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타락한 모든 인간들은 창조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본연의 기준을 다시 복귀해야 된다는 것, 즉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종족, 민족,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까지 전부다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라는 명사를 놓고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복귀되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를 넘어서 가정을 복귀하고, 가정을 넘어서 종족을 복귀하고, 종족을 넘어서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복귀해야 되는 엄청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본향 땅을 향해 돌아가야 할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우리 자신이 내 개인을 중심삼고 돌아갔다 하더라도 돌아간 그 고향에 정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조들이 가야 할 본연의 세계를 찾기 위해서 희생해 갔지만 그들은 복귀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다시 복귀의 길을 되풀이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 원리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 재차 복귀의 운명 길을 가야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한 개체가 본향으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다시 가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본향 땅에 돌아가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이 땅에서 가정을 찾아 가지고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가 가르쳐 주는 근본 뜻입니다.
예를 들어 야곱 같은 사람도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자기 부모와 친척이 있는 그 환경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상대적인 인연이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야곱이나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의 운명길을 앞에 놓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복귀의 담당자는 그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기 고향 땅에서는 가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향 땅을 떠나 사탄 세계에 가서 가정을 찾아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복귀될 수 없는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금까지 복귀의 도상에서 책임을 지고 왔다 갔던 사람들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런 길을 가지 못하면 마음적으로라도 그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오늘 타락권내에서, 여기에서 본향 땅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본향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는 데는 혼자 못 돌아갑니다. 혼자 돌아 갔다 하더라도 다시 가정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되고, 가정이 돌아갔다 하더라도 다시 종족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족이 돌아갔다 하더라도 다시 민족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민족도 고향 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사탄세계에 가서 민족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하여 승리하지 않고는 민족이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민족이 아무리 본향 땅에 돌아갔다 하더라도 그 민족이 국가의 주권을 세워 사탄세계의 주권을 대하여 승리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또다시 사탄편 국가와 대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한 국가를 세웠다 하더라도 그 국가만으로 복귀의 길, 돌아가는 모든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있기 때문에 또다시 세계를 구해 가지고 돌아가야 할 운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서 30여 년의 생애를 살다가 죽음길을 감으로써 아버지 앞에 갔지만 그것으로 그의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운명하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남긴 것은, 자신이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다 이루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신이 거쳐야 할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남기고 갔지만, 예수님은 다시 이 땅 위에 부활한 40일 기간을 통해서 지상에서 이루어야 했던 외적인 기반은 두고라도 내적인 기반, 영적인 기반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찾아 놓고야 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 돌아갔지만, 그 입장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안식할 수 있는 기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지상에 와 가지고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아서 가정적인 형태, 종족적인 형태, 국가적인 형태, 세계적인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싸움의 선봉에 서서 다시 본향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책임을 지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돌아가야 할 본향으로 가는 길에 선 우리자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선지들이 그렇게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길도 그러한 길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이상세계, 즉 유토피아입니다. 우리 인류가 그러한 세계를 추구해 나왔지만 그 세계는 우리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면 갈수록 우리들에게 행복의 여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절망의 여건을 제시하고 있는 결과의 세계에 처해 있는 것이 오늘의 인류입니다. 담벽에 부딪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돌아가야 됩니다. 앞으로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던 인생길을 돌이켜 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정세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리고 세계 인류가 돌아가야 할 그 본향길을 제시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우리만 돌아가 가지고 될 것이냐? 아닙니다. 돌아가더라도 우리만 돌아가서는 또다시 와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작전을 하시느냐 하면,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 본향의 사람을 보내시는 작전을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수많은 선지선열, 이 땅 위에서 복귀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본향을 버려두고 타향살이를 하러 온 사람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탕자가 아닙니다. 그 집안에서 효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효도하는 아들딸을 보내가지고 이 땅 위에 탕자와 같이 불효하는 사람들을 구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 효자를 중심삼고 하나의 형제를 모집하고, 하나의 종족을 모집하고, 하나의 민족을 모집하고, 하나의 국가를 모집하기 위한 운동이 지금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해온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지상에 보내어 절대적인 하나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일을 진행시켜 나왔지만, 현시점에서 하나의 국가를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하늘의 사람을 보내 그 일을 경영시키고, 추진시키고, 성사시키기 위해 애써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오늘날 이 땅 위에 통일교회를 세우셨는데 어떠한 입장에다 세우신 것이냐? 천국의 기반 위에 세우신 것이 아니라 사탄세계에 세우신 것입니다. 탕자들이 우글거리는 자리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향에서 사랑받으며 편하게 사는 효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기 부모와 친척들을 남겨 놓고 탕자들이 사는 곳에 가서 형제들을 구하고, 종족을 구해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종교라는 종교는 다 타향살이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본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타향살이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곤궁하면 곤궁할수록 본향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데는 나 스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가 이 땅에 보내지게 된 것은 내 개체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기필코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거느리고 가야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본향으로 가는 길 자체가 슬픔의 길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30여 년의 생애를 보내면서 싸운 목적은 무엇이냐?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본향으로 가기 위한, 귀향길에 들어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민족을 거느리고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싸웠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그 실패의 서러운 길이 십자가의 말로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서러움의 터 위에 나타난 기독교 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그 길을 다시 거쳐 가지고 국가 형태를 갖춘 기반 위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아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소원이요, 예수님 자신이 2천년 동안 성신과 연결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지상을 중심삼고 해온 싸움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이 사탄세계에서 하늘의 개인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가정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종족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민족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국가를 찾아 세워 본향으로 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의 한 개체는 어떻게 해서든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정 종족 민족을 규합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짊어지고 있는 사명인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타락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고난이나 고통같은 것은 없는 가운데 계시는 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수많은 종교도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그렇게 알고 신앙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고 보면, 하나님은 어떤 입장에 계시느냐? 하나님은 자신의 가정, 자신의 자녀, 자신의 모든 재산, 자신의 나라와 세계를 잃어버린 입장에 계십니다. 그런 입장에 계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만나면 자기의 모든 한이 해원되고 지금까지 고대하던 것 전부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길을 찾아 나와 가지고 부모를 상봉하고 보니, 그 부모가 갖고 있는 재산은 물론이요, 세계와 부모의 모든 것이 원수의 수중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난 우리에게는 그 부모를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지워졌습니다. 또한 부모가 잃어버린 인류의 조상과 부모가 가져야 할 본연의 국가를 찾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재결의를 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것을 고향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탄세계가 빼앗아 간 그곳을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가는 우리의 입장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세워서 본향길을 찾아나왔는 데, 그곳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자리에서 환영을 받고 기쁨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아버지의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그 나라를 찾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 앞에 남아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당신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곳을 오지 못하게 방파제를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막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사정을 만인간 앞에 전개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입장이 그러하기에 따르고 있는 자녀들, 고생과 수난의 길을 다 극복하고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한번도 인류 앞에 당신의 사정을 통고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도리어 인간을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뜻을 위해 출발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 사람도 그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그런 아버지의 입장을 통고하여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전체의 사명과 전체의 희망과 통일교회의 생사문제를 걸고 한 입장인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됩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 인류를 복귀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내정을 가르쳐 줬다 할진대 우리에게는 이중 삼중의 책임이 가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를 알고 보니 아버지는 불쌍하신 분입니다. 아버지는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을 빼앗겨 버렸고, 거느려야 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전부다 잃어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이런 입장에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되었느냐? 원수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원수가 어디 있느냐? 원수를 찾아가 싸워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 원수를 전멸시키고 지금까지 부모가 품고 나온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길이 좋다고 해서 왔을 테지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이중 삼중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임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옛날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을 떠났지만, 오늘날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난 우리들은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더라도 떠나겠다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의 통일교회 교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선지자, 혹은 역사적인 우리 조상들이 가지 못한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선조들이 희망을 갖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2의 기대를 갖고 하나의 소망의 기준으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이제 우리가 사탄세계를 향하여 아니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출발한 그 걸음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첫번째 걸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소망의 한 존재로 모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찾아 나왔지만, 그와 같은 입장에서 출발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싸움터로 달려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런 책임을 진 입장에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제 우리는 부모의 존재를 알았고, 지금까지의 민족의 참사를 알았습니다. 그 민족이 멸망하게 된 것도 알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느냐? 이것은 부모가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형제가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거느릴 수 있는 그 나라, 그 민족이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이 잘못은 온통 원수가 저끄러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에게 효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알고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알았으면 이 원수를 갚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형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족과 민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움의 길을 책임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는 길에 어떠한 수난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시 않고 돌파해야 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 하나만 복귀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기 혼자 복귀된 입장에서 아버지 앞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버지는 `너 혼자 왔느냐, 네 가정은 어떻게 했느냐, 네 종족은 어떻게 했느냐, 네 민족은 어떻게 했느냐, 네 나라는 어떻게 했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필코 이 땅에 다시 보내질 것입니다. 기쁨의 한날을 맞기 위해서 고향을 찾아간 그 모습은 아버지 앞에 체면과 위신을 세우지 못하면 다시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왕지사 환본향길에 오르기 전에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고 가야 되겠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찾으려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민족 복귀의 뜻을 중심삼고 이 땅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유대교단을 향해 나서기 전에 종족을 복귀할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이 문제였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개인이 설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 여건을 찾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개인이 찾아올 수 있는 기준이 되어 개인이 복귀되면 가정을 찾아야 하고, 가정이 복귀되면 종족을 찾아야 됩니다. 또 종족이 복귀되면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이 복귀되면 국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국가라는 하나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는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표준하여 30여년의 생애 동안에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수고의 노정을 걸었지만 모든 갈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영계를 중심삼고 나라를 복귀할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십자가의 길을 허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생하고 수난을 당한 것이 오늘날 복귀의 길 가운데 맺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고는 복귀의 도상에서 환고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책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심정이 없이는 자기를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할 수 없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복귀할 수 없으며,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복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것은 영계에 감으로써 모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고향에 가기 전에 영계에 가는 날이 올까봐 두려워하며 지내야 됩니다. 일생을 중심삼고 어떻게 이런 문제를 감당하느냐 하는 문제를 앞에 놓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생애를 걸고 한 시간, 일분, 일초를 아껴 그런 생활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에 가서 지금까지 그 나라를 찾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으며, 또한 세계를 찾고자 하시는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인인 것입니다.
자다가도 눈을 뜨면 원수의 적진에서 포위된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자고 있는 그 자리가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요, 마음놓고 밥을 먹고 쉴 자리가 아닙니다. 원수에게 포위된 이 환경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는 그 자리에 싸움의 방어선을 쳐놓고 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행동하는 그 환경에 방어선을 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홀로 감당할 수 없으니 동지의 규합이라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북한 괴뢰집단이 남한에 침투시킨 간첩들은 이 땅에 와서 심각하게 활동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들과 같은 정도의 마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이상의 마음을 갖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주권을 찾기 위해서도 생명을 걸고 넘고 넘어야 되거늘, 오늘날 이 세계를 복귀하고 천주의 운명을 책임지고 가야 할 도상에 있어서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의 도상에서 품은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명을 내놓고 복귀의 도상에서 품게 된 한을 풀겠다고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이 정도만 하면 모든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났지만 선생님과 여러분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만나면 거기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 역시 지상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거지꼴로 돌아오는 탕자와 같은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탕자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효자의 입장에서 원수를 찾아가서 자기의 자녀를 복귀하고, 자기의 재산을 복귀해 가지고 돌아간 야곱과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향에 돌아가서도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고, 축복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선생님을 믿고 나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면 만사가 형통되고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실상 영계에 가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지상에 재림부활하여 협조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민족적 기반이라든가, 국가적 기반이라든가, 세계적 기반을 닦아야 할 사명을 중심삼고 다시 지상에 와 가지고 투쟁하는 역사를 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지상에서 부모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됩니다.
부모님을 만나고 보니, 그 부모님은 이 땅 위에서 행복을 노래하면서 평화롭게 사시는 분이 아니라 국가와 세계를 찾아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행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 대해서 가르쳐야 할 입장에 있는 부모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님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 안위하고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찾겠다는 개인이 있다면 불효 중의 불효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중의 불효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부모님에게는 찾아야 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으며,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찾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찾아 드려야 할 가정이요, 국가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수고해 오신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음과 동시에, 생애를 걸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선생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우리의 갈 길은 비참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이상을 가르쳐 주고, 앞으로 이 세계에 대한 행복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가르쳐 주었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르쳐 준다 해도 여러분들이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실체적인 기반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면 그 행복의 여건은 여러분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이 현재 처한 곳이 어떤 곳이냐 하면, 보좌에 앉아 가지고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가운데 사탄과 대치해 싸우는 일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적진을 대하고 있는 일선에서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선에서, 개인을 찾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을 찾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되며, 종족을 찾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판도가 점점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국가 기준을 대신한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할 것입니다. 발악할 수 있는 국가 기반이 없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한번은 부딪쳐야 합니다.
앞으로 있게 될 큰 싸움에 우리들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종족과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 복귀라는 이 엄청난 과제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개인 복귀를 위한 싸움에서 그 치열한 전투에 참전한 때가 있었습니까? 또한 가정을 복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참전한 때가 있었으며, 종족을 복귀하기 위한 싸움터에 참전한 때가 있었습니까? 민족과 국가를 복귀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일선에 나선 때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국가 복귀라는 것을 놓고 전반적인 승리를 결정지어야 할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70년대를 맞았습니다. 이때는 민족과 국가라는 한계선을 중심삼고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들이 생명을 걸고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님을 억울한 입장에 서게 한 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분노심에 사무쳐 원수의 진지를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모습,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라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성사시키는 것을 생의 보람으로 여길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하나님 앞에, 주체 되신 부모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영계에 돌아가서 아버지가 비참하신 분임을 알게 된다면 다시 지상에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가야 할 세계적인 노정을 지상에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전부다 지쳤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거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 가지고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안식할 수 있게 될 줄 알고, 여력이 남아 있는데도 이제는 행복을 노래하고, 콧노래를 불러 가면서 `내일의 희망을 여기서 닦자'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진맥진한 몸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서 원수를 갚고, 원수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찾아 돌아오지 않고는 자기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선 나, 그런 입장에 선 가정, 더더욱이나 축복가정 여러분들은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분부하셨고, 내가 찾아야 할 가정을 대신 찾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찾아 주신 가정에서 안식의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을 거느리고 종족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내 생명과 잃어버린 내 가정을 찾을 수 있는 이 한날을 가진 것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가정을 통하여, 찾아야 할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런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국가는 자동적으로 복귀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은 가정이 된 것은 하늘이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허락된 복입니다. 하늘이 그런 복을 주는 것은 그 복을 그냥 그대로 계승해서 그 자리에서 행복을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을 찾는 책임을 짊어지우기 위해서 축복해 주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체 민중을 통일교회 앞에 찾아 세울 수 있는 마을이 있으면 그 마을을 중심삼고 면이면 면, 군이면 군, 도면 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자기 마을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하나님이 수고한 것이 있으면 그 이상의 수고를 하지 않고는 면과 군과 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현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통일교회의 배후에서 협조하고 있는 도수가 얼마나 강하냐? 이때에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얼마만큼 협조하시느냐? 그 협조의 도수를 중심삼고 그 이상의 수고를 우리가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그런 환경에서 수고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민족과 국가를 복귀할 기반을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계에 갔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다시 지상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수많은 원수 국가를 굴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만 되었으면 세계의 국가는 반드시 굴복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이 나라 이 민족을 어떻게 복귀할 것이냐? 이남 땅을 복귀했다고 해도 이북을 어떻게 복귀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는 민족적인 입장에서 제물을 드려서 국가를 복귀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입니다. 지금 국가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가인의 입장이요,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찾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 아닙니까? 실체기대라는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벨 자체로만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벨 개인 자체로만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벨 가정 자체만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인적인 개인을 찾아야 되고, 가인적인 가정을 찾아야 되며, 가인적인 종족을 찾아야 되고, 가인적인 민족을 찾아야 되고, 가인적인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요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우리 나라 아닌 다른 나라가 갈라졌으면 그 나라를 어떻게 찾겠느냐? 여러분이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삼팔선이 갈라진 것을 섭리사로 살펴봅시다. 삼팔선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서 속히 남한 땅이 당신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통일되어서 대한민국의 아벨 입장이 되어 가지고 가인의 입장인 북한을 굴복시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남한 땅이 사상무장, 모든 실체무장을 갖춰 가지고 완전히 하나만 되는 날에는 가인 땅을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에 있어서 중심적 국가는 자동적으로 결정되지않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통일교회가 짊어진 모든 수난들을 감사히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이 민족과 이 세계가 가야 할 운명길을 대신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 각자가 알고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응당히 받아야 할 수난을 감사히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규합해 가지고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두 사람을 규합해서 네사람으로…. 이렇게 배가시켜서 이들 각자가 자기의 종족을 복귀함과 동시에, 그 종족을 민족적 전선으로 넓혀서 민족을 하나 만들고 국가를 복귀해야 합니다. 이런 운명길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느냐?
우리 통일교회는 현재 민족을 앞에 놓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복귀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선생님 가정과 여러분 가정이 하나되어서 통일 종족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 민족을 형성해야 됩니다. 통일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세 종족 이상을 책임져야 됩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이씨면 이씨 해 가지고 세 종족을 어떻게 복귀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430쌍을 축복해 주면서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는 데 있어서 자기가 개재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목표하는 곳과 방향을 같이하여 나가야 됩니다. 이제 사령관이 최후의 진격 명령을 내리게 될 때, 사령관이 앞장서서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 군사들이 사령관 앞에 나섰다가 먼저 전사하게 되면 그 군대는 갈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 가정이 철옹성같이 뭉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신자들이 철옹성같이 뭉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로 뭉쳐진 무리가 그냥 그대로 일선을 향하여 진군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벨적인 입장에서 민족 복귀라는 엄숙한 과제를 역사시대 앞에 맡아 가지고 나섰습니다. 이것은 복귀섭리 전선에서 단 한번밖에 없는 일입니다. 어느 때에도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런 일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시대적인 환경을 갖춰 가지고 국가 복귀를 위해 이 땅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인연을 우리가 맨 처음 가졌다는 사실이 오늘날 복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내용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나깨나 이 민족, 대한민국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어떻게 남한을 복귀하고 또 어떻게 북한을 복귀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외적인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된다 하더라도 해방 이후 북한 땅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 그들은 완전히 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어떻게 전도할 것이냐? 그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서 우리편에 서서 우리 대신 일선에 나가, 중국 공산당 혹은 소련 공산당을 대해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냐?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아벨 앞에 굴복된 가인 입장에서 책임지고 나가 싸울 수 있도록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아야만 한국 강산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북한은 비로소 통일되고, 배달민족은 비로소 역사적인 한을 풀고 하늘 앞에 하나의 주권국가로 설 수 있고, 또다시 세계 앞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향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보니 고향은 불행한 곳이었습니다. 내가 부모님을 떠나 올 때 원수를 갚고 돌아오겠다고 결의하고 나섰으니, 원수를 갚고 원수의 세계에서 반드시 무엇이라도 탈환해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떠날 때 결의한 것과는 달리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다시 부모님을 눈물 흘리게 하고, 동정을 받는 패자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죽더라도 싸워야 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어디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가면 못 따라가겠습니까? 본향으로 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신 예수님은 죽음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 뜻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또한 그것이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한 전통적 사상이 이어져 나왔기 때문에 오늘에 우리들도 그러한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을 일선에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가정들이 피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가정들이 맞으면 맞을수록 가정들이 침범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빨리 복귀될 것입니다. 한 가정이 희생을 당했다 할진대는 그로 말미암아 그 동네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희생한 것보다도 가정이 희생하면 하늘편으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축복받은 가정을 수난의 길로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민족을 살리는 첩경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 수난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본향세계에 가 가지고 무슨 면목을 세울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현재 한국 백성에게 부과되어 있는 책임이 무엇이냐? 남북한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의 노래를 부를 적마다 이것을 상기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는 남한 땅에서 아벨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벨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치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맞고 빼앗아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나오면서 그것을 선전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적을 가지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대중의 양심을 분발시킬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제시해야 복귀가 됩니다. 선한 사람이 억울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 분발할 수 있게 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복귀해서 지금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지금 이 70년대를 볼 때에 지금까지 우리를 사탄시해 나오던, 원수시해 나오던 그 원수의 입장이 변해 가지고 이제는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 섰기에 우리편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살 수 있고, 이 민족에게 새로운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시대가 출발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경계선을 넘은 그 시간서부터 우리는 국가라는 표준을 걸어 놓고 치열한 전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적지를 향해 우리가 진격하는데도 불구하고 적지에서 반항하지 않는 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반항하지 않을수록 배가의 진격 명령을 가해야 하는 것이 70년대를 맞은 우리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하늘편으로 복귀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원수가 모두 하나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삼천만 민중을 규합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관성을 복귀해야 합니다. 남한이 아벨적인 국가의 입장에서 가인적인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졌던 것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할 운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복귀의 도상에서 책임을 짊어진 대한민국이 이와 같이 남북이 양분된 것은 섭리적인 귀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혈투전에서 피를 흘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든가, 아니면 망하든가 세 가지 중의 하나는 해야 됩니다. 망하더라도 나 하나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나 하나가 망하면 억천만대의 우리의 후손이 살 수 있는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또 그 나라가 망하면 세계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망하게 할 수 없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되겠고, 통일교회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망하는 날에는 공산당 앞에 통일교회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꿈꾸고 바라던 복귀의 모든 일들을 대한민국에서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를 택하여 가지고, 그 나라의 주권을 다시 갈라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어떤 나라를 통해서 이만한 기반을 다시 닦고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삼천만 민족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장은 그 누구도 참소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국가와 민족을 책임져야 할 운명의 길이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역사시대에서 최후로 남겨진 한때를 바라보시고 지금까지 되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최후에 남아진 일선, 이 대한민국의 고비를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가느냐? 이 나라의 부패상을 바라볼 때 밤잠을 못자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낍니다. 환경의 비참상을 보고 의분심에 불타 폐가 되는 것은 모두 정리해 가지고 내일의 싸움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일선의 경계선을 넘게 될 때 공산당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김일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귀향길을 찾아가는 선생님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고향을 버리고 남한 땅에 내려와 가지고 지금까지 여러분을 찾아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가 있어도 그 형제 앞에 나의 사연을 말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복귀역사노정을 걸어오시면서 말하지 못하시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선생님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척, 사랑하는 부모 앞에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지금까지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해서 원수의 세계에 가서 좋은 것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부모 처자 앞에 하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을 위하여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인을 찾아 돌아오지 않고는 아벨의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가정은 부모가 있어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가운데 가정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부모를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가지려면 종족을 가져야 됩니다. 종족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추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부모님을 모시고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종족은 가정을 대신해 싸우는 책임을 져야만 됩니다. 일선을 누가 사수하느냐? 일선을 사수할 자가 누구냐? 오늘 대한민국에는 일선을 사수할 아벨적인 존재들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인적인 존재가 있어 가지고 그 일선을 책임질 수 있는 민족적인 기반과 국가적인 기반을 닦았느냐 할 때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싸움을 책임지고 넘어가야 합니다. 만일 이 싸움에 지는 날에는 통일교회와 여러분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북에 김일성이가 70년대를 맞이하여 적화통일이라는 표어를 걸고 안팎으로 요새화해 놓고는 남한을 엿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책임 못하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생각해 봅시다.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으로서는 한국을 구할 도리가 없습니다. 구할 도리가 어디 있어요? 아시아 정세로 볼 때 한국은 포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이 우리를 자극하는 경우가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일본이 중공과 정치회담까지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막후교섭을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갈 길이 막연합니다.
이런 절박한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이 절박한 정세를 앞에 놓고 오늘 대한민국을 어떻게 빠른 시일내에 복귀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서 부모를 모시고 나서는 날에는 사위기대가 복귀되기 때문에 공산당은 문제 없습니다. 우리 이념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이 규합될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지면 북한 땅을 통일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강력한 통일전선이 펴질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 우리가 승리적 통일전선을 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 남한이 하나되어 북한을 복귀하지 않고는 가인 국가를 굴복시켰다는 조건이 성립 안 됨으로 세계적인 진출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천적인 복귀의 운세를 세계적으로 전개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을 규합하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산당과 싸우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 1개국만이 아니라 3개국을 동원해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일본과 중국을 동원해 가지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중국에 승공연합을 빨리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몇 차례 중국에 갔고 근간에 또 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는 빠른 시일내로 반공노선이 펴질 것입니다. 그 입장을 빨리 갖추어야 됩니다. 외적인 분야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비할 수 있는 전선을 펴나가면서 횡적인 입장에서 세계가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복귀해 가지고 국가 전체가 하나되어 북한을 대하여 공표할 수 있는 주체성을 확보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 입장을 빠른 시일내에 갖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이 환고향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선 우리의 사명임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의 고향인 정주를 가 봐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향땅을 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게끔, 누구도 막지 않고 환영하는 가운데 가 보게끔 되지 않고는 여러분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고향을 떠나올 때 한을 품고 왔습니다. 지금 고향에 가게 되면, 선생님 육신의 부모와 친척들이 원수들 앞에 학살을 당해 그 무덤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남한 땅에서 여러분을 찾은 대가로 그런 일이 반드시 생겼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의 한을 해원성사해 주지 않고는 자식으로서 부모 앞에 효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의 인연을 이 땅 위에서 맺지 못하고 가면 천상세계에 가서도 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두고 볼 때 어차피 남북한을 통일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운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명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나깨나 대한민국 삼천만 민중을 어떻게 규합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아벨적인 책임을 진 통일교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됩니다. 내 개인과 내 가정과 내 친척은 물론이고, 오늘 통일가 전체가 희생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이기 때문에 희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희생하는 자리에 나가면 반드시 어떠한 문제든 풀려 나갈 것입니다. 이런 신념 밑에서 70년대에 여러분을 다시 내몰고자 하는 것이 자식된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부모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나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야말로 내가 다시 싸워야 할 때입니다. 한번 찾아오는 한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갖추어야 할 한때를 잃어버린 원한을 풀 수 있는 때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에 어떻게 청춘시절 이상의 결의와 신념을 가지고 나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밤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단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야 됩니다. 싸워야 됩니다. 이것이 귀향길을 찾아가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한을 하나 만들고, 북한 땅에서 괴뢰도당을 추방해 버리고 대한민국을 자유스런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 섭리로 말하면 여러분의 본향입니다. 성스러운 곳이요, 본향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가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한날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를 찾으려면 반드시 북한 땅에 가서 하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을 맞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삼천리 반도를 복귀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가인과 아벨, 즉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져 맺힌 국가의 원한을 찾아 하나로 묶어 가지고 승리적 이스라엘의 깃발을 통일된 권내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지 않고는 세계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전세계로 발전한 통일교회의 모든 힘을 규합해서 한국을 복귀하기 위하여 주력하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원조받고, 협조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실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쓰러질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야만이 앞으로 민족과 국가를 복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일선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더욱이 축복받은 가정들은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가지고 수난길을 가던 야곱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장자의 기업을 찾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서는 하나님이 승리의 기반을 닦고 계시기 때문에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수난을 가정적으로 감사히 넘겨야 됩니다. 수난을 당하더라도 감사히 여기며 나가야 됩니다. 수난을 당하더라도 낙망하지 말고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한 최일선, 최전방에 우리는 나가야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전방에 나가야 되고, 가정적으로도 전방에 나가야 됩니다. 최전선에 나가야 됩니다. 최전선에서는 뼈저리게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먹는 것의 보급도 정상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체내에서 보급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복귀의 운명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체적으로 보급이 안되거든요. 생명을 걸고라도 뜻을 이루고 돌아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낼 때는 뜻을 이루고 돌아오길 기대하고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내진 처소에서 억천만년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 죽든 살든 승패를 결정해야 합니다. 피를 흘려서라도 하나님을 위한 조건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몇 백 배, 몇 천 배의 승리적 터전을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희생할 것을 알면서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7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들이 이와 같이 모여서 수련을 받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냐? 제2전선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제1전선에서 싸웠습니다.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은 수난의 길을 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체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소모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등한 입장에서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시대적인 여건이 우리 앞에 다가온 이 70년대에는 다릅니다. 이제는 제1전선이 아닙니다. 제2전선을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60년대는 제1전선이었습니다. 싸워 가지고 탕감하는 전선이었어요. 하지만 이제야말로 우리가 제2전선을 맞이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 전선을 가로놓아 가지고 남한 땅을 넘어서 북한 땅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환고향하는 우리의 길이요, 귀향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삼팔선을 다시 넘을 때에는 대한민국이 넘어와야 되겠습니다' 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그때에 결의했던 내용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 땅을 그리면서 삼팔선을 넘어갔지만 평양까지 가서도 고향에는 안 갔습니다. 갈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다짐했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죽더라도 고향에 갈 수 없는 것이 선생님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부터 혹은 비참한 운명길에서 배반당하고, 민족이 원수시하는 그런 길을 거쳐서 오늘날 이만한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우리가 총궐기해야 하겠습니다. 민족 해방을 위하여 나서야 되겠습니다. 남한의 전국토를 민족 해방을 준비하기 위한 훈련 무대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가 삼팔선을 사수하기 위한 훈련의 시기인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의 모든 전체를 투입하여 훈련해야 되겠습니다. 이 70년대에 있어서 한 3년 동안 우리가 자체적으로 북한 땅을 향하여 공세를 취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기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가에서 해야 할 책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공산당을 대하기 위해서는 국가 기준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아시아를 우리 편으로 세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밤에 자다가 새벽녘에 일어나더라도 그냥 잘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는 가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최일선을 향하여 가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일선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후방을 튼튼히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는데 최고의 문제가 무엇이냐? 그것은 북한 땅을 어떻게 해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땅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을 대해 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과 중국을 우리편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우리들이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천년 만년 수난의 길을 걸어야 됩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는 거에요. 제3이스라엘의 싸움의 고빗길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길 수 있는 좋은 기회, 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한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용장이라면 죽을 자리에 가서 죽을 줄 알아야 됩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이 죽을 자리에서 죽을 줄 알아야 됩니다. 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는 한때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때를 기해서 승리하여 귀향길에 올라야 할 것이 우리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돌아가면 그 마을을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복귀할 수 있는 자극의 요인으로 소화시켜야 됩니다. 읍, 면을 바라볼 때에 비참하거든 `이 민족이 왜 이리 비참합니까? 하지만 복귀할 때는 미련없이 복귀할 수 있으니 도리어 낫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몽땅 복귀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복귀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인연을 만들어 가지고 군이면 군, 면이면 면의 모든 것을 몽땅 아버지 앞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외적인 물건이 많은 것보다 작은 것이 간단합니다. 몽땅 드림으로 말미암아 몽땅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몽땅 바쳐질 수 있는 사연이 복귀의 터전인 것을 생각하고 비참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최후의 첩경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바라보는 부락, 면, 군을 보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나에게 기대를 거시고 이 민족을 복귀하라는 엄청난 책임을 맡겨주셨을진대 그 책임을 감당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애국자들이 걸어온 이상의 수고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복귀도상에 있어서 수많은 선조들이 피를 흘리던 그 이상의 수난의 길을 감수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 나라를 찾기까지의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동시에 여기에 어떻게 그 수를 배가시켜 가느냐 하는 문제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을 짊어진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60년대를 회고해 보면 철모르고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행복을 바라고 나왔지만 영계에 가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시 지상에 와야 할 운명의 입장임을 모르고 그것을 흠모만 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복귀도상에서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좋은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기 위해서는 뜻 일선에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편안히 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더라도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자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뜻을 위해서 무엇을 하게 되어 그것이 뜻 앞에 플러스된 것을 보고서는 자기의 수고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싸워 나온 생애의 기점이 어디냐 하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제2차 수련생인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을 가만히 보게 되면 이 집을 짓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으로 `우리가 다하지 못하면 제3차 수련생들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벌 받는 겁니다. 이런 환경에 있는 우리 제2차 수련생들이 70년대에 들어와서 이일을 2차로 하고 있습니다. 1월에는 아시아 승공대회를 했고 2월에는 건축대회, 즉 건설대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터전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 일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단결된 힘을 영계의 영인들과 하나님, 그리고 땅 앞에, 앞으로 역사적인 시대 앞에 보일 수 있는 70년대가 되었습니다. 이 70년대에 들어와서 제2차 수련생들이 여기에 피땀을 흘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우리는 6개월 이상 걸려야 지을 수 있는 집을 28일 이내에 지으려고 합니다. 딱 날짜를 정해 놓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바람이 불고 몹시 추웠기 때문에 땅이 꽁꽁 얼어붙어 수련생들이 몽땅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작업을 추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여기가 전부 논바닥이었는데 다 메우지 않았습니까? 처음엔 보름만에 기와를 올려야 한다니까 눈만 멍해 있었습니다. 굳은 땅을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보름이 지난 지금, 보십시오,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찾아 주시는 이때에 있는 정성을 다 투입시켜 복귀해야 합니다. 전부는 못하더라도 동정받을 수 있는 터전 정도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싸움터가 벌어진 거예요. 이 싸움터에서 피땀을 흘리는 것은 영광입니다. 밤잠을 안 자고 일어나서 어둠속을 벌렁벌렁 기어다니면서 시계를 보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몇 시간 더 잤거든 회개해야 합니다. 엄청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피곤한 몸이지만 돌아와 보니 여기에서 남아질 수 없는 사연이 하늘의 사연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사경을 헤매다가 있는 힘을 다해 고향 땅을 찾아가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다시 죽음의 길을 각오하고 결의해야 합니다. 불쌍하게도 힘이 부족합니다. 당연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다시 수고의 길을 나서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있는 적진을 복귀하지 않고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 돌아오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적진에 무덤을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복귀하지 않고는 안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안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각오를 하고 삼천리 반도를 복귀하기 위해 나서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때 선생님은 제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에 대한 원망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여, 저는 이제까지 할 일을 다했습니다. 내적 외적으로 빚지지 않을 인연을 맺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들딸을 잘못 두어서…. 저를 동정하시는 하나님이여, 저를 보시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기도라도 할 수 있어야 체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자신도 이런 체면을 못 세운 입장에서 통일교인인 여러분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온 민족을 전부다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 어려운 책임을 맡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이어받아야 할 전통사상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가정을 전도할 수 있고, 종족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기 전에 종족을 위해서 충성을 하고, 자신의 부모를 살려 줘야 할 책임이 있고, 형제를 살려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도 못하겠습니까? 이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이 일을 했을 때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나은 것입니다. 이런 각오 아래 올바른 귀향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 다닐 때 하나님께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것도 당신의 뜻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이 민족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해방이 되었다고 만세를 불렀지만 선생님은 만세 한번 못 불러 봤습니다. 또다시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의 원수가 물러나니 더 큰 원수가 우리 앞에 남았구나! 이것을 밟고 올라서는 날에야 비로소 우리가 바라던 때가 올 것이다. 그 싸움의 터에 어떻게 나갈 것인가? 이 길은 비참한 길이다. 죽음의 길이다. 감옥이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릴 것이요, 민족이 이리저리 갈라져 원수시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된다. 꾹 참고 가자. 맞고 가자. 극복하자'이러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이제 바라던 그 한때가 우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원한의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한때가 여러분 앞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복될 수 있는 날, 그 영광스러울 수 있는 날, 그 이상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가야 할 귀향길을 감당하여 민족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땅까지 나아가서 아시아와 세계의 갈 길을 마련해야 됩니다. 남북한만 하나 만들면 세계는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3차 7년노정까지, 80년대를 맞이할 때까지 우리의 사명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을 앞에 놓고 잘 수 있어요? 쉴 수가 있어요? 잠이 올 적마다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찾고 계시는 그 한 나라, 제3이스라엘 민족인 이 삼천만 민중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명을 통하여 무엇을 남길 것이냐? 내가 사명을 대신한 기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민족 해방을 위하여, 제3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하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남북한을 통일한 후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게 될 때 비로소 주체적인 국가가 지상에 생겨나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자유가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다시 갈 곳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디서 정착할 것이냐 하는 것을 늘 생각하고 그런 각오 아래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갔다가 이북까지 갈 수 있느냐? 여러분이 살아생전 이북까지 간다면 여러분은 통일가의 근원이요, 통일 나라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찬양의 한 시간을 맞이할 기쁨을 갖고 대한민국에는 꽃이 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명을 위해 일어서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쉬지 말고 달려가라. 쉬지 말고 강행하라. 쉬지 말고 삼천만 민족을 무장시키라는 겁니다. 이 인연을 중심삼고 민족을 끌고 최일선을 향하여 나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복귀의 길을 빛내기 위한 싸움을 해주기 바랍니다.
아버님, 저희가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야가 `나만 홀로 남았나이다'할 때에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7천인의 무리가 있다고 격려하시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염려하시기 전에 외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헤아려 보고 이 세계의 흐름 가운데 처해 있는 저희들의 입장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 운명길을 저희들이 다시 다짐하고 안 가면 인 될 입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못 가면 자식들이 가야 되고, 자식들이 못 가면 손자들이 가야 할 것이요, 손자들이 못 가면 그 후손들이 가야 할 것을 알았사옵니다. 선조가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천추만대에 한을 남긴다는 사실을 아담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날 실제의 역사과정에 불리움을 받은 저희들, 이 엄숙한 사명 앞에 감히 나타나기에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불러 주셨사오나 이 길에 가담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뜻 앞에 동참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을 역사를 대신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조상을 대신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6 천년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선지선열을 대신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갖추지 못한 것을 저희가 갖추겠다고 당신 앞에 다짐하옵니다. 아들을 더럽힌 사무친 원한을 해원할 수 있는 때가 왔사오니, 아버지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하소서'하시던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오늘 내 한 자체가 듣고 섭리도상에서 아버지의 뜻이자 내 뜻으로 기도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하여 내일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되겠사옵니다. 아시아의 정세도 문제이지만 남북한에 가로놓인 삼팔선을 앞에 놓고 가야 할 운명길이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의 3분의 2를 점령하고 있는 공산당을 앞에 놓고 그들과 싸워야 할 저희들이 현실 세계에서 불쏘시개가 되겠사옵니다. 제물이 되겠사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저희들을 보고 삼천만 민족이 의분심을 갖고 재차 봉기할 수 있는 한날을 마련해야 되겠사옵니다. 기필코 그날이 올 것을 알기에 저희는 비참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효자의 모습을 갖고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름받고 나서는 용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이 되면 하늘을 움직이고도 남을 수 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승리가 결정되고 그 자리가 천국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이 그런 일을 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귀향길을 바라보고 가야 할 운명의 한 맺힌 눈물이 남아 있는 현실을 중심삼고 아직까지 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몸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이 모든 전체를 투입해 가지고 이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하늘이여, 몰아치시옵소서. 무자비하게 몰아치시옵소서. 이것을 본분으로 알고 민족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무엇을 남기고자 하셨사옵니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귀향길을 향하여 나서는 걸음인 것만은 영원히 잊지 말고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바쁜 일과를 보내는 이 생활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번 기간을 통하여 기쁨의 터전을 남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모든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결심한 몸들이오니 분부하시옵소서. 약할 때는 위로하시옵고, 쓰러질 때는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최후의 전선에 용맹을 갖추어 출전하는 그날까지 남아지는 용맹스런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를 거두고 아버지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될 때까지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1970년 3월 15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사옵니다. 오늘은 이달 들어 세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도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보호하심으로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길, 아버님이여, 바라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흠모하면서 아버지 앞에 간구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곳곳마다 당신의 동정을 베푸시옵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덮으시사 위로하시옵고 권고하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당신께서 영원한 사랑과 칭찬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께서 사랑하는 아들딸의 모습이라고 증거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의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통일의 자녀들이 오늘 이 아침에 당신 앞에 경배드리오니, 이 경배가 당신 앞에 진정한 자랑이 될 수 있고, 기억이 될 수 있는 경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고 만민이 아버지 앞에 회개하고 수많은 인류가 당신을 부르고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 소원의 일치점이 저희들만으로써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중심삼고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을 아오니 그럴 수 있는 한때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과정에 있어서는 통일의 역군들이 수많은 탕감의 노정을 거쳐 가야 할 것을 아옵니다. 아버님, 그 노정 앞에 저희들은 충실해야 되겠습니다. 솔직한 자신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과 아버지를 상봉시키는 최후의 사명을 다짐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님을 모시고 아버지와 두터운 사랑권내에서 참의 인연을 맺어 자랑하게 해주시고, 인류와 형제의 인연을 맺어서 탕감복귀시켜야 하는 저희들의 책임을 감당해 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아버지를 부른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부르시지 않으면 저희들은 아버지와 인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기나긴 역사과정을 통하여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처참한 자리에서, 혹은 고생의 자리에서 저희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부르신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심중으로부터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 아버지 앞에 합당한 아들의 자세를 갖추지 않고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런 아들의 모습을 당신은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그리움에 사무쳤던 아들을 만나 당신의 노정 가운데에 있었던 사연을 나누는 자리를 당신은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당신의 모든 사명을 분부할 수 있는, 최후의 통첩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당신은 얼마나 바라고 나오셨습니까?
저희들이 그럴 수 있는 한 자리를 마련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그 모든 명령 일체에 순응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아버지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역사시대에 있어서 탕감의 사명을 짊어졌던 선조들의 기백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대에 당신이 칭찬하고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습니까? 아버지, 당신은 내적으로 약속하시고 축복하시며 명령하셨지만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저희 선조들은 번번이 당신의 마음에 못을 박고, 아버지를 고독의 자리로 추방시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인연은 기쁜 일이오나, 사명적인 면에 있어서는 슬픈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선조들이 걸어간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더듬어 볼 적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내적으로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만 동시에 외적으로는 아버지로부터 책임을 명령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쁜 자리에서 저희들에게 그 책임과 사명을 명령하시고 분부하시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외로운 죽음의 교차로에서 명령하시고 분부하셔야 하는 처참한 입장에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 아버지의 그 처참함을 치유해 드리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것이요, 아버지와 상관(相關)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인연을 넘어서지 않고는 상관할 수 없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인연이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졌는가를 생각할 때,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조상,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천번 만번 죽어 마땅한 저희 자신을 아버지 앞에 통고하게 될 때 지금까지 불쌍했던 아버지의 사정과 통할 수 있고, 그 모양이 같을 수 있는 자리에 서거나 그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에 있게 될 때 슬펐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요, 그런 한때가 있다면, 여기서부터 아버지와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입장에서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저희들을 붙들고 사연을 나눌 수 있는 입장에서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부족하고 불초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나타날 적마다, 영광의 실체로서 만우주를 주관하시는 당신의 그 거룩한 모습을 사모하느냐 할 때, 비천하고 부족한 자신임을 통회(痛悔)하면서 직고하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과 희망이 저희들 앞에 약속되었다는 벅찬 사실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오늘의 불초한 자신의 모습을 붙들고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이 아버님으로부터 기쁨의 동정을 받기 위해서는 사망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우리들은 사망의 길에서 쓰러져 가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사망의 혈통을 이어받은 저희들을 당신은 버리실 수 없어서 인류의 배후에서 역사와 더불어 지금까지 싸움을 해 나오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인데 반해 저희들은 이 싸움터를 회피해 가고자 했습니다. 그 누구에게 의지하여 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회피할 길이 없었사옵고, 의지할 존재가 없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도리어 회피하고자 하는 무리를 수습해야 할 입장이었사옵고, 의지하고자 하는 무리들을 지켜야 할 입장에 계신 불쌍하신 아버지였사옵니다. 그런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참혹한 길을 걸어왔사옵고, 언제나 불쌍한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나오셨사옵니다. 그런 아버지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복귀의 심정과 아버지의 내정이 이러하고 아버지의 사연이 이러하고 아버지의 자세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고, 이제 자세를 갖추어 당신의 경륜 앞에 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절규하며 최후의 몸부림과 더불어 당신의 심정에 자기 자신을 접붙이기 위한 일념으로 찾아 헤맸던 것과 같이, 저희들도 아버지 앞에 저희의 내심 전체를 통고하고 아버지의 내심 전체를 통고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를 맞이했습니다. 1970년도 3월을 맞이했습니다. 이해도 4분의1이 지나려 하는 고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해에 저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옵니까? 저희 자신을 몽땅 산제물로 바치기를 고대하고 계시옵니까? 그렇다면 저희 자신을 산제물로 바쳐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일체화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 자체를 드림에 있어서도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도록 바쳐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저희 자신들임을 알고 후회하는 자신으로서, 통탄하는 자신으로서 아버지 앞에 봉헌될 수 있는 저희들 자체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부족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저희 자체를 바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렇게 몽땅 바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정성을 들이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에게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한국 땅을 바라보면서, 혹은 스승을 바라보면서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사오니 그들 앞에 당신의 가호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들에게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루의 생활도 그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저희들의 책임이요, 그들을 아버지와 연결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 저희들의 책임임을 아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여, 불쌍한 아들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불쌍한 아벨의 모습으로 그들을 붙들고 사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입장에 선 자가 가인을 대신한 아벨이요, 타락한 아담을 복귀하기 위한 아벨임을 아옵니다. 하오니 두 세계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물로서 바쳐지게 허락해 주시고, 그 자리에서부터 아벨의 피살, 죽음의 고비가 시작되었사오니 뒤넘이쳐 가야 할 복귀의 한을 저희들이 상속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에 남아진 한, 이 세계에 남아진 한을 풀어드릴 줄 아는 아들과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이 되었습니까? 혹은 담 너머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이 되었습니까? 혹은 문전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이 되었습니까? 혹은 아직 쫓겨 나가지 않고 아버지의 무릎 앞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이 되었습니까?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스스로 깨닫고, 아버지의 그 귀하고 영광된 가치를 몰랐던 것을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알고,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희의 모든 환경을 지켜 주시고 저희 전체를 덮으시사 승리의 한날을 이룩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을 위하여 일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알고, 아버지의 대신 실체로서 원수 세계 앞에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정병이 되어, 그 나라의 권위와 그 나라의 모습을 높이 드러낼 수 있는 하늘편 사람이 되고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 모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부탁하오니 축복하여 주시옵길 바라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복귀'라는 말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창조주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참된 부모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참된 부모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참된 형제와 가정과 국가와 세계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나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고 자신의 목적을 성사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것, 제일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의 목적보다도 이 나라, 이 세계가 좋을 수 있는 목적을 성사시켜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대한민국은 현재 두 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북과 이남이 삼팔선을 경계로 하여 갈라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둘이 된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둘이 되기 전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이 민족, 남이나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공통된 소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남북이 통일되었다고 해서, 즉 민족의 바람이 이루어져 화해하여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남북이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세계가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되든가 하나되게 하든가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의 입장에 서든가 대상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된 하나의 국가가 되더라도 내일의 소망을 품고 세계를 향하여 전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계(肉界), 즉 이 현실 세계뿐만이 아니라 내재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상세계가 있는 동시에 천상세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하나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 추구되는 것은 무형세계와 유형세계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형세계와 무형세계를 하나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날 것이냐? 아닙니다. 아무리 하늘과 땅, 통일교회의 용어로 말해서 천주(天宙)를 하나 만들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주인되는 하나의 중심을 모시지 못하는 한 갖추어진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계, 하나의 천주도 하나의 중심과 더불어 일체화되는 입장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 피조만물은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지어 준 중심존재와 일치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즉 완전한 중심과 완전한 상대가 결정되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최후의 세계는 현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심 자리에 있는 그분의 영원한 상대가 되어 그 이상을 성사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과정에서 복귀섭리의 사명을 담당하고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개인이 하늘과 일체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바람의 기준을 확대시켜 가정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중심의 상대가 된 후에는 제 2의 주체의 입장에서 자기의 종족을 거느려 가지고 영원한 중심과 일체화시켜야 할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섰던 가정이 야곱 가정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야곱 가정 하면 거기에는 야곱의 부모가 들어가는 것이요, 야곱의 형제가 들어가는 것이요, 야곱의 아들딸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중심삼고 70여명의 친척 기반을 중심삼은 하나의 민족 형태를 갖추기 위해 그 종족을 키워 나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과 일체될 수 있는 야곱, 야곱과 하나될 수 있는 가정, 가정과 하나될 수 있는 종족의 관계를 맺지 않고는 민족을 일체화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없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개인을 찾아 세우시는 것은 가정을 찾아 세우기 위함이요, 가정을 찾아 세우시는 것은 종족을 찾아 세우기 위함이요, 종족을 찾아 세우시는 것은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함이요, 민족을 찾아 세우시는 것은 승리한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주권을 대신한 나라의 권위를 가진 것이 이스라엘 나라요, 온 세계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의 입장에 선 것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데는 국토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토가 둘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이 하나되어야 하고, 서로 화합하는 백성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주권 국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루려고 한 것이 제 1이스라엘 나라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온 세계를 자기들의 휘하에 넣고 마음대로 거느릴 수 있기를 바라왔지만, 섭리적인 내용으로 볼 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는 지상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여 왔던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했느냐? 이스라엘 주권과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 땅을 일체화시킨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치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일치되는 데 있어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거느리는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나라를 원리적 기반에 입각한 수를 갖추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나라의 유지는 그 나라만으로는 되어질 수 없습니다. 큰 원수를 앞에 놓은 국가는 그 한 나라만으로는 지탱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나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와 협력해야 합니다. 이웃 나라들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한 국가의 발전도 연합의 형식을 갖추어 가지고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세계를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벨적인 이스라엘이 국가기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가인적인 국가권을 굴복시켜 수습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로서 이 땅위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상충된 자리에서는 부모를 복귀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복귀하려면 아벨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가인을 거느려야만 복귀할 수 있는 것이 원리의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적인 이스라엘 나라에 오신 예수님은 가인적인 나라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굴복시키는 나라가 크면 클수록 세계는 빨리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복귀해 나오는 원칙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를 주관해 가지고 일시에 로마제국을 굴복시키게 되면 세계는 단번에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굴복시키지 못하게 될 때는 복귀도상에 세계적인 싸움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는 곳곳마다 세계적인 원수와 싸워 그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복귀의 기점'인데, 이 `복귀의 기점'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스라엘이 아무리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가인 아벨의 실체 복귀시대, 즉 실체기대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찾아진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인적인 국가, 즉 천사장형 국가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형인 가인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죽는 자리, 즉 맞는 자리에 들어가서 죽지 않고 살아서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의 기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21년 동안 수고한 결과로 찾아진 자기의 종이나 모든 재산을 그의 형인 에서 앞에 바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내생명과 재산은 형님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나는 형님의 종입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모든 재물을 형인 에서에게 바치자 에서는 야곱의 모든 제물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가 예물을 받은 것은 야곱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야곱을 받아들이는 것은 야곱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또한 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받아들이는 결과는 이스라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앞에 모두 주었다가 다시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입장은 아벨과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탄에게 다 주었습니다. 개인을 주었고, 가정을 주었고, 종족을 주었고, 민족을 주었고, 국가를 주었고, 세계를 주었습니다. 다 주었습니다. `세계를 네 마음대로 해라'할 수 있는 입장까지 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하나님은 죽었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주었습니다.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부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역사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무엇이냐? 완전히 부정당한 그 배후에는 완전한 긍정의 출현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적과 충신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신이 충신으로서의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완전히 부정당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과정에 드러날 수 있는 충신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와 같은 운명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부정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사탄세계 앞에 부정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정당하는 것은 무엇이냐? 전체를 넘겨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수시 하거나 치게 되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가지고 기도한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눅23:34)”라고 하셨습니다. 그 `용서하시옵소서'하는 자리는 자기 자신의 모든 소유를 원수에게 넘겨 주는 자리입니다. 그건 싫다 하더라도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늘로부터 가져온 귀한 모든 것, 4천년 역사를 통하여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찾아 세운 이스라엘 나라가 당장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은 분하고 원통함이 극에 달했지만, 여기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다 원수 앞에 넘겨 주고 또다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하는 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넘어가 물건이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지 않고는 그때까지 수고하여 찾아 세운 이스라엘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복귀의 기점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참한 자리에 있었지만 도리어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두 세계의 인연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본연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했던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요, 또 하나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원수들이 소생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기독교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틀림없는 길이라면, 우리들이 가는 길도 그때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원수에게 전부다 빼앗겼다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입장에 서신 것같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환영받으며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탄세계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부정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벨이 가인을 부정하든가 가인이 아벨을 부정하든가 둘 중의 하나는 부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어느 민족에게 환영받더라도 그 민족을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다른 민족에게 가서 환영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와야만 그 민족 그 나라의 백성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이 그냥 그대로 환영을 받는 입장을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영을 안 받았기 때문에, 즉 반대를 받았기 때문에 복귀의 기점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고, 하나님과 같이 설 수 있는 역사적인 복귀의 인연을 이 땅에서 갖출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됐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온 지난날의 역사는 어떠했느냐? 그 자체로 보면 비참한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역사였습니다. 어차피 잃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모든 것을 넘겨 주었듯이 우리들도 모든 것을 넘겨 주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다시 완전히 찾아왔다 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복귀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연의 자세를 중심삼고 복귀해 나가는 것이 복귀의 운명길이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길도 불가피하게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타당한 논리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스스로 버리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버리는 데 누구를 위해서 버려야 하느냐? 이 나라를 찾아야 하므로 이 나라를 위해서 버리자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 자신이 강제로 자기의 생명을 버렸다면 구주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6)"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최후의 죽음길을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여기서부터 문제가 달라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스스로 버렸다는 것입니다. 누구에 의해 강제적으로 희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희생한 것입니다. 스스로 희생하지 않고 누구에 의해 강제로 희생당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 앞에서 스스로 희생한 것이 아닙니다. 강제로 희생된 것입니다. 아벨이 희생된 자리는 기쁨으로 희생한 자리가 못 되고 슬픔으로 희생되었기 때문에 복귀문제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강제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됩니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혹은 하나님의 섭리권을 벗어난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역시 이런 길을 가는 그 사람들을 중심삼고 역사는 방향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 선한 사람, 아무 이유없이 대중에게 버림을 당하는 사람, 또 권한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아무 대가도 없이 희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떠한 세계에서도 남아집니다. 악한 사탄세계에서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에 있어서도 그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추구해 볼 때 그것은 스스로를 버리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도 그러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버릴 것이냐? 외적인 것부터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것은 누구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내적인 것을 버려야 됩니다. 외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적인 것까지도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내적인 문제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은 심정적 인연관계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형제가 문제입니다. 형제를 붙들고 그냥 복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붙들고 그냥 복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처자를 붙들고 그냥 복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만물을 붙들고 그냥 복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서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버려야 됩니다.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빼앗아 갑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버리든가 빼앗기든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합니다. 아벨은 자기 스스로가 택한 자리가 아닐지라도 빼앗기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복귀해 가야 할 운명길에 서 있는 우리 자신, 우리 가정,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우리 세계가 그런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를 하나 만든다 하더라도 최후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 세계에 그냥 그대로 들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 자신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땅 위에 천국이 찾아왔으니 천국 살림을 하자고 할 때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청산지어야 할 여건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안팎으로 남아 있는데 외적으로는 그 세계와 그 나라와 그 민족과 그 만물이 있는 것이요, 내적으로는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처자와 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청산지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하신 이 말은 그냥 그대로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자기의 생사를 결정짓는 심각한 말이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만 그 부모를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청산지어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그냥 그대로 붙들고 사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돌아오려면 부정해야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기 모친이 우는 것을 보고, 요한을 가리키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 19: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이 당신의 아들이고 자기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와 가지고 어머니를 맞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못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현현하신 것을 바라보고 `랍비여!' 하면서 예수님을 붙들려고 할 때에 자기의 몸을 붙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건 왜? 아직까지 청산지어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못 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하오니…. '라고 했지만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의 과정을 거쳐서 다시 긍정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자리에 돌아가지 않은 마리아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완전히 버리는 자리에 서지 못했던 마리아를 보고 예수님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복귀의 기점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 우리가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다 필요합니다. 또,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환경 그 차체로서 그냥 그대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통일된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 국가 앞에 내가 그냥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세계와 반드시 이별해야 합니다. 사탄세계에 처해 있는 자기 나라와 이별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던 모든 물질이나 이 땅에서 자기가 목표로 삼고 추구하던 권위라든가 영광의 조건이라고 자부해 나오던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부정을 안 당하려면 먼저 부정해야 됩니다. 내가 먼저 부정해 놓으면 사탄의 시험을 받지 않습니다. 원수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원수가 이것을 공격하는 날에는 원수 자체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오늘날 `나'라는 사람은 지극히 단순한 존재이지만 역사과정에 있어서는 하나의 기점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여러분의 가정이 있는 것이요, 여러분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이요, 여러분이 있어야 여러분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있는 것이요, 또한 여러분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주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필요없습니다. 세계 복귀도 필요하지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내가 무엇을 사랑하느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 외적인 것이냐, 내적인 것이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에 세상에서도 내적인 것을 바라지 않느냐? 부모와 처자, 다시 말하면 내적인 가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가정이 피해를 받는 입장에 설 때는 외적인 것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전부다 버리고 이것을 보호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정상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이 귀하다고 해서 그냥 붙들고 돌아갈 수 있느냐? 타락은 혈통적으로 했고 사탄의 거짓 사랑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돌아갈 수 있으면 6천년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으면 야곱이 수난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도 120년간 수난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 가정 그것으로 다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형제들, 그것으로 다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그냥 그대로 된다면 즉, 가정도 그냥 그대로, 종족도 그냥 그대로, 민족, 국가, 세계도 그냥 그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별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그렇게 안 됩니다.
