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남기신 복귀의 노정을 살피면서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가름하는 이 싸움터에서 자기 중심삼고는 아무것도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는 자신들의 미약함을 깨닫고 홀로 하늘을 우러르며 당신의 거룩한 손길을 바라는 부족한 자녀들의 모습이 있는 것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얼마나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능력의 주체이신 당신께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갈구하였사옵나이까? 이러한 선조들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오늘 저희 자신의 초초한 모습을 가다듬고, 정성을 들여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지 못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서 하늘을 하늘로 모시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자신이 하늘 앞에 세워진 자녀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희가 진정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당신께서 저희를 자녀라 부를 수 있는 그 자리가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또 이루어져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마냥 부족한 자신이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면목조차 세울 수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시여, 이 아침에 저희들을 불러 모으셨사오니 아버지께서 개개인을 살피시옵소서. 지금까지 저희의 선에 대한 갈구심과 아버지에 대한 흠모의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문제였음을 깨닫게 될 때, 아버지여, 부족한 저희들은 다시 한번 아버지께 용납을 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언제나 슬픔의 노정에서 살아야 하는 타락의 후손이 된 것이 얼마나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얼마나 한스러운 일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인 것을 탄식해야 할 자체인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내가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게 될 때는 아버님이 또다시 그런 입장에 서셔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안타까와하지 않으면 아버님이 안타까와 하실 것이며, 내가 슬퍼하지 않으면 아버님이 슬퍼하실 것이며,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버님이 노력하셔야 하고, 내가 싸우지 않으면 아버님이 싸우셔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과 나는 상응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반적인 입장에 있어서, 내가 좋다 하는 자리에 있을 때에 아버님은 슬픈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며, 내가 슬픈 자리에 있을 때에 아버님은 기쁜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러한 역설적인 운명의 노정을 개척해야 할 자신을 다시 한 번 주시하면서, 내일의 나를 비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전국에 널리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눈물짓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사옵니까?그 자리에는 당신의 자비가 깃들 것이며, 그 자리에서부터 선이 출발될 것이며, 그 자리에서 당신의 심정의 인연이 싹틀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은 눈물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슬픔과 싸우고 외로움과 싸우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참고 간 길이 하늘을 향해 수많은 도인들이 간 길이요, 선한 선조들이 남긴 역사적인 길인 것을 깨닫고, 그와 같은 노정에 자신을 투신하여 이 시간부터 매일매일을 거쳐 생의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의 행로에는 기뻐할래야 기뻐할 수 없는 역사적인 죄상이 나를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시대적인 모든 여건이 나를 구속하여 내일의 해방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여건을 격파하고 돌파하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부르시는 그 소원의 터전 앞에, 당신이 걸어오신 그 슬픔의 노정 앞에 부름받은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효자효녀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이 소망하시는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갈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다시 한 번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한국 땅, 이곳을 그리워하고, 이곳을 향하여 정성을 들이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외롭겠사옵니까? 불쌍한 그들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자녀들이 있다 할진대 당신께서는 지금까지 인류를 찾아오시면서 눈물지으신 당신의 입장과 비교하시어서 그들을 동정하시리라 믿사옵니다. 그러한 나날을 보내기를 바라며 생활하고 있는 저희 생활의 사연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당신이 아니 계시다면 저희들이 이와 같은 자리에서 이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하늘 앞에, 인류 앞에, 그리고 역사시대 앞에 참고 나가는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와 같은 생활이 연속되는 자리에, 아버님이여, 찾아오셔서 같이하여 주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전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저희들은 육적인 세계는 먼 거리를 두고 있사오나, 마음의 세계에서는 한 시점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와 같은 사연을 통하여 오늘도 승리하고 내일도 승리하고 일생토록 승리할 수 있게, 아버님이시여, 보호하여 주시옵고, 부디 붙드시어서 놓지 말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그들이 원하는 세계가 저희가 원하는 세계인 줄 아오니,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과 감정마저도 동료의 자리에서 같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과 우리가 느끼는 심정적 사연이 당신의 사연과 일치될 때에 참다운 형제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인연이 땅의 끝에서 끝까지 맺어지게 될 때에 세계는 복구의 터전이 갖추어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인류를 대신하여 박애의 심정을 부르짖었사오며, 자기 일개의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 동족애를 부르짖었사옵니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와 심정적으로 일치되어 사랑하며 살았던 무리는 없었사옵니다. 그러한 역사시대의 슬픔을 아는 저희들에게 오늘의 이와 같은 인연을 맺어 주신 당신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슬픔이 저희의 슬픔이요, 그들의 소원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들이 바라는 모든 뜻이 당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를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의 슬픔은 그들 자체만의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동의 슬픔은 서로 연결되고, 서의 슬픔은 동으로 연결되고, 지상의 슬픔은 동서로 연결되어 천상의 슬픔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또한 저희의 슬픔보다 더 큰 아버지의 슬픔을 풀지 않고는 한 발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 복귀섭리의 노정임을 아옵니다. 이와 같은 눈물을 흘려야 할 인류의 사연을 긍휼히 보시는 아버지시여, 당신도 그런 사연과 더불어 눈물을 흘려 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머리를 숙인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당신의 심정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거든,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거든, 그들 사이에 연결되는 심정의 일치점이 당신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축소하여 개인으로 볼때는 몸과 마음이 일치점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치점을 연결시켜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온 세계의 남성과 여성, 나아가 지상과 천상 세계 전체가 당신과 일치점을 갖추지 않고는 생명의 인연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끼리 인연된 것은 인간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것을 아는 저희들은 인간만으로 시작되고 인간만으로 연결되고 인간만으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사오니, 아버지께서 중심이 되시어 출발과 과정과 목적과 결과까지 갖출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이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까? 저희의 몸이 얼마나 간절히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까? 저희의 몸과 마음이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사연에 얼마나 사무쳐 있사옵니까? 자신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옵니까?
그러지 못한 사연이 있거든 용서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이들의 마음을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들로 하여금 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인연이 여기에 나타나지 않으면 사망의 터전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사오니, 이부족한 자신들을 살피시는 아버지시여, 저희들을 사망세계에 버려 두지 마시옵고 찾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의 생명의 인연권내에 흡수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없어져야 되겠사옵니다. 저희자신들이 완전히 무의 경지에 들어가서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일념만이 저희 마음에서 우러나와 당신의 움직이심에 흡수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출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보내실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오면 보내시옵소서. 뜻의 세계를 이루시옵소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기에 뜻이 이루어질 그날을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권고하시옵고 부축하시어서 타락으로 인한 이 원한의 구렁텅이를 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오니 당신이 이날을 주관하시옵고 일체를 당신이 관리하시어, 선한 결과의 자리에 도달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참석한 자녀들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이 전체 청중이 하나되어 당신이 주도하시는 그 모든 소원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거룩한 인연이 맺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정지와 전진이 성패를 결정하는 동기가 됩니다. 또한 그것들이 성하게 하느냐, 혹은 망하게 하느냐 하는 전체적인 문제를 좌우하는 것을 우리는 생활주변에서 왕왕 보게 됩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흥하기를 바랍니다.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앞으로 앞으로 발전해 가지고 환경에서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가정도 그러합니다. 가정이 그러하기 때문에 가정이 연결되어서 이루어진 한 국가도 그와 같은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그러니 세계도 그렇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입니다. 또, 우리 인간이 이러하니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움직여 나가시는 데는 그 움직여 나가시는 역사의 실황이면 실황, 상황이면 상황이 정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정지하는 것을 넘어서 전진하거나 발전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전진의 한계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한계선은 어떤 자리가 될 것이냐? 하나님과 인간이 분립된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진하는 그 최고의 한계선은 반드시 하나님과 우리가 보다 강하게 합할 수 있고, 보다 강하게 하나될 수 있는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냐 하면 하나된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된 세계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 있다하더라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빛이 나는 것입니다. 또, 그 귀한 것이 자기와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해야 됩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존재라도 영원할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면 그것은 무가치한 자리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귀한 것이 있어서 나와 하나되었다고 해도 그 가운데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적인 한계선을 넘어서 영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더 사랑할 수 있고, 보다 더 고차적인 사랑의 인연을 찾아볼 수 있고, 보다 더 고차적인 사랑의 내용이 연결될 수 있어야만 거기에서 비로소 무한한 가치의 존재로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사랑하는 자녀들을 최고로 귀한 것으로 표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의 한계점은 어디일 것이냐?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에만 사랑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를 통해서, 더 나아가 영원을 통해서 사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부자관계가 맺어진다면, 무한한 힘과 무한한 자극과 무한히 새로운 그 무엇이 그 관계권내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은 부자의 관계는 어느 한때에 반드시 중단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것으로서, 지극히 좋은 것으로서, 무한한 가치의 것으로서 인연되었던 관계가 중단되게 될 때에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대신 바꾸어 갖지 않는 한 관계되었던 그 가치라는 것은 도리어 슬픔의 조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한 가치의 것을 품거나 가지고 있을 때에 그것을 어떻게 해서 그보다 더 귀한 가치의 것으로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귀하고 무한한 가치의 것은 인간 세상의 물질적 혹은 외적인 어떤 인연을 가지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 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인연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인연도 제삼자를 통해서 맺어질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관계로 맺어져야만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전진의 한계선은 어떤 곳이냐? 이제 말한 바와 같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곳입니다. 하나되는 데도 어떠한 시점, 어떠한 한계권내, 혹은 어떤 시간권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넘고 넘어 더욱더 발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그러한 요인을 갖추지 않고는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한계선에 도달하지 않고 행복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한계선 이하의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찾기를 원하는 최고의 한계점이라는 것은 무한한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무한히 자극시킬 수 있는 한 점을 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전진의 최고 기준이 되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자체를 비판해 보게 될 때에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신은 되지 못하였더라도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준비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없다면 반드시 정지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일을 하다가 잠깐 쉰다는 의미에서의 정지는 좋지만, 갈 길을 남겨 놓고 가려고 준비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그대로 정지한다면 그런 사람은 거기에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정지된 자리에서는 모든 만상이나 어떠한 존재세계와 관계를 맺으려 해도 존재세계 자체들이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생활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려 할 때에는 발전할 수 있는 친구냐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친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소망이 없는 친구와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자기에게 점점 무가치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친구와 관계를 맺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그러한 노력을 해 나갈 것이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투입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생명이 투입되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의 사랑을 두고 보더라도 거기에는 생명의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생명의 인연 속에서 소원을 갖고 있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인연을 떠나 가지고는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반드시 생명의 인연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생명을 얼마만큼 투입해 가지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보다 가치있게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남아 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 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도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이 가정생활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과 나는 부부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에게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자기 스스로를 넘을 수 있는 생명력이 서로서로간에 사랑을 자극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주고 받는 사랑이라야 그 부부의 사랑은 영원히 지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사랑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 애국자라는 말 가운데는 반드시 생명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충신이면 충신도 역시 생명을 초월하고 나서야 결정됩니다. 충이니 효니, 혹은 사랑이니 하는 등의 귀하다고 하는 내연 가운데는 반드시 생명이 결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생명과 결부된 인연의 도수가 얼마만큼 되느냐에 다라 가치있는 것이냐 무가치한 것이냐, 혹은 영원한 것이냐 시한적인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혹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생명이 내 자체에 얼마나 미쳐져 있느냐에 따라 나 자체가 무한한 가치를 지녔느냐 안 지녔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전진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없는 사랑은 한정된 시간권내에 포위되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시간권내에 포위되는 사랑은 필요치 않습니다. 즉, `어느때까지만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는 나의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사랑한다', 혹은 `내가 살 때까지 사랑한다'는 등의 한계선을 정해 놓고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고의적으로 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나의 의식을 넘어서 이미 생명의 인연이 연결된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비로소 영원한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사랑한다고 함은 어떤 특정한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더라도 그의 일생 동안, 즉 70년이면 70년, 80년이면 80년 그가 사는 기간 내에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선조를 거치고 현재의 인류를 거쳐서 그 개인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까지 영원히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그 사랑은 그 사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첨단에는 반드시 생명의 인연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딪치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동반하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도 좋아하고 자신도 좋아할 수 있는 하늘의 사랑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야 합니다.
친구지간에도 서로 좋아한다는 친구지애가 있다 하면 거기에 서로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얼마만큼 내포되었느냐에 따라 우정의 대소를 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진하는데 있어서 표준삼고 있는 한계선은 생명과 사랑이 결부된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가 아니고는 전진의 목적도 전진의 가치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인류가 발전이나 전진해야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할진대 그 소망의 한계선이 어디일 것인가?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민족과 하나되는 것보다도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하나되는 자리입니다. 또 나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이 나와 더불어 세계에 연결되는 자리입니다. 우리 인류가 그런 자리에 설 때 비로소 전진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에서 내가 기뻐하는 것은 내 기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의 기쁨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내가 기뻐하면 이 환경권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반드시 기쁨에 사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도 내가 기쁘다 할 때 그 기쁨은 내 마음에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에 걸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이 맞부딪쳐 가지고 무한한 가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자체만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전체의 생명력이 될 수 있고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인연이 맺어지면 그 가운데는 모든 전체의 생명의 인연이 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에서 직선상으로 주고받는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평면적이고 입체적인 내용이 개재되어 그 환경이 전부다 사랑권내와 생명권내로 부활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권은 우주사적인 생명과 우주사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무한한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가치의 자리는 없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자리인 것입니다. 최대의 소망의 한계점이요,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장 귀한 자리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런 자리를 찾아 나가느냐 하는 것이 수많은 종교 인들과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한계점을 앞에 놓고 여러분 자신이 오늘 어떠한 자리에 처하여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규명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혹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기의 종족, 친척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친척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 가운데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생명이 기울어져 있고, 자기의 뼈살이 투입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과 인연이 끊어지게 될 때는 아픔을 느껴야 됩니다. 슬픔을 느껴야 됩니다. 슬픔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에서 소모되는 감정에 비례하여 그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갈라놓으면 생명을 져버리고라도 그 인연을 회복하려고 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생명을 연결시킨 이상의 자리에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은 자신을 중심한 생활권내에서 생명의 인연을 넘어선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사느냐, 또는 내일의 소망세계를 향하여, 내일의 하나님의 사랑세계를 향하여 움직여 나가고 있느냐, 즉 발전도상에 있느냐 정지된 입장에 있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습관적인 생활권내에서도 왕왕 이런 것을 체험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자극도 받지 않고, 이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으니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회사에 나가는, 이런 습관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무가치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는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의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회사면 회사, 기관이면 기관내에서 대인관계, 혹은 사업관계에 자기의 사랑과 생명을 결집시킨 내용을 얼마만큼 투입하느냐에 따라 보람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냐 보람없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우리 개체 개체가 어떤 입장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욱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과 나의 기쁨이 만나 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결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개체가 얼마만큼 전진적 사랑과 생명력을 지니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이 생명, 또는 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데에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자리에서 있지 못한다 할진대 그것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면 후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후퇴는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후퇴하는 자는 누구도 친구가 되어 주지 않고 합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전진하는 자리에서만이 합하고자 하고 친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자체는 정지하고 있느냐? 혹은 전진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고 있느냐?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뜻을 안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생활이, 어떤 사람은 일년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십년이 되었고, 혹은 반평생을 뜻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도 있을 텐데 그동안의 생활이 정지된 입장이었는가 아니면 전진하는 입장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는 입장이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은 이중의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것을 반드시 명시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전진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정지해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전진하면서 무한한 가치와 무한한 생명력과 무한한 사랑의 힘을 지니고 살았다고 해도 현재 정지된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과 이별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있습니까? 정지해 있습니까, 전진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고 있습니까? 과거에는 후퇴하거나 정지해 있었지만 오늘 이 시점에서는 전진하고 있다, 아니면 과거에는 전진하였지만 오늘 이 시간은 정지하고 있거나 후퇴하고 있다고 운명의 저울이 여러분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정지는 후퇴와 가까운 것이요, 전진이라는 것은 목적지점에 가까운 것입니다. 정지한 자리는 후퇴에 가깝기 때문에 사망선에 가까운 것이요, 정지된 입장을 극복하고 전진하게 될 때는 생명선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 두 경계선에서 생명을 이끌고 자기의 생애노정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냐?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정지해 있느냐? 전진하고 있느냐? 아니면 후퇴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요, 하나님의 생명은 무한한 생명이라 할진대 그러한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 생명과 그 사랑은 정지할래야 정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생명이 정지할 수 없는,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는, 전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할진대 하나님의 섭리노정에는 발전만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 사랑과 생명력이 정지된다면 하나님의 구원섭리도 한계선 이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정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생명력이 정지되어 있다는 말은 부정되어야 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고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도상에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정지된 때가 없었던 것이요, 하나님의 생명력이 정지되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사랑의 정지된 때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소망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천륜 앞에, 지금까지 끊길 줄 모르고 나온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 앞에 오늘 우리 개체가 정지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이 이상의 반역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천년 동안 쉬지 아니하시고 생명력과 사랑으로 오늘 우리 자체를 찾아 세워 가지고 목적세계의 한계점까지 끌고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그 손길을 망각해 버리고, 그것을 부정하고 정지한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불효라면 그 이상의 불효가 없는 것이요, 불충이라면 그 이상의 불충이 없는 것이요, 악이라면 그 이상의 악이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생명력과 사랑은 정지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나 자신은 정지하기 일쑤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말할 수 없는 회개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로되, 자체를 위주한 사랑과 자체의 가치를 자랑하는 생명력으로서 끝난다면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은 이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갈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주한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은 한계의 세계는 하나님의 뜻의 세계와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인가, 혹은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인가, 혹은 중간 영계에 머물러야 할 사람인가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지와 전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생명력과 더불어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여 자기일신을 망각하고 민족과 인류를 사랑한다면 천국을 향하여 갈 수 있는 하늘 백성임에 틀림없고,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하늘 백성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니 뜻이니 하는 것을 다 망각해 버리고 나를 중심으로 하는, 나를 한계점으로 삼는 사람은 정지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천국은 떠나갈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한 한계권내의 천국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자기권내에 들어오는 천국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하나님의 생명권내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 천국은 어디까지나 세계를 넘은 천국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한 천국을 모색하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은 권내의 천국을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그 권내에 하나님이 들어와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천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다 큰 세계가 그런 사랑권내에 임재할 수 있는 천국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답답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자기권내에서, 한계점에 정지된 입장에 있는 사람을 중심삼은 천국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하의 자리에 속한 사람은 지옥에 속한 존재인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지라는 말은 지극히 두려운 말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시작할 때, 즉 뜻을 따라 이 길을 출발할 때에는 민족복귀라는 거룩한 표제를 갖고 나왔습니다. 그 민족복귀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 한계선을 넘어 세계복귀라는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는 그날을 소망하면서, 갖은 역경을 돌파하고 갖은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은 천국으로 직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정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후퇴하는 사람, 즉 민족적 천국권내에서 전진하던 발걸음을 돌이켜 개체의 소원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지옥을 향하여 가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권내에서 어떤 책임자가 `뜻을 위하여 가자'고 명령을 하거나 지시를 할 때 `갑시다!' 할 수 있는 힘이 여러분 자체내에 없다고 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정지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목적을 향하여 총진군하자'는 명령이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명령 앞에 무감동하고 자기의 생명의 감동이 거기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정지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지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권고하고 아무리 자극을 주어도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재기할래야 재기할 수 없는 입장에 떨어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소모전을 펴야 될 것입니다. 열만한 힘을 주었는데도 무감동한 사람에게는 백 이상의 힘을 가중시키지 않고서는 움직여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 스스로 움직여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손해를 입히지 않고는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그 손해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무한히 슬픔을 느껴야 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도 슬퍼하는 마음마저 잊어버린 사람은 영원히 소망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과 더불어, 혹은 세계와 더불어, 혹은 하늘과 더불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용솟음치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친구와의 인연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를 나가고, 친구의 권고를 이기지 못해 가지고 뜻길을 간다고 하는 사람, 횡적인 제삼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은 전진하고 있습니까? 정지해 있습니까? 후퇴하고 있습니까? 이런 문제가 여러분이 이제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만일 지금 전진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전진의 박차를 늦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면 그것을 개인을 향한 마음으로만 끝내서는 안 됩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해서 민족과 세계 인류앞에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만약에 개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연결시켜야 합니다. 나아가 그 마음을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에 접촉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락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백이라는 양의 죄를 지었으면 그이상의 노력을 하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회개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대 만대의 선조들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 선조들이 선한 선조들이면 나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생명권내에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선조들이라면 하나님의 생명권과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권과 인연을 맺으려면 선조들이 악하였던 모든 양을 넘어설 수 있는 회개의 기간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채우지 않고는 자기 이상의 생명력의 세계에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는 반드시 회개의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회개하며 전진할 수 없다면 반드시 신앙의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세계를 넘은 천국이라면 그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응당한 요구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친구 가운데 선한 친구가 있거든 그를 꼭 붙들고 가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 이상 그를 존중하면서, 그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가 지시를 하면 그것을 따르기 위해서 갖은 수고를 해 나가게 되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현재의 입장을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백만한 자리에 있으면 자기도 그 백만한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그 사람과 하나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보다 좋은 친구, 보다 좋은 스승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동반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누구보다 귀한 메시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류와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인 존재, 친구와 같고 스승과 같고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와 같은 입장으로 가장 귀한 하나의 대표적인 존재를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존재가 누구냐 하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우리 인간에게 둘도 없는 친구요, 둘도 없는 스승이요, 둘도 없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 분밖에 없는 최대의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보내진 사명자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를 붙들고 눈물짓고, 그 메시아를 위하여 생명을 투입하고, 그분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면 세계사적이고 천주사적인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내에 돌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의 선물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삼고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투입했던 것입니다. 생명만 투입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사랑까지 투입했습니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은 죽음과 더불어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더불어 예수님의 생명과 더불어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기독교를 통한 부활의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메시아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랑까지 전부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건 왜? 인류는 지금까지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 혹은 하늘땅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전진, 전진의 행로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의 전진의 행로를 추구해 온 목적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일시에 달성할 수 있고 혹은 일대에 달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그분을 맞아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사랑을 다 투입했다는 인연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다 주었기 때문에 다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리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권 세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일시에 도달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회개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의 길을 찾아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가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고, 회개하지 않는 자가 세계를 사랑한다는 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회개할 수 있는 인연은 어디서부터 찾느냐? 그것은 사람을 통해서 찾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찾으려니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은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어버이 중의 어버이로서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몽땅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사랑할 세계와 그분이 사랑해야 할 하늘땅을 사랑할 수 있는 권내에 돌입하는 것이 됩니다. 그분과 더불어 인연을 맺지 않고는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타락한 후손들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 지도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종교 지도자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최고의 스승의 이름으로, 최고의 친구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를 만나는 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최대의 행복이요, 그분을 만나는 자리는 최고의 영광의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그곳을 향하여 찾아나왔습니다. 세계를 찾기 전에 그분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분을 모시고 생활하면 그 가정은 천국권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을 모시고 충의 도리를 하게 되면 그 충의 인연을 통해서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중심삼고 세계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하게 될 때에 세계는 찾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을 얼마나 똑똑히 아느냐, 또 그분이 명령을 하면 그 명령을 내가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이 백만한 가치의 명령을 하면 그것은 백이라는 가치의 자리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만한 가치를 지니고 명령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는 사랑의 마음과 생명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그 명령과 더불어 전진하지 못하면 말할 수 없는 불행의 요건이 앞길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그 실천하지 못한 것이 그와 관계를 맺고 그와 가야 할 모든 길을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백만한 가치의 명령을 했더라도 천만한 가치를 지니고 명령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불신하고 불순종한다면 크나큰 손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는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무한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이상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뜻길에 들어선 여러분들이 지금 어떻게 해서 기진맥진하게 되었으며, 정지 이하의 후퇴의 일로에 서게 되었느냐?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선생님이 백만한 가치의 지시를 할 때에는 백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더 고차적인 천만한 가치를 지니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배반하게 되면 그 이상의 은사는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한한 하나님의 생명력은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자신인 것을 깨달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잃어버린 이상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백만한 자리에서 나에게 명령했는데 내가 실천하지 못하였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께서 백 이상의 자리에서 명령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과거를 회개하고 백 이상의 자리를 소망으로 삼아 거기에 자기의 생명과 자기에게 있는 온갖 사랑을 퍼부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세계로 재차 전진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의 길에 들어섰던 과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맨 처음 뜻을 알았을 때에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따라 나왔습니다. 그때는 명령이 내리기 전에 갔고, 생명을 버려야 할 곳에 향하여 `가라' 하면 생명을 투입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때에는 자기의 생명 이상으로 뜻을 사랑하고 흠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하신 것입니다. 생명 이상 뜻을 중요시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은 떠나십니다. 왜? 하나님이 뜻에 영원한 생명을 투입하고 영원한 사랑을 투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한계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뜻에 한계선을 넘은 사랑과 생명을 투입하신 것입니다. 사랑과 생명의 내용을 가진 뜻의 길을 연결시켜야 하는 하나님은 인간이 그 뜻과 일치되지 못한 자리에 서면 찾아오실래야 찾아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하더라도 웃으면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과 세계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하라는 것입니다. 백 정도의 자리에서 기도하여 하나님이 받아 주셨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또 그 자리에 들어가서 기도해 가지고는 받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백 정도의 자리에서 정지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에, 전진해야 할 하나님이기 때문에 백 이상의 자리에서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높은 생명력과 사랑의 힘이 우리에게 자연히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은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는 감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옛날에 충성하던 그 시대를 다시 한번 회상하고, 정성을 기울이던 그 자리를 다시 한번 회상하고, 그 싸움터를 다시 찾아가 그 이상의 정성과 그 이상의 생명력을 투입하고 사랑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가기 전에는 전진적인 생명력, 발전적인 은사권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전진하고 있느냐, 정지해 있느냐, 후퇴하고 있느냐? 우리가 통일교회 자체를 분석해 봅시다. 통일교회가 전진하고 있다면 그 전진할 수 있는 내용을 누가 제시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제시하면 고맙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이것을 책임진 자가 제시해야 됩니다.
민족복귀시대에는 가정복귀시대에 들이던 정성 이상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통일교인 가운데 없다고 할진대 책임을 짊어진 책임자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민족적인 운명을 남겨 놓고 그 한계선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한 사람이라도 그 한계선을 넘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생명력을 투입하듯이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온갖 사랑의 마음을 투입하는 한, 단 한 사람이라도 투입하는 한 통일교회는 그로 말미암아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을 때는 정지해 있거나 후퇴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 자체들은 정지하거나 후퇴하는 입장을 모면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 배후에 발전하게 하는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즉, 통일교회를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로까지 끌고 가기 위해 자기의 생명력을 투입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생명력뿐만이 아니라 온갖 사랑을 투입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이치입니다.
뜻길을 따라나온 여러분은 자기의 생명력과 사랑의 힘을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그 이상의 자리까지 투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투입하는 생명력과 사랑의 힘이 교회발전의 행로를 개척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기에 협조적인 입장입니까, 아니면 반대적인 입장입니까? 반대적인 입장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천년 만년의 사연을 품고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땅 위의 슬픈 사연을 품고 부딪쳐 가는 통일교회의 운명을 안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들이고 감사와 치하를 드려도 부족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삼아 비판하고 자기와 관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무관하게 대해 버린다면 거기에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사실을 바라보고 무한히 고마움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 가지고 `오늘은 이렇지만 나에게도 힘을 주소서' 해야 합니다. 가을절기면 가을절기로 끝내고, 겨울절기면 겨울절기로 끝낼 것이 아니라 나의 깊은 속에 깃들어 있는, 내일의 봄날을 맞이하여 활짝 피어날 수 있는 생명력과 사랑의 힘을 찾지 못하면 여러분이 가는 길은 끝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그런 입장에 있거든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불쌍한 자신인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될 때 자식이 죽어 슬퍼하는 것 이상, 혹은 남편이나 아내가 죽어 슬퍼하는 것 이상, 자기 가정이 파탄되어 슬퍼하는 것 이상, 또 국가가 세계가 파탄되어 슬퍼하는 것 이상 슬픔을 느끼고, 최대의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하늘이여 이 불쌍한 사람들 동정하여 주시옵소서'하는 자리, 그 동정을 구하는 모습이 누구보다도 처량하고 비참한 자리에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대하던 기준에서 떠났던 하나님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얼마나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동정을 구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자극을 느끼고 있고,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자기 자체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하늘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어야만 생명의 인연권내에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상태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중간상태는 폭파시켜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자리는 정지상태에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스스로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계시록 3장에 `미지근하지 말고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한 것입니다. 뜨거워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든지, 아주 차가와 가지고 말할 수 없이 냉정한 자리에서 자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피를 쏟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극과 극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중간상태는 하늘이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정지권내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회개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중심삼고 출발하였으며 누구를 중심삼고 결과되어야 하느냐? 인간인 나를 중심삼고 출발하여 나를 중심삼고 결과를 맺으면 이것은 지옥입니다. 왜? 타락이 나를 중심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를 중심삼고 타락했고, 나를 중심삼고 죄악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개혁하고 혁명하려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이처럼 나를 중심삼은 것을 타파해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출발되고 나에게서 종국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으로 종국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해서 나를 중심삼고 결과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에게서 결과를 맺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나에게 끝나는 것이 나로부터 출발해서 나에게서 끝장을 보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롯 유다에게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다'고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출발은 하나님으로부터 하였다가 자기를 중심삼고 끝을 보면 자기 일신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일족까지 망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것은 나 개인만을 위해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민족과 그 나라를 위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자기를 중심삼고 찾아오신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은 그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요, 그 민족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입장에서 나를 찾아오셨느냐? 나에게 세계적인 책임을 지워 주기 위해서 찾아오셨느냐? 그렇다면 나는 세계적인 출발을 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가다가 세계를 부정하고 나를 중심삼은 결실을 맺는다 할진대, 세계적인 심판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였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끝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끝을 맺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땅 위에 태어난 우리를 보면 출발이 하나님으로부터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에서부터, 나에게서부터 출발되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많이 지닌 사람은 그만큼 많은 회개를 해야 되는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하겠다, 죽을 때가 다 되어 가지고 믿고 천당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래가지고는 천당 갈 수 없어요. 언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을 하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출발했다면 그 전생애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비례하여 그 이상의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이 들어서 믿고 천당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재출발해야 합니다. 나에게서 출발한 여기에 하나님이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연결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재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결과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이 연결시켜 주신데 대한 책임은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은 여러분을 영원히 추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로부터 출발해서 나를 중심삼고 다시 출발해서 나에게서 맺히면 뜻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안 믿었으면 좋을 뻔한 것이요, 몰랐으면 좋을 뻔한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면 그렇습니다. 잘못되면 신앙한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더 받습니다. 그때는 회개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세상의 습관대로 산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거리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잘못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것도 뼛골에 사무치도록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범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가중된 짐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더 외롭고,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가면 갈수록 더 눈물을 흘리고, 가면 갈수록 더 회개해야 하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십년 전과 십년 후를 비교할 때 십년 전보다 십년 후가 뜻에 대해서 해이하면 반드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십년 전보다 뜻을 대해 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면 하늘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정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권내에 있느냐? 여러분은 정지와 전진의 두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은 지방에 나갔다가 후퇴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그로 인해 철문 같은 것으로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때 어느 지방에 갔다가 후퇴했다'는 생각은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그이상의 자리에 나가려면 그 이상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대한민국내에서 활동하다 잘못하여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은 대한민국내에서는 그 양심의 가책을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 조건을 중심삼고 외국에 선교라도 갔다 와야 풀리는 것입니다.
신앙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화내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니 화내지 마십시오. 화내지 말아요.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욕심을 중심삼고 화를 냈다가는 몽땅 걸려 버립니다. 여러분은 생애노정에서 이러한 문제 등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정지하고 있는가, 전진하고 있는가, 아니면 후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옛날에 뜻을 중심삼고 안타까와하며 전진했던 그 이상의 마음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 그것은 별거 아닙니다. 반대의 자리에 찾아가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생활했던 그 반대의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십년동안 나왔으면 자기를 부정하는 놀음, 자기를 제물로 삼는 놀음을 십년 이상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자리를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때가 가까운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새로이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의 사명을 하는 사람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의 고충을 나의 고충 이상으로 느끼는 자리, 그의 슬픔을 나의 슬픔 이상으로 느끼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참된 생명과 참된 사랑을 그와 더불어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그를 더 사랑하는 자리, 누구보다도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입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체는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그것이 그에게 심어져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는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야 합니다. 전진이냐, 정지냐, 후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뜻길을 가는 우리 통일 교회가 전진이냐 정지냐, 후퇴냐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언제나 통일교회가 전진이냐, 정지냐, 후퇴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제목이 과거와 달라지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 정성들이는 것이나 민족을 위해 정성들이는 것이나 정성들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백의 정성을 들이더라도 기도하는 표준이 달라야 합니다. 바라보는 목표가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같은 정성을 들이더라도 그 목표를 위해서 들이던 정성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생활을 하면 벌써 기도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성을 들이는 것이나 사랑을 하는 것의 그 모양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들이고 사랑하는 표준이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가는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표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습관적인 말이 아닙니다. 단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넘어설 때에는 반드시 탕감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시할 때는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 싸움을 하면서 통일교회를 발전시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 가정에서나 선생님 자신이 탕감을 치르지 않으면 통일교인들이 반드시 탕감을 치렀습니다. 책임 맡은 사람이 가든가 해 가지고 반드시 탕감을 치렀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탕감법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발전하느냐, 정지하느냐, 후퇴하느냐? 미국이 발전하느냐, 정지하느냐, 후퇴하느냐? 공산당이 발전하느냐? 정지하느냐, 후퇴하느냐? 이런 모든 것은 이 탕감법으로 보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국은 왜 후퇴하느냐? 세계를 자기 나라 이상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나라 이상으로 사랑하는 나라는 미국을 능가하게 됩니다.
공산당이 왜 후퇴하느냐?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소련을 위주로 한 공산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소련을 넘어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후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민족, 종족을 초월한 주의, 계급을 넘어설 수 있는 기반을 가진 주의는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안되겠다 싶으면 그 이상으로 뜻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통일교회는 상속될 것입니다. 만일 통일교회가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면 통일교회 이상 나라를 사랑하는 자리를 통해서 하늘의 뜻은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알고 때에 따라서 정성들이는 표준을 달리 세워야 합니다. 종족복귀면 종족복귀, 민족복귀면 민족복귀, 국가복귀면 국가복귀, 세계복귀면 세계복귀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면, 그 목적과 내용이 다르게 정성을 들이면 정성의 그 모양은 비슷해도 남아지는 무리가 된다는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금후의 70년대에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세계로 나가는 데 있어서 뜻 앞에 보다 충성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때가 가까이 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모든 정성을 들여주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복귀의 도상에 남아진 불쌍한 인류를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이 인류를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응하시며 배후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수습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역사를 기울여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맞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을 다 드리고 내사랑을 다 퍼부어 아버지께 속할 수 있는 한날의 기점을 찾기 위해 자기를 망각하는 시점을 무난히 돌파하도록,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봄이 오지 않으면 꽃이 필 수 없는 것이오니 저희의 마음세계에 봄이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봄은 저희가 오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봄은 자연법칙에 의해 오는 것이요, 그 자연법칙은 아버님께서 그렇게 만든 것임을 아옵니다. 저희가 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저희가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통해야 하고 아버님의 법도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또한 아버님의 법도는 언제나 저희들 생명의 배후에서 저희가 봄을 맞이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봄의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하신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아버님께 무한히 고마워하고 무한히 반가워하면서 나의 생명과 사랑 전체를 몽땅 옮겨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못 된 것을 탄식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이 동화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거기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또,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너의 일생에서 어느 한때에 봄을 맞이한 적이 있느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간 불쌍한 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의 꽃이 피어나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름과 가을을 지내야 하듯이 저희도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일생 가운데에서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하나의 생명이 투입되어서 열매가 맺혀지기까지는 여름절기를 지내며 그 뿌리와 줄기와 가지 전체에서 생명의 요소를 흡수해야만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제2의 생을 출발시킬 수 있는 하나의 결실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은 죽더라도 그 마음 가운데 새로운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르고, 결실의 열매가 남아져 있느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살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가고 폭풍우가 아무리 거세게 치더라도 내적인 생명력은 그 환경의 침범을 받지 않고 꾸준히 발전의 노정을 가야만 봄을 맞이하여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제2의 생명의 모체인 씨가 될 것임을 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나 생애 노정에 있어서 그 모습은 처량하지만, 무한한 생명력을 집약시킬 수 있는 모체요 결실체로서 다시 무한한 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보람있는 생명의 진가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외적으로 볼 때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그 외적인 모습이 비참해지면 비참해질수록 내적인 가치는 더더욱 충실해지는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정지하느냐 전진하느냐 하는 문제가 저희에게 있어서는 절박한 문제이옵니다. 아버지여, 통일교단이 정지해 있사옵니까? 그렇거든 채찍을 들어 치시옵소서. 전진하거든 그 힘에 박차를 가하여 봄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무한한 가치의 결실을 맺으면서 가을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동절기를 지내 온 통일교단입니다. 이제 봄절기를 향하여 또 여름절기와 새로운 가을절기를 향하여 용약하는 모습, 참감람나무 열매를 아버지께 바쳐 드릴 수 있고 제2의 생을 자랑할 수 있는 그곳을 향하여 용진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기를 아버님께서는 통일교단을 통하여 바라고 계심을 아옵니다. 그러나 그 누가 지금 그렇게 전진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께는 슬픈 사연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나만 남았나이다'하면서 외로운 제단을 놓고 당신 앞에 몸부림치는 하나의 아들과 하나의 딸이 있거든 그들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그들이 사랑하는 교단이기 때문에 이 교단이 망할 수 없는 입장에 선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당신의 뜻과 더불어 눈물짓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있거든, 또 그런 가정이 있거든 아버지께서 그 가정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나라를 안고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그 세계를 향하여 제물 되기를 바라면서 하소연하는 부부가 있다면 그 부부로 말미암아 망해 가는 국운을 막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한한 당신의 생명력과 무한한 당신의 사랑을 집약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민족을 붙들고 남아지지 않으면 그 민족은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계를 붙들고 울부짖는 가정이 없으면 세계는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아버님께서 가정을 찾아나온 역사였음을 아옵니다. 그러니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님을 모시며 사는 단 하나의 가정이라도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금후에 통일교단이 나가는 데 있어서 밑거름이 되고, 아버님으로부터 생명의 인연을 유도시키고, 하늘의 사랑의 인연을 결집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부부라도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망운에 접한 이 민족을 바라보고 망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망권으로 넘어가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정성들이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다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구원될 수 있고 민족이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룩한 가정의 터전이 삼천리반도 어느 곳에 있는가 아버지께서는 더듬어 찾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가정이 없거든 그러한 남자들로서 그러한 여자들로서 소망을 남길 수 있는 의인의 무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옵니다. 교회의 이름을 찬양하는 의인은 많았지만 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짊어지는 의인이 없는 것이 탄식할 일이옵니다. 교회의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의인을 찾고, 나라의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의인을 찾고, 세계의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의인을 찾으시는 아버지의 소원 앞에 그럴 수 있는 무리가 없기에 통일교회를 책임진 당신의 아들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슬픈 아버지의 마음을 동정해 드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얼굴을 들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양손과 양발을 펴고 땅에 엎드려 민족을 붙들고 세계를 붙들고 통곡하면서 눈물지어야 할 것이 지금부터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이 길을 가지 못하면 책임진 스승이 가야 하는 것을 알고, 그 길을 감소시키고 그 십자가를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루의 생활을 부모의 한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있사옵니다.
자기의 생을 저버리고 아버지의 한을 품고, 한 시간이라도 아버지를 위해 생명과 사랑을 기울여 사는 사람은 한 시간을 살고 가더라도, 그는 망하지 않고 그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무리가 되기 위해서 모인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뜻을 기필코 이루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희들이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천만 번 채찍이 가하여지는 길이라 할지라도 저희들은 눈을 감고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 정성을 모으고 옷깃을 여미며 쌍수 합장하여 겸손히 `제물이오니 받으시옵소서'할 수 있는 아들딸이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그렇지 못하면 가는 길 앞에 십자가와 저주받은 슬픔의 길이 남게 된다는 것을 알고, 오늘도 그것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내일도 모레도 그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정지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정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들은 망하더라도 이 교회는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나라는 망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기에 세계는 망하더라도 뜻은 망해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아는 저희들은 천만 번 망할 길을 가더라도 감사히 갈 줄 알고, 효의 도리를 다하고 충의 도리를 하고 마지막까지 절개와 지조를 지킬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 아침 여기에 모인 이들의 마음과 몸이 어디에 결실하고자 하옵니까? 그 생명력이 누구와 더불어 인연맺기를 원하옵니까? 그 생명이 다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누구와 더불어 이 땅에 파묻고 싶어합니까? 아버지와 더불어 파묻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하늘과 더불어 이렇게 갔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오라'고 후손 앞에 유언을 남기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격자들이 되기 위하여 이 아침에 모이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이 교단을 맡으시옵소서. 저희가 가야 할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저희와 더불어 같이 가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맡아 주옵소서. 아버님께 맡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옵니다. 너무나 상처가 많고 너무나 흠이 많아 모습조차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교단을 아버지 앞에 맡기기에는 염치가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렇지만 남은 것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맡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아니옵니까? 부디 맡으시어서 심장이 고동치는 그 뜻 앞에 부끄러운 눈물을 머금고라도, 아버지, 참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라고 권고할 수 있는 자리에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정지냐, 전진이냐, 후퇴냐 하는 이 두려운 말씀을 들었사옵니다. 나를 찾아오시던 아버님이여, 슬픈 사연이 나에게 남아 있사오면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열의 자리에서, 백의 자리에서, 천의 자리에서, 혹은 만의 자리에서 억천만년의 한을 가하여 가슴 조이는 마음으로 분부하시는 아버지께서는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발언하기에 얼마나 어려웠사옵니까? 이들이 그러한 아버지의 사연을 생각하게 해주시옵소서. (이하는 녹음이 되어있지 않음)
아버지, 역사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냥 흘러가버린 사람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이 흘러 오고 흘러 가는 오늘인 것을 생각해볼 때, 하늘의 소망 앞에 나는 어떤 결과를 맺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누구나를 막론하고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줄을 아옵나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역경과 수많은 수고와 수많은 죽음의 길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누구나 수고로운 길과 외로운 길을 통해 가야 하는 것을 아옵니다.
더욱이 참을 추구하는 사람이 외롭고 수고로운 길을 통과하지 않고는 참된 삶을 찾지 못하고, 역사상에 그 무엇도 남겨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그 길은 외롭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역사와 함께 흘러가는 한 사람의 가치기준을 두고 볼 때, 그 누구라도 그러한 수난의 길을 원치 않는 기준에 서게 되면 그 당대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그는 하늘의 뜻과 전혀 관계없는 입장이 된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아버지,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당신의 거룩한 뜻 앞에 세워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당신의 뜻 앞에 선 내 한 존재가 역사적인 한 시점에서 책임 다하여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한때에 왔다가 그냥 흘러가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적인 현시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여 시대 시대를 새로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러한 사명을 지니고 시대를 초월하여 복귀하는 존재가 되라고 아버지께서 불러 세운 거룩한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불러 세워 놓고 맡기고 싶어하시는 그 간곡한 심정적 사연을 느끼지 못하는 저희 모습들이거든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찾아오신 당신의 사정을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속 깊이 느끼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그 누가 권고하지 않고, 그 누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저희들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속에 당신의 심정을 느껴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마음이 스스로를 움직여서 그 결과의 자리까지 가게끔 몰아쳐 주시옵소서. 당신과의 내적인 인연이 저희들의 마음에 씨앗이 되어 생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민족의 어려움과 세계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같이, 자기의 몸 한 부분같이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이 잘하고 못해서 흥하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그 민족앞에 하나님이 얼만큼 같이 하시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적으로 아버지의 힘이 같이하게 되면 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를 사랑하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마음이 그 민족을 지배하게 되고, 그 민족의 역사과정을 이끌어가게 되어 날로 그런 사람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그 나라는 부흥하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을 외적으로 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동기도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당신이 근본이 되시고 힘의 원천이 되시며, 또한 역사를 두드리고 개척하여 새로운 역사로 창조해 나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은 불쌍한 민족이 아니옵니까? 금후에 이 민족이 갈 길은 단 한 길뿐인데도 그 길을 알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이 민족은 진실로 불쌍한 민족이요, 이들의 장래는 암담하게 되옵니다. 이런 현실적인 정세를 파악하고 미래의 아시아와 세계의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이 삼천만 민족과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염려하는 것보다도 이 민족이 내적으로 아버지와 얼마만큼이나 인연을 맺고 있어서 아버지의 심정과 뜻에 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정말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이 민족은 기진맥진하여 힘이 없는 민족이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 민족을 통하여 아시아와 세계 앞에 현현하실 탕감의 노정을 끝맺기 위하여 찬아 온 당신의 발걸음이거든, 이 민족의 마음에 살아 계시옵소서. 또한, 이 민족의 마음에 당신의 소원이 부활하시어서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하나된 민족으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들의 마음에 함께하시사 누구보다 먼저 삼팔선을 뛰어넘겠다는 마음이 우러나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으로 하여금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고, 또한 북한 땅도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 솟구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삼천만 민족을 믿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 삼천만 민족이 가는 길이 심상치 않기 때문에 당신만을 믿고, 당신만을 의지하며, 당신 앞에 아뢰는 저희들의 모든 사정을 아시옵소서.
이 아침에도 불쌍한 통일의 자녀들이 무릎을 꿇고 당신 앞에 요구하는 것이 저희 자체의 승리나 희망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나라의 승리와 이 나라의 희망을 요구할 수 있는 거룩한 통일의 자녀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역사에서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말았지만 후손을 위하고, 후대의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의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 역사를 주관하는 중심으로 남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역사시대에서 눈물의 노정,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피하려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체적인 책임을 지고,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붙들고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무리가 저희 통일가의 무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나 자신을 아버지 앞에 불러 세우고, 그럴 수 있는 나라는 것을 각성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저희들이라 할진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지금 찾으시는 아들은 어떤 아들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 그는 최대의 결심을 다짐할 수 있는 아들이요, 최대의 의분에 불탈 수 있고 정의에 불탈 수 있는 그런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있습니다.
불쌍한 이 민족은 과거에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희생의 길을 이 민족이 간 것은 이 민족을 아시아에 남기고자 했던 당신의 뜻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소원에 저희들의 소원이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고, 통일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이민족을 대하여 소원하시던 그 뜻 앞에 충성할 수 있는 모습들을 통일의 무리 가운데서 찾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친히 바라고 찾아오신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안식하실 수 있는 이 자리가 돼야 될 것을 새로이 느낄 줄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나무들이 무성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무성한 것은 가지나 잎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을에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봄이 있었습니까? 여름이 있었습니까? 가을이 있었습니까? 겨울이 있었습니까? 어느 시대권에 속해 있는 저희들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봄절기를 맞이했거든 남이야 무엇을 하든간에 자기는 봄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고, 여름절기를 맞이하였다면 남이야 무엇을 하든 온갖 정열과 정성을 다하여 가을에 알찬 결실을 맺을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렇듯, 승리의 요소를 규합할 수 있는 공고한 터전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가을 절기를 맞이한 사람이 있다면, 가을은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봄절기라면 여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고, 여름절기라면 가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지만, 가을절기는 가을로서 끝인 것을 알아야겠사옵니다. 그 후에는 모진 바람이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가는 생명길 앞에도 이러한 장막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절기를 맞이했다면 공포를 느끼는 계절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고귀함을 자랑할 수 있는 계절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찬 설한풍이 휘몰아치듯 주위의 여건이 자신을 몰아치더라도, 그 여건에 자신이 흡수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신의 생명력이 어떠한 시련과 어떠한 힘보다도 강하여 겨울절기에서 봄을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힘의 원천이 그 생명 전체에서 느껴질 수 있고,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권능으로써 화할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빛 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서 영광의 봄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 저희 자신들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아버지 앞에 직고해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어떠한 아들인가, 나는 어떠한 딸인가를 직고해야만 되겠습니다.
나의 과거의 모습은 이러했고 현재의 모습은 이러니 내가 남겨야 할 결실이 무엇이며, 내가 이런 모습으로 가는 길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쓰레기와 같은 생을 남기고 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영광의 생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할 기로에 서 있는 불쌍한 모습들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살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와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생애기반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원하신 뜻과 생명이 연결되게 하소서. 이것이 참된 인간이 추구해 가는 생의 노정인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서 각자에게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게 될 때에 `나는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일을 위하여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일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라고 믿기에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라고 대답하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아들이냐고 물으실 때에, 스스로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다짐하고 장담할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겠사오니, 각자가 뜻 앞에 보람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살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에 서 있는 자는 불쌍한 자입니다. 그는 가을이 오기 전에 떨어지고 말 불쌍한 모습이옵니다. 우리는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떨어지는 불쌍한 잎과 같은 처량한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이라는 이름이 불쌍하다는 것을 깨닫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여 망할지라도, 이 뜻만은 남겨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후대 후손 앞에, 혹은 동료와 친척 부모 앞에 이 일을 통고하고 권고하여 함께 가겠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친구는 이래야 하고, 내 형제는 이래야 하며, 우리의 민족은 이래야 된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보여 주면서 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절규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울부짖으면서 생명을 다하여 이 민족을 붙들고 이렇게 가라고 권고하며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을 위하여 가는 길은 다른 누구를 위하여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귀한 자신임을 느끼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방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누가 자기에 대하여 반발적인 언행을 하였을 때, 그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폭발되면 반대받던 예수님을 생각해야겠습니다. 하오나, 예수님이 반대받던 것과 같은 자리에서도 분함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하다면 그는 예수님의 친구도 못되는 자요, 동역자도 못 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뜻이 가는 길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있는가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아들딸이 있거든 치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마음이 회개하고 가인을 굴복시켜 아버지 제단 앞에 바쳐드리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만을,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삼천만 민족 중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찾게 될 때, 이 통일의 자녀들 가운데 그런 무리가 많고 많은 것을 보시고 당신의 영광이 임하시옵소서.
