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서 수고한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이게 된 동기도 그렇겠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입장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한 나라가 지금까지 주장해 오던 국민 사상을 중심삼고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상의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새로운 섭리에 의하여 모인 무리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언제나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나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나 자체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배경으로 보면 지금까지 자기를 위주로 한 생애노정을 거쳐간 개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 개체는 어디까지나 섭리의 뜻이 첨부되어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즉, 역사시대를 거쳐 온 하나님의 섭리의 내용이 첨부된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비록 서 있는 입장은 개인의 입장이지만 그 기반은 역사 전체를 움직이는 섭리의 뜻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20세 전후한 일개 청소년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명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입장에 선 우리는 이 시대의 사명만을 중심삼은 존재가 아니라, 금후에 맞이할 시대에 남겨질 섭리적인 내용에 어떠한 결정을 짓기 위한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왼쪽으로 가나 오른쪽으로 가나, 혹은 앞쪽으로 가나 뒤쪽으로 가나 어디로 가나 사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인 공적인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섭리적인 내용 전체를 수습하고 그 방향을 새로이 제시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어느 시대를 대표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전통의 기원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사명 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우리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시대를 거쳐서 가야 할 목적점은 어디일 것인가? 우리는 종교라는 울타리를 중심삼거나 어떠한 한 교파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세계적인 사상을 넘어서서 최후에 그 사상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하나의 세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이 우리 통일교회에 있는 것이요, 우리가 활동하는 이 무대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자체는 이 제한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요, 어느 학교면 학교에 소속된 한 사람이요, 어느 지방 교회면 지방 교회 교인의 한 사람이지만 그 한계권내에만 속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한계권을 넘은 자리에서 그 한계권을 수습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개인이어야 됩니다. 그러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라고 하면 물론 통일교회 전체의 책임도 있겠고 개개인의 책임도 있겠지만, 그 책임부서는 여러 가지의 다양성을 지니고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지금 대학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민족을 대표하여 일선에 나가 제물적인 입장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 각양 각색의 방향이 갖추어져 있을 것이지만 갖추어져 있는 그 방향 자체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 방향 자체를 어떻게 뜻에 일원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책임을 여러분이 해야 됩니다. 이 사명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환경이 변한다 하더라도 그 변하는 환경에 흡수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환경을 흡수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 찾아 나오던 섭리의 뜻 앞에 부름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서 어떠한 다양한 방향을 취하고 있다 할지 라도 거기에 흡수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로막고 거기에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하여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스로의 입장을 공고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다짐하여야 할 중대한 우리의 책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의 입장은 전체와 동떨어진 입장이어서는 안 되고 언제나 전체와 관계를 맺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종횡관계에 있어서나 전후관계에 있어서나 반드시 상응 상조할 수 있는 관계를 갖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교회면 교회 자체의 현재의 기반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교회로서만 발전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회의 여러 분야와 접할 수 있는 내재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들을 포섭하여 그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게 사회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교회 자체를 위하여 움직이는 데 있어서도 다양한 방향의 인원을 포섭해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교회내에서도 여러분 개개인들이 다양한 입장에 처해 있지만 목적관만은 틀림없는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목적에 접근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여기의 이 모임이 성심회라고 했지요? 이제 1970년대를 향하여 넘어가고 있는 데,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시점이 다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 새로이 발족되는 성심회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어떠한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할 것인가?
지금까지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교회가 추구해 나오던 전통적인 방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 방향과 여러분이 앞으로 취해 나갈 방향이 다르다 하더라도 간접적인 방향일 뿐 목적으로 볼 때는 같은 방향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직선적으로 가야 하지만 보다 전체적으로 뜻의 분야를 넓히기 위해 횡적으로 서 가지고 여러 각도의 방향을 거쳐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향과 이런 거리를 거치는 과정에서는 교회와 관계가 멀어진 느낌을 가질는지 모르지만 이 과정을 거쳐와 가지고는 반드시 그 전통적인 방향에 규합되고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다짐하지 않고는 여러분이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즉, 자기 동지들은 일선에 나가 투쟁하고 있는데 자기는 학창생활을 한다는 데서 같은 식구로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그 대학을 우리 활동의 연장무대로 삼아야 됩니다. 지방에 나가 활동하는 사람이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활동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발전하고 전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목표는 무엇인가? 그 목표는 전체를 규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활동 목적이 서울대면 서울대, 고려대면 고려대의 어느한 대학교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목적은 대학권을 넘어서 대한민국에 귀착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도 역시 통일교회의 발전만을 위해서 수고하기보다도 대한민국을 표준으로 해서 수고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을 부식(扶植)시키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공고화시키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교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대사회 문제가 첨부되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현 시대의 많은 국가들을 두고 볼 때, 주권자들이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전통을 중심삼은 자기 나름의 국가관을 가지고 대사회적인 기반을 닦았다 하더라도, 그 기반을 중심삼고는 대세계적인 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계 여러 사조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내적인 전통사상을 중심삼은 기반을 절대시할 수 없는 시점에 있는 우리는 세계적인 사조와 부합할 수 있는 대외적인 기반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대한민국만을 한계로 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넘어서 보다 차원높은 세계를 목표로 하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심중에 기억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지방에서 활동 요원으로서 피땀을 흘리며 일한다 하더라도 나는 단지 그 지방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차원 높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전체가 이런 고차적인 목적의 귀일점을 향하여 일을 진행시켜 나가게 되면, 그것이 변함이 없는 한 나름대로 그 분야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1970년대를 대하는 통일교회가 요구하는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과거에는 교회를 위주로 한 일방적인 활동을 해 나왔지만, 지금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 행정부가 갖고 있는 그 부서 이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적인 무대까지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때,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은 점점 더 협소한 무대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커지는 무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일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지금까지 주축으로서 혹은 수직으로 내려오는 전통적 사상을 횡적으로 확대시켜 모든 부서에 연결시켜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점 더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심을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이 교회 조직입니다. 이미 떠난 길이 각각 다른 것을 교회가 어떻게 수습하여 하나의 목적점에 규합시키고 사상적인 방향의 일치점을 찾게 하느냐, 어떻게 해서 수많은 교인들이나 방향이 다른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변치 않을 수 있는 사상적인 기반을 닦아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전통을 세우라고 강조해 나왔던 것입니다. 전통을 세우라…. 그 전통은 교회만의 전통이 아닙니다. 교회가 세운 그 전통은 사회 전체의 전통이 되어야 하고, 그 사회의 전통은 국가의 전통이 되어야 하며, 그 국가의 전통은 세계의 전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전통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전통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전통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으로 세워져야만이 금후에 새로운 전통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전통을 어떻게 만드느냐? 그 전통은 어떠한 시련과 고통도 극복할 수 있는 전통이라야 됩니다. 또, 그 전통은 국가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끌고 가는 것이어야 되겠고, 세계에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끌고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무엇이 주체가 되어야 되느냐? 이 전통적 섭리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기반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를 한 방향으로 수습할 수 있고, 세계를 한 방향으로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전통은 확고부동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전통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전원이 정신적인 면에서나 육체적인 면에서 강력히 다짐할 수 있는 사상이 밑받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전통을 세워야 할 여러분들은 사회를 중심삼고 자기의 출세를 바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민족을 위해서 거름이 되고, 세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각오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희생해야 되느냐? 희생하는 데도 여러 층계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 가정으로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 종족·민족·국가로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 세계로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자리에서 희생을 해야 되느냐?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든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희생이 전통적 기반 위에 서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희생을 기반으로 해야 됩니다. 또, 국가적인 희생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희생의 기반이 있어야 되고, 민족적인 희생은 종족적인 희생의 기반이, 종족적인 희생은 가정적인 희생의 기반이, 가정적인 희생은 개인적인 희생의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의 전통적인 기반을 갖지 않고는 아무리 세계적인 전통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국가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전통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국가적인 전통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전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민족을 중심삼고 전통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특정한 종족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전통이 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전통을 종족을 위한 전통으로 내세운다 하더라도 가정적인 전통의 내용을 갖추지 않고서는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전통의 내용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세워야 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는 후대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사상, 세계적인 뜻과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뜻과 더불어 살고, 뜻과 더불어 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함은 물론 가정적인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또한 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수난의 길도 극복해야 됩니다. 그런 수난의 길을 자기가 응당히 극복해야 할 의무로 알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세계사적인 결의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한 희생의 발판이 없이는 전통의 기반은 닦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네 욕망이 무엇이냐, 네 희망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누구나 세계를 제패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누구나 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 한꺼번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냐?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한 나라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나라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나라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국민의 지지는 대번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의 종족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종족의 지지를 받는데도 대번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에서 지지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그 가정의 식구 전체가 바라볼 수 있는 중심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볼 때에,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개인이 희생하는 데는 그냥 개인적으로 희생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세계관을 중심삼고 희생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섭리역사가 찾아 나오던 그 세계관, 아직까지 그 세계관을 찾지 못했지만 그 세계관을 찾기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 개인은 이 역사시대의 대표자라는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과 같은 20대를 중심삼고 역사를 자른다면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책임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선지자들이 거쳐 갔지만 그 선지자들은 여러분들을 소망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망의 결실체인 여러분들은 오늘날 대한민국만을 위한 소망의 존재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하는 소망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각을 하는 개인이 되어 역사적인 소망의 실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실체가 아니라 세계적인 실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망의 존재인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국한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사, 즉 인류를 구원 하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 가운데서도 최고의 역사인 주류의 역사 가운데 세계적인 총아로 등장한다는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6천년의 열매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그것은 민족적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적도 아닙니다. 세계적입니다. 그러나 세계적보다도 차원이 높은 천주적인 섭리의 내용을 가진 입장에서 역사를 인계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인 소망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서 전통적 기반을 세워야만이 세계를 위해서 전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면 소망의 존재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야 합니다. 생애를 걸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을 횡적으로 보게 되면 가정에서부터 세계까지 전부다 연결되어 원을 그리게 됩니다. 원을 그리려면 중심이 있어야 되는데 그 중심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더 강해야 됩니다. 힘의 원칙에 의하면 구심력과 원심력을 비교해 볼 때 원심력이 강하면 중심이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끌려가지 않고 정지상태가 되려면 중심이 강해야 합니다. 강하면 안 끌려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세계는 나를 잡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기에 끌려가기보다 도리어 세계를 자기 앞으로 잡아당겨서 규합시킬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금후부터 나는 일생 동안 세계를 위해서 산다' 하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개척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내 일체의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출발하고 그 과정을 거쳐 그것으로 끝낸다!' 하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전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 주느냐? 이것은 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갈 것이냐? '내가 가는 데 있어서 나는 이런 저런 것을 다 그만 두고 세계적인 이 기반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래도 되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 기반의 전통은 누가 닦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깨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출발기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까지 철학이 인간의 모든 근본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생애의 전통적 기원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음보다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합니다. 생명에 대한 욕구보다 강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어야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삶의 욕망이 가장 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의 기원을 확실히 해 놓지 않고는 생의 전통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생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거기에 자각된 세계관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출발했느냐?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출발되어 6천년 역사를 지내왔지만, 오늘 이 순간에도 그 동기는 인간의 생명력을 지배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역사를 지배하지 역사가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어야 역사적인 소망의 결실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적인 희망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여 역사에 소모되고, 역사에 지배되고, 역사에 흡수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역사적인 열매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과 같은 전통이 세워져야 합니다. 핵에는 크나큰 힘이 있습니다. 원자핵, 그 핵 자체는 가볍지 않은 것입니다. 그 핵에는 보다 강력한 주체적인 힘, 상대적인 모든 존재들을 흡수시킬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흡수할 뿐만 아니라 소화시킬 수 있고 추진시킬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핵은 존속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그러한 강력한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그 전통은 여러분이 그리려고 하는 그러한 전통이 아닙니다. 역사와 더불어 자각하고, 현 시대와 더불어 새로이 결의하고, 미래에 대하여 새로운 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러한 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신을 강력히 다져야 됩니다. 강력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강력히 밀어대야 되는 것입니다. 큰 자동차 공장 같은 곳에 가 보면 부속품을 만들 때, 그 요구하는 철형에 철판을 놓고 수천 톤짜리 프레스(press)로 눌러 가지고 요구하는 모양을 따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와 같은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다져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에는 통일교회의 전통적인 사상을 세워 나가자 것입니다. 이 전통을 세우지 않고는 발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허풍선이와 같은 것입니다. 씨가 없는 열매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을 강조해 나온 것입니다. 그 전통은 역사적인 전통이기 때문에 어떠한 시대가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전통이 아닙니다.
그러면 역사시대를 지배할 수 있는 그 전통의 핵심은 무엇이냐? 그것은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아니요, 지금의 세계도 아닙니다. 앞으로 올 나라요, 앞으로 올 세계입니다. 이 앞으로 올 나라와 세계는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하겠느냐? 나로 말미암아, 우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에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싸우게 되면 약한 자는 강한자 앞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보한 그 약한 자는 강자의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요소가 되어 강자에게 흡수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떠한 나라든지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문화의 발전사나 종교의 발전사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고차적인 종교는 저급한 종교를 흡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우열을 겨루다가 실력이 부족하여 손을 들게 되면 상대에게 흡수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그러한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지금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배후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약자와 강자를 판가리하는 결투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자 하나가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싸움에서 뜻에 기여하는 기반 위에 선 사람을 이기게 하기 위해 역사하시고, 사탄은 악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이기게 하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 없는 작전을 통하여 참된 입장에서 나가시지만, 사탄은 일시적으로 허점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을 참인 것같이 위장전술을 써서 나갑니다. 그러므로 거짓은 그 참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내에서 반대되는 것이 나와서 그 자체를 소화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다른 체제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체제를 중심삼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때린 사람은 반드시 맞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악이 선을 쳐서 이겼다 하더라도 그 악은 반드시 자기 자체내에서 맞아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급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3대만에는 새로운 각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원리적 견해입니다.
공산세계를 두고 보면, 세계적 공산권에서 국가적 공산권으로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공산주의가 중국이면 중국을 중심삼고 우파 공산주의와 좌파 공산주의로 갈라지게 되면 이 세계에 공산주의는 형태만 남을 뿐이지 있으나마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것을 흡수할 수 있는 사상체계만 나오게 되면 공산주의를 대번에 흡수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력한 핵심적인 전통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1960년대의 통일교회보다 강력하게 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남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면서 전통을 세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전통이 될 수 없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집으로 말하면 지반을 다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확고부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층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에 파손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강력한 전통을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1970년대에 이 전통의 기반을 세워서 새로운 각도에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도 후반기부터 이 준비를 해 나왔는데, 그것이 우리 교회를 중심삼은 초교파운동과 승공활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어느 곳을 가든지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늘 땅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주인적인 입장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입장은 역사가 보장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를 거쳐 온 인류 역사가 보장할 수 있고, 또 현시대가 보장할 수 있고, 미래가 보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 시대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공고한 기반 위에 선 자체가 되어야만 비로소 통일의 역군으로서 하늘 앞에 부름받은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아가씨들 이나 총각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그러면 희생하는 데는 어떤 무엇을 위해 희생하겠느냐? 누구를 막론하고 고차적인 것을 위해 희생하고 싶고 나라에 충성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에 충성하는 충신은 대번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정에서부터, 개인의 심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체의 인격심성과 그 가정의 교육을 중심한 가정생활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회활동을 거쳐 그 국가의 국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서야지, 그런 기반이 없으면 간신 모리배밖에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책임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책임적 기반을 어디에 두느냐? 여러분 자신이 출세하는 데 두느냐?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무대를 갖고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앞으로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를 이용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절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이용을 당하면 당했지 통일교회는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그 기반을 어디에 두느냐? 여러분 개인에게 두느냐? 개인을 중심삼은 종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가정에 두느냐? 어느 가정을 중심삼고 나온 종교라면, 그 가정이 망할 때는 그 종교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기반을 종족에 두더라도 그 종족이 망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민족에 두더라도 그 민족이 망할 때는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이 세계가 하늘 앞에 보장받을 수 없는 세계인 줄알고, 국가가 하늘 앞에 보장받을 수 없는 국가인 줄 알고, 민족 혹은 사회 전체가 하늘 앞에 보장 받을 수 없는 민족이고 사회인 것을 알게 될때에는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망할 이 세계적인 권내에 기반을 둔다면 그것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반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기반을 둔다면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면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기반을 두더라도 공산주의가 망하게 되면 같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을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망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를 지배하고 그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와 일치된 입장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사상의 표준으로 세워 나오는 천주주의 사상은 누구나가 추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목적이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그 사회적 여건이 개인이 출세할 수 없는 여건이 될 때에는 그 사후에서 투쟁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국가의 복리를 가로막는 사람이요, 개인의 복리를 위해서 국가의 공익을 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애의 전통적 기반, 생활의 전통적 기반, 소망의 전통적 기반을 어디에 둘 것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젊은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사상을 가지고 있는 남자나 여자는 믿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대를 만나려고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시시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날아다니는 파리만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파리는 냄새라도 풍기며 다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무슨 귀신이 되겠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의 생애를 줄곧 싸워 나오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를 보고야 죽는다는 신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단축시켜야 한다는 생애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시간이라도 허비하게 되면 후회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지치고 어떻고 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직까지 지치지 않았습니다. 왔다갔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은 입장에 섰을 때, 그 뜻의 한계점이 어디냐?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냐? 아닙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한 것이냐? 아닙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종족이나,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는 세계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로는 세계화를 추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세계화 운동,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천국의 이념을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실천하고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만 경험해도 그 이상의 보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고, 깨져 나갈것 같은데 깨져 나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또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를 망치려고 하더라도 절대 망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끝장이 날것 같은데도 끝이 아니고, 망할 것 같은데도 버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혼자 가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세계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 역사의 주인공과 더불어 그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자체임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내 개체는 역사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생애는 일생의 노정이요, 생활은 하루의 노정입니다. 그 생애에 대한 철두철미한 사상과, 생활적인 면에서 철두철미한 친화력을 가지고 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돌파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자기 생애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요구하시며, 내가 그런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나를 세워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옮겨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느냐? 여기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7년 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있구만, 그럼 5년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많이 있구만.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입교한 지 7년이 된 사람은 그 7년 기간 동안 하나님 앞으로 가는 데에 있어서 처음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직선으로 걸어왔습니까? 어떻게 걸어왔어요?
가는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뜻을 따라 나오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걱정을 끼쳐 드리면서 돌고 돌아 나왔다면 7년 되었으면 무얼 합니까? 방향도 없이 쏘다니던 사람에게 전도된 그 사람도 그렇게 나가게 되면 전부다 망치는 것입니다.
아들 낳기를 고대하던 부부는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들을 낳은 것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이 좋은 만큼 어떻게 가치있는 아들로 키우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걱정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걱정을 하면서 그 아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천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도 없이 그저 아들을 낳은 것만 좋아한다면 그는 출발부터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아들을 어떻게 하면 나라에 필요한 사람으로 기르는가 하는 걱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로 기르기 위해서 아들을 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출발에서부터 나라를 위해 출발했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전통적인 내용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딸의 입장에 서 있습니까? 그러한 전통을 가졌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괜찮습니다. 동으로 가도 괜찮고 서로 가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횡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횡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학교를 가도 좋고, 직장을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대학에 간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에 가더라도 그 중심이 온전하면 그곳에서 뜻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뜻의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형태가 조금 틀리고 방향이 다른 것 같지만 뜻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직선으로 가지 않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 학생들 중에는 군대에 가서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잘 떨어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은 수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수습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전도해서 결심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 떨어진 사람들은 결심했었다고 하지만 군대에 가기 전의 자기 결심을 못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거기에 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반을 닦을 것입니까? 선생님 자신도 지금까지 기반을 닦기 위하여 살아온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나 자신만의 생을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이 통일교회를 따르고 이 사상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의 대상이 될 것이고 분석 비판의 기준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양심에 가책을 받는 길이나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세계적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기필코 그런 세계적인 기반을 가진 나를 거쳐서 가야 됩니다. 이 길은 나를 거쳐서 가야 됩니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섭리하시기 때문에 나의 가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종족, 나의 민족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개인이 되어 그런 가정을 만들어야 되고, 그런 가정은 그런 종족을 편성해야 되고, 그런 종족은 그런 민족을 만들어야 되고, 그런 민족은 그런 국가를 형성해야 됩니다. 그런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국가를 중심삼고 통일이념을 세우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국가관이 전부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그렇습니까?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공부하고 자기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취직을 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가 가고 있는 방향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 목적 기준에 대한 철두철미한 사상만은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여러분 스스로가 그러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전통적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자각은 세계와 더불어 하는 것이요, 시대와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대에 있든지 그 시대에 침범받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중심이 되어 그 시대를 소화하고 세계를 다시 창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독단신, 외로운 자리에 홀로 서 있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 섰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런 불쌍한 사람을 중심삼고 섭리하신다는 생각을 할 때, 하늘 앞에 세워진 제사장의 입장에서, 혹은 제물과 같은 입장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다는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체내에 그런 전통적 기반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한 일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외시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외롭다면 무한히 외로왔고, 고독하다면 무한히 고독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외로와하지 않았고, 고독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독한 주체가 되고 외로운 주체가 되는 내용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섭리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그런 고독과 그런 외로움을 극복하여 나왔습니다. 그것이 어렵더라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어려움을 기쁨으로 소화시켜 새로운 천국의 밑바탕이 될 수 있고, 새로운 나라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전통적 기원을 어떻게 내 개인을 통해서 이루느냐 하는 것을 놓고 싸워 왔습니다.
그 어떠한 시련 고통이 오더라도, 그 시련 고통에 내 몸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련 고통의 한계선을 넘을 때까지 스스로의 사상을 결의하면서 외적으로 침범해 오는 고통을 헤쳐 나왔기에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가 망하는 자리 같지만 다시 일어서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떨어져 죽는 것 같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그 원수들을 다 죽이고 다시 돌아와서 재창조한 것입니다. 그것은 1차에서 안 되면 2차, 2차에서 안 되면 3차, 4차까지 해서 판결을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4차에서도 실패할 때는 하나님께서 제거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정세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와 김일성 집단이 반대의 입장이지만 모양은 비슷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국가적인 기반을 닦게 되면, 김일성 집단과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제거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여러분은 자기 자체내에 확고한 전통적 기반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세계에서 하듯이 총칼로써 피를 보며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피를 흘리면서 가야 합니다. 남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피를 흘리면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환영하는 것입니다. 피를 흘린 것은 역사가 다 보충해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만민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나 국민은 없습니다. 소련이라 하더라도 전쟁을 통해 피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상이 모든 나라에까지 충만해서 이 세계가 그런 사상으로 꽉 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에 세계를 지배할수 있는 존재는 피를 흘리게 한 개인이 아니요, 피를 흘리게 한 종족이 아니요, 피를 흘리게 한 민족이 아니요, 피를 흘리게 한 국가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간 개인이요, 그런 종족이요, 그런 민족이요, 그런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있다면, 그들이 다가올 미래의 세계를 대표할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은 오늘날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계관을 창건하기 위하여 역사시대의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드러나지 않은채 이어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이 빛을 발하여 주도적 권을 갖고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는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맞고 빼앗아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현재 행복해 하는 것을 짓밟아서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그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자리에 우리가 서자는 것입니다. 비록 그 선 자리가 그들보다는 낮지만은 높은 사람이 그 자리를 바라보며 머리 숙일 수 있는 터전을 세워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와 같은 수준에 있는 사람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지도하는 이 방법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일치되어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혹,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나 우리 교회의 교인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선대가 그를 공인할 것이요, 영계에 가면 천천만 성도들이 공인할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세계 역사와 더불어 공인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침범하거나 참소할 수 있는 특권적인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그 내용을 다 충당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계에 가면 충당할 수 있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도 망하지 않는 것이요, 영계에 가서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양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종교라야 참 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발당시부터 지금까지 핍박받고 나온 것입니다. 원래 우리 통일교회는 기독교가 핍박받은 기반 위에서 꽃을 피워야 했는데 그것이 어긋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인 핍박은 물론이요, 삼천만 민중 전부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반 정신병자까지도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직 갖추지 않았고, 내가 아직 안팎의 사실을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그 사실을 밝히는 날에는 천지가 뒤집힐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민족을 지도하기 위해서요, 세계를 지도하기 위해서라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세계를 위한다는 것보다도 세계를 지도하기 위해서, 나라를 지도하기 위해서 산다는 이런 자주적인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 산다고 하는데, 그 말은 곧 나라와 세계를 지도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예요. 그래서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희생봉사를 하게 되면 죽는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지배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통적 사상을 세우기 위해 출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 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요. 오늘 이 자리에 몇 명이 참석했어요? 「55명입니다」 이 55명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 각자가 어느 지역이면 지역을 책임지고 나가야 합니다. 지역장이라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할 것이 아니라 맨 밑에서부터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지역장이 되기 전에 충성된 교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교인이 되면 자기가 지역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도 지역장이 되는 거예요. 금맥이 아무리 땅속에 박혀 있더라도 필요한 사람에 의해 캐져서 제 가치를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존재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우기나 이 통일교회는 영계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깊이 박혀 있어도 쉽게 뽑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내가 이렇게 하면 구역장에서 지역장이 되겠지'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주위로부터 영원히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만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100년이면 100년을 교회를 위해서 한번 살아 보자는 다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는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들을 잃어서 불쌍한 사람, 남편을 잃어서 불쌍한 사람. 혹은 먹을 것이 없어서 불쌍한 사람, 입을 것이 없어서 불쌍한 사람 등 천태만상의 불쌍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세계의 대국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대국의 정치란 세계적으로 벌려져 있는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동네면 동네를 위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한번 살아 보자 하고 몇해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 계획대로 해서 동네가 번영하나 안 하나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동네에 피해만 끼치던 건달패 녀석이 이제 통일교회에 가서 뭘 하겠다고 하느냐 하면서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코웃음을 칠 테면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없이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그러면 맨 먼저 그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그 앞에 와서 고맙다고 고개 숙이며 인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해보라는 것입니다. 3년 이상만 그렇게 하면 그 마을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서 그것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이 노동판에 들어왔으니 여기에 있는 무리들을 얼마 동안에 내 손아귀에 집어 넣을 것이냐 하는 생각을 했고, 거기에 대한 계획을 세워서 6개월이면 6개월 동안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계획대로 했습니다. 그들을 내 제자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느냐, 또 그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냐를 알아서 그것을 중심삼고 그들을 상대하면 제일 빠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갖다 주면 좋아서 입을 벌리고, 제일 어려운 것을 도와주면 고맙다고 고개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거예요. 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느냐? 제일 원망스러워할 때에는 어떻게 대해 주면 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헤쳐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싸움을 통해서 그 싫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좋아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갑이라는 사람을 가만히 보니 나를 미워합니다. 그런데 그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라는 사람은 좋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갑이라는 사람이 보는 데에서 을하고 싸움을 하는 겁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을이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할 때 싸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갑이라는 사람은 누구편을 들겠어요? 을의 편을 들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싸움을 해서라도 그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싸움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덮어주고 그를 이해해 주면서 자기가 손해보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사람 편에 있던 사람은 틀림없이 내편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공적인 입장에서 손해보는 사람을 편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학교에서도 가만히 보면 주먹 깨나 써서 학급에 문제시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이 때릴 때는 오히려 맞는 것이 좋습니다. 맞는 것이 억울한 입장이지만 오히려 그에게 양보하고, 그를 위해서 선의의 입장에서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면 환경은 맞은 사람을 중심삼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변명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종교인이 가는 길에는 변명이나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파괴분자입니다. 변명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불효자입니다. 그저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 책임을 못 했는데 변명할 수가 있습니까? 개인이 가는 길 앞에는 가정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개인이 가는 길에서 변명한다면 가정을 중심삼고는 얼마나 변명이 많겠어요? 개인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그 환경에서도 어려움이 많다고 불평을 한다면, 더 어려움이 많은 가정을 중심삼은 생활 환경에서는 얼마나 변명이 많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려운 여건이 첩첩이 가로막히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은 불평과 변명에서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묵묵히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개인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지역장이나 구역장으로서의 책임보다도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전통을 중심삼고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책임자로서 책임을 다했느냐, 교회장이면 교회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장은 부모의 입장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다 재워 놓기 전에는 먼저 자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한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철모르는 아들딸의 내일을 염려하면서 눈물을 짓고,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게 될 때에는 가슴을 조여 가면서 그 아들딸을 위해 복을 빈 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책임자는 잠을 못 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이나 밤에 조용한 시간이 나면 자기 교회 식구들을 위해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정성들여 줘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야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식을 키워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교회보다도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애국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본을 보여 주면서 교육을 하는 부모가 올바른 부모입니다. 사랑으로 올바른 교육을 한 후에 하라고 해야 올바른 부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사람에게는 무엇인지 모를 강한 힘이 있어서 모든 사람의 시선을 자동적으로 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겨울에 화덕에 불을 피워 놓으면 찬 화덕과 더운 화덕은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해도 더운 화덕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렇게 사람이 찾아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적 기반을 갖추어 가지고 희생적 각오 아래 개인의 새로운 전통을 확대시켜서 가정적 기반에 연결시키고 그것으로 종족, 민족, 국가를 형성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가는 길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세상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불쌍한 단체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큰 포부를 가졌고, 누구보다도 강한 패기를 가졌고, 누구보다도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 자신이지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맨 밑바닥에서부터 몰림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일방으로만 몰린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으로부터 몰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이 몰리지 않게 되는 날에는 이 세계를 포위하여 압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몰리지 않고 일방으로만 몰리면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종교 단체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사방으로부터 반대받았기 때문에, 반대받는 자리에서도 오히려 사방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압축해 들어오는 것은 전체를 압축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국가가 반대하고 개인이 반대하던 그 모든 기준을 전복시키게 되면 그들이 반대하던 것을 후회하고 도리어 환영하게 될 것입니다. 환영을 하는 데는 이유없이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했던 자신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입장인데도 용서를 받은 입장에서 환영하게 되니 얼마나 높은 입장으로 받들면서 환영하겠습니까? 그것이 사탄세계에서 환영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그 나라는 하늘편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개인이로되 개인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준비하는 생활로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의 무대를 향하여 준비하는 생활, 즉 훈련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 훈련은 세계를 위한다는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실천할 수 있는 무대를 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사람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훈련해 나왔다면 그런 나라와 그런 세계를 마련해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리하라는 것입니다. 세계적 기준에서 요리를 하라는 거예요. 세상 사람이 요리하지 못하는 나라와 세계를 줄 테니 요리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요리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그 세계를 요리할 능력을 갖고 있어요? 오늘날 대한민국을 맡기면 여러분이 요리할 수 있겠어요? 세계를 중심삼고 요리를 하겠느냐는 거예요. 따라가는 입장이 아닌 주체적인 입장에서 요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나깨나 그것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고 재료를 수집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적인 견해에 있어서 그러한 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재료를 수집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발판을 가진 통일교회가 되어야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종교 지도자이지만 세계 정세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사람입니다. 금후의 아시아 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세는 어떻게 될 것이냐?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선생님으로서의 복안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정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반드시 교차될 때가 올 것입니다. 교차됐다 할 때는 수습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혼란의 반응이 어디에서 제일 먼저 나타날 것이냐? 노인들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가장 민감한 청소년들에게서 나타납니다. 그 다음엔 심정적으로 약한 여자들에게서 나타납니다. 가정을 지키던 가정주부가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남자들입니다. 이렇게 거꿀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 원리를 알게 되면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도 세계도 다 우리 앞에 갖다 놓으신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공산주의 가지고는 이 세계를 요리하지 못합니다. 또 민주세계를 주도하던 미국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 현재의 실정을 볼 때, 민주주의 가지고도 이 세계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런 국제정세를 따라가야 할 입장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박대통령이 제시한 그 통일방안 가지고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통일은 국제정세에 따라, 즉 강대국의 정치 노선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팔아먹을 것인가, 아니면 사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이 세계 앞에 팔리우는 섭리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오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오는 섭리의 내용을 맡기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은 단체가 없었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길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단체를 중심삼고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단체를 중심삼고 규합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초교파운동을 하는 것이요, 거기에서 나아가 초종파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초종파운동을 중심삼고 초국가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초교파운동을 하는 것이요, 또 종교를 중심삼은 종교협의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공사상을 중심삼고 초국가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 초교파운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 운동의 중심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원리적으로 말하여 아벨적인 교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언제나 때립니다. 그러니 아벨 입장인 우리는 죽도록 맞자는 것입니다. 맞으면서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벨이 지나치게 맞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으로부터 채찍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가인은 벌을 받든가 아벨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여 망하지 않으려면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성교회가 망한다고 하지요? 기성교회가 망하면 기성교회 목사들도 망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굴복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굴복하는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초교파활동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종교들도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처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굴복할 길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위기일발의 긴박한 시점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도 망할 길은 알면서도 굴복하는 길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목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애그뉴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메시아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지 박대통령이나 미국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미국을 믿지 않고 있었어요.
대한민국은 자주 역량을 보강해야 합니다. 이런 때에 동지를 구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요, 패자의 서러움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했을 때 흘려야 합니다. 그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지 동지를 구하는 눈물이 아닙니다. 동지를 구하는 눈물을 흘리는 자리는 패자의 자리이지만 승리의 자리에서 흘리는 눈물은 승리의 영광을 맞이하는 눈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믿을 것이 아니라 삼천만 민족이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하게 되면 김일성이는 맨주먹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기 전에 그럴 수 있는 전통적 움직임을 민족적인 한계권에까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내적 외적으로 파급시키기 위한 활동을 독자적으로 전개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후원한다고는 했지만, 선생님은 거의 혼자 지금까지 이러한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국가적 기준까지, 혹은 초교파적, 초종교적 기준까지 이끌어 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러한 내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국가를 위한 정세나 세계를 위한 정세가 우리 눈 앞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요리해야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요리를 하려면 거국적인 요리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종적인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횡적인 활동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교육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1970년도 계획입니다. 머지 않아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따라 나오지 않더라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남아돌 정도로 많이 모여들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갑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섭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변치않는 전통적 기반 위에 선 자각된 자아로서 금후의 나라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서야 할 자리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서게 되면 모든 여건이 반대적 입장에서 우리를 향해 중심이 되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이 수련소를 지을 때도 선생님은 1970년대에는 반드시 그럴 때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위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와 다리 놓을 수 있는 어떠한 계기가 있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금년초부터 수련에 관한 말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경찰국 정보과장이 우리의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승공활동이란 통일교회의 승공연합과 같이 사상적인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러 도를 다니면서 실지로 활동해 본 결과 통일교회의 승공연합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천 지구장을 만나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서 국장도 우리를 돕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도지사를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거도적인 일을 하려면 지구장만으로 안되니 내가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동원시킬 인원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한 5천명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 몇 개월 동안 교육시킬 거냐고 물었더니 6개월이라는 거예요. 이게 장기간이 거든요. 그래서 틀림없이 할 것이냐고 세 번씩이나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계획을 세워서 국장의 결재를 받아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서면결재를 받아 가지고 다시 왔더군요. 2월 중순이나 3월 중순부터 하라고 결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기로 결정은 났는데, 어디서 할 것이냐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다가 수택리에서 하기로 결정은 했는데 이곳에서 교육을 하려면 지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 번에 들어오는 인원이 2백명 내지 3백명이 될텐데 그 인원을 교육하게 되면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식당도 없고 3백명을 수용할 곳도 없었습니다. 더우기 외부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장에 수용할 수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또 이들을 모아 놓으면 담배도 피우고 할 텐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가 수련소를 짓기로 한 것입니다. 틀림없이 교육을 하기로 약속하고 부랴부랴 집을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래는 수련소를 20여일만에 낙성하려고 했는데 결국 30일만에 낙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이런 집을 지으려면 2년은 걸려야 될 것입니다. 또 비용도 2천 5백만원 정도 들어가야 되는 것을 우리는 2천만원 미만의 비용으로 완공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 그래서 통일사상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얘기하듯이 이 집을 지을 때의 그 역사가 남는 것입니다. 이 수련소를 한 달만에 지었다는 것이 역사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때 모든 것을 내가 주관했습니다. 내가 직접 지휘했어요.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니 온갖 정성을 다 퍼부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교대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만 보면 일을 시킬까봐 도망친 녀석들도 있었고 별의별 녀석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련소를 지은 것입니다.
원래는 교육을 4월 7일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이 날은 선생님이 이북에서 공산당들에게 공판을 받은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4월 7일부터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는 선생님을 때렸지만, 한 나라에서는 선생님을 환영할 수 있는 때를 맞았기 때문에 4월 7일로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짜에 시작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는데, 난데없이 반공연맹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즉 가인이 나온 것입니다. 복귀원칙에 의해서 승공연합 앞에도 가인 입장의 단체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아벨 앞에 가인이 없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우리가 교육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제까지 계획한 전부를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자기네 반공연맹은 세계적인 기반이 있고, 국가적으로도 정부의 한 관서와 같이 책임을 하고 있는데, 왜 자기들을 놔두고 나라의 위신도 생각지 않고 개인이 하는 사회단체를 끌어들여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느냐고 하면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수련을 준비하던 사람들, 정보부로부터 치안국의 국장 과장들이 전부 다 문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를 집어먹으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도 가운데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먼저 알았기 때문에 아시아 승공대회를 개최하도록 했습니다. 먼저 승공이론을 가지고 방대한 아시아에 기반을 닦기 위해 아시아 승공대회를 서둘러서 개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작전을 하여 3주일 이내에 그들을 다 격파했습니다. 그런 말할 수 없는 싸움을 하고 나서 2개월이 연장된 6월 15일부터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싸움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저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선생님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결전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치안국장의 총책임하에서 모든 감시를 벗어났고, 정보부 사무국장이라든가 치안국장이 점심을 산다 저녁을 산다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치안국장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잘 알거든요.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국내에서나 외국에서 하고 있는 활동 같은 것을 전체적으로 조사해 보니 어떤 단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책임소관이 치안국이다 보니 자기가 총책임을 지고 전체를 수습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6월 15일부터 승공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수련소를 지은 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경기도의 도지사, 경찰국장으로부터 결재를 받고 지었기 때문에 이 수련소는 도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교육을 안 하게 되면 꼼짝 못하고 걸려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기도를 걸어 고소를 해버리면 일시에 걸려들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교육을 시키지 않더라도 교육공무원이나 그들의 휘하에 있는 경찰관들을 불러다가 이곳에서 교육을 시키게 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교육을 14회 시켰는 데 그 절반도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그들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반 이상만 하게 되는 날에는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밑지는 작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딱 금을 긋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수련소를 짓는데도 한 2천여 만원의 경비가 소요됐습니다. 돈이 없으면 빚을 얻어서라도 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습하여서 수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수련을 시작하고 보니 거기에는 반공연맹 시 군지부장, 공화당 시 군지부장 등 별의별 수준의 사람들이 다 있었습니다. 또 경찰국에서는 내년의 선거를 대비해서 이용 가치 있는 요원들과 지방의 기관장들을 전부 모아다 수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수련을 시켜 놓고 보니까 처음에는 경찰국 중심으로 했는데 그들이 손님의 입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반공연맹측도 자기들이 지금까지는 강의를 해 왔지만 앞으로는 전부다 보따리싸 가지고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 말라고 붙들어서 한 사람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수련생들이 소감문을 써내는데 수련생의 80퍼센트 이상이 아무개 강사라고 이름까지 명기하면서 그 따위 강사 그만두라고 써내는 겁니다. 경찰국에서 매번 여러가지로 분석해서 각 강사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데, 반공연맹이 그것을 보니까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교육생들이 참 심판을 잘했습니다. (웃음) 반공연맹이 지금까지 우리를 의붓자식같이 취급하더니, 한국 고전의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 신세와 딱 어울리게 되었더라 이겁니다.
작년에 우리 어느 강사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반공연맹이 치안국 정보과에 고발을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보안사령부에까지 가서 고발을 하고 난리를 피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발해서 잡아넣으면 3일도 못 가서 전부 다 풀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불면 날아갈 줄 알았는데 그거 아니거든. 우리도 그만큼 위치를 확보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공연맹이 '아! 통일교회가 그렇게 큰가?' 하고 놀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심각한 싸움을 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지방에서 밥 굶으며 고생만 한다고 하겠지만, 본부에서는 이렇게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정도의 기반을 닦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혈투전을 거듭해 나왔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육을 해보니 성과가 좋았습니다.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것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겨우 닷새 동안의 교육을 받고 간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어서 야단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수련소 소장한테 편지로 자기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보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것을 보고 경찰국에서도 시기하게 되었고, 반공연맹에서도 시기하게 되었고, 공화당에서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닷새 동안 교육을 받고 오더니 승공연합은 가만히 있는데 스스로 찾아가서 보고하니까 시기심이 생긴 것입니다. 자기들은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가 나서 경찰국과 반공연맹과 공화당이 합작해 가지고 승공연합의 활동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명령만 하게 되면 그들은 한꺼번에 몽땅 걸려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반공연맹 군지부장들과 공화당 지부장들이 이 나라의 금후의 갈 길을 지도할 곳은 승공연합밖에 믿을 곳이 없다고 합니다. 모두들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어제도 경기도 내에 있는 중고등학교의 사상 교육을 담당한 선생들, 즉 훈육주임들 182명이 수련소에 와서 교육을 받고 갔습니다. 그들이 처음이 수련소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는 교직원이기 때문에 반공연맹에서도 3주일이나 교육을 받았고, 정보부에서도 교육을 받았는데 사설단체인 승공연합에서 무슨 교육을 받느냐?' 이러면서 헐뜯고 야단들을 했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교육을 다 받은 후에는 다 죽사발이 되어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소감문을 받아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중에는 교감 선생님이 네 명이 있었는데 그들도 교육 잘 받았다고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또 그들 중에는 통일교회를 극단적으로 반대하던 기성교회 패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장 반대했거든요. 선생님이 이제 그 사실을 밝힐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감문을 책자로 내려고 합니다. 거기에 그들의 사진을 넣을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하던 그 선생들의 꼴이 좋겠지요? (웃음)
그것을 전국의 모든 공무원들에게 배부할 계획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배달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분좋은 배달부라구요. 6천년 하나님의 한을 이 민족 앞에 탕감할 수 있는 한 때가 오는 공문서를 배달한다는 거룩한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은 간부들이 수련받는 사람들을 모두 현충사에 데리고 가자고 해서 우리 마이크로 버스를 내주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을 수련소까지 데려오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경찰서에서 인원을 동원시키는데 여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 좀 들어 보라구요. 도경의 정보과장이라 하면 사상문제의 실무 책임자로서 그 도의 염라대왕격입니다. (웃음) 목사들도 다 걸려들거든요. 도경에서 지시했는데 각 군의 경찰서에서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초청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도 빠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백 퍼센트 참석했어요. 만약 오지 않을 경우에는 파출소 주임이 밤중이라도 가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옛날과 같은 교육을 받으러 가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승공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한창 모내기를 하는 농번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일주일 씩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 동네 농사는 다 망치게 되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겨울이나 가을이라면 모르지만 이 바쁜 철에 무슨 교육이냐고 불평하며 도망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면 말이예요. 바쁘지만 하루만 시간을 내라고 하면서 판문점에 데려간다, 워커힐에 가서 스트립쇼를 보여준다고하며 설득을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차에 올라타면 경찰관이 딱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내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차에 올라탔는데 오다 보니 판문점, 워커힐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망우리 고개를 넘어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어디로 가는 지도 잘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나 대개 망우리 고개는 알거든요.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냐면서 웅성웅성하다 보니 여기에 와서 내리게 됐다는 겁니다. 내려서 보니 승공연합이라는 거예요. 그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이놈들이 사기쳤구나. 속았다' 하면서 담당 계장을 찾으면 그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도망가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온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일주일간의 교육을 통하여 죽사발을 만든 것입니다. 이번이 10차 교육인데 지금까지 성공율이 백 퍼센트라는 것입니다.
또, 영계에서도 협조해 주게 돼 있습니다. 지금 때가 그들의 조상들이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거든요. 선생님이 정성을 드린 데 대해서는 영계가 선생님의 입장을 후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들이 돕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돌아가서는 다시 이 수련소에 오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다녀갔어요. 오늘도 왔다 간 사람이 있습니다.
수련 받고 오더니 사람이 이상해진다는 것입니다. 승공강의와 승공연합만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일을 할 때도 그 생각을 해야 정신이 들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정신이 멍하다는 것입니다. 또 옛날의 술 친구, 도박 친구를 대하면 그들이 유치하기 짝이 없게 생각되기 때문에 친구도 잃게 되고 이상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생각나는 것은 승공연합 뿐이고, 승공연합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승공연합의 배후가 무엇이냐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면 어떠냐 하면서 지구나 지역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알겠어요?
수련소에서 교육받은 사람들 중에 교회에 찾아와 원리를 듣고 식구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공문을 보내서 한 일주일 특별 수련회를 할 테니까 천오백원씩만 가지고 오라고 하면 몰려 올것입니다. 그때는 그들에게 원리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좋다고 왔는데 갈 수 있겠어요? 가만히 들어 보니 원리가 새로운 말씀이고, 또 옆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으니까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울 사람들을 교육시키는데, 어떠한 사람들을 교육시킬 것이냐? 정치 방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교육시킬 것입니다. 30대 전후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맘대로 왔다갔다하는 패들이거든요. 그런 반면 직장에서 계장이나 과장 같은 직책을 갖고 가정에서 정상적인 기반을 잡은 사람들은 자기 생활에 침해를 받게 될까봐 정치든 무엇이든 나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30대를 전후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회를 비판하는 신문기자 같은 언론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 또는 서울에서 일류 대학 출신으로 현재 중요한 위치에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사람들 7천여 명을 뽑아서 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결정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만 하게 된다면, 우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앉아 호랑이 귀를 잡고 웃으며 달려가는 격인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앞으로는 반공연맹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단계까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승공연합이 이토록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무부나 정보부에서는 자기들의 정보요원을 비밀리에 투입시켜 가지고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즉 국가관을 담당한 교수나 공산주의 비판을 담당한 교수들을 교육받게 해서 입체적으로 분석 보고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앞으로는 이러한 교육을 거국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지금까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몰랐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배웠고 통쾌함을 느꼈다고 보고하게 되니 정보부측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서울을 중심삼고 교육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경기도측에서는 교육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들을 전부다 교육받게 할 테니 정보부는 놔두고 자기들을 먼저 해달라고 소장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정보부측에서도 가만히 보니까 경기도만 승공연합의 교육에 참가하게 되면 이 수련소를 경기도에 빼앗기게 되겠거든요?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자기 요원들에게 교육을 더 시키게 해달라고 교섭을 해오고 있습니다. 정보부의 간부들이 정 그러면 수련소를 하나 더 짓자고 하길래 그러면 짓자는 말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이러한 말을 하느냐? 참은 참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하기 위해 10년이 걸려도 극복해야 되고, 20년이 걸려도 극복해야 되며, 40년이 걸려도 극복해야 됩니다. 그렇게 40년을 넘어 1대를 넘기게 되면 그런 다음에는 2대를 극복하고 3대까지 극복해야 됩니다. 그렇게 3대까지만 정의를 위해서 극복하게 되면 나라를 잡아 쥘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1대라면 여러분은 몇대입니까? 「2대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은? 「3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정의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아들딸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어 3대만 넘어가면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으로부터 상속받은 그 전통적 사상을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상속시켜서 세계적인 평면도상에 한 기점으로서, 한 발판으로서, 한기반으로서 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될 자신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있어요? 「예」 대답이야 잘 하지. 충신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충신이 되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충신이 되겠다는 말은 간단하지만 충신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금년에 축복가정을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 보다도 가정을 잡아야 됩니다. 1960년대는 개인 탕감복귀시대이기에 여러분이 개인으로서 이 민족 앞에 사명을 다해야했지만, 지금은 가정을 중심삼고 사명해야 하는 복귀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가정들은 앞으로 일본에 가서 작전을 해야 합니다. 일본에 가서 봉사하며 선교활동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작전을 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통일사상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세계의 어느 국가라도 여권 문제없이 쌍수를 들어 여러분을 환영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즉 국경 철폐운동까지 벌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가는 길을 누가 막겠습니까? 이러한 전통적 사상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 대한민국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영원히 남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터전을 세워 놓고, 아시아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기반으로 이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가고자 하는 방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대한민국만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책임을 다했습니다. 내 개인으로서의 책임도 다했고, 선생님 가정으로서의 책임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선생님이 책임을 다한 것과 같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중심삼고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책임을 다하게 되면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해 나갈 때입니다. 기도도 그런 방향으로 고쳐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 기반을 일으켜서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일체화 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조건은 다르더라도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한 결과 앞에는 국가가 새로이 탄생하는 것이요, 세계가 새롭게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통하여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무엇이냐? 중심입니다. 이 중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왜 못 되었어요?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다 하지 못하면 아벨이 되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 가지를 다 했더라도 한 가지를 못 하면 아벨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여러분이 실감날 수 있는 내용을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적인 아벨입니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되었습니까? 하나 되었다면 그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플러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의 뜻을 중심삼게 되면 플라스, 즉 주체가 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플러스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순종 복종 굴복해야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죽어야 됩니다. 순종 복종 굴복을 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엔 생명까지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순종 굴복은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내놓을 자신 있어요? 「자신 있습니다」
순종을 못 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으면 순종완성이 되는 것이요, 복종을 못 했더라도 자기 생명을 내 놓으면 복종완성이 되는 것이요, 굴복을 못 했더라도 자기 생명을 내놓으면 굴복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빠른 길이 뭐냐면 생명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격탄이예요. 곡사포가 아니라 직사포라는 겁니다. 직사포가 좋아요, 곡사포가 좋아요? 「직사포가 좋습니다」 이마를 맞대고 싸워서 머리가 깨져 죽든 살든 해보는 것입니다. 꼭대기만 맞추고 이마는 맞추지 못하는 곡사포가 아니라 이마를 바로 맞힐 수 있는 직사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뜻을 위해 죽어야 할 자리에서는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기 전까지는 내 것이지만, 죽은 후에는 하나님 것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혈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기 전까지는 우리의 생명 전부는 사탄편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을 두고 볼 때 어느 것이 강합니까? 죽음보다 생명이 더 강합니까?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까? 사탄세계에서는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뜻을 알고 난 후에는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기 싫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유효원협회장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선생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는데 끝을 어떻게 맺을 것이냐? "하고 내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협회장은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어차피 죽어야 됩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지내지 않고는 다른 시대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께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역설 같지만 타락과 복귀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의 정상적인 논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는 어땠는가. 나는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느냐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일본 놈들에게 총살 당해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죽을 때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생각했습니다. 총살을 당할 것도 생각해 봤고, 다섯 차례에 걸쳐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죽을 때는 무슨 말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중심하고 역사해야 되겠기 때문에 죽을 자리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죽을 자리라면 어디일 것이냐? 원수와 대결하는 자리, 즉 원수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원수의 본거지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를 중심삼은 뜻의 기반이 사탄편에 돌아갔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하여 사탄의 소굴인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선생님이 금후에 세계적인 공산당과 싸워야 되겠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이북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쇠고랑을 차고 영어의 몸이 될 것을 각오하고 철천지 원수의 나라를 찾아간 것입니다. 아무리 포악한 시련이 나를 덮쳐오더라도 나는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극한 굶주림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위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조직적인 생활권내에서 아무리 쪼이는 생활을 하더라도 하늘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일이 구속당하더라도 그 구속당하는 기준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었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새로운 출발의 동기와 새로운 삶의 보람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별의별 중노동을 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안 꺾인다, 다른 사람은 다 죽더라도 나는 안 죽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살고자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뜻을 알고 나서 죽음을 각오했습니까? 자유당 시대의 특무대장 김창룡 살해 사건의 주모자인 허대령이 사형을 당할 때에, 이번 일을 계획하고 지시한 자로서 한이 없느냐고 물으니 그는 아무런 한이 없다고 하면서 사내답게 죽어갔습니다. 그런 살해 사건이나 총살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자신과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비교해 보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모함으로 국가의 대반역자로 몰리어 죽을 수도 있을 것이요, 동지의 모해나 친구의 모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해 등 여러가지로 인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에는 세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죽어야 합니다. 원수를 맺지 말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왕 죽을 바에는 원수를 맺지 말고 무엇인가를 심어 놓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가 아닌 친구로서 사랑하면서 죽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아벨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또 선생님 자신이 아벨이 됐느냐 하는 문제도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느냐를 놓고 봐야 합니다. 그 일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고, 국가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고, 세계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고, 천주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가 죽는 자리에서의 해결 기점을 결심하고 나서 생애 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또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조금도 변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휴양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자리가 복잡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휴양시키기 위해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휴양하는 것이 됩니다. 선생님이 오늘도 사람 만나다 늦게 나왔어요. 여기에 오기 위해 열시 20분부터 준비했는데 기다리던 몇 사람을 잠깐 만나다 보니 늦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 있으면 생각할 시간도 많고, 얼마나 한가하겠습니까? 그러니 휴양으로 생각한 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극이 필요하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휴양하러 들어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형무소에 들어가더라도 졸장부라는 소리는 듣지 않습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구치과장이라는 사람이 선생님에게 핀잔을 주는데 당신이 뭐가 어떻구 하면서 별의별 말을 다 지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를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옛날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붙잡혀 빌라도 법정에 나가기 전에 간수들에게 희롱을 당했듯이 선생님도 그렇게 당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그래 별의별 짓을 다 해봐라. 그렇지만 내가 이 곳을 나가기 전에 소장을 굴복시킬 것이다' 그런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나올 무렵에는 그들이 와 가지고 자기들이 실수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용서를 빌며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외부에 연락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어떤 날은 도리어 내가 기합을 주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느 날 나에게 차입품이 들어왔는데 기분에 물건에 손을 댄 것 같아서 호통을 쳤습니다. 자기는 내가 모를 줄 알았지만 나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왜 손댔어 ? 어디에 손댔나? 무엇 무엇에 손댔어 ? 하며 다그쳤더니 그 후로는 나만 보면 꼼짝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심부름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물이 먹고 싶으면 물을 가져 오라 하고, 소제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하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감옥살이를 해도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우리 식구들이 죽자 살자 면회를 옵니다. 감옥살이하는 선생님을 면회했다면 그것은 역사에 남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을 면회하던 면회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앞으로 표창할 텐데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것 시집갈 때나 장가갈 때에 가슴에 품고 가서 그것을 그 가정의 보물로 간직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올 때는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났기 때문에, 간수들과 소장까지도 나와 배웅했고, 간수들 중에는 선생님을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이 가는 길 앞에는 원수가 생겨나지만 반드시 그 길은 개척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적을 두고 볼 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어떠한 수난의 길을 가더라도 자기 혼자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하느냐?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란 어떠한 자리냐? 하나님과 일체된 자리인데,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기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슬픈 자리, 가장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리,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감옥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탄도 싫어하는 인간지마(人間之馬)들이 모인 그 세계에서도 여느 인간들이 갖는 그 이상의 희망과 소망을 가지게 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 역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탄 세계의 참소를 받지 않는 것이요,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간섭받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까지 연결될 수 있는 새출발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벨의 책임을 진 사람은 편안한 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간 것을 보면 그 아벨의 자리가 행복한 자리가 아니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긴장된 자리였겠어요? 또,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했겠어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에 큰 관심을 가지고 내 제물을 받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치열한 경쟁을 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든 말든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분하고 원통했던 것은 무엇이냐면 자기의 정성에 아벨의 정성이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데 있어서 아벨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대등한 자리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겠어요? 같은 입장에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제물을 드렸더라도 자기 것을 먼저 받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응당히 받아 줄 만한 입장에서 아벨 것을 받았다면 그것은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교가 되는데 무슨 불평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대등한 자리에서 정성을 들였는데 받아 주지 않는다면 불평하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보다 나아야 됩니다. 제물은 보다 나은 정성의 인연을 갖추어서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도 가인과 같은 정성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하나님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으셨다 하더라도 그저 '고맙습니다' 하면서 온유겸손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가인이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만을 받으시니 가인이 배알이 뒤틀리도록 지나치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쁘더라도 혼자만 좋아하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형님에게 자랑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쁜 일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자랑하고 싶지요? 마찬가지로 아벨도 형님에게 그것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랑이 지나쳐서 '형님의 제물은 안받고 내 제물은 받았어. 그러니 형님보다 내가 더 낫지!' 이렇게까지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인의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고, 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기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은사를 받았으면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형님, 미안합니다' 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가인이 때려 죽였겠어요? 안 죽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실수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너무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선전하다가는 도리어 맞게 됩니다.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뭐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자랑하다가는 옛날에 아벨이 가인에게 맞았듯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 앞이니까 지금 이렇게 자랑을 하지만, 여러분은 사회에 나가서 이렇게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공연합을 자랑하게 되면, 반공연맹에서 '너희들만 일하느냐. 우리도 일하지 않느냐? 우리는 국가를 위해 경비를 써 가면서 일을 하는데 너희들 승공연합이 뭐냐? ' 하고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 섰을 때 자신을 선전하거나 변명했습니까? 그저 바보 천치처럼 묵묵히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변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법정에 모였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변명하다 몰리게 되면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동정받을 여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동정의 여지를 남겨 놓고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아벨 혼자서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가인에는 하늘편 가인과 사탄편 가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세례 요한은 하늘편적 가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늘편적 가인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사탄편적 가인은 물어뜯고 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이요, 사탄의 본성입니다.
