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에 무엇을 남겨야 하느냐? 기쁨을 남겨야 합니다.

내가 지금 대견하게 여기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요전에 선생님이 어떤 식구를 만났는데 그는 이미 치료하기 어려운 중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그에게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의 표정을 보았는데,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으며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왔다가 가는 것이지만 단 한 가지 섭섭한 것은 제가 뜻 앞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통일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뜻을 중심삼고 죽음 후의 세계, 즉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세포에 직접 체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거쳐간 수많은 인간들이나, 역사상에 뜻을 품고 왔다 간 수많은 성인현철들은 인간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필생 전력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갔습니다.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내가 가고 난 뒤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효도하고 그 뜻을 염려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생각할 때, 불쌍하신 하나님이 염려되는 것입니다. 그외에는 미련이 없습니다.

살고자 하는 마음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100만 년을 살더라도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백발이 된 육칠십 세의 할머니에게 물어 보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뜻 없이 오래만 살면 뭘 합니까? 나라면 나라 앞에 플러스 되고, 역사시대면 역사시대 앞에 플러스 되게 살아야 합니다. 선을 남기기 위해서, 보다 나은 그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저 먹기만 하는 기생충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매일같이 차를 타고 왕래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겠지만, 이 서울의 어디든지 차를 타고 다닐 때에는 반드시 '이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고 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뜻을 위해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는 길을 사탄이 막아 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앎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인생길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통일교회를 믿다가 떨어져 나갔던 어떤 사람으로부터 비장한 보고를 들었습니다. 이 길은 어차피 가야할 길이기 때문에 할수없이 돌아왔다면서 다시 받아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대답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다녀 보고,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갈 데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다시 돌아온 것은 좋지만 그가 가는 길에는 수난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렵다고 했던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그것을 넘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겠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책임을 질 수 있겠다면 나는 열 번이라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임을 질 수 없는 데도 용서해 주게 되면 그에게 이중적인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못하고 묵묵히 있기만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예」 나갈 때에는 서서 나갔지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에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애를 보내느냐가 문제

앞으로 이 길을 간지 오래된 사람들이 거친 수난의 역사가 세계 앞에 드러날 때가 옵니다. 선생님의 역사와 더불어 어떤 사람이 어떠한 역경을 거쳐 갔다는 것이 역사에 남아질 것입니다. 그들이 잘살고, 잘입고, 좋은 환경에서 산 것이 아니라 단칸방에서 동삼삭에 아들딸에게 베적삼과 베바지를 입혔다 할 때, 그 베옷은 천년 만년 인간에게 새로운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옥중을 여러 번 드나들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당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민족사를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다 간 충신들이 흘린 피와 내가 흘린 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흘린 피땀과 그들이 흘린 피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번 다르다고 생각했으니 끝까지 다르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채찍을 들고 몽둥이를 들어 나를 들이칠 때도, '칠 테면 쳐라, 너희들의 이 매를 내가 기억하고 있겠다' 하며 당당히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지 사경을 넘나드는 환경도 극복하고 나왔습니다.

수많은 충신들은 나라를 위해서 피를 흘리며 희생해 갔지만, 나는 하늘 땅을 위해서. 역사시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고통을 당해 나왔습니다. 만약 여기에 '내 육신으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죽겠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했던 그 심성을 중심삼고 영계에서 그 사람을 증거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복귀역사의 맥락을 이어 나왔습니다.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하시기 때문에 나를 치던 그들을 내가 굴복 시킬 것입니다. 앞으로 수많은 주권자들이 나한테 머리 숙일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떻게 생애를 보내느냐, 또 어떤 것을 위해 죽느냐가 문제입니다. '늙으면 죽지' 라고 대답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때에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떤 것을 위해 죽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가 협회장이 되고 그랬기 때문에 오늘 이런 일을 맞은 우리는 마음 깊이 그를 생각하고, 영계에서도 그를 환영하고 그러지만, 그가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협회장이 출발에서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 있는 길을 걸어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일 그가 그러지 못하였다면 그가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해줌으로써 그의 미비했던 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연대적 책임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만년을 살아도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죽음길을 해결하고 넘어가는 길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죽을 준비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을 해결짓고 나서는 길이 통일교회가 가는 이 길입니다.

부활된 내 생명보다 부활되지 못한 아내를 더 사랑하느냐? 미래의 부활될 내 생명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느냐? 자기 자신이 부활의 권내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할 고생을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 도의 길입니다. 탕감이 그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인간 들로 하여금 칠팔십년의 생애를 통해서 온갖 지옥생활을 땅 위에서 맛볼 수 있는 골짜기, 깊은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이 탕감이요, 그 골짜기를 지나가기 위한 길을 닦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바랍니다.

민족적인 탕감을 치러야 할 우리

여러분이 아무리 죽지 않겠다고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영계에 가기 전에 영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를 했습니다. 선생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누구나 때가 되면 영계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는 사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살고 가는 사람과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에는 벌을 받아서 빨리 죽는 사람과 민족이나 세계의 죄를 탕감 하기 위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어떠한 동네에서 손꼽히는 30대의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동네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문중이면 문중에서도 기대를 받던 장대 같은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문중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과법칙은 어디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 사람의 가치를 지닌 한 존재를 중심적인 자리에 세워서 천사람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가게 했을 때, 천 사람이 그 사람의 은덕 앞에 감동하여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의 생애를 본받고, 그 사람처럼 살겠다고 하게 되면 그 민족은 그 사람과 같은 혜택권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충신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고, 성현의 사상을 본 받으려 하는 것도 그들과 같은 혜택권내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갔지만 금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갈 것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한 단계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탕감을 치러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민족이 치러야 할 탕감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해방 직후에 자유로운 입장에서 출발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나라를 규합해서 공산주의의 운세를 막아 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공산당들이 조총련의 조선대학 학생들을 시켜 가지고 교실마다 다니면서 승공연합을 타도하자는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신문에도 나왔지만 조총련이 둘로 갈라져 가고 있습니다. 한덕수 파와 김아무개 파로 나뉘어 깨질 단계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전당대회를 하려고 하다가 못하고 우리와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치려고 하지만 우리가 책임만 다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하십니다.

여러분 개개인은 이 시대에 있어서 사명을 다해야 하니 명령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구보끼 협회장을 내가 직접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협회장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현재 우리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구보끼 협회장이 오늘 저녁에 극동지역 CIA책임자를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선생님이 극동의 CIA책임자와 워싱턴의 CIA대표자를 만나서 세계반공대회에 대해 결판을 내라고 지시를 했거든요. 안 되면 목을 쥐고 통곡이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미국이 공산당에게 밀리게 되면 하늘땅도 밀리게 됩니다. CIA의 책임자나 기시 수상을 구보끼 협회장이 만나겠다고 하니까 미국무성에서 구보끼가 어떤 사람인가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의 보좌관이 구보끼 협회장에 대해서 상당히 좋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나자는 메시지가 온 것입니다.

미국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한 청년이 나타나 가지고 한국과 일본과 대만을 연결시켜 군사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시급한 전민족의 사상 무장

싸움을 하기 위한 작전에는 직접적 작전과 간접적 작전이 있습니다. 직접적 작전을 해서 할 수 없으면 간접적 작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접적 작전이라는 것은 포위작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뜻적으로 보면 현재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는 천군천사 철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무엇으로 우리를 구해 줍니까? 그들이 무엇을 믿고 우리를 구해 줍니까? 미국을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휴전을 반대했었습니다. 내가 이 박사 입장이라면 절대 휴전을 안했을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휴전은 안 합니다. 설령 휴전을 하더라도 또 북벌하자는 주의입니다. 이 박사가 크게 나가다가 왜 양보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서 후퇴하게 안 되어 있었거든요. 후퇴를 하더라도 남한 각지의 파괴된 것을 복구해 달라고라도 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의 전대통령 아이젠하워를 직접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세계 문제에 대해서 실패한 것이 있소" 라고. 그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2차대전 직후에 미국이 펴야 할 정책은 종교 단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복지화 운동을 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한 10억불 정도 투입해서 세계 복지화 기금을 만들었다면 아랍권이 공산화될 수 없었고 선생님 말대로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안 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맥아더 원수를 해임했던 일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미국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지금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밤낮으로 이 민족을 사상적으로 무장시키기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60만 대군만 통일사상으로 무장하게 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무슨 고지니, 대포니, 토치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70만에 가까운 군대를 통일사상으로 무장시켰다면 토치카가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요전번에 어떤 서장이 수련소에 직접 와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행차 후에 나발 부는 격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원수시하고 몰아대더니 이제 와 가지고는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정보계장도 요즘에 와서는 '아이고, 우리에게도 와 가지고 전도 좀 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전도도 못 하게 했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김일성이가 정 독하게 나오면 데려가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이라도 부르면 그도 가야 될 게 아니겠습니까? 호출 명령만 내리면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도 몇 시간 내에 말입니다. 이런 튼튼한 배후가 있는데 왜 걱정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배후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내적 외적 탕감조건을 우리가 세웠기 때문에 이 단체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땀을 흘리고 고생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고생을 천년 만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우거지도 못 먹을 정도로 어렵게 살더라도, 아니 그보다 더 못 먹고 살더라도 감사할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를 복귀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이것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런 고생하는 것 아닙니다. 나 돈 필요 없습니다. 내가 언제나 필요로 하는 것은 고생한 실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여자고 남자고 다 런닝과 팬티 바람으로 내보낸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보다 더할 것입니다. 책임 못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남을 것 같아요? 여자들, 뭐 다홍치마 저고리 입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산세계가 된다면 그들은 통일교회 패들을 전부다 붙들어다가 짓밟고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코빼기, 그 얼굴, 마음껏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곡괭이, 삽을 들고 공산당들이 여러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뭘 하겠습니까?

통일교회의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지금 일본에서는 승공요원들이 승공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라도 가져야 될 게 아닙니까? 노도가 밀려오고 태풍이 몰아칠수록 사공의 지시대로 행동해야할 텐데, 여러분은 전부다 딴 짓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남아지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는 통일교회가 절대로 남아지지 못합니다. 내가 끌고 갈래야 끌고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은 가만두지 않고 깨끗이 청소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걷고 있는 실체노정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 자신이 통일교회의 이 선생님의 자리를 무서워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중 앞에 나서게 될 때도 하늘이 그 앞에 먼저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 안 나섭니다. 수많은 군중 앞에 나서서 얘기하려고 하면 얘기할 내용이 왜 없겠습니까? 통일교회 선전하기 위해서도 나설 수 있지요. 그렇지만 하늘이 먼저 그 자리에 나서야만 내가 나선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나섰다가는 망합니다. 때가 되기 전에 한국의 목사 장로들을 들이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박장로, 나장로 같은 사람 들도 은혜받더니 둘다 망해 가지요? 왜 그럽니까? 때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는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는 기필코 나서야 합니다. 그때에는 선전하지 말라고 해도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서라도 선전해야 됩니다.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이런 환경에서도 갈 길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의 말을 들었으면 오늘날 정세가 이렇게 되어 나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본 식구들에게 승공활동을 하자고 하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지금 세상이 도깨비 같은 세상인데 무슨 말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공산당들이 죽자사자 판가리를 하고 있는 판국인데 반공을 하자구요?' 하는 것입니다. 요즘 대학가를 좀 보십시오. 전부다 공산당 패거리들입니다. 데모 바람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일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건 고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흐루시초프가 UN총회 단상에서 연설을 하다가 신짝을 벗어 들고 탁상을 내리쳤습니다. 여러분도 알지요? 이제는 공산당 패가 내려갈 것입니다. 망해 간다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 자기의 권세 이상을 휘두르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아직까지 권세 행사를 안 했습니다. 권세 행사를 했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만 먹었지, 권세 부리는 것 봤어요? 다른 교회 목사, 장로들이 어떻다고 욕을 했어요? 못된 것들, 한번 해보자. 그러는 것 봤어요? (웃음) 욕은 한 번도 안 했다는 겁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만 하면, 여러분들 내세워 가지고도 그 싸움에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할 자신이 있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말이니까 자신 있다고 하지요. 실제 하라고 하면 눈이 둥그래져 가지고 '아이쿠' 할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하면 망하는 겁니다.

말이야 천국을 열 번도 가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 목사들이 말로는 천국을 몇천 번 몇만 번 가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 목사들이 말로는 천국을 몇천 번 몇만 번 갑니다. 그렇지만 가 보게 되면 천국이 다 뭡니까?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고, 말보다 먼저 행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알겠어요?

이제 조금만 지나면 통일교회 선생님의 때가 됩니다. 그런 때가 점점 밀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필요치 않는 때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다가오기 때문에 작년부터 우리 가정도 그렇고, 협회의 사정도 괜찮아졌습니다. 그래서 협회도 살고 지방도 살리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니 여러분은 협회를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그저 노래하고 춤만 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때를 맞기 위해 여러분은 탕감을 해 나가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급할 때도 문설주에다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정성을 들여 피를 뿌렸던 것입니다. 잠만 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족복귀를 위해 하나되어 기도하라

우리는 생사를 초월하여 넘어가야 합니다. 넘어가는 데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자기를 위해서 정성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라를 위해서 정성들여야 합니다. 옛날에는 자기 가정을 위해서 살았지만 그런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라를 위해 미쳐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미치면 얼마나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천국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 가운데 종족도 들어 있는 것이요, 내 가정도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충신이 되면 가정에 있어서의 효자의 심정은 이미 갖추어진 것입니다.

자, 그럼 무엇을 위해 살겠습니까? 자기를 위해 살겠습니까, 자기 처자식을 위해 살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살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가라는 말은 폭탄을 지고 들어가 죽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차피 한번 왔다 한 번 가는 인생인데 오늘 우리가 새로운 각오로 하늘 앞에 그것을 약속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복잡한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우리 때가 가까와진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곤고한 환경이 닥쳐올수록 우리의 때가 가까와온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일심단결해서 하늘 앞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운세가 나라에서 열매맺을 시대권으로 들어오면 하늘세계가 형성됩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생명을 걸고 자신을 갖고 정성들이며 이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어 천리원칙에 부합되는 가정들이 모두 하나되어 민족을 위해 눈물지으며 기도하고 나가게 될 때는 사탄도 굴복합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통일교인들 전부가 하나되지 못하면 사탄이 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했을 때 이방 민족들이 쳤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되어 그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자들 알겠어요? 「예」 여자들 알겠어요? 「예」

조금 전에도 통일의 노래를 불렀지만, 반드시 먼저 내 몸과 마음을 통일하고 그 다음 아버지와 통일되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반드시 탕감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된 내가 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 하늘의 운세가 민족에게 찾아왔으면 먼저 민족적 가정을 위해서 내 가정이 민족적 탕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적 가정이 세워졌으면 나는 그 가정을 아벨 삼아 가지고 가인의 입장에서 7년 과정을 순종해 넘어가야 합니다. 그 7년노정은 절대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그 노정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런 노정을 걸었던 것입니다. 중심인 선생님이 그런 노정을 걸었으니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이 노정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 「예」

여러분들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7수에 해당하는 탕감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1차, 2차, 3차의 7년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직접 대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대신한 선생님 말씀을 중심삼고 민족해방의 날을 맞고자 하는 일념을 가지고 몸 마음이 하나되어서 생명을 바쳐 7년간 피땀어린 정성으로 탕감을 위한 수난의 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복귀를 위해서 우리 들이 수난의 노정을 가야 합니다. 이것을 다 거친 사람은 가인의 입장에서 아벨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조금만 더 크게 되면 종족해방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커져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게 되면 문씨네 종족들이 '우리 문선생님께 협조하자' 하며 한꺼번에 몰려오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날에는, 그 문씨 문중을 중심삼고 수가 많은 종족을 차례로 복귀시키자는 것입니다.

꼭대기만 딱 잡아 놓게 되면 밑에서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종회장이 있으면 종회장을 중심삼고 종족을 한꺼번에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 개 종족만 연결지어 놓으면 이 민족은 자동적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김해 김씨만 복귀하면 한국은 복귀하기 좋습니다. 김씨가 많고, 이씨가 많고, 그 다음에는 박씨가 많지요? 이들 몇 종족만 하나되게 하면 한국 복귀는 문제 없습니다.

또, 내가 문가이니까 문가 패들이 나중에 보따리 싸들고 와 가지고 '우리 종장님' 하게 될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그렇게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너 종족의 꼭대기만 잡게 되면 간단합니다.

또 종족이 아니라도 종교를 중심삼고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형편이 어려워 궁지에 빠진 교파들이 많습니다. 그런 교파들을 접붙여서 우리에게 들어오게 하면 매부 좋고 누나 좋고, 장인 장모도 좋고, 어머니 아버지도 좋고 동네방네 전부 다 좋아할 텐데 그들이 우리를 두손 들어 환영해야지 별수있습니까? 그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데에서는 월급을 만 원씩 주는 데 내가 2만 원씩을 주면 좋다고 춤추면서 올것입니다. 서너번씩만 그렇게 하면 다 넘어오는 것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실적을 쌓으라

그런데 문제는 뭐냐? 이들을 수습할 수 있고 이들 앞에 내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몇 명이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족보를 잘 따집니다. 사립문을 해 달고 살면서도 집에 들어가면 '에헴'하고 양반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쥐수염을 길러 가지고 '에헴'하면서 아직도 양반 타령이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뭐라고 하면 큰소리로 조상이 어떻고 하며 족보 자랑만 하고 있습니다. 무슨 자격이 있다고 족보 자랑을 합니까?

족보 자랑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자랑이어야 하느냐?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이렇게 충성을 했었고 내가 그의 몇 대 후손으로서 그를 하나님만큼 정성껏 모셨다 하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이 없다면 여러분의 후손이 여러분을 보고 재수 없는 양반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족보 자랑을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없지만,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땅에서 이렇게 이렇게 했다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본부에 가면 뭐 있어요? 이게 무슨 통일교회 본부입니까. 팔면 몇백만 원이나 받을까. 이런 건물을 보고 좋다고 하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들어와서 보면 족보타령을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족보타령이나 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가는 망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다 하나라는 것입니다. 족보타령만 해 가지고는 견뎌 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예요, 거짓말이예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고생한다고 했지만 해 놓은 게 무엇이 있습니까? 60년대 이상으로 무슨 발전을 했습니까? 오히려 깎아 먹고 말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서도 고생했다는 말을 할 때는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잘 합니다. 보기에는 먹지도 못하는 깍지 밤, 곁다리 밤 같아서 저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염려했는데 내세워 놓으면 그래도 두리번두리번하다 나중에는 눈을 크게 뜨고 말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대중 앞에 가 가지고는 북도 좀 치고, 기타 줄도 튕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 하나는 좋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뭐 있습니까? 오히려 썩은 쭉정밤 같다는 것입니다. 말만 가지고 믿을 수 있어요? 실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스크판처럼 기름기 번지르르한 잘났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나는 이렇게 했소'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됩니다. 지금은 기도만 가지고 안 됩니다. 여러분이 못하면 내가 팻말을 들고 나설 것입니다. 내가 한달 동안만 나서면 여러분이 10년에 할 것을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부흥회를 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하던 그런 솜씨로 하게 되면 야단이 날 거예요, 그러나 내가 나서서 하지 않는 것은 이 민족이 반대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반성해야 할 통일교인들

우리는 기성교단으로부터 핍박받으면서도 그대로 하나님을 붙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책임 못한 것을 우리가 대신하여 책임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았는데 이게 또 야단이라는 겁니다. 거지들을 데려다가 양반으로 만들어 놓으니 다시 거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꿩새끼를 잡아다가 길러 놓았더니 산으로 올라가 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쓸 만하게 길러 놓았는데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꿩새끼가 되겠어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꿩새끼가 되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여러분이 선생님한테 이용당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말 들으니 섭섭하지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용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꿩새끼지만 닭새끼처럼 사랑해 주고 키우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록 꿩새끼이기는 하지만 다 그주인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이용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눈을 좀 보십시오. 어떻게 생겼나? 여러분에게 이용 당하게 생겼어요? (웃음) 이용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 이겁니다. 이길을 처음 나설 때 몇천 번 몇만 번 생각 안 해봤겠어요?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의 몇백 배나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다 가려 가지고 점을 쳐서 재보고 훑어 보고 따져 보고 짜 보고 나서 틀림없기 때문에 출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머리만 못해서 내가 이 놀음을 하는 줄 압니까? 그런데도 여러분은 머리 속에 된장밖에 안 들어가 있는 , 노방에 나가자빠질 사람들이면서 꺼떡대며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꿩새끼가 되겠습니까, 닭새끼가 되겠습니까? 「닭새끼요」 장닭새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꽁지부터 뽑아 버려야 됩니다. 죄악사의 꽁지를 빼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시뻘건 데다가 노랑색 이라도 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군지 알기나 했어요? 그런 얘기를 처음 듣는 여러분은 전부다 건달패들 이라는 것입니다. 건달의 '건'자는 '마를 건' 자입니다. 달자는 무슨달 자인지 압니까? 빼빼 말라 '도망한 달' 자입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뭐가 있습니까? 거저 먹다가 들어온 사람들이니 돈이 있나, 뭐가 있나. 눈만 새빨갛고 똥그랗다는 겁니다.

그래도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뛰긴 뛰는데 뛰다 말고 다리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먹지 못했으니 다리가 아프지 별수있습니까? 그러면서 어떻고 어떻고 해서 통일교회 나빠서 못 다니겠다고 하며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떨어질 거예요, 안 떨어질 거예요? 「안 떨어집니다」 떨어지고 싶으면 떨어져요.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자구요.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것은 상대적관계입니다. 내가 정성을 들이면 반드시 거기에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리적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자신을 갖고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큰 불황이 벌어졌는데, 이런 때일수록 여러분이 이민족을 중심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내 할 일 다했다고 낮잠이나 자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낮잠 자게 되어 있습니까? 낮잠 자게 되어 있어요? 일체가 되어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10년 전만 같아도 그렇지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경주를 하고 있는 때인데 낮잠 잘 수 있겠어요? 현재 여러분들 보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원수와 부딪쳐 나가야 합니다. 우리를 추방하던 원수를 다시 맞아 싸워 그들을 해방시켜야 됩니다. 쫓겨가던 무리와 쫓아내던 무리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대대적인 역할을 할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늘 용사의 위신을 세우라

김영운선생도 여기에 와 있지만, 닉슨 대통령이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국제승공연합에 돈 3천불을 싸인을 해 가지고 보내 주었습니다. 또 10만불을 보내 주겠다나요. 이렇게 미국이 국제승공연합 활동을 도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적인 종교인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때가 문전에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기도하는 때였지만 이제는 잔칫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잔칫날을 맞아서는 실컷 먹고 배가 불러 낮잠을 자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생해 가지고 그 문턱을 넘어서야 할 때인데, 잔치하려고 준비하느라 전을 지지고 떡 치는 소리도 들리는 데 잠잘 수 있어요? 그런데도 잠을 자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런 격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뛰어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잔치해야 된다고 전부다 동네 방네 뛰어다니면서 소문을 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를 해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도하러 나가라고 하면 '그 계절이 또 왔구만. 하기 방학 때에는 좀 쉬어야 할 텐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조건 쉬어 가지고 남아지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여러분은 양반자식쯤은 부러워하지 않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은 뼈대 있는 종자라는 것입니다. 뼈대 있는 종자라는 간판이라도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 합니다. 목적도 없이 살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축복가정들 말이예요.

이 축복가정들 때문에 내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구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어느 가정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럽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어떻게 하겠어요? 가정이 많으니까 손벌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한테서 뭔가를 서로 빼 가려고 싸움하는 패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구 저러구 할 여지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선생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아야 합니다. 그 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기분 나빠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뜻길을 가는 데에는 책임만 다하면 제일인 것입니다. 그런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진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그런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고생하며 나왔는데, 여태껏 해왔는데 지금 못 한다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더욱 정성을 들이며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리고,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에 충성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이 나라을 위한 탕감을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기 도]

오늘은 8월의 첫 주일이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년 365일을 지내면서 어떠한 한 날도 당신 앞에 기쁨의 날이 되어 있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게 되옵니다. 그와 같은 날들을 넘고 또 넘고, 보내고 또 보내며 살아가고 있는 저희들이 인생 노정에 있어서 언제 슬픔의 날을 가로막고 영광의 날, 기쁨의 날을 당신께 찾아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봤으며, 언제 그런 자신으로서 하루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려 봤는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한 저희들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런 모습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더우기 이 삼천만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해방 이후, 당신이 이 땅 위에 섭리의 뜻을 나타내시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민족은 갈 곳을 알지 못하여 당신 앞에 얼마나 많은 슬픔을 남게 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을 다시 한 번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틀림없이 풀린다고 당신이 말씀하셨사옵니다. 마찬가지로 이 민족을 대한 저희들의 염원이 있고 세계 인류를 대한 저희 들의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이 참고 나가시며 다시 소망을 두고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요, 이 세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도 새로운 소망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지금까지의 부족함과 잘못에 대하여 대신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책임자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슬픔의 모습을 억누르고 제사장의 피묻은 옷을 입고 지성소를 향해 아버지 앞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이라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당신의 깊으신 마음과 이 민족을 위하여 찾아오신 당신의 수고로우신 노정을 받들어서 오늘날 저희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고 모실 수 있는 가를 생각하게 될 때, 언제나 부족함을 느껴야만 될 저희 자신들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나가는 데 있어서 이 민족과 이 세계를 잊어버렸사오나, 당신은 어느 한때 이 민족과 이 세계를 잊으신 때가 있었사오며 어느 한때 인류를 잊어버리고자 하신 때가 있었사옵니까?

외로움에 사무칠 적마다 앞으로는 인류로부터 부정을 당하지만 뒤로는 그 인류를 다시 붙잡으려는 아버지셨사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부자의 인연을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말뿐으로가 아니라 직접 체휼하여야 되겠사오니, 이것을 저희 자신 자신들이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1970년도도 이미 반년이 지나갔사옵니다. 오늘은 음력 7월 초하루, 양력으로는 8월 초이틀이옵니다. 1970년도의 일년 가운데 반년을 지내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가 되었사오매, 아버님, 저희들은 또 새로운 각오를 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당신 앞에서 저희 자신들을 책하고 남기신 뜻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사오나, 그 자체가 당신이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 하실 수 있는 일이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얼마나 딱하고 불쌍하신 분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당신 앞에 벌거숭이와 같은, 어린양과 같은 적자가 다시 되어야겠사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어머니 아버지 앞에 모진 수난 전체를 맡기는 어린애와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당신 앞에 어린애가 되어서 모든 것을 맡겨야겠사옵니다. 당신이 흥하면 저희들도 흥하고, 당신이 슬퍼하면 저희들도 슬퍼하고, 당신이 기뻐하면 저희들도 기뻐하고…. 이렇게 당신과 일체의 심정을 가져야겠사옵니다. 그리고 점점 자람에 따라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아버지의 소원을 대신하여 설 수 있기를 바라는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그와 같은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사옵니다.

저희들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이 있었사옵니다. 누구든지 그 어린 시절을 동경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무한한 은사와 무한한 복으로써 품어 주시던 기쁘기 한량없던 그때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그 어린 시절을 붙들고 살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바라는 앞날을 위하여 그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고 가야 될 줄로 아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야 되겠사옵니다.

나 자신이 유아기에 있는지, 소년기에 있는지, 청년기에 있는지, 혹은 장년기에 있는 지, 노년기에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게 될 때,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유아기를 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유아기를 지나 성장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수 있는 엇갈리고 뒤바뀌어지는 자리에 처해 있는 각자의 심령인 줄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무한히 흠모하고 아버지의 심정 앞에 무한히 어려 가지고, 당신이 슬퍼할 때 저희들도 슬퍼해야 되겠고 당신이 의분심에 불탈 때 저희들도 의분심에 불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아들딸들이 여기에 있사옵니까? 그런 자녀가 있다면 그는 아버지 앞에 있어서 불쌍한 모습이옵니다.

부모의 심정에 대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식의 인연을 가진 자가 어디에 있겠는 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슬퍼하면 저희들도 슬퍼해야 되겠고, 당신이 기뻐하면 저희들도 기뻐해야 되겠고, 당신이 싸우면 저희들도 싸워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원통해 할 때 저희들도 원통해 해야 되겠사오며, 당신이 애달파할 때 저희들도 그 애달픈 심정에 동조하는 자리에 서야 하겠사옵니다. 그래서 부모의 원수가 있거든 참지 못하고 그 원수를 갚기 위해 몸부림쳐야 되겠사옵니다.

부모가 어렵고 외로울 때 밤을 지새워 가면서 그 어려움을 같이 겪고 그 부모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자기 일신을 망각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딸들은 부모의 소원을 몽땅 대신할 수 있을 것을 아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그를 뜻 앞에 세우고자 하실 것이고, 아버지의 마음은 그를 따르고 아버지의 심정은 그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는 멀리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계시옵니다. 저희 각자는 자기 자신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났기에 아버지를 위하여 살아야 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당신의 귀한 생명을 받아 태어난 보람이 없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을 밝은 태양빛에 낱낱이 비추어 보게 될 때, 얼마나 흠이 많고 얼마나 더럽혀졌으며 얼마나 아버지 앞에 내세우기에 부족한 자신인가를 스스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비판하여서 아버지 앞에 참소할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듯이 저희들도 거룩하기를 바라던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저희 자신을 바라보시게 될 때, 얼마나 낙심천만하실 것인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사옵고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의 마음들을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옵소서.

죄악의 쓴 뿌리가 남아 있는 저희들은 아직까지 당신 앞에 나타나기에 추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드러내시옵소서.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사연과 역사적인 생명의 인연이 연결되어 있기에, 천륜의 원칙을 세우신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저희들을 붙들고 안타까와하시는 아버지의 불쌍한 모습을 저희들이 바라 보면서 한없는 눈물로써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로부터 부활의 은사를 받을수 있는 긍휼의 마음, 동정의 마음이 저희들 일신 가운데, 저희들의 몸마음 가운데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는 저희들을 위하여 몇 번이고 불러 주셨사옵고 몇 번이고 충고해 주셨사옵니다. 저희를 몇 번이고 세우시며 바라고 나오신 아버지를 동정할 줄 모르던 저희 자신이었던 것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동정은 고사 하고 아버지를 저주했사옵고, 저주뿐이 아니라 원수의 자리에 서서 역사 과정에서 아버지를 배척하며 나왔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용납받을 수 없는 저희 자신들이옵고, 아버지 앞에 체면과 위신을 세우기에 부족한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긍휼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자비와 은총의 봄동산을 맞이할 수 없는 불초의 몸이 된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난날을 생각할 때, 눈물어린 장면들이 많았었사옵니다.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도 많았사옵니다. 오늘 이 짧은 생애노정을 거치면서 당신의 뒤를 따라온 저희들에게도 그러한 길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초부터 역사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오셨고, 다시 역사 말까지 움직여 나가셔야 할 아버지의 피어린 노정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한 분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아버지를 동정해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의 동정이 필요하신 아버지였사옵고 저희의 믿음이 필요하신 아버지였사오며 저희들의 사랑이 필요하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어떤 자리에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어떤 모습을 갖추고 당신 앞에 나타나 당신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직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모습들이요 용납 받기에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 자신들을 대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부르실까봐 아버지 앞에 나타내기를 꺼려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마음이 저희들의 전체의 환경을 얽어매게 할 줄 아는 자리, 혹은 자기 자신을 부정할 줄 아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렇게 하는 모습이 부모를 반대하고 나와 탕자의 입장에서 불효하던 아들딸의 모습인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쫓겨났던 아들이 아버지가 그리워 아버지가 계시는 집을 찾아와 가지고 담을 넘어다보면서 옛날에 가졌던 기쁨의 한때를 그리워하고, '아버님이여,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밤을 지새워 눈물 흘림으로써 그 처량한 모습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다시 찾아줄 수 있는 그런 자리라도 구하여야 할 것이 저희 심정인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8월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지나간 모든 날들을 잊어버려야 되겠사옵니다. 한 고개 넘고 잊어버리고, 또 두 고개 넘고 잊어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갈 길이 멀지 않은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시점에 서서 언제나 이때가 중요한 때라고 주장하던 날들이 많이 흘러가 버린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렸사옵고 자기의 중대한 가치를 잃어버린 때가 많았사옵니다.

가까와 온다고 하던 그때가 수천년 역사를 거친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때에 선 것만 해도 감사해 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일생을 바쳐서 때가 온다고 증거했지만, 그때를 맞지 못했어도 그것을 한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할 줄 아는 아들딸은, 그때를 중심 삼고 그때와 더불어 산 아들딸이옵니다. 이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좋아하고 있사옵니다. 자기의 몸에 플러스되는 것을 좋아하는 타락한 인간들처럼 살고 있는 저희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것만이 행복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기뻐할 때는 당신이 슬퍼하실 수 있고, 저희들이 슬퍼할 때에는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양면의 현실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이 아무리 슬프더라도 여기에 비례되어 당신 앞에 기쁠 수 있는 일들이 있게될 때에는, 이것이 아버지 앞에는 영광이요 자랑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아버지 앞에 몇천 배, 몇만 배의 기쁨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소망으로 삼고 가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이는 기필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가운데 많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 당신의 자녀들은 40일 전도 기간을 맞이하여 남한 각지에 널리어서 활동하고 있사옵니다. 이 기간 동안 아버지를 대하여 충성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으면 거기에 친히 찾아 가시어서 동고동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외로울 때 당신이 위로하셨듯 그들에게도 이와 같이 위로하여 주시옵고, 제가 한없이 슬플 때 당신이 슬픈 마음을 억제하시고 위로해 주셨듯이 그들 위에 그렇게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찾아 주지 않는 자리에 당신께서 찾아 주는 기쁨을 맞는 그날, 그 시간은 그들의 일생에 있어서 영광의 한 시간이 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시사 친히 찾아 주셔서 품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와 인연되는 사람들은 영원히 인연되는 것이요, 그런 가운데서 인연된 환경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승리의 터전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인연을 많이 갖고 그러한 환경을 많이 거쳐가는 사람은 아버지 앞에 아니갈래야 아니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8월 한 달을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1970년도를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사옵니까? 달갑게 짊어질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슬픔의 고생길이 있사옵니까? 힘차게 갈 수 있는 강한 체력을 주시옵소서. 당신이 극복하고 또 극복하시어 싸워 나가시는 그날까지 저희들도 참고 싸워 남아지는 자신이 되겠다는 굳은 결의가 용솟음치고 의욕에 불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해외에 널리어서 외로운 한 나라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딸들이 있는 줄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백성을 중심삼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개척도상에 서있는 , 선조의 책임을 물려받은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잘못하게 될 때 그것이 그 나라의 잘못으로 남아질까 두렵사오나 그들이 잘하게 될 때는 그 나라가 구원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한 사람이 길을 잘못 가게 되면 다음 사람이 몇 배의 수고를 하여 이것을 보충해도 개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시여, 그들의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부디 지치지 말게 직접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하루하루 생활 가운데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 것을 입증시켜 어려운 환경을 극복케 하여 주시옵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진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옵고, 하루하루가 힘찬 생활로 연속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복귀에 있어서 하나의 거룩한 주춧돌을 놓는, 아버지께 지극히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천상세계에 간 아들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식구들을 하나로 규합하시옵소서. 땅과 하늘, 낙원과 지상의 중간에 다리를 놓아 그 거리를 단축시켜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그들에게 시대적인 혜택을 허락하시어서 땅 위에 있는 선한 후손들을 중심삼고 자유로이 이 땅 위에 와서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이 길이 하늘 가는 길임을 믿을 수 있게끔, 당신이 친히 수많은 영계를 동원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북을 갈라 놓은 원한의 삼팔선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그 한날이 와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밖에 믿을 것이 없사옵니다. 벌거숭이와 같은 저희들이 누구를 따라가겠으며 누구를 의지하겠사옵니까 ? 아버님이여,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마음을 모아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이 시간, 저희들의 사정과 저희들의 애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북녘 땅의 원수들이 아무리 강하고 드세다 하더라도 하늘의 봄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될 때, 이 강산의 모든 백성들이 마음 깊이 새로이 아버지를 추앙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를 잃어버리기 전에 아버지를 잃어버릴까 두렵사옵니다. 여기서 아버지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무엇보다 하늘의 인연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민족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이 짊어진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다는 것을 가일층 느끼면서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개척자의 사명을 하여야 할 내 모습이 이래서 되겠느냐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한끼의 밥을 먹고서도 스스로 다짐하고, 아침에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다짐하고, 한밤에 별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다짐하며 거룩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것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의 마음과 몸을 온전히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이 기뻐하시는 세계로 저희들을 이끌어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선악의 분기점'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심하시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러분이 보편적으로 알다시피 선한 세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선을 지향하고 선의 목적을 세워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 자체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선하지 못한 것이며, 그 사회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국가 역시 선하지 못한 것입니다. 선하지 못한 국가가 많으면 세계 역시 선하지 못한 세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온 역사과정을 생각하고 지금 현시대를 생각하고 미래에 남아질 수 있는 한때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전체 분야를 앞에 놓고 선의 중심을 세워서 자기 자신이 선의 한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수많은 성인현철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보다도 더 위대하고 더 의욕적이고 더 강한 사람들로서 그 시대의 모든 역경을 타개한 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고도 훌륭한 인격자로서, 그들이 선을 추구하려고 몸부림치며 나갔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죽음과 엇바꿔 가면서, 혹은 수난을 당하고 생애를 희생시켜 가면서 선의 한때를, 선의 한 곳을 추구해 나왔던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은 세계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선도 있을 것이요, 국가적으로 보면 국가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민족적으로 보면 민족적인 선, 가정적으로 보면 가정적인 선. 개인적으로 보면 개인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선과 가정을 중심삼은 선과 종족을 중심삼은 선과 민족을 중심삼은 선과 국가를 중심삼은 선과 세계를 중심삼은 선은 일치되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동쪽 입장으로, 서쪽 입장으로, 남쪽 입장으로, 북쪽 입장으로, 이렇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고 볼 때도,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다 다릅니다. 각기 선조가 다르고 얼굴과 말과 모든 행동이 천태만상이듯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선의 방향도 각기 다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과 이러한 형상들, 이러한 무리들을 놓고 경륜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개인적 선의 방향을 어떻게 하면 전체 목적을 위하여 갈 수 있는 선의 방향에 일치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먼저 이렇게 각기 다른 선의 방향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는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필요한 그 무엇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회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초민족적으로, 초국가적으로 횡적인 인연을 갖추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생각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역사과정에 나타난 수많은 종교였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선을 추구하되 자기들 나름의 양심의 방향에 따라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양심의 방향이 동쪽이면 동쪽, 서쪽 이면 서쪽을 중심삼고 선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국가면 국가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세계면 세계의 봄절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운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봄절기의 방향을 맞추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봄절기가 국가적인 봄절기와 맞아 떨어져야 되고, 국가적인 봄절기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의 봄절기와 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향을 일치화시키지 않고는 전세계 앞에 보편성과 타당성을 갖추어서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일치된 방향을 어떻게 제시 하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크나큰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 종교는 어떠한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했더라도 그 민족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도록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세계로 하여금 공히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게 하느냐, 즉 어떻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여 거기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될수록 그러한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방향의 일치화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종교의 역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인간의 마음을 보아서 압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면 마음 자체에서 작용하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능동성을 가지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자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 입장이라는 것은 어떤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으로 하여금 선을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선의 환경을 추구하게 하는 어떤 힘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일생 동안 지지하고 있는데, 자기 자체가 동기가 되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어떤 주체와 하나된 입장에서 몸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플러스면 플러스를 중심삼고 볼 때, 플러스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이너스가 생겨나야만 됩니다. 이때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상대적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서로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서로 상대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해서 이 몸이 하나 못 되었느냐? 문제는 간단합니다, 플러스인 마음이 하나되면 마이너스, 즉 상대의 입장에 있는 이 몸은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하며 나오시는가? 세계의 인류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한 기점을 중심삼고, 너나할것없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근원을 중심삼고, 원래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면서도 현재 상반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몸과 마음이 이 상반적인 여건을 타개해 버리고 서로 필요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어떻게 결속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마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이냐? 마음 자체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하나의 플러스가 생겨나면 완전한 하나의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의 이치입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게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것도 그러한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참선을 통해 완전한 무의 세계에 도달해서 수평선과 같은 정적(靜的)인 경지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동적인 기원, 더럽혀 지지 않은 순수한 본래의 마음 바탕에 접해 들어가 하나의 맥박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나의 그 맥박이 새로운 출발의 기원이 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심작용의 주체

운동이란 것도 혼자서는 하지 못합니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적 존재가 없이 운동하는 법이 없습니다.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양심작용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힘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기 전에는 관계맺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과학세계는 우주는 힘,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에너지가 우주의 근본이냐? 아닙니다. 그 에너지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결론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려면 작용이 있어야 되고, 그 작용이 있기 전에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기 전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성성상이라고 합니다. 이 주체와 대상은 인간 자체에서 만들어진 주체와 대상이 아닙니다.

힘 자체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용을 하려면 그 힘을 작용 시킬 수 있는 회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 가지고는 힘은 작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도 동맥 정맥과 같은 순환기관이 있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작용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적인 상응관계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이 존재하기 이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주체와 대상이 있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럼 무엇이 먼저인가? 이 세상은 선후관계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대상인가 하는 ….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세계의 모든 존재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습니다.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 것처럼 동식물도 모두 자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주체인가? 지금 이것이 혼돈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뒤집어져야 됩니다. 손을 놓고 볼 때, 오른손과 왼손은 이렇게 보면 마찬 가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른손과 왼손은 그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는 오른쪽이요, 하나는 왼쪽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모양은 비슷하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보통 사람은 이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그 바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바탕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입니다. 이성성상 가운데는 본성상과 본형상이 있어야 됩니다.

양심작용도 작용이 틀림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의 내용을 분석해 보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화학실험을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도 전부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대관계만 성립되면 당장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대적 관계와 상충적 관계가 우주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상충이란 무엇인가? 플러스와 플러스는 상충관계입니다. 이런 상극이라든가 상충작용을 중심삼고 공산주의자들은 변증법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 상극이 나쁜 것인가? 상극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극이 있지 않으면 원형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전부가 서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만 되지 원형은 안 되는 것입니다. 자장을 보더라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잡아당깁니다. 이렇게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이 되어야할 텐데 왜 원형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서로 상극작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원형운동과 구형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접적 작용의 반작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양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양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든간에 사람에 게는 전부다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어떻게 생겼느냐? 어떻게 생기긴 어떻게 생겼습니까. 잘 생겼지요. 여러분의 얼굴같이 생겼습니다. 양심과 얼굴은 안팎이라는 것입니다. 안팎은 같습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은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주체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양심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한 플러스는 휘익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가 그런 세계입니다.

누구든지 맨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정성들였어요? 여러분들은 정성들일 때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고 정성들였어요?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를 자꾸자꾸 파고들어가게 되면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직선이던 것이 점점 횡적으로 연결되어서 반응이 오고, 안테나를 통해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힘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불이 온다고 그러지요?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힘이 오는 것입니다.

그 힘이 어떻게 오느냐? 그것은 라디오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냐에 따라서 먼 거리에서 오는 전파를 깨끗하게 변환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완전한 플러스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없다면 하나님도 고독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수고하시며 나오고 계시지만 수고하는 그 가운데 인간들이 몸부림치면서 잘못했다고 회개도 하고 하니까 낙심하셨다가도 다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앞날에 인간을 중심삼은 최고의 선의 세계를 이를 수 있다는 하나의 크나큰 소망을 중심삼고 나오십니다. 과정에서는 개척이요, 혁신이요, 발전이요, 개혁입니다. 이것을 행하면서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봄날을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상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상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이 맑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좋은 때가 될지 나쁜 때가 될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좋다는 것은 뭐냐? 그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플러스, 즉 높은 플러스가 아니면 높은 마이너스 입니다. 내가 플러스 성품이라도 그가 더 높은 마이너스 성품이면 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마이너스이고 그가 더 높은 플러스일 때도 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플러스이고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강한 플러스일 때는 서로 맞닿으면 반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세계에 있어서도 전기작용과 같은 작용, 인력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분간하지 못할 뿐이지 그것은 여러분들의 일상생활의 움직임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다 과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방향과 소질에 따라 그것이 얼마만큼, 몇 퍼센트가 융합하느냐에 따라 전체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작용은 독자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와 같이 되어 있는데 인간의 몸과 마음은 달라서 언제나 싸우는 것입니다. 몸이 마이너스, 마음이 플러스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뒤집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이너스끼리 반발하면 거기에 플러스를 집어 넣고, 플러스끼리 반발하면 마이너스를 집어 넣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상충을 벌이고 있는 인간에게 어떻게 가져다 넣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로 상충된 입장에 있는 몸과 마음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 플러스면 플러스를 어떻게 집어 넣느냐 하는 문제를 모색해야 됩니다. 그 문제의 해결방법을 마음과 몸의 투쟁역사를 거쳐 온 인류 앞에 제시하려는 것, 다시 말해서 상반된 입장에 있는 인류 앞에 플러스나 마이너스의 어느 하나를 집어 넣자는 것이 새로운 주의 사상입니다.

이 새로운 주의 사상이 종교사상인데 이것은 신에 대한 사상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유물론이 아니라 유심론입니다.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집어 넣어 주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느냐? 신과 어떻게 100퍼센트 접촉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과 100퍼센트 접촉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의 심정을 100퍼센트 느껴야 되고, 신을 위해 100퍼센트 살아야 되고, 신이 원하는 곳으로 100퍼센트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가 문제

인류로 하여금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하나와 방향을 갖추어 나가게 해야 하는데, 민족간에 거리가 멀면 안 되겠기에 민족들을 연결시켜 나왔고,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사방성을 갖춰서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까지도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4대 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다 지나면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은 되어 오는 것 같은데, 목적지에는 다 온 것 같은데 그 목적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책임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냐? 선악의 분기점인 우리가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려 가는 데 있어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왔으니 여기에서부터 가려 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가릴 수 없는 사람이 미국에 간다고 해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가려 가느냐? 다 같은 통일교인이지만 선악을 가려갈 수 있는 길은 다 다릅니다. 천태만상입니다. 백이면 백 사람 다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쪽에 선 형, 서쪽에 선 형, 남쪽에 선 형, 북쪽에 선 형 등 그 타입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는 춘하추동의 형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앉습니까?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소년기가 있고, 청년기가 있고, 장년기가 있고, 노년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봄절기는 사춘기입니다. 여름절기는 30대이고, 가을 절기는 40대 정도입니다. 그 이후로는 겨울절기로 들어가게 되고, 동지가 넘어갈 때에 해당되면 죽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춘하추동이 그렇고 하루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천지의 법도에 따라 태어난 것입니다. 주역(周易)이 이치에 맞는 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음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상하 음양이냐, 좌우 음양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사상(四象)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전부다 다릅니다. 예수님도 세 제자를 세워 예수님을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성을 갖추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말한 사위기대는 천리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동쪽 형의 사람, 서쪽 형의 사람, 남쪽 형의 사람, 북쪽 형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혹은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얼음처럼 냉정하게 꽁꽁 얼어붙은 형이 있는가 하면,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형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늠름하고 언제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형은 여름절기의 형입니다. 후딱 올라갔다가 후딱 내려오는 형은 가을절기 형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에서 틀림없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방향에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데, 여러분이 그 방향을 어떻게 가려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형인가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특히 처녀 총각들이 결혼할 때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보게 된다면 봄절기는 여름절기를 찾아가지만 여름절기는 봄절기를 추방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밀어젖히지만 다른 쪽에서는 끌어당기는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가 지나가게 되면 점점 여름은 가까와지지만 봄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잡아당기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밀어 제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형을 이루기 때문에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원형을 이루지 못하면 영영 이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원형의 법도로 운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춘하추동이 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상에 그려 놓으면 사인(sine)곡선을 이루게 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는 상충이 벌어진다

여러분은 제일 먼저 선이냐 악이냐를 가려내야 합니다. 선악이 어디에 있느냐? 선악은 세계에 꽉 차있지만 선악을 가려야 할 그 분기점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가 악하다고 할 때, 그 악한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타락권내에 있으면서도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마찬가지로 반기를 들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와 상충을 벌여야할 때,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악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면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해방을 맞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수 없고,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역사적인 선의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투쟁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 정반합(正反合) 논리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투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과 악의 투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이 선과 악을 분별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여러분 자신은 어디서부터 선과 악을 가려내야 하느냐? 내 마음과 몸에서부터 가려내야 합니다. 내 마음과 몸 중에서 어떤 것이 선한가? 둘 다 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 둘 가운데 보다 선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 살난 아이조차도 보다 선한 것이 몸이냐 마음이냐고 물어 봤을 때,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편에 서 가지고 여기에 일치되지 않는 것에 대해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의 기원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이 보다 발전해 가지고 최고의 자리, 최종의 자리에 있는 마음이 바로 절대적인 마음입니다. 그 절대적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개발된 최고의 경지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마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세계를 무한히 계발해야 됩니다 마음세계는 우주적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계발된 마음의 기준에서 갖는 세계관은 어떨 것이냐?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계발된 마음세계의 주인이 되어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떠할 것이냐? 같은 세계라도 계발되지 못했을 때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 비해 계발된 입장에서, 자각된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이냐? 같을 것이냐, 다를 것이냐? 이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양지판(天壤之判)이라는 것입니다. 들리는 모든 새 소리로부터 보이는 모든 만상에 천하가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거 아니예요? 그렇게 개방된, 자유스런 마음세계에서 보는 세계적인 하나의 주권은 어떠한 주권도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물에 대해 그 가치의 내용을 보다 확실히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그 높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내적인 마음이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최고로 강해질 수 있는 경지는 어떤 것인가?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와 완전한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그것은 둘일 수 없기 때문에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시대는 지나 갔습니다. 그 얼마나 과학적입니까?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인데 과학적이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바꿔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에게 오는 것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바꿔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바꿔지기만 하면 상반되었던 몸뚱이가 달라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상반되어 있던 몸이지만, 이와 같이 바꿔지기만 하면 달라붙겠습니까, 달라붙지 않겠습니까? 달라붙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은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인류는 천륜을 중심삼고 한마음이 되어야

천륜이라는 말이 있는 데 여러분은 천륜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천륜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술어입니다. 인륜 도덕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천륜 도덕이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지요? 그러면 그 인륜 도덕의 기원이 어디입니까? 대한민국의 헌법입니까? 그 기원을 파고 들어가면 양심에 근거합니다.

오늘날의 법은 로마법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고, 로마법이 현재의 세계의 문화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인륜 도덕은 어디까지나 양심을 근거로 합니다. 법보다는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기초는 무엇인가? 선입니다. 선을 표준하는 것입니다. 선을 벗어나서 잘못될 때는 양심이 그 잘못된 것을 시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양심에 일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체제를 형성하려니 법령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인륜은 어디에 근거를 두느냐? 천륜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뺀 천륜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인간중의 인간이다. 하나님이고 뭐고 없다. 나를 따라와라' 하고 주장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유물론을 중심삼고 마르크스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데, 이것은 시대말적인 현상입니다. 물질을 중심삼은 주의, 그것은 물질주의이지 인간주의가 아닙니다. 인격도 없는데 무슨 인간주의입니까? 그것은 인륜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인 중에 이제까지 하늘을 빼 놓은 성인은 없었습니다. 성인들은 반드시 하늘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공자도 하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을 주고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늘이 화를 내린다', 즉 '위선자(爲業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의 천(天)이 뭡니까? 이것은 막연하지만 하나님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성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석가모니도 하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불심(佛心)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그 불심이 뭐냐? 그것은 순수한 본연의 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늘을 빼 놓고 가르친 성인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 천륜의 도를 중심삼고 역사를 전개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남아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천륜의 도를 따라 하늘이 제시하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을 향해갈 수 있도록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마음의 방향이 일직선상에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중심과 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역사의 마음과 일치되어야 하고, 개인의 마음이 가정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종족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민족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국가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세계의 마음과 일치해야 됩니다. 이것만 일치가 되면….

여러분의 마음세계는 발전합니까? 마음이 선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성격은 다르지만 그 마음이 가는 방향은 같다는 것입니다. '양심적이다' 혹은 '비양심적이다'라는 말은 여자나 남자에게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양심적이다. 그 남자는 비양심적이다'라고 누구에게나 할 수 있습니다. '양심적이다' 라고 하는 것에는 보편적이요 공통적인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일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부터 그 방향이 일치시켜야 되느냐? 살아 나가면서 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출발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나는 누구와 사느냐? 나 혼자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그래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계와 관계맺으며 살지 않았으나 이제부터는 관계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도 내가 대한민국에서 살지 어디에서 사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세계는 점점 하나의 생활권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되게 만드는 것

오늘날 인류에게는 전인류가 묶어질 수 있는 하나의 마음적인 주체성, 만인이 공인할 수 있는 주체성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주체성을 중심삼은 개인의 인격관, 개인의 가치, 가정의 가치, 종족의 가치, 민족의 가치, 국가의 가치, 세계의 가치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개인과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세계의 가치는 개인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지만 그 30억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합해서 된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인격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한 인격기준을 세우는 데는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한 분이 다시 보내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 종교에 남아진 재림사상, 혹은 메시아사상입니다.

그 메시아란 분은 와서 어떻게 하느냐? 자기 혼자만 잘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잘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잘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양심을 중심삼은,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인격으로 강제적인 생활환경이 아닌 자연적인 생활환경을 우리 몸 앞에 제시할 때, 우리 몸이 여기에 완전히 순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 만드느냐?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하나로 만드느냐? '하나되게 하긴 무엇이 하나되게 해. 그냥 그대로 하나되지'라고 할지 모르나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합하게 하는 힘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영적인 체험을 한 후에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다고 한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무엇으로 묶을 것이냐? 밧줄로 묶을 것이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저 아무렇게나 만나 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방향이 맞는 것이고 체질과 바탕이 맞는 것입니다. 하나는 플러스요 하나는 마이너스로서 완전한 상대적 관계가 되어 가지고, 나는 네가 죽도록 필요하고 너는 내가 죽도록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묶어져 하나가 될 때에는, 두 인격이 합해져 하나의 인격을 갖추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오늘의 인간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히피족들이 나와서 꺼떡거리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성을 연결하기 위한 상대이념에 대해서는 꿈도 못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그러한 주체성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정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몸과 마음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사람만으로는 절대로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천정이 가담해 들어오면 착 달라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구보다도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 라고 했습니다. 잘 가르쳐 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첫째 되는 계명의 내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중심으로 선악을 가려 가라

선악을 가려 나가는 데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나입니다.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기원으로 해서 출발해야 되느냐? 마음 입니다. 마음을 기원으로 해 가지고 가려 나가야 됩니다. 타락한 세상에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악한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은 지옥행입니다. 선에 제일 가까운 양심표를 사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구원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야 됩니다. 개인이 이래야 되고, 가정 ·종족·민족·세계가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공인된 그 기준은 어느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의 평화가 싹틀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선의 개인과 선의 가정, 선의 종족, 선의 민족, 선의 국가, 선의 세계가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기준과 방향을 못 맞추게 될 때, 그 국가는 깨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의와 사상입니다.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생관과 생활관, 새로운 세계의 인격관 등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입니다. 물고기로 말하면 송사리는 송사리끼리, 미꾸라지는 미꾸라지끼리, 뱀장어는 뱀장어끼리, 메기는 메기끼리, 그 형상이 비슷하고 생활 환경이 같은 종류들 끼리끼리 모이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그리고 통일교인들도 통일교인들끼리 모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중심삼은 그것을 전체에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파탄주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아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고,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을 중심삼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악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투쟁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투쟁을 하는 데에 있어서 여기에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어떤 틈을 통해서 공격하느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몸을 통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앞에는 몸이 사탄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마찬가지로 남자 앞에는 여자가 사탄이고 여자 앞에는 남자가 사탄입니다. 그렇게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언제나 사탄이 되기가 제일 쉽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몸뚱이는 뭐예요? 한집안 식구예요, 아니예요? 한집안 식구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한집안 식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을 놓고 볼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원수요, 아내에게는 남편이 원수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 앞에는 몸뚱이가 원수요, 몸뚱이 앞에는 마음이 원수인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곳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점령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들어와서 점령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몸을 무엇으로 마음과 하나되게 만드느냐? 무엇으로 하나되게 할 수 있겠어요?