아버지, 기도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아들딸이 되었느냐고 묻게 될 때, 서럽고 서러운 아버님의 역사적인 한을 저희들이 해원해 드리고, 당신의 희망의 실체가 되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고 외로운 분이시옵니다. 맞고 찾아오는 복귀노정의 슬픈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던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와 같은 모습이 될까 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열매라도 맺어서 따먹지는 못할지라도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는가를 이 시간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생물체의 세포는 매일같이 번식합니다. 모든 것이 신진대사를 일으킬 힘이 없게 되면 그 자체는 퇴화하게 되는 것이 세포를 가진 생물체의 현상인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의 뜻을 대하는 저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포의 분열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지 못한 생명체들은 반드시 정지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요, 멀지않아 쓰러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아버지 앞에 모두 직고해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나의 모든 모습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면에 기록하여 놓고 아버지 앞에 어떠냐고 묻게 될 때, 아버지께서 `그것은 안 되겠구나'하는 것보다 `오냐, 그것은 버릴 것이 없구나'하고 칭찬할 내용이 더 많아서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것뿐만이 아니라, 내 실체가 너희들이라고 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사탄은 이 시간도 이러한 기준을 파괴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은 무심한 것이옵니다. 지난 세월 속에 저희들은 자신의 생명을 비참한 현실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비장한 용단을 내려야 되겠습니다. 전진하던 발걸음을 막아 버리고 사사로운 방향을 갖추고 돌아섰다가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지 못하게되면, 그 앞에는 필시 사망의 인연이 부딪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고요히 깃드실 수 있는 영원한 보금자리를 저희의 마음동산에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생활하는 환경이 아버지께서 거하실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손길이 거치는 곳마다, 내 발길이 가는 곳마다, 내 오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감각권내에 아버지의 안식의 권을 만들어 `그리운 아버지여, 동거하시옵고 동석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한 거룩한 성을 개척할 수 있는 하늘의 참된 용사를 아버지께서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가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역사의 슬픔을 생각하며 탄식하는 저희들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저희들이 되게 허야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비참한 오천년 역사를 가진 부족한 민족이지만, 내일의 비참을 피하기 위하여 지난날을 자랑하는 다른 민족들보다 더 몸부림치는 민족이 되면, 소망의 한날은 우리 앞에 올 것을 믿습니다. 또한, 오늘의 슬픔을 역사의 탓으로 돌려 탄식하는 자들은 영원히 탄식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여기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당신을 부여안고 절규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의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옵니까? 그 누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온 것은 더욱 아니옵니다. 인간끼리의 관계를 초월하여 단 한 분밖에 안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지고지존하시고 거룩하신 당신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내 아들아, 내 딸아, 왔느냐'하시며 기뻐하실 수 있는 저희의 모습을 갖추어, 당신께서 내리시는 기쁨의 말씀이나 슬픔의 말씀, 절박한 분부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온 저희들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이 간절히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요구하는 아들딸도 아니며, 찾고 있는 가정도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찾고자 했던 사람이나 아들딸, 가정이 결코 우리들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생각할 때, 이들을 끌고 가야 할 미래의 한 곳이 있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짐이 가해지고, 귀여운 아들딸로 인해서도 짐이 가해지기 때문에 또다시 십자가를 져야 될 입장인 것을 생각하면, 저희가 대하는 무리로 인하여 십자가의 짐이 더 가해질지언정 십자가의 짐이 감해질 수는 없는 복귀의 도상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입장에서 뜻을 위해 나선 자유스런 개체시대를 지나 가정을 갖게 되면, 가정 위에 가하여지는 뜻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중의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뜻의 길을 갈 때에는 개인이 행복한 때도 있었지만, 가정을 이루어서 뜻의 길을 간다는 것은 심히 어렵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기에 그 길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요, 제약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야 할 목적지가 곧 당신이 머무르실 수 있는 안식의 동산이요, 희망의 세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신이 머무르실 그 세계를 찾기 위하여 저희들을 불러 세운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길은 평탄한 대로가 아니라 험산 준령이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원수들의 복병이 언제든지 저희들을 협곡에 몰아넣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거기에 대비하여 갑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들고 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혀 몸부림쳐야 할 입장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원수들의 복병이 활을 들고 총부리를 들이대는 환경에 처하는 것과 같은 고빗길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눈물과 더불어 비장하게 생애의 경각을 거쳐가야 할 불쌍한 통일가의 자녀들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불러 주신 인사 앞에 감사하옵니다. 당신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어 가는 아들딸이 있거든, 당신의 승리와 더불어 그들도 기필코 승리의 자리를 가질 것을 알게 하시고, 당신의 소망이 그들의 민족을 중심삼고 또는 후손을 중심삼고 이루어질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가는 도상에서 쓰러진 자기 있거들랑, 그들은 천추만대에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길이길이 기억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이 맡겨주신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온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개척해 나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거든, 아버지께서 다시 찾아 오실수 있는 터전이라도 만들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이 시간 당신의 어린 자녀들의 마음에 불붙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소원하신 마음 앞에 나의 마음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벌거숭이가 되었을지라도, 당신이 품안에서 부끄러운 벌거숭이의 모습이 가리워질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희망의 자리요, 최고의 소원의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느낄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당신이 입었던 옷을 벗겨 입히면서까지 어려움을 같이하며 눈물지으실 나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이제 당신이 기뻐하시며 당신의 마음 가운데서 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돼야 하겠습니다.
하오나, 당신을 위로하고 염려하고 사랑하는 아들딸이 이 가운데에 얼마나 되겠는가를 생각해 볼 때, 심히도 귀하고 적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저희들이 생각해 볼 때, 이 민족이 불쌍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옵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옵니다. 당신이 저희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실 때에도 한을 품고 운행하셔야 하는 당시의 입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불쌍하고 원통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대하여 목석같이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고, 아버님의 형상을 대할 적마다 비뚤어진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못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하늘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최후의 인연을 가진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오는 10월까지 기도 기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아버님의 뜻이 이 민족과 함께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갈 길이 막혀 암담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책임을 진 저희들은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설령 이 민족은 가지 않더라도 책임을 진 자는 아니 갈 수가 없습니다.
밤낮을 가지리 않고 수난의 고빗길에서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이 처량하고 불쌍하겠지만, 아버지여, 그런 자리를 깨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을 묶으시옵소서. 그런 사람과 그런 민족이 없을 때는 아버님께서 현현하시옵소서.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여 후대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새로 오는 시대에 새로운 민족적인 운세를 출발시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망해 가던 이스라엘권내에서도 바알 앞에 굴하지 않고 남아진 칠천여 명의 무리가 있었던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기필코 남아질 수 있는 무리를 준비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충성하고 얼마만큼 희생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저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아버님 앞에 임하였사오니, 당신께서 아무개야 하고 부르실 때 서슴지 않고 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사무치는 당신의 마음 앞에 모든 것을 맡기어 당신이 바라볼 수 있고 친히 기억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있느냐 하면, 저희들은 그렇지 못하옵니다. 이러한 저희를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인간 시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파놓은 구렁텅이를 메워야 하고, 타라간 후손들을 당신 앞에 인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을 맡길 수 있는 이가 누구냐 할 때, 그래도 통일의 무리들밖에는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기성교회 앞에 이 책임을 맡기려 하셨사오나 그들에게 맡기지 못한 채 저희들을 찾아오실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불쌍하신 분이옵니다.
당신이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와 의논하고, 누구와 더불어 힘을 합해 싸울 것인가를 생각할 때, 저희들이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안다는 저희들이 그 사정을 위로해 드려야 되겠사옵고, 뜻을 위해 죽음의 길도 마다 하지 않고 몸부림쳐 가야 할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분이 누구냐 할 때, 그는 바로 아버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일 불쌍한 분도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로운 사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그 심정을 가지신 분이 있다 할진대, 그분이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효하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효하는 자식들을 보며 안타까와하시는 당신이심을 생각할 때,저희들은 당신과 같이 안타까와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자식을 부여안고 너는 불효하는 자식이 되지 말라고 분부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생각할 때, 불효하고 있는 기성교회, 불효하고 있는 이 민족, 불효하였던 저희 자신들은 눈물지으며 회개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저희를 붙들고 다시 가자고 권고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가지고 이 자리에 부복한 저희들이 되어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아버지 뜻 앞에 지난날의 그 무엇을 보더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 부끄러운 모습과, 내일의 투쟁으로써도 그 흔적을 다 감싸 버릴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희들과 같이 부끄러운 무리들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동정의 마음으로 당신의 뜻 선두에 서서 가자고 권고해 줄 수 있는 무리가 저희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아침 아버지 앞에 부복하오니 행차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일본에서 온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이 아버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남겨진 수많은 피어린 투쟁의 고빗길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민족간의 감정이 생기고, 수많은 문화 유산 등이 파괴된 그 배경을 이제 저희들은 다 잊어버리고,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형제의 인연으로써 그들을 반겨 맞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수많은 민족 사이에 가로막힌 원수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절대적인 형제의 인연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의 자녀들 가운데 맺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젊은 가슴들이 새로운 희망 위에 한 형제로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 아시아를 통괄하고, 나아가 세계에 빛을 발할 수 있는 소망의 민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천지간에 우리와 같은 무리가 없었기에 아버지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발판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지금 일본에서 싸우고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싸우고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몸부림치며 가는 그 길에서 자기 자신마저도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자가 있다면, 아버지, 그 자리에 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천배 만배 베풀어 주시옵소서. 민족을 부여안고 눈물짓는 그 눈물은 거룩한 눈물이옵니다. (기도 뒷부분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말씀의 앞부분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여러분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일을 처리했을 때, 그 처리된 결과가 전체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되었느냐? 인간은 자기 자신이 행한 일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결과를 자기 것으로만 남기기 보다는 만민의 것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우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를 지으신 절대자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절대자는 어느 누구한테도 주관받지 않고 자기의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영원히 자기의 것으로 보관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으로 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인 우리 자체를 미루어 보아서도 알 수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도 자기가 영원히 주관할 수 있는 결과로 남아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민의 것으로 남겨 주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자세를 두고 볼 때도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할 때,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문제를 놓고는 자기를 중심삼고 이것을 절대시하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무얼 할 것이냐? 훌륭한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훌륭한 일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훌륭한 역사를 남겨야 됩니다. 훌륭한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요인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요인을 남길 수 있는 결과적인 입장이나, 혹은 결과적인 것을 언제까지나 자기가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남겨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진정으로 좋은 것은 나만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좋은 것은 만민이 공동으로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제일 좋은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생명일 것이요 사랑일 것입니다. 그 생명과 사랑은 만민이 전부다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만민이 꼭 가져야 될 것이요, 갖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것을 나에게만 결속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사랑도 나에게만 결속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만민의 것으로 남겨주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요, 그 사랑도 만민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얼핏 보게 되면, 자기를 절대시하여 중심에 세우고 싶어하는 마음과, 생명과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서로 상충적인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기를 절대시하고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간섭받는 자리가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남기기 위해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즉, 나를 절대시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취해 가려니 여기에 제삼자를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하는 그 개체적인 소원이라든가, 혹은 관(觀)이라든가 하는 것이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 남길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공고히 해서 실천해야만 합니다. 나로 인해 남아진 근원적인 결과를 내 주관권내에서 영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으로 고이 상속시키기 위해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내가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절대시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위인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누구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도 그래야 되고, 국가도 그래야 되고, 세계도 그래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참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럴 수 잇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만민의 것이 됩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만민의 생명이요, 거기에 영광이 있다면 그 영광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영광인 것입니다. 만민에게 쌍수를 들어 동참하라고 권고하고 싶은 것입니다.우리 인간이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 요구하는 보람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각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제삼자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로 연결돼 있는 사회에서 살 고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면 세계로 연결됩니다. 이것을 연결시키는 중심은 누가 되느냐 하면, 결코 세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방으로 뻗어 나갈 때는 엄청난 세계까지 확대되지만 그것을 축소시킨다면 그때 그 축소의 중심은 누가 되겠습니까?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서 자기를 절대시할 수 있는 요건을 중심삼고 생애를 투입해야 합니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충성의 도리와 책임의 도리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생애를 투입하여 다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결과적인 선의 형태로 역사와 천주 앞에 남겨질 수 있기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두고 본다면 우리는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로 부터 자기 생명을 부여받았고, 그 생애를 중심삼아서 이러이러한 책임을 완수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명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 병이라는 사람, 혹은 한국 사람, 일본 사람등 세계 사람이 전부다 다르기 때문에 사명도 서로 다릅니다. 서로 다르니만큼 절대시할 수 있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이 세계를 향하여 설 수 있는 입장이 못됩니다. 그러나 그 민족이 책임을 완수한다면 세계를 향하여 설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과 우리의 소성을 분석해 볼 때, 거기에서 나타나는 소성(素性)이 개인에게 있다면 가정에도 있을 것이고, 민족 국가 세계에 다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온 세계는 그런 가운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들에 좋은 것들을 합하고, 큰 것에 좋은 것을 보충해 나가는 것이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했다 하면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에 백만장자가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내에서 추대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국가를 넘어서 세계로까지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세계가 자기 앞에 하나로 연결될 수있는 때가 되면 반드시 만민의 것으로 남겨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만일에 그런 환경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만인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거두려 하다가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역사는 변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변천해 나가는 역사 가운데에 있는 우리 각자 각자에게는 천명에 의한 생애의 본분에 따라 생명을 걸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간섭받기를 싫어하므로, 자기의 사명은 절대적으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인연맺어진 사명은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만큼, 그인연은 나만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나만이 해야 할 절대적인 사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간섭을 받지 않아야 되는것입니다.
제삼자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온 정성을 다 들이고, 모든 노력과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세계와 역사와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천명에 의하여 생애를 걸어 놓고 그 누구도 갖지 않은 사명을 중심삼고 임명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명에 대해 얼마나 충성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여러분의 생애를 걸어 놓고 개척해 나가면서 좋은 실적, 좋은 결과를 남기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활 가운데에서 자기가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느끼며 생활하느냐?
임명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맡은 바 책임의 양이 있습니다. 직장에 있어서 과정이면 과정, 부장이면 부장으로 임명받았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맡은 직책에 따라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량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책임량을 완수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기간 동안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과 그 양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일생을 70년, 80년, 혹은 100년으로 잡을 때, 이 1세기권내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일을 할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다른 사람과 같이 충성을 한다고 할 때, 그와 같이 충성의 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남이 열 시간 하면 나도 열 시간 하고, 남이 10년 하게 되면 나도 10년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보다 빨리 하려면 10시간 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가중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가령 시간은 열 시간 밖에 없는데, 남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중된 노력과 정성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촌각을 아끼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촌각이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하루는 빛나는 하루가 될 것이며, 그 하루는 영원한 가치의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것으로 영원한 세계의 인연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임명을 받고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반드시 기간이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어떻게 지을 것인지, 또 언제까지 지을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를 하여야 합니다.이렇게 어떤 설계 밑에서 착수해야 되는 것처럼, 우리도 일정한 설계 밑에서 임명을 받아 일을 착수해야 됩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완수하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표창하는 일이 벌어질것입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설계보다도 더욱 완전하게 했다 할 때는, 그것은 정상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가해졌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설계대로 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계 이상의 완벽을 기하면 서도 설계자가 계획한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 임명받은 자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특권이라는 것은 고정된 양, 지정된 기간에 완수해야 하는 특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명받은 자의 특권은 누가 간섭할 수 없는 것, 설계자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절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열 시간 동안 같이 일하고 같이 자고 했더라도 그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고, 또 그 일에 고생하고 정성들인 것이 다른 사람의 배가 될 때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결과를 이 우주는 최대로 표창할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갖춘 사람이 남아지는 한, 세계는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이상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운동경기에 있어서 한번 세운 기록을 깨기 전에는 그 기록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 기록을 두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방향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임명을 받은 자로서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시 받은 양을 주어진 시간에 하게 되면 메달을 탈 수 있으며, 표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사명입니다. 직접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할 수 없다고 해서 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상을 받을 때 둘이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명령받은 사람은 책임을 자신을 중심삼고 수행하고 싶어합니다. 누가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엄숙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종교는 나이들었을 때 천당 가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지독한 사람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참 지혜롭고, 모든 것에 도통한 사람같이 보이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런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결과라는 것은 양을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승리의 결과라는 것은 시작하자마자 단시일 내에 결판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크면 클수록 근엄한 시간을 요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가 하나의 승리권을 다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나라를 예로 든다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국가적인 양이니만큼, 짧은 시간에 막대한 양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적인 자세와 역량을 단시간 내에 압축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저 뜻없이 습관적으로 하루 세끼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되겠습니까? 미물인 곤충들도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연관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이웃과 연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웃 동네의 처녀 총각들끼리 결혼도 할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동네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고 있지만 그 동네만을 위주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네가 잘산다고 하게 되면 그 동네가 잘사는 것도 되지만, 나라를 위해서 잘사는 것이 됩니다. 또, 나라를 위해서 잘산다면 세계를 위해서 잘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잘살면, 그것은 하늘땅을 위해서 잘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한 생애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어진 사명의 양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일생을 걸어 놓고 책임을 수행하는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양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별수 없어. 그러니 노력할 필요도 없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이 민족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또 세계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늘땅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이런 마음이 안 돼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은 임명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기 위해 철학이나 종교니 하는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또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현재의 위치와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방 전후좌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임명을 받은 주체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 자체는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간섭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간섭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라, 영원히 사랑하라'하는 것은 말로만 끝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해야 됩니다. 거기서 상대적으로 보답되면, 그것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관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완전한 상대, 곧 절대적인 상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상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상대가 나타나게 될 때는 전부다 네 것이요 내 것으로 화하는 것이 인연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잘난 남자나 여자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절대시할 수 있는 완전한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생애를 두고 임명받아 나왔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절대 간섭할 수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 앞에 절대적인 상대적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개인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 가지고 임명받은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임명받은 양이 크면 클수록,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대한 기간도 십년 백년 천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십년 백년 천년 들여야 할 정성, 또는 수십대를 거쳐서 이루어야 할 정성의 도수를 일대에 들여야 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런 천년사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성을 들인 선조가 있다면 선조의 후손들은 천년을 지낼수 있는 인연과 연결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연결되어 후대의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되면 개인적인 그 뜻을 그 민족이 이어받아 하나의 장벽을 뚫기 위해 투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 민족을 중심으로 선민사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사상이 태동하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해 총진격할 수 있고 하나의 승리적 내용을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남긴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싸울 때, 생명을 걸고 자기의 모든 것을 넘어 하늘과 더불어 담판을 짓는 그 순간에 이겼기 때문에, 그 승리는 야곱만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승리였던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무리 나를 굴복시키려 해도 나는 굴복 안 한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뜻만은 남겨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뒤넘이칠 수 있는 한계점에서 천사가 멀리 떠났기 때문에, 천사의 모든 권한까지도 상속할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즉, 천사세계의 축복의 내용에 대한 승리의 상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뜻길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삼천만 민족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태어나 뜻을 알게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는 한 번밖에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세계 인류 앞에,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요, 일어설 수 있는 한 때라는 것입니다.
이 한 번밖에 없는 기회에 흘러가는 역사를 움켜쥐어 가지고 터뜨려야 합니다.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전부다 한 점에 규합시켜야 합니다. 그것을 모아 놓으면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한 점이라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중심이 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중심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절대적인 주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주체 앞에 간섭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가 결정되면 절대적인 가치가 동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상에 둘도 없는 부부로서 누구에게라도 자랑할 수 있는 그 가정은 곧 만민 앞에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주체가 절대적인 상대를 찾아 가지고 하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런 한계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한계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양과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냥 제삼자와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절대적인 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욕심이 아닙니다. 자기가 책임진 문제에 대해서만은 자기가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가 정성들이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원리적인 상대기준을 결정해 가지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시대를 거쳐 나가려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넘어 하나님까지 여덟개의 단계를 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지금까지 육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아직까지 정상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과 가정을 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그리고 하나님 앞에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적 소망이 있었기에 `나는 너희의 아버지이고, 너희는내 아들딸이다' 하며 부모의 심정으로 계속 인간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길을 가다 만나더라도 당신은 우리 아버지가 틀림없소 했을 때, 틀림없다고 증거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녔다면 틀림없이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기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당신이 내 아버지입니까, 아닙니까' 하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대답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답을 안했다가는 아버지도 거기에 걸려들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하면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행사하더라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까? 진짜 아들딸입니까? 가짜 아들딸입니까? 진짜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도 간섭하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보면 진짜와 가짜가 섞여 얼룩덜룩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얼룩덜룩하니까 하나님까지도 얼룩덜룩한 하나님인 줄 압니까?
성경에 보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봤어요? 마음을 다하여 사랑했으면 왜 얼룩덜룩하게 되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일주일 금식을 하고 40일 금식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만 다하면 무엇합니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마음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뜻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품은 다를 수가 없습니다. 성품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행할 때는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해서 실행합니다. 뜻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라는 말은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삼고 그 중심 앞에 절대적인 중보자로서의 아들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상에 하나님 앞에 제일의 충효를 남긴 사람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만큼의 충효를 했느냐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문제가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로 미루어 볼 때, 그런 효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 뜻이지, 내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 앞에서 상대적 관계를 이렇게 만들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은 내가 통일교인이요, 혹은 입교한 지 몇해 되었소 하고 자랑하는데, 그건 시간낭비입니다. 입교한 지가 아무리 오래 되었으면 뭘 합니까? 10년이 아니라 천년이 지났더라도 나이 값도 못하는 사람들이 뭘 하겠습니까? 또는 협회에서 일한 지 몇 년 되었다고 자랑하는데, 우리 뜻 앞에 양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남들이 20년 걸린 양을 1년 동안에 다 하게 될 때는 정성을 들이는데 있어서 내가 더 나은 것입니다. 임명받은 그 책임을 수행하려면 남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것입니다.
이 조직사회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중심이 어디냐? 또,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중심이 누구냐?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중심은 문선생입니다. 그러면 문선생이란 사람은 누구냐? 여기에서 말하는 문선생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문선생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질(質)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양이 같더라도 질이 나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질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뱃속이나 채우려는 꿍꿍이 속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해 보지 않아도 며칠만 지내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질과 양을 갖추어서 주어진 기간 내에 복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손해를 가져왔다면, 그것은 앞으로 통일교회 뜻 앞에 있어서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임자는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해 내야 됩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관계없이 임명받은 그 사명이 끝날 때까지 책임져야 됩니다. 이것은 자기의 어떠한 짐보다도 더 크고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제곱해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죄를 지은 기간 이상으로 하나님을 믿고, 짊어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행로를 거치지 않고는 참된 개인이 될 수 있는 선의 발판이 닦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적인 면으로 보나 외적인 면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위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다 하더라도 부족한 것입니다. 다하고 나서도 부족한 느낌을 받기에 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스스로 느끼고, 책임 다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오늘의 복귀의 사명을 책임진 통일교단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분야에서 책임을 맡고 있느냐? 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느냐? 어떤 사람은 지역장 혹은 지구장으로서 책임을 맡고 있는데, 그 책임을 통해서 참된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참은 거짓에게 절대 주관받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 상대될 수 있는 요인이 남아 있으면 서로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완전한 플러스 마이너스끼리 만나게 되면 합해지는 것입니다. 상대라는 것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플러스와 플러스끼리 만나면 반드시 서로 반발하게 됩니다.
누가 책임한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선한 요소가 있어서 상대적 요인이 되어 움직이게 될 때는 하나님이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선조의 공적이 있거나, 자기의 충성의 실적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로 할 때는 그를 대해 주시지만, 자기를 들고 나서게 되면 대하실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늘을 위해 할래야 할 수도 없고, 갈래야 갈 수도 없는 요인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런 일을 행해 나오면서 보게 될 때에, 저 사람은 안되겠다고 한 사람은 남아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움직이다 보니 결국에 가서는 그 움직인 모든 사실이 자기 자신을 꼼짝 못하게 얽어맨 결과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탈된 자리에서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은 언제나 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참은 악을 치고도 견딜 수 있지만, 악은 참을 치면 견딜 수 없습니다. 참된 자리에 임명을 받고도 그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방편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 흘러가고 맙니다. 임명받은 자리에 자기의 생명을 투입시켜 일생의 천직으로 알고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을 다했는데 자기를 몰라준다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선생님도 자기를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들을 알아주면, 그 사람들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뜻적인 입장에서는 알아주지만 거기에서 만족하게 되면, 그 이상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더 큰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판도를 넓혀 그 넓은 환경을 가지고 거기서 자기의 절대적 권한을 이루고, 거기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나옴으로써 하늘 전체의 뜻으로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모른 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선생님을 사랑하는 줄 알아요? 선생님은 도움 받을 생각을 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을 죽음의 자리로 들이몰아 넣은 적이 번번이 있었습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로 몰아 넣고는 상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부에서 협조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협조를 바라기 전에 내 힘으로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도움을 바라지도 않았고 협조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에 도움을 주면 협조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십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어졌습니다. 타락한 것이 뭐냐면, 복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거꾸로 된 세상을 뒤집어서 나가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뒤집어 가지고 모든 것을 청산하고 다시 돌이켜 놓으려니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려면 자기의 일생 가운데 한때를 버리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섭리의 참뜻을 찾아가는 길, 그 길은 쉬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가 쉬는 시간이 결코 쉬는 시간이 아닌 생애를 가야만 뜻을 위해 가는 길에 있어서 참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어떤 자리에 임명받았습니까? 여러분에게 임명된 직책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대관절 어떤 책임자냐? 무엇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고, 뭘 해야 하는 사람이냐? 세상에서 직책이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실로 그 이상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든지 아들딸을 낳으면 기뻐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자식들로부터 나를 왜 낳았느냐는 항의를 받게 됩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길러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고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은 누구한테 간섭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를 중심삼은 나만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 얼마나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우리는 타락권내에서 태어났기에 보통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뜻의 길을 따라 오면서 한때에 소망의 한계선을 넘으려 했는데, 뜻을 아는 자로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하고 간섭받기 싫어하며 자기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생애노정을 거쳐왔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년 가고, 2년 가고 세월만 보낸 것입니다. 뜻의 길이 그렇습니까? 뜻의 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뚜렷이 남아 있는 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 있어서 1945년은 해방이 된 해이고, 1950년은 육이오 사변이 일어난 해입니다. 1945년도는 기쁨의 때이고, 1950년도는 슬픔의 때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통일교회에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천추만대의 후손들이 역사시대의 선조를 찬양할 때면, 이 날을 들어 찬양하라고 할 수 있는 한날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찬양할 수 있는 내용은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찬양할 수 있는 내용이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나 다 기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1945년은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해방을 맞은 기쁜 해이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전쟁에 진슬픈 해입니다. 우리에게는 기쁜 날이지만, 일본에게는 기쁜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날, 이런 때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성혼한 1960년도 4월 11일, 그날은 무슨 날입니까? 외적으로 보면 밥먹고 잠자고 하는 평범한 날이지 별다른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무엇이 다르냐? 그때 한 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날 성혼식을 한 것이 다른 날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혼식으로 인하여 이제는 한 사람에 의하여 좌우되게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의 양과 시간이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인연을 갖춘 것이냐? 또, 그 기간이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치고, 미래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느냐? 나타난 것은 간단 해 보이지만 그것이 전체를 집약시킨 대표적인 핵이 될 때 역사는 그날을 연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도 이것만은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 나를 하나님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믿을 만한 내용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어 놓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나라를 사랑하고 만민을 사랑할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만 사랑하는 효자가 되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나를 사랑하라는 것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라야 효자를 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위하고 나를 편안히 해주는 것이 효라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효는 효가 아닙니다. 그것은 망발입니다. 그따위 효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하여 충성하고 효도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배고플 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어려우면 도이나 갖다 주는 그런 효심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못 하더라도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충효의 길을 가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자기는 실행하지 않으면서 명령하면 여기에 순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사랑했습니까? 「예」 통일교회를 사랑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통일교회가 없어진다고 하면 울 겁니까, 안 울 겁니까? 자기 자식이 죽는 것보다 더 안타까와 할 수 있어요? 자기 부모 형제 부인 남편이 죽는 것보다 더 원통해 할 수 있습니까? 뜻을 위한다는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라, 가짜들만 모였구만요? 사랑하기는 뭘 사랑합니까? 자기 잘못으로 소박을 맞아 쫓겨나는 그런 부인네들 중에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생각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자세로 서서 `나는 이만큼 사랑했는데 당신은 나만큼 사랑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습성을 지닌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사랑해요? 「예」 지지리 고생시켜 남들 보기도 부끄러운 입장인 데도 사랑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봐요.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습니까? 「예」 여자들, 임지활동을 갔다오라면 갔다 오겠어요? 「예」 남자들도 갔다 오겠어요? 「예」 갔다 와서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했을 때, 이만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절대시할 수 있는 결과를 들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합니다' 하게 되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법정에서도, 아무리 살인강도라 하더라도 증거물이 없을 때는 판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강도가 `내가 살인한 것을 언제 봤소'하고 들고 나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증거를 들이대면 꼼짝 못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증거를 찾아야 됩니다. 찬송가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받은 증거 있습니까? 증거를 받았다고 으시대며 전도 나가는데, 그런 것이 증거인 줄 알아요? 그런 증거를 해서 뭘 합니까? 남아지는 사람도 없는데, 아무 관계도 없다는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천국 갈 때에 예물로 싸가지고 갈 것이 있습니까? 영계에 가면 순교당한 공신들이 앞에 쭉 늘어서 있는데, 그들 앞에 여러분들이 싸가지고 간 보따리를 펼쳐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거지발싸개 같은 것을 펼쳐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통일교회가 무슨 고생을 했으며, 여러분이 무슨 고생을 했어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하면서, 그만한 고생도 안 해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하겠어요? `고생을 하긴 했지만 나는 고생했다고 생각안 합니다' 그래야 당연한 것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습니다. 영계에 가서 보따리를 풀어 놓고 `이것은 일생 동안 제가 장만한 선물이오니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시집 갈 때는 한보따리씩 해 가면서, 천국 갈 때는 달랑달랑 몸만 갈 수 있어요?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정병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시집 장가를 가게 되면 그 집안의 가문을 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림살이를 하게 됩니다. 독립성을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과 매일 생활하지 못하고 떨어져 있더라도, 또 하나님이 늘 여러분에게 직접 명령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관리권내에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절대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절대적인 가치의 결과로 이루어진 성과를 만민의 것으로, 후대 후손의 것으로, 천상세계의 보물로 영원히 보장받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임명받은 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거지보다 더 불쌍해집니다. 거지들은 때가 되면 얻어서라도 밥을 먹지만, 책임을 못하는 사람은 시간 맞춰 밥도 못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는 데 하나님께서 10년 동안에 하라고 했다면, 그 10년 동안에 충성과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자녀의 길을 가치 있는 길로 복귀시켜 나오는 그 기간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나님이 계획한 10년이라는 기간을 7년으로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내 땀이 필요하고, 내 피가 필요하고, 내 노력이 필요하고, 내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소모의 대가를 통하여 양과 질을 거기에 보충하지 않고는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판도를 흡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런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그런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미 기초를 닦고 외부공사는 다 끝나서, 이제는 단장을 하는 시대입니다. 내부 장식은 주인의 손끝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람벽 같은 것은 직접 관계가 안 되지만, 직접 관계될 수 있는 내용을 증심삼고 필요한 모든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계적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시대, 실천시대, 성사시대가 있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생애를 중심삼고 시기를 맞춰 계획해 나가야 됩니다. 준비시대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고, 실천시대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실천하고, 성사시대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성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부 장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 장식을 누가 보더라도그 정교함에 있어서 정성들인 도수가 뛰어나다 하는 말을 들어야 됩니다. 문화는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치도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뜻생활에 있어서 준비시대가 올 때, 준비하라는 임명을 받고도 준비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실천시대가 옵니다. 그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성사시대가 오는데, 그 성사시대는 소망이 깃드는 시기입니다. 지금까지 원리를 중심삼고 든든하게 닦은 기반이 있기 때문에 뜻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애의 노정을 교훈 삼아 세계사적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책임진 것을 책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선 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습니다. 뜻길 앞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더 가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싸운 사람은 불행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끝이 훤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3년만 살아 보면 끝이 훤히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살게 되면 자기로 말미암아 영원한 역사를 돌이킬 수 있게 됩니다. 거꾸로 돌아가는 역사를 반대로 돌이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자기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상의 세계에, 혹은 영원한 역사와 함께 남아지게 됩니다.
우리는 남긴 그것을 만민의 것으로 상속해 주고, 만민을 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절대 임무라는 것을 알고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책임을 다했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회사를 위한 것으로 돌리고, 나라를 위해서 책임을 다했으면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또, 세계인을 위하여 국부적인 책임을 부여받아 가지고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한 일로 인하여 세계가 온통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영광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일상생활에서 숱한 장벽을 깨고 나가야 됩니다. (녹음 불량으로 약간의 기도 앞부분까지 정리하지 못함)
아버지, 당신의 심정을 모르고 사는 이 땅에 있어서 현재의 생활권내에서 같이 이마를 맞대고서 말씀을 나누고,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는 자리가 신앙의 자리인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준비시대에 있어서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명은 부모가 가야되는 수난의 길, 희생의 길인 것을 아옵니다. 생사의 기점에서 뜻을 아는 아들딸이 되어 생사가 걸린 수난의 길을 인계 받아야 할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 인계받을 수 있는 내용을 알고 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인계받을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절대적인 기준에서,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드리게 될 때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를 따라오지 못한 자들은 우리 앞에서 슬퍼할 것을 아옵니다. 절대적인 당신이기에 절대적인 생명의 기준에서 우리를 대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가까웁던 아버지가 멀어져 갈 때마다 저희들의 때가 된 것을 알고 저희들에게 탕감의 기점이 찾아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1970년대를 향하는 저희 통일교인들 중에는 새로이 각성하는 무리도 있고, 새로이 잎이 돋아나는 무리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떡잎과 같은 입장에서 아버지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책임을 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것은 아버지와 자기와의 관계를 중심삼고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이는 자녀가 되어 예전 아버님을 위해 충성하던 중심삼고 끊임없이 아버님을 위해 가려하고, 뜻길을 가기에 그 무엇보다도 바빴던 발걸음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어떻게 다른 것이옵니까? 하나의 경계선을 넘는 기점에서 5월과 6월을 중심삼고 저희들은 뜻에 대한 시대권과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시점에 다다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저희들은 책임과 사명을 다짐할 수 있는 다시없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온갖 정성을 다 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지 못할 때는 내 몸 마음을 드릴 수 없는 것을 밤이나 낮이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모든 수난의 과정과 복귀노정을 통하여서 아버님께서는 몰리고 쫓기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앞에서는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시지만, 뒤에서는 엄한 아버지이신 것을 수난의 뜻길을 따라나오는 길 가운데서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모시고 따라 나오던 아버지께서 멀어지실 때는 낙망하기 쉽기 때문에, 아버지 대신 원수가 나타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 원수로 하여금 아버지 대신 나를 죽으라고 명령하는 지경에까지 끌어가는 것이 복귀섭리노정인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 복귀섭리의 탕감노정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길만이 아니라 슬픔의 길을 몇 번이고 뒤넘이쳐 가야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뜻을 안 가정에 평화가 지속되는 것은 아직 그 가정을 중심삼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정에 피할 수없는 고빗길이 닥치는 때가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결실의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을이 되면 모든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다운 아내, 참다운 아들, 혹은 참다운 남편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는 때는 평탄한 때가 아니요 곤궁의 시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곤궁의 시대에 처한 인연을 중심삼고 봉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찾아갈 수 있는 가정들만이 천상과 육계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당신의 혈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걸어온 통일교단이 세계적인 교단으로 남아지기 위해서는 교단적 양심의 소리가 칠흑같은 어두움의 장벽을 뚫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운명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운명이고, 나아가 한국의 운명이며, 아시아의 운명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이 암담한 운명을 타파할 수 있는 돌파구는 오직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은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정성들여야 되겠고,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여야 되겠기 때문에 결코 통일교회 이름으로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한민족의 이름으로 정성들이고 싶고, 이 나라에 왔다 간 충신들의 명예를 걸고 정성들이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심정이오니, 아버지,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통일교회의 승리를 다짐한 것이 아니옵니다. 이 민족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었고, 민족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었사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기 때문에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 된 도리를 실천해야 되겠사옵니다. 그 소원과 더불어 싸우고, 그 소원과 더불어 죽고자 하는 신념을 가진 무리가 통일의 무리들이오니, 이들이 가는 길이 처량하지 않게끔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세계 만민이 살 수 있는 복귀의 동산을 건설하는 데 선봉자의 사명과 개척자의 사명을 가지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높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저희의 모습이 결코 비참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오는 것이요, 낮이 있으면 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우리들이 현재 비록 밤과 같은 어두움에 처하여 있더라도 미래의 낮을 소망하며 어두운 밤길을 헤쳐 가야 되겠사옵니다. 새아침을 맞아 아침 해가 동녘에 떠오를 때까지 극복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1970년도에 있어서 넘을 수 있는 고개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민족과 세계라고 하는 광명한 새 아침을 향하여 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헌옷을 입고 누더기를 걸쳤었지만, 이제는 정장을 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엄숙히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할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불초한 저희들은 당신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운 것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는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는 못난 자식으로서 아버지 앞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그래도 긍휼의 아버지를 부르면서 수난의 아버지를 위한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영광스러운 존전에 광명한 새아침을 맞이해서 천상의 인연을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때가 다가올 때, 저희들은 아버지 나라의 방패로서 당신을 앞에 세우고 그 영광을 맞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간절한 소원이옵니다.
그날이 될 때까지,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뒤에 계셔서 섭리를 조정하시고, 저희는 아버지의 영광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귀의 길에서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를 만나게 될 때 `이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것을 다 너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라고 기쁘게 베푸시는 은혜로운 축복의 은사를 받아야만이 탕감해원성사라는 거룩한 뜻이 이 천지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엄숙한 사연 앞에 저희들은 너무나 옹졸하였고, 너무나 저급했습니다. 너무나 인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힘이 없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은 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세 사람을 끌고 가야 할 것이요, 한 가정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세 가정을 품고 가야 할 것이며, 하나의 나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세 나라를 품고 가야 된다는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백성이지만 대한민국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사랑해야 하고, 미국도 사랑해야 되며, 독일도 사랑해야 되는 것을 아옵니다. 전세계 국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기 때문에, 세계의 아픔을 우리의 살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신창이가 된 저희들의 신세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머금으시는 아버지의 그 아픈 심정에 수많은 민족의 사정이 미쳐오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렇듯 그들과 저희들은 끊어질 수 없는 한 지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슬픔이 저희의 슬픔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어야만 천지의 인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거룩한 당신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이 민족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의 권위를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역사 가운데에서 민족이 찾아 나오던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잊어버리라고 하였고, 자기 가정을 제물삼으라 하였고, 자기 나라를 제단삼으라고 하였던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흰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제물을 가지고 제사드릴 수 있는 제사장의 책임을 할 수 있게 허락하시옵소서. 제물을 갖추어 가지고 천상의 인연을 인간의 인연과 연결하기 위하여, 또한 천정의 인연을 누군가에게 맺어 주기 위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길을 바라보며, 저희가 답답하면 답답할수록 고생하시는 아버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통곡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꿈에서라도 잊어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가 흰옷을 입고 기뻐하기 전에 당신에게 천의를 입혀 드리고 기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 세계의 중차대한 일을 친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실 수 있는 그날을 그리워하며 어서 그날이 오라고 목놓아 통곡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불쌍한 모습을 동정할 수 있는 통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오니,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있거든 천만번 이상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세에 길이 빛날 후손을 세워 만국을 치리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질 수 있게 하시고, 그 영광의 고개를 넘을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탕감복귀의 노정은 수난의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뜻을 대할 수 없고,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하게 될 때는 이 나라, 이 민족 전체의 슬픔 이상의 슬픔을 지니시는 아버지시요, 세계가 망하게 될 때는 세계 국가들이 슬퍼하는 이상의 슬픔을 가지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나라를 흥하게 하고, 그 세계를 흥하게 하더라도 당장 아버지의 슬픔을 거둬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불쌍하고 불쌍한 분이시요, 십자가 중의 십자가를 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당신을 아버지로 모신 저희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은 것이 불행이요, 수많은 원수 앞에 설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불효한 몸이라는 것을 아는 아들딸들이 통일가내에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가의 전통은 아버님께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 땅 위에 주장한 전통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전통을 세우기 위해 숱한 수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생애를 바쳐 하루같이 당신의 뒤를 따라가겠다고 다짐한 저희들이지만, 아직도 모양과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또다시 아버지 앞에 나타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모습이 부족하여 저희 자체가 부끄러운 것을 당연하거니와, 저희로 말미암아 민족이 망하고 세계가 망한다는 이 엄청난 책임을 아버지께서 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께서는 말할 수 없이 불쌍한 분이신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아버지 앞에 심정적으로 염려가 되는 저희들은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오나, 이제는 하나의 제물이 되어 당신의 뜻앞에 고인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하나의 자식이라고 외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탕감의 제물로 몽땅 바쳐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통일의 자녀가 가야 할 길이요,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 곳곳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거든 그 마음으로 민족을 사모하게 하여 주시옵고, 스승에게 충성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으로 아우성치는 세계 인류의 슬픈 운명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금년도 반이 지나가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다시 면목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나라의 절박한 정세와 아시아에 있어서 고아와 같은 신세에 놓인 이 슬프고 처량한 모습을 잊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저희 자신들은 낙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은 망하더라도 세계는 남아질 수 있을 것이오니, 이 민족이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에 저희들은 정성을 다하고,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내리신 국가적인 책임을 부여받은 자로서 새로이 각성하고 결심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사랑하는 일본의 어린 딸들이 여기에 왔사옵니다. 그들이 무엇을 느꼈는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왔다 가는 이 길이 일본에 도움이 되고, 아시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발걸음이 되기 위하여 거룩한 아버지의 제단에 끝까지 정성을 바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민족을 중심삼고 아시아에 진출해야 할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섭리 앞에 선도적이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귀중한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각자 각자를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역사과정 중의 '나'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나는 나를 염려하고 내 종족을 염려하고, 내 민족을 염려하고, 내 나라를 염려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종족이나 민족,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길고 긴 역사과정에서 인간들은 그 역사의 배후에 사무친 역사적인 내용과 인연을 맺어 역사를 엮어왔사오나 그 역사 속에서 그와 같은 인연을 엮어 놓지 못한 저희 인간들이었사옵니다.
저희들이 오늘 일을 열심히 하였을 때, 오늘 일은 내일을 위한 연습이 될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내일의 참을 바라보고 있는 저희들에게 오늘도 참된 모습을 그려 가는 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있어서 이 시간은 귀한 시간이요, 생사의 문제를 좌우하는 시간이며, 이 시간을 위해 기나긴 역사가 흘러왔다는 것을 스스로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시간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최후에 진리의 기반이 연결되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역사의 목적을 수행해 나가는 운명길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는 저희 통일교회는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인간들은 이와 같은 인연을 연결시켜서 처해진 운명을 넘어 그 운명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사옵니다.
이런 세상을 보게 될 때, 그들이 찾아가는 하나의 귀결점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만이 남아지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 인연의 귀결점은 전체 목적의 중심이신 당신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모든 여건이 당신과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는가, 언행심사 일체가 당신과 더불어 그 귀결점에 접할 수 있는 내용과 인연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이제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아들이 되어 있느냐? 그런 자리에 서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이 되어 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저희들은 복귀해야 할 한의 고개를 넘고 양자의 인연을 지나서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아들로 보내어진 분에게 접붙임을 받아 아버지의 품에 품기기 원하옵니다.
그러나 그런 저희들과 아버지와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저희들의 생애노정이나 신앙노정에서 외로울 때에는 아버님이 없는 것으로 느낄 때도 있고. 방황하게 될 때에는 아버지께서 저희들 때문에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실까를 생각하게 될 때도 있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저희 자신들에게 과연 지금 내가 아버님과 영원을 두고 약속한 생의 인연을 가지고 살고 있느냐고 반문하게 될 때. 자신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몇이나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기를 원치 않사옵니다. 슬펐던 역사를 가로막고 이것을 새롭게 개척하여 기쁠 수 있는 역사의 한 면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일생일대를 통하여 이것을 제시하고 싶고, 이와 같은 실천의 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인간들이 원하는 길이요. 걸어가야 하는 길이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가치의 내용을 깨달을 수 없는 슬픔의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다짐하지만 흘러가 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분하고 원통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사옵니까? 이런 걸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땅이야말로 불쌍한 세상이요, 슬픈 세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 땅 위에 계시기를 바라시고, 이 땅 위에살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하나의 목적을 성사하기를 바라시며 기필코 그 목적을 성사 시킬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 자신이 오늘날 이 시대나 혹은 이 세계에 필요한 사람인가를 반문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오관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과 감정 일체가 당신께서 원하시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개인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온 천주를 대신한 입장에 선 자신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얼마나 얼마나 아버지와 먼 거리에 있고, 얼마나 얼마나 자기 중심삼은 입장에서 아버지를 비판하였고, 얼마나 얼마나 자기로 말미암은 결과를 요구하였던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저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는 스스로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넘어질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런 자리에서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었던 지희들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제거시켜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아버지께 의지하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설 수 있는 사람을 다시 한번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오늘날 이 시점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자각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지 앞에 어떠한 모습 가지고 나타났느냐고 묻게 될 때에, 나는 이러한 슬픔을 지니고 나왔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요, 혹은 이런 소망을 위해서 이렇게 거쳐왔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주장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과 더불어 당신의 역사적인 사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옵니까? 나는 지금까지 그 사연의 일면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면을 위해서 싸워 나왔고 견디어 나왔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바로 보게 될 때 아버지께서 스스로 기뻐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소원을 넘겨 줄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되고 그 이상의 아들이 되어 당신의 사랑을 모두 넘겨 주면서도 아까움을 느끼지 않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저희들이 맞을 수 있는 한 시간을 허락해 주실 수 있거든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고요한 마음 중에 당신을 흠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하게 우러났었으며, 당신과 일치되어 생명의 권한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떠한 악의 세력이라도 끌고 다닐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혹은 참을 위하여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원수를 무찌르기 위하여 강하고 담대한 용사의 모습을 가진 입장에 있었으며, 흑암의 사망권을 밟기 위하여 승리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이 생활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의 존재가 되어 있었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한 자신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부족한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자백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흘러가는 역사의 슬픔을 안고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슬픔 가운데서 살다가 슬픔으로 말미암아 쓰러져 가는 것이 아니라, 슬픈 역사를 걷어차고 새로운 아버지의 기쁜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새시대의 대신자, 새시대의 연결자가 되고, 새시대의 개척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 위해서 모인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너는 누구의 딸이냐' 하고 물을 때 머뭇머뭇 하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이옵니다. 무엇을 봐도 당신을 닮았습니다. 제가 생활하는 것도 당신께 배운 것이며, 제가 말하는 것도 당신께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행하는 것은 당신께서 필시 상속을 약속하는 일이라고 권고하여 주셨기에 이렇게 살고 있으며, 일체의 내용은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제가 동하고 정하는 모든 것, 제가 가고 있는 행로 전체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있는 자신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의 뜻 앞에 스스로 다짐하는 생활을 하는 존재로서 살기를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영원하시고, 아버님은 무한하시고. 아버님은 저희들과 일체될 수 있는 기원이시기 때문에 저희들과 영원한 환경과 영원한 뜻 가운데에 분립될래야 분립될 수 없는 일체적 인연을 가지고 당신과 화합하고 동행할 수 있는 절대적 인연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라 부르는 저희들을 다시 한 번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이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용납받지 못할 모습들이옵니다. 아직까지 죄악의 잔뿌리가 저희들을 정복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아버님께 서러움을 남겨 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저희들의 모습을 보시고 슬퍼 돌아설 수밖에 없는 아버지를 붙들고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수백 번 애걸하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슬프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느낄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에게 그런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가를 알게 허락하여 주셔서 그런 자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당신이 찾고 싶으신 것이 무엇이옵니까? 마음의 열매이옵니까? 생활의 결실이옵니까? 생애 노정에서 당신이 그 무엇보다도 원하시는 최고의 목적 앞에 없어서는 안될 참된 제물의 모습이옵니까? 제물을 드리는 당신의 참된 아들딸이옵니까? 당신 나름대로 원하시는 소원을 저희와 더불어 진지한 자리에서 나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 깊은 곳에서 충이 우러나고, 그것이 다시 능력으로 나타나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재기의 모습을 갖추어 영광의 새아침을 맞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니 오늘도 열심히 아버지를 향하여 새로운 신념이 솟아오르는 마음을 갖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무력한 가운데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아버지, 힘을 주시옵고, 생명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시며,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어서 내일의 소망을 다짐하고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를 지켜 주고 싶으신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 나라 이 민족을 반만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망하지 않게 하시고 민족의 모든 전통적인 문화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남겨 주신 것은 당신께서 보호하고 지켜 주신 사랑의 결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하여 그들을 중심삼고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계셨기 때문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지키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싶으신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로막고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불쌍한 불효 자식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불충의 자식 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역사를 거듭하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이시요, 사랑의 마음으로 이 민족과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 가지고 찾아 나오신 아버 지이오니, 저희들도 민족을 사랑하는 데에는 아버지께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과거에 이 민족이 불쌍하였던 한을 풀어 주어 이 민족에게 해방의 한날을 맞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세기말적인 이 시대에 새로운 참된 축복의 인연을 저희에게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것을 고이 받아 지키어 자손만대에 영원히 귀한 예물로서 물려주고, 그 무엇보다도 귀한 보물로서 고이고이 남기어 당신이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영원히 품지 않을 수 없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 열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에게 이러한 것을 책임지겠느냐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책임질 수 없으면 한 분야만이라도 정성을 다하여서 '이 분야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며 각자의 부서에서 책임을 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통일의 무리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보여 줘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는 한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신 아버지이신가를 분명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외로운 한때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서나 유언으로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그 은사를 보답하는 것이 인생의 도리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축복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그 인연을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으소서. 민족을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으로 저희들을 찾아 준 것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러한 시대에 저희들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때는 이 나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삼천만 민중을 주고도 바꿀수 없으며, 온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때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은 아버님으로서 단 한번 허락하신 선물인 것을 알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그 가치를 무한한 가치로 높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옵소서.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벌거숭이가 되어 아버지를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길 수 있는 순진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내심의 그 무엇을 저희들은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소망하면서 아버지의 훌륭하신 그 모습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너무나 해이해질 때가 많습니다, 어린애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희들은 어린애와 같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귀여운 어린애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상처를 입었다든가, 슬픈 자리에 처했든가, 외로운 자리에 있다든가, 혹은 원수의 처소에 놓였다든가 할 때에는 당신의 사랑이 가중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의 자리에 설 때는 당신께서 다시 한 번 저희들에게 부탁하고 고대할 수 있는 입장이로되, 그렇지 못한 자리에 서거든, 아버지,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아버지외 품을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이 자리에 홀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천군천사 천천만 성도가 옹위하는 가운데 거룩한 승리의 환영이 벌어지는 자리에 있어 야겠으며, 그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간 당신께서 친히 저희들을 품으시어 '내가 찾고 있던 아들과 딸이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맞으시옵소서. 당신이 숨겨 왔던 은사의 축복을 이 시간 각자 각자가 그 마음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 누구를 위하여 이 자리에 불려 온 자들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기 전에 당신을 위하여 불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민족으로부터 배반당한 무리도 있사옵니다.
민족이 수난길을 가기 전에 저희들이 먼저 당신의 뜻을 따라 수난길을 거치기 일쑤였사옵니다. 그러한 슬픔을 거쳐오면서 그 슬픔이 습관이 되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긴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사옵니다. 그들 얼굴에 나타난 주름살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주름살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그 주름살을 보며 당신의 아픈 마음을 느끼면서 '어디를 가나 힘있고 강하고 담대하라. 때가 가까와오니 끝까지 싸워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라'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 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민족의 핍박 가운데서 벗어나려면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던 무리였사옵니다. 그 비탈길에서 참으며 실력를 길러 복귀노정을 걸어 나오던 길이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저희들에게 내리시는 긍휼의 밧줄을 잡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믿을 것이 아니라, 당신만을 믿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의 생명의 인연을 갈구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생명의 본향이라고 하며,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 정성들이는 무리들이 있거든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있사오니 그들 앞에도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이런 자리에 선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될 때, 아버지 이것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그 정성이 도리어 저희들의 갈 길을 막고 저희를 심판할까봐 두려워 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본부에 있는 저희들이 다시 한 번 각성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하여 밤을 새워가며 몸부림치면서 아버지 앞에 간곡히 기도하는 무리가 있거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옵소서.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뜻길을 나아가며 뜻과 이 세계 인류를 위하여 정성을 들이거든 생명이 깃들 수 있는 하나의 제단으로 인정하시옵소서.
지금까지 당신께서 역사시대의 외로운 자들을 권고하시던 수많은 인연을 품고 오시어서 그들을 권고하고 지켜주시옵고 그들에게 갈 길을 인도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그들의 마음으로 하나의 뜻을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에게 한국을 위주로 하여 일본과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 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의 정세가 슬픔의 와중으로 휘몰아쳐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있어서 당신께서 중심이 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적인 환경을 잘 느끼는 저희들은 당신만을 믿는 마음이 간절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과 떨어 질까봐 밧줄로써 스스로를 얽어 매고, 내일 고난이 닥친다 해도 그 어려운 자리를 참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확고한 생활체제를 갖추고 스스로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의 교회가 가야 할 길, 통일의 나라가 가야 할 길, 통일의 세계가 가야 할 길에 십자가의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피해 가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그것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많사오나. 그것을 책임지고 가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사옵니다.
