겠지요? 지금까지 종교는 참된 남자 하나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완성한 참된 남성을 찾기 전까지의 사랑은 천륜의 법도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인 기독교에서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불교도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완전한 남자가 나와서 완전한 여자를 맞아 사랑의 법도를 세우지 못했는데, 껄렁껄렁한 남자들과 껄렁껄렁한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겠어요? 아직까지 본래의 결혼식을 못해보았는데……. 타락된 결혼식을 한 것이 하나님의 원한 중의 원한이요 슬픔 중의 슬픔인데, 그나마도 거기에 또 반발을 할 것이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때까지 독신생활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완성한 남자, 참된 남자가 나와 가지고 참된 여자를 만날 때까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 참부모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은 재림사상입니다. 재림주는 인류의 조상 되는 참아버지자격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아버지의 사명을 하러 오셨던 것입니다. 완성된 남성으로 와 가지고 완성된 여성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참부모의 가정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변치 않는 주체와 대상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들딸을 남겨야 했습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손자라구요. 하나님의 손자, 하나님의 혈족을 남기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는데, 예수님을 잡아죽임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출장 가서 일을 못 마치고 돌아왔으면 다시 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재림사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류의 참된 조상, 즉 아버지로 오셨더랬는데, 그 아버지를 죽였으니 그 죄를 무엇으로 갚을 것이냐 이겁니다. 그 죄를 무엇으로 사함받을 거예요? 사함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만민은 이 죄에 걸려 가지고 영락없이 지옥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벌을 받게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어야 할 존재들이 아버지를 모르고 죽였으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고는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 앞에 새로운 희소식을 갖다 줄 수 있는 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하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인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그렇게 안 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신이 있다면 그렇게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재림할 때에, 신랑으로 와 가지고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된 부모의 자리를 재현시키지 않고는 만민을 회생시킬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참된 부모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도리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도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합동 결혼식을 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도 머리가 깨인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시키지 않고 추방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 사람도 내가 오라 하면 '네, 가겠습니다' 하고 달려오고, 일본 사람도 내가 오라고 하면 '네, 가겠습니다' 하고 달려오는 것입니다. 천황이 반대하든 대통령이 반대하든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코를 딱 걸고 세계를 잡아들이면 세계가 걸려 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도 하늘을 중심삼은 새로운 부모의 사랑과 관계맺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할 때는 선생님하고 어머니하고 둘이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전수식입니다. 여기서 조성된 전통은 영원한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혁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혁명이 필요없는 새로운 전통이 이 천지간에 세워질 때, 여기서부터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 이 지구성을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된 사랑의 결실시대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처음 말씀을 들으면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심지어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자기 집에 가는 것은 죽는 것만큼 싫고, 교회에 오는 것은 참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느껴봤어요?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타락이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악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거짓된 사랑으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돌리고 사탄과 비법적인 사랑, 즉 불륜한 사랑을 함으로써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몇 살 때 타락했느냐? 틴에이져(teen-ager) 때에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세계적인 청소년의 윤락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를 풍미하는 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릇된 사랑의 씨를 뿌린 것을 세계적으로 수확하는 가을 절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가 오면 여러분은 타락된 사랑의 결실시대가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처녀 총각들이 전부 다 자기 멋대로 고귀한 사랑을 유린해 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모를 부정하고 배반한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횡적으로 만나는 풍조가 세계적으로 벌어지거든 새로운 젊은이의 사랑의 법도의 칼을 가지고 이것을 한꺼번에 잘라 버려야 됩니다. 이 잘라 버리는 주의는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여기에 맞춰 춤을 추어야 되겠어요, 안 추어야 되겠어요? 연애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서양풍조가 다 좋으냐?

선생님은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히피족 박멸운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 미국에 가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을 잡아다가 태평양 바다에 한꺼번에 쓸어 넣는 운동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 근성을 지닌 사람들은 어차피 내 손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강하면 모르지만 내 작전에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공갈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웃음)

여러분,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지요? 거짓 사랑의 씨를 뿌린 것을 거두어들이는 가을 절기가 왔기 때문에 거짓 것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록과 관계를 맺지 못한 거짓 사랑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만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20년 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60년대에 들어와 가지고 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겨울 절기를 통과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져야

여러분이 원리를 알게 되면 진리가 참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살 재미가 난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사니 그렇지 알고 보면 살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한번 되어 보지 않겠어요? 되어 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내가 그것을 그냥은 안 가르쳐 줄 것입니다. 월사금 내야 가르쳐 줄 거예요. (웃음) 앞으로는 내가 강단에 나서서 강연하게 될 때에 한 삼만 원 안 낸 사람은 앉을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공석에 잘 안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삼만원 이상 준비해 가지고 와야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야 실감이 나지요.

그러면 이것을 어차피 한번 해부해야 되겠어요, 해부 안 해도 되겠어요? 「해부해야 되겠습니다」 해부할 때 이와 같은 것을 바로잡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일체가 되는 기준을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고것을 남기기 위한 뜻을 붙들고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이러한 터전을 만들었다 하는 종교가 나오거든 새시대가 출발한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아담하고 해와하고 천사장, 이 넷만 하나되면 벌써 세계의 출발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넷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기준을 세워 놓아야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가을 절기가 왔다는 사실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겨울은 생명이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노정입니다. 생명을 가지지 못한 것은 다 여기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하라는 것입니다. 새생명은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주의와 사상, 그리고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겨울 절기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겨울절기를 통과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 그걸 통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가면 갈수록 봄날이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봄날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믿게 되면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가을 절기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친구도 없어지고, 어머니 아버지도 멀어지게 됩니다. 자기를 따라오면 더욱더 좋지만 다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려운 길도 뚫고 나가지만, 생명이 없는 것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같이 죽자구나'할 때 그럴 수 있나요? 하나님은 생명이 있는 존재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생명을 갖지 못한 부모들과는 상충이 있게 되어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부모가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있을 거라구. 또 친구도 통일교회 믿는 다고 반대하는 사람 있을 거라구. 학교 선생님까지도 통일교회 믿는 것은 죽는 길이라고 그러지요? 지금까지 여름과 가을밖에 모르는 사람들 앞에는 겨울은 죽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 앞에는 겨울은 사는 것입니다.

잣씨 같은 것은 말이야, 겨울의 추위 때문에 씨가 터져서 싹이 나오는 것인데 춥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물론 씨가 터지긴 터지겠지만 겨울이 도리어 싹이 나올 수 있도록 씨를 터트리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조화는 모든 생사지권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인들은 핍박을 받아 다 떨어지더라도 내일의 소망을 위해서 '가자! 가자!' 하고 가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무리예요? 「예」 정말? 「예」 그렇다면 소망이 있겠구만. 재봉춘하자구요!

재봉춘해서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재봉춘해 가지고는 본연의 완전한 사랑을 넘을 수 있는 완성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인류의 조상의 기원을 갖지 못하였던 인류역사를 바로 고쳐 가지고 참된 부모의 혈육을 통하지 못한 역사의 비참함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권위있는 아들딸이 되어 새로운 가정을 모색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바로 천주주의입니다.

'천주'라는 말에서 주 자가 무슨 주 자예요? 집 주(宙)자입니다. 왜 집 주(宙) 자를 썼느냐 이겁니다. 고걸 알아야 됩니다. 천주라는 것은 영계와 육계를 합한 것입니다. 무형세계와 유형세계가 합한 것입니다. 전부 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조화통이다 이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세계를 보면 돈을 벌기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인류가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고독단신으로 개척자의 사명을 했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멋지잖아요?

내 나이 오십이지만 그냥 오십이라고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육천 오십이다 이겁니다. 육천 오십 년 동안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살았으면 잘 살았지요? 여러분, 내가 한 오십으로 보여요? 그냥 쉰 살이 아닙니다. 육천 오십 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살이에요?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6천년 동안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멋지게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없다 이겁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인 일을 많이 지켜 봤기 때문에 많이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가 우리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철학의 거두 같은 양반이 내 말을 잘 듣습니다. 그 사람이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고 우리 집을 자기의 좋은 주택보다 더 마음에 두고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영감에게 '이번 10월 21일에 777쌍 합동 결혼식이 있는데 참석할 것이냐, 참석 안 할 것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영감이 자기 비서에게 날짜를 알아 보라고 하더니 21일에 인도네시아 왕을 면담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전에도 사정이 있어서 왕과의 면담을 두 번씩이나 연기시켰기 때문에 이번에 연기시키면 3차로 연기시키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감 걸작인 것이 이 합동결혼식에 참석할 기회는 자기 일생에 이번 한번뿐이지만 왕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니냐면서 그 계획을 취소하고 합동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영감이 손해보는 데도 날 좋아하겠어요? 일본에서도 4천억 정도를 지니고 있는 영감인데….

천지보다 더 높고 깊고 넓게 믿으라

여러분, 합동결혼식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가씨들 시집을 갈래요, 안 갈래요? 시집 가고 싶어요? 노골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시집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그러면, 그냥 그대로 신랑네 집으로 갈래요, 선생님을 거쳐 가지고 신랑집으로 갈래요? 「선생님을 거쳐 가지고 가겠습니다」 왜? 그렇게 안 하면 안 되게끔 돼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교리를 안 이상 선생님의 집을 거쳐서 딱지라도 하나가지고 가야지 안 가지고 가게 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이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것이 여러분의 소원일 것입니다.

3·1운동에 참석했던 사람 중에 이갑성이란 사람이 있지요? 그 사람이 지금 혼자 살아 있는 데 3·1운동을 놓고 볼 때는 그 사람이 대통령보다도 더 높아요, 안 높아요?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이 더 높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통해 합동결혼식을 한 사람은 세계적인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록 맨 마지막에 결혼한 쌍이 부처가 모두 눈도 하나 없고 코도 삐뚤어지고 귀도 하나 없고 팔도 하나 없는 병신중의 상병신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세계적인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을 통해서 축복받았다는 그 자체가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건 몇억만 불 주고도 못 사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 그거 알아요? 얼마만큼 알아요?

이번에는 777쌍이 합동결혼식을 하지만, 앞으로는 7억 7천 7백 7십 7만쌍까지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축복을 받겠다고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부자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런 의미에서 내가 여의도의 땅을 한 만 평 정도 사려고 합니다. 이번에 합동결혼할 사람들은 이 축복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 기록을 수립한 기념비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내가 한국 전체를 살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중앙청도 한 평에 5백만 원 한다면 그 네 배인 2천만 원씩 주겠다고 하면 중앙청이라도 팔지 별수 있어요? 딴 데다 집을 짓더라도 팔게 돼 있는 거라구요. 중앙청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통일교회 안 믿겠으면 죽든가 딴 데 가서 살든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두 가지 방안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웃기는 왜 웃어? 기분 나쁘게. 그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통일교회 교인들을 고생시키고 욕을 퍼부으면서 얼마나 참는가를 두고 보는 것입니다. 시험해 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몇 해 동안 시험하느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시험해 나오셨으니 나는 한 6백년 쯤 시험해 봐야지요. 그러자면 선생님이 7백년은 살아야 됩니다. 7백년은 너무 기니까 한 70년쯤 시험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70년은 살 것 아니예요? 일생 동안 시험해 봐 가지고 여러분의 아들딸을 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얼마나 믿어야 되느냐 이겁니다. 천지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더 높고 더 깊고, 더 넓게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의 여편네를 팔아먹고, 아들딸을 팔아먹어도 나를 좋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기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의 사랑하는 여편네를 데려다가 양코들한테 팔아먹고, 여러분의 아들딸을 데려다가 전부 사지에다 팔아먹는 데도 좋아할 수 있어요? 그런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떠했느냐? 나 자신도 그런 테스트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담이 아들이고 해와가 딸입니다. 그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면 하나님이 아담 속에 들어가고 해와속에 들어가서 결혼식을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혼식은 누구의 결혼식이에요? 아담과 해와의 결혼식인 동시에 하나님의 결혼식 아니예요? 그러면 해와는 누구의 아내에요? 아담의 아내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은 누구냐? 하나님의 아내를 빼앗은 간부(姦夫)입니다. 알겠어요? 사탄, 즉 악의 주체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내를 빼앗은 간부라는 것입니다. 간부라 하면 무슨 기관의 간부(幹部)가 아닙니다. 사랑을 따 먹은 간부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랑의 원수인 사탄을 복귀하려 하시나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였는데 왜 사탄 마귀를 용서 못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여인의 사랑을 밟아 버렸기 때문에 악의 주체 되는 사탄을 용서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인연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왕을 쫓아 버리고 왕후를 타고 앉은 간부의 핏줄을 받은 것이 여러분의 조상이더라 이겁니다. 기가 막히지요? 그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은 기분이 나빠 죽겠어요. 어느때는 이 피를 뽑아 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이 피를 없애 버리는 방법이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얼굴이고 눈이고, 모두 없애 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와 가지고 비로소 체계적으로 역사를 풀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본래의 아버지와 본연의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가르치는 것은 마루되는 가르침입니다. 알겠어요? (판서하시면서) 이것이 무슨 종자에요? '마루 종(宗)'자입니다. 마루가 뭐예요? 최고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마루되는 가르침이에요, 가지되는 가르침이에요? 지교(枝敎)예요, 종교(宗敎)예요? 종교라는 것입니다. 천상의 인연과 지상의 인연, 천륜과 인륜을 합해 가지고 완성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최고의 마루되는 가르침입니다. 이 종교라는 것은 이름도 잘 지었지요. 그것은 분명히 기도해서 도통한 사람이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타락한 그 당시에 사랑의 원수인 사탄의 모가지를 칼로 쳐버리든가 해서 먼지같이 훅 불어 날려 버릴 수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러고 있느냐 이겁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왜 일시에 쓱 없애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새끼들을 번식시켜 가지고 지금에 와서 복귀니 무엇이니 하느냐 이겁니다.

이런 놀음을 얼마나 했느냐? 타락한 직후부터 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연장되고 연장되어 지금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그건 왜 그러느냐 하는 문제는 내일 아침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이 계시는 줄을 몰랐던 철부지한 저희들 생애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던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존전에 무릎을 꿇고 옷깃을 여미고 다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거룩한 복음을 저희들은 생명 이상 존중시해야 되겠습니다.

암흑과 같은 이 천지, 사막과 같이 황량한 이 세상 가운데, 보잘것없는 저희 민족을 세우시사 저희들이 이와 같이 모여서 말씀을 파헤쳐 가지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신 오늘의 은사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되겠습니까? 온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여서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엄청난 뜻 앞에 선 저희들은 진정한 의미의 딸이 되고 아들이 되겠다고 재차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눈과 저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이 세계를 찾아 드리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저희의 삶은 인류를 위한 삶이라는 거룩한 섭리적인 내용을 갖고 사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성화대학생들이 장래에 갈 길이 어디겠습니까? 무한한 천국의 세계를 위하여 자기의 일생을 모두 바쳐 드리면서 감사할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더듬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보장할 수 있는 천륜의 인연을 영원한 생명의 뒷받침으로 하여 만민앞에 행복의 기반을 개척해 줄 수 있는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내 자체가 스스로 그 무엇을 결정지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과 세계인류 앞에 나 스스로 주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서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디 이번 기간이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대는 저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비참한 인류가 쌍수를 들어 저희들을 환영하겠다고 아우성치는 저 슬픈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야 할 발걸음을 재촉하고 또 재촉하면서 힘을 다하여 달려가서 구해 주어야 할 만민이 있는 것을 느끼고 사망의 권을 타파해 버리고 승리와 해방의 깃발을 들고, 위로는 하늘이 소망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의 세계를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줌의 흑만도 못한 저희들에게 당신의 세포가 되고, 당신의 사랑을 대신한 대상의 실체가 될 수 있는 거룩한 명분을 부여해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이 그 인연을 높이 찬양하면서 그 길을 엄숙히 따라가 스스로 하늘의 인연을 남기고 갈 수 있는 당신의 귀여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디 이 아침을 통하여 이들의 마음속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인연으로 묶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가야 할 인생의 도리를 찾아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천상의 인연을 높이고 찬양하여 아버지가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완성된 모습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0년대에 통일의 운세를 세계적으로 확장해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온갖 민족의 정기를 등에 지고, 혹은 붙안고 그 가슴을 통하여, 그 입을 통하여 만민 앞에 새로운 복된 소식을 전파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많이 나와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운 자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일에 저희들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는 당신께서 세계에 있는 젊은이들을 준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 민족의 젊은이들이 말할 수 없는 수치의 시대를 맞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것을 안 저희들 책임완수라는 거룩한 목표 앞에 온갖 성의와 열의를 다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은사와 섭리의 뜻이 이들이 바라보는 소망의 터전과 생활 무대에 펼쳐져 이들을 자극함으로써, 평화의 승리의 기점으로 직행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은 1970년 10월 4일이옵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해방의 한날을 맞이하여 기뻐했던 그 추억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아침이옵니다. 이 영광의 날을 맞아 한 많았던 역사적인 아버지의 사정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하시옵고, 승리와 해방이 섭리의 뜻과 더불어 길이길이 만민에게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더우기 오늘은 새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오니,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 당신께서 찾아오시어 깊고 넓고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영광의 한날 위에 저희들을 내세워 주시옵소서. 당신을 향한 사모의 심정이 저희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시고, 그 흠모의 정열 위에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이 동행하여 그리움이 넘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시옵소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신 아버님이신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역사적인 노정은 눈물과 핏자국의 노정일 뿐만 아니라, 사망의 교차로를 수없이 지나온 비통하고도 원통한 노정이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와 같은 노정에서 허구한 날을 내일에의 소망을 가지고 싸워 나오신 아버지의 노정은 천번 만번 쓰러지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마땅할 시간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으시려는 본연의 심정을 지니고 지금까지 찾아오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으며,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는가 하는 것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사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복귀의 손길에는 핏자국뿐만이 아니라 사망 세계를 거쳐온 흔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그것을 걸머지고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재창조의 역사를 계속하시는 서글픈 아버지의 모습을 저희들은 바라볼 수도 없는 죄악된 후손의 몸들이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어찌 용납해 줄 수 있는 사죄의 여건이 있겠사옵니까마는 당신의 손길을 붙들고 자비와 후대하신 심정에 간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넓고 높으신 손길을 붙들고 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피묻은 옷깃을 붙들고 눈물로써 당신의 처량함과 괴로움을 체득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라는 말에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는 것을 아옵니다. 남의 아버지가 있고, 의붓 아버지가 있고, 종의 아버지도 있으며, 참아버지도 있사온데, 그 중에서도 저희들이 배워 알고 있는 그 아버지는 오로지 참아버지뿐이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아직까지 양자의 신세를 모면할 수 없어 아버지를 의붓 아버지로 모셔야 되는 이 원통한 사실을 뼈살에 사무치게 체득하는 자신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사탄의 피살을 받고 태어난 한스러운 저희 자체를 다시 한 번 저주하면서 본연의 심정으로 가기를 그리워하는 핏줄을 따라 천성의 도리를 밟아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이 자녀들이 마음속으로 결의한 그 심정을 가지고 변함없이 결실의 자리를 거쳐야만 필연적인 결과인 아들의 자리를 찾아 나갈 수 있는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우왕좌왕하시며 슬픔으로 엮어오신 길이었기 때문에, 광야의 사망권내에 살고 있는 저희들도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왕좌왕하며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저희들의 서글픈 사정이옵니다. 당신이 지나온 역사적인 걸음걸이가 오늘날 짧은 인생행로를 가고 있는 저희들의 걸음걸이와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아버지의 후대하신 사랑이 저희들도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의 생활권내에 동참하면서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그 은사를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 영광을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아침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16년 전 이날은 몰리고 쫓기던 한 많은 통일의 무리들이 기뻐하던 날이었사옵니다. 수많은 교단이 통일의 무리가 사라지기를 원하는 비참한 운명 아래서 당신이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어 해방의 한날을 맞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될 때에, 이 모든 전체의 결과는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저희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였으며, 저희들이 얼마나 당신께서 그리워하는 아들이 되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날 이 아침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이 되겠다고 다짐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고요한 이 심회(心懷)에 찾아와 본연의 자리에 당신이 군림하시어서 새로운 창조의 인연을 본래의 저희 자신과 더불어 의논하시옵고 저희 자체의 본성을 수습하시어서 흩어져 있던 저희 자체가 본연의 원리 원칙을 따라갈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좋고,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러한 모습을 갖추는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불효의 모습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누구를 위하여 살고있는 가를 다시 반성하여, 높고 귀하시고 천주의 주인되시는 당신의 고귀한 인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게 하여, 내일의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내 자체의 소망보다 아버지의 소망을 위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이 부르시는 그 음성에 저희들이 얼마나 보답하였으며, 한스러운 이 고빗길에서 아우성치며 신음하고 절규하시는 그 소리에 저희가 귀를 기울여 듣고 그곳을 향하여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간 때가 있었던가를 자신에게 묻게 될 때, 그러한 때가 없었던 자신을 책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서 이날 이 시간을 기념하며 눈물짓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그들과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외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띠고 슬픈 환경 가운데 책임을 다하고자 몸부림치는 선각자들이 세계에 널려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당신의 혈족이요 권속이오니 부디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이들의 눈물은 당신의 눈물을 대신하고, 이들의 한은 당신의 한을 대신하며, 이들의 고독과 외로움은 당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대신하게 하여 천상의 인연을 인간의 인연으로 바꾸어 받을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고 이땅의 인간을 대신하여 칭찬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천상에 기억되어 부름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는 젊은 성화 대학생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가야 하며, 누구를 위하여 이 젊음의 피와 살을 녹여야 하겠습니까? 이는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요, 어느 특정한 개인을 위해서도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사옵니다. 그 나라는 세계적인 나라요, 그 나라는 역사적인 나라요, 그나라는 해방과 자유와 평등의 노래가 넘쳐 흐르는 나라인 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먼저 그 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의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의인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희생과 극복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의의 생활과 의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의의 길을 찾고 의의 나라를 찾기 위하여 희생의 길을 가야 할 비참한 운명길에 놓여 있는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이를 동정하시어서 여기에 있는 자녀들이 역사의 나라가 부인하는 의인, 시대의 나라가 부르는 의인, 미래의 나라가 모시고 싶어하는 의인이 될 수 있도록 특권적인 은사를 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과 천상에서 한을 품고 있는 수많은 애혼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선의 후손들이 모두 하나되어 당신의 심정을 닮아 자유와 평화와 해방과 기쁨이 넘쳐 흐를 수있는 천국의 백성들로 남아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전체가 당신이 뜻하신 대로 귀결되고, 저희들은 승리의 그날을 위해서 꾸준히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전국에서 모인 원리연구회 대학생들을 중심삼고 어제 말씀드린 내용에 이어서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는 타락이 불륜한 사랑을 중심삼은 색다른 혈통의 계승으로 말미암아 벌어졌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참된 종교의 길

인간의 타락은 피살과 핏줄을 통해서 연결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경계선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돌감람나무가 된 자신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부정하는 한때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도달하지 않으면 접붙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부정의 극한점은 어떤 자리냐? 생사지경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거치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는 부정하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현실사회와는 반대되는 노정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을 이(離)한 한(恨)이란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랑이라는 것이 없어 가지고는 행복도 없습니다. 또한 자유도 사랑이 있는 행복한 자리에서 찾은 자유라야만 만민이 공히 필요로 하는 자유이지 사랑의 기틀을 떠난 자리에서 찾은 자유는 참된 본연의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니, 자유사상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그 근본적인 터전이 어떠한 국가적인 외적 사상이나 관념, 혹은 어떠한 물질적인 욕구를 중심삼은 것이거나 어떠한 체제를 중심삼고 부르짖는 것이라면 그런 자유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조건을 우리의 심정을 통한 행복의 요건이라고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설사 행복의 요건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체적인 행복의 요건으로는 절대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을 갖춘 입체적인 행복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첫째 지식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 행복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느냐 할 때, '사랑하라'고 제시한 그 조건을 통과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즉 '사랑했다' 하는 결과에 못 나갔기 때문에 인간은 아직까지 행복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의 요건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자리는 제일의 계명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 부모 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종이나 자식이 먼저 기뻐하는 것은 비원리적입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기쁨을 따라 기뻐해야 하는 것이 종의 도리요, 부모가 기뻐하는 기쁨을 따라 기뻐해야 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악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주인이 기뻐하고 부모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출발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결과적인 입장에서 개인이 스스로 개척하여 아무리 기쁨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이탈한 자리에서의 기쁨이요, 부모를 이탈한 자리에서의 기쁨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이탈된 자유의 환경에서 벗어나 주인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인이 기뻐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 종의 소원이요,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가 기뻐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자녀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요, 역사가 찾아 나오고 있는 목적점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며 온 만민과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의 터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기틀 위에서 이루어진 자유의 실체가 이 지구상에 현현했느냐 하면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신(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는 말씀이 있듯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입장에서는 아무리 자유를 부르짖는 다 하더라도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선보다 악이 먼저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자유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처음 태어난 입장을 밟고 넘어가야 할 운명권에 놓여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는 무엇을 기반으로 해결해야 될 것이냐? 사랑입니다. 행복은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고아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이상의 기쁨의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망각하고 부모 만나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부모, 찾지 못했던 부모를 찾았다면 고아는 어떠한 시련이나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여 하나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죽음의 경각에 놓였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아내는 살아난 남편을 전보다도 천만 배 더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가 죽었는데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죽음도 불사할 것입니다. 그 부모에게는 죽었던 자식이 다시 살아나서 만나는 기쁨과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비통함을 견주어 보게 될 때, 자기 자신이 희생되는 것보다 자식이 살아와서 만나는 기쁨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힘은 오로지 사랑이 내포된 자리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이러한 것을 흔히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라고 선포하신 뜻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강할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잃어버린 아버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부끄러움이 그 길을 가로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교차로가 문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참하고 어려운 길이라도 그것을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길이 이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이 길만이 오늘날 타락권내에서 고질이 되어 있고 맺혀져 있는 생명의 인연을 끊고 부활권으로 이끌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이것 외에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이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의 제1조가 '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지금부터 약 2천년 전, 봉건시대와 같은 그런 때에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단신의 고독한 신세로 만민에게 선포하신 내용은 '너희가 너의 어머니 아버지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그러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이런 혁명적인 말씀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한 것도 단 하나, 사랑의 길이 아니면 안 되겠기 때문에 그런 선포를 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이 자기에게 귀결되어야 한다는 절규의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이 정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포한 내용이 무엇이냐? 총칼을 들고 투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결연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라'하는 말은 '너를 그 이상 사랑하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위주한 것만이 아니요, 타인을 위주한 것만도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하겠다'는 말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요, 천상의 천륜의 뜻도 성립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사랑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랑의 길이 아니고서는 희생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하는 이유

그러면 하나님은 4천년의 수고로운 역사노정을 거쳐 이 땅에 보낸 예수님을 무한히 사랑하고 싶었을 텐데, 왜 사랑하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진정한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갔습니까? 예수님은 사탄세계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하늘의 비밀을 체득하고 배후의 역사시대에 저끄러졌던 내면적인 사실을 풀어 나오는 도상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깊은 진리의 내용을 알아서 그것을 체득하는 자리에서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입장이라고 선포할 수 있으되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하신 말씀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 불이 붙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49-50)'고 하신 탄식의 말씀을 추리해 볼 때, 예수님은 역사시대에 감추어졌던 진리 탐구의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로서는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르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이 땅에 왔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몰림으로 시작하여 몰림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비운의 생애를 마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생활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셨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적인 독생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활적인 면모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반대를 받고,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민족 반역의 선동분자라고 규탄을 받아 추방된 고아의 모습만을 보여 주었을 뿐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 가슴에 심어져 추대받는 주인, 천상의 역사적인 대표인물로서 추대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활이 쫓기고 몰림받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생활적인 면에서 메시아적 가치와 인격을 보여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활무대를 떠나 가지고는 이상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자연적인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인격관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나는 행복했다. 나와 같이 되라'하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민 앞에, 혹은 천상 앞에 갖추어진 사랑의 행동자라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사실입니다.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하는 말씀은, 예수님은 미래의 세계에 있어서 감당할 수 있는 때와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은 생활과 생애노정에 있어서 이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출장을 가서 책임 수행을 다 했을 경우에 이미 갔다 온 출장을 다시 간다면 그 사람은 바보일 것입니다. 출장 갔던 일이 성사되지 못했을 때는 자신이 못 가면 다른 사람이라도 추천해서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생활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아 만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생활의 기틀을 세워 놓지 못하고 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불쌍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불쌍한 생활권내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쌍한 생활권내에서 허덕이며 이상적인 역사의 종점을 향하여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가는 부평초와 같은 집시의 행로를 피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바로 기독교의 역사요, 그런 무리가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찾을 것인가

어제 밤 늦게까지 목을 버티고 있어서 목이 아픈 모양이구만. 여러분들은 통일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군요? 통일교인이라면 10월 4일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지금부터 16년 전에 한민족이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 핍박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몰고 또 몰고 찌르면서 죽음길로 몰아넣었던 자리에서 해방되던 날입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인사가 그래서 되겠어요? 나는 그런 인사를 받기 위해서 여러분 앞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말씀 그만 할까? 「아닙니다」 옆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보고 가만 있지 말고 손가락으로 찌르라고. 선생님은 시시껄렁한 무리들이나 지도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우리가 왜 이 야단하느냐? 아침부터 여기 와서 좀 졸았으면 어떻다는 말이냐? 목이 아파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려서라도 약을 먹여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대학가의 퇴폐적인 젊은이들은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추워 벌벌 떨고 있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만 뜨뜻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면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기분 좋은 것입니다. 기분 나쁘다고 졸지 말라는 겁니다. 그 얘긴 그만 하고 말씀 계속하자구요.

'사랑을 이(離)한 (恨)'이라 했는데, 사랑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고로 나도 잃어버렸고, 부모 형제 사돈의 팔촌까지 잃어버렸고, 대한민국도, 세계 인류 할 것 없이 모두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것을 다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마치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누가 모래알 만하게 압축시켜 태평양 한가운데에 던져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한번 다이빙해서 건져 올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할 때, 없다고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있다고 하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미친 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을 도대체 어디에 가서 찾겠습니까? 그것은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내가 하겠다. 틀림없이 나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바위틈에 끼어 있든지 어디에 박혀 있든지 반드시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고는 실제 다이빙해 들어가서 '요것이다' 하고 한번에 집어 내올 수 있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통일천하를 이룩하는 것과 다이빙 선수가 바다 속으로 다이빙해 가지고 보물을 한번에 찾아 나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라 한다면 어린아이가 통일천하를 이룩하는 쪽이 쉽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보물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이것을 찾기 위하여 죽고 또 죽고, 한번 들어갔다가 죽고 또 들어갔다 죽는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한을 해원하려면

이 같은 놀음을 해야 하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그러면 이 슬픔이 사람만의 슬픔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슬퍼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사람이 더 슬퍼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더 슬퍼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누가 더 슬퍼했겠어요? 그것을 잃어버리고 찾을 수 없게 경계선이 설정되었을 때 인간보다도 하나님이 더 슬퍼하셨다는 것입니다.

타락하는 순간에 있어서 타락한 당사자인 아담 해와의 슬픔보다 그들의 타락을 바라보면서도 간섭하지 못하신 하나님의 슬픔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슬픔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실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슬픔은 누가 풀어 드리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부모를 잃었던 자식이 부모를 찾으면 그 부모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으면 찾을 수 있지만, 인간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받던 사랑은 누가 찾아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찾으면 되지'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잃어버린 사랑을 하나님 자신만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신접살이를 하는 부부가 '너와 나는 천생배필이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다' 하며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죽었다면, 아내 혼자 그 남편의 사랑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여자 자신이 혼자서 남편의 사랑을 찾을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죽었던 남편이 되살아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데에 있어서는 하나님 혼자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죽었던 인간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니 중생이니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길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을 찾는 방법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것도 상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불쌍해요, 불쌍하지 않아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불쌍하시냐고 하겠지만 아무리 전지전능하시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노정을 거치시면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한(恨)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만이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은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다고요?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자신이 있어요? 또,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랑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아들이다' 혹은 '나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딸이다' 그래 본 적이 있습니까?

혈통은 사랑의 줄

여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는 데 쓸데없는 화장을 많이 합니다. 누구 좋으라고 화장합니까? 상대 때문입니까, 자기 때문입니까? 원래 화장은 화장터에서 해야 진짜 화장이에요. (웃음) 그 화장이란 말부터가 기분이 나쁩니다. 이런 마음이 들면 심각한 입장에서 화장할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면 서울역에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화장실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데 거의가 치마 입은 여자들입니다. 남자들은 점잖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끝날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은 자기 모습이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나 없이는 못 산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나 없이 못 산다고 하는 것은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을 통해서 벌어지느냐? 상대를 통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의 무엇을 통하여야 되느냐 하면 핏줄을 통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핏줄을 통한 사랑이 실질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핏줄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사랑이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보고 배달 민족, 혹은 한민족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외국에 나갔을 때,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천대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피가 끓어 오르다 보면 어떻게 됩니까? 주먹이 나가요, 안 나가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게 됩니다. 주먹이 너무 세면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차후 문제고, 상대의 덩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를 밀어붙이고 받아치면서 싸울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려면 핏줄을 따르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요? 어디에서 출발했다고요? 악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악의 괴수가 무엇이냐? 사탄 마귀입니다. 무슨 인연을 가진 마귀냐 하면 간부라는 것입니다. 간부라니? 원리연구회 간부예요? 그런 간부(幹部)가 아니라 간부(姦夫)입니다. 그 간부의 피살을 이어받아 가지고 인간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고자 하는 사랑이 간부의 사랑이란 말입니까? 간부의 핏줄을 통해서 이어온 부정한 핏줄의 사랑을 받고자 했습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상충을 해결하여 가야 할 인간

마음은 영원을 동반하는 것이요, 몸은 일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생애를 조절하여 나오는 것이요, 몸은 생활을 조절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생활과 생애는 다른 것입니다. 생애는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고, 생활은 하루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마음이 생애를 주관하고, 몸이 생활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먹지 않으면 몸은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먹긴 먹되 생애에 어긋나는 자리에서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어느 것이 더 커요? 「마음입니다」 마음이 바라는 관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은 일생을 두고 있고 마음은 영원을 두고 있는데, 이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죽겠습니까? 둘이 동시에 죽을 수 있어요? 명이 길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더라도 죽게 된다면 어느 것이 먼저 죽겠습니까? 몸이 먼저 죽습니다. 마음은 몸과 더불어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과 몸이 서로 좋아할 수 있는 같은 핏줄을 통해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몸은 사탄의 피살을 중심삼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의 마음에 뿌리를 박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천국의 초소요, 몸은 지옥의 초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율상반적인 입장에서 인생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기로에서 운명길을 가려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런 길을 가야 되느냐? 그것은 사랑을 이(離)한 한(恨)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최후의 종교가 책임져야 할 것

이제 여러분들은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왜 상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란 어떤 상대냐? 참된 사람, 참된 하나의 남성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참된 하나의 남성을 구하는 데 있어서 주먹구구식으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창조원칙에 의하여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장난 제품은 공장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 수리하지 않고는 완전한 물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남자가 나올 수 있도록 창조 본래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시정할 것은 시정하고, 제거할 것은 제거하고, 보태야 할 것은 보태 가지고 찾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을 따르지 않고서는 완전한 남자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오랜 기간을 통하여 저끄러져 고장난 아들, 악에 흘러갔던 남자를 수리해 나온 과정이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남자가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까지 결혼을 보류하여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혼은 한 사람의 남자가 나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완전한 남자가 된 자리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자리보다 나은 자리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칠판 판서하심) 그 떨어져 내려간 아담 해와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구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선상에 올라서야만 구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선 이하에서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조금 높고 낮을 뿐이지 구원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망선을 어떻게 탈피하느냐 하는 문제가 인류의 숙원인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아야 되느냐? 수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핏줄이 같은 입장으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재확인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현재의 나 라는 존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래의 아담의 자리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 시간적 거리로 6천 년이 아니라 6백만 년, 아니 6억만 년만큼은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기간을 지나는 동안 별의별 노정을 다 거치면서 그 모양이 비뚤어지고 쪼그라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가르쳐 주시고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라고 설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최후의 종교가 책임져야 할 도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버지 가운데 어떠한 아버지일 것이냐? 기도할 때에 필요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인간을 한 아들을 통해서 부활시켜 나오고 계시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역사상의 성현들이 보다 높은 자리까지 가고자 노력했던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 받지 못한 하나님과 인간

그러면 이 거리를 비약해 넘어갈 수 있는 규칙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거리를 초월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힘으로 그 거리를 초월할 수 있습니까? 몇천 년 전 사람을 내가 뛰어 넘을 수 있어요? 그것은 생명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는 십년 전에 죽은 자식이라도 그 자식을 생각하면 옛날 자식이 죽던 때의 아픈 마음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생애와 역사적 거리, 시공을 초월하여 차이없이 같은 반열에 접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재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인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자꾸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아버지가 6천년이 지난 지금 나타나셔서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어요?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너의 눈은 이래서 날 닮았고, 머리는 요래서 날 닮았다'라고 설명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어느때는 이런 일이 있었고 지금까지 이렇게 자라왔지. 네 선조들이 너를 이렇게 키워 온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 않으니까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설명을 하고, 그래도 믿지 않으니까 '너는 요렇게 하면 요렇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치면서 지금까지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도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야! 우리 아버지는 이렇다'라고 하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이 타락한 사랑을 체득한 아들로 인하여 슬픔에 처한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입니다. 알겠어요?

목을 끌어안고 '아버지!'하고 쌍곡선을 긋는 자리, 서글픔의 눈물, 기쁨의 눈물, 한스러움의 눈물, 처량함의 눈물이 뒤범벅이 되는 자리에서 만이 사랑을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눈물을 흘려 보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눈물 콧물을 흘려 봤어요? 아직 그런 심각한 자리에 못 들어가 보았을 거예요. 눈이 튀어나오고, 코가 흘러 입에 들어가고, 혀가 꼬부라져 들어가는 울음을 울어 보았어요? 머리가 아프도록 통곡해 봤어요? 여러분들은 눈물의 철학이 뭔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을 찾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 스스로는 사랑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즉,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사람을 완전히 사랑해 보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 보려고는 하셨지만 사랑하지는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하나님에게 생활적인 사랑을 못 받았고, 이상적인 사랑을 못 받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을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소생급, 장성급만큼의 사랑밖에 못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완성기의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 명문가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곱게 자란 처녀가 시집갈 나이가 되어 신랑감을 구하는 도중에 죽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이고, 이것아! 시집도 못 가 보고 처녀귀신이 되었구나' 하면서 울 것입니다. 죽은 것도 서럽지만 그것보다도 시집 못 가고 죽은 것을 더 서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야, 이놈 타락한 아담 해와야! 너희들이 죽은 것도 한이지만 내 가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것이 더 한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부모인 하나님이 자식에게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랑의 한을 언제 풀 것이냐? 이 한을 풀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하는 자식을 찾겠다는 끝없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가슴속 깊이 사랑하고 싶은 정열을 다 퍼부어 가지고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날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인간들을 사랑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주체이신 아버지의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되지요? 「예」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락한 아담 해와가 불쌍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서글픈 사정

그러면, 아담과 해와의 타락은 아담 해와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파탄되고 하나님의 한이 남았으므로 이 원흉의 목을 쳐서 없애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왜 천사장이 그들을 타락시키게 되었느냐? 사랑의 감소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가는 것입니다.

천사장에게 '네가 타락의 원흉이지만 이 모든 천지를 품고 사랑의 희열이 넘칠 수 있는 완성권내에서 오늘의 기쁨을 네 기쁨으로, 오늘의 영광을 네 영광으로 삼겠다' 할 수 있는 내정적 심정을 다 주어 사랑하지 못한 한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을 풀어 주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다 한 다음에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갖다 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경우가 있어요? 함부로 약탈, 겁탈하는 세상인데 그런 법 가지고 살아 남아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천리의 법도에 따라 사랑의 결과를 갖지 못하게 되면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자신을 세워 놓지 않고서는 원수를 사랑했다는 결과의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의 목을 자르는 것을 수천만번 자행해 온 천사장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천사장을 완전히 사랑해 주시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가 잘못하면 '하나님! 저 아무개가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서글픈 역사의 배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지 아무도 몰랐던 내용입니다.

세상을 복귀할 수 있는 공통적인 철칙

하나님은 원수인 천사장까지도 사랑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으려면 하나님과 같은 일을 해야 됩니다. 한 집의 가법을 상속받으려면 그 집 부모의 생활방도와 사랑의 인연을 사방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완전히 사랑하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이 사탄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사탄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와야만 이 타락한 세상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정상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오셨느냐? 당신의 입장에서 사탄을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과 여성이 이 땅에 나오기를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로마 병정들을 대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용서를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원수 사탄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완전히 사랑했다는 사랑의 기준을 조건적으로나마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따라서 천국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할 때, 오른편의 의인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라고 하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마 25:35-40)'고 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복귀할 수 있는 공통적인 철칙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종관계인 하나님과 천사장, 단 둘만의 관계였다면 벌써 복귀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인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천사장의 중간에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풀기 위해서 6천년이란 역사가 흘러온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원수의 화살에 죽음을 당하더라도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라'하는 사랑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았느냐? 아담이 받는 만큼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아벨의 책임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되느냐? 천사장을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인간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타락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게 된 상태에서 있게 된 것이므로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아담이 장성급에서 받던 사랑의 자리보다도 더 차원이 높은 사랑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종이자 아담 해와의 종인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종을 사랑하듯이 아들도 종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사랑하는 종을 아들이 배척한다면 그 아들은 부모 앞에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동양의 격언 중에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와 아들은 일신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종을 사랑하면 아들도 그만큼 종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천사장을 사랑하고, 그다음에는 아담 해와가 천사장을 사랑했다고 하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창조본연의 아들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조건을 세우기 위해 천사장 대신 세운 존재가 가인이요, 아담 대신 세운 존재가 아벨인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을 대신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인보다 더 받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벨이 책임을 다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아벨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가인을 사랑하여 그 가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원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벨이 되려면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가인이 누구냐 하면 원수입니다. 이러한 가인 아벨의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신구약 성경의 모든 문제점이 다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금까지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하나님편인 아벨, 사탄편인 가인으로 나누어져서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오른편이요, 사탄편은 왼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생명의 기원을 전부 다 설파한 예수님은 원수의 창에 찔렸지만 거기에서부터 이 땅 위에 속죄의 인연이 뿌리 내려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창에 찔리는 자리에서도 원수를 사랑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수인 사탄을 사랑한 것이 되는 것이요, 아담이 사탄인 천사장을 사랑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장이 일체를 이루어 타락하기 전의 본연의 사랑권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권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권의 내용을 중심삼지 않으면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둘로 갈라지는 때가 말세입니다. 타락의 동기는 전부 다 개인을 위주로 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도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사랑의 감소감 때문에 타락했고, 아담도 자기 개인의 욕망을 중심삼았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이렇게 타락의 씨가 뿌려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때가 끝날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몸과 마음이 갈라졌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그러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가정도 부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정은 하나님편, 아벨편, 사탄편, 가인편 등 네 편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야 돌아가실 때에도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편인 오른편 강도와 사탄편인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끝날에도 그와 같이 하나님편과 아벨편, 사탄편과 가인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와 같은 것이 오늘날 우익과 좌익입니다. 그렇게 심었으니 그렇게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네 편으로 갈라져 서로 싸울 때가 올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갈라지게 되고, 공산세계도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종교권은 민주권과 아랍권으로 분류됩니다. 민주권은 예수권이고 아랍권은 바라바권입니다. 공산권도 사탄권과 가인권의 두 가지형태로 벌어질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죽을 때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네 패로 갈라 가지고 이것을 다시 수습해야만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민족의 해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 이 부분부터는 녹음테이프가 보관되어 있지 않아 박석진씨가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딕테이션(dictation)해 놓은 것으로만 정리했음.