보세요. 몸이 늙어 죽게 되었더라도 마음은 몸에게 나가서 일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고 합니까. 아니면 몸의 사정을 봐 주면서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먹고 살라고 합니까? 집에서 편안히 쉬라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마음은 몸이 늙었어도 나가서 일하라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거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서로 친구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세상에 부모를 그렇게 대하는 자식이 있다면 불효자겠어요, 효자겠어요? 늙은 부모를 대해서 자식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불효입니다. 또한 임금을 대해서 신하가 그랬다면 간신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보면 마음이 원수입니다. 몸뚱이는 악의 무대요, 마음은 선의 무대입니다. 이 악의 무대 가운데서 선의 무대를 닦으려면 하늘의 도리, 즉 천륜의 도리를 들고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요? 개인의 마음의 세계에서 심정을 계발해 가지고 천륜의 인연 앞에 그 범위를 넓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생활관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생활관으로 넓혀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통일교회가 되라

성인은 세계를 위하는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성인치고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도리를 가르치는 성인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위인입니다. 대한민국의 충신 이순신 장군이 미국에서도 충신입니까? 일본에서도 충신이예요? 일본에서는 원수입니다. 대한민국에 서만 충신이고 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대한민국에서도 충신 이상으로 모시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충신 이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해서 충신 이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것은 그들이 하늘의 도리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며, 하늘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자기 민족 위주가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국가 초월의 사상을 근원으로 하는 도리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의 내용을 품고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갈보리 산상에서 그 민족에 의해 형편없이 죽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제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습니다.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고 너 할대로 하라는 식으로 예수님을 버리고 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오늘날 이 민주세계를 움직이는 기독교 사상권을 만들어 놨느냐? 예수님은 그때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하나님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인류는 시시하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 인류가 아닙니다. 미래의 인류, 인간이 찾아갈 수 있는 소망의 인류인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성인은 자기 나라를 위주로 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유대 사람으로서였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 만들어 가지고 한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나라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없어지더라도 세계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를 위주한 통일교회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주한 통일교회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만을 위주로 하면 언젠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세계를 위한 대한민국이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전체를 위하여서는 무한한 가치로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에게 벽돌집이나 양옥집도 지어 주고, 차도 한 대씩 사주고, 자기가 해주고 싶은대로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그런 마음 있어요, 없어요? 그런 마음 바꿀 수 있어요. 양심 있는 사람은 돈이 생기는 대로 먼저 그런 일을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양심은 환갑 잔치날을 맞았으니 이제부터는 집에서 잘 먹고 잘 차리고 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은 폭군 중에 최고의 폭군 같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인격을 갖추고 영원한 천륜의 심정의 세계, 선주권의 그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야 되겠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폭군과 같이 대하는 겁니다. 이것이 나쁜 거예요, 고마운 거예요? 고마운 것이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도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주의냐?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는 민주주의 할 때의 주인 주(主)자가 아닙니다. 집 주(宙)자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에 살 수 있습니까? 살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천주(天宙), 즉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못 되어서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집을 떠나서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떠난 집은 상가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과부나 홀아비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집이 아무리 으리으리하다 해도 그것은 미완성이요, 반쪽입니다. 그 집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은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집에는 주인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주인이 있느냐 할 때, 마음의 주인이 있는 것 같지요? 마음의 주인이 없으면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동으로 갈 지 서로 갈 지 알아요? 그렇지만 본심은 알거든요. 그러니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은 천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제한된 이 하루권내에서 사니까 잘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년 만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을 위해서 살면, 그 천년 만년이 그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가치가 있느냐 할 때, 천만에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냐? 여러분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분별하는 기준

마음과 몸은 서로 제일 가까운 것입니다. 또, 선악의 분기점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마음과 몸 사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가 경계선, 분기선이라는 겁니다. 분기선이 어디에 있다고요? 나 자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은 선한 편이요, 한편은 악한 편입니다. 그런데 선한 편을 보면 깜깜합니다. 양심은 선한 편이지요? 양심을 들여다 보면 환해요, 깜깜해요? 이건 마치 안개에 휩싸여 있는 거와 같이 깜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몸뚱이를 바라보면 어때요? 훤해요, 깜깜해요? 훤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훤한 것보다도 깜깜한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깜깜한 것이 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훤한 것을 부정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종교의 도리를 보세요.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살고 마음대로 등쳐 먹으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 반대인 것입니다. 전부다 내려가라,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참된 종교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종교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참된 종교가 되려면 무엇이든 부정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부정해야 되느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식의 사랑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최후에는 인륜 도덕까지도 부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누구보다도,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부정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최후까지 남아질 수 있는 종교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는 종교라면 가능한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에 신뢰가 가고, 이상과 사랑과 심정을 느낄 수 있고, 무한한 가치를 지닐 수 있고, 나 자신이 내적인 인격을 구성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또다시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됩니다.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 통일교회에 대해서 세상에 소문이 많이 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가면 축복이란 것을 해야 된다더라…. 그래요. 다시 해야 된다구요.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긴 뭐 어떻게 해. 우리 식대로 하지' 그런 말에 대해서 나는 대꾸 안 합니다, 내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요? 잘 알고 있지만 시시해서 안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것을 내가 전부 가르쳐 줄 때가 올 것입니다. 이 얼룩덜룩한 세상에는 기분 나쁜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역사적인 성인인 공자나 석가모니, 예수님도 나한테 와서 그것을 배워야 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보다 차원 높은 심정의 세계를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 마음의 세계에 깜깜하게 막힌 것을 치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사랑, 즉 세상적인 사랑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사랑이 아니고는 막힌 것이 터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통일교회를 아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를 진짜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선생님이 보기에는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나오는 데에 있어서 별의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통일교회 원리를 이용하여 출세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람 들이 출세했나 보세요. 다 걸려 들어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가 되라

선악의 분기점인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 자신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의 세계를 거느려 가지고 선의 세계를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과 악을 가리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한 몸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밤이나 낮이나 선의 주체성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서 선권을 발전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또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뭇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은, 집에 들어가서도 형제와 화목하고 부모 앞에서는 효도하고 친척들을 위하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럴 수 있는 경지에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원칙에 맞느냐, 안 맞느냐? 혹은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좋아하시느냐, 안 좋아하시느냐?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영계의 영인들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것과 거리가 멀어질 때는 망합니다.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키워 나왔는데, 전혀 생각을 안해줍니다. 여러분은 내가 천년 만년 생각을 안 해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생각을 안 해주는 그것이 그에게 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나 대신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갖고 1년 2년 3년 변함없이 나가게 되면 반드시 주체가 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세상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형제끼리 속닥거려 가지고 파당을 만드는 패는 사탄입니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파당을 만들려는 패는 사탄입니다. 여러분이 뜻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는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날 것입니다 여기에는 도둑놈들도 많습니다. 또, 사기를 치려고 하는 녀석들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별의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님이 동생에게 무엇을 사다 주고는 '내가 너에게 이걸 사다 주니 좋지? 내가 너하고 같아야 돼, 내가 너보다 위여야 돼? '하고 윽박지르는 사람은 그 집안에 있어서 불효자식입니다. 자기가 한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이다' 하고 떠들고 다닙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원칙에 어긋나 가지고는 다 꺾여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고 싶으면 다 따라가 버리라 이겁니다. 다 따라가도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교회도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느냐? 하나님의 심정적 인격을 갖추어 나가고 있느냐? 다시 말하면, 내가 뭐라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내심에서 깊이 우러나서 노력해 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지고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고 하며 시키면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모든 문제를 대하여 원칙을 중심삼고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감별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고 형제간에 우애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형은 동생 자체를 중심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내가 너보다 더 나으니 나를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패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기 있는 이 아주머니도 그런 패들 따라 가려다가 다시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사람이 불쌍해졌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만히 두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깨져 나갑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나 자신이 선악의 분기점

선과 악을 분별하기란 지극히 힘듭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영계를 통하면 망하기 쉽습니다. 방향도 모르고 자기 위치도 모르는, 전체를 모르는 입장에서 영계만을 들여다보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자리에 서서 영계에 관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실행해 보고 모든 이치에 부합될 때에는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차적으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증거해 옵니다.

선생님이 나서서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문선생이 어떻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들한테 지금까지 미움받고 반대받아 왔지만 그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때를 맞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자기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이 그러는데 하나님도 미완성이라나요? (웃음) 하나님도 발전한다나요? 그 따위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발전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공산당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란 것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 없는데, 완전을 추구한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시시한 것을 배워 가지고…. 그런데에 뛰어 들어가서 꼬리를 저으려거든 다 죽어 버리라구요. 그게 좋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다 가 버리라구요! 시시한 것들 같으니라고….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여서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천명을 받고 나온 사람, 하나님의 위임을 받고 나온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릅니다. 그렇다고 자기의 위치를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랑을 하게 되면 도둑맞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모릅니다. 내가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천년을 찾아 봐도 알 수 없는 것을 선생님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노릇을 해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끝장인 줄 아는데 끝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차려야 됩니다.

나 자신이 선악의 분기점입니다. 남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사탄이 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사탄과 접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사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축복받은 아내라고 해서 언제나 하늘편인 줄 압니까? 천만에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이 개재되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세상을 전부 복귀해 가지고 하나님이 이 세계를 치리할 수 있을 때까지 사탄은 언제나 제일 가까운 곳에서 여러분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이 길을 걸어나오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나를 반대했던 사람에 대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거나 죽으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대신 피해를 입고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집안이나 우리 협회가 그 대가를 치러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있어도 그때를 넘어가는 때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시한 녀석들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사고방식이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까딱 잘못하면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한테 교육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통일교리를 배워 가지고 어떻다 어떻다 하는데, 그런 것 다 누구한테 배운것입니까? 선생님한테 배워 간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느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 없습니다. 배워 갔으면 배워 간것에 대한 책임을 해야지 남의 물건을 갖다가 자기 물건 취급하니 그들이 무엇입니까? 도둑이라는 것입니다. 도둑이 다른 게 아닙니다.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 취급하는 사람이 도둑입니다. 사탄이 무엇입니까? 하늘 것을 하늘 것으로 돌리지 못하고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사탄입니다. 자기 것 같이 여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확실히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 두고 보라고요.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도 갔다 오고 몰리고 몰리면서 나왔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 원칙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버지 앞에 효자가 아닐 수 없거든요? 몰라서 그렇지 아는 사람은 선생님이 지나가면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예요. 결국은 하나님이 언제나 긍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나섰다가는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공석에 잘 안 나섭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어요.

이 시대에 대한 통일교회의 책임

앞으로 통일교회는 3대 종교로부터 반대를 받게 됩니다.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나를 반대하는 패들도 나올 것입니다. 분명히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대해 가지고 뭐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해 보라는 겁니다. 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갈 때까지 가 보라는 거예요. 어디까지 가는지….

여러분은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충신을 중요시해 왔습니다. 그러면 충신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의 비상시에 사지에 나가 모든 어려움을 자기 것으로 삼아 가지고 나라를 대신하여 생명을 바쳐 죽음길을 가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중심삼고 전도하는 사람이 하늘 앞에 충신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도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도하느냐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이것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자체가 인류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인류를 위해서 살자는 것입니다. 나도 축복가정이니 교회를 이용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용당하지 않는 거예요. 하늘도 절대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는 반드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의 갈 길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정통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은 세계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정통적인 길이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을 이렇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빚을 지려고 그러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여러분에게 빚을 지지 않습니다. 이를 악물고 빚은 안 지려 합니다. 빚지기를 좋아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인심은 천심과 통하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개인에서부터 선악의 분기점을 알아 가지고 선악을 분리시키고, 나아가 가정에서도 선악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자체는 이 시대에 있어서 선악을 분리시키는 분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사회와 이 나라를 넘어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이면 개인으로서의 싸움이 있고, 가정이면 가정으로서의 싸움이 있고, 종족이면 종족으로서의 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삼고 선악의 판가리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사회를 향해, 국가를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교회를 중심삼고 선악을 판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기점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단체는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에게는 통일교회의 갈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악을 판결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니고, 우연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이 세계정세와 상대적 관계를 갖게 될 때는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말을 해도 여러분은 모릅니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렇구나' 하게 됩니다. 70년대부터는 통일교회가 웃을 때가 옵니다. 반드시 그럴 때가 옵니다. 왜 그러냐? 70년대에는 선생님 자신이 최고의 분기점에 서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야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나만이라도 가야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좌우를 가려 가는 데 있어서는 두 사람만 따라오면 됩니다. 여러분이 좌우를 가릴 수 있기만 하면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에 천운을 맞이하여 정성을 들여 안팎의 환경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분기점이 언제냐? 분기점을 지나가는 데는 사람에 따라 3년, 7년, 혹은 20년, 30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분기점을 지나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선권을 확대시켜야 할 축복가정들

여러분은 때를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과 이 사회 앞에 통일교회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때가 70년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저자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때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 앞에 축복가정들이 선두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 가정을 동원하게 된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 3년만 더 이렇게 나가 보라는 겁니다. 어떻게 되는가…. 안 되거든 내가 들이쳐서라도 만들 것입니다. 나는 사정이 어떻고 환경이 어떠하니 전도 못 나가겠다고 하면 점점 핍박해 들어갑니다. 우리의 갈 길이 어디입니까? 우리는 사상적으로 이런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 전체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의 갈 길을 끊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도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박대통령 정부가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교회만 들어서게 되면 틀림없이 해결됩니다.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한다고 방법을 제시해 주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국가의 실정을 두고 볼 때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이 맡겨 준 이 천부의 사명을 존중하고, 또한 긍지를 지니고 그 사명 앞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하고 가정, 종족, 민족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생을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4단계를 초월할 수 있고, 국가적인 사명 앞에 무한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 시대입니다. 이 은사시대를 상실해 버리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은사권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신념을 갖는다면 세계로 가는 데에 있어서 선생님을 직접 따라가지 않더라도 세계로 나아갈 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세계적인 기준을 넘지 않고서는 여러분은 해방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악의 분기점은 나 개인에서부터 출발하여 가정, 민족, 국가, 세계로 진전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 개인만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만으로도 절대 안 됩니다. 전체를 위주로 공동보조를 맞춰서 한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물결이 높을 때는 높아지고 낮을 때는 낮아져서 물결의 상하고저에 맞추어서, 같은 운명체가 되어 나가지 않고는 여러분의 갈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 방향, 가정적 방향, 민족적 방향이 일치된 입장에서 나 개인의 승리를 세계의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는 특권적인 운세권내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개인에 국한된 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체와 일치된 나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도 대한민국의 가운데에 선 주권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가 좋아 해야 자기도 좋을 수 있고, 전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희생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면, 여러분은 언제나 선악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주체가 되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가야 할 방향을 잃지 말고 선악의 분기점을 환경적으로 넓혀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지, 당신 앞에 진정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온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심장의 고동 소리, 맥박 소리가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심각한 자리에서, 생애에 처음으로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쁨의 한 시간을 갖지 못한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당신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어 그 한 자리를 찾아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이 통일교단을 당신께 맡기옵니다. 이 교단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아버지가 인도하는 이 교단이기에 그 누구도 헐 수없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 교단을 지금까지 제가 맡아서 따라 나왔사옵니다. 이것이 생애의 걸음걸이였던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옵니다.

아버지, 당신 앞에 가까이 갈수록, 때가 저희 목전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저희가 봄날을 맞이하여 나무에 꽃을 피워야 할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꽃망울을 갖지 못한 가지처럼, 당신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를 느끼는 저희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아시옵니다.

세상은 알거나 모르거나 당신의 내정적인 심정을 따라 때가 되거들랑 활짝 피어 만민 앞에 자랑하실 수 있기를 바라시는 당신 앞에, 활짝 핀 꽃과 같이 기쁨에 충만하여 당신께 충효의 도리를 갖추어 가지고 당신의 거룩하심과 더불어 만 우주 앞에 빛날 수 있는 그날을 당신 없이는 고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날을 맞기 위해서 저희는 오늘도 내일도 이 길을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사랑받기를 바라는 아들딸이 있다면 당신 앞에 사랑받기 전에 이 나라 이 민족을 먼저 찾아와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인 것을 아버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딸을 사랑하시는 것은 그 아들딸 하나만을 위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사랑하기 위함이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함인 것을 아옵니다. 사막과 같은 이 땅 위에, 칠흑과 같은 이 천지에 선명한 등대가 한 빛으로서 사명을 다하더라도 그 등대는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모체, 즉 빛의 자체로서 영원히 비추는 생명의 근원을 가지듯이, 하나의 등대의 모습이 된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등대로서의 사명을 얼마나 잘할 것이냐 하는 것을 문제삼을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기쁜 일이 있거든 아버지께 돌려 드리고, 슬픈 일이 있거든 자기 일로 알고 수습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때가 가까와 오는 이 시대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한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책임진 저희들로서 슬프신 아버지를 얼마나 위로해 드렸으며, 과연 소망의 날을 잊어버리지 않는 입장에 섰는가를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사적인 입장에 서기를 고대하지 않고 걸어 나왔습니다. 아버님을 중심으로 하여 마이너스면 완전한 마이너스의 형태를 갖추고자 하였고, 아버님 앞에 흠모의 대상이 되고자 하였사옵니다. 아버님이 그리워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아버님의 사정을 염려하여 자신의 환경을 망각하면서까지 어떻게 당신이 남겨 주신 내일의 소망을 최후의 흐름 가운데 남길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염려하며 나왔사옵니다. 지금까지 이 생명들을 이 자리까지 나오게 해주심도 당신이 사랑하신 연고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사랑 가운데 천명에 의해 책임진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한 모든 사실은 자기의 갈 길을 염려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충효를 다하라는 분부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아직까지 저는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염려하시고 이 통일교회를 염려하시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세워 수고하고 계실진대, 저희가 아직까지 아버지의 아들딸이 못 된 서글픔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직까지 저희에게 설명이 필요하고 저희 가는 길 앞에 자극과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희가 미급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고, 아버지의 아들이라 할 수 없는 자신인데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 말라고 분부하시더라도, 또 수많은 영계가 동원하여 부정하더라도 '나는 가고도 남음이 있다'는 신념을 갖고 나서야 할 자신들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여, 오늘도 내일의 소망을 놓고 암중모색하면서 아직도 자신을 위하는 자리에 있고 물질을 위하여는 불쌍한 자리에 있사옵니다. 이러한 틈을 타서 사탄이 저희 자신을 침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가야 할 길을 향하여 직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여인이 지조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길도 가야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충신은 군왕 앞에서 맹세한 조건을 중심삼고 생사의 고빗길도 자유롭게 넘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각자가 갖추어야 할 충신의 도리, 절개를 지키는 데에는 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의 갈 길을 직접 인도하시옵소서. 저희가 당신의 뜻에서 멀어지거든 직접 채찍질하시옵고 가로막아 주시옵소서. 승리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책임과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사랑으로써 뜻을 성취하시옵고, 당신의 간곡한 위로로써 환경을 분별시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로서 당신께서 맡겨 주신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하여 온갖 성심을 다하고 아버지 것으로 바쳐질 때까지 상처받지 않고 고이고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8월 첫주일 아침이옵니다. 재출발의 달인 이 8월을 맞이하여 저희들은 재출발해야 되겠사옵니다. 1970년대는 6천년 역사를 대신한 7천년 역사에 해당한다고 하였사오니, 7월로서 모든 슬픔을 사라지게 하시옵고 새로이 8월을 맞는 이날부터 당신의 영광이 저희들 앞에 비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옵니다. 열을 행하였거든 여섯은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넷을 갖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것이 많으면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를 떼어놓고 자신이 나서서는 안 된다는 천륜의 교훈을 잊지 않고 가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웃을 사랑하였으면 그것을 아버지 앞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 쉽사옵니다. 도리어 아버지 앞에 자랑하기에 부족함을 느끼면서 눈물 흘리는 그 자리가 아버지께서 고대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자랑스런 일을 하였더라도 스스로 더욱 부족함을 느낄 줄 알고, 하늘의 전통적인 심정의 도리를 따를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인도하여 위로하여 주시는 것이 당신의 사랑이지만, 그런 자리에 설수록 험하고 가중된 십자가를 달게 짊어지겠다는 마음까지도 가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단계를 넘고 나면 또다시 크나큰 축복을 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은 그 넘고 난 승리의 자리에 저희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망과 혹은 여기에 불행의 여건으로써 저희를 찾아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은 아니지만, 그런 입장을 취하실 수밖에 없었던 때가 역사노정에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기쁨은 아버지께 돌리고 슬픔은 자기의 것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이렇게 가더라도 한이 없겠다는 마음, 이 몸은 이미 바쳐진 몸이니 언제 죽고 언제 어떻게 되더라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죽어 땅 속에 묻힌다면 그곳이 적막강산이라 하더라도 그 무덤은 적막하지 앉을 것이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충효로써 끝을 맺고갈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한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불러일으켜 주시옵소서. 기독교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려 했던 한때는 지나갔사오나 이제 다시 저의 여력을 다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 자신이 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때가 있을 줄 아오니, 저희들이 가는 길을 당신이 맡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복귀도상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고개 숙이고 가야 된다는 이 천리원칙, 일면으로 보면 원통한 길이옵니다. 그러나 서로가 선한 입장이 아니기에 선악의 투쟁이 있어야 되고 거기서 악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선의 발판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하늘은 승리의 선권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악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 총칼을 들고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피눈물로 굴복시키며 나왔다는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이만큼의 형태를 갖추어 세계권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당신 앞에 천세 만세토록 살아서 효성의 도리를 다해도 아버지의 기쁨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따르고 있는 저희들이 미련없이 몽땅 바칠 것을 다짐하였다는 것을 당신은 아실 것이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사상이 당신의 아들딸의 뼛속에 사무치고, 골수에 사무치게 하시어서, 가슴을 불태워서라도 아버님의 천추의 한을 내가 풀어 드리겠다고 하며 복귀도상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자녀들이 되도록 이시간 다짐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는 이 민족을 위해서, 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인류를 위해서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발버둥치면서라도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옷이 찢기더라도, 주위 사람이 조롱하더라도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태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험난한 사막을 지나서라도 가야 되겠사옵니다. 새벽별과 같이 당신의 그 빛이 비취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가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마음과 저희 마음을 심정과 사랑으로 얽으시옵고, 끊을 수 없는 줄로써 당신과의 인연을 공고히 맺을 수 있는 각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책임진 제단에서 죽은 제물이 아니라, 부활되어 산 제물로서 민족의 제단. 세계의 제단까지 가야 할 것이 저희들의 운명길이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역사적인 부활체가 되어 섭리사적인 승리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나,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겠사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대에서 종결을 봐야 할 천적인 한의 역사인 것을 제가 알았사오니, 가야 할 운명길을 가는 데 있어서 당신의 섭리 앞에 제물 되겠다고 다짐하는 신의의 마음을 보다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기간이오니 저희의 마음을 보다 강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만큼 닦아진 길이 당신 앞에 염려의 터전이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이것을 분발의 터전으로써 당신 앞에 바치오니 소망의 기원을 이룰 수 있는 권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70년대를, 역사적인 소생의 시대, 부활의 시대라고 자랑할 수 있는 기지로 세워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음력으로는 7월 1일, 양력으로는 8월 2일로 8월의 첫주일이옵니다. 이러한 인연 가운데 당신께서 저희와 같이하시어서 이 제단과 연결시켜 주시옵소서.

선악의 분기점에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심정과 저희들의 간절한 심정이 하나되어 맞부딪치는 힘으로 말미암아 비쳐지는 빛 때문이옵니다. 이 빛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미래의 미지의 행로를 개척하여 내일을 보람있게 갈 수 있게끔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는 9월에 있을 WACL대회를 위하여 일본에 있는 어린 자녀들이 피어린 투쟁을 하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은 불쌍한 이들이옵니다. 많은 일본 사람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사지에서 가시밭길을 달려가는 소수의 무리를 당신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사오니 부디 지켜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7월에 계획한 700쌍 축복을 하려는 것도 당신의 뜻과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통일교회를 위하여 통일교인을 세우기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 거기에는 당신의 뜻을 만방에 펼칠 수 있는 섭리의 뜻도 있사오니, 마음과 마음을 잇고 몸과 몸을 연결시킬수 있는 사랑의 생명줄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날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당신의 소망과 희망의 때가 멀어지지 말고 가까와지게 하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참은 변하지 않습니다.

무한한 사랑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여 저기압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골짝길, 험한 길을 슬픔과 더불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내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 도의 목적은 자기 가정을 완성해 가지고 거기서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무한한 행복을 누리자는 데 있습니다. 정서적인 면에서 이와 제일 가까운 때가 사춘기입니다. 사춘기에는 자연의 호흡을 느낍니다. 꽃을 보면 그 꽃에 무한히 품겨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가장 귀한 것이다' 하는 절대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식으로써가 아니고 사랑으로써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될 때까지는 개별적인 하나이지만 하나되면 그것은 전체를 대신하게 됩니다.

우리의 일생은 십년 이십년 덧없이 지나갑니다.

선생님을 대하거나 하나님을 대할 때 외형적인 면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내적인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을 느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후광입니다.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닻을 내려야 합니다.

인격의 중심을 무엇에 두느냐? 진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심정에 두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그 자리는 일생 동안 봄을 노래 하는 자리입니다.

부부는 늙더라도 젊었을 때의 사랑의 인연을 기준으로 하여 일생 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내심에 피어오르는 후광과 같은 사랑, 부모의 사랑은 그런 영원하고 입체적인 사랑입니다. 부부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도 부부가 심정적인 일치점과 생리적인 일치점을 겸한 자리를 통해서 태어나면 최고의 자식이 됩니다.

의논을 할 때에는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의논해야 합니다. 또한 선한 선조를 인연으로 의논해야 합니다. 도의 길은 하나님의 사랑에 심정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잘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즉,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사랑은 불변한 것입니다. 올라가도 내려가도 자빠져도 떨어져도 불변한 것이어야 합니다. 자면서도 아버지가 쓰다듬어 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언제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뿌리를 빼 버리고 어디를 가겠는가? 갈 수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언제나 그리워하기 때문에 쓱 보기만 해도 압니다.

우리가 원리로 전도하는 것은 사랑찾기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는 시공(時空)을 초월합니다. 말씀도 기도도 궁극에는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완성은 사랑의 이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 심정의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아담과 해와가 범죄함으로써 하나님은 진짜 자식을 잃어버렸으니 이들을 복귀함으로써 이루어야 합니다.

옥중에서의 춘향의 절개가 어떤 것이었던가!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분발해야지 왜 지치는가? 원리는 창창한 바다 가운데서 모래알 줍듯이 찾은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종살이밖에 못 했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세 번 한다고 했습니다.

완성은 많이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운 사람은 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용히 봉사하는 사람, 자꾸 자신을 묻고자 하는 사람이 두려운 사람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사람은 절대 천국 못 갑니다. 효자는 좋은 일이 있으면 부모를 생각하고, 충신은 좋은 일이 있으면 군왕을 생각하고, 열녀는 좋은 일이 있으면 남편을 생각합니다.

고생하고 충실하게 일만 하는 사람에게는 헛것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다 받게 됩니다. 그 복을 자기가 못 받으면 자식 대에 가서라도 받게 됩니다.

1960년대가 좋았다는 것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이해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밤을 새우고 닭이 우는 줄도 모르고 말씀을 전해 보기 바랍니다.

참부모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할 수 있는 상대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오십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담 해와는 자녀이자 동생이자 자기 자신입니다. 곧 하나입니다. 여자는 하늘이 좋아하고 인류가 좋아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면 됩니다.

조직이 좋지만 게릴라 전쟁에서는 조직이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느냐? 하나님을 얼마나 좋아했느냐? 선생님은 정성을 들인 사람의 말은 백 번이라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의 생활은 무미건조한 것입니다.

한번밖에 없는 생애인데 왜 빚을 지고 갑니까. 빚을 지우고 가야지요. 선생님은 열네 시간을 계속해서 고문을 받아 봤습니다.

이제 개인전도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단체전도시대입니다. 10명씩 한 팀으로 하여 100팀, 즉 1,000명을 동원하여 한 3년간 순회전도를 했으면 합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의 모든 것을 당신이 길이 기억하시어 당신의 품에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생명의 근원도 당신이옵고, 저희들이 사는 생활도 당신으로부터이옵고, 저희들이 찾아 가는 선의 결과도 당신에게 귀일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과의 확실한 관계가 명시되지 않고는 그 사람들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끼게 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당신과 일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누구보다도 높고 깊은 인연을 찾기 위해 무한히 애썼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의 생명이 우주보다도 더 귀하다는 말씀을 설파하신 것을 아옵니다. 우주의 중심이요, 전체의 근원이 되시는 아버지와 일체 된 자리에서 영원을 두고, 무한을 두고 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자각된 자신의 가치를 체득하게 될 때, 그 가치는 영존하신 아버지의 무한한 가치와 대등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장담코 온 우주보다도 더 크고 높고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생명의 힘이 저희 자신과 결탁되어 옮겨 갈래야 옮겨 갈 수 없는 완전 일체의 경지에 도달하였을 때에 아버지라 부르는 아름다운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고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고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느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남기고 가신 내정적 심정의 세계를 한없이 그리워하면서 남겨진 생애의 전부를 바쳐 그곳으로 돌진해야 할 각자의 사명이 있는 저희들임을 뼛속 깊이 사무치게 느낄 수 있도록, 이 아침에 저희들을 회심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없는 세계는 그야말로 지옥이요, 절망의 세계요, 낙담의 세계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루의 생활을 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이 나와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히 느낄 수 있어야겠고, 또한 당신의 무한하신 가호가 언제나 보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험할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러한 고귀한 아들의 권한을 가질 수 있고, 딸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그 자리가 억천만세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생활이 아버지를 대신하고, 인간이 움직이는 모든 거동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야겠사온대,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저희들만이라도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일체가 되고 당신이 남기신 영원한 뜻과 화합할 수 있는 자각된 자리에 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던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이 더운 계절을 보내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옵니다. 이 환경을 뚫고 나가서 당신의 깊고 높으신 마음 세계에서 흘러 넘치는 무한하신 사랑에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오니 그것을 소화시키고 체득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마음과 환경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 이 자리를 거룩하다 인정하실 수 있고, 당신께서 서슴지 않고 찾아 오실 수 있는 이 자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님의 아들이 있고 딸이 있는 자리, 아버님께서 응당 자유롭게 찾으실 수 있는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사흘째를 맞는 이날도 당신이 분부하시고 싶은 것을 저희들에게 분부하시옵고, 당신의 내정의 인연을 무한히 그리워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과 통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공을 바라보면서 반응이 없는 울부짖음을 외치다 지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죄악의 경계선을 밟고 넘어가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를 안타까운 손길로 붙드시는 아버지의 감촉을 느끼면서 아버지라고 외칠 수 있는 기쁨의 한날을 맞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온 천하를 몽땅 끌어안고 사랑하면서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경지를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부족한 정성을 묶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동쪽을 향하면 저희도 동쪽으로 아니 움직일래야 아니 움직일 수 없고, 아버지께서 중심이 되면 중심을 향하여 아니 설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동하면 저희들도 동하고, 아버지께서 정하면 저희들도 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을 지내는 동안, 과거 저희들이 통일의 인연을 처음 맺었던 그 시간서부터 지금까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자기 자신을 망각한 한때가 있었사옵니까? 무한한 가치와 무한한 생명의 인연이 처음 찾아온 그때의 심정을 지금도 지니고 있사옵니까? 그 마음속 깊이 새겨져서 파내고 또 파내어도 그 무엇으로 부정할 수 없는 자극이 아직까지 스스로의 마음 가운데 남아 있다면, 이는 내일의 소망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흠모의 심정에 불타오르는 간곡한 마음과 더불어 저희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만상과 더불어 저희의 고귀함을 찬양해 달라고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자랑하고 싶사옵니다. 모든 것을 저희를 위해 지으신 줄아옵니다. 고귀한 모습을 가지고 은연 중에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당신의 아들딸을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난날 아버지를 위하여 울부짖었던 과거지사를 오늘날 저희들이 아득히 바라만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의 모든 내용이 현실의 재료로 등장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의 모든 사연들이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고, 과거 그 자체가 오늘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8월을 맞이하여 두 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무한하신 자비의 은사를 같이하여 주시옵고, 넓고 깊으신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끝날에 내려질 높고 크신 당신의 분부가 저희들과 더불어 인연맺을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리 반도에 널려 뜻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복을 빌어 주시옵고, 하절기에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세계에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널려 있사옵니다. 그들이 있는 곳곳마다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평화의 세계를 향하여 오늘의 수고로움을 보람으로 느끼면서 개척자의 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극복하면서 투쟁하여 나가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 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며칠 동안 여기에 머무는 가운데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의 인연에 스스로 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일의 내 모습은 이래야 된다는 자신을 확정지어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자식으로서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세워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 기간이 그 준비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맡으시어 거룩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는 타락한 입장에 있지만 남달리 새로운 뜻을 품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뜻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기존 가정이면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누구나 흔히 느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요, 사정에 얽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확실한 하나의 과제를 앞에 놓고 이 타락한 세상을 판가리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며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추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내 개인에 있어서도 그러해야 되고, 내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해야 되고, 어느 사회, 어느 국가, 혹은 세계에 있어서도 그러해야 된다고 할 수 있는 참된 내용을 중심삼고 참된 개인, 참된 가정, 참된 사회,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모색해 나가야 됩니다.

참과 사랑

참이라는 것은 둘이 아닙니다. 동에서나, 서에서나, 남에서나, 북에서 볼 때 그 방향은 다를지라도 그 모습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참된 하나의 모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냐? 외형적으로 나타난 자기의 모습이나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환경적인 내용을 가지고 참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 중의 진실로서 모든 것을 규합할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의 표준이 되지 않고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참이 정착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리는 '나'라는 관념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내 몸과 마음은 수시로 참을 그리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이 현실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그 자리는 우리가 흔히 바라듯이 넓고 넓은 세계를 중심삼고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회나 가정을 중심삼고 결정될 수 있는 자리도 아닙니다. 가정이 있기 전에 먼저 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이 정착하는 결정적인 자리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가운데 있는 무엇을 정착점으로 삼겠느냐? 막연하나마 사랑이라는 명제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어야 되느냐?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사랑이어야 됩니다. 그 사랑에 접하게 될 때 영원한 행복이 깃들고, 그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때 어떠한 거리와 환경도 초월하고 시간성을 넘어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랑은 절대적 사랑이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시대도 그 사랑을 옮길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과거도 옮길 수 없고, 현재도 옮길 수 없으며, 미래도 옮길 수 없는 그런 사랑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옮길 수 없는 그 자체와 상봉하려던 어떤 한계를 느끼는 사랑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사랑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봄절기를 품고 남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쳐 흐르는 사랑, 차고 냉랭한 겨울절기에 있어서는 눈과 얼음을 녹일 수 있는 사랑, 높이로 보나 넓이로 보나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나와 관계를 맺어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안정된 중심의 자리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무한히 감촉되고 감각될 때 그 사랑이야말로 우주와 겨루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그 사랑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시작과 끝이 동일한 절대적인 사랑을 내 심지의 복판에 정한 사람이 있을진대, 그 사람은 비록 개인이로되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사랑을 느끼고 가졌던 사람이 그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슬픔 중의 가장 큰 슬픔일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슬픔 이상의 슬픔이 없는 것입니다. 또, 불행 중의 제일 큰 불행은 무엇이냐? 그 사랑을 가졌다가 잃어버려서 그 사랑을 다시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런 사랑을 나 자신과 어떻게 결부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이 우주 가운데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겠느냐, 낮은 자리에 있겠느냐? 다시 말하면, 고기압권내에 있겠느냐 저기압권내에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이 사랑이 고기압권내의 중심된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분 자신이 고기압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거기에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대등한 고기압권을 갖추지 않고는 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흡수하고 이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고기압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 마태복음 5장 3절을 보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가난한 자가 없는 자 중의 없는 자를 도와 주면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의 사랑이라든가, 부부의 사랑이라든가, 혹은 자녀의 사랑이 라든가 하는, 인간들이 흔히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사랑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본질적이고 고차원적인 사랑을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가지고 있다 할진대는, 그들은 현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

모든 종교는 어떠한 길을 찾아가고 있느냐? 민족을 중심삼은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초월하여 천정의 인연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요, 모든 사람들이 환영하는 자유로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험한 골짝길이요, 고독의 길입니다. 또한 슬픔과 더불어 비장하게 투쟁하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 길을 가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내 마음을 충분히 채워 줄 수 있는 우주적인 사랑이 그리워서 그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다리를 찾아 그 사랑만이 전부일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서 절대자로부터 공인을 받기 위해서 그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절대자의 사랑을 체득할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있다면 그 경지는 둘의 경지가 아니라 하나의 경지일 것입니다. 동이라든가, 서라든가, 남이라든가, 북이라든가 하는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찾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 빈 것을 느끼고 나 스스로 충만되지 못한 사실을 느끼던 마음을 가득 채워 줄 뿐만 아니라 넘쳐 흘러서 우주와 더불어 상관 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런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절대적인 사랑과 일대일로 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 그 우주는 자기 품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 먼 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무한한 사랑이 이 땅 위에 있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 사랑은 역사가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시대가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 미래도 그 사랑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경지가 우리에게 필히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흔히 말하기를 자아 완성이라고 합니다. 즉, 인생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을 완성해서 뭘 할 것이냐? 완성한 사랑과 접해야 됩니다. 완성한 사랑과 접한 다음에는 뭘 할 것이냐? 자신이 무한한 행복의 요인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무한한 행복의 요인을 나 자신이 갖는다는 것은 무한한 사랑과 끊을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식은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환경에 가거나, 아무리 극한 기쁨의 자리에 가더라도 그 사랑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한 그 자식의 마음은 딴 데로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항상 그 부모의 품에 있는 것이요, 그 부모의 자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어떠한 자리에 가더라도 단 하나밖에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모체로 삼고 일생을 살아간다 할진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기쁘나 슬프나 혹은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그 사랑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그 사랑을 중심삼고 내일의 희망을 자극시켜 가면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가면, 부모와 자식간의 그 사랑의 인연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을 맺었으면 어떤 환경에 가더라도 그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그 인연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재고, 그 인연을 중심삼고 느끼고, 그 인연을 중심삼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비로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연을 말할 때 그 사연은 하나님의 내정과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도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

그러면 도의 길 가운데에서 그런 자리에 제일 가까울 수 있는 때가 어느 때냐? 철모르는 유아시기냐, 철이 든 장년시기냐. 혹은 장년시기를 지나 가지고 세상 안팎의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는 노년시기일 것이냐? 과연 그때가 어떤 때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에, 그때는 사춘기시대와 같은 때라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꽃을 보더라도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연장시켜서 전체의 꽃을 자신과 관계맺고 싶어합니다. 또, 특정한 나무면 나무를 감상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상한 인연을 전체의 인연 즉, 모든 자연과 인연지어 가지고 감상하고자 합니다. 그런 내심이 우러나오는 때가 사춘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인지 모르게 내 전체가 흠뻑 좋아질 수 있는 하나의 사랑의 대상을 그려 가는 때가 사춘기인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서 인격완성이란 표준이 어디에서 나올 것이냐?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인격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인연이 어느때에 맺어져야 되느냐? 사춘기 시기와 같은 그런 때에 맺어져야 합니다. 도의 생활권내에 있어서 사춘기적인 감정이 떠나게 될 때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한때에 도의 생활이 끝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길 앞에는 반드시 한계선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한계선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무한한 세계를 보장받을 수 있고 확고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춘기 때의 소녀들을 보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웁니다. 왜 웁니까? 거기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자기 나름대로 흠뻑 젖어들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무한한 새로운 인연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상징적이요, 형상적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그 가운데 무한한 사랑의 인연이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감정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심정에 새겨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바닷가에서 바닷물이 파도치는 것을 보게 될 때도 그 파도가 나를 치는 것 같고, 자연을 바라 볼 때도 자연이 전부다 호흡하는 것 같고, 자신에게 환희를 가져다 주는 것같이 느끼게 됩니다. 기쁠 때 바라보면 최고의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슬플 때 바라보면 그 슬픔을 자극시켜 가지고 도리어 슬픔 가운데에서 다른 새로운 각도의 희망을 자극시켜 줄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사는 사람, 그런 심정을 가지고 무한한 인연을 추구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외로운 자리에 나가면 거기에서도 외롭지 않을 무한한 인연이 봄절기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의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이런 것을 체험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뭐라 할까요? 봄철에 아지랭이가 피어 오르는 꽃이 핀 동산에서 사방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과 꽃에 싸여 가지고, 그 분위기에 무한히 품겨 들어가면서 무한한 가치를 음미하며 스스로 취하는 그런 경지에 들어가 보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틀림없이 우주의 동적이고 정적인 맥박과 심장에서 피를 뿜어내는 듯한 무한한 힘에 접하는 그런 경지를 느낄 것입니다. 한계지어진 몸이라도 그 한계지어진 경지에서 무한한 경지에 접해 갈 때, 거기에서부터 생명과 인연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스스로 삶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스스로 행하는 것에 대한 독자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독자적인 감정을 느끼는 그 자리가 완성의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이러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완성의 자리를 절대적인 유아독존의 경지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신념을 가지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면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제2의 주체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보람된 것입니다.

전체를 대신하는 사랑을 이루어야

그 자리는 무슨 지식이나 인식을 통해서, 혹은 외적인 관념을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의 경지가 아니고는 못 넘어갑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눈은 다릅니다. 그리워하는 눈은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입니다. 그런 눈을 보게 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대적인 요인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인식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각권내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의 인식을 초월할 수 있는 동기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정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정서적인 것을 중심삼은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내 손이 움직이면 단지 힘이 소모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 손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심정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내가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보다 가치 있는 심정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생활을 하는 데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또,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전부 친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찾아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갈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전체를 중심삼고 하나되었다 할 때는 그 전체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을 찾았다 할 때는, 그야말로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대상을 찾았다 할 때는 그것을 무한히 드러내고 싶은 것입니다. 드러내는 데는 어디까지 드러내느냐? 하늘 끝까지, 무한정의 세계에까지 영원히 드러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바탕은 사랑을 갖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어느 한 사람만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은 일방적이요, 편파적인 사랑입니다. 하지만 서로 하나되었다 할 때는 전체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이나 뜻 앞에 세움받은 개인이 '내가 아무개를 사랑한다' 또는 '내가 아무개 자식을 사랑한다' 할때 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둘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세계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자기 나름대로 사랑의 대상을 찾을 때까지는 일방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입장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일방적인 입장에서 하나되었다 할 때는 전체를 대신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의 중심된 하나의 사랑을 이루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우리는 10년이면 10년이란 세월을 덧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들어온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여러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선생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선생님을 한갓 하나의 남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아무리 여러분의 마음을 품고 얘기를 해도 선생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라고 외적으로 평가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한 분야에 해당하는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이길 이상 찾아갈 길이 없는 한계점에 온 입장에서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면 무엇이 어쩌고 어쩌고 하며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인간적인 면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단순한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합니다. 또, 모래로 말하면 한 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를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한한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랑의 뒷받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없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더라도 후임자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가르쳐 주는 스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르쳐 주는 것을 다 배우고 나서는 선생님과의 인연이 끝나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에 가장 고귀한 봄절기와 같은 사랑의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떠날래야 떠날 수 없도록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여러분 자신과 선생님 사이에, 또는 선생님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거기에는 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무한한 분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래 분립이라는 것은 발전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태로 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제시해 주었느냐? 통일교회 원리의 내용이냐?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길에 들어가서도 그 죽음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유효원 협회장을 두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 뭐냐면,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고 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는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 데 있어서 나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많이 생각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유협회장을 생각하면 '그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방에 누워 있다가 새벽이면 만나고 싶은 그 정에 이끌렸고, 전해 받은 쪽지 하나까지도 생명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내연의 뒷받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협회장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망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들이 죽음 길을 극복하면서라도 어차피 가야 할 본연의 세계를 찾아가는 인생 길에 있어서 자신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을 많이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후광(後光)이라는 말을 알지요? 심정세계의 후광과 같은 인연이 중심이 되어 비칠 수 있는 나 자체가 못 되거든 후광의 반사체라도 갖추어야 됩니다. 반사체의 입장에서 그는 이렇고 나는 이렇다 하는 입장에 서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하나되었다 하는 경지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떠한 거울이 빛을 받아 완전히 반사되려면 그 거울에 티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반사되는 것입니다. 그 반사된 후광은 심정적인 후광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원래의 빛에 내 마음의 모든 방향이 완전히 일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상대적 자리에 서게 되면 그것은 둘이 아닙니다. 그렇게 반사된 빛은 직접적인 빛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영원하게 하는 것

여러분들이 생애를 거쳐가는 데 있어서 그 생애의 추구점이 있어야 됩니다. 그물로 말하면, 벼리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인생에 있어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닻을 내리게 되면 무한한 세계까지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심정을 느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한국에서 기도하더라도 세계에 널려 있는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하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어떤 심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알려고만 하면 그것이 전파같이 전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적인 조건이 성립된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상대적인 인연을 통하여 오는 것은 영속적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내용을 통해서 흘러가야 영속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체적인 내용을 결정지어 주는 것은 상대적인 내용이 아니라 주체적인 본연의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인생길을 가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추구해 나오는 하나님의 인격의 중심이 무엇이냐? 진리가 아닙니다. 그 중심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의 극을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면 내 죽음의 고통이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이라 해도 그 죽음의 고통을 잊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겨서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최후를 마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땅에 왔다 간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선물을 안고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다 26:39)"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그 경지는 최고의 경지인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이 땅 위의 사망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에 접하는 그런 자리를 어떻게 모색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일을 할 때나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봄날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일생 동안 봄날을 노래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나이가 많아도 나이가 많다는 인식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누구나 다음은 다 그렇습니다. 백 살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잖아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처녀 총각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자기 마누라가 쪼그랑 할머니지만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꽃 피웠던 그런 시절을 표준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부로 맺어졌던 그날을 중심삼고 죽을 때까지 그대와 나는 하나라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늙었다고 해서 밉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그 인연을 중심삼고 일생 동안 그 느낌을 간직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것으로 서로의 생애를 감싸 주고자 하는 그런 사랑을 가진 부부는 행복한 부부입니다. 쭈그러졌더라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그 부부는 적막한 부부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한 부부 라는 것입니다. 꽃을 볼 때, 동백꽃이면 동백꽃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동백꽃으로서의 변할 수 없는 본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늙는다는 것은 뭐냐?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봄의 세계를 향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육체는 비록 늙었지만 그 내심에 피어 오르는 근본적인 사랑, 그 사랑은 외적인 것보다 더 멋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사랑을 가져야만 행복할 것입니다.

부자지간의 인연도 그렇습니다. 아들딸들이 어렸을 때에는 무릎에 앉혀 놓고 귀여워하면서 애지중지 기르지만 그 자식이 나이가 많아지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더욱더 입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애와도 바꿀 수 없는 내용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는 가치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아들이 된다면 효자라는 이름을 갖지 않더라도 효자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선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젊었을 때 이상으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될 때는 그 자식이 곧 효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정의 길 사랑의 길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일생을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심정적 요인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어의 몸이 되어 감옥의 철창 안에 있다 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죽음의 교차로가 나타나도 문제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나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데는 그냥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는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게 되면 번식이 벌어집니다. 거기에 절대적인 능력의 영이 개재하지 않고서는 번식이 벌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 즉 부부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식이 생겨납니다. 자식은 어떤 때에 생겨나야 되느냐? 생리적인 모든 감정뿐만 아니라 심정적으로도 완전히 일치된 자리에서 생겨나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선하고 좋은 아들딸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타락세계에서는 그것이 안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라와 세계를 사랑하는 심정이 내면적으로 일치된 자리에서 자식을 낳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이와 같이 생리적인 일치점과 내면적인 심정의 일치점을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들은 천운을 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여러분들은 축복해 주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들딸을 보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고 사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이 증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이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열남 열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충신이 되기 위해서는 충신 이상의 심정적인 인연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또,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효자 이상의 심정적인 인연을 세워야 합니다. 은연 중에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나 가지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런 인연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선조들로부터 선한 천품을 받고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충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 일대에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수십 수백대의 선조들과 인연되어진 내용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두고 볼 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뜻을 알고 얼마나 기뻐했느냐? 미칠듯이 기뻐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기뻐해 보지 못했으면 여러분의 진리에 대한 갈구의 심정이 어느 한계선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계선을 넘어서야지 한계선을 느끼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무한한 힘이 운동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무한한 힘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에는 바람이 안부는 것 같지만 바람은 항상 불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없는 것입니다. 딱 정지해 있는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분야 분야에 보충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요할 때 문을 열게 되면 그 문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지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곳이든 공기가 채워져 있으면 거기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작용하는 조그만 모양들이 자꾸 자꾸 모여 우주적인 큰 태풍권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권도 어떤 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권이 움직여 나가는 것도 하나의 작은 끝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은 생리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힘의 한계선을 넘어서 무한한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한계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인간의 생리작용에 의한 힘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가 벌어집니다. 인간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그 힘이 인간을 치기 때문에 기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이상처럼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영속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대상자로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오늘날 우리 인간이 관계를 맺어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진리의 길도 아니요, 소망의 길도 아닙니다. 그 길은 심정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도의 길이 어떤 길이냐? 신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서 인간 세계의 그리움을 박차고 가는 길입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상, 자기 부모를 좋아하는 이상, 자기 처자를 좋아하는 이상으로 신의 세계를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의 길입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좋아해야 하느냐? 이것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도의 세계에서의 느낌은 이렇습니다. 은혜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아름답게 보인다는 거예요.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 빛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기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 그러한 빛을 발하게 되면 잘나지 않은 사람, 즉 못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 중에서 어떤 부부를 보면, 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저런 미남이 어떻게 저렇게 못생긴 여자와 같이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남자 눈에는 그 여자가 최고의 미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인연을 가진 사람, 첫사랑을 자기에게 백 퍼센트 부어 준 그 사람 이상의 상대를 못 찾았기 때문에 그 남자는 그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자기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면 그 사람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타교회와 다른 점

우리 통일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이 뭐냐? 세상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사랑을 입체적으로 퍼부을 수 있는 인연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고, 또는 아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진짜 사랑하는 마음을 얼마나 지니고 있었고 선생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껴 봤느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성적인 사랑은 그림자 같은 사랑입니다. 주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리워하다가도 또 그리운 경지, 이런 경지를 알겠어요? 죽자 살자 좋아하는 그런 자리에서도 또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랑은 무한히 주는 사랑입니다. 부딪치고 또 부딪쳐도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딪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 죽겠다고 계속 파고들어가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완성의 경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주의 본원적인 하나님의 사랑, 세계주의적인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 살아 나오는 인간 개개인에게 찾아 들어가 절충 되었다면 영원한 한날을 중심삼고 올라가도 사랑이요, 떨어져도 사랑이요, 자빠져도 사랑이다 할 수 있는 경지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경지에서는 인격의 귀함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사람은 말을 잘해서 좋다거나, 그 사람의 눈이 비둘기 눈 같아서 좋다거나 하는 것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은 전부 향수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전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때에 하나님의 분신이요, 하나님과 인연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심정을 가지고 보면 전부다 친구인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적 인연을 중심삼고 자녀의 입장에서 기도하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영적인 안테나를 통해서 들어온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여러분은 잠을 잘 때 아버지가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감촉을 느껴 봤어요? 아들딸을 사랑하며 그렇게 고이 키워 주는 느낌을 느껴 보았습니까? 그런 것을 느끼는 자리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인연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입체성과 신비적인 내용을 지닌 것입니다. 그런 느낌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어떤 자리에 가서 그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좋다는 것입니다. 꽃을 바라보면 꽃을 따라 아름다와지고, 꽃의 향취를 맡으면 모든 생리적인 감정이 동요되듯이 인간은 언제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연을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 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계에서 그 작용을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계에서 그런 작용을 해주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사랑의 감정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타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현재 전 영계가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도처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권을 넘어서서 내가 태어난 것도 그분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자랐다는 인식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연된 근본 뿌리를 뽑아 버리고 다른 어디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완성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기도를 하려고 원리를 중심삼고 글을 적어서 놓고 보면 틀림없이 잘 쓰여져 있지만, 이것을 해서 뭘 할 것이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원리를 주고 뭘 바꿀 거예요? 원리는 전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전도하기 위해 입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제일 수준 높은 것을 체험할 때 제일 안타까운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봄절기면 봄절기 기분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을 느끼려면 체험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랑 없이는 완성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수난을 당할 때 그 골짜기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기도할 때 그런 기도를 합니다. 내가 외로울 때 하나님이 심정적 사연을 가지고 어느 한때에 나를 하나님의 심정에 연결시켰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옛날에 대한 연상을 오늘의 시점에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는 시간권을 초월합니다. 6.25동란 때 진짜 고생했던 사람 이라면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면 눈물을 줄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억울한 사람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자식을 둔 부모는 늙어 죽을 때까지도 자기 자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경지는 겸손을 초월하는 경지입니다. 인간의 한계적인 모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초월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단에 서든가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통해 말씀을 전해야 하느냐?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를 통해서 말할 것이 아니라 심정을 통해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아버지' 하는 말 한 마디에는 억천만 가지의 심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심정에 있어 억천만 가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금을 먹으면 그 맛이 어때요? 짜지요? 그러면 그 짠 맛을 느끼는 감정이 전부다 같습니까? 성격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백이면 백 전부다 짜다고만 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완성은 사랑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 제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한 우리 통일교회에서 심정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심정이 모든 것의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심정 세계의 기원이 무엇이냐? 심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절대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한계적인 내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갖추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비출 수 있는 반사경이 되는 것입니다. 제2의 주체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반사경에서 반사된 햇빛이 뜨거운가요, 안 뜨거운가요? 직접 비치는 햇빛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대하시면서 그리워하는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내 모습이 되었느냐? 이것을 여러분들이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이나 아들딸을 잃어버렸습니다. 진짜 잃어버렸어요? 대답해 보세요. 잃어버렸어요, 안 잃어버렸어요? 인간은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신세입니다. 부모를 찾아갈래야 찾아갈 수 없는 황막한 천지 가운데 몸을 둘 곳이 없는 인간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어디엔가 부딪쳐 죽어 버려야 할 입장에 있는 인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세포와 신경을 완전히 뭉쳐 가지고 한꺼번에 들이쳐서 옥살박살을 내든가 하는 최후의 결판을 봐야 할 그런 운명권내에 들어가 봤느냐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6천년 전 잃어버렸던 아들딸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찾았어요?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꿈이나 꾸면서 적당히 해 나온 줄 알아요? 천만에요. 그렇게 백 날 천 날을 해도 되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원리를 알듯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자식이 낯선 넓은 시장 같은 데 가서 부모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만일 돈이 있다면 그 돈을 생각하겠어요? 엄마가 사준 것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부모를 찾을 도리가 없습니다. 관심을 다른 데에 두면 부모를 찾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떠들썩하도록 소리를 질러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 급하면 사람을 다치게 해서 소문을 내어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아무개가 어머니를 찾다가 찾다가 못 찾아 가지고 화가 나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 하는 소문을 통해서 부모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쁜 길을 통해서라도 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인해서 죄를 범하게 될 때는 용서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팎을 보완할 수 있는 그런 경지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진정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부모를 잃어버렸다면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부모를 찾기 위해 가슴 조이고 밤을 새워 몸부림치면서 소리 중에 제일 큰소리로 불러도 보고, 또 몸뚱이로 바위를 들이받아 옥살박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한 번 해보십시오. 세상을 전부 공으로 돌려 버릴 수 있는 나 자신이 한 번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찾을 길이 있다면 한 번 부딪쳐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봤어요?