오늘 여기에 서 있는 내가 누구보다 못나서 이런 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먹고 싶어서 욕먹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어서 이런 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자기 나라가 있으나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애국가를 보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하는 가사가 있는데 하나님이 보우하시느냐? 보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큰 원수가 부딪혀 하나님 앞에 충의 도리를 하고 효의 도리를 할 때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도리를 못 할 때는 보호를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더 큰 나라에게 맞는다면, 다시 말하면 더 큰 원수에게 약한 자가 되어 맞게 되면 하나님이 편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건 왜? 맞는 편에 복귀의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가인보다도 아벨이 선한 편에 섰기 때문에 아벨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할 때는 내가 맞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원수로부터 맞는 입장에 서지 않게 될 때는 하늘로부터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원수로부터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누가 맞아야 되느냐? 내가 맞아야 됩니다. 대한민국 백성들이 맞아야 됩니다. 백성은 나라를 위해서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그 민족이 나라를 위해서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고, 동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민족 가운데 있어서는 가정이, 가정 가운데 있어서는 개인이 몰리는 자리에 서야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에서는 민족이, 민족에서는 종족이, 종족에서는 가정이, 가정에서는 개인이 몰리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앞에 더 큰 원수를 가진 입장에 선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예수님은 세계적인 내용을 가지고 홀로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은 세계는 나와 더불어, 이스라엘 나라는 나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 종족, 가정, 사람들까지 전부다 나와 더불어 있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이 아닙니다. 사실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 앞에 가정이 반대하면 가정이 원수가 되는 것이요, 종족이 반대하면 종족이 원수가 되는 것이요,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이 원수가 되는 것이요, 국가가 반대하면 국가가 원수가 되는 것이요,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더 큰 원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원수와 싸울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싸우다가 죽더라도 그가 상대한 국가면 국가가 망할 때까지 하나님은 그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전세계를 대해서 싸웠으면 세계가 망할 때까지 편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국가를 넘어 세계를 중심삼고 싸웠기 때문에 그 세계가 굴복할 때까지 하나님은 예수님을 편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 그런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을 서러워하는 사람들은 세계로 가는 길을 막아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입장을 도피하려는 사람들은 세계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피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돼요.
현재 우리가 모든 환경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내일을 위한 방편입니다. 오늘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방편입니다. 더 큰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내일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위해서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이상의 세계를 못 넘어갑니다. 다시 말해서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자리를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자리를 잡은 기준에서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으로 알았지 자리를 잡아야 할 입장에서 보내신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까지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외적인 세상 것을 가지고 그냥 그대로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에 들어선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요, 그 절대자는 우리의 아버지요, 그 아버지는 천지의 주권자이십니다. 이것을 다시 보면, 그 절대자는 나를 중심삼고는 아버지요, 세계를 중심삼고는 주권자요, 하늘의 중심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명사는 고귀한 것입니다. 영계를 통합시킬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명사요, 세계를 통합시킬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명사입니다. 나와 그가 통일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명사밖에 없습니다. 영계에서나 육계에서나 그 명사 이외에 더 가까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에 있느냐? 타락이 뭐냐?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중심인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만이 절대자이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생겨났고, 그로 말미암아 우주가 생겨났다. 그러기에 여기에 대치되는 일체의 것은 제거당해야 된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신념을 가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피조물을 하나님 대신 주관하려면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랑이 없이 주관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 시조가 에덴 동산에서 저지른 타락의 동기가 무엇이냐? 나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이요, 하나님의 딸의 자리에서 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침범을 받는 것을 피하게 되면 아들이 되는 것이요,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라고 하는 자각이 아담보다도 강해야 됩니다.
그 아버지는 천상세게의 중심이요, 지상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나는 절대적인 중심과 하나되는 것이요, 천지를 주관하시는 절대적인 주관자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자각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가치가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확실히 알기 전에는 청산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나와의 가치,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하냐! 그 아버지는 세계의 주권자 이시다! 그 아버지는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온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아버지의 아들딸이다! 틀림없는 아들딸이다!'하는 자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 이상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런 아버지와 하나된 나는 그런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된 가정이 필요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본연의 가정입니다. 또한 절대적인 자리에 있는 종족이 필요하고, 민족이 필요하고, 국가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소원한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타락한 후손으로서 부모를 갖고 있습니다. 형제를 갖고 있습니다. 종족, 민족, 국가, 인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족, 그 민족, 그 국가, 그 인류는 하늘편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각된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절대적인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염려하고 슬퍼하는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담 해와가 어떻게 해서 타락했느냐?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불신했느냐? 사탄으로 말미암아 불신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실체가 되지 못했느냐? 사탄이 붙잡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느냐? 사탄을 중심삼은 기만적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응당 이 사탄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사회의 어떤 지위나 계급, 대학교수면 교수로서의 권위, 혹은 그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로서의 그 권위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는 복귀의 길을 못 갑니다. 사탄과의 관계를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기점은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해결되어야 됩니다. 그 자신 가운데에는 누가 있어야 하느냐? 절대자 하나님만이 계셔야 합니다. 이 세계의 중심 주권자인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그 무엇이 이것을 부정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확고하게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지 않고 부정해 봐야 그 부정은 거짓입니다.
아버지를 대신한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은 세계와 하나되는 것이요, 그분과 하나된 자리는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다!' 하는 자리에 서야 부정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부정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동정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그냥 그대로 있으면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각된 자리에서 부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데 부합되지 않는 일체의 모든 것은 부정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의 어떠한 욕망, 어떠한 권세, 자기 스스로가 바라던 어떠한 것도 부정할 수 있다!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소위 통일교회를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것이 문제가 돼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세상에 애인이 있고, 뭐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런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건 세상 생각입니다. 그런 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 생각해야 합니다. 복귀는 누가 해야 하느냐? 아벨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벨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가인을 굴복시켜 복귀해야 하고,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이 둘을 복귀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못하는 거예요. 아벨의 책임이 무엇이냐? 아벨은 중심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부모를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고, 가인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벨이 가인과 하나되면 부모는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거예요.
그리고 아벨이 부모와 하나되면 가인이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 걸립니다. 아벨이 세계를 대해서 싸우면 세계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래요. 예를 들어 보면 예수님은 아벨의 입장이요,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이며, 세계는 가인의 입장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뜻을 이룰 수 있는 가능권내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30대에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리, 새로운 민족을 대신해서 가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외적인 기반, 즉 자기 가정만 갖추면 세계는 그 가정을 중심삼고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예수님은 아담을 대신한 입장이죠? 그러니 다음엔 아내와 아들딸, 이것만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굴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틀어졌고 이것도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칠판 판서 후 지적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래서 하나님께서 같이하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아벨의 입장이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짜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지만 야곱과 어머니가 하나되었기 때문에 아버지까지 복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21년동안 외로운 자리에 있었지만 부모는 언제나 야곱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가정을 갖추고 나니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부모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서러운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서러운 심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슬픈 자리에서 탄식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된 것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굴복시키고, 형제끼리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와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나되는 데는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나라가 복귀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유대교도 하나되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에 예수님도 돌아가시고 이것도 망한 것입니다. 이것만 하나되면 부모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장자가 세계를 자기 것 만들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은 아벨을 세워서 상속받게 해 오셨습니다. 아벨의 정성의 도수가 차면 상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장자는 상속자(아벨)가 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를 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의 배경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60년대는 어떤 시대냐?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시대입니다. 이것만 이루어지게 되면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뜻은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가인적인 세계에서 나라면 나라의 어떤 주권자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떤 주권자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을 중심삼고 볼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냐? 자신에 대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아들딸로 태어났다! 이 아들딸로 태어난 것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왔다갔다 할 수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계절이 바뀌어지듯이 내 마음이 변할 수 없다! 사시사철은 변하더라도 나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형적인 모양은 다르더라도 내심, 중심을 통해서 돌아가는 데는 철석같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가인이 칠 수 있는 공격 대상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법 중에 최고의 전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공격을 하기 전에 앞서 나가자는 것입니다. 앞에 나아가서도 그들의 본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들보다 낫자는 것입니다. 그들보다 못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바로잡아 온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낫기 위해서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성현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70년대를 맞이한 현재의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남북을 통일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70년대는 통일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북에 대해 공세를 취하는 반면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위로는 하늘의 주권자로서, 아래로는 땅의 주권자로서, 내 아버지로서 모셔야 합니다. 나는 그분을 위해 있고, 그 나라를 대신해 있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 자리는 예수님이 섰던 자리와 같은 자리입니다. 즉, 아벨의 자리입니다. 하늘을 대신해서 선 자리요, 땅을 대신해서 선 자리입니다. 아벨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각을 하지 않고는 아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성사되면 모든 것을 문제없이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세계로부터 나라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늘편으로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부정을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까지도, 외적인 입장은 다 잃어버리는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를 해 가지고 맨 처음 은혜를 받게 되면 자기 어머니도 못 만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만큼 가까와졌다는 거예요. 또 지금까지 사랑하던 남편이나 아내도 영적인 체험을 할 때에는 뱀과 같이 보입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예요.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자기 아들딸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을 갖다 주고 그저 좋아 가지고 죽을 지경이더니 이제는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아. 배고파 봐라'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지 않고는 해방의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가정이 파괴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인들이 들어오니까….
타락은 불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실체를 잃어버리고 참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몇 종류가 있느냐 하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내적인 모든 문제를 부정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걸 느껴야 됩니다. 완전히 느껴야 됩니다. 아들로서 혹은 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간이 지나면, 다음은 상대적 관계입니다. 부자의 사랑, 그 다음엔 부부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아들딸의 사명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로서의 사명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로서의 사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0여년의 생애 동안 사명을 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였습니다.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는 아들의 사명을 한 생애였습니다. 그 다음에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부부의 사랑을 찾기 위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찾아지면 부모의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요, 그 사랑이 성립된 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를 중심삼고 보면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런 사랑을 느끼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랑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남자들에게는 좀 안 됐지만 남자는 뭐냐? 타락했기 때문에 천사장격입니다. 또 여자는 뭐냐? 천사장 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귀하여 하나님 앞에 가려면 타락 직전 아담 해와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거예요.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느냐? 천사장 부인이 본래는 아담 부인이 되는 거예요. 천사장에게는 결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종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만 들어오면 남편이 원수같이 생각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남편이 천사장의 입장에서 아내를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아내가 타락한 해와의 입장에서 남편에게 따먹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해와는 어떤 입장에 있었느냐? 해와는 두 남자를 섬겼습니다. 두 남자를 섬기는 입장은 타락한 입장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부인들은 두 남자를 대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에 있어서의 남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남자…. 이런 입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누가 결정하느냐? 누가 결정해야 복귀되나요? 여러분, 자신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불이 나 가지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를 해 보십시오. 그래서 영적으로 알아 보라는 거예요. 남자들은 3년 동안 잘 믿는 아내만 따라가면 완전히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3시대를 대신한 3년동안 부인 말만 잘 들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것은 타락한 세계의 암탉이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시대에는 여자가 울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있어서 70년대는 여자가 그렇게 해야 할 때라는 거예요.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70년대까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여자가 활동적이면 남자가 출세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도 그렇지요? 그러므로 그저 `임자 부탁하네' 해야 되는 거예요. 요즈음 남자들 시세 있어요? 남자는 어디 가서 취직하기도 힘들어요. 그렇지만 여자는 미인이기만 하면 어디든지…. 공부를 못 해도 좋다는 거예요. 남자는 대학을 나와도 `당신 어느 대학 나왔어? ' 하지만 여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거예요.
이런 때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가인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쫓겨다니며 고생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세상에서는 타락하던 모양 그대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청소년 시기인 만 16세 때에 그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타락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는 난장판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질서를 바로 잡아가야 합니다. 노인으로부터 장년, 청년, 소년들까지 질서를 바로 잡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척 들어왔다 하면 무엇인가 심정적으로 이상하다는 거예요. 전부다 부정하고 싶다는 겁니다. 부정하고 싶은 동시에 모든 것을 사탄세계에 갖다 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에게 갖다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좋은 집이 있으면 선생님이 저 집에서 사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먼저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안 그러면 통일교인이 아니예요.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통해 누구를 세우느냐 하면 아버지를 세우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현실적인 입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저거 선생님께 한번 드려 봤으면…. '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자기도 모르게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사탄은 나를 위해서 그런 집, 그런 차 등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거예요. 전부다 아버지를 위해서 한다는 자각이 자체에서 자동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좋은 자리, 이런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효의 도리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현실 생활권내에 가능할 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아버지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직접 대할 때는 아버지이지만 영계에서는 주권자이십니다. 무한한 가치로써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고 생활감정까지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사탄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세계의 사람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중심삼은 현실 세계를 완전히 부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남편, 혹은 자기 처자까지도 부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아주머니들 가운데에서는 남편을 버리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나오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버리고 나왔습니다. 자기 자식을 버리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고아원에 맡기고 나온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누구 때문입니까? 선생님 때문이예요? 자기 때문에 그랬다는 거예요.
그것은 누구 때문이냐? 결국은 자기 때문입니다. 자기 갈 길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부모를 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죽여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는데, 너는 부모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면 나는 목을 내놓고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자식을 잡아 제물 드리는 그런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용서받으려면 말씀대로 제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살리는 겁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친척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솔직한 고백이에요.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친척에 대한 관심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친척이라 해서 뒤에 가서 사정을 봐주고 하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내가 친척들에 대해서 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왜냐하면 싸움의 방향이 이미 바꿔졌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 때입니다. 고향을 떠나려 할 때는 고향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세상의 법도가 아닙니까?
이제는 통일교회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70년대는 통일교회의 운세권으로 들어서는 때입니다. 영통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는 겁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왜 그러냐 하는 것은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친척들도 구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친척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 형제, 처자에게 무슨 예물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정성을 들였지만 손수건 하나 안 사주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식구들이 무엇을 사주게 되면 `이것을 다른 사람 줘야 할 텐데' 하면서 주었습니다. 법도적인 생활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온 사람입니다. 부모도 처자도 다 버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니 나라도 버려야 됩니다. 나라를 버렸다가 다시 찾겠다고 하니 그 나라가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지 않고는 복귀의 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부모를 복귀해야 합니다. 오늘날 선생님에게 책임이 있다면 대한민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대한민국에 모셔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더 큰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찾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은 선생님의 친척입니다. 종족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종족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을 쳐야 됩니다. 여러분이 수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서 이방을 찾으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벨적인 집단은 가인적인 집단을 복귀해야 선생님이 해방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것은 불가피한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의 사연이 엮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귀의 기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아벨에서 부터입니다. 아벨은 부모를 복귀해야 되고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복귀해야 되고 하나님을 이스라엘 나라에 모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책임은 무엇이냐? 대한민국 삼천만을 복귀하여 거기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 정부가 통일할 수 있느냐?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통일교회가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협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북을 통일시켜야 합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아시아가 통일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아벨적인 개인, 아벨적인 가정, 아벨적인 국가는 반드시 가인을 복귀하여 그 환경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기점이라는 것을 알고, 이것을 여러분의 생활에 적용하여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이 원칙을 벗어나서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여기는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남을….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반대로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만이 계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내 개체의 중심이 되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인을 굴복시켜서 가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복귀의 기점을 중심삼고 나가야겠습니다.
결론을 지읍시다. 세계를 하나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세계를 하나 만들기 전에 자기 자체가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세계가 하나되어 그 세계권내에 내가 산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나와 관계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개인이 아버지의 품에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 자신의 환경에 대한 자각, 국가에 대한 자각, 세계에 대한 자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자각을 해서 모든 것을 청산짓고 넘어가는 자리에서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는 거예요. 아벨의 자리를 결정지었으면 가인을 반드시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개인이 될 수 있고, 하늘 가정, 하늘 국가, 하늘 세계, 즉 천국을 이루는 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기점입니다.
아버님, 한 많았던 1960년대를 지내고 보니 그것은 짧은 생애노정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내심적으로 느껴진 모든 사연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연이었사옵니다. 보잘것없는 불초한 이 몸을 지켜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사연을 품으시고 나오시면서 그 사연을 얼마나 토로하고 싶으셨사옵니까? 만국가와 더불어 승리를 찬양할 수 있고, 찬양과 더불어 영광을 높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참아 나오신 아버지 앞에, 오늘도 저희들이 겸손한 자세로써 아벨의 모습을 찾아 나섰사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벨은 그 마음 전체에 오직 아버지를 모시는 것만이 목적이옵고, 형님인 가인을 복귀시키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자기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는 절대적인 분이요, 세계의 중심인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세계의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을 알았사옵고, 자각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세계의 중심으로 모실 수 있는 동기를 아벨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복귀의 기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님, 통일교단이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아벨적인 자리에 서 있사옵니까? 이제 저희들은 저희 교단을 중심삼은 의식보다도 아버지를 위하겠다는 의식이 강해야 되겠습니다. 교단을 위하는 의식보다도 나라를 위하겠다는 의식이 강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아버지와 그 나라를 마음에 모실 수 있을 때 가인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요, 아버님도 모실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복귀의 기점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가인이 주관하는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지여, 세계는 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민주세계의 첨단에 서서 이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미국도 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선진국도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청소년으로부터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삼분오열되는 장벽에 부딪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아벨적인 새로운 신념의 주체가 되어 가인을 자연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이런 환경이 세계에 찾아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아벨의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 아벨과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개인이 아버지와 하나되고, 내 가정이 아버지와 하나될 때 가인세계는 굴복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축복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개인을 아버지 앞에 결속시키고 가정을 아버지 앞에 결속시켜 하늘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사옵니다. 이 가정들이 아버지와 하나될 때 사탄세계는 자동적으로 굴복될 수 있으며, 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이스라엘을 창건하기 위해 깃발을 들고 나설 때 세계는 자동적으로 굴복할 수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찾고 있습니다. 하늘의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하늘의 가정을 만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가인을 자연 굴복시킬 수 있는 환경이 우리 목전에 도달했사오니, 여기서 저희들이 낙망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자기 자신의 자각은 물론이요, 가인 세계까지 자각시킬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고는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것이 아벨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벨에게는 밤을 세워 가면서 가인을 위하여 눈물흘려야 할 사명이 있사옵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에 있어서 자신을 원수시하던 이스라엘 나라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긍정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를 부정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저희들에게 아벨이 지녀야 할 긍지와 아벨이 찾아야 할 권위, 아버지와 더불어 동거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각된 자아로서 절대적인 아버지, 세계의 중심인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는 가인이 문제가 아니라 아벨이 문제이옵니다. 이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는 데는 총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단은 이것을 표어로 세워 나왔사옵니다.
여기에 서서 아버지 앞에 아뢰고 있는 이 자식도 이 길을 가기 위하여 섰사옵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 저희 권한을 자랑한 때는 한 번도 없었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저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있었지만 아버지를 그런 자리에 세워 드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런 자리에 세우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자리가 아벨적인 자리임을 아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와 같은 자리에 높여 주고 위해 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전통을 받아 가지고 그런 길을 거쳐 이 민족을 구해야 할 책임이 있기에 수난의 길을 가고 있사옵니다.
눈물은 나를 위해서 흘리는 것이 아니옵고, 이 민족을 위하여, 이 세계를 위하여 흘리는 것이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의 눈물이 탕감의 눈물로서 바쳐지기를 바라고 가는 길이기에 아버지는 저희들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단이 가고 통일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70년대를 맞이해서 저희들이 기도하고 정성들이며 수고하는 모든 것은 야곱과 에서가 상봉하던 것과 같은 인연이 갖추어지는 환경을 넘어가는 것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가인적인 세계 인류와 아벨적인 저희들이 상봉할 수 있고, 기성교단과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시점을 갖춘 70년대를 맞이하였사옵니다. 아버지여, 천운을 맞아들일 수 있는 이때에 본부에 있는 저희 자신들이 문제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음에는 스승의 자리에 있는 제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가 문제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인연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자각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인 로마제국을 굴복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첨단을 걷고 있는 문명국가와 모든 청소년들을 아버지 앞에 굴복시켜야 할 사명을 저희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각자가 절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계를 복귀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복귀의 기점을 자각하고 천국을 창건하는 데 있어서 공신이 되겠다고 할 수 있고,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모두다 이 길을 달려갈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것을 바라며 모여서 정성 드리는 곳곳마다 당신의 일률적인 축복을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나'를 두고 볼 때 이 '나'는 역사적인 산물입니다. 또, 과거의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의 인연을 통해서 태어난 `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나'가 태어나게 된 본연의 바탕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바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길을 가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좋았던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상속받으려고 합니다. 과거에 위대한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공적이 있으면,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로만 남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기와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속성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나를 주체로 세우게 되면 역사적인 상대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또 역사의 주체를 세우면 나는 그의 상대적 존재가 되어 그 역사의 주체와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는 데에는, 역사적인 어떤 중심존재보다, 또 현재의 어떤 중심보다 내가 응할 수 있는 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주체와 현실적인 내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역사를 지배하시고 현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과 상대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인간의 욕망은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느냐? 사랑의 목적이 성사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 가는 방향을 두고 볼 때 역사를 통해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생활이라든가 현실에서 세계와 인연맺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온 세계 만물 앞에 절대적인 주체로서 절대적인 권을 세워 가지고 만물을 상대적 존재로 세워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사랑권입니다.
현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자기 스스로 세계적인 욕망의 권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위해 싸워 나왔고 지금 현재에도 그런 것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봐도 그런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이 연결되는 것은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순리적인 내적 활동을 통해서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주체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되느냐? 오늘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절대적인 기준을 서로가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국가가 선진국이 되고 더 발전하게 되는 것도 그런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국가의 국민 전체보다 그런 주체적인 한 사람이 전국민의 사상권을 설정하면 그 나라는 부흥과 발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나 세계 앞에 절대적인 사상을 중심한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가 나오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그런 상대적인 세계 형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고차적인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주체자가 나올 때 고차적인 문화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두고 보더라도, 우리 개체 개체는 출세를 바라고 승리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도 세계적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데 시간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주체의 자리를 바라보고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에 가까이 나가려는 것이 오늘날 존재하는 만민의 욕구의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권이 아니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관념은 막연합니다. 그 사랑권은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주체보다도, 대상보다도 더 높을 수 있는 가치의 권이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만 거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현실적인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체의 생명을 영원히 영원히 연장시키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기에 사람들은 영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생의 한계점을 넘어 어떻게 영생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나 양심세계를 추구하는 선한 사람들이 문제삼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삼고 우리의 욕망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인간에게는 현실만이 아니라 과거까지 지배하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주체권을 바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피조세계면 피조세계, 만물이면 만물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만물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한계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욕망에 한계선이 없는 한 행복의 기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앞서서 자기를 끌고 가는 자리에서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욕망이 다 이루어져서 만족상태에 도달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욕망의 한계선을 소화하지 못하고는 영원한 이상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도 한계선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 한계를 지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냐? 그것은 우리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나 상대 자체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어야 합니다. 그 둘이 하나로서 서로 융화될 수 있고, 중화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현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권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자체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진정한 사랑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진정한 내 소유를 바랍니다. 또 그 다음에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는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원인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철학과 종교는 그런 것을 모색하고 추구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만물을 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근원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람과 진정한 만물과 진정한 근원자, 혹은 절대자면 절대자를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것이냐? 나 자신이 확실히 그와 관계맺을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있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은 나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닙니다. 근원적인 분으로 말미암은 사랑입니다. 그 주체와 내가 상대적 입장에서 하나되는 데 있어서 주체는 상대보다, 상대는 주체보다 더 존중시할 수 있는 그 무엇, 둘이 합한 가치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랑권입니다. 둘이 서로 중요시하는 사랑권인 것입니다. 이것을 개체를 중심삼고 보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실제로 그 기원에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전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느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자기를 결정짓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과정을 통한 완성기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를 사랑하느냐?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사랑이 막연했습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사랑하느냐? 절대적인 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로부터 연결되지 않고는 전체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할 수 있는 사랑의 내용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상대적 관계를 전부다 부정해 버리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세워 놓고 자기를 사랑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은 하면 할수록 실패의 동기가 됩니다. 횡적으로는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종족으로는 모든 역사를 파탄시키는 동기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원칙에 따라서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는 절대적인 주체가 될래야 될 수 없습니다. 자기는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존재가 가야 할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자기를 사랑하더라도 자기를 표준할 것이 아니라 주체를 표준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주체 앞에 상대가 되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우리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몸을 사랑한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어떤 때 가능한가? 상대적 이상 세계에 있어서 사랑권을 중심삼고 요구하는 그 본체 앞에 상대적 존재로 설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한 채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파탄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동의 일체가 주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으로 결실되는 것이 아니라 파탄적인 내용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런 사회나 그런 국가는 망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세계를 두고 보면 이 세계는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세계를 창건하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세계는 개인주의적 입장에 있습니다. 원인적인 자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원인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한적인 경계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의 그 `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영원불변한 주체 앞에 완전무결한 상대적인 나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나를 사랑했다는 입장에 설 때에 여러분은 생각지 않은 결과를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절대적 주체가 고대하는 인류를 품기 위한 사랑, 모든 사랑을 대표한 첫 출발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한 한 분자입니다. 또한 나는 인류와의 횡적 관계를 중심삼고 본다면 지엽적인 실체입니다.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적 관념권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나는 인류를 대표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소유관념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원하느냐? 사랑은 자기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받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오늘날 우리 개체들의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은 근원적인 사랑의 주체와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또 받고 싶은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자식은 부모의 사랑권내에 들어가서 서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자기 것을 사랑하는 것을 확대하게 되면 결국 근원적인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모든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요, 만물을 주관하기 위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리고 자기가 절대적인 입장에 가까이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기 어려운데 그것은 왜 그러냐? 상대적인 자기 사랑을 먼저 완성하지 않고는 절대적인 주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이런 운명이 창조할 때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파탄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권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욕망은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하여 상대적 관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상대는 누구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대상 사랑권은 무엇이냐?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무엇이냐? 우주의 근본 주체 앞에는 개체완성보다도 가정완성이 창조적인 것이고, 그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본연의 사랑이 필요한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가정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각기 자신에게서 개인적인 사랑을 완결시킨 다음에는 상대적 사랑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 세계는 결과로 보면 남자 여자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를 묶어 주는 것이 상대적 사랑입니다. 부부가 생겨난 것도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자기 부모로부터 인연되어 나온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는 표준적 전통기준을 상속받고 나오는 것이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부다 걸려 듭니다. 상대적인 남성과 여성의 권내에서 이 세계는 규합되는 것입니다. 세계 사람을 전부다 규합한 것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근원적인 주체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부모를 완전히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통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떤 존재냐? 자기와 최단거리에 있는 존재요, 절대 이상의 사랑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절대자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나와 확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냐? 그 부모 앞에 온 인류를 규합할 현실적인 결과적 존재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하느냐?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리 상대적 관계를 맺었다 해도 자녀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부모로서 자식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상대를 갖고 싶어하고, 부모를 갖고 싶어하고,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인 하나님, 즉 주체 앞에 있어서 가정적인 사랑권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것, 그 가정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그 가정도 남을 것이요, 그 후손도 남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저 나라에 갈 때 참사랑을 지니고 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역사를 대신하듯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은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소질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소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인연을 맺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이상의 절대적인 사랑권을 추구하게 되면 입체적 세계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 그로 말미암아 후손들에 대하여서 그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규합시켜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야 됩니다.
사랑의 가정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부모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요, 부부는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자녀는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시대에서 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와 부부와 자녀가 일치하여 천주를 대표해서 우리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고, 후손들에 대해서 우리를 따르라고 할 수 있고, 내심으로나 외심으로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의 본향, 천정이 통하는 그곳은 천지에 기억될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결정되면 완전한 대상은 자연히 생겨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무엇을 찾아오셨느냐? 주체를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았고, 당신이 지은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가정보다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나 하나를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상대를 사랑하므로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하므로 미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3시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가지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이 되었고 나는 그 후손입니다. 이런 타락한 세상의 인간을 구하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데 그가 찾아오시는 제일 근원적인 기점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가정을 붙안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적으로 완전히 해원되면 메시아가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주관하시는 사랑권이 자리를 잡아 닻을 내릴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가정의 사랑이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개인적으로 하늘을 대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은 제 2차적인 것입니다. 사회에서 역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도 제 2차적입니다. 인간이 영육을 합하여 살고 있는 이 지상생활에서 제일 가치있는 것이 뭐냐? 제 1차적인 것이 뭐냐?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어떻게 상대와 연결되고, 어떻게 미래의 심정과 연결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것이 이루어진 세계는 사랑의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뜻을 합해야 합니다. 가정과 가정이 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 가운데에는 반드시 주체적 가정이 있습니다. 종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서 보면 주체적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가정들은 그 가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체적 가정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역사노정에서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에는 어느 개인이면 개인을 본받으려고 했고, 사회가 바뀌면 발전한 사회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많았고 또 그러한 국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본받으려고 하는 가정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세계 사조 앞에 그런 가정이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개 가정을 본받아라 하는 주의가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를 본받아라, 아무개를 본받아라 하는 주장들은 많았지만 어떤 가정을 본받아라 하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에 남아진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가 숭배할 수 있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나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후의 역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잘난 국가도 아닙니다. 이 천주를 통합할 수 있는 사랑권에 선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만이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만이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만이 이 우주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우리가 안식하게 되면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이것을 옹호하고, 가면 갈수록 이것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하려고 합니다.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자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자체가 반드시 가야 할 권은 어디냐? 우주의 주관권입니다. 우주 주관권의 중심이 되는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냐? 가정입니다.
내가 축복을 해주면서 처녀 총각들을 많이 다루어 보았는데, 불과 몇 분전까지 기분 나쁜 것이 있고, 좋으니 나쁘니 하다가도 결정만 하게 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혁명중에도 그런 혁명이 없습니다. (웃음) `사랑!'하면 천지가 뒤넘이치거든요. 지금까지 좋으니 어쩌니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다가도 일단 결정을 한 다음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계속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때 만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형성한 사랑권은 역사과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동포애가 아닙니다. 뭐라고 할까요? 동고애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요? 새로운 말이 나와야 될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말을 하나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미국에 가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늙은 노친들만 살고 있어요. 그들에게 `당신들 행복하오? '하고 물으면 `아들네 집에 가고 싶소' 합니다. 그것은 아들네 집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또 `손자가 보고 싶소? '하고 물어보면, 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서 세계적인 운동을 벌이면 그런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전부다 몰려들어올 것입니다. 몇 명만 데리고 나가서 세계적으로 순회하고, 생활적으로 모범이 되는 몇 가정만 갖추면 세계는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되고,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절대적인 자리에 섰다 할 때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주체와 완전한 상대가 주고받으면 절대적인 가정이 됩니다. 그 권내에 태풍이 불고, 굴복될 수 있는 존재는 전부다 굴복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사랑에 굴복하고 사랑에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을 입체적으로 확대시킨 것 뿐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에는 이것은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가정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존재와 시대적인 나를 연결시키는 것, 즉 과거와 현재를 하나 만드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천년 만년 찬양하게 하려는 사상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며, 이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천국의 기점은 개인이 아니요, 국가가 아닙니다. 가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랑 신부의 인연을 찾아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개인이 천국의 기점입니까? 가정이 천국의 기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 부모면 부모, 자식이면 자식들이 서로 사랑하면 사랑권이 갖추어질 것인데, 그러한 사랑권이 그 종족 앞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절대적 주체인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을 동기로 하여 상대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종족 앞에 중심이 될 수 있는 동기의 힘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과 관계맺은 가정은 자동적으로 종족의 중심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 앞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절대적 주체의 사랑권만 형성하면 자동적으로 민족 앞에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더 큰 사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좀더 아름답고, 좀더 원만하고, 좀더 내용을 갖춘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이 추구하는 주체적 사랑권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만 되면 환경적인 요건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반드시 그 민족사에 남아지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국가를 찾아 나오는 주체, 즉 하나님과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일치화 할 수 있는 기점을 만들게 되면 그 가정은 국가의 중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까지 찾으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운세에 따라 점진적 단계에 앞설 수 있는 형태를 표준하고 그것을 추구의 대상으로 삼아서 현실의 자기와 관계를 맺으면 상대적 세계는 그러한 가정을 주체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 추구하는 본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개인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요즘 통일교회 젊은이들을 보면 어디 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은 무엇이냐? 사랑을 느끼며 살자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서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일할 때, 아내는 집안에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은 서로 다르지만 마음은 같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절대적 주체 앞에 선을 돌리고 마음이 하나되면 상대적인 몸은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순회 간다는데 `갔다 오소. 나는 피곤하니 잠이나 자겠소'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순회 갔다올 때까지 아내도 같이 정성들여야 합니다. 자식들도 그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으로 부모의 행복을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운세요, 우주가 표준하는 사랑을 중심삼은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이것이 깨지는 날에는 절망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를 잃어버리면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껴야 효자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비통함을 느낍니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천년 만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를 중심삼고 가정이라는 하나의 모체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의 관계가 파탄되는 종말시대가 올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는 시대가 올 거예요. 부부끼리 서로를 원수시하고 미워하는 입장에 부딪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평면적으로 이 사회에 백일하에 나타나거든 종말시대가 온 줄 아십시오.
이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개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참된 가정입니다. 사탄도 무엇을 치고 나오느냐? 가정을 칩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었다가 하나되지 못하면 파탄되는 것입니다. 부자간에 부부간에 가정 전체에 파탄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었다가 파탄된 사람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을 위로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프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초인적인 우주의 힘의 작용으로 인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 힘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하나님과의 종적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적인 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힘이 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떠난 결과를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통한 사실입니다. 내가 완전한 합격품이 되어야 하는데, 그로 말미암아 불합격품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완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되는 불합격 요소를 갖게 될 때는 거기에 비례하는 요건을 우주의 힘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가정에 있습니다. 역사를 품고, 시대를 품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을 거쳐오면서 찾아온 최후의 기점은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사랑이 연결된, 사랑으로 전부다 결속된 가정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다 여기에 주관을 받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정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에 아담 해와에게 준 본래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은 남자 아담, 여자 해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한 새로운 가정을 꿈꾸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남녀를 세우신 제 일차적인 출발의 기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찾아 가정권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세상에서 충족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서 살아야만 천국도 무사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서 싸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운동이 새로운 역사시대에 나타나야 할 것이요, 그런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체의 입장에 서 가지고 횡적으로도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축복가정들이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개인 생활에 있어서는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가정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통일가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한번 하자' 하면 두메 산골 오막살이에서도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앙에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일시에 미쳐지는 관계권, 그것이 하나의 세계를 대신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면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이요, 아내가 기뻐하면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이요, 자식이 기뻐해도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일시에 우주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과 그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되면 천지의 어떠한 가치라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거룩한 자리, 높고 귀한 자리를 찬양할지어다! 따를 지어다! 백방으로 받아들일지어다!' 하면 `옳소!'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백방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모순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혁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로 찾아가서 확정지어야 할 자리가 하나님을 중심삼는 세계애를 집약시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끼리 사랑해야 하고, 가정끼리 사랑해야 합니다. 김씨 종족이면 김씨 종족이 하나되어야 되고, 또한 종족과 종족이 서로 하나되어 자기 형제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좋아하지 않느냐? 어머니 대신 딸이요, 아버지 대신 아들이니,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랑의 전통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그러한 부모가 없었으니, 참부모를 중심삼고 효하는 도리를 본받으라고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 선생님과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을 대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아들딸도 그렇게 배울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우리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한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 또 환경을 초월해 있다. 빈곤을 초월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이 부모의 명령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가정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이 길은 부모가 간 길이기 때문에 가야 된다.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라고 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부부가 부모를 위하는 것을 그 자식들로 하여금 본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후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가정은 종족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그 종족은 민족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민족은 국가를 통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국가는 세계를 통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는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딱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갈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개체를 위해서보다 가정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개체를 위해서 싸우면 큰일납니다.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싸울 것이 아니라 종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가는 이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민족을 위한 주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소중한 것이 뭐냐? 세계와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는 그곳이 한계점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기준에서 실제적인 행동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없어질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주권이 무너질 때 보면, 그렇게 당당하던 나라가 일시에 몰락되었습니다. 무엇으로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땅에 떨어졌습니다. 주권이 있어야 국가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형성되려면, 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주권은 무엇이냐? 근원적인 하나님과 인연맺는 것입니다. 나라를 처리하는 사람들은 백성이 깊이 잠든 다음에 하나님과 인연맺어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권자는 백성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백성과 하나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번영하는 것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대표한 사랑의 가정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해야 할 것이 통일가, 통일교회, 통일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확실히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아버지! 저희 개인이 세계를 향하여 활개를 치며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많은 사연을 남겼지만, 가정을 망각한 자리에서 허덕이다가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 이 땅 위에 수많은 국가가 있다 할진대 국가가 어디에 기반을 두었는가 생각할 때 개인도 아니요, 가정도 아니요, 종족도 아니요, 역사도 아니옵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흘러가 버린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통일가가 아버지께서 내리시는 새로운 천명을 받아, 이 엄청난 세계사적인 책임을 감당하고자 하옵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제 1기반이 이 땅에 있어서는 나라와 나와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인연된 부부와 거기에 부모와 자녀가 아버지의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주관권을 계승해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입체적인 권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이런 인연을 추구해 나오셨사옵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자기를 주장해 나왔지만, 아직도 자기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의 한계선을 넘어 새로운 가정 기반을 추구할 수 없었던 것이옵니다. 이것은 인류의 슬픔이요, 역사의 슬픔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우리 인류가 현시점에서 찾아야 될 하나의 형태가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내에서도 오늘 여기에 모인 저희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진정 몰랐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것이 천상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정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최고의 미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실증적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인간의 최후의 요구인데 그것이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이 진정 몰랐사옵니다. 이제 오늘 통일가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사명은 가정을 위주로 한 세계이옵니다. 그 가정은 세계를 위하여 있는 것이요, 나라를 위하여 있는 것이요, 민족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종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불타 그 가족 전체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움직이게 될 때 전세계는 불원한 장래에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주관권내에 완전히 품긴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신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축복이라는 이 거룩한 명사 앞에서 저희들은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과거의 생활은 개인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천주사적인 인격을 중심삼은 생활이 아니라, 몰락해 버린 개인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을 타파해 버릴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와 같은 모임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70년대를 향하는 저희들은 한 개인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가정의 행복의 터전을 개척하고, 이것을 동기로 하여 민족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정과 그런 사랑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책임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70년대를 맞은 저희들, 통일 종족을 찾고 민족을 대표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만세의 뜻인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나서야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거느린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창조이상의 실현인 것을 아옵니다. 사위기대 완성이라는 말은 천번 만번 들었지만, 실제로 그 결정적인 내용을 사랑하지 못한 자신들이었음을 탄식하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사명을 완결시키어 민족과 세계를 끌고 가서 아버지와 연결시켜야 되겠사옵니다. 절대적인 주체와 절대적인 상대가 하나되는 그 힘의 요건을 이어 가지고 이것을 사랑의 주관권으로 삼아 세계 앞에서 행사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아름답고 원만한 자체로서 당당코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가정권이 이루어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번 수련 기간을 통해서 저희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려 하시옵니까? 저희들은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전체의 행복이라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걸어오기 위해서 아버님은 비참한 역사를 거치셨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셨습니다. 사망의 경계선을 넘나드셨습니다. 이런 가정을 찾으러 온 예수는 찾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저희들은 이 원통한 사실을 무너뜨려야 되겠습니다. 타파해야 되겠습니다. 원수의 화살, 원수의 비웃음, 원수의 비수가 이곳을 왕래하면서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을 농락하였사옵니다.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하나의 방파제는 가정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를 사랑하는 전통을 저희의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형제애로 연결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영원한 효자 효녀는 당신이 소원하신 가정을 이루고 `당신이 주관하고 싶으신 인간을 백방으로 사랑하시옵소서'라고 하는 아들이고 딸임을 알게 되옵니다. 이들이 그러한 가정을 이루는 부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대표하는 가정이 되고,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이 땅을 대신하여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절대적 위치에 설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고, 남아진 세계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남아진 아버지의 사랑은 저희들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매 저희들은 총진군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핍박이 몰려오는 가운데도 세계를 책임지고 가야 할 사명이 저희 각자에게 남아져 있사옵니다. 이 길은 스승만이 갈 길이 아니옵니다. 세상에서도 스승이 이 땅 위에 살다 죽게 되면 제자들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전통적인 사실이 아니옵니까? 이들도 그와 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서 가야 할 각자의 사명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만민 공통의 평등권이요, 아버님의 사랑에 접할 수 있는 주관권을 성립시키는 절대적 가치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명을 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총진군하는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리옵니다.
이 70년대에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통일가의 사명이 지금 결정되었습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할 길이 남아 있사오니, 축복받은 가정들에게는 책임이 가중되어 있는 사실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사회에 나를 자랑하기 전에 가정을 자랑하고 싶어해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하늘 세계에서는 자기 가정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회의 통례요, 자랑할 수 있는 그 내용을 많이 가진 가정을 백성들이 찬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한 사회가 저희들이 가야 할 이상사회이며, 그것을 표준으로 삼고 나아갈 수 있는 모체가 가정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0년대에는 가정이 기틀을 잡고, 가는 길을 올바로 잡아야 되겠습니다. 1970년대는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갈 수 있는 때이오니 여기에 속하여 가는 가정들은 영원한 하늘의 가정으로서 지상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사랑의 주관권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 기원을 저희들의 가정에서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기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개척자는 어떤 목적을 향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찾아가는 데에는 고역 속에서 신앙과 목숨까지 걸어야 할 투쟁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개척자가 가는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반드시 거기에 비례해서 모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목적지를 향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타개해 가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개척자의 명분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척자를 원하는 것은 학생이 선생과 같은 안내자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국가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도 반드시 안내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역사상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추진해 나갔던 모든 일을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려운 사명을 짊어진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환경적인 여건들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류를 구원하는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안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6천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두고 볼 때, 뜻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섭리시대로 발전되어 나왔습니다.
개인적 섭리시대에서 가정적 섭리시대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섭리시대를 타개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정적 섭리시대로부터 민족, 국가, 세계적 섭리시대로 그 단계가 한 단계씩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는 개척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요, 안내자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도 아벨이 그 시대의 가정을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난 후에야 안내자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입장이 아닌 비정상적인 입장에 서더라도 불리하게 밀어닥치는 환경 앞에서 밀려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타개하며 자기가 주도적인 입장에 서서 새로운 행로를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치 시켜야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성취하게 될 때에 비로소 안내자의 사명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내하는 사람은 반드시 추종자에 대해서 방향을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 방향이 빗나가거나 목적관이 그릇될 때는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중간에서 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추종자들이 이것을 부정하고 나가려 할 때는 가야 할 목적지조차 제대로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여건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각적인 면으로 극복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척자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한 입장에서 안내자의 길을 가야만 올바른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 노정을 보게 되면 노아도 그가 살던 시대를 대표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거친 후에 하늘의 안내역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개척자의 사명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상대적인 권한을 갖추어 개인이면 개인, 사회면 사회에 대해서 하늘의 안내역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개척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내자의 책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가는 데에는 반드시 스스로가 탐험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척적인 내용을 실지로 겪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늘과 땅으로 분립된 두 세계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의 세계로 귀결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동반할 수 있는 모험적 과정을 거쳐서 모든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상대적 권한을 갖추지 않고는, 두 세계를 통합해서 하나의 기반을 마련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결정권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안내역을 맡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의 자리를 완전히 갖추어 가지고 전체를 대표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지도자의 일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라는 것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중심삼고 전체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역사적인 사정을 풀어가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지도자로서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인 지도자들은 시대를 대표하여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체험적 과정을 탐험해 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역사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그렇고, 아시아면 아시아가 그렇고, 세계면 세계 자체가 앞으로 가야 할 목적도 방향도 모르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향도 알 수 없는 숨가쁜 현실 속에서 금후의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비단 국가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온 세계 인류가 감당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시점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개척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세계의 개척자가 될 것이냐?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과 성인현철들이 있었지만 그 결과의 세계를 바라볼 때, 그들과 같이 인간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의 사람이나 또는 인간을 위주로 한 사람을 믿고 새로운 세계의 목적을 지향하여 개척의 일로를 타개해 나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시 때문에 역사의 여건을 타개하고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개척운동이 반드시 이 지구상에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개척자의 사명을 갖고 올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을 위주로 하는 내용이 아닌, 새로운 이상을 위주로 한 세계적인 내용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내용을 갖고 올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천주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현실 역사세계의 평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세계의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오늘날의 인간세계에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견해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현재와 같은 결과의 세계에서 암중모색하는 낙망의 세계를 원치 않는 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려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시대의 종점에 이르러서 반드시 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인격자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지구 위에 마련하는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종교든지 재림사상을 남겨 놓고 끝날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세계가 그런 결과적인 요건을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여기에는 반드시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류가 추구하는 행복과 이상세계의 한 기점을 연결시키기 위해 내적 준비과정을 마련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인 것입니다.