이런 것을 느끼게 될 매에 하나님은 슬픈 분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이 많고 많은 인생의 고빗길. 역사의 고빗길, 국가의 고빗길을 당신이 믿고 가야 하니 당신께서는 불쌍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당신을 위하여 저희들은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을 존중시하고 나선 통일의 무리들이 십자가의 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상속받아 후계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죽어간 그런 무리 들의 후예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짊어졌던 십자가가 나라의 십자가일 때, 그들이 찾고 있는 나라보다도 더 간절하게 아버님을 찾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저희들은 그런 무리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슬픈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지니고 있는 사연은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털어 놓고 말할 수 없는 슬픈 사연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연을 갖추시고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엮어 오신 외로우신 아버지, 슬프신 아버지였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러이러했다는 그 사정을 어느 누구가 말한다면 천년 만년 통곡하고 천년 만년 감사할 수 있는 한때를 찾겠다고 하는 당신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없고 아버지께 속하지 않았더라면 불쌍한 무리들이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10년, 혹은 생애를 바쳐가면서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오던 무리였사오니, 저희들이 행한 모든 것이 아버지의 영광으로 끝나야 되겠고 아버지의 기쁨으로 끝나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6월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이달을 의의있게 보내지 못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벌써 이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다시 후반기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온데, 이해의 후반기를 향하여 달려가야 할 사명을 남기고 있는 이 아침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권고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새로운 인연을 따라서 아버지께서 남길 수 있는 축복의 나라로 달려가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타락한 환경을 벗어나려면 평탄하고 순리적인 노정을 택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간이 자의에 의해서 이런 환경에 떨어졌 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떨어졌기 때문에 자의로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환경은 반드시 타의에 의해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동적인 입장에서 이런 자리에 떨어졌기 때문에 피동적인 입장에서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거쳐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이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반드시 상충과 모순된 내용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늘을 잃어버렸고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자기 자신이 지금 까지 존재하기 위해서 엮어 온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잃어버렸고,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적인 모든 내용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잃어 버린 과거와 현재로 말미암아 미래도 잃어버리게 만들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이 과거와 현재의 환경을 거슬러 올라가 이것을 박차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힘보다도, 현재의 힘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진 나를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늘의 뜻을 책임지고 나온 수많은 선지자들의 역사를 두고 볼 때, 그들은 비참한 운명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생명의 목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고빗길을 생명을 걸어 놓고 지도해 나온 역사적인 우리 선열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간 길은 패자의 서러움으로 복귀섭리노정을 지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런 역사적인 운명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상속받아 가지고 역사적인 승리를 표방하고 나선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혁명 중의 혁명이요, 역사상의 어떠한 사건보다도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모든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냐? 그런 실패의 자리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힘이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도록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모든 인연이 우리를 끌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몰고 끄는 힘이 자기의 결의보다 크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들은 번번이 실패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엮어진 실패의 동기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동기의 기원은 무엇이냐?그것은 우리가 제거해야 할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악의 주체는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탄은 지금까지 인류를 유린해 나오고 있고, 역사를 유린해 나오고 있고 오늘날 현세의 이 30억 인류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류를 유린하고 있는 이 괴수를 우리들이 어떻게 물리치느냐?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가 어떠한 방법이나 지혜로운 묘안을 모색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물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힘 외에 다른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타락의 결과에 부딪히게 된 것은 내가 동기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피동적인 입장에서 된 것입니다. 그러면 피동적인 입장에 서게 한 그 주체는 누구냐?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인 사탄입니다. 그 사탄은 우리 인간들에게 행복의 여건을 갖다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전체적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하는 모든 내용은 오늘날 우리의 생활 무대에서 취급하고 있는 어떠한 재료나 환경의 여건뿐만이 아닙니다. 그 환경을 넘어 세계를 넘고도 남을 수 있고, 역사를 넘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우리를 얽어 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환경을 박차고 나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으로 인연되어 있는 모든 인연보다도 강한 새로운 신념을 가져야 되고 새로운 실력과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 새로운 지식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며, 새로운 각오라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그것은 우리들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보다도 더 강한 한 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주체가 있으면 그 악한 주체보다도 더 강할 수 있는 한 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그 한 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런 한 주체와 상봉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분이 새로운 방안을 갖춰 가지고 세운 새로운 대책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 한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된 길을 찾아 나왔던 사람들은 역사를 엮어 온 우리 조상들로서 나라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이여, 저희들을 구해 주소서. 하나님이여,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섭리의 뜻과 인간을 구하기 위한 수고의 도상에서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를 붙들어라. 나와 완전히 하나될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길을 인간이 모색하지 않고는 오늘의 이 엄청난 사망권을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으로서 제일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떠한 욕망이 있으면 그것이 자기로 말미암아 되고 자기를 위한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과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욕망으로서 새로이 출발될 수 있는 욕망의 도상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되 그것을 자기의 입장에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분과 관계를 맺은 입장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들은 그런 입장을 거치지 않고는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인연을 벗어나지 않고는 우리가 제아무리 행복의 요건을 지니고 싶다 하더라도 그 행복의 요건이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 환경보다도 강하고. 이 환경을 만들어 놓은 그 동기된 자보다도 강한 그분과 더불어 강한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인류가 이런 불쌍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역사시대를 책임지고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구원섭리의 발판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종교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시해야 됩니다. 믿더라도 절대적으로 믿어야 되고, 행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행해야 되고, 싸우더라도 절대적으로 싸워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는 것입니 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의 방안을 모색하는 필요요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어 말한다면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어떠한 중간적 입장에서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를 넘어서 절대적 자리에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한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 다. 그 믿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으로 믿고 실천하여 절대적인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런 절대적인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행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자리에서 사는 데에도 그 삶이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 대신 산다 할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다가 죽더라도 자기로 말미암아 살다가 자기의 뜻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다가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날 이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나를 위해 살다가 나로 말미암아 죽었다면 사망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서 살았다면 그 삶이 타락권내의 삶이므로 그 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타락권내에서의 믿음이라면 그 타락권내를 넘어 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권내의 믿음권을 초탈하지 못하고 사탄과 그냥 그대로 인연맺어 가지고는 하나님의 권내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가 거쳐가고 있는 이 역사시대의 환경이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악하며 얼마나 거짓된 세계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끊어내도 끊어내도 한이 없이 연결되어 있고 헤치고 헤쳐도 한이 없이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끊고 헤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권내에 있는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 절대적인 소원,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것입니다.
이 세계는 나 자신이 그러한 소원, 그러한 신뢰,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주위 환경과 싸워야 됩니다. 이것이 신앙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하나님과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필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맺느냐? 어떤 수단 가지고는 맺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모색한 방안 가지고는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힘으로 붙잡고 무슨 재간을 부린다고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까이 맺을 수 있는 하나의 방안, 하나의 방법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세계의 어떤 원수도 나에게 오라고 늠름하고 자신만만하게 나서도 안 됩니다.
사탄세계는 계속 발전해 나왔습니다. 세계의 종말까지 우리가 악을 끌고 나가면 나갈수록 사탄세계의 타락한 환경은 우리를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 하시고 '사탄과 격리해라. 악한 세계와 격리해라. 뒤로 돌아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돌아설 수 없는 인연을 갖추고 뒤로 돌아보니 그가 찾고 있는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현재의 입장에서 피하려고 하는 나라가 있는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있는 것이요, 형제가 있는 것이요, 아내가 있는 것이요,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돌아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한꺼번에 돌아서고 싶겠지만, 한꺼번에 못 돌아섭니다. 하나하나씩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복귀의 원칙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될 때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됩니다. 기쁘게 돌아설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할 때, 아담은 해와를 보고 눈물지을 수 있었느냐? 해와는 아담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었느냐? 또 아담 해와는 천사장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회개하는 눈물을 지을 때 누구를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해와를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천사장을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슬프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눈물지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아담은 해와에게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해와는 자기가 아담을 타락시켰지만 '아담,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았으면 나도 타락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라고 했습니 다. 이렇게 서로를 원망하며 눈물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눈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리에서부터 회개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그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슬프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슬픈 당신 입장보다도 원수의 쇠사슬에 얽매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들딸을 더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들딸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당신의 수난과 어려움을 모두 잊어버리고 도리어 타락한 아들딸을 위하여 눈물짓는 것이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그런 슬픔의 자리를 벗어 나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역적이 되어 용납받을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것을 슬퍼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도 불쌍하지만 내 주위에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과 불쌍한 세계 만민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고,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구해야 되겠다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와 나라와 민족과 종족을 위해서 내가 천번 눈물짓더라도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요, 만번 외로움을 당하더라도 내가 당해야 할 일이다' 하고 과거의 눈물을 대신하여 '이것을 우리가 해줍시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회개하는 우리 자신들을 보면 자기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회개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는데, 먼저 무엇을 위해서 회개해야 하느냐? 나라를 위해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더라도 천국에서 맞이해 줄 사람은 나라를 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구원을 못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신앙생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나라를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세계적인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나라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타락은 개인의 눈물로부터 시작되어 저끄러진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회개의 눈물로써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부활의 특권적인 은사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눈물을 흘리되 자기를 위하여 흘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지어 쇠고랑을 차고 있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그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망하는 자리에 있지만 이 나라여 ! 이 민족이여 ! 나와 같이 되지 마소서 ! 하고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이 가는 길 앞에 자기와 같이 쓰리고 원통스러운 일이 없기를 바라며 눈물 흘리는 사람은 소생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거룩한 소망을 붙들고 죽음길을 부단히 가는 사람은 설사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그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음길을 가게 될 때에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거룩한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생활, 그가 갖고 있는 인생의 가치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관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권내에서 몰림받는 상황에 있었지만, 그는 환영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를 그리며 세계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면서 자기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나는 이렇지만 당신은 이래서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심되는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 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위하는 이상 자기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이상 부모를 위하려고 하면 측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회개의 눈물로 부활의 권을 맞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망권을 회개의 눈물로써 탈피해야 한다는 것입니 다. 생명은 단 하나인데 사망권을 탈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가지고 있지 못한 눈물을 흘려 가지고 벗어나야 됩니다.
서로가 반목 질시하며 '내 죄의 동기는 너 때문이다. 나는 안 그랬을 텐데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하며 자기의 서러움을 제삼자에게 전가시키려들고, '나는 긍정적이고 정상적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나를 부정하고 환경을 긍정해야 됩니다. 내가 구원받기보다도 나라가 구원받기를 바라고 나라를 위해서 눈물지어야 합니다. 또 가정이 구원받기를 바라고 가정을 위해 눈물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 혹은 수많은 종교들이 왜 끝날에 와서 차츰차츰 망해 가느냐? 그것은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것은 전부다 자기가 복받기 위한 것입니다. 전부다 자기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나라의 하나님이 되고 세계의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복귀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 주기 위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자신만을 위해 눈물짓지 않고 나라와 그 환경을 위해 눈물 흘릴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때에 자기도 모르게 서러움에 북받쳐 까닭없는 눈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서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 서러움은 자기의 서러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알고 보면 역사적 서러움입니다. 그 서러움은 누가 가져 오느냐? 하나님이 가져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서러움은 누구 때문이냐?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때문입니다. 결국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서러움입니다. 그것은 나 하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우리 자신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원하는 것이로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를 하더라도 나라를 붙들고 회개하고 세계를 붙들고 회개해야 합니다. 저 민족은 뜻 앞에 섰지만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 부락은 뜻 앞에 섰지만 이 부락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밤을 새워 가지고 그 부락이 정성들이던 이상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그 부락에서 받아 주지 않더라도 다른 부락을 말없이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길이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예수님의 생활관은 어떠했느냐? 예수님은 밥을 먹을 때에도 그 밥상을 대하는 순간 그 밥상을 통하여 나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세계의 뜻을 이루기 위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효자 효녀가 되고 싶어하고, 충신 열녀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효자가 되고 싶다 해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옷이 형제들의 옷보다 못하다고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효자가 아닙니다. 내가 형제들보다 못하다고 부모에게 항의하는 효자가 있겠습니까? 충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그 나라의 비참한 운명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에 간다고 해서 군왕을 배반하고 나라를 배반하는 그런 충신이 있습니까?
참다운 효자가 되려면 형제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는 것 보다 형제를 위하는 마음으로 흘려야 됩니다. 부모 대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염려끼쳐 드리는 형제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부모는 그를 효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고 자기가 먼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민족의 한계를 넘고 세계 인류의 소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소원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소원의 한계점까지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바라는 소원의 한계 점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나와 같은 개인이 생겨났고, 나와 같은 가정, 나와 같은 사회. 나와 같은 나라, 나와 같은 세계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몽땅 부여안고 이세계 가운데 엉클어져 있는 모든 환경의 쇠사슬을 끊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쇠사슬, 나라에 대한 쇠사슬, 환경에 대한 쇠사슬, 사회에 대한 쇠사슬, 가정에 대한 쇠사슬, 나에 대한 쇠사슬을 끊어 놓아야 됩니다. 세계보다도 더 긴박한 것은 가정입니다. 세계가 구원받으려면 먼저 가정이 구원받아야 됩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구원받으려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뜻을 알고, 하나님을 안 다음에 '저는 구원 안 해주셔도 좋습니다. 세계를 구원해 주시옵고, 저희 나라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자기 민족을 위하여. 자기 나라를 위하여, 세계 만민을 위하여 흘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인류를 대신 하여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있는 정성을 다 들이고 통곡하면서 생애를 바치는 사람이 하나님편이겠어요. 남이야 어떻든간에 나라야 어떻든간에 내가 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편이겠어요? 전자가 참된 하나님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런 사망권의 자리를 박차고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원한의 근거지. 원수가 농락하는 이 환경을 박차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 가운데서 원수들과 싸워서 이기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나라를 얼마나 고대하고 흠모하면서 4천년 동안 눈물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까. 그 소원의 나라가 오기를 그렇게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소원을 맞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고 말한 것이며, 그 소원의 새로운 한날이 목전에 다가오기에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인간들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며,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예수 자신이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죽되 이스라엘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죽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살았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죽어가며 흘린 피눈물이 귀할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뜻 앞에서 세계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한 분이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부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가정의 부활권을 갖춘 다음에 개인이 부활해야 구원받고 안식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가정적 구원의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이 구원받아 부활하면 가정적인 시련을 또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의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죄 때문에 사망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는 인류는 형제와 동료간에 서로서로 위하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나보다도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무리가 되었으며, 이런 실체를 가지게 되었는가? 인간 시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역사를 지탱시켜 나오고 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어린 심정으로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천년 만년 모시지는 못하 더라도 그 아버지 앞에 천년 만년 소원하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해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승리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후손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모시지 못하더라도 세계를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반드시 모셔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세계를 위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위대한 것입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천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십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영원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영원이라는 것은 십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역사 이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을 소망하는 우리들은 천년의 한스러운 역사적인 세계의 한계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무리 부정당하더라도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정성들이고 눈물지어야겠습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이 당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으며,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천년을 회개할 수 있는 회개의 눈물을 지으며, 천년을 대비할 수 있는 하나의 제단을 꾸며 하나님의 중심적 기원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역사, 그러한 인연이 지어지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막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 길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개척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 갔기 때문에 민족이 그를 따르던 무리를 학살하는 환경에 몰아 넣어도 하나님은 그런 환경에서 그 원수를 물리치고 원수의 나라를 개척하여 오늘날의 기독교를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기독교가 오늘날 민주세계의 문화를 창건하는데 정신적인 기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한계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 보내진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지으며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태 원동력이 된 기독교를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처럼 발전해 나오는 과정에는 수많은 칼과 수많은 원수와 환경이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허물고 그 길을 개척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역대 발전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활해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부활을 해야 하는가? 개인이 부활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가정이 부활을 했다 하더라도 종족 부활을 해야 하고, 종족이 부활을 했다 하더라도 국가 부활을 해야 하며, 국가가 부활을 했다 하더라도 세계가 부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세계가 부활을 했더라도 하나님을 부활시키지 않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라를 대신한 자리에서 충의 인연과 개인을 대신한 자리에서 효의 인연을 가지고 세계 부활이라는 크나큰 목적을 세워 놓고 그 목적을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눈물지으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년 내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죄는 일년 동안 눈물 흘린 것 가지고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고 하나님이고 뭐고 난 모르겠다' 하며 후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10년이고 20년이고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눈물을 흘리는 놀음이 벌어져 왔던 것입니다. 눈물 흘린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는 개인을 위해서 회개하고 개인의 천국이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각별한 선지자들을 보내어 개인을 위하여 희생하고 구원하겠다는 사람들의 모체가 되고 핵심이 될 수 있는 대표자들로 만들어 역사를 연결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 이제 우리 앞에는 세계적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세계는 어떠한 민족이나 어떠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도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표방하여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온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아 구원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 다. 이렇게 세계의 구원을 주도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개인 구원의 완성을 표방할 시대가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 세계 구원을 완성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모든 생활은 세계의 담을 넘어야 됩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우리의 1일생활권내에서 벌어지고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무대를 갖고 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모두 세계적인 환경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가 회개하고 가야 할 것이 있다 할진대, 그 회개는 세계를 붙들고 해야 됩니다. 나를 붙들고 회개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붙들고 회개해야 됩니다.
세계에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아버지여,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이 아닙니까, 그 어려운 길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렇게 나온 것이 아닙니까' 하며 우리는 자신이 눈물 짓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눈물짓게 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서러움이 많으신 하나님이요, 나보다 더 괴로움이 많으신 하나님이요, 나보다 분함과 원통함이 더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먼저 눈물짓게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따라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눈물지어 나오셨습니다. 세계를 위해 제일 비참한 제물을 대하듯 섬짓섬짓한 역사적인 고비를 넘을 적마다 가슴에 맺힌 한의 내연을 품고 나오신 사연을 알고 '당신은 이러한 아버지이신 것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이런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시대에 이런 사연을 알게 하셨습니까? 수천년 전에 이런 아버지의 사연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희 선조가 없었던 것이 한이 되어 지금까지 걸어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를 통하여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아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아들을 붙들고 '오냐 너는 그런 자격을 갖춘 효자요 내가 찾아 나오던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아들임이 틀림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오늘을 네가 나보다 더 사랑하니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하며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과 시대적 한계선에 머물러 있는 원수 사탄까지도 녹여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하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야말로 세계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미국을 위하여 기도하는 때도 지나갔고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때도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고, 하나님 자신도 이 민족을 구원하는 것보다도 세계 인류의 구원을 더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 아버지의 요구 앞에 세계를 내 나라 보다도 더 사랑하고 인류를 자기 형제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하늘이여, 천국의 대운을 위하여 십자가를 제가 짊어지겠으니 저에게 맡기십시오'라고 호소하며 몸부림 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전체에서 통일교회의 제단을 통하여 대부활의 운동이 벌어짙 것입니다.여기에 있어서 그 부활권이라는 것은 개인의 부활권이 아니라, 민족 국가를 넘은 세계의 부활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왼손으로는 나라를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세계를 붙들고,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이 나라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여 눈물 짓고 세계를 위하여 눈물지으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 하나 구원되는 것을 잊어버리고, 또 자기 일족의 구원도 망각해 버리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한 제물이 되고자 눈물지으며 싸워 나가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세계운동이 벌어질 것이며, 새롭게 세계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바라보는 수많은 민족과 그 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인류는 그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대신 흘려 주었으니 고맙다고 하며 그 앞에 눈물로 굴복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천국 이념은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걸어간 그 지고한 예수님의 사랑, 인류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의 일신도 망각해 버리고 이스라엘을 잃어버리고도 아버지가 원하시는 그 길을 가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대할 때, 그 거룩함 앞에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야 하며,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시련이라도 응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구원하겠다는 뜻을 품은 민족보다 세계를 구하겠다는 섭리의 뜻을 품은 민족을 원하십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의 역사가 아무리 악하였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옛날에는 해적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민족을 넘어 세계를 위하여 기독교 선교사업을 해왔기에 세계 문명을 지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화의 흥망과 더불어 이 시대의 선진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가 선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찾아오는 세계적인 과정을 위해서 눈물짓고 그런 비참한 길을 가면서 세계를 위하는 개척노정의 선봉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근세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들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 눈물은 나를 위해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눈물지으면 세계 인류는 부활하는 것이요, 그 나라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애를 바치고 그 인연의 길을 가면서 눈물 흘리며 회개의 제단, 속죄의 제단을 꾸밀 수 있는 아들딸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죽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 가정을 원하느냐? 하고 묻게 될 때에 '아니옵니다. 저는 가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오라 당신이 찾아 나오시는 그 나라를 원하는 것이옵니다'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눈물지으며 손을 붙들고 '사랑하는 아무개야, 내가 너와 같은 아들을 찾아 나왔는데 이제야 만났다' 하시며 당신의 사연을 털어 놓고 통곡하실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즉,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인연맺어진다는 것입니다.
내 뜻은 개인을 중심삼은 죄악의 한계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뜻이지만, 아버지의 뜻은 역사를 넘고 그 시대를 넘어 미래를 넘어설 수 있고 오늘의 민족 감정과 세계 감정을 넘어선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미래에 찾아올 새로운 국가,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죽음길을 갈 때에 흘린 피와 땀은 자기를 위해 흘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말할 때의 그 용서는 이 우주가 구원되는 날까지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의 법칙하에 전시대에 왔다갔던 선지선열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아량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뜻을 알아 가지고 가는 이 길은 내가 구원받고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뜻이 아닙니다. 뜻을 따라가면서 내가 가정을 필요로 한 것은 세계 인류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종족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서서 이 사상과 일치되어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세계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 눈물이 끊이더라도 그 단체에서는 눈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복귀를 바라보며 그것을 추구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눈물이 끊일 수 없고, 그렇게 생활할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의 부활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 개인으로 부족하거든 내 가정을 동원하고. 내 가정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증족, 자기 종족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민족, 자기 민족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국가를 동원하여 희생시켜서라도 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조상이 그렇게 갔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갔고, 또 그분의 구원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입장에서 국가적 제물이 되는 것도 감사하고. 종족적 제물이 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물이 된다고 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은 변하여 환희의 부할권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변하여 승리의 부활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족의 입장에서 제물되어 죽었다고 해서 종족적인 부활이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100퍼센트 부활하여 내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부활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향하여 자유 분망스럽게 전파할 수 있는 국가적인 부활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부활된 자리까지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눈물 짓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 눈물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몽땅 털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내 모든 것을 미련없이 100퍼센트 천륜 앞에 드려야 합니다. 젊고 꽃다운 청춘시대의 기백으로 온 천하를 거머쥐어 그것을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절규하는 간곡한 심정으로 바칠 수 있고,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결과를 바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에 멍으로 남습니다. 그런 사연은 그 후손을 통하여 어느 한때 기필코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 후손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사명을 받는 날은 선조와 후손이 한데 묶여지는 날입니다. 거기서 조상과 후손,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담과 가인이 하나되지 못하였던 것을 역사시대를 넘어 하나되게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듯 민족과 세계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준을 결정하지 못했거나 그럴 수 있는 나 자신도 되지 못하거나 그럴 수 있는 후손까지 남기지 못하면 운명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모든 과거를 미루어 볼 때에 그는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라도 자신이 더 지어 내지 못한 눈물이 있거든 그 눈물로 아들딸의 복을 빌어 주기보다는 세계 인류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자신이 되어야 하며, 눈물로 회개의 생활을 거쳐 다시 용서를 바라고 동시에 축복을 해주고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후에 가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시궁창에 머리를 박고 몸뚱이는 구정물 가운데서 허덕이는 오리와 같은 모습입니다. 김아무개면 김아무개, 썩어질 김아무개 라는 것입니다. 환경과 더불어 썩어질 김아무개라는 것입니다.그런 모습이 되어야 통일교회의 영원히 빛날 주인이요, 미래에 새로운 왕국을 탄생 시킬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미래의 천국을 꿈꾸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며,그 길에 남아 있는 수많은 선조들이 못 간 십자 가의 길을 우리 후손 앞에서 책임을 지고 갈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처소에서 하늘의 복을 만천하에 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미처 지지 못한 짐이 있다면 그 짐을 후손에게 남겨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 다. 세계는 망하더라도 그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 토마스(Thomas)목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자리에서 기도할 때 '아버지여. 제가 여기에 왔다가 죽습니 다. 저는 구원받기 위해 전도 나왔으니 저는 천국가고 이 민족은 지옥가야 합니다' 하는 기도를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죽더라도 제가 흘린 이 피 대신으로 이 민족을 부활시켜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삼천만 민족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추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이용하여 자기가 빛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라와 관계없는 사람 입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려도 세계를 위하여 흘려야 됩니다. 여기에서 국가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아직 세계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을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미래를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역사의 뜻 앞에 인연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출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 해야 합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출발하면 하나님에게 아픔이 남아진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과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줄 물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슬프면 자기도 모르게 슬픈 마음이 되며, 오늘같이 날이 이렇게 청명하여 환경에 기쁠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는 입장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할 때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어 안절부절하며 몸부림치는 입장에 있을 때는 옷깃을 여미고 '당신이 이 시간에 슬퍼하는 것이 무엇입니 까? 저희들을 통곡케 할 당신의 사연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 다' 하며 그 집의 아들이 되고 그 집의 종이 되어 그 가정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몸을 바쳐 희생해아 되겠습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이 민족을 생각하게 될 때 한없이 흘러 넘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침범받았던 이 민족을 사랑함에 있어서 밤낮없이 하늘 앞에 인연지을 수 있도록 아버지가 대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원수의 나라라고 망하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귀중한 마음을 통해서 시대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원수의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이며, 통일교단의 원수는 어느 교단이고, 또한 통일교회 문아무개에게 있어서 원수는 누구일 것인가? 또 나는 그들을 만나 가지고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그들이 나를 원수로 대한다고 나도 원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세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세계와 싸우고 원수를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잊어버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은 원수라도 그 아들딸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는 갚더라도 그 아들딸은 구해 주어아 합니다. 내 원수는 내가 쓰러뜨려도 그 원수의 아들딸은 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뜻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게 해서 원수를 갚되, 그 원수의 아버지와 아들딸까지 3대의 원수를 갚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곧 복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가인 아벨을 잘라 버리고 복귀섭리가 이루어집니까? 그의 아버지는 원수지만 그들의 아들딸을 복귀해서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최고로 정성들일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복귀역사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 교인들이 그런 패들에 제일 가까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패들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공산당이면 공산당의 책임자가 있는데, 그 주권자가 우리의 원수지 그나라 국민들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선생님도 공산당이 밉습니다. 공산당들을 전부 독수리 밥이 되게 해 버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전부가 원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수는 특수 계급의 몇몇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이 원수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것입니 다. 통일교회 입장에서는 기성교회가 제일의 원수죠? 나를 반대하는 것이 원수라면 둘도 없는 원수입니다. 기성교회가 반대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해 나왔으며 선생님의 일생 중에서 꽃다운 젊은 시절을 희생한 것입니다. 다시 볼 수 없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대 연대 사건으로 인해 통일교회의 문이 완전히 철폐되다시피했었습니다. 그 기반을 다시 세우기 위해 21년 동안 고생한 후 다시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유대교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처음에는 유대교를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 했으나 유대교가 반대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대한민국의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이루려던 섭리의 뜻이 대한민국의 기성교회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를 찾아 세운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그 모든 반대를 뚫고 나가야 할 운명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는 여러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문선생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이 선생님을 위하고 통일교회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기에 앞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은 세계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 그래야만 하나님의 참된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욕심을 가지고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면서 세계를 위해서라면 나는 망해도 좋다하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보라는 것입니다. 역사에 남겨진 것을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했을 때, 여러분 같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다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좋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 다. 유대 지파면 유대 지파 앞에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없으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기도해야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했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데 어찌 그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니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시옵소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같은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신념이 있습니까? 내가 통일교회 다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신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자신만만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며, 부끄럼 없는 통일교인의 한 사람이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에서는, 공적인 입장에서는 자신만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편하다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지만 부모의 품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축복 대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 대상자 중에 좋은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 뜻앞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 대상자 중에 어떤 여자가 선생님 앞에 와서 '나는 대학을 나왔으니 상대는 대학원 이상은 나와야 될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여자에게 '그래, 너 잘났다. 너는 뭐 머리도 좋고 대학도 나왔다고 그랬으니 네 상대는 네 맘대로 마음에 맛는 남자를 골라 결혼해라' 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뜻을 위해 충성하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어느 누구하고라도 하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반면 이번에 축복 대상자 중에 국민학교밖에 안 나온 여자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불러 가지고 저는 얼굴도 그만하면 됐는데 고등학교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했더니 눈물을 홀리면서 '제가 국민학교밖에 안나 왔으니 어느누구라도 뜻을 위해서 말없이 고심분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고등학교 출신 중에서 제일 똑똑한 지역장과 맺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방법이 틀렸습니까? 천운이 가는 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슨 대회가 필요하게 되면 될 수 있는 한 선생님이 맡아서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대회는 하늘편의 대회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 후손을 위해 정성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후손들을 다 축복해 주고 잘살게 해주고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단체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내일의 더 큰 뜻을 위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가 혼자 책임지겠다고 날뛰다가 실패하게 되면 하나님께 기도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되겠습니까? 무슨 면목으로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렇다 할 기도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떡을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 하는 말이 있지요?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렇게 능글맞은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주겠다고 해도 안 먹겠다고 하면서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아들딸 갖다 주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들딸 에게 줄 하루쯤 묵은 떡이라도 그집의 아들딸을 줘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몇 배로 돌려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가 우리 눈 앞에 다가오는 이때에 하나님은 틀림없이 앞으로 세계를 지도할 수 있고 세계와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단체를 찾아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고, 세계 인류를 위해 봉사하며, 세계를 위해 축복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먼저 알았으니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여러분이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부활권을 갖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륜과 대결해야 됩니다. 일년, 혹은 십년…. 그렇게 하면 뜻이 안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만일 뜻이 안 이루어지게 되면 도리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열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 생각해 봐요. 어떤 부모에게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는데 그 아들딸이 다 성장해서 장가도 시집도 못 가고 죽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편하겠습니까, 안 편하겠습니까? 그 부모는 '아이구 ! 그놈의 자식, 장가도 못 가고 죽었구나' 하면서 탄식할 것입니다. 그 부모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몇천 배의 심정을 가해서라도 해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선생님 개인적인 성공을 바라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개인적인 성공 이상의 성공을 거두어서 대한민국 앞에 드러날 수 있고 세계 앞에 드러날 수 있는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죽음의 자리에서 꽃이 피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사랑의 꽃이 필 때 만민은 관심을 갖게 되고 영광의 자리에서 꽃필수 있는 환경을 맞으려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천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의 부활을 위해 뜻을 세계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역사시대로부터 인연된 뜻을 중심삼고 천년 만년 기뻐할 승리의 터전을 맞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해방시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이 틀림없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세계의 부활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여기에 김씨 왔나요? 요전에 선생님한테 와 가지고 뭐 이번에 미국에 가기로 했다나요? 선생님이 나중에 자기 사정을 몰라준다고 하면서 자기를 외국으로 쫓아내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면서 눈물 흘리며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뭐 미국이라고 다른 곳입니까? 세계 안에 있는 미국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열심히 기도하는데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기도해 왔지만 하나님은 까딱도 않았습니다. 가르쳐 주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그저 묵묵부답이라는 것입니다. 수십년간 정성을 들이고 그래도 그 정성이 부족하다면 일생을 바쳐서라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도 부족 하다면 자기의 후손 몇 대를 거쳐서라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은 천추만대 정성들인 후손만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손에게만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그것은 세계의 어느 민족, 어느 종족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민족이 되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만년을 걸어 놓고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해방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은 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영원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봉헌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 그 누구도 갈 수 없다는 길, 그 길을 여러분이 걸어 넘어가야 되며 그것을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프면 눈물이 나옵니다. 눈물이 나와요, 안 나와요? 「나옵니다」 그러나 아프다고 해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됩니다. 칠 테면 쳐 보라는 것입니 다. 매를 맞고 들어와서 절대 울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 울지 말라는 거예요.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눈물 입니다.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슬픈 자리에 처했을 때도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고생한 사람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세계를 위하여 흘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 눈물은 반드시 세계를 해방시키는 부활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아버님, 이 대한민국을 구원하기 위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보옵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움직여야 되겠사옵니다. 일본이나 그 외의 사람들을 통한 간접적인 전법으로써 이 나라를 움직이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생각해 볼 때, 세계적인 인연을 거쳐야 할 대한민국이기에 한두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이런 때에 저희들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사방에 엉클어져 있는 수많은 국가들을 해방하여 하늘의 제단을 쌓고자 하는 무리들이옵니다. 대한민국이 건설도상에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가 몇 천만이 되면 대한민국의 경제 부흥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여기에 있는 아들의 마음인 것을 당신이 아옵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대한민국 자체로서는 있을 수 없는 비참한 운명길에 물리어 있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본이나 중국을 중심삼고 아시아의 연결점을 거쳐 대한민국의 해방의 기치를 높여야 될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그와 같은 작전을 세운 것은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옵니다. 자연굴복시켜야 할 아버지의 뜻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옵니다.
그리하여 그 굴복시킨 것을 세계적으로 인연지어서 영원한 승리의 가치적 내용을 그들에게 옮겨 주고 그들에게 상속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참된 가치가 세계의 어떤 가치의 기준보다 올라서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이 나라를 중간 입장에 세워 놓고 하늘과 끝이 하나되어서 중간을 소화시키려는 작전인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 교회가 그런 작전을 해야 할 운명이옵나이다.
저희들이 불쌍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눈물 흘리던 과거를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밤을 새워 눈물짓던 그 옛날을 회상하며 어떤 애국자의 눈물보다도 더 간곡한 심정을 지니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들이, 아버지만이 아는 사연 사연들이옵니다. 그 고생들이 원수의 마수에 이끌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비참하였던 60년대를 지나 70년대에 들어섰사옵니다. 이제 이 나라 대한민국은 몰리는 고아의 자리에서 쓰러져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사장의 입장에 서서 제단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워 정성들이면서 아버지의 염려의 마음을 상속받아 세계의 축복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통일의 자녀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심정이 이 민족을 찾아오던 그 내적 인연을 저희들이 갖추어서 당신이 이 민족과 더불어 내일을 향하여 갈 수 있는 터전을 개척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거기에 저희가 발판이 되어 가지고 당신 앞에 민족의 제단을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제사장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직까지 그러한 제사장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오늘날 기성교단은 당신이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을 알게 되옵니다.
수많은 신령한 집단들이 나타났던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누가 새롭게 가고 있습니까? 그들은 저희가 오기 전에 여름절기를 맞았사옵고 가을절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을 맞이할 때 저희는 추운 겨울절기에 처해 있었사옵니다. 남위면 남위 23도의 위치는 태양이 그 상대편 권내에 있더라도 겨울절기에 처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열대권내에 처하고 온대권내에 처하여 그 한계선에 부딪치며 살아왔사옵나이다. 그러나 이런 시점에서 어느 한날 여름날을 맞이 하게 될 때에는 극과 극이 화할 수 있는 통일적인 운세가 천지에 충만하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교단들은 여름절기에서, 혹은 가을절기에서 그쳐 갔습니다. 그러나 저희 통일교단은 겨울절기를 거쳐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문명권을 두고 볼 때, 그것은 봄절기의 문명권에서부터 여름절기의 문명권을 거치고 가을절기의 문명권을 거쳐 겨울절기의 문명권을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여름절기의 열대 문명권을 중심삼고 봄절기의 온대 문명권내에 있는 것이 현재의 민주세계요, 그것이 현대 문화세계를 자랑하는 20세기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세계 앞에 공산당들이 부르짖고 있는 문명, 시베리아 벌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거짓된 그 문명이 침해하는 이런 때가 외적으로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도 겨울 절기를 맞이하여 내적으로 신음하고 있는 입장에 섰사옵니다. 공산당이 득세하는 때에 겨울절기를 맞은 통일교회는 비참한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공산당은 이 땅에서 쳐나 왔지만 통일교회는 맞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이미 저희들에게 그 겨울절기는 지나가고 새로운 봄절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통고하셨사옵니다.
거룩한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이 70년대에 한국은 외적인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맞기 위해 종교의 부흥을 추구하고 있사오니, 거기에 내적인 봄절기와 여름절기가 일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그런 입장아 서지 못한 것을 제가 염려하고 있사옵니다. 이 민족의 갈 길을, 아버지, 지켜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삼천만 민족이 양단된 삼천리 반도를 부여안고 서로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 이 인연을 아버지 앞에 하나의 형제의 인연으로 묶어 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사옵고, 그 책임을 감당한다는 사실이 지극히 험난한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앞으로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 만민 앞이 남아져야 할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세계적으로 사랑의 터전을 넓힘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사망세계에 연결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회는 이 나라가 알지 못하는 때부터 나라의 지탄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발전을 해왔사옵니다.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지금까지 찾아온 길이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때로는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통하여 그곳의 모든 소식을 듣게 될 때 그 누구도 모르는 아버지의 서러움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 앉아 있는 아들딸들은 모두들 알고 있사옵니다.
사망의 물결이 넘치는 황무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 가운데서 헤매는 외로운 생명에게 눈물어린 정성으로 은사의 양식을 찾아 주어야 할 책임을 누가 감당해야 되겠사옵니까? 그것을 제가 하지 않으면 아버님께서 해주셨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터전이 당신의 수고와 연결되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나라를 눈물어린 마음으로 사랑해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 본부에 있는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외로울 때 스승의 마음을 동경하고 슬플 때는 당신을 부르며 나왔사옵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며 나왔사옵니까? 자기가 아닌 그 누구를 위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사옵고, 자기 나라를 위하기에 앞서 세계를 위하며 나왔사옵나이다. 그런 마음을 느끼는 자리에는 망하는 운세가 깃들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자들을 외지에 보내 놓고 지금까지 그들과 더불어 하늘의 인연을 남기기 위하여 싸워 오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그들과 더불어 인연을 맺어야 하옵기에 참고 나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모두다 불쌍한 무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어찌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런 입장이 되어야 하옵니까? 어찌하여 그러한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는 입장에 서야 하옵니까? 그러나 그러한 섭리를 계획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 보고 불쌍한 분도 아버님이요, 외로운 분도 아버님이요, 원통한 분도 아버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안타깝고 비참한 사연을 뼈에 사무치도록, 모든 동맥이 터질 것 같이 느끼면서 이 사실을 통고할 곳 없어 몸부림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50성상을 넘기고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니 미래는 희망의 빛을 발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힘찬 내일을 다짐하는 저희들이 될 수 없을까봐 두렵사옵니다. 하오나 외적인 모습이 이렇다 하더라도 내적인 심정은 더욱 아버지께로 다가가오니 그 마음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통일의 교단이 가는 길은 당신이 남기신 핏자국의 제단을 높이고, 흘리는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하여 저희들의 몸으로 덮고 메워야 할 가시밭길이 옵니다. 그 가시밭길을 그 몸으로 덮는 하나의 모습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슬픔의 상처를 닦아 드리겠다고 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리움에 사무쳐 눈이 멀도록 아버지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 다. 해방시켜 드려야 할 아버지라고 천번 만번 다짐하며 그 깊은 마음 가운데 아버지의 사연을 느끼고 불쌍하신 아버지를 붙들고 '제가 찾아왔사옵니다' 하며 모시고 위로해 드릴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각자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친히 인연맺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6월도 다 지나갔습니다. 저희들이 '승리적 통일전선'을 다짐하던 6개월 전의 그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아시아로,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할 통일의 무리들이오니 거취를 지켜 보아 주시옵소서.
이 이념과 뜻을 품고 가는 저희들의 모습이 남루한 옷을 입은 불쌍한 모습일지라도 당신을 위로할 수 있고, 당신의 천년사를 대신하여 그 심정에 어릴 수 있는, 당신의 마음에 진리의 아들로, 동역자로 당신의 품에서 떠날 수 없고 당신의 사연에 얽히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하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저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오늘은 7월 들어 첫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의 새로운 각오와 은사가 저희들 위에 머무르게 하시옵소서.
땅 위에 한번 왔다가 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여러 가지 탕감의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될 생애적인 책임도 짊어지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으로, 어떤 사람은 서로, 어떤 사람은 남으로, 어떤 사람은 북으로 각자의 방향에 따라 주어진 운명길을 개척해 가는 생애마당에 있어서 자신을 중심삼고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더불어 자기의 갈 길을 의논하며 가려 가는 사람이 없는 이 땅에서, 당신은 저희를 붙들고 그 방향을 따라다니면서 지금까지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거쳐 나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 아버님을 대하여 역사상에 왔다 간 선조들이 푸대접하였던 것을 저희들의 당대에 모두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그런 후손이 되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 엄청난 수고로운 길을 참고 나오셨으면서도 또 참음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여, 수난의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 나오시면서도 그런 사정을 말할 수 조차 없는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이 저희에게 연결되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에게까지, 또한 현재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연결되어져야 할 것이기에 지금까지 수난의 역사의 중심적 책임자로서 나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아버님을 대하고 있으면서도 이 땅 위에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당신의 것으로서 맡기려 하고, 기쁨이 있으면 자기의 것으로 상속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아버지 앞에 용납받을 수 있는 자신인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하고, 불효의 선대를 가진 후손이면서도 스스로 불효된 입장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신들을 다시 한 번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각자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수고로우셨던 아버지의 그 내심 가운데에 잠겨 있는 한이 얼마나 크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느껴야 되겠고, 짊어진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 나오시는 아픔이 얼마나 크셨겠는가를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아버지의 이름 앞에는 눈물이 어릴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이 있었고, 생사가 엇갈려 나가는 곡절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라는 이름만 들어도 자신을 가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모습들이옵니다. 입으로는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라 하지만, 아버지의 전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책임지지 않는 입장에서 번번해 아버지를 부를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그 아버지의 전체를 계승받아서 아버지가 계시지 않더라도 대신 책임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오나 아들의 인연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모든 십자가를 넘겨 주기에 부족함이 없고, 믿을 수 있는 아들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너무도 서글픈 입장의 이름인 것을 저희들은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때 그 아버지는 얼마나 얼마나 수난을 당해 오셨고, 이 땅을 살리기 위하여 억천만사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죽음길로 내보낼 적마다 그들 이상의 고통을 참아 나오신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배울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원한에 사무친 원수라 하더라도 그 원수를 대하여 원수로서 갚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고,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간곡한 노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과거는 이렇게 살아온 자신이요, 현재는 이러한 입장에 선 자신이요, 미래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이라고 아버지 앞에 한계선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슬펐던 자기 자신이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당신이 소망의 일념을 지니고 기뻐하시며 기대라도 하실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지녀서 아버지께서 소망과 기대를 걸고 이러이러한 사명을 맡아 달라고 분부하실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볼 때, 자기 자신은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아버지의 편에서 동서남북중 어떠한 일방에 서 있다 하더라도 아버님이 그 방향을 바라 볼 때, 나를 기억하고 바라보시게 되면 거기에 있어서 소망의 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소망의 마음이 거기에 머물 것입니다. 그런 위치를 당신께서 허락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나 자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를 중심삼고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요, 아버지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나 자신을 중심삼고 위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가 베드로 앞에 나타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또 재차 예수가 물었을 때 베드로의 마음 가운데에 주저함이 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예수의 세 번째의 물음에 그는 부끄러운 마음이 앞을 가려 얼굴을 들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떳떳이 바라볼 수 없는 부끄러운 자리에서 다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베드로의 모습을 회상해 보면서 저희도 때때로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개야, 나를 사랑하느냐' 하실 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줄을 당신이 아신다고 대답하지 못할 자신의 입장인데도, 아버지께서 묻기에도 부족하고 찾아 기억하시기에도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몸부림치며 아버지 앞에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나를 사랑하느냐는 당신의 물음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떳떳이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이면서도, 아버지 앞에 나를 사랑해 달라고 몸부림치면서 아버지의 입장을 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은 자리에 섰던 불효의 자식된 저희 모습들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내 모습이 어떠한 입장에서 있든 간에 아버지의 마음을 염려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염려하는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망하더라도 아버지의 슬픔의 길을 막기 위하여 자기의 사정을 넘어설 수 있고, 죽음의 고개도 넘어설 수 있는 효자는 못되더라도 효자의 흉내라도 내는 길을 가겠다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는 통일교단이라는 엄청난 이름을 가진 자리인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엄청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심정의 닻줄이 내려질 수 있는 자리이기에 엄청난 것이옵니다. 여기는 생사를 판가름할 수 있고, 생명의 기원을 작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리이기에 엄청난 자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법정에 선 죄수가 생애의 모든 심정을 다 기울인 심각한 입장에서 판사가 판결하는 말 한마디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 중에 그와 같은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얼마나 되옵니까? 뜻을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며, 아버지를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였느냐는 물음에 나는 이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아들딸이 얼마나 되느냐는 사실로써 앞으로 교단이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일 것인가가 측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입장과 처하고 있는 이자리가 얼마나 두려운 자리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저희의 마음을 가누어 주소서. 저희는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의 품에 품어 달라고 아뢰올 수조차 없는 부끄러운 모습들이옵니다. 그러한 저희에게 당신께서 거룩하신 은사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들은 사망의 세계에서 혜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며, 사망권과 고난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죽더라도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고,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고, 매를 맞으면서도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어야 할 저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채찍으로 치게 될 때에, 그 채찍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랑과 사랑이 엇갈려 있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임을 매를 맞는 자식은 몰랐습니다. 번번히 책망 받는 입장에 섰던 사람들이 그 본체의 마음을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에 무수한 반역을 남겼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한 자리에서도 부모의 사랑의 마음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이 타락한 선조의 후손인 저희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라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 순응하여 천만 번이라도 매를 달가이 맞을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하늘 가정의 외로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아들이 누구며, 딸이 누구냐고 소리내어 외치게 될 때에, 흰옷을 입고 겸손히 나서서 피뿌리는 거룩한 제물이 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그렇게 묻게 될 때, 내가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왔다면서 서슴지 않고 나서는 하늘의 아들딸이 여기에 많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효자 한 사람이 불효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지, 저희 통일가를 당신의 안식하실 수 있는 거룩한 심정의 터전으로 취하시옵소서. 이것이 아들이 바라는 소원이요, 아들이 원하는 길이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아버지께서 거룩하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천상 세계의 천천만 성도들이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역사를 짊어지고 나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공적인 입장에서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 온갖 어려움을 대신 짊어지고, 아버지를 위하여 제물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0년도의 전반기를 다 지냈사옵니다. 오늘은 남아진 후반기를 향하여 출발하는데 있어서 7월 들어 첫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오니, 지난날 아버지를 대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자세를 거두고 과거에 아버지 앞에 불효했던 자신을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다가오는 후반기에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당신의 심정적 사연을 통고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모두가 못 한다고 해도 우리만은 하겠다고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몸부림치며 애구애절하게 정성들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난의 길을 걸었던 1960년대는 다 지나갔사옵고, 1970년대 또한 절반이 지나갔사옵니다. 이 한해를 중심삼은 저희들의 출발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는 이 한해를 통하여 1970년대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의 원천을 결속 시켜야 되겠고, 모든 선의 동기되는 실체를 지녀 가지고 1970년대에는 해마다 선한 결실을 맺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남아 있는 이 1970년대를 당신이 맡아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에 하늘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폭발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서로 만나기를 간곡히 고대하는 자리에서 서로 나누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만날 수 있는 인연이 두터워지면 주고 받는 인연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알고, 끝날에는 서로 서로 만나기에 힘쓰라고 하신 아버님의 가르침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대신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그 사람들의 중심이 되는 것이 역사의 전통적인 인연이요, 선을 찾아가는 전통적 노정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공적인 자리에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공을 쌓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 아침,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중심은 서울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 축도를 드리면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오니, 그들 위에 무한한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거리의 제한을 받고 있고, 물질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는 그들이지만, 마음만은 제한받지 않아서 사무치는 간절함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런 막혀버린 여건 때문에 만날래야 만날 수 없는 사정을 서러워하며 아버지 앞에 눈물짓는 식구가 있거든 당신이 나타나시어서 친히 위로해 주시옵고, 그들에게 분부하시옵소서. 남아 있는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그 길을 가려 가서 안식의 모금자리를 찾아 영광의 자녀로 설 수 있게끔 아버지, 그들을 고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들은 복귀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인류 앞에 놓여진 크나큰 사망권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것이 싸워서 제거되지 않으면 입으로 물어 뜯어서라도 없애야 될 책임이 생애 노정에 맡겨져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무리이오니 당신이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중 오늘 이 아침에 서울을 향하여 마음 모아 아버지의 거룩함을 흠모하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그 마음에 다짐하면서, 내일에 빛날 수 있는 영광의 한때를 아버지와 더불어 갖고 싶어 몸부림치면서 호소하고 정성들이는 아들딸들이 있거든, 천배 만배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라보고 있는 자리는 지루한 자리였습니다. 기도하는 자리는 수난의 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이것을 잘 알고 계시오니, 그들의 편이 되시옵소서. 그들의 사연과 소원을 성취하는 데 당신의 사랑을 가하시어서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직접 현현하시어 그들을 손으로 쓰다듬는 자리에 세우시어서 각자의 생애에 있어 기쁜 한때를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는 인연 가운데에 연결시켜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면접하시어서 직접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이곳을 그리워하면서도 참석하지 못한 아들딸이 있사오면 같은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남은 시간 위에 당신의 거룩하심이 동반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아버지와 더불어 가야 할 이 제단의 노정을 위하여 기도하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전부를 당신이 기뻐하시는 가운데 받아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특별히 기도하고 있는 그 내용을 아버지께서 잘 아시오니,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성취시키시어서 이 땅에서 기필코 영광의 한때를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여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영광과 가호의 은사가 그들의 마음 몸에 연결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날 우리들은 타락의 후손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의 한 개인이 그러한 자리에 머물러 있고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그러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 오늘날 도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우리의 생활인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환경 가운데는 우리와 화합하여 우리의 희망을 가해 줄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 서로 화합하고 혹은 마음을 펴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연고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 태어나서 그 가운데서 살다가 그 가운데서 죽어가야 할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에 불쌍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쌍한 운명을 지니고 있지만 불쌍한 길을 불쌍하지 않게 갈 수 있는 인생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도의 길인 것입니다. 이처럼 불쌍한 환경에 있지만 이 모든 불쌍한 내용을 넘어서서 나 자신은 불쌍하지 않다는 결의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삶에 있어서 새로운 소망이나 혹은 희망이 있다 할진대 그 희망이 불쌍한 희망이 되지 않고 행복한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불쌍한 자기를 극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자아의 인연을 스스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소망과 희망은 기쁨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초월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서 등장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정세인 것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 정치를 중심삼고 국가의 불행한 운세를 어떻게 하면 행복한 운세로 전환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합니다. 그리하여 모색된 인연이 있으면 그것이 행복의 내용이 되기를 바라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종교면 종교의 지도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불행한 세계 환경 가운데에서도 자신은 불행하지 않다는 그런 각성된 입장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든 정세와 환경을 부정하고 자아를 새롭게 인식시켜서 그 인식된 자아가 행복의 여건과 어떻게 접하느냐 하는 이런 경계선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싸움을 통하여 한 순간에 있어서 어떠한 인연을 중심삼고 기쁠 수 있는 조건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인연이 자기의 생애와 전체의 역사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그 인연은 환경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은 인연을 통하여 얻어진 기쁨은 다시 환경으로부터 침식을 받고, 또 환경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번번히 점령되어 버리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매일의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들은 참을 찾아가는 노정에서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불행한 환경을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의 생애 가운데 행복의 여건, 또는 소망의 여건으로 남길 수 있으며 내 생활의 중심으로 유지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오시려 할 때 불행한 자리로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천운이 이 땅을 찾아 온다 할 때, 그 천운 역시 불행스런 환경을 찾아올 리 만무합니다. 이 땅 위에 행복이 깃들어 있고 희망이 깃들어 있다 할 때 그 깃들어 있는 행복과 희망이 한순간 뿐만이 아니라 그 생애를 넘어서 영원히 깃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의 바탕이 있을 때, 영원의 터전 위에 영존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행복의 터전을 향하여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 영원의 중심을 중심삼은 천운 또한 그러한 조건이 성립되어야 찾아올 수 있다는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신앙의 길은 마음을 중심삼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신앙자에게 마음이 변하라고는 가르치는 법이 없습니다. 변치않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품은 마음이 10년 후에 변해서는 안될 것이요, 세월이 흘러서 설령 생애가 끝나더라도 그 마음만은 변치 않고 남아져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참된 종교인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마음의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의 바탕, 변하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목표로 삼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존재해야 되고 변하지 않는 목표를 바라보며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것이 신앙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바탕은 신앙인에 있어서 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바탕은 신앙인에 있어서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생애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인은 신앙생활을 하는 보람, 즉 본연의 자세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인연이 자기 한 사람만을 중심삼고 하나로서 맺혀질 것이 아니라, 그런 자신을 중심삼고 환경을 넓혀야 합니다. 거기에 몇 배를 가속해 가지고 사방으로 그 인연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자기로 말미암아 영원한 행복의 여건으로 그 환경이 얼마나 개척했느냐 하는 것이 천상세계에 가 가지고 그 사람이 지닐 수 있는 복의 터전이 되고, 행복의 기원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개척해 가는 데에 있어서 오늘날 세상의 인간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길에서는 그러한 행복이 찾아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세계가 사망권이기 때문에 사망권에 있는 이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여 추구되는 모든 소원이란 것은 본연의 자세를 기원으로 해서 추구하는 영원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외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외적인 호흡의 영향은 우리가 찾아야 할,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내적이고도 본질적인 행복의 터전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적인 여건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적인 것은 거기에 반비례해서 작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 사망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적인 환경을 완전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바라는 권을 어떻게 만드느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신앙자가 가는 길에 제재가 많은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제한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그러나 이 제한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제한의 앞면과 뒷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앞면에서는 사망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지만, 그 뒷면에서는 생명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바깥에서 억세게 휘몰아치는 사망의 크나큰 물결과 그 안에서 은은히 일기 시작하는 생명의 물결과는 천양지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의 물결을 방비하여 살아가려니, 이는 외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외롭다고 해서 외로운 그 자리를 망각하고 회피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외로운 자리를 사수해야 되고, 고생스러운 자리를 사수해야 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이 입장을 떠나게 될 때에는 그 외로움을 삼키려는 노도와 같은 사망의 물결에 밀려 생애의 물결은 일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런 것이 오늘을 사는 인간들의 전면과 이면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은 일순간도 쉬지 못하고 공포의 싸움 세계에서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늘의 길로 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기의 깊은 마음 가운데 하늘의 소원이 강하게 싹이 트면 틀수록 그 마음은 무한한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에 상대적인 하나의 실체상이 나타나게 될 때 거기에 역사를 유린한 사탄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망권과 생명권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싸워 나가다가 그것을 느끼고 전체의 생애를 기울여 다짐하며 나서게 될 때에는 그것이 형상적으로 나타나 영적인 체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지극히 연약한 자리에 있고 반대로 악은 지극히 강한 자리에 있습니다. 선의 자리는 오로지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수면에다 한 점을 손가락으로 찍었다가 손가락을 빼면 그 손가락을 빼자마자 그 자리는 다시 물에 의해 점령을 당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난 기쁨의 바탕은 물 속에 손가락을 넣은 것과 같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물에서 손가락을 빼자마자 일시에 물이 그 자리를 점령해 버리는 것처럼, 그 하나의 선의 기준을 중심삼고 일시에 점령하려는 악의 세력이 사방에서 공격한다는 사실을 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체험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의 기준을 나 자신이 잃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하는 자리에서 영원이 시작되는 것이지 적당히 하는 중간의 자리에서 영원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중간 형태에서 머무르다가는 사망권 내에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망권에 속하는 중간입장을 넘어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것입니다.