아담 해와가 타락했나요, 안 했나요?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을 진짜 느낄 수 있어요? 타락했는지 안 했는지 알아요? 물론 다 알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 직후에 고개를 들 수 있었겠습니까? 그 부끄러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별의별 소문과 욕을 먹고 있지만 그 부끄러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협회장하고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기성교인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그 부끄러움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난 아담 해와의 부끄러움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부끄러움을 가려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부끄러움을 느껴 봤습니까? 자기의 책임을 못하고 아차 하는 순간에 아담 해와는 타락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 경지를 생각해 봤어요? 그런 경지는 생각도 못해 봤을 것입니다. 기가 막힐 일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원리적인 내용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자는 건달 중의 상건달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여러분들이 어떻다고 하는 그런 척도에서 놀아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차원이 선생님의 경지에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있다 하는 그런 무엇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어디를 가도 걱정을 안 합니다. 이 마음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출발하게 하신 분이 당신이기 때문에 모든 결과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도 당신으로 말미암아서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몸뚱이도 지고 다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녀라고 해서 다 열녀입니까? 옥중에서의 춘향의 절개는 뭡니까? 그 붉은 마음에 어느누구도 흔적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절개가 아닙니까 ?

여러분들은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고 말들은 잘합니다. 천번 만번 말들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레코드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생명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한낱 나팔꾼밖에 못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아담이라고 해야 합니다. 여자들도 '나는 해와입니다. 이 세상을 수난 가운데 떨어뜨린 여성의 어머니입니다.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할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내 부끄러움을 벗기 위해서는 억천만세의 수난의 길도 감당하고 달게 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하는 이런 마음으로 나라에 대한 문제, 세계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핍박 시련 고통을 달게 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복받기 전에 모든 시련의 보따리를 내게 맡기라고 해야 됩니다. 인간의 보따리를 다 받고 하늘의 보따리까지 다 받아 나가는 길이 내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민족 앞에 배반당하고 세계 앞에 몰리면서 걸어온 기가 막힌 사연을 어제도 얘기했지만, 자기들을 위해 은덕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모해하고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런 녀석들을 볼 때마다 갈가리 찢어 가지고 독수리 밥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내가 못박힐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 하면서 그 부끄러움과 수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모든 보따리를 내가 대신 맡아 주는 경지에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가야 할 복귀의 길

설령 내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떠한 욕을 먹고 거리에서 객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갖추어야 할 아들의 모습을 상실했을 때의 그 부끄러움 그 수치를 무엇으로 가릴 것이냐? 그것은 청천백일하의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부끄러움은 하나님께서 가려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만이 내 허물을 다 가리고도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할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맺어져 있기 때문에 그 동기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동기는 타락한 아담을 대하던 이상의 동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허물을 가려 주시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아담 이상으로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해와 이상으로 하나님을 좋아해야 됩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강의를 여러 번 들어 봤을 것입니다. 그 원리가 무슨 원리냐? 복귀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공식입니다. 그 공식은 무엇을 통해서 가느냐? 말을 통해서 가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을 통해서 가는 것도 아닙니다. 심정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두고 볼 때 가인 아벨의 자리도 심정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님을 누가 더 사랑하느냐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더 많이 받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가졌다가 잃어버린 심각함을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나가는 노정에서 나라를 위해야 하고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분발해야 합니다. 지치기는 왜 지칩니까? 여러분, 지쳤어요, 안 지쳤어요? 「안 지쳤습니다」

지난번의 진도(珍易)사건을 알지요? 「예」 한 부인이 신앙으로 해서 두 아이를 죽인 일이 있었지요? 남편만 우리 교회에 들어오고 그 부인은 아직 기성교회에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행한 일이었는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일면 보아서는 안되었지만 참으로 심각한 장면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부인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한 일이라면 얼마나 큰 가치의 일이겠습니까? 그 사건이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요즘 내가 수택리에 자주 가지만 수택리 공장에 있는 그녀의 남편에게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어요. 며칠 전에는 그 남편이 내게 와서 자기 아내를 데려와야 되겠다고 하기에 공장장하고 의논해서 잘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식을 죽인 것은 나쁜 것이지요?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위해서 그랬다면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복귀도상에 있어서 큰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

나도 실제로 하나님을 위해 내 자식을 죽일 수 있는 자신이 돼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식을 죽인 다음의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부인이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하고, 천년 만년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랑의 제물이 되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면 얼마나 고귀한 일이었겠습니까? 만일 그런데 그 부인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 경우, 집안과 자식들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원리의 길을 생각하면, 창창한 바다 가운데 떨어진 모래알 줍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그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과연 어디서부터 닻을 내려야 되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는 내가 그런 것을 여러분들에게 교육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는 다들 심부름꾼밖에 안 되었어요. 종같이 심부름이나 했지 진짜 효도를 못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크게 보지 않아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효도를 한 것이 아니라 종살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축복해 준 것은 양자의 입장에 세워 놓고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축복은 세 번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 말 들어 봤지요? 「예」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한 얘기인지 여러분들이 모르면 저나라에 가서 선생님의 얼굴을 못 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를 놓고 고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온실 안이 봄날이라고 바깥까지도 언제나 봄날이 아닙니다. 그 온실의 비닐만 벗겨버리면 겨울 날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식물은 당장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와 마찬가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

완성은 많이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남을 위할 줄 알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을 아주 존경합니다. 하나님은 안다고 하는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택하시느냐? 자기가 많이 알고 있지만 외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야 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자꾸자꾸 감추려고 하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택하시는 것입니다. 도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는 그것이 도의 가르침 아닙니까? 자신을 자꾸 묻으려고 해야 합니다. 나 역시 자꾸 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 주다가는 둘 다 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기 전 인간 조상을 대하시던 본연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그리워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타락한 입장에서 타락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그리워한다면 하나님과 상봉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본연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나 자체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없어야 됩니다. 절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천국에 못 갑니다. 절대로 못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천국에 갈 수만 있으면 가보라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나라에 가서 다시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영계나 내가 지금까지 걸어 나오는 이 길에 있어서는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입장에 있지만 누가 '당신은 책임 다 했소? ' 하고 묻는다면 얼굴을 못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책임을 다 했느냐고 할 때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책임 못 했기에 큰소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입니다.

효자는 좋은 일이 있으면 먼저 부모를 생각하고, 충신은 좋은 일이 있으면 먼저 군왕을 생각하며, 열녀는 좋은 일이 있으면 먼저 남편을 생각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효자 충신 열녀의 반열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름도 없이 농촌에 틀어박혀서 나라를 위해 제일 비참하게 산 사람은 불쌍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 못 받으면 저나라에 가서 받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못 받으면 후대에 받는 것입니다. 지나가던 중이라도 그 아들딸을 데려다가 하늘의 복을 받게끔 길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동정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라는 거예요.

왜 초창기가 그리워지는가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심정적인 기준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심정은 그리움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필이를 데리고 범냇골에서 살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좋은 때였다는 것입니다. 학교시절은 어느 때가 제일 좋으냐?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시절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왜? 엄마 아빠가 자기를 찾아와 주기도 하고 자기를 기다려 주기도 하며 자기를 위해 주는 시간의 여유가 어느때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가 그 어느때 보다 좋다는 거예요.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그저 무심하게 '너 왔니' 하면 끝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

여러분들도 60년대가 좋았다고들 말합니다. 그때에 무엇이 좋았습니까? 욕을 잔뜩 얻어먹고, 선생님이 끌려 다니고, 매일같이 동서남북으로 숨어 다니다가 누군가가 문전에서 아무개를 찾으면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끼고 복장이 다 녹아나던 그때가 좋긴 뭐가 좋아요?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때는 서로서로가 위해 주는 마음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왜 좋았느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뜻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유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기 때문에 그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왜 안 좋으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나가서 전도를 해보라구요. 얼마나 좋아요. 열두 시가 지나고 날이 밝아서 닭 울음 소리가 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 모릅니다. 부모가 자식 기르는 그 맛을 알려면 자식을 길러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때 기뻐했는데 선생님이라고 기뻐하지 않았겠어요? 초창기에는 밤을 새우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보통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되어야 잠을 잤기 때문에 평균 두 시간밖에 못 잤습니다. 그러니 좋을 것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가 좋았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경계선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하나의 순수한 인연으로 뭉쳐져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지방에 순회를 가서, 그렇다고 말은 하지 않지만 척 가서 대충 보면 다 압니다. 전부다 지금 사람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사람 사태가 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람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면서 찾아 나오고 계시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그 한계선에 여러분이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문제입니다.

요즈음은 통일교회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되는 단체의 책임자들이 선생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만 누군가를 통해서 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남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개인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사람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어리숙해서 그것을 못 느끼게 되면 다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심정적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믿음의 중요성

참부모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까? 밥을 많이 먹는 사람입니까? 세상에 권세가 등등한 그런 사람입니까? 참부모는 심정적인 바탕 위에서 참된 하나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어제도 얘기했지만 어머니는 나이로 보면 선생님의 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 어머니를 대해 가지고 딸과 같이 느낄 수도 있고, 누나같이 느낄 수도 있고, 또한 어머니같이 느낄 수도 있고 아내같이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셨는데 아담 해와가 누구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무슨 입장이겠어요? 동생의 입장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무슨 입장이냐? 하나님 자신의 입장입니다. 즉, 하나님 자신과 하나라는 거예요.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참가정이란 어떤 가정이냐? 이것을 복귀도상에서 선생님이 먼저 세워 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지금 노력하라고 한 것이 무엇이냐면 지금까지 잘한 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잘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순응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나갈 수 있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적을 못 갖고 있으면 희망이라도 가지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절대적 신앙을 갖는 것은 물론이요, 실천적 과정을 닦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이 땅 위의 남성을 대표하고 그 누구보다 더한 투쟁의 역사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영계와 육계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지만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적이 없으면 믿음으로 넘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어야 되느냐? 나 좋을 수 있는 그런 믿음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뜻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자기만이 좋아하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런 일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도 선생님과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야 하지 싫으면 안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안창성이도 그런 무엇이 있지? 그런 것은 순진한 면으로 통할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순진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다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공인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바보 천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실속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들이 좋아하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됩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셔야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실천적인 생활을 못하더라도 절대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머니를 교육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가 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고 인류가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어머니가 되라는 것입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누가 찾아오더라도 그 사람 이상의 실적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그를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시해야 할 것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자꾸 찾아오면 귀찮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을 누가 보냈는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냈는지 다른 누가 보냈는지 아느냐는 거예요. 그 사람 이상 실천한 실적을 갖지 못하고는 그 사람을 대해서 귀찮고 피곤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회장도 3년 8개월 동안 강의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나 자신도 그래요. 내가 지도하는 데도 문 아무개의 주관을 가지고, 문 아무개의 욕심대로 지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원리책은 무서운 책입니다. 원리책을 협회장이 썼다고 해서 경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일 이 책을 내가 썼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번에 걸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라는 거예요. 만일 잘못 써 놨더라도 경시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경서는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뻔히 틀린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썼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체를 두고 볼 때 그렇게 쓰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써야 할 다른 사정이 있었고 비약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모르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유모어로 자기 사정을 잘 말합니다. 그래서 그 유모어가 확실히 맞는 것이면 그 유모어가 자기에게 사실로 부딪쳐 올 것이요, 안 맞는 것이면 그냥 흘러가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요즈음 얘기하지만 앞으로 선생님이 원리를 쓰게 되면 인간들이 몇천 년이 가도 알지 못할 나만이 알고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몇 권 더 남겨 놓고 싶습니다. 기도하면서 뼛골이 우러나도록 정성을 들여 써 가지고 남기고 싶습니다. 왜냐? 역사에 거룩한 후대를 남기고 정성들이는 후대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러한 견지에서 선생님이 앞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원리책을 쓰려고 합니다. 협회장이 쓴 원리책에 대해서 시정할 것이 없잖아 있는 것을 내가 알지만 그가 정성들여 썼기 때문에 아무런 얘기를 안 했습니다.

선생님이 지시한 대로 하지 않으면 그것이 영계에 가서는 참소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영계에 가기 전에 내가 어머니와 최선생하고 함께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협회장에 대해서 3년 전부터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는 인사이동을 하기 위해 내심으로 두 사람을 결정해 놓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선생님이 몇 번씩 진지한 입장에서 교회 치리 방법에 대해서 지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그냥 다흘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협회장이 앞으로 지나가는 것까지도 싫었습니다. 걸어가는 것까지 싫었거든요. 그것은 여러분이 잘 모를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에 선생님과 밤을 새워 가면서 눈물바다를 이루도록 울면서 기도하고, 선생님이 변소에 가면 변소에까지 따라와서 기다리던 그 자세는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때보다 후퇴했느냐?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성의 도수를 더 높이 들여가고 있습니다. 문선생은 발전합니다. 여러분은 쉬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와 지상세계에 널려 있는 하늘의 사람들을 규합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은 뭐가 어떻고' 하면서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친구예요? 여러분들이 평하는 것이 절대적일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선생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을 진짜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녀석들처럼 머리나 긁적긁적하고 흐지부지하는 사람은 두고 보라구요. 그 말로가 어떻게 되는가.

현실을 직시하고 각성하라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끌고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없었으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협회장이 지도한 것이 아닙니다. 부장들이 모여 앉아 가지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전부다 허수아비 만들어요? 전부다 허수아비 만들어 놓고 복귀역사가 이루어질 것 같아요? 말도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맡긴 권한이 아닙니다. 월권을 바라지 말라는 거예요. 선생님도 아직까지 말하지 못하고 이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 있는데 여러분들이 짐을 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동냥을 못 주면서 쪽박을 깨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단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염려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 이상으로 심각하게 염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심각한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이 나라의 운명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이 비웃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구보끼 같은 외국 사람을 세워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식구들 중에는 일을 시킬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을 믿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어디를 가게 되면 자기들 마음대로 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새로이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위해서 산다고 말은 하지만 진짜 뜻을 위해서 살아요? 말이야 선생님보다도 더 잘 하지요. 선생님은 지금 심각합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라구요. 심각하게 생기지 않았나. 선생님이 요즈음에는 잠도 못 잡니다. 선생님의 눈을 좀 보세요. 심각한가 심각하지 않은가. 내가 무슨 일을 결단 내릴 때에는 전후 좌우 사방에 있어서 어긋나지 않는 결단을 내리기 위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셔 나오면서 여러분들이 어떠한 잘못을 하더라도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들이 열 번을 잘못했더라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은 직선길을 가는 것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통일교회가 소수를 가지고 망하지 않고 이만큼 버텨 나온 것은 선생님의 작전만 가지고 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몰리고 쫓기면서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선생님한테 책임을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자기의 자리를 잡았으면 얼마나 잡았겠습니까? 조직을 중심삼고 움직이려면 그 조직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공산당 조직에 대해서도 연구한 사람입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조직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게릴라 작전을 할 때는 조직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천차만별입니다. 점심 때는 뭘 먹고, 저녁 때는 뭘 먹고 그렇게 미리 계획할 수 없습니다. 뱀도 잡아먹어야 되고, 개구리도 잡아먹어야 되고, 나무 열매도 따 먹어야 되는 천태만상의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게릴라 전법을 써야 됩니다. 이 지옥에서 작전지휘를 하는 자는 책임자인 것입니다. 지금은 게릴라 전법을 쓸 때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체제를 완전히 갖추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체제를 갖추어서 하면 여러 사람을 통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게릴라 전법을 적용하면 많은 사람이 필요 없습니다. 몇 사람이면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라도 다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공장에 가면 시간 관념이 없습니다. 시간 관념을 초월해야 됩니다. 일하는 사람이 뭐 아홉 시니 열두 시니 하고 시간을 따지며 식사시간이니 밥을 먹자고 작업 하다 말고 나오면 되겠습니까?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합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심정을 중심삼고 다시 재편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알고 신앙하라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얼마나 사랑하느냐? 또 하나님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밤이나 낮이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열심히 살아서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하고 당당히 주장할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늘이 반대하더라도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하면서 나갈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을 들여서 가는 길이 천도(天道)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말은 선생님이 책임지고 들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기도 하고 정성들인 사람의 말을 안 듣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정성을 안 들인 사람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염려한다면 눈물 콧물까지 흘려가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아버지 앞에 엎드려 기도하라는 겁니다. 이 길은 눈물 없이는 찾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내가 어떤 때 아버지 앞에 심각한 문제를 걸어 놓고 기도를 할 때는 아주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지경에 들어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위신을 찾아 세워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외롭다면 누구보다도 외로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친구라곤 그 누구도 없습니다. 내 사정을 알아줄 친구를 가진 사람이 아니예요. 가정이 있고 식구들이 있지만 언제나 외로운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이 이러한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영통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수십 명 됩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수십 명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님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년 이상 정성들이면 10월에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고 영계에서 가르쳐 주니까 온갖 정성을 들이면서 나를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선생님을 만날 그 시간을 위해서 목욕재계하고 밤 열두 시부터 새벽 네 시까지 밤을 새우면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 여러분의 체면이 설 것 같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빚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사랑하시는 모양입니다.

이 나라가 선생님을 반대하면 세계 사람이 몰려 들어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면 멀지 않아 세계 사람들이 몰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이 뭐냐면, 선생님이 누구는 이래야 되고 누구는 저래야 된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는 참으로 거북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들이 출발할 때에도 다 같은 입장에서 출발했고, 일도 같은 입장에서 해 나가고 있으니 기왕이면 같은 자리에 가서 다같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영계를 통하는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직접 선생님을 모시고 살 때가 옵니다. 그때 가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 가서는 그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앞으로 그런 부끄러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천상세계에 가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천법을 지도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천법을 몰라서 될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대한 말은 안 하지만 여러분이 거기에 대한 내적인 인격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만 선생님이 어느 것도 그냥 두지 않습니다.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아요. 그저 무심하게 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잘 알아요. 어머니가 선생님과 10년을 같이 지내면서 보니까 선생님이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추호도 빈틈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 가정을 모시고 있는 처녀들은 잘 압니다. 선생님이 엄격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결코 시시한 남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일면, 외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고저러고 말들을 하지만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처녀들은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자기 들을 대하는 것 등 모든 것을 두고 볼 때에 세상적인 생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엄격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함부로 웃고 행동하고 그래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세상에서 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해 가지고 될 것 같은가 생각해 보라구요. 도둑놈 심보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슬쩍 도둑질해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이런 말을 하는 선생님의 뜻을 알고 따라 나왔다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값질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의 그 부끄러움을 알아요? 다말이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서 애기를 낳았던 그것은 아담 해와의 타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말은 그런 경지에서 인간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고차적인 입장으로 승화했던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손이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법이 세상에 있어요? 참다운 후손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할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끝까지 가야 하는 이유

내가 여러분을 대해서 염려하는 것은 이 땅 위에 나타나는 사실을 보고 선생님을 대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세계의 군왕 중에서도 최고의 군왕의 영광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왔습니다.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지금까지 고생한 것만 해도 하나님은 원통하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수난의 길을 가기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닙니다. 영광의 길을 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핏자국을 남긴 것이 하나님의 뼛골에 사무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러십니까? 이것이 내 생리에 맞기 때문에 가는 길인데 왜 그러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면서 가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여러 자식 중의 한 아들에게 좋은 옷을 사 주고, 집도 사 주고 해서 잘살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 아들이 그것을 전부다 팔아서 형제들을 도와 주기 위해 나누어 주었다고 하면 '야,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벌을 주겠어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동정을 안 받겠다는 겁니다. 나를 동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탕감시대에 싸워 나갈 때에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 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아주 심각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에게 그러한 때가 오는 것이 예상될 때는 기도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세계를 위해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 12)"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진리입니다.

인간은 나 자체를 위하여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버지 앞에 돌아갈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이 아니겠어요? 선생님이 사기를 쳤으면 저나라에 가서 사기친 것이 다 드러날 게 아닙니까? 백주같이 환하게 드러날 거 아니예요? 내가 이 땅 위에 왔다 간 성인현철들 앞에 책임진 것이 있기 때문에 고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족과 민족을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축복을 해주는 데에도 다 그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선생님은 그렇게 축복을 안 해주시더니, 이번에는 또 한국에 와서 축복받으라고 하시다니, 한바퀴 빙 돌면서 해주시면 쉬울 텐데' 하고 불평하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차원 높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하는 것이 과거에 영계에 간 영인들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국가들 중에 뜻을 알아주는 국가가 몇이나 있느냐? 또 몇 개 국가가 있다면 그 몇 개 국가를 중심삼고 어떻게 나갈 것이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금후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금후의 갈 길에 대해서 의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아직까지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머물면 여러분을 남겨 놓고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은 왜냐? 저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한 것은 물론이지만 저나라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 앞에 책임을 못 하는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생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철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여러분의 모습이 저나라에 갈 때도 그냥 그대로 통할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절대로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재교육을 받고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움과 간절함을 얼마나 느껴 보았는가

문제는 뭐냐? 참이라는 것, 즉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무엇이냐? 참부모란 말이 그리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연속적인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참부모 앞에는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참자녀가 되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참자녀예요? 참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참자녀입니까?

아이들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누나나 무슨 아줌마 먼저 부르는 것 봤어요? 다른 식구들이 다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도 없구만' 합니다. 형제들이 바라보며 '너 왔니' 하는데도 '아무도 없구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정말 아무도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그 말은 부모만이 자기를 충만하게 채워 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뜻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도 '무미건조하고 성의가 없구만'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미가 있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심정에 봄절기와 같은 사춘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 흘려 본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이 보고파서 눈이 물크러지도록 울어 본 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눈을 잘 뜰 수가 없어서 햇빛을 못 볼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의 길을 열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에서는 물론이지만 통일교회 본부에 속해 있는 사람들까지도 선생님이 뭘 하는 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제일 잊지 못하는 사연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연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흥남 감옥에 있을 때에 한 달에 한번씩 미싯가루를 받아 먹었습니다. 감방에 한 30여 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많이는 나누어 줄 수 없어서 신문지 조각에 한 숟갈씩 퍼 가지고 쭉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미싯가루를 나누어 주는 날은 잔칫날입니다. 그것은 쇠갈비가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서의 콩 한 알은 바깥 세상의 황소 열 마리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체면을 차리고 위신을 내세우는 사람도 콩 하나가 떨어지면 손을 쓱 내밀게 되어 있습니다. 20여 명이 한꺼번에 손을 내밀어 서로 콩을 집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그런 경지를 모를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간유에다가 물을 부어서 먹지만 고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몸에 그만큼 기름기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또 생콩을 먹는 데도 얼마나 고소한지 모릅니다. 그만큼 몸에 지방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흡수력이 강한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흡수력의 강한 정도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콩한 알이 떨어지게 되면 대번에 그걸 집으러 갑니다. 그것은 생리적 본능입니다. 거의가 굶주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집으려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입니다. 20여 명이 그 콩 한 알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걸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한 숟가락씩 나누어 주는 미싯가루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억천만 가지의 재물이나 대문이 아홉개 달린 기와집보다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싯가루를 나눠 주는 날이 바로 잔칫날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아깝다고 해서 혼자 먹지 않습니다. 절대 혼자서는 안먹습니다. 이 미싯가루를 이겨 가지고 미싯가루 떡을 만들어서 신문지에 싸서 작업장에 가지고 나갑니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점심 때까지 금식을 하는데 먹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것을 나눠 먹고 싶어서 참는 것입니다.

그 전날 저녁에도 굶고 아침이 일어나서도 굶었으니 땀을 흘리며 일하면서도 종일 그 생각밖에 안 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 땡' 하고 울리기가 바쁘게 사람들은 재빠르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 공장은 크기 때문에 제 1작업장과 제 2작업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큰 비료산이 몇 개씩 있습니다. 작업시간에는 거기에서 일을 하지만 쉬는 시간 15분 동안만은 거기가 천국입니다. 그 세계의 생활이라는 것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이러한 체험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눈물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애의 모든 것을 투입해야 하는 세계가 바로 그 세계입니다.

선생님이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심정으로 활동해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그렇게 하면서 살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 살아 봤으니 살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천리길도 멀다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일생의 수고도 일순간에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지 못하면 섭리역사가 6천년으로 연장되고 6만년으로 연장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인류를 대해서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의 심정의 뒷면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느냐? 이것을 풀어 놓고 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천국은 거기에서부터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을 위해 봤습니까? 선생님이 형무소에 있을 때에 선생님을 찾아다니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서로가 면회를 하겠다고 줄을 지어 가지고 야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사실 감옥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이세상도 자연적인 형장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뜻길을 가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에게는 뒷받침이 든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무엇을 잘해 줄까 하는 것을 놓고 노력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앞에 빚을 안 지려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러분 앞에 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기도 제목입니다. 기도를 할 적마다 빚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많은 세대를 거쳐 나를 찾아 전체적인 책임자로 책정해 세우셨으니, 내 생애노정에 있어서 결코 남한테 빚지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이 나라한테도 빚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빚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빚을 여러분한테 지웠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밖에 없는 생애인데 왜 빚을 지고 삽니까?

어느 때든 남에게 빚을 지우면 지웠지 빚을 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천군이 될 수 있고 천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심정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이란 우둔하고 미욱한 것

선생님이 어디에 간다고 할 때는 여러분들이 천리길도 멀다 않고 잘 걸어 다녔지요? 3개월 전에 집에서 쑥떡을 만들어 가지고 그 떡이 더러움을 탈까봐 풀지도 않고 본부까지 지고 와서 선생님 드린다고 보란듯이 풀어 보니 떡이 쉬어 시퍼런 곰팡이가 슬어 있었던 적도 있었지요? 그렇게 떡에 시퍼런 곰팡이가 피고 구더기가 생겨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 떡은 먹지는 못해도 억천만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정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영도에 사는 어떤 영감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자갈치 시장을 가려면 배를 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영감이 자갈치 시장에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다가 큰 배를 보면 '아 저 배에다 선생님을 모시고 세계를 유람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싱싱한 생선을 보게 되면 그 생선 꼬리를 붙들고 울어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참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질적으로 그런 영감에게는 미욱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리에 맞지 않는 갈고리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우둔하고 미욱한 것입니다. 아무런 형편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옆에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상관 않는다는 겁니다. 누가 볼 것을 의식하는 사랑은 한계권내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 말든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러한 경지의 사랑이 얼마나 우직하고 미욱하냐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두메 산골에서 캔 도라지를 선생님 앞에 가져와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영계에 가서 그 영감을 해방시킬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세상 사람을 대하듯이 대하는 때가 많습니다. 본래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누구한테 전화를 하면 벌써 영적으로 다 보이는 데도 집에 없다고 합니다. 내가 말은 안 해도 다 알고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아주 대담하게 거북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옆에 앉아서 없다고 하라고 손짓하는 것을 다 보고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놈의 간나 같으니라구, 옆에 무슨 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뭐라고' 하면서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화 안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곤란한 입장에 있으니까 '당신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상관이 없다고? 내가 누구를 중심삼고 얘기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사람의 앞길을 가려 주고자 염려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이용을 많이 당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당했어요.

내가 돈이 좀 필요해서 부득이 아무개의 집에 찾아가서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하면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에 나오는 아나니아 부부같이 행동합니다. 돈을 좀 빌려 주라고 하면 내 집을 보고 빌려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만두라고 하면서 그냥 나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입니다. 식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 가운데서 가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튼 몇 번만 그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얘기를 해주더라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 관한 얘기는 안 하는 게 더 낫습니다. 나중에 영계에 가서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도리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못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여러분은 '선생님의 입장에 있으면서 왜 말씀을 안 해주십니까? ' 하고 묻는데, 얘기를 해주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얘기를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알고 있었으면 그때 하지 말라고 왜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 하는데 그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피해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선생님이 말해 주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눈감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끝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그 일을 청산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나 자신도 나를 무서워합니다. 어떤 때에는 말 한마디를 하면 그것이 그대로 실현이 됩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기도해야 되는데 그 반대의 말이 나오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를 악물고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하면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합니까?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내가 선생님의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도인이라도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윤청정심이라는 사람을 알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 앞에서도 당당한 사람입니다. 장관을 옆에 두고도 반말을 하고, 장관 부인들을 자기 종같이 부리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정통인지도 다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선생님을 보면 응당 얘기를 다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 할 때까지는 얘기를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또 엊그제 만난 어떤 사람은 자기 휘하에 200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 제자들은 한마디로 하라는 대로 별의별 일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을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보지도 않고 선생님의 가까운 제자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협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승공연합 이사장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입교한 사람인지, 심지어는 생년월일까지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사람한테 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중심삼고 움직이면 외롭지 않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생각하지도 않고 뭐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이 모르는 재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못 합니다. 시시한 통일교회 껄렁패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옛날에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했어요. 정성들인 사람이라야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옛날 인민군 보안서에서도 형사들 일곱 여덟 명이 내가 요술을 하는 사람이라며 내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돼서 그런 표시를 안 내지만, 지금도 그때의 사람들이나 도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뒷걸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좌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박대통령의 고문이라고 해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전에 내가 그런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얘기했는데 그가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들이쳤습니다. 선생님이 상하로부터 사방팔방으로 들이치니까 '아이쿠' 하면서 훌쩍 털고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위신이나 체면을 거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아무도 당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외로워요, 외롭지 않아요? 진태, 외로운가, 안 외로운가? 「외롭습니다」 왜 외로워 ? 외로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왜정 때부터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많이 당해 봤습니다. 머리가 터지고 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별의별 고문을 다 당해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견뎌낼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알겠어요? 한번은 열네 시간 동안 취조를 당하고 고문을 당해 가지고 기어서 이십 미터도 가지 못할 만큼 되고, 몇 번씩 죽었다 깨어나는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었어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세계를 점령하고 하늘의 비밀을 캐내려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 말 한마디에 달려 있기에 죽더라도 절대로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각목으로 소름끼치는 고문을 당할 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의리를 지킬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한번 약속을 했으면 자기가 망하더라도 지켜야 됩니다. 이렇게 고문을 당한 후에 하룻밤만 지나면 그날은 슬픈 날인 동시에 잊을 수 없는 날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납니다. 거기에 대해선 여러분이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이십대 시절에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을 구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일본 국민이 천황을 위하는 마음보다도 내가 삼천만을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망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본이 선을 먼저 쳤으니까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참을 치면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속으로 '치고 싶은 대로 다 쳐 봐라. 더 이상 칠 수 없는 날에는 뒤집어질 것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을 내 손아귀에 집어넣겠다는 철석 같은 신념을 가졌습니다.

한국도 몇 해만 지나면 그렇게 될 것이고, 일본도 몇 해 이내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때 기도한 것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소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악관 앞에 가서도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도 내용을 중심삼고 앞으로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하면서 미국을 다시 찾아갈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싸워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쫓겨 다니면서 산비탈에서 바위를 붙들고 통곡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걸어 나왔지만. 세상의 어느누구나 좋아하고 부러워할 수 있는 큰 궁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품고 있는 슬픈 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뜻을 못 이룬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뜻을 못 이루고 죽더라도 이 뜻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부여안고 기도하는 사람이 한국사람 중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새로운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보유하는 세계의 중심 본부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새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을 써야

이런 전반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참부모도 하나의 영원한 사랑, 참가정도 하나의 영원한 사랑을 중심한 것입니다. 참사랑이 뿌리가 되어 줄기가 나고 가지와 잎이 나서 하나의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됩니다. 지구장의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선생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진정으로 선생님을 생각한다면 눈에 눈물이 마를 수 있겠어요? 선생님은 고생할 사람이 아닙니다. 때를 잘못 만났고 이 민족이 책임을 못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대한민국에 찾아오시려고 하는데, 삼천리 반도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자꾸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 교회나 식구들은 아직까지 책임을 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입장에 서지 못한 우리들임을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야 할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김영휘가 협회장이 됐지만, 지금은 옛날과는 다릅니다, 그렇지요? 김영휘(金榮輝), 그 이름이 좋아요. 이름대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요? 효원(孝元)이도 이름이 좋습니다. 갈 때까지도 영원히 영원히 변치 않는 다고 그랬지요.

내가 어제도 얘기했지만 이제 개인전도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는 단체적으로 전도활동을 해야 합니다. 한 개척지나 교회에 열 사람씩 지정하여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50명이면 50명, 60명 이면 60명, 100명이면 100명이 찰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한 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시킬 것입니다. 이런 팀이 100팀이 되면 천 명이 됩니다. 이렇게 천명쯤만 동원해 가지고 이런 활동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옛날과 전도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3차까지 전도를 내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1960년도부터 지금까지 전도해 온 것이 1차입니다. 후년 겨울까지 하게 되면 1969년부터 1970년과 1971년까지 3년간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3년간을 가정을 중심삼고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열 사람을 한 팀으로 만들어서 지역이면 지역, 지구면 지구에 보내려고 합니다. 우선 지구부터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구에 필요한 고정 멤버를 만드는 것입니다. 열 사람씩을 전도해야 산다는 것을 알고 밤낮없이 기도하면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내가 보리쌀이라도 사먹을 수 있는 돈을 보내 주겠습니다. 잘먹으면 안 돼요. 본부에서 지원을 해서라도 이런 활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공고한 기반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열 사람이 정성들이며 인연맺은 사람들한테는 언제든지 시간만 있으면 심방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작전으로 단체 부흥 활동을 전개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3차 전도가 끝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3차 전도를 내보내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분 가정들이 실수한 것, 책임 못한 것을 용서해 주기 위함입니다.

어저께 저녁에도 곽정환이에게 이야기했지만 옛날에 우리는 못먹고 못살았어요. 우리가 지금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업부에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하루에 공장을 세 번까지 간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두 번 간 적은 부지기수여서 셀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이렇게 해 온 생활이 벌써 15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어디에 갔다 돌아와서 시간이 없더라도 30분, 혹은 한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든지 갔다 오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어젯밤에 가 본 공장인데 아침에 다시 가 본다고 해서 공장이 밤새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성을 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길을 출발할 때에 '이 기반을 통해서 한국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기도한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무서운 것입니다. 맹세한 것은 꼭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10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하루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어떠한 세계적인 사업 가보다도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정성을 들여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나되어 충효의 도리를 다하라

이제 이 70년도부터는 가정을 중심삼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인 입장에서 정성들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협회장의 아들딸이나 총무부장의 아들딸을 한 번도 안아 주지 못했습니다. 효원이 아들도 한 번 안아 주지 못했고, 손목도 한 번 잡아 주지 못했습니다. 성진이한테도 그렇게 못 해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성진이가 불쌍하고 처량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 아직 때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공적인 입장에 있으니까 아들딸이 '아! 우리 아빠 엄마' 할 수 없는 것이 한이 아닙니까? 선생님도 예진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한을 풀어야 되겠기에 매일같이 그 애가 자는 시간에 가서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시고, 또 나 자신이 얼마나 수고로운 길을 거쳐 가지고 낳은 아들딸인가? 그러기에 그 아들딸은 공적인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아들딸에게 '우리 아버지는 세계에 있는 어떤 아버지보다도 훌륭한 아버지다' 하는 인식을 어떻게 심어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그럴 수 있는 때가 됐습니다. 예진이 나이가 금년으로만 아홉 살입니다. 열 살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70년대에는 가정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형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가정은 가정을 믿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역을 만드는 것은 가정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쓰이는 돈은 무서운 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정을 위주로 하여 재차 자리를 잡아 주는 일을 이제부터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을 알겠어요?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개인시대로서 개인을 대하는 때였지만, 이제는 가정을 대할 때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가정이 얼마나 충신 효자 노릇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가정의 아들딸이 얼마나 뜻 앞에 하나되느냐?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개인 표창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가정 표창을 받을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애기를 업고라도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부 다 모자협조를 완성시켜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데를 자주 찾아가 볼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예」 고속도로로 다닐 수 있기 때문에 활동범위가 상당히 넓어졌습니다. 대구도 세 시간 가까이 걸리니까 도착하더구만. 이제 어느 곳이든 불쑥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올라가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돌아가면 순회한다고 얘기했지요?

이제는 내가 공장에 못 가더라도 내적인 면에서, 개인적인 면에서 외적인 경제적인 문제가 뜻적으로 처리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책임은 그만큼이면 하지 않았느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의 신세를 지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공장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 있는 사업부장들, 선생님이 떠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알겠어요? 「예」 그대신 여러분이 지금보다 더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매일 공장에 갔듯이 하루에 한 번씩 가서 격려해 주어야 됩니다. 공장의 그 기계 하나를 붙들고 얼마나 하나님을 불러 보았습니까? 또한 얼마나 하늘의 형제를 불러 보았습니까? 그 기계를 우리가 사놓고 기뻐했듯이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월급을 받아야 좋아하고, 자기가 잘 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입니다. '이 공장이 잘 되어야 된다. 전체를 위해서 잘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자기 지구를 위해서도 정성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사업장이나 혹은 가정에서 선생님과 심정적인 유대를 공고히 맺을 수 있어야 됩니다. 70년대에 그런 환경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참부모와 참아들딸의 인연, 즉 참가정의 인연을 이 땅 위에 어떻게 공고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연결시키지 못하고서는 우리나라와 우리 세계와 우리의 천국을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한없이 불쌍한 자신을 저주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지나친 욕망을 중심삼고 기도하는 불쌍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저희의 머리 위에 묵묵히 눈물을 떨어뜨리시면서 빨리 장성한 아들이 되기를 고대하시는 아버지의 그 심정을 저희들은 알아야겠습니다.

아버지여, 어린 자녀들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불쌍한 신세를 가눌 수 없는 부끄러운 자신의 입장에서 부르는 아버지가 전체인 줄 알고 나오던 것과, 이 바닷가에서 지낸 것이 생의 전체인 양 느낀 그런 자신을 다시 한 번 개탄해야 되겠습니다. 무한히 넓고 높은 당신을 마음에 품고 그 인연으로 이 세계를 위해 보람있는 생애를 걸어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비록 먼 자리에 흩어져 있지만 마음은 한 뜻 안에서 기꺼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환경을 움직일 수 있는 아버지의 은사가 사랑하는 식구들의 가정과 이 땅 위에 내리기를 고대하는 아들딸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외국에서 외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있는 불쌍한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자리에서 아버지를 붙들고 나가고 있사옵니다. 제가 그러할 때에 위로해 주시던 당신이 살아 계시는 줄 아옵니다.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멀지 않은 장래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거동하실 수 있는 날이 저희의 목전에 다가온다는 것을 감춰 가면서 한 순간을 참고, 하루를 참고, 한달을 참고, 일년 십년을 참아 넘기어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나라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또 당신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인연을 맺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여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가 활개를 펴고 삼천리 반도 앞에, 삼천만 민족 앞에, 30억 인류 앞에 새로운 천국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는 소망의 천국이 저희 앞에 다가온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는 가일보 전진하는 생활권내에 있으며, 가일층 발전할 수 있고 내일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사오매, 그러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 다가오는 시련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그것이 낙망의 요건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런 환경에 부딪칠 때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체면과 위신을 망각하는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존중시할 수 있는 가치적인 아들딸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택리 수련소로 모여들 것이오니 여기에 당신께서 같이해 주시옵소서. 사람이 중심이 된 모임은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로되 당신을 중심한 모임은 결의와 맹세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께서 가시는 길이기에 불쾌하고 불순한 마음으로 왔던 사람들도 평화로운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일을 움직이는 사람은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수고의 노정에 희생된 선조들의 피의 공적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책임진 당신의 어린 아들 딸들이 부디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자리에 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만약 그런 자리에 섰다면 눈물로써 아버지 앞에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사연을 대할 때마다 마음과 몸을 다 바쳐서 당신께 돌려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염려하고 세계에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역사 창조의 일원으로 죽어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에 수련소를 지을 때에 다짐했던 그 마음을 소장 이하 거기에 속한 사람들 전체가 가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 자리에 이 몸이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을 묶으시어 이 나라 이 민족과 이 백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의 자세를 갖게 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생명을 세울 수 있는 거룩한 운동이 벌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 곳의 책임자는 최창림이 아니라 아버지시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 깊이 깃들어서 새로운 생명의 운동이 거기에서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마음에 담아진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소망에 부풀어 오는 그 마음으로 이 민족을 사랑하게 하시고 소망의 나라를 창건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허락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역군으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적으로 움직이는 일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해야 되겠지만, 내적으로 움직이는 일에 더욱더 열렬해야 되겠사옵니다. 외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위안받는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끝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내적인 것을 중심삼고 위안받게 될 때에는 영원해지는 것이요, 무한해진다는 것을 아오니, 내적인 당신의 사랑을 더욱더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고 아버지의 사랑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나서는 사람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아들딸들이 보다 거룩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고차적인 가치를 제시할 수 있고, 그러한 활동을 위한 새로운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새로이 맹세와 결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곳곳마다 모여서 이곳을 향하여 정성들이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내려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잘 해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된다든가 아니면 뜻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는 것을 잘 해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가 필요한 거예요.

영적 체험의 해석과 원리

여러분들이 도의 길을 가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사제지간에 있어서 위장전술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솔직해야 합니다. 지극히 정성들여 서로를 대해야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과 유효원 협회장 관계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한 가지 훌륭했던 점은 그 동안 통일교회에 김덕진 사건을 비롯하여 별의별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결해 나가야 된다면서 나름대로 5퍼센트 책임을 해결하려고 한 점입니다.

사람은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이 각기 주관이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5퍼센트의 기준이 무엇이냐? 5퍼센트의 기준도 각기 다른 것입니다. 그 5퍼센트라는 것은 원리법도에 입각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5퍼센트 책임이 통일교회에서는 필요없는 것입니다. 원리가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5퍼센트를 책임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머니의 역사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가 선생님이 이중작전을 한다고 해 가지고 별의별 소리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5퍼센트라는 것은 이 땅 위에 주님이 와서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개척해 나온 것은 선생님 자신의 5퍼센트 책임분담을 해 나온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5퍼센트 책임분담을 하는 데는 기도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자기의 심성을 중심삼고 해결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방송국이라면 그 방송국을 중심삼고 내 마음이 상대적인 입장에 서서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그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전파를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이렇게 가야 된다고 하며 방향을 바르게 찾을수 있는 천성의 기준, 즉 본래의 성품의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혼돈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를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고비를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을 넘어갈 때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투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때의 영적 세계의 반응이라든가, 주위환경에서 미쳐지는 모든 관계는 나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 했느냐? 그때에 필요한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천도란 원리원칙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 체험의 분별과 심정

그러므로 복귀의 원칙에 따라 관계를 맺어 나가려면 심정을 중심삼고 전부다 가려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관계인 부자의 관계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난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하나된 그런 경지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악한 것과 선한 것을 자연히 구별할 줄 안다는 거예요. 이처럼 심정적 기준에서 선과 악을 가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렵다는 거예요. 어렵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데 6천년이나 걸린 것이고 수많은 도인들이 여기에서 죽음의 길을 간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전부다 투쟁한 결과로 인하여 찾아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시련 과정을 거쳐 가지고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제 한 두어 고개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적인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단체로서 가야 할 길은 이미 다 온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원리를 중심삼고 쭉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반드시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걸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전후관계를 모른다는 거예요. 자기가 앞에 있는 지 뒤에 있는 지를 분간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우 관계, 즉 자기가 좌측에 있는지 우측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하관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그런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헤아릴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틀림 없이 그의 아들이다' 하는 확고한 기준,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기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 모든 사지백체(四肢百體)를 움직이며 사는 데에 윤활작용(潤滑作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체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악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원칙에 조금만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되면 벌써 마음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아요? 친구 사이에서나 혹은 어른들 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거북해서 얼굴이 붉어지지요? 마찬가지로 그런 기분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아들로서 하나되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마치 봄 같은 기분이 들고, 무엇인지 쑥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연스럽다는 거예요. 손을 들어도 어색하고 가슴이 뜨끔해지며, 말을 해도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시켜서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적 체험을 중심삼고 분별하는 데 있어 제일의 기준은 부자관계에 있어서의 심정입니다. 심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 아버지와 자식은 그 아버지가 아무리 훌륭하고 자식이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자식은 그 아버지 앞에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기준을 갖지 않고는 선악을 가려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노정은 그것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영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섰느냐가 문제

지금까지 선생님에게는 수십, 수백 명의 영통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굉장한 사람들도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고 누이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었고 아무튼 선생님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통했다고 해도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자리에 섰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적인 관계에 있어서 상하를 잘 가려 가고 있느냐? 횡적 관계에서 좌우관계를 올바로 가린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된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알 수는 있습니다. 종적인 관계에서 하위에 있더라도 상하관계를 알 수 있는 것이요, 횡적인 것은 종을 중심삼고 연결되기 때문에 좌우관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용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가 어떻고, 뜻이 어떻고, 지금 때가 어떤 때라는 것은 조금만 영통하면 다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안다는 것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의 세계에서 하나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 발언은 생각해 볼수록 우주적인 발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영적 세계에서의 어려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 아버지이니까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는 자유의 경지입니다. 자기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새로운 자아를 조성할 수 있는 사랑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이 뭐냐? 여러분은 원리를 중심삼고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교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의 종 종교가 있고, 종의 종교, 그 다음에는 양자의 종교가 있고, 아들의 종교가 있습니다. 양자라 해도 양자 중에는 동서남북과 같은 입장이 있는 것이고 아들이라 해도 동서남북과 같은 입장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많다고 해서 그 많은 아들 전부가 상속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적인 기원을 차지한 아들이 상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속을 받기 전에는 아들들 전부가 공통적으로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중심삼고 나가라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심정적으로 어긋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심정이 일치되면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긋나면 대번에 어색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부끄러울 때에는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그런 것에는 예민합니다. 내가 협회장이라든가, 누구를 만나서 떡 보게 되면 그 사람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말에 도취되어 할 말 못 할 말을 막 하는 걸 보게 됩니다. 선생님은 강단에 서서 말씀할 때 말을 빨리 하지만 잘못했으면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언젠가 협회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아담을 노아로 말하고 노아를 아담으로 말하면서도 그것을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협회장이 단순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일방적인 생활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생활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연상이 아주 빠릅니다. 그런 면에서는 선생님이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어요. 또 응용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빠릅니다. 어떤 것 하나를 보면 그것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딱 가려(분별해) 가지고 어떤 위치의 것이냐 하는 것을 판정합니다. 사고방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세계에 있어서 분별해 나오는 싸움의 역사(役事)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천도가 문제입니다. 하늘땅의 운세가 어떻게 되어 나가느냐, 복귀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의 터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는 내가 누구를 중심 삼고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간다면 그 뜻은 누구의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이 하나님으로부터 선생님을 통해서 나왔으면 선생님이 수고한 역사적인 모든 것을 존중시하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아를 발견했다 해도 자기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아를 발견했다면 자기를 세우려 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환경적으로 전부다 세워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을 평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사탄이 하는 놀음입니다.

사탄이 해와에게 '하나님이 네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했던 것처럼 조건을 걸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오래 못 갑니다.

나는 박재봉 목사라든가, 이호빈 목사라든가 하는 사람들의 배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배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입으로 그 사람들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있어서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만큼의 인연을 중심삼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그것을 오십쯤의 인연으로 끌어내리면 끌어내린 사람이 책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일단 그 밭에 심어 놓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밭에 심어 놓은 후에 주인이 거두지 않는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일단 그 밭에 심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심정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기도를 해서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는 왜 하는 것이냐? 기도는 하나님의 심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를 염려하고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전후를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있는데, 이 아주머니는 지금 선생님을 만나려 해도 내가 안 만나 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0월쯤에는 어떻게든지 한번 만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10월에 만나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급이 그만큼 낮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조직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급이 맞지 않으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아무때나 만날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산에서 기도를 하면서 혼자 정성들여 가지고 영계를 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에 대해서 기도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먼저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도가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는 칠성님을 모시고 나왔는 데, 칠성님을 부르면서 기도하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해야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신자의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게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계속 기도하게 허락하실는지 안 하실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지나친 기도는 시키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종이 아들을 대신하여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가려면 자기의 책임을 다 하고 선조들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안팎의 모든 내용을 갖추어야 그것이 공인받을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허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주머니도 이런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위해 일생 동안 기도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게 되면 신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노래가 나오고. 더우기 놀라운 것은 그 아주머니가 국진 아기가 임신되는 날, 낳는 날을 미리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가야 된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참 신통합니다. 그렇게 세밀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을 위해서나 선생님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천상세계에서 직접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텔레비젼 보듯이 빤히 보고 다 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뭘 하고 있고,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가 하는 것까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온갖 정성을 한 곳에 들이게 되면 그렇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르고자 하느냐? 그것은 심정적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심정세계에서는 아는 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심정과는 차원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 원리 하면 세상에서 보통 말하는 원리가 있고 창조원리가 있는데 창조원리 가운데 입체적 원리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입체적 원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했다고 문제시하지 말아요. 사랑은 인간이 성숙되어야 느껴지는 것입니다. 심정적 내용이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영통해 가지고 아는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보아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보아서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듣고 보아서 알기 전에 이 문제를 제시하여 발표하는 그때까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적 유대관계를 맺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모든 문제를 논의할 때 대통령을 중심삼고 각료들이 심정적 유대관계를 갖지 않고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을 문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다 심정적 문제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대해서 더 높이고 위하고 정성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정적인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심정의 세계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세계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심정의 세계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심정적 유대를 맺는 것이 영통보다 중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유혹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게 되면 어린아이들도 여러분들보다 낫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도 전부다 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린애를 통해서 뭔가 한 사람도 있잖아요? 그러므로 영계를 통하면 그것을 전부다 아는 데 그 아는 것이 전부다 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훌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계는 천태만상입니다. 그것보다 귀한 것은 자유의 본원지입니다. 즉, 심정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 심정의 기준에 연결시키지 못하면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냥 얼굴만 알고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의 집에 가면 자유스러워요? 자유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친구 사이 에도 반드시 서로의 심정적 유대가 있어서 내가 친구의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고, 또 친구가 내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어야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적으로 가까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인 문제는 전부다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심정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문제시한 것들은 문제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선생님이 있으니 이만하지 없으면 전부다 혼란이 벌어질 것 아니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는 지금부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떤 난문제를 중심삼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삼각지대에 들어가 고민하게 될 때,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게 되면 그 문제가 싹 풀려 마치 봄과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번에 알게 되는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마음이 맹맹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지 않거나 영계에서 가르쳐 주지 않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심정적인 인연을 통하여서 그 지향성이나 방향성이 하나님과 일치되는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좌우가 일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그렇게 위험스럽고 어려운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영적으로 굉장한 역사를 하던 박운내라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다'라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그 부인을 찾아가서 손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성들여 그 자리 까지 올라간 길 즉, 여자의 길과 남자의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고 거기에서 '내가 남자고 당신은 여자니 당신은 나에게 굴복하시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 어떻게 그 여자를 완전히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문제였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굴복시키려면 그 여자가 닦아온 길과 체휼한 것을 그 사람이 실지로 체휼한 것보다 더 심정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소개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자면 그 여자가 지금까지 역사를 가려 나오면서 체험한 것이 많았지만, 그것들은 전부가 산발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것들을 전부다 지나간 날의 한 영적 현상이라고 해서 다 흘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것이 어떤 체계적이요 계통적인 일면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이것은 전후 관계가 이렇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가지고 이러한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나왔다'고 그 종합적인 가치를 그 여자에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여자가 그런 입장에 나오기까지의 심정적인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즉, 마음의 친구, 심정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러이러하니 당신에게는 이런 사명이 있소' 하고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서 그때까지 그 사람을 통해 역사를 해주었던 관계로 그 노파는 선생님의 입장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요' 하면서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해야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방향이 달라지고 입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본래 남자와 여자는 입장이 다르고, 그 범위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관계 없는 것같이 느껴져 거기에서부터 부정하게 되니까 서로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는 하나 되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중심삼고는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여자는 내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에 그 여자가 알려고 해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체험한 것과 다르더라도 반발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순응하여 최고의 기준까지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에서는 어떻게 역사하느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발전적인 역사를 해주는 것입니다. 발전적인 역사를 하는 데는 지금까지처럼 토막토막 잘라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인정하게끔 해명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자기가 앞에 서고, 내가 자기를 따라 가면서 그런 가치의 내용을 보다 빛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기를 바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벌써 틀렸다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의 말을 다 들어주었고, 자기의 일을 도와주었으면, 그때부터는 내 말을 듣고 내 일을 도와주는 것이 인간 세계에서의 예법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입장에서 내 말을 듣고 내 심정의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면 내가 자기보다도 더 고생을 했고, 자기보다도 더 엄청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해도 숙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다 보니 자기의 입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싫다는 거예요. 거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여자가 지금까지 아무리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해도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 여자가 정성들인 것을 나에게로 다 옮겨 가지고 묶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에서의 빼앗기 싸움입니다.

은혜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떠한 도인을 대하더라도 절대 큰소리치지 않고 그들의 말을 전부다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지금 어느 정도의 기준까지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까지 해주시지 못한 한스러운 사연이 무엇인가를 알아 주고, 그가 자기의 사정을 터놓기 위해 찾아갔던 수많은 도인들 중의 어느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알아주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좋고 나쁜 것을 전부다 털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것들을 청산지어 주면 나를 따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분야에 합동공세를 펴 나가게 되는 날에는 보다 큰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생님을 통해서 보다 높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나왔던 것이 제일 좋고, 제일 가깝고, 제일 편안하다고 하면서 그곳으로 나를 끌고 가려고 한다면 나는 끌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어 나왔습니다. 엊그제도 그런 사람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도의 세계의 수많은 도인들을 심판하는 방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있다 할 때에 그 아들이 에서와 같은 아들이냐, 야곱과 같은 아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가서 양을 잡아 가지고 예물을 드리는 것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집안에 있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문제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도인들이 걸어 나온 과정을 통해서 상대적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그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하는데도 그들이 받지 않으니까 그것을 내가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걸어온 과정을 나에게 몽땅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십년 공부한 것이 나무 아미타불 되는 격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어떤 도인이 여러분들을 대해 사정을 얘기하면 그것을 전부다 들어주고 나서 '뭐가 어쩌고 어쩌니 당신은 이런 입장이 아니냐'고 하게 되면 그 심정 기준을 중심삼고 그 도인이 공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도인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더 높게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는 자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삼는 것은 효의 도리가 아니요, 충의 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절대시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틀어지게 되면 거기서부터 그는 정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시작했느냐 땅으로부터 시작했느냐, 즉 하나님 중심이냐 자기 중심이냐 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설명을 하더라도 자기를 중심삼고 설명을 한다면 끊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닦아나온 경험에 의해서 설명을 하는 것을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가 앞으로 가는 길이 자기를 중심삼은 길이냐 하나님의 천정을 중심삼은 길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길이라면 빼앗기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세계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선생님을 직접 찾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하늘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전부다 인정해 주고 그 사람들을 귀빈으로 대접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귀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 서야 되겠기에 그들을 마음을 다해서 대우를 해줬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그들은 이 문선생이 누구인지 알아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의 그릇만큼 찰 때까지는 선생님이 그들을 위해 주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선생님을 위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 위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 몽땅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벌여 놓았던 은혜를 선생님이 전부다 거두어 나오는 것입니다.

