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오늘 새로운 이 아침을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백성들과 저희들의 가정 위에, 아버지,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영광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무한하신 은사로써 오늘 하루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은 하나님의 날을 선포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옵니다. 이 땅 위에서 이러한 날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저희들 뿐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이 거룩한 축절을 저희들로 하여금 맞이하게 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사를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부족하나마 있는 정성을 다 모아 이날을 기념하고, 이날을 아버지 앞에 영광의 날로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날에 참석한 이 영광을 마음과 몸으로 체휼하고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자랑의 조건으로 남길 수 있도록,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우리를 위하여 수고한 그 기준 위에도,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가족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아버님이 자주적 권한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는 세계의 만상과 온 인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부족한 마음들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하루에도 복을 주시옵고, 이 한해에도 같이하시어서 저희가 계획한 만사가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승리에 승리를 다짐하고 통일에 통일을 다짐할 수 있는 최후의 전선이 저희 자체로부터 가정을 거쳐 민족 국가 세계로 진출하여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거룩하신 아버지의 은사로 받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이 알다시피 하나님의 날은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만 기념하는 날로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이날이 통일교회의 기념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인류가 공히 이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는 그때까지 온갖 수고를 다해 책임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날을 찾아 나온 복귀역사

만일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가정을 이루는 날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날이요, 하나님의 기쁨의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로소 이 지상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날은 우리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가 참된 부모로서 출발을 하는 날이요, 인간만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만물까지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 인류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고대하시던 이상적인 그날을 잃어버리고, 인류가 고대하던 참된 날을 잃어버리고, 만물이 고대하던 참된 날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잃어버린 날들을 다시 찾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요. 복귀섭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복귀해 나가야 되느냐? 만물을 조건삼아 가지고 거꾸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조건은 사람이 아니라 만물이었던 것입니다. 만물을 제물로 드려 왔던 거예요. 거기에서 한 단계 끌어올려 가지고 제물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약시대로부터 기독교를 중심삼은 신약시대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제물과 일체될 수 있는, 제물 대신될 수 있는 세계적인 하나의 실체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제물의 실체로 오셨기 때문에 전체의 제물을 주관할 수 있는 제물의 중심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물질적인 제물을 직접 장악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중간 역할을 하기 위하여 오셨던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 가셨던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려면 반드시 백성이 있어야 되고,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백성이 합한 가운데서 예수님이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죽은 제물이 아닌 승리적인 제물, 즉 부활된 실체로서 제물을 몽땅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제물의 실체되는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잘못 드리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중간에 세워 놓고 분립시키기 위한 조건물이 제물이기 때문에 제물은 잘못 드리면 사탄 앞에 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요, 잘 드리면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이전까지는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친 역사가 되지 못했더라도 예수님을 중심삼고는 그런 역사시대를 넘어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묶어 바쳐 가지고 완전히 승리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그 사회, 즉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고, 사탄은 참소하거나 간섭할 수 없는 승리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가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기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것을 재편성해서 세계적인 발전을 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 1이스라엘의 기반을 닦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특정한 국가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민족과 국가를 지도하는 특정한 종교로서 기독교가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기반을 완전히 멸하고 영적인 세계에 이루어질 나라를 바라보면서 발전해 나온 것도 아닙니다. 소망의 나라, 천국을 그리워하고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영적인 발전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적 발전이란 민족 편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민족 편성을 이루기 위한 개인 개인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개인 개인의 구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제2이스라엘권을 이루어서, 다시 이 지상에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백성을 편성해 놓고 하나님 앞에 승리적인 제물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러한 탕감의 노정을 거쳐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만물의 제물 시대를 거치고 아들딸의 제물시대를 거쳐 가지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위에 승리적인 제물, 즉 부활실체의 제물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이 언제나 마음대로 취할 수 있고, 언제나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실체를 복귀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아들딸을 반드시 지상에 현현시켜야 됩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인 동시에 참부모의 사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하기 위해서는 그 제물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시대는 만물적인 제물과정을 거치고, 신약시대는 자녀의 제물과정을 거치고, 성약시대는 부모의 제물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는 반드시 부모로서 참소조건을 넘어 하나님이 온전히 취하실 수 있도록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평면 세상을 마음대로 주관하고 마음대로 명령하고 마음대로 이끌 수 있는 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하나의 국가가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이요, 민족이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천국의 이념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완성할 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의 인연을 땅 위에 성립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참부모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하는 것이며, 만물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에게는 하늘이 집중될 수 있는 것이요, 만물이 집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늘과 땅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세계는 물론 영계도 협조하게 되어 있지 반대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제물실체는 하늘에서도 상충이 벌어졌고 땅에서도 상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늘을 땅에 연결시켜서 땅 위에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일치화되고, 또 이 사람을 중심삼고 만물과 일치화될 수 있는 일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물을 통해 만물과 일치화될 수 있는 일을 지금까지 해 나왔으나 결국 만물과 일치화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고는 하늘과 연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연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재현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와 성신입니다. 그러나 예수와 성신이 영적으로만 그 기준을 이루었지 영육 아우른 실체로서 연결될 수 있는 중심은 못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육 아울러 그 기준을 완결짓기 위해 소망의 한때를 바라보면서 재림이라는 사상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졌느냐? 기독교가 바라는 그러한 소망의 때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망을 이룬 실체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그 참부모는 하나님과 연결되고, 땅과 연결되고, 영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연결되고 땅 위의 만인과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요, 천사세계까지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우주가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여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권위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목적과 창조위업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1960년대

그러면 이러한 것이 어느 때에 이루어지느냐? 아담 해와가 축복을 받음으로써, 즉 성혼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 역사해 나오는 복귀과정을 생각해 볼 때,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것은 장성기 완성급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는 이것을 다시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생기는 종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장성기는 양자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며, 완성기는 적자(嬌子)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야곱의 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이며, 소생기에 해당하는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인 것입니다. 따라서 종의 시대인 이 구약시대를 거쳐서 예수님의 복음이 이 땅 위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양자의 시대권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양자권인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 아들의 외적인 형태와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다시 만들어서 장성기 완성급의 위치 까지 올려 놓아야 비로소 친자권을 상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인류 시조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이 장성기 완성급에 가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은 가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 가정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서는 그 기준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대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기준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7년노정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7년노정은 무엇하는 기간이냐? 지금까지 사탄으로부터 침범당하였던 모든 안팎의 내용을 전부다 절단해 버리고 사탄을 완전 방위 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방위하는 데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방위해야 합니다. 이 권내를 목표로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은 유대교가 발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목적도 유대교의 목적도 이 권내에서 완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어간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목적도 유대교의 목적도 이 권내에서 해결지을 수 있는 기점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권내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지상으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는 데는 장성급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소생급으로 와야 합니다. 소생급으로 와서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조상 아담이 장성급에서 해와의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주관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을 갖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인간으로 와 가지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통하여 해와를 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순서를 거쳐 가지고 해와, 즉 신부를 세워 새로운 가정을 성립시켜야만 비로소 완성세계를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타락한 시대의 끝날이요, 새로운 시대가 출발하는 때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말하면 1960년도입니다.