여러분이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가인은 누구냐? 여러분의 가인은 누구냐?
가인이 가인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를 거쳐 아들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아들은 참소받지 않는 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거쳐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가인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 자신이 혼자서는 그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 끌어올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끌어올려 주어야 되느냐? 끌어올리는 사람은 메시아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누굴 대신해서 끌어올리느냐? 아버지를 대신하여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끌어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야 됩니다. 가인을 찾기 전에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 대신의 입장에서 종의종 자리와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를 거쳐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인 아벨 중심삼고 굴복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들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며, 그 자리에서 가인이 협조하는 입장에 서면 부모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도를 하는 것은 첫째 가인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둘째 아벨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벨적인 입장에서 전도하는 여러분은 하나님 대신의 입장인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종의 입장을 복귀하는 시대에 조상들이 하지 못하였던 것을 대신해서 복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담 시대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에 와야 가인 아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전에는 전부 다 양자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인 아벨의 문제를 제시한다는 것은 예수님 시대가 지나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부모 앞에 설 수 있는 가인 아벨이란 복귀된 아담 가정, 즉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형제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벨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찾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느냐? 예수님을 아벨적인 입장에 세워 가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가인적인 존재를 찾기 위해 국가적인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적인 국가가 있고, 가인적인 교파가 있고, 가인적인 종족이 있고, 가인적인 가정이 있고, 가인적인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 앞에 가인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굴복하여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이스라엘은 아벨적인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국가의 중심은 민족이요, 민족의 중심은 교회요, 교회의 중심은 종족이요, 종족의 중심은 가정이요. 가정의 중심은 한 개인입니다. 이 중심의 한 사람으로 세운 것이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을 민족 전체를 대신한 민족의 종합적인 중심존재로 세웠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거기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하나될수 있는 기원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러분들을 두고 볼 때, 현재의 여러분은 아벨적 입장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벨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원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고, 그 원리를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실천하는 것은 가인을 찾기 위해서, 즉 가인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가인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피눈물과 피땀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아벨이 결정되게 되면 그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한 어떤 사람이 종의 종의 역경과 종의 역경과 양자의 역경을 거쳐 아들딸의 역경을 거쳐 나왔다고 하면 그 사람과 여러분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인 아벨의 기준을 결정한 후에야 여러분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천사장을 찾아야 됩니다. 아벨은 아담적 존재이고 가인은 천사장적 존재인데 아벨적 존재인 아담이 천사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벨은 천사장을 다시 찾는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담으로서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가인 아벨의 관계만 알았지 이러한 원리적인 내용이 있는 것은 몰랐을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가인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예수님이 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하지 못했던 것을 다했다 하는 굴복기준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가인 아벨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누가 먼저 나아가느냐? 가인이 먼저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먼저 나아가고 그 다음에 가인이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세계의 모든 기독교는 통일교회 앞에 가인이 되어 가지고 순순히 굴복해야 됩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세 사람만 굴복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싸우게 되어 아벨을 사지(死地)에까지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벨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시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이제 아벨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옛날의 아벨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맞으면서 축복을 받은 것을 아벨은 자기의 복으로 알지 않고 가인을 살리기 위한 가인의 복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벨을 세워 구원섭리하시는 것은 아벨만을 사랑하고 아벨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인을 구원하기 위한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옛날의 아벨은 자기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려 하였지만 이제는 입장이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편 입장인 가인이 하나님편인 아벨을 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벨된 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은혜를 받은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가인 세계를 위한 것이요, 가인 국가를 위한 것이요, 가인 민족을 위한 것이요, 가인 종족을 위한 것이요, 가인 가정을 위한 것이요, 가인 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즉, 모든 가인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 자신이 기뻐하기 전에 가인을 기쁘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신 것은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그 자식들을 기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수고는 덮어놓으시고 인간들이 기뻐할 수 있는 한날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전통적 사상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부름받은 것도 가인적인 개인, 가인적인 가정, 가인적인 종족, 가인적인 민족, 가인적인 국가를 위해서입니다. 내가 있는 것은 가인적인 국가, 가인적인 민족, 가인적인 종족, 가인적인 가정, 가인적인 개인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들이 없으면 나 자신은 아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올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뜻도 있으나마나인 것입니다.
가인이 나를 치는 것은 복을 주기 위함이므로 사탄도 이를 말리지 않습니다. 복을 주려고 하는데 사탄이 말리려 하면 사탄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의 국가 기준 앞에 주려고 하는데, 그 나라의 대통령이 도리어 치게 되면 반드시 갚아 줘야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런 역사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나라의 세 정권을 중심삼고 국가, 종교, 민족, 종족, 가정, 개인에게 무한한 복을 주려고 했는데 도리어 그들이 나를 친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쳤느냐 하면 사탄 자신이 하나님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러냐고 하실 수 있을 때까지 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문제입니다. 그 기간이 7년이면 7년이라는 법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 용서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형님 자리에서 동생을 따르자니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분하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데려가야 할 때가 오기 때문에 기성교회면 기성교회에 대해서 기도해 주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이북이면 이북에 대해서 기도해 주고 복을 빌어 주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이 우리의 사상입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세 사람을 영육 아울러 구원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를 중심삼고 고생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해서 그들이 행복한 가정을 갖추지 않고는 예수님도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 제자는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 셋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세 제자가 예수님을 받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원리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아벨이 가인을 왜 사랑해야 되는지, 왜 가인을 구해야 되는지 앞으로 내가 원리책을 보강할 때면 이러한 내용을 세밀하게 밝힐 것입니다. 왜 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그 원리적 견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도 사랑하시고 천사장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천사장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천사장은 하나님과 부자지관계에 있는 아담의 종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아들은 아버지와 일체가 되지 않고는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심정과 사상을 가져야 되고, 목적이 같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즉 생활 속에서 심정통일, 행동통일, 사상통일을 하지 않으면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상속자는 아무리 병신일지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몽땅 차지할 수 있고, 행동면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같이 죽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속자는 자기가 목적하는 바의 소망이 부모가 목적하는 바의 소망과 일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사람도 심정적인 면에서나 생활적인 면에서 그 목적이 하나님과 같아야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천사를 아담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노정에 있어서 아담이 천사를 사랑했느냐 하면 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는 아담의 입장에서 천사를 사랑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종을 사랑해야 되는데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종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지만, 그 가인을 사랑해야 복귀가 되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역설적인 말의 교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종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들도 그 종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원칙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이 종에게 복종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대립된 입장에서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이 다시금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원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천국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기독교의 사상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때요? 원리에 딱 들어맞지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복귀될 때까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천사장이 타락을 시켰으므로 천사장이 복귀될 때까지 천사장을 사랑하지 않고는 복귀 노정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가인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인에게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가인이 사망권내에 들어가 있으니 그 가인을 구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설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천사장을 사랑해야 되는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계를 다 망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르더라도 하나님은 누구냐고 대답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 중에서 이러한 원칙을 알아 가지고 천사장을 사랑했다고 세계와 역사 앞에 증명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전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인 재림주인 것입니다. 이러한 재림주가 오셔야 인류역사에 비로서 새로운 천지의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요, 타락의 인연을 벗어난 참부모의 인연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도 마찬가지로 세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분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가인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 봤습니까? 성경에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 해 봤어요? 그 자리는 여유 있게 놀러나 다니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죽음만을 걸고 나오는 자리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다는 것은 마지막 생명까지 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는 자리에서 복귀역사의 내용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받은 아들로써 가인 세계를 사랑으로 구원해야 할 섭리의 뜻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수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전통적 상속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원칙을 중심삼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7년노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직계의 자리까지의 단계를 복귀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7년노정 동안에 가인을 사랑하기 위하여 종의 자리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락이면 부락에 나가서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원리를 중심삼고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아무개의 혈통을 중심삼은 아들딸로서가 아니라 천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심정적 일치점을 찾아서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또한 생활적 일치점과 소망적 일치점을 찾아서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의 일치, 행동의 일치, 소망의 일치가 되어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세계를 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행동은 세계를 구하기 위한 복귀섭리 역사를 주장하며 투쟁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정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성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피를 흘리며 싸워서는 안 됩니다. 싸움이 없는 자유로운 천지에서 서로 사랑하고, 환희의 동산에서 서로서로가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를 높여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통하여 만민이 하나님을 모시고 기쁘게 살 수 있는 평화의 천국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수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이 길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생활을 안고 소망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아벨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걸어나오셨던 것처럼 가인을 찾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어린 투쟁의 역사노정을 거쳐 오시면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하셨겠습니까? 기독교 국가권과 민주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하나의 나라를 나에게 맡겨 주시기 위해 준비공사를 이렇게 세계적으로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얼마나 충성을 했으며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한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니 그 한 개인을 얼마나 소중하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또 그러한 개인이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는 가정이니 그 가정을 얼마나 소중하게 사랑하고, 얼마나 귀한 입장에서 묶어 나가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아들딸을 중심삼고 이 세상에서 사탄과 분열된 새로운 종족을 창설해야 되겠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천정의 인연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고 교육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면 내가 사는 것은 아들딸의 갈 길을 가르쳐 주고, 아들딸의 행복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요, 나라와 민족의 복지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기원이 되는 엄숙하고도 고귀한 것입니다. 이것을 천주에 있는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책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생활입니까?
내가 맞아들일 수 있는 한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을 하나의 여성으로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둘로 나누어 본다면 하나의 남성형이요, 하나의 여성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총합한 하나의 뿌리와 같은 남성과 여성으로서 결합한다면 아무리 깨져 있는 심정이라 하더라도 전부다 덧붙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전통적 사상을 가정에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엄숙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같이하고, 하나님의 생활이 같이하여 희망으로 온통 뻗어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는 가정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한 가정이 하나, 둘, 셋, 넷이 되고 다시 열, 백, 천, 만으로 벌어지게 되면 그때는 이미 종족 편성의 시기를 지나 민족, 국가, 세계를 그 품에 안을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7년노정은 개인적인 7년노정인 동시에 가정적인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국가를 형성하는 기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중심삼은 기준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중심삼은 유대교, 가정을 중심삼은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전통적 사상과 유대교의 전통적 사상을 안팎으로 규합한 하나의 세계적인 가정기준을 하나님께 바쳐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잃어버리고 세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의 국가라든가 하나의 종교라는 틀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권내에서 이것을 규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이것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축복가정입니다. 축복이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시시껄렁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완성을 하고, 내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하나의 종족이 편성될 수 있다는 이 엄숙한 과제를 안고, 우리 가정보다 가인적인 가정 앞에서는 아벨적 가정이 되고, 아벨적인 가정 앞에서는 가인적인 가정이 되어서 아벨적인 가정과 가인적인 가정의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적인 종족을 편성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거룩한 문제가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진다면 이 땅은 세계의 중심이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7년노정에는 개인 7년노정, 가정 7년노정, 종족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종족을 규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속한 사가랴 가정과 자기가 속한 요셉 가정을 규합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인 아벨 가정이요, 가인 아벨 종족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들 가인 종족과 아벨 종족을 규합하기 위하여 내적인 인연을 세워 나왔지만 이 두 종족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를 팔아먹은 동기가 되었고, 예수님의 한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개인 복귀와 가정 복귀는 물론이고, 종족 복귀까지 책임하여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할 수 있는 국가와 세계적인 운세가 목전에 다가왔으니,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노정에도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이 있습니다. 1차 7년노정은 개인을 중심삼고 가는 것이요, 2차 7년노정은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1970년도를 넘어서서 가정을 재차 출발시키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입니다. 이제는 가정의 부인들을 내세우는 겁니다. 부인들은 아들딸을 업고라도 전도를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자 협조의 기준이 조성되어 선생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복귀도상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 세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할수 있는 가인형을 찾아 세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아벨이 되기 위해서, 1960년도 축복의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 가정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다면 아벨이 될 수 있겠습니까? 반대받는 입장에서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본연의 인연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가정적인 가인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이 3가정을 이루고, 이 3가정을 중심삼고 12가정, 36가정, 72가정, 124가정으로, 즉 세계적인 가정의 대표형으로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72가정까지는 종족 기준이며 124가정은 세계적 대표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가정들을 3년 동안에 규합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1960년대에 가정적인 사명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들이 외적인 민족복귀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민족복귀를 위한 제반 노정을 다시 거쳐 나가기 위하여 가정적인 종살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여러분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승천한 예수님이 다시 영적으로 이 땅에 와서 성신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찾는 복귀역사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나가서 전도해야 하는 것을 여자들이 대표로 나가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적 책임을 못한 것을 재차 수습하기 위한 것이 이 3년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1년부터 1973년까지의 3년기간에, 예수님이 3년기간에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것을 재현시켜 가지고 가정적 책임을 연결하여 제2차 7년노정을 완결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책임을 다하게 되면 종족적인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규합하려 했던 것을 우리가 재차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런 외적 환경을 수습하면서 상대적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제 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가정을 수습하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외적인 가인을 위해서 복귀해야 됩니다. 가인 종단을 위하고 가인 종족을 위하고 가인 나라를 위해서 외적인 기준을 복귀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과정을 거쳐 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보면 이북은 가인 국가요, 대한민국은 아벨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벨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벨 국가 앞에 가인 국가가 있어야 되는데 이미 가인 국가는 생겨나 체제를 다 갖추어 형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벨이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 민족은 지금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본다면 군사정부는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던 이 천사장이 요즘에 와서는 통일교회를 협조하는 입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외적 기준인 국가와 내적 기준인 뜻이 완전히 하나되어 통일사상으로 무장만 된다면 공산당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빠른 시일내로, 2차 7년노정 안에 끝낼 수 있어야 합니다. 1968년도 부터 1974년도까지 2차 7년노정 안에 우리가 국가와 손잡은 그 기준 위에서 사상적인 무장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는 남북을 중심삼고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상대가 자기보다 힘이 약하다 싶으면 들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힘의 우위권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북 공산당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가인 아벨의 입장에 섰다는 것이 고마운 것입니다. 만약 이국 민족이었더라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을 원수시하지 말고 그들을 같은 동포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천 삼백만 이북 동포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 이북의 김일성을 중심삼은 체제와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체제 중에 어느 편이 더 강해야 되겠느냐? 공산당을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은 생명에 위협을 주는 강제정치를 합니다. 정당도 없고 그저 그들이 필요하다 싶으면 하나님도, 세계도, 나라도 다 빼앗아 버립니다. 역사적인 대한민국의 전통을 가질 가족도 전부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렇게 모두를 빼앗긴 자리에서 자신이 죽고 사는 문제가 있기에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할수 없이 가는 길이 공산당이 가는 길입니다. 다 빼앗긴 후에 생명을 걸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우리 통일교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즉,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강제적이긴 하지만 생명을 내놓고 대드는데 우리가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 그들을 구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 이상의 강한 생명력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생명을 내걸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 말은 공개적인 공갈인 것입니다. 공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또한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뜻 세계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죽어가는 날에는 하늘땅도 찾고 더 큰 세계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도 내 것이 되고 대한민국도 내 것이 되며 종족도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이나 우리가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은 똑같지만 그 나타나는 결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갈 협박해 가지고는 강제로 내몰아 다 잃어버리게 하시지만, 몇천 배이상 가치 있는 것을 가져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산당들이 아는 날이면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해도 믿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이북을 이길 수 있는 비법은 우리 통일 사상밖에 없습니다. 이 원칙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청년 남녀들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삼천만이 통일사상으로 철두철미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강원도에서부터 전라도 끝까지, 동해안에서 남해안을 돌아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이 합심하여 그들보다 천만 배 이상의 철두철미한 사상을 지니고 공산당을 이긴다는 역사적인 과업을 위하여 단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대결할 힘에 있어서나,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하는 데 있어서나, 나라에 충성하는 데 있어서나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미워하고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살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이북에 흉년이 들면 쌀도 보내 주고, 입을 옷이 없다면 옷도 보내 주어야 합니다. 김일성은 싫다고 하겠지만 백성들이 만일 그것을 받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대한민국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도 그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이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무엇 때문에 수십년 동안이나 수난을 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들딸이 책임을 다하여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기준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탄보다 나은 나라를 중심삼아 거국적인 입장에서 그 나라의 주권과 백성과 국토를 하나님 앞에 정성스럽게 바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원리적 견해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북에 가야 되겠습니까, 가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가야 되겠습니다.」 빨갱이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지하운동을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도 이북에 가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늘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런 이유로 이북에 갔다 왔습니다.
선생님 고향이 이북의 정주인데 여러분들, 정주에 가보고 싶지요? 「예」 왜 가 보고 싶어요? 그곳에 가면 선생님이 할 얘기가 많습니다. 나의 어렸을 때의 일화가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번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 보지 않으면 영계에 가서 부끄럽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사상을 지닌 사람들은 그곳을 회교의 메카와 같이, 기독교의 예루살렘과 같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살아 생전에 선생님의 고향에 가 보지 못하고 영계에 간다면 얼굴을 들 것 같아요? 영계에 가서 선생님의 고향에도 가 보지 못하고 도대체 뭘 했느냐고 손가락질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을 빨갱이가 지배하고 있지만 몰래라도 그곳을 갔다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왕 다녀올 것이라면 그냥 다녀올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공작을 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갔다 올 자신이 있습니까 ?
여러분들이 영화에서 보았겠지만, 이북의 여자들은 포도 쏘고 탱크도 운전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수련소에서도 그 영화를 상영했지요? 그들은 남한 침략을 위해 중무기를 다루며 일치단결하여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북한을 밀어내기 위해 일치단결되어 있습니까?
선생님은 이제 여러분에게 나이론에 고무줄을 넣어 만든 몸뻬를 입히려고 합니다. 고무줄을 넣어 만든 옷이니 체격이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모두에게 맞을 겁니다. 이 옷을 입고라도 나라를 복귀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무슨 짓이라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눈만 깜박깜박하면서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몇 달 있으면 축복을 받아야지' 그런 시시한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그따위 생각하는 사람은 축복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700쌍 축복도 내가 말려들어서 할 수 없이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제1차 7년노정에 가담한 사람은 복받는 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번 제2차 7년노정 기간에도 전부다 가담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 말한 사람들은 '우리는 축복 대상자가 안 될 텐데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할지 모르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절차를 밟아 특별축복을 해줄 것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탄 세계는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끝에 가서는 지옥에 가는 것이지만, 우리 세계는 잃어버린 데에서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 세계와는 반대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세계에 살겠습니까? 생명을 각오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생명을 내걸어야 합니다. 남들이 전부다 전도 나갈 때 자기 혼자 나가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선생님이나 교회 책임자를 만나게 되면 가슴이 섬짓해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걸 느낀다는 것이 위협 중의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상적 중심을 다 흔들어 버릴 정도로 자기의 생활적인 것을 사로잡고 있다면 그것이 위협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위협하여 나왔는데, 그것은 전부 다 공갈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개인이 가인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개인이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은 가인적 가정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을 중심삼고 세 가정이 하나되게 되면 아벨적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벨적 종족이 중심이 되어 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인적 종족을 규합하게 되면 이 전체가 플러스되어서 가인적 민족 앞에 아벨적 민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아벨적 민족 앞에는 가인적 민족이 있게 됩니다. 이 가인적 민족 앞에 영향을 주어 가지고 하나되게 되면 비로소 아벨적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벨적 국가가 형성되면 가인적 국가가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 국가인 남한 앞에 가인 국가인 북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한이 북한과 이 나라에 생활적, 인격적, 사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날에는 따라올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단결되는 날에는 공산당은 훅 불기만 해도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이제 김일성은 영계에서 불러 갈 것입니다. 김일성을 영계에서 불러가면 북한은 두 파로 갈라져 숙청 바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는 3년 이내에 또다시 두 파로 갈라져서 숙청 바람이 일어나서 절반은 없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두 번만 거쳐가게 되면 북한 공산당은 약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3대만 지나면 공산당은 훅 불기만 해도 전부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김일성이 민족을 졸라매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책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민족사상이 있으므로 김일성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서워하려면 하나님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을 무서워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된다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무서워할 것입니다.
성경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의를 위해서 내 생명을 각오하고 나가면 우리 앞에는 탄탄대로가 벌어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남북통일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벨 국가가 되면 가인 국가가 생겨나기 때문에 가인 국가형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통일 교회와 승공연합에 구보끼를 세워서 그 국가와 사회 앞에 주의를 전환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고 하는 자리에 몰아넣어 그 국가를 하늘편적 가인 국가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편적 가인 국가가 아닙니다. 이렇게 하늘편적 가인 국가 형태를 만들어 가지고 넘어가자 하는 것이 오늘날 일본을 통한 작전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통한 작전은 세계적인 가인을 응징하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죽게 된 것은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찾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너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한 것같이 내 민족과 내 나라를 하나님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나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었으면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입장에 섰으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족과 민족과 나라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상의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하늘나라의 계명이 아니라 지상천국의 계명입니다. 천상천국의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 :37)"는 것이지만, 지상천국의 제일의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나라와 네 민족을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부식(扶植)시키느냐, 하나님의 권능과 하늘나라의 경외성에 어떻게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넓은 무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영계에 가서 하나님의 위업을 영원히 상속받을 수 있는 지파장이나 족장,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한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가인과 아벨이 있으면 천사장, 즉 사탄도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될 수 있는 이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가인이 나오는 것은 이것을 끊지 못하고 하나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되는 데 있어서는 영육을 중심 삼아 하나되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영육을 중심삼고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아담 국가는 한국이고 해와 국가는 일본입니다. 지금은 국가시대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기준에서 가인을 복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벨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복귀되지 않으면 아벨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가인을 굴복시켜야만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국가, 즉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아담 국가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아담 국가가 되었어요? 원리적으로 볼 때 우리 한국은 영적인 면에서만 아담 국가이지 영육 아우른 아담 국가는 아닙니다.
한국이 아담 국가가 되면 해와 국가가 있어야 되는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해와 국가입니다. 또 아담 국가와 해와 국가가 있으면 그 앞에 설수 있는 천사장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천사장 국가는 어느 나라냐? 중국입니다. 중국은 아시아에 있어서 문화의 기원입니다. 오천년 역사의 문화를 가진 중국은 아시아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천사장권입니다. 천사장이 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으니, 아시아에 있어서도 중국이 문화적으로 권한을 행세하며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점점 때가 되어 옴에 따라 그 권한을 물려주어야 하는데 누구한테 물려주어야 하느냐 하면 아시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주인에게 물려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상속받아야 할 주인이 상속받기 전에 사탄이 먼저 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산권입니다. 천사장이 아시아를 주인에게 넘겨 주기 전에 빼앗겠다고 하는 것이 공산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 국가와 아벨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서 아담 국가 형태와 해와 국가 형태, 그리고 천사장 국가 형태가 횡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기준이 나올 때까지의 종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싸움은 종적인 싸움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는 횡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횡적인 관계는 아담 국가를 중심삼고 벌어지기 때문에 한국이 아시아에 있어서 횡적 관계의 출발의 기원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하늘편적 아담 국가의 위치에서 하늘편적 해와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일본 통일교회와 일본의 승공연합 활동입니다.
그러면 중국은 어떠한 나라냐? 중국은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다 빼앗겨 버리고 대만에 몰려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천사장 세계가 둘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장이 언제 제물을 드려 보았습니까? 드려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드려야 하느냐? 아담 해와에게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바다 가운데 섬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제물과 마찬가지 입니다.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중국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 제물을 완전히 받았다는 것은 중국 대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물을 완전히 받게 되면 사탄이 반대하는 것은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아시아 정세에 있어서 삼국동맹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일본을 주축으로 해서 한국과 하나되고, 일본을 중심삼고 대만을 복귀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구보끼 협회장이 미국에 갔다가 대만 정부와 접촉하기 위해 대만을 거쳐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과 일본과 대만이 하나되는 날에는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가 복귀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는 모두가 이 작전권내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세계입니다. 아시아 문명권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다음에는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시아권을 중심삼고 세계를 볼 때 해와 국가는 미국입니다. 그리고 천사장국가는 독일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 미국, 독일, 이 세 나라가 하나되기만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장 형태를 보면 한국을 중심삼고는 북한이 천사장형이고, 아시아를 중심삼고는 중국이 천사장형이고, 세계를 중심삼고는 독일이 천사장형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의 형태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세계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민주세계가 아담의 입장에 서고, 공산세계는 해와 입장에 서고, 영계에 있는 천사가 천사장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구해 주십시오' 하여 영계와 육계를 전부다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을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원리적인 복귀의 단계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주 복귀란 무엇이냐? 하늘 땅을 중심삼고 볼 때,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그리고 영계에 있는 사탄세계까지도 전부다 합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에덴 동산에서 참부모 입장인 아담 해와를 천사장이 모셔야 했던 것을 천주적으로 확대시켜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세계가 이루어지면 지상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도 필요없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자기 가정이 이국 민족과 하나될 수 있는 혈통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영계에 가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결혼할 때는 국제결혼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처녀 총각들은 전부다 국제결혼을 해야 합니다. 알았지요? 이제부터 서서히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태어났으면 한번 해 볼 만한 것입니다. 이제 복귀역사에 대해서 좀 알겠습니까? 재미있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서 재미있는 것은 한국도 남북한으로 갈라져 있고, 중국도 갈라져 있고, 독일도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세 나라가 똑같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갈라지면 안 됩니다. 해와로부터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해와가 갈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을 한번 봅시다. 일본 정부의 사또 수상과 기시 수상이 형제간이기 때문에 가인 아벨이 복귀되었습니다. 또 장개석 정부의 중국을 볼 때도 정치 분야와 군사 분야를 맡고 있는 장경국과 장위국이 형제간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형제가 아닙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형제 간에 정권을 잡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형제가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형제끼리 정권을 잡아서 가인 아벨이 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통일교회와 형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나되는 날에는 이 세 나라는 일시에 복귀되는 것입니다. 재미있지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아시아 정세는 이미 우리의 판도권내에 다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요리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결사적으로 이 배후의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입장으로 볼 때, 일본이 용공국가가 된다면 대한민국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련, 중공, 일본 등 세계 강국 사이에서 살아 남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해와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이 창조해서 찾아야 되기 때문에 일본에서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일본 구국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일본을 구해 주었다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반공국가가 되면 한국도 살아 남는 것입니다. 한국을 구해 준다는 것입니다. 해와의 사명이 이렇게 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여자들이 출세하는 시대입니다. 1차대전 이후부터 70년 동안이 이 운세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차대전 이후부터 금년이 몇 년째입니까? 53년째지요? 그러면 70년째 되는 해까지 얼마 남았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국가적인 시대 앞에 우리 통일교회의 운세가 얼마만큼 되었고 어떻게 될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이 늦으면 3년이 연장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80년대만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섭리적인 내용을 두고 볼 때,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노정을 통하여 빠르고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이 결정해야 될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를 두고 볼 때 외적으로는 초라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섭리적인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일본만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게 되면 됩니다. 이번 70년도의 와클(WACL)대회을 중심삼고 한 고비를 넘기기 위해 거국적인 역사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의 정세라든가 아시아 정세를 조금더 얘기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벌써 세 시가 넘었어요. 지금 입이 마르고 배도 고픕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점심을 안 먹었군요. (웃음)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원리적인 가인 아벨의 복귀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원리의 길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가정을 바랄 수 없는 것이며,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인 아벨의 원칙적인 궤도를 따라서 개인에서 출발한 것을 가정으로, 가정에서 출발한 것을 세계에까지 끌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도 종족도 민족도 국가도 세계를 위하는 것이어야 됩니다. 세계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대한민국의 여러분들만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가인 복귀노정까지 대신해 나오신 것입니다. 또 이 지상 세계뿐만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사탄 세계까지 복귀역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탕감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사탄까지도 사랑한다고 하는 자리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 자리까지 나간 사람들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을 사랑했다 하는 입장에까지 못 나갔습니다.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자리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아시아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람들도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각국을 중심삼고 그 국가를 위해서 일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사랑했다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선교본부를 세워 가지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을 중심삼고 환란과 핍박을 방지하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통하여 현시점에 있어서 한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 기준을 넘어설 수 있도록 탕감역사를 압축시키기 위한 역사를 선생님이 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런 것을 모르고 선생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안팎으로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길을 가야만 우리의 책임이 완수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이 생의 기로에 서서 전후좌우를 중심삼고 어느 방향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심각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저희들은 전통적 사상을 지녔느냐, 안 지녔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전통적 사상을 하나님과 교회와 내가 심정 일치를 이루는 자리에 세워서 이 시대와 미래에 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중심삼고 오늘의 생활무대를 개척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탕감노정에는 개인이면 개인시대의 탕감노정, 가정이면 가정시대의 탕감노정, 종족이면 종족시대의 탕감노정이 있으며 이 책임을 못하게 되면, 3단계의 조건을 거쳐가면서 역사적인 사명으로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오늘날 저희들이 처해 있는 이 자리가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날 수 없는 역사적인 운명권내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생활은 내 자체만을 위한 생활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연장되어 온 생활이요, 인류를 대신한 생활이요, 미래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생활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빛내고, 시대를 세우고, 미래를 위한 정초석을 놓아야 할 입장임을 자각하여 자신의 하루 생활을 통하여 생애노정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사람의 가정에도 같이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모든 주체적인 사명을 추구시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며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의 젊은 가슴에 부풀어 오르는 소망이 그 무엇이겠습니까? 피폐했던 역사의 서러움과 더불어 갈 길이 암담한 이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핍박과 죽음의 교차로 가운데도 새로운 생명의 깃발을 들고 보람 있는 내일을 위하여 탕감의 노정을 겸손하게 거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20여 세면 20여 세의 생애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죽어갈 때 하늘땅이 인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서글픈 인생으로 끝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죽은 것은 하늘땅의 슬픔이요, 내가 남는 것이 하늘 땅의 기쁨이라고 천지가 보장할 수 있는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살다가 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생애노정의 출발이요, 종말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에게는 빛나는 내일의 천국을 위하여 책임을 짊어질 하늘의 아들 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참된 아들딸이 될 것을 다짐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의 한국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나라에 비운이 찾아온다고 서글퍼할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심정을 저희들의 가슴가슴에 연결 시킬 수 있는 그러한 인연이 없는 것을 슬퍼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한 사람을 붙들고, 그 사람을 지키시는 그러한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족이 다 반대하여도 그한 사람이 남아진다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이 수습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날의 통일교단을 지켜 주시옵소서. 창백한 얼굴에 남루한 옷을 입고, 부족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쌍수를 합하여 아버지 앞에 드리는 그 기도 소리는 아버님의 심장에 큰 충격을 주어 아버님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러한 자리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임재하시어서 증거해 주시옵고, 사랑을 듬뿍 부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오늘의 슬픔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꿀 수 있고, 오늘 하루의 외로움을 내일의 평화로 바꾸는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시옵고 격려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여기에 모인 50여 명의 가슴에 피끓는 심장으로부터 새로이 울려 퍼지는 동맥의 고동소리가 어디에서 그칠 것이며 정맥의 피는 어디를 향하여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것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을 맞이할 승자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심장을 통하여 뻗어 나오는 사랑을 전하는 동맥의 기관이 되어서 세계의 모든 민족 앞에 옮겨 주고, 생활적인 역사적 전통기반이 정맥의 인연을 통하여 여지없이 돌아올 수 있는 그러한 인연을 스스로 갖추겠다고 아버지 앞에 자신을 갖고 나서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바라는 가정은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가정이 되어야 되겠고, 저희들이 바라는 나라는 아버지께서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시는 그 나라가 되어야 되겠고, 저희들이 바라는 세계는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아버지와 저희들이 기뻐하며 춤을 추는 천국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명심하고 그 나라를 창건하기 위한 용사의 심정과 그 나라를 모시기 위한 마음의 희열을 가지고 형용할 수 없는 투쟁의 노정도 극복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의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린 아들딸들이 여기에서 며칠간 지내는 동안 아버지께서 무엇을 선물로 주시겠사옵니까? 이 나라와 세계와 아버님을 선물로 주시어서 아버지를 위하여 죽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자기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고 하늘 민족을 아는 자리에서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이 시간, 이들에게 상속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전체를 당신이 친히 맡아 주시옵고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72년까지 선생님이 바라는 기준을 넘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다시 내몰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대로 가만히 앉아 가지고 뭉개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이것을 안고 추어야 되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못하게 되면 여러분들의 자식들에게 피어린 수난의 길이 남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가정의 앞 길도 막힐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위해서 우리를 나라와 세계 앞으로 몰아내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안고 추지 못하여 때를 놓쳐 버린다면, 그때를 누가 맞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잘 안고 추면 나라와 세계 앞에 버젓하게 나설 수 있는 때가 옵니다. 그러니 여기에 가담해서 활동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되겠습니다.」
요전에 지구장 모임에서도 '여러분의 부인들도 최소한 3년 동안은 전도활동을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애기들은 다 이쁘지요? 이쁜가, 안 이쁜가?
이제 원리 이야기 좀 합시다. 여러분은 아벨이예요, 가인이예요? 「아벨입니다」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지금까지 아벨에 대해서는 원리에서 확실히 밝히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확실히 밝힐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지지리 고생을 해요?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무슨 탕감이니 복귀니 해 가지고 원수들을 대해 주먹질도 한번 못하고, 욕도 한번 못 하는데 그게 뭐예요? 그거 기분 나쁘지 않아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화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성격이 얼마나 급합니까? 칼이 있으면 단숨에 목을 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죽은 듯이 사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사느냐? 여러분들은 왜 그러고 살아요? 왜 그래야 하는가 생각해 봅시다.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 기반을 닦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별의별 일을 다 당하고도 왜 가만히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생한 여러 분들에게 또 왜 고생하라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게 언제 끝날 것이냐? 통일교회, 아이구 통일교회…'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머리통이 나쁜 통일교회냐?
통일교회에서는 뭘 하자는 것이냐? 원리주의대로 살자는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천리의 원칙을 따라 살자는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리의 원칙을 따라 사는 것이 고생하는 것이냐? 지금까지 희생하고 지지리 고생하고 그만큼 천대받았으면 되었지, 지금 또 이게 뭐냐? 축복받으면 다 좋다고 해서 축복받아 가지고 이제 잘살 줄 알았더니, 사위기대 사위기대 해서 아기들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었는데, 사위기대를 지고 나가서 또 고생해야 된다니 축복은 무슨 축복이냐'고 할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불만 없어요? 불평해 봤어요. 안 해봤어요? 「안 해봤습니다」 여러분들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불평할 줄도 모를 거예요.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잘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잘났지만, 세상 앞에서는 잘난 것이 없습니다. 세상 앞에서는 잘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쪽에서 다 잘나려고 하다가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되기 쉽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는 잘났지만 세상 앞에는 못났다는 것입니다. 얼마 만큼 못났느냐 하면 죽을 만큼 못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못났는가 하면 빌라도 법정에 끌려 나갔을 때, 그들이 뭐 어떻고 어떻다고 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해도 그 앞에서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죽더라도 시원하게 '이놈의 자식들' 하며 큰소리 한번 쳐 봤어요? 못 친 것이 잘난 거예요? 못났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는 잘났고, 세상 앞에서는 못났습니다. 세상 앞에서도 잘났다면 아무것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대관절 왜 예수가 못났느냐? 못난 일을 했기 때문에 못났느냐? 아닙니다. 나기는 잘났는데 너무 잘나서 그들과 상대가 안 되었기 때문에 못난 일을 한 것으로 된 것입니다. 못나서 못난 일을 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질 않으니 못난 일을 한 것으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것은 원리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짓기 전에는 천사장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지으신 후에는 천사장을 더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느냐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자에서 피흘리고 운명하는 순간에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관절 어떤 말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장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천사장을 사랑해 봤어요? 하나님이 천사장을 사랑하듯이 천사장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부모에게 상속을 받으려면 부모와 심정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행동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한 집안에서 부모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자식은 어떤 자식이냐 하면 부모의 마음에 드는 자식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점령한 자식입니다. 그 다음엔 생활에서 부모의 행동에 보조를 맞추는 자식, 부모와 뜻을 같이하는 자식, 부모와 희망이 같은 자식입니다. 아무리 아들이 많더라도 그런 기준에 100퍼센트 가까운 자식이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천사를 사랑해 봤느냐?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입니다. 그러니 부자일심,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천사를 사랑하면 아들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천사를 천사답게 사랑하지 못한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왜 악의 괴수인 천사장에게 6천년 동안 참소를 받아 왔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 잘났어요? '이 못된 녀석' 하고 툭 차 버리면 그만일 텐데 왜 사탄의 참소를 '그렇다. 네 말이 옳다' 하면서 받아 나오셨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를 사랑해야 할 원칙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서 천사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이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인간도 사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란 존재는 천사장의 대신자이고, 아벨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즉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타락한 인간은 천사장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즉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으로 보면 천사장은 사탄이요 원수지만, 그 사탄을 근본대로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듯이 하나님의 아들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 심정의 일치, 생활의 일치, 소원의 일치가 되지 않으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지 않고서는 상속을 못 받는 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한 천사장을 아들도 사랑하지 않으면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에 천사장이 사탄이 되었을망정 그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인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으니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은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해야 할 천사장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아담 해와를 섬기는 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아담을 때려 죽이려 하는 천사장이어야 됩니다. 그것은 그런 사탄까지도 사랑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 기도한 것도 하나님의 천리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원칙에 입각하여 천사장을 사랑했듯이 아담과 해와도 그런 입장에 서서 천사장을 사랑해야 했는데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느 한때에 천사장을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길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라도 원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 가기 위해 예수님은 원수인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원수에 대해 기도한 내용이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이란 타락하지 않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하나님을 사랑한 다음에는 누구를 사랑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복귀시대에 있는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벨의 길을 따라서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복귀노정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설 자리입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을 주고받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하나님과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사랑하던 천사장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 해와는 미성년 시대에 타락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인 천사장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틀림없는 상속자입니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에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가인이오, 아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입니까, 가인입니까? 「아벨입니다」 아벨이 되었어요? 아벨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받는다고 보고 있어요? 자기의 손을 보며 '아, 이 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손이다. 아이고 이쁘다' 그래 봤어요? 내 사지백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몸뚱이로구나' 그렇게 느껴 봤어요? '내 피와 살에는 하나님의 피와 살이 있고, 내 사랑에는 하나님의 생령요소가 약동하고 있다' 하는 것을 느껴 봤어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전부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첫째는 뭘 해야 된다고요? 이걸 확실히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서 거짓 부모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로 분립해서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담 대신 아벨, 천사장 대신 가인을 세워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정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심정이 일치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야, 너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생활적인 것을 지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시한 대로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지시대로 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심정적 일치가 외적인 일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원리를 확실히 알고 나가야 합니다.
그때의 아벨은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어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 아벨아. 너 이것 해라'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벨은 하나님의 '해라' 하는 그런 기준 앞에 제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제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정성들여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우주적인 상속을 해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으니 그 하나님 앞에 심정적으로 정성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일치를 중심삼고 행동이 일치되면 그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적 일치가 되고 행동적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생활의 기반 위에서 마음의 표시, 몸의 표시, 행동의 표시로 하나의 결실을 맺어 탕감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제물입니다. 알겠어요? 이 제물은 마음의 제물이요, 몸의 제물입니다. 여기에는 최고의 정성,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성이 들어가 있고 심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도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괜히 때려 죽였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동생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 앞에 정성들여 제물을 드렸는데 아벨의 제물만 받았으면 그만이지 뭐가 그렇게도 분하고 원통했겠습니까? 가인이 분해하고 원통해 했다는 것은 가인도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아벨에 못지 않는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기독교인들은 통일교인에 대해서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렇지요? 그들도 정성을 들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이 하나님을 몰랐느냐? 하나님이 귀한 분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 일년 동안 정성들여서 가꾼 곡식을 제물로 드린 것이나 아벨이 정성들여서 양을 잡아 제물로 드린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았을 때 아벨은 자신의 제물을 받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 형에게 '형님, 죄송합니다' 했으면 형이 때려 죽였겠습니까? 아벨은 틀림없이 야곱 같은 패였을 것입니다. 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벨은 우쭐해 가지고 형님보다 내가 낫지' 하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형은 뭐야? 하나님이 형 제물은 안 받고 내 제물만 받았어' 이러니 가인이 왈칵 분한 마음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거기에서 '이놈의 자식이 뭐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만일 아벨이 온유겸손하고 순종굴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그때 복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벨이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가인을 동정하고 위로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만일 아벨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안 받은 것을 긍휼히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동정하고 '내가 상속받은 것은 다 형을 위해서 받은 것이니 대신 받으십시오' 하였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기의 귀한 사랑을, 하나밖에 없는 귀한 선물을 가인에게 다 줬더라면 그것은 천사장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순종하고 온유겸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아벨이 가인 앞에서 자랑했을 것 같아요, 안했을 것 같아요? 아벨이 안 그랬는데 가인이 괜히 얼굴을 붉히고 때려 죽였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인의 입장에 있는 기성교회로부터 반대를 받는 데에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아 기성교회 목사들, 내가 아는 원리도 모르고 뭐야? ' 이러면서 큰소리쳤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 그랬으니 반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며 찾아가서는 '당신 타락론을 아시오? 선악과가 뭡니까' 하면서 건방지게 까딱까딱하니 그들이 반대 안 하겠어요? (웃음) 입장을 바꿔 놓고 볼 때 여러분 같으면 반대 안 하겠어요? 아벨이랍시고 쳐들어와서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이라도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옛날에는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따라 다니던 녀석이 통일교회 말씀을 며칠 동안 듣고 와서는 '당신이 뭘 압니까' 하는데 반대 안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래서 많은 사람 잡은 거예요. 사람 잡는 백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칙에 어떻게 어긋났느냐?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했는데,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도리어 가인의 분노를 폭발시킨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니 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떠들다가는 맞는 것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도 누가 그렇게 떠들었느냐 하면 제자들이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하려고 했는 데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하라는 짓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짓만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하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눈에 보이거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말해도 모르니까 보이는 것만 들고 다니며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뭐 유대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떠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충동질해 가지고 다 망쳐 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으로 피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됐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이 다 망쳐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로마는 유대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원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원수 나라의 총독인 빌라도 앞에 서서 화난 얼굴이 아니고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너희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라. 나는 탕감조건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하늘 뜻에 절대 순종하고,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 있다. 천리의 원칙 기반이 여기에서 벌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그 환경을 다 받아 넘겼던 것입니다.
'원한의 역사시대에 가인이 아벨을 치던 그 모든 시련을 내가 해원하겠다. 역사시대에 가인들이 제시했던 그 모든 것을 재판(再版)해라. 그렇더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수습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갈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묵묵히 그 환경을 넘어 십자가의 자리까지 나갔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갔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인 나는 천사장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유대교를 옹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편에 있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아버지와 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됐어요, 안 됐어요?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한몸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십자가상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원수를 사랑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가면서까지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은 역사상에 없는 위대한 승리의 팻말을 꽂은 것입니다. 아담이 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하나님편에 서서 뜻을 중심삼고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기독교 역사가 새롭게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따라 나가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됩니다. 선생님 앞에는 가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아벨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천사장, 즉 가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인과 싸우는 입장에 있어 가지고는 아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가인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 아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의 위치가 어떤 위치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는 아벨이다. 나는 36가정이니까 72가정은 내말을 들어야 돼. 124가정도 430가정도 내 말 들어야 돼'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 온 놀음이 뜻적인 놀음이예요, 세상적인 놀음이예요? 지지리도 보기 싫은 세상적인 놀음입니다. 그래, 36가정이 아벨 가정입니까? 하나님과 일치 되었어요? 아벨 가정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일치되었어요?
아벨 앞에 있어서 가인은 원수가 아니면 원수의 아들입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하나님이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의 원수는 사탄이 아니면 사탄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저 녀석 아버지가 우리를 반대했으니 이용해 먹고 모가지 잘라 버리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을 사랑해 가지고, 그 아들을 자기 앞에 가인적 입장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장본인을 가인적 입장에 서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빼앗아 오는데 목을 조이고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보다 더 사랑해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빼앗아 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탄,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됩니다. 눈물과 피땀을 흘려 가지고 자기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준인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 서야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돌아갈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사탄의 아들딸을 얼마나 사랑해야 되느냐? 예수보다 더 사랑해야 되느냐, 덜 사랑해야 되느냐?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제물로 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면서까지 원수의 자녀들을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가지고 사탄의 자녀들을 하늘편으로 데려가 더라도 사탄이 참소를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탄과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기선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전도하러 가서 보아서도 알겠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부모들입니다. 아들을 극성맞게 사랑하던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한다는 거예요. '아이구 우리 아들 통일교회에 나가니 참 좋구나. 이런 교회가 어디 있느냐' 하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이 전도 나갔을 때 그런 부모 있었어요? 악착같이 반대하고 원수 되는 사람은 온갖 정성을 들여 사랑하던 그 어머니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는 틀림없이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탕감복귀를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이 연장되면 3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탕감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원칙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지금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분 앞에 가인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되느냐? 이것이 문제됩니다. 가인과 아벨은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다음에 하나님과 하나되고, 다음에 제물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을 입회시켜 가지고 판가리를 지어야 됩니다. 결판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결정해야 됩니다.
먼저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냐, 자기가 복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오늘날에는 자기가 복받을 생각으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복은 사탄세계로 다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또, 나라가 복 받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도 나라가 망하게 되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흘리며 제물을 들여야만 그것이 아벨적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제물을 드리려면 우선 사탄을 분립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반드시 사탄이 참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을 분립하는 데에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제물을 누가 드려야 합니까? 누가 먼저 바쳐야 합니까? 아벨이 먼저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가인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가인도 복받게끔 가인도 제물을 드리게 하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자고 하는 자리에서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나라면 나라를 걸고 기도하고, 마을이면 마을을 걸고 기도하고, 상대면 상대를 위해 기도하여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물을 갖지 않고 제물드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제물이 되어야 하느냐? 오로지 자신의 몸뚱이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깨끗해야 됩니다. 즉, 세상에서 성별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정을 떠나 가지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깨끗한 몸이 되지 못하면 제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몸이 못 되면 일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탄세계의 일선에 보내서 이러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가인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세계에 나간 하나님의 아들이 백 사람으로부터 반대받으면 하나님도 상대적으로 그만큼의 사랑을 그 아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 반대하면 천 사람이 반대한 만큼 하나님도 여러분을 사랑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을 다해 쌓은 제단이 반대받아 허물어졌을 때는, 반드시 반대한 사람의 아들이 깨져 나갑니다. 친 자의 아들딸이 반드시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탄이 침범하면 그 대가로 하나님은 사탄의 아들딸을 빼앗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정성들이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딸이 가인이예요, 아벨이예요? 그들이 제물을 드렸어요?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나오셨으니,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종의 자식들을 끌어 올리는 역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대신 그런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여러분을 위해 수난의 역사를 거쳐오셨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 대신 그 역사의 슬픔을 중심삼고 종의 자식 앞에 온정성을 퍼부어야 됩니다. 종의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하기 전의 아담을 사랑하시던 기준보다도, 아벨이 가인을 사랑하는 기준이 더 높아야 됩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서 사랑해야 됩니다. 이때는 형제로서의 가인과 아벨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가인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종적으로 올라가는 종적 관계입니다. 이때는 아직 횡적 관계가 아닙니다. 가인이 그 기대 위에서 아벨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이 같아야 되고 심정이 같아야 됩니다. 그리고 소망도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아벨은 가인을 그 기준까지 키워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과는 심정일치, 생활일치, 소원일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아벨은 그렇게 일치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인을 키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인이 아벨과 그렇게 안 되어 있다 할 때는 언제 달아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해 가지고 같은 혈육의 정이 통할 수 있게끔 가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와 나는 죽더라도 하늘편이다. 죽음길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당신이 가는 데는 나도 가고, 당신이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내가 대신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죽을 자리에 있을 때 아벨이 대신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아벨이 죽을 자리에 있으면 가인이 대신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당신의 목적과 당신의 소원과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입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전부다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그 모든 심정도 내 것이요,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도 내 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기준까지 올라간 아들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어 비로소 부모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과 아벨의 복귀역사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횡적 기반이 닦여지느냐?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횡적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부모를 통해서 가야 합니다. 이렇듯 완전히 하나된 그 자리를 중심삼고 주님인 참부모가 올 때까지 끌고 나온 역사가 기독교 역사입니다. 영적인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육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형제의 인연을 결속시켜야 합니다. 심정을 통일시키고 행동을 통일시키고 소원을 통일시킨, 같은 형제의 기반 위에서 '죽더라도 내가 먼저 죽지 아벨을 죽여서는 안 되겠다'고 할수 있는 자리,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가인을 기르는 기간이 얼마인가? 7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무엇이었느냐 하면 세계적인 아벨적 아들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즉, 메시아를 찾아 나오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벨적인 아들을 찾아 나오는 노정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럼 재림주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세계적인 아들입니다. 세계적 아들인데 영적인 아들이 아니라 영육 아우른 세계적인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예수님은 국가적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아들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세계적인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이 세계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과 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세계적 아들로 오시는데 세계적인 중심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시고, 또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적도 없고 희망도 없던 사망세계의 인간들 앞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가지고 같이 행동하여 하나의 목적세계로 같이 들어가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로 오셔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들로서 이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세계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개인을 사랑했다는 전통을 세우지 않고는 세계적 복귀노정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민을 사랑했고, 가정적으로 만가정을 사랑했고, 온 종족과 민족을 사랑했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혼자 세계 인류 전부를 모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보면 이 세계는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30억 인류는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 안에 다 들어갑니다. 더구나 뜻적인 기준에서, 조건적인 입장에서 인류를 보면 하나의 남자요. 하나의 여자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가인 아벨이 될 수 있습니까? 여자가 가인과 아벨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남자만이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시대에 와서 여자들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을 정하였는데 이것은 천륜적인 기반이 닦여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여자는 국물도 없었습니다. 남자를 세워 놓으면 여자는 그저 따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가인 아벨될 수 있어요? 그것은 상징적인 면이나 형상적인 면의 조건은 되지만 복귀의 조건은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복귀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만민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냐?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자를 사랑하고 나서 천사장을…. 그런데 천사장이 여자예요, 남자예요? 「남자입니다」 그리고 가인 자리에 여자가 설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자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자리, 그 중에 가인의 자리에도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가인 자리에도 참석 못 했습니다. 가인 아벨은 남자 형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앞에는 누가 있어야 되느냐? 세계적인 남성을 대표한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은 그런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닦아 나오면서 어떠한 입장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개인적으로 완성한 아벨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완성한 아벨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심정적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사탄까지도 축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실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억천만 사탄들이 영적으로 들이 때리더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의 억만 사탄들이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원수로 대해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시하는 시련을 극복하고 넣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수난을 받으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잡영계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영계의 반대를 받으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 올라가면 최고의 파가 있을 것입니다. 온갖 사탄과 싸워 가지고 그들을 굴복시켜 올라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중간 영계의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중간 영계도 수천 수만 개가 있는데 그 모든 장(長)들로부터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아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탄 괴수의 시험은 물론이고 수많은 도인들이나 중간 영계에 있는 모든 그룹의 장들이 시험을 하게 됩니다. 사탄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네 까짓 것이 뭐야' 하면서 시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거쳐야 합니다. 맨 나중에는 예수님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까지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조건을 다 넘어가야 합니다.
개인이 아벨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행동적 기준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상천하 어디에서든지 참소조건에 안걸리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 또한 참소조건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참소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도 사탄세계에서 어떠한 참소조건을 제시하더라도 거기에 걸리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이 참소를 하더라도 거기에 걸리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도 역시 그 참소에 걸리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잡영계에서부터 예수님까지 참소하게 되는 데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를 복귀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장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적으로도 승리하고 육적으로도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쉽지만 실체적으로도 승리해야 됩니다. 영적으로만 승리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아들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실체세계에서 실체의 사탄을 대해 승리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육을 중심삼은 승리적 아들, 즉 영육을 중심삼고 참소의 조건을 남기지 않는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시대에 참소의 조건이 되었던 모든 조건을 들고 나와도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소조건에 걸리지 않게끔 방편적인 내용을 세워 나온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영적인 승리의 기반을 중심삼고 육적으로도 참소의 조건에 걸리지 말아야 됩니다. 참소의 조건에 걸리지 않게 하려니까 세상에서 반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그 영적인 기준 앞에 있어서 실체적인 육적 가인이 되어 하나될 수 있는 심정을 가졌더라면, 거기서부터 영육 아우른 세계적인 가인 아벨 복귀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전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실체를 중심삼고 반대의 화살을 받으면서도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실체를 중심삼은 투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960년대까지 계속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했다는 기준을 중심삼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그런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대표적인 하늘편 가인을 세워 가인 아벨의 탕감의 조건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영육 아울러 아벨적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킨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비로소 돌아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늘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형제의 자리를 넘어서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을 다 해야 했습니다. 그건 무엇이냐? 아벨에게는 자기의 사명과 아담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벨을 통하여 아담이 복귀되지요? 그러므로 아들의 사명과 아버지의 사명, 즉 이 두가지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영적인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의 참소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그들을 사랑해야 하며, 실체 세계의 모든 나라가 동원되어 반대하더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로서의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은 물론,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출발할 수 있는 아벨적 존재로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60년대까지는 나라 전체로부터 욕먹고 반대받는 자리에 섰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감옥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감옥에서부터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생명을 다 바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가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벨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요, 가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구하려면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가인을 구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또, 가인이 아벨을 따라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따라갈 수 있어요? 없습니다.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즉, 지옥의 밑창에서 뜻을 위해 죽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죽으면 지옥 맨 끝으로 떨어지고, 이 세상의 밑창에서 죽으면 그 자리에서부터 올라가게 됩니다. 천국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지옥을 뚫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옥의 환경을 극복하고 가야 합니다. 죽음을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죽는 데는 어디서 죽어야 해요? 지옥에서 죽어야 합니다.
지옥에 가면 전부 서로서로 미워하고, 서로서로 욕합니다. 전부다 '저녀석 갔구만. 저놈 왔구만'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박사가 들어와도 '이 녀석아, 너 무엇을 해먹던 녀석이냐' 하고 대번에 친다는 겁니다. 이것 참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남을 위하다가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봐주려고 야단입니다. 거기에서 해방이 벌어집니다.
선생님도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지도한 것입니다. 남한 땅에 내려올 때도 감옥에서 만난 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떨어져 나갔다가 겨우 다시 들어오긴 했지만….