이 세계를 대신하여 그런 사명을 할 분이 오게 되면 그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바라는 목적세계를 이루기 위한 개척자, 역사상에 없었던 최고의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영계를 중심한 개척자와 육계를 중심삼은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 세계의 내용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모험적 생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개척자의 사명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타개하고 넘어야 할 배후의 환경이 얼마나 복잡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의 생활을 처리해 나갈 때 그 내용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가 완전히 도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척자는 엄청나고 엄청난 문제를 내적으로 수습해서 섭리적인 자리를 결속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완전한 개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응될 수 있는 모험적 생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와 인연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찾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위주로 할 것이냐?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영계가 있으면 영계를 위한 행로를 감당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갈 길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인간이 모색하고 있는 길과 영계가 모색하는 길을 넘어서서 사방으로 모든 안팎의 내용을 갖추어 책임지고 결말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안내자의 책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내자로서의 책임을 하지 않고는 영계가 있어도 그 세계의 지도자로서 역사성을 지닌 하나의 중심인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귀결점이 어디냐? 대한민국에서 지나가는 역사권내에 표류하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지니고 국가 앞에 설 수 있는 통일교회, 혹은 아시아면 아시아가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모든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고 타개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시대를 열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 국가 앞에 있어서나, 아시아 전체에서나 혹은 세계를 대해서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서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라는 엄청난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도 엄정한 자리에서 통일교회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는가? 오늘날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막강한 힘이 소모될 것입니다. 전쟁을 해결하는 데도 그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같이 온 우주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투입된 힘을 그 시점에서 단체에, 혹은 역사시대에 그대로 남겨 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며 투쟁하고 개척하며 이루어 나온 모든 결과는 소모시킨 힘에 비례하여 나타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비례하여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백을 소모시켰으면 반드시 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열을, 혹은 하나를, 혹은 하나의 소득도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척자의 생활은 소모전과 같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소모전으로써 개척자의 길이 타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의 한 기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모되는 시간의 연속이요, 소모되는 생활의 연속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소모시킨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는 사람은 개척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나서는 새로운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새로운 종교나 새로운 시대를 표준으로 삼아서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구원을 표준으로 삼고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 법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가정을 중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개인을 위주로 해서 개인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나왔습니다.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구원함으로써 그들을 합하여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권을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종교는 하나의 남성을 중심삼고 하나의 여성을 찾아 나왔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가정을 중심하여 새로운 해방의 기치를 들고 나선 것이 바로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역사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은 1960년대입니다. 이 6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새로운 역사시대에 다가섰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가정이 극복해야 할 시련과 환난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이겠느냐?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구원문제를 두고 신앙노정에서 싸워 나온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6천년의 복귀노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시대시대를 책임지고 왔다가 맡은바 책임을 감당치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하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도 승리의 결정적 기반을 이루기 위한 승패가 반복되는 역사적인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개인 하나를 구원하기도 이렇게 힘들거늘, 오늘날 가정이라는 짐을 끌고 가야할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과중한 것인가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입각한 행복한 가정, 평화의 가정기반을 닦을 때까지는 수난의 길이 겹쳐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수난의 길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소모전을 치러야 합니다. 이러한 노정이 오늘날 우리 개인은 물론이요, 통일교단이 가야할 운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은 역사시대에 하나님께서 필요로 했던 어떤 특정한 개인보다도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의 가정이요, 예수님이 찾아 나오던 가정이요, 수많은 선조들이 소망하던 가정입니다. 모두가 이 하나의 기반을 닦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축복가정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이 가야 할 노정의 차원이 높으면 높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시련과 모험이 따르게 되는 것이요, 개척자와 같은 사명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고차원적인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70년대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60년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는 기준에 입각한 주체적인 가정으로서의 입장을 수행했는지 반성해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개척자로서 가정적 입장에서 책임을 완수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대다수가 책임을 완수하지 못 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세계적인 책임을 져야 되고, 민족 국가를 대신해서 반드시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김씨 박씨 이씨 조씨 등, 각 씨족을 중심삼고 종족을 편성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하라고 권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종족적 메시아로서 책임을 다하는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예수와 성신이 삼위일체로서 하나의 가정을 모색해 나오는 데 수천년의 역사가 흘러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영계에 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그들은 자기들의 해원성사를 바라기 전에 먼저자기를 중심삼고 해원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역사가 바라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 내 남편, 내 부인 등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이 될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내용을 감당할 책임을 짊어진 중심적 가정으로서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나 지나간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이 요구하는 소원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은 습관적인 생활환경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자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책임적인 입장에서 나 자신을 비판하면서, 승자와 패자의 자리를 결정지어야 할 양자택일의 운명길에 서 있는 여러분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나름대로의 개척노정이 있습니다. 김해 김씨면 김해 김씨로서 하늘을 대표한 축복가정이 여러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여러 가정을 대표한 하나의 가정 즉, 개척의 사명을 지닌 가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김해 김씨를 대표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타개해 가지고 자기의 종족을 국가 기준에까지 연결시켜 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종족들을 민족적 대열에 동참 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민족 앞에 새로운 복음을 주입하고 새로운 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요구하는 종족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환영할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만, 그 김씨 종족을 대표하여 축복받은 가정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척자가 되기 위해서는 김씨든, 박씨든 자기 전체 종족을 이끄는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개인이 있을 것이며, 수많은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과 가정이 하나님과 더불어 정상적인 환경에서 너와 나라는 인연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 합니다.
개척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거기에 탕감의 원칙이 개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탕감의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느냐? 탕감의 내용을 아무나 제시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모험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서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가진 축복받은 가정만이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탕감내용을 제시시킬 수 있는 안내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안내역을 해야 하고,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안내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수들이 총칼을 치켜 들고 바라보는 이 환경에 있어서, 개척자의 입장에서 기습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과정을 하루하루 닦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올 수많은 가정들과 개인들 앞에 그들이 거쳐야 할 탕감의 내용을 제시하고, 미지의 탕감노정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내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가정을 하나님이 바라는 완전한 가정으로 복귀시켰을 때, 참된 가정으로서의 안내역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을 하나님이 바라는 개인으로 복귀시켰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대신한 참된 개인으로서 안내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안내역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목적하셨던 새로운 민족으로서 출발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정의 세계입니다. 여기에는 개척만이 있는 것이요, 투쟁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안일한 기반이라는 것은 그 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문화의 기반이 크면 클수록 원수들이 공격할 수 있는 도수를 강하게 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요, 언제든지 침략받는 도성으로 남아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은 빠른 시일 내에 지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자리잡고자 하는 자는 낙오자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기에서 안일을 꿈꾸는 자는 망할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것이 축복가정 된 여러분의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을 여러분만으로 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길은 여러분만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이요, 또한 여러분만을 필요로 하는 길도 아닌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은 어떠한 존재인가? 가인을 돕지 않고는 부모를 맞을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형과 동생이 하나되어서 부모를 대신하여 '하나님이여, 저희가 한마음 한뜻으로 저희 부모의 실수를 용서하여 주실 것을 부탁하오니, 저희 부모를 대신하여 모든 것에 같이하시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더라면 형제의 희망이 되는 부모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이 이루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가인이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형으로서 부모를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비록 수난이 연결되어 들어오고 천리가 엇갈려지더라도, 순리가 아닌 역리적인 환경에서도 원칙적인 입장에 서서 이 일을 추진해야 되는 것이니 그 생활 자체는 비록 모순적인 생활이요, 파괴적인 생활이요, 구속적인 생활이더라도 그것을 타개하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되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공세를 받을 수 있는 상대자는 맞고 나가야 합니다. 그 상대자가 누구냐? 가인입니다. 가인의 욕구와 아벨의 욕구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욕구 자체가 어디로 귀결되어야 되느냐? 가인의 욕구는 가인에게 직접 귀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에게 귀결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벨은 그것을 가인에게 옮겨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형의 입장에서 동생에게 굴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탕감노정을 거쳐 가는 데에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갈 것이 아니라, 반드시 탕감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가정을 찾아 가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합해져야만 하늘 가정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정들은 아벨적 입장의 가정이지만 그 한 가정으로는 탕감노정을 갈 수 없습니다. 가인을 찾아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가정을 한 가정뿐만이 아니라 세 가정 이상을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3시대의 한을 해결짓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제시하고 있는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 세우는 것도 우리가 운명적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환경에 순응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권을 형성할 때까지는 반드시 투쟁과 수난이 중첩된 개척자의 과정을 거쳐야만 안내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 부모를 모시고 영광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족속이라는 하나의 족속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동반할 수 있는 가인적 입장에 선 어떠한 형태의 족속을 갖추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인적 입장에 선 족속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겠느냐? 오늘날 통일교회와 가까울 수 있는 형님과 같은 입장에 있는 무리는 과연 누구겠느냐? 그들은 다름 아닌 기성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투쟁의 사명을 지고 희생적인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해 온, 흑은 피를 뿌리며 희생의 제물이 되어 온 기독교가 가인적인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적 입장에 있는 우리들은 우리 자체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단체, 혹은 교단으로 갖추어 가기 위해서는 가인적인 교단을 아벨적인 입장에 귀결시키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넘어가야 할 탕감 내용을 제시하고, 그 조건을 세우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임이 통일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아벨적 입장에 선 우리들은 그들을 상대적 입장에 세우고 가인적 교단을 아벨적 입장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를 지속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벨적 교단을 몰라보는 가인적 교단에 대해서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 주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가인적인 교단을 어느 하나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곧 복귀역사를 담당한 아벨적 입장에 선 사람들의 비참함이요, 서글픔이요, 고독이요, 서러움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를 앞에 놓고, 그 가인적인 국가와 가인적인 세계를 아벨적인 국가와 세계로 찾아 세우는 길을 모색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벨적 개인에서 아벨적 가정을 가져야 하고, 아벨적 가정에서 아벨적 종족을 가져야 하고, 아벨적 종족에서 아벨적 국가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가인적인 국가와 세계를 바라보아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가인적 세계가 필요함을 확실히 실감했던 예수님이 원수에 의해 십자가에 비참하게 못 박히면서도 원하셨던 것이 무엇이었겠느냐? 이스라엘 민족을 아벨적 입장으로 하나님 앞에 연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 :34)"이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염려하는 아벨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 짊어진 십자가의 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시점에서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통일교회가 하나의 교단으로서 아벨적인 교단의 입장에 섰으니 가인적인 교단을 수습하여 하나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이제 우리 두 형제가 고대하던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임재하시옵고, 만민에게 해방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선을 이루시어 행복의 한날을 보시옵고, 지상에 천국을 이루시옵소서' 이렇게 고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독교에 뜻을 두고 섭리해 나오신 아버지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 소원은 기독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벨적인 개인, 아벨적인 가정, 아벨적인 단체, 아벨적인 교단, 아벨적인 국가를 거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아벨의 사명을 짊어지고 올 분을 맞이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이 메시아로 말미암아 가인적인 세계는 아벨적인 새로운 세계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민족이 메시아를 고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벨적인 세계에게는 뒤에 있는 가인적인 세계를 뒤넘이치게 해서 해방 시켜주어야 할 큰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탕감해주지 않으면 본래의 길로 복귀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입장에서 자신이 스스로 탕감복귀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올가미가 씌워 있는 동시에 쇠사슬에 엉켜져 있어서 스스로 헤어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아벨적 교단이나 아벨적인 국가가 가인적인 교단과 국가에 대해 해방운동을 제시해 주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국가권을 넘어서서 벌어지지 않고서는 억천만세를 가더라도 복귀역사에 있어서 승리의 한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이러한 사명 앞에 하늘의 부름을 받은 축복가정이 있다 하면, 이 가정이 무대로 삼아야 할 곳은 어디일 것이냐?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나 혹은 전국의 어느 지구의 지구장의 가정이 아닙니다. 그 지구를 인수한 가정으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으로 서야 하는 것이 아벨적인 가정이 넘어가야 할 최소 한도의 고빗길인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국가적인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가정의 기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세계적인 가인 국가들을 복귀할 수 없는 천적인 비운이 깃들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내외적인 비참상을 바라보고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우리의 비참상과 몰리고 쫓기는 수난길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적인 결의를 다짐하며 때를 맞추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기대를 하실 수 있는 것이요, 소망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놓고 60년대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 찾아 나온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기 가장의 위치를 회고해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서로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육천년 동안 고대하시던 소망의 가정으로서 뜻에 입각하여 가정의 책임을 추구하는 입장에 섰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 할 때는 스스로가 냉정히 비판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의 기틀을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지녀야 할 본연의 가정의 기틀을 수습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받은 가정이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70년도를 맞이하여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새로이 세워 나가야 할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역사시대에 표창해야 할 것은 개인이 아닌 가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수많은 종족과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 앞에 내세우더라도 하나님이 응당 사랑할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하나의 남편과 아내가 함께 자녀를 올바른 입장으로 지도할 수 있는 가정, 그런 가정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아벨적인 가정이라고 스스로가 자인하더라도 가인적인 자녀를 거느리지 않고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부모를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이 가인을 복귀함으로써 두 형제가 같은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고, 그 부모를 중심삼아 충효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담 해와를 복귀할 수 없는 것이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누구 누구를 잃어버렸느냐? 아담을 잃어 버렸고, 예수를 잃어 버렸고, 예수 시대에 있어서 육적 환경을 침범받았듯이 외적인 분야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역사적인 가인형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이들을 다시 만나서 개인적인 입장이 아니라 가정적인 입장에서 축복을 받게 해 주겠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개인이 되어야 개인으로서의 아벨이 결정되는 것이요, 그런 가정이 되어야 아벨적 가정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여러분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기점이요, 중대한 내용인 것을 생각하고 다시 한번 심각하게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말로만 따라왔던 길, 생각으로만 받아들인 진리는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영계는 어떤 세계와 같으냐 하면 마음의 세계와 같습니다. 마음의 사실이 그냥 그대로 옮겨진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이기 때문에 마음에 가책을 받으면 영계에 딱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풀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상대적 요건이 우리를 통하여 맺어져 있고, 그 원인의 기점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풀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으로는 뜻을 대하여 충성하면서도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충성하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뜻을 위하여는 그렇게 고민하지만 말고 길거리에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자기의 행동으로 옮겨 보는 것이 오히려 사는 길이요, 해방 받을 수 있는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따라오던 무리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은 통일교회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이라 할지라도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마음으로만 신앙하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왜냐? 마음적인 세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세계입니다. 마음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하나님이 중심으로 계십니다. 지금까지 마음적인 중심이 없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실체적인 내용이 결과 되어질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 온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역사노정 가운데 온갖 비운의 대가를 치러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탕감제물을 통한 복귀섭리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마음에 앞서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역사를 담당한 하나님께서는 성서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선조들에게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 왜 결과적인 사실을 못 가르쳐 주었느냐?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천만번 생각하고 천만번 알았지만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면 결정된 것을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를 성사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서는 이것을 미지의 사실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행동만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아 있는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행동이 지지해 나갈 수 있는 기점이 어디냐? 개인이나 가정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민족의 정착점을 만들어 놓는 자리요, 민족의 안착점을 만들어 나오는 자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최대의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하나의 가정이 희생되더라도 세계권내에 안착할 수 있는 하나의 아벨적 민족 국가를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권 있는 국가의 백성이 되면 타국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없는 민족은 보호받을 수도 없는 불쌍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연의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본연의 나라로 돌아가야 할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본연의 나라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되는 것이요, 본연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본연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본향 땅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기 전에는 본향의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갈 입장이 되려면 본향에 있는 부모를 그리워해야 되고,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지간에 화목하는 사람이 부모 앞에 효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가운데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본향 땅에는 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설사 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성경의 탕자를 맞이하는 형님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돌아오는 동생에게 형님 이상의 가치로서 모든 축복을 돌려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부모의 마음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모와 같이 살았던 형님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벨의 책임을 다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입니다.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한 백성인 것입니다. 서쪽이 어두워 오면 훤히 밝아오는 동쪽을 향해 가고, 동쪽이 어두워 오면 서쪽을 향해 가는 집시의 무리입니다. 환경에 따라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이런 비운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집시의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의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시 같던 통일교회 무리들이 오늘날 삼천리 반도에 닻을 내리고 하나의 가정을 갖게 된 것은 영광의 날을 맞이하기 위한 출발인 것입니다. 이 가정의 기틀을 넓혀 하나의 종족을 편성하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이 일이 하나님과 인연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져 나간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이 죽어갔던 십자가의 비운보다도, 예수의 부활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기쁨보다도 더 큰 비장함과 환희가 교차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기 자신인 것을 얼마나 망각한 채 살아왔습니까? 하나님의 소망의 기틀이 되고, 역사의 표본이 되고, 부활의 표준이 되고, 시대의 선각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자기 자신인 것을 얼마나 많이 망각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을 해온 데 대한 후회에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망각한 사실에 대해 의분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부딪칠 수 있는 폭발력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내일을 향한 긍정적인 자아를 세우는 데 정성을 다함으로써 국가를 대하여 충을 다하고 부모님을 대하여 효를 다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삼천만 민족과 혼란된 세계를 향하여 부활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노라고 외치면서 세계를 자극시켜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우리가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국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촉구해야 할 결론적인 말이 무엇이냐? 선각자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또다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사명에 따라 수난이 비례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과 신념이 없으면 이 길을 감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일대를 전도하러 다닐 때 죽음이 동반하는 많은 문제들이 부딪쳐 왔습니다. 자기의 종족이 위협하고, 이방인이 위협하고, 원수들이 위협했지만, 사도 바울은 그 위험을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선각자의 책임과 개척자의 사명으로 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자기의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역사적인 모든 수난의 행로를 맞이하여, 이것을 규합하고 탕감시켜 나가겠다는 일념 아래서 개척노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수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사도 바울에 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축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늘의 혈족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을 아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 자기 개인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안식할 수 있는 복귀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무궁한 행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입장에 여러분은 이미 세움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에 세움받았고, 그 가는 길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여러분이 책임 못하게 되면 어느 누구에게 변명할 것이며, 또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지역장이나 또는 지구장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지역장이나 지구장 한 개인으로서 책임할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서 책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책임시대는 60년대를 마감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가정적인 책임시대로서 아벨적 가정을 중심으로 가인적 가정을 찾아 세우는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가정이 복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의 가정과 더불어 여러분의 가정이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느냐? 이런 문제가 이제부터 수습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냐? 7백쌍 축복이라는 문제를 놓고 선생님이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잘못한 것을 청산하는 문제입니다. 가정으로서 가야 할 통일의 길 앞에 있어서 36가정이면 36가정이 오점을 남긴 것을 청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비운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아버지 앞에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72가정, 124가정으로서 하늘의 축복의 인연을 파탄시켜 버리고 역사상에 오점을 남긴 사람이나 선생님의 정성과 하늘의 운세를 불러 모아서 천지 앞에 선포해 준 거룩한 축복의 이름을 더럽힌 이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거쳐간 사람, 떨어져 나간 사람, 또는 실수한 사람이 많더라도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자면 이런 모습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7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들이 영원한 가정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법도를 세워 그 형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우기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은 종적인 인연을 감당해야 할 가정들로서 많은 가정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될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자기 가정만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망각한 입장에서 살아왔습니다. 선생님 가정과는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모든 과거지사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이 70년대를 앞서 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만일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되었더라면 선생님이 추구하는 것이 강제적이 아닌 자동적인 입장에서 아벨적인 가정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를 갖춘 아벨적인 가정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세워 놓고 가정적으로 희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 가운데 그러한 가정이 세 가정 이상만 남아지게 되면 탕감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목적을 두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여러분이 선생님의 가정을 아벨적인 가정으로 모시고 하나 되는 동시에, 여러분의 아들딸이 선생님의 자녀와 하나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가르쳐 주는 데는 여러분이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늘의 법도에 따라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어야만, 거기에서부터 하늘의 전통적인 효의 인연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위하여 뜻 앞에 충신이 될 수 있는 도리를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위하여 아들딸이 울 때면 너희는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너희의 진정한 나라가 아니라고, 다시 모셔야 할 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손을 붙들고 눈물을 머금으며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품에 품은 애기의 숨소리를 느끼듯 하늘의 염려를 같이 느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을 남긴 부모로서 교육의 폭이 더해질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효하듯이 너도 효해야 되고, 아버지가 그 나라를 위해서 몰리면서도 투쟁의 역사를 엮어온 것과 같이 너도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여러분 앞에 어떻게 남겨줄 것인가 하는 것을 지금까지 필생의 목표로 삼아 나왔습니다.
즉, 여러분들 가운데서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평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뜻을 위해 사는 선생님을 하나님께서도 효자라고 인정하실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느낀 그것을 고스란히 전통적인 사상으로 정립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를 위해서 충신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상을 흠모하면서도 자기 가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나라 앞에 충신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늘 앞에 효의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복귀역사는 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따라나오는 스승은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효를 중심삼아 하늘 앞에 담판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입장을 책임지고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된 여러분은 마땅히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요, 어느 한편이 아프면 같이 아파하고, 서러우면 같이 서러워하고, 기쁘면 같이 기뻐해야 할 운명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내가 과연 어떤 환경이나 시대를 초월해서 심정적인 입장에서 동반자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우리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먼저 가인을 수습하여 가인적인 가정을 수습해야 되고, 가인적인 교단, 가인적인 국가, 가인적인 세계를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치 미지의 행로로 남아져 있습니다. 이것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음을 알고, 여러분은 생명을 걸고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생애를 바쳐서라도 싸워 나가야 합니다. 혹 이것이 자기 일대에 안 되겠거든 유업으로 남겨서라도 해결짓게 하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해원성사를 했다는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오로지 이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슬픈 일이겠습니까?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쓰러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아내를 죽음의 자리에 내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남편과 자기 자식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봉사하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노정에 있어서 뜻을 세워 나왔던 선각자들이 그렇게 봉사했다는 것입니다.
'개인 구원' 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그들은 이렇듯 솔선하여 나왔습니다. 그러니 '가정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를 몇십 번 지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의 개성체인 여러분에게 맡겨진 책임을 하는데 있어서는 민족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지만, 먼저 가정에 대한 책임을 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정을 대표하는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고 특권적인 권을 이룬 것을 볼 때에, 이 가정을 터로 하여 민족해방을 이루어 가려는 신념은 선 중의 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승리는 어떻게 이룰 것이냐? 아벨적인 가정으로서 가인적인 가정에게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인적인 가정이 자기들을 사지(死地)로부터 살려 준 사실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가인적인 가정들은 아벨적인 가정 앞에 영원히 결속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해방된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섭리적인 원칙에 따라 하나님께서 복귀의 민족, 복귀의 국가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 족속으로부터 통일 민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인적인 교단을 복귀하고,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종교 형태를 이루는 일을 내외적으로 이루어 가야 합니다. 아벨적 교단의 입장에서, 혹은 아벨적 형제의 입장에서 국가적인 가인인 삼천만 민족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끝나는 날에 세계적으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지도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길이 아직까지 갖추어지질 않았기 때문에 가정으로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것이요, 종족으로서 완결지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적인 책임을 못 했다 하더라도 종족적 책임권내에 동참이 되면 종족해방과 더불어 가정복귀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족의 책임을 못했다 하더라도 민족해방을 위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하게 될 때에 종족권은 복귀될 수 있는 터전이 성립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루 빨리 이 민족을 이끌고 세계 해방을 이루기 위해 세계 무대로 나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명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연결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이 시대권내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탕감해야 할 노정이 있다 할진대 그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탕감노정을 간다면 가정이 망하더라도 그 개인은 남아지는 것이요, 그 가정이 세계적인 형극의 노정을 나서게 된다면 나라가 망하더라도 가정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관점에서 고차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걷는 것도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걷는다는 입장에 서야 되고, 사는 것도, 자는 것도, 가정을 투입하는 것도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각오로 나가는 날에는 천주 해방은 시간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가야 됩니다. 나라가 여러분을 찾아올 때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10년, 흑은 일생이 걸리고, 수십 대를 거치더라도 나라를 위해 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가게 되면 그 나라는 역사시대에 부활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희생하여 선각자의 사명을 하면 기필코 새나라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가정을 이끌고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를 통해 나와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세계의 민족과 국가 앞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안내역을 맡아야 합니다. 안내역을 다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만 영계와 육계는 통일된 평화의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안내자는 비로소 역사시대의 영원한 지도자로서 자리를 잡게 되고, 하늘세계의 영광스런 표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개척자의 사명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모험을 해서라도 안내역을 해 가지고 안내받은 사람과 하나되어 하늘의 가정, 하늘의 국가 형성의 표준을 세우는 데 지도자의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애국공신으로서 등장하는 자리에 서야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역사가 발전되어 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1970년을 맞으면서 저희가 가야 할 길은 보다 힘든 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 앞에는 개인을 움직여 나가야 할 책임노정보다도 가정을 움직여 나가야 할 책임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뜻은 개인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님의 거룩한 축복의 손길과 아버님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는 가정을 그리워하고,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도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스스로 당신 앞에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겠노라 다짐하고, 지금까지 젊음을 희생해 가며 책임을 하여 나왔습니다. 민족 앞에 밟히고 수많은 인간들 앞에 몰림받는 자리에 있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생활을 해오며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진 것은 아버지가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아버지의 희생의 대가로 말미암아 얻어진 결실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대신 저희들을 내세워 수난의 길을 가게 한 것도 70년대를 맞이하여 개체의 해방을 확대시키고, 개체의 책임을 감당시키기 위한 사랑의 역사인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발걸음을 같이하지 못하고 뜻 앞에 허물을 남긴 사람들도 다시 60년대 이상의 가치를 들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는 '나 아무개요'하는 입장을 내세우는 것보다도 하늘의 사정을 들고 나와 아버지 뜻 앞에 열심을 다할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민족의 한 기틀이 되고 세계 건설의 표준이 되어 전체적인 기점을 마련할 수 있는 내외 양면의 책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가정을 대신하고, 혹은 단체에 있어서는 그 단체의 가정들을 대표하고, 나라면 나라의 가정을 대표하고, 세계의 섭리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평화의 가정을 모색하면서, 세계를 품고 하늘땅을 품고 나가는 저희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그 자리에 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제 개척자의 가정으로 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개인인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 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아벨을 통하여 제물 드리기를 고대했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던 것과 같은 개인을 통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모세를 개인적으로 불러내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예수를 개인적으로 보내 가지고 공적인 노정을 세우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개인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가의 가정을 부르셨사오니 가정으로 나설 수 있는 때가 온 줄 아옵니다. 반드시 부부가 아버지를 대하여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하는 것만이 가정이 해야 할 궁극적인 책임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생활에 절대적인 기원을 남길 수 있고, 영원한 하나의 역사성을 천적(天的)으로 마련할 수 있는 사상적인 기틀을 세울 수 있는 길은 가정이 효하는 길이요, 충하는 길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것이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해야 할 가정적인 소원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정이 가는 데 있어서 세계 무대를 극복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부부가 손에 손을 잡고 뜻을 생각하며 날로날로 하늘의 사랑을 찬양함과 동시에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아버지 앞에 몽땅 제물로 내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가정을 제물로 드려야 자식으로서 탕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알고 1970년을 맞이하여 가정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싸워 나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통일가의 중심 책임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앞날을 길이 같이하여,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고 아버지의 세계를 찾아 힘차게 달려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번 수련 기간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늘로써 마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련받는 가운데 환경이 여의치 않아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겠지만,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의 자기 입장과 미래의 자기 거취 문제를 중심삼고 재차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을 보면, 지금까지 간부들이 해 왔던 그 활동방법 가지고는 앞으로 혁신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의 사고방식과 옛날의 생활태도, 혹은 옛날의 전도방법이나 신앙자세까지 그런 식으로 걸어나왔지만 오늘날 기대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공인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과거와 같은 신앙자세, 생활태도, 전도방법에서 벗어나 새롭게 달라진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신앙자세, 새로운 생활태도, 새로운 행동을 제시하지 않고는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다고 봅니다.
1970년도는 우리 통일교회가 제2차 7년노정중의 한 고개를 넘는 중요한 시대입니다. 또한 우리는 복귀섭리를 담당한 주역으로서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은 이 기간에 국가 복귀라는 커다란 과제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연결시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가 바로 우리들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신앙자세, 지금까지의 생활태도, 지금까지의 전도 방법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혁신적인 그 무엇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하나의 방향을 요구하느니만큼, 여러분 각자가 새로운 자세로 대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크나큰 기대를 가질 수 없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본 수련회를 통해서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번 수련회를 베풀게 된 동기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새로 출발하자, 새로 출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원리를 알았다면, 그 아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리를 아는 신앙의 기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그 무엇을 발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왔던 방법을 초월하여 새로운 각도의 심적 태도를 갖춘다든가, 생활자세에 새로운 무엇을 가담시켜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이 각자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 자신이 은혜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옛날의 모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 방식대로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책임자들이 해 왔던 방식을 갖고 있어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1970년대를 맞이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이 전체에 미쳐질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들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성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을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만약 그 성지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배 이상의 사람을 증가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 이상의 사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그 무엇을 제시하여 영향을 주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목표 없는 기도생활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목표를 세워 놓고 생활하라는 겁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 놓고 3년이면 3년, 혹은 10년이면 10년 동안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담판짓는 생활태도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지금까지의 신앙생활과는 무엇인가 달라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실체적으로 새로워진 자기 자신을 여기에 세워 놓지 않고는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하루의 생활을 쭉 분석해 보면서 그렇게 해 나왔는지를 생각하고 기도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습관적인 권내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습관화되고 상습화된 사회생활권내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고지대(至高至大)하신 분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는 곳에만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정성의 자리에만 하나님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 `다한다'는 기준에 있어서 어제 대하던 기준과 오늘 대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 새로운 영적인 내용이 가중되고, 더 보탤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자기의 전공분야를 연구해 나가는 사람들이 취미를 갖고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자기가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데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데에서 힘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귀섭리도상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해 나왔던 그러한 방식, 그러한 입장, 또한 우리가 과거에 활동했던 그런 방식과는 달리 이제부터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신념으로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숫것과 새것을 대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숫것 아니면 안 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어떻게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려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합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어느때인가 하면, 새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시간이 하루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간대입니다. 이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깊은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지금까지 전혀 느껴 보지 않은 그 어떤 분야를 느껴 보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은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라는 큰 목적을 중심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상대기준을 맺고 있는 요건으로써 국가와 세계가 있겠지만, 생활 환경에서 상대기준을 세우는 데에는 반드시 자기 심정문제를 놓고 화동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루를 통해서 보다 새롭게 느낄 수 있고 새롭게 화동할 수 있는 상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면을 중심삼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는 막연히 정성을 드리는 기도보다도, 실천을 하면서 같이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보다 깊은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체험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제한을 받는 것이므로, 개인적인 환경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체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체험한 모든 사실을 상대에게 알려야 합니다. 즉,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같이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떠한 자극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결정하려면 상대에게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단순한 개인을 중심삼은 사람들 가지고는 아무리 기도하고 정성들여도 새로운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이미 할 만한 기도 다했고, 회개 다했고, 체험 다했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 자체, 그 환경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자리를 넓혀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있어서는 자기가 반드시 주동이 되어 가지고 남을 전도해야 합니다. 남이 전도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이 주동이 되어 끌려가다가는 반드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동이 되어서 상대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갑이면 갑, 을이면 을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중에는 반드시 특별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척 대하면, 그는 반드시 내 뜻을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점에서 주목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 필요한 사람인지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을 초월하여 거기에 모든 정성과 사랑을 흠뻑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간접적으로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환경적인 면에서 이런 선의 실적을 쌓아 새로운 감동의 열매를 상실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자리를 가꿔 나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한한 발전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남자나 여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찾는 사람이 없다면 어린애들이라도 모아 가지고 동화를 들려주고, 동요를 부르면서 자기가 그 환경에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느껴야 합니다. 그걸 느끼면 그 자리에도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자극을 갖기 위해 여러분은 생활속에서 계속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1970년도에 있어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내가 구하는 입장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받는 입장에 서게 되면 책임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엇이든 줘야 되겠습니다. 주어야 할 `나'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어떠한 사람이 찾아오시면, 그 사람에게 반드시 흡족한 그 무엇을 안겨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사람 이상에게 그러한 일을 하게 되면, 그는 그 하루를 완전히 뜻 앞에 세워 중심적인 책임을 수행했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역자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문제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습관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습관은 제일 고질인 나쁜 버릇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결혼 후 아이들을 기르면서 습관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이 몸에 굳어 버립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는 특별한 정성이나 기도를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이 곁에서 떠들어대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혁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곳이라든가, 아니면 성지를 찾아가서 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내적 분야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자극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자리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생활 환경에 그대로 있어서는 자신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여건을 개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어떤 한계선을 보이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 남편은 이러한 사람이구나' 하게 되어,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지' 하고 부인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이렇게 금을 그어 가지고 부인이 계획한 대로 맞아떨어지는 그런 남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부인이 자기를 대할 때 무엇인가 항상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부인은 날이 가면 갈수록 남편을 존중하게 되고, 남편한테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해도 더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남편을 위하지 말라고 해도 더 위한다는 것입니다.
백주에 드러난 것처럼, 자체의 모든 것이 안팎으로 보여지게 되어 딱 금을 긋고 있으니 그 이상의 것이 없는 포화상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기준에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가정불화가 생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인을 대하려면 신중한 작전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아직 철들지 않았을 때는 부모를 잘 따르니 괜찮다는 거예요. 그러나 점점 자라 철이 들어 안팎을 헤아릴 수 있게 될 때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새로운 것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것이 그가 인격 형성에 필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가치를 더욱 깊이 느낄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자기 가정을 희망적이며 고차원적인 자리에로 발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반 교역자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지역이나 지구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식구들이 `오! 지역장이 원리강의 하는 구만, 그 말 끝난 다음에는 이 말이 나오지' 하고 전부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3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강의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그러한 방법으로 강의를 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가지를 달아 새로운 해설과 내용을 첨가해서 강의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면에서는 심령적 발전을 하는 데 필요한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분위기에 맞추어 필요한 강의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3년 동안 목회를 했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해주어야 식구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감을 느끼지 못한 식구는 주일날 예배에 참석을 잘 안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분들이 지금까지 강의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돼요. 그래도 안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길을 가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간다 하더라도 그냥 가지 말라는 거예요. 교회에 갈 때에도 항상 새로운 입장과 환경에 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는 데도 직선 코스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야 하지만 북쪽으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런 실감이 안 나거든 집안 살림살이를 전부다 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수개월이 되어도 그냥 그대로 놔두지 말라는 겁니다. 거꾸로 뒤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단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와 맨 뒤편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 그 느낌이 각각 다릅니다. 청중들 가운데에서 기도를 할 경우에 또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인 변화를 어떻게 모색하느냐?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비스러운 기도를 해보면 보통 기도와 백방으로 다르다는 거예요. 동쪽과 서쪽, 남쪽, 북쪽, 중앙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감정을 체휼하려면 생활환경을 변경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생활 속에서 심정을 변화시키려면 환경 여건을 개조해 나가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면, 남편이 출퇴근할 때마다 항상 같은 식으로 무의미하게 대해서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극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극은 웃기고 울리는 것인데, 왜 그것을 좋아하며 돈까지 주고 가서 보느냐? 그것을 보고 웃긴 웃지만 각도가 다른 입장에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는 것도 다른 각도에서 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색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돈을 주면서 보러 가느냐?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극을 받고 소득을 얻기 때문에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에 서서 대중을 지도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문화적인 기도도 해야 되고, 지적인 기도도 해야 됩니다. 어떤 때는 엄숙한 기도를 하다가도 청산유수와 같은 기도를 해야 되고, 또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어떤 골짜기에 들어가 더듬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찾아 나가는 그러한 입장에서도 기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여러가지 사정에 접해 가면서 새로운 심정적인 내용을 확정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역자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습관화되면 한 제목만 가지고도 사방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그 풍경이 다르게 보입니다. 햇빛이 비칠 때 그 광선의 차이에 따라 또는 명암의 정도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그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난 사람만 대해 가지고 얘기하는 그 시간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지극히 못난 사람을 대하면서도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못난 사람을 대하더라도 같이 뚝배기에다 설렁탕을 넣어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옆에 똥통이 있더라도 냄새를 맡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최고의 경지요 신비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평면적인 내용이 아닌 입체적인 내용을 가하게 되면 폭발적인 충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언제나 알아야 할 것은 새것이 아니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할 때, 그 제목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원리강의를 할 때도 옛날식으로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더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뭇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대할 때에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볼 때에는 배후의 조상을 보고, 과거와 현재를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보는 입장에 있어서 무엇을 새로이 발견할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만 보고서도 그 생활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잘못한 일이 있다든가 양심에 가책받는 일을 했을 때, 그 사람의 눈동자 움직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두 표정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면 벌써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면, 상대가 누구이든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만 새로운 방법이 나오는 거예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자기 자신이 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원리강의를 할 때, 전에 보고 들은 몇 가지 내용을 필기한 것만 쫑알쫑알 외워 가지고 성경귀절이 어떻고 뭐는 어떻고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어떠한 골자를 말하기 전에 먼저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자신이 거기에 심취해 가지고 새로운 맛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원리책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 원리책을 붙들고 밤을 새워 읽으면서 시간이 가는 것을 아까와하고, 페이지 마다에서 신비로움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느낀 후 원리에 취해 가지고 설교를 해보세요. 청중에게 감동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 그러면 틀림없이 새로운 감동의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것, 곧 생명력을 잃은 것은 퇴화하고, 산 것은 반드시 발전하는 것입니다. 발전하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금년을 중심삼고 1970년대를 향한 마당에 있어서, 이 1970년대를 이끌어 나가는 책임을 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 새로운 출발입니다. `새로 출발하자' 새출발을 하는 데는 옛날의 사고방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름을 박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이 기분 나쁘면 거꾸로 부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입는 옷이 옷장 안에 들어 있으면, 그 옷을 전부 새롭게 다듬으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입산 수도하기 위해서 머리를 삭발하는 스님같이, 새로운 충성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기간에 원리를 재차 공부했고, 사회 인사들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를 못해서 한이요, 실력이 부족하다 해서 한이라고 하겠지만, 여러분은 절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세 시간 이야기할 것을 선생님은 한 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제반 요건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제시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학자가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에서 연구를 많이 한 사람만이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이 일상적인 생활 감정에서 벗어나 매일같이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 나가고, 그 기반 위에서 하나님이 협조해 주신다는 것을 실지로 체험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무한한 발전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여러분이 기도를 하는 때는 엄숙한 기도시간이 될 것입니다. 또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라면, 엄숙한 말씀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 반드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재창조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에서 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둘이 되겠습니까? 새로움을 줄 수 있는 모체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복귀역사는 재창조역사이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주체적인 사명을 누가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됩니다. 인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생활하는 가운데 보고 듣는 모든 일체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나를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동네를 지나갈 때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기도 노방에서 싸움을 하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를 반성해 봐야 하는 겁니다.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의 아들딸이나 손자 때에 그러한 사람이 안 나온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한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루를 중심삼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어진 환경과 관계를 잘 맺어 가자고,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 인연맺은 것을 여러 사람 앞에 어떻게 심어 놓느냐 하는 것이 교역자로서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떠한 사람에게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주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새로운 것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한꺼번에 큰 그릇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가지고 외로운 수고의 경험을 하고 나서야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겁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의 위치를 결정해야만 사람을 헤아리는 데 있어서 새로운 주체적 실체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당에 있어서 올라올 때보다 더욱 착잡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지방에 내려가면 지역본부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의 생활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어이쿠 나 죽는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표준과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방향을 가지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어려운 입장에서 울어야 했던 내 모습이었지만, 이제 새로이 출발해야 할 나 자신에 있어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새롭게 처리해 나가야 하겠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결의를 하고서 활동해 나가야 합니다.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험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가는 길에 있어서 후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수련회 기간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얻어지는 것도 많이 있겠지만, 얻어진 그것이 반대로 여러분을 꺾을 수도 있는 반작용적 결과가 될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197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 자신을 새로이 발전시켜야 할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불가피한 과제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 정신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가지고 새로운 감동의 요인을 하루의 생활권내에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실질적인 체험을 통한 생활의 기반을 넓혀 나가는데서만이 새로운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야 할 곳이 아직 멀리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었으면, 세 시간을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목이 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맡은 자로서 말씀을 전해야 할 텐데, 목이 쉬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겠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눈짓 발짓 등 벙어리 시늉을 해서라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정상적으로 하루에 밥 세끼 먹고 나서 여유 있는 시간에 생명을 기른다는 생각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잘못된 것은 잘라 내야 합니다. 한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성들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쓰고 남은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것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과감히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습관을 그렇게 해 나가야 돼요. 맨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새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물도 남이 남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곳에는 못 가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만을 위주로 하여 자신이 새로운 것을 자극할 수 있는 생활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느끼면서 활동을 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는 새싹이 나오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력이 약동하는 거예요. 반면 뿌리 없는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감정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생사를 걸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철야기도를 해서라도 정성을 쌓아 나가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일부러 그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망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깜깜한 궁지에 들어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따라다니는 사탄까지도 내 편으로 굴복시켜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강하게 싸울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 영향이 며칠, 몇 주일까지는 가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면 몇 달까지도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 보지 못했는지 몰라도 여러분이 그럴 때 하늘은 여러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염려를 하고 있는 지를 느껴야 돼요. 그러니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남의 생명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 본질적인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를 절실히 통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애국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애국심을 가지고 애국자로서의 활동을 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현실적 무대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뜻길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과 같은 기준으로 엄벙덤벙하면서 세월을 보냈다면 그 세월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나 자신이 생활의 맨 밑창까지 파고 들어가서 현실의 모든 것들을 관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어느 한 때 지녀 보았느냐? 우리가 하루 24시간 동안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얼마나 뜻을 중심삼고 일해 나왔으며, 나 자신이 뜻을 대하면서 얼마나 그 가치를 느끼면서 추진하여 나왔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이 과연 몇 시간이나 될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모든 이목구비 등 감각기관을 통해 가지고 느껴지는 감각, 즉 직관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믿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잘 못 느끼지만, 은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늘 보는 만물이 옛날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아도 새롭고, 저녁에 보아도 새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서서히 물결쳐 올 때는 신비스러움을 입체적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무한한 가치를 느끼면서 자기의 고귀성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따라 나오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다 보면 과거가 자신을 끌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가 좋았다며 그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입교가 오래된 사람은 1960년대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그 무엇을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많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수련을 마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부인이나 자녀들을 마주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에게 `너는 내가 어떠한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대답할 것 같습니까? 이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 대한민국에 있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자식이나 어머니가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면 우선은 자녀인 자기들의 눈에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로 나타나 주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내심적인 소원은 세계가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가족이 아니겠는가! 또한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상세계의 모든 축복의 인연을 후대 앞에 남길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자녀들을 곱다고 했을 때, 그 곱다는 기준이 무엇을 중심삼고 했느냐? 생리적인 감정을 가진 육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곱다고 했느냐? 아니면 천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곱다고 했느냐?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내 아내고 나는 당신의 남편이니까 당신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천지의 인연이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부부들이 대하던 습관적인 생활태도를 혁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나 후손을 대할 때나,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원히 자극 시킬 수 있고, 하나님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동기의 모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내용을 가진 부부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론은,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나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는 최고의 명작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부부의 인연으로 생각하고 대해야 되고, 또 그렇게 서로가 하늘땅 앞에 맹세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 때가 언제일 것이냐 하는 것을 연구할 필요도 있고 찾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심정적인 부부에게는 한계점이 없을 만큼 영계를 중심삼고 무한히 발전하므로 다른 사람을 자극시킬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발굴하라는 겁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사춘기 시절이 일생 중에 왜 좋은 때냐? 그때는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때입니다. 그때는 천하도 내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할 것 같다는 거예요. 세계를 잡아 주면 손 안에 들어올 것 같다는 거예요. 대하는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봄이 되어 계곡에 쌓인 눈이 녹아 산사태가 나는 것을 보고도 크게 감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멋지게 보이거든요. 또, 놀라 도망가는 노루새끼를 보고도 멋지다고 한다는 겁니다. 뭐든지 자유롭게 느끼고, 무한한 가치로써 자극을 받고, 또한 그것을 흡수 해서 자기와 관계를 맺는 그런 여력을 지닌 때가 바로 사춘기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정열과 새로운 세계를 놓고 촉각을 세우며 발전하는 기간이 사춘기 시절이기 때문에, 그때에는 사방으로 무성하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봄철과 같은 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성한 그 잎 가운데서 한 줄기 종대가 나와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대가 어디에서 나올지 모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입장이 사춘기 시절이라는 것입니다. 그 잎이 줄기를 대신하여 사방 어디든지 뻗어나갈 수 있고, 무한한 창조적인 세계를 간직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있는 존재를 자극하는 때가 바로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사춘기 시대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을 대하더라도 무엇인지 모르게 그러한 기분이 감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머니면 할머니를 부를 때 부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할머니를 부르는 이상의 감정으로 할머니를 만나야 누구보다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져야 심정적 분야에 있어서, 지금까지 사탄세계의 고질화된 심정의 터전을 능가시켜 가지고 새로운 봄의 자극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춘기적 조건을 재현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나타나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자랑하기 위해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이 새로운 체험을 하나님과 더불어 주고받았다고 해서 당장 번식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체험과 더불어 새로운 위치에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놓아야 그 기반을 중심삼고 새로 적응할 수 있는 번식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원리를 중심삼고 여기에 적응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생활 태도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생각해 보세요. 다 좋다는 것입니다. 원리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느냐? 영계가 있고 없다는 사실은 그만 두고라도, 통일교회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증거를 통해서도 익히 알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실체를 알게 하는 원리를 가졌으면 됐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통일교회는 원리도 좋고 다 좋은데, 돈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 돈이 있으면 뭘 할 거예요? 하나님을 돈과 바꿀 수 있어요? 원리를 돈으로 바꿀 수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울 위에 올려 놓고 무게를 달수 있습니까? 천하를 올려 놓아도 달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미쳤다는 거예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여러분이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이 세계 인류 가운데에서 영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목사들도 몇 사람이나 그 사실을 알고 있겠습니까?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외적으로 가진 것이 없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틀림없이 알고 있기에 우리가 가는 길에 있어서 백 퍼센트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목사들보다 나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세계의 학박사들보다도 나은 것을 알아야 돼요.
이러한 가치를 생각하면,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고 높은 자리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두고 똥통과 같은 곳으로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를 완전히 죽이라는 것입니다. 원리에 맞추어 새롭게 개발해서 활짝 꽃피울 수 있게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원리가 제시한 그 조건 밑에서 나타날 수 있게 만들라는 거예요. 영계도 활짝 나타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지, 돈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돈은 그냥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편이 있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서 일년 이상 떼를 써서라도 그 아주머니를 빼앗아 오라는 거예요. 뭐 나쁜 의미에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 아니예요. 심정이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서 감동시키면 그 아주머니는 틀림없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통일교인들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앞으로의 크나큰 싸움을 제어할 수 없어요. 사탄세계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체험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면도 불구하고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자신을 가지고 정좌하여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권위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권위와 힘을 중심삼고 나갈 때 그들은 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천하를 녹여 낼 수 있는 장정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뭐예요! 장기의 졸만도 못하니 시시하게, 그것이 통일교인입니까? 여러분은 그런 나태한 위치에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적인 활동을 하며 영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렇게 활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엄청난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시시하다는 거예요. 자식으로 태어난 관계만 보더라도 참부모의 자식인데, 그 자체만을 가지고도 좋다고 흥얼거려도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본래의 감흥일 겁니다. 비록 거지도 먹지 않는 좋지 못한 음식을 먹더라도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을 사수하라는 거예요. 멀지 않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여기서 더 이상 뭘 바랄 거예요, 지금과 같은 작전시대에는, 속에는 비단 옷을 입고 겉에는 누더기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작전상 그렇게 하고 나서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팔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 작전상 그렇게 하라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우리가 이걸 중심하고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무런 죄도 없이 쇠고랑을 차고 몰리는 것도 다 그런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환경에서 벗어나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고 보자! 네가 아무리 나를 치더라도 언젠가 너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을 내가 취할 것이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뭐 누더기 옷을 벗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비단 옷까지 벗어 버리고, 알몸뚱이만 가지고 외치고 다니니 누가 동정해요? 그런 사람은 욕을 먹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발길에 차이고, 몰리면서 쫓김받으라는 것입니다. 탕감을 받아야 돼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못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밥을 굶고 다니며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피난 나와 가지고 배고플 때가 있었습니다. 한두 달 동안은 밥을 얻어먹으러 다녔어요. 선생님은 피난을 갈 때도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난 후 맨 나중에 떠났습니다. 그것은 어느 집에 가든지 쌀이 있기 때문에, 그 쌀을 꺼내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남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니 도둑 같겠지만, 피난길에 주인이 없으면 동네 사람것 되는 것이니 몽땅 가져가도 죄가 되지 않아요. 그것을 가져가면 도리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밥을 얻어먹을 때 그 집안의 문턱에 가서 얻어먹었습니다. 그렇게 얻어먹는 밥이 소화가 더 잘 되거든요. 먹을수록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경험을 했을 거예요. 며칠씩 굶다가 밥 한 끼를 먹게되면 순식간에 먹지요? 제사밥을 먹어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1월 하순으로 기억됩니다. 난리통에는 이불 보따리가 필요없었어요. 부산까지 가려면 이불 보따리가 짐이 되기 때문에 전부 팔아 가지고 벼 한 가마니 하고 바꿨어요. 그때는 쌀이 어디 있어요? 쌀이 없으니까 벼와 바꾸어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로 밟아 찧었던 것입니다. 그때 함께 내려온 사람들과 실컷 한번 먹어 보자 했지요. 그때는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불이 없다고 해서 얼어 죽지는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해 가지고 4일동안 떡을 만들었어요. 그것이 소두 세말이니까 대두로 한 말 반 정도 될 것입니다. 그걸 모두 떡을 해 가지고 셋이 앉아서 다 먹었어요. (웃음) 한 그릇 정도 남겨서 주인 아주머니에게도 주었어요. 하도 먹질 못했기에 그렇게 해서 실컷 먹은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 어렵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나오더니 귀한 손님이라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물어보면, 꿈에 귀한 손님이 오니까 모시라고 했다는 거예요. 벌써 영계에서 그 사람을 통해서 협조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일들이 참 많아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지금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빚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져 가지고 나가 떨어져 보면 기분이 어떨까요? (웃음) 그것을 못 해봤거든요. 내가 빚을 갚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많은 빚을 져 가지고 내가 빚쟁이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그걸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이 또 멋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든 모든 것이 다 자기의 타고난 팔자 소관이라는 거예요. 다르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다 수작이예요. 선생님한테는 수작으로 들린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어렵다는 생활 기준을 누가 세워 놓았어요? 하루에 세 끼의 밥을 먹어야 된다는 그 기준을 누가 세워 놓았습니까? 하나님이 세워 놓았어요, 요령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세워 놓았어요? 누가 세워 놓았습니까? 이 기준을 따라 하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어렵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루에 한 끼가 생활 기준이에요. 그 한 끼도 꽁보리밥에 된장찌개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것이 내 팔자고, 내 생활 기준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이 내가 절대적으로 희망하던 생활 기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옛날 채집경제시대에 과일만 따먹고 살던 사람들이 꽁보리밥을 먹으면 그거 영광이 아니예요?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꽁보리밥이라도 해먹을 수 있으니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하냐 이겁니다. 그들은 그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꽁보리밥을 대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그런 원시적인 입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꽁보리밥도 내가 처음으로 농사해서 지어 먹으면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얼마나 맛있게 먹겠습니까?
여러분의 생활 기준을 누가 세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하루 세 끼 밥을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넘어가기 때문에 탈이라는 거예요. 없으면 굶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굶는 것이 내 생활이라고 하면 됩니다. 어쩌다 하루에 한 끼를 실컷 먹게 되었다면, 또 그것을 내 생활 기준으로 세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뭘 걱정해요? 탕감복귀를 하는데 세상에서처럼 할 것 다 하고, 볼 것 다 보고, 느낄 것 다 느끼면서 될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이 목사가 무슨 일을 놓고, 야단났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당장 집어치우라고 했습니다. 그 고통을 선생님이 모르는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도 그러한 일을 다 경험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 하고 불러 봐요. 그러면 부르는 그 소리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이르면 심각해져야 됩니다. 심각하지 않고서 기적은 안 나오는 겁니다.
새로운 세계사적인 발명은 전쟁과정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계의 비상시기에 되어지는 거예요. 왜냐?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전쟁은 인류역사에서 지혜를 창조하는 데 크게 공헌해 나왔다는 거예요. 이것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밥숟가락을 들고 내 아들딸이냐, 민족이냐, 국가냐, 어느 것이냐? 결단을 내리는 순간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가느냐 안 가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내가 지금까지 정성들인 모든 수고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룰 수 없는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어떻게 밀어내느냐? 그러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기어이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당하는 그 모든 환경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 나갈 것이냐? 그 기준이 없으면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감사할 것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 한 그릇을 마시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밥상을 받으면 손가락으로 밥을 퍼먹어야 했던 감옥에서의 생활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느 가정을 방문하더라도 그 가정에서 선생님이 왔다고 진수성찬을 준비해 가지고 대접해 주는 것, 나 그거 좋아하지 않아요. 차라리 입은 옷은 남루하고, 먹는 것은 비록 꽁보리밥 일지라도 전체가 하나되어 전부다 동정할 수 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선생님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준비한 기준도 없이 다 됐다고 자만하면 내일은 막혀 버리는 것이요, 희망도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그 사람보다도 희망을 품고 내일을 꿈꾸며 준비하는 사나이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걱정은 무슨 걱정입니까? 여러분도 선생님이 겪은 그 이상의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꽁보리밥 먹지요? 먹어 봐라 이겁니다. 순 꽁보리밥을. 지금까지 이 밥을 먹었으면 꽁보리밥도 먹어 보라는 것입니다.