1960년도에 들어와서 역사가 세계적인 전환시대로 들어간 것을 나타난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통일교회에서만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인 이 세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섭리를 추진시켜 나오는 통일교회의 움직임이 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7년노정을 거치고 다시 3년노정을 지냄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계의 정세는 우리가 전후 좌우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는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은 어디에서 받아야 하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참부모를 중심삼은 인연이 현현하였다는 것은 천주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참부모의 날이 생기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거짓된 부모를 어떻게 참부모의 자리로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선포되기까지

이 참부모를 복귀하기 전에는 , 즉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가정을 찾기 전에는 타락하지 않은 후손도 가질 수 없는 것이요, 타락하지 않은 만물세계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세계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하나님도 하나님으로서 행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의 날을 책정하고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부모가 있어야 자녀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자녀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을 주관하려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 가지고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아담 해와 둘만이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횡적인 기반이요, 부모는 종적인 기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땅 위에 있어서 하나님 대신입니다. 이러한 종적인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을 세운 후에 자녀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운 후에 만물의 날을 세웠습니다. 이 부모의 날과 만물의 날, 그리고 자녀의 날 자체는 타락권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권 내에 있습니다. 즉,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장성기 완성단계에서 완성기 소생단계로 넘어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관권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에덴을 복귀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을 중심삼고 7년노정을 가야 하는데 이것이 제2차 7년노정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차 7년노정을 끝낸 1967년이 지난 후 1968년 정월 초하루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날은 선생님의 1차 7년노정이 끝난 날이요, 영계와 육계가 갈라지고 인류 역사의 내정적인 심정의 인연이 갈라진 날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갈라진 것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전체의 대표적 기준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래 놓고 나서 나라를 위하든가 세계를 위하든가 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일체의 조건을 밟고 넘어서서 자유스런 해방권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탕감의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러한 가정적 기준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설정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날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던 날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부모의 날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그 부모의 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녀의 날이 없으면 부모의 날은 부모의 날로서의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자녀의 날을 세웠다 하더라도 만물의 날을 세우지 않고는 자녀의 날이 자녀의 날로서의 책임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한 것이 탄식의 요인인 것입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세운 것이 1968년 정월 초하루에 세계적으로 선포한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로부터 3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3년 기간은 자녀들이 책임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지상에서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종적 기준을 횡적 기준으로 연결시켜야 될 때이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로 번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였으니 오늘날 통일종족을 중심삼고 삼천리 반도의 기반 위에 삼천만의 번식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동서남북으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의 조건을 탕감시켜서 재차 부활한 실체적인 입장에 세워 가지고 승리권을 마련한 것이 축복가정의 기반입니다. 이것이 왈 통일종족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통일종족은 아브라함이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하고, 아담 이후 수많은 선지자들이 뜻을 따라 나오다 실패하였던 여건들을 전부 탕감복귀하여,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연결해 가지고 참부모의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단체가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지금까지 축복가정들이 책임 못 한 분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새로이 제2차 운동을 제시하는 것은 그 가정들이 책임 못 한 것을 전부다 용서해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대책입니다. 금번 동계전도에 전체가 참여할 것을 명령한 원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이러한 하나님의 날이 선포됨으로 말미암아 1968년 1월부터 세계정세는 급변해 갈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 정세나 아시아 정세도 한때에는 혼란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 혼란이 이 땅, 이 아시아에 오기 전에 우리는 내적 준비를 하여 그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내적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날은 역사과정을 중심삼고 제일 심한 수고 끝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이 땅에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피조물도 안식의 터전이 벌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이 자리를 못 잡아 가지고는 피조물의 안식의 터전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아 가지고는 부모를 중심삼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로 천주의 대주재로 계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마음과 몸에 스스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주장할 수 있는 권한이 갖추어지지 않고는 이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누가 움직이느냐? 인간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자주장할 수 있는 권을 이루어 놓고야 움직이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날을 세우지 않고는 이 세계를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단체나 어떠한 사람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날을 세계에 선포한 사실은 통일교회의 위대한 공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서 이러한 내용을 듣고 식전을 갖추어 축하하며 여러분의 명절로 기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상의 어떤 선지선열은 물론이요, 예수님도 갖지 못하였던 영광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날을 기념함과 동시에 참부모를 직접 대할 수 있고 참자녀의 명분을 가질 수 있는 자리, 참다운 세계를 내 것으로 공인받고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 살아생전 이 눈과 이 감각을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은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고, 보지 못한 엄청난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얼마나 축하해야 하느냐? 역사상의 어떠한 축하의 날보다도 크게, 온갖 정성을 다 바쳐 가지고 거국적이요, 세계적으로 축하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와야만 됩니다. 그런 날을 오게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제3회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였는데 여기에서 3년노정, 즉 제 1회 하나님의 날과 제2회 하나님의 날, 그리고 제3회 하나님의 날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느냐? 제1회보다도 제2회를, 제2회보다도 제3회를 더 거국적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수가 더해질수록 이 세계는 이날을 더 크게 축하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세계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아무리 개인천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정에 적용하지 못하면 개인이 안식할 수 있는 안정된 자리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가정천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종족적인 환경의 기반을 승리적으로 세워 놓지 않고서는 안정된 가정천국의 기반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종족이 안정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민족을 중심삼은 기반을 결정지어야 하고,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국가를 중심삼은 기반을 닦아야 하며, 국가가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세계를 중심삼은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느 정도까지 왔느냐? 민족과 국가를 향해서 넘어갈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중심이 정상이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가 정상적이면 가지도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를 잘라 버린다 해도 그 뿌리가 살아 있으면 새로운 가지가 나와서 수년 동안 자라 큰 몸뚱이를 가진 나무 이상 새로운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그러면 금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이 발전하고 하늘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중심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존재해도 여러분 자체의 존재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가치의 내용을 표면화시키는 것이 통일교회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표면화시켜야 하느냐?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표면화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에 들어가서는 세계적인 선교 기반을 닦고, 전체 환경이 같은 기준이 되게끔 우리가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수행의 노정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하나님의 날을 어떠한 환경에서 축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깨달아서 그 환경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사람보다도 가정적인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정보다도 종족적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요, 그런 가정이 어느 가정보다 지혜로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기념할 수 있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며, 민족보다도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축하할 수 있는 날을 가지는 민족이 지혜로운 민족인 것입니다. 그러하여 각 국가를 중심삼은 세계 전체가 그 자리에 참석하여 옹위하고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환경이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하늘나라의 주권이 이 땅에 성립되어 멀지 않은 장래에 이 땅은 복귀될 수 있는 운명권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적지(敵地)에서 생존하려면

