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긍휼의 아버님이시여! 사망의 이 동산 위에 생명의 빛을 갖고 나타나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이시여! 황무지와 같은 이 광야에 사랑을 갖고 나타나시옵소서. 영광의 아버지시여! 기갈을 당하여 메마른 심령들 위에 영광의 은사로서 나타나시옵소서. 전능의 아버님, 죽었던 생명들을 모아 아버님의 성단에 무릎 꿇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로 하여금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을 깨우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혼돈 가운데 잠들어 있는 이 인류를 깨우칠 수 있는 아들딸들이 어서 속히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이는 아들딸들이 생명의 봉화를 높이 들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이끄는 동시에, 지상의 인류를 아버지 앞에 이끄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의 무릎 앞에 나왔사오니 자신을 반성하여 성별된 몸을 갖고 아버님의 성상 앞에 엎드려 있는지 스스로 살펴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아버지의 뜻 앞에 합당하지 못한 허물이 있다면 아버님이시여, 생명의 빛으로써 저희의 마음을 비추어 스스로 뉘우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령의 힘으로써 저희 몸을 붙들어서 죄악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각자 스스로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동시에 아버지와 인연을 맺고 아버지의 영원한 유업을 인계받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모든 사정을 이 시간 저희 자신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에 모인 각자에게 내적인 사명을 맡겨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주일을 지내는 가운데 저지른 합당치 못한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아직까지 아버지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마음과 몸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엎드렸다면, 아버지시여, 불꽃같은 눈으로 저희를 감찰해 주시옵소서. 존엄하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스스로 뉘우쳐 아버지 앞에서 회개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려서 외롭게 말씀의 봉화를 들고 싸우고 있는 아들딸들 위에 일률적으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손길이 그들의 머리 위에, 그들의 몸 마음에 충만히 나타나시어서 어두운 환경을 개척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간 아버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선포된 모든 생명의 말씀이 땅 위에 떨어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제 어두움 가운데 있던 아들딸들이 나타난 아버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은사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들딸들을 이 민족의 생명의 주인으로 세워 주시옵고, 기쁨의 은사 가운데서 본이 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 널려서 외로운 제단을 쌓고 있는 아들딸들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제단 위에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 드리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이념권 내에서 단결하여 하나의 세계, 하나의 뜻,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여지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처음부터 끝시간까지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제아무리 훌륭하고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그 자체는 타락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제까지 범죄의 역사를 거쳐왔고, 이 세계에서 혹은 우주에서 악과 대결하여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런 싸움의 노정을 거쳐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고 나서려 할 때, 거기에는 무수한 광야의 조건들이 그 행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활에서 혹은 생애노정에서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풀려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양심적이고 선한 사람들이 갈망하여 나온 푯대요 표준이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의 나’보다도 ‘내일의 나’가 더욱 선할 수 있으려면 절대적으로 실존하시는 신을 우리의 생활권 내로 끌어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즉 그 신을 어떤 논리적인 신이나 관념적인 신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실증적인 신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어차피 타락의 운명을 벗어나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놓고 이제까지 수많은 선지자들과 도인들이 있는 성심과 인내와 지성을 다했지만 그 길은 아직까지 다 가지 못한 채 우주적인 운명의 길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저지른 죄로 인해 생겨난 담도 한두 개가 아니고, 가도가도 끝이 없이 가로막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헐어 버리고 넘어야 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인간들이 신앙의 대상, 즉 절대적인 신, 절대적인 실존체의 신을 흠모하고 나섰지만 그들은 그에 대해 여러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막연하게 관념적으로만 신의 실존을 인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면으로만 신의 실존을 인식하려면 무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논리권 내에만 머무르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신을 인식하는 신앙이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 영원한 생명의 실체로 완성시켜 줄 수 있겠느냐 할 때, 여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하여야 참 되신 주님과 아버지 앞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아버지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적인 소망인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게 될 때, 우리가 나가는 길을 무엇이 가로막게 되는가? 먼저 자기도 알 수 없이 생겨나는 의심이 앞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또 죄악의 시험이 가로막을 것이고, 예기치 않게 엄습하는 사망의 힘이 갈 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심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고, 죄악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으며, 사망의 고개를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영원한 이상과 관계를 맺어 주고, 그 맺어진 관계가 자기의 생활을 지배하고 자기 생애의 목적을 지배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을 인간들은 품어 나왔습니다. 또한 이런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한 기준을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대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생활권 내에서 신의 실존을 체휼하기를 바라고 있고, 신의 실체와 만나기를 흠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의 실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 놓고 나가려 할 때 여러 가지 의심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의심의 조건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면 안 되고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망의 큰 그늘 아래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느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들을 자기의 마음에 품고만 있으면 참된 신앙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의심을 솔직히 내놓는 신앙의 대상자로 머무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의 모든 죄악으로 인한 고난, 즉 자기가 스스로 지은 자범죄로부터 혈통적으로 이어받은 유전적인 죄까지 전부를 솔직히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한발 한발 전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의 이상을 느낄 수 있는 약속의 천국으로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력한 사망권 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우리는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자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갖고 나왔던 의심과 죄악과 사망의 내용을 내어 버려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던 그 자리, 죄악의 역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 그 타락의 환경에서는 하나님이나 선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하게 될 수 있는 환경은 그런 환경이 아닌 새로운 환경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나는 이런 부족한 모습이오니, 아버지시여, 받으십시오.’ 하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심정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잡으면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접어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처해 있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갖게 된 의심을 내어 놓고 ‘아버지시여 저희 몸 마음에서 이것을 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고, 죄악에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나 어떠한 신앙의 주체자 앞에 그냥 그대로 내맡길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심정만이라도 마음의 중심에 세우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여러분은 신앙길을 걸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찾아오실 때 무슨 조건을 제시하시느냐 하면 신앙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믿음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의심을 갖게 하는 환경을 타파하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하며, 죄악의 환경을 정리하고 선의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사망의 환경을 타파하고 생명의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다한 후에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무한대의 영광을 하나님 대신 노래할 수 있고, 하나님의 권한을 친히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때를 바라보며 인간들의 마음이 움직여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정 못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머물러 있는 이 죄악의 환경을 무자비하게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또 자기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내어 놓을 수 있고, 지금까지 맺어 온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의심을 다 해명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갖고 있는 모든 죄악의 요소들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지금까지 속해 있던 사망의 권세에서 해탈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해명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길이 인간 세상에 없다면 하나님은 찾아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양심을 자극시켜 주는 실존체가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소망하는 최대의 소망과 생명과 인륜의 기준을 여러분은 반드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언젠가는 어차피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우주적인 운명의 길을 앞에 놓고 여러분은 어느 정도 생각해 보았습니까? 사실 오늘 여러분은 우주와 이 사회와 세계, 심지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해명해 줄 수 있는 중심존재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또 인간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그것을 해결해 주실 분도 오직 한 분 절대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과 관계된 이런 모든 우주적인 의심을 걸머지고 ‘하나님이여, 나 이제 우주에 대한 모든 의심을 가지고 나왔사오니, 당신과 나 사이에 천륜적인 인연이 있다고 한다면, 나를 버리시지 않을 당신으로 알고 있사오니, 이 모든 의심을 받아 해명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맡겨 버릴 수 있는 배짱도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심되는 문제를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이것을 해결하는 것을 신앙의 도리로 알고 그것을 해결해 보기 위해 어려운 싸움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홀로 걸어가지만 끝내는 보통으로 걷고 있는 신앙자들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선의 길을 막으면서 악의 길을 열어 놓는 이런 사탄의 놀음을 물리치고 개인적으로 승리의 목표를 향해 개척해 나가려 할 때는 자기의 의심을 전부 신앙의 주체자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됩니다. 고백하는 그 자체도 성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진실로 자기가 부딪친 우주적인 의식의 한계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성실성을 갖고 하늘 앞에 ‘아버지여! 하나님이시여!’라고 부를 때는 아버지도 그를 대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사람을 대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진실은 천륜이 유린하는 법이 없고, 참은 하나님이 버려둘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에 의심되는 모든 사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진실된 마음으로, 충실과 충절과 정성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할 수 있는 이런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의문이 해명되지 않으면 우리는 죄의 길을 타개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의문이 완전히 해명되지 않으면 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기원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된 것은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과정에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심이 있다면 이것을 해명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의심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이 크게 구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문을 해명받기 위해 하나님에게 당돌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와 각오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은 인생관이나 우주관에 있어서는 많은 의문점을 풀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의문점은 완전히 해명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의문되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 그 문제에 정면 도전하여 하늘 앞에 충실한 모습으로서, 있는 정성을 다 들이는 사람이 이 땅에 나온다 할진대는 그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것이며, 또한 그의 의문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경과해 오면서 이러한 천륜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선지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궁금하게 여겨온 전체적인 내용이 해명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우주적인 의문을 해명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이고, 해결되지 않은 인간들의 죄를 해결해 주기 위해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이며,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인류의 이러한 의문과 사망과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000년 역사 과정에 오셨던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진실된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자기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의심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셨고, 자기 일신의 영광을 초월하여 우주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셨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한히 희생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일관된 마음과 생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앞에 제일의 선봉자로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인 의심의 장벽을 헤치고 나서서 자신 있게 ‘나를 믿으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나를 믿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한 말씀이 어찌하여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있었는가, 또 어찌하여 ‘나를 믿으라.’는 신앙의 기준을 예수님은 세우시게 되었는가? 너무나 많은 의문을 해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셨기에 이를 단축시켜서 어떤 때가 되면 자연히 알 수 있는 길을 소개해 주시려고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 위의 인간세상의 일만이 아니라 하늘세계에 대해서도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말을 가지고는 의문의 고개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늘의 말씀을 통해야 모든 의문이 해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인류가 찾아 나온 최후의 때, 기독교가 말하는 최후의 심판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를 기준하여 모든 복귀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의심과 사망과 죄의 조건과 요소를 제거시키는 새로운 말씀이 이 땅에 나타나게 될 때 그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늘을 위해 충성을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귀한 예물을 받으려 할 때에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전체적인 의문을 해명하는 가치의 말씀이 나타나게 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서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정성과 충성입니다. 예수님이 4000년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대해 충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6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과 예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전체적인 해명이 되는 시대에 도저히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해명의 말씀은 어떤 말씀일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이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말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어떠한 말씀일 것인가? 이 말씀은 개인적인 의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말씀인 동시에 세계에 관한 의문과 우주에 관한 의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어떠한 체계를 갖춘 말씀일 것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대충 말씀드린다면, 6000년 동안 흘러온 의문의 역사를 해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일 것입니다. 실제로 앞으로의 시대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그 말씀을 우리 개인에게 적용시켜 보면, 그 말씀은 우리의 생활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목적하고 있는 절대자의 치리(治理)의 권한과 우리의 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일체화된 그 말씀과 일체가 되면 그 일체된 자리에는 어떤 의심이나 사망이나 죄악의 침범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절대적인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하며, 영원한 생명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추구해 온 진리탐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 인간 들의 탐구대상은 우주였습니다. 즉 ‘이 우주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인간들은 고심해 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을 중심삼고 탐구해 왔습니다. 즉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성을 중심삼고 이제까지 진리를 탐구해 왔는데, 인간의 그 이성은 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 그 자체만으로서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가치를 증진시키게 할 수 없고, 영원한 인간의 생활이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절대자, 즉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인간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기 위한 인륜적인 신이었습니다. 논리를 초월한 신으로서 인간 개개인과 관계를 맺는 신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사고에 의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관은 완전한 신관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걸음 비약하여 바른 신앙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그 신과 어떤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을 뿐 어떻게 해야 비약적인 신의 실존을 느낄 수 있고, 그 신의 실존이 나와 생활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념은 우주론을 대신하고, 인간의 이성의 가치를 대신하고,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대신하며, 절대자의 이념, 즉 신의 이념에까지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우리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인간의 표현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간들의 인격 수양으로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천륜의 새 이념권 내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자신의 생애기간 중에 천주적인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신의 이념에 통과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하고, 최고의 양심의 기준과 최고의 선의 기준에 서신 예수님은 신의 전체적인 성품을 대신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동적으로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과 같이 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지금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그 머물러 있는 환경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억압하는 힘으로 강하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 내 양심이 최고의 선, 즉 절대자의 실존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마음은 순조롭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타락의 보응으로 인해 이 세계가 죄악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심, 본성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내 마음의 힘보다 더 강한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력을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력을 어떻게 타파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과 우리 몸에 있는 악의 요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죄악의 행동을 하게 하여 우리를 사망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로막아 밀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환경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것은 예수님만 이 성취한 ‘나’였지만, 그러한 개인을 만들어 인간세계에 확장시키는 운동을 누가 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주위 환경에 널려 있는 어둠의 세력을 생활 가운데서 물리치신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 순간적으로 사탄이 우리의 일과 우리가 움직이는 곳에 나타나지만, 결국 하늘이 나타나셔서 사탄을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예수께서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조건을 세우려면 어느 기준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상상하여 믿을 수 있는 정도만큼 적당히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미치는 정도까지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믿고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고 높으신 신의 실존체를 위하여 믿어야 한다면 그 크고 높으신 신의 가치에 비교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야 됩니다.
그러면 현재 인간들은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믿음의 정도는 예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주 낮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들의 믿음의 정도에 대해 낙망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성경 속의 하나님으로만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운데도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무한한 창조의 이념이 있는 한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신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믿고 계신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한대의 신앙을 추구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신앙을 소유한다면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어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지 못하셨던 말씀까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못한 부분을 여러분이 찾아야만 우주적인 의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고, 우주적인 사망과 고난 그리고 우주적인 죄악 역사를 거쳐나온 선조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신앙의 주체되시는 주님을 믿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 믿음의 조건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걸어 놓고 예수님과 관계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은 그 터 위에서 하나님의 실존까지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이와 같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한 신앙의 노정을 탐구해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한한 신앙의 이념에 사로잡혀서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진정한 신앙인을 하늘은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걷고 있는 신앙노정에서 생명의 조건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하고, 천륜의 비밀을 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찾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들을 통하고 난 다음에는 의심의 고개를 넘고, 죄악의 고개를 넘고, 사망의 고개를 넘고, 악을 중심한 모든 욕망의 고개를 다 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개들을 다 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우리가 모셔야 됩니다. 믿음의 주체이시고, 선의 주체이시며, 생명의 주체이신 그분을 우리의 마음에 모셔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일체의 경지입니다.
무한대의 소망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셔 놓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의 사실은 책에 기록한다고 하면 몇만 권의 책으로도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준 영계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영계를 소개한 책으로는 전체의 영계를 해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인간이 가야 할 신앙노정의 전체를 담고 있는 말씀인가, 전체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가 할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 하면 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신앙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최대의 가치를 지니신 분으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나가면 나갈수록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대상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와 상대되는 요소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주의 사상을 통합시키고 모든 민족을 통합시킬 수 있는 생활 환경을 건설해야 됩니다. 그런 생활 환경권 내에 들어가야 선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선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으며, 선의 절대적인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어느 특정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고 만유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생전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남이 아니라는 길을 이미 나섰습니다. 남이 아니라는 길을 이미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앙의 표준을 우주적인 창조주의 인격에 두고 신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표준을 달성하는 날에는 악의 요소가 여러분에게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 것은 악과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악에 영향을 받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경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면 그 환경에 지배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신앙자가 되지 않으면 천륜을 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인간들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신 것은 그들에게 이것을 믿으면 순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혜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무한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되면 비약적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을 향한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영계도 여러분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무한한 신앙심을 소유한다면 여러분의 그 인격을 통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초감각적인 세계의 사실과 우주의 사실을 일시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놀라운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가고 가고 또 가야 하는 것이 무한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신앙자의 자세라 할진대, 어떤 한계권 내에 머물게 하는 신앙을 부르짖고 있는 무리들을 물리치기 위해 끝날에는 우주적인 큰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시대를 소개하기 위하여 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거의 다 몰림받았습니다. 그들을 몰아낸 사람은 우리의 선조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이 제일인 줄 알고, 우주를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한 구원섭리를 자기 나름대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선조들은 천륜의 길을 거역하고, 천륜의 역사를 깨뜨리는 잘못을 수없이 범해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끝날에 있어서 누가 백 퍼센트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인가? 죄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에 나선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바탕 위에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무한한 사랑의 이념을 갖고 신랑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앞에 대상의 자격으로 설 수 없는 것이며, 또 무한히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죄가 무엇이냐 하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요, 그분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이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믿음을 갖고 나가려 할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그와 상반되는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악의 세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의 세력은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 악의 세력에 삼켜지는 신앙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소화하며 넘어갈 수 있는 아량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서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십자가를 지는 자리라고 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도저히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앙노정을 찾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새로운 신앙노정을 걸어가면 거기에는 우리는 실증적인 사실, 하나님과 인연된 사실, 하나님과 관계된 사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통일을 염원하시는 창조주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운 신앙길을 따라 나선 여러분, 여러분들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나가면 그런 신앙노정의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갖고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이런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참사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설 수 없고, 충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서기 위하여 새로운 신앙으로 이 모든 의심의 세계, 이 모든 사망의 세계, 이 모든 죄악의 세계, 이 모든 공포의 세계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요구하는 신앙의 내용을 안다면 그것을 입증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 하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고 나설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영원한 선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받을 수 있어, 영원한 천국권 내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한 때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에 이 세계를 맡겨 보았지만 그것이 다 무너졌사옵니다. 그 후에는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이 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을 통해서도 뜻은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도 의지해야 되겠고 인간도 의지해야 된다는 것과, 하늘과 인간이 합동해서 이루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을 저희들만으로 놓아두지 마옵소서.
인류가 역사적인 노정을 걸어오면서 실패한 환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만으로서도 안 되고 나 자신만으로서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자신을 초월할 수 있고, 나의 생명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우주적인 이념과 진리를 갖게 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저희들 또한 자리를 가지는 동시에 하늘이 저희들에게 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오니, 절대적인 신앙노정을 통하여 온전히 아는 입장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에까지 나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서 나를 찾으라 하셨습니다. 내적인 면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이 심정이요, 내적인 면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말씀일진대, 말씀을 통할 수 있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진리와 심정을 알게 해 주시고, 심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자리까지, 아버님, 저희를 인연맺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 저희들이 지극히 좁은 환경에 머물러 있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고, 조그마한 일에 치우침으로써 자신의 전체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다 크신 아버지의 은사를 흠모하면서 보다 크신 아버지의 천적인 인격을 바라보게 허락해 주시옵고, 그 인격이 아직까지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서 나타나지 않았고, 또한 하늘이 저희들을 통해 그런 인격이 나타나지기를 바라고 계시다 할진대는 좀더 큰 신앙의 표준을 가지고 그 이념에 합당한 성심과 충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움직여 나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때에 허락하시려는 최후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고, 영광의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제물적인 생활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의 전체의 신앙이념을 오늘의 생활의 이념으로 받아들여 실천해 나감으로써 온 만민을 대해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이 되게 인도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말씀을 이들의 마음 가운데 생명의 원천으로 심어 주시옵고, 그 말씀이 이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님! 허락하신 은사를 품고 일주일 동안 악의 처소에서 싸우다가 아버지의 무릎 앞에 이날 다시 모였사오니, 저희에게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아버지께 드릴 무엇을 갖고 나오지 못했사옵나이다. 아버지의 염려의 대상으로 나왔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능력의 아버님, 사랑의 아버님, 저희들을 현재의 저희들로서 남겨 두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을 맡아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억만 사탄들이 저희들을 포위하고 저희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사오니, 아버님, 저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날 저희 개체들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 가운데 잠기어 아버지의 영광을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엎드려 경배할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주일을 지내는 가운데 허락하시지 않은 행동이 생활과정에 남아 있사옵고, 아버지의 뜻 앞에 나타나지 못할 요소가 많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능력의 아버님, 승리의 권한을 갖고 나타나시옵고, 재창조의 손길을 다시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숨은 제단을 쌓고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이 이 시간도 아버님 앞에 엎드려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끝날에 예고하신 최후의 은사를 그들 앞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의 제단을 쌓을 수 있으며, 당신의 영광을 삼천리반도 위에 세워 드릴 수 있도록,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의탁하오니 산 제물로서 받아 주옵시고, 한 생명이라도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공격을 받더라도 꿋꿋이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려서 어려운 싸움을 싸우고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이 있사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재창조의 능권을 일으키시어서 아버지의 아들딸임을 증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아버지 앞에 드리는 모든 내용을 오로지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 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참아버님의 참아들딸이 되자’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 세계를 버리지 못하시고 지금까지 사탄과 모진 싸움을 전개하시면서 홀로 책임져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일 것인가? 무엇을 원하시는가? 지금까지 수많은 서러움의 역사 과정을 거쳐오시면서도 인류를 버리지 못하시고 붙안고 나오시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해 너는 내 친아들딸이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싸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만물이 화동하는 가운데 만물의 주인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나의 아버지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아담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런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후 본연의 아들딸이 나와 ‘아버지’라 부르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그 아버지는 죄악의 입장에서 불려질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의 세상에서 벗어나 선의 이상 동산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상동산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수 있는 동시에 기쁨에 도취되어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동하면 만물이 동하고, 인간이 정하면 만물이 정하게 되어 인간과 만물이 동하고 정하는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도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초월하여 일체될 수 있는 이상동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와 같이 당신과 하나되기를 바라셨고, 하나된 가운데서 놀라운 사랑을 중심삼고 기쁨에 취하는 그 한 장면을 그리시면서 그러한 세계를 창조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들이 타락함으로써 이것이 자기들의 원한이 된 동시에 천륜의 원한이 되었고, 타락 이후 지금까지 그 원한에 원한을 가중시키는 슬픈 역사를 저질러 왔다는 것을 오늘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이 땅을 대하시어 섭리하시는 최대의 희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락의 부모를 갖고 있는 인류를 다시 하나님 편에 세워 놓고 나는 그대들의 영원한 아버지요, 그대들은 나의 영원한 아들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역사적인 소망이요, 천륜을 대하는 천적인 소망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내 한 자체를 반성하고 천륜 앞에 자신들을 세워 놓고 헤아려 보게 될 때,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화동한 일이 없었음을 느낄 것입니다. 또 아버지 앞에 참다운 아들딸로서 ‘아버지여!’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하늘의 주관을 받는 신앙생활을 해야 했었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시여!’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아버지의 심정을 유발시켜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새로이 부자의 관계를 맺는 입장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인간들에게 체휼시키고, 인간들과 부자의 관계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들이 마음으로나 생활에서 느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최후의 소망으로 남아져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은사 가운데 우리가 세움 받는 것도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뤄질 것인가? 그것은 창조의 이념인 하나님과 인간의 부자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땅 위에서 어느 정도나 실천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권에서 어느 정도나 실천했느냐에 따라 자기들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하여 서러워하시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이 땅을 대하여 탄식하시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은 사탄 때문에 서러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밉다고 해서 서러워하시고, 죄인들이 많다고 해서 탄식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탄식은, 하나님이 아직까지 인간들을 대해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로다.’라는 말을 하실 수 없고, 그 아들딸로부터 ‘내 아버지시여!’라고 부르는 말을 들으시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서러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르는 아버지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참아버지도 있고, 거짓 아버지도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불러야 하는 본연의 참아버지는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요, 이상의 중심이시며, 인간의 모든 행복의 중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음에 침범해 들어오는 악을 끊어 버리고 마음놓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면 천국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이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어차피, 필연적으로 본연의 참아버지를 찾아 나가야 할 운명길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어떤 가치적인 내용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부르고 있는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하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참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아버지는 6천년 동안 쉬지 못하시고 싸워 나오신 아버지이시요, 섭리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수없이 어려운 고개를 참고 넘으시면서 오늘의 내 한 자신을 찾기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어떤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최대의 서러움과 슬픔을 느끼고 계신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어느 정도로 실감하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서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서러움과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비통함이 그 사람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심정이 교류되고, 천륜의 대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 일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는 생명을 중심삼고 영원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지를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현재의 여러분은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여러분과는 심정적으로, 또 사실적으로 영원한 인연이 맺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연을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런 것을 느끼면서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아버지여!’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소망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간들이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요, 모든 만물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참아들딸로서 복귀의 운명을 타개해 나가야 되겠는데, 여기서 우리가 단 하나 바랄 것이 있다면,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정과 서러움이 이 땅 위에 사무쳐 있고, 하나님의 슬픔이 이 땅 위에 차고 넘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을 느껴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복귀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을 복귀해야 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아버지 대신 염려하면서 진정으로 심정이 교류되는 가운데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아버지’ 가운데는 ‘남의 아버지’도 있고, ‘의붓아버지’도 있으며 ‘참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들은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 아버지가 ‘참아버지’가 아니고, ‘남의 아버지’나 ‘의붓아버지’의 입장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복귀의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을 대해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한 날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6000년 동안이나 소원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땅을 대하여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땅을 위해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고개를 넘으시며 싸워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런 아버지를 모시며 살아야 되겠고,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 원수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남다른 고난길을 찾아 나선 여러분! 6000년 하늘의 수고 끝에 찾아진 여러분! 여러분은 참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아버지의 유업을 맞아 언제까지라도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하늘의 대신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이를 위해 자신을 아버지 앞에 다 내어놓고 새로운 사명을 인계받겠다고 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라도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음속에 떠올라야 하고, 아버지의 고통과 근심 전체를 다 책임지지는 못할지라도 아버지를 마음에 모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원한을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계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믿어 주지 않고 인간이 받들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들이 책임 다하기를 안타까이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땅에서 천륜을 세워 드려야 하고, 영광의 하늘나라를 이루어 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선의 이상을 이 우주에 실현시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혼자서는 아무리 뜻을 이루시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도 선의 입장에 설래야 설 수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해 주지 않는한 영원히 악의 입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설 수도 있고, 돌아서 사탄 편에 서서 하늘을 대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사탄보다도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사람이 아니면 사탄의 계략도 허사가 됩니다. 이와 같이 뜻의 성취나 죄의 성립이 하나님이나 사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놓고 천륜의 뜻과 선의 이상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이념을 무조건 믿고 그것을 이루어야 할 인간이 어떻게 가는가 하는 것을 지켜보시며 안타까워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서러움과 고충이 사무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바랄 것이 있다면 오로지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실제 그런 사람이 삼천만 민족 가운데 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이 민족에게는 살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 사람을 중심삼고 우주적인 역사는 벌어질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불쌍한 민족을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하여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는 동시에 믿어야 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남다른 길을 걸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십자가의 노정도 거쳤습니다. 천사들이 여러분의 나가는 길을 염려했던 사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사정을 염려해 주신 아버지 앞에 어떻게 나설 것인가가 더 문제인 것입니다.
나의 서러움이 문제가 아닙니다. 슬픔과 고통, 십자가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대의 승리의 터전이 이루어진 자리, 인륜의 이념과 천륜의 이념이 합치된 그 자리에 나갈 때, 그 동안의 어려웠던 사정을 위로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자신이 되었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길래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참아버지와 참아들은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갈라놓아도 갈라질 수 없는 인연, 자연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피 살을 통한 인연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과 우리와는 혈통적인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였습니다. 인간이 책임을 완수하여 영원한 선, 천륜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되었던들 어느 누가 침범하여 타락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은 이러한 소망을 지닌 실체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은 어떤 곳에 머물러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과 천적인 인연을 갖고 있으면서 사탄권 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계 자녀의 인연을 갖고 있으면서 또 사탄과도 타락의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인간을 대표하는 입장에 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고 나타나시는 주인공이십니다. 이런 인연과 사명을 띠고 이 땅에 강림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랑을 중심삼은 혈통적으로 인연을 갖고 나타나신 그리스도이셨기 때문에 역사에 없는 중심으로서 새로운 변천의 역사를 일으키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은 아버지의 피와 살이요,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런 분이어야 했었던가? 타락한 인간들은 죄악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피 살을 대신하여 접붙여 줄 수 있는 한 분을 하나님은 이 땅에 보내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섭리적인 필연에 의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내심을 받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는데, 그 전날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너희들은 내 피와 살을 먹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인간들의 마음과 몸, 피와 살은 하나님이 동하고 정하는 대로 함께 동하고 정해야 한다. 즉 하나님과의 일체이상을 이루어야 하고 혈통적인 인연을 맺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매개로 하여 그 일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탄은 여지없이 여러분은 참소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고,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친구의 입장에서 예수를 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피와 살과 뼈, 몸과 마음을 여러분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인간이 일체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신 것같이 여러분도 몸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동하고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누가 빼앗아 갈래야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아들딸이라고 하실 수 있는 말씀과 우리와 함께 살아가실 수 있는 말씀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는 참부자의 인연이 있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악한 세상에 오셔서 외치신 말씀은 땅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제까지 없었던 참진리의 말씀이었고, 땅 위에 있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이념이었으며, 혁신적인 사실을 제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인 연고로 하나님이 갖고 계신 말씀을 우리도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곳곳마다 선의 실적이 일어났고, 부활의 역사․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을 청산하고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며, 재창조의 능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말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쓰고 있는 말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온 말인가,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주님이 쓰고 계신 말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자랑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에도 통하고 땅에도 통하며, 창조함을 받은 모든 존재에게 통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 아버지가 들으실 수 있는 말,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여 할 수 있는 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많은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말 같은 말도 있고, 말 같지 않은 말도 있으며, 말씀도 있고 말도 있습니다. 이제 인간들이 찾아가야 할 최후의 말씀, 천륜의 말씀과 인연을 맺은 우리도 모든 피조만물과 일체될 수 있는 말씀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만물을 주관 할래야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은 우리가 알아야 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말씀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야 되겠습니다.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류는 이 말씀을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 왔습니다. 인륜을 통할 수 있는 동시에 천륜을 대변할 수 있는 그 말씀을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이런 사실을 생활권 내에서 느끼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생활을 대신할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현단계의 환경에서 시작하고 끝나야 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생명체들은 역사적인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사회적인 환경과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의 은사를 대신할 수 있고, 과거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으며, 미래의 이념을 입증시킬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과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나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 가면서까지라도 찾으시고자 하셨던 모든 인간들을 대표하는 장자의 유업을 계승시키고자 안타까운 심정을 품고 찾아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는 여러분이 되어야 땅과 사탄 앞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증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아들딸로 살려고 해도 이 악한 세상은 여러분을 전부 걸고 넘어지려 합니다. 이것은 복잡했던 6천년 복귀역사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종말기인 지금까지 움직여 나온 복귀섭리역사라 할진대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반된 생활이념을 최후로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과정에 들어간 사람, 즉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피조세계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심정, 더 깊이 들어가면 풀 한포기를 지으시던 심정까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에 부딪치면 하나님이 만물을 대하여 가지신 심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대하여 품고 계신 심정까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느낀 후에는 또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겠느냐?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인간들을 염려해 주고 그들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서러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인간들이 수많은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고난에 시달려 왔던 것을 동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책임졌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생애의 전면을 여러분이 땅 위에서 일순간이라도 느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옛날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느끼신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서러워하신 것과 하늘과 땅을 잃어버리시고 서러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서 섭리의 뜻을 받들어 예수님의 원한을 해원시키려 했던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중심으로 하여 더욱 활발히 뜻을 이루어 나왔고, 그의 슬픔을 나누어 느낀 많은 사람이 그와 더불어 수고해 왔습니다.
아담 이후 노아는 120년 동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다 갔습니다. 120년 동안 하나님의 이념을 땅 위에 나타낸 생활은, 오늘날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에 우리를 연결시키고, 아버지의 자녀임을 실증시키고, 우리를 중심삼은 생활적인 환경과 인연을 맺게 해 주는 토대를 세워 준 생활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통하는 이념을 나타낸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들어가면 여러분은 아담의 입장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해서 애달픈 심정을 갖게 됩니다. 또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불신하는 세상의 인간들을 대해 애달픈 심정을 갖고 나왔던 마음, 자기만이 아는 심정을 무지한 백성 앞에 나타내기 위해 애달파했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노아의 심정으로부터 아브라함․이삭․야곱․모세․예수님, 그리고 오늘날까지 수고한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들의 심정을 알고 그들을 위해 통곡하며 눈물지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역사적인 내용을 갖춘 이념을 부정하지 못하고 천륜의 역사성을 배반하지 못한다면 생활을 통해 이런 역사적인 서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은 역사적으로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나님의 생활적인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찾아 나오면서 체휼했던 것을 이어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죽을지라도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심정에 맞추면서 하나되어야 하고, 역사성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길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복귀의 운명은 역사적인 서러움의 운명인 것을 아는 이상, 여러분은 서러움의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인연맺기 위해 그 하나의 뜻을 놓고 눈물지은 것이 천정과 인정이 통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세워 놓고, ‘오! 하나님이시여, 나는 어떤 입장에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여러분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 선조들이 역사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생활을 체휼하면서 그 생활을 거쳐 나오게 될 때, 노아의 심정을 알 수 있게 되고, 혹은 아브라함․이삭․야곱, 그리고 모세와 수많은 선지들의 심정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하늘을 대하여, 만민을 대표하여 흘린 눈물의 전통을 남겨야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지옥에 가려 해도 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기독신도를 가운데 과거 역사 과정에 왔다가 천륜의 뜻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간 인류를 대신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아들딸에게 천륜의 뜻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현시대의 인류를 대신하여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아들딸이 있어야 하고, 미래를 염려하며 만민을 대신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아들딸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정을 통하고, 현재 그런 입장에 있고, 미래도 그런 사정에 처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는 무리를 대하여 울어 줄 수 있고 역사를 대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 끝날에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를 제시하는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붙들고 눈물짓고, 새로운 이념에 연결되어 눈물짓는 부부가 있다면, 그 가정은 최고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붙잡고 눈물짓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새로운 이념의 중심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 민족을 통하여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전체의 사랑과 진리가 소개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하여 아버지를 붙들고 ‘나의 아버지시여, 서러움을 맡겨 주십시오.’라고 호소할 수 있는 어떤 모임이나 단체 혹은 어떤 사회나 국가가 있다면 주위에 아무리 강한 문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문화권은 이런 국가가 단체를 밟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위해 나아가려 할 때 무엇을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되느냐 하면 보다 선한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활이념에 잠길 수 있는 그날을 복귀하여, 천상이 기뻐할 수 있는 생활적인 환경을 제시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 인간과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 역사적인 아버지,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시는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되겠느냐? 어떠한 이념을 가져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이념을 통과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 서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이지만 세계와 우주적인 입장에서 보면 우주와도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전체의 천륜의 이념과도 통할 수 있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념에 잠기고, 그 이념에 이끌리어 싸워 나가게 될 때, 수천만 원수들을 대해 싸워 나갈 수 있는 자리에 당당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이 땅은 천륜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땅이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악으로 출발한 이 역사를 악으로 종결시키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 역사를 거쳐온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는 천륜을 끌어안고 고스란히 그냥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필코 후대의 인간들을 위해 새로운 이념을 제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편 선의 역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역사성을 경과한 하나님의 역사이며, 천륜의 뜻을 위해 걸어온 역사입니다. 이처럼 현실에 나타난 하나의 사건에는 전체의 역사가 깃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현실을 초월하여 미래의 소망적인 것을 체휼해 나갈 수 있는 이념을 갖추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이념 가운데 서게 되면, 그 이념에 의해 모든 것과 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념으로 현실생활을 잘 분석하고, 그의 가치를 현실의 생활이념과 결부시켜 전체의 이념과 인연맺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기준을 갖고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완전히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제시해 준 이념을 인간들은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 말없이 6000년간 준비해 나오신 것입니다. 비참한 세상과 불쌍한 인간들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실지라도 땅 위의 의심을 청산해야 할 입장에 계셨던 연고로 부인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못하고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날까지 참아 나오셨는가? 하나님은 어느 한 때 전체적인 승리의 한 기준을 마음으로 세워 놓으시고 싸워 나오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원한은 천륜적인 이념과 우주적인 이념과 인륜적인 이념이 하나로 나타날 수 있는 그날이 되면 그 자리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 한 때가 왈 심판의 때라는 것입니다. 과정에서는 사랑하시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을 남기고 지금까지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노아의 심판 때와 같이 그때를 바라보아야 할 끝날의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이념을 대표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적인 이념을 통할 수 있고, 인륜을 전할 수 있고, 말씀을 전할 수 있고, 하늘의 종교를 전할 수 있고, 하늘의 생활을 전할 수 있으며, 하나의 신념과 이념을 전할 수 있는 선지자의 사명을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적인 이념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가져야 할 이념인 것입니다. 그 이념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것을 반성하게 되면 시야가 넓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명을 짊어지고 나서게 될 때 느껴지는 서러움은 우주적인 서러움이요 역사적인 서러움이며, 소망적인 서러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하나를 위해서 서러워하고 아버지를 부르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 위에서 수많은 책임을 홀로 감당하고 싸워 내겠다는 각오와 하나님의 어려움을 느끼면서 기필코 하나님의 종족으로서의 위신을 세우고, 또 천적인 이념을 느끼면서 하늘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혈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할 수 있는 이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만 합니다. 그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는 것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이 못 돼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뻗쳐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대하여 만인류를 대신할 수 있는 참아들딸로서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일이나 혈통적인 일 등, 땅 위의 인륜적인 생활이 모두 천륜에 의해 이루어져 왔으므로 여러분은 이런 이념을 통하여 모든 것을 비판해 낼 수 있는 중심적인 가치를 여러분 자체 내에서 세워 놓고 만민 앞에 그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한 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후에야 하나님이 지금까지 싸워 오신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싸움이었는데, 이제는 하늘을 대신하여 땅을 중심삼고 사람끼리의 싸움으로 끌어내어 그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주인공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싸움의 노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승리의 조건으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본연의 하늘에 속해 있는지, 땅에 속해 있는지, 혹은 죄에 속해 있는지, 선에 속해 있는지를 알고 천적인 혈통의 인연을 가졌다 할진대 실제로 천적인 진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승리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적인 생활, 진리의 생활을 통한 인격을 가졌다 할진대는 자신의 일을 예고시킬 수 있고, 천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과 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세워 놓으시면 그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숭배할 자가 누구입니까? 오늘 끝날에 처해 있는 성도들입니다. 또 하나님을 안식시켜 드릴 자는 누구입니까? 보잘것없는 우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해원이 우리의 두 어깨에, 몸 마음에 걸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역사의 중추적인 조건을 앞에 놓고 있고, 우리는 놀라운 천지간의 사명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을 둘래야 둘 곳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땅 위의 문제에 허덕이는 입장에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직은 자신을 위한 안일한 생활이념을 세울 수 없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 위에 하늘법도를 제시하여 승리한 후부터는 안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런 과정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디에서 벌어질 것인가? 오늘날 민족적인 우월성을 나타내는 선진 국가들이 있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어느 민족이 하나님과 가까우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민족이다.’, ‘나는 하늘의 백성이다.’, ‘나는 하늘의 자녀다.’ 하는 자각을 가지고 살게 되면 반드시 싸움의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악한 세상이요, 악의 역사를 지닌 사회인 연고로,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고스란히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물과 불같이 하나되기 힘든 것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긍휼의 정, 즉 자신의 육신을 움직일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을 갖추고, 진리를 갖추고, 그 다음엔 생활 환경과 인격을 갖추고, 그리고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을 갖추어서 악의 세상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우주의 끝날에 있어서 천륜을 대신한 우주의 심판의 조건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책임을 다하고 직계적인 사명을 완수한 내가 되었느냐?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할 수 있는 진리, 생활이념을 통할 수 있는 인격, 하나님의 이념을 통한 사랑을 갖추어 만우주에 생명력을 주장할 수 있는 우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동하면 만물도 동하고, 그가 서러워하면 만물도 서러워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느낌에서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서 가지고 두려운 입장에서 ‘아버지시여, 6000년의 원한을 이 한 날에 저를 보고 푸시옵소서. 6000년 동안 대적해 나온 사탄을 나를 통하여 굴복시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만물 앞에 사람을 지어 놓으시고,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축복의 말씀이 아직까지 성취의 한 날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이념을 통한 새로운 사랑을, 새로운 생활을 통한 새로운 인격, 그리고 새로운 말씀과 진리를 갖고, 또 새로운 혈통을 통한 자녀로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 현재는 여러분 한 사람을 걸어 놓고 소망의 이념이 여러분을 찾아 들어가고 있고, 역사적인 이념이 여러분을 찾아 들어가고 있으며, 현실의 이념이 여러분을 찾아 들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 한 사람을 세워 하늘과 땅 위의 직계의 아들딸의 영광을 증거할 수 있는 한 날을 앞에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자기가 처신해야 할 입장을 모르고 자기가 머물러야 할 환경, 자기가 싸워 나가야 할 소망적인 환경을 지나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떻게 하든지 이 땅에 하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실현시키고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천적인 영광의 터전을 조성하는 동시에 지상의 모든 싸움을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사랑을 갖고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념을 갖추기 위하여 찾아 나가는 여러분들은 우주를 대신한 사랑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실천적인 생활이념과 실천력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과 실천력을 갖추고 나서게 될 때 지금까지 하늘을 대적해 오던 사탄이 자연히 굴복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자녀가 나타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장한 슬픔과 억울함과 분함을 먼저 느껴서 이를 해원해 드리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소망의 한 뜻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가던 이스라엘의 60만 대중을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평탄한 생활 환경, 자유로운 생활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고로 싸우고 있지만, 그들은 광야에 나가서 불신하는 가나안 7족과 싸워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싸움의 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은 여러분 한 사람을 놓고 여러분이 역사적인 범죄자인가, 신앙적인 변절자인가, 기회주의자인가, 혹은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실체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런 조건을 걸어 놓고 여러분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여러분은 하늘 앞에 드려질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물은 무엇인가? 갈라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른 것도 있고 안 가른 것도 있었으나 안 가른 것은 제물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는 국가적인 제물도 있고 세계적인 제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제물의 이념을 갖고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개인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고,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물되는 자리에서 패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갈라지는 자리, 싸움의 자리에서도 ‘오! 할렐루야! 주님의 영광, 6000년의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이 오늘입니다. 아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옛날 여호수아와 갈렙의 입장을 대신하여 담대하게 나서야 하겠고, 택함받은 제1이스라엘과 같이 광야에 나가 신앙의 기준을 잃지 말고 승리하는 하늘의 선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뜻 가운데 견디어 나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천륜을 대하고 다시 책임을 다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입장에 서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승리한 입장에서 아버지를 영원히 모시는 참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부르시게 될 때 ‘아버님이시여, 저는 믿고 있나이다.’ ‘저 여기 있사오니, 아버지시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이 이 땅 위에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고대하며 만물도 탄식하고 있사옵고, 성신도 탄식하고 있사옵고,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도 탄식하고 있는 이때이온데, 오늘의 나의 불쌍함을 놓고 울어서는 안 될 자신이요,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자신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성을 통할 수 있는 신념을 받았사오니 이것을 실현시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천륜을 통하고, 우주를 통하고, 그의 가치에 상대될 수 있는 천적인 아들의 모습을 갖추어 하늘의 섭리역사적인 기쁨의 날을 우리들 앞에 실현시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아들딸, 이제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을 위해서 싸웠지 나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오며, 전체적인 가치를 대신하여 천적인 인격을 겸한 천적인 인간의 삶이 되어 천적인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승자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에 강력히 대항하는 아들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부족한 저희들 이제 참아버지를 모시기를 소원하오니, 이제 저희들이 사탄의 밥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께 간절히 부탁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싸움의 일주일을 이기고 나왔사오니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의 성상이 저희의 마음 몸 위에 임하시옵소서. 아버지의 품에 안겼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충만하신 당신의 생명에 파묻히는 사랑의 기쁨을 이 아들딸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을, 아버지의 귀중함을 이 시간 체휼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저희의 옳지 못한 모든 죄악의 인연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이시여, 이제 이 한 시간 오로지 아버님의 사랑 속에 잠겨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섭리 앞에 정성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의 주관하심에 저희들이 순응하여 그 본연의 뜻을 내 마음이 체휼할 수 있으며, 본연의 심정을 내 마음에 느낄 수 있어서 땅 위에 세워진 저희들의 전체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남을 수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까지 험한 길을 걸어오게 될 때에, 슬픈 사정이 있을 때에는 저희들 보다 먼저 슬퍼하시던 아버님이셨사옵고, 저희들이 낙망권 내에서 스스로 탄식하게 될 때에도 저희의 모든 죄를 대신 반성하시어 사탄이 참소하는 마당에서 대신 싸워 주신 아버지이신 것을 아옵니다.
이 한 시간 이 몸 마음 다 드려 제물로 아버님께 바치더라도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많은 사람 가운데 보잘것없는 것들을 불러 세우시고, 수많은 민족 가운데 이 민족을 불러 세우신 아버지 앞에 감히 자신을 내세워 자랑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사옵니다. 이제 저희들 원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서러워하실 때 같이 서러워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는 것이옵고, 아버님이 기뻐하실 때에도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아버님이 바라실 때, 저희의 몸 마음이 뜻을 위해 폭발되는 것이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아버님 지켜 주시옵소서. 아버님만이 중심이 되시옵고, 아버님만이 저희들의 주인이 되시어서, 저희가 땅 위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저희들이 서 있는 자리가 외로운 자리요, 저희가 가는 걸음이 험한 길인 것을 아오니, 아버님,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의 싸움에서 쓰러질지라도 ‘아버지’라 부르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통하여서 위로받으실 수 있고, 저희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권고를 받아 또 싸워 나가야 할, 맹세하고 각오한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아버님, 부디 저희들의 몸 마음을 사탄에게 넘겨주지 마시옵소서.
부디 아버님의 사랑권 내에 품어 주시옵시고, 원하시는 동산을 이루어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이들을 통하여 나타낼 수 있게끔, 아버지, 끝까지 붙들고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한 시간, 아버님께서 허락하신 뜻이 이 성전에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이 시간 머무는 이 자리가 6000년의 수고의 결정체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6000년의 수고가 어린 피의 제단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리하여 온 인류를 대신하여 저희들이 드리는 이 한 경배가 아버지의 심정과 마음을 열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경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모든 것을 내놓게 될 때 아버님 뜻 앞에 빛이 될 수 있고, 아버지의 뜻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중심으로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외로운 식구들이 지방에 널려 고난의 싸움을 싸우고 있사오니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드리는 경배 위에 아버지의 긍휼의 은사가 같이 운행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내용은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입니다. ‘본향의 인연을 찾아 들어가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본연의 동산을 향하여 다시 회복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하여 이미 배웠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인고로 떨어지지 아니한 그 본연의 상태,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인고로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한 그 자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린 연고로 참부모를 잃어버리지 않은 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상의 참부모를 중심 삼은 평화의 동산에서 자녀로서 생활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우리는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새로이 구원섭리라는 명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조상이 선의 동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었던들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명사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구주를 통해야 할 조건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워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할 이러한 조건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 없다고 하면 새시대라는 말도 필요 없을 것이며, 회개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자체를 세워 놓고 분석해 보게 될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요구되고 있고, 새로운 지도자가 요구되고 있으며, 새로운 생활, 새로운 실천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 모든 사실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오늘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간들이 바라는 그 소망의 본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마음으로는 그 본향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그 본향을 찾아 이루어 즐기지 못하고 있고 그 본향 가운데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본향의 동산에서 즐긴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새로운 사명을 책임졌던 도의 주인공도 지상에서 그 이념을 이루고 간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날까지 창조주는 물론이려니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도 본향의 이념을 땅 위에서 완성시키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향의 동산을 그리워하며 산다 할진대는 어차피 이 본향의 동산을 성취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책임과 본향을 이루는 인간의 책임을 연결지어 줄 수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세워 본향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 주기 위한 기도나 혹은 종교의식이라는 조건을 제시해 주는 사명을 선한 사람들에게 맡겨서 하나님은 역사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살펴보게 될 때, 우리는 어차피 선한 마음의 인연을 따라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여러분이 선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땅, 소망의 본향을 성취하는 그날까지 나가는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노정에는 싸움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고, 끊임없이 서로를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을 향한 참소와 탄식의 조건이 영원히 이 땅에서 해결되기를 바라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슬픔이요, 땅 위의 서러움입니다. 서러움과 슬픔을 겪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서러움의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당하는 슬픔과 서러움을 염려해 주어야 할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인고로, 인간이 서러워하면 하나님도 서러워해야 하고 인간이 슬퍼하면 하나님도 슬퍼해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내 한 자체를 세우시어서 우주적인 생을 갖게 한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배후에도 어떤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의 이념을 찾아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생명의 배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념과 관계맺게 해 주는 생명의 인연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의 인연과 환경의 인연과 이념의 인연을 찾을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은 쉬지 않고 그 어떤 인연을 찾기 위해 허덕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연을 찾아 인간관계만 해결할 것인가, 아닙니다. 인간관계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인륜을 넘어 천륜에까지 연결지어야 합니다. 그런 생애의 인연인 동시에 생활적인 인연이요, 환경과 혹은 전세계적인, 혹은 전천주적인 인연으로서의 그 자리는, 자신을 중심삼고 나타낼 수 있으며, 증거될 수 있는 생활을 느낄 수 있게 될 때에 인간은 비로소 승리의 한 날을 맞을 것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사는 이상 이 환경에서 인륜적인 법도를 벗어난 생애의 발판을 가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땅 위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인연을 통해야 할 것인가 하면, 부모의 인연을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태어난 여러분은 어떤 인연과 목적권 내에 처해 있느냐 하면, 부자의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의 인연을 통한 후에는 무슨 인연을 가져야 될 것인가? 생활적인 이념을 찾아 나서게 될 때, 부부의 이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인연과 생활의 인연을 갖고 난 후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인가? 생활의 인연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국가와 국민의 인연을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인연권인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인연권 내에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마음에서 요구되는 하나의 절대적인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우리가 그리워하며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은 생활에서 느낄 것입니다.
그 인연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에서 주체로 계시는 신의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될 때 어떤 영구한 인연을 갖고 태어났던가? 생을 갖기 위한 부모와의 인연이 있었고, 생활의 이념을 찾기 위한 부부의 인연을 통해야 하며, 실천적인 활동을 위한 국가적인 인연을 통해야 하며, 인륜을 넘어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은 타락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 타락권 내에서 복귀권 내에로 올라가려는 우리의 길을 방해하는 어떤 인연을 끊고 이것을 밟고 올라서게 하는 한 줄기의 인연으로 이 땅에 세워 놓은 것이 구원섭리를 담당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땅 위에 우리가 살게 될 때, 천륜의 법도와 인륜의 법도를 우리는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을 의탁할 수 있는 부모와 통하고 부부와 통하고, 국가와 통하고, 그것이 전세계에까지 인연맺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노래하고, 만물과 화동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기 위해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여러분은 투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진 싸움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출발이 싸움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종결도 싸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정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모를 갖고 있고, 자기가 안길 수 있는 국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의 안식의 터를 잃어버린 이 땅의 인류이기 때문에 이러한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애달파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 땅 위에 부모 없는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애달파하는 하나님이 아니요, 땅 위에서 부부가 없어서 슬퍼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땅 위에 국가․민족이 없어서 슬퍼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륜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인연이 땅 위에 성취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의 후손인 인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부모나 몸담아 살고 있는 국가와 이 세계가 하나님의 이념을 그냥 그대로 소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락권 내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어차피 한 단계 넘어서 수행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인간들을 대해 섭리하여만 하는 것이 하늘의 어려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이제 영원한 이념의 노정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는 무슨 길을 통해서 어떤 걸음을 걸어야 되겠느냐? 현재 있는 것이 아닌 비약적인 하나의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조건입니다. 그것을 책임지고 찾아 놓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타락의 후손인 전세계 인류는 오늘날 어떠한 입장에 놓여 있는가? 하나님을 영원한 부모로 모셔야 할 입장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생애의 출발을 보았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즐거움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신랑 신부의 인연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본연의 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실패요, 가정적으로도 실패이며, 그 다음에는 만민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였고, 또 하나님과 인간의 최대의 즐거움을 약속해 주는 환경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예수를 믿고 신앙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본래의 목적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현재의 환경권 내에서 즐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벗어나 어느 한 날 죄악으로 말미암아 얽히어 있는 모든 원인을 청산해 놓고, 본연의 중심을 찾자는 것입니다.