남편을 만나면 좋을 줄 알았더니, 나쁠 때도 있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 바라면 안 되는 겁니다. 24시간 계속 햇빛만 쬐면 되겠어요? 밤이 있어야지. 그렇지요? 높으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세상 사람에게 밟혀 나왔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나는 못 먹더라도 남을 위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생활 기준을 중심삼고 새로운 무엇을 많이 느끼려면 제일 낮은 자리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엊그저께 선생님이 일찍 교회로 나오는데, 분뇨차가 교회의 화장실에서 호스를 들이대고 똥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똥을 퍼내고 있는 그 호스 끝에 그만 걸레조각이 막혔나 봅니다. 그래서 한 15분 정도 기다렸는 데, 냄새가 나고 지루해서인지 옆에서 뭐 어쩌고 하길래 `이 녀석아 가만히 있어, 그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하고 얘기도 했지만,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도 좋게 생각하면 거기에는 새로운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여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먹더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자체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살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골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여러분은 이제 새로운 인간이 됨과 동시에 새출발을 하라는 겁니다. 보는 것도 새롭게 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동네를 봤으면, 그 동네를 새롭게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아쉬움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라는 거예요. 큰 못을 볼 때에는, 여름이 오면 내가 한번 실컷 목욕을 할 것이다! 아주 높고 넓은 데가 있으면 맘껏 뒹굴 것이다! 이런식으로 보통 사람과 달리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봄절기이지요? 여러분 중에는 남도로 내려갈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곳에 내려가면 오리 떼, 기러기 떼들이 철을 지나 북쪽으로 날아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는 벌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데서 맘껏 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개척자는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개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가지고 식구가 오나 안 오나 보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식구가 오면 `아이쿠! 쌀독에 쌀이 채워지나, 안 채워지나' 그렇게 생각하지요? (웃음) 거지새끼처럼 주면 뭐든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주지 않으면 굶어 죽으려고 그래요? 멧돼지도 혼자서 잘만 먹고 사는데….
여러분, 칡뿌리가 얼마나 영양이 많은지 알아요? 정 배가 고프면 곡괭이를 메고 산에 올라가서 칡뿌리라도 캐어 먹으라구요. 한 일주일만 가서 캐어 놓으면, 못 먹어도 족히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야단입니까? 또 걱정은 무슨 걱정이냐 말이에요. 산에만 올라가면 칡뿌리도 먹을 수 있고 풀 뿌리도 먹을 수 있는데…. 그러니 그것만 잘 알아서 캐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여름이 되면 쌀 한 줌 없어도 절대 굶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바늘 한 개하고, 실 두 뼘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낚시질을 하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 죽기는 왜 죽어요? 또 굶기는 왜 굶어요? 절대 굶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을에는 어디를 가든지 먹을 것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고구마를 캐 간 밭에서 이삭이라도 주우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넌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족보에서 빼버린다고 하겠어요? 그런 하나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도 좋아하고 축복해 줄 수 있으시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도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일을 해보았어요.
그러한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고구마를 캘 때 반드시 몇 뿌리를 가만히 남겨 놓았습니다. 그 일을 옛날에 다 해봤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남겨 둔 고구마를 캐 보면, 새빨간 고구마가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 기분은 투전판에서 돈 딸 때 보다 더 좋습니다. 비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좀 했다고 해서 나쁠 것 뭐가 있겠어요? 나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 끼를 먹고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누가 세웠어요? 누가 세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그러한 관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형무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 꽁보리밥을 준다고 해도 좋다는 거예요. 썩어 냄새나는 된장국도 가져 오라는 겁니다. 그걸 맡아 먹으며, 천년사를 읊으면서‘참 맛있구만. 아무개 선조는 이런 밥을 먹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 순간은 진지하지요.
또, 내가 똥통 옆에서 잠을 잔다 해도 `참 잘 됐구나. 내 신세를 빛낼 수 있는, 앞으로 인류역사를 감아쥘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지금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나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공장을 방문했을 때 생산부장이 사내 상황을 보고했는데, 그것이 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걸린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생님이 23일까지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니, 약속한 대로 해 놓지 못하면 크게 당해야 하겠거든요. 그렇다고 한마디 하게 되면, 자기 체면이고 뭐고 말이 아니겠고…. 그러니 경거망동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며칠을 가만히 두고 보았어요. 어느 날 저녁 때가 되니, 꽁무니를 빼고 어정어정하다가 선생님에게 와 가지고, 오늘 저녁에는 일을 못 했다고 하는 겁니다. 이 녀석들이 날 잘못 만났지. 이제부터 다시 출발이니 전부 집합하라고 했어요. 이것은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열두시 전까지 다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데 그들이 하는 식으로라면 열두 시가 아니라 밤을 새워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때 작업에 들어간 시간이 저녁 아홉 시쯤 되었는데 열 시, 열한 시가 지나고 열두 시가 될 때까지 가만히 두어도 할 일을 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명령했기 때문에, 열두 시가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하게 되어 있거든요. 눈치가 달라졌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을 불과 세 시간만에 다 했습니다. 열두 시 `땡' 할 때까지 해서 전부 끝마쳤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을 세우는 데는 그렇다는 겁니다. 남과 같이 먹고, 남과 같이 입고, 남과 같이 시간 맞추어 일해 가지고 언제 남을 앞설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도 밤 열두 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는데, 열두 시 삼십 분쯤 잠자리에 들어가서 새벽 두시 십오 분경에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뭐 하자는 걸까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네 시까지 기도하다가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 그때 어머님 방을 노크합니다. 그 이전에 노크하면 실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 시 십오 분쯤 방에 들어가서 공장에 나갈 준비를 서둘러 가지고 다섯시 삼십 분까지 공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이 출근할 때까지 세 시간 가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는 그 맛이 어떻겠어요? 참으로 재미있었다는 거예요. 남들은 다 자고 있는 이 시간에 일찍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면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어제 이렇게 일했으니, 오늘도 이렇게 못할 때는 기합이다'고 하면 직원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피곤한 것도 사정에 따라 피곤한 거예요. 기분이 워낙 좋으면 피곤이 다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그래 보라구요.
선생님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졸음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을 일 시켜 놓고 혼자 편하게 조는 것은 양심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걸 못 합니다. 절대로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할 때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잠깐 눈을 붙일 때도 있습니다만, 내 마음대로 잠을 자지 않습니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냥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을 반드시 달성해 놓고 쓰러지면 쓰러졌지, 그 이전에는 안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처소에서의 경험이나 생활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것을 발견하라…. 새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은 피곤하겠지만, 지금까지 관례적인 것에 대해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하시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뜻길을 가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육신이 노쇠하면 생리작용에 있어서도 제약을 많이 받게 될 것인데, 이것을 무엇으로 보강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이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을 중심삼고 활동해야 할 시대에 있어서, 자꾸 약화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이 그것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때요, 그것을 가르쳐 줄까요?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절대로 낙오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절대로 낙심을 안 한다는 거예요. 도리어 재미가 나는 겁니다.
조금 전에도 한인수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승공연합에서 사무실에 앉아 사무보는 것이 무미건조한데 지구장들을 보니까, 옛날에 교회를 책임지고 생명을 걸고 일했던 때가 생각난다는 거예요. 교회가 그리워서 찾아 왔던 그런 식구들과 주고받던 사연들을 생각하니, 그때가 그립다나요? 알기는 잘 알았습니다. 이제야 철들었습니다.
영계에 가면 자랑할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는 돈 많이 가졌다는 것은 자랑할 거리가 절대 안 돼요. 또 세상에서 권력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이것이 자랑입니다. 갑이면 갑, 을이면 을, 혹은 종족을 초월하여 수많은 민족을 새로운 생명과 관련시켜 가지고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그것이 재산입니다. 재산은 그것밖에 없어요.
영계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그리울 것이 없지만, 가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참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양육하기 위해 공을 들인 그 공신은 천상세계에서 당연히 영광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구장이면 지구장 생활을 십년 이상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십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엊그제는 지역장으로 17차까지 인계받았다는 사람이 몇 사람 있다고 보고를 들었습니다만, 17차가 아니고 108차를 받았으면 무얼 합니까? 그것보다도 거기에서 사람을 중심삼고 취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 보지 못한 사람은 안 돼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밤을 새워 가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또한 해를 바라보면서 시로 읊고, 혹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 등 어떠한 문학작품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을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통해서 느껴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야 사람으로서 사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 문제를 놓고 인연된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이 사람을 세 시간 동안에 완전히 굴복시키겠다고 계획을 세워 놓고 말해 보라구요. 10분, 20분, 한시간…. 조여 들어가는 그 맛은 투전판에서 자기한테 있는 밑천을 몽땅 털어 가지고 맨 마지막 카드를 뽑는 그 기분보다 더 큰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투전판 놀음은 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꾸자꾸 발전합니다. 거기에서 가지가 자꾸 뻗어난다는 거예요. 잘 키워 놓으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느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자리가 지구장입니다. 지구장을 하게 되면, 한 지구가 그래도 도내에서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니, 3분의 1정도 되는 무대에서는 할 만한 일이거든요.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한 군을 중심삼고 하는데, 지구장은 3개 군을 중심삼고 명령을 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니 국회의원이 문제에요? 할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뭣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중앙의 각 분야에도 채용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대를 앞에 놓고 돈이 없어서 일을 못 해요? 또 몸뚱이가 살아 있는 한 흠집이 문제겠어요? 몸이 늙어지는 것이 문제지, 돈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이 진심으로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절대 나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교역자는 항상 일찍 일어나서 문 열어 놓고 네 시가 넘도록 사람을 기다리다가, 첫 닭이 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닭이 먼저 울면 `나보다 닭이 먼저 일어나서 우는 구나, 이놈의 닭아' 하며 푸념도 해봐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식구들이 새벽에 일어나지도 않고, 여러분을 선생님으로 또는 자기의 지도자로 그리워하지 않으며, 기도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동기가 없는 데 결과가 나타나는 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그렇다는 거예요.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도 틈만 나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 달라고 하며 매달리기만 하지, 이런 생각들은 안 한다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안 하면 벌을 받으니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면에서 선생님에게 빚을 졌다는 거예요. 빚을 졌으니 갚아야 됩니다. 자기의 밥이라도 그곳 아들딸한테 갖다 줘야 돼요. 갖다 줘야 할 입장이니, 줄바에는 기분 좋게 주는 것이 자기에게 영광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했느냐? 그것은 설명해도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그리워했어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나요? 소망의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소망의 민족을 얼마나 그리워했어요? 소망의 국가, 소망의 세계를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걸인의 행세를 하더라도 사람을 그리워하면 그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화를 잊고 하늘의 길을 닦으려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을 대하지 못하게 담을 막아 놓더라도 그 담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영계에서 그 간격을 메워 줍니다. 내가 흥남감옥에 있을 때도 말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전도했습니다. 영계가 동원되어 협조해 주었습니다. 안 해주면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더라도 이와 같이 해야 됩니다. 지방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은 1960년대에 이름난 곳은 다 가봤습니다. 나는 지금 과거에 맨발 벗고 삼천리 강산을 횡단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이 고을 저 고을 전부다…. 이제 그러려면 할 일을 못 하니까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내가 군수쯤 되어 부락 집집마다 다니면서 물 한 그릇씩 얻어먹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부락에 가면 어떤 집이 있을까, 저 마을에 가면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도자가 못 되는 거예요.
오늘 내가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생각해 보고,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세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며 `아버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데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기도한 그 기준과 딱 맞아떨어진다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적 촉감이 발달되는 것입니다.
길을 나서면 벌써 오늘은 이런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무한정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을 만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런 사람을 대하게 되면 `아이쿠!' 하고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과 영계에서 가르쳐 준 영감이 실제의 사실로 딱 들어맞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체험을 쌓아 올라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직감과 예감으로 체험을 통해서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고, 국가면 국가의 운세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체험으로 영적인 촉감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1970년도에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도 떠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걸어가면서도 그것을 생각할 수 있고, 공허한 자리나 엄숙한 자리에 있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러는 귀찮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길을 행차하신다면 어떻게 행차하실 것이냐?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며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좋은 경험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반드시 일기로라도 한 장 기록해 놓고 싶은 마음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은 여러분의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생의 신앙노정에 있어서 말 할 수 없는 값진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못 해보는 것이 한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오기 위해 차표도 없이 도둑 기차를 탔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맨 구석 끝에 앉아 가지고 차장이 나타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지요? 차장이 나타났다 하면 쥐새끼처럼 어디든지 기어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차장이 지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의 기분은 다른 세계에서 느낄래야 느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면서 따라오다 보니까 그러한 일도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은 돈을 주고 차표를 구입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요. 대신 이 다음에 이 나라를 위해서 보다 더 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내적으로 그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개인으로는 법의 처벌도 받아야 되겠지요. 그러나 법의 처벌을 받게 되어도 공적인 기준에서 일을 할 때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런 조건에도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생은 되었지만 그때가 좋았다는 겁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인상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강도와 함께 쇠고랑을 차고 흥남감옥으로 이송되어 갈 때, 산골짜기에 접어들어 개울길을 따라 걷던 그때가 참으로 새롭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굽이굽이 산골짜기의 길을 걸어가던 그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상적입니다. 그 걸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하던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날마다 가야 할 나의 길은 어디일 것이냐? 형을 마치고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주 궁금하다는 거예요. 감옥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느냐? 어렵지만 나는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새로운 자아를 각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남아진 것은 그러한 것밖에 없습니다.
한때는 함흥에서 굴을 뚫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가운데 일을 하니 곡괭이를 움켜쥔 손이 올라가지 않고 정신마저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그때의 밥! 그 밥을 먹기 위해 곡괭이를 땅에 박고 돌아서는 그 순간의 기분, 선생님에게 그와 같은 산 역사의 재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도 그러한 것에 비길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비참했던 사연들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에 길이 빛낼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직한 보화를 끌어모을 수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난의 사실을 세계 만민 앞에 털어 놓고 이야기하면, 다른 내용으로 한 시간을 설교하는 것보다 이 내용으로 10분만 이야기하면 통곡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설교 내용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걱정하지 말고 30세 전까지는 고생을 하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33세까지 고생하다가 죽음 길을 갔어요. 선생님이 말하는 통일교회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빌려서 가진 복입니다.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것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 데서만이 새로운 날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거에요. 여기에 어머님이 같이 앉아 있지만, 선생님이 여러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어머님이 제일 진지하게 말씀을 듣다보니 결국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가를 안다는 거예요. 결론은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을 많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신을 많이 교육해야 됩니다.
실천적인 생활에 있어서 선생님은 엄격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모셔 본 사람들은 잘 압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길러 나가야 됩니다. 새로운 자극을 자신에게 줘야 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무미건조하게 됩니다. 여러분, 무미건조한 것이 좋아요? 희극이나 비극을 보면 극적 장면이 나오지요? 그 극적 장면은 무엇이냐? 그것은 입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사람을 울릴 수 있는 희비극의 기준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제로 한 좋은 영화는 초만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배우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설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강의에 들어가면 분위기를 봐 가지고, 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하고, 이 사람은 어떻게 이끌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핵심을 맞추어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해야지, 하나님이 죽어 있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전도하지 말래도 반드시 전도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일이 제일 충격적이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놓고 진지하게 대화하면 열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 와서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발전할 때, 반드시 나 자신도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올라가는 겁니다.
잔디 같은 것을 발로 밟으면 다시 일어나지요? 마찬가지로, 그들이 뛰면 나 자신도 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기에 하늘을 위해 사는 길은 마이너스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면 발전하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열매가 맺지 않으면, 나에게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여러분이 생각하고, 각자 교회로 내려가게 될 때는 올라올 때 경부선을 타고 올라왔던 그 감정, 호남선을 타고 올라왔던 그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가져야 됩니다. 올라올 때 서울을 보고 왔으면, 내려갈 때도 서울을 보고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차 안에 들어설 때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찾았을 때는 목적지에 갈 때까지 관찰해 보는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저 사람은 성격이 급하겠구나. 저 사람은 성격이 좋겠구나. 그러니 저 사람의 팔을 치면 틀림없이 이렇게 나올 것이다'를 생각하면서 한번 테스트해 보라는 겁니다. 생각했던 대로 맞으면 통쾌하다는 거예요.
동네에서도 마찬가지고 해보세요. `아! 저 아주머니는 성격이 이렇겠구나. 내가 이렇게 나오면 저 아주머니는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뛰어나가 모른 척하고 한번 부딪혀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모르고 부딪힌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때리겠어요? 그럴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사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전부 새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새로운 것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맨 처음 것, 즉 숫것이 아니면 취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서 원리말씀을 대하는 데 있어서, 혹은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전도하는 데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관념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새것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심정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서, 무한한 가치를 드높이는 새로운 기준을 모색해 나가는 데 자신이 공로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이 같이하기 때문에 늘 발전할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아버님, 수택리 이곳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기억하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통일의 제단에 인연되어 있는 자녀들이 수택리 이곳을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터전 위에서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위해 출발하였사옵니다. 이렇게 새로운 기반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저희들을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 의미 깊은 수택리에서 저희들이 수련회를 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또한 여기에서 수련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영인들을 동원해 주심도 감사합니다. 이 땅 위에 통일의 이념을 세워야 할 저희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원리원칙에 가까운 결과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 앞에 다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들을 사랑하옵소서. 이들은 지구장 지역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생명을 책임지는 무거운 길에 있사옵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잘못하게 될 때는 수많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자리에 있사오니,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곧 우주를 완성시킨다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그 가치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가치의 진가를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런 사람은 아버님께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하루보다도 귀한 한 사람이 더 귀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년보다도 귀한 한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애보다도 더 귀한 한 사람을 세우고자 하시는 것이 복귀의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과거 역사가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앞에 수고하는 지구장과 지역장은 공적인 입장에 선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자신이 아버지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는, 자기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손에 칼을 들어 양을 잡아 번제를 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지구장이요, 지역장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음과 도탄 중에 살고 있는 삼천만 이 겨레 앞에 아버지께서 찾아오시어서 같이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역사적인 수난의 역경을 무사히 넘기게 된것을 이 민족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이념을 전하기 위하여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을 내세워 주신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이 이념을 꽃피울 수 있는 결실체로서 천적 가치를 펼쳐 놓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행치 못한 일이 많았음을 사죄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저희 자신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 마음은 아버지 앞에 서기 위해 흠모의 정을 가지고 불타야 되겠습니다. 사모의 정성을 모아 나 자체를 불태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기울여야 되겠사옵고, 아버지 앞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몸은 가다 죽을지라도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버지의 본향 집, 아버지께서 임재하시는 그곳을 향해야 하겠사오며, 내 일대에서 가지 못하면 후손들을 몰아서라도 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마음은 저희들이 그러한 모습이 되어 주기를 바라던 때가 몇 번이었사옵니까? 당신의 억울한 심정 가운데 귀기울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자극시켰던 때가 몇 번이었사옵니까?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실체로서 남아질 수 있는 그러한 때가 몇 번이었사옵니까? 이러한 입장에 서 있어야 할 저희 자신이, 그렇지 못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을 다시 명시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잊을 수 없는 자리에 저희들이 서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섭리적 책임을 졌을 때 저희는 자신있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모습이 될 것이며, 아버님은 저희들을 참으로 고맙게 여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처럼 아버지가 저희들을 반겨 주시는 모습을 대할 때, 저희가 기쁨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앞에 감사할 줄 모름을 탓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아직도 이들이 가는 길 앞에 수난의 길이 남아 있사옵니까? 아버지여! 수난의 물결이 이들 앞에 가로 놓여졌거든 최후의 승리자가 될 때까지 그 거친 물결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영웅심을 이들에게 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낙오자의 심정을 가지는 졸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백절불굴의 심정으로 아버지의 중보자가 되어 아버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가시는 그 행보에 맞추어 가야 되겠사오며, 쉬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것을 뿌리치고 가야 하겠습니다. 내 갈 길은 아버지 대신 오직 세계 복귀를 위하여 나선 걸음이기에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설령 아버지가 막는 것을 뿌리치고 나선다 할지라도 이것은 불효가 아니요, 불충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불충은 불충될 수 있는 입장에서 불충되지 않는 자리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는 것이 불충이요, 하라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불충인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충은 이제는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 충이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것이 충인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상적인 자리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입장에서 충효의 길을 엮어가야 할 아들이 되지 않고서는 천상의 아버지의 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지존하신 아버지 앞에서는 역시 지존함을 추구하는 아들이 되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오늘도 그러한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당신의 소중한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의 본체가 되기 위해 저끄러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야 되겠사옵니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 앞에 충성할 수 있고 영광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아들이 된다면, 이 땅 위에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 그만큼 숭고한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저희들은 아버지의 모든 외적인 기준은 물론이요, 내적인 심정의 세계를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절대가치를 지니고 간다는 사실 또한 절감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자랑한다 해도 그러한 자리가 일찌기 없었습니다. 누구든 마음속에 아버지와 인연된 사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저희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아버님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영원한 세계에 자랑해 나오셨고, 또한 수많은 선조 앞에 자랑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제 앞에 나타난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권고를 받게 될 때, 아직은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못 된다고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한 이 아들을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아들이 참으로 자비로운 아버님이라 부르면서 옷깃을 여미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이 자리의 철모르는 아들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돌아가야 될 시간이옵니다. 이들이 돌아가서 누구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옵고, 아무개의 남편이나 아무개의 아버지로만 사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대한의 사람, 대한의 아들딸, 대한의 어버이로 모든 이들을 품음으로써 이 나라와 이 세계의 어버이가 되고 아버지가 기억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자기의 생애를 잘 간수하면서, 당신을 경외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될 수 있게,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저희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시기 위하여 불러 모아 주셨사옵니까? 아버지, 저희 마음속에 절대로 절망감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1970년도의 이 달을 당신이 요구하는 환희의 한 달로 맞이해야 되겠사옵니다. 이는 오직 승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오신 당신의 숨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 어려움을 넘어오셨기 때문이옵니다. 그걸 본받아 가는 저희들의 길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나는 그 날, 아버지를 맞아 쌍수를 들어 찬양함으로써 아버지께서 즐거워하시고, 또 하늘땅 전체가 축복받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날을 맞이하기 위한 이번 기간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하는 일은 저희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여 책임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민족과 세계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은 충효의 도리를 다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백 번, 천 번 죽을지라도 저희를 위한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의 은덕을 다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사랑의 조그마한 조건도 갖추지 못한 부족한 모습을 복귀의 노정에 세워 주신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될 때, 천 번 만 번 아버지를 찬양해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다시 만나더라도 뜻을 놓고 말씀을 나눌 수 있어야 되겠사오며, 상봉했던 날을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이번 기간을 70년대를 장악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서, 아버지의 칭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러한 아들딸이 되려는 저희들 앞에 수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굶주림의 길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어떠한 난관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스스로가 적응력을 키워서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에 놓여 있사옵니다. 내가 불쌍한 것을 보면,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더욱 불쌍한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절감하며 내 심정보다는 아버지의 심정을 먼저 생각하여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줄 아는 참모습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효자는 잘 입어서 효자가 아니요, 잘 먹고 잘 살아서 효자가 아닙니다. 비록 벌거숭이 몸으로 나타난 아들일지라도 탕자가 아닌 이상 부모 앞에 효자가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아버지가 남기신 뜻 앞에 진정한 심정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들의 가정 위에 축복하시어서 빠른 시일내로 당신의 뜻에 부응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의 이 세계 앞에 하늘의 권위를 자랑함으로써 자유 해방을 찬양할 수 있는 기쁜 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쌍수를 들어 개선가를 부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오로지 그 한 시간을 향하여 가야할 운명을 띠고 있사오니, 그 운명을 감사히 여기며 갈 줄 아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을 새로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정초석을 바로 놓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체 위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가 같이하시옵길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아버지, 오늘은 이 달에 들어서서 네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존엄과 영광이 저희의 머리 위에 임하게 하시옵소서.
기나긴 역사노정을 통하여 당신이 소원하시고 고대하시던 나라가 이 천지간에 어서 속히 현현하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사랑하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있어야 되는 줄 아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저희들 각자는 당신이 분부하신 책임을 짊어지고 개인이 가야 할 행로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나를 중심삼고 가정을 이끌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끌고 가야 할 노정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개인을 찾으시어 가정을 이끌고, 가정을 찾으시어 종족, 민족을 편성하기 위한 수난의 길을 헤쳐 나오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무형으로 계신 아버지께서 실체 인간인 저희를 통하여 섭리 하시기에 얼마나 고달프셨으며,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실체인 저희들이 주동이 되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결과를 맺기 위해 책임지고 나서는 무리들이 되어야 될것을 다시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저희를 부르시는 그 부름 앞에, 혹은 맡겨 주신 그 사명 앞에 저희들이 어떠한 책임을 완수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저희들은 그 소명 앞에 너무나 소홀했고, 그 뜻을 중심삼고 일치된 방향을 갖추어 복귀의 결과를 다짐할 줄 몰랐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아침 저희의 모든 개체 개체를 당신이 완전히 맡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으로부터 연유되었고 당신으로부터 빚어진 아들딸이 되기를 원하오니, 최후의 승리도 당신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개가를 온 천지간에 드높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도 이곳을 그리워하며, 아버지 앞에 자신을 속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거룩하신 사랑과 거룩하신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고, 무한하신 자비와 동정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복귀의 노정을 향하여 달려가는 데 지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강하고 담대한 입장에 서서 적진을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당신이 보시기에 자랑스럽고 늠름한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1970년의 3월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1970년대에 필요한 여러 기반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저희들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을 중심삼고 축복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젊은 아들딸들이 내일 이 자리에 집결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그 길을 가기 위해 모인 이 자리는 당신이 6천년 전부터 바라시던 소원의 한 자리이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나오던 소망의 한 자리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모임에 친히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간을 통하여 당신이 기뻐하시고,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새로운 아버지의 뜻이 이렇다고 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계적인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번 행사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새로운 길을 예비하는 것이오니 당신의 마음 앞에 어긋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저희들이 목표하는 전부가 아버지와 인연이 되고,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게끔 저희들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소원과 아버지가 원하시는 목적이 일체화하도록 저희들이 전심전력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저희의 마음 마음을 하나로 엮으시어 사랑스러운 자녀로 품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동산 그곳, 당신의 영광된 자리에 참석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절대적인 조건들을 갖출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도 이곳을 대하여 뜻을 중심삼고 염려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엎드려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엎드린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일본은 지금 치열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월 12일을 기하여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최후의 싸움을 결하기 위한 준비를 지금 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친히 거기에 같이하시고 직접 운행하시어서 그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본 민족을 아버지의 뜻 앞에 세워야 되겠사옵고, 그 일본을 저희들이 방어하지 않고는 한국이 어렵고 불행한 자리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실정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느끼고 있는 그들 위에 당신의 힘과 권위와 능력의 손길로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전선 앞에서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당신의 보호와 권능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뜻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 아침 이 시간에 저희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사명 앞에 더더욱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 있어서 축복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결혼이라는 말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조로부터 어떤 유업을 상속받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고, 혹은 부모로부터 유산을 상속받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형제들 가운데서 누구보다 정이 더 가서 부모가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겠다' 고 할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부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간을 거치지 않고는 상속을 받을 수 없으며, 축복을 받는 자리에도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뜻을 중심삼고 축복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이 말은 통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내적인 마음속에 지녀 가지고, 이것이 실천되기를 바라며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축복해 주시며 그것이 이뤄지기를 바라시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축복을 아직까지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서글픈 입장에서 축복이 실천되기를 소원 중의 소원으로 고대하면서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4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친 연후에, 하나님이 본래부터 주고 싶었던 축복을 최후로 결행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섭리역사를 하셨지만, 예수님 역시 그 축복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하나님의 소원을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이라는 말은 우리 통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타락한 이후인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심 가운데 하나의 소원으로서, 하나님이 언제나 이것을 추구하고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소원의 한날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아직까지 이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한날을 찾는다면 이날은 역사적인 해원성사를 할 수 있는 날이요,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 축복의 자리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의 혈연관계를 갖고 태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축복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타락한 사망의 세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탄생해 가지고 탄생한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성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을 거치기 위해서는 제반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가야 되는 거예요. 제반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개인적인 사명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사명과 세계적인 사명도 함께 책임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책임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해 왔느냐에 따라 축복이라는 문제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축복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김이면 김, 박이면 박, 개인으로서 복될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하나의 존재가 축복의 자리에 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갖추어야 하느냐? 반드시 여기에는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축복이 자기 개인을 위해 해주는 것이 아니고, 그 개인으로 하여금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신한 새로운 가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 해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자기 개체, 김씨면 김씨만을 위한 가정이 아닙니다. 그 김씨만의 가정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축복이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가 개체로는 두 사람이지만, 역사적 시발점에 서 있기 때문에 그 두 사람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두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가정이 현현될 것이요, 나아가서는 새로운 종족이 현현될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민족, 국가가 필시 현현될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기반이 결정되는 자리가 바로 축복의 자리입니다.
이 축복의 자리를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것을 다시 복귀해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축복은 우리 개체의 축복에 한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축복의 기반인 민족 국가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입장에서 축복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면 복귀의 완결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필연적인 사실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아, 축복의 자리에 나가야 하는 개인은 얼마나 엄중한 자리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엮어온 역사과정에서의 모든 슬픔을 청산지을 수 있는 자리요, 지금까지 성취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소원이 새로이 출발을 할 수 있는 자리요, 새로운 미래가 출발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한 기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무엇을 찾기 위한 역사냐? 하나의 남성을 찾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즉, 그 수고의 내용은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냐? 하나의 아담인 남성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 남성을 찾은 후에는 뭘 해야 할 것이냐? 그 남성으로 말미암은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먼저 창조하신 후에 그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먼저 아담을 찾기 위한 역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 아담을 찾았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날부터 해와를 재창조해 나가야 돼요. 재창조하는 데는 순리적인 환경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앞에 놓고 재창조하였다는 승리적 결정점을 완전히 해결해 놓지 않고는 축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에 실패한 모든 것들을 탕감하기 위해서 하나의 남성으로 태어나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도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한 섭리의 모든 내용을 상속받았다 하더라도, 예수님 혼자서는 국가를 형성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가정을 편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됩니다. 즉,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전체를 걸어 놓고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여성을 사탄세계에서 찾아서 빼내 오려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탄들이 반기를 들고 반대하던 것을 도려 내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가담해서 사탄 앞에 반기를 들고 반박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여성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4천년 동안 사탄에게 침범받았던 모든 것들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는 승리적 조건을 사탄에게 제시하지 않고는 잃어버렸던 해와를 사탄세계에서 찾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간단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실패하여 몰린 내용들을 청산지어야 됩니다. 또한 시대적인 해와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모든 여성들을 대표해서 하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한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의 여성으로서 하나의 남성을 대해 열녀의 심정을 갖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의 여성이 나타나지 않고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해 소망하였던 복귀된 하나의 실체 해와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역사상의 모든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의 여성을 찾기 위한 배후의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자리는 일대일로 대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의 여성을 찾으면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민족이 형성되는 것이요, 그 하나의 여성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볼 때, 그 하나의 여성을 찾아 재창조의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해와 그 한 자체만으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의 입장에 선 사탄, 즉 사탄을 중심삼은 이 세계에서 아담이 해와를 찾아 나오는 데는, 천사장 대신 해와의 가는 길을 협조해 줄 수 있는 하나의 남성격 존재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복잡다단한 내용을 거쳐야 하나의 여성을 찾을 수 있게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축복이라는 말씀이 나왔는데, 이 말씀과 더불어 이러한 생활을 여러분에게 제시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한한 시대적인 요구에서만은 아닙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섭리를 펴시는 곳곳마다, 혹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축복이라는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 축복의 기점 위에 나타난 책임자, 즉 중심존재는 그 시대라는 제한된 환경에만 처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세계사적인 내용을 지닌 중심인물이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축복은 부부의 인연을 갖추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정이 형성되어야 하고,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여기서 출발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1960년대부터 새로운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새로운 역사시대로 접어듦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종족이 여기에 현현할 것이요,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의 형성이 여기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기점을 중심삼고 통일교회에서는 수차에 걸쳐 축복행사를 거행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로 말미암아 그들이 축복받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를 거쳐 가지고 민족 앞에, 세계 앞에, 복귀섭리의 노정 앞에 하나의 승리의 방패, 승리의 기점을 넓혀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축복이라는 것은 이처럼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에 이제 7백쌍이라는 거창한 축복의 성혼식을 하려는 이때에,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 중에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그대로의 하나의 남성, 혹은 하나의 여성이란 입장에서 참석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자리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왔다 갔던 많은 남성, 혹은 많은 여성들을 대표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이 초청을 받았다는 인식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내정적인 심정으로 체휼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그러한 남성, 혹은 그러한 여성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그 남성뿐이요, 그 여성뿐이라는 거예요. 단둘이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단둘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하나님이 찾아 세운 재창조의 실체의 모양을 갖추어 가지고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하늘땅을 중심삼은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이면 개인이 `나는 이런 아들이 되고 이런 딸이 되겠습니다. 이 아들과 딸이 가는 길은 당신이 소망하시는 나라를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당신이 지금까지 추구해 나오시던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가는 도중에는 어려움도 많이 있을 것이요, 곤궁함의 곡절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이 모든 것을 돌파해 가지고 국가를 지나 세계로 갈 수 있는 부부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으로서 일생을 둘이 동반하여 사는 것, 그것이 축복을 받기 위한 기대가 아니예요. 이것은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운명을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결정적인 인연을 맺고 들어서는 자리라는 겁니다. 그 자리가 그러한 축복의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고,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가야 할 우리의 운명길입니다. 이 길은 우리에게 있어서 단 한번밖에 부여받을 수 없는 다시 없는 길이라는 거예요. 만약 여기서 잘못되는 날에는 다시 복귀라는 명사를 찾아 세울 수 없는 최후의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된 것이 아니라, 사탄을 중심삼아 가지고 된 것입니다. 본래 사랑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그 사랑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중심삼고는 하나님편이 언제나 시초요 결과가 되어야 하겠기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을 표준하고 복귀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사랑의 승리를 가져 오려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면 남편과 아내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기원이 될 수 있는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완전히 하나가 되어 타락한 아담 해와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지워 버려야 하고, 하나님이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해원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 먼저 만물을 지어 놓고, 그 만물의 중심인 아담 해와를 영광의 실체로 지어 가지고 그들이 환희에 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축복의 한날을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에, 그 소원의 한날을 오늘날 우리가 우리 일대에서 완결지을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 승리의 영광을 드높여서 우리 스스로가, 혹은 부부가 온 천지 앞에 찬양을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기쁜 날을 맞기 위해 단 한번 밖에 없는 이런 엄청난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는 일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축복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죽으셨듯이, 복귀섭리도상에 왔다간 수많은 사람들, 혹은 뜻을 대해 자기의 생애를 바치며 싸워 나갔던 사람들의 과거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 앞에 일편단심으로 자기의 있는 정성을 전부다 투입해 가지고 노력했던 그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한사코 이 축복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아직까지 이 축복의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기필코 이 축복의 인연을 맺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슨 의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면류관의 표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축복의 상대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특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면류관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사실은 평면적으로 제한된 환경의 자리에만 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온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통해서, 혹은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필연적으로 추구하고 갈구해 나온 소망의 기점이 여기에서 이루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이 엄청난 축복에 임하는 당사자들이 그것을 알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심각한 입장에서 자아를 비판하고 새로이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대신 부를 수 있는 입장에 내가 서 있느냐? 혹은 예수님 대신 부를 수 있는 입장에 내가 서 있느냐? 새로 오실 주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내가 섰다고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축복을 앞에 놓고 있는 여러분들은 자기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생활을 비판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중에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상례로 하는 것이 축복이다. 나 자신도 이러이러한 조건이 성립되어 있으니, 또는 교회에 들어온 지 몇 해가 넘었으니 거기에 해당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었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소망하시던 한날이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이 한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아들을 찾게 되는 것이요, 잃어버린 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일치점이 마련되는 것이요, 여기서부터 하나님이 뜻을 펼 수 있는 횡적인 터전이 마련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내심에 일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축복의 한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아들이나 딸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들이 여기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모습을 보게 되면,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 몸에는 사지백체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어떤 부분을 사랑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여러분의 어떤 한 부분만을 중심삼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를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은 50점이 아니예요. 60점도 아니예요. 70점이나 80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100점 이상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100점 이상의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기준의 자리가 아닙니다. 타락한 슬픔을 보아 오신 하나님 앞에, 그 모든 것들을 탕감복귀해 드릴 수 있는 타락할 때의 기준 이상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 것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조건을 성립시키지 못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 해와를 침범하여 그 영광의 한날을 유린했던 사실을 두고 볼 때, 그것을 능가하는 새로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부부를 하나님이 가져야 됩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딸을 찾아가 다시 취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하나님은 위신을 찾아 세울 수 없게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엄청난 기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 여러분이 자기의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축복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의 자리는 하늘과의 단판적인 결과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할 때는 패자로서 남아지는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한번 잘못하게 되면 여러분의 억천만세의 후손이 걸려들어가게 되는 것이요, 또한 선조까지 걸려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 때문에 실패하였느냐? 예수님이 오셔서 30여년 동안 자신이 해야 할 말씀을 다하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예요. 또한 공생애 노정에서 제자들과, 혹은 친척과 해야 할 모든 것을 못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예요. 단지 그 실패의 동기는 예수님이 축복의 자리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시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하고 유대교인이 반대한 데에 있다기보다는 요셉의 가정에서 그러한 축복의 한날을 갖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을 가졌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귀일된 십자가의 원인과 동기가 무엇이냐? 축복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타락하여 축복의 자리에 미치지 못한 조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비운의 역사가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후손들이 신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온 천하의 인류가 하늘 앞에 한결같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축복의 한날입니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내심으로 고대하여 필연적으로 현현하게 되기를 바란 그 축복이, 우리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통일 제단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문제라는 거예요. 이처럼 세계적인 무대의 여성이 있다면 그 자체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자들이 아니겠어요?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그러한 아들딸이 있겠느냐 할 때, 여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천양지판(天壤之判)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하늘이 허락할 수 있는 축복의 자리에 나설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하고 `내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축복을 해주면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안 해주면, 자기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받겠다고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은 축복을 안 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축복을 두고 볼 때, 전부다 선생님이 책임지고 축복해 준 일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발전에 있어서도 도움이 못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축복을 안 해줄 수도 없는 내용이 내게는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 축복받은 가정들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으로서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축복받은 부부는 축복받은 그날서부터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은 부부가 합하여 가정을 형성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합쳐서 민족 혹은 국가를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축복받은 사람이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가정이 합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의 새로운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자면 먼저 새로운 종족을 편성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종족은 분열된 종족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된 종족이라야 됩니다.
그러니 축복받은 열 사람의 목적은 서로 같아야 합니다. 이 가정들은 사탄세계에서 찾아 세운 소수의 가정들이기에 언제나 사탄세계의 공세를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가 되어 단결해 가지고 그 환경에 압도해 들어오는 외부의 힘을 능가할 수 있는 자체내의 결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힘을 능가하려면 자체내의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된 모습이 된다면 아무리 외적으로 사탄의 침범을 받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집된 실체를 갖춘 데에서부터 사탄세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단결된 종족을 통하여 민족이 형성되고, 그 단결된 민족을 통해서 새로운 국가가 형성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이 그 나라면 나라, 민족이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완전히 투입하여 하나님 대신 책임을 지고 싸워 나가고 있느냐 할 때,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축복받은 부부는 자기의 가정을 통해 국가뿐만 아니라, 그 종착점인 세계까지도 안을 수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 가려 해도 어차피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만일에 이 땅 위에서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가야 할 길을 못 갔다 할 때는 영계에 가서 살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축복받은 부부로서 천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게 될 줄 알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 축복을 통해서 자신은 만세의 존재세계에서 영광의 실체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본연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타락세계에서는 그러한 자세를 갖춘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세계에는 한국이 있음과 동시에 일본이 있고, 또한 수많은 나라들이 각처에 널려 있습니다. 사탄세계에서 이러한 국가들이 원수의 진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을 대신하여 이것을 전부다 승리의 결정권내에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러한 본연의 자리에 여러분이 서 있지 못한 입장에서 영계에 가면 자신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때문에 여러분의 남편, 혹은 아내뿐만이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이끌어 기어이 세계를 복귀하는 데 협조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선 가정이 바로 축복가정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영계와 육계는 판이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세계를 그냥 그대로 구체화시킨 세상이 영계라는 거예요. 그러니 그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뜻을 대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실체가 동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반드시 땅 위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 와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된 존재가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고, 마음만 가져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즉, 완성실체를 통과하지 않고는 결과의 세계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이 땅 위에서 자신이 갖추어야 할 것을 다 갖추지 못하고 사탄에게 몽땅 마음을 빼앗긴 입장에서 영계에 가게 된다면, 실체의 행동을 어떻게 전개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여러분 자신의 후손들을 대신 세워야 합니다. 자기를 구해 줄 수 있는 메시아와 같은 입장에 그 후손들을 세워 가지고,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사정을 봐 가면서 협조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여러분이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한 책임분야를 이룰 수 있게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부활의 현상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계에 가서 재림부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인다면 그런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책임을 다한 영광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무한한 공적(功績) 세계이기 때문에, 자기의 책임을 다 수행하지 못했으면 그냥 그대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책임을 수행할 때까지 수백 수천 수만년, 즉 많은 시간이 연장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당연한 이치예요. 그러한 입장을 놓고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살아 있는 이때가 얼마나 귀중합니까?
예수님이 찾아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의 상대는, 즉 축복 대상자는 예수님 자신에게만 한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그 중심 자리를 세계에서 임명할 수 있는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그 중심 자리를 세계에서 임명할 수 있는 그때까지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 축복 가정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들은 모두 일체의 소원을 어디에 두어야 되느냐? 국가와 세계를 위한 가정이라는 신념에 두어야 됩니다. 그리고 국가와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신자라는 책임감을 갖고, 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체의 행동을 거기에 결속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제한된 환경에서 일을 하더라도 누구의 명령을 받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혹은 세계와 국가의 소명을 받아 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대신한 일을 제한된 환경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대신한 일도 제한된 환경에서 하고 있다는 거예요. 개인을 중심삼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되, 명령을 받은 배후가 다름에 따라 그 일의 결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를 대표해서 내가 일을 한다 하게 될 때, 내 개체에서 하는 일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세계의 명령을 받고 나와서 내가 한다 하게 될 때에는 세계에 결속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의 명령을 받고 나와서 한다 하게 될 때도 환경은 같은 제약된 환경이지만, 이것은 국가 앞에 기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는 전부나, 혹은 축복가정들의 생활은 자기 부부를 위해서만 산다는 관념을 초월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 땅 위에 탕감조건을 세워 세계를 복귀하는 데 공신이요, 국가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공신이라는 기준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여러분이 남기지 못한다면 영계에 가서 자신의 갈 길을 관리할 수 없다는 거예요. 만일에 그런 입장에서 영계에 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축복받고 나가야 하는 그 길은 자기 부부를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부를 위하기 전에 종족을 위해야 부부로서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는 거예요. 또한, 종족은 국가를 위해야 종족이 안식할 수 있는 자라가 벌어지는 것이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야 국가가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축복이라는 것 자체가 여러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각자가 `축복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가야만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서로가 하나되어 가정을 형성하게 될 때, 비로소 그 가정은 세계로 향할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축복 가정이 한 가정밖에 없다 할 때는 그 한 가정이 그런 책임을 절대적으로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 밑에서 나아가는 가정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즉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한 가정 한 가정 남아지게 되면 복귀역사는 진전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같은 길을 가는 가정이 많다 하더라도 서로 의지만 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체의 자주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국가를 위한 가정이요, 세계를 위한 가정입니다. 그런 자각 밑에서 나가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에서 태어난 후손들도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남편은 기필코 역사적인 남편이 되고, 그 아내는 역사적인 아내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 후손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도상에서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필요한 종족이 될 것입니다. 그런 종족적인 인연을 갖출 수 있는 부부가 되었다면,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조상의 자리에 등극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책임과 사명을 부여받을 수 있는 인연을 결정짓기 위해서 참석하는 자리가 축복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축복을 받는 데 있어서 상습적인 관념으로 그 과정을 거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과정만 거쳐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그 엮어진 사연이나 인연이 얼마나 기막히게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나오게 되면 세계가 좌우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방향을 맞추어 나가게 되면, 세계가 그 방향을 향하여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부부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약을 위하여, 혹은 그 나라의 공약을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의 상대가 잘나고 못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야 할 목적성이 문제라는 거예요. 즉, 자기들이 살아서 후손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을 어떻게 닦아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런 입장은 틀렸다는 거예요. 그런 사랑은 인정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기 전에 먼저 국가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를 사랑하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가야 할 길입니다. 여기는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즉, 나를 사랑하는 대신에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언제 하늘을 사랑해 보았으며, 세계를 사랑해 보았으며, 나라를 사랑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하늘땅을 대신한 사랑이 되는 것이요, 세계를 대신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한 사랑이 되는 것이요, 민족을 대신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다 그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복귀의 도상을 향하여 찾아가는 여러분이 언제 나라를 사랑하는 자리에 섰으며, 언제 세계를 사랑하는 자리에 섰느냐? 또한 언제 하늘을 사랑하는 자리에 섰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아직까지 서 있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한 자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자기를 중심삼고 관계를 맺어 행복의 요건을 세워 달라고 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축복가정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본래 인간시조가 타락하여 하늘을 대하여 하지 못한 사랑을 찾아야 될 운명이요, 세계를 대하여 하지 못한 사랑을 찾아야 될 운명이요, 나라를 대하여 하지 못한 사랑을 찾아야 될 운명입니다. 또한 민족과 종족을 대하여 하지 못한 사랑을 찾아야 될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늘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기서 하늘을 사랑했다는 공인을 받아서 세계를 사랑해야 하고, 세계를 사랑했다는 공인을 받아서 국가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사랑했다는 공인을 받아서 종족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했다는 공인을 받아서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정까지 사랑했다는 공인을 받았을 때, 즉 그런 내용을 하늘 앞에 인정받고 난 후에 비로소 부부끼리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꾸로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가정들이 불화가 생겨, 부부끼리 뭐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가정은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이라는 거예요. 그러한 일은 뜻을 망각한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그대는 나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늘을 사랑할 줄 알아야 돼요. 그 하늘을 사랑했다는 인정을 받고 세계를 사랑하시오. 세계를 사랑했다는 인정을 받고 나라를 사랑하시오. 나라를 사랑했다는 인정을 받고 종족을 사랑하시오. 종족을 사랑했다는 인정을 받고 가정을 사랑하시오' 라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가정은 자기 가정보다 민족을 더 사랑해야 하고, 종족을 사랑해야 하고, 나아가 나라와 세계를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의 친척과 축복받은 동료들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가 연결된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아무리 많은 천 사람, 만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딱 보게 되면 표시가 나는 거예요.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결합한 그 가정에서는 국가를 사랑하는 모양, 세계를 사랑하는 모양, 하늘을 사랑하는 모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는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을 사랑해 달라고 하고, 당신은 내것이라는 등 지금까지 세상 부부들이 관습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말을 축복가정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내 된 사람은 시간만 나면 그러한 남편이 되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또한 남편 되는 사람도 시간만 나면 그러한 아내가 되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서로서로가 힘에 힘을 합하여 도와주고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상심하지 않도록 서로가 용기를 주고, 서로가 인도하며 인도를 받아야 할 책임을 같이 지고 있는 것이 부부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부부가 찾아야 할 나라를 찾지 못하게 될 때, 그 부부는 헤어져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둘이 합해서라도 기어이 찾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땅에 다시 와서 협조해야 하는 원통한 사실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늘이 갈 수 있는 길을 열고, 세계가 갈 수 있는 길을 열고, 국가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내려오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그런 공인을 받아 가지고 출발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합심해서 세계와 나라를 위해서 싸웠느냐, 그 나라를 위해서 언제나 충효의 도리를 다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은 축복받은 그날부터 각자 이중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남자는 자기의 세계만이 아니라 여자의 세계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고, 여자 또한 자기의 세계만이 아니라 남자의 세계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둘이 책임지고 나가는 길에 있어서 사탄이 참소 할 수 있는 내용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축복받은 가정들이 가야 할 길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갈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 또 그럴수 있는 내용을 나 자신이 갖추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기에 탕감조건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 탕감조건을 세우려면 먼저 믿음의 세 아들딸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여덟 식구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그 여덟 식구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을 넘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추지 않고 `민족을 위한다. 국가를 위한다. 세계를 위한다' 하는 말은 한낱 형식에 지나지 않는 말입니다. 이러한 출발기점에서 이 기준은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그 절대적 기준을 해결짓고 가야 할 운명길에 있는 것이 축복의 자리인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그러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클 것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 가운데서 중심이 될 수 있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많은 가정들 가운데서 하늘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있는 가정은 어떤 가정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서로가 뜻을 망각하고 자기들끼리만 사랑하면서 살았다면 하늘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가정의 부부생활인 것입니다. 뜻을 앞에 놓고 자기들끼리 인연을 맺어 자기들만의 행복을 찾아 가정을 꾸려 나가는 입장에 서면 발전 못 하는 거예요.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에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은 나라와 더불어, 세계와 더불어, 하늘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 가정의 기쁨은 나라의 자랑이요, 세계의 자랑이요, 하늘의 자랑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런 장한 아들딸로서 하나님 앞에 바쳐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나 자신은 비록 그런 자리에 나가지 못했지만, 내가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자리를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날이 기필코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정성을 다하게 될 때, 그 아들딸들이 세계와 나라 앞에 필요한 존재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자기들을 중심삼고 자기의 행복을 모색하는 가정은 하늘의 뜻을 이용하려는 것밖에 안됩니다. 이런 가정들이 많다는 거예요. 이러한 가정들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이런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1개월이 걸릴는지 2개월이 걸릴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을 책임지고 이 일을 수행해 나가는 선생님은 이 일을 취미삼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치열한 전투를 해야 됩니다. 내가 그를 끌고 가든가, 그가 나를 끌고 가든가 해서 어차피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먼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둘 중의 한 사람은 앞에 가고 한 사람은 따라가는 입장에 서야만 반드시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둘이 협조해서 가지 않으면 이 길을 못 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서 누가 주체가 되느냐? 누가 상대가 되느냐?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부인이라면, 설사 자기 부인이라 해도 모시고 가야 됩니다. 이런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서는 부인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되는 거예요. 남자라고 해서 뭐 큰소리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또한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가 주체가 되어 책임을 졌을 때는 남자에게 외적인 문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 돈도 못 벌고, 생김새도 못생겼고, 또 무능하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문제는 뜻에 대해서 얼마나 충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기의 생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외적인 조건을 찾아간 사람들을 두고 보라는 거예요. 반드시 결과가 좋지 않더라 이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개체가 바라는 상대적 기준이 아니라 해도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가 뜻을 위하는 마음이 자기보다 앞서 있거든, 그를 통해서 세계를 찾아 나가겠다고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남성, 그럴 수 있는 여성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형태를 갖추어 밴들거리는 학박사 보다는 도리어 순진하고 순박한 농촌 출신들이 더 복될 수 있는 거예요. 자기를 내세우며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보다도 묵묵히 그저 끌면 끄는 곳으로 가고, 또는 어떤 장소에 놓아 두면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하늘 앞에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앞에 놓고 가는 데에 자기의 욕심을 부리고 가다가는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실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자기의 욕심을 개입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축복받고 나서 서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며 사는 부부가 있다면, 그 부부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던 모습을 다시 재현하는 것이 됩니다. 타락이란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기의 주체성만 가지고 거기에 굴복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이 인연을 맺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며 자기만을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하늘이 동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인정도 안 한다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마음에 있었던 사람은 절대 축복을 안 해줍니다. 축복받기 위해서는 신앙의 정기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축복해 주고 난 후에 보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거예요. 반드시 그것이 들어맞더라는 거예요.