우리가 소원하는 국가복귀라는 엄청난 문제를 앞에 놓고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지구라는 것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자리, 즉 사탄이 역사하는 권내에 있는 하늘편 입장은 풍랑 속을 표류하다가 파손된 배를 몰고 육지에 상륙한 어부와 같습니다. 이러한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나타난 것은 예수가 이 땅 위에 복음을 들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으로 이 땅 위에 왔으니 사탄세계에서 보면 원수나라의 왕자인 것입니다. 즉, 하늘의 왕자로서 원수나라인 사탄세계에 와서 표류하다가 상륙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그 실정을 알면 그냥 두지 않는 것입니다. 알기 전까지는 그냥 있을는지 모르지만 알고 난 후에는 그냥 있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를 때려잡는 운동을 안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주먹 가지고는 안 됩니다. 힘 가지고는 안 돼요. 힘 가지고 하다가 점령당하게 되면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 나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의 대가를 치르고 남아진 후에는 그 나라의 종이라는 과정을 밟지 않고서는 다시 회생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종이 되지 않겠다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새로운 섭리의 뜻을 받들고 나오던 수많은 선열들도, 4천년 역사의 결실체로 선을 대표해 왔던 예수도 이와 같은 운명에 처했던 것입니다. 원수의 땅에 왔기 때문에 원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하여 지하운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고 또한 앞으로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할 때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물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에도 선전하지 않고 절대 비밀에 붙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는 지하 운동시대, 지하 게릴라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지하 게릴라 조직의 대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종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들보다도 더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나라에 필요하고 그 환경에 필요하다고 증거해 줄 수 있고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존속할 수 있는 발판을 남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의 뜻을 갖고 온 우리의 선지선열들은 반드시 종의 신세로 이 땅 위에 발붙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

이제 통일교회는 10년 여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국가적인 기반을 닦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대한민국의 60만 대군이 동원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2천년 전 예수님 당시와 지금 시대가 무엇이 어떻게 다릅니까? 물론 하나님이 역사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라는 권을 만들어 가지고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라는 공적의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과 같은 실적을 올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2천년 전, 예수님 당시에 이러한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새로운 운동을 하였다면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여러분들은 전부다 죽음의 고개를 넘었을 것입니다. 순교의 제물이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10여 년의 세월을 거쳐 나오면서 수고했다고 하지만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뜻을 위해 개척지에 나가서 싸우다가 맞아 죽은 사람이 몇 명입니까? 또한 굶어 죽은 사람은 몇 명입니까? 세상에는 맞아 죽는 사건도 많고, 굶어 죽는 사건도 많습니다. 그런데 맞아 죽을 수 있는 자리에서 맞아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컸다는 것입니다. 또, 굶어 죽을 수 있는 입장에서 굶어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먹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는데도 맞아 죽지 않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는데도 굶어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구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원수의 족속들 가운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반대하는 환경에서 우리가 한 생명도 피해를 입지 않고, 한 사람도 희생 되지 않고 이러한 기반을 닦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컸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로마제국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4백년 동안 피의 대가를 치른 것은 얼마나 엄청나고 비참한 역사였습니까? 그런 역사와 지금을 비교하면 그 시대에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날이니,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몰랐다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도 이러한 내용의 행사나 행동도 할 수 없는 사회환경 속에 왔다 간 예수님은 정말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축하할 수 있는,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환경 가운데 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이것은 천주사적인 사건이요, 이 세상에 아무리 큰 기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날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고대한 날이요, 예수와 성신이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중심삼고 피 흘리는 자리를 넘나들면서 찾아 나온 날입니다. 이 한날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우지 못한 전체 역사의 탈을 벗고 해방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하여 아버지라고 하며 모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참된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또한 그런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예수와 성신이 수고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과 성인현철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인들 역시 그러한 세계의 발판이 되기 위하여 동서남북 사방의 문을 열어 소망의 이념을 세계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보기 위해서