본연의 중심은 무엇인가? 거기는 부모도 있어야 할 것이고, 부부도 있어야 할 것이며, 자기의 가정을 지켜 줄 수 있는 환경과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찾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신앙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악한 인간들이지만 선한 마음을 불어넣으면서, 양심을 움직이시어 이와 같은 이념의 기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섭리를 해 나오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나서 여러분은 자기의 모든 성심을 다해 선을 위한 투쟁을 해야 되겠고, 본연의 법도에 어긋나 있는 인간들이요, 세계인 것을 느껴서 이것을 대해 싸울 수 있는 변치 않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부모로부터 양육받아 부모의 생활을 통하여 국가적인 인연권, 혹은 세계적인 인연권 내에서 생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들의 삶을 살펴보면 인륜을 중심삼은 삶이 아니요, 영원을 중심 삼은 삶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했던 연고로 결과되어진 이 땅 위의 모든 삶의 형태와 이념은 어차피 심판의 한 날을 고비로 하여 청산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이념이 이루어지지 않은 땅 위에 있어서도 부모의 인연이 없으면 서러워하고, 부부의 인연이 없으면 서러워하며, 자기와 자기의 가정을 보호해 주는 국가가 없으면 서러워할 줄 아는 것이, 인간 서로서로의 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같이 변할 수 있는 인연이라도 환경을 갖추지 못하면 서러워하는데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은 인연을 갖추지 못한 것을 서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같이 인간들은 땅 위에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다 주어도 거기에 가중하여 천륜의 영원한 인연을 또 바라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신앙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변할 수 있는 이념적인 조건을 갖고 살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인연을 회복하되, 그 인연은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요 자기가 사는 생활권 내에서 전체가 하나의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그것이 실증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그 시간권 내에서 그 환경권 내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즉 하나님과 일체적인 인연 가운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게 해 주는 신의 실체를 느낀다면 그 가치는 부분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전체적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게 될 때, 개체와 전체의 가치는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죄악역사는 어차피 한번 변화를 겪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일단 변화후 선의 세계가 되면 그 이상 변하지 않는 이념의 문을 인간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 하나님은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당신은 일체를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것도 독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신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앙의 이념으로 살아 온 유대민족의 정신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랬습니다. 그런 소망을 결실시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하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활적인 입장에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부의 일체이념을 생활권 내에 세우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돌아가시면서도 당신과 성신을 통한 부모의 역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인간의 대표자로, 혹은 하나님의 대신자로 오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야는 어떠한 것이었나. 먼저 여러분은 예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이 타락권 내, 즉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의 시선과 타락한 인간들의 시선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 하나의 문제에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아버님만이 제일이라는 인연을 실현하기 위해 고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대하여 내가 신랑이라는 명사를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인류의 신랑의 자격을 갖추기 전에 하늘 앞에 신부의 입장을 완결하는 단계를 거치신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지나 참부모의 이념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였으나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시고 있는 부모, 자기와 더불어 생활하는 부부, 자기가 활동하는 국가를 갖고 있었고, 자기들이 소망하는 세계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서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갖고 있는 소망을 알리고, 그 이념을 살리고, 그 전체적인 생활, 그 역사적인 생애노정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적 가치를 지닌 이념의 중심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했는데, 그들은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류의 모든 소망을 완결시키기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생활을 하셨던가? 예수님은 땅 위의 요셉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요셉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라신 인연은 땅 위의 인간들의 소망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변하는 환경에서 슬퍼하는 부모의 인연이나 부부의 인연,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환경적인 인연, 더 나아가서는 심판권 내에 있는 세계적인 인연을 초월하여 예수님은 선의 중심인 변치 않는 천륜의 부모의 심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타락한 이후 4000년 역사가 경과하면서 찾아 나온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해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던 이 땅에 비로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리하여 변할 수 있는 부모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인간들이 변치 않는 영원한 부모의 인연을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이 뭐냐 하면 성경입니다. 성경의 중심이 무엇인가? 예수님입니다. 예수의 중심은 무엇인가? 사랑입니다. 사랑의 중심은 신랑 신부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중심은 무엇인가?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찾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무리 지혜가 많고 자신을 세워서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변하지 않는 참부모의 혈통을 받지 못한 죽은 인간인 것입니다. 죽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 참부모와 인연을 맺어야만 천륜의 영원한 인연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되찾기 위해 영계가 동원되어 싸우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영원한 인연을 기독교인들은 소망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천상에 부모의 인연이 결정되고, 천상에 부부의 인연이 결정되고, 천상에 국가적인 인연이 결정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위에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이념을 실현시키는 데에는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부모의 인연과 생활을 위한 부부의 인연과 활동을 위한 국가의 인연과 우주적인 인연이 맺어져야 합니다. 이런 우주적인 창조의 이념이 인간들의 생활 환경에 찾아 세워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000년 동안 하신 일이 무엇인가? 이것을 개척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개척의 선봉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나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어떤 길이냐 하면, 부모의 인연, 부부의 인연, 국가의 인연을 연결짓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륜의 심정을 통하신 분이요, 천국의 심정을 통하신 분이요, 섭리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자의 심정을 통하신 선의 중심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이 길은 무슨 길을 가리키신 것인가? ‘사랑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전체적인 생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생활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서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생활권 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소망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과는 통할래야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서러움입니다. 이것을 누가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을 가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안타까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인간끼리 서로 보고 듣고 자기의 심정을 나타낼 수 있으나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은 6000년 싸움의 역사를 경과해 오셨지만, 어느 민족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6000년을 경과해 왔지만 아직까지 하늘과 나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연은 세워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고 예수님까지 보내시면서 섭리해 오셨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참아들딸을 찾으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수고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상의 중심으로서 이상의 생활이념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서 계시지만 타락권 내에 있는 인간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선지선열들을 보내시어 섭리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늘의 어려움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전인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하려고 오시는 하나님의 대신자를 구주로 모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이 이 땅 위에 세워지기를 하나님도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들이 본연의 인륜의 기준과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륜의 기준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경배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마음속에 간직한 것, 예수님이 서러워하신 것은 무엇이었던고?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은 부모가 없어서, 혹은 부부나 나라가 없어서 서러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서러워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지 못하고, 또 참부모를 중심으로 참된 하늘나라를 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수시로 변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천륜의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 애쓰셨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님이 제시하신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사시면서 불변한 원칙의 중심을 세우는 사명을 띠고 오셨지만,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잃으셨기 때문에 돌아가셔서 이 일을 성취시켜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영과 육이 합한 세계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이셨는데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영적으로 인간들을 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섭리의 완성이 아니므로 다시 이 땅에 강림하셔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느낀 또 다른 서러움이 무엇이었던가? 만일 인간들이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마음 몸으로 친히 선한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었을 텐데 타락함으로 인하여 40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참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참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아버지의 입장에 서셨던 예수님이란 것을 당시의 인간들이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오신 예수님을 몰라주는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요, 자녀의 입장인 인류와 부자의 인연을 갖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애달픔이요 서러움인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의 보응이 무엇인가? 영원한 창조주가 아버지이신데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 타락의 보응이요 원한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잘 알고 계셨으므로 인간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사랑의 손길로 인도해 주시고자 했지만 인간들이 그 심정을 몰라주었고, 사랑의 말씀을 했으나 인간들이 외면했으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으나 인간들이 예수님의 사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사는 여러분은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고, 나라에 충성해야 하고, 즉 인륜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인간들이 걸어야 할 인륜과 천륜을 통합시키는 사명자로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준 자가 누구였던가? 오늘날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많고 그의 심정을 망각하는데, 2000년 전의 사람들은 더욱 예수님을 몰라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진정한 크리스천인가 하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성취하고 회복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드리는 것이요, 6000년 동안 서러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여 하나님을 서러움에 사무치게 했던 2000년 전의 사람들을 대신하여 회개해야 되겠고, 또 현실적인 무지함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따른 자가 누구였던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 아닙니다. 그 열두 사도 가운데 세 제자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소개했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셨던 예수님이었지만 인간들과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천륜의 사랑의 말씀을 전하였고 사랑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이었지만, 붙잡고 ‘내 아들아! 내 아버지!’ 하며 부자의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자들은 졸고 있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며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그 심정과 사정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사랑할래야 사랑할 데가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없고, 충신, 열녀의 입장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기독교인들이 찾아 나가야 할 것, 이제 싸워 이겨 성취해야 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붙들고 6000년의 역사적인 서러움에 사무친 심정을 위로하고 해원해 드리는 것입니다. 서러운 아버지의 가슴을 붙들고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에 그 한마디의 말로써 갈라졌던 천지가 다시 인연 맺어질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서러움은 여러분으로부터 떠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조건에서 여러분은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이 일을 성취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이 예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본심대로, 가르쳐 주신 대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대로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지니고 사는 사람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의 정을 나타낼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부부의 인연도 갖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원한이 해원되지 않은 것을 아셨기에 안락한 환경도 다 버렸습니다. 세상의 사사로운 모든 관계를 다 끊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도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가려서 갈 수 없는 천륜적인 조건이 있었던 연고로 예수님은 가정에서 배척을 받아도 묵묵했고, 사회에서 배척을 받아도 묵묵했으며, 사탄의 참소를 받아도 말을 하시지 못했습니다.
6000년 동안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하여 바라왔던 하나의 신부를 찾으시지 못했고, 하나의 아들딸을 찾지 못했던 예수님이 누구를 대하여 원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중심존재로서 예수님의 전체의 이념, 즉 생활적인 이념, 부부의 이념, 부모의 이념을 인계받을 수 있는 참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사랑의 이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을 소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사정을 내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전부 가려 놓고,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입장에서 되어진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가르쳐 줄래야 가르쳐 줄 수 없는 입장에 서셨던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본연의 이상을 대신하여 땅 위에 선의 이념을 이루어 나가는 참사람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상징적인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상징적인 섭리를 형상적으로 풀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 지금까지 땅 위에는 하나님이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이후 지금까지 자기의 모든 이념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안 나왔던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이룰 수 있는 실체적인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상대자가 되어야 하는가? 만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상대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선까지 통하기 전에는 여러분이 영원한 인연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랑을 통한 부모의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고, 부부의 인연, 또 국가적인 인연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러분이 본연의 길을 찾아 나가고자 할 때 이 땅의 모든 조건이 여러분을 걸고 늘어질 때가 옵니다. 끝날이 되면 될수록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것만으로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차피 바꿔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부모의 인연, 부부의 인연, 실천적인 국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날 하늘의 이념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부모가 그를 반대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이념을 찾아 나서게 되면 여러분의 부모가 끊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부부가 끊는 놀음이 벌어지고, 국가와 세계가 끊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걸은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혹은 교회와 국가․세계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자의 심정으로 천륜의 변치 않는 법도와 이념을 붙들고 돌아가셨기에 그 이념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승리의 환경이 조성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몰아내었던 인류였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 예수님을 찾아가는 인간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환경을 거쳐가야 하고, 부부가 반대하는 환경을 거쳐가야 하며, 국가가 반대하는 환경을 거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가진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변치 않는 천륜의 부모와의 인연과 본연의 부부의 인연을 통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부의 인연에 의해 일체적인 생활이념을 세우고, 하나님을 모셔 놓고 땅을 대해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충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예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과정에서 있게 되는 고비를 넘기 위해 과거에는 천사들을 통해서 섭리했고, 그 후에는 독생자를 통해 섭리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아버지를 통하여서 주관받는 때가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만으로서는 안 됩니다. 또 성신의 사랑만으로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맺을 수 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 위의 어떤 사랑의 조건에 얽매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땅 위의 어떠한 영광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소망의 한 날이 다가오는 이때 우리는 아버지가 심판하시는 공포의 한 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인간이 가야 할 본연의 그 길을 가기 위해 나선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먼저는 물질을 버려야 되고, 다음에는 부모와 자녀, 즉 가정을 잃어버려야 하며, 그리고 국가와 세계까지 잃어버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승리의 고개를 넘으실 때 부모도 잃어버리고, 친척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우주 주관의 이념도 잃어버렸으나 오직 하나의 중심은 변치 않으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중심은 뭐냐 하면, 영원히 변치 않는 부모와 부부와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변치 않는 영원한 인연을 위해 일시적인 땅 위의 가치와 인연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끝날에는 자기가 좋다하는 그것에 의해 심판받을 때가 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학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잘못하면 학위가 여러분의 목을 달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혹 권세를 원하십니까? 그 권세가 여러분의 목을 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에 의해 넘어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왈 대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다고 하던 조건, 자기가 생명시하던 그 하나의 조건이 여러분을 심판대에 넘겨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자리, 힘든 자리에서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짐으로써 부활받아 제2의 자신을 탄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때는 끝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자기 집안식구가 원수입니다. 나아가 자기의 육신․국가․사회 등 복귀되지 않은 모든 것은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런 딱한 사정을 놓고 ‘아버지시여, 이런 사정을 누가 알겠나이까?’라고 호소할 수 있는 마음, 천륜의 심정을 가진 사람은 참생명을 얻을 것이요, 승리의 부활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최후 담판기도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2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이 부활의 조건이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 천륜을 대신하여 싸워 오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에 맺힌 그 인연이 여러분을 통해 귀결될 수 있고, 그 슬픔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는 개인이 된 후에,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는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고, 효자가 되고, 국가․세계를 이루게 될 때, 그때는 종교가 필요 없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명사가 필요 없고 구주라는 명사가 필요 없게 됩니다. 둘이 아닌 하나의 일체적인 인연권 내에서 하나님은 비로소 인간을 대하여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 들어서기 위해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뒤를 그냥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생활이념을 그대로 계승해야 되고, 불변의 부활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 기준은 인간 중심이 아닙니다. 천륜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천륜적인 부모의 자리, 천륜적인 부부의 자리, 천륜적인 효자의 자리를 거쳐, 천륜적인 효자의 법도를 여러분이 세우고, 열녀의 법도를 세우고, 충신의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
역사이래 이런 효자, 충신, 열녀가 얼마나 있었던가?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만 사탄세계에 매여 있는 모든 조건을 풀고 본연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 연후 이 땅의 모든 인류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의 천정을 대한 일체적인 이념을 찾아서 실체적으로 실천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모든 인류가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 앞에 사랑받는 효자․효녀가 되어 부모님을 모셔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가정, 국가, 세계가 하나될 수 있게 만들어 사탄을 분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이제부터 싸워야 하겠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부활의 영광권 내에 들어가더라도 여러분의 뒤를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이 따르는 사탄을 여러분은 쫓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나님을 중심 삼고 땅 위에서 주인공을 찾아야 되고, 부모를 찾아야 되고, 부부를 찾아야 되고, 자녀를 찾아야 되며, 하늘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하늘나라를 세우고 하늘의 세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사탄이 여러분의 뒤를 언제나 따라다닐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신앙상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불변의 이념권 내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진리의 기준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진리의 해방권 내에 있고, 진리를 따랐다고 해서 자기가 진리의 실체가 되었느냐?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영계에서 하늘 뜻을 위해 싸워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하늘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되고, 2000년 역사가 서러운 역사였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러움을 이기며 나가는 새로운 진리와 일치된 신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인연맺어진 것과 아버지의 변치 않는 심정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보이지 않는 사탄을 대비하여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000년의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슬퍼하신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더라도 변치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곧 그만두게 됩니다. 2000년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좋을 줄만 알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보고 다 도망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가지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생사의 경지를 왕래했고, 사탄 앞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을 중심을 갖고 있었던 예수님과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잃었던 사랑과 생명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탄 앞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는 인간이 모두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슬픔과 괴로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낙망하지 않으면서 참된 인연을 회복시키기 위해 원죄와 사탄의 역사를 일소시키고 변하는 환경을 변치 않는 환경으로 개척하면서 모두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된 가운데 사탄과 대결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새로운 이념을 확산시킬 수 있는 하늘의 식구가 되었습니까? 한 가정의 식구라면 부모를 모셔야 하고 부모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를 받든 후에야 형제들이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즐길 수 있는 환경도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일신의 기쁨이 부모와 이웃의 기쁨이요, 국가․세계․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를 부모 형제와 같이 대하면서 살게 되어야 하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제시해 주신 생명과 진리와 사랑의 길을 다같이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변치 않는 마음을 갖고 사셨듯이 변치 않는 마음을 갖고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승리하고 아버지 앞에 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아버지가 여러분을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게 되어야만 본연의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에 대해 본연의 부자의 인연을 느낄 수 있고, 인간끼리 또 만물에 대한 본연의 인연과 사랑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 도> 가정에서나 국가에서나 그 이념적인 노정에서나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인연을 찾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자신들임을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아들딸들로 하여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몸의 인연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고, 마음의 인연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또 이제까지 자신들은 땅 위의 인연에 의해 몸과 마음이 움직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시여, 이제 저희 자신들이 재창조의 원천으로 폭발되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늘의 힘과 사랑과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모든 원수들의 참소와 사망의 조건을 타개해 버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하나됨으로써, 영원한 진리의 실체가 되고, 만우주 앞에 자랑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부디 변치 않는 마음으로 영원한 영광 가운데서 아버지와 동거할 수 있는 아들딸․효자․효녀․열녀․충신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의 아버님이여! 이날은 모든 만민이 당신 앞에 나와 자신의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할 날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 지난 일주일 동안을 지내는 가운데, 아버지 앞에 옳지 못한 것들이 많았을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이여, 그 동안 저희의 부족했던 모든 것을 이 한 시간에 용납하여 주시옵고, 온유겸손히 당신 앞에 엎드려 회개할 수 있는 심정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일주일 동안에 잘못된 모든 것을 청산하는 동시에, 생애노정에서 저끄렸던 저희의 모든 것도 당신 앞에 숨김없이 내놓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 먼저 아버지를 찾은 기쁨과 환희를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다음에는 저희들이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하고, 또한 아버지를 찾은 그 기쁨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찾으시려던 본연의 모습을 찾게 이끌어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저희들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의 마음 가운데 아버님을 찾아 모시기 전에는, 저희들의 생의 목표를 찾을 수 없사옵고,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의 원소를 가질 수 없사오니, 저희의 중심이 아버지와 통하지 않을래야 통하지 않을 수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중심이 옮겨지지 않는 가운데 뜻을 위해 힘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나라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특히 외로운 제단에서 아버지 앞에 갈급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는 아들딸도 많사오니 아버님이여! 그들의 친구가 되시옵고, 그들의 위로자가 되시옵소서.
그들 모든 생명의 지도자가 되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애의 이념을 나눌 수 있게 하시고, 사랑의 이념을 의논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아버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직고하는 심정으로 엎드렸사오니, 사랑의 심정으로 저희를 찾아 주시옵고, 부모의 심정으로 찾아 주시어서, 저희로 하여금 영원히 변치 않는 인격의 중심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고, 아버지 대신 뜻을 책임질 수 있는 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또한 이 시간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오로지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영광만이 전체의 머리 위에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길과 그 목적과 가치’입니다. ‘길과 그 목적과 가치’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만물은 하나의 길을 찾아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만물도 자신의 개체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용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도 모르는 어떠한 중심적인 길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현재 걸어가고 있는 여러분의 길이 그러한 중심적인 길과 다르다면 여러분은 그 중심적인 길을 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개인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있는 동시에, 단체․사회․국가․세계를 거쳐 나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천륜을 거쳐 나가야 할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의 내 한 자체가 이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이요, 하나의 나일지라도 이 나라는 존재는 본래 천륜의 뜻을 향하여 걸어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느끼지만,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영원히 책임질 수 있으며,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길을 걷는 사람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나 땅 위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이념과 사실들을 많이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이 가려는 길의 목적점을 모르는 채 그저 허덕이고 있는 자신인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자기도 모르는 길, 목적도 없는 길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옛날 선조 때부터 하나의 길을 찾아 나온 것은 개인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개인이 합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 합하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가 합하여 국가를 이루고, 국가가 합하여 세계를 이루고, 그 세계가 또 합하여 나아갈 어떠한 길을 찾아 헤매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생활권 내에서 잘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개인이 어떠한 생의 이념을 찾아 나가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어떤 길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내 한 개인과 전체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귀결점을 향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싸움의 길을 거쳐오면서 그 싸움의 귀결점인 통일의 이념을 향하여 움직여 나왔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싸움의 목적이 달성되는 그날에 있어서, 그 목적 자체와 우리가 영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입장에서, 하나에서 전체까지 관철될 수 있는 하나의 크나큰 가치를 찾게 될 때에, 비로소 오늘날 인간들이 걷고 있는 길의 목적점이 찾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한 개체가 그러한 우주적인 전체의 가치를 찾아 나가고자 하지만, 내 개체의 마음과 몸이 그것과 합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방향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과 몸이 천륜을 향한 길과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만, 그 목적을 바라보며 내가 현재의 생활에서 즐길 수 있고, 그 가치를 대하여 생의 이념 가운데서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기말적인 환경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찾아 나가는 그 길이 어떠한 목적을 중심삼고 있으며, 그 길과 여러분은 어떠한 거리를 남겨 놓고 있는가를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종교를 통하여 나아가는 길도 있을 것이요, 과학을 통하여 나아가는 길도 있을 것이요, 혹은 정치․ 경제․철학 등등 각자가 처하여 있는 각 분야에서 각자마다 가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 길들이 영원한 전체적 길과 다를지라도 그 귀일의 목적점이 전체가 환영할 수 있는 통일을 향하여 모여지게 될 때에, 목적했던 새로운 길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개체 개체가 처하여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길로 출발하게 할 수 있는 영원한 가치를 찾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아무도 그런 가치와 그런 목적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새로운 생의 이념을 세울 수 있고, 새로운 생애의 힘을 형성할 수 있는 천적인 가치, 천적인 목적의 자체로서 움직일 수 있는 그 한 기준을 오늘날 우리들은 종교에 있어서나, 과학에 있어서나, 혹은 문화적인 면 등 그 어떠한 면에 있어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아직까지 그러한 목적과 방향, 혹은 목적 자체도 알지 못하는 입장에 처하여 있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몸이 천륜과 합하는 그 한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우리의 마음과 몸, 천륜이 합할 수 있는 한 기준을 찾아 세우기 전에는 도저히 우주적인 목적과 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된다 할지라도, 마음과 몸만 하나된 그 자리에서는, 우리가 영원히 안식하고 통일의 이념을 느끼는 그 장소를 자기 한 일신이 취해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떠한 입체적인 하나의 목적의 가치를 여러분 개체와 인연맺을 수 있는 그 자체로서, 전체 생활의 이념과 생활의 힘으로서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혹은 영을 중심삼고 움직이게 될 때에 비로소 신의 전체의 가치를 더듬어 살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음과 몸을 통하여 걸어 나가는 이 노정은 어떠한 이념의 종착점으로써만 나타날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넘어서 영원하고 전체적인 천륜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주체와 인연맺게 될 때 거기에 비로소 내 마음도 머물 수 있고, 내 몸도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인간은 마음과 몸이 갈라져 있고, 또 마음과 몸이 천륜과 갈라져 있는 것을 연결시키려고 종교를 통하여 이런 길을 찾아 나왔고, 또한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려고 이 길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간 앞에 소개된 과학적인 진리라든지, 종교적인 진리가 본래 인간들이 걸어 나가야 할 궁극적인 길을 제시해 주었는가? 아직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인간은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고, 영원한 천륜, 혹은 어떤 절대적인 신, 창조주와 하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우리들의 생활을 통한 생애이념 가운데서 찾아 세워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직까지 자신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어떠한 위치에 처하여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주에게 어떤 이념이 있고, 창조함을 받은 피조물에게 어떤 이념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여러분 자체를 벗어나서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의 최고 이념의 나를 통하여 나타날 수 있고, 그 이념의 목적이 이루어진 곳에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즐거워할 수 있는 한 기준을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기준을 갖추지 못한다 할진대는 현실의 생활에서 세상적인 환경을 여러분은 타개해 나갈래야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절대적인 가치를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목적체를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찾아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현재를 끝날이라고 예고하고 있으며, 우리도 또한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최후의 종결시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사회의 풍습이나 환경, 자연현상, 즉 기후나 절기 등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처하여 있는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이 인륜과 합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만으로서는 도저히 그 목적을 달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나왔고, 혹은 지금까지 수많은 성현들이 찾아 나왔던 그 과정으로서는 전체의 가치와 목적을 도저히 달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과 입장에 처해 있는 내 한 자체를 찾아 세워야 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인륜을 벗어나 천륜과 영원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 한 길을 오늘날 인류역사 종말시기에 나타내야 되겠고, 또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 그 뜻을 성취시켜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의 생애노정은 절망에서 출발하여 절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한 역사이기 때문에 이 거대한 우주는 개인에서 출발하여 전체의 목적을 향하여, 즉 통일적인 귀일점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 귀일점은 반드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귀일점도 역시 하나의 중심을 떠나서는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인륜적이 표준을 넘어선 천륜과, 혹은 전체의 목적과 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통한 모든 힘의 목적체로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게 되는 새로운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처하고 있는 20세기 문명권 내, 혹은 각자가 처하고 있는 분야에서 우리가 새로운 혁명적인 조건들을 찾아 세우게 된다면, 그 조건들은 인륜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동시에 천륜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와 같은 혁명적인 조건을 생애노정에서 생의 목적의 중심으로 찾아 세우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인간의 전체목적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모든 것이 끝에 이르렀습니다. 정치면 정치, 철학이면 철학, 종교면 종교 모두가 맨 끝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종교로서의 사명을 허덕이면서 수행해 나왔지만, 궁극적으로 찾아 세워야 했던 하나의 기준은 아직까지 소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도 그러하고, 철학도 그러하며, 어떠한 문화적인 역사노정도 역시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때는 어차피 온 우주가 하나의 목적을 통한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신 이상 그것은 필연적인 과업이므로, 창조주의 이념을 통하게 되는 그때에는 지금까지 믿고 나오던 그 정도, 지금까지 숭상해 나오던 그 어떤 문화적인 조건 가지고는 그러한 문제를 도저히 타개해 낼래야 타개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중심하고, 또는 몸을 중심삼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의 종교, 지금까지의 철학, 지금까지의 과학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20세기의 과학문명을 자랑하고 있는 현대인간들이라 할지라도 과학을 통한 새로운 종교의 이념을 찾아낼 수 있는 그 어떠한 새로운 과학, 철학을 통해서도 철학 그 자체에 그치지 아니한 어떤 새로운 이념의 철학, 또한 종교를 통해서도 지금까지의 모든 종교가 갖지 못하였던 새로운 이념을 지닌 종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가 여러분 앞에 반드시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떤 분야에서 생활하든지 어느 한 시간 평안한 마음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생활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이 전체의 목적을 대신하여 살았다 할 수 있는 조건,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있는 자랑의 조건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까지의 인간들을 바라보시고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역사의 과정은 비참한 투쟁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궁극적으로 가야 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므로, 여러분이 사는 환경, 머무는 곳곳에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러한 투쟁의 환경에서 승리하여 아버지 앞에나 사람 앞에서, 또는 피조만물 앞에 자기를 떳떳이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서 나타나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탄식과 슬픔과 원망 가운데 살고 있는 자신인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면, 여러분 자신이 아직까지 넘어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어 천륜을 세워 섭리하신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목적이 되는 동시에 인류의 목적도 될 수 있는 그 하나의 목적지와,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는 그러한 귀일점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찾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떠한 욕망이 있겠지만 그 욕망은 그저 개인에서만 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욕망은 개인을 넘고, 세계를 넘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까지 도달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내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그 욕망이 어떠한 이념과 상관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환경이라는 것은 우주의 이념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한 개인을 중심삼고 지금까지의 습관이나 자기들이 알고 있는 권내에서만 스스로 만족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선택한 본의도 아니요, 인륜의 법도를 찾아 나오는 이상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은 인륜의 법도와 천륜의 법도를 넘어서 온 만물을 통일적인 이념으로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요구해 왔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들의 마음이 그렇고, 생활도 그렇고, 바라보고 나가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생활이 개인에서 그친다면 여러분은 일신의 가치를 전체 앞에 나타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자기만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전체가 살기를 바라는 것이 본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전체를 위한 욕망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어디를 향하여 걷고 있습니까, 여러분 개인을 위하여 걷고 있습니까, 사회와 통하기 위해서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국가와 통하기 위하여 걷고 있습니까, 혹은 세계와 통하기 위하여 걷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걸음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말시대를 맞이한 끝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세계적인 이념을 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하는 사업도 그러하고, 우리의 생활도 그렇고, 우리의 이념도 모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생활은 그러한 이념을 통하고, 소개해 주는 생활이 못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역시 그러한 환경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머물고 있는 환경에서 내가 가장 귀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자체를 갖고도, 자신의 영원한 이상을 충당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지 못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앞으로 가야 할 노정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를 역사적인 눈으로 관찰해 본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을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끝날에 인륜적인 요구가 끊겨진다면 인간은 절망 가운데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있어서는 인륜적인 요구가 인륜의 역사와 관계를 맺어 하나의 목적을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중심이 여러분 개체 개체를 통하고, 새로운 천륜과, 새로운 우주 역사와 관계를 맺고 나타나게 될 때에 거기에서 비로소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있는 이념이 찾아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다시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내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머물러 있는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비단 그 학문만으로서 끝날 것이 아닙니다. 혹은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종교만으로 끝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넘어 끊임없이 더 크고 새로운 차원의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방향에서도 모든 것을 맺어지게 할 수 있고, 어떠한 방향에서도 공적인 가치의 것으로서 나타날 수 있으며, 어떠한 방향에서도 생활적, 혹은 이념적인 중심으로서 움직여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실생활권 내에 직접적인 힘을 나타낼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힘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인간이 소망하고 찾아 나가는 전체적인 생의 목적지까지 인도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현상에 의해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은 흐르고 흘러 대해로 들어갑니다. 강을 거치어 바다로 들어갑니다. 바다로 들어간 물은 여기에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조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닷물은 또다시 증발되어 수증기가 된 후 다시 비가 되어 땅 위에 내리고, 모든 초목을 성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엇이든지 어떤 길을 거쳐 전체에 귀일되려면 정지된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 천륜의 법도인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개인 개인이 모여 전체를 이루어 나왔습니다. 그들은 각기 하나의 주의를 중심삼고 모이게 되었는데 지금 때는 두 가지의 조류가 나타나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조류가 하나로 모여지는 그때에는 그 모임 자체로써만 만족할 것이 아니고, 어떠한 통일적인 목적지를 향해서 움직여야 되겠고, 또한 과거의 낡은 모습과는 다른 변화있는 새로운 가치적인 환경을 이루어 전체에 미쳐질 수 있는 그 무엇을 나타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각 분야 분야에서 제일의 실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제일의 실력을 가졌다는 그 자체로써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여러분은 전체목적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밟고 올라가 한 걸음 더 넘어가야 할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과학을 통해서는 천륜의 법도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조화를 일으킬 수 없고, 지금까지의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새로운 조화를 일으켜 억조창생들이 즐기고, 감사하며 사는 세계를 이루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차피 우주적인 목적의 중심을 찾아 나아가야 할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세계를 규합시키고, 우주와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종교적인 이념을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철학하는 사람도 역시 철학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으로서 인륜은 세워 나왔지만, 그것만 가지고 안 되었으므로 천륜과 결부시킬 수 있는 종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과학도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여 인류의 평화를 위하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과학도 역시 전체적인 하나의 목적과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관계를 나가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누구든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그 중심을 찾아 인연맺지 못한다면, 오늘날 움직이는 이 우주의 전체목적도, 또 그 목적을 통하여 나타날 전체적인 가치도 그러한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입장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런 전체적인 가치의 목적을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이념으로서 대치시킬 수 있으며, 각 개인이 지향하는 목적을 입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위대한 과학자나 위대한 철학자, 혹은 위대한 종교인이 모두 그러한 하나의 전체목적의 중심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하나에서부터 합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종교와 철학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전체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고,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어느 한 때에는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각자의 몸 마음을 통하여 천륜과 인연맺을 수 있는 그 한 기준이, 세계적인 어떠한 길의 목적체로 나타나 상대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걷고 있는 길이 목적이나 가치면에서 새로운 조화의 법도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 그러한 이념을 갖고 지으셨던 것입니다. 무한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아담 해와가 그 무한성과 절대성을 생활의 어느 면에서든지 구현하여 즐길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복귀의 노정을 통해서 그 무한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고, 마음의 세계에서 느낀 그 무한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실제적인 유한권 내에서 이상적인 힘의 요소로 찾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거기서부터 천지의 조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을 나선 나의 몸과 마음이 무한하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머물고, 그와 동거하게 될 때에, 창조주의 목적이 나의 목적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또한 머무는 그 자리에서 기쁨을 느낄 때에 나타나는 그 가치가 상대적이 아니고 입체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이러한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모두 탄식과 절망과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철학이나 종교, 과학 모두 그 자체가 그 한계를 벗어나면, 모두 암흑 가운데 잠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에서는 반드시 무한하고도 절대적인 어떠한 힘과 관계를 맺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학이나 종교․과학 모두 마찬가지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이 모든 만상이 통일의 귀일점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지금까지의 역사만이 아니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만물까지 다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움직여 나가는 그 길이 인륜의 법도를 통할 수 있는 길로 끝나지 않고 천륜의 법도와 통할 수 있는 그런 인연의 한 기점을 찾아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세계의 목적을 향하여 걷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아닌 절대적인 어떠한 마음과 인연맺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인간적인 인연을 초월한 최고의 우주적인 존재를 느끼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어떤 심정에만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것을 초월할 어떤 신의 실존을 인정해서 그 신에 내재하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그 무한한 천륜의 심정과 인연맺어 나갈 때 놀라운 가치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을 끝날이라고 예고하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세계적인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여 세운 그 자리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선의 가치로서 흡수하여 만물 앞에 내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움직이는 환경을 전체적인 가치를 대신하여 나타낼 수 있는 환경으로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을 무엇을 가지고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어떠한 학문 가지고, 어떠한 종교 가지고, 어떠한 철학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들의 마음을 통하여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심정,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그 마음의 귀결점이 통일적인 목적체로서 나타나야 되겠고, 또 그 나타나는데 있어서 생활의 가치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무엇을 찾아 수고하여 나왔습니까? 인륜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천륜의 심정을 찾아 그 심정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되려고 지금까지 애써 왔습니다. 하나된 그 마음은 절대적인 마음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어느 누가 도려낼래야 도려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어떠한 이념과 어떠한 주의 주장 가지고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을 우리는 지금까지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찾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서러움과 슬픔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의 갈림길이 오늘날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고, 또한 그것을 찾아야 할 섭리의 뜻대로 여러분의 마음은 더 높은 심정을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우리의 생활권 내에 있어 영원한 목적체로서, 피조만물의 영원한 목적체로서, 또는 영원한 가치의 실체로서 여러분이 입증시킬 수 있어야 되겠고, 또한 여러분이 그러한 가치를 지닌 존재, 즉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역사적인 목적체로서 입증될 수 있고, 역사적인 가치의 실체로서 증거될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분리된 상태가 아니고 일체화되어 돌아가는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든 피조만물이 둘이 아니고 하나의 목적체로서 움직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마음도 어떠한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만이 즐거워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전체가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전체의 가치로서 인연맺게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마음을 중심삼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하나되게 하는 그 길이 여러분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마음과 마음을 통하여 서로서로가 합할 수 있고, 서로서로가 즐길 수 있는 이 한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역사를 초월해서 변치 않는 마음의 법도를 갖고 있습니다. 즉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본연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해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나아가는 가치의 길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내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이 합하여 우주적인 전체 가치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천륜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귀일점을 반드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어떠한 이상주의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땅 위에서 깨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서 종교를 찾아 나섰는데 그 일을 대표해서 나타난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나서게 될 때 무얼 가지고 나서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중심삼고 나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마음 마음을 단결시키고, 인류를 통합할 수 있으며, 천륜까지도 통합시킬 수 있는 사랑으로써의 귀일점을 세워 나왔던 이 한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놀라운 복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 마음이 즐길 수 있고, 여러분의 마음 마음을 움직여낼 수 있는 그 사랑이,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 생활을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더 나아가 천륜의 심정과 하나된 사랑의 인연으로서 나타나질 수 있는 그런 기준까지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각 분야에서 그러한 목적을 제시시키고 그렇게 움직여낼 수 있는 힘을 갖추어 온 종교라면, 반드시 그러한 사랑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랑을 찾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이나 우리의 관념,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마음이나 어떤 이념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청산하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천륜의 심정이 있는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무한하게 움직여내고 해방시켜야 되겠으며, 그러한 생활의 환경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도저히 천륜의 심정과 통하는 마음을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의 개체이지만, 온 우주를 통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어느 때든지 만사를 흡수할 수 있는 중심존재로 설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는 그러한 사명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목표로 하여 신앙 생활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우리들이 이러한 한 날의 최후의 목적점을 찾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싸움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고, 영원히 탄식의 역사를 벗날 수 없으며, 영원히 슬픔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그 동안 저희를 보호해 주신 아버지 앞에 진실로 감사드리며, 특별히 이날은 저희들이 기억해야 될 날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사랑의 아버님! 저희들 지나간 이날을 기억하여 그때의 충정과, 그때의 심정을 회상하면서 오늘의 내 자체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또한 지난 일주일 동안 아버지 앞에 어느 정도의 영광을 돌려 드렸는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저희들을 먼저 불러 주시고, 불쌍한 민족 가운데서 저희들을 먼저 찾아 세워 주신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니, 부족한 저희들이 맡아야 할 책임이 막중한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바라는 목표는 땅 위의 어떠한 것이 아니었사옵고, 저희가 쟁취하려는 것은 땅 위의 어떠한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오라, 천륜에 맺혀진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함인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그러한 뜻을 버리고 물러서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아버지의 승리의 봉화를 높이 들어 삼천만 민족을 아버지의 사랑 앞에 이끌고 남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그리하여 삼천리반도가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동산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신이 임재할 수 있는 동산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 이날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사오니, 자신의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서 이 시간 회개하고, 자신의 옳지 못한 모든 것을 아버지의 앞에 청산하고, 아버지의 분부하시는 명령대로 아버지의 허락하시는 뜻에 순응해 나갈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나를 중심삼고 행한 그 무엇이 있사옵니까? 자신을 주장하기 위하여 살아 온 어떤 것이 있사옵니까? 만약 그러한 것이 저희들에게 있사올진대, 아버지께서 이 시간 청산하여 주시옵고, 저희 스스로는 아버지 앞에 주장할 어떠한 조건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가진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의지하고 바라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직 아버지의 허락하신 은사와 아버지의 운행하시는 역사만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식구들을 일률적인 은사로서 이 시간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 저녁에도 지방에 널린 외로운 식구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려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그들의 마음에도 일률적인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고, 사랑의 성신이 그들의 앞날을 보호하여 주시옵고, 또한 기쁨의 은사가 이 시간 그들의 마음에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 이 자리에 참석치 못한 식구들도 있사옵고, 시련과 역경 속에서 홀로 외로움을 겪고 있는 식구들도 있사오니, 아버님,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참으시었던 심정, 아버지의 서러운 심정을, 아버지, 이 한 시간에 푸시옵고, 저희가 아버지 앞에 제물을 드리는 대신 아버지의 실체 자녀로서 나타날 수 있는 그 한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절차를 아버지께 맡겼사오니 사랑으로 보호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아버지의 그 사랑을 체휼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버렸던 예수의 것을 찾아 세우는 신부가 되자’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들이 지금까지 믿고 나온 예수님, 또는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뭇 인간들이 환영하여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주라고 부르는 예수님은 그때 당시에 땅 위에 오셔서 그러한 영광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우리 자신은 물론이지만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그 말씀을 하늘의 말씀으로 믿은 사람이 없었고, 그 말씀을 자기의 생명을 대신한 말씀으로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땅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었지만 땅 위의 사람들 앞에 환영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신하여 그를 진정으로 환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가정을 대신하여 그를 환영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30년 세월을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살았지만, 그 가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품고 있는 그 마음, 예수님이 바라시는 소망, 예수님의 생활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맞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불신하고 버리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 예수님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찾아 세워야 할 섭리적 사명이 있었고, 개인을 대하여 찾아 세워야 할 사명이 있었고, 또는 생활을 통하여, 일을 통하여 찾아 세워야 할 사명이 예수님에게 있었는데, 그 당시 유대민족 중에는 그러한 예수님의 사명을 자신의 사명으로 느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고, 일하는 모든 생활이 무지한 땅 위에 있었다 할지라도, 그 삶은 땅 위의 인간들을 위해서 사는 것만이 아니었고, 인간들이 모르는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새로운 천륜의 뜻을 위하여 사신 예수님에게는 그야말로 남모르는 배후의 슬픔이 말과 이념과 행동과 생활에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정에서 자신의 뜻을 세울 수 없게 됨에 따라 사회를 통하여 혹은 교단을 통해 자신의 뜻이 알려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교 앞에 또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일신이 배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배척을 받았고, 예수님의 생활과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그 일이 모두 배척을 받았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와 같이 버림을 받았던 예수님의 심정, 버림을 당할 때의 그 외로움, 마음에 새겨진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예수님의 고통을 모르는 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4000년 역사를 책임지셨던 예수님의 생애, 그의 이념, 그의 생활, 그의 일과 그의 말씀을 아는 자로서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그러한 사정이 나타나 있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조금은 알고 있는데, 그것도 그저 머리로 알고 있습니다. 또 귀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유대 백성을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도 그저 귀로 듣고 머리로 알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실생활에서 피부로 체휼하지 못하고 귀로 듣고 머리로 알기만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머리로 알고 귀로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들은 말씀을 머리로 아는 동시에 마음으로 알고 행동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거쳐 나갈 때까지 이와 같이 말씀을 머리로 아는 동시에 마음으로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 나아가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이나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있는 성심을 다 기울여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다 불신하는 입장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있는 정성을 기울여 가르치고,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알게 했고,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무지한 그들에게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간곡히 깨우쳐 주셨는데, 당시의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배후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들려지는 말로, 또는 보는 눈으로, 아는 머리로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역사적인 종말의 시대를 맞이한 이때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이겠습니까? 잃어버린 예수님의 모든 이념을 회복하고, 이 땅 위의 모든 죄악과 싸워 승리하여 천국의 세계를 건설하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사정을 듣고 아는 정도가 아니고, 내 머리로 깨닫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는 그때 당시의 인간들 앞에 아버지의 뜻을 다 털어놓지 못한 사정, 천륜의 비밀을 다 드러내 놓고 말씀하시지 못한 무한한 고통의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예수님의 사정과 심정을 모른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요, 그 말씀을 세우기 위하여 사셨던 예수님의 생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땅 위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셨던 예수님의 그 일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심정과 대하는 사람의 심정은 무한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속 깊이 사무쳐 있는 말씀을 하시지 못하고 그저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권고의 말씀만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어떠한 내용인가? 사탄세계, 악한 땅, 원수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의 자녀가 되겠다는 자들 앞에 권고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시험받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는 방편을 제시한 내용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만민이 사탄세계에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당신의 심정을 대신하여 살 수 있는 그러한 하나의 발판을 남기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대하여 어떠한 최후의 명사를 남겼느냐 하면 ‘너희는 나의 신부’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하는 제자들을 대하여서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못하고, 후일을 약속하는 입장에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맡겨 주신 뜻을 놓고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백성, 무지한 교단, 무지한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탄과 싸우는 선봉자로서 홀로 모든 화살을 맞으셨으며, 그들에게 삶의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하여 수난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심정, 하늘의 신랑 신부의 이념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하였던 서러운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시면서 이 땅의 우리에게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소망의 표적으로 ‘너희는 나의 신부’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날 그 신부의 이념은 어찌되었는가? 아직까지 수천년의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사탄과의 모진 싸움에 승리하여, 그러한 예수님의 신부의 입장에 들어간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2000년 전에 하늘을 대표하여 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세우지 못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세우지 못하였던 예수님이 바라신 신부의 이념을 대신 세워 드려야겠으며, 여러분 스스로 예수님의 심정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떠한 입장에서 하신 말씀인가? 신부의 이념을 완성하지 못한 입장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의 말씀은 신랑의 입장에서 믿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예수님의 간곡한 사정을 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남겨 놓은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참뜻을 이루어, 예수님이 바라시는 신부가 되어 신랑의 말씀으로 세워 드려야 하겠고, 또한 그 당시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내적 심정을 체휼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자가 없다면, 예수님께서 30여년의 생애노정에 걸쳐 말씀하셨던 그 말씀의 목적은 거두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만민이 예수님의 말씀을 환영하지 않고 반박했으며, 나아가 그를 박해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그러한 처지에서도 오히려 핍박하는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셨던 내적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만인의 신랑되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말씀하시던 그 내적인 심정이 오늘의 내 가슴과 내 몸과 내 머리를 울려대고 있는 느낌을 가져야 되겠고, 나아가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시에 배척받던 말씀을 환영해 드리고, 예수님의 말씀의 목적을 이 땅 위에 기필코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처럼 신랑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의 고빗길을 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지만, 종말의 때를 맞이한 오늘에 있어서 그 말씀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그 말씀을 머리로 알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알고, 몸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이 버림을 받은 동시에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제물의 노정도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버림을 받은 것은 물론이지만, 예수님 자신도 버림을 받고 또 예수님 자신이 버림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30여년의 생애도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할 오늘날 여러분은 이제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버림받은 30여년의 생애노정을 여러분의 한 일신에서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이나 요셉의 가정에서 살았지만, 그분이 하고 있는 일을 어느 누가 환영한 적이 없었고, 또한 예수님은 어느 곳이든지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는 환경에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분과 뜻과 말씀은 그분이 하시는 생활과는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어느 한 존재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없이 목수의 일을 하면서 사셨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이루려 하셨던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즉 그때 예수님은 민족의 중심이요, 교단의 중심이요, 나아가 개인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전체를 대표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이와 같이 땅 위의 모든 것을 대신한 주인일 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주관하여야 된다는 사실을 아셨는데, 이러한 모든 사실이 그르쳐짐으로 말미암아 더욱 서러움의 생활을 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생활을 버리게 한 책임이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는 동시에 유대교단에 있고, 요셉의 가정에 있으며, 세례 요한에게 있고,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여러분은 오늘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만민의 소망인 신랑으로서 다시 오시는 그 예수님을 세계와 민족을 대표하여 위로할 수 있고, 수많은 교단을 대표하여 위로할 수 있고, 오늘날 수많은 가정을 대표하여 위로할 수 있고,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를 대표하여 위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사시는 동안 뼈․살에 사무치도록 느꼈던 서러운 심정을, 오늘날 일신에서 느끼기 위해 허덕이는 하나의 존재가 나타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땅을 대해 역사하고 계시며, 또한 성신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복음을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불신을 당하고, 움직이는 곳마다 핍박을 받으시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근심거리, 어려운 문제를 도맡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인간 중에서 이와 같이 홀로 모든 인간들의 근심거리를 도맡으신 예수님의 그 일과 말씀을 자신의 일과 말씀으로 여기고 같이 수고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 당시 유대민족이 예수님의 말씀을 버렸고, 세계를 버렸고, 예수님의 일을 버렸던 그 모든 잘못된 죄악을 청산하고 예수님의 이념을 이 땅 위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천상의 뜻을 대신하여 억조창생의 친구가 되려고 했던 그러한 이념을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성경의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느 정도의 말씀을 나타내고 가셨던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시 유대민족의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 전체를 다 나타내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예수님의 이상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의 이상은 하늘과 땅을 합하여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이상동산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국가가 있으면, 거기에는 하나의 국가 이념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어떤 정치기구가 있게 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어떤 정책이 있고, 나아가 그 정책을 세우는 어떤 하나의 정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각기 어떤 하나의 정당을 중심삼고 각자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서 이념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그 본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나아가 천륜의 대과업을 성취시켜야 할 인간 개개인에게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생활, 예수님의 일을 대신 찾아 세워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러한 책임을 완수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념은 아직까지 땅 위에 실현되어 나타나지 않았으며, 또한 하나님 앞에 크나큰 슬픔을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신천지, 즉 천국을 건설하시고자 하늘 대하여 충성했던 그 충성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씀은 ‘너희는 나의 신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우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위치를 거친 후, 가정을 초월하고 사회와 국가를 넘어, 세계와 인연을 맺고 천륜을 대표한 창조주이신 아버지의 이념과 하나되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미비한 점이 있다 할진대는, 예수님에게 거기에 비례하는 만큼의 슬픔을 안겨 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그 말씀을 복귀해야 되는 동시에, 생활의 이념을 복귀하고, 그의 일을 복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넘어 사회를 통하고, 국가와 세계, 온 우주를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이념을 확립해야 할 분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천국세계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을 세우고자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책임지고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소개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사명을 인계맡기 위하여 자기 일신의 모든 길을 떨쳐 버리고 하나의 교단을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혈혈단신 외로운 길을 걸으셨으며 인간 대한 탄식과 소원의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는 사실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일을 회복하고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가? 예수님의 이념인 그 말씀을 먼저 찾아야 되겠습니다.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념을 세워 드려야 되겠습니다. 버림을 받고 있는 예수님의 일을 이제는 생활 속에서 찾아 실천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을 통해 가정의 형태를 거치고 교단의 형태를 거쳐, 국가․세계까지 나아가면서 하나님이 움직이면 예수가 움직이고, 예수가 움직이면 이 땅이 움직일 수 있는, 그러한 일체적인 관계를 세워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관계는 예수님과 성신의 힘만으로 맺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악한 세상, 즉 사탄의 침범을 받는 환경에서 그 고난을 방비할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만민에게 하실 말씀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천수를 다하지 못했고, 해야 할 일을 다하신 후 만민을 대하여 호령하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 이루지 못하고 가실 수밖에 없었던 그 내적인 서러움의 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신부의 자격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을 모시는 신부는 신랑의 소망을 자신의 소망으로 삼아야 하고, 신랑의 생활이 자신의 생활이 되어야 하며, 신랑이 하는 말도 자신의 말이 되고, 신랑이 하는 일도 자신의 일이 되는 일체적인 관계를 영원히 맺어 나가야 하듯이, 오늘날 여러분도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는 자리에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여러분의 실생활에서 느끼고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겠고, 나아가 불신의 무리들 앞에도 예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전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한 예수님의 심정이 간절했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또 예수님과 하나되면 될수록 더욱 겸손한 입장에서 형제와 하나되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간이 가야 할 길, 인생의 참된 길을 향하여 살았던 종교의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날 끝날에 처한 성도들을 대하여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신부는 어떠한 신부인가? 그저 가정에서 머무는 신부가 아니고, 혹은 유대교단에만 머무는 신부가 아니며, 택한 이스라엘 민족과 그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또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신부일 뿐만 아니라, 하늘땅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일을 대신 책임지고 해 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공의의 법도에 따라 같이 의논할 수 있는 신부가 되기를 바라시며, 또한 그러한 신부를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예수님이 바라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생활에 있어서 진정으로 예수님의 일을 찾고 있습니까? 진정 예수님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즉 말에 있어서나 일에 있어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과 일을 대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이 그 당시 예수님의 이념과 관련된 생활, 그 당시 예수님의 일과 연관된 행동을 해야 되겠고, 또한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셨다가 당신의 이념 전부를 잃어버리고 가신 예수님의 내적 서러움을 전부 인계맡아야 되겠고, 나아가 그 서러움을 풀어 드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명이 여러분 각자 각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부 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시던 그 애달픈 심정을 지니고 뭇 인간을 바라보고, 뭇 교단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 못한 채 애달픈 서러움의 심정을 품고 사신 예수님의 심정과 통해야 되겠고, 참을 향한 간절한 심정으로 불의의 자신을 치고,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서 지치고 몰리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싸워 나갈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사탄 앞에 홀로 선봉으로 나서서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십자가를 밟고 올라서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의 실천적인 생활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예수님의 실천적인 생활을 본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고, 어느 한 날 사탄과 싸워 승리했다고 해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 우주가 예수님의 이념에 의해 영원히 통치되어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또는 여러분의 영광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그 한 자리까지 나아가 만족해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감동시키고,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여 온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이룸으로써 만족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의 사방을 대신한 여러분 개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개인이 과거 12지파를 대신한 개개인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고, 12지파를 대표해서 세웠던 그리스도와 그 12지파와는 어떠한 관계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으며,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그의 이념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드리는 하늘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가정을 대표하였던 예수님의 서러움을 알고, 교회를 대표하여 서러워했던 그 사정을 알아 여러분끼리 단결하여 최후의 사명을 인계받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그 당시의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대신할 수 있는 우리의 교단을 만들어야 하겠고, 사도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사탄 앞에 이루어야 했던 모든 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 당시 사도들이 사탄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인류를 대신한 개인을 만들었고, 온 이스라엘을 대신한 민족을 만들었고, 또 세계를 만들었다면 예수님께서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이 무조건 순종하고, 무조건 굴복하고, 무조건 실천하여야 할 이런 법도를 세우지 못했으니, 오늘날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땅 위에 오셔서 사셨고, 땅 위에 오셔서 싸우셨고, 땅 위에 오셔서 가신 예수였지만, 생애에서 당신이 목적한 뜻을 어느 것 하나도 찾지 못한 채 생애노정을 마치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감으로써만 만족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사망의 길, 죽음의 길로 몰아낼 수밖에 없었던 신랑이신 예수님의 내적 서러움을 느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분은 신랑을 외롭게 했고, 십자가에 나아가게 했던 역사적인 실수를 마음에 품고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예수님의 근본이념을 깨달아 그가 품으신 내적 원한을 풀어 드리고, 그가 남기신 일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끝날에 처한 성도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6000년 역사 속에서 맺혀진 하나님의 원한과, 예수님의 원한을 해원해 드리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고, 십자가의 길이요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헤쳐나가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생명을 바쳐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하늘의 용장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00년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놓으시고 그들에게 메시아를 보내 주마고 하셨던 약속대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는데, 이스라엘 민족과 사도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 할 말을 다하시지 못했고, 제자들을 대해서도 말씀을 다 하시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그러한 내적 서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그러한 서러움의 원한이 아직까지 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 시간도 여러분의 가슴 가슴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음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말씀, 잃어버린 생활의 이념, 잃어버린 천륜의 이념을 다시 찾아드려야 하겠고, 지금까지 역경 속에서 수고해 온 이 민족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하나님과 대항하려는 사탄을 예수님이 맡은 것과 같이 예수님과 싸우고 있는 사탄을 도맡아야 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땅 위의 수많은 생명들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신앙노정에서 어려운 문제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예수님께서 나타낼래야 나타낼 수 없었던 그 내적 서러움과 당시 인간들을 위해 수고하신 그 터전을 인계맡을 수 있는 어떠한 하나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이 잃어버렸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찾으려면 이 땅 위에서 어떠한 시련과 핍박에도 쓰러지지 않고, 예수님 대신 하나님의 뜻을 기필코 이루어 놓겠다는 굳은 각오와 결의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예수님의 생활을 저버리도록 한 사탄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뜻을 대신하여 살려고 할 때에도 그러한 환경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당시 예수님의 일을 가정이 저버리고, 교단이 저버리고, 국가가 저버리던 것과 마찬가지의 환경이 여러분에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예수님을 원수에게 팔아 십자가에 내주고 자신들은 편안한 자리에 처하려 했던 자가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의 제자였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택해 세우신 메시아인 줄 모르고 불신하고 핍박했던 자들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원한을 맺히게 한 이후 지금까지 사탄의 역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의 신앙노정에 있어서도, 당시에 주 예수님의 생애를 저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일을 저버리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탄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개인적인 한계권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뜻은 여러분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사회․국가․세계에까지 통하게 하는 뜻인데, 사탄은 생활적인 환경에서 여러분이 개인적인 한계권을 넘어갈 수 없도록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 당시와 같은 생활적인 환경에 처하게 될 때 자신의 생명을 걸어 놓고, 그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하고 사탄 대하여 싸우려 할 때에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려운 사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입장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고, 또한 더 나아가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처하게 되더라도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한 어떠한 직접적인 조건을 세워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신부의 이념을 바라보고 신앙생활해 나온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일생을 통해 말씀하신 전생애의 이념, 즉 전우주적인 소망의 이념을 예수님 대신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개체에 고착되어 탄식하는 환경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환경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동생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반대하였지만 그 반대를 무릅쓰고 걸으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될 수 없으며, 오늘날 통일교회는 그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원리원칙에 의한 섭리역사가 전개되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길에 들어서야 하겠고, 또 그러한 길에 들어서서도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잃어버린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을 찾아야 되겠고, 예수님 일대의 생활을 대신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였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자신의 일신에 허락하였던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낙망하지 않았는데,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의 인격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앞서 걸으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항상 신랑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신부가 되어 있는가, 오늘의 나는 어떠한 환경에 살고 있으며, 어느 고개를 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반성해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차피 성도들이 가야 할 피 흘리는 노정을 넘고 난 후에, 영광 가운데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시 오시는 주님을 여러분이 맞이하게 된다면 그 기쁨이 여러분 개인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영원을 대표하고, 혹은 무한한 천국의 이념을 대표한 기쁨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일시적인 기쁨을 느꼈다 할지라도,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나아가 사탄과 싸워 승리한 영원한 기쁨,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체휼하는 이러한 기쁨을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은사를 느끼는데 있어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비약적인 은사를 예수님이 느꼈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은사를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은사를 느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애에서 만사를 끊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께서는 하늘땅의 영광과, 하늘땅의 충성, 땅 위의 어떠한 사람이 갖지 못한 이념까지 모두가 다 끊어져도 자신은 변치 않고 하나님을 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광권 내로 들어갔고, 이 땅 위의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느끼는 그 기쁨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 기쁨은 결코 여러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이 땅 위의 사탄의 세력과 싸우기 위한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은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지금까지 땅 위의 맺혀진 6000년의 원한을 제거한 환희의 개가를 올리고,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된 가운데 기뻐하겠다는 각오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받은 바의 그 은사는 여러분을 영원히 이끌어 주는 은사가 아니며, 여러분 자신만을 위한 은사가 아닙니다. 