천륜과 인륜을 맬 수 있는 끈

선생님은 수많은 교파의 신령한 사람들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나 이용도 목사의 역사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시대의 어떤 사명자로 왔느냐 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사명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이것을 인계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계하는 데는 남자가 남자에게 인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를 통해서 인계해야 합니다. 또 여자도 여자에게 인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를 통해서 인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체되면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심정의 인연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자면 여자 혼자서 남자를 주관하고, 남자면 남자 혼자서 여자를 주관할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공통적으로 보다 심정적인 일치점을 찾아야 완전한 효자와 완전한 효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난번에 종교협의회 사람들에게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투쟁하면서 발전해 나온 골자를 말해 주었습니다. 천륜과 인륜이 있는데 이 천륜과 인륜이 무엇을 중심삼고 맺어질 것이냐? 천륜은 인륜을 찾아가고, 인륜은 천륜을 찾아가는데 이것을 서로 맺을 수 있는 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도 아니오, 어떠한 능력도 아닙니다. 이것을 묶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와 가지고 서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리요, 하나님이 사람을 아들딸이라 할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 대해 최고의 심정적인 핵인 천륜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횡적 기준으로서 신랑 신부를 말했고 그 다음에는 형제관계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서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에게 초대될 수 있는 것은 아들딸의 기준이요, 거기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삼대상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통일교회가 사위기대를 중심삼은 삼대상 사랑을 내세웠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요, 도의 세계에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은 기독교가 종말시대까지 남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남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끈이 무엇이냐? 다시 말해서 천륜과 인륜을 맬 수 있는 쇠고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이 인간을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을 가진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자리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정서적인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자리에 서게 될 때 행복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냐?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 제일 기쁘게 춤출 수 있고, 제일 기쁘게 노래할 수 있고, 제일 즐거워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돈이 많은 자리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자리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천년 만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자리, 사랑하는 부부가 원수로 인하여 만날 수 없었던 장벽을 격파해 버리고 서로 만날 수 있게 되는 자리, 가정이 원수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완전히 해방되어 만나게 되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기쁨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된 심정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 것이냐? 아들이 6천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 환호하는 그 세계, 아버지가 그 아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 이상 기쁜 세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인류의 이상적인 터전이 되고 누룩과 같은 기반이 되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자 하실 것이냐? 임금과 백성 사이와 같은 자리는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가까운 자리. 아버지와 아들딸의 자리에서 사랑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누가 천하를 준다고 하더라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말은 얼마든지 꾸며서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영감(靈感)이 있는 사람이라면 꾸며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삼각작전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자기가 생각하는 데로 자연히 반응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관상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관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아무리 설명이 훌륭하더라도 그의 심정적 기준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과 상대적 관계에 서 있느냐, 종적으로 어느 정도 일치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기준을 중심삼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개인복귀 완성, 그 다음에 부부 완성, 그리고 선의 자녀 번식을 통한 사위기대 완성을 목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아들로서의 하나님의 사랑, 딸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인연으로써 완전한 종적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요, 또 그것을 중심삼고 완전한 횡적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90도를 중심삼고 360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 관계를 중심삼은 상하관계, 전후관계, 좌우관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

따라서, 여러분들은 부부생활에서 상대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랑은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천년 만년 길이길이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으로 생각하여 자기 욕심을 충당하기 위한 요건으로 소화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인들은 어느 기준에만 이르게 되면 전부다 자기 자랑을 하면서 자기가 뭐든지 다할 줄 아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미쳐 무엇이든 다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랑의 길은 무슨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길은 최고로 궂은 일부터 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산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이제 때가 되었다 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기는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인을 찾겠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내가 만난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로서의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나를 만났다면서 자기가 누구보다도 정성들인 것을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알아주긴 뭘 알아주겠습니까? 알아주고 싶으면 알아주고 말고 싶으면 말고 그런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공갈협박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지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공포의 마음이 개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길에서는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사망의 사랑권을 격파하고 새로운 사랑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망의 피를 받고 태어난 타락한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랑의 충격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에 모인 지구장들은 자신이 이런 방향성을 갖추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기도생활을 통해서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적인 사람이냐, 의지적인 사람이냐, 혹은 정적인 사람이냐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가지 타입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적인 사람이라면 지적인 것을 주장하지 말고 정적인 사람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삼위기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삼위기대는 성격이 같은 사람끼리 묶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전부다 각자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 만들 수 있는 수련과정을 거쳐가기 위한 것이 삼위기대 조직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제부터는 가정생활을 위주로 하는 시대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원필이면 김원필 개인의 생활환경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시대는 지나가고 삼위기대의 생활환경을 개척하는 책임을 전개시켜 나가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협회장이 영계에 잘 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김영휘 협회장은 길자(史吉子) 가정이 불쌍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나라에 가서도 그 가정들이 하나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후손까지 삼대가 하나되지 않으면 저나라에 입적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삼대를 거쳐야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사위기대 원칙을 통해서 가는 곳이 이상세계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유효원 협회장의 아들딸을 자기의 아들딸과 분립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고 문제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고 다 폐하더라도 오직 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땅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은 다 흘러가 버리는 것이니 그것을 믿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심정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자기 민족을 바라볼 때, 민족이 불쌍해서 자기 자신의 이성을 망각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이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진리로써 어떻게 설득하여 내 사람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그 참사랑이 뭐고, 참부모가 뭐냐? 그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서 만민을 진실하게 하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 기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사는 세계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욕심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 됩니다. 도의 세계에서는 강한 사람보다 지극히 약해 보이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주위에서 깎아 내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저기압권내에 서야 합니다. 선생님도 공석에 서서 여러분들 대해 말할 때는 강력하게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입장에 섭니다. 아버지를 대해 어린애와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부모의 품을 그리는 심정을 갖고 하려고 합니다.

어른된 통일교회 문선생으로서 뭘 이렇게 이렇게 책임지고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불안하고 조심스럽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대신 책임지기 때문에 잘못하게 되면 대번에 사탄의 참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린아이와 같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류는 고기압권내에서 저기압권내로 흐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저기압권내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이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시켜야 되겠어요. 누구나 기도를 하면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지구장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 즉 심정적으로 제일 선두에 선 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지만 그가 심정적으로 일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언제나 도의 세계에서는 심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가 산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인연으로 세계가 사는 것이 아니라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가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 중에 그런 성가가 있지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심정의 인연으로 살아야 비로소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이라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본성의 인연이 맺어져서 영원히 주고받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영원히 주고받는 그 다음 가사가 뭐지요? 「우리의 본향」 우리의 본향이지요. 본성의 세계인 본향을 찾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뭔가요?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정을 모아 용진하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통일의 용사입니다. 그 가사가 어려운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전부 다 원리적인 내용입니다. 잘 생각하면서 불러 보라구요.

세계는 심정의 인연으로 사는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 없이 진리로만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적인 사람을 좋아해요, 정적인 사람을 좋아해요? 「정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지식은 분산시키는 작용을 하고 자기 자신을 망각시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정은 통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식은 보자기를 펼쳐 놓는 것과 같고, 정은 보자기로 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자기를 펼쳐 가지고는 한꺼번에 들 수 없지만 싸 가지고는 한꺼번에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펼치면 무수히 많지만 합하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로 된 거기에는 분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소크라테스의 제자도 아니고 누구의 제자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본성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굴곡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고립된 사람은 영계에서도 큰 문제라는 겁니다.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항상 삥삥 돌아다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적인 사람보다 정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정적인 사람, 상대방이 손을 척 잡으면 몸과 마음이 격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이런 하나님입니다.

신앙인은 물질에 초연해야

이제 1970년도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양력으로는 8월이고, 음력으로는 7월로 들어선 이 시점에서 우리들은 자체 반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뜻에 대한 의욕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에 벅차서 산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신념에 불타는 자신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체 반성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틀렸느냐, 아니면 선생님의 지도방법이 틀려서냐? 선생님 지도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무엇이냐? 내가 공적으로 살았느냐, 사적으로 살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중심삼고 자신을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 봐야 합니다.

공적인 것을 추구했던 자신이냐, 사적인 것을 추구했던 자신이냐, 공적인 것을 추구해 나가다가 사적으로 돌아간 내가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적으로 나가다가 사적으로 나가면 반드시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아무리 힘을 가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물질 문제를 다루게 되면 끝장이 나기 쉽습니다. 정신적인 분야를 다루던 사람이 물질적인 분야에 모든 관념을 투입시켜 가지고 바라보고 나가게 되면 대개 끝장이 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 중에서 보다 공적인 것은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있어서 총 판매 사업을 하는 것이 외적인 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내적인 면에는 큰 피해를 가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월급 지급하던 것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업대원들 사이에도 트러블이 있고 지구장들 사이에도 트러블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구장들은 앞으로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 지방을 아무리 발전시키려 해도 발전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있거든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요시해야지 돈을 중요시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 사업이 일시에 망하더라도 나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립니다. 내가 10년 동안 정성들여 가지고 해나온 사업이지만, 그것이 일시에 무너진다고 해서 눈물 한 방울 흘릴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업하는 것이 한꺼번에 불이 붙어서 없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이상의 경지까지 들어간다고 해도 나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지금 공장에 있는 기계 한 대에 5백만원 이상인 것도 있고 7백만원짜리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기계를 새로 구입해 들여 왔다고 해서 자랑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뭐냐? 그 기계들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야 할 본 코스가 아닙니다. 남한산성이라도 올라가려면 곧장 직선으로만 가지 못하고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것처럼 물질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판서하고서 설명하심)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물질은 나에게 플러스시켜 주는 거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것만 위하다 보면 그냥 내려와 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물질도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단에 놓아 둔 제물을 가지고 싸우는 교단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교회당을 지어 놓고 싸움을 하면 그 자리에는 벌써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거예요. 정신을 중심삼고 나오던 것을 물질을 중심삼고 나가려면 상당히 많은 것들을 극복해야 됩니다. 비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약을 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정신적으로 극복해 나갈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 굶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디 굶어 죽었어요 ?

하나님의 법도를 먼저 생각하라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교회를 더 위해야 합니다.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교회를 더 훌륭하게 짓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이 더 잘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보다 교회의 발판이 더 나아야 될 것 아니예요? 한 가지라도 더 귀한 것을 교회에 첨부시키기 위해서 나에게 돈이 필요하지, 내 살림살이에 보태서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도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부자의 관계로 인연맺어져 있고, 지금까지 선생님을 통해 가지고 돈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도와주는 것이 효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공적인 입장에 있는 선생님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도 공금을 썼다면 그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미 떠난 거예요. 물론 사정이야 다 있겠지만…….

살인강도라 해도 사정은 다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해산을 했는데 미역국도 못 먹어서 어쩔 수 없이 남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고 돈을 빼앗아 온 강도가 있다고 합시다. 그 강도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나쁘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공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죄를 범한 동기가 사적이냐 공적이냐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침범의 대소에 따라 죄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여러분들을 두고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은 선생님 앞에 체면이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울에서만도 10년 이상 이렇게 해 나왔지만 여러분들이 언제 선생님에게 집 한 채 사줘 봤어요? 선생님이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물건을 한 가지라도 사주고 나서 자기의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방을 얻더라도 하나님의 방을 먼저 얻어 놓고 그보다 작은 방을 얻어야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을 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축복가정들에게 집이라도 지어 주고, 교회도 지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생님이 할 일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 했다면 제단은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 했다면 교회는 다 세워져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를 짓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책임을 못하니까, 자식들이 불구자가 되었으니까 할수없이 부모가 손해를 보면서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좋은 입장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것을 한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서로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은 자기들이 헌금하는 것이 선생님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선생님이 쓰고 난 다음에 여러분을 통해 사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천법입니다. 하늘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안 쓰고 자식들에게 전부다 쓴다 해도 그것은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원칙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설적인 어떤 조건을 세워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언제나 그런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가려 가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구장 회의면 지구장 회의, 사업부장회의면 사업부장회의를 통해서, '우리가 이번 달에는 한푼이라도 마련해 가지고 선생님에게 선물을 마련해 드리자. 8개 지구면 8개 지구, 10개 지구면 10개 지구에서 수금운동이라도 해 가지고, 지금까지는 우리가 선생님께 무엇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무엇 하나라도 해드리자' 그런 생각 한번이라도 해봤어요? 그런 생각은 하나도 없이 자기가 편하려고 어떻게든 회사에서 한푼이라도 더 이익 배당을 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나는 공적이었는가 사적이었는가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안 됩니다. 서로서로가 정성을 모아 하나님 앞에 보답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받았으면 돌려드리는 것이 있어야지, 여러 분들은 두꺼비가 파리 잡아먹듯이 받아 먹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받았으면 돌려줘야 합니다.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를 합한 정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돌려주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모든 등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밤낮없이 매일 공장에 드나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몇 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공장에 드나들었습니다. 내가 그러고 다닌 것은 돈 몇 푼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잘살 수 있고, 이 민족에게 물질적 축복을 내리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제1차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도 선생님의 기도의 바람이 작용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운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법에 틀려졌기 때문에 고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처럼 이렇게 나가면 여러분의 아들딸 중에 병신이 많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소아마비에 걸리거나 반신불수 병신들이 많이 생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등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판해야 됩니다. 내가 공과 사를 중심삼고 보다 공적이었느냐 사적이었느냐를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그렇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천도(天道)를 가려 가는 방법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하고 원수라고 합시다. 그렇더라도 그를 대할 때 과거의 원수의 인연을 가지고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수라도 공적인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가 공헌하고자 하는 공적 기준과 내가 공헌하고자 하는 공적 기준 중 어느 쪽이 더 크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크다면 내가 그를 막아 돌려 잡더라도 법에 안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욕심을 중심삼고 '네가 과거에 나에게 이렇게 했으니까 오늘은 나에게 한번 당해 봐라' 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사리를 판단해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 경제가 부흥할 것입니다.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의 돈이 어디에 쓰여질 것이냐? 통일교회로 다 들어와서 선생님을 통해 쓰여질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모두 이야기한 대로 일본이 앞으로 발전해 가지고 틀림없이 우리 앞에 말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일본은 한국 사람의 피살을 빨아갔기 때문입니다.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랬기 때문에 그것을 4백년까지 연장시켜서 책임지울 수 있는 것입니다. 4백년까지는 안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권을 중심 삼고 40년은 우려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의 통일교인 수가 한국보다 많아질 것입니다. 인구 비례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구 수가 한국의 식구 수의 두 배만 되어도 한국 통일교회 식구들을 그냥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한국과 일본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일본의 통일교인 두 가정이 한국 통일교인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데도 한국과 일본이 원수 되겠어요? 과거에 원수졌던 그런 것은 자연히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시대권내로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에게 지금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말하기를 앞으로 일본 교회는 일본을 위주로 해서 경제적 자원을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국가적 상대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선생님에게 결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인사이동도 한 것입니다. 작년부터 경제적인 모든 보고도 내가 다 받고 인사권도 내가 쥐고 발령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을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다 아시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하는 것보다도 일본을 위하는 것보다도 아시아를 위해서 가는 것이 보다 공적이기 때문에 아시아를 위해서 경제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는 투자된 경제 조건으로 말미암아 말려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면 말려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언제나 공사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공적 기준은 발전했는가 후퇴했는가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60년대와 70년대, 즉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고 난 후를 비교할 때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입장에서 뜻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자식을 버렸습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아내를 버릴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가족들이 아무리 떨어져 살더라도 절대로 굶어 죽지 않습니다. 굶어 죽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붙들고 살아 보라는 거예요. 해결될 것도 점점 안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당신 마음 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 맡겨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공적인 것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들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중심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도 전도될 그 사람이 돈이 있나 없나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정의 사람을 찾아 나서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인연된 거지 같은 사람이 어느 부잣집의 맏아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좋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시시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공적기준과 여러분들이 바라보는 기준과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발전을 못 하면 결국은 고립되어 나중에는 자기 하나도 거동하지 못하고,그 누구도 동정해 주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지금까지 꽃다운 청춘시대를 버리고 나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공과 사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비판하고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60년대에 축복받기 전에 공적인 기준을 흠모했던 그 열의와 오늘날 축복을 받아서 가정을 가진 입장에서의 열의를 볼 때, 발전했느냐 아니면 후퇴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때요? 만일 후퇴했다면 공직에 있어서나 주위의 모든 환경에 있어서 침식작용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경제적인 조건을 바라보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집안은 결국 어디에도 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집안은 끝에 가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도의 세계에서는 물질을 버려야 된다고 말을 합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자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가정적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가정적으로도 그렇게 못 한다면 자기의 가정복귀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가정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면, 그 사람은 자기의 가정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경제적 이상의 세계를 향해 이끌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단체를 두고 볼 때에도 '우리 통일교회가 갖고 있는 돈은 나라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이 돈은 나라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고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것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통일교회로서의 경제적인 문제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천적인 기반을 못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닙니까?

또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도, 대한민국의 경제적인 기반이 세계에 절대 필요한 것이어서 대한민국에 대해 '대한민국의 모든 예산을 모두 세계를 위해 써라. 자선사업을 하라' 할 때에 '못하겠습니다' 하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위해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대한민국을 팔아서 세계를 사는 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통일사상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사상이 삼천만의 사상적인 뒷받침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 나라를 팔아 가지고 세계를 산 후에 다시 이 나라를 다시 사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를 한바퀴 돌아오는 날에는 이 나라의 천배 만 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장사도 고 이상의 장사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나는 처음에 이 길을 닦아 나오면서 새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부다 헌 옷을 사 입었습니다. 나 자신은 내 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호화찬란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자격자도 되고 또 멋도 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고통을 당하고, 밥도 못 먹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새옷을 입게 되면 미안해서 밖에도 못 나갔습니다. 천성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새옷을 입고 으시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서 저럴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속한 모든 물질 전체를 희사하여 단 하나의 공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주력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개체적으로는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 승리적 기반을 닦았지만 가정을 중심삼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자기 처를 중심삼고 경제문제를 초월한 입장에서 나라를 위하여 고생시킬 수 있느냐 할 때 '할 수 있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명령이 내릴 것입니다. 이때가 탕감의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어려울 때 탕감시키기 위해서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이 길을 출발할 때에 어떠한 작정을 하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성진이가 있지만 성진이 어머니가 스물 한 살인가 스물두 살때 일입니다. 일가 친척도 없고, 쌀은 다 떨어지고 돈도 한푼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새벽같이 배낭을 짊어지고 황해도 백천으로 쌀을 사러 가던 중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가정을 위한 길을 갈 것이냐, 공적인 하나님을 위한 길을 갈 것이냐? 거기에서 딱 잘라 '하늘을 위한 길을 가는 거다' 해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북으로 갔던 것인니다. 그런 고비가 있는 거예요. 이북에 가서도 집으로 편지 한 장 안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편지를 하면 좋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깨끗이 청산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통일교인들도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다 바치면서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은 언제든 고생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즈음 통일교회에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 재산을 전부다 팔아서 무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종교단체를 위해서 무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할 때에 '나는 돌아갈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정신세계 단체에 승리의 기반을 닦고 올라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것을 달갑게 보는 것입니다. 고생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나라를 찾기 위해 '나와라' 할 때는 나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이라면 모든 재산을 가지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아프리카면 아프리카, 세계면 세계를 위해서 자선사업을 하고, 벌거숭이 몸으로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며 만군의 왕이신 여호와의 뜻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에서를 찾아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쓸데없는 종들, 찌그렁이들 같은 재물을 바쳤다면 절대 에서의 마음이 안 돌아섰을 것입니다. 영적 세계가 안 돌아 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염려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경제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앞으로 1, 2년 안에 한국에서는 힘들겠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올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외국의 힘을 빌어 가지고 이 나라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전부다 하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 천국창건을 위해서는 선생님이 특명을 내려 각 나라의 물질세계까지 전부다 움직여다가 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국가적 시대의 물질 축복은 종족적 시대에 물질적 재물을 바친 사람이라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축복을 대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세계적 시대에 물질 축복이 올 때도 국가적 시대에 물질적으로 희생하지 않은 사람은 그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의 원칙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화하라

그런데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선생님이 집 산 것에 대해서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본부교회 2층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이들하고 더 있을 수 있다면 2층에 그냥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있을 데가 없으니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내가 편하기 위해 집을 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내 마음은 될 수 있으면 협회장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좋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그런 복을 받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이 시대에 과분한 복을 받은 것이니 거기에 배가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눈물과 더불어 감격의 심정으로 충성을 다짐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과거를 돌이켜 보며 더 효도할 것을 다짐해야 됩니다. 과거에 물질적인 고통을 받던 그 기준을 배가시켜서 뜻 앞에 더 정성들일 수 있는 자신의 여건으로 돌려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기회는 이때다' 해서 '우리는 텔레비젼도 없고 라디오도 없습니다. 남들은 커텐을 어떻게 했는데, 선생님, 우리집 커텐도 좋은 것으로 해 주시오'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탈입니다. 선생님이 도와주겠다고 하니 '조금만 더 주시오. 조금만 더 주시오' 한다면 세상과 다를 것이 뭐 있겠어요?

여러분들은 금년 1970년도를 맞으면서 새로이 대이동을 하고 6개월 동안 잘 협조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의 가정이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가정 생활이 비참하리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같이 살고 있던 부인들을 고향에다 보내 놓고 생활할 때, 여러 가지로 눈물 흘릴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달려갈 수 있지만 선생님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식과 헤어진 채 삼팔선 이북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나보다 더 낫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스승이 간 전통적인 그 길은 나라를 찾기 위한 길이었고 여러분들의 살길을 찾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딴 뜻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 어려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화시킬 때에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생애노정에서의 심정적인 내용이 여러분의 가정에 접근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행복의 터전이 하나님으로부터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그 좋은 기회를 상실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은 후를 놓고 볼 때. 달라진 것이 뭐냐? 뜻적인 면에서 마이너스 됐느냐, 플러스 됐느냐? 축복을 받은 후에 사적이 됐느냐, 아니면 더 공적이 됐느냐? 만일 여러분들이 더 사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교회 발전을 기대한다면 선생님이 바보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7년노정에 있어서 7년간 활동한 사람은 복받는 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기준을 이번에 다 청산지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 7백쌍 합동 결혼식을 한다고 말했기에 내가 말한 것을 이루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대신에 여러분은 그 가치를 배가시켜야 됩니다. 만일 배가시키지 못하면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가정을 소환해서 때려 모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나가지 않고 망해도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겨우 후손들을 뉘우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러이러 하다가 축복가정이 망했다 하는 것을 보여 주는 , 앞으로의 세대를 위한 공식적인 교재로 남아질 것입니다. 결혼식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인격자가 존경받는 사회

앞으로 미국은 미국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미국이 미국만을 위한다면 망하고 맙니다.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미국만을 위한 축복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축복입니다. 그러니 미국은 일년 국가 예산 중에서 삼분의 일을 다른 나라를 위해서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나라도 잃어버리고 주권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거의 명목상, 형식상으로만 갖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라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개인주의 사상이 극단에 와 있기 때문에 이젠 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돌아서 가지고 동양을 따라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개인이 아무리 혼자 한다 하여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즈음은 팀워크(teamwork)운동이 사회적인 운동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기에 장(長)을 세워 그 장의 부부를 자기의 부모 이상 존중하는 운동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복귀의 운세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돌아올 수 있는 제 3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이 퀴인(May queen)이라는 여왕 추대식도 다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미국 같은 나라는 앞으로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아무나 회사의 사장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을 투자한 사람하고 경영자하고 관리자가 서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경영은 인격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주가 경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관리하게 되면 폐단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안팎의 내용을 갖춘, 즉 사방성을 갖춘 인격자라야 전체 앞에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 형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그런 시대가 목전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진국일수록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인격자들을 추대해 나가는 방향을 취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존속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 막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있어서 내가 지금 청평에 땅을 사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한푼이라도 아껴 가지고 보다 공적인 것에 사용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앞으로 거기에다 국제수련소를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을 데려다가 수련을 시킬 것입니다.

지금 최봉춘(崔奉春)이나 김영운(金氷雲)이가 그들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내가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을 때까지, 미국이면 미국의 어느 도시의 절반 이상에 강사들을 배치하여 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가지고 내가 바라고 있는 기준과 일치될 때까지는 그들을 데려다가 내가 교육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강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회사문제만 아니면 영어뿐만 아니라 몇 개 국어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문제 때문에 공부가 늦어졌습니다. 선생님은 공부하는 것도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결혼 전보다 못하다면 반성해야

문제가 있다면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비판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결혼 전과 결혼 후를 비교해 볼 때, 여러분들이 뜻 앞에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할 수 있는 자리에 더 가까이 섰느냐, 아니면 더 멀리 섰느냐, 이것을 분석해 보자는 거예요. 어때요. 그 자리에 가까와졌나요, 멀어졌나요?

여러분들에게 가정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생님을 생각했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아들딸을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이라 하면 마음이 끌려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선생님의 가정과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과 달라졌다는 거예요. 심정적 차원이 보다 더 높아져야 할 텐테 한단계 떨어져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옛날의 심정을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가지게 되면 십자가가 더 무겁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해준 밥을 함부로 먹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늘이 무엇을 바라시고 어머니를 내게 보내셨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남자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 했느냐 이겁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가정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은 제2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갖는 다는 것은 또 하나의 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입니다.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믿었던 그 신뢰도를 어떻게 보다 고차원으로 끌어올려서 제2의 소망으로 자극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아내를 통해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나 하나의 정성이 둘로 갈라져 서로 반씩 가지더라도 둘이 합하면 자기 혼자 충성했던 것보다는 나은 충성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이 합해 가지고도 그 기준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백만큼 충성했다면 그것이 둘로 반분되더라도 본래보다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남편은 육십, 아내는 오십이 되더라도 둘이 합해지면 백십 정도의 기준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다 나을 수 있는 소망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같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가정을 어떻게 만드느냐? 자기 아내라고 해서 자기 마음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셔야 할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잘못하면 나를 치고,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력을 가지고 있는 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껴 보았어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축복받아 가지고 부인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마음이 감소되었느냐, 아니면 증가되었느냐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소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성들여 나가는 데 아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염려를 덜 끼쳐야지, 그렇지 않고 충성하는 마음이 감소한다면 절대 발전 못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두고 볼 때에,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나온 길 가운데 나 자신이 현재 침체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크나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가정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경제문제에 2중 3중으로 끌려들어 갔으니 하나님 뵙기에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버젓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버젓하지 못한 사람이 어디에 가서 주체적인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주체적 역할을 못한다는 겁니다.

주체는 반드시 수평상에 서야 합니다. 수평에서 주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여건이 정상적으로 되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찌그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사방의 수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기간이 자신을 비판하여 새로와지는 기간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경제 운용 계획

선생님은 이제 될 수 있으면 회사에 돈을 투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원필(元弼)이에게도 말을 했지만 앞으로는 나에게 돈 얘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은행에 예금되어 있더라도 선생님은 찾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있던 박종구(朴鐘九) 갔어요? 선생님이 그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박종구가 맡고 있는 성화학원이 상당히 긴박한 상태에 있는 것을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협조해 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후관계를 가려서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돈을 국가적이고, 세계적이고, 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써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청평에 땅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땅을 사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기 위해서 땅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시대를 지나 점진적인 세계시대 앞에 섰기 때문에 이 시대를 위한 국제적인 교육 기관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러니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아무리 돈을 써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를 위해서 돈을 써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현재 국가적으로도 위신을 세워야 할 때에 있습니다. 승공활동이라든가, 외적인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는 국가의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 앞에 두각을 나타내고 대한민국이 바라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내적인 입장에 있는 교회가 형편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체면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체면 세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우리가 체면을 못 세우게 되면 승공연합의 이사장은 높아지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낮아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내적인 교회의 체면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의 체면만 세워지면 선생님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어떠한 신흥종교도 따라올 수 없는 부흥을 이루어 놓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물질적인 것을 중심삼고 가정을 수습하고 내적으로 세계적인 가정을 수습하여 이것을 국가적인 경제 기준과 연결시키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회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공장을 대해서 정성들인 것이 무슨 수택리 공장 하나를 위해서 정성들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운명과 세계적 운세를 연결시켜서 기도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이 하나의 중요한 산업품목으로 등장하여 국가와 계약을 하여 생산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의 책임은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군사산업을 중심삼고 한국의 어떠한 산업기관보다도 중요한 산업기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바라나오는 소원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급진적으로 발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제일 빠른 길이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의별 소문을 다 들으면서도 그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뭐, 종교 단체에서 총을 만들어 파느니 어쩌니 하면서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까지 얼마나 말이 많고 말썽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나를 몰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교회도 선생님이 관리할 것입니다. 공장에서 돈을 빼다가 교회를 위해서 쓰려고 합니다. 지금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그러므로 원필이도 돈을 쓸 때에는 피눈물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푼이라도 쪼개서 써야 합니다. 선생님은 나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데는 깍쟁이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뭐 사주고 하는 데는 돈을 푹푹 쓰지만 나를 위해서는 껌 하나도 안 삽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후식하라고 무엇을 갖다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후식 같은 건 필요없습니다.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바지도 어머니가 해줘서 입은 것입니다. 여름이 다 된 6월까지 겨울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겨울 양복 입고 있다고 해서 누가 통일교회 문선생이 겨울 양복을 입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뜻을 완성시키기 위해 만난 부부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경제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오히려 여러분들이 하늘길 가는 것을 막게 된다면, 결국은 선생님이 여러분들이 하늘의 길을 가는 것을 막아 버리는 동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자아를 비판해 가지고 여러분의 가정문제가 뜻 앞에 플러스가 되느냐, 마이너스가 되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약 마이너스가 되는 동기가 되었다면 이것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말할 수 없는 화근인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도와주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금년 들어서면서부터는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생을 못 하겠으면 보따리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부장을 중심삼고 시시부지해 가지고 3개월만에 3백만원을 잘라 썼다고? 그래 가지고는 앞으로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혁명해야 됩니다. 부패상을 우리의 손으로 혁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가정이 부패하게 되면 결국은 전부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부패되지 않았느냐는 그런 말 듣고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구장이라 하면 몇 개의 군을 책임진 사람이 아니냐 이 말이예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정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제물적 입장에서 보다 차원 높은 출발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이런 차제에 있어서 여러 분이 옛날에 혼자 있을 때보다도 가정을 가진 지금 뜻 앞에 보탬이 되고 있느냐, 안 되고 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뜻이고 뭣이고 다 집어치우고 나만 사랑하면서 살아요' 한다면 그 입을 찢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아내는 원리적으로 엄격하게 교육시켜야 됩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이것을 하기 위해서 만났다고 하면서 원리적인 입장에서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지도록 아내를 교육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이 위신을 잃어버리고 끌려다니면서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아내를 교육시켜서 보다 나을 수 있는 입장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모색하기 위해서 이번에 가정적인 활동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다시 한 번 비판해 봐야 합니다. 공과 사를 중심삼고 결혼 전과 결혼 후에 있어서의 차이가 뜻적인 입장에서 전진할 수 있는 내용만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에는 틀림없이 후퇴할 수 있는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체와 내 가정이 보다 차원이 높은 공적인 기준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 낮은 사적인 기준에 끌려들어가는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빨리 혁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은 생이별을 해야 됩니다. 지구장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됩니다.

'김봉철! 결혼하고 나니까 어떻든가? 결혼하고 나서 뜻길을 가는 데 지장이 있었나?' 「지장이 없었습니다」 '지장이 없었어?' 「예」 '그럼 보탬이 되었나?' 「예」 '그래 결혼하기 전보다 나아? 부담은 안 느껴?' 「예」

부부가 한마음이 되면 번식이 벌어지게 됩니다. 뜻을 중심삼고 부부가 하나되면 반드시 번식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어디 순회를 할 때에 아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목욕재계하고 흰옷을 입고 기도하고 정성들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는 살풍이 불 수 없습니다. 그 가정은 항상 봄철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순회를 나갔는데 아내가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일어나서 입맛이나 쩍쩍 다시면서 쓸데없이 맛있는 것 없나 하고 방 바닥에 엎드려 공상이나 한다면, 그따위 여편네는 데리고 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편네는 재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여편네가 낳은 자식들이 뭘 하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뜻길을 갈 때 물질적 조건이 원수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적으로 뜻길을 가는 데도 물질적 조건이 원수로서 등장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의 아이들이 무엇을 사달라고 해도 잘 사주지 않습니다. 공적으로 떼어 놓은 돈인데 그것으로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잘 안 사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르지 않으면 그 아들딸이 좋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개 신령한 부흥사 가정의 아들딸들이 빨리 망나니가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사탄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사들이 자기 아들딸들을 위하는 입장에서 교인들을 대해 나가면 그 아들딸들의 끝이 빨리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늘 생각하고 절대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교회에 찾아올 때나 혹은 여러분들이 전도를 할 때에 '이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할 것이냐' 하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권력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났든 못났든 그 어머니가 낳고서 같은 미역국밥을 먹고, 같은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개인의 고귀한 생명체를 부모 앞에 맡겨서 자라 나온 것은 다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에는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고관들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거리의 행인과 거지들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빈민굴이 선생님의 활동의 첫무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눈물이 많습니다. 하지만 높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눈물이 적습니다. 빈민굴 사람들 중에는 선생님이 한마디만 해도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들은 열 마디 백 마디를 하여도 대성통곡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은 대성통곡을 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더 가까우냐 하면 빈민굴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가깝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에 전부다 빈민이지 않았어요? 이진태도 기다리기를 참 잘했지. 그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귀시대에 있어서 사탄 앞에 진 빚이 얼마나 되겠나를 생각해 봐요. 그까짓 돈 몇백만 원 빚진 것을 가지고 사탄이 조건을 걸고 하나님을 찾아 가는 길을 막아서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진 빚을 청산해야 할 그 길을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사탄 앞에 진 빚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면피와 같은 뻔뻔한 마음으로 손 씻으면 된다는 거예요. 내가 네 가슴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 하는 마음만 가지면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은 그렇게 해서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빚은 갚아 나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갚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도상을 책임지고 나오던 예수님은 얼마나 딱했겠어요? 민족이 진 빚을 대신 탕감해야 하고, 세계가 진 빚을 대신 탕감해야 할 예수님의 입장, 그 앞에 가야 할 길은 없고 십자가의 소용돌이에 휘몰려 들어가게 될 때에,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는 그런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던 그 심각한 심정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진태가 지금 그런 입장에 처해진 것이 진짜 심정세계에 가까이 갈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 안해 봤어요? 죽자니 청춘이요 교회가 있고, 살자니 큰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그런 기도에 감화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소서' 하면서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들고 체면과 위신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위해서 모든 것을 극복해 가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정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동기로 나쁜 것을 전부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 내가 내적인 면이나 외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모습이 된다면 몇백만 원의 빚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일대에 못 갚으면 삼대쯤 가서라도 갚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원리가 그렇지요? 아담 시대에 못 갚았으니, 예수님 시대에 와서 갚으려고 했고, 그때도 못 갚았으니, 그 다음 재림주님 시대에 와서 갚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안 갚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삼대쯤 가서 갚겠으니 좀 기다리시오'할 수 있는 그런 배짱을 가지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향한 심정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장사 중에 서도 이윤이 많은 장사예요.

축복을 약속하시고는 감옥으로 보내셨던 하나님

내 한 가지 이야기를 해주지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얼마나 많은 약속을 했겠습니까? 하늘의 총리대신 자리든 하늘의 전권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들을 때는 천하가 다 내 눈 아래서 콩알 만하게 느껴져 마음대로 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만으로는 그 길을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뒤넘이쳐서 한 바퀴 돌아와 가지고 본래 그 자리에 달라붙어야 상속받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가장 높이 올라간 그 자리에서 내려와 가지고 다시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을 해주신 후에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 감옥소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밑창에 처넣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 보라는 겁니다.

황금은 어디에 있어도 누런 빛을 발휘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형무소에 들어가서도 소장들까지 감동시켰어요. 나를 취조하는 형사들은 선생님을 미워했지만, 형무소에서는 소장까지도 감동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많은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이 동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안고 동정해 주시면 세상의 그 무엇도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는 마치 봄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의 꿈을 꾸고 일어나서는 퍼뜩 몇 호 감방의 아무개라고 나를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나에게 찾아와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하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형무관들도 찾아와서는 인사를 하고 더울 때면 아이스 케이크(ice cake)도 사다 주는 겁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느냐? 하늘이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아무도 점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고 출발하여야 했는데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의 시대에도 그랬는데 사실의 시대인 지금은 안 그러겠느냐 하면서 태연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언제 나가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10년을 살든, 아니면 거기에서 죽든 뜻을 위한 길이다고 생각하며 태연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를 닦았습니다. 무슨 도를 닦느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시정해 가지고 앞으로 보람있는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태산이 첩첩이 가로 막았으면 굴을 뚫고 고속도로를 내서라도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력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나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 기력이 다했는데도 뜻 앞에 내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협조하지 말라고 해도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자가 되지 말라

미국의 동부와 서부는 약 이천 팔백 마일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동부와 서부에서 수십년 동안 개척을 해서 동부 사람과 서부 사람들이 상봉한 그 순간은 미국 전체가 꽃피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미국 개척사에 있어서 둘도 없는 횃불을 들던 때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본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 수상이 보는 일본의 미래와 선생님이 보는 일본의 미래는 다릅니다. 앞으로 일본은 나에게 지배받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그렇다는 거예요. 박대통령이 선생님을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하늘이 증오할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는 두고 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박정권이 출발한 지 금년이 10년째이지요? 12년을 잘 넘겨야 됩니다.

그러니 1972년이 고비라는 것입니다. 이 정부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했지만 이제는 통일교회를 후원하는 입장에 서야 하고, 그 다음에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정부가 후원하여 하늘의 운세를 간접권내에서라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인연이 맺어져야 됩니다. 이것이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3년 기간에 국가 안팎의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공화당이 천년 만년 계속 정권을 잡고 있을 것 같아요? 안 됩니다. 내가 이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은 상식적으로 알아두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늘 나 자신을 반성합니다. 선생님도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나라고 피곤함이 없고 어려움이 없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중심삼고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이것을 어떻게 위로받고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극복의 재료를 무엇으로 삼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공적인 일을 함으로써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어저께 여러분들에게 보조비를 만 이천 원씩 줄 때에도 거기에다 한푼이라도 더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공적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지내고 있는 것이 전체 식구를 결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예산을 총무부장이 26만원을 계산한 것을 내가 35만원을 가져 가라고 했어요. 35만원 가져왔나? 「예」 거기다 또 내가 20만원을 더 가져왔어요. 예산 외의 돈을 가져왔다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바라는 최대의 것은 못 해주지만 최소의 것이라도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물건을 사다가 거기에 꽃까지 달아서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축복을 준다면 그 축복을 그냥 그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꽃을 달고 무늬를 놓아서, 병풍으로 말하자면 수를 놓은 병풍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이번 기간에 음력으로 7월 7일과 양력으로 8월 8일, 그리고 입추와 말복이 일치되는 날이 있는데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원리적으로 본다면 다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공사문제를 중심삼고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교회, 국가, 세계도 이 내용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그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경제문제가 언제든지 원수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금을 횡령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체제를 혁신시키고, 가정적인 출발을 도모해야 할 현시점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정을 중심삼고 옛날 개인보다도 더 나을 수 있는 공적 관념을 철저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제일 방해거리가 되는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경제문제를 잘못 다루 다가는 망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현재 여러분의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길어야 3년밖에 안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잘못하여 꼬리 잡힌 사람은 3년이 아니라 30년이 걸려도 보충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제 귀한 가정이라는 내용을 중심삼아 앞으로 나올 원리책에 쓰여질 것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있어서 공직을 중심삼고 책임해 나가야 할 사람들이 외적인 물질의 조건에 걸려서 공적인 책임을 못 했다면 그 책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씻을 것입니까?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는 선생님의 역사를 안 쓰지만 선생님이 죽은 다음에는 선생님의 역사를 쓸 게 아닙니까? 그러므로 원리에 공인될 수 없는 일을 했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살았느냐 하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원리적 내용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만약 그릇된다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몽땅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어렵다는 겁니다.

책임자는 아무리 피곤해도 먼저 눕는 게 아닙니다. 다 뉘어 놓고 누워야 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맨 나중까지 해야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못먹고, 못입고, 못살면서 정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 책임자의 입장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라고 해도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적인 사고방식은 생활터전에서부터 훈련받아야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우리 공장의 주주를 전부 36가정, 72가정, 124가정 여러분들을 세워서 증자해 나오는데 만약 그 후손들이 이것 때문에 싸울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산업은 망하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돈 때문에 부자끼리도 서로 싸우는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천륜이고 뭐고 다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돈이 아까와 가지고 여러분을 불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을 100퍼센트 믿어 주었는데, 여러분들의 아들딸 대에 가서 그 믿어준 대로 되지 않고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들은 영계에 가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체면이고 위신이고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부터 잘 처리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자를 할 때에 자기 아버지가 죽으면 재산을 전부 교회에 기부한다는 각서를 받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주식을 많이 갖고 싶다든가 하는 그런 생각은 안 합니다. 선생님이 주식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앞으로 외국에 왔다갔다하는 데 필요한 복수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회사의 대표이사나 회장의 자격이 되지 않고는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업가가 아니면 여권을 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정보부의 사람과 의논을 했더니, 명목상 회사라는 경제조직의 실업 요원으로서 국가가 보증할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만 복수여권을 가지고 마음대로 외국에 왔다갔다할 수 있다 하기에, 선생님이 지금 그런 원칙에 있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주식을 누구에게 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안 합니다. 거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선생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을 원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이 기분이 나쁠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내 이름으로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이 선생님 앞으로 해놓아야 안전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기야 다른 사람보다는 선생님의 이름을 붙여 놓아야 안심이 되겠지요.

선생님은 주(株)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나 대신에 선생님과 같은 사상을 가지고 공적인 재단을 만들어 가지고 언제나 공적인 일을 해 나가는 사업단체를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회사보다 대한민국을 돕고, 세계를 위해서 공적인 목적을 가지고 나가는 회사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통일산업의 김전무가 알아야 할 것은 앞으로는 우리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새롭게 무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장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한다는 관념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것을 위해 수련회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공장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은 공장이 절망적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거기에서 교회도 신앙도 다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공장에 왔던 사람 가운데 지금 남아진 사람이 있어요? 남아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절망한 사람은 공장으로라도 올 수 있지만 공장에서 절망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못 나오는 거예요. 대개가 그렇게 해서 도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을 하되 통일산업만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뜻을 위해서, 세계와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이런 신념과 자세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설령 공장이 무너지더라도 교회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으로 무한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사고방식을 생활 터전에서부터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나라에 필요하고 세계에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공적인 활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내들도 공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아들딸은 외할머니나 친할머니에게 맡기게 하고 아내들을 끌어내 활동시켜야겠으니 여기 모인 지구장들의 아내들을 끌어내더라도 선생님에게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불평 안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됐어요. 그럼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은 선생님보다 낫다는 겁니다. 성진이의 어머니는 뜻 앞에 역적이 되었는데 여러분의 아내들은 공적인 생활을 통하여 탕감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두 자기 환경을 버리게 하고 내보내야 되겠어요.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들의 부인들을 주시하고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축복가정 부인 동원 계획

지난 겨울과 이번, 그리고 내년 여름까지 세 차례 동원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순응했다는 조건을 세우게 되면, 그 다음에는 외국의 축복가정들에게도 한국에 와서 활동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와야지 별수 있어요. 부부끼리 한국에 와서 협조해라 하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게 싫다 한다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 일본 등 각 나라식구들을 축복해 준 후에 필요하면 한국에 불러들여 한국을 개척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돈은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져다 쓰면서 한국의 산골짜기 마을까지 개척해라 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 외국인 가정이 약 260가정 정도 되는데 이들은 우리가 월급을 주지 않아도 개척 활동을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면 부흥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렇게 축복가정들을 동원하여 이것을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의 전통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전통을 세계에 있는 모든 축복 가정들은 저렇게 살아야 된다는 기준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평면적으로 자리가 잡힐 때까지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기다렸다가 축복해 주려고 합니다. 한 7년 이상 걸릴 거라고 보고 있어요. 가정들을 내몰아야 겠어요.

다음부터는 여자들은 27세, 남자들은 33세 정도의 연령이 되어야 축복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7살 아래는 전부다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축복받던 18세 전후로 해서 7년권내에 들어가는 23, 4세까지는 축복을 받는게 아니예요. 지금까지는 해주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는 여자들도 나이가 많아야 축복해 줄 것입니다. 대학교 졸업하고 한 3, 4년 일을 시킨 다음에 시집 보내야겠어요. 고등학교 나오자마자 시집을 가 버리면 언제 일을 해서 뜻을 이루겠어요? 하지만 7년노정의 혜택을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700쌍을 중심삼고 축복해 주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은 가정의 영적 기준을 위하여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못 되면 그 가정은 망하게 됩니다. 이게 전체의 가정들이 제일 염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것을 언제든지 염려하라는 거예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그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정에서 내 아들딸을 대해 내 본의의 입장에 선 기준을 어떻게 취해 나가느냐 하는 것을 놓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잘하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지 않게 하시며 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돌보아 주지 않아도 그 가정은 스스로 자리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원을 만들자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그런 관념이 없었지요? 이것을 확실히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니 가정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완전히 포기하고 나서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무의 자리에 들어가서 절대적인 정신 기준만으로 100퍼센트의 한계 선까지 채워 놓고 새로운 경지를 향해 하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여러분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원을 만들어 가지고 여러분들의 가정이 물질을 완전히 넘어서서 경제문제를 극복했다는 기준을 향하여 천정을 중심삼고 새로이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경제복귀는 자동적으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들은 이번 모임을 통해서 새로운 기원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공사 문제를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공금은 사탄이 풀어 놓은 독약입니다. 그런 공금을 잘못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 공금으로 인해서 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간신도 거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나라를 팔아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삼위기대

선생님은 새로운 기원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집단체제를 갖춘 전도 기간을 수립하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이것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기간을 통하여 개인이 활동하는 것보다도 단체가 활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새로이 인식시켜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도 단체적으로 활동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 새로운 활동체제를 중심삼고 공인하게끔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만큼 정성을 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기대가 완전히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삼위기대가 경제문제를 놓고 서로서로 도와야 합니다. 자기 개인과 가정 문제만을 염려하지 말고 그것을 극복하여 삼위기대 가정 가정이 서로 같은 입장에서 돕고 위로하면서 하나되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위기대 가정들이 경제문제를 초월하여 정신적으로 하나로 결합하여 같이 먹고 같이 살수 있는 기준이 됐다 할진대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수가 그들을 침범하려 하더라도 세 가정이 완전히 하나로 단결되어 투쟁하게 되면 격퇴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기대를 중심삼은 체제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으로서의 기준을 세우고 이 시대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삼위기대 가정들은 12기대, 즉 12가정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12가정이 하나님 앞에 공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공을 세우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삼위기대 가정들이 중심이 되어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 그리고 일년 사시절과 12삭(朔)을 대표한 절대적이고 공식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까지 내가 동기가 되어 어떻게 끌어올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세 가정이 서로 동기가 되어 끌어올리게 되면 이 세 가정을 중심삼고 36가정까지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발전 원리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중심삼고 이런 체제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단체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주체와 대상의 관념이 투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언제든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의 입장이냐, 주체의 입장이냐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상은 대상으로서 절대적인 대상이 되고, 주체는 주체로서 절대적인 주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성립되지 않으면 모든 단체 운동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누가 주체이고 누가 대상인가

김영휘 협회장을 중심삼고 볼 때, 그는 주체고 여러분들은 대상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여러분이 대상이면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에서 주체를 보강시켜 주어야 합니다. 주체에게 어떤 결함이 있으면 대상은 그것을 보강시켜서 절대적인 대상인 자기와 자연적으로 일체될 수 있도록 주체를 다시 창조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한 대상 앞에는 그 주체가 불완전하더라도 반드시 완전한 주체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체가 절대적일 때에는 주체가 그 절대적인 자리만 지켜 나가면 대상도 절대적인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관입니다. 교회와 대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공사문제를 늘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 자체내에서는 언제든지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2가정에 있어서도 반드시 종횡의 삼위기대가 있지요? 거기에서도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세 가정이 삼위기대가 되었으면 거기에서 한 가정은 반드시 주체의 입장에 서고, 다른 가정은 대상의 입장에 서서 주체의 입장에 선 가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 하늘 가정을 규합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맺어지면 수수작용이 벌어져야 합니다. 수수작용이 백 퍼센트 벌어져야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하시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주체와 대상의 입장에서 수수작용이 잘 되고 있어요, 잘 안 되고 있어요? 잘 안 되고 있다면 창조과정에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면 주체, 대상이면 대상, 어느 한 쪽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원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서로 하나되었느냐? 하나되었다면 어느 정도 하나되었느냐? 하나되는 데 있어서 금전적인 조건이 문제되느냐, 가정에서의 아내와 자식이 문제되느냐, 아니면 어떤 특정한 권위가 문제되느냐, 세계에 어떤 상대적인 조건이 문제되느냐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하나됐느냐? 그 하나된 기준이 세계적이라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이 선생님과 하나되고, 또 그런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이 선생님의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체내에서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종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공사의 관계는 횡적인 관계입니다.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 다시 말하면 가인과 아벨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체가 되느냐? 심정적으로 뜨거운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삼위기대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죽을 지경에 처했을 때, 제일 어려울 때 그를 심정적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사람보다 정적인 사람, 이론적인 사람보다 영적으로 신령한 사람이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주체를 정할 때 삼위기대 가운데서 뜻을 위해 보다 더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많이 노력했고, 눈물을 많이 흘렸고, 피땀을 많이 흘렸느냐 하는 것에 따라 주체를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투표해 가지고 똑똑하고, 지식이 많고, 수단이 좋은 사람을 택하지만 하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심정적으로 그 폭이 넓고 양이 많고 뜨거운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공과 사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개입시키느냐, 사탄을 개입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들은 재차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가정의 목표는 사위기대 완성

여러분은 가정을 가졌을 때와 가정을 안 가졌을 때의 차이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정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내를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식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하는 것이 세 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가정에 이런 복을 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유광렬(柳光烈) 어디 있어 ? 옛날에 혼자 있을 때 독살스럽던 눈빛이 결혼한 후에는 없어졌다는 겁니다. 옛날에 혼자 살 때에는 누가 뭐라고 하면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협회장이든 누구에게든 덤벼들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웃음)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렇긴 그렇지만 조금 나아졌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옛날에 혼자 있었을 때와 가정을 가지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커졌느냐, 심정적인 소화량이 얼마만큼 많아졌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쳐 가지고 '뜻이고 뭣이고 사는 게 뭔지…' 하고 생각될 때에는 결혼하기 전 단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재차 아내를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당신을 대한 나의 사랑은 가짜 사랑이었으니 나는 가짜 남편이오. 죽을 죄를 용서해 주시오'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는 마음 자세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찾아 묶어 주신 본의의 아내를 맞이한 데 대해 감사의 심정을 갖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자식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를 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아들딸은 하나님께서 수천년의 역사를 소모시키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희생 시켜 가지고 찾아진 하나의 가정을 통하여 소원의 등불과 같이 태어나게한 귀한 아들딸인 것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이라는 거룩한 목표의 귀일점을 각 가정의 아들딸이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아들딸에 대해서도 날이 가면 갈수록 진정으로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아들딸들은 절대 굶어 죽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라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전도 나가 있는 여러분들보다 잘먹어서는 안되는 거예요. 만일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보다 잘먹으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해서라도 여러분을 후원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반대하고 형님 누나가 반대하더라도 어머니는 여러분을 위해서 몰래 떡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밤잠을 못 이루고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 길을 개척해 나올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선생님의 어머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의 배후에서 외적으로, 심정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정성들여 주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참 돈을 많이 써야 할 때, 즉 1960년대에 사건이 나서 돈을 써야 하는 데 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돈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안 했습니다. 헌금하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정성을 들였습니다. 민족에게 한이 맺힐 것을 염려하여 '아버지, 이 민족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앞으로 당해야 할 시련과 고통은 이보다 몇십 배가 더 남아 있을 것이지만 내가 당하는 그 시련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이 민족이 이런 경제 문제 때문에 세계에 손을 벌리고 동냥하는 거지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될 게 아닙니까? ' 하면서 나를 동정하기에 앞서 민족을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민족 가운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그들에게 직접 특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시집올 때 받은 패물 단지라든가 어디에 넣어 둔 금,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지적하며 그것을 어디에 있는 누구한테 언제 가서 팔면 몇십만 원을 받을 것이라며 팔아야 할 상점과 살 사람까지 전부다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후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선생님을 후원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돈 한푼 없어도 일합니다. 내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입니다. 빚을 몇백 만 원, 몇천 만 원, 몇억 원을 지더라도 한다는 거예요. 몇십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자신만 있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빚을 안 갚는 것이 아니라 갚는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돈이 없어도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을 하려고 하면 누구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명이 내렸는데 남편이나 부인이 문제되겠어요?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렇게 해서 일해 나왔습니다. 그런 돈이기에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개인 살림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이 아니면 안 쓰려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하나님께 돈을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돈은 내가 벌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내 있는 힘을 다하고 부인들을 동원해서라도 벌면 될 게 아니예요?

공장장도 생산부장도 선생님 마음 같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여덟 시간만 일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자다가도 열두 시든 세 시든 나가서 일을 합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은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시간의 한계권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판단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새벽 두 시도 좋고, 세 시도 좋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전부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나가는 것은 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민족과 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은 남아질 것입니다.

공장에서 불평이 많은 사람은 공장장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내보낼 겁니다. 정 못 하겠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면박을 해도 좋습니다. 나를 세상의 어떠한 선배나 형님과 같은 그런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난 그런 사람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내가 원칙에 의해서 일을 시켰는 데 거기에서 전체에 본이 못 될 때는 잘라버린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일시에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요? 한번 한다고 하면 빚이 천만 원이 되든 이천만 원이 되든 한다는 겁니다. 그까짓 것엔 눈도 한번 깜박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사 문제라든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라든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공적인 사람은 전체를 위하는 사람

가정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남편을 중심삼은 아내라든가, 아내를 중심삼은 남편이라든가, 또는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라든가 하는 것이 전부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공사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생활 가운데에서 공적인 생활을 했느냐 사적인 생활을 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사적인 생활은 전부다 제재해야 하고 공적인 생활을 할 때에는 시간을 초월해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점심 때가 되었다고 점심이나 먹자고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공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악에 가까운 것입니다. 악이 선을 쳐서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공사 문제에 있어서 생활 법도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지금 성진이가 원필이의 집에 살고 있어도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어요. 공장에 가는 시간의 몇 분의 일만 할애를 해도 갈 수 있지만 안 찾아갔습니다. 협회장이나 총무부장의 집에도 안 찾아갑니다. 그러면 왜 안 찾아가느냐?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유협회장이나 옛날 총무부장 김영휘네 집에도 찾아가서 그 아이들의 손목이라도 한번 잡아 주고 그래야 되지만 안 가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아이들을 만나면 안아 주기도 하고 그러지만, 이들에게는 이들이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진이에게도 그가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진이가 최선생의 집에 가 있을 때, 최선생이 아무리 와 주기를 바라도 가지 않았습니다. 성진이가 그 집에 가 있는 일년 반 동안 선생님을 초대해 놓고 기다려도 한번도 안 갔습니다.