다하는데 있어서는 우리가 타고난 본능성이나 체력의 한계권 내에서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다했다 할 수 있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내 힘과 능력만으로는 부족하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서'라고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과 더불어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닌 힘의 한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여생을 걸어 놓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할 때 혁명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 자식보다도 아내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를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냐? 그 십자가는 양면의 십자가입니다. 사망의 물결에 휩쓸리는 고립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을 붙들고 큰 것에 대항하여 작은 것이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망권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큰 것을 막아 내고 내 작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사망의 물결을 막아 나오던 하나님이 나를 믿어줄 수 있는 담벽과 같은 힘이 배경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 자신이 여지없이 밀려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을 철석같이 붙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조그만 움직임을 동기로 삼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선을 뚫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은 나를 밀어 주는 힘을 앞세워 가지고 따라 나오면서 나로 말미암아 악의 인연을 점령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가려 나오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타락을 인간이 했기 때문에 복귀도 인간이 한다는 기준을 그렇게 해서 세워 나오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 올 때, 바다에 한 번 가 보십시오. 풍랑으로 인해 바다의 물결을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는 배가 있다 할 때, 그 배를 탄 사공이 얼마나 마음 졸이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경지를 가려 나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넘어 온 한 고비가 내 생명을 위협하는 마지막 고비인 줄 알았더니 연속적으로 더 높고 큰 물결이 가해 오는 것을 볼 때, 육지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길을 가는 신앙자는 노도 가운데 파선의 운명을 면하기 위해 마음 졸이며 배를 몰고 가는 사공의 입장과 같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가는 신앙길이 그런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말로 할 때는 간단한 것 같습니다. 이 한국에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손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도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손길을 미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한국은 세계의 여러 국가 가운데에서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복귀섭리 해 나가려면, 그 나라는 수많은 악의 나라가 침범해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파동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인연의 한때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이 수많은 종족 가운데에는 수많은 개인이 있습니다. 나는 그 수많은 개인 가운데의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밖으로부터 몰아치는 세계적 악의 운세는 역사적인 한계선을 놓아 두고 몰아쳐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생활권내에 있어서 하루의 인연을 중심삼고 파동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어느 한 종족에 인연되어 있는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내가 거쳐 가야 할 승리의 세계, 소망의 세계가 얼마나 먼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서 그냥 살면 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을 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온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의 권한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영(靈)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겐 그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靈) 중의 장(長)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하게 되면 장(長)은 영(靈)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얼마나 복잡한 입장에 있습니까?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 개체가 안식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의 경계선 안쪽이냐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겠느냐? 일본이겠어요, 아니면 중국이겠어요? 이 문제가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어디냐 할 때 대한민국 안이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안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롭게 변혁시켜 가지고 하늘 편으로 복귀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필요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자체가 세계의 승리적 복귀의 터전, 안식의 터전이 되느냐 하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 복귀를 위한 안식의 터전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권내의 아들로서 정성들인 수도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의 도면 도, 군이면 군 권내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아들딸은 될지언정 하나님 나라 정체 앞에 대표로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장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장이 아닙니다. 영장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장될 수 있는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자는 적어도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 소원을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천국이 되느냐? 하나님의 천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오시며 복귀섭리를 추진시켜서 오늘 대한민국의 통일교회를 찾아오신 것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통일교회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 교단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요, 세계의 중심의 자리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동이 쳐 오는 사망의 물결들을 전부 다 극복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쪽에 건너가더라도 이쪽을 방비할 수 있는 모든 비법 및 장비를 갖추어 놓아야만 사망권내에 남아질 수 있는 천국의 기원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목적하는 곳에 가 보지 못한 채 강을 건너 가야 할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강이 노도나 폭풍에 시달리면 그 강을 건너는 우리 자체 역시 시달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된다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권내에서 희생당하셨지만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생명권의 기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기원이 세계적인 한계선을 넘어서 하늘나라와 연결되게 될 때, 연결된 그 인연을 따라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지니고 사망세계에 다시 와야만 영광이니 승리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에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즉, 오시는 주님을 바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냐? 결국 천국을 맞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통일교회에 속한 사람은 개인의 입장이지만 그 개인은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고,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 개인은 세계적인 사망권을 극복할 수 있는 가치 이상의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머무는 곳은 어디나 천국인 것입니다. 어디나 천국이예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면서 믿고 가는 길 앞에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정하고 공포스러운 크나큰 노도가 휘몰아쳐 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몰려오는 노도 앞에 우리가 그냥 속수무책일 때에는 열이면 열 전부다 파손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어떠한 안식처, 즉 보금자리에 닻을 내릴 수 있는 그 무엇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입장에서는 좌우로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뿐 전후로는 왔다 갔다 할 수 없습니다. 전진은 할 수 있지만 후퇴는 할 수 없는 운명길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후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전진할 수 있는 인연을 갖지 못한 사람은 밀려오는 공포를 극복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렵다고 해서 그 두려움 속에서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생명줄을 당기는 데 있어서 생명의 여력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소망의 자극으로 삼아서 공포심을 능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가는 길 앞에 소망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도 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길은 후퇴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길은 후퇴하는 길이 아니라 좌우로 합해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혼자 갈 수 없고 응원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혼자서 알 수 없으므로 가르쳐 주는 친구가 필요하고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가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되고, 옆에서 동지로서 의지하며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옆에서 위로해 줄 수 있는 동지를 못 가진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요, 앞에 먼저 가서 옳다 하고 뒤를 바라보며 가르쳐 줄 사람을 못 가진 사람도 지극히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상에 이 땅 위에 와서 인류의 사망의 물결을 가르고 간 분이 있다면 그분이 누구겠느냐? 하나님의 독생자라라고 하며 왔다 갔던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아니라, 세계의 메시아인 예수님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체로서 수난의 고비를 넘기 위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국가의 사망권이 예수를 삼켜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만 역사적인 사망권을 넘어서서 그 나라의 승리의 왕자로서 영적인 사망세계에서 파도치는 험악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길을 닦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따라 가기만 하면 영적인 행복의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영육을 중심삼고 피를 뿌려 찾는 승리의 곳, 안식의 보금자리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도 내일도 그리워하면서 가야 할 통일교회의 운명길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운명길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가야 되느냐? 여러분은 생명줄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만은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 안 가려고 하면 야단납니다. 일시에 위협이 찾아오는 길, 이러한 길이 하나님과 사탄이 판가름하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단단히 붙잡아야 됩니다. 이것은 손으로만 붙잡아서는 안되고 내 몸에다 얽어매야 됩니다. 그리하여 이 생명줄을 잡아당겨야 합니다. 그 생명줄을 잡아당겨도 전진하지 못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방향만이라도 직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곳으로부터 어떠한 신호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어떠한 명령이 있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구해 달라고 울부짖는 최후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신호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어떠어떠한 대책을 취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데 있어서는 시험같은 것은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실천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실천만이 사는 길입니다. 실천하는 것만이 생의 원칙에 접촉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너와 나의 인연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명령과 더불어 바로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결단을 짓고, 다른 것은 생각지 않고 혼자서 실천하는 길만이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운명권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비가 올 때나 혹은 태풍이 불어올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남자들은 한 번쯤 배를 타고 가다가 태풍을 만나 봐야 합니다. 생각하면 참 근사하거든요. 바다에서 태풍으로 인해 누가 죽음을 당하게 되면 불쌍하긴 하지만 어린애들이 볼 때는 참 재미있거든요. 그렇지만 그것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일이겠습니까? 불쌍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보게 되면 마음이 졸이지만, 아주 근사한 구경거리라는 것입니다. 배가 파도를 타고 슈웅 하고 파도 꼭대기까지 올라갈 때는 배 밑까지 보이지만, 배가 파도와 함께 슈웅 하고 내려갈 때에는 돛대 끝도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배가 안 나오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또다시 배가 슈웅하고 올라오면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그것이 구경거리 중에 최고로 근사한 구경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해 보고 또 그 사연을 잘 아는 사람은 그것을 구경하라고 해도 구경을 못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구경할 수 있어도 그걸 당해 보아서 알고 있는 사람은 구경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큰물결 꼭대기에 배가 치솟아 올랐다가 내려가서 보이지 않게 되면 배가 넘어져 버렸나 하면서 간이 콩알만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그 배가 올라가게 되면 `아이구 하나님이 보호하사 올라간다 올라간다'하고 저절로 소리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때가 언제인가, 아마 1959년도나 1960년도쯤일 것입니다. 선생님이 성혼식 하기 전이니까 그때쯤입니다. 오팔호라는 배를 타고 서해에 낚시질을 하러 갔는데 그 배를 가만히 타고 있으니까 무슨 흉조가 있는 것 같았어요. 배가 떠날 때부터 아주 기분이 좋지를 않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후퇴를 해야 되는데 그냥 갔어요. 낚시질을 해서 문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도 기분이 별로 좋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고기잡이고 무엇이고 그만두고 배를 몰고 바닷가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까지 여섯 사람이 갔었는데 바닷가에 있다 해도 밤이라서 안되겠다 싶어 두 사람은 내가 데리고 나오고 세 사람은 바닷가에 그냥 남았습니다. 그 나머지 세 사람은 해안가까지 나왔으니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와 있으면 평지에 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걱정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그냥 배에 남겨 두고 우리들만 육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밤이라 배는 보이지 않고 해서`다 죽었겠구나' 생각했지요. 새벽이 되어서 나와 보니 다행히도 배는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파도에 크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같이 낚시를 하던 사람들을 남겨 두고 와서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더라는 거예요.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배가 낡은 배인데 밤새 밧줄 하나에 매달려 출렁거렸으니 그 밧줄이 탁 끊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배가 바람이 몰아치는 대로 돌아다니게 될 것 아니예요? 그렇게 되면 왼쪽에 있는 큰 벼랑산의 절벽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배가 파손되면 바닷가로 헤엄쳐서 올라오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천만에요. 기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이 쏴 하고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게 되면 밧줄로 잡아채는 힘보다 더 강해서 해변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밀려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선당해서 육지에 도달했더라도 바위가 있게 되면 못 올라 오는 것입니다. 평지라면 올라와서 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못 올라옵니다. 왜냐? 밀려왔던 물결이 사람을 사정없이 휘어감아 때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죽은 사람들을 보며 살려고 발버둥해서 손톱이다 닳고 뼈다귀가 불거져 있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그렇게 발버둥친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배를 몰아치게 되면 배와 반석이 실력으로 대결해 보자는 듯이 서로 맞부딪쳐서 배가 풍비박산 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이 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한 5미터 가량 되는 곳에 산줄기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물줄기가 흐르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보호하사 파도가 이 배를 그곳에 들이박았던 것입니다. 그 골짜기는 한 번 들어박히게 되면 잘 나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파도가 치면 더 들어가기는 하지만 나오지는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뛰어가는 데 태풍으로 인해 세차게 몰아치는 모래알 같은 빗방울이 따끔따끔하게 들이 때리는 거예요. 아주 따끔 따끔해요. 그렇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지가 있어요? 생각할 여지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낚시를 가기 위해 하루만 품을 빌리자고 해서 같이 갔던 사공도 지금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가는 입장인데, 구경만 하고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프고 터지고 싫고,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어요. 나 자신을 잊어 버리고 뛴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저 사람들 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은 그 이상의 염려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거기서 기도했던 생각이 나요. 이런 데서는 내가 이럴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구원해 주려는 사람이 어서 빨리 가까이 와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아이구 나 죽는다, 아이구 나 죽는다' 하면서 그들은 자기 생명이 경각에 놓여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 몇천 번 죽음을 의식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다시 삶의 환희가 벌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력이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백번 죽고 천번 죽는, 죽음을 느끼던 그 자리에서 새로운 구원을 받아 가지고 부활하여 손을 들고 기뻐하는 그 자리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죽을지 살지 모르는 자리에서 역사적인 생명력을 끌어 가지고 사망의 구덩이면 그 구덩이 이상가는 구덩이도 메우고 뻗어 나가면 여기에서 부활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자기 한 사람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심각한 자리에서 죽음을 넘어 부활의 권에 섰기 때문에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부활의 역사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복 바지를 뒤집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옛날에 솜바지를 입고 살 때, 우리 어머니가 헌 솜바지를 뒤집어서 솜을 걷어내 버리고 바느질을 다시 한 번 하니 새 바지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뒤집는 그것이 바로 부활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의를 구하는 사람이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부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보다도 입는 것보다도 마시는 것보다도 더 강한 삶의 인연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잘 먹고 잘 입는다 하더라도 모두 헛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전부다 부두가에 줄을 매 놓고 있는 배와 같은 입장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줄을 매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왔다갔다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어 놓은 줄이 얼크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매어 놓은 줄이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어떤 족에 매어져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해서 전부다 얼크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옆으로 서 있고, 어떤 사람은 저쪽으로 향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거꾸로 서 있고, 전부다 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줄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핏줄에 의해 인연된 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 줄에 매여 있지 말아야 됩니다. 그 줄을 나 자신이 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줄을 발견하게 될 때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새로운 인생길에 들 수 있는 신앙길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줄을 발견했으니 이제 바삐 서둘 게 뭐 있느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으니 아무 때라도 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순간이 바쁘다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그래야 할 신앙길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항상 영차 영차하면서 그 줄을 잡아당겨야 합니다. 찬송하며 박자를 맞추는 것도, 기도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도 그 놀음 하는 것입니다. 나 살려 주소 하는 것도 그 놀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다 틀어지고 맙니다.
보채는 자식에게 젖을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버지! 나 죽소, 살려 주어야 될 것이 하나님 아니요?' 그렇게 욕을 해도 살려 준다는 것입니다. (웃음)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실감이 날 것입니다. 생명줄을 허리에 끼어야 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등에 지고 일생 동안을 살다 보니 돌부리에 자꾸 걸리고 출렁거리기 때문에 생명줄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끈이 끊어지면 틀림없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이 생명줄을 붙잡고 가게 되면 떨어지더라도 지옥의 맨 밑창에 가지 않고 중간쯤에서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가 중간 영계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옆에 누가 무엇을 하든, 먹고 있거나 쉬고 있거나 상관없이 그길을 가야 됩니다. 저 앞에 수천 명이 한결같이 다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당기면서 정성들이고 몸부림치면서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줄을 감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떨어지는 것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라톤 대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뛰다 보면 1등도 생기고 2등도 생기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수많은 영인들이 그 줄에 매여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일등을 해서 저 나라에 가서 그 감는 장치와 인연맺어 가지고 통째로 감아 쥐게 되면 영계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통째로 감아 쥘 수 있는 콘크리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배 전체를 감아 쥐더라도 떨어지지 않을 부두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가 있다 하면 그 국가는 주님이 지상에 찾아와서 다스릴 국가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주님이 오실 국가라면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전부다 감아 쥔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부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시멘트와 자갈, 모래 그리고 철근이 필요합니다. 부두를 만드는 데 있어서 콘크리트를 강하게 하려면 먼저 철근을 엮어야 합니다. 철근은 곧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 중에서도 강한 사람입니다. 누가 꺾을래야 꺾을 수 없고 찌를래야 찌를 수 없는 강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지조와 절개를 내포하고 있는 신앙자들을 중심삼고 줄을 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스위치만 누르면 한꺼번에 구원할 수 있는 장치를 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란다면 콘크리트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은 무엇이 될 것이냐? 철근이 될 것이냐, 모래가 될 것이냐, 자갈이 될 것이냐? 여러분은 어느 것이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자구요. 철근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갈도 못 되겠거든 모래알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또 모래알도 못 되겠으면 다른 것을 위해 주는 물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어디든지 흡수되는 것입니다. 전부 얽어 매질 수 있는 것도 물의 작용에 의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앞으로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등대를 만들어 가지고 사망이 파도치는 흑암세계 앞에 있어서 구원의 등대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등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더 보탬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서는 자기의 위신과 체면, 자기의 과거가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다같은 운명인데 잘나고 못나고가 어디 있습니까? 학박사가 들어오든 장관을 지낸 사람이 들어오든 대통령이 들어오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가야 할 공식노정을 가야 하는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여기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밤이든 낮이든 그저 각자가 갈 길을 가야 합니다. 나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그 사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가 산으로 가면 산으로 따라가고, 바다로 가면 바다로 따라가고, 시궁창으로 들어가더라도 팔을 붙들고, 옷 자락을 붙들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맺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그 인연을 자기의 생명 이상으로 중요시하면서 잃지 않기 위해 떨어지지 않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은 신랑이요, 신자들은 신부의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 참 좋은 말입니다. 제일 가까운 관계거든요. 신랑이 가는 곳이면 신부도 어디든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신부는 신랑이 동으로 가면 동으로 따라 가고, 서로 가면 서로 따라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애를 같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그러한 운명을 지니고 가야 할 길이 신앙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야 할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에 신랑 신부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인 것입니다. 그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지혜의 왕이시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내놓고 부모의 도리를 행사하시어서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위해서는 가다가 죽더라도 굴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러한 절개와 충절의 인연을 점점 더 넓히며 승리의 한 외적인 천국을 향해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길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가고 있고 이 날에도 가고 있고, 이 달에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입장에서 우리는 앞에서 지도하는 친구와 앞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 전체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알아 가지고 그것을 자기의 재산으로 삼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의 생명과 엇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나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말을 붙안고 죽어야만 거기에 살아 있는 사람은 그를 책임지고 부활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의 말을 듣다가 죽으면 불쌍하다고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영계에 가 가지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라도 해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안 들었지요? 안 들었는데 그런 상태로 그냥 가게 되면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17)' 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베드로가 들었다는 조건,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의 성격으로 보더라도 제일 먼저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가 죽더라도 예수를 믿고 죽었다, 예수의 말을 듣고 죽었다는 말을 남겨야만 천상세계에서 그를 위해 기도라도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러한 운명길에 선 여러분은 생명의 밧줄을 감아 쥐어야 하겠습니다. 그 줄을 바꿔 쥐어야 할 입장에 있다면 바꿔 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해방의 한 날에 안식의 한 곳을 가기 위해 온갖 정성과 온갖 생명력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됩니다.
그것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결과를 맺기 위해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올바른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망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나와 너의 인연은 형제의 인연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한 부모의 혈육을 이어받고 태어난 저희들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효성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 효성이 어머니 아버지에게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효자를 가진 어버이가 그 효자만을 가지고 기뻐하면 그들에게는 나라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여, 효자를 보고 기뻐할 때는 나라까지 품고 기뻐해야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야만 그 효자가 나라 앞에 천적인 충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중심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효자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께서 효자를 찾고 계신 것은 물론이고 그 효자를 세우시어서 효자의 나라를 찾고자 하셨기 때문에, 효자의 나라를 찾는 첫 번째 효자로서 예수를이 땅에 보내셨던 것을 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독생자라 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역사시대를 대표하여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독생자임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유대 민족 앞에 독생자란 말을 선포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독생자는 아버지의 품에서 효성을 다하는 효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그 효자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효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효자의 나라를 갖지 않고는 원수 앞에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옵니다. 효자의 나라를 마음으로 그리면서 효자를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함으로써 효자인 나만으로서 되지 않느냐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고볼 때에, 더 높고 더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의 나라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나라를 중심삼고 예수를 죽음길로 내 세우신 것은 아버지 앞에 효성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저희들이 알아야되겠습니다.
저희 자신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내 자체의 구원에 한한 것이 아니옵니다. 당신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것은 나 한 사람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처하고 있는 나라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자신의 부활과 더불어 나라가 부활되고, 나 자신의 효성과 더불어 나라의 효성을 찾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머무르실 수 있는 효성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 대신하여 나설 수 있어야겠사옵니다. 그러한 아들의 권한을 주시기 이해 아버지께서 수고로운 길을 친히 닦아 나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도리의 인연을 저희 앞에 남겨 주시고, 깊고 오묘하신 당신의 뜻에 저희를 인연지어 주셨지만, 그 무한한 가치와 깊은 인연을 저희들이 소홀히 하고 경솔히 다룬 때가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저희들은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당신은 자비와 사랑의 터전 위에서 지금까지 참아 나오셨기에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이 거쳐온 수천년의 역사 과정 가운데 오늘날까지 아버지의 두터운 심정의 인연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남아 있는 것만 가지고라도, 천년의 사연을 다하여 회개하고 감사해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구해 주시는 것은 민족을 구하기 위한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사오니, 민족은 이렇게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따라 오는 후손들 앞에 가르쳐 주고, 또한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형제들 앞에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효자를 가진, 혹은 다른 형제들을 가진 부모로서 효자의 영광을 되살려 주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러한 효자의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전후 좌우에서 사망의 물결이 몰아치는 환경 가운데에 있사옵니다. 밝은 낮이 아니라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암흑 가운데에서 저희들이 아우성치고 있사옵고, 생명이 수난의 운명을 짊어지고 절규하는 찰나에 광명한 햇빛을 비추어 주면서 길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은사가 있다면, 천년 만년 생명을 다 기울여도 보답할 수 없는 은사인 것을 알고 죽을 자리에 있던 사람은 응당 그 마음을 모두 드려야 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오늘날 저희들은 뜻 가운데서 광명한 길을 제시해준 아버지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생명을 다하여 그 감사의 인연을 높이 아버지의 것으로 돌려드리지 못한 자신들이옵니다.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을 생각하여 슬퍼하는 이들이 있사오면 아버지여, 슬픈 그 마음을 강하게 하여 주시옵고, 다시 회개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타락권내에서 벗어나 공포의 시대권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영적인 하늘이 찾아오게 될 때는 강한 입장의 하늘이 아닌 가냘픈 입장의 하늘로서 공포의 환경을 중심삼고 노도와 같은 치열한 전투의 시기를 거쳐가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저희들은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것을 우리들이 가야 할 본연의 행로인 줄로 알고 저희들이 맞이할 수 있는 길을 고이고이 닦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도상에서 자기가 갈 방향을 안내하고 가르쳐 주는 지도자가 있거든, 천상세계에서나 지상세계에서나 모든 것을 다 드려 감사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감사하고, 내일도 감사하고, 금년에도 감사하고, 새해에도 감사하며 감사 감사로 바쳐드릴 수 있는 생애를 남기겠다고 노력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자기의 운명길을 개척해 가는 데 있어서 동지의 말과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혁명하고 변혁시켜야겠습니다. 자기를 따를 수 있는 환경권을 갖추어 행복과 안식의 터전, 천국의 보금자리를 향하여 온 생명력을 다 기울여 돌진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후반기에 들어선 이 7월 이후의 전체의 해를 맡으시옵소서. 오늘은 이 은혜의 한 해에 있어서 후반기를 출발하는 첫 주일이오니 복을 주시옵고, 이 해가 끝나는 그날까지 영광을 가하여 1970년도가 복이 있었던 해라고 스스로 자기 생애의 절정기로 삼아 기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옵나이다.
아버지 오늘날 저희가 중차대한 사명을 가려가는 이 길을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이 1970년도가 얼마나 귀한가 하는것이 역사상에 드러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의 역사적인 숙원(宿怨)을 해원성사 해드릴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아들딸 가운데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오랜 역사과정 동안 그렇게도 수많은 고빗길을 참아 나오실 수 있었던 것은, 만나고 싶은 아들과 상봉하고자 하는 내정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될 때, 과연 우리가 그러한 아버님을 맞아 드릴 수 있고, 또 역사과정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 드릴 수 있는, 아버님이 만나고 싶은 아들딸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당신 앞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그런 저희들은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당신의 뜻 앞에 생축의 제물이 된다 해도, 그렇게 지루하고도 슬픈 역경을 극복해 오신 당신의 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당신에게 보답해 드릴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저희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의 모습을 생각할 적마다 불쌍하신 아버님이심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러한 아들딸을 사탄 앞에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고 자랑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외롭고 비참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니 이 땅 위에는 기필코 아버님께서 마음 놓을 수 있는 아들딸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아버지의 체면과 위신과 사정을 염려할 줄 알아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안팎으로 그 무엇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뜻 앞에 나타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버님께서 찾아 주신 은사 앞에 황공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이 저희의 생활 가운데, 혹은 생애노정 가운데 어리어 스스로 머리 숙여 종과 같은 입장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입장에 서야만 아버님의 위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아버님께서 저희의 겸손함을 칭찬하실 수 있으며, 저희가 아버지의 뜻앞에 있어서 순응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자랑하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런 자리에 가 있지 못한 저희들을 다시 한 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끝날에 남아지게 될 최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나서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침 여기에 모인 아들딸 가운데에서 당신이 축복하고 싶으신 아들딸이 있으면 마음 깊이 기억하시옵고, 그를 온 천지에 자랑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역사과정에 왔다 간 어떤 사람보다도 낫다고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그렇지 못하거든 아버님께서 친히 저희의 마음에 좌정하시어서 저희들의 마음을 재촉하시사 강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뜻앞에 있어서 책임수행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아침에도 전국에 널려서 이곳을 그리워하며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축도를 드리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을 것이오니, 그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스런 손길이 같이하시옵소서. 또 세계 각국에 널리어 외로운 싸움의 길을 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시간에도 이곳을 흠모하면서, 환경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외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사옵고 눈물지으며 아버지를 부르면서 같이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들을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이 사랑의 인연으로 남기신 뜻이 그들과 더불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 길을 대하여 지금까지 개척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온갖 지성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들의 머리와 심장 위에 당신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드러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긍휼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베푸사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불길처럼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이 그립고 본향 땅이 그리워 내일의 소망을 방패삼아서 오늘의 싸움터에서 승리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얼마만큼이나 충효의 도리를 다하였는가를 각자가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앞에 스스로 몸 마음을 맡기어 당신이 소원하시는 터전 앞에 청지기가 되겠다고 엎드리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는 온 세계 통일가의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모으고 또 모으시어서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 세계에 어서 속히 가기 위해서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시고, 더 나아가 아시아의 대국을 이루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축복의 나라, 사랑의 나라, 승리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한국을 위주로 하여 일본과 미국과 독일, 4개국을 중심삼고 40여개 국가를 연결해서 그 나라 곳곳에 지정된 성지를 지키고 있는 아들딸들에게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을 부으시사, 그들이 영원한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있게 하시옵소서. 그곳에 아버님께서 같이하시어서 사람들이 그곳을 지날 적마다 마음이 끌려 아버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그러한 인연들로 빚어질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특별한 기간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일생에 있어서의 모든 문제를 아버님께 맡겨 해결지을 수 있는 중요한 기간 위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에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디부디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이 충만한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은 시간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나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길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을 자기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그런 단순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그 자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문답하는 것과 같은 그런 자리가 아니라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자리,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자리는 하늘에 속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렇듯 직접주관권 밖에 있는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상관하거나, 혹은 그 기도를 이루어 주기 위해 거기에 응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하늘길을 가겠다고 나선 여러분보다 악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동시에, 가정적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환경보다 악한 환경 쪽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세계적으로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평면적 기준의 인간세상에서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삼은 인간 이상의 세계, 다시 말하면 4차원 세계인 영계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는 악한 영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에 있는 우리 개체가 하나님께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거기에 응해 주려고 해도, 깊고 높고 거룩하신 하늘 보좌로부터 직접적으로 나에게 찾아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나라를 두고 볼 때, 그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 대통령이면 대통령을 제일 말단에 있는 백성과 연결되기 위해 그 백성을 직접 찾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입장에서 인연지어야 할 때는, 순차적인 단계를 거쳐 가지고 인연지어 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조직적인 형태를 가진 무리가 있다할 때, 그 제일 상단부에서 말단중의 말단부에까지 연락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순서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한 국가나 사회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에 자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영한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자리에 계시는 지고지성(至高至聖)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지만, 그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자리와 여러분과의 자리 사이는 현격한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무엇으로 메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거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을 중심삼고 다리를 놓아야 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들은 이렇게 다리를 거쳐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첩첩히 가로놓여 있는 영계의 조직사회를 거쳐 가지고서야 우리 개체와 연결될 수 있도록 수많은 연락체가 조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땅에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대하시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정성이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성이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말이지만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만 가지고는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감동시켜서 나와 관계를 맺어 나 자신이 목적하는 바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감동한 후에 그 결과가올 때까지는 시간적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인연이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빈번하게 맺어짐에 따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조직적인 형태를 점점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때에는 소개를 받게 됩니다. 그런 때 소개받은 사람은 자기를 상대방에게 소개해 준 사람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이 잘났든 못났든간에 소개해 준 사람의 훌륭함과 정성 여하에 따라 상대방에서 자기를 평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맺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잇는 모든 단계를 넘어가야 하고, 혹은 넘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영계 역시 수많은 조직적인 환경 가운데 싸여 있기에 영인들이 이 길을 개척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단 한가지 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들이 많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들인 정성이 하나님에게까지 알려져 하나님이 호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명령하고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인연을 맺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되풀이되어 그 과정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과 인간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개자에 의해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만나는 횟수가 가중됨에 따라 안팎으로 서로가 친해지고 서로의 사정이나 목적이 같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통해서 상세히 아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그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우리들 자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리까지 단번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왔다간 수많은 성인들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신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다리 놓아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인륜의 도리라든가 천리를 밝혀 놓은 참된 진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다리 놓아 가지고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입체적인 세계를 향하여 수직적으로 올라가기 전에 횡적인 세계에 있어서 얼마나 넓게 영향을 비치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횡적인 세계는 역사적인 결실의 터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현실은 현실 자체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가지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인연 가운데에는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성인의 도리와 참다운 사람들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중심삼고 어떤 조직의 형태나 사회의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것이 국민의 애국정신에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 땅 위에 성인들이 남겨 놓고 간 그 길이 단축되고 집약되어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내적 인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살펴볼 때, 그러한 내적인 인연을 남의 인연으로 생각지 않고, 또 한 국가면 국가의 인연도 다른 국가의 인연으로 생각지 않고 내 인연, 자기 국가의 인연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책임지고 자기와 직접 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연 맺는 환경이 점점 널어질 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위정자면 위정자와의 직접적인 거리도 단축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이렇게 내정적인 인연이 횡적으로 넓어지게 되면 그것이 바로 역사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이 가르친 인연에 접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영계에 간 성현들과 우리들이 인연을 맺게 되면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점점 가까이 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배후의 인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의 길을 찾아가려면 비단 이 땅에 와서 선한 도리를 가르쳐 주고 간 성인 뿐만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중심삼고 땅 위에 인연된 종교까지도 계속 찾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떠한 사회나 새로운 문화 형성의 배후에는 반드시 종교가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륜만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륜을 소개하고 천륜의 도리를 중심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정성을 들일 때는 과거에 왔다 간 성인들이 가르쳐 준 도리를 중심삼고 그들이 소망하던 최고의 기준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아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영계와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내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상의 인간들은 그런 성인들 가운데 참다운 성인을 섬기면서, 그 성인의 도리를 자기의 생명을 다 기울여 자기의 도리와 같이 지키며 그것이 최후까지 가야 할 길로 생각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럴때 그 성인이 영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권이 크면 클수록 그 큰 영향권은 내가 지상에서 영계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많은 정성을 들이지 않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영계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거리도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이 땅 위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라든가, 혹은 역사적인 도리를 기반으로 한 종교의 형태를 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과거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간 길을 자기도 응당 가야 할 길로 알고 그 길을 소망하며 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교를 중심삼고 왔다 갔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하나되면 그 도의 세계, 종교의 세계에 자연적으로 자리가 잡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기도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종교권을 넘어설 수있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하나님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종교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중간에 세워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 중에는 정성을 들여 가지고 종교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한 선조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바라던 것을 향하여 그냥 곧바로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바라던 것이 무엇이냐?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의 세계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하나의 참된 사람을 찾는 것이요, 참된 가정과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의 목적이자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땅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교 지도자들이 정성들인 그 터전 위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목적권내를 자연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사람은 그 종교의 최고 지도자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종교를 따라간 사람들과 그 종교를 위해서 사방에서 정성들이고 있는 지도자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종교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 세계의 수많은 지도자들까지 믿고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영계와 종교권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행정부의 조직을 보면 중앙청의 조직과 도청의 조직과 군청의 조직과 면의 조직과 리의 조직이 각각 그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것처럼 하늘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조직형태와 마찬가지의 조직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움직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도 동서남북으로 갈라져서 수많은 종교권이 있습니다. 위로는 최고의 종교권이 있고, 그 아래로는 다른 잡도의 영계가 있고, 또 그아래로는 양심적인 사람과 선한 사람들로 구성된 영계, 그리고 그 이하에는 악한 영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성을 들여서 종교권 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면 지금까지의 말단세계와 관계된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인 성인의 가르침을 남을 위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나를 위하는 가르침으로 알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도를 가르친 성인을 통하여 땅 위에서 영계로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런던이나 워싱턴에 가 있다고 할 때, 그곳과 여기 한국의 청파동이면 청파동과는 대단히 먼 거리입니다. 이 거리는 단축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의 심정을 중심삼은 믿음의 힘이 있다면 그 거리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심정의 인연, 믿음의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절대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믿고 있는 한 종교의 지도자가 있다면, 그 지도자와 나는 역사적으로 수천년이라는 먼 거리를 두고 있지만 믿는 마음을 중심삼고는 그와 평면적으로 대등한 시대권내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믿을때 그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자극시키기 위한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종교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위해서 애절히 기도하던 사정을 믿는 사람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정을 아는 기준에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사정을 알면 알수록 더 깊은 정적인 인연, 혹은 충성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계에 가 있는 사람이 반드시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종교 지도자가 협조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협조하게 하는데 있어서 누구를 통해서 협조하게 하느냐? 땅에서 살 때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땅 위에 참의 도리를 남긴 사람을 통하여 협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 지도자의 내정을 아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대신하고, 그 사람과 더불어 정성을 들이는 입장에 섰다 할진대 나는 수천년의 역사도 비약하여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던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선택할 때는 참된 종교를 선택하여야 되고, 그 참된 종교 가운데에서 참된 신앙자들이 남긴 역사적인 인연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물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혹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땅에서 수고하여 정성의 터전을 닦아 나온 사람들을 의지해 가지고 정성들여 나가는 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오랜 역사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충성하였던 옛 성현들이나 혹은 지도자들이 나를 대신해서 그 길을 갔다는 입장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내가 가는 길을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그들도 완성의 세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의 길, 즉 자기가 간 길을 따라오는 후대 사람들을 끌어 주어야 할 인연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입장에서 기도하고 정성들이게 되면 영계에 있는 종교 지도자나, 도의 지도자가 반드시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 가운에의 사도 바울이니 베드로니 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했던 것을 나 자신이 한 가지 두 가지 찾아 나오게 되면 그때는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도하던 베드로면 베드로, 혹은 바울이면 바울이 그 당시에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던 것을 한 가지, 두 가지 찾게 되면 그들과 자리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혁신을 해 가지고 바울이면 바울 이상, 베드로면 베드로 이상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정성들이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이상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이상의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간 길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베드로가 믿음의 대표자라면, 베드로가 믿음의 대표자로서 나가던 그 입장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 자리가 강하고 담대한 자리라면 강하고 담대한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길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한 길, 자기가 바라보는 그런 길로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과 인연 맺어 가지고 높은 단계로 하나씩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제자 이상의 자리에 나아가야 비로소 예수님과 관계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높은 사람에게 자기를 직접 소개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 선생이 대통령에게 자기를 직접 소개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내정적으로그 국가의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경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길을 빨리 영광에 접할 수 있는 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도의 길을 책임지고 간 사람들의 길을 내가 찾아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믿는다는 자신감만을 위주로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은 교회면 교회 앞에 충과 효의 도리를 다해 가지고 인정받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 인정받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종교를 중심삼고 정상적인 도의 길을 갔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길을 갔기 때문에 널리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대신해서 간 것으로 알고 그들과 관계맺는 길이 제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줄 알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대번에 ‘예수님!’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평면적 생활에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교회면 교회를 가게 될 때, 그 교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도자에게 중간다리를 놓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인들을 위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교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나 교인들의 생명문제까지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그러한 자기가 책임진 분야를 중심삼고 교인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아서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때, 교인들이 그 사람과 하나되면 그 교인들도 높은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정성을 들여 주고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기도를 해주면, 나는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선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은 사람의 기도를 받겠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다리를 놓아 가지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이 되면 될수록 영적인 세계의 내정이 지상 위에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 가운데에는 하늘의 역사를 직접 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복귀도상에 있어서 지금까지 왔다 간 많은 지도자들 중에는 영계에서 한 동리를 중심삼은 이장과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면을 중심삼은 면장과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군수와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지사와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청이면 중앙청의 책임자의 사명을 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을 중심삼고 단계적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이 은혜 가운데 생활을 하다가 그 은혜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놓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인연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혼자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어느 특정한 사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갑이 있으면 을이 있어야 하고, 을이 있으면 병이 있어야 하고, 병이 있으면 정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고, 남쪽이 있으면 북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다른 생활처럼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신앙의 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중심삼고 은혜의 역사를 할 때에는 한 사람만 세워서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동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서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남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북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을 세워서 하시는 것입니다.
근세 한국에 있어서의 도의 세계에도 신령한 사람이 많이 왔다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목사급, 장로급, 집사급, 평신도급 등 각급에서 신령한 사람들이 나타나 천태만상으로 은혜의 역사를 하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것이 어떠한 조직에서 어떠한 계통으로 형성되어 그와 같은 역사가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이면 동쪽의 한 분야를 중심으로 역사하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가 역사하는 것이 하늘 전체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다가 온갖 정성을 다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가다가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전체라고 믿고 나오던 양심적 문제, 심정적 문제들이 완전히 중단되어 버리기 때문에 찾았던 은혜를 놓치는 서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은혜 받은 사람을 한 사람만 통하지 말고 반드시 여러 사람들을 비교해 보아서 통해야 합니다. 높은 내용을 가진 영적 지도자를 만나서 스스로 그 단계를 높여 가는 지혜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신앙자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나장로 패니, 박장로 패니, 이성봉 목사 패니, 혹은 무슨 패니 하는 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패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전체인 양, 최고인 양 생각하고 지탱해 나가고 있지만 그 내용을 분석, 종합해 보면 그 단계에서 더 높여 나가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종합적인 관측, 종합적인 비교, 종합적인 분석을 하여 나 자신이 제일 빠른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반드시 그냥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지금 갑이라는 사람한테 있다가 그 한계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을이라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려는 그때에는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가가 속해 있던 종교권내에서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최고의 정성으로 `하늘이여 내가 가야 할 길이 여기에 끝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하며 결사적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과거에 대하고 있던 영계,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나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정성의 도수를 갖추게 되면 내가 머무를 곳이 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것이란 어떤 것이냐?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없을 때에는 그 이상의 자리를 나 자신이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은혜의 생활이 끊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은혜를 받겠다고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이 파 놓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것이 아니라, 그 우물의 수맥을 따라가서 새로운 생수 줄기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지도하며 은혜를 주던 지도자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 지도자가 한창 은혜받을 때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만 그 길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자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어떤 은혜받은 사람이 있다면, 현재 그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은혜생활을 하면서, 즉 하나님을 모셔 나오는 생활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정성을 들였고, 현재에는 어떻게 정성을 들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정성을 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비교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그는 최고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맺기에 그 정성을 우려먹는 기간이 은혜생활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이렇듯 이 기간은 한때 최고의 정성을 들여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인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이상의 자리를 찾아가기 전에는, 그 은혜가 다하여 지나갈 때에 스스로 수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던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와 너와의 관계로써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형제의 인연으로 사랑하고, 형제의 인연이 아니거든 신랑 신부의 인연으로 사랑하고, 신랑 신부의 인연이 아니거든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은 인연으로써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길은 이 세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합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좌우로 갈라 보면 형제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도리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체로 하여 제일 가까운 사랑의 인연을 찾아가는 것이 도의 길이요, 도가 넘어야 할 최고의 고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부모의 사명을 하겠다는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마지막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제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 모두는 신랑 신부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준 다음에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류의 조상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내용을 완결지어 가르쳐 주어야 했는데, 이것은 못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르쳐 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교의 길을 간 수많은 신령한 사람들은 무엇을 바랐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이 지상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를 바랐습니다. 그런 관계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형과 동생의 관계요, 그렇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관계요, 그 관계도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의 관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볼 때에 형제들이 사는 생활이나, 부부가 사는 생활이나, 부모가 사는 생활을 보면 그 모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릅니다. 이것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볼 때, 그들은 어떤 입장에서 예수님을 따랐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한낱 스승으로만 따랐던 것입니다. 형제의 인연이라든가,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혹은 더 차원 높은 부자의 인연으로 따라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만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고빗길에 가서는 서로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길에서 추구하는 최후의 길을 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제일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형제의 인연을 갖고 나오는 지도자의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체와 대상, 즉 부부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오는 지도자의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나오는 지도자의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끝날은 어떤 때냐? 수많은 종교가 앞에서 말한 것들을 추구해 나오는 이러한 역사가 세계 도상에 평면적으로 전개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에는 종교 가운데에서 형님적 종교, 남편적 종교, 아버지적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영계는 이러한 권을 중심삼은 각자의 목적을 두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내용을 중심삼고 기도해야 하느냐? 수많은 종교 지도자 가운데 형님의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이 누구이며, 신랑의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이 누구이며, 아버지의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내용을 전부다 갖추고 이 땅 위에 오는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한 사람만 붙들게 되면 나 자신이 동생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아내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어머니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형님의 책임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예수님과 인간들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형님이요, 그 다음에는 예수님은 인간들의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인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내용을 갖추고 온 주체적인 존재가 역사상의 수많은 도인들 가운데 예수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길을 갔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가 간 길이 어떤 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간 길이 형제의 인연을 맺고 간 길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은 예수님과 형제의 인연을 맺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연이 깊어지면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어야 했으며, 신랑 신부의 인연이 깊어지면 부자의 인연을 맺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형제의 인연조차도 맺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한 부모의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기 형님과 같은 예수, 자기 동생과 같은 예수가 죽어가는 자리에 처했을 때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가 끓어 올라 사랑하는 동생과 같은 예수를 대신해서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갔을 것이 아니겠어요? 세상에서도 동생을 위해 형이 죽고, 형을 위해서 동생이 죽는 일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중심삼고야 그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그들은 형제의 인연도 맺지 못한 주종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스승과 제자의 입장으로 그런 관계로는 친척관계도 맺을 수 없었다는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에 있어서는 주인이 죽게 되면 종은 떠납니다. 주인이 망하게 되면, 보따리 싸가지고 그 집을 떠나 버리는 것이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의 관계라면 형님이 망할 입장이 되었을 때, 동생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투입하여 온갖 정성을 다해 형님이 망하는 것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형제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과 베드로는 주종관계, 즉 주인과 종의 자리에밖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지는 것이 형제의 도리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이상의 자리에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를 형님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어떤 자리에서 예수를 배척했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5)"하고 사랑 문제를 강조했던 것이 어떤 내용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내용은 네가 동생 중의 동생이 되고 형님 중의 형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이요, 혹은 남편과 아내의 심정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아들이고 나는 아버지의 입장에까지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몬에게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한 말은, 베드로의 사랑을 분석한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가 찾는 동생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색하는 사람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상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모시기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했느냐 하는 것을 알고서 그것을 첩경으로 삼아 그들보다 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은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반하였던 불신의 입장을 넘어서려는 하나의 방편으로서의 죽음이었지, 예수님 앞에서의 내일을 약속하고 다짐하는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즉 탕감하는 죽음은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복을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는 죽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가 갔던 그길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넘어야만 그들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하는 입장에까지 접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상의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세워 그들에게 다리 놓은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신의 사도들 이상의 사람들이 안 나왔다 할 때는 그 사도들을 세워서 다리 놓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월권해서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장이 있고 그 밑에 과정이 있고 계장이 있고 반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장이 직접 반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입니다. 한 부분에 있어서는 잘될는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망치게 되는 겁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켜서 그 주의에 관계되어 있는 계열을 통해서 순리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의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늘이 찾아온 길이라는 제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상의 신앙자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서 베드로 이상의 신앙길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수많은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수많은 탕감노정이 있는거예요.
그 탕감노정을 다 거치며 정성을 들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물론 베드로를 중간 다리로 세워서 역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베드로가 탕감하지 못한 내용을 하늘이 배후에서 찾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자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베드로는 죽음의 자리에서 배반하였지만 베드로 이상의 자리에 서려면 사지에 들어가서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는 심적 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뒤만 따라가게 되면 베드로가 배반할 때는 같이 배반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과정을 밟아가는 사람이 있거든 베드로는 배반을 했지만, 그 사람은 배반하지 않도록 배후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베드로가 배반하던 때의 단계를 거칠 때에는 베드로는 제쳐놓고 베드로가 배반한 것을 조정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사를 통하여서 하나님과 직접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사람과 대등한 입장에서 베드로가 지도하면 베드로가 배반한 자리에서는 그 사람도 배반하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 베드로가 배반하던 그런 입장을 모면해 주기 위해 미리부터 내정적인 은사의 역사를 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 보면 그런 때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척 대해 보면 가을 같은 기분이 나는 게 아니라 봄 같은 기분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은사의 인연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도의 책임자나 지도자들이 지상에서 영계의 길을 닦아 나가다가 실패하여 그 길을 넘지 못하게 되었는데, 다시 그 길을 위해 정성을 들이며 찾아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를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앞서 간 사람들의 실패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혹은 그런 자리에 들어갔더라도 거기에서 정성을 들이면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실패권내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끔 배후에서 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게끔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도의 세계를 책임졌던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간 길의 배후에서 수많은 영계의 인연을 중심삼고 언제나 또다시 책임지울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을 마련하여 다시 그 길을 따라 나오는 사람들에게 실패의 길을 모면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자기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의 길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입장을 중심삼고 역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높이 올라갈 수 있게끔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도의 세계와 관계가 없는 사람을 대했을 때는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도의 세계와 관계가 없다 할 때는 그들의 선한 선조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선조들이 이렇게 나갔으면 반드시 그 후손들도 그대로 따라 나가야 됩니다. 자기의 선한 선조들이 도리를 따라서 살았던, 그 선조들이 산 그 길을 본을 받아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을 받고 가기는 가되 선조들은 도의 길을 갈 때 자기를 중심하여 가다가 끝났기 때문에 그들 이상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 선조들이 나라에 충성한 이상의 충성을 하지 않고는 선조들이 남긴 선한 기준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길을 닦아서 선조들이 실패한 자리까지 나온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지켜서 실패하지 않는 길을 모색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전부 종족이 다르고, 씨족이 다르고, 또한 개성도 다르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과정도 전부다 다릅니다. 개개인의 개성이 다르니 만큼 그 가는 길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기에 선민으로서 가야 할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하늘나라까지 나 하나를 끌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탕감에는 개인 탕감시대가 있고, 가정 탕감시대가 있고, 종족 탕감시대가 있고, 민족 탕감시대가 있고, 국가 탕감시대가 있고, 세계 탕감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에게 해당되는 탕감노정을 중심삼고 단계 단계에 있어서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대가를 치르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 수많은 지도자들이나 선조들이 있을 것이니, 그들이 실패한 것까지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선조들이 들인 정성 이상의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지도자들을 따라가고 그 이상 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실패한 자리에서 특별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그때를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 정성들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지 여러분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여러분 대신 죽음길을 가려 가면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희생하여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에게 접근해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깊은 은혜의 생활을 해보면 한 단계 한 단계 넘어설 때마다 비약적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세계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시겠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갑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삼고 그 사람의 도의 길을 따라 정성들여 나간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지도자의 급수가 하급이기에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한계선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대신 그것을 이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과 부자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한 죽고 사는 운명의 자리에서 대신 담판을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를 드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알게 되면 다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언제 그렇게 해봤어요?