그 은사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탄과 싸우게 하려는 은사요, 사탄을 굴복시키게 하려는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받은 바의 은사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어떤 안일의 조건을 세우지 말고, 이 땅 위의 모든 죄악과 사탄의 세력을 제거시켜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승리의 아들딸로서, 또는 복귀의 모든 조건을 이룬 자로서 나타나게 될 때에는 사탄이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는 어디에 가든지 자유로울 것이며, 그의 발자취에는 언제나 승리의 흔적이 남아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습니까, 새로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까, 또 찾은 바가 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원리를 통하여 배운 바가 있습니까? 그것이 진리의 말씀이라 할진대, 여러분은 그 말씀을 머리로만 알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을 머리로 아는 동시에 가슴으로 알아야 되고, 가슴으로 아는 동시에 몸으로 알고, 또 몸으로 아는 동시에 마음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말씀을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알고, 몸으로 알고, 마음으로 알게 될 때에, 여러분은 그 말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을래야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사탄과 싸우지 않을래야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입을 벌려 아버지를 욕하고, 자기 생각을 돌이켜 하늘을 배반하는 자리에 나가려 해도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말씀을 그와 같이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알고, 몸으로 알고, 마음으로 아는 입장이 될 때, 주위로부터 수많은 사탄의 화살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은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끼리 단결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그의 원한을 내 원한으로, 그의 분함을 내 분함으로 여겨 서로 의지하고 협조할 수 있는 상호 일체적인 생활 환경을 갖추어 신천지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신천지의 개척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그 받은 바의 은사를 하루하루의 생활을 통해 그 실천적인 분야에서 나타내며, 어떠한 사탄의 화살도 어떠한 사탄의 참소도 막아내고 넘어서겠다는 마음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러한 마음을 지니게 되면 어디를 가나, 어떠한 사람을 대하거나, 어떠한 외로운 자리에 처하든지 간에 천군천사가 항상 여러분의 생명을 옹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마음을 지니셨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그분을 옹위하고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땅을 대하여 역사하실 수 없고, 천군천사와 아버지의 뜻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하늘의 영광의 은사에 취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이 땅 위에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과 천사가 땅 위에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광의 은사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배후에서 협조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아직까지 하나님은 서러움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서글픔 심정을 지니셨기 때문에 새로운 천륜의 법도를 가지고,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땅 위의 인간과 영원한 이념의 관계를 맺으려고 하셨으나 당시 인간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럽고 억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와 같이 서럽게 가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여러분들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는가? 오늘날도 당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예수님의 일을 배척하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여러분도 이 땅에서 몰림을 받고 있으며, 만인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서 남들이 아니라는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와 같이 버림받는 서러움을 물리치고 기필코 하늘땅이 즐거워할 수 있는 승리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고, 또한 우리의 모임이 그러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모임이라 할진대는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예수님이 가신 걸음을 뒤따라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배척받고 버림받은 서러움, 혹은 교회로 인해 버림받는 서러움을 많이 당하지만 여러분은 탕감복귀원칙에 따라 그 서러움을 딛고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즉 통일교회의 모든 식구들은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느끼고 슬퍼하다 마는 사람, 따라가다 마는 사람, 좋아하다 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넘어가야 할 길, 끊어야 할 길을 다 끊고, 나아가 아버지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이루려 하시던 그 뜻을 대신하고 역사와 우주를 대신하여 책임을 다했다는 조건을 세우면 인간조상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사탄은 이 땅 위에서 자연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사탄과의 싸움의 한 고개만 넘어서게 되면 항상 하늘이 함께하여 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신랑 신부의 이념권 내에 머물러 계시고 세계를 대표한 중심적인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또한 이를 대해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국가이념․ 세계이념을 거쳐, 하늘땅을 복귀하는 전체 가치를 여러분 자신에서 찾아 나가는 주인공으로 나타나게 될 때, 예수님께서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복귀하게 되고, 당하신 모든 서러움을 이해하는 자로서, 또는 승리의 가치를 지닌 자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외로운 자들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지금까지 저희의 안타까움을 아버지 앞에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불충불효한 입장에 있었던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심정이 이렇게 비통하고, 이렇게 안타깝다는 것을 깨닫고, 감히 아버지께 저희의 사정을 아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오니, 아버지의 근심, 아버지의 염려를 오늘의 내 일신을 통하여 풀어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이 한 시간 저희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하늘을 대한 가치적인 조건을 우리의 실제 생활권 내에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사오니, 아버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늘의 전체적인 가치의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저희들의 희생을 기뻐하지 못하는 부족한 모습들이었사오나, 이제부터는 아버지 앞에 무한히 이용당하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아들딸이 되겠사 오니, 아버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저희의 발걸음을 사탄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도 내일도 저희의 마음이 변치 말게 도와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신랑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고자 할진대는, 신랑이 근심하면 저희도 근심하고, 신랑이 싸우면 저희도 같이 싸우고, 죽으나 사나 신랑과 같이 움직여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저희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싸움의 과정을 거쳐 해방의 은사 속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하는 신랑의 즐거움을 체휼하는 신부의 입장에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찾고, 아버지의 영광을 기쁨으로 송영드릴 수 있는 한 날이 어서 속히 여기에 모인 각자 각자의 생애노정에, 각자 각자의 생활에, 각자 각자의 마음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영광의 새 나라」라고 하는 이 소망의 동산은 오늘날 우리의 생활권 내에서 즐겨 맞아야 할 세계였으나,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오늘날 우리는 이 소망의 동산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이 영광의 새나라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이 완성하였더라면 인간의 즐거움이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인간이 누리는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을 것이었는데, 인간이 자신의 즐거움과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에서 누리지 못한 연고로 인간들에게는 슬픔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한 인간인 연고로 그 이념의 동산과는 너무도 먼 거리까지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떨어진 인간들을 다시 찾기 위한 수고의 역사가 복귀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섭리의 동산은 어떤 곳인가? 창조주를 위시하여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이 그 창조주의 이념권 내에서 통일적인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 목적을 가진 동산이었는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들이 통일된 자리에서 통일의 이념을 갖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래야 노래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시면서 하나의 귀일된 통일의 이념을 세우기 위하여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에게는 마음과 몸이 하나된 후, 하나된 자신을 중심삼고 전인류가 하나되어야 하는 동시에, 인류가 하나된 입장에서 자연의 운행법도와 운행률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천륜의 운행법도와 천륜이 움직이는 운행률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의 새 이념을 성취시키고 영광의 새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몸을 귀일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중심삼고 전체의 인류가 귀일되어야 하는 동시에 이 모든 천지의 운행법도와 하나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께서 뜻을 경륜해 나오시는 천륜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즉 피조세계에 나타날래야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못하면 우리 인간은 영광의 새나라라고 하는 이런 말조차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영광의 새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인류는 어떤 역사 과정을 거쳐왔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오랜 기간 동안 끝없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 하나를 중심삼고 아래로는 모든 자연의 운행법도와 하나되어야 하고, 위로는 하늘의 법도에 맞추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우리에게는 투쟁의 역사 과정을 거치며 자연의 운행법도와 맞추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천륜의 법도와 맞추어야 할 두 갈래의 책임이 지워져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이런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수고해 나왔음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발전과정, 즉 씨족사회가 부족사회의 단계로 발전할 때에는 반드시 어둠이 가로막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닥쳐오는 모든 사망권을 물리치고 승리한 발판 위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발전과정, 즉 씨족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민족으로 진전될 때에는 반드시 어두움의 세력, 즉 반대의 세력이 가로막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표방하고 섭리하시는가?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통일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맘과 몸이 갈라졌고, 모든 자연의 운행법도와 천륜적인 운행법도와 이념 전체가 갈라졌고, 천만 사람이 전부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규합하기 위해서 시대 시대를 거쳐오면서 종족이면 종족, 혹은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귀일된 무엇을 세워 나오는 역사를 하늘은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가 되고, 여러 개의 부족사회가 모여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고, 몇 개의 국가가 모여 동맹을 결성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느냐 하면 연합이 됩니다. 연합이라는 것은 어떤 주의나 이념을 하나에 귀결시켜서 통일적인 이념권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운행질서가 지켜지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움직이는 온 피조세계의 운행법도를 내 마음에서 맞출 수 있는 동시에 창조주가 소망하는 이념과 법도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최대의 승리자가 될 수 없고, 최고의 인간다운 모습을 지니고 만물의 영광의 가치를 대신하여 온 피조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씨족을 규합하여 부족을 만들고, 부족을 통합하여 민족을 만들고, 국가를 연합하여 하나의 세계로 귀일시켜 나오고 있는데, 이런 섭리는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세우셨던 일남 일녀에 귀결됩니다. 다시 말하면 태초에 인간에게 부여해 주시려던 영광의 새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탄식은 무엇인고? 그것은 나 하나를 중심하여 모든 것이 집중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한 것이고, 자신이 주위환경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체로 서지 못한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둠의 세력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구석구석에 선을 지향하는 마음은 있을지라도, 이런 마음을 서로 통하게 할 수 없었던 연고로 한 씨족이나 민족에게 빛 될 수 있는 높은 빛, 다시 말하면 아침 빛과 같은 존재와 저녁 빛과 같은 존재를 세워 놓고 이 존재들이 밤 기간을 거치는 투쟁의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도들이 지금의 때를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와 공산의 두 진영이 있는데, 그중 어느 한편은 아침을 대신할 수 있고 어느 한편은 저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진영 가운데 무엇이 가로막혀 있는데, 이것을 터뜨리는 사명을 여러분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이 혼란을 일으켜 중심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방향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말세적인 혼란세계가 되었는데, 이것을 타개해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자연에게 있는 것도 아니며, 바로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총괄적인 통일이념을 성취시키는 책임을 지워 주셨던 연고로 인간들은 자연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을 하나의 통일과학 형태로 발전시켜 나오고 있고, 종교를 통하여 마음의 세계를 규합해 나오고 있습니다.
16세기 후반에는 종교와 과학이 갈라졌으나, 끝날인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하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귀일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학이 먼저 통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이 왜 그러냐 하면, 아담이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되기까지에는 먼저 몸이 만들어지고 나중에 생기가 불어넣어졌던 것과 같이 창조의 원칙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의 발전, 즉 과학을 중심 삼고 나온 현대의 문명이라는 것은 통일적인 외적 이념을 성취시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통일의 이념권까지 나오고 있고, 그 다음에는 내적인 면에서 말로 밝혀내는 과학문명 말고, 마음으로 밝혀내는 종교, 즉 인간의 본성과 성품을 밝혀 내는 종교와 온 인류가 하나될 수 있는 내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와 과학은 서로 대립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반드시 몸을 지은 다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 대신 나설 수 있는 아담을 지으신 것과 같이 이 역사의 종말적인 현상도 그렇게 귀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외적인 문명, 20세기의 문명은 말과 글을 통하여 표현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인 통일된 이상세계는, 말로서 하나님의 이념을 실현시키는 이런 형태를 갖춘 연후에 마음을 대신한 문명과 상대적인 중심을 결정지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하나의 세계로 귀일시킬래야 귀일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귀일시킬 것인가? 외적인 문명과 내적인 문명을 통일시킬 수 있는 어떤 통일적인 이념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순리적으로 귀일되지 않고 여기에도 이 일을 가로막는 어떤 어둠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깨뜨리는 투쟁의 노정을 먼저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기말적인 두 주의가 어느 한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가 하나님의 내적인 면을 책임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외적인 면을 상징적으로 책임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대신하는 쪽이 민주주의 진영이라면, 이 민주진영은 외적인 부분을 대신하는 공산진영으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하나의 뜻을 세워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움직일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다 할진대는 천륜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이 이상 더 전진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손을 대지 못하는 이러한 때에 명령을 내려도 안 들으면 깨뜨리고서라도 책임을 지고 비약시킬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이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새나라의 영광을 소유할 자는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아무리 새로운 때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그리고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자신의 생활 환경을 하나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지도적이고 주관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인륜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승리적인 실적을 여러분 자신들이 찾아 세우게 되면 찾은 그 자체는 비단 인륜뿐만 아니라 천륜을 대표하여 순리로 통하는 중심으로 서서 인륜적인 사회의 모든 것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고, 자연적인 모든 운행법도를 대신하여 움직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 두 진영이 서로 부딪치는 싸움을 전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차피 어둠을 없애기 위한 투쟁의 시기가 닥쳐 오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싸움의 시기가 다가오는 이때에, 여러분 개체 개체도 천륜의 법도를 벗어날 수 없는 연고로 이런 두 진영이 싸움하는 것과 같이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공포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때에도 모든 어둠의 세력이 자신을 휩쓰는 것을 가로막고 넘어설 수 있는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20세기 과학문명이 급격히 비약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 자신도 그에 보조를 맞추어 내적인 인격을 조성해야 할 이런 입장에 있는 연고로 내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혁신적인 표준을 세워,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가더라도 중심을 붙들고 꿋꿋이 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중심을 갖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인류 역사 과정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지 못하고 결국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무서운 한 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도 발전적이며 혁명적인 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이전에는 제물을 통하여 천륜과 관계를 맺는 역사를 해 나오셨고,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써 섭리역사를 전개해 나오셨습니다.
그 율법이 하나의 통일적인 이념으로 나타나고, 다시 이것을 하늘 뜻으로 절실히 느끼는 존재가 나왔더라면 복귀섭리는 말할 수 없이 단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였으므로 율법으로 외적인 조건을 세운 다음 예수를 보내어 그의 육신을 외적 조건으로, 그의 영인체를 내적 조건으로 세워 나왔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예수는 신앙의 대상으로만 나타나고 있으나, 그것으로 멈춘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완성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통일의 이념을 세워 그 일을 완성시켜야만 예수는 그의 사명을 다 끝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내적인 조건도 하나의 통일의 이념으로 세워 나타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었더라면 벌써 하나님을 중심한 통일국가는 세워졌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신앙의 목표로 세우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먼저 여러분 자신이 그 신앙과 믿음의 실체가 되어 생활적인 면에서 예수와 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한 자체가 움직이게 될 때에 온 자연이 움직이며, 온 세상이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되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새로운 영광의 나라와 여러분은 하등의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에도 하나의 지도자가 있고 그의 백성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먼저는 백성이 되어 그 지도자를 모시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흑암의 세력을 내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어떤 싸움이 있을 것인가? 예수 앞에는 피 흘리는 싸움의 노정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장성적인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그런 어려운 싸움의 노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완성적인 사명을 완수해야 할 여러분에게도 그보다 더 큰 싸움의 노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우주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외적인 자연을 나의 몸으로 삼고, 하나님을 뜻을 통일을 위한 내적인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천륜을 나의 마음으로 삼은 터 위에 나의 몸된 자연을 귀일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운이 있습니다. 또 국가에는 국가로서의 운이 있고 하늘에는 하늘로서의 천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이념을 국가의 이념으로, 국가의 이념을 천주적인 이념으로 귀일시켜야 하는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 개인의 운도 보다 높은 것에 흡수되어 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천주적인 운에 나의 운을 귀일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투쟁의 역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예수님은 나에 대하여 사랑만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이 어느 한 때 나에 대하여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심판의 하나님, 심판의 예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이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은 시련과 고통도 주시는 분임을 알고 모실 수 있는 마음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나에게로 돌아오고 이 땅 위의 모든 천륜과 인륜의 법도가 승리한 나를 중심삼고 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모여 있는 여러분들은 하늘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없을진대는 나 한 자체가 천륜 앞에 세울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종말시대인 오늘날에는 자체의 이념을 가지고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천륜의 이념을 가진 사람뿐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공포와 불안과 탄식과 근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인륜을 붙들고 천륜을 붙들고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천적 이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제일의 자리에 설 것입니다. 이런 사람 앞에는 모든 것이 순리적으로, 자동적인 역사로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큰 것을 주려면 하늘은 먼저 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모순된 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 앞에 닥치는 모든 시련을 보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늘의 안타까움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니 땅 위에서 슬픔이 사라지게 될 때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노정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의 싸움을 도맡아 천륜 앞에 자신 있게 나타났던 분이 하늘의 충신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말시대에 처한 오늘날 재림의 역사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니, 여러분은 시대적인 모든 싸움을 이기고 넘어섰다는 자리에서 천륜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선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차 어둠의 사망권이 세계적인 함정으로 나타날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깨뜨리어 밟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어떤 양심이나 어떤 윤리를 가지고 할 수 없고, 오직 천륜의 이념을 찾아 세워야만 새로운 동산의 새로운 영광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말에는 종교니 과학이니 철학이니 그 어떤 것이든지 이런 천륜의 이념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할진대는 하늘은 이것을 천륜으로 방망이질 할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타난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지적(知的)으로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보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요한은 자기를 중심삼았으나 예수님은 영원을 두고 자신할 수 있는 천륜의 이념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천륜의 이념만이 종말에 새로운 동산의 새로운 영광과 관계를 맺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기 도> 땅을 대한 아버지의 서러움이 오늘 이 시간도 이 땅의 만민 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저희의 몸 마음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에덴에서 타락한 아담 해와를 쫓아내셨던 아버지의 그 서러움의 흔적이 아직까지 저희의 몸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이 바라는 소망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이상의 동산이었사옵고, 저희의 몸이 바라는 것은 사탄과 싸워 승리한 영광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는 것이었사오니,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형상을 닮아 저희의 몸 마음이 아버지의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승리의 아들딸의 형상을 갖추어야 할 저희들이라 하올진대, 오늘 여기에 모여 당신 앞에 엎드린 아들딸들, 그 마음을 아버지의 영광 앞에, 그 몸을 아버지의 성상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황공한 모습으로 지난날의 부족했던 자아를 이 시간 회개하고 반성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에게 진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흠모하고 아버지의 인격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의 아버지의 그 서러움이 저희의 서러움이요, 아버지의 안타까움이 저희의 안타까움이 되어야 할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하는 아버님, 그러한 저희가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이시여! 저희 중에 몸 마음이 사망과 어둠의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여, 능력으로 나타나시옵소서. 아버님이여, 힘으로 나타나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재창조의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몸 마음에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의 품을 향하여 달음질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나간 일주일 동안 아버지의 품을 떠나 산 자가 있사옵니까? 자기 스스로 아버지 앞에 뉘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저희들 중에 옳지 못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자가 있사옵니까? 이 시간 아버지 앞에 회개하고, 아버지의 긍휼하신 은사와 사랑 속에서 안식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최후의 싸움의 날이 저희의 목전에 당도하고 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싸움터에서 낙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최후의 승리의 한 기준을 세울 때까지는, 싸우고 또 싸워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억만 사탄들은 저희를 노리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그 사랑의 은사를 저버리고 배반하는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한 생명이라도 사탄의 품에 끌려가는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랑의 아버님, 지나간 일주일 동안 저희가 아버지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서 생활하였사오니 이 한 시간이라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임의로 움직이지 않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도 지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이 사탄과의 싸움에 지쳐 아버지 앞에 엎드려 호소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어느 곳에 있든지 같은 은사로써 함께하여 주시옵고, 같은 영광의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저희와 같이 슬퍼하시었고, 저희와 같이 싸우시었고, 저희와 같이 어려움을 당해 오신 아버지시여! 이제 아버지의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고 싸워야 할 새로운 싸움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저희에게 무한한 능력을 부어 주시어서 그 싸움에 이길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고, 부디 부족한 모습이 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 자신의 문제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나가지 못하고 머무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그러한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한 날 저희의 모든 행실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도와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고 아버지의 형상을 닮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모이는 곳곳마다 예고하신 약속의 뜻을 이루어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 주시어서 억만 사탄들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귀한 제단들이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이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나아가 민족을 통하여 이 땅의 수많은 인류가 아버지의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인류를 통하여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하는,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체휼하며 사는 새로운 복귀의 동산이 어서 속히 이 땅 위에 이루어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부복한 저희들은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나선 아들딸들이오니, 아버님이시여, 뜻을 향한 그 발걸음을 멈추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헤치고 갈 수 있게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시련과 역경에 부딪쳐 외로이 아버지께 호소하는 아들딸이 많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소서.
부디 승리의 한 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루어 드리는 그 한 날까지 싸움에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남은 시간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들과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라는 제목을 가지고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예고하였던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 인류의 소망이요, 또한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 과정의 인간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소망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소망의 그 나라, 소망의 그 의가 어찌하여 우리의 최후의 목표로서 남아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님과 인간이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즉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아버지에 대하여 자세히 모르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무지한 백성과 인류를 깨우쳐, 그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수고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의 소망이요, 목표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 나라와 그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우시려는 아버지가 계시다면, 그 아버지의 뜻이 이 땅 위에 반드시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먼저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어떠한 역사 과정을 거쳐서라도 먼저 그 나라의 주인공인 아버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들이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아버지의 영광이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전까지 이 땅 위에서 하늘과 땅을 향하여 ‘내가 그 나라의 주인공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나라의 의를 대신할 수 있고, 그 의를 따라가고 있으며, 그 의의 실체라고 자신 있게 외치고 나선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소망이 없는 적막한 천지에 하늘의 소망과 의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셔서 ‘내가 그 나라의 아버지 대신이요, 내가 그 나라의 의의 실체’라고 주장하고 나선 한 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땅 위의 인류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요,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었던 것입니다.그러면 그러한 주장을 하고 나선 분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그분이 종교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교단으로부터 매장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국가로부터 추방을 당했던 분,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께서 이 땅 위에 나타나시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000년 역사를 뒤집어 놓고, ‘나는 하나님과 한 몸이다.’라고 했으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나를 믿어야 아버지를 알고, 나를 믿어야 그 나라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전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하고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강력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상과 지상에 가로막혀 있는 모든 것을 헤치고 나타나셔서,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생활에서 ‘하나님과 관계맺어 나갈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러한 복음을 믿고 있는 오늘날 기독신자에게 예수님만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려는 하나님의 소망은 인간과 피조만물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참다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물이 동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 앞에 하나님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로서, 하늘의 혈통을 대표할 수 있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제일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을 성취해 드리기 위해 오신 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수님을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나 생명을 지닌 어떠한 존재까지도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그 나라의 영광과 그 의를 증거할 수 있는 생활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한 뜻이 이루어지는 한 날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돌이켜볼 때,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한한 서러움이요, 가장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복잡한 환경에 부딪쳐야 하는 역사적인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인간이 소망하는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하셨으며, 만민을 사랑하고,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루시려 하셨던 그 나라는 ‘주는 사랑’이 넘치는 나라요, 봉사하는 희생의 생활이 넘치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영계를 체험해 보면 완연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만물을 대하여 인간을 대하여 애달픈 마음을 지니고 사랑을 주기 위하여 애쓰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생활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땅 위의 만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그 나라의 건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인간이 소망하는 그 나라는 본질적인 사랑이 실현된 나라, 즉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과, 또 사랑의 본질은 사랑을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의와 통할 수 있는 그러한 희생과 봉사의 생활노정을 걸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사랑을 온전히 줄래야 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를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무한히 희생하고 봉사하듯이, 이웃을 위하여 무한히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끝날을 예고하실 때, 무엇을 말씀하셨던가?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온 인류를 대해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민 앞에 증거하고 몸소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에 사무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어떻게 하면 만민에게 하늘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사랑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 목적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만을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유대교단, 나아가 이방 민족까지 사랑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이상동산으로 건설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나 군중, 또는 반대한 유대교인․이스라엘 민족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정과 영원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사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닮은 하나의 존재를 찾아 교단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통하고, 나아가 세계를 통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셨는데, 예수님의 그 뜻을 가정이 막아 버렸고, 교단이 막아 버렸고, 따르던 제자가 막아 버렸고, 이스라엘 민족이 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이 땅 위에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 하고, 그러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재림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쳐 있었던 동시에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도 남을 위한 봉사의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사탄 앞에 찢기고 제물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희생과 봉사의 길로 나섰던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로서 민족 앞에 몰림받고 배척받은 예수님을 보고 서러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놀라운 증거의 사명을 하였을 것입니다. 주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애달픈 사랑을 심정을 대신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신부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주고 싶어하는 사랑의 동산, 천국의 의를 땅 위의 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여러분에게 소망의 그 나라를 요구하게 되고, 소망의 그 의를 요구하게 되는 서러운 입장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어차피 그 뜻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단결하였다고 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에 백 퍼센트 부합될 수 있고, 주기 위해 애달파하시던 예수님의 사랑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실천했던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대신하는 한 존재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존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끝나지 않은 이상 이 땅 위에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한 어떤 하나의 기준을 반드시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애달픈 심정으로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시던 그 말씀의 목적과 여러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나의 서러움도 무엇인가? 기독교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또 세계의 서러움은 무엇이고, 이 땅의 서러움은 무엇이며, 하늘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머물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모든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늘의 탄식임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을 살펴볼 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느냐 하면 못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애달파하시며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앞에는 그것을 타개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운명, 즉 심판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거쳐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에게 하늘의 사랑이 없어서 서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요, 하늘의 의가 없어서 서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이념과 관념을 초월하여 영원한 실존의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자연의 법도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심정을 지닌 존재가 없기 때문에 서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인 봉사의 심정을 갖고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그러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노정에서 혼돈 과 모순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하고, 봉사의 생활을 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원수는 무엇입니까? 민족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이 세계와 하늘땅의 원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억만 사탄들이 우거하고 있는 이 우주 전체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원수가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인입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감추어져 있는 원수부터 제거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원수가 누구였습니까? 그분을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로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의 존재로 아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당신의 본성과 관계맺어 ‘너희의 마음이자 내 마음이다.’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나오기를 고대하셨습니다. 그러한 한 존재가 나왔더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분의 사랑과 이념은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이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안타까움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진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하면, 서로서로 주기를 즐겨하는 사랑의 세계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생활이 빛이 나는 세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는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스스로 남을 위한 희생의 길, 봉사의 길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인간을 그와 같은 길로 이끌어야 할 입장에 있는 예수님에게는 그 당시 땅 위에 살고 있던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남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살아 주기를 바라고,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대하는 사람 모두가 애처로움의 대상으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희생과 봉사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지 못한 것이 예수님에게 있어 가장 큰 안타까움이요 슬픔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 주려 해도 보지 못하고 손에 쥐어 주어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대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활을 부정하라는 말씀이요, 모든 환경을 부정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연적인 조건임을 모르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러한 길을 밟고 올라서야만 소망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사람은 이 자연적인 법도권 내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어, 자연히 그러한 만물에 대한 염려는 할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사탄으로부터 몇 가지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40일 금식기간에 먼저 먹을 것으로 시험받았습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굶주린 인간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부정하고 자신이 먹을 것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생활권 내에 있어서의 모든 조건을 사탄 앞에 잃지 않았다는 입장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거쳐왔는데, 예수님께서 사탄의 제1차적인 시험에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종결시키게 되었던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예수님은 어떠한 시험을 받게 되었던가?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이끌려 교회의 성전 꼭대기에 서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는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지도할 수 있는 종교이념을 갖고 나타나신 예수님에게 ‘뛰어 내리라.’는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유대교적인 습관과 그들의 주장 앞에 굴복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입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시험이 있었습니까?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에 올려 놓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우주적인 이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세워 드리기 위해 사탄의 그러한 요구를 일축해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땅 위에 새로운 천지, 즉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나타내는 실현과정에서 이와 같이 역사적인 불신의 모든 조건을 탕감하고 복귀한다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에게도 물질적인 조건을 중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면, 이 땅은 자연히 암흑의 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나서야 하겠으며, 나아가 전세계 기독교인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 옛날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가치에 비유할 수 있는 유대교단과 하나되어 세계를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념과, 또 그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이 되고 있는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옛날 예수님께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물질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종교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분열과 모순 투쟁을 해결하고 이를 통할하는 종교가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상징한 것이 예수님이 치르신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역경의 자리, 죽음 자리에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인격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끝날에 처한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세계적인 성전이념을 찾아 세워 드리기 위해서는 과거에 좋아했던 어떤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역사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셔서 걸으셨던 예수님의 그 생애노정에 부합되는 노정에 세워졌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역사적인 싸움의 한 때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인 영광을 누려 왔던 사탄이 최후의 싸움에 패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 앞에 굴복하고 경배하는 때가 반드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만이 나타날 수 있는 한 날이 어서 속히 와야 되고, 또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외치셨던 그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이때는 어떤 때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물질의 시험을 거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즉 물질이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떠한 주의 주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 굴복시키려 하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가 바로 끝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의 어느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오늘날을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때, 즉 역사적인 종결, 과학적인 종결, 윤리와 종교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이러한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외치시던 말씀, 즉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 땅 위에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불변의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을 만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되겠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자의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그 나라의 본질적인 이념의 내용을 여러분 자체의 생활에 적용하여, 그것이 여러분 생애의 실정적인 가치를 형성하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는 소망의 그 한 날을 이루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 타락 이후 4000년 동안 수고하신 후 예수님을 보내시어 역사하시게 한 뜻과, 예수님 이후 오늘날까지 예수와 성신을 합한 삼위신이 역사한 그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이제 무엇을 찾아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즉 천주적인 이념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불의의 조건들을 찾아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일신의 생활에서 투쟁하여 승리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대신 존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자신이 그 나라에 처할 수 있는 사람, 그 나라의 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먹을 것 입을 것을 가지고 싸우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를 넘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오히려 그러한 것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부여되면, 그것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 줄 아십니까? 한 조각의 빵이 있다고하면 그 빵을 혼자 먹게 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심정을 대신했는데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난 인간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원인, 싸움이 벌어지는 원인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가정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자기만 먹기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불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화살이고 사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고, 입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습니다. 자신만을 위하려는 마음, 즉 가정불화의 조건을 타파하여야 되겠고, 바로 그러한 역사적인 모순을 밝고 올라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입장에 처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면 당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부르짖었던 예수님은 어떠한 입장에 계셨는가? 하나의 물건을 놓고도 그것을 대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서로 차이가 있으면 안타깝고 서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하나된 상태에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하나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분을 불신하고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하나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서러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먹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본질과 그 나라의 본질을 그리워하면서 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먹어야 하겠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먹을 것을 대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꺼번에 많은 보화를 가지게 되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자기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조그마한 빵 한 조각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또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염려하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그에게는 물질적인 곤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을 중심삼은 싸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를 하나님과 인연맺어 ‘이 물질을 통하여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신보다 더 잘 나타내 드릴 수 있고, 이 물질을 저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이 물질이 저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 것인 줄 아오니, 그에게 이 물질을 사용하게 하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고, 또 여러분은 그 앞에 주어야 할 물질을 자신이 취하게 된다는 이러한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마음속에 숨어 있던 본성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며, 여러분은 영원한 소망권 내로 나아갈 수 있겠기에 예수님께서 물질을 사용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원수로 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에게 부여된 물질을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게 빵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만인이 나눠먹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먹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먹기 이전에 가정을 위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고, 사회․민족․국가․세계 인류를 위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소유해야 인간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할 수 있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이며, 그것이 또한 타락의 입장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원수는 무엇을 통해 찾아 들어오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조건을 통하여 찾아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도 물질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원수가 동시에 찾아들어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고, 물질을 통하여 확고한 신앙의 중심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것이든지 하나의 중심을 세우게 되면 거기에는 자연히 상대적인 존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 우주의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원칙적인 신앙의 핵심,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원칙을 아셨기 때문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먹는 것 때문에 식구끼리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시어머니․며느리․형님․동생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국가면 국가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친척이면 친척끼리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밟고 올라서기 위하여 가정을 위해, 사회․국가․세계를 위하여 애달픈 마음을 갖고 사셨던 것이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건설하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심정을 체휼하고 그 인격을 닮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엔 여러분 앞에 입는 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노정에 반드시 입는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정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사탄의 어떠한 참소에도 구애됨이 없이 그러한 문제를 자유자재로 해결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먹고 입는 문제가 사탄이 되는 동시에,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활동의 실천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하는 일 전체에는 사탄이 침범하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도 제시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속해 있으면 그 가정을 위해 살게 될 때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될 것이요, 하나의 국가에 속해 있으면 그 국가를 위해 살게 될 때, 그것은 또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됩니다. 또 여러분이 하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여러분은 진정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사실이 여러분의 생활 환경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 나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여러분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다 나눠 주고 자신을 굶을 수 있는 마음, 또 먹을 것이 있다면 오히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은 ‘내가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봉사하기 위한 이념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늘의 이 현실을 박차고 그 나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가?’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탄식하였던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현실에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애 전체의 가치를 찾아 세우는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 땅 위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분이 바로 2000년 전의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사신 분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먹는 빵 한 조각에, 입는 한 벌의 옷에 하나님의 애달픈 눈물자국이 어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슬픔이요, 탄식의 조건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오셔야 할 그분, 그 주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실 것인가? 그분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주기 위한 이념의 주인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천리원칙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갖고 그 사랑을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다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시는 그 주님을 통해서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상속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다 제물로 가신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의 동반자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만일 오늘날 신앙자들이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기독신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기독교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며, 나라에 백성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번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고하신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예수님께서 이 땅을 대해 애달파하셨던 그 심정을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서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사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시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인 이 땅의 모든 악의 세력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그는 그야말로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고,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안타까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었는데, 역사상의 선조들은 그들을 매장하고, 또 핍박하고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 자체를 세워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잘못을 청산짓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피 흘리는 십자가의 길을 참고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며, 다음에는 지금까지 6000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자기 일신의 영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였던 그 길을 뒤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어떠한 영광을 위한 길을 가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또는 수많은 선지선열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또 죽어 영계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 믿고, 죽는 것도 자기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죽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을 부정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여러분은 자신을 대한 아버지의 소망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 환경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기 일신을 부정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사회와 민족․국가․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부정하고라도 하늘을 위하는 사람이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서러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자기 일신 때문에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세계, 나아가서는 하늘을 위해 서러워하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의 어떠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던 예수님의 심정적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겠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하나님의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불의를 보면 분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 끝까지라도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해야 되겠고, 나아가 애달픈 가운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는 그 과정에서 사탄과의 싸움에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여, 여러분이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민족․국가․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이 어떠한 자리에 처하든지 그곳에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그 사회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겠으며, 국가에 나가면 그 국가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고 나서서 사탄들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우리가 보기에 당장엔 망하는 것 같지만, 뒤에는 흥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또 바로 그런 사람이 어느 집안이나 직장․단체․국가의 주인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효도의 도리를 다하고, 남편과 아내가 각각 열남 열녀의 도리를 다하고, 국왕을 위해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바로 그 가정의 주인이며 그 국가의 주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의 6000년 섭리역사의 목적을 대신하고, 오늘의 현실적인 우주적 이념을 대신하여 어떠한 골고다의 길들이 가로막히더라도 ‘아버지여! 감사합니다.’하면서 늠름하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훌륭한 모습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고 몸으로 화하여, 사탄까지도 여러분을 존경하고 따르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백성으로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어려움을 당하실 때에도 저희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 험악한 이 땅 위에 모진 사탄의 세력이 뻗치고 있는 가운데서도 저희들에게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 앞에 부복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은사에 먼저 감사드리옵나이다.
오늘의 저희가 있음도 아버지의 수고하심 때문이요, 저희가 아버지의 아들딸이라고 자임할 수 있는 것도 아버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결과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저녁 저희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사오니, 이 시간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아버님의 권고의 말씀을 나타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이 땅은 옛날 이스라엘의 60만 대중이 40년 광야노정에서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때를 지나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고도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고 나섰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르지 못했던 것과 같은 입장에 처해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이것을 권고하여 주시옵고, 또한 하늘이 그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하여 ‘강하고 담대하라.’고 강조하신 그 말씀이 오늘날 저희들의 심중에 지녀야 할 말씀인 것을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억만 사탄들은 한 때 저희를 휩쓸고 유린하기 위하여 모진 시련과 모진 핍박과 모진 십자가로써 저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저희는 일편단심 충신의 절개를 세워 천륜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자랑스러운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저희들 아버지 앞에 한걸음 더 들어가, ‘저희가 아버지께 드릴 바의 산 제물은 저희의 몸이요, 마음뿐이오니 받아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한 시간도 저희들을 염려하고 계신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 한 생명이라도 어둠의 자리에 들어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제 아버지의 즐거움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가까이 온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날 저희들이 자신의 일을 염려하여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이미 가신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심정과 하늘의 심정을 체휼해 나가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이 한 시간 부족한 것들이 모여 지금까지 지내온 생활을 회개하고 다시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써 나가기를 원하오니, 아버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의 품을 향해 더듬어 나갈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은 시간도 오로지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영광의 은사로써 저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고, 사랑의 손길로써 저희를 품어 주시옵기를 바라올 때에,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이 마태복음 10장의 말씀은 뜻을 위한 최후의 각오를 지니시고, 또한 이 땅에서 사탄과의 싸움을 주도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처음 전도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극히 서러운 심정 가운데에서도 제자들을 대해 무한한 사랑과 애착의 마음을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전해 주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시게 될 때, 떠나가는 제자들의 그 심정과 사정도 불쌍하지만 보내시는 예수님 심정과 사정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딱한 입장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억만 사탄과 싸워야 할 제자들이 승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며, 혹시나 그 싸움의 노정에서 실족하여 하늘의 염려를 자아내지 않을까 염려하시면서 하신 말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최후의 싸움을 각오하고 나선 걸음이었기에 거기에는 반드시 원수들이 나타날 것을 아시고, 그때에 그들과 싸워 이기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그들이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할 수 있는 기쁨의 한 시간을 맞게 되기를 마음으로 기원하며 사랑하는 제자들을 격려하신 말씀인데, 오늘날 여러분은 이 말씀을 그 당시의 사도들만을 위한 말씀으로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싸워 나가야 할 전생애의 노정도 암시하신 말씀이며, 지금까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그리스도의 뜻을 중심삼아 이 땅 위에 승리의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 만민 대하여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그와 같이 말씀하신 예수님의 심중을 헤아려 보면, 떠나 보내는 사도들의 믿음을 염려하셨고, 또 사도들이 곧 믿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질 것이라 느끼면서 하신 말씀인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길 바라시며,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장한 각오와 심정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기에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너희들이 가는 곳마다 너희를 환영할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하늘길을 따라 나서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를 노리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예수님이 ‘너희의 갈 길을 막을 자는 믿지 않는 이방인이 아니요, 택해 세운 이스라엘도 아니요, 믿고 있는 유대교인도 아니고, 네 집안 식구라.’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비록 가진 것이 없고, 하늘 앞에 드릴 것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그러한 말씀을 주신 예수님께서 어떠한 심정과 각오와 맹세의 마음을 지니시고 말씀하셨는가를 헤아려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 자신에 비추어 살펴보게 될 때, 예수님에게는 당시 이 땅에서 서로의 심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친구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나라가 있지만 그 나라가 자기 나라가 아니요, 택한 민족이 있지만 그 민족이 자기의 민족이 아니요, 세워진 교회가 있으되 그 교회가 자기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길러 준 가정이 있으되 그 가정이 자기의 가정이 아니요, 자기와 동거하는 형제가 있었지만 그 형제가 자기의 형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하신 그 순간은 하늘을 대신하여 걸어오신 자신의 사정을 그냥 그대로 이 땅 위의 제자들에게 인계하기 위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누가 그리스도의 참식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오늘날 여러분에게 묻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나라가 있고, 수많은 민족이 있고, 수많은 가정이 있고,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그러한 사람을 찾아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원수의 품으로 내보내신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그들을 통하여 어떠한 교단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요, 그들을 통하여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세워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내시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식구, 하늘의 뜻대로 생활할 수 있는 하늘이 참다운 식구를 찾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그리스도의 참식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여러분에게는 가진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고, 자랑할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 한 개체를 대해, 그대는 예수님의 참식구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하늘의 식구라고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고, 예수님이 인정할 수 있으며, 여러분 자신도 인정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가 찾는 사람이요, 그리스도가 찾는 사람이요, 여러분이 소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할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타난 참다운 개인이며 독생자, 즉 하늘가정에 처음 나타난 하늘의 아들이 된 예수님을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모시고 살 수 있는 예수님의 식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늘이 가정권에서 제1인자로 세움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즉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집에서 살 수 있는 기준을 보여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이 바로 우리들의 생활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의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금 하늘의 품에 안겨 주기 위한 사명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스스로 증거하셨으며, ‘나는 하늘의 식구’라고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가 반대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전파하고 증거하셨으며, 혈혈단신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바쳐 싸우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쳐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였던 것과 같이, 그 예수님의 심정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사탄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증거하는 목적이 어디 있으며, 싸우는 목적이 어디에 있으며, 어찌하여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땅 위에 어두운 사탄의 세력이 있어 여러분을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러분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며, 또한 여러분이 뜻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만민 앞에 선포하는 예수님을 핍박하였고, 예수님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 한 분을 죽이기 위하여 사탄들이 역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것을 이 땅에서 추방하고 섬멸하기 위하여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가면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싸움의 봉화를 들고나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개의치 않고 싸움의 길에 나서서 십자가의 길까지 나아가시던 일을 상고하면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믿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예수님의 식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먼저 하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 각자 각자가 아버지 앞에 머리숙여 하나의 사정권(事情圈)을 이루어 예수님께서 편안히 쉴 수 있는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어 드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셨지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드리는 참다운 식구를 갖지 못했던 것이 역사적인 원한이었기에, 오늘날 끝날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풀어 드릴 수 있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형님과 같이, 예수님을 내 오빠와 같이 내 가정에 모시고 살면서, 그분의 서글픔이 내 서글픔이요, 그분의 애달픔을 내 애달픔으로 느껴 그를 위로할 수 있고, 그분의 염려를 내 염려로 여겨 대신 염려해 드릴 수 있는 심정을 지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심정을 지니지 못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이나 사랑하는 동생들과 함께 살았지만 그 가족이 그러한 하늘의 심정을 지닌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는 못 되었습니다. 가정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원하는 가정이 못 되었고, 예수님이 원하는 식구가 못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마을에서 쫓김을 받고, 저 마을에서 쫓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인한테 핍박받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핍박을 받고,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도 핍박을 받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핍박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서러운 심정을 품고 소망하신 것은 무엇이었던가? 예수님께서는 땅 위에 와서 아버지의 심정을 품고, 아버지의 아들딸을 위하여 살며,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식구로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식구들을 품고 아버지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그 식구들까지도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식구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유대교단․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불신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시면서 어디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러한 사정을 동정할 줄 알아야 되겠고, 머리 둘 곳 없었던 예수님의 안식처를 만들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없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에라도 예수님을 모셔야 하겠고, 예수님을 모시어 눕게 해 드릴 자리가 없으면 자신의 무릎에라도 뉘어 드리겠다는 심정을 지닌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지금가지 이 땅 위에 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소망을 지니고 나타나는데 있어서, 그것에 반대하는 또 다른 마음을 갖게 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심정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식구와 같이 대하고, 식구와 같이 기르시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예수님의 뜻을 아무도 몰랐고, 믿고 의지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과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은 그것을 조건삼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모는 놀음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인류의 생명나무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러한 자신의 사정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참다운 하나의 식구를 얼마나 원했던가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사정과 심정을 알아 그와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식구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 지닐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환경, 어떤 처소에서든지 하늘 대하여 변치 않고 충성을 다하셨던 예수님의 그 심정과 인격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이제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들이 찾아 세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평안히 쉬시며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 드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의 입장을 여러분이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하셨는데, 그 원수는 누구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슬퍼할 때 슬퍼할 줄 모르는 자가 원수였으며, 하늘의 심정을 증거하기에 애달파할 때 함께 애달파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자들이 원수였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이 나아가는 길에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고 원수가 되었던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있는 정성을 다하고 심정을 다하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가르쳐 주었던 제자, 즉 3년 공생애노정을 같이 걷던 사도들까지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못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개, 십자가의 고개를 찾아 나가고자 할 때,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정과 하나된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섭리의 때를 맞추어 드리는 하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식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말은 실로 두려운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노정에서 잘못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던 그 입장을 가로막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과 싸우시던 입장을 가로막는 원수가 되고, 십자가에 나가 인류를 대속하시려던 그 뜻을 가로막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예수님의 식구일 것인가? 그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싶어하시던 예수님을 닮은 사람일 것이며, 예수님께서 사탄과 싸우실 때 수고하시면서 근심하고 염려하고 탄식했던 그 모든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에 그저 따라만 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식구가 아니요,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때까지의 그 심정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식구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30여 생애의 노정에서 참다운 증거자의 사명을 띠고 나타나실 때, 당신을 대신하여 증거하는 참다운 식구를 갖지 못했고, 사탄과 싸우는데 있어서 같이 싸워 줄 수 있는 식구, 골고다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같이 나가 줄 수 있는 참다운 식구, 나아가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를 갖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예수님의 애달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던 것과 같이, 오늘날 여러분도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유대교단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장한 심정과 각오를 갖고,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시던 예수님의 사정, 하늘의 뜻 성사를 위하여 염려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갖고 대신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생명도 바칠 수 있다는 각오를 하셨던 예수님의 그 비장한 심정을 여러분은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스스로 민족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겠다는 제물의 정신도 지닐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산 제물이 될 뿐만 아니라 2000년 전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인격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사탄 앞에 굴복하는 죽은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정에 사무쳐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다가 낙망해서는 안 되겠고, 사탄과 싸우다가 패배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죽음의 고개를 밟고 올라서서, 원수를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이끌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심정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크나큰 뜻을 대행하고 나아가실 때에 누가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는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예비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반대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요, 유대교 교인들이 반대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이나 따랐던 제자, 그 사랑하는 제자들이 믿어야 할 때에 믿지 못하고, 증거해야 할 때에 증거하지 못하고, 싸워야 할 때에 싸우지 못하고, 죽어야 할 때에 죽지 못했던 그 한 사실이 예수님에게 가장 큰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늘의 참다운 식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먼저 여러분 각자 각자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으로 화합하여 움직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목표(뜻)를 향하여 싸울 줄 알아야 되겠고, 또한 그 하나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늘의 뜻을 다 이루시지 못하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맺혀졌던 그 원한을 풀어 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이룰 때에 여러분을 하늘의 참다운 식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노정에서 무엇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여러분들은 참다운 식구를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면 그 가정에서 참다운 식구를 가져야 되겠고, 교회에 가면 그 교회에서도 참다운 식구를 가져야 되겠고, 사회에 나가면 그 사회에서도 참다운 식구를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웠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해야 되겠고, 예수님을 위하여 싸워야 되겠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선 후에 자신을 증거해 주는 또 하나의 식구를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증거하던 사도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을 증거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증거할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져야 되겠고, 여러분을 위하여 싸워 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되겠으며,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죽어 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의 길을 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의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희생의 십자가를 지는 참다운 성도가 되기 전에는 여러분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여러분을 대신하여 싸워주고, 여러분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라는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저버리면서 희생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가 증거하는 것은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으며, 그가 싸우는 것도 역시 자신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심도 자기를 위하여 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했고, 예수님을 위해 싸웠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복귀의 뜻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을 증거할 수 있고, 여러분을 위해 싸워 줄 수 있고, 죽어 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식구를 갖지 못한다면, 하늘땅 앞에, 혹은 예수님 앞에 원수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시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를 위하여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싸우시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가? 자기를 위하여 싸워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증거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님의 식구가 되어야 하고, 자신을 위하여 증거해 주고, 싸워 줄 수 있으며, 죽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30평생의 생애노정을 여러분들이 탕감하여 산 제물로서 아버지 앞에 드리지 못한 원한이 여러분에게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참다운 식구를 찾아 나선 이 한걸음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염려하시던 그 염려의 심정을 지니고, 또 하나님이 염려하시던 그 염려의 심정을 가져야 되겠으며,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아는 마음이 지녀야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사랑하는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 주셨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제자들과 이스라엘 민족이 오히려 예수님을 불신하여 맺혀졌던 모든 원한을 풀어 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어야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중심삼은 교회와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남들이 놀 때 하나님을 사탄 앞에 증거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며, 남이 모르는 사이에 사탄과 싸워 나가기 위해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를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자리까지 나가셨는가? 그것은 물론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서였습니다. 나아가서 수많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에도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고,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증거한 것도 역시 그러했고, 그가 싸운 것도 역시 그러했고, 그가 사신 것도 역시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의 식구가 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은 증거의 길을 통하여, 싸움의 길을 통하여, 죽음의 길을 통하여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여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또는 사탄 앞에서 자신을 위해 증거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증거자를 가졌습니까? 또 여러분 대신 사탄과 싸워 줄 수 있는 하나의 친구를 가졌습니까? 또한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졌습니까? 이러한 모든 것이 끝날에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러한 뜻을 바라보고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바라고 머물러 있는 입장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하늘의 뜻을 세워 나가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원수를 맞이하게 됩니다. 먼저 가정에서 자신의 가는 길을 막는 원수가 있게 됩니다. 즉 여러분의 가정에서 부인이 교회에 나오면 남편이 원수가 되고 남편이 나오면 부인이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오면 부모가 원수가 되고, 부모가 나오면 자식이 원수가 되는 이런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느냐?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정을 잃어버리고, 남편과 부인을 잃어버리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부모를 잃어버려야 할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가정의 부모와 함께 참다운 부모를 찾아야 되겠고, 여러분이 참다운 신랑이 되고, 참다운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하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것인가? 여러분의 가정에서 부모가 슬퍼하면 자식도 슬퍼해야 할 것이요, 자식이 슬퍼하면 부모도 슬퍼해야 할 것이요, 남편이 슬퍼하면 부인도 슬퍼해야 할 것이요, 부인이 슬퍼하면 남편도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정에서 한집안의 모든 식구가 일심동체가 되어 하늘의 뜻을 받들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나가지 못한다면, 여러분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가정에서 몰리고, 사회에서 몰리고, 국가로부터 몰리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은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식구가 필요하게 됩니다.