가장 가까운 자를 희생시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

주님이 세계를 통일하려면 본래 뿌렸던 대로 다시 가려 내야 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 가인 아벨의 자리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한이 맺혔기 때문에 사랑으로 이 한을 메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이(離)한 한(恨)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탄에게 먼저 맞은 다음에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로부터 맞아 피를 흘렸으면 흘린 만큼 하늘편으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중심삼고 보면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못살고 있는데 악한 사람들은 잘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들은 못산다고 억울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먼저 맞은 후에 빼앗아 나오는 것이므로 선한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로부터 수천 사람을 빼앗아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를 풀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통일교회내에서도 개인적인 가인 아벨이 있고, 가정적인 가인 아벨이 있습니다. 가인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하나님의 직계의 사랑을 받을 때 반대하는 가정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시기하여 사탄이 생겨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을 시기하는 가정이 가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면 사탄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제일 밑창인 감옥의 자리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있어서 성인이나 위인은 항상 간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하여 희생되어 갔던 것입니다. 또 나라의 주권을 쥐었던 사람들 중에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주권을 쥐었던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그들은 쫓김을 당하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나라의 권세를 잡아 새로운 길을 제시해 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지금까지 핍박을 받아 나왔지만 그 핍박을 잘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핍박받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핍박을 받도록 내모는 것입니다. 개밥을 먹어 가면서도 민족을 위하여 살고, 세계를 위하여 살라고 때려 모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길에 내보내는 섭리를 해나오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편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써 사랑의 씨를 심어 나온 것이 하나님의 전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신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충신을 원수를 위하여 죽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충신의 무리들을 거두어 나오셨습니다. 또한 양자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양자를 원수를 위하여 죽게 함으로써 그를 씨앗삼아 천배 만배로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을 희생시킨 것은 그로 말미암아 천배 만배 거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길은 천륜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해방을 맞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어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는 지극히 이론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 하나되지 못한다는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과학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과학보다는 종교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입니다. 과학은 가설법과 가정법의 논리 위에 실험을 통해 형성시킨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학에서 말하는 원자를 보았습니까?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원리는 가설이 아니라 진설(眞設)입니다. 과학적이라면 아주 과학적인 원리입니다.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된 이유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종부터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그 종으로부터 그의 가정, 그의 종족을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종의 민족을 희생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의 민족이 어느 민족이었느냐?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은 종의 종의 자리를 거쳐서 종의 자리를 거쳐야 하고, 그 다음에는 양자의 자리를 거치고 아들의 자리를 거쳐서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는 무원리권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인간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사탄은 인간을 아들딸의 대우는 물론이요, 종의 대우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 만일에 사탄이 인간에게 부모의 사랑을 가르쳐 주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가을이 좋고 겨울이 좋다고 하더라도 봄이 오게 되면 가을과 겨울의 모든 것을 차버리고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이 부모의 사랑을 알고 나면 그 사랑을 찾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사탄은 타락한 인간의 부모가 되었지만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을 알지 못하도록 악으로 이끌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이 사랑을 알게 되는 날에는 오리 새끼가 닭의 품에서 자라다가 어느 날 닭이 자신의 어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 마리 두 마리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의 품을 떠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타락한 인간이 본연의 부모를 찾아가지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걸어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끔 억류해 나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이렇게 흘러온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산주의 국가들이요, 그 중에서도 특히 김일성을 중심삼은 북한 사회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가졌지만 원수의 입장에서 인간을 악으로 유인해 나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랑 운운하게 되면 큰일나겠기 때문에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공산당들은 국민들의 언론의 자유를 없앤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입만 뻥긋했다가는 비판대에 서거나 죽음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 성경이 사탄 잡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탄을 힘으로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검(劍) 앞에는 자연히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갚기 위하여 삼대(三代)에 걸쳐서라도 희생하겠다는 사람 앞에서는 사탄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조상들이 쓰던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는 말도 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 민족 1세를 애급에서 고생시키시고, 2세를 광야에 끌고 나와 고생을 시켰고, 3세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후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무슨 죄가 있어 나라 없는 민족이 되었고, 6백만이 대학살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죽음길을 갔겠습니까? 그것은 민족을 희생 시키고 나라를 희생시켜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희생시킨 것은 누구를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사탄을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사탄을 완전히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기준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오늘날의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까지 세계를 위하여 죽음길을 밟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순교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냐? 창조본연의 아담 해와 시대에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한 한의 기준을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으로 넘어 가지고 세계적인 기준에서 천사장을 완전히 사랑했다는 입장을 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의 철칙을 세워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피를 흘리면서 순교의 길을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순교의 길을 걸어온 종교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기독교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천주주의가 출발되는 시기

기독교가 국가를 거느려 가지고 민주세계를 창건하였기 때문에 원수 앞에 죽음을 당하고 몰리던 자리를 넘어서서 비로소 '내가 너를 완전히 사랑했다'하는 조건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제 너는 나를 완전히 사랑해라'할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편인 민주세계와 사탄편인 공산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하나님편인 민주세계가 승리할 수 있는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 승리는 곧 아담 해와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인류의 참부모인 동시에 참형님과 참누나입니다. 또한 남자 중의 최고의 남자요, 여자 중의 최고의 여자입니다.

이러한 아담을 대신하여 제3차로 본연의 아담의 자격을 갖추고 이 땅위에 오시는 분이 바로 재림주님이며, 그 재림주님이 최고의 여자를 맞이하게 되는 날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어린양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재림주님이 그 최고의 여자를 신부로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남자 완성과 여자 완성을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사랑의 상속권을 받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오셔서 새로운 천국건설을 출발하는 때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늘나라의 법도를 계승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입장에 놓이게 되느냐? 성경에 '끝날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리라'하는 말이 있듯이 집안 식구와 원수가 될 것입니다. 부모와 원수가 되고, 형제와 원수가 되며, 남편과 아내가 원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집안 식구와 원수가 되는 인연을 갖고 나오는 종교가 있거든 머리를 싸매고 그 종교를 따라가야 됩니다.

따라서 인류는 세계적으로 종교권을 이루고 있는 현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 있나 없나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나이라면 한번 따라가 볼 만한 일이 아니겠어요? 한번 따라가 볼 만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핍박을 받고 욕을 먹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욕먹은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잘 먹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에 욕을 먹었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이 욕을 할 테면 욕을 하고, 핍박을 할 테면 핍박하고, 좋아할 테면 좋아하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등한시하고 가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역사노정을 가는 것은 미래에 통일교회를 믿고 복귀노정을 가야 할 사람들을 위한 서글픈 지도자의 길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하는 아들과 충성을 다하는 종들을 죽음길로 몰아넣어 사탄을 사랑하지 못했던 한의 고개를 대신 넘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종적인 역사의 싸움은 완전한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찾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찾게 되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횡적 무대를 중심삼고 일국과 세계 인류 앞에 한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천지의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면 부모나 형제가 극구 반대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부모나 형제의 인연을 완전히 끊자고 강력하게 나옵니다. 여러분도 그런 말을 들어 봤지요? '야, 이 녀석아. 아무려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너를 더 사랑하겠냐' 하면서 야단들입니다. 나는 그런 별의별 꼴을 다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들을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가 어머니의 가슴을 총으로 쏘려고 하는 찰나에도 저주의 마음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사탄에게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이런 놀음을 하시면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디까지 밀려 나가야 하느냐? 사람 취급을 못 받게 되는 자리까지 밀려 나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어떤 취급을 받으면서 나왔느냐 하면 여학생이나 꼬이는 괴수요, 벌거벗고 춤추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 대우도 못 받았습니다. 내가 진짜로 벌거벗고 춤이나 한번 추어 보고 그런 말을 듣는 다면 원통하지나 않지, 참으로 야속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자들에게 한번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변명할 시간이 있으면 갈 길 바쁜 이 길을 가겠다고 내 길 가기에 더욱 주력할 뿐이었지 그런 말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뒤로 미루게 하고 뜻일선으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 판국에 대학 진학의 길을 막고 전쟁터로 보냈다고 해서 죄가 되겠어요? 그것은 오히려 사랑이지요. 나라가 없는데 대학교에 다닐 수 있어요? 그러니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먼저 나라를 찾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어떠셨겠습니까?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어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한의 곡절을 알아내어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 얼마나 미더워하며 좋아하셨겠습니까?

역사적인 최고의 고빗길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하늘의 법도를 중심삼고 세계를 요리하겠다며 칼을 갈고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문선생편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또 하나님께서 선생님편을 든다면 몽땅 들겠어요, 아니면 절반만 들겠어요? 몽땅 선생님편을 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성교회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멋에 살지, 그렇지 않다면 남에게 욕이나 먹으며 살 사나이가 아닙니다.

주류를 따라 사는 사람이 역사에 남는다

오늘, 10월 4일은 선생님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감한지 16년째 되는 날입니다.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뜻을 안 젊은 사람들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기념해야 할 의미 깊은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내용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앉아 있지, 내용을 안다면 그냥 있지 못할 것입니다.

요즈음 언론기관에서 통일교회를 뒤집어엎으려고 난리들을 피우고 있지만 그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모르고 하는 처사들입니다. 선생님이 지금은 비록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청파동 언덕에 앉아 있지만 이 호랑이의 허리가 낫게 되는 날에는 천지가 뒤흔들리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통일교회가 사방에서 공산당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통일교회 무리가 잘되면 세상이 잘되겠어요, 잘 안 되겠어요?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괜히 통일교회가 보기 싫어 죽겠다고 야단들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 한국이 휴전선을 중심삼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요? 원리적 견지에서 본다면 그렇게 갈라지지 않으면 한국이 제3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네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개인도 가인과 아벨로 나누어져야 하고, 가정도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으로, 종족도 가인 종족과 아벨 종족으로, 민족도 가인 민족과 아벨 민족으로, 국가도 가인 국가와 아벨 국가로, 세계도 가인 세계와 아벨 세계로 나누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인 세계가 공산세계요, 아벨 세계가 민주세계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는 전부 다 좋은 사람들이고 공산세계는 전부 다 나쁜 사람들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민주세계 사람들이나 공산세계 사람들이나 전부 다 얼룩덜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이요, 공산세계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어느 사회나 단체는 물론이요, 가정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체 내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체 내에 있는 주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비주류는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류를 따라 사는 사람은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이끌며 살아야 합니다.

세계 통일 방안

주류 앞에 통일될 수 있는 내용만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끊어 놓은 자리에서부터 세계가 갈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는 자리에서만이 세계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는 앞에 완전한 하나님 개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연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을 중심한 세계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를 통일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중심삼고 몸 마음이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개인이 찾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을 타락한 이 세상 가운데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통일의 방안은 메시아, 즉 구세주에 귀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세계 통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만이 가능한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메시아뿐이므로 그 메시아가 세계 통일의 요인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타락한 이 세계를 어떻게 통일하느냐?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연결시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수많은 개인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고, 그런 가정들이 모여 종족을 이루고, 종족이 모여 민족을 이루고, 민족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국가가 모여 세계를 이루게 되면 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 개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은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아벨 되는 마음이 가인 되는 몸을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팻말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시골에 가서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고 힘이 없어서 팔을 들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으면 그 팔을 잡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거기에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몸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몸은 마음이 외로운 길로 이끌고 가더라도 도리어 마음을 위로하면서 눈물 흘리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웃고 춤추는 편한 자리에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는 길은 못먹고 쫓기고 핍박받는 , 죽음의 교차로를 넘어설 수 있는 최고의 경지까지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고생길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고행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행길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다니던 사람이 통일교회를 떠났다 하더라도 다른 교회에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나갔다가도 종교를 갖게 되면 통일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따라가기에는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지만 다른 종교는 시시해서 믿을 맛이 안 나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곳으로라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선생님이 먼저 갔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50여 평생을 욕을 얻어먹으면서 나왔습니다. 지금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디 나타났다 하게 되면 그저 싫어합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가 다 야단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려고 해도 '이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니 입국시키지 말라'고 반대하지, 미국에 가려고 해도 미국 국무성이 반대하지, 어디를 가나 쫓김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일본에 가고 싶으면 일본에 가고, 미국에 가고 싶으면 미국에 갑니다. 그 나라의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들이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그 나라의 맨 꼭대기를 눌러 가지고 들어갑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런 재미로 삽니다.

이제 할 일은 가인 아벨을 복귀시키는 일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요. 선생님이 아침에 여러분들을 만날 때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광명의 새아침이요, 해방의 새아침이었던 10월 4일이니까 오늘 날씨가 좋은 것 같군요.

금년, 1970년대는 7천년 역사를 탕감하는 연대입니다. 그런데 10월초 나흗날인 오늘 기분이 나쁘게 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한번 해본 소리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여기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내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기에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완전복귀가 안 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가 존재하는 한 주류와 비주류는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주류란 무엇이냐?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지향하는 뜻의 방향과는 달리 바른길을 가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두고 보면 어느 시대나 미련한 사람들이 그 시대에 충신이 되었고, 개척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미욱한 사람의 대왕이 재림주가 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봐요. 좋은 하늘나라 왕궁을 버리고 사탄세계에 와서 하늘나라 말만 하니 포로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미욱합니까?

하늘나라에서 사탄의 왕국에 들어와 사탄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했던 사람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옛날 고구려 시대에 호동왕자가 낙랑공주를 빼앗으러 들어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사탄세계의 공주를 빼앗으러 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하였으므로 앞으로 오실 재림주님도 사탄세계의 공주를 빼앗으러 와야 하는 것입니다. 공주를 빼앗고 왕후를 빼앗으러 와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공주를 빼앗아 갔고, 하나님의 왕후를 빼앗아 갔으므로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사탄의 공주와 왕후를 빼앗아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그 일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사건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야는 다윗의 충신인데 그 충신의 아내를 빼앗아 동침함으로써 그 혈통을 통하여 솔로몬 왕을 낳았습니다. 그러한 일은 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빼앗긴 해와를 찾아 세우기 위한 탕감복귀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일이 당시에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66권을 통하여 보면 어쩔 수 없이 긍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일들은 원칙에 입각해서 되어진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원리를 중심삼고 풀어 나가야만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했다가는 모두 벼락을 맞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에는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남한과 북한이 있습니다. 이 중에 어느편이 주류냐 하면 남한이 주류입니다. 또 남한과 북한은 한 나라 안에 있는 아벨과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주권도 하나님편인 남한이 먼저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신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거의다 이승만 박사를 중심한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통일교회의 이상주의

아벨인 남한과 가인인 북한의 입장을 두고 볼 때, 항상 가인이 먼저 아벨을 치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남한을 쳤던 것입니다. 악은 언제나 공세적인 입장이요, 선은 언제나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하늘편인 선한 사람이 못사는 타락된 세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타락한 세계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당들의 표어는 세계에 널려 있는 노동자 농민을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금후의 이상세계를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내걸고 있는 세계적인 표어는 '세계에 널려 있는 양심적인 인사는 총동원할지어다!'입니다. '양심적인 세계 만민이여, 총동원하라!'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들고 나가는 세계적인 표어입니다.

양심적이라는 말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양심적이라는 말은 자기를 떠나 어떠한 주체를 의식하고 하는 말입니다. 나라는 개체속에 양심이라는 주체를 중심삼은 기준에서 이루어지는 말입니다. 주체앞에 상대적인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심적인 인사라는 말 가운데는 계급을 초월하여 노동자, 농민, 학자, 교수, 정치가, 경제가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는 비양심적인 노동자, 농민, 학자, 교수, 정치가, 경제가 등 각양각색의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우기 비양심적인 종교인까지도 있습니다. 이것을 원리적으로 말하게 되면, 비양심적인 사람은 가인이요, 양심적인 사람은 아벨입니다.

그런데 공산당은 양심적인 사람도 비양심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그들이 내건 표어는 노동자나 농민들을 착취하기 위한 하나의 수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양심적인 인사들을 동원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양심적인 사람들을 동원하여 아벨 세계권을 넓혀서 비양심적인 사람들, 즉 가인권 세계를 없애고 이 땅 위에서 선한 사람이 잘살 수 있는 지상천국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기로 그들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가인을 사랑하는 사랑의 무기로 이상세계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을 중심한 공산당들은 불순분자니 반동분자니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숙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하여 회개시키고 그들을 사랑하여 다시 양심적인 사람으로 세뇌공작을 해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형제의 인연을 맺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상주의입니다.

사랑을 이한 한은 개인에서부터 풀어야

여러분, 선생님이 누구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을 위해 기분 좋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 때문에 기분 좋게 가겠다는 것입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들을 위해서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나라에 소망을 두고 기분 좋게 가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離)한 한(恨)은 개인에서부터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가정에 들어가면 동생들을 사랑하여 뜻을 알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동생 입장에 있는 해와를 오빠의 입장에서 백퍼센트 사랑해 주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지 못했던 해와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이동생을 사랑할 수 있는 오빠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아내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아내를 완전히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아내로서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인데, 여러분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백 퍼센트 사랑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한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해드리지 못했던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효자가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한을 풀어 가지고 남자는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고, 오빠를 대신할 수 있고, 동생을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소생, 장성, 완성의 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신랑의 입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고, 누나를 대신할 수 있고, 누이동생을 대신할 수 있고, 아내를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자리, 즉 사위기대가 이루어진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늘나라에 직속으로 입적할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의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횡적인 무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요, 그 횡적인 무대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무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신랑 신부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동일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인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인류가 소망하고 있는 목적점이요, 역사의 비운을 해방시킬 수 있는 모체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참부모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요, 참부부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며, 참형제가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왕자 왕녀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당당코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삼고 가는 길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요, 그러한 기준에 서기 위해서 염려하고 눈물 흘리면서 고난길을 마다 하지 않고 한스러운 길을 제거시키려고 가는 것이 통일교인들의 희생적인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서야만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이요, 또한 자신의 행복의 기틀도 여기서부터 세워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의 이상권의 터전이 되라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이 한의 구렁텅이에서 수고하신 것은 인간이 원수 사탄에게 유린당했던 모든 것을 복귀시켜서 한의 구렁텅이를 평지로 메꾸어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이념의 논리적 근거를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러한 이념을 중심삼고 모여진 대열에 참여하여 손에 손을 잡고, 민족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한 형제의 인연으로 뭉쳐야 합니다. 동양인이 서양인을 그리워하고 서양인이 동양인을 그리워할 수 있는 인연이 지구상을 넘나들 수 있고, 또한 역사시대의 선조들과 오늘날의 후손들이 천상의 인연을 넘어 가지고 현실에서 서로서로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 이상권은 이 터전이 아니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터전으로 말미암아 모든 원한이 해원성사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여러분은 그러한 터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진실로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디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여러분은 피라미 새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의 궁전을 상속받을 수 있는 왕자와 왕녀로 만들어야 하는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대하여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죽음길로 내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륜이요,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몰지 않을 수 없는 스승의 괴로운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도 원수를 완전히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한 이 세계를 사랑해야 되고, 나라를 사랑해야 되고, 민족을 사랑해야 되고, 종족을 사랑해야 되고, 가정을 사랑해야 되고, 개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몸이 다칠세라 아껴온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다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의 무대가 전개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피해를 입게 될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은신하면서 그때를 바라보며 나올 수밖에 없는 서글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 뜻길에서 쓰러지게 되는 날에는 누가 나보다 더 이 세상을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겠느냐 하는 자부심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와 세계를 사랑했다는 깃발을 이 땅 위에 꽂고 가야 할 천적인 사명이 있기에 그날까지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아질 수 있는 비법은 맞서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참는 길만이 비법이라고 생각하고 무골충과 같은 모습으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뜻은 엄숙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함부로 나타낼 수도 없었습니다. 천륜의 법도에서 한번이라도 실수하여 벗어나게 되면 그것은 억천만 년이 흘러가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오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스승의 전통적인 사상을 상속받아서 선생님이 죽더라도 이 전통을 후손에게 남겨야 합니다.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을 중요시하라는 교육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가려고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잠자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라도 삼팔선을 넘나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식구가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이 의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을 초월하여 국경을 넘어가서 그 나라 그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일생을 희생시키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러한 식구의 수가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어 나가게 될 때 통일교회는 자연적으로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며 이 지구상에 평화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대열에 참여한 것에 대한 귀한 가치를 느끼며, 무한한 긍지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에 미쳐서 자기의 피살을 다 주고도 더 주고 싶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무덤이 생겨날 때, 하나님께서는 천상세계의 모든 왕위로부터 지으신 피조세계까지 전부를 그 무덤 앞에라도 상속해 주려고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가면 패하더라도 흥하게 되는 것이요, 죽더라도 살아 있는 이상의 가치가 부여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성경 말씀도 이런 의미에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러한 길을 가야만 사랑을 이(離)한 한(恨)의 구렁텅이를 메워 통일세계, 즉 행복의 자유천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지, 이제 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최고의 기준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버님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 이상 더 무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들의 뼛골에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6천년의 한은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없었고, 딸이 없었다는 것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나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수천년 동안 사탄에게 참소받았으며, 아들딸에게도 사탄의 침범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백번 죽어 한번 부활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야 할 천명 앞에 선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자신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제는 알았사옵니다. 이제는 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누구의 권고에 의하여 가는 것이 아니요, 그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종족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모든 것을 결판지어야 할 사명이 우리 통일교회의 앞길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참아버지와 거짓 아버지의 대결이 벌어지는 이 시점에 있어서 저희들은 참을 세워 거짓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한날을 거쳐 통일의 한 나라를 세워 가지고 세계 앞에 설 수 있는 아벨 국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런 길을 가야 할 저희들은 남의 비난을 받는 길도 걸어가야 되겠사옵니다. 힘의 비중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밤낮을 개의치 않고 우리의 판도를 넓혀 나가야 할 책임이 있는 저희들은 1970년대에는 그것을 결판지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런 사명이 있는 저희들이 다가오는 하늘의 운세 앞에 밀려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도리어 정면에 서서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이 한날을 바라며 찾아 나왔다고 고함칠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전국에서 올라온 성화 대학생들 가슴속에 무엇을 심어 주겠사옵니까?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정열이 이들의 가슴 가슴에 폭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의 탕감복귀의 노정을 거쳐 사랑의 결실을 맺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내용을 이들이 알았사오니, 이들로 하여금 그 길을 거쳐 아버지 앞에 사랑받고 세계 앞에 존경받을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들이 되게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일 그렇지 못하거든 채찍을 들어서라도 부디 그 길로 갈 수 있게끔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몸이 찢겨 병신이 되더라도 감사하며 아버지 앞에 생애를 바칠 수 있는 아들딸이 여기에 모인 성화 대학생들 가운데서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평생 이 길을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 당신께서는 제게 잔인하게 보였사옵니다. 하오나 당신께서는 저보다 더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 죽어가는 십자가의 장벽에 부딪칠 때도 저를 붙들고 염려하지 말라는 하소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량한 곡절을 저는 체득하였사옵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된 저희들이 목을 안고 하나될 수 있는 그날을 찾아 아버지 앞에 선물로 돌려드려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각자는 그런 선물을 준비해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은 환희와 영광이 넘쳐흐르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사의 교차로에서 이루어진다는 억울한 사실을 원리로써 알았을 때 불가피한 노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들 젊은 가슴에 인류를 사랑하고 아버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고, 원리 법도를 준수하는 청년들로써 준법정신의 모범이 되는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과 이해가 복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1970년 10월 11일, 이달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이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또한 이달을 아버지 앞에 승리의 달로 돌려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세계적인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은 각지에서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한곳에 모여서 21일에 있을 행사(777쌍 축복)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모든 일체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당신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권내에서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행사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행사를 위하여 정성을 모아 기도하는 자녀들 위에도 당신의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아버지 앞에 지성을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친히 그들을 찾아가시사 위로하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도 이곳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배후의 일체를 아버지께서 직접 주관하시옵소서.

이 행사를 위하여 남아진 기간에 계획하는 모든 전체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고, 아버님의 소원과 인류의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거룩하고 특권적인 이 행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행사를 통하여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는 동시에 만민이 화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영광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고로 이런 역사적인 축복의 한날을 갖지 못하신 아버지의 서러움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번 축복이야말로 역사적인 서러움을 탕감하고 아버지께 남아 있는 서러움을 제거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소수의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사는 사람,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사는 사람,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싸우는 하늘의 아들딸임을 자각해서 영광돌릴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것을 가지고 당신께 충성하지 못한 자신인 것을 탓하면서 남은 생애를 뜻을 위하여 전체를 바쳐도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고 당신의 고마움을 깨닫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당신께서 분부하고자 하시는 그 뜻과 사명 앞에 저희들은 언제나 옹졸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활달한 자리에서 영광의 존전 앞에 불리운 존재로서 아버지의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과 땅 앞에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망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말못할 어려운 환경에서 실천궁행하여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가야 하는가를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그냥 분해되어 버리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뻐함과 동시에 뜻을 중심삼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이것을 후대 사람에게 참된 것으로서 옮겨 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나라의 식구들이 본부를 앙모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얼마나 얼마나 그들을 품고 싶으셨사옵고, 역사시대를 통하여 배후의 수많은 나라를 대해 나오시며 거기에서 그들을 찾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니까? 그러한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이제 그들을 세우시어서 당신께서 분부하신 세계적인 사명을 다하고 아버지의 그 뜻앞에 승리를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777가정이 아버지 앞에 완성의 한 기준을 다짐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향하여 개문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일체도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번 행사를 위해 정성들이며 수고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일체 당신의 예정권내에서 보호하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뜻과 더불어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스스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임을 자처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은 오늘이라는 역사과정에 있지만 역사노정에서 흘러가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권내에서의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있었지만 타락권의 역사적인 환경을 초월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악의 길을 버리고 선의 길을 추구해 나가야 할 인류

하나님의 뜻과 사탄의 뜻은 한 방향을 갖추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이 동으로 가면 선은 서로 가야 되는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반드시 다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한 방향을 갖추어 서로 평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악의 길을 버리고 선의 길을 추구해 나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추구하는 무리들은 악한 세상에 흡수되거나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을 배척하면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완전히 분립되는 것이 본래 우리 인간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따라서 선과 악이 투쟁해 가지고는 선의 완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선과 악은 어차피 같은 운명의 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역사 가운데의 내 개인이라는 것은 타락권내의 개인이므로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싸우며 찾아나온 내용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상에서 그러한 역사의 환경을 초월하고 역사적인 시대권을 극복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이 결의를 해야 한다고 성경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했습니다. 그러면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그 한계선이 어디냐? 그것은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그 이상입니다. 죽고 나서 부활할 수 있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부활된 몸이 또다시 뜻을 위하여 죽을 수 있을 만큼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성경에 나와 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타락한 몸으로 태어난 인류는 타락한 세상에서 그냥 그대로 살고 있는 자체로서의 선과 접붙일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부정이라는 관문을 통해 가지고 재생을 함으로써 선한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이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선의 이상세계를 향해 선의 행로를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기필코 가야 할 소원의 길이요, 이것을 다짐하며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역군들이 가야 할 길

그러면 통일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그것은 통일의 무리를 통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통일의 무리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이 무리는 지금까지의 역사권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충효의 가치를 세워서 그것을 세계적인 가치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그 자리에 있는 한 개인을 주체로 하여 서로 상대적인 환경을 횡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데서부터 통일의 무리가 자연히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소원하는 목적은 개인만을 구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구원이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이 통합할 수 있는 통일권을 또다시 형성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에서 하나된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정을 넘어 종족구원이 남아 있는 것이요, 종족을 넘어 민족구원이 남아 있는 것이요, 민족을 넘어 국가와 세계의 구원이 남아 있는 것이요, 나아가 세계를 넘어 천주구원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개인구원에서부터 천주구원까지 이루려면 숱한 단계의 투쟁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탕감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주구원의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여 가정의 기반을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가정을 중심삼고 투쟁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는 민족적인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투쟁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민족적 투쟁노정을 거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탕감의 조건에 해당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선의 세계를 찾아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종교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닦아 나온 길이요, 또한 종교를 믿는 가정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닦아 나온 길이요, 종교를 믿는 수많은 종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그 고개를 넘기 위해서 투쟁해 나온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그 어떤 가정을 통한 종족, 그 어떤 종족을 통한 민족, 나아가 그 어떤 민족을 통한 국가, 그러한 입장에 선 국가를 통한 세계, 세계를 통한 천주라는 이 엄청난 단계에 이르기까지에는 끝없는 투쟁의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나 자신이 이 길을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수난을 덜기 위한 길이 아닙니다. 삼천리 반도뿐만이 아니라 지구성을 돌고 돌며 피땀의 인연을 엮어놓고도 부족함을 느껴야 하는 타락된 후손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 길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개인을 구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며, 새로운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갈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개척해 주고 그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선의 책임이니 역사적인 전체 분야의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통일의 역군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통일의 무리가 되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통일의 무리를 어디서 찾느냐? 하나님께서는 통일교회에 있는 무리들 가운데에서만 그런 무리를 찾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개인적인 탕감의 고개도 넘지 못하고 싸워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종족적 탕감노정, 민족적 탕감노정, 국가적 탕감노정, 세계적 탕감노정 등 횡적으로 8단계의 운명길을 거쳐 나가야 할 우리의 행로는 비참하다면 비참한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자기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상충의 현상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그 여력으로 제2차의 출발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통일의 무리라는 그 명사는 얼핏 보기에는 바람직한 명사요, 가야 할 길은 누구든지 가야 할 길이요, 누구든지 그리워해야 할 길이요, 누구나 이루어야 할 그런 길입니다. 그렇지만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통일의 무리를 어떤 자리에서 찾고자 하실 것이냐? 물론 개인과 가정을 통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를 찾고자 하시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악의 인연을 초월한 통일된 종족과 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있는 해방권을 가진 통일된 민족, 나아가서는 통일된 세계, 더 나아가서는 통일된 천주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찾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의 무리가 그것을 이루면 천주권내에서 그들이 아무리 종횡무진이라 하더라도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재와 슬픔의 여건이 남아 있을 수 없는 환경의 터전이 이루어져야만 세계적인 통일의 무리가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기준까지 어떻게 나갈 것이냐? 개인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신앙자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그 길을 갈 수 있겠어요? 신앙자의 자세라는 것은 개인적이거나 혹은 통일교회적인 자세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됩니다. 개인으로서 그런 사명을 지고 가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바라보시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 죄를 벗기 위하여 허덕이는 무리가 아니라 그가 그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해방권을 통하여 민족과 세계가 해방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존재, 선을 대신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라 할진대 그는 통일의 역군이요, 그는 기필코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통일의 무리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단번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서 싸워 가지고 승리권을 갖춘 후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여러분 자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사회나 국가 세계, 그뿐만이 아니라 영계에까지도 악의 침범권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밟고 넘어 승리의 기치(旗幟)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려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길을 가려는 사람은 이 땅 위의 수많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직시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수많은 민족이 스스로 낙망하여 사라져 가는 것을 봐야 될 것입니다.

수많은 종족과 수많은 가정들이 슬픔 가운데에서 자기 스스로를 수습하지 못하고 내일의 소망을 갖지 못한 채 탄식하고 절망하는 무리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주변의 현상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것을 그냥 그대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사명을 짊어진 메시아적인 사명을 통일의 무리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한계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민의 구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도리를 보면 만민의 구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도리로써는 개인적 구주의 자격밖에 부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기독교를 통해 가정적 구주의 사명을 완결했다고 하나님께 칭송하고 감사하게끔 가정을 구원시켰느냐? 구원을 못 시켰습니다. 언제 하나님 앞에 하늘의 종족을 구원했다고 찬양할 수 있는 무리를 해방시켰느냐? 아직까지 못시켰습니다. 또한 예수가 언제 민족이나 나라를 세워 가지고 이 나라나 이민족은 틀림없이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요, 국가라고 찬양할 수 있는 국가나 민족을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승리이기 때문에 그 민족에게는 수심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그 민족에게는 멸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은 진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은 역사를 지배할 민족이요, 그런 국가는 역사를 주관할 국가임에 틀림없을 것인데 그러한 민족과 국가가 이 땅에 현현됐느냐? 안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한계는 개인 하나의 구원의 도리를 성취시킬 수 있는 사명은 완결하였지만, 가정이나 종족, 민족, 나아가 국가나 세계의 구원이라는 승리권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 기독교를 통한 구원의 도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의 탄식권내에서 해방되지 못한 기독교 신자를 우리가 시인하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일면적인 것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중심삼고 본다면 이것은 불쌍한 것이요, 비참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구세주요, 메시아로 믿고 있지만 그분이 영적인 메시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적인 메시아라고 해도 개인을 중심삼은 영적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로서는 국가권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권한을 가진 주권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통일된 무리를 갖지 못한 민족권을 남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 기독교권입니다.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가 있으면 예수와 일치될 수 있는 사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도와 일치될 수 있는 12지파가 있어야 되고, 또 12지파와 일치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주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로 연결지을 수 있는 핵심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들고 그 국가와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수많은 국가를 통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국가의 주권은 그 국가를 통솔하는 이념은 일시적인 이념이 아니요, 일시적인 주권이 아닙니다. 그 주권은 선의 자체가 길이길이 발전하여 남아질 수 있는 자리에서 영원을 다짐할 수 있는 주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주권이 이 지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지금까지 종교를 중심삼고 추구해 나온 구원은 개인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역사시대권내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통일의 무리가 해야 할 일

그러면 앞으로 종교는 어떠한 사명을 가져야 되느냐? 일방적인 개인구원뿐만 아니라, 개인을 중심삼고 환경을 갖추고 있는 가정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종교적인 구원의 도리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편성하는 데 그 종족이 해방권을 갖게 구원의 도리를 제시할 수 있는 종교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승리를 표방하고 나설 때, 거기에는 개인적인 승리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인 승리도 있을 것이요, 민족적인 승리도 있을 것이요, 나아가서 국가적인 승리, 세계적인 승리도 있을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올림픽 대회에서 벌어지는 마라톤 경기를 볼 때, 개인이 승리하는 것은 곧 국가가 승리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개인의 승리는 국가의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를 제패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구든지 자기 배후의 모든 환경과 문화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그 승리 앞에는 머리숙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인이 머리 숙일 수 있는 그 순간은 홀로 들고 나오는 승리권이라도 이것은 세계를 대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승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머리를 들고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부정의 요건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마라톤 대회면 마라톤 대회의 역사에 기록으로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기록을 깨뜨리지 못할 때에는 온 만민은 거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만은 치리받아야 되고 지도받아야 하고 그 법도에 순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칙 아닙니까?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 그러한 승리권을 갖춘 국가가 있었느냐? 그 기록을 깨뜨려 나갈 수 있는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는 선을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가는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지상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통일된 국가권은 아닙니다. 결렬과 분열과 파탄의 요소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환경을 가진 국가권인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가 지향해 나가는 미래의 형상은 어떨 것이냐? 이것은 비참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가 직시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요소를 제거해 가지고 내일의 승리의 세계권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권내에 있어서 주님은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사정과 계명을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그 이상의 표준을 세워 나가는 종교에 있어서는 그 표준을 향하여 모든 환경의 제약을 넘어 가지고 직행할 수 있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의 자세가 될 것이 아니냐. 거기에는 자기의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절대시하고 순응하는 무리가 없어가지고는 하나님이 바라시고 선이 바라는 통일된 국가 형성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라면 그들은 어디에서 만나고 싶어하실 것이냐? 이 대한민국의 서울 청파동에 있는 이 교회 안의 한 사람으로서 만나고 싶어하실 것이냐? 물론 그 사람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출발의 한 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시는 통일의 무리가 존재할 수 있는 가정의 기점은 어디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부모 혹은 형제와 처자를 중심삼은 가정 환경이 통일의 무리를 이루어, 내일의 종족과 내일의 세계를 상속받기에 부끄럽지 않는 가정적 기준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이 세계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통일적인 권한을 갖추고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을 세우고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 그러한 개인은 수없이 많이 왔다 갔지만 그런 가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의 나라를 추구하고 선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이 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첫째 계명과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이 두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통일적 가정 형성을 표방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맨처음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모색하는 방향

우리는 개인구원을 목표로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구원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회 형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요, 국가 형성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참은 참끼리 합하지 말라고 해도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과 기름은 아무리 합하려고 해도 분리되는 것입니다. 합하려고 하면 할수록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본질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가정, 통일의 요건을 갖춘 가정이 되었다 할진대 그 모델적인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 형성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활을 해오던 가정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현실적인 사회제도나 세계정세에 관점을 두고 거기에 일치시킴으로써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그런 가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모델적인 가정이 일치화시키려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사회가 아니요, 이런 환경이 아닙니다. 이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했던 천양지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에서 울고 있는 부모보다는 웃고 있는 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어 합니다. 웃고 사는 형제와 더불어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웃는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으며 웃는 형제와 살 수 있느냐? 세상적인 부부와 그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이 아니라 온 인류와 온 세계의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세계를 대표하고 만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의 기틀은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 누구나 평화스런 가정을 찾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신이 있다면 그분 역시 절대적인 평화의 가정적 기준을 찾아 나올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가정을 표방하였던 것이 기독교에서 신랑 신부의 인연을 중심하고 추구했던 가정적 기틀이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신랑 신부의 사랑의 법도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들이 살 수 있는 가정적 환경, 사회적 환경, 국가적 환경은 어떠한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상적인 미래의 세계에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안식할 수 있는 행복의 여건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일면을 다짐하면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종교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부정적인 일면을 다짐했던 것을 긍정적인 해결기반으로 삼고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방향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일반 종교들처럼 현실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나 자체가 부정할 수 있는 실권을 가지고 이것을 처리하고 공히 판단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는 개인을 중심삼은 무리가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권내에 있는 무리입니다.

통일의 무리가 머물 수 있는 곳

절대적인 신이 계시다면 개인완성은 물론, 가정완성, 종족완성, 민족완성, 국가완성, 세계완성과 천주까지 완성할 수 있는 그러한 절대적인 권을 바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이 구원을 얻는 것보다도 가정이 구원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구원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완성된 자가 안식의 터전을 맞기 위해서는 가정적 구원의 환경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식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또 가정의 구원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가정이 종족권내에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영원한 가정의 안식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종족이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고, 세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국가가 국가적인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가 아무리 독자적으로 안식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외적인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면 또다시 투쟁의 노정이 벌어질 것이니 거기에는 안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환영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세계를 중심삼고 선교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어디에 머무는 통일교인입니까? 내 개인의 구원에만 급급해 있는 무리입니까? 그런 무리는 개인을 표창하게 될 때는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가정에 상을 주어야 할 시대가 올 때는 물러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서 개인적인 승리를 다짐하는 것은 미래에 올 가정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한 준비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 스스로 가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세계에 자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승리권을 가졌으면 종족적 승리권을 갖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가정적인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서는 친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럼 씨족을 자랑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김씨 박씨 문씨 조씨 혹은 임씨 등 씨족들이 자기의 씨족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민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을 이루는 수많은 씨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씨족을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한민족 자체만으로는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겠어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기쁨의 요건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상대될 수 있는 이론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될 수 있는 이론이 없기 때문에 생활에 규칙성을 가져올 수 없고 생활에 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사랑의 안식처도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의 무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번화가도 아니요, 흑암가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포괄하여 끌고 세계의 중심지요, 온만민을 통합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권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내용을 결합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에서 모습을 갖추어야만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바라나오시는 통일교회 무리의 표준이 결정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 구원을 완성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요, 가정구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종족구원과 민족구원을 완성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구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통일교회를 이끌고 대한민국적 통일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닙니다. 세계적 통일권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요, 나아가 천주적 통일권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영계와 육계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면 통일은 왜 하느냐? 완전한 해방을 위해 합니다. 통(統)자는 '거느릴 통' 자입니다. 거느리는 데는 여기에 어떤 결단이 있어서 비약적인 단계를 거쳐온 내용을 지니고서 거느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비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발전의 행로를 거쳐서 영원무궁토록 진전의 속도를 가할 수 있는 자리에서의 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해방하는 통일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통일사상은 위대한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일은 완전한 해방

해방하는 데는 지구성이 해방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천억에 가까운 우리의 선조들이 영계에 가 있습니다. 인간이 영원하다는 것이 틀림없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통솔받으며 어느 한 권내에 모여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행복한 권내에 모여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땅 위에 살 때 지녔던 모든 악의 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땅 위의 모든 불순한 내용을 지닌 채로 영계에 머물러 있기에 이것을 청산지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처를 갖지 못한 영계의 영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인들은 지상의 인간들을 다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풍습을 볼 때에 악령들의 활동이라든가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미신적인 현상이 인간생활에 나타나게 되느냐? 여기에는 영계에 간 영인들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해방권이라는 것은 지구성의 해방뿐만이 아닙니다. 영계에 있는 수천억의 영인들까지 해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방하는 데는 무질서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도와 질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결단지을 수 있는 영원한 주체권을 갖추지 않고서는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결정이 곧 천법이니 여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응의 도리를 다하여 그것을 절대적인 하나의 규범으로 형성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통일의 무리가 되지 않고서는 영적인 세계를 해방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계가 인류역사의 발전, 시대적인 내용, 사회 형성의 배후에 어떻게 작용했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내용이 인간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을 중심삼고 동일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해결이요 천주적인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리시던 것이요, 역사상의 우리 선조들이 바라던 것이요, 또한 오늘날의 인류와 미래의 후손들이 바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상의 재현이요, 역사의 재현이요, 현실 사회의 재현이요, 미래 사회의 출발의 기원입니다. 이런 우주사적인 승리의 표본의 형태가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가 동으로 가게 되면 세계의 국가는 동으로 가야 되고, 그 국가가 서로 가게 되면 세계의 국가는 서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국가의 형성권을 넘어서 주체적인 내용을 종횡으로 틀림없이 완비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환경권이 이 지구성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망상입니까? 망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를 대하시는 하나님도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 혼자서는 통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류의 부모라고 하는데, 자식들이 지금까지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신음하고 있는 데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인류의 부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심하시면서 역사적인 탈을 벗지 못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해방시켜 드리느냐? 그 해방은 외적인 해방이 아닙니다. 만민을 그분 앞에 굴복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굴복시켜서 그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책임이요, 인류 구원역사의 책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불쌍하신 그분이 누구냐? 바로 그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핏줄로 맺어진 인류의 주인이요, 어버이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심정적 인연이 폭발되어 가지고 오늘날 이 세계의 어떤 환경이나 사정을 넘어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차적인 심정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이 악의 권내에서 악에게 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이 제창하고 악이 발악하는 권내에서의 사랑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심정적 터전이 이 지구성에 나타나지 않고서는 선을 중심삼은 세계권이 형성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처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권 이상에 선 사랑의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냐? 하나님께서는 친히 개인을 통하여 가정을 찾아가시지 않습니다. 가정을 통해 종족을 찾아 복귀해 나가시지 않으십니다.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중심삼은 승리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찾아 나가십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사람은 동서의 관계를 초월해 가지고 나타나야 되는데 여자와 남자 가운데 누가 먼저 나와야 되느냐? 여자가 먼저 나와야 되느냐, 남자가 먼저 나와야 되느냐? 남자가 먼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어떠한 사람 가운데에서 나와야 되느냐? 잘 사는 사람 가운데에서 나와야 되느냐, 못사는 사람 가운데에서 나와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은 악과 친밀한 사람이요, 못사는 사람은 악과 먼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잘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못사는 사람 가운데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또한 재물과 하나님은 결부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악이 좋아하고 악이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가진 선진국가에서는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반드시 후진국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후진국가 가운데에서도 어떤 국가에서 나오느냐? 사람으로 치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 통일이 되지 못한 것과 같은 나라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가정과 사회가 갈라지고 사회와 국가가 갈라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언제나 공세적이 아니라 수세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이어야 합니다. 선은 지금까지 보수적이었습니다. 이런 역사 배경을 가지 자랑스런 민족이 어느 민족이냐? 역사 가운데에서 세 번 이상 다른 민족을 침략했던 민족은 절대 여기에 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략하지 않은 민족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한국은 거리가 가깝다는 겁니다.