선생님이 자기네 집에 들른다고 해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큰일을 하겠어요? 큰일을 하는데 처자를 데리고 다니며 할 수 있어요? 공적인 길을 가는 사람은 보다 전체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처자는 뜻을 다 이루고 돌아오는 길에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적으로 사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겁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분깃이 없었습니다. 그런 게 있었어요? 제사장들에게는 분깃이 있었어오? 땅을 믿고 살라고 그랬습니까? 유대 나라의 땅이 반 사막지대인데 분깃까지 없으니 얼마나 처량했겠어요. 그 나라의 민요를 들어 보면 전부가 그저 몸부림치다가 할수없으니 하나님을 부르는 내용입니다. 비탄에 잠겨 빛을 잃은 음조로 되어 있어요. 제대로 된 땅이라도 있으면 소망을 갖겠는데 땅이라고는 전부가 반 사막지대여서 양 한 다리도 키우지 못하는 황무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 분깃도 없이 살자니 얼마나 처량했겠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지금 지구장들이 달랑달랑하게 살아가는 것이나 선생님이 달랑달랑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낙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흘리는 눈물은 민족의 눈물을 대신한 것이요. 나의 외로움은 민족의 외로움을 대신한 것입니다. 내가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여, 내 대신 이 민족을 용서하여 주시 옵소서'라고 민족을 대신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책임입니다. 내가 그런 자리에 있다 할 때는 그 백성의 미래에 있을 비운을 느껴서 그것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민족을 위해 속죄의 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비운의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족을 대표해서 그런 자리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게 '아빠, 우리 벤츠차 사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벤츠 못 사겠다고 합니다. '벤츠 한 대 살 돈 가지면 크라운이나 코로나 같은 차를 열두 대, 열세 대는 살 텐데 어떻게 그걸 사겠느냐? 나는 죽어도 그렇게 못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렇게 선생님은 생활의 전부를 비교 비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다 못 누리고 가면 저나라에 가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겁니다. 그 후손의 천대 만대까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가 받아야 할 복이 백만큼인데 하나도 못 받고 갔으면 그 백만큼의 복은 자기 후손들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땅 위에 사는 동안에 공적인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일 무섭고, 제일 크고, 제일 강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사(公私)의 관계를 분명히 하라

통일교회 문선생을 가만히 보면 어떤 때는 어수룩하고 아무것도 안 가진 사람 같지만, 무서운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 누가 점령할 수 없는 강한 사람입니다. 또 나 이상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법을 전부다 요용(要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법에 안 걸리고 결국 나라의 운세를 밟고 넘어가서 천운에까지 연결사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주체와 대상 관계와 공사 문제를 뚜렷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특별히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알겠어요? 「예」 다 그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공사 관계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뭘 사주더라도 그 자식을 자기의 아들로서만 사랑하며 사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자식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귀하게 쓸 수 있는 아들딸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같은 값이면 더 귀한 것을 사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통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멋져요?

선생님은 효진이를 비롯한 우리 아이들을 전부 그렇게 생각합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며 찾아 나오신 소망의 아들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사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아들딸들에게만 좋은 것을 사준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자식들에게 물건을 사줄 때 그런 사적인 생각은 절대 안 합니다. 하늘을 대신한 자리에서, 많은 부모가 해주지 못한 것을 대신 해줌으로써 탕감하여 해원성사의 조건을 세워 준다는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또 그래야 편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 생리로 볼 때 맞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가정을 이루었으면 자기와 아내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뚜렷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이너스되는 요소가 있을 때에는 절제하고 거기에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여 브레이크를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사 문제에 있어서는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야지 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적인 기준으로 나가는 것은 마치 끊을 수 없는 줄에 자기의 목이 걸려 있는 데도 모르고 좋다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원수가 따라온다면 대번에 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것은 망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 실감을 스스로 느껴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만 위해서 살지 말고, 일본 사람은 일본만 위해서 살지 말라는 말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기준을 갖추어 이제부터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풍조를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이 1970년대를 맞아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활동해야 할 현시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두고 여러분이 새로와 질 수 있는 기원으로 삼아 지금까지의 신앙을 중심삼고 새로운 방향에서 적응해 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했는데도 발전하지 않는다면 내 말이 거짓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원칙을 세워 가지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모든 문제가 해결 안 된다면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지 안 그런지 두고 보라는 거예요. 사람에 따라 탕감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는 기간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을망정 이 원칙에 의한 것은 반드시 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심중에 명심해 주길 바래요. 이것은 여러분의 가정 문제와 여러분의 자세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입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는 지금 민족복귀와 세계복귀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만일에 선생님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선생님의 나이가 지금 50인데 세상에 있어야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10년 있으면 60이고, 20년 잡아야 70이고, 30년 잡아 봐야 80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살아 있는 동안에 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되겠느냐

우선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초민족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끼리라도 세상에 있는 자기 형제, 자기 부모, 자기 처자를 중심삼은 식구의 관념 이상의 관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중심을 결정지어 가지고 이러한 관념을 전체화시킬 수 있는 그때를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내에 완결지을 것이냐 하는 것이 섭리를 이루어 드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빠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빠하시는 것은 왜 그러냐? 인간이 이 땅위에 머물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제까지나 이 땅에 머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연령을 보게 되면 40대에 있는 사람도 있고 혹은 불원한 장래에 30대 권내를 넘어서서 40대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거의가 서른 다섯을 넘어섰지요? 어디, 서른 다섯 살 이하인 사람 손들어 보세요. 서른 다섯 살 이상인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볼 때, 활동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때가 언제냐? 20대에서 40대, 혹은 50대까지입니다. 이 2, 30년 기간이 전성기 입니다. 그러나 40살이 넘게 되면 그 기준에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40살이 넘은 사람은 자기 육신을 중심삼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광렬이 지금이 마흔 셋인가? 「예」 옛날보다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피곤합니다」 피곤하지 ?

옛날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몇 시간만 자고 나면 풀렸는데 나이가 많아 짐에 따라 피곤에서 풀려 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옛날에 열 시간씩 일했던 사람도 해가 지남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 단축되는 것입니다. 한 3년 단위로 한 시간씩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한 30년 후에는 일하는 시간이 열 시간 단축되는 것입니다. 3년에 한 시간씩 짧아진다면 10년이면 약세 시간, 30년이면 약열 시간이 짧아집니다. 그러므로 젊어서 만약 열 시간씩 일했던 사람이라면 20년만 지나면 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거의 70살이 되면 그때에는 더이상 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나이에 일한다는 것은 그저 관리나 할 수 있지, 개척이라든가 새로운 건설적인 일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이 뜻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무한히 슬픈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그 가정의 주인을 떠나 뜻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길을 걸어 나오는 데에 있어 핍박만 받아 왔습니다. 생각하면 원통하고 비통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으로부터 극대한 핍박을 받았고, 친척으로부터 박대와 핍박을 받았고, 동료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교계로부터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핍박을 당하고 반목 질시를 당해도 우리는 '어느 한때가 올 것이다' 하면서 이를 악물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한 시절을 보내며 지금까지 수십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그 어느 한때는 언제이겠습니까? 그 한때를 맞도록 하는 사명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30억 인류와 소수의 우리를 저울로 단다고 해봅시다. 물건의 무게를 달 때, 물건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저울의 추를 멀리 놓아야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울추를 멀리 놓아 가지고 평형이 되었다는 것은 저울에 실린 짐이 많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국가라든가 세계와 평형을 이룰 수 있는 우리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울의 추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어떠한 무게를 달더라도 여러분 자체가 그것과 평형을 이룰 수 있는 저울의 추의 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게가 무거우니까 저울의 추를 좀 더 멀리 조정하고 가벼우니까 저울의 추를 좀더 가깝게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우리 자체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자신들은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대략 35세라 한다면 15년만 지나면 50세가 됩니다. 15년이란 기간도 잠깐입니다. 잠깐이라는 거예요. 그 50세에다 또 15년을 더하면 65세가 됩니다. 70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70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삼자가 알아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벌써 그 사람은 서산을 향해 기울어지는 해와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아무리 힘찬 빛을 발하고 뜨거운 열을 발한다 하더라도 기울어진 석양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관심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에는 관심이 많지만 저물어가는 석양빛에는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예부대와 같이 제일진에 서서 전통을 세워 나오는 우리 앞에 그런 석양의 때가 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때가 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때가 오기 전의 과정에서 나라면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 이것이 크나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총칼을 들고 무슨 일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나 씨를 뿌리는 일을 해야 됩니다. 거두기는 남이 거두더라도 언제든지 씨를 뿌리기를 더디 해서는 안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 여러분은 진짜 몇 해 동안 일할 것이냐? 앞으로는 일을 압축시켜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압축시켜 가지고 일하는 데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핍박시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완충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완충시대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 완충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지난 다음에는 환영시대가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중심삼고 그 완충시대를 넘어야 하느냐? 선생님이 바라건대 국가를 넘어서 빨리 세계로 나아가야 됩니다. 국가를 대해 넘어가는 완충기간이 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동일민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완충기간이 길면 그것은 후퇴하는 것입니다. 한 민족을 중심삼은 완충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단체는 후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충기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핍박을 받든가, 그러지 않으면 싸움을 제시하든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상대방에서 먼저 공세를 취하면 반드시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해야지 그러지 않고 그냥 있으면 지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점령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비하는 데 있어서 공격하는 상대방 이상으로 방위할 수 있는 내용을 안팎으로 갖추면 상대의 운까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가 된다면 그 국가는 적성 국가의 모든 운까지도 인계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방위할 수 있는 자체력을 상실한 단체나 국가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자체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공세를 취할 때에 전면적인 공세는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공세에 있어서는 반드시 우세해야 됩니다. 그 우세한 개개인을 규합하여 전체가 하나로 합해지게 되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핵심 요원을 어떻게 설정하고, 설정된 각자 각자가 그가 처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 자극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복귀섭리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작전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작전이라는 것은 전체작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개인작전을 터전으로 해서 전체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자극시키는 점(點)작전을 해서 선(線)작전까지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작전에서부터 선작전까지의 과정에는 반드시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지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점작전에서 기반을 닦는 일은 단시일내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일생 동안을 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몇 대를 거쳐서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몇 대까지 걸려 가지고 마련된 그 점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을 택해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점작전을 해 가지고 선작전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특정한 민족을 택해 점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강력하고 신령한 영적 힘을 주입시켜 가지고 인간에게 새로운 분야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제시하는 것은 어떠한 단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여 주는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전체를 위한다고 하고 또 그것을 보여 준다고 해보았지만 이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의 세계와는 모두 상반 되기 때문에 전체를 위해서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사탄세계를 위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보게 되면 그들이 하는 일은 절대로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전체라는 명사를 내걸고 개인을 중심삼은 목적을 이루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에 상반되는 입장에 선 사람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핍박, 단체적인 핍박, 국가적인 핍박을 받아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었던 어떤 일반 단체보다도 종교 단체의 운명이 비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겐 동조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방관하면서 자기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로마시대를 살펴봅시다. 로마근교에는 카타콤이라는 길이가 20킬로미터나 되는 지하묘지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70문도나 12사도가 그 곳을 이용하여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은 그 시대에 로마가 문화의 본거지였고, 법을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허술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진취적인 사상을 가지고 외래의 희랍문명을 중심삼은 인본주의 사상이라든가, 자유주의의 경향으로 나가려 하는 교차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파로 갈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교회를 중심삼고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초대교회 신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방으로 발붙일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환경에서도 그 국가 전체가 핍박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 굴을 뚫고 거기 들어가 피신했던 것입니다.

만약 로마가 지금의 공산국가와 같았더라면 그들은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굴의 뒷문을 막고 앞문에다가 불을 때거나 호스를 들이대서 물을 뿜으면 다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잡히지 않고 생활한 것을 보면 그 시대에 로마의 400년 학정이 아무리 심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배후에는 기독교를 옹호하고 연구하는 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굴 안이 전부다 공동묘지입니다. 굴이 전부 묘지로 되어 있습니다. 굴 안을 보게 되면 전부 얽어매서 선반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선반 위에다 시체를 감싸 가지고 그냥 놔 두는 것입니다. 죽었다고 해서 매장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는 가운데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그들을 외부사람들은 절대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은 자기 동료들끼리 동정해 주고 강하게 결합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문제, 즉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혹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며 체험하였던 일을 반성할 때 그들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런 비참한 환경에 놓여지게 되었던 것은 단지 하나의 목표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하나의 목포는 사람은 영생해야 된다는 것, 즉 영원한 세계를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바라보며 이 파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으며 지하에서 산 것입니다. 그 지하에서 사는 것은 그야말로 비참한 일입니다.

이러한 기반으로 출발한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를 움직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이 특정한 종족이나 특정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강력한 역사를 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점조직을 전체의 선조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특정한 자리에서부터 특정한 선민권을 만들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끼리끼리는 세상 사람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인연을 중심삼았고, 생사가 결정되는 자리에서도 서로서로가 위할 수 있는 단결된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강력한 로마의 힘으로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칼의 힘. 권세의 힘을 가지고도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끊어 놓으면 다시 합해지는 것입니다. 몇백 년 동안 끊으려고 애썼지만 언제나 다시 합해졌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그런 여력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초대 기독교회 시대에 로마 박해의 기간이 아무리 길었어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백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아 왔고 핍박을 받아 왔지만 그 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서로가 뭉쳐 결의를 하며 그 시련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만약 핍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결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 흩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

만일 오늘날 우리에게 핍박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사탄을 대해 일대일로 공세를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인 우리가 점조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점조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점조직을 하시면서 무한한 수고를 하신 것처럼 나 자신이 점조직을 할 수 있는 요원이 되어야 하며, 점조직을 추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 대신 무한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시대가 가까와지고 때가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점조직으로 되어 있는 우리는 스스로를 선조직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현재 우리가 그러한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점으로 되어 있는 것을 선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가중된 정성과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1960년대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핵심요원을 키운 것입니다. 리(里)에 세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많아도 필요없습니다. 핵심요원으로 세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세 사람의 핵심요원 중에서 한 사람은 교육적인 분야, 한 사람은 교육적인 분야, 한 사람은 경제적인 분야를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분야를 세 사람이 하나씩 책임져 뜻과 더불어 죽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전국을 움직일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리를 중심삼고 한 7천 명을 예상하는데, 남한에 리가 몇개나 됩니까? 「2만 4천 개입니다」 리는 세 명씩 예상하면 7만명이니 너무 많고, 면이 약 2천 4백 개 가량되므로 한면에 세 명씩 잡으면 약7천 명이 될 것입니다. 고등학교 출신 이상의 사람을 그 면의 요원으로 세울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이 하나되게 되면 그 면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연세대학교 학생과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을 상대로 원리강의를 했던 이유가 바로 핵심요원을 빼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부터 점조직을 확대하여 지금까지 활동해 나왔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선조직으로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침해받지 않는, 영원을 중심삼고 변하지 않는 점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칼을 들이대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분해할 수 없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부터 선작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점에서 선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부대조건이 달라져야 됩니다. 처음에는 인간관계로 연결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조직관계로 연결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가 반드시 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점조직에서는 일대일로 하기 때문에 사상적 주입이 가능하지만, 즉 정신 위주의 작전을 할 수 있지만 선조직에 들어가려면 그것으로만은 힘들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에서 선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조직력과 경제력을 두루 투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온다는 것을 선생님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선조직을 연결시켜 전면적인 전선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고 총진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지구(地區)면 지구에서 여러분이 속한 도(道)나 몇 개의 군(郡)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곳에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되어야 합니다. 거점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선조직을 어떻게 연결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전면적인 민족복귀라는 거대한 사업의 성과를 단축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우리가 그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거국적인 활동을 제시하여 가지고 민족 전체에 영향을 미쳐 가지고 복귀의 기반을 닦아야 된다는 엄숙한 목적을 중심삼고 이제까지 나왔습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끈기 있게 참으며 나온 신념이 있습니다. 그런 자신들이기에 이제부터는 칼을 빼고 나가야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국적인 선조직을 해야 됩니다. 공격을 해야 하는 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승공연합 활동의 중요성

선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점작전을 하는 때와는 다릅니다. 선작전에 서는 사방으로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국제승공연합의 승공활동이라든가, 혹은 대학가를 중심삼은 원리연구회운동 등은 사방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리친 것이 메아리가 될 수 있고 산울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인연까지 맺어 나가야 됩니다.

반공연맹을 예를 들어 보면, 반공연맹은 대한민국의 한 부처와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승공연합이 반공활동을 시작한 것이 1965년 11월부터이니까 이제 만 5년이 되어 갑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반공연맹은 대한민국의 한 부처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행정부처와 같은 곳이 몽땅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자타가 공인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변명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반공연맹은 석양이 되어 기울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만히 있더라도 국가가 우리를 중심삼게 되고 우리는 국가의 공익에 기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승공연합은 정보부를 중심삼고 시경의 소장이라든가 실무책임자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정보부가 청와대에 승인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소장 자신도 틀림없이 이런 일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정보부에서 볼 때, 지금까지 공산주의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대학가에도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론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승공연합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발한 대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발한 이론을 중심삼아 새로운 역사관과 세계관을 국가에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거족적으로 정신무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음을 웅변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기반을 닦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학을 나왔습니다. 또 이론면에 있어서는 세계의 선두에 서 가지고 공산권의 전체적인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좋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우리 승공연합에 대해서 다 알고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에 와 있는 미국 CIA요원들도 통일교회와 문선생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는 이미 다 합쳐질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 한 나라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반공활동을 시작할 때 반공연맹과 협조하라고 했습니다. 반공연맹과 우리가 서로서로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이제 가능한 권내로 들어온 것입니다.

일전에는 보안사령부에 관계되는 사람이 한국의 문제들에 대해서 내게 의논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이제는 한국에 대한 모든 문제를 우리에게 의논할 수 있는 이런 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승공연합의 활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국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얼마나 크고 엄청난 일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이 어떤 일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도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습관적인 것으로 그렇게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엄청나고,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모릅니다.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적 외적 활동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문제

지금 공산주의 문제는 세계의 문제입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모든 면에 있어서 세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국가로서 행세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시대의 개척, 개발 국가로서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과학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미국이 월남의 뒤를 대주어 전쟁을 치르게 했지만 지금 월맹한테 꼬리를 치고 있습니다. 미국이 죽을 쑤고 똥을 싼 격이 된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물질만으로는 못 당하기 때문입니다. 사상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사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을 죽이더라도 단번에 그의 후계자가 그와 똑같은 입장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사상만 올바르다면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백년 아니라 천년이라도 계승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올바른 사상만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다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 개인도 이념적인 분야에 있어서 세상의 전문가들과 대결해 가지고 지지 않고 그들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들을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한다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일본을 예로 들어 봅시다. 동경대학에서 한다 하는 좌익계열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다 모인 곳에 우리 통일교회의 전망 있는 30대 젊은이들이 찾아가서 토론을 하는데 그들이 상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현재 아시아의 일개국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사실일는지 모르지만 생각하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로 연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가 우리에게 연결되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외적 활동과 섭리의 내적 활동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비슷하게 가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즉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쪽은 너무 커지고 한족은 너무 약하게 되면 서로 연결시키는 데 크나큰 고충이 뒤따릅니다. 또 여기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을 합치는 데도 문제가 됩니다.

우리와 관계를 갖는 정보부 소속의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승공연합은 국가의 저명한 인사들을 제외하고 왜 하필이면 통일교회의 하찮은 간부들로 조직을 구성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간부들에게 불평을 합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작전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점조직 권내에서 선조직권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전체 작전을 하여 총공격할 수 있는 시대권에 있습니다. 이제 곧 선조직 권내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몇 해 동안의 실적을 봐서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템포로 보게 될 때 아직까지 승공연합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분립시키면 천리 만리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승공연합 간부로 세우게 된다면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시를 못 하게 됩니다. 만약 지시하게 되면 부작용이 벌어질 것입니다. 뭐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승공연합에 대해 오히려 브레이크를 밟아 버린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체를 결박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습니다. 만들어 놓고 한숨을 쉬어야 하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생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해 가며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승공연합에 주(註)를 달게 되면 통일교회일 것입니다. 이 둘이 같은 형체를 이루어 상대적 관계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더라면 그것은 거국적인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기에 이 둘의 보조를 안팎으로 들이맞추기 위하여 승공연합 활동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 초교파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거국적으로 외적인 기반이 닦아지는 때에 있어서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내적인 교회 기반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이 운동을 위해 돈도 많이 썼습니다. 이래 가지고 안팎으로 이끌어 나온 것입니다.

초교파 운동의 방향

이제는 빠른 시일내에 어느 기준에까지 끌어올려야 됩니다. 내년 6월달까지 세계대회로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각 종단의 책임자들을 내가 직접 만나려고 합니다. 만나서 그들에게 세계 일주를 시켜 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필요없고 여덟 종단의 최고 지도 자인 여덟 사람만 만나 그들을 데려갈 것입니다. 경비는 일인당 3천 달러씩 잡아 여덟 명이면 2만 4천 달러, 대략 한 3만 달러 정도 지불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뭐 우리가 따로 선전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세계 순례하는 도중에 우리 교회에 데리고 가 머무르게 하면서 얘기도 시키고 해서 그들 스스로가 우리와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6개윌간 여행시키고 자기 종단에 돌려보내면 선전하지 말라고 해도 선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감투를 씌워주고 '나라 구하자'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 나라를 구할 수 있느냐? 이북에도 기독교, 불교, 유교, 천도교가 있지 않느냐? 그 종교들이 사지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냥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동포를 위해서 죽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종교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하며 나라를 구하자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0년도에 종교협의회의 3대 목표를 정할 때 구국을 중심사상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국의 방향은 무엇이냐? 승공사상으로 무장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공사상으로 무장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공산당을 반대하고 싸워 이기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종협을 중심삼아 가지고 닦아 나오던 내적인 기반이 각 종단 종교인을 중심삼고 외적인 기반으로 닦아지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닙니까? 결국은 승공연합의 기반을 중심삼은 외적인 국가기준과 종교문제를 중심삼은 내적인 교회 기준이 서로 일치가 되면 안팎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수련시키면 사람이 불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가면 기독교는 고립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부흥하는 것 이상 성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혼자 떨어지게 되니 서럽기가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그러한 궁지로 몰아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승공연합 활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인 활동을 하고, 내적인 것은 종협을 중심삼고 구국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적 소원이요, 민족적 숙원인 남북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종교인들이 나서서 해야 합니다. 공산당을 때려잡으려면 승공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승공사상이 무엇이냐? 결국은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니 통일사상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입장이 되면 배우지 말라고 해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이 일치가 된다면 계획만 세워 주고 길만 잡아 주면 술술 잘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이 되면 우리가 외국 사람과 관계 맺어 가지고 국내의 조직에 연결을 시킬 수 있습니다. 일본이라든가, 미국이라든가, 또 지금 준비하고 있는 독일을 비롯하여 구라파 여러 나라들과 연결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내적으로 완전히 단결해야

이제 축복을 해주고 미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리 좀 잡아야겠습니다. 무슨 파니 무슨 파니 하는데 이거 기분 나쁩니다.

김상철이 어디 갔나? 「전화 받으러 갔습니다」 자기 말하니까 나가는구만. 김영운이 파니 무슨 파니 하는데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내가 한꺼 번에 다 쓸어 버릴 것입니다. 일본도 내가 손대 가지고 끌어올렸습니다. 지금까지 최봉춘에게 맡겼더니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봉춘이를 미국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어도 안 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안 가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도 몰아내려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봐도 최봉춘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그런 방식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육 센타니, 입체 교육이니 하는데, 그런 것들이 복귀섭리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러니 내가 직접 손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시아에 있어서 외적 분담을 하는 일본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했던 일들을 일본에 적용하여 안팎으로 이상이 없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나까무라 목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잘 안될 때는 종협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합운동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점조직에서 선조직으로 교회 활동을 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손을 댈 곳은 어디냐?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우리 식구끼리 서로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강력한 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떠한 경향이 있느냐면, 지구(地區)를 많이 늘리다 보니 일방적인 일은 가끔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강력한 선을 편성하는 데는 지장이 많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내적으로도 완전히 단결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선조직을 편성하는 데 있어서 우리 체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성교회를 연결해야 됩니다. 일전에 서남동 교수가 우리 통일교회에 대해 말한 내용, 즉 부활의 문제라든가 영적인 세계의 문제 등을 묶어 책을 만들어 전국의 교계에 전부 나누어 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우리를 반대하는 기성교인이 반대할 기력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진짜 밥목사입니다, 밥목사. 내가 어젯밤에도 얘기 했지만 우리가 지금 교회를 새로 지으려면 한 5천만원에서 7천만원 정도 돈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 돈을 투자해서 교회를 짓느냐? 아니면 일반 기성교회에 한 사람 택해 우리가 일년에 오십만 원씩 대주어서 교회를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월급으로 월 5만원씩 주면 전부 달라질 것입니다. 약 5천만원에서 6천만원만 있으면 됩니다. 그 월급을 우리가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약 하게 되면 초교파 협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운영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100개 교회만 한다면 한 교회에 교인을 약 300명 정도 계산하면 모두 3만 명정도의 교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5천만 원 내지 6천만 원 가지고 한 300명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돈으로 우리의 지역 본부에 그 정도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교회를 지을 수 있어요?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사같이 생각해 보면 짓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나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6개월 동안에 그들을 다 요리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두 세번 정도만 부흥회를 하면 다 요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월급은 무슨 월급입니까? (웃음)

그 정도면 우리의 사정권내로 전부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 한꺼번에 3만 명 정도 모아 놓고 선생님 말 들을래, 안 들을래 하면 끝맺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논 있는 사람은 논 팔아야 되고, 밭 있는 사람은 밭 팔아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1억 원이고 2억 원이고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방식대로 다시 2차 3차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기성교회 노회장들에게 선생님이 상여금도 주고 월급도 줄 것입니다. 그들이 속한 교회에서 월급을 10만원 받는다면 우리는 한20만 원씩 3년만 계속 준다면 말을 듣지 말라고 해도 들을 것입니다. 두고 보면 알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 기성교회는 우리 통일교회의 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되나 안 되나 잘 두고 보십시오.

기성교회와 친화하는 방법

지금 우리가 하자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걱정하고 다 이렇게 하는 것도 기성교회의 목사는 반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장로나 그 밑에 있는 평신도가 반대하는 것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과 악착같이 친화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역량을 넓혀 가지고 나라를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됩니다. '이북에서 김일성이 남침해 오면 다 죽소. 지금 이 나라는 김일성이 남침을 노리고 있으니 우리를 원수시하며 경계하는 것보다는 김일성이가 우선 더 무서운 것이오. 당신들이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있는 데 그렇다고 우리 통일교회가 당신들에게 칼침을 놓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러나 공산당들은 칼침을 놓는 것이 문제가 아니오. 이렇게 큰 원수가 앞에 있으니 우선 이것 먼저 방비 해야 하는 것이오. 우리를 반대해도 좋소. 그러나 반대하는 것은 우리끼리의 반대에 불과하오. 지금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나라가 망하면 공산당에게 우리만 죽는 게 아니오. 당신들도 죽게 되오. 당신들도 알지 않소. 씨알맹이도 남아지지 않을 것이오. 당신의 아들이나 가정의 형제도 전부 죽지 않소? 그런 의미에서 원수인 공산당을 방비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손을 잡아야 되지 않겠소. 이 원수를 대해 가지고 방어선을 만들어 자체 보강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소' 이렇게 하면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목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영향을 미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점에서 선을 만들어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집에 가게 되면 아이들이 많아서 어려운 것을 알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비록 어렵게 살지만 백원짜리 만두라도 사다 주고 또 애들에게 과자도 사 가고 옷이라도 한 벌 사다 주기도 해보세요. 그리고 어디 갔다가 올 땐 들러 보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50명이 그렇게 해서 지내면 50개 교회 목사들과 친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장과 지구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하게 되면 뭐 전도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그냥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의 영향권내에서 그들이 반대하지 않는 환경을 빨리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목사하고 연락되어 다 좋아하게 되면, 그 다음엔 중간 식구들은 장로를 찾아가서 친분관계를 잘 맺는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의 생일에는 우리 통일교회에서 시루떡을 해다가 잔치상도 차려 주고, 또 그 교회 장로의 생일이 되면 케이크라도 사서 통일교회 이름으로 그 장로를 축하해 주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까우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한집 살림살이처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자는 것입니다. 원래 선생님은 교회를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지으면 뭘 합니까? 화합하면 되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 집에 온 손님이라도 주인도 좋아하고, 부인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게 된다면 만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작전을 해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배후의 작전을 꼭대기에서부터 하려고 하는데 여러분들도 여기에 발을 맞추어 가지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작전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것을 꼭 해야 됩니다.

이젠 기성교회 목사들을 찾아 가더라도 옛날처럼 핍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때가 지나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이제 좀 크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별의별 사건을 만들어 낼 자료가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방 경찰서 정보계장 정도면 어느 교회 누구누구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습니다. 목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장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더 가까우니 별 어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관을 중심삼은 정보 책임자가 사상 담당 책임자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정보계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더 가까우니 별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점작전에서 선작전으로 발전해야 할 때

이렇게 기관과 협력해 가지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가 백년 역사를 가지고 신도가 2백만이고 3백만이고 하는 데 그것으로 족할 게 아니라 삼천만을 다 기독교인으로 만들어야 될 게 아니냐?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것은 틀림없지 않느냐? 포도나무니 머루나무니 하는 것처럼 가지가 조금 다를 뿐이지 모양은 같지 않느냐? '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회가 초교파 운동도 할 수 있고 종협운동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성교회와 하나되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종교권내로 밀어 넣어야 되겠습니다. 종교권내로 보내서 하나님을 믿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누가 주동이 되어야하느냐? 그것은 기독교인인 우리들이 주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신자들을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교회가 부흥회를 할 때 통일교인이 보따리 싸 가지고 아침부터 가서 전도도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그야말로 친화하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투입니다. 간접적인 전도작전인 것입니다. 서울에서 선생님이 하는 작전의 보조작전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선생님이 상부에서 초교파 운동을 하게 될 때 그 측근자들인 기성교회 장로나 집사들이 반대하지 않게 되며, 지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방은 여러분이 맡고 내가 꼭대기인 상부층을 맡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초교파 운동을 해 나오면서 그들과 친밀해져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회관에는 가톨릭 세력과 개신교 세력 등이 자리를 굳히고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거기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싫든 좋든 이럴 것입니다. 오뉴월 파리같이 따라다닌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뉴월 파리면 어떻습니까? (웃음) 그래도 상감마마 진지상을 맨 먼저 맛보는 것은 오뉴월 파리거든요. 그게 중요한 거라구요. (웃음) 암만 그래 보라는 거예요. 필요하면 담당 형사한테 말해서 비리를 전부 다 조사하라고 해서 필요한 정보를 빼낼 겁니다. 싸움을 하려면 재료를 전부다 수습해야 합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지금까지 재석이 한테도 이런 얘기 안 했습니다. '지금 어느 교회의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으니 조사해 보라' 하면서 한 5만원 정도 주면 전부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신문 기자 클럽이 전부다 우리 편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다 하나되어 강원용목사든 누구든 내적으로는 우리를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신문기자들이 종협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 낼까요, 내지 말까요 하며 우리에게 물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라구요.

이 세상 사람들은 돈만 주면 전부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싸울 때 증거를 들이대려니까 그런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큰소리 하지 마, 너 아무개 사건 몰라? 하고 한마디만 하면 깜짝 놀라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대해서 뭐 이러구 저러구한 소문 전부다 끌어 붙여서 보도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시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세대학을 요리하기 위해서 서남동교수를 요리해야 하고, 다음에는 박대선총장을 요리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문제는 뭐냐? 우리가 점조직 활동권내에서 핍박을 받았지만 이제는 선조직 활동권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동서로부터 남북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선을 연결시켜야 되는데, 지구장 여러분들이 그 선을 잡을 수 있어요? 경남이면 경남의 4개 지구를 무엇으로 연결 시키겠습니까? 여러분의 손이 여기서부터 마산까지 가겠어요? 못 갑니다. 그러니 작전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참모들이 모여서 작전을 하고 격려도 해주고 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분립시켜서 일했던 것을 다시 통합해서 운동을 해야 됩니다.

본부에서 한 것처럼 여러분 자체 내에서 통합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을 다리 놓아 가지고 직선이 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부산이면 부산권내의 중요 부락에, 또는 마산이면 마산권내의 중요 부락을 찾아 핵심요원을 계획적으로 배치해야 됩니다. 그것을 하려니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상에 대한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수련소를 지은 것입니다. 금년 70년도부터 그 교육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전통 확립과 실천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구장들이 밤낮으로 강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강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밤을 새워 가면서 선생님이 50년도에서부터 60년 대를 거쳐 지금까지 활동해 나오던 그런 활동을 전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는 점작전에서 선작전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선생님 대신해서 가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대대장은 연대장을 대신해서 책임을 하는 것입니다. 또 연대장은 사단장을 대신해서 책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믿을 수 있고 그 작전상의 소임에 있어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작전 수행이 틀림없이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전국적으로 틀림없는 조직을 갖추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승리의 한날을 가져오기 위해서 강력한 사상,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전력을 다해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환경을 움직일 수 있는 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상당히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동원해 가지고 간접적인 지원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대기에서부터, 즉 박대통령이면 박대통령을 움직이고 청와대면 청와대를 움직여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기관과 친하게 되면 우리가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우리에게 계약을 하러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앞으로 군사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그런 작전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일년에 3만 정에서 4만 정을 계획대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4년 내지 5년만 만들어 내게 되면 우리 공장은 살아나게 됩니다. 이제는 일본에 있는 기술자들을 데려다 칼빈 총도 만들고 M1도 만들 것입니다.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재료는 외국서 들여오면 되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3년 이내에 이것을 착수해 가지고 견본뿐이 아닌 실제 부대에서 쓸 수 있는 M16소총도 만들 계획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안팎으로 많은 일을 해 나왔습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사나이는 포부가 커야 합니다. 요즘은 인공위성이 달까지 날아가는 때이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러한 판국이 벌어졌는데 잠을 자고, 쉬고 하는 것에 흥미를 불이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심부름꾼밖에 안 됩니다.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해요. 생각해 보라구요. 잠이 오게 되어 있어요? 남들은 출세를 위해서 사람까지 죽여 가며 별의별 놀음을 다하는 판국인데, 눈을 뜨고 자기 걸음걸이에 박자 맞추어 잘하면 세계로 갈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는데 가만히 뭐앉아서 졸거나 공상만 하고 있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여러분들이 어떻게든지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됩니다. 제 2차 7년노정이 올 해로 몇 년째입니까? 「3 년째입니다」 그러니 이 3년째 되는 해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새로운 전통과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을 가정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환경을 만드는 겻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가정이 자리잡는 것이 문제였지요? 그 다음 제 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의 가정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제일 잘해야 될 사람이 여자들입니다. 여자가 잘해야 모자협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아들딸에게 모든 영향을 주고 뜻을 위하는 자녀들로 키우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는 애기를 업고서도 가야 합니다. 애기들이 '엄마 어디가? 하면 '전도하러 간다'고 해야 합니다. 왜 전도를 하느냐고 물으면 나라를 위해서 한다고 눈물을 흘려 가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젖먹이 애기를 떼어놓고라도 눈물을 흘리며 해야 됩니다.

2차 7년노정과 축복가정의 책임

2차 7년노정이 몇 년에 끝나요? 「74년입니다」 그러면 1980년도까지는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때는 21년노정이 끝나지요? 「예」 그러면 선생님의 나이가 얼마나 됩니까? 「60세입니다」 이것은 숫자적으로 볼 때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 1970년대에는 세계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우리와 하나되었으면 얼마나 발전했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미국이 지금의 일본만큼만 되었어도 내가 당장에 들어가 작전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백악관을 중심삼고 작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꼭대기만 움직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언제 복귀 하겠습니까 ?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시시한 일반인들은 만나지 않는 거라구요. 시시한 사람들 만나서 뭐하겠어요? 얼마나 시끄럽겠어요? 서로간에 정신적인 소모만 하게 됩니다. 이제는 내가 의지가 통할 수 있는 사람만 만나려고 합니다. 어느 대학교 총장도 나를 만나려고 지난 6일에 전화를 걸어왔지만 내가 바쁘다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가면 한번 만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선 아무도 모릅니다. 밀회입니다, 밀회. 대학가에서 최고 수준에 있는 사람 몇 사람만 움직여 놓으면 그 다음에는 쉽습니다.

여러분들 보라구요. 내가 3개월만 발벗고 나서면 몇백 만의 사람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런 자신을 갖고 있어요. 이미 그런 기반이 다 되어져 있습니다. 전에 어떤 책임자에게 '너는 미스터 문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자 하면 나설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내 녀석 됐다고 생각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갈 때 전부 다 통일교회가 망할 줄 알았겠지요. 이제는 선생님이 세계적인 위인이 됐으니 세계 정세에 민감해 졌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내가 누구보다도 기도하고 정성드린 사람입니다. 앞으로 아시아 정세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박대통령을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이 있습니다. 한번만 만나서 몇 마디만 얘기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별수없이 또 만나자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 만나겠다면 그만 두라는 거예요. 그들이 할일을 못하니 내가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축복을 해주다 보니 상당히 피해가 많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이런 때 여러분의 가정이 뜻 앞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위해서 여러분 가정이 필요한 때가 온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에 여러분들의 가정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야 합니다. 지금이 그렇게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제 1차 7년노정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할 때까지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가정이 국가적 기반 위에서 여러분의 부모의 날, 여러분의 자녀의 날, 여러분의 만물의 날, 여러분의 하나님의 날을 결정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국가가 못한 것을 선생님이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계 앞에 머리를 들고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통을 남기는 역사적인 조상이 되라

국가기반이라는 것은 교파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단체를 초월할 수 있는 이런 시대권에 들어왔으니 한때밖에 없는 이 때를 어떻게 보내야 되겠습니까? 무골충 모양으로 그럭저럭 보내서는 안됩니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다고, 불평들만 하고 있어서는 안 돼요. 배도 안 고파 보고 큰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가 막히는 자리에 가보지 않고 큰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과 처량함을 다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면서 극복해 나가야만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새로운 전통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제 돌아가서는 가정을 중심삼고 제 2차 7년노정 기간에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역사상의 어떠한 민족들에게도 참소받지 않게끔 전통을 남길 수 있는 가정을 가진 역사적인 조상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2차 7년노정 중에 여러분은 거의 40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4년을 보내며 2차 7년노정만 넘게 되면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진짜 모험을 좀 해야겠습니다. 모험도 기회를 잘 보아서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모험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 왔습니다. 지금까지 모험을 한 번도 못 해보았어요. 왜? 잘못하여 다치게 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동쪽에서 모험을 하다가 꺾인다 해도 서쪽에서 모험을 하여 이길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렇게 알고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한 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적 점조직을 편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해 나오셨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여러분 가정이 한 점이 되어 선조직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 대신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보람있는 일이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일이며, 민족 정기를 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이제 돌아가서 여러분 자신들이 각각 '나는 몇 해 동안에 이렇게 할 것이다' 하는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결의를 새로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선생님과 동반하여 같이 수난을 받고 나가면서 깃발을 들었으니 그 깃발을 세계에 옮겨서 세계 앞에 우리의 전통은 이렇다고 스스로 증거할 수 있는 기준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소원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얼마만큼 단결하고. 얼마만큼 노력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집으로 돌아가 가지고 지구(地區)를 중심삼고 새로이 각오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이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수난의 역사 가운데에 스승이 남긴 모든 문제들은 이 길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되고. 또한 이들이 남기는 문제들은 이 민족과 이 세계가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될 십자가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그 모든 책임을 짊어진 저희 자신들은 얼굴을 들고 아버님 앞에 버젓이 나설 수 없는 개인들이요, 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이 시간 각자가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남겨진 십자가의 길을 내가 마다해서는 안 될 것이며, 국가와 세계 앞으로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이들이 마다해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출발한 이 길이오니, 아직까지 죽지 앉은 이 몸을 아버지 앞에 바치기 위해 죽음길을 향해 나가야겠사옵니다. 온갖 정성과 성심을 다하여 하늘 앞에 효성의 도리와 충성의 도리를 세우면서 눈물어린 생활로 그 자취를 남기고 가는 저희의 모습이 되게 될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벌어질 것이며, 새로운 생명샘이 폭발하여 흘러 나가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당신은 언제나 준비하고 계신 것을 아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떠한 외로운 자리에서나, 어떠한 밀실에 들어가서라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면 대답해 주시는 아버지이시요, 밤낮을 쉬지 않고 저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가 저희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면 대답해 주시는 분임을 아옵니다. 본연의 그 자체이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분을 모시고 있고 그런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들로서의 권위를 주신 것을 진실로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금번에 저희들이 이 지역을 중심삼고 역사시대에 없었던 모임을 가졌사옵니다. 이 일주일 기간 동안에 느낀 모든 것이 느낌만으로 끝나지 말고 1970년도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부터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감격된 마음이 뼛골에서 우러나와 저희들을 다시 한 번 덮게 하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어떠한 희생의 길이라도 스스로 모색해 갈 줄 알고, 맡은 지역의 책임자로서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는 데 부끄러움이 없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께서 이미 다 축복을 해주셨사오나 저희들이 부족하여 당신이 바라는 그 소명 앞에 책임 못한 것을 다시 한 번 용납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저희는 먹어야만 되는 인간이옵니다. 저희들은 외적 내적으로 힘을 보충 받아야만 되는 인간이옵니다. 하오니 당신께서 언제나 저희들의 내적인 힘의 원천이 되시어서 저희들의 내적인 보급로에 당신의 무한한 영적인 힘을 보급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싸움으로 힘이 소모될 적마다 그 힘을 아버님께서 보강해 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불쌍한 분은 오직 아버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그러기에 저희들은 효성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충성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을 진실로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서 아버님과 깊은 사연을 맺게 해주신 것을 깊이 감사하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이 1970년도에 축복가정들이 해야 할 책임과 본분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앞길을 완전히 종결짓기 위해 그 손길로 저희의 손을 잡으려 밤을 지새워 울부짖고 부르짖으면서 찾아나오시는 것을 저희 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 스스로가 그 길을 단축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취미로, 재미로 알고 나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점에서 선으로 연결시켜서 총공세를 하여 승리의 거국적인 복귀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임무를 다할 때까지 죽어서는 안 될 저희들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40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있어서 청춘시대가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젊은 때가 가기 전에, 죽어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이 민족을 안고 세계 앞에 나서서 비참했던 과거를 씻어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딸들로서 늠름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원수들 앞에 제시함으로써 원수들이 말없이 굴복하여 천륜의 고마움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모든 권위를 찬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날을 맞기 위해서는 온갖 희생을 다하더라도 그 길을 극복하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저희 각자가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위하여 소명을 받은 저희들은 각자의 책임을 지고 끝까지 참고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될 것을 이 시간 다짐하였사오니, 저희들 위에 힘에 힘을 가하여 주시옵고, 능(能)에 능을 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도 있사옵고, 저희들을 보내 놓고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여기에 온 것은 휴양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옵니다. 여기에서 내심에 새로이 무엇을 다짐하고 돌아가 식구들에게 최고의 선물로 아버지의 안타까운 내정과 아버지의 곤란을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선물로 갖고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가벼워야 되겠사옵고 그 마음들이 기쁨에 벅차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내일의 소망의 천국 앞에 새로운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선 기수로서의 위신과 체면과 권위와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가 찾아오셔서 내세워 자랑하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의 명분을 다할 수 있도록 사랑의 은사를 더더욱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9월에 일본에서 개최되는 세계반공대회(WACL)를 승리로 이끌어야 되겠사 옵니다. 여기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경륜하시는 뜻 가운데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도 당신이요, 그 착한 일의 결과를 수습하시는 분도 당신인 것을 아옵기에 일체를 당신께 맡겨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은 피곤함을 잊고 온갖 정성어린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사오니, 그 결과를 당신의 영광으로 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10월에는 700쌍 국제 합동결혼식이 있사옵니다. 세계적인 합동결혼식을 하는 이 경륜 앞에 역사가 다시 한 번 휘감기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세계의 주목을 끌어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당신께서 이렇게 이끌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자극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삼으시어서 새로운 시대를 향한 하나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한 때가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를 위한 온갖 터전을 갖추어야 할 것이 저희의 책임이옵고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한 준비 기간에 있어서 이미 8월을 맞았사오니, 남아진 달들을 당신이 친히 영광 가운데에서 주도하시어서 당신의 섭리의 뜻과 더불어 남아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의 마음 마음과 세계 인류의 마음 마음에 옮겨질 수 있는 참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선민, 하나님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간 보호하여 주신 것과 아무 사고가 없도록 지켜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침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 행로도 친히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와 같은 은사 앞에 저희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모든 일이 당신의 영광 가운데서, 당신의 뜻 가운데에서 형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님, 8월을 맞이하여 해방의 그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지금부터 25년 전, 이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여 삼천만 민족이 기뻐할 때,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고 민족의 자결을 책임질 것을 다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 민족과 더불어 같이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사옵니까? 아버지께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나라를 찾아오셔서 이 민족 이상으로 이 나라를 염려하셨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무어라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해방 이후 25년이라는 기간을 어제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새로이 26년 되는 해를 출발하는 아침이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나라의 만복을 부디부디 거두지 마시옵소서. 당신께는 허락하고자 하는 깊은 심정을 수많은 아들딸들에게 털어놓고 의논하고 싶은 한 줄기의 소망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부디부디 외로운 무리와 더불어 의논하시옵소서.

어려운 역사노정에서 참아 오셨던 한 많은 그 가슴을 털어놓고 그 사연 들을 나눌 수 있는 아들딸이 있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위안받으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많아서 위안받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뼛골에 사무칠 수 있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어, 그 아들딸을 품고 당신의 모든 소신을 털어놓으며 미래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새로운 길을 향하여 가겠다고 맹세를 하는 부자의 인연을 가졌을 때에 슬프신 아버지께서 위안받으실 줄 알고 있사옵니다. 또 외로우신 아버지께서 소망을 갖고 보람 있는 한순간을 가질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당신의 품에 안겨 사랑받을 수 있는 진정한 아들 딸이 수많은 교단 가운데에 없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오늘날의 통일의 무리 가운데에는 얼마나 되옵니까? 당신이 저를 지금까지 남기고 지켜 오신 것은 크나큰 뜻이 있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당신의 뜻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떤 목포를 향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잘것없는 저희들은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진정으로 마음에 느끼고 체휼로써 아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아는 입장이기에 아버지 앞에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이 땅 위에는 없기에 배워서라도 당신을 알아 당신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상대적인 모습이 있게 될 때, 당신은 그들을 통하여 간접적이나마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20년의 역사를 거쳐 오고 있사오나,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사정과 당신의 소원을 알고, 마음속으로 언제나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당신의 심정에 접하여 생활해 나온 아들딸이 얼마나 있사옵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자리에 지금까지 그와 같은 아들딸이 없었다 할진대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면목 없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이 찾아오신 수고의 행로 위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비탄과 더불어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소망의 한 기점에 찾아오셔서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내가 찾아와서 맞는 아들딸이 이러냐' 하시며 탄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저희들을 보호하고 권고하시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수난을 개의치 아니 하시고 참아 오시면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신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수십년 역사의 보람을 아버지 앞에 거두어 드려야 할 때가 오늘 이 자리 이 시점인 것을 알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이제 옷깃을 여미고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스스로가 아버지께서 6천년의 수고와 대가, 혹은 피와 대가로 찾아 준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내적인 사연, 외적인 사연도 갖지 못한 저희들이기에 다시 한 번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많은 시일이 문제가 아니고 간절한 심정이 문제가 아님을 아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슬퍼하실 때 같이 눈물 흘릴 수 있고, 당신이 외로울 때 그보다 더 외로운 심정을 느끼며 당신을 외롭게 만든 원수들에 대하여 분함을 느끼는 마음 자세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어떠한 무리일지라도 모두 불러야 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이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아옵니다. 아버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버님께 남겨진 수난이 저희에게도 남아 있는 것을 느끼옵니다. 오늘까지 참아 오신 아버지는 수고의 아버지셨지만, 이제부터 또다시 가야 할 아버지는 염려의 아버지인 것을 몰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지금보다도 더 고독하고, 지금보다도 더한 수난의 노정을 걸어가야 할 아버지께 낙망하고 초조한 모습을 가하는 불쌍한 자식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지금까지 지쳤던 아버지께 힘을 가하고 생명력이 가중된 소망을 가해 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 할진대 당신은 실패의 아버지도 아니요, 낙망의 아버지도 아니며, 소망과 희망의 아버지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은 천지의 그 무엇으로가 아니라 오늘 보잘것없는 저희 자신들로 말미암아 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이 비참한 길을 걸어 오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을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하고 영광스런, 가치적인 존재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오니,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께 충효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20여 년간 이 나라의 운명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북괴가 침략해 내려와 이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던 6. 25사변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의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을 치렀고, 이 나라를 염려하던 우방국의 많은 청년들까지도 이 나라에서 피를 뿌렸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환경과 정치적인 변화로 인한 싸움이 아니라, 당신이 경륜하시는 뜻이 이 땅위에 닻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판가리 싸움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아는 저희들, 이제 내심의 결의와 각오를 다시 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권을 소유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거듭하는 것은 배후에 아버지의 뜻과 소원의 한 기점을 세우기 위한 당신의 경륜이 있어서임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오니, 대한민국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앞으로 이 나라의 삼천만 민족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를 위하여 아시아 앞에 나설 수 있는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저희들이 너무나 먼 거리에 있음을 알고 있사옵기에 이 거리를 단축시켜야겠습니다. 이 책임이 바로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부족한 모습들을 바라보시며 소원하시는 아버지께 민망하고 송구한 마음뿐이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의 마음 가운데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던 새로운 명령을 받자와 저희 스스로가 이 시간에 결의하고 다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8월 16일이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가는 노정에 있사오니, 저희들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아버지시여, 부디부디 저희들을 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싸움터를 향하여 용솟음치는 다음을 가지고 출정하는 하늘의 정병다운 자세를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저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70년도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연결시켜야 될 책임이 있사오니, 금후의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염려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민족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운의 역사 가운데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민족은 아시아와 열국들과 손에 손을 잡고 화합해야 되겠사오니, 몸에 몸을 이으시옵고 마음에 마음을 이으시어서 하나로 단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올 수많은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아버지께서 경륜하시고 바라시는 뜻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8월의 후반기로 접어들어 9월에 일본에서 열릴 와클(WACL)대회와 10월로 계획하고 있는 700쌍 합동결혼식, 그리고 그 후에 해야 할 여러 가지 행사를 남기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의 세계를 이루는 기간을 단축 시키고, 당신께서 가시는 행로를 같이 가기 위한 것이오니, 이 모든 일들이 부디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뜻과 소원대로 성취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정성들이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무한한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천국 앞에 그 이름이 크게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의 운명을 가려 주어 미래의 한 귀결을 지어 가야 할 나라가 일본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일본에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승공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싸울 때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연약한 무리를 세우시어 강하고 교만한 무리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씀처럼, 당신에게는 연약한 이들을 세우시어 끝날에 새로운 기치를 아시아에 드높이게 하시고, 영원히 만국의 만민 앞에 새로운 역사의 창조의 인연을 드높이 고취시키고자 하시는 뜻이 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이 자리가 부디 당신의 소원의 뜻을 펼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수의 무리가 여기에 모였사오니 나와 너와의 인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저희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복을 받기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있는 복을 다 모아 가지고 삼천만 민족과 세계 만민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8월을 당신이 허락하시는 승리의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숱한 비운의 역사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70년도의 후반기를 출발하는 이 시간, 이 자리가 당신의 승리를 다짐하고 영광되고 자랑스런 시간이 되고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명명하여 주실 수 있는 자녀가 있사오면, 그들이 마음속 깊이 당신을 흠모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모든 사정을 자기의 사정으로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심정이 당신의 심징과 일치가 되게 하시어서 사모의 은혜가 빗발치게 하여 주시옵고, 온전히 당신의 힘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고 오늘의 무사안일만을 좇는 무리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은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후대를 위한 승리의 터전을 닦기 위하여 모였사오니,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소망으로 바꾸고 오늘의 슬픔을 내일의 희망으로 극복할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소원대로 뜻 앞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아버지께 드릴 때까지 참고 또 참고, 싸우고 또 싸워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서울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아버지 앞에 축수하고 있을 줄 아오니,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일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무리가 되지 말고,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이 세계의 인류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거룩한 무리가 되도록 부디부디 당신이 품으시어서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역군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소원하고 스승을 만날 그날을 고대하면서 눈물짓고 기도하는 자리마다 당신이 사랑의 은혜로써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살아 계신 아버님의 아들딸이요, 아버님이 보장하는 아들딸이라고 저나라의 영인들도 인정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거기에 핍박이 나타나거든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저희들이 가는 길을 가려 주셨듯이 그들의 길도 아버지께서 친히 가려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을 대신하고 수많은 국가를 책임진 입장인 저희들이 그 남은 싸움 터에서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백 배 천 배 힘을 가하여 당신의 세계로 달려갈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시겠사옵니까? 저희들을 권고 하고 싶으신 것이 당신의 소신이라면 그 무엇으로라도 그리하시옵소서. 그리운 당신께 모든 일체를 맡겼사오니, 저희를 찾기 위해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고 사연을 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까지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희망 가운데서 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방의 한날을 추구해 나아가고 있는 인간

타락한 우리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구속된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은 개인을 통해서만 해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개인의 해방을 추구해 나왔지만, 스스로 해방되었다고 한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수난의 길을 거쳐서 국가의 권위를 갖춘다 하더라도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현재의 입장에서 더 발전하여 세계를 책임지고 세계를 해방시켜 세계의 주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국가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사연들이 무엇 때문에 있게 되었느냐 하면, 타락으로 말미 암아 있게 됐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방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유의 환경을 잃어버린 것이 바로 타락이 가져다 준 보응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 천국을 잃어버리고 사방이 막힌 구속의 생활권내에 떨어진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타락의 세계는 시일이 가면 갈수록 통합되거나 어떠한 해방을 갖추어 전체와 연결될 수 있는 역사적 귀결을 맺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해방되지 못하는 사람, 해방되지 못하는 종족, 해방되지 못하는 민족, 해방되지 못하는 국가 등 영원한 해방의 기점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 해방을 가져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편안한 가운데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간다는 것은 말로만 남아질 뿐이지 불가능한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이 자연스런 환경이나 사방이 연결되어 무한히 통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갖춘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그런 개인과 그런 가정과 그런 종족과 그런 민족들이 샅고 있기 때문에 말로는 평화를 주장하고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바라고 찾아야 할 그 세계는 실로 암담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세계는 그 무엇인지 모르게 하나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 내심에 있어서는 그와 반대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더 첨가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화가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그 발전된 문화를 중심삼고 생활적인 면과 서로 통할 수 있는 내용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지만, 각 개인의 내심을 중심삼은 생활 면을 두고 보면 가중된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의 분야에 가중된 문제를 오늘 우리 자신들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경각에 도달해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을 가누어 갈 수 있는 어떠한 신념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세계 무대가 펼쳐지게 됐지만, 내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수난의 사사건건이 우리의 마음 앞에 부딪쳐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적인 모든 환경과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수난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개인의 고통이 세계의 고통으로 연결되고, 개인의 소망이 세계의 소망으로 연결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국가나 어떤 주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갈수록 절망적인 입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미국의 갈 길

이러한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이와 같은 섭리를 하시는 것이냐? 그것은 지금 인간들이 가고 있는 행로를 그냥 그대로 연장시켜서 그들이 바라보는 소망의 세계로 끌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종말시대에 이르러 한꺼번에 인류를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은 환경이 벌어지는 것도 우리 인류를 비극의 세계로 몰아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소망 하는 모든 외적인 요건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한 내적인 세계로 돌아설 수 있는 한때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미국을 보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히피족이니 뭐니 하여 방종한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친척은 물론이요, 부모도 없습니다. 더우기나 그들에게서는 국가관이라든가 세계관, 혹은 인류애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얘기해 봐야 그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으로 남아질 뿐, 현실적으로 자기의 내심이 추구하는 소망의 여운을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거기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다가오는 외적인 문화의 세계에 보조를 맞추다 보니 결국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전체를 잃어버린 결과를 거두게 된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자기 자신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외적인 사회, 외적인 정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잘 갖추어진 외적인 환경을 기쁨으로 맞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을 강하게 하는 요인이 바로 외적인 문화형태이기 때문에 거기에 반발하여 히피족과 같은 무리가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실정을 볼 때. 선진국가인 미국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현재와 같이 민주주의라는 체제 아래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갈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갈 수 있는 길은 다시 돌아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 15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신을 부정하는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현시대까지 이끌어 나온 역사를 가진 현 문화 세계권내에서는, 이처럼 신을 부정하는 문화 배경을 중심삼은 세계에서는 인간들이 도저히 가로막힌 내적인 장벽을 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렸던 신(神)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는 길만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류가 바라는 해방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이 일제의 압정하에서 근 40년 동안 수난을 당하는 피압박 민족으로서 신음하다가 역사적인 구속 가운데서 해방된 것도 해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 에게 있어서의 해방일 뿐이지 세계의 해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어제 8. 15해방 25주년을 맞는 경축의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이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된 것으로 우리 민족이 자결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해방이었을 뿐이지, 흘러가는 세계의 역사노정이나 구속권내에서는 공헌함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어제 축하하고 기념했던 민족의 해방보다는 세계 인류가 공히 추앙하는 전세계적인 해방의 한날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날이 언제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물질적 조건이 아닌 내심적, 정신적 조건을 중심삼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보다 강한 힘, 제 3의 권을 어떻게 유도해 들여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일을 할 것이냐? 어떠한 사상이나 종교가 해야할 텐데 종교나 사상이 이것을 능히 해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느냐 할때에, 이미 다 실험해 보고 지나간 형태로써 남아진 실상을 두고 보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계 만민이 바라는 희소식, 복된 소식 중에 제일 큰 소식은 제2해방, 제3해방이 되는 '해방'이라는 말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은 인간 해방의 주체

미국의 서부에는 히피족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1965년도에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거리를 지나가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 너댓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길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그 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그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길을 왕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좀더 뜻 깊은 사람이라면 금후의 미국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고, 더 넓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세계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좀더 심각한 사람이라면 신(神)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그렇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모습이 못 되어 있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인간은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그 무한한 가치를 탐구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한 생각과 싸우기에 그가 얼마나 고심하겠습니까?