세상의 부모에게 몰리는 대신 참부모를 가져야 되겠고, 부부끼리 불신하는 입장에서 참부부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 뗄래야 뗄 수 없고, 깨뜨리려 해도 깨뜨릴 수 없으며, 죽음의 자리까지도 함께 나갈 수 있는 이러한 식구의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부모도 자식이 죽을 입장이면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랑의 정을 지니고 있거든 하물며 하늘의 사랑으로 인연맺은 여러분들이 세상 가정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머무는 곳에 예수님께서 임할래야 임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안식할래야 안식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 최후의 순간을 재촉하는 이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은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서로의 사정과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와 같이 서로의 사정과 심정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원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이웃 형제에 대한 관심을 가져 그의 사정이 내 사정이요, 그의 애달픔이 내 애달픔이라 할 수 있는 영원하고 참다운 식구의 관계를 맺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이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고, 서로서로가 하나의 식구라는 마음으로써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의 입장에서 서로 위하며 살 수 있는 참다운 식구의 관계를 맺어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러한 관계를 맺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안식 시켜 드리려 할 때 반드시 이를 가로막는 원수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인연맺고 알았던 것이 원수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원수는 여러분의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가정과 사회․민족․국가․세계에 있는 원수를 제거하면서 천상까지 나아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정과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의 부모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사회․국가․세계까지 연해 나가야 할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식구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증거해 줄 수 있고, 싸워 줄 수 있고, 죽어 줄 수 있는 이러한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진실로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어야만 여러분은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자녀들, 당신의 참다운 식구의 입장에 세워 주시옵소서.
오늘날 자신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심정과 화합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아버지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게 된 조건이었다는 것을 이 시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님, 오늘의 저희들은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 심정을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전해 주기 위한 증거의 싸움을 하여야 할 것이요, 또한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 대하여 싸워야 할 것입니다. 또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일을 이루어 나가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주적인 역사를 하시기 전에 사랑하는 세 제자가 문제였던 것처럼, 오늘날 저희 교회가 하나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옆에 있는 세 사람의 식구와 하나될 수 있느냐가 문제이오니, 아버님, 그들과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것이 예수님 앞에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먼저 저희의 마음 몸이 하나되어 예수님의 심정의 대신자로서 스스로 사탄 대하여 증거할 수 있고, 사탄 대하여 싸우다 죽을 수 있는 모습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사오니, 그 과정에서 원수의 훼방을 피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의 교회 전체가 하나되어 다가오는 민족적인 원수의 무리를 막아낼 수 있게 도와주시옵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 민족이 단합하여 세계적인 원수를 막아낼 수 있게 도와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각자가 민족을 위하여 싸우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고, 인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각오를 갖고 나간다면 예수님을 저희의 가정의 중심, 사회․민족․세계의 중심으로 편히 모실 수 있사옵고, 또 그러한 저희들이 되어야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랑하는 아버님, 그러한 입장까지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자녀들, 자신들이 아버지의 귀한 자녀임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그날 그날을 보내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살아 온 모습들이었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아니면 저희를 위로해 줄 수도 없사옵고, 당신의 영광을 저희에게 허락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 혹시 저희의 마음이 죄악에 사무쳐 자신을 주장하는 일은 없사옵니까? 자신을 중심삼고 움직인 것이 천륜을 배반한 행동이 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내놓고 성별의 은사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먼저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몸으로 발현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움직이는 심정이 저희의 심정을 대신하고, 아버지께서 요구하는 욕망이 저희의 욕망을 대신하고, 원하시는 뜻을 위해 싸우시는 그 마음속에도 오늘날 저희의 싸움의 마음이 함께하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오직 아버지의 뜻 하나만을 받들어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저희의 삶은 속된 것이었사옵고 그릇된 죄악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는 저희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가치를 찾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중심을 통하여 그 가치를 나타내고자 하시는 그 뜻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 뜻 앞에 저희의 마음이 화동할 수 있는 상대기준을 이루어, 하늘의 영광을 그 자체에서 노래할 수 있는 즐거움을 지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을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역사를 저희들이 알고 또한 먼저 이 땅에 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흘린 핏자국을 저희들이 사수하여 아버지 앞에 사랑받을 수 있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직까지 아버지의 뜻 앞에 스스로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여! 그러한 자가 있다면 긍휼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옵고, 부활의 전능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굴복시키시어 아버지 앞에 이 시간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고, 아버지 앞에 겸손히 엎드려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말씀을 대하고자 원하오니, 아버님이여, 이 청중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오랫동안 아버지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들을 권고해 나오신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권고에 얼굴을 돌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신들이 부족하여 아버지의 뜻을 가로막는 일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신들이 미급하여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자리에 서지 말게 이끌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 삼위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고, 저희 스스로 세운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다 내어 놓고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화동의 미를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리는 그 한 몸 마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니, 이 시간 말씀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30여 생애를 피땀 흘리며 갖은 수고로써 제자들을 사랑하셨지만 오히려 그들이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그 안타까운 사실들을 이 시간 다시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하늘을 믿고 따라나온 저희들, 끝까지 불변의 충성을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릴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영광의 열매로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이 우거하는 이 한 자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억만 사탄들이 이 한 자리를 노리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아버지 앞에 산 제물로 바쳐 드리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도 외로운 식구들이 지방에 널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승리의 영광이 함께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놀라운 아버지의 영광이 그들의 몸 마음에 충만하여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자녀들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과 같이 잠깐 동안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뜻을 배신하는 자가 되지 말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생활 환경은 신의(信義)의 법도를 찾아 세우기에는 지극히 어려운 환경입니다. 또 한 사람의 친구를 찾아서 영원한 친구의 관계를 맺으면서 생애노정을 거쳐 영생의 노정까지 같이 즐길 수 있으며, 같이 살 수 있는 그러한 친구를 갖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비단 친구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부부,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부모,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형제를 갖기가 어려운 세상에 처해 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보게 될 때, 내 마음이 변치 아니하고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의 모든 것이 변치 않는 가운데 놀랍고도 크신 어떠한 이념권 내에서 더불어 살기를 인간은 이 시간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서로 영원히 믿을 수 있고, 영원히 의지할 수 있으며, 또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기고, 자기의 모든 좋은 것을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환경을 잃어버림으로써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할 필연적인 운명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그저 우연한 역사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곡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지내 온 우리 선조들에게 절대적인 신의의 대원칙을 배반했던 조건들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질러진 흑암의 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 여러분들의 피와 살을 억누르고 있는 동시에 여러분의 생활 환경까지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원래 인간이 지녀야 했던 본연의 이념을 중심삼고 불변의 신의의 모습을 갖추어 영원한 이념을 나의 이념으로, 영원한 신의를 나의 신의로서 생활권 내에서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애노정을 넘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한 날을 고대하며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한 존재들인가 하면 아직까지 타락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입니다. 즉 죄의 테두리 안에서 해방되지 못한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죄의 굴레를 벗어나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의 잘못된 생활을 반성해야 하겠고, 잘못되어지는 일련의 모든 움직임을 가로막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환경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생의 이념을 찾지 않으면 아니 될 운명이 우리에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입장에 처한 것은 모두가 타락했기 때문인데, 그 타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영원히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중심체로, 믿음의 목적을 완성한 이념의 중심체로, 또는 만물을 대하여 영원한 중심존재로 나타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서로 변할래야 변할 수 없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갈라지게 되고 변하게 된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서러움을 지니게 된 것은 하늘이 세워 놓은 원칙을 스스로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대신한 중심존재로 나타나야 할 그 뜻을 불신하고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서러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나 한 자체, 즉 내 몸과 마음으로 인하여 나타날 내 생활 전부가 하나님과 같이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의를 대신하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될 때, 내 자신이 슬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 몸 마음에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배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서러워해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천륜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배신이라는 명사, 불신이라는 명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들딸의 관계를 세워 놓아야 할 아담 해와가 하늘의 뜻을 배신하였던 이 한 사실이 오늘날 우주의 서러움이요, 역사상의 모든 인생의 서러움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나의 마음과 몸의 서러움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갖고 있는 자신을 아버지 앞에 내놓고 원수를 대하여 싸워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생활 환경과 싸워야 되겠고, 이 땅의 모든 어둠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워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러한 생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내 한 모습을 세워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의의 법도를 찾아 나서려 할 때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배신의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혈통적으로 인연되어 있고, 마음과 생활과 사회환경 전체가 이와 같은 배경을 갖추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 6000년의 역사를 섭리해 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여 영원히 변치 않은 인연을 맺고자 수고하셨다는 것을 또한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무한히 인간을 사랑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간을 위해 배후에 수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와 같이 수천년의 역사 과정을 참으시면서 떨쳐 버리지 못하신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 영원히 변치 않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대신하여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의 내적인 안타까움을 더듬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6000년 동안 참으시며 인간들로 하여금 하늘을 믿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도록 해 주시기 위하여 수고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입장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품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서러운 심정을 갖고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믿고 있는 아버지와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예수, 그 예수와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수없이 배신당하시면서도 믿고 또 믿어 주셨던 그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댄, 그는 사회적이요, 국가적이요, 역사적인 모든 배신의 조건을 밟고 넘어서서 아버지와 함께 직접 의논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신하는 인간들을 지금까지 용납해 나오신 그 심정을 아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몇 명이나 있을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 모인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그 심정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배신하는 인간들을 바라보시고도 참으시며 그들을 다시금 찾아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사정을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배신당하면서도 참으시면서 인간을 사랑하고 믿어 주신 그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역사적인 배신의 노정을 타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 과정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였던가? 제일 먼저 아담 해와가 가정을 단위로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권을 배신한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세워 드려야 할 아담이 천사장에 의해 타락하여 하늘의 뜻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배신의 역사가 출발되었던 것을 오늘날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다시 찾아 세우시려고 1600년을 수고하여 노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120년간 수고하게 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려 했으나 그도 성취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뜻은 노아 이후 역대의 믿음의 조상들을 거쳐 모세에게까지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가정에서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들이 여러 민족으로 화했으니, 그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고, 또 그 민족 가운데서 모세를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천륜의 법도는 세웠으나, 모세를 따랐던 그 민족은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정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다시금 이스라엘을 바로의 수중에서 빼앗아 가나안족과 싸우게 하는 싸움의 역사를 거쳐 4000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민족적으로 받들어야 할 모세를 배신한 인간들이 국가적으로 받들어야 할 예수를 과연 받들었던가? 오히려 그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가정적으로 배신했고, 사회적으로 배신했고, 국가적으로 배신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대의 선지들, 혹은 역대의 선조들이 뜻 앞에 나타나 하늘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서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그들이 되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세우려고 하늘의 사명을 맡았던 분들이 바로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지니고 이 땅에 나타나셨던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신해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말씀을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려던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무엇을 느끼셨던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 세상을 향해 외치실 때, 그 말씀은 역사적인 말씀인 동시에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나타내고자 하였던 말씀인 것을 느꼈습니다. 나아가 그 말씀은 또한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당한 말씀인 것을 느꼈으며, 불신의 이 땅 위에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무한히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인간을 지어 놓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의 실체로 세우고자 하시던 그 사랑의 심정을 느꼈고, 배반한 아담 해와의 입장을 자신이 복귀하여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타락을 염려하시던 하나님의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인류의 아픈 심정을 느끼고 애달픈 역사 과정을 천륜을 걸어 놓고 저울질하는 입장에 서 계셨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실존에 대한 보이는 실존체로서 말씀을 부르짖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인간들로부터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말씀을 내 자신의 것으로,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성전으로서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예수님은 붙안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 예수님께서 소망으로 찾고 요구하신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할진대 그것은 선의 한 날을 위한 염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소망의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웠고 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말씀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 역사적인 과정에서 배척받던 모든 말씀을 복귀하고 선조들이 그르쳐 놓은 배신의 죄악사를 탕감하여 아버지를 위로해야 할 책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오, 아버지여! 아버지의 성전과 마음을 유린하고 짓밟던 선조들의 4000년 역사를 저를 보고 잊으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땅 위에서 어떤 무엇을 청산해야 할 사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배신과 현실적인 모든 배신의 내용을 추방하여 다시금 배신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에 사무쳐 사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명을 책임지고 하늘 대해 각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르짓는 곳에 배신의 역사가 벌어질 것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지니고 나타나는 곳에 서러움과 원통함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의 몸이 나타나는 곳에 사탄의 화살이 있을 것을 알았으며, 또한 각오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 주고 자신을 지켜 주기를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신하는 인간을 대하여 묵묵히 참으셨던 것입니다.
남모르는 슬픔을 머금고 인류를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감람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그 서글픔 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당시 땅 위에 있는 인간과 예수님을 비교해 볼 때에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사 과정의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받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땅 위에 나타나신 예수님같이 그 말씀을 부둥켜안고 ‘오!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신랑이시여, 나의 인도자이시여! 저희의 생명을 아버지 앞에 이끌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4000년 수고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배신으로 종결된 사실을 느끼신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배신한 그 인류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천지에 가득 찬 하나님의 서글픔을 느끼면서도 배신하는 인간들을 찾아 나선 예수님에게 한이 있었다면 이것이 무한한 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4000년 동안 배신을 당하시면서도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배신을 당하여도 서러워할 수 없고, 생활이 곤궁하다 하여 낙망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으며, 자신의 생명이 제물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던 것입니다.
4000년 동안 배신한 민족을 그래도 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친히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입장에 서셨던 것을 오늘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소망했던가? 배신의 역사를 청산하고 배신하는 현실을 굴복시켜 배신하는 후손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예수님은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소망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한 채 오늘날 여러분의 소망으로 남아져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나 자신을 생각해 보면 내가 산 과거가 배신의 입장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배신의 환경이며, 나는 자손들 앞에 배신의 뿌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자신은 이러한 배신의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배신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그리고 나 자신이 후손에 대해 배신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고, 또한 그것을 안타까이 여기고 서러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민족 앞에 배척받고, 국가 앞에 반역자로 몰리고, 나중에는 강도보다도 더 중한 죄인으로 몰림받게 되었는데, 그러한 입장에서도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게 해달라고 복을 빌던 그 마음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는 역사상의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수천년 동안 참아 나오셨던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을 느끼게 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제물로 사라진다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4000년 동안 배신당하시던 심정에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죽음의 고개를 넘으면서도 배신하는 무리,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복을 빌어 줄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이 땅에 왔다 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믿지 못하는 역사 과정을 거쳐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인간을 믿고 계십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배신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한 인간을 대해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 땅 위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몸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나타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민족이나 국가도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그 말씀을 계승해야 할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고, 말씀을 갖고 나섰지만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누구 하나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역사적인 길을 거쳐갔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는 반드시 형제로부터, 혹은 교단으로부터, 혹은 민족으로부터 배척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와 같이 배척받는 환경에서도 배신하는 자들을 위해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 믿고 있는 신앙, 세우고 있는 종교이념은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가?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개인으로부터 가정․교회․이스라엘 민족․국가로부터 배신받는 입장을 거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민족․국가를 넘어 세계에 이르기까지 배척받는 단계에 머물러 있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에덴동산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가 악이 선을 치는 역사였다는 것은 안다 할진대는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배척하는 자가 참이 아니요 배척받는 자가 참인 것이며, 나아가 그들이 하늘의 역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어느 민족이 세계를 대신하여 모든 면에서 배척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가? 하늘의 뜻을 찾아 세워 하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에 가까운 이런 민족이 있다 할진댄, 그 민족은 그 민족이 가진 모든 것에 걸쳐 배척당하는 이런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민족은 무엇으로부터 배신을 받겠는가?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에 천사장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그 모든 조건을 통하여 배신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는 말씀을 중심삼은 배신을 받게 됩니다. 동산 가운데의 모든 열매는 따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하던 약속의 말씀이 배신당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즉 천사장이 나타나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통하여 하나의 나라, 하나의 이념권 내에 딴 나라의 이념적인 것이 나타나게 된 것과 같은 그러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이념, 하나의 목적, 하나의 중심을 향해야 될 마음이 제2의 마음의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목적을 소개하는 듯하였지만 결국 배신의 기원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배신의 기원은 무엇을 통하여 벌어졌던가? 말을 통하여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있어서도 하늘 앞에 세워져야 할 어떠한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어느 한 때, 언어에서까지도 배신당하는 입장에 설 것이요, 그 나라의 말을 대신하는 글이 있다 할진대는 그 글까지도 배신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나라의 역사 그 나라의 민족성까지도 유린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기말적인 종말의 한 때를 두고 볼 때에, 그러한 나라가 어디냐 하면 바로 이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역사상에 수많은 민족의 침범을 받아 왔고 많은 배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압정하에서 우리의 언어도 다 잃다시피 했었습니다. 우리의 글자도 우리의 민족성도 우리의 자랑도 우리의 이념도 다 말살당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배신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배신하는 동시에 형제들끼리 배신하고, 부모 친척이 배신하고, 부자간에 배신하고, 부부간에 배신하는 이러한 배신의 한 고비를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민족은 하나님의 인류 앞에 배신당하고 그 서러움의 심정을 어느 한 때 한 순간에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이 민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민족도 배신하는 세계를 위하여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민족의 살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은 배신하는 세계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배신을 통하여, 배신받던 예수님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배신받던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배신받던 선조들의 몸을 나의 몸으로 여기어 하늘 앞에 엎드려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무심하여 이스라엘이 망할 줄 알았지만 이스라엘 가운데 예수님이 나셨듯이, 이 나라가 망하는 것 같지만 이 나라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민족이 해야 할 것은 6000년 동안 배신 받던 아버지의 말씀을 내 말씀과 내 몸, 마음으로 여기고 6000년 아버지의 서러움을 나의 심정으로 체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누구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누구를 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본래 누구를 의지할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또 누구를 평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의 사람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고 남의 말을 믿고 남의 행위를 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할 여러분은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자체가 되어야겠고, 의지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고, 평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자체를 의지하고 자체를 믿고 자체를 평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묵묵히 참아 내려오신 것같이 여러분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묵묵히 내 스스로 의지할 줄 알고 내 스스로 믿을 줄 알고 내 스스로 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체를 세워 ‘아버지여! 나를 보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아버지가 나를 믿어 주고 내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가 나요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맺어지게 될 때에 하늘의 서러움은 여러분 자체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자체에서는 하나님의 싸움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제 옛날 아담 해와가 옆으로 들려오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여 타락했음을 깨닫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인격의 완성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의하여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던 그들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 마음이 영원한 이념을 통하고 영원한 천륜을 대신하여 부동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완전성을 갖추었다면, 그 마음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배신받은 가운데 변명하려면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지만 한 날 한 시간도 변명하지 않으신 아버지와, 또한 2000년 동안 변명하려면 무한히 변명할 수 있었으나 변명하지 않고 땅을 위해 염려하고 계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묵묵히 참고 견디며 변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으며, 나아가 자신이 제2의 천사장 입장이라는 것을 폭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주위에는 여러분의 환경을 위협하고 침범하여 들어오는 억만 사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은 천륜을 팔아먹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고 느끼며 몸으로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 후에야 여러분은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한 날을 대심판의 날로서 고대하고 계시며 예수님 또한 2000년 동안 억만 사탄과 싸우시면서 그 한 날을 고대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사람은 가질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한 사람은 영광의 터를 갖출 수 없을 것입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산 사람은 후세에 반역자가 되고 배신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신당하는 입장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고 싶은 대로 다 살지 못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 또 우리의 선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불변의 자체로서 자신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 어느 시기에 하늘을 배신하는 자리에 설는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배신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조건에 걸리는 줄 아닙니까? 여러분이 6000년 동안 배신의 서러움을 참고 나오신 그 아버지를 배신하게 될 때, 여러분은 끝날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여러분을 대하여 6000년의 서러움을 일시에 탕감시키고자 하는 대심판의 날을 여러분은 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세상의 제물이 되어 말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나가는 데는 1년이 아닙니다. 10년이 아니고 30년이 아닙니다. 일생을 거쳐 여러분 후대에까지 계승시킬 만한 믿음을 갖고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오늘의 나를 찾아 나를 개척하고 나라를 밝혀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하늘과 맺어진 인연이 이 모든 사악한 세상을 초월하고 우주적인 종말권까지 넘어설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승리적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천륜과 뜻을 배신하지 않은 영원한 승리의 아들딸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저희들이 6000년 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어느 한 때 편히 쉬시고 즐거워하신 적이 없었고, 오히려 비탄과 슬픔에 잠겨 오신 것을 아옵니다. 또한 노아 당시의 일을 돌이켜 볼 때, 그때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서러움의 눈물 자국을 만들고 있음을 저희들이 느끼게 되옵니다.
무지한 백성 가운데 믿음의 혈족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발걸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사무칠 수밖에 없었던 그 사정을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초초한 노아 한 사람을 광활한 사탄세계 앞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도 서러웠을 뿐만 아니라, 노아의 심정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외로웠었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뜻 앞에 택함을 받았던 선지자들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당시의 인간들 앞에 희생의 제물로 나타났고, 하나님의 무한한 서러움의 상징체로 나타났던 것은 비단 노아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역사 과정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통해서도 나타났던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노아 이후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노아의 그 길을 재차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최후의 심판을 맞이해야 할 저희 자체들, 스스로를 천륜 앞에 내세워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노아와 같은 심정을 지녔는가, 또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애달파했던 그 심정을 지니고 있는가를 반성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아버지의 아들딸로서의 면목을 세울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최후의 심판이 두려워서 피하는 자들 되게 말게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무한하신 긍휼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아버지의 슬픔을 위로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불의의 세력과도 싸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아들딸을 긍휼히 보시옵고, 옛날 노아에게 훈계하셨던 그 말씀과 같은 말씀을 이들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각자가 지닌 바의 모든 결심이 그저 일시적인 결심으로만 그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애노정에서 어려운 환난을 타개하고 남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고, 또한 억만 사탄이 주위에서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진 아버지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전하는 말씀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이나 전하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고 하나가 되게 역사하여 주시어서, 아버님의 은사에 잠기어 하늘이 움직이면 저희들도 움직이고, 하늘이 정(靜)하면 저희들도 정하여, 하늘의 뜻과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심정 가운데 느껴지는 그 뜻을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 세워야 할 뜻으로 받들고 나아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시간 저희의 한 몸을 오로지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니, 남은 이 시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시간은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자가 되자’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슬픔은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우리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인간만이 슬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연하여 있는 만물도 슬퍼하고 있으며, 또 창조이상을 세워 인간을 지으셨던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슬퍼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위로는 하늘 쳐다보고, 아래로는 만물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 땅의 인류를 살펴보게 될 때, 어느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여 슬픔의 고난 속에서 나는 해방되었다고 부르짖고 나섰던가? 그런 사람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이 거두워지지 않는 한, 땅 위의 인간의 슬픔도 거두워질 수 없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슬픔이 거두워지지 않는 한, 인간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피조만물도 슬픔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슬픔을 안겨 준 장본인은 누구였습니까? 그 장본인은 하나님도 아니고 만물도 아니고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인간, 만물을 대해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했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서러움을 자아내게 했고, 만물에게까지 슬픔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한 자체가 하늘땅 앞에 홀로 선 자신인 것을 깨닫고, 여러분 마음 가운데 흐르고 있는 그 서러운 심정을 제거하는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 자체의 서러움은 여러분 자체의 서러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서러움은 하늘의 서러움으로, 만민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사회․국가․세계에까지 그 서러움의 파동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입장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와 같이 슬픈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의 나는 어떠한 심정으로 하늘의 서러움을 대신하기를 원하고 있는가, 어떠한 심정을 갖고 이 땅 위의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하길 원하고 있는가, 또는 만물의 서러움을 대신하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최후의 심판의 한 고개를 넘어가야 할 우리 타락한 인간들이 안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세계적인 골고다의 역경을 맞이한 이때에 우리는 그 짐과 보따리를 자기 일신에게 청산하고, ‘나는 자유의 몸이요, 희망의 몸이요, 행복의 몸이요, 천지 만물을 사랑하는 몸’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제거하고 만물의 서러움까지 청산했다 할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하나의 기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할진대는, 오늘 여러분이 이 한 시간에 기뻐하는 어떠한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일순간에 끝나 버리고, 즐거워할 수 있는 어떠한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일순간에 끝나 버리고 곧 슬픔에 잠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서러움을 벗어 버려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슬픔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 혼자서는 벗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은사와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시며 그 슬픔을 제거하기 위한 싸움을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해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인간의 서러움이 하늘땅의 서러움으로 화하게 되었고, 타락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과 만물과 하나되어 나아갈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가로막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슬픔으로 인하여 자포자기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장보다도 지금까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류를 대하여 슬퍼하였던 아버지의 슬픔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아버지의 슬픔을 자신의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사람이 되면, 자체에 미쳐지는 서러움을 그저 여러분 자신의 서러움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한 입장을 거뜬히 넘어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끝날의 심판의 고개를 넘어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자격자로 나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서러움을 갖고 계시는가?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지극히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중심 책임자로 지었던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그들을 통해 세우고자 했던 창조 본연의 세계를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생긴 서러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념을 중심삼고 사랑의 동산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어 있는 그 창조의 이상이 좌절되었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 속에서 수고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한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사탄과 싸우면서 느끼셨던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아담을 잃어버렸던 그때의 서러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했을 때의 하나님의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시는가를 체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슬퍼하셨던 그 심정을 도저히 체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창조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이 온 피조세계에 맺혀 있습니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이후 노아․아브라함․모세․예수 때까지 왔다 갔던 모든 선지선열들은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인간들에게 증거하였으며 무엇을 소개하였는가?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슬픔을 무지한 인간들 앞에 전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한 슬픔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그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사탄 대하여 싸우게 하신 후 그것을 바라보고 서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중의 서러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어떠한 사람도 환영하지 않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그 슬픈 심정을 소개해 주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애달픈 수고의 노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이 내적으로 체휼되면 체휼될수록 땅을 위하여 하나님 대신 서러워해야 할 사명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과 같은 애달픈 심정을 갖고 사탄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대신하여 가치를 인정받는 존재로 나타나야 할 그들이었는데, 오히려 무지한 인간들에게 멸시와 배척을 당하고 천대를 받으면서 무가치하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께서는 이중의 서러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한 것도 슬픔인데, 그 창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땅 위의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우고, 사탄과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바라보시는 것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중의 슬픔을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노아 때를 돌이켜 보면, 1600년 동안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이 복받쳤지만 참으심의 길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어느 한 시간 한 순간도 잊어버릴 수 없는 인간 대한 서러움이 북받쳤지만, 그것을 다 참고 자신의 슬픔을 대신 만민 앞에 또는 만물 앞에 온전히 나타내기 위하여 노아를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노아를 그 당시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입장에 세우셨던가? 1600년 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을 서러움에 사무치도록 했던 것을 노아 한 사람을 세우시어 그가 인간을 대표하여 그 천적인 서러움과 슬픔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세워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자기를 불신하고 반대하며 조소하는 인간들 앞에 묵묵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겠다는 하늘의 예고를 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하늘 대한 믿음의 도리를 다했던 것입니다. 그를 보고 당시의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었던 연고로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당시의 사회가 패역하면 할수록 더욱 그 사회를 위해 염려하며 슬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안일을 취하기 위해 허덕이고 있을 때에 노아만은 홀로 공의의 법도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천륜을 염려하였으며, 남이 원치 않는 환경에서 슬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 즉 그 당시 인간들을 위해 염려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지닌 노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단 노아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야 하는 책임을 진 모든 선지선열들이 택함을 받게 되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그 당시의 패역한 땅과 패역한 인간을 홀로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개인과 가정․사회․국가․세계를 염려하는 마음을 지니고 남모르는 가운데, ‘하늘이 있사옵나이까? 있다 할진대 이 죄악의 땅을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늘 대한 애달픈 심정으로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늘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면 노아, 어떠한 선지자면 선지자를 세우실 때의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픔에 사무쳤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선지자들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불신과 배반을 당하는 가운데서 혈혈단신 슬픈 심정을 지니고 ‘오! 아버지여!’ 고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진대 그 기도소리는 인간들에게 기쁨의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를 듣게 되는 하나님께서는 그 간곡한 호소에 움직여 나오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떠한 수난길도 개의치 않고 걸어갔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애달픈 심정을 갖고 이처럼 하늘을 대하여 호소하고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더욱 북받쳐 오르는 서글픈 심정을 갖고 그를 대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하게 될 때, 당신의 모든 욕구와 이념을 전부 찾겠다는 그런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랑하는 선지자, 혹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대하여 언제나 마음놓고 명령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서 의논할 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징적인 조건을 세워 놓고 나서야 인간을 대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그 서러움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물을 통하여, 신약시대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제거시키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여러분과 마음껏 주고받고, 그리하여 여러분을 품에 품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영원토록 함께 살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을 내 아들딸이라 부르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원한과 슬픈 심정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오늘날까지 참아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자신의 서러움을 사람에게, 또는 가정 앞에, 혹은 종족 앞에 토로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어려울 때, ‘나는 슬프다, 혹은 나는 외롭다.’라고 자신의 사정을 토로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수천년의 역사 과정을 거쳐오는 가운데서도 서러워도 서럽다는 말 한마디 하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애달픈 입장에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과정의 선지선열들이 자신의 서러움을 소개하기 전에, 그들을 대신하여 땅 위의 모든 인간의 서러움을 먼저 나타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제 여러분이 하늘 앞에 서고자 원할진대는, 먼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해 서러워해 나오신 하나님 앞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어떠한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였는가를 회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바라보고, 자신이 속해 있는 가정을 위해서 혹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염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또 세상이 흔들리어 사망권 내에 휩쓸리게 된다 할지라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하여 창조이상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고 계시며, 또 이루지 못한 그 이상을 다시 이루기 위해 이 땅을 대신하여 염려하고 수고하는 한 사람을 찾아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그와 같이 서러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을 위로하고 그 슬픔을 제거해 드리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슬픔을 안겨 드린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 슬픔을 추방해야 할 자도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천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할 자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서러움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중대시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택해 세운 인간들의 생애노정에서 어느 한 때, 어느 한 순간도 서러워하지 않으신 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서러움을 풀어 주기 위하여 있는 성심을 다하여 중심적인 사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한 순간에도 당신의 마음이 흡족할 정도로 위로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해 세운 인간과 마음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 소망하시는 것을 그들이 당대에 이루어 드리지 못하여 안타까움을 품어 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서러움의 역사가 4000년이 경과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이 땅 위에 4000년 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그 4000년 역사 속에 왔다 갔던 모든 선지자들을 대신할 수 있으며, 온 천주를 대신할 수 있는 한 분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를 보내셨으니, 그분이 누구시냐 하면, 바로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신 날은 만물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고,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으며,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무엇을 갖고 오셨던가? 그는 역사 과정의 전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모든 만물의 서러움을 대신한 존재, 즉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품고 이 땅 위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슴 속에 4000년 동안 사무쳤던 서러움을 전인류와 만물을 대신하여 해소시켜 드려야 할 책임을 갖고 이 땅에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한 그 타락의 역사를 돌이키기 위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인간의 생명과 전우주의 생명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과 싸웠던 것입니다. 즉 어떠한 사탄적인 혈통과도 관계를 맺지 않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소망과 기쁨을 추구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셨으나 어느 한 사람도 믿어 주고 같이 동조해 주지 않았습니다. 4000년 동안 맺히신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30여 평생 피땀 흘리는 충성을 다하였으나, 예수님의 그러한 사정을 진실로 알아주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단으로부터 혹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몰리고 몰려 나중에는 머물 곳이 없고 설 곳이 없어 이 고을 저 고을, 이 산골 저 산골로 헤맬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오늘 여러분은 느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서러움은 어떠한 서러움이었던가? 하나님의 뜻 앞에서 맡은 바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서러움이었고, 무지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주지 못하는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자신을 반대하고 불신하는 유대교를 대하여 슬퍼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슬픈 사정에 처해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불신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당장에 심판하여 멸하고 싶었지만, 멸하시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애달픈 서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시어 서러워하신 것은 전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였고, 모든 피조물의 서러움을 대신하였기 때문임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외로운 가슴을 헤치고 그의 서러움이 어떠한가를 느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남모르는 애달픈 입장에 처해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한 날의 친구는 못 될지언정, 한 시간의 친구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하여 나설 수 없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오히려 하늘 앞에 반기를 드는 반역자의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애달픈 심정을 갖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썼지만,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만민을 대신하여 온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지만, 불신하는 무리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결국에는 골고다산상에서 십자가까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을 중심하고 약속되었던 모든 뜻이 파괴되어 버리고 자신의 일생이 결국은 십자가의 형틀에 귀결된다는 것을 느낀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끝까지 하늘을 배반하지 않고 하늘 대한 충성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불신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에 상관하지 않고 천륜을 향한 그 길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 인간에게 역사적으로 소망의 길이 되었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직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
셨나이까?”(마 26:46)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입장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깝고 서글펐던 심정을 여러분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000년 동안 서러움을 참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전에는 직접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탕감조건을 세울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사셨던가? 오늘날 여러분과 같이 마음대로 말을 하고 마음대로 행동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안일한 입장에 서시지 못했습니다. 어디에서 자든 무엇을 먹든 상하좌우 어디로 움직이든지 간에 항상 뼛골에 사무치는 하나님의 서러움 심정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곳에서 말씀을 하든지 간에 불신하는 무리로부터 자신의 뼈가 녹아지고 피와 살이 사그라지는 듯한 서러움을 느끼면서 당시 바리새교인과 유대교인․이스라엘 민족 앞에 소리높이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당한 여러 가지 서러움에 사무치는 원한의 심정을 놓고 무지한 백성과 불신의 무리를 대하여 의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로부터 어떠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오게 되었는지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소망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서러운 마음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슬픔이 하늘땅을 덮고도 남을 수 있지만 자신의 사정으로 인한 슬픔은 지닐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이 자신의 사정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 인류의 슬픔과 역사적인 하나님의 슬픔을 염려하며 위로하려 했던 예수님의 30평생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의 그 슬픈 사정을 얼마나 염려해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러한 슬픔의 자리까지 얼마만큼 나아가 보았는가를 반성해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이념을 잃어버리게 되어 말할 수 없는 서글픈 심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여 당신의 슬픈 심정을 위로받는 소망의 한 날을 맞으려 하셨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비참한 사정을 또다시 보시게 되었습니다.
4000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님 한 분을 세워 당신의 슬픔을 풀고 또한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시고자 했는데, 그러한 모든 뜻이 일시에 좌절될 때, 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때의 하나님의 슬픈 심정은 옛날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느끼던 그 이상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는 하늘땅이 모두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피땀 눈물로 쌓은 정성의 탑이 일시에 무너지게 됨으로써 다시금 재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타락 당시의 슬픔이 가중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탄식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까? 오늘날 여러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서러움을 안겨 준 아담 해와의 후손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 드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죽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가중시킨 자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에게 서러움을 안겨 준 배반자인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그 후손들을 붙들고 섭리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피조만물의 하나가 되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한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까? 오늘날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어떠합니까? 세계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뜻이 있는 사람이라 할진대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서러워할 때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슬픈 가슴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는 온 땅에 대신하여 어둡고 둔탁한 자신의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현실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으며, 패륜과 모순과 투쟁이 가득 찬 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지극히 서러운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남이 욕을 하든 핍박을 하든 그것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망의 한 날을 이루기 위하여, 즉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허덕이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 한 길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불신의 무리로부터 당하는 여러 가지 슬픈 사연이 있더라도 그런 사정을 여러분보다 더욱 서러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께 아뢰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대한 슬픔이 측량할 길 없지만 그것을 지금까지 인간 앞에 전체적으로 나타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러움을 붙안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의 서러움을 붙안고 사탄과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는 자신이 되고 또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맺힌 역사적인 원한과 우주적인 서러움을 모두 맡겠다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사탄과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저 허덕이다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아버지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고자 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천륜의 무한한 생명의 원동력을 불어넣어 그를 통하여 당신의 서러움을 풀고 그와 영원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십니다. 또한 그를 통하여 가정적인 서러움, 사회적인 서러움, 국가적인 서러움, 나아가 세계적인 서러움까지 해원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 시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하늘의 사무친 어떠한 서러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을 위한 서러움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위한 서러움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여러분의 가정․사회․국가․세계, 나아가 하나님을 위한 서러움을 품고, 그러한 모든 서러움을 풀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옛날 노아 할아버지를 회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내가 이 땅을 홍수로써 심판하리라고 예고하셨을 때, 그 예고의 한 말씀을 120년 동안 어느 한 순간도 망각치 않고 믿어 나왔습니다. 한마디의 명령에 120년 동안이나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사람은 비단 노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게 될 때에 축복하셨던 그 축복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광야에 나가서도 어느 한 날 잊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약속한 그 축복의 말씀을 믿고 매일같이 사탄과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망각치 않고 생활했기 때문에 하란에서 21년의 고역생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 역시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에게 약속하면서 내려 주신 단 한마디의 명령을 받들고, 그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30여 평생을 사탄과 싸워 나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부름받았던 모든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단 한마디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생을 믿음으로 지켜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역사적인 서러움이 여러분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먼저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또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과 인간을 대해 서러워했던 심정과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서러워했던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박차고 나아가 역사적인 모든 서러움을 풀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기를 하나님은 이 시간도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오늘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 도> 죽어서라도 당신의 유업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의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머물러 있는 저희 자체를 아버지 앞에 내놓고, 과연 싸울 수 있는 하늘의 정병,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어 있는가 저희들 스스로 반문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우리들이 싸워야 할 원수는 땅 위의 어느 한 사람이 아니고, 600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나님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하나님께 참소했던,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어마어마한 원수를 아버지 앞에 굴복시켜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지금까지 너무나 안일한 생활을 원했었고, 너무나 은사에 잠겨 아버님의 사랑만 받고자 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원수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모진 풍파와 싸움과 십자가의 역경에서도 그 정신과 마음이 변해서는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이제까지 저희들 망각하고 있었사오나, 이제부터는 변치 않는 마음을 붙들고 억만 사탄들 대해 홀로 싸워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뜻을 받들고 나가는 가운데 싸움에 지친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아버지시여!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저하는 자가 있사옵니까? 아버님의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목적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으며, 싸움의 목표를 향해 바로 달려갈 수 있고 돌진할 수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최후의 접전을 거쳐 승리로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니, 아버님의 힘과 마음과 각오와 결심을 갖고 이 모든 싸움터를 향해 달음질칠 수 있으며, 한이 맺혀 승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여진 아들딸들은 소수의 무리이오나 이들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만족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주신 바의 은사 앞에 감사할 줄 알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오늘에 주신 바의 은사가 나 한 자체를 위한 은사가 아니고 온 인류를 위하여 땅 위에 혹은 천상에 있는 모든 천천만 성도들을 대표하여 수천만 사탄들을 굴복시키는 책임과 사명을 맡기기 위하여 대표적으로 주신 은사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이 머무는 데가 어디인가를 아버지 앞에 내놓게 해 주시고, 아버지의 뜻을 하나의 목적체로 나타내고, 사탄과 대결하여 승리의 표준을 나타내야 할 사명을 가진 아들딸이, 아버님이여 연약한 자리에 있사옵니까? 힘을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며 하늘의 서러움을 자아내는 자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여!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찾고자 애쓰는 자 있사옵니까? 선과 공의의 역사로 나타나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은사와 아버지의 섭리를 홀로 책임지고 싸우고도 지침이 없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거룩한 날이었사오니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또 숨은 제단을 쌓고 아버지의 일이 성사되는 시기를 가르쳐 주며 남모르게 애달픈 눈물을 흘리는 아들딸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일률적인 은사를 나타내시옵소서.
끝날에 성신의 은혜를 물 붓듯 부어 주마고 약속하셨사오니 어서 나타내시옵소서. 생명의 봉화를 들어 아버지의 대신자로서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하나의 복귀의 동산을 이루는 데 협조할 수 있게끔, 아버지,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부름받은 아들딸들이 먼저 아버지의 뜻 앞에 감사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책임을 다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리겠다는 결의를 하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존전에 모든 것을 간구할 때, 아버지의 은사로 인해 다시 탕감받고 아버지가 뜻하시는 전체의 뜻 앞에 하나의 표준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은사의 역사가 이 시간 온 청중에게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나아가야 할 싸움의 노정에 장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홀로 이것을 책임지고 아버지의 뜻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무한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이것을 극복해 나가시던 승리의 모습을 본받아, 저희들도 최후의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승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의 표준을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모였사오니, 마음과 마음이 화동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은사 앞에 저희들 하나되어 움직여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사들의 옹위를 받아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시간을 온전히 아버님께 맡기었사오니 성삼위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고, 승리적인 영광을 저희들 앞에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타락한 이후 오늘까지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없었던들 죄에 속해 있는 인간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하여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고, 또 사망의 혈통을 받은 모습으로서 역시 아버지를 대하여 하늘의 은사니 사랑의 은사니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오늘 우리가 생명권에 머물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시고 복귀역사를 거듭해 나오신 은사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섭리적 생애라 하면 여기에는 전체성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기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4000년 역사를 경과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섭리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상의 인간들과 자유롭게 대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천사들을 심부름시켜 섭리해 나오던 구약시대를 지나 땅 위에 직접적으로 역사할 수 있는 실체를 가진 그리스도를 세워 놓으심으로써,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출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진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후 지금까지 2000년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은사권 내에 들어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실 수 있고 성신의 보호를 입어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시간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오시기 전 4000년 동안 인간을 직접 대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천사를 심부름시켜 인간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영계와 육계를 갈라놓으시고 섭리하시던 아버지께서 인간 앞에 직접적이고 평면적인 섭리를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지 2000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 여러분 자체들이 그 은사 앞에 택함을 받으려면, 예수 오기 전 4000년 동안 영적인 면에서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자신의 생활과 생애와 영생의 목표를 걸어 놓고, 여러분 하나를 그의 생활에 동반시켰고, 그의 생애에 동반시켰고, 그의 영생에 동반시켜 이끌어 나가려고 하시는 섭리의 뜻을 대하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에 서 있음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뜻을 30여 평생의 생활목적으로 또 전체적인 생애의 목적으로 세워서 이것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2000년 역사를 거쳐 여러분의 선조들을 이끌어 나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여러분의 후손을 이끌고 나가야 할 섭리적인 책임이 예수님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예수님이 섭리의 뜻을 대할 때에, 예수 자신만이 기뻐하는 생활, 예수 자신만이 기뻐할 수 있는 생애, 예수 자신만이 영생을 걸어 놓고 안일의 한 날을 맞으실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늘의 인연을 찾아 드리지 못하고 하늘이 요구하는 소망의 한 날을 찾지 못한 이때에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아무리 안일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아무리 평화를 찾고자 하고, 아무리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세상을 꿈꾸더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보장받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서러움의 섭리로 남아 있고, 이 땅의 타락 인간을 위하여 구원섭리를 성취하러 오셨던 만물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서러움의 심정을 품고 섭리의 뜻을 대하고 있는 연고로, 지상의 어떠한 사람도 그 마음의 안일을 찾을 수 없고, 나는 승리의 영광을 갖춘 자라고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운명을 짊어지고 사람을 끌고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이 남아 있는 한, 또 여러분을 끌고 나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애달픈 심정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천천만 성도들이 섭리를 대하는 서러움이 남아 있는 한, 오늘날 인류가 소망하는 선의 동산이나 인류가 흠모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취할래야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대하는 하늘이 인간을 붙들고 나가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닌데, 거기에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서러운 심정의 아버지 앞에 인간을 조건으로 하여 사탄이 가로막고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생애노정 가운데 혹은 여러분이 바라는 이상 가운데 천리원칙, 또는 하나님의 창조이념에 부합되지 않은 요소가 있을 때에는, 어떠한 하나의 조건도 빼놓지 않고 사탄으로부터 무자비한 참소를 받으면서 여러분 대신 서러워하고 여러분 대신 맞으면서 싸워 나오시는 아버지와 주님과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역사에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이 남아 있고 지금까지 섭리를 대해 온 천천만 성도들의 서러움이 남아 있는데,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서러움이 무엇이뇨? 우리를 방위하면서 다시 사탄과 대결해야만 하는 서러움입니다. 이런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을 알아야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를 두고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태어나기 전까지는 인간과 하나님과는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 노력을 다하여 사탄 세상의 모든 조건을 밟고, 즉 공중권세를 잡은 어두운 사탄의 세력을 뚫고 하나님에까지 찾아 올라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야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사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수고만 가지고는 도저히 당신을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입체적인 입장에서 공중권세를 뚫고 올라가야만 할 입장에 있었던 인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며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던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평면적인 입장에서 상대적인 가치를 갖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한 중심을 대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4000년 섭리역사에 있어서 사탄 대한 일대 승리의 조건이요 자랑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불신함으로써 예수님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을 다 성취하지 못한 연고로 아직까지 우리는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시선을 평면으로 보고 움직일 수 있게 창조되었거늘 어찌하여 마음은 하늘을 향해야 될 입장에 처하였던고? 여러분들이 평면권 내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성취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와 성신이 기뻐할 수 있고, 땅 위에 있는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 때가 이루어져야만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나 인간의 불신으로 인해 돌아가셨으므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맞아들여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그 섭리적인 생애의 첫출발로서 하늘이 섭리의 뜻을 따라 생활의 일보를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 생활의 중심은 무엇이었던가? 먼저는 사람들을 끌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동시에 인간을 참소하는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양면적인 입장에서 예수는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계에서는 사탄으로부터 참소받고 보이는 육계에서는 모든 불신의 도배들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서 예수님 홀로 4000년 동안 섭리하신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서러워하고, 천륜의 슬픔을 대신하여 슬퍼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그분의 시선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였던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따라 택함받은 유대교를 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 완수를 위해 협조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할 유대교단은 예수 앞에 일체 나타나지 않고 전부가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심정을 헤아려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영적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사탄의 세력을 막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육적으로 날아오는 모든 불신의 화살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싸움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더 크고 더 먼 하나님의 뜻과 그 소망을 바라보고 거기에 자신의 몸 마음을 맞추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생애의 출발을 여러분이 같은 입장에서 동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출발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고 어떻게 해야 사탄을 굴복시키며, 어떻게 해야 타락성을 갖고 있는 만민을 다시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예수님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권세를 잡고 있던 사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들이 누려왔고, 하나님이 주관해야 할 인간들을 자기들이 주관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사탄의 압박 밑에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먼저 반대하는 사람보다도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반대케 하는 영적인 사탄과 대결해야 했습니다. 이런 싸움에서부터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본질과 대결하기 위하여 나타난 예수님은 그의 생활권 내에 있어서 먼저 무엇을 표시하고 나타났던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그의 생활권 내에서 실천적인 행동을 제시한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말씀도 그렇거니와 그의 마음도 그렇고 그의 생활도 그렇고 그의 생애도 그렇고 그의 죽음까지도 사탄이 하지 못하는 조건을 찾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노정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리법도가 엄연히 있는 연고로, 다시 말하면 법도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천리법도에 의해 사탄을 분립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과 혈기입니다. 이런 성질로 세상 사람을 대하는 사탄이었으나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못나서 온유겸손한 입장에 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최고로 높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이것을 다 버리고 온유겸손한 입장에 서신 것입니다. 사탄이 이런 예수 그리스도와 대결하여 싸우려 했으나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끝까지 온유겸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본질이 교만과 혈기에 반대되는 온유겸손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 엄연히 천리법도가 있는 것을 아는 사탄이기 때문에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온유와 겸손을 들고나서게 되면 사탄세계도 자연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아시는 예수님은 사탄이 하지 못한, 사탄이 할 수 없는 온유겸손의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유겸손한 입장에 서야 중심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을 보여 주셨는가 하면, 순종(順從)과 복종(服從) 입니다. 순종은 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명령에 따르는 것이고, 복종은 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순종과 복종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 역시 사탄의 본질, 사탄의 모든 생활적인 요소를 가로막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중심삼고 남이야 어떻게 되는 상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뒤를 좇으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이 자기를 믿고 자기에게 순종하여 하늘을 따르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 뜻 앞에 불의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은 순종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기실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만민과 만물․사탄까지도 주관하고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었으나 그 반대의 입장에 서셨던 것입니다.