한국을 놓고 보면 양면형입니다. 한스러운 나라라서 한국이요, 하나밖에 없는 나라라서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과 분립, 패배와 승리가 교차될 수 있는 내용을 결할 수 있고 안팎의 우월성을 갖고 나가는 국가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를 다리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도 때가 되었기에 갈라진 것입니다. 세계에 때가 오면 통일이 되느냐? 통일되기 전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갈라지는 운세가 개인에서부터 가정·사회·국가·세계 전체로 옮겨지는 때가 오면 본연의 세계적인 통일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몸과 마음으로 갈라진 인간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인 형을 갖추게 될 때에는 갈라진 인간을 심은 것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는 끝날이 되어 오기 때문에 갈라지는 운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거두어야 하느냐? 악의 세계의 주인이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선의 주인이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바라고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 이념입니다. 악의 주인이 거두면 영영 회생할 길이 없지만 선의 주인이 거두면 회생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회생할 것이냐? 접붙임을 통해서 회생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부활이니 재생이니 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의 무리들은 재생의 운명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재생할 것이냐? 그 재생의 터전은 개인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인의 재생을 완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는 개인의 구원을 목표로 삼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관하시고자 하는 이상권은 개인구원완성을 표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구원완성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면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참의 길을 가는 입장에서 신앙관을 모색하고 인생관을 모색하고 우주관을 모색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야 할 통일의 무리

통일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올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머리에 임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막4:11)" 하셨고, 세례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고 증거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홀로 서 있다 할지라도 세계적인 끝을 가야 합니다. 그러한 길을 가려면 세계적인 탕감의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대신하여 개인적인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개인적 십자가뿐만 아니라 가정적 십자가까지도 지신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죄권에는 가정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종족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민족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국가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세계의 죄권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죄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지, 개인의 죄만을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십자가도 지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제한된 환경의 죄의 집을 짊어지고 간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말에는 세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국가는 어떤 국가냐? 예수님이 이것을 못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명을 담당할 수 있는 국가는 어떤 국가냐? 하나님은 이걸 찾아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세계의 십자가를 대신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승리하지 않고는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인은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슴지 않고 담대하게 하늘 보좌 앞에 나가 논고를 펼 자격이 있습니까? 하늘의 공정한 법도에 따라 하늘의 공판정에 나서서 재판장으로 계신 하나님 앞에서 사탄을 검사로 세워 놓고 당당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승리적인 죄수가 되어야 합니다. 법정에서의 변호인은 자기 의지대로 판단하여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변호인보다 낫기만 하면 변호인은 변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호인은 죄인이 볼 수 있는 이상의 법조적인 조건을 찾지 못하면 죄인을 해방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죄수가 변호인보다 나아야만 법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비밀의 내용, 이러한 것들을 전부 파헤쳐 가지고 '그대는 이러이러한 조건에 의해 가지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니라. 이러이러한 조건을 해방했더라면 개인적 십자가는 물론, 세계적 십자가도 짊어지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느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도리를 필요로하는 사람들로서는 통일원리권내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동안 수고해 가지고 신부를 찾아온 것입니다. 신부가 뭡니까? 신부가 무슨 신부입니까? 이건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확실히 알겁니다. 이것은 엄청난 비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슴지 않고 또다시 공격할 수 있고, 또다시 담대하게 논고를 세울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세계적인 승리의 왕자를 찾아 나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예수님이 지고 가던 십자가 이상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를 하고 가지 않으면 세계적인 구원섭리의 한계선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주적인 이 통일권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느냐? 자나깨나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태어난 것도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사는 것도 이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죽는 것도 이것을 위해 죽는 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을 찾아가는 것도 이 목적에 협조하게 하기 위한 것이요, 내 개인이 가는 것도 이 목적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횡적인 무대를 넓히고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리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고, 가정 가운데 혹은 민족 가운데 드러날 수 있는 이념을 실천하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실력으로 대결하여 승리하자

가을이 되면 열매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나뭇잎이 떨어져서라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그것이 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푸른 잎 가운데서 푸른 빛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얼른 보기에는 종교인 같지 않게 보이지만 그 내용과 본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이라고 단 위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밖에 나가서까지 시시하게 한 기독교 목사의 탈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게 될 때 통일의 무리가 생성할 수 있는 터전과 안식할 수 있는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선생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논하고 개인적인 평화의 왕궁을 계획해 가지고는 행복을 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전에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고, 종족적인 십자가와 민족적인 십자가와 국가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만을 위한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대한민국이 우러러볼 수 있는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정지하고 안식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동원해서 세계를 개척하고 세계를 위하여 참된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계적인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 책임을 다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금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해결지어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시대의 권내에 있던 통일의 무리가 아니라 역사상에 없던 새로운 차원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가진 통일의 무리가 되어서 그 권한이 개인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천주에까지 미칠 수 있도록 강해야 됩니다. 그러한 승리적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될 때,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요 천주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을 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역사적인 찬양의 조건을 원하셨지만 이루시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의 찬양의 조건도 이들로 말미암아 이루셔야할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표방하고 나서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 신부의 기준을 통해서 가정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행하는 것이 어린양 잔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 주님이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오신다구요? 이렇게 허파빠진 수작들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눈은 올바로 박혀 있으면서 그런 얼빠진 수작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그런 주먹구구식의 얘기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통일교회가 이단으로 보이는 겁니다. 뭐 이단?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자 이겁니다. 실력으로 대결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작전을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선전과 외교를 하지 않는 것도 그들의 힘을 영원히 제압할 수 있는 내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나무는 싹이 트고 뿌리가 뻗어 나갑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고 강하게 크듯이 우리도 그렇게 발전한 것입니다. 쫓기면서 발전했고, 밟히면서도 발전했고, 욕을 먹으면서 발전해 나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식이 이렇습니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미국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제시한 승공활동을 중심삼고 내가 미국에 가서 분명히 할 것입니다. 누가 앞설 것이냐? 닉슨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FBI나 CIA를 투시해 보니 별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힘 가지고는 어느 한계선까지밖에 못갑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떠들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봄 노래를 부르고 가을이 오면 가을 노래를 부르듯 때가 되면 때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 때는 악당들이 선당에 대해서 악당이라고 하는 때부터입니다. 그러면서도 말없이 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동정을 받게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루판에서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주를 위해서 객사하면 어떠냐? 우리는 이러한 각오를 갖고 가야 되겠습니다. 만민의 십자가를 지고, 만세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다 거치고 세계적으로 승리한 통일의 무리들이 찬양받게 될 때 역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요, 시대는 우리를 우러러볼 것이요, 만민은 길이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국가와 통일세계는 여러분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주적인 통일의 역군이 되라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기반 위에서 길이길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찬양하고 내일을 찬양하며 행복만이 깃들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이 길을 가는 데 십자가를 피해서 돌아가려 하는 졸장부들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묵묵히 가자는 거예요. 눈에 흑이 들어가기 전에 싸우지 않고도 그들이 굴복하고 망하는 것을 보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정상의 자리에 남아지는 통일의 무리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게 되면 세계 만민은 자동적으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적인 순응의 법도에 의해 승리권내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해방의 한날을 맞이하여 국권을 온 세계 앞에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와야만 하나님이 선을 선주관권내에서 주관할 수 있는 통일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1대(代)에 안 되면 3대(代) 이상까지 간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내용을 배웠고 이것이 참일진대 우리는 내 일신을 통해서 3시대권 부활체를 대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갈 길이 바쁩니다. 오늘 잠을 못 자서 피곤하더라도 오늘 못 쉬면 내일 쉴 수 있는 날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오늘 못 쉬었더라도 이것이 뜻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무릅쓰고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 걸음에 내일의 분야가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이것을 감당하여 책임지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주적인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통일의 역군들이라면 기필코 세계적인 통일권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갈 때에 남과 같이 잘먹고 잘살면서 가겠다, 남이 차를 타니 나도 차를 타야 되고, 남이 잘먹으니 나도 잘먹겠다, 이러면서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과 반대의 과정을 거쳐 가야 됩니다. 역사노정에 남아진 그보다 앞선 자리에서 잘먹고 잘살기를 바라야지, 뒤진 자리에서 잘먹고 잘살기를 바라면 되겠어요? 우리는 그들보다 앞선 자리에서 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믿다가 떨어져 나가게 되면 가슴을 치며 탄식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살아야 되겠어요, 못 살아야 되겠어요? 「잘살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악착같이 참고 극복해 가지고 앞선 자리에서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때문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탄권내에서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 돈은 사탄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때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통일적인 국가기준부터 준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국가를 준비하기 전에 통일 개인부터 준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십일조를 바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제일 정성을 들이는 역사적인 날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보태고 보태서 그 권을 만들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통일교회도 본부를 다시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세계 본부입니다. 통일교회가 교회를 지을 자본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전에 나라를 사랑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타락권에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수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탄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려고 물어뜯는 것을 그러지 못하게 해 가지고 지금까지 내가 선두에 서서 나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원리가 그렇게도 잘 들어맞는지…. 언제든지 가인 아벨을 통하지 않고는 나갈 길이 없고 승리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재미가 있어요, 이래 가지고 우리가 이때까지 나온 것입니다.

구라파에 일고 있는 무니즘(Moonism)

내가 느낀 것이 뭐냐 하면 오늘도 수택리에서는 선생님이 온다고 새벽부터 코가 늘어지도록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460여 명이나 되는 10개 국의 젊은 녀석들이 들떠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앞으로 엿새 동안에 이들에게 짝을 맺어 주어야 하는데 이걸 선생님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서 몇년 동안 준비하는데 나는 수백 쌍을 엿새 동안에 맺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벼락같이 해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냥 후닥닥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벼락같이 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기초작업을 하고 왔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되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눈을 똑바로 뜨고 깜빡깜빡하면서 똑바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속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속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볼 때 어쩌다가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이들이 대개 일본 사람들이고 이제 짝을 맺어 주어야 되는데, 내가 왜정때 일본 천황의 부하들이 고문을 하고 주먹질을 하던 그런 괴수들의 후손들이니 모조리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도 시원치 않을 텐데 축복을 해줘요? 그러나 그런 그들 후손들을 축복해 주어서 사랑을 해주면 더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데는 원수의 자식을 길러서 원수를 갚게 하는 방법이 최고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아버지의 무덤도 파 버린다는 겁니다. 그 이상 원수를 어떻게 갚겠어요? 선생님이 명령만 내리면 일본 천황도 추방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놀음을 지금 내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사람은 얼굴 색깔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미국 사람, 독일 사람, 영국 사람, 불란서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키는 장대같이 크고 눈은 시퍼렇고 기분 나쁘더라 이겁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눈에는 눈물이 어려 가지고 희극이 벌어지고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비극이요, 동양 사람들에게는 희극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꺼덕거리던 서양 사람들을 이제는 동양사람이 한번 평정해 보겠다 이겁니다.

널을 뛸 때 한번 올라가면 한번은 내려와야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번 올라간 것이 그대로 직선이 되어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국물도 없고 뼈다귀도 남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그렇게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전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동서문명이 교류될 수 있는 시대권을 맞아 아시아의 문명을 중심삼고 서구문명을 소화할 수 있는 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서구문명과 아시아문명이 교류가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겁니다.

동서양의 문명이 하나가 남자라면 다른 하나는 여자라는 거예요. 또한 하나는 정신문화권이요, 하나는 물질문화권입니다. 두 문화가 합해져야 세계적인 새로운 통일문화권 시대가 오기 때문에, 거기에 박자를 맞추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안팎의 민족끼리 합해야 합니다. 물질문명을 대표하는 서구문명과 정신문명을 대표하는 아시아문명이 서로 합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합하라는 명령은 내가 합니다.

이것을 망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나왔지만 결코 망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세계권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구라파에 무니즘(Moonism)이라는 주의가 나왔습니다. 이 무니즘이 뭡니까? 문주의(文主義) 라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술어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놀음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통일의 무리가 가져야 할 사상

이러한 세계를 두고 한번 생각해 볼 때, 여자로 태어났다가 이번 777쌍 축복의 대열에 참석 한번 못 해보면 천추에 한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뉴욕의 방송국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방송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재미로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욕하는 사람이 발전한 경우가 있어요? 욕하는 사람 중에 잘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 사람 봤어요?

뭐 한국의 격언 중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잘되면 배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아플 겁니다. 배가 아파도 죽을 지경인데 머리까지 아프니 나가자빠진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미국 백악관 앞에서 기도하고 로마 교황청 앞에서 기도했던 내용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내가 로마에 가서 베드로 성당 옥상에 올라가려고 할 때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교황청이 총동원되어 가지고 바오로 6세가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1969. 4. 8 부활절 퍼레이드) 기분이 나빴습니다. 족보를 따져 보면 나보다도 더 낮지 않느냐 말입니다. 유치원에서 운동회 하는데 국민학교가 기분 나쁠 게 뭐 있느냐고 생각하며 웃고 말았습니다. (웃음) 그렇게 사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이 지금까지는 졸장부 같은 사나이로 보였겠지만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부러운 게 없습니다. 부러울 게 없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벤츠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벤츠 차 타고 싶으니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빌딩도 지으려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본부에 와 보고 본부가 이렇게 초라하냐고 비판했다가는 모가지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헐벗으면서도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일해 나왔습니다. 뜯기고 뺏기고 쫓기며 피의 대가를 치러 나가는 중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새끼를 치면 날라갈 집입니다. 마치 새가 둥지에서 알을 까고 나오면 처음에는 그 둥지에다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하다가 자라서 때가 되면 '둥지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언제 다시 만날 거나'하며 하늘을 향하여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 「원합니다」 김희옥 권사 원해요?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거벗고 춤춘다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지금까지 따라 나온 것입니다. 문선생이 유명한 사람 많이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사람 많이 만들어 놓고 유명한 단체를 많이 만들 것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유명한 나라의 대통령도 만들 것입니다. 다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의 무리는 이 청파동 내에서의 통일의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통일의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나서 자기가 기뻐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안식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것을 더 찬양할 수 있어야 되고, 내가 헐벗은 자리에서도 천년 만년 안식을 누리시라고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통일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세계적 십자가를 책임지고, 어려운 것은 내가 전부 다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아시아 민족들을 책임지겠다고 해요, 회피하겠다고 해요?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던 자들이 실패하게 되면 나서지 않았던 것보다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미국을 믿지 말라고 해 왔습니다. 현 정부도 10억 불이니 뭐니 하며 돈 돈 돈하는 데 그까짓 게 뭡니까? 그것쯤은 내 조직 안에도 있습니다. 푼돈 좀 받게 됐다고 조야가 거기에 목을 걸고 허리를 굽히지 말라는 겁니다. 맨 손 쥐고 벌거벗은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민족만 되면 통일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미국은 가더라도 하나님은 가셔서는 안 됩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맨손이고 발가벗은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만 계시면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한민국에 플러스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겁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한 무리가 희생해야

지금 수택리에 한 350평 되는 수련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걸 한달 동안에 지으려는 겁니다. 집짓기 참 쉽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도깨비식입니다. 구보끼가 지방에 갔다 오니까 지어져 있으니 '이거 언제 지었습니까'하고 물어요. '언제 짓기는 언제 지어 어제밤에 지었지' 하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때려 모는 겁니다. 끌고 나갈 수 있으면 끝날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안 되면 일본 사람이라도 데려다 세운다는 겁니다.

어제도 통일산업 생산부장을 다그쳤습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칭찬 못받고 갈 적마다 기합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풀이 죽어 있어요. 그 사람이 불쌍해요. 그런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닙니다. 투덜투덜하고 있습니다. 나혼자만 그런다고.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허구한날 계속 다그치니 어떻게 살아 먹소' 하고 꽁무니 빼는 녀석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녀석들은 잡아오라는 겁니다. 꽁무니 빼지 않게 할 자신 있습니다.

지금 지방교회가 어려운 줄 압니다. 어느 교회 인도자는 굶고 있다는 것도 내가 잘 압니다. 굶어라 이겁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한 무리가 지옥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악당 같은 무리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있고 세계의 각국에서 가져올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맞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이 빚을 지는 입장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얘기 그만 하라는 것입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고 합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빚을 지고서라도 남을 도와주는데 누가 빚졌다고 생각하겠어요? 돈은 없지만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여기에 찬동해요, 안 해요? 「합니다」 여자들은? 「합니다」 한다면 어느 정도 하겠어요? 대한민국만 좋아할래요, 세계를 좋아할래요? 「세계요」 세계를 위한 길을 가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밑천도 없이 자수성가하겠습니까? 그럴 때는 여러분이 앞장서서 가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팔겠다면 팔려 갈 거예요, 안 팔려 갈 거예요? 팔려 갈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팔아먹겠다고 한다면 팔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공적인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교회도 못 짓고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교회를 좀 지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뭘 해야 되겠다 하면 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성격을 알지요? 「예」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안 하든가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신을 가지고 해서 안 된 일이 없어요. 나자신이 시운에 박자를 맞추는 천운은 틀림없이 우리 앞에 왔습니다.

그러면 그 천운을 붙들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방법은 선생님의 말만 들으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눈알을 떼어 파는 말세도 옵니다. 여러분들은 왼쪽 눈 하나씩 빼라면 빼겠어요? 뭐 죽기를 각오했는데 왼쪽 눈 하나가 뭐가 문제입니까? 바른 눈이 아니라 인사 차려서 왼 눈입니다.

통일교회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교회를 하나 지어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무리가 살 세계 본부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02층이라지만 난 그보다 더 크게 짓고 죽을 겁니다. 내가 죽은 때에 '금후에 몰려드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 120층 세계선교본부를 짓지 않고는 쉴 수 없다'고 유언하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종교사상은 위대한 것입니다. 통일사상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후의 어떤 사상을 가지고도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문화재를 남기고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사사까와를 보러 갔을 때도, 유협회장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열의에 차 가지고 인간적으로 자기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의 집이 12층 빌딩인데 굉장히 으리으리하고 큰 집이라는 겁니다. 그가 사업을 하는데 1년에 4천억에 가까운 돈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감이 하는 말이 '나는 문선생한테 반했습니다. 내가 한국을 찾아온 것은 대한민국의 귀빈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문선생님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더라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반했다는 거예요. 선생님하고 틀린 게 뭐 있어요. 같은 남자끼리 벗으면 똑 같은데 말이에요. (웃음)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자기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보았기 때문에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의 문선생님만은 절대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아무리 관상을 보아도 자기를 마이너스되게 하거나 죽일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밤에도 그 생각하게 되고, 가까운 친구없는 것도 서러운데 친구를 해도 되고, 또 속이려 하지 않으니 외로운 입장에서 사업을 하는데 사업의 동지도 되고, 그런 모든 면에서 생각해 보면 문선생님은 좋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하였음)

내적인 실력을 갖추라

여러분은 이 나라가 통일교회의 세계본부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 세계의 통일교회 무리들을 대표하여 사상을 세울 수 있는 위신을 갖출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돈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실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적인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의 내적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실력은 무엇으로 높일 것이냐? 그 실력이 우연히 얻어지느냐? 외적인 세계 앞에 우리가 선두에 서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서만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생의 영원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강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고생하지 않으면 신념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따라오려면 고생을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아직도 선생님이 십자가를 지고 피와 땀을 흘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입니다. 후퇴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러한 여건을 생각하며 우리는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선생님이 계획했던 3대 계획은 전부 다 목표를 초과달성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리하여 세계적인 통일전선이라는 말 그대로 내적인 면을 중심삼고 아시아에서의 기반으로 닦아져 나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안될 것 같고 어려움도 많지만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사회적인 현상을 목격하게 될 때 우리는 더더욱 뜻 앞에 감사하며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금후에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사방으로 돌아다니던 외로운 무리들이, 아버지가 계시는 것도 몰랐던 그 자체들이, 이제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아버지가 존재하는 자세가 어떻고, 그 심성을 통한 뜻이 어떻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자리에 세워준 것을 생각할 때에 천만번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부모의 은덕을 입은 자식이라면 그 은공을 갚는 것이 도리요, 나라의 은덕을 받은 자라면 군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이 신하로서의 도리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당신께서 저희의 생명 전체를 이 땅 위에 남겨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받은 은사에 저희들이 보답하기 위해서는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하고 통일된 심정을 갖추어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무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진 자들의 생활은 남이 잘 때 자지 못하고 남이 놀 때도 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자체의 책임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며 뜻을 위하여 달려가야 할 그 도상에서 빨리 가지 못하는 자신의 발걸음을 한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할 것이 통일의 무리들이 갈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에 아버님의 뜻을 받드는 아들딸인 저희들도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이것을 남기려면 자신이 제물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가고 나서도 거기서 슬픔을 느끼고 다시 내일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해야 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개인을 찾았을 때의 기쁨보다도 가정을 찾을 때의 기쁨이 큰 것을 알았을진대 당신께서도 개인보다는 가정을 찾으셨을 때의 기쁨이 더 크실 것을 아옵니다. 또한 가정을 찾으셨을 때의 기쁨보다도 종족을 찾으셨을 때가, 종족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를 찾으실 때의 그 기쁨이 크실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당신께서는 그러한 세계를 찾으셨을 때의 기쁨을 천주만상 앞에 나타내는 표시로 노래와 춤으로 만우주를 품고 축복하실 수 있는 그날을 맞는 것이 당신의 내심 가운데 얼마나 그리던 소원이었던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은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 못하였고 상상도 못하였사오나, 이것을 마음뿐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과정을 진군하는 통일의 교단을 통하여 저희들에게 체휼할 수 있는 현재 입장을 갖게 해주셨사옵니다. 이 모두는 당신의 사랑이요, 당신의 긍휼이요, 당신의 자비요, 당신의 넘치는 은덕인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감사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고비를 넘어 축복을 가져다 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의 처한 입장을 잘못 알고 그대로 넘기려고 하는 불쌍하고 초라한 패자의 서러움을 상속받기에 알맞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너무나 큰 은덕을 천년 만년 자신의 후손만대를 통하여 고이 빛내고 상속시켜 주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자랑스럽게 물려주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기 스스로 아버지 앞에 위신조차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 번 회상하고 현재를 다시 한 번 비판하면서 아버지의 은사와 후덕 앞에 눈물 흘리고 아버지의 높고 귀하심을 찬양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교단은 불쌍한 교단이옵니다. 세상적으로는 불쌍하다 할지라도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귀한 것임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는 대한민국을 잃더라도, 세계를 잃더라도 그것과 바꿀 수 없는 귀한 교단인 것을 아셨기 때문에, 여기에 몰려드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운명을 넘어 가지고 오늘의 이 교단을 남게 해주신 것이 당신의 은사인 것을 압니다. 그러한 은사를 생각할 때 저희들은 흘러가는 세계정세권내에서 뚜렷한 자세를 갖추어 세계적인 경륜을 일으킬 수 있고 새로운 기수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후덕하신 사랑의 은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50여년의 생애를 돌이켜 보게 될 때, 기쁜 날을 그리워하기보다도 슬픈 날에 아버지의 입장에 동참하여 거기에 생의 일부를 접하기 위하여 몸부림친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당신께서 보호해 주신 것밖에는 남아진 것이 없고, 당신께서 분부하시던 그 인연밖에 기억에 남아진 것이 없사옵니다.

외로운 자리에서도 당신께서 더 외롭다는 것을 염려할 때 당신이 저와 함께 하셨고, 몰림의 자리, 슬픔의 자리에서도 당신의 서러움을 동정하며 나설 때 당신은 저의 목을 안고 통곡하던 심정을 제가 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한 것을 알았기에 오늘날 피어린 싸움의 노정에서 졸장부가 되더라도 패자의 모습을 갖지 아니하고 오늘 당당한 자세를 갖추어 기쁨을 나누게 하여 주신 것도 천륜의 은사인 것을 느끼오며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옵니다.

오늘 모인 저희에게 가냘픈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해방시켜 드린 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얼굴을 바라보고 죽는 것이옵니다. 그 소원과 더불어 '만민아! 이 날을 찬양할지어다' 하면서 마음 놓고 아들딸을 자랑하고 천하를 바라보면서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그날을 위하여 백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번 부활을 거쳐 가지고 가고 싶은 당신의 마음뿐이기에,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그러한 길을 나가는 통일교회를 보호해 주신 것을 아옵니다. 오늘의 이 영광은 저 자신의 영광이 아니옵니다. 넘기 힘든 고비를 넘어 영광을 드러내야 할 당신의 그 소신의 은덕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오신 당신의 위신이 이제 새로이 만국에 펼쳐 나갈 수 있는 한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슬펐던 마음을 넘어서 미래의 소망을 다짐하며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날의 모든 한의 요건들이 앞으로 다가올 시련노정을 넘을 수 있는 충격적인 요인이 되고 천적인 원수를 능가할진대는 , 짊어진 십자가는 슬픔이 아니라 안식의 터전에서 아버지를 친히 모실 수 있는 독생자의 권한과 독생녀의 권한을 갖추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인 것을 알 때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거룩한 통일의 무리들이 숱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오면서 당신께서 이렇게도 서글픈 사정 가운데서 몸부림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민족은 반대하는 것을 자기의 생명같이 했지만 세계적인 노정을 가야 하는 아버지의 뜻은 뻗치고 뻗쳐서 이제는 한국이 다시 자신을 정비하여 자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오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세계 형성을 하기 전에 나라의 형성을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노고가 얼마나 크시옵니까?

그 동안 통일의 기치 아래에서 외로운 아들딸들이 눈물 흘리며 피어린 투쟁의 과정을 날마다 거쳐 왔사옵니다. 이것이 미래의 영광이 되고 자랑의 터전이 되어 제모습을 갖출 수 있는 인연이며 당신께서 자랑할 수 있는 자랑의 터전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그리워하시고 만나고 싶어하던 통일의 무리, 이 무리가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자신 있게 나서야 되겠사오며, 사탄 앞에 무릎을 꿇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옷깃을 여미고 쌍수 합장하고 무릎을 꿇어야 되겠사옵고, 소리 소리 외칠 수 있는 승리의 날이 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오니, 그 희생을 자기가 치르겠다고 아버지 앞에 다짐하는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고로운 자리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진 당신의 무리들이 각국에서 조국이라고 찾아왔고, 본향땅이라고 찾아온 그 무리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없사옵니다. 매를 맞고 채찍을 맞은 피어린 그 남루한 모습과 외적으로는 과거의 역사적인 슬픔의 길밖에 남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때, 그들이 이 길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고 새로운 역사적인 부활의 동기로 삼아 가지고 내일의 세계에 당신의 소원의 천국으로 이루어 드리는 사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될 수 있게끔, 아버지,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스승을 바라보며 간곡히 소원하는 모습들에게 저 자신을 통해서는 당신께서 아무것도 주지 마시옵고, 당신께서 중심이 되시옵소서.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영원한 소망의 향리를 스스로 건설할 때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끔, 아버지, 그 마음의 주인으로 거두어 주시옵길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저 자신은 거기에 협조자가 되고 중보자의 사명을 하기에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사오니, 그 책임을 다하는 그날까지 가고 또갈 것을 아버지 앞에 다짐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무리들도 당신께 솔직이 다짐하게 하시어서 이 자리에 출입하는 수많은 외국 식구들이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불쌍한 한국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지 않고는 하늘의 복을 빼앗기고 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자각할 때는 왔사옵니다. 스스로 미래의 승세를 추구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워진 십자가를 감수하며 지고 나갈 줄 아는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앞에 부탁드리옵니다.

이제부터 며칠 동안은 바쁘게 나가게 되옵니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천주적인 기반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중대한 당신의 자녀들이오니 그들에게 깃들여 있는 운명을 가려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소원하는 바를 따라 스스로 거쳐 나가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선의 부부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몸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새로운 일본산 한국 통일종족을 출생시킬 수 있는 영원한 승리의 터전을 그 민족 가운데에서 새로운 중심적인 핵으로서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0개국에서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을 품고 사랑해 주시옵소서. 이번 계기로 말미암아 내일의 천국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출 수 있는 은사의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을 지켜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께 맡겼사오니, 허락하신 뜻을 따라서 승리의 일정만이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소원이었기에 저는 있는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승리할 것을 다짐하오니, 아버지,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섭리의 중요한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구원의 완성에 있다. 구원의 완성은 완전한 구원을 의미한다. 중도이폐(中途而廢)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중도이폐하면 우리 인간들은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된다.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한 원수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실체의 하나님의 현현을 목표로 해서 아담을 지으셨다. 때문에 아담은 실체를 가진 하나님이다.

아담을 창조하신 목적

이 세계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완성 주관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알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다. 완전 주관은 그 창조하신 하나님 이외에는 할 수 없다. 완전히 알지 못하면 완전 주관은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완전히 알고 있는 하나님 이외에는 이 세상을 완전 주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담 자체는 피조물인데 그 피조물 자체가 창조의 전반을 관장해서 그것을 완전 주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아담을 앞에 세워서 그 아담 가운데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시어, 아담의 육체를 하나님의 공명체(共鳴體)와 같은 입장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이 직접 이 천주를 주관하려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째서 아담과 같은 형(型)을 거치셨는가.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無限大)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시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표시하더라도,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그 하나님에게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실체를 가진 피조세계에 있어서는 실체를 가진 주인적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그 중심적인 타입, 곧 형상(形狀)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담을 중심으로 하여 영육 양면의 세계를, 즉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이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곧 형(形)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형(形)이 없으면 형(形)의 세계를 주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2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맺는 것은 무엇으로 하는가. 여기에서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이다. 그것을 일체화하고 영원히 결부하는 끈, 결부되는 결실점, 그 맺는 중심점이 이른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육체를 가진 인간 자체도 하나님이 임재하시어 일체가 될때의 그 심정, 체휼경(體恤境), 그 감정은 무한한 사랑에 자신이 일치되었다고 하는, 최대의 행복감을 느끼는 경지이다. 그것이 이른바 최고의 행복의 경지인 것이다. 그런 행복한 경지의 이상세계, 선한 세계, 선한 창조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애정에 싸여 하나님과 일체가 됐다고 하는 것을 실감하는 세계, 그런 세계로 통일하고자 하는 것이 창조이상인 것이다. 이 소망이 결국은 사랑을 중심으로 한 소망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사랑의 환경을 떠나서는 달성될 수 없다. 인간이 자기 생애를 통하여 그런 것을 실감하고,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 거기에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 의해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사랑에 의해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 의하여 인간과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다.

사랑의 부활노정을 더듬어 오신 하나님

한 사람이 남자와 여자도 그와 같은 입장이 된 사랑의 실체를 느낀다. 그리고 창조목적과 일체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자유이고 그것이 자연인 것이다. 그러한 입장이 하나님이 인간과 사랑을 중심으로 연결하고자 했던 목적인 것이다. 이것이 개인의 타락으로 인해 반대의 방향으로 되어 버렸다. 이 중심점을 천사장인 사탄이 노렸다.

그러므로 우주는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심점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했는 데 그러지 못하고 사탄과 연결되고 말았다. 그 연결된 동기가 반대의 작용을 받은 것이므로 연결된 그 자체도 언제나 반발한다.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의 기준과 육심의 기준이 서로 반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사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연결된 그 끝을 어떻게 풀고 해방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걸어나온 길이, 지금까지의 인간들이 수천년의 역사를 통하여서 싸워 온 고난의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기점을 회복하기 위해서 직접 인간의 육심에 들어와 인간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싶었지만, 인간과 직접적인 사랑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간접 전법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의 세계로 점점 깊이 임재하시어 지금까지 섭리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예언자라든가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하나님의 사랑의 체휼을 통하여 그 부분 부분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세상에 가르치고, 그것을 전부 취해서 점점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의 역사였다. 그러니까 복귀 역사의 중심은 하나님이 사랑의 부활 노정을 더듬어 왔다는 결론이 된다. 그 목적은 하나님이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의 몸과 그 양심 가운데 임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결합을 도모해 오신 것이다.

인간들에게 메시아가 필요한 이유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시작하여 4천년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선민권을 만들고, 선별된 민족의 대표, 아벨의 입장에 선 유대교를 중심으로 계속적으로 메시아 사상을 갖게 해 왔다. 그렇게 그 민족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메시아에 대해서 이스라엘 국가는 믿음의 기대(基臺)에 해당되고 유대교는 실체기대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이루어진, 국가 기준을 중심으로 하고 횡적으로 일체가 된 경우에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자연히 완성되어질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기대 때문에, 그 한때를 바라셔서 4천년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수고해 오셨다.

선민권에 서야 할 그 민족도 그 권을 목표로 한 국가 기대를 바라 나왔던 것이다. 그 기대는 완성되지 않더라도 원리적으로 그 기간에 도달했으므로 하나님은 서둘러 예수님을 지상에 내보내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와 이스라엘이 예수님과 일체가 되었을 경우에는, 예수님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참부모의 자리에 서게 된다. 참부모의 자리에 설 수 없게 될 때에는 새로운 사랑을 중심으로 한 혈통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원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들은 왜 메시아가 필요한가.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구원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구원의 근본 기점은 어디인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접촉점이다. 거기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되돌아가야 하는데 우리 자신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사탄의 혈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의 혈통과 관계 없는 그러한 인간이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원죄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죄를 제거하는 데는 혈통적 문제가 근본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뽑아 내느냐 하는 문제, 이것은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메시아가 필요한 것이다. 그 메시아라는 분은 우리 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가. 이 혈통을, 우리들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 이 사탄의 혈통을 누가 제거할 수 있는가. 그것을 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는 참부모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어 선한 상대기준을 조성하고 세계를 자기의 것처럼 사랑할 수 있는 참부모가 나타나기 전에는 절대로 이것을 뽑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악의 부모와 선의 부모의, 이른바 사랑을 중심으로 한 싸움의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다 싸우고 최후에는 남는 것이 사탄의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남았다고 하는 기준이 설 때, 비로소 사탄의 혈통권이 굴복한다.

예수님의 길

그러한 기준을 예수님은 바라고 나오셨다. 예수님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3년 공생애노정에 나서기 전에 선포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라. 자기 아내보다도, 부모보다도, 자녀보다도,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자기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지지 않으면 안된다. 혈통을 빼버리는 것은 메시아가 하신다. 그러나 제거되도록 하는 행동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 일체가 되어서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준이 성립되지 않는 이상에는 우리는 구원되어 질 수 없다.

그것을 빼내는 것은 어떠한 입장에서 될 수 있느냐 하면 죽느냐 사느냐의 경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빼내지지 않는다. 생사의 경지인 것이다. 거기를 통과해야 악의 혈통이 제거되어 간다. 이것을 제거하는 데는 우리들이 그냥 이야기하고 느끼고 하는 그런 입장에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사의 경지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40일의 금식 기도를 하거나 죽음의 경지를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이다. 피를 토하면서도 이 육체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소생할 것을 한마음으로 사모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한마음에 참소(讒訴)받는 어떤 하나의 빚도 남지 않았다고 하는 그 경지를 어떻게 해서 체휼해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일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게 되고, 요셉 가정으로부터 가지가지의 많은 박해,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박해를 받아 왔던 것이다. 감정을 가진 산 사람이 산송장과 같은 생활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생사의 경지를 통과하면서도 일심불란, 내심에서 바란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철칙인 것이다. 여기에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수님 자신이 그러한 결심을 해 가지고 거기까지 도달해 가지고 그 자신의 승리권은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가진 승리권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 개인에 있어서는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승리가 될지는 모르지만, 섭리역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때까지 혈통 전환의 뜻을 품고서 섭리하신 노정에 있어서 실패한 그 고민을 여하이 자기가 이어받아서 승리한 기반 위에 서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완전히 이어받았다고 하는 기준에 서지 않으면 메시아로서 설 수가 없다. 그것을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시므로 메시아가 그 기준에 서도록 역사를 통하여 줄곧 실천해 나오셨다.

그러면 이 혈통의 전환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일신(一身)에 있어서는 생사의 경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신앙의 기준이 된다. 일신에 있어서는 생사의 경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경지를 통과하는 것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까지도 부정해야

하나님은 창조 본연의 하나님으로서, 우리 인간을 창조 본연의 인간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과 결합시키고 싶어했던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 일신은 잊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하나님을 대한 애정심(愛情心)에 접하지 않으면 생사의 경지를 극복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종교는 긍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완전 부정인 것이다. 생명까지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떳떳이 사탄 앞에 설 수가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각 개인이 신앙 생활을 해 온 입장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개인의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역사적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떠한 역사과정을 통과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이것을 전환시키는 데는 어디서부터 전환시켜야 하는가. 자기가 태어나 30세가 되어 죽음의 경지를 넘어서 전환시켰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에서는 개인적 승리의 기준의 출발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전과 관계된 승리의 출발은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공식노정을 출발하기 이전의 승리권이 중요하다. 공식노정 출발 이전의 그 생활권은 역사적 부활의 생활권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것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공식 노정의 출발 기준을 이룰 수가 없다.

공적인 3년 기간은 현세에 대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있는 기간인 것이다. 사적인 30년 기간에는 역사적, 공적 심정 기준을 계발해서 현세를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사랑의 기대를 잇는 기대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아담에서부터 계속해서 해나왔다. 그 다음에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메워졌을까. 사랑에 의해서 메워졌던 것이다. 어떠한 사랑인가. 가정 기준을 중심으로 악의 부모에서부터 출발한 인류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실체인 참부모의 가정 기준을 이루어서 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서부터 전환 운동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인 대표자를 줄곧 세워서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거쳐서 그와 같이 역사적, 혹은 세계적인 대표자를 세워 놓고 이러한 전환 운동을 완전히 해 나가면서 발전하는 역사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완전한 혈통 전환의 조건

사람은 남자로부터 생명의 씨가 여자를 거쳐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렇다면 이 전환의 길은 어디에서 그 교차점을 만들어야 되는 것일까. 그것은 여자의 배 속이다. 그래서 여자의 배를 향해 되돌아가는 운동을 해 나왔다. 다시 말해 역사는 줄곧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조건을 세워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여자의 배 속에서 생명이 잉태한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은 아무렇게나 잉태될 수 없다. 거기에는 잉태해야 할 여자가 있는 동시에 잉태시킬 남자가 있어야 한다. 결국 한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일을 해왔다.

그러나 완전 복귀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남자의 골육 속에 잠재해 있는 아이의 씨가 그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의 혈육속에 있는 아이의 씨에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었다고 하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세우지 않으면 완전 혈통적 전환의 기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았을 경우, 종교는 그러한 길을 가는 것이므로 세계적 종교는 어떠한 종교인가 하면, 우리 인간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내용을 가진 종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멀지 않아 명실공히 세계적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문답과 같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가에 대해 지금까지 확실히 해명하지 못했다. 어디를 목표로 해서 부활의 기반을 출발시키는가. 그것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태어나 성장하여 30세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거듭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심정적 내용의 발생지가 30세부터인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부터다. 그것을 잇는 심정의 상속을 했다고 하는 조건을 갖지 않으면 거듭남의 출발과 동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된다.

혈통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담의 골수까지, 골육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서 장래의 아이가 될 그 씨에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된 승리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는 장래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수 없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틀림없는 것이다. 성서에 그렇게 해온 기록이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모해야

지금까지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하고 모든 사랑의 근원이라 생각하며, 그 안에 모두 들어가고 싶어한다. 또, 그와 일체가 되고 싶어한다. '아, 그립다'하며 목마르게 그리워하는 경지에 서야만 예수님과 자기는 하나인 것이다. 자기도 예수님과 한몸인 것이다. 예수님이 슬퍼지면 자신도 슬퍼진다. 그 골육 속에 있는 아이의 씨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남자의 감정의 모든 것은 그 씨에 영향을 미친다. 기쁠 때는 기쁜 영향을 미친다. 슬플 때는 슬픈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예수님과 이어지는 아이의 씨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남자이시다. 사실은 타락하지 않는 원래의 아담인 것이다. 결국은 육적이면서도 영적으로 아버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길은 전연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골수에까지 들어갔다고 하는, 예수님을 목마르게 그리워하여 예수님의 애정과 맞닿는 그러한 것을 체휼하게 하는 오직 하나의 가르침인 것이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그리워하고 맞이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신랑으로 맞이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중의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 데 있다. 하나는 그 골육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씨가 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배를 통과했다고 하는 조건도 얻으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신부의 입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 속에 들어 있는 씨로, 아담 속으로 모두 되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성령(聖靈)은 해와의 신이다. 이것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낳을 수는 없다. 그래서 태어나기 전에 아담 속으로 빨리 돌아가게 하는 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용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모두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애기 씨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이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런 것은 알지도 못한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예수님을 무조건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라고 한다.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 수월하니까 그런 말을 한다. 잘 모르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치도 않은 일이다. 원리적으로 보아 이렇게 되지 않고서는 완전 복귀는 안 된다. 이론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은 예수님에게로 돌아가라고 했다 해서 예수님 앞에 모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골육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역사상에서 섭리하시는 것이 쉬운 일인가 어떤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 중간에는 수많은 사탄권, 원수권이 가로막고 있다. 하나님이 가로막고 있는 이 사탄권을 돌파하는 것은 단번에는 안 된다. 그래서 수많은 싸움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나왔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의 골육 속에까지 파고 들어가고 싶다는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다 들어간다고 한다면 무엇이 들어갈 것인가? 육체는 들어가지 못한다. 심정밖에는 안 된다. 사랑밖에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이외에는 인연을 맺을 아무것도 없다. 진리도 아니고 정의도 아닌 것이다. 생명이 있기에 앞서 사랑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난다. 사랑 없이는 그것을 맺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역사도 뛰어넘을 수 있다. 거리나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분명히 가르쳐 주느냐 하면, 복귀의 노정이 이렇게 되어있기 때문이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심정적 문제를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제 일보를 내디디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혈통적인 전환기가 아니라 생애의 전환기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와 같이 분명한 내용의 기반을 닦아 나가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한다. '이것봐, 어디에서 이전해 왔어? ' '어디에서 출발했어? '라고 하면, '타락하지 않은 에덴 동산, 하나님의 품에서'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무엇이 그러냐고 물었을 경우, 여기가 이렇지 않느냐고 하면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로서는 설 길이 없지만, 이러이러한 분이 싸인해 주신 것을 받았으므로 그렇다고 해야 한다.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세웠으나, 그 소유권은 종이 한 장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우리가 받았으니 사탄이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길

그렇게 해서 예수님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고, 참부모의 혈육에 접할 수 있는 내인(內因)을 세웠다고 하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길을 더듬어 가야 거듭나게 된다.

예수님의 상대자는 성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실체인 예수와 성신의 사랑의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며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하듯, 예수와 성신의 일치된 사랑의 경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문도 없을 것이다.

성신의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이 매우 그리워서 견딜 수 없게 된다. 성신은 그러한 감동의 역사를 한다. 예수님은 신랑, 성신은 신부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그리워하여 이들과 영적으로 하나가 된 기쁨을 체휼해야 비로소 잃었던 본래의 사랑의 기준이 새롭게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중생의 체휼이라고 하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부활의 원리는 그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다. 하나님도 이 때문에 오랜 역사과정을 통과하셨다. 예수님도 역사적 비애의 운명을 짊어지고 그것을 극복해 나오시며 지금에 이르신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6천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6일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을 경우에는 타락한 인간 자체가 주관권을 복귀할 수 없다. 인간 자체가 그것을 찾아서 '이것이다'하여 세계적 인격의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절망적인 세계에 선생님과 같은 사나이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을 슬픈 일인가, 기쁜 일인가? 여러분은 기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기쁘지가 않다. 나는 평생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 그것은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어렵다고 하는 것은 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저 해서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완력이나 폭력으로서는 되지 않는다. 원칙을 철칙으로 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방 팔방에서 그 표준을 겨냥하면서, 중심적 위치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 나간다고 하는 것,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와 같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에 대한 내적 기반을,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왔다. 여러분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반을 만들어 여러분이 몰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평안권을 이룩했다는 것은 천주적(天宙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방면에서 선생님은 평생을 걸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성령이 예수님을 도와 타락시킨 해와를 끌어내고, 사탄편에 넘겼던 것을 끌어들여, 본래의 애정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낳았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는다고 하면 완전 복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는데 있어서도 역사적 내인의 심정 기준에 결합시키기 위한 섭리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여자의 복중으로 들어갔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싸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 가정에서는 아벨과 가인이 싸운다. 둘이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형님인 가인이 동생의 입장에 서야 한다. 형님이 어떻게 하여 동생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을 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복귀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형제의 싸움인 것이다. 가인도 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아벨도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 이후에도 다시 이러한 싸움을 하게 된다. 모두 형제를 중심삼고 싸운다. 에서와 야곱, 이들은 쌍동이로 태어난 자들로서 싸웠다. 이들은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싸웠다. 그리고 언제 또 싸웠느냐 하면 성장한 다음에 싸웠다. 40대에 싸웠던 것이다.

다말과 밧세바

다말, 여러분은 다말에 관해 연구를 하면 원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말은 누구와 관계하였던가? 시아버지였다. 시아버지와 관계해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의 혈통을 계승할 수 있었는가?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솔로몬의 어머니는 누구였던가? 밧세바이다. 밧세바는 어떠한 여자였던가? 우리야의 아내였다.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것이다.

그 아이가 어떻게 해서 솔로몬이 되었는가? 우리야는 어떠한 입장인가 하면 둘째 부인인 것이다. 이들을 타락하기 전의 에덴 동산의 그 위치에 세워 놓고 볼 경우, 다윗은 아담의 입장, 우리야는 천사장의 입장이 된다. 천사장의 아내는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해와의 입장이다. 천사장이 아담의 상대자인 해와를 타락시켜 끌고갔다. 사랑으로 점령하여 훔쳐 간 것이다. 그것을 탕감하려면 그러한 삼각 관계에 다시 되돌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원리적 기준에 입각한 조건을 세운 기대 위에서 태어난다면 그 아이는 하늘의 사랑을 받는 영광의 아이가 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영광의 아이인 것이다.

다말이라는 여자는 자기의 시아버지하고 관계했다. 그런데 그녀는 시아버지하고 관계하는 데 있어서도, 정신이 훌륭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법도는 음행을 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 시대권에 있어서 다말은 자기의 첫째 남편 둘째 남편이 죽어 버렸지만, 어차피 이 혈통은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혈통을 지키는 데 있어서 자기의 체면이라든가, 자기의 위신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말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혈통을 어떻게 하면 남길 수 있을까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이 혈통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혈통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말은 혈통을 복귀시키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권에 설 수 있었다. 심정적으로 되돌아가는 조건이 된 것이다. 거기에서 시아버지와 관계했던 것이다.