이와 같이 각 시대에 따라서 책임적 사명의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사명 단계가 끝나게 되면 후세에 남을 수 있는 다음 단계의 책임자에게 그 사명을 인계시켜서 하나의 통일된 사상세계로 수습해 나오는 것이 '섭리'라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모든 핵심적인 내용을 인계받아 세상에 밝히 알려 주는 단체가 통일교회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얘기를 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도 믿을 수 있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삼천만 민중이 해방을 맞아 기뻐 날뛰던 그때, 하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어 우리 민족이 자주권을 가질 수 있는 민족이 되어 핍박받던 입장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하던 그때에 우리 민족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민족의 주권만을 찾기 위해서 야단했습니다. 대한민국을 하늘나라의 터전으로 하늘의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싸운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종교를 믿고 나가는 추종자들마저도 그런 준비와 내용을 중심삼은 터전에서 자기들이 하늘의 명령하에 그 일을 실시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린 채 해방의 나팔 소리에 전부 휩쓸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 통일교회는 근 이십 년의 역사를 통하여 홀로 남아 이제는 신령한 단체로서. 신흥종교로서 왕자의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지탱해 나온 것은 하나님의 날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 전체를 투입시킨 것도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말은 간단하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복잡합니다. 뜻을 알고 예수님 시대의 내용을 보게 되면 예수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안 죽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분야, 환경적인 분야, 역사적인 분야, 시대적인 분야 등 미래에서 보아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을 전부 꿰매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탄과 겨룰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날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얼마나 공헌했습니까? 부모의 날을 세우는 데는 얼마나 공헌했습니까?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세우는 데는 얼마나 공헌을 했습니까? 조금도 공헌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헌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잃어버린 4천년 역사의 기반을 재차 수습했다는 조건을 세우는 사명을 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의 협조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전부다 연결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인류의 참된조상이 되었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날을 잃어버리고,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가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이것을 수습할 책임을 짊어지신 분, 즉 인류가 바라는 참된 부모의 사명을 짊어지신 분이 와서 그것을 연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도 그분이 설정해 주어야 하고, 참된 부모의 날과 참된 자녀의 날, 그리고 참된 만물의 날도 그분이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을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지고 십년 세월을 두고 그 한의 고개를 해결지어 가지고 넘었다는 조건을 세운 것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 가운데 여러분이 직접 동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땅 위의 스승을 참부모로 바라보며 이와 같은 날들을 축하할 수 있는 이 자리는 예수 당시의 불행했던 자리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가치를 다 모르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가정적 환경을 잃어버린 예수, 세례 요한 일당이 받들어야 하는 그런 자리에서 배척받던 예수, 유대교가 환영해야 할 그런 환경이 전부 무너져 버림으로 인하여 절망 가운데 빠졌던 예수, 원수의 팻말을 든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입장에 처한 예수, 그러한 예수의 입장과 여러분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 밑창의 천한 백성의 아들로 태어나 봐야 왕자의 권위가 어떻고 왕자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통일교회 속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가치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계에 있는 영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천상천국의 맨 말단에 있는 영인들도 잘 알고 있어요. 물론 중앙에 있는 영인들은 누구보다도 더더욱 잘 알고 있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적인 세계의 인연을 알고 도의 세계에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 즉 하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교인은 아니더라도 통일교회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허드재비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개인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서 교회를 팔아먹고, 자기의 죽음길을 모면하기 위해서 이 길을 저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한날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죽음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예수와 성신 또한 이 한날을 위해 피눈물을 흘려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역사의 고빗길에서 막힌 것을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선조들이 피의 대가를 치르고 죽음의 고개를 넘고 넘어 이날을 찾아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날은 역사적인 모든 한이 집약된 날입니다. 우리는 이 한날을 세우기 위해 제시되는 조건에 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을 합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나는 하늘편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사탄편에 서서 간첩행동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사회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장에서 사탄을 대하여 '네가 대결하면 나도 대결한다'고 하는 자신을 갖고 하나님을 모시고 행군할 수 있는 하나의 권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이것을 위해 종교를 중심삼고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종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패자가 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종 노릇을 하려니 지하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하운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무한한 대가를 치러 탕감시켜야 합니다. 기독교는 지하운동을 통하여 국가의 기준을 타고 넘어가기 위해서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피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거기에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승리한 용사들이 남아졌기 때문에 그 남아진 무리들의 권위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지하운동을 세계적으로 표면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몸과 마음을 완전히 드리는 것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그렇게 활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무슨 대가를 치렀습니까? 기독교가 치른 그 엄청난 대가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여러분도 그러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실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들이 제사 지낼 때 도시 복판에서 지냅니까, 산에 가서 지냅니까? 산에서 지내지요? 정성을 들이기 위해서 산으로 갑니다. 기도라는 것은 마음과 몸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한 정성의 시간이 기도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을 드리는 데는 어디에서 드려야 할 것이가? 도회지에서 살림을 살면서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운데에서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환경에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분별된 환경에서 드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모셔야 되고, 몸으로는 자신에게 붙어 다니는 사탄을 때려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마음이 원하는 세계로 깊이깊이 찾아 들어가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몸이 마음에 완전히 점령되어 화하는 자리가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도통하는 경지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을 받는 경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성을 들이는 것은 살아 생전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는 인연을 맺고 넘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러한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늘을 저버리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승리의 기반을 맺어 놓아야 사후의 세계에 가서 자기의 위치를 세워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것이지 그냥은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에 승리의 기반을 결정지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굶어 죽을까봐 걱정할 때는 다 지나갔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든지 우리 교회가 있기 때문에 한두 끼쯤은 얻어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굶을 때도 지나갔고, 욕먹을 때도 지나갔고, 죽을 때도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종의 종살이를 해야