여러분이 은혜생활 가운데 있을 때 처음에는 무엇인지도 모르게 좋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끝이 가까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정성들이게 되면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그 자리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종교를 놓고 보더라도 갑이라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도 어떤 기준을 중심삼고 나왔기에 그 갑이라는 종교 외에는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종교에는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가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에는 쓰러지게 됩니다. 그런 때에 여기에 쓰러지는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 자리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갑이라는 그 종교의 기준을 넘어 그 이상의 기준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도 중의 도가 무엇이냐 하면 종교입니다. 또한 사람 중에서 의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은 역사를 두고 그 의인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문화는 참다운 진리를 중심삼고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참다운 세계적 진리냐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의 정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그것으로써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세워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종교권을 중심삼고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이 땅 위에서 이루려 하였던 뜻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게 될 때,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영적 구원만 이루었지 영육 아우른 완전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함으로써 예수의 내정을 다 알았더라면 예수님이 형님이요, 신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중에는 예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나갔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자신이 기도한 자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맺어진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21)"하신 것입니다. 이르지 못한 내용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종관계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느냐? 예수님은 종을 대하는 입장에서만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인 형제의 자리나, 신랑 신부의 자리, 또는 부모의 자리에 관해서는 성경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종의 자리를 극복할 것인가를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형의 자리, 신랑의 자리, 부모의 자리의 기준을 중심삼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는 그런 입장에서 정성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자리를 찾아 나가기 위해 정성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즉,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자리를 중심삼고 정성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게 되면 예수가 협조하겠지만,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면 누가 협조하여 가르쳐 주겠습니까? 예수가 정성들이던 것과 같은 종의 인연을 찾기 위해 정성들일 때는 예수가 수고하여 가르쳐 주고 붙들고 나왔지만, 그가 실패한 자리의 인연은 누가 가르쳐 주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예수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은 했지만 독생자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면 독생자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람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사랑이란 독차지하게 되면 죽게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영계에서 이미 독생자라는 인연은 결정되었지만, 그것은 지상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가지고 세례 요한 이상의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양자의 자리에 있고 예수님은 아들의 자리를 상속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가 어디까지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통일교회가 무슨 급이냐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급이냐, 아들의 급이냐, 신랑신부의 급이냐, 혹은 부모의 급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 길을 찾아가려면 이 땅에서 그 길을 인계받아야 합니다. 예수가 가던 기준 이상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가 세례 요한의 정성을 통해서 인계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계받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그 길을 계승해 가려면 예수님한테 모든 것을 인계받아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부탁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머리 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온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감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은 이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를 대신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대신 세움을 받은 사람은 그 모든 전체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신 상속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주종관계로 맺어진 제자들을 중심삼고 책임하던 그 이상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서 그 이상의 자리에 섰다 할 수 있는 심정적 유대가 맺어지면, 지상에서 맺어진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영계의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떠한 책임을 가졌느냐? 또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느냐? 주인이 종을 대하는 것과 같은 그런 관계라면 안 됩니다.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 종 부리듯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와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형님과 같이 생각하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동생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형제 뺨칠 정도의 마음이 있어야만 어떤 것이라도 맡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그러지 못했고 부부간에도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부사이에서도 얘기 못할 지난날의 사연을 몽땅 얘기해도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생명이나 재산을 지켜 주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런 생각이 자기의 내정적 본심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 단계를 지나면 어떻게 되느냐? 남자들이 선생님을 보면 남자로 생각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남자라고 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 뺨을 대기도 어색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런 기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선생님을 대하면 남자라는 기분이 없어지고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볼 때, 마음으로 보면 여자 같은데 몸뚱이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는 여자 같은데 몸뚱이로 부면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그 무엇으로도 뗄 수 없는 내정적 인연이 우리들 사이에 싹터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런 것이 느껴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아버지같이 느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그저 뺨을 비벼대고, 또 선생님이 어디에 가면 따라가고 싶어하는 아들딸 같은 기분이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삼단계의 정서적인 인연이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자리까지 들어가게 되면 최후의 자리까지 간 것입니다. 그 자리는 도를 초월한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 중에 예수가 가르쳐 준 이상의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문제될 것은 무엇이냐? 선생님이 모시는 아버지, 여러분이 그 아버지를 직접 대하는 자리에 임하게 되면, 즉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거기가 마지막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예수님이 간 도의 길의 마지막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들딸, 그리고 아내와 동생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형님이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이라는 거예요. 횡적으로 주관하더라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주관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형이 동생을 주관하는 것이나, 남편이 아내를 주관하는 것이나 모두 하늘을 대신해서 주관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을 배신해서 사탄노릇하게 되면 사탄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복귀의 운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제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정성들을 들이는 것입니다. 누구를 따라 정성을 들여야 되겠어요? 지금 통일교회의 책임자가 누구예요? 선생님이지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게 되면 선생님이 정성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의 근간이 되고,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마음으로 정성들이지 않고는 선생님이 지금 죽는다면 세계를 위해 책임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정성들인 것 이상 정성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나라에 충성하다가 죽는다고 할 경우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에까지 충성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충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한 길밖에 없다 하고 생각하면서 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이 길을 세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책임을 못하고 가게 되더라도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계속 정성들여서 선생님이 간 자리까지 나오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뜻이 선생님대에서 끝나서는 안 되겠기에, 여러분이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에게 선생님 살아 생전에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인연을 맺어 주느냐, 여러분 스스로의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어떻게 하면 맺어 주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자리를 찾아서 정성들여 나왔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과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왔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찾아가서, 그 사람이 망하지 않게 그 사람을 대신하여 내적 정성의 기반을 닦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때가 오면 그 사람에게 뜻을 상속해 주어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지만, 역사과정에서 사라져 버린 종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종교를 믿어 나오던 개체들을 새로운 은사의 인연으로 모아서 종교를 하나로 수습하시는 일을 해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수고를 하셨겠습니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해 나가지만,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찾아오기 위해서 무척 많은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작 자기 일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저 한 방향을 거쳐 가지만 하나님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사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런 일을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갑이라는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지 못할 때는 을이라는 사람을 세워서 간접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이때의 역사는 도주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를 시켜서 하시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간 앞에 협조해야 할,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협조하라는 사명을 받은 천사들을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 이상의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는 그 자리는 여자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가시지 않고 천사를 보내서 정성의 도를 닦게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하나님께서 협조하셨습니까? 협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랬겠습니까?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 야곱이 얍복강으로 가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럴 수 있는 방향으로 몰아넣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정성을 들이도록 외적으로 내적으로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야곱이 밤을 새워 기도한 것입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이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 가지고 탕감시키기 위한 외적 싸움을 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은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중심삼고 수많은 종교를 연결시켜 나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모든 종교는 그 고하를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하나님의 수많은 수고의 터전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통일이라는 것은 기독교만을 통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의 이념을 갖고 나온 우리에게 있어서는 기독교의 이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면 불교를 나쁘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불교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교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가 힘들고 그 급이 낮을 뿐이지 불교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도의 한계선까지도 정성을 들이지 않은 사람이 불교를 비판하면 그만큼 정성을 들였던 석가모니면 석가모니가 도리어 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다른 종교를 함부로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남의 신앙을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함부로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가는 길이 같지 않다고 해서 `저 사람은 왜 저래'하고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계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계통이 다르니만큼 다른 계통의 책임자를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계통의 한계선을 넘을 적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탕감적인 은사의 역사를 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이 한 단계 한 단계 넘을 적마다 끌어올리는 역사를 하시기 위해 소모전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시는가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갈 때에는 틀림없이 압니다. 그때에는 참 심각합니다. 그때에는 어느 개인이나 가정이 문제가 아니고, 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나라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로지 주종관계면 주종관계를 어떻게 세워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한 단계 한 단계 넘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오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이상 가는 것이 있어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이상의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에 모든 것이 포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심정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에서 한 단계 올라가려면 반드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나 자신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하늘에서 반드시 책임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이때에 반드시 제물을 드려 제사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인다고 할 때도 갑이라는 사람이 정성을 들였다면 그 사람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가 열흘을 금식했다면 그 배 이상의 금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정성들인 한계선 이상의 정성을 들이고, 그가 정성들여 바친 이상의 제물을 바쳐 가지고서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넘어갈 수 있도록 마음이 준비가 된다면 하나님은 준비 안 해도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끝날 때가 되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빗길이 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들은 판결을 지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먼저 준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도 먼저 땅에서 그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서 제물을 드리거나 정성을 들이게 되면 하나님은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문제되는 것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보다 신앙의 고개길을 넘기 위해 온갖 수난을 다 겪으며 나오시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나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겠습니까? 수많은 탕감의 노정을 거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로 단계를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원리는 무엇이냐? 이러한 고개길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벌어진 하나님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지상에서 미리 알아 가지고 탕감시킬 수 있는 교리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알겠어요? 이것만 따라가게 되면 직접적으로 아들의 자리도 갈 수 있는 것이요, 형제의 자리도 갈 수 있는 것이요, 부모의 자리도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의 자리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통일교회의 마루바닥은 최고의 정성을 들였거나 수많은 눈물과 피의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알겠어요? 「예」 이 자리를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사라져 갔고 그들이 흘린 피가 강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희생의 대가를 치른 터전 위에 우리가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부자의 도리, 부부의 도리, 자녀의 도리, 형제의 도리를 중심삼고 형제 중의 형제가 되어야 하고, 부부 중의 부부가 되어야 하고, 부자 중의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자녀 중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사이가 된다고 할 때,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는 다른 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게 됩니다. 여러분을 갈라 놓을 수 있는 다른 힘이 있어요? 「없습니다」 다른 힘에 의해 갈라진다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세상의 남자가 통일교회 아가씨를 슬쩍슬쩍 건드린다면 끌려갈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또 세상의 미녀들이 통일교회 남자들을 낚아채려 한다면 갈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없어요? 「예」 요즈음에 보면 그런 여자와 남자가 더러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몸의 때 같은 사람입니다. 때는 씻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망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의 아들딸을 가르치기 위한 간접적인 교재와 같은 존재로서 필요할는지는 모르지만 그 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통일교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렇지요? 기도 가운데 선생님을 영적으로 가끔 만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서 선생님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만 하면 선생님은 틀림없이 가르쳐 줍니다. 선생님이 반드시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사람은 아직 멀었어요. 기도를 안 해서 그래요. 정성을 안 들였다는 거예요. 정성들이고 기도하게 되면 가르쳐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르쳐 주는 것은 공식입니다. 과학적이라는 거예요. 공식적으로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첫 단계는 무엇이고 둘째 단계는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기도만 하면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선생님을 보면 누구 같습니까? 선생님이 오빠 같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해와의 오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심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영적 심정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복귀하는 데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입장이 다릅니다. 남자들은 천사장형이고, 여자들은 해와형이고, 선생님은 아담형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이것을 타락한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거꿀잡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남자들은 아담형이고, 여자들은 해와형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한 아담형으로 온 선생님과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도둑질해 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남자들을 전부다 천사장의 자리에 세우는 거예요. 그러기에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다 사망선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개를 넘어가는 방식은 전부다 같습니다. 그 고개는 신랑 신부가 아니면 못 넘어갑니다. 혼자서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신랑 신부가 함께 넘어가는 거예요. 타락할 때 이 고개를 넘어왔기 때문에 복귀할 때 거꾸로 이 고개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이 타락을 함으로써 하나님은 아담을 진정한 아들로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담도 하나님의 진짜 아들로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부부의 사랑도 못해 보았습니다. 즉, 진정한 남편의 입장에서 사랑을 못했고, 그 다음에는 진정한 아버지 입장에서 사랑을 못했고, 그 다음에는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랑을 못해 봤다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으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인연을 다시 맺어야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자신도 그렇겠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할 때, 형제와 같이 느껴지고, 부부와 같이 느껴지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같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이 세 인연을 한 사람의 사랑을 중심삼고 느끼므로 말미암아 타락한 전부를 탕감하고, 그 심정이 하늘 앞으로 복귀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아무리 선생님을 잊어버리라고 해도 잊어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양 여자들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인지 육적으로인지 잘 모르게 제자들을 지도해 주었던 것 같이 선생님도 영계인지 육계인지 모르게 통일교인들을 지도해 준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증거하고 받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그런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삼단계의 심정적 사랑의 인연의 최종적인 결정을 볼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아니고서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고, 도의 세계 또한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러한 심정적 사랑의 인연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치며 무한한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입니다. 수많은 나라를 망하게 하면서까지 찾아 나온 무한한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런 것을 가지고 전전긍긍하고 또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생명이 숨겨진 것이기 때문에 고이고이 간직해 가지고 영원한 조상으로 삼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을 그러한 자리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영계의 조상들이 전부 다 동원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지 바보 같은 여러분들과 인연 맺기 위해서 영계에서는 최고의 정성을 들인다는 것입니다.그런 정성의 인연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무한한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옛날에는 신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려면 밤낮없이 7년이상을 정성들여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7일만 정성들이면 선생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걸어 놓고 7일 동안만 금식하면서 정성을 들이면 선생님이 틀림없이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찾아온 길이 얼마나 수고로운 길이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찾아오기는 왔지만 찾아온 길을 또 찾아가야 합니다. 나를 찾아오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잘못된 것을 탕감하면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모시고 갈 때에는 어떤 입장에서 가야 하느냐? 여러분들 중심삼고 가는 게 아닙니다. 영계로부터 하늘의 인연을 통해 결정된 기준을 가지고 이 세계 앞에 앞장서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누가 이 세상을 정복하느냐? 하나님이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원리와 선생님이 정복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어느 한때가 오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그 선두에 선생님이 서는것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의 통일은 하나님이 아니라 선생님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하여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아담을 복귀된 입장에 세우지 않고는 탕감해야 할 혈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후원자가 되고 선생님의 손발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가 청파동에 혼자 앉아 있어 가지고 되겠습니까? 지방에 있는 통일교인들까지도 통일적인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자기의 맡은 분야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된 인연을 갖추게 되면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전부 통일되는 것입니다.
영계에도 수많은 계급이 있다고 그랬지요? 영계의 수많은 종적인 계급이 통일되어 횡적인 계급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계급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거쳐 이 자리까지 찾아 들어오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독교의 판도를 만든 터전 위에 통일교회를 세워서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 중앙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외적인 기준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내적 외적 기준을 실천할 수 있어야만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영적으로 찾아오신 것이나, 육적으로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찾아온 것이나 그것이 얼마나 수고한 것이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을 가치로 따진다면 무한한 가치인 것입니다. 온천주를 주고도 살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 얻어진 최후의 승리적 결실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함부로 놀아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양반의 자식은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잿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또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버려진 밥을 주어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들도 자기 스스로의 긍지를 지니고, 하나님께서 수고해서 찾아 주신 보화의 가치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아버님, 멀고 먼 복귀의 길에 있어서 영계를 중심삼고 지상에서 천태만상으로 역사하신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아버님께서는 원칙적인 힘과 더불어 역사하신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당신의 수고와 투쟁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저희들은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어느 한때 아버지께서 찾아와 수고하시는 것을 알았으며, 어느 한때에 당신이 수난의 탕감노정을 걸어 나오시면서 이 땅 위에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복귀의 판도를 넓혀 왔다는 사실을 알았었사옵니까? 저희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부모의 입장에 계시는 당신께서 자녀들을 위하여 이렇듯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그 은사 앞에 감사, 감격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타나야 할 통일의 무리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 누구도 끊을 수 없고, 자를 수도 없으며 사망의 권세를 가져 가지고도 밀어낼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이 여기에서부터 싹트게 되면 이 땅은 기필코 하나의 부모를 중심삼은 한 혈육으로서 형제의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도의 결과가 이 땅 위에 맺혀지고 이 땅 위에서 승리가 결정되기 시작하였사오니, 이 모든 권위와 전통을 무너뜨리는 패배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물적인 자리에 서더라도, 천번 만번 죽더라도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까지 인연되게 하기까지의 아버지의 사연을 잊어버리는 자녀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가 수고하는 모든 사연이 영원히 남아지는 도의 터전이 될 것을 알고 각자의 생활을 통하여 수난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부모를 대신하여 개척자가 되고, 또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내 한 자체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하고 이 땅 위의 실체 부모가 지켜 주어야 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영적 아버지와 육적 아버지가 실체로 하나되어서 나를 품고 나를 뒷받침해 주어야만 승리한 통일의 자녀들의 모습이 갖추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남 모르는 가운데 수난의 길을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당신의 그 은사는 천만금을 제물로 드려도 갚을 수 없는 크나큰 은사인 것을 아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의 생활 전체를 눈물로써 감사드리고 저희의 생활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쳐 드리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 만민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승리를 다짐하는 통일의 시대가 저희의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오니, 만민이 쌍수를 들어 찬양하고 머리 숙여 감사하고 환영하는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체 앞에 팔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수많은 단계와 분야에서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들이 많아야 된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시고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눈물과 피와 땀으로써 인류와 하늘땅을 위하여 몽땅 바쳐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심정에 기록되지 아니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은 사망에 처해 있다가 광명한 부활과 생명으로의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받아 어떠한 조상들에게도 기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오니, 이런 사실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세계에 널려서 이 시간을 흠모하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영적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모든 뜻이 어서 속히 이 세계에 승리로 귀일되고, 하나의 가정적인 형태를 이루기 위한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 지상에 어서 빨리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도 이제 아버지를 협조하여 승리의 법도를 따라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이북과 공산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만권(萬權)을 대신할 수 있는 기쁨의 날, 영광의날, 찬양의 귀결점이 이 천지간에 어서 속히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정세가 아무리 위급하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긍지를 지니고, 아버지와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어 아버지를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이 사탄세계를 녹여내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솟아나서 온 지구상에 아버지의 승리가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니 저희가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고 하나의 분수령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찾아 나오신 그 걸음이 얼마나 힘드셨는가를 몰랐던 자신들을 다시 한 번 견책하고, 저희가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자신들의 부모를 깨우치기 위하여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고 아버지 대신 그들의 생명을 염려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필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이 민족을 위하여, 이 국가를 위하여, 이 세계를 위하여 남이 알아 주지 않는 가운데 정성을 들이게 되면 아버지의 수고가 덜어지게 되는 것이요, 이 땅 위에 오신 부모의 수고가 덜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들된 책임과 도리이며, 효자들이 가야할 길이요, 충신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후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이들은 남에게 신세를 지면서 따라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면서 형제들 앞에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싸움의 길을 자처하여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의 가정은 흥할 것이요, 그 가정을 중심으로 연결된 그 나라도 흥할 것이요, 세계 또한 기필코 그들 앞에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가 그들 앞에 굴복하게 되면, 이 땅에 왔다 갔던 천상세계의 천천만 성도들과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애혼들이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는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런 높고 광범위하고 놀라운 특권적인 사명을 가지게 된 것을 무한히 감사하오니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제물되는 자리에 온전히 나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나아진 시간 위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보호가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이번에 초종파적이며 초교파적인 종교협의회를 구성한 것에 대하여 찬양을 드리는 바입니다. 이 종교협의회를 중심삼고 새로이 일치를 이루어서 이 민족 앞에 많은 정신적인 기반이 되어 주시기를 마음으로 바랍니다. 아울러 이 종교협의회를 창설하신 여러분께서 서로 협조하는 의미에서 본 협회를 종교협의회에 가담시켜 주신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다망하신데도 불구하고 주위의 어려운 환경을 물리치고 본 협회를 방문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바라옵건데 이 종교협의회를 중심삼고 초종파적인 활동을 적극 전개하여 현 한국사회에 있어서 새로운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심체가 되어 가지고 새로운 복지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많은 공헌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부탁하는 바입니다.
이제 본인이 오신 손님들 앞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 본 협회를 창설하게 됐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간략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 협회를 창설하게 된 동기는 인의, 즉 사람에 의한 뜻보다도 신의, 즉 신에 의한 뜻이 있어서 출발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사회나 역사는 인의만으로 구성되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신의를 중심삼은 그 어떠한 크나큰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뜻만으로 협회가 창설되어 가지고는 역사의 흐름이나 앞으로 오는 새로운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신의에 입각한 새로운 종교의 창설을 했던 것입니다. 인의와 신의가 합할수 있는 하나의 조직체가 종교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종교란 반드시 신의를 중심삼고 인류 전체가 바라는 인의적인 모든 것을 결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신의란 무엇이냐? 신의 뜻이라는 것은 어떠한 특정한 사회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초민족적이요, 초종파적이요, 초국가적인 성격을 띤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중심삼지 않고는 신이 바라는 뜻을 완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미루어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의도 역시 어떤 개인적인 뜻이나 어떤 단체적인 뜻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적인 내용을 갖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팎으로 통합하는 데에 종교의 사명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신의와 인의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합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신이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특정한 개인이나 특정한 민족, 특정한 국가를 중심한 것이 아니라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인류와 세계를 사랑하는 심정적인 유대를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의와 인의의 일치점을 가려 나가야 할 종교는 인의를 중심삼을 것이 아니라 신의를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뜻을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에 어떻게 결속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은 종교라는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결속시켜야 하는데, 그 중심은 반드시 사랑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특정한 국가 뿐만 아니라 세계를 넘어서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다운 종교의 기반을 세계적으로 형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성현들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인의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천의를 개재시킨 입장에서 주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목적하는 바는 어떤 특정한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한계선을 넘어섰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성현들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 도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의와 인의가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연결시켜 나온 것이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현은 천륜을 기반으로 해서 인륜을 결속시키는 표준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세계적인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도리라야 성현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한 성현의 도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오늘날 인간들이 도의적인 분야에서 인륜도덕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과 인간이 하나되려면 그 중심 자리는 어떤 자리가 돼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신이 바라는 사랑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랑이 결합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그 중심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신이 있다면 신과 제일 가까운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신의 사랑에 접촉되는 터전은 개인을 중심한 사랑의 터전이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터전이 되지 않고서는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결합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결속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자리가 어디냐? 신을 중심삼고 인의가 따라가는 자리, 다시 말하면 신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의 사랑이 순응하는 자리입니다. 그러한 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자리를 추구해 볼 때 그 자리는 신의 참다운 아들이 되는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의 참다운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신의 참다운 딸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신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가정, 신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종족, 신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민족, 신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국가, 신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세계를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신과 인간 사이에 세계적인 기준의 사랑의 인연을 어떻게 결속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발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의 사랑은 반드시 역사과정을 거쳐 가지고서야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은 반드시 성현들이 주도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현들은 천륜을 중심삼은 신의 가르침을 가지고 지금까지 인류를 계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간 성현들 가운데 보다 위대한 성현이 누구일 것이냐? 물론 그의 경서의 가르침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이 제일 가까울 수 있는 분야를 가르쳐 주는 그런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러한 내용을 가르치는 종교는 어떤 종교냐? 역사과정에서 지금까지 남아져 내려온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다른 종교보다도 기독교가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소개되지 않았나 하고 보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통일교회를 발족하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는 신을 찾을 때 막연한 신보다는 구체적인 동시에 생활적으로 가깝게 대할 수 있는 신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해 나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정적인 분야에서 아버지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부자(父子)의 자리에까지 이끌어서 결속시킬 수 있는 심정적인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으로 결속된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적 기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자의 관계 이상의 자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나는 꼭 와야 될 독생자다. 만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가 어떤 종교보다도 신의 심정을 중심삼고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어 신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설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믿고 따르는 신도들에게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종교보다도 신과의 인연을 결속시키는 데 있어서 제일 가까울 수 있는 기점을 설파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믿고 따르던 신도들에게 서로 형제라고 했습니다. 만민은 형제라는 새로운 종교 이념인 것입니다.
신이 바라는 사랑의 세계는 반드시 이런 기준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이 사랑할 수 있는 개인, 그 개인들로 구성된 가정, 그 가정들로 구성된 종족, 그 종족들로 구성된 민족, 그 민족들로 구성된 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통해서 구성되어야 할 최후의 목적지인 세계의 범위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정적인 기반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결속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에 반드시 나타나야 됩니다.
역사는 성현들이나 의인들을 통해서 인도되어져 나왔습니다. 인류역사와 세계를 대표해서 주장해 왔던 성현들의 가르침이 오늘날 인류역사와 어떻게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출발과 동시에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과정을 거쳐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나올 것입니다. 거기에 천륜의 섭리가 배후에 있다면, 그 섭리를 따라가야 할 인류역사노정도 그 방향에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인간의 본연의 관계를 어떻게 복귀할 것인가? 또 어떻게 신의 사랑을 중심한 인류역사로 만들 것인가? 개인이나 가정, 혹은 특정한 민족, 어떤 특정한 문화적 배경 등 인류역사에 관계된 전반적인 내용을 어떻게 신의에 의한 세계관과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기에 오늘의 본 협회를 창설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본 협회를 창설한 근본동기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우리가 관련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자각할 수 있는 그런 경지가 가능하냐 하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내재력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고 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신이 인류를 찾아 나오는 목적도 신 자신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신 자신이 행복의 터전을 찾아 나오는 데에는 인간을 떠난 자리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그 일치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정서적인 모든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재림이라는 명제를 남겨 놓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천년 기독교 역사는 재림 이상을 따라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한때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한때를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잔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양잔치가 뭐냐?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의 일치된 사랑이 출발을 결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보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로 결속되어 이상적인 세계를 향하여 신의 사랑을 더듬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지 않고는 신의 사랑을 중심한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예수님은 반드시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을 세워야 하는데 그 가정은 참가정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참된 사랑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어차피 거짓된 사랑의 형태가 가정이나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민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인류 전체가 바라는 최대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참된 가정이 출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종족을 편성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종족이 나오지 않고는 민족을 편성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민족이 나오지 않고는 국가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인류 앞에 제시한 구원섭리에서 인간이 대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과 신으로서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 기준점은 가정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축복이나 합동결혼식이니 하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말을 많이 들으셨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어떠한 원칙하에 결속되어야 하느냐? 이것은 신을 중심한 참다운 본연의 남성과 본연의 여성이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자기 개인을 중심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권내로 넓혀져야 됩니다.
그러한 내용을 생활권내에서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정을 이 지구상에 형성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세계를 중심삼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점을 모색하기 위해서 오늘날 말 많은 교회로 알고 있는 이 통일교회가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물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 자신이 여러분 앞에 분명히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의적인 그 무엇은 망할 수 있습니다.그렇지만 천의에 의한 천륜의 내용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장하는 종교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이상적인 뒷받침이 마련돼야 됩니다. 즉, 참된 속성을 가진 내용과 관계 맺지 않고는 참의 가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개인을 악에서 구한다는 내용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가 필요로 하는 종교는 개인을 중심삼은 그런 종교가 아니라, 가정을 구축할 하나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그런 종교입니다. 천의에 의해서 보장받을 수 있고 인의에 의해서 공인받을 수 있고, 천정과 인정이 합하여진 자리에서 어떠한 시련도 견뎌 낼 수 있는 가정 구원의 출발이 역사상에 새로이 나타나면 그러한 종교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한 곳, 이를테면 한국이라는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초국가적 초민족적인 기준에서 가정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는 운동입니다. 그런 운동을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금후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종교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미국이 민주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시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왔습니다. 미국이 천의에 의해서 세워져 가지고 민주주의를 주관할 수 있는 나라로 부흥되었다면 미국을 위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안에 미국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민족이 세계를 주도하는 민주주의 형태는 허락하실 수 없습니다.
미국이 민주세계에 있어서 종교적인 책임을 지고 정치, 경제, 문화에 있어서 약소민족을 구원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오늘날까지 왔다면 세계적인 한계선까지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 국민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입장에 섰더라면 미국은 틀림없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미국은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내세워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에 맡긴다는 입장에서 후퇴하는 정책을 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가려는 입장이 아니라 후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미국은 금후에 세계가 경계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는 세계를 재패한다는 엄청난 사상 체계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사상이 슬라브족을 중심삼고 소련을 위주로 하여 세계를 재패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이 공산주의가 악의 입장에 섰지만 세계를 하나로 한다는 그 사상체계는 민주주의를 앞지르는 주의가 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사람들을 위주로 하려니 공산주의 이상의 권(圈)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도리와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도리는 무엇이냐? 그것은 곧 초국가적 초민족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하나의 교단이 나온다면, 그 가르침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의 개인 생활에서부터 절대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천륜과 일치할 수 있는 생활의철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세계적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세계가 우리의 생활권내로 다가 들어오는 현시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세계 각국의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떤 한계점 이하에 있는 국가나 특정한 주의를 중심삼은 주장 가지고는 이 엄청난 시대적 흐름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천륜과 통할 수 있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국가가 흡수되어야 되고, 수많은 종교도 흡수되어야 되고, 수많은 민족, 수많은 종족,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이 전부다 그 권내에 흡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할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가능하냐, 이것이 결속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여러분들이 앞으로 통일교회에 대해서 연구해 보면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계를 구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어디 있느냐? 이 사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체가 문제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싸우는 이런 사람으로 심어 놓았으니, 세계적으로도 그런 형태의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이 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결실될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런 때를 끝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평화냐 새로운 통일이냐 하는 새로운 하나의 그 무엇을 창안해 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올 그 세계에 있어서도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에 평화의 심정적 기준이 역사의 흐름과 통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여유만만한 심정적 기틀을 어떻게 해서 내 심정 가운데 옮겨 심느냐,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응용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같이 부딪히는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내 개인에게서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 한 개인을 보면 몸과 마음이 둘로 갈라져 있고 가정을 보면 상대도 그렇기 때문에 네 사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열 사람이라면 열 사람이 그렇게 될 때 분열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천륜과 인륜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것을 원리를 중심삼고 실증적으로 체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다년간 분석하고 실천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주의는 어떤 주의냐? 자기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주의냐?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종협의 임원들이 모여 있지만, 자기 종파를 위하는 종협을 만들겠다고 하면 종협은 망합니다. 당장 자기 종단을 존중하기보다는 나라와 세계에 연결될 수 있고, 수많은 종교를 수용할 수 있는 보다 큰 사랑을 접촉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당장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과 세계를 구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을 먼저 구하실 것이냐? 대한민국과 세계를 두고 볼 때 대한민국과 세계를 같이 필요로 하는 입장이라면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을 버리고 세계를 구하려는 것이 신의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륜도덕을 중심삼은 선이나 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설 때는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줄 수 있는, 정신적인 면과 생활적인 면을 안팎으로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다가올 태평양시대에 새로운 기수가 되려고 하지만 대한민국을 위주로 하는 정책을 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아시아를 중심삼은 대한민국 정책을 펼쳐야 됩니다. 그러한 정책의 바탕으로 세계를 중심삼은 대한민국 정책을 펴야 됩니다. 그와 같이 일개 국가면 국가의 정치나 문화, 종교가 모두 그런 정신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이유도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가 행복해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성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개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를 구원받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신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체득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형태화시키는 것보다도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신의의 정적 분야까지 관계를 맺어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많은 소문을 들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이 대한민국의 삼천만민족이, 혹은 수많은 종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 한 사람을 쳐 가지고 흥할 수 있으면 치라는 겁니다. 치라 이겁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이런 관점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한 구원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구하기 위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고,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통일교회도 잘되고 대한민국도 잘되는 겁니다.
악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선은 무엇이냐? 자기를 버리고 무한히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성현의 반열에 설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국가를 중심삼은 위인들은 많았습니다. 어떠한 나라든지 위인들은 많았습니다. 우리 한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순신 장군 같은 분도 위인의 반열에 들 수 있는 당당한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위인이지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나님을 기반으로 하여 가르친 도리를 중심삼지 않고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성인의 도리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이요, 초세계적입니다. 그것이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하루의 생활도 그런 관점에서, 일생도 그런 관점에서 이것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통일교회 역사를 두고 보면 3정권의 핍박을 받아 나왔습니다. 자유당, 민주당, 그리고 혁명정부에게까지 압박을 받아 나왔습니다. 또한 여러분도 알다시피 기성교단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나왔습니다. 여기에 오신 새로운 종단의 지도자들도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이단시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단패가 사회에 물의가 되느냐 이겁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이라는 사람이 독재를 한다', 혹은 `문선생은 독재주의 자다'라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한다'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승공연합을 결성해 가지고 대 국가적이고 대 사회적인 활동을 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반 여론이 중상모략하는 내용들을 보면 `통일교회에서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자기 교파 선전이요, 통일교회가 국가적인 어떤 야욕을 가지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종교가 못 되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그 종단을 믿을 수 없구나'하는 인식이 들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결합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이상적인 가정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어떻게 모색하느냐 하는 것이 금후에 있어서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지루하시겠지만 시간을 내셔서 조금만 더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교회를 창설했던 것입니다. 신흥종교로 미숙한 점이 많고, 또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이라는 사람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비판할 수 있는 내용은 이미 다 비판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문제의 한 단체로 출발해 가지고 때가 지나감에 따라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협의회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통일교회는 종협에 신세지는 교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신세를 지는 통일교회도 아닙니다. 세계에 신세를 지는 통일교회도 아닙니다. 세계가 우리에게 신세를 지게 하고, 대한민국이 신세를 지게하고, 종협이 우리에게 신세를 지게 하는 종단으로 남아지겠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자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활동하는 전체 요원들의 입장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기의 주장을 중심삼고 상대에게 오해받을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제 이 시간 이후에 그런 것이 있거든 여러분들이 형제적인 입장에서 대해 주어 이 단체가 좋은 의미에서 공헌하고 세계에 공헌할수 있게 협조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며, 이것으로써 본인의 인사를 마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이달을 맞이하여 세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영광이 이 민족과 이 세계 위에 임하시옵소서. 당신이 바라시는 소망의 뜻도 이 인류와 더불어 일체가 되시옵소서. 그리고 하여 당신의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은 영원히 영원히 홀로 있을 수 없는 인연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땅은 하늘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하늘은 땅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이상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하늘과 땅의 인연을 하나로 종합하여 당신의 사랑의 실체로서, 만우주의 중심의 격을 갖추어 지음받은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당신의 소망이 깃들어 있었으며, 또한 사랑의 한날을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는 것을 저희 자신들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도 보잘것없는 저희 자신들의 마음과 몸 위에 당신의 영광이 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존엄하고 귀하고 높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저희를 부르기 전에 저희 자신이 스스로 나설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시고, 저희들이 아버지를 고대하기 전에 아버지가 저희 마음속에 계실 수 있도록 정성을 들이는 모습으로 묶어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와 같이 높고 귀한 인연을 지녀야 할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조상의 후예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저희 자신들은 흑암의 세계에서 광명한 내일을 추구하기 위해 오늘의 이 한 시점을 타개해 나가야 할 운명권에 놓여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슬픔이요, 이것이 고통이요, 이것이 한탄할 내용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이 시점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새로운 아침, 새로운 내일,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 그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나를 추구하면서도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바쳐 싸우겠다는 결의가 저희 마음에 불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잠들고 시들어 가는 입장에 있다 할지라도 저희의 생명력만은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자유로운 환경 가운데 있어서 저희가 모든 힘의 원천으로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생명력을 지니고 나타날 모든 개체들을 하늘의 찬양의 실체로 거두어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루한 역사과정에서 참다운 인류를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의 소원의 마음을 지금까지 이 땅의 역사를 엮어온 저희 선조들이 얼마나 짓밟고 유린 하였사옵니까? 그런 과거를 저희들이 회개하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득하여 오늘 이 시점에서 새로운 소망의 실체의 모습을 갖추어서 아버지의 뜻앞에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과 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아들과 딸이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상속받아 가지고 선한 세계, 새로운 천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필요한 중심적 존재들로서 아버님이 자랑하고도 남을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옵니다. 저희들이 그런 모습이 될 것을 이 시간 결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은 생명의 주체이시며 능력의 본체이시니, 이 시간 저희의 마음과 몸을 당신의 장중에 완전히 장악하시어서 옳지 못하고 합당하지 못한 내용이 있거든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선한 본성의 인연으로 화할 수있는 본질만을 일깨워 주시어서 아버님의 전체의 본성과 일체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께서 소망하시는 그 마음과 일체화되게 하시어 당신의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체휼할 수 있는 존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님 앞에 겸손히 부복하였사옵니다. 저희의 소망은 다른 것이 아니옵니다. 오직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이옵니다. 저희는 이름뿐인 아들딸이 아니라 당신의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이 내세워서 칭찬하고 싶어할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 그 아들딸이 갖춘 모든 것은 아버지의 소유요, 아버지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그 아들딸을 위해 있다는 것을 느낄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자신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귀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앎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 가치 있는 모습이 되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오니 이 시간 남한 각지에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이곳을 위해서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야 하는 길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는 길이요, 그들이 살아야 할 것은 아버지를 중심삼고 살아야 할 것이옵니다. 이 악한 세상의 흑암의 권세가 그들의 갈 길을 막고 있사오니, 그 환경을 개척해야 할 그들의 입장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운 것인가를 아시는 아버지여, 그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오늘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고, 내일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한 세계에서 보람을 느끼며 사는 아들딸로서 당신이 품에 품고 사랑하고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참다운 아들의 격, 딸의 격을 갖출 수 있는 자녀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시여,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은 오늘도 외로운 복귀의 도상에서 홀로 개척자의 사명을 책임지고 수고하고 있사오니,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들은 자기의 백성만 구원하기 위해 나선 무리가 아니오라 하늘의 백성을 위하여 어려운 길을 나선 무리인지라 그들이 생활하는 환경과 그들이 가는 길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충이 있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잘 아실 것이옵니다.
그들은 생활 환경에 있어서 모든 것을 화합하기에 필요한 여건을 갖추진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진 당신의 사도들이오니, 당신이 그 자리를 지키고 보호하시어서 남아진 역사의 사명 앞에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 생애의 거룩함을 인정하시옵고, 그 생활이 보다 가치 있음을 인정하시옵소서. 또한, 당신이 그들을 보호하심으로써 당신의 권한을 나타내시옵고, 살아 계신 당신의 능력이 그들과 같이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환경을 굴복시키고 거기에 처한 모든 무리들을 당신 앞에 부복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가 그곳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동서양의 역사의 방향이 한 기점을 통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일체화될 수있는 그날이 오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고, 그들도 알고 있사옵니다.비록 동서로 갈라졌지만 아버지가 소망하는 승리의 한때를 서로가 바라고 있사오니, 때를 향하여 개척하고 싸워 나가고 있는 그들 앞에 힘이 되어 주시옵고, 능력의 실체가 되시옵소서. 그들 전체를 보장하시어서 당신의 고난과 슬펐던 과거를 대신 탕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당신의 아들딸로서 세우시옵소서. 그들의 모든 생활과 생애를 지켜 주시옵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흠모하며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들일 적마다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이 외로울 때에 당신의 외로움을 체득할 수 있고, 슬플 때 당신의 슬픈 내정을 체득할 수 있는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당신의 깊고 넓은 은사를 가하시어서 하나로 묶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동하면 그들도 동하고, 당신이 정하면 그들도 정하는 일체의 인연 가운데에 화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사는 하늘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일지라도 당신께서 사랑의 은사로 그곳을 덮으시어서 그들이 승리의 한 터전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알아서 당신 앞에 몽땅 바쳐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지께서 은은한 가운데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어서 명령하시옵소서. 너는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이며, 어디로 갈것이냐고 묻게 될 때에 제가 여기에 왔사오니 당신과 더불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 되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사방에서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오늘 하루도 복된 하루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저희 가정을 통하여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이 땅 위에 보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그 이름과 더불어 이 나라가 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가 자람으로 말미암아 당신 앞에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체의 환경을 지키시옵고 모자(母子)위에 거룩한 은사를 가하신 것에 감사드리옵니다. 더더욱 금후에 모든 전체가 아버지 앞에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오늘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한 핏줄에 매인 형제와 같은 사연을 품고 가는 모습이기에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일체를 묶어 바치오니, 거룩히 받으시옵소서. 그날의 승리를 온 천지의 인류와 더불어 찬양할 수 있게끔, 아버지, 보살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친히 맡아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희망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희망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더 나은 한날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현재보다 미래가 못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처해 있는 자리는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요, 미래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70년대가 되든, 50대가 되든, 20대가 되든 사람이 처해 있는 자리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중심인 것입니다. 그 자리를 중심삼고 천태만상의 과거가 있었고, 현재도 천태만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미래에도 천태만상으로 벌어질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서 있는 것은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리는 자기 개인의 입장으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자기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면 사회를 대표해서 서 있는 것이요, 민족이면 민족을 대표해 서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해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개인이 내일을 맞게 될 때, 과거보다도 현재보다도 나은 미래를 바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보다도 나은 가치 있는 것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보다 나을 수 있는 이런 인연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는 사방의 환경을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환경의 무엇보다도 나은 자기 스스로의 자리를 결하지 않고서는 미래의 좋은 환경을 가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나이기에 역사를 대표한 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과거보다 못한 자리, 현재보다도 못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역사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세상이 선한 세상으로 우리의 영원한 이상의 터전이라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최고의 성인이 입증할수 있으며,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세상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자유와 평화와 통일의 세계, 즉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앞으로 다가올 희망의 세계를 위해 보다 나은 인격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이 느껴야 할 것은, 나 스스로가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 이 땅에는 수많은 인간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민족이 있고, 민족을 넘어 국가와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영계의 영인들이 동원된 현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현재의 입장은 보다 나을 수 있는 스스로의 입장을 결하지 않고는 보다 나은 내일의 가치적 세계를 추구하기에 합당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아무리 역사가 좋고 사회가 좋다 하더라도 그 좋은 역사와 사회앞에나 자신이 보다 나은 입장에 서야만 보다 나은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못하고, 그보다 낫지 못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역사와 환경 앞에 심판받게 되는 것이요, 비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요, 환경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라면 그 인간은 과거의 사실을 오늘날에 입증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지음받았을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미래에 입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가치적인 존재로 지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람은 희망을 품을 뿐만 아니라 희망하는 전체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가치적 존재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 중에서 유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높고 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서 있는 그 자리는 역사가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요, 이 시대가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요, 미래가 그 가치 앞에 들어가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처럼 미래까지 품고 나갈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라야만 유일체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반드시 중심에 서서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세계적인 중심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 중에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또한 절대적인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과 하나되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보다 낳은 가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본래 우리 인간이 역사시대의 전체 가치를 대표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자기를 보고 기뻐하고 자기가 생활하는 환경에서 즐거워하고 있느냐 할 때, 나 자신을 두고 기뻐하는 나 자신의 생활로 말미암아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았다 할진대 그 사람은 전체의 중심이 아닐 수 없고, 전체 행복의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그런 가치를 지닌 중심존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이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켜서 그 결정적 중심 앞에 일치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역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뜻을 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간격을 좁히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그 절대적 가치의 기준과 일체화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만이 힘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적 가치의 기준까지 갈 수 있도록 우리를 협조해 주는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절대적인 존재로 짓고, 또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지고 인간과 절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면, 어느 한때엔가 기필코 절대적 가치의 기준과 인간이 일치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요, 무한한 능력을 지닌 분이기 때문에 인간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그것이 성사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미래를 향해 하나의 세계를 바라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출발의 때가 아니라, 역사적 종말시대에 머무른 때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과 나와 일체화될 수 있는 기점을 나 스스로의 생활권내에서 내 인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결지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를 말세라고 하고, 끝날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현재는 과거보다 더 나아야 되고, 미래보다도 더 나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시대의 규탄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품고 나온 희망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문을 중심한 희망, 즉 김씨면 김씨 가문을 대표한 희망만 가져서는 그 가문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것이 희망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기준이 되려면 역사의 희망과 일치되고 이 시대의 희망과 일치되며 미래의 소망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떠한 특정한 종족, 특정한 민족,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은 희망이 되면 결국에 가서 하나밖에 남을 수 없는 그 희망 앞에 심판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간은 이런 길을 피해 가기 위해서 양심이 바라는 길을 찾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누구든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섭리역사와 인류역사노정에 인연을 맺어 놓아야 됩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 종교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종교가 가는 길은 역사의 배후를 따라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과정을 넘어 환경을 초월하여 미래를 추구할 수 있는 보다 새롭고 가치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취하지 않는 종교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시대권내에서 규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와 통할 수 있는 내용, 시대를 이끌고 미래로 갈 수 있는 종교적인 길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다 나은 내일을 맞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역사적인 실체가 되어야 하고 보다 나은 시대적인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실체와 시대적인 중심이 되려면 이 시대에 있어서 한 종족이나 한 민족을 중심삼은 대표뿐만 아니라 역사적이며 시대적인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치와 능력을 지녀야 됩니다. 이런 존재가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중심인 것입니다.
이런 기점 위에 서서 보다 나은 내일을 끌어들인다면 그 내일은 끌려들어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세계, 죽음의 세계, 즉 사망의 세계가 그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내일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적인 가치의 중심, 혹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이고 섭리적인 중심에 자리를 결정했다면, 그는 과거를 지배할 수 있고 현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면 앞으로 가는 길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환경 너머에 있는 새로운 소망을 끌어당겨 어려운 환경을 제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인격체가 이 땅에 나타나면 그는 인류역사의 끝날이 멀다 하더라도 그 끝날을 단축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내일을 위해 나서게 될 때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보증할 수 있는 미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통하여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대신해서 승리할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거기에서 미래를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미래의 소망을 품고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 왔다 갔던 성인들 앞에는 시련과 핍박의 길, 버림받는 길, 죽음의 길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 가로놓였던 것들을 그들이 제거하고 몰아내기 위하여 대결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대결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승리로는 남아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반드시 훗날 한 중심에 의해서 수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통일된 하나님의 뜻,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하나되고 백 퍼센트 체득한 자리에서 그 환경과 싸워 나왔다면, 그들은 생애노정에서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뜻은 절대적인 아들을 위한 뜻이자 절대적인 딸을 위한 뜻입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중심삼은 아들딸을 위한 뜻이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룬 아들딸이 이 땅에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섭리노정 앞에 과거를 대표한 자가 되고, 현시대의 중심존재가 되며, 미래의 출발자가 될 수 있는 확고한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을 몽땅 품을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할진대, 거기서부터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고 초역사적인 새로운 능력의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신령한 자리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그 기도하는 가운데 미래의 전체가 여러분과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것이며, 말할 수 없는 힘이 자체에 깃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초민족적이요 초세계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것은 여러분의 기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순간 만물들이 함께 기뻐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또, 승리를 다짐하게 될 때는 온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모든 존재물이 그 승리권 앞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신령한 자리에서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순간만은 상대적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대적 관계가 순간적인 권내에서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그런 역사를 통하여 환경의 제재도 받지 않고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사는 환경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도 그런 자리에서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주인이 되는 사람은 누구냐? 오늘 우리 자신만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절대자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결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그리는 하나의 권이 있을 것이고, 주체가 그리는 하나의 승리적 환경이 있을 것이고, 주체가 그리는 내일의 이상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스스로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자리까지는 못 갔다 하더라도 주체의 사랑, 주체의 소망, 주체의 현실이 그에게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래의 실체와 미래의 환경, 그리고 미래의 승리적 가치에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출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미래를 맡겠다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은 개인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세계를 대신해서 가는 길이요, 인간만이 아니라 절대자를 대신해서 가는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런 입장에 선 사람은 언제나 과거도 현재를 대신할수 있는 것이요, 현재도 과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자체가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자극시키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는 과거로서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극을 가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현실도 역시 현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할 수있는 자극적인 현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간다 할진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추구하더라도 미래에 그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에서 생각하더라도 이 현재의 자리가 미래의 중심의 자리도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역사를 이긴 사람이 되는 것이며, 역사 앞에 있어서 최고의 희망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 앞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적 중심이 아닐 수 없으며, 미래 앞에 있어서도 중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가 하늘과 땅,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의 인연을 중심삼은 환경이나 생활권 가운데에서 결정될 수 있는 한날을 어떻게 우리의 생애노정에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심정세계를 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소망이 무엇이며, 최고의 희망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를 자신의 품에 품으려고 하시는 것도 아니요, 하늘과 땅을 자신의 권세로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외적인 모든 상대적 여건이 아무리 풍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는 간접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오직 기쁨으로 포괄할 수 있고, 기쁨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인 운동의 중심, 즉 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승리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시대를 포괄할 수 있는 주체권, 이것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정의 세계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것은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에 앞서 통일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아들과 참된 딸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시대 환경을 개척하여 시대의 중심 자리에 설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이끌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끌고 나올 때 끌려나올 수 있는 심정적인 유대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얼마나 일체적 관계를 갖고 있느냐? 개인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인간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 세계가 굴복했던 안 했든, 혹은 시대와 환경이 수습되었든 안 되었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낼 수 있고, 전체의 마음을 대표한 하나의 상대로 나타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가장 영광된 자리에 나갔다고 하더라도 그 영광을 영원히 품고 영원히 위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느냐? 그 자리는 자기 혼자 모든 영광을 바라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기쁜 마음이 넘쳐나 가지고 그 영광이 환경 전체를 덮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여야 됩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가치 있는 기반이 개재되어야 모든 환경을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주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재되지 않고는 세속과 더불어 흘러가 버릴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랑은 과거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이요, 시대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이요,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수고로운 것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어려운 환경도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힘은 강하기 때문에, 그 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딪히더라도 능히 소화시킬 수 있고, 능히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런 힘의 모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와 떨어진 사랑을 말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분리된 사랑을 말하신 것도 아닙니다. 미래에 올 수 있는 사랑을 말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출발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태어나서 생애 노정을 거치는 가운데, 즉 나면서부터 죽어가는 순간까지 그런 사랑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을 통해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하는데 있어서 그때가 생애의 3분의 1의 기간에 해당된다면, 나머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슬픔의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생애의 절반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한 생활을 하였다면, 그 나머지 절반의 생애는 부끄러운 생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부끄러운 생애와 슬픔의 생애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맺어진 사랑이 몇 퍼센트이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미완성적 사랑에서 역사가 흘러나와 지금도 그런 시대권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백 퍼센트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경지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그에게는 아들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랄 필요도 없으며, 하나님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찾아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리라야 영원히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수습해야할 내용을 남긴 자리에 서게 된다면 영원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수습되어서 절대적인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영원한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승리 중에서 최고의 승리는 어떤 것이냐? 본래 인간은 승리의 본향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승리의 세계를 찾아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 찾아 나가는 표준이 무엇이냐 하면 인격의 완성을 이룬 자리입니다. 물론 인격도 필요하겠지만 그 인격을 움직일 수 있는 내심적인 핵, 즉 사랑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내가 슬퍼할 때 하나님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부자의 관계라든가 혹은 부부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도 부모면 부모, 아들이면 아들이 슬퍼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뼛골에서 슬픔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설명을 초월하고 환경의 모든 인연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거리와 사정을 초월해서 상대와 일치된 감정이 유발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랑은 설명을 초월하고 사연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도 그 내용이 어떻게 되었든지, 그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지를 초월해서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들이든지, 부모든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로서 자기도 모르게 끌려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자기와 절대적인 인연인 하나의 핏줄을 중심삼고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내적인 심정의 인연으로 묶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움직이는 전체는 주체와의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기뻐하면 나도 기뻐하고, 그가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하나님, 하나님과 사람이 기뻐하면 서로 기뻐하고 슬퍼하면 서로 슬퍼하는 것을 볼 때에, 오늘 우리가 기뻐하면 절대자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슬퍼하면 절대자도 이걸 피할래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틀림없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우리는 슬픈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슬퍼하게 되면 절대자도 슬퍼하게 되고, 절대자가 슬퍼하게 되면 나뿐만 아니라 전세계도 슬퍼하게 되는 이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쁠 때는 모든 것을 품고 용서할 수 있지만, 슬플 때는 용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짐이 되고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그런 것들은 차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과는 아예 관계를 맺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화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과 더불어 슬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슬픔을 느끼실 때 나도 자연히 슬픔을 느끼게 되고, 내가 기뻐하게 될 때 자연히 하나님도 기뻐하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슬픈 환경을 넘어 더 고차적인 자리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면, 기쁨을 이 땅 위에 반영시키는 일이 영계를 중심삼고 우리 인간의 배후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많이 하고 영적으로 높은 안목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슬픔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분석해 보면, 그때에 반드시 하나님이 슬픈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는 기쁨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하나님이 기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현실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지만,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권내에서는 이것이자 저것이요, 저것이자 이것인 것입니다. 영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반영되어 들어오는 관계의 세계에 있어서는 슬픔과 기쁨이 언제나 나를 중심한 하루의 생활을 통해서 접선돼 나가는데, 오늘 우리들은 이것을 감지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고, 너무나 부족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을 맞자', `참된 내일을 맞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참된 나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내일이 나와 더불어 관계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체휼적인 신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체휼적인 신앙이란 하나님이 슬퍼할 때 나도 슬퍼하고, 하나님이 기뻐할때 나도 기뻐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나는 매일 매일 그런 생활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풀어 드리고 세계 앞에 기쁨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나로 말미암아 세계는 수습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성인들을 보면, 그 사람들은 당시대에는 배척을 받았지만 그들이 남긴 도(道)는 역사를 수습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리를 두고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화하면 거리를 초월해서 수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주체와 더불어 시대의 환경을 극복하여 비약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새롭게 개혁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가해지는 파장은 온 세계 인류와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까지 파급되어 나갈 것입니다. 또한 그때의 기쁜 사연은 세계를 소화하고 세계를 감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의 기도는 감화시킬 수 있는 능동력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경지를 찾아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체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이런 체휼적인 사랑을 제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어디일것이냐 하는 것을 연구해 봅시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부모라면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자리에서 하나님대신 그 사랑을 널리 만인류에게 적용시키는 자리,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다릅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아들딸이 어려움을 당할 때는 만인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기 아들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냐?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딸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의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돌려 잡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동기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가 제사를 드린 것은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제사를 드리게 된 동기인 것입니다.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자기 자식을 잡아 제사드리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비장했겠는가?