사탄이 당신 앞에 순종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도록 만들기 위해, 즉 이런 사탄의 모든 세력을 굴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무한한 희생과 봉사의 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는 사람을 대하든지 혹은 피조물을 대하든지 무한히 이용하고 착취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하지 못하는 생활을 예수님이 대표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즉 온유겸손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며,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사탄도 그러한 면에서는 굴복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예수님이 가르치신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에 비추어 보고 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아직까지 사탄의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자기를 중심삼은 혈기와 교만으로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루빨리 그런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 놓은 기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준인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의 자세로 혈기에 의해 하늘을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싸워 나가겠다는 내적 각오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뜻에 대립하여 뜻을 반역하는 입장에 선 것이 사탄이요, 이런 것이 사탄의 생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뜻에 반발하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이 환경에 꽉차 있고, 그 환경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세력이 자기를 중심삼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한과 슬픔이 사탄세계에 맺혀져 있으나 희생과 봉사를 각오하고서 이 길을 해결하려고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끝날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남아 있으니,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하늘이 가는 길은 사탄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대하여 순종복종하고, 뜻을 온유겸손하게 실천하고, 섭리의 뜻 앞에서 전인류를 대신하여 희생봉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요, 온유겸손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요, 순종과 복종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며, 희생봉사하는데 있어서 왕 중의 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의 수많은 사람들은 온유할 줄 모르고, 순종할 줄 모르며, 희생봉사하는 제물의 길을 걸을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4000년 역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고,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하지 못하던 것, 즉 하늘 앞에 최고의 온유의 기준, 최고의 순종의 기준, 최고의 제물의 기준을 세워 놓았던 연고로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피나는 노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유겸손하고 순종굴복하고 희생봉사하는 생활을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땅을 대하여 오랜 역사를 거쳐오시며 수고하셨던 그 마음과 동일한 심정을 지니고 그러한 생활을 해 나왔기 때문에 사탄이 근본적으로 굴복해야 했고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서도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하는 길을 가로막고 도리어 자기에게로 이끌어 가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고, 스스로 대항하려고 하며, 스스로 인간들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런 사탄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께 나아가면 감히 머리를 들래야 들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조건이 예수님의 생활권 내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에게서 사탄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런 역사적인 출발을 이룩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예수님이 어떻게 세우셨는가?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면 나도 영생하고 하나님이 불변하시면 나도 불변하고 하나님이 무한 자비하시면 나도 무한 자비하겠다는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하나될 수 있었기에 사탄 대한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오늘까지 이 사탄세계에는 하나님과 예수와의 내적 심정이 연결되는 그 말씀, 또 하나님과 사탄과의 사이에 어떠한 곡절 어떤 사무친 내용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으로서 ‘온유겸손하라.’, ‘순종굴복하라.’, ‘희생봉사하라.’고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셨으나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온유겸손하면서 감사할 수 있고, 순종굴복하면서 감사할 수 있고, 희생봉사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는 연고로 자기도 모르게 순종의 마음이 변하여 혈기와 교만, 대립과 반박을 하게 되고, 봉사와 희생이 변하여 이용과 착취를 일삼게 됩니다.
예수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었고, 하나님과 사탄과의 끊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곡절과, 사탄을 어떻게 하면 갈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 연고로 예수는 그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인간들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짖어야 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사탄의 음모까지도 알아서 역사적인 사탄의 범죄를 폭로시키고, 현실적으로 사탄의 무리들을 굴복시키며,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밝혀서 이를 청산지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습니다. 또 순종과 굴복․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우리로서는 그러한 생활을 완전히 하여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임하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때가 언제 올 것인고?’, ‘예수와 성신이 어느 때에 이 땅 만민에게 나타나실 것인가?’ 하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슬픔의 상황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사탄 사이의 곡절을 모르는 불신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어도 말씀하시지 못했던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순종의 제물이 되고, 역사의 제물이 되고, 희생과 봉사의 제물이 되어, 사탄 대해 ‘너는 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따르지 않느냐?’고 호통치면서 영과 육을 합한 실체로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천적인 비밀을 찾아내지 않으면 예수가 영적으로 승리한 사탄을 실체적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너희들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못하거든 하물며 하늘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고 하시며 다 말씀하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풀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인 심판의 한 날이 우리들의 목전에 다다르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이 슬픔을 가진다고 할진대는 어떠한 슬픔을 가져야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슬퍼하였던 이상의 슬픔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호소하신 순간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일신이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하늘땅이 좌우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탄 세력을 청산할 것을 바라시는 심정으로 일신에 충격을 받으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울부짖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이 통감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심정까지 체휼하여 사탄을 그 마음 앞에 나오게 하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시더라도 그분은 또 슬픔의 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제 죽음을 각오하고 뜻이라 할진대는 온유겸손의 선봉자로 서야 하겠고, 뜻이라 할진대는 순종굴복하여 이 땅의 어떠한 인간이 반대할지라도 예수님이 홀로 가신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순종과 복종의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각오를 갖고 온 세계가 반대할지라도 아버지 뜻이라 할진대는 봉사와 희생의 제물이 되어 뜻 앞에 바쳐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온유겸손, 희생봉사, 순종굴복의 정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위신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신이 있는 이상 여러분이 하나님과 예수의 위신을 세워 드려야 할 입장에 있으니 삼천만을 대신하여 온유겸손하고, 사탄의 혈기와 교만과 대결할 수 있어야 하며 삼천만을 대신하여 순종하고 복종하여 사탄의 대립 항거와 대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사탄 대하여 희생과 봉사의 심정을 가지고 나서야 하겠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사탄 대한 울분의 심정을 갖고 사탄 대해 대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성도들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오시는 주님을 땅에서 맞을 수 없고 또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그분과 하등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생활적인 이념이 무엇이겠느냐? 내가 먼저 순종굴복하고, 내가 먼저 온유겸손하고, 내가 먼저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정신일 것입니다. 이런 길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심정과 예수님의 심정이 해원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교회와 민족을 대신하여 희생봉사하고 하늘 뜻을 위해 순종굴복할 수 있는 성도가 삼천만 민족 가운데 많이 나타나기를 하늘은 고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싸워서 승리하시고 사탄을 분별시키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끝날이 오늘, 이 땅에는 예수님이 내적으로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시던 생활적인 이념을 계승한 온유겸손한 사람, 손종굴복하는 사람, 희생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전체적인 사명은 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를 위해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각각 그 사명을 분담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어느 한 분야를 혼자서 책임지지 못하면 여럿이 단결해서라도 그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섭리적인 운명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제물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세우신 것과 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순종굴복의 친구가 되고, 온유겸손의 친구가 되고, 희생봉사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오기를 하늘은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남이 무어라고 하든, 어떤 사탄의 비난이나 방해, 고난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까지 나가시던 서러운 심정이 따르겠지만, 그런 자리에서도 예수님이 온유겸손하고 기꺼이 희생의 제물이 되신 것같이 여러분은 온유겸손하고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입장을 자랑하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입장을 내세우신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천리법도를 지켜 자신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온유겸손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고 희생하고 봉사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어 가는 생명을 구하고 이 타락세계를 구하려면 빨리빨리 순종굴복하고 빨리빨리 온유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어서어서 희생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면 사탄이 주관하고 원수들이 다스리던 이 땅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온유겸손하고, 희생봉사하며, 남에게 무엇을 주더라도 무한히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에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지니고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영광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때는 동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애달프고 원통한 생활을 하셨으면서도 그 생애를 걸어 놓고 바라시던 소망이 종결되는 한 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심정을 내어 줄 수 있고, 자기의 모든 복을 위탁할 수 있으며, 자기의 모든 뜻을 맡길 수 있는 한 날을 바라셔서 오늘날까지 2000년 역사를 수고해 나오고 계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갖고 싶은 가정을 가져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고 싶었던 그 말씀이 무엇이었던고?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비밀)요, 사탄의 오묘(비밀)요, 인간의 오묘(비밀)를 밝히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혼자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원칙, 자율적인 운행법도를 통해 주관하시듯이 말씀을 하는 데에도 자연스런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연스런 환경이 이루어진 한 날을 예수님은 갖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들에게 자유스런 환경에서 마음놓고 말씀하실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이 동하고, 예수님이 동하고, 내가 동하고, 사탄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여러분을 따르게 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도 기뻐하고, 예수님도 기뻐하고, 우리도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주인공으로 오셨고, 인격의 주인공으로 오셨고, 사랑의 주인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축복을 받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이 말씀을 성취해 드리지 못한 원한을 남겼으므로, 예수님은 이것을 해소하려 오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인격적인 기준을 회복하고 만물을 주관하고 있는 사탄을 물리쳐서 하나님의 주관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말씀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온 만민, 믿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여 사탄의 속박에서 신음하는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을 품고 오신 분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의 이념을 찾고 있는 우리가 그 신부의 이념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하신 말씀, 곧 길로 될 수 있고 진리도 될 수 있고 생명도 될 수 있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또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사탄이 갖지 못한 말씀, 사탄이 갖지 못한 인격, 사탄이 갖지 못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땅 위의 인간들에게 나타내지 못한 애달프고 간절한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몰리고 있는 통일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말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의 길을 따르고 있는 여러분은 불쌍하고, 서글픈 사람의 뒤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은 서글플 것이다. 그러나 그 불쌍함과 서글픔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러한 입장이 될 때 여기에 하늘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통해, ‘제가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고, 그리스도의 생애목적을 알았사오니, 이 목적을 대신하여 제가 사탄 대하여 싸우겠나이다. 그리스도가 영․육 합하여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우셨는데 제가 이제 그 싸움을 책임지고, 이 악당들을 무찌르고 사탄을 굴복시키겠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제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우리는 환난과 슬픔의 고개를 넘고, 죽음의 제물이 되어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인격을 대신하여 새로운 생활이념을 찾아 세워 드릴 수 있는 천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기 시작해야만 참된 생활을 할 수 있고, 생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새로운 영생의 이상생활을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도 아니요, 예수가 하시는 것도 아니며, 여러분 자신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겉의 말씀만 성경에 나타내었지만 이제 내적인 말씀을 갖고 다시 오셔서 사탄의 비밀을 폭로하시고, 사탄을 영원히 무저갱에 가두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란 하나님도 수긍하고 독실한 성도도 수긍하며 사탄까지도 수긍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하며, 그 말씀 앞에서는 정상적이고 본연의 마음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움직일 수 있고 끌릴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지니신 예수님이 제물이 되면서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황공한 심정을 느꼈던 것같이 예수님 앞에 황공함을 느끼는 신부가 되어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인격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심판의 고개를 넘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에게 축복하셨던 만물주관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생활이 출발하는 것, 이것이 왈 역사적이 소망이요, 천년왕국의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원리를 배워서 알지만, 천사장의 사랑 이상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승리의 자격자가 되어 ‘할렐루야, 아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의 사망권에서 해방되어 자유와 평등과 행복과 사랑과 선과 미를 중심삼고 살되, 나를 중심삼지 않고, 하나님과 주님과 천륜을 중심삼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요, 주님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요, 주님의 미가 나의 미가 되는 일체로 만상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여러분이 예수님을 흠모하듯이 만물도 여러분을 흠모할 것입니다. 이런 자격을 가진 신부가 되는 것이 끝날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신부의 자격을 완성하고 땅에서 영․육 합하여 예수를 대신하고, 그의 원한을 성취시켜 사탄 대해 자랑할 수 있는 한 모습이 되어 전체를 주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한 날이 승리의 한 날로서 영원히 하늘땅 앞에 세워질 수 있고, 인간 앞에 세워질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 도> 험한 땅 위에 부족한 저희들을 찾아 세워 염려와 걱정으로서 지켜 주신 아버지! 저희 스스로 아버지 앞에 올바로 서서 아버지의 눈물을 거두어 드리고,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을 마음으로 몸으로 체휼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그러한 마음이 있사올진대 이 시간 그들을 찾아 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이루시려는 성업의 뜻을 그들과 함께 의논하시옵고, 끝날의 어둠과 사망의 물결이 이 시대를 휩쓸고 있을
지라도 그것을 분별하고 넘어설 수 있는 당신의 지혜와 능력을 갖추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죄악에 파묻혀 살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헤아리기 쉽사옵고, 뜻 아닌 뜻을 세워 그것이 뜻인 양 움직여 나가기 쉬운 저희들인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그러한 저희들을 온전히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완전한 자신의 중심을 세워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직 아버님의 원하시는 뜻만을 위해 모든 것을 물리치고 사탄과 싸워 나갈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직까지 무지한 인간들을 인도할 수 있는 생명의 표준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사옵고,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한 때가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렇게 부족한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저희의 올바른 몸 마음이 원리법도에 따라서 최후의 승리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도 사탄은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주시려는 은사를 가로막기 위해 갖은 모략과 중상으로 혼돈시키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그러한 모든 것을 헤치고 사탄과 싸워 나갈 수 있는 저희가 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나아가 승리의 울타리권 내에서 아버지와 긴밀한 인연을 맺어 나갈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오늘 끝날을 맞이해야 할 저희들에게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한 자체를 중심삼은 모든 주위 환경이 바로 자신의 시험의 대상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것들이 사탄적인 요소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한 자체가 그것들을 밟고 올라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님,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외롭게 지방에 널리어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 있는 식구들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어떠한 형편에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아버님께서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끝날에 맡겨진 천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남을 수 있는 모습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마음 몸에 지닐 수 있게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이 이 땅의 만민 위에, 이 나라 삼천만 민족 위에 나타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말씀의 제목은 ‘참된 길을 알고 곁길을 분별하자’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수많은 인간들은 참이 무엇인지 거짓이 무엇인지를 분간하지 못한 채 혼돈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데, 이 시간에 이 성경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참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자 합니다.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탄식이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 속의 인간들에게 사무쳐 있었고, 또 현세의 인류에게도 하늘의 탄식이 사무쳐 있는 동시에, 나아가 우리의 후손들에 대해서도 하늘이 탄식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이러한 입장에 인간이 처해 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음받은 만물에도 하늘의 탄식이 사무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천륜을 배반하고 나선 길이, 오늘날 종말시대의 모든 만상의 슬픔이 되었고 탄식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와 같은 탄식을 제거하기 위해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며, 어떠한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이 알아야 할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어떠한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만물의 탄식의 고개를 넘어야 하겠고, 남아진 인류의 탄식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으며, 남아진 하늘의 탄식의 고개를 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여러분은 지금까지 6000년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류를 대한 하늘의 탄식을 풀어 드려야 되겠고, 또 그 인류의 탄식을 해원해야 되겠으며, 창세 이후 만물이 지니고 나온 탄식을 해원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탕감복귀원리를 배웠기 때문에 탕감조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하나의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은 그 일신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고, 창세 이후 지금까지 내적 심정에 사무쳐 있는 하나님의 탄식, 예수와 성신의 탄식,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의 탄식, 또는 지옥에 가 있는 뭇영인들의 탄식까지도 해원하는 탕감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탕감조건은 지금 현재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전인류의 탄식까지 해원하는 탕감조건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창세 이후 전무후무한 탄식의 고개를 밟고 올라가, 끝날의 최후의 심판대를 향하여 걸어가지 않으면 아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우주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 생명의 길로 향하느냐, 아니면 그 고개를 넘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향하느냐 하는 이런 기로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은 그 생사의 기로에 서서 어떻게 내가 그 고개를 넘어설 것인가, 어떻게 싸워 사탄을 물리칠 것인가, 어떻게 내가 그 고개를 밟고 올라서서 하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생활은 심각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자기를 넘어 천륜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그의 느낌은 죄악된 이 세상의 현실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또 그의 움직임은 자신만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만물의 탄식을 해원하는 움직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와 같이 심각한 입장에서 하늘과 땅과 인간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서기 위한 생활을 한다면, 바로 그 생활은 말할 수 없는 비장한 생활일 것이요, 말할 수 없는 생명력을 발휘하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남이야 어떻든지간에 자신의 마음을 지키면서 모진 어려움과 역경과 탄식의 고개를 헤치며 사탄과 싸워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도 각자에게 부여된 탄식의 고개를 밟고 올라서야 할 책임이 여러분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여러분이 서 있는 발판,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정신, 여러분이 바라보는 소망과 지향하는 표준이 각각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항상 망각치 않고 반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것을 망각해 버린다면, 잊어버리는 그날이 바로 하나님의 서러움의 날이요, 잊어버리는 그 시간이 바로 인간과 만물이 여러분 일신을 통해 가졌던 무한한 소망과 기대가 일시에 사라지고 다시 탄식의 고개로 넘어가는 슬픔의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 마음에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먼저 역사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서야 하겠고, 그 다음에는 여러분의 전후좌우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의 세력으로 가로막고 있는 사탄들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역사적인 탄식의 고개를 밟고 넘어서려 할 때에, 거기에서 엄청난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파생되는 공포의 세력에 부딪치게 된다면,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향하여 치닫지 못하고 곁길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그 길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일신의 마음 몸이 제물된다 할지라도, 온 우주가 여러분 일신을 탄식의 조건으로 삼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생명을 바쳐 그 길을 넘어가기 위해 사탄과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 사탄과 싸워 나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했던 아담 해와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며, 또 하나님의 뜻을 어겨 천륜을 배반했던 가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 때는 여러분 일신을 걸어 놓고 온 우주적인 탄식을 탕감복귀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오늘의 여러분에게는 한 사람의 친구도 없습니다. 또 지금 때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지 못하시던 입장과 같은 그런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 스스로 새로운 복귀과정에 들어서서 지금까지의 모든 탄식의 역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일을 직접 간섭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 주위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은 지금까지의 모든 탄식의 조건을 개척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요, 보여지고 느껴지는 어떤 사실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여러분에게 탄식의 고개를 스스로 넘게 하기 위한, 즉 탄식의 고개를 탕감시키기 위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늘땅의 온 만상에 사무쳐 있는 탄식을 제거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하늘땅의 탄식을 풀려고 하면 먼저 모든 만상이 여러분을 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거기에 맞아 쓰러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나아가는 노정에는 반드시 물질적인 고통이 따를 것이며, 또 그 물질이 여러분을 치고, 만민이 여러분을 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서 탕감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해 나타나셨을 때에도, 만민과 만물이 예수님을 치고 때렸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돌이켜 볼 때 여러분이 나아가는 노정에서도 인간과 만물이 여러분을 칠 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나아가는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게 될 때에 그것에 낙망하여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이 된다 할진대는 끝날의 심판의 관문을 통과할래야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희생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경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인간은 비로소 선한 존재가 되어 아버지의 영화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고, 아버지의 사랑권 내로 무한히 흡수되어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는 인간의 뼈 속에 지금까지 사무쳐 내려온 탄식의 요소를 뽑아낼래야 뽑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탄식의 요소는 어떠한 역사 과정을 거쳐왔는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6000년의 역사 과정을 거쳐 그 탄식의 요소를 오늘날까지 사탄이 이끌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 탄식의 요소를 여러분의 후손에게까지 물려주게 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를 하늘 앞에 굴복시키고 복종시켜, 누구보다도 먼저 하늘을 대신하여 사탄의 화살을 맞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과의 싸움에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 대하여서도 역시 그러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서도 그러하고, 물질을 대해서도 역시 먼저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끝날의 최후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해 보게 될 때에, 구약시대는 상징 제물시대요, 그 다음에는 실체 제물시대요, 그 다음에는 심정 제물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을 종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인간․만물이 있는데, 이것을 한꺼번에 탕감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6000년간 섭리하여 왔던 모든 내용이 오늘 끝날의 전세계 위에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6000년간 지니셨던 탄식의 내용들이 오늘날 이 땅 위의 전체 인류 앞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편안할래야 편안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탄식권 내에 휩쓸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은 모든 일에 실수하지 않아야 되겠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사탄의 참소에 걸리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 한 자체를 걸어 놓고 6000년 탄식의 역사가 휩쓸어 왔기 때문에 그 6000년의 대홍수의 물결이 여러분의 나아가는 노정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 홍수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이 땅 위의 일에 집착하여 허덕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에 얽매여 하나님의 섭리에 눈이 먼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러한 역사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선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지금까지 가인적인 사명분야를 담당했던 여러분은 아벨로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을 섬길 줄 알아야 되겠고, 또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으며, 자신에게 남아 있는 타락적인 모든 탄식의 요소를 다 제거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주위의 열 사람을 대할 때, 그 열 사람이 자신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성별시키고, 자신의 탄식의 조건을 제거시키는 사람들로 느끼고 그렇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여러분 한 사람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혹은 어떠한 뜻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하면 여러분 하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가인과 아벨의 다같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을 때,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의 입장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가인에게 하늘의 입장을 대신했던 아벨을 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인의 제물을 취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공평한 입장에서 그들을 대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우주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서 하나님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서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온 우주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아벨적인 제단을 쌓고 아벨적인 제물로서 양을 잡아 바칠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의 실체를 바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옛날 아벨이 하늘의 사명을 부여받아 감당하지 못하고 피를 흘려 하나님의 섭리를 좌절시켰던 것과 같이 오늘날 여러분도 그래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나타나는 모든 사실은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타난다는 마음을 지니고,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불의의 환경으로 나를 몰아내려고 해도, 하늘을 대해 어긋난 길은 결코 가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앙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주위환경의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며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린 후 아벨의 제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을 안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여 때려죽였지만 여기에는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리기 위해 준비할 때부터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니까 순간적으로 아벨에 대한 미움이 생겨 그를 때린 것이 아니고, 그 일에 부딪치기 전부터 아벨이 미워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인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타락성의 혈통을 이어받은 오늘날 여러분들이 우주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 불신과 싸움의 조건을 성립시키는 제단을 쌓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소개하고 아버지께 기쁨과 영광을 안겨 드릴 수 있는 승리적인 아벨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은 그저 여러분 개인에 국한되는 생활이 아닙니다. 전체를 대신한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아버지 앞에 엎드린 그 시간이면 그 시간, 뜻을 중심삼고 사는 생활이면 그 생활이 바로 그 시간과 생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가인의 입장이냐 아니면 아벨의 입장이냐 하는 두 갈래 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여러분은 자칫하면 아벨이 되고, 자칫하면 가인이 될 수 있는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의 고빗길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복귀원리를 보더라도 인간으로 하여금 보다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모시고 섬기게 하려 했던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6000년간 수고하신 섭리역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탕감복귀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아벨로 인류 앞에 한 분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당시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민족이, 옛날 가인이 아벨이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아니하고 아벨의 입장에 있는 예수님 앞에 절대복종하고 그를 모셨더라면, 그들은 우주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이 바라신 생명의 제단, 즉 아벨적인 영광의 제단을 이 땅 위에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십자가에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만 그러한 모든 뜻이 일시에 좌절되고 말았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무한한 영생의 세계를 흠모한다면, 그저 여러분 자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부딪쳐 오는 모든 탄식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고, 무한한 슬픔과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밟고 올라서서 사탄 대하여 늠름하게 싸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늘을 대해 순종하되 어느 한 시간만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참아 나가되 어느 한 시간만 참아서도 안 되겠고, 자신의 생명이 사라지는 그 시간까지 하늘 대해 순종하며 어려움을 참아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끝날 최후의 심판의 고개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때는 어떤 때인가?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나타나는 때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이 땅 위에는 가라지와 곡식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10장의 말씀과 같이 문으로 들어가는 참목자가 있는 동시에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거짓 목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하면 우리 교회에서도 바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여러분은 직시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제 여러분은 교회를 중심삼아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아벨이요 한 사람은 가인이라는 것, 세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은 아벨도 될 수 있고 가인도 될 수 있는데, 가장 중심적인 아벨과 가인이 있다는 것,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분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네 하나님이시요,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모시며 가인적인 입장을 피하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여러분은 어느 때든지 한 번은 하늘의 심판에 걸리고 만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도 여기에는 반드시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통하여 말씀을 나타내며, 모든 사람이 아벨과 하나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벨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자가 있으니 그가 누구냐 하는 바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바른 신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보다 아벨적인 존재와 하나되기 위해 근본과 자신의 모든 것을 의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날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천사장으로부터 유혹의 말을 듣고 아담에게 가서 ‘천사장이 이러이러한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며 의논했던들 해와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해와가 하나님과 의논했던들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는 그 유혹의 말들 듣고 아담과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만 타락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천륜의 법도를 세워 놓았는데, 이것을 부정하는 천사장이 해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고 유혹했던 것과 같이 이러한 사탄의 간교한 움직임이 오늘날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실을 감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농부가 수확기를 맞이하여 곡식과 가라지, 피와 곡식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듯이 여러분도 하나님과 사탄의 행위를 분별하고 그 결과를 감별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세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라지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참곡식의 열매를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참곡식으로 자랄 수 있는 하늘의 은사를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늘이 은사를 주시는 그때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의 때가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의 때를 맞이하여 가라지와 같은 입장이 되지 않고, 참곡식의 열매로서 맺어지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6000년의 역사 속에서 아직까지 참과 거짓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인류역사를 대표하여 참곡식으로서 열매를 맺은 자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수많은 인간들이 한결같이 소망하였던 열매를 맺은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단지 그것을 거두기 위해 사신 분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인간이 어차피 맺어야 할 열매가 어떤 모양으로 맺어질 것인가를 염려하고 갈구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길을 향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명의 길에 접어들어서 새로운 제2의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항상 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밭에는 참곡식이 심어지기도 하고 가라지가 심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여러분이 머무는 그 환경에만 가라지가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 바탕에 타락의 요소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거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닦기 위해 희생의 길을 가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한 번 움직이면, 그 행동이 참 아니면 거짓, 둘 중의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참 아니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일어나는 하나 하나의 모든 사실이 참과 거짓으로 분별되는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는 가인적인 면과 아벨적인 면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의 마음에 가라지와 참곡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행동을 하고 나면 항상 그것이 가인적이었는가 아니면 아벨적이었는가를 반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 또는 종횡의 사방성을 갖추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간에 아벨 것은 아벨 것으로, 가인 것은 가인 것으로 찾아 세우며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등동물도 자기가 먹는 풀이 독초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신에게 부딪치는 모든 사실을 바르게 분별할 줄 몰라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인이고 누가 아벨인지를 똑똑히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옛날에 해와가 자신에게 부딪쳐 온 그 유혹의 손길을 올바로 분별했더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생명을 걸고 끝까지 사탄 대하여 싸워 나갔다면 해와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라는 불륜한 욕망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만 타락했던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앞에는 가라지와 참곡식이 있을 것입니다. 참목자와 거짓 목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그것을 바로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참목자는 자기가 참목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나 묵묵히 하나님의 뜻과, 모든 만상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나아갈 뿐이지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악당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돌이켜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의 어느 한 때 어느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때를 맞이할 인간에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극심한 혼란과 혼돈이 일어나 누가 참목자인지 거짓 목자인지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조용히 밀실에 들어가 스스로 기도하여 판단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참아들을 아버지가 자랑해 주시 않는 이상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의 자리에 섰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도, 자신은 모르지만 선생님이 그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영적인 면에서 혹은 실체적인 면에서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 여러분은 까딱 잘못하면 어두운 사망권 내에 빠질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체를 위하고자 하는 것보다도 자기 일신을 중심삼은, 즉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렇게 부족한 자신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며,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대로 저희를 주관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내적인 심정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심정을 지니지 못하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헛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으며, 사탄이 지배하는 사망권을 벗어날래야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나아가는 노정에 있어서 사탄의 시험이 많을 것입니다. 또 영계를 통하는 사람은 많은 시험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자신의 시험에 인간이 쓰러지면, ‘너희가 이래 가지고 되겠느냐?’ 하고 참소하면서 여러분의 갈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사탄의 그러한 참소를 피해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그 길을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목자는 어떠한 목자인가, 참목자를 따라가는 참양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말씀을 통해 뿌려지는 씨, 즉 참곡식을 열매 맺게 하는 씨는 어떠한 것인가, 참아벨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가 하는 이러한 제반 문제를 여러분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늘땅 앞에 또는 인간과 만물 앞에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아벨의 자격을 갖추어야 비로소 곁길을 피하고 참된 길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희미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확실한 진리에 의한 방향이 없이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누가 여러분에게 어떠한 새로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냥 그대로 믿지 말고 반드시 여러분보다 아벨적인 사람과 의논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여러분들끼리 숙덕거리고 혼돈시키게 되면, 천사세계의 영적 타락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은 아벨의 입장에서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을 가져야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참아벨로 나서려 한다면 오직 아버지만이 알고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선물,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귀한 선물을 지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그 선물이 참곡식일지라도 가라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참곡식의 선물을 준비하여 아버지 앞에 정성껏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아버지의 참다운 효자로서, 또는 이 땅의 모든 만민의 아벨로서 나설 수 있을 것이요, 새로운 생명을 다시 잉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끝날을 맞이한 여러분은 그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만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 만민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즐기며 참목자로서 기뻐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느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여러분 스스로의 숨은 정성의 선물을 아버지 앞에 바치는 양의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절도와 강도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기 것 아닌 것 가지고 자기 것으로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원리를 이용하여 자기네들 것인 양 막 써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것으로 받았으면 하늘 것으로 돌리고 자기 것으로 받았으면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바른 인간입니다. 하늘 것을 자기 것으로 이용하는 강도 절도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아벨적인 존재로 서기 위한 어떠한 조건을 가져야 합니다. 참목자의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참열매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참목자가 기뻐하고 즐길 수 있는 참열매․참곡식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봄 절기에 피는 꽃은 어떠한 꽃이라 할지라도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꽃들이 가을에 충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온도, 습도, 양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고 여러분들도 하늘의 뜻을 인계받을 수 있는 아벨적인 존재로 열매 맺어지지 위해서는, 오늘도 내일도 아니면, 10년 20년 30년 60년 후, 나아가 죽는 그 순간까지 하늘 대하여 있는 성심을 다 기울여 충성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죽음의 자리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변치 않는 가운데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든지, 혹은 무지하여 모르는 내용이 있을 때에, 여러분은 거기에 함부로 동요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불확실한 사실에 동요되어 행동하게 되면 자연히 사탄의 입장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반드시 최후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원수가 나타납니다. 신앙적인 원수가 나타나고 경제적인 원수가 나타날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 식구끼리 서로 원수로서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여러분이 까딱 잘못하는 그 순간을 노려 여러분을 가인의 길로 몰아낼 것입니다. 그러한 원수를 물리치고 가인의 입장에 서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일신의 안일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부모의 심정으로 몸은 종의 몸으로 만민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으며, 어느 누구보다 있는 성심을 다해 아버지를 모시고 그 아버지 앞에 숫것의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타락하여 잃어버린 소생․장성․완성의 그 3권 내를 넘어서기 위해 하늘 대한 충성의 도리를 다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아버지 앞에 충성을 바쳤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충성을 했든지간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서 3대 이상의 충성을 바쳐야 되겠고, 또 그럴 때에 비로소 타락한 소생․장성․완성의 그 3권 내를 일시에 탕감 복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국 사탄권 내에 머물게 되고, 아버지 앞에 참다운 아벨로서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에 대하여, 사탄이 알지 못하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충성과 믿음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일신의 충성이 영원한 충성으로서 남아지기 위해 여러분은 사탄의 결과인 곁길을 분별하고 하늘의 참된 길을 따라 최후의 순간까지 나아가 아버지 앞에 순종하고, 숫것의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저희는 지금까지 앞만 있는 줄 알았는데 뒤가 있사옵고, 오늘뿐인 줄 알았더니 내일도 있사옵고, 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래도 있다는 것을 이 시간 알았사옵니다.
또 그것이 영원한 뜻을 중심삼고 관계맺었다면, 오른편이 왼편 되고, 왼편이 오른편 되는, 즉 전후좌우가 각각 그 위치를 바꾸어도 아버지 앞에 설 수 있음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인간 자체에 있는 근본 죄악의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시대는 전후․좌우․상하가 각각 혼돈되어 바르게 주고받지 못하고 있음을 또한 느끼게 되옵니다.
사랑의 아버님이여! 이제는 아버지의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전후․좌우․상하가 완전히 하나되는 기쁨의 한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지금까지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은 없고 자신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만이 있었던 저희 자체라면 어느 한 날 아버지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저희들, 상이 하를 대신하고 하가 상을, 우가 좌를, 좌가 우를 대신하는 이러한 일체불가분의 관계를 이루어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서,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참다운 아버지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 이 시대는 보이지 않는 곁길이 저희들 앞에 가로놓여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저희들 그 길을 분별하여 하늘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면서 승리적인 한 날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나왔던 모든 것이 하나의 목표에서 끝나 하나의 목표에서 열매 맺어지는 그 한 날의 아버지의 기쁨이 어서 속히 이 땅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그 마음에 동하여 저희들도 기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이 시간도 오로지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최후의 싸움이 저희들 목전에 당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고하시고 나타내셨던 아버지의 뜻을 이 땅 위에 성취시켜 드려야 할 이 마당에서 다시 성령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당도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지금은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제물을 온 천지 앞에 내세워야 할 새로운 때로서 아버지의 무한한 수고의 손길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고 있사오니, 아버님, 맡겨 주시옵고, 세워 주시오며, 불러서 명령하실진대, 하늘의 힘과 능력을 갖춰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 땅 위에 성취해 드리고 남음이 있을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주님을 잃고 난 120명의 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하나가 되어 부르짖던 그 부르짖음의 음성이 온 하늘과 땅에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저희들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와 같은 역사를 저희의 마음과 몸에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진동하여 승리적인 하늘의 영광이 이 땅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오직 아버지 뜻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것과 같이 저희들도 아버지의 뜻 앞에 순결한 마음으로 순응하는 생축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었사오니, 기쁨의 뜻으로 나타나 주시옵고, 약속하신 때와 시기를 연기시키지 마시옵고, 어서 속히 일으키시어서 6000년 동안 맺힌 원한의 심정을 해원하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저희 각자 각자가 스스로의 심중에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갖고 새로운 맹세로써 아버지의 아들딸의 자격을 스스로 갖추어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한마음과 한뜻이 이루어진 곳에 나타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보혜사 성신을 보내마고 약속하시고 승천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뜻이 성취되는 줄 알고 기뻐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언제 ‘다시 오겠다.’는 확실한 말씀을 하시지 않은 채 승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었겠는가? 사랑하는 주님을 못박은 불신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일당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적개심이 끓어올랐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녹아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최후의 승리를 위해 부활하신 주를 따라 나서겠다는 각오를 지녔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각오, 즉 주님이 떠나신 이후 하늘을 대해 간절히 사모하던 그 마음,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 가로막혀 있을지라도 이 길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지닌 모습들로서 제자들은 이 사람 저 사람 대할 때마다 서로를 격려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심정에 사무쳐 있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타나 성신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문도를 배후에서 하늘이 역사해 주는 상상도 못했던 체험을 하고 나서 역사적인 모든 섭리의 뜻을 품을 수 있었고, 또 예수님의 30년 사생애노정과 3년 공생애노정에서 느끼셨던 내적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죄책감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땅에 오셨던 그 예수님은 자신들이 그렇게 대해서는 아니 될 하늘의 독생자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만민의 구주로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마음속으로 철석같은 각오와 결의를 하였고, 형제와 형제, 사도와 사도, 신도와 신도가 서로 격려해 주고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추구하는 하나의 뜻을 위하여 서로서로가 마음을 교류하고 서로서로 하나되어, 120명 문도가 사람은 각각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놓고 가는 방향과 그 움직이는 행동은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사도들 가운데서 벌어졌고, 그들은 마음이 불타 올랐는데, 그 다음 그들은 어디를 향하여 외치게 되었던가?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불신하는 수많은 인류를 대해,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갖고 새로운 맹세로서 자기들이 하나되어 있는 그 마음을 꺾을 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들이 먼저 하늘 앞에 굳게 맹세하고 각오한 모습들로 나타난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핍박이 심한 환경일지라도 확고한 중심을 갖고 나타날 때에 하늘은 그들 개개인을 예수의 대신 존재로 세우고 사명을 인계시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를 잃고 난 서러움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에 사무치며, 하나님의 뜻이 강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마음에는 하늘을 배반한 무리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게 용솟음쳐 올랐고, 그들을 일조일석에 쳐 분쇄시키고 하늘 뜻을 당장 이루어 드리겠다는 각오로 하늘을 대하여 나타나게 될 때에, 여기에는 인간 아닌 하나님의 힘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권능의 행사가 무지한 백성, 불신의 백성, 패역한 백성들에게 보여졌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120명의 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신을 보내 주마 하신 그 약속을 마음에 믿고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일이 없었던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엎드려 기도했던 120명의 문도에게는 무서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위신과 자기의 체면과 그리고 가정도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약속이 어느 한 때 어느 한 장소에 나타나 주실 것을 믿고 120명 문도가 하나되어 기도하게 될 때에, 4000년 동안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혔던 사망의 권을 헤치고 성신이 땅 위에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인간을 다시 해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개척되었는데, 이 한 사실은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던가? 이는 120명 문도가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성의, 한결같은 제물정신으로 아버지의 뜻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간절한 그 마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땅을 대하여 섭리하시지 못했던 성신의 역사가 비로소 새로운 역사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120명 문도는 하늘땅이 진동하고 불같은 혀가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를 체휼하게 될 때 하늘을 향한 간절한 마음에 사무쳤고, 어떠한 원수들을 대하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겠다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는데, 여기에 하늘의 힘이 다시 가해지니 이 힘은 누구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힘이 발판이 된 연고로 그들이 한 말이 하늘땅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된 후 우리는 또 형제와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끝날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제일의 발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땅에 천 사람 만 사람이 있으면 천 사람 만 사람의 뜻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뜻을 밟고 우리가 제시하는 모든 조건을 제거하고 아버님의 뜻, 아버님의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뜻과 마음이 다르고 각자의 입장과 환경이 다를지라도 아버님의 뜻과 하나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당시 사도들은 어느 정도까지 하나되었느냐? 유무상통(有無相通) 할 수 있는 정도까지 하나되었습니다. 그들은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내가 너요, 네가 나라는 일체의 심정으로 둘이 하나로, 열이 하나로 뭉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어떠한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에도 그것을 어떤 개인의 어려움으로만 내버려두지 않았고, 자기의 어려움으로 여겼습니다.
이와 같이 형제의 어려움을 자신의 뼈와 살, 골수에 사무치는 어려움으로 느끼게 되었을 때, 하늘도 동하였습니다. 즉 이와 같이 여러분도 서로 서로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아버지의 뜻 하나만을 위해 어떠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마음, 형제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는 물질이 원수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나만이 그 돈을 쓸 수 있고, 내 뜻을 위해 그 돈이 쓰여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여러분은 아직까지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된 자리에 가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대하시는 하늘의 애달픔과 하늘의 안타까움은 여러분이 헤아리는 정도의 안타까움과 애달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안타까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급한 사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체휼하고 체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도들을 중심 삼고 전체의 신도들이 따르던 초대교회의 움직임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륜을 가로막는 장벽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심판의 행사를 대신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인 여러분에게 세계적으로 허락한 하늘의 복을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늘의 뜻을 자신의 것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스스로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움직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체가 하나의 심정으로 뭉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모든 것을 믿고 하나될 수 있는 환경을 갈라놓으려는 것이 사탄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되어 있는 사도들 앞에 누가 나타났느냐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타났었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이 움직이고 신도들이 움직이는 것이 부러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을 중심삼고 부러워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늘의 놀라운 은혜는 누구에게나 영광스런 은혜로 보여지고 누구나 그것이 자기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말 한마디 하면 수천 명이 회개하고, 혹은 방언을 하고, 병자가 낫는 등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아나니아와 삽비리가 그와 같은 자리를 부러워하면서, 자기도 그와 같은 입장에 처해 보려는 인간적인 생각을 갖고 하나의 성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 하늘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것을 특히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팔아서 얼마는 감추어 두고 일부만 바치고 나서 다 바친 듯한 모양을 하면서 하늘의 뜻을 파괴시키려고 하는 간교한 사탄의 계교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진심을 그대로 나타내어 하늘의 뜻에 흡수될 수 있는 성도라면 바치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내 마음을 전부 다 바칠 것이오니 죽든지 살든지 기쁘신 뜻대로 주장하시고 사용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잊고 바치고 움직이는 사도들 앞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욕망을 중심삼고 자기의 문제를 염려하며 나선 것이, 예수 승천 직후 초대교회가 새로운 기반을 닦아야 할 마당에서 하늘의 길을 막는 제일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심정이 성신을 통해 폭로되자, 베드로는 ‘하늘이 용서할 수 없는 사탄이 네 마음에 들어 있다. 네게 사탄이 침범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성신의 말씀을 대신하여 그를 심판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이때에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마음바탕을 가져야 될 것인가? 나를 중심삼은 어떠한 조건을 세워 하늘의 뜻을 대하고자 하는 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이것은 무엇을 예고하는 것인가? 이것은 하나되는 무리 앞에 하나될 수 없는 요소를 갖춘 자는 끝날의 심판 때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예고하는 것임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는 승천하신 주님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 위신이나 체면이나 모든 사회 환경을 전부 다 잊어버리고, 너와 내가 하나로 단결하였습니다. 즉 이리 가도 한 세계요 저리 가도 한 세계로, 약속하신 말씀을 흠모하면서 하나로 엉켜 들어갔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의 봉화는 들려졌던 것입니다.
끝날의 사명을 책임진 우리들에게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에게 나타난 그러한 역사가 벌어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때는 성신과 성자와 성부의 역사가 여러분 한 몸에서 벌어지는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아버지 앞에 설 자는 누구인가! 주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그 이마에 찍혀 있는 자가 끝날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14만 4천 무리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고, 그리스도와 성신의 인정을 받은 후에는 누구의 인정을 받아야 되느냐 하면,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신은 어머니 신이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신이라 하였으니, 지금까지 우리가 성신을 받았다면 이제는 아버지 신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신을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버지와 나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자격을 얻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되기 위해 어느 정도로 간절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내시다가 약속을 남겨 놓고 승천하신 후에 120문도가 하나로 단결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고대하던 그 마음 마음 이상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아버지의 신이여, 어서 임하시옵소서!’라고 간절히 호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때가 우리 앞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자기의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몸과 내 마음 내게 속한 어떠한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사탄 편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사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내 것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음과 한뜻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있어서 120문도 이상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엉킬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인데, 그런 길을 가려는 우리에게 누가 원수일 것인가? 한마음으로 엉켜지는 것을 끊고, 파괴시키는 조건을 제시하려 드는 무리가 있다면 그런 무리가 여러분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싸워야 할 것은 세상 사탄이 아니요, 성도들이 움직이는 모양과 같은 모습으로 하늘에 있는 사도들을 중심하고, 신도들이 움직이는 모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자기 마음에 딴 마음을 품고 움직이는 이런 무리가 오늘날 우리들이 원수라는 것, 여러분 중에 그러한 마음을 가진 자가 있을진대 성도들 앞에 솔직히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어 놓지 않고 하늘 앞에 이것을 감추어 가면서 가중적인 조건에 걸리면서 하늘 앞에 나아가려 한다면 그 사람의 끝날의 운명은 심판대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마음 보따리를 헤쳐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그런 마음에 붙들려서 마음 몸으로 자기를 옹위하고, 자기 것을 채워 놓고, 하늘의 전체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지 않고, 한뜻을 위해서 성취시키자는 이러한 마음을 잊게 해 놓고 자기의 것으로 주장한다면 끝날에 하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자신이 두 갈래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모순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형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형제를 반대하지 말고 그와 하나되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참다운 생명을 지닌 생명체로서 하늘의 불의 역사를 체험한 열 사람과 하나가 되면 열 사람의 물질을 갖추게 되고, 백 사람과 하나가 되면 백 사람의 물질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사탄은 무엇이뇨? 하늘과 우리와의 마음을 떼어놓은 것이 사탄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이 교회를 중심삼고 아버지의 뜻을 찾아 원리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원리의 말씀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뜻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못한다면 아나니아나 삽비라와 같은 그런 입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 때는 지극히 두려운 때이므로 여러분이 지금 조건에 걸리게 되면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 자기를 위하여 변명해 줄 수 없는 때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지한 사람들은 하늘의 방향과 부딪친 후에야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여러분에게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형제들끼리 하나되십시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노력할 마음이 있습니까? 자신이 하나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되십시오. 하나 못 되는 모든 조건을 타개하고 자기가 머무는 곳에서 하나될 수 있는 힘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최후의 싸움터에 임하여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야 말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여러분이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잊고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의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배반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원망하지 말고 베드로가 이것을 탄식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끼리 먼저 이러한 마음을 살려 가지고 사탄의 모든 조건을 제거할 수 있는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강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다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농락권 내로 전락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이제 한마음 한뜻이 못 되면 차라리 원리를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것만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도들의 모임을 몰랐던들 심판에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역사적인 순간에 여러분은 처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때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이제 한마음을 표준하고 한뜻을 표준하여, 그것에 취하고 그것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것에 충성을 다하고 최후의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승리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이에 최후로 성신의 손길을 거치고 인자의 손길을 거쳐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난 후에는 다시 사탄이 빼앗아 갈래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처해 있는 오늘날 여러분은 ‘오마.’ 하신 주님의 약속을 간직하고 오늘이나 오실까, 내일이나 오실까 간절히 고대하던 사도들의 마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신의 심판도 아들의 심판도 아닌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큰 고개를 넘을 수 없습니다.