그러면 1960년도에 있어서 우리의 선각자들은 이 통일의 복음 운동을 어디서부터 해야 했느냐? 감옥에서부터 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지하운동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갔으면 됐지 거기서 또 무슨 지하 운동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베드로·요한·야고보 중심의 초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도 전부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협조하는 놀음이 벌어졌습니다.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고 나서 그 다음엔 사회라는 감옥에서 핍박받고 시련을 당하며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간첩 생활과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 앞에 플러스가 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까지도 걸고 나서지 않고는 동지들을 규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딸을 사랑하는 정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아들딸은 뭐 사랑하지 않아도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지만 적대관계에 있는 원수와 서로 신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우상 장수 데라의 맏아들 아브라함을 빼앗아 올 때 얼마나 마음 졸이셨겠느냐 하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이것이 심정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종살이를 하는 데도 고관집의 종살이가 아니라 머슴의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종의 종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구약시대 이전부터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혈통이 다르고, 내용은 다르지만 종으로서의 충성과 정성을 다해 가지고 주인 앞에 권위를 주장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양자권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주인이 자기 아들 딸보다도 더 믿게 될 때에 비로소 양자의 권한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양자권의 신앙입니다. 그런 양자의 입장을 상속받기 위해서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양자의 입장을 상속받으려면 우선 그 주인이 책임지고 있는 일을 점령해야 합니다. 주인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기반, 주인이 자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않고는 절대로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볼 때, '저 녀석은 도적 같아서 주기만 하면 다 팔아먹을 거야' '저 녀석은 구두쇠로구나. 나보다 더 구두쇠로구나'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에게 맡겨 놓으면 틀림없겠구나' 할 수 있어야 상속해 주려 하고 양자라도 삼아 주는 것이지 겉으로만 아무리 멀끔하게 잘생겼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난시에 있어서는 주인 없는 큰 황소보다도 어려운 피난길을 인도해 줄 수 있고, 혹은 원수들이 찾아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는 절름발이 강아지가 더 필요한 것입니다. 강아지가 짖는 것을 보면 원수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병신 자식이 효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학벌이 좋고 인물이 잘났으면 뭘 합니까? 문장이 훌륭하면 뭘 합니까? 그때는 오직 양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 그 주인이 믿어 주느냐 안 믿어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저 '죽어도 예수, 망해도 예수, 살아도 예수' 하는 데 그것이 뭐예요? 예수와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가 죽을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대신 죽을 수 있고, 예수가 좋은 자리에 있을 때 그와 더불어 나도 좋아하기 위해서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망해도 예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 들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고, 망해도 좋다고 하면서 믿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천당 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욕심바가지들만 득실거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의 가치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하나님의 날은 모든 것이 집중된 소망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을 맞이한 오늘 이 자리는 예수님 때의 사도들의 자리와 비교도 안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용과 결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이날을 마음으로 축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마음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아담과 해와 때의 가인과 아벨을 두고 볼 때 아벨이 이날을 축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노아 할아버지가 '그대들의 놀라우신 성상을 찬양할지어다' 하고 축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3대 믿음의 조상권을 가진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부터 '내가 수고하고 내가 어려움을 당한 것은 오늘 이 한 날을 맞기 위함이었거늘 그대들의 놀라운 성사를 찬양한다'고 하는 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도 '우리가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해 모세를 중심삼고 사막을 횡단하며 그 모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갖추지 못하고 거두지 못하였던 이스라엘권을 이렇듯 마련해 주니 감사하다'고 하는 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지금까지 소망의 실체로 고대하였던 실체기준을 이루지 못한 것, 즉 실체 자녀를 낳아 그들을 세계적으로 지도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한의 구렁텅이를 메울 수 있는 승리권을 중심삼고 예수와 성신의 입장에서 실체의 자녀를 품고 하나님의 날을 맞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런 저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나는 이날을 위하여 얼마나 충성을 하고, 이날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였으며, 이날을 위해 얼마나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 가치 있는 날을 맞아 축하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자리에는 통일교회의 '통'자도 모르고 교회의 '교'자도 모르는 녀석들이 바람 쐬러 왔다가 걸려들어 가지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어 앉아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렇게 데데하고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선생님은 그렇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길을 나설 때에는 생명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천만 갈래의 시련과 수난의 길이 있을 것을 알았고, 수많은 화살과 총탄이 겨누고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오십 평생 동안 어느 때든지 일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일선이 되었고, 사랑하는 가정도 일선이 되었습니다. 통일교회를 따르고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오겠다던 사람이 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제든지 그 누구한테라도 배척받고 반박받고 공격받는 입장을 감수하면서 이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날'의 가치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날'의 가치는 다릅니다. 말을 들어 보면 알 듯한데 내용에 들어가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런 내용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설사 양자권을 상속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워서 그 주인 앞에 알랑거려 가지고 양자가 되는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는 그 양자의 이름으로 심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자라는 거룩한 이름을 앞세워 가지고 주인을 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그러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제 3회 하나님의 날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를 시작하는 이 벽두에 있어서 지극히 의의있는 시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날이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그리던 날입니다. 이러한 날을 선생님이 50평생을 거쳐서 세운 것입니다.

뼈에 사무치는 시련 뒤에 찬란한 영광이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에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 앞에 있어서 이 날을 빛나는 날로 개척하기에는 아직까지 민족적인 고개와 국가적인 고개, 그리고 세계적인 고개가 남아 있으므로 여기에서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통일전선'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실들을 확실히 알고 내일의 희망을 위하여 오늘의 희생을 달게 받을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한 현실의 치열한 투쟁을 도피하려는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도피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패잔병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하여 찾아오는 격전은 나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거늘 그 격전에서 적을 격침시킬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을 어떻게 갖출 것이며, 또한 그럴 수 있는 내 자리가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고 그 누구도 행하지 못하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대전과를 거두어 가지고 이 하나님의 날에 추억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당한 시련 중에 뼈에 사무치는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자신의 영광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역사시대에 뿌리를 깊이 박고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찬란한 영광의 기준을 만드는 자원이 되고, 기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시련과 고통의 파도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역사 위에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높은 파도를 넘고 난 후 그 이상의 파도가 없으면 나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더 이상의 시련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한 사람은 그러한 시련과 고통이 없는 역사시대에 이르게 되면 그 시대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행복을 이루는 데 있어서 절대 불가결의 요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고통의 길을 가지 않고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고통을 치르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투입하고, 영원한 사랑을 투입하고, 영원한 사상을 투입하여 획득한 승리의 결과는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는 이러한 가치의 내용을 알고 탕감복귀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면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머슴살이 신세를 거쳐 보았습니까? 그런 것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편의 권한을 복귀하기 위해서 머슴살이를 자청했습니다. 종 노릇을 자청했습니다. 양자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라도 양자로 책정받을 수 있고, 나아가 아들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아들의 영광과 더불어 부모의 모든 전체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러한 상속권을 위임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인류 시조에게 상속하시던 그 특권을, 오늘날 그 후손인 우리들이 직접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를 갖는 다면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섭리사의 소원이요, 지금까지의 온 인류가 바라는 소원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에서 싸우고 이 자리에서 살고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보람 있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이룬 기독교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정통적인 사상으로 지탱시켜 온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 죽고 사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지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개를 앞에 놓고 도피한 것이 아니라 직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돌아가지 말고 직행해서 그러한 역사를 상속받으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반공전선의 선두에 서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계에 청소년들의 윤리 문제가 대두될 것이니 우리는 그 선두에 서서 팻말을 들고 세계적인 운동을 전개시켜야 되겠습니다. 이 운동의 선두에 자기의 자녀를 세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얼굴을 못 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새로운 역사를 해 나오시면서 아들을 죽이고 종들을 죽이고 양자의 이름을 가진 자들까지 죽여 나왔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종족, 민족, 국가까지 전부 투입시켜 가지고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면모를 나타내시면 여러분은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버지라고 하겠습니까? 어느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까? 아버지가 더 가깝고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라는 이름도 좋기는 좋지만 아버지보다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나 죽소. 용서해 주소서' 하는 것하고 '아이고 아버지, 나 왔소. 나 좀 보소' 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좋아요? '아버지, 나 왔소. 나 좀 보소' 하는 것이 좋다고요 ? 알긴 아는구만요.