자, 어디서 죽어야 한다구요? 「지옥에서요」 사람들은 '아이고 나 혼자 죽기 싫다. 같이 죽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부인하고 같이 죽을 수 있어요? 「없습니다」 이왕 죽을 바에는 나를 위해 죽을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죽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는 무엇을 위해 죽어요? 자기를 위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다가 죽습니다. 나는 돈을 벌어야 되고, 또 뭘 해야 된다고 하며 자기만을 위하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가는 길은 남을 위해 죽는 길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여러분을 고생하라고 때려 내몰았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보리밥을 먹어 가며 피땀 흘리고 모진 매를 맞아 가며 쫓겨 다녔습니다. 그거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잘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뭘 하라는 것이었습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 되어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때 여러분은 선생님 말 잘 들었지요? 전도나가서 선생님 보고 싶어서 우는 일도 참 많았지요? 선생님이 어디 가면 열심히들 선생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왜 그래야 되었느냐? 가인 아벨 복귀를 위해서였습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었고, 인간들 전체 앞에 아벨적 입장에 섰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될 수 있으면 아벨이 가인을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절대복종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도 고생하고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이 고생한 것을 자기의 고생으로 여기고 눈물 흘리며 뜻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내가 당한 것같이 느껴지고,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눈물이 나고, 억울해 하고, 분해 하고, 이렇게 동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을 선생님에게 동감시키게 하기 위한 재료가 선생님의 고생입니다.
선생님이 역사시대에 고생을 했지만 그것은 오늘 현실적으로 같이 느낄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선생님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게 될 때에는 선생님 앞에 가인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과 여러분이 사랑하고 하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 영원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복귀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기르는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은 개인적인 아벨로서 영육간에 참소의 조건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책임자보다도 그 나라의 백성을 더 사랑하고 그들의 부모보다도 그들을 더 사랑한다는 입장에서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입장에서 자유당 시대, 민주당 시대, 혁명정부 시대를 거치 나왔습니다.
자유당 정부는 아담형이요, 민주당 정부는 해와형이요, 혁명정부는 천사장형입니다. 이것이 원래는 한꺼번에 돼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되지 않고 3시대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당 시대에도 선생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고, 민주당 시대에도 선생님을 잡아죽이려고 했고, 혁명정부 시대에도 선생님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그게 다 원수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입장에서도 걸리지 않고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고생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에 있어서 원수 중의 원수가 누구냐? 나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아니요, 나를 반대하던 기성교회 사람들도 아닙니다. 뜻을 알고서 생사를 걸어 놓고 맹세하고 따르다가 배반한 사람 이상의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제일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 같은 핏줄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지연을 가진 그들로부터 핍박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기 위해 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어려운 싸움을 해 가지고 개인적인 아벨이 되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 아벨이 되었으면 가정적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개인적 아벨은 되었지만, 가정적 아벨의 자리에는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선생님 개인을 중심한 개인적 아벨을 찾아 세우고 가정적 아벨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적 아벨로 승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인 아벨 복귀의 기준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늘 앞에 상대적 기준으로 결정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사탄이 참소 못 합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사탄세계의 가정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 자체가 아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 자체가 아벨이 되려면 가인적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가정을 위해 우리 가정이 가인적 가정이 되어 제물이 되겠다고 한 가정이 지금까지 있었어요? 여러분들 여기 36가정 72가정들 생각해 보세요. 그런 마음 갖고 산 가정이 있었어요? '하늘 가정의 모든 어려움을 이 가정이 대신 짊어지게 해주십시오' 하는 가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 가정을 길러 나온 것입니다. 가정적 가인을 수습하는 기간이 아까 말한 7년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가정적 가인을 길러 나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의 가정이 아벨적 중심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여러분 가정을 돌보지 않고 선생님 가정을 아벨적 가정으로 만들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 36가정도 책임 못 하고 72가정도 책임을 못 했습니다. 다 못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선생님 가정에서 혜진이와 희진이가 희생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들딸을 희생시켜 가면서 하늘을 위하고 가인 가정을 위한 것입니다. 36가정, 72가정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어요? 선생님은 하늘가정은 이래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참소 조건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이것이 남아졌을 때에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되느냐? 또 7년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그러나 1차 7년노정을 걸음으로써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참소 조건을 해소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어떤 날이냐 하면, 하나님의 직접적 주관권내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또, 부모의 날은 타락한 부모에서 타락전의 입장으로 올라간 것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뿐만 아니라 자녀의 날, 만물의 날도 찾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죄악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만물의 날, 자녀의 날, 부모의 날, 하나님의 날을 거쳐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노정을 거쳐서 1968년에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고, 그 다음에 가인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 아벨 가정을 세웠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아벨적 가정의 기반을 세우기 위한 것이 1차 7년노정인데, 이 7년노정은 선생님이 가정적으로 가야 하는 노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종적인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횡적으로 벌여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중심삼고 이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아벨적 가정을 중심삼고 전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될 수 있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탕감복귀의 기반을 닦아야 되기 때문에 36가정과 72가정과 120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그 가운데 36가정은 종적인 선조 36대의 축소형입니다. 그 다음에 일대(一代)가 떨어진 가인 아벨형이 72가정입니다. 그리고 120가정은 세계의 120개 국가를 대표하는 가정입니다. 유엔 가입국 120개 국가와 딱 들어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렇게 들어맞았습니다.
세계적인 대표형을 세워 사방으로 넓혀 나가야 합니다.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 조건 세운 것을 실체로써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120개 국가에 선교부를 창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조건적 기준을 세우면서 복귀역사를 닦아 나왔습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되면 외적인 평면적 기반이 조건적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실체적인 아벨 가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12지파, 70문도를 세워 세계를 찾으려 하셨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적으로 찾아 오셔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한 대표들을 찾아 세우고 재출발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영육을 중심한 실체적 가정을 찾아 세우고서야 비로소 국가로부터 세계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조건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였다는 것은 완전한 아벨 가정을 결정지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정에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역사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68년, 69년, 70년의 3년 즉, 2차 7년 노정의 3년째에 와 가지고 여러분 가정들을 다시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 가정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하지요? 선생님의 가정과 36가정이 완전히 하나됐어요?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36가정을 중심삼고 72가정이 하나되지 못했고, 72가정을 중심삼고 120가정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전체적으로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남편은 안 됩니다. 본래는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었으면 신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서 선생님 대신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남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여자도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둘 다 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여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사위기대 복귀지요? 그러려면 모자협조를 해야지요? 횡적 기준 앞에서는 모자협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서는 모자협조는 물론 모녀협조까지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여자들을 전부 내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남편 대신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명령을 듣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자협조의 기반을 잡아야 됩니다. 그 기반을 잡지 못하는 모성은 죽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 모자협조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여자들을 동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천사장의 복귀형이기 때문에 동원하라는 명령을 안 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자들만 동원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면 제2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여러분 자신들의 가정이 아벨 가정이 되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이것을 결정하기 위한 노정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아벨 가정으로서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가인 가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렇게 아벨 가정이 가인 가정을 복귀하면 무엇이 되느냐? 종족이 됩니다.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30가정이 이 종족적 메시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성을 띤것입니다. 이렇게 조건에 전부 들어맞아야 됩니다.
제2차 7년노정 중에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면 아벨 가정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인 가정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인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선생님이 여러분 가정을 축복해주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축복해 줄 수 있는 가정입니다. 그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럼 지금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가인 가정이 있느냐? 기성교회가 반대하지 않고 종족적 기반 위에 서면 종족권내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가인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가까와 오기 때문에 선생님은 초교파운동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가 전도해 가지고 기독교인을 끌고 들어오면 가인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옴으로써 시대적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아벨의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있고, 가정적 아벨의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있고, 종족적인 아벨의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놓고 볼 때에도 개인 아벨시대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는 시대입니다. 그 다음엔 가정 아벨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부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는 데 있어서는 사탄세계의 부부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절대적으로 따라올 수 있는 기준까지 세워야 됩니다. 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이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자녀입니다. 자녀를 중심삼고 부모로서 아벨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 십자가, 가정적 십자가, 그 다음엔 자식에 대한 십자가, 이 세 십자가를 한 가정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범위가 좁아서 그렇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준을 탕감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측복가정들이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세계의 가정들이 잘못한 것, 전부 누더기판이 된 것을, 여자가 잘못하고 남자가 잘못한 것을 다 쓸어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녜요? 여자가 지옥 가게 되고 남자가 지옥 가게 된 것을, 전부다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 누더기판을 다 꿰매 가지고,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놔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역사적인 전통과 시대적인 내용을 갖춘 가정이 되지 않고는 아벨 가정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십자가에요? 또 자식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표적인 십자가를 선생님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편과 아들딸뿐이지만 선생님은 복잡합니다. 가정적으로 보더라도 성진 어머니가 뜻을 못 세워 나왔기 때문에 삼대로 연장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진이는 아담형이고, 희진이는 예수형이고, 효진이는 재림주형입니다. 즉,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둘째는 예수형인데 예수가 밖에서 낳아 가지고 밖에서 죽어갔기 때문에 희진이도 외지에서 나서 외지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어차피 섭리는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탕감역사는 불가피합니다. 금년에 협회장도 피를 흘려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수술을 받다가 아예 죽었지만 둘째 가정으로서 그는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죽었다 해도 우리 교회는 절대 손해 안 본다는 것입니다. 탕감법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들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들은 삼시대를 대표하는 아들이니 하나 되기 쉬워요? 어머니에 대해 보더라도 삼시대의 어머니가 모였으니 그게 쉽겠어요? 이것을 다 수습해야 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또, 아들들을 중심삼고 보면 전부다 칼침 맞게 되어 있습니다. 뻥 깨져 나갈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의 소굴 중의 소굴이 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천국화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걱정하지 않고 안식하실 수 있고,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는 선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를 요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은 모르고 선생님 가정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쉽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 방향으로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고 서쪽이면 서쪽, 동쪽이면 동쪽의 중심과 일치시켜 가지고, 사위기대 중의 한 기대, 열두 지파 중의 일파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 아벨에서 가정 아벨, 그 다음에는 종족 아벨시대까지 가야 됩니다. 지금 현재의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는 종족이 안 만들어졌습니다. 축복가정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축복가정만 하나되면 기성교회도 하나되고 다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예수는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유대교를 잃어버렸고 이스라엘 나라도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규합 못 했기 때문에 예수는 나라를 잃어버리고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려면 통일교회에서도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표준하고 선생님과 여러분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선생님과 여러분은 형제의 입장에서 복귀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지만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에게는 가인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처음에는 가인에게 아벨이 굴복하고, 그 다음 아벨에게 부모가 굴복합니다. 그렇지요?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렇습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벨에게 굴복해 가지고 주지요? 그러면 아벨은 가인에게 주지요? 그러면 완전히 주었으면 받아야지요? 돌려 받아야 됩니다. 수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이것은 평면적으로 소생 장성 완성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심삼고 3단계 복귀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족적 기반을 닦으려면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가정으로서 본이 돼야 합니다. 우선 식구들로부터 참소를 받지 않아야 되고, 영계의 참소를 받지 않아야 되며,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주먹질이나 하고 별의별 노릇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정이 하늘 가정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다시 동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책임 못한 것을 다시 책임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승천하자 여성신인 성신을 땅에 보내 가지고 부활의 역사를 시켜 왔지요? 그 역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여러분들의 부부생활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야 하고 하늘이 세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식구들이 완전히 단결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단결된 가정을 중심삼고, 옛날에 여러분이 전도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왜 옛날에 전도해 놓은 사람들을 찾아 가야 하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믿음의 아들딸을 찾아 기르다가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아들딸들을 중심삼고 그 어머니 아버지가 완전히 하나되어 그 가정이 따라오게 되면, 그것이 가인 가정을 되찾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적인 기준 앞에 가인권 가정 형태를 남기기 위해서 여러분은 다시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걸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의 가정, 그의 어머니 아버지 까지도 사랑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을 세워서 가게 되면, 그 가정과 여러분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기반이 닦여지게 되면 그 가정이 하나님 앞에 가인적 가정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중심삼고 반드시 하나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가인적 가정은 소생이요, 여러분의 부모는 장성이요, 여러분의 가정은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적인 가인 가정을 복귀해야 되고 자기 가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지에 나가 성공하면 고향에 가는 것입니다. 고향에 가서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복귀시키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거든. 삼촌이나 친척들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친척 중에서도 될 수 있으면 형님 이나 시집간 누나 등, 형제지간을 찾아가 복귀시키는 겁니다. 이런 원리원칙에 따라 복귀시키려니 불가피하게 인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가정은 인연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전도 나갔던 곳에 다시 파송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뭘 하기 위한 것이냐? 종족적 아벨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종족적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면 통일교회는 교단적으로 아벨이 되고, 기성교회는 교단적으로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1차 7년노정이 끝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종족·민족·국가를 사랑해 나왔습니다. 개인·가정·종족을 중심삼고 종족적 기반을 닦기 위해서 기성교회를 사랑하는 운동과 나라를 사랑하고 살리기 위한 운동을 펴 나온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가정에도 연결되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 제1차 7년노정을 그렇게 걸어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인적 가정과 종족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런 자리에 서면, 하늘 뜻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지금 전도도 그것을 하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종교를 중심삼고 해야 되기 때문에 초교파운동과 종교연합 운동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게 될 때는 나라를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방어선을 쳐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나라와 연결하려는 것입니다. 처음엔 나라와 연결되는 길과 그 다음엔 초종교적으로 수많은 종교와 연결되는 길, 그 다음엔 기독교와 연결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면 이것이 소생 장정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게 되면 소생기준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장성기준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기준인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사실은 통일교회가 더 커 가지고 영향을 미쳐야 안고 출 수 있는데,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강책으로 가정들이 수난의 길을, 가정적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원리 원칙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몰아 세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성진 어머니와 성진이를 놔 두고 이북으로 떠났습니다. 갈라지는 놀음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라진 기준을 중심삼고 다시 찾을 때까지 탕감조건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재림 역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북은 영계의 낙원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때를 맞기 위해 기도하면서 새로운 터전인 이남에 내려올 것을 꿈꾸었습니다. 이남에 와서 다시 새로운 기반을 닦으려 했는데 그때 선생님 가정은 하나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잡한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선생님도 가정을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직까지 가정을 찾을 수 있는 완전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가정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입장에서 남편을 대해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들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 가정을 뜻을 위해 수난의 길로 내세운다고 해서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가정을 중심삼고 그런 일을 했으니, 여러분도 가정을 중심삼고 그런 일을 해야 됩니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선생님은 삼팔선 이북의 공산세계와 사탄세계를 대해 갔지만, 여러분들은 이 남한에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안팎을 대하기 때문에 그래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러분이 가정을 버리고 나설 수 없다면 탕감복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성진 어머니와 7년만에 만났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7년동안 고생시키더라고 끝까지 감사하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복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못 할 때에는 탕감역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책임을 못 하면 여러분의 아들딸까지 걸려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그 책임을 해야만 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탕감복귀역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니 온갖 추궁을 당하더라도 탕감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이며 가야 할 노정이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 다 바쳐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예」
성진이 어머니가 성진이를 데리고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알아요? 성진이를 데리고 혼자 가야 했습니다. 혼자 싸워 가지고 하늘을 찾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삼팔선을 넘어가서 뜻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런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민족과 세계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종족적 복귀를 위한 최후의 십자가의 수난길이 우리 앞에 다가 오는 것도 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차 7년노정인데,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2차 7년노정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부모의 자리, 하나님의 자리에 있다면 여러분은 아들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이 민족을 중심삼고 종족복귀의 터전을 이루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것은 예수가 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는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을 복귀해야 했었습니다. 가인 아벨의 가정적인 복귀를 해 가지고 종족적 기틀을 마련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가인 아벨이 되고 가정적으로는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이 가인 아벨이 되기 때문에 한꺼번에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종족적 아벨 기준이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유대교가 하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며 유대교가 하늘 앞에 서게 되면 나라도 하늘 앞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복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정적으로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이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자체는 메시아적 입장입니다. 메시아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을 대해서는 처녀의 입장입니다. 즉, 재림해야 될 입장에 놓여진 예수와 성신의 입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의 날, 다시 상봉할 수 있는 기간을 거쳐 가야 하는데 이것이 2차 7년노정입니다. 여러분의 복귀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3차 7년노정을 무난히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복귀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중에 이북에 있는 공산당은 뭐 남침이니 뭐니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1974년까지 5년, 2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위기의 기간입니다. 앞으로 남한이 뜻 앞에 서는 날에는 북한의 김일성이는 자동적으로 하늘이 데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인 아벨이 복귀되어야 하늘나라의 부모가 좌정하실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기준까지 나가야 됩니다.
지금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개인도 부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걸 전부 복귀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가정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종족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민족적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국가적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의 아벨 국가라도 나와야 해와 국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해와 국가는 일본입니다. 그때를 맞추어서 지금까지 일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아벨적 국가 기준이 서지 않고는 해와 국가가 나올 수 없습니다. 본연의 기준을 복귀하여 사탄세계의 사탄을 완전히 제거시킨 국가적 기반이 나와야 아담 국가와 해와 국가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국가는 어디입니까? 중국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각각 천사장 국가, 해와 국가, 아담 국가가 됩니다.
중국을 보게 되면, 중국을 지배하는 이들은 장개석의 아들들입니다. 장경국이는 정치 분야를, 장위국이는 군사 분야를 책임졌습니다. 이렇게 형제가 중국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두 형제가 문제입니다. 일본도 사또 수상과 기시 수상이 형제간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왜 그러냐?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한국도 가인 아벨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 중심과 외적 중심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정부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까지 3단계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인 세계, 가인 국가, 가인 가정이 전부 들어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 가정, 아벨 국가, 아벨 세계 전부 들어가 복귀되는 것이며, 아시아 또한 자연적으로 하늘 뜻 앞에 서게 됩니다. 아시아가 그렇게 되어 가지고 아벨적 기준을 세웠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느냐? 그 다음은 구라파를 중심삼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시아가 아담격이면 상대는 누구냐? 해와격입니다. 바로 미국이 해와 격입니다. 그러면 천사장격은 독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복귀되기만 하면 세계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하늘의 뜻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독일 일본 이 세 나라는 한 코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주인이 나와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 앞에 등장하는 날에는 다 끌려갈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공산당도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고 민주 진영도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떨어져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도를 중심삼은 사상을 갖추어야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적인 사탄세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세상의 가정은 다 무너졌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를 볼 때, 가정이 있어요? 어머니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어머니를 몰라보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밥을 먹으면 돈을 내고 간다구요. 남남과 마찬 가지라는 거예요. 가정도, 국가도 개인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갈래야 갈 곳이 없습니다. 가정을 따라갈 것이냐, 나라를 따라갈 것이냐? 갈 길이 없으니 멍청하게 서 있는 거예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지고 그저 그렇게 가는 것이…. 갈 길이 그것밖에 없는 줄 아니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사탄이 치면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실이 무르익는 현시점에서 이것을 청산지어 가지고 새로운 역사적 전통을 세워야 할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개인적인 역사적 전통을 세우고 가정적인 역사적 전통을 세우고, 민족·국가·세계적인 전통을 세워야 할 것이 우리 축복가정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놓고 넘어가야 할 이 순간인 것을 알고, 여러분의 가정들이 하나되고 완전히 일치하여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또,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이 3년노정을 극복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가정적인 3년노정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일 적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이 아기보다 더 사랑하느냐? ' 반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해 보았느냐?'고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남편들도 자기 아내와 자식보다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더 사랑하느냐고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그런 전통적인 사상과 그런 조건을 세우려니 가정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찾아 나가야 하고, 세계를 위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버님, 엄청난 복귀노정을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따라 나온 저희들이었사옵니다. 하오나 이제부터는 가려야 할 시대가 왔사옵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가정과 같은 입장에서 엄벙덤벙 살아 나온 저희들을 생각해 볼 때, 수치스럽고 면목이 없사옵니다. 이런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회개하고 70년대를 맞이하여 이제 가야 할 엄숙한 노정을 저희들이 책임을 지고, 내가 아니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하고, 우리 가정이 아니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종족적 아벨의 가정권을 만드는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의 가정을 규합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종족을 구하는 메시아가 되라고 권고하였사오니, 이러한 시대적 사명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가인 아벨 가정의 기준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하늘 앞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준을 중심삼고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에 생긴 원한의 터전을 메울 수 있는 시점에 놓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온갖 충성을 다하여 하늘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본연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그런 가정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스승과 완전히 하나되지 못한 것을 각성하고 스승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스승은 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스승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야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야 자기 아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스승의 가정과 자기의 가정이 그런 관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은 사랑하는 부부끼리 만날 적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반문해야 되겠고,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세계를 더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반문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내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반문해야 되겠습니다. 부부는 세계를 위해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하는 가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는 가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가정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딸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위해 안타까와하던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안타까와하면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그 아픈 사정을 그 아들딸 앞에 산 증거로서 보여 주지 않으면, 하늘 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
지금까지 사탄세계의 가정과 다름없이 개돼지와 같이 살아온 것은 원통한 사실이옵니다. 축복가정으로서 저지른 지난날의 과오를 다시 한 번 회개하고, 아버지의 무릎 앞에 다시 부복할 수 있게 새로운 특권적인 혜택과 시대적인 은사를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세계 앞에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아버지 앞에 굳건히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의 가정이 중심 부모의 가정이라 하면 이들 앞에는 가인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됨을 아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오고 자기의 혈족을 찾아오던 예수님과 같이 자기 문중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하늘 가정 즉, 아벨 가정의 입장에 선 저희 가정들의 책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인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부부가 온갖 정성을 다바쳐 일하고 희생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상을 세운다 할 때는 기필코 복귀의 터전이 이룩될 것을 아옵니다.
요셉 가정과 하나되고 사가리아 가정과 하나되면 내용적인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 가인 가정을 찾아 들어가서 이런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믿음의 아들딸 가정을 중심삼고 이런 일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세상 가정을 중심삼고, 믿음의 아들딸 가정을 중심삼고,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소생, 장성, 완성의 조건을 세우고 기반을 닦기 위해 충성을 다하고 온갖 정성을 바칠 수 있어야 하늘 부모를 대신하여 역사적인 3시대의 탕감의 인연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고, 이 엄청난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을 넘어설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불쌍한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남과 같이 살지 못하고 청춘시대를 아버지 앞에 바쳐 나온 여자로서의 한이 큰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해와의 타락의 인연을 저희들이 책임지고, 사망의 권한이 해와의 치마 끝을 통하여 밀려들어온 것을 끊고 돌아서야 할, 부활된 성신의 역사를 책임할 수 있는 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들딸을 해산하는 데 있어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자기의 생명을 다바쳐 승리의 아벨적 가정을 갖추기 위해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싸워 나가는 강하고 담대한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는 이 길을 가야 할 사명만이 남아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개인적으로 이 민족 앞에 보여 준 그 무엇이 있었지만, 이제는 가정적으로 이 민족 앞에 보여 줘야 할 것이 남아 있사옵니다. 뜻을 위해서는 남편과 자식을 떠나서라도 일편단심, 변함없이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가 기억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가정이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정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가정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실 수 있는 가정이요, 아벨의 가정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가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며, 남겨진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총진군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서 주저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자기 선조들로부터 후손들까지 참소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과거는 개인적으로 참소할 수 있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하늘나라가 참소할 수 있는 시대권이니만큼, 더더욱 이 가정의 인연을 갖추어 가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 70년 71년 72년까지, 아버지, 이들이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로부터 책임을 받았사오니, 그 누가 반대하더라도 나 스스로 갈 수 있다는 결의를 가지고 충효의 도리를 다하는 딸들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딸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들이 사랑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귀여운 가정으로서 축복하실 때의 아버지의 그 소원 성취의 대상이 되고 소망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귀한 가정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찾아와서 세워 주신 보람 있고 가치적인 내용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을 바쳐 투쟁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이 등에 업고 가는 아들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사랑하듯이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되겠사옵고, 그들이 외로운 처지에 있게 될 때 미래에 이 민족이 외로울 것을 염려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어려운 자리에 설 때 미래에 이 민족이 어려울 것을 염려하게 해 주시고, 아버지에게 제물로서 바치는 심정적 인연을 아버지와 더욱 가까이 맺게될 때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부활의 권한이 온 가정에 면면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단이 나라를 위하고 외적인 제삼자를 위하던 그런 때가 지나고 비로소 우리의 실속을 볼 수 있는 우리의 시대가 온 것을 알고, 가정적 터전을 공고히 하여 그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 기반을 완결지을 수 있는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뜻 가운데서, 아버지,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 오늘은 1970년 8월 30일,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내일은 8월의 마지막 날이오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저희를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해의 3분의 1을 남기고 있는 9월, 10월, 11월, 12월 이 기간에 있어서 저희들이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아버지의 섭리의 뜻에 남을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할 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뜻을 성취할 수 있게끔 저희들을 이끄시고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뜻과 섭리의 내용을 중심삼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이 성취되게 하기 위하여 정성들이는 그들 앞에 당신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해외에 널려서 뜻을 위해 싸우고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항상 지켜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계시는 아버지께서 그들의 전체를 주관해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영으로 계시는 당신께서 그들의 생명의 중심이 되시옵소서.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섰을지라도 당신과 함께하게 될 때는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성사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을 생활에서 실감하고 아버지를 모시며 지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40일노정을 중심삼고 전도를 나갔던 사랑하는 딸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은 남달리 아버지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이 민족은 잠들어 있을지라도 저희들은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옵니다. 이 민족은 쉬고 있으나 저희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이 민족은 자기를 위해 살지만 저희들은 공적인 일을 위해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옵니다. 또한 이 민족은 이 나라 이 땅에 속해 있지만, 저희들은 아버님의 나라에 속해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어느 누가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선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곳에서든지 당신의 뜻을 증거하는 자가 되지 않고는 이 땅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수의 통일의 무리가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살고 세계가 산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이 남다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한번밖에 없는 젊은 시절을 온갖 행락을 누리며 자기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는 저희들은 이런 꽃다운 시절에 당신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남과 같은 입장에 서지 못하고 남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당신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하여 하는 일들은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압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가는 길은 외로운 길이지만, 가면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넓어지는 길이요,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반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길이 무한히 행복스러워 보이고 무한히 넓어 보이지만, 그 길은 가면 갈수록 좁아진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아는 저희들 위에 당신이 축복하시옵소서.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있습니다. 전국에 널려서 뜻을 위해 이 시간도 수고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더우기 이 시간에 당신을 향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치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기도를, 아버지, 들으시옵소서. 그 기도는 자기를 위하여 하는 기도가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당신을 위하여 하는 기도 이옵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호소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그 자리에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소원을 분부하시옵고, 그들에게 당신의 은사를 나타내시옵고, 그들에게 당신의 실적을 남기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해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보람된 생활이요, 자랑스러운 일인 것을 느끼며 살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세상 만사는 보다 나은 것을 위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 그것을 위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생활주변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더라도, 좀더 가치 있는 것을 갖기 위해서 가치 없는 것을 버리게 됩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좋으냐고 묻게 될 때, 즉 좋고 나쁜 것을 가리게 될 때에는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이 어떤 것에 더 많이 개재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건을 선택할 때도 그렇게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 중에서도 어떤 사람과 가까이하려 하고, 혹은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으려고 하느냐? 자기보다 가치 있고, 보다 선하고, 보다 높고, 보다 넓은 내용을 지닌 사람에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또, 그 사람이 가진 내용을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라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이 물건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나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중심삼고 자기가 거기에 순응하고 일치되고자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진 것처럼,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집중되고, 하나님의 소원이 집중되고, 하나님의 모든 뜻이 집중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나 선생님도 같은 입장이지만,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들도 보다 나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사람, 즉 만민이 요구하는 보다 넓고 깊고 높은 안팎의 내용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까이하고자 할 것이고, 하나님도 그 사람에게 가까이하고자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도 가까이하고 싶어하시고 인간도 가까이하고 싶어한다면, 인간을 위해 지은 만물도 그에게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체 앞에 본을 삼을 수 있는 중심적인 존재는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는 무한히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자신도 본이 되는 그 사람을 취해 가지고 그와 더불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절대적인 가치를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그 인간과 더불어 하나되고, 모든 만물과 우주도 그 인간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그런 본이 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참된 사람이 바라는 이상적인 표준, 그 참된 사람의 생활, 그 참된 사람의 인격을 이루는 기준, 혹은 우리 사람으로서 바라는 이상적인 모든 내적인 요소를 지닌 그 사람의 기준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이 슬픈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누구나 슬픈 것은 싫어합니다. 식구나 어려움이 자신과 관계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가정이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 가정을 동정하게 됩니다. 동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것을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행하다 할 때, 그가 불행하지 않은 입장에 가기 위해서는, 그 불행한 요건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자리는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 행복한 자리는 어떤 자리냐? 언제나 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주는데 슬픔들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입니다.
만유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본이 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어떠한 자리에서 본이 될 것이냐? 슬픈 자리는 아닐 것입니다. 또, 악한 자리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일 것이냐? 참된 자리요, 기쁜 자리일 것입니다. 또한 그 자리는 무한히 행복한 자리일 것입니다. 그 행복은 유한권내의 한계선내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무한한 자리에서의 행복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의 내용을 지닌 사람이 이 땅에 있었느냐 하게 될 때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 자신은 어떠했느냐? 물론 만유의 본이 될 수 있는 분이라 하더라도 악한 세상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주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예수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세상이 슬픈 것이기에 언제나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면 높던 입장이 낮아지게 됩니다. 물이 한 동이 가득 있더라도 퍼주고 나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높은 입장에 있는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슬픈 환경을 대하게 될 때는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자체가 기쁜 환경에 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자신은 왜 기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느냐? 주고 나면 반드시 어려운 환경에 부딪히고 기쁠 수 있는 내용이 감소되기 때문입니다. 이 감소된 것을 어떻게 보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보충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는 말할 수 없는 불행을 느낄 것이요,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느낄 것이요, 말할 수 없는 고충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 이것을 보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무엇이냐? 슬픈 사람을 위로해 주고 그 사람과 하나되어서, 그 사람에게 자기가 도움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를 슬픈 자리에서 보다 좋은 자리로 올려 주고 좀더 나은 자리로 끌어 주는 것입니다. 주고 난 후에 자기가 준 것을 보충받을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10 만한 자리에 있던 어떤 슬픈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20 만한 자리로 올라왔다면 자기 자신은 10의 내용이 감소되었지만, 그 사람은 10만큼의 올라온 내용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소된 것이 보강되면, 그 10이라는 내용은 자기로 말미암아 발전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손해나 감퇴가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고 발전 현상이 벌어지게 될 때에는 그만큼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또, 100 만한 일을 계획했다고 해서 그 일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0만큼이 이루어지고, 20만큼이 이루어지고, 30, 40, 50, 60, 70, 80 이렇게 해서 100까지 그 이루어지는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소망하던 것이 점점 가까와지게 되고 그걸 보고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말씀의 제목처럼 본을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본이 뭐냐?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낮은 것을 높여 주고 자기 자신도 높아질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상하에도 필요한 사람이요, 좌우에도 필요한 사람이요, 전후에도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쪽에도 보강해 줄 수 있고, 저쪽에도 보강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보강해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보강해 주고 나서 보충받을 수 있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본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본이 될 수 있는 그 기준이라는 것은 동양에서만 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본이 되어야 됩니다. 또, 지상세계에서만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본이 되어야 됩니다. 한때나 혹은 어느 환경내에서만 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신한 입장에서 본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것으로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를 더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들보다도 더 높은 가치와 연결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예로 들어 보면,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습니다. 굵은 가지는 뿌리로부터 많은 영양분을 받기 때문에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가고 수많은 잎이 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굵은 가지는 가지 중의 중심 가지로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을 때, 그들이 여러분의 본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이 좌하면 좌하고, 우하면 우하고,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일시적이 아니라 영속적인 내용을 지녀 가지고 자기의 영향을 전체 앞에 미칠 수 있고, 자기 자신도 영향을 받을 수 입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무한히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나무라면 그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존재들이 높아져야만 자기도 상대적 영향을 받아서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 되면 반드시 참된 인연이 점점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악한 세상에 살고 있고 슬픔 가운데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뜻을 중심삼고 사는 여러분들은 슬픔을 갖고 있는 그 사람들 앞에 무엇을 갖고 본이 되어야 하느냐? 슬픔을 위로할수 있는 내용을 주지 않고는 기쁨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슬퍼하고 있는 상대의 기준이 10이라면 그 10의 기준 이상인 11, 12 혹은 20의 기준으로 채워 주게 되면 그 슬펐던 사람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슬픔을 제거시키기 위한 하늘의 섭리를 추진해야 할 여러분이 제일 문제시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이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고, 또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언제나 기뻐하실 수 있도록 모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꼈던 어떠한 슬픔보다도 고독을 느끼고 서글픔을 느꼈던 하나님께서 그것을 푸시기 위해 하나님 스스로 보충하시려 할 때, 내가 그것을 대신 보충시켜 드릴 수 있는 위로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슬픈 사람들에게 있어서 위로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슬픔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 유한한 가치를 추구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이 있는 생애노정을 가고 있지만 끝이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끝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횡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횡적인 생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종적인 깊은 내용과 상관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깊은 내용이 수시로 횡적 환경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환경을 보다 빛낼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 사람은 반드시 그 환경에 있어서 생활적으로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이 슬픈 세상, 사탄 세상, 악한 세상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이 무한히 줄 수 있는 보급로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만약에 본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 본은 어느 한 곳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내용을 가지고 모든 환경을 초월해서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중심삼고 금을 긋고, 그것을 중심삼고 형태를 이루어서 그것에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와 같이 본이 되는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악하면 악할수록 그 환경에 있어서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을 더 요구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슬픈 환경일수록 본이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더욱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체가 되어서 환경을 순화시켜 중심 존재가 기뻐하게 되면 그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본이 되는 사람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기쁘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기쁠 수 있는 내용을 그 중심으로부터 전해 받을 수 있다 할진대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만인 앞에 있어서 본이 되는 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볼 때, 예수님의 생활은 단조로왔습니다. 30여년 동안 목수인 요셉 가정에서 조수로서 협조하던 그의 생활은 아주 단조로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단조로운 생활의 이면에 있어서 그는 그의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는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넓다면 넓고, 깊다면 깊은 내용을 지니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난의 길과 고독의 길도 그 내적인 깊은 생활로 메우고도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고통만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남의 고통까지 메워 줄 수 있는 내적인 영향력을 지녔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그를 본이 될 수 있는 인물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단조로운 생활을 했지만, 내적으로는 복잡하고 깊고 높은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외적인 생활은 요셉 가정이란 제한된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고, 또 그 일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이었지만 내적으로 요셉 가정을 넘고 이스라엘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고 더 나아가서는 천국에서 살 수 있는 넓고 높고 깊은 내용을 지닌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인 단조로운 생활을 메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해 나온 연고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어떠한 인간보다 본이 될 수 있는 인간으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예수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고, 예수님을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하고,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한 깊고 넓고 높은 새로운 세계관을 중심삼고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와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일상 생활에 있어서 외적인 생활 즉 횡적인 생활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한 종적인 생활까지 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이런 이중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줄 수 있는 생활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그 높고 큰가치를 영원히 보급받을 수 있는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 슬픈 환경을 감당하고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들어와서 맨 처음에 뜻을 대했을 때는 기쁨 가운데서 출발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중심삼고 생겨났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부활되고,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관계를 맺게 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기뻐하면 만물도 기뻐하는 것으로 느끼고, 자기가 슬퍼하면 만물도 같이 슬퍼한다고 느낀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도 악한 세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슬픈 세상이라 하더라도 슬프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슬픈 세상에 기쁨이 깃들 수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내일의 희망과 내일의 책임을 다짐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에 그러한 것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기준과 지금과는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각이라는 것은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라 입체적인 감각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더라도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보는 것보다도 좋은 점을 보는 눈이 더 밝아지고, 느끼는 데에 있어서도 나쁜 면을 느끼는 것보다도 좋은 면을 느끼는 감각이 빨라지는 그러한 체험을 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생활을 기반으로 해서 더 높고 더 넓은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아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이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과거에 하던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별기능을 전부 상실하게 됐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혼자 뜻을 대해 나가는 도중 은혜로운 자리에 임하게 되면 혼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이해하지 못하리만큼 기쁨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봄날을 맞이하여 모든 초목이 꽃을 피어 향기를 풍기는 것과 같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가을에 모든 곡식이 무르익어 주인의 손길을 바라고 있을 때, 그것을 추수하는 기쁨을 흠뻑 느끼는 것과 같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갖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가깝게 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가치적인 자리에 나가면 나갈수록 그는 영원히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본이 될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되는 날이면 만유의 존재가 그와 더불어 화동하고, 그와 더불어 즐거이 상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나가면 나갈수록 슬픈 세상일지라도 슬프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대하는 모든 슬픈 것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초월하여 그 슬픔 가운데서 유발되는 기쁨이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인간에게 있어서 본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그런 자리가 내 마음에 천국을 소유했다는 자리가 아닐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그래야만 여러분의 가정도 그런 가정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 분이 푸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의 모든 만상이 푸르게 보일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결과는 상대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지탱할 수 있고, 주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악한 점을 꼬치꼬치 캐고, 악이 열만큼 있으면 열만큼 미워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악을 잊어버리고 그 악가운데에 깃들어 있을 선의 가치를 악 이상으로 평가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악한 사람을 선한 입장에서 상대하여 새로운 입장으로 인도할 수 있고, 새로운 입장에서 그에게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나를 본으로 삼고 따라올 수 있는 것이요, 나를 중심삼고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악하다고 해서 '악(惡)' 그 자체를 저주하고, 악이 열만큼 있으면 그 이상으로 악하게 평가해 가지고 저주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이땅 위에 '선(善)'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악한 사람도 사랑하고 슬픈 사람을 대하면 그 슬픔을 그 사람의 것으로서 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슬픔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그 슬픈 자리에 들어가 슬픔을 탕감해 주고 자기의 기쁨을 그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평면적인 습관이나 관념을 초월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저 사람을 위해서 태어났으니 저 사람을 위해서 제물이라도 되겠다' 또 '나는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는 것도 그들을 위해서 산다는 관념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그 환경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그냥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모든 악을 제거시켜 선하게 만들 것입니다.
선하게 되기 위해서는 악을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고 밤을 새워가며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고, 그들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악한 사람의 본성의 중심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섰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면적인 입장에서 시대적인 구주일 뿐만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거쳐 과거의 구주이고, 과거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구주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올 인간의 역사적인 모든 순간들을 보게 될 때 과거의 사람도 이런 슬픔을 가졌고, 현재의 사람도 이런 슬픔을 가지고 있고, 미래의 사람도 이런 슬픔을 가질 것이어늘 하면서 인류의 슬픔을 몸소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인류을 위해서 내적 중심과 외적인 중심의 자리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의 모든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여겨 눈물을 지으면서 몸부림치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을 중심삼고 기필코 하나가 되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 즉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희생하면서 남을 도와 주고 남을 용서해 주고, 남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선한 사람, 또는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접근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길이요, 우리의 마음이 찾아가는 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본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선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왜 자식이 부모를 좋아하느냐?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쁠지라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을 끌어서 좋은 자리로 옮겨 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나쁜 자식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나쁜 자리에 있는 자식보다도 더 간절하기에 부모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는 자식 앞에 있어서 선한 입장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의 본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을 절대적인 선의 중심으로 추구하고, 또 하나님과 더불어 모든 것을 수습하고 모든 것을 결정받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인 인류가 슬퍼하면 그 인류를 그냥 놔 두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골짜기까지 파고 들어가서 그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바꿔 자기가 대신 슬퍼하고자 하는 입장에 서려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본을 삼아서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문제는 단조롭습니다. 하나님과 나 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조로운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만우주의 본이 되고, 천사람, 만사람을 대할 수 있는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을 발판으로 하여 사방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나 자체가 거기에 파고 들어가면 파고 들어갈수록 무한한 자극을 느낄 수 있고, 무한히 새로운 면을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러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학자라든가 문학인, 혹은 세계적인 인물들은 그러한 종적인 입장이라든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 앞에, 본이 되는 중심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입체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감각을 직접 느끼게 되면 그 내용을 확실히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표현된 것은 세계적인 문학 작품이 아니 될 수 없고, 세계적인 학설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이 될 수 있는 참된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며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참다운 본성과 함께 무한한 내용을 지녀야 됩니다. 그리하여 주고 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번 만번 주고도 또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됩니다. 이러한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노정에 있어서 본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 즉 '그는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내가 서러움을 당할 때 그 서러운 것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 기쁨을 보다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야 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느낀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 가운데서 느낀 기쁨, 몽시라든가 계시, 혹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같이 기뻐하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참일수록 영원합니다. 참일수록 본이 되는 자리 이기 때문에 전체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등불과 같은 입장입니다. 암흑 같은 세상에서 중심적 등불이 되려면 그 등불의 빛이 얼마나 밝으냐 하는 것이 문제 됩니다. 일시적으로 켜졌다가 꺼지는 등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가면 갈수록 더 큰 불빛으로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본 되는 주체를 중심삼고 상대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주체와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지고 둘이 합쳐서 서로 주고 받으면 더 밝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이 넓으면 넓을수록 감퇴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가치적인 빛을 발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신앙생활이 해이해지고 후퇴하는 사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점점 높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내적인 심정의 세계, 외적인 생활에 있어서 넓고 높아 가지고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하나의 성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참된 중심이 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부생활하는 데 있어서 남편이 외적인 면에서 본이 되는 사람이라 할 때 외적인 입장에서는 행복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의 모든 것이 외적인 입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행복의 요건을 요구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내적인 행복의 요건을 아내에게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남편이라면 좋은 남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내도 내적인 면에서만 칭찬받을 수 있는 아내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외적인 면에서도 칭찬받을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 됩니다. 부부는 서로 본이 될수 있는 입장을 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본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외적인 생활은 단조롭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을 먹고 나서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또 일을 하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잡니다. 이렇게 단조롭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을 기르는 일입니다. 이것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조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조로운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외적인 생활은 단조롭지만 그 외적인 생활의 이면에는 넓고 높고 깊은 복잡다난한 내적인 생활의 일면이 있습니다. 외적인 모든 단조로운 환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밀고 나갈 수 있는 내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틀림없이 그 환경에서 낙망하고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외적인 생활에 있어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졌다고 해서 그것으로 행복해 하는 부부는 본이 될 수 없는 부부입니다. 외적인 생활이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외적인 생활을 보다 빛내고 보다 행복스러운 것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넓고 깊은 내적인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팎이 갖추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면만 가져서는 안 됩니다. 혹은 평면만 가져서도 안 됩니다. 입체적인 내용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 생활을 볼 때 열두 시간 이상 눈을 뜨고 활동합니다. 24시간 중에 여덟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하면 나머지 열여섯 시간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것입니다. 전부 다 외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생활한다면 내적인 것은 무엇으로 보강하느냐? 외적 생활을 움직여 나갈 수 있는 내적 인연을 무엇으로 보강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단조로운 생활이 습관화되어 가지고,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속된 생활환경을 개척하고, 그 속된 환경에 보다 고차적인 가치의 내용을 부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악한 세상에서 선의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외적인 생활을 지배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적 생활은 단조로왔지만, 내적으로는 민족을 위하고 세계인류를 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한 내적 삶의 가치를 품었고, 그것을 느꼈고, 또 그것을 체험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넓고 깊고 높은 내적인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인류역사에 본이 되어 가지고 자기를 닮아 나오게끔 수천년의 역사를 감화시켜 나온 것입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자녀를 대하는 생활과, 아내면 아내로서 남편을 모시고 사는 것은 어떤 생활이냐? 그 생활이라는 것은 일반화된 생활입니다. 모두가 일반화된 코스를 여러분은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입니까? 선이 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간의 생활은 본을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더불은 것이고, 그것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가치 있고 본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가정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 평면적으로만 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적인 생활을 기반으로 해서 대해야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것이 어제보다 좀 달라졌다고 해서 아내도 남편에게 좋지 않게 대해 주어서는 안 됩니다.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게 대해 주면 나는 보다 높은 내정적인 자극을 느껴야 되고, 나쁘게 대해 준다고 해도 그것을 비판하기보다 그 나쁜 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내는 남편 앞에 필요한 아내입니다. 남편도 역시 아내 앞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 가정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물어 뜯고, 흠잡고, 반목 질시하는 가정은 퇴보하게 되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즉,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중심삼고 본이 될 수 있는 기준은 부부가 내적인 인격을 중심삼고 서로 가치적인 내용을 인정하고 모자라는 점을 보강해 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가정이 외적인 사탄의 세계에 본이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자기 남편을 그렇게 대하는 아내, 아내를 그렇게 대하는 남편으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날이 가면 갈수록 범위를 넓혀 가지고 입체화시켜야 합니다. 자기 가정의 기뻤던 것을 만인간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세계 앞에 번식해서 발전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입장에 서야만 하나님을 대신한 선의 중심, 선의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의 생활 전체를 하나님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나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인간끼리 해결 지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해결지으라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해결지으라는 것입니다. 또, 좋은 일이 있을 때 자기를 중심삼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너 사이에 수수(授受)가 시작되었지만 언제나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서 먼저 인연이 되고 동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더불어 청산지으려고하는 생활체제를 세워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는 탕감의 시대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에서나 비정상적인 생활에 있어서 불행한 자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을 불행으로 소화해서는 안 됩니다. 불행한 처지에 부딪쳤을 때 나 혼자 그것을 해결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소화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불행한 일이 있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탕감의 역사를 해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탕감의 역사는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하는 것입니다. 탕감의 역사를 하는 데는 선한 사람이 제물이 되지 않고는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복귀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나 자신이 불행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내가 만민을 살리기 위해 짐을 진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이런 짐을 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당한 도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소화시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대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무한히 주고도 남을 수 있고, 언제든지 무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좋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슬프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감사하고, 나쁘면 나쁜 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는 마이너스가 될는지 모르지만 공적인 분야에 있어서 전체 앞에 좋을 수 있다면 전체를 위해서 좋아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전체가 좋을 수 있다면 좋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선은 전체 앞에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보다 귀하고 보다 넓은 범위의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선이기 때문에, 나는 비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상대의 세계에 선을 주기 위해서는 그런 고통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정석온씨의 모친이 김성도씨인데, 김성도씨와 정석온씨는 감사하는 패들입니다.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패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사탄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사탄이 침범했다가도 도망가는 것입니다. 설사 사탄의 침범을 받더라도 '전체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시련을 주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한 번 대하고, 두 번 대하고, 세 번 대하고…, 대하면 대할수록 자신이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대하라고 해도 안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피해 가려고 하면 할수록 사탄은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좋은 것만을 대하시는 하나님이셔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슬픈 입장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인간들과 하나되기 위해서 그 슬픔을 몽땅 도맡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슬픈 표정을 짓지 않고, 슬프지 않다 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선한 하나님, 기쁨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의 출발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슬픈 이 땅을 위해서 수고로운 노정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우니 못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면 선은 출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길이 선을 위해서 가는 길이요, 보다 빛나는 선의 가치를 찾기 위한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죽음의 길이라도 거기에서 무한한 행복을 찾고, 영원한 기쁨을 찾으며 갔던 것입니다. 출발이 기쁨의 출발이 되지는 않았지만 슬픈 내용을 기쁨으로 감싸고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지 않고는 기쁜 천국을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이나 행복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만민의 슬픔을 도맡으라는 것입니다. 만민의 죽음과 고통을 도맡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희생되더라도 만민에게 행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 무한히 고통스럽고 무한히 두렵고 최후의 장벽에 부딪쳤을 때는 절망스럽지만 그 자리에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절망을 넘어서서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길이 망하는 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세계를 위해서 고개를 넘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기쁨의 기독교 역사가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3분의 2 이상이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생활이라면 그 3분의 2의 생활을 모두 떼어버릴수 있느냐? 안 됩니다. 떼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선조로부터 죄악에 대한 보응의 결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낮은 것은 버리고 높은 것만 취할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응당히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높은 것에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쁜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절망에 떨어진 슬픔을 끌어 올려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기쁨의 여력, 소망의 여력을 지닐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의 생의 노정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나는 사랑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생활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생명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인격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내 가정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혹은, 사회와 국가에서 본을 세워야 되겠다'고 할 때, 거기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3분의 2 이상이 나쁜 것입니다. 좋은 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문의 사회면을 보더라도 좋은 기사 보다는 나쁜 기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거의가 나쁜 기사만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소화하고 선한 세계를 이루겠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것에 밀려 다니고, 이러한 것에 쫓겨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삼켜서 소화해 가지고 영양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태연자약한 하나님의 내적인 선을 심어 가지고 악의 요소들을 거름으로 하든가, 영양소로 하든가 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나쁜 것이지만, 생명이 자라는 데 비료로서 흡수하게 될때는 그 더러운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더러운 거름을 뿌린 곳에 씨앗을 심어도 씨앗에게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씨앗이 더러운 잿더미면 잿더미, 거름더미면 거름더미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그것을 흡수하여 생명력을 지니게 될 때는, 그 거름이 생명체를 성장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에게도 시련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련과 고통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만 갖춘다면 만고에 빛나는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악한 세상을 향해서 가는 노정에 있습니다. 그길 가운데에는 통일교회의 행복이 있고, 통일교회의 선한 기준이 있지만 그 행복과 선한 기준은 먼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탕감의 길을 가야 하고 책임과 사명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좋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슬픈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으로 나타난다면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슬픈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은 교단적인 슬픔이지만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슬픔이요,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슬픔입니다. 그 슬픔이 크고 높고 넓을수록 통일교회를 세계화시키기 위한 탕감인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갖고 고개를 넘는 날에는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늘 극복하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참고 넘어가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고 넘어가는 데 있어서 울고 불고 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극복이라는 것은 어렵더라도 어렵지 않는 모습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슬프더라도 슬프지 않는 모습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극복입니다. 마지못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기쁨으로 소화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만이, 악한 것도, 지옥도 천국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신앙인으로서 본이 될 수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개인적인 본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단체적인 기반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70년 내지 80년을 산다고 볼 때 그 가운데 3분의 2가 슬픈 생활이라고 한다면, 이 3분의 2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쁜 생활로 만들어야 됩니다. 천국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주면서 사는 곳입니다. 하나님도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또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애기들에게 아무리 때때옷을 왜 입히고, 아무리 좋은 것을 먹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자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 3분의 2가 불행한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개가 있습니다. 그 고개를 무너뜨려 가지고 소화시킬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상금을 주신다면, 상금을 주는 그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만민이 보는 자리에서 상금을 주실 것이냐? 아닙니다. 물론 거기에서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자리에서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서 따라가는 그런 자리보다는 최후의 자리에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라면 혼자에게만 주고 싶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따라오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살아 남은 자, 죽음의 고비에서도 살아 남은 사람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상금을 어디에서 받을 것이냐? 여러분이 이 문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고통이 온다고 해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기쁜 자리에서 상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슬픈 자리에서 상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면서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슬픔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하관계 전후좌우관계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책을 읽었을 때도 갑이라는 사람은 무한한 감명을 받고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로 알았는데 을이라는 사람은 '그거 뭐 그저 그렇구만' 하고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감각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읽는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감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데에도 어떤 사람은 기쁜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슬픈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성신도 불 같은 성신, 물 같은 성신, 구름 같은 성신, 비단 같은 성신이 있다고 하지요? 모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은 행복하게 생활을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할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얼마든지 더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과 고통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것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기성교회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섰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 혹은 미래의 세계에 있어서는 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만인에게서 숭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느끼면 그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스런 자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타락하기 쉽고 떨어지기 쉽지만 아예 밑으로 내려가서 행복을 찾아 나오는 사람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면 갈수록 행복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어려운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아이구 좋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항상 좋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좋은 것은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자리, 슬픈 자리를 소화시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생활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은혜로운 생활, 건강한 생활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그 슬픔을 슬픔으로 소화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으로 소화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를 위해 탕감의 노정을 간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기쁘게 됩니다. 세계의 탕감을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내려 주신 은사의 자리라고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세계와 직접 관계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세계적인 가치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말없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감사하게 되면 국가와 세계적인 가치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지 않아도 은혜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은혜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못하면 도리어 은혜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은혜를 받은 것으로 소화해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걸고 일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면 은혜는 그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자리는 웃고 춤추는 자리가 아닙니다.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을 공급받는 자리는 웃고 좋아하는 자리가 아니라 긴장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긴장하는 자리. 그러면 긴장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슬픔과 고통이 엇갈리는 자리입니다. 모든 것을 맺고 끊는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서 어디에 갔었습니까? 이 땅에서 십자가에 죽은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죽어서 3일 동안 어디에 갔었습니까? 지옥에 갔었습니다, 지옥. 그것이 시험입니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최고의 공포인데, 예수님에게는 지옥에 가는 것이 최고의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지옥에서 공포의 주인이 되었느냐, 아니면 행복의 주인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이 3일 동안 지옥에 가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지옥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이 되는 것을 문제시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앙하는 사람들은 악한 세상, 혹은 슬픈 세상에서 그 악과 더불어 흘러가지 않아야 되고 그 슬픔과 더불어 흘러가지 않아야 됩니다. 도리어 그 악을 막고 그 슬픔을 가로막아서 여기에 기쁨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있어서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중심적인 존재가 되면 본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주의 본이 되는 중심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민의 고통을 탄식하며 절망된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다 극복하고 새로운 소망의 주인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을 빼앗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빼앗긴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이 필요하시다면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지요? 제일 좋은 것을 제물로 드려야 되기 때문에 제일 좋은 것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왜 빼앗기느냐 하면 여러분이 제물을 드릴 줄 모르니까 하나님이 대신 제물로 삼기 위해서 빼앗아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어려움을 어려움으로써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동시에 그 기쁨이 떨어지지 않고 공고한 토대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남아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출발을 보기 위해서 자기에게 어려운 고비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말을 할 때 맺고 넘어가야 된다고 하는데, 무엇을 맺고 넘어가야 되느냐? 그 맺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맺으려면(판서해 놓고 설명하심) 이 꼭지가 저 꼭지로 가고, 저 꼭지가 이 꼭지로 와야 합니다. 반대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것 같지만 좋은 것이 열매 맺는다는 것입니다. 교체되는 것입니다. 엇바뀌는 거예요. 사탄이 하나님편에 가고, 하나님이 사탄편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꿔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맺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엇바꾸기 위해서는 할수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있어서 맺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원형을 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대, 혹은 수십 대, 수백 대, 수천 대를 통해서 맺고 가는 것입니다. 선조가 악하면 악할수록 매듭이 많은 것입니다. 매듭이 작으면서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조가 선하면 선할수록 매듭이 크고 많지 않습니다. 그 매듭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 제물적인 매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 있느냐?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천국이 들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천국은 반드시 생활의 역경과 사탄세계를 무너뜨리고 나서야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탕감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고 뜻을 중심삼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슬픔을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본이 되셨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슬픔과 악을 소화하여 기쁨과 영광의 모습이 되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앞에 나타나시기 위하여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 하나님을 본을 삼아 가지고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하여 세상에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신앙하는 사람들의 생활은 이중적인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옵니다. 횡적인 싸움뿐만이 아니라, 종적인 싸움도 해야 할 가중된 길이 신앙인의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일생 중에서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고빗길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저희들은 아버지와 더불어 이 길을 극복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슬픔으로 출발하였던 것을 아버님 앞에 기쁨으로 수습할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고는 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음을 아옵니다. 슬픔으로 시작한 길이 고통의 결과를 초래했다면, 그 슬픔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청산되지만 그 슬픔 끝에 기쁨이 남아진다면, 결국은 기쁨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슬픔과 기쁨이 엇바뀌는 내 생의 싸움터에 있어서 최후에 남겨야 할 것은 이 기쁨이옵니다. 이 기쁨을 남기지 않고는 천상세계에 계시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최후까지 슬픔으로 남아지게 되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모든 악을 극복하고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저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단조로운 외적 생활이 행복한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하오니 단조로운 그 모든 외적인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할 수 있는 선의 주체력을 저희 자신에게 보강시켜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은 모든 일을 아버님과 의논하고, 아버님과 동행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싸우면서 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길이 신앙생활을 하는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교회에 있는 것만이 아버님 앞에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회에 나가 싸우는 것이 아버님과 가까이 하는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즉, 내 사적인 생활에 있어서 아버님과 같이 사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오늘날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은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사망의 세계, 슬픔의 세계, 수난의 세계를 대하여 슬퍼하시는 아버지가 아니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해서 그 가운데 소망을 심고, 그 가운데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희망의 자리를 다짐해 나오셨사옵니다. 또한, 남아지는 그 자리에 기쁨의 동기를 심어 놓음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는 일을 역사과정을 통해 거듭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새로운 역사를 출발하게 될 때는 슬픔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난 후 여기에 가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기쁘게 출발하신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저희들 신앙자의 생활도 그래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닮아야 되겠기 때문에 수난의 고빗길이 찾아올 때 저희들은 그 수난의 고빗길을 슬픔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왜 나에게 왔는가를 생각해 보고 이것이 나를 위해 찾아온 것인가를 알게 될때는, 나를 중심삼고 완전히 소화하고 나를 중심삼고 완전히 일치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완전히 하늘 것으로 바꿔칠 수 있는 최후의 조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만큼의 슬픔이 있으면 그 열만큼의 슬픔을 나의 손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열만큼의 기쁨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인 동기가 되고, 자연적인 동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아버님을 중심삼고 무한히 받을 수 있고, 아버지를 중심삼고 무한히 줄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주는 데는 악한 사람에게까지도 다 주어서 그 준 것들을 선의 결실로 모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주어서 메꾸어야 할 구렁텅이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고통과 수난의 양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감사의 마음과 기쁨의 마음으로 모으고 남을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그 슬픔이 끝나는 날, 기쁨의 출발을 했다는 흔적이라도 남겨 두지 않고는 아버님의 것으로 출발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은 물론이요, 악한 사람도 그를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타락한 인간을 대해 나온 본연의 중심 이요, 본이 되시는 주체인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이 알아 가지고 사망의 세계인 슬픈 이 땅에서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본을 삼아 가지고 복귀의 기원이 되는 본을 남겨야 되겠사옵니다. 본이 될 수 있는 생명의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심정을 본삼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악한 세상에 하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러한 아들딸이 살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저희들이 그러한 아들을 본삼아서 식구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고, 종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고, 민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고, 국가,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여 그 형태를 넓혀 가지 않으면 천국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매일 본이 되는 생활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사람이 볼 때는 슬픈 자리이지만, 거기에는 끊임없는 기쁨의 내용이 있는 것을 아옵니다. 비록 슬픈 일면이 있다 하더라도 기쁨으로 보장할 수 있고 고통이 오더라도 그 고통이 기쁨을 감소시키게 하는 것이 아리라, 그 고통으로 하여금 기쁨을 보강할 수 있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한 고비를 넘을 때에 기쁨이 연속될 수 있는, 이러한 천적인 내적 심정을 개재시킨 하늘의 중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에 슬픈 십자가의 길이 있사옵니까? 통일교회 교단은 그것을 가지고 슬퍼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난의 길이 있사옵니까? 이 수난의 길을 피해 가려고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소화하여 극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소화하는 데는 울고불고, 할수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늠름하고 자신있게 그것을 책임지고 소화할 수 있어야 건전하게 발전하는 하늘의 단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국가가 지금 시련과정에 있사옵니다. 현시점에 있어서 어려운 대한민국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현실을 바라보고 저희들이 낙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과 더불어 이 나라의 시련을 기쁨으로 소화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일치된 민족적 정기를, 아버지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세계의 인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역사적인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 민족에게 주어진 한 시련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둘도 없는 행복의 기틀과 만복을 받을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무리로서 십자가를 짊어지게 해 달라고 할 수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 교단이라고 할진대, 아버님과 더불어 기쁨을 이 민족 앞에 남겨 주고 세계 만민 앞에 남겨 줄 수 있는 통일교단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또한 이러한 교단이 새로운 기쁨의 출발을 맞이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는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를 책임지고 가야 할 통일교회라 할진대, 세계적 시련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떠한 수난도 맞아들일 수 있는 자신을 가진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것을 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슬픔과 고통의 와중에 뛰어 들어가서 아버지의 권능을 가지고 그것을 해소하고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악한 요건을 소화하지 못해 그 악한 요건으로 인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화해 가지고 하늘 것으로 출발할 수 있는 자리까지 극복해 나가는 단체가 되게 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각오하고 나서게 될 때는 민족적인 수난의 길도 문제없는 것이요, 세계적인 수난의 길도 문제없을 것이옵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 앞에 본이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오늘의 이 민족 앞에 본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걸어온 길이 그랬었사옵니다. 아무리 철옹성 같은 적진이 앞을 가로막아도 그것을 넘어 400여 년의 수난의 길도 뚫고 나왔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고 순교의 피를 흘릴 때마다 낙망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품고 이웃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자극시키고, 새로운 승리를 자극시키어서 하늘과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꼈기 때문에, 기독교는 하늘 것으로써 로마 제국을 수습하여 출발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아버님께 승리의 기쁨을 돌려 드림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의 영광의 표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단체가 되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이 될 때는 한 사람의 교인으로서 수많은 사람과 친분을 가질 것이고, 이와 같은 가정이 될 때는 수많은 가정의 본이될 수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은 단체가 될 때에는 수많은 단체로부터 추앙의 대상이 될 것이옵니다. 또한 이와 같은 국가가 될 때에는 세계가 우러러볼 것이고, 천적인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 땐 만민의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세계를 점령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스스로가 본이 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인간이 이 땅 위에 와서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와 합동하여 그 결과를 갖지 못할 때에는, 일생의 수고도 헛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이 제아무리 이 땅 위에서 그 무엇을 가진다 하더라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쌍한 것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도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있게 될 때에 드러나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진정 저희의 마음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뜻을 위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싸우는 생애의 노정으로서만 남아지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1970년대를 저희와 더불어 지키시옵소서. 1970년대를 장식할 수 있는 이 1970년도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10년 기간, 당신이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전체를 주관하시어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시려는 당신의 뜻과 부합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한국의 실정을 살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을 거쳐 나가더라도, 저희들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하나되고,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이 나라 이 민족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통일교단이 되어야 될 것을 확실히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격려하여 주시 옵소서 .