아직은 아버지의 심판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의 때에는 죄를 지어도 용서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심판 때에는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뜻을 알았고, 우리의 마음과 뜻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이 안 되면 아버지도 운행하실 수 없다는 원리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하나되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비례하여 나타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지금 이때는 여러분이 아버지의 성령을 받아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간섭해 주고, 여러분의 갈 길을 가르쳐 주고, 사탄과 싸우는 방법도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서로서로가 아버지의 신성을 받고, 아버지의 마음을 닮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아버지가 내 대신이요 나도 아버지 대신인 것을 느끼는 동시에 하나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형태가 커짐에 따라 점차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만번 기도하는 것보다도 여러분이 하나되려는 노력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누구보다도 가치를 깊이 알고, 뜻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심판대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에는 여러분 개개인이 마음과 몸을 다하여 아버지의 신성을 받아 아버지와 하나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 뜻을 모를 것이요,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한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한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 교회에 다녔으니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의 뜻 앞에 너도나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아버지의 뜻이 내 뜻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개개인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전권의 행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도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었을 때 승리적인 부활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과 하나되고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뜻과 하나되어 서로서로가 이것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무언의 힘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될 때에 여기서 여러분이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권의 행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뜻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삼위기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어느 정도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속회를 중심삼고 어느 정도 한마음 한뜻이 되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과거에 이렇게 한마음 한뜻을 이루는 사명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한마음을 중심삼고 한뜻이 되지 못한 입장에 섰던 사람은 특히 자기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입장에 섰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늘 최후의 싸움을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단결된 힘과 단결된 하나의 마음과 한뜻을 우리는 전체적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표어를 세운다면, ‘한마음이 되자, 한뜻이 되자.’는 것입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물질이나 사회적인 명예나, 사회적인 지위나 무슨 권력이나 세력 등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로막혔으니 이것을 늠름히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옛날에 사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난 성신의 역사로써 무지한 원수들을 무찌르던 것과 같은 이적기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하나의 마음되게 하시옵소서, 하나의 뜻되게 하시옵소서, 하나의 행동이 나타나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때에 있어서 우리들이 외쳐야 할 표어입니다. 이것을 가로막고 이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곧 하늘의 원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큰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한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큰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랍니까? 여러분 개개인 전부가 하나되어야겠습니다. 마음이 하나되는 곳에는 모든 것이 통합니다. 무한히 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속히 한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내 마음에 한마음이 되지 못하는 요소가 있습니까? 이것이 원수인 것을 알고 이것이 대사탄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취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건이 되어 여러분이 심판대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건을 여러분의 생활에서 제거시키고 환경에서 정리해 나갈 수 있는 이러한 각오를 가지고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뜻이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뜻의 대신 존재로서 사탄을 굴복시킬 때까지 우리는 단결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만이 아닙니다. 10년 동안 사탄의 것이 남아 있다 할진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10년 동안 한 사람과 단결할 수 있고, 10년 동안 천 사람과 단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바쳐 사탄과 싸우고, 결국 사탄을 굴복시켜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기 도> 아버님의 마음과 아담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아버님의 뜻과 아담의 뜻이 하나가 되었던들, 오늘날 두 세계가 서로 싸우는 서러운 역사는 없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저희의 마음에는 아버님의 서러운 마음과 슬픈 마음이 있사옵니다. 본심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자신을 중심삼은 타락성만은 이것을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사옵니다. 항상 이런 본심과 사심의 싸움에 처해 있는 저희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 저희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수습하여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 자신의 뜻을 수습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되게 해야 할 싸움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만약 이 아들딸 중에 아버지와 하나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뜻과 하나되게 위해 노력하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된 그 마음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인 줄 알고 있사오니,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그 하나를 찾기 위해 싸워 나갈 수 있고, 지켜 나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지금의 때는 지극히 어려운 때이옵고, 또 사탄이 저희의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로막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새로운 조직을 세울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뜻을 바라면서 싸울 수 있고, 아버지의 뜻의 영광을 넓힐 수 있는 섭리역사를 감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모인 저희들의 마음과 뜻이 아버지 제단 앞에 하나된 모습으로서 소원하는 것도 같은 아버지의 인연의 조건물로 세우시어 사탄을 굴복시키는 조건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담 이후 4000년 동안 섭리하신 뜻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아담 타락 이후 복귀섭리역사 속에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소망도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동시에 인간의 뜻이 성취될 수 있는 때가 그리스도가 탄생한 그 한시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후 오늘날까지 2000년이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왔으나, 우리는 지금 2000년 전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당시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긴장된 시간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작은 핏덩이로 태어났으나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實體)요, 그의 울음소리, 그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4000년의 억울함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새로이 역사해 나가시려는 모든 일을 전형적(典型的)으로 표현하고, 또 인간의 죄를 탕감하는 4000년 역사과정의 서러움을 표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탄생으로 새로운 선의 역사가 출발되는 기쁨의 장면을 맞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한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염려와, 역사과정을 거쳐온 인간의 역사적인 염려와 당시의 시대적인 염려가 제거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실로 어마어마한 분이요, 대하기에 황공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있는 성심을 다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고 만민의 심정을 대신하여 수많은 선지(先知)들의 심정을 대신하여 그에게 경배한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를 통분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일을 맞아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자들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당시의 이스라엘 선민이 약속의 날을 고대하며 메시아를 바라고 기도하였던 심정을 대신하여 아기 예수 앞에 예물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사는 흘러갔으나 그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당시 하늘에 있던 성도들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선민의 자격으로 아버지의 영광에 동참할수 있는 가치를 여러분이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한분의 탄생일은 천지만물이 기쁨을 나타낼 수 있는 날이요, 하나님의 해원의 한날인 동시에 만민의 소원이 성취되는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며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긴장된 마음으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준비한 예물을 드리고, 아버지의 마음과 역사적인 심정, 시대적인 심정을 대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경배하며 축하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누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아봅시다. 먼저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하나님을 따라나오던 우리의 선조들인 수많은 선지자, 성현, 열조들도 역시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들 대표한 유대교인들도 생애를 바쳐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역사적인 수고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30여년의 생애를 거치셨고, 그후 지금까지 천륜의 뜻을 위한 섭리적인 2000년이 지나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는 과거 예수님 이전의 역사적인 서러움이 있는 동시에 예수님 이후의 2000년의 역사가 가하여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역사적인 해원을 위하여, 혹은 시대적인 해원을 위하여, 또는 미래적인 해원을 위하여 탄생하셨던 예수의 소원은 그 당시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2000년이 지난 오늘 이 시대에도 아직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4000년 역사의 서러움에 예수님이 오셔서 수고하고 돌아가신 이후 2000년 역사의 서러움이 더하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들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이후에도 소망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원(怨)을 풀어 드려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창세 이후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뜻을 대하는 긴장된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이 한 시간 우리들이 축하의 뜻을 대해야 하고, 축하의 은사를 하늘 앞에 돌려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할진대, 우리들이 예수님이 이 세상을 위해 염려하신 심정과 6000년 동안 섭리하면서 염려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품고, 섭리의 뜻을 위해 현현한 영광의 탄생을 위하여 축하의 제단을 갖출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늘이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축하하였던 그 영광의 뜻을 땅 위에 성취시킨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제단 앞에 엎드린 우리 자신들은 2000년 전, 마리아가 하늘 앞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탄생시키고 기뻐하시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 수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선지들의 소망의 심정을 대신하여 그들이 고대했던 뜻을 성취시켜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전체의 심정을 해원해 주려는 마음을 갖춘 한 존재로서 예수님이 이땅에 탄생하시게 될 때, 이 한 시간을 대하여 하나님이 서러워하셨던 심정, 마리아와 요셉이 서러워하였던 심정, 또 길가의 목자들이 서러워하였던 심정을 느껴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우신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면서 새로운 각오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영광의 예비자로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하늘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게 하시는 뜻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땅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전체적인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을 띠고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단언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천군 천사들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왔다 가신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모든 원한을 우리 자신들을 통해 해원해 드리겠다는 각오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앞으로 현현할 소망의 날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갖고 축하의 경배를 드리지 않는다 할진댄,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에게 와서는 끝이 나게 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전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으나 그리스도 이후에 나타날 섭리의 뜻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탄생은 지켜 보았으나 탄생 이후에 되어질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스라엘민족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섭리의 뜻까지 합하여,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전체적인 가치의 실체로 알고 그분의 탄생을 축하해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서러움과 원한을 더하는 결과가 되었는데, 끝날인 오늘날 우리들이 6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이것을 해원해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역사적인 모든 서러움을 풀어드릴 수 있는 준비된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심정까지 통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 의의가 우리를 넘어 우리 후손들의 영원한 역사적인 이념으로까지 인연맺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축하받기를 원하지만, 현재의 한 순간에서만 축하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축하해 주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하여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 이전에 왔다 간 선지 선열들이 영계에 가서 수고하고 있는 그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는가.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였는데, 땅 위에서도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서러움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시에 예수의 탄생을 보고 천사 대신 메시아의 현현을 선포한 존재가 있었던들, 하늘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신 것처럼 땅에서도 그와 같은 축하를 드릴 수 있었을 것인데,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하였던 유대교인들이 이런 사명을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은 선조들의 불신의 조건들을 탕감하고 여러분 자신들이 이 뜻을 책임지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는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는 이러한 일을 실천하고도 남아서 그 뜻을 후대에까지 넘겨 줄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이 한 시간이 얼마나 긴장된 시간인가를 알고, 자신을 반성하여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민족이 천사들의 심정과 통할 뿐 아니라 하늘이 기뻐하시던 심정을 대신하고, 천사들을 동원하여 보내시던 그 마음까지 품고 죽음이 오든 그보다 더한 것이 오든, 성도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증거의 싸움을 전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려고 하였던들 예수님은 절대로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의 성도들은 목자들의 예고의 말씀을 들었고, 동방박사들의 증거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 외에 안나와 세례 요한의 증거의 말씀까지 들었기 때문에 인류가 고대하던 역사적인 메시아가 탄생한 그 날부터 축하하는 마음과 영광된 마음으로 불신하는 민족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을 잃은 서러움이 우리들에게까지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은 2000년 전, 그 한날 그 시간에 그렇게 움직여 주셨는데, 땅 위의 인간들은 2000년이 지나갔으나 아직까지 그런 심정을 가지고 하늘 앞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서러움인 것을 하늘을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모인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의 소망으로 바라나오시던 그리스도의 탄생을 두고 기뻐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서 천사와 양치는 목자들을 통하여 예고하시던 것과 같은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 각자에게도 있는가 하는 것을 살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날을 대할 수 있다면, 비록 우리가 직접 예수의 탄생을 보지는 못하였고, 2000년이란 긴 역사를 지내왔으나 그러한 우리의 심정은 역사적인 거리를 넘어 하나님의 심정, 그리고 천사들의 심정과 인연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지금 이 시간이 역사적인 순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이 그런 심정에 도달해 있다면 서러움이 복받쳐옴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에 넘쳐서 영광의 메시아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분의 슬픈 사연을 증거해야 하는 서러운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여러분은 지금까지 2000년 기나긴 역사과정을 지나오면서 수많은 성도들이 이날을 축하하였으나 진정으로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여 축하한 자들이 극히 적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2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이날을 탕감복귀하는 일에 있어서도 2000년전 성도들이 천사나 동방박사들, 혹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슬픔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역사적인 탄생을 하신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면목이 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새로운 뜻을 가지고 모인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처지를 생각해 보며, 예수님의 심중에 당신이 탄생하시기까지의 4000년 역사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탄생하신 이후 30여 평생의 서러움이 이 한날에 사무쳐 있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시고 돌아가신 이후 2000년의 서러움이 이 한날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명을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써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하시던 서러운 심정으로 여러분을 위로해 주실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상에 왔다 갔던 모든 선지 선열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 되어야 하겠고, 천군 천사의 옹위와 증거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현현하실 때, 하늘이 일순간 전체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시던 그 가치를 대신하여야겠고, 예수님의 탄생 당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염려를 대신할 수 있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예수님의 탄생의 한날을 중심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섭리의 뜻과 이념을 대신 인계받을 수 없고, 계승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써 4000년 동안 예비해 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종결시키려던 예수님의 뜻이 2000년 연장되어 6000년 복귀역사가 되었다는 것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할 선조들의 소망이 2000년 연장되어 내려왔다는 것과, 하나님의 염려에 수많은 사도와 성도들, 혹은 천천만 천사들의 염려가 가하여 2000년 동안 연장되어 내려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놓으시던 하나님의 서러움 이상의 서러움을 느껴야 되겠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가시던 예수님 이상의 서러움을 느껴야 되겠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천상에서 천천만 성도와 천사들이 서러워하던 것 이상의 서러움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늘 땅이 서러워하던 원한의 심정을 해원하기 위하여 홀로 온 피조만물을 대신하여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자격자가 되고 오실 메시아의 이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까지 알아가지고, 그 뜻이 나타날 때 증거해야 하는 천사들의 사명까지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가지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늘이 바라시는대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또 천천만 천군 천사들의 서러움을 청산해 드리고, 하늘의 뜻을 인계받아 그 뜻을 이땅에 실현시켜 드릴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비로소 영원한 축하의 한날을 바라보실 수 있고, 안식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여러분은 중요한 역사적인 초점상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소망의 한날을 위하여 준비해야 할 이때에 처한 여러분은, 역사적인 증거자로서 혹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계받을 자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회고하면서 축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지금까지 사무친 모든 원한을 해원하실 수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뜻을 대신 이루는 기쁨을 느끼실 수 있는 동시에 예수님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기대를 조직하였으나 여러분은 이에 대한 천적인 가치를 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복귀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복귀할 것인가?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무엇을 복귀하여야 했던가? 복귀섭리에 있어서 예수님의 중심적인 책임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렸던 그 수(數)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여야 할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가족에는 아담을 중심하고 세 아들과 그들의 상대자를 합한 여덟 식구가 있었는데, 이 여덟 식구를 복귀하기 위해 1600년 동안 하나님이 섭리하였습니다. 또 120년 동안 섭리의 뜻을 받들기 위해 노아를 택하였고, 노아의 여덟 식구를 세우신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10대를 거쳐 노아를 세웠고, 함의 실수로 인해 계속해서 뜻을 받들 수 없게 되었으므로 또 10대를 연장하여 아브라함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는데 또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2대를 더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 때에 비로소 2000년 섭리의 한 단계를 종결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의 열두 아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를 상징하는 것이고, 이것을 복귀하는 수(數)를 상징하는 것이며,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복귀하는 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런 의미를 가진 열두 아들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탕감복귀역사를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6000년 섭리역사의 끝날에는 6000년 동안 하나님이 섭리하셨던 모든 내용들이 횡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이 종적인 6000년 복귀섭리역사의 기록이라 할진대, 성경 66권의 사실들을 횡적으로 이 지상에 한꺼번에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곳에는 창세기 1장을 탕감하는 책임을 진 사람이 있고, 또 다른 곳에는 2장을 탕감하는 책임을 진 사람도 있고, 이와 같이 여러 사람이 성경 66권의 부분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은 어떤 때인가? 종적인 역사 과정에 나타난 전체의 섭리를 일시에 나타내어 지상에서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되는 때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지상에서 완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섭리역사가 횡적인 면에서 전세계적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전체적으로 보면 아담가정의 가인과 아벨의 투쟁을 나타낸 것이고, 또 역사적으로 보면 전체 투쟁역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섭리의 뜻을 종결지어 승리한 자기 자신을 찾으려면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소망하셨던 그 중심 표준을 여러분 자체들이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끝날에 승리의 신부로서 신랑되신 예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33년의 생애를 보내셨는데 예수님은 30년 준비시대, 3년 실천시대, 3일 완성시대를 거쳐 3단계의 역사 과정을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또 3년 공생애노정을 놓고 볼 때, 뜻을 받들어 출발하시면서 3대 시험을 거쳤고 최후의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3차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3차의 기도를 드릴 때는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로 생명을 걸어 놓고 간곡히 기도하는 마당에 세 제자도 예수님과 같음 마음으로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여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 제자는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여기에 천적인 슬픔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복귀의 운명을 타개하여야 할 우리 각자의 사명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베드로가 되고 야고보가 되고 요한이 되어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어요.
예수의 설움은 열두 제자가 예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것이고, 열두 제자를 대신한 세 제자가 예수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한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의 서러운 심정이 오늘날 하나의 한(恨)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어떻게 되어야 하겠는가? 여러분 자신들이 베드로가 되고 야고보가 되고 요한이 되어 세 사람이 하나되어 주 앞에 어느 누구도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모형을 갖추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서글픔 심정 앞에 비로소 설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뜻을 복귀하기 위해 찾아 나선 우리이기 때문에 이런 삼위기대의 조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세 제자를 데리고 다녔던가? 아담가정에 있어서 아담을 대신한 분이 예수요, 아담의 세 아들을 대신한 것이 예수님의 세 제자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아담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가인․아벨․셋을 대신하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 제자를 세우고 상대를 찾아 여덟 식구를 형성하여 아담과 노아의 여덟 가족형을 복귀하는 사명을 하시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총각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 신부의 이름을 남겨 놓고 2000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그 후 오늘 이때까지 이 원칙적인 기준, 즉 아담가정에서 아담을 중심한 세 아들의 기준을 이 땅에 찾아 세우는 것이 최후의 섭리의 뜻으로서 이 땅에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있어서 남자 세 사람, 여자 세 사람, 이렇게 삼위기대를 만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면, 앞으로 주를 모셔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담가정에서의 아담 부부와 그의 세 아들과 세 자부형을 대신할 수 있는 모형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이 하나되지 않으면 또 파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에요. 특히 세 남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죽든지 살든지 영적으로 하나되고, 몸으로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간적인 한계권 내의 기대가 아니고 시간성을 초월한 주체적인 하나의 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설 면목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만일 세 사람이 하나되어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원칙적인 발판을 만든다면, 다시 말하면 하늘이 변할지라도 우리는 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지닌 삼위기대가 되어 있다면 하늘은 이런 기대 위에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삼위기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삼위기대를 조성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은 세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열 사람이 단결해야 돼요. 왜냐하면 삼위기대는 주님을 중심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세 제자를 대신하는 동시에 아담을 중심삼은 세 아들의 형을 찾아 세우는 형태도 되기 때문입니다.
또 세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반(班)을 만드는 데에는 무슨 뜻이 있느냐 하며, 종적으로 보면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 10대를 대신하는 것이요, 반장은 두 사람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열두 사람형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노아에서 야곱까지 12대를 대신할 수 있는 형이요, 역사적인 면, 즉 종적인 면에 있어서는 10대와 12대를 대신할 수 있는 형입니다. 그리하여 종적인 2000년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횡적인 12형을 갖추었기 때문에 야곱의 12자식을 대신한 수의 사람만 하나되면 2000년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으로 찾고 있던 노아의 가정을 복귀하는 동시에 야곱가정형을 복귀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반이 합해서 한 조(組)가 되며, 한 조는 36수 36인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것은 야곱에 있어서는 12자식, 모세에게 있어서는 12지파, 예수의 12사도를 표시하는 것이며, 6000년의 역사적인 대표를 합한 것을 상징하는 수가 36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36인(36수)이 하나되면 6000년 섭리역사 과정에서 찾고자 했던 중심 멤버를 종적인 형으로도 갖출 수 있고, 횡적인 면에서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중대한 책임과 사명이 36인에게 있는 것이고, 여기에는 중대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 36인 여자 36인이 합하면 72인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중심삼고 70문도가 있었고, 모세를 중심삼고 70장로, 야곱의 70식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70문도, 그리고 예수님의 신부격이 합하면 72인이 된다는 거예요. 오늘 천지의 도수를 맞추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우리가 이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삼위기대에 속한 세 사람이 서로 마음을 맞출 줄 모르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통일의 이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세 사람의 마음을 맞출 줄 모르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해요. 입문도 못 해요. 천국 구경도 못 합니다. 또 세 사람이 하나되어 이것을 단위로 하여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어서 하나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반대로 세 반이 합해서 한 조가 되고, 이 한 조의 36인이 단결되면 사탄이 꼼짝못합니다. 누가 깨뜨릴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3인이 합하면 못 할 것이 없다구요.
우리 교회는 여덟 식구가 움직여야 합니다. 아무리 큰 핍박을 받는 교회라도 지도자와 그 부인, 거기에 세 남자와 세 여자가 합쳐진 여덟 식구가 하나되면 아무도 못 깨뜨립니다. 이게 철칙이에요. 이런 복귀형을 각자가 갖추어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삼위기대를 조직했습니다.
하늘의 역사도 이렇게 됩니다. 한 사람을 세워 놓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셋 이상 세워 놓고 두 사람을 때리는 것입니다. 끝날 한국에 은혜의 역사가 시작될 때에도 이러한 원칙에서 하시게 됩니다.
하늘은 반드시 세 사람을 세워 놓고 한 사람을 빼내어 쓴다는 거예요. 한국의 실정도 이렇게 되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끝날도 반드시 하늘이 세워 주는 베드로적인 존재, 야고보적인 존재, 요한적인 존재, 이렇게 세 제자의 사명을 하는 사람이 나와요. 그중에 하나가 없는 둘은 깨지지 쉽다는 거예요. 그러나 셋이 하나되면 깨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령한 사람들이 나아가다가 도중에 깨지는 대부분의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을 박멸하고,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려면 말단 식구까지 하나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못 견딥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형에 있어서 천지의 운행도수에도 들어맞는 것입니다. 한 점을 중심삼고 사방성이 있는 것과 같이, 동서남북이 있고, 춘하추동 4계절이 있습니다. 사방을 다시 12방으로 나누면 동쪽에도 셋, 남쪽에도 셋, 북쪽에도 셋, 서쪽에도 셋이 됩니다. 이렇게 예수를 중심삼고 12수가 세워지면 동서남북과 춘하추동의 완전한 사방의 형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베드로․야고보․요한은 봄 절기형, 즉 정월․ 2월․3월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12달을 지나 하나의 궤도에서 예수를 중심삼고 같은 거리로 원을 그어 주었더라면 예수님은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봄 절기형인 세 제자 뒤에는 10월․11월․12월이 있는데, 이것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대 시험의 근거도 여기에 있습니다.
10인이 하나되고자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세 사람의 방해꾼이 있습니다. 까닭없이 미워하고 찌르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 번 이상 시험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말 때에 벌어지므로 개인신앙에도 그런 시험과 고난이 있고, 개인신상에서 가정단위로 발전해 나갈 때도 그런 시험이 있고, 사회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로 넘어갈 때도 그런 3대 시험이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세계적인 종말시기에 있어서 세계 인류는 세 번 하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차 2차 3차 세계대전입니다. 개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런 핵심적인 중심형에 맞도록 각자의 기준을 갖춰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영계를 보더라도 12사도를 중심한 24장로가 있고, 네 영물이 있고, 수많은 영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상 절기의 운행을 볼 때도 역시 1년에는 네 계절이 있고, 열두 달이 있고, 또 24절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계절에는 세 달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은 그 운행법도에 의해 순리적으로 돌아가는 데 인간만이 이것과 반대로 돌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맞춰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사명을 하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믿는 성도들도 이러한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사명이 있는 고로 전체의 기독교 역사를 보게 될 때에 기독교 역사에도 3단계의 형을 거쳐야 했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구교에도 신교가 나왔는데, 신교에서 또 새로운 종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파의 분열을 두고 볼 때, 새 교파가 12교파로 갈라졌고 다시 36교파와 360교파까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끝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국가적으로 보게 될 때에 3대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는 3블럭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것이 역사의 종말을 거쳐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민주진영만이 아니고 공산진영에도 3블럭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크게 세 교파로 갈라졌고, 이것이 다시 더 많은 교파로 갈라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현재의 입장에서 제일 원칙적인 다리가 무엇인가 하면 삼위기대를 중심한 12인의 마음을 맞춰 주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33년 생애를 바쳐 무엇을 하였던고? 예수님은 33년 동안 있는 정력을 다 기울여 12인의 마음을 맞춰 주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자격자는 누구이뇨? 예수가 하고자 하는 중심을 알아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부입니다. 이 신부의 자격을 갖추는 것, 이것이 끝날의 도의 길입니다. 열두 사람 이상의 마음을 맞춰 주는 것이 도의 노정인데, 하나님은 이런 원칙을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덮어놓고 너희들은 나를 믿으라, 나를 공경하라, 도의 순응하기 위해 몸을 죽여라, 무조건 봉사하고 희생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윤리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수에게까지 복을 빌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원수까지 밟고 올라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정월부터 12월까지 넘을 수 있는 도의 기준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 내용을 이제까지 도를 닦아 온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참아 나가야 하는 것이 도의 길이라는 것만을 알고 고통의 길에서도 무조건 순종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정월부터 시작하여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의 마음을 맞춰 주며 가다 보니 열두 달을 다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봄 절기형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여름 절기, 가을 절기, 겨울 절기의 형을 타고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많은 형의 사람을 거쳐 나가야 할 천리원칙이 있는 연고로, 이것을 발판삼아 찾아 나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인간은 정월에서 출발하여 2월, 3월을 거쳐 주욱 가을 절기를 지나 겨울 절기를 거치게 되며, 그 다음에는 심판을 거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는 희생의 진리요, 봉사의 진리인 것입니다. 천지의 도수를 무난히 넘자는 원칙 밑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내용을 인간에게 소개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천지의 방향을 찾아 나선 몸이라 할진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원수로 알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그냥 그대로 두면 곁길로 가겠기에 올바른 길로 몰아넣는 사명을 그들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을 환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사탄 대해서도 소망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이에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반대를 받고 있지만 나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반대받지 않았다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어디로 갔겠습니까? 큰 빌딩을 세우는 데도 깊이 파고 콘크리트를 해야 하는데 조금만 파고 콘크리트를 하면 튼튼한 빌딩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사탄을 위해서 손을 들고 기도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년의 하늘의 명령은 여러분을 못 살게 훈련시키라는 거예요. 금년은 수련의 해, 시련의 해로서 어떠한 고통도 늠름히 넘을 수 있는 해가 되게 해야겠고, 12인 이상의 마음을 맞춰 주는 사람을 빨리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천적인 이념을 대신해서 하늘의 식구로 설 수 있는 수효는 상당한 수일 것입니다. 영계에는 수억의 영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영인들 전부가 손을 들어서 환영할 수 있는 그 이념이 우리가 지켜야 할 본연의 이념이기에 오늘날 땅에서 10인이 하나 못 되면 천국에 못 간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맞춰 주는 역사적인 대표자가 되어 봅시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맞춰 주는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에게는 여러분의 시중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늘 특히 1월 3일인데 여러분 단단히 결심해야 되겠어요. 3개월에 한 번씩 삼위기대를 변경할 때에 여러분은 누구와 만나게 되든지간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삼위기대로 맺어진 상대에게 ‘그대는 오랜 6000년 섭리역사를 돌고 돌다가 무슨 인연이 있어서 나하고 만났는가?’ 하면서 역사적인 운명의 상봉이라고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 사람이 하나되고 열 사람이 하나되고 36, 70인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조직은 원리원칙을 떠나서는 될 수 없고, 원칙은 조직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조직의 생명입니다. 이런 형태로 천지의 도수에 맞추어 천지의 중심과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되어 돌아야 하고, 자신이 만물세계의 운행법도를 따라 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내 마음이 천륜을 중심삼고 돌아야 하며, 일년도 일생도 천륜을 중심삼고 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영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누구를 위하여 돌 것인가, 천륜을 위하여 돌 것인가? 또 갈 때에는 오늘은 누구를 위하여 돌았는가, 천륜을 위해서 돌았는가 하고 자문자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 도는 발판이 삼위기대요, 반(班)이라는 거예요. 이것을 떠나서는 생명의 발판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이 삼위기대를 조직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하늘의 뜻을 생각하고, 그것을 생명시해서 움직이느냐입니다. 우리 교회 신도는 모두가 평등하고 한 식구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인 조건을 세워서 법도대로 하나되면 된다는 거예요. 금년부터는 새로운 각오 하에 새로운 움직임을 전개해야겠습니다. 공격전을 개시해야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천륜 앞에 실생활을 통해서 이런 원칙적인 발판을 갖추어 우주적인 하나의 단위 형태가 자신을 중심삼고 시작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의 기쁨으로 알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6000년 역사 과정에서 뜻길을 걷고 있는 나는 최대의 비극배우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못 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남 못 가는 걸음을 걷자 이거예요. 여기에서 사탄은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비애가 시작된 동기를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인간조상이 하나님의 품에서 추방된 사실도 이 성경 말씀을 보고 잘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후에 하나님을 모시고, 만물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천주의 중심존재로서 아담 해와를 지으셨으나, 그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뤄지지 않은 채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만물의 탄식이었습니다.
영원한 선의 이념을 중심 삼고 즐겨야 할 인간의 행복과 희망은 여기서 부터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영원한 이념을 중심 삼고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누려야 할 하나님과 인간, 창조주와 만물의 희망이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파괴되었다는 이 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인간의 서러움과 하나님의 서러움이 잠재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실 때 있는 정성을 다하여 지으셨습니다. 더구나 만물의 주인공인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 정력을 다 기울였으며, 수고 중의 수고를 하여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도 그들을 인간과 영원히 동거하게 하여,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이 즐거워하는 동시에 인간이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시에 인간도 기뻐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창조의 목적을 세우셨는데,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한 번도 이러한 때를 맞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때를 다시 찾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대하여 ‘아담아, 아담아!’부르시던 그 서러운 심정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즉 창조주를 배척하는 아담 해와를 대하여 하나님도 그들을 배척해야 할 입장에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담을 찾아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 두 사람만을 대한 부르심이 아니라 역사적인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창조 이후 아담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오늘날까지 이 땅의 인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당시에 아담을 부르신 그 음성은, 오늘날에 와서는 6000년 한(恨)의 역사를 대신한 서러움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창세 이후 타락권 내에 있는 전체의 한을 대신한 서글픈 심정으로 아담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담으로부터 6000년이란 긴 역사를 지내왔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일을 현세에 연결시켜 오늘날 제2아담 제2해와인 우리를 대하여서도 그와 같이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타락 이후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온 신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대하여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 땅을 대하여 통분해 했고, 하나님 대신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 이후에 아담 해와를 부르시던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심정, 즉 허락지 않은 자리에 나아가 타락하게 된 아담의 모습을 대하게 될 때 형용할 수 없이 안타까웠던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들이 그 심정을 부둥켜안고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하여 다시 구원섭리를 해 나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통해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세워 가며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 해와를 부르시던 그 음성이 아직도 들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이후 1600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간곡한 심정으로 아담을 부르셨으며, 하늘 대하여 충성할 수 있는 노아 한 존재를 붙들고 비로소 ‘노아야, 노아야!’ 하고 부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음성을 우리는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셨던 서러운 심정을 해원하기 위하여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를 불러 놓고 120년 동안 염려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안 자가 누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원의 한 날을 위하여 120년 동안 염려하시며 노아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안 자가 땅 위에 없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가운데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시고 서러워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눈물 없이는 대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복된 자리에 머물러야 할 아담이 하나님의 품에서 추방당하게 될 때에 느끼셨던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체휼하는 자가 이 땅 위에 있다면 그는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의 서러움은 아담의 타락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한이 맺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자체를 대하여 이 시간도 해원하시며 한 서린 호소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뼈와 살, 몸과 마음에 사무치도록 울고 울어도 한이 없고, 서글퍼하여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섰던 조상들 가운데는 서글픈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섰던 사람은 고통의 길을 피하여 가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야곱도 그랬습니다.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을 대표했던 모세도 그랬고, 세계를 대표하여 왔던 예수, 즉 만민의 구주(救主)였던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이 서러워하시는 대로 서러워해야 되겠고, 하나님이 통분해 하실 때 같이 통분해야 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척하고 자기들만을 중심한 기쁨을 찾아가려고 했던 사실이 역사노정에 슬픔의 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슬픔의 땅이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지게 되었느냐 하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천륜(天倫)을 망각한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슬픔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느냐 하면, 인간이 하늘의 슬픔을 망각하고 하늘의 통분함을 망각하며, 자기 일신의 만족과 안일을 찾아 나온 데서부터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과정에 왔다 간 선지 성현들의 눈물의 결정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곤고와 비통 속에 있는 하늘의 대신자가 되어서 하늘의 슬픔과 분함과 억울함을 알아 악을 대하여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를 옹호하고 예수님을 옹호하고 역사적인 선지 성현들을 옹호하면서 하늘을 위로해 드리는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사람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 그리고 이 땅에 왔다 간 우리의 모든 선조들도 이런 존재를 찾아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 온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생애노정 가운데 하늘을 대신하여 곤고한 입장에서 만민의 배척을 받고 조롱을 받은 것이 몇 시간이었습니까?
타락한 인류는 슬픈 운명의 역사적인 노정에 처해 있는 고로 하늘을 찾아가는 사람은 이러한 길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계의 철칙(鐵則)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 과정에서 슬퍼하는 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섭리의 뜻을 펴시는 동안 아들딸이 악한 세력한테 유린당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통분해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슬픔 속에 계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루속히 슬픔과 비통과 분함에서 벗어나 기쁨의 날을 맞이하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소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타락 이후 6000년의 역사가 경과했지만 기쁨의 한 날을 맞아 하늘의 영광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아들딸이 오늘 이때까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이 세우신 기독교는 눈물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추방당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 앞에는 눈물의 골짜기, 십자가의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배척받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과 유대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나라로부터 이단자 취급을 받아 추방당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듬어 보게 될 때, 그분의 가는 길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길이었고, 그 종족을 위한 길이었으나,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과 예수님의 가는 길이 상반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반된 사이가 넓으면 넓을수록 하나님의 슬픔이 컸고 울분도 더하였던 것입니다. 이 상반(相反)된 길을 다시 상대적인 길로 전환시키기 위해 투쟁의 역사를 전개해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 2000년간의 신앙노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 한 자체를 온 피조만상(被造萬象) 가운데 세워 놓고 마음 몸을 따로따로 떼어 그들과 견주어 보면서 비판하여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비판당해 보십시오. 역사적인 선지 성현들 앞에, 또 오늘날 눈물을 머금고 슬픔과 고통의 길을 참아 나가는 참다운 목자들 앞에 비판당해 보십시오.
여러분 스스로가 자랑하고 나설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죄의 보응을 받아 마땅한 자체인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역사적인 피눈물의 제단을 거쳐왔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 제단 위에 여러분 자체를 올려 놓고 승리의 결실체로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그 뜻을 배척한다면 그 민족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택함받은 아브라함을 반대했던 그 종족이 어디로 갔습니까?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서글픈 심정을 느끼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도탄 중에서 허덕여야 했고 슬픔과 탄식 속에 빠져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세 때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민족을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던 모세의 서글픈 심정과 그 애타는 마음을 무지한 백성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 민족이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 같이 안타까워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 역사를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오늘날까지 죄악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으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면서 종교를 세워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 자랑거리를 남기고자 한다면, 서러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오, 아버지여! 그 서러움을 저에게 넘겨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고 계신 짐을 제가 대신 지고 가겠나이다.’라고 기도하며 나서는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서러움과 통분함과 곤고함을 모르면 망하게 됩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역사적인 전통을 알아서 수호하여야 할 끝날의 성도들이 이러한 책임감을 느낀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의 슬픔에 동참하여 남모르는 눈물을 수없이 흘려야 합니다. 남모르는 핍박을 받으며, 때로는 남모르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변명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분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민족의 길을 걸으면서, 전인류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죄악을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이 민족 가운데 있다면 그들에게로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옮겨질 것이며 우주적인 사명도 그들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겠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인류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고, 노아의 슬픔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으며, 아담 때부터 아브라함과 이삭․야곱 ․모세․예수님까지의 4000년에 예수님 이후 오늘날까지의 2000년을 합한 6000년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 위에서 한 아들딸을 찾아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아버지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 손길이 추하고, 그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의 형색은 남루할지라도 그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고 그 마음이 천심과 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세계가 동원되더라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천륜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아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배반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서러워하였고, 핍박하는 교단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십자가에 매다는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하늘 앞에 서려 하고, 또 신랑되신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서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느끼던 그 서글픈 심정과 옛날에 선지 성현들이 느끼던 심정을 체휼하지 못한다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걸어 놓고, 국가를 걸어 놓고, 세계를 걸어 놓고 서러워할 줄 아는 아들딸 들이 나와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서러워하시는데 자기는 즐거워하겠다는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그런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천 대의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자신을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있는 여러분, 오늘날은 각자가 처해진 입장에서 현재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과거를 회상하며 냉정한 비판을 내릴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오늘의 나를 세워서 이 세상에 무엇을 예고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은 세계주의의 때인 고로 가정을 위하여 눈물 흘릴 때도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개인과 가정, 사회와 민족을 거쳐 국가적인 과정까지도 지났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대하여 서러워하십니다.
역사적인 복귀의 운명 앞에 자신의 역사관과 생활권이 부합되어야만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개체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각자가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 해와의 입장임을 깨닫고 아버지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춰 놓아야만 여러분은 비로소 지금까지 애타는 심정으로 부르시는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슬픔의 고개를 다 넘고, 십자가의 길을 다 거치고 나서 자유스런 해방의 몸으로 영원한 아버지를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찬양하며 모셔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딸이 나오게 될 때 하나님의 기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소망이었으며, 그 소망이 이뤄지는 날이 바로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중심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부르심에 역행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종말에만 인간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요, 오늘 이 시간도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선(善)을 중심하여 나온 도(道)의 세계에는 수많은 교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중에서 천륜을 통하는 참다운 목자를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 목자를 만났을 때 그를 따르기 위해서 죽음의 길, 즉 어떠한 난관의 길이라도 가겠다고 나서는 이는 먼저 하늘의 슬픔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계의 지도자들은 이런 하늘의 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워 서로 싸우게 되면 그 교단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다른 길을 나선 여러분은 민족을 대신하여 선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타락의 유업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그 한 존재가 나타나기를 소원해야겠고, 그 소원이 성취되는 날이 재림의 날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겐 축복해 주고 즐거워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없는 것이 원한이요 슬픔인 것이며,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이 없는 것이 슬픔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민족이 없는 것이 슬픔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국가와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가 없는 것이 슬픔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개체를 세워 놓고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서러움과 현재의 서러움과 미래의 서러움을 느끼시면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누구를 택하여 아브라함의 후계로 삼을 것인가, 누구를 택하여 이스라엘과 야곱의 축복을 인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누구를 통하여 예수님의 유업을 이어받게 할 것인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십니다. 또 그것이 이 시대에 세워야 할 조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6000년 동안 말할 수 없이 서러워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와 성신이 그랬고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이러한 하나님을 해원해 드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부패한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 앞에는 눈물로 넘어가야 할 민족적인 골고다의 역사적인 운명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서 우리는 여기서 승리의 실적을 남겨야 하는 섭리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섭리사를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인류를 대하시면서 서러워하셨고, 현재에도 서러워하고 계시고 미래에까지도 서러워하셔야 하는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민족을 책임지고 나선 모세를 배척하였던 그 민족은 깨어져 나갔고, 또 세계를 책임지고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게 될 때 그 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유리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실증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지만 우리가 하늘을 중심삼고 세계 앞에 불쌍한 민족이 된다면, 즉 이 나라가 세계를 대표해서 어느 나라보다도 불쌍한 자리에 선다면 여기에는 소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굶주리고 탄식하면서 서러운 눈물을 흘린 것이 이 민족의 실적이 된다면 이 민족은 죽음 가운데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민족은 앞으로 세계를 지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앞에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이 가신 길을 수호하고, 모세가 간 길을 수호하면서 역사적인 고개를 넘어 제1아담 해와의 입장을 대신하여 그들의 미비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본연의 창조이념을 다시 찾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쁨으로 대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아버지의 축복과 영광을 받음으로써 만물과 더불어 화동하는 그날을 맞이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모든 서러움을 넘고 슬픔의 고개를 거치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의 기쁨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시간 말씀을 갖고 나섰사오니 주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정하시면 저희들도 정하고, 아버지께서 동하시면 저희들도 동하여 오직 한 마음 한뜻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 당시 불신의 땅을 대하여 염려하시면서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하시며 그 안타까워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마음이 그저 이 시간에 머물지 말고 아버지의 심정과 연하고 역사적인 예수님의 심정과 연하여서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안타까운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 마음에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애달팠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이 한 시간 여기에 모인 사랑하는 형제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두움의 모든 죄악을 청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항상 저희 앞에는 아버지의 은사를 가로막으려는 사탄의 역사가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언제 어떠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은사가 임하게 되는지를 깨달음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벗어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저희가 될 수 있게,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6000년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어리석고 부족한 저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 주신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이 시간만이라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든 것을 맡기었사오니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지음받은 피조세계에서 영원히 안식하시려는 뜻을 지니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안식하시기 위해서 만든 터전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도 역시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먼저 지금까지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경과하였지만, 이 땅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도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보금자리를 남기지 못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고, 그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피조만물을 무엇에 근거하여 지으셨던가?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말씀을 통하여 만물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가 그 말씀의 목적을 완성하여 하나님이 실체적으로 영원히 임재할 수 있는 몸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주체로 임재하시어 안식의 보금자리를 이루려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천륜의 크나큰 목적을 세워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천국생활의 법도를 세우시고자 하셨고, 그들의 몸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이루고자 하셨으며,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좌정할 수 있는 지성소를 세우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천륜의 법도가 인간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몸으로 지었던 아담이 타락하니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도 인간세계에서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형의 하나님께서 이 땅의 실체의 주인공으로서 영원한 보좌에 임재할 수 있는 마음의 터전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이념인 말씀을 대신한 법도와, 만물의 성전을 대신할 수 있는 몸과, 무형세계의 지성소를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본연의 뜻과 어긋나게 되어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서러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위하여 지음 받은 인간의 마음이 서러워졌고, 그 마음을 대해야 할 몸도 서러워지게 되어 그 마음과 몸이 움직여 나갈 수 있는 말씀을 대신한 법도도 인간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늘의 원칙적인 기준과 내용을 살펴볼 때 타락으로 인하여 죄악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 가운데서 하늘이 찾고 있는 말씀의 법도는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실체 성전은 어디에 나타날 것인가?
무한한 무형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지성소가 될 성전은 이 땅 위의 어느 곳에 나타날 것인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역사 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나왔었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바로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거쳐왔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서도 제일이요 땅에서도 제일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지닌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체 성전을 갖추어 하나님이 기뻐하고 옹호할 수 있는 존재, 하늘땅을 대신한 천주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가 나타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대신하고 아버지의 보좌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실체적인 이념을 갖추어 피조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힘의 터전이 바로 하나님의 소망이요, 인류의 소망이요, 오늘날 구원받아야 할 모든 신앙자의 소망이라는 것을 오늘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잃어버렸던가?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말씀의 법도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잃어버렸으며, 영원한 생명적인 보좌의 중심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의 성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천주적인 모든 소유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까지도 무한히 허덕이면서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을 하나의 소망으로 삼고 오늘도 내일도 달음질쳐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시대를 통과한 후에는 어떤 시대가 올 것인가? 실체를 통과해야 할 시대가 옵니다. 그래서 오늘날 20세기 운명도 원칙적인 말씀을 통한 실체권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선포하신 천륜과 인륜의 법도를 이룬 실체가 역사의 종말시대에 나타나기를, 오늘날 인간들은 소원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 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말씀과 실체가 하나되면, 인간은 물질적인 동물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내적인 심정을 지닌 존재로서 천륜의 도리를 행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환경을 넘어서 영원한 이념을 향하게 하는 그 어떤 작용이 그 마음을 재촉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지향하는 그 힘에 상대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 나가지 않는다면, 신앙으로 찾아 나가는 하나님의 실존도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신으로서밖에 인정할 수 없으며, 실증적인 신으로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고 실체를 통한 후에 내가 사모하던 그 무형의 신의 뜻을 자신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성취시켜야 되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천륜의 대섭리의 목적과 부응할 수 없으며 또는 창조의 이념권이라 할 수 있는 이 실존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의 노정이 여러분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통하고 나아가 그 말씀을 실증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를 통하여 생명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한 곳이 어디인가를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이 천지 만물 가운데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찾아오신다면 무엇을 가지고 찾아올 것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의 법도를 갖고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의 어떠한 개인의 사상보다도 어떠한 말씀보다도 더 위대한, 온 인류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창조 당시에 세웠던 그 말씀을 여러분의 생애를 지배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아가 생애를 구할 수 있는 말씀으로 그 말씀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넘어가야 하나님을 중심한 개인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가정, 사회, 종족을 형성하여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주신 그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때까지 어떠한 역경과 슬픔의 자리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까지 투쟁의 과정이 남아 있음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실을 바라보면 형이상학적인 진리의 분야를 대신한 종교가 있고, 형이하학적인 진리를 대신한 자연과학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가게 될 것인가?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잃어버렸고, 말씀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실체를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념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끝날에 있어 어느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문명의 첨단에 선 한 존재가 형이상학적인 모든 이념을 대신한 실체로서 오늘날의 인류역사 종말시대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나 하나를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어디를 향해야 될 것인가? 내 몸은 자연과학적인 이념을 통할 수 있고, 내 마음은 형이상학적이고 초자연과학적인 세계를 통할 수 있는 입장으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선을 행하고 하늘을 위하려 하지만, 반면 우리의 몸은 악을 행하고 세상을 향하려는, 이러한 두 갈래의 엉클어진 사정에 처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까지 그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늘의 말씀을 소유한 주인공은 어디 있으며, 하늘의 진리의 법도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진정 우리의 마음의 세계를 넘어 무한한 영적 세계까지 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분야까지 통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이 나타나기를 지금까지 인간들은 고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오늘날 여러분이 그러한 말씀을 지녔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세계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자신을 갖고 살 것입니다. 역사적인 어떠한 사람이 지니지 못하였던 최고의 이념을 지닌 기쁨에 가득 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기필코 다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말씀을 세워 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마음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적인 존재를 통하여 하늘의 법도의 말씀을 찾아 세우고자 하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찾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오늘날 이 역사종말시대에 있어서 무한한 영적 세계를 통할 수 있고 자연과학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말씀을 찾아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게끔 하여야 하나님으로서의 승리적인 뜻을 이 땅 위에 세우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 대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고 하신 그 말씀을 다시금 찾을 수 있는 한 주체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천륜을 대신하고 만우주의 소원을 대신하고 온 인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과 외적인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이 땅 위에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뜻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의 마음 몸은 무엇이었던가? 그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천리법도요, 만인간이 지니고 싶은 소망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한 실체적인 하늘의 성전으로서 또는 실체적인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한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천륜과 인륜을 갖춘 말씀으로써 모든 만민을 회복시켜 말씀의 가치를 지닌 실체적인 존재로 하나님이 인정하게끔 찾아 세워야 할 사명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4000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지니고 이 땅의 속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속된 몸이 즐길 수 있는 타락의 법도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인간들, 사탄이 우거할 수 있는 타락의 마음과 몸을 지닌 인간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륜의 법도를 중심삼고 질서적인 목적을 성취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한 말씀, 한 걸음, 한 행동은 천륜을 실증시키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반면 사탄권 내에 처한 인간들은 천륜에 어긋난 법도를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아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하늘의 조건적인 말씀의 법도에 의하여 살게끔 하여 그 개인으로부터 사회·민족·국가·세계에까지 확대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또한 그 일을 성취하셔야 했는데 그만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만 것입니다. 만일 그때 당시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4000년 동안 온 우주가 바라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는 유일의 말씀이요 불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실체적인 존재가 다 되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자신이 하나님 대신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환경을 찾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성경 말씀 가운데서도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소망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마음놓고 임재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말씀을 중심삼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나와야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천적인 법도를 세워 천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천적인 이념을 의논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존재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서러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귀한 말씀을 지니고 왔는데 그 말씀이 머무를 곳이 없으니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하여 있는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자신의 몸 마음에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지금까지 아무도 지니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몸 마음에 완전히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 에덴동산의 타락은 무엇이었던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몸과 마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여러분이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자신의 말씀을 인계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찾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마음을 통하고 몸을 통하여 우러나온 말씀을 남기고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에덴에서의 인간 타락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하나님의 서러움과, 2000년 전 무지한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안타깝게 호소하신 예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할 사명이 제1차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창조의 역사를 일으킨 그 말씀이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나면, 타락한 인간이지만 아직 그 본심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본성이 움직이고, 여러분의 몸이 움직여질 수 있는 그러한 말씀을 이 역사적인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생애노정에서 반드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말씀을 찾지 못한다 할진대는 탄식과 비애에 사로잡혀 하나님과의 영원한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하늘을 대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 8:20)고 하셨던 예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그 당시의 한 젊은 서기관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님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수천년 역사노정의 어느 시대의 인간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게 부르짖으신 예수님의 이 음성이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에게 들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1이스라엘의 실수를 묵과하시고 제2이스라엘의 기독교인들을 세워 새로운 운동을 제시하시는 그 중심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말씀의 성전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전하는 말씀을 대해 ‘영원한 법도의 말씀으로 주신 말씀’이라고 인식하여 ‘이것이 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창조 당시에 인간을 창조하시던 말씀으로 여길 수 있는 한 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말씀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체험의 한 때를 갖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희생하게 하여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도록 해 나오신 것입니다. 또 인간의 마음이 참에 가까이 있게 될 때 그 참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말씀이 나타나면 쉽게 그 말씀에 끌려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연히 인간의 몸도 그 마음에 동화되어 참을 지향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알고 몸으로 알 수 있는 말씀을 인간들에게 나타내려고 하셨던 간곡한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통해 하늘을 찾아 나온 과정에 있어서 말씀에 의하여 내 마음과 몸이 완전히 지배당할 수 있는 한 때를 지니지 못하였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슬픔과 탄식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단계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자신인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몸과 생애를 대신한 천륜의 법도와, 그 법도를 대신한 자신의 실체와, 또 그 실체를 대신한 자신의 마음이 하나된 입장에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무엇인가 체험하고 느낀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이 땅 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핵심을 여러분의 몸 마음에 갖추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몸 마음에 영원히 뗄 수 없는 하나의 천륜의 법도를 세워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천륜의 법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종결될 것입니다. 철학도 종결될 것이요, 과학도 종결될 것이요, 물질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경제체제도 하나로 종결되어 갈 것입니다. 앞으로 어느 한 때에 가서는 과학의 무한한 발달로 말미암아 과학적인 연구 노력에 의하여 개발된 식량이 나오기도 할 것입니다.