선생님의 처지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처럼 대학물이나 먹었다고 꺼떡거리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까지 일생을 투입해서 이런 놀음을 했을까요? 어느 누가 뒷골목 생활하기 좋아서 하겠습니까? 그늘에 살고 싶어서 그늘에 살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지 않으면 전체가 문제되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누가 하든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수천 수만의 사람이 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타고난 팔자 소관으로 알고 오늘날까지 정면 직행해 나온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누구도 믿질 않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도 바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외로운 사람입니다. 혼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전부다 설명해 주고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놓고 설명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미리 설명해 주고 복귀할 수 있다면 이미 6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창조목적은 이런 것인데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요렇게 되었으니 요렇게 하지 말고 요렇게 해서 복귀하라고 가르쳐 주기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로서의 권위를 찾으려면 부모가 탕감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 천리의 원칙입니다. 자기의 잘못된 것을 자식한테 넘겨 주지 않으려는 것이 부모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부모는 자기의 잘못을 후손에게 송두리째 넘겨 줬습니다. 넘겨줬습니까, 안 넘겨줬습니까? 송두리째 넘겨 줬습니다. 이것을 송두리째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협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이 가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고대하며 찾던 그 나라는 무한한 외로움에 잠겨 있는 나라 였습니다. 그가 찾는 가정도 무한한 고독의 장벽을 헤치고 나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허우적 거리다가 10년도 싸워 보지 못하고 3년노정 끝에 십자가에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보다 더 불쌍해요, 더 불쌍하지 않아요? 「더 불쌍하지 않습니다」 불쌍한 패하고 불쌍하지 않은 패 중에 어느 쪽을 동정해야 되겠어요? 불쌍한 패를 동정해야 되겠지요? 불쌍한 사람을 동정해야 돼요.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동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영계를 동정하면 동정했지 통일교회패들인 여러분을 동정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고생을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나가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 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지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예」

그런데 그렇게 일을 시켜 놓고 대가를 줄 수 있는 준비를 못 해 놓으면 몰매 맞아 죽지요? 공장이나 회사에서 종업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그러는 데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일을 시키고 나서 삯을 안 주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장이 몰매를 맞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런 입장이 되면 몰매를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안 맞습니다」 여러분이 안 때리겠어요? 「예」 그거 무엇으로 입증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게끔 이 시간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웃음)

사람은 손해를 보면 손이 올라가고 발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먼저 이야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손해보기 위해 앉아 있습니까? 이익보기 위해 앉아 있습니까? 「이익 보기 위해서요」 그러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익본 것이 무엇입니까? 거지 이방 사촌밖에 더 됐어요? 무슨 이익을 봤어요? 선조들이 가던 역사적인 거룩한 자리에 동참하게 된 이익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하루 총을 팔지 못하고 공쳤다고 해도 '세상에 나 같은 사람 없구만. 수천 수억되는 영인들아, 날 좀 봐라' 이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생각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아무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올림픽경기에서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선을 힘차게 박차고 나가듯이 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공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몰리고 쫓기다가 쇠사슬에 끌려가더라도 나는 힘차게 출발한다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은 역사의 맥박이 뛰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 주름살을 제거시켜 버리고 깊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로 들어가 그 주류가 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맥박의 고동을 파동시키는 순간을 맞아야 되겠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옛날에 고문받던 시간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쳐라, 이 자식아!' 의식이 있는 한 나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의식을 잃어 버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한 말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죽어 넘어져 가지고는 대답했을는지 모르지만 살아서는 대답 못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하나님을 배반할 후계자나 상속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단단히 정신차려야 합니다.

낙제생에게는 몽둥이가 제격

이러한 엄청난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생애에 있어서 언제 이 고개를 넘을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계획을 전부 짜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이러저러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들이 영원히 남아지지 않더라도 나만은 뜻을 얽어 매 가지고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고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난시에 적진에 들어가서 공작을 하다가 본부의 명령이 떨어져서 모든 서류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뜰 비행장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산이면 어떻고 벌판이면 어떻습니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뜨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러한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가는 날에는 사람들이 조롱하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멋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장이란 그 나라의 국민이 원수를 대하기 전에 먼저 원수를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 나라의 왕보다도 먼저 원수를 대해서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명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용사다운 용사입니까? 「예」 적지에 들어가서도 자기의 소관을 중심삼고 책임을 수행하여 목적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어때요? 나가면 떼지어 가지고 돌아다니고 말예요. 그래 가지고 무슨 적을 무찌르겠어요?

일생을 걸고 돌파해야 됩니다. 일생을 걸고 돌파해야 돼요. 그래야 거기에서 맛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국경선을 넘어 보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국경선을 넘어 보았는데 말예요. 보초 선 사람들 옆을 지나게 되면 아주 신이 납니다. 영화를 봐도 밍밍하니 물에 물 탄 듯, 돌에 자갈 섞은 듯한 영화가 좋아요, 아찔아찔한 영화가 좋아요? 죽이고 살리고 때로는 눈알도 빠지고 코도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도 깨져 나가고 피를 쏟고 죽어 자빠지기도 하는 영화가 드릴 있고 자극적이지요?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여러분은 자기가 맡은 책임을 완수했습니까, 못했습니까? 「못 했습니다」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수난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사람은 낙제생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수난길에 있어서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면 낙제생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2학년으로 올라갔는데 낙제하여 신입생들과 같이 앉아서 공부하면 그거 기분이 좋겠어요? 그러나 낙제도 한번쯤 해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 맛을 알기 위해서 일부러 해보는 것은 괜찮아요. 시험 볼 때 백점 맞을 수 있는데 답을 하나도 안 쓰면 낙제하는 것입니다. 그 맛도 괜찮을 거예요. 여러분은 낙재생이에요? 아니예요? 학교에서도 낙제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수습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번번이 낙제를 하는 사람한테 '너한테 큰 기대를 갖고 있으니 백점 맞아라' 한다고 해서 그것이 통합니까?