생각은 했지만 해결이 안 나기 때문에, 또 생각은 나는데 생각나는 그것에 현실이 맞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정지된 모습 앞에 새로운 소망과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 미국 앞에, 나아가 세계 앞에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야 할 길이 이길이다'라고 자랑하고 나설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선생님은 그때 그 사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어차피 오늘날의 인류에게는 제 2해방이라 든가 제 3해방과 같은 하나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서북방을 바라볼 때, 거기에는 공산주의 체제인 소련과 중공이 있습니다. 거기에 10억 가까운 인간들이 구속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기에서 자유스럽고 행복스럽게 살고 있느냐? 말뿐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유세계라고 하는 민주세계에 살면서도 그렇다고 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독재국가인 공산세계에서 그렇겠습니까? 더욱더 그렇지 못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민주세계가 제 3해방을 요구한다면 공산세계에 서는 제 2해방을 요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제2해방, 제 3해방의 기수가 되고, 그 원천을 삼을 수 있는 새로운 주의와 사상은 어디서부터 올 것이냐? 그것은 인간세계에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이 해방을 맞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노력해 봤지만 그러한 환경도, 내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만을 중심삼고는 해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삼아야 될 것이냐? 인간이 아닌 누구를 중심삼아야 되느냐? 신(神)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신이 없다면 절망입니다.

어떤 정치가, 혹은 위대한 성현, 또는 위인이 인류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과 주의를 제창하려 한다면,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될 절망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위해 가상적인 절대적인 힘의 주체라도 끌어들여야 할 시점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없더라도 인류를 더 이상 절망의 환경, 구속의 환경에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인류를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어떠한 절대자의 개입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을 세워서 그 신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나라는 천국으로 나갈 것이요, 보다 나은 새로운 본연의 곳에 접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이라도 주장하여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책임지고 세계 앞에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쳐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신과의 관계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

통일교회는 이 절망의 한계점에서 신음하고 있는 세계의 군상을 앞에 놓고 무엇을 할 것이냐? 통일교회가 세계 인류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은 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자신의 힘으로 뜻길을 가지 못해서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내가 하나님을 진정 아느냐, 내가 신이 있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달았느냐, 내가 생활 전체를 장악하고 생사지권과 모든 전체를 좌우하시는 그런 분을 진짜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우리가 살아오는 생활은 물론 현재의 우리 자체도 알고 있고, 미래의 우리 운명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야 할 최고의 운명길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타고난 팔자가 있는데 그 팔자의 길을 가지 못하고, 누릴 수 있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절망의 환경에 싸여 스스로를 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非-非再)한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후좌우의 운명을 다 알아 가지고 우리의 운명길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분, 즉 절대자가 있다면 그분을 알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2, 제3의 해방이 필요한 우리

오늘날의 우리는 타락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적으로나 인습적으로 그런 관념에 젖어 스스로 모든 소망을 구속해 버릴 때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내심으로는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며 환경을 극복하고 타개하여 새롭게 움직여 나가기를 재삼 재촉하지만,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습관 또한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습관성을 타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생활 환경이 우리를 얽어 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활 환경 가운데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인종 문제가 결부되어 있고,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등 여러 관계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생활 환경과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온 습관이 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내심을 움직여 나오며 새로운 자아를 자극시키는 제 2의 소망의 중심존재가 될 그 자체를 가로막고 그것을 부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습관과 역사적 전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습관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역사적인 위인이라든가 성인들은 그 시대에 구속되고 포위되어 있는 환경을 벗어나서 미래의 세계관과 생활관을 중심삼고 나갈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생명을 걸고 투쟁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인이요 열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바쳐 가면서 역사를 대신하여, 역사의 해방을 위하여, 역사적인 모든 악의 습성과 환경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것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쳐 가면서 싸우다 간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위인들을 바라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자기의 생활환 경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들에게는 제2, 제3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입장을 타개하는, 금을 내어 둘로 분립시킬 수 있는 내심의 결단을 내려야 되겠습니다.

그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두고 볼 때도 그 나라에는 수많은 애국자와 위인이 있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발자취와 그들이 수고한 공로로 만들어진 것은 오늘날의 현실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 이상의 힘, 그들 이상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것을 결의하고 결단을 내리고 나서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반성과 내심의 결의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 이런 지상을 정화시키고, 새로이 혁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마음을 자극시키는 결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천만번 죽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환경을 완전히 포기하고라도 환경과 습관으로 부터 벗어나겠다는 강한 결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배 천배로 자기를 자극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힘은 역사 가운데 왔다 간 위인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힘 이상의 힘을 나에게 보급시켜 그 힘을 통하여 나를 자극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또 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역사는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와 이 시대, 나와 이 세계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 시대와 세계를 똑똑히 알아 가지고, '이 세계는 망한다' 하는 전제 조건을 세워서 그것을 결론짓기 전에 이 세계에서 내가 당하지 않는다고 결의할 수 있는 하나의 자각이 필요합니다.

이 자각은 역사시대의 어떤 지식을 통하여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면에서 얻게 되는 자각입니다. 그 자각은 역사를 거쳐온 인간을 통하여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3의 힘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길을 모색하는 방안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만이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자리에 있어서 역사를 주고 세계를 주고서라도 찾아야 할 하나님,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어떤 몸부림을 치더라도,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어떤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찾아야 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의 어떤 것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으며 세계의 어떠한 사상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는 장담코 그환경과 세계의 풍조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자각된 입장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힘과 결의를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자각된 자아의 새로운 출현을 어떻게 시키느냐,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세계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문제의 해결 방안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신다 ! 틀림없이 계신다 !'라고 확신할 때, 여기에서부터 해결 방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니 그로 말미암아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해야만 바로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 개인은 물론, 내가 그러니 당신도 그래야 된다고 할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우리 사회 환경의 고충은 우리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고충이 아닙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 나라도 그렇고 저나라도 그렇고, 세계 만민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을 어떻게 하든지 격파해서 이것을 초월하고 싶고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각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세워져서 '이렇다' 하고 제시하게 되면 세계는 일시에 한곳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인류를 비극과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은 인류를 영영 암흑의 세계에서 희생시키기 위한 작전이 아닙니다. 이칠흑 같은 암흑의 세계에 광명한 등대와 같은 빛을 주어 인류 앞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게 될 때, 흑암권내에서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환희의 함성을 지르며 하나님 앞으로 밀어닥칠 수 있는 세기말적인 새로운 풍조를 형성하기 위한 섭리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렇다'고 할 수 있는 , 자각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입니다. 이렇게 연결되어 '하나님은 이렇다' 할 수 있는 민족이 세계에 등장하면 세계 인류는 그 민족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 안 계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실 것이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실 것이다라고 추측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계시다 안 계시다 하며 싸움하던 시대, 즉 사상적으로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이 대결하던 역사적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문제의 해결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설명에 앞서서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세계를 품고 세계를 부활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수고를 하시는 데는 세계만을 위해 수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바라 시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보다 강한 개인이요, 이런 무리가 있다면 이는 보다 강한 무리가 아닐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이 세계가 아무리 해방되기를 고대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역사와 산물인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역사과정에서 공(功)에 공(功)을 가해 가지고 이룬 것이 현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만 해결돼 가지고는 이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란 무엇이냐? 참된 종교는 가공적인 이상을 소개하는 것보다도, 가공적인 인류애를 설명하는 것보다도, 본연의 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인간들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도록 신에 대한 인식을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 이상 참된 종교는 없습니다.

그 가치는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을 천개 만개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어떤 위인이나 성현들을 통합해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실존에 대한 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으로부터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각된 경지에서의 개인적인 인식관. 국가관, 세계관, 우주관 등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보다 고차적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 세계에서는 이말이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말로 들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이 말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심정문제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의 사랑이니, 부부의 사랑이니, 형제의 사랑이니 하는 것은 전부 생활권 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활권내에 전개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말한다면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아요, 몰라요?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틀림없이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을 안 드는 것을 보니 전부 다 모르는군요. 그럼 모른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것도 없구만.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다들 뭐예요? 그러니 문제는 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천국은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는 믿음의 천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의(侍義)를 말합니다. 모심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르고서 모실 수 있어요?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아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면 누구나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교인들 가운데에도 신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잘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루에 몇 번이나 자각합니까? 24시간 가운데 몇 번이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까? 모심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24시간 가운데 한두 시간 정도 모셔 가지고 되겠습니까? 공기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물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밥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이예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그렇게 느껴져요?

해방의 기점

여러분은 기독교가 왜 망해 가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십시오. 어디에 갈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오고 갔습니다. 전후좌우의 모든 행동 일체를 자기의 입장에서 뜻의 길을 찾아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결부시 켜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대 기독교가 어찌하여 뿌린 공로에 의하여 열매맺을 수 있는 중세시대에 들어가서 망하고 말았느냐? 그들에게 신은 머리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믿던 신은 생각의 신으로만 남아졌던 것입니다. 사실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의 신은 세계를 위한 신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해방을 받아야만 하는 조건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해방을 받아야 할 사람들 가운데에 있어서도 맨 먼저 해방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신을 찾았다고 하면서 신의 확실한 신념을 모르고, 신의 사업에 가담하고 신을 대행하고 신의 영광된 자리에 섰으면서 그런 스스로를 중심삼고 신을 팔았던 사람들이 먼저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외식(外飾)이라는 것은 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라는 것도 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거예요. 신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는데 그 해방의 기점이 무엇이냐? 신(神)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계신다면 어떻게 계시느냐? 부모로 계시다면 어디에 계시느냐? 그 신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지금 뒤틀리고 저끄러지고 엉클어져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동기가 서로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은 인류 역사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초월한 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종교가 신을 소개해준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비약하여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세계의 정세를 두고 볼 때, 어차피 세계는 암담한 최후의 절벽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그 절벽에 부딪쳐서 내 머리가 깨어지느냐, 아니면 절벽이 깨어지느냐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시점, 그 누구의 힘을 가지고도 세계를 구해 낼 수 없는 이러한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

우리의 8. 15해방을 다시 한번 회상해 봅시다. 어떤 면에서는 그 해방의 날이 없었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일제하에서 압박받는 생활이 그냥 그대로 연장되어 나왔더라면, 우리에게는 해방의 한날을 위해 모진 투쟁을 할 수 있는, 하나로 결속된 민족의 패기라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민주주의니 무슨 주의니 해서 전부다 흩어지고. 민족 정기마저 잃어버렸으니, 우리에게 그때의 해방이란 있으나마나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해방은 이 남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해방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남북이 하나되는 해방을 바랐던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실정을 두고 볼 때, 일제시대보다 나으냐?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삼팔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삼팔선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으니, 세계적인 무대를 해결하지 않고는 남북이 하나될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일제의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은 일개국의 천황이 항복하면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한 나라의 주의 주장으로는 해방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대한민국은 일제하에서 탄압받던 때보다도 더 불쌍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봐요. 중공이 물러가고 소련이 물러갈 것 같아요? 소련과 중공이 남아 있는 한 북괴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부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이고 민주주의는 유심주의 입니다. 이 유물주의와 유심주의로 분열되어 투쟁하고 있는 세계의 정세이기 때문에 이 속에서 유심주의와 유물주의의 철학적인 근거를 해결해 가지고 나오기 전에는 이 두 주의의 투쟁을 종식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이것은 어떤 이론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 하여야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의 하나님은 이렇다'고 가르쳐 주는 날에는 유물주의도 굴복할 것이요, 유심주의도 굴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한날이 기필코 와야 합니다. 신을 부정하는 유물주의 사상 앞에 신의 뜻이 확실히 나타나게 된다면 공산주의는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민주세계의 혼란된 환경도 신의 뜻이 이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에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문제, 역사적인 문제들의 해결 방안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수많은 정치가들이 무릎을 모으고 앉아써 밤을 새워 가며 밀담하는 자리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이 세계 앞에 공개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기점을 발견하는 자리에서 해결됩니다. 길은 그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과학은 점점 발달하여 신을 과학을 통해서 물적 증거를 하는 실증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심령과학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 같은 것을 사진으로 찍고. 실제로 그것을 전부 영화를 보듯이 볼 수 있도록 표면화시키는 시대권내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신이 있어요, 없어요? 어디 박공서, 말해 봐? 「있습니다」 어디에 있어? 「정신세계에 있습니다」 정신세계가 뭐야?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플 때, 위가 텅 비어 있을 때는 어때요? 거기에도 신이 있어요? 뜨끔하지요? 그럴 때 밥이 먼저입니까, 신이 먼저입니까? 어떤 것이 먼저입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핑계는 많지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잠자지 말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것을 다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잠자고 있다가 영계에서 가르쳐 주면 '아, 그렇습니까? 아이고 아버지…' 하고 기도하며 울고불고 해 가지고 아침에 보면 얼굴이 콧물자국, 눈물 자국으로 엉망입니다. 그래 놓고 또 다음날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문제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신의 나라가 어떤 나라고, 신이 바라는 세계는 어떤 세계며, 신이 계획하여 창건하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백성은 어떠한 백성이고,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나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 지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옛날에 미국의 동부 사람들이 서부를 개척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느냐? 그때의 정치가들의 정책적인 선전입니다. 서부에는 황금산이 있다 뭐가 있다 하며 천지에 깔린 것이 전부다 노다지이고 금덩어리인데, 그것은 먼저 가서 캐내는 사람의 것이라고 선전을 했어요. 그러니까 죽을지 살지 모르고, 인디언이고 무엇이고 생명을 내놓고 동료가 죽어 넘어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 더 가 보자, 또 조금 더 가보자, 해 가지고 서부를 개척한 것입니다. 그들은 소문이 사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들 죽더라도 자기가 남아지는 날에는 일확천금하여 천하 제일의 부자가 될것이라는 소망에 불탔기 때문에 서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광부가 광맥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기진맥진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러 곡괭이질을 한 번만 더 하면 나자빠질 순간이라도, 열 번만 더 파면 틀림없이 노다지가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곡괭이질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죽을 지경이라 해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면 보따리를 싸야 됩니다. 시집을 가든가, 장가를 가든가, 이사를 가야 된다면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처럼 준비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사짐을 싸 가지고 갈 준비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이 올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냥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망해 가는 세상의 더러운 먼지를 전부다 털어 버리고, 침을 뱉고 '나는 가겠다' 하는 마음으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갈 준비를 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래, 신(神)이 여기에서 살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냥 살려고 하겠냐 이말이예요. 그러니 보따리를 싸라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인연을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그것이 막연하기 때문에 걱정이지, 그곳을 확실히 알기만 하면 죽어도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이 길을 가는 것은 이 길이 틀림없는 길이기 때문이요, 이 길을 다 가고 나면 내가 닦아 놓은 수고의 터전을 그냥 그대로 인류역사에 상속해 주고 갈 수 있다는 데에는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 박봉식이는 하나님이 있는 줄 알아? 「예」 어떻게? 꿈에 가끔 나타나기라도 했나? 진짜 알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아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게 걱정이야. 왜 확신이 없어 ? 그래 박봉식의 식대로 해서 하나님이 해설이 되겠나? 안 되지 ? 상식적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믿더라도 확실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믿음이 확실치 못하면 천국에 데려다 놓아도 생활을 못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착실한 느낌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감촉할 수 있는 세포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뭐 하나님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하는 식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 군주를 중심삼은 국가라든가 제국주의 체제에서는 '왕' 하면 느낌이 척 들어오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하면 들어오는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지 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

공적인 활동과 사적인 활동을 중심삼고 볼 때, 공적인 활동은 하나님과의 인연을 하나 맺고, 둘 맺고, 셋 맺고, 자꾸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요? 느껴요, 안 느껴요?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좋은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와진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기어가 물려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가 절반만 들어가면 기계가 돌기 시작하지요? 그러면 그 모양은 볼수록 좋아지지요. 마찬가지로 공적인 생활을 하면, 하나님과의 인연이 하나 맺어지고, 둘 맺어지고, 셋 맺어지고 해서 엉클어지고 또 엉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바퀴가 돌기 시작하는 날에는 천지가 야단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신나겠어요?

사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라 갔던 심정이 내려간다면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다들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왔다는 패들이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나는 선배로서 후배와 다르니 선배로 대해 달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따위 생각은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얼마만큼 하나님을 아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영계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석온씨가 정성껏 기도를 하는데, 오늘 아침이라고 했나, 어제 아침이라고 했나? 「어제 아침입니다」 파주 간 날이군. 그런데 유협회장이 턱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랬다고 그랬지요? 「예」 석온씨가 예배를 드리는데 참 좋아하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유! 내가 세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살 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영계에 와 보니까 잘못한 것이 참 많구만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지상에 있을 때에는 몰랐지만 영계에 가보니 조건에 걸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해 주지 않았으면 그는 갈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협회장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일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풀어 줄 수 있느냐? 전에도 얘기했지만 풀어 주려면 두 가지의 내용을 갖추어야 됩니다. 첫째는 그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공적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그를 용서함은 물론이고 민족이 잘못한 것까지 용서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만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를 용서해 주고 민족이 잘못한 것도 탕감시켜 가지고 재차 용서하여 주겠다는 기도를 하고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나 들락날락하면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40일 전도를 하라고 했는데 안 했으면 걸리는 거예요. 참여하지 못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이 길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걸리는 것입니다. 가정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가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딸까지도 다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복귀섭리를 하시는데 6천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이 심정의 세계에 맺혀진 심정의 사연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사연을 갖지 않고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아들딸을 찾아 나오시기에 6천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 이상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 인륜의 참다운 성자가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찾아 나오기에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책임분담과 선생님이 필요한 이유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또 저런 말씀을 하는군' 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패들은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에게도 책임분담 5퍼센트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한테 책임분담 5퍼센트가 있어요? 선생님은 100퍼센트를 해야 됩니다.

그건 유협회장도 모르는 겁니다. 유협회장 생전에 얼마나 사건이 많았어요. 뭐 별의별 시시한 것들이 다 원리를 받아 가지고 뭐라고 해도, 유협회장도 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걸리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 사람 만 사람한테 있는 책임분담 5퍼센트가 전부 다 같아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수습해야 돼요? 거기에는 공식이 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의 책임분담 5퍼센트가 다 같느냐 말이예요.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에게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절대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만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혼자서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쭉정이들 같으니라고. 그래 여러분들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결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스스로 5퍼센트 책임분담을 해결할 수 있다면 선생님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공식을 모르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5퍼센트의 공식이 뭐냐 하고 물으면, '내가 알 게 뭐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지금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습니다. 뭐 선생님이 이중작전을 한다고요? 수작들 그만두라는 겁니다. 자기가 발단되어서 이중작전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벼락을 맞을 겁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들한테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완성권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여러분은 완성권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책임분담 5퍼센트가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아직까지 완성권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완성권내를 향하여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완성이라는 것은 7수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공식을 현실적으로 적용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복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원리를 배웠으면 원리적으로 생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친 노릇하고 있는 귀신 떨거지들이 많습니다.

그래, 5퍼센트가 어디서 필요한 것입니까? (도표로 설명하심) 여기서 떨어졌기 때문에 떨어진 곳에서 다시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려 가기 위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탄편과 하나님편의 길을 가려서 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오시는 주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믿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잘못하여 역적의 팻말을 꽂게 되면 여러분은 물론, 여러분의 선조까지 전부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훌륭하다는 것이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명령만 하면 그대로 따르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에는 별의별 수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의심이나 하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있다 하면 불신합니다. 하나님을 대하는데 그런 불신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 자체가 잘못됐어요. 그런 생각 가지고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무슨 판국이 되겠어요? 여러분에게 그럴 만한 무엇이 있어요? 깜깜 철부지들이 되어 가지고 말예요. 밋밋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담벼락을 넘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지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 등이 미완성권내에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까? (도표로 설명하심) 이것을 뛰어 올라가 이곳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이 자리(완성권내)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년노정을 세워야 됩니다. 이 7년노정은 선생님 홀로 가야 할 노정입니다. 이것이 5퍼센트예요? 누구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홀로 말없이 가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만 오면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그들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물어봤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물어 보는 것이 책임분담 5퍼센트예요? 물어 보는 것은 자유입니다. '천사장이 이러고 저러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하나님이 답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어 보지 않고 횡적 관계를 맺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물어 보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책임분닫 5퍼센트를 감당할 자신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날뛰는 별의별 귀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 가지고 언제 통일시키겠습니까?

원리라는 말은 공식이라는 말입니다. 원리가 뭐냐? 원칙적인 이치지요. 그러면 원칙적인 이치는 뭐냐? 공식입니다. 그렇지요? 이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야 하고, 이길을 가려면 믿음의 아들딸을 세워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전부 잃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해와, 즉 부모를 중심삼고 세 아들딸을 잃어버렸으니 이 세 아들딸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됩니다. 여기서(도표로 설명하심)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이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그러면 장성기 완성급에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실체기대를 복귀해야 됩니다.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권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원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원죄 청산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선생님이 어떤 조건을 중심삼고 축복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식 때에 성주(聖酒)를 마시는 것이 원죄를 청산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몰랐을 거예요. 이러한 절대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땅에서 사탄세계를 분립시켜 가려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를 중심삼고 실체기대를 통과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무엇이냐?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내가 메시아를 위해 세우는 기대이지, 메시아가 나를 위해 세우는 기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밤에는 좋아하고 낮에는 싫어하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들여보내도 감사히 갈 줄 알아아 됩니다. 그런데 꺼떡거리면서 선생님이 지금 어떻고 어떻다고 하며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귀신이요, 도깨비지 뭐예요? 그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해서 타락을 했는데,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면 복귀될 것 같아요? 그런 놀음에 춤추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별의별 것들이 다 와서 신경 쓰이게 합니다. 두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 하나님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신의 섭리, 즉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성을 띠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면 뭘합니까? 원리의 내용이 무슨 레코드 판인 줄 알아요? 그것을 그냥 그대로 재판(再版)하여 가지고 그것으로 전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자기를 위해 일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에 복종하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했으면 자신이야 망하든 흥하든 개의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을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으냐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교회에서 날 몰라 주고 뭐 어떻고, 선생님이 날 몰라 주니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선생 님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라는 겁니까? 결국 자기를 위하여 일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

대한민국은 남북이 하나되어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천만 가지도 더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그 일을 해도해도 입을 벌려 '나 쉬면서 하겠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입을 벌려 '나를 좀 알아 주소' 하는 사람은 깍정이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해 놓고 그럴 수 있느냐 이말입니다. 하나님은 개인복귀보다도 큰 세계복귀를 책임지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 사정을 중심삼고 그에게 가서 종살이를 해야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개인 하나를 복귀하려고 해도 밤낮 머리가 아픈데, 세계? 30억 인류를 전부다 복귀해야 할 책임을 진 하나님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기도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내 뜻대로 해줘야 하나님이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종이예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면 할 일이 많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걱정하고 일을 하고 나서도 부족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그것을 칭찬하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랑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렇게 했습니다' 하고 자랑하면 한때는 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고개를 넘을 때에는 지팡이가 필요해서 들고 가지만, 일단 고개를 넘고 나면 지팡이를 던지지 말라고 해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면, 하나님을 진짜로 알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나는 그분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분을 위해서 산다면 불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세계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문제인 것입니다. 나 하나 죽고 살고, 통일교인 몇 명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하나 망하 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제물삼아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세계가 우선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서 빨리 대한민국이 단결해서 남북이 하나되어 하늘 앞에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으로 말미 암아 세계가 속죄받고 구원받으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속죄받은 세계가 흥함과 더불어 대한민국도 흥하는 것입니다. 속죄받은 사람들의 나라와 그것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나라가 한 나라가 되면, 수고한 사람들의 나라가 하나의 중심적인 나라로 등장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모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까짓것 인사 안 해도 됩니다. 어디를 가면 인사를 하겠다고 '선생님, 여기에 앉으세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합니다. 바쁜데도 불구하고 떡 버티고 서서 '아, 인사를 받으셔야지요'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인사하려는 겁니다. 그것 받자니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보다도 더 바쁜 일이 있는데 꼭 인사받고 가야 돼요? 선생님에게는 할 일이 많은데 꼭 인사를 하려는 것은 누가 좋아서 그러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인사 안 해도 됩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자꾸만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인사를 안 하면 양심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사를 받고 나서는 칭찬을 해줘야 하고 알아줘야 하고 그렇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 칭찬해 주기를 바라고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오늘날까지 알아주기를 바라고 칭찬을 받겠다고 이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삼천만 민족에게 별의별 규탄을 다 받고 별의별 욕을 다 먹었어도 끄떡없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전체가 나서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쫓아내겠다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끄떡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것은 각오한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가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보다 더한 때가 와야 합니다. 빨리 이러한 때가 지나가고 그 이상의 것이 있는 때가 와야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초반전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기 전에는 침묵하라

내가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다면 왜정 때부터 감옥살이를 하고 이북에서는 물론, 남한에 내려와서까지 감옥살이를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했을 것 같아요? 취미삼아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놀음을 할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은 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 놀음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바보나 천치는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똑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괜히 이러구 저러구 입을 벌린 적이 없습니다. 밥 먹는 입으로 불평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통일교회의 방침이 아닙니다. 그러는 사람은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외부 사람을 안 만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때가 되기 전에 나가서 설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도 앞을 막아 버리고 사탄도 막아 버립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도 귀한 것이 있으면 자랑하지 않지요? 보물을 가졌다고 해서 '나는 다이아몬드 몇 캐럿 짜리를 가졌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다이아몬드가 요것이다' 하면서 자랑하고 다니면 며칠 안가서 칼침을 맞는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을 짓고 안팎으로 준비가 다 되어 환경이 무르익었을 때 귀한 그것을 갖다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어떤 사람이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왜 안 짓느냐?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교회 지을 돈은 있습니다. 당장에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리를 잡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에게서 자리를 잡아야 되고 가정에서도 자리 잡아야 됩니다. 가정에서 자리를 못 잡아 가지고는 제사장이 못 됩니다. 진짜 제사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처끼리 싸움하고 교회에 나와 가지고 예배드리면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 같아요? 교회에 하나님을 모시기 전에 먼저 가정에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전후 관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내 나이가 50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같은 젊은 사람한테 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뜻을 이루기 전에 지칠 수 없습니다. 왜 ? 하나님이 어떤 입장에 계신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여러분은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이 뜻길에서 떨어진다 해도 나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나만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세상으로 흘러가고 싶으면 이 길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자유가 나보다 많겠지만, 나는 그 길을 홀로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구는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다 남의 집 사람들입니다. 자기 집에 어려움이 있는데도 자기 집을 헐고 뜯고 해서 자기만 편안히 잘 먹고 살려고 하는 놈들이라는 겁니다. 교회 팔아먹는 사람들은 도둑놈들입니다. 또 입을 벌려 가지고 누구는 어떻고 어떻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내가 많이 봤어요. 앞으로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런 말을 한 사람을 기필코 찾아서 모든 것을 전부다 그 사람에게 덮어씌우겠습니다.

그런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내가 알면 그 사람의 입에 대못을 박든가, 큰 나무통에 대못을 박아서 거기에 꽂아 세워 놓든가 할 것입니다. 하늘 길을 가고 하늘 뜻에 협조하지는 못할 망정 그 길을 막고 다른 사람 가슴에 못을 박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것은 다 탕감짓고 넘어갈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하는 말의 뿌리를 캘 것입니다. 그 뿌리를 뽑을 것입니다. 청산짓고 넘어간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요즈음 뭐 어떤 이가 외국에 선교사로 가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해 가지고 '교회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협회본부에서 하지 않은 말들을 해서 문제를 만들었다고요? 왜 혼자 고생하는 사람에게 딴 마음을 품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별의별 일을 다하고 있어요. 전부다 내가 들은 말입니다. 이제는 그런 것을 깨끗이 청산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데데한 사람이 아닙니다.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손을 대는 날에는 깨끗이 뿌리를 뽑든가 청산짓든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단단히 훈련된 사람입니다. 기도도 여러분 이상 하고 생각도 여러분 이상으로 많이 합니다.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진짜 안다면 힘들다, 뭐가 어떻다, 내가 없으면 딴 사람이 하겠지 하는 그런 구경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들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좋은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것은 자기를 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그런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아느냐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아느냐는 거예요. 어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생각 하는 사람,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은 잘 들지요. 그래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고 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겠어요? 지금 때가 어느때인지, 뜻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밤낮 움직이고도, 벌벌 기어 다니면서도 '아직도 저는 부족합니다'고 해야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왔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갈 것인가를 염려하고, 오늘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염려하면서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조금 쉬었으면 하고, 뭐 이젠 됐다고요? 그게 무엇입니까? '됐다'가 뭐예요?

여러분은 이제껏 말씀한 내용을 쭉 들어서 시대적인 모든 내용이 어떠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이끌고 갈 것인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상태 가지고도 안 됩니다. '계신다'고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는데 그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알고 있는데 설명을 못 한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 꿀 먹은 벙어리란 말을 알지요? 벙어리가 꿀을 먹고 좋아하는데, 꿀 맛이 어떻다고 그 벙어리가 아무리 손짓 발짓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여러분이 그 맛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벙어리는 꿀 맛을 압니다. 지혜롭고 똑똑하여 천하를 다 아는 지혜의 왕자라도 꿀을 못 먹어 봤다면 꿀에 대해서는 꿀을 먹어 본 벙어리가 선생입니다.

그렇지만 그 벙어리가 아무리 맛있다고 설명을 해도 여러분이 그 맛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년 동안을 들어 봐도 모르는 것입니다. 벙어리가 그 맛을 알려주려고 먹은 것을 토해 주면 그것을 먹어 보아야 되겠어요, 안 먹어 보아야 되겠어요? 토하는 데 안 나오면 주먹이나 손가락을 넣어 가지고 토해서 아까운 것이라고 하며 먹어 보라고 할 때 그 맛을 알려면 먹어봐야 되겠어요, 안 먹어 봐야 되겠어요? 여러분, 그것을 먹을수 있어요? 그런 비위가 있냐 말예요. 꿀 맛을 알려면 그것이라도 냉큼 받아서 먹어 봐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꿀 맛을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 은혜받는 할머니들을 보면 전부다 꿀 먹은 벙어리의 모습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벙어리가 꿀 먹은 모습을 해 가지고 콧물 질질 흘리는 모습이 요귀나 마귀 사촌이 다 됐습니다. 보기만 해도 나자빠질 모습을 하고 다닙니다. 깨끗이 하고 다니면 모르는데 왁자지껄해 가지고, 귀신이 다 되어 눈만 반짝반짝해 가지고 하나님을 믿자 하고 다닌다는 거예요. 그러니 거 믿겠어요?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믿겠어요?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남들보다 무엇이든 더 나아야 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선생님이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요즘에 와서는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지만 옛날에는 무수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반대하고 핍박하는, 별의별 일을 해 가지고 소문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갈 길에는 반드시 이런 일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나가면서 원수의 소문을 책임지고 깨끗이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후손들 앞에 가르쳐 줄 수 있는 재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아할 게 뭐예요. 종새끼 중에 그런 종새끼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철부지한 것들이라서 푼수나 있어요? 또, 할머니들이 기도하여 능력을 받는다고 해도 푼수가 있어요? 세상을 모르니 푼수가 없어요, 푼수가. 그러니 거기서부터 가려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교차점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골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역질을 해서 여러분들에게 먹으라고 해도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고 나서 죽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 맛이 어떤가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때려 잡나, 살려 주나 해보라는 거예요. 여러분을 소망의 사람으로 만드는가, 절망의 사람으로 만드는가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60년대에 임지에 나가서 전도하고 올 때 나빴어요, 좋았어요? 전도하고 올 때 투닥거렸어도 좋았어요, 나빴어요? 밥을 굶었어도 그때가 그립지요? 왜 그립습니까? 나빠서 그리운 거예요? 그것은 생명의 힘줄을 얽어매 가지고 잡아당기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한, 거기는 하나님과 가까운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야, 아무개야' 하고 부르시면, 모습은 망둥이 같지만 '예' 하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이라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스승을 만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있는 신령한 사람을 다 만나 보았고 일본까지 가서도 찾아다녔습니다. 박재봉 목사 등 누구누구 신령하다는 사람은 다 만나 봤어요. 그래 가지고 누구는 몇 점짜리고 누구는 몇 점짜리라고 점수를 매겼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모르면 말하는 것을 못 믿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믿지 못할 일을 너희들 전부다 믿어라'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는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부다 믿으라고 하는 세상이 어디냐? 믿으라고 하는 세상에서는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믿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의 기도제목 중에 중요한 하나는 '내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나에게 불신의 조건만 가져다 줄 뿐이고 하늘을 가장해 가지고 '나를 믿으면 하늘이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믿고 나가면, 끝까지 내가 그렇다 하면 너도 하나님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하는 신앙을 갖고 나왔습니다.

위장전술이라는 것은 사실 앞에는 패배하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는 판가름이 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거짓된 것을 통해 가지고 가는 길이 참 앞에 가까이 갈수 있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적과 접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의 사령관이 있는 장소는 그의 부하들 보다도 적이 먼저 압니다. 사령관을 직접 모시는 참모 외에는 부하들보다도 원수가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 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안하는 겁니까? 왜 안해요? 두고 보라구요. 저나라에 가서 하늘의 법도에 걸리나 안 걸리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믿겠으면 목을 칼로 찔러 죽어서 당장 알아 보세요. 내가 거짓말을 했나 참말을 했나.

유협회장도 영계에 가 보니까 그것이 실감나던 모양이지요? 지상에서 같이 살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친구 같았겠지요. 말로는 선생님 같이, 부모 같이 대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처음 만난 그때 보다 더한 마음을 가지고 모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어 가지고 전통을 세우기를 바란다면 군말이 없다는 거예요.

공적기준을 중심삼고 생활하라

여러분은 자기 부모와 자식들과 같이 살던 그 생활기준을 중심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맡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운을 가려 가야 하고 또한 하늘 가정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주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아들딸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걸려 있고 세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공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공적인 일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요, 부모로부터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인격 기준으로 볼 때 그들도 감동할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남아지는 것이 공적인 생활이요,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감퇴시키는 것이 사적인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길을 가는 데는 공적 기준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 축복 대상자들을 모아 가지고 한마디 물어 보았습니다. 전도도 괜찮게 하는 사람에게 딱 한마디 '야, 이렇게 이렇게 되었을 땐 어떻게 해야 되지 ? ' 하고 물어 봤던 것입니다. 그때 그가 대답하는 한마디에 그를 판단할 수 있는 열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 대답이 진지한 얘기인지, 그냥 말로만 하는 얘기인지는 내가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감정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말은 제2차적인 것입니다. 표정과 눈을보면 척 알수 있습니다. 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눈이 또렷또렷하고 말을 떳떳 하게 한다 해도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이번 교육 때에도 1차건, 2차건, 3차건, 4차건간에 두고 보세요. 얼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90퍼센트 이상 알 것입니다. 많은 증거를 받았으니 말예요. 어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요? 「예」 자기 자신은 진짜인지 잘 모르잖아요? 대개 외부의 증거를 통해서 알지요. 그렇지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다 그래요.

지식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입니다. 수학도 배워 가지고 아는 것이예요. 그렇지요? 어떤 사람이 '그것이 하나라고 하는데 왜 하나요?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어요? 나는 그것을 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게 되면 어떡하겠어요? 그것을 믿어야 되겠어요? '하나에 둘을 합하면 왜 셋이냐? 다섯이 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 어떡하겠어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정해진 것을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들어맞아서 공식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보고 믿어요?

여러분, 원자라는 것이 있지요? 여러분도 원자라는 것이 있다고 믿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원자를 봤어요? 원자가 있다고 믿는 것은 어떤 감응작용을 통해서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그 반응을 보고 그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봤어요? 하나님이 있다고 가정해 가지고 찾아 보니, 그 반응적인 현상이 실존하는 것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계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보고 믿겠다고 하는 사람은 공부고 뭐고 다 그만두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모든 것을 다 체험하고 실험해 가지고 언제 다 알 수 있어요? 벌써 척 대해 보고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세 사람만 증거하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가져라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진짜 사랑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민족과 더불어 관계를 갖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이 어려 있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한 마음이기 때문에 민족과 같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통해 자기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 나갈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지금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 마음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선생님의 갈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위정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그 나라의 백성들을 통하여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왕은 백성을 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군왕의 운명을 판단해 주고 군왕의 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내용은, 상좌나 관원, 각료 같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을 가는 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어디를 갈 때, 내 주위에 천운이 같이하고 어떤 운세가 같이한다면 나는 그 운세를 몰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운세를 맞기 위해 정성들인 사람은 대번에 나와 상대관계를 맺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는 최고의 희망의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들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은 기쁨이 서로 일체가 안 될까봐 6천년 역사를 거쳐오는 과정에 정성들인 모든 것을 그 사람과 부딪치는 순간에 제일 귀한 것으로 결정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의 갈 길을 제시해 주는 제2, 제3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된 것을 다 압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쭉 통합해 보면 어떤 때가 됐는지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일반 영통인들은 선생님을 많이 압니다. 요전에 한번은 영통인들이 선생님을 만나려고 교회에 와 가지고 '여기가 청파동 통일교회입니까? ' 하면서 식구들은 제쳐 놓고 선생님을 만나자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보고를 들어 보면 선생님이 지금부터 어떻게 해 나갈 것이다 하는 것을 나발 불어 놓는 거예요.

자신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갖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때가 이렇기 때문에 그런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복귀시키는 길

같은 목표 아래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리에 서는 사랑하는 스승이면 스승, 제자면 제자 등 주위 환경의 사람들을 통하여 중심존재의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복귀섭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은 양자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요, 양자는 아들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적으로 볼 때에, 종에서부터 양자, 양자에서부터 아들, 아들에서부터 부모의 위치를 찾아 나오기 때문에, 부모는 아들이 충성하는 것을 보고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은 또 양자가 충성하는 것을 보고 부모 앞에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는 아들이 어떻게 할 때 제일 좋고 기뻤는가를 생각하여 그것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생각하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아들은 양자가 자기를 대해 어떻게 할 때 좋았는가를 생각하고 그대로, 또 자기가 양자를 대해 어떻게 해주길 바란다면 100퍼센트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모 앞에 효하여 효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양자한테 배워서, 공인을 받지 않더라도 효자의 길을 찾느라고 수고하여 배우겠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양자도 복귀될 수 있고 아들도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아벨이 가인을 복귀시키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다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서 귀결되느냐?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아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들이 집을 나가서 틀림없이 죽게 된다는 자리에 들어갔다고 하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겠어요? 여러분이 그 이상의 슬픈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만 한다면 굳이 교회에 오라 마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생활하는 맛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과 같이 생활하는 맛을 보았느냐? 그런 맛을 본 사람은 돈이 아니라, 매일 고기 실컷 먹고 살도록 해준다 해도 거기에 안 갑니다. 그것은 전부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아주머니들, 아들딸들을 가진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정말 그렇습니다. 자기 아들딸이 효자 효녀여서 좋다고 야단이지만, 두고 보십시오.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벌어지고 가정이 파탄된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딱 한마디를 하게 되면 '흑'하고 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 말 한마디를 안 들으면 내가 가만 있어도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큰 소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감이 어떻게 되고 자기 집이 묻힌다 해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온 아주머니들, 세상사 잊어버리고 나왔으니 끝까지 버텨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재산이요, 그것으로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탕감해야 됩니다. 고생으로 시작한 사람은 고생으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욕을 먹고 핍박을 받더라도 가정적인 터전이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처음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땀 흘리며 살자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나라를 굴복시킬 때까지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억천만금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편안한 자리에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들이몰 것입니다. 피땀으로 뿌렸으면 피땀으로 거두어야 되는 겁니다. 시작했으면 시작한 것으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축복가정

1960년대는 개인을 중심삼은 탕감시대였고. 1970년대는 가정을 중심삼은 탕감시대입니다. 그래서 70년대에는 가정을 고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통일교인을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 이것은 절대적인 방안입니다. 가정을 고생시키는 데에는 아들딸까지도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모자협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을 중심한 가정적 사위기대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이 섭리이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삼은 모자 협조, 모녀 협조와 같은 입장에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따라가서 고생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어떻게 이루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970년도부터는 가정이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이런 가정이 나와야만이 삼천만 민족의 모든 가정들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 종족의 가정 전체가 이 민족을 대표해서 고생을 해야 됩니다. 민족의 역군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70년대에 제2차 7년노정을 통해서 가정을 중심삼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정적인 탕감을 짓기 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개인의 탕감노정이지만 선생님에게는 가정적인 탕감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종족적인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여러분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한단계 앞서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부인들을 전부 다 동원하라고 했는데 임지에 내보냈어요, 안 내보냈어요? 여기에 축복가정들 손들어 봐요. 전도하라고 내보낸 사람은 손을 내리고, 안 내보낸 사람만 손들고 있어요. 왜 안 보냈어요? 너는 왜 안 보냈나?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뭘 하고 있어? 「조그만 일을…」 다른 사람도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보냈겠나? 거 잠깐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일하면 될 거 아냐? 「며칠 있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나가야지요」그럴 것을 왜 안 내보냈느냐는 거예요?

앞으로는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해 가지고 믿음의 아들딸까지 고생시켜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은 가정들이지만 앞으로는 믿음의 아들딸로 축복받은 사람들을 전부다 고생시켜야 됩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자녀에 대한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이 3대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은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자

내 대에서부터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의 아들딸들이지요? 「예」 그러니 나가서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3시대를 고생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그 다음에 자녀복귀 노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선의 번식 노정입니다.

그러면 복귀하는 데는 그냥 복귀할 수 있느냐? 싸우지 않아도 그냥 복귀 돼요? 사탄을 찾아 사탄을 쳐서 이기고 넘어야 복귀가 되는 것이지, 그냥 가만히 있어 가지고 개인이 복귀가 되겠느냐 말예요. 가정이 가만히 있으면 가정이 그냥 복귀가 돼요? 아들딸이 서로 같이 살면서 가만히 있는데 복귀가 되느냐 말입니다. 선의 번식이 되느냐 하는 말이예요? 안된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자녀에 대한 십자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게 되면 종족과 민족을 위해서 그것까지 선생님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고 앞으로는 자식들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여러분 가정의 아들딸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전부다 대신 수습해 가지고 탕감시켜야 할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해 가지고 해가 되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도움은 못 주나마 쪽박을 깨뜨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겁니다.

한 나라를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도 지켜야 할 비밀이 많은 것입니다. 하늘땅을 세워 나가는 데에는 여러분한테 말 못 할 사연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들은 하늘의 비밀을 파헤쳐 가지고 아버지를 깊이 알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있더라도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집을 찾아가서 '야 ! 너는 이렇게 가야 한다'고 권고할 수 있는 아들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데 선생님은 어떠한가요? ' 하며 여러분 자신을 선생님과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심정은 생활속에서 느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참한 입장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해방입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해방이란 현세계 정세를 해결지을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나오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세계나 민주세계가 자연히 굴복할 수 있는 새로운 주의가 나와야만 남북의 자유로운 통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러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후좌우가 교차되는 세계 정세 앞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인류와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출발한 교회입니다. 내가 먼저 그것을 실제로 자각하고 새롭게 인식하여 느낌으로써 전체가 그것을 느낄 수 있게끔 만들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심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생활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같이 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고 오고, 오늘은 좋겠다 나쁘겠다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감별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언제나 마음놓지 못하고 모시는 생활을 해야 돼요. 어디를 갔다 와도 보고해야 되고, 안 가더라도 집에 있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잠을 깼으면 깨었다고 보고해야 하고, 어디를 가겠으면 다녀오겠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겠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대하게 될 때에도 '야! 맛있다' 하고 개처럼 정신없이 먹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 제가 이런 음식을 아버지께 준비해 드리고 먹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먹으라고 하는 명령이나 그런 느낌이 전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해방의 기준

지금도 선생님은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그렇고, 오더 라도 그렇습니다. 어디에 나가서 소변을 볼 때도 사탄의 자식들이 소변을 보는 곳에서는 보지 않습니다. 그런 곳을 피해서 깨끗한 곳을 찾아 다닙니다. 어디에 가서 앉더라도 제일 높고 깨끗한 자리를 택해서 앉으려고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함부로 못 사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서 앉더라도 반드시 청소를 하고 앉습니다. 이런 생활은 감옥살이 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앉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니, 건달 중에 상건달들만 모였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황혼의 석양빛이 서산에 깃들 때가 되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애의 마음 같은 것이 생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린애가 학교에 갔다 와서 집안을 쓱 돌아보고 형제들이 있어도 부모가 없을 때에는 '아무도 없구만' 한다는 거예요. 형들이 다 있는데도 아버지,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마음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의 눈빛에는 그리움이 이는 거예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립다는 거예요. 부모의 품이 그리우면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부모의 품에 흠뻑 젖어 들어가서 그런 마음을 충당할 수 있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왜 그런지 모르게 사람들이 자꾸 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어떤 곳을 가려 할 때 무엇이 앞을 막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면 마음이 막는 것입니다. 마음은 벌써 어디를 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마음이 반기는지 안 반기는지 하는 것을 늘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해방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 그것을 책임지는 충신이 되겠다고 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그 나라를 대해서는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 애절하고, 심각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 그 하나님 앞에 아들딸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하며 나서게 될 때, 그는 세계를 위하는 충신이 될 수 있고 성현들이 세계를 위해서 하지 못한 도리를 다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통일의 길 가운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내가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그렇다는 거예요. 한스런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에, 선조들이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해서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남아진 제단 위에서 하나의 법도에 의해서 빚어진 것이 너와 나, 그대와 내가 아니냐, 결국 가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볼때 우리는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발판으로 삼고 남자는 오른발 여자는 왼발로 딛고 꼭대기에 올라서서 호령하고 싶어하시니, 하나님이 행차하실 때 수레를 타고 오신다면 수레바퀴를 받들 수 있는 머리가 되고 손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천지는 요동하더라도 우리 가정만은 절대로 요동할 수 없다는 기반을 갖추어야 할 것이 축복받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믿고 실천해야 발전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우닥딱딱 싸움질이나 하고 그래요?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뜻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당신이 망하는 건 좋지만 나까지 망할 수는 없다. 나는 오직 뜻을 위해 이 길을 가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해서 실적을 쌓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는 남자의 권위를 갖고 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성질을 가지고 아내를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하늘이 보내준 사람으로 생각하여 남편을 하나님 이상으로 사랑하게만 되면 틀림없이 가정에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남편은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선생님은 이런 남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건 이렇기 때문에 이래야 되는 거라고 합니다. 체면을 잃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전부다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중심인 주체라면 아내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체인 남편이 매를 맞는 다면 그 아내는 아내의 자리를 밟고 넘어서서 남편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희생시키더라도 남편을 귀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아내가 먼저 희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함부로 희생시킬 남편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남편은 아내를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명을 바쳐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생활 속의 모든 사소한 일, 혹은 몽시 하나라도 둘이 의논하고 분석 비판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런 것을 의논하여 어떤 결론이 확실하다면 둘이 손을 붙잡고 '아버지여 ! 저희 가정에 이런 사연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축복을 받은 가정으로서 훗날 민족을 대신한 깨끗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저희의 나이 몇 살때까지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요셉 가정에 있어서 요셉이 훌륭했다는 것은 천사가 현몽하여 요셉에게 가로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한 것을 믿고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점점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암시가 오기 전에 몽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도하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뜻을 분석해 가지고 기쁨을 얻기까지는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정성을 들여 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려고 할 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벌써 기분이 안 좋습니다. 육감이 나를 헤아려 준다는 것입니다.

암시와 체휼신앙

선생님이 길을 가려고 차를 척 타고 나서면 벌써 안 좋은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코스를 달리 잡습니다. 그런 영감(靈感)이나 체감이 옵니다. 체감이라는 것은 체휼적인 신앙생활에서 생깁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전봇대고 무엇이고 간에 그것을 붙들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때를 몇번만 놓치게 되면 그런 기회는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쳐 버리면 그것은 절대로 나에게 플러스(+)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힘이 되어서 나를 밀어젖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체휼신앙을 하는 데 있어서 암시란 무엇이냐? 여러분, 암시라는 것을 알지요?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복숭아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푸드득 날아갑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연상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3의 조건을 통하여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느껴진 첫 감정은 언제나 키워 나가야 됩니다.

어디를 가다가 어떤 사람을 척 볼 때, 섬뜩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살인을 하러 가거나 살인을 하고 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오는 느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감, 그러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키워 나가면 암시적인 내용을 빨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식구들과 집에서 살 때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소리가 있지요? 그 중에는 좋아하는 말, 슬퍼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다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하는 음성에 따라 기준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애들이 싸움질을 하려고 할 때, 혼자서 가만히 그것을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으앙' 하고 울 때에는 부모를 붙들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서 우는 것입니다. 가보면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런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제3의 조건을 통해 실상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 예민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오는지 선한 천사가 오는지,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게 해주는 암시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영적 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을 틀림없이 알 수 있습니다. 안테나가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또한 몽시를 통해서 다음날 되어질 일을 전부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에 엄청난 입체적인 내용이 벌어 집니다. 그러니 몽시를 받으면 진지하게 해석해 보아야 됩니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받은 몽시입니다. 그러한 몽시와 계시를 통하여 영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시를 우리가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활속에서 되어지는 상황을 관찰해 보면 자기 마음에 느낌이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자

협회장은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지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내가 협회장에게 미리 이야기합니다. 오늘 누가 올 테니까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협회장이 가서 만나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기준을 중심삼은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영계와 우리는 주체와 대상의 입장입니다. 그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큰일을 못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몽시 가운데 되어진 일을 연구해야 됩니다. 연구하고 분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볼 수 있는 몽시의 타입이 다릅니다. 무슨 몽시를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긴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사람마다 전부 다릅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것은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교회에 쓱 들어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보면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이 그러지 않는데도 '이놈의 자식, 나쁜 자식 같으니라구'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입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 보면 수개월을 못 넘어갑니다. 얼마 안 가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부터 하나 둘 셋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전부다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이 땅에 안 떨어지기에 이것에 대해 순응하는 가정들은 세계에 있어서 존대함을 받지만 순응하지 않는 가정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자기를 잘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나는 어떠한 자리에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심부름할 사람인지, 공적으로 쓰일 사람인지, 주위의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될것인지를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맨 밑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모든 영광을 갖다 주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갖고 싶어하시니, 당신이 받으소서. 나는 당신이 그것을 받으시고 나 이상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해야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대한민국을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면 '당신이 대한민국에 바라시는 뜻이 이루어져서 당신이 기뻐하신 후에야 내가 기뻐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날을 갖기를 바라시고, 또 우리가 그런 날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시며 고대하고 나오십니다. 따라서 그런 일을 자기가 다 했더라도 먼저 나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고 땅의 것은 땅에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저 선생님으로부터 돈이나 좀 나왔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선생님이 지구와 지역을 순회하면서 '내가 너희들에게 돈을 좀 대주면 어떻겠느냐? '고 했더니, 서로들 많이 받아 가려고 날뛰는 거예요. 내가 그것을 보고 '이놈의 자식들아!그 돈을 많이 타 가면 타 갈수록 빚을 많이 지는 것이다. 그 돈을 교회의 입장에서 써야 할 가치를 느껴 가지고 쓰게 되면 괜찮지만 너희들에게 그럴 자신이 있느냐' 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특사를 했을 때 여러분이 그 한계점을 넘어서 욕심을 부렸다가는 그것이 조건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몇 천배로 가중되어 여러분의 일생 앞에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걸 몰라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을 얼마나 많이 줬어요? 있는 축복은 다 주셨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있는 것까지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입만 벌리고 있으면 받을 수 있어요?

이 중심의 자리에서 반대의 자리로 일시에 획 떨어진다면, (판서하심) 아침에는 말짱했는데 낮에 갑자기 획 천지가 뒤넘이친다면 그 이튿날에 어떻게 되겠어요? 세상 사람들 같으면 하나님이 다 뭐냐고 하면서 별의별 말을 다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이미 알고 있어요. 그때는 빨리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빨리 돌아가라는 거예요. 돌아가는 시간이 빠를수록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큰 기어, 혹은 바퀴가 있으면 그것의 위와 아래가 차이가 없이 되려면 일년이 걸려서 돌아야 되겠어요, 똑딱하는 순간에 몇 바퀴를 돌아야 되겠어요? 똑딱하는 순간에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것이 높은 것으로 남아지고 낮은 것이 낮은 것으로 남아 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엇바뀌면서 전부다 높은 것으로 화할 수 있으면 세계는 통일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이해가 됩니까? 「예」 그렇게 되면 낮아도 하늘이요, 높아도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겪은 일

이런 선생님을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데려가더니 감옥살이를 시킵니다. '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고 어때? ' 하면서 살인 강도들 있는 데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종살이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종살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살인 강도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굴복해야 합니다. 100퍼센트를 먼저 굴복하는 것이 하늘입니다. 그렇게 1000퍼센트 굴복을 하면 900퍼센트는 살인 강도가 나한테 굴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말을 하지 않고도 살인 강도의 스승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비밀을 나에게는 숨기지 않고 전부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올 때에는 그 감옥에서 제일 악한 사람도 선생님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길입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갈 때, 그곳의 구치과장이 처음 온 사람들을 인솔해 가서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그때의 그 과장을 두고 두고 잊지 못 할 겁니다. 지금은 그 사람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그때 그 녀석이 나를 보고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어떻다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구만' 하고 비웃 었습니다. 그때 내 기분이 상당히 나빠서 시끄럽다고, 집어치우라고 해놓고 내가 여기서 나갈 때는 반드시 형사와 간수들, 소장까지도 굴복시키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에서 전도하고 그러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며칠이 지나니 아침에 나에게 와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는 거예요. 누가 인사하라고 해서 하겠어요?