태중에서 승리한 이 기준이 줄곧 전통적 역사 과정을 거쳐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의 자손에게 이어져 발전해 나왔다. 그런데 왜 국가적 기준이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사탄 세계에 국가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하늘 세계에도 국가적 기준이 세워지지 않으면 가인 아벨로서 상대 기준에 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권을 이와 같이 발전시키면서 내적, 혈통적 승리의 기준을 이루어 나왔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선조들의 심정을 계승해 온 것이다.

마리아의 심정

자기 체면이라든가, 자기의 위신이라든가, 사회적인 환경과 같은 것은 모두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전부라고 하는 심정을 가진 대표적인 한사람의 딸이 마리아였다. 그렇기 때문에 천적 승리의 기준을 이어받은 마리아의 태중에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이 없는 것이다. 그 기반에 선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잉태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적인 싸움을 끝낸 승리의 기반, 하나님 앞에 태어날 자격 조건이 갖추어진 기반 위에 태어난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역사를 통과하지 않은 자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혈통적 내용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비로소 사랑을 받는 독생자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은 메시아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표어이다.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라도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모두 종의 종교나 양자(養子)의 종교권에는 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적자권에 서는 종교는 되지 못했다. 그런 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한 기독교 외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한 사실인 것이다.

그러면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는 입장에 서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가 와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늘땅 영계가 총동원해서 그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당시 예수님 앞에 천사장은, 가정적으로는 세례 요한, 교회를 중심삼고는 유대교, 그리고 나라를 중심삼고는 이스라엘이었다.

예수님의 탄생

세례 요한의 가정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면 유대교와도 자연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세례 요한과 하나가 되었다면 유대교와도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세례 요한은 예언자로서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힘을 합쳐 계획을 세워서 제사장을 앞세워 로마의 반대자들을 모두 추방해 버리면 되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일체가 되었다면 로마 법왕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일체가 되어 국가를 세워 로마를 병합하고 지중해 전반에 걸쳐 있는 로마 문명권을 예수님의 지휘하에 들어오게 했으면 세계 통일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전세계를 복귀하고 지상 천국의 이상을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룩하려 했지만 이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수천년 동안 죽음의 희생을 치르고 이제 겨우 세계적인 제2 이스라엘권을 이룩했다. 그러나 옛날과 같이 제2이스라엘권의 기독교는 지상에 나라가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죽인 죄를 속죄하는 기간으로서의 2천년 동안 방랑하며 세계 만민으로부터 학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탕감의 철칙은 용서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모두가 환영하는 환경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주위 환경과 또 다시 싸워서 승리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국가는 설 수 없다. 이것을 선생님이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역사적 사명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때가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잃고 말았으므로, 이스라엘은 열둘 이상의 아랍 국가와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태어나셨다. 그런데 기독교는 지상에 나라가 없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탄과 대결해서, '이것은 하나님의 땅이다'라고 할 수 있는 땅이 있는가? 없다. 제1 이스라엘을 중심한 모든 것을 무너뜨려 버렸던 것이다. 뜬 구름 모양으로, 바람 부는 대로 쫓기고 쫓기면서 지금까지 나온 무리가 수는 많지만 지상에서 가치가 없는 종교권의 무리가 된 것이다.

기독교는 수많은 정권의 박해를 받아 왔다. 그리고 그 싸움을 방비할 수 있는 법칙이 없으니까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일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종교와 정치는 오래된 갈등 문제를 안고 있으며, 여러 가지 비참한 사태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종교의 자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와 분리시켰던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을 생각할 때, 이제부터 해야 할 복잡한 문제가 많이 있다.

입적(入籍)할 나라가 있어야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상에 발판을 만들고 싶어하실까, 그렇지 않을까? 만들고 싶어하신다. 도대체 어디에다 만들 것인가? 우주 전체라고 하더라도, 얼음이 얼 때에도 한 점이 문제인 것처럼 어느 한 곳이 문제다. 얼음인가 아닌가 하는 경지(境地)인 것이다. 여긴지 저긴지 분별할 수 없는 자리,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어디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자리,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지금이 그러한 시대이다. 어느 한 곳에 얼음이 얼었다고 할 경우에는 세계는 단번에 얼어 붙는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 각국의 성지를 결정하였다. 여러분은 성지에서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니면 그러한 일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절대 권한을 가지고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지상의 기반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쭉 본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이 세계는 누구 이름 아래 있고 싶었겠는 가? 하나님 앞에 있고 싶었으며, 참부모님 이름 아래 있고 싶었다. 만물은 시초에 아담 해와로부터, 참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과 일체가 된 완성한 부부, 부모의 이름 아래 있고 싶었다. 그것이 창조 본연의 위치인 것이다. 그 이외의 것은 천사장의 소유인 것이다. 그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은 천사장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통일 사상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세계는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현재의 여러분들은 적(籍)이 없는 것이다. 입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이 입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적을 하려면 나라가 있어야만 한다. 여러분은 나라가 없는 자들이다. 살아 있지만 사탄 세계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자기의 위치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기반이 없는 자들이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천민(天民)으로서 입적해야 하는 것이다. 그 주권은 커도 좋고 작아도 좋다. 유엔에서 보면 미국이든 작은 나라든 투표의 권한은 같다.

나라 없는 이스라엘

통일교회는 나라 없는 이스라엘 민족과 똑같다. 제3의 이스라엘 민족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떠한 수고, 어떠한 싸움을 하더라도 본향땅을 탈환하고 점령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권을 갖추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제2 이스라엘의 주권 기반을 중심으로 해서 지금까지 고통스런 노정을 더듬어 온 그 희망은 무엇이겠는가? 그 나라로 돌아가 주권을 복귀하고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국민의 위치에 서서 입적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소망인 것이다. 이것을 빠른 기간 내에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내심을 가지고 이 목적에다 자기의 모든 것을 쏟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원리적인 것이다.

입적을 해야 하는 때가 된 경우에는 나라를 초월해서 모두 돌아가고 싶어한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다. 지금 아랍과 전투를 하면서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입적함과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 나라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원을 가져야 한다.

입적하는 순번에 따라 조상의 그 위치가 다르다. 제1 입적자는 제1 조상의 위치에 서며, 제2는 제2, 제3은 제3의 조상이 된다. 그리고 비례적으로 수가 많으면 자연히 그 주권 국가에 있어서 중요한 권위를 이어받는다. 이것은 사실이다.

어떠한 국민이 그러한 국민이 되는 것일까? 일본인이 그러한 국민이 될 것인가? 미국인이 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할 때, 서로 경쟁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나가야 하겠다. 아무리 일본이 해와 국가일지라도 가만히 있어 가지고 해와 국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뜻을 위해 일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자유자재로 갈 수 있는 길을 넓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번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최후의 애국심인 것이다. 만일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와 같은 조건 기반이 지금의 통일교회 기준 정도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예수님은 죽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재림의 길

그러나 예수님은 가엾게 죽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골수에 잉태되어 있는 아이의 씨는 어떻게 영적 결합을 하고 그 실체적인 내용은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예수님이 역사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원리적인 관점에서 볼 경우에 예수님은 재림해야 한다. 즉,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지상에 다시 오지 않고서는 이 숙명의 과제는 해결할 길이 없다. 그러기에 다시 오신다.

오시는 데에는 쫓겨 간 그러한 슬픈 입장을 극복할 수 있는 세계적 기반을 이루지 않고는 오실 수 없다. 이 때문에 세계적 기독교의 선교 문제가 추진되어 왔다. 이것이 2천년이나 걸렸다. 2천년이나 걸려서 민주주의 국가권을 이루어 놓았다. 과거 이스라엘과 로마와 같은 입장을 세계적인 대립권으로 세워 놓았다. 기독교권이 공산권과 대립하여 우위의 입장에 선 기준을 준비한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권인 것이다. 그 내적 사상, 이것은 영적 제2 이스라엘의 세계적 국가 기준이다. 그 내용에 있어서 내적, 유대적 세계 기준에 서야 할 것이 기독교인 것이다. 그것은 영적 기준이다. 그 영적 기준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경우, 내적 상대 기준은 자연히 생겨나게 된다. 이것은 원리적 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제2 이스라엘권이 영적이긴 하지만, 세계적인 기준 위에서 민주 국가, 유대 교회권, 종교권, 기독교권을 이루어 왔다. 여기에 세계적 기독교의 기대를 생각해 볼 때, 3단계의 과정을 통과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구교가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한 아담과 마찬가지로 소생 과정을 통과해서 장성 과정을 통과한다. 이것이 신교이다. 원리적으로 볼 경우, 구교는 율법적 신앙이요 구약적 신앙이고, 신교는 신약적 신앙이다. 신교가 주장하는 것은 말씀을 주장한다.

그러면 그 말씀의 실체는 누구일까? 재림주이시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의 세계적 기반을 만들어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실체는 무엇을 겸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면 심정이다. 그것을 아울러 갖는 실체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사에 있어서 완성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는 자는 심정이 일치된 내용의 기독교적인 진리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통일교회인 것이다.

기독교의 사명

통일교회가 이와 같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신약적 사명을 갖고 있는 신교가 다 통일교회를 맞아 들여야 한다. 맞아 들여서 일치될 경우에는 소생, 장성, 완성이 단번에 이뤄진다. 단번에 교회가 하나가 될 경우에는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이 저절로 하나가 되는 것같이, 기독교와 일체가 될 경우에는 민주주의 국가 세계는 자연히 일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자연히 구원권내에 세워진다. 공산권이 근세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때는 제2차 대전 이후다. 적어도 14년이 지난 후부터였다. 왜 14년이냐? 14년까지 해결을 짓지 못할 경우에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최후의 7년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리를 통해서 세계 정세를 살펴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러한 입장을 거쳐야 할 선생님은 사명적으로 혼자인 것이다. 외톨박이다. 선조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 있어서 새로이 신교에 대해 기반을 만들려고 한 것이 실패하였다. 반대를 받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반대했다. 아우를 때려서 시작되었던 역사였기 때문에 아우를 맞아 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알지 않는다면 어려운 것이다. 자기가 처한 환경에 의한 인습적인 교리라든가, 내용을 그대로 가지고서는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선생님은 교회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 섰던 것이다. 그 입장은 무엇인고 하니, 쫓겨난 예수님과 같은 입장인 것이다. 실체 예수님의 입장을 이어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시 복귀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2천년의 역사를 20년으로 탕감하려고 한 것이 지금까지의 싸움이었다.

이북에 들어간 이유

그리고 탕감은 어디서부터 하는가? 이남, 남쪽에서는 할 수 없다. 북쪽으로 가는 것이다. 선생님이 북쪽으로 간 것은 사탄의 본거지로 간 것이다. 사탄의 공산권으로 갔다. 그것은 세계적인 사탄이다. 공산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과거 기독교가 유대교에 쫓겼을 때에 로마로 들어가 거기서 400년 동안 싸움을 함으로써 기독교의 승리권을 만든 것, 즉 그리스도의 자유의 평면적인 기반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북쪽으로 가서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북으로 간 것이다.

북으로 가서 공산당과 싸웠다. 거기서부터 기반을 만든 것이다. 거기서 몇 사람이고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상세히 말하자면 한이 없다. 여하간에 몇 사람을 복귀해 나왔다. 몇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위기대이다. 수적인 사위기대를 만들고 남쪽으로 내려와, 그 후 여러 가지 생활을 한 것이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몇 사람인가가 함께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의 제자와 같이 반대하고 도망쳐 버리는 입장이어서는 안 된다. 공산당의 공포권이 아무리 두렵다고는 하지만 목숨을 아껴서 모두 도망쳐 버리는 입장이어서는 안 된다. 그 환경에 있어서 몇 사람이라도 식구가 남지 않으면 안 된다. 투옥되는 그 당장부터 지상천국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을 감옥 안에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하는 내용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의 세 제자는 남자들만 설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정을 이루어 서야 했다. 그러한 내용이 있는 것이다. 예수가 오신 목적은 제자만을 찾아서 오신 것이 아니다. 최초에는, 제자는 방편인 것이다. 3시대의 가인이 반대한 것을 탕감하고 3시대 가인 완성의 요건을 이루는 데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세 제자의 입장

예수님은 아벨의 입장인 것이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3시대에 걸쳐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않았던 가인의 입장을, 단번에 탕감시키기 위해 세움 받은 가인의 입장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님과 같이 죽겠다고 했을 경우에는 예수님은 천상(天上)으로 가시지 않는다. 지상에서 성령과 예수가 횡적으로 활동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6백년이면 세계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었기 때문에, 영계로 가 버렸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 않으면 만날 길이 없다. 만일 승천하지 않고 제자들이 예수님과 일체가 되었다면, 가인 아벨이 하나가 되었을 경우에는 하나님을 맞을 수가 있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에 하나님을 맞아 영적 아담과 영적 해와가, 이른바 예수님과 성령이 일체가 되어 횡적 발전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을 중심으로 해서 가인적인 기반은 무엇인가. 그것보다도 예수님을 대한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인고. 제1차 아담 가정 섭리에 있어서 해와를 잃은 것이 하나님의 원한인 것이다. 예수님은 태내에서, 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그것을 복귀시키기 위해 오셨는데, 그것 또한 잃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3대(代)째에 그것을 복귀하려 한 것이다. 이른바 역사적 여자인 할머니, 어머니, 상대를 통해 복귀하려 한 것이다. 하나님은 3대 기준에 걸쳐서 여성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그 3대권의 여자의 형을 복귀할 수 없다면 진정한 부부를 겸한 자녀를, 가인과 아벨로서 일체가 된 자녀를 맞이할 수 없다. 그러한 탕감적인 여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세 사람의 역사(役事)

세 사람의 역사가 없으면 안 된다. 그 기반과 일체가 되지 않는다면 3시대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와 국가의 조건적인 평면적 기반을 만들지 않으면 복귀는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귀한 분들이 세 분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지구(地區)를 중심삼고 기도하라. 한국 교포 몇 사람을 포함시켜서 사방 팔방으로 12명을 세워서 기도를 하라. 예수님은 그것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도 그러한 조건을 세우지 않는다면 일본 복귀는 빨리 이룩할 수 없다.

선생님도 그러한 내용을 정하고 북한에 갔었고 가서 구해 온 것은 그것밖에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의 아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그는 김씨다. 20년 전의 일이다. 20년 전이기 때문에 뜻이 있다. 세 여자와 한 남자를 데리고 남으로 와서 새로이 통일교회의 출발을 했다. 원리는 머리로 생각할 수 없다. 원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기반으로 한다면 공산권에서부터 하나되어 함께 쫓겨와 이룬 것이 되기 때문에 누가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더라도 이제부터는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해서 발전한 것이 통일교회인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교에 쫓겨서 오셨으니 하는 수 없이 그 길을 다시 더듬어 오지 않으면 안 된다. 더듬어 승리를 거두려면, 그 실패의 근원적 내용을 해결한 기준에 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이다. 그 기준을 세우고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다. 가정의 기반을 중심으로 해서 줄곧 발전해 왔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반대권에서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니까, 우리는 반대하는 기독교권을 제쳐놓고 아벨적 기독교권을 만들어 나온 것이 통일교회권인 것이다.

통일교회가 걸어온 복귀노정

통일교회가 둘째로 태어났지만 아벨임에는 틀림없다. 아벨이 성장해서 형님과 대결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다 이룬 입장이 현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20년 이전에 합했어야 할 형제의 결합을 국가적 기준에 있어서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때 형제가 결합했더라면 가정은 자연 결합, 씨족도 자연 결합, 민족도 자연 결합, 국가도 자연 결합, 이렇게 한꺼번에 결합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결합 과정에 대한 탕감을 거듭해서 하고, 개인적 아벨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은 많은 고생을 했다. 개인을 중심한 가정적 기반, 개인을 중심으로 한 씨족적 기반, 그리고 민족적 기반으로부터 국가적 기반으로, 이렇게 밀어내서 통일의 무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을 극복하게 하고 지금까지 나왔다.

이 길은 산송장의 길을 더듬어서 온 노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는 남은 것이 없다. 남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산송장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 그러한 과정을 통과하여 국가적 기준에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성교회가 반대하더라도 우리가 우위의 입장에 서 있다. 선생님의 전법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굴복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권과 같은 한국의 기성교회권이 굴복해 들어오고 있다면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권은 자연적으로 만나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련소를 지어 내적 교육을 하고, 나라와 손을 잡는 방식으로 양면 작전을 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교회 활동, 외적·사상적으로는 승공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승공을 목숨을 걸고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우리 작전과 결합하지 않으면 갈 길이 없는 기점(起點)에 서 있는 것이다.

복귀노정은 종의 종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생님도 감옥에서 거지와 같은 생활에서부터 시작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복귀는 거지로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옥에서 복귀의 기반을 만들고 처참한 최하의 기대로부터 계속적으로 올라와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것이 국가적인 입장이 되기 전까지는 선생님은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는 국가적 탕감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원리적 관점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생님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승리의 사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횡적 기준에서 국가적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횡적 기준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횡적 기준을 일본이 시대권에 서서, 지금까지 수많은 예언자나 개척자가 희생되었다. 결국 무엇 때문에 희생되었는가. 남자(아담)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결국은 해와의 나라를 찾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 해와의 나라는 어떻게 감사하며, 보답해야 되는 것일까. 이러한 역사적인 배후의 관계를 가지고 현재의 일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혈통적 전환을 대체 누가 했다는 것일까. 이것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해 왔다. 눈물겨운, 이만저만이 아닌 심정적 십자가를 지고 왔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이룩한 기준이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무런 공로도 없이 이를 받았다. 축복이라는 것을 통해 새로운 혈통을 받았다. 혈통 전환의 승리권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수천년의 하나님의 노고를 바탕으로 하고 실체를 중심으로 한 선생님의 노고의 생애가 덧붙여져 이루어졌다. 그 위에, 하나님과 선생님을 발판으로 해서 선 사람들이 여러분들이다. 축복받는 다는 것은 악의 혈통을 잘라 버리고 새롭게 접붙이는 것이다. 접붙임으로써 혈통이 달라지는 것이다.

자기 혈통에 대해 책임을 져라

이것은 선생님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다. 그러면 이것을 통과한 사람과 그러지 않고 영계로 간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들과 우리와는 어떠한 가치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신앙의 기준에 있어서 천지의 차가 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귀중한 천적(天的)인 혜택을, 만일 그르칠 경우에는 갈 곳이 없다. 사탄도 여러분을 참소하게 된다. 사탄 자신은 장성 기준에서 사탄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완성 기준에서 타락한 사람이니까 사탄이 '나의 종이 되라'하며 심판하게 된다.

최후의 길이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 심각한 일이다. 축복을 무책임한 세파에 흘러가 버리는 것과 같은 결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이때는 천주의 심정을 중심으로 한 귀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심신이 공히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의 정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남녀로서 일체가 되어야 하고, 결합되어야 하고,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도 목적관에 투철해야지 그 목적을 완성시키는 노정에서 고민한다거나 괴로와 한다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본연의 세계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할 심정의 세계인 것이다. 모두가 그러한 기준에 섰다면 이 지상에는 타락이라든가 고민이라든가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복귀의 길에 선 우리 부부들이 세계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어떠한 심정을 항시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 그것에 충만되어 생애를 걸고 나아가는 노정에서 감사의 일념을 가지고 지내야 한다. 그것이 지금부터 축복가정이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가야 할 노정인 것이다. 거기에 고생스러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늘에 지금까지 비밀로 쌓아 두었던 무한한 축복을 자기에게 보다 더 많이 내려 주기 위해 이러한 고생스러운 길을 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심정적인 사랑에 의해서 맺어진 부부는 넘쳐 흐르는 그 애정이 생활권을 타고넘고 생애를 타고넘어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되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 다면 영원히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이 결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인 것이다.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꿈과 같은 이야기 이지만, 전혀 뿌리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부터 그러한 가정을 향해 선생님과 약속을 하고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은 양손을 들고 맹세하자. 양손을 올린채로 기도하자.

기 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저희는 이제 아버님께서 사모해왔던 본연의 가정이 얼마나 엄숙한 가정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고, 그 이상만이라도 남는 가정의 경지를 향해 지금부터 손을 합하고 발을 맞추고 몸을 함께 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지금부터 깨끗한 생애를 남기고, 순수한 혈통을 남기고, 아버님의 영원한 사랑의 품 속에 힘차게 안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심정복귀의 노정을, 그것을 거듭하고, 그것을 연장시키고, 그것을 계속하는 사이에 아버님께서 어떠한 수고를 하셨는가를 생각할 때, 무엇한마디도 드릴 수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모쪼록 온 일신을 당신에게 바치기로 결의하였으니, 양손을 들고 맹세하는 이 가엾은 자녀들을 깨끗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키시고 이끌어 주신 아버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이러한 모든 천적(天的) 비밀을 가르쳐 주신 아버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옵니다. 지상의 만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경지에 서서, 저희가 생활에서 체휼할 수 있도록 내려 주신 이 은혜에 대해 보답할 것은 저희의 생애, 저희의 실체의 모든 것을 제물로서 당신의 제단 앞에 바치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이러한 혜택권을 이룩해 주신 지상에 있는 참부모님께 감사드림과 동시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생각할 때, 몇천만 번 절하고, 입으로 외우고, 찬양하더라도 끝이 있을 수 없는 감사의 마음으로서 따르리라는 결의를 한 번 더 하는 이 순간이 되게 해주시기를 비옵니다.

올린 양손을 직접 잡으시고 금후의 격렬하고 혹은 험악한, 그리고 죄 많은 사회에 처하여, 이 길을 더듬어 가는 그 노정에 있어서 부디 서로 지켜 주고, 서로 도와주게 하옵소서. 그 상대자가 없으면 타락하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고, 시간마다 서로 지키며, 시간마다 서로 염려하면서 더불어 돕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누구에게도 없는 친한 벗이 되고, 친한 어버이가 되고, 친한 자식이 되고, 형제가 되고, 이 큰 영광의 본거지인 사랑의 세계에 이르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그러한 자녀가 되도록 아버지께서 격려하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혈통 전환이라는 무서운 말을 지금 들었습니다. 이다지도 복귀의 노정이 어려웠사온데, 저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몸으로서 따라왔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이룩했다고 하는 모든 영광은 자기에게 돌리려고 하는 마음으로 해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어리석은 자이었나를 알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 알수록 자기 일신을 둘 곳이 없어지며, 모든 것이 하늘의 것이며, 모든 것이 부모의 것임을 생각할 뿐이옵니다.

그 이 외에는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사오니, 평생을 그 신념에 싸여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서로 돕는 부부가 되어 함께 아버지 앞에 남아질 수 있기를 바라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사랑 속에서 영원한 자녀를 낳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어버이로서 자녀와 하나되어 아버님께 더한층 사위기대의 사랑의 심정을 되돌려 드리는 참된 남자와 여자, 참된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 상대자의 얼굴이 문제가 아닙니다. 학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미묘한 그 모습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님에게 정착할 내심의 심정의 약이 얼마만큼 입체적으로 되어 있는가 하는 그것이 문제인 것을 생각하고, 더불어 아버지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지팡이가 되고, 격려의 약이 되는 동시에 구원의 주가 되어 저희가 이 사탄의 세계, 미친 파도와 같은 이 악의 세계를 통과할 수 있게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재삼 바라옵니다.

지금 맹세하고 있는 이 양손을, 이 몸을, 이 부부를 깨끗게 해 주시고, 새로운 하늘 세계에 입적하는 그 약속자로서 깨끗게 해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는 길에 어떠한 노고가 있더라도 아버님이 함께 고생하신다는 것, 아버님께서 눈물겨운 장면 장면에서 저희 이상의 쓰라림으로 체험하신다는 것을 알고, 천지가 열리지 않아도 서로 도우며, 서로 위로하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도록 당신께서 격려해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오늘 이 장 시간에 걸쳐서 한 모든 말씀을 골수에 간직해서 백번 죽어도 그것을 명기하고 남기고 가는, 그리고 그것을 이룩할 수 없다면 자손만대에 유언으로 남겨서 그것을 이룩하도록 하는 진정한 조상이 되게 아버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금후에 심정적인 일체의 것은 아버님 없이 생각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오니, 새로운 가정을 창조하고 심정 세계를 개척하는 선구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거동과 몸가짐을 갖출 수 있도록 아버님께서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바라나이다.

226쌍의 그 결말에 비극이 남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쁨만이 남는 입장에 설 수 있도록 아버님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버님께서 세계만민 앞에 세워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참된 가족, 참된 부부가 되도록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후의 모든 것을 맡기겠사오니, 아버지시여, 이끌어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당신 앞에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까지의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희생은 결국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인격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역사는 눈물없이는 볼 수가 없다. 통일교회 식구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한다.

눈물의 신앙생활

일주일 동안 아무도 자기를 상대해 주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으면 안 된다. 하나님과 마주 대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 이런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우리는 쓰라린 역사를 담당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밤도 낮도 없으시다. 몇 천년이나 계속해서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시면서도 후퇴하지 아니하시고 섭리를 계속해 오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눈물이 메마른 자는 통일교회 식구가 아니다. 눈이 부어서 태양을 볼 수 없을 만큼 계속 울어본 적이 있는가? 참다운 효자 효녀라면 한마디의 말로 하나님을 울릴 수 있다. 또, 하나님의 한 마디의 말씀으로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억누를 수가 없어야 한다. 언제 자신의 감동적인 말 한마디로 하나님이 우신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 끌어안고 일체가 되어 감사해 본 일이 있는가?

세계의 누구 한사람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내용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영계에 가더라도 비참하다. 심정이 문제이다. 자식으로서는 하고 또 해도 더하고 싶고, 그리고 또 찾아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하고 싶고 또 하고 싶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할 것 같은 심정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서 맞이하는 사람이 통일교회 식구이다.

북한의 감옥

선생님은 북한 공산당의 감옥에 들어가서 2년 8개월 동안 중노동을 했다. 무슨 노동이었냐면, 비료공장의 일이었다. 유산암모니아 공장에서 가루가 콘베이어에 실려 공장 한가운데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저울에 달아 자루에 가득 넣어 화차에 싣는 일이다.

열처리를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유산암모니아는 뜨겁다. 그것이 식으면 덩어리가 된다. 그것을 몇년 동안 놓아 두면 바위처럼 되어버린다. 참으로 힘든 중노동이었다. 하루 8시간의 노동시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분담이 있다. 열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한다. 한 조의 하루 책임량은 천 삼백 가마니로서 8시간 이내에 끝내지 않으면 식량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어 있었다. 하루에 주는 밥은 작은 공기로 1. 7공기 가량이다. 반찬은 아무것도 없고 국은 된장국이 아닌 소금물이다. 그것을 먹고 8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중노동을 시켜서 죽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작전이다. 여기에 들어와서 3년이 지나면 모두 죽어 나간다. 반드시,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3년 이내에.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중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이 공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우선 죽어 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는 하루에 세 끼 기름끼를 먹고 최고로 하여도 하루 칠백 가마니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공장은 그 배에 가까운 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먹을 것은 적어서 큰 입으로 세 입이면 끝나 버린다. 그러고서 중노동을 하는 것이니까 조반 먹고 공장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벌써 다리가 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것이다. 그러한 다리를 끌고 가서 아침부터 일을 한다. 그것은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신력의 승리

선생님은 공산당의 정책을 상당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선생님은 주는 밥의 반절만 먹고 살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인간은 빵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이 밥으로는 죽어버린다. 그러니까, 이 밥의 반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반 달이 걸렸다. 자기가 반절 먹고, 남은 반은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자기가 정신적으로 행복한가? 날마다 얼마나 감동의 양을 크게 하는 가가 문제였다. 정신적 위안은 실로 큰 것이다.

생활은 과학적이다. 노동하는 가운데서도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치 않는다. 노동 시간이 기도의 시간이었다. 언제나 세계적인 여러 가지 일을 상상하는 것이다. 아침 8시에 감옥을 출발하여 10시에 공장에 도착한다. 10분간 화장실에 갈 시간이 주어진다. 벌써 죽고 싶을 만큼 피로해진다. 위가 녹아 버릴 정도의 쓰라림을 느낀다. 그래도 그 일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만 휴식 시간만을 머리에 그리게 된다. 정미 40Kg을 넣어서 그것을 들어 올리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모두 싫어한다. 선생님은 모두가 싫어하는 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이 어려운 일을 계속하면 죽는다. 그래서 가장 힘든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것 외에는 살아 낼 길이 없다. 여러분도 가장 어려운 일을 맡아 하라. 그렇게 전진적으로 생각하라.

하루에 천 삼백 가마니 이상 넣고 운반하는 것이니까 이미 쉴 틈이 없다. 천 삼백 가마니라고 하면 이 강당(수택리)보다도 더 큰 산이 된다. 생각해 봐라. 천 삼백 가마니다. 이것을 8시간에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비료를 자루에 넣고 달아 가지고 가마니를 옮기는 데 5분에서 10분 걸린다. 평균적으로 5분간에 해치운다. 다른 사람은 15분 걸린다. 이렇게 시간이 걸려 가지고는 책임분담을 다할 수 없다. 산을 헐어가는 것이니까 저울을 이동해가는 데, 4-5미터 이상 저울을 움직였다가는 늦어진다. 그래서 과히 움직이지 않고 넣는 방법을 연구했다.

모두들 이 방법에 따르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혼자서 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모두 역시 양심이 있으니까 선생님은 천 삼백 자루 가운데 반이상을 혼자서 하니까 따라오게 된다. 선생님은 모범 노동자였다. 공산당으로부터 매년 모범 노동상을 받았다. 그때의 체중은 19관 3백(72Kg)이었다. 지금은 21관(81Kg) 가깝게 나간다.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는 얼마 아니 될 것같지만 뼈 무게가 있다. 다른 수인들은 모두 여위어 가는 데, 선생님은 야위질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의 연구 대상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이 교육하였다. 몸은 유산에 해를 입는다. 머리가 빠지고 피부를 짜보면 물이 나온다. 6개월이 지나면 반드시 각혈을 한다. 대개 폐병이라고 생각하고 낙담하기 때문에 죽어버린다. 기껏 1년 반이나 2년밖에 견디지 못한다.

어느 정도 배가 고픈가

어느만큼 배가 고픈가, 밥을 얼마만큼 먹고 싶었는가 하는 것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자기 가족이라든가 누가 면회올 적에는 무엇인가 가지고 오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그리웠던 어머니라 할지라도 온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기보다 먼저 가지고 온 물건에 눈이 간다. 면회 때에는 가지고 온 것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내나 어머니라도 그런 것보다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공장에서는 좀처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까 면회 때에도 먹을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회문제가 되어 시끄러우니까 이것은 허락되어 있었다.

면회와서 미싯가루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만큼 슬픈 적이 없다. 어버이가 죽는 것보다 더 슬프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어느만큼 배가 고프냐 하면, 배가 고프면 위액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냥 위가 운동하게 되니까 열이 난다. 그래서 침이 껌과 같이 죽 늘어난다. 그것은 아마 상상도 안 될 것이다. 가장 그리운 것은 실컷 먹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밥이 그립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어떤 사람이 면회를 와서 미싯가루를 가져오면 그것을 반죽해서 떡을 만든다. 그러나 돌로서 반죽하면 돌에 가루가 묻으므로 돌을 별로 쓰지 않는다. 돌에 가루가 묻으면 벌써 경쟁적으로 그것을 뜯어 먹는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다 연구하지 못할 경지이다.

밥이 어느 정도 그리우냐. 그것은 죽는 경지를 넘을 정도로 밥이 그리운 것이다. 공장에 나가지 못하는 때는 반드시 밥이 반으로 줄어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철칙인 것이다. 병이 나더라도 다른 사람과 같이 한 그릇의 밥이 그리워서 죽을 힘을 다해 나간다. 그리고 최후의 힘을 다하여 일하고 돌아와서 저녁밥을 먹으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이 죽은 사람의 것을 전투적으로 빼앗아 간다.

선생님은 그런 가운데서 인간의 깊은 곳까지 연구했던 것이다. 이 먹을 것을 그리워하는 만큼 내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가. 선생님은 매일 비교 대조하면서 지내온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밥 한 덩어리를 먹기 위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다. 만인의 탕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다' 자기 일에 대해서 불신하는 것 같은 태도는 절대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은 유명하였다.

그리고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 공산당의 조직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더라도 영계에서 협조해 준다. 사람은 뜻을 위하여 사는 이상 걱정할 것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도와 주신다. 선생님은 항상 가장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좋은 것은 남에게 주고 떨어지면 대나무로 바늘을 만들어 꿰메어 입었다.

수인 번호 596번

일요일은 쉬었다. 모두는 시체인 양 쓰러져 버린다. 선생님은 절대로 자지 않았다. 규칙적인 생활을 계속했다. 선생님도 어떤 때는 너무나 무리해서 병이 난 일이 있었다. 말라리아를 1개월 동안이나 계속 앓았다. 그러나 자기의 책임분담에는 용서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같이 일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의 수인 번호가 596번이었다. 영계의 조상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선생님과 인연맺게 하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무슨 차입물이 있게 되면 영계의 조상이 나타나서 반을 596번에게 갖다 드리라고 하는 옛날 이야기 같은 일이 있곤 하였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생활권에서부터 시작됐다. 영계는 천사장권이니까, 천사장으로서 그 사명을 하지 못하면 아담의 영광권과 관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수십명이 전도되었다. 어떠한 비참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선생님은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였다.

1950년 8월 1일 백 대 이상의 B-29기가 총공격하여 흥남공장을 크게 폭격하였다. 선생님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뿐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직경 12미터 이내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두 선생님 주위에 있도록 일렀었다.

선생님은 그런 중에서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었다. 폭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금후의 이상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사상이나 이상을 가진 사람이 가치있는 것이다. 이처럼 복귀의 사명을 하는 이러한 사람을 영계에 데리고 가면 하나님에겐 천주적인 손해다. 하나님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방비해 주고 싶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매일 감상문을 쓰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쓰지 않았다.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할 만큼 하고 있었으니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산주의가 좋다고도 쓰지 않았고, 나쁘다고도 쓰지 않았다. 언제나 백지를 냈다. 선생님은 그런 전법을 취해 왔던 것이다. 선생님은 5년 형으로 입감하였다.

연합군이 공격하여 왔을 때 공산당은 수인들을 처분하고 갔다. 바로 선생님 앞 사람까지 전부 죽였다. 어느날 삼베 끈을 모으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직감적으로 최후의 때가 점점 가까왔다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정말 심각한 기도를 했다.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것이 최후의 길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우물 속에 거꾸로 처박아 죽였다. 다음 차례가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총공격이 있어서 새벽 2시경부터 도망쳤다. 그때 몇 사람의 제자를 데리고 평양으로 해서 남한으로 내려와 통일교회를 재출발했던 것이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아무리 괴롭다고 하더라도 남에게서 은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절정에 설 수 있는 방책이다. 남들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은 탕감의 길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설지라도 자기가 할 것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해냈다고 하는 입장을 넘지 않고서는 완전탕감했다는 입장에 설 수 없다. 천 삼백 가마니를 매일 들어 올렸다. 그러고도 끄덕도 없었다. 무엇에 의해서 극복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정신력이었다. 이런 체험이 선생님 생애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다 얘기해 주고 싶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고 싶지만, 정말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일이었던 것이다.

출옥

출옥한 후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나그네였다. 평양에서 남한까지의 약 3개월 간은 걸식을 하였다. 묵묵히…. 어떤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먹고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한 방랑의 생활을 하였다. 영계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양이야.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 먹을 것이 없으니 뭐라도 주십사'하는 기도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을 위로하고 잠을 자곤 했다.

어떤 때는 '내일은 틀림없이 어떤 어여쁜 부인이 길가에서 무엇인가 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음날에는 틀림없이 생각했던 그대로 새하얀 옷을 입은 부인이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로 어젯밤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고 하는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드십시오'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산 실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도움을 준 부락에는 때가 오면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그때의 선생님 심정을 느끼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도 그러시다. 선생님과 하나님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던 슬픔은 지상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 깊고 깊은 하나님에게 향한 심정은 측량할 수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온통 세포가 저려오는 것만 같다. 그런 심정으로 효행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겠어요?

식구들이 영통하게 되면 선생님이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친구들도 성진이의 어머니도, 누구도 몰랐다. 오직 혼자 해 왔다. 참고 견디면서 해 온 기간이었다. 그런 것을 꺼내어 찬양하면서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청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을 다하라고 영계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어들이게 된다. 몇십 배 몇백 배가 되어서 거두어 들여진다.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심은 것은 아주 근소한 것인데, 몇 배, 몇 천만 배로 하여 수확케 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안 것만 가지고도 선생님은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 할 것인가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

뜻 성취가 가까와짐에 따라서 더욱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해 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반대한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꿈에도 없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이 때리면 이 지상에 한 사람도 남아 나지 않는다. 벌써 수천년 전에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심정에 상처 입혔다고 해서 그것을 보복하려는 생각 따위, 그러한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 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가르침의 길을 다 개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는 적이 없다. 옛날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선생님은 가끔 길에서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만나면 달아나 버린다.

이러한 배후의 역사를 갖고 통일교회는 탄생된 것이다. 그러한 뿌리를 지상과 영계에 폈기 때문에 지금 싹이 튼 것이 통일교회이고,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지금 여러분들의 입장이다. 그 뿌리에 필적한 힘을 가지고 새싹으로서, 어린 가지로서 성장해 가면 된다.

배후의 관계는 여러분들은 몰라도 괜찮다. 그러나 선생님은 뿌리의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이것을 세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가지를 잘라서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선생님이 통과한 것의 몇분의 일이라도 통과하지 않으면 접붙여지지 않는다.

어머님에게 미안할 뿐이다.

선생님은 어머니에 대해서 내외적으로 이런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이 있다. 여자로서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한창나이에 여자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누구도 할 수 없는 애정의 대가로 부상(浮上)되는 것이다. 피곤하여 잘 때,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큰 절을 한다. 그런 심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방은 행복한 방이다. 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나는 …. 그런 꽃 향기 가운데 하나님은 사시는 것이다.

남편이 돌아와서 저녁도 들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코를 골고 자버린다면 그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코고는 소리 이상으로 우는 소리가 자기의 가슴으로부터 끌어오르는 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가정을 보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다. 만약 그런 것을 보지 못한다면 선생님의 고생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육천년의 희생은 헛된 희생이 되고 말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가슴이 막힐 정도의 아픔을 느낄 때 누구도 그것을 풀 수가 없다.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자기의 심정을 이해하는 횡적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일 것인가. 그리고 상대가 결점이 있으면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 드리는 조건이 된다. 상대가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보다 모자랄 때에는 도리어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내보일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개척 전도를 하게 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들 주위에 함께 지켜 주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버릴 경우에는 그 앞길이 길지 않다. 반드시 그 자식이 벌을 받게 된다. 우리를 박해한 사람의 자식이 너무 비참하게 되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통일교회라고 다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반대한 부락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사죄를 한다. 반대한 사람들은 모두 벌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가는 일은 어렵다. 3대가 걸려 있다. 죽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가정 안에 심정의 최후의 기반이 남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서 오신 여러분! (박수) 오늘은 날씨도 좋고 여러분의 기분도 매우 좋아 보입니다.

오늘은 10월 14일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이렇게 주위 환경도 좋고 날씨도 좋은 이 날을 맞이하여, 이날을 축하해야 하겠지만 이 날이 지닌 의미에서 본다면 그다지 기쁘지만은 않은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지만 그 배후의 선생님이 치른 감옥생활을 연상해 볼 때 일면은 기쁘고 일면은 쓸쓸한 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여러분에게 '수난과 재생', 즉 '새로운 생명과 수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난기가 있게 되는 이유

1917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기간, 더 나아가 70년 기간은 세계적인 격동의 시대라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적인 운명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기간에 선생님도 태어났습니다. 선생님은 이 기간에 지금까지 계속 수난을 당하며 지내 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사의 중대한 수난기, 격동의 수난기라는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서 있게 되었는가? 수난을 당하는 배후에서 망하느냐 재생하느냐의 두 가지 내용을 역사는 언제든지 결정해 나왔습니다.

세계적인 격동기인 이 60년, 나아가 70년이라는 기간은 세계적인 수난의 기간입니다. 이 수난의 기간을 사람들은 싫어하면서도 아직까지 계속 해서 더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 기간에 근심의 역사의 결말을 짓겠느냐, 그리고 새로운 이상세계 재생의 출발의 동기를 만들겠느냐? 이 기간은 이 두 가지 문제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인 운명의 기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하늘 아버지가 아신다면 그 인류를 멸망으로 인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 인간들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생각할 때, 이 기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기준을 이 지상에 세우는 중대한 기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를 고난 속에서 끌고 밀어 나감과 동시에, 그 배후에서는 새로운 하늘 섭리의 기반, 발전의 기반을 재생시켜 오셨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상의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통하여 그러한 기반을 만들어 나오신 역사과정이 없어선 안 된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이 고난은 반드시 멸망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향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그 새로운 세계의 섭리의 기반을 이끌고 극복해 가는 내적 준비를 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 섭리의 준비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국가는 세계의 어떠한 국가보다도 고난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중심적, 핵심적인 수난의 위치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내부에 새로운 섭리의 닻을 내리고 거기서 새로운 섭리의 세계적인 발전의 길을 개척하는 그러한 일방의 새로운 가치가 없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60년부터 70년에 걸쳐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정점에 올라왔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한국 민족은 지금까지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생한 한국민족 가운데에서도 가장 몰리고 박해받아 온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 할 것도 없이 통일교회예요.

고난 가운데서 발전해 온 통일교회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통일교회 자체도 그 수난의 결과로서 망하느냐 아니면 다시금 재생의 길을 더듬어 가느냐 하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수난의 결과 선의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권에 흡수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악의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망할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됩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한국 민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고 수난의 핵심의 위치를 지키면서 역사과정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 고난의 역사과정을 통과하면서 그 모습이 지워지는 입장이 아니라, 그 고난의 모습을 타고 넘었고, 고난의 환경을 밀어내고 가정 씨족 민족 국가까지 타고 넘었고, 나아가서는 세계까지 타고 넘어서 10개 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왔다는 것은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섰다 하는 산 증거입니다.

이것을 볼 때 지금까지 환경에 얽매여 온 그 고생이 우리들의 멸망을 재촉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의 뒤를 미는 힘의 원천이 되고 타오르는 원동력이 되어졌다고 한다면, 그 고생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해 온 고생이 하늘이 인정하는 선의 위치에 섬으로써 지금의 이러한 상황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내에서 통일교회가 고생한 그 고생은 통일교회의 체제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이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를 중핵의 인연이 내려지고 있다면 그 고생은 세계를 재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식구라든가 미국 식구라든가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의 심경을 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한국에 있어서 박해를 받은 것은 비단 한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 당하는 박해를 대신한 것도 되고, 미국에서 당하는 박해를 대신한 것도 됩니다. 우리 선교부가 있는 세계 각국에서, 그 선교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그 나라에서 당하는 박해와 같은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의 특정한 위치에서 특수한 고생의 길을 간 그 기준은 그것이 멸망을 초래하지 않고 하늘의 위치에 섰을 경우에는 그 선한 기반은 세계적인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제물로서 고생 끝에 서서 고생의 운명길을 갔다고 한다면, 그 한 사람이 세계가 바라는 선한 기반 위에서 희생되고 죽어갔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 운명을 통해서 어떠한 장소에 있어서도 부활의 봉화를 울리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고난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배후에 하늘의 섭리와 연관을 가지고 있고, 선한 횡적 환경을 포옹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에 서서 보면 멋진 것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자라 나온 역사과정의 사실을 우리들이 생각할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결과인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고난 가운데서 발전해 왔습니다. 박해 속에서 우리들은 진전해 왔습니다. 개척해 왔습니다. 싸움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박해의 고개를 넘어서 이만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것은 인간 개인의 욕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영웅이나 위인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가지고 세계를 재패했다면, 개인적인 소원을 가지고 출발하여 고생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고생하지 않은 그러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는 역사적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그 길은 사면 팔방으로 막히게 됩니다. 그것은 도리어 악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경계하는 교육의 교재가 됩니다. 그러한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악을 방비하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에 입각한 고생은 그것이 만민의 양심이 인정하는 입장에 섰을 경우에는 그것을 하늘의 목표의 계율(戒律)을 표준으로 해서, 혹은 사회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적인 중심으로, 또는 세계적 사상의 중심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양심의 작용으로 재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통해서 발전의 도리를 더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만한 발전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금후의 문제인 것입니다.