나아가 최후의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오늘날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신앙을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부의 말씀을 찾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씀을 찾지 않고 오히려 그 말씀을 저버리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의 지성소를 이루기 위해 찾아오는 그 말씀을 피하는 자, 가로막는 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을 아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천륜의 법도를 세워야 할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라고 하시던 그 안타까운 심정을 해원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류역사 종말시대인 오늘날에 있어서 역사적인 서러움이 하늘과 땅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믿는 신자들은 어떻게 믿어 나가고 있는가를 염려하시면서 모든 인간들을 굽어보시고 계시다 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무한한 천주를 대신한 그 말씀, 영원한 법도를 대신한 그 말씀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땅에서 살아온 그 속된 마음을 가지고, 또는 속된 감정에서 나온 어떠한 말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지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성전을 찾아오는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는 내 한 자체가 혹 천륜의 말씀을 배반한 아담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말씀을 받아들였어야 할 것이 인간의 책임이었는데 그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말씀을 환영하여야 할 안식처가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중심한 실체를 이루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의 인격적 분야에 결부되는 말씀입니다. 즉 여러분의 말은 하나님의 천륜의 법도를 대신한 말이 되어야 하겠고, 여러분의 행동은 그 법도의 말씀과 하나된 행동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씀을 대신한 실체가 나타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임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임재한 그 개체는 영원한 이념을 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몸과 마음이 실제 생활권 내에서 아버지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요, 그러한 뜻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가나안의 이상동산인 것이며 잃어버린 본연의 동산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서러움은 무엇이었던가? 말씀의 안식처가 없었던 것이 서러움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몸 마음의 뜻을 인계해 줄 수 있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 서러움이었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인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하나님 대신의 몸으로 모셔 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이었으며, 하나님의 서러움이었고, 온 인류의 서러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2000년 역사 과정을 통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 라고 하면서 예수님 자신의 몸을 신부와 같은 여러분에게 맡기고 안식의 한 날을 맞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이날까지 배후에서 염려하여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산다 할진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취해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하겠고, 신랑되신 예수님을 대할 수 있는 신부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예수님의 상대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황태자이며 온 만물의 주인이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여러분에게 의탁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입장에 서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념을 통하고, 예수님의 생활을 통하고, 예수님의 역사적인 뜻을 통할 수 있는 가치의 존재가 되어야 예수님과 완전히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제 말씀을 통하여 실체를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소유하여야 되겠고, 예수님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여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계의 온 인류를 위하시던 그 간곡한 심정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도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2000년 동안이나 자신의 이념을 대신하고, 신랑인 자신을 모실 수 있는 신부를 찾아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모든 뜻을 대신한 실체로서 자신이 염려한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 오히려 예수님 자신을 위안시켜 줄 수 있는 참다운 신부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하고 이 시간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30여 생애를 거친 예수님께서 나라와 민족이 반대하고, 종족과 가정이 배척하고, 심지어는 사랑했던 제자들까지도 불신하는 입장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신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까?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그 사정을 알았습니까? 또 예수님의 소망을 알았습니까? 어느분이 압니까?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늘을 대해 변치 않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민족을 대신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으신 예수님의 그 모든 것을 여러분이 몰랐다면 여러분은 다시금 세계구원의 이념을 갖고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민족을 대신하여 골고다의 길을 가셨습니다. 민족적인 환경에 안식해야 할 예수님이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하늘의 승리를 다짐해야 할 예수님이었는데 민족이 불신하고, 교단으로부터 쫓김 당하고, 사회로부터 몰림 당하고, 가정으로부터 배척당하니 어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 땅을 대한 하늘의 소망을 품고 오셨는데 그것은 다 사라져 버리고 서글픈 사정에 처하게 되어 홀로 민족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 이후의 2000년 역사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족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제2이스라엘을 통해서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고자 허덕이고 계신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여러분이 맞고자 원하는 신랑이신 예수님인 것을 또한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몸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처한 위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노정에 처한 십자가의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인계 맡은 우리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님의 복음을 들고나서게 될 때, 어느 민족 어느 환경에서든지 골고다의 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 국가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골고다의 투쟁이 있을 터인데 그때가 바로 끝날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6000년 역사의 종말시대에 처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걸어오신 그 심정을 헤아려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 마음을 희생하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었던 그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원수를 사랑하신 하나의 표준을 세워 놓고 가신 예수님을 진실되게 모실 수 있는 참다운 사도들이 이 땅 위에 많이 나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예수님께서 안식할 수 있는 실체적인 터전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개인의 핍박이 있다고 해서 보따리 싸고 가정의 핍박이 있다고 해서 보따리 싸려고는 하지 않았습니까? 또는 민족과 국가의 핍박이 있다고 해서 보따리 싸지는 않았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온 세계가, 하늘땅이 반대할지라도 나는 하늘을 향하여 가겠나이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를 가진 사람이, 예수님의 신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늘은 바로 그러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러한 심정을 아셨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으며 희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들이 걷고 있는 발자취가 어디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발자취가 어디에 처해 있는가 돌이켜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걷고 계신 예수님의 안식처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시어 자신의 안식처를 찾아야 하는 동시에 또 어떠한 사명이 있었던가?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신부 되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받들어 주는 제자와 같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더라면 그러한 사람과 하나되어 하나님을 위한 신부가 되어야 할 사명이 예수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신랑된 예수님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신랑된 예수님을 찾는 것은 그 신랑의 주인되신 아버지를 찾자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을 보면,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버지의 택함받은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양의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되고 아버지의 이름까지 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14만 4천 명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인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라고 칭하여도 아버지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이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영원한 인류의 주인공이라고 축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14만 4천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행복 속에서 살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성소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을 모실 수 있는 동시에 예수님의 마음을 인계받을 수 있는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맡아 줄 수 있는 최후의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안식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성신도 안식하고 우리 인간도 안식하게 되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는 하늘의 은혜를 받고 즐겁다고 하여 자신의 안식처를 찾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항상 골고다의 길을 넘어선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으려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예수님을 안식시켜 드려야 할 천륜의 뜻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늘의 말씀이 내 몸에 임재할 수 있는 동시에 그 말씀의 실체인 예수님과 성신이 임재할 수 있으며, 말씀의 주체인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섭리의 목적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의 가치를 대신한 존재로서 하늘 앞에 서야만 비로소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위업을 맡기고 안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 기독교인들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믿고 있는 신앙자들은 그저 앉아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새로운 생명의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러한 길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말씀의 지성소, 즉 말씀의 안식처를 유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원수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청년들이 기성교회 목사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양떼를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성교회 목사 장로를 비판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깨닫고 어린양 떼를 유린해 왔으니, 이제는 그들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양떼가 양떼를 찾아가 뭉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깨닫고 오늘날 이런 모임과 이런 운동을 전개시켜 나온 것이 통일이념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생명이 약동하고 있는 청년 남녀가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오늘날 교회의 목사 장로 앞에 천륜을 입증하여 그들의 인격을 비판하고 천적인 가치 앞에 심판해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오늘날 기독교는 다시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어긋난 것은, 천상의 어떠한 존재든지, 지상의 어떠한 존재든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기성(旣成) 종교관념을 초월해야 합니다. 기성적인 회의적인 신앙관념을 밟고 올라서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관념의 입장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의 실체를 모실 수 있는 안식처가 못 되니 그것을 무자비하게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용단성을 지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떠한 조건을 갖고 자신의 야욕을 찾아 세우려는 욕망을 지녔던 본문의 그 청년 서기관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신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하늘이 가는 길이요, 천륜이 움직이는 길이라 할진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걸음을 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천륜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유업을 인계맡을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 과정의 모든 선조들을 돌이켜 보면, 노아는 120년 동안 고생했고, 야곱은 21년 동안 고생했으며, 모세도 120년 동안 유린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33년 전생애노정을 유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벌써 안식하고 즐기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강도요 절도입니다. 하늘이 먼저 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쉰다는 것은 절도요 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신 그 심정을 동정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하늘이 또한 여러분은 동정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밤을 새워 기도하고 하나님만이 나의 안식처라고 부르짖던 그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피가 끊어 오르고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형용할래야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의 애달픔을 품고 민족과 세계를 붙들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그 심정을 가슴 깊이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심정을 품고 이단자의 괴수라고 몰림받고 망할 것이라고 조소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바로 자신의 안식처로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타락한 인류 앞에는 말씀의 주체를 찾고 실체의 신부를 찾아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로 서야 할 이러한 운명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의 법도를 찾아 세우는데 있어서 그 말씀을 중심삼고 내 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빛을 반사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창조이념에 기준하여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태양을 상징했다면 우리의 몸은 땅을 상징하였으며,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상징했다는 것입니다. 즉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 것이요, 땅은 인간의 몸을 상징한 것이요, 태양은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힘이 태양을 형성하고, 그 태양을 중심삼고 지구가 돌아가고, 또 그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만물이 성장하여 하나의 질서적인 법도를 거쳐 상충이 없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하면 여러분도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여러분도 정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여러분을 떼어놓고 움직일 수 없는 심정적 관계를 유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과 이념을 찾아 세워 그 말씀의 법도를 통과할 수 있는 안식의 한 자체로 서게 될 때, 비로소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대신적 존재로서 또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있고, 땅을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만물을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아직까지 감당하지 못한 여러분으로서는 감히 입을 열어 무엇이라고 떠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와 같은 우주적인 사명이 자신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는 노정에 있어서 어느 누가 방해를 하여도 그것이 단순한 방해가 아님을 아셨습니다. 자신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도 지나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 서는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실 수 있었으며, 끝내는 그 원수에게까지도 복을 빌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나아가는 길 앞에 원수가 나타나는 것은 여러분이 올바른 길로 가야 할 터인데 곁길로 가니 그를 내세워 자신을 깨우치려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인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의 동산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사탄과의 모든 싸움에 승리하여 사탄까지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축복해 줄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송영 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탄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 이 사탄이 6000년간 인간을 유린한 원수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재판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우주를 통치하는 주관자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인간이 사탄 앞에 끌려가 참소를 당하고 고소를 당했으니 이제는 여러분이 사탄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서 고소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마음, 하나님의 법도를 통할 수 있는 내 몸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는 어떠한 잘못도 마찰도 생길 수 없습니다. 오직 여기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이념통일, 행동통일, 생활통일만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임재하시어 영원한 안식처를 찾고,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즐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존전에 나올 때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세상을 위해 수고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수고와 아버지의 슬픔과 아버지의 곤고의 노정을 헤아릴 때에 저희의 마음이 슬픔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이 곤고함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이 시간 하늘의 생명을 지닐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살아서 하늘을 찾기 위하여 모인 아들딸이오니, 자신들의 모든 죄악상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6000년 동안 싸우시면서 피의 제단을 쌓아 오신 복귀의 은사를 바라보고 부복한 모습들이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오며, 아버지의 것으로서 이 시간 전부를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개개인의 심중을 아버지께서 통찰하시어서 자기의 마음의 중심에 사무쳐 있는 요구의 목표와 소망의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더듬어 살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를 중심삼은 그 무엇이 있사올진대 섭리의 뜻 앞에 하늘의 중심을 찾아 세우지 못한 자신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기 스스로 헤아려 하늘 뜻을 거역하는 일이 없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로지 죄인임을 자인하면서 스스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모든 것을 직고하고 아버지 앞에 눈물의 회개를 할 수 있는 간절한 흠모의 심정만이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의 마음 몸에 넘쳐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마음을 중심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시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까지 이끌어 주신 아버지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나, 이들이 아버지의 무릎 앞에 엎드려 호소하는 모든 조건들이 다 충성의 조건이 아닌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있는 마음문을 다 열어 놓고 하늘 뜻에 잠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잠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소망하시는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저희들이 개개인의 모습으로 모였을지라도 모인 전체는 아버지의 무릎 앞에 하나의 산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저희의 원수요 역사적인 원수인 사탄이 저희들을 시기하여 방해할지라도 아버지의 자녀가 되겠다는 간절한 심정만을 지닐 수 있게 보호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었사오니 이 민족 위에 아버지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나선 저희들 위에 채찍을 내려 주시어서 끝날 마지막 복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늘 뜻을 이루는 중심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모든 것을 맡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는 그 무엇이 있습니까? 이 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것으로서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지방에도 외로이 아버지께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머무는 곳곳마다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크신 축복을 내려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과 잠시 생각해 보려는 말씀의 제목은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우리는 넘자’ 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앞에는 아니 넘을래야 아니 넘을 수 없는 비운의 운명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사상으로 보더라도 끝날에는 심판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신자들은 어떻게 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 것인가 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자신들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자기도 모르는 슬픔의 운명 가운데 처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심각한 문제가 자신의 앞길에, 혹은 주위에, 혹은 마음과 몸에 걸려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비운의 환경을 박차고 나서야 할 사명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고, 이것이 남은 생애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슬픔의 환경을 밟고 올라 설 수 있는 그 한 날이 여러분 앞에 있어야만 여러분은 지난날의 비운의 역사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것이요, 이것을 밟고 올라서야만이 새로운 한 날의 소망의 동산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처해 있는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지금 맞고 있는 이 비운의 고개나 환경이 비단 여러분만 맞이하는 비운의 환경이 아닙니다.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우리의 선조들도 역시 비운의 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서 여러분은 선조들이 비운의 입장을 피치 못했던 동시에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비운의 입장을 피치 못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역사성을 대신하여 혹은 창조이념을 대신하여 이런 절박한 심정을 느끼는 동시에 어느 한 날 역사를 대신하여 승리하였다는 기쁨의 날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인간사회에 있어서 행복이나 소망이나 이념이 다 두절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 과정을 거쳐온 인간이었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정신과 생활에 드리워져 있는 비운의 장막, 역사를 통하여 흘러온 비운의 장막을 어떻게 헤쳐낼 것인가 하는 책임을 느껴 오셨다는 것입니다. 도를 찾아 나온 도인들도 인간들을 위해 이 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감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수많은 종교가 미해결의 과제를 남겼다고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명을 남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남아 있는 이런 비운의 장벽을 헤치기 위해 하늘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 비운의 운명을 타개하기 위해 하늘이 동원되어 있는 동시에 저 나라의 영계가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지상의 인간들도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비운의 장벽을 밟고 올라서기 위한 역사적인 한 때를 찾아야 할 인간들이 그때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다시 그 비운의 역사를 인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단결하여서 이 모든 비운의 장벽을 밟고 올라서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밟고 올라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후손들도 역시 비운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선조들이 걸어 나오던 죽음의 길과 서러움의 길과 눈물의 길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는 천상의 애원이 걸려 있고, 인류의 애원이 사무쳐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애원 전체를 해결해야 할 장본인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날의 생활로, 혹은 일대의 생애로 이 모든 비운의 장벽을 개척하고 넘어가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을 바라보고 오던 역사적인 소망 혹은 섭리적인 소망, 혹은 천적인 소망, 여러분 한 사람을 바라보며 비운의 장벽을 넘으려던 영계의 소망이 허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여러분은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있지만 과연 하나님의 비운과 천사의 비운과 미래 인류의 비운의 심정까지 대신하여 우리를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탄과 악의 무리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책임자는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입장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대해 나오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같은 처지와 같은 환경에서 자기의 생애를 포기하면서도 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구약시대를 회고하면서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간조상이 비참한 운명을 남긴 이후 1600년 동안 수고하여 수많은 사람 가운데 비로소 찾아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노아는 어떠한 존재였습니까? 그는 당시의 수많은 인류를 대표하여 하늘의 비운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할 존재였었고, 당시의 인간들이 느끼는 비운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입장에 섰던 노아였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노아, 1600년의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노아는 인간을 위해서나 하늘을 위해서 이 비운의 장벽을 헤치려고 역사 이래 어느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비운의 자리, 밟히고, 조롱받고, 몰리고, 쫓기는 억울한 자리에서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생애를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의 생활 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가? 탕감의 원칙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인지라 노아의 앞에 1600년을 거쳐 바라던 서글픔의 비운의 사정을 대신한 방주가 나타난 것입니다. 노아가 대해야 했던 방주는 역사적인 비운을 대신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1600년의 비운의 고개를 넘어야 할 사명을 느꼈기 때문에, 책임을 맡기신 하나님과 이 책임을 짊어진 노아가 하나의 심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탕감조건으로서 맡겨 주신 방주라는 것을 노아는 알았기 때문에 120년 동안 모진 비운의 생활과 형극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받은 노아는 그날부터 있는 정성을 다해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도 아니요, 120년이라는 기나긴 기간을 참으며 배를 지었는데, 배를 지은 노아의 심정은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짓는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후손을 위해 짓는다는 심정도 아니었습니다. 또 그 당시의 악한 세상을 위해 짓는다는 심정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이 방주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를 성취하기 위해서 짓는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슬픔과 1600년 동안 거쳐 나온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슬픔을 품고 묵묵히 싸워 나온 노아의 모습을 여러분은 회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온 선조들이 슬픈 길을 갔었지만 이런 환경에 처해 있었던 노아는 슬프고 어려운 환경이 몰려오면 몰려올수록 이 어려운 환경을 밀어내고, 밟고 올라서기 위하여 내적으로 몸과 마음의 무한한 투쟁을 거쳤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싸우기를 120년 동안이나 계속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 동정해 주지 않는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의 뜻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여 절개를 지켜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노아의 심정은 그야말로 1600년 이후 어떤 선조들이 느끼지 못한 슬픔의 심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하늘이 알아주게 되었기 때문에,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한 날, 비운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심판의 역사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이처럼 크나큰 섭리의 사명을 짊어지면 짊어질수록 그는 안일하게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기쁘고 평안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몸이 고통을 당했고, 마음의 고통을 당했으며, 죄악의 환경으로부터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어느 누구 한 사람 편들어 주지 않는 어려운 고개를 다 넘고 난 후에 하늘이 편들어 줄 수 있었으며, 120년의 핍박과 서러움과 말할 수 없는 비운의 운명을 견디고 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은 친구로서 노아의 위로자로서 노아의 비운을 해원해 주는 책임자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의 과정에서는 내적 생활이나 외적 생활이든지 몸둘래야 몸둘 수 없는 이런 비운의 환경에 몸부림치면서 무자비한 투쟁을 해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됩니다. 내적인 비운의 장벽이 있는가 하면 외적인 비운의 장벽도 있다는 것을 노아 자신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뜻은 외적인 방주를 지음으로써 다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주를 짓고 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의 행사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복귀된 동산에 새로운 가정을 건설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방주로서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외적인 비운의 고개를 넘고 난 후에는 내적인 비운의 고개를 남아 있었다는 것을 노아 자신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그날의 실수로 인해 노아가정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의 뜻을 인계받아 400년 후에 믿음의 조상으로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도 하늘땅의 비운의 장벽을 홀로 넘어야 할 사명을 짊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역시 노아가 걸어간 길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정들었던 고향 산천을 다 버리고 나선 이후부터, 즉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선 이후부터는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비운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후, 혹은 애급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이후, 롯을 찾아가 만물복귀의 조건을 찾아 세운 그때까지의 생활이라는 것은 그때까지 하늘을 찾아 나가던 인간들이 느끼지 못했던 슬픔의 심정을 홀로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친척도 없었습니다. 동지도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체의 복귀의 역사를 책임져야 할 입장에서 인류의 전체적인 비운의 심정을 아브라함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비운의 고개가 닥칠지라도, 어떤 고난이 닥칠지라도, 어떤 슬픔이 올지라도,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를지라도 남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품고 모든 것을 이겨 나가던 아브라함의 비운의 생애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제단을 꾸며 놓고 3대 제물을 드릴 때까지의 수고는 컸지만 제물을 중심삼은 내적 서러움이 아브라함에게 부딪칠 줄은 아브라함 자신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입장을 다시 회고해봐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환경적인 비운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기가 지금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역사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고, 시대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으며, 또는 미래 후손들의 사명과 천상의 사명까지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외적인 비운의 고개를 넘음으로써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당대의 비운은 물론 미래의 비운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영원한 인류 역사에 하나의 복귀의 기준점을 세워야 할 아브라함이었는데, 그만 그 일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내적인 비운의 생활을 밟고 올라가 이삭을 헌제하는 자리까지 나갔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내적인 비운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역사적인 비운을 책임졌던 아브라함이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그때까지의 인간들이 느끼지 못하던 비운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 앞에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하고 맹세하였던가? 그는 자나깨나, 눈이 떠져 있는 어느 한 순간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자기가 제물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대해 슬퍼했고, 하늘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비운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을 두고 볼 때에도 아브라함의 터전을 계승하여 하늘의 축복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명을 받은 그날부터 야곱은 비운의 생활을 했습니다. 하란에 있는 라반의 집에서 2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비운의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에서를 굴복시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가는 길에는 늘 하나의 슬픈 조건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걸어간 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 이후의 400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진 모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대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 바로궁중생활 40년이나, 뜻을 실천하는 단계에 처하여 있던 미디안 광야생활 40년이나, 애급에서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하던 광야노정 40년 기간은 모두 말할 수 없는 비운의 기간 이었습니다.
또 홀로 민족이 모르는 비운의 심정을 품고,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하늘 앞에 담판짓는 일도 있었습니다. 60만 대중을 광야에 내버려두고 홀로 하나님의 뜻 하나를 위하여 자기의 80여 생애의 모든 것도 잊어버리고, 그때 당하고 있던 슬픔의 환경도 잊어버리고 시내산으로 향하던 모세의 슬픈 심정을 여러분은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가 제물의 시간으로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잊어버리면서 몸 마음 다 내어 놓고 몸부림치며 하늘 앞에 호소하고 간청하던 모세의 비장한 심정을 안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헤아려 보게 될 때, 노아로부터 지금까지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온 우리의 믿음을 지녔던 조상들이 슬픔의 생활과 비운의 생애노정을 호소하는 그들의 심정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상에 있는 선지선열들은 자기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싸우다가 남긴 비운과 원한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비운의 운명을 책임지지 않으면 그들이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민족 전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평했고, 광야에 주저앉으려고 했습니다. 이럴 때 모세가 한 생명을 들어 전민족의 생명을 구원하는 산 제물로 삼으려고 몸부림친 것을 그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친구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만이 아버지로서 그를 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40일간 먹을 것을 잊어버리면서도 다시는 아버지께서 슬픔과 비운의 심정을 갖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책임감을 느껴, 있는 정성을 다해 호소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부활시킬 수 있는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가운데 배후에서 슬픔의 제물이 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알았던들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는 일은 면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라도 그들이 모세의 십계명을 받들고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자기들의 몸은 제물될지라도 굽히지 않고 나가겠다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도 외적인 석판은 받았지만 자기 일신을 통하여 후손들의 내적인 비운까지 해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그랬고, 아브라함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에 나타나는 생활적인 환경이 비운적인 것이었지만 자기를 통하여 후손들의 내적인 비운까지 감당해야 된다는 책임은 모세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반석 2타로 말미암아 바로궁중으로부터 하나님의 협조에 의해 인도해 나왔던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광야에서 쓰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쓰러진 또 하나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의 심정을 몰라준 것입니다. 모세의 절개를 그들이 인계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가 옛날 노아가 방주를 짓던 자리요,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던 자리요, 야곱이 21년 동안 양치던 자리이며, 모세가 120년간 수고하던 자리요, 40일 금식하던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의 동산을 약속받고 환희의 영광을 돌리면서 바로 궁중을 박차고 나서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심정을 망각하고 나서게 될 때, 그 기쁨은 간 데 없고 원수를 향한 적개심이 변하여 민족을 향한 적개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하늘은 그들을 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신도들이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를 농락하고 우리의 갈 길을 농락하는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워야 되겠다는 마음, 사탄을 향한 적개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세력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자기편끼리의 원망이나 적개심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이나 교단이 있다면 틀림없이 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민족이 이런 자리에 설까 염려하면서 기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민족과 세계를 지도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있다 할진 대는, 그는 때가 되고 환경이 허락하면 민족의 수많은 원수들을 일시에 전멸시킬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자신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사람이 많은 민족은 망하지만, 민족의 원수를 대해 싸워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몸 마음을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하여 있는 여러분 자신들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가? 여러분이 모든 선조들을 대신하여 나섰다 할진대는,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을 거쳐 야곱과 모세, 예수님 등 모든 선조들이 원수들과 싸우며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야 하고, 고생하며 사명을 감당하여 왔던 것을 여러분이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여러분을 앞질러 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모세도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엘리야의 외로움을 느끼며 싸워 나갔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는 마음, 그리고 민족의 원수를 갚게 되는 한 날을 고대하던 간절한 심정이 그의 마음 몸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쓰러지고 또 쓰러질지라도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사명을 계속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산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하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뜻을 위한 삶이었고 민족을 위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하시기 6개월 전에 태어나 뜻을 위해 싸워 나오던 세례 요한도 그가 뜻을 대해 나타나게 될 때 그의 생활 환경은 비참했던 것입니다. 그도 비운의 환경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예고해 왔던 메시아 한 분을 위해 광야에서 30여년 동안 준비했던 그의 생애야말로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생활이었습니다. 오직 그만이 아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이런 심정을 품고 30여년간 피어린 슬픔의 생활을 거쳤지만 예수님이 자기보다 더 내적인 비운에 사무쳐 있는 스승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태나 요한도 역시 비운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4000년 역사를 대표하고 천상의 비운이나 지상의 비운이나 온 인류의 비운을 대신하여 역사상 어느 누구도 느끼지 못하던 최고의 비참한 심정을 느끼면서 이 비운의 역사가 있게 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한 존재가 이 땅에 나타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존재를 하늘이 내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4000년 복귀역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최고의 비참한 심정을 느끼시면서 이 비운의 역사가 있게 했던 사탄과 대결하여 승리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예수님 자신은 요셉가정에서 30년의 사생애 기간 동안 말할 수 없는 비운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것은 민족을 품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해서 나타내기 위함이었으며, 하나님을 대신해서 교단과 종족까지 품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가정과 종족, 교단과 민족을 품으시고 싶은 심정을 지니신 예수님이었지만 예수님은 민족으로부터 핍박당했고, 교단으로부터 조롱당했으며, 종족으로부터 몰림을 당했고, 끝내는 열두 제자로부터 배반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면 대성통곡해야 할 슬픈 일이요, 인간들에게 저주를 돌릴 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원수들에 대한 적개심을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의 가는 길이 막힌 것을 아신 예수님은 어느 누가 역사적인 비운의 심정을 인계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위로해 드릴 것인가를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따르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은 이스라엘의 복을 인계해줄 줄 알았고 유대교단의 축복을 성취시켜줄 줄 알았으며, 자기들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천국을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더라 이겁니다.
선조들이 걸어온 공식적인 길을 거쳐가야 할 입장에 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해야 할 사명이 크면 클수록, 혹은 이념이 높으면 높을수록, 책임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당시에는 그 민족이 당신을 반역하지만 앞으로 자신의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세계적인 원수들이 굴복해 들어올 것을 아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민족적인 원수의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밟고 올라가 세계적인 원수를 굴복시킬 것을 생각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요셉가정에서의 30년 사생애라든가 3년 공생애에 관한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은 역사적인 비운을 대신한 분이요 천적인 비운을 대신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줄 때에는 자신의 메시아요 민족을 구해 주는 구세주로 믿었는데, 정작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는 다 버리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하늘을 대한 예수님의 내적인 심정, 즉 하나님에 대해 사무친 심정을 지니신 분이요 전체의 섭리역사를 책임지고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의 사정을 깨달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또 먼저 따르던 무리들을 따라 민족 전체가 예수님의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4000년 복귀역사를 영광의 한 페이지로 장식했어야 할 예수님의 복음의 역사는 피의 제단을 통한 눈물의 역사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날까지 계속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아시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염려해서 드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염려하고 후대의 수많은 인류를 염려해서 드린 기도였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없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아는 것이 없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낙망할 일이 있다면 역사 과정을 거쳐 싸워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입니다. 또 선지선열들이 피의 제단을 쌓아 오면서 수고한 그 심정을 느끼지 못한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참친구가 되는 것을 시기하며 유혹하던 사탄 대해 비장한 각오와 사무치는 적개심을 갖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나온 역사 과정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서야 가정적인, 혹은 민족적인 비운의 고개를 넘어갔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비운의 장벽을 넘어야 할 우리들은 노아가정의 실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세례 요한의 실수를 반복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인간 타락 이후 6000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의 전체적인 슬픈 심정을 느낀 사람이 없다 할진대, 여러분은 ‘아버지여! 나를 세워 노아와 아브라함과 야곱과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전체적인 아버지의 심정, 즉 타락하기 전 아담을 사랑하셨던 심정, 또 타락 이후 인간들을 대하시며 나타내지 못하셨던 사무친 원한의 심정까지 내 마음으로 느껴 역사적이고도 우주적인 제물이 되겠나이다.’ 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이후 지금까지 채찍을 들 수 없는 서글픈 자리에 계셨던 것을 누가 알아드렸던가?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지 공분 공의의 하나님이란 것을 인간들은 몰랐었습니다. 과정에서는 사랑으로 대해 주시지만 최후에는 심판하고 때려야 할 입장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분의 심정도 갖고 계신 공의의 하나님이란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가나안 7족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복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끝날의 성도로 불림받은 여러분, 남다르게 뜻을 따라나선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명제를 걸어 놓고 여러분을 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하는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날에 처하여 있는 우리는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동시에 그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원한을 품고 계신 아버지를 해원해 드리기 위해 싸워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참아들의 입장에서 이런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 오시는 분이 왈 재림주인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노아 때에는 방주를 중심삼고 쳤고, 아브라함 때에는 제단을 중심삼고 쳤으며,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바로를 쳤으며,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탄세계를 치려다가 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판이란 명사를 걸어 놓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앞에 남아 있는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어떻게 넘겠습니까? 이것은 여러분 개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천국문은 억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이 비운의 고개를 넘어야 하고 이 비운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맺혀진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가나안을 향했던 이스라엘의 소망을 갖고 싸우는 용사들이 되어야만 이 고개를 다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 의해 여러분의 생애노정을 가만히 헤아려 본 다면 앞으로의 종말시대에는 여러분이 넘어야 할 비운의 고개가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개인적인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문을 통과한 다음에는 가정적인 문, 그리고 국가, 세계적인 문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어떠한 사명을 맡고 있는가? 여러분은 옛날 선조들의 비운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지 않으면 시대적인 사명을 맡아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혹은 세계적인 사명을 맡아야 할 입장에 있지 않으면 영원한 섭리의 뜻을 책임진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무엇을 지향해 나왔는가? 세계역사는 천적인 메시아를 향해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래서 비운의 역사는 이제 지나갈 것입니다. 신앙적인 시대도 지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사명을 갖고 세계적인 비운을 해결하러 오시는 메시아가 온 누리에 스며있는 비운을 해결할 때까지 여러분은 용기를 갖고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복귀섭리의 종말기에 처한 여러분 가운데는 역사적으로 내려온 모든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하는 이때에 있어서 한 때의 운을 맡은 사람도 있고, 시대의 운을 대신한 사람도 있으며, 세계의 운을 대신한 사명자와 천운을 대신한 사명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규합시킬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도인들과 종교인들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또 실제 이 사명을 완결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우주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인간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나왔는가? 지금까지 인간들은 부모와 부부와 자녀의 사랑을 목표로 하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무슨 도니 무슨 주의니 하며 역사와 시대는 변천해 왔지만, 부모와 부부와 자녀의 도리와 법도는 한 번도 유린당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끝날에 처한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개인적인 정을 넘어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도를 찾아가는 노정에 있었던 이제까지의 도인들은 처음부터 개인적인 정을 끊어 버리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에 있어서의 싸움인 것입니다.
인간의 정적인 문제가 역사적인 신앙의 목표였었지만 이것으로 천륜의 종적인 이념과는 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000년 인류역사가 이 하나를 세우기 위해 나왔지만 이것으로서는 우주적인 문제가 전부 해결되지 않으므로 천적인 생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후 이제 천운의 시대에 돌입할 그때에 있어서 세워질 수 있는 참부모와 참자녀와 참부부는 어떤 사람들일 것인가? 그런 사람들은 인간의 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우주적인 고난을 체휼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낀 사람들일 것입니다.
6000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은 인간의 종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횡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종교를 지향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종말시대에 있어서 부딪치는 이러한 고개와 모든 장벽들을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시면서 인간들을 대해 모든 것을 참아 나오신 참부모이신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같은 신랑 신부, 즉 천적인 정(사랑)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가 최후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중심종교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었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 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인류를 향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 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런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비운의 장벽을 넘어가기를 바라셨는데, 이런 일을 감당하는 조상의 입장에 있었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2000년 동안 신랑의 비운의 심정을 품고 오신 예수님의 심정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품었던 비운의 심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고 예수님 앞에 한 형제자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면 사탄이 여러분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공격목표인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주의나 이념, 새로운 종교, 새로운 중심인물이 나와 이것을 당해낸다면 사탄의 공격까지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몰아내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다시 혁명과 변환이 없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영원한 이념이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당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을 건설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이 먼저 천국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천국인이 되려면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와 심정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땅 위에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고, 주님과 선조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사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동원되어 역사적인 비운의 장벽을 넘으려 하고 있는데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이 일을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적인 최후의 비운의 장벽을 박차고 나설 수 있으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비운의 심정과 역사적인 비운의 심정과 현실에 남아 있는 비운의 심정과 미래에 사무칠 비운의 심정을 알아서 우리를 가로막는 참부모의 원수, 참자녀의 원수, 참신랑 신부의 원수에 대해 적개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적개심에 불타는 아들딸이 아니면 최후의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명, 시대적인 사명, 미래의 뜻을 세워야 할 사명을 앞에 놓고 있는 여러분은 현재 어떤 시대에 서 있느냐? 여러분은 때에 대한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천주주의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불원간 아무나 갖지 못하는 하늘 대한 심정과 사탄 대한 적개심을 가진 분이 나와 이 세계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때 그분을 모시고 협력해야 할 사명이 기독교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사는 것도 아버지 뜻을 위해 살고, 생애노정을 걸어가는 것도 아버지의 뜻을 위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선조들이 걸어간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에 나왔던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몰리고 고난당했고, 예수님이 민족과 교회로부터 배척당하였고 가정으로부터 불신당하였는데, 여러분도 이런 슬프고 억울한 자리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런 억울한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역사적으로 고난당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고 주의 서러움이 내 서러움이요 선조들의 고통이 내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천년 만년 그 뜻을 위해 변치 않고 단결하여 사탄 대한 적개심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청년 남녀를 하늘은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장로들에게 뜻을 다 맡길 수 없습니다. 그들이 책임 못하면 집사들, 집사들이 못하면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교단과 민족을 살릴 수 있다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적인 비운에 사무친 진실한 청년들을 하늘은 찾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이런 사명을 맡겼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원한의 심정을 느끼고, 아버지의 슬픔을 내 몸에 품고, 원수를 향해 진격할 수 있는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과 이념을 통일시켜야 하겠습니다. 하늘의 서러움과 예수의 서러움과 선조들의 서러움과 후손들의 서러움을 해원하기 위해 싸워야겠습니다.
이제 비운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자신의 전부를 바치고, 자신이 천대받고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예수님을 대신하여 민족과 세계 앞에 제물 되겠다는 각오를 하면서 스스로 손을 들어 하늘 앞에 맹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아버님! 아버님의 뜻을 알고 모인 이 아들딸들의 몸 마음 전체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복귀의 싸움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길을 외면하는 모습들 되지 말고 아버지로부터 명령받은 것을 깊이 간직하여 그대로 움직여 나가는 모습들로 이끌어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저희 마음의 깊은 심령에 아버지의 본성을 채워 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본성이 그리워질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찾아 헤매신 6000년의 아버지의 심정을 이 시간 깨달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를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인 것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곤고도 참으시며 싸워 오신 아버지이신 것을 알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땅 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우주적인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무리는 없고,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 할 수 있는 자들도 없사옵니다.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을 부르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시고, 선지자들의 심정과 만물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신 아버지 앞에 황공한 마음을 갖고 엎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신 바의 은사가 채찍인 것을 알고 있사옵고, 아버지를 흠모하는 마음도 커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이 크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아버지의 서러움을 두려워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스스로 자기의 모든 잘못을 자인하고 스스로 자기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여 스스로 자기의 모든 것을 공인하여 아버님만을 소유할 수 있고, 아버님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아버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성의를 갖추게 축복하여 주옵시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몸 마음이 아버지와 하나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저희들이 쌓는 제단이 천지의 뭇 생명들을 대신한 성별된 제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과 하늘의 원한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끼오니 저희의 마음 몸이 특별히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제물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말씀을 저희들 앞에 나타내 주시옵고, 이 시간 주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고 하나되게 허락해 주시어서 아버지의 실체를 느끼고, 불신의 무리를 치기 위해 아버지 앞에 실체로 드려진 제물이라는 것을 느끼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모여 있는 아들딸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시옵고,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과 잠깐 동안 생각해 보려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 입니다. 본문 가운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니라.”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가 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으로 완성한 사람,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과 심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하나님의 실체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4000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신 역사적인 섭리노정을 대신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성전인 동시에, 4000년 동안 섭리하셨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서 실체적인 산 가슴을 갖고 나타나신 분이었다는 것을 오늘 우리들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었고, 하나님의 사정을 느낄 줄 아는 예수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뛰는 심장은 하늘을 동맥삼고 인간들을 정맥삼아 하늘이 동하면 예수가 동하고 인간이 정하면 예수가 정하는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었고, 그것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는데,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심정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몸을 대신한 예수님의 외적 심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어떠했느냐 하면, 30년의 준비기간에 남이 모르는 쓸쓸함을 느낀 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런 쓸쓸함을 느꼈던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이념을 이루어 영광을 누리시려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조만물은 주인을 잃어버린 입장에 서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쓸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예수님과 같이 피조세계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한 세계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0년 준비기간을 거치신 예수님은 그 다음에 어떤 생활을 하셨던가? 40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택해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뜻을 받들고 나타나 새로운 복음을 전하게 될 때, 그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사명감에 벅찼을 것입니다. 30년 동안의 슬픔의 생애를 청산하고 하늘의 서러움과 하늘의 슬픔을 가로막아 잃어버린 에덴의 주인공을 다시 회복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진 예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뛰는 심장을 갖고 나타났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택함받은 선민 앞에 나타나 하나님 대신 새로운 말씀을 전하게 될 때, 뜻을 따라나오던 이스라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이념의 전체를 대신한 분으로 자기들의 소망의 실체로서 자기들의 영광의 자체로 모셔 드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벅찬 가슴을 갖고 나타난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대신하여 세웠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워진 이스라엘 선민이 예수님 앞에 뜻을 대하여 나타나지 못하게 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서러워하시던 심정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 아야 되겠습니다.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무한히 슬프셨을 것입니다. 분개심도 컸을 것입니다. 하늘 앞에 호소하고 저주하며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심정을 다 떨쳐 버리고, 뛰는 가슴을, 뛰는 심장을 억눌러 가면서 옛날에 에덴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이 참으시던 그 심정을 생각하시며 참으셨고, 서러운 심정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소망을 두시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단을 쌓아 놓아야 할 세례 요한이나 아브라함 이후 40여대 동안 선민의 혈족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도되어 온 요셉가정도 사라지고, 뜻을 받들어 자기를 잉태하고, 낳은 후에 30년 동안 길러 오던 마리아와 형제들과 종족들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던 예수의 심정, 하늘의 뜻을 붙들고 외로운 신세로써 싸워 나가야 했던 예수의 뛰는 심장을 여러분은 이 시간 느껴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뛰는 심장 속에 하나님의 수고가 컸던 것을 알면 알수록 예수의 안타까움과 그 분개심은 컸을 것이고, 택한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한 원한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참으시며 말없이 집을 나서던 예수의 심장이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하겠고, 오늘날 뛰고 있는 여러분의 심장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을 더듬어 살필 때가 바로 이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때는 지나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뛰는 심장의 맥박이 오늘날 여러분의 심장과 혈관, 동맥과 정맥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적인 심장의 맥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2000년 동안 고대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6000년 동안이나 기다려 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발 둘 곳이 없는 사정에 처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뒤에 두고, 하늘을 신봉한다는 유대교를 뒤에 두고, 30여 생애를 걸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천신만고 수고를 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도 뒤에 두고, 택함받은 아브라함의 혈족으로 내려오던 요셉가정도 뒤에 두고, 하늘을 등지고 가정을 등지고 교단을 등지고 돌아서 광야로 나가셨던 예수의 뛰는 심장은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돌아서서 가시는 그 발걸음에 원한이 있었다면 하늘을 대신하여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민족을 원망하고, 그 원망에 사무친 심정이 분풀이를 한다면 저주의 불길을 내려 달라고 심판의 호소를 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민족의 갈 길을 염려했고, 배반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을 염려하고 그들을 다시 품기 위하여 광야를 향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외로운 심정을 여러분은 느껴야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모든 운명을 청산하고, 자기의 사명 전체를 위한 준비와 시대적이고 영원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세상만사를 다 포기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황무지인 광야를 향해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더듬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을 뒤에 두고 광야에 나가 40일간 금식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광야에 나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40일간 외로이 헤매게 된 것을 생각하면 분함이 사무칠 수 있었으나 4000년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그래도 이 민족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을 느끼신 예수님은 이들에게 제2의 생의 기대를 조성해 주기 위하여 광야에서 먹을 것을 먹지 않고 40일간 하나님 앞에 민족적인 제물을 드렸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금식해 보아서 알겠지만 예수님은 40일 금식기간 중에 먹을 것을 먹지 못한 연고로 몸이 마를 대로 말랐다는 것입니다. 40일간 금식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조여들었고 심장은 쇠하여 들어갔지만 40일 금식 고개를 넘은 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먹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죽어 들어가는 예수의 심장소리를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몸이었지만 천륜의 새로운 이념이 막혀 버린 것을 터치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서 끓어오르는 마음을 품고 계셨던 예수님, 하나님의 외로운 심정을 생각하며 사무치는 마음을 품고 계셨던 예수님에게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사탄이 나타나 시험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에 처하면서도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느끼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이 나타나 예수님의 마음과 몸까지 파괴시키기 위해 3대 시험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선조들을 대신하여 새로이 결심하고 나선 예수님의 뛰는 심장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결국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찾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또 자신을 반대하고 몰아내던 유대교가 다시 찾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광야에 나가 하나님과 담판지은 후에 이 죄악의 도성을 복귀시키기 위한 싸움에 불타는 충성심을 갖고 결연히 나섰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예수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죽을지라도 자기 일신을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각하고 자기를 시험하던 사탄 대하여, 자기를 배척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제2의 공세를 펴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뛰는 심장을 여러분이 이 시간 다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니까 그런 사정을 참을 수 있었고, 그런 고난과 비난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니까 더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남보다 더 예민하고, 남보다 더 극한 심정에 사무치셨기 때문에 누구도 갖지 못한 비장한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던 예수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도성을 다시 찾기 위해 나섰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슬픔의 생활과 헐벗는 생활과 굶주리는 생활을 다 거쳐 나온 입장에 섰을지라도 땅 위에서는 예수님의 사정에 동참하는 동지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나의 친구요, 하나님만이 나의 아버지라는 심정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민족이 배반하고 교단이 비난하고, 친척과 혈족이 외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없어질지라도 오직 예수님의 안위와, 그의 소망과 그의 심정을 채워 주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과연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시다는 사실, 하나님은 내 것이라는 이 하나의 사실이었습니다. 이 하나의 사실이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다시 하늘을 염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일으키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만인류에게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광야에 나가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길러 주고 무한한 소망의 하나님으로서 기쁨으로 찾아오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런 벅찬 심정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 옛날 상대적인 관계로 계시면서 언제나 나를 키워 주고 나를 품어 주고, 나를 위로해 주던 하나님의 어려운 사정에 처하면서 하나님의 어려운 사정과 슬픈 심정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뜻을 ‘내가 감당하겠나이다.’ 라고 호소하며 그런 심정을 갖고 나서게 될 때 그날부터는 상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직접적인 하나님, 자신과 같이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로써 원수들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40일 금식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싸움의 노정을 출발한 예수님, 민족을 대신하여 4000년의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물리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은, 예수 일신만으로서 나선 것이 아니고, 4000년 동안 그리던 모습,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 자신의 말씀이 아니었고, 예수님의 행동도 예수님 자신만의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하신 행동도 하나님의 행동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속에 살아 계시어서 자신의 심장을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이스라엘 동리에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민족이 반대할 때에는 외로운 심정을 갖고 광야에 나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몰려오는 시련과 핍박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부딪쳐 승부를 짓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갖고 나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찾아 드리기 위해 나선 예수님, 몸이 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후퇴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에 불타면 불탈수록 더욱 뛰는 심장을 억누를 수 없었던 예수님을 어느 누가 알아드렸던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예수님의 뛰는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로 사도들을 택해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하게 될 때에도, 4천년 동안 아담을 잃어버리고 서러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누구였느냐? 하나님의 실체 성전이 되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직접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실체 성전이 되게 인도하겠다는 마음이 뼈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도 사탄의 종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반대하는 그들을 보시며 서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어떠했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을 살펴보게 될 때에,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사시지 않았고,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셨으며, 다음에는 제자들과 인류를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뛰는 심장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예수님의 서러움이요, 이스라엘 민족의 서러움이 예수님의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사도들은 셋이 아닌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민족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심정에 사무치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자기의 친자식 이상으로 소중히 여겨 주었고,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심정을 갖고 참사랑의 생활을 하셨던 노정이었습니다. 죄악에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였고, 민족과 사도들의 심정을 대신하였던 예수님인 것을 안 사람이 없었고, 예수님의 사정을 안 사람이 땅 위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애달픈 하늘의 심정을 품고 싸워 나가려 했던 예수님, 또다시 민족이 반대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떨어지고, 최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해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하신 예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따르고 있던 세 제자들은 예수님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각자 따로따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통해서 가야 하고,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호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는 심정으로 호소했고, 제자들을 염려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음을 몰랐고, 피곤에 지쳐 잠들었던 것입니다.
생사의 결판을 짓는 마당,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던 예수님의 심정은 하늘과 땅이 녹아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3년 동안 친아들 딸같이 길러 준 사랑하는 세 제자는 예수의 심정을 모르고 졸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같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세 번씩이나 나와 제자들을 깨우시던 예수님의 딱한 심정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느꼈을 것인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며 느끼시던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 앞에 제2민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여 다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쳤지만 자신을 절대로 믿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게 될 때,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느끼신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님이 30년 사생애기간과 3년 공생애기간에 느끼셨던 서러움, 나아가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 애달픈 심정을 느끼고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낀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3년 공생애노정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던 제자들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걸어가신 일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목적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3년의 생애를 걷고 보니 남아진 것은 홀로였습니다. 그리고 40일 금식을 끝마칠 때에도 안타까운 심정과 서러운 사정에 사무쳐 있는 예수님에게 원수 사탄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뛰는 심장은 어떠했던가? 인간 세상을 대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고,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고, 거처를 정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에 처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원수 사탄이 나타나 시험하게 되니 예수의 심정을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유대민족과 인류를 염려하시기에 초조했던 그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탕감의 노정을 다시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을 대신 할 수 있고, 대신 싸워 드릴 수 있으며, 예수님의 뛰는 심장을 대신하여 염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이런 참아들딸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조건을 전부 다 끊고 나선 광야의 노정에서 예수님은 사탄과 싸워 승리하셨지만, 예수님에게는 실체 제물을 드려야 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으나,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과 교단을 잃어버리시고 혈혈단신 불쌍하게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사정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이 사정에서 원망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요, 저주하여야 할 12사도였으나, 채찍으로 몰아내고, 고함치고 아우성치는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보며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필사적으로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시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시기에 인정적인 감정이 있다면 억울했을 것입니다. 저주와 원망이 사무치고 통분한 마음이 가슴에 꽉찼을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이 세상을 다시 구원하시려는 뜻이 남아 있는 것을 아시고 예수는 저주의 입을 막고 서러운 심정을 돌이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을 대신하여 이 민족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하면, 후대의 인간들을 구원하는 구원섭리가 다 파괴될 것을 느끼셨기 때문에 구원의 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억울함으로써 나타내고, 하나님 대신한 자체로서 저주와 원망의 입장에 섰다면 이 세상은 희망이 다 끊어졌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 시간으로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에요.
그런 것을 아시는 예수였기 때문에, 내가 죽음의 고개를 넘고서라도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저주하고 원망해야 할 민족을 대하여, 복수해야 할 원수들을 대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2)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2구원섭리의 뜻을 인계받아 출발한 안타깝고 심각한 순간이었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제2구원의 실천자로 세우실 수 있었고, 인간들에게 부활의 은사를 내리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에 처한 예수는 원수들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과거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염려하셨고, 미래의 후대 자손들을 염려하시며 자기의 피 살이 찢어지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의 역사적인 서러움의 심정을 대신 짊어지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원한과 역사적인 구원을 위한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하늘이여! 탕감하시옵소서!’ 라고 호소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멎어져 가는 심장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만민을 위하여 애석하게도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하나의 위안의 장소도 찾지 못하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외로운 고아와 같이, 몰리는 방랑아와 같이 외로운 길을 걸었던 생활이 종국에는 갈보리 산상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서게 된 이 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 것인가! 하나님의 서러움은 하늘 땅을 뒤집어엎을 듯 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세 시간 동안 천지가 어두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도 4000년 동안 믿고 나오신 아들 예수, 4000년 동안 잃어버린 아담을 찾기 위해 후아담으로 세웠던 예수였으나 죽음의 골고다의 길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바라보시며 기막힌 심정을 품으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서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서러움보다 크고 하나님의 분함이 나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보다도 크다는 것과, 반대하는 민족이지만 다시 찾아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는 도리어 ‘내 죽음은 경하나이다.’ 하며 순종의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이런 순종과 효성의 심정에 벅차 있었던 예수님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셨지만 예수의 죽음을 위로하는 사람, 예수의 시체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셔 드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를 제멋대로 취급하던 로마 병정들은 나중에는 창을 들고 예수의 심장을 찔렀는데, 이렇게 찔림받던 예수의 심장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피가 다 뽑아진 심장이로되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잔인한 원수들 앞에 선 예수의 심장을 여러분들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원한과 서글픔이 무엇이었던가! 땅 위에 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 나오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자기의 심장과 같이 느끼고 예수님의 뜻을 대신 인계받을 자는 누구였던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지 3일만에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여 택한 제1이스라엘은 잃어버리고, 제2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한 복음 운동을 전개하여 찾은 사람들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기독신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실수를 복귀하기 위한 제2이스라엘이요, 제2의 선민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 앞에, 인류 앞에 이 하나의 소망과 구원의 뜻이 남아 있으므로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시던 이 한 뜻을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도 하나님도 섭리해 나오고 계신데, 이 소망이 누구에게 머무를 것인고! 오늘날 제2이스라엘인 여러분들에게 머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나타나야 할 이스라엘이 깨진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복귀한 이스라엘로, 예수를 반대하던 이스라엘을 예수를 환영하는 이스라엘로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 오신 예수를 배척했던 이스라엘은 깨졌으나 오늘날 제2이스라엘인 우리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해원해 드릴 수 있어야만 다시 오는 주님을 우리는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도 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의 성도들에게 바라는 최대의 요구가 무엇이겠는가!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예수님이 애달픈 심정을 품고 나오던 그 뛰는 심장의 내정을 체휼하는 아들딸입니다. 그러한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 나와야만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원한까지 풀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들은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부활의 한 날을 찾았으되, 부활한 후에도 예수는 배척하였던 제자들을 만났지만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한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만나 붙들려 할 때에도 붙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쁨의 한 날이요, 기쁨의 한 순간이었으나 역사적인 슬픔을 이어온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대신하여 예수 앞에 기쁨의 한 조건을 세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 부활한 후에 예수를 붙들던 마리아의 심정을 넘어서서 예수의 내적 심정을 통찰하고 그의 심장까지 알아서, 하나의 주인공의 자격을 갖추고 하늘과 땅을 어깨에 짊어진 승리자의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인간 세상의 사탄이라도 밟고 하늘 앞에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피가 역사를 대신하여 호소한다 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해야 할 예수께서 피의 호소의 제물을 드렸는데 그 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의 피를 흘린 것으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이 피를 거두어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산 사람의 피로서 우리 몸 마음에 지녀 그 피를 움직여 낼 수 있는 천적인 심정과 심장을 소유한 자격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자기를 배척하던 그들을 대하여 다시 한 번 용서의 마음을 품으셨던 심정을 알아야 하며, 서로 철석같이 믿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가 되어 같은 죽음과 삶의 길을 가겠다고 각오하고 나섰던 제자들이 배척하고 나설 때,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아량으로 그들을 대하여 자기가 대신 죽음의 고비를 당할지라도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용서하였던 그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배척하였던 제자들을 다 뒤에 두고 부활하여 기쁜 마음을 갖고 홀로 승천하여야 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반대했던 사도들을 찾았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역사적인 해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위로하며 기쁜 심정이 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붙들고 슬퍼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 택한 제2이스라엘적 입장에 있는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택한 이스라엘을 다시 수습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산 제물을 드려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애달픈 사정이 역사적이 원한으로 맺혀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을 동원하여 이들의 보호자가 되고, 이들의 싸움의 대표자가 되고, 이들을 대신하여 사탄 대해 싸우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심정을 체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사수하여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시던 것과 같은 사탄의 시험이나 가이사의 심판이나 로마 병정의 창질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는 하나의 동지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과 종족과, 사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다 어디 갔던고!
오늘날 우리들은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교단을 밟고 올라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단결해야 될 때는 왔습니다. 말씀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소유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구약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소유하여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실체 통과의 문이었는데도 이 문을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꺾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나아가 신·구약 말씀으로 통과할 시대가 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실체 통과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덴의 원한이 무엇이었던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 물론 원한의 조건이 되었지만 실체를 잃어버린 것이 더 큰 원한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말씀을 딛고 올라가 실체 통과의 문을 개방시킬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이 없으니 오늘날 우리들이 이 문의 돌이 되어 이 문을 만들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을 중요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즉 수억의 사람이 읽고 있는 성경 말씀보다도 이 말씀을 통과한 한 아들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어떤 사람인가? 말씀을 머리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심장과 몸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머리로 아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말씀을 가슴으로 알고 몸으로 알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 혼자서도 사탄 대해서 싸울 수 있는 실체 제물을 요구하는 때가 오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가 30여 생애를 거치신 것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풀기 위해 구약의 말씀을 박차 버리더라도 인간 한 자체가 말씀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어, 어느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이 하나의 문을 이 땅 위에 만들어 놓기 위해 수고한 생애였고, 또 이런 자격을 갖춘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습니다.