어떤 때는 가만히 있으면 그들이 아침에 와서 그냥 슬쩍 지나갑니다. '네가 그냥 지나가지만 가다가 다시 와야지' 하고 생각하면 아니나 다를 까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왔다가 다시 갑니다. 그러면 내가 또'네가 다시 와서 인사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또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나를 찾아와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날 아침에 떡을 해먹었는데 떡이 목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더라는 거예요. 떡이 왜 안 넘어갈까 요? 조상이 걸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조들이 선생님을 푸대접 하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을 알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떡을 해먹다가 혼이 났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을 이미 알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나보고 '스승님' 합니다. 내가 그들의 약점을 알거든요. 그런 뒤로는 선생님의 심부름을 잘해요.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올 무렵에는 서장까지 찾아와 가지고 여름이라고 참외를 사 주고 수박을 사 주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간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을 증거하는 몇 달 동안에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 내가 증거받겠다고 그를 전도하겠어요? 선생님이 전도하지 않아도 전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갔을 때 입을 다물고 있어도 영계에서 직접 전도해 주었다는 이야기 했지요? 박정화라는 사람도 그렇게 전도되었던 사람입니다.

제2해방과 제3해방의 의의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누가 망하라고 해도 망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감옥 이상 악한 데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는 망할 곳입니다. 그런 곳에 넣어 망하라고 해도 망하지 않고 흥하니, 여기에서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나오게 될 때에는, 악의 점령권내에서도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남한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많이 받았지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바탕 떠들다가 갔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혼자 가서 활동했지만 이제는 부부가 가고 아들딸까지 데리고 가서 집을 사 놓고, 별장을 지어 놓고 살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당장에 좋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장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만으로 계속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으로 계속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좋을 때는 탕감역사가 없는 때라는 거예요. 그러나 탕감역사를 해야 할 때에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난 후에는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려면 죽음의 골짜기에 가서 피를 뿌려야 되는 겁니다. 그 피를 밟고 넘어서야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떨어진 이 세상을 박차고 올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해방이 되어 지금까지 지내 온 이 민족에게는 이제 1970년대를 중심삼고 제2해방, 제3해방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이 나라 이 민족에 대한 해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남한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남한을 중심삼고 북한을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1의 8. 15해방도 있었지만 민족복귀를 위해서는 제2의 해방인 남한의 해방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제3해방을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의 책임

해방하는 데는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니만큼 제2해방은 제1해방보다 더 어렵습니다 제3해방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러한 제2해방, 제3해방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해방의 원천과 동기는 인간을 중심삼고는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천이 되어 있고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정세라든가 우리 나라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 절박한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있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라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라와의 관계보다도 강하게 맺어질 때에는, 천운을 중심삼고 맺어진 관계가 더 강하게 될 때에는 인간이 죽음까지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선생님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믿지 않습니다. 현정부의 주권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삼천만 민족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이 나라의 주권을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뜻을 위해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뜻에 보조를 맞추어 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책임이요, 통일교회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생활환경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전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다 위대하고, 보다 많이 어떤 주체보다도 더 강하게 관계맺어 거기에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체가 제2해방, 제3해방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7년간 제2, 제3해방을 완수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란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을 알아야만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아버지, 달려가고 있는 이 세계의 흐름을 그 누구도 정지 시킬 수 없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는 세계의 종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공산세계도 이미 종말을 고했고, 민주세계도 이미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 종말 가운데에 아버님이 좌정하실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새로운 움직임이 이 천지간에 나타나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온 천지는 암담한 암흑세계에서 영원히 해방되지 못하고 신음과 질고와 환난 가운데 싸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잃어버렸던 아버님을 다시 찾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가던 발걸음을 다시 돌이켜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등의 모든 사상들의 체제와 현실적인 모든 여건을 끌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의 주체이신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무한한 가치의 중심인 아버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이 한 내용을 중심삼고 시간 시간의 생활권내에서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느냐가 문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제2해방. 제3해방을 필요로 하는 이 역사적인 환경권내에서, 이것을 극복하고 또 극복할 수 있는 힘과 가치를 스스로 보람차게 파헤쳐 가지고 그 마음에 어떻게 통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이 시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교인들은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이제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생활감정을 통해서 알아야 되겠사옵고 각자 몸의 세포의 작용을 통해서 감지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 모두가 고귀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를 위해 피땀을 흘릴 수 있는 거룩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땀과 눈물이 떨어지는 그곳에는 아버지와의 끊을 수 없는 사연이 엉클어지고 복귀의 터전 위에 찾아 나오던 당신의 수고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흘리는 눈물은 아버지께서 흘리시던 눈물을 대신하여 땅의 눈물로써 맺혀질 것이요, 저희들이 흘리는 피는 아버지가 흘리시던 피를 대신하여 땅의 피로써 맺혀질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의 수난의 길에 들어선 그날부터 이것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시작한 그 자리에서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아버지의 뜻이 있기에 4천년 역사과정에서 피어린 투쟁의 과정을 면치 못했던 제1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았사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이 제2이스라엘을 통하여 제3이스라엘로 나오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제2이스라엘권으로써 피어린 순교의 제단을 모면할 수가 없었던 것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영육을 중심삼은 제3이스라엘권인 한반도를 선택하여 새롭게 출발하신 당신의 거룩한 뜻 앞에 부름받은 자신들이 어떤 자리에 섰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지금 자신이 10대, 혹은 20대, 혹은 30대, 혹은 40대의 연령층에 있지만 자신의 그 모습은 과거 역사과정에 있었던 그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복귀섭리를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전체의 모든 예감을 통한 모습임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자신의 모습이 지극히 작고 미천하더라도 그 미천한 자리에서부터 지극히 큰 것이 출발하게 되고 이렇게 극소한 자리에서 전체의 핵심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는 아버님으로부터 왔고 아버님에 의해 남아졌고 이제는 아버님과 더불어 가야 할 운명임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자각된 모습으로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딸이 여기에 왔다고 하면서 아버지와 의논하고 약속할 수 있는 결판장이 저희의 마음과 몸 가운데에, 혹은 환경의 어느 한 곳에, 혹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기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천번 만번 불러왔사옵니다. 그 아버지를 판에 박은 듯, 혹은 습관적으로 불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하고 부를 때에는 아버님을 향하여 끓는 피가 골수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세포가 하나로 단결되어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된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 부를 수 있는 자각된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슬퍼하시던 그 심정을 저희들이 느끼게 될 때에는 , 그것이 스스로의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정으로서는 막아낼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와 접하여 기쁜 마음이 넘쳐 흐를 때는 이 땅 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된 모습으로 스스로를 높여 아버지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아들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보기에 추한 저희들을 흰옷보다 더 희고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하늘의 왕자 왕녀로서의 권위를 갖추어 주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놀라우신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황공하고 망극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고 눈물없이는 당신을 부를 수 없사옵니다. 여기 있는 아들딸들이 이러한 것을 절실히 느끼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40일 하계 개척전도기간에 지방에 나가 고생하고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고생하며 흘리는 땀과 눈물의 양과 도가 아직까지 차지 않았다면, 또다시 그들을 내몰아서 채우게 해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통일교회의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 하고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시작하신 분이 당신이기에 그 결과를 거두셔야 할 분도 당신인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과정이 10년, 혹은 20년을 넘어 일생을 넘더라도, 아니 그 3배, 10배, 30배를 거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임을 알고 거기에 순응하여 천의(天意)에 따라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해방과 우리의 책임'을 생각할 때에, 해방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당신이요, 해방의 모체가 되는 것도 당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의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온 피로 인해 동맥의 맥박이 뛸 적마다 저희의 맥박도 뛰게 하여 주시옵고, 정맥에 흡수되는 힘이 부딪칠 적마다 저희들이 아버지께로 끌려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동(動)하면 저희들도 동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정(靜)하면 저희들도 정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기뻐하시면 저희들도 기뻐해야 되겠 사옵고, 당신이 슬퍼하시면 저희들도 같이 슬퍼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평화의 나라를 향하여, 평화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소망의 아들딸이 늠름하고 활기찬 자세를 갖추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고, 악의 세력 앞에 패배의 자극을 받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상의 권한으로 천만년 이것을 징벌하고도 남을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고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중심삼고 광야에서 쓰러졌던 피폐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소망의 천국인 제2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분부하신 말씀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여기에 모인 여러분은 어린 소년 소녀들인데 여러분에 비해 제목이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다들 잘 알아들을지 모르겠어요.

오늘 여기에 한 4백여 명이 모인 모양인데,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많이 있구만…. 내려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6개월 미만 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그리고 3년 이상 된 사람? 내려요. 1년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1년 이하 된 사람? 반의 반쯤 되는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이것을 왜 물어보느냐 하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어떠한 신앙적인 경력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물어본 것입니다. 또, 그런 것을 알아야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알맞는 말씀을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 소녀 시절이 왜 좋은지 아느냐

여러분들처럼 소년 시절은 참 좋은 때입니다. 왜 좋으냐? 여러분들 때는 무엇이든지 자랑하고 싶어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중학생들 손들어 봐요. 내려요. 이때가 한참 자랑하고 싶을 때입니다. 자기 집에 조금만 좋은 것이 있어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어른들은 좋은 것이 있어도 자랑하면 소문이 날까봐 걱정하는데, 소년 소녀 시절에는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면 전차에서나, 버스에서나, 어디서건간에 자랑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년 소녀 시절에는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때이고, 자기에게 자랑할 수 있는 두둑한 것이 있기를 바라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도 잘난 어머니 아버지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잘난 어머니 아버지를 바라고 있는데 잘난 어머니 아버지가 되었다 할 때는 신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집을 보더라도 한 다섯 식구가 조그만 단간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이 서로 거꾸로 누워 자는 가정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 집이 남의 집보다 좋았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집이 남의 집보다 좀 좋으면, 그런 집을 가지고도 남에게 으시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 중에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 유학 간 형제가 있으면 그 형제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박사가 된 형님이나 오빠가 있으면 '우리 오빠는 아무개 박사야' 하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년 소녀 시절이 왜 좋으냐 하면, 자기 마음에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그냥 그대로 드러내어 천하의 것으로서 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을 자랑하겠다는 그 마음은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흡수력이 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세계 제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라

얼마전에 우리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이 인도네시아에 가서 축구 시합을 해서 우승컵을 타 가지고 왔지요? 여러분들이 이런 축구 경기를 보게 되면 아주 멋지거든요. 그래서 자기도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합니다. 또, 복싱 경기를 볼 때 복싱 선수가 링 위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격투 끝에 상대방을 쓰러뜨려 청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는 것을 보면, 자기도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또 마라톤 선수를 보면, 힘든 건 그만두고 자기도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나와서 연두사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거 근사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온 국민이 라디오나 텔레비젼을 틀어 놓고 귀를 귀울이고 듣는다고 생각하면 여러분 마음은 어떻습니까? 대통령도 한번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이렇듯 이 사람을 보면 이런 사람같이 되고 싶고, 저 사람을 보면 저런 사람같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면 우리 나라를 중심삼고 제일가는 것은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은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안 그런다면 죽으라구. (웃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대한민국 서울 안은 답답해 죽겠어. 남산이 앞을 가리어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 하는 것을 느껴봤습니까? 또, 자기 눈이 저 미국 백악관 안까지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것을 생각해 봤나요? 안 해봤어요, 해봤어요? 「안 해봤습니다」 안 해봤어요? 서울에 있으면 답답해 죽겠다. 남산아 날아가라. 인왕산아 날아가라. 북악산아 날아가라. 전부다 날려 버린 후에 내가 보고 싶은 저 끝에 있는 것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 보았어요? 그런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바닷가에 가게 되면 '이 바닷물을 전부 다 들이마시든가 어떻게 해서라도 바다 밑창이 어떠한가를 봐서 거기에 좋은 것은 내 것으로 만들겠다'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안 해봤습니다」 그런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면 기분 나쁘잖아요. (웃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아들딸도 못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어떠한 혜택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근사한 비행기가 날아가게 되면 '내가 지금은 이렇게 있지만 저 비행기 조종사는 나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고, 지금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가 잘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이 되겠다' 하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공상을 하며 밥을 먹으면서도 중얼중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내 것 만들겠다', '내가 한번 큰 일을 해보겠다' 하는 결심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러고 싶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은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지금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하겠어요. 여기 스무 살 된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 사람들은 언제 따라가겠어요. 나면 서부터 그러지 못하는 것이 한일 거예요. 나면서부터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세계 제일 가는 메달을 못 땁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을 가지려면

그러면 여러분 마음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이 있다면, 우리 소년 소녀들이 이것을 빼앗아야 합니다. 한 사람으로 부족하면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이라도 달라붙어서 빼앗아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중·고등학생이 얼마나 됩니까? 몇 백만명 가량 됩니까? 떼거리들 많구만. 한 백만 명이 개미떼거리같이 달라붙어야 빼앗아 올 수 있는 좋은 것이 있으면, 여러분이 백만 명을 동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사람들을 동원해 가지고 빼앗아 올 수 있는 운동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분을 동원시켜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동원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은 영영 여러분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내가 몇 년 동안에 백만 명을 동원시키겠다' 하고 자진해서 나선다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 있는 모든 청소년, 중·고등 학생들을 다 밀어 제쳐 놓고 우리 나라 학생이 차지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 중·고등학생 챔피언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야 할 기분이 나지 않겠어요? 그 기분을 몰라서 그렇지, 여러분 알면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할래, 안 할래?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한테는 아주 자극적인 말로 '할래, 안 할래?' 해야 됩니다. (웃음) 지금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은 '우리 선생님은 점잖고 훌륭한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럴 줄 몰랐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점잖게 해서는 신이 안 납니다. 큰소리로 이렇게 '할래, 안 할래? 해야 신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것도 잘 알아야 여러분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보고 싶어요?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해보고 싶다는 그 마음에도 4백여 계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답은 했지만 그것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분석해 보면 4백여 계단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하고 싶다 할 때는 몇 계단이냐 하면 한계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고 싶어요? 「예」 얼마만큼 하고 싶습니까? 팔 하나가 잘려도, 다리가 뚝 끊어져도 할 수 있습니까? 그 다음에 왼쪽 다리 왼팔이 잘려도, 오른쪽 다리 오른 팔이 다 잘려 버려도 문제없다 하면서 그것을 잃어버리고 좋아할 수 있습니까? 목을 잘라서라도 찾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것입니까, 안 할 것입니까?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간담이 서늘하면서도 하겠다고 하고 있지요? (웃음)

말은 쉽게 합니다. 말은 '하겠습니다' 하고 금새 나오지만, 행동은 천만사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의 손과 발을 투입시키고, 나중에는 생명까지 투입시킬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오십만 명이나 백만 명이 동원되었다 할 때는 이거야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힘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보다도 지독한 힘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지독한 힘이 폭발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만 명이 목을 내놓고 한번 해보겠다고 하면 그 앞에 있어서 무서울 것이 있겠습니까? 공산당이 무섭겠어요? 그들도 무섭지 않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엇을 자랑할 것이냐

이제서야 여러분은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쌍안경이든 파란 안경이든 여러분 4백 명이 전부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 18세쯤 되지요? 그러면 어떤 여학생은 머지 않아 스무 살이 되고 거기에서 몇 년만 지나면 시집갈 때가 되니 준비를 해 가지고 시집가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겠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젊은 세대들은 무엇이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 있는데 이왕 자랑하려면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을 붙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미국의 대통령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면 무엇입니까? 「천주 복귀입니다」 천주 복귀예요? 「예」 그거 누구한테 배웠습니까? 배웠으니까 그것을 알지 여러분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알았어요? 진정으로 그것이 제일 좋다고 자랑하고 싶어요? 우리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분이라고 자랑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다'라고 하면서 그들을 혼내 주고 그들과 싸울 수 있어요?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게 뭡니까? 우리 아가씨들, 부모님 잘 만나 부자집 딸로 태어나서 시집갈 때 몇 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해 가면 그것을 자랑할래요? 그것이 제일 좋은 거예요? 또, 자기 집이 서울에서 두번째, 세번째, 아니면 첫번째 가는 큰 집이라면 그것을 자랑 할 거예요? 그런 것은 모두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불만 한번 붙으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다 타서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무엇을 자랑하고 싶으냐? 이것이 젊은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욕망입니다. 여러분의 학교 교장 선생님이 훌륭하다면 그 교장 선생님을 자랑하고 싶지요?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나이가 한 70세, 80세가 넘으면 노쇠해집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서 소를 잡고 말을 잡는다 해도 노쇠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게 무엇이냐? 금덩이입니까? 금덩이를 먹으면 배가 부릅니까? 배가 고파 죽게 되었는데 태산 같은 금덩이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걸 가져 갈 겁니까? 그때는 태산만한 금덩이를 밥 한 그릇과 바꾸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겠습니다」 그럴 때의 금덩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어릴 때 그런 것을 겪어왔어요. 시골에서 자라면서 답답했었습니다. 이걸 전부다 한 바퀴 빙 돌면서 다 보고 싶은데 (손짓으로)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게 뭐냐'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게 뭡니까? 한번 얘기해 보세요. 제일 좋은 게 뭐예요? 「진리입니다」 진리면 진리 중에도 진리가 있습니다. 「새진리입니다」 새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철이 되면 새잎이라고 하지요? 미류나무도 새잎, 버드나무도 새잎, 소나무도 새잎, 다 새잎이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알아서 뭘 합니까? 진리가 먹는 거예요? 그것을 먹으면 배불러요? (웃음) 진리 알면 무엇 합니까? 여러분 대학을 나와서 학박사가 되면 뭘 해요? 「써먹습니다」 써먹는다면 어디에다가 써먹어요? 진리는 세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진리여야 됩니다. 그것은 한때만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써먹을 수 있는 진리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없고 진리만 가지고 있으면서 좋아할 수 있을까요? 세계에 남자 진리의 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써 나는 제일이라 할 수 있습니까? 여자 진리의 왕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 진리 왕이 있으면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여자 진리의 왕입니다」 그러면 여자 진리 왕이 '나는 세계 제일이다' 하고 버티면서 진리라고 하면 뭘 합니까? 그때는 남자나 여자나 진리는 접어 놓고 그 다음에 결과로 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이 문제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동생이 형님을 사랑하는 사랑도 필요하고, 나라에 대한 사랑도 필요합니다. 또 나라와 나라끼리 사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왕 될 바엔 첫째가 되어야

그러면 신앙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형님이 나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끝나서 되겠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세계 만민이 찾는 그런 사랑으로 형님이 동생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형님을 좋아하는데 동생으로서 진짜 사랑을 가지고 형님을 사랑합니까? 그 사랑이 역사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는 사랑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생각해 봤다면 그 사랑은 몇 점짜리입니까? 형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몇 점짜리예요? 0점짜리예요? 10점짜리예요, 혹은 20점, 50점, 70점, 100점짜리예요? 100점 이상은 있어요, 없어요? 100점 이상도 붙이면 있습니다.

여러분은 100점을 맞을래요, 더 붙여 가지고 120점을 맞을래요? 다 120점을 맞고 싶지요? 120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옛날 학교 다닐 때 105점까지 맞아 봤습니다. (웃음) 어떻게 해서 105점을 맞아 보았느냐? 그때 담임 선생님도 감탄했다는 것입니다. 105점 됐다고 무슨 심판이나 재판을 받습니까? 없다는 말은 뭐냐 하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사랑이 몇 점 짜리인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대관절 대한민국에서 몇 째인지 알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몇 째자리냐를 생각하게 되면 세째쯤이 될지 둘째쯤이 될지 모르지만 첫째가 아니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첫째 중에서도 화장하고 꽃단장하고 춤추며 나오는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들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의 어머니를 생각해 봤어요? 「안 해봤습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불쌍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받지 못한 고아들을 불쌍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그렇다' 하는 답변을 못 하는 것입니다. 벙어리가 꿀먹은 식입니다. 꿀이 달기는 단데 설명을 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혼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중심한 아들딸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한 애국자가 있습니다. 유관순이나 이순신 장군을 우리들은 충신 열사라고 말하고 있지만 몇 점이나 되는지 생각해 봤어요? 대관절 그 사람들은 몇 점이나 됩니까? 또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몇 번째 입니까?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첫번째가 아니면 거기에서 첫번째라고 아무리 큰소리 쳐봐야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맨 첫번째가 아니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여러분은 해봤습니까? 이왕지사될 바엔 첫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결심에 달렸다

여기서 우리가 충신 열사라고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이라든가 유관순 열사가 일본 사람에게도 충신입니까? 일본 사람에게는 그들이 철천지원수 입니다. 그러니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현해탄을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 정도 배를 타고 건너가 일본에 도착해서 그들이 충신 열사라고 얘기를 한다면 모가지를 자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 「나쁩니다」

아시아 시대가 도래해서 전체 아시아가 하나의 나라와 같이 되었다 할 때, 거기에서 이순신 장군, 유관순 열사의 전통을 본받자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나는 유관순 열사 대신 나왔다' 하거나, 혹은 '나는 이순신 장군 대신 나왔다' 할 때 통할 것 같습니까?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안 통합니다」 불통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충신이 우리 나라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충신도 우리 나라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일본사람 중에 진정으로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합격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 소년시대에 있는 여러분의 결심 여하에 따라서 별의별 사람이 다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과 같은 때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있었겠습니다」 난 없었습니다. 모양은 비슷했었는지 모르지만 생각은 달랐습니다. 엉뚱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과나 참외를 주더라도 어머니에게 '이참외 어디서 났습니까? '하고 여쭈어 봅니다. 그러면 어머님은 '어디서 나긴 어디서 나 형님이 사왔지' 하십니다. 그러면 '어느 밭에서 사왔어요? 밭에서 살 때 할머니가 땄어요, 아저씨가 땄어요, 아니면 형님 뻘되는 사람이 땄어요, 누나 뻘 되는 사람이 땄어요?' 하고 또 여쭤보는 겁니다. 그거 아주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참외도 자랑할 수 있는 참외라야 먹지 그 참외가 훔쳐다가 판 참외인지 알 게 뭡니까?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참외를 먹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난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그런 것은 못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먹고 지낼 때도 있었습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볼 때 제일 좋은 게 무엇입니까? 대관절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에게는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 좋지요? 부모님의 신세 지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은 여러분을 가르쳐 주니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플러스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주의는 자기에게 플러스시키는 패들만 좋아하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규정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의 신세를 질 때에는 좋지만, 자기에게 조금만 섭섭하게 하면 '언니하고 오빠만 사랑해 주고 나만 왜 이래' 하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학교 갔다 와서 설겆이 같은 것을 시키면 덜그덕덜그덕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합니다. (웃음) 어찌 됐든지 자기에게 플러스적인 조건만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자기를 주목하며 기분 나쁜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싫어하고, 자기가 잘못했더라도 쓰다듬어 주고 용서해 주면서 '다음에는 그러지마라' 하는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은 손톱에 조금만 피가 맺혀도 '아이구 내 손!' 하면서 계속 만집니다.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신세질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관찰해 볼 때, 자기가 영원히 신세질 사람이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나에게서 뜯어가려고 합니까, 나에게 신세지우려고 합니까? 역사는 나에게서 뜯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실천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에게 플러스되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 이런 사람은 보편적으로 나쁜 사람 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남은 나빠져도 자기만 좋겠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소년시대에는 그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20대, 30대가 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모든 면에서 나에게 플러스되는 것만 취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원수시되어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배척당하게 됩니다. 그때는 내가 남에게 플러스시켜 주어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소년시대와 장년시대는 다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영원히 좋을 수 있느냐? 지금 여러 분들이 좋다고 하는 부모가 영원히 좋을 수 있는 인격을 함양해 줄 수 있고, 지금 여러분들이 좋다고 하는 선생님이 영원히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느냐? 그것이 없더라도 나는 유언을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줄 수 있는 아량과 그 재산을 갖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 앞에 효자가 아닐 수 없으며, 그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도 갚기 위한 것이요, 선생님의 사랑을 받아서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도 갚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바라는 그 모든 바람은 자기를 중심하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시대가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 집이나 우리 나라를 중심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소년 소녀들이 가져야 할 생각

여러분 중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크게 사랑해 주시지는 않지만 훌륭한 분이다. 사랑도 안 해주고 다른 부모들처럼 해 주는 것도 없지만, 누구보다도 우리 부모님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청소년이 있다면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모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며 '만일 내가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지금 까지 살아 계시는 것이 나에게 귀하고 또 귀하다. 사랑은 커녕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라고 하는 사람은 부모가 자기에게 보통으로 사랑만 해주어도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현재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러한 한국 실정을 보면서 '내가 저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 비운에 부딪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은 그 선생님의 사랑이 어떻든간에 선생님과 나와의 만남은 나는 공부하기 위함이요, 선생님은 가르쳐 주기 위한 만남이다' 하며 배운다는 입장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고 공부를 하면 낙제하겠어요? 그렇게 마음 먹고 공부하는 사람이 낙제하겠어요? 절대 낙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대들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면서 말이 많은 학생 중에는 낙제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두고 보세요.

나라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이 아무리 비참하고 못난 나라라고 해도, 내가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아직도 다른 나라의 압제를 받는 기구한 운명권내에서 자기 나라의 주권을 찾기 위해 혈투전을 벌이고, 탄압의 말발굽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 가운데 수난을 받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나라들을 생각해 본다면, 내 나라에 대해 진정으로 고마와해야 할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땅을 빼앗길까봐 이 땅을 어느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이 민족을 더욱 사랑하는 국민이 된다면, 그 나라는 망하라고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한 나라의 군왕이면 군왕, 주권자면 주권자를 모시는 것을 자기의 일생 중에 맞는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이 나라에서 생의 보람으로 느끼겠다고 하는 국민이 된다면, 그 사회는 일체가 되지 말래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도 순식간에 달라지게 됩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달라 지느냐?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그러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어디에서 갈라지느냐? 한 사건인데, 하나는 따라가고 하나는 딸려가는 것입니다.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인데도 부모에 대해서 원망하고 분리되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의 사랑은 못 받더라도 도리어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부모의 숨은 사랑까지도 몽땅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효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나라를 사랑하여 그가 살고 있는 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랑을 한다면, 그런 사람은 충신의 칭호를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내가 서 있는 자리보다도 낮고 못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자기 처지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감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 주게 될 때, 그 사람은 자기 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충신이라든가 성인이라는 사람들의 역사를 보게 되면, 부자집 아들로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성인이나 충신이 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라나 사회가 혼란의 와중에 휘몰리어 내일을 바라볼 수 없는 암담한 혼돈시대에 있더라도, 그 나라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자기의 부모를 가진 것을 자랑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나라와 부모를 사랑하면서 자기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구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동지를 규합해서 더 나을 수 있는 길을 닦게 되면 문제는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는 나라를 사랑하고 난 자리에서부터 출발했고, 부모를 사랑하고 난 자리에서부터 출발했으며, 스승을 사랑하고 난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횡적으로 국가와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역사는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자기가 부자 된 것에 대해 고마와할 줄 모르고 돈을 더 모으는 데만 애쓴다면 그는 결국에는 망하게 됩니다. 이만큼 벌었으면 됐다고 생각하고 나라와 이 민족 앞에 큰 고마움을 느끼며 뭔가 도와 주겠다는 마음을 가진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됐는데도 감사할 줄도 모르고 혼자만 욕심을 내다가는 결국 자기가 파 놓은 구덩이에 떨어져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이 많지요? 「예」 바늘도둑이 뭐가 된다고요? 「소도둑 됩니다」 알기는 아는구만.

닥쳐오는 시련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가 문제

그러면 역사와 세계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의 주인과 세계의 주인은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면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우리보다도 비참한 민족이 있는데 그 나라를 사랑하고 그 민족을 사랑할 수 없다 할때는 그 민족의 비참함을 느끼면서 내가 이 나라를 더 사랑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더라도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는 길은 발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인들을 보게 되면 그들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도, 젖을 먹고 자라는 것도 다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러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는 대한 민국에 태어났으면서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될 수 있겠어요? 그런 사람은 절대로 주인이 못 됩니다.

여기에 몇 십리 몇 백리를 걸어서 온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여러분 중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복귀니 뭐니 해 가지고 천리 길보다 더 먼 거리를 걸어다니다니 이게 무슨 장난인지, 아이고 내 팔자야. 다리는 아프고 발에는 물집이 생겨 쩔뚝거리니 어떻게 하지? 이 길을 간다고 소문은 냈으니 안 갈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온 사람은 안 온 것만 못 합니다. 발에 물집이 생겨 이쪽 저쪽에서 진물이 나와도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상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자리에서 나라를 찾고 참다운 인생길을 찾기 위해 감옥 같은 데서 비명에 사라져 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내가 그런 길을 닦아 나가는 데 있어서 그들을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런 사람들을 동정하고 눈물지으며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거에 왔다 간 의인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하여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그런 경지에까지 들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일족이면 일족, 어떤 단체면 단체가 이 뜻길을 가다가 희생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입장에 홀로 처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천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도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뜻을 품고 앞으로 나가는 데 있어서 닥쳐오는 모든 시련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자리에 부닥쳐서 '내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누렸던 기준 이상이 되어야지 그 이하가 되면 나는 못한다'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높은 산일수록 그 골짜기도 깊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산의 정상에서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면 옥살박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길을 가려면 정신이 아찔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이것이 시련의 한 장면이구나. 내일은 또 어떤 장면이 벌어질까'라고 생각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된 자리에 갈 수 있는 다리를 똑똑히 놔야 합니다. 아무리 어지럽더라도 철두철미하고, '내가 가는 길은 전후 좌우로 확실하다. 침범받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역사와 더불어 친구삼고 시대와 더불어 의논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나라의 충신 열사들도 감옥에 들어가서 고난 속에서 이슬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원수를 원망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죽어간 사람은 그가 비록 감옥에 있어도 최고의 해방을 느낄 수 있는 해방자일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마음에서 나오느냐? 그것은 인류애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나를 넘어서서 사랑하고 싶고, 나를 넘어서서 동정하고 싶고, 나를 넘어서서 도와 주고 싶고, 나를 넘어서서 관계하고 싶고, 그들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이 앞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이 세계의 주인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더 좋아야 된다고 하는 생각은 제거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좋은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습니다. 진짜 좋은 것은 영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좋은 것은 절대적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내 후대의 천대에까지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외면당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대한민국의 남아로 태어나 가지고 이런 자리에서 공부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나만 잘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의 벗이 되어 주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쳐 주며 그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될래야 아니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혈투극을 벌이면 쓰러지더라도 백전 백승할 수 있는 한때를 맞이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불평하고 짜증내는 패에는 없습니다. 불평하고 짜증만 내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고, 친구들도 싫어하고, 엄마 아빠 형도 싫어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불평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있겠다고 하는 사람은 도둑놈이고 강도이고 간첩일 것입니다. 불평 불만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평의 마음을 변화시켜 감사하고, 내일의 희망에 벅차고, 소망에 불타고, 나라와 세계를 위해 내가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눠 주고 싶은 마음, 자기가 입고 있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자기가 먹고 있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자기가 아무리 조밥을 먹고 죽을 먹더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줄 수 없는 입장에 선 서러움을 느끼면서 기도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요, 내가 태어난 것도 자기만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역사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중에는 여기에 올 때 불평하면서 마지 못해서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안 가겠다는데 데리고 와서 이게 무어냐'고 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어려움을 딛고 감사해 하고 그 감사함으로 민족과 세계와 더불어 관계를 맺어가지고 내가 낫걸랑 나눠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현재 그렇지 못한 자아의 입장인 것을 알게 될 때 내일의 한때를 위하여 준비하며 그 재료를 수습하는 사람은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

성현이라는 사람들은 그런 류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수천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노나라 사람이었지만 그는 몇 나라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어려운 환경, 혼란한 사회상을 바라보면 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형제가 없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참다운 길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 시대에 몰리면서도 감사하면서 미래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살았기에 그는 전국시대를 넘어 사상적으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 만민을 위해 남겨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닦게 된 것입니다.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마음, 참된 것을 주고 싶어하는 그의 갈구와 욕망이 결국 그의 인격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공자의 가르침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뜻 있는 사나이로 죽으니 불쌍하지 않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역사는 거기서 새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하면 자기 민족만을 중심삼고 충신이 되겠다고 노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만민 앞에 행복의 기원과 행복의 터전을 전해 주고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길을 소개해 주기 위해서 그 나라의 주권이 반대하고 그 민족 앞에 몰리고 쫓기더라도 모든 것을 극복하고 참아 나온 사람입니다. 무수한 고초를 겪고 무수한 화살을 받으면서도 웃고 간 사람입니다. '감사하지! 참을 빛내기 위해서는 그런 일도 감사하지!' 그러면서 간 사람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또 하나 성인이 다른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인들이 무엇을 소개했느냐 하면 인간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신을 소개했습니다. 성인들은 인륜의 도리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천륜의 도리를 겸하여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겁니다. 예수님도 하늘을 소개했지요?

내가 요전에 종교협의회 간부들이 왔을 때도 잠깐 얘기했지만 공자도 석가모니도 억조창생을 구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만민을 구하자 하는 것은 초국가적 입니다. 초국가적이면서 무엇을 소개했느냐? 신의 섭리를 소개했습니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보면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 즉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베풀어 주고 악을 행하면 화를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확실하고 참된 종교는 어떤 종교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만민을 지극히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그렇지요?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도 내가 먹고 남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서도 사랑 못해서 울고 가는 그런 사랑을 가진 종교라야 참된 종교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은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는 어떤 종교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아들딸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하나님 이 나라를 좋아하겠습니까, 아들딸을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라를 좋아하기 전에 아들딸을 좋아합니다. 아들딸을 좋아하지 않고는 나라를 좋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의 엄마 아빠는 직장을 좋아합니까, 아들딸을 좋아합니까? 「아들딸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누구를 좋아해요? 「아들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짖궂은 아들딸, 속만 썩이는 아들딸, 말을 안 듣는 아들딸, 싸움 질하는 아들딸, 도둑질하는 아들딸을 좋아하겠어요? 「아니요」 그럼 어떤 아들딸을 좋아하겠습니까? 보기에도 아름답고, 칭찬해 주고 싶고, 어디 가든지 안팎으로 빠지지 않는 아들딸이면 좋아합니까, 안 합니까? 학교에 가서는 공부 잘 하고, 집에 들어오면 형제끼리 우애 있고, 친구들에게 존경받는 그런 아들딸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아들딸을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아들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칭찬받아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대한민국에서 칭찬받는 아들을 좋아할까요? 하나님은 자그마치 세계적입니다. 세계가 좋아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좋아하는 아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간단하지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아들딸은 세계가 좋아하는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좋아하는 아들과 딸은 대관절 어떤 사람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복을 비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세계를 위해서 충성하고,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세계를 위해서 태어났고, 세계를 위해서 먹고, 세계를 위해서 걷는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도리는 세계를 위하고 사랑하게 할 수 있는 도리여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뭘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세계만 사랑하면 됩니까?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세계만 사랑하면 되겠어요? '내가 누구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세계를 사랑한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종교 중의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누구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까? 석가모니의 아버지라고 했어요? 「아니요」 하나님은 누구의 아버지라구요? 내 아버지! 나는 누구라구요? 하나님의 뭐라구요? 하나님의 아들 ! 아들 중에도 무슨 아들이라고 했어요?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입니다. 그렇지요? 이렇듯 독생자는 처음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본다면 예수님은 참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대통령의 사위나 며느리 되면 좋겠지요? 그렇게 되면 아주 으시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왕에 시집가고 장가간다면 대통령의 사위나 며느리 한번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싶어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어떤 총각이 '나는 박대통령의 사위가 되겠다'고 해서 헌법에 의해 가지고 벌줄 수 있어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훌륭하다면 대통령 사위 안 하겠다고 해도 사위 삼으려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요, 되고 싶지 않아요? 종이 될 거예요, 사위가 될거예요? 그중에 제일 좋은 것이 뭐예요? 아들이 될 거예요, 딸이 될 거예요? 「아들입니다. 딸입니다」 아들이 낫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이 엄마가 첫 딸 낳는 걸 좋아해요, 첫 아들 낳는 걸 좋아해요? 「아들입니다. 딸입니다」 딸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시집가서 전부딸 낳으세요. (웃음) 여러분에게 '아들이 더 중요한가, 딸이 더 중요한가' 손들어 보라고 하면 할 수 없이 아들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왼손이라도 들 것입니다. (웃음) 솔직하게 그렇지 않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런 것을 다 생각해 보고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중에 어떤 종교를 찾아야 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종교 중에서 어떤 종교를 찾아야 하느냐? 하나님이 진짜 계시느냐? 세계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귀한 것은 어떠한 대왕도 아니요, 어떠한 성인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그분도 나 같으면 사랑하는 아들이 있을텐데 하나님 아들이 있어요, 없어요? 거 물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우리 알아봅시다.

종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 가운데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각하고 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아버지라고 외치며 자랑하는 종교가 있으니,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이름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 기독교가 붙게 된 것입니다.

역사는 성인이 지배하고 세계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지배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독생자면 어떤 독생자냐? 그가 완전한 사랑을 몽땅 받았느냐? 그 사랑을 가정에서만 받았느냐? 세계에서만 받았느냐? 아니면 하늘과 땅에서 받았느냐? 그런데 알고 보니 약속만 받았더라는 것입니다. 야, 그러면 내가 한번 받아보자 이래서 으시대고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이걸 받아야 되겠습니다. 도적질을 해서라도 이걸 받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보다 내가 더 늠름하면 되거든요. 그렇잖아요? 선생님은 얼마든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 가지 했으면 나는 두가지 하고, 예수님이 세 번 갔으면 나는 네 번 가고, 그가 다섯 번 갔으면 나는 여섯 번 가면 됩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 길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귀한 사람은 성인입니다. 성인이 역사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주인은 성인들입니다. 이렇듯 역사는 성인이 지배하는데 그러면 세계는 누가 지배하느냐? 누가 지배하겠어요?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해 보세요. 세계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인 여자가 나왔어요? 「안 나왔습니다」 성인 여자 봤어요? 「못 봤습니다」 듣지도 못했지요? 「예」 그러니까 여자는 성인 축에도 못드는 것입니다. (웃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남자를 세워 가지고 성인 여자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가슴속의 억천 만세의 한을 헤쳐 내고, 그 사랑의 옥합 금합의 문을 열고, 순수한 창조이상세계에 피우려고 했던 그 사랑을 몽땅 가슴에 품고 자랑할 수 있는 일남 일녀로서 등장하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는 지배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요?

지금까지의 종교는 어떠했느냐? 종적으로 남자만 찾아 나왔습니다. 그 남자는 세계적인 남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주장이요, 그가 주장하는 진리는 세계적인 진리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율법은 천륜이 좋아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도 좋아하시는 진리입니다. 그 남자는 역사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시대를 대표해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왔다는 증명을 가진 남자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그런 남자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분은 오시는 주님을 대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남자가 안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남자를 다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남자가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남자가 오면 여자는 남자 등에 업히면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 시집가서 남자 등에 한번 업혀 보고 싶지 않아요? 안 업히고 싶은 여자 있으면 손들어 봐요. (웃음) 남자 품에 안기는 것은 정한 이치지만, 남자 등에 업혀 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사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가정을 원하셨습니다. 가정이 있으려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는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도 가정이 없는 하나님은 끈 떨어진 두레박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람만 불면 왔다갔다하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가정을 못 가진 하나님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행복은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나라에서부터예요? 가정에서부터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기 전에 남자에서부터 옵니까, 여자에서부터 옵니까? 「남자입니다. 여자입니다」 신랑신부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웃음)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구원을 표준으로 했지만,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 세계가 좋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종교는 가정을 구원시킬수 있는 종교여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 하나만 구원받으면, 여자는 몽땅 따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여자가 몽땅 탕감하게 되면, 남자는 몽땅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이 따라들어갔지요? 그와 같이 여자 말에 생명을 내놓고 죽도록 믿는 남자는 천국 갑니다. 또, 남자 말에 절대적으로 믿는 여자도 천국 갑니다. 이래도 천국 가고 저래도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여자를 위해서 죽도록 믿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남자를 얻으면 된다는 말이고, 남자는 남자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여자를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자, 알겠어요? 역사는 무엇이 지배한다고요? 「성인입니다」 세계는 누가 지배한다고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은 아들딸인데. 무엇을 독차지한 아들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딸입니다.

천국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그 아들딸을 중심삼은 기반이 무엇이라고요?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에 '우리 아들딸의 가정을 봐라' 하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천하는 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만들자는 것입니까? 천국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찾아보니, 그것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되려면 성인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인들에게 '너희들은 뭐냐. 신세가 얼마나 야박하고 처량했으면 혼자 살다가 죽었느냐? 너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딸을 만나 보진 못했으니 낙제생들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성인들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이라고요? 측복받고 가정을 이루는 겁니다.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가정구원 종교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가정에서 남자 하나만 떨어져 나가도 못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가정이 들어가는 천국을 바라며 나갑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청소년들이 앞으로 통일교회의 가정의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인들보다 나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성인의 가르침은 국가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가르침입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하늘을 소개했습니다. 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인륜뿐만 아니라 천륜을 겸하여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먹고 사는 모든 생활을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하는 도리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하늘땅을 위해서 사는 도리를 다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습니다. 성인들도 못 받았지요? 또, 도리를 다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때를 맞이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어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려면 세계가 하나의 세계권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주의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에 있어서 어느 것이 세계를 지배해야 되느냐? 둘 다 없어져야 합니다. 둘 다 세계적이 아닙니다. 민주세계의 주도국인 미국이 극동정책에 있어서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중심삼고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이 맡아라. 우리는 무간섭 주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민주주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후퇴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후퇴하는 것은 미국을 위주한 정책으로 귀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위한 미국이 못 되고 미국을 위한 미국이 되었으니, 이는 세계를 위하여는 새로운 시대에는 낙오인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련을 위주로 한 공산당으로 세계 제패를 꿈꾸고 중공 위주한 공산당을 싫어합니다. 이는 국경을 넘어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주의가 못 되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망합니다. 그들은 성인의 도리에도 미급한 작자들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주인이 누구냐? 국경을 초월하여 자기 민족보다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주의를 갖고 나오는 사상이 있다면 그 사상은 세계를 제패합니다. 알겠어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그런 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면, 실제 그럴수 있는 사람들이 세계에 나타난다면, 그 사람들의 주의 앞에 세계는 완전히 굴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주의, 선생님의 주의는 무엇이냐? 선생님의 주의는 대한민국을 위주한 주의가 아니라 세계를 위주한 주의입니다. 지금 대한 민국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기성교회를 필요로 하는 것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리를 놓기 위해서입니다. 결국은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주의는 어떤 주의냐? 악한 세계를 구하고, 불쌍한 사람을 구하고, 가난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구원해 나오셨습니다. 그렇지요?

종의 종에서부터 아들까지 제물로 삼았습니다. 원수의 족속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딸까지 희생시켜 나오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위해서, 제일 원수의 종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당신 편을 희생시키며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요, 자기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계와 원수의 편을 위해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 인류는 하나님을 푸대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푸대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냐? 성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딸 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주의는 하나님의 전통적 사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살리려 하는 것도 대한민국만 잘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잘살게 하는 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세계를 잘살게 해주고 대한민국이 잘살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나라는 세계를 지배하지 않겠다고 해도 세계가 그 나라를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일하고 준비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세계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과 가까운 통일교인들이나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이나 여러분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천리의 도리입니다. 그렇지요? 「예」

대한민국이 하늘편에 들어오게 되면 대한민국을 희생시켜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에 있는 불쌍한 나라를 구하려고 하고, 대한민국에서 소모되는 예산을 초과 지출하여 도와 주더라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세계를 대표하게 됩니다.

미국이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주도적 국가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렸고, 소련도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주도적 국가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의 협회장을 일본 사람이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흑인도 와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만을 위한 그런 주의나 사상 가지고는 세계를 주도하지 못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펀의 승리의 판도를 넘어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죽기 전까지 세계를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아들딸을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섭리적으로 볼 때 승리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공부를 하는 것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해야 하고, 밥을 먹는 것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먹어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은 어떤 유명한 정치가도 못 따라오는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런 내용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역사는 성인이 지배하고, 세계는 누가 지배한다구요?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은 아들딸인데 어떤 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럼 여러분들 중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군. 그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것도 없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입장은 골라내야 합니다. 많이 추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껄렁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령, 돌이 한 10년 동안 굴러다니면 왈가닥왈가닥 소리는 나지만 동그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쭉하게 모가 난 부분은 다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천주의 주인이 되려면

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사랑을 받고 죽겠다고 결심한 사람 손들어 봐요. 욕심장이들이군. (웃음) 그런 결심은 누구인들 못 하겠어요? 그럼 결심뿐만 아니라 나는 해 내겠다 하는 사람 손들어봐요. 내려요.

이번 총회가 제 6회 총회지요? 나는 6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6수는 사탄수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총회에 참석한 여러분들을 제일 고생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섭섭하지 않아요? 고생시키는 것은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주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겠어요 ? 「예」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세계의 주인이 제일 좋지 않아요? 세계의 주인뿐만이 아니라 천주의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성인들은 가정을 못 가졌습니다. 저 나라에 가서도 가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정을 가질 수 있는 특권적인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은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것을 위하고 앞으로 행동하는 것도 남과 달라야 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친구들과 어디를 가더라도 친구들이 남쪽을 향해 자면 선생님은 북쪽을 향해 잤습니다. 다르다는 겁니다. 밥 먹을 때도 전부 저쪽 보고 먹으면 선생님은 이쪽으로 돌아 앉아서 먹었습니다. (웃음) 일부러 그래 보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더라도 하나의 조건을 남겨도 남겼고, 기분 나쁘면 딱 끊고 돌아섰습니다. 그건 왜? 자기를 보호하고, 어디 가든지 자기의 입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안 가면 내 후손을 통해서라도 가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굳히면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사랑할까요, 안 할까요?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았어요? 「못 봤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선생님이 사랑받은 것 같기는 한데 못 봤으니 그것을 알기 위해 원리공부를 해야 하는 겁니다. 대관절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나 따라와야지. 선생님이 사기꾼인지 알아요? (웃음) 선생님은 말하는 것이 능란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꼬이려고 하면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사기꾼이라면 왕사기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합동결혼식은 하나님의 사랑과 천주를 상속받는 잔치

선생님이 지금 이러한 엄청난 운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위나 며느리만 되어도 으스댈 텐데 뭣이 된다구요?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상속해 줄 때가 되면 상속 안 받겠다 해도 '야, 이 녀석아 정신 차려' 하려 이마를 툭툭 두드려 깨워 가지고 상속해 주겠어요, 안해 주겠어요? (웃음) 아들이 되면 상속이고 뭐고 다 싫다고 해도 상속받을 권한이 앞에 붙고 가슴에 붙는 것입니다. 붙어다니는 것입니다. 사위와 며느리가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들이 상속받으려면 도둑놈이나 강도패가 돼야 합니다.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천주의 권한과 영광을 몽땅 내것으로 상속받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들 부부의 사랑만으로도 좋은데 하나님의 사랑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전부를 첨부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잔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잔칫날이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 날입니다. 합동결혼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뜻을 모른다는 겁니다.

선생님을 알면 그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압니다」 이 합동결혼식이 나오기까지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셨고, 예수님은 2천년 걸었고, 선생님은 일생을 걸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합동결혼식 좋아요? 「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해도 좋아요? 「예」 남자들도 좋아요 ? 「예」

이번 10월에 합동결혼식을 할 때는 한 7백쌍쯤 할 것입니다. 그때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 다 모이면 굉장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해야 소화가 되고 잠이 오지 쩨쩨한 것은 기분에 맞지 않습니다. (웃음) 고생을 하더라도 이걸 터뜨리고 나가면 이런 것이 온다 하고 가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 아니면 상반적입니다. 상대를 도우려니 상반적인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하늘 가는 길에 있어서 이렇게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슬슬 돌아서 다리를 놓고 이렇게 올라가야 안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올라가면 올라가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설명하심)

하늘 가는 길에는 생명을 걸어야

선생님이 여러분을 무엇으로 만들려고 하느냐? 여러분을 역사의 주인을 넘어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려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있게 받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니라는 결심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말씀하셨지요? 「예」 그런 식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공산당은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지요? 죽고자 하는 자도 죽고, 살고자 하는 자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닮은 것도 그 점입니다. 기독교도, 그리고 다른 종교도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합니다. 공산당도 생명을 걸지 않고는 진짜 당원이 못 됩니다. 이북 공산당원은 생명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거기에 순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 위협은 세계를 잃어버린 자리에서의 위협이요, 나라를 잃어버린 자리에서의 위협이요, 사회와 가정과 친척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서의 위협입니다. 그 길을 가는 목적은 단지 나 하나의 생명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 가는 길도 위협은 위협입니다. 통일교회 믿기 힘들지요? 남들은 다 전도 나가는데 나만 안 나가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위협은 위협인데 자연적인 위협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위협을 받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사람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세계를 찾고, 하늘땅 전부를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사탄과 하나님이 생사문제를 걸어 놓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생명을 바칠 각오한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지 않고 세계적인 아들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성인이 될 수 있어요? 각 나라마다 위인은 많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위인입니다. 위인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성인은 못 됩니다. 위인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숨진 사람들이지만, 성인은 세계를 위해서 숨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위인이 되겠어요, 성인이 되겠어요? 「성인이 되겠습니다」 위인은 일개국을 위해서 산 사람이지만, 성인은 세계를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세계 복귀의 대열에 선두에 서라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주주의입니다. 어느 것이 높아요? 그래서 성인을 지도해야 할 책임이 하나님의 아들딸에게 있습니다. 또한 성인이 소망하면서도 못다한 책임을 성취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인이지요? 그는 가정을 가졌어요? 「못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이 지상에 그런 주의가 도래합니다. 그 주의는 세계주의입니다. 그 주의를 위해 생애를 바쳐야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렇듯 죽고자 하면 사는 겁니다. 하늘을 위해서 죽고자 하면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고, 천국까지 전부 다 찾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자기의 생명을 바쳐도 가정을 잃어버리고, 나라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나 하늘세계나 그 길을 가려면 생명의 위협의 고비를 넘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공산당이면 진짜 공산당원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교육을 처음 받을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겁니다. 싫다고 하는 것도 죽는 것이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각오하는 사람은 사는 사람이요, 흥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득세하고 으스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으스대 봤습니까? 내가 공석에 안 나서지만 삼천만 민족이 일어서 가지고 '아이고 문 선생님' 하며 모시러 올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올 때까지 말없이 자연굴복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가 이르기까지 지루하고 길겠지만, 끈기 있게 생명을 겨뤄 나가면서 복귀과정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젠 많이 올라왔습니다. 대한민국과 맞먹는 단계까지 올라왔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은 역사와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역사와 세계의 주인이 되겠다고 약속했으니, 생명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4백여 명 가운데서 하나님의 첫째 아들은 누가 되고, 첫째 딸은 누가 되느냐? 4백여 명 중에 누구보다도 먼저 세계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쩨 케이스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꽁무니를 빼는 미욱하고 못난 녀석들은 두고 보라는 겁니다. 지금은 다 좋다고 하지요. 이 4백여 명이 전부 선생님 같은 사람이라면 세계를 쥐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여기에서 한 사람, 즉 한 아들만 결정되게 되면 그를 본받아 가지고 지방에 한 면을 만들고 또 그것이 한 군을 이루게 되면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주인이 되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 소년 소녀 시대가 얼마나 귀한지 아버지께서도 잘 알고 계실 줄 아옵니다. 앞으로 20년 후의 대한민국의 운명과 통일교회의 운세를 이어받아야 할 젊은 가슴에 단 하나 남겨야 될 것은, 아버님을 사랑하듯이 인류를 사랑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인류를 위해 미치듯이 아버지를 위해 미쳐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나를 기억하고 내가 해방될 것을 기리며, 온 세계가 환영을 할 수 있고, 인연을 맺을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가정을 찾는 것은 가정 가운데 안락하게 사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제물삼아 종족을 찾기 위함이요, 또한 그 종족 안에서 저희들이 안락하게 살려는 것이 아니라 종족을 제물삼아 민족을 찾기 위함이요, 그 민족의 중심 자리에서 안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제물삼아 국가를 찾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국가를 찾아 가지고 그 국가를 만국 앞에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 국가를 제물로 드려 세계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찾은 후에 하늘나라와 바꾸어야만 아버지의 아들과 아버지의 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는 이런 엄청난 사실을 오늘 저희들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이 아니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은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천주주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천주주의의 심정에 연결될 수 있는 핵심적인 하나의 가정적인 기원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늘 저희들에게는 소망의 가정과 소망의 세계를 대신할 수 있고, 죽었던 세계를 일깨울 수 있으며. 세계의 기틀이 될 수 있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저희들이 그러한 주의와 사상을 가질 수 있는 소년 소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른 어떠한 민족보다도 세계를 위하여 자기 민족과 자기 친족을 넘어서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그야말로 역사시대에 없던 하나님의 아들딸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성인의 도리를 능가하여 아버지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온 우주 앞에 내세워서 칭찬받을 수 있는 승리의 한날을 맞이해 가지고, 그 가정이 세계보다 귀하고 그 개인이 세계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 자리는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의 자리요, 딸의 자리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 엄청난 도리를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생명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해야 하고 내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할 저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노정을 피해 가지고는 갈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불평 불만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소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비참하였던 역사시대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행복을 찬양하며 역사를 위해 줄 수 있고, 새로운 시대를 창건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제6회 전국 성화학생 총회를 갖는 이 시간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 기회를 통하여 이들의 붉은 가슴으로 하늘을 동경하고 세계와 천주를 동경하는 마음이 이제부터 책상에서 읽는 책의 한 페이지 페이지, 한 문장 문장 가운데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온 세계를 대신한 자들임을 스스로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만민을 대신하고 하늘 전체를 대신하여 상속자가 되겠다는 이러한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다짐하는 가운데에서 자라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남이 모르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통일교회의 교리를 밟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락에 가게 되면 부락을 위하여 세계적인 기반을 닦고, 학교에 가면 학교에 가서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판도를 넓히는 데에 절대적인 핵심요원이 되게끔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러한 마음으로 새로운 결의와 다짐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당신의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과 만나서 짧은 시간 같이 말씀을 나누고 그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오늘 말씀과 더불어 당신 앞에 생명을 바쳐 달려 갈 길을 다 가서 아버지 앞에 칭찬받고 축복받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들을 만민 앞에 내세워 자랑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하나의 주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 어린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저희들 심성에 당신이 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높고 거룩하고 존엄하신 당신의 성상으로 저희들의 마음 전체를 주관하시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참다운 모습, 거룩한 모습, 깨끗한 모습을 갖추게 하시사 어린 가슴 가슴들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본성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에덴 동산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지으신 인간 시조 아담 해와를 바라보면서 기뻐하시던 그 마음이, 오늘날 저희 어린 소년 소녀들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 가운데 다시 비쳐질 수 있기를 소망하시며 지금까지 싸워 나오신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진정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온 우주의 중심이요 생명의 원천 되시는 아버님,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아무리 높고 크다 하더라도, 당신이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대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높고 귀한 그 가치도 이 온 천지간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귀하신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은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 조상이 되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 자리를 다시 한번 추구하면서 내일의 천국을 소망하기 전에 마음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닮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을 어떻게 완성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본연의 바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본래 인간은 아버님과 떨어져서는 안 될 인연을 가졌지만, 비참한 역사노정과 더불어 아니 갈라질래야 아니 갈라질 수 없는 비운의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아버지를 배반하고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가고자 하는 반대의 입장에 서면 설수록 배가의 마음을 가지고 인간들의 배후에서 역사해 나오고 계신 것을 이 땅 위의 인간들은 몰랐사옵고, 우리의 선지 선열들도 확실히 몰랐사옵니다.