이들은 마음으로 온전히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이끌어 나가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위하여 나갈 줄 아는 자신들이 되겠다고 스스로 결의한 무리들이오니, 이들의 생애를 지켜 주시옵고, 이들의 생활을 살펴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통하여 최후의 목적인 세계복귀라는 엄청난 사명을 세계에 연결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악의 조건이 저희의 가는 길을 막고 있다면 이것을 제거시켜 버리고, 사탄이 가로막고 있다면 이것을 굴복시켜서, 아버지의 본연의 내용만이 남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새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의 이 아침에 당신이 친히 여기에 현현하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머리를 조아려 아버지 앞에 축수를 드리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곳곳마다 당신의 은사를 가하시어서 권능의 부활권을 이루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원하옵니다.
더우기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길에서, 내적 슬픔과 외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지키기 위하여 결심한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어려운 환경을 밀고 나갈 때마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힘이 되어 주시옵고, 아버지여, 힘을 주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현재 자기들이 처하여 있는 그 나라를 복귀시키게 하여 주옵고, 그 자리를 지키게 하여서 아버지의 인식과 아버지의 기억에 남는 터전을 마련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바라던 9월이 왔습니다. 일본에서 와클(WACL)대회를 개최할 날이 멀지 않았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같이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금후의 아시아의 모든 운명을 아버지를 중심삼고 조정해야 할 엄청난 사명을 놓고 저희들이 정성들여 나왔사오니, 일본에 있는 외로운 식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많은 무리가 아닌 소수의 무리로되 그 무리를 통하여 일본에 아시아의 한 교두보를 남길 수 있게끔 당신이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민족을 통하여 새로운 승리의 깃발을 든 아버지의 아들딸을 내시옵소서. 그 전체 국민 앞에 역사적인 새로운 봉화를 들고 나선 지금까지의 그들의 움직임이 이 한때를 중심삼아 총결산을 짓고, 총수확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여, 당신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눈물 어린 투쟁의 노정 가운데서,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 아버지만을 붙안고 싸워 나오던 그들을 동정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자리에 모여서 아버지의 뜻에 협조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새로운 각성을 하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아 가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특별한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드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시옵소서. 그곳에 모이는 당신의 아들딸로 말미암아 세계의 사람들이 감동 감화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충성을 다하는 이 한 기간이 되어서 당신이 금후에 세계적으로 계획하는 전체의 뜻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대회를 아시아에서의 승공의 한 교두보로 삼으시옵소서. 아시아를 수호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공산권에 대결하여 그 사망의 물결 앞에 휩쓸리는 저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여, 당신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가려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승리의 권한을 세워 놓고 당신이 분부하시는 뜻과 더불어 그 승리의 판도를 온 아시아에 연결시켜,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약한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호소하던 날들을 거쳐 금년을 다 보낸 실정에 있사오니, 그들이 노력한 수고로 말미암아 70년대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이번 와클대회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10월달에 저희들이 계획한 700쌍 축복의 자리를 당신이 마련하시옵소서.
그 자리에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타락의 인연을 따라서 움직이고, 타락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결과를 맺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말씀을 듣고, 여기에 관심을 두고, 여기에 소문을 들은 사람들, 혹은 세계인들이 아버지의 새로운 역사를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와 같이 움직이는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말고 승리의 천국, 승리의 한 나라, 승리의 한 백성을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나라를 중심삼고 나아 가는 데 있어서의 하나의 승리적인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이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무엇을 배워 갈 것이냐 할 때, 아버지를 중심삼은 심정적 인연을 공고화시켜 가지고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일체를 당신의 장중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은 개인적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또한 복귀섭리도 하나님 한 분이 경륜하시지만 그 뜻은 역사적인 뜻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는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길은 과거에 있어야 할 길, 현재에 있어야 할 길, 미래에 있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길은 과거와 다른 것이 아니요, 현재와 다른 것이 아니요, 미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과거도 그 길이요, 현재도 그 길이요, 미래도 그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거쳐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과거, 현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길이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 한 생명으로 태어난 그 시간부터 살다가 저 영계까지 가는 노정이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노정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중에 있는 나 자신,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하나의 개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부모면 부모 자신들이 이러이러한 아들딸을 낳겠다는 계획 아래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부모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를 중심삼고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우리 인간은 그 섭리의 기원과 일치되고, 그 기원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역사와 관계를 맺는 중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하나의 생명체로 이 땅위에 보내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경륜과 관계를 맺고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은 현실에 처해 있는 자체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20대 청년이면 20대 청년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단정할 수 있고, 이런 섭리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느껴야만 됩니다.
그런 나, 다시 말하면, 역사를 자각하고 천륜을 자각한 나,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을 알고 역사를 아는 나, 일 뿐만 아니라 하늘을 책임 지고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는 나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바랐던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모든 사람이 바라고 찾아온 길은, 역사를 대신하고, 하늘의 경륜을 대신할 수 있는 나를 찾아 세워 가지고 그 역사 앞에 사명을 다 하고, 섭리 앞에 사명을 다 했다고 하는 승리적인 모습을 추구해 나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한 개체, 즉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를 중심삼고 볼 때, 그 개체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한 개체를 끌어내면 거기에는 그의 선조가 달려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혈통적 인연을 갖고 있는 이 지상의 수많은 종족이 달려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전부 끌어내면 그 종족들의 조상이 달려나오고 더 촉구하게 되면 하나의 존재가 나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단군의 후손이라면 단군 할아버지를 따라 전부 달려 나올 것입니다. 좀더 올라가면 세계가 달려나올 수 있으며, 좀더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달려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 하나를 중심 삼고 종족이 연결되어 있고, 민족이 연결되어 있고, 세계 인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를 창조하신, 모든 존재의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까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현현해 계시고, 세계 인류가 현현해 있고,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현현해 있고, 우리의 조상들이 현현해 있고, 우리 민족이 현현해 있는 그 가운데 어떤 특정한 종족 중에서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이러한 나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느냐? 나는 역사 후에 태어났지만 역사 이전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타락한 인류는 이 역사와 시대를 넘어가야 할 운명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란 끝날에 가까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일수록 책임이 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승리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무리, 그런 개인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특정한 민족이 있어야겠지만, 특정한 민족이 있기 전에 특정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특정한 종족이 있기 전에 특정한 가정이 있어야 하고, 특정한 가정이 있기 전에 특정한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개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달려 있는 '나'가 아니라 세계를 품고 갈 수 있는 '나'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섭리를 통해서 보나 역사과정을 통해서 볼 때, 섭리역사의 최후의 목적을 귀결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과거 사람도 아니요, 현재 우리들입니다.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한 사람을 통해서 넘어갈 것입니다. 인간이 가야 할 하나의 문을 연다고 하게 될 때, 그 문은 여러 사람이 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여는 것입니다. 어떤 종족이면 종족을 대표한 사람이 여는 것이요, 민족을 대표한 사람, 국가를 대표한 사람, 세계를 대표한 사람, 나아가서 하늘땅을 대표한 사람이 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늘땅을 대표하든가, 세계를 대표하든가, 국가를 대표하든가, 민족을 대표하든가, 종족을 대표하든가, 가정을 대표하든가, 개인을 대표하든가간에 둘로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기점상에 서서 세계를 대표하는 사람은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 종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은 개인을 대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거꾸로 개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대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듯 내려가도 그 사람이요, 올라가도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개인의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자각된 입장에서, 내가 이 시대에 섰다 하는 그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류를 대신하고, 모든 환경을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한 자리여서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하고 소망스러운 자리 같지만 오히려 지극히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 마음으로 그런 자유의 환경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보면 아직 뜻이 이루어질수 있는 세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요,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환경 그대로 계승되어 이뤄질 수 있는 터전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서 있는 나 자신이 가정을 거느리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거느리고 나가야 할 책임을 진 입장에 서게 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나 자신이요, 시대를 대신할수 있는 나 자신이요, 미래의 기원을 마련하여야 할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생애를 거쳐 나가는 것은 비록 한 개인의 생애에 지나지 않지만, 그 사람의 감각이라든가, 그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 또는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생활 환경의 모든 인연이라는 것은 개인에만 한한 것이 아니라, 전체의 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공식이 되어야 합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식이라는 것은 갑과 을이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수학 문제를 풀 때, 공식을 통해서 풉니다. 과거도 그 공식을 통해서 풀었고, 천년이 지난 후에도 그 공식을 통해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갔다'고 해서 그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공식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식을 위주로 해서 결과된 입장에서만 이 그 자체의 가치는 드러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인류가 찾아 나오는 하나의 공식,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공식, 천륜을 찾아 나오는 심정이라든가 전체의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첫 기원이 될 수 있는, 출발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그 하나의 공식이 대관절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들은 뜻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뜻이라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뜻이 있는 것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목적을 추구하는 의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에 문제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일체가 되고, 내가 그 공식에 화합하여 내가 그 공식을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공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개개인이 그러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공식적인 존재,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존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존재, 그 존재는 3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식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는 누구냐?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런 입장에 설 때, '역사는 나와 더불어 일치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 공식이니까. 그리고 '이 시대도 나와 더불어 일치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도 나를 떠나서는 출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 공식이니까.
그러면 공식이 될 수 있는 자체가 무엇이냐? 문자로 표시될 수 있는 수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수리적인 그 내용을 초월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역사적인 공식적 존재, 시대적인 공식적 존재, 미래적인 공식적 존재는 누구일 것인가?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그것을 통하여 거쳐 나가고, 다 그것을 닮아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느 종교든지 반드시 메시아 사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주, 혹은 구세주라고 부르는 중심존재가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존재가 어떤 특정한 종교를 중심삼은 존재라면 그는 공식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세기면 세기, 시대면 시대에 한한 대표자라면 공식적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혹은 금후의 어떤 역사과정에 있어서, 아시아면 아시아의 역사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그런 대표자도 공식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공식은 태초로부터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만약에 이 공식이 변한다면 이 공식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세계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그 누구가 변형시킬 수 있는, 인간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하나의 세계는 설정할 수 없습니다. 이 공식은 우리 개인이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도 이것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이 세계도 움직일 수 없으며, 미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심을 통하여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는 이 중심존재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기들의 생활, 자기들의 목적 중심으로 바라고 그것을 드러내어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식적 중심 그 자체를 두고 나오는데 그 자체는 어디에 뿌리를 두었느냐? 사랑에다 뿌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여러분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다 뿌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너와 나와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을 두었기 때문에 그 인연은 역사와 더불어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인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나 혼자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대신한 것이요, 시대와 더불어 관계를 맺은 사랑인 것입니다. 미래에도 영원히 계속되는 그 출발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어떤 길이냐?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미래적인 사랑의 출발을 대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역사시대를 대신하여 천륜 앞에 부끄럽지 않은 공식적인 자, 사랑을 중심삼고 볼때도 공식적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식은 중심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은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앞에 결과를 당당히 들고 나와서 시대를 논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이것은 절대자와 부자의 인연을 가진 자리입니다.
오늘 인간으로서 찾아 나가는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목적입니다. 아무리 이 세계를 품었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심정적 안식의 터전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이 세계를 독립시키는 날, 세계의 모든 어려움을 자기가 극복하고 자기의 능력으로 세계를 장중에 집어넣고, 천륜이 바라는 대로 승리하여 세계적인 독립을 이루는 그런 기쁜 날을 맞이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기쁜 날 그 시간에 자기가 이 땅 위에 둘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다면, 즉 세계를 찾아서 기쁠 수 있는 순간에 자기 개체가 요구하는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리는 그런 순간에 맞부딪쳤다고 할 때, 그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그 자리를 생각해 볼 때에, '이 세계를 내 마음대로 주관하기를 바랐으니, 생애를 걸고 나온 그 목적의 순간이 왔으니 나에게 이 순간만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상대는 필요없다'고 하겠습니까? '이것만이 내게 필요하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세계를 찾은 이날을 희생시켜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인 세계가 문제가 아니라 내재적인 심정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사랑이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금은보화를 가졌고, 피땀 흘려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그 부모가 돌아가게 되었다 할 때, 그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강조하고 또 그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그 부모가 살 길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가 귀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재산을 투입시킬 것입니다.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외적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도 자식이 그런 운명에 처하게 된다면 그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생명까지 투입시켜서라도 살리고 싶을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를 중심한 공식적인 기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인연이 부자의 인연이라 했는데, 이 부자의 인연의 자리는 둘도 없는 자리입니다. 여기에는 흥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을 세워서 따질 수 있는 내용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라는 상대적 간격을 초월하고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의 자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자리에서 역사시대를 통해서 찾아오시던 하나님과 같이 가야 합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우리는 부자의 인연을 그 가는 길 가운데에서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복귀섭리를 해 나온 가운데 반영된 그 심정적 세계를 내가 탐색해야 됩니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아브라함·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왔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어 갔습니다. 그 과중을 더듬어 온 하나님의 피어린 심정의 세계를 내가 몰라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염려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은 아담 가정으로서 갈 길을 전부 알았느냐? 몰랐던 것입니다. 노아도 120년간 방주를 지으면서 수난의 역경을 타개해 나가는 생활의 일면은 남겼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섭리적 반응을 일으키고 역사적 신념의 인연을 거쳐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지만 온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심정적 그 배후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이 어느 한때에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적 심정으로만 남아지게 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감정으로 표현해 가지고 그 역사적 슬픔을 오늘의 현시점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지난날의 슬픔이 아니라 오늘의 슬픔으로써 하나님을 붙들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그런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땅 위에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와 시대에 연결되고, 시대와 미래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정적 총합체가 와야 합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결합체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합시켜야 할 사람은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졌던 사람이 누구였느냐?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암흑과 같은 이 세상, 무지한 이 천지 가운데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천국이 왔다'가 아닙니다.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자기로 말미암아. 그러면 천국은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자기와 더불어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더불어 오되 자기의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하면 심정과 더불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정의 인연은 역사에 반영시켜야 하고, 시대에 반영시켜야 하고, 미래에 반영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온 역사시대를 대신한 중심적 입장에서 심정적 반영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자아의 가치를 갖고 나타났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자기 자체를 존중시하고 자기 자체의 가치를 확실히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랑은 자기밖에 할 자가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각을 하여 발표한 것이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는 말입니다. 독생자의 자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독쟁자라는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한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그러면 독생자뿐이겠는가! 독생녀는 누구냐? 없었습니다. 독생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서글픈 길이 남아진 것입니다. 독생자가 독생녀를 가려 가기 위해서는 독생녀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책임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남자를 세울 수 있는 역사의 종말은 무얼 두고 하는 말이냐? 세상이 허무해지고 세상이 심판 받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인 입장에서 역사의 부활을 대신할 수 있는 자각된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나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받지 못한 사랑이다. 나로 말미암아 비로소 시작된 사랑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심정적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자기의 외로움 보다도 하나님의 외로운 역사를 엮어 나왔던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심정을 통해서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를 남기기 위해서 그때까지 수고한 하나님의 심정이 거기에 반영되었던 것이고, 또 그 심정을 통해서 그때의 현실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미래의 천국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현실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듯 자각된 그 자체는 역사의 부활체요, 현실의 통일체요,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자체입니다. 여기서 공식적인 자아를 이 우주상에 드러낼 수 있는 입장에 선 분이 메시아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가 동으로 가면 하나님도 따라가는 것이요, 역사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난날 역사를 거쳐 저나라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은 물론 성인 군자들까지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수많은 무리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 올 수많은 무리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따라가야 하느냐? 예수의 마음의 생활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마음의 생활은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내용,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그 내용이 세상과 미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 앞에 공식적 자아를 결정지을 수 있었던 단 한 분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던 역사는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성인현철들이 고대하던 것이었으나, 그가 바라보던 시대는 그때에 로마 제국내의 피압박 민족들이 도탄 중에서 해방을 바라던 때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타락한 인류의 사망의 교차로를 그때까지 세계 전체와 더불어 종결짓지 못한 현실에서 새로운 차원의 교차점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입니다. 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세상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렇고, 영계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습니다. 그가 동하면 같이 동해야 되고 그가 정하면 같이 정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여러분들에게 통일교회가 뭘 하는 곳이냐 하고 물어 보면 '뭘 하긴 뭘 해, 합동결혼식 하는 곳이지'라고 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합동결혼식은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냐? 뭐 하는 것입니까? '뭐 하긴 뭐 해. 남자 여자 만나는 것이지' 그렇습니까? 합동결혼식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 예수가 남성을 대신한 하나의 공식적인 존재라면, 여성을 대신한 공식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남성의 공식적 존재 앞에 여성의 공식적 존재가 있었더라면 가정의 공식적 기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가정적 공식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가정이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가정적 공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종족적 공식이 없습니다. 종족적 공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적 공식이 없는 것입니다. 민족적 공식이 없고, 국가적 공식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지상의 나라는 그런 국가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입장입니다. 이 나라들이 어디로 갈 것이며 그 나라로 구성된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미래의 세계는 암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역사를 대신해서 이래야 되고, 시대를 대신해서 이래야 되고, 미래를 대신해서 이래야 된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가 등장하는 날에는 , 세계는 그 국가로 말미암아, 그 공식적인 국가로 말미암아 통일되고 연합될 것입니다.
그 국가에는 무엇이 있느냐? 그 국가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와 더불어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과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그 국가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현세의 사람도 그 국가의 백성이 되고, 미래의 사람도 그 국가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라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 전통은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에 있어서 상충된 것이 아닙니다. 일치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공식적 국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식적 국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공식적 민족이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 종족이 없어서는 안 되고, 공식적 종족이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공식적 가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개인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그 자신들이 공식적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개체에게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공식이라는 것은 엄한 것이고 무자비한 것입니다.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일체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식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공식이란 공적인 방법이며, 공이라는 것은 대중을 말하고, 방법이라는 것은 길을 말합니다. 방향을 말한 거예요. 아무리 작은 기준이라도 이것을 중심삼고 보면, 어느 사회에 가든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공식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의 단위가 전체의 부서를 통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게 되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식은 어디를 가도 상충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순리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 공식을 통하여 이루어진 세계는 어디를 가도 그것이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역하는 존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식에 어긋나는 존재는 공식대열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공식대 열에서 제거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식적인 개인이 있다 할진대, 그가 영계의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사는 세계의 그 어디를 가더라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는 방 안에 들어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지상의 어디를 가도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미래의 어떤 곳을 가더라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세계는 통합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은 존재는 존속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 공식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말미암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인간의 사랑, 즉 여러분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야말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식입니다. 절대적인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못 가는 데 없고, 상충되는 일이 없고, 그 공식으로 말미암아서는 잘못되는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공식의 반응적인 실체로 태어났고 실체를 중심한 인연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그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종족의 사랑, 민족의 사랑, 국가의 사랑, 세계의 사랑, 이렇게 그 범위가 넓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인연을 떠나서는 살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공식을 떠나서는 자기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랑을 좋아하느냐? 자기의 무한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일하는 데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하고, 먹는 데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먹어야 합니다. 자는 데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야 합니다. 만지고 느끼는 것, 즉 인간의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감각과 직감까지도 전부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모두 그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보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애는 물론 이요, 국가애, 민족애, 종족애, 개인애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식이 입체적이고 횡적으로 넓어질 뿐 하나의 기원을 통하여서는 여기에 가할 수도 감할 수도 없는 심정적 교류를 통한 사랑의 반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고깃덩어리(육신)를 가지고 이런 공식적 사랑을 해봤느냐, 여기 젊은 사람들, 굴러다니는 걸레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런 사랑을 생각해 보았느냐는 겁니다.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걸레만 못한 사랑을 해서 되겠어요? 천이라면 걸레도 천이고, 누더기도 천입니다. 그러나 천 중에서도 어떤 천이냐 하는 것입니다. 천의 가치는 그 본질, 즉 출발의 기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이상상대가 어떻니 하고 말합니다. 이상상대라는 말은 참 좋지요. 아무리 상대되는 존재가 잘났더라도 여러분이 그 바탕을 지니지 못하면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잘나고 못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느냐? 자기 자신이 잘나지 않고는 그 자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미급한 자리에 서서 좋다 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입니까? 유치원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 제일 좋다' 할 때, 그것이 제일입니까? 국민학교 아이들도 '우리 선생님 제일이다' 합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제일입니까? 제일이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가 문제입니다. 자기가 좋으니 선생님이 제일 좋게 보이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보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체험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통일교회 패들은 안 됩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나면 세상이 전부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름다운데 지금 여러분들은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람들이 전부 사탄 같지 않고 걸어다녀도 구름 위를 부웅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은혜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런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해도 혼자 속으로 하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여러분, 숨을 쭉 들이쉬면 세상것을 전부다 집어넣고 싶지 않아요? 내가 숨을 쉰다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따라들어가려고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빨려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숨을 들이쉰다면 천지가 없어지겠어요, 남아지겠어요?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숨을 들이쉬는 바람에 아들딸이 전부다 나가떨어져 급살맞는다면 갑자기 내쉬겠어요, 천천히 내쉬겠어요?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숨을 쉴 것 같아요, 안쉴 것 같아요? 쉽니다. 그러면 어떻게 쉴까 생각해 봤어요? 홍어나 가오리 같은 넓적한 고기는 어떻게 숨을 쉬겠어요? 이렇게 넓적한 몸뚱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쉴까요, 꼬리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쉴까요?
하나님이 숨을 쉴 때는 어떻게 할까? 제일 고충스럽지 않게 하나님이 숨쉬는 방법은 무엇이냐? 동그란 구멍에다 내쉬고 들이쉬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숨을 쉬려면 구멍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주는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작용이 전부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물질의 기원은 파동설입니다. 입자를 지닌 파동, 파동입니다. 파동이 뭐냐? 이렇게 일정한 사이를 두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파동이예요? 이 파동은 이것이 아닙니다. (칠판에 그으심) 원형입니다. 여러분이 잴 수 없는 먼 거리를 향해서 돌아갑니다. 구형운동을 해야만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원형을 닮는 것입니다. 납작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납작한 것이 필요할 때가 많지요? 둥그런 것보다 사용할 때가 많잖아요. 이게 다 네모졌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전부다 둥글둥글 합니다. 이 코가 뾰족하다고 하지만 코끝을 보면 동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그 세계는 어떨 것이냐? 그 세계에서의 감각은 초감각적이어야 됩니다. 감각 중의 최고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감각이어야 됩니다. 그러면 최고의 파장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어떤 것이냐? 돈벌어 가지고 기뻐하고 춤추는 자리예요? 술 한잔 먹고 기분 좋다고 춤추는 자리입니까? 아닙니다. 그 감각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 이상의 파장이 없습니다.
그러면 천지가 생겨난 후, 타락한 역사지만 이 역사시대에 가장 충격적인 큰 파장을 일으키고 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게 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했는데, 이것을 몇째 계명이라 했습니까? 첫째 계명이라 했습니다. 다음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사랑의 정의를 두고 볼 때, 그 사랑의 출발과 끝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것이냐?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와 머물 수 있는 그 끝이 어디입니까? 끝, 물론 아들이 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곧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중심삼고는 가정이 끝입니다. 이 세계의 끝은 뭐냐 하면 사탄주의입니다, 사탄주의. 그러므로 사탄의 뒷면이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갈 수 있는, 깊다면 제일 깊은 골짜기요, 높다면 제일 높은 꼭대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중심삼고 위대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큰 파문을 던진 것입니다. 몇 사람에게 던진 것이 수천년 역사를 지내 오면서 이 파문권내에 오늘의 민주세계가 창건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파문을 던졌는데 어떤 파문을 던진 것이냐? 신랑과 신부라는 파문밖에 못 던졌습니다. 신랑 신부 되겠다고 하는 파문은 남겨 놓았지만, 실제로 잔치하면서 춤추는 파문은 못 남겼습니다. 그것을 남겨 놓았습니까? 「못 남겼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했는데, 그 할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나쁜 얘기 아니면 좋은 얘기,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그런 놀음이 죽지 않으면 살게 되는 것이요, 나쁘지 않으면 좋은 일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죽어도 급살 맞게 죽일 수 있고, 또 그 정도로 좋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시시하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겠는가? 세상의 나라님도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도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아들 딸도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있기 전에 먼저 상대가 있어야 되지요. 사랑의 출발이 아들딸부터 시작해요? 그것은 종적입니다. 횡적 기준이 먼저 나오지 않고는 종적 기준이 연결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얘기가 무슨 얘기입니까? 할 말이 많지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예기입니까, 생각해 보았어요? '뭐 하나님에 대한 얘기이겠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여러분들은 무슨 얘기일 것 같아요? 그것은 사랑 얘기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어떻다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이 이러이러하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이 가로 막고 있고 사탄이 가로막고 있다' 하는 얘기일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데려다 이만한 자리에 앉혀 놓고, 때가 되면 밥을 먹이고 편안히 잠잘 수 있도록 한 것은 누가 만들어 주었습니까? 여러분이 만들었어요?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교회 역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뒤넘이친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저울대에 저울추가 있습니다. 그 추를 저울대에 올려 놓으면 쭉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이것이 조금만 기준을 넘어서면 쓰러집니다. 꼭대기인 90도까지는 가는데 89. 99도까지 가서 티끌만한 오차가 있어도 이쪽으로 자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가지고 이렇게 남아 있게 안되어 있습니다. 그 원리는 89.9999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는 둘도 아니요, 하나도 아닙니다.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그에 해당한 전부를 올려놓기 전에는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가지 않고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서 여러분에게 어디에 가느냐고 물을 때, '통일교회 700쌍 축복받으러 갑니다.' 하면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목을 매어 죽겠다고 그랬어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 딸을 내놔라!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남의 딸 도둑질해다가 뭐하는 놀음이야' 하면서 난리친 적이 있지요? 「아니요」 그런 것 구경했어요? 「못 했습니다」 나는 그런 구경 많이 했습니다. (웃음)
'우리 아버지 내놔라! 내 남편 내놔라! 내 아들 내놔라! 내 딸 내놔라!' 하는데, 선생님은 그들을 내쫓고 문 잠그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 결혼식이 제일 멋진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런 소식 들어 보았어요? 「예」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 때가 좋아요, 그때가 좋아요? 「그때가 좋습니다」 그러면 그때가 왜 좋아요? 두 세계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맛을 모릅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에? 두 세계 맛을 봤어요, 맛을 보지 않았어요? 짠맛, 단맛, 신맛, 쓴맛, 이런 맛을 모르는 혀는 죽은 혀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짠맛도 보고 '짠맛이 이렇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90도 기준이 될 수 있는 짠맛을 보고 '이것이 표준이다. 조금더 들어가면 쓰다. 여기까지는 짠맛이다'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처녀 총각들한테 가서 어떻게 해 가지고 박수치게 되면 눈이 번쩍 떠져요, 안 떠져요? 왜 번쩍 떠집니까? 아마 여기 쌀밥에 고기까지 실컷 먹고 배가 부른데 누가 보리떡 준다고 하게 되면 눈을 안 뜰 것입니다. 나누어 주는 줄 알면서도 눈을 안 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밥상이 들어가게 되면 눈을 안 뜰 수가 있어요? 나는 눈 안 뜰 자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무엇이라구요? 사랑이 문제입니다. 성경 말씀을 다 추려 보면 그것입니다. 거기에는 몇백 명이 들어 있고 오만가지 내용이 들어 있지만, 짝지어 딱 들면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들립니다」 그러면 이것을 매야지요, 두 가닥이지요? 요렇게 얽어매여 있고, 이 매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매는 것이 이렇게(칠판에 판서하시고 설명하심) 됩니다. 물론 이렇게 나오지만, 이 꼭대기와 이 꼭대기가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는 데 있어서 그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있겠죠? 이 가운데는 매여집니까, 안 매여집니까? 안 매여지니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몸하고 마음이 매어졌어요, 안 매어졌어요? 구름같이 붕붕 떠 있습니까? 어딘가에 접선이 되어 있겠지요? 「예」 그러면 어떻게 접선이 되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어떻게든지 붙어 있을 것 아닙니까? 몸뚱이는 세상에 달려 있고 마음은 하늘에 달려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같이 붙여서 끄나풀을 세계화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습니다. 세계에는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예」 어떻게 달리느냐? 이 식입니다. (판서하심) 공식이 있을 거 아니예요? 여기에는 만물세계가, 여기때는 영계가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엇으로 매어 놓아야 되겠습니까? 붙잡아 매도 귀찮다고 하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매어야 좋겠어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동그라미 속에 있다는 거예요.
사랑은 뼛골 속에 들어가도 가만히 있지 않고 뺑뺑 돌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찔한 사랑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찔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오래 두면 돌아버립니다. 최고로 도는 세계입니다. 그것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는 설명은 못 해도 꿀맛은 압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천년이 가도 그 벙어리가 먹은 꿀맛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꿀을 먹어 본 그 벙어리는 꿀맛을 압니다. 바로 그러한 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입장에 처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은 그것에 대해서 옛날에 전부 다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미래에 온다는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싸움하기 위한 세계입니까? 고생시키기 위한 세계입니까? 평화롭고 통일된 세계인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한 작전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냐? 먼저 부모가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제일 위대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위대한 분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아들 되어 가지고 뭘 합니까? 그 위대한 분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내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위대한 분의 존재권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존재권을 대신하려면 모든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아들딸들이 그 사랑으로 충만하여 가지고 천년 만년 꽉 차 있을 수 있는 자식, 그것이 제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 예수님은 절대적인 우주의 중심이 되는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 했습니까? 사랑의 관계입니다. 학문적인 관계도 시시합니다. 권세적인 관계도 시시합니다. 학문이나 권세도 사랑 앞에 지배를 받습니다.
박대통령 부인 육여사가 잘은 모르지만 고등학교까지밖에 안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수가 있고, 장관의 마누라가 있고, 박사들도 있지만, 그들은 대통령의 사랑을 받는 그 여자 앞에 머리를 숙입니까, 안 숙입니까? 「숙입니다」 숙이지 않으면 그 여자의 말에 남자의 목이 달아나고, 여자의 목이 달아납니다. 그러니 지식이 귀합니까, 사랑이 귀합니까? 「사랑요」 권세가 귀해요, 사랑이 귀해요? 「사랑요」 알긴 아는구만. 정말 그래요? 「예」 진짜 그래요? 「예」 절대적으로 그래요? 「예」 그러니 목을 내놓고라도 찾을래요? 「예」 모가지를 백 개 아니라 천 개라도 주고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그게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로 백번 천번 얘기해도 필요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길은 선전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야, 아들아! 이리 와, 이리 와!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면서 사랑합니까? 사랑은 선전하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짝슬쩍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말을 한다면 천하를 취하고도 남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려는 그 이상의 명사로 꽉 차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어요. 남자든 여자든 다 그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경 끼고 바라보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할 말이 많고 답답하고 뭐가 어떻고…' 하신 것은 무슨 사연 때문이었느냐? 이것은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세계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공식적인, 하늘땅 어디 가든지 절대 필요한 사랑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상상대라 했는데 이상상대가 대관절 어떤 것이냐? 여러분 앞에 이상상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그럴 것인 아닙니까? 보다 공식에 가까울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 이상상대입니다.
그 공식에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역사시대의 소망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과거의 소망에 가까운 사람이요, 현실사회가 바라는 중심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또한 미래의 출발이 있을진대, 그 출발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조상이 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식입니다. 그 사람을 찾기 위한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민족성을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냐? 겁탈이요, 강압이요, 정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을 만들어야 되느냐? 수평선을 만들어야 됩니다. 사랑의 출발은 먼저 공식적인 수평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평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수평선에서 새로운 파장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생을 중심삼고 보면, 젊어서는 청소년 시대를 거치면서 이렇게 올라가지요. 이즘 되면 올라가요, 내려가요? 「올라갑니다」 (판서하심) 이렇게 올라가다가 휘청거리는데, 또 올라갈 수 있습니까? 포화상태가 되면 수평선이 되었다가 내려갑니까, 올라갑니까? 「내려갑니다」 내려가지요.
그러면 일생에 있어서의 수평선이 되는 때가 언제냐? 모든 만물과 통하고 친구가 되고 관계맺고 싶은 그런 수평선 시대가 언제냐? 사춘기 시대입니다. 사춘기의 젊은이들이 마라톤 대회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마라톤 대회에서 누가 1등입니까? 내가 뛰지는 않지만 1등이 자기지요? (웃음)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직접 뛰지는 않지만 그 대회를 구경하면서 앉아서 달리는 것입니다. 전부다 마라톤 선수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말을 잘 타는 기수를 보면 자기가 기수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아주 훤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수평선에도 이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의 수평선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도 20세의 아가씨가 되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 하고 감상에 젖어들어 갑니다. 이것이 뭐냐?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연결시키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사춘기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세계에 수평선을 그리는 것입니다. 수평선을 그리는데, 내려가는 거기에 무엇인가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떤 관문이 있겠지요? 수평선에서 내려가면 좋아요, 안 좋아요? 「안 좋습니다」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있으면 벼락을 맞아!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벼락을 맞겠으면 맞고, 죽겠으면 죽고, 망하겠으면 망하라구. 그래 내려가고 싶어요? 「안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럼 조금 내려가도 괜찮을까요? 「안 됩니다」 안 되지요. 얼마만큼 안 되나요, 10이면 9만큼만 내려가면 되지요?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도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하고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그대여!' 할 때, 젊은 사람들은 그 할머니 모습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그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그대여 히히…' 이렇게 합니다.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너 살아 봤어 ? 살아 보지 않았지만 그런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때의 흥미를 가지라구요.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남자는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사춘기 때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절대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자들이나 여자들 할 것 없이 여러분 자신을 대해 봐도 이성적인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한 잘 논다는 것입니다. (웃음) 나는 모르지만 그럴 것 같아요. 여러분들 그래요, 안 그래요? 얌전한 아가씨 눈은 사탄눈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솔직히 대답해 봐요. (웃음) 되려고 하지요? 남자들을 보면 여자들과는 조금 달라요.
그러면 남자들은 사춘기 때 사탄 되려고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남자가 저래서 꼴값하지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야! 내가 극장에 한번 갔는데, 군인이 오더니 아가씨가 둘이 앉아 있으니까 옆에 가서 앉더니 무릎을 툭툭 치면서 '어디에서 왔어요' 하고 물어요. 그거 왜 그래요? (웃음) 남자들이 그런 데는 남자 소질이 있어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붙들러 나왔지? 어떤 사람 붙들 것입니까? 붙들러 나왔어요, 붙들리러 나왔어요? 「……」 대답이 없으니 기분 나빠서 이제 얘기 못 하겠구만. 어때요? 붙들려고 왔어요, 붙들리려고 왔어요? 붙들려고 왔지요? 붙드는 데는 어느 정도 붙들 것이냐? 이것은 천태만상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큰일난다. 기회는 한번 밖에 없다' 하면 여자들은 어떻게 붙들리려고 하겠어요? 어떻게 붙들리면 좋겠어요? 좌우지간 어떻게든지 붙들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심각한 사람 가운데 제일 심각한 사람이 누구냐? 미친 사람 중에서도 사랑 때문에 미친 사람은 얼마나 심각하겠어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길 가다가도 쓱 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생각 합니다. 사랑 때문에 미친 사람은 행동이 다릅니다.
세상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제일 심각하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돈이지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심각하겠습니까? 「사랑입니다」 40살 먹은 늙은 총각이 있는 데 백만장자입니다. 그러면 '아이구, 내 돈아! 내 님이 너다' 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없습니다」 이런 보따리를 다 치우고 심각해지고 결국 뭐가 필요합니까? 자기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 앞에 상대가 있다 하게 될 때는 함부로 그 사람을 대할 수가 있어요?
여기서 꼭 필요한 말이 무엇입니까? 입증할 만한 말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길거리의 사랑이 있고, 돌보아주는 사랑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랑은 무슨 사랑이겠습니까?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오늘날 남자 여자의 사랑에서 그런 절대적 사랑이 나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내정을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이 땅 위에 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우주적인 수평선 위에서 자기 상대를 정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요셉 가정을 중심삼은 그 동네에서 상대를 구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아들이기 때문에 역사를 대표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반된 자리에 선 역사적인 아내를 요구했습니다. 자기가 역사적인 남자이니까 역사적인 아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남자는 어디서 오느냐?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에서 옵니다. 역사적인 여자는 어디서 오느냐? 타락한 지옥 가운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남성이 역사적인 여성을 찾기 위해서 지옥에 들어간 그 여성에게 '올라와. 올라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올라오게 하려면 올라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에 올라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탄세계에 꽁꽁 얽어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얽어매여 있느냐 하면 그 민족과 나라가 울타리가 되어 둘러 싸여져 있고, 다음에는 백성이 울타리로 쳐져 있고, 종족과 가정까지도 울타리가 되어 막고 있습니다. 모두가 울타리로 쫄딱 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나의 나라요, 국민이요, 종족이요, 가정이요, 그 가정 가운데 내가 꽁꽁 매여 있습니다. 이렇게 매여 있습니다. 타락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인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렇게 꽁꽁 매여 있습니다. (칠판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남자는 어떠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꽁꽁 매여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풀어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 가운데, 나라 가운데 꽁꽁 매여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누구부터 구해 줄 것이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칙과 원리에 따라서 구해주자' 이것이 남자를 구하기 위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 남자를 구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라와 같은 울타리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반대하는 울타리가 아니고, 환영할 수 있는 나라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다음에는 민족의 울타리, 종족의 울타리,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주여! 오시옵소서' 하며 메시아를 위해서 세워진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메시아를 위한 것이요, 유대교도 메시아를 위한 것이요, 요셉 가정도 메시아를 위한 것이요, 사가랴 가정도 메시아를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울타리를 만들어야 역사를 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포위된 것을 구해 주려면 해방이 벌어져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 삼고 내 개인이 해방되고 가정이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이 해방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종족은 유대교인을 말합니다. 다음에 민족이 해방되고, 민족이 해방되게 되면 나라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나라를 해방시켜 가지고 여기에 가서 이것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구해 주려면 나라끼리 부딪쳐야 됩니다. 이것은 민족끼리 부딪쳐야 됩니다. 이것은 종족끼리 부딪치고, 이것은 가정끼리 부딪쳐야 합니다. 이런 싸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칠판 판서후 설명하심) 이것이 지금까지 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찾아 가지고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복귀섭리를 하려고 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서 실천한 것은 영적인 남자가 되어서 남자 구실은 못 하지만 영적인 해와인 성신을 보내 가지고 복귀역사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하면서 넓혀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신부권을 만들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영적으로만 이루면 되느냐? 영육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육을 이루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러면 원리적인 인연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영육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영육을 중심삼은 나라가 필요한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은 우리들을 환영할 수 있는 나라가 필요합니다. 또한 영육을 중심삼은 국민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종족이 필요하고, 그 다음은 가정이 필요하고, 그 다음은 개인이 필요합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전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민족복귀라는 문제를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을 못 하면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못 해 놓으면 완전히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도 자리를 못 잡아요.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는데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 이런 입장을 거쳐서 해방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해방된 자리에 있습니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해방이 되었죠? 그렇지요? 옛날에는 죽이고 살리고 야단 났었지만, 이제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통일교회 합동결혼식 한다면 부모들이 용서해 줬나요? 그러나 36쌍, 72쌍…. 이렇게 점점 대사회로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왔습니까? 지금은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적입니다. 영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만 했지 세상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완전복귀를 하려면, 세상과 상관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상관이라는 것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해서 그 나라의 주권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가 환영하는 날에, 이 가정제도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국민을 몽땅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우리의 합동결혼 작전, 즉 700쌍 합동결혼 작전이 좋은 작전입니까, 나쁜 작전입니까? 「좋은 작전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한 7,000쌍 합동결혼 작전을 할 것입니다. 7,000쌍 쯤 될 때에는 전국의 지구장들이나 혹은 책임자들을 전부 동원할 것입니다. 한 나라에 700쌍씩 하게 하면 10개국이면 몇 쌍입니까? 7,000쌍이죠? 100개국이면 7만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7만쌍 만들기 위해서는 백 나라에 들어가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100개 국이 한 나라에 700쌍씩만 하게 되면 7만 쌍이 됩니다. 세계에서 7만 쌍을 모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합동결혼 했다 하게 되면, 이 세계가 우리 권내에 들어오겠어요, 안 들어오겠어요? 「들어옵니다」 거기에는 알록달록한 오색인종이 다 하는 것입니다. 흰둥이 검둥이 노랑둥이 등 알록달록한 오색인종을 마구 섞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올려다 봐도 좋고, 내려다 봐도 좋고, 건너다 봐도 좋고, 뒤로 돌아다 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흑백 하게 되면, 흑은 나쁘고 백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백도 좋고 흑도 좋다. 상도 좋고 하도 좋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당들은 노동자 농민의 해방운동을 말하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양심해방운동을 말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양심적인 인사는 동원하라' 해 가지고 '어이차! 어이차!' 하며 사람을 모으는데, 여기에 '어이차! 어이차!' 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운동을 대한민국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해 가지고 어떠한 주의보다 좋다는 인식만 받게 되면 문제는 큽니다. 양심적인 자가 동원하게 되면 전부 다 동원된다는 것입니다. 동원 안 했다가는 양심적인 인사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축에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계급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가운데도 양심적인 사람이 있지요? 「예」 양심적인 인사는 동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양심적인 인사가 주권을 쥘 수 있는 세계가 마지막 세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노동자 농민을 위한 주권의 세계는 마지막 세계가 아닙니다. 양심적인 인사가 주권을 쥘 수 있는 시대가 마지막 시대입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인사는 어디 있느냐? 비종교인보다는 종교인이 좀더 양심적입니다. 종교인 가운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더 양심적 입니다. 하나님의 사위가 되고 아들딸이 되는 사람들은 더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하러 여기에 왔어요? 여기에 온 결론이 무엇입니까? 양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종교인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더욱 양심적인 사람은 통일교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는 양심적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양심적입니다」 양심적이라도 그냥 양심으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 있는 양심적인 사람이라야 절대적인 애국자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서 있는 사람은 보다 양심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어서 사랑을 차지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의 사위와 며느리, 그리고 아들딸이라는 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대답해 봐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사위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은 그것만 다 되라는 것입니다. 그럼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위 될래요, 아들 될래요? 「아들이 되겠습니다」 사위 되겠다고 손들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여자들은 하나님의 며느리가 될래요, 딸이 될래요? 「딸이 되겠습니다」 며느리는 쫓겨나면 갈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해와는 딸로서 쫓겨났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갈 데가 없는 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 데가 없어도 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만일 며느리가 쫓겨났다면 찾아가겠어요, 안 찾아가겠어요? 「안 찾아갑니다」 또 사위가 타락해서 쫓겨났다면 찾아가겠습니까, 안 찾아가겠습니까? 「안 찾아갑니다」 사위 찾아오는 법이 있다면 사탄들이 하나님께서 사위에게 찾아갈 때 '나에게도 오십시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딸에게는 찾아가도 사탄들이 주장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게 될 때 복귀역사를 할 수 있는 최고의 한계점도 아들딸 기준을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이하에 두었다 하면 지옥에 간 사탄들이 '나도 복귀해 주소' 하고 항의하면 꼼짝 못하고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역적이 되어 죽게 된 사람이 있다 할 때, 그의 어머니는 국법을 어겨서라도 자기의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는 나라의 반역자이겠지요?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살려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해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살려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 가능한 권이 어디냐? 그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곳은 세상의 법이 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부자의 관계의 사랑의 법도입니다. 부자의 관계의 사랑, 본래 사랑을 하는 그 내연의 사연은 국법이라든가 세상법 가지고는 통치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뭐가 되겠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겠어요, 딸이 되겠어요? 「딸이 되겠습니다」 남자들은 사위 되겠어요, 아들 되겠어요? 「아들이 되겠습니다」 사탄을 쳐부수고 아들이 되겠습니까? 「예」 한번 해봐요. 될 수 있다는 용기가 있으면 됩니다.
선생님도 그런 생각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될 것이냐? 다 생각해 본 것입니다. 뜻길을 출발할 때 개인적으로 많은 경험도 해보고 공상도 해보았습니다. 봄이 오면 봄바람에 춤도 추어 보고, 봄날이 왔을 때 꽃이 좋아 동네방네 뛰어다녀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꽃향기를 만들려고 한면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가 봄이면 저기는 겨울이 될 수 있고 가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들이 되겠습니까, 사위가 되겠습니까? 「아들이 되겠습니다」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가겠습니까? 「예」 한번 죽음을 각오했다가 나자빠지면 어떡하지요? 또 가야지요? 「예」 또 나자빠지면? 「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백번 천번 나자빠지면 어떡하느냐? 「그래도 가겠습니다」 됐습니다. (웃음) 6천년을 통과하더라도 갈 자신 있어요? 「예」 한번 구상해 봤어요? 「아니요.」 (웃음) 해본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지금 하고 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 내가 생각하는 입장에서 하고 있다는 말과 여러분이 하고 있다는 것과는 달라요. 여러분들 하려고 하는 입장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이 다 손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 수 없다 하게 될 때는 선생님이 화를 낼 것이니까요.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하겠지요? 「예」 한번 해봐요. (웃음)
그러면 사위 될 수 있는 자리를 취하면, 아들 될 수 있는 자리가 대관절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을 알고 싶지요? 「예」 아들이 되어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을 가르쳐 줘요? 「예」 예수님이 다 가르쳐 줬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세상에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죽는 데는 왜 죽느냐? 죽는 목적이 뭐야? 살기 위해서입니까? 사는 데도 무슨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목적을 중심삼고 살면 됩니까? 「아니요」 살아가는 인간의 목적이 전부 다 다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목을 내 놓으라는 그 말입니까? 그 목이 몇 개입니까? 「하나입니다」 이게 하나밖에 없는데 내 놓긴 뭘 내놔요. 이건 내놓기 싫죠? 하나님이 아들이라면 세계적으로 모가지 내 놓는 전람회가 있으면 일등해야 되겠어요, 꼴찌해야 되겠어요? 「일등해야 됩니다」 세계에서 모가지 내 놓는 전람회가 있으면 그 전람회에서 일등 레테르가 붙어야 됩니다. 그런 레테르가 붙을 수 있는데 지금 저 밑창에 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죽어야 되느냐?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죽어야 됩니다. 하늘나라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크지요?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늘나라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죽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죽는 데도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죽자! 죽읍시다! 죽는 데는 어디서 죽느냐? 세계를 위하는 하나의 여자를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웃음) 왜 웃어요? 좋아서 웃습니까, 싫어서 웃습니까? 죽는 데도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뭐 시시하게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암만 죽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 천상천하를 통과한 하나님의 심정의 나라를 중심삼은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하늘나라 복판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가 제일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전부 반대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도망가면 되겠어요? 아닙니다. 턱 버티어 가지고 천하가 다 깃발을 들고 환영하는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충신이 죽을 때, 한 예로 유관순이 죽을 무렵 최후로 법정에 나갔을 때 일본사람이 '이년 철없는 네가 무엇을 안다고 이러느냐. 다음에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좋은 신랑 얻어 시집보내 줄테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했으면 '예' 그랬겠어요? 「아닙니다」 '이놈의 자식들' 하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권세와 국민사상을 중심삼고 그 빛을 가리지 않고 천추만대에 발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지 않고는 충신이 못 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인 여러분은 챔피언 되려면 대한민국 챔피언 될래요, 세계 챔피언 될래요? 「세계 챔피언입니다.」 대한민국 챔피언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국 레슬링 챔피언이면 금벨트를 주고 세계 챔피언은 세계에서 벨트를 주지 않고 종이짝 한 장을 준다고 할 때, 여러분은 종이짝 한 장을 가지겠습니까, 금벨트를 가지겠습니까? 「종이짝입니다」 왜? 「가치 때문입니다」 그 가치는 세계적인 가치입니다. 그 종이짝 가져 가라는 소문이 나게 되면 세계 사람이 와서 달라붙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것이다' 하면 세계의 사람은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계 챔피언 종이짝하고 한국 챔피언 금벨트를 놓고 '준비! 땅!' 해서 가져가라 하면 전부다 어느 쪽으로 가겠습니까? 「세계 챔피언 쪽입니다」 그러나 손에 종이짝을 취하는 사람은 몇 사람입니까? 「한 사람입니다」 손에 넣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36억 인류가 다 그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걸 누가 갖고 갈 것 같아요? 이미 결정 다 났는데 갖긴 뭘 가져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일등 부자로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하고 지갑에 세계 챔피언 종이짝 한 장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 종이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돈도 없어요. 배고픈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 세계 챔피언 종이짝 한 장을 가질래요, 고급빌딩에 문화주택에 고급벤츠차를 타고 '에헤 나 좀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질래요? 어떤 것을 가질래요? 세계적인 종이 짜박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에서 밥이 나와요, 뭐가 나와요? 밥이 당장은 안 나오지만 그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해당하는 그 전문분야에 쓱 들이대면 밥도 나오고 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아 있는 한 무엇이든지 다 나옵니다. 자, 남자들 어떤 것 가질래요? 「종이짝을 가집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지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간편하게 세계 챔피언 종이짝만 가지고 다니려는 것입니다. 기정교회라든가 다른 단체들은 자기 종파의 벨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정교회 챔피언하고 통일교회 챔피언 중에 어느 챔피언이 되겠습니까? 「통일교회 챔피언입니다」 그러면 옷이 다 찢어져 궁둥이가 나오고 이것만 딱 남았습니다. 보기에도 흉합니다. 그러면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겠지요? '저거 저거 미친 녀석, 아이구 나라 망신이야. 저거 대한미국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니고 있는 이 종이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궁둥이야 나오든 말든 때가 되어 가지고 쓱 깃발 들고 나타나는 날에는 벌거벗었다고 해서 박수 안 치겠어요? (웃음) 거지 바가지 뒤집어썼다고 해서 환영 안 하겠어요? 환영 안 하면 모가지 자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반대해라, 반대해! 반대하면 나는 자꾸 산꼭대기로 몰려갈 것이다. 산꼭대기로 몰려가 가지고 저 백두산 아주 험한 산에 굴을 파고 철갑대를 몇백 개 세워 놓고 거기에 들어가 살 것입니다. 나 아니면 못 들어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이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거기가 수도(首都)가 될 것입니다. 물 나오는 수도가 아닙니다. (웃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곳이 무엇이 된다구요? 수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참피언이 될 수 있는 경기는 참 많습니다. 자전거 경주에서부터 시작하여 별의별 경기가 다 있는데, 그 중에서 무슨 경기가 최고 경기겠느냐? 여러분들이 그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하나님의 아들 되기 위한 경기가 최고의 경기입니다. 이상적인 최고의 경기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알았어요. 그것 근사해요? 「예」 그 경기 하려면 따라오는 사람이 많겠어요? 적겠어요? 「많겠습니다」 도적놈 같은 사람도 따라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따라와서 되겠어요? 「안 됩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다 동원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떼어 놓아야 되겠어요, 안 떼어 놓아야 되겠어요? 그들을 떼어 놓으려면 그들이 따라올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들이 올라가겠다고 할 때 나는 내려가야 됩니다. 그들이 좋다 하는 것은 놔두고 싫다 하는 것만 해야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 「예」
그래서 통일교회는 남이 좋다 하는 것은 안 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뭘하는 거냐? 「남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남이 싫다는 것이면 얼마만큼 싫다는 것이냐? '아, 죽겠다. 난 못 한다'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어야 됩니다. 나가 자빠질 것만 한다는 것입니다. 뜻이 있어서 한다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고생하라. 지독하게 고생하라' 하는 것입니다. 등골이 튀어 나오고 곱추가 되고 등골에서 고름이 나오더라도 때려 몰아내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몇 발자국 더 가서 죽어라' 이겁니다. 그렇게 가다가 죽은 것을 하나님이 와서 보실 때에 누가 일등이냐?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고 한 치라도 더 나가 죽은 사람이 일등입니다. 통일교인이 죽을 때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가서 죽어야지 물러서서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챔피언이 됐다' 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오는 것입니다. 챔피언 깃발을 들고 쓱 나가게 될 때 뒤에서 따라오던 무리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권투할 것입니까? 챔피언이 하나님의 아들일진대 그 아들 뒤에 따라오는 자는 누구겠습니까? 사탄입니다. 거기서 그가 돌아서서 사탄을 굴복시켜 놓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진짜 챔피언이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위도 못 됩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하나님의 사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복귀시대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사위와 며느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사위와 며느리는 될 수 있지만 아들딸은 못 된다니까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나쁩니다」 여기에 있어서 아들딸이 책임 못하면 사위와 며느리도 아들딸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보다 더 열심히 하면 양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위가 양자 될 수 있지요? 그렇게 되려면 아들딸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선생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 선생님보다 더 고생하면 사위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를 따 놓는 것입니다. 양자는 양자지만 아들보다 더 책임한다면 누가 더 나은 아들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공식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적으로 불 때, 아들 만들기 위한 작전을 해야 된다는 말인데, 어떻게 아들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아들이 가정을 이루게 될 때에 울타리를 누가 만드느냐? 양자입니다. 기독교가 바로 양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가인입니다. 요것은 아담이지요? 양자는 천사장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은 아담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먹고 자고 하는 것도 누구를 위해서? 아담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책임할 때까지는 그 모든 전권을 천사장이 가집니다.