승리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는 한때 고난이 몰려옵니다. 그 고난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적인 고난입니다. 세계적인 고난에 직면할 우리들은 그것을 무난히 넘을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싸워 내면 승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배가하는 어떠한 박해가 있더라도 그 박해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로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있음으로써 재생의 기반을 세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쁨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우선 자신의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 기쁨은 우선 선조와 선배들의 것입니다. 먼저 가신 형제들의 수고를 생각할 때 그 승리의 영광은 자신의 영광으로서 맞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조나 선배에게 돌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에요. 악을 중심으로 한 것은 자신에 의해 시작해서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넘을 수 없지만 우리들은 역사적인 선조들의 수고의 공을 알고 있는 이상 역사적인 선조들에게 감사할 수 있고,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입장에 선다는 것은 역사가 환영하는 그러한 인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횡적으로 위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을 양심적이라고 하고 인격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역사적으로 영인체의 환영을 받을 것이고, 하늘의 기쁨의 환영의 대상이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지상에 있는 만민의 숭앙받는 원천이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단체나 혹은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무한한 섭리노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역사과정을 통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어떤 때는 지상에서 박해를 받으며 기도로써 어떤 구원의 기반을 만들어 감사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감사의 대상은 무엇이었던가? 먼저 수고하신 하나님입니다.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그 고귀함, 그리고 박해를 받아 희생이 된 선배들에게 돌리는 입장에 선 기독교는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더라도 민족이면 민족 주체성을 지닌 국가가 탄생하였을 때에는, 기독교를 중심해서 이룩한 영광을 그 나라의 것으로 했다고 할 경우에는 그 나라를 중심으로 한 승리는 거기서부터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기독교를 국교로 해서 승리를 얻었다고 해도 그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발전을 위해 멸사적(滅私的)인 희생의 길을 걸은 자기의 선배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는 것은 정해진 일개 국민의 영광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확장시켜 세계적인 영광으로까지 넓혀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결속한다고 하는 국민이라면 그 국민은 미래의 세계 끝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와는 반대의 입장에 서서 자기들을 주체로 한 영광으로 하고, 자기들을 그 영광의 소유자로서 한정한다고 한다면, 역사는 거기에서 끊어지고 맙니다. 지금 우리들은 777쌍의 세계적인 합동결혼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이 영광을 통일교회 자체의 영광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일을 통일교회의 문선생에게 돌리는 것으로 그칠 것인가.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창조 이래 아직까지의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지금까지 희생해 오셨습니다. 숭고한 하나님의 수고에 대해서, 그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를 표시할 것인가. 이러한 환경을 앞에 놓고 잔치를 벌이고 만민의 찬양을 받을 수 있다고 할 때, 어떤 한 사람이 하늘을 타고 넘어 그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 오신 모든 것을 배반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한 자는 역사에 남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우선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거예요.

역사와 함께 남아지는 사람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실패의 역사는 세우고 왔지만 책임을 졌던 사람들이 그 누구도 실패를 원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모두들 완성, 성취, 승리를 원했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운명의 끈에 걸려 그러한 결과가 되어진 거예요. 그런 결과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에서 보면 슬픈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섭리를 해 나오셨다고 하면 하나님도 불쌍하시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복귀노정을 더듬어 온 수많은 선조들에 대해서 그들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내심에 있어서는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영광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기쁜 일이 있을 때 잘못된 선조들의 실수를 용서하시도록 빌어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 그러한 단체가 있다면 이는 또 역사와 함께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자기의 공로에 의해서 이러한 결과가 되었다고 하는 입장, 그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는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하늘에 대해서, 혹은 천적인 희망을 품고 고생하며 살다 간 선조에 대한 반역의 입장이기 때문에, 만일 영계가 있다면 그 사람의 갈 길을 완전히 봉쇄해 버릴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우리들이 당한 고생은 1세기 내의 고생이 아니라 몇십 년 내의 고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금까지 걸어온 고난의 길은 몇천 년이었습니다. 인류역사가 더듬어 온 수고의 길은 몇천, 몇만 년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 과정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위해서, 혹은 양심적으로 하늘을 향해서 일심으로 노력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권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돌린다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영계에서는 금후에 그들이 가는 길을 보호하고 발전의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그런 뜻을 위한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 사람이 가기 전에 먼저 영계가 동원하여 개척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을 가진 영인체인 이상에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금후의 결혼식은 세계적입니다.

우리는 통일교회의 권(圈)에 새로운 기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정 편성이라고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즉 결혼이라고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고 하는 것을 섭리적으로 볼 때, 이것은 새로운 지역에 우리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만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들이 모르는 , 여러분이 태어나기 몇천, 몇만 대 선조 이전부터 창조의 수고를 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 영광은 선한 선조들에게 돌려드려야 하는 거예요. 그것을 자신이 받는 이상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생하더라도 선의 입장에서 해야

완전히 하늘과 영계와 일치가 되어, 영계를 주체로 해서 영계에 이끌려 가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박해가 있더라도 그 박해는 반드시 허물어지게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십 년간 투쟁해 온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십자가의 길이 있다면 그 길은 하나님의 영광에 반(反)하는 것입니다. 선조가 지금까지 더듬어 온 한(恨)을 놓고 장래에 탄식 소리와 함께 그 수고의 길을 가기를 원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고생의 목적에 부합된다면, 그리고 그 고생을 하나님과 관련맺지 않고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관련이 맺어진다면, 그는 완전히 신뢰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선한 선조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그 고생은 아무리 역사적인 고생일지라도 자기가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죄악도, 그리고 새로이 가해지는 것도 방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실로 그런 각오를 가진 한 사람의 남자가 나타난다면, 그는 세계적인 고생의 표적에 서는 것입니다. 영계도 원조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도 원조하지 않습니다. 사탄도 원조하지 않습니다. 그는 최고로 고독한 입장에 선 고독의 왕자(王者)이고 고생의 왕자인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동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를 돌이켜 고생의 역사를, 그리고 고독의 역사를 탕감하기 위해 하는 고생이라고 하면 현세와 미래는 차치하고라도 역사과정에 있어서 뜻과 인연을 가졌던 영인체는 거기에 동원하여 원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수고는 만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 현세의 지상의 사람들은 반대하지만, 어차피 양심적 지식을 통하게 되고, 또 그 지식을 통해 몇대 뒤에는 그분을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정적인 운명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세계는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현세의 사람들이 만약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면 그 반대한 가치에 비례해서 영계는 그들을 심판합니다. 더구나 미래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다고 하면 그 십자가를 짊어졌던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 역사적인 후손들은 반드시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도 하늘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 혹은 천주적인 고독의 왕자, 수고의 왕자로 서서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담당하여 책임지고 해결하는 남자가 있다면, 거기에서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재출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선생님이 고생하였다는 것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입장입니다. 큰 것을 원하고 선한 목적관념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 입체성이 크면 클수록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타락세계에 있어서는 더구나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고생을 점령하고 고난과 더불어 정면 충돌하는 것입니다. 고생길에 벗이 없다고 해서 탄식하지 말아요. 혹 내심의 결의없이 탄식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역사를 위해서 책임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볼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의 정신의 근저(根底)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고생과 박해를 받는 환경에 있어서는 그 내심의 기준을 확보하고 쓰러지더라도 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시 그 깃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이 몇십 명, 몇백 명, 몇천 명이 생겨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의의있는 날을 맞이함에 있어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받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혹은 유치장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 고문의 극한이라는 것은 생사의 문제를 걸고 추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선한 목적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육신은 망하더라도 강한 정신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그 부활의 길은 남습니다.

악의 입장에 선 사람은 자기의 육신이 망함과 동시에 정신도 공히 망합니다. 악을 행한 사람이 '아아, 악을 행한 이것은 언젠가 선으로서 나타날 것이다.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네가 육신은 점령할지 모르지만 정신은 점령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르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악의 벌을 받을 때에는 정신도 당연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써 끝장입니다.

통일 정신

그러나 선의 입장에 설 경우에는 생사의 경지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살아 남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압한다 해도 또 남습니다. 세계를 제패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을 통해서 강력하고도 견고한 정신적인 기준을 남기고 죽는다고 하면 그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것은 강한 것입니다. 역사에 굴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에 양심적이다, 틀림이 없다고 할 때에는 부모가 뭐라고 해도 자신만만합니다. 나라가 뭐라 한다 해도 자신만만합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해도 자신만만합니다. 그러나 잘못했을 경우에는 '어이!' 하는 한마디로써 완전 함락됩니다. 그것은 망합니다. 그것은 망해요. 역사는 이러한 두 가지 내용의 인연을 중심으로 하고 교차하면서, 상하 반복운동을 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 정신은 일본 사람이면 일본 사람을 중심삼고 일본을 위주한 국가를 세우기 위한 정신이 아닙니다. 세계, 아니 천주인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해방이요. 그러면 하나님의 해방은 무엇을 중심으로 한 해방이냐? 사랑을 중심한 해방입니다. 절대적인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멋진 것입니다. 아무리 죽는다 하더라도 이 정신은 자기에게서 빼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정신일 경우에는 하나님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원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만일 공격하는 자가 있다면, 그 공격하는 자는 반드시 그 민족을 탕감할 수 있는 제물로 세워지는 조건이 됩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자는 그것이 정의로 세워질 때에는 그 자신만이 아니고 자식이면 자식, 손자면 손자 3대가 한꺼번에 굴복하는 영광의 장면은 반드시 우리 앞에 현현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우리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어서 죽는 다든가 고생한다든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악의 세계에 있어서는 가는 곳마다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자연현상과 같은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을 돌이켜서 우리가 가는 길에는 그런 박해를 받지 않고 가는 , 박해가 없는 인류를 맞이하고 박해할 수도 없는 국가를 맞이하는 자유스런 지구성을 우리들은 목표로 하고 해방운동의 기치를 들고 출발한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이룰 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죽음이 연달아 올지라도 우리들은 가는 것입니다. 일본의 젊은이도 가고, 미국의 늙은이도 갑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기뻐하며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최후까지 남아질 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목적으로 해 왔는가. 자신의 구원이라고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 왔습니다. 그런 종교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끝이 옵니다. 지금은 아무리 세계적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다시 한 번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종교와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 가? 자신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천국에 가는 데는 혼자 가서 무엇을 하겠어요? 만민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 신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말라고 해도 전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지 말라고 해도 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 그것은 자신을 의식한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민족을 위하여 자기는 이러한 신앙을 하고 세계를 위하여 이러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입장이 달라요.

인간을 놓고 본다면 인간은 몇 억조도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는 것은 몇 억조의 하나예요. 역사를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자신은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

그렇게 답답스러운 자기를 내세워서 그것을 구원할 목적으로 신앙을 한다니 그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는 거예요. 그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해야 해요. 세계는 점점 발전해 가고 있어요. 지금은 36억이지만 때를 따라서 늘어갑니다. 점점 더 큰 무대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선이라는 것은 자기가 후퇴해 가는 곳에서는 절대 안 됩니다. 자기가 대중을 위해 희생하고, 자기 스스로 수난의 길을 가고 자기 생애를 걸고 가는 사람은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수난의 환경을 자기에게 돌려 주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하늘을 위해서 고생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번영하게 됩니다. 오늘의 영광 오늘의 입장은 자기에게 주어진 절호의 환경이니까 자기 의지로 준비합시다. 거기서부터 망하지 않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운명의 판단 기준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망하는 기준은 자기보다 이하이고, 번영하는 기준은 자기보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선한 입장에 설 때에 한하여 번영합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각자 내심에 확실히 하였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날을 맞이한다고 하는 사람은 이날을 축하할 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날을 축하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끌려갈 때 '이제부터다. 나의 실력은 이제부터 나타난다'라고 하면서 내심으로 이러한 박해의 때를 바라보며 정면으로 부딪쳐 왔습니다.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몇 년간 복역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맞이하기 이전이 더욱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 후의 모습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 나는 '너는 천적인 재생의 동기를 바라고 멸망의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위해서요, 시대를 위해서요, 또한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저쪽에서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나는 이것을 담당해 간다고 하는 사람을 역사가 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역사가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 결정해서 그렇게 했을 경우, 이것은 천주에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것을 했다면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념을 갖고 부딪쳐 간 결과에는 반드시 이런 결과가 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러한 운명의 길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가정에 있어서도 그렇고, 민족 국가 세계의 주의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두고 볼 때, 다소 영토가 큰 국가가 승리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결했을 때에는 역사상에 아무리 견고한 모습을 나타내더라도 그것은 역사 위에서 그 모습이 지워지고 맙니다.

이렇게 역사 진단의 표준을 확실히 알아서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생애의 목표를 세워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의 활동과 생활도 그렇지만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보다 더한 깊은 속에 갇힐지라도 거기에는 무한한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고독하고 고독해서 불쌍한 입장, 외적으로 보면 누구 하나 관심도 가져 주지 않는 입장이지만, 무한한 영계와 무한한 희망의 세계의 모든 주체의 원동력이 자신과 함께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멋있고 절대 망하지 않는 역사의 기준이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역사의 배후에서 지금도 면면히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견해에서 선생님은 지금 통일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내가 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할 때는 '아, 미스터 문은 그런 재능이 있으니까 쉽겠지' 하겠지만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거예요. 중대한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밤중에도, 혹은 숨이 막히는 그 속에서라도 최후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뻗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가만히 떠오르는 하나님의 지시는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일신의 신념에 넘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는 심각한 입장에 서서 무엇이든지 문의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면 어느샌가 벌써 해결의 한계를 넘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 정신을 가지고 싸워 나가라

이렇게 나가는 그 노정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성공 못한다고 할 것이고, 그건 무모한 일이 될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기간의 장단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그 결정은 천지의 도수가 잘못되지 않는 한,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고도 남습니다.

그러한 결의를 했을 경우 그 결의를 향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생명을 걸어도 이루지 못했을 경우, 자기 자손을 세워 유언이라도 하고 간다, 몇십 대, 몇백 대로 연장되더라도 이것을 이루고 만다고 하는 유언, 혹은 가르침, 혹은 어버이, 스승, 또는 주의가 있다면 그러한 주의는 미래의 세계를 창조하고도 남습니다.

자기 중심한 세계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왜냐? 타락의 후손에 있어서는 그것은 몽상이고 공상인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이러한 고난의 시기에 있어서 부활의 일로를 개척하는 개척시대의 선각자라는 권위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일본에 가더라도 일본 국민을 보면서 일본의 천황보다도 수상보다도 하나님이 일본 사람을 사랑해 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에 의해서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은 이러한 심정에서 사랑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입장에 서서 일본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일본의 중심자, 즉 정계, 재계, 일본 국가가 반대하더라도, 일본은 망하더라도 그런 입장에 서서 사랑한 그 주의는 남아집니다.

그러므로 금후에 일본에 있어서 통일주의는 반드시 문제가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 이런 원점에 입각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남습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올수록 때가 왔다는 표시입니다. 환경이 무르익으면 무르익을수록 그것은 때가 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고통, 배에 들어 있는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난 후에는 생각조차 못 했던 기쁨의 새세계가 전개되어 옵니다. 만일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고통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쁨을 백 퍼센트 받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서 한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한 시대가 신생이 시대로서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가 하나는 보내고 하나는 맞이하는 기수, 중심자가 되고 혹은 그러한 가정, 그러한 씨족,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가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하늘에 돌리고, 만민에 돌리고, 미래를 위해 돌린다고 하는 주의를 가지고 자신을 그 속에 묻고 그 자체의 생활, 그 자체의 희생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죽어도 세계를 손에 쥐고 죽는 다는 것입니다.

죽은 그 사람의 정신은 누가 이끌어 가느냐? 이것은 자기가 끌어가지 않더라도 하늘이 끌어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하는 모든 환경은 언젠가는 그 사람의 주관권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섭리의 발전의 도를 더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본에 돌아가서,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각각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이 정신의 기준을 중심삼고 싸워간다면, 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 수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한 사람, 한 가정, 한 씨족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한 국가가 문제입니다. 그런 하나의 국가가 있다면 세계는 어차피 거기에 포용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외롭지 않습니다. 자신의 갈 길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막상 죽는 다고 하더라도 그 죽음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신을 가지고 갈 것 같으면 어떠한 수난의 길도 우리에게 절대로 손상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병을 앓아 본 사람은 병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 병에 걸려 본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과 같이 수난을 겪은 사람이 오히려 그것이 약이 되었을 경우에는 그것을 자신의 새로운 인생의 인격으로 되살려 제2의 가치 있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기억에 남겨 앞으로의 시간을 잘 싸워 나갈 것을 부탁하는 바입니다. 특히 수난과 재생에 대해서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박수)

​성주식을 하는 이유와 그 의의

​여러분은 타락으로 인하여 더럽혀진 혈통을 계승한 것을 청산하고 창조본연의 선한 혈통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6천년 역사를 전부 청산하고 탕감복귀하는 식을 하지 않으면 축복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약혼식을 가지는 것은 아담 해와가 약혼 단계에서 타락하기 전상태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더럽혀진 혈통을 계승한 것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원죄를 벗을 수 없고 원죄를 벗지 않으면 참자녀로서 축복받을 수 있는 단계에 올라 갈 수 없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원죄를 벗는 혈통 전환 즉 혈육을 교환하는 식이 성주식입니다.

이 성주식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자면 성찬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찬식에서는 살과 피대신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타락했으므로 예수님의 몸을 받는 것으로, 새로운 육체를 수육(受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성주식은 인간이 타락한 행로와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천사장이 해와와 통하여 저질러졌으므로, 복귀는 천적 천사장의 입장에 선 김 협회장부터 시작됩니다. 인간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귀된 어머니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가 최원복 선생입니다. 어머니로부터 타락하기전 아담을 거쳐 반대로 복귀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 부모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노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가운데에 있는 생명의 씨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까지 돌아가야 비로소 정식으로 부활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종족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횡적 사위기대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자녀들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부터 복귀된 어머니, 타락하지 않은 입장의 어머니의 복중에 들어간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에 의하여 되어지는가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했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하고 복귀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복귀되기 위해서는 다시 복중에 들어가야 하는데, 실제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으로 일체가 되어 복귀된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귀된 아담에게 돌아가서 일체가 되고 혈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맨 처음 해와는 타락할 때, 사탄을 중심으로 영적인 타락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아담과 하나가 되어서 육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완전히 복귀된 아담을 맞이하여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식이 성주식인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복귀하는 식입니다. 그런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간 여자가 되어 실체로서 남자를 복귀하는 것이 결혼식입니다.

​성주(聖酒)의 내용

​성주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하면 부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피를 상징하는 것이 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마시면 부모 사랑과 일체가 되고, 또 피와 일체가 됩니다. 이런 것이 성주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그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을 상징하고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 술입니다. 성주에는 세 종류의 술이 들어 있습니다. 그 이외에 모든 만물을 상징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마신다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태어나고 육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식이 없으면 원죄를 벗고 혈통을 전환할 수가 없습니다. 혈통이 전환되지 않으면 완성기준을 통과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주식은 그 모든 것을 탕감하는 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서는 일본의 구보끼(久保木)협회장으로부터 김 협회장(복귀된 천사장)을 통하여, 타락한 세계에서 복귀된 가인적 어머니 입장인 최원복선생, 그리고 타락하지 않은 어머니의 입장인 참어머니의 순서로 합니다. 여기에서 성주식을 하기 전에 선생님이 여자들의 손 위에 손을 올려 놓는 것은 일체화된다는 뜻에서 하는 식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것을 통해 선생님의 몸을 받는 뜻을 세워 가지고 상대자와 영육으로 일체가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딸의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영적으로 상대자의 입장인 것입니다.

한 몸으로 그러한 입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서 딸의 사랑을 받은 조건, 그리고 자녀를 낳았을 경우 그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은 조건이 세워지기 때문에, 해와 한 사람에 의해 딸, 상대자, 어머니가 되는 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는 이러한 노정을 통해야 완성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자는 3년 동안은 어머니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부터 행할 성주식의 내용입니다.

​기 도

​1970년 10월 18일 7시 15분, 거룩한 성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235쌍의 젊은이들을 아버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아버님 앞에 참된 자녀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슬픔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은 탕감복귀와 같은 희생적 역사과정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는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동시에 저희들도 잘 알고 있으므로 다시 저희들은 타락하는 것과 같은 길은 절대로 생명을 걸고라도 갈 수 없다는 결의를 굳혔습니다.

아무쪼록 거룩한 하나님의 성체를 전수받는 식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지켜주실 것을 부탁하옵고 각자가 실체와 하나되도록 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이 성스러운 의식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부부가 일본의 땅에 이 정도의 수를 중심으로 출발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 모든 나라가 축복되어지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지금은 모르지만 우리 일본 복귀의 중요한 씨로서 하나님의 뜻에 설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야 할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식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더럽혀진 것을 씻어내리고, 하나님의 실체의 중심으로 서는 데에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지금부터 성주식을 거행하겠사오니, 일체를 아버님이 주관해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이 기도를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바치옵니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이루어지는 이 합동결혼식은 통일교회에만 한정되는 결혼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공식적인 노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 우리가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

그러면 이것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우리의 인간 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축복을 받는, 이와 같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복귀 노정이 남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종교를 믿는 것도 이 때문이요, 역사가 지향해 나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최후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참된 가정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찾아 나오는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 참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참된 사랑 중에서도 참된 남자가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참된 남자가 참된 여자를 찾아 세워 하나님을 중심 삼고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참된 가정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기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가정을 부정하고 새로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에 따라 이와 같은 가정적 기준을 밟고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타락한 인간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든지 이 공식적인 조건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 약혼식·성주식·결혼식의 의의

여러분이 약혼식을 한 후에는 성주식이 있고 그 다음에 결혼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약혼식과 성주식, 그리고 결혼식은 대관절 무엇이냐? 이것은 어떠한 전례에 따라 행하는 식이 아닙니다. 타락한 모든 내용을 다시 한 번 상징적으로 재현시켜 가지고,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행하는 불가피한 행사인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어느 단계에서 타락했느냐? 약혼 단계에서 타락했습니다. 즉, 완성이라는 목표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혼의 목적은 무엇이냐? 결혼입니다.

아담 해와가 약혼한 입장에서 결혼을 잘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그 잘못된 결혼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중심 삼고 새로이 시정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는 데에도 아무렇게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내용에 반대되는 내용을 갖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을 중심 삼은 그릇된 사랑으로 타락했습니다. 자기들끼리의 사랑을 중심 삼고 천사장을 개입시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추방하고, 본연의 참다운 아담의 인격을 추방하고, 본연의 참다운 해와의 인격을 추방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사랑의 인연을 도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에게는 무엇이 생겼느냐 하면 원죄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 원죄를 벗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거짓된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재현시키지 않고는 이 원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원죄는 거짓 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어졌기 때문에, 이 사랑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중심 삼은 사랑의 기틀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원리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중심 삼고 이루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하기 전 약혼 단계의 입장으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직전은 약혼 단계이니만큼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과 해와의 자리로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 약혼 단계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과 해와가 거짓된 사랑으로 타락하여 거짓 부모가 되었고, 이 거짓 부모를 중심 삼고 세 아들인 가인과 아벨과 셋, 그리고 그들의 아내까지 포함해서 여덟 식구가 타락한 입장이기 때문에 이 여덟 식구의 형태를 복귀하기 위한 안팎의 내용이 바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한 후에 하늘의 부모를 모시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부모가 누구냐 하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실체기대를 통과한 후에는 반드시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 앞에 이 메시아가 없어 가지고는 본연의 자리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인간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하면 원죄를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왜 필요하냐? 참부모의 사랑으로 다시 접붙이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인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타락한 인간은 원죄를 벗어 버리고 죄 없는 해방된 자리에서 완성 단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혼식은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약혼 단계에서 타락한 것을 복귀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성주식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으로 더럽혀진 사탄의 피를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죄를 뽑아 버리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원죄가 있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사탄의 혈통적 내용을 자신의 몸속에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 삼은 축복의 자리에 나가려야 나갈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죄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 원죄는 거짓 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하려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 삼아 가지고 탕감 조건을 세워 밟아 나가지 않고는 벗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벗지 않고서는 완성한 부부의 자리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은 축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혼한 여러분들은 21일에 있을 축복식 전에 성주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타락의 피를 바꾸는 혈통 전환식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사탄 세계의 거짓된 사랑으로 더럽혀진 과거의 모든 사랑을 부정하고 새로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참된 부모의 사랑을 재현시킬 수 있는 부활적인 실체를 갖추지 않고는 축복의 자리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주식은 곧 참부모의 사랑의 관문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의 기준을 이룰 것을 약속하는 의식입니다. 생명은 사랑을 기원으로하여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 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활의 역사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과하고 난 뒤에 하늘나라의 법도를 세워나갈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자격을 계승받아, 완성 단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로소 '선하다'는 공인을 받아야만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3단계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참부모를 중심 삼고 혈통적인 전환을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인간은 타락의 계승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먼저 '완전히 부정해야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3. 혈통 전환은 참부모를 중심으로

​나를 낳아준 지금의 부모는 부모가 아니요, 또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던 형제도 형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나라도 우리 사회, 우리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회, 하나님이 바라시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전체를 새롭게 부흥해서 새로운 부정의 기원에서부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야 하고 각성해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필요한 조건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주식입니다.

그러면 성주식이란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성립되느냐?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부모는 사탄편적 부모입니다. 그 부모는 사탄편인 가인적 부모이기 때문에 아벨적인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아벨적인 부모는 하늘편이 되어야 됩니다. 그 부모가 예수님의 입장에서 말하면 마리아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지구상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입장의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혈통을 통한 타락한 사랑의 인연을 맺지 아니한 본성의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타락한 부모와 타락 세계에서 복귀한 부모, 타락하지 않은 부모, 이렇게 3대의 부모를 모두 찾아 그 부모의 인연을 100퍼센트 복귀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 가정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 가정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시인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온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3차까지 연장시켜 찾아 나오셨으니 그것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재림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 주님은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재림 시대는 완성 기준의 시대이기 때문에 재림 주님은 인류의 어머니를 찾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즉, 신부를 찾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 이 땅 위에서 찾으시는 신부는 타락권내에서 찾는 신부가 아닙니다.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혈통을 지니고 탄생한 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신부, 즉 그 어머니는 어떠한 터전 위에서 태어나야 되느냐? 타락한 세계의 아벨적인 어머니의 터전 위에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어머니는 타락한 해와의 입장에 해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 어머니는 예수시대에 있어서 마리아의 입장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다음의 어머니는 예수시대 마리아의 보호를 받아 축복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죄인 인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처녀로서 어머니(참어머님) 입장에 나갈 수 있는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중심으로 성사시키려 했지만 다 이루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연결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종말 시대에 와서 이것을 재현시켜 가지고 다시 맞춰 나가는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4. 완전 부활이 되려면

​그러면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러분들은 어디를 찾아 나가야 되느냐? 예수 시대에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가정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독교인들은 어디를 찾아가야 되느냐? 타락하지 않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과시킬 수 있는 길을 거쳐 타락하지 않은 아버지의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의 뼛골 속에 깃든 애기 씨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참된 어머니인 해와의 몸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릇된 자리에서 태어났으니 이것을 다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참된 어머니의 뱃속으로 찾아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도 성신을 받아야만 거듭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신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신은 어머니 신(神)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어머니와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즉, 참된 어머니의 몸을 거치는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성신이 임하게 되면 예수를 신랑으로, 즉 아버지 신으로서 모실 수 있고 사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모의 열이 자기 생명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영과 육이 다 완성된 생명이 되지 못하고 영적 생명만이 완성된 기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부활체의 기준에서만 머물러 온 기독교는 육적 부활체의 기준을 찾아 나와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으므로 지금까지 재림의 한 때를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5. 아담 가정과 이삭 가정에서의 장자복귀 섭리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은 혈통을 전환시키는 섭리를 어떻게 해나오셨느냐? 아담 가정에서는 가인과 아벨을 중심 삼고 이들의 관계를 교체시켜야 했습니다. 동생이 형이 되고, 형이 동생이 되게 바꿔야 했다는 것입니다.

동생이 형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을 자연굴복시켜서 전후가 전도되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앞의 사람이 뒤의 사람이 되고, 뒤의 사람이 앞의 사람으로 바꾸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해와가 사탄과 먼저 타락했기 때문에 그 대상의 존재로서 사탄의 아들입장에 세운 사람이 가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 세운 사람이 아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는 아벨이 장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탄의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나는 것은 비원리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원리적으로 복귀하려면 첫째 아들로 태어난 사탄편 가인을 부정하고, 둘째 아들로 태어난 하늘편 아벨을 장자로 세우기 위한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형제로 태어나 다 자란 다음에 빼앗기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하면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본래의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 뼛골 속에 들어 있는 애기 씨의 자리까지 들어갔다 나왔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기에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을 중심 삼고 무엇을 하느냐? 장자와 차자를 바꿔치는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꿔치는 놀음을 해 가지고 악은 왼쪽으로 선은 바른쪽으로 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을 중심 삼고 바꿔치기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가인이 잘못하게 되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섭리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가정에서 어떻게 되었느냐? 여기에서는 쌍태를 중심 삼고 에서와 야곱이 바꿔치기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쌍태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여기에 여러 가지 복잡한 천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에서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21년만에 하란 땅에서 돌아와 가지고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형제를 중심 삼은 바꿔치기의 섭리는 성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것입니다. 쌍태를 중심 삼고 바꿔치기를 하긴 했는 데 태어난 다음에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서와 야곱이 쌍태로 태어나 장자복귀의 싸움에서 야곱이 승리를 거둔 것은 40대이기 때문에 그 이전 복중에 있을 때의 장자복귀의 기반은 아직 복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태어난 이후의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태어나기 전의 내용을 보면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6. 내적인 장자복귀의 완성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의 다말을 중심 삼고 베레스와 세라가 복중에서부터 싸웠다는 것입니다. 장자 복귀의 뜻이 다말의 복중에서까지 찾아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 사탄은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라가 사탄편의 위치를 취하려고 먼저 나오려 할 때 동생 베레스가 그 형을 밀치고 먼저 태어났던 것입니다.

여기서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먼저 나왔다'는 뜻입니다. 베레스가 밀치고 나오기 전에 형인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산파가 그의 손에 빨간 실을 묶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끝날에 형님과 동생이 세계적으로 바꿔지는 그러한 때가 되면 형인 세라가 손을 내밀고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국가가 먼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이 공산주의 국가를 밀치고 새로운 세계적 주권을 가지고 오시는 분, 즉 베레스적 천국이념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재림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어디에서 완전 승리를 했느냐? 그 싸움은 내적 싸움으로서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싸워 바꿔치기해 가지고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형인 세라와 동생인 베레스가 다말의 복중에서 서로 싸워 승리의 터전을 가지고 있던 형을 동생이 완전히 굴복시켰던 것입니다.

베레스는 복중에서부터 형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형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베레스 이후부터는 어머니의 복중에서 전통적 승리의 기반을 상속받아 가지고 태어난 자리에 있어서는 사탄이 다시 복중에 동참하여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남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때까지 수천년 역사를 상속해 내려와 비로소 이런 승리적 터전을 계승받은 것입니다. 역사적인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혈통적인 모든 재료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시하는 그런 여성이 유대교인들 중에서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말을 보게 될 때, 다말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전부 다 망각해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혈족을 존중시하는 입장에 서서 자기 시아버지의 품에 들어가 베레스와 세라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역사상에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의 모세 오경을 중심 삼고 보더라도 이 모든 내용은 용서받을려야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7. 역사상 최초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마리아는 그 시대에 있어서 자신의 생명을 걸어 놓고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추구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마치 다말과 같이 절개와 충절을 다하며, 귀한 하늘의 혈통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험이라도 강행할 수 있는 당돌한 입장에 섰던 여성이 바로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마리아에게 곧 잉태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할 때 그 마리아는 '나는 아직까지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천사가 또다시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라고 할 때 마리아는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 자리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자리입니다. 모세 오경에 의하면 그 당시는 처녀가 애기를 가지게 되면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시하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시하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를 잉태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배를 통하여 역사상 처음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를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느냐?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에 대해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습니다. 예수가 태어나게 된 것도 마리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출생의 동기도 하나님이요, 또 출생에 이르는 과정도 복중의 승리의 터전을 가진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 앞에는 사탄의 아무런 참소조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시대에 있어서 복중에서부터 기원된 아담과 해와 이후의 모든 싸움의 터전을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갈라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혈통을 타고 나온 사람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떠한 선지자나 어떠한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와는 그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혈통적 내용을 갖추고 오신 세계적인 대표자인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내용을 전부 다 가려 가지고 오신 분이기에 그야말로 하나님을 위주한 혈통적인 내용을 지니고 태어난 첫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동기와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 이 땅 위에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대신 탄생한 예수는 어떤 존재냐? 이 세상에 남자가 수없이 많았지만 하나님 앞에 필요한 남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남녀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중보로 태어난 하나의 남자가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타락한 아담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완성한 자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창조원리를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지으신 후에 그 모양을 본떠서 해와를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태어날 수 있는 완성한 남자, 즉 참다운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재창조의 원칙에 따라 해와를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남성을 위주로 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해와를 찾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어떻게 찾아 세우느냐? 아담을 통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흙으로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 녹음이 중단되었음)

​8. 가룟 유다의 불신

​이런 입장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같이 살아야 되겠어요, 살지 말아야 되겠어요? 「살지 말아야 됩니다」 이 요셉은 뭐와 같으냐 하면 천사장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같이 사는 것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을 계승하여 되풀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마리아가 예수와 하나되어 예수의 상대를 구해 주는 데 있어서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사명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중심한 집안에서 전부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집을 나와 가지고 상대를 찾는 일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집을 나와서 해야 하는 데 요셉과 같은 입장에 누구를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가룟 유다가 적격자였습니다.

그러면 또 마리아의 입장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가정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지 않으면 예수는 사명을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을 외적으로 하기 위해서 예수는 집을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12제자를 찾아 세워서 가룟 유다를 중심삼고 이 일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는 무엇이냐?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돈 30냥을 받고 팔았느냐 이겁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은 것은 돈 때문입니까? 가룟 유다는 사랑하는 아내로 하여금 예수를 밤낮으로 모시고 충성할 수 있게 협조해야 했습니다. 아내와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아내로 하여금 예수의 모친과 같은 입장에 서서 예수에게 협조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이 전부 다 무너졌기 때문에 예수는 갈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비운의 역사를 짊어지고 죽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해원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통해야 중생이 된다

예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했느냐 하면 영적으로 그일을 대신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삼고 아버지 어머니 대신 사명을 하는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재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산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에 품겨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신의 사랑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 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인 예수를 찾아 세우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신이 아버지를 영적으로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그 사랑의 힘이 작용하여 부딪치는 힘을 느끼는 것이 곧 불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은 사랑의 감각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감각을 느끼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칙을 완결짓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음을 재차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명을 완수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되느냐? 오시는 주님은 누구냐?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 뱃속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된 인간은 본래의 아버지 속에 들어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서는 다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신랑으로 모시는 어머니 신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남자 되는 예수님의 뱃속에 들어가기 위한 놀음을 해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체로 예수의 뱃속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뭐냐? 어머니신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각 신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예수의 뱃속에 있는 애기 씨의 입장으로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뱃속에 들어간 다음 복귀된 새로운 어머니를 통하여 다시 태어났다는 입장에 서야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체를 쓰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이것을 행할 수 없으니 반드시 이러한 조건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그 조건을 세워 가지고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참아버지와 심정적 일치점을 갖추어야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선생님에게 절대적으로 반해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자기의 아내보다도, 자기의 남편보다도, 자기 옆에 있는 자식보다도 선생님을 더 보고 싶어하고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1950년대에 뜻길을 출발하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어머니가 없을 때인데도 선생님만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슬퍼하면 자기도 슬퍼하고 선생님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하면서 선생님과 같이 동감할 수 있는 심정적 일체의 자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아버지 뱃속에 들어있는 애기 씨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하면 자식도 슬퍼해야 되고 아버지가 기뻐하면 자식도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심정적 일치점을 갖추지 않으면 아버지 뱃속으로 들어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참어머니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우려면

그러나 아버지의 뱃속에 있는 애기 씨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되므로 여기에서 어머니의 복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의 뱃속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1960. 4. 11)에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참어머니가 세워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아버지 뱃속에 있을 때 느꼈던 사랑의 은혜를 느껴 가지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모실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재차 어머니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어머니의 사랑의 인연과 연결시켜 가지고 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출생하는 여러분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와 같이 되어야 하느냐? 아벨과 가인은 쌍동이의 입장입니다. 즉, 한 사람의 한 태(胎)에서 나오는 쌍동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야곱과 에서가, 그리고 베레스와 세라가 쌍태로 복중에서 뒤넘이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쌍태에서 뒤넘이치지 않고 동생에게 순응할 수 있는 가인적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반대하는 가인이 아니라 아벨을 모시고 반대하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가인적 입장에서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복귀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의 애기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복중의 애기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년간의 표어를 첫째 '생에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어라' 둘째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라' 세째 '보여 주고 자랑하라'로 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자랑하라는 것은 사위기대 복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이 3단계를 중심삼고 복중에 있는 애기와 더불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과 같은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3년 동안은 여러분이 보리밥을 먹을 때 같이 보리밥을 먹고,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할 때 같은 조건의 활동을 했습니다. 예진 애기와 효진 애기는 어머니가 보리밥을 먹고 낳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도 여러분과 똑같은 심정으로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복중에서 태어난 가인적 존재로서 어머니를 사랑함과 동시에 애기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일치화됨으로 말미암아 쌍태와 같은 반열에 동참했다는 심정적 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들을 중심삼고 모시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중에서 두 씨의 반발을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발된 타락의 기원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며, 여기에서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역사를 다 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예진 애기와 효진 애기가 태어날 때 국밥을 먹었습니다.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국밥을 먹었기 때문에 애기도 같이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상대적으로 국밥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적 일체의 내용을 탕감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감사해야 할 참부모의 공로

이와 같이 복귀역사는 비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물샐틈없는 절차를 거쳐 가지고 오늘날 역사사대에 있는 여러분과 관계를 맺기 위해 모든 내적 기원을 세워 온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그냥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수고한 역사노정이 현실권내에 있는 이 길을 찾아 오기까지는 6천년이 걸렸던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러 가면서 천지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탕감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인연을 거쳐 가지고 부모가 사위기대를 갖추었으니, 여러분도 사위기대를 갖추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데 아까도 애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현실 속의 부모나 형제라든가 하는 세상적인 의식을 초월하고 새로운 자아의 발길로 재생의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해 가지고 탕감의 노정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올라온 승리의 쾌감을 지금 얼마나 느끼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으로서 등장하게 되면 6천년 전에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채 한을 품고 십자가에서 죽어 간 그 예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입장에 섰다고 한다면 예수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보다 나은가, 못한가? 또 여자들은 성신보다 나은가, 못한가? 「낫습니다」 성신은 실체를 갖지 못했습니다. 예수도 실체를 가졌지만 부모를 중심하고 부자의 인연을 맺어 생활하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부모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인 중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자리를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거기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정 고마움을 느낍니까? 부자집 자식들은 부모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탄이 고질적인 혈통적 인연을 걸고 나와 수천년 동안 하나님을 골탕 먹이고 우리 선조들을 그렇게 유린했던 쇠사슬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해방의 깃발을 들고 자유 평등한 입장에서 만국 만민 만우주가 서로 화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느냐 이겁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것이 없습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부모님 가정의 사위기대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가인은 아벨의 갈 길을 닦아 주어야 합니다. 또, 천사장은 아담이 살 수 있는 환경이나 법도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 하나님의 뜻 앞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가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의 책임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선생님 가정의 애기들이 장래에 하늘나라의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그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 선생님의 아들이 버릇이 없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 스스로가 말이나 행동이 그들 앞에 본이 되어 가지고 그들이 하늘의 아들로서 거침없는 완전한 자리에서 만우주를 대신하게 될 때 여러분은 천사장의 입장에서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충신으로서 어린 아담과 해와를 키워 가지고 천법에 일치될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본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자동적인 입장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는 가인도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없었고 아벨도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 일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으되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없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가인도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고, 아벨도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혜택권내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자리는 참으로 무서운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통해서 올라온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부모의 특권적인 혜택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낳아 주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심정적 일치점을 중심삼고 생사의 모든 전체를 같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부모를 두 번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제자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버지가 사지에 나가는 것을 보고 도망을 갔습니다. 불효막심한 녀석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한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여러분은 부모님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어떠한 죽음길이라도 가로막고 효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자신이 파탄되는 한이 있더라도 응당히 가야 할 길이라고 하며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을 가만히 보면 본부에서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매번 똑같은 일만 한다고 하면서 꽁무니를 빼는 이런 망할 자식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망할 것들. 그렇게 하다가는 여러분의 후손들이 하늘땅 앞에 참소받는다는 것입니다. 일본 식구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현재의 처지를 각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한 것

그러면 결혼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목적은 누구의 목적이냐? 아담의 목적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아담이 기뻐하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결혼을 누구 때문에 하느냐?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라는 뜻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은 자신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심정이 주체적인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그가 동하면 내가 동하고 그가 정하면 나도 정하여 심정적 일치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화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아담이 되고 해와가 되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이 결혼을 누구 때문에 하느냐?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돼먹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기들 마음에 맞지 않으면 하겠다느니 안 하겠다느니 말이 많았다 이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부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뜻 앞에 추호도 용서할 수 없는 패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누구를 위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위하고 뜻을 위하고 만민을 위하고 세계를 위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여러분 개체 개체, 혹은 남자와 여자들도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것이기 전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겁니다. 자기 것이기 전에 세계의 것입니다.

이렇게 고귀한 신랑 신부의 자리에 나가기 위한 자기의 존재 가치를 느끼면서 사시사철 밤이나 낮이나 헌신하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 앞에 축복을 허락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

그러면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 있어요? 「서 있습니다」 서 있어요? 「예」 서 있긴 뭘 서 있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전부 다 병신 같은 녀석들을 데려다가 가르쳐 주어서 뜻을 바르게 해 가지고 축복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축복입니까?

사탄을 쳐부수고 끝날에 가서 하늘 앞에 영광스러운 승리를 돌려드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주장하고 나서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벌거숭이가 되어 가지고 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축복에 대한 심정적인 자세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간파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시 한 번 재검토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특권적인 혜택을 부여해 용서해 주었던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사지로 나가는 자식을 저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더라도 자식을 살려 줄 수 있는 길을 헤쳐 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십자가를 선생님이 짊어지고 자식인 여러분들을 살려주고 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통인 줄 알고 있다면 망합니다. 말할 수 없는 빈털털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의 문을 열기 전에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늘땅 앞에 나서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어떻게 갖출 것이냐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에 승리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효자 효녀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내적 외적으로 모두 갖추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인격을 가지고 참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만 보면 엉망 진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서부터 새로운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 때의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은 이런 배신자의 후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사지(死地)에 나갈 때, 여러분이 과연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상의 자리를 넘어 선생님의 죽음길을 가로막고 대신 죽음의 길로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됩니다. 남녀노소 할것없이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는 맹세가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예수의 한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한을 풀지 못하고는 축복의 자리에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축복의 자리

또 한 가지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축복받는 자리는 완성된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걸어간 십자가의 다리가 있다면 그 다리를 그냥 그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날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 다리를 거쳐야 한다고 할 때 그 다리가 위험한 것을 피하기 위해 철근으로 완비할 수 있는 길을 닦을 수 있을는 지는 모르지만 다리위로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걸어간 7년노정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개인적 7년노정과 가정적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냥은 완성단계로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그 선상 이상 올라가야 비로소 원죄를 벗을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에서 벗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따라서 오늘 여러분이 축복받으려고 나선 이 자리는 완성기 완성급이 아니라 장성기 완성급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 셋과 그들의 대상을 포함한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가 모두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다시 완성급을 향하여 들어서는 자리인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은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가치를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존중시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거쳐야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살아있는 자체를 느끼며 감사해야

그러면 혈통복귀란 무얼 말하느냐?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완전히 부활된 자신이 손끝에서 발끝까지 살아 있는 자체를 느끼면서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에서야만 하늘로 돌아가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끝에 별의별 것이 다 얽매어 있으니……. 여러분 앞에는 이러한 현실을 박차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넘어가고 무엇으로 건너갈 것이냐? 그 길이 아무리 천신만고의 수난의 길이라도 건너가야 할 운명길인데 가지 하나도 붙잡을 수 없는 그 막힌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 구렁텅이에 떨어져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한 희생자들이 얼마나 많았느냐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수많은 개인이 망했고, 수많은 가정이 망했고, 수많은 종족이 망했고, 수많은 나라들이 망했던 것입니다. 그 벼랑에서 전부 다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벼랑이 있는 골짜기에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나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이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고귀한 가치의 인연이 참부모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천지를 한꺼번에 갖다 준 것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피 속에는 사탄의 피가 준동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가까이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지 못한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탄하고, 이것을 저주하고 밟고 나온 후에 여기 이 자리에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생각이나 해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부모님의 그 아픔을 사랑하는 마음, 감사에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 길은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머리로 비교해 가지고 좋고 나쁨을 결정지어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 자신들은 여기에서 새로이 혈통을 전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핏줄이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왼쪽에 있던 선이 바른쪽으로 가는 것이요, 바른쪽에 있던 악아 왼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또 아랫쪽에 있던 선이 윗쪽으로 가는 것이요, 윗쪽에 있던 악이 아랫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합동결혼식의 의의

이러한 광명한 아침을 앞에 놓고 1970년 10월 21일을 기하여 777쌍이 온 세계 만민 앞에 해방의 기치를 들고 나선다는 것은, 천주사적 승리의 터전이 소생하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고도 놀라운 이날이 귀하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얼마나 느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나라, 부모님의 족속, 부모님의 가정, 부모님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10개국에서 모여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문화의 차이가 있습니다. 문화의 평균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잔치를 함으로 말미암아 복귀역사가 어떻게 엮어져 나왔고 가정이 어떻게 설정됐다는 사실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확실히 알게되는 것입니다.