사망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역사적 비운은 오늘날 저희들의 환경 가운데에 아직까지 남아 있사옵고, 그러한 현실의 모든 여건과 인연을 맺고 있는 저희 자신들은 아직까지 이 사망권내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에게는 아버지의 수고의 손길이 다시금 가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런 절박감을 느끼는 이 마당에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시는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긍휼의 은사를 고대하는 자식의 부끄러움을 억제할 수 없사옵니다. 하오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심정을 체휼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그 자리에서부터 저희들과 인연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 혹은 종교를 믿는 사람은 기쁨과 웃음으로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운의 환경에서 낙오자가 되어 눈물과 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지에서, 혹은 기로에서도 우왕좌왕하는 그런 경지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붙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버지와 상봉하는 그 자리가 기쁨으로 상봉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참함과 처량함이 가중되는, 말할 수 없이 불쌍한 자리임을 알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인류를 대하시고, 이와 같은 저희 자신들을 대하시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불쌍하시고 비참하신 분인가를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쩌다가 아버지께서 이런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가를 생각할 때, 그것은 아버지께서 잘못하여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인류 시조가 잘못하여 죄의 탈을 쓰게 된 연고요, 저희들이 그것을 벗지 못한 후손으로 태어난 연고이옵니다. 하오나, 당신께서는 사랑을 지니시고 그 후손인 저희들을 구원하여 저희들에게 기쁨의 세계를 상속하시기 위해서 눈물의 길을 걸어오셨사옵니다. 행복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는 비통한 사연을 벗어날 수 없는 아버지의 인연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를 진정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참다운 자녀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주인일 뿐만 아니라, 저희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관념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내 모든 세포와 내 모든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아버지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위대하신 아버지, 존엄하신 아버지, 고귀하신 아버지, 생명의 원천이시며 생사의 모든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야 되겠사옵니다.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태어났으니, 그 아버지 앞에 내 생애를 다 바치겠다는 확고한 신념과 자각을 가진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던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의 장래를 누가 보장해 주겠습니까? 이들은 스스로의 입장을 자신을 갖고 다짐하지 못하는 소년 소녀들이오니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봄동산에 꽃이 피어 향기를 발하면 자기도 모르게 꽃향기를 더듬어 꽃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앞에 아니 끌려갈래야 아니 끌려갈 수 없는 본연의 마음을 아버지께서 움직이시어서 참다운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자유로운 봄동산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무한한 가치를 체험하고, 무한한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당신의 심정세계에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환경이 자유롭지 못한 자녀들의 입장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들이 앞으로 10년, 20년을 자라게 되면 이 나라의 동량(棟梁)이 될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어린 소년 소녀 시절부터 당신을 그리워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이 거룩한 마음을 갖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 가를 이들 스스로가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번 제 6차 전국 성화학생총회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 머리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이들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인연을 맺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환경이 여의치 못한 저희들이 좋은 환경을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저희들보다도 더 비참하고 불쌍한 수천만 민족이 남아 있고 세계 인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면서 그들이 당해야 할 시련을 저희들이 먼저 당하고, 그들이 져야 할 십자가를 저희들이 먼저 지기 위한 시련의 한 도장에 섰다는 마음으로 이번 기간을 맞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어서 당신이 소망하시는 미래의 천국을 이들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미래의 이 민족의 운명을 이들과 더불어 공고히 관계맺게끔 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무릎 꿇고 머리 숙여 아버지 앞에 기도드리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에게 아버지의 무한하신 자비를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는 자로서의 강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멀지 않아 있을 7백쌍 합동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입장에 있는 자녀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 저희들이 경륜하는 모든 일들이 섭리의 뜻과 일치되어 승리를 다짐할 수 있게끔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옵고, 재촉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 여기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을 친히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기도하였사옵나이 다. 아멘.

말 씀

여기 뭐라고 썼습니까? 「'새싹'이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10대들로 다 새싹들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새싹'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새싹

여러분들은 젊은 청년들이기 때문에 미래의 한 나라의 주인이 되기를 소망하고 나가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래의 주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새로운 싹과 같은 입장에서 자라나가야 됩니다.

산에 가 보면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소나무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여러 가지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가 있는 가 하면, 어떤 나무는 서쪽으로, 어떤 나무는 남쪽으로, 어떤 나무는 북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또, 꼬불꼬불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쭉 뻗어 가지고 보기에도 늠름하여 누구든지 그 나무를 보게 되면 참으로 이상적인 나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란 나무도 있습니다.

남산 같은 데 올라가 보면 남산은 땅이 좋지 않은지 나무들이 잘 자라지가 않았습니다. 소나무를 보면 쭉쭉 뻗어 있지 못하고 꼬부라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강원도 깊숙한 골짜기에 가 보면, 나무들이 아주 늠름하게 쭉쭉 뻗어 있습니다. 그것은 철따라 우거진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쌓이고 쌓여 자연적인 거름이 되고, 그런 땅에 씨가 떨어져서 뿌리를 박고 새로운 싹을 틔워 가지고 자란 나무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나무들의 형상을 우리가 산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의 모습도 그와 같은 모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나무는 어떻게 해서 좋게 자라게 됐느냐? 어느 한 지역이면 지역 가운데도 좋은 땅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라는 나무는 유난히 좋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하더라도 그 나무의 씨가 좋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래 그 나무가 꼬부라진 나무의 열매라면 그 나무는 반드시 자기 조상의 모습을 닮는 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개개인을 보면, 한 동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천태만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풀이면 풀가운데에도 여러 종류의 풀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도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모는 어떠한 부모이고, 자기의 형제는 어떠한 형제라는 것을 남의 부모 형제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가정이 어떠한 역사를 거쳐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과 동생을 비교해 볼 때에 동생이 더 나으면 그 집안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로되, 동생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외모로 보나 심성으로 보나 활달하지 못하고 장래성이 없게 될 때에 그 집안은 기울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천태만상의 모습을 가진 선조들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선조와의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의 씨에 비교해 보면, 그 씨가 소나무씨면 소나무씨로서 모양은 비슷할는지 모르지만, 그 씨앗은 본래의 나무가 지녔던 상태 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씨는 그 나무가 지금까지 자라온 모든 내용이 집약되고 축소되어 거두어진 것입니다. 이 씨가 얼마만큼 가치를 지녀서 하나의 씨로서 참소망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고, 미래에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 되는 것은 뭐냐 하면 터입니다. 아무리 씨가 좋다 하더라도 돌짝밭에 떨어지게 되면 큰 씨로 결실한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씨가 싹이 튼다 하더라도 나무로서 자라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난의 길을 가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씨가 자기가 태어난 곳이 좋지 않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옮겨 갈래야 옮겨 갈 수도 없는 운명의 결판이 난 자리에서는 아무리 좋은 바탕을 가진 씨라고 해도 좋은 나무로서 자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에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서 그 나무를 뽑아다가 옥토에 옮겨 심어서 가꾸어 준다면, 그 나무는 본성과 더불어 좋은 여건 속에 잘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나무에 비추어 볼 때 씨를 중심삼고 새싹이 나오는 것처럼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새싹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나라가 소망하는 새로운 싹인 것입니다.

참다운 싹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면 이 새로운 싹인 여러분들이 참다운 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대한민국의 국민성이 문제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어떤 국민성을 지녔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어떤 싹이 되느냐가 결정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본래의 조상이 지닌 본질을 떠날 수 없는 겁니다. 조상의 모든 본질을 집약시켜 가지고 재출발할 수 있는 첫단계의 기준에 선 여러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대한민국의 운명이라고 볼 수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시대를 거쳐서 시대적인 열매로 뿌려져서 새로운 싹으로 등장했다 할 때에, 대한민국이 어떠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서 대한민국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가 되어 있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선한 나무가 되어 있다면 선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즉, 그 나무가 세계의 어떤 나무보다도 더 가치 있고 더 좋은 자리에서 자란 나무가 되었다 할진대는, 그 나무를 통해서 어떤 씨보다도 훌륭한 씨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씨를 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씨를 구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시 심어야 됩니다. 심는 데는 어떻게 심어야 되느냐? 그 심어진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옥토 라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가 옥토로서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모든 호조건을 갖춘 땅이라면 그 씨도 그 땅에 뿌려지길 바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씨는 올바른 씨인데 그 환경이 호조건이 되지 못했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옮겨 심어야 됩니다. 만일 그 나무를 옮겨 심을 수 없다면 그 나무는 불행한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의 열매에서 열린 씨라 하더라도 환경이 나쁜 땅에 심어 진다면 거기에서 난 싹에서는 최고의 좋은 나무와 바라는 바의 제 2차의 좋은 씨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대한민국이 과거로부터 좋은 나무가 되어 가지고 그 씨를 받아서 옥토에 심어진 나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무는 좋은데 그 환경이 나무에게 적합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무를 옮겨 심어야 됩니다. 옮겨 심는 데는 누가 옮겨 심을 것이냐? 이것은 자기 자체가 할 수 없습니다. 제 3자가 해줘야 됩니다.

선한 열매를 바라시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찾아오신다면 그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선한 열매를 바라실 것입니다. 선한 열매를 거두어 가지고 무엇을 하실 것이냐? 그 열매를 적합한 옥토에 심어 가지고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동량지재(棟梁之材), 즉 하나님께서 제일 필요로 하는 재료를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이런 소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참된 아들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수많은 국가 가운데에는 환경은 좋지 않지만 씨가 좋은 국가가 있을 수도 있고, 환경은 좋지만 씨가 나쁜 국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역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이 세계가 전부다 좋은 씨라면 세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본래 이 세계가 좋은 나무에서 얻은 좋은 씨로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 소망의 세계, 미래가 보장되는 세계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 소망의 세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가 못 되어 있고, 선악이 뒤엉킨 세계가 되어 있습니다. 주위에 나타나는 환경들은 선한 환경보다도 악한 환경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주위가 악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씨가 좋다 하더라도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라시지 않겠거늘, 악한 환경에 좋은씨가 있다면 좋은 씨 앞에 좋은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이냐? 만일에 씨도 악하고 환경도 악하면 거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키울 필요도 없이 아예 찍어 버려야 합니다. 씨도 나쁘고 환경도 나쁠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기에 무슨 소망이 있을 것 같아요? 씨도 나쁘고 환경도 나쁠 때에는 그것을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뽑아 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씨도 나쁘고 환경도 나쁠 때는 하나님도 잘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씨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근본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씨가 나쁘다면 근본이 나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근본이 나쁜 데서 출발한 것을 좋은 것과 인연맺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출발이 나쁘면 결과가 좋을 리 없는 것입니다. 나쁜 씨로 되어진 인간이라면 그 바탕을 좋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선악의 결정 기준

오늘날 이 악한 환경에서 종교니 선이니 하면시 우리의 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정의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인륜 도덕을 바라보게 될 때, 그 표준을 어디에 세우느냐? 환경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 마음 바탕에 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바탕은 헤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깨끗합니다, 그 바탕이 악하다면 뿌리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나빠져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런데 그 바탕을 헤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뿌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람은 본래 선에서 출발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 안 그래요?

사람은 본래 선합니다. 선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격완성이라는 표준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 악에서 출발했다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의 씨는 본래 나쁜 종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본래 종자는 나쁜 종자가 아닌데, 왜 나쁜 종자가 되었느냐? 여기 수많은 씨,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조상들을 볼 때 오른쪽을 선이라고 하고 왼쪽을 악이라고 한다면 왼쪽과 같이 악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곡절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에게는 곡절이 없습니다. 이것이 달라요. 여러분들도 보게 되면 이 가운데 어느 한가지 부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고로 선하다는 사람을 보면, 그 선조들이 공적인 면에서 선을 찾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입니다. 즉, 참을 추구하고 선을 추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조상들이 선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자기 조상들이 선을 추구한 기준이 많으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빛이 비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수고하게 되면 선한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상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좋지 못한 자리에 있었다면 좋지 못한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을 찾아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면 선과 악이 결정되는 기준은 무엇이냐? 그것은 공적이냐 사적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저 친구는 좋은 친구다' 하는 말을 예로 들더라도 좋은 친구라는 것은 내가 그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할 때. 그 친구도 나를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어야 좋은 친구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구, 저 녀석은 곤란해' 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고비를 넘어가야 됩니다. 개척해야 됩니다. 개척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땀을 흘려야 되겠지요? 수고를 해야 되겠지요? 비행기 타고 쓱 구경 다니는 것이 개척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개척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비례되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러니 땀이 나는 것이고,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선했느냐 악했느냐 하는 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되느냐? 여러분의 조상들이 자기를 위해 살았느냐, 나라를 위해 살았느냐, 세계를 위해서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것보다도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주인은 누구냐?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부모 앞에 효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마음대로 해 가지고 효도가 돼요? 「안 됩니다」 그러면 누구 마음대로 해야 돼요? 부모 마음대로 해야 됩니다. 가정의 공적인 중심이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 마음대로 해야 된다 이겁니다. 부모 마음대로 따라가는 것은 부모의 마음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받은 공적인 천륜을 아들딸 앞에 인계해줘 가지고 보다 나은 가치의 열매를 거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식이 못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가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아무리 살인강도요, 세상에서 지탄받는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게만은 잘되라고 심각한 입장에서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에 부모가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모인 자신은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자식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두고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 혹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후손들에게 '너만은 이 뜻을 품어 가지고 내가 못다한 책임을 완수해 다오' 하면서 자기의 유업을 상속으로 남겨 유언하는 것이 상례가 되어 있습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이 더 공적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가정과 문중을 중심삼고 볼 때에 어느 것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공적이냐? 문중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문중에는 문중의 책임자가 있습니다. 그 문중의 어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문중의 본을 따라 가정이 순응하여 금후에 선배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모범적인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문중을 책임진 사람과 하나되는 것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보다 더 공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왜 공적인 생활을 해야 되느냐

그러면 우리는 왜 공적인 생활을 해야 되느냐? 공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아무리 부모에게 자식이 많다 하더라도 그 중에 부모의 뜻을 백 퍼센트 완전히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부모의 모든 것은 그 아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부모도 그런 아들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은 그런 아들인 것입니다.

어떤 동네가 있다면 그 동네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정성들이고 충성을 하는 사람이 기필코 그 동네의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것입니다. 김씨 문중이면 김씨 문중에 그와 같은 가정이 있어 가지고 그 가정의 대표가 그 김씨 문중을 끼고 면에 영향을 미치게 될 때는 , 그 김씨 문중을 이끌던 책임자가 면의 복을 도맡아 가지고 면장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군을 책임지고 있는 군수와 하나되어 가지고 군을 위해서 보다 공적인 생활을 하게 될 때는 , 그 군수가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를 누구에게 인계해 주겠습니까? 군을 위한 공적인 입장에서 모범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인계해 준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다면 군을 위하는 것보다도 그 나라를 위하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을 위해서 싸우는 것보다도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나라를 보다 중요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중요시하고, 자기 동네를 중요시하고, 자기 면을 중요시하고, 자기 군을 중요시 하고, 자기 도를 중요시하는 것도 좋지만 나라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 가운데는 도도 들어가고, 군도 들어가고. 면도 들어가고, 동네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앞에 공적인 완전한 상속자가 된 다음에 나라를 위해서 충성했다 하는 날에는, 그는 나라를 위한 공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됨과 동시에 도와 군과 면을 위한 진정한 공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공적인 자리를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 앞에 효도했다고 해서 대번에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동네, 면, 군, 도를 거쳐 가지고 국가적 차원으로 발전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을 결정할 수 있는 요인도 뭐냐 하면, 공적인 생활을 누가 더 많이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생활이란 뭐냐?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동네를 위하여, 면을 위하여, 군을 위하여, 도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은 충신과 하나님을 중심삼은 충신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을 충신이라고 합니다. 충신은 그 나라의 도의 사람들도 군의 사람들도 면의 사람들도 동네 사람들도 누구든지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 중심존재로 선 사람으로 인하여 그 나라가 선한 나라로 계속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 가운데서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어느 나라에 충신이 많으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신은 인간을 중심삼은 충신보다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충신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께서 충신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충신의 반열은 세상에서 인정하는 충신들과는 종자가 다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세우려고 하는 충신의 길과 세상에서 나라를 위하는 충신의 길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 ? 이세상은 악하니까 점점 거슬러 올라가서 나라를 찾아 나가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라를 준비하고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역사는 전쟁사인데 이것이 곧 국가 흥망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나라에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충신의 전통을 세워 나가는데 왜 망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망하느냐? 그것은 공적인 입장에 완전히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일치되었다면 망하지 않습니다. 선이 망할 수 있습니까? 선하지 않은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의 흥망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목적의 세계까지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류적인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선의 개인, 선의 가정. 선의 종족, 선의 민족, 선의 국가, 선의 세계를 추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의 세계를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악한 세상을 선도할 수 있는 선의 중심을 보내시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의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역사과정을 거쳐온 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역사 이전부터 시작했다고 하는 말이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중심삼고 선을 추구하는 목적과 신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종교가 선을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한, 인간은 선한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요, 또 이것이 다른 한, 그 씨가 완전한 씨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씨는 사고난 씨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는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게 되면 이 세계는 하나님 뜻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싹이라는 말과는 좀 거리가 멀지만, 역사를 분석해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순종(純種)이 되려면 순종(順從)하라

여러분들은 이제 새로운 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씨는 어떠한 씨냐? 대한민국의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씨, 그것만 가지고 되느냐? 안 됩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잡종과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純種)이 되려떤 순종(順從)해야 됩니다. 그런데 나쁜 주인을 만나서 순종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쁜 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주인을 만나서 순종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좋은 씨가 됩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주인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짜요 사기꾼이요 도박꾼이며, 또 하나는 진짜요 하늘 나라의 왕자로서 와 가지고 정탐하는 파수꾼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즐비하게 차려 놓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빵떡 몇 개를 놓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건을 살 때도 선전을 한다고 해서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탐하는 파수꾼과 같이 가만히 구석에서라도 좋은 물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가 가는 길과 세상이 가는 길, 두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종교가 가는 길에서는 누가 주인이 되느냐? 사탄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스스로 선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세상에서 '아, 이 거룩한 위스키 한 잔에 선해지자' 하면서 술을 먹는 사람이 있어요? 술 먹고 흥청 거리는 거기에 선이 있습니까? 또 '이 술병 끝에는 선과 행복이 깃들어 있느니라' 하는 문학 소설을 봤어요? 봤다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예요. 먹고 마시고 춤추고 떵떵거리며 호화롭게 지내는 거기에 선이 있다고 하는 것을 봤어요? 그런 망나니 같은 나라가 흥한 역사가 있어요? 그런 교육 방법을 들어봤어요? 「못 들어봤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은 아예 그 길을 가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극장 같은 데 보면 '청소년 입장 불가'라는 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도 거기에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가지 말라고 하는 데 가 보고 싶으니까 여러분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내가 택한 것은 틀림없이 좋은 것이다' 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그렇다면 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데 가서 백발백중 좋았다. 내가 좋아서 갔기 때문에 절대 슬퍼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자신할 수 있거든 가라는 겁니다.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자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얼룩덜룩한 패들이라는 거예요.

어떤 때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동정해 주고, 또 어떤 때는 귀찮아합니다. '에이 이것들, 내가 이 다음에 대통령이 되면 모두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지' 하는 마음도 먹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삼촌이 그런 사람이라든가, 혹은 자기의 누나나 형님이 그렇게 되어 가지고 거리에서 그러고 있다고 하게 될 때는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다음으로는 삼촌이 제일 가깝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인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을 보내는 놀음을 하시는 겁니다. 그리하여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심정적 인연을 맺게 하여 수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모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갑자기 돌아 가셨을 때에는 누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되느냐? 자기 집에서 일하던 종이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무리 자기 부모가 그 동네에서 호부로 살았더라도 부모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망하게 될 때는 그 종이 부모와 같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땅에 있는 인간이 부모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내시느냐? 종을 보내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 종은 누구를 위해 자기의 생애를 사느냐? 주인의 아들딸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의 아들딸이 철부지일 때는 종이 자기에게 잘해 준다 해도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철이 들어 가지고 모든 사연을 알게 될 때는 종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위해서 수고한 그 종을 이끌어 가지고 좋은 환경으로 인도해 줘야 그것이 종의 신세를 지고 자란 주인의 아들딸로서의 책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역사도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악한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종을 보내어 구해 주려고 하셨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하늘의 종을 전부 다 때려죽여 쫓아냈습니다. 쫓아내고 보니 그래도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거예요. 쫓아내고 보니 그래도 그 사람이 인간 가운데서 가장 참된 인간이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복귀역사를 연결시켜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공적인 주체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은 전부다 비참한 길을 갔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는 사람과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계에 심정적인 인연을 유발시켜 나오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에게 연결시키느냐? 악한 신이 아니라 참된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길은 공적이어야 됩니다.

이 공적인 것은 뭐냐? 보다 큰 것을 위하는 것입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이 크고, 가정보다는 종족이 크고, 종족보다는 민족이 크고, 민족보다는 국가가 크고, 국가보다는 세계가 더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종교 라는 것은 세계적인 종교로 출발한 것이지 민족적인 종교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민족적인 종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민족적인 종교는 민족적인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두고 보세요.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겠어요? 그것은 기독교의 이념이 천상 천하를 묶을 수 있는 세계적인 이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적인 것보다도 더 공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은 최고의 공적인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해서 가르친 가르침 가운데 최고의 가르침이 뭐냐? 세계를 위하여 공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걸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천째 되는 계명이요(마 22 :37-38)"라고 쓰여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나라님이 없을 때는 대신 그 나라를 사랑해야 되겠지만, 나라님이 있을 때는 그 나라님만 사랑하게 되면 나라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 나라는 내 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공적인 무대로 바라 나온 인간에게 있어서 세계는 땅과 같은 것입니다. 세계는 땅과 마찬가지인데 군왕이 없기 때문에 그렇지 군왕만 있으면 그 군왕만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했다 할 때는 군왕 자신도 내 것이 되는 동시에 그 땅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만우주의 주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이 세계가 누구의 것이 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것 중에 최고의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르쳐 주는 종교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종교는 끝날까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세상에 둘도 없이 큰 농장을 가진 부자집에 태어난 자식이 있다 할 때, 그 자식이 매일같이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해서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힘든 일을 할 때 거들어 드려 부모와 심정의 인연을 맺어 나가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것은 에서와 야곱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상 공적인 것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공적인 것이 무엇이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라를 대하게 될 때는 나라가 나에게 끌려오게 되는 것이요, 그 사랑을 가지고 친구를 대하게 될 때는 친구가 끌려오게 되는 것이요, 그 사랑을 가지고 세계를 대하게 될 때에는 세계가 자기에게 정복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되려면

처녀 총각들을 보게 되면, 아가씨들은 잘난 남자가 지나가게 되면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으로 요렇게 보거든요? (웃음) 그리고 도깨비 같은 이 남자들도 꺼떡꺼떡대면서 슬쩍 여자를 보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어떤 남자가 겉으로 보기엔 거무죽죽한 것이 꼭 가물치 같아 가지고 자다 깨어서 봐도 매력이 없는 남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남자가 전체적으로 보면 남자답습니다. 그런 남자는 말할 때도 여자들처럼 가만가만 하지 않습니다, 말보다 행동을 앞세웁니다. 여자들은 이것이 기분 나쁠 거예요. 남자가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전주곡이 있은 다음에 행동을 해야 할 텐데, 이건 전주곡도 없이 돌격한다는 거예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 때, 맨 처음에는 기분이 나쁘지만 천년 만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자가 달라집니다. 강하고 와일드한 성격이 이 순간만이 아니고 연속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할 때는 , 여자가 다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남자들은 간사하기 때문에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떨어지겠고, 겨울이 되면 말라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좀 촌뜨기 같아도 압축에 밀리는 피스톤처럼 자기가 밀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밀 것이다, 죽기 전까지는 그럴 사람이다'하게 되면 여자의 생각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남자를 하늘같이 사랑한다는 거예요. 굵긴 굵지만 그 껍데기 속에서 붉은 사랑이 지펴 나올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될 때는 거기에 말려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여기 여자들은 주의하라고요. (웃음) 그런 사실들이 영화나 소설 같은 데 많잖아요. 그렇지요?

사연보다도 순정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인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되면 점령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말씀이 사실일까 하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동네에 있는 학교에 미인이 있는데, 그 미인에게 내가 순정으로 총진격하자' 해서는 안 돼요. (웃음) 자기를 중심삼은 순정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라를 사랑하자'와 같은 표준이 있어 가지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의 순정은 통합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나라를 사랑하자. 하늘을 사랑하자. 하늘땅은 내 것이다' 하는 생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세계면 세계를 중심삼고 '너와 내가 하나되자' 하면 '좋다, 하나되자' 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될 때. 그 자리에서부터 세계가 그 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로 말해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완전히 주고받아 가지고 그 사랑이 세계적으로 불타게 될 때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점령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러려면 그 사랑이 어디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이어야 되느냐? 그것이 인간인 자신에게서부터 동기가 된 사랑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의 주인공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뭐 내 님이 어떻고, 내 사랑이 어떻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관념이예요?

여러분, 혼자서 사랑을 할 수 있어요? 아무리 꽃 같은 미인이라도 적합한 남자가 없으면 뭐합니까? 그것은 없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주체는 누가 되느냐? 문제는 그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누가 주체가 되느냐? 사랑의 주체가 되려면 본성을 통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징적인 칭호로서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지만,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 속성에 들어가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 전체에 인격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무엇으로 표현하느냐?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생명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권능입니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랑도 나오는 것이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명도 나오는 것입니다. 태양은 빛과 열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적인 바탕이 무엇이냐? 나라를 위하는 데는 무엇을 바탕으로 해야 되느냐?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됩니다. 사랑이 없는 친구는 이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부부도 이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국심을 가진 국민이 없는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교심, 교회니까 애교심(愛敎心)이지요. 애교심이 없는 종교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랑의 원동력이 강한 사람이 세계를 주관한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사랑하나요? 「예」 통일교회를 사랑해요? 「예」 얼마나 사랑해요? 나라보다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움직이는 종교라면 그 종교는 나라 이상의 나라를 창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원동력이 강한 사람이 세계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그런 내용을 갖추고 지금까지 모가지를 잘라도 이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보다도 어떻다고요? 「강합니다」 강하다고 하지요. 또 피보다도? 「진합니다」 알기는 잘 아는구만. (웃음)

기독교는 처음 출발할 때부터 4백년 동안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았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군왕들이 로마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 그들은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더 사랑하는 사람은 공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악과 싸우게 되면 악이 망하지, 선이 망하지 않습니다. 선은 보다 공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와 같은 입장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4백년 후에 로마 제국을 심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사랑하나요? 「예」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통일 교회를 사랑해요? 「하나님요」 하나님과 통일교회가 일치의 감각을 느낄게 되는 날에는 세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재림주입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공적인 바탕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따라가는 길은 수난의 길이지만, 그것은 수난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 도리어 내일의 소망을 다짐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키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참고 내일의 소망을 다짐하면서 자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식을 나라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미래의 나라를 지키게 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나라보다 그 자식을 더 사랑할 때는 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나라를 대해 충신이 못 되었기 때문에 자기 자식을 대신 미래의 충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재에 나라보다도 그 아들을 더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래의 충신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효도하기를 바라고 그 아들을 나라보다도 더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공식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것은 사랑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우러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공적인 자리에 서려면 희생봉사해야 됩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기 힘든 것이요, 마을을 위해서 봉사하기 힘든 것이요,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기 힘든 것입니다. 자기의 사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고 그야말로 보다 공적인 것을 중심삼고 그 기준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되는 수난이 동반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야만 거기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렇게 했지요? 사랑을 중심삼고 내적인 바탕을 이루어야 거기에 참사람이 나온다는 겁니다. 사랑하고 사람하고 사촌쯤 되지요? (웃음)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형제들 중에도 정이 많고 형제의 사정을 잘 들어주는 사랑심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도 모든 형제들의 결점을 전부 다 압니다. 다른 형제들이 형이 어떻고 누나가 어떻다고 다 보고해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 땅 위의 죄라는 죄는 전부다 직고해야 됩니다. '하나님, 나는 이런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보고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기도할 때 '우리 엄마 아빠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직고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들은 부모 앞에 자기의 모든 문제를 다 얘기하고 풀어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풀어 가지고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부모를 자기한데 끌어당기려고 하는 것이냐, 자기가 부모한테 가 붙으려고 하는 것이냐? 「자기가 부모한테 가 붙으려는 것입니다」 완전히 회개하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 들었지요? 사랑의 도리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적인 사랑이란 우리 인간을 중심삼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성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은 본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중심삼게 될 때는 하나님에게로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첫사랑은 하나님하고 해야

죽자살자 좋아하는 애인이 있는 여자가 부모의 반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 여자는 일생동안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그 여자는 자기가 첫사랑을 했던 남자가 설령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꽃과 같이 좋아 보이는 거예요. 부모가 정해 준 남자는 외모로 보나 학벌로 보나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옛날에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사랑하던 남자는 지지리도 못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첫사랑의 남자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믿어지지요? 「예」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해당이 없지요? (웃음)

첫사랑은 몽땅 점령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는 거예요. 원래 첫사랑은 하나님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해와가 누구하고 사랑했습니까? 「천사장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면서 사랑해야 되는데, 상을 찡그리고 울면서 사랑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타락할 때 해와가 '아이구 좋아라! 선악과 따먹으니 참 맛있다. 맛있어' 했겠습니까? 해와가 천사장한테 겁탈을 당할 때, 그 마음이 어떠 했겠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싫어하면서 천사장의 유혹에 끌려들어 갔다는 겁니다. 모든 세포가 기뻐 가지고 꽃이 상춘을 바라듯 사랑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포가 사그라지고 심정이 사그라진 자리에서 찡그리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봄철이 되면 모든 것이 피어 오르지요?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지요? 여러분은 봄이 좋아요, 가을이 좋아요? 「가을이 좋습니다」 왜 ? 가을엔 씨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봄이 좋긴 좋은데 사랑을 노래하면서 꽃 피우다가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을은 나쁜 것 같은데, 열매를 맺기 때문에 가을이 더 좋다는 겁니다. 즉, 다시 심을 씨를 남겨 놓을 수 있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첫사랑이 귀하다고 하던가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어때요? 「귀합니다」 여러분이 나보다 낫구만. 그래, 대답한 녀석은 첫사랑을 한 경험이 있는 모양이지? (웃음) 그런 말을 할 때는 가만히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들으라고 한마디 해본 거예요. 만약 여기 있는 처녀들 가운데서 그런 대답을 했다면 기합을 주려고 했는데, 도깨비 같은 남자가 대답해서 내가 참는 거예요. 하여튼 첫사랑이 좋다고 하는 말은 들었지요?

그러면 첫사랑은 누구하고 했겠나? 생각해 보세요.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누구하고 했겠어요? 틀림없이 하나님하고 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첫사랑에는 첫사랑이 전부다 응어리져 있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의 사랑, 첫사랑을 중심삼은 부부의 사랑, 첫사랑을 중심삼은 자녀의 사랑,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뿌리가 딱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몇천 년의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개인 복귀니 가정복귀니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왕창 달라붙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한꺼번에 다 달라붙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살라

여러분, 주위에서 더러 좋은 아주머니를 봤어요? 개중에는 자기 어머니보다도 더 좋은 아주머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주머니보다 자기를 첫사랑해 준 어머니가 제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인생의 행로에 보람 있는 생활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나무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라난 국가는 하나의 가지요, 우리 인간들은 잎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누구를 닮겠어요? 「하나님요」 하나님을 닮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뿌리하고 잎하고 모양이 같아요? 「틀립니다」 틀리지요? 뿌리는 땅으로 파고들어가고, 잎은 공중으로 퍼져 올라갑니다. 그렇게 되면 뿌리와 잎이 멀어지는 거예요, 가까와지는 거예요? 「멀어집니다」 멀어지는데 왜 줄기가 굵어져요? 이상하지요? 분명히 뿌리하고 잎이 멀어지는데 줄기는 자꾸 굵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강엿 같은 것을 딱 뭉쳐 가지고 잡아당기면 엿이 굵어져요, 가늘어져요? 「굵어집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말예요.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굵어진다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 전부 다 사랑을 중심삼은 얘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많이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부모와 자식이 불행해지는 것 봤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법도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수고하면 그 사랑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지배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바탕을 지닌, 즉 사랑을 근거로 한 사람은 씨중에 무슨 씨냐? 나쁜 씨예요, 좋은 씨예요? 「좋은 씨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하나님의 사랑의 씨가 되어 있다 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한 마리도 없구만. (웃음) 한 마리도 없다고 해서 기분 나빠요?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이 말에 시비할 사람이 없잖아요?

여러분 중에 자기는 하나님의 사랑의 씨의 근본으로 태어났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이러한 관계에서 빚어진 씨라고 생각하는 사람 솔직히 손들어 봐요. 원리나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본심을 생각할 때, 어떤 것 같아요? 이랬다저랬다 해요, 안 해요? 「합니다」 오늘은 싫어하다가도 내일은 좋아합니다. 사랑은 참인데, 참이 변해요? 시종 일관합니다. 시종일관(始終一貫)의 반대가 뭐예요? 변화무쌍인가? 여러분은 어떤 것이 좋아요? 「시종일관이 좋습니다」 여러분들은 시종일관합니까? 「안 합니다」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천(山川)은 고금동(古今同)이라, 즉 산천은 변함이 없건만 사람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한 거예요? 「아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의 뿌리에서 태어난 씨예요, 아니예요? 싫겠지만 여러분이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을 부정할 수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틀림없지요? 「예」 솔직하게 시인해야지 뭐 어떻고 어떻고 변명하는 것은 선생님이 아주 싫어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창조본성의 바탕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순종(純種)이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못 되었습니다」 순종이 못 되었으니까 순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순종(順從)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을 안들으면 패서라도 순종하는 법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모든 종교의 중심이 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제 순종의 씨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씨를 쪼개면 그 씨의 중심은 뭐예요? 여러분, 씨의 중심이 뭐예요? 「배젖입니다」 배젖의 중심이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골통을 쪼개 보면 그 중심이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씨의 중심, 즉 뿌리가 될 수 있는 동기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내 비록 보기에는 초라하고 육신은 5, 6척도 못 되지만, 이 사나이의 붉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친다' 그래 봤어요? 「못 해봤습니다」 '만민은 어차피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따라오면 따라왔지, 절대 내가 끌려가지는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을 해봤어요? 그런 사랑을 해 보고 싶어요, 안 해보고 싶어요? 「해보고 싶습니다」 해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손만 들면 돼? 이 녀석들.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거기서 열매를 맺어 떨어진 씨라면, 그 씨는 하나님을 닳은 씨가 되겠지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경세포를 자극시킬 수 있는 그 원천, 그 바탕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세계를 한번 보라는 거예요. 그것을 통해서 세계를 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좋은 세계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사춘기 시절에는 말이예요, 천하의 왕자가 되는 기분인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뒤넘이쳐 가지고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이렇듯 사춘기 시대는 반박하는 시대이기에 자기를 몰라주면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청소년들의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삼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하고 관계를 맺었을 때는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해도 신난다는 것입니다.

20세 전후 되는 아가씨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예요, 괜히 '히히히히…' 하고 웃습니다. (웃음) 가을에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서 홍시가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하하하하 웃습니다. 그것은 뭔지 모르게 통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전부다 자기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최고의 감정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라는 것은 모든 것에 접해 가지고 인연맺을 수 있는 전환점인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백 퍼센트 하나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본성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그러지고 밟히고 부서져서 마치 좋은 그릇에 금이 간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천지의 모든 생명의 힘입니다. 이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투입된다면 이 세상은 도인이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닌 씨가 되라

여러분들은 영계가 있는 것을 알아요? 영계하면 닭새끼가 먼저 생각나지요? 여러분, 영계백숙 잘 먹지요? 영계백숙이 뭐예요? 어린 닭을 솥에 넣어 삶은 거예요. 여러분, 공기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심장이 벌떡벌떡 움직이며 숨을 쉬고 콧구멍이 펌프질을 하기 때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가 없으면 공기가 있다고 하겠어요, 없다고 하겠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몰라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상대가 나타나게 되면 알게 된다는 겁니다,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계는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신선한 공기를 들이쉬면 기분이 어때요? 「좋습니다」 등산하는 사람 가운데는 땀을 흘리면서 오뉴월 삼복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가 먼저 올라가나 내가 먼저 올라가나 보자' 하면서 죽기 살기로 산을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기진맥진하더라도 먼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산에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정상에 먼저 올라가서 크게 소리를 치고 싶은 마음이 다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뭐냐? 자기 자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필요한데 그 가운데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계를 관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들, 세계를 관리하고 싶어요, 관리하고 싶지 않아요? 「관리하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를 관리한다면 관리받는 사람들이 좋아하겠어요, 좋아하지 않겠어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 맺는 데 있어서는 상충하는 존재란 절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지닌 씨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차원적인 종교의 필요성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이거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났구만. 이제 결론을 내립시다. 이거 날씨도 더운데, 여러분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엉덩이도 아프고, 진땀도 나고, 힘들지? 내가 강당에 척 들어오니까 땀냄새가 코를 찔러서 '아이구, 큰일났구나' 했는데 이제는 내가 땀냄새에 화해 버렸어요. 화하니까 이제는 땀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그렇다고 땀냄새가 다 도망가서 그런 것은 아니고, 땀을 더 흘렸으면 더 흘렸을 텐데…. 죄지은 사람도 그래서 자기가 죄지은 줄을 모르는 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씨 중에 어떤 씨라구요? 자기가 좋은 씨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속이지 말고 솔직해야 돼요. 틀림 없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됐어요. 그래, 씨를 보니까 어느 쪽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나쁜 쪽으로 가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는 한 부분은 떼어 버려야 됩니다. 나쁜 쪽을 떼어 버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칠판에 판서하심) 좋은 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역사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복귀하려니, 하나님께서 이런 수난의 역사를 이끌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 역사에는 배의 수고가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6천년 역사를 보면 선한 편의 조상들과 악한 편의 조상들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역사이기 때문에, 악한 선조의 후손으로 태어난 여러분의 일생은 이 역사를 탕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올라갔다내려갔다하는 이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 없겠지만, 뜻을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싸웠는데 생각해 주지도 않으니, 내가 문선생님한테 쫓겨난 건가' 그런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자기의 기준을 중심삼고 한 단계 선(線)을 올려 그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 선을 그어 놓고 그 기준을 따라가면 자기의 기준보다 내려가요, 올라가요? 「올라갑니다」 그래서 고차원적인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세웠느냐? 그만한 정성을 모아 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가 되어 통일교회와 더불어 살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입교가 아무리 짧다 해도 워낙 굵고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못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가 탕감해야 할 길을 다 지나가게 되면, 그 때는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운명에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친구 중의 가장 진실한 친구가 누구냐 하면 자기의 부모입니다. 자기 부모가 친구 중의 친구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또, 선생 중의 선생의 왕이 자기 부모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든 계획의 근본은 부모요, 모든 생활의 근본도 부모요, 모든 사회활동의 중심도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모가 참부모가 아니고 거짓 부모가 되었습니다. 거꿀잡이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스승이 필요한가

지금까지 우리들은 친구가 필요했고, 스승이 필요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스승과 같이, 성인과 같이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도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스승을 만나려고 하지요? 그것은 왜? 내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선조의 모든 죄를 빨리 탕감짓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종자가 순종이어야 되는 데 악종이 되었기 메문에 이것을 순종으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공부하는 것도 접붙이는 것이지요?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이 선생님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에다가 접붙여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자를 개종해야 됩니다. 그것은 왜? 여러분은 순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 종자를 개종하려면 하나님의 혈통과 인연을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희고 깨끗한 순종에다가 새까만 종자를 접붙이려면 어떻겠어요?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하얀 순종을 만들려고 섭리하시는데 새까만 종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회색분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얀 것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만들자 이겁니다. 그것이 새까만 종자보다는 낫거든요? 그래도 새까만 것보다 조금은 양심적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새까만 거예요, 순수한 거예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봐요. 여러분이 진짜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여러분 자신이 달려가서 접붙여 주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서 '나만 빨리 알아 주소' 그러지 않느냐 말예요. 여러분들은 그러기가 쉽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흰색깔이 되기 위해서는 새까만 자리인 사탄을 떠나 완충 지대의 교차로를 거쳐가야 됩니다. 그런 길이 여러분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 좋아하던 모든 것을 전부다 부정해야 됩니다.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순종에 접붙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장을 부정하지 않고는 접붙일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도 부정하고, 부부의 사랑도 부정하고, 모든 사랑의 뿌리가 되었던 근본부터 부정하는 참된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사랑의 뿌리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부모의 사랑부터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연의 부모를 중심한 참부모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의 왕이요, 스승 중의 왕이 되어야 할 이 부모가 거짓 부모이니 스승 중의 왕이 될래야 될 수 없고, 친구 중의 왕이 될래야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지팡이와 같은 친구를 필요로 하고, 스승을 필요로 하고, 성인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 접붙여 가지고 자랐으면 성인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누구냐? 친구보다도 스승보다도 더 귀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버리더 라도 참부모를 따라가야 되고, 스승을 버리더라도 참부모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간다고 해서 친구가 '아이구, 너 나하고 이별이다' 해도 이 길을 가야 되고, 스승이 '너하고 사제간 이별이다' 해도 이길을 가야 됩니다. 또, 어머니 아버지가 '이별이다' 해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좋다고 할 수 있는 길을 갔다면 거기에 역사적인 새로운 천지개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자리에 들어가려면

여러분들이 여기 올 때 부모가 가라고 후원해 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봐요. 거 얼마 되지 않는군요. 그러면 가지 말라고 부모가 반대했던 사랑 손들어 봐요. 많군요. 그런데 왜 부모의 말을 안 듣고 여기 왔어요? 내가 부모의 말 듣지 말라고 가르쳤어요? 내가 집 문 앞에 서서 밤낮 끌어 당겼어요? 누가 오라고 해서 왔어요?

여러분, 봄철이 되면 겨우내 땅 속에 들어가 있던 개구리가 나오지 말라고 해도 움적움적하지요? 통일교회에 가면 친구 이상의 친구가 있고, 부모 이상의 부모가 있고, 스승 이상의 스승이 있다고 해서 학교고 무엇이고 다 버리고 와 보니 친구도 없고, 부모도 없고, 스승도 없고 뭐냐 말예요.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콧날을 맞대고 대해 주는 것도 아니고…… 오긴 왔는데 보니까 자기 혼자 딴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모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 때까지는 자기하고 관계 없이 만들었지만,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할 때 이미 자기를 사랑했고, 이미 자기를 지켜 주었고, 이미 자기와 더불어 있었던 분이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숨박꼭질할 때가 많다는 거예요. '아이구, 아버지 ! 나 죽소' 할 때는 하나님께서 모르는 척하고 살짝 숨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숨박꼭질을 왜 하시느냐?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정성을 다하여 이건 내가 했다 하는 조건을 세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정성을 다할 때는 틀림없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자리에 들어가려면 세상에서의 뿌리를 잘라야 됩니다. 세상과의 관계를 끊어야 됩니다. 그래서 순종이 됐다 하는 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서부터 싹트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내 주제는 이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접한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할 자신이 있어요? 전부다 주고 나서도 또 주고 싶은 그런 자리에 서 봤어요? 여러분, 동생들이 뭘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참된 플러스가 생겨나면 참된 마이너스가 생겨난다고 했지요? 참된 사랑권내에서 일치된 사람이 있다면 그런 환경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씨로 개종되어야 한다

씨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성들여 환경을 잘만 맞춰 주면 씨도 잘 자랍니다. 그러면 종자를 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됩니다. 여기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의 뼛골 속으로 먼저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중생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장가가기 전 총각 예수님의 뼛골에 있는 정자(精子) 되기 위한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성숙해서 어머니를 맞이하여 그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전도되어 들어온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선생님이 보고 싶어 울어야 됩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 매일같이 선생님을 찾아와 가지고 울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선생님하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총각 시절의 아담이 지니고 있는 정자와 같이 되어 가지고 성숙 과정을 거쳐서 부모를 모셔 가지고 부모의 뱃속을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이런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온 것을 여러분들은 모르지요?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가 근사해요, 근사하지 않아요? 「근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꿈꾸던 것보다도 근사해요, 근사하지 않아요? 「근사합니다」 근사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 다 버리고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근사한 표본이 있어야만 새로운 씨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씨가 나오기 전에는 새로운 싹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씨가 되었으니 싹이 트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봄날을 맞이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봄날에는 싹이 돋고 꽃이 피지요? 봄날은 사랑의 동산이라 말하지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새로운 봄동산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는 새로운 봄기운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예」

천국을 축소시킨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땅에 정성들여 가지고 그 기반을 확장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기반, 가정적인 기반, 종족적인 기반을 거쳐서 민족복귀의 대업을 다져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환경을 변천시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기에 알맞도록 환경을 변천시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투쟁이 있어야 됩니다. 전쟁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선과 악이 교차되는 데서 하나는 거름이 되는 거예요. 투쟁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 남게 될 때 죽은 시체가 산 사람의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투쟁해 나가는 것입니다. 선과 악, 생과 사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누가 더 강하냐 하는 싸움이 말없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무가 자랄 때에 싸움질을 하면서 자랍니까? 생명이 있는 싹은 말없이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뚫고 자라는 거예요. 그 환경이 돌밭이면 그 돌밭을 뚫고, 딱딱한 땅이면 그 딱딱한 땅을 뚫어 가지고 그 환경을 극복해서 영양소를 만드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입장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지금까지 뿌리를 만드는 과정을 거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드러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옳으냐, 네가 옳으냐? 누가 더 생명이 강하냐 하는 것을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궁창과 같은 냄새 나는 곳에서 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여러분, 씨를 뿌릴 때에 거름을 준 터 위에 씨를 뿌려요, 아니면 돌만 있는 산에다 뿌려요? 「거름을 준 터 위에요」 마찬가지로 민족의 씨를 어디에다 뿌려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씨는 옥토에 심어야

씨는 옥토에다 심어야 됩니다. 그 옥토를 만들려면 거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거름하고 씨하고 관계가 있어요? 다시 말해, 씨가 비료를 좋아하나요? 씨의 꺼풀이 벗겨져야 비료를 좋아하지, 벗겨지기 전에는 그 씨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나 생각해 봐요. 그 씨를 비료 틈에 갖다 묻었다고 하면, 그 씨가 비료고 뭐고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그러나 꺼풀이 벗겨져 씨와 비료가 조화를 이루게 되는 날에는 지금까지 기분이 나쁜 것은 사라지고, 거기에서 생명이 움터 나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그러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에 나가서 어려운 가운데서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러한 씨를 심어 놓자 이겁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비료로 흡수하여 주체적인 생명력을 갖게 될 때에는 틀림없이 그 부락을 덮고도 남을수 있는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은 그 부락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간하여 환경을 개척해 나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거기에 주인이 있어 가지고 전부 다 잘 자라게 가꾸어 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전부 가꾸어 주었지만,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혼자 다 가꾸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언제 돌아다니면서 다 가꾸어 주겠습니까? 여러분은 가꾸어지는 것이 좋겠어요, 가꾸어지지 않고 혼자 자라는 것이 좋겠어요? 「혼자 자라는 것이 좋아요」 가꾸어 주지 않더라도 가꾸어 준 것같이 혼자 잘 자라게 되면, 그것은 상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꾸어 준 만큼 열매가 맺힐 때 그것은 제한된 열매의 가치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냥 내버려 둬 가지고 고생을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대신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꾸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면, 그 어려움을 미리 다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주력을 가진 심정의 씨가 되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는 , 모든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졌느냐 하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자주력을 가졌어요, 안 가졌어요? 여러분이 그 환경 속에 들어가면 흡수당하는 패가 되어 있느냐, 아니면 흡수시킬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여러분은 어떻게 될래요? 흡수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될래요? 「예」 여러분은 환경을 흡수시킬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순종이 되어야 한다 이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을 어디에 갖다 놓아도 그 곳에서 뿌리를 박고 그 환경에서 모든 반대하는 무리들을 수습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한 4백명 되는데, 이 가운데서 심정의 씨가 되어 가지고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싹을 틔워 흡수시킬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지고 자기 홀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자들도 자신 있어요? 「예」 남자도 아닌데 여러분들이 그럴 수 있어요? 「예」 그럼 그래야 되지요. 어디 그래야 되겠다는 사람 똑바로 손들어봐요.

여러분이 전도 나갈 때는 아침에 일찍 밥을 먹고 나가야 합니다. 조금만 고삐를 늦추면 나가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니, 일찍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어떤 곳에 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말이에요. 전도 나가는 총각들 앞에는 처녀가 귀신이라는 거예요. 또, 전도 나가는 처녀들 앞에는 총각이 귀신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전도 나가는 총각들은 처녀를 세뇌시키기는 커녕 통째로 삼켜 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처녀들한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또, 처녀들은 남자들을 많이 대하고 사귀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자신이 있어요? 「예」 대한민국을 요리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거기에 있어서 안 된다는 모든 요소를 척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악한 것을 잡아먹고 살찌자는 겁니다. 나쁘다는 곳에 우리가 가 가지고 그것을 총칼로 소탕하는 것이 아니라 참사랑으로 몽땅 흔적도 없이 삼켜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료삼아 가지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자주력을 가지고 싹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꼭대기에서부터 내려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맨 밑창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발판삼아 세계로 뻗어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맨 밑창에 뿌리를 박은 얘기를 할 것 같으면 굉장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었으면 죽었지 캐지 못할 뿌리를 박아 가지고 맨 밑창에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맨 처음 뿌리를 심어 가지고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계속 올라오면서 수만 가지의 뿌리를 만들어 나오는 거예요. 아직 순은 안 나오고 뿌리만 박고 있습니다. 그 순들이 올라 와서 꺼풀이 벗겨져 새싹이 나왔다 하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박격포에 탄환이 들어가면 반발하여 튀어 날라가듯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버티고 서서 '이놈의 세계야, 한번 해보자' 하게 될 때는 틀림없이 맞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제는 개인적인 새싹시대에 왔습니다. 하늘의 섭리는 복귀섭리 역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새싹시대, 가정적인 새싹시대, 종족적인 새싹시대, 민족, 국가, 세계적인 새싹시대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해 내야 되느냐? 나 자신이 해야 합니다. 이제는 개인 가정노정이기 때문에 종적인 6천년 역사를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 횡적으로 탕감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내 일대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연결시키기 위할 것이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인 봄절기를 맞이해 보았어요? 못 맞이해 보았다면 그 싹이 뻗어나가는 개인적인 뿌리에 붙었어요, 안 붙었어요? 「붙었습니다」 그러면 축복가정이 다 됐겠구만? 가정적인 새싹시대에 붙었어요, 안 붙었어요? 「안 붙었습니다」

세계를 덮을 수 있는 나무가 되라

개인적인 뿌리는 제일 밑창의 뿌리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이 올라가고 그 다음에 종족이 올라가서 국가적 기준까지 올라가는 날에는…. 이제는 많이 올라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 붙었어요? 「제일 밑창에요」 거기에 붙었으면 뿌리가 되겠어요, 싹이 되겠어요? 무엇이 되겠어요? 여러분은 개인을 위해서는 뿌리가 되어야 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싹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때가 그러한 때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사랑의 싹이 되어야 됩니다 그 싹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뿌리 중에서도 중심 뿌리 있지요? 여기에서 뿌리가 자라 나무가 되지 않아요? 그렇지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겁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뿌리를 거쳐 나가는 모든 영양소를 전부 흡수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뿌리다운 뿌리가 되어 온전히 잘 주고 잘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서면 그 싹은 반드시 잘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싹의 중심은 누구냐?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싹의 중심이 누구예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지요? 「예」 선생님을 중심삼고 우리가 얼마나 하나되느냐? 하나되어 삼천리 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나 자신이 영양분을 흡수해 가지고 새싹과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새싹이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영양을 흡수하여 새싹에게 넘겨줄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아니면 질질 끌려가는 입장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싹이라면 여러분은 거름이 되든가, 그 거름이 못 되면 영양을 흡수시킬 수 있는 뿌리가 되든가, 또는 선생님과 같이 싹이 되든가, 셋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뿌리를 자라게 할 수 있는 거름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영양을 흡수할 수 있는 뿌리가 되든가, 아니면 뿌리를 거느릴 수 있는 싹이 되든가, 셋 중의 한 가지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 중의 하나가 안 되면 이 나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편이 아니라 사탄편입니다. 사탄편은 지옥에 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런 모든 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된 것입니다. 그걸 알고 참다운 심정을 가지고 옥토에 뿌려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싹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뿌리만 뻗어나온 것입니다. 동삼삭, 추운 겨울을 맞이해 죽지는 않고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뿌리만 뻗어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싹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뿌리가 필요하니 뿌리가 되든가 비료가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싹으로서 제일 필요한 것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환경에 가서 싹과 뿌리가 완전히 일치되게 하는 날에는 앞으로 국가라든가 세계에까지 확대시키어 세계를 덮고도 남을 수 있는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이번 이 모임에 와서 더더욱 결의를 해 가지고 새로운 싹이 되든가, 새로운 뿌리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지시여 ! 당신은 지금까지 영계의 비밀을 비사로 일러 인류를 이끌어 나오셨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의 한 나무의 비사를 통해서 저희들이 배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아버지의 참된 씨가 되어 참된 나무로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다시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수백 개의 씨의 결실로 나타나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봄날을 맞이하여 저희들을 참다운 씨로서 뿌리시고 자유천지에서 참된 나무로서 성장하게 하시어 당신의 위로가 될 수 있게 하소서. 또한, 거기에서 풍기는 꽃향기 속에 열매를 맺어 가지고 만국에 충만함을 베풀어 끝날의 기쁨의 잔치를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소원을 성취하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이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께 지금까지 불효했음은 악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소망이 가득찬 환경 가운데서 공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씨로서 참다운 옥토에 뿌리를 박아 뿌리를 중심삼고 싹이 뻗어 나가 하나의 나무가 자라는 법칙과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새로운 싹을 필요로 하는 이 환경을 중요시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청년시대를 곱게 단장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 인연된 이들의 행로를 지키시어 그 환경의 터전을 중심삼고 자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참다운 싹이 되게 하시어서, 이 민족과 이 나라 이 세계 앞에 있어서 모든 인류가 바라볼 수 있고, 모든 인류를 품을 수 있는 새생명의 나무가 되게 하시어서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만국에 뿌려지고 남아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한 역사노정을 저희들이 추구하고 있사오나, 아버님을 중심한 그러한 한때를 갖지 못한 것을 서러워하고 있사옵니다. 악한 세계의 현실을 바라 보고 고난이 몰아닥치는 것을 바라볼수록 저희들이 가야 할 투쟁의 노정이 얼마나 험한 노정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환경이 험하면 험할수록 저희들이 차근차근 수습해 가지고 몰아치는 악한 환경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흡수시킬 수 있는 자제력과 주체성을 가진, 즉 선한 생명력을 가진 씨가 되고 싹이 되기를 더더욱 결의하는 모습이, 일생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과정에서 이것을 이어받지 못한 것을 다시금 새로운 스승의 자리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려면 저희들은 강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이 나라가 공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결속될 수 있는 , 어떠한 힘으로도 뗄수 없고, 어떠한 역경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신념에 불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시련을 견디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소를 보충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에 남아 있는 모든 악의 요건을 제거시킬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이 민족 앞에 나타나서 세계가 바라는 소망의 민족으로서 맞아들일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락하신 이 기간 위에 당신께서 주시고 싶은 은사를 충만히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기의 부모가 있는 가정이나 그 동네, 이러한 환경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소년 소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께서는 사울왕이 실수했을 때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슬퍼하시고, 사울왕 대신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또, 골리앗을 굴복시킨 다윗은 하나님 앞에 충성을 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절대적이었기에 선별하시어 왕으로 삼으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믿는 마음이 철석같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생명력과 아버지의 세력권을 중심삼고 영원히 화할 수 있는 인연 가운데 새로운 싹이 되어 가지고 자라서, 민족의 한과 세계의 한을 흡수시켜 폭발시키고 남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강한 힘의 주체를 가질 수 있는 저희들 자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시간까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3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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