이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돌아가셔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되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원한의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원한을 누가 해원해 줄 것인고?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 예수가 몸부림치시며 수고하셨지만 이 일을 성취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6000년 역사의 종말에 처한 오늘, 그 섭리를 인계받아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하나님과 예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이 땅 위의 신부는 누구일 것인가? 그 신부는 신·구약을 알기만 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신학자도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30여년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숨은 슬픔을 품고 남모르는 배척을 받았습니다. 40일 동안 먹지도 않고 사탄과 싸운 예수님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맹세하고도 배반한 제자들을 다시 품기 위해 나섰습니다. 사람 같으면 꿈에도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로되 예수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을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이시거늘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대신해야 할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의 기독신자는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교단을 조성해 나오던 사두개교인과 바리새교인들이 전부 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았는데, 오늘날 여러분은 그런 교단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말씀을 대신하여 그런 교단을 밟고 올라선 실체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심장과 심장이 연한 예수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된 산 제물의 실체가 이 민족을 대신한 교단 위에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민족과 인류는 잠자고 있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심장의 움직임에 의해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나왔고, 하늘의 심정과 예수의 피 살을 통하여 역사가 흘러 나왔는데 오늘날 이제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여러분 자신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심정과 뛰는 심장을 소유하는 상대자가 되어야만 제3이스라엘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그런 심정을 품고 제물되셨고 제2이스라엘을 만들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각오를 가져야만 제3이스라엘의 선조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왈 지상천국, 즉 에덴동산의 본연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은사의 실체를 갖추어 역사적인 모든 고통을 거치고, 시대적인 원한을 벗어나 가지고 하늘을 찾아 나설 수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딸로 찾아 세워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가 하나님의 4000년 역사의 심정을 대신하여 제물의 실체로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6000년 동안 복귀섭리하신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과거 6000년 역사를 회고하여 서러워하고, 불신했던 이스라엘을 보고 서러워하고, 미래에 제3이스라엘의 안식의 동산을 세워야 할 사명을 품고 염려하여, 누가 가든 아니 가든‘나 홀로 이 책임을 지겠나이다.’ 하고 하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발자취를 사수할 수 있는, 후계자의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제 신·구약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구약 말씀보다도 예수의 심정이 무엇이고, 예수의 심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즉 예수의 내적인 심정을 알고 외적인 심장의 동함을 알아서 하늘이 동하면 여러분도 동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또 하늘의 동과 정에 같이 움직이고, 천륜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제물로 여러분을 바쳐 드려야만 예수는 이 땅 위에서 한을 푸실 것이요, 하나님도 이 땅 위에서 한을 푸실 수 있고, 만민 만상 모두가 하나님 앞에 그를 따라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연히 이런 입장에 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역사적인 운명을 대신하여 필연적인 노정을 제단을 인계받았다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자신들이 이제 예수가 골고다의 산정에서 쌓고 넘어가던 서러움의 장벽을 밟고 올라서서 겟세마네 동산으로부터 골고다의 산정까지 올라가 열두 사도를 한데 묶은 산 제물로서 승리의 제단을 쌓아, 사탄을 굴복시켜 ‘아버지여 홀로 영광 받으시소!’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들이 되어야만 주 앞에 신부의 자격을 갖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님! 아버지의 존전에 부복한 이 아들딸들, 아버님이 바라시는 성별된 몸 마음을 갖출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운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같이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몸을 가진 자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마음으로 몸으로 내 한 자체를 아버지께 바쳐 드릴 수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이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저희의 몸에까지 전달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이 지금 간절하실진대 저희들도 간절하게 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을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찾아 주시기 위해 6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오시면서 수고의 발걸음을 옮겨 오신 아버지를 붙들고 울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해 주시고, 모든 헛된 죄악을 벗어 버리게 해 주시며, 아버지의 가슴에 안길 수 있는 마음, 간절한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게 저희의 몸 마음에 충만한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없사옵고,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자는 이 땅에 없사온데, 아버지, 당신을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만민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특별히 이 한민족, 삼천만 백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지시여! 당신의 긍휼의 손길이 이 민족에게 있사올진대 이 민족이 가진 것 없고, 자랑할 것 없고, 아버님께 드릴 것 없사오나 어려운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의 사정을 염려하여 몸 둘 곳을 모르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나라에 찾아오셔서 이 민족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세계 인류의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아버지의 제단을 쌓을 수 있는 자랑스런 아버지의 아들딸이 이 민족 가운데서 많이 나오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는 무한히 우리를 염려하고 계시고, 아버지를 위해 안타까워하는 자녀, 그와 같은 교단, 그와 같은 민족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찾아오셔서 안식하시고 싶은 간곡한 심정이 계실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날 저희 한 몸을 아버지께 바치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친히 아버지께 저희들에게 임재하여 주시어서 저희의 갈 길과 저희의 행할 일과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해 싸우며 갈 수 있는 길을 친히 보여 주시는 긍휼의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저희들, 아버지의 말씀을 대하고자 원하오니, 아버지, 저희들 자신의 어떤 주의 주장과 관념이 남아 있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젖어 들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흙과 물이 되게 해 주셔서, 아버지의 형상으로 빚어질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온유겸손의 제물로서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간곡히 고대할 수 있는 심정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말씀에 의해 아버지의 형상과 아버지의 성상을 닮아날 수 있는 재창조의 역사가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죽어도 한뜻을 위하여 같이 죽을 수 있으며, 살아도 한뜻을 위하여 살 수 있고, 말씀을 들어도 한뜻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이 시간 되시어서 사탄이 즐거워하는 간격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인류를 남겨 두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던 안타까운 그 사정을 체휼하면서, 역사는 지나갔으나 이제 저희들 마음으로 몸으로 선조들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들의 심정의 대상자로서 책임할 수 있게, 아버지, 이 시간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수많은 성도들이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하고 자기를 주장하면서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렸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모이는 곳곳마다 사랑의 손길을 내려 주시사 섭리의 은사를 같이 나눌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승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외로이 지방에 널려 있는 식구들이 이 한 시간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일률적인 은사와 일률적인 사랑의 손길을 그들의 몸 마음에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오로지 산 제물로서 아버지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긍휼의 은사만을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는 말씀을 중심삼고 여러분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려는 제목은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이 되자’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비전과 의견을 갖고 살고 있고, 또 어떠한 주의 주장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마음 몸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늘땅 앞에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비전과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그들의 행동이 천륜의 뜻과 천륜의 섭리와 부합되지 않으면 어느 땐가는 기어이 전복되고 마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 과정을 통해서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인간들이 최후에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자기의 주의 주장과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행동을 다 포기하고, 자기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자기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한다고 주장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기를, 오늘날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많은 사람들은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늘은 이러한 대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며 무한한 수고와 인내를 하시며 오랜 동안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땅 위의 서러움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주의가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주장할 수 있는 주의가 없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서러움이요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과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탄식과 고통과 사무쳐 있는 모든 원한을 제거하는 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주의 주장과 하나님을 대신하는 한 사람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서 섭리의 목적도 이 한 사람이요, 역사의 목적도 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느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중심삼고 온 천지 만물과 동거하면서 누리려던 창조 이념은 우리의 시조인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6일 동안 지으신 모든 존재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말씀을 통해서 실체 대상으로 나타난 후에는 무엇을 소원했을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하면 만물들도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만물들도 정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중보, 하나의 중심을 소원했을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그런 중심이 되었던들 오늘날 이 땅 위에 벌어진 혼돈된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타락 이후 섭리역사의 과정에서 바라신 것이 아니고 창조 당시부터 지금까지 바라신 소망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소망의 중심은 어떤 존재일 것인가? 그는 말씀을 대신한 존재요, 말씀의 실체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실체가 되는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의 주장을 갖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요 14:6)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인간들 앞에 무엇을 예시시킨 것인가? 이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말씀이 그대로 하나님의 심령에 돌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말씀을 잃어버린 사람도 역시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이 말씀을 인간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그 말씀과 인간들이 인연맺어져 있는 연고로 그 말씀을 변치 않는 하나의 목표, 하나의 소망으로 지금까지 바라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말씀의 실체가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이 땅 위의 실체는 어디 갔던가? 이 실체를 찾아 헤매는 노정이 하나님이 6000년 수고하신 섭리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닷새 동안에 지은 모든 만물은 말씀의 실체를 갖고 있으되, 엿샛날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있어도 말씀의 실체를 갖추고 서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의 실체를 찾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운명의 노정이요, 복귀의 노정이며, 역사적인 노정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곧 말씀)요, 생명이니” (요 14: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망하던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는가 하면, 4000년 동안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대하여 말씀하시고 싶었던 간절한 심정을 대신하는 하나의 결실존재로 나타나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하나님 대신 인간과 만물 앞에 발표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 말씀의 주인공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찾아오셨던 말씀의 실체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슴 속에 있던 말씀이 피조세계를 통해 나타나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심으로써 하나님 마음속에 있던 말씀이 예수님의 심정에 다시 옮겨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인간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희소식이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런 역사적인 말씀의 실체로 나타나 입을 열어 말씀을 발표하실 때 무엇을 느꼈을 것인가? 즉 어떤 심정이었을 것인가?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이 역사적인 섭리의 뜻을 대신한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당신의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던 말씀을 대신한다는 심정을 느꼈으며, 영원을 걸어놓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실체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 대신 재창조의 역사를 거듭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간단하게 30년의 생애를 거쳐가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 시대의 생애노정을 변명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며, 예수님의 말씀은 4000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세계를 대신할 수 있고,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의 가치를 알아드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탄식은 무엇이었던가? 말씀으로 지어진 만물이 말씀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탄식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재창조의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말씀을 전하셨으나, 그 말씀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여러분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천륜이 통하고, 또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참진리가 무엇이며, 참다운 말씀이 무엇인가?’ 라고 끊임없이 반문하면서 참진리를 개척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가 바로 진리의 개척노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심정, 즉 서러움을 대신한 말씀이 이 땅에 나타날 때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재창조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그 말씀을 땅 위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30여년간, 그리고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2000년간 수고하신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을 무엇인가? 제1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한 제2의 말씀의 실체인 예수님을 통하여 제3의 말씀의 실체, 말씀의 성전을 찾는 것이 섭리의 목적인데, 이 제3의 말씀의 실체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라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길의 목적은 무엇인가? 4000년 역사의 길의 목적은 예수의 실체였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의 목적은 인간들이 예수님과 같은 말씀의 실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골고다에서 예수님의 실체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고 하나님이 찾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뜻을 인계받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뜻을 맡길 수 있는 하나의 실체였는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된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실체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찾아 나오신 전역사의 목적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를 성전삼아 비로소 뜻을 땅에 인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알았던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운행할 수 있는 성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운행하실 일이 있으면 자신을 제외하고는 운행하실 수 없다는 것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끼신 예수였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은 자기는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찾아오신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발판이요 이 하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해 나온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대신 실체라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체인 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변할 수 없고,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자기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아무리 예수님을 밀어내려 해도 밀려 나지 않는 예수님이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한 것을 복귀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아담을 대신해 나타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재창조의 말씀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운행하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대신 걷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운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한 시대의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이고, 시대적인 하나님인 동시에 미래적인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실체 성전이신 연고로 인류가 예수님과 하나될 때에는 하나님의 전체의 섭리가 이뤄지고,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노정에서는 무엇이 앞서는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씀이 앞서는 것입니다. 말씀을 먼저 찾고 난 다음에 실체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체를 갖춘 하나님의 생명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어느 곳에 움직이느냐? 말씀을 먼저 찾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가 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은 후에 싹트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의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보여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실체를 보여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친히 보여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30여년의 생애를 거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수고해 오시며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의 심정을 닮아 나타나신 생명의 실체였습니다.
이런 말씀의 중심존재인 예수가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던가?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말씀을 대신 세우기 위해서였고, 말씀의 실체인 제2아담인 예수를 세우기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실체를 갖춘 후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들과 사랑의 인연을 맺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하고도 참된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될 수 있었으나 인간들은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말씀을 중심삼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실체인 예수님은 나타났었으나, 말씀만 남아지고 실체 예수님은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씀만 중심삼고 살아야 하는 서러운 세계에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인간들이 최후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만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체를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 대신 모실 수 있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들은 실체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는 사람을 찾아 세워 그를 통해서 이 땅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를 찾기 위해 역사는 흘러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발표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끝날에 열매 맺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재창조 과정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최후에 하신 말씀의 중심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랑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불변의 말씀의 소유자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가 다만 이 땅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니었고, 예수가 이 땅 위에 말씀을 전파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 하나님의 생명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의 동산을 성취해야 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듯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품고 오셨던 예수였던 연고로 후대의 믿는 성도들을 위해 당신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신랑이요, 인간들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을 향해 간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향해 인간들이 간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를 찾아야 할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도 잃어버렸습니다. 또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말씀과 실체를 찾아야 할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말씀만 받을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에 의지하여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의 형상을 다시 빚어 만들 수 있는 권내에 처해 있는 것이 복입니다.
말씀의 실체로 오실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이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구름 타고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천리원칙은 뒤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오늘까지 인간들은 말씀의 실체를 소망하고 나왔는데 이것이 재림이상이요, 2000년 기독교역사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려고 할 때 예수님은 붙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붙들 수 없습니다. 말씀밖에 남길 수 없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러셨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제2그리스도의 화신체가 되어서 예수의 마음과 예수가 느낀 책임감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런 심정을 대신하여 말씀을 찾고, 그 말씀에 의해 실체를 찾을 수 있는데도 좋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죽든지 살든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법도를 어겨 타락의 혈통을 받은 이후 오늘날까지 죄악 속에 살았는데, 이제 새말씀에 의해 기쁨에 넘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 인류가 영원한 생의 가치를 느끼며 살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해 이제 이 말씀을 붙들고 주장하며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일을 해야 할 때에 여러분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나중에 가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역사적인 운명의 순간에 살고 있음을 알 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4000년 섭리역사의 전체적인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사랑의 심정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생활의 중심으로 하여 살고,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었던 연고로 십자가에 돌아가셨어도 부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하나님의 생명도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실체가 하나되신 분인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을 대신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사망과 고난도 예수님을 영원히 죽일 수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부활의 권한을 이미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주의가 있고, 따라갈 수 있는 행동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요,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증거적인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예수를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의 소유자가 되었는가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지상과 천상에서 인정될 수 있는 말씀의 소유자가 되었는가 반문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신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 이것이 이루어진 말씀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이것이 세계 인류의 중대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을 찾아 나가는 성도들이 총단결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 즉 기독교의 문제요, 범종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분열과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이 세계가 분열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분열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 분쟁과 분열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세계에 분쟁과 분열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분열과 분쟁으로 혼돈되어 가는 이 세계를 수습하고 모든 주의와 사상을 통합할 수 있는 완성의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참진리가 무엇인지 찾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의 역사 과정을 보면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한 귀일점을 향해, 통일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통일의 목표는 어떤 말씀을 통해 달성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세워 놓은 그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역사가 전개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로 통일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는 새말씀이 온갖 지혜를 갖추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십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이 외로우셨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와 상징으로 예수님의 비장한 마음을 나타내신 것인데, 이 말씀의 뜻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는 안식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이 천지 만물을 맡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합할 수 있고, 약속하신 주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언제나 있을 것이나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들을 붙안고 사랑하던 말씀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이 실제로 나타나면 그 말씀을 모두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끝날에 나타난다면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그의 생명과 이념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진리를 표방하는 많은 종교의 교리, 주의가 있지만 그대로 실천해서 우리의 마음과 몸이 편하고 영원히 그 말씀에 젖어 들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주의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몸을 움직여 왔을진대, 하나님의 참말씀이 나오면 모든 주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그때까지는 약속의 말씀으로 약속의 실체를 찾고, 약속의 사랑을 찾고, 약속의 생명을 찾게 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 약속의 말씀 위에 사실의 말씀을 가하여 사실의 실체를 찾고, 사실적인 사랑을 찾고, 사실적인 생명을 찾게 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낙원에 가셔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오셔서 하셔야 할 사명을 완결하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예수님이 가실 곳은 낙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하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말씀의 주인공, 창조 이념을 대신한 생명의 실체가 나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전에는 예수님은 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탄식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나도 모르게 우리의 마음 몸에서 예수의 말씀이 나오지 못하는 것을 탄식해야 하고, 자기도 모르게 예수가 자기 몸을 움직여 행동한 것이 자기의 행동이 되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 하며, 자기도 모르게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물 흘리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안식시켜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이 한 몸을 이룬 하나의 세포가 되어야 합니다. 원래는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 당시의 세계 인류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땅까지도 하나되어야 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오른편 보좌에 앉아 계시는 줄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천주적인 사명을 갖고 오셨지만, 세계를 지도해서 땅끝까지 움직이고 천상까지 통할 수 있는 소망의 말씀을 갖고 오셨지만, 땅 위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는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지 못하셨고, 행동하고 싶은 것을 다 행동하시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안타까웠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 고을 저 고을로 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이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한 사람을 놓고 하나님이 서러워하셨고, 천사들이 서러워했으며, 만우주가 서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역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조상의 후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땅 어디에 서 있는지, 이 민족 이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들은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셔서 망해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서러워하셨던 것과 같이 서러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최후의 소원인 말씀의 실체가 되고 천륜의 심정을 통하여 전체의 역사적인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6000년 동안 섭리하셨던 하나님이시여! 나를 보시고 이곳에 주님을 보내 주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디로 재림하게 하실 것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땅을 대한 염려의 조건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한민족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없고, 남들로부터 욕을 먹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고, 우리의 몸은 하늘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60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거쳐오시며 찾으신 것은 여러분 한 개체가 아닙니다. 한민족 전체, 인류 전체를 찾으시기 위해 수고해 오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서러워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슬픔과 선조들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받들어야 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찾아가셨습니다. 즉 교회를 발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정을 찾아 나섰던 것인데 가정에서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자들을 찾아 나섰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의 터, 세계의 갈 길이 민족이 받들지 않아 끊어졌고, 민족의 갈 길이 교단이 받들지 않아 끊어졌으며, 교단의 갈 길이 가정이 받들지 않아 끊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모두가 끊어졌던 예수의 서러움을 누가 아느냐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4000년 동안 수고하셔서 아브라함의 직계 혈통으로 세웠던 요셉가정은 어디 갔던가? 요셉과 마리아는 어디 갔던가?
이스라엘 백성을 터로 하는 안식의 기대가 무너지고, 유대교를 터로 하는 안식의 기대가 무너지고, 가정을 터로 하는 안식의 기대가 무너지자 예수님은 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12제자까지도 배척하였고, 심지어는 12제자 가운데서 뽑힌 3제자까지도 배반하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예수님과 같이 몰리고, 쫓기고, 버림받고, 배척당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사정과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으로부터 꺾임을 당하고, 교단으로 부터 쫓김을 당하고, 가정으로부터 몰림을 당하고, 부모로부터 버림당하고, 제자들 앞에 배척당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선조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민족 앞에 불쌍한 무리요, 외로운 무리이지만, 민족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같이하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세계를 위해 싸우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대표하고, 뜻을 위해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렵다고 낙망하지 말고 여러분이 듣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진대 그 말씀이 같이하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움직일 것이고, 생명이 싹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말씀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사랑을 갖고, 인간 세상을 사랑해야 되겠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려야 되겠으며, 제2이스라엘의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제3이스라엘의 선조들로 남아지려면 제2이스라엘의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제2이스라엘을 불러서 가게 하셨던 길, 예수님의 제자들이 넘어가던 십자가의 길, 성도들이 걸었던 말씀의 고개를 안 넘어갈 수 없는 공동 운명길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다 발표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하나의 심정을 발판으로 하여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어떤 험한 길이 우리 앞에 가로놓이더라도 감사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즉 우리들은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3이스라엘의 선조가 되어야 할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은 최후의 말씀은 하늘의 사랑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사랑에 의거한 말씀…….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여러분은 따로 있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보이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여러분의 내적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즉 본심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번식시킬 수 있는 제2창조주의 사명을 해야 되겠고, 즉 말씀의 번식체가 되어야 하겠고, 생명의 번식체가 되어야 하겠으며, 실체의 번식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만 하나님을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제3이스라엘의 기준입니다. 이래야만 말씀을 심어 줄 수 있고, 실체를 심어 줄 수 있으며, 생명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줄 알고, 말씀을 보고 느낄 줄 아는 말씀의 실체, 생명의 실체, 6000년의 심정을 대신한 실체가 되어 제2이스라엘을 재창조시킬 수 있는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완전히 통한 아들딸이 될 수 있고, 그런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부복한 이 아들딸들, 자신들의 마음이 어두움에 있는가, 자신들의 몸이 어두움에 있는가, 스스로 살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스스로를 중심삼는 마음이나 의심하는 마음을 갖지 말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로지 저희를 찾아오시기 위해 수고하셨던 아버지의 심정과 저희의 불쌍한 몸을 품어 주시려는 내적인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 아들딸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슬픔을 느껴야 한다면 6000년 역사의 슬픔을 느끼게 해 주시고, 저희들이 곤고를 당해야 한다면 6000년의 곤고를 대신하게 하여 주시 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아버지를 배반하는 일이 없게 허락해 주시고, 저희의 몸이 사탄의 사슬에 얽매여 슬픔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였사옵고, 여기의 주인은 당신이오니, 이 시간 이들의 마음이 자기 멋대로의 마음이 되지 말게 허락해 주시고, 이들의 몸이 제멋대로의 몸이 되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오로지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의 긍휼의 심정에 사무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봉독한 말씀을 통하여 야곱이 저희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뜻 하나를 위하여 생애를 바치며 수고해 나오던 야곱의 신앙심을 저희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그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저희들의 발걸음, 저희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고, 아버지의 뜻길을 사수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아버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옵시고, 부족한 저희들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오니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 주시옵고, 합당치 못한 것이 있더라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움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이 민족 중에는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 아들딸들이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이들을 당신이 이끌어 주시어서 끝날에 허락하실 바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고, 생명의 말씀을 민족 앞에 증거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불쌍한 이 민족을 통하여 세계 만민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을 수 있게 하시고, 사탄을 이 땅 위에서 머리숙이게 하여 사탄 대하여 승리한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로지 아버님께서 주관하여 주셔서 아버지의 귀하신 말씀으로 모든 죄악을 청산하고 생명의 길을 찾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마음과 몸을 온전히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과 잠깐 동안 생각해 보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 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택한 이스라엘이 되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세기에는 야곱이 모진 수고의 노정을 거친 후에도 하늘을 대신하여 시험을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그 시험 과정에서 자기가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은 선민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그 뜻을 막으려는 천사와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였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선민권 내에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 삼고 온갖 역경과 싸워 승리하였다고 하여서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명사로 남아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역사적인 생명을 대신하였던 명사요, 하늘과 땅을 복귀하기 위한, 아담부터 야곱까지의 2000년 역사를 종결지어 줄 수 있는 승리의 명사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야곱을 세우시어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하시게 될 때에 하나님에게 기쁨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반면 슬픔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수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섭리하신 것은 야곱의 조상인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을 다시 찾아야 했는데, 잃어버린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찾는 역사 과정에는 말할 수 없는 서러운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축복해주는 하나님에게는 이런 서러운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란 축복의 말씀을 내려 주신 것은, 야곱 일대에만 허락하신 말씀이 아니었고, 전창조의 이념과 이상을 대신하였던 말씀이었으며, 하나님의 전체 심정이 이 한마디에 어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반의 집에 가서 수십년 동안 수고하기에 지친 야곱,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생애노정을 거쳐온 야곱은 이삭의 손을 들어 축복해 주신 하늘의 뜻을 실천하는 마당에서 재물을 포함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서 에돔 땅의 에서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찾아간 고향은 자기 일대에 행복을 안겨 주는 본향이 못 되었고, 기쁨의 자리가 못 되었던 것입니다. 정든 고향과 형을 찾아가면서도 염려하고 근심해야 할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야곱 일신만이 겪어야 했던 사정이 아니라 온 인류가 걸어야 할 노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향을 찾아 드는 그 앞에는 요단강이 가로막혀 있고 얍복강이 가로막혀 있어, 허락한 축복의 땅을 앞에 놓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했던 이러한 사정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사정이요, 천륜의 섭리를 경영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이었다는 것을, 야곱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음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야곱 일대에만 겪은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 나온 역사노정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나타났던 모든 우리의 선지선열들은 전부 이러한 심정을 품고 아버지의 품에 돌아가기 위해 어둠의 장벽을 앞에 놓고 싸움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삭의 손길을 통해 축복해 주신 하나님,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야곱이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가는 길을 평탄하게 해 주지 못하고, 또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천륜의 뜻을 품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늘 앞에 호소하는 야곱에게 권고의 말씀은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천사를 보내어 야곱을 치게 하는 이러한 비정한 환경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말할 수 없는 사정,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애달픈 곡절의 심정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야곱의 길에는 광야의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는 노정에도 이러한 곡절이 있다는 것을 야곱이 걸은 노정을 통해서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늘은 이러한 환경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사람 하나를 택해 세우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지만 배후의 사탄을 밀어낼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섭리의 뜻인데,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과 사탄만이 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곡절의 담을 인간을 통해서 헐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헐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야곱에게 무리한 행동을 하늘은 제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에게는 축복받은 그날부터 에서가 있는 고향 땅에 돌아갈 때까지 기쁨의 한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 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하늘과 땅을 걸어 놓고 하나의 제물의 입장에서 이것을 판결지을 때까지는 수심의 생애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책임지고 나아갈 때에는, 야곱과 같이 원수의 세계에도 찾아가야 하고 어려운 환경과 홀로 싸우는 싸움의 노정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노정에 선 야곱이 지쳐서 쓰러졌던들 그에게는 이스라엘이란 명사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통한 축복의 은사가 야곱과는 관계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늘이 이삭의 손길을 통해 내리신 축복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고난과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불붙는 심정을 갖고 하늘 대해 충성했기에 얍복강가에 나타난 천사와의 씨름에서 용맹스럽게 싸워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하늘이 허락한 말씀을 중심삼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모진 싸움의 길을 걸어간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가 소망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끝까지 그 말씀을 지켜 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한 사실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담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인물로 하늘 앞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된 야곱, 하늘의 시련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팔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승리한 후에야 이스라엘이란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선민의 승리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야곱이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가? 이것은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말씀을 중심삼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입장에서 말씀을 중심삼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철야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야곱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참소하지 못할 정도로 믿을 수 있고, 그 말씀을 중심삼고 싸울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드러내기 위해 야곱에게 천사를 보내어 밤새도록 씨름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한 인간으로서 천사를 문제없이 물리치기 위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에게 부여된 그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품고 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 앞에 사탄은 감히 참소의 조건을 제시할 수 없었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승리가 얍복강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늘은 제2시험의 대상인 에서를 감동시켜 야곱 앞에 굴복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이란 이름과, 야곱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의 터전은 야곱 일대만 축복의 대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을 통해 개인적인 이스라엘이 시작되고 야곱을 통해서 가정적인 이스라엘이 시작되어 민족·국가·세계적인 이스라엘을 형성하기 위한 이스라엘 이름이요, 이스라엘의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야곱의 후손들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느끼고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들은 야곱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까지 미쳐진 축복을 오로지 자기들 것으로만 믿고 행동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택함을 입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날 이 땅 위에 그 종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정을 형성하여 승리해 나왔지만, 또 넘어야 할 고개, 즉 얍복강가에서의 천사와의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야곱의 후손들은 몰랐습니다. 즉 야곱의 후손들은 애급에 들어가 400년간 바로의 품에서 민족적인 시련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나타나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수습하여 옛날 야곱으로부터 약속받은 가나안 땅을 회복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 일대에 조성한 승리적 이스라엘의 발판과 같은 민족적인 승리의 발판을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에서 갖추어야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에서 지칠 대로 지쳐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워 승리한 발판을 원수의 나라에서 세워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단결하여 민족적인 하늘의 시험 과정을 통과하여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던 민족을 다시 수습하기 위하여, 하늘은 모세를 세워 민족을 대표하여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준비시켰고, 미디안 목자생활 40년의 노정을 거치게 했던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옛날 얍복강가에서 이루었던 그 축복을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재수습하기 위하여 모세는 야곱과 같은 민족적인 노정을 걷기 위해 광야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대신 받고 하란 광야를 찾아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다시 세워야 할 책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세는 동족끼리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는 것을 보고 분개하였으며, 또 민족이 이방 사람 앞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자 그 이방 민족에 대항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세의 뒤를 따라 애급 민족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오히려 모세를 몰아내는 입장에 섰는데, 이것은 마치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자기의 고향을 떠났던 것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또 야곱이 축복받아야 할 가정을 떠나, 사탄가정으로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축복받아야 할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 남겨 놓고 미디안 광야생활 40년 노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광야를 향해 떠난 사실은 모세 일신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런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닦아 놓은 승리의 발판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판을 민족적으로 다시 닦아야 할 책임감을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낀 모세였던 것입니다. 원수의 품에서 고역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하던 모세, 하루 한 날 한 시간이라도 고역의 노정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잊어본 적이 없는 모세의 심정을 여러분들은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목자로서 광야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는 자기의 사정이 비참했지만 자기의 비참함을 잊어버리고 애급 땅에서 원수에게 시달리면서 수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보고 동정의 눈물을 흘렸던 모세였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모세의 외로운 사정과 심정이 하늘에 사무쳤고 모세가 하늘을 위하여 염려하고 선민을 위하는 대표적인 형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불러 바로의 궁중으로 파송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야곱이 에서를 무서워하여 21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수고하고 난 후 자기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에서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노정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세도 야곱과 같은 어려운 노정을 걸어갔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3대 이적을 보여 주면서 말씀을 대신하는 아론과 미리암을 세워 하늘이 가라 하시는 바로궁중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모세의 가는 길은 하나님이 후원하는 입장이 아니었고, 잠자리에 든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역시 야곱이 걸어간 것과 같은 노정이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환도뼈가 부러져 나가는 것도 모르고 싸웠던 그 사정을 통하여야 할 모세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모세도 이제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입장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시험을 무난히 넘은 후에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만나 하나님과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제단을 쌓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선조들인 야곱과 모세만이 이런 노정을 걸어야 했고, 이러한 책임을 짊어졌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만 이런 책임을 감당할 것이 아니라, 야곱 가정의 모든 식구들도 야곱 이상으로 애달픈 심정을 갖고 하늘 앞에 호소하고 책임을 감당해야 할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을 따르고 있던 그 식구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슬픔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보다 식구들이 더 안타까워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나선 모세,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서 천지는 변할지언정 당신의 약속은 변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나선 모세는 굳은 각오와 결심을 갖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다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시험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야곱이 에서에게서 받은 반대와 같은 바로궁중의 반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겠지만, 야곱이 열 번 속임당한 것을 탕감하는 10재앙을 애급에 내려서 바로를 굴복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은 제2차로 민족적인 제단을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회고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러움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원수로 인해서 느낀 서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 슬픔이 있었다 할진대 그것은 원수들이 악하여서 느끼신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고의 길을 따랐던 이스라엘 민족의 제단이 무너진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모세에게는 또 다른 시련들이 가로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홍해노정과 광야노정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모세가 개인적으로 걷던 시련의 광야노정을 민족적으로 거쳐야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몰아넣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손을 들면 자기들도 손을 들어야 하고 모세가 앉으면 자기들도 앉아야 하고, 모세가 가면 그들도 가야 했습니다. 즉 60만 대중이 전부 제2의 모세가 되어서 모세와 하나님을 대신해야 했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궁중에서 끌어내어 주실 때는 감사하며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알았고, 철석같은 약속이 남아 있으니 자신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 줄 줄 알았던 이스라엘 민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이 어찌하여 광야에서 쓰러지게 되었던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목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민을 위하여 절개심을 갖고 싸워 나오던 모세의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던들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족을 걸어 놓고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축복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은 민족을 대표한 모세와 그 민족이 하나되는 것이었는데, 둘이 갈라지니 민족을 대표한 모세도 깨졌고, 민족을 지도하던 모세가 깨짐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도 깨졌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광야에 나와서 배가 고프다 할 때는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만나를 내려 먹이시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아말렉 족속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이것은 천륜의 뜻을 반역한 인간이었기에 인간들이 천륜의 뜻을 찾아 나가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도 반대의 입장에서 쳐야 할 섭리적인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말렉 족속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늘의 안타까운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시험에 통과 못했기 때문에 죽지 않아야 할 모세가 죽었고, 죽지 않아야 할 민족도 망해 버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에 모세에게는 민족에 대한 지도자로서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 자신의 잘못은 없었지만 불신한 민족을 대표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면서 쓰러져 가는 이스라엘을 찾기 위하여 40일 동안 속죄의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의 자격이 있다 할진대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애달파하고 있을 때에 그 산을 둘러싸고 60만 대중이 잠을 자지 않고 먹지 않고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우리의 지도자 모세를 내려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하면서 기도에 힘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거예요.
모세가 굶주리고 기도하여야 할 사정은 자기 일신 때문이 아니라 민족 때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은 꿈도 안 꾸고 있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하던 것과 같은 어려운 고비를 당하였는데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선도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와 민족을 이끌었던들,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고 편안한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이 민족을 농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노정을 우리의 선조들이 걸었었습니다.
이리하여 다시금 모세를 대신할 수 있는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서 2세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성전이념을 실현해 놓고 성전과 하나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쓰러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 못 되는 민족은 때가 오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온 피조만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는데, 이 피조만물은 말씀을 중심삼고 여섯 기간을 통하여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만물복귀의 민족적인 고개를 넘어 세계적인 고개를 넘게 될 때에는 반드시 6수의 과정을 걸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시험, 즉 천사장 대신 아담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오시기 6세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말씀을 잘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즉 하늘은 이스라엘 민족이 뜻을 세계적으로 전파해야 할 때에 이르자 민족을 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잡혀 가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이 민족이 다시 말씀을 배반하느냐, 배반하지 않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을 배반했던 민족이기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민족이 새로운 6수의 출발 고개를 넘게 될 때는, 사탄의 공격과 내리침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점령하게 하는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했어야 했던가? 이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모세가 광야를 헤매면서도 하나님을 위하고 민족을 사랑하던 그 심정을 품고 원수의 나라인 바벨론에 가서 끝까지 싸우면서 이 말씀을 사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민족이 되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중심삼고 제2차 민족적인 말씀의 기준을 복귀하여야 할 역사적인 노정에 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된 절개를 품고 있었다면 비록 바벨론에 잡혀 갔을지라도 모세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 그들을 이끌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6세기가 지난 후에 어떠한 형태가 벌어졌던가? 뜻이 있어 야곱이 에서의 직계를 무시하고 모세가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셔서 뜻이 있어서 에서의 입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에서적인 말씀인 구약을 무시하고 나서게 되었을 때, 환영하여야 할 에서의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망권을 형성해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한 형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시험하던 천사장형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500년 전에는 신약성경을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즉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은 문예부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은 봉건사회가 근본적으로 붕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황청의 주권이 깨져 나가고, 불란서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아비뇽의 포로기간을 거쳐야 할 운명에 있었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런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제2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당시에 형성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제2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새로운 사명을 짊어진 기독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교황은 하늘 앞에 회개해야 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절개심을 품어야 했으며, 끝날까지 이런 뜻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이르러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때에 남아진 기성의 말씀과 기성의 교단은 에서의 입장에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이 무엇이겠는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찾아진 선민 이스라엘을 복귀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복귀하고자 하시는 하늘의 섭리의 뜻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세워졌던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 전에 어디에 갔었던고? 그들은 이 예수 앞에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나라를 세계복귀의 발판으로 세우고 이 발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의 전격전을 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노정이었었는데 예수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사정에 처하시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광야시대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광야노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택함받은 제2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유대민족은 예수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나안 땅을 복귀해야 했었는데,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예수 앞에 세워진 택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갔었던가? 또 유대교는 어디 갔었던가? 이스라엘 민족이 없어지고 유대교단이 없어지고 이스라엘의 가정이 없어지고 야곱이나 모세와 같은 개인적인 이스라엘도 없어짐으로써 불쌍한 예수가 되어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은 죽어야 되는 줄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과 교단 앞에 몰리고 가정에서 몰리고 12제자한테 배반당하고 최후로 3제자한테까지 배반당하고 나니 갈 데는 죽을 곳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30여 생애를 불쌍히 사시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요, 홀로 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천상천하의 주인공으로 보내셨거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자 예수가 땅에 와서 고난당한 것은 예수가 잘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민족과 교단이 몰라서 그랬고 사회와 가정이 몰라서 고난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죽인 역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우리들에게 예수가 찾던 이스라엘은 어디 있을 것인가! 마음으로도 호소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가 찾던 이스라엘 교단은 어디 있을 것인가! 마음으로라도 기도하여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과 교단을 찾으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택한 제1이스라엘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제2이스라엘로 세워 세계에 널려 놓고 다시금 재수습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에 널려서 예수를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있는가? 예수를 배반하여 십자가에 죽임으로 말미암아 제일 먼저 택해 세운 이스라엘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대신하는 제2이스라엘을 건설해야 할 노정이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어느 입장에 처해 있느냐 하면, 예수의 12사도와 같은 인물을 중심삼고 또는 예수의 3제자와 같은 인물을 중심삼고 하나의 교파로 단결하여야 할 때인데, 이런 조직을 잃어버린 기독교이니 큰일났습니다. 모세 앞의 60만 대중은 12지파장과 70장로를 중심삼은 반열 형태의 조직 속에서 각각 자기 위치가 정해짐으로 말미암아 광야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었는데, 오늘날 제2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세계 기독교인들은 반열이 없어요.
예수 앞에 12반열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12사도와 3제자가 책임 못하여 예수가 돌아가셨으므로, 전세계 기독교는 세계의 대표적인 교파를 중심 삼고 12교파의 형태를 갖추어 결속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지금 무슨 생활을 하고 있느냐? 예수님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서 못다 이루었으므로 야곱과 모세가 목자생활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도 저나라에 가셔서 목자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쉬시지 못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이것이 목자생활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셨던 것인가? 예수님은 지금까지 2000년 역사노정에서 예수를 믿고 간 사람들, 즉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영계에서 잃어버린 제2이스라엘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 낙원입니다. 예수를 죽이려던 제1이스라엘을 잃어버렸으므로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예수 앞에 찾아 나왔던 성도들을 모아서 예수가 부활한 후 영적으로 제1이스라엘을 복귀한 형이 오늘날 낙원세계입니다.
낙원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낙원세계에 간 영인들도 제1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예수를 환영하는 발판을 지상에 세워 놓아야 할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상에 있는 모든 영인들은 지상에 재림하여 현재 살아있는 크리스천들을 제2이스라엘의 축복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 놓고 이들과 하나되어 제1이스라엘이 예수를 반대하였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활동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끝날은 어떤 때입니까? 구약말씀을 믿고 있던 유대민족을 이방 민족들이 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말씀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은 유물사상이 기독교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말씀을 믿는 기독교가 얻어맞는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교파가 나와야 하는데 그 교파는 개혁교파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노정에 있어서 성막을 받들던 시대가 지나고 성전을 받들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민족이 결속하여 싸워야 할 시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유대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받들던 시대에서 실체 성전을 완성해야 할 시대로 바뀔 때에도 우주적인 싸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싸움이 세계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끝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이제 실체 성전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체 성전을 이룬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됩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구약말씀이 나와서 인간을 선한 방향으로 인도했고, 이제 새로운 말씀이 나와서 그 말씀과 하나된 사람들을 실체적으로 복귀시킬 것입니다. 봉건주의시대는 신만을 위주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그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신만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결합할 수 있는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왔는데 이제 실체 성전을 복귀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면, 신약을 중심삼은 이런 때에서 앞으로 세계적인 성약의 이념이 나타날 때 여러분들이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 되고 예수 대신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지상천국 주인공이 되려면 실체 성전이 된 후에는 환경적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되려면 이념적인 혁명과정을 넘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은 어떠한 형으로 될 것인가? 역사는 뿌린 대로 또는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니, 오늘날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도 기성관념에 속해 있는 신앙자들과 기성주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은 전부 하늘을 배반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 있는 자들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유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 이 시대에 있어서 천사장과 같은 영적인 교단들이 나타나, 하나님 뜻을 대하여 반대할 수 있는 때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원칙을 통하여 복귀섭리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선민된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결심하여야 되겠습니다. 각오를 하여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은 야곱의 후계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20여 생애를 거쳐 가지고 얍복강가에서 믿고 싸워 나가던 야곱의 대신자가 되어야 되겠고, 광야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붙들고 애원하며 걸어가던 모세를 혹은 세계 인류를 대표한 이스라엘 나라에 대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염려하며 기도하던 예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아! 네 갈 곳이 어디냐?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하늘 앞에 호소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도탄 중에서 애급의 바로궁중을 미워하면서 우리의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누가 인도할 것인가 하며 지도자를 찾아 헤매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기가 처하여야 할 반열과 족속이 어디 있는가 하고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깨집니다. 그리하여야만 12반열로 나누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단속해 보십시오. 반열을 구성하여 세계적인 복귀운명을 거쳐야 할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국가의 운세를 움직이는 기독교일지라도 사회와 가정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위신을 잃어버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있을 때는 반열 편성을 하지 않다가 광야를 출발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에야 반열 편성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기독교도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재림이상이 가까워 왔으므로 반열 편성을 개시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날 예수가 땅에서 베드로·요한·야고보를 중심한 12제자를 통하여 반열을 편성하여 신앙자는 누구든지 그 지파에 속할 수 있도록 해놓고 돌아가셨다면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수습하여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밑바닥에서 배척받은 하나의 모임을 세워서 증거할 수 있는 때가 올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인지도 몰라요.
그러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신령역사하는 사람, 뭐 나 장로니 박 장로니 해서 새로운 교파가 나왔습니다. 그러한 파가 지금 교회를 깨치고 있습니다. 반열을 조직해야 되겠으니 이런 역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 문제점으로 남아지는 것이 무엇이냐? 기성주의적인 관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원수입니다. 기성주의적인 관념, 즉 나는 에서와 같은 맏아들이니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된다는 이런 시시한 사상을 버려야 됩니다. 까딱 잘못하면 에서의 관념에 서게 되고 예수를 죽인 유대 백성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야 할 역사의 종국에 이르렀는데 이제 이 관문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이때에 있어서 누가 원수일 것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제일 가까웠던 천사장이 원수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을 복귀하기 위한 제2아담으로 오신 예수 앞에는 영계의 천사장형에 해당되었던 당시의 유대교 제사장이 제일 원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장형을 제2차로 인계받아 가지고 예수를 공격했으니 지옥 가야 됩니다.
오늘날 끝날에도 역시 세계에 널려 있는 교직자들이 재림하는 주 앞에 천사장이 되어 하늘을 빙자하여 하늘을 치는 이런 형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서더라도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역사적인 운세는 넘어갈 것입니다. 이런 길을 누가 걸을 것인가? 이러한 제단 앞에 새로운 말을 하고 새 종말을 고할 수 있는 하나의 선지자적인 사명자들이 나와야 돼요. 그러나 그들은 기성교단 앞에 배척을 받아야 할 것이요, 그래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시에 무슨 시대가 오느냐? 영적인 세계의 공격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얍복강가에서 야곱을 괴롭히고, 또 모세와 예수를 공격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도 이 땅 위에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동시에 하늘까지도 공격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할 당시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게 되었던 것은, 만우주 복귀의 주인공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예수라 할진대는 우주를 대표하여 아담이 하늘을 배반한 것을 탕감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은 당신을 모른다 할 때에도 ‘모른다.’ 하는 하나님을 ‘안다.’ 고 했기 때문에 그 ‘안다.’ 하는 조건이 영적 부활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에게도 이러한 역사적 고비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종말의 운세가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낀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그것이 여러분에게 모세와 민족이 결속해야 했던 그때를 예고하는 것이요, 모세가 바로와 싸우던 그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은 어디서 초래하였습니까? 그 지도자들이 잘못 되어서 하나님이 서러우신 것이 아니라 뒤를 따른 사람들이 잘못해서 하나님을 서럽게 만들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남이 모르는 길, 남이 아니 가는 이 길을 걸어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힘을 합하고 단결하여 하나님이 운행할 수 있는 하나의 반열이 되어, 먹으나 굶으나 개체를 잊어버리면서라도 천륜의 뜻을 대하여 허덕이던 모세의 발자취를 사수하는 후계자가 되어야 될 것이고, 야곱의 발자취의 후계자가 되어야 될 것이며, 예수가 가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후계자로서 사명을 완수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의 성도들이 택함받은 이스라엘권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하늘을 대신한 예수는 이런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자가 죽는다고 했고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고 했습니다. 즉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죽음의 자리도 넘어서야 합니다. 하늘이 인간을 배척하더라도 이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하늘을 믿고 나설 수 있어야만 사탄이 떨어지고,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늘은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형을 영적으로 세워 놓고, 세상에 널려 있는 세계 교인들을 제2이스라엘로 세워 놓고, 이들을 합하여 하나되게 한 자리에서 제3이스라엘의 건설을 경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제3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 되겠고, 야곱 대신 제3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 되겠으며, 민족 대표자였던 모세와 같은 제3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어야 되겠고, 세계 대표자인 예수와 같은 제3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 자신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 과정을 돌아보면서 지난날 아버지 하나님을 대하여 참소하던 사탄을 밟고 넘어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개인과 민족, 국가, 세계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반대하는 역적입니다. 그런데 사탄도 하나님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을 대해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6000년 동안 오랜 세월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도 하나님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아담을 통하여 만우주를 주관하여야 할 이런 뜻을 나를 세워서 우주를 주관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절대복종하겠습니다.’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긍정시키기 위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을 끝까지 반대해서 긍정시키기 위한 입장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충신을 빙자하는 간신들도 왕을 싫어하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충신을 제거시켜 놓고 자기 말을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선 사탄의 권내에 온 세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하나만 인정하면 세계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못하느냐? 천리법도를 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법도의 하나님이라 질서를 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온갖 수고를 하시면서도 세계를 주관하는 사탄을 긍정해 주지 않고 세계를 주관하는 사탄 앞에 사람을 세워 놓고 참소하는 사탄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만일에 사탄의 참소를 막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하나님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리원칙이 회복되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천사장이 아담 해와에게 주관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들고 나오는 주인이 있게 되면 모든 사탄이 근본적으로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과 같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러한 한 날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 날을 세우는 때가 재림시대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반대하는 사탄의 입장에 서서는 안 되고, 6000년 수고하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됩니다. 오늘날 끝날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의 처음 출발인 아담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복귀 과정에서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꿈도 안 꾸고 있으니 큰일났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통하여 영광받으시고 쉬십시오.’ 할 수 있는 하늘나라의 택한 이스라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대신했던 야곱이요, 모세요, 예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싸우시던 싸움을 대신 인계받아 사탄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만, 여기서부터 결정적인 이스라엘의 주권이 하늘 앞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을 참소하던 전쟁의 목적을 종결지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항의를 세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전쟁은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3이스라엘 건설을 위하여 출발하여야 할 때가 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시대에 애급 땅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자기들의 고향인 가나안 복지를 공격하여야 할 싸움이 남아졌었고, 예수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를 건설해야 한 싸움이 남아졌었으며, 오늘날 제3이스라엘을 건설하여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단결하여 제3이스라엘을 성취하기 위한 격전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재편성하게 될 때, 하늘 대하여 하나님 앞에 세워질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 자진하여 하나의 3인조의 조원이 되고 소대장이 되고, 중대, 대대, 연대, 사단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하늘 정병의 지휘관들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하여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역사적인 종말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로 통일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상통일을 요구하고 있고, 지상세계가 통일이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통일의 때가 옵니다.
이제까지의 역사 과정에서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둘이 싸우면 그 가운데 조금 선한 것이 이겼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지상세계가 하나의 이념권 내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지상보다도 조금 선한 것이 이깁니다. 이것이 영계의 지상공격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름 모를 신경증이니 하여 신경계통의 병이 많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약으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천지쌍화탕을 먹어야 됩니다.
하늘을 화동시킬 수 있고 땅을 화동시킬 수 있는 이런 이념을 위하여 영계가 지상을 습격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상인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때이기 때문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둘이 싸운 후 하나로 된 그 세계가 하늘이 중심이 되어 합하는 바로 심판의 때입니다. 이와 같이 영계가 지상을 습격하는 이런 마당에서 지상을 대표할 수 있는 총지휘관의 사명을 갖고 올 분이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제3이스라엘 건설노정의 출발에 선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영계의 법도를 알아야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명령 계통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야 됩니다. 그 나라의 군대는 자기편 군대에서 쓰고 있는 암호를 알아야 전쟁할 때에 자기편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하늘나라의 암호가 들리는 시대인 것입니다. 지금은 암호 통신시대입니다. 섭리적인 암호, 역사적인 암호, 시대적인 암호, 또 인간적인 암호, 사명적인 암호의 통신시대인데, 이러한 암호를 통하여 연락될 수 있고, 작전계획을 수행할 수 있으며, 지상통일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반대하는 박 장로니, 나 장로니, 통일교회니, 혹은 소위 이단 패니 하는 것, 좋습니다. 현대는 과학도 우주시대를 논의하는 이러한 시대입니다. 인공태양을 만든다는 이러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도달했는데, 아직까지 켸켸묵은 종교관념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포괄적인 통일주의가 나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암호를 통할 수 있는 단파장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비밀을 통할 수 있는 단파장치의 소유자가 있다면 그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지상을 습격해 내려올 때는 전쟁방법이 달라집니다. 일어나기는 일어나는데 한계를 모릅니다. 이러한 양상의 싸움이 지상에 벌어질 것인데, 그때 양심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동원되어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끝날의 이 한 날을 예비하여 양심적인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오늘날까지 역사가 흘러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의 운명에 놓여 있는 우리들은 최후의 귀일적인 이념세계를 찾아 들어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어깨에 타 가지고 ‘하나님 나를 맡으시옵소서.’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하늘의 참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낙원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해원하고 천국생활을 소개시켜 주어야 하는 사명이 예수 혹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 대신 모든 작전계획을 맡고 하나님 대신 싸워 드릴 수 있는 대표자가 나와서 책임을 완수해야만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여러분들은 승리적인 이스라엘의 노정을 찾아 나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내가 속하여 있을 수 있는 반열을 찾아야 되고, 나의 지도자를 찾아야 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머물러 있는 위치가 하늘 앞에 어떠한 위치인 것을 알아야 하고, 변치 않는 모세 아브라함 야곱 예수의 대신 존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대하여 호령하게 될 때도 ‘그대는 만우주의 창조이념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격자인 하나님의 아들딸이니이다.’ 라는 찬양과 더불어 사탄으로부터 경배받을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만 지상천국 동산에서 세계적인 성전이념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러분들은 일대 격전에 부딪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을 각 교파들이 공격합니다. 여러분을 영적으로 시험도 합니다. 모세를 하나님이 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에게도 이러한 노정이 있고, 모세를 민족이 배반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그러한 노정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고, 예수가 민족으로부터 배반을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그러한 노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거기에서 낙심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쉬운 뜻이 아니라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세계적인 환란을 등에 짊어지고 지극히 처절한 반대를 받으면서도 싸움 노정에서 쓰러지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와 하늘땅이 하나의 귀일점을 발견할 때까지 여러분은 계속 투쟁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 광야에 나와서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다고 한탄하던 것과 같이 한탄하지 마십시오. 누가 몰라준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나를 알아주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 하나만 붙들었으면 제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나를 알아주는 하나님만을 붙들고 나를 알아주는 예수님만을 붙들고 이것이 제일이라고 믿고 모두가 배척하더라도 그분만을 붙들고 가면 그분이 이루실 것을 내가 인계받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래야만 여러분이 제3이스라엘의 선민 된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역사적인 영광의 모습, 온 천주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영광의 아들딸로서 세계를 대표하여 하늘 앞에 나타나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천사가 축복하던 그러한 축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예수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시려던 그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즉 끝날에 찾아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손을 들어 예수를 대신한 나의 아들딸, 영원한 제3이스라엘의 주인공들로서의 나의 아들딸이 되라고 축복하실 것이며 영원히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실체적인 기쁨과 영광과 미의 존재가 되라고 비로소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야만 제3이스라엘의 선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에서는 제2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반열이 편성되어 있는데,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제2이스라엘의 반열을 이루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잠들어 있는 민족을 깨우치고, 잠들어 있는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깨우쳐서, 땅 위에서 제2이스라엘의 축복을 대신할 수 있는 반열을 조성하여 가지고 그리하여 영계가 하나되고 오늘날 제3이스라엘을 세계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 선민권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반열로 조직된 종족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통하여 세계형까지 거쳐 나가야 할 천적인 사명을 저희들이 인계받고, 모세가 싸우던 노정을 저희들이 인계받게 허락해 주시옵고, 예수님이 싸우시던 노정을 저희들이 인계받아, 사탄의 비난과 참소를 물리치고 나아가 아버님을 모실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며 아버지의 영광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전한 말씀을 받고 하나님이 택한 선민 이스라엘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기쁨의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이들이 세계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며, 이제 사탄과의 싸움의 노정에서 저희들이 하나로 결속하여 승리하게 하시고, 하나의 중심적인 예수의 뜻 앞에 반역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중심을 고생시키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세를 비난했던 민족이었지만 이스라엘의 건설을 위해 하늘이 필요로 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 하늘을 염려하시게 하지 않고 제3이스라엘을 성취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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