복귀역사 가운데 외적인 터를 닦는 역사는 누가 하느냐? 양자가 치러야 됩니다. 그 준비는 가정보다 종족이 더 힘이 듭니다. 그것을 양자에게 시키는 것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요, 더 큰 책임을 맡겨 완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공석에 나타나지 않았느냐? 여러분은 왜 안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을 내세우려는 것입니다. 선생님보다도 여러분들이 공적인 입장에서 더 칭찬받고, 선생님이 거쳐 가지 않은 자리에 선생님이 거쳐진 입장을 대신하게 된다면 그 자리를 상속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를 상속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를 상속해 주는 것은 가인 아벨 복귀기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 복귀기준을 결정하면 양자의 자리를 넘겨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데는 절대 아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선두에 서서 지도하는 것은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인적인 것입니다. 천사장이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찾을 때까지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를 찾으면 그때는 아들이 당당히 나타나 세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통일교회는 이런 작전을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따라오지 못하는 일을 해 가지고 통일교인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 지금 월남과 베트콩이 싸우고 있는데 통일교인들은 그 사람들 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못 갈 데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트콩보다 김일성이가 더 강합니다.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정부와 의논을 해 가지고 통일교인을 전부다 북한의 124군 부대 이상 훈련을 시켜 북한을 쳐들어 가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가서 죽어요, 죽어! 죽고자 하는 자는 살지 않았습니까? 캄캄한 세상에 가서 부활해야 빛이 나는 것입니다. 밝은 세상에 가서 부활하면 그 빛이 나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죽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복된 천국행로가 북한행 형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북한에 갔다 온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각오하고 가는 것입니다. 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못 가고, 못 해내겠다는 사람은 통일교회 패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것이 뜻이라면 대한민국의 말단 백성까지도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그 길을 누가 닦아야 하느냐? 아들딸이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딸 다음에 양자가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닦으라는 것입니다.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공산당보다 더 지독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 기분 나쁘다' 할지 모르지만 나는 기분 나쁘게 생각 안 합니다. 사실 내가 공산당보다 지독합니다. 공산당들에게 고문당할 때도 '쳐라 이놈의 자식들' 그랬습니다. 내가 7배를 가해서 그들의 목을 자르더라도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조건을 다 닦았습니다. 공산당이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면 전부다 모가지를 잘라 버려도 하늘 법에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껏 맞아 나온 것입니다. 왜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쳐라 이 자식들아. 너희들 시대에 내가 당하지만 내 시대에 너희를 잡아 넣겠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조서도 많이 받아 봤습니다. 어느때는 무슨 죄목이 나오겠다는 것을 다 압니다. 다 알고 있으니 며칠만 지나면 도리어 자기들이 곤란해 집니다. 그런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복귀섭리에서 승패는 감옥에서부터, 하늘 가는 길은 감옥에서부터입니다. 여러분들은 감옥생활을 안 해봤지요? 앞으로 내가 시킬 것입니다. 한번 해볼래요? 「예」 감옥생활, 이것이 훈련입니다. 감옥에 먹을 것이 뭐 있어요? 마음대로 먹지 못하지요. 배고파 보라는 것입니다. 옷도 없으니 추위에 떨어 보라는 것입니다. 집이 없이 그렇게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불원간 실제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제일의 형무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수용 하느냐? 통일교회의 교인들을 데려다가 수용하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굶어 봐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 년 팔개월 정도, 전부다 그저 죽지 않을 만큼 공식적으로 한번씩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옥에서는 인간적인 감정이 제일 잘 나타납니다. 틀림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자기가 밥을 위해 살았느냐, 뜻을 위해 살았느냐가 나타나지요. 그래도 감옥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됐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게 되면,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 때문에 내가 아주 못난 놀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못난 놀음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왜 저럴까? 그렇지만 그들이 잘못했지 나는 그들의 작전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또, 어떤 녀석은 와 가지고 공갈 협박하는 거예요. 처음 만났는데…. 선생님에게는 이런 면이 있어요. 여러분을 대해서 선생님이 진짜배기 통일교회 패들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라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나 죽소!' 하는 자리에서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안 죽겠다 하는 녀석이 있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예」 그러면 준비를 하라구요. 내가 지금 이 일을 안 하면 영계에 들어가서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하고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세계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다음에는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를 중심삼고 그 가정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제사 지낸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네가 세계를 사랑하느냐, 아들딸을 사랑하느냐?' 할 때 어떤 것을 사랑하겠습니까? 만약에 아브라함이 세계를 그만두고 아들딸을 사랑한다고 했으면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했겠어요? 변치않는 이 역사를 생각해 봐요.
지금까지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나오는 역사입니다. 틀림없지요? 종의 종에서부터 종의 가정, 종의 종족, 종의 민족, 종의 나라를 세워 가지고 역사 앞에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아들이 있으면 아들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세계를 하나 만들 때까지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정을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앞으로 여러분이 결혼했을 때 여러분의 아내를 공출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공출한다 할 때는 '오케이(OK)!'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기에 반대했다가는 벼락을 맞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세계를 위해서 공출하는 데에는 '사지에 가 죽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잘 가서 죽으시오' 라고 축복을 해줄 수 있어야 됩니다. 자신 있어요? 「예」 그 공출시키는 사람은 자기 욕심을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그럼 누구의 욕심을 위해서? 세계의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 중심삼은 세계의 영광을 위해서 공출할 수 있다면 당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공출되어서 일할 바에는 어디에 가 할 것이냐? 일선에서 할 것입니까, 후방에서 할 것입니까? 「일선입니다」 후방에서 하지 왜 일선에서 합니까? 젊은 아내를 공출해 가지고 일선에서 죽도록, 모가지가 먼저 떨어지게끔 일해 주기를 바라는 남편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손들은 사람들 틀림없죠? 또, 여기 여자들은 '우리 신랑 공출하여 가지고 제일로 모가지 떨어지는 데 대장을 만들어 주시오' 할 수 있어요? 「예」 틀림없어요? 「예」 대답소리가 이상한데요. (웃음)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 놀음을 했습니다. 먹으나 굶으나 자나깨나 나를 위해 살려는 생각 안 했습니다.
사실 내가 오늘 아침에도 피곤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지칠 수가 없습니다.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사실은 여러분을 봐 가지고는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얘기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겠기에 나온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지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세계적인 멋진 인연을 중심삼고 만나야 합니다. 이것은 고무줄과 같습니다. 이 고무줄을 잡아당겨 내가 끌려갈 때는 반대편에 가서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점점 팽팽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심정과 기분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습니까? 그리고 영계에는 내가 지금 '가정도 미련없다. 내 할 책임 다했다' 하게 되면 가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가지 서러워하는 것은…. 이 뜻을 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이 한도까지는 갔다 놓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사지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이 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세계를 위해서…. 기도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시아 정세나 한국 민족을 중심삼고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분야에서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이냐 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살고 죽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계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죽어야 되느냐? 세계적인 입장에 서서 사랑하는 아내를 안고, 가정을 안고, 자기 종족을 안고, 민족을 몽땅 안고 죽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선생님은 죽되 어떤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민족과 대한민국까지 몽땅 안고 세계를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한민족이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죽고자 할 때는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있겠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고 찾아진 아내요, 눈물을 흘리고 찾아진 자식이요, 눈물을 흘리고 찾아진 종족이요, 민족이요, 나라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뿐만 아니라 피땀까지 흘려야 됩니다. 내 뼛골이 녹아지고 내 모든 정성이 들여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났고 이것을 위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누가 부정할 수 없는 그 내용을 가지고 그 나라와 더불어 세계 앞에 제물 되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3년이면 됩니다. 길다면 7년입니다. 그래서 3차 7년노정까지 이 길을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천명을 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금이 2차 7년노정인데 과정이지요? 「예」 그럼 3차 7년노정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여러분은 못 가더라도 나는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하나의 민족이 제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이 필요할 것이냐? 예수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기 때문에 뜻을 다하는 모습, 정성을 다하는 모습,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일체의 모든 것을 투입해야 합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서 세계를 사랑하다 죽었다 할 때 세계가 울어야 되겠어요, 안 울어야 되겠어요? 「울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종교가 나타난다면, 그 종교는 세계적이고 천주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 또 그러한 민족이 있다면, 다른 민족들은 하늘땅을 사랑하다가 죽어간 그 민족을 하늘같이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을 중심한 국가가 제사장 국가입니다. 제사장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지요? 제사장은 양을 잡아 양의 모가지를 자르고 대신 자기 모가지를 바치는 놀음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살았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까?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누구를 위해 살았어요? 「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나를 위해 살면 어떻게 됩니까?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민족도 종족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이 가정을 가질 수 있어요? 공적인 가정도 못 가지는 것입니다. 가정만 못 가지느냐? 나중에는 자기 자신도 망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망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없고 종족도 없으니 깨깨 망하는 것입니다. 깨깨 망한 무리들이 찾아가는 곳이 어디라구요? 지옥입니다, 지옥.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서도 지옥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지금은 개인을 위해 살면 안 됩니다. 전체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즉, 인간이 한번 죽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활권을 찾아 나가는 우리들은 나라를 넘어 세계를 사랑하는 사상으로 나라가 부활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닦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 성인과 위인을 생각해 보세요. 성인은 적습니다. 그러나 위인은 많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위인입니까, 위인이 아닙니까? 「위인입니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볼 때는 위인이지만 일본 사람이 볼 때는 위인이 아닙니다. 일본 사람한테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역적입니다. 수자적으로 볼 때 성인은 위인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라를 위하고 갔던 위인은 나라마다 많습니다. 나라를 위하다 간 사람은 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국가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사람이라야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세계적인 사상을 갖추어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성인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반드시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가르치는 종교의 도주입니다. 하나님을 가르쳐 주지 않는 종교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가르쳐 주지 않고는 세계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도 성인이라 하고 공자도 성인이라 합니다. 전부다 하나님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공자도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는 말을 가르쳤지요. 도주들은 다 국가이념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의 도리 중의 성인의 도리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은 도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도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분의 독생자'라고 했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신랑, 신부, 형제라고 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가깝게라도 사랑의 내용을 설파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끝날까지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왔다 간 성인보다 못 해야 되겠어요, 더 나아야 되겠어요? 「나아야 됩니다」 성인의 아버지가 되고 성인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성인의 아버지가 되었어요, 여러분이 성인의 아버지예요? 지금까지 성인들이 바랐던 것이 무엇입니까? 이상적인 가정을 바라며 그런 가정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도 신부를 찾아 나왔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세계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두고 볼 때, 민주세계의 중심국가인 미국을 위주하는 세계적인 기반이 있는데, 그 미국이 세계를 위하지 않고 미국을 위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면 미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세계의 중심 국가인 소련도 세계를 위하는 소련이 아니라 소련을 위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능가하여 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는 주의가 무엇이냐? 자기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이념이나 사상입니다. 그런 사상이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초민족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민족을 초월해서 심정적인 유대를 맺어야 됩니다. 이 심정적인 유대를 맺을 수 있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초민족적인 결혼으로써 세계의 모든 민족을 섞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섞느냐? 대한민국이 3천만이면, 일본 사람과 한번 결혼시키면 몇 천만입니까? 「6천만입니다」 두 번 하면? 두 번 하면 몽땅 섞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중국의 인구가 10억이나 된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과 결혼을 세 번만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일본의 인구가 약 1억 5천만 되는데 전부 한번씩만 결혼하면 3억이 됩니다. 3억이 다시 한 번 하면 6억이 됩니다. 6억이 다시 한 번만 하면 10억이라는 중국도 몽땅 넘어오게 됩니다. 10억이 다시 한 번 결혼하면 20억이 되니까 두 번 반 정도만 하면 세계도 모두 넘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세계를 통일하려면 몇 번을 해야 되느냐? 여섯 번이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몇 년이나 걸릴 것이냐? 40년 이내에 될 것이라 봅니다. 그런 사상적인 책임완수를 딱 한 번만 잘해 놓으면 세계는 벼락같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개척자가 누구냐? 통일교회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를 알고 나면 이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까, 안 하게 되어 있습니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사람이 여기에 한번 왔다 가려면 백만원 정도 소요됩니다. 백만원이 있어야 한 사람이 왔다 갈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면 얼마나 들어요? 2백만원을 공중에다 세로 바치고 축복 받으러 날아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지금 일본에 와 활동하고 있어요. 일본이 우리 나라의 원수였지요? 그렇지만 일본을 살리려고 지금 뛰고 있어요. 그런데 사는 데는 같이 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같이 사는 데 대장이 있어야 하겠기에 어제 김영휘를 내 보냈습니다. '너 대장이야' 해 가지고 세계 앞에 들이몰아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역사는 세상의 역사와 다릅니다. 하는 일이 다르고, 하는 생각이 다르고,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반대로 가지요? 「예」 반대로 가면서 이런 일을 만들어서 그것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오기 시작하면 우리가 최고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 그렇잖아요? 우리가 어린이 무용단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얼마나 말이 많았어요? 이제 애들까지도 벌거벗기고 춤추게 한다고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또 승공연합을 보더라도 최고 기준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대한민국에 통일교회의 승공연합을 빼놓고는 반공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모든 종교 중에서 통일교회밖에 없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종교활동을 위해 내가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씁니다. 굶으면서라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선생님이 굶으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기분 좋아요? 선생님이 굶다가 죽어도 좋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협조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것은 전부다 세계적입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성진이가 일본에 갈 때도 '그 나라에 가서 다른 것은 하지 마라. 이것 이것을 하라. 너는 일본 국민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네가 잘해서 아버지 위신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가장 중요한 첫째 문제는 대교회 문제이고, 둘째는 대국가 문제이며, 세째는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문제이며, 네째는 남녀문제인데, 이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육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기심이 많습니다. 한국의 여자들은 시집을 간 그 이튿날부터 남편이 자기 치다꺼리 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중에도 그런 돼먹지 않은 여자들이 있어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화장품 사주소. 원 피이스, 투 피이스 사 주소. 핸드백 사 주소' 하고, 또 뾰족구두가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편에게 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들이 그런 수작하면 절대 사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옷을 사다 주었을 때도 입기 싫으면 벗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놓고 볼 때 누가 더 불쌍하냐 하면, 여자보다도 남자가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입고 싶은 옷이 있거든 벌어서 사 입으라는 거예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벌어서 사 먹으라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거든 먼저 사랑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을 받고 나서 해주겠어요, 받기 전에 먼저 사랑을 해주겠어요? 못난 사람은 받으면서 좋아하고, 잘난 사람은 주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좋아요, 나빠요? 여러분, 사랑을 할래요, 받을래요?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남자가 사랑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남자한테서 사랑받겠다고 하지 말고 '당신 사랑은 안 받겠소. 당신 사랑은 안 받겠으니 내 사랑 맛 좀 보시오. 당신 지금까지 혼자 사느라 얼마나 불쌍했어요? 이땅을 개척해야 할 외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하느라 얼마나 서글프고 비참했어요? 어머니가 반대하고 누나가 반대하고, 형님이 반대하고, 동생이 반대하고, 동네방네 다 반대하는 가운데 이런 일을 해 왔으니, 이제 내가 어머니 대신, 누나 대신, 누이동생 대신 사랑을 주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형님이 와서 무슨 사정을 한다고 해서 아내한테 떼를 쓰거나 하면 안 되거든요. (웃음)
어저께 우리 효진이가 형님이 일본으로 간다고 작별 인사할 때 악수를 청하니까 싫다면서 악수도 안 하고 키스도 안 하더군요. 형님이 악수를 청하는데 싫다고 안 하는 것을 보면서 동생이 형보다 낫구나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남자끼리 껴안고 키스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웃음) 나도 아침에 수염을 안 깎고 애들한테 뽀뽀를 해주면 '아!' 합니다. '기분 좋아 나빠?' 하면 애들은 '기분이 좋긴 좋은데 침같은 것이 있어서 아파'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끼리도 보면 형님보다도 누나들이 키스해 주면 아주 좋아해요. (웃음)
이런 것을 두고도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남자들은 불쌍해요.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 남자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지갑을 뒤져봐도 돈 한푼은 커녕 종이 짜박지도 없다는 거예요. 손수건도 없어서 옷 떨어진 것을 잘라서 손수건 대신 가지고 다니는데 그것도 펴보면 구멍이 다 뚫어졌다는 거예요. 그렇게 처량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엔 중대한 뜻이니 뭣이니 하면서 사냥을 한다고 다니는데 꿩 한 마리 못 잡아온다 이거예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년 2년 3년…. 그러니 그 위신이 어떻겠어요?
여러분 중에서도 믿음의 자녀 있는 사람 손들라고 하면 손은 드는데 실지로 믿음의 자녀를 찾아보면 없다는 거예요. 이제는 내가 속지를 않아요. 옛날에 내가 멀리 사냥을 갔다가 꿩 한 마리도 못 잡고 돌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패잔병의 서러움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누가 볼까봐 몰래 들어왔어요. (웃음) 여러분도 할 수 없이 전도를 나가서 어디 앉아 가지고 '믿음의 자녀, 믿음의 자녀' 하며 부르고 있다고 해서 됩니까?
사격을 하기는 하는데 하나도 안 맞는다는 거예요. 쏘긴 만 발을 쏘았는데, 한 발도 안 맞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정상적인 교육을 못받았거든요. 그것을 선생님도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낮이고 밤이고 꽝꽝 소리를 내며 쏘아대라는 거예요. 그래도 남들이 지나다 보면 '총 쏜다'고 하지 '헛총 쏜다'는 말 안 합니다. (웃음)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고생하면서 헛포를 많이 쏘았습니다. 헛포 많이 쏘았지요? 「예」 그러면 언제 진포를 쏠 것입니까? 지금까지는 헛포를 쏘았는데 헛포를 쏜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포를 쏘기 위해서지요.
그러면 진포 중에서도 최고의 진포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상대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을 하다가 한 여자를 떡 만나게 해주셨으니 그 여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뜻 가운데서 아무런 실적은 없지만 뜻길을 간다고 가다 보니 한남자를 만났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우리가 불쌍한 사람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7년노정이니 뭐니 하다 보니 언제 어머니나 할머니한테 사랑받아 봤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그 여자를 통해서 이제껏 어머니한테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받아보고자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지금까지 종교는 남자들이 이끌고 나왔습니다. 수천년 동안 남자들이 지시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를 조금 헤쳐 보면 자기 누이동생이고 누나라는 것입니다. 좀더 깊이 헤쳐보면 자기 어머니 대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하고 누나를 대신하고, 누이동생을 대신하고, 그 다음엔 ? 아내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남자를 먼저 동정해야 되느냐를 생각해 봐요.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타락할 때 남자를 동정했어요, 안 했어요? 동정을 한 것이 아니라 살짝 속였지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남자들을 먼저 사랑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여기 있는 남자들이 누구입니까? 남편이 아니고 아들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아내가 아니고 뭐라고요? (웃음) 어머니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슨 사랑을 잃어버렸느냐?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자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부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형제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다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면 맨 먼저 무엇을 복귀해야 됩니까? 부모의 사랑을 복귀해야 됩니다. 자, 보라구요. 에덴 동산에 아담이 있었고, 해와가 있었고 천사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는 타락하지 않은 선한 남자와 선한 여자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탕감조건을 세워도 그 모양이 같은 것입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를 둘로 딱 갈라 놓으면 세계적인 남성이 있고, 세계적인 여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인 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영적인 현상이 누구와 관계를 맺고 나오느냐 하면 여자와 관계를 맺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누가 많이 숭상했습니까? 여자들이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탕감복귀시대가 됩니다. 영적인 현상도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일도 저절로 혼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계와 접해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걸 잘 알지요? 중간 영계를 통해서 그런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타락한 세상이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전부다 타락한 남자요, 타락한 여자요, 타락한 천사세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하실 수 있는 남자가 있어요, 없어요? 없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를 구해 줄 남자가 와야 됩니다. 그가 메시아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입니다. 이분은 세계를 대표한 남자입니다. 또한 세계의 남성을 대표한 분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타락한 세계의 남편은 누구냐?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천사장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남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남자가 와야 합니다. 그 남자가 누구냐? 재림주님입니다. 그 재림주는 누구냐 하면 인류의 참된 부모인 것입니다. 타락이란 거짓부모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인류는 거짓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아들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남자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남자를 먼저보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나서 이 땅에서 해와를 찾아 신부로 맞이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담을 짓고 나서 그 아담을 본떠 가지고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으로 말미암아 해와라는 한 여성이 찾아져야 되는데, 여기에 천사장이 끼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인연이 세계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고 있는 데 난데없이 다른 한남자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나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 아내를 좋아하는 남편은 별로 없습니다. 자기 아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거기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해야지 왜 예수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개척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잃어버린 본래의 남편을 찾기 위해 나오는 여자들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를 믿고 나오는 이 세계의 여자들은 누구 편입니까? 오시는 주님편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누구예요? 「천사장입니다」 그 천사장 입장이기 때문에 자기의 주장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을 똑똑히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계는 뭐냐? 영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육을 중심삼은 천사세계의 남자들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에덴 동산에 천사가 있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천사는 아담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해와를 반대해서도 안 됩니다. 타락이 뭐냐면, 천사가 해와와 아담을 반대로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천사장의 입장에서 해와를 위해 주고 아담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아내를 자기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아내가 종교를 중심삼고 오시는 주님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거기에 같이 협조해야 되고 같이 가야 됩니다. 이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그렇지요? 참아버지격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참아버지는 참어머니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어머니는 참아버지를 중심삼아 해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아담을 유인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낳았습니다.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생명된 아담을 해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산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키워야 됩니다. 그러니 원래의 원칙 대로 보면 이 천지간에는 여자를 맞을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는 남자를 누가 낳아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누가 낳아야 됩니까?
그래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를 낳았던 것입니다. 낳는 데는 그냥 그대로 낳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얽어매 가지고 전부 탕감복귀해서, 영적인 세계의 모든 질서를 잡은 뒤에 낳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발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을 낳았으면 어머니가 되었는데 어머니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머니의 도리를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어머니는 여자의 대표로써 신부의 도리도 그에게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앞으로 이런 신부를 맞아서 이렇게 교육하고 이렇게 지도해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됩니다. 신부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신부를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부를 교육하고 키워서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그분 앞에 인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 부부, 자녀, 형제의 도리를 전부다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로서의 도리, 딸로서의 도리, 아내로서의 도리, 형제로서의 도리에 대하여 그 역사적인 모든 기원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나는 이렇게 사랑해야 하고, 동생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하는 형제의 사랑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여자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한 남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 여자를 대하게 될 때에 어머니 대신, 누나 대신, 누이동생 대신으로 대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아내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자도 마찬가지로 남자를 대하게 될 때에 아버지 대신, 오빠 대신, 동생 대신으로 대하고 나서야 남편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다 받았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참아버지 참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사랑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남자부터예요, 여자부터예요? 남자의 사랑부터 시작됩니다. 오시는 주님의 사랑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시는 그 주님의 종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을 받아서 그와 똑같은 사랑이 부부간의 횡적사랑으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종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그런 종적인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이 좋아요? 「예」 영계를 보는 사람들은 영계에서는 선생님이 오빠처럼 신랑처럼 아버지처럼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를 볼 때에는 세상의 어느 남자보다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를 통해 보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기도나 몽시 가운데 선생님을 만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통일교회 다니는 여자들로서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통일교인으로서 아직 멀었습니다.
지상천지에 여러분의 남편이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없기 때문에 할수없이 천사장을 세운 것입니다. 천사장을 세워서 아담을 협조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비로소 거기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으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아내의 사랑이 남편 사랑을 대신하고, 누나의 사랑이 오빠의 사랑을 대신하고, 누이동생의 사랑이 사내동생의 사랑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이 남자에게 이어져서 비로소 남자를 중심삼은 아버지의 사랑, 오빠의 사랑, 동생의 사랑, 남편의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통일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선생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아담과 천사장 같은 관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꿀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타락할 때 천사장이 해와에게 주었지요. 다음 해와가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본래는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의 권한으로써 해와를 주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와는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남자를 해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적인 본래의 심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뭐라구요? 어머니입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남편이 부인을 3년 동안 어머니같이 모셔야 됩니다. 3년 동안 어머니같이 모셨다는 기준에 서지 않으면 사랑도 못 합니다. 이것은 엄격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아니하고 여러분들이 그저 마음대로 야단법석을 치며 별의별 놀음 다하려고 하니 도적놈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도깨비 중의 날도깨비입니다. 원리가 딱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 중에서도 큰 아들 작은 아들을 사랑해 보지 못했고, 그 다음으로는 신랑된 아들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아들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을 복귀하는 데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순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거꾸로 사랑함으로써 복귀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어머니 입장에서 위해 줘야 됩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사랑을 받아야 되겠어요, 사랑을 해주어야 되겠어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사랑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시집가자마자 '당신 날 사랑해요?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해요? 하면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것이 여자의 본능이라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들, 결혼했을 때 그렇게 물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남자를 사랑해야 됩니다. 누구같이 사랑해야 되느냐 하면, 아버지같이, 오빠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는 아버지의 대신 입장이요, 오빠 대신 입장이요, 또 영적으로는 신랑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 심정적 기준을 선생님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아버지 입장, 오빠 입장, 신랑 입장인 것입니다. 천사장이 영적으로 타락한 것을 이 몸뚱이 중심삼고 복귀해야 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은 선생님 말씀을 안 들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시집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시집 갈래요, 안 갈래요? 전부다 시집을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럼 얼마만큼 믿어야 되느냐? 해와가 믿지 못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을 위해 통일교회의 여자들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김일성의 모가지를 떼 내려면 여자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빠른 방법입니다. 여자들이 위장해 가지고 가면 김일성의 안방에까지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예」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어요? 「못 들어갑니다」 여자들, 내가 명령하면 가겠어요? 「예」 그렇다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여러분에게 이용을 당합니다. 내가 요즈음에도 교육하는 것은 여러분한테 이용을 당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자기 딸한테 이용당해요, 안 당해요? 오빠가 누이동생한테 이용당해요, 안 당해요? 남편이 부인한테 이용당해요, 안 당해요? 지금까지는 이용당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절대 순종하는 것은 이용당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용당하겠다는 말이예요. 여자들이 남편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남편에게 이용당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시집가서 사랑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여자들은 절대 여자의 체면을 세우지 못합니다. 점잖아야 됩니다. 그래야 남자가 마누라 방에 도둑놈처럼 함부로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승낙 받고 들어와야 된다는 거예요. 멋대로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때가 되면 세밀하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만하면 대충은 알겠지요? 「네」
그러니 둘이 만나면 반드시 남자가 먼저 기도하라는 겁니다. '아버지, 오늘은 천지가 동하여 저의 마음이 동하니 여성의 마음도 동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 가지고 아들딸 낳고 살아보라구요. 그 집안이 나쁘지 않습니다. 남자가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아내를 어머니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아이가 돼야지요? 아이가 되라는 거예요. 아이가 되어서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아이와 같이 응석부리면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해보라구요. 아이같이 밥도 먹여 달라고 떼 써보라는 것입니다. 어린애같이 해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라고 안 합니다. 복귀도상에서는 그렇게 해야 되니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내에게 '엄마, 밥줘!' 하게 되면 여자는 기분이 좋아서 '아이쿠 우리 큰애기가 나타났구만!' 하면서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타락으로 잃어버린 여자의 사랑을 여러분의 일생 동안에 복귀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본연의 가정 기준을 복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은 한 사람을 대해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을 다 못 해본 것이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을 한 사람을 대하여 다 유발시키는 자리에 서야만 심정적인 천국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문제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결과적으로 사랑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서 하는 일이 세계적이예요, 개인적이예요? (세계적입니다)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그저 주먹구구로 하는 일이 아니예요. 그래서 원리를 알면 알수록 그 책임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의 주(宙) 자가 무슨 주냐? 집 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주의에서의 주자는 방대하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곳이냐? 하늘 나라 가정을 이루려는 곳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국은 혼자 들어가는 천국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볼 때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냐? 아닙니다. 둘이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버지가 들어가면 어머니도 들어가고, 부모가 들어가면 자식도 같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거예요. 천국에 엄마 아빠가 같이 가야지 아빠는 천국가는 데 엄마는 지옥가면 천국이 되겠습니까? 이런 입장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가정이 되지 않고는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사랑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가정이 갈 길이예요. 이런 길을 가는 가정이 예수가 소원했던 가정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소원하던 가정입니다. 그러면 이 가정은 예수님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낫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여러분이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그 신부보다 나아요? 말로만 낫지요? 낫다면 무엇이 나아요? 여러분이 참부모를 만나 그 참부모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더 낫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축복은 가인 아벨의 기준을 복귀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못 받는 것입니다. 부모 앞으로 돌아가려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에게 못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가인 아벨을 복귀한 자리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가인 아벨을 복귀한 자리를 넘어섰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은 못 하더라도 재차 수습하여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일을 맡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그 길입니다. 그런데 축복을 미리 해 준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특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축복을 받는 것은 여러분이 받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특권을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선생님 것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약적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안팎의 가정으로 그 입장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즉, 아벨 가정인 선생님의 가정 앞에 여러분의 가정이 가인 가정의 입장으로 서는 길 밖에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그 기준이 안 되었지만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가정 대신 아들의 가정의 입장에서 가인 가정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 가정을 세우기 위해 여러분이 종족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요셉 가정의 형제들이 하나되는 입장의 자리요, 사가랴 가정에 있어서 형제들이 하나되는 입장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가인적 가정의 조상이 되는 것이고, 또한 장손적인 가정이 되는 것이며, 선생님 가정은 아벨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적 삼위기대를 복귀해서 선생님 가정이 중심이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중심이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는 천국에 못 갑니다. 인간 타락 이후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 셋이 전부 따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정을 이루지 못한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상에서는 형제들이 한 가정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귀는 가정을 이루어서 부모의 가정까지 겸해서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는 단계는 뭐냐?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서 자기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어 부모의 가정을 모시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딱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 지금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못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못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력은 하겠지만 아내를 안고 사랑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그 기준을 넘어왔습니다. 기성교회의 3대 종파, 기성교회의 대표적인 종단들이 전부다 반대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개인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디에 가서 찾아왔느냐? 이북의 원수들에게 가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북에 가서 사위기대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한 아들과 여자 셋을 찾아 가지고 내려왔어요. 이것이 바로 그런 형태입니다.
투쟁하여 얻은 그 모든 기반을 중심삼고,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복귀의 터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원리적 견지로 보면,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기반이 닦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30여년 동안 직접 기반 닦는 기간을 지냈던 것입니다.
선생님도 40년간 그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만 40세가 되던 1960년을 맞아 안팎으로 탕감해야 할 것이 전부다 갖추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도 1960년에 세계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년 기간이 뭐냐 하면 축복받은 사람들을 쫓아내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이 성진 엄마를 버리고 나가서 그 길을 닦아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런 길을 가야 됩니다. 거기에는 자기 사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엔 선생님이 후원을 해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쳐가야 될 길임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결혼한 사람들이 뜻을 떠나서 생활을 하다가 다시 들어오면 받아주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여기에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축복받으려면 7년 동안 수절해야 됩니다. 7년이 뭐예요? 원래는 21년 동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21년이 아니라 일생 동안을 해야 돼요. 박정화! 「예」 이제 큰일났구만.
지금까지 이 구렁텅이를 메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했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안팎의 모든 것을 파헤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공식적 사랑을 중심삼은 공식적인 개인과 공식적인 가정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개인이 가는 데는 가정도 가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세계 어디를 가도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가정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천하가 되면 그렇게 되겠지요?
선생님이 그 집 안방에 들어가서 그 가정의 부모가 되고 사랑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 집에 들어가 살더라도 전부다 자기들의 영광으로 알아야지 십자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을 축복해 주고 나서 선생님이 여러분의 집에 가서 살아도 되겠어요? 「예」 여러분은 축복받고 3년 동안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서 3년 동안 모심의 생활을 못 하고 저나라에 가면 천추에 한이 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시는 생활법도를 다 모르지요? 이건 아직 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전부다 가르쳐 줄 것입니다. 모실 때는 세상의 어떠한 효자보다도, 역사상의 어떠한 충신보다도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됩니다. 천하가 이런 가정의 규범에 머리 숙일 수 있는 심정적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아버지, 우리의 갈 길이 우리 자신의 공식이 되어야 한다는 이 뜻에 대하여 맹세하는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공식은 모든 것을 요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요, 근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아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와 대결하면 세계가 무너질 것이요, 나라와 대결하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요, 원수들과 대결하면 모든 원수의 아성이 무너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오늘날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따라 나왔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이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당신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수고해 나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이옵니다. 하오나 이 민족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는 자리에로 이들을 몰아내야 할 아버님의 대신 사명이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전통적인 당신의 사상을 상속받는 자리는 어떤 안일한 안방이 아니라, 일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일선은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요, 아버지와 사탄이 상봉하는 그런 경계선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야말로 역사적이요, 천주사적인 자리이옵니다. 하오니 그 일선엔 그런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또 그 자리에서만 아버님의 거룩한 아들딸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저희가 안일한 자리에서의 모든 문제를 전부다 박차 버리고 시련과 고통이 극한 자리에 설 때 아버님만이 저희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아버님만이 저희의 사정의 동역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아버님과 더불어 그 나라와 그 세계에 대한 모의공작을 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었다 할진대, 저희는 이 땅의 그 누구보다 행복할 것이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으면 마음의 세계에 생존하는 수많은 양심가들은 그들의 마음을 따라 그 아들딸이 지향하는 뜻을 위하도록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영적으로 세우시고, 또 이렇게 하여 전체가 한때의 승리적인 세계형을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외적으로 준비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나 홀로 있지만 외적인 세계는 이미 우리 뜻을 위해 전진적이고 승리적인 판국을 넓히면서 우리를 모시기 위해 찾아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얼마나 되옵니까?
하오니 아버지여, 이제부터라도 자기 스스로의 자세를 가다듬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목적과 사명 앞에 강하고 담대했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어떠한 가나안 7족이 창칼을 겨누고 기다린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의 폭탄을 품고 가면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이 이곳을 그리워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한 승리의 영광이 같이 임하시옵소서. 최후의 위로와 최후의 권고로 스스로를 다짐하게 하여 이 땅 위에 맡겨진 책임과 이때에 남아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끔 안팎으로 격려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은 4개월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시옵고, 금년도가 70년대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기틀을 마련하여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릴 수 있는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앞으로 다가올 저희들의 행사 위에도 당신의 놀라우신 가호를 베푸시어서 승리의 한 터전이 저희들 환경 가운데 으스러짐이 없이 세워져 나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저희 자신들이 남겨야 할 단 하나의 귀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임을 아옵니다.
아버지, 금년도 벌써 9월 중순을 맞이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저희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에, 면목없는 저희들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1970년 한 해를 중심삼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천륜을 경륜해 나가시는 아버지의 괴로움과 노고가 얼마나 큰 지를 땅에 있는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인간들은 알든지 모르든지, 그 어려움을 홀로 책임지고 매일 매일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계시는 당신의 사정을 저희들이 좀더 깊고, 넓고, 높이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오직 원리 원칙을 세우기 위해 참아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저희들도 이 땅에서 그 원리 원칙을 중심삼고 생을 살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생활을 개척해 나갈 줄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을 잊지 못하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시고 개인 개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쉬지 않고 수고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뜻을 생각해 볼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달프고 얼마나 어려우셨던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만인간을 품에 품어야 할 당신의 심정과, 이 땅의 인류를 뜻에 일치시켜 당신이 주체가 되어야 할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저희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 자신들의 부족함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당신께 바쳐 드릴 수 있는 귀한 가치를 지닌 모습이 저희 자신이 돼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당신께서 찾고 바라고 고대하던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여기에 아버님의 그리움이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스쳐 갔다는 사실, 아버님의 애달픈 소원이 저희들과 하나되기를 바라셨사오나 저희들이 배반했다는 사실, 저희들을 뜻 앞에 내세워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아버님의 소원에 저희들이 배치(背馳)되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부족한 모습들이었사옵니다.
천번 만번 저희를 사랑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수고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참아 오신 아버지이심을 생각하게 될 때, 언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참아 본 적이 있었사옵니까? 언제 아버지를 동정해 본 적이 있었사오며, 언제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싸워 본 적이 있었사옵니까? 마음으로는 생각하고 말로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실지 노정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끄러운 자신들임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이 시간에도 아버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실수하면 그 실수가 내 자체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에 자극을 가해 준다는 사실과, 저희들이 미급하면 그 미급함이 내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완전함에 미급하여 아버지에게 불행을 느끼게 함으로써 고통을 가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적마다 아버님께서는 항상 저희를 위한 아버님인 것을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계심으로써 저희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앎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내정을 살필 줄 아는 자신들이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이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시고 사랑하시고 싶었던 본연의 아들딸의 모습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가치있는 모습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아버지의 그런 마음, 그런 심정의 기준도 생각할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인 것을 아버지께서 일깨워 주시옵소서.
이러한 입장에서 이끌고 가야 할 당신의 사명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절대 복종하고 절대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좌로 가면 좌로 응하고, 우로 가면 우로 응하고,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입장에서 아버지의 소원에 일치시켜 나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은 9월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외로운 제단 앞에서 당신을 위하여 축수(祝手) 하고, 당신의 남아진 사명을 위하여 일하고,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사오면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소원이 그들 위에 싹트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희망과 더불어 그들이 약동하며 당신의 책임과 더불어 그들이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지고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한시도 그들을 잊지 마시옵고 권고하시어서 승리의 가정, 승리의 나라, 승리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심정을 사모해야 되겠사옵고, 지금까지 싸워 온 당신의 투지력을 본받아야 되겠사오며, 당신의 강하고 담대함을 본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과 같이 저희들도 지치지 않는 아들의 사정, 딸의 사정을 지녀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자의 일체의 인연을 바라보고 나가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절대적인 관계요, 절대적인 사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저희를 사랑하듯 언제 저희의 몸과 마음이 아버지를 사랑해 보았으며,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언제 저희가 아버지를 불러 보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은 과연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우리 인간과 사연이 통하여야 할 분인데도 불구하고 등을 돌리고 모실 줄 모르는 불초한 이 자식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소수의 무리가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바라보고 이 자리에 왔사옵고, 저희들이 누구를 위하여 이 자리에 왔사옵니까? 저희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아버님께 염려를 끼쳐 드려서는 안 되겠사오며, 그런 믿음으로 뜻길을 가서도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 맡겨 주신 책임을 완수하여 당신의 외로움을 위로해 드릴 줄아는 아들딸이 되고, 당신이 슬플 때 저희가 힘을 가해 드리면서 최후의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 인생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복을 받기 위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너무나 많은 복을 저희들에게 주셨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내려 주신 복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복을 주신 아버지의 은덕에 감사하며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일 적마다 그 고마우신 은사에 눈물을 흘리게 되옵니다. 저희를 위하여 수고하신 당신의 품에 안겨 그 수고를 치하드릴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거룩한 인연을 자랑할 수 있고 당신의 수고의 결정이 저희 자신인 것을 칭송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삼천만 민족을 기억하여 주셔야겠사옵니다. 이 민족의 갈길을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그 어떠한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옵니다. 또한 이 나라의 주권자나 세계의 어떤 지도자를 믿는 것도 아니옵니다. 오직 당신의 깊은 심정 가운데 소망하는 아들딸, 그 아들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옵니다. 그와 같은 아들딸을 사랑하시는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가치와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절대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나가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당신과 하나되는 자리에서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이요, 당신과 같이한 자리에서는 전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저희를 창조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드높이 드러내어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울부짖으며 나아가는 아들딸이 있게 될 때, 그 아들딸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내고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런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아버님만을 믿고 따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를 바라보고 웃지 않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께서 주관하셨사오나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비애를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여기에, 민족의 참상 위에 엮어진 모든 노정을 밟고 넘어서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보잘것없는 통일의 역군들이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이 남북으로 분립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몸과 마음으로 이것을 메워 가지고 악이 굴복할 때까지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책임이 저희 앞에 남아져 있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겠사옵니다. 이 나라가 소망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저희들에게 남아진 책임을 다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싸움을 결의해야 될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품어 주시어서 그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사람은 한번 왔다가 기필코 가는 운명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어느누구도 막을 수 없는 운명이기에 갈 때에 공수(空手)로 돌아가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눈물을 안고 가야 되겠사옵고, 당신의 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고 가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저희들의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게으름의 자리를 피하여 아버지께 있는 정성을 다하고 온갖 충성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흐르는 세월을 탄하지 말고 다가오는 그날을 위해 염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희망찬 내일을 맞아 아버지와 더불어 동참할 수 있는 기쁨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오는 그날이 두렵고 오는 그날이 한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우기 일본을 중심삼고 세계반공대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세계 50여개 국에서 뭇 사람들이 일본으로 몰려들고 있사옵니다. 이 모임은 통일교회의 모임 가운데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첫 모임인 것으로 알고 있사오니, 이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각자의 마음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이 저희 자녀들의 모습에서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소망이 샘솟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극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생애노정 가운데 한번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당신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이 같이하는 곳에는 만민이 끌려올 것을 믿고 있사오니, 모든 사람들에게 참다운 인연이 맺어지는 이번 대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부디 일본 백성을 통하여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아시아 일각의 책임을 맡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보잘것없는 소수의 무리들이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손에 손을 합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는 곳을 향하여 달음질치고자 하오니, 아버지, 가냘픈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정하여 한푼두푼 모은 돈을 투입하여 치르는 이번 대회이오니 헛된 대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민족을 위해 선을 뿌리는 이 정성은 기필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뜻이 높이 들리고 당신의 사연이 흘러 나가서 새로이 문호가 개방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마음과 마음을 아버지께서 묶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의 천국을 향하여 정상적으로 걸어갈 수 있고, 아시아의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일본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20일을 표준하고 나아가는 이 겨레 위에,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한국 식구뿐만 아니라 서구 식구들도 참석할 것이 옵니다. 세계의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이는 첫번째 대회라서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최후의 승리를 거두시옵소서. 그리하여 일본이 천국복귀노정에서 해와 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9월이 그러하고 10월이 그러한 입장이오니 모든 것을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 오라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움직임이 인간을 표준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니,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모든 것이 합당하고 유익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발걸음이 얼마나 바쁜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아야겠사옵니다. 하루 하루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그러한 모습이 되기를 다짐하면서 시간 시간을 의롭게 당신께 바쳐 드리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누구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옵니까? 저희가 어떠한 상태에서 당신을 대하기를 원하옵니까? 존엄하고 거룩하신 아버지, 은혜를 베푸는 가운데 사정과 사정을 살피시는 아버지, 저희의 마음 깊은 곳에 죄악의 쓴 뿌리가 도사리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힘과 부활의 능력의 손길을 다시 한 번 펴시옵소서. 스승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이들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승리의 용자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거룩하심이 이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오늘은 수원을 잠깐 다녀오고자 하오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에게 새로운 인연과 은사를 내려 주시옵길 부탁하옵니다.
당신의 뜻과 당신의 소원과 당신의 섭리가 저희의 생활과 더불어, 저희의 하루 하루의 시간과 더불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지금까지의 역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을 추구해 나오고 참을 추구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과 참을 추구해 나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후의 역사를 거치면해도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찾아 나오는 좋은 한 곳, 좋은 사회, 좋은 나라, 좋은 세계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더 높고 좋은 자리에서 우리가 찾는 더 좋은 것, 우리가 소망하는 더 넓은 사랑, 더 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될때, 인간만으로는 그러한 세계와 사회와 가정과 개인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보다 이상적이고 보다 절대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현재의 입장에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아져 가는 곳에서 좋은 것이 맺어지고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을 극복하고 현재의 환경을 수습하고 현재의 우리의 모든 소원이나 사정을 고차적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않고서는 보다 좋은 세계와 보다 좋은 사회, 보다 좋은 가정, 보다 좋은 개인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은 나 이하의 것이 아니라, 나 이상의 것을 찾아 나가는 길에서만이 추구될 수 있고 찾아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의 정상적인 생활환경을 통해서는 선을 빚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들 자신이 좋다 하는 것을 가정에 적응시킬 수 있고,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고, 혹은 세계에 적응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한계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좋다 하는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삼은 것에 귀결될 뿐입니다. 이것이 전체가 좋다 하는 것으로서, 중심적인 선한 것으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기에 부대끼는 여건을 그 이상의 높은 차원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과연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혹은 좋은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관점에서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볼 때에, 자기 스스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단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굳은 결심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간적으로 시작하여 순간적으로 끝나 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년의 벽두에 결심한 내용을 365일을 지내 오면서 성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아무리 굳게 결심했다 하더라도, 그 결심은 쉽게 흐트러지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추구하는 목적에 박차를 가해서 나갈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만으로는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참된 세계를 이룰 수 없고, 참된 사람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어 절대적인 가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절대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분을 본받아야 되고, 나보다 더 높은 분을 따라가야 되고, 나보다 더 강한 분을 의지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 추구욕이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에 반하여 간접적인 대상과 같은 하나의 절대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소망의 주체가 되고 모든 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절대자의 가치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신이라는 존재,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개입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또 미완성에서 시작하여 미완성으로 종결될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믿고 바라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신앙심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길을 떠나게 될 때 그 길이 평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그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마음보다도 다른 무엇에 의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길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이 마음이 비단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인생행로를 대표하는 한 토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자신의 인격을 대신한 연약한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때, 신앙심의 발로가 되고 신앙심의 내용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생활을 부활시키고, 우리의 생애를 부활시켜서 선을 추구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대상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신앙심을 갖추어 나가는 나 자신이 되었다 할진대, 나 자신이 대상의 입장에서 그 주체와 하나되어서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한점을 취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 주체 되시는 절대자의 소원과 목적이 이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확실히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깨달음이 내 생애노정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느끼는 바일 것입니다.
좋은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국가 좋은 사회가 필요하고, 좋은 국가 좋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개인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씀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자기 스스로 그 좋은 개인이 될 수 있느냐?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는 이러한 좋은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가지고 아침에 희망을 품고 출발하지만 저녁이 되어 그 희망을 성사시켜 기쁜 마음으로 오늘 하루가 내 생애에 빛날 수 있는 한날이 되었다고 자랑하며 돌아올 수 있는 날들이 일년 동안에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추구해 나가는 우리는 나 자신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좋은 것을 성립시킬 수 없는 타락된 모습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우리의 미완성된 것을 보충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결정짓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신앙이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종교는 좋은 사람을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추구해 가지고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면 좋은 사회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갑이라는 사회와 을이라는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사회, 즉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형성되어 있는 모든 사회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형성되어 있는 사회가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고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고통을 받아야 되느냐? 좋지 않은 사회를 분립시켜 가지고 아무런 관계 없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고통을 받을 까닭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좋지 않은 사회를 대하지 않을 수 없는 본래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모든 좋지 못한 사회를 대해 나오시는 하나님이기에 고통을 받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소망의 나라를 추구해 나가야 될 입장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더 좋은 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미급할 수밖에 없는 국가권을 대하시기에 하나님이 더 슬퍼하실 수밖에 없고 더 고통받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통받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메워 드릴 것이냐? 그것은 어떠한 개인이 열심히 기도를 하여 위로해 드린다고 해서 메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소망의 천국을 이끌고 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나라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메워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는 세계의 기준 앞에 현재의 세계가 미급하여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큰 고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때에 그 고통을 해소하실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은 한 개인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해서 하나님의 고통이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쁘실 수 있는 세계를 형성해야만 그 고통이 해소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선을 추구해 나가고, 혹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내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사람의 기준과 차이가 있으면 그 차이로 말미암은 슬픔을 해결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을 통하여서 하나의 새로운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에 일치되지 못하는 현재의 이 사회, 그 뜻이 지향하는 선한 세계에 일치되지 못하고 차이가 큰 우리 개인과 가정으로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메워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수의 무리라도 그러한 세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의 상징적인 형상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제2의 소원, 간접적인 소원도 이룰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모두 자기를 중심삼고 선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주변의 환경을 전부다 망각해 버리고 오직 나 자체만을 중심삼고, 동기도 나요, 결과도 나라고 하며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내가 선한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세계에 필요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고심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개체로 보면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당당히 나설 수 있었지만 소망의 국가를 찾아 나오신 하나님 앞에서는, 다시 찾으시려는 소망의 나라인 이스라엘과 현재의 이스라엘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서러움과 서글픔을 느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서글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슬픔을 누가 풀어 드릴 것이냐? 예수님 개인만으로는 그 슬픔을 풀어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터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국가의 형태라도 갖춘 기준이 나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으로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미래에 대한 사명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가중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 좋은 행동을 해야 되겠다, 혹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어디에 목적을 두고 하는 것이냐? 그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개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좋은 가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개인이 되었더라도 좋은 가정의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만으로는 가정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을 형성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려면 횡적인 관계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좋은 사회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좋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수다한 좋은 가정을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가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를 두고 볼 때 국가를 형성하는 데도 마찬가지이고,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세계를 형성하는 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선을 추구해 가는 신앙자의 길에 있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수습하기 위한 주체이지 목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절대 순응하고, 절대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한, 절대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자 앞에서의 나 자체는 무의 입장에서 따라가야 되고, 절대자를 주체시하여 대상의 입장에서 그 절대자와 화합할 수 있는 모습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노정인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개인 개인을 횡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가려 나가야 할 것이 복귀도상에 처한 우리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요, 전체를 위하는 나라입니다. 전체의 가치 가운데에서 내 개체가 빛나는 것입니다. 개체의 가치 가운데에서 전체가 빛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체의 가치 가운데에서 개체가 빛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말씀 가운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린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인간이 주체를 그리워하고 있는 만큼 그 주체를 위해서는 횡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이 주체를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횡적으로 연결되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와 대상은 종횡관계이기 때문에 종횡이 원형이 되기 위해서는 종과 횡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해야 원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중요시하지만 횡적인 사람과의 관계는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원리 가운데 강의해야 될 내용을 두고 볼 때 이것은 귀한 복음이요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한 종적인 내용이 횡적인 가인 아벨관계에서 일치되지 않고는 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표상한 모든 내용이 여기에 담겨져 있고 십자가가 표상하는 뜻도 여기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좋을 때에나 슬플 때에나 항상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종적인 기준 앞에는 좋은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것은 전체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슬플 때 횡적인 환경에서 식구들과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기쁠 때도 식구들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는 만큼 사람을 위해야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직접 해드리지 않았지만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좋은 사람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사람 그 자체만으로는 좋은 가정을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좋은 가정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사회를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좋은 가정이면 좋은 가정끼리 연결될 수 있고 좋은 사회면 좋은 사회끼리, 좋은 나라면 좋은 나라끼리 연결될 수 있지만, 좋은 개인이 좋은 나라와 바로 연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대등한 입장, 좋은 사람들끼리나 좋은 가정들끼리는 서로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 좋은 나라끼리도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평등, 즉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平和)의 '평'은 수평을 뜻합니다. 이 '평'이 없어 가지고는 '화'했다 하더라도 그 화함은 곧 없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희생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회생해야 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삼천만 민족의 소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찾는 것은 뭐냐? 새로운 천국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찾기 위해서는 민족이 슬퍼하고 민족이 고통받고 민족이 서러워하는 자리에서 희생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세계를 위해서 초민족적인 감정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볼 때, 지금 대한민국과 일본이 과거 30여년 전의 원수의 입장에 있던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두 국가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형제의 인연이 맺어져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한 심정적인 인연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아들딸로서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비례하는 횡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절대자의 그 기준이 지상에 현현하느냐 못 하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횡적 기반을 어떻게 세계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 자신이 흡수당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흡수력이 강한 민족은 세계를 흡수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좋은 것에 흡수되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쁜 것에 있어서도 자기의 본질을 뒤집더라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거기에 흡수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흡수당하지만 흡수시킨 그 자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회에 흡수당했다 하더라도 그 사회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참아라, 인내하라, 극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참다운 심정을 지닌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내 사랑을 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슬픈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고 기쁜 사람을 대할 때는 그 기쁨을 동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타락하게 된 죄로 말미암아 슬퍼하게 될 때 그 죄에 사로잡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흡수되지만 그에 비례해 가지고 반대로 흡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의 껍질을 벗겨 주고 재기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악은 물이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고 선은 물이 흘러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조수(潮水)가 밀려 들어오고 밀려 나갈 때의 현상은 달의 인력에 의해 방향이 바꿔짐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향이 바꿔지려면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필요합니다. 또한 악한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은 왜 필요하냐? 선한 사람에게 흡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는 그 어려움의 주인이 되어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자기의 마음에 전부다 받아들이지만 결국 그것에 의해 주관당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 가지고 더 흡수할래야 흡수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때, 반대로 바꿔치는 것입니다. 흡수당하면서도 이러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라야 선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사람은 양면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으신 분입니다. 좋다는 것은 일방적인 면에서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종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횡적인 면에서도 무한히 통해야 됩니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도 절대적인 하나님을 추구하고 찾으며 나왔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래야 됩니다. 종적인 관계에서만 필요한 하나님이 아니라 횡적으로도 무한한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추구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흡수하려 해도 선한 사람에게는 악한 사람에게 흡수될 수 있는 요소보다도 더 많은 선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악한 사람도 선의 요소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악한 요소가 제거되고 선한 요소가 남아지기 때문에 선한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선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의 부활의 은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을 무한히 공급해 줄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그 두 사람 가운데 어떠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을 무한히 보급시켜 줄 수 있는 존재, 혹은 본성의 한계선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그 그릇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도록 줄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선한 사람입니다. 흡수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하거나 넘치지 못한 자리에서 싸우는 것은 악이고, 반드시 넘쳐야만 선입니다. 넘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흡수를 당하게 했던 사람을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작전은 주고 빼앗아 오는 작전입니다. 주고 빼앗아 오는 데는 희생시켜서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시켜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흡수할 수 있는 두 물건이 있다면,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강한 것은 흡수되는 것을 영양으로 보급시켜 주는 것입니다.