사랑은 하늘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데,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타락은 뭐냐? 사탄으로부터, 해와로부터, 횡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후손이기에 횡적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은 여러분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고 있느냐? 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에게서 나쁜 후손이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목적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가가 현재의 입장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발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국가의 운세를 안고, 세계의 운세를 안고 태어날 수 있는 후손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 그럴 수 있는 인재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결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의 결혼은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민족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민족을 위한 부부이기 때문에 결혼을 한번밖에 하지 못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세계가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여러분은 세계를 위한 부부이기 때문에, 결혼을 한번밖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둘이 있을 수 없고,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위한 부부이기 때문에 결혼을 한번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생각하고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결혼하여 사는 동안에 지지리도 못살고 어렵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비참하게 생활하지만 자기의 가정이 역사노정에 있었던 수많은 가정들을 구원할 수 있는 구주의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입장에서 아무리 불행하게 산다고 해도 그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자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탕감복귀시키기 위해서 또는 영계에 있는 영인들이라든가 앞으로 올 후대의 후손들을 위하여 대신 길잡이가 되어 갈 길을 열어 주는 주체자가 되는 자리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주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부부는 자기 아내가 죽고, 혹은 남편이 먼저 죽었다 하더라도 한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재혼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했다가는 영계에서 걸리는 거예요. 반드시 하늘 앞에 보고하여 하늘이 지도하는 대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보면 그와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은 땅 위에서 나타나지 않아요. 하지만 영계에 가보라는 거예요. 틀림없이 그러한 사람은 사탄보다 더 악한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바탕으로 해서 6천년 동안 뒤넘이친 것입니다. 이렇듯 축복의 자리는 어마어마한 자리예요. 여기에는 적당히 자기의 감정을 통해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한 생명의 가치는 우주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 사람을 책임지는 데 있어서는 영원을 중심삼고 책임져야 됩니다. 이런 문제가 좌우되는 자리가 축복의 자리인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일생에서 그러한 한때를 가졌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축복의 자리에 여러분이 가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 선조가 지은 죄가 있을 것인데, 그 죄의 인연을 이어받은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축복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종족을 중심삼고 대한민국과 세계에 연결되어 있는 그런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인류를 대신하고,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고 여러분의 종족을 대신해서,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선서를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늘을 중심삼고 남아질 수 있는 가정이요, 세계 앞에 필요했던 가정이요, 당신의 사랑의 세계에서 필요했던 가정이라는 절대적인 내용을 남기겠다는 결의 밑에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그 가정의 기준이 여러분 자신의 가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 세운 가정은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고,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찾아 나온 걸음이 축복의 걸음이기 때문에, 하늘 부모의 가정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고 난 후에 정성들이는 가정으로서의 정상적인 길을 갈 때에, 그 아들딸들은 통일교회의 대운을 타고날 것입니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들은 하늘의 운세를 타고 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의 운세를 타고날 수 있는 후손을 어떻게 남기느냐? 그것은 부모가 정성들이는 기준에 따라 그 내용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늘을 위해서 얼마만큼 그 마음이 간절했으며, 얼마만큼 지성을 다했느냐에 따라 앞으로 태어날 후손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의 욕심을 가지고 움직여 보았댔자 하늘이 그에게 동조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하면 하늘은 떠나는 겁니다. 자기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랑을 가지고 나오게 될 때는 하나님은 거기에 같이하시지 않는 것이요, 반드시 세계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자리에 있을 때에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넓고 높은 사랑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 축복가정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받는 데 있어서 `나는 누구와 하면 좋겠다' 하고 이렇게 마음속에 자기의 짝으로 맺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할 때, 서로가 자기의 상대인 것을 확실히 몰랐다는 거예요. 확실히 몰랐습니다. 모르는 자리에서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부지불식간에 그런 결과를 가져 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길을 피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축복받기 전에 자기의 상대를 알고 축복받으러 나갈 수 있겠으며, 축복받기 전에 자기의 상대를 결정해 가지고 나갈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축복의 상대 결정은 하늘이 하시는 거예요. 부모가 하시는 겁니다. 즉, 아담의 아버지 되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한국의 전통 혼례식이 천법에 해당하는 결혼방법이라는 거예요. 부모의 승락 없이는 절대로 결혼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 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에 있걸랑 그 즉시 부모에게 보고를 하라는 거예요.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먼저 부모의 공인을 받으라는 거예요. 둘이 사귀어도 좋다고 인정해 주면 그것은 괜찮은 거예요. 보고하고 연애를 하는 것은 죄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보고하지 않고 하는 일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타락한 결과의 세계입니다. 인간 시조 아담 해와가 청소년 시절에 아무런 허락 없이 사랑의 씨를 뿌렸던 것이, 그 뿌린 대로 오늘날 청소년들에게서 거두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는 것이요,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것처럼 인간시조가 그렇게 타락했으니, 그렇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시대가 세계적으로 지금 접어들고 있다는 거예요.
이 바람에 소문을 내어 가지고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는 결혼도 독재로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독재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하늘은 둘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둘이 없고 하나만 있으니 그 국가는 독재국가 인가요? 여러분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기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철학이면 철학에 있어서도 그 기원은 하나입니다. 유심사관이냐, 유물사관이냐, 이것을 중심삼고 사회의 형성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자기편이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독재주의입니다. 그것은 둘을 수용할 수 없는 거예요. 오직 그들의 기원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관은, 통일철학은 이 둘을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둘이 합쳐서 하나된 것이라는 거예요. 원리에 나오는 이성성상의 내용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둘이 합하여 하나되어 가지고 좋아하는데, 뭐가 독재냐는 거예요.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서로가 좋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하는 사람에게 좋겠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결코 나 자신이 좋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겠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독재예요!
어린아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에게 음식을 먹일 때에 한국의 음식을 먹여야 합니다. 서양의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자기 부모를 중심삼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한국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자랄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절대로 독재라는 관념을 갖고 있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런 관념을 갖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관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선생님은 제일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만약에 선생님의 승락을 받지 않고, 교회장의 허락도 없이 와 가지고, 혹은 지구장이 귀뜸해서 누구와 축복받으라고 했다면, 선생님이 지구장까지는 인정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다른 축복가정들이 귀뜸해 주어 가지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생각으로 끝나는 거지, 결정은 아니예요. 그것을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합니다.
내가 골치 아픈 것은 뒤에서 쑥덕공론하는 녀석들 때문이에요. 그렇게 해서 맺어진 녀석들은 틀렸다는 거예요. 그것은 천법에 어긋나는 거예요. 각기 상대는 오직 하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기성축복가정들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기성가정들이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영계에 가게 되면 다르다는 거예요. 정식으로 총각 처녀가 축복받은 것과 기성가정들이 받은 축복은 다르다는 거예요. 영계에 가게 되면 삼층천이 있습니다. 현 사회에도 상중하가 있듯이 영계에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36가정을 놓고 볼 때, 다시 말하면 각각 12가정으로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야곱 가정을 대신한 36가정을 놓고 볼 때, 어느 가정이 제일 귀하냐 하면, 맨 마지막 가정이 제일 귀하다는 거예요. 앞으로는 그러한 가정을 섬겨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안 되어서 그렇지, 다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냐? 타락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마음대로 결혼해서 살다가 죽어간 영인들이 많아요.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후손이 그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 문이 열리면 그들이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소생단계입니다. 다음이 장성단계, 그 다음이 완성단계 이렇게 3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규범화시켜야 되지만 아직까지 그 자리까지는 안 갔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이 놀음에서 하늘과 나 자신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것이 곧 여러분과 하늘과의 문제입니다. 남자면 남자와 하늘과의 문제요, 여자면 여자와 하늘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회에서는 어떻게 선생님과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선생님하고 남자면 남자와 일대일의 문제라는 거예요. 여자면 여자하고 선생님하고 일대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않고는 하늘나라, 즉 천국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왜냐? 자기들끼리 해결한 것이 타락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철천지한이 된 거예요. 그것이 타락의 근거가 아니겠느냐 할 때,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해결을 지어야 돼요. 그런데 아직까지 해결을 짓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어서 선서를 하는 거예요. 뜻 앞에서 문답이 벌어지는 거예요. 문답을 하고 축복이 결정된 후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가지고 누구는 뭐가 어떻고 어떻다는 등 쑥덕공론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속닥속닥하는 사람들은 돼먹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이번 기회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 있는 아주머니들 괜히 시시하게 뒷꽁무니에 앉아서 누구 뭐 어떻고 어떻다는 등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그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만약 그렇게 해 가지고 원칙에 벗어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을 도와 주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천사장과 같은 입장입니다.
축복은 자기 일대에서 영원을 두고 한번밖에 있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자리입니다. 그 가장 귀한 자리에서 가장 귀한 분과 더불어 결정을 짓고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여기에 내려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하늘과 더불어 결정지은 가장 귀한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귀한 실체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여 나가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을 잘못했기 때문에 타락의 한이 지금까지 사무쳤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탕감하고 나가야 할 우리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 귀한 자리를 찾아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축복가정들은 그런 관점에서 희미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를 할 수 없습니다. 절대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랑은 하늘로부터 시작하여 하늘로부터 끝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를 중심삼고 축복의 때가 있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에게 축복을 상속해 주는 거예요. 그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아들에게 물려주면 그것은 아들에게 넘어가는 거예요. 그 소유권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수확의 모든 결실을 상속받은 사람이 관리를 하는 것처럼, 그 상속받은 사람이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자기보다 젊더라도 그 사람의 관리 밑에서 조정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 되지 않아요. 앞으로 선생님이 이것을 인계해 주게 될 때는, 여러분은 그 상속받은 사람이 아무리 병신이라 해도 그 사람 앞에 가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럴 때가 곧 올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이 축복의 자리가 여러분 자신의 일대에 있어서 단 한번밖에 있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인연을 결정짓는 자리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축복받기 전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불러 가지고 문답하는 시간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앞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축복해 주기 위해서 이런 기간을 본부에서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고 본부에서 식구들이 걱정하지만,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선생님은 매일같이 그 일을 해야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그 대신 기도를 많이 해야 돼요. 정성을 들여 가지고 이 자리에 오라는 겁니다.
전에 축복할 때 여기에 와서 보면, 어떤 사람은 눈에 주눅이 들어 있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처음 한 일주일 동안은 그냥 자기네들끼리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문전에까지 와서 상대방을 올려다 보고 내려다 보고 야단이에요. 하기야 혼자서 수백명의 사람을 전부다 쳐다보려니 바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쳐다볼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일 못난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라는 거예요. `내가 저 못난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 행복하게 살겠다' 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그런데 그저 밑도 끝도 없이 자기 혼자 괜히 마음이 붕 떠가지고 이 사람에게 마음이 날아갔다가, 저 사람에게 마음이 날아가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들에게 자기의 대상자를 종이에 써서 내라고 했더니, 어떤 사람은 다섯 사람을 써서 냈습니다. 다섯 사람을 써서 냈어요. 여기 참석한 사람 중에서도 아마 그런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엔 열 사람 이상 써 내라 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열 사람 이상 써내라 해도 곤란하다는 거예요. 이름을 알아야지요. 열 사람이 넘으니 그렇다고 해서 얼굴을 동그랗게 종이에다 그려 가지고 표시할 수도 없는 일이거든요. 이름 석자만 분명히 써 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많아도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다섯 사람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에다 쓴 것을 보면 참 가관이에요. 여자들은 남자들 중에 제일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 전부다 집중되어 있어요. 또한 남자들도 여자 중에 제일 예쁘다고 하는 여자에게 전부다 집중되어 있다는 거예요. (웃음) 500명이면 500명 전부다 그 잘났다는 사람에게 다 집중되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에게 500명을 다 시집보낼 수 없으니 499명은 떼어 버려야 된다는 계산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되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참 곤란하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여자들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남자들이 써 낸 쪽지를 쓱 보고 `이 녀석아, 네가 써 낸 제 1해당자는 다른 데로 날아가 버렸어' 하고 말하면 남자들은 그냥 그렇게 압니다. 그런데 여자들한테 `이 녀석아, 네가 써낸 제 1 해당자는 다른 여자에게로 날아가 버렸어' 하고 말하면 여자들은 삐쭉삐쭉 야단입니다. 이건 뭐 내가 기분이 나빠 죽겠어요. (웃음) 날아가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500대 1 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를 했으니 선생님이 틀림없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시겠지' 이러고 있어요. 그런 기도는 천년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웃음)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요. 그 기도는 자기의 욕심을 품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 499명 전부다 `저 사람에게 나 시집가게 해 주소' 하고 기도할 것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기도를 다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어요? 기도를 안 한 사람을 동정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이라 해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전부다 욕심꾸러기들입니다. 차라리 기도 안 하고 `당신 앞에 다 맡깁니다, 못난 제가 맞이할 상대가 없겠습니까? 오직 아버지의 처분대로 하시옵소서. 그저 혼자 늙어 죽으라면 기꺼이 살다가 죽겠습니다' 하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게 제일 속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고, 자기들끼리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어떻고 속닥거려요. 그런 것을 선생님이 느껴요. 그렇게 되면 한 일주일 동안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그러면 그들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데도 나오지 않으니 야단이라는 거예요. 한 3일만 지나면 심각해져 가지고 밥도 안 먹는 거예요.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 세상적인 눈이 풀어지고 다시 회생되었다고 선생님이 생각되었을 때, 결과를 발표해 주는 겁니다.
선생님은 복받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보면 다 압니다. 어디 모인 데 가보면, 이 사람이 부유하게 살 것인지 아닌지 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일주일 정도 고생해서 상대를 찾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정해 주는 데 있어서, 그 상대가 싫다고 머리를 젓는 녀석은 절대 먼저 안 해줍니다. 그런 녀석은 맨 마지막에 해 준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안 해주는 데 자기가 별수 있겠어요. 어떤 사람은 `나는 축복받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40일 정성기도를 들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틀림없이 먼저 해주실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데, 천만에요. (웃음) 그 반대입니다. 절대 안 그렇다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인 사람은 천벌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축복으로 말미암아 특별 집회가 있는데, 하나님이시여, 내 상대가 누가 되었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서 해주시옵소서. 그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하고 기도하게 되면, 이 기도는 조건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과 통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면 그런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 여자 아니면 안됩니다' 하고 전부다 그런 기도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고 밑만 보라는 것입니다. 쳐다보는 사람은 도둑놈 사촌이라는 거예요. (웃음) 왜냐? 자기를 속이려고 하는 도둑놈이다 이거예요. 자기 혼자 그 상대방을 쪽지에 써 놓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을 제1번으로 쪽지에 써놓고 그 사람이 일주일 동안 뽑혀 나가지 않으면, 자기 혼자 마음속으로 연애를 하고 있어요. 마음으로 벌써 가까이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 한다고 말하게 되면, 이제 뭐 그 사람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쪽지는 `한번 써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상대를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기도해 가지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두고 보면 좋지 않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예전에 그런 두 사람에게 탕감조건을 세워 주고 축복해 준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 다 좋지 않았어요. 그들은 누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선생님만 알고 있습니다.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이 용서를 해주고 자기들이 탕감조건을 세웠다 하더라도 결국은 좋지 않다는 겁니다. 반드시 후손의 3대 이내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가 무서운 곳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생각해 볼 때는 선생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못살게 굴던 사람들은 다 그 짝 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뜻을 대해 가지고 일할 때 심각하다는 겁니다. 무책임한 가운데서 무슨 일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하늘과 상의해서 모든 기준을 세워 가지고 결정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 할 때는 세상이 어떻게 보든 간에 문제시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 사람이라 해도 같이 살라는 겁니까? ' 선생님이 살라 할 때는 같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어떡 하겠어요? 한국 전통의 법은 그것이 용납이 안 되지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뜻이 이루어진다면 어떡 하겠어요? 여기 아줌마들 대답해 봐요. 어떡 하겠어요? 살아야 되겠어요, 안 살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앞으로 그런 입장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본인하고 살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탕감복귀를 위한 축복이란 복잡한 거예요. 또, 할아버지하고 살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무슨 놈의 하나님이 그래' (웃음) 그러겠지요? 그런 생각은 자기 생각입니다. 탕감의 길이 얼마나 복잡한 줄 알아요?
성경에 보면 다말이 누구하고 관계를 가졌어요? 「시아버지요」 다말이 시아버지하고 관계를 가짐으로써 낳은 베레스와 세라가 하늘의 축복을 받은 직계 조상이 되었지요? 또한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왕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그 솔로몬은 다윗왕이 자기의 충신인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부인 밧세바를 통하여 얻은 자식입니다. 자기 충신의 부인을 농락했으니, 다윗왕은 벌을 받고 그의 자식은 세상을 망칠 수 잇는 자식이 나와야 할텐데, 어떻게 솔로몬이라는 영광의 왕이 태어났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마태복음에 라합이 나옵니다. 라합이 어떤 사람입니까? 기생이지요? 그런데 그녀가 누구를 도와 주었어요? 정탐꾼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원수의 국가를 위한 일인데, 모험을 한 것입니다. 하늘의 공의의 뜻을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의 생명과 모든 환경, 그리고 자기의 특권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할 때 역사는 거기에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청년들이 아주머니를 데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젊은 사람들이 말이에요. 자기 어머니와 같은 연령의 아주머니를 데리고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느냐? 여러분,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있지요? 원래 정상적인 남자는 자기보다 손아래인 여자하고 결혼을 해야 돼요.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것은 뭐냐? 거꾸로 되는 거예요. 동년배나 형제지간에서 한 단계를 뛰어 넘는 것이 천지개벽이라는 거예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머니급, 이모급의 여자하고 결혼해 사는 것, 그것이 천지개벽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그러나 천지개벽 때는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돼요. 왜냐? 젊은 사람을 남편으로 얻었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은 할머니 같은 여자라도 젊은 남편에게 머리를 숙여야지 별 수 있어요? 천지개벽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공식화된 얘기는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가에 버려진 창녀라고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거예요. 천지개벽이 벌어지면 그 창녀가 상감마마의 부인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웃음) 상감이, 그녀가 아니면 나 죽겠다고 한다면 별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을 자기의 관에 놓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점에 지혜롭습니다. 높다고 꼭대기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맨 밑창에도 무한히 높은 곳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입체적인 세계를 두고 볼 때, 그렇게 돌아가는 노정입니다. 평면적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서울에 있는 남산이 제일 높은 줄 알지만, 이북으로 가면 갈수록 남산보다 높지 않은 산이 없다 이겁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나는 대학을 나왔으니 나의 상대는 학사 학위를 딴 여자가 아니면 안 되지' 또는 `대학원 나온 남자라야 나하고 맞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맞기는 노동자도 맞아요. (웃음) 남자와 여자는 맞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그렇게들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서도 그래요. 사는 사람도 기분 좋고 파는 사람도 기분이 좋으려면 `이거 얼마요'하고 물었을 때 `이것 얼마인데 얼마 정도 남겨야 되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 이렇듯 솔직히 까놓고 장사를 하게 되면, 비싸더라도 사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파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물건을 사는데 있어서 어떤 사람이 그 물건의 가격을 물었을 때 `이 물건은 5천원 주고 산 것인데 팔기는 5백원만 더 받고 팔아야 되겠소. 당신이 필요하면 5백원만 더 내고 사 가시오' 이렇게 하게 되면 물건을 사 가는 데 있어 `에라' 비싸게 산 것이 도리어 자랑이 될 수도 있기에 그보다 돈을 더 주고 사 간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런 관점에서 늘 생각하고, 절대 자기를 중심삼고 자리를 잡지 말라는 겁니다. 여기에 콤파스가 있다면 이 콤파스는 언제나 하나님 것입니다. 이 콤파스를 하나님 중심삼고 빙 돌리라는 거예요. (판서하심) 자기를 중심삼고 이 콤파스를 돌리게 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부작용이 얼마나 크게 일어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돌리니, 나중에는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한 보름만 그냥 그대로 두게 되면 눈이 쑥 들어가 있어요. 눈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축복해 줄 때, 우리 식구 중에 어떤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한번 불러다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여자인데 `넌 선생님이 어떤 사람을 해주면 좋겠나' 하고 물었더니, 저는 이러이러한 남자면 좋겠습니다' 해서 네가 `이런 남자가 뭐야? 욕심도 많다. 너는 시집 갈 팔자가 못 된다' 고 했더니 `그렇습니까' 하면서 `선생님 마음에 드시는 사람을 지정해 주시면 어떤 남자라도 하겠습니다' 하더군요. 그래서 `이런 사람도 좋으냐' 하고서 맨 밑창에서부터 올라가라고 그랬더니 `아! 좋구말구요,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런 밑창에 있는 사람과 절대 안 해 줍니다. 반대로 해주는 거예요. 하늘의 일이라는 것은,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결혼할 때 올려다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올려다보고 일을 하려면 힘들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올려다 보고 살려면 힘이 드는 겁니다. 고개를 숙이고 45도 이하를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편안하다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잘났다는 여편네를 모시고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어떤 사내는 `아이쿠' 나는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아내만큼은 대학을 나온 아내가 필요하다'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틀렸다는 거예요. 사내 녀석이 오죽 못났으면, 아내 무릎 앞에 앉아 가지고 배운 것이 어떻고 어떻고 할 수 있단 말이에요. 못 배웠어도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대학 나온 여자들은 시집가지 말라는 말이냐? 그렇지는 않아요. 시집을 보내 주기는 보내 주는데, 마음속에 대학이라는 감투를 벗어 버리라는 얘기입니다. 학위가 있으면 뭘해요? 아들딸 낳는 데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해요? 내가 학사다, 박사다, 이것이 필요해요? (웃음) 그런 것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노래에도 대학을 나와야만 남자냐 하는 가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김새야 어떻든간에 잘 맞으면 되는 겁니다. 대학이란 간판을 놓고 보면, 결혼하는 데에 방해가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 절대 그런 생각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축복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앞으로 우리 통일교인들도 하늘의 축복을 받는 데 상당히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 봅니다. 현재 선생님 자신이 이것을 책임지고 몇 개월 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어떤 기분이 드느냐 하면, 탄광 구덩이에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여러분도 그 구덩이에 들어가 봐요. 거기는 협심증이 있으면 못 들어갑니다. 처음에 들어가면 어둡고, 점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길이 좁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 그런 구덩이를 통과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러니 부디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너무 욕심을 갖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늘 앞에 맡기고 이달을 잘 지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부형이라든가, 일반 식구들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뒤에서 쑥덕공론이나 하게 되면 부작용이 많게 됩니다.
전에 축복해 줄 때,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어떤 사람끼리 해주려고 하는 데, 옆에서 다른 사람이 `아, 그 사람은 뭐 이렇고 이렇다 합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네가 좋다고 추천하는 사람이 누구냐' 했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소개했더라구요. 즉, 선생님에게 추천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같은 값이면 좋은 사람으로, 자기가 아끼는 사람에게 훌륭한 남편감을 얻어 주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그렇잖아요? 여기에 어머니들도, 자기 사윗감을 보게 되면 서로가 좋은 사위를 얻으려고 쑥덕공론을 한다는 겁니다. 결국 그 여자는 선생님 말을 부정하고, 옆에서 하는 그런 말을 들어 가지고 그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 사람은 너와 천생배필이다' 하고 딱 결정해주면, 그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짝을 맺어 주기 위해서 밤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남의 생명문제, 영혼의 문제를 책임진 입장에서는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보면,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 있어요. 얼굴을 보면, 몇 번씩 시집가야 할 타입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과부가 될 타입입니다. 눈을 보나, 입술을 보나, 콧등을 보나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맞는 남자는 못해도 몇 해 동안은 기분 나쁘게 살지 않을 수 없는, 아웅다웅 하면서 살아야 할 타입의 여자가 있어요. 그건 간판을 붙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그 이상의 남자를 만나게 해주어야 됩니다.
그런 남자가 자기 신랑이 되면 처음에는 딱 원수 같아요. 원수 같다는 겁니다. 좋게 출발해서는 그것이 깨져 나가기 때문에, 원수로부터 출발해야 나중에 좋게 들어맞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습니다. 축복에 대해서는 어찌 됐건 선생님하고 의논을 해야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결혼에 대한 기록은 아마 선생님이 세계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까지 하게 되면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게 될 거예요.
이런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어요.
축복할 때, 여자 중에 불구자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의 얼굴 모습이 못생긴 것이 아니예요. 배후의 인연이나 천성을 잘 타고난 여자인데 후생, 즉 부모들의 잘못으로 인해 병신이 되었던 여자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여자와 해주면 전부다 그 여자는 싫다고 그러는 거예요. 사실 누가 병신을 좋다고 할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데 어떤 한 남자를 가만 보니까 눈이 쑥 들어가고 생김생김에 결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결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여자가 바로 그 여자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설득공작에 나섰습니다. `너, 이 여자가 보기에는 이렇게 생겼지만 좋은 여자다. 살다가 보기 싫은 데가 보이거든 그때는 눈을 감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여자의 얼굴은 참 잘생겼다. 그리고 네가 결혼하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냐? 바로 후대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서 결혼하게 되면, 이것이 통일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아니겠느냐? 선생님의 일생에서 잊지 못할 일이 아니겠느냐' 하면서 쭉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네가 그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게 되면 미인을 낳을 것이고, 아들을 낳게 되면 장군을 낳을 것이다' 라고 해 가지고 짝을 맺어 주었습니다.
몇년이 지난 후 선생님이 지방 순회를 갔는데, 그 부부가 그 자리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을 보자마자 그 녀석이 내 앞으로 뛰어나오는 거예요. 그동안 어찌되었나 궁금하던 차에 만났으니, 그래 그들의 아기를 보자 해서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참 미인 딸을 낳았어요. 그래서 자기 딸을 자랑하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틀림이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사람의 외모가 좋게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좋은 것은 사탄세계에서 간판을 달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샀다가는 바가지를 쓰는 거예요.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전 잘하는 곳에 찾아 들어갔다가는 대다수가 바가지 쓴다는 것입니다. 진짜는 선전을 안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번에 축복받기 위해서 올 때, 새옷을 입고 얼굴에는 연지 곤지를 바르고 날뛰는 그런 여자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웃음) 도리어 수수하여 한꺼풀 벗기고 나면, 또 한꺼풀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여자에게 무엇인가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살이 얄팍한 여자는 별로 안 좋아요. 얼굴의 뺨살이 얄팍하게 생긴 여자나, 나긋나긋하게 구는 여자는 경선(輕先)하다는 거예요. 그런 여자와 살려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이 살 수 있는 남자는 황소처럼, 바위덩이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는 해로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런 여자는 미남자와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미남 미녀끼리 같이 살게 되면, 그 가정이 견디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반대로 해주어야 되는 거예요. 천지이치 전부가 그렇습니다. 키가 큰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과 맺어 주어야지, 같이 키가 큰 사람끼리 맺어 주면 그들이 사는 데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자기 얼굴이 넓적하게 생긴 사람은 넓적한 사람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갸름한 사람을 얻을 생각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코가 나발코인 사람은 매부리코인 사람과 맺어 주어야 하는 겁니다. 눈을 봐서 절반만 뜬 것 같은 사람이면 큰 눈을 가진 사람과 맺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밤이나 낮이나 불안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입을 열면 불안하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는 과묵한 사람을 맺어 주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지도해 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와서 웃는 표정만 척 봐도 그 사람의 장단점을 다 캐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로 어떤 여자는 눈이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앞으로 툭 튀어 나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여자에게는 눈이 쑥 들어가고 광대살이 툭 튀어 나온 사람을 얻어 주어야 됩니다. 그렇게 생긴 통일교회 여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남자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어떠어떠한 사람하고 해 달라고 하면, 그 사람과 될 게 뭐예요. 안 된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그렇게는 못해요. 꼭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가서 여러분 마음대로 하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것은 반대 안 할테니까 말입니다.
여기 최도순이 어디 있나요? 그녀의 성격을 보게 되면 남자 같아요. 뭐 남자 같은 여자이지요. 그 남편의 성격은 온순한 여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부부끼리 잘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 남편이 천성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그녀의 성격에, 남자가 주먹질 한번 잘못했다가는, 손에 잡히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잡아서 때릴지 모르는 그런 성격인데도 잘살고 있습니다. 그 성격에 그런 남자를 맺어 주었기에 지금까지 잘살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최도순이 `남자가 뭐 이래' 하고 싸움을 걸어오면(흉내내심), 남자가 이렇게 피하거든요. (웃음)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부의 아들딸이 또 괜찮아요. (최도순씨에게 물어 보심) 딸이 몇인가? 아들은 몇 남인가? 「삼남매예요」 삼남매, 뭐 갖출 것은 다 갖추었군, 사위기대까지 모두 이루었으니….
선생님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수택리 수련소에서 수련회 폐회식을 할 때 어떤 사람이 소감을 발표했는데, 애기를 낳을 때 그냥 낳을 수 없어서 배를 째고 낳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설명은 뭐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이 저희에게 늘 사위기대 복귀를 말씀하실 때는 뭘 몰랐었는데, 아들을 낳고 원리대로 사위기대를 이루고 나니 알겠다' 고 하는 거예요. 사실 그것이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야 이녀석아, 사위기대니 뭐니 하지 말고 솔직이 기분이 좋으면 좋다' 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갖추게 되면 좋다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것들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불행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혼자 살게 되면 그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 결혼하는 것은 앞으로 장수하고, 자기의 후손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 모습이 어떻다 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래야 되는 겁니다. 나 자신은 이렇게 생겼기 때문에 `나는 이런 남자를 얻어야 내 후손은 이런 자식이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볼이 이렇게 나온 사람이 있어요. 또는 눈이 쑥 들어간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과부가 된다는 거예요. (웃음) 그러니 그런 사람에게는 반대로 눈이 나오고 광대뼈가 나온 사람을 해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전부가 맞추어야 된다는 거예요. 뭐라 할까, 종자를 개량해서 새로운 종자를 얻으려고 접붙이는 이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상대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라 이겁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지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축복해 준 사람들의 아들딸을 보면 대체적으로 그 아빠, 엄마보다 더 낫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 것 같아요, 안 그런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결합을 잘해 주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 궁합을 잘 보기로 유명한 이 모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 원리를 알고 나서 선생님을 상당히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까지 자기가 한국에서는 이름이 났고, 자기의 전업이 그것이기 때문에 문선생님이 축복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도와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 선생님이 `나는 필요 없소' 그러면서 `도대체 영감은 하루에 몇 쌍이나 할 수 있소' 하고 물으니 `한 쌍 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됩니다' 하고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는 나에게 안 통한다는 거예요. (웃음) 그 영감이 묻기를 `그럼 문선생님은 하루에 몇쌍까지 하십니까' 해서 `제일 기록이 72쌍이고, 하루에 보통 70쌍은 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영감에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식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고 있는 식하고 한번 대결해 보자' 고 하면서 선생님의 자료를 쑥 뽑아다 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여기서 탄복을 하는 거예요. `과연 선생님이십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가령, 이 여자는 여차하면 급살을 맞아 죽을 여자로서 천하에서 이 여자에게 맞는 남자를 고르려 해도 고를 수가 없는데, 어쩌면 이렇게 남자를 짝으로 잘 맞춰 놓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듯 선생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을 척 보면 벌써 무엇인지 모르게 느끼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비상한 머리보다도 그러한 특이한 소질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원리도 찾아낸 것입니다. 무엇인가 하나 퍼뜩 하면 벌써 그 반응과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느끼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공부를 해도 절대 한 권의 책을 전부다 보지 않습니다. 절반도 다 안 보고 다른 책을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척 보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까 그 사람의 상대는 이래야 된다고 빠르게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보다는 선생님이 모든 면에서 낫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축복해 줄 때, 자기들끼리 좋아 가지고 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을 열 쌍 정도 맞춰 주었는데 나중에 8할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나아가서는 번호를 매겨서 번호끼리 맞춰 가지고 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수만 수십만 쌍을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대상자들이 번호를 붙이고 앉아 있게 되면, 그때는 선생님의 안테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 가서는 선생님이 비상작전을 펴는 겁니다. 지금까지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던 비상작전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만일 20쌍을 축복해 준다면 상대를 결정하는 것은 10분 이내에 한다는 거예요. 그 대신 결정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해서 하는 것이지, 함부로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알고, 이번에 축복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의 뜻에 따라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고 자기들끼리 좋아하여 결혼한 사람들 중에는 사별한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해도 자기들이 좋다고 자꾸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죽어도 좋으냐' 고 물어 보아도 그래도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다 해봐라' 하고 해줬어요. 아니나 다를 까, 전부다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길거리에서 오다 가다 만난 사람끼리 하는 것이 아닌 거예요. 자기들끼리 정이 들었다고 하여 결혼하면, 결혼한 즉시 이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뭔가 있다는 거예요. 서로가 맞질 않아요. 소나무는 소나무끼리 접붙여야 됩니다. 서로가 맞는 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번 축복에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임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들 나름의 입장에서 통과하려는 그런 자리에 절대 서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축복이란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곧 후대를 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나라에서 역사상에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이 민족은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적인 환경을 통해서 필시 그들이 알게 될 날이 올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는 이 땅 위에 출발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이 민족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원수들의 화살을 맞아 오고 있지만, 그 원수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하늘이 승리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저희의 모든 것을 바치오니,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당신께서 허락하신 집단이오니, 당신의 소견대로 하시옵소서. 또한 저희들에게 맡겨 주신 이 단체를 지금까지 아버지가 보호하여 주신 은사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 교회의 운명을 결하는 중요한 행사가 축복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한 개인의 공적을 통해서 칭찬하고 표창을 하였지만, 앞으로는 국가를 중심한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부자관계, 혹은 형제관계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가정을 이 세계 앞에 시상하고 축복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 때가 와야만 이 민족이 정상적인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이 아무리 국가의 인정을 받고 표창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가정이 파탄을 당하게 될 때, 그 개인을 표창한 결과는 사라지고 여기에서 매장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로부터 표창받을 수 있는 거룩한 가정들을 편성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축복인 줄 알고 있사오니, 앞으로 있을 축복의 모임에 그야말로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터전이 내일의 당신의 소원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터전이 되게 하시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표준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온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을 여기에서 찾으시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품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날들이 당신의 영광을 돋우어 드릴 수 있고 그 가치를 드높여 드러낼 수 있게 하시옵고, 하늘의 영광을 손상시키는 일이 절대 없게끔,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인간들이 자신의 사심을 중심삼고 대하는 자리를 떠나서, 천의와 천정에 의한 인연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새로운 부부의 인연을 이번 1970년도를 통하여 저희들 앞에 부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특별 수련회가 있사오니 이 수련회가 끝날 때까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디 그들이 소원하는 행복의 자리가 헛되지 않게 하여 주셔서 아버지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거룩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도 무한한 기대를 걸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뜻앞에 어긋남이 없게끔 시종여일한 축복의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 1970년대가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게 하시옵고, 이를 통하여 한국과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을 부설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그때까지 저희들이 인내와 당신의 거느림 가운데 절대 순종 순응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오니, 아버지께서 계속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아버님, 오늘은 1970년 3월 23일이옵니다. 이 저녁, 세계적인 성혼식을 바라보며, 당신이 허락하시고 당신이 소망하시는 넓고 크신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오니 일체를 당신께서 맡아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는 아버님을 중심삼고 한 남성과 한 여성이 결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이런 일이 이 통일교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은 모두가 아버지의 수고의 공로와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이 하나의 남성을 찾기 위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될 때에, 통일이념을 중심삼은 가정으로 비로소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 수 있게 된 것이 하늘의 축복인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버님의 수고로 말미암아 이 엄청난 축복을 저희들로 하여금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은사를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들이 각자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기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결혼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아담 해와의 타락과 직결되는 문제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에게 있어서 `아버님을 중심삼은 축복' 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진실로 당신의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이런 저희들, 참된 선을 중심삼은 제물된 실체로서 아버지 앞에 먼저 바쳐질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이 되어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자리에 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저희 자신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자리는 타락한 후손의 입장으로는 도저히 설 수 없는 자리인 줄을 아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참부모의 인연을 통할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었사오니, 거기에 아버님이 주동이 되어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인연을 통하여 일이 시작되는 이 자리에서는 그러한 은사의 터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하나의 남자면 남자, 하나의 여자면 여자가 자기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렸사오니 아버지 것으로 영원히 지니시옵소서. 이들로 하여금 권위를 갖추게 하시어서 사탄세계에 당신의 사랑의 질서를 세우는 데 있어서 표본이 됨으로써 선한 조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엄청난 위업을 부여받아 아버님 앞에 약속을 하고 출발하는 특별한 수련회를,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이 9일간, 다음 주 화요일까지를 특별한 기간으로 정하여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이 기간에 되어지는 만사가 당신의 경륜에 벗어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동시에 아버님과 일체가 되어서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인연 가운데에서 참다운 자녀의 명분을 갖추고 그 신념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자신이 된 다음에 여기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작정한 시일을 표준하고 출발해 나가는 시간이오니, 이 시간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은사를 내려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욱이 이 일을 집행해야 할 본부의 책임과 저희의 책임이 중요한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만반의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모든 일을 당신께서 관리하시옵고 통찰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선의 결정이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끔 하시옵소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적인 모든 인연을 떠난 공적인 터 위에 당신의 자녀들을 세우시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한 공적인 것으로 남아지게끔 스스로를 검토하고 스스로를 바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더불어 이루어진 이 엄청난 축복의 은사를 고이고이 간직하여 천년 만년 자손 만대에 선한 조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한 조상의 표준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자녀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되어지는 모든 일을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수가 4백명에 가깝사오니, 이들 각자의 운명을 당신이 판정하시옵소서. 각자가 서로 응할 수 있는 하나의 이상적인 상대를 갖추어 당신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합심하여 사명을 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각별히 천군천사가 이 환경을 옹위하는 가운데서 이번 기간이 당신이 기뻐하는 기간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겸손히 엎드려 아뢰오니, 이들을 친히 맡으시어서 주관하시옵고 보호하시옵고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 맡기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도 다 잘 알고 있겠지만,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추구해 나오느냐 하면 선한 세계를 추구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선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종교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세계는 선한 나라가 나오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선한 민족이 나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며, 선한 민족이 이루어지려면 선한 씨족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한 종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중에 선한 문중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씨족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선한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선한 가정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선한 여자와 선한 남자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를 동원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고 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는 그 귀결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나라가 이루어져야 되고, 나라가 이루어지기 전에 민족, 민족이 이루어지기 전에 종족, 종족이 이루어지기 전에 가정, 가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은 누가 되어야 되겠는가? 여자가 되어야 되겠는가 남자가 되어야 되겠는가? 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남자입니다. 창조원리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사람을 창조할 때에 아담부터 지었습니다. 아담부터 지었기 때문에 아담을 통해야 됩니다. 성경에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해와를 지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본따서 지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무슨 책을 읽고 나서 정리를 할 때 그 책의 골자를 빼서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한 세계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한 나라보다도 한 민족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 하나의 종족보다도 하나의 가정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자입니다」 남자가 없었다면 여자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원칙 가운데서 복귀섭리를 출발하실 때에, 물론 일시에 그러한 세계를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마음이 간절하다 하더라도, 일시에 그러한 민족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 하더라도, 일시에 그러한 씨족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 하더라도, 혹은 일시에 그러한 가정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의 남자를 찾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역사는 어떠한 역사였습니까? 하나의 여자를 찾는 역사가 아니고 하나의 남자를 찾는 역사였습니다. 하나의 남성을 찾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 있는 남성들은 전부 사탄의 직계 자손으로 원수의 직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찾아와야 됩니다. 찾아오는 데는 무모하게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남성들을 대했던 반대 행로를 거쳐서 찾아와야 됩니다.
그러면 6천년 동안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남성들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6천년 동안 원수로 지내 온 모든 사연을 들추어내어서 풀고, `원수가 아니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부터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이스라엘 역사는 무엇을 찾기 위한 역사였는가? 외적으로는 세계를 찾는 역사였지만, 내적으로는 한 사람을 찾는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와서 세계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와가지고 가정의 기반과, 종족의 기반과, 민족의 기반과, 국가의 기반을 닦지 않고는 이 세계를 선한 세계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이 오기 전에 선민권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의 선한 가정, 하나의 선한 씨족, 하나의 선한 민족, 하나의 선한 국가를 미리 세워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그런 흔적을 남겨 놓아야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가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세워 놓은 이스라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에 하나의 남성이 나타나 그 나라와 하나되는 날에는 가정이 자연히 찾아지는 것이요, 종족이 자연히 찾아지는 것이요, 민족이 자동적으로 찾아지는 것이요, 나라도 자동적으로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라를 중심으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준비를 하시는 데는 무엇까지 준비를 하셨는가? 외적으로 보게 될 때에는 나라를 위해 준비하셨지만, 내적인 입장에서는 한사람을 위해 나라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위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사람들은 섭리의 방향과 엇갈리게 되고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길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수를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예수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민족이 비참하니까 비참한 이스라엘을 구할 구주가 영광 가운데에 오셔서 로마를 누르고 원수의 세계를 정복해 줄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듯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주님으로서, 구주로서 예수가 올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입장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앞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굴복하는 데는 로마제국 앞에 굴복하는 것 이상으로 굴복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이런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 사탄세계를 대표한 세계적인 왕국 앞에 굴복당한 이스라엘 민족이 취해야 했던 본연의 자세는 어떤 것이었는가? 로마제국 앞에 강제로 굴복당한 이상으로 예수님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제국 앞에 굴복하는 것 이상으로 예수 앞에 굴복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의 수난의 길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를 제쳐놓고 로마의 압제하에 있을 때보다 더한 수난이 있더라도 예수를 위해 죽겠다고 하며 예수와 규합하였더라면 예수는 절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는 가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요, 이스라엘을 대표할 여성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여성을 찾을 수 있게끔 내적인 인연을 그렇게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기만 했으면 이러한 하나의 여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여성을 찾음과 동시에 하나의 씨족을 찾는 것도 문제없었을 것입니다.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을 찾아서 일시에 출발함으로써 세계적인 행차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할 섭리가 근본적으로 전복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라가 받들지 못하니 민족을 찾아 헤매야 되고, 민족이 받들지 못하니 종족을 찾아 헤매야 되고, 종족이 받들지 못하니 가정을 중심삼고 섭리해야 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마저도 그를 받들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깨어져 나가니 가정을 이루어야 할 해와, 즉 상대적 여성을 찾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씨족과 가정을 중심삼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가정을 중심삼은 여성을 찾지 않고는 이스라엘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배반을 하고, 민족과 종족과 가정이 전부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외로운 자리에 선 예수님 앞에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길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위해야 했던 나라는 어떻게 되어야 하겠는가? 망해야 됩니다. 예수를 위해야 했던 민족은 어떻게 되어야 하겠느냐? 망해야 됩니다. 그 종족, 그 가정 전부가 산산조각이 나야 됩니다. 그래서 2천년동안 이스라엘 나라가 그러한 역사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선민사상이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세웠는데 그들이 예수를 배반했으니 그들은 원수입니다. 원수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에 가까운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인간들에게 밟힘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세계를 위하여 오신 만군의 여호와, 만왕의 왕 되시는 메시아를 모시지 못한 것을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몇천 년동안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나라를 회복해서 이스라엘 주권을 찾게 되면 또 싸워야 됩니다. 옛날 로마제국과의 싸움 이상의 싸움을 사방으로 해야 됩니다. 그때는 일방적인 싸움을 할 때가 아닙니다.
예수가 출발할 때 국가적 기반 위에서 사방으로 세계를 향하여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국가를 대신해서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를 중심삼고 그 시대에 무난히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더라면 세계 전체가 굴복했을 것인데 도리어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2 차 세계대전 때 이스라엘 민족 600만이 학살당했던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지만 국권을 회복한 그 자리에 있어서는 사방의 국가들, 즉 아랍국가들을 상대로 해 가지고 이것을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소생하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이스라엘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이스라엘 민족이 옛날에 하늘이 세웠던 본연의 제1, 제2 이스라엘의 사명을 완결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 사명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하면 제 3 이스라엘인 한국이요, 이것을 제창하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제창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가던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섭리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의 해방과 마찬가지의 새로운 해방과 더불어 통일교회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제 2 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과 더불어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때 이 민족 전체가 그야말로 통일교회와 하나가 되었더라면 세계로 나갔을 것입니다. 공산당도 이미 다 날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세계는 이미 평화의 경지를 차지하여 새로운 이상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통일교회를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처참한 역경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복귀할 때까지는 이 민족과 더불어 세계도 수난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유엔에도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원수가 낚으려고 드리운 밑밥에 물리게 될 처지에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실정입니다. 이러한 한국의 실정이 점점 더 급박해지게 되면 우리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 최후의 판가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이 1970년대입니다.
한국의 정세를 보면 한국은 갈 곳이 없습니다.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로는 공산국가인 중공과 소련이 지키고 있습니다. 북괴만이 원수가 아닙니다. 북괴를 타도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원수가 있으니 이는 중공과 소련입니다. 북괴를 타도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좌경화되어 가고 있는 일본을 어떻게 우경화시키느냐? 이것을 어떻게 방비해야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작전을 대한민국이 해야 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해야 됩니다. 이 일은 통일교회가 해야 돼요.
사탄 국가에도 천사장편 국가, 아담편 국가, 해와편 국가가 있습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우리 나라의 판문점과 같은 곳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이 동시에 참소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왜 벌어지느냐 하면 그러지 않으면 탕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 가지고 긴박한 사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월남 문제가 점점 긴박해지고 있습니다. 미군이 후퇴하는 입장에 있으니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5년 후에는 망할 것입니다. 내가 세계 순회를 하고 돌아올 때는 망할 거예요. 5년 이내에 손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재 되어지는 모든 것을 가만히 보면 그런 실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하면서 선생님의 작전에 의하면, 한국이 아담 국가라면 일본은 해와 국가요, 중국은 천사장 국가입니다. 사람을 창조하기 전부터 천사장이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 있어서는 중국 문화가 앞섰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일본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사탄세계의 공격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지만, 협조를 받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망하고 난 후에 누구의 협조를 받았느냐 하면 장개석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5억 달러 이상의 배상금 면제를 장개석이 추진한 것입니다. 일본이 장개석의 협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중국이 천사장적 복귀의 사명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망하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일본은 그 은덕을 갚아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을 누가 했는가? 해와가 했지요.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다 망해도, 물질이든 뭐든 다 망해도 일본은 그 가운데에서 세계 모든 나라의 문화를 전부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이 말할 수 없는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거예요. 타락한 것을 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자기의 아들딸 전부를 품고 아담에게 돌아와야 됩니다. 재물과 아들딸을 품고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지금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현재 일본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한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것입니다.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 협회장 이하 모든 지구장을 내가 직접 관리하는 것도 다 그래서 그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1970년대의 운세에 우리의 프로를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번에 열릴 와클(WACL:세계반공연맹) 대화가 세계로 나가는 하나의 고비가 될 것입니다. 일본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국 박람회가 열리는 것도 탕감복귀 운세가 세계적으로 넘어가는 때에 일본이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계의 국가가 여기에 인연을 맺고 돌아오느니만큼 여기에서 우리가 잘만 하면 세계적으로 권세를 들고 나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금년부터 이러한 작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해와가 아담을 유혹할 때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고 도망갔으므로 돌아올 때는 모든 것을 다시 가지고 돌아와야 됩니다. 일본이 지금 그런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거 설명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긴박한 시점에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를 넘어서 1970년대를 맞이한 지금 부인들을 전체 동원하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아들딸을 앞세우고 들어와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들을 동원하는 거예요. 부인들이 전도 나갈 때 전부 다 아들딸을 업고 가야 하기 때문에 울고불고하는 별의별 일이 다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1970년대는 통일교회가 운세를 탈 수 있는 때입니다. 운세는 통일교회를 향하여 펄펄 날아 들어오는데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느냐? 이것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필요하지요? 「예」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합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필요합니까? 그런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축복을 받기 위해 나선 여러분들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잔치를 하는 날에는 세계적인 문제가 벌어집니다.
일본에서 와클(WACL:세계반공연맹) 대회를 하게 되면 한국에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일본에서는 지금부터 공산당을 때려잡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축복행사를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안팎이 동시에 드러나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등장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의 모든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지금까지 종교는 남자 하나를 다시 찾아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상대의 이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렇게 나가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자 하나를 찾아 나오는 역사 시대에 있어서 남자를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까지 가게 되면 그 후에는 여자를 찾아야 됩니다. 여자를 찾기 위한 운동을 제시한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하면 가정을 찾는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을 찾아 나왔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개인을 찾아 가정의 터전을 이루면 그 가정은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민족이 될 수 있고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가정은 국가를 찾을 때까지 날이 가면 갈수록 하나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으면 낳을수록 단결하는 것입니다. 철석같이 뭉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복귀섭리를 중심삼은 나라를 찾기 위한 운동은 이미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세계를 찾기 위한 정상적인 코스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먼저 복귀섭리를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을 만들고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야 됩니다. 그 하나의 종족을 편성하는 날 세계의 운세는 달라질 것입니다. 역사는 지금 그날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으려고 모였는데, 축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종교는 하나의 남성을 찾기 위한 역사를 해 나왔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 아무리 정성들여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축복은 못 받는 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안 나왔으면 축복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자기들끼리 사랑한 것입니다. 사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의 인연을 맺은 새로운 부부가 신천지에서 새로운 역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것은 역사 이래 이 시대에 처음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여기에 동참할 자격이 있느냐? 없습니다. 단 한가지 자격이 있다면 무엇이냐? 참부모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알았다는 그것이 바로 그 자격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복귀섭리도상에 왔다 갔던 선조들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그 선조들을 대할 수 있는 훌륭한 자격자가 되었느냐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부모를 몰랐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 가지고 참부모의 자격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갔습니다. 옛날의 조상들 아브라함, 모세 그 밖의 누구도 참부모를 몰랐습니다.
오늘날 통일교인이 그들과 단 한 가지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우리는 참부모의 아들딸이다. 세상에 그 무엇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다. 절대적이다' 하는 신념만 가지면 됩니다. 여러분들, 그런 신념을 가졌습니까? 「예」 어디 그런 신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그러면 부모를 알았으면 그 부모 앞에 뭘 해야 됩니까? 효도를 해야 됩니다. 효자가 되어야 해요. 또, 그 부모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됩니다. 그 부모가 나라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려 왔기 때문입니다. 충신이 되기 전에 효자가 되어야 하고 효자가 되기 전에 참다운 형제를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식구는 형제지간에 찬양할 수 있는 권을 내세운 이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효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자인가? 옛날에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 가정을 거느리고 부모 앞에 효도하던 이상의 효도를 하여야 합니다. 시집 장가 가기 전에는 진정한 효자 효녀가 되지 못합니다. 진정한 효자 효녀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집 장가를 가서 부부를 이루어 가지고 그 부모 앞에 남편의 효성에 아내의 효성을 플러스시켜 둘이서 부모를 받드는 효성의 터전을 갖추어야만 참된 효도권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충신도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충신은 혼자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룬 부부라야 충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충신이라는 팻말을 세우기 위해서는 효자를 낳아야 됩니다.