그러면 낙제를 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턱이 왔다갔다해야 합니다. 빳따가 제격이라는 겁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빳따를 쳐야 하는데 영감이 맞으면 '아이구 사람 몰라보네! 넌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나?' 대번에 그럴 것 아니겠어요? 「선생님이 때리면 안 그럽니다」 내가 왜 때리나요? 삼척동자를 시켜서 때리면 때렸지요. 내가 때리겠다면 좋아서 서로 맞겠다고 하는 것을 많이 구경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젊은 사람들에게 본이 못 되는 사람은 삼척동자를 시켜서 그 배에 탄약, 즉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해 가지고 그 도화선에 불을 당기겠다는 것입니다. 도화선에 불이 붙어 피지직피지직하면 그때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 놈을 잡아서 목을 잘라 죽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요. 폭발해 버리는데…. 여러분 삼척동자가 여러분에게 그래도 괜찮아요 ?

나라가 망하게 되면 누가 먼저 비웃느냐 하면 어린이들이 비웃습니다. 어린이들 입에서 '우리 나라 상감마마는 잠꾸러기 상감마마…'라는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그 나라의 동요를 들어 보면 그 나라가 부흥하겠는지 부흥하지 못하겠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시대상을 제일 순수하게 비평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들밖에 없습니다.

낙제생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어디를 가든지 조롱을 받습니다. 천덕꾸러기예요. 그러니 어디 가든지 부끄럽습니다. 하늘을 보기도 부끄럽고 땅을 보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빳따가 적격입니다. 빳따를 쳐서라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빳따로 후려쳐서라도 낙제과에서 벗어 나게 해주면 고맙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빳따 장사를 좀 해야 되겠구만요.

축복 가정들도 남편이 잘못했을 때에는 아내가 들이쳐야 되고, 아내가 잘못했을 때는 남편이 들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것은 후세를 교훈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빳따가 없었으면 이렇게 잘못되었을 것인데 빳따의 은덕으로 잘되었다 할 때는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던 그 환경이 결국은 후세를 교육할 수 있는 교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본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잘난 사람입니다.