과거의 문화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문화는 덜 강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에 있어서도 보다 강한 선한 사람은 덜 선한 사람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하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더 줄수 있고 더 보급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역사시대의 심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기준을 넘어서 더 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 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혼란의 와중에 있는 이 세계정세 속에서 통일교회가 받아 먹고 산다면 통일교회는 망합니다. 그러나 주고도 남을 수 있는 통일교회라면 틀림없이 세계를 지배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한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개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 가? 더우기나 세계에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기에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서 주어야 되기 때문에 국가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민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종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와 나와 관계가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환경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데 누가 먼저 좋아하느냐? 하나님이 먼저 좋아하고 그 환경에서 좋아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두고 볼 때,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원수와 같은 감정을 갖고 참을 수 없어서 대결하는 입장이라 하였을 때 어떠한 사람이 남아지느냐? 여기에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철칙이 아닙니다. 그 복수의 이면에 하나의 조건, 즉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복수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보다 나은 것 앞에는 보다 덜한 것이 흡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것이 주체고 어느 것이 대상이냐? 보다 나은 것이 주체요 보다 덜한 것이 대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 절대적 기준에는 세계도 포함되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의 모든 제도와 이념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절대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됩니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제도권내에서도 나 자신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시대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영원히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이 거룩한 성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줄 것이냐?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보다 더 좋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최후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시대의 민족을 위하여 주고 싶어서 통곡을 하고, 자기 일신의 신세를 망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한을 품지 않고 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주고 싶은데도 민족이 받지 못하면 세계를 위하여 주어야 됩니다. 자기의 어떠한 이익을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의 부활을 바라면서 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위해서는 자기의 육신을 희생시키면서 생명이 부활된 미래세계를 맞이하는 소망으로 살아야 하며,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애착을 느끼고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무한한 가치를 느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어 갔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죽어서도 하나님께로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인류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주는 데는 하나님을 통해서 인류에게 주고자 하는 조건을 세우고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종적인 기준이 설정된 이상 여기에는 어느 한때에 수평선이 그어져야 됩니다.
천지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도는 궤도를 갖추었기 때문에 종적인 수직선에 90도의 횡선을 그을 수 있는 평면적인 한때가 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이루어진 횡적인 종교인 기독교가, 역사시대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해 가지고 현 말세에까지, 평면선이 그어질 때까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변명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왜 귀합니까? 이는 종적인 사랑이지만 종적인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사랑이 깃들게 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그릇될까봐 생활을 통해서 자녀의 길잡이가 되려는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종적인 사랑은 반드시 횡적인 사랑을 창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이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으로 집약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종횡의 요소를 책임진 것이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이 자기의 귀한 것을 그냥 그대로 자식에게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받게 해 가지고 횡적으로 넓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이 왜 그러하냐?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는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간에는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원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주체는 종적이요 대상은 횡적인 고로 이것이 90도 각도가 되어 원형을 그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은 반드시 종횡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종횡 가운데 무엇이 먼저 출발하느냐? 종이 먼저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내심을 분석해 보면 종횡의 사랑의 본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횡적인 아들딸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종적인 기준으로 넓힐 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넓혀 나감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만유의 존재가 종적인 환경을 중심삼고 횡적인 환경으로 넓어지게 되고, 세계와 천주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마음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겠다, 혹은 무엇을 갖겠다, 무엇을 하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종횡의 사랑의 인연이 자신의 본질적인 마음의 바탕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적인 욕구에 의해 여러분의 욕망이 충족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횡적으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그림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는 실체의 형태를 대신해 가지고 반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 받으면 반드시 반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으면 반응하는 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른 데에서 또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다 할 때 선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착하다는 뜻입니다. 그 선하다는 뜻 가운데에는 미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사랑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소망의 감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 앞에 대상이 되는 것은 미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결정되면 반드시 소망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작용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소망은 거리를 두고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소망은 반드시 관계를 가지게 될 때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는 거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착해지지 않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아들딸을 귀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착하다 할 때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착한 것은 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착한 애기는 예쁘지요.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을 유발시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적인 가치를 결정지음과 동시에 소망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와 대상은 목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관을 중심삼고 변증법이 나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공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을 보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옵소서' 하고 자기를 들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자기 속에서 세계가 빛나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자기 속에 들어와 살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늘구멍 같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사신다면 얼마나 답답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욕심은 '하나님,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를 하더라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뜻이 없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왜 복귀해야 되느냐?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려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주고 받지 못하면 횡적인 면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인 아벨 복귀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지상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잘못하여 부모 대에 소망을 잃어버리면 자식 대에 소망을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 자식 대에도 소망을 못 이루면 3대인 증손자 대에, 3대에도 못 이루면 4대에, 4대에도 못 이루면 10대, 백 대를 거쳐 서라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가 상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선의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충의 요인을 들고 나와 가지고 강압적인 완력으로 그 기준을 발전시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그 기준에 흡수되고 화합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을 가진 하나의 국가관, 또는 세계관을 지닌 사상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보면 자기를 언제나 사랑합니다. 그저 자기만 사랑한다는 거예요. 타락한 자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한 찾아다녀야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그만큼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녹음이 약간 끊겼음)
자신이 선하더라도 선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서 받으면 그것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받으나 마나입니다. 그러니 소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받아야 됩니다. 나 자신이 악한 입장에서 받은 모든 것은 죄악입니다. 다 주고 나서도 더 주고 싶다 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기주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얻은 자유라고 하는 것은 받기 위한 자유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수천 수만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어떠한 국가관이라든가 세계관도 없습니다. 이런 사상은 지극히 위험한 사상이고 멸망될 사상입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사상의 경향이 멸망될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 안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고 종족이 있을 수 없고 국가가 있을 수 없으며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종횡의 관계에서 세계를 합칠 수 있는 입장이어야만 국가가 들어가고 사회가 들어가고 가정이 들어가고 개인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떨어져 너와 나뿐인 떠돌이 신세가 된다면 어디에서 머무르겠습니까? 만민이 공동으로 바랄 수 있는 정착지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그곳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방성을 갖추어 나간다면 그것은 일대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은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천지를 창조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절대자의 사랑이 포함된 세계의 형태로 나타나야 됩니다.
그 세계를 분석해 보면 가정을 대신한 개인이 있습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개인과 가정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런 틀림없는 개인과 가정이 전체화되어 가지고 하나의 대표 형상과 같이 된 국가 형태가 이상적인 국가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은 종말을 맞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좋은 개인만으로는 좋은 세계와 연결될 수 없습니다. 좋은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역량을 지닌 우수한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어떤 구상을 가지고 창조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심정의 도리를 통해 가지고 세계적인 구상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사상을 추구해 나왔지만 이 사상이 인류에게 기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상을 포기해야 할 시대를 맞이하였으니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사상을 좋다고 취한 만민이 전부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 줄 알았지만 이제는 포기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으니 무엇을 취해야 되느냐면 인본주의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신본주의 사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신본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가 영화를 누리고 새로운 문화세계의 절정을 이룰 수 있는 그러한 사상이 있습니까? 금후에 있어서의 초인류적인, 초세계적인 기준의 새로운 문화를 창건할 수 있는 종교가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개인이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통일사상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 앞에 새로운 목적관과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여기에 대한 방향은 물론 환경까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사상이 바로 이 통일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제시하는 데에는 어떻게 제시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수많은 위정자면 위정자, 주권자면 주권자들이 해 나오던 것처럼 착취하고 박탈해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제물삼아 가지고 무한히 주고 싶어 애쓰며 제시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국경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횡적인 사랑을 확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넘고 아시아를 넘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횡적인 기반이 조성되게 되면 여기에서 절대적인 대상의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위해 출발한다 할 때는 반드시 출발선이 있든가 출발점이 있어야 됩니다. 그 선은 무엇이고 그 점은 무엇이냐? 선은 점의 총합입니다. 그러기에 점이 있어야 됩니다. 올바른 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 절대적인 주체입니다. 주체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주체가 되면 그 주체는 전체의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의 중심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체의 중심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왜 좋으냐?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에게 다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주체에게 돌아옵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에 접한 사람이 주체의 사랑에 완전히 화합하게 될 때에는 상대적인 인간을 통해 그 사랑을 다시 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돌려줄 수 있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입력과 출력,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을 비교해 보면 나가는 힘이 더 작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상대적인 사랑,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게 했느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그 사랑은 여러분의 개체 머무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거쳐 오는 동안 감소됩니다. 들어가는 것이 입력이라면 다시 나오는 것은 출력인데 출력은 언제나 작아집니다. 사랑이 소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보강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 또 다른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다른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새로운 것이 보강되고 이것이 횡적으로 맺어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돌아갈 수 있는 힘으로 바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힘의 작용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끼리 왜 사랑해야 하느냐?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점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종적인 사랑 앞에는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종적인 사랑의 힘이 상대적인 관계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보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자극적인 힘을 보강하고 플러스적인 자극을 또다시 저축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 본래의 자체까지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횡의 주체와 대상을 위해 종적인 주체와 횡적인 주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선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말씀과 같이 그렇게 사랑하는 독생자는 사랑을 받으면 다 된 거예요?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해야 됩니다. 힘을 보급해 주어야 합니다. 충족하게 줘야 됩니다. 나라에 충족하게 줘야 되고, 세계에 충족하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충족하게 주어야 합니다. 뜻을 위해 주라는 겁니다. 자기로 말미암아 나라와 세계를 충족시켜 주어야 됩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좋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없어 가지고는 하늘 나라, 하늘 세계를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은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은 주체를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져야 합니다. 둘이 합하면 힘이 납니다. 어떤 힘이 나오느냐? 생명의 힘보다 강한 힘이 나옵니다. 그 힘을 둘이서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의 힘에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여러분 몸의 세포를 보더라도 세포끼리 서로 주고 받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따로따로 떨어져 나가서 어떻게 열매를 맺느냐? 그것은 '나'라는 새로운 생명체에 흡수될 수 있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결이 잘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정교회에서는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 교회를 어떻게 어떻게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나라를 잊어버리고, 세계를 잊어버리고, 하늘땅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교회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민족시대에 들어가 있는데 교회에 대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후퇴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어요? 집안에서 무슨 좋은 잔치를 벌일 때도 그 집안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른을 중심삼고 잔치를 벌입니다. 이렇듯 한 가정의 가법은 어른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른은 누구냐? 어른 가운데서도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가 있으면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그 증조 할아버지가 노망을 했더라도 법도의 중심은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비록 말을 못 하고 명령을 못 하더라도 먹을 것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그분께 통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종적인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할아버지가 종적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의 좋고 나쁜 것은 종적 관계를 거치고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을 몰라보면 망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것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떠돌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어디를 가나 공식으로 통합니다. 지금까지의 공식을 보더라도 종횡의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떠나서 이루어진 공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공직이 이루어집니다.
공식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 있으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요건을 전체 요건으로 대신해서 귀결시킬 수 있게 될때에 그것이 공식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공식이란 중심을 말합니다. 중심은 곧 종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종적 기준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한 집안을 보더라도 그 집안의 중심이 누구냐? 연세가 많으신 분, 즉 증조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그 증조 할아버지가 중심입니다. 운명할 때가 되었다고 해서 가족들이 그 할아버지를 무시하게 되면 종적인 세계를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노망했다 하더라도 그 가정의 중심은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먹을 것이 있더라도 그분께 먼저 갖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그 나라의 대통령이라 해도 할아버지께 먼저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횡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못한 사회활동을 왜 우리가 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교회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자체만을 위하지만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위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 통일사상입니다. 세계의 사상을 놓고 볼 때 그 흐름이 종적인 직선을 그어야 하는데, 오늘날의 사상을 보면 횡적인 선을 긋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적인 관계는 틀렸지만이 횡적인 선을 거쳐서 종적인 선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까지 이 사상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종적인 선은 어떤 선이냐? 하나밖에 없는 선입니다. 완전하게 그어진 선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종적 세계는 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세계적인 주의요, 세계적인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분립된 사상이 아니라 통일된 사상으로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역사가 이 세계 가운데서 벌어져 나왔습니다.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삼고 보다 나을 수 있는 사상을 좇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상이 어디서 나타날 것이냐? 이 사상이 어디에 나타나더라도 중심의 자리에까지 가야 됩니다. 그 자리는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이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안의 개인입니다. 또한 가정이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종족이 중심이 될 수도 있고 민족이 중심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민족이 되려면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 뛰어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고 세계를 위해서 사랑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곳은 천국입니다. 그곳은 모든 개개인의 마음의 중심이요, 모든 가정의 중심이요, 종족의 중심이요, 민족의 중심이요, 국가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나타나게 될 때에는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향해 나가는 그 기준이 통일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즉, 제3이스라엘의 창건입니다. 제3이스라엘의 창건은 어떤 것이냐 하면, 제3이스라엘을 위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제3이스라엘을 창건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출발에서부터 주는 동시에 영원히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승리자나 혹은 어떤 기록을 낸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게 세계를 위해서 권위를 주는 것입니다. 그의 명령을 따라야 되고 또한 그는 절대적인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상대적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전에는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크고 높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로 말하면 더 진보적인 진리요, 가치로 말하면 더 가치적인 것입니다. 이 자리는 하나입니다. 그것이 중심된 자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느냐? 세계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세계로 말미암아 태어났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주체이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서 받느냐? 세계의 중심에서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승리권내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스라엘의 창건을 바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창건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창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국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한국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한 한국이라면 먼저 줘야 됩니다. 주고 나서 받게 될 때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고 받는 이치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나라를 위해 주고 나라가 받게 될 때는 어떻게 된다고요? 돌아가게 됩니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즉, 가인 아벨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앞으로 세계 최고의 국가를 대해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은혜를 받았을때 그 은혜를 더 큰 분야에서 소모시키지 않고는 그 은혜가 남아지지 않습니다. 열만한 가치의 은혜를 받았는데 열하나 만큼 소모시키게 되면, 열만큼의 은혜는 언제나 남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보태 가지고 주면 열은 언제나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열만큼 요구하는데도 아홉만큼밖에 못 줬을 때는, 하나만큼이라도 모자라면 언제나 모자라는 것입니다. 100점이면 완전하지만 99점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불완전한 것은 후퇴했다가 다시 출발해야 됩니다.
시험을 봐서 99점을 맞았다면 백점을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시 시험을 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하는 대한민국이 되면 세계는 대한민국을 위하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위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세계를 위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채 못했습니다. 채 못했으니 다시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보따리 싸 짊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문둥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3점을 추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3점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되기 위해서는 3점을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전도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도 3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3점을 세우기 위해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형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왜 원형이 그려져야 되느냐? 원형이 완전히 그려지면 중심은 자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기도를 하더라도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의 오른팔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팔로 무엇을 줘야 됩니까? 하나님은 세계를 다 주고 싶어하십니다. 이것 저것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면 현재의 사람들에게만 줄 것이냐? 과거에 왔다 간 영계의 모든 영인들에게도 줘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형으로 있지만 그들도 과거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번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천년 만년을 주어도 다 못 줄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충신은 못 되더라도 하나님의 머리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세포라도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포는 생명체를 위해서, 인체면 인체의 목적을 위해서 협조하는 요소를 남겨야만 세포로서의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없으면 당하는 것입니다. 세포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세포들이 구성되어 제3세포를 형성할 수 있게 무엇을 남겨 줘야만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립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은사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이 은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은사와 행함은 종횡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을 떼어 가지고는 성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것만큼의 가치를 돌려주어야 됩니다. 발전의 요인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돌려주지 못하면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나무 가지가 뻗는 것은 양분을 주어서 뻗는 것입니까, 아니면 강제로 잡아 당겨서 뻗는 것입니까? 양분을 줌으로써 뻗는 것입니다. 발전의 요인은 주는 데에 있습니다.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줘야 되느냐? 제일 나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옷 짜박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먹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뿐만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 줘야 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사랑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계의 중심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아담 해와의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귀의 인연을 따라 나온 것도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자리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세계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쩨쩨하게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 살 수 있는 직선을 그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직선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어느 정도 직선이 그어지면 종선이 그어집니다. 이 종선만 그어지면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완전한 대상만 이루어지면 완전한 주체는 자동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생겨나서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전기에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플러스가 생겨납니까, 안 생겨납니까? 「생겨납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플러스가 되어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근본이 있어야 됩니다. 이 근본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주고 받음으로써 완전한 플러스가 되었을 때는 거기에 마이너스를 창조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이 힘만 거머쥐게 되면 한 점에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점에 모여질 때 방향을 갖추어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횡으로 주고 받는 사람은 반드시 제3점을 요구해야 합니다. 제3점이 없다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제3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반드시 제3점을 통과해야 됩니다.
이 제3점은 주체의 목적, 대상의 목적을 위해서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보다 큰 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하기 때문에 개인의 몸과 마음이 주체가 되어 그 주체를 중심삼고 하나의 핵을 이루면 상대를 대할 수 있는 주체가 생기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이것을 완전히 주고 받으면 그것이 하나의 주체가 되고 핵이 되어 종족을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종족과 완전히 하나되면 그 종족을 중심삼고 주체가 되어서 민족을 위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이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되면 세계를 위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기를 세계의 대통령이 되기는 쉬워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뜻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적인 선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냐? 종족적으로 선한 사람은 민족적인 시대에는 사라집니다. 또, 민족적으로 선한 사람은 국가적인 시대에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충신인 이순신 장군이 세계의 공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 장군은 원수입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했던 이순신 장군이 일본에서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며 서로 승패를 겨룬 입장에서는 원수라는 말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닦아 놓지 않으면 원수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원수를 없애자고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세계를 위해 주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해 나오면서도 박해하는 로마 제국을 위해 준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복수를 했다든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받는 그 자리에서 뿌리를 박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살아요? 여러분은 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합하였을 때 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 중에서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혹은 좋은 것 중에 최고로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아닙니다. 싸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전부다 전쟁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만 선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선생님을 사랑해야 되고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여러분끼리도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내가 중심이지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입장에서 그 환경이 전부다 받들어 중심으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강제로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가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움직이게 하면 자동적으로 무거운 것은 깔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사람은 가운데로 몰리는 것입니다. 돌고 도는 데서 무거운 것은 움직이지 않지만 가벼운 것은 자꾸 움직이기 때문에 주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거운 것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가운데로 움직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 사람을 중심적인 인물로 모실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든 것을 줘야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동기 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태어났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천리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한 발자국은 천리길의 출발이예요, 아니예요? 출발입니다. 두 발자국은 그 만큼 나간 것입니다. 천리길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이나 두 발자국이나 모양은 마찬가지 입니다.
천리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은 다리를 절며 걸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걷는 것입니까, 다리를 저는 것입니까? 그것만 놓고 보면 그것이 걷는 거예요? 다리를 저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걷는 것입니다. 낮잠을 자면서 걷더라도 걷는 것입니다. 낮잠을 자면서 걷는 것은 더 빨리 가기 위해서입니다. 잠을 자는 데도 걷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목표를 위해서입니다. 먹고 자고 하는 것도 가기 위해서입니다. 목표를 위한다는 면에서 생각하게 될 때는 잠을 자더라도 가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생 동안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란 조그만 동방의 나라에서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좁은 곳에서 산다 하더라도, 이것은 더욱 큰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임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그것은 왜 그러느냐? 큰 길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어느 정도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가야 합니다. 복잡한 환경을 타파하고 다른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선생님이 제시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남을 겁탈하거나 이용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주면서 가야 됩니다.
전도를 할 때, 돈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들어오면 뭘 합니까? 그것이 통일교회를 위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까? 전도한 사람이 돈이 좀 있다고 해서 연보하게 해 가지고 내 살림살이를 해결해야 되겠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생명을 구하는 데에 물질적인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모두 가려 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보고서 좋다 나쁘다 해서는 안 됩니다.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낮은 사람을 잘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높다고 해서 낮은 사람을 밟고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밟힌 사람들이 전부다 타고 올라가게 되고 밟은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며 가야 됩니다. 가정을 위하고 직장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직장이 잘못되었을 때, 회사의 사장보다 회사를 더 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회사의 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늘 가는 길에 있어서 세계를 위해서 어느식구도 못할 것을 자신에게 명령해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적인 터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의 시련과 고통을 다 퍼부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난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앞에는 닥쳐오는 어떠한 평면적인 십자가도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십자가를 대해 여기에 종적인 십자가를 합해 가지고 하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당하는 고통 이상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패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불효를 남기는 것보다 이것을 극복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더 큰 희망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라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며 십자가를 대하게 될 때는, 그 자리가 곧 복된 자리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감옥에 끌려 들어가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있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보금자리라고 할 것입니다. 이 순간은 하늘나라의 경계선을 뚫고 하나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순간입니다. 있는 정성을 다하고 밤이나 낮이나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 마음을 투입하여 최고의 정성을 드리는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슬픔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원수의 채찍이 날아들더라도 힘을 내어 원수를 갚자는 겁니다. 열 대를 먼저 맞고 세 대를 치는 것은 사탄편에서 복수할 수 없습니다.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열대를 먼저 맞았다면 열 대, 스무 대, 몇백 대를 치더라도 사탄편에서는 항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를 위해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고, 세계의 모든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좋은 참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맞아도 보고 죽는 자리에서 고생도 하고 어려움도 당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원수가 아닙니다. 이 자리가 천 배, 만 배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상의 선열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신음하던 외로운 입장에서도 충신의 절개를 지키며 이끌고 나왔던 그 이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정상에서 신음하며 기도한 그 이상의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가 아니고서는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리가 아직까지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길을 가는 데는 죽음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때인가 쓰러지더라도 원수를 굴복시키겠다고 하며 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여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인류가 지향하는 선의 세계에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뭐가 어떻다고 변명하는 패들이 있는데 암만 해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들고 나을 때는 암만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통해야만 합니다. 이 원칙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보게 되면 벌써 그 사람이 누구를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압니다. 출발점이 어디냐?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냐,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냐? 몇 마디만 이야기해 보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꾸며대도 선생님은 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천한 사람이지만 가면 갈수록 자기 자신을 가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 나타내지 않고 숨기려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더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이치와 마찬가지 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왜 이 나라에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지금까지 공식 석상에 나타내지 않느냐? 한다 하는 사람, 국장 과장 어떻다 하는 사람이 만나자고 해도 선생님은 안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만나게 해 주시는 그 권한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고 있는 사람을 내세우고 가는 복귀노정이기에 따르는 사람들을 그 이상의 자리에 세워 놓고, 그것을 보고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녀석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내세웁니다. '나 살려주소' 하는 녀석은 안 됩니다. 때려 죽일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서 얘기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는 나 자신 인데도 불구하고 얘기를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남에게 신세진다고요? 이놈의 자식들.
선생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해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큰소리치지 않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에 있어서는 큰소리를 칠수 있지만, 나 자신을 내세워 큰소리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쁜 것입니다. 24시간 내내 갈 길이 바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낮잠이라도 자게 되면 회개합니다. 자고 나서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여자들이 남자들 앞에 몸을 드러낼 때의 마음과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선생님을 두고 암만 찧고 까불고 해보라는 겁니다. 결국 누가 망하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들어 주시고 싶으시지만,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고 싶어도 못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기필코 주고 받는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이 권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모두 자리들을 잡았습니다. 요즈음 축복대상자들을 보게 되면 누가 어떻고 누가 좋고 하며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있습니다. 자기가 축복받는 데에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그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나라에 가면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상상대를 만났다 하더라도 저나라에 가면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자리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여러가지 문제가 입체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공평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배급을 덜 받은 사람이 있으면 어느 한때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나쁘다고 한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상대를 사랑해 주라는 것입니다. 불평을 하더라도 상대가 받을 수 있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이상 사랑하고 나서 불평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주지도 않고 불평을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은 공평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덜 받은 사람이 있으면 몇백 배 이자를 붙여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좋은 후손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구덩이가 생겼으면 메워야지요? 또한 저기압권이 형성되었으면 고기압권에서 나누어 주어야지요? 이것이 천리 원칙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나쁘지만 그것이 옥토가 되어 뿌리를 내려 좋은 열매를 맺게 하듯이 하나님은 나라와 세계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후손으로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기를 대한민국을 위해 태어났습니까, 통일교회를 위해 태어났습니까? 세계를 위한 충신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의 친구가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나 자신이 세계를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것도 세계에 줄 수 있는 길을 넓히기 위해서 공부시켜야 합니다. 내가 뜻을 알았으나 그 길을 못 가게 되면 자기의 아들딸, 혹은 믿음의 아들딸을 통해서라도 그 길을 닦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일생에 있어서 그 한계점까지는 못 갔다 하더라도 세계에 있어서 영광스런 중심존재로 등장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랑의 법도를 통한 인연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아들이 미국에 갔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의 그 사랑이 제약을 받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몸은 대한민국에 있지만 마음은 미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그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힘 가지고 될 수 있습니까, 소리쳐 가지고 될 수 있습니까?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랑이 필요하냐? 좋은 것 중의 중심이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한 겁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중심삼은 부자관계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가 통일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나 개인만 선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선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만 선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이 없다면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으로써 모든 것을 씻고 닦고 치우고 살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선한 국가가 있지 않고는 세계에서 필요한 선한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국가와 개인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무엇을 가지고 이것을 하나로 만드느냐? 다른 것으로는 하나 만들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으로 연결시켜서 세계를 위해서 개인끼리 좋아할 수 있고 가정끼리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중심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전체의 내용이 되는 것이고, 이것을 펼쳐 놓으면 전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축소하면 내 개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상대가 없는 자리에 있을 때는 나 하나지만, 내가 세계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가정을 위해 서 있다면 나는 세계의 중심이요, 국가의 중심이요, 종족의 중심이요,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 하나의 중심은 종적인 기준에서 횡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제1횡적 기준, 제2횡적 기준, 제3횡적 기준으로 폭이 커지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우리 선조들, 노아라든가 혹은 아브라함이 왜 책임을 다하지 못했느냐? 모두 자기만을 중심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자기들을 중심삼고 세계를 요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 반대였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자기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 더 수고해야 할 고비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를 믿을 때는 좋을 줄만 알았겠지만 한 고비를 더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넘어서면 골짜기, 그 골짜기를 거쳐서 다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법도입니다. 탕감을 거쳐서 우리가 머무를 최후의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상이 어디냐? 국가입니다. 국가의 기준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서는 내적인 정상을 향해 넘었지만 골짜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국가를 넘어야 됩니다. 이것을 넘기 전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골짜기에서 쓰러지거나이 길이 싫다고 불평하면 전부다 망하는 것입니다.
선한 나라를 어떻게 만드느냐?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보끼를 내세워 가지고 간부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복귀를 위한 작전을 하게 한 사람이 바로 선생님입니다. 왜 그러냐면 일본은 해와 국가이어서 대한민국을 복귀했다는 조건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코치해야 되느냐? 본연의 아담, 하나님이 코치하여 이겼다는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다 원리적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고 세계를 위해서 선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여러 벌의 옷을 가지고 있으면 그 옷을 세계를 위해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또한 땅을 살 때에도 아들딸에게 상속해 주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돈을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돈을 쓰게 되면 빛이 나는 것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늙은 부모가 자식이 애써 만든 옷을 자식을 위해서 입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에는 천년 만년 잊지 못할 효성이 폭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말하지 않고도 스스로 굴복할 수 있는 가치적인 선한 터전을 닦아 나갈 때, 하나님의 뜻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기틀이 마련되어 가지고 정상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아버님, 동녘에 솟아오르는 해가 변함없이 광명한 빛을 발하듯 저희들은 언제 그 해와 같이 어둠의 세계를 제거하고 영광을 나타내는 자신들이 되어 빛날 수 있겠사옵니까?
아버님,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는 마음밖에 없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때 이 몸 전체가 아버지 앞에 바쳐진 모습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아들딸이 되지 못하였음을 아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이 그러한 아들딸로서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나타나기를 6천년의 긴 세월 동안 기다리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당신의 뜻이 복귀의 한계점에 이르러 시작과 더불어 끝을 맺고자 했으나, 그렇게도 슬픈 내용을 지니고 수천년 역사의 고빗길을 거쳐 아직까지 그것을 해결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땅 위의 그 누가 참다운 선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위한 아벨이 되겠는가가 문제 되옵니다. 그러한 아벨이 나오기 전에는 아벨을 중심삼은 가정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이 없으면 종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종족이 없으면 민족과 국가가 나올 수 없고, 또한 그러한 세계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게되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인을 희생시키면서 세계적 메시아의 한계점까지 몰고 나오신 아버지의 노고가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최후의 종말을 고하는 최종점에 설 수 있는 한 분이 오신다면 그 한 분은 역사의 부활이요, 역사의 출발이요, 미래에 있어서 시작이 되어야 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당신은 알고 계시오나 저희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이 그러하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처참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슬픔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인류를 위해 찾아오시는 메시아의 걸음이 이렇듯 비통하고 서글픈 역사의 그늘에 삼켜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오늘의 통일교회 운명도 그와 같이 그늘에서 나서 그늘에서 살며 거기에서 싸워 나왔지만, 이러한 지난날의 모든 역사가 결코 슬픔의 역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아무리 골짜기 그늘 아래 있는 자리라 해도, 원수의 저주와 원망 가운데서 살아온 자리라 해도, 혹은 생사의 기로에선 극한 자리라 해도 승리를 다짐하는 당신의 성원의 마음은 저희들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의 역사과정에서 통일의 기치 아래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그냥 흘러가 버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거기에는 아버지의 슬픔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에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서, 혹은 교차로에 있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죽음을 자초했던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당신께서 얼마나 슬퍼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소문과 새로운 파문을 던지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오라, 오히려 그 소문과 파문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짊어지신 십자가가 얼마나 가중되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 앞에 면목 없는 저희들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수많은 아들딸들이 이 몸을 따라 모였사옵고, 역사적인 선의 실적이 있기 때문에 하늘의 때를 맞이하였사오나, 아버님의 영광의 손길을 힘입어 승리를 다짐하고 민족적 해방의 기틀을 마련하여 하늘의 주권을 탈환하여야 할 저희들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민족의 외적 주권 조차 찾지 못한 서글픈 현실정을 바라볼 때마다 오늘 저희들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다시 느낌과 동시에 아버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진정으로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저희들의 마음에 통곡과 절규와 분한 심정이 떠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효도와 충절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참된 인류로서의 효를 갖추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을 향하여 팔을 벌리며 손을 잡아 달라고 간구하는 저희들의 연약한 손길이 있사오니, 당신을 위하여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당신께는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찾아 나오신 것이요, 내가 아니면 당신은 이 악한 세계에 발붙일 수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불쌍하신 아버지를 붙안고 통곡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하여 당신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지난날을 가졌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의 통일교단을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당신이 뜻하신 바를 저희들이 하지 못하면 당신은 기필코 내적으로라도 이뤄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은 기필코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는 자랑할 것이 없사옵니다. 수고하신 당신 앞에 효의 도리를 다했다고 자처할 수 없는 자신임을 느낄 적마다.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저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뻔뻔한 아들, 뻔뻔한 딸의 모습인 가증스런 무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저희들이 당신과 함께 호흡해 보았으며, 언제 저희들이 이 삼천만 민족과 세계 인류를 붙안고 통곡해 보았습니까? 종교적인 선의 인연을 갖추어야 할 아버지의 사랑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한 때마다, 그렇지 못한 자신으로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바라보았던 경거망동한 불쌍한 자신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당신 앞에 온전히 바쳐질 수 있는, 가치적인 인격을 갖춘 정의의 존재, 당신이 필요로 하는 그러한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선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였사옵니다. 좋으면 얼마나 좋아야 되겠습니까? 아버님같이 좋아야 되겠사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세계를 품고 세계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버님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속에 확실히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민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민족애,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세계애가 연결되어 있사오니, 종족 씨족은 물론 형제의 인연에도 사랑의 심정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3이스라엘의 판도를 넓혀야 할 시대적 사명 앞에 저희들은 충성을 다해야 되겠사옵고 제물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좀더 희생해야 되겠사옵니다. 좀더 고통을 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길에 있어서 저희들이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께서 부르신 아들딸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상실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일본에 와 있는 세계의 당신의 아들딸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앞으로 올 당신의 수많은 자녀들을 하나의 통일된 심정으로 모으시어서,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승리와 당신의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1970년도부터 1973년도까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조직을 확보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전체적인 단체활동도 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달에 한 사람을 전도해야 됩니다. 그것은 정성을 들이면 가능합니다. 이 땅위에 사는 동안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겨 놓을 것은 전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저나라에 갔을 때 전도한 사람이 없게 될 때는 이 땅에서 자손이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됩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공식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공식을 중심삼고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430가정에게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말을 했는데 그들은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를 다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기 부모와 친척을 전도해야 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가정이 적어도 120명은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생에 있어서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중심삼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 자신이 36가정, 72가정, 120가정 등 원리적인 수를 채워 나가는 것도 그것이 공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식의 길을 여러분도 다 가야 됩니다. 이 길은 지금 가지 못하면 수십, 수천만대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다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갈 길이 매우 바쁘다는 것입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쉴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는 겁니다. 쓸데없는 세월을 보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치 20대를 전후한 처녀들이 시집 가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집을 가면 그 시댁의 가문에 적응할 수 있는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적인 분야는 물론 자기의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권위나 위치 등 전반적인 면에서 시집과 겨루어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시댁과 겨루어서 그 수준이 떨어지면 시집간 그 색시는 위신을 세우지 못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그네같이 잠깐 살다가 영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 때에는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인생이 다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출발인 것입니다.
만약 복중에 있는 아기가 태어날 때, 자기가 태어나는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아기가 복중에 있을 때는 공기가 있는 이 지상에 태어나서 호흡을 통해 생명의 요소를 공급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차원이 높은 제 2의 생명의 출발이 복종에서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벌어지는 것처럼 제3의 세계도 죽음을 통해서 육신을 벗게 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물질의 한계권내에 있던 개인이 그 한계권을 넘어서 모든 것을 초윌한 입장에서 자각된 자아로 활동하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 세계에 가는 것은 어린애가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애기가 10개윌 동안 복중에서 부모의 영양소를 받아 가지고 자라는 것처럼 이 지상에 사는 여러분도 낳아 준 부모, 땅의 부모, 하늘의 부모 이 3대 부모를 통해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가 있지요? 또 땅도 여러분의 부모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를 키워 주는 것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듯이 몸뚱이를 낳아 준 육신의 부모가 있는 동시에 마음의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부모는 하나님입니다. 이 3대 부모를 모시는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육신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3대 부모의 인연 속에 혜택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의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또한 육신의 부모가 없어도 안 되는 것이요, 마음의 영원한 부모가 없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영원하신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갈 때에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우리가 복중 세계에서 10개월 동안 부모의 영양소를 받고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부모의 사랑을 받고 가야 됩니다. 물질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정신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가야 합니다.
100년이라는 한계선 내에서 일생을 마치고 제3세계로 출발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잘 자라야 건전한 아기가 태어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도 잘 지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 이 지상의 생활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려면 여러 가지 원리적인 조건을 세워야 되는데 이런 조건을 세우지 못하고 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늙어 죽을 때까지 120명은 전도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파를 편성한 것을 보면 야곱 가정의 열두 형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열두 형제를 중심해 가지고 70식구를 형성 했으며, 이 70식구에서 다시 120문도가 생겼습니다. 이 70식구는 종족을 대표합니다. 모세 시대에는 12지파장과 70장로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움직인 것입니다.
120문도는 세계를 대표합니다. 예수님도 120문도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출발을 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못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세계를 표준하고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자기의 후손을 단계적으로 세워야 됩니다. 후손을 세울 때에는 아무렇게나 마구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대표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뭐냐? 통일교회의 36쌍, 72쌍, 124쌍 합동결혼식입니다. 36가정은 12쌍의 3배로서 3시대를 대표한 것입니다.
오늘의 '나'라는 존재는 과거의 열매요, 현시대의 중심이요, 미래의 출발입니다. 즉, 3시대를 대표한 결합체라는 것입니다. 이 3시대의 형태를 결합한 것이 36수입니다. 12수에다 다시 3시대를 곱하면 36쌍이 되는 것이요, 이 36쌍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형의 아들딸을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72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방 12수를 중심삼고 여기에 10배를 하면 120수가 됩니다. 이 120수는 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에 120가정은 세계의 모든 국가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7년도까지 유엔에 가입한 국가가 적어도 120개 국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그렇게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전부다 일치되는 때가 되면 세상의 끝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1967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다 들어맞으니 1968년도로 넘어서면서 124개 국, 125개 국으로 늘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엔에 가담한 국가 수가 맞아 떨어지지 않고는 복귀역사가 엮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식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이 땅 위에서 살 때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한 가정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 아들이 필요합니다. 이 세 아들은 동쪽이면 동쪽 한 쪽과 마찬가지입니다. 세 아들만으로는 동서남북 사방을 갖추지 못합니다. 사방을 갖추지 않고는 봄도 있을 수 없고, 여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방을 갖춘 그 기반 위에 봄도 있는 것입니다. 세 아들딸은 영계의 열두 진주문 중에 동방의 세 문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정의 기틀을 잡는 데에는 믿음의 세 아들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방을 갖추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하나의 중심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12수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그러한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 전도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종족을 대표한 족장의 입장에서 종족적인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축복을 받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천국문이 열려 있어도 예복을 갖추기 전에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120문도라든가 70문도라든가 12사도를 중심삼고 고생한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클럽이요, 하나의 탕감적인 조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수는 역사적인 조상을 대표한 종적, 혹은 횡적인 기반이 되기 때문에 절대 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120문도를 중심삼고 성신이 강림했다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세계적인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기준을 세워 가지고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막연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공식적입니다. 선생님도 이러한 공식적인 노정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 공식적인 노정을 가는 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것은 여러분을 협조하기 위한 것이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갈 길은 나라요, 세계이므로 그 길은 누구나 다 가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소모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교회가 도약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이 일치 단결하여 집중공세를 하게 되면 인적 자원이 상당히 불어날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이러한 일을 안팎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 꼭대기인 서울에서부터 전부다 눌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꼭대기인 서울에서만 잘하면 지방에 있는 기성교회는 한꺼번에 다 넘어갈 것입니다.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유명한 간부들을 한 30명쯤 세워서, 그들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알지 못하고 반대한 것을 반성한 다면서 8대 신문을 통해 성명서만 내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국에 있는 종단이면 종단, 교단이면 교단의 모든 신도들에게, '통일교회는 역사적이고도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진 교회이다. 그 교회의 진리는 이 역사시대에 학문으로도 길이길이 남을 엄청난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을 몰라보고 반대한 과거를 뉘우친다. 동시에 미래에 있어서는 새로운 의미에서 통일교회를 환영한다'는 사죄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홱 돌아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여러분은 전도할 기회가 없습니다. 기성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돌아서게 되면 거기서 전도하던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들의 믿음의 자녀로 세우지 여러분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리란 무엇이냐? 원칙적인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할아버지도 타고 넘어갈 수 없고 선생님도 타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원리의 길은 밟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이요,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조상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시 찾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입니다. 알겠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길은 영적인 사탄과 세상적인 사탄, 즉 영육을 중심삼은 천주적인 사탄과 싸워 승리해 가지고 밟아가는 길이지만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사탄도 없고, 국가적인 사탄도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전도한다고 누가 반대합니까, 안 합니까? 안 하지요? 여러분에게는 천주사적인 사탄도 없고 국가적인 사탄도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에게는 개인적 사탄, 가정적 사탄, 종족적 사탄, 민족적 사탄. 국가적 사탄, 세계적 사탄, 그리고 천주적인 사탄 등 모든 사탄이 총공세를 취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공격당하는 마당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홀로 이것을 전부 다 꺽어 내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닦아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처럼 사탄에게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갈 길을 닦아 나가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통일교회를 믿지 않으면 진짜 지옥가는 것을 알아요, 몰라요? 틀림없이 지옥에 가게 됩니다. 형님, 누나, 동생, 어머니, 아버지, 사돈의 팔촌 할 것 없이 통일교회를 믿지 않으면 진짜 지옥갑니다. 그것을 확신합니까? 확신해요, 안 해요?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옥이란 곳은 한번 걸려들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친척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고 그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가 진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의 감옥에만 들어간다고 해도 울고불고하면서 별의별 짓을 다 해서라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인정이거늘, 하물며 천정으로 맺어진 아들딸이, 자기의 부모와 친척, 형제와 자매 모두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간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여러분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원리가 있긴 있는데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알아요, 몰라요? 희미하지오? 틀림없이 희미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어 보면 아는 것입니다. 죽어 보면 대번에 알겠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죽은 부모들이 영적으로 나타나 전도를 많이 합니다. 자기들이 통일교회에 다니는 아들을 반대하다가 죽어서 영계에 가 보니 큰일 났거든. 그래서 영적으로 나타나 가지고 전도하는 영인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3세계에서 걸리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자기의 아들딸이 통일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여 못 가게 만들면 3세계에서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상세계에서 있는 정성을 다 들여 선한 선조의 이름으로 특사를 받아 가지고 자기의 자식에게 나타나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무나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계에 가서야 통일교회가 엄청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모르지요?
통일교회는 그저 뭐 이렇게 모였다가 헤어지는 것이지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금을 그으면 영원히 그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을 닫으면 영원히 열 자가 없고, 열면 다시 닫을 자가 없습니다. 땅에서 맨 것은 땅에서 풀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맨 것은 여러분 자신이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를 하는 데 있어서 이제는 다른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믿음의 아들딸을 찾아 세워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갔지만, 이제 그 책임을 다한 뒤에는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붙들고 통곡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뜻을 알면서도 자기 부모를 전도하여 뜻 앞에 세우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고 죽지 못합니다.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자기가 원하는 선하고 좋은 아들딸로 키워 놓지 못하면 눈을 감고 죽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꿀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들딸이지만 뜻적으로 보면 부모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천지개벽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들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의 자리에 들어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한테 경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래서 천지개벽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등하던 사람이 달리다가 돌아서면 꼴등입니까, 일등입니까? 「꼴등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뒤로 돌아서면 천지개벽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을 보게 되면 부모가 부모의 위신을 세우지 못하는 때요, 조상이 조상의 위신을 세우지 못하는 때요, 나라가 나라의 위신을 세우지 못하는 때입니다. 전부 다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누가 부모를 알아 보고 자식을 알아 봅니까?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습니다. 전부 다 육신을 중심삼고 살면 되는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중심삼고 돌아서야 되는 줄 알고 있으니 세상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붙들고 통곡해야 됩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살리시렵니까, 죽이시렵니까?' 라고 외치며 통곡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국가적인 사탄을 막아 놓은 후에, 그 다음은 자기 종족을 붙들고 통곡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 사람은 부모에 대해서는 효자요, 나라에 대해서는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완전하지 못하고 나라가 완전하지 못한 것을 알면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효자가 되어야 하고, 충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효자, 충신이 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도를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되겠습니다」 몇 명까지 해야 됩니까? 「120명까지요」 120명까지 하려면 40년 잡고 1년에 세 명씩은 전도해야 합니다. 1년에 정확히 세 명씩 전도를 하더라도 40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40년을 10년으로 탕감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40년 걸려서 하겠어요, 10년 걸려서 하겠어요? 「10년이요」 40년을 10년으로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랬지요? 그 10년 동안 하나님께 온갖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천상세계에 가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기의 부모를 위해서 10년 이상 정성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요, 나라를 위해서도 10년 이상 정성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최소한 10년의 단위는 가져야 합니다. 10년 동안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면 120명입니다. 이 120명을 위해서 나의 있는 열과 성을 다해 혼신의 힘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세계를 위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위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구를 사랑해야 할 것이냐? 예수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면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라도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 대상자를 놓고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해 봤어요?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혹은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통곡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안 해봤으면 해봐야 돼요. 밤을 새워 가면서 통곡을 해야 합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도 아까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옷이나 집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입장에서 6천년 동안 역사를 넘고 넘어서 천년을 하루같이 세월을 잊어버리며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지옥가면 좋겠어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나가는 나를 반대했으니 지옥 가서 고생해도 싸지' 하는 아들딸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형제일지라도 그런 마음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뜻길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대개 통일교회 원수는 누구냐? 부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한 것입니다. 집안 식구 가운데서도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원수가 되고, 사랑하는 친구 또는 형제가 원수가 되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부모를 복귀해야 되고 형제를 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을 복귀하려면 그 환경 가운데서 제일 중심이 되는 사람을 복귀하면 빨리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사탄은 복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쓰면서 시비를 걸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비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가면 그 부모도 '야, 할 수 없구나. 너한테 졌다!' 하고 자연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도 '야, 그녀석 용하구나. 내가 과거에 잘못했다'고 하며 자연굴복하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반대하던 형제들도 '아이구 잘못했구나' 하면서 자연굴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천국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주관할 수 있고 자기가 살 수 있는 천국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나가면 반드시 부모가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가깝습니까, 원수입니까? 본래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제일 가까워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맨 막내 아들입니다. 그렇지요? 기성교회는 통일교회에 대해서 형님들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막내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형님들이 미워하고 있고, 그 막내 동생을 죽여 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여러분, 요셉의 역사 알지요? 요셉이 누구의 아들입니까? 「야곱의 아들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몇째 아들입니까?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마찬 가지로 요셉의 열 명의 형님들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시기해서 애급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요, 안 받아요? 「받습니다」 얼마나 받습니까? 몽땅 받지요? 사랑이란 건데기는 전부다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는 통일교회가 받아 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은 기성교인들한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었습니까? 사랑을 나누어 주라고 했는데 주먹을 나누어 주고 교만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전도할 때 말이예요. 엊그제만 해도 '아이구 목사님, 안녕하십까? 하면서 슬슬 끌려 다니던 사람이 통일교회 원리말씀을 듣고는 '그 목사님 뭘 모르는구만' 하면서 기성교회에 찾아가서 '목사님, 타락이 어떻게 해서 됐는지 알아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목사님이예요?' 하면 그게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살리는 거예요? (웃음) 그게 사랑입니까? 전부다 사람 잡는 백정 노릇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미워 죽겠는데 교만하게 머리를 쳐들고 껍적거리니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렇게 행동하니 미움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벨이 있지요? 아벨을 좋아해요, 가인을 좋아해요? 「아벨입니다」 나는 가인도 좋아하지 않고 아벨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아벨이 가인, 즉 형님과 함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만 받고 형님의 제물을 안 받으셨더라도 형님을 순하게 대해야 했습니다. 형님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아버지, 왜 내 제물만 받았습니까?' 하면서 울고 불고, 형님에게 가서 '나의 제물만 받은 하나님은 싫습니다'라고 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틀림없이 가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제물을 똑같이 준비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쳤을 것입니다. 가인은 곡식을, 아벨은 양을 1년 동안 정성들여 가지고 바쳤을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것은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누가 정성을 더 들였나 하는 문제를 떠나서 제물을 받고 안 받고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물만을 받으시니 자기가 잘나고 하나님이 자기만을 좋아하셔서 받은 줄 알고 '형님, 보소. 내 제물은 받으셨어' 그렇게 자랑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가만히 있는 가인의 얼굴이 왜 홍당무처럼 시뻘개졌겠어요? 아벨이 가만히 있었는데도 그랬겠습니까? 틀림없이 아벨은 가인 앞에 가서 '형님이 뭐야. 내 제물을 받았지' 하며 쌀랑거리고 깐족거렸을 것입니다. 아벨은 교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아 죽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인은 아벨이 되어야 하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이 됐어요, 안 됐어요? 돼 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쳐들고 '기성교회 목사가 뭐야? 타락이 어떻게 됐다고? 뭐 선악과 따먹고 됐다고? 목사인 당신들도 우리 아니면 이런 문제는 모르지 않느냐?' 하면서 교만하게 구는 것은 맞아 죽은 아벨의 행동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통일교회는 망합니다. 여러분이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선생님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밖에 나가서 그렇게 하고 다녔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 동안 60년대에 전도한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 전도했어요,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라는 거야. 「구원하기 위해서요」 여러분이 기성교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했어요? 자랑하기 위해서 전도했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많은 사람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왜 전도가 안 되느냐? 죽어 넘어진 아벨과 같은 무리들이 나가서 전도하니 전도될 것이 무엇입니까?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종교인은 온유겸손해야 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온유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아벨이 될 수 있는 위치는 온유겸손한 자리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모든 것을 다 빼앗겼어도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알겠어요?
성경을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요? 이 말씀을 이해해야 됩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되느냐?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탄이가 이러자면 이러고 저러자면 저러는데, 대관절 어떤 이유에서 그러시느냐? 목사들한테 물어봐도 하나도 모릅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면 하루 저녁에 다해치워 버리지, 왜 6천년 동안 이러고 계시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 어떤 영문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와 가지고 물리며 쫓기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원수 중에서 제일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셨는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알고 싶어요? 「예」 책임도 못할 텐데 알아서 뭘 하겠어요? 책임을 하겠어요? 「예」
말을 들어 보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꿀이 아무리 달콤하다지만 먹어 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먹어 본 사람은 알지만 먹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그러시느냐? 이건 원리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 되어서 선생님이 그런 자리를 넘어갈 수 있는 때이므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태초에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담 해와는 자녀요, 천사장은 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기 전에 천사장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어느때까지냐? 사람이 완성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상속받을 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는 사랑을 받는 것이 천사장의 권한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천사장은 사랑을 받아야 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사랑을 받고 충성하는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는 효도를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사람이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상속받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천사장을 사랑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못 했지요? 못 했으니 천사장에게는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받기 전에는 나에게 딴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원귀는 자기가 가야 할 곳도 못 간다는 말이 있지요? 처녀가 죽으면 처녀귀신이 됩니다. 이렇듯 천사장에게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못 받은 것이 아닙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의 사랑은 받아 봤어요? 천사장이 사람의 사랑을 받아 봤겠어요, 못받아 봤겠어요? 「못 받아 봤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그렇게 보면 천사장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에게도 천사장은 종인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사람이 종을 사랑해 봤느냐? 해봤어요, 못 해봤어요? 절대로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사람이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절대로 통과하지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사람 중에 참다운 사람은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담의 대신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천사장을 종으로서 사랑하던 그 기준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해방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천사장을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지 못했고 아담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 즉 사탄이를 원수같이 대하지 않고 충신인 천사장으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이 땅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이 자리를 못 잡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를 사랑하라 했느냐? 이러한 법도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네가 지금은 원수이지만 본래는 천사장이 아니냐?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원수의 입장에서의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종이요, 네 종이 될 수 있는 천사장의 입장으로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 죄를 용서하고 너에게 복을 빌어 주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이라는 것을 전부 다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기 전에는 사탄을 마음대로 주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악한 세상이 6천년 동안 연장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있어서 아담의 자리는 아벨이요, 천사장의 자리는 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천상세계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벨로서 가인을 절대적으로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상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해돼요? 이것이 공식입니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종교가 이 문제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는 왜 희생하고 봉사하라고 하고, 주고 또 주라고 하느냐? 그것은 천사같의 위치에서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을망정 세계를 걸어 놓고 세계적인 아벨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가인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 가야 할 인륜의 곡절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풀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희생당해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혼자서 못 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때에도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 하여금 '당신을 내가 사랑했던 것보다도 당신이 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라고 하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못 올라갑니다. 이것이 공식이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한테는 수많은 원수가 있습니다. 나의 본래의 성격으로 볼 때는 한칼에 다 잘라 버렸을 겁니다. 선생님의 말이 빠른 것을 보세요. 분한 건 못 참습니다. 옳지 못한 걸 보고는 못참습니다. 이처럼 끝에 오를 수 있는 성품이 있지만, 이 원리를 중심삼고 맨 밑창에 들어갈 수 있는 , 극에서 극으로 통하여 가지고 극복할 수 있는 내재적인 자제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수많은 원수가 있지만 1969년도를 넘어서면 다 용서해 준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 말 들어 봤지요?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원수를 사랑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아벨의 기준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가인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적인 아벨의 기준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종족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종족적인 아벨은 종족적인 가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아벨적 종족입니다. 기성교회는 가인적 종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단적인 입장에 있어서 기성교회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치고 가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성교회를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가지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장로 같은 사람도 우리의 원수 입장에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내가 많은 노력을 해 가지고 빼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벨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것을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 나라와 가인 나라가 있어야 되겠기에, 삼팔선을 중심삼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 나라인 북한이 아벨 나라인 남한에 굴복하지 않고서는 세계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십시오. 국가도 둘로 갈라져 있고 땅도 둘로 갈라져 있지 않습니까? 세계도 크게 보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 갈라진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접선된 곳이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통일은 세계 통일의 하나의 방안이 될 것입니다. 이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운동이 통일교회 운동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여러분 전부가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고, 아내와 남편이 갈라져 있고, 가정과 가정끼리 갈라져 있고, 친척과 친척끼리 갈라져 있습니다. 동네도 김씨 문중이 사는 동네와 박씨 문중이 사는 동네가 서로 등을 돌리고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둘 중에서 어느 동네가 흥할 것이냐? 아벨적인 동네, 양보하고 희생하는 동네가 흥하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동네는 그 동네에 흡수당하는 것입니다. 자연히 굴복해 머리 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 굴복시키는 비법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그것은 왜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했고, 사람이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부모가 사랑하던 그 기준을 대신 상속받아야 할 입장이었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한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그 사랑을 받을 때까지 조건을 들고 나와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자기의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는 하였지만, 원수를 갚으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에 처음 나온 사상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사상을 중심삼고,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아벨적인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이루고, 영적으로나마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는데 그것이 민주세계입니다.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살을 깎고 피를 흘리며 발전해 나왔습니다. 어때요? 피를 흘리면서 발전해 나왔어요, 피를 흘리게 하면서 발전해 나왔어요? 「피를 흘리고 발전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천사장을 사람해야 할 하나님의 입장과 인간의 입장이 아직까지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탄이 참소하는 대로, 하자는 대로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은 아벨입니까, 가인입니까? 「아벨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첫째가 뭐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엇이냐? 가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벨이 나올 수 없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첫째는 뭐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사랑을 받아요? 받아요, 못 받아요? 「……」 하나님의 사랑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세계적인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 받아 봤어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종의 살이라고 하는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는 말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으면 세계를 상속받는 것이지요? 「예」 그래, 여러분이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상속받았지만 세상은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누가 상속을 받았느냐? 가인이 상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가인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하늘나라를 상속받은 다음에 세상의 가인이 보증하는 영수증을 받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려면 사탄의 영수증을 받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 인간은 이 두 원칙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알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이 있습니다. 알았으니 이를 악물고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되느냐, 원수인 가인까지 사랑해야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무슨 원수냐? 사랑의 간부(姦夫)입니다. 간부가 무엇입니까? 통일교회 협회의 간부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한 간부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을 자고 있는데 들어와서 아버지를 때려 죽이고 어머니를 겁탈한 도둑놈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하는 해와, 하나님의 실체적 상대인 해와를 겁탈한 사랑의 원수입니다. 즉, 간부입니다. 이러한 간부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의논합니까, 안 합니까? 의논합니다.