본부가 있는 한국을 중심삼고 수많은 국가들이 상대적 입장에서 서로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심정적 유대가 세계를 중심삼고 평형적으로 엮어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 바로 이 세계사적인 합동결혼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석하는 민족은 비록 남의 나라 남의 민족이지만 해방을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민족과 나라는 그의 선조들이 과거에 하나님 앞에 수많은 공을 세우고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축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여러분이 아무리 병신 같은 아들딸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되면 영계에 있는 조상들은 자기 나라의 명예와 권위가 서는 것이 자랑스러워 이 놀라운 날을 부끄러움없이 찬양하며 천적인 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잔치를 하는 그들보다도 더 기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그들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조들의 환희의 한날을 부활시킬 수 있는 거룩한 날, 현시대권내에 있어서의 그 나라 국민을 기쁨의 권내로 부활시켜 결정지을 수 있는 거룩한 날, 미래에 만민이 서로서로 자기 나라의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바로 오늘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랍고도 역사적인 한날을 위해 준비해 온 여러분의 지난날의 모습과 태도와 행동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볼 때 더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과거는 비록 그랬더라도 내일의 한날을 맞이하는 이 자리에 선 우리들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가정,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가 힘을 모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편성할 때까지 아낌없는 정성을 들이겠다는 마음으로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기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타락한 인류의 절대적인 소망의 중심

그러면 축복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축복의 자리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자리입니다. 그 축복의 자리는 누구와 관계 맺어야 되느냐? 여러분은 자기 자체로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부모님의 사랑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태어나면 잘났든지 못났든지그 부모의 형태를 닮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는 복 중의 복입니다.

인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시대를 다 잃어 버리고, 자기의 후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를 만난다면 역사를 찾는 것이요, 시대를 찾는 것이요, 미래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참부모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타락한 과거의 역사가 소원해 온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어느 한 때에 평화의 세계가 이 땅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미래의 소망으로 품고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그러한 때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란 어떠한 존재이냐? 참부모는 모든 전체의 소망의 상징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있어서 절대적이 소망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오늘날 이 세계 국가권의 중심입니다. 참부모는 앞으로의 이상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미래선상에 있어서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의 선조들은 무엇을 바라느냐? 통일의 세계가 누구를 찾기를 바라느냐? 참부모를 찾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부모와 영원히 상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민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계 국가를 맞기 전에 참부모를 맞이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의 후손들은 누구로부터 출발하고 싶어하느냐? 여러분의 새로운 아들딸은 여러분의 핏줄을 통해서 태어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핏줄을 통해서 태어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는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역사적인 결실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서 주위의 전체가 하나의 가정에 귀결되고, 엉크러졌던 모든 것이 다시 하나의 기점에 전부다 직결될 수 있는 중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는 역사를 완전히 사랑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자요, 참부모를 완전히 사랑하려는 자는 세계를 참되게 사랑하겠다는 자요, 참부모를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자는 미래세계의 후손들까지 사랑할 줄 아는 가치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희생하더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참부모의 사랑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를 모시려면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은 지상에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이루기 전에 먼저 참부모를 맞이하는 것이 제1의 소원입니다. 이것이 기원이기 때문에 그 기원이 완전하면 지상천국이라는 목적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원이 되는 분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내 자체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분을 완전히 사랑하게 되면 과거와 현재를 거슬러 올라가서 종적 중심에 설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이제부터 수천년 수만년 후의 실체시대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미래의 천국, 미래의 소망 세계를 몇만 년 앞에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몇만년 전에 지나간 참부모의 이념과 참부모의 생명의 은사를 입어 그것이 소망의 터전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종국의 터전에 서 가지고 하나의 이론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와 연결된다면 세계사적인 새로운 왕자 왕녀로서 과거의 무엇에 비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의 해방이라는 것은 세계의 해방이요, 시대의 해방이요, 역사의 해방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직접적인 은사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고귀하다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내 손도 거룩한 것이요, 내 얼굴도 거룩한 것이요, 더 나아가 내 몸 전체가 거룩한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 있어서 이런 거룩한 결실체를 더럽힐소냐? 이상적인 종교란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깃들 수 있는 종교임을 자각하여 자기의 심정의 터전위에 하나님이 머무르실 수 있는 거룩한 안식처를 남기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보았습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빵점라는 거예요.

참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혼자서는 안 됩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자기의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혼자일 때에는 아담의 입장에서 힘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 앞에 그 무엇인가를 보답할 수 있고 바칠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여러분들이 부모의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자기들의 후손들에게 혈통적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핏줄을 통하여 이런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런 사랑의 터전을 기반으로 해서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혈통적인 상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 가정은 천국의 터전

하나님은 왜 상대되는 존재를 지으셨느냐? 하나님은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그 이상을 이 지상권내, 생활권내, 시간권내에 접선해 가지고 자기의 가치를 어떻게 자극적으로 느낄 것이냐? 그걸 느끼게 하기 위한 존재로 상대되는 존재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인 창조이상을 중심삼고볼 때, 여러분이 그 이상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조이상을 현실 속에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현실 생활권내에서 이것을 얽어맬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체와 대상, 즉 남자와 여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서로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이상세계의 사랑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한 부끄러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실현하고 내일을 기약하기 위한 사랑이요, 박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서 민족의 서러움을 내 서러움으로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서러움을 내 서러움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고귀한 인연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상대입니다. 즉 남자, 앞에 여자요, 여자 앞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천국의 감정을 소개시키고,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부부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의 바탕 위에서 폭발될듯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취하고 우주가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이요, 인류를 위한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요, 인류의 사랑이 근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가해지는 모든 것은 마치 나뭇가지와 같은 것입니다. 나무의 가지가 굵어져서 많은 가지를 치고 잎을 가지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음으로써 기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것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하면 가정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천국의 내용을 가정의 터전 위에서 재현하시고 그것을 다시 감미할 수 있는 자극적인 터전이 되는 것이 사랑하는 부부의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상대적 인연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엮을 것이냐? 힘만 가지고는 엮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엮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야만 이 세계를 엮을 수 있고,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을 준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세계를 사랑하게 될 때 세계는 우리의 품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의 품안에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은 이런 놀라운 가치의 내용이 부부의 인연 가운데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재강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 하나의 가르침은 일개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30억 인류가 다 혜택을 받으면 타락한 인류를 대신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의 가슴가슴마다 넘치고 남을 수 있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말할 수 없는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는 가정이 될 때 그 가정은 하늘 가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으로 이끌고 온 가정의 남자는 하나님을 대신한 남자요, 여자도 하나님을 대신한 여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남자와 여자는 인류를 대신한 남자와 여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지상에 천국의 터전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 천국의 터전이 개인을 통해 가정·사회·민족·국가의 형태를 거쳐 세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연결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식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에 부모는 못 먹더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쥐고 혀를 깨물며 굶주림을 극복해 가면서 그것을 자식에게 줍니다. 그 사랑은 부모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수고의 노정을 가야 부모의 그 수고가 밑천이 되어 자식이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수고의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심정을 가져야 여러분의 아들딸들도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이요,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을 두어야 선한 혈족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하고 부모님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효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효자라고 말하느냐? 부모가 나를 위해서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 앞에 할 수 있으면 그 자식은 효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과도 통합니다. 부모는 중간에서 정성을 들여가며 키웠는 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은 아랑곳없다고 한다면 그 집안은 망하는 것입니다.

주고 받은 이치에 있어서 상대적 기준이 조성되어야만 돌아오는 것이요, 또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실 수 있으며 천국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식은 어떠한 자식이냐? 부모의 사랑으로 진 빚을 자기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노망을 했을 때는 자기가 어린 시절에 똥싸고 오줌쌌던 것을 닦아 주던 그 부모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참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부모를 모셔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되는 사랑의 법도, 아들딸과의 사랑의 법도는 보여 줬지만 남녀간의 사랑의 법도는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와 성신, 신랑 신부가 사랑할 수 있는 그 법도적 내용은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새로운 사실을 우리가 보여 줘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 주었으면 그 표준을 중심삼고 생활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아 나오시면서 사랑의 자세를 보여 줬지만, 남자가 여자를 , 여자가 남자를 위하는 사랑의 만인에게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적인 기준에서 당신의 아들과 딸인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고 사랑의 가치를 보여 주었지만, 횡적인 기준에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수 있는 남녀간의 사랑의 가치를 세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의 실체를 세워 가지고 만국이 환영하고 만민이 모시는 가운데 사랑의 가치를 온 천상세계에 빛내고, 온 우주에 꽉차게 증거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와 성신의 한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시대에 그러한 예수와 성신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시대에 그런 하나의 전통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자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요, 남자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를 사랑하기 위해서, 아무개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요,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서 천륜의 법도를 보여 주고 전통을 세우는 핵심적인 내용을 남기기 위해서 거룩한 출발을 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형제의 입장에서 서로 형제를 위하고, 그 형제의 입장에서 부부의 운을 갖출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형제로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사랑했고, 부부로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사랑했고, 자녀로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사랑했다는 3대사랑의 원칙을 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3대 사랑의 원칙이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치하게 되는 날에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주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3대 사랑을 중심삼고 같이 꽃필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 세계의 소원이요, 인류의 소원이요, 미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천지의 법도 앞에 역사의 향기를 풍길 수 있고, 새로운 꽃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남자 여자의 입장과 책임

그러면 여기서는 어떠한 원칙이 있느냐? 여러분들은 세계를 대표한 남자요, 여자입니다. 여기에서 여자는 주인인 하나님 편이요, 남자는 천사장 편입니다. 남자가 누구 편이라구요? 「천사장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남자가 오른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오른편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임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사장과 해와가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원죄가 심어졌지요? 그러니 거둘 때도 결혼으로 말미암아 거두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예」 천사장과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심어졌으니, 누구와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거두어야 됩니까? 아담과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거두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이 결혼하려면 누가 있어야 됩니까? 해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결혼하는 데 있어서는 누가 먼저 결혼해야 되겠어요? 천사장이 먼저 결혼해야 되겠어요, 해와가 먼저 결혼해야 되겠어요? 「해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와가 먼저 결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해와가 결혼하기까지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고, 복을 빌고, 종살이를 다하고 나서 결혼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이 종살이를 다하거든 자식이 부모 앞에 나아가 '아버님! 종도 혼자 사는 것이 외로워 안 되겠으니 상대를 만들어 줍시다' 하고 권고하여 결혼할 수 있는 것이지 그전에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해와가 결혼을 하려면 이 지상에 해와의 남편이 있어야 하는데 그 남편이 누구예요? 「오시는 주님입니다」 그 주님이 떡 오셔서 해와하고 결혼하게 되면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천사장이 울고 불고 해야 되겠어요? 「기뻐해야 됩니다」

예수가 오기 전에는 천사장의 아내 노릇을 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오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천사장은 자기의 부인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다고 해서 천사장이 울고 불고 해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그러한 길을 걸어감으로써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은 누구의 편입니까? 「선생님 편입니다」

타락한 여자는 두 남편을 모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해와는 영적으로 천사장을, 육적으로는 아담을 남편으로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몇 입니까? 「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복귀하려면 두 남편을 맞이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과 자기 남편, 이렇게 남자가 둘인 것입니다. 한 여자가 두 남편을 모셔야 하는 것과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모든 여자들은 신랑을 찾아온 신부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누구하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적으로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이시기 때문에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찬가지로 이 지상에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부활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면 선생님이 오빠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영적으로 약혼 반지도 끼워 주고, 꽃다발도 주고, 웨딩마치도 울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경험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다 가짜 신앙자들입니다. 영적 경험을 해본 사람은 틀림없이 이런 현상을 봤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남편을 혹과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되는 거예요.

그러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인간시조가 영적인 사랑으로 타락했던 것을 복귀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게 되니 비로소 그 사랑이 화합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천사장이 상충되었던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화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복귀된 가정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적으로 보면 여러분이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영적인 사랑의 통해서 아담을 다시 해산해야 합니다. 타락한 해와의 영적 사랑의 죄를 통하여 아담도 영적으로 타락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을 복귀한 기준을 세워 가지고 여러분이 정성들인 그 기준을 육적으로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런 계통을 거쳐 가지고서야 비로소 본궤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사명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3년노정을 통하여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 노아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식구들을 완전히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3년노정 동안에 복귀하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3년노정을 중심삼고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축복해 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주식이 무엇하는 것이냐?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몸을 자기 몸속에 투입시키는 식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타락한 몸뚱이는 하나밖에 없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바꿔치기하는 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주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떡은 내 몸을 상징하는 것이요, 포도주는 내 피를 상징하는 것이니 너희는 그것을 받아먹고 마셔야 한다고 했던 말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실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핏줄을 이어받아 원죄를 씻을 수 있는 식입니다. 이 식을 거치지 않고서는 축복의 자리에 못 나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식은 혈통을 전환시키는 식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중심삼고 선생님 가정이 복귀되면 그 기대를 중심삼고 이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6가정을 세우기 전에 누구를 먼저 세웠느냐? 성진이의 대표형을 먼저 세워 놓은 후에 가정들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리의 법도대로 따라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지금 땅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할것없이 천사장권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 앞에 종입니다. 천사장은 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시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주인댁에서 창고지기를 얼마나 해봤어요? 다시 말하면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주인의 살림살이를 위해서 얼마나 준비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준비했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나왔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고생하는 것이 응당 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으니…. 이놈의 자식들 거꾸로 잡아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혼내 줘야 되겠어. 그래도 괜찮아요? 「예」 그래도 괜찮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려요.

이제는 때가 때이니만큼 선생님이 집도 사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살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그렇게 모실 자신이 있어요? 「예」 선생님이 그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중요한 날이 오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날이 없다면 여러분은 영영 살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어 가지고 영계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계에 가면 누가 가르쳐 주기나 하겠습니까? 누가 가르쳐 줘요?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거기는 깜깜천지라는 것입니다. 세상 문제가 어떻게 되어 가는 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지의 사실을 모두 밝혀 내어서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해원성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천주사적으로 찬양해야 할일이요, 만국이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불원한 장래에 세계를 제패할 때가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만약 환경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기를 드높이 들고, 전선의 왕자 왕녀들이 되어서 하늘 나라를 창건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제부터 천국 건설은 축복가정의 사명이란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시키는 이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보다도 종족을 더 사랑하고, 종족보다는 민족을 더 사랑하고, 민족보다는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복귀를 위해서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결혼식이 끝나게 되면 1972년도까지 3년동안 여자들을 모두 동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못 하겠으면 나혼자 싸우겠어요.

그러면 왜 여러분은 동원하느냐? 지금까지 여러분은 개인적인 탕감시대를 거쳐왔습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이 개인적 탕감시대를 거쳐올 때 선생님은 가정적 탕감시대를 이미 거친 것입니다. 가정적 탕감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 만물의 날, 자녀의 날, 부모의 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까지 그러한 기준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은 보금자리가 있어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는 가정을 완성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통일교회의 완성권에는 역사상의 그 어느누구도 가담하지 못하고 참석하지 못한 거룩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 거룩한 자리에 여러분이 가담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의 은사를 받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축복가정이 아니고서는 가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완성기준에 들어가게 되면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여 가정적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아 올라가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가정이 찾아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성할 수 있는 복귀적인 가정을 갖추어 가지고 참석해야 되는 자리가 완성단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는 혼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비록 팔이 없고, 다리가 없고, 눈이 찌그러지고, 코가 찌그러졌더라도 우리는 상대되는 이념을 가지고 참석할 수 있는 특권적인 내용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가정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승리를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 나올 때 누가 먼저 개척했습니까? 여자들이 했지요? 그러면 완성단계의 기준이 누구 때문에 틀어졌느냐? 해와로 인해 틀어졌습니다. 그러니 가정을 중심삼은 십자가도 해와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눈물짓고 나가는 그 노정에는 아들딸도 기뻐할 것입니다. 복귀의 길을 가야 되는 피눈물나는 이 노정에서 후방에 있는 어린 자녀들과 합세해 가지고 심정적 십자가를 뒷받침하여 하나될 수 있어야만 가정이 진척하여 완성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에 완성급을 다리 놓을 수 있는 여자로 등장했다는 조건을 세워야만 오시는 주님 앞에 사랑을 받아 하늘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친지의 권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비로소 탕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러한 사명이 여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결혼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성기 완성급 단계에 있는 것이지 완성 단계를 넘어선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전부가 여자들이 탕감해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탕감해 나갈 것인가? 지금까지의 복귀역사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자식이 모자 협조과정을 통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애기를 업고서라도 고생길로 나서야 합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선생님이 70년도부터 여러분에게 고생시키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본래는 여러분이 이 길을 갔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우리 희진이가 죽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전체 동원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콧방귀 뀌는 소리로 알다가 그런 일을 당한 것입니다. 만일 이번에도 여러분이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 중에 몇 사람만 '나 하나쯤이야'하고 미뤄도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운세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따리 싸 가지고 다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대신해서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본부는 세계인이 다 모이는 인종차별이 없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나왔던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선조들이 닦아 놓은 터전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탕감조건들을 탕감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피눈물을 흘려 가면서 참아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어느 곳이든지 혁명기준이 세워져 선생님을 환영할 수 있는 신부의 국가적 터전이 벌어진다면 그 나라를 통해서 가인권을 복귀해야 하므로 그 나라를 찾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성주식에 참석하라

자, 3년 동안 부인들을 동원시키겠어요, 안 시키겠어요? 「시키겠습니다」 부인들을 내놓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려요. 또 여자들은 3년 동안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잘 듣겠습니다」 듣겠다는 여자들은 손들어 봐요. 내려요. 여러분은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도 아무 데도 못 갑니다. 이제부터는 40일 성별기간도 교회에서 지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결혼하고 난 후에도 선생님의 발 밑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내내 끌고 다닐 것입니다. 이제 국가적인 터전을 중심삼고 국가와 민족을 복귀하는 길을 통일교회 청년 남녀인 여러분들이 서로 일치되어 감당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남자들은 천사장 입장에서 서서 선생님을 모셔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리고 남자들은 한 달에 얼마씩 대상에게 생활비를 보내 주어야 합니다. 한 달 생활비를 보내 주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자기가 밥을 굶더라도 보내 주어야 합니다. 왜 그것을 못 합니까? 거기 왜 웅성거려요. 내가 잘못된 말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 72년도까지는 전체 동원입니다. 여기에는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시댁을 핑계삼아도 안 되며 친정을 핑계 삼아도 안 됩니다. 시댁은 가만 둬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각오로 선생님과 새로운 약속을 합시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들이 지금까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이번에 축복을 받은 사람은 세계를 넘어가는 입장에 있어서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그밖에 수많은 국가가 이 놀음을 할 때 여러분이 한국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여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만큼 얘기했으면 여러분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이제 우리는 원죄를 훌훌 벗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때문에 이 한때를 찾아오시기 위해서 6천년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후 2천년 동안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좇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서 단시간내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열매맺을 수 있는 승리의 한 단체가 이 아시아의 한국 땅을 중심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여기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의로써 이 성주식에 참석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새로운 결의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단단히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기 도

사랑하는 아버지! 저희의 생명을 다하여 가야할 길을 알았습니다. 저희가 충성을 다해야 할 뜻도 알았습니다. 충성을 다하여 아버지를 위하고 생명을 다하여 세계를 위해야 할 것도 알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찾아 나오신 역사적인 엄숙한 그 길을 저희들은 기필코 가야만 되겠습니다.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님을 향하여 가는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 저희들은 엄숙히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님, 저희는 내일의 승리를 찬양하는 것보다도 오늘의 기쁨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은 저희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무런 공식이 없지만 선조들이 감당했던 수난의 길을 갔던 민족적인 터전이 있었음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혜택을 받은 것을 생각할 때 진실로 아버님께 감사를 드리옵니다. 일생 일대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사를 감사히 돌려드리고, 하늘 앞에 이것을 영원 무궁토록 귀한 것으로 거두어 당신께서 칭찬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이제 이달 21일에는 축복의 은사인 성혼식을 거행하게 되오니, 저희들이 망령된 흔적을 남겨 거룩한 시점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능력의 힘을 가하시어서 사탄을 치시옵소서. 악을 제거하고 축복의 영광된 자리에 거하게 하시옵소서. 그 자리에 모이는 청중 전체가 당신의 마음에 이끌려 가고, 천적인 인연 앞에 서로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출 수 있게끔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들이 저희의 뼛골에 사무쳐 가지고 영원토록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오늘의 말씀 내용을 깊이깊이 간직하고 내일의 싸움길 앞에 신명을 다하겠다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부터 거행하는 행사 위에 당신의 거룩하신 손길이 함께 하시어 승리의 영광된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랑만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0월 25일, 이 달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고대하던 행사도 무사히 끝나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사오니, 모든 것을 아버지 뜻 가운데 보호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염려하는 그 모든 사정을 아시고 승리의 한날을 저희들에게 맡기신 아버지께서 이 행사를 위해 수고하신 것을 진정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 전국에서 이곳을 향하여 정성들이고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혼신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 뒤에 영원하신 당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언제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세상의 어떠한 인연을 따라 모인 무리들이 아니옵고, 세상의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그리운 인연을 찾아 모인 무리들이 아니옵니다. 태초에 당신께서 찾으셨던 본연의 사랑과 본연의 인연을 따라 모인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이 그 사랑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사모한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실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귀하신 심정을 체휼하며 당신의 경륜하신 뜻 앞에 없어서는 안 될 하늘의 형제의 인연으로 모인 무리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언제나 저희들로부터 떠나지 마시옵고 모든 전체가 당신의 경륜하시는 뜻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게끔 주동적인 역할을 해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부족한 인간인 연고로 언제나 당신의 염려의 대상이 되어 온 저희들이었사오나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남기신 뜻을 위하여 오늘도 책임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아버님, 저희의 장래를 지켜 주시옵고, 저희의 생활을 보호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외로운 자리에 계신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할 때가 많았사옵니다. 외로움을 느끼신 아버지이시기에 저희들의 외로운 사정을 아시는 입장에서 저희들을 염려하고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의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깊은 사랑으로 철부지한 저희들을 어서 양육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뜻 앞에, 당신의 존전에 내세워 자랑하고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소수의 자녀들이 또다시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개개인에게 당신을 위하여 살고, 당신의 뜻을 위하여 살겠다는 결심이 자신의 본심 깊은 데서부터 솟구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서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느끼고 참다운 인생의 보람있는 자체를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인격자이며,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의 권위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신하고 자각하여 당신이 남기신 사명 앞에 충실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각자의 마음 깊은 가운데서 아버지를 부르게 하시옵소서.

저희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계시옵고, 저희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싸워 오셨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잊은 채 아버지를 부여 안고 몸부림칠 줄 아는 하늘의 인연들이 깊은 심정 가운데서 솟구쳐 나오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자체를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의 근원으로 이끌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겸손한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무릎 앞에 부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높고 귀하고 오묘하신 아버지의 심정세계 앞에서 저희들은 그리움에 사무치어, 당신이 아니면 저희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고, 당신이 아니면 저희의 목적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소원 가운데서 당신의 품에 안겨 살기를 고대하는 어린 효자 효녀의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못하거든 그런 마음에 사무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귀하심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당신의 뜻 가운데서 남겨야 할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소수의 무리를 세워서 세계적인 대승리의 역사를 펼치시려는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맡겨 주신 높고 귀하신 그 사명 앞에 충성을 다하는 당신의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를 지켜 주시옵기를 이 시간 간곡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야 할 길 앞에는 아직까지 많은 싸움이 남아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생애를 바쳐 박차를 가하여 승리의 권을 확대시키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사명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적마다 오늘도 그 책임을 위해서, 내일도 그 책임을 위해서, 금년에도 그 책임을 위해서, 남아진 생애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보람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새벽에 당신께서 새로운 분부를 내리시어 약속의 인연을 세우시어서 높고 귀하신 당신의 심정세계 앞에 이들을 얽어매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까지 승리의 중심을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 12월, 이 남은 금년 동안에 저희들은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중심삼고 70년도에 닦아야 할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사명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사명을 생각하게 될 때, 시간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날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자신들이옵니다.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심정에 인연맺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저희 자신들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에는 오로지 아버지가 허락하신 뜻 가운데서 일체가 되게 하시옵고, 심정적 인연 위에 당신의 영원하신 말씀을 허락하시어서 최후에까지 그 생명에 도움이 되고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당신을 위하여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애혼들의 한을 풀어 복귀완성하지 않으면 안 될 한스러운 노정을 지켜 주시옵소서. 어서 속히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세계를 세우시어서 제3의 해방을 촉구할 수 있는 그런 때를 맞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현시점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면서 더 좋을 수 있는 한날을 다짐하고, 더 가치있는 내용을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러한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낙심과 절망을 하게 되는 실상을 우리는 현실의 생활 속에서 보아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래 머물러야 할 곳

그러면 사람이 본래 가야 할 곳이 어디이며 머물러야 할 것이 어디이냐를 생각하게 될 때, 그곳은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어떠한 미래의 세계가 그곳일 것입니다. 내일의 희망을 중심삼고 그런 생활무대, 혹은 그런 심정의 터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재 사람들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이 처했던 자리는 불행이라든가 탄식이라든가 원한이라든가 원망과 같은 감정을 갖고 사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모의 품에 품기어 양육을 받는 자리이며 보호를 받는 자리였던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만일 불행의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불행해지기 전에 그 불행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요, 혹은 거기에 낙심될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낙심될 내용을 미리 방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본연의 아들딸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본래 아담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요, 해와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환경이 불행하지 않았는데, 왜 타락을 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인간을 볼 때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분열이라든가, 상충이라든가, 고충 같은 것이 발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혹은 열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똑같은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에는 , 투쟁도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분열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느꼈더라면

본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계셔야 되고 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완성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까지의 성장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장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는 현시점, 즉 현재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미래의 입장에 있었으나,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현재의 입장을 넘어서 미래의 입장까지 전체를 대하여 사랑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현실의 입장은 제한된 입장이요,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입장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지향하고 바라는 목적이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내용을 관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체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애를 지난 후의 역사적인 미래를 마음에 두고 아담 해와를 사랑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대하시는 그 사실만으로 흡족했을는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보다도 더 높고 더 큰 미래의 것을 중심삼고 현실에서 사랑해 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 해와는 몰랐던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느꼈더라면 그들은 타락할래야 타락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모르고, 현실의 환경에서 부딪쳐 오는 사연과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낙망하고 절망하게 된 기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기가 처해 있는 생활 환경 속에서 낙심하고 낙망하는 그러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실정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늘의 시련 고통이 오늘의 시련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터전을 개척하여 마련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인 것을 알게 된다면 현실 생활에서 낙망은 하지 않을 것이요, 또한 절망이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자기의 소망이 공고화되고 내일의 생명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현실의 가치가 그 생활권내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의 모든 전체를 낙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는 다는 사실을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때와 마찬가지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보호하시고, 보다 더 영원한 가치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방대한 가치의 깊은 내용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세웠는 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그날 그날의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느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오늘날 타락한 조상의 후손들로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이 낙망하고 절망하는 그 본성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자기를 위주로 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것과는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몸부림치고 투쟁해 나가지만 자기 스스로 이것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여기에 낙망이 있고 절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해야

이러한 타락한 현실의 환경에 있어서는 행복의 여건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 일생 과정을 분석해 보면 행복이라든가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생관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사람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일에 대한 희망을 중심삼고 오늘의 그 생활에 대해 생명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보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대문에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은 내일의 희망의 세계를 불가피하게 고대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중심삼고 인간을 위하고 싶었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위함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야 할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러한 운명길을 찾아가려니 오늘날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고통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탄한 생활을 엮어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생활은 혁명입니다. 새로이 개발해야 하는 개척자의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인간이 이루어야 할 희망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 말씀으로 말한다면 탕감노정을 거쳐서 복귀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은 순수하게 어떠한 공식 법도를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개척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개척은 개인의 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개척입니다.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척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투쟁도 개인적인 투쟁이 아니라 세계적인 투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삶 그 자체는 세계적인 전쟁의 과정에 서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개척의 노정에 서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새로운 혁명의 대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자기를 중심삼고 내일의 희망을 망각하는 자리, 즉 자기를 긍정하고 내일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자기를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긍정하고 오늘을 부정할 수 있는 혁명의 기수가 되지 않고는 가치가 없는 인생이 될것이며, 인생의 모든 면에서 비애의 탈을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타락했다 할진대는 ,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인간 시조의 잘못을 되풀이해 가지고는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조상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각자가 갖추지 않고는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얼마나 부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부정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이 오늘날 종교 혹은 타락세계권내에서 우리가 찾아가는 새로운 미래의 여건을 중심삼은 그 권내에서의 부정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권내에서의 부정 가지고는 새로운 미래의 세계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권외까지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권내의 부정권을 승리의 결과로 가져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 어떤 것이냐? 현실을 긍정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부정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현실을 부정함과 동시에 미래의 긍정을 공고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는 입장과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 이 두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이 무엇보다도 더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권내에서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자체를 찾아 가지고는 아담 해와가 저지른 그 한스러운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고난과 시련의 길을 쉬지 않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선조들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 확립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는 이 두 틈바구니에서 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과 동시에 하루하루가 뒤넘이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으로서 오늘과 내일이 판가리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지내는 데 있어서 오늘의 시련을 내일로 연속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일의 새로운 긍정을 추구하고 이것을 내일의 새로운 긍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터전을 오늘에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내일이 나에게 있어서 행복의 터전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선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며 나가는 길이 신앙자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부정하고 하늘을 긍정해 나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긍정하고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하면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치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나왔지만, 그 추구하는 방향에 있어서 주체적 대상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스스로 내일의 약속을 다짐하기 위한 새로운 인연이 필요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의 확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확립된 가치의 내용은 현실의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철저한 주체적인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현실적인 관념과 현실적인 생활무대를 부정하고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노정을 보면 맨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아주 잘 합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그 환경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더한층 입체성을 갖추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강하게 출발했지만 끝에 가서는 약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관의 확립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현재 생활하는 그 생활관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제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아니면 앞으로 이 세계 현실 앞에 새로운 목적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가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관에 대한 확실한 이념을 심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것을 가르치고있습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이 가치적이요, 가정보다는 종족이 가치적이요, 종족보다는 민족이 가치적이요, 민족보다는 국가가 가치적이요, 국가보다는 세계가 가치적이요, 세계보다는 천주가 가치적이요, 천주보다는 하나님이 가치적입니다. 하나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가치적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를 관할하고 통치해 가지고 한꺼번에 꿸 수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우리 개인이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은 백년 이내에 한 시대를 살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역사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개인적인 사회가 있는 것이요, 가정적인 사회, 종족적인 사회, 민족적인 사회, 국가적인 사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풍토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의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얽어매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얽어맬 것이냐? 권세나 주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상의 어떤 물질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 가서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고향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오래 산 노인이라도 자기의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가 죽은 지 수십년이 되어 부모를 잊어버릴 만한 기간이 지났더라도 부모의 무덤을 찾아가 옛추억을 더듬으면서 그때의 생활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디에 깃들기를 원하느냐?

돈이 아닙니다. 자기 부모의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집에 가려고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있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처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외적인 것보다도 내적인 실증적 차원의 것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얽어맬 수 있고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그 자체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가?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최고의 분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의 출발도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해야 되고 그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곳도 최고의 자리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천주적인 사랑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랑에는 개인과 종족, 종족과 민족,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 천주 혹은 하나님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종족적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랑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하나님까지 종적인 인연을 맺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원이 되는 동시에 횡적으로 세계에까지 넓혀서 세계 인류를 형제의 인연으로 묶을 수 있고, 역사과정에 나타난 모든 부정적 여건을 영원히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 제시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면에서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횡적인 면에 있어서도 사회와 문화의 풍토에 대한 모든 사조적인 변화를 초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가능하다 할 때, 이 주의는 마지막 주의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그것이 가능하고 만민 공통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현시점에서 진심으로 만민 앞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진 주의라 할진대, 또한 승리해 가지고 만민으로 하여금 같은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주의라 할진대, 이 주의야말로 인간세계에 있어서 미래의 희망을 다짐하고 미래의 새로운 소망의 터전을 개척할 수 있는 하나의 모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것이냐? 그 사랑은 개인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가정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종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민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또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세계를 초월하여 천주를 중심삼은 것이며 천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와 바꿀 수 있느냐 할 때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자체와 바꿀 수 있느냐고 할 때 그것 또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 자체도 희생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하나님 자체에 있는 그 사랑을 위해 희생해 나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 자체와도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만이 우리의 골수를 통할 수 있고 우리의 혈육을 관리할 수 있는 근본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의 정서적인 생활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의 역사, 심정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심정의 역사냐 하면 종적인 심정의 세계를 횡적인 심정의 세계로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려면

그러면 종적인 사랑을 어떻게 횡적으로 전개하느냐? 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의식하지 않아야 됩니다. 이러한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종횡적인 사랑을 귀결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기점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할진대, 이것은 우리 인류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서 인류가 종적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이요, 횡적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의 기준 앞에서 관계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당당히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실 세계에서 여러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념이 있으면 그 이념이 얼마나 높을 것이냐? 그것은 여러분의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 그 이념은 여러분이 어차피 부정해야 할 권내에서 가진 이념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기 후손에게 상속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일대(一代)에 청산짓고 가야 할 이념적 요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짓기 위해 나 스스로 오늘의 생활관념을 뒤넘어쳐야 되는 것입니다.

기운 달은 다시 차오르며,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낮음이 교차되는 시점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세상은 결코 행복하기만 한 세계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세상을 부정한다는 것은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관념적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을 현실의 생활무대에 적용해 가지고 유발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무한하신 가치와 현실적인 하나의 개체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지만 개성진리체를 초월하여서는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큰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말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되고, 내가 보고 느끼는 것도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깊은 경지의 도의 길을 가게 될 때 혼자 정성을 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대상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게 될 때에는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통달해 가지고 그 권한이 천상세계에 알려진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과는 종적으로 관계맺었을지 모르지만, 횡적으로 관계될 수 있는 상대 기반을 갖지 않으면 종족인 기준에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 비춰 볼 때, 하나님이 주체적이고 종적인 중심의 자리에 계시기는 하지만,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물은 자기 자체만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현실 속에서만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미래와 연결될 수 있는 현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미래세계에 포괄되고 흡수될 수 있는 현재에서 오늘의 생활의 가치를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미래의 세계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가 우리 생활의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위대한 명사 참부모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는 우리 인간은 중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자리에 있는 인간 혼자서는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겠다는 것이 재림사상, 메시아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와 가지고 그 사명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사방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방을 갖추어 가지고 평등한 입장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평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힘이 기울어지게 되면 평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적게 주는 것은 올라가고 많이 주는 것은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평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영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균등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평행이 원점이 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 중심과 평행을 이룰 수 있는 대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주체와 대상을 같은 자리에 연결시킬 수 있는 선이 그어져야만 수평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상대적 요인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남자 앞에 여자가 필요하도록 하셨고 여자 앞에 남자가 필요하도록 하셨는 가?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세워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이니라 둘을 세워서 그들이 완전히 하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둘이 주고 받는 그 생활은 지극히 소망적인 생활입니다. 여기에 미래의 생활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의 생활에서 서로 감지하고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이냐 하면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을 노래하며 미래를 약속하고, 미래의 세계를 다짐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의 세계를 긍정해 나가는 이런 부부가 있다면, 어떠한 생활환경이라도 이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실의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세계 앞에 지장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은 미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어떠한 현실의 어려움이라도 이들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미래를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미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여기에 스스로 미래의 가치를 동반시켜 가지고 존중시할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갖추었다 할진대는 여기에서부터 행복의 터전이 이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는 해와, 해와에게는 아담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을 이상 상대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상대 되는 존재는 현실적으로 주체와 인연맺지 않고서는 미래와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을 주체와 대상의 입장으로 세워 놓은 것도 이 천주의 사연을 통하기 위한 내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정해야 할 현실 사회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스승이 있어야 하고 동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어서 절대적인 새로운 것이 역사와 민족 앞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지로서 결합을 해 가지고 미래의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듯이 하늘의 법도도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서만 세워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가정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앞에는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 편성이라는 엄청난 목표가 놓여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종족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종족을 기피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남이면 남, 동이면 동에서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지금까지 몸부림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이 안팎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뜻을 같이하는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동반하시는 것이요, 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후손들이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로 나오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와 대표적인 기준이 심정을 중심삼고 가정 앞에 결속되는 가치적인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결속되어 만민이 공통적으로 흠모할 수 있는 대상이 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명사는 위대한 명사입니다. 물론 진리의 내용도 깊이가 있지만 참부모라는 말은 위대한 명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에의 출발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무대에 있어서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원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한 사랑의 가정을 이루라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끌어다가 하나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참부모 앞에 끌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데는 자기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면 부모,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까지 끌고가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식구들도 끌고가야 되며, 가정에 있는 물질까지도 끌고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역사시대를 보게 될 때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중심삼고 나왔고, 신약시대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말했지만 인간들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탕감을 위해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물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었습니다. 이렇듯 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거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물이 뭐냐 하면 희생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인간 대신 속죄의 제물로서 만물을 제물로 드리고 물질과 함께 동물을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구약시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능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부모를 중심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람이 태어나야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기준을 갖추지 못하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가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하면, 물질과 자녀와 부모, 다시 말하면 가정의 기준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자녀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가 부모를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도 만물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한꺼번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할 때, 여러분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전부 규합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규합한 것을 꼭 눌러 놓으면 한 점이 됩니다. 그렇잖아요? 꼭 압축시켜 놓으면 한 점이 된다는 거예요. 이 한 점이 둘로 나누어지면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입체적으로 볼 때, 역사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엇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가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역사적인 중심 터전입니다.

미래의 세계 앞에 소망을 제시하기 위한 모든 혁명의 목표는 국가가 아닙니다.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혁명관을 제시했고, 세계의 혁명관을 제시한 사람은 있었지만 가정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정의 혁명관을 제시한 주체세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가정의 혁명이 있기 전에 종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 종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민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국가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 국가의 혁명이 있기 전에 세계의 혁명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의 완성과 더불어 가정적인 혁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파탄시키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것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새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정해야 되고, 자기 가정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의 물질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정은 우주의 근본

예수님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생명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뿌리에 접붙여져야 됩니다. 부평초와 같이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밀려가서야 되겠습니까? 뿌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 말씀이 폭언 같지만 이러한 환경의 여건을 절대 필요로 하는 타락한 세계에서는 말할 수 없는 복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낙원의 궁중에다 세워 놓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돌아다니게 할 것이냐? 천국 중심으로가 아니라 생활 중심으로 바꿔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몸부림쳐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 생활 중심으로 바꿔칠 수 있는 그 길이 없었으니 그런 길이 있어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참된 사랑의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나라의 군왕을 아버지로 본다면 백성은 아들의 입장이요, 땅은 만물의 입장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만민은 아들의 입장이요, 이 지구 전체는 만물의 입장이요, 세계의 중심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의 입장인 것입니다. 온 천주를 중심삼고 볼 때는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은 아버지의 입장이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역사적인 인간은 아들이요, 모든 피조세계는 만물인 것입니다.