현재보다 미래의 세계를 위하여 자기 아들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 제사드릴 수 있는 사람은 미래의 승리의 기반을 현재에 끌어들일 수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을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나기의 아들딸을 사랑하기를 그 시대의 무엇보다도 미래의 어떠한 무엇보다도 사랑하지만, 만민을 그 아들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기 자식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은 거기에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냐, 못 가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중심삼고 욕심부리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자기 중심한 것을 버리고, 자기를 희생시키고 제물로 삼으려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자기의 몸은 물론 자기의 아들딸까지도 다 제물로 드려 만민을 구원하고 사랑하려는 주체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원수를 쳐 가지고 추진시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원수를 쳐서 섭리하기 보다는 자기의 사랑하는 존재, 제일 가까운 존재를 희생시켜 가지고 섭리를 추진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발전은 천국을 향하여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를 초월하고 만민의 가치를 찾아 나오는 사람입니다. 즉, 자기를 희생시켜서 만민에게 사랑의 중심을 결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그시대에 사람들에게 우대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국가를 대표할 때 그는 애국자가 되며,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른 점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자기의 아들딸까지도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시킬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하는 수많은 종들을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고 핍박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기를 "아바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마 26:39)"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자신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사랑하고 살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고이고이 그 뜻에 순응해 가는 것이 아들의 도리인 것을 알고 독생자 예수는 제물이 되어 갔습니다.
그분은 제물 중의 제물이 되어 간 것입니다. 칼이 자신의 몸을 지나가더라도, 그 칼을 넘고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남아진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소원하던 하나의 세계가 기필코 이뤄질 것을 믿고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세계는 수습되는 것이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기원은 한 단계 고차적인 입장을 결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한계선을 자기와 어떻게 관계맺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곧 자신이 내일의 천국을 현재에서 맞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이 있을 수 없듯이 오늘의 승리의 기원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내일의 인연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오늘이 입장을 그렇게 결정짓지 않고는 내일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 확실한 길을 가야만 내일은 여러분의 손에 의해 수습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승리의 내일을 맞겠지만 그것은 맞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차이가 무엇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켜 원수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중심한 섭리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자기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까지도 희생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족까지도 희생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까지도 희생시켜야 되며,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까지도 희생시켜야 됩니다. 이런 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나님이 내 개인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되고, 내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되며, 내 종족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됩니다. 또 내 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되며, 내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나라가 나타나야 세계는 그 나라로 말미암아 수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이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그 나라가 나오지 않으면 개인의 희생은 계속됩니다. 또, 가정이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그 나라가 결정되지 않으면 가정의 희생은 계속되는 것이며, 종족과 민족이 아무리 희생을 한다 하더라도 그 나라를 세우지 못하면 그 종족과 민족의 희생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과거의 역사노정에서 그 나라를 찾기 위해서 섭리를 추진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생각하고 나라를 위할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그의 개인 전통을 이어받은 가정을 통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게 했고, 또 종족과 민족이 그 가정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듯 그 나라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를 추진해 나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어디 있느냐?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하시는 목적도 그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3)"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 의라는 것은 행동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기 않고는 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희생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자리, 즉 종적인 역사에 있어서 수직으로 흐르는 직계의 심정을 상속받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개인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수많은 종족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수많은 민족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그 나라를 위해서 수많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랑의 전통의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희생의 길로 나가야만 의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지, 그것 외에는 의인의 입장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죽더라도 절대적으로 정의에 입적한 생활을 해야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라를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섰습니다. 마음으로는 사랑했지만, 실제로 사랑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기에 예수는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가 이미 이즈러졌고, 민족이 이즈러졌으며, 백성이 이즈러졌습니다. 더욱이 12사도들까지 전부 다 이즈러져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붕괴되는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비참한 말입니다. 그 말이 바로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엮어져 온 하나님의 사연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느끼며 낙심하기 보다는 하나님은 나보다 더 불쌍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 30여년의 생애를 통한 짧은 과정에서 나라를 갖지 못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되, 아버님은 태초부터 역사시대의 배후에서 복귀의 사명을 주도적으로 책임지시고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가? 사랑하고 싶은 나라를 갖지 못한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한가? 그 나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면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갖지 못한 아버님은 얼마나 슬플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여!' 하고 부르며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아들이 아닐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여기에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내 아들딸, 내 가정을 중심삼고 팔려가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세상의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팔려가는 신세가 되어서도 안되겠습니다. 신앙인들은 국가 앞에 제재를 받았고, 사회 앞에 규탄을 받았으며, 가정과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도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핍박을 단절하고 밟고 넘어선 사람들이 오늘의 종교를 개척하여 온 중심적인 책임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그 시대에 배척을 받고 몰림당했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런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여 나왔던 것입니다.
정성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봄절기가 한때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정성들이는 그 자리를 찾아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인연맺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인간의 일생을 통하여 조건을 세우면서 새로운 역사의 소망으로 접근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심정을 중심삼은 개인적이 인격을 말하고, 심정을 중심삼은 가정적인 기준을 말하고, 심정을 중심삼은 민족과 국가 형태를 말하는 그 기준은 무엇이냐? 오늘 이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관념적, 습관적으로 말하는 그런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에 입각한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 혹은 자기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자는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고 맙니다. 그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천년한의 역사를 품고 억울하게 죽어갔다면, 그는 미래의 소망으로 오는 수많은 인간들에게 자기의 한을 풀어 달라고 누구에게든지 독려하고 축원할 것입니다. 그러한 수많은 선민의 죽음과 의인들의 피흘림이 한이 되어 역사에 나아졌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이 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내일을 맞을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땅에서 자기의 아들딸만을 사랑하는 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고, 혹은 하나님의 보장하에 사랑할 수 있느냐? 그래야 보다 큰 사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차피 소망의 한때를 이루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슬픈 사연을 내가 인식하고, 그 슬픈 사연을 내 심정으로 느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교차할 수 있는 교차점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 교차점은 어디일 것이냐? 나의 생활권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마음이 뼛골에서 우러나와 사랑하는 아들딸을 제물로 드릴 수 있느냐 없느냐? 세계를 위해 내 아들딸을 희생시키고, 내 가정을 희생시키고, 내 종족을 희생시키고, 내 민족을 희생시키고,, 내나라까지 희생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라까지가 문제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의 길은 내일의 나라, 내일의 세계를 상속받기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기 위하여 결속한 무리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딸을 제물로 삼아 내 종족을 희생시켜서라도이 나라를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때에, 오늘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의 자리로 내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생의 자리에 내모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자체는 억울할는지 모르지만, 쓰러지고 죽어 제물되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넓혀 종족권을 넘고 그것을 넓혀 민족권 앞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넓혀 국가의 기준을 바꾸는 날에는 새로운 나라의 깃발을 들고 세계를 향하여 진군할 수 있는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나라를 자신의 아들딸보다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대표적으로 책임지고 가는 때가 많아야 됩니다.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삼각권내에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이리 갈래야 갈 수 없고 저리 갈래야 갈 수 없는 처지, 이리 가서도 안 되고 저리 가서도 안 될 때는 갈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럴 때는 제물을 통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이 나라가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아시아의 정세 가운데 이 나라가 처해 있는 운명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서서 이리 갈 것이냐 저리 갈 것이냐를 생각하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압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려면 그에 해당되는 제물을 대가로 바쳐야 됩니다. 그때에 제물을 바치는 책임자가 누구일 것이냐? 이걸 생각해 볼 때에, 여러분을 책임지며 지도하는 나 자신은 국가의 운세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운세까지도 대신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대신해 전체의 심정을 결합해야 합니다. 이북에 있는 천 삼백만과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 전체를 규합해 가지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치있는 존재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 제물을 어떻게 모색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과 사랑하는 가정, 자기가 사랑하는 종족, 자기가 사랑하며 이끌고 있는 통일교회를 어떻게 제물로 드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이 나라는 구원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그렇게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에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하여 죽는 것이 내 본래의 천직이요, 하나님이 나를 이땅에 보내시어 부여하신 임무입니다. 그래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운명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도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자기 생명의 고개, 생명의 한계선을 넘은 자리에서 긍정할 수 있고 시정할 수있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지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나라를 갖겠느냐 자기 가정을 갖겠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나라를 갖겠다고 대답해야 됩니다. 또 교단을 갖겠느냐 나라를 갖겠느냐고 물어도 하나님이 찾아오는 나라를 갖겠다고 해야 됩니다. 또 민족을 갖겠느냐 나라를 갖겠느냐고 묻는다면, 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라를 갖겠다고 대답해야 됩니다.
초민족적인 시대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낙심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때가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때의 절정을 맞을수 있는 삼각지점에 있어서, 즉 사탄의 악과 하나님의 선이 교차하려 부딪쳐 들어오는 순간에 이것을 선편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닙니다. 오직 인간입니다.
이제 나라가 그럴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아시아의 정세가 세계의 모든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기운이 휘몰아쳐 오는 절박한 때가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 앞에 세계적인 운세를 결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맞아 가지고 어떻게 이때를 뜻맞게 넘기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무리와 종족과 단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한 그런 단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단체가 없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그런 단체가 된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교단을 제물삼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감정을 한 기점으로 일치시켜 불을 지른다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창조의 능력은 무한히 뻗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가 수습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사회와 이 나라에 여론이 분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얼마만큼 전체를 동원해 가지고 나라를 구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마음을 갖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결속시켜서 나갈 사랑하는 마음을 합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 가운데에 나라가 있는 것이요, 나라 가운데 민족이 있는 것이요, 그 가정 가운에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를 부활시킬 수 있는 국민이 되었다 할진대 그 국민은 자동적으로 해방을 맞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국민이 선주권내에 서게 될 때에는 일시에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라의 주권이 서게 되면 민족도 구원할 수 있고, 종족도 구원할 수 있으며, 가정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라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면 세계에서는 이것이 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인류가 찾아 나온 것이 바로 이 핵입니다.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국가에 대해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은 나라를 위하여 몽땅 제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알고 말을 잘하는 것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적과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은 심정의 경계선, 실적의 경계선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은 축복받고 태어난 자녀들이 귀하다고 감싸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의 자녀들을 제물로 삼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자녀들을 나라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시킬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들을 희생시킨다는 각오로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살고 이렇게 싸워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현재에 있어서 내일을 맞을 수 있고, 내일을 차지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내일을 준비해 놓고 가기 때문에 미래의 천국은 그의 것이 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천국 가자'고 하는데, 천국을 그냥 갈 수 있습니까? 먼저 땅 위에서 천국을 맞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천국을 맞기 위해서는 사랑의 법도를 거치고 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이 태어나면 태어날수록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랑해야 할 십자가가 가중된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 가정에 아들딸을 많이 보내는 것은 짊어질 십자가 많다는 것이므로 나라를 위해 바쳐야 할 책임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 내용을 알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라야 그 가정에 후대를 상속받을 수 있는 운세를 가진 아들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 현재 미래를 몽땅 차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체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한 심정적인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그런 심정적인 대표가 되어야 하고, 종족이 그런 심정적인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가정 종족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때든지 우리 가족, 우리 종족 전체가 희생되더라도 하나님 앞에 당연하게 바칠 수 있는 전통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한 일을 하다가 죽은 가정, 종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여 미래를 차지한 종족이기 때문에 죽어서 저나라에 가서도 그것이 바꿔지지 않습니다. 저나라에 가서도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길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이 7월 19일, 이제 내일이면 우리는 사방으로 또 떠나야 됩니다. 아기가 있는 사람은 아기를 업고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번에는 모두 심각하게 떠나야 합니다. 과거에 습관적으로 출발하던 것과는 달리, 나라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책임을 졌기 때문에 통일가와 통일의 족속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몽땅 바쳐지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이 기간만이라도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름인 8월은 지나가고, 가을인 9월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금번 이 40일 전도 기간이 중요한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한 각지, 이 민족 전체를 단결시켜서 심정적 일치점을 가지게 하여 이 나라를 앞으로 올 소망의 나라를 위해 제물로 바쳐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이 환경의 터전 위에 천상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새로운 창조역사를 이룰 수 있는 세계적인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일을 맞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으니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아시겠지요? 「예」
아버님! 4천년 역사를 엮어오신 아버지, 아버지의 슬픔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어서 세계를 위하여 제물드릴 수 있는 민족이 없었던 데에 있사옵니다. 그러한 나라가 없었던 것이 아버지의 슬픔이었음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봅니다.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중심삼고 제사장의 책임을 다했어야 할 예수께서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리고, 씨족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린 방랑자로서 3년의 공생애를 종결짓고 갔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한 사실인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예수님은 개인을 위하여 제물이 되었고, 가정을 위하여 제물이 되었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제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피의 제단을 피할 수 없었던 억울한 기독교 역사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렇지만 기나긴 6천년의 한 많은 역사를 지닌 채 종말시대에 처하게 된 기독교의 운명, 이 세계사적인 운명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없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은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이 세계와 기독교를 중심삼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생애 전체를 기울여, 그 표준을 맞추기 위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무리로 이 땅에 세워 주셨사옵니다. 이러한 현재의 시점에서 그런 마음을 지니고 몸부림칠 수 있는 개인이 세계 선진국가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앞으로 세계를 상속받을 어떠한 나라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또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적인 인연을 넘어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무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남겨야 할 본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염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당신 앞에 고요히 엎드린 아들로서, 천명을 받아야 할 하나의 책임자로서이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인 내용을 귀결시켜야 할 줄 아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당신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보고 계시옵니까? 오늘도 `아무개야, 아무개 집단아, 너는 이래야 되고 너희들이 갈 길은 이 길이다'고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러한 마음을 지니신 아버지 앞에 갈 때 스스로의 모습을 갖춰 가지고 나타낼 수 없는 실패자의 마음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외로운 고아의 신세가 되어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가 많았사옵니다. 이런 것을 아시면서도 아버지께서는 보잘것없는 저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영계와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증거하시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단지 저희 인간들이 아버지의 마음에 깃들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에 일치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임을 아옵니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란 것을 느낄 때마다 천 갈래의 한을 남기는 죽음길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민족을 넘어 세계 앞에 승리의 제물로서 당신께 고이 바쳐질 수 있는 그날을 찾아가야 함을 느끼옵니다. 이렇게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아버지, 그것이 비참한 역사 같았사오나 비참한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저희들보다 더 비참하신 분이 아버지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내일의 비참을 개척하여야 할 책임, 당신의 비참함을 면케 해 드리기 위한 책임을 다할 것을 더욱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삼팔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의 현실은 본래 당신이 뜻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아들딸이 가야 할 운명길에 이런 것이 나타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신의 딱한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당신의 사정에 저희 마음을 묶어 가지고 그런 사정을 안정시켜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일구월심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한때를 맞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하옵니다. 그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천지의 기원과 해원성사의 바탕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민족을 바라보며 나온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이 민족에게 문제가 되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종교 앞에 문제가 되고 있는 기점에 섰사옵니다. 여기에서 저희는 자신을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민족을 대표하고 수많은 종단을 대표하여 이 나라를 소망의 천국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제단을 쌓고, 끝까지 희생하며 몸부림치는, 사명을 다하는 거룩한 무리가 되고자 하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런 심정의 밑바탕을 중심삼아 나온 통일교단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앞에 배척받던 무리였고, 몰리는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배척받는 무리에게도 힘이 필요한 때가 왔사옵고, 몰리는 무리에게도 지팡이가 필요한 때가 왔사오니, 이때에 저희들을 세우시어서 민족이 분열되어 있는 이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고 민족의 마음을 수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제 엄숙히 선택된 제물이옵니다. 제물로서의 가치를 민족 앞에 제시할 수 있는 한때를 맞기 위해서 내일 전국적으로 거국적인 출발을 하려는 순간에 있사옵니다.
1970년은 7천년 역사를 평면적으로 탕감하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엄숙하고도 지중한 시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 40일 기간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이 땅에 아버지의 나라를 이루고 민족 해방의 기원을 조성할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군림하여 치리할 수 있는 영원한 발판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그때를 위하여 가일층 마음과 몸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민족의 성스런 제단을 책임질 수 있는 종족적인 사명과 통일가의 사명을 다하고 남음이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약속하고 다짐하는 모든 사연들을 맡아 이끌어 주시옵소서. 부디 보람있는 제물된 생활을 함으로 인하여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각기 제단에 모여서 이날을 기념하고 내일을 향해 출발을 결의하고 있사오니, 그 모임 위에 당신의 은사를 일률적으로 내려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시대 앞에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내일은 하계전도가 시작되는 7월 20일입니다. 따라서 내일부터는 여러분이 새로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금년에 전도 기간을 척 맞이하면서 생각나는 것이 뭐냐하면, 작년 하계 전도 때의 희진이가 전도하러 나가다가 타계한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볼 때 금년 하계전도 기간에는 보다 보람 있는 활동을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금년부터는 가정 전체가 동원돼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개인을 중심삼은 동원을 해나왔습니다. 즉 60년대에 활동했던 전체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개인을 위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각자가 지방에 나가 활동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70년대에는 60년대에 개인을 중심삼고 이루어 놓은 터전 위에 가정을 연결시키어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무대를 조성해야 하는 천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서 금년으로 넘어가는 지난 12월에 그런 섭리의 노정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40일 하계전도는 금년들어 두번째 실시하는 전도활동입니다.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둘째 번이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 두 형제 중에서 둘째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했던 것을 보더라도 그렇고, 복귀섭리적으로 볼 때 둘째 번 가인인 노아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심판한 사실을 두고 볼 때도 그렇습니다. 또 노아 가정에 있어서도 둘째 아들인 함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둘째가 책임을 못하면 가정 전체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는 원리적인 내용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런 3대의 하나님을 논하며 나오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책임을 누가 졌느냐 하면 아브라함 자신이 진 것이 아니라 둘째 번 되는 이삭이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둘째 번 되는 이삭이 책임을 못하게 된다면 3대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이 세 왕을 중심삼은 시대에도 다윗 왕의 책임이 다른 왕들의 책임보다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여러 사실을 두고 미루어 볼 때, 이 둘째 번의 위치는 최종적인 사명의 해결점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둘째 수가 문제가 되느냐? 뜻은 반드시 3수를 거쳐 넘어가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부모의 입장에서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1대라 하면 아담 해와는 2대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첫째 수라면 아담 해와는 둘째 수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으로 분립되었던 아담 해와도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인류의 사랑, 아담 해와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1대 2대가 하나되고 좌우가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아담 해와가 성장기간을 통하여 완성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사랑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단계에까지 나가기 전에 타락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되지 못하고 분립되어 아직까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참다운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3대의 기준을 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사위기대에 대해서 배웠지만 통일교회의 진리는 4수의 내용을 중심삼은 진리입니다. 이 4수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와 아담 해와의 자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이것을 플러스로 분립시킨 것이 남자인 아담이요, 마이너스로 분립시킨 것이 여자인 해와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를 다시 합한 모양과 같은 것이 자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1대 2대 3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3대 중에서 문제가 벌어진 것이 몇대냐 하면 2대인 아담해와 대(代)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는 인연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자녀에게도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있는 사랑의 기준이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혼식이라는 것은 부부가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참사랑을 대표해 가지고 남성으로서 완전히 사랑받고 여성으로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체의 품성을 중심삼고 플러스적 성품의 대표로 아들인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최고로 사랑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는데는 여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딸인 해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남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립된 둘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제3의 출발의 기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1상대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 해와가 상대적으로 결합하면, 결합된 이 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의 동기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는 보다 새로운 희망을 촉발시켜 주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그 아들딸들을 하나님도 좋아하고 아담도 좋아하고 해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대상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삼대상목적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위치가 둘째 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을 그릴 때에도 반드시 둘째 번 점이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의 중심점은 반드시 둘째 번 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우주의 중심적 위치를 결할 수 있는 상관적 인연이 둘째 번이기 때문에 이 둘째 번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한 집안이 잘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도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훌륭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부모보다 훌륭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태어나게 되면 그 집안은 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데도 둘째 번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경기도에서 지방의 지도자들을 모아서 수련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수련회를 15회까지 할 계획인데 지난 금요일까지 5회가 끝났습니다. 1차적으로 5회때까지의 수련회를 승리적으로 마쳐 거도적(擧道的)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관심을 갖고 문제시할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2차적인 수련회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2차로 5회의 수련회를 어떻게 해나가느냐? 여러분은 1차적으로 5의 수련회를 잘 했다고 해서 편안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가졌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그러한 체험을 갖춘 위에 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2차 5회를 잘 넘겨야 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그렇게만 하면 3차는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1차는 여러분이 알게 모르게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2차는 확실히 알고 출발하는 시대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2차 40일 하계전도 기간을 어떻게 뜻있게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개인탕감노정, 즉 개인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이민족 앞에 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개인을 중심삼은 복귀의 사명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이상과 가정의 이념을 중심삼고 복귀의 사명을 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개인적인 탕감의 제물을 바쳐 왔지만 이제부터는 가정 자체를 탕감의 제물로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됐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분립된 입장에서 서로 상충하며 반대하던 역사시대를 넘어 가지고 평면 도상에서 상대적인 인연을 가릴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금년 정초에 70년대는 통일교회 운세시대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인이 제물을 드렸지만 이제부터는 가정이 하나되어서 제물을 드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구원에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신앙자들도 믿는 목적을 자기 개인의 구원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천당도 자기 개인만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정구원, 종족구원, 민족구원, 국가구원, 세계구원이라는 관념은 가져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구원, 종족구원, 민족구원, 국가구원, 세계구원을 할 수 있는 첫출발의 기준은 뭐냐? 가정구원입니다. 가정구원의 기틀이 지상에 공고히 세워질 수 있도록 승리적 발판을 조성하지 않고서는 국가구원 섭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국가에 쫓기고 몰리면서 그러한 기틀을 닦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영적인 한쪽 분야만을 책임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세상에 근거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양면으로 갖출 수 있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양면을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천운은 기필코 그 기반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종교를 세워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길이 결정되면 그 길을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의 편성과 더불어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편성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60년대를 중심삼고 보면 그 때에는 이 평면적인 과정을 개인적으로 걸어나오면서 사탄과 싸워 역사적인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왔습니다. 이제 70년대를 맞이하면서 그런 기준이 자리를 잡아 하나의 중심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이때는 가정을 중심삼은 시대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천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 글자를 보고 `천주라면서 왜임금 주(主)자를 쓰지 않고 집 주(宙)자를 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도를 중심삼은 도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도주, 즉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천주라고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가 들어가야 하는데 왜 집 주(宙)자를 쓰느냐는 것입니다.
집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집이 있어야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며, 집이 있어야 사랑도 시작되는 것입니다. 집이 없어 가지고는,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때는 세계가 새로운 이상시대로 갈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드는 때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그 분은 지금까지의 종교들처럼 개인 구도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십자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도주가 온다면 그 도주는 만민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구세주입니다.
구세주는 메시아적 가정을 지니고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날의 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막연하게 주님이 오시면 천변지이가 벌어져서 온 천하가 일시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로 바뀔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의 가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종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종족이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민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민족이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국가가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국가가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세계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를 낳을 수 있는 모체 중 제일의 모체가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새로운 가정을 추구해야 되느냐? 오늘날 여러분들의 가정은 타락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천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중심삼은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함 것이 한이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해야 할 하나님의 섭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를 거치면서 모든 인류를 다 저버리면서까지 수많은 종교를 세워 역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하나의 가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종교중의 종교는 어떠한 종교이냐? 행복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이냐? 또한 수많은 사람 중에 행복한 사람은 과연 어떠한 사람이냐? 이것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종교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 국가의 백인들은 세계를 주도하여 움직이는 높은 자리에 있고, 흑인들은 대부분 피지배자로서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그 농도에 있어 백인과 흑인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 끼리의 사랑하는 마음은 역사가 아무리 변동되고 발전하고 혁명의 과정을 거쳐오고 거쳐간다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아버지가 그 아내를 보고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은 사랑하지 마시오'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이상으로 아들을 사랑하면 좋아합니다. 또 자식이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그 자식에게 `너는 어머니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하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육법은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을 어디에서 가질 수 있느냐? 그곳은 가정입니다. 그런 것은 가정을 떠나서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사랑을 좋아하시겠습니까, 싫어하시겠습니까?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인간들의 주체자이니만큼 인간들보다 천만배는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어느 자리에 세워 놓고 사랑하고 싶어하실 것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저기 가서 땀을 흘리고 일하고 와'라고 하시면서 그 땀 흘리는 것을 보시고 `아이고 좋구만'하실 그런 종의 자리이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필요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느 자리에다 세워 놓고 사랑하고 싶으실 것이냐? 만약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사랑하고 싶어 하신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면 종교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이것만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의 임금님과 백성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할 것이냐? 하나님이 그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일 위대한 분입니다. 그분은 천주에 한분밖에 안 계시는 분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영원히 절대자로 계실 분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해도 그 이상 잘난 사람이 없으며, 지금까지의 역사속에서 능력 있다고 했던 어떠한 군왕보다도 위대한 군왕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러한 분과 관계를 맺는다고 했을 때, 여러분이 여자라면 그분과 무슨 관계를 맺고 싶겠어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분의 며느리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몸종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분의 몸종이 되겠습니까, 며느리가 되겠습니까? 무엇이 되겠습니까? 몸종이 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몸종이 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욕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럼 며느리 되겠다는 사람? 웃는 거 보니까 알겠습니다. 다들 며느리 되길 바라죠? `내가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 며느리 보다 더 가까운 자리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자리에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며느리보다 아버지에게 더 가까울 수 있는 길은 딸이 되는 길입니다. 딸은 왜 딸이라 하느냐 하면 딸딸 말아 지갑에 넣고 다니라고 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여러분은 며느리가 되겠습니까, 딸이 되겠습니까? 「딸이 되겠습니다」 왜 딸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딸은 시집가면 며느리만 못하잖아요? 그렇지만 유사시에는 며느리는 쫓겨나도 딸은 안 쫓겨나는 것입니다. 만일 이혼을 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딸은 시집을 갔다가 이혼을 당해도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즉,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며느리보다 아버지께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뭐가 되고 싶습니까? 도둑놈 사촌 같은 남자들이지만 (웃음)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위가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되겠다'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얼굴을 보니까 물어보기도 전에 전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떤 종교라야 하는가?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인연을 귀히 여길 수 있는 철두철미한 내용을 갖춘 종교라야 합니다. 그런 종교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며, 그런 종교라야 세계 종말시대까지 남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훌륭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성경을 보고 나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래야 된다. 이게 만지 않으면 성경은 거짓말이다'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린 후에 거기에다가 성경을 맞춘 것입니다. 처음부터 성경이라는 감투를 쓰고 성경을 표본으로 했다면 이런 길을 개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당한 이론을 중심삼고, 우리 심정세계에 관계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최고로 깊은 골짜기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탐지해 보게될 때, 그 머무를 수 있는 닻 중에 최고의 닻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남자들 가운데서 제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택한다면 과연 어떤 사람을 택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종을 택하겠습니까, 사위를 택하겠습니까? 사위는 들락날락하는 도둑놈입니다. (웃음) 딸한테 쑥덕여 가지고 장인의 감투까지 도둑질해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장인의 상투끈도 자기 것보다 좋으면 가져가려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다 사위가 되어 봐서 알겠군요? 그런 마음이 있습디까, 없습디까? 그러니 사위는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어 볼 것도 없이 누구나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들도 여러 종류의 아들이 있습니다. 불효하는 아들,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평범한 아들, 효도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아들 중에 어떤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데려가도 좋고 안 데려 가도 좋은 그런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불효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어디 대답해 봐요. 어떤 아들이 되고 싶어요?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효자! 효자가 돼야 합니다.
효자 중에서도 어떠한 효자가 되어야 하느냐? 아들이 다섯 명 있으면 그 다섯 아들이 전부다 효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다섯 아들이 전부다 효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일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효자도 있을 것입니다. ‘아,저 녀석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제일 믿을수 있는 효자야'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생활하는 데 있어서의 효자도 있습니다. `아, 이 녀석은 일은 못하지만 귀여워 죽겠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을 받음으로써 효도할 수 있는 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떤 효자를 더 좋아하겠습니까? 어떤 효자를 더 원하겠어요? 나가서 일이나 잘 도와주는 효자를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이불 속에서 깨가 쏟아지도록 `너 없으면 나 죽고, 나 없으면 너 죽는다'라고 하며 사랑할 수 있는 효자를 더 원하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어떤 효자를 더 원하겠습니까? 그건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보고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뼈 주의 뼈요, 살 중의 살이면 뭘 하자는 것입니까? 구경하자는 것입니까?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데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속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우러나와 가지고 온 세상이 캄캄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만은 빛날 수 있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생긴 얼굴을 가진 추녀들도 `이 마음에도 붉은 장미꽃 향기 이상의 붉은 사랑이 있다'하며 자랑을 합니다. 그러니 그런 사랑을 한번 맛보면 어떻겠어요? 죽는다고 해서 잊어버리겠습니까? 목이 잘린다고 잊어버리겠어요? 못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타락한 인간들 사리에도 남녀 사랑 때문에 죽고 살고 하는데, 하물며 동그랗다면 최고로 동그랗고, 맛있다면 최고로 맛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홀딱 반해 가지고 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목을 백번 자른다고 그 사랑을 버리겠습니까?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아들이 있어서 내 대신 이 아들을 천하의 누구보다도 사랑해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오! 전지전능하시고 언제나 태평 왕국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이여!' 하면서 수작은 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대통령의 감투 끈을 마음대로 조르고 풀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에서 정서적인 안식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불행하겠습니까, 행복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여쁜 아가씨도 사춘기는 단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꽃중의 꽃이요, 일생에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혼자 살지'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건 여자가 아니예요. 그런 동물 있어요? (웃음) 또한 남자들 중에서도 허우대가 멀쩡해 가지고 좋고 좋은 이팔청춘에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하는 녀석 있어요? 그런 때에는 반드시 상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지 않은데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생의 가장 귀한 때인 이팔청춘 때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안 그렇다면 혼자 늙어 죽으라우.
미인에게, `미인은 박복한 거니까, 당신 같은 미인은 혼자 늙어 죽어야지'라고 해보십시오. 아무리 얌전한 미인이라도 얼굴에서 독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지독한 욕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미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그 미인을 완전히 감상해 줄 수 있고 천상의 사랑을 인연지어 줄 수 있는 남성이 있어야 미인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서적인 안정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불행해요, 행복해요? 어디, 할머니들 대답해 봐요. 「불행합니다」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불행하셨겠어요, 행복하셨겠어요?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아버지께서는 6천년 동안 눈물 흘리시고,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 불쌍하게 뭐 어떻게 어떻고'하면서 잘도 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 엮는 것에 하나도 걸리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나더라 불쌍하다고 하는데 내가 왜 불쌍해, 내가 고생했다고 하는데 무슨 고생을 했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이럴 수 있는 그 자리는 역사를 거쳐 찾아 나오던 최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찾고 딸을 찾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지금까지의 모든 수난과 고통은 영광의 상징으로 변할 것이며, 인간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 중에 최고의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효자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요, 인생노정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는 어떤 자리냐? 간단한 것입니다. 물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공자의 도리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나라만 다스리면 뭘 합니까? 그것은 외적인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에는 불심(佛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불심이 있으면 뭘 합니까? 또 아무리 잘난 미남 미녀가 있으면 뭘 합니까? 사랑을 받으면서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으면 뭘 해요? 서로가 위하는 운동이 벌어지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것입니다.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독교를 택한 것입니다.
내가 기독교 감투를 쓰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세상에는 전부다 잘못 쓴 사람들 뿐이니 그 사람들이 바로 쓴 나를 보면 내가 잘못 쓴 것 같이 보이거든. (웃음) 그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맞는가 틀리는가 시험해 보십시오. 틀림없을 것입니다. 세계 만민을 데려다 놓고 역사시대에 살다 영계에 간 사람들까지 전부 부활시켜 데려다 놓고 내가 한 말이 맞는지, 그들이 한 말이 맞는지를 한번 물어보라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내 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니 그렇겠지요?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 주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무엇으로 맺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인연으로 맺을 것이냐? 주인과 종의 인연도 아니고 나라와 백성의 인연으로 맺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인연으로 맺느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부자의 인연으로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나님은 죽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신앙은 멋진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내 모가지를 자르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그런 신앙 말입니다.
자기아들이 불한당이 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 갈 입장에 있다면 그 부모는 천법이 있고 인간의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 자식을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인간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심정이 가는 길 앞에는 수난과 고난과 민족의 어떠한 비참함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마음대로 조정하여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핵심적인 사랑의 기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 보다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분을 동원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청춘시대에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그 모든 재산과 서슴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길이냐? 그것은 사랑의 상대를 찾아 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타락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며 수고하시면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내심에 언제나 뼈와 살이 합하여도 영원히 싫다고 하지 않을 아들딸의 인연을 찾는 데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살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가 있어요? 여기 자식 있는 사람들, 부모되는 사람들은 잘 알 겁니다. 자기 자식에게 손을 대고 뺨을 대 볼 때 싫은 부모가 있습니까? 만약에 그게 싫다는 부모가 있다면 그런 부모는 돼지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한번 대면 또 대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뽀뽀할 때에는 복잡한 자연현상이 입체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시며 사랑할 수있는 아들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아들이 구경거리가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유독 기독교만이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쳐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첫째는 아들의 사랑이요, 둘째는 신랑 신부의 사랑이요, 셋째는 형제의 사랑을 표준으로 해서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를 하나님께서 내세우지 않는다면 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기독교는 세계적인 문화를 창조하면서 이 종말시대까지 남아질 수 있었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던 내정적인 모든 여건을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반을 떠난 하나님의 섭리는 있을 수 없고 그 기반을 떠나서는 세계를 구하고 세계를 수습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진 종교는 세계적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누가 부정하더라도 내 아버지다'하는 것을 떳떳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하나님과는 얼굴도 틀리고 역사적인 거리나 시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봐도 하나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아무리 부정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내 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나와라!'하였던 것입니다. 악한 사탄마저도 그런 내용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기에 이것을 원칙으로 이 사탄세계에 새로운 판도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중에서도 심부름이나 잘하고 일이나 잘 하는 그런 외적인 입장에서의 효자가 되는 아들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입니다. 독생자가 뭔 줄 압니까? 독생자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받고 나온 아들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도주 중에서도 세계적인 도주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는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서 죽임을 당하고 찢기고 피를 흘리고 수많은 희생을 당해 나오면서도 사탄 앞에 꺾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천륜이 그것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 뿌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가지가 잘리더라도 봄절기만 되면 또 싹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기독교가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좋아했던 나라가 있어요? 기독교를 좋아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어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든 전부 다 선교사를 죽였습니다. 전부 미워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기독교가 지금까지 남아졌느냐? 뿌리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지를 잘라도 또 나오는 것입니다. 천운이 가는 길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했는데 이 자리가 효자의 자리입니다. 자기의 뜻을 초월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주로 아버지와의 심정적인 유대를 맺고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요, 효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기독교가 만대에 계승하여 맺고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기독교를 중심삼은 구도의 역사가 번식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려면 그 사랑의 뿌리와 가지를 통해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들은 기독교권내로 흡수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신랑 신부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대신한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셨습니다. 심정적인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이상의 가까운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하신 것은 형제간의 사랑입니다. 앞으로 믿는 사람들은 전부다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심정의 모금자리가 가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고차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이념을 표준해서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세계를 보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보고 웃는 데도 그 내용을 알고서 웃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우스운 얘기를 해서 여러분이 하하 웃는데, 졸던 사람은 그 웃는 것만을 보고 미쳤다고 하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기쁨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기쁨의 동기를 갖지 못하면 두 사람이 기쁠 수 있는 동기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요, 두 사람이 기쁠 수 있는 동기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세 사람, 네 사람,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이 기쁠 수 있는 동기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는 좋아서 춤추고 한 여자는 슬퍼서 울고 있다면 그걸 보시는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좋아서 춤출 수 있고 하나님까지도 거기에 맞춰 춤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어떤 날이냐 하면 아담 해와의 결혼식 날인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타락하지 않고 서로 `당신이 가려면 날 데려가고 나는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웃을 때도 마주 보면서 입만 빵긋하며 웃는 것이 아니라 크게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까지 허우적 거리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몽땅 웃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것이지 입만 웃고 몸뚱이는 가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차가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앞에서 달려오는 해와 차하고 한번 키스하면 어떨까요? (웃음) 부서지지 않는다면 위로 올라가든지 밑으로 내려가든지 두 길밖에 없는데,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올라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거 멋지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생각 한번 해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100퍼센트 사랑을 해야 되고, 웃는 데 있어서도 100퍼센트 웃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100퍼센트 웃는데 여자는 조금만 웃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웃을 때 몸 마음 다해서 웃으면 여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다 웃으면서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벌 주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인간 세상과 사랑세계에서 추방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사랑의 하나님을 초대하자는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근사하지요? 이것이 통일교회가 기성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기성종교는 전부다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연하고 관념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주체적인 하나님을 어떻게 실감나게 체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시대를 넘어 세계를 구할 수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축복받은 가정은 손들어 보세요. 참 많군요. 이 축복가정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습니까? 박씨면 박씨, 김씨면 김씨의 종족이 잘살라고 축복해 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몸은 둘이로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부부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사랑 없이 하나될 수 있어요? 또 민족을 통일하고, 민족이 단합하는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정신 없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랑을 빼 놓고, 수단 방법으로써 하나되라 하는 그런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망할 주장입니다.
공산당이 주장이 바로 그런 주장입니다. 공산당은 위협, 공갈, 협박을 해서 강제로 따르게 합니다. 여기에 맞서면 맞겠으니 억지로라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할수없이 외적으로라도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된 것은 강제성만 없어지면 금방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서겠습니까, 안돌아서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것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러한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보다 잘났기 때문에 그런 거 안 바랄 거예요. 나는 여러분보다 못났지만 그런 가정을 바라보고 나갑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의 가정 그대로가 좋아요? 그런 가정을 바라보고 나가요? 여러분들도 그런 가정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 가정이 되기를 바라야 될 것 같아요? 「예」 그렇다면 섭섭하더라도 내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이런 가정이 되기를 바라거든 내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내가 금맥을 알고 있으니, 여러분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벼랑이 올라갈 때에도 내가 거꾸로 올라가라고 하면 여러분은 거꾸로 올라가라는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상에 갈 때까지는 독재하는 것 같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힘들게 가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가 보면 `야!'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소를 키우면서 꼴을 먹여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장마철이나 궂은 날에는 소한테 꼴을 먹이기가 참 싫습니다. 나도 옛날에 소 꼴을 먹이러 가다가 소에게 매질도 했습니다. 지금 웃는 사람은 그런 경험이 있어서 통하는 모양이군요.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님이 소를 끌고 가서 꼴을 배불리 먹이고 몇 시까지 돌아오라고 했는데 평지에는 풀이하나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럴 때는 `에라 모르겠다 뒷동산에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초원이 있으니 거기 가서 먹이자'하고 그 가파른 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가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얼마 되지 않는 풀을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놈의 소야'하며 들이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불쌍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거 느껴 봤어요? 이렇게 억지로 끌어 가지고 강을 건너고 산으로 올라가게 해서 딱 그 자리에다가 풀어 놓으면 그 소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먹지 말라고 했다고 안 먹겠습니까? 그때는 혀로 물론, 입술, 귀, 눈까지 모두 고맙다고 하면서 판을 치며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는 곳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을 제재하면서 나가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것을 확실히 알면 오히려 제재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전도하러 나가라고 하면 전부 다 꽁무니를 뺍니다. `아이고 남들은 피서 가는데 뭐, 전도? 망신살이 뻗쳤구만'하고 불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민족이 해방될 수 있고, 세계가 해방될수 있는 길을 안 가겠다고 할 때는 알고 있는 사람이 때려 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려 모는 것이 정의입니까, 가만히 놔두는 것이 정의 입니까? 어디 가냘픈 여자들, 어떤 것이 정의인지 대답해 보세요? 「때려 모는 것이 정의입니다」
옛날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피난길에서 내가 이런 것을 많이 봤습니다. 어머니가 다섯 살짜리 자식을 업고 나섰는데, 철이 없으니까 전쟁이 나서 피난가는 줄도 모르고 어디 간다 하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고 가다 보니 엄마가 힘이 빠져서 아이를 내려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싫어, 나 업어 주지 않으면 안 가, 업어 줘, 업어 줘' (웃음)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업어 줘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러나 업어 주면 둘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걸어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걷겠다고 하면 위협을 하고, 뺨을 때려서라도 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난처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버리고 가겠습니까, 죽이겠습니까? 아니면 강제로라도 끌어서 데리고 가겠습니까? 어떤 방법이 제일 좋겠습니까? 버릴 겁니까? 죽일 겁니까? 그것이 다 싫으면 어떻게 할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끌고 가야 됩니다. 귀를 잡아 째든가 코구멍을 꿰서라도 끌고 가야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다 데려다 놓으면 자기친구는 다 죽었는데 나만 살았다 하며 `아이고, 우리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가 째진 것이 미인 얼굴에 흠이 되어서 시집 못 간다고 불평하는 간나가 있다면 날벼락을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 찢어진 귀를 보면 볼수록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했구나, 부모의 사랑이 무섭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천년 만년 부모를 존경할 수 있는 표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밥만 먹고 나면 우리를 고생시키려 한다'고 하지요? 그래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정이 없습니다. 일시킬 때는 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같이 살 때에는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시킬 때에는 무자비하게 코를 꿰서라도 끌어내야 합니다.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면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내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한 방법입니다. 이 말이 이해됩니까? 저기 할아버지, 이봉운 장로 이해됩니까? 「예, 이해됩니다」 백수노인도 때려 몰아서라도 가도록 해야 됩니다. 몇십 년을 같이 살던 할머니한테 실례가 되더라도 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인도 넘지 못했던 그 기준을 넘고, 어떠한 단체도 들이지 못했던 정성을 들여서 어떠한 나라도 갖추지 못했던 그 나라의 형태를 갖춰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싶어도 어떠한 단체를 사랑하지 못했고, 어떠한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고, 어떤 세상을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정당한 교육 방법이요, 정당한 작전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하거든 복수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 왔어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에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하느냐? 도중에서도 최고의 도의 기준을 설파한 예수님의 도리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도리를 중심삼고 신부가 되어 신랑으로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날이 기독교가 바라는 어린양 잔치의 날입니다.
그러면 그 어린양 잔치에서 신랑 신부가 만나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3자가 완전히 하나되어 인류애의 기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뻐도 셋이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웃어도 셋이 같이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기원을 상실한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류 역사는 기쁨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슬픔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재봉춘하여 기쁠 수 있는 한때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인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자가 반드시 와야 되는데, 그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은 하나의 아들은 사랑하셨지만 하나의 딸은 사랑하지 못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아들을 중심삼고 사랑의 도리를 찾아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도주 가운데 여자 도주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자를 덜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냐? 아닙니다. 천지의 원칙은 주체인 플러스가 없는데 대상인 마이너스가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플러스가 있어야 마이너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대를 이을 수 있는 남자를 중심삼고 세계를 치리해 나오시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여자는 제물이 되어 희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자들로 하여금 모성애를 인계받게 해서 새로운 어머니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시키는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성현들의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럼 못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벼락을 맞을 거예요. 아무리 얌전한 아가씨들에게도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되는 길을 몰라서 그렇지 잘되는 길이 있다면 손뿐만 아니라 발까지도 들고 싶을 거예요. 어느 누구도 망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부다 잘난 남자 되고 싶지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잘되고 싶으냐? 내 친구들 사이에서부터 잘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이 자기의 모든 비밀 보따리를 갖다 천년 만년 보관해 두어도 안심할 수 있는 친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제일의 친구입니다. 자기 부인, 부모, 형제를 두고도 찾아올 수 있는 친구가 되면 친구 중에서 대표적인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대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에 있어서 대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을 자기 가정의 대표자로 세우기 위해서 효도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효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서적으로 제일 먼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효자가 되는 길입니다. 하늘 땅이 알 수 있는 효자의 인연을 가진 사람은 그 나라를 중심삼고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삼강오륜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그 가정에서 나라가 알고 세계가 알 수 있는 효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효자는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혈통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릴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효자가 못 되는 사람은 충신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충신이라는 말은 한 나라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충신은 많습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충신, 일본을 중심삼은 충신,미국을 중심삼은 충신 등 한 나라를 중심삼은 충신은 많습니다. 그러나 전부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효자란 가정을 중심삼고 결정되고, 충신은 나라를 중심삼고 결정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자기 나라를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들 것입니다. 뭐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눈들을 보니 다 원하고 있군요. 하지만 충신이 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충신만 되어 가지고는 오래 못 갑니다. 충신에게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한 나라만의 충신을 원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또 인류는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성인을 원하는 것입니다. 성인이란 어떤 사람이냐? 이걸 알아야 합니다. 효자가 있고, 그 다음엔 충신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지요?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성인을 잘 알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인의 확실한 개념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위인은 많았습니다. 한국의 이순신 장군도 위인이요, 충신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대한민국, 한민족, 배달민족에 있어서 위인이고 충신이지, 일본에게도 위인이고 충신입니까?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단칼에 베어 버리고 싶은 원수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볼 때, 충신은 만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신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되고, 효성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효성의 도리는 충신의 도리를 초월하는 자리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초국가적이고 초세계적인 기준에서 만민이 제일 가치있다고 하는 기준으로 숭상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런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의 영역은 `국가내(國家內)'가 아닙니다.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적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알겠습니까? 성인의 가르침 중 공자의 도리는 노나라의 혼란한 시대에 있어 그 나라의 치리 방법도 되겠지만, 자기 나라와 같은 혼란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후대의 만민들이 거쳐가야 할 인생의 도리를 모색한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중심삼고 억조창생의 해방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민간인들이 가야 할 길을 대표적으로 간다고 갔던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 33년 동안 한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뭐 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같이 밥을 얻어먹고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은 참의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3년 동안 소란을 피우고 야단법석을 했지만 그가 가르친 도리는 이스라엘이라는 일개 나라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기 때문에 만민은 이래야 된다고 하며 `회개하라 이스라엘 나라가 가까이 온다'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천국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태평왕국을 이루어 가지고 세계를 재패하는 그런 천국이 아닙니다. 세계만민이 태평왕국에서 노래할 수 있는 천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도리인 것입니다. 결국 그 도리가 무엇이냐 하면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 그리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몰림받고, 이방의 사람들에게 배척받아 장가도 못 가고 갈보리 산상에서 비참하게 죽은 불쌍한 애혼입니다. 이렇게 원귀밖에 될 수 없었던 예수님이 가르친 도리가 어떻게 세계의 문화권을 형성해서 20세기의 이 민주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정신적인 밑바탕이 되었느냐?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신 것은 자기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사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자기를 죽여서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세계 인류를 구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나라를 제물삼고 자기 나라는 잃어버리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죽은 예수님이었기에 그를 중심삼은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는 종교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도리가 성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성현의 도리는 일개 민족만을 중심삼지 않습니다. 그런 성현의 가르침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만을 중심삼고 나온 성현은 없습니다. 인류만을 중심삼은 도리로 출발한 성현은 없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 (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즉,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갚아 주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화로써 갚아 준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이 말을 할수 있었다는 것은 하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하늘을 중심삼고 도리의 기준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하늘을 재개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성현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못 되지만 하늘을 개재시켰던 것이며, 마호메트도 그랬고, 예수가 그랬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4대 성인이란 말을 하는데, 인륜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성인의 이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인류만을 중심삼고는 성인도 종단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전부다 도주의 이름을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세계적인 기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천륜을 중심삼은 효성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가르쳐 주려고 역사를 초월하여 미래의 세계를 현실 생활의 기점으로 삼아, 그 이념 앞에 자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자기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희생해 간 사람들이 성인의 반열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머리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작전권내에서 벌어지는 과정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오는것입니다. 오늘날 성인들이 인간들에게 가르쳐 준 최후의 교훈이 무엇이냐? 세계를 위해서 태어나서, 세계를 위해서 살다, 세계를 위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인륜에 일치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치되고, 사람과 일치되는 기준의 세계를 붙들고 살 수 있는 가정을 대표한 주인이 되고, 나라를 대표한 주인이 되고, 세계를 대표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난 본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냐? 이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역사의 서글픔이요 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이 권내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민에게 충신의 도리와 효성의 도리를 넘어서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성인의 도리를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통일교회에 가면 가정이 파괴된다고 합니다. 또 통일교인들은 민족의 배신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배신자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성인의 도리를 따라가는 길임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기 때문에, 우리가 성인의 인품을 닦음으로 인하여 서인이 지배할 수 있는 그 나라가 자리를 잡는 날에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해방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요, 수많은 가정들은 자연적으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서를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인의 도리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인을 넘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가 나를 끊으리요' 해야 합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가르침이 뭐냐 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인보다도 높은 분이 누구지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성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성인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가정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번영시킬 수 있는 도리를 세워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원리책의 내용은 천주주의와 그 가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이 뭐냐? 오늘날 이 세계의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이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인 사랑을 만민에게 베풀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논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고, 성인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제한된 인생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다 하려고 하다가는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높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이 소개해 주는 아내를 맞을 것입니다. 또 여자는 자기의 남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남편으로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아들딸보다 세계 만민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리에서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넘은 입장에서 민족과 국가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 지금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통해서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지금처럼 공산주의의 유물사관과 민주주의의 유심사관이 싸우는 그런 세계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이 지배할 수 있는 나라를 바라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인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기의 아들딸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면 됩니다. 성인의 도리가 그것입니다. `네 아들딸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 네 몸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 네 나라의 백성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타락한 세계가 아닙니다. 보다 나은 그 세계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아질 것이 무엇이냐? 나와 세계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계를 내 것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어요? 내 것 만들고 싶어요, 만들고 싶지 않아요? 「만들고 싶습니다」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바보 천치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백만 불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합니까? 심정의 세계에서 남아지는 것은 나, 세계, 그리고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오는 오늘의 타락된 내가 아니라 부활된 나요, 세계도 오늘의 타락된 세계가 아니라 부활된 세계요, 나아가서 하나님도 고통받고 신음하는 오늘날의 하나님이 아니라 해방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 시대 앞에 소망의 가정을 소개하고, 소망의 나라를 소개하고, 소망의 세계를 소개하며, 소망의 천국을 지배하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거쳐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신천주의 사상을 갖고 나타난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여러분이 보다 나은 개인, 보다 나은 세계적인 중심존재, 보다 나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아들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상에 있는 세상에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라를 버리고 나서는 것도 문제가 아니요, 세계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도 문제가 아니며, 자기가 사랑하는 처자를 버리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다 나은 가정, 보다 나은 가정을 중심삼은 세계가 그 세계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 이 삼자가 일체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부부입니다. 이 부부의 인연을 중심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이 신랑 신부의 사상이요 어린양 잔치입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은 모르면서 공중잔치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쳐 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깨우쳐 주기 위해 입을 다물라고 하면 벌리고, 벌리라고 하면 다물어 버립니다. 그러니 그들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길을 개척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세계를 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 세계를 봉헌해야 할 제사장으로서 `당신이 찾고 있는 세계를 받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사명이 오늘날 땅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멋지게 가야 할 사나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다 시시하게 돈에 팔려 가서 목을 매는 졸장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런 세계가 될 때까지 수습을 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사조가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막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 앞에 주체로서의 능동적인 자세를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일을 무난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성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사상은 가정주의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정을 보면 전부다 망할 가정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의 가정들도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아랑곳 없고, 자녀도 아랑곳 없이 이혼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으로 세계가 몰아 들어가는 이 때에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추어야 할 사명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인들은 태어난 것이나 뜻 앞에 부름받은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세계를 붙안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충신이 되어야 하고, 그 가정의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효자가 되려 해도 효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기 때문에 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가정은 있지만 하늘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 조상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냐? 메시아를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부모로 오십니다. 참된 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인류는 전부 다 그 거짓된 부모의 피와 살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전 인류를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게 하기 위해서 참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오시는 한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6천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해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지 못했던 것을 6천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다시 수습하기 위해 부모의 자격을 갖고 오시는 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요, 그 메시아가 신랑이 되어 신부를 맞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래야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요? 효도하고 싶겠지만 자기를 낳아 준 현재의 아버지 어머니는 정상적인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때려죽이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그런 세상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자기 자신이 처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인간은 찾을 수 있는 절대적인 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세울 수 있는 도리를 갖춘 한분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이요, 그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그분은 참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오심으로써 내가 부모한테 효도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인생길에 있어서 자기의 자세를 갖추어 천자의 입장에서 자식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법이이 땅 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효도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니 고향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도 없고, 종족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전체의 무한한 가치를 대신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본연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효도하는 길은 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요, 충성하는 길도 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이루어 바치지 못했으므로, 우리가 성인의 사명을 대신하여 그 나라를 바쳐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하늘 앞에 바쳐 드리지 못한 것을 한으로 삼아 내 일생에 바쳐 드리기 위해서 정성들이며 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하는 최후의 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운이 좋지요?