그런 간부에게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넘겨 주고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려면 용서해 주는 정도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정도 가지고 사탄이 고맙다고 하겠어요? 둘도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원수에게 넘겨 주고도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까지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마지막 고비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천국간다고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은 기성교회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성경에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지만, 통일교회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자기의 사랑하는 애인까지도 원수에게 넘겨 주고 축복해 주라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고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속을 썩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원수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겹쳤느냐? 어디에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느냐? 아들딸을 중심삼고 겹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친구를 중심삼고 겹쳤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복귀할 때에는 가정에서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혼한 아담 해와를, 곧 가정을 이룰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한 말은 천리에 통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부모를 부모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들은 거짓된 혈통을 이어받은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앞에 옳지 못한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부모라고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 가지고 가인 그룹과 아벨 그룹이 생김으로써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둘째로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가인이 있어요? 「기성교회요」 기성교회는 종족적인 가인입니다. 그들은 단체지요? 몇백명 이상 되지요? 그게 가인입니까? 개인을 두고 볼 때는, 몸이 가인이고 마음은 아벨입니다. 따라서 마음은 몸을 위해야 합니다. 자기가 영원히 멸망해 버릴 길을 가는 것도 모르니 얼마나 불쌍하냐며 몸을 붙들고 통곡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남성과 여성 중에서 누가 가인이고 누가 아벨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중심삼고 더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인을 사랑해야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의 입장에 있었던 아담이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탕감해야 된다는 원칙을 중심삼고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아벨 가정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벨 가정이 되려면 가인 가정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벨 가정이 결정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믿음의 아들딸을 세워 가지고 그들이 축복받을 수 있는 외적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야 아벨 가정의 위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어요, 안돼 있어요? 선생님이 그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원칙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1970년대는 어떤 시대냐? 가정을 중심삼고 규합할 때입니다. 1960년대는 개인으로 탕감할 때였지만 이제는 가정으로 탕감할 때입니다. 가정적 아벨을 세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적 아벨을 중심삼고 종족적 아벨권을 만들려고 하니 가정적 가인권에 있는 기성교회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남이 모르는 가운데 기성교회를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처자들에게 먹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교인들은 먹이지 못하고 고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최고의 모든 것을, 자기의 생명까지라도 그들을 위해 주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놀음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수많은 종교를 규합하여 종교협의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를 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 중심삼고 나라를 위하는 데에 선두에서 '우리를 본받아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나라의 울타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이 나라의 시련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종족적인 아벨이 종족적인 가인을 거느려 가지고 하나가 되면 여기에서 민족적인 아벨이 출현하게 됩니다. 민족적 아벨이 출현하게 되면 민족적 가인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기독교가 아닙니다. 수많은 종교 단체입니다. 따라서 이 수많은 종교 단체를 하나로 규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종교보다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자기의 제일 귀한 것을 전부 제물삼아 가지고 줄 수 있는 입장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면 천명에 의해 하나되는 것입니다. 끌려오게 되는 것이요,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굴복해서 하나되면 그것이 민족적인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은 아벨 입장인 유대교와 가인 입장인 이스라엘 나라(정부)와 하나되었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독교와 정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아벨 국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벨 국가가 되려면 반드시 가인 국가가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가인이 없이는 아벨이 나라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한은 북한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은 인민군 이상으로 강하고 철두철미한 사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들이 총부리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일시에 해치울 수 있을 만한 힘을 갖추어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 통일교회가 요구하는 국가관입니다.
악한 영들은 아벨의 힘이 약하면 반드시 쳐들어옵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이국 민족끼리 가인 아벨 복귀섭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배경이나 생활 내용이 같은 한 민족으로서 가인 아벨의 기준을 세워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아벨 국가가 등장하면 가인 국가가 있어야 하겠지요? 이때부터는 국가를 찾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기 때문에 국가 기준까지 올라가게 되면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인 아벨 희생시대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종적인 기준이 세워지면 횡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복귀는 세계복귀가 목적이지요? 「예」 그래서 세계복귀를 위한 하나의 주체적인 기준이 세워지면 횡적인 기준으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가인 아벨의 관계가 아니라 아담형과 해와형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장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해와를 사랑했어요? 못 했지요? 아담이 해와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해와 국가를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아담 국가는 해와 국가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끼리 사랑하는 것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을 사랑한 다음에는 해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일본을 해와 국가로 세워서 지금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국가는 어느 나라냐? 해와 국가가 있듯이 천사장 국가도 있어야지요? 그래서 천사장을 횡적인 입장, 동등한 자리에 세워 하나 되게 해야 사탄이 굴복하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참소의 조건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천사장격인 나라로 중국을 세워 가지고 복귀해 나가려는 것이 하늘의 전법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 모르지요?
여러분은 단계적으로 가인을 굴복시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사랑함으로써 몸을 자연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몸을 진정 사랑했다는 원칙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요? 그래서 내가 통일교인들을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통일교인들은 못먹고 못입고 못 자고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누굴 더 사랑해야 하느냐? 통일교인들은 누구를 더 사랑해야 하느냐?
아벨이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고요? 「가인요」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피눈물로써 그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높은 사랑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굴복시킬 수 없으니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기성교회를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북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이북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원리적인 관이 딱 서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전부 다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서 왜 지금까지 6천년 동안이나 시시하게 이렇게…. 그게 무슨 하나님이야?' 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과거의 입장이 영육 아울러 복귀원칙에 따라서 세계를 복귀시킬 수 있는 세계적인 대표자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6천년 아니라 6만년, 60만년, 6억만년으로라도 연장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운명을 지금까지 끌고 나온것입니다.
이런 걸 보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나온 것이,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거 여러분이 알기나 해요? 여러분에게 다이아몬드를 보여 주어도 가락지로밖에 안본다는 거예요. 모든 사회 원칙과 역사 발전의 요인이 전부다 여기에서 기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아벨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안 되어야 하겠습니까?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의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인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세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 가정이 필요하고, 3대 그룹이 필요한 것입니다. 36가정은 12가정이 세 개씩 모인 거죠? 전부 다 그렇게 나갑니다. 이처럼 세 종족을 굴복시켰다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평면적인 새로운 행운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권내로 들어오기 때문에 120가정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70가정을 거쳐 120가정으로…. 얼마든지 횡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때가 통일교회의 시대로 많이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수원경찰서의 정보과 요원들을 수택리 수련소에 보내 수련시킬 계획을 경기도 경찰국과 짜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보계 형사들이 와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 정보계 형사들이 그저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얼마나 이를 갈고 안달이었습니까? 우리가 무슨 밥을 달라고 합니까, 옷을 달라고 합니까? 원수도 아닌 우리를 괜히 미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혹시 부산에 간다고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부산에 간다고 부산으로 연락해 놓습니다. 그저 못 미더워 가지고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요전에는 통일교회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잘됐어요, 못됐어요? 그런데 그들과 항상 싸움해 가지고 이렇게 됐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습니까? 사랑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 앞에는 자연굴복하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한다 하는 사람들이 자꾸 선생님을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만나고 싶으면 자기들이 찾아오라는 거예요. 그 대신 그들이 갖지 못하는 하늘의 사랑을 나눠 주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해야 만나는 것이지 그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나 주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신문사 사장도 '통일교회 문선생 한번 만납시다'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필요해서 만나자고 하는 것을 뭐 하러 만나 줍니까? 내가 필요해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장사꾼의 앞잡이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싸구려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을 보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중에 거리에서 뛰어 놀기나 하던 철부지들이 여기에 와 가지고 선생님 말도 다 듣고, '어허,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구만' 하고 생각들을 하겠지만 선생님이 고자세를 취해야 할 때는 취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신과 권위를 세워야 할 천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알았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가운데 누가 가인 부모입니까? 가인 부모가 있어요, 없어요? 가인 부모가 없어 가지고 아벨 부모를 복귀할 수 있어요? 대답해 보세요. 「없습니다」 아벨 부모를 복귀하려면 가인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인 부모보다 나아야 돼요, 못해야 돼요? 가인 부모보다 나아야 되겠기 때문에 가인 부모가 여러분을 치는 것입니다. 가인 부모들은 여러분을 무릎을 꿇게 하고 '이놈아, 부모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해? 하면서 별의별 얘기를 다하는 겁니다. 그거 다 들어 주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부모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패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집도 버리고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 나온 사람들이 많았지요? 도망 나와 보았던 사람들 손들어 봐요. 그런 경력 있는 사람들 손들어 봐요. 여기에도 많을 것입니다. 못 살겠으니 도망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부일 겁니다. 남편과도 같이 못 살겠다 이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 심정을 통일교인들은 알지요? 여기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이 웃는 것을 보니 나하고 통하는 것 같구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먹구구가 아니고 원리적입니다. 딱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과학적입니다. 과학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가설을 중심삼고 풀이한 것이 현실과 들어 맞으면 과학적입니다. 여러분이 과학을 보았어요? 원자력을 보았어요? 중성자를 누가 봤어요? 그거 다 실험해봐 가지고 맞으니 과학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가설이 맞게 될 때는 과학적이라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내가 말하는 것이 가설이에요? 진실입니다. 그러니 과학 중의 과학이 틀림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아벨 부모를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까?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벨로서 세상의 효자 이상의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가인 세상의 어떠한 효자보다도 나은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천지가 생겨난 이후에 있었던 모든 효자 가운데 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효자 왕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충신 가운데 충신 왕이 나다'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들들이 다 부모 앞에 효자가 되고 나라 앞에 충신이 되면 하늘 앞에 사랑받는다고 했어요, 못 받는다고 했어요?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받는 대상은 누구냐? 가인 아벨입니다. 이렇게 가인 아벨이 바로 서면 아벨 부모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받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가정이 지금까지 복잡하게 왔다갔다하게 된 것은 탕감해야 할 내용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사랑받고 나서게 되면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서 타락했던 것과 같은 권내에 서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권내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타락 하지 않은 권내에 서 있고 여러분의 육신의 부모는 타락권내에 있는 천사장의 입장이기 때문에 굴복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몰린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가야 할 탕감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반대도 받고 다 그러는 것입니다. 더 깊은 얘기를 하면 여러분은 못 알아들을 겁니다.
여러분은 아벨 부모와 아벨 형제가 있어요? 아벨 개인, 아벨 가정, 아벨 종족, 아벨 민족, 아벨 국가, 아벨 세계가 있어요? 「없습니다」 그 반면에 가인 개인, 가인 가정, 가인 종족, 가인 민족, 가인 국가, 가인 세계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아벨 국가와 가인 국가중 어떤 것이 큽니까? 「가인 국가가 큽니다」 아벨 국가 있어요? 아벨 세계 찾았어요?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가인 세계를 앞에 놓고 아벨 세계를 창건해야 할 천명을 받은 아벨의 사명을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이것이 통일신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신도들은 나라를 넘어 세계로 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세계 선교를 위해 무한히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왜 그러느냐? 앞으로 따라올 통일의 영신(靈神)들, 귀신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은 국가 기준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국가적인 발판을 닦아 나오고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오고 종교적인 발판을 닦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종교 사회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가담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틀림없습니다. 어떠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반드시 선생님의 계획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을 반대하는 가인이 아니라 하늘을 위할 수 있는 가인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혈투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잠만 자고 있어요. 그러면 벼락을 맞아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선생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선생님을 이용해 먹는 귀신들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협조하고 보조하면서 가자고 하면 가고, 오자고 하면 와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선생님이 700쌍을 축복해 주고 전체 부인들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 부인들이 3년 동안 동원하겠다고 선생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에 약혼한 사람들 약속했어요, 안 했어요? 똑똑히 대답해요. 했어요, 안 했어요? 「했습니다」 3년 동안 동원되는 것은 공식입니다. 그렇다고 그 부인들을 팔아 먹지는 않아요. (웃음)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아벨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아벨 민족과 아벨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망하게 됩니다. 남자는 여자를 앞장세우고 가지 않으면 못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지금까지 대부분 여자가 많이 믿었고 여자의 정성으로 말미암아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남자들은 전부다 등쳐 먹었습니다. 통일교회도 지금 그렇습니다. 남자는 전부 다 어영부영하는 판이니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중간치들입니다. 남자들은 절반은 도적놈 심보를 보따리에 싸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여자의 편을 들다 보니 지금까지 욕을 먹었습니다. 여자들이 선생님을 죽자 사자…. 그렇다고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짜 좋아하거든요. 진짜 좋아요? 「예」 자기 남편이 기분 나빠해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뭐 세상이 다 그런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은 절대적으로 듣게 돼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죽으라면 죽을 수 있는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다고 자기만을 위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생명 문제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세상의 남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세상에 별의별 소문이 다 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문이 나도 좋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이 선생님이 얘기 하는 것을 안 들으면 뺨도 갈깁니다. 또, 자기 남편이 못 하는 얘기도 나는 다 한다 이거예요. 그런 걸 보면 '얼마나 가까운 사이길래 저럴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해도 좋습니다. 그래, 통일교회 여자들, 선생님 말을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듣겠습니다」 전부 다 눈을 보니 자기의 신랑 생각만 하고 있구만. (웃음)
재미 있는 얘기가 있어요. 옛날 선생님이 일본 동경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21년 후에 다시 보자고 기도하고 건너왔습니다. 그 뒤 21년 만에 다시 일본에 갔었지만 그때는 일본 천황도 내게는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때려잡기 위해 지하운동을 하면서 공산당과 한패가 되어서 합동작전을 한적도 있습니다.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선생님의 꽁무니에는 언제나 형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내가 한국에 나오게 되면 그들이 한국에 미리 전화를 해서 아무개가 지금 한국 어디에 간다고 연락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정거장 개찰구를 나오면 원치 않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지금 오시냐고 합니다. 그런 일을 지금까지 해 왔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그런 사상을 가졌기에 거지놀음까지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우리 동지들은 관동에 가서는 국경을 넘기 위해 짐 싣는 열차에 거꾸로 매달려 15시간 이상을 타고 다니는 놀음을 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통일교회 역사가 어떠한 배후를 가졌는지 알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먹고 살던 그 시시한 누더기 짜박지, 그 판에서 그냥 놀아나고 그냥 거기서 출발해서 삼킬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 고마운 것은 가인적인 세계가 있는 것이요, 가인적인 국가가 있는 것이요, 가인적인 단체가 있는 것이요, 가인적인 가정이 있는 것이요, 가인적인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마운 것입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세계로부터 개인에게 이르기까지 이것이 일목요연하게 평면적인 권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20세기의 현재의 세계입니다.
세계는 지금 민주와 공산으로 갈라져 대결하고 있고, 모든 주권국가는 전부다 안팎으로 분립되어 야당과 여당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또, 야당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으며 여당 역시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전부다 가인 아벨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까, 흥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까?
이것을 반드시 하나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그 일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되게 만들어야 되겠어요, 안 만들어야 되겠어요? 여러분들은 하나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안 되었으니 두들겨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만들어 달라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년 제사를 드려서라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전부 다 가르쳐 주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뭘 모르기 때문에 얼간이가 되어 가지고 망신당하고 흐지부지하는 것입니다. 그것 가르쳐 주면 좋겠지요? 여러분은 도둑놈보다도 욕심이 많아요, 하지만 도둑놈이라도 담을 쌓아 놓고 갈 곳이 없도록 만든 다음에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앞으로 학문적인 면에서도 세계사를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우리 통일원리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같이 형편없는 패들이 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아야지요. 유치원인지 대학인지 알아야지요. 마치 유치원생을 대학원에 갖다 놓아도 유치원 정도로밖에 모르는 격입니다. 그러니 기가 막히다 이겁니다. 내가 생각을 해도 철부지한 여러분을 데려다 놓고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기가 막힙니다. 학박사들을 데려다 놓아도 시원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들이라면 당장 일 시켜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빌어먹던 찌꺼기들만 모여 가지고….
선생님이 방향을 제시하면 오순도순 따라서 움직일 줄이나 알면 좋겠는데 그 주제에 그것도 못하겠다니…. 벼락을 맞는다는 거야. 벼락 맞을래요, 안 맞을래요? (웃음) 벼락을 맞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못난 모습이라도 벼락 맞으면 안 됩니다. 병신 자식이라도 자식이라는 명사가 붙었으니 죽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걸 가르쳐 준 것입니다. 참부모니 무엇이니 자식이라는 내용을 내가 가르쳐 주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고질입니다. 병신 아들이라고 해서 없애 버리겠어요, 죽여 버리겠어요? 그러면 우리 부모는 불쌍한 부모니 부모가 고생하기 전에 내가 고생을 맡아 가지고 병신 학춤 추듯이 학춤 추는 노릇이라도 대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될 텐데 그것도 못 하겠어요? 그래 가지고는 비료통에도 못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고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40평생을 고생하면서 걸어 나왔고, 일생을 이 문제를 놓고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고 있을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는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산에서 구멍을 뚫는 착암기라는 기계가 있지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잠을 자고 있지만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멍을 뚫어 가지고 거기에다 다이나마이트를 집어 넣는 것입니다. 이번에 수택리 수련소를 짓는 것도 내가 코치를 한 것입니다. 전부다 꿈도 꾸지 못했는 데 한 달 이내에 지은 것입니다. 이제는 심지를 달아 놓고 내가 거기에 불만 붙이면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로 2천만 원이 도망갔지만 2천만 원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몇억을 한꺼번에 몰아 오려면 2천만 원 정도는 훅 불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나이가 가는 길이 그런 것입니다. 몇 천년 동안 공을 들여서 모은 재산을 한번 웃음으로써 일시에 흘려 버릴 수 있는 배포가 사나이에게는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손해나는 작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봐요, 선생님의 생김새가 어떻게 생겼나. 눈을 보라구. 허술한 데가 있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라가는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봐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욕은 좀 먹고 부사스럽기는 하지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봄바람이 불게 되면 산불도 나는 것입니다. 그런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정상의 코스를 걸어가면 여름이 곧 오는 것입니다.
봄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봄으로 끝나면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봄이 가면 여름이 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름도 그냥 여름만으로 끝나면 망합니다. 가을도 그냥 가을로 끝나면 망합니다. 여름 다음에는 가을이 오고, 가을 다음에는 겨울이 와야 됩니다. 이렇게 춘하추동의 사계절을 거쳐야만 사방성을 갖춘 모든 요소가 배합되고 완전한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사계절을 다 살아 보았기 때문에 북극에 가서 산다고 해도 얼어 죽지 않습니다. 남극은 물론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기후는 세계 기후의 표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거적을 뒤집어쓰고 살더라도 한국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여러분, 한민족을 배달 민족이라고 하지요? 배달 민족이 무엇입니까? 배달부라는 말이 있지요? 배달민족 할 때 달(達)자는 통할 '달' 자지요? 「예」 배달부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소식을 전하는 연락병입니다. 그러니 이 민족은 세계에 소식을 전하는 연락병이라는 것입니다. 이름이 참 잘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다 원리적입니다. 또 백의민족이라고도 하지요? 백(白)이란 것은 평화를 상징하지요? 누구나 밤이나 낮이나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색이 흰색입니다. 빨강색이나 노란색은 밤에는 표시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밤에 표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백색뿐입니다. 그래서 백의민족이 세계의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냐? 표준 주의입니다. 배달부 노릇하자는 주의입니다. 무엇을 배달하는 배달부냐? 하나님의 사랑을 배달하는 배달부입니다. 세계 만민이 하나님의 사랑의 보따리를 가져 오기를 고대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고대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전부다 배달부 노릇을 하라 이겁니다. 사랑의 배달부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먼 곳에 간 아들을 고대하는 부모의 심정과 마찬가지입니다. 고대하는 그 심정은 떨어져 있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배가(倍加)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 그리고 형제를 그리워하는 우애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왕래가 두절되면 두절될수록 더 간절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두메 산골 어디든지 깃발을 꽂아 가지고 새로운 소식과 더불어 사랑의 선물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근사하지요? 통일교회는 노도가 밀려오는 황막한 바다에서 암초에 부딪치지 않게 해주는 하나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세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배달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배달민족을 배달부 민족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수원통일교회 교인은 수원통일교회 배달부입니다. 그러니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주기 위해서는 전도 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전도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전도 안 하면 망합니다. 망하고 싶으면 전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인을 찾지 못한 사람은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더라도 가인이 없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절대 혼자서는 가지 못합니다. 둘을 갖추어야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와 형제를 갖추고 사위기대를 복귀하여 가야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필요한 것만 다 발견해서 발표했기 때문에 젊은 남성들 중에는 문선생을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한 것들만 전부다 붙여 가지고 팔아 먹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종교 사기꾼은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살기 위해서는 전도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해야 됩니다」 천국이 누구의 천국입니까?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천국입니까? 만약에 천국이 문선생의 천국이라면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빌린 천국에 가서 살거예요? 하루 살고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늘 이만큼 살았습니다' 했을 때 내일은 안 된다고 하면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천국이 선생님 천국입니까? 내 천국이 되어야 하겠어요? 누구의 천국이 되어야 하겠어요? 바로 자기의 천국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에 성이 다른 사람이 2백 명 있으면 2백 명의 천국이 다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자기의 천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 천국을 만들려면 때로는 감옥이라도 가야 됩니다. 못 하겠으면 죽으라는 거예요. 이런 모습으로 그냥 죽으면 이 다음에 저 나라에 가서도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나라에 가서도 '아이구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선생님을 따라다닐 텐데 그 꼴을 어떻게 보겠어요. 나도 인정이 많은 사람 이라서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죽기 전에 때려서라도 내몰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지만 무정하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가인을 찾아 나서는 길을 가게 하려면 세계적인 고비까지 내몰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적 가인을 타개시킬 수 없겠기에 나를 그러한 자리로 무자비하게 내몰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한 자리에 나가도록 하기 위해 나를 크게 만들기 위해 할 일 못할 일 다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사람이 와서 우물우물하면 눈치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압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선생님은 안팎을 중심삼고 어느 친구보다도 여러분에게 가까운 친구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니 사랑의 높고 깊은 인연의 중심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더라도 필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알아보세요. 죽어 보면 15분 후에는 다 알게 됩니다. 「죽으면 올 수가 있어야지요」 (웃음) 죽은 사람이 다시 온다면 큰일나지요. 전부 다 그렇게 해보면 선생님이 필요없게요? 죽어 보고 나면 자연히 믿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선생님이 필요하겠어요?
지금은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아무리 연구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정보국이니 치안부니 하는 곳에서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를 연구했지만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제3노선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밖에는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 맛이 있습니다. (웃음)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죽을둥살둥 반대를 해도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부모가 암만 큰소리 해보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 어머니가 미치광이가 돼도 통일교회 안 믿겠다고 하게 되어 있지 않거든요. (웃음) 전부 다 감정해 가지고 몇 근 짜리인가를 점치고 있기 때문에 요동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상 부모들로부터 자기의 아들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앞으로 통일교회의 원리연구회 하든가 승공연합이라고 하는 단체들이 10년 후쯤에는 일본을 전부다 휘어 잡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0년까지도 안 갈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36년 동안 우리 민족의 피땀을 뽑아 갔다고 야단하지만, 그때는 빼어간 것의 몇백 배 몇천 배를 받아 올 것입니다. 누가 받아 오느냐? 내가 받아 올 것입니다. 찬성이예요, 불찬성이예요? 「찬성입니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 가지고 어떠한 명령을 내리더라도 일본 식구들이 순종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격파하라고 명령을 내려도 하는 것입니다. 멋지지요?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미국에 있는 통일교인들도 지령만 내리게 되면 공산당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 이세상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죽자고 할 때에 같이 죽을 수 있는 사람들 한번 손들어 봅시다. 다 드는 걸 보니 이거 교육 잘 시켰구만. 이거 누구를 닮아서 그래? (웃음) 이러한 것을 세상은 모릅니다. 선생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죽을 고비에서 백번 천번 만번 몇백 만번의 각오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공의의 뜻을 위해서는 죽기도 하고 살아 남기도 하고 다 그런 것입니다. 혹은 국가가 어려운 때에 나라를 위해서 이슬같이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어떻게 갈 것인가, 언제 이땅에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죽음이라는 문제를 이미 초월한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하늘땅을 진동시켜서 세계 만민을 호령하지 못하고 죽으면 한이 되겠기에 지금까지 참고 나가며 몸조심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들이 무서운 게 어디 있어요? 죽으면 제2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죽으면 틀림없이 자기가 어디에 갈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데 두려워하겠어요? 여러분은 죽을 길을 가겠습니까, 안 죽을 길을 가겠습니까? 「안 죽을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안 죽을 길을 가려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가인과 아벨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가인 아벨의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귀의 길은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한스러운 길이기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불쌍하다고 낙인 찍힌 것입니다. 또,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책임과 그 뜻을 받아 나오는 통일교회 문선생도 사실은 세상적으로 보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못나서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힘으로 해도 전교에서 일등을 한 사람입니다. 육상이든 뭐든 등수에 못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우승이었습니다. 무엇에든 소질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나이가 왜 욕을 먹으면서 지금까지 이일을 하고 있느냐? 그것은 큰 뜻을 알았고 불쌍한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하고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그분이 나의 아버지요, 내가 인연 맺어야 할 본연의 절대적인 중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슬퍼하는 한 내가 기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분이 안식하지 못하는 한 내가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달픈 생활을 계속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이러한 뜻을 알고도 눈을 감고 편안하게 잠을 잔다면 벌을 받습니다.
이제 천국은 여러분이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공식노정을 다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있다면 부모와 친척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도하기 위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를 붙들고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외부에 나가 들이던 정성의 삼분의 일이나 삼분의 이의 정성만 들이게 되면 부모들은 빨리 복귀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도 나가서 새벽같이 일어나 가지고 마을 청소니 변소 청소니 하는 일들을 해왔지요? 여러분 부락에서는 다른 전도지에서 들이던 정성의 절반만 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환경을 여러분은 갖추었기에 선생님이 40평생을 거쳐서 닦아 나온 이 길을 여러분은 40년이 아니라 4년 이내에 복귀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아니 4년이 아니라 4개월 내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못 한다면 천상세계에 가서 얼굴을 들것 같아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맞이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치 봄철에 송아지가 푸른 들에서 자유롭게 뛰놀면서 원하는 풀잎을 마음대로 뜯어 먹는 것과 같은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이때를 놓치게 되면 여러분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얘기 알지요? 이 베짱이가 나중에 어떻게 됐어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베짱이의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지런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쉬지 않습니다. 혼자서 산에 가더라도 쉬지 않습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내 갈길을 갑니다. 밤이든 낮이든 눈만 뜨면 이 일을 위해서 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승을 앞에 두고 따라가는 여러분은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기의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국의 기반을 닦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이 여러분의 필생의 사업임을 알고 하늘 앞에 칼을 꽂고라도 맹세하고 가야 합니다. 잘못 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다가 한번 잘못하게 되면 큰코 다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제부터는 돌아가서 수원지구로 한 사람이라도 더 끌고 와야 되겠습니다. 여기 250명이란 수자는 너무 많습니다. 25명만 가지고도 되고 남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40년 고개를 10년 고빗길로써 몰아내는 자유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이 40년 걸려서 걸었던 것을 10년 안에 몰아넣어야 하니 여러분은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을 해야 120명이지요? 선생님이 120쌍 축복을 한 다음에 세계순회 노정에서 성지를 택정했지요? 여러분, 왜 그렇게 했는지 알아요? 잃어버린 조상과 잃어버린 백성의 중심을 찾아 놓아야 잃어버린 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부다 원리적입니다.
천운은 우리 한국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북의 김일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도 믿지 말라는 거예요. 오직 하나님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그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통일교인들이 합하여 쌓은 정성이 김일성이를 위하여 바치는 김일성 도당의 정성을 무색하게 하는 날에는 한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10월까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이 바쁩니다. 망할 사람들은 망하더라도 우리는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는 비법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원리 원칙대로 가는 것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역사적인 시각에서 풀어서 얘기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얘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이 120명을 전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 등 식구를 전부다 전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집안에서 다 해먹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베드로 야고보 같은 어부들을 찾아가고 소문을 내고 십자가에 죽는 놀음 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다 하면 누가 12사도가 되느냐? 사돈까지 갈 것도 없이 8촌이내에 있는 사람만 가지고도 전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못 했기 때문에 소문을 내고 돌아다니다가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집안에 가만히 문 닫고 들어가서 전도를 했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친척 끼리 쑥덕쑥덕하는데 누가 간섭하겠어요? 이렇듯 친척을 중심삼고 했으면 다 이루었을 텐데, 국가를 중심삼고 일을 널려 놓았다가 패배자의 서러움을 안고 십자가에 돌아간 것이 예수님의 운명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처럼 비운에 사라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을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할 수 없이 민족적, 세계적으로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뿌려 놓았던 믿음의 아들 딸을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 가지고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60년도에 전도했던 곳을 다시 찾아가지요? 그때의 믿음의 아들딸을 수습해 놓고서 그 다음에 자기의 고향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틀림없이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지구장 일어서 봐요. 그 손은 뭐 하겠다는 손이예요? 전도하겠다는 손이죠?
여기서 도의 책임자는 누구냐? 지구장입니다. 지구장 이름이 뭐예요? 「문홍권입니다」 문홍권? 야, 근사하구만. 수원지구는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장 인상이 척 보면 못 먹은 영감 같아요. (웃음) 그렇지만 그렇게 못 먹은 영감상이 될 때까지 이렇게 정성들였다면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지혜가 필연적으로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아버지, 당신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의 손길을 저희에게 내리시어서, 오늘 이 시간이 끝날에 대한 책임을 더욱 절감할 수 있는 은사의 시간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연하여 있는 모든 식구가 당신이 뜻하시는 경륜 앞에 정성을 다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게 하여 주시옵고, 최후에 남아진 복귀노정을 힘차게 밟아갈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은 강원도의 중심인 춘천에 왔사옵니다. 이날 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어린 자녀들이 정성을 모아 이 자리에 찾아왔사오니,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은사로 이들의 가슴 가슴을 묶어 주시옵고, 이들이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스스로 체휼하여, 내일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게 이 자리를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식구들도 많은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전에 만났던 식구들도 만나면 만날수록 당신의 놀라우신 은사를 느껴서, 이땅 위에 태어나 보람된 생애노정을 걷고 있음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었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어머니의 품안에서 젖을 빠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서 당신의 뼛골에 인연되어 있는 생명이, 마음과 몸을 자극시키는 당신의 사랑의 마음에 연결되어서 당신의 사랑을 몽땅 차지할 수 있는 귀한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천국은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사옵기에, 저희들의 전체의 소원은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를 중심삼고 모든 생활과 일체의 감정이 화하고 동하는 어린 아이처럼 되는 것이옵니다. 하오니 오늘날 저희들이 그와 같은 입장에서 아버지를 사모하고 흠모하는 어린 아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9월 20일이옵니다. 이날은 금년 들어 저희들이 일본을 위해서 정성들이는 마지막 날이옵니다. 이 시간 동경에서는 세계반공대 회를 준비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시여, 준비하는 모든 내용을 장악하시어서 오늘 하루를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일본을 내세워 시대적인 사명을 다하게 하고자 하오니, 이들이 국가적인 책임을 다하고 아시아를 향하는 새로운 뜻 앞에 있어서 기수가 되는 천적인 사명을 맡을 수 있도록,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어린 자녀들이 그간 얼마나 피나는 투쟁을 하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신앙의 조국으로 삼고 당신이 남기신 뜻을 자기들의 유업으로 상속받기 위하여 어려운 길을 참고 나왔습니다. 때로는 도상에서 희롱받은 적도 있었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낙심하는 처지에도 있었습니다. 천태만상의 희생을 거쳐 가면서도 오늘의 승리를 다짐해 나온 그들이오니, 아버지, 그들의 모든 소원과 뜻이 오늘의 동경 천지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들의 움직임을 보고 저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오늘이 기억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개최되는 대회의 인연으로 심정적인 유대를 공고히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본에 있는 선한 선조들과 복귀의 사명을 맡기 위하여 지금까지 찾아 나온 선한 선조들을 전부다 동원하시어서 동경 천지를 움직여 당신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서 찾아온 국제적인 손님들이 오늘날 저희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뼛골이 울리는,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자극을 받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자기 나라에 돌아가 승공이란 표제를 세계적으로 연결시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경륜하는 모든 뜻이 크고 입체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큰 성과를 거두게 하여 주시옵고, 그 성과가 당신의 깊으신 뜻과 일치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오늘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 모아 정성들인 것 전부가 오늘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개가를 돌려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미국 식구들과 한국 식구들과 일본 식구들이 서로 합하여 지상에서 처음으로 벌이는 이 새로운 시대적인 대회(세계반공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대회는 한국과 인연되어 있는 것이요, 스승과 인연되어 있는 것이요, 아버지와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기필코 민족을 움직여서 거국적인 국민운동으로 전개시키지 않고는, 용공 국가의 체제에 있는 일본을 선도적인 승공국가로 내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저희와 관계된 사람의 마음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시어 아버지의 뜻이 지향하는 하나의 목적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원수의 실체세계인 공산진영과 대결하여 나갈 수 있는 세계적인 전선이 결성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간 한국에 있는 식구들도 이때를 중심삼고 기도하였사오니, 이 모든 전체가 결합되어 유익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년에는 저희들에게 중요한 일들이 많사오니, 이 모든 것이 세계를 휘감아서 아버지의 품으로 한 걸음 더 끌어들일 수 있는 직접적인 내용과 동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품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이들의 걸음이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높고 귀하신 은사에 감사하면서 지난날을 귀중하게 여기고, 남은 생애를 힘차게 보내겠다고 다짐하며 새로운 계기를 삼는 이 날이 되고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 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이 뜻하시는 대로 이끄시옵고, 주관하여 주시옵길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시간은 '통일신도의 갈 길'이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은 손을 들어 봐요. 내리 세요. 그러면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일년 이상 되는 사람 손을 들어봐요. 일년 이상 되는 사람 얼마 안 되는구만. 내리세요.
여러분,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가 무슨 자리예요? 그것도 몰라요? 이 자리는 춘천 통일교회입니다. 춘천지구 본부입니다. 또, 강원도 전체로 보면 강원도의 중심이 되는 도청 소재지에 있는 통일교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교인이요,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세상에는 교회도 많이 있고 신도도 많이 있습니다. 춘천에만 해도 많은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기독교만 보아도 여러 교파가 있습니다. 또한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혹은 원불교 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종교 가운데서 우리의 교회는 통일교회입니다. 통일하자는 교회입니다. 통일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통일하자는 것이냐? 강제로 통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너도나도 좋아하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관계를 아니 맺을래야 아니 맺을 수 없는 그런 인연으로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통일이 무엇이예요? 하나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통(統)'자는 거느릴 '통' 자이기 때문에 따라가면서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입장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길을 가르치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르침은 강제가 아니요, 제재도 아니요, 자연스러운 입장에서 하나될 수 있는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될 수 있는 그 바탕이 무엇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아 가지고 외형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끊을 수 없는 하나의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그 가정의 부모와 자식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식을 위해서 사랑하느냐, 아니면 부모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느냐? 또,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부모를 따르고 공경하느냐, 아니면 자기를 넘어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느냐?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부모와 사랑하는 자식을 말하게 될 때에, 자기를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한다는 사람은 참효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또한 참다운 부모의 사랑이 못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사랑이라면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이나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사랑이나 전부다 참된 사랑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자신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는 것이요, 자식은 또한 부모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인연으로 부자의 관계가 맺어졌다 할진대 이 가정은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누가 그 가정을 깨뜨리려고 한다면, 그들은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가정을 방비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고 부모를 필요로 하고 부모를 사랑하며,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필요로 하며 자식을 사랑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에 위협이 가중되고 혹은 생명을 위협하는 절박한 상황이 오게 되면 그 가정의 부모와 자식은 서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넘어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부자의 인연이 굳게 맺어져서, 서로 그 가치를 느끼고 산다면 어느누구도 그들을 갈라지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칼로도 안 되는 것이며 어떠한 위협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국가의 권력으로도 그 인연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빼앗아 가는 공포와 위협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러한 사랑, 그러한 가정을 추구합니다. 그러한 사랑을 갖지 못한 가정이 있다 할진대는 그러한 사랑을 가진 가정을 본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심인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기 자식을 교육한다면 그러한 가정의 자식을 본을 삼으라고 할 것이요, 여러분의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라 한다면 그 가정의 부모처럼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가정이 있다 할진대는 어떠한 법이라든가 어떠한 사회 제도가 그 가정의 부자의 인연을 막고 갈라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 가정의 부자의 인연을 굳게 하고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한 법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약화시키고 그것을 분립시키는 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부자의 인연을 갈라 놓는다면 그 가정이 파탄되는 것이요, 사회가 파탄되는 것이요, 참다운 국가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참다운 세계도 형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랑이 문제 되느냐? 만약 백성의 추앙을 받는 충신이 있다면 그 충신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 충신이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출세하기 위한 방편적인 입장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충신의 반열에서 추방당할 것입니다. 충신은 자기를 넘어 가지고 자기 일신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충신은 삼천만이면 삼천만 민족 가운데서 자기 생명을 바쳐 가며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발전과 나라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전체를 투입하고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희생하는 자리에 가더라도 도리어 감사하게 여기면서, 현재 살고 있는 백성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입장에 서는 사람,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숨막히도록 어려운 시간이 가까와 오면 올수록,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최고로 불탈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남기는 사람이 충신이 아니겠느냐?
충신에는 남자 충신도 있을 것이요, 여자 충신도 있을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충신이란 이름을 가지는 입장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가냘픈 여자라 하더라도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충신의 반열에 동참하려면 천번 만번 죽고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복지천국을 기필코 이루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어떠한 남자보다도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고 더 깊은 내용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는 여자 충신이 있다면 비록 여자라고 해도 남자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1970년대를 중심삼고 죽어간 남자 충신이 있다 할진대는 억천만년 잘살 것입니다. 또, 그렇게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희생되어 간 여자 충신이 있다면 역사적인 어떠한 충신보다 더 높은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급이라는 것은 누가 더 높고 깊고 넓게 사랑 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충성된 입장에서, 진지한 입장에서 자기의 생명을 얼마나 투입하고 사랑했느냐 하는 문제가 충신 중의 충신을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최고의 충신으로 결정되면 그 충신은 비록 여자일지라도 충신 세상에서 군왕으로 군림할 수 있습니다. 그 충성됨이 어떠한 남자보다 어떠한 영웅보다도 더 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어느누구도 그를 따를 수 없다 할 때 그 여자는 충신 중의 충신이요, 충신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오늘날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만큼 사랑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얻겠다, 또는 자기만큼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얻겠다고 하지만 그런 남자와 여자는 없습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는 남편을 맞고 아내를 맞이할 것이나?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맞이할 것이냐? 춘천을 사랑하는 만큼의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쩨쩨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북을 치고 소를 잡아 가지고 제사를 지내도 구경도 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만큼의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쓸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남자라면 그만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써 다 되느냐? 그만하면 만족할 수 있습니까? 어떤 여자를 가만히 보게 되면 눈이 깜박깜박하니 잘 생기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 바탕은 아주 야무져서 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만하면 세계 여성들 가운데서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참한 여자도 있습니다. 그런 여자에게 어떠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세계를 지휘하는 남편을 얻고 싶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젊은 총각들에게 어떠한 아내를 맞이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세계를 주무르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총각들, 여러분도 그래요? 「예」 장가도 안 가봤는데도 그래요? 왠지 모르지만 하여튼 덮어 놓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덮어 놓고 좋은 모양이지요? (웃음)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은 제일이 되는 것입니다. 제일 중에는 자기 집에서도 제일이 있고 동네에서도 제일이 있습니다. 춘천에서도 제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춘천에서 일등하던 사람이 전국대회에 가서 형편 없이 된다면 되겠어요? 그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꼴찌보다 더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는 좋다고 큰소리쳤지만 전국대회에서 망신을 당하고 돌아올 때는 강원도 사람 전체에게 용서를 빌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춘천에서 일등하고 강원도에서 일등을 했으면 대한민국 내에서도 일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강원도 사람은 감자를 많이 먹고 살지요? 감자는 잘 굴러가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전국대회에서 일등하고 또 올림픽대회에서 일등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렇게만 되면 춘천을 비롯한 강원도 사람들 전부가 강원도에서 제일 높은 설악산 산정에 올라가서 환호할 것입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안 그런 사람은 죽어야 됩니다. 그 말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여자들도 그럴 수 있습니까? 여자들은 '그까짓 거 뭐 마라톤이란 말도 처음 듣는데 마라톤에서 일등을 하면 뭘 해? '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축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잎은 잎인데 떨어진 잎과 마찬가지로 예외가 되는 사람입니다.
일등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일등을 하는 데는 어디서 일등을 할것이냐? 선생님은 한국에서만 일등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면 어디서 일등을 할래요? 대답을 해보세요. 장단이 맞아야 춤을 춘다는 말이 있듯이 여러분이 대답을 해야 선생님도 말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점잖아서 그런 모양이지요. 인사성도 있고 선생님 체면을 봐줘서 고맙지만 이 시간만은 그러지 맙시다. 다정스럽게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해야지요. (웃음)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주고받아야 되는 겁니다.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야기 뚜껑을 열기 전부터 기분이 나쁘면 되겠습니까? 웃으려다가 울게 된다면 되겠느냐 말입니다.
자, 일등을 해야 되겠지요? 「예」 무슨 일등입니까? 「세계적이요」 그래요. 세계적으로 일등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일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계적이 되려면 모든 것이 세계적이 되어야 합니다. 남과 같이 먹고 자고 입으면서 세계적이 될 수 있습니까? 세계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길로 가야 됩니다. 잘먹고 잘입고 잘자고 잘놀아 가지고 세계적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남이 먹을 때 먹지 않고, 남이 입을 때 입지 않고, 남이 잘 때 자지 않으면서 어렵더라도 이를 악물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참고 극복해야 되느냐? 그것도 세계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힘줄이 끊어지고 심장이 마비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길을 넘나들지 않고는 세계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이 되기 위해서는 천천히 해서는 안 됩니다. 강원도식으로 천천히 해서야 되겠습니까? '봄이 온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 왔구나! 세월은 이렇게 봄과 가을이 연락되어 한 해가 되는 거지'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이 등이나 저 등이나 산등은 마찬가지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 반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걸어갈 때 발뒤축이 한 5센티미터 내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하이힐을 신어 시간을 단축시키고 미리 가려고 하는데 우리는 발뒤축부터 딛고 생각을 하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바쁘게 가야 되겠습니까, 천천히 가야 되겠습니까? 바쁜 중에도 더 바빠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를 못 따라온다는 각오로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천천히 따라가려면 아예 물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또 가는 데 있어서 악착같아야 되겠습니까, 악착같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악착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여기 지구장은 알아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잘 배웠을 텐데 악착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구요? 반대말이 없으면 하나 만들지요. 둔착이라고. (웃음)
세계적이 되려면 둔착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야 세계적이 됩니까? 그것은 가정적인 것도 못 되고 개인적인 것도 못 됩니다. 둔착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착같아야 됩니다. 악착같은 사람이 되어서 강원도 일대에 소문나야 되겠습니까, 안 나야 되겠습니까? 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소문이 나야 되겠습니까, 안 나야 되겠습니까? 「나야 되겠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소문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을 똑바로 떠야 할 때, 눈을 깜박깜박거리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때는 눈을 깜박거리는 것조차도 원수인 것입니다. 눈을 딱 고정시켰는데 깜박거리면 그것이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눈을 깜박거리는데 그보다 더 빠른 것이 있으면 그 사이에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눈을 깜박거리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전부가 반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밥을 많이 먹고 싶은 사람이 밥을 많이 먹고 세계적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많이 먹고 세계적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전부다 좋아하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보따리를 뒤집어써야 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반대의 길을 가지 않고는 세계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대강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반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구하고 선수들이 고대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세계적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 중에서 제일 큰 비중을 가진 운동 경기는 무엇입니까? 무슨 종목입니까? 「마라톤입니다」 선생님이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뛰어 보십시오. 마라톤은 힘이 드는 운동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뛰는 모습이 쉬울 것 같이 보여서 힘들지 않을 것 같지만 뛰는 사람은 죽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텔레비젼이 있으니까 알겠지만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를 할 때 전세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 순간 그러한 자리에서 달리는 사람의 기분은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달리는 것은 좋지만, 달리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일등해야 된다는 마음뿐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원하거나 말거나, 욕을 하거나 말거나 일등을 해야 된다는 생각뿐일 겁니다. 그에게는 응원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일등을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일등을 바라보고 달리는 그에게는 찬양하는 함성이 도리어 원수가 될수도 있습니다. 최후의 결승점에 골인하는 그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그를 응원하는 함성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오히려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결승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야 됩니다. 숨이 할딱할딱하더라도 최후의 결승점에 도달해야 됩니다. 다리가 찢어지고 힘이 없어 쓰러질 때까지 죽을 각오로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기록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신기록은 10분의 1초라도 앞서면 신기록입니다. 100분의 1초라도 앞서고 1,000분의 1초라도 앞서면 그것은 신기록입니다. 잴 수 있는 기계가 없어서 그렇지 10,000분의 1초라도 앞서면 그것도 신기록인 것입니다. 그 반면에 일등보다 10,000분의 1초만 늦어도 그는 꼴찌나 마찬가지 입니다. 상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등을 하면 뭘 합니까? 그것은 하나마나 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10,000분의 1초라도 앞서기 위해서는 얼마나 마음을 졸여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적인 챔피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렇게 되어지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이것은 할머니, 할아버지, 남녀노소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의 종교인 통일교에서 종교를 통일하자고 하는데, 꼴찌를 중심삼고 통일하자고 하면 되겠습니까? 종교적으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말예요. 우리가 좋은 일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 변소 앞에서 계획하자고 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쁩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가 한달에 한번씩 회의실에서 중요한 의논을 하자고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장소가 큰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하는 데 있어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중심삼고 통일하자고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기분이 나요, 안 나요? 「안 납니다」 그러면 자기보다 조금 나은 사람하고 통일하자고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그것은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낫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재어 보니까 손해가 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전부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해가 난다고 생각하면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은 통일하는 데 있어서 국가적인 중심 존재하고 통일하고 싶어요, 세계적인 중심 존재하고 통일하고 싶어요? 「세계적인 중심 존재요」 정말 그래요? 「예」 여자들도 정말 그럽니까? 「예」 그렇다면 신랑 중에서도 세계적인 신랑한테 시집 갈 것입니까? 「예」 (웃음) 말만 들어도 좋으니 기가 막히는 모양이구만. (웃음) 그런데 세계적인 신랑이 새까만 깜둥이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것은 싫습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웃음)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신부가 새까만 깜둥이라면 어떻게 할것입니까? 어떻게 할 거예요? 대답해 보세요. 「하겠습니다」 그것이 남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로 딱 부딪쳤을 때 상대가 세계적이니까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계적인 가치를 중심삼고 양손을 높이 들고 '할렐루야! 아멘!' 그럴 수 있습니까?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어느누구나 세계적이면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좋아하지요? 거지 중에서도 세계적인 거지는 어떻습니까? (웃음) 왜 웃어요? 세계적인 거지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자기 나라에서는 그 거지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원수 세계를 탐색 하는 데는 그 거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 시간적 차이나 환경적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거지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거지가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아요? 「필요합니다」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필요합니다」 똑똑히 대답해야지요.
자,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서 나쁜 것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세계적인 악당의 괴수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그러면 이 세상에 악당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악당이 있다면 그 악당은 자신이 악당이라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나는 악당이다. 세계적인 악당이니 기분이 좋다'고 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 악당괴수가 아침 먹고 나서, 저녁 먹고 나서 '아! 나는 세계적인 악당이니, 이만하면 기분이 좋다' 그러겠습니까, 안 그러겠습니까? 「안 그러겠습니다」 그런 악당 되어 보았어요? (웃음)
세계적인 악당의 괴수가 되어 가지고 기분이 좋으니 백주에 한번 선전해 보자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악당 그 자신은 좋아하겠습니까. 나빠하겠습니까? 대답을 잘 해야 합니다.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나빠합니다. 좋아합니다」 좋아한다면 너무 좋아서 좋아합니까, 할 수 없어서 좋아합니까? 할 수 없어서 좋아합니다. 좋기는 좋은데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악당 괴수도 할 수 없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좋은 체하고 잘난 체하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심은 악을 중심삼고 세계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중심삼고 세계적이 되어야 하느냐? 선을 중심삼고 세계적이 되어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러 갈 때 나팔을 불고 시위하면서 갑니까? 그렇게 하는 것을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습니다」 반대로 선한 군왕이 행차할 때에 나팔을 불고 행진하는 것은 봤어요, 못 봤어요? 「봤습니다」 그 군왕 앞에서 시위하는 책임자들까지도 뽐내고 야단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일을 했을 때 누가 여러분의 어깨를 누르면 누르게 그냥 둡니까, 버팁니까? 「버팁니다」 선생님이 몽둥이로 여러분들을 때리더라도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죽인다고 하더라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은 그렇게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만약 그렇게 하다가 죽어간 사람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어느 편이 되느냐? 선 편이 되는 것입니다. 죽이는 사람에게는 '요놈의 자식' 하면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이를테면 동네에서도 화목덩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좋고 착한 친구가 있는데, 난데없이 어느 사람이 와서 그를 멸시하고 천대하면서 그를 억울하게 한다면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전부다 불이 붙어 가지고 대항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때려 주고 싶고 치고 싶어도 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가 와서 그를 들이치면 잘한다 잘한다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당당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손을 들고 나를 봐라 하며 당당하게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쪼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는데 담벽보다 키가 크면 어떻게 합니까? 도둑놈의 키가 담벽보다 작아지나요, 높아지나요? 「작아집니다」 그러면 그 담벽보다도 절반이나 작은 담벽이 있으면 키가 작아지나요, 커지나요? 「작아집니다」 그 담벽보다도 낮은 담벽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땅에 엎드려야 됩니다」(웃음) 여러분도 알기는 아는구만. 그러면 왜 그렇게 엎드려야 되느냐? 악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은 그렇게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인이 자기 집에 돌아올 때 가족들이 전부다 좋아할 수 있는 희소식과 선물을 가져왔다고 합시다. 그럴 때에는 당당하게 대문을 두드리여 '여보' 하고 큰소리 칠 것입니다. 큰소리 칩니까, 안 칩니까? 큰소리 치는 것입니다. 대문이 망가지려면 망가지라고 두들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발길로 대문을 차서 식구를 불러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것도 안 되면 그는 담벽이라도 훌쩍 뛰어넘어 가는 것입니다. 그때 담을 넘어가다 붙들렸다고 해서 도둑 놈이라고 그러겠습니까? 도둑놈처럼 넘어왔다고 그 사람이 도둑놈입니까? 또, 자기네 담을 넘어가려고 하는데 누가 붙잡으면 발길로 툭 차며 '이 자식이 왜 이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담벽 위에 턱 걸터앉아 '내 말 좀 들어보소' 하면서 동네방네에 나발을 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발 불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은 선전하면서 오는 것이요, 악한 것은 숨어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과 악의 차이입니다.
그러면 선 중의 최고는 누구입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입니까?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알기는 아는구만요. 그러면 그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선하신 그분이 나팔을 불며 와야 하는데 그렇게 왔어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나팔을 불며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하를 호령하고 위세를 떨치면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시겠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오시겠다고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면 그전까지는 천사장이 무슨 나팔을 불었겠습니까? 인간의 타락으로 자유 천하를 갖지 못하신 하나님은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입장에서 천하에 선전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선전을 해 오셨습니까? 이 세상은 악당의 세계이기 때문에 선당이 나타나게 되면 악당들이 잡아죽이겠습니까, 안 잡아죽이겠습니까? 「잡아죽입니다」 악당들이 선당을 잡아죽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공작을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무슨 공작이냐 하면 비밀 공작입니다. 또 무슨 결사냐? 비밀 결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 중에서 최고의 선을 중심삼고 역사노정에서 공작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세상에 흘러가는 사회 조류와는 다른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인류역사상에 나타난 종교역사입니다.
오늘날 일반 사람들에게는 각자 생각하고 있는 세계관이 있습니다. 또한 종교인들도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있습니다. 일반 사람이 갖고 나오는 세계관은 천 사람이면 천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하지만 종교인이 갖고 나오는 세계관이라는 것은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같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세계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같고, 또한 불교 신자라면 세계에 널려 있더라도 그 목적은 전부 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환경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치리해 나가면서 자신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한번 약속하면 변하지 않고 약속한 그 목적을 꾸준히 이루어 나가는 사람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느 사람이 선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잘 변하는 사람은 악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녀들은 신랑을 맞을 때 변하는 남자를 맞아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얼굴이 아무리 예쁘고 뭐가 어떻다고 해도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사람은 손해보는 사람입니다. 잘 변하는 것은 악에 가까운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은 선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면 변하기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아 보자는 거예요. 여자들을 보면 친구끼리 재미있게 오순도순 지내다가도 서로 다투게 됩니다. 지금까지 서로 좋다고 하며 지내던 친구가 조그만 바늘 하나 가지고 서로 다툰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친구의 인연이 바늘 하나의 인연보다 큰 것입니까, 작은 것입니까? 「작은 것입니다」 알기는 아는구만. (웃음) 바늘 한 개 가지고 싸우며 친구와 우애의 관계를 팔아먹는 사람은 바늘만큼도 못한 친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한 사람이 어디에서부터 결정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한 사람은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변한지 않는 사람을 중심삼고 섭리하십니다. 여자들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까? 「싫어합니다」그럼 남자들은? 「싫어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그런 사람하고는 말도 하기 싫어하는 겁니다. 싫어한다는 말도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변하는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변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불변하는 것입니다. 참은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시종여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세계와 세계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냐? 단일민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얕은 역사를 가진 종합 민족이 되어 가지고는 지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세상이 변하든 말든 전통적인 사상을 꾸준히 지니고 나오는 민족이어야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 어떤 민족이 그런 민족입니까? 어떤 민족인지 찾아보라는 거예요. 「한민족입니다」 뭐라구요? 한민족은 한(恨)이 많아서 한민족입니다. (웃음) 어떤 민족입니까? 어떤 민족이요? 아무리 배달민족이라 하더라도 민족주의를 중심삼고는 선의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최고의 선이 하나님이기 때문이 하나님과 관계맺은 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유일불변의 민족이 세계로 등장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이 무슨 민족입니까? 「선민족입니다」 맞습니다. 선민족입니다. 선이란 착할 선(善)이 아니고 선택할 선(選)입니다. 그 민족이 어떤 민족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세계에서 유대민족 즉, 쥬(Jew)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세계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거나 말거나 관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세계의 경제력을 거의 쥐고 있습니다. 세계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대부분이 유대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입니다. 소련에서도 정치국의 몇몇 중요한 요원이 유대인이라는 겁니다. 그 유대 민족은 유리하는 민족이지만 유일신을 믿습니다. 여러분, 히틀러를 알지요? 유대 민족은 세계 제2차대전 중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나 학살당했지만, 나치당을 중심삼은 게르만 민족의 사상에 통치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그들에게 통치당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 하나님주의가 아니라 세계적인 하나님주의를 따랐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큰 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 가에 대해서 선생님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사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 책임자가 계획을 잘 세워 작전을 잘해 나가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이 실수를 하여 죄를 범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민족 전체가 죄를 범했을 때에는 그 민족 전체가 탕감을 받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민족을 선택하든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서 다른 민족을 택하든가 아니면 용서를 해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든가,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한 방법을 택하여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민족을 바로잡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선택된 지도자를 보냈는데 그를 죽였다 할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법을 중심삼고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민족을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을 선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니 선민족인 이스라엘이 책임을 다하느냐 못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못했다면 얼마나 못했느냐? 지독히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분을 잡아죽였다는 것입니다. 그 왕이 누구냐하면 부모를 중심삼고 보면 인류의 참부모요,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왕중의 왕이었습니다.
한 나라에 있어서 아버지 어머니를 잡아 죽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국법이 용서할 수 있습니까? 몰매를 맞아 죽어야 됩니다. 또, 세계의 성부를 잡아 죽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한테 매를 맞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를 범하였는데 그것을 용서할 수 있는 법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죄를 용서받으려면 죽인 사람을 살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살려야 하느냐? 하나님이 살려야 하느냐? 아닙니다. 사람이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살려 놓기 전에는 용서받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한때를 고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치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이 책임하지 못한 기준을 다시 세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을 다시 살려 놓았다는 가치적 존재를 등장시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통해서 다시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 놓기 위한 운동을 해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의 전통적 사상과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을 본받아서 예수님을 다시 살려 놓을 수 있는 민족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민족이 새로이 등장하게 되면 그 민족은 무슨 민족이 되느냐?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제3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된다구요? 선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민족은 어느 민족을 말하느냐? 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선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를 잡아 죽였던 죄를 복수 탕감해야 됩니다. 때려 부셔야 되는 것입니다. 때려부셔야 되겠습니까. 안 부셔야 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인간은 보물을 찾고 있습니다. 인간은 보물을 원합니다. 그러면 보물이 무엇입니까? 「귀한 물건입니다」 무엇이 귀한 물건입니까? 남이 갖지 않고 자기만 갖고 있는 것이 보물입니까? 「금은보화입니다」 (웃음) 할머니가 대답을 아주 잘했습니다. 금도 보물이고 보석도 보물입니다.