아버지의 최고의 소망을 이루어 드렸다는 기준을 세우려면 탕감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아버지의 원한이 무엇입니까?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세 아들과 그들의 상대, 즉 여덟 식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한을 풀어 드리려면 세 아들딸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 아들딸을 찾아 놓으면 남자 여자 해서 여덟 식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여덟 식구를 세워 나가는 것이 효하고 충할 수 있는 제일의 길입니다. 이 세 아들딸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선을 넘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타락이 뭐냐 하면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여덟 식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부모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 셋과 그들의 상대까지 합하여 여덟 식구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덟 식구를 다시 찾아 세워야 됩니다. 사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여덟 식구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세밀히 얘기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효자는 혼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세 형제가 하나되어야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삼위기대 있지요? 그 삼위기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삼위기대의 세 가정이 형제로서 하나되고 다시 각 가정의 세 자녀가 규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3곱하기 4는 12, 열두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제 1 의 기반인 것입니다. 지파, 족속, 다시 말하면 씨족 창립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열두 자식이 서로 싸우다 망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열두 자식이 합함으로써 사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도 이 놀음을 하기 위해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날 닮아라, 날 닮아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3년 공생애노정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하셨던 것인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세 사람을 특별히 세워 가지고 그들을 중심삼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예수는 3대형입니다. 3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3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결과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복귀의 길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열둘 가운데에서 특별히 뽑은 그 세 사람마저 잃어버렸으니 복귀의 길을 가겠습니까? 못 가는 것입니다.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로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못 넘어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한 가지 복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은 기반이 있기 때문에 복귀의 길에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아들딸을 빨리 세우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세 딸, 남자는 세 아들을 세워야 됩니다. 원래는 전도한 사람이 자기의 믿음의 아들딸 가운데서 끼리끼리 결혼시켜 줘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천하에 남아질 것은 축복밖에 없는 것입니다. 축복밖에 없어요. 그것도 선생님이 다 입증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부모는 자기가 전도한 세 아들딸이 있다면 남자가 전도한 세 아들과 여자가 전도한 세 딸을 놓고 제 1, 제 2, 제 3으로 하여 그냥 그대로 결혼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덟 식구를 찾아야 됩니다.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여덟 식구를 찾지 못하면 복귀의 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노아 때도 여덟 식구가 되었을 때 심판했습니다. 여덟 식구가 있었기 때문에 사탄세계를 쓸어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덟 식구가 없으면 복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덟 식구를 세우기 위해서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세 제자를 세운 것도 이스라엘을 이루는 데 여덟 식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세 제자는 3시대를 대표한 천사장형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잘못했던 것을 예수 개인이 3시대를 거쳐 가지고 한순간에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잃어버린 세 천사를 전부 복귀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왜 왔는가? 그것은 영적 세계의 천사장의 복귀형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의 사람들로서 예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와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친 것은 영적 사탄세계, 즉 천사장의 모든 것을 바칠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아담적인 존재로서 출발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탄편의 대표자들이 모든 것을 다 바쳤으니, 하늘편 대표자인 이스라엘의 3대 제사장들이 굴복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다 잃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영계에서 찾아온 천사장들은 전부 어디 갔던고? 나라의 대표되는 제사장들은 어디 갔던고?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증거해야 했던 신흥종교의 대표자들은 어디 갔던고? 이들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요셉 가정도, 마지막 세 제자까지도 다 잃어버렸으니 예수님의 갈 곳이 어디였겠습니까? 아무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그때의 예수님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위대한 자리에 통일가의 여러분은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위대한 통일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민족을 대신한 제물적인 입장에서 민족복귀라는 엄숙한 과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섭리적 관점에서 제 3이스라엘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종족이 있습니다. 민족을 대신할 종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는 가정이 있습니다. 또 여기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껄렁패들 같은데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축복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말입니다. 축복을 받겠다고 와서 앉아 있는데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몇 해 동안 한 일이 뭐 있습니까? 축복이란 그렇게 그냥와서 앉아 있다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공을 들이고 만년 공을 세운 다음에 그 후손들이 와서 엄숙하게 천만 번의 사례를 드리면서, 또한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만민이 우러러보며 그날의 영광을 찬양하는 가운데서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이게 소생 축복인 것입니다. 이 축복은 완성급의 축복이 아닙니다. 타락권내에 있어서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기 위한 것입니다. 축복을 받고 믿음의 세 아들딸이 있으면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축복받기 전에도 7년노정이 있고 축복받은 후에도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노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2차 7년노정이 무엇인 줄 압니까? 복귀된 가정을 세워 가지고 7년노정을 가야 되는데 이것이 제 2 차 7년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2차 7년노정을 가야 하는가? 통일교회가 가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는 가정을 위한 종교인 것입니다. 개인을 위한 종교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을 위한 종교였지만 통일교회는 가정을 위한 종교입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종교는 혼자, 즉 개인을 위주했기 때문에 나라를 못찾았습니다. 가정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나라를 세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영적 나라밖에 없었어요. 이 땅 위에 나라의 기반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2차 7년노정을 넘어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날을 결정하려면 선생님이 3차 7년노정을 넘어가야 됩니다. 완성단계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단계를 넘어야 하나님의 날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7년을 넘어섰는데 또다시 7년노정이 남아 있습니까, 안 남아 있습니까? 「남아 있습니다」 다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축복받은 가정들이 가는 바로 그 노정인 것입니다. 이 길을 못 가면 여러분은 축복받았더라도 천국에 입적되지 못합니다. 천국의 문은 다 열려 있지만 이 7년노정을 넘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복을 갖추지 못하고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못 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러한 원리의 내용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여러분들이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될 때, 선생님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원리적 견해에서 원칙적인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설 때 선생님이 여러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축복을 받은 후에 한 번은 갈라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축복해 가지고 적어도 한 6개월간 전부 갈라 놓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전부 남북으로 갈라져 가지고 이제 자기가 복귀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지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축복받아도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1970년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운세와 세계 정세를 볼 때에 모든 것이 한구멍을 통해서 지금 몰려들고 있으니 이것을 조정해야 됩니다. 요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를 맞이하여 이 일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일을 1970년대에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공대회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부랴부랴 수택리에 수련소를 지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라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때에 모든 것을 다 해야 됩니다. 모험이라도 해야 돼요. 그래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와 겹쳐서 집을 짓다 말고 왔습니다. 오늘도 전부 모아서 지시하고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를 두고 볼 때에 그것은 남자를 찾는 역사였습니다. 남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남자로 말미암아 여자가 복귀되기 때문입니다. 창조할 때도 남자를 창조한 후에 여자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원칙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여기서 누구를 중심삼아 가지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부모입니다.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나는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은 피살을 갖고 나왔다. 어떠한 힘도 이 인연을 끊을 수 없다' 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신념을 갖지 않고 축복을 받으면 벌 받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이 조건에 걸려 넘어가는 날에는 비참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도 두고 보십시오.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말입니다. 그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세계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지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의 친척과 영계에 있는 조상까지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역사를 대표하고 선한 조상들을 대표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선한 조상들과 이 시대의 자기 종족을 대표해 가지고 나타난 엄숙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1960년도에 전도하러 나갔을 때 악착같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전부 벌을 받았습니다. 전부 꺾여 나갔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런 사람들은 다 꺾여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리잡는 날에는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들이 자리잡는 날에는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불벼락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들 멋대로 놀아났지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적인 약속 밑에 우리는 엄숙한 행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단 하나의 신념은 무엇이냐? 참부모의 혈육을 받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의 억만 사탄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더라도 우리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옛날의 아담 해와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리사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 때문에 타락의 기원을 남겨 놓은 원한을 밟고 올라서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원한의 고개를 밟고 올라서 가지고 복귀의 거룩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 나선 우리에게는 어떠한 위험이나 어떠한 죽음의 고비가 엇갈리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이 확고해야 됩니다. 이러한 신념이 없이 축복을 받는 것은 하늘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축복받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여러분에게는 6천년이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남자를 찾아왔으니, 여러분에게는 6천년이 플러스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찾아진 남자들입니까? 찾아진 남자들이에요? 「예」 사탄과 싸워 이겼습니까? 영적 사탄과 싸워 이겼어요? 이겼습니까, 못 이겼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어요.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족적 사탄과 국가적 사탄과 세계적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것을 누가 했느냐? 선생님이 혼자서 했습니다. 배달 민족이 반대하고, 대한민국이 반대해도 선생님 혼자서 그 일을 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면 서로 가고, 남으로 가면 남으로 가고, 북으로 가면 북으로 가서 항상 같이 다녀야 됩니다. 따라다닐 자신을 갖지 못하고는 승리의 영광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그렇게 살았습니까? 지방으로 나가라고 했을 때 다 나아갔습니까? 뜻을 위해 희생하라고 했을 때, 희생했습니까? 「못했습니다」 왜 못 했어요? 자기들 멋대로 하려면 나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3 분의 2 이상이 하나님편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의 편이 3 분의 2 이상이었습니다. 사탄이 3 분의 2 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3 분의 1 정도도 못 되는 것이 하나님 편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일생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3 분의 2 이상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전부 목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면 선생님이 짐을 하나 더 짊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책임하지 못한 모든 것을 대신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선생님에게 감사하며 보답할 수 있는 내적인 결의를 하고 또 그것을 외적으로 실행해야 됩니다. 내적으로 아무리 결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외적으로 나타내지 못하면 쓸데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만 뜻을 위해서 가야 되겠다고 하면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동을 해야 됩니다. 안팎이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길은 개인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가정적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정을 이루어서 식구와 더불어 가는 길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식구에는 부모가 있으며 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식구들끼리 세상의 형제 이상의 형제애를 갖지 못하면 가짜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탕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밀려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버텨도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각자의 가정으로 갑니다. 알겠습니까? 「예」 각 식구들에게도 가정이 생기지요? 오빠 가정, 누나 가정, 동생 가정 등 가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제 식구로 가는 때는 지나갔습니다. 지금부터는 가정 단위로 가는 때인 것입니다. 가정으로 갈 수 있는 단계로 높여 주기 위한 것이 뭐냐 하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식구로 가는 때하고 가정으로 가는 때하고 어느 것이 귀한 때인가? 가정으로 가는 때입니다. 6천년 역사의 전체 소원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과정에서 왔다 갔던, 각 종교의 선지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조상들을 플러스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셔 가지고 남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식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자를 찾아서 세워 놓으면 그 남자는 싸웁니다. 지금까지 그래서 사고가 났던 것입니다. 통일된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 여러분들 하나되었어요? 지역장이 지방에 나가 고생하면 밥그릇을 싸들고 울면서 찾아가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자기는 밥을 먹으면서 말이에요. 이 가짜들,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축복을 받겠다고요? 다 그만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과 비운의 역사적인 모든 성현들을 대신하여 부모를 가르쳐 주는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부모를 가르쳤어요. 부모가 없으면 하나님도 필요없는 것이요, 성현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다 필요없는 거예요. 부모를 완전히 찾아서 형제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족, 새로운 가정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삼위기대를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믿음의 부모가 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의 부모에게는 믿음의 세 아들딸이 있을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하나되지 못하면 여러분은 뜻 앞에 서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전도한 사람의 삼위기대를 압니까? 또 그들과 하나되었습니까? 그러지 못했으면 전부 가짜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가정의 세 형제 대신 대표자로 세운 그 사람들과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되었으면 자기 가정의 세 아들딸보다도 선생님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적 기준에서 형제의 인연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못 할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 몸뚱이가 추우면 춥다고 옷을 입을 줄 알고 배가 고프면 먹을 줄만 알았지, 언제 선생님 가정의 애기들이 굶는지 어떤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선생님이 선생님의 아들딸을 데리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도 공식노정이 있습니다. 3년 동안 그냥 모셔라, 절대적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렇게 하라고 죽도록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았습니까? 전부 타락한 사탄새끼 모양으로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고생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다 뭐야. 선생님이 다 뭐야.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뭐야. 지구장이 다 뭐야' 하면서 껄렁껄렁하게 자기 멋대로 놀아먹는 패들같이 다니면 되겠어요? 설마 그런 패들이 여기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모든 것을 원칙에 부합시켜야 됩니다. 원칙적 기반에 부합시켜 가지고 출발해야 됩니다. 형제끼리 사랑하자면 그런 기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식구라는 것은 형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형제의 사랑도 못 받았습니다. 친척의 사랑도 못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식구가 있으니 형제끼리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모범 식구들이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면 교회 식구 전체가 받들 수 있는 남자 여자가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남자와 여자가 되었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지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그 중 식구라는 이름을 팔아먹은 사람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축복을 받으면 가정이라는 이름을 팔아먹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축복받았다고 껄렁거리는 껄렁패도 많습니다. 이런 시시한 가정들을, 청산될 수밖에 없는 류의 가정들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비수를 가지고 자를 것은 자르고 해부할 것은 해부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천국을 이루어야 할 교회이기 때문에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앞으로는 우리 협회본부에서 가정부가 제일 중요한 부서가 될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 본이 못 되는 사람은 세계적인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온 천주적인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한번 결혼하면 갈라질 수 없습니다. 갈라지는 날에는 사탄보다 더한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탄 취급을 해요. 사탄이 `에이 쌍놈아, 나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지만 너는 완성급에 있는 선생님을 걸고 넘어지느냐 이 쌍놈아. 그런 네가 천국을 간다고? 말도 안 되지' 하며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사탄보다 더 악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서운 일입니다. 무서운 일이에요. 그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영계에 가면 틀림없이 그런 경우에 걸릴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을 해 왔겠습니까?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못나서 이 일을 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일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것을 복귀하려면 절대적인 신념과 절대적인 원칙을 세워 두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자리는 어떠한 자리인가? 6천년 역사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플러스되어 있고, 하나님이 플러스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선생님 일대가 플러스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을 이 자리에 나오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선생님 조상으로부터 3대를 거쳐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그 누구도 모르는 내용입니다. 이번에 수련생에게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복귀역사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딱 들어맞아야 됩니다. 안팎으로 들어맞아야 돼요.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통일교회에 나오는 녀석들 가운데는 별의별 녀석이 다 있습니다. 통일원리를 배워 가지고 자기가 뭘 해먹겠다고,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 사기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뭐 통일교회 선생님이 세례 요한이라나? 내가 자기네들을 축복해 줬나요? 세례 요한이라고 하게…. 두고 보십시오. 그런 사기꾼들이 어떻게 되는지. 길거리의 개밥 같은 꼴이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거동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내가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하는 일은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원칙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원칙에 의해서 과학적인 검증과 분석을 거쳐 얻어진 결과에 의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을 해본 다음에 여러분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세계가 녹아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대개 다 맞지요? 「예」 그렇게 안 될 것 같지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원리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원인으로 출발하여 정당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결과는 반드시 정당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아느냐? 선생님을 압니까, 모릅니까?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선생님의 무엇을 압니까? 얼굴이나 알지. 여러분들이 아는 원리나 가르쳐 주는 그 정도의 선생님인 줄 압니까? 여러분들이 아는 원리는 예수님 때까지의 원리입니다. 선생님 때의 원리가 아닙니다. 선생님에 대한 역사를 알아요? 「모릅니다」 모르면 뭣하러 이 자리에 왔습니까? 여러분이 효자가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효자도 못 된 것들이 여기에 와서 앉을 자격이 있습니까? 충신이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충신도 못 된 것들이 여기 와서 앉아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선생님에 대해서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압니다」 영계에 간 선조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압니다」 하나님과 선조들이 선생님을 위하는 이상으로 선생님을 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뭐 어떻고 어떻다고 의심하는 껄렁패들, 그런 시시한 가짜 녀석들은 한 명도 여기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40평생을 싸워 가지고 1960년도에 성혼식을 했습니다. 그러기까지 감옥에도 수없이 갔습니다. 매도 무수히 맞았고, 피를 토하기도 수십 번 하면서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언제 천대를 받아 보고, 언제 모진 매를 맞아 보았으며 언제 피를 흘려 보았습니까? 언제 그런 핍박을 받아 보았습니까? 생명을 투입하여 수많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터를 닦은 것을 이 거지떼 같은 녀석들에게 몽땅 넘겨줘야 되니….
여러분들에게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들이 여러분의 모가지를 전부 끊어서 태평양에다 던져서 물귀신 만들어 놓아도 선생님은 여러분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으니까 축복을 시키는 거지요.
여러분 가운데 축복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원리적 관점에서 축복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잠잠함) 그러면 지금까지는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선생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살겠습니까? 「예」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믿겠습니까? 「예」 그러면 삼팔선 넘어 이북에도 갔다 와야 됩니다. 그러겠습니까? 「예」 결혼한 후에도 아내를 내보내도 고맙다고 할 수 있어야 하며 남편을 내보내도 고맙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꺼이 갔다 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사탄세계를 점령하지 못합니다. 선생님도 이북 갔다 왔지요? 「예」 한번만 갔다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갔다 왔으니 여러분도 갔다 와야 합니다. 내가 공산당원한테 매를 맞고 피를 흘렸으니 여러분도 매를 맞고 피를 흘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3개국으로부터 환난을 받은 사람입니다. 소련 공산당한테까지도 핍박받은 사람입니다. 이북 김일성 도당은 물론이고, 일본국으로부터도 핍박을 받고 대한민국으로부터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나라로 말하자면 4개국을 넘나들면서 수난의 길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3정권에서 수난의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수많은 교파 가운데 3대 교파 이상으로부터 수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수천만이 동원되어 있는 것입니다. 3천만 이상이 동원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련과 고통을 거치지 않고는 탕감복귀를 못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얘기 하면 눈이 동그래 가지고 깜박깜박하지요.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거쳐 나온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밤을 새워 가며, 밥을 굶어 가며 뜻을 위해 염려해 보았습니까?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뜻을 위해 가겠다고 다짐해 보았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선조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배신행위입니다. 타락이 뭡니까?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하기 위해 둥지를 트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남자 어떤 여자를 만나든지간에 어떠한 고통이나 시련이 있더라도 여러분은 먼저 참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적인 신념을 가져야 돼요. `참부모를 향한 내 마음은 그 무엇이 유혹을 하더라도 변할 수 없다. 내 생명을 열 번 잃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안 되었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생애를 바쳐 갖은 시련의 노정을 거치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심정, 그 일편단심을 가지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절정을 넘는 그 순간을 우러러보면서 거룩하신 본연의 뜻을 중심삼고 나온 것입니다. 원수의 칼에 천만번 쓰러져도 고마와할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내가 바라는 원칙에 어긋남이 없이 절대적인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의 혈연을 중심으로 형제의 인연을 맺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합니다. `네 형제가 누구냐? ' 하면 `누구누구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네 아들딸이 누구냐? ' 하면 `누구누구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지금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 있어요. 그렇지요? 부모를 모시고 있다는 특권적인 은사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형제들 가운데에서 누구보다도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탕자가 되지 말고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탕자가 되지 말고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제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들의 모든 십자가를 홀로 지고 그들이 아버지 앞에 효도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흐리멍텅해 가지고 눈만 껌벅껌벅하면서 편안하게만 살려고 하지요? 그런 사람들은 거짓패들입니다. 원수의 족속이에요. 여러분도 스스로 반성해 보고 거기에 대해 가책을 느끼거든 회개하십시오. 밥을 먹어요? 금식을 하면서 회개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조상에 대한 모독이요, 부모에 대한 모독입니다. 3세계에 대한 모독이에요. 천사세계와 아담의 세계, 그리고 본연의 세계, 즉 본향의 세계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러한 패들을 모아다가 약혼을 해주었습니다. 자식을 잘못 둔 부모의 서러움을 느끼면서 여러분을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단 하나의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서러움을 받아도 참부모 앞에 변하지 않는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신념을 갖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됩니다. 갖추지 못한 몸으로 여기에 나왔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중하면서 하늘의 동정과 긍휼을 바라는 일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놓고 보면 뭐 이러고 저러고할 여지가 없습니다.
축복이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선생님도 여기에 걸려 가지고 일생 동안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느라고 꽃다운 청춘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오십을 넘어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백발이 휘날리는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선생님이 없으면 전부 망하겠기에, 제 1차 7년노정에서 남아진 무리가 있다면 그들을 끌고 가야 할 어버이로서의 책임을 끝맺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뼈가 녹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는 여기에 속한 사람이다. 이 법도와 원칙을 통하여 그 나라의 창건을 위한 역군으로서 그 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이다. 하늘의 분부와 명령에 의해 충신과 같이 죽음길을 자처하면서라도 수많은 선조들 앞에, 하나님 앞에 도리를 세우고 가야 할 것이 오늘 나 자신이다' 라고 새로이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럼 축복을 받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여러분이 가야 할 세계는 선생님이 가야 할 세계입니다. 아버지가 가야 할 나라는 자식이 가야 할 나라이지요? 「예」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누릴 영광은 자식이 누릴 영광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뭘 하고 있는지 얼마나 연구해 보았습니까? 성화지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성화지가 날아오면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고 선생님의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밤을 새워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성화지가 오면 몇 페이지나 읽습니까? 시시한 사탄세계의 인연이 있는 책만 읽고 시시한 별의별 연구는 다 했을는지 모르지만, 과연 선생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연구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을 겁니다. (녹음이 잠시 끊겼음)
참부모는 역사를 초월해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까지 역사가 참부모를 바라며 나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지금까지 역사는 앞날을 바라보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희망이 미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희망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여기서의 과거는 세상에 역사적 과거를 초월한 것이요, 현실을 대표한 것입니다. 과거의 결실이요, 현재의 중심이요, 미래의 출발 기점입니다. 전체를 통합한 중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사람도, 앞으로 천년 후에 올 사람도, 또 그 천년 후에 올 사람도 천년 전의 그 소망을 바라보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입장에서 그 실체를 생활권내에 모실 수 있는 이념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이념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세계를 찾는 것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부모를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의 충의 도리가 결정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운명적으로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개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완전히 체득하고, 완전히 그 부모에 접붙이는 자는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최대의 승리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의 끝까지도 통하지 않을 것이 없으며 지상 끝까지도 통하지 않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가치의 권한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참부모이기 때문에 역사는 그 시대를 중심삼고, 그분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준비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6천년 역사의 열매되는 우리들' 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6천년의 열매입니까? 부모 앞에 자녀일 뿐이지요. 참부모의 인연을 통할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열매요, 역사적인 결실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망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되는 날에는 세계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될 때 국가도 있는 것이요, 종족도 있는 것이요, 민족도 있는 것이요, 가정도 있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영광의 가치를 종합한 실체 기준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를 세상의 돈과 바꾸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주고 바꿀 수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더라도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서 대한민국을 찾아와야 됩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도, 천세만세의 후손들도 그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지에 운동하는 수많은 존재물들의 가치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핵심이며 중심이 참부모입니다. 모든 존재의 소망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결실을 추구하는 원리의 원인이 되는 것이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의 주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중심 본부인 것입니다.
여러분, 정성도 참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지구(地區)에 나가 싸우고 지구장이 되어 충성을 한다 해도 참부모를 중심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야 합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수고하고 노력하여 결실을 거두어야 하늘 것으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 것으로 거둘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약시대에는 모심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그리워하기 전에 먼저 부모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식의 도리입니다. 자기 색시부터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자식의 자격이 있습니까? 부모의 품에서 자라 가지고 부모가 제일 좋다고 하는 입장에서 성장하는 것이 자식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앞으로 축복을 받아도 상대와의 인연은 나중에 맺어야 됩니다. 먼저 부모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밤이나 낮이나 세상이 없고 자기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부모를 향한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이 여러분의 모든 생활을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활과정을 통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상대, 즉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도 않고 어떻게 남편을 맞이하고 아내를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부모를 진심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내 생명의 동기도 부모요, 내 소망의 일체도 부모요, 내 모든 이상과 행복의 근원도 부모라고 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구원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모셔 보았습니까? 가짜들 같으니라구.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는 참부모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아들, 혹은 딸이다' 라는 신념을 자신의 존재의식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굳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자를 만나기 전에, 혹은 남자를 만나기 전에 한 순간순간이라도 내 심정 전체를 기울여 가지고 부모의 의견에 일치하는 기준을 찾아 세우고 가겠다고 하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확고하게 세운 후에 상대기준이 무엇인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것을 선생님과 약속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겠습니까, 안 그러겠습니까? 「그러겠습니다」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고 난 후에는 여러분의 마음대로 못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외국으로 가라고 하면 보따리 싸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이용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만큼 축복을 많이 받는 것입니다. 하루 수고한 사람보다도 이틀 수고한 사람에게 축복을 더 해주는 것입니다. 십년 수고한 사람보다도 이십년 수고한 사람에게 축복을 더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고생시켜도 괜찮습니까? 「예」 사랑받겠다고 생각지 마세요.
이제는 새로운 축복권내에서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법이 다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 철없는 저희들이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뒤늦게 알 수밖에 없었던 저희의 입장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천지를 지닐 한때가 온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앞에 불효했음을 자책하면서 이번 기간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당신의 긍휼과 사랑을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넘던 일, 역사적인 모든 것의 해원성사, 전 역사가 귀결되는 이 엄청난 일들이 이 자리에서 일대에 이루어진다는 이 기쁜 사실을 알았사오니, 만민 앞에 축복해 주고도 남을 수 있고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기쁜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께 승리 또 승리, 영광 또 영광을 진정으로 돌려드리는 저희들이 되어 참부모와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높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을 중심삼고 하루하루를 개척해 나가야겠사옵니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서로서로가 새로운 약속을 이루는 형제의 인연을 넘어서서 가정을 편성하고자 하오니, 여기에 거룩한 것만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타락은 아버님을 빼놓고 자기 욕심을 중심삼고 결합한 것임을 아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는 한 부모를 통하여 아버님을 중심에 세우고자 하오니, 그 중심에 서시옵소서. 스스로 자기의 모든 것을 제거시켜서 서로가 아버지의 요구에 의해서 아버지의 능력을 중심삼고 결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주체와 대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존재물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내용을 중심삼고 결정됩니다. 역사도 그 기원으로 말미암아 가치가 결정되고, 한 국가의 여당과 야당이라고 하는 것도 주권을 중심삼고 결정됩니다.
복귀역사에는 주체적 흐름이 있고 방계적 흐름이 있습니다. 민주세계는 주체적 흐름이요, 공산세계는 방계적 흐름입니다. 아담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주류의 입장을 세우며 흘러나왔습니다.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이 그러했고, 모세, 예수 역시 그러했습니다. 주류의 입장에 선 사람이 주류적인 노정의 사명을 다 못 하면 상대적인 입장에 선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습니다.
통일교회도 주류로서 가야 할 노선이 있습니다. 복귀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주류의 노선을 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복귀섭리를 하기 위한 주류사상은 무엇이냐?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주류 되는 국가가 있어야 하고, 국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주류 되는 민족이 있어야 하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주류 되는 종족이 있어야 하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주류 되는 가정이 있어야 하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주류 되는 개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주류 되는 개인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주류 되는 개인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 주류 되는 가정을 찾아야 하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 주류 되는 종족을 찾아야 하고, 국가를 복귀하기 위해서 주류 되는 민족을 찾아야 하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주류 되는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주류 되는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로마는 서로 주류와 비주류요, 피지배국가와 지배국가였으나 로마는 세계적인 국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신 목적은 만우주 앞에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을 결정짓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방계적인 입장에 선 것이 요셉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가정이 예수와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가정기준을 종족을 중심하여 복귀하고자 세례 요한을 세워 역사한 것입니다. 예수와 세례 요한이 서로 일체가 되었다면 가정을 복귀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종족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와 일치되었다면 로마제국도 굴복시켰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낸 존재가 예수였습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도 하늘땅 앞에 결정적인 승리의 권한을 갖고 나설 수 있는 남성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온 것입니다.
역사상에 완전한 하나의 남성이 없었기에 상대자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 이유를 밝힌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우리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의 주류권을 형성해야 하고, 가정으로부터 종족의 주류권을 형성해야 하고, 종족으로부터 민족의 주류권을, 민족으로부터 국가의 주류권을, 국가로부터 세계의 주류권까지 형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나가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1960년대는 탕감의 기대를 닦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그 기대 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축복가정들이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1차 7년노정 기간은 선생님이 완성한 하나의 남성으로 어머니를 맞아 가정적인 승리를 결정짓는 때였습니다. 하늘의 혈족이 이 땅 위에 나와 인류 앞에 다리를 놓아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혈족이 선생님 가정을 중심한 축복가정이었습니다. 축복가정은 선생님 가정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효진이는 세째 아담격입니다. 성진 어머니가 반대함으로 희진 어머니를 만났고, 희진 어머니가 반대하므로 효진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성진이는 타락한 아담 복귀형이요, 희진이는 실패한 예수의 복귀형이요, 효진이는 완성한 아담형입니다. 효진이를 중심으로 하여 흥진, 현진 세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축복받은 가정은 선생님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이 민족 앞에 완전한 주류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통일가의 종족입니다. 그러므로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를 해야 합니다. 종족은 민족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고, 민족은 국가를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의 움직임이 민족 앞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앞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역사하셨듯이, 우리도 교회활동과 승공활동으로 이 민족을 지도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활동과 승공활동 가운데 주체는 교회활동입니다.
이러한 일을 대한민국의 다른 누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외적인 절박한 정세 가운데 우리를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는 이 절박한 정세 속에서 약자가 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문제가 아니라 중공과 일본이 문제입니다. 일본은 해와가 타락했던 때의 입장과 같은 위험한 경지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구 개편을 선생님이 직접 한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을 하나의 복귀권내에 세우기 위한 선생님의 작전이었습니다.
일본만 잡으면 문제없습니다. 중국은 천사장과 같은 입장의 국가입니다. 아시아의 고대 문화국인 중국은 천사장격의 문화를 가진 국가입니다. 일본은 전쟁 후 원수 국가들로부터 동정을 받아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세계 제2위의 부(富)를 자랑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내적으로 볼 때, 일본은 그런 수준에서 단장하며 준비하고 있는 신부의 입장에 있습니다.
복귀권에도 주류가 있습니다. 통일가(統一家)는 선생님 가정을 중심하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의에 의해 행동하면 망합니다. 이 민족의 복귀를 위해 우리 축복가정들은 가정적으로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개인적인 제물 시대는 1960년대에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칠 때 소 외에는 모두 쌍을 갖추어 바쳤습니다. 소는 완성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이제 개인의 노정을 넘어섰으니 통일교회가 가야 할 주류적인 노정은 민족복귀를 위해 가정적인 제물을 드리는 가정의 노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교회를 규합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선생님이 책임져야 하지만, 기성교회는 통일가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이것만 되면 민족복귀는 문제없습니다.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 430가정을 축복하여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결하여 밀고 나가면 3년이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운세는 이제 세계적인 운세로 뻗어 나갑니다. 우리의 가정은 통일교회를 위한 가정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위한 가정입니다. 3차 7년노정 때에는 대한의 아들딸로 태어난 것을 만세계에 자랑할 때가 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교회를 규합해 나가야 합니다.
국가가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면 안 됩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바라던 때이고, 예수가 자기 일대에 바라던 때이며, 인류가 바라던 소망의 한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1972년도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자! 여러분은 천국문이 열려 있어도 선생님을 통하지 않으면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선생님과 생활 감정이 일치되어야 하고, 주류의 생활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선생님의 생활을 알기 위해 전화나 서신으로 문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류에 입각하여 생활하는 가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회개하고 선생님 가정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지금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아시아에서 후퇴하고 있지만, 5년 내에 공산국가 앞에 부끄러워하며 후회할 때가 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 굳게 결속하고 일본과 일체되어야 하고 일본 교회를 더욱더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일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우리 본국의 식구들이 더욱 결속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해와국가인 일본을 포섭할 수 없습니다.
연초에 `승리적 통일전선' 이라는 표어를 발표했습니다. 승리란 누구에게 간섭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3월에 자유중국에 사람을 보내어 승공연합을 결성하도록 했습니다.
선생님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민족복귀라는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성교회를 포섭해야 합니다.
10년 후에 일본과 아시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그것을 하려면 우리는 말없이 국가복귀의 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일본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면 우리는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사탄편 아담형 국가이고, 소련은 사탄편 천사 국가이고, 중공은 사탄편 해와 국가입니다.
망할 것 같지만 우리가 가는 길에는 새로운 부활의 역사가 있습니다. 무기를 들고 일선으로 달려가자!
1970년대는 가정적으로 민족 앞에 제물을 드리는 때입니다. 이 길을 피하면 망합니다. 안 망하면 선생님이 망하게 할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는 기성교회가 굴복해 들어옵니다. 두고 보세요. 이 길이 선생님이 가야 할 주류의 길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에까지 이러한 주류가 형성되면 세계 복귀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계의 경제권을 쥐면 아프리카의 제일 불쌍한 민족부터 해방하는 운동을 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수습하여 완전한 개인이 되어야 하고, 부부가 하나되어 완전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의 애기들은 부모된 여러분들보다 더 빛날 수 있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절대 매질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끼리 싸우더라도 애기들 앞에서는 웃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전역에 슬픔이 미쳐져 있는 것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슬픔 가운데 사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혹은 민족이나 국가 모두가 그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만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조건이 희망을 가지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슬픔을 통하여 새로운 목적을 지향해 나갈 수 있는 직접 간접적인 원동력을 출발시키는 일이 우리 생활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피압박 민족 가운데 뚜렷한 목적을 가진 민족은 압박을 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단결해 나왔습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면, 이스라엘은 아무리 어려운 시대와 환경을 거치더라도 자기들이 선민이라는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핍박과 서러움이 언제나 그들을 맞아 주었지만 그들은 그 서러움을 통하여 한날의 희망을 표준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 서러움이 그들을 낙망하게 한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단결하게 하고 어려운 환경을 타개하게 하는 역사적인 투쟁과정을 남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라는 것은 낙망의 조건이 될 수도 있지만, 목적을 지니고 가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그것이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결성하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염원한 것은 무엇이냐? 유일신을 중심삼고 국가와 민족이 심정일치된 이념권내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추구해 나오면서 그들은 죽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품고 죽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으로 남겼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 부모로서 혹은 어떠한 지도자로서 후손 앞에 그 뜻을 이룰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슬픈 역사과정을 거쳐온 민족일수록 그 역사과정을 통하여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루어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타락한 권내에서 나라 없는 민족이 슬픔을 품고 나오더라도 목적의식이 강하게 될 때는 그 슬픔이 도리어 희망을 가져 오게 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나라를 가지고 있으면서 민족권내에서 슬픔을 느꼈더라면 그 슬픔은 어느 때인가 흘러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 없는 가운데 슬픈 운명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자기 민족에게 나타나는 환경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언제나 국가 관념을 가졌고 동족애를 더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 슬픔에 부딪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가를 추구하게 되었고, 현재 자기들의 구속된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해방된 새로운 환경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슬픔이 곧 그러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은 어느 때에 가서 반드시 승리의 한때를 맞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슬픈 환경으로 휘몰아침을 당했을 때 거기에서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더욱 단결하여 민족애와 국가애를 폭발할 수 있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앞으로 기필코 세계사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보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슬픈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그 슬픈 역사라는 것은 죽음을 당하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곳에는 반드시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길을 자초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의 길을 걸어 나오면서 하나님은 어떠한 마음을 가졌느냐? 거기에서 해이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희생하는 자리에 나갔을 때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하늘편이 희생당하면 그것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한 것으로 말미암아 희생을 당한 인간편에 더더욱 가까이 서 가지고 원수세계와 직접 부딪칠 수 있고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동기의 내용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타락한 후손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동기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슬픔 가운데서 죽음의 고비를 당할 적마다 인간에게서 멀어져 간 것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그 고비를 극복하고 소망의 나라를 창건할 한때를 바라보시며 투자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죽음의 길뿐만 아니라 노예생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세계에 자기의 판도를 넓혀 나오셨기에 언제나 원수로부터 농락당해 나왔습니다. 노예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감옥생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종의 신세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죽음길이요, 감옥 생활이요, 노예 생활이요, 종의 신세를 피하지 못한 서러운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음길을 걸을 적마다 하나님이 추구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죽음을 뛰어넘어 애국애족할 수 있는 한때와 그런 사람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옥중생활의 서러움에 부딪힐 적마다 추구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승리할 수 있는 강한 한 나라와 한 민족과 한 개체를 찾는 데 주력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도 모색했던 것이 뭐냐 하면 그 나라와 그 민족과 그 국토를 중심삼은 하나의 주권국가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외적 환경에서 서러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 환경에 자기의 입장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밀고 나가 내일의 희망찬 소망을 품고 희망찬 국가관, 희망찬 민족관을 가지고 부딪쳐 나온 것입니다. 종의 신세에 처하게 될 적마다 그 종의 신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더더욱 소망을 가중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개척하지 못하고는 원수의 세계에서 복귀섭리를 추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전체 역사노정은 사탄세계가 하나님 앞에 갖다 준 죽음길이요, 옥중생활이요, 노예생활이요, 종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 길을 가면서 낙망에 부딪쳤고 슬픔에 부딪쳤고 억울함과 분함에 부딪쳤지만 그 마음 가운데에서 항시 잊어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 억울함보다도, 그 슬픔보다도, 그 고역보다도 나라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 부딪칠 때마다 소망의 그 나라로 언제 갈 것이냐? 소망의 나라에 같이 갈 수 있는 동지, 혹은 동포를 어떻게 가질 것이냐? 그 동포를 규합해서 하나의 나라를 세우고 주권을 갖추어 지금까지 원수의 입장에서 대해 나오던 원수 국가를 어떻게 정복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심적인 결의를 가지고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가중되는 핍박의 고개를 넘어서 언제나 앞서가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역사적인 모든 수난의 길을 참고 넘어온 섭리역사가 뜻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 개체를 사탄세계는 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편에 속한 우리 앞길에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걸어 나오셨던 개척의 노정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길이 가중되어 나왔던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또한 옥중 생활이 기다리고 있고, 노예 생활, 종의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뜻이 이루어질 한날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원수 국가로부터 받게 되는 불가피한 시련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잃어버린 국가를 찾아서 복귀하고자 하는 애국심을 가진 충신이 있다 할진대 그가 가는 길 앞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감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노예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종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시대적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사람들이 그 사명을 위해 출발하기 전에 무엇이 기다렸느냐 하면 원수의 총칼이 있는 죽음길이 그들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혹은 감옥생활이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노예와 같은 입장의 억울한 포로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기 권위와 입장을 상실한 종의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편에 서서 뜻을 중심삼고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앞길에 그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권에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섭리는 사랑하는 자녀를 찾기 위한 섭리요, 사랑하는 종족을 세우기 위한 섭리요, 사랑하는 민족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요, 사랑하는 하나의 국가를 창건하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이런 섭리를 책임지고 추진하시는 중심인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만 그런 입장에 세우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 죽음길이 오기 전에 먼저 그 죽음길을 타개해 주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는 것이요, 그들 앞에 놓여진 감옥의 생활을 타개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요, 그들 앞에 놓여진 노예와 같은 고역의 생활을 타개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요, 그들 앞에 놓여진 종의 입장을 타개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로를 개척해 놓지 않고는 죽음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이요, 감옥생활을 피할 수 없는 것이요, 노예의 길, 종의 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느 한때에 하늘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을 찾고 승리의 민족과 승리의 나라를 찾기 전까지 이런 운명을 직접 맞이해서 개척자의 사명을 지고 홀로 싸워 나와야 하는 입장에 계신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그와 같은 내용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따라 나가면 반드시 행복이 온다고 믿고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 불행과 슬픔의 요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그 시대의 책임자들이 당하는 것보다도 더더욱 슬픔을 당하고, 더더욱 고통을 느끼며, 그들이 당하는 죽음길보다도 더더욱 힘든 죽음길을 거쳐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죽음길을 피하게 하고, 감옥길을 피하게 하고, 노예의 길을 피하게 하고, 종의 길을 피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내적인 슬픔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복귀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을 두고 볼 때, 언제 나 자신이 죽음길이라는 필연적인 운명의 길을 가기 위하여 결심한 때가 있었으며, 언제 자신이 감옥생활과 같은 생애의 노정을 가더라도 응당히 이 길을 가야 되겠다고 스스로 그런 자세를 가져 보았으며, 자기 일생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자기 일생뿐만 아니라 자기 종족이 몇 대를 거쳐서 노예 생활을 하더라도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껴 보았으며, 종의 생활로 몇 세기의 과정을 거쳐 가더라도 응당히 가야 되겠다는 그런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 추종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느냐 하면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믿으면 반드시 인간이 해방받을 것을 약속하였고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는 그날부터 행복을 고대했고 자유와 해방을 고대하는 입장에서만 믿고 나왔지 시련과 고통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하나님을 믿고 추구해 나온 종교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이제까지의 종교의 이면에서 그런 기반을 닦을 때까지 수많은 희생으로써 탕감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불가피한 입장에 처해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탕감의 내용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개인, 수많은 가정, 수많은 종족, 수많은 민족 전체가 하늘편에 서서 일치단결하여 죽음의 길을 기꺼이 맞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한날을 맞지 않으면 민족의 해방을 가져 올 수 없습니다. 또 감옥과 같은 그런 환경을 도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앞에는 국가가 찾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노예의 길이나 감옥의 길, 혹은 종의 길이 응당히 감수하면서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이라는 것을 알고 자진해서 가야 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탕감해야 할 그 책임을 짊어지지 않게 되면 하나님이 재차 탕감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효(孝)하고 충(忠)해야 할 입장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기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복귀하고자 하시는 국가와 민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천년 역사를 통하여 메시아 사상을 중심삼고 기나긴 수난의 역사를 참고 견뎌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앞에 메시아가 온 그날부터 세계를 대신하여,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더 큰 수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신 메시아를 죽음길로 몰아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복귀섭리는 기필코 이런 역사과정을 거쳐온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도 이러한 운명길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찾아가는 길은 나라를 찾기 위해 가는 길이요, 민족을 찾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이것을 찾아 가지고 승리한 하늘편의 한 주권 국가를 성립시키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국가의 관념을 중심삼은 판도를 조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기나긴 6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개척자의 사명을 가지고 죽음의 대가를 치러서 오늘날 비로소 횡적인 무대에 하나님과 심정이 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왔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우리 자신이 알고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찾기 위해서는 죽음길도 자처해서 가겠다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감옥 생활도 개의치 않고, 노예 생활도 개의치 않고, 종의 생활도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한때, 내 일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대의 후손에게 연결된다 하더라도 응당히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길이요, 우리의 길이라는 것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개인, 그런 가정, 그런 종족, 그런 민족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는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국가가 가야 할 죽음길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이요, 감옥생활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요, 개인 해방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이요, 노예생활과 같은 고역도 피하지 못할 것이요, 종의 생활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내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우리를 희생의 자리에 내세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하나님 자신이 자처해서 당해 나오시던 그 모든 수난의 길, 다시 말하면 죽음의 길과 감옥의 길과 혹은 노예의 길과 종의 길을 이 땅 위에서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개인이 필요하고, 가정이 필요하고, 종족이 필요하고, 민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그러한 것을 느끼고 하나의 국가를 찾기 위하여 민족 전체가 결속해 가지고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감옥의 길도 개의치 않고, 노예의 길도 개의치 않고, 종이 되는 길도 개의치 않고 총진군할 수 있는 그날이 오게 될 때 거기에서 비로소 국가가 죽음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요, 감옥의 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요, 노예의 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요, 종의 길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이 시대에 우리가 그러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역사를 대신해서 죽음길을 통하여 그 열매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옥생활을 통하여서 그 열매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노예생활을 통하여서 지금까지 사탄편으로 인해서 맺혔던 한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한 편이 지금까지 종의 입장을 피치 못하고 나왔던 억울함을 전부다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도피하는 무리가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을 거쳐 모세와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탕감복귀역사였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2천년의 역사과정에서 선지선열들을 통하여 나오는 기독교의 역사도 탕감복귀역사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대가를 치른 자리에서도 낙망과 절망을 느낀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면서도 내일의 국가를 위하는 마음과 내일의 국민을 위하는 마음과 내일의 주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앞서 가지고 죽음길을 넘어간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아버지의 나라에 가 가지고 하늘편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로되 자기 개인이 구원받기 위하여, 또는 자기 가족을 구원해 주기 위하여 죽어간 희생자나 순교자는 개인권내나 가정권내밖에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개인을 찾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늘이 종족을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소모시키면서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를 위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는 입장에서 하늘의 뜻을 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대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구원과 가정의 행복을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도리어 하나님 앞에 이중적인 십자가, 이중적인 고역, 이중적인 슬픔을 가져다 주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종교를 믿었던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고 내 일족이 잘되기 위해서 믿었던 것입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을 한 것은 이스라엘의 선민권을 만들기 위해서 축복하였지만 그 보다도 자기 족속을 위한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여 하나님을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축복해 주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의 민족보다도 자기의 대를 직접 이을 수 있는 자를 더 사랑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자기의 족속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개인을 사랑하는 민족에게는 민족적인 수난의 길이 남아지게 되는 것이요, 국가적인 수난의 길도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의 역사를 거듭한 것은 그 종족이 단결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종족에게는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민족이 하나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데,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된 것으로써 민족의 복을 받겠다고 하며 나서게 되면 민족을 중심삼고 넘어야 할 그 기준이 도리어 장벽이 되고, 시련과 고통의 원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탕감시켜야 할 조건이 이들 앞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 탕감조건을 세우기 전에는 민족을 중심삼은 고개를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고개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민족보다도 국가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국가의 기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하지 않고는 세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세계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보다 세계를 더 사랑했다는 공적인 터전을 쌓아서 그것을 인정받아 주체적 국가의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믿고 나온 목적은 개인이 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일족이 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종족이면 종족, 문중이면 문중이 복을 받기 위해서 종교를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과는 너무도 배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족을 찾는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요, 종족을 찾는 것은 민족을 위한 것이요, 가정을 찾는 것은 종족을 위한 것이요, 개인을 찾는 것은 가정을 위한 것입니다. 더 큰 목적을 앞에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섭리의 판도를 넓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을 향하여 복귀노정을 걷던 이스라엘 민족이 생각해야 했던 것은 민족이 당하는 수난의 길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국가가 당해야 할 수난의 길을 염려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당하고 있는 수난을 응당히 당해야 할 것으로 감수했더라면 민족의 수난의 길을 넘어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원수와 부딪쳐 싸워 국가적인 수난을 해결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기에 원수를 보지도 못한 채 광야에서 쓰러져 간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섭리역사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원수한테 죽임을 당하고, 감옥생활을 하고, 노예생활, 종의 생활을 하는, 그런 억울한 생활을 한 것이 원수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원수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우리 한국을 보면 한국은 원수와 원수가 대결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종교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종교와 종교가 대결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지금까지 자기 교파를 위주해 나왔고, 신자들은 자기 개인의 행복을 신앙의 목표로 세워 나왔으며 자기 가정이 복받기 위해서 믿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이 복받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복받게 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만 구하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이런 고차적인 이념, 통일된 이념을 갖고 나오는 것이 통일교회를 믿는 신앙자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은 내가 이 뜻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이 복받는다는 관념을 갖기에 앞서 내가 애국애족하면 나라가 복받는 것이요, 비참한 이 민족이 해방의 날을 맞는 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해방의 날을 맞이하는 것이요, 이 민족이 해방의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죽음의 길을 타개해야 할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 죽음의 길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종족을 사랑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는 기준을 넘어 국가를 사랑하는 기준에 서야 합니다. 그 길만이 국가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체가 하나의 목적관을 중심삼고 철두철미하게 일치단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축복을 받는다. 혹은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지역장에서 지구장이 될수 있다' 또는 `선생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고 하는 생각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전부가 자기를 위한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를 구하고 나라가 축복받게 하기 위한 것이요, 나라가 축복받게 하는 것은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요, 세계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기 위한 것이다' 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고차적인 목적관에 일치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이러한 큰 목적이 놓여 있느니만큼 거기에 비례하여 수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역사시대에 없었던 죽음의 길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감옥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예의 쇠사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의 멍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길을 우리 자신이 응당히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필생의 과업이요, 타고난 생애의 목적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그 길을 다 가지 못하여 그날을 맞지 못하고 그때를 보지 못하고 죽더라도, 마음으로는 소망의 천국과 소망의 백성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민족이 가야 할 최후의 종착점이 아버지를 주권자로 세운 국가라는 유언을 하고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통일의 무리가 되지 않고는 이 엄청난 복귀섭리의 뜻을 직접 계승하는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그들을 선민이라고 보호해 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해야 했습니다. 광야의 노정을 출발할 때 바로의 수중에서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그 목적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켜 준 목적은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해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을 창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하게 하기 위한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을 위해 그들을 해방시키셨고 그들을 목적지까지 이끄시는 책임을 짊어지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민족은 소망하던 본향 땅 가나안을 찾아가는 도중에서 그 본향에 대한 흠모심이 희박하게 되었습니다.
가중되는 핍박과 어려움이 극심할지라도 그들이 소망하였던 의지가 꺾일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극된 마음을 가지고 부딪쳐 오는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수난의 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리에서 국가를 염려하는 마음보다 현재의 자기 입장과 자기 가정을 염려하고 현재 이스라엘 족속이 처해 있는 처참한 환경을 염려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나라를 찾기 위한 목적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책임지고 수고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께서 떠나게 되니 사탄이 여기에 개재하게 되었고, 사탄이 그 민족을 지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민족이 광야에 쓰러져 망하기 전에 먼저 쳐서 그 후손이라도 재차 갈 수 있는 길을 남기기 위해서 60만 대중을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하늘의 슬픔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을 바라볼 때, 우리들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내일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자극적인 환경이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훈련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60년대는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고 나오던 탕감기간이었습니다. 개인을 탕감하지 않고는 나라를 찾을 수 없고, 가정을 탕감시키지 않고는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1960년대는 개인과 가정을 위주한 탕감시대였습니다. 이러한 탕감조건이 성립되지 않고는 나라를 찾을 수 있는 소망을 하나님이 주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1960년대와 1970년대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 1960년대는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은 탕감노정을 청산짓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1970년대에는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은 탕감기간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인과 가정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씨족과 종족도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이런 관이 여러분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내적인 기반으로 여러분의 두뇌 속에 담겨지지 않고는 금후에 승리의 노정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이 나라 이 민족을 더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사탄보다 더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주권자인 위정자들보다도 앞서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앞서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거쳐 나가야 할 민족적인 해방, 국가적인 해방, 세계적인 해방을 하나님께서는 고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슬픔을 안고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편의 내적 서러움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개인을 찾아 나서게 될 때 그 개인 앞에 가정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개인은 몰랐습니다. 가정을 찾아 세우기 전에는 개인이 당해야 할 탕감노정을 먼저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탕감노정을 거쳤다 할지라도 개인 자체가 승리한 기준을 가지고는 가정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세워 나오실 때 반드시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준비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준비하시는 내적 슬픔을 이 땅 위의 그 누구에게도 통고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가정을 찾아 세우게 되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환경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수난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종족이면 종족, 가정이면 가정 그 자체가 이러한 내적 사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들의 갈 길을 준비해 나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 일파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외적인 민족의 수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 앞에 제물을 바치는 데에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땅에서 그 수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땅에 가서 그 길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나 요셉이 애급에서 감옥생활, 노예생활, 종의 생활을 하면서 죽음의 교차로에 부딪칠 적마다 하나님께서는 번번이 책임을 지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해방시켜 주신 것은 요셉 개인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을 죽음길에서 구원해 주실 때 요셉 일파를 구할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의 열두 형제를 중심삼은 일가족이 원수의 국가 애급에서 발을 붙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해 나오는 개인이나 가정이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것도 비참하고 불쌍하지만, 그것을 준비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께서는 내적인 입장에서 더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들보다 더 비참하고 불쌍한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체가 탕감할 수 있는 길을 잘 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내 가정이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개체가 완성할 수 있는 탕감의 한계점에 이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안팎의 여건을 갖추어 가지고 내가 가는 길에 맞게 협조해 주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탕감조건을 거친 다음 가정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을,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 이상을 준비해 주신 것을 나는 직접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개인이 극한 환경에 부딪칠수록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자리, 노예의 자리, 감옥의 자리, 죽음의 교차로까지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낙망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고, 그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염려하게 될 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가정적 출발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노예의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감옥생활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신 것과 같이 죽음을 걸고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교차로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에서 뜻을 위하여 죽게 될 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개인이 해방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이 수난을 당한 대가의 보응으로 가정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길에는 가정이 거쳐야 할 수난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안팎으로 부딪쳐 오는 시련과 고통이 가중되더라도 쓰러지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원수의 입장에서 칼을 들고 나서더라도 거기에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이끌고 종의 신세를 달게 받고, 노예의 신세를 달게 받고, 죽음길도 달게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족이 갈 수 있는 해방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련이 닥치고 가중된 십자가의 죽음길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낙망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뜻을 중심삼고 소화시킬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귀결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공산세계는 타락의 경로대로 민주세계를 적화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중공을 끌고 있고, 중공을 중심삼고 북한이 하나되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편의 아담 국가에 참부모의 내용을 가지고 거짓 흉내를 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중공은 무엇을 갖고 있느냐? 사람을 갖고 있습니다. 8억에 가까운 사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고 있는 부자가 아니라 사람을 갖고 있는 부자입니다. 또 소련을 무엇을 갖고 있느냐? 현대의 물질문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공과 소련 중 어느 나라가 북한에 더 가까우냐? 중공이 더 가깝습니다. 남한을 침범한 것은 어느 나라냐? 아담 해와가 천사장에 의해 타락한 거와 마찬가지로 사탄권을 대표한 아담 해와의 입장에 있는 북한과 중공이 합작하여 소련의 후원을 받아 가지고 남한에 공세를 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편 삼위기대 국가의 형태입니다.