인륜의 도리는 전부다 성인의 도리를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결국 온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전부다 지옥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째째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의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 인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하느냐? 참부모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참부모는 이러한 분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참아들딸은 이러한 아들딸이요, 참형제는 이러한 형제요, 참종족은 이러한 종족이요, 참민족은 이러한 민족이요, 참국가는 이러한 국가요, 참세계는 이러한 세계라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이 사상으로써 세상의 민주세계나 공산세계의 억천만 형제를 사탄이 아무리 빼앗아 갈래야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불변의 주체성을 가진 성인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민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가 표방하는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이 땅에 왔던 성인들은 온갖 고생을 다하고 갔지만 상대적인 이념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면 아들을 찾아 나오는 과정에 희생되어 간 사람은 있지만 하나의 복귀된 천국의 이상을 이루어 천상세계에서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기반을 갖춘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지요?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를 가지고 온 예수님도 가정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들은 갈 길이 바쁩니다.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향하여 밤이나 낮이나 쉬지 말고 가야 합니다. 거기가 정상이예요. 또한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인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극하면 극할수록 그것은 그 목적을 빛낼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닥쳐오는 시련과 고통을 자기를 막는 것으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자극할 수 있는 간접적인 충격으로 알고 흡수시킬 수 있는 능동성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그것을 생각하며 먹어야 합니다. `내 가정을 끌고 세계까지 가야 한다, 그리하여 그 세계가 내 말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올 수 있도록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세계를 보호할 것이다, 그래서 만민이 그 도리의 거룩함과 영원함과 성스러운 내용을 찬양할 수 있을 그런 도리를 남기고 가겠다'고 하는 지성어린 생활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신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내 아들딸, 내 아내' 하겠습니까? 나는 내 부모, 형제들을 다 버렸습니다.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어머니도 버렸습니다. 감옥에 찾아와 눈물짓는 어머니를 쫓아 보냈습니다. 당신이 낳았지만 나는 김아무개 여인의 배를 통해 가지고 그 품에 품어 기른 그 아들이 아니니 함부로 나타나지 말라고 하며 쫓아 보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불효이지만, 천적인 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면 부모에게도 처자에게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중요시되는 모든 제도를 우리는 중요시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며, 또한 세상에서 존경받는 모든 제도를 우리는 존경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분야의 체제를 형성하고 새로운 분야의 사상적인 체계를 중심삼은 세계관을 꿈꾸며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통일사상인 것입니다. 통일사상은 간단한 것입니다. 결국 그 사상이 뭐냐? 성인의 아버지가 되는 도리입니다.
성인의 아버지가 누군지 압니까? 성인의 한을 풀어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 성인들이 이 세계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막연한 사랑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해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축복가정 여러분은 논두렁을 파고 김을 매더라도 천상세계의 인연을 갖고 온 하늘의 왕자 왕녀로서의 거룩한 위신을 가지고 매는 것입니다. 땅을 파더라도 역사상의 그 누구 이상으로 땅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파고, 길을 가더라도 천리 길을 멀다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면서 세계의 모든 인류를 찾고 나라를 찾기 위해 비운의 운명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내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그런 의미에서 걸은 걸음이라는 것을 역사가 알게 되면 이 길은 금으로 장식되는 탄탄대로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눈물과 더불어 보냈던 아들이, 가는 길을 기념하기 위해 찾아오실 그날을 찾아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도리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을 보면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가치의 내용을 지닌 하나의 도리를 갖추고 인생에 있어 그 누구도 추구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한의 기준을 일시에 타파하여 천국의 왕자권을 가질 수 있고, 왕녀권을 쟁취할 수 있는 이 거룩한 도리와 길 앞에 여러분의 걸음걸이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시한 사람들은 다 물러가야 합니다.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 지도자로서 나이 50세가 되었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옥중의 수난 가운데서 채찍을 맞고, 피를 토하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채찍질하는 원수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참이신 하나님은 당신이 제일 사랑하시는 아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원수를 구해 주고, 뿐만 아니라 제일 귀한 예물까지도 그 원수한테 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채찍질하는 원수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말을 하지만, 내가 정말로 벌거벗고 춤을 추고 욕을 먹었다면 한이라도 없겠는데, 벌거벗고 춤추는 것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벌거벗고 춤추는 괴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백성이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한 사람을 치고 저주를 해서 이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니 고이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그랬다면 내가 그것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의로운 것으로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이미 60년대에 대한민국에 이럴 때가 반드시 올 것을 알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성교회 목사들이 전부다 망쳐 놓은 것입니다. 그런 목사는 눈 목(目)자에 죽을 사(死)자 목사지요. (웃음) 내가 그들에게 밥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20년동안 단에 서가지고 `통일교회 문 아무개 이단 괴수다. 죽어라, 망해 버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고 더 신나게 나온 것입니다.
천륜을 배반하면 맨 처음에는 자기 동네에 있는 개가 전부 훌쩍 없어집니다.다음엔 소가 없어지고, 그 다음엔 종이 없어지고, 그 다음엔 그 아들딸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자기 가족까지 없어집니다. 전부다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지 보따리를 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천륜을 배반하고도 망하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내가 천륜 앞에서 매를 맞으면 그것은 생명의 전선을 갖다 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보급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거두어 가지 않으면 그 길을 통해서 자기의 아들딸들이 건너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반대하는 목사, 장로들은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들의 아들딸들은 전부다 내 종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원수에게 복수하는 데는 그 이상의 복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목사나 장로의 아들딸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가지고 뭐 `기성교회 예배는 40분밖에 안 보는데 여기는 벌써 몇시간 됐어? 네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배도 안 고프나?' 하고 불평을 할 것입니다. 나도 아침을 안 먹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침 안 먹었지요? 아침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쯤 안 먹었다고 해서 죽겠다는 어서 죽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갖지 못하면 죽어도 개죽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세상에서 찌르면 찔려 죽고, 밟으면 밟혀 죽고, 몰면 몰려 죽는 서러운 입장에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그렇게 피를 흘리며 나온 것은 부모를 갖지 못하고, 나라를 갖지 못하고, 세계를 갖지 못하고,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주권을 갖지 못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을 풀어 줘야 할 책임을 대표적으로 지고 나온 사람이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에 벅찬 내일의 새 아침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본향땅을 향하여 돌아가는 승리의 왕자가 되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알겠습니까? 지금은 추방을 당한 망명객이 되어 절망해 있는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고 모든 것을 정복해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금의환향하는 미래의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금까지는 반대를 받고 있지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백성을 대표해서 대한민국 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나라가 망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오히려 이 나라를 구해 줘야 할 책임을 지고 남아질 것입니다. 설령 세계가 망한다 하더라도 세계를 구해야 할 책임을 지고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로 말미암아 세계는 구원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하지요? 나를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 말은 좋습니다. 자기가 필요하면 선생님이라 부르고, 자기가 불리하면 외면하는 것은 효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불리할수록 `예', 어려울수록 `명령하시옵소서' 하는 것이 효자의 도리요 충신의 도리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전도하러 내보낼까봐 꽁무니를 빼는 사람을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지금 당장은 안 맞아도 날벼락 맞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날벼락이 뭐냐? 전차, 기차, 자동차가 날벼락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선생님은 절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보기에는 선생님이 어수룩하게 생겼지만 눈을 보십시오. 눈만은 어수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무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절대 무서움 같은 건 타지 않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통일교회가 모험을 할 그때가 아직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때를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는 충신, 열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의 과정을 거쳐 연단해야 합니다. 그것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갈 길은 벌써 선생님이 다 닦아 놓았습니다. 그 길을 선생님이 다 닦아 놓고 여러분에게 땀을 흘리며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는지 사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기 싫으면 죽어야지 별 수 있어요? 이것이 간접적인 공갈 협박입니다. 원래 공갈 협박하면 망해야 하는데 이런 공갈협박은 얼마든지 해도 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자각이냐면, `세계는 내 것이다, 세계는 내 나라다, 이 세계를 다스릴 군왕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모셔 놓고 만국을 아버지 앞에 바치고 나서 충효의 도리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신자들의 최고의 희망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하여 세계의 군왕으로부터 `너는 효자다, 충신이다, 성인의 아버지다'라는 인정을 받게 되면 세 가지 소원은 영원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살면 자기 개인을 위해 사는 것이 곧 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요, 자기 개인을 위해 죽는 것이 곧 세계를 위해 죽는 것이 됩니다. 즉, 목적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자리에서는 밥을 먹어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요, 세계의 수많은 주권국가에다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 먹는 것이 됩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사모하는데는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을 새워 가면서 사랑하고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의 한날을 맞아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로부터 효의 도리, 충의 도리, 성인의 도리를 다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아버지께서 천하에 없는 기쁘신 모습으로 웃을 수 있는 그 소원의 날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날이 바로 우리 통일교인들이 소원하는 날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나 깨나 이것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세계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급변하는 동서양의 정세에 대하여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아시아의 정세에 대해서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삼은 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삼은 공산주의가 금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타진하는 것입니다. 매일 이러한 것을 감정하고 비판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자들의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고빗길의 회오리바람과 소용돌이 속에 세계 인류가 말려 들어가는 이때, 인류의 생사를 판가름지어야 할 사명을 절감하며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어 놓고 담판 기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짐으로 인해 그리운 부모 형제와 처자가 전부다 갈라졌습니다. 또한 북괴가 호시탐탐 남침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세는 몹시 격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있는 우리는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님이여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소서' 하고 이 민족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호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하는 종교가 있느냐? 없거든 우리 통일교회에게 그 사명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그 사명을 못하면 그 전부를 내가 맡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신념입니다.
나는 돈이 있어도 좋은 집을 짓거나 내 일신의 행락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을 위해 돈 쓸 곳이 있으면 빚을 지고서라도 쓴다는 신념을 갖고 나왔습니다. 왜냐? 세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남겨야 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생활 가운데서 그러한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여러분을 교육할 수 있는 교재를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교재를 남겨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슬퍼도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고, 억울해도 억울함을 나타낼 수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개척자의 사명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조금만 어려우면 `선생님, 나 좀 도와 주십시오'하고 매달립니다. 전체의 일은 개인을 떠나서 할 수 없습니다.
전체의 십자가를 짊어진 입장에서도 개인의 십자가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도와 주면서 이 길을 가는 거예요. 그래서 또 여러분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손해나는 길은 안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이 길을 걸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를 이용하려하고, 선생님을 이용하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나 안 망하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나를 못살게 하는 사람들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늘이 전부다 청산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문이라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무서운 게 뭐냐면, 선생님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려고 하면 기도문이 딱 막혀 버립니다. 원수를 구해 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요, 원수까지 사랑하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주된 가르침이 아닙니까? 그래서 원수를 위해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딱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막는데도 기도를 하려고 하면 `이놈의 자식! 고약한 자식' 하는 말이 입으로 나옵니다. 그런 사람의 집안은 폭삭 망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 집안을 칠 때에는 외적인 것부터 치는 것입니다. 먼저 물질을 치고, 그 다음에는 자식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하고 남아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한테 물어 보십시오. 선생님의 생년월일만 들이 대면 전부 다 머리를 숙입니다. 내게는 망하지 않을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 망하고 싶습니까, 흥하고 싶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망하고 싶어요? 「흥하고 싶습니다」 흥하고 싶으면 이 나라를 위해서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이 나라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대한민국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일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출발할 때는 전부다 배척했기 때문에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노동자 농민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집으로 찾아가면 침을 뱉으면서 반대하기 때문에 밭고랑을 찾아가서 농민들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 나라와 이 강토를 사랑하기 위해 이 길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힙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길을 택하게 되었는가.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대한민국과 아시아와 나아가 세계 정세를 요리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사나이로서 이런 심정을 가지고는 억천만세에 한스러운 길을 다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남아지기까지는 하나님께서 나 이상으로 수고하셨다고 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지치지 않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반대하던 사람들이 눈물로써 회개하고 종의 자리를 자처해 나설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점점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세상에 통일교회의 소문이 파다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알아보지 못하면 제삼국을 통해 채찍질을 해서라도 깨우치게 할 것입니다. 일본이 지금 한국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무슨 장관이나 어떤 저명한 사람이 일본에 가서 통일교회를 보고 놀란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줄 몰랐다며 스스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다는 거예요. 기가 막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 민족이 통일교회를 이렇게 간접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민족이 되었느냐? 기독교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면 누구든 기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책임 못한 것을 이 나라의 백성이 알고, 세계의 만민이 알기 때문에 그들이 기독교의 하나님은 죽었다는, 기성세대를 지도하는 하나님은 죽었다는 결론까지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죽었던 하늘을 부활시키고, 죽었던 기독교를 부활시키고, 죽었던 세계 인류를 부활시키자는 기치를 들고 나와 지금까지 욕을 먹고, 죽었던 기독교를 부활시키고, 죽었던 세계인류를 부활시키자 기치를 들고 나와 지금까지 욕을 먹고, 쫓김받고 핍박받아 나온 것이 통일교회인 줄을 누가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지도자들도 몰림받고 핍박받으면서 개척의 길을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자도 그랬고, 석가도 그랬고, 마호메트도 그랬고, 예수 역시 그랬습니다. 어느 누구도 몰리지 않고 쫓기지 않은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하여 거룩한 이름을 남긴 이들은 그 시대를 위하여 희생함으로써 그 시대의 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가는 이 민족 앞에 배척을 받아 추풍에 떨어지는 낙엽 같이 되었지만, 그 잎이 떨어질 때는 씨를 품고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씨가 다시 싹이 나고 잎이 나올 것을 기대해 나왔던 것이며 사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여러분이 쉴 때에도 나는 쉬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쳐서 허덕이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무릎을 꿇고 `아버지여 제가 아직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나이다. 저는 3, 40대에 당신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50대를 넘어서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죄인의 실체가 된 이 처량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타날 면목이 없습니다'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활합니다.
세계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인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천칙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상과 이념을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서 세 제자도 못 가졌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를 정복했지요?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여러분 중에서 선생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만한 수라면 할 만하지요. 김일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김일성 이놈의 자식이 옛날에 그의 주권하에 있는 흥남감옥에 아무것도 없는 고아와 같은 신세로 있는 문 아무개가 오늘날의 통일교회 문선생이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나를 잡아 죽였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얄궂은 것입니다.
그때 나는 `두고 보자, 미래에 너와 상봉해서 네 주권과 우리의 자체력을 중심삼고 대결하여 너를 내 손으로 자연굴복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천하의 산 죄수인 너로부터 항서(降書)를 받아 가지고 이 땅을 전부다 편답할 것이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네가 치리 방법을 몇십 배로 가장하더라도 나는 정당한 입장을 보증시키겠다'라고 하는 실증적인 역사의 내정을 결정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공산당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이나 시련이 닥쳐오면 닥쳐 올 수록 더욱더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하늘보다 앞서서 갑니다. 그래서 거짓 부모의 행세를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를 아버지라고 하지요? 참다운 아버지가 이 땅에 와서 가르치고 치리할 세계적인 주권의 도리를 그들이 먼저 거짓되게 흉내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겨울절기를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기간은 새생명이 움트는 봄절기, 광명한 통일의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준비 기간이 1969년도까지요, 1970년대부터는 봄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에 상당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1972년도까지 3년 동안 계속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여러분이 자기의 아들딸을 더 사랑하느냐, 자기의 몸뚱이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효자가 되고 싶어요? 효자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다? 「되겠습니다」 효녀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충신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되겠습니다」 충녀가 되어야 되겠어요, 안되어야 되겠어요? 「되어야 되겠습니다」 성녀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성녀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녀를 만들어야 합니다.그래서 어머니란 이름이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와야만 그 어머니를 중심삼고 새로운 딸이 나오는 것이며 새로운 딸들이 나와야만 새로운 형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자들이 해방을 시킬 때가 올 것입니다. 자, 그럼 가야 되겠습니까, 가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가야 되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으로 가야됩니다. 세계로 나가려니 먼저 대한민국을 찾아야 되고, 아시아를 찾아야 됩니다.
우리는 아시아를 수호해야 됩니다.그래서 일본을 끌어넣고 중국을 끌어들이는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수년 전에 이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차 단계로 환경과 분위기를 갖추어서 그 범위를 넘고 나가야 합니다. 이제 일본 정부에서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문제삼을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아시아를 필요로 하고 아시아를 개척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려는 것은 세계를 광복하는 데 표준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의 광복을 맞이하는 날, 탯줄을 끊었던 어머니 아버지와의 정을 연결시키고 콧노래 부르며 행복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본향땅을 위하여, 본향의 심정적 주체인 부모를 찾고 그 부모의 안식처를 위하여 맹세하고 나선 것입니다. 천년 한이 자기 앞에 부딪혀 들어온다고 해서 이 길을 포기하고 돌아서 가지고는 효자가 될 수 없는 것이요, 충신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가는 길 앞에 감옥이 있든지, 죽음이 있든지 상관 말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7:31-33)"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나라는 무슨 나라냐?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삼은 만민의 천국, 태평왕국이며 사랑으로 통일된 이상세계입니다. 그러한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참을 위하여 죽는 것이 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천륜의 도리 앞에 입증되고 영원히 남아질 참다운 인생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내가 생활하는 가운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세계는 멀어서 내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방법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흥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다 들지요? 선하게 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역시 다 들지요? 그러나 망하겠다는 사람, 악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 악한 것은 전부다 싫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 것은 나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에서 이기고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의 확실한 생활적인 기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의 모든 종교는 이러한 기준이 막연합니다. `술을 먹지 말라'고 해놓고서는 술 먹는 것이 어떻게 해서 죄가 되느냐고 물으면 `먹지 말랬으니 먹지 말아야지' 하는 식의 막연한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기준을 확실하게 제시합니다. 통일교회는 사탄세계를 다 알고 어떤 것이 사탄편에 속하는 일인지를 다 압니다.
마음이 벌써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나가서 전도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머리가 숙여집니까, 안 숙여집니까? 「숙여집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선생님이 주먹으로 때릴까봐 그래요? 그것은 마음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나가서 욕이라도 먹고 핍박이라도 받고 들어와야 그것이 탕감조건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건이라도 세웠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러라고 가르쳐 줘서 그럽니까? 아닙니다. 천리의 공법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개인의 생활이 있지요?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를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애란 무엇입니까? 생애라는 것은 일생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생활을 바칠 것입니까, 생애를 바칠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생애를 바치겠나이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하루의 생활을 가려 가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가릴 줄 몰라 가지고는 일생을 승리적인 생애로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의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선할 수 있는 화살과 악할 수 있는 화살, 즉 선할 수 있는 길과 악할 수 있는 길, 두 길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사람의 모체입니다. 몸뚱이는 나를 중심삼고 살고자 하고, 마음은 남을 중심삼고 살고자 합니다. 그렇지요? 몸뚱이는 나를 위해서 일하려 하고 마음은 남을 위해서 일하려 합니다. 이 둘이 합동작전을 하지 못해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현실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마음과 몸뚱이는 하나입니다. 몸뚱이도 남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타락한 자가 방탕하게 될 때에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까지도 부정합니다. 전부 자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남의 등을 치고, 사기를 해서라도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지'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명동 바닥을 활보하며 다닌다 하더라도 그가 죽으면 그의 무덤은 어디에 파야 되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은 집안까지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생활에 있어서 천국과 지옥, 선과 악, 흥과 망의 가름길을 무엇으로 쌓을 것입니까? 그것이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공적일 때에는 선이요, 사적일 때에는 악입니다. 간단해요.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 사적으로 살게 될 때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라고 제사를 드려도 망한다는 것입니다.부패하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가정을 희생시켜 서라도 나라를 위한 공적인 일을 하면 흥하지 말라고 제사를 드려도 흥한다는 것입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에 따라 선과 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악은 뭐냐? 사적인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사적인 간판을 들고 나서는 것이 최고의 악입니다. 공산당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은 패입니다. 자기 주권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자연굴복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선이냐? 어떤 것이 더 공적이냐는 것입니다. 공적이라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요, 양보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 가운데서도 개인보다 더 공적인 것은 가정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가정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천리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만 사람의 아들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부모와 형제를 위해 공적인 생활을 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후에 어머니 아버지의 재산은 물론 형님 누나의 재산까지 전부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적인 입장에서 사는 사람은 자기 개인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터전 전체의 중심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간단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가정보다 자기 친척을 위하여 희생하고 자기 동네를 위하여 희생하라는 것입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공적인 것입니다. 자기 집보다도 동네를 위하여 희생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 그 동네의 모든 권한을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그 마을을 떠나려 한다면 붙잡고 `제발 천년 만년 반장해 주고 이장해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그 동네의 모든 환경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씨족보다 더 공적인 것은 민족입니다. 민족의 수많은 씨족 가운에 김씨라고 하는 문중이 민족을 위해 희생을 했다면 그 김씨 문중은 그 나라 전체를 주도할 민족적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이것이 정치적으로 보면 공화당과 같은 당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당도 나라의 위신과 장래를 망각하고 자기 당만을 위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당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과 씨족이 함께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한 당과 나라는 망하라고 제사를 지내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부흥하려면 다른 것은 다 잃더라도 이 사상만은 모든 국민에게 주입시켜야 됩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이 공적이요, 가정보다는 씨족이 공적이요, 씨족보다는 민족이 공적이요, 민족보다는 국가가 더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한 국가보다는 세계가 더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입장에서 공적인 생애를 거쳐간 사람들은 역사상에 성인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성인의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세계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사적인 입장에서 사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직장에서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직장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수많은 백성 가운데서도 자기의 사리사욕이나 자기 가정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면 그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세계주의만이 아니고 천주주의입니다. 하늘땅의 복귀를 위하여 죽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공적인일 중에서 최고의 공적인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역사에 안 남겠다고 땅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죽더라도, 혹은 맞아 죽었더라도 역사상에 안 남아질래야 안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기성교회 목사의 아들딸이 왔다면 듣고 기분나빠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을 반대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죽나,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본부교회를 보고 `아이고 통일교회 세계본부가 이거야?' 하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좋습니다. 하지만 본부가 이렇게 초라한 것은 집을 지을 능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남모르는 가운데 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금 경기도에 수련소를 짓고 있는데 거기에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에 있는 통일교회의 방을 한 칸이라도 더 넓히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이지만 이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고생시키고 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이끄는 내 손이 마르고, 내 뼈가 마르지 않는 한 나에게 소속된 동족이 희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를 위하고 그 누구를 위했을 때는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도 중의 최고의 도요, 가르침 중의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래도 망했다면 내 목을 쳐도 좋습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반공연맹에서는 우리 승공연합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기성교회는 우리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기성교회가 욕을 하든 말든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피땀 흘리며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가 점점 커 가니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우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고질적인 우리의 민족성이 그렇다는 거예요.
기성교회는 작년까지만 해도 `통일교회 그 까짓 것들이 뭘 해'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코웃음치는 것에 놀아나는 무리 정도로, 꿈 가운데 나타났다 사라지는 재수없는 여자 정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알았던 통일교회였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갑자기 득세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반년 동안에 자기들이 손잡고 넘겨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를 가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방은 그들의 변소만도 못합니다. 본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 역군들이 아시아를 개척하고 세계를 짊어지고 세계의 봉화를 들고 우리의 것을 세계적으로 본받으라고 하며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천적인 거룩한 사명을 짊어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가 통일교단을 통하여 나타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삼복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이야 흐를테면 흐르라고 하며 이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극한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호소하며 지금까지 이끌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본부의 건물을 보고는 침을 뱉을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닦아 놓은 터 위에서는 춤을 추어야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앞으로는 자기 집 위주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세계주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기성교회가 있지만 그들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박장로가 전도관을 많이 짓고 있지만 그건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통일교회 신자들은 나를 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러움이 탄다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으로 그릴 수 있는 그런 째째한 스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계 인류를 갖다 맡기고 싶고, 세계 전체를 상속해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는 그런 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금후의 세계는 기필코 통일교회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갑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뼈와 살을 가진 사람이요, 붉은 동맥의 고동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정의에 입각한 천도를, 공적인 도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내 육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늘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더 공적이기 때문에 나는 육신의 혈통을 끊고 공적인 부모와 인연을 맺기 위하여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뿐만 아니라 나의 가정도 종족도 민족도 그것을 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 안에서의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앞으로 모색해야 할 새로운 대한민국의 이름을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권내에서 살아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이요, 우리로 말미암아 세계를 입증하고 세계를 보장하겠다는 천적인 심정의 주체성을 갖고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과 하나되고 이러한 내용으로 자기를 긍정하고 그러한 각오 아래 나가는 무리가 통일교단입니다.
세상에는 시시한 껄렁패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많이 왔다 갔습니다. 흐르는 물줄기는 대해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지, 과정에서의 어떤 현상이 목적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바쁜 그 길만을 가려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지도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야 지치든 말든 나는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바쁜 선생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예」 천리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천리길을 따라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 가운데 자기만을 중심삼고 `아이고 내가 무엇이 되지' 하고 생각하는 시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을 보증받을 수 있는 사람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셰계주의요 통일사상입니다. 공사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살아 가지고 천국을 이루어 후대에 남겨 주자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사상이 무엇인지 알겠어요? 그것이 뭡니까? 보다 공적인 것,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살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산당보다 나아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쳐들어 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원한 장래에 우리의 청춘 남녀들을 공산당 이상 가는 정예대로 양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삼팔선을 넘나들어도 북한에서 막아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내가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까지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겠습니다」
삼천리 반도는 우리의 수중에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소련과 중공의 국경을 넘어 공산당을 때려잡고 그 나라들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의 문이라는 사람은 죽지 않고 남아졌습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죽이려고 하면 죽을 줄 알았지만 나는 안 죽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선생님이 죽을 자리에 가게 되면 반드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보장 가운데 살고 싶은 청년 남녀들 손들어 봐요. 정말 그래요? 「예」 내려요. 한번 더 힘차게 손들어 봐요. 됐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더라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겠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이제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내가 가르친 도를 중심삼고 대를 이어 살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남을 것이니, 통일교회의 주의는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나까무라상! 선생님한테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예」 (박수) 일본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일본산 한국 사람이고, 미국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미국산 한국 사람이고, 독일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독일산 한국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어느 나라 사람과 결혼해도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의 결혼이 가능한 것입니다.
금년이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판도를 넓혀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대적인 가정의 운세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7개국에서 청년남녀들을 모집해 가지고 700쌍을 결혼시켜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따라서 조국에 있는 우리 가정들이 먼저 본향 땅에 세계적인 십자가의 단을 쌓고, 가정적인 거룩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시기가 금번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노정이 지금의 2차적인 노정인 것을 알고 앞으로 세계의 가정들 앞에 전통으로 남길 수 있는 보람있는 업적을 세워 주길 부탁드립니다.
자, 움직여야 되겠습니까, 움직이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고서도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달음질쳐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70년대를 맞이하여, 망할 수밖에 없었던 저희들을 오늘날까지 지켜 주신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크셨는가를 생각할 때, 날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 앞에 황공함을 느끼옵니다.
뜻을 알고 감사하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아버지, 쫓기는 무리를 통하여 세계에 개척자의 전통을 세워 나오시는 아버지의 섭리는 과거나 현재나 다름없이 역사적인 운명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이 자녀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러한 운명의 보금자리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스스로 느끼고 가기로 결정하였사오니, 아버지여, 그 모습들을 공고한 터전 위에 서게 하여 주시옵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삼천만 민중을 움직여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을 갖추어서 세계에 널려 있는 어떠한 민족의 힘보다도, 어떠한 사상보다도 강한, 천적인 심정에 일치될수 있는 통일사상을 지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러한 거룩하고 보람있는 승리의 인생행로를 가는 우리의 생애에 대한 고귀함을 느끼면서 내일의 희망의 총아가 되고 내일의 국가와 내일의 세계에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 오늘 이 한 시간을 의의 있게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서울에 널려 있던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이날을 기하여 각자가 내일을 다짐해야 되겠사옵고, 그 다짐하는 모든 것이 내가 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살기 전에 가정이 살아야 되고, 가정이 살기 전에 민족, 국가, 세계가,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여야 할 엄숙한 사명을 위해서 사는 것만이 최후의 결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다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길을 가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이는 하늘의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40일 하계전도기간을 통하여 여기에 모인 이들이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과 민족중흥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내심적인 결의와 외심적인 각오를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70년대의 모든 천적인 행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복된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세계를 위하여 승리할 때까지 참으며 싸워 나갈 것을 다짐하고 기필코 아버지를 모시고 갈 것을 맹세하오니, 부디 저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고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아버지께서 이번 기간을 통하여 저희들에게 하늘을 가르쳐 주려 하시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참사랑인 것을 아오니, 이런 때일수록 저희의 마음과 몸, 모든 일체를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앞세우고 가려 갈 줄 아는 지혜로운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사정보다도 하늘적인 인연을 생각하는 경지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탕감해 나가야 되겠사오니, 모든 것을 협동하여 넘어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번 기간에 당신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하던 한 아들이 당신 곁으로 갔사오니, 그가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보다 영계에 가서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땅 위에 남아서 해야 할 책임보다 영계에 가서 해야 할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하늘을 하나로 만들고 땅을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이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70년대의 뜻 앞에 보람있는 일을 하여 이 민족 앞에 공헌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당신은 정성들이고 모든 마음을 다하는 곳에 언제나 경륜하시는 뜻과 탕감의 노정을 세워 나가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이 모두가 당신이 처음부터 시작한 것이오니 당신께서 모든 것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맞는 어떠한 슬픈 일이라도 뜻에 플러스되는 일일 경우에는 그것이 슬픈 일이 아니라 기쁜 일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아무리 기쁜 일이라 할지라도 뜻에 마이너스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사탄세계를 넘어 당신을 따라가는 행로에 선 저희의 참모습을 진정으로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을 대신해야 할 저희들이 그러지 못할 때 아버지께서는 슬퍼하시며 염려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사탄이 대결하는 가운데 저희들은 아버지의 뜻 앞에 박자를 맞춰 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인간의 생각과는 반대로 혹은 반비례적으로 작용하고 나타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뜻 길을 따라 나온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오니, 모든 것이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되어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 이 자리에 친히 찾아오시어 비어 있는 저희의 마음 마음을 채워 주시옵소서. 이런 때일수록 저희들은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고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돕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모르면 입을 다물고, 침묵 가운데서 뜻을 위하여 직행하며 충서의 도리를 세워 나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소망 가운데서 이곳 청파동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의 성취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특별하신 은사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섭리역사노정에서 저희들이 책임을 다할 것을 새로이 다짐하는 거룩한 이날이 되고,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염려했던 7월을 빨리 보내야 되겠습니다. 7월, 8월을 빨리 보내고 9월을 맞이하여서 한 고비를 넘어서야 하겠습니다. 이 민족과이 국가가 어려운 시점에 있사오니, 저희가 이루어야 할 장래의 터전이 이 국가와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보탬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의 뜻에도 보탬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 70년도, 71년도, 72년도, 이 3년 기간에 해야 할 충성의 도리를 다해야겠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자녀로서 출발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이번 기간을 통하여 고요한 가운데 새생명의 움직임이 온 천지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딸(미망인)과 아들들에게도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정은 아버님께서 택하신 가정이오니, 그 가정의 앞날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이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된 것은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시대가 요구하고 뜻이 요구하는 바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번 저희의 불충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중심으로 수많은 가정들이 일치단결해서 뜻길에서 치러야 할 탕감조건을 기필코 치르고 나갈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특별히 저희들 각자를 살펴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는 마음과 뜻을 위해 들이는 정성이 조금이라도 감축되는 일이 없게끔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위로하여 주시어서, 평화의 마음으로 내일의 소망을 위하여 가일층 충정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맡기었사오니, 허락하신 뜻이 저희들 앞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인간들은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함과 동시에 자기 가족,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인간들은 언제나 자기나 자기의 주위를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서 있는 입장이나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개인들이나 나라들 중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가정을 놓고 보더라도 그 가정이 선한 가정이면, 선한 가정들을 대표하는 중심가정으로 설 수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뜻과 나, 뜻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뜻은 변함없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천태만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일년 중에 춘하추동이 있고 365일의 날들이 전부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섭리의 뜻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과정에도 해와 날들을 보내는데, 그 해와 날들은 전부가 갖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서 있는`나'라는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상황에 따라 생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공적인 입장이나 사적인 입장이니 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적인 입장은 자기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이요, 사적인 입장은 공적인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입니다. 사람은 공적인 입장에 서기가 힘이 듭니다. 눈을 뜨는 시간부터 시작되는 하루 생활의 전부를 자기를 중심삼은 견지에서 영위하기 쉽고, 또 그렇게 일생을 영위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습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적인 입장을 떠나서 공적인 입장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적인 모든 여건을 극복하고, 또 사적인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자아를 새롭게 재차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공적인 입장과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국가에 충성하는 충신의 도리를 놓고 볼 때 충신과 나는 거리가 멀고, 가정에서 부모님께 효도를 한다 하는 효의 도리를 놓고 볼 때도 그 효성과 나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에서의 효의 도리, 나라를 중심삼은 충의 도리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중심삼은 성인의 도리를 놓고 볼 때도 여러분은 거리가 먼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뜻이 개인이나 가정을 대표한 것이 아니요, 국가를 대표한 것도 아니며, 세계를 대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뜻에 가까와 지려면 그 거리에 비례해서 극복해야 할 조건도 가중되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뜻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평탄하고 행복한 길을 걸어가 세상 사람들이 보고 좋다고 하는 입장으로 남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공적인 입장에 서게 될수록 사적인 입장에는 설 수 없기 때문에 그 가는 길 앞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움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과는 대각선을 그려 가지고 상대할 수 없는 입장으로 반영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분이 진지한 입장에서 뜻길을 가고자 하면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 오기 전에 반드시 나쁜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나쁜 일을 겪고 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산에도 꼭대기가 있고 골짜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꼭대기와 골짜기는 산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멀리 떨어지지 않아서 간격이 없다면 높은 산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꼭대기와 골짜기라는 것은 상대적인 관계가 있는 동시에 하나의 산을 이룬다는 동질적인 입장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골짜기를 좋아하느냐, 꼭대기를 좋아하느냐? 누구나 골짜기보다 꼭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꼭대기는 반드시 골짜기를 거쳐야만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골짜기가 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일수록 정성의 가치를 더 절실히 느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 행로에서도 높은 길을 가려는 사람은 반드시 깊은 골짜기를 더듬어 그 골짜기 전체를 정복할 수 있는 중심적인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그러지 않고는 정상을 점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뜻과 우리, 통일교회와 뜻, 통일교회와 이 나라, 통일교회와 아시아, 통일교회와 세계, 통일교회와 하늘땅의 문제를 생각할 때, 말하기는 쉽지만 정녕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딜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는 지금 골짜기면 골짜기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요, 정상이면 정상에 자리 잡은 것도 아닙니다. 그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우리는 기필코 하나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만일에 그러한 터전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어느 한 사람이 이것을 품고서라도 책임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도,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남아질 수 있는 조건이라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정상적인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탕감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이 무엇이냐? 그 누구도 그 일 자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형태를 조건으로 갖춤으로써 그것을 감당했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높은 산의 모형을 만들어, 그 모형의 높은 꼭대기와 깊은 골짜기의 중간 입장에서 책임 못한 것을 끌고 나가든가 품고 나가는 중간적인 책임을 하는 것이 탕감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적인 탕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나온 과거를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결정하고자 할 때, 나는 그것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께 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항상 염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도 더 정성을 들이고, 뜻의 길을 놓고 하나님보다 더 염려하는 입장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러지 않아서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되지 않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탕감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뜻 길을 걸어 나오는 가운데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친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생님과 가까왔던 친구는 하나님께서 다 데려갔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를 생각해 보았더니 내가 그들 때문에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입장을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폐단입니다.
땅 위에서는 습관적인 생활권내를 벗어나기 어렵고, 환경의 인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폐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문제라든가 인간의 의리 문제나 사업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결정해 버리거나, 그런 일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환경을 나와 격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언제나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일면도 있습니다.
탕감은 반드시 최고의 자리가 아니면 최하의 자리에서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탕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공적인 입장에서의 탕감의 조건이지만, 최하의 입장에서 탕감하는 것은 반드시 보다 새롭고 선한 터전을 마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쳐서 그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생활 가운데에서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작년에도 우리가 이렇게 해 가지고 70년대로 넘어섰습니다.
지금까지를 뜻적으로 보면 언제나 둘째 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들도 언제나 둘째 번 아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둘째 아들인 아벨이 문제가 되었고, 노아 가정에서도 둘째 아들인 함이 문제가 되었으며, 아브라함 가정에서도 둘째 아들인 이삭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 6천년 역사를 두고 볼 때도 둘째 아담으로 왔던 예수가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언제나 둘째 사람, 혹은 둘째 가정, 둘째 번 책임을 진 나라가 문제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를 뜻적으로 보면 제1 이스라엘은 유대 나라였고, 제2 이스라엘은 기독교권이었으며, 제3이스라엘은 오늘날의 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라를 중심삼고 보면 제1 이스라엘은 영국인 국가권만을 형성하여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그 나라를 추구하여 나왔습니다. 그런 터전 위에서 땅과 하늘이 합할 수 있는 기점을 지니고 나타난 것이 제 3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땅 위의 나라로는 둘째 번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한국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요동하는 때입니다. 어느 해든지 4월부터 10월까지는 우리 협회에 있어서 문제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유협회장을 두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는 희진이를 책임졌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책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협회장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는 그 기준에서 희진이를 중심삼고 모심의 생활의 전통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희진이가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다 통회해야 합니다.그래서 선생님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염려한 것이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도 있고, 또 그의 몸이 불구라는 것이 그의 생애에 뼈저린 한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안팎의 문제가 염려되어 선생님이 그를 입원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수술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가외의 중상이 나타나게 되어서 죽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암이라는 병은 1년 반 내지 2년 이상의 잠재기간이 있습니다. 그 암이 그도 모르는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가 수술기간에 드러나서 이런 결과를 맞게 된 것입니다. 또 그 뿐만이 아니라 폐도 상당히 나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유협회장이 육체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무리를 하면서도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 나왔다는 것을 느끼는 바입니다.
이제 우리가 가신 분 앞에 해야 할 일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뜻의 길을 중심삼고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이 걸어 나온 길에는 이러한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그 사람이 젊어서 죽었느냐 늙어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영계는 상당히 바쁜 때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때에 땅 위에서 우리 인간을 필요로 하는 여건보다 영계에서 필요로 하는 여건이 더 크게 되면 그가 가는 길은 오히려 영광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비록 여러분의 마음이 슬프더라도 하나님께서 뜻을 중심삼고 이러한 탕감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적 슬픔을 지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수 있는 마음으로, 가는 아들을 하나님 앞에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울고불고하지만 우리는 그런 때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곳으로 갈 것인가를 알고 있고, 그 역시 자기의 갈 곳을 알고 갔습니다. 본인에게는 그런 증상이 있다는 것을 3일전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가게 될 것이 틀림없겠기에 모든 사실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도 뜻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갈 길을 이삼일 전부터 준비하고 간 것입니다.
어떤 영통인들은 협회장님은 갈 곳이 이미 영계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자가 오지를 못해서 떠나지 못한다는 말도 했어요. 여러분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선생님은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식구 외의 사람들도 많이 염려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듣고자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전화나 여러 가지 연락을 통해서 선생님이 섭섭할까봐 보고를 하며 위로하는 것을 볼 때에, 선생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공적인 일로서나 뜻적인 일로서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개인의 바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한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이 바라는 기준에 보조를 맞춰 갈 수 있는 그런 때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의 앞 길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골짜기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 것이냐? 죽음의 때가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그 골짜기를 악한 것으로 메우기 보다는, 선한 것으로 메우고자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골짜기와 정상은 반드시 선한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는 선하게 생각하여 하늘 것으로 여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골짜기도 선한 것으로 채워 하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작년과 금년에 벌어진 일들은 안팎으로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선생님이 벌써부터 염려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유협회장이 1차, 2차, 3차까지 수술을 받게 될 때에 영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은 했지만 선생님은 이미 최후의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를 위해 정성드리는 기간에 선생님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며칠 후에 그가 가게 된 거예요.
유협회장은 음력으로 따져서 희진 애기가 간 날짜보다 3일 뒤에(음력 1970년 6월 21일) 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둘째가 언제나 문제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가정의 둘째인 희진이도 갔습니다. (음력 1969년 6월 19일 별세) 이처럼 탕감역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통일교회의 원리는 막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역사노정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유협회장의 가정도 뜻적으로 보면 둘째 가정입니다. 그러한 입장이기에 선생님이 그에게 전체의 책임을 지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불구의 몸이었기에 지금까지 지탱해 나왔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70년대는 선생님이 이미 말한 거와 같이 통일교회가 자리잡을 수 있는 시대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금년부터의 3년간이 아주 중요한 기간입니다. 특히 금년은 아주 중요해요.
금년에 들어와서 그런 움직임이 네 번 이상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식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작년에도 여러 사람이 갔습니다. 금년에도 여러 사람이 갈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정성을 더 들여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사적인 문제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슴에 맺히는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그 아픔을 초월해야지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오직 뜻을 중심삼고 흘리고, 섭섭하게 생각되더라도 뜻을 중심삼고 섭섭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는 데에는 여러분이 상상도 못 할 어려운 고빗길이 많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는 그 순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탕감의 때이니만큼 아주 심각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각해야지 자기를 중심삼고 심각해지면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플러스와 플러스가 부딪히면 반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에는 침묵과 정숙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정을 넘어서부터 고요한 시간, 세 시면 세 시까지의 기간을 넘어가는 기간에 자기를 중심삼고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동적인 입장에 서지 말고 화동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정숙한 마음으로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함 무의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뜻에 보조를 맞춤으로 흡수될 수 있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후에라야 은사의 때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은사의 때라고 해서 함부로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이런 것을 잘 가릴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은사의 때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그 은사가 오히려 치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넘어야 될 탕감의 노정에서 그러한 일로 동요될 때가 많은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을 공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섭섭함을 금치 못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선생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뜻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엮어 온 역사노정에 어린 슬픔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입니다.
요셉 가정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정은 요셉 가정보다는 복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희진이가 간 것도 예수보다 복된 자리에서 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고방식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삼고 연결시키지 말고,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연결시키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위해서 나가는 종교 단체면 종교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해요. 그 나라를 위해서 정성들인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반드시 그 개인이나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반드시 귀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이번 일이 인정적으로 보면 슬픈 일인지 모르지만,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커다란 봉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는 것은 유협회장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잘못한 것, 내가 알기에도 몇 가지 잘못한 것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내가 어떻게 청산지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동정하기 보다는 어떻게 그의 잘못을 청산지어 주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땅에서 맺혀진 모든 원한을 죽기 전에 풀지 않으면 저 나라에서 그 원한이 영원히 맺혀 있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그가 뜻길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서 그것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 협회의 책임인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무슨 일을 중심삼고 유효원 협회장과 맺혀 있는 것이 있으면 이번 기간 내에 모두 풀어야 합니다. 공직에서 책임을 진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정책적인 내용에 있어서든 대외 활동에 있어서든 그와 다른 입장에서 섭섭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 그런 것을 다 풀라는 것입니다.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정성들인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과거지사를 청산지어야 하는 것이 우리 협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보는 입장과 뜻이 보는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입장과 뜻이 보는 입장을 반드시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엇갈려 벌어지는 탕감노정을 거쳐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당할 적마다 침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숙해야 된다든 거예요. 그러면 망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뜻은 제대로 모르면서 무엇이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영적인 안팎의 내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확실히 알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를 대할 적에는 엄숙해야 합니다. 누구든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하다가는 탕감법에 적용되어 걸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그렇다는 거예요.
문제는 협회장보다도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협회장은 하늘이 책임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취해야 할 입장이 문제라는 것을 아시고, 이 기간 동안 여러분이 섭섭하게 느낀 것을 인간적으로가 아닌 하늘적으로 청산지어야 하겠습니다.
유협회장이 57세이니 살아서 15년쯤 지나 70세가 넘으면 세상의 그 누구도 그를 전도사로 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래를 남겨 둔 자리에서 떠나간 것이 뜻 앞에서 탕감되는 조건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또한 국가적인 위기라든가 아시아적인 위기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교회가 이런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국가나 세계나 뜻 앞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고 이러한 일을 당할 적마다 더욱 정성들이고 기쁜 일이 있을 적에는 그걸 통하여 성장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통일교회에서 수련회를 하는 것도 국가적인 문제를 중심해서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우리를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전도 나가는 것도 이런 입장에서 나가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이 뜻길을 걸어가는 데에 있어서 제일 힘든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자리까지 올라서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 올라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수고하시어 끌어올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리를 어떻게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주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의 다 왔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때가 되었다고 그저 좋아만 하다가는 오히려 먹혀 버리는 것입니다. 한 바퀴를 완전히 돌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도는 순서라는 거예요. 맨 처음 첫번째 바퀴를 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두번 째 바퀴를 돌 때에는 그 시간이 더 짧게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돌아가는 횟수가 많아지고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순간 순간을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몇천, 몇만 번째를 넘어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안과 밖이 빨리 교체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도 바깥도 없는 자리, 전체가 하나된 자리에서 정상 궤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시련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오늘날까지 선생님이 뜻을 위해 생애를 바쳐 나오는데 있어서 시련노정을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망하라고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뜻 앞에 남아질 것이냐?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뜻길에서 그것을 어떻게 소화시켜서 평지로 만들 것이냐 하는 심정의 기대로 하늘 앞에 미쳐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좋은 것도 하나님과 함께요 나쁜 것도 하나님과 함께이며, 내가 남아지는 것 또한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지고 그 남아진 자리가 일반 사람보다 높게 되면 그것이 전체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뜻과 우리, 뜻과 나라는 입장을 두고 볼 때,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언제나 상반되는 입장에서 우리들과 관계 맺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둘은 서로 화합하지 않는 자리에서 여기까지 흘러 나온 것입니다.
개인으로 출발한 뜻이 가정의 뜻으로 점점 커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뜻으로 커져 700쌍의 축복가정을 준비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해요.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개인은 타락하여 몸과 마음이 분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을 중심하고 끌어내려서 하나로 만들어 하나님편의 가정을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공의를 가지고 인간이면 인간이 가야 할 행로, 가정이면 가정이 가야 할 공적인 행로를 위해 눈물짓고, 정성들여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의 인간이면 그 인간의 공적인 행로, 또는 가정이면 그 가정의 공적인 행로를 위해 눈물과 땀을 흘리면서 그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이 남아지느냐 안 남아지느냐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가정은 그런 사람을 중심삼고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나라는 충신이 책임을 집니다. 충신은 나라의 궂은 일이나 좋은 일이나 모두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만 책임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류가 바라보는 높고 좋은 그 자리라고 해서 그 자리만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주권자라고 해서 자신이 천하 제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망합니다. 언제나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서 말단의 문제까지 생각하면서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눈물도 자기를 위해 흘려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수고하는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이 삼천만 중에 가장 말단에 있는 불쌍한 사람을 생각하며 높은 자리에서도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공적의 혜택을 어떻게 해서 그들에게까지 나누어주느냐, 어떻게 하면 그 혜택이 그들에게 미치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진정한 충신이라는것입니다.
군왕을 중심삼아 가지고 군왕을 위하는 자리에서 명령을 무조건 따른다고 해서 충신이 아닙니다. 그 나라 역대의 모든 전통적 국무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만을 위주로 하여 명령하는 군왕에게 충성하는 신하가 있다면 그 신하는 간신입니다. 군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 놓고 충언하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충신은 언제나 다수를 중심삼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가려서 하고자 힘쓰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이 충의 도리입니다. 그런 충신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는 역사를 두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부모들의 가슴이 찡하게 될것이요, 나라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설혹 7,80년간 그의 생존기간에 그런 때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역사를 두고 보면 반드시 그런 때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길이 공적인 길이요, 하나님이 가는 천륜이기에 우리 통일교인들도 역시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만 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 단체가 있지만 그들은 전부가 자기들 멋대로예요. 나 자신도 통일교회만을 지도하면 통일교회만을 중심삼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현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가 오기 전에 통일교회는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이룬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하는 것이. 세계를 위해서 나가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팎을 지탱시키는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공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협의회라든가 승공연합을 만든 이유는 무엇이냐? 종교계에 있어서 제일 시급한 문제가 수많은 종단들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고, 나라에 있어 제일 시급한 문제가 반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반공운동을 우리 통일교회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가 안팎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인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종교를 중심삼은 통일의 역사도 우리가 할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물질적 손해와 인적 손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이것은 통일교회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한 것이요, 수많은 종교를 통합하여 앞으로 이루어야 할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라는 거예요. 이 책임을 다하고 나면 충신이 안 되겠다고 도망을 가도 충신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역사는 이렇게 수습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좌우가 엇갈리는 이때에 어느 나라가 공적인 입장에서 앞으로 올 세계를 위해 정성들이고 제물을 드리겠느냐? 그런 민족과 나라는 남아집니다. 그것은 미국도 아니고 소련도 아닙니다. 한국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선두에 서서 세계의 어떤 민족도 가지 못하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가면 세계는 반드시 한국을 중심삼고 규합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근거로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이미 세계의 흐름이 동양으로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 협회는 지금 어려움을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협회장이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오히려 앞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뜻입니다. 또 그렇게 되리라고 보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뜻을 품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더라도 서러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은 반드시 가야 되는것입니다.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망해 가지고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때까지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 통일교인들은 뜻을 위해 죽음길을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느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이번에도 어떤 아주머니가 선생님을 찾아와서 병중이라고 얘기하길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갈 때가 되면 가야죠….' 하더군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신도들이 위대하다는 겁니다. 선생님도 하나님 앞에 보람이 있는 때에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환경으로 인한 모든 곡절을 타파하며 싸워 나왔어도 살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먼저 죽어간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 저 나라에 갈 때에 뜻을 위해 살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나 공신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맞아 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또는 이 뜻을 위해서 희생한 수많은 공신들의 환영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내용을 갖고 가야 되겠는가?