이것을 축소시킨 기본 단위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것, 아들의 것을 전부 다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것 할 것 없이 전부를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은 빼놓고 아들딸만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자기는 빼놓고 아들과 물질만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전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하늘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권을 대신한 것이 부모이며, 백성을 대신한 것이 아들딸이고, 국토를 대신한 것이 나라인 것입니다. 이 중의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나라를 대신하여 나아가야 할 터전은 어디냐? 나라의 제단이 어디냐?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사랑하는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와 만물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의 것이라면 세계의 것도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나 자녀나 만물은 내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요구할 때에는 언제든지 넘겨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 앞에 충의 도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나라로부터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부패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라로부터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그 나라를 위해서 잘 주고, 그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면 국가가 잘못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왜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해야 되느냐? 통일사상은 자기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자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결국 희생이 아니라 세계와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세계로 가기 위한 정당한 길입니다. 인간은 보다 큰것을 동경하는 것이지 작은 것을 동경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큰 것을 소망하는 것이지 작은 것을 소망하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을 부정하라는 것은 부정하는 것으로 끝나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과 바꿔치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현실 생활권내에서 그럴 수 있는 실제적인 내용을 갖추어야 하는 데 이런 내용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타락한 세상의 오염된 환경 가운데서 그 생애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실상을 우리는 잘 보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만 찾으면 아들과 만물을 찾는 것은 쉬워

모든 것은 부모와 자식과 만물의 입장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부모 뒤에 아들이 따라오고 아들 뒤에 만물이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것을 중심삼고 아들과 만물이 부모를 옹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영원의 세계에까지 그렇게 나가야 됩니다. 이 타락한 현실에서 죽음의 세계에까지 그렇게 끌고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딸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아들딸을 구하기 위해서 끌고가야 되는 것입니다. 끌고가 가지고 그 다음에는 만물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만물은 그러기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니겠어요? 자식으로 태어나면 이미 부모가 되도록 준비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주위에는 아들딸이 둘러 서 있어야 합니다. 부모 주위에 아들딸이 영원히 둘러 앉아 있고 싶어하는 그 마음의 터전이 이 지상에 나타나게 되면, 평화의 왕국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둘러 서 있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 있고 싶어하고, 현재의 자기들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모든 소유물 또한 하나되는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안 됩니다. 자연적인 환경에서 하늘 것으로서 움직일 수 있고, 하늘 것으로서 화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민의 제물은 어디 갔느냐? 아들의 제물은 어디 갔으며 부모의 제물은 어디 갔느냐? 지금까지 이 제물들이 한데 합하여 가지고 부모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그런 때가 지상에 있었느냐? 인류를 대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이여! 너희의 아들딸은 내 손자이고, 그 손자의 것은 내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기 전에 종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종족이 있기 전에 민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이 있기 전에 국가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국가가 있기 전에 세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천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천주주의는 무엇이냐? 가정을 두고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 금은 보화가 천하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살 수 있는 그런 가정입니다. 아들의 것은 부모의 것이요, 부모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고스란히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가는 원리의 길은 하나님 앞에 물질을 먼저 내세워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창조하실 때 만물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이 먼저 나타났고 그 다음에 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나가려던 맨 앞에 만물을 세워 놓고, 그 다음에 아들을 세워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아버지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 목적은 만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물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아들만 찾게 되면 만물은 거기에 자연적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만 찾게 되면 아들은 태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를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혼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완성의 자리에 못 가는 것입니다. 보람된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아무리 자유세계와 천지가 기억할 수 있는 은사의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딸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과도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주의는 천주주의인고로 가정을 중심삼고 상속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입적시켜야 됩니다. 그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입적할 나라가 없기 때문에 입적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입적할 나라가 아닙니다. 이런 운명에 처한 우리는 집시의 무리요, 부랑의 무리요, 유랑의 무리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의 토대를 잡아 가지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 수많은 민족 고난의 권내에서 하나의 보람있는 가치를 중심삼고 그 민족들을 복귀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입적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받으러 나가는 것은 입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입적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입적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냐? 주권은 부모를 대신하고, 백성은 아들을 대신하고, 국토는 물질을 대신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내 것이냐, 아버지의 것이냐 하는 이 관계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경계선에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내 것이냐, 아버지의 것이냐? 공적인 것이냐, 사적인 것이냐? 이에 대한 재교육을 이제부터 전개하려니 사탄이 먼저 역사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위하여 무슨 문제를 제시했다가 이것이 잘못되면 이 나라는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한 가정은 한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개인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요건을 다 지니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한 가정은 한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통일교회는 가정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것인가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여러분이 감사하는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하느냐? 지식이 많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고생이 많다고 하겠지만 그 일면에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 느껴 보지 못하는 그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 자식을 길러 본 사람과 자식을 길러 보지 못한 사람을 두고 볼 때, 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자기 자식들이 아무리 복잡하게 들썩거리더라도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을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식들로 말미암아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처하고 있는 환경이 복잡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내일의 소망이 접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남이 갖지 못한 아들딸이 많으면 많을 수록 각 분야에서 사방성을 갖추어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어려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감사하는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물질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물질을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가지고 나라를 먹여 살리겠다, 세계를 먹여 살리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대했을 때 그물질이 작더라도 세계를 위해 주고자 하며 정성들이는 사람과 그 물질을 붙들고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남겨 주고자 벌벌 떠는 사람을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선은 반드시 공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물질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정성들인 것이라면 그것으로 세계를 걸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진 것이 백 원밖에 없는 사람이 그 백원에 하나님의 사랑을 걸고 들어가게 될 때는 그 백원은 전체를 대신하고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치의 땅 짜박지라도 이것을 일컬어 내 재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다시 돌려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하나님께로 가치있게 돌려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역사는 영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았으니 그렇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세계가 되지 않으면 이 땅은 천국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의 생활권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 천상세계의 생활을 못한 사람은 천상세계를 터득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의 사랑에 연결시켜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효자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며, 충신이란 자신의 생활 전부를 나라와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충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의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세계의 것으로서 주고받아야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 생활 가운데서 얼마나 느끼고 체득하며 살고 있느냐?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이 '아! 나는 통일교회를 몇십 년 믿었는 데 교회를 믿다가 이렇게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주느냐? 또 누구를 위해 받느냐? 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고, 하나님을 위해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받았으니 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주었으니 자기를 위해 받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받고 싶다고 했을 거예요. 타락한 인간은 이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주고도 부끄러워하고 받으면 황공해 하라

여러분은 누구를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 사적인 것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을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누구에게 한 가지 물건을 주었다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것만을 주고 싶으실 것이냐,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싶어서 마음 아파하는 경지에서,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이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주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면서도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우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짓는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진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은 훌륭한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 아들은 공적으로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해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주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 자세, 받으면 부끄럽고 황공하여 어쩔줄 모르는 이런 마음 자세를 늘 갖추고 사는 사람이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는 전개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들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국경을 넘는 국제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나라의 어느 누구도, 그 민족 역사의 어떤 동기도 지배 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원수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세계적인 권한을 갖고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을 고귀한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칭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수난의 길을 가면서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고, 그러고 나서도 자기의 부족함을 탄할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이들은 세계를 재패할 것이요, 사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감사해야 합니다. 부족하고도 부족한 자신에게 바라지도 않았던 것을 갖추어 주신 하나님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받았기 때문에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반갑게 주고 고맙게 받는 생활

만일에 아담 해와가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을 감사히 받고 그렇게 높고 귀하신 분이 '부끄러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하면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자신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면 타락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주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을 주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사는 가정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공적, 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공적인 터전에 연결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때가 문제이고, 그 기간이 문제일 뿐이지, 그런 사람은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하나님의 일을 상속받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뜻길을 가는 사람은 묵묵히 그냥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음성 가운데는 숱한 수난의 고빗길의 한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치면서 피 묻은 옷을 입고 나오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고생하면서도 주고 싶고, 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수난의 고빗길을 넘어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주고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받을 때는 고맙게 받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모양이야 어떻든간에 반갑게 받고 고맙게 받는 그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통일교회 교인이 잘났다고 자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언제나 반갑게 받고 언제나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또 고맙게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세워 나가는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세계 역사와 더불어 끊기지 않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사문제를 중심삼고 타락한 것이 기원이 되어 이렇게 곡절의 길을 엮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해야 합니다. 현실에 있어서 미래를 긍정하는 마음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실천해 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당신께서 저희에게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 너희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가느냐 하고 묻게 될 때, 당신 앞에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할 때, 아버지의 뜻을 갖고 아버지의 사랑을 찾으러 간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늘을 소유한 자요, 땅을 소유한 자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들의 생활은 윤이 날 것이며, 이들의 생활 터전은 빛이 날 것이옵니다. 그 사람은 가고 난 후에도 만민의 추모의 대상으로 남아질 것이옵니다. 하오나 자기를 중심삼고 당신 앞에 부끄러운 내용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생애를 마침과 더불어 망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겠다고 밤낮없이 날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될 때 그 돈은 누구를 위하여 버는 것이냐? 그들은 자기 자식을 위하여 번다고 할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자식은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그 자식들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하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는 길을, 더 나아가 세계를 위하는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종족은 반드시 망하게 되고, 다른 종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지배받지 않고 나오신 분이었지만 그 아버지의 마음은 주면서도 부끄러워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온통 사랑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단계적으로 섭리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수천년 동안의 서글픔이 어려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복귀섭리과정에서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라는 험준한 고빗길을 단계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입장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오늘날까지 당신께 감사할 줄 몰랐고, 보답할 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도 그럴수록 언젠가는 다 주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슬픈 역사를 이끌어 오신 아버지의 내심을 저희들은 살피게 되옵니다.

오늘 아버지의 슬펐던 마음을 털어 놓고, 세계를 대신하여, 역사를 대신하여, 천주를 대신하여 주고 싶으셨던 심정을 토로하는 이 시간, 당신앞에 전체를 받아서 전체를 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지 못할까 두려움을 느끼는 당신의 아들딸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아버지, 만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사람이 그것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주면서도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는 아버님의 사람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민족에게 많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준 것이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써 주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만일 통일교회 교인들이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주었다면 발전을 하더라도 교회라는 한계선을 넘지 못하는 발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주고 싶어하는 마음에 젖었다 할진대, 그 마음 앞에는 민족이 굴복당할 것이요, 세계가 굴복당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만을 위해 주었다면 교회의 한계점에서 끝나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1970년도의 막바지를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많이 받았으면서도 주기를 회피했던 과거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또다시 3년노정을 개척해야 할 운명길 앞에 선 저희 축복가정들은 남편과 아내가 마음을 합하여 서로 주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주고 나서도 서로가 부족한 마음을 느끼며,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손에 손을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을 이루지 못한 저희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아버지의 서럽고 외로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통일교인인 나 자신이 그와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그 길을 가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다 바쳐서 가야 되겠습니다.

다 주고도 더 못 주는 것을 한하면서 더 주고 싶어서 몸 마음을 바쳐 불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없어지는 자체까지 부정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소유할 것이며, 하늘 전체가 그에게 연결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중심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연결될 수 있는 아들딸이 이 시간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자리에서 받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는 것이 통일사상의 본질적인 노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가정 전체를 복귀해야 되겠기 때문에 물질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형제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옵니다. 저희가 자식을 기르는 것은 부모된 자신을 위해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기르는 것입니다. 부모도, 그 가정 자체도 세계를 위해 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세계를 위하여 가는 저희들은 행복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자리에 저희들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되겠사옵고, 그 생활은 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생활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부가 일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효를 현실적 생활 요소로써 흡수할 수 있고, 미래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심정이 현실적 생활무대에 나타날 수 있는 놀라운 터전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이런 승리의 기점을 잃어버리지 않고 확고하고 공고하게 세워, 생애 전체를 아버지께 귀결시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이제야말로 감사하는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9월에 있었던 와클(WACL)대회도 당신께 감사드리옵고, 이번에 있었던 행사도 무사히 마치게 하여 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이 민족 앞에 줄 수 있고 세계에 설 수 있기 위하여 저희들 스스로가 묵묵히 순서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여,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통일교회 무리가 되어야만 이 민족을 굴복시키고,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천주주의를 세우는 기준이라는 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도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한 성일을 찬양하고 새 생활을 추구하며 묵묵히 나가는 그들에게 당신의 영원하신 가호의 손길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당신의 구원섭리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올바로 받을 수 있고 올바로 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가정이 되고,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양력으로 10월 30일이고 음력으로 10월 1일, 제11회 자녀의 날입니다. 이 자녀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만 10년 전에 책정한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회수로는 11회가 되겠습니다.

참다운 아담 한 사람을 찾아온 인류역사

본래 하나님의 날이니,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는 날들은 우리가 일년을 경과하면서 지킬 것이 아니라 한 날에 지켜야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타락이라는 한스러운 조건에 걸렸기 때문에 한 날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런 날들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완성과 더불어 부모의 날이 책정되는 것이요, 자녀의 날이 책정되는 것이요, 만물의 날이 책정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즉 창조이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완성된 만물과 완성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뗄래야 뗄 수 없고 인간과 만물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삼각의 관계가 형성되어 일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떠나가게 되었고,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만물을 기념할 수 있는 날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글픈 복귀의 노정, 서러운 재창조의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창조되는 데는 만물을 중심삼고 인간이 재창조되어야 하고,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창조이상과 하나님의 사랑이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복귀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만물을 찾기 위한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살펴보면, 만물은 이미 사탄에게 침범당한 입장이었기에 사탄을 분립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이라는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을 분립하는 역사를 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을 찾고자 하였는 데, 우리 인간도 타락된 혈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분립 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분립된 승리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사탄의 사랑의 대결 과정을 거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남아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늘이 뜻하신 소원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과정이 얼마나 지루했는 가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이 재생될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하여 이때까지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온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물도 탄식하였거니와, 그러한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피와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 나왔습니다. 이러한 희생의 대가를 모으고 또 모아서 선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참다운 아담 한 사람을 찾아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담형의 인물을 세워 가지고 역사하고, 시대를 거쳐 그 위업을 계승하면서 완성된 아담의 모습을 찾기 위해 수고해 온 역사가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입니다. 그 아담을 찾은 후에는 해와를 찾아야 합니다. 해와까지 찾아야 비로소 완전한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완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 이상을 완결지을 수 있는 개인들이 참다운 부부의 인연을 갖추어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됨으로 말미암아 선의 주관권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담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고, 그 다음에는 아담을 모방해 가지고 해와를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극히 선한지라'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한지라'하는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되지 않고는 완결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견해인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구분해서 살펴보면 구약시대는 만물을 분별시키는 때요, 신약시대는 사람을 분별시키는 때요, 성약시대는 승리한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아담 해와가 잃어버렸던 사랑의 가정을 분별시키는 때입니다. 이 시대는 완성시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를 중심삼고 분별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모가 이 땅에 와서 분별의 과정을 가는 데는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여러분이 자녀의 날을 맞아 반성해야 할 것

하나님은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2천년 동안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아들딸의 책임은 무엇이냐 하면 오시는 부모님에게 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도리를 다했더라면 부모가 수모의 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그 자녀의 책임까지 맡은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자녀의 도리와 부모의 도리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수십년의 역사과정을 지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1970년 음력 10월 1일, 11회째 자녀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기까지의 역사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의 자리를 걸어 놓고 부모 앞에 효성을 다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이었습니다.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책임까지 맡아 효자 효녀의 책임을 다하여 예수를 부모로 완전히 모셔서, 그의 뜻이라면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중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유대교의 기반이 형성되었더라면 예수님에게 죽음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이 수난을 받기 전에 자녀가 수난을 막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부모의 죽음길을 막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교가 자녀의 책임을 다했더라면 예수님은 죽음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자녀의 책임을 못 하고 부모이신 예수님을 배반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길로까지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 구원섭리의 한 기준을 세워 영적으로 자녀를 다시 수습하여 세계적인 발전의 기반을 갖추어 나오셨습니다. 그 세계적인 기반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영적인 자녀의 기반은 닦아졌지만, 영적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이 기준과 일치될 수 있는 외적 기준을 갖추고자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육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주관권을 만들어놓은 것이 민주주의세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세계의 사상적 중심이요, 섭리적인 중심인 기독교가 오시는 부모 앞에 참다운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야 합니다. 하늘의 부모로서, 혹은 하늘의 주인으로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올 때 자기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바쳐 충성과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그런 터전을 마련했더라면 오시는 부모 앞에 수난의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실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찾아온 이 한국을 중심삼고 되어진 사실을 보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권을 건설하고, 역사적인 뜻을 계승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정권이 기독교와 야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다시 수난의 길을 거듭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입니다.

이 한국에서의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가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노정은 역사적인 수난의 노정으로서 그 노정에는 하나님의 6천년의 수난의 노정을 연장시켰다는 슬픈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민족의 수난의 길을 피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수난의 길에 머물러 있는 것도 뜻을 따르지 못한 연고요 그에 대한 탕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지금까지 사오십여 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은, 뜻을 대할 수 있는 섭리의 터전에 서 있던 기독교가 뜻을 받는 사명을 내적 외적으로 완전히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70년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이 70년대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삼아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뜻을 가진 자녀의 날입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할 적마다 반성하고 또 다짐해야 할 것은, 과거에 자녀로서 책임을 하지 못한 한을 풀어 드리는 한 날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중심하여 우리가 새롭게 결심하여 자녀의 책임을 못 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입장을 탕감복귀하고, 역사적인 모든 승리를 다짐하는 입장에서 하늘 부모 앞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로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각하는 입장에 서야만, 이날을 맞이하는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녀의 날이 찾아지기까지의 수난의 역사

지금은 외적으로 세계적인 무대까지 갖추어졌지만, 이 자녀의 날이 찾아지기까지 내적인 심정을 가려 나오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수난의 길을 거쳐왔는 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는 섭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선민권을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유대교적 선민권, 기독교적 선민권을 확대시켜 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언제나 심정적으로 일치된 하나의 종족을 편성하기 위해 준비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형제인 가인과 아벨이 싸웠습니다. 가인은 사탄편에, 아벨은 하늘편에 분립하여 세워 가지고 아벨을 중심하여 가인을 굴복시키는 싸움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가인과 아벨이 장성한 입장에서 싸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복귀를 위해서 생명의 기원까지 거꾸로 올라가 재생시켜 나온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이 실패한 것을 에서와 야곱의 쌍태를 중심삼고 분별의 역사를 한 것입니다.

야곱은 천신만고의 수난과정을 거친 후에서를 굴복시켜 승리의 터전을 갖추었습니다. 여기에서 외적인 이스라엘권은 마련됐지만 내적인 이스라엘권은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내적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 야곱의 아들 유다와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3대 형태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다말과 유다의 핏줄을 통한 베레스와 세라의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 아벨을 복귀할 수 있는 승리적 기준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승리의 자리를 차지하여 형으로 태어날 수 없었던 그 한스러운 역사를 탕감시킨 것입니다.

또, 다말처럼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망각하고, 자기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 아버지의 뜻만을 일념으로 따르고, 세계적인 섭리 역사의 뜻을 위해 자기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역사적인 교단이 형성되게 한 여성이 마리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메시아를 잉태할 것을 예언했을 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오나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에 있어서는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요, 자기의 위신과 처지가 모두 몰락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축복이 땅 위에 새로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망각하고 자기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 하늘의 심정을 흠모하는 자리에서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혈통적으로 승리의 분별점이 갖추어졌고 그 기반 위에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랑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분별된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유발할 수 있고 위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태어나는 그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고, 태어나서는 유아 시대부터 청년, 장년, 노년시대까지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대표적인 아들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시켰고, 그가 태어나는 그 시간 천군천사가 환영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동방에 있던 세 박사가 황금, 유황, 몰약을 가지고 와서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실체를 갖춘 영적 세계의 천사장을 대신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남모르는 가운데서 복귀섭리의 뜻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 위에 메시아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이는 4천년 역사의 희생의 결과였습니다. 역사적인 승리를 마련할 수 있는 방패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보호하고 받들어야 할 것이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예수님을 환영하기는 커녕 반기를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두 번째로 타락의 한을 안겨 드리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그대로 인간시조로 타락했지만, 복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복귀의 희망이었고, 새로운 소생의 소망이었던 그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유대교를 중심삼고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벌인 소동(마 2:1-)이 하나님을 얼마나 슬프게 자극시켰는 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을 지키기 위하여 애급 땅까지 인도할 때의 그 숨은 곡절과 하나님의 서글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리하여 애급에서 3년을 지내고 갈릴리 해변가로 돌아와 자라는 예수의 생활은 남이 모르는 외로운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으되 어머니로서 사랑할 수 없는 어머니요, 아버지가 있으되 의붓 아버지요, 형제가 있으되 의붓 형제요, 친족이 있으되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자라던 예수님의 유아 시대가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하여 형제를 사랑하고 싶었고, 친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는 데 완전히 두절되어 말았으니, 예수님 한 분만을 중심으로 소원했던 하나님의 서글픔이 얼마나 컸었는 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소망의 날을 기대하시던 30년 기간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외로운 기간이었던가. 예수님이 모든 어려운 환경을 개척하여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자리는 나가지 않기를 하나님은 내적으로 간절히 바라셨고 또 그러한 환경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저버리고 반역한 죄를 짊어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이기 때문에, 유대교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탕감의 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역사적인 화를 받는 민족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고객하는 민족으로 세계의 수많은 민족 앞에, 혹은 그들의 총칼 앞에, 수많은 원수들의 발굽 아래 희생되어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역력해 아는 바입니다.

겨우 1948년도에 유엔의 공인을 받아 하나의 자주적인 국가로서 독립은 되었지만 주위에 있는 원수들을 다시 한 번 정복하지 않고는 민족이 승리의 터전을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 민족이 책임을 못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을 이루고 승리한 민족의 자세를 갖추기 전에는 재차 싸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현재 아랍권에 포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이스라엘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책임해야 할 때

이렇게 탕감의 역사는 용서가 없으니, 민족이 잘못했으면 민족을 통하여서 해결해야 되고, 민족이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민족과 더불어 있던 세계가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탕감의 현상을 놓고 볼 때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과정에 서글프고 슬펐던 사실이 많았지만 뜻을 중심삼은 선생님 자신이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만일 죽었다면 어떠한 문제가 벌어졌을 것이냐? 비참한 민족이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해방의 날을 바라고 준비하여 왔습니다. 새로운 섭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고대하던 한때를 이 한국을 중심하여 이 민족과 이 강토에서 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기독교와 이 민족이 환영하였더라면 오늘날 한국 민족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을는 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뜻도 세계적인 터전을 이루고 그 영광을 찬양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만큼 판도를 넓혔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나이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10여 년의 세월을 지나 가지고 여러분을 찾은 이 입장은 승리를 찬양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워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에는 아직 국가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고 세계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이것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유대교가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했듯이,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 민주주의를 지도하듯이, 앞으로 통일교회가 한국의 모든 사상과 정신적인 문제를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뿌리를 못 냈고, 우리의 계획이 전반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자리까지 못 나갔기 때문에, 다시 시련 과정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의 역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의 후손이 책임질 것이냐, 아니면 이 시대의 삼천만 민족이 책임질 것이냐?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책임질 만한 무리는 , 오늘날 이 뜻을 개척하기 위해 활동하다 피곤하여 지쳐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져야 할 민족적 책임이요, 국가적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축복가정은 어떠한 입장이냐?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메시아를 희망하던 입장이 아니라,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새로운 종족편성을 하여 한 단계 전진한 입장에 선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축복가정들이 총합해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꾸며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밀한 내용은 시간이 없어서 전부 다 말할 수 없지만 오늘날 축복받은 이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개인을 위한 가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을 대표한 가정이요,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요, 하늘땅을 대표한 가정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가정적인 시련과 탕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주관하는 데는 예수님 자신이 주관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이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본연의 이치가 아니겠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의 가정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이스라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 나라의 모든 지성소를 지킬 수 있는 제사장이 되고, 그 나라 전체를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시대를 중심삼은 소원의 기반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개인도 개인적인 남자나 여자가 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권을 대표하고 그 주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제사장의 책임을 가정적인 책임으로 완결짓고 완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6천년 동안 찾아 나온 승리의 이스라엘권이 아니겠어요? 예수님 때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재현시키기 위한 것이 재림의 역사일진대, 6천년의 섭리역사가 하나님의 내적인 투쟁의 노정이요, 사망의 순환길이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 됩니다. 축복가정이 제사장을 대표할 수 있고 지방 장관이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영적 이스라엘과 유대교의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지를 지배하되 예수님 혼자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서 지배하다가 예수님이 죽으면 그 유업을 누가 인계 받을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의 직계의 아들딸이 인계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천륜을 연속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매우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은 가정이라고 해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원하던 것을 변함없이 천추만대 계승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겨야 할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부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개인이 승리를 다짐하는 때였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1960년부터 1967년까지는 , 즉 하나님의 날을 책정할 때까지는 선생님 자신이 가정의 십자가를 지는 때였습니다. 가정의 제반 요인을 탕감하여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3년이 지나 70년을 맞이하면서는 , 즉 제2차 7년 노정의 3년을 넘기는 마당에 있어서는 가정적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야 할 텐데 이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시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월 초하루부터 777쌍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동원하라고 통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 가정을 동원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 남편을 생각하고 자기 일신의 안락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시대가 왔다고 해서 누구에게 원망할 것이 아니요, 통일교회 때문에 수난의 길을 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가정으로서 응당히 가야 할 노정으로 알고 가야 하며, 여러분은 여기에서 자신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횡적인 면에 있어서 이 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통일교회의 시대

세계적인 부모의 날이 결정되었으면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조상이 아닌 종족적 조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족을 중심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의 한 가정 한 가정이 이 나라를 우리의 나라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종족과 민족을 우리의 종족과 우리의 민족으로 찾아야 합니다. 박씨면 박씨, 김씨면 김씨의 종족 전체를 모아 가지고 우리의 종족이요, 민족이라고 찬양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 형제의 나라도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의 터전을 공고히 하여야 할 때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60년대와는 다른 가정적 차원으로 향하여 갈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은 종족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을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도 가정으로서 승리를 결정짓는 것이요, 종족도 가정적 승리의 터전 위에서 승리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민족과 국가도 가정의 승리의 기반을 통하여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핵심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가정의 승리는 새로운 조상의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가정 여러분은 횡적인 면에서 자기 나름의 종씨를 중심삼은 새로운 조상이 되어, 조상으로서 전통을 세울 수 있는 모든 날들을 갖추어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 여러분은 가정적인 수난의 길을 거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수난의 한계점은 민족복귀입니다. 가정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민족은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나라는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선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원리를 통하여 잘아는 사실입니다.

11회 자녀의 날을 맞는 금년 10월에 세계의 10개국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심정적인 터전을 중심삼고 한 중심 앞에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평면적인 대상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했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시대는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믿고 나가기만 하면 여러분의 수난은 극복될 것입니다. 어느때든지 반드시 우리에게 굴복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결정을 갖추어 가지고 나타날 수 있는 시대가 목전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사랑하고 염려하시기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는 자녀들에게 수난길을 넘겨 주려는 것이 아니라, 수난이 없는 입장, 수난을 당했다는 입장에 세워 주시려는 것입니다. 작은 탕감조건을 통해서 그 길을 모면하게 해주려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이끌고 이스라엘 땅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자기가 분배받은 땅을 찾아가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이제 가정을 이끌고 종족적이 터전의 상속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 기간이 70년도부터 72년도까지인데, 이때는 세계적으로 한 분수령을 넘어가는 때입니다.

외적인 정세를 두고 보더라도 사람들은 72년도를 고비로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안팎이 일치되어서 하나의 해결을 지어야 할 복귀역사시대이기 때문에, 어차피 섭리적인 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70년도로부터 72년도를 중심해서 아시아의 분수령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72년도까지의 3년기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선생님이 한 것입니다.

이 날을 중심삼고 보면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책정한 지 만 12년을 맞이하는 때가 아니겠어요? 따라서 13수를 넘어가는 때가 73년도이기 때문에 기필코 이 기간에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출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앞날에 수난의 길이 남아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하좌우를 바라보더라도 하늘로 솟구치든지 땅을 파고 들어가든지 결판을 지어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녀의 날이 회수로는 11회지만 만으로는 1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데, 이날을 놓고 통일교회가 금후에 가야 할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뒤에는 세계가 달려 있습니다. 남북 해방의 깃발도 우리가 들지 않으면 안 되고, 최후의 사상적인 무장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고충은 물론이요, 외적 고충도 해결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우리 식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도 아담 해와의 가정을 내세워 가지고 해야 됩니다. 이런 엄숙한 시점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아들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그러면 천국에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이요, 자기 아내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잃어버린 자리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담판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자기를 천번 만번 잃어버려도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이스라엘 역사를 끊어 버려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로마 병정의 총칼 앞에 이스라엘 나라를 그냥 그대로 저주해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혹은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병정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던 것은 그들과 짝된 유대 교의 해방을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시 자신은 죽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요, 하나님을 잃어서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죽을지라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고 남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와 더불어 예수님의 이름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 사랑은 남아지기 때문에, 그 날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사랑은 남아지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는 기독교는 지금까지 죽음길을 걸어왔지만 거기에서 남아져서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남기기 위함이요, 하나님을 남기기 위한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의 아들딸도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딸은 하늘나라의 후손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를 두고 볼 때 주권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이루려면 주권이 있어야 하고, 국민이 있어야 하고, 국토가 있어야 합니다. 주권은 부모를 뜻하는 것이요, 국민은 자녀를 뜻하는 것이요, 국토는 만물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섭리적으로 볼 때 만물은 구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자녀는 신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부모는 성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형태가 가정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국가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세계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구는 만물에 해당하는 것이요, 만민은 국민에 해당하는 것이요, 주권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권 국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주권 형성에 있어서는 별의별 추태가 있었고 별의별 흉한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겨져야 할 주권만은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추태의 모든 요건을 청산짓고 새로운 주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이요,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늘나라의 주권을 대신한 입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주권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녀는 국민을 대신하는 것이요, 물질은 그 나라의 땅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나라에 충하는 것이요,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를 다하는 길과 통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정이 별의별 추태스러운 것의 기원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거룩한 터전이 되기를 바라보고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타락권내에 있는 부패된 가정을 수습하여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가정들이 파탄되고 있지만 그 가정들을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축복가정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상속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과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축복가정은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금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적 권한을 허락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요,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나라보다도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고, 이세계를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워서 못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돼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셨는 데 무엇을 가지고 주관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자기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행복이 더해 감에 따라 그 행복의 요인을 타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가정, 세계가 천국화되어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요인을 타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36가정부터 72가정, 124가정, 전체를 총망라하여 12월부터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변명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냐? 나라를 위한 것이요, 세계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를 위한 것이요, 세계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가정 생활에 있어서도 축복가정은 일체를 문의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천국은 예배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 문의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을 흠모하면서 문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효자, 효녀, 충신, 열녀가 되는 생활인 것입니다. 부모와 상의하는 생활권내에서 서로 동감하면서 사는 것이 천국이요, 보고 생활을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보고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하늘의 뜻을 나에게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 앞에 내가 보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을 따라가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축복가정들을 보면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하는 말들을 하는 데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어렵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따르지 못하는 길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행복이 깃들 수 있는 가정이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은 수난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당연히 당하여야 할 수난의 길로 알고 감사하며 가야 할 길입니다. 이 길은 올바른 선조의 피를 받지 못한 타락한 후손이 가야 할 길이요, 응당히 받아야 할 보응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가야 합니다. 이러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축복가정은 총동원하라

이제 우리는 3년 동안 총동원해야 되겠습니다. 이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녀의 날의 의의를 안다면 여기에 엎드려 통곡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뜻, 여러분이 대하여 나온 뜻과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피난민이라는 것입니다. 이북에 있던 사람들이 삼팔선을 넘어 살 길을 찾았던 것처럼 집시의 무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 위의 모래와 같이 번창할 것을 약속하신 아브라함 가정처럼 집시와 같은 무리입니다. 또,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촌락을 이루어 가지고 사는 무리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가정은 그 어떠한 것도 의지할 수 없는 , 홀로 있는 입장이었지만 그 가정 가운데 하나님은 찾아와 분부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가정은 친구 가정도 없었습니다. 나라도 의지할 수 없고, 친척도 의지할 수 없는 그런 외로운 자리에서 하나님만을 중심삼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곳에서부터 하늘 가정이 되고, 하늘 종족이 되고, 하늘 나라를 편성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제2의 국가, 제2의 민족을 개입시키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았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입장이었습니다. 부처끼리만, 그대와 나만이 천륜의 뜻을 이루어야 된다는 사실…. 그러나 울어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울어야 하고, 웃어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웃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삼자의 위로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정이 아닙니다. 축복받은 가정이 1, 600가정이 넘게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축복가정들은 새로운 축복의 땅을 향하여 나선 집시의 무리요, 하나의 정착지를 찾아서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할 무리입니다. 한 민족이 배척하면 나라 없는 무리처럼 국경을 넘고 수난의 길을 넘어 하나의 정착지를 찾아가야 할 무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그래도 한국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닦은 기반이 넓고, 종횡의 관계를 두고 보더라도 보다 편한 자리가 아니겠어요? 삼팔선 이북에서 북괴가 남한을 노리고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단결해 가지고 북한 땅까지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평양을 떠날 때 나는 이 고향땅에 돌아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수난의 길을 가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떠났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고향을 찾아가서 제물을 차려 놓고 이 나라가 해방이 되었다고 축하회를 가질 수 있는 그날까지 여러분은 총진군해야 되겠습니다. 원수들에게 밟힌 이북 땅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대원수 공산당을 근본적으로 추방해 버려야 합니다. 이 세계적인 공산당을 몰아내기 전에는 북한 땅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이 뜻을 외적으로 빨리빨리 전개시켜 세계의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해 한국에 집중공세를 펴려는 것이 우리의 작전입니다.

공산당이 안팎으로 사람들을 가혹한 조직과 공포 속에 몰아넣어 생명에 위협을 주면서 하나의 국가 창건을 위하여 희생의 길로 몰아낸다 할진대, 우리는 생명의 위험을 초월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하늘의 용장이 되지 않고는 원수가 있는 적진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번 행사를 끝내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도 행사를 마친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행사를 끝내고 난 뒤에 이들이 가야 할 길을 놓고, 민족의 갈 길을 결판지을 수 있는 요원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기쁜 일면이 있는 가 하면 슬픈 일면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로서 책임 다했는가를 반성해야

오늘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이 자녀로서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금년부터 교회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년대에 이루어야 할 일의 모든 기반을 금년에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정초에 이야기했습니다. 협회본부의 문제라든가, 앞으로 통일교회가 움직여야 할 대 사회 활동이라든가 교육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닦아야 할 터전을 어떠한 무리를 통해서라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환경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이 많습니다. 결정은 나 홀로 하나님과 의논해서 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이 일을 결정하는 책임을 질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일을 결정하는 책임을 질 사람은 나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 가지 문제를 제시했는 데, 이민족이 그 책임을 하지 못하면 이국 민족을 통해서라도 강행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지금 해놓지 못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60년도에 선생님이 단행했더라면 63년도까지 지역본부와 지구본부를 다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10년 세월이 지나 가지고도 마치지 못했으니 미친 여인의 치마폭처럼 터지고 헝클어지고 더럽혀진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70년도부터 73년도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기틀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못 하게 되면 여러분의 아들딸도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시기에 지치는 통일교인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본 통일교회에 지시한 것이,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벌인 세계반공대회(WACL)가 끝났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다시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적인 분야라든가 교회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달려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첫째는 경제복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복귀의 선두에 서라고 했고, 꽃 파는 운동을 강행해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인원보충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승리했으면 다른 면에서도 더 강력하게 달려 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새로운 대안을 세워서 나가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죽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기고 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하겠습니다. 내가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야할 곳이 여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난의 길을 거쳐서 해방의 한 터전을 마련하고 이룩한 축복가정인데 누구와 더불어 남아져야 할 것이냐?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남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뜻과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부패해 간다고 망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정들이 어렵다고 해서 불쌍하다고 생각지 말라는 겁니다. 둘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먼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야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또, 높이 뛰려면 다리를 높이 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다리를 높이 들수록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지구장회의 때 지시했지만, 어린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 양육하여서라도 새로운 면을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을 연결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적인 전통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60년대의 수난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아 개인적인 전통을 세웠다 하더라도, 이제는 가정으로서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 전통을 세계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 가족들이 가야 할 전통이 금후에 이 지구상에 자리를 잡는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우리 앞에 막혀져 있는 나라의 한스러운 담벽을 헐기 위하여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선생님은 이 나라와 이 민족에게 해원이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도 달갑게 받아 왔습니다. 소모전쟁을 해 나왔습니다. 피를 뽑아서 팔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싸워서 맞서 나왔습니다. 그들과 실력 대결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왔습니다. 이 삼천리 반도를 누가 피땀 흘려 지켰으며, 하나님의 심정을 부둥켜안고 누가 충성을 했느냐 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만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만이 찾아오는 천운을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은 통일의 운세 시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시대와 더불어 온 것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넘어 몇천년 만에 찾아온 이 때를 가정은 고이 맞아야 합니다.

때를 잘 맞이하지 못한 요셉 가정의 한이 천추만대 이스라엘의 한으로 남고 세계의 한으로 남은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가정에 찾아든 이 한때를 놓치지 말고 고이 간직하여, 하늘 앞에 하나의 터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승리의 제물로 바쳐 드리면 그 가정은 천년 만년 남아질 것입니다. 양친 부모 모셔 놓고 천년 만년 살고 싶다는 우리 나라의 민요처럼 살게 되면 가치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 가정들은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의 뜻은 망하지 않습니다.

새로이 다짐하고 결의하여 출발하라

여러분은 각자가 가야 할 길 앞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느 가정이 충신의 가정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래서 여러분의 아들딸 앞에 새로운 전통을 남겨야 할 시대가 오는 것을 알고, 오늘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책임 수행(遂行)이 새롭게 출발될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하늘의 위신과 교회의 대외적인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안팎의 모든 것을 갖출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있는 집을 보더라도 '저것이 선생님의 집이로구만'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교회를 먼저 짓기 전에 나의 집을 살 수 없습니다. 뜻을 위한 성전을 마련하고 이제는 대외적인 위신도 세워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지의 신세요, 방랑자의 신세요, 고아의 신세였지만 이제는 환경을 정비해서 체면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별관도 별관이지만 선생님의 집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전체가 동원해서라도 이것을 마련하지 못하면 여러분의 후손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건이라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결혼식의 예물 중에 그런 것을 집어넣었던 것입니다. 내적인 기반이 자리를 잡아야 외적인 기반도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암만해도 안 됩니다. 이것이 하늘의 원칙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앞으로 축복가정들은 새로운 분야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찾아오는 주일의 경배식을 놓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 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을 깨끗이 단장하고 기다리는 가정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는 것을 귀찮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어떻게 되는 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아들 같고 딸 같은 여러분 부부가 되어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 개인이 효하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효할 때는 개인이 정성들여도 되었지만 이제는 입체적인 십자가를 져야 할 시대이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효를 해야 합니다. 개인 때는 평면적인 십자가이지만 가정을 갖추고 나갈 때에는 입체적인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을 달갑게 받아 발전시켜 넓혀 나갈 때 종족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요,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요, 세계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수난의 길을 극복하여 세계적으로 넓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축복받은 민족으로서, 가정으로서 해야 할 책임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은 자기 개인뿐만이 아니라, 자녀를 둔 가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새로이 다짐하고 새로이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1970.10, 한국

선생님이 삼위기대를 짰습니다. 그것은 각기 자신을 중심한 것이 아니고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삼위기대입니다. 사실은 자기의 신앙의 자녀로 삼위기대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내적으로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고 부자 관계가 됩니다. 그런 의미로 삼위기대를 만들었습니다.

왜 12명을 전도해야 하는가

3년간은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 12명 이상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12제자가 있었습니다. 12명은 이스라엘의 야곱권을 복귀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야곱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70인의 장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적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원래는 72인입니다. 72인은 12의 6배입니다. 그것을 합치면 7단계로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72인을 복귀하지 않으면 종족적 복귀를 할 수 없습니다.

주위로부터 침공받지 않는 자기 가족의 영원한 안식 기반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12가정을 복귀해야만 합니다. 삼위기대는 천국에 들어가는 동방의 3개의 문을 통과하는 자격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12명에게 봉사해서 그들을 굴복시킨 승리권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3년이 걸렸습니다. 12제자를 모아 그로부터 심정일치시키는 데 3년이 걸렸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도 신앙의 자녀를 존중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복귀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조건을 세워 현재 복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12명은 전도해야 합니다.

3명은 중심으로 했다는 것은 어떠한 것이냐 하면, 중심이 있으면 동서남북 사방이 결정되지만 그 사방 가운데 동방의 한쪽밖에 출입이 안 되는 것입니다. 태양은 동에서 뜹니다. 그러므로 영계에서 동방은 봄을 의미합니다. 봄철은 얻은 입장입니다. 그래서 다시 봄이 오려면 여름과 가을, 겨울이 지나서 오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입장에 서려면 12수의 완성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가면 겨울의 입장에 서야 할 3개월간이 문제입니다. 그 3개월간이란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3일간에 해당합니다.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새로운 봄에는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돌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3년 동안에 적어도 12인은 전도해야만 합니다.

부인과 함께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과 함께 있어도 안 됩니다. 나이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이 3년간은 전단계(全段階)를 상징합니다. 이 기간은 잃었던 가정을 새롭게 성별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3년간의 공적 노정으로써 무엇을 하려 했을까요? 예수님은 상대자를 정해 결혼함과 동시에 12제자의 상대자를 정하고, 그 기반 위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서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씨족을 결합하여 민족, 국가로 발전시켜 나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명 전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12명을 전도하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스라엘(야곱)을 승리적으로 전개한 형태가 나타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씨족 복귀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12명의 믿음의 자녀와 하나가 된 가정이 되면 누구라도 여러분들을 환대하겠지요. 혈연관계도 없는 데 저토록 친밀하게 되어 하나가 된 가족권을 보면, 전일본의 모든 가족, 씨족이 모여 옵니다. 그와 같은 가족을 만들어 보세요.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면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옵니다. 그래서 이번 국제합동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가 되면,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의 세계가 됩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부모 이상, 형제 이상의 심정적 유대를 맺게 되는 곳, 거기서 세계를 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복귀해야 할 가정기준

일본인은 일본인끼리, 미국인은 미국인끼리, '우리들은 선진국가지만 동양은 후진국가로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까 할 수 없었다'든가 혹은 '니그로는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하고 있으므로 인종문제가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생각할 경우,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않을지라도, 가난할지라도 부모이고 형제이면 주고받는 것이 심정적 원칙 아닙니까.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자기 형제중에 불구자가 있을 경우, 옆에 있는 사람이 투털거리면 화가 치밀어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이 형제간의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이 생각해 갈 때, 우리들이 형제자매의 결점을 자기 나름대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3자의 입장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세계는 구원되지 않습니다.

자신 이상의 사람과 접하는 것은 어느누구라도 기뻐합니다. 선은 악보다 하나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밑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정신에 철(澈)하지 않고서는 세계는 구해지지 않습니다.

지구장은 솔선해서 3년간 12명 전도하세요. 원칙 기준에 서지 않으면 부모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태어난 자녀가 하늘이 바라는 안식권에서 사랑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이것이 확실히 알아지면 전도하지 말라고 해도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년간 공식노정을 중심삼고 생명을 걸고 하세요. 지금 결의합시다. 이와 같은 원리 원칙을 확실히 기억해 둡시다. 12명 전도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6년간 연장입니다.

선생님은 사랑하는 부모에 대해서 원리라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밖에 나가 국가적 기반을 세우려는 새로운 계획을 실패하여 잃었으므로 외적 기준에 서서 복귀한 조건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면 자기 친척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입니다. 그 기준을 현재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루지 못한 것을 여러분을 통해 복귀하려고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지금은 양친에게 당당히 원리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고 부부가 갖추어서 가는 것이니까 시어머니가 반대하면 자기 남편이 잘 말해주고, 시아버지가 반대하면 며느리가 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전상, 실로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귀는 문제없습니다.

또, 자신의 가족을 중심으로 일하는 것도 멋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고 활동해 왔습니다. 남자를 중심삼고 하면, 남자끼리는 뭣인가 모르게 쓸쓸합니다. 남자면 모여 있으니, 심정적으로 쓸쓸함을 느끼는 겁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조금은 괜찮지만 여성 5인, 10인이 책임자를 중심으로 하고 뭉쳐지면 또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 관계로 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어떻게 보충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부터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235쌍이 일본에 정해져 있으므로 이들이 각각 하나의 홈(home)으로서 활동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훌륭하게 발전합니다. 부인은 남편의 심정적 쓸쓸함을 위로해 주고 남편은 아내의 쓸쓸함을 부모와 같이 위로해 주는 겁니다. 서로가 부모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결핍을 느끼는 것은, 옛날 자기 집에 있을 때는 양친이 계시고 형제 자매가 있어 위로해 주었지만, 그와 같은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을 때 쓸쓸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 양이 많아지면 발전이 안 됩니다. 쓸쓸하지 않고 즐거운 가정을 만들면 만들수록 발전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축복가정을 중심으로 한 홈제도가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되면 12인은 바로 전도됩니다.

상대자가 사랑스럽다, 빨리 가정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야말로 열심히 전도하세요. 원칙 기준을 빨리 넘는 것입니다. 결심하고 하면, 1년 이내에 다 완성하고 맙니다. 그것은 용이한 일입니다.

선생님과는 틀립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자기의 가정, 자기의 씨족에 대해서 전도하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집에서 쫓기어 가정을 잃어버렸으므로 밖에 나가서 그 기준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해 버렸으므로 그것을 복귀하지 않고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지금까지 노정은 그랬습니다. 선생님의 가족이 기대(基臺)가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남녀 합하여 24인입니다. 24인 정도의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찾으려 하시던 12제자를 중심으로 하고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정의 기준입니다.

여러분들은 일본 전국에서 모여 왔으므로 그 모델적인 가정 기준을 만들면, 주위에서는 어떻게 해서 저와 같이 혈연관계도 없는 사람끼리 하나가 될까 하고 문제삼습니다. 그 가정을 보고서 저 부부는 참으로 훌륭하다, 자기도 저와 같은 가정의 부인이 되고 싶다, 혹은 남편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모두가 사모하고 동정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12수를 복귀하는 탕감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축복을 기반으로 한 발전원리

각자가 축복을 기반으로 하고 싸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전의 원리원칙입니다. 그런 가정을 일본에 235쌍을 만들면, 이것은 이중이 되므로 곧 수천이 되겠지요. 10배라면 2, 350이고 그 2배는 5천입니다. 각자가 그와 같이 전통적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발전되겠습니까? 발전시키려면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도하는 데에 여러분은 지금까지 심정적 결핍을 느끼면서 소모전을 해온 것입니다. 내부에 부족한 것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면 또 부족함이 있습니다. 양쪽이 다 부족해서 죽어 버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원리로 봤을 때 죽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참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뒤따라 붙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체적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소모전은 이제 그만둡시다.

대학 출신의 사람이라도 원리를 듣는 데 3개월은 걸립니다. 강의를 들어보면 이 점은 자기가 들어 오고 생각해 온 것과 같지 않다, 이 점은 다르다는 등의 생각도 하게 되고, 최저 3개월은 걸립니다. 그리고 나서 거듭 결심하기까지, 사회적 성공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번민합니다. 적어도 결심하기까지 6개월 이상은 걸립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와 같다. 이 소모되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철폐하는 가가 과제입니다. 그것은 기성교회에서 부부가 일체가 되어 24명의 형제자매와 선량한 사랑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4명의 형제자매를 중심삼고 양친과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 소모전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가족과 양친 형제 친척을 중심으로 하여 전도의 기반을 만드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무엇인가로 사회에서 문제가 되어서 소문이 나고 나쁘게 생각하면서 대해왔던 것이지만, 기분나쁜 표정으로 접해 왔었지만 실제로 접해 보면 그렇지 않고 훌륭하다고 느끼어 가족 친지에게 선전하게 됩니다. 다른 형제보다도 좋다고 부모는 자연히 칭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형이나 언니의 이제까지의 나쁜 인상이 한꺼번에 지워지고 양친이 믿는 기준까지 자연히 오르게 됩니다.

형이나 언니, 동생의 집으로 남편 또는 아내를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리고 사귀어 가노라면 원리를 말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전도가 됩니다. 자연히 심정적 일체기준이 되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형이 내 동생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게 됩니다. 거기서는 소모되는 기간은 없습니다. 일주일 이내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작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기준이 지금까지 일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외적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 사람 앞에 양친 형제 친척 등 수십명이 있지요? 씨족 복귀는 한번에 되고 맙니다.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주라

지금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도 내면으로는 언젠가는 전도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전도를 하세요. 목적은 하나입니다. 총동원하여 전도를 하지 않으면 교회로서 전체적으로 발전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자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있는 자 이상으로 전도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사람들은 그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어머니가 되고, 남성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24인의 가족을 다스리는 겁니다. 아침에도 평화, 낮에도 평화, 밤에도 평화라고 하는 환경을 만듭니다. 여러분은 돈도 버세요. 그 돈으로 내가 먹고 부인의 옷을 사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려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통일교회의 결점은 무엇이냐면 지구장이 되면 천적 완성기준에 섰다고 생각하여 모심과 경의를 표해 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지금 일본도 한국도 그런 풍조가 되어 있습니다. 모심받는 것보다 모셔 주고 위해 주는 것이 부모의 입장입니다. 형제의 입장에서 보면 아벨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부자관계입니다.