여기에 맞서려면 한국을 중심삼고 아시아에 반공전선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런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교파적인 면, 국가적인 면, 세계적인 면에 있어서 아벨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신념을 중심삼고 국가를 앞세워 세계 앞에 신뢰를 받아야 하고 세계의 생활감정과 국가감정을 바로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애국애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보다 우리가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시점에 갖고 나서느냐 못 나서느냐 하는 문제가 세계사적인 문제를 청산짓느냐 창산짓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여러분을 이끌고 책임진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청산하기 전에 종족적인 시련 고통을 해방하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여러분보다 한 단계 한 시대를 앞서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은 가르쳐 주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되지 않고는 가르쳐 줄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타락한 장본인이 복귀되지 않고는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이요,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적인 측면에 기반을 닦아 놓지 못하면 원리세계의 내용을 전부다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려 나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6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개인복귀섭리도 완결짓지 못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께서 개인을 찾고 계시지만 그 감정은 나라와 세계를 찾기 위한 심정권내로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해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6천년 동안 한 아들을 찾아 세우기 위해 애타게 부르시는 아버지의 내적 슬픔, 하늘편의 내적 슬픔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충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희생해서 그런 아들이 될 수 있다면 천만번이라도 희생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감옥생활이 문제가 아니고, 노예생활이 문제가 아니고, 종살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고생을 해야 해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만사를 제쳐 놓고 자처하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하나님이 얼마나 슬펐겠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현시점에서 1970년대를 맞는 우리들은 재각성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굳게 다지고 `우리에게는 원수가 없다. 미운 것이 없다. 전부다 좋은 것뿐이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원수가 없고 슬픔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슬픔 그 자체가 행복인 것입니다. 왜? 내 개인적인 슬픔이 극에 달하여 죽음의 교차로에 나서게 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면 가정적인 희망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단에 교단적인 슬픔이 극하더라도 거기서 죽지 않고 넘게 될 때는 민족적인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아둬야 됩니다.
우리가 부딪치는 슬픔은 무엇이냐? 행복입니다, 행복. 슬픔을 느끼면 느낄수록 행복의 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 가운데 하나는 꺾여 나가고 하나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편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하늘편의 슬픔을 극복시켜야 할 입장에 있으니 슬픔을 슬픔으로 남겨서는 안 됩니다. 소망과 희망과 행복의 열매로서 그 자리를 극복하고 소화시켜야 됩니다. 우리가 이런 내적 외적 준비를 다 갖추게 될 때 세계는 우리 앞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이 되어 국가를 형성하게 될 때 세계는 그 국가 앞에 완전히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50개 주를 순방하면서 하나님께서 잘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부터 300여년 전 그 나라를 지배했던 인디안들이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퓨리턴들을 통해 기독교사상을 중심삼고 자유와 평등이 있는 거대한 부국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어느 한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미국이 자국을 위하는 것보다 가인적인 국가 세계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한 때를 만드실 것입니다. 반드시 그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을 순방하는 이 사나이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백악관 앞에서 선생님이 기도할 때도 그런 내용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미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길을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피해 가더라도, 내가 영어의 신세가 되더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절규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픔을 인간의 심정에 연결시키시려니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다시 내보내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길이요, 민족을 위하는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가혹한 길이 자신에게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응당 천륜에 의한 우리 생애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본분의 길로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옛날 사람들과는 다른 권내에 있지 않느냐?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종족 관념을 초월하고 민족 관념을 초월해서 하나의 혈족을 편성하는 기반을 세계적으로 갖고 있지 않느냐? 승리는 이미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승리를 좌우할 수 있는 칼이 우리에게 들려졌습니다. 그 들려진 칼을 무엇을 위하여 빼야 되느냐? 민족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빼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갖고 움직이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념을 갖고 슬픈 하늘편에 서서 슬픈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자기 개인의 해방을 위해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슬퍼해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개체를 위해 슬퍼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려면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책임하지 못한 자신들을 하나님이 긍휼히 보아 주시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7족을 앞에 놓고 여리고성을 바라보던 모세와 같은 심정으로 하늘과 의논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지 않고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아랍권에 있다고 망하지 않습니다. 그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모시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제 2차적인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희망의 불길만 붙여 놓는다면, 새로운 목적관만 세워 놓는다면 이 민족을 통하여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근원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이 복귀되는 날에는 이스라엘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야 된다는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은 전세계에 종족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이름난 정치가, 경제가, 혹은 세계적인 영광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유대인들이 비율적으로 많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그런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내적인 한국의 통일교회가 그런 기반을 닦게 되는 날에는 이스라엘을 흡수할 수 있는 주체적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적인 책임을 갖고 있는 그들을 복귀한다면 세계적인 종족권이 자동적으로 복귀된다는 거예요. 또한 세계적인 문화권도 자동적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세계는 우리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복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면에서 기성교회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남한이 아벨 입장이 되어서 가인 입장인 북한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 가인을 굴복시켜 하나의 완전한 국가가 되는 날에는 세계적인 아벨 국가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국가가 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우리의 판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국가 기준을 세웠다면 세계의 판도가 예수님 앞에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북 5도를 굴복시켜 승리의 국가 기준을 세운다면 세계의 판도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북 5도를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남한에 있는 가인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아벨적인 종교인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위하고 이 민족을 위하여 나섭시다. 희생합시다. 이것이 말로써 안 되면 힘으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사상을 무장해 가지고 삼팔선을 철폐하자고 해야 합니다. 그런 여건과 환경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남북한 총선거가 실시되면 남북한을 하나님 뜻 앞에 세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국가를 삼켜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세계통일은 가능하다' 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을 형성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그런 터전을 슬픔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6천년이 걸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세계로 보내기 위한 공식적인 과정을 거치시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슬픔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남한 백성들을 생각할 때,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있고 문 아무개가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서러움 앞에 내 서러움을 일치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서러움이 여러분 자체의 서러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서러움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아버지의 서러움에 여러분의 서러움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곳에서만이 세계적인 해원성사를 할 수 있고, 전체적 탕감을 조성할 수 있는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그야말로 용사 중의 용사, 정예부대 중의 정예부대가 되어 천주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쁨으로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내적 슬픔을 지니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만약 이들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들의 후손은 어떻게 될 것이며, 제 2의 작전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복구할 수 있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봤어요?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이 전부다 거꾸러지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극한 슬픔이 우리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생활 투쟁권내에서 이것이 뒤넘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됩니다.
다 망해도 우리만은 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승리적 아벨권을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긍지와 권위와 자세를 갖추고 주체적인 권한을 상실하지 않는 우리 자신들이 되어야 됩니다. 이때만이 하나님의 슬픔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때만이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효할 수 있고 충할 수 있는, 효와 충을 한꺼번에 성사시켜 아버지 품에 안길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일시에 해원성사 할 수 있는 효자가 될 수 있고 충신이 될 수 있는 길이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었는데도 몰라보는 사람이 있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르쳐야 됩니다. 종이 되어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예의 신세를 피치 못할 자리, 구석진 환경을 피치 못할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 원수를 갚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원수를 갚으면 완전복귀가 안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내적 슬픔을 완전히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평면적인 자유해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종의 입장이 철폐되는 것이요, 노예의 입장도 피할 수 있는 것이요, 영어살이도 피할 수 있는 것이요, 죽음길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필히 가겠다고 하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아버지, 저는 이 길을 나서게 될 때에 제일 무서운 것이 부모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 무서운 것이 자기 종족이요, 자기 민족이요, 자기 국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가까운 자리에 원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원수의 한계를 가정으로 말미암아 넘어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았고, 종족으로 말미암아 넘어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았고, 민족, 국가로 말미암아 넘어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편이 아닌 가인적인 입장에 선 대한민국의 주권자를 바라볼 적마다 그들로 인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자유스러운 한날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수의 세계를 대하던 심정을 느끼면서 슬픔의 자리를 저는 체험해 나왔습니다. 양지에서 살아 나오시지 못한 아버지의 슬픔을, 음지에서 역사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저는 알았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런 생활 속에서 어느 한때 아버지를 반박하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자식이 될까봐 초조해하면서 나왔습니다. 또한 당신께서도 초조한 입장에서 그런 저를 찾아오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서러운 이상 더 서럽고, 제가 괴로운 이상 더 괴로운 자리에서 당신의 책임을 느끼면서 갈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몰리고 쫓기는 자리, 쇠고랑이 양손을 죄는 영어살이, 노예의 신세, 종의 신세를 거치더라도 절망하거나 아버지께 낙심을 가져다 드리지 않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렇게 결의한 그 시간부터 오늘날까지 죽지 않고 아버지 앞에 남게 해주신 은사를 감사드립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세우시기 위해,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제가 가야 할 길을 위해서, 제가 가야 할 가정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셨습니까? 제가 거느려야 할 종족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셨고, 제가 거느리고 지도해야 할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이 나라 이 민족이 지도해야 할 세계를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동정맥이 24시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는 그 이상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자다가 눈을 떠도 죄인인 양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빌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멈추고 눈물로써 아버지께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고, 피로한 몸을 가누지 못해 자리에 누울 적마다 당신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과거 생활을 긍휼히 봐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원수들을 제거시키시기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하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당하셨습니까? 쫓김받고 몰림받던 비참한 무리, 죽음길에서 탄식과 절규 가운데 몸부림치던 무리들을 이렇게 가꾸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저희들을 민족을 대하고 국가를 대하고 세계를 대하여 머리를 들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권내에 이끄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이러한 저희 모습이 되기까지 당신의 내적 슬픔이 컸었다는 사실을 천번 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잊어버리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통일가가 망하더라도 저희들의 마음만 망하지 않는다면 통일가는 또다시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의 나라를 갖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게 되면 통일의 나라는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바로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을 중요시하면서 세계적인 전통의 기반을 닦아야 된다고 몸부림쳐 나온 것을 여기 있는 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터전으로 인해 저희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한계권내에 있사오니, 이러한 때를 맞이한 왕자로서 뜻을 대하여 칼을 뽑지 못하면 억천만세까지 한을 남기게 되는 것이요, 천년 만년 탄식과 절망의 구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이제 그럴 수 있는 우리의 때를 맞이했으니 밤이나 낮이나 온갖 충성을 다하여 적진을 흡수하고 적의 무리를 제압할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다시 더 큰 적을 치기 위하여 정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편의 내적 슬픔을 중심삼고 볼 때 불쌍한 분은 아버지입니다. 아무리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불쌍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얼마나 불쌍하시다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오늘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자녀들이 아무리 불쌍하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슬픔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의 가중된 은사를 받을 수 없어 천번 만번 옷깃을 여미고 천번 만번 경배드리면서 긍휼된 마음으로 사죄를 구해야 할 자신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모습이 될 때는 저희들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가는 길은 망하는 길이요, 세계와 나라를 위하고 자기 종족과 자유세계의 만민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길은 부활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자기가 희생한 이상의 부활권을 준비하고 계시는 아버지임을 알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고 원수를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던 지구장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지구장은 도(道)를 책임진 도의 장(長)입니다. 이들은 제사장으로서 아버지의 내적 슬픔을 대신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염려하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의 사명과 충신의 사명을 해야 할 모습들이오니, 각자 그러한 책임이 남아있는 것을 절감하게 하시옵소서. 이제 1970년대에는 이 민족과 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중차대한 세계사적인 탕감기간을 당당히 받아넘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제 3회 수련회도 다 끝나 가옵니다. 이번 기간에 이곳을 거쳐가는 사람들은 1970년대에 가야 할 길을 위해 내외로 재차 무장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민족복귀와 세계복귀를 위하여 제물된 입장을 사수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제사장이 되어 산제물로 바쳐져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은 시간을,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남아진 달과 남아진 해를, 남아진 70년대 이 시대를 책임져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제물을 세우는 것은 가인을 굴복시키는 비법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는 물질적 제물, 실체적 제물, 그 다음에는 심정적 제물, 이 세 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평면적으로 가인에 대해서 적용하면 일시에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 서야 합니다. 축복의 조건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예수가 소유할 수 있었고 받을 수 있었던 모든 축복 이상의 축복을 받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여러분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가 지녔던 심정 이상의 심정권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연필 한 자루라도 이 세상의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속한 일체의 모든 것을 가인 앞에 넘겨 줄 줄 알아야 합니다. 복귀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제물이라는 거예요. 즉, 자기편의 귀한 것을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귀한 물건도 넘겨 주고 자기의 귀한 아들도 넘겨 주고, 자기 자신까지도 넘겨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복귀역사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가인을 일시에 탕감시킬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인이 완전히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6천년을 일시에 탕감한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적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타락권 이상의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주어야 하느냐? 참것을 주어야 합니다. 탕감제물로서가 아니라 제사장을 대신해서 참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들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들의 심정을 옮겨 주라는 것입니다. 희생하라는 거예요. 기성교회와 여러분을 두고 볼 때, 여러분 가정들 또는 통일교인들이 기성교회 목사를 대하여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 대표자가 기성교회 목사요, 아벨 대표자가 여러분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길이 앞으로 열릴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물질이 생겨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은 사람이 있을 때 백 배 효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수가 적을 때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10만 명 되는 많은 사람보다도 백 명의 사람이 더욱 귀하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몇백 배의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입장을 취해서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의 때가 틀림없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기성교회를 어떻게 복귀하느냐? 여러분에게 돈이 있으면 가인을 거쳐서 그 돈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복귀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가인을 거쳐서 쓰라는 거예요. 또, 생활을 하는 데도 가인과 더불어 의논해서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생활의 원칙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타락은 의논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대화하면서 생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자기의 욕망을 중심삼고 출발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내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상대편의 욕망을 존중해야 합니다. 찬사장이 아담을 존중시했더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상대편을 존중시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말고 기성교회 교역자를 중심삼고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교역자는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의 지도 간부들보다도 점점 생활이 궁핍해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를 넘어설 때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 서서 그들로부터 동정을 받지 말고 오히려 그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제 70년대에는 다 걷어치우고 나가야 됩니다. 벌거숭이 몸으로 나가야 합니다. 나가서 여러분이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고향입니다. 환고향하려면 버리고 가야지요.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이 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가진 것을 가인에게 넘겨 주면 가인이 그것을 받아서 관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 땅에 가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됩니다. 부모의 것이 되고, 내것이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주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여러분에게는 안 주었지만 기성교회를 위해서는 많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초교파운동을 통해 여러가지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거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를 위해서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련소를 짓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에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는 데는 우리가 쓰고 남아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빚을 져 가면서 귀한 것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뜻적으로 볼 때, 70년대가 안팎으로 모든 탕감적인 내용을 갖추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국내의 부흥을 꾀하는 것보다도 세계의 부흥을 위해서 기쁘게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는 민주주의권내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것을 못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도피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여러분이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주어야 합니다. 가인 세계는 외적세계, 즉 외적 세상이기 때문에 그들을 좋게 해주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뭐냐? 먹는 것, 입는 것을 주면 됩니다. 즉, 그들이 사는 데 있어서 좋은 것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쁜 음식을 먹으면서 좋은 음식을 그들에게 주고, 내가 나쁜 옷을 입으면서 그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내가 나쁜 집에 살면서 그들을 좋은 집에 살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완전히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노정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대해서 그럴 수 있는 통일가가 되었느냐 할 때, 그런 통일가가 됐다 하면 우리는 이 민족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해서 그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방법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먹고 입고 사는 것을 그들보다도 우리가 주도하는 입장에 서 있고, 그들 앞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입장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것을 못 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에게 먹을 것이 생기게 되면 그것을 선생님이 먹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입을 것이 있으면 선생님이 입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입힐 것이냐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활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집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전부 쓰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수련소를 짓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나라를 위해 짓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달 이내에 지어야지, 6개월 동안에 짓게 되면 사탄세계로부터 들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책임을 지고 정성을 다해서 공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무 하나를 세울 때도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 수련소가 역사를 뒤집어엎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제일 시급한 것은 인적 자원 문제입니다. 여기서 잘하게 되면 인적자원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무한한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일에 직접 관여해 가지고 밤이든 낮이든 가리지 않고 힘들어 떨어질 정도로 일해 왔습니다. 한 달 이내에 이것을 전부 끝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쉬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더욱 서둘러야 합니다. 선생님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제로 6개월이 걸려야 지을 것을 한 달 이내에 짓게 된다면 우리 통일사상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겠는가! 여기에 들어와서 교육받는 사람들이 이 수련소 역사를 두고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 이렇게 봉사했구나' 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집이 선생님이 이제까지 지은 집 가운데 제일 큰 집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이 수련소를 짓는 것은 교회보다도 나라를 위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크게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집터를 닦는 데 있어서 어느 누가 보더라도 한 단계 낮게 해서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절대 낮게 해서 짓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높이 해서 지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낮은 곳을 다 메워서 평지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고들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땅을 메꿀 때 젊은 사람들을 끌어다가 일을 시키니까 어떤 녀석은 하기 싫어서 인상을 쓰고 있더군요. 선생님이 어제 저녁에도 이런 얘기를 했지만, 수련생들 가운데 어떤 녀석은 선생님만 보게 되면 막 도망가려고 합니다. 선생님한테 불려갈 것이 틀림없거든요. 선생님이 불러서 일을 시킬 것 같거든요? (웃음)
여러분, 선생님이 먹을 것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해요, 입을 것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해요? 왜 그러겠어요? 선생님은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작업장을 하루에 두 번씩 드나들며 돌아봅니다. 선생님이 만약 드러 누우면 며칠이고 잘 거예요. 이 일을 위해서 선생님이 신경을 얼마나 쓰는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옆구리도 절리고 그래요.
오늘도 상당히 피곤하지만 피곤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 일생에 있어서 정성들인 모든 물질적 조건을 걸고 나라를 위해 큰 건물을 짓고 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나라의 탕감역사를 짊어지고 애국애족하겠다는 그런 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대에 응당히 할 일을 할 수 있는 찬스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다 들여 이 건물을 짓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제 다 짓게 되었으니 여러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진정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자꾸 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기성교회 목사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굶고 있거든 쌀 한 가마니를 가지고 가서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내게 이것밖에 없지만 나눠 먹읍시다'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쌀 한 말이 있거든 절반 이상을 갖다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사이가 좋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먹는 것, 입는 것, 가진 재산 이런 것들을 그들에게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야곱은 이러한 천법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재산, 즉 소나 양 등의 가축과 종들까지 전부다 형에게 주면서 `이것은 형님 것입니다' 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법도를 믿었던 거예요. 그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부모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 재산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효(孝)할 수 있는 길, 나라에 충(忠)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는 데 있어서 방해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효하고 충하는 데에 에서가 방해할 것임을 알았던 야곱은 에서를 굴복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21년 동안 수고해서 얻은 모든 재산을 에서에게 몽땅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가난해서 좋습니다. 우리가 기성교회에 몽땅 주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손바닥밖에 없다 이겁니다. (웃음) 그러니 눈물과 피땀을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주고 피땀을 주는 것이 마지막으로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를 세워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 `무엇을 줄 것인가? 내게 가진 것이 없으니 눈물을 주고 피땀을 주자' 항상 이런 심정으로 기도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렇게 기도한 뒤에는 여러분이 굴복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떨어져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는 것입니다. 누가 망하는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나갈 때는 걸어나갔지만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엉금엉금 기어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이 상당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오며 가며 고기라도 몇 근씩 사다 주고 그들에게 애기들이 있으면 만두라도 좀 사다 주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기성교회를 대하여 생활적인면에 있어서 작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작전을 제일 먼저 해야 할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기성교회의 목사 가정과 전도사 가정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을 여러분이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그들의 가정을 돌보려면 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돈을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급해 주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준 돈을 받아서 여러분이 먼저 쓰고 남은 것을 그들에게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행 5:1-11)에 나오는 아나니아 부부의 얘기를 알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재산을 판 것은 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감추었기에 망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만 성공하면 그들을 복귀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런 때가 틀림없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70년대에 우리가 할 작전은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목사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들이 우리를 쳤지만, 이제는 안팎으로 비약한 통일교회를 볼 때,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당할 수 없음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원수시하던 그들을 원수시 않고,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가족을 돌보아 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일을 하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먹을 것이 있으면 언제나 가인에게 먼저 주라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 때는 먼저 알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는 승리의 자리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가정적으로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는 통일가가 승리의 자리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축복가정들의 대다수가 지구장, 지역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번 기회에 이 일을 실천하여 사탄세계가 참소할 수 없는 기준만 넘어서면 가인 복귀는 간단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간단한 것입니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되면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런 작전을 하면 틀림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대한민국이 하나되면 세계를 구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 작전을 하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지금 베란다가 있는 2층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기들이 다치고 어쩌고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그 애들을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들의 후손을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해야 할 때가 다 지났기 때문에 이번에 이 건물을 짓고는 선생님의 집을 좀 지어야겠습니다. 그걸 보면 이제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 나왔기 때문에 아무리 핍박받더라도 망하지 않고 남아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런 전통적인 사상을 지녀서, 여러분의 필생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게 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아요.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큰 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결코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사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는 이제 4월부터 힘차게 총진군하여야 되겠습니다. 4월은 언제나 사건이 많았던 달입니다. 우리는 사위기대의 4수를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4월부터 6월까지는 언제나 사건의 달입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4수로부터 6수를 거치는 과정에서는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취하는 공세는 선의 공세입니다. 그렇지요? 「예」 빼앗기 위한 공세가 아니고 주기 위한 공세입니다. 이것은 웃으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어차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숨어 있다가 기습하는 것이 아니고 드러내서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기습하는 것이 아니고 나팔을 불면서 깃발을 들고 나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전법이 최고의 전법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 전법을 써서 이기는 날에는 우리를 점령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점령할 자가 없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제 돌아가게 되면 더욱 열심히 생활해야 되겠고, 여러분의 움직임이 달라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각 가정들은 단결하여 서로 모범을 보이려고 경쟁적으로 노력하는 동시에, 상급 가정을 철저히 시봉해야 합니다. 상급 가정은 하급 가정을 비판할 수 있으나, 하급 가정은 상급 가정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가정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36가정은 상급 가정이라고 해서 `좋구나' 하면서 예법에 어긋나고 위신과 체면이 손상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서울 시내에 있으면서도 선생님을 방문하는 데 3일이 넘으면 안 됩니다. 36가정이 도의 지구장이면 그 도의 72가정, 124가정은 모든 것을 지구장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거기서 36가정은 부모를 대신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협회 총회에서 결의한 것을 어겼을 때는 용서받을 길이 있어도, 가정회의에서 딱 결정지어 놓은 것을 어기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통일 종족을 중심삼은 가정교회입니다. 앞으로 교회는 우리집을 중심삼은 교회이고, 그 나라도 우리 집을 중심삼은 나라이어야 합니다.
36가정의 중심은 아담 가정이나 노아 가정이 아니고 야곱 가정입니다.
뜻에 대한 가정적인 내적 환경을 정비해야 합니다. 전도를 할 때도 혼자 하지 말고 언제든지 자기 아내와 같이 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아들딸도 거기에 가담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일상생활은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을 구현합니다. 즉, 아침에 서로의 일을 위해 헤어질 때도 기쁨으로 헤어지고, 저녁 때에 다시 만날 때도 기쁨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 돌아와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이야기하고 의논하여 잘못된 것은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 전체를 사랑으로 연결시키고 웃음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뜻에 대하여 얘기하되, 이 이상은 밖에다 이야기하지 말고 비밀로 하자고 한 것은 영원히 비밀로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부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이 `우리 아빠 좋아! 우리 엄마 좋아! 엄마와 아빠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니 참 좋아' 라고 하며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자식들의 안식의 보금자리입니다. 다른 어느 곳을 영원히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영원한 기쁨의 터전이 되고, 자랑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그런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에서 싸움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자기가 활동하는 배후에는 언제나 삼위기대가 협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협조하고, 아내가 협조하고, 자식이 협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승리는 결정적입니다. 이러한 자신을 가지고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안팎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교회 운영 면에서, 여자는 사업 분야에서 서로서로 뜻이라는 목표 아래 하나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기 바랍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혼자 생활하더라도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기도는 호흡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영적으로 상당히 밝아집니다. 또한 상당히 예민해지고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기도에는 희생이 개재되는 것이요, 정성이 개재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10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가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자기 시간의 3분의 1은 가정과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 활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하루에 2시간 24분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3분의 2는 새벽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버님, 현재의 시점에 있는 저희들은 가야 할 노정을 앞에 놓고, 또한 세계 선교를 앞에 놓고, 몸부림치며 가야 할 이 운명길을 피할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연약한 모습이옵고, 외로운 모습이옵니다. 저희들은 이 땅 위의 슬픈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사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요하옵고, 또 아버지로 말미암은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바라지 않을 수 없사오며, 당신이 소원하시는 행복의 나라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와 함께하시어서 그리던 그 마음을 저희에게 전달하옵시고, 당신이 소원하시고 간구하고 찾고 싶었던 간곡한 내용을 저희로 하여금 당신과 더불어 인연맺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 이 자리에 저희들이 모인 것은 그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님의 인연을 따라 모였사오며, 아버님이 저희에게 부여해 주시는 사명과 책임을 받기 위해 모였사옵니다. 아버지의 높고 귀하신 거룩함이 저희들을 옹위하시옵고, 이 환경을 완전히 아버님의 분부권 내로 품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하심에 저희들이 반사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자체라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을 불렀사옵고, 수많은 자녀들이 한서린 복귀의 도상을 간다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아버님께서 바라셨던 승리의 결과를 거두지 못했사옵고, 복귀의 도상에 있어서 감사할 수 있는 노정을 남기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를 부르며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이 복귀도상에 섰사옵니다. 하오니 아버님만을 위해 수고하고, 아버님만 의지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전후 좌우의 관계를 맺고 종횡의 인연을 복귀해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필연적인 노정이 저희들이 가야 할 운명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는 외로움이 가중될 때마다 슬픔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서 탄식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불러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인연맺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와 더욱 두터운 인연을 맺어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저희의 노정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 더더욱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흠모하면서 이 자리에 나온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다하여 자기 자신이 몰입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를 흠모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들 앞에 찾아오셔서 분부하시고 위로하실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자신의 모든 부족한 모습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합당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있거든 다시 한번 스스로 비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일치되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미래의 싸움터를 향하여 달려갈 줄 알고, 아버지께서 소망을 갖고 분부하실 수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사옵니까? 이곳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의 은사를 바라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들 위에 천배 만배 복을 베푸시어서 최후의 한날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을 조국이라고, 소망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는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을 중심 삼고 이제 아시아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명과 책임을 하여야 할 시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또한 4월을 중심삼고 생사의 결판을 짓는 싸움이 지금 일본 식구들을 통하여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친히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무리들이옵니다.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한국을 위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그들은 발벗고 나섰사옵니다. 벌거숭이의 몸을 가지고 원수의 진영을 향하여 진군하는 그 무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이 소원함은 그들만의 소원이 아니옵니다. 아버님께서 인류와 더불어 남긴 소원의 그 뜻을 품고 가는 불쌍한 무리들이기에, 그 자리에는 아버님이 기필코 같이하실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그 자리를 통하여 세계적인 새로운 형태의 한 깃발을 들고 나서기를 간절히 바라오니, 아버지의 뜻하신 소원이 그들이 움직이는 환경의 배후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한국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맡기신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이 민족이 되어서 각자의 책임을 담당할 수 있고, 참부모의 인연을 이어 받을수 있는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 나아가 수많은 민족 앞에 그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고, 아버님께서 소원하시는 그 자세를 갖추어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버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내일은 부모의 날이옵니다. 일본에 있는 몇몇 식구가 오늘 여기에 올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고 가는 모든 사연을 통하여 저희들이 아버님을 자랑하고 아버님과의 인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4월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당신의 보호하심과 당신의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기간 동안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결과만을 남기게 하여 주옵고, 저희들이 이 짧은 기간을 통하여 아버님 앞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친히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인간들의 생활 가운데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를 위해서 가는 길이 있고, 혹은 가정을 위해서 가는 길, 나라를 위해서 가는 길,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가기를 바라고, 자기편을 위해서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과정을 회고해 볼 때, 남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하나님편에 남아진 이도 있을 것이며, 또 원수편에 남아진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자기편을 위해 가기보다는 먼저 원수편을 위해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종착점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원수가 영원한 원수로 남아지는 한 그 종교는 종교로서 가야할 최후의 길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길보다 민족이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이요, 국가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역사과정을 통하여 세계와 인류가 가려 했던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다 끝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지고 원수들이 가야 할 길까지도 다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야 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눅 23:34)" 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상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야곱을 통해서 얻어진 이름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싸움 노정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사인 것입니다. 승리를 못 했으면 하나님은 슬픈 것이요, 서러운 것입니다. 왜냐?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야곱 자신이 승리한 것은 물론이요, 예수님도 승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진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개인이 그런 입장을 거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가정도 그러한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서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도 그러한 길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이스라엘 국가를 지도하여야 할 통치자도 그런 운명길을 거쳐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하여 오신 대표적인 책임자이므로 이스라엘 개인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가 가야 할 운명길을 대신해서 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권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라는 한정된 이스라엘만을 치리할 수 있는 권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국가외의 권까지도 이스라엘권 입장에 세워야 했던 것이 예수가 가야 할 길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복귀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섭리를 추진시켜야 하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복귀의 도상을 걸어오는 데 하나님편의 사랑만을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의 사람이 어느 기준까지 형성되었을 때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원수세계에 있어서 그 기준에 해당하는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편을 중심삼은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는 원수의 세계까지도 승리의 권을 적용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종교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복귀의 도상을 걸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는 하늘편을 위해서 뜻을 펴 나오시지만, 그 목적한 결과는 하늘편만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원수편을 굴복시키고 그 원수편을 중심삼아서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못하고서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 가정의 아벨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벨을 불러 세우셨지만 아벨만을 중심삼고 가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벨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의 가야 할 길을 앞서 가서 가인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아벨 스스로가 가인 앞에 있어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아벨이 주체적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한계적인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책임을 완수한 입장에 서 있어야만 주체적인 중심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갈 길의 어느 한계점 즉, 개인이면 개인의 한계선까지 와서는 가정을 중심삼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 세계에 상충적인 입장에 있는 가인을 자기와 같은 입장에 끌어 올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과 하나되지 않으면 아벨이 가는 길이 막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는 것이요, 그 부모를 중심한 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행복한 가정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아벨 혼자만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아벨이 제아무리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가인을 대하지 않고는 부모 앞에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된 자리에서만이 부모를 맞을 수 있고, 부모가 복귀될 수 있는 것이며, 부모가 비로소 종착점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운명은 비단 아벨뿐만이 아니라, 노아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아를 중심삼고 볼 때, 노아는 백성을 중심삼고 노아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있었으며, 이 개인노정을 거쳐가기 위해서 120년 동안 수고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노아에게는 이 수고의 기반 위에 자기 가정을 끌어올려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내외가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입장에서 노아가 갔으면 외적인 입장에서는 그 가정이 가서, 개인과 가정이 하나되어 갔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만 가정 자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자신만이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브라함에 속한 자녀나 만물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애급으로 가든가 다른 어떠한 곳으로 가더라도 안팎이 하나되는 입장을 거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해야 할 운명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필연적인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즉 필연적인 운명으로 남아 있는 그 길은 어떠한 길이냐?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하늘편만을 향하여 가는 길이라면 간단히 끝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 갔다 해서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처음 출발했던 그 기점으로 되돌아와서 우리와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인도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원리에 나와 있는 대로 먼저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는 자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목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되돌아와서 실체기대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는 무엇이냐? 아벨 앞에 가인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가인은 누구냐? 원수의 자식입니다. 이 가인을 통하여서 역사적인 투쟁이 벌어져 나온 것이요, 가인을 통해서 악의 모체가 뿌리를 박은 것이요, 가인을 통하여서 지금까지 사망의 물결이 역사시대를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모든 악의 요건과 악의 편을 여기서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인 입장, 즉 하늘편에 선 사람이 반드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굴복하는 데에는 가인이 스스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벨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 굴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아벨이 몇십 배, 몇백 배의 완전히 굴복당할 수 있는 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탕자의 비유를 알 것입니다. 탕자가 자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비로소 부모를 회상하며 고향길을 찾아 나서게 될 때의 그 자리는, 부모 앞에 일체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따르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탕자를 대하는 장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원수와 같은 입장에 선 동생이요, 믿을 수 없는 동생이요, 가문의 명망을 손상시킨 동생이지만 부모 앞에 완전한 아들로서 효자의 이름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탕자인 동생을 맞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형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부모는 천년만년 자기의 위업을 기쁘게 상속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탕자의 비유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추앙하며 나가는 신앙길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안팎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을 거쳐가야 됩니다. 마음만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선한 편이지만 그 선한 편만으로는 자신의 목적을 결실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면서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몸이라는 것은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닦아 놓은 터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목적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자기가 목적하는 것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참을 대신해 나타난 통일교회가 아무리 아벨편이라 하더라도 아벨편만으로서 갈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가인편을 수습하고 가인편을 대신해서 갈 길을 개척해 주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 아벨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 앞에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도 있겠지만,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개인, 가정 또는 국가까지도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야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중의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중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원수를 대해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생명을 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원수는 불의의 습격, 혹은 계획적인 습격을 위해 언제나 준비된 장비를 갖추어 놓고 어느 시대에나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들을 위하여 도리어 구해줄 수 있는 하늘의 마음을 갖고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을 구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싸움에서 쫓기고, 몰리고, 밟히고, 희생당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반드시 거기에서 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을 적진이나 적국에 다시 보내 가지고 거기에서 그 편의 사람을 통해서 공작을 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기반을 하늘편으로 돌이킬 수 있는 역사를 하나님이 지금까지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소모가 있게 됩니다.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기가 지니고 나온 모든 것을 손해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가야 할 길은 손해보며 가는 길입니다.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하고 가는 길입니다. 악이 가야 할 길도 역시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하고 가야 합니다. 끝내는 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악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한다는 것입니다. 선의 세계에서도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이 지배하는 세계에 있어서도 자기의 모든 것을 스스로 탕진하는 것이요, 선이 극한점에 도달한, 이 선의 기준을 이루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모든 것을 지상에서 탕진해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악은 그러한 기점에서 끝을 보는 것이요, 선은 탕진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악은 스스로의 모든 것을 탕진하는 자리에서 끝을 보지만, 선은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 역사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어떠한 나라든지 새로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탕진하는 과정을 거쳐 나와야 됩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는 개체의 모든 소유는 물론이고 자기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이란 것은 반드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자리를 거쳐 가지고 전진된 자리를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해 나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가정을 향하여 출발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위해서 개인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고, 가정이 종족을 위해 출발하기 위해서는 종족을 위해서 그 가정이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이 민족을 위해, 민족이 국가를 위해, 국가가 세계를 위해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선의 나라로 가는 길이 막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갈 길은 일방적인 길이 아니라, 갔다가 되돌아와서 지금까지 내가 가는 도상에서 싸워 승리한 모든 여건을 적진에 들어가 재현시켜 가지고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 즉 참된 종교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처해 있는 현시점을 두고 볼 때, 우리 앞에는 기성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데 있어서는 좀 덜한 원수가 아니라 원수 중의 원수를 중심삼고 이것을 타개해 갈 수 있는 승리의 방안을 모색하지 않고는 종교로서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섭리적인 관점에서 본, 인간들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해서 간다거나 혹은 국가가 그 국가만을 위해서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령 통일교회 자체로서 그런 식으로 세계의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되돌아와서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목전에 다가오는 세계정세를 볼 때, 이것이 우리 뜻 앞에 말할 수 없이 접근되어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것으로써 우리가 행복해 할 것이 아니라, 이 정세가 우리 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여기에 가중된 책임이 우리에게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기성교회를 떼어버리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길입니다. 반드시 가인을 거느리고 가야 하는 것이 아벨이 가야 할 운명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인을 거느리는 데 있어서 가인을 부른다고 해서 가인이 그냥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아벨에게 갈수 있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벨은 가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재차 시련 과정을 거쳐야 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은 자기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서 희생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동시에 반대하는 가인의 책임까지 수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행하지 않고는 아벨로서 가야 할 운명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현재의 시점에서 국가가 영접할 수 있는 경지에 섰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가야 할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가기 전에 필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아벨교단 입장인 통일교가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기성교단을 반드시 수습해 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교회가 가야 할 길을 우리가 선두에 서서 제시하면서 하늘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하늘을 대신하여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제 2차적인 복귀도상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책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둘이 원수의 입장을 넘어서서 하나되고 서로 같은 방향으로 나서게 될 때 비로소 그 앞에 하나의 나라가 찾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요구하는 하나의 나라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나라가 완전히 형성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편을 중심삼은 아벨적 국가의 입장에서, 나라가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서 그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세계가 가야 할 본연의 나라를 다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이 뜻을 통하여 가는 운명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기 때문에 이들은 두 세계의 슬픔을 맛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두 세계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두 세계의 죽음길을 왕래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러한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아벨도 아들이요, 가인도 아들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인도 아들이요, 아벨도 아들이지만 아흔 아홉 마리의 양과 같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아벨보다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가인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목자와 같은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심정을 통하여 볼 때 아벨도 아들이요 가인도 아들이기 때문에, 그 어버이는 아벨의 죽음길도 대신 가주어야 되는 것이요, 가인의 죽음길도 대신해 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벨 대신 가 줄래야 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이요, 가인 대신 가 줄래야 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인간이 탕감의 내용을 제시해 놓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오는 수많은 아벨들은 가인을 대신해서 가지 않고는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것이요, 부모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제 1인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길뿐만 아니라 악한 세계 사람들의 길도 닦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요, 또한 역사가 그러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향을 전환시켜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60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를 맞이한 우리는 우리의 생활 태도를 새로이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고, 또는 아시아면 아시아에서 소망의 중심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기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세계를 대하여 자랑할 수 있는 깃발을 드높이고, 너희들은 우리를 반대한 원수라고 하면서 이 원수를 갚을 좋은 때가 왔다고 주장하며 종교의 길을 가는 사람은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가 가야 할 한 분야에 있어서 참된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가신 분입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통하여 맡겨진 책임을 완수함과 동시에 그러한 죽음길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양면적인 노정을 마련한 자리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고 하신 최후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이 가는 길이 자기만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 아니라 원수도 가야할 노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도 역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놓고 스스로 내심적으로 탕감조건을 제시한 자리에서 `다 이루었다' 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벨이 가야 할 길이 제물을 드리는 믿음의 기대가 세워졌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굴복시키는 데에는 힘을 가지고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벨을 찾아 나오던 부모의 그 심정을 아벨이 지녀 가지고 가인 앞에 통과시키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아벨을 길러 왔듯이 아벨은 가인 앞에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서, 전적으로 가인을 위하는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가인을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누구를 중심삼고 복귀해야 하느냐? 여기에는 아벨밖에 없습니다. 아담은 타락의 장본인이요, 가인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자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아벨을 통해서 복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벨이 부모를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아벨 자신만의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타락한 부모를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을 대신하여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이가 아벨이요, 그 천사장 입장에 있는 이가 가인이기 때문에,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 사랑은 사탄세계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야만 새로운 생명의 기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의 출발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사망의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새로운 천적인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을 통해야만 비로소 인간의 사랑 이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재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두 사람 사이에 거하게 되고, 여기에서 비로소 원리적인 입장의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결정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수수작용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만이 새로운 것을 재창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기뻐하고 전적으로 지지할 수 있어야만, 타락의 장본인인 해와가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복귀해 나오는 섭리관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꼭 그와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안식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아벨적인 교단으로서 가인적인 교단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강제가 아닌 순리로서, 어떤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천적인 사랑으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사랑하듯이, 가인 앞에 선 아벨도 하나님 대신 사랑을 가지고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가인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가인 아벨과 같은 형제의 입장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아들을 중심삼고 볼 때, 요셉과 열 한 형제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운명이라는 것은, 아벨은 필시 흥하고 가인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섭리적인 내용을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가인을 궁지에 몰아넣느냐? 그것은 가인이 궁지에 빠지지 않고는 자기를 구해 줄 수 있는 제 1인자, 또는 상대세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이 망하는 입장으로 몰리지 않고는 구함받고자 하는 소망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가인을 궁지에 몰아넣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혜를 가졌던 교회가 있다면 반드시 그 은혜를 완전히 상실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또 교역자를 중심삼고 단결했으나 아벨이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면, 반드시 거기에 새로운 중심을 중심삼고 이탈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기성교회가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교회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정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섭리역사과정에서 생명시해 왔던 사탄세계의 모든 것이 전부 끊어져 나가고 해이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를 지탱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탄세계의 가정제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와 부부, 그리고 자녀라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는 어떤 역사도 인륜과 도덕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이것을 옹호해 나왔지만 끝날이 되면 이것이 전부다 깨지고 말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사조가 오늘의 이 세계를 한 번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세계에 그러한 실상이 벌어질 때, 아벨적인 새로운 세계가 찾아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원수까지도 구해 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이놈의 세상 망해 버려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아벨을 맞이할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섭리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가난뱅이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라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고, 가정도 부모도 친척도 다 버리고 혈혈단신 외로운 신세로 여기에 나타나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자기식으로 요구하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움직이던 것과 같은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체를 그 앞에 위탁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인 것입니다.
오늘날 섭리의 내용을 볼 때, 한국은 지금까지 비참하게 나왔습니다. 역사과정을 통해서 그런 비참한 길을 걸어나왔지만 그 비참한 과정이 후에 기쁜 것으로써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비참한 역사과정을 지내오면서도 우리나라에 반드시 소망의 한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소망을 갖고 역사과정을 지탱해 나온 민족이 남아 있을 때 그 민족은 필연적으로 세계적인 새로운 운세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민족에게 아벨적인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와 기성교회, 종교와 한국, 또는 한국과 세계, 종교와 세계를 놓고 볼 때 이때가 필시 끝날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벨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기운이 기진맥진한 상태요,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지도하는 입장에 있고, 민주세계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미국을 볼 때, 미국이 그 사회나 세계의 국가에게 앞날의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느냐? 세계적인 희망은 커녕 자기 일개국에도 희망을 줄 수 없는 시점에 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담벽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개인으로서도 안 되는 것이요, 어떠한 사회, 어떠한 국가의 힘을 가지고도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새로운 아벨적인 세계관입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가정,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입장에 있는 세계 역사는 필연적으로 아벨적인 중심을 찾아서 하나되어야 할 운명길, 즉 경계선에 도달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를 해 나오셨기에 자연적으로 굴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경계선에 접근해 들어가는 현재의 시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우리들은 이때야말로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우리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개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다 갔다 하더라도 그 개인은 다시 아벨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리고 가인의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합니다. 아벨적인 가정의 입장에서 그 가정만으로 가야할 길을 다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반드시 가인적인 가정을 수습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원리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전통적인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홀로 가는 길, 그 길은 개인만을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야 할 길은 개인을 위해 가는 길인 동시에 가정을 위해 가는 길이요,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판도와 그 국가의 형태를 중심삼고 국가권내의 하나의 민족, 민족권내의 하나의 종족, 종족권내의 하나의 가정을 세운 후 이것을 평면적으로 펼쳐서 개인, 가정, 종족, 더 나아가 천주에까지 연결시켜야 됩니다. 개인의 목적도 이것이요, 가정의 목적도 이것이요, 민족 국가 전체의 목적도 이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환경권만 갖추었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고 세계사적인 승리의 국가, 승리의 세계를 창건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주체가 잘났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벨이 대해야 할 제 1상대는 누구냐? 부모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인가? 부모가 아니라 가인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선생님이 부모의 입장이라면, 통일교회 식구들이 대해야 할 제 1상대가 누구냐? 선생님이 아닙니다. 먼저 형제끼리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믿음의 자녀를 세워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가 무엇이냐? 원수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우상장사 데라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온 것과 같이, 우리도 원수의 아들을 빼앗아 와서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강제가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감동시켜서 빼앗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길이 이 이상 없습니다. 원수의 아들을 자기의 종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박대통령이 경제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경제만 가지고는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지을 수 없습니다. 밀려오는 세계적인 정세 앞에 물질적인 문제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는 세계를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이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물질을 통합한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 또는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문예부흥을 기점으로 인본주의가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추방하는 역사가 지금까지 엮어져 내려 왔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이 죽었다는 결론을 지어 하나님을 추방하였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재발굴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가 하지 않더라도 세계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올 때에 아벨의 세계, 아벨의 국가 시대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가지 한국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싸워 나왔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성교회의 비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아벨적인 교단으로서 가인적인 기성교회를 어떻게 포섭하느냐 하는 문제만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날에는 이 민족이 가야 할 방안을 제시하여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한 국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남한 자체가 아벨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벨 국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인 국가를 구해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북이 갈라진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가인적인 국가가 일본이나 소련이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되었다면 가인 복귀는 불가능합니다.
같은 동족으로서 같은 역사의 뿌리를 가진 민족 기반 위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가인을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가인을 복귀하는 데에는 지금 이 나라가 처해 있는 상태가 가장 좋은 여건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북한이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아벨적인 국가형태를 갖추어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온 세계 국가를 대표한 주체적 국가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벨적인 국가는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가인 국가를 포섭하는 길을 가야됩니다. 가인 국가를 포섭하는 데에 있어서는 한 나라만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세 나라를 포섭해야 됩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렇게 세 나라를 포섭하는 날에는 세계의 모든 국가는 자동적으로 굴복해 들어오게 됩니다. 이 길은 우리 통일교회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통일교회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우리 통일교회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 원수가 문제입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 넘겼던 열 한 형제가 7년 동안 흉년을 당해서 곡식을 사러 애급에 왔을 때, 열 한 형제를 맞은 요셉이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이제 원한을 갚을 때가 왔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부모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내가 객지에서 아무리 출세를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부모를 모시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내 형제들이 아니겠느냐'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바로 그런 입장입니다. 통일교회가 요셉처럼 외지에 나와서 기반을 닦았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열 한 형제와 같은 입장에서 그래도 지금까지 세계의 국가를 대하여 책임지고 있는 것은 기성교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이 기성교회가 반드시 우리 앞에 머리 숙일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기성교회에는 흉년이 닥쳐 올 것이며, 그들은 점점 벌거벗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은혜가 한계에 달하여 모든 것이 분열되고, 서로의 의견이 구구한 그런 환경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창고 문을 열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넘겨 줄 수 있는 아량을 지니지 않고는 아벨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고, 요셉으로서의 하늘 가는 길을 갈 수 없으며, 소망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운명길이 필시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70년대 이후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안팎으로 모든 면에서 부흥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물질이 풍요해졌다고 해서 그 물질을 통일교회를 위해서 쓰는 지도자는 참지도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 식구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통일교회 식구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이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을 통일교회 발전을 위해 쓰기보다는 기성교회 발전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게 쓸 때에는 우리 것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쓰지 않으면 우리가 갖고 있는 것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자기 자체의 종교도 잃어버리는 것이요, 자기 자체의 국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선생님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는 여러분을 위해서 수고해 왔습니다. 이제는 어느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내가 책임을 안 지더라도 여러분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적진을 향하여 나오는 때였습니다. 싸우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휴전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때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선생님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이므로 그 사명을 여러분이 인계받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들이 아벨로 등장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기반을 닦기 위하여 내가 아벨적인 입장에서 탕감해 나오는 소모전을 해 나왔습니다. 이 소모전에서 내가 비로소 아벨적인 입장에서 승리적 기반 위에 섰다고 할진대,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아벨 입장의 계대를 이어받아 기성교회를 굴복시키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의 한을 가인 아벨이 풀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한을 풀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할 필연적인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갖게 될 때, 그것을 우리를 위해 써 가지고는 세계를 빨리 복귀할 수 없습니다. 우리만을 위하는 입장에서 일했을 때는 돌아와서 다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가인을 위해서 일한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하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 앞에 있어서 제 2의 가인 입장입니다. 제 1의 가인은 기성교회입니다.
예수님 당시를 두고 보면, 예수님은 새로운 기독교를 책임지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유대교는 가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굴복시켜서 하나로 만들어 끌고 가야 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되면 새로운 것을 가지고 인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세계, 즉 새로운 기독교가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를 놓고 볼 때, 기성교회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와 같은 입장이며,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세우려 했던 새로운 종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 홀로 고립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으로 고립되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단을 아벨적인 교단으로 올려 놓은 이 입장에서는 기성교단을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내외 안팎의 관계에 있습니다. 외적인 입장에 있는 기성교인들이 목적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을 중심삼고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의식주와 같은 외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조금만 잘하면 됩니다. 좋은 것이 있을 때 자기가 가지겠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수의 세계에 들어가서 종의 자리에 처하게 되더라도 주인으로부터 신용을 얻고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 있을 때 자기는 먹지 않더라도 원수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겉으로는 싫어하고 책망할지라도 내심으로는 감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은 내가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다' 라고 하면서 신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이 생기면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서 주어야 하고, 좋은 옷이 있으면 가인을 먼저 입혀야 합니다. 또 좋은 곳을 갈 수 있을 때도 가인을 위해서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작전을 하면 가인을 굴복시키는 문제는 간단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킨 작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야곱은 먹고 입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에서 앞에 바치면서 `이 모든 것은 형님 것입니다. 내가 수십년 동안 수난의 역경 가운데에서 투쟁하여 얻은 모든 재산은 형님을 위한 것입니다. 종이든, 양떼든, 혹은 자녀든, 무엇이든 다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원수 입장의 관계를 청산해 버리고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동생으로 맞아 주십시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형님 뿐만 아니라 누나까지라도 찾아지는 것입니다. 형님을 찾게 되니 형님의 가정도 찾는 것이요, 형님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도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이삭을 중심삼은 이삭 가정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작전을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래도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수난과 역경의 길을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 세계적인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인들은 역사적인 공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독교가 한때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그것을 탕감짓기 위해 채찍을 가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이를 품어 가지고 하나님이 소망하고 기대 하셨던 그 기준을 재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기성교회와 하나되어야 하고, 다음에는 대한민국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이 기독교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사상으로 무장하고 단결하는 날에는 북한은 문제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안팎으로 정비한 후에는 북한 김일성과 말로써 싸워야 됩니다. 터놓고 결판지을 문제가 마지막 판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손을 안 잡을래야 안 잡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정세가 그렇게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그때까지 이 세계에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국가가 비로소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주체적인 국가의 형태를 갖춘 아벨 국가 즉,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가야할 길을 확실히 알고 이중의 십자가를 져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고, 개척생활을 해 나왔지만 그 길이 또한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가서 모든 것을 갖추고 닦아 놓아야 합니다. 야곱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를 위해서 했다고 할 수 있는 그 결과를 어떻게 남겨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세계와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관점에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내에 있는 기독교가 우리를 반대하는 것을 감사해야 하고, 이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동족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할 수 있는 권내에 있기 때문에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1970년도에 있어서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특별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특별기도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하늘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성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렇게 기성교회, 남한 북한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권한을 통일교회가 갖고 움직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포위작전을 해야 합니다. 삼국을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을 보면 남북이 맞서 있는데 내적으로 보면, 통일교회가 중심삼고 나가는 기준과 북한이 지금 들고 나오는 것이 딱 맞서 있다는 것입니다. 소련, 중공, 북한을 놓고 볼 때, 한국은 혼자 고립되어 있습니다. 복귀는 아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아담에서 해와, 해와에서 천사장 이렇게 연결시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아담 국가이고, 일본은 해와 국가이고, 중국은 천사장 국가입니다. 이것을 볼 때, 아시아인끼리 복귀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것이 서구인을 가담시키는 것보다 복귀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참부모를 부르고 있듯이 사탄세계인 북한에서도 역시 김일성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상대적인 관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소련이 근거가 되어 가지고 중공을 거쳐서 북한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늘편은 한국을 근거로 해서 일본과 자유중국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시아의 연결점을 만들게 되면 공산주의는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원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주권자가 세 번만 바꿔지는 날에는 우리 뜻앞에 좋은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비단 한국만을 위하는 길이 아닙니다. 북한을 거쳐 가지고 세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책임을 담당해야 할 우리 일신이기 때문에 고달프지 않을 수 없고, 바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중의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알고,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모든 고난과 역경을 달갑게 받아들여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하여 책임지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생활노정에서 자기의 역량을 키워 나가며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서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1970년대를 맞이하여 공고한 기반을 닦기 위해 정성을 다하여 이 고통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낙오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이면 좋은 줄만 알았지 가기에 해당하는 만큼 십자가가 지워진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잊어버리며 살아 왔습니다.