우리의 뜻이 세계적인 뜻이라면 이웃 국가 일본에게도 해야 할 책임이 있고, 각국 여러 나라에게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난길을 거치면서도 세계에 선교사들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책임을 하는 데에도 먹고 남아 가지고, 쓰고 남아 가지고, 그렇게 여유가 있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개척할 때도 그래요. 나는 감옥을 들락날락하면서도 그때 돈 150만원을 빚을 얻어서 그(최봉춘)를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 국가인 일본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자유당 시대였지만 선생님은 10년 이내에 그가 다시 조국 앞에 설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를 떠나 보낼 때, `너는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을 구해야 된다'고 하면서 보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계획 아래 떠나 보냈는데 그가 1차, 2차 전부 실패하고 돌아와서는 못 가겠다 할 때 `이 자식아! 죽더라도 현해탄을 건너가 죽어라'고 하며 내몰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누구든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자신의 생활도 영위하기 어려운데 빚을 얻어 그런 일을 하니 이해 못 한다는 거예요. 누가 그런 모험을 할 수 있겠어요. 이처럼 뜻이 가는 길은 좋을 때 평탄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울 때 하는 거예요.
그 일이 후에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법치국가의 법적 규제에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의 법을 지키는 것만이 충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미래의 세계를 위하고 염려하면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세계를 구하겠다는 입장, 대한민국과 미래의 뜻을 위한다는 입장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어려운 입장에 있는 나라에 크나큰 하나의 소망의 터전이 되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나라에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협회의 책임자들을 전부 잘라 냈던 것입니다. 지방에 내려가서 고생하라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뜻을 위해 충성해야 할 사명이 있으니 고생을 시켜야 됩니다. 아무리 고생을 시키더라도 그들은 내편이요, 우리 편입니다. 선생님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와 세계를 위하는 명령이니 그 길을 가는 것이 뜻이 가는 길이요, 공적인 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죽지 말고, 원수되지 말고, 배반하지 말고, 끝까지 남아지라는 것입니다. 참고 남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수고의 천배 만배를 갚아 줄 것입니다. 그런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런 것을 생각하여, 협회장이 떠난 일에 대해 섭섭해 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협회장을 염려하던 그 사람들이 앞으로 저 나라에 가서는 협회장과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여러분이 `뜻길! 뜻길!'하며 가는 길은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온 세계가 요동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누가 역사적인 본이 되어 역사를 움직여 갈 것이냐? 그럴 수 있는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는 세계적인 단체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통일교회가 하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일을 싫어합니다.
요전에 신동아에 통일교회는 신흥종교라며 많은 얘기를 써 놓았더군요.
거기에서 문제되는 것을 그들도 알긴 알아요. 승공활동이니 대학원리연구회니, 이번의 700쌍 합동결혼식이니 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신흥종교로서의 통일교회에 대하여 얘기를 써 놓았더라구요. 통일교회가 신흥종교의 중심이 되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신흥종교뿐만 아니라 기성종교든, 어떤 종교든 다 흡수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의 근원을 살펴보면 제일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신흥종교인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길고 먼 역사 가운데 있어서 통일교회가 가야 할 내적인 수난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난으로 출발하여 수난 속에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수난을 딛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수난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망하는 것 같았지만 수난으로 말미암아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승공활동도 이미 60년대부터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대공관계를 중심삼고 법무부를 통해서 교도소의 간첩들을 세뇌시켜서 남한 일대의 공산당의 프락치들을 전부 들추어내려고 공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더라도 때는 기필코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에 세계 정세가 얼마나 많이 변하고 달라졌습니까? 또 앞으로 70년부터 80년까지 얼마나 변하겠습니까? 지금까지 60년부터 70년까지 10년 동안은 어려움이 많은 수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하여 활동하는 통일교회이기 때문에 국가가 통일교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외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우리 승공수련회에서 수련받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세요. 어떻게 그렇게 달라지느냐 이거예요. 불과 나흘 동안 교육받고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지방 유지들 270명을 모아다가 교육을 시키는데 처음에는 자네들끼리 싸우고 별의별 일이 벌어지고 하더니 나중에 어떻게 하여 5일 동안 교육을 받고 이처럼 달라졌느냐며, 그들 자신도 그것을 궁금해 하고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알지 못할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물어 보아도 그들도 왜 그런지 모른다는 거예요.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별스럽다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 기간에는 사상문제를 담당하는 경찰서의 정보계장이 다섯 명인가, 여섯 명인가 수련을 받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그들부터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경찰국장의 특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경찰서장부터 전부다 받게 할 것입니다.
처음에 와서는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창피하다' 하기도 하고 또 깐족거리던 기성교회 장로들도 수련을 마치고 돌아갈 때쯤 되면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야단을 치는 거라구요. 왜 우리를 원수시하느냐? 우리 기성교회 목사들한테 벼락 맞아 죽으라고 욕을 했느냐며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밥을 달랬어요, 옷을 달랬어요? 자기네들 안방을 내놓으라고 탐구질을 했어요? 뭘 어떻게 했느냐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성교회에서 빼내온 사람이나 많아요? 새사람 되려고 몇 명이 오긴 왔지만 그 몇 명 때문에 해방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원수처럼 여긴 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들도 우리에게 흡수될 것을 알기는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가만히 있기나 하지. 그렇게 되어 있으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뭐가 어떠니, 어떠니 하면서 교회 비평을 하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직은 그늘에 살면서 나타나지 않지만 준비는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번에 일본에서 와클(WACL) 약진 국민대회 한 것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사또 수상으로부터 자민당 부총재니, 무슨 간사장 로스끼니 혹은 후꾸다니, 전수상 기시니 이런 사람들이 이번의 와클대회에 대하여 근자에 신문에 사진까지 실어가며 말한 것들을 보면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들이 왜 그러느냐? 나는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한 일을 지금 한국인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문선생을 위로 교회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그냥 통일교인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성사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나는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피곤한 때는 피곤을 푸는 운동을 합니다. 보통 사람은 그냥 쉬려고 하지만 난 스스로에게 그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운동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공적 생활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뜻과 우리, 뜻과 나라는 관계를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이 세계를 위해서 일할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생활하는 사람이 나라의 중심이 될 수 있겠으며 가정의 중심이 될 수 있겠으며,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만을 중심하고서는 몸뚱이가 하자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려다 보니 주일에 교회도 못 나오며 그러면서도 나는 인생을 안다 하는 것, 그것은 양심이 원하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사적인 길이 아니라 공적인 길인 것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려는 사람이라면 공적인 눈물, 공적인 피, 공적인 땀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 흘린 피와 땀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개인을 위한 피와 땀을 흘리면 그것으로써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피땀은 흘리면 흘릴수록 그것이 망해 가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린 것을 그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후세에 남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일은 근본적으로 남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한 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자기 집보다 크고, 자기 친척보다 범위가 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가야 할 길이 충신의 길이요, 사랑하는 처자를 버리고라도 가야 할 길이 충신의 길입니다. 내 욕심만을 앞세우고, 자기의 혈족만을 중심삼고 `나 못 간다'하는 사람은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성인의 길은 나라를 무시하고 세계를 위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백성이라고 대한민국만을 위해 갈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 나라가 망하더라도 세계를 위해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성인의 길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성인들이 아직 가지 못한 길을 가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갈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다 공적인 일을 위해 나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유협회장 문제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이 일을 계기로 얼마만큼 뜻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그가 이 땅에서 하지 못하고 남기고 간 민족 복귀라는 큰 과제를 앞에 놓고 그 일을 완수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며 가야 할 우리 통일교인이 가져야 할 본래의 마음을 가지고 가중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심으로 각자가 단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이번 기간을 엄숙히 보내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예」
지금까지 흘리던 눈물은 이제 그만 훔치고 통일교회내에서는 눈물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놓고 뭐가 어떻고 어떠니 하면서 말을 많이 하던 일반 사람들은 통일교회 협회장이 죽었으니, 통일교회 망한다고 전부 떠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다 해도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전하려면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들이 먹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 있다 이겁니다. 자신을 가지면 그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봄철이 되면 뱀이 허물을 벗지요? 허물을 벗으려면 반대적인 것, 즉 돌 틈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때일수록 어떻게 하나님과 더불어 짐을 짊어질 수 있겠는가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앞으로 복귀하는 일이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을 필요하면 자꾸 데려갈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앞에 피와 땀을 흘리며 고생해 나왔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충성의 도리를 다하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이 민족에게는 외면당하고 욕을 먹고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변명해야 소용도 없겠지만 선생님은 변명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침묵이다'오직 공인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드러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을 주도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모셔 온 하나님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욕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남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덜 놀고, 피눈물을 쏟으며 나온 결과입니다. 결코 그런 길은 망하자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형무소에 붙들려 가서 투쟁하며 저자세로 지금까지 나온 것도 그 한날을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용서를 해 주고 용서를 받는 데도 천륜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선생님을 만나자고 하더라도 관계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어떤 교파든 관계없이 선생님이 정상에 올라서면 그들은 머리를 숙이는 자리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70년대를 맞이해서 그럴 때가 되어 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욕을 하더라도 누구 못지 않게 할 수 있고, 사람의 심리분석을 하더라도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불안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협회장이 갔지만 땅의 일은 걱정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요. 이렇게 위로하는 선생님의 뜻을 알고 여러분 각자는 협회장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나가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그가 남겨 놓은 것까지 이루어 드리겠다며 28일까지 그의 명복을 빌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가 하지 못한 것까지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날 유협회장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서대문 형무소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어려운 일에 있어서 불구의 몸으로서 선생님을 도와 주던 것들이 선생님의 뼛골에 사무칩니다. 그런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직접 간접으로 선생님을 도와 모든 일을 처리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협회장과 선생님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중심사고 협회장이 수고의 노정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 때에, 앞으로 그이 아들이나 그의 가정에 대해서 우리 협회에서는 어떠한 책임을할 것이냐? 어떻게 대해 줄 것이냐? 이러한 내적인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가 땅 위에 남긴 일을 통해 얼마만큼 그와 인연지어질 수 있는 조건을 남기느냐, 우리 통일교회가 얼마만큼 그러한 조건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영계에 간 유협회장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알고 공적인 길을 가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통일의 아들딸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아버님, 당신의 역사는 피 흘리는 순교를 통하여 엮어졌다는 것을 저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느끼고 있습니다.
무지한 백성들은 나라의 주인도 모르는 채 자기를 중심삼고 기뻐하면서 살아가고 있사옵니다. 이런 것이 이 땅의 백성들의 실태이옵니다. 책임진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기 못하고 염려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날 이 땅을 대하여 최고의 위치에서 주관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역사가 얼마나 비참하였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한 나라의 백성을 책임지는 주권자도 수많은 날들을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수고하지 않고는 성군의 이름을 남길 수 없사온데, 하물며 역사적으로 세계를 대하여 수고하시며 섭리해 나오시는 성군 중의 성군인 아버지의 입장이니 얼마나 어려우셨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면 불쌍한 것은 우리 나라도 아니요, 우리 민족도 아니요, 우리 자신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불쌍한 것은 아버지요, 아버지 가까이에 있으려 했던 사람들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제일 불쌍하신 분은 아버지요, 다음으로는 당신의 아들인 예수님이요,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이요,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려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했던 그들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그들이 역사노정에서 시련을 겪으면서 수고한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시대의 책임을 짊어진 저희들은 역사의 배후에 있는 전통적인 내용을 상속받기 위해서 오늘 이 시대를 향한 아버지의 염려를 제하여 버리고, 밤을 세우고 생명을 바쳐 정성들이며 싸워 나가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런 아들딸들에게 천만 배의 복을 주시는 거룩하신 아버지이심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저희가 슬퍼하기 전에 눈물짓는 당신이 아니옵니까? 이러한 당신이 계심을 행복하게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죽음의 길이 쌍곡선을 이루어 엇갈리는 시대 속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그 길은 가야만 할 길이기에 권고하지는 못해도 천만사정을 통하여 그 길을 갈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사옵니까? 아버지께서 상징적으로 충효의 길을 가르쳐 주었어도 깨닫지 못하였던 수많은 역사노정의 선지선열들을 보아오신 당신의 애달픈 심정의 배후를 저희들은 그 표정을 보고서 깨달을 줄 알아야겠사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슬픈 역사노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가을절기로부터 겨울절기와 같은 시기를 거쳐 왔사옵기에 이때만 지나면 새로운 봄절기가 오는 전환기에 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그런 경계선에 저희들이 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70년대를 맞이한 저희들은 금년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세워 역사적인 사명을 다짐하였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개인과 가정이 하나되고,나아가 가정과 민족,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가 하나되어 절대적인 섭리사에 결정지어야 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환경을 품어 아버지께로 돌려드리면 그 환경은 점령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럴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하여 저희들은 뜻을 중심삼고 교회를, 교회를 중심삼고 나라와 민족의 해방을 책임지고 나가야겠사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가야 할 행로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길이 아무리 피로하고 어렵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낙심하게 되면 아버지께서는 더욱더 수고하시는 입장에서 슬퍼하셔야 되니 이것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충효의 도를 따라서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끈기있게, 점진적으로 개척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협회장은 영계에 갔어도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간 것으로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 땅 위에 남은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여 부끄럽지 않고 스스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영계의 협조로 말미암아 영계의 기쁨을 지상의 기쁨으로 연결시켜 이 나라 이 민족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앞으로 다가올 모든 고빗길에 대비하여 새로운 기력을 형성하여 그것을 하늘의 발판으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타난 다윗의 용맹함을 갖춘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결의를 다지는 저희에게는 오로지 아버지밖에 없사오니,당신의 힘만을 의지하며 남아진 그 길을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 그 세계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당신과 함께하고, 어떠한 기쁨도 당신과 함께 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더욱이 인생은 한번밖에 없는 것으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동안에 책임을 다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인류의 역사적인 원한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원한을 풀어드리지 않고 아버지 앞에 가게 되면 당신의 심적 앞에 나타날 부끄러운 사실들을 어떻게 감출 수 있겠사옵니까? 그것을 염려하게 되는 모습일 것을 아오니, 이 땅 위에 있는 동안에 어떠한 어려운 환경이 오더라도 그것을 달갑게 소화시켜서 공적인 세계 앞에서 아버지의 공인을 받아 당신이 내세워 자랑하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랑스런 아들딸이 되겠다고 정성을 다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니다.
이번 일이 협회에 마이너스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플러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좀 더 피땀을 흘리고 충성을 하였던들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궐기하고 단결할 수 있는 기원으로 삼아야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영계에 간 아들의 명복을 비는 일이요, 그 아들의 소원일 것이옵니다. 하오니 그가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대신 책임질 것을 각오하여,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다시 결속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의 서글픈 환경과 급박한 현세 등 모든 민족의 수난을 대신해서 맞을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또한 재출발함으로 말미암아 먼저 간 아들의 책임을 저희들이 대신하여 하나의 조건으로 세우고 당신 앞에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계 만민에게이 새로운 길을 찾게 하기 위해 한 목적을 세워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길을 수습하는데 하나의 거룩한 추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70년대의 통일의 운세를 고이고이 소화시켜 풀고, 하늘의 새로운 용장들로서 나타나 만국 만민 앞에 본될 수 있는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는 거룩한 움직임이 이 시간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번 기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을 느꼈사오니, 협회를 염려하기 보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자신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전체도 아버지께서 친히 맡으시옵소서. 금후에 협회가 갈 길과 저희들이 가야 할 이 개척의 노정에서 당신 앞에 보람이 될 수 있는 자리에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도록 저희에게 힘과 능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서글픈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면서, 염려하는 수많은 아들딸들을 아버지께서 무한히 위로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해외에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명복을 빌며 바라는 마음을 아버지여 아시옵고, 영계에 간 아들을 통하여 새로운 교훈을 남기는 새로운 섭리를 하시는 특별한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뜻이 당신의 영광 가운데서 이루어질 때까지 저희들은 당신을 믿고 따르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남길 것을 결의하는 저희 협회가 되고, 저희 개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소원하는 본향의 나라가 길이길이 빛나는 영광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복귀섭리의 노정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앞으로 가야 할 싸움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을 절절이 느끼옵니다. 오늘의 이와 같은 기준을 마련하시기까지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해 아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부족한 저희들은 마음을 모으고 옷깃을 여며야 되겠습니다. 행여 그런 당신의 현재의 입장을 동정해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식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설 뿐이옵니다.
지금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새로운 역사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남기신 아버지의 수고의 역로였사오나, 이런 아버지의 배후와 전후 좌우에서 아버지의 편이 되어 심정으로 그리는 하나의 소원을 갖춘 입장에서 아버지를 동정하고 위로하는 한 사람의 동지도, 한 사람의 아들딸도 없었사옵니다. 그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처량하였던가를 생각하며 오늘날 이와 같이 부끄러운 선조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신들을 탄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나이다.
아버지여, 저희들에게 슬픈 사실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지의 슬픔에 의한 슬픔이 되어야 되겠고, 저희들에게 기쁨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지의 기쁨에 의한 기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기쁨을 아버지의 슬픔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앞에 효도를 다 할 수 있는 조상들을 갖지 못한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선조들의 모든 부족한 것을 용납해 달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진 것만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당신은 천만번의 수난의 길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나오셨습니다. 거듭되는 고난의 역사시대를 거치면서도 그 시대마다 참으시기를 생활의 천리로 삼아 나오셨사옵고, 희생하기를 생활의 표준으로 삼아 나오셨사옵고, 밟히고 치욕당하는 일을 하나의 낙으로 삼아 나오셨사옵니다.이런 아버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 이상 원통한 것이 없음을 느꼈사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 보잘것없이 쓰러져 가는 이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수습하여 놓으시고, 이들을 바라보시며 원대하고 방대한 섭리의 목적과 우주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주길 바라시는 것이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마음임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계에서 훌륭한 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이 민족 가운데에서 불쌍한 저희들을 찾는 것이옵니다. 저희들에게 아버지의 전체의 시선과 전체의 심정이 향하여 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몸둘 바를 모르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명 앞에 선 저희들이 아버지의 동정을 받고, 아버지의 염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도 두려운 사실인 것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나라는 개체는 나 자신 하나만이 아니라 역사과정의 시대 시대를 거쳐오면서 역사적인 실체라고 부르고 그리워하시던 그 모습인 것을 알게 될 때에,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다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것을 느낄 줄 모르는 불쌍한 자식들이 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과거의 인연만이 아니라 현재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혼탁한 세상, 혼란된 역사적인 모든 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밤낮으로 권고하시며 채찍질하시옵는데, 이 세상에는 그런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위로해 드릴 자가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통일교단의 창설은 아버지의 수고와 피와 땀과 눈물의 보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진정으로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터전을 유린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경거망동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이 여기에 모인 것을 당신이 잘 아십니다. 저희들에게 귀한 것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당신이 다 가져가시더라도 저희들은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자랑하고 싶은 그 무엇을 당신이 몽땅 빼앗아가도 저희들은 염려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온전히 아버지만이 기쁠 수 있는 일이요, 아버지 앞에 플러스 될 수 있는 일이라 할진대는 천번 만번이라도 그 일을 자랑하여야 할 저희들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기간을 통하여 역사시대를 거쳐오시던 아버지의 슬픔의 환경을 다시 한 번 회상해야겠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박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저희들을 대하여 갖은 말로써 비판하는 기간도 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비난의 화살을 문제삼지 않고 당신의 마음 앞에 위로의 대상이 되어 현재 처해 있는 민족의 한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아시아의 어려운 고빗길을 저희들이 붙안고, 세계의 종교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지고 희생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아들딸의 사명이며 이제 그 길이 열린다 할진대는 어떠한 수욕이 있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에게 귀한 것이 있다면 그 귀한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기에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순응해야 할 것이 아들딸의 도리인 것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은 당신이 이 땅 위에 보내셔서 수난의 생애를 거치고 고생의 길을 가게 하신 한 아들과 최후의 작별을 하는 날입니다. 여기에 모인 자들의 마음 마음을 당신이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세계의 정세로 보나, 아시아의 정세로 보나, 한국의 정세로 보나 최후의 정세를 펴는 이런 시점에 있어서, 아버님은 반드시 사랑하는 그 무엇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이 나라 이 민족은 물론 이 세계 복귀섭리 앞에 좋은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행하실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그 일을 위하여 감사할 수 있는 무리가 되는 것이 여기에 모여 무릎을 꿇은 당신의 자녀들의 소망이옵니다. 저희들은 이 일을 위해 큰일을 당할 때마다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가정에서부터, 사랑하시는 교회에서부터 이런 일이 있으며, 이것이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에 기념될 수 있는 하나의 엄숙한 시점인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오늘 영영 이 땅에서 사라져 간 당신의 아들을 당신의 품에 고이 품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참되게 싸워 한을 풀고 결실할 수 있는 한날을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 들였습니다. 식구들 또한 그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들였으나 당신의 뜻이 있는 연고로 갔사옵니다. 그가 이렇게 간 것을 당신 앞에 맡긴 것으로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을 가지고 간 아들의 앞길을 축원하는 것이 남아 있는 저희들의 사명이요, 또한 그 아들이 이 당에 남기고 간 일에 책임져야 할 것이 남아 있는 저희 형제들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민족에 대한 책임을 위해 나라 대신으로 세워서 역사시키고자 하셨던 그 아들이 갔으니,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은 마음속 깊이 간 협회장을 대신하여 각자 자기의 처소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기에 누구한테도 지지 않겠다고, 온갖 정성을 다 들이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간 아들을 위하는 길이요, 그 아들이 이 땅 위에 남기고 간 일을 상속받는 길이 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겠다고 스스로 아버지 앞에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땅의 일들은 저희들이 책임지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진군할 것을 결의하옵니다. 영계에서도 그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아들을 세우시어서 갈라진 영계와 육계의 중간역할을 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과 이 세계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막아냄은 물론, 수많은 영인들을 지상에 동원시켜 새로운 역사의 기반을 닦는데 도움이 되는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오늘 이 시간을 기하여 자녀들이 바라고 있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통일의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이 온 영계를 수습하여 원수들이 바라는 그 세계를 선의 세계로 복귀함에 있어서, 선한 영들을 동원하여 악한 영들을 수습하는 일선에서 안팎으로 갖추어 싸우는 데 있어서 협조하여 줄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는 남아 있는 사랑하는 딸과 자라고 있는 어린 아들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서 사랑하는 딸과 귀여운 아들들로 길러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유협회장을 위하는 마음으로 남아 있는 딸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는 무리가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부를 책임 맡았던 그가 그 모든 전체를 남기고 갔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식구들은 각자가 맡은 부서에 대한 책임감을 배가로 가짐으로 먼저 간 협회장의 일을 덜어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일의 싸움터를 향하여 저희들은 또다시 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이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 노정은 기필코 탕감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 다가오는 운명의 한때를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이 7월을 중심삼은 안팎의 절기가 영원의 절기로써 잊혀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우리 협회에 새로운 소망과 희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사적인 새로운 인연이 연결되어 천상의 인연과 일치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과 아시아에 새로운 인연이 출발하는 하늘의 내적 기반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의 영원한 생명의 인연을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그로 하여금 땅 위에 있는 모든 염려를 끊게 하시옵고, 영계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서 전체의 책임 수행에 충성을 다하게 하시옵소서. 땅에서 하지 못한 것을 영계에서 완결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책임을 지고 더욱 모범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땅 위에 남아 있는 저희 형제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무리가 아니옵니까? 저희들이 땅에서 사는 이 한 기간은 아기가 복중에서 자라고 있는 기간과 마찬가지의 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이 슬퍼하는 그 죽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육적 생애를 떠나서 영원한 생애로의 새로운 출발이요,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탄생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며, 이 길은 어느 누구나 기필코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기간을 새로운 계기로 삼아서 자기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가느냐 하는 문제를 심사숙고하여 스스로 갈 길을 닦음으로 지상에서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본보기 노정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으면서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이 슬픈 마음을 품고 이날을 지내고 있사오면, 그 마음을 당신이 직접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해외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비보를 듣고 이 한국을 향하여 눈물로써 기도하면, 천만 배의 복으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외로이 눈물짓는 눈물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는 눈물일 때, 그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들이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는 모든 사실들을 천정의 인연이 저희 민족과 세계 인류에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로, 하나의 조건으로 삼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상복귀의 인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아버지의 활동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뜻을 더 염려하여야 되겠습니다. 뜻을 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간 아들은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이제는 안심하고, 그 아들을 생각하는 이상 뜻을 위하여야 될 책임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민족 복귀라는 거룩한 과제가 저희 앞에 다가온이 70년대는 통일의 운세가 뻗어 나가는 시대이옵기에 10월까지 정성들이는 기간에 여러 가지 복잡한 고빗길이 있을 줄 예상하였사옵니다. 지금 이것이 이렇게 사실대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탕감의 법도는 어길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노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오늘 저희의 불충이 자기 자신에게 미쳐지는 것만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후손과 민족과 세계 인류 앞에 미쳐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분부와 명령에 대해 가일층 책임을 느끼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기준 앞에 어긋날까봐 온갖 지성과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는 자녀들이 되어 내적 결의와 외적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사랑하는 통일교단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이 교단을 지도하는 것은 문 아무개도 아니요,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오직 당신이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이 교단을 이끌어 오셨으며 이 교단은 이끌림을 받아 가지고 나오던 노정이 50여년을 지나 이와 같은 자리에 선것을 생각할 때에, 제가 아버지 앞에 면목없어 함을 아버지께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야 할 고빗길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저희들의 십자가가 가중되어 있어 아버지 앞에도 저희들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고비의 행로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은 하루하루 마음 조이면서 아버지 앞에 동정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알고있습니다.
당신이 동행하시사 이 통일교단의 운명을 당신이 맡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이 교단인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이 전권을 가지시옵고 중심이 되시옵소서. 내일부터 또 가야할 길로 저희들을 채찍질하시어 내몰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을 복귀시켜야 할 사명을 앞에 놓고, 세계를 대신하여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앞에 놓고 몸부림치며 가야할 행로 앞에 당신이 눈물짓는 일이 없도록 저희는 정성에 정성을 가하여야 되겠습니다.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아침과 저녁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의 생애를 다하여 이 길을 달려가고 또 달려가는 충효를 남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와 같이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교단에 속한 당신의 아들딸들은 자기를 위하여 생각하는 것을 초월해야만 되겠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생각하는 길은 막히는 길이요, 자기를 세우는 길은 죽음의 길이오니 그러한 길에 처하는 무리가 없게 각자의 마음에 겸손이 동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충성의 마음을 일깨우셔서 당신께서 승리하시는 그날까지 그 마음이 지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절개와 기개를 각자의 생애노정 위에 남기게끔, 아버지께서 공고히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방에 있던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인간들이 추모하는 것과 같은 슬픔의 추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는 이와 같은 날들이 수없이 많았겠지만, 오늘 저희들은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이 날을 맞이하여 새로운 역사의 인연을 새로운 터전 위에 세워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사람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 땅 위에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게 아버지의 협조의 인연을 공고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70년대를 당신이 맡으시옵소서. 이 나라를 염려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이 나라를 책임질 사람은 저희들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이 이 나라를 책임져야만 되겠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저희들을 위한 길보다 더 큰, 이 나라를 위한 길이었사오니, 이 나라를 위한 십자가의 길은 저희에게 맡기시옵소서. 그 십자가의 길은 찾아가게끔 밤낮으로 당신이 몰아내는 데 있어 저희들이 지치지 않을 마음의 친구가 되고, 생활의 동지가 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의 모든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에게는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책임질 사명이 있는 것이요, 이 세계를 책임질 사명이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때에, 이번에 간 아들도 생전에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기준 앞에 100퍼센트 도달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성격적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잘못을 아버지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부복하여 바라고 있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번에 간 아들을 이 민족을 대신한 제물로서, 또한 인류가 지니고 가야 할 십자가의 행로를 대신 갈 수 있는 영광의 동참자로서 환영하여 주시옵고 사랑해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에게 슬픈 것이 있다면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서 그 아들을 중심삼고 일을 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한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억울하고 섭섭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바라보며 나아갔사옵니다. 당신이 지금 저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는 갔어도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요, 이 자리에 없더라도 저희들을 협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내가 바라는 모든 뜻을 이루고 당신의 뜻 앞에 선두에 서서 달려가야 할 한날을 위하여 다시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으로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엎드린 당신의 자녀들이 10년, 혹은 20여년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나왔다고 하지만 천륜 앞에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무어라 말로 할 수없사옵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그러한데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섭섭한 것이 많으셨겠습니까?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여 민족 해방의 서광을 통일교단에 비출 수 있도록 새로운 기치를 들고 나서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잊을 수 없는 지난날들의 추억과 더불어 연상되는 모든 사연들이 하늘가는 길 앞에 방해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하늘 가는 길앞에 참이 되고 하늘의 동지들 앞에 힘이 되고, 하늘의 뜻 앞에 공고한 터전이 되어 당신이 만날 아들딸 앞에 충성의 아름다운 미를 단장할 수있는 인연들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철부지한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손길로 따듯이 맞아주시옵소서. 자기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에서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애가 되어 곤욕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손에 붙들려 가지 않겠다면 끌려라도 가고 채찍질을 당하면서라도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될 것을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땅에서의 여생을 당신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시는 책임과 더불어, 당신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기뻐할 수 있는 섭리적 터전과 더불어 힘차고 가치 있게 살게 하시옵소서. 당신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효가 무엇이며 충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축복가정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아버지여, 36가정에게 세계사적인 책임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책임하지 못하였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72가정, 124가정들도 여기에 모였사오며 430가정도 참석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축복가정의 권위와 위치가 얼마나 엄청나고 두려운 것인가를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가정으로서의 긍지와 가정으로서의 고귀함을 지니고, 사탄 앞에 권위를 가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내세워 자랑하고 칭찬할 수 있는 가정의 일원들이 되겠다고, 아버지의 사정과 동정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눈물어린 심정의 터전이, 보금자리가 되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여기에는 축복가정이 아닌 식구들도 많이 모였사오니, 당신이 허락하신 뜻앞에 있는 그들의 마음을 아버지, 뜻 안에 품으시옵소서. 새로운 시대에 남은 싸움터를 지키고 각자 맡은 바의 책임 수행에 있어서 아버지가 명령하는 것 이상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온갖 성심과 성의를 다 기울일수 있게끔 힘을 가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참부모의 이름을 통하여 참다운 자녀들이 하나 돼야 하겠고, 참다운 가정을 중심삼은 수많은 축복가정들과 수많은 통일의 무리들이, 한국을 중심삼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혼란기를 수습해야 할 천적인 인연을 꼭 붙들고, 죽든지 살든지 승리의 그날까지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저희의 소원으로 알고 일체가 되어서 모든 전체를 바치는 제물이 되더라도 이 기준을 남기고 가겠다고 총결의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로써 슬픔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제 사흘만 지나면 희진 애기가 갔던 양력으로 8월 초하루가 됩니다. 이번 기간내에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안팎으로 슬픈 일이었지만 그 모든 전부를 이 민족의 한 고비로서, 이 세계의 어려움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한 계기로서, 아버지, 인정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천상의 인연을 따라 살 수 있는 지상의 인간들이 되어서 새로운 소망을 그 마음에 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소망의 천국을 그들이 사는 터전 위에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전부를 당신 앞에 맡기 올 때,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이 시간 여러분 앞에 잠깐 말씀드릴 제목은 `생사의 한계'입니다. 오늘과 같은 날을 맞이할 적마다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일생을 어떻게 살다가 종말을 맞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으리라고 봅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는 물론이요 후세까지 하나 알아야 할 것이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은 병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인간들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상반된 환경에서 가려져 나가고, 또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극이요, 인류의 비극입니다.
만일에 인륜을 중심삼고 가는 길이 하나의 원칙에 방향을 갖추어 나가 천륜과 보조가 맞는다면, 오늘 인간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요, 인간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슬픔은 하나님의 슬픔이 될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우리 인류 앞에 기쁨과 슬픔을 같이 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기쁨을 위에 두고 슬픔을 반응적인 것으로 두었을 것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높은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자극의 요인으로 삼기 위해서라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그 기쁨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슬픔을 주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붙들고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를 물어 보더라도 인간의 생활은 비극이라고, 인류가 살아 나온 역사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러한 역사시대를 우리 선조들 역시 살다가 간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역사가 엮어져 나왔다면 시대의 환경을 감싸 가지고 새로운 역사시대, 미래로 향하는 이 순간에 있어서 내일을 어떻게 되어질 것이냐?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슬펐던 모든 것을 내일에 슬픔으로 넘겨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일 것이냐? 땅 위에 어떠한 뜻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그도 그 슬픔을 자기 대에서 종말짓고 싶지 자기 후대에 넘겨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단체적으로, 가정적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 한계는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그러한 한계가 있더라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그 한계권내에서 스스로 선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천성의 인연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자연적인 심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비극의 역사, 슬픔의 모든 요인을 내 일대에서 막을 길이 없겠느냐? 내 일대에서 안 되면 우리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가정으로 안되면 우리 친척이면 친척,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심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그것으로 안 되면 어떠한 다른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민족을 통해서도 안 되면 어떠한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워서라도 막을 길이 없겠느냐? 이것은 선한 미래를 남기고 싶고, 기쁘고 행복한 미래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대사가 아닐 수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슬픔의 역사가 미래에까지 지속되기를 과거에도 생각하지 않으셨고 현재에도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비극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서슴지 않고 `오냐, 남기고 싶었던 소원의 실체가 나타났구나!' 하시며 역사를 들어 맞이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타났다면, 그 가정 앞에 세계의 슬픔을 다 책임지워 주고, 그 가정 앞에 전부를 맡기고 싶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럴 수 있는 씨족이 있으면 그 씨족 앞에 맡기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미래에 이러한 원한의 터전이 남아지기를 원치 않으니 자기들에게 그런 화를 막아내는 책임을 지워달라고 하는 민족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 앞에 서슴지 않고 슬픔으로 엮어온 역사를 몽땅 책임 지울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을 제물삼고, 하나의 국가를 제물로 삼더라도 하나님은 당장에 그슬픔과 어려움을 그들 앞에 맡기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 민족이 죽어 가는 입장이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보기에 끔찍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고 싶으신 아버지의 내심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선민을 택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선민을 세운 것은 세계적인 행복을 최후에 누려 가지고 역사의 슬픔을 대신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역사적 행복을 누리라고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민족을 앞세워 가지고 최고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독자적인 주권을 중심삼은 행복의 터전 위에서 그들만 행복하고, 그들만 기쁠 수 있는 자리를 맺어 주기 위해서 세운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종교를 세운 원인이 어디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참된 하나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한꺼번에 찾아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종족의 배후를 더듬어 가지고 하나의 모습을 길러 나오는 것입니다. 온상의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그 민족 나름대로 가는 모든 정성의 도리를 가려 주기 위해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키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인들은 역사적인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소원의 한 개인, 소원의 한 종족, 소원의 한 민족, 소원의 한 국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신앙을 하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책임을 짊어진 종교가 어디 있었느냐?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그런 종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도 그러지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유대교를 다시 새로운 차원으로 높여 가지고 그것을 개인에게 계승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아들로 보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아들은 이 땅 위에서 영광의 보좌 위에 올라가기 전데 만민의 슬픔과 역사의 역로를 순탄한 행복의 터전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길을 가리기 위해서 왔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이 땅 위에 오셨지만, 그 뜻을 세우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뜻을 믿고 나오는 수많은 성도들 중에 자기 개인의 구원을 되찾겠다고 자진하여 죽음길을 찾아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하나님의 찾고 있는, 역사와 시대의 슬픔을 책임질 수있는 하나의 옥동자, 미래의 수난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남아야 된다는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순교한 열사들이 역사시대에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로서 지금까지 피를 뿌려왔고, 수난의 역로를 거듭해 왔다고 하지만 역사의 종말시대에 그럴수 있는 한 사람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 이상 불쌍한 분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수습하여 이제는 4대 종교의 형태를 남겨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말세의 한계선까지 몰아내 온 기독교 앞에 역사적 슬픔은 물론, 시대적 슬픔과 미래에 다가올 슬픔까지 몽땅 책임 지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 슬픔을 하나님 대신 안고 세계 전체를 책임지고, 우주 전체를 책임지고, 인류의 전후 안팎을 전체를 책임지고서 이 슬픔의 역사를 탕감하겠다고 할 수 있는 아들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맞을 수 있는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를 볼 때, `하나님은 과연 불쌍한 분이구나'하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런 날을 맞이하여, 나는 옛날에 하나님 앞에 맹세했던 것을 다시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이런 사명을 책임 지을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누가 되겠느냐?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그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 나왔느냐? 나는 사실 그러려고 나왔다 이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럴 수 있는 한날을 고대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길을 가는 도상에서 우리 협회가 해야 할 책임은 하나님 앞에 짊어져 있는 슬픔을 만족을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짊어지는 것입니다. 아들의 그런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가는 길에는 상대적인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으로서 책임질 수 있는 완전한 한계점을 결할 수 있는 것이요, 사망권 앞에 생명의 기준을 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한계점이 아직까지 결정되어 있지 못한 것을 볼 때, 여기에는 상대적 환경에 그런 탕감의 제물적인 조건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뜻을 받들고 나가는 데 있어서 가정이나 단체, 또는 아들이 그와 같은 자리에 나가는 것을 볼 때, 나는 슬퍼할 수 없습니다.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찾아 세우려는 것은 슬픔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쁨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당할 적마다 가일층 이 비정한 환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울부짖고, 내일의 역사에 슬픈 내용 모두를 전부 책임지겠다고 결의하고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협회장이 갈 곳을 놓고 이미 오래 전에 아버지 앞에 내가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죽기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의 뜻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요, 아버지의 사명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살아야 되겠고, 우리가 희생되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에, 아들이 천만번 죽더라도 뜻을 살리는 길이 있다면 그 죽음길을 기쁨으로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겠다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스스로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올 때가 왔구나!' 하며 하나님은 정말 슬픈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들이 60년대에 불구의 몸으로도 뜻을 중심삼고 정성을 다 들이겠다고 몸부림친 내적 고충, 외적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내가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인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생에 내가 저 아들을 대신하여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불구의 그 신세는 면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하루라도 건전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루만이라도 기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면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수술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또 뜻이 찾아 나온 모든 역로를 헤아려 볼 때, 그가 피를 흘려야할 때인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수난의 행로를 책임지고 선생님의 명령에 의하여 입원하였다가 선생님의 뜻을 중심삼고 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협회가 가야 할 수난의 노정에 있어서 전체는 안 되더라도 한 부분의 슬픔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가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가 낫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왜? 광활한 이 세계를 맡기 위해 세계의 슬픔을 남겨서는 안 될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단체적으로, 국가적으로, 아시아적으로, 세계적으로 책임져야 할 수난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작년 동계 기간에 축복가정 부인들을 내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탕감의 원칙에는 용서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나에게도 용서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50여년 평생을 살면서 내가 사랑하던 친구들을 다 데려갔습니다. 내가 사랑하던 동생들도 다 데려갔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하나님보다도 그들을 더 사랑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이번 기간을 통해서 느끼고 반성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도 전에 내가 먼저 협회장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하나님께 짐이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그가 간 것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 앞에 맡겼기 때문에 미련을 안 가지려고 청산지은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생사의 한계점이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역사시대의 한을 누가 어떻게 청산지어 주며, 그 어떤 민족이, 그 어떤 나라가 청산지어 주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짓지 않고는 이 사망권에 생명권을 이루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 중에 60년대와 70년대에 있어서 각자의 가정을 중심삼고 염려한 가정이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 가정만 염려한다고 해서 그 가정이 수난의 길을 쉽게 해결할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염려해서 그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보다도 민족을 생각해야 되고, 자기 가정보다도 세계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는 이 슬픈 역사를 탕감해 버릴 수 있는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는데 그들이 책임을 못하여 잃어버리자 기독교를 세우셨고 그 또한 책임을 못하고 잃어버리자 제3이스라엘의 기반을 위해 민족적 생명권에 한계선을 그어 놓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단체가 어떤 단체냐? 오늘날의 기독교회도 아니요, 불교도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있는 그 어떤 종교 단체도 아닙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건 우리 통일교회가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인 슬픔을 탕감시키고, 수난의 역사의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정들을 규합하여 종족을 편성하고, 그런 종족들을 규합하여 민족을 편성하고, 그런 민족을 규합하여 편성한 나라, 즉 세계적인 화를 막는 제사장의 사명을 할 수 있는 한 나라인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질 수 있는 국가 형태를 누가 만드느냐?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밖에는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다 가기 전에는 우리에게 돈이 있어도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그 뜻과 그 목적을 위하여 갈 수 있는 아들딸을 갖지 못했다면 그것은 한입니다. 즉, 그 뜻 앞에서 그런 아들딸을 갖지 못하면 한이 될 것이요,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그런 아들딸을 갖지 못하면 축복받은 가정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역사적인 한을 매듭짓기 위한 노정을 슬픔과 불행으로 가는 가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희생되고 한 가정이 희생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종단이 희생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라는 종단은 희생되더라도 민족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 앞에 승리적 제사장권을 차지할 수 있는 민족을 남기기 위해서는 하나의 종단이 희생해야 되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천신만고의 수난과 역로의 행로를 감사에 감사의 심정으로 소화시켜 나가며 그날 그날을 이 민족의 행방을 위하여 정성껏 충성하는 생을 지니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보람있는 생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민족과 국가라는 하나의 형태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수고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이 되었다 해도 국가로 못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 민족에서 국가까지 누가 책임을 계승받아 가지고 나갈 것이냐? 한 종단이 그것을 책임하지 못하게 되면 그 시대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재림역사와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여 재탕감이라는 비운의 역사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그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손에 손을 잡고, 마음에 마음을 합하여 그런 역사적인 슬픔을 막아낼 수 있는 개인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의 소원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이고 딸이라고 하며,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아들과 딸이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밤잠을 못 자며 갖은 수욕과 극난에 부딪히는 한이 있더라도 나서야 합니다. 여기에서 그 아들은 죽더라도 그것은 슬픔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탕감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정의 인연에 말뚝 박고 죽지 않으면 거기에 종족의 터전을 넘어 민족의 터전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1964년도에 들어서면서 협회장한테 교회를 맡겼습니다. 내가 지금 거쳐가야 할 길은 개인의 길이 아닙니다. 가정적인 시대를 맞아 역사적인 비운의 가정적 환경을 기쁨으로 소화하고 종족적 슬픔권을 맞이해야 할 책임을 졌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가리기 위해서 그 누구도 모르는 내정적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혼자 싸워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이것은 협회장도 몰랐을 거예요. 가까이 있는 그 누구도 모르는 심정을 지니고 나왔던 것을 이 시간 여러분 앞에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부락에 천 사람 만 사람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애기들이 죽어가는 일이 이더라도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럴 때 오히려 인류를 위해서 역사적인 원한을 막아낼 수 있는 가정으로 서지 못할까봐 염려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갔습니다. 희진이가 전도 나가기 전에 원리 말씀을 다 듣고 하는 말이 `한국에 주님이 오시다니,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다니….'라고 하면서 마룻바닥에서 뛰며 좋아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 `오냐 내가 하나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것을 희진이가 대신 효도하여 하나님이 보시고 위로 받을 수 있겠구나. 네가 그런 마음 바탕이라도 가졌구나' 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축복 받은 가정 전체를 동원하라고 명령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축복가정 전체가 동원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식구들이 가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겠다'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난 뒤에 내가 식구들한테 `역사시대에 한 번밖에 없는 거룩한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제일 첫번 제물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씨족은 복받는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회상하면서 희진이가 갔을때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내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가정의 기쁨입니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스승이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피곤한 발걸음을 거두어 다시 몸을 수습해 가지고 내일의 민족과 내일의 국가와 내일의 세계를 염려하는 마음을 품고서 피곤한 무릎을 꿇고 호소하여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이나, 혹은 외로운 환경이 지나가기 전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자리에 누워서 자는 것이 내 소원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필생에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출발할 때의 결의를 아버지 앞에 민족과 더불어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그날에 있어서 과거를 돌아보면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 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들고 아버지 앞에서 자연스런 몰골로 호소할 수 있는 그 한마디를 하는 것입니다. 철들어서부터 지금까지 영어의 신세를 거치고 투쟁의 일생을 거쳐오면서 이것을 신조로 삼아 왔던 것을 여러분이 이날을 기해 마음 깊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가야 됩니다. 우리는 울어야 할 자리에서 울 수 없는 사람들이요, 가슴을 쳐야 할 자리에서 가슴을 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쌍하다면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하나님이 동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협회장이 가면서 여러분 앞에 선물로 남긴 것입니다. 나는 그가 이 이상 더 큰 일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눈을 뜨면서 이 민족을 붙안고 통곡해야 될 것이요, 아시아와 세계를 붙안고 통곡해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와 온 세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책임 다하지 못한 입장에서 좋은 옷을 입고 나서게 될 때는 부끄러워 얼굴을 숙여야 되고, 또 첫 걸음을 내디딜 때에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고 나서는 걸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 축복가정들이 나라를 찾아 나가는 길이요, 이 민족을 이끌며 가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민족의 사망선이 우리를 향하여 성난 사자와 같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길에 있게 될 모든 비애와 처량한 모습을 지워버리고 이 땅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모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단단히 모셔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과 위로의 대상이 되려면 어떤 자리에 서야 되느냐? 행복한 자리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찾아오는 길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의 아들딸이 귀합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귀합니까?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을 가지고 평화의 동산, 자유의 동산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한날을 아직 맞지 못한 한이 민족 앞에 가려져 있고, 국가 앞에 가려져 있고, 세계 앞에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자기 가정을 붙들고 자기 제단을 붙들고 자기 환경을 붙들고 통곡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로하며 가야 합니다. 그러면 최후에 도리어 하나님께서 슬퍼하는 아들딸을 붙들고 동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동정의 인연을 남기지 않는 무리는 남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생사의 한계를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천국 사람이냐, 지옥 사람이냐는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하나님의 소원이 이 땅 위에 기쁨을 남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필생의 과업으로써, 또는 필생의 사명으로써 얼마나 기쁨을 남기기 위해 살았느냐? 얼마나 슬픔을 남기기 위해 살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생애를 종결하게 될 때, 기쁨을 슬픔보다 더 많이 남긴 사람은 천국인이요, 슬픔을 기쁨보다더 많이 남긴 사람은 지옥인입니다. 이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뜻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뜻은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이용하려고 하면 뜻은 여러분에게서 떠나가게 되고, 여러분은 사탄에게 먹힙니다. 사탄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70년대는 통일교회의 운세시대라 했습니다. 그때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안 여러분들이 북녁 땅에 있는 김일성 도당과 혹은 북괴의 소유권을 중심삼은 소련과 중공이라는 이 거대한 사탄진영과 어떻게 대결할 것이냐? 여러분은 골리앗 앞에 나섰던 다윗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이를 무서워하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중공과 소련을 무서워하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해 찾아온 천운 앞에 책임을 하기 위해 하나님을 붙안고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생사를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다윗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 문제가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런 입장에서 이날을 맞이할 때, 협회장에게 그와 같은 자리에 쓰러지고 싶었던 마음을 생전에 가졌던 여러분도 그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과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시하고 뜻과 하나님 앞에 절대시하던 그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마음으로 녹이고 세계를 그 마음과 심정으로 녹여 가지고 하나님의 염려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을 사망권에서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통일신도, 여기에 모인 여러분의 책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책임 못 하여 축복받고 태어난 아들딸에게 그 수난의 행로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들은 여러분이 축복을 받고 난후에 태어난 아들딸들이지만, 여러분들은 축복받기 전에 사탄세계에서 찾아온 자들로서 부모가 된 것입니다. 이런 자신들이니 하나님 앞에 깨끗이 제물되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맡겨진 책임을 수행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책임 여하에 따라 민족의 한과 세계의 한을 탕감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신과 우리들의 가정과 우리들의 교회에 책임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 젊은이나 노인을 막론하고 몽땅 하나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그들의 모든 환경과 사정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민족 해방, 국가 복귀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민족을 평화의 왕궁 앞에 세워 만민의 제단을 갖추어 가지고 슬픔을 엮어 나왔던 역사를 청산짓고 가겠다는 천주사적인 개척자요, 하늘의 용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오늘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이 슬픈 일은 우리 교회에서의 슬픈 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하여 내일의 창건이념을 새로이 갖고 연마해 나서는 데에 있어 하나의 표본이 되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협회장이 길이길이 우리 생활권내에 살아 있을 것이요, 길이길이 우리 민족의 품 가운데, 역사적인 수많은 인간의 심정 가운데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재분발할 것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민족을 사망권내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한계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난의 길, 사망의 길, 골고다의 길을 거쳐오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는 하나의 경계선이 되어야 합니다. 6천년 유구한 역사시대에 전무후무한 시점에 놓여진 통일교회를 드높여 가지고 내일을 향해 전진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삼천만 민족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통일의 용사들이 되기를 여러분 앞에 부탁하는 바입니다. 그러기 위한 새로운 결의를 하기를 이 시간 여러분에게 바라면서, 여러분이 마음 가운데 다시 한번 다짐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버지, 제가 협회장한테 한가지 하고 싶었던 말은 저를 만나 가지고 기뻐하던 그 기쁨을 죽을 때까지 갖지 못하고,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나타내지 못하고 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살아남아 있는 이들 앞에 통일교회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통일교회를 그리워하고, 선생님 만나기를 사모하던 그 마음을 영원히 갖고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다시 묻고 싶은 마음이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교훈을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고 싶어 죽고 못살겠다는 그 마음, 그리워 그리워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 아버지 앞에서는 그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마음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화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찾고 아들을 찾아야 될 것이요, 그 마음을 안고 자식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자식들 앞에 기쁨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 민족의 사망권과 역사적 사망권을 가로막고, 생명의 권한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안 스승은 자신의 모습을 처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사를 드려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협회장을 통하여 당신이 얻은 것이 무엇이옵니까?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자랑하시옵소서. 없으면 저희들은 다시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저 자신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또다시 비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답답하고 깜깜한 밤중에 찾아 가다가 길이 막히는 절박감 가운데에 놓일지라도, 아버지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하여 외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사무칠 수 있는 경지에서 저희들은 즐겁게 넘어야 되겠습니다. 태양빛이 일시에 없어져 칠흑 같은 흑암에 사로잡혀서 `아이고, 나 살려라'하고 하늘 높이 외치는 자리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흠모라는 마음에 사무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럴 수 있는 마음, 그럴 수 있는 생애, 그럴 수 있는 죽음을 남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죽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30의 나이에 죽어도 어떤 자리에서 죽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30여 년의 생애에 있어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70년대를 힘차게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이 슬펐던 6월과 7월을 기쁨으로 보내고 힘찬 소망의 8월을 맞이하여 이 나라와 이민족, 이 아시아와 이 세계를 책임진 하늘의 용사들로서 당신의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섭리적 통일전선을 형성하여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여기에 천군천사를 합하시어 사망의 적진을 쳐부수고, 생명의 봉화로 천국을 이 천지에 이루시옵소서.
새로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기념되는 날이 있다면 오늘이 최고로 기념되는 날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도 그럴 수 있는 마음을 닦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에게 맡기오며, 참부모의 성호로 기도드려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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