보물이 무엇이냐?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괴롭히는 못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한당 같은 자녀도 있습니다. 그게 효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쓸모가 없는 자녀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그 다음 보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아서 떡을 얻어먹을 것입니까, 밥을 얻어먹을 것입니까? 하나님을 찾아서 뭐를 할 것입니까? 하나님을 찾는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우주의 보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고아가 되고 싶어요? 고아 되는 게 좋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녀석이 있다면 벼락을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남자 중에서 독신생활이 좋다는 사람 손을 들어 보세요. 여자들은 왕왕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구, 남자라는 건 믿을 수 없어. 낮도깨비 같은 남자들 못 믿어. (웃음) 차라리 순정을 고이고이 품고 독신생활하는 것이 꽃답지'라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 그런 여자가 있습니까? 어디 손을 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얼굴을 기억해 둘 테니…. (웃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남자는 장가가고 여자는? (웃음) 웃을 게 뭐가 있습니까? 누구나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왜 웃는 거예요? (웃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웃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고라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앞마을 뒷마을에 그저 여자만 살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번 싸움이 나게 되면 세계적인 싸움이 벌어질 텐데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가 중대하지요? 남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들만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홀아비 봇짐 삼년에 뭐가 있다구? 이가 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고아가 되는 것도 싫고 독신생활을 하는 것도 여러분은 싫어하는데, 고아가 안 되려면 누가 있어야 합니까?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요. 부모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독신생활이 싫으면 누가 있어야 됩니까? 「자녀요」 자녀는 그 다음이고 먼저 부부가 있어야 되지요? (웃음)
그러면 부부가 '우리는 본래부터 이렇게 둘이 재미있게 살았으니,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만난 것이니, 후생에서도 우리 부부끼리만 좋아 하겠다' 하면서 안방에서도 둘, 사랑방에서도 둘, 일하러 일터에 나가도 둘, 집에 들어 와도 둘, 집을 나가도 둘, 단 둘로서 만사형통이다'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또 뭐예요, 뭐가 필요해요?
자녀가 필요합니다. 별 수 없이 자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람…. 손들었다간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그럼 어디 한번 손을 들어 봐요. (웃음) 어떤 사람은 '아이구 우리 집은 어려운데 자꾸만 자식을 낳는구만. 그만 낳았으면 좋겠는데'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녀가 필요없는 것 같지요? 정말로 자녀가 필요하지 않아서 그래요? 만약 그 사람한테 자녀들이 한꺼번에 모두 없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구 애들이 없어서 시원하다고 좋아하겠습니까? (웃음) '아이구, 망했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고아가 된 자리에서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고아가 된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주고 부모를 찾아올 수 있다면 다이아몬드하고 바꾸겠습니까, 안 바꾸겠습니까? 「바꿉니다」 정말 그래요? 이 책상만한 다이아몬드와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바꿉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세계적이니까 세계적으로 생각하자구요. 그럼 지구덩이만한 다이아몬드라면? 「바꿉니다」 전부 다 이렇게 대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땅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 덩어리가 있다 해도 바꾼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좋은 것입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좋은 것입니까?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만약에 아버지 어머니가 강원도 무우처럼 뻣뻣해 가지고 멋이 없는 부모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웃음) 강원도 무우는 산골에서 자라기 때문에 대가리가 뻣뻣하고 맛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무우 대가리 같은 부모를 무엇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주고 바꾸겠습니까? 「부모의 사랑 때문에…」 알긴 아누만. 부모의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부부끼리 무엇이 귀합니까? 부부가 서로 기분이 나쁘면 매일같이 싸우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싸웠다고 보따리를 싸더라도 다시 푼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싸움은 발전하기 위해서 양념을 치는 것입니다. 정말로 헤어지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지금 얼굴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속으로는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면 자기에게 불리하니까 싸움을 했다고 하겠지요.
여자에게는 남자가 절대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시집을 가 보세요. 여자의 눈에는 뭐가 보이느냐? 남편만 보이는 것입니다. (웃음)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못난 여자라도 시집을 가고 나면, 남편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남편이 제일 크다는 것입니다. 큰 것 중에 제일 크고, 좋은 것 중에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긴 하지만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그래요, 안 그래요?
여자들이 시집을 가려고 신랑 집에 가 보니 시아버지를 만나 봤나, 시어머니를 만나 봤나, 시삼촌들이 수두룩하니 도둑놈 같아 정붙일 곳이 한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아무리 생각해도 정붙일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시집가지 말라고 하면 뽀로통해 가지고 울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에 그러느냐? 시아버지 시어머니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까? 「남편이요」 남편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시가의 마을에 도둑놈이 아무리 득실거리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마를 맞대면 반겨줄 수 있는 남편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정을 얘기할 수 있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그 남편을 지팡이로 삼고 당당히 시집을 가서 살겠다는 자신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좋아서 시집간 여자가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도 남편을 낳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남편을 낳지 않았으면 시가(媤家) 사람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웃음) 시집간 여자의 눈에는 남편밖에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앞으로 777쌍 합동결혼식을 하려고 지금 계획하고 있습니다. 700쌍보다 777쌍이 낫다는 것입니다. 쓰리 쎄븐(three seven)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은 여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얌전한 여자나 못난 여자나 제일 심각할 때가 언제냐 하면 신랑을 결정할 때라는 겁니다. 배가 고플 때는 견딜 수 있겠지만 신랑을 결정한다 할 때는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아무리 자신이 있는 미녀라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배짱이 있는 여자라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저를 좋아해 주세요' 하는 거예요. 아무리 자신이 있는 사람도 전부다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그래도 여자보다 조금 낫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선생님이 '이 남자와 축복을 받아라'고 말하면, 선생님을 믿고 '그래요' 하는데, 어떤 여자는 그렇게 해주면 열두 번도 더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살짝 와 가지고 '선생님 받겠어요'라고 소곤거립니다. 그때는 얼마나 다정한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은 그런 여러 가지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여자로서 제일 심각한 때가 언제냐 하면 어머니한테 매를 맞고 쫓겨나는 때가 아닙니다. 시집갈 때 남편을 찾아가는 그 순간이 제일 심각한 때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시집갈 때 연지를 바르고, 곤지를 찍고, 눈을 감고 시집을 갔지요? 왜 눈을 감고 시집을 갔습니까? 옛날에는 신랑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발 우리 신랑님은…' 이렇게 기도하면서 정성들이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얼마나 가슴이 뛰겠어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랑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시집가는 여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신랑은 어떻게 생겼을까, 신경이 쓰인다는 겁니다. 다행히 신랑의 얼굴이 잘생겼으면 휴우 하며 속으로 웃고, 얼굴이 못생겼으면…. (웃음) 그렇지 않겠어요? 자기보다 잘생겼으면 좋아하고 자기보다 못생겼으면 서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맞이하여 살면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게 되면 자기 남편이 세계에서 제일 잘나 보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자기 남편이 제일 잘나 보이지 않고는 못 사는 것입니다.
여기도 못생긴 아주머니들이 더러 있지만 그 아주머니들 중에는 잘생긴 영감님 맞이한 아주머니도 있을 것입니다. (웃음) 누가 그들을 보더라도 한쪽이 기운다고 말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며 아들딸을 낳고 살게 되면 아내밖에 모르는 남편이 되는 것이요,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사랑이란 안경을 쓰게 되면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하게 되면 자기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 남편을 진짜 사랑하게 되면 자기 남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자기 아내의 얼굴을 그려 보라고 했을 때 잘 그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짜 남편이 아닙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얼굴을 알아요? 대답해 보세요. 여러 분은 자신의 얼굴을 알아요, 몰라요? 「모릅니다」 여러분은 매일같이 거울을 보지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매일 보지만, 자신의 얼굴을 이웃 동네 김 아무개의 얼굴만큼 똑똑히 알아요? 모른다는 거예요. 자기 얼굴을 더 똑똑히 안다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축복을 받게 되면 자기 얼굴은 못생겼지만 상대의 얼굴은 미남으로 보이고 근사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는 못나게 보이지만 요렇게 볼 때는 잘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뭐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선생님의 얼굴을 잘 모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얼굴을 선생님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그 무엇이든지 가까와지면 확실해지느냐? 아닙니다. 가까우면 오히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손끝을 점점 가까이 해서 보려면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입니다」 (웃음) 이것을 볼 줄 알면 바보 병신입니다. 한계점을 넘게 될 때는 그냥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모르는 것이 인간에게는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아내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요, 남편의 얼굴을 모르는 것입니다. 상대가 슬플 때는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최상의 상대자가 되어야 하고 기쁠 때는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최상의 상대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같은 모양, 같은 얼굴 표정이면 되겠어요? 사랑은 전부를 포괄하고 소화해서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소개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보물 중의 보물인 하늘땅만큼이나 큰 다이아몬드를 주고라도 부모를 찾을 수 있다면 찾는다고 하였는데, 만일 이 세상에 여자가 오직 한 명만 있고 남자가 만 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 여자의 가치는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그걸 생각해 보았어요? 이 세상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중에서 절반은 여자이고 절반은 남자였는데 여자가 다 죽고 한 사람밖에 살아남지 않았다고 하면 남자 세계에서 최고의 보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웃음) 그러한 세상이 되었을 때 남자 세계에서 보물 중의 최고의 보물이 무엇이냐? 「여자입니다」 (웃음)
자, 그 여자를 사올 수 있다면 서로가 사려고 얼마나 다투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많은 다이아몬드를 재산으로 가진 사람이 세 사람 있다면 그들이 서로 경쟁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있는 재산 다 줄테니까 와 달라고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그렇게 합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 남자는 그러한 사랑의 주인공을 찾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여자는 많은데 남자가 한 명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여자는 본래 얌전하게 태어났으니까 남자를 볼 때 눈을 크게 뜨고 보아서는 안 되고, 남자를 생각하면 죄가 된다고 하나님께서 천하에 간판을 붙여 놓았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여자들이 그 간판을 쳐부술까요, 안 부술까요? 그것을 안 부수면 자기는 망하는 것입니다. 뜯어 부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모든 보물을 다 주고 그 남자를 사 올까요, 안 사 올까요? 「사 올 것입니다」 그렇지요. (웃음) 그 남자를 사오지 않으면 자기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런 여자를 맞이하고 싶을 것이요, 여자는 그런 남자를 맞이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상대를 사 오기는 사 왔는데, 사 온 그날부터 죽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눈을 흘기지를 않나, 코를 비틀지를 않나. (웃음) 여러분은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아이구 당신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면서 좋아하게 되기를 바랍니까? 어떻게 되기를 바랍니까? 「좋아하기를 바랍니다」
만일에 그 반대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건 원수 중에 최고의 원수라는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꺼번에 옥살박살을 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차 버려야 되겠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그럴 때는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됩니다. 대답을 아주 잘했습니다. 선생님 기분에 딱 맞는 대답을 했습니다. (웃음)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자가 그럴 때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 만나는 것과, 그렇게 안 된사람이 만나서 사랑할 수 있게끔 만든 것과 어떤 것이 좋겠습니까? 여러 분은 어떤 것을 택할 것입니까? 시집에 오자마자 쉽게 사랑할 수 있게 되어 가지고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는 자리와, 처음부터 어렵게 만나서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서 그때부터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는 자리가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자리가 더 좋겠습니까? 「만드는 게 좋습니다」 만드는 것이요? 정말 그래요? 만드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어떤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오면서부터 흥흥거리는 것이 진짜 사랑이냐, 아니면 죽고 또 죽을 수 있는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된 그 사람이 아니면 죽고 못 살겠다고 할 수 있는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냐? 어느 것이 진짜 사랑이겠습니까? 「만드는 것입니다」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모든 것에서 반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고생하고 어려운 일을 이겨야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진짜 사랑을 하려면 반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했더라도 다시 고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목적을 달성한 챔피언이 되었을 때는 그 권위가 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부부란 어떤 부부입니까? 꽃이 피고 향기가 풍겨서 나비가 찾아오는 동산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져야 이상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상상대가 무엇인지 이쯤 얘기하면 알 것 같아요?
만일에 부부가 서로 보기만 해도 좋아할 수 있는 관계요, 천하에 둘도 없는 하나님의 외아들처럼 하나님의 외딸처럼 서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께서 그 부부에게 벌을 주겠어요, 복을 주겠어요? 이 말은 정성들인 사랑은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할 수 있는 그 사랑이 아니라 누구나가 싫어하더라도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가치를 가진 존재가 된다면 여기에는 영원한 가치가 있게 됩니다. 그 가치는 하늘과도 통하고 지옥과도 통할 수 있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신도의 갈 길이라는 내용으로 돌아가 봅시다. 통일교회가 기독교를 통일하고 종교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합니까, 안 합니까? 「사랑합니다」 말이야 그렇게 하지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말은 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을 사랑해요, 안 해요? 한국 사람도 사랑합니까? 강원도 사람도 사랑합니까? 「예」 사랑하기는 뭘 사랑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산골짜기에서 살게 합니까? 여러분을 사랑한다면 부자집 아들딸로 태어나게 하시지, 왜 하필이면 일주일이 되어도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이런 깊은 산골짜기에 태어나게 하셨어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해요? 「예」 (웃음)
통일교회가 교회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교회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담을 전부 다 헐고 대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통일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심어지느냐? 왕궁이든 산골짜기든 감옥이든 어디에든지 심어지는 것으로 막을 수도 없고 갈라지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불한당 같은 자식이 감옥에 들어가면 그 부모가 찾아갑니까, 안 갑니까? 「찾아갑니다」 감옥에 찾아가서 자식을 볼 때, 부모는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그러면서 '네가 잘못했으니 오늘이 되든 내일이 되든 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부모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없어지더라도 자기 자식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까, 죄가 아닙니까? 「죄가 아닙니다」 왜 죄가 아닙니까? 부모의 마음은 다 그렇습니다. 그 자식이 아무리 역적이라도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것을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공판정에 가서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내 자식이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당당히 증언했다고 할지라도, 그 부모를 헌법 몇 조에 저촉된다며 벌을 줄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조건적 사랑인 동시에 무한대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법을 초월하는 것이요, 세계 어떤 선진 국가의 법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부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하는 아내가 그런 어려움에 있거나 사랑하는 남편이 그런 어려움에 있다면, 그들은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남편 우리 아내를 살려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죄입니까, 죄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부부의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판장도 알고 검사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런 마음을 가졌고 남편과 아내가 그런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형법 몇조에 의해서 구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마음은 법을 다루는 재판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재판장도 그런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 생각은 전부다 공통이라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청중들도 모두 공통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식이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서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살려 놓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처럼 법을 초월하고, 제도를 초월하고, 환경의 모든 배경을 초월하고, 자신까지 초월하여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하는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한 사회 제도가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을 무시한 국가는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개인 교회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교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개인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구원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점이 다릅니다.
자, 여러분 가운데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다 들어 봤을 것입니다. 한국에는 이 정도로 기독교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말을 다 들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싶어요? 요즈음 우리는 파고다 공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여든 청중들이 하는 말이 '강의를 하더라도 하나님이란 말은 넣어도 예수란 말은 빼 주소' 합디다. '왜 그렇소?' 하면 '아, 우리는 예수 싫소. 왜 그런지 모르게 싫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교는 망하더라도 하나님 교회는? 「안 망합니다」
로마서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 것이지 예수의 사랑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 교회 믿고 싶어요, 예수교 믿고 싶어요? 또, 아버지 종교를 믿고 싶어요, 아들 종교를 믿고 싶어요? 「아버지 종교요」 아버지 종교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잠시 동안 녹음이 끊겼음)
앞에서 말씀한 신랑 각시의 얘기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좋은 것보다 만들어서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만을 위주로 자식을 사랑하면 그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또, 자식이 자기만을 위주로 하여 부모를 사랑하면 그것도 가짜 사랑입니다.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진짜 사랑을 가진 참된 종교라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를 위한 사랑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는 희생되더라도 부모를 사랑해야 효자가 되는 것이요, 자기는 희생되더라도 자식을 사랑해야 참부모가 되는 것처럼 통일교회는 희생되더라도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를 세우는 제일 가까운 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있는 목적이 무엇이냐? 교회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교회가 있는 목적을 천당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것도 누구를 중심삼고 있느냐 하면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나라를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개척하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인들이 전도하는 것은 통일교회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라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라 안에 머물러 있는 종교이어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가 이스라엘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주도적인 역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유대교가 망한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방침입니다. 통일교회가 많은 종교를 통일하려면 많은 교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다른 교회를 그 교인들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기에 성덕도(聖德道)가 있으면 성덕도를 흉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교인들보다 성덕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성덕도가 통일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대한민국의 출신보다도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는 통일교회가 되면 그것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이 통일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 길을 통해야 통일이 되는 것이지 강제적인 힘에 의해 굴복시켜 가지고는 통일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우리 통일교인들이 미국 사람보다도 미국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통일교회가 미국을 통일시킬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나라보다도 하나님은 더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통일방침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이 악의 세계를 정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른 뺨을 맞게 되면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 「왼 뺨도 내주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너와 나는 천국 백성이요, 너와 나 앞에는 넘어가야 할 죽음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사랑하면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갑과 을은 개인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너도 불쌍한 사람이고 나도 불쌍한 사람인데 불쌍한 사람끼리 싸워야 되겠느냐, 모두가 나라 없는 불쌍한 처지에서 나라를 찾아가야 할 입장에 있으니, 내가 먼저 알았다면 매를 맞으면서라도 찾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내주어서라도 그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들겨 맞더라도 끌고 가서 그 나라를 소개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리는 자는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가 군왕이라 할지라도 잘못하게 될 때에는 자식에게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왜 그래야 하느냐? 자기보다 아들이 더 완전한 것에 가까울 때는 거기에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십니다. 왜 사랑이시냐? 자기 편을 희생시키고 원수의 편을 사랑해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던 충신이 살아 남은 예가 없었습니다. 역사의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누구를 위하여 제물이 되었느냐? 원수를 위하여, 원수 나라의 사람들을 구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피를 흘리고 사지사경(死地死境)을 헤맸던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수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죽인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되면,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완전히 굴복 하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지없이 굴복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통일방안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죽였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얼마나 애절한 기도를 했습니까? 아버지의 뜻은 그를 죽음의 길로 내몰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의 뜻은 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보다도 세상을 더 사랑하셨으며 영원히 추구해 나가야 할 목표를 세워 놓으셨기 때문에 원수까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는 열만큼 사랑을 했지만 너는 9,999만큼의 사랑을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이익을 봤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차이가 나는 사랑이 몇 번이나 계속될 것 같습니까? 그 사랑은 몇 번 가지 못하고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좋고 부부의 사랑이 좋다 할 때, 진짜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편으로부터, 아내로부터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요, 아들로부터, 형제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혼자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먼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상대가 사랑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기 아주머니들은 시집가서 살면서 남편을 대할 때 어땠어요? 또,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은 어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외출하면 술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술냄새를 풍기면서 '아이구 우리 여편네밖에 없구나'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인들은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한번 시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보 진짜 나를 사랑하오?'라고 한번쯤은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할머니들, 물어 보았어요, 안 물어 보았어요? 얼굴을 숙이는 것을 보니 물어본 모양이구만요. (웃음)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오' 하고 물었을 때, 남편이 '얼마만큼 사랑하긴 나도 여편네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지'라고 대답한다면 기분 좋아요? 아주머니들, 기분 좋겠어요? 남편이 '당신이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지'라고 대답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물어보나마나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빈말이라도 최고로 많이 사랑한다고 해야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매일 들이맞아 뼛골에 멍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 한마디에 멍이 주르르르 풀어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웃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세계적인 입장에 선 남편이 되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이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나'라고 물었을 때에도 부인은 남편을 많이 사랑한다고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내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한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취해야 합니다. 또한 사랑에 취해서만이 그런 표현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거짓이 아닌 것을 아는 본심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느냐? 자기 아들을 죽였습니다.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인류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한 것은 인류를 아들보다 못난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아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한 메시아의 입장에 서서 사랑하려고 했지만 오늘날 후대 인간들은 천주를 중심한 입장에 세워 가지고 사랑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아들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려고 자기 아들을 죽였겠어요? 자기 아들보다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죽였겠어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뭐냐? 세계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 중의 참된 종교는 어떤 종교이겠습니까? 나라에 의해 끌려가는 종교는 망합니다. 나라를 구하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사상은 어떠한 것이냐? 통일교회는 대한민국 국민들만을 사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고요?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세계 인류를 사랑했어요? 사랑했어요, 안했어요? 「사랑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어떻게 세계 인류를 사랑한단 말이예요? 그러나 거기에서도 세계 인류를 사랑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는 임금의 말에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마 25:37-39)"라고 의인들이 반문하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대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백만 원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과 천만 원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쉽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것을 원해요? 적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랑하는 것을 원합니까, 큰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랑하는 것을 원합니까? 숫자가 제일 적은 것이 뭐예요? 「하나입니다」 이것이 일대일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계를 사랑해야 하느냐? 자기 부모같이, 자기 아내같이, 자기 자식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부모는 일대일로 대하지요? 자기 아내와도, 자식과도 일대일로 대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본받아서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세계 인류를 자기 아들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종교를 안 믿어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지 않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 대신 통일교회 문선생이 천국 가는 수속 절차를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기성교회를 믿다가 여기에 온 아주머니가 있으면 똑똑히 들으세요.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세계 사람들을 아들딸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여러분의 남편보다도 세계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남편을 더 사랑할 것이냐, 세계를 더 사랑할 것이냐? 이것을 가려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알기는 아는군요. 자기 남편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여자가 하나님이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딸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내를 제물로 삼아서라도 세계를 살리겠다고 하는 남자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넘어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지만 독생자를 희생시켜서라도 만민을 예수와 같이, 예수보다 더 귀한 아들딸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독생자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일대일의 사랑을 확대한 것이 세계를 위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식과 세계 인류 가운데에서 하나를 사랑하라고 한다면 누구를 먼저 사랑하겠느냐? 이것을 가려야 됩니다. 누구를 먼저 사랑해야 되겠어요? 「세계요」 그것은 왜 그러냐? 자기 자식을 먼저 사랑하는 것은 전체적인 목적이 아니라 개체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딸을 구하는 것도 전체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목적을 이루게 되면 아들딸을 구하지 않고도 그 아들딸은 이미 찾아진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통일교회 믿는 것을 반대하지요? 반대받는 사람은 손을 들어 봐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형님 누나, 기성교회 목사 장로 할 것 없이 통일교회 가면 죽인다고 반대할 것입니다. 그처럼 반대를 받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교회만을 사랑하자는 것이 아니요, 부모만을 사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예요. 부모에게 당대에는 효도를 못 하더라도 나라를 살리기 위한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날에는 효의 도리를 이룬 것과 같은 가치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모가 아들에게 가지 말고 나를 사랑하고 나와 더불어 같이 살자고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박차고 집을 떠나 나라를 위해 충신의 반열에서 죽어 갔다 할진대는, 그 부모가 충신된 아들을 대하여 '너는 나보다 낫다'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오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그 집안은 망한다는 겁니다. 그때는 아버지 어머니도 '네가 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박차고 가기를 잘했다'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법도를 중심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백 세에 얻은 만득자(晩得子) 이삭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드린 것은 자기 가족을 위해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만민을 위해 드렸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잡아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바꿔치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남편을 중심삼고 볼 때, 남편을 죽을 자리에 내보내서라도 세계를 살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열녀입니다.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남편도 살리고 세계도 살릴 수 있다면, 둘 다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일에는 선후관계가 있습니다. 두 가지 가운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효자를 가진 가정이라 하더라도 그 가정에 불한당이 습격하는 날에는 아버지 어머니도 죽게 되고 아들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주권 없는 나라의 국민은 불쌍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고 하셨습니다.
먼저 아들을 구하라고 하셨습니까,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찾고 있는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만 찾으려고 하시겠습니까? 대한민국만 구하려고 하시겠어요?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사랑할 줄 아는 주의, 세계를 사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주의는 앞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를 중심삼고도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수습할 줄 모르는 주의, 그런 주의를 가진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서 공산당이 망할 것이냐 흥할 것이냐 하는 것도 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산당이 소련의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다면 그 공산당은 망합니다. 알겠어요? 중공과 소련이 수정주의니 교조주의니 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민족적인 감정을 초월하지 못하고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의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민족적인 주의라야 합니다. 초민족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자기 민족보다 그 나라를 더 사랑할 줄 아는 민족이 나와야 합니다. 자기 민족보다 그 나라를 더 사랑하고 그 나라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 아들딸도 희생시킬 수 있는 제사장이 나오지 않고는 세계는 살아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는 어떤 교회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남편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남편을 희생시키는 여인은 세계적인 여인입니다. 세제를 위하여 아들딸을 희생시킬 수 있는 부모는 세계적인 부모입니다. 또한 세계를 사랑하는 불타는 마음으로 죽음길을 간 아들딸이 있다면 그는 그 부모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효자 중의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런 길을 가야 됩니다.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에게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찾아가야 할 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편도 그것을 위해 있고 아내도 그것을 위해 있으니 세계를 먼저 사랑하고 나서 가정의 보금자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나라 없는 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아무리 가정끼리 죽자 살자 하더라도, 나라의 주권이 없게 될때에는 원수의 총칼에 쓰러져 간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세계를 중심삼고 생활 철학을 세워서, 심정적인 내용을 가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그대는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해 주시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첫째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도 우리 가정만 사랑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집만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려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동네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받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되는 거예요.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라는 거예요.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끝날에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지상천국은 어떤 곳이냐? 하나님께서 만천하의 만민을 한 품에 품고 한 백성으로 사랑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지상천국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계적이겠어요, 대한민국적이겠어요? 「세계적입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적이라면 기분이 좋겠어요?
세상에는 위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위인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제일 잘 아는 위인이 누구예요? 「이순신 장군요」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을 좋아해요? 「좋아합니다」 이 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적입니까, 세계적입니까? 「대한민국적입니다」 그런데 왜 좋아하는 거예요? 이제 세계적인 때가 오는데 대한민국적인 것을 좋아해서 되겠어요?
좋아하는 것은 좋지만 좋은 그것이 완전하냐는 것입니다. 그 위인이 완전합니까, 완전하지 못합니까? 「완전하지 못합니다」 왜냐? 대한민국에 서는 이순신 장군을 충신이라고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뭐라고 하겠어요? 원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위인을 배척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위인을 따라가야 합니다. 다만 한 나라만의 위인은 세계적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위인은 어느 국가에나 다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나아야 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보다 더 나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인을 알아요? 어떤 사람이 성인이겠어요? 세계의 성인은 몇 사람이나 됩니까? 성인은 누구누구입니까? 「소크라테스·공자·석가·예수입니다」 그리고 또 누구예요? 이렇게 4대 성인이예요? 만약 마호메트의 이슬람교도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분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4대 성인에는 소크라테스가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와 사상을 중심삼고 보면 마호메트가 4대 성인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되느냐? 앞으로 여러분에게 성인이 될수 있는 내용도 가르쳐 줄 겁니다. 충신이 되고 위인이 되려면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기 생명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면 충신이 되고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려면 나라를 사랑하는 그 이상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만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의 반열은 민족적이 아니라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인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이걸 안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 오면 전부 다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 식구들은 성인이 되겠습니까. 성인을 지도하는 성인의 왕자가 되겠습니까? 「성인의 왕자가 되겠습니다」 욕심들은 많구만. (웃음)
성인이 되는 내용이 무엇이라고요? 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성인입니까? 예수님은 유대 백성에게 몰렸습니다. 로마 병정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으니, 그들은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에게는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사랑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원한에 사무쳐서 복수를 하기 위해 이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 기도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중심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면류관을 쓴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국가를 통합하여 하나의 국가로 형성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래의 세계관를 중심삼고, 미래의 인격관을 중심삼고, 미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말없이 흔적없이 사라져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개척해 나왔던 그 나라를 중심삼고 끝날에 기독교가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판도를 넓혀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알았기에 이런 일을 하는거예요.
그러면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종교 중의 종교가 되었느냐? 성인 중에서도 왕성인을 중심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성인 중에서도 중심 성인이 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중심 성인을 따라갈래요, 주변 성인을 따라갈래요? 누구를 따라갈래요? 중심 성인을 따라가야 합니다.
중심 성인은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한 인도(人道)를 가르쳐 줘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의 도리, 정도(正道)를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성인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도리,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할 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성인은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공자도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을 위주로 했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성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인은 하나님께서 지도하시기 때문에 세계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초월한 평화의 나라를 추구하고, 사랑의 심정을 중심한 인류애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리이기 때문에 그 도리를 따르는 성인의 가르침은 세계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주로 하지 않고는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가 없지요?
석가도 막연하게나마 신을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만물들은 불성을 갖고 있으며 신의 성품과 일치된다고 했습니다. 신을 빼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회교도 종합적인 종교입니다. 신을 중심삼은 종합적인 종교입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의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였느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7-38)"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것은 최고의 독선이라는 거예요.
동네에서 쫓겨난 더벅머리 총각이 '네 어머니 아버지 자식들을 다 버리고 나를 사랑하라'고 말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 내용을 모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세계의 중심을 대표해서 주관권을 가진 남성의 자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와 접할 수 있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계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심판과정을 거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그 나라의 풍속이나 제도를 초월해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독생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아마 예수님처럼 독생자라는 사람이 몇 사람 있었더라면 매를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이자식아, 네가 독생자냐? 나도 독생자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독생자란 말은 무엇이냐? 누구를 중심삼은 독생자냐?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째 사랑을 받은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독생자를 중심삼고 사랑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한 독생자를 사랑하는 데에 세계를 찾아 가지고 세계를 품고 돌아오는 독생자를 사랑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실권을 가진 남자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독생자로 왔으니 독생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하시겠어요. 임하시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해서 결혼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결혼을 해야지요?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 신부의 어린양 잔치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광경을 보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종이 아니라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 예수님의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좋아요, 안 좋아요? 그것은 우주주의요, 평등주의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느 종교가 종교 중에서 제일의 종교냐? 무엇이 제일 귀하다고요? 사랑이 제일 귀하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사랑의 인연을 들고 나온 종교가 제일의 종교요, 그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기독교'라는 이름을 우리 교회 명칭에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는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그 가정은 이스라엘을 위한 가정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가정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면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들은 인륜의 도리만을 가르쳐 주었지 천륜의 인연은 못 맺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천륜과 인륜과 관계를 지어서 인정과 천정이 결합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도리를 중심삼고 이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성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느냐?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살고 있더라도 무슨 사랑을 해야 되느냐? 자기 남편보다 자기 부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세계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권한을 찾으십니다. 그러니 그 권한을 찾기 위해서 첫째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는 세계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입해서 나가는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세요'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남편도 아내에게 자기 자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누구를 사랑하라고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가르침은 세계를 위한 도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둘째로는 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세계를 사랑하는 인연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한국적이거나 강원도적이어서 되겠습니까? 강원도의 여자이지만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남편도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에게 자기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라고 해야 합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가서라도 싸워 이기고 오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의 자식들을 고생시키더라도 당당히 나가 싸우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살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요,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벌어지느냐? 이렇게 노력하며 살았다고 보증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참된 승리적 자리를 갖춘 참된 부모와 참된 아들딸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까지의 가정은 전부 다 타락한 세상의 가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강원도를 위해 살겠어요, 대한민국을 위해 살겠어요, 아니면 세계를 위해 살겠어요? 「세계를 위해서요」 시집을 가는 것도 무엇을 위해가야 되겠어요?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아기를 키우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세계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한국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사랑하고 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 가려면 먼저 한국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을 사랑해야 돼요.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그렇게 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3개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아 나왔고, 3대 정권의 핍박을 받아 나왔고, 3대 교파에게서 핍박을 받아 나왔으며, 3세계의 핍박을 받아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이름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현세의 사람들은 물론이요 영계까지도 전부 다 통일교회를 반대했습니다. 통일교회는 이렇게 3시대권으로부터 핍박받는 운명을 안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그 원수들까지도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사랑으로 끌어 주기 위해 나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고생시켜 나왔지만 그것은 통일교회의 발전만을 위해서 고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세계를 위해서, 세계를 찾으려니 대한민국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현재 세계를 붙안고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는 왜 필요하냐? 세계를 찾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을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노릇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해 보시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해 보셨습니까?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해 보실 수 있는 자유의 동산을 만들어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간에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냐? 하나님께서 사랑해 본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세계의 본향지가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만일 대한민국에 있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의 조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그런 나라를 이루어 봅시다. 그 길을 가려 놓기 위해 가는 길이 앞으로 통일신도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밥을 먹더라도 세계를 위해 먹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은 선생님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세계의 대표국가인 미국도 세계를 위한 미국이 못 될 때는 그 자리에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련도 세계를 위한 초민족적이고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세계의 주도권을 세우려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후퇴해요, 안 해요? 소련 공산주의도 중공이 나온다고 어떻게 했습니까? 채찍을 들었던 것입니다. 두 패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원수가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원수시하는 사람은 많지만, 통일교회는 원수가 없습니다. 문선생은 통일교회를 원수시하는 그 사람들의 아들과 딸들을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반대하는 원수가 되어 죽어갈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들의 아들과 딸들을 선생님을 도울 수 있는 충신 중의 충신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강제로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은 돈을 주고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종교관을 심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종교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서 인간이 찾아 나온 것도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가 어디냐?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나고,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어간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임에 틀림없으며 그 나라의 백성 가운데서도 충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 앞에는 효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가르침을 중심삼고 나감으로써, 전인류 앞에 본받을 수 있는 첩경의 길을 제시해 주어야 됩니다. 그 길은 만민이 공통으로 흠모하며 따라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그 길로부터 통일은 시작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사랑합니까, 사랑하지 않습니까? 「사랑합니다」 안 해요!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영원히 사랑 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어떠한 죽음길이 가로놓여 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세계적 사랑을 가지고 끝가지 가게 될 때 반드시 그 사랑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사랑하겠어요, 안하겠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야 되겠어요, 안해야 되겠어요?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예」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세계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남보다 먼저 희생하는 자리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열 명의 아들에게 표창을 한다면, 누구에게 먼저 표창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나가 죽은 아들에게 표창하실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첫째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통일교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세계에서 가장 처참하고 어려운 곳에 보내서 희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고생시키니까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시집도 못 가고 늙어 죽게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서 살다가 시집을 못 가게 될 때에는 영계에 가서 세계를 위해 살았던 역사적인 미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시집 장가 못 간 채로 늙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사랑 못 해봤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상세계, 영계에 대한 사실들을 잘 모르지요? 선생님이 영계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지만 오히려 누(累)가 될까봐 못 합니다. 일은 하지 않고 딴 생각 할까봐 얘기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죽도록 고생시켜야 되겠습니다. 다행이예요, 불행이예요? 여러분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니 고생을 시키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남이 잘먹을 때 못 먹고, 남이 잠잘 때 못 자고, 남이 웃을 때 울어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반대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울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면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두 세계를 주관해야 합니다. 천상세계의 하나님과 지상에 있는 나, 하나님과 나는 양손으로 톱을 붙들고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하여 박통같은 세상을 쪼개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톱날이 다 닳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는 통일교회 남자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통일교회 여자가 있다고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서 이 세상을 쪼갤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선생님을 만나면 좋은 말을 들을 줄 알았겠지만 죽도록 고생하라는 것이 선생님의 선물입니다. (웃음) 죽도록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고생하라고요? 「세계를 위해서요」 문선생을 위해서가 아니고 통일교회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앞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해방의 깃발을 들고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이 죽게 되면 그 무덤 앞에 천만인이 비석을 세우면서 여러분을 찬양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지나고 나서 보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천년 만년 보배로운 삶으로 기억되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 때 입었던 찢어진 러닝샤쓰, 떨어진 와이샤쓰 짜박지를 후손들은 천금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덩이로 여길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요? 선생님은 흥남 감옥에서 3년 동안 고생하면서 입었던 갈래갈래 찢어진 와이샤쓰나 팬츠를 전부다 모아 두었습니다. 그것에 암모니아와 유산이 묻어서 전부다 보료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남기기 위해 3년 동안 고이고이 모았습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이 틀리지 않는 길일진대 반대하는 국가와 세계는 그 반대의 뜻을 세우지 못하고 끝내는 선생님한테 밀려 나갈 것입니다. 그때에 그 모아 둔 것은 후손들이 붙잡고 천년 만년 울부짖을 수 있는 보물이 될 것입니다. 말없이 역사를 요리할 수 있는 재료가 되기 때문에 귀하게 보존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입었던 러닝샤쓰가 몇 푼짜리나 되느냐? 그것은 일전 한푼의 가치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입고 세계를 위해 흘린 피땀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났고 갈릴리 해변가에서는 어부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 죽었느냐, 누구를 위해 피땀 흘렸고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시대에는 민족의 반역자요, 사회의 파괴분자요, 선동분자로 지탄받으며 이슬같이 사라졌던 나사렛 예수가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하여 새로운 세계의 인연을 갖추게 될지 그 누가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필시 이 세상을 구원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종말의 시대까지 끌고 오신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리워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계를 품고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들딸을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갖은 모욕, 갖은 역사적 고난을 거치면서 죽음길을 가려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동안 찾아 나온 복귀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려고 시도하는 통일교회라 할진대는, 우리 앞에 다가오는 어떠한 시련 고통도, 천년의 한이라도 우리는 마다할 수 없습니다. 죽더라도 세계를 위해 죽노라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깃발로 말미암아 억천만금의 가치 이상으로 그 나라를 찬양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나라의 주권이 회복됐을 때 우리들은 충신의 반열에 세워질 것이며, 하늘의 중심으로서 천상세계의 황족권에 세워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만이 인류가 중심삼고 가야 할 최고의 소망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의 이부자리가 보기에는 비록 처량한 누더기요, 값으로 치면 일원짜리도 못 되어 거지들도 집어 가지 않을 누더기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이것이 변하여 황금이불을 덮고 살아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동안 끊겼음)
여러분, 마리아의 학벌이 어떠했겠습니까? 마리아가 대학 출신이겠습니까, 고등학교 출신이겠습니까? 마리아는 틀림없이 무식한 여자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모세 5경에는 처녀가 애기를 배면 돌멩이에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아직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천사가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였을 때는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를 그토록 간단히 받아 넘긴 마리아는 틀림없이 무식한 여자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심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여성을 대표해서 이스라엘을 염려하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이스라엘의 선민권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세계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인연맺기를 간곡히 호소한 여자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 여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학식이나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30세가 될 때까지 내 옷을 스스로 사 입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양식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외적인 그런 것으로 보면 여러분이 나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랬느냐? 내가 치리하고 거느리고 있는 아들딸들이 있지만 내가 정성을 다해서 어느 한 가지도 못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그렇게 해주고 나서야 내가 해입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가르침이요,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자리를 못 갖추었기 때문에 내 옷도 사 입지 못했습니다.
또, 선생님은 30평생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이야 있었지만 그 돈을 선생님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병에 걸려 길거리에 누워서 집에 못 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있는 힘을 전부 투입해서 천리 길 이상을 메고 업고 다니면서 도와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강원도 감자바위 이상의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피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당하는 자리에 나가더라도 졸장부의 신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맛을 알고 인생을 판가리할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을 맞은 사나이가 된 후 하나님에게 감동하여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반대를 하며 100년이든 300년이든 욕을 하더라도 할 테면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살더라도 세계를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기 남편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것이 손해보는 일이냐?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 복을 받는 일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와요, 안 와요? 또 세계를 사랑하면 세계 만민이 나를 후원해 주겠어요, 안 해 주겠어요?
여러분은 자신을 모든 사람 앞에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자랑하려면 무슨 건더기가 있어야 자랑을 하지, 아무것도 없어 가지고 자랑할 수 있어요? 자랑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만민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 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할 게 아니예요? 사랑받을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될 수 있으면 좋아요, 나빠요? 그것이 싫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너나할것없이 전부 다 좋아하는 자리에서, 내가 가면 그들도 따라오고, 내가 머물면 그들도 머물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좋습니까? 「예」 왜 좋아요? 여러분이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점잖지 못하게 밤인지 낮인지 분간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잠을 자고 있는 새벽에 담을 타고 넘어와서는 '선생님 계십니까?'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담을 넘어서 벌렁벌렁 기어들어와 가지고 선생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을 먹을 수밖에 없지요. 선생님이 오라고 그랬어요? 그럴 때는 선생님이 그들에게 실컷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천하가 뭐라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요. 감옥에 끌려가서 조롱을 받고 곤욕을 치르더라도 선생님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맨 처음 문에 척 들어 서자마자 소장이 눈을 부릅뜨며 '통일교의 교주인 문 아무개가 왔구먼' 하며 비웃는 듯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네가 나에게 항복하나 안하나 두고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소문이 사실인 줄 알고 선생님에게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차츰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람이 아닌줄 알고 나중에는 자기 도시락까지 주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이 언제 한번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자네가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할 때 선생님은 '그래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내가 다 받아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한 달도 안 돼서 선생님은 그들을 내 종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때는 비상 작전을 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아, 너 이런 자식 아니냐?' 하면서….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만 석 달만에 나올때에는 소장도 과장도, 거기 있던 기성교회 목사도,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 알지요? 가만히 보니까 소문과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아주머니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이 밤이나 낮이나 선생님을 쫓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더라도 좋다는 겁니다. (웃음) 그 아주머니들을 보고 형무소 사람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상당히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새벽부터 선생님에게 면회하겠다고 서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일지라도 소문이 있으면 전부다 쉬쉬 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쯤이야 괜찮지만 선생님이 나올 때까지 점점 더해 가니 왜 그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는 형무소장을 선생님이 전도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영계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너 몇 번 문 아무개한테 가서 인사해라! 그리고 차입 들어오면 전부다 바쳐라' 하면서 호통을 친다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멋져요? 보이지 않는 영계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편입니까? 「하나님편입니다」 하나님편이예요? 내 편이지요. (웃음) 선생님은 외롭지만 그런맛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 공산세계에 들어갔을 때, 기성교회 목사 80여 명이 전부다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잡아죽이자고 서명 날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문선생이 죽게 되어서 개운하다고 하면서 앉아 있었지만, 선생님이 죽긴 왜 죽어요? 결국은 선생님을 죽이겠다고 모의하던 그 사람들이 전부다 죽고 없더라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다 죽였던 것입니다. 죽이려고 감옥에 잡아넣었던 사람은 살아 나오고 살겠다고 나를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잘 된 일입니까, 못된 일입니까? 「잘된 일입니다」 잘된 일이지요? 그렇다고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라서는 안 돼요.
선생님은 공산세계에서 감옥에까지 들어가 보았기 때문에 공산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왜정시대에 선생님은 일본 동경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백주에 지하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미래에는 그들과 원수 사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 서러운 일입니다. 이런것이 우리들의 아픔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이 원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에 앞서 일본이 우리들의 원수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별의별 일을 다 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본을 떠나오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20년 후에 내가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니 그때 다시 만나자. 지금은 일본 천황에게 원수를 갚지 못하여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 주지 못하고 가지만, 앞으로는 너희 나라 백성, 너희 나라의 청년 남녀들에게 내가 명령하고 가르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20년 만에 일본에 갔습니다. 가자마자 제일 궁금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우리 교회에 청년 남녀들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남녀들이 한 5백 명 모였는데 그들은 전부다 부자집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일본은 우리 한국의 원수인데 내가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서 밑천까지 대주며 특사를 보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 모인 젊은이들에게, 너희 나라의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 하고 물으니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했더니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전부 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일본도 천황도 다 필요없고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문선생이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명령하고 들이몰면 무슨 일이든 다 할 거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세계반공대회(WACL)가 한참 진행 중일 것입니다. 오늘 오후 한 시 반부터 이 대회가 열렸을 테니까요. 그 자리에 미국의 어느 상원의원까지 나와서 축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시켰는지 알아요? 그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최고 괴수(?)가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거기에는 일본 자민당원들부터 옛날에 수상을 했던 사람들까지 내 작전에 말려들어와 가지고 춤을 추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우선 자기들이 신이 나거든요.
내가 이 민족에게서 욕을 먹고, 소문은 좀 났지만, 대한민국에 대해서 잘못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만약 일본이 용공국가가 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계획하고 지금까지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해 온 것입니다. 민족이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그 분수령이 어디며,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정보부니 뭐니 하는 곳들도 전부다 우리를 승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앞으로 반공사상을 주입시키지 못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그러나 반공연맹에서는 뭐이름도 없는 통일교회 문교주가 어떻고 어떻고 합니다. 그래요. 선생님은 이름이 별로 없는 교주입니다. 그렇지만 자격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두고 보세요. 그들도 선생님의 작전에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4월, 5월, 6월에 어떤 싸움을 했는지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기가 막히는 싸움을 했습니다.
여기에 정보부와 관계 있는 사람이 왔을지도 모르지만 들어 보세요. 그들이 우리의 실무 담당자들에게 하는 말이 통일교회의 스케일이 커서 자기들의 콤파스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콤파스는 작아서 우리들의 끝이 닿는 곳을 못 잡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지금 죽느냐 사느냐 야단을 하는 판인데, 세계를 중심삼고 아시아 문제를 해결짓겠다고 하고, 일본 문제를 놓고도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고 있지요? 이만하면 우리가 큰사람들이예요. 못난 사람들이예요?
우리들은 크고, 바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몹쓸 바람이 아니라 꽃향기 풍기는 봄날의 좋은 바람이 들었다는 겁니다. 가을 바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언제나 봄날입니다. 언제나 기분이 좋아요. 아무리 반대를 해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은 싹 흘려 보내 버립니다. 두고 보자는 거예요. 이 다음에 내가 잔치를 할 때 나를 반대한 사람들한테 떡 한 개 안 줘도 말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700쌍을 축복할 때는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서울의 인구가 약5백만이니까 떡을 5백만 개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들에게 한바탕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떡을 5백만 개 만들자고요. 만들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좋겠습니다」 그러면 강원도에서는 몇 개를 만들겠어요? 전국이 8개의 도이니까 강원도에서는 몇 개를 만들어야 되겠어요? 5백만 개의 8분의 1이면 얼마예요? 5백만 개를 8로 나누면 약 60만 개 정도지요? 그러므로 60만 개를 만들어야 됩니다. 60만 개면 아마 한 차에 가득 찰 것입니다. 여러분은 60만 개를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하나님께서는 고맙게도 여러분들에게 탕감조건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떡 60만 개를 해야 할 것을 6개로 탕감조건을 세운다고 하면 끝나 버리는 거예요. (웃음) 통일교인들은 세계적인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선생님이다 해 놓은 것 위에 조건만 세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의 매를 먼저 다 맞는 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떡 여섯 개를 살 거예요, 안 살 거예요? 「사겠습니다」한 사람이 여섯 개 살 거예요, 전체가 여섯 개를 살 거예요? 「혼자서요」 그럼 사서 내놓아요. (웃음) 떡을 여섯 개씩 사지는 못했지만 해 놓기는 했어요? 「예」 여러분, 오늘 아침 기분이 흐뭇해요? 「예」 선생님도 흥미가 생겨나는데요. (웃음) 두고 보세요. 이번 잔치 때에는 세계의 사람들이 다 몰려올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 행하고 있는 와클대회의 작전을 내가 지시했습니다. 구보끼 협회장이 뭘 모르거든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보면 재미가 있고 잘 들어맞거든요. 여러분 그런 것을 알아요? 「예」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부모의 말보다도 통일교회 문선생님의 말만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런 말은 밤에 들어도 고맙고, 낮에 들어도 고맙고, 저녁에 들어도 고마운 것입니다. 말을 안 듣는 것처럼 기분 나쁜게 없는 것입니다. 본래 여러분은 말을 잘 듣게 되어 있지요? 「예」 우리 아가씨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아주머니들도 그래요? 「예」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세계를 한번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며 세계를 위해 미친듯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며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 보자는 것입니다. 다 키운 아들딸들을 희생시켜 제사를 지내야 할 입장이 되더라도 한번 미쳐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거든 선생님의 목을 자르라는 거예요.
지금도 백주에 선생님의 목에 칼을 꽂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게 칼을 꽂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망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가 죽어가는 줄 알지만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길을 간다는 겁니다. 이걸 생각할 때 통일교회 사람들이 갈 길은 고생길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 지갑에도 돈이 몇 푼 안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침에 여기에 올때도 어머니한테 돈을 좀 달라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먼 데서 온 사람이 여비가 없으면 선생님이 주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달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배달이란 무슨 뜻이냐? 배달민족은 배달부 민족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멀리 떠나간 님을 기다릴 때 그 님의 소식이 누구한테서 옵니까? 「배달부요」 편지로 오지요? 그 편지는 배달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 편지를 받으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배달부를 대접해 본 사람이 있어요? 눈이 빠지도록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배달부가 편지를 전해 주면 좋다고 받아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있지만, 점심 때가 되었으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배달부를 대접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배달부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한 소식을 전해 주지만, 월급을 타서 배달부에게 세금 바치는 사람 있습니까? 한번이라도 배달부를 공손히 대접한 아주머니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불쌍한 사람을 한번도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에게 배달부의 사명을 하도록 했는데 집집마다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는 배달부가 되었어요? 배달부가 편지를 가져다 주면서 '오늘 날씨가 참 복지경이구나. 땀이 왜 이리도 나노' 하면서 대청 마루에 올라와서 시원한 물 한 그릇 갖다 달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배달부가 있습니까? 배달부는 천시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배달민족이란 배달부 민족입니다.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배달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에 배달하는 배달부 민족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근사합니까? 무슨 민족이라고요? 배달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또, 백의민족이란 무슨 말입니까?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백의를 입지 않아요? (웃음) 백의는 표지(標識)로 사용됩니다. 백의는 무엇에 쓴다고요? 표지로 쓰이는 것입니다. 새까만 밤중에 새빨간 것이 표지가 될수 있겠어요? 샛노란 것이 될 수 있겠어요? 새하얀 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흑암 천지에 있어서 표지가 될 수 있는 것은 흰색이라는 것입니다. 사망이 가득 찬 암흑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백의만이 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의를 중심삼고 이 일을 해 나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도 외로워요.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가 아닙니다. 또한 처자가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같은 동역자도 있어요. 그렇지만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해원성사해 놓지 못하였으며,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외로운 길을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길 가는 거예요.
그 길은 언제 끝날 것이냐? 선생님 일생이 끝나더라도 그 길이 남아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가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늙어 죽도록 그 길을 따라가다가 뜻을 못 이루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도 가겠습니다」 그래도 가야 되겠어요? 「예」 세계를 위한 길이기 때문에 영원히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길도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은 죽어서도 가야 하는 길입니다. 영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이기 때문에 천년 기간이라도 영계에서는 하루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천년 걸려 성사한 일이라도 일년 걸려 성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무슨 길이냐? 참된 사랑의 길입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이 죽은 지 10년이 지났다고 그 자식을 잊어버립니까? 자식의 묘지가 닳아 평지가 되었더라도 그 묘지를 찾아갈 때 부모는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영계에 가더라도 제일 먼저 그 자식을 찾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겠지요?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망각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후에 자신의 생명을 끊고 간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세계를 중심삼고 자신이 듬뿍 사랑을 다하지 못한 것이 한이고 정성을 다 들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체계화시키기 위한 단체가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석가모니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나 공자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종교의 목적은 개인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개인구원보다도 가정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일반 종교와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구원을 하되 가정을 구원하고, 천국을 가되 자기 혼자 안 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구원관은 남편은 천국에 보내고 부인은 지옥에 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천국에 가자는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를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또 아들딸도 데리고 천국에 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는 자기가 사랑하는 가정, 자기가 사랑하는 종족까지 몽땅 데리고 천국을 갈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종교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했지만, 통일교회는 가정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거예요. 그 가정은 세계를 위한 가정이요, 하나님을 위한 가정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요, 금후에 여러분이 생활해 나가야 할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보다, 남편보다, 부인보다, 자식보다 하나님과 세계를 더 사랑하는 것이 곧 부모에게 백 퍼센트 효도하는 길이요, 남편을 백 퍼센트 사랑하는 길이요, 아내를 백 퍼센트 사랑하는 길이요, 자식을 백 퍼센트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 사랑의 가치 이상의 자리에 갈 길이 이 길밖에 없기에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만민이 가야 할 공통적인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서 승리의 깃발을 들게 될 때에는 천하를 통일하고도 남을 수 있고, 천하를 가슴에 품고도 남을 수 있는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이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참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한민국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는 기백을 가질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이 세계보다 영계와 후대 세계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는 길이 통일교회 신도가 가야 할 길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님, 오늘은 강원도에 있는 춘천지구본부의 통일교인들을 중심삼고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 즉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했습니다.
저희들이 이 엄청난 복귀의 노정을 가려 가기 위해서는, 필생의 사업으로써 생애를 걸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오니, 부디 저희들이 이 길에서 어긋나지 않게끔 저희들의 마음을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알게 되면 이 길이 얼마나 크고 엄청난 길이라는 것을 알 것이오나 아직까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사오니, 그들에게 알 수 있는 지각과 총명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세계를 대신할 모국 창건의 거룩한 사명을 이 불쌍한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불쌍한 배달민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사실이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꽃이 피고 잎이 나기도 전에 이미 땅 속에서는 생명이 움트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그냥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모르지만, 푸른 잎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맺히는 가을 절기가 되면 전부 알게 될 것이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종교계에 가을 절기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이 사회를 혁신하여 참다운 사회의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환경이 찾아오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그 동안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려 왔는 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당신의 아들도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그 길을 가시는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알았고, 옷깃을 여미어 당신을 뵐 수 없는 불충의 모습인 것을 마음 깊이 느꼈사옵니다. 욕을 먹고 밟히는 자리에 들어가도 원망할 수 없는 부족한 자신임을 느낄 적마다 당신은 저와 같이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당신께서 사랑해야 할 아들딸이 있사옵고 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아버지께서는 이들을 내세워서 세계를 사랑하고자 하시고,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싶어하시지 않사옵니까? 사랑하는 자녀를 그러한 아들딸로서 내세우고자 하시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이옵니까? 그 자리는 생사의 교차로요, 생명의 결정권을 넘어가서 당신의 사랑의 흔적을 남겨야 할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아들딸이 오늘 이 자리에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스승의 얼굴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스승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승이 이 땅에 남기고자 하는 그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가 이들 앞에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이 이들 앞에 떠날수 없는 사람이 되게 될 때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요, 세계도 그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뗄래야 뗄 수 없도록 얽어매어 서로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만이 가진 특권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인류애에 사무치고 천정(天情)에 사무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최상의 노력과 최대의 정력을 다하여 하나님과 세계를 사랑하고 가겠다는 철두철미한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동경에서 벌어진 행사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기도하는 것은 일본이 원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혈족으로 연결된 형제의 나라가 되는 것이요, 그들의 염려가 우리의 염려로 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이옵니다. 이것은 아버지를 중심삼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오니, 고이고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을 성취하시어 새로운 아시아를 창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이 하나되어 중국을 흡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사옵기에 남이 모르는 가운데 이와 같은 내연적인 작전을 계획해 나왔사옵니다. 이 모든 일이 당신 앞에 패배의 서러움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영광을 갖추어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세계에서 몰려 온 수많은 대표자들이 대회를 마치고 되돌아가게 될 때에는 일본 땅에 눈물의 인연을 남기고, 무엇인지 모르게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봄이 되면 동산에 나비와 벌들이 찾아오듯이 세계의 모든 생명들이 그 인연을 통하여 연결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의 깊은 뿌리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앞으로 승공연합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개척자의 선봉의 자리에 서서 모든 투쟁의 행로를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온전히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념으로만 동하고 정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운동이 아시아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여, 당신이 좌정 하시어서 어명을 내려 치리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전원이 백절불굴의 심정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결의로써 한 덩어리가 되어 목적지를 향하여 투쟁의 행로를 달려가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을 지켜 주시옵고, 이 시간 이후에도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옵고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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