아버지, 하오나 이제 저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이래서 다른 것이요, 아버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며, 역사를 짊어질 수 있는 것도 이렇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사탄세계가 극한점에 도달한 것을 바라볼 때, 제 2의 출발을 모색하기 위한 아버님의 사랑이 역사과정과 더불어 지금 이때에 깊이 등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은 1970년대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맞이하는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부모의 날을 축하하는 이 식전에 세 나라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아버지 앞에 행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번 행사가 이 시대에 있어서 큰 의의가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이번 행사가 세계의 사탄들도 축하하는 이 날이 됨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온세계 앞에 자리를 잡는 데 있어서 공고한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을 앞에 놓고 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아벨의 길을 가야 되겠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아벨의 노정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길을 다 갈 때까지는 바쁘고 또 바쁘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먹을래야 먹을 시간이 없고, 잘래야 잘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저희들의 행로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뿐만이 아니라 가인 세계까지 구해 가지고 아버님 앞에 돌아가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비로소 저희를 보고 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저희들이 되고, 아버지의 분함을 탕감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노력하고 정성을 다 들이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것에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아버님, 이날을 찾아오시기까지의 아버지의 수고를 생각해 볼 때, 이 땅 위의 만민들이나 이 뜻을 아는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무어라 아뢸 말씀이 없나이다.
아버님이여,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날을 맞을 때까지 참으시면서 섭리역사를 계승시켜 나오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희생당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숱한 핍박의 노정을 통하여 피 뿌리는 역사의 인연을 연결시켜 나오신 아버지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기독교가 세계의 인류를 복귀해야 할 내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오늘날 저희들이 감당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런 각오와 결의를 가지고, 역사과정에 나타난 부모의 날을 찬양하기 위해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위에 사랑의 손길을 펴시사, 당신의 깊고 높고 거룩하심을 나타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운명은 물론이요, 세계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들로 하여금 최후의 싸움터를 담당하게 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개가를 돌려드리는 뭇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동안 역사과정에 슬픈 일들이 많았사오나 오늘 이와 같은 한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희망에 찬 새해, 이 70년도에는 천적인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고, 준비를 다하여 갖추어진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께서 저희들을 내세워 칭찬하고 자랑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모의 날을 설정하시기 전에 수많은 자녀들을 이끌어 축복하시어 하늘의 종족을 편성할 인연을 세계적으로 맺어 놓으신 아버님의 그 은공에 감사드립니다.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하게 허락해 주시옵고, 이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옵소서. 저희로 하여금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도 남음이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과 몸을 거룩히 성별하시옵고, 이들이 아버지 앞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이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위시하여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사, 이날에 당신의 특별한 긍휼의 손길과 은사를 아울러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부족한 저희들이 부족한 정성을 모아 부복하였사오니 거룩히 여겨 주시어서 당신 앞에 축하드리는 합당한 조건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광과 소망으로서 품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더욱이 가정들로 규합된 오늘 이 모임이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70년대에는 60년대와는 다른 가정의 모습들이 되어서 축하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당신이 친히 주장하시옵소서. 경륜하시는 뜻만이 여기에 나타나 움직이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 11회 부모의 날입니다. 그간 여러 차례 이러한 기념식을 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부모의 날을 60년도에는 우리가 그냥 축하하는 날로 흘려 보냈지만, 새로운 이 70년도를 출발한 이 마당에서는 새로이 맞는 부모의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섭리도상에서 하나님은 부모의 날을 소원하며 나오셨지만, 그날이 찾아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나타나서 비로소 이 부모의 날을 설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이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도 설정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60년 이 부모의 날을 설정하기까지만 해도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만물세계가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 슬픔의 역사를 더듬어 온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노아 시대를 거치고, 아브라함, 모세 시대를 거쳐 예수님 때까지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이 부모의 날을 복귀하기 위해서 싸워 나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서 그 시대시대를 따라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에 이르는 선민권을 이루어 나오시면서, 그 선민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를 엮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 4천년 역사는 예수님 한 분을 세우시기 위한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 시대의 만민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과 본연의 부모가 연결되는 데 있어서 그냥 연결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서 예수님이 원하는 국가, 예수님이 원하는 민족, 예수님이 원하는 종족, 예수님이 원하는 가정, 예수님이 원하는 참다운 개인으로서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통해서 준비한 기반 위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개인이 서기 위해서는 가정이 옹호해 주어야 되고,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이 옹호해 주어야 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옹호해 주어야 되며, 민족이 서기 위해서는 국가가 옹호해 주어야 되고, 국가가 서기 위해서는 세계가 옹호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런 가중된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할 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서기 위해서는 요셉 가정이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요셉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요셉 종족이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것이요, 요셉의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하나되어 울타리가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 모든 전체가 단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내적으로 외적으로 통합된 기반 위에서 예수님이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울타리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슬픈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어야 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픔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예수님 한분을 보내시기 위해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하나의 가정을 세우셨는데, 그 세워진 가정이 예수님을 옹호할 울타리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가정을 세워 놓으신 것은 단 한분 예수님을 보호하게 하기 위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예수님과 분열된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홀로 고난길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4천년 동안 소망을 품고 나오신 하나님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연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러한 소망의 입장 가운데 세워진 요셉 가정이었으나 그 가정은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은 이스라엘 민족의 4천년 역사의 터 위에 준비되어 그 민족을 대신하는 입장에 세워진 가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친척을 하늘편으로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 친척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통해 예수님, 즉 메시아가 올 것을 미리 알려 주고 준비시킨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중심삼고 요셉 가정은 종족을 흡수하여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하지 못함으로 그 종족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민족적인 환난과 국가적인 환난을 당하게 되었고, 가정도 잃어버리고, 종족도 잃어버리고, 민족도 잃어버리고, 국가도 잃어버린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와서 해야 했던 목적을 전부다 뒤로 미루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사정을 우리들은 이 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던가? 부모의 날을 책정하고, 자녀의 날을 책정하고, 만물의 날을 책정하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한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부받은 사명과 책임을 어떻게 완수하느냐 하는 고심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갈보리 산상까지 나아가는 그 행로는 더할 수 없이 비참하고 절망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을 남겨 주기 위해 `내가 다시 올것이니 너희들은 그날을 기다리라' 하셨으며 또한 `다시 올 때는 신랑의 자격을 갖추어 올 것이니, 너희는 그날을 맞기 위해 신부 단장을 하고 그때를 기다리라' 는 약속을 남기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가시면서 남긴 최후의 유언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유언을 따라 나온 기독교는 비참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제 1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 앞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제 2이스라엘의 입장에 선 기독교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세계를 책임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축복으로 이어져야 할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기독교는 가는 곳곳마다 순교의 피를 연결시켜 가지고 세계적인 발전을 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지니고 있는 내적인 사명, 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독교가 갖추어야 할 단 하나의 문제가 무엇이냐? 신부 단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세계가 신부 단장을 해야 되지만, 어떤 특정한 국가와 특정한 민족과 특정한 가정과 특정한 개인이 오시는 신랑 앞에 신부 단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해 기독교가 해야 할 사명이요, 땅위에서 갖추어야 할 준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그 누구도 모르는 슬픔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끝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주가 오시는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기독교를 믿는 어떤 특정한 나라와 특정한 단체를 세워 신부 단장의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이 제 3이스라엘권을 차지하기 위해 무엇을 상속받아야 하느냐? 외적인 기독교의 전통을 상속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기독교의 전통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인 기독교의 전통이란 어떤 것이냐?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추방당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내면의 심정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없으면 한국은 제 3이스라엘권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국 기독교를 중심삼고 구원섭리의 손길을 펴신 그날부터 이 민족으로 하여금 기독교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외적인 전통을 발전시켜 나오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내적인 전통을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단체를 세워서 내적인 준비를 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김성도 여인을 중심으로 한 철산 새주파, 허호빈 여인을 중심으로 한 복중교회파와 이용도 목사 등을 세우셨습니다. 해방을 맞이한 1945년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님의 재림의 한 때를 맞기 위하여 예비해 왔던 것입니다. 그날을 위하여 준비한 단체나 개인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들은 역사를 지내고 난 지금에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누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최종적인 사명을 책임질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역사적인 환경이었습니다. 그런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수많은 신령한 사람들은 오로지 기독교의 내적 책임을 지기 위해 만민으로부터 핍박과 반박을 받아가면서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회상해 볼 때, 그때 그렇게 싸웠던 장본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특정한 목사 계급에서 장로 계급을 통하여 평신도 계급에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때에 책임을 짊어진 특정한 목사들은 외적인 기독교와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신령한 역사와 외적인 기독교가 하나되었더라면 거기서부터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천적인 노정이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외적인 기독교나 내적으로 책임을 짊어지고 있던 중심 목사들이 전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깨닫지 못하고, 그 시대에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시대의 환경으로부터 오해와 질시를 받게 되자 자기의 사명을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책임을 수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들 대신 장로급, 혹은 집사급으로 그 책임이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 서러움을 회상해 볼 때, 지금은 평신도들이 하나님을 모셔야 할 시대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를 중심삼은 한 중심이 전체를 통합하여 전체를 통솔할 수 있을 시대상에서 점차적으로 평면적인 형태를 갖춘 입장으로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외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전체주의 국가 형태에서부터 민주주의 국가 형태로 이어진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개개인을 위주한 신앙을 강조하는 시대권내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외적인 세계의 개인 중심삼은 세계관과 기독교에서의 개인 중심삼은 천국관을 서로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고,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수습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전체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재림주님이요, 그것이 재림주님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현시대를 보면, 내적인 것이나 외적인 것이나 모든 국가나 모든 민족이나 모든 종족이나 모든 가정을 전부다 분산시키는, 개인을 위주로 한 시대입니다. 또한 외적인 생활이나 내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자기 개인을 위주로 해 가지고 자기 생명의 명맥을 유지해 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민주주의나 기성교회는 이러한 시대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신앙관을 중심삼고 후대에 남아질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또 그런 무리는 어떤 무리냐? 개인의 입장에서 새로운 가정관을 가진 사람이요,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한 그런 입장에서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를 세우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반해서 외적인 세계에는 개인을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를 대표해서 그런 내용을 가지고 왔던 사람들은 전부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이 내적인 책임을 짊어진 기독교권내에 선 개개인 가운데에서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천국관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며, 그런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이 지상에 벌어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지금은 어떤 때이냐? 우리 통일교회의 개인적인 신앙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완성기준에 선 개인을 대하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완성하고, 종족을 완성하고, 민족을 완성하고, 국가를 완성하고,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 여러분이 따르고 있는 통일교회의 진리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통일교회의 진리는 약 20년의 통일교회 역사 가운데서, 1960년에서 1970년까지의 싸움의 노정으로 말미암아 밝혀진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전부터,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창건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창조이상 가운데 있던 진리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이상까지도 내포한 역사적인 인연을 지니고 있는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발족은 됐지만, 그 이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첫 깃발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날이 있었느냐? 있었다면 그날이 어떤 날이냐? 어떤 날이었느냐 하면 `부모의 날' 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날이 이 땅 위에 나타났지만, 이날은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한 단계를 넘어야 할 간접주관권내에 있는 부모의 날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정성기 완성급에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설정하는 데도 장성권을 넘어선 완성권내에서 설정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그 자리, 장성기 완성급의 자리에서 설정한 것입니다. 그날이 1960년에 설정한 부모의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7년노정을 거쳐왔습니다. 그 7년노정 기간 중에 자녀의 날을 설정했고, 만물의 날을 설정하였습니다. 또한 그 7년노정이 끝나고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하여 알다시피,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을 받아 부모가 되는 그날에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 자녀의 날이 결정되어 출발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 모든 날들이 그 한날로 귀결되었을 것인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7년노정이라는 기간을 두고 이것을 복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 자체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의 슬픔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968년, 하나님의 날을 설정한 그날부터 우리 통일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2차 7년노정이 출발된 것입니다. 이 1970년도는 제 2차 7년노정에 접어들어 3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제는 부모가 책임해야 할 시대가 지난 것입니다. 이 3년 기간을 중심삼고 자녀들이 책임해야 할 횡적인 터전을 공고히 해 가지고 제 3차 3년노정을 통하여 완전한 결정권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 1차 3년노정 기간에는 참부모를 중심삼고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설정하여 세계적인 횡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제 2차 3년노정을 출발하는 가정들에게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완전한 횡적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책임과 사명을 완결짓는 데까지는 거리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한없이 슬픈 사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로서 세운 부모의 날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로서 세운 부모의 날, 즉 자기의 종족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을 가져야 합니다. 또 자기 종족을 중심삼은 자녀의 날을 가져야 되고, 자기 종족을 중심삼은 만물의 날, 자기 종족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축복가정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어떤 길이었느냐 하면,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에서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을 청산짓는 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생급, 장성급, 완성급을 거쳐 나가는 복귀섭리의 과정에서 그 기간 동안에는 완성급을 거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사탄이 주관하는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완전히 사탄권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권내에서 부모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복귀된 자녀의 명분을 세운 후에 다시 개척의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를 대신하여 참소받아야 할 조건들이 심어져 있는 것이요, 현재를 대표해서 참소받아야 할 조건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들을 탕감하더라도 투쟁의 역사를 거쳐 전진해 나가지 않으면 완성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을 위주로 하여 선생님의 가정이 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도상은 누구의 협조를 받아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누구든 협조해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인류의 부모인 아담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으로 오시는 분만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어떤 입장에 있어야 하느냐? 이스라엘 나라 앞의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대외적으로 충돌하여 들어오는 모든 사탄세력을 방비하는 대비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은 그런 책임을 다했느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기는 커녕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역사노정을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축복받은 가정들은 맡고 있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 2차 7년노정을 맞이하여 3년노정을 거쳐 가면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여 유대교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책임을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 당시의 유대교는 이스라엘 나라의 내적 종교였습니다. 이 내적 종교인 유대교는 오시는 메시아 앞에 이스라엘 나라를 일체화시키는 데 중보적인 역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유대교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그와 같은 입장에서 책임해야 할 종교가 통일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은 요셉 가정의 일족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는 요셉 가정의 일파를 중심삼고 이루어진 유대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요셉 가정과 그 일족과 유대교가 일치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제 1이스라엘권으로 세워 그 나라를 메시아가 통치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로 결정지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중간에서 책임지고 완수해야 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이 아니었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요셉 족속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이스라엘 권을 대표해야 할 유대교 대신 책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로부터 시련과 고통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도 대한민국과 기성교회로부터 시련과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되어서 제2차 7년노정을 넘어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출발부터 하나되지 못한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못한 입장에 섰던 것을 반성하고 이제 그런 시대를 끝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2차 7년노정 가운데 제3차 년도인 70년도의 부모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한 이 좌석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예수님 앞에 중보적인 책임을 해야 했던 유대교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 통일교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실을 다시 한번 회개하고 이제 70년대를 맞이해서는 가정적인 십자가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런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는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기 위해 싸워 나오는 기간이었습니다. 이제 1970년대를 맞이했습니다. 이때는 어떤 때냐? 이때는 가정들이 종족을 복귀하여 사람을 복귀하기 위한 하나의 완전한 기반을 닦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2차 7년노정의 3년째를 맞이한 이 70년대에는 우리가 그동안 책임을 다 했든 못 했든간에 하나님 앞에 국가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늘의 운세가 우리 앞에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이 70년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책임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과 통일교인들이 하나되어서 세계를 천운과 연결시킬 것인가? 이런 새로운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명을 고취시키고, 그 사명 앞에 가일층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입장에서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할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입장에서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탕감의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탄이 이날에 대해 핍박하고 조롱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 2차 7년노정의 3년째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축복가정들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삼고 철석같이 뭉쳐서 민족 복귀와 세계 복귀를 위하여 행군을 개시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가 이 70년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70년대를 앞에 놓고 볼 때, 이 70년도는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이 해는 제 2차 7년노정 중에서 3년노정을 넘어가는 해요, 7년노정에서 사람을 찾는 해, 즉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노정을 걸어 나왔던 자기 조상들과 자기의 혈족을 찾아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가정을 중심삼고는 조상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지고,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혈족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닦여지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될 수 있고, 또한 안팎이 갖추어진 환경의 터전을 맞을 수 있는 때가 70년도라는 것입니다.
이 70년도에는 사실상 이것을 연결하는 때입니다. 부모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고, 또 여러분의 자녀들과 부모님 가정의 자녀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로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70년도에 해야 할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7년노정이 연장되게 됩니다. 이 7년노정이 연장될 때 여러분은 7년에 3곱을 해서 21년 동안 가야 된다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우리 앞에 있어서 7년노정이 연장되게 된다면,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 이 국가, 이 세계 앞에 금후에 나타나게 될 그 비참상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같은 사명을 가진 우리 교단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이 민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70년도에 맞는 부모의 날에는 안팎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갖추지 못한 과거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각자가 갖추어진 새로운 부부의 모습으로서, 갖추어진 새로운 가정의 모습으로서 이스라엘권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개인적인 권이 아닌 가정적인 권을 중심삼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스스로 가정권을 갖추었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권을 갖추겠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인으로서 승리권을 추구하는 그 노정에서는 사탄이 얼마든지 참소할 수 있습니다. 타락의 결과적 존재인 인간이 개인적인 복귀과정에 있을 때에는 아직까지 가정적인 기준이 결정되지 않은 자리이기 때문에, 사탄은 만우주를 걸어 놓고 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잘못하면 개인이 참소받게 되고, 개인이 잘못한 것으로 말미암아 가정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 민족, 국가도 그렇게 걸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개인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개인을 세우기 위한 가정, 개인을 세우기 위한 종족, 개인을 세우기 위한 민족, 개인을 세우기 위한 국가, 개인을 세우기 위한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70년대에는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세우기 위한 때인 것입니다. 내적 가정이 외적 가정을 세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지어야 할 때가 70년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이 성립된 때는 개인을 중심한 시대가 아닙니다. 해와가 타락하게 된 것은 아담이 아닌 아담을 대신한 다른 상대자를 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정을 타락시키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오늘 우리들은 개인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하나의 내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외적 가정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외적 가정은 내적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완전히 결속시켜야 할 때가 제 2차 7년노정 중의 3년노정을 가는 지금 70년도입니다.
그러면 지나온 제 1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에는 무엇을 하였느냐? 36가정을 축복하였고 72가정과 124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36가정과 72가정을 축복한 것은 탕감복귀의 역사노정에서 종적인 입장을 중심삼고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또 124가정은 세계의 국가를 대신하여 찾은 것과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내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외적으로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발판이 안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발판을 닦아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이 발판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기준이 결정되더라도 외적인 기준이 내적인 기준과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주고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2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을 맞는 이 시대는 어떤 때냐? 여러분 자체들이 조상이 될 수 있는 기간이요, 여러분이 종족을 이룰 수 있는 기간입니다. 이미 축복받은 여러분의 일파를 중심삼고 천명을 따라 사탄권을 넘어설 수 있는 기간입니다. 70년도가 이렇게 중요한 시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는 꿈도 못 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개인적인 시련노정을 거쳐온 역사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내적인 문제는 책임지고 나왔지만 외적 환경에 있어서의 중심적 입장으로서는 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혼자서는 안팎을 갖춘 기준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의 약속을 남기고 가신 것입니다.
안팎을 갖추어야 할 그 책임을 완결하기 위하여 신랑으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신랑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가정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메시아가 가정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준비해 나오던 민족이 가담해야 하며, 종족이 가담해야 하며, 가정들이 가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수많은 국민이 그런 자리에 가담해야 할 입장이었던 것과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그런 역사가 출발했다면, 메시아의 사명을 책임진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앞에 이스라엘 국가와 같은 형태를 만들어 놓았느냐? 안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대교와 같은 교단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요셉 가정과 같은 가정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핍박을 받을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시대에는 2차적인 수난의 길이 철옹성같이 앞을 가로막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국가적으로 배척을 받았고, 교단적으로 배척을 받았고, 가정적으로 배척을 받았고, 친척으로부터 배척을 받았기 때문에 재림주님도 이 땅에 와서 그런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운명길을 거쳐온 것이 통일교회의 원통한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면서 외적인 세계로부터 핍박받는 도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가서 잃어버렸던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 가정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개인을 복귀완성하려면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복귀완성하려면 종족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종족을 복귀완성하려면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되며, 민족을 복귀완성하려면 국가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평면적인 도상에 하나로 연결시켜서 그와 일치시키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하기 위해 점차적인 단계를 거쳐 가지고 7년노정이라는 과정를 걸어 놓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60년대에 치열한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 개인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되고, 종족을 찾기 전에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찾기 전에 국가, 즉 나라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 가정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책임이 끝나게 되면 세계를 위한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며 닦아 놓은 터전은 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거치며 섭리를 이끌어 나오셔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를 중심삼고 2천년 역사를 이끌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땅 위에 어떠한 주권을 가진 이스라엘권을 형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없는 무리로서 떠도는 구름같이 발붙일 땅을 한치도 갖지 못한 채 눈물어린 역사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서럽고 억울한 나그네 신세와 같은 피치 못할 운명길을 거쳐오면서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개척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의 한이 무엇이냐? 땅 위에 자리를 못 잡은 것이 한입니다. 하나님의 한이 무엇이냐? 땅 위에 자리 못 잡은 것이 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내 한 개체가 이 땅에 자리를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개체가 땅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가정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종족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민족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국가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서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예수님은 무엇을 바라보았느냐? 요셉 가정을 넘어서서 이스라엘 나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가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시련과 고통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시련과 고통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의 기쁨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의 기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개인의 기쁨과 그 가정에서의 기쁨은 이스라엘 나라의 기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가 그를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라의 기쁨도 민족의 기쁨도 전부다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만민의 서러운 운명을 수습하여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시 찾기 위한 제 2차 전선을 향하여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승하여 제 3차 전선을 향하여 나아가며 이 세계를 수습하여 복귀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연두에 여러분에게 `승리적 통일전선' 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 개체를 놓고 세계성을 길러 주기 위해 한 말씀이었습니다. 즉, 광범위한 의미의 승리적 통일전선을 갖추어야 된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무엇이 승리적 통일전선이 되어야 하느냐?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종족, 종족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민족, 민족이 자리잡을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지도이념은 나라가 안식하기 전에 가정이 안식할 수 없고, 나라가 안식하기 전에 통일 종족이 안식할 수 없으며, 나라가 안식하기 전에 통일민족이 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서러움은 나라의 서러움과 직결됩니다. 우리 가정의 슬픔은 나라의 슬픔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은 외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의 부흥을 위해서 투쟁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내적인 정신문제를 들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분야가 결핍되게 되면 새로운 민족 정기를 이어받을 수 없고, 새로운 전통을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사명을 다하는 민족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사상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안팎을 둘 다 중요시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외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면, 우리는 내적인 문제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에 우리가 뜻을 향하여 결의했던 그 이상의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때는 개인을 중심삼고 탕감노정을 향하여 나가던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요전에도 여러분에게 말씀했지만 선생님은 여러분들 보다 한 단계 앞서서 나갑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때 선생님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은 아직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완성부활권을 갖추지 못한 기준, 예수님과 성신이 재림의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한 기준과 맞먹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재림역사의 기준을 땅 위에 완전히 세우기 위한 때가 70년도부터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종족을 찾아 세우고, 과거의 조상들이 책임해야 할 것과 현시대의 우리들이 책임해야 할 모든 것을 탕감시킬 수 있는 때가 제 2차 7년노정의 3년째를 맞이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3년의 기반 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강력히 결합된 단체가 되어야 됩니다. 세계의 그 어떤 단체보다도 강해야 됩니다. 우리의 사상은 개인주의적인 사상이 아닙니다. 우리들 개인이 주장하는 사상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사상이며, 우리 가정이 주장하는 것은 세계를 대표해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이 주장하는 것은 금후의 시대에 어떤 민족도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주장 자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써 완전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연결시켜야 할 것이 제2차 7년노정의 3년을 맞이한 70년도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맞이했던 것과 같이 습관적인 입장에서 `부모의 날' 을 맞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가정이 자리를 잡기 위한 과정에서 맞이했던 `부모의 날' 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역사상의 모든 일을 탕감시키는 과정에서 맞이했던 `부모의 날' 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탕감되어서 안팎이 하나될 수 있는 시대권내에서 `부모의 날' 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70년도에 우리가 맞이한 이 `부모의 날' 은 역사적인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에게 7년노정이 언제 있었느냐? 선생님이 7년노정을 세운 때서부터 가정적인 7년노정을 다 갈 때까지의 기간이 선생님에게 있어서 21년노정입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장성기 완성급의 자리까지는 가정이 가는 노정이 아니고 개인이 가야 되는 노정인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개인으로서 가야 할 제 1차 7년노정과 제 2차 7년노정을 이미 거쳤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완성기를 향하여 제 3차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7년노정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통일교회의 신도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60년도에 출발한 제 1차 7년노정은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는 제 3차 7년노정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여러분 자신의 7년노정기간은 언제냐? 인간은 누구나 이 7년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공식입니다. 이 7년노정은 누가 가야 하느냐? 가정이 가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을 거쳐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에서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기준을 넘어서 부모와 자녀와 만물이 하나로 규합된 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속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은 망하더라도 선생님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완성권내에 선 선생님의 가정은 완전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기준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완성권내에 들어선 그날이 누구나 평면적으로 맞을 수 있는 부모의 날이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자녀의 날이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만물의 말이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러니 개개인이 맞이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가정적 7년노정이 있기 전에 여러분 개체의 7년노정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과정에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장성기 완성급까지의 성장과정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준비된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기간을 중심삼고 엮어져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6천년 역사는 7천년 역사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시대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7천년의 역사를 거쳐서 하나의 완전한 남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7년만으로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하는 7년 기간이 있어야 하고, 성사시키는 7년 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타락하기 전의 기준까지 찾아 올라가는 7년 기간이 있고, 거기에서부터 싸워서 완성의 자리까지 가야 하는 7년 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탕감하기 위한 7년 기간과 성사하기 위한 7년 기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한 단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제 2차 7년노정이 여러분에게는 탕감하기 위한 제 1차 7년노정에 해당하는 것이요, 선생님에게는 성사시키기 위한 노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2차 7년노정에는 국가를 중심삼고 단판을 지어서 이겨야 됩니다.
이제 세계의 정세도 안팎으로 섭리적 이념에 들어맞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2차 7년노정 기간에 최후의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성사할 수 있는 7년노정이요,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뜻앞에 기여할 수 있는 7년노정입니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하나될 수 있는 7년노정은 제 3차 7년노정이기 때문에 그때는 우리가 세계적인 발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으로 본 견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렇게 되는 기간을 선생님은 21년으로 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14년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14년 기간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7년이라는 기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제 3차 7년노정을 넘어서게 되면 이 세계는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일 수 있는 시대권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제 1차 7년노정을 지냈기 때문에, 이 제 2차 7년노정은 가정적인 탕감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가정적으로 어려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십자가를 지는 때가 아닙니다.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 기간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탕감을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탕감하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이 탕감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책임자만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은 가르쳐 줘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가운데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복종하면서 가야 하는 것이 탕감복귀노정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있는 힘을 다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1968년부터 새로운 소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때부터는 가정을 중심삼고 수습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430가정들에게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라' 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그런 사명을 해야 할 때가 기필코 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 자기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복귀한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외적 아들과 내적 아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뭐가 되느냐? 심정일치를 이룬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으면 탕감복귀역사는 이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스승이 이룬 승리의 터전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제 제일선에서의 싸움은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게릴라전과 같은 국지전입니다. 우리 후방에 남은 적의 패잔병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을 방비해야 될 때가 제 2차 7년노정입니다.
제 1전선인 제 1차 7년노정에서는 사탄 전체가 전면적으로 통일교회를 공격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등, 가까운 사람 모두가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면적인 전쟁의 시대는 지나가고 부분적인 전쟁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승리적인 권내에 들어섰다는 신념을 갖고 틀어진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원칙적인 이념을 가지고 나서야겠습니다. 그러면 종족도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3년 이상 종살이를 하라는 것입니다.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 3년 이상 피땀을 흘려 온갖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족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에서 여러분의 가정들이 그런 책임을 다했더라면 여러분이 지금 집을 나와서 생활하는 형편이라도 각자가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뜻을 대하고 그 뜻을 펴는 개척자의 사명을 하면 그 종족이 옹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친족들이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자기의 아들이나 자기의 손자 혹은 자기의 형님이나 조카에게 동정은 못할망정 지금까지 핍박하였구나 하는 것을 자인하게 되면 모든 동포가 협조하는 길이 열릴 것이 아닌가? 여러분이 이러한 운동을 해야겠기에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분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그러한 책임을 감당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하지 못했으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되면 이 뜻을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시간문제라는 거예요.
전세는 이미 우리에게로 기울어져서 승리권이 결정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최후로 그것을 정비하는 문제만이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야 할 노정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968년도부터는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때입니다. 6천년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할 기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적 십자가를 누가 지겠는가? 지금까지 그 십자가를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민족과 국가를 대신한 십자가를 지고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재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이 남아지게 되었고,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6천년 역사가 돌고비길을 거쳐왔기 때문에, 양면적인 탕감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60년대까지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 14년노정은 야곱이 걸었던 14년노정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 기간을 넘어서야만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의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땅 위에 자리를 잡아 가지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그 누가 자신을 동정해 주더라도 그 동정을 받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동정할 수 없거니와 동정받을 수 없는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끝내고 가정으로서 생활의 터전을 갖춘 60년대부터는 가정적 십자가의 길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직접 지도하는 일을 중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4년 여름까지 이 자리에서 주일 낮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그만 두었는가? 그것은 외적인 문제보다 내적인 문제가 더욱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6천년의 역사를 탕감시켜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 연고로, 여러분과 교회보다 가정적 십자가를 어떻게 탕감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부모의 날' 을 책정하고, `자녀의 날' 을 책정하고, `만물의 날' 을 책정하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0년부터 시작해서 1968년도 정월 초하루를 기하여 하나님의 날을 선포할 때까지의 내적인 수난의 노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이 길을 나오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탄과 대결하여 가정적 단계로 넘어설 수 있는 한 기반을 닦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사적인 승리입니다. 이제야말로 천하를 내 휘하에 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제 2차 7년노정을 가야 할 여러분에게는 가정적 십자가를 져야 할 기준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믿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3년 기간만 절대 복종하고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복종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정적 수난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고생을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수난의 길을 넘어서 가지고 가정적인 수난의 길을 맞게 되었으니 이것이 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축복을 받고 제 2차 7년노정권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마음대로 살던 때와는 다릅니다. 혼자 살 때에는 먹을 것이 없으면 굶거나 며칠씩 금식을 하면 그만이지만 가정을 이루었을 때에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환경적인 조건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안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뜻을 위해 간다고 하더라도 뜻만을 위주로 해서 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생활이 문제인 것입니다.
가정이 발전하면 민족이 되는 것이요, 민족이 발전하면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은 무엇이냐? 지팡이와 같습니다. 무슨 지팡이냐? 세계적인 사망의 세계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요, 그런 길로 인도하는 지팡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나가야 할 곳은 어디냐?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라, 환고향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복된 입장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고향에 못 갑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이북이기 때문에 국가가 통일이 되기 전에는 고향에 갈 수 없습니다.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고향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은 환고향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처자, 형제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수 있지 않느냐?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민족을 염려하는 자리에서 내 부모 형제를 붙들고 통곡의 눈물을 흘려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그런 환경이 없습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이북 땅이 되어 있기에…….
여러분이 2차 7년노정을 가게 된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승리의 터전, 즉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갈 수 있는 기반이 닦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 1차 7년노정이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통적 기반에 여러분이 접붙으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접붙여야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김씨면 김씨 문중에서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제 2차 7년노정 기간에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이 기간은 예수님의 종족을 찾을 수 있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종족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환영하는 권내의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중심과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심과 하나되어 제 2차 7년노정을 감사히 가야 합니다. 이 노정은 가정을 이끌고 넘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축복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조건으로 3가정을 세워서 그들을 중심하고 나왔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종족 복귀를 하면 거기에는 3가정이 자연히 있는 것이요, 12가정도 자연히 있는 것이요, 36가정과 72가정도 자연히 있는 것이요, 124가정도 자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 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족복귀를 하는 길이 하늘로 가는 길이요, 종족복귀를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그것을 위해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요, 자기를 영광으로 모실 수 있는 나라가 있게 되는 것이요, 지금까지의 자기의 수고를 찬양할 수 있는 나라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자나깨나 먹으나 가정이 넘어야 할 시련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과업을 어떻게 완수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3년노정을 지나 선생님을 중심삼고 횡적인 출발을 하게 되면 선생님이 세계 도상을 출발하던 때와 마찬가지가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천운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70년도 이후에는 무한히 발전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집을 나와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전도했습니다만 그때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기의 자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자기 부모를 대해서 혹은 친족을 대해서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지금까지는 가정적으로 반대받는 십자가의 기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그들을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시련에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거국적으로 종족을 찾아가서 전도할 때입니다.
선생님이 36가정을 축복할 때는 나의 혈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밤잠 못자며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 민족에게 말한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기 혈족과 더불어 이런 축복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일입니까?
여러분들은 종족 전체를 복귀해야 할 엄청난 사명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족 전체를 복귀하면 민족은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70년도는 선생님의 가정이 핍박도상을 뚫고 지나와서 3년째 맞이하는 해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횡적인 기반을 탕감시킬 수 있는 3년노정 기간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완전히 하나로 단결하여 국가와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방향을 갖추어 나가게 되면 세계의 운세는 통일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천운은 통일교회를 향하여 다가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적 관점에서 본 70년도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들이 맞이하는 부모의 날은 옛날에 맞이한 날과 다릅니다. 아무 생각없이 맞이했던 고립된 입장의 부모의 날이 아닙니다. 가정이 쌍수를 합장하고 지성공대하여 가정적 부모의 날로 맞이하여야 할 70년도의 부모의 날인 것을 여러분은 알고, 지금부터 규합해 나가야겠습니다. 가정적인 인연으로써 전세계에 횡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 2차 7년노정의 기간 중인 작년에 세계를 순회하면서 430가정을 축소시킨 43가정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세계의 나라들과 430가정과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를 연결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축복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통일가의 가정적 전통을 세우기 위한 새로운 축복의 잔치가 있게 될 것이며, 그 가정은 7백가정쯤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경을 넘나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의 전통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인간들이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전통이 세워졌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70년대에는 세계적인 가정의 운세를 몰아 규합시켜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개국을 토대로 해서 7백쌍의 가정을 축복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선 여러분은 오늘날 이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자체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두고 보면 가인 혼자서도 하나님 앞에 못 가고, 아벨 혼자서도 하나님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서 부모의 양손을 붙들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나라를 대신한 아버지의 교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위한 예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되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통하였을 것이지만,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된 모습으로 가인과 아벨의 형태를 갖추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그런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제 주일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탄이 가는 길, 즉 자기만을 위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부도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요, 출세도 자기 가정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갈 길은 두 길입니다. 그것이 무슨 길이냐? 가인과 자기를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원수를 위한 길까지 거쳐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가인을 수습해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체기대란 무엇이냐? 아벨이 자신의 길을 닦았다 하더라도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원수와 싸우며 가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즉,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을 무엇을 보고 아느냐? 원수가 전부다 망할 운세권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수가 소망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환경적인 여건이 조성되면 이 땅에 아벨의 시대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세계를 보면, 이 세계는 국가관념도 간데없고, 민족관념도 다 사라져 버렸고, 가정관념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개인주의에 결속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타락 직전의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절망적인 상태에 부딪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헤쳐 나올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남자로서 하나의 가정의 형태를 가지고 오는 사람, 즉 아벨적인 개인의 입장에서 아벨적인 가정의 사상을 가지고 오시는 그분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지상에 없었던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새로운 종교를 세우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복귀를 할 수 있는 가능한 권을 이루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교회도 그랬고, 가정도 그랬고, 세계도 그랬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아벨 앞에 가인이 완전히 굴복하여 역사의 열매가 맺힐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한분이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대신 할 수 있는, 즉 참을 대신할 수 있는 세계적인 내용을 가지고 이 땅 위에 나타나는 날에는 외적인 세계는 그 분 앞에 자동적으로 굴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인과 아벨이 복귀되어 하나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즉, 부모님을 위주로 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나 아벨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가인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도 기성교회를 데리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와 원수가 만나서 하나되어야 하는 거예요. 요셉이 그의 열한 형제와 만나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끝날에 이루어야 할 재림사상을 그대로 보여 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야곱 가정의 요셉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를 팔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에 가서 종살이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요셉에게 그 나라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세우셔서 그 나라의 주권을 맡기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셉이 애급의 총리대신이 된 후에 열 한 형제가 복귀되었고, 그런 터전 위에서 비로소 부모를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시대의 전체적인 사정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던 사실이 아니었던가!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요셉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파들은 전부다 통일교회를 팔아먹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팔아먹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물 없는 사막에 파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기를 바랐고 이리와 늑대에게 먹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고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를 몰아내던 그들이 자기 부모 일가 전체가 멸망하는 비운을 맞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생의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지금의 민주세계와 기성교회가 아닌가?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새로운 사상을 가진 어떤 국가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나 미국 교회를 부러워하거나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미국에 가서 살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물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유주의적인 사상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본이나 그 어떤 국가에도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물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때가 그렇다는 거예요. 세계가 그런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 앞에 아벨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갖추게 되면 이 세계에 종말의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외적인 세계에 기독교권을 만들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교회도 외적인 활동을 통하여 국가와 결속할 수 있는 기준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먼저는 기독교와 세계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이고,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와 기독교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가 내에서는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요, 세계에 있어서는 통일교회와 세계의 기독교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안팎으로 딱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팎이 가정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완전히 하나로 규합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성교회가 협조해야 됩니다. 이것이 그들이 갈 길인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두철미한 인격으로 나라를 사랑하라, 통일교회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70년도부터는 행사 때에 반드시 세 나라 사람 이상을 가담시켜 행사를 할 것입니다. 자연히 그렇게 될 거예요. 그럴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우연히 세 나라 대표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국까지 네 나라예요. 앞으로는 이런 날을 세계적으로 축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섭리의 뜻이 이 세계 앞에 나타날 시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단결해야 하겠습니다. 패배가 아닌 승리를 위한 단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승리적 통일전선' 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 중심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들이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430가정을 세웠던 것입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이 책임을 못 했으니 그들이 책임 못한 것을 430가정이 하라 이겁니다. 그래서 430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선배 가정들에게 자극을 주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보고 124가정, 72가정, 36가정이 자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430가정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닮을 거예요? 안 닮을 거예요? 「닮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가정의 통합이 얼마나 중요하며, 지금 시대가 얼마나 바쁜 시대인가를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가정들이 합해서 앞으로 제 3차 7년노정을 넘으면 세계는 우리 앞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의 3년노정은 어떻게 넘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여러분은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된 그 기준만을 중심삼고 72년도까지 3년전도를 나가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할는지 모르지만 그때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안팎의 가정이 하나되어서 3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개인적인 승리를 위한 탕감조건으로 제물노정 3년 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적으로 그러한 3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선생님의 가정이 일체가 되어서 안팎으로 한몸과 같은 입장에서 1972년도까지 3년 기간을 견디어내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세계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 말이 틀림없이 맞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권내에 우리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것은 꿈 같은 얘기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생각에는 꿈 같은 얘기지만 사실이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안팎의 가정이 하나되고 우리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면 대한민국은 쉽게 복귀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우리나라의 제 2차 경제성장 기간인데, 사상적으로 완전히 결합하면 경제성장도 문제없습니다. 또한 60만 국군과 250만 향토예비군이 통일사상으로 무장하면 김일성이는 문제없습니다. 문제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아벨적인 입장인 통일교회와 가인적 입장인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내적인 기반을 이루어서 외적인 입장에 있는 국가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내적 국가의 입장이 되고 북한이 외적 국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제 1차적인 통일은 기성교회와 우리가 하나되는 것이요, 제 2차적인 통일은 통일된 기독교권과 대한민국이 하나되는 것이요, 제 3차적인 통일은 남한과 북한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이루어지면 세계는 우리에게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길이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 가정 앞에 남겨진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민족을 대해 나왔지만 이제는 세계를 대하여 나갈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작전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비해서 선생님이 안팎으로 작전을 전개해서 몰아쳐 나왔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세상이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느냐?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고요? 「가인요」 가인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던 그 사람들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원수의 세계에서 누구를 위했습니까? 자기를 죽이려 했던 열 한 형제를 위했습니다. 이 원수의 세계에 형제를 잃어버린 것이 인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1968년부터 기독교에는 새로운 운세가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신흥교파가 종교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나타날 것이며, 거기에는 은혜의 손길이 가득찰 것입니다. 현재 그렇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해서 기성기독교에 급진적으로 연결시키느냐? 이것을 위해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모르는 가운데 작전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을 뜻 앞에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들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만일 가인과 아벨의 교단이 기독교와 불교가 되었더라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만일 기독교와 불교가 가인 아벨의 입장에서 복귀 문제에 결부되었더라면 얼마나 원통하겠으며,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것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어렵습니다」 이러한 것을 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한 형제라는 겁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을 걸어왔던 사실은 억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복귀과정에서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들게 됨으로써 비록 사탄을 동조해 주는 입장에 섰지만, 사탄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협조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일을 앞으로는 기성교회가 완결시켜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통일교회는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어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래야 됩니다. 지금은 가망 없어 보이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3년 고비만 넘어가 보라는 거예요. 모든 가정들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하면서 3년 고비만 넘어가 보라 이겁니다. 3년만 넘어가 보면 선생님의 말이 맞나 안 맞나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했는지, 또는 우리 원리가 틀리나 맞나 그때 가서 보라는 겁니다.
자, 여러분이 하나되는 데 있어서 몸뚱이 위만 하나될 겁니까, 아래만 하나 될 겁니까? 몽땅 하나되겠어요, 남겨 놓고 하나되겠어요? 「몽땅 하나되겠습니다」 그러려면 험난한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가 교차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중심이 쓰러지거든 같이 쓰러지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같은 입장에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과 몸이 다 쓰러져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새로운 자극을 받아 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안팎으로 모든 희망이 생겨나는 날입니다.
요전에 어떤 지역장한테서 지역장생활을 하면서 열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열 일곱 번씩이나 이사를 다니다 보니 이제는 이사를 가게 되면 또 가나 보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옷에는 구멍이 뚫릴대로 뚫려서 얼굴 들고 나설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잘 됐어요, 안 됐어요? 그래도 죽지 말라 이겁니다. 쓰러지더라도 죽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입니다. 쓰러지더라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고이 잠들게 하소서' 하고 쓰러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야곱이 이처럼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을 때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이지, 기세가 당당하고 희망이 넘치는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을 것 같아요?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갈 곳 없어 돌베개를 베고 자는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축복이고 뭣이고 내가 왜 그랬던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통일교회 영신 되려고 그러지. (웃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다 쓰러지는 자리, 그런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우리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따르면 좋겠는데, 아이구! 사기성이 농후하구만' 그럴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은 감정을 잘못 했어요.
옛날에는 개인이 뜻을 따랐지만 이제부터는 가정이 하나되어서 따라가야 됩니다. 만일에 선생님 가정이 굶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굶더라도 선생님의 가정을 벌어먹여야 됩니다.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벌어 오겠어요, 안 벌어 오겠어요? 「벌어 오겠습니다」 그럼 됐구만. (웃음) 여러분의 가정이 굶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벌어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을 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죽게 되면 선생님의 가정이 굶어 죽는데…. (웃음)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 죽는 거야 괜찮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죽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라 내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요, 내 세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3년 동안 선생님과 하나되어 나가자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3년 동안 가정을 못살게 해야 된다는 거에요. 가정을 못살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3년간에는 `부모의 날' 을 최고의 날로 맞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70년도의 부모의 날을 최고로 지내고 있어요, 최하로 지내고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최고예요, 최하예요? 「최고입니다」 최고로 지내고 있다고요? 여러분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최고야, 최하야? 「최하입니다」 그렇다 이겁니다. 이제 이것을 알았으니, 다음 2차년도의 부모의 날에는 소를 한 일곱마리쯤 잡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8도에서 한 마리씩 잡자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각 지구에서 여기까지 올라올 때 식구들이 `지구장이 부모의 날을 축하하러 가는구만. 나도 한번 구경하고 싶지만, 지구장들만 갔다 오니 부모의 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어!' 하면서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불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각 지구마다 소를 한 마리씩 잡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하는 잔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 할 만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명년 부모의 날에는 소 한 마리씩 잡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앞 뒷다리 하나씩은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면 팔도니까 소가 네 마리는 됩니다. 그렇지요? 그 네 마리 소를 놓고 잔치를 한번 벌이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 생각에 부모의 날 같은 날에는 선생님이 아주 편하게 지낼 것 같지만 아직까지 아침도 안 먹었어요. 아침도 안 먹고 이러고 있으니 부모의 날이 고역의 날이라 이겁니다. (웃음) 지금까지는 고역을 했으니 이제는 편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3년노정이 중요합니다. 3년간은 가정을 고생시켜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죽자고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 죽자는 것입니까? 개인을 위해 죽자는 거예요? 「아닙니다」 개인을 위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는 `선생님이 36가정을 중심삼고 무엇을 하고 그러는 것보다도 우리 지구에 교회가 없으니 교회를 세워 주면 좋을 텐데, 선생님이 뜻을 위한다는 것은 헛소리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하려는 사람입니다. 자기 개인보다 가정을 위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 종족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정이 하나되지 않으면 종족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교회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하겠어요? 「예」
그러면 아파트를 짓기 위해 내가 시멘트와 자갈과 모래를 실어다 줄테니까 여러분이 벽돌을 찍어서 전부 지으라는 것입니다. 지을 수 있겠어요? 「예」 430가정을 전부다 노동판에 데려다가 강제노동을 시키듯이 부려먹어도 좋다는 말이지? 「예」 (웃음)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면 7백가정이 여러분들의 집을 지어 줘야지 별 수 있어요. 그렇게 하게 되면 그 후에 축복받게 되는 몇천 가정도 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이 살 집은 다른 나라 사람이 지어 주어야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우리의 살 길입니다. (웃음) (박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다시피 해 가지고 이제 막 가정이 자리를 잡고 살려고 하지만 또 부려먹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방식이자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데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십자가는 종족을 위해서 지는 것이요, 민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십자가를 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것은 나라를 위해서 진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위해서 졌던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늘의 가정이 없었고, 하늘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가 진 것은 개인을 위한 십자가였지만, 여러분은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종족을 위한 승리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요, 민족을 위한 승리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요, 혹은 국가와 세계를 위한 승리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명이 여러분에게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이냐? 수난의 길과 피의 자리를 각오하고 이 길을 걷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런 때가 오기 때문에 1969년을 거쳐 70년도를 넘어오면서 가정들을 동원시켜 가지고 가정을 뛰어 넘어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예요. 선생님이 무슨 재간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알고 보니 이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이 잘 움직였어요, 못 움직였어요? 「잘 움직였습니다」 잘 움직인 사람은 역사가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때를 맞아서 우리 통일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길을 각오하고 나섬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다시 살 수 있는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40일간 지방에 나가서 개척한 데에는 이런 내적인 내용이 있음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와 아들딸들이 나가서 모자 협조하여 기반을 닦았으니 나머지는 따라가야 합니다. 알겠지요? 「예」
선생님이 60년대에 가정을 내 보내서 이 땅, 이 나라, 이 민족을 개척하여 왔습니다. 이제 이것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때 정성을 들인 그 땅에 다시 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정성을 들인 터전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예수님의 재림역사도 정성들인 터전 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전통입니다. 우리 통일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60년대에 여러분이 나가서 정성을 들인 곳에 다시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가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구역, 그 동네를 위하여 흘렸던 그 눈물이 헛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의 눈물로 뿌린 것을 기쁨의 눈물로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고통과 수난의 길을 거쳐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탕감노정을 거쳐 새로운 가정을 찾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마을, 그 동네에 새로운 메시아의 가정을 맞을 수 있는 환희의 터전이 닦여지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마을은 복귀될 것입니다.
이래서 선생님이 3년노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을 내모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그런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오늘 이 부모의 날을 기하여 3년노정을 감수하고 나갈 것을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부모의 날을 기쁘고 감사한 날로 맞지 못하고 하늘땅이 자랑스럽게 지켜보는 이 자리가 되지 못하였지만, 여러분이 이런 결의를 함으로써 이 자리를 빛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새롭게 결심을 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쌍수를 들어 맹세합시다.
아버님, 역사는 슬프고 원통한 역사였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날들을 거쳐서 오늘 이때를 맞이하게 될 때까지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인들 전체가 동원된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를 반대하기 위해 이 나라 이 민족도 전체가 동원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 도상으로 연결되어졌습니다.
이것이 어느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옵고,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은 당신의 섭리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님, 오늘은 70년대에 처음 맞이하는 부모의 날이오니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들이 지금까지 미지한 입장에서 아버지를 따라 나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지금이 어떤 때인가를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의 자세를 가다듬고 내일을 빛낼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하여 아버지 앞에 가일층 접근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원수의 나라를 향하여 가야 할 운명길에 서 있사옵고, 공산세계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한국에 있어서의 승공전선을 넘어 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나가야 할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평면적인 시대권을 갖추어서 안팎으로 다지고 분별시켜서 탕감의 역사를 엮어 나가야 하겠사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저희들이 갈 길이 역사적인 발전의 도상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류를 위하여 빛이 되겠다고 나선 하늘 용사의 모습들이오니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자세로 나타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용사답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가정들을 규합하시옵소서. 저희들이 거쳐가야 할 노정에서 남아지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힘차게 행진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남겨진 사명을 다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맹세하였사오니 당신의 마음속에 두시옵소서.
이날 지방이나 세계 각 지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뜻을 흠모하면서 추앙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보호와 동정의 마음이 그 환경을 지배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1970년 4월입니다. 이달에 인류의 전체를 아버지께 맡겼사옵고, 이달에 저희들이 새로이 출발할 것을 맹세하였사오니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하시옵고, 만사형통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후의 모든 시간과 절차를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것을 감사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