그것을 자신은 아벨이므로 가인이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 때문에 발전하는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습니다. 무엇을 위한 아벨인가 하면 부모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아벨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부모의 심정을 먼저 갖지 않으면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형제끼리 아벨이라고 생각하여 부모로서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결함을 빨리 일소(一掃)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자가 24명을 위하여 사랑한다 하는 정신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일체가 되어 어디에도 없을 정도의 그리워하는 부부관계로 되면 씨족은 끌려 들어옵니다. 그러한 기반을 만드세요. 이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일

일본에 돌아가면 심정적인 가정을 각지에 만드는 것입니다. 12명 이상의 전도, 알았습니까? 씨족을 구한다고 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6배 이상 해야 합니다. 야곱 가정에 있어서도 72인을 중심으로 하고 애급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민족적 출발점입니다. 복귀가 그와 같이 되어 있으므로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그와 같이 해 왔습니다. 지금부터 3년간의 성별기간의 내용을 알았습니까?

사실은 7년간의 완성기준이 남아 있습니다. 3년간으로 자신의 가정기준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을 중심으로 부모의 날을 만드세요.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은 있습니까? 여러분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7년 동안에 만드는 겁니다. 전체적. 세계적으로 사탄의 공격을 받고 선생님이 7년 동안 간길을 여러분은 조건적으로 가면 됩니다. 옛날처럼 박해받으며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환영받으며 전도하는 것이므로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중심한 부모의 날을 만드는 데는 12수를 합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2수를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완수하지 않고 아기를 낳아 '선생님 이름을 지어 주세요'하면 곤란합니다.

타락의 원인은 사랑의 감소감을 가진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사탄편에 있는 존재를 사랑하고 천사장을 완전히 사랑해 주었다고 하는 조건이 세워지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투입해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기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한 씨족의 조상이 되려면 이러한 조건을 쌓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 도]

아버님, 금년에 맞은 음력 10월은 역사적인 새로운 달이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1970년도가 이 한 해의 국한되는 해가 아니라, 역사적인 전 생을 대표하는 하나의 고개로서 선과 악을 분립시켜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라는 것을 알고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70년도의 모든 어려웠던 일들, 혹은 뜻과 더불어 중요한 모든 일들이 승리의 결과를 가져와 자녀의 날을 지냈습니다.

아버지, 음력으로 10월부터는 당신께서 소원하시던 뜻이 저희 개인에게 서도 이루어지고, 가정에서도 이루어지며, 저희 교회와 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이 세계에서도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세계를 위해 수고해 나오신 복귀섭리 전체의 뜻이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이상과 일체화되는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지금까지 숱한 수난과 역경 가운데서 지키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권고하시며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내심으로 키워 나오시던 당신의 자녀들이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하고 새로운 날의 기쁨을 차지하여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당신을 모시고 존경하며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런 날이 올 것을 알고 나왔사옵고, 그 때는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사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승리의 가치와 승리의 권한과 자유로운 해방권을 바라고 나왔던 지난 역사를 흘려 버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내적 외적으로 단장하여 하늘과 땅 앞에 주권자의 권한을 갖추고 부끄러움이 없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새로운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당신의 뜻과 당신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기 위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위하여 여기에 왔으며, 무엇을 위하여 이곳에 모였는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저희들이 새로운 개인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가정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종족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민족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나라를 찾기 위함이옵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새롭게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모였사옵니다. 또, 새로운 효자 효녀의 모습이 되어 아버지의 기쁘신 성상을 모시고 싶은 일념으로 저희들은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아버지, 과거에는 저희들이 당신을 자유스럽게 모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저희의 환경이 아버지의 아들딸의 권한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스런 당신의 세계가 아니었고 당신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종족과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개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것을 무한히 소원했지만 전체를 다 잃어버린 슬픈 자들이었사옵니다. 이런 슬펐던 자신을 극복해야 할 싸움의 운명길이 탕감의 노정이요, 복귀의 노정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은 개인을 희생시켜 새로운 가정을 찾고자 하셨사옵고, 그 가정을 희생시켜 새로운 종족을 찾고자 하셨사오며, 그 종족을 희생시켜 새로운 민족을, 그 민족을 희생시켜 새로운 국가를 찾고자 하셨사옵니다. 나아가 그 국가를 희생시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할 복귀의 한계점이 아직까지 저희 앞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오늘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나라 없는 무리들, 민족권을 갖추지 못한 무리들, 가정을 갖지 못한 무리들, 자기 스스로를 망각한 무리들, 이와 같은 불쌍한 무리들이 아버지를 모시는 아들딸이라는 이 슬프고 원통한 사실을 저희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찾으시는 승리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 몸을 극복하여 끌고 모든 것을 바치고 나갈 각오를 해야되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찾아 나오시던 승리의 한날을 저희들은 기필코 보고 죽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던 승리의 나라를 저희들이 기필코 건국하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를 세우는 승리의 민족임을 세계의 수많은 민족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고 나가야 되겠고, 저희들이 그런 민족을 창건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소수의 무리로써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려는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는 수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사옵고, 연단과 시련과 수난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역사과정의 실상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이 길을 정당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분부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의 마음은 초조해야 되겠고, 몸은 한 곳을 향하여 바삐 뛰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각오하고 가고 또 가야 할 모습임을 깨닫고 내일의 먼 길을 향하여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것만이 저희들의 책임이 아니라 개척자의 행로를 더듬어 가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이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 앞에 기쁨과 영광과 환성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싸움과 비탄의 곡절과 개척해야 할 미개지가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참아 온 과거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참아야 할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면 이 길을 극복할 수 없고, 용사로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개인적으로는 승리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적으로는 어떠한 승리의 기준을 가졌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 교회적으로는 승리적인 기반을 닦았을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저희들의 목적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나라를 구하고 남북을 통일하기 위해서 제물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제단을 갖추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불쌍한 이 한민족을 지켜 주시옵고, 사랑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남한과 북한을 갈라 놓으신 당신의 경륜하심 가운데는 역사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선조들과 저희의 선배들이 책임진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수십년 고난의 역사가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요나가 회개하던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민족 전체를 아버지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당신의 권한을 펼 수 있는 승리의 나라를 찾을 때까지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이 아침, 저희들이 오로지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를 위하는 마음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고 또 저희의 후손들이 가더라도 그 나라와 아버지의 사랑만은 남겨 놓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천번 만번 망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소원하시는 창조이상의 나라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바라셨던 예수님이기에 저희에게 권고하시기를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친 그 나라를 남겨야 할 사명에 대한 불타는 소원과 애달픈 사정을 통고하시던 그 사정을 대신할 수 있는 효자 효녀의 충절과 절개를 가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 나라를 주관하시고, 그 나라를 사랑하시고, 그 나라에서 권한을 펴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날을 바라며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지금 그런 환경은 갖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넘고 마음의 세계에서는 아버지를 모시고 그 나라를 숭상하여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생활무대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더디하는 무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 다시 한 번 각오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까지 저희들은 연약한 무리였사옵니다. 연약한 무리일지라도 손에 손을 잡고 몸과 몸을 합하여, 마음과 마음을 합하고, 심정과 심정을 가다듬어 당신이 운행하실 수 있는 하나의 공고한 터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는 천리 만리까지 날릴 수 있는 하나의 유도탄 기지와 같은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연약한 모습들을 동정의 마음으로 품어 키우시옵소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목적 앞에 가담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저희에게 부여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는 세계 40개 국에 널려 있는 120개 성지의 중앙 성지이옵니다. 이 자리에 모여 당신 앞에 정성들이는 자녀들 위에 영계의 숱한 소원의 인연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수많은 나라의 인연을 여기에 종합시키시어 그 나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제단으로 갖추시옵고,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기도 하옵니다. 이 아침, 남한 각지에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스승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거들랑, 아버지,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더우기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번 10월 이곳에 와서 새로운 약속의 인연을 갖고 가정을 이루어 나갔사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룬 그들에게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 가정들이 개인적인 모든 욕망과 사심을 넘어서서 일편단심으로 당신의 뜻을 세우고 당신의 나라를 추구하게 하시어 거룩한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갈 길을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널려 있는 당신의 딸들이 모여서 수련을 받게 되겠사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1972년까지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할 당신의 딸들이오니, 아버지, 그들이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에덴동산에서 실수하였던 여성의 근본 뿌리를 뽑기 위해 국가의 한을 책임지고 나서는 연약한 이들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기간 저희들 각자가 이 길을 수행하는 가운데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자기 남편을 잊어버리고, 오직 나라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만을 붙들고 사는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이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금년 12월 1일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 위에 당신께서 함께하시옵소서. 이는 어떤 개인의 욕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요, 저희가 땅 위에서 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이옵니다. 천번 만번 죽더라도 이 책임을 감당해 내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은 이 길이 어렵고 슬픈 고개일 지라도, 혹은 수많은 사람에게 조롱을 받더라도 가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을 이끌고 가누어 나가시는 당신의 서글픈 모습을 바라볼 적마다 저희들은 한없는 외로움과 한없는 분함과 한없는 억울함을 품고 그런 아버지를 해방시켜 드리고 자유스런 환경 가운데서 있는 정성과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난 뒤에 죽고 싶다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이 이들로 하여금 생활을 극복하게 하여 주시고, 또한 그러한 마음이 이들의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가려 나가는 데 있어서 방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금년도 11월 초하루를 맞이하면서 60일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해의 벽두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내세워 출발하였는 데, 이것이 세계로 연결되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시발점을 가지게 된 것을 아버지께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한국을 세워 일본과 중국을 연결시키고 인도를 비롯한 전 동남아시아를 연결시켜 아시아 전체를 중심삼은 새로운 진영을 이루어, 공산세계의 마수 앞에 하나의 방파제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엄숙한 사명을 저희들이 책임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나가는 데는 나라를 믿고 가는 것이 아니요, 어떤 개인을 믿고 가는 것도 아니옵니다. 당신만을 믿고 외로운 발걸음을 옮기겠사옵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길을 가야되겠고, 이 해에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고, 다음 해에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여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 책임을 감당하여 아시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고, 세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는 천국을 향하여 직행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닻을 내리고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드리고 나서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을 맞은 후에야 기뻐하시는 당신과 더불어 기뻐하고, 당신과 더불어 살고, 당신과 더불어 안식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을 편안한 자리에 모시지 않고는 쉴 수 없는 자녀가 되어, 그 도리를 다하고 백성의 도리를 다하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책임을 다 하는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무리들은 망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가 오늘 이 자리까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습니다. 아버지, 여기 있는 이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최후로 남아진이 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하고, 승리의 한 결과를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모든 이들로 하여금 이날을 찾고, 이 세계를 찾게 하시어서 최후의 영광길에서 아버지의 권한을 드러낼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장래에 올 수난의 길을 넘으려면 오늘의 수난을 감수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이 미래에 있을 큰 수난의 길을 탕감시키는 제물의 과정임을 알고 달갑게 받고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해의 남은 두 달 기간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금년에 저희들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사오니, 모든 일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영광의 한날을 준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11월 1일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기필코 선한 개인을 갖추어 선한 민족과 가정을 이루고, 선한 종족을 이루고, 선한 국가를 형성해야 할 천명을 받은 밀사들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참의 결과를 남기려면

참된 선을 남긴다는 것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선을 추구해 나왔고 선의 나라를 추구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유업으로 남겨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을 알고, 역사과정을 알고, 현시대에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고, 미래의 세계가 어떻게 종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선의 목적을 기필코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참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습니다. 참은 반드시 동기가 있고 과정을 거쳐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참의 동기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이든가, 사람이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는 참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제3의 어떤 조건이 참의 동기가 되어 우리와 결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참된 자리에서 지도하면서 이끌고 가든가, 우리 인간이 참된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든가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참된 개인이나 참된 가정, 참된 민족, 참된 국가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위인들이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싸웠고 그것을 위해 생애를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은 참된 자기 개체만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참된 자기와 관계를 맺어 참된 민족, 참된 국가를 넘어서 세계 인류가 참된 백성이 되고 참된 세계가 되는 그날을 바라며 그와 같은 수난의 길과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참은 반드시 동기를 갖고 과정을 거쳐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의 동기는 하나님이 되어 나오셨습니다. 동기를 이어받아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맺기까지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동기는 될 수 있지만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맺는 데 있어서는 직접 선두에 서서 이끌어 나가시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과정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 사람이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왔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참을 추구하고 선을 위해 싸우고 간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수난의 길이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들이 참을 유지해서 그 시대와 생활 환경에 연결시키고 또 그 참을 남겨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생활 터전과 환경이 참을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상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이 가는 길에 있어서 주위 환경이 참을 환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아서 순행하지 못하고 반드시 투쟁과정을 거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악된 세상입니다. 또 타락을 전제로 한 인류의 역사는 악이 주관하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모든 권한의 틀거리를 잡고 있는 환경 속에서 선이 번식하려면 탕감의 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선의 터전을 넓혀 나가야 되느냐? 개인에서부터 넓혀 나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적인 투쟁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의 기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선의 동기를 언제나 부여해 나오고 계십니다. '너희들은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된다. 새로운 시대의 선한 백성이 되어야 된다'고 하면서 언제나 동기가 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시대마다 위인이나 성현 혹은 도인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선의 동기를 우리에게 보급시키려고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계속하시기를 역사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동기가 되는 인연을 붙들고 한 세기 이내를 살다가 가는 인간의 배후를 더듬어 섭리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인연을 갖추지 않고 연결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그 배후의 동기는 하나님과 인연맺으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선진권을 중심삼고 이스라엘권을 펴 놓은 것이 현재의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기적인 내용과 과정적인 우리 인간과 결과적인 목적이 일체화될 수 있는 때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때요, 인류역사의 종말시대인 것입니다. 그런 때는 반드시 와야 됩니다.

그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압축되어 그 동기가 결과로서 나타나며, 그 과정이 동기와 연결되고 또 결과와 연결되어 하나됨으로써 내 개체가 스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소원하는 개체의 인격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참된 개인의 인격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줄달음쳐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일치된 참사람이 나타나야

참을 중심삼고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여러분 개체에 열매맺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말세가 있기 전에 먼저 개인적인 말세가 있어야 됩니다. 즉, 악을 물리치고 선의 동기와 과정이 하나의 인간과 결부되어 하나의 선의 목적을 이 우주 앞에 들고 나설 수 있는 참된 개인이 결정될 수 있는 한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때를 바라보며 참된 중심, 즉 참다운 한 인간을 찾아나오셨습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외곽적으로 선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일치된 참된 한 사람이 오늘날 이 천지에 나타나야 하는 데, 그는 역사적인 인연을 완전히 상속받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가 된 모든 내용을 상속받고, 역사과정에서 참을 추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를 총합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적 결합체요, 종합적인 실체의 인간으로서 결과까지 연결시킬 책임을 짊어지고 인류를 대표해서 남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를 중심삼고 기반을 닦아 가지고 거기에 하나의 여성을 찾아 세워 가지고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하늘과 땅이 공인할 수 있는 참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일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숱한 수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류도 하늘의 섭리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난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찾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찾아진 가정이 지닌 가치적 내용은 과거의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지금까지 탕감의 인연을 거치면서 복귀시키기 위해서 소모시켜 나온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 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 타락한 세계에서 탕감의 슬픔을 세계적으로 가려 가야 할 경계선에서 찾아진 결과 자체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동기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언제나 찬양의 대상과 기쁨의 대상으로서 떠오를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역사과정에서 하나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전체의 중심으로서 찬양받을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의 가치를 종합하여 대신하고도 남을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갖춘 중심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종적인 입장을 대신하여 새로운 횡적인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횡적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새로운 횡적 세계에는 투쟁이 없는 과정을 거쳐 모순과 상충이 없는 하나의 새로운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 전체의 소원과 역사적인 전체의 소원이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동기와 과정과 결과의 중심

그러면 이러한 자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물론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시작될 것이요, 하나의 장소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작하는 그 내용은 무엇을 중심삼을 것이냐? 참된 동기의 기원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중심이 무엇이고,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남겨진 참된 인연을 상속시킬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며, 참된 역사적 결과를 다짐할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참된 동기도 설정할 수 없는 것이요, 참된 과정도 계승받을 수 없는 것이며, 참된 결과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결국 남아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날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전체를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전체 생명의 동기가 되고, 우리 인생에 있어 행복의 요인도 되고, 그 목적 성사의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중심삼고 서 있는 참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시에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동기를 올바르게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흠모하는 동기를 가져야 되고, 그 생활과정이 하나님의 사랑에 흡수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흠모하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도 자기 개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가 바라볼 수 있고, 전체의 생명의 요인이 되며, 전체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동기의 중심이요, 과정의 중심이요, 결과의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동기가 되고, 과정이 되고, 결과가 되어야만 참이 되는 것입니다.

애국자도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부모로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뼛골 깊이 사무치게 받은 인연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생애의 지침을 가려 가지고 목적을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애국자라도 자기 스스로가 동기가 되어서 애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의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든가 혹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어떠한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것이 동기가 되어서, 생애노정 전체가 그 동기로 말미암은 결과를 찾아 나가게 될 때 애국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심적인 요인을 살펴보게 될 때 모든 것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동기가 수천년 전부터 내려온 민족 정기와 연결되는 것이면 역사적인 동기를 상속받은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이요, 그 시대에 남아 있는 민족 정기와 일치되는 것이면 그 민족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과거의 민족 정기와 현시대의 민족 정기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있으면 미래에는 틀림없이 그를 중심삼고 국가가 새로이 수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들은 역사를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등장해야

이것을 볼 때, 우리가 추구하는 참은 단시일에 찾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교회가 문선생 하나 개체로부터 출발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 인연이 길고 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 이전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꿈꾸던 그 시대에서부터 출발하여 지금까지 흘러나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인연이 이처럼 수천년, 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서 찾아나온 것은 무엇이냐? 하나의 참된 승리적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승리적 교회를 찾아 나왔습니다. 이렇게 바라 나온 우리 교회의 역사적 기원은 멀고 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급해 올라가면 하나님의 내심적 심정의 중심권까지 파급되어 올라가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온 동기를 중심삼고 수많은 성지선열들이 도의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음길을 마다 않고 싸워 나오면서 치열한 투쟁의 과정에도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지녀 나온 역사적인 서글픔과, 역사적인 흠의 그 모든 사연이 교회의 역사에는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가 오늘날 시대적 환경에 등장하게 되었을 때, 그 자체가 역사적 동기에서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 시대의 모든 내용과 처참상 앞에 밀려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가면 커갈수록, 출발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동기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반비례적으로 명확해져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교회는 소수의 무리로써 출발했고, 한민족이라는 제한된 한계권내에서 출발했지만, 여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인 새로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역사적인 교회로 등장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나타난 어떠한 교회들에게도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시대의 주의나 사상 앞에 밀려나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전부 포괄하여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고 새로운 인연을 발발시킬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만 사악한 이 땅 위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선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 나타난 수많은 역사적 공신들이 남긴 업적을 부활시켜 우리 자체내에서 수습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아도 수많은 애국자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남기기 위해서 배후에서 희생한 무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선의 동기나 민족을 형성하고자 했던 선의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전체를 수습하고도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선조들을 대하기에 부끄럽지 않고 전체를 대신하여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우리들 자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그런 실력을 어떻게 발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의 기원으로부터 전체를 총합한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자체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수많은 스승들의 훌륭한 교훈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국민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학박사가 되어서라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의 모든 지식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흡수하여 그 종합적인 가치를 스스로의 생명의 요소로 삼아 여기에 색다른 하나의 새로운 선의 실체로서 등장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선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 작용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선을 위하고 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일생을 허덕이다가 찾지 못하고 자기 생애를 바쳤다면, 그것으로 선이 충당될 것이냐 할 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선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 진실되었다면 비록 그의 생애노정에서 목적한 결과를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노정은 과정에 과정이 연장되어 선이 목적하는 결과의 시대에 연결시키는 하나의 교량 역할이라도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의 실체를 이루지 못하면 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교량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실력이라도 갖추고 그것을 위해 자기 생애를 바치겠다는 사상과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수천년의 역사과정에서 희생과 부정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승리의 한날을 찾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면서 교량 역할로써 희생해 나온 수많은 선지자들의 공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 총합 계승되어 하나의 선의 목적세계로 연결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수천 역사과정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희생하여 온 것을 오늘날 내 일신에서 총합해 가지고 그 총체적인 가치를 어떻게 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섭리역사를 책임진 우리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민의 사명

여기에서 문제는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개인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가정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혹은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개인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서 수많은 가정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고, 수많은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종족이 수많은 종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 되고 수많은 민족, 국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바라보게 될 때 그 민족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민족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민족, 수많은 나라들이 이런 민족을 바라 나왔다고 하며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사상은 이런 이유에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한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의 승리를 표방하기 위해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승리는 물론이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적인 승리를 거두어서 그 승리를 중심삼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보게 될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승리적인 개인, 승리적인 가정, 승리적인 종족, 승리적인 민족, 승리적인 국가를 표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선민권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때에 이 선민의 가치를 드러내느냐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역사적 동기의 중심이 되고, 과정의 중심이 되고, 결과의 중심이 되는 메시아 한 분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 나라를 형성한 목적을 달성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못 해 가지고 역사노정에서 거듭되는 숱한 탕감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이스라엘이 제2이스라엘로, 제2이스라엘이 제3이스라엘로 그 사상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목적 기점을 향하여 발전해 나온 것이 복귀사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3이스라엘임을 표방하고 나가는 우리에게는 역사상 어떠한 국가보다도 세계의 어떠한 무리보다도 새로운 선민사상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참된 길은 유일한 길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힘의 균형을 이루는 중심이 되라

그러면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역사과정의 수많은 개인들이 믿을 수 있는 소망의 실체로 서있느냐? 혹은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가정들이 믿고 소망할 수 있는 실체적 가정이 되어 있느냐? 종족이면 종족으로서 수많은 종족들 앞에 소원의 종족이 되어 있으며, 민족과 국가도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바라보는 소원의 민족과 국가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하나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적인 모든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중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전체와 힘의 대결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끌려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개인, 철저한 가정, 철저한 종족, 철저한 민족, 철저한 국가를 이루어 세계 전체를 움직이고도 남을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중심이야말로 하나님이 동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가지고는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중심은 3시대를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동기와 과정과 결과의 3단계를 한 곳에 집약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여기에 결부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펴 놓으면 세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펴 놓으면 개인의 승리와 가정의 승리, 종족의 승리, 민족의 승리, 국가의 승리, 세계의 승리를 표방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을 종적으로 집약시켜 놓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라는 이 기점 위에 종합되는 것입니다.

참된 인간이 되려면 뜻을 가져야 합니다. 뜻이 없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뜻이 있다고 해도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달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종여일이니, 지성이면 감천이니, 고진감래니 하는 격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참을 추구하는 과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는 증거요, 시종여일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악한 이 세상 가운데 참이라는 중심을 세우기는 실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절대적인 참은 반드시 절대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찾으려면 고(苦)가 진(盡)해야 됩니다. 개인적인 고(苦), 가정적인 고(苦), 종족적인 고(苦), 민족적인 고(苦), 국가적인 고(苦), 세계적인 고(苦)가 진(盡)해야 세계적인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지성이면 감천이다'고 하는 데 지성(至誠)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냐?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성은 죽음을 각오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 지성의 한계가 어느 정도이냐? 지성 중의 최고의 지성이 무엇이냐?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지성을 들인다면 자기 개인의 뜻은 이룰는지 모르지만, 그 지성으로 인해서 세계의 뜻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정성들이는 것이 지성의 한계냐? 그것은 나라를 위한 지성은 될 수 있을는 지 모르지만 그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지성의 한계점이 되는 것은 세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지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를 위해서 지성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는 어떤 목적이 있느냐? 개인 구원의 뜻도 있겠지만,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세계를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에 성현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숭상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숭상치 않았던 성현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현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은 종교의 도주들인데, 그들은 반드시 하늘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즉, 천도를 중심삼고 천정(天情)을 인륜화(人倫化)해서 인도(人道)와 인정(人情)의 도리를 세계적으로 목표로 삼고 인류에게 가르쳤던 분들이 성현입니다. 그러니 성현들은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세계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지성(至誠) 중의 최고의 지성은 무엇이냐? 지금까지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 생애를 바쳐 정성들인 부모들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와 세계를 위해 정성들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 정성을 들이고 희생하는 무리가 있어야 되는 데, 그러한 무리가 어떤 무리냐? 바로 종교를 숭상하는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나긴 역사 과정에 있어서 민족은 망하는 일이 있었지만 종교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목적은 기필코 성사되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무리가 이 땅 위에 있어야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무리들의 편이 되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하나님을 통하여 기필코 세계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그런 날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중심된 종교가 있다면, 끝날에는 그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가 그 권내에 포괄되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세의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이제까지 말한 것을 하나로 집약하자면 하나님의 사랑과 뜻에 대한 것이 됩니다. 그 사랑과 그 뜻을 중심삼고 정성들이며 사는 사람은 개인을 위해 살고 있지만,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그 뜻과 그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그 가정을 위해서 살지만 세계를 위해서 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종족, 민족, 국가가 있다면 그들 또한 세계를 위해 사는 종족, 민족, 국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 전부가 사상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뜻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면 이 민족은 틀림없이 그 뜻과 더불어 사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몽땅 들게 되면 여러분이 떨어지지 않고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일체화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뜻을 사랑하고 뜻과 더불어 생명의 동기를 맺고 있고, 과정적 생활을 하고 있고, 결과적 생애까지 마무리지을 수 있는 여러분의 입장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다고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참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참일진대 여러분은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한때를 중심삼고 반드시 우리를 시험할 것입니다. 나 개인이 뜻을 얼마나 사랑하고, 나 자신이 뜻을 얼마나 위하는 데 있어 인류를 위하여 얼마나 십자가를 질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내 몸을 얼마나 희생할 수 있겠느냐 하는 시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면 됐다는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이러한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고(苦)와 대결해야 합니다. 고(苦)가 진(盡)해 가는 과정에서 그 고(苦)를 극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고가 진한 뒤에 감(甘)을 인계받을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그러려면 가정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종족이 그러려면 종족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민족이 그러려면 민족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국가가 그러려면 국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수난의 민족사를 짊어지고 있고 격동하는 세계의 풍파를 홀로 지는 주체적인 입장에 있지만, 나는 이것을 서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극복하여야 할 수난의 과정이라면 그러한 천지 운세가 우리 앞에 다가오거든 그 환경은 우리가 갈 길 앞에, 민족과 국가가 갈길 앞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기회요, 하나의 정상을 향하여 달리는 길에 있어서 가까운 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민족이 잘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도리어 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참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부정적인 과정을 거쳐 그 경계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스럽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고 모든 것이 남보다 못한 불쌍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해서 외로와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희망을 가지고 그 부정적인 환경을 밟고 넘어서게 될 때는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길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국가적인 시련기를 맞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이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시련 도상에 서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선도하면서 이 민족의 갈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민족은 그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의 세계 사조를 바라보면서 우리에게는 그것을 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시대적인 모든 것을 총합해 가지고 끝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산을 보더라도 높은 사는 그 산맥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먼 곳에서부터 그 산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제주도를 가 보세요. 마치 제주도 섬 전체가 한라산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평지까지도 전부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그 하나의 산을 표준으로 하여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각도는 어디 가든지 맞아떨어지게 되며 그것은 그 산에 속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정상이라고 하는 하나의 표준을 향해 나가는 데있어서 각자가 서로 먼 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정상과 각도가 들어맞을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일시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별의별 수모를 다 당하고 별의별 환경에 몰려서 반대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변명할 새가 없다 이겁니다. 그것보다도 우리의 갈 길이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과정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상을 향하여 지금 언덕길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가 세계적 사조를 중심삼고 민족적인 한의 고비를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기간입니다. 축복가정이 출발한지 만 12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민족적인 한을 지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 가정적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책임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사는 삶과 나라와 세계를 위하는 삶

이 기간에 우리는 세계의 모든 외적인 정세와 일치화해서 뒤넘이치는 역사적 과정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관점에서 보여진 결과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새로이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개인을 존중시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다가는 민족의 역적이 되어 쓰러지기 쉽고, 세계의 배반자가 되어 쓰러지기 쉬운 것입니다. 또, 자신의 가정을 중심삼고 안락을 꿈꿔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족과 세계 앞에, 혹은 천륜 앞에 배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원수요, 세계의 원수요, 민족의 원수가 될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선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개척자입니다. 이러한 개척자로서 내디딘 발걸음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 과정도 거룩해야 되겠고 그 결과도 거룩해야 되겠습니다. 최후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의 씨가 되어 거기에서 하나의 새싹이 돋아날 때는 산등성이 바위틈에 선 나무가 아니라 옥토에서 자라난 나무가 되어 가지고, 자기가 소망하였던 결실을 자기 일대에서 거두지 못하면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거두겠다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미래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무리는 무서운 무리입니다. 만약 그러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 민족은 미래의 21세기, 혹은 30세기, 50세기에는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필요한 사상을 지니고 수많은 민족 앞에 추앙받을 수 있는 역사적 전통을 지닌 사람이 몇 대(代)의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들을 통하여 민족은 다시 건설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숙한 소망을 품고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의 승리보다 미래의 승리를 소망하고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사람들이 참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운명길에 서게 되었을 때, 미래의 천국과 미래의 행복된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것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죽음길을 가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그 시대의 환경으로 볼 때는 민족의 반역자였으며, 기적을 바랐던 시대의 광란자로서 놀림을 받으며 서글프게 사라져 간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품었던 뜻은 세상의 그 누구도 품지 못한 뜻이었기 때문에 그 뜻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움직여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위한 생활을 한다면 끝이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위한 생활을 한다면 끝이 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 표준도 그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신념으로 생애를 바쳐 오늘 이 지점까지 나오게 된 것도 하나님이 협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협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협조해 주셨습니다. 어려운 고빗길에서나 외로운 길목에서 언제나 권고해 주신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날 이 길에 남아져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을 알고 그러한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과정을 연결시켜 목적지까지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모습이 어떨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동기는 엄청난 것이요 심각한 것입니다. 동기는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마치 여러분이 잠을 잘 때도 여러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쉴 새 없이 운동하는 심장과 같이 동기는 쉴 새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밤과 낮이 없으십니다. 밤과 낮을 분별하여 당신의 일을 가려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쉴래야 쉴 수 없는 동기적 입장이요, 주체적 입장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시작된 것을 인계받아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후손들 앞에 비판받는 선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환경적으로 후손들 앞에 참소받는 비굴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몰랐으면 모르지만 가야 할 대로(大路)를 알고 또 그 길을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알았으면 거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부딪쳐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길을 닦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겠어요? 또 그 길이 이미 닦아져 있다면 그 길을 바로 가야 됩니다. 그 길은 벌써 닦아져 있습니다. 닦여진 그 길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이 길을 못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참의 완성

이제 우리는 이런 가운데서 11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를 하고이 민족과 세계를 위해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등에 지고 고(苦)가 진(盡)하여 뼛골이 녹아나는 자리까지 책임완수를 위하여 극복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였을 때 접목은 자기의 생명 요소가 진(盡)하는 경계선을 거쳐서 새로운 진액을 인계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국가면 국가도 새로운 이상을 중심삼고 접붙여야 할 운명에 있고, 여러분 개인들도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계선을 넘어야 합니다. 즉, 자기 부정의 과정을 거치는 데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기원이 모색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엮어온 전통적인 실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제시해 놓고 그것을 중심삼고 1970년도를 싸워 나왔습니다. 그 동안 아시아 승공대회라든가, 일본에서 열렸던 와클대회(WACL:세계반공대회)라든가, 777쌍 국제합동결혼식이라든가, 여러가지 국제적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또 이번 11월에도 행사가 있고, 가중된 행사를 치러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1970년대의 모든 계획에 대한 기반을 이 1970년도에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해에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의도에 세계 선교본부를 건립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달려가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내년 2월 말까지 4억 원 이상의 기금을 맨손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해 나온 것은 돈이 많아서 한 것이 아닙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하시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체가 되어 나가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도 남는 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사람이 되어서 참된 나라를 이룩하고 참된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참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역사가 깁니다. 간단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백년 동안을 참아서 참을 계승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수천년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참을 상속받기 위해 수천년 수난의 길을 참고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수만년 역사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를 통해서 이 민족 앞에 인연지어 가지고, 우리가 선두에 서기를 바라는 뜻 앞에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뒤로 돌아갈 것이냐, 앞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옆으로 갈것이냐? 길은 많습니다. 여기에서 뒤로 돌아서면 반드시 함정에 빠질 것이요, 옆으로 가면 반드시 도적에게 침범받을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갈래야 갈 길이 없습니다. 갈 길이 있었다면 내가 벌써 갔을 것입니다. 다른 길이 있으면 누가 욕을 먹으면서 이 고생을 하겠습니까? 이 길이 아니면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가다가도 막히는 거예요. 어차피 타고난 팔자예요. 통일의 팔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면 전부 다 팔자가 세게 생겼어요. 힘들어 못 가겠다고 하면 그 시시한 팔자를 누구한테 넘겨 주겠어요. 깨끗이 다 벗겨 버려야 합니다. 팔자의 껍데기를 다 벗겨 가지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으면 다시 살을 빚어 만들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다 벗겨질 때까지는 남아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변치 않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그 나라와 그 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여러분들은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고 가실 때는 개인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가시게 되면 가정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종족을 붙들고 가시게 되면 종족적 사명을 해야 되는 우리 교회 여러분들이 모두 달려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이 하나님 앞에 들려진다면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수천 수만의 무리가 여러분의 목에 달려들어 목을 잡아 튼다면 여러분의 목이 부러질 것이냐, 아니면 위에서 당기는 힘이 세어서 달려 올라갈 것이냐? 달려 올라가면 당기는 힘도 세야 되고 목도 튼튼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절대 빚을 안 집니다. 그것만은 틀림없어요. 내가 여러분들을 위하면 위했지 빚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빚지는 지도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의 운명은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빚지는 것을 절대 싫어합니다. 알면 알수록 빚을 갚아야 될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뜻을 알면 그 빚을 갚아야 됩니다. 다 같이 뜻을 위한다 할지라도 뿌리보다는 줄기가, 줄기보다는 가지가, 가지보다는 잎이 위하는 정도가 더 적은 것입니다.

참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또한 참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참은 세계적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영원해야 됩니다.

그러면 무슨 뜻이 세계적이겠느냐?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뜻이 세계적일 수 있습니까? 만일 그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의 뜻이라고 한다면, 나보다 잘났다는 사람이 있다면 '네 뜻이 그러냐? 내 뜻은 이렇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그 뜻은 어느 성인의 뜻도 아닙니다. 성인의 뜻도 서양 성인의 뜻과 동양 성인의 뜻이 다릅니다. 민족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전통적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도 세계적인 뜻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종파적인 뜻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적인 뜻으로 받들 수 있는 뜻의 중심이 땅에 있겠어요? 땅에는 없습니다. 땅의 일은 의식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있는 사람의 뜻은 따르기를 싫어합니다. 사람은 보다 높은 절대자의 뜻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세계적인 뜻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1)"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이스라엘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예수님 자신이 원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입니다. 참의 중심되는 절대자가 원하는 나라입니다. 그럼 그 뜻은 무슨 뜻입니까?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한 뜻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 뜻은 절대적인 뜻이요, 참된 뜻인데, 그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데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어떠한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겠어요? 친구의 자리에서 관계맺고 싶어하시겠어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관계맺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 가까운 자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사랑하라면 아버지와 아들딸의 자리에서 사랑해야지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 자리가 아니면 전부 다 가짜 사랑입니다.

사랑 중에서 제일 필요하고 제일 가치있는 사랑은 이런 입장에서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부자(父子)이상의 관계는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 부자의 사랑으로 맺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양자의 자리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요? 친구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어요? 아들의 자리, 아내의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골수입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니 하는 것이 그 관계를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의 뜻이 곧 내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적인 뜻입니다. 그 뜻은 대한민국만을 구하기 위한 뜻이 아닙니다. 천하를 구하기 위한 뜻이기에 그 뜻을 중심삼고 천하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려면

세계를 사랑하는 뜻, 세계를 위하는 뜻,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야 됩니다. 생활 전체를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의 주의는 무슨 주의냐? 세계주의요, 천주주의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밖에 할 줄 모르고, 일을 하더라도 그 일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또, 그렇게 사는 가정은 참된 가정이요, 그렇게 사는 가정이 모여 이루어진 종족은 참된 종족입니다. 또 그것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 사는 나라는 참된 나라이며,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세계는 참된 세계, 즉 천국인 것입니다.

참은 세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절대적인 것이며, 역사적인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종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은 역사적인 열매요, 이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를 향한 출발이 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부모도 참부모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진 인류의 부모입니다. 참된 가정이란 그 참부모의 뜻을 상속받은 가정입니다. 참된 종족 역시 참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진 종족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고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된 사람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죽더라도 세계는 남아져야 합니다.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남아져야 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남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더라도 그것들을 남겨 줘야 됩니다. 그것을 남기기 위해서 자기 생애를 희생하는 사람은 효자가 되는 것이요, 충신이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 효자, 하루 충신은 필요없습니다. 하루 효자는 아무리 악한 강도라도 될 수 있는 것이요, 하루 충신 역시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장 회개하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태어날 때부터 효자, 충신으로 태어나서 효자와 충신으로 살다가 효자와 충신으로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효자를 바라겠어요? 여기에 이제 새로 들어온 사람은 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과 선생님을 비교하게 되면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하나님 앞에 더 효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이런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효자의 도리를 다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면 갈수록 부족함을 느낍니다. 효자의 도리, 충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효자나 충신으로 끝입니다. 내가 효자인데, 내가 충신인데 왜 몰라주느냐고 항거하는 사람은 그 고개에서 후퇴하는 사람입니다. 가면 갈수록 효의 도리가 남아 있고, 가면 갈수록 충의 도리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효를 다하는 것을 자기의 생활 철학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라야 하늘의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몇 해 동안이나 뜻을 위해 충성했나요? 뜻을 위해 가기는 다 갈 거야? 다 가겠어요? 어디 뜻을 위해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이야 잘 들지. 내려요. 여러분들은 몇 해 동안이나 뜻 앞에 충성하면서 갈 거예요? '몇 해 동안 가긴 뭐 몇 해 동안 가. 7년 동안만 가면 됐지!' 그럽니까? 그러면서 '하나님, 나에게 복 주소' 한다면 효자 될 수 있겠어요?

충신과 효자의 길에도 급수가 있고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길게 넓게 깊게 높게 생각하면서 가야 됩니다. 긴 가운데 나 하나를 늘여 놓으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요, 넓은 가운데 나를 펼쳐 놓으면 나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높은 곳까지 나를 세워 놓으면 나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종국에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는 곳에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왜 부모의 품을 그리워 하느냐?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살아 주기 때문이요, 거기에는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하가 요동해도 우리는 쉴 수 없다

대한민국이 흥할 수 있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주권자가 위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위정자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의 길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면 나에게 와서 항의하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다 나더러 망해 없어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한국의 한 사나이로 태어났지만, 여기에서 명령만 내리면 외국에서도 춤추라면 춤도 추고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세계의 그 누구도 나를 못 따라옵니다. 왜 그러냐? 내가 사기성이 있고 수단이 좋아서, 사람들을 앞에서 조종하고 뒤에서 조종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없이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자연히 끌린다는 것입니다. 하라고 했는 데 안 하면 자기들 마음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전체 동원하라 할 때, 동원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실은 나도 동원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양장으로 쭉 빼입고 얼굴에 분 바르고 매끈하게 차려 입기 좋아하는 이쁘장한 아가씨들이 지방에 나가 활동하게 되면 검게 그을리는데 그것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좋아하지 않는 얼굴을 보는 나도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동원하지 않게 되면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길로 가야되겠어요, 흥하는 길로 가야 되겠어요? 흥하는 길로 가려니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울며 겨자 먹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이 망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되겠어요.

시종여일(始終如一)이라는 말이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좋은 말입니다」 좋은 말인데 그러기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면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은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좋은 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우냐? 죽기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그걸 넘어선 사람은 그 죽음을 이긴 단맛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걸 알고 출발했으니 시종여일해야 되겠습니다. 감옥에 가더라도, 대한민국 전체가 반대하고 세상 천하가 요동하더라도 우리는 쉴 수 없습니다. 반대한다고 꺽일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무리는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뭐 누가 우리에게 뇌물을 쓰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려면 담배를 사준다든가 점심을 사준다든가 해야 일을 제대로 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장에서도 보면 사회 사람들이 와서 우리들도 그런 줄 알고 와 가지고 일을 부탁하고 거래하면서 점심이나 하라고 돈을 주면 우리 교회 사람들은 '이거 뭐요?'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같지 않고 인사를 모른다는 거예요. 뇌물이 우리 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삶아 놓은 밤같이 어리숙해서 마음대로 집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못 먹었다가 설사가 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겁니다. (웃음) 이게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요즈음도 보면 우리 교회에 대해서 뭐가 어떻고 어떻고 소문이 분분하더구만. 그렇다고 여기에 동요될 것 없습니다. 소문이 나려면 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니까 신문기자들이 통일교회는 언론계를 다룰 줄 모른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몰라도 좋다는 겁니다. 그걸 상관하는 것보다 갈 길이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는 관여하지 말고 우리의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또 우리가 걷어붙이고 달려가 보자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열 대 여섯살 된 소녀들도 혼자 전도 나가서 일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주머니들을 중심으로 전도를 내보낼 것입니다. 한 팀에 한 열 명씩 편성해서 온 동네를 설치며 전도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도 발전입니다. 앞으로는 그 열 명의 전도대원이 백 명으로 늘어나서 그들이 한 부락에 가서 전도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안 믿으려면 죽든가 다른 데로 이사가든가 해야 할 겁니다. (웃음)

만일 한국 사람들이 전도해서 안 믿으면 서양 사람들이 와서 할 것이고, 일본 사람들이 와서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그 꼴이 보기 싫거든 통일교회를 믿든가 도망을 가든가 죽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그렇게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지금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단합하게 되면 반석도 뚫을 수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심지에 불을 붙여 놓으면 그것이 부지직부지직 하면서 타 들어갈 때는 별것 아닌 것 같고 헛불같이 보이지만 뇌관에 불이 붙어 폭발될 때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강하냐, 네가 강하냐, 그때는 태산도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각오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참은 영원한 것, 이 뜻은 만민이 추구해야 할 뜻

오늘 11월 초하루! 기분 좋은 날이구만. 이제 70년도도 한 60일 남았는데, 70년도에는 우리가 70년대에 필요한 전 기반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의도에 만 평 정도의 땅을 사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한 평씩만 사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땅이 여의도에서 제일 클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돈도 악착같이 벌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통일교회 사람들 전부 빌딩을 지어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노력하면 될 게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이 1세기 동안 노력할 것을 우리들은 1세기 동안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게 되면 그들보다 두 배는 잘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공장은 밤에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피곤하겠지만 한번 해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나라도 살리고 세계 인류도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참은 영원한 것이며, 참의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 뜻은 만민이 추구해야 할 뜻입니다. 이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아야만 참이 성립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이것을 생활 철학으로 삼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도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망했어요? 나는 맨손으로 시작했습니다. 수억 원이 들어가는 일을 한다 해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할 수 없으면 세계를 움직여서라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쫓기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계적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단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칙을 바로 알고 실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원칙대로 하면 틀림없이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원칙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이제 축복가정 아주머니들은 수택리 수련소에서 수련을 받고 12월 초하루부터 나가야 됩니다. 알고 있지요? 한 1, 200명을 내보내 가지고 선생님이 그 활동을 살펴볼 거예요. 활동을 안 하게 되면 선생님이 기합을 주더라도 항의할 사람이 없을 거예요. 선생님은 이미 그 이상의 일을 하고서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는 사람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고 이 나라 이 민족을 향하여 힘차게 나가야 되겠습니다. 전진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높고 귀하신 당신의 뜻 앞에 저희들은 역사적인 빚을 짊어진 후손이기 때문에 이 빚을 갚고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시대적인 죄악을 탕감해야 할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흰옷에 핏자국을 남기면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일의 소망 앞에 변함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참된 사람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참된 가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참된 교회, 참된 나라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참된 세계를 이루어야겠사옵니다. 이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모든 것이 참에 대치되는 사악한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사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참의 정열을 가지고 깨끗하고 힘 있는 그 모습을 변함없이 드러낼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지켜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부터 계획하는 모든 뜻은 당신이 높이심을 받고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위하여 저희들이 싸우고 희생할 각오로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충성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런 자녀들 위에 당신의 가호가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와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도 당신의 넓고 깊으신 사랑으로 품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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