모험을 무릅쓰는 선발대가 되어야

오늘날 통일교회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보다 고생을 조금 더 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혹자는 나라를 위해 나보다 더 고생을 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고생과 아득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을 위해 고생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고생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점입니다. 대통령과 노동자가 똑같이 하루 8시간 일을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같습니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남자나 여자나 이 60년대를 중심삼고 자기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엄청난 뜻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힘차게 적진을 향하여 정면으로 나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그 실적을 남기고 돌아오는 사나이, 그런 용사가 되어 그 나라 앞에 나타나면 그 나라의 백성이 치하하고, 그 나라의 국왕이 반겨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날이 선포되어 이 지상의 사령본부를 중심삼고 여러분을 직접 불러다가 명령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여러분들은 그 명령에 순응하는 자세를 갖추어서 시대적이요, 역사적인 여러분, 앞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엄청난 시점에서 여러분의 권위와 체면과 위신을 세우는 선발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선발대가 되겠습니까, 후발대가 되겠습니까? 선발대가 좋아요, 후발대가 좋아요? 「선발대가 좋습니다」 왜 선발대가 좋습니까? 선발대에게는 많은 모험이 요구됩니다. 선발대의 가치는 그 모험에 의해 결정됩니다. 선발대에게는 백방으로 모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한번 갔다 오면 절반 이상이 죽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선발대는 안팎의 모든 모험을 걸고 최초로 나서는 아폴로 11호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폴로 11호를 좋아하는 것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은 모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역사의 찬란한 문화가 시작된다면 그들은 개국공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갔다 오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역사의 그늘에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모험을 하여 갔다 온 사람은 아무리 못난 철부지라도 찬란한 역사의 문화권을 움직일 수 있는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순교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첫 조상이 누구입니까? 스데반이지요. 여러분, 스데반이 미욱한 사람입니까? 사태가 불리할 때는 변소라도 살짝 갔다 올 수 있지만 스데반은 그러지 않았지요. 그게 미욱해서 그런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데반은 미욱하지 않았어요. 스데반은 사나이로서 한번 외치고 나섰다면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이 녀석들아 돌멩이를 던질 테면 던져라' 하며 후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나이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그런 상황에서 후퇴하겠습니까, 그냥 거기서 직사하겠습니까? 「직사하겠습니다」 만약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착륙해서 한 발만 내딛고 죽었다면 달나라의 정복은 누가 한 것입니까? 발끝만 달 표면의 먼지에 살짝 대다 죽어도 그가 달나라 정복의 일대조로 꼽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 시대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스파크가 일어나는 순간이 있는 데 그런 곳에 어떻게 불을 켜고 돌아오는 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폭파해야 할 대상이 있는 곳에는 안팎으로 그 이상의 위험이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여 거기에 첫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그 권위와 영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섭리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으로 이런 미지의 세계에 제일 먼저 발을 들여 놓은 사나이가 누구입니까? 싫든 좋든, 잘났든 못났든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이거 인정해요? 「예」 인정한다면 환영잔치라도 해줘야 되지 않겠어요? 달에 갔다 온 암스트롱이 한국에 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보지도 못한 사람까지도, 자던 사람까지도,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까지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을 그렇게 환영합니까? 환영해요? 「예, 환영하고 말고요」 그 환영 잔치를 적진내에서 해야 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환영할 수 있겠어요? 「예」 모두가 좋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장소가 아니라 적진의 굴속에서 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환영식에 제1차로 참석하겠어요, 제 2차로 참석하겠어요? 「제1차 환영식에 참석하겠습니다」 알긴 아는구만요. 욕심들은 많아 가지고…. 그런데 제1차 환영식에 참석하려면 죽음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길이 싫다면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2차 환영식에도 못 갑니다. 제 2차 환영식은 제 1차 환영식에 참석한 사람을 끼어 가지고 준비시켜서 가야 하기 때문에 죽음길을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제 2차 환영식에도 참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복귀섭리 노정을 중심삼고 이런 환영 파티가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마음의 자세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이러한 환영 파티를 몇 번째 맞이했습니까? 「세 번째 맞이했습니다」 여기 세 번 다 참석한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도 있긴 있구만요, 이 환영 파티에 참석하는 데 있어서 남들은 떡도 해오고 갈비도 구워 오고 예복도 입고 오는데, 어떤 사람은 거지 보따리를 끼고 와서는 '나 좀 도와 주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참석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것도 참석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거지가 되어서 '오늘이 하나님 날이니 떡을 했을 텐데 신세 좀 지자,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떡이나 얻어먹으러 가자' 하고 온 사람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없는 것 같지만 있단 말에요. 난 아닌데 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얻어먹으러 왔어도 참석한 것입니까? 자기는 참석했다고 생각해도 주인은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날까봐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 여러분은 어떤 패입니까? 마음을 졸이며 한 발짝 두 발짝 떼어 놓으면서 '이 시간만 넘어라. 그러면 제1차에 참석한다'고 하며 심각하고 절박한 마음을 갖고 참석하는 아들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며 참석하는 사람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서 참석하겠습니까? 그저 얻어먹기 위해서 참석하겠습니까, 마음을 졸이면서 밤잠을 못 자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석하겠습니까?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석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그 잔치를 치르는 주인은 누구보다도 고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 잔칫날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맞이하기 위해서 십년, 이십년을 그렇게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이라는 잔칫날을 맞기 위하여 얼마나 준비했습니까? 자기 외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 이상의 준비를 했습니까? 어이 아줌마들, 시집 갈 때 신랑이 있는 신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때라는 때는 다 빠지라고 닦고 또 닦고 정성을 다해 단장한 것 이상으로 준비해 봤어요? 또 남자들, 당신 아니면 나는 죽고 만다고 야단하며 가망 없는 어려운 입장에서 수많은 장벽을 헤치고, 비로소 소원을 성취하여 사나이로서 기쁜 마음으로 신부를 맞이할 때의 마음 이상으로 참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껄렁껄렁한 여러분을 보면 앞으로 훈련을 많이 시켜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날에 참석하려면 360일 목욕 재계해라. 하루에 한 끼씩 얻어먹으며 종노릇해라'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제 여러분들은 이 나라와 세계의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무대에 섰습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무대에 선 배우들과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장면을 책임지고 그것을 완수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장편영화를 촬영할 때 다 잘되었는데 배우들 가운데 한 사람만 실수하면 그로 인해 그 영화는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배우가 차라리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작일수록 명배우를 동원하는 것이며, 보면 볼수록 깊고 오묘하고 흥미진진한 내용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영화에 담겨 있어야 명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6천년 동안 고대해 온 하나밖에 없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날 행사를 위한 준비는 얼마나 엄청나게 해야 되느냐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볼 때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성심성의가 미급(未及)하다는 것을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제1차에 참석하여 기념할 수 있는 사람은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제1차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고, 제2차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고, 제 3차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제4차 때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며 제10차까지도 계속 동참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석하는 데 있어서도 그냥 참석하지 않고 통일교인 중의 그 누구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 가지고 남모르는 가운데 정성의 도수를 채워서 하나님 앞에 중간도 아닌 제일 가까운 자리에 참석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잘 왔다' 하실 것이고, 안 오면 '와라. 누구 데리고 와라'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름받아 가지고 참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청객이 되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청첩장을 보냈는데 받았어요? 「청첩장은 못 받고 누구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사탄을 통해 들었으면 벌써 사탄이 다 가져 갔겠구만. (웃음) 나이 많은 사람은 저렇게 변명도 많아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탄이 하나님의 날을 압니까?」 왜 몰라요? 예수를 보고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사탄이 먼저 증거했잖아요. 여러분은 청객입니까, 불청객입니까? 불청객인 여러분을 청객으로 만들려고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한 그 보따리가 제 1호, 제10호, 제100호, 제1,000호…. 이렇게 그 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통일교회는 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의 말에 순응하면 통일교회의 중요 운세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의 전통을 상속받게 되며 자기의 아들딸도 이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상속자는 하나님이 지명하셔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결국 후손들이 복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런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0년대에는 보따리를 싸라고 하면 싸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도 보따리를 쌀 것입니다. 이 70년대에는 선생님이 지방에 많이 갈 거예요.

멋진 잔치를 한번 해보자

이제 몇 해가 지나면 선생님은 한국에서 살지 않습니다. 지금 외국에 가서 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일본에서도 지금 기금을 마련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내가 가면 살도록 한다고 집을 짓겠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제 어디를 가도 밥을 굶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밥을 굶으면 여러분이 벌어서 먹여 줄래요? 어디 벌어서 먹여 주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야! 이거 기분 좋구만요. 내리세요. 지금은 누가 밥 벌어 먹이는 거예요? 선생님이 벌어 먹이는 거지요.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도 클 만큼 컸으니 여러분이 벌어다가 먹여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 혼자 벌어들이는 것과 많은 사람이 벌어들이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어요? 「많은 사람이 벌어들이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서로 벌어먹이려고 하는 한국식이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 혼자 많은 사람을 벌어먹이느라 고생했기 때문에 힘이 들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벌어먹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한 것을 갚기 위해 여러분이 서로 벌어들이려고 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벌어먹이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세를 안 지고도 살 수 있다 이겁니다. 선생님은 가진 것이 없어도 부러워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집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대한민국 대통령은 재임시에는 대통령이라는 명패를 갖지만 재임시대가 끝나면 그의 이름을 대면서 아무 개라고 하면 '그 녀석' 하고 욕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권위가 위축되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우려먹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러운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러운 것이 있어요? 선생님은 부러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욕을 안 먹는 것입니다. 욕 안 먹으려면 그것은 간단합니다. 선생님 모가지만 내놓으면 됩니다. 5분 이내에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가 이르렀는 줄 알거든 뜻을 위해 나가 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만일 여러분과 같은 입장이라면 이왕지사 통일교회의 운동이 뻗어 나갈 텐데 통일교회를 위한 순교의 선조는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스데반이 미욱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가 역사를 빛내고 세계를 수습해 나갔던 순교자의 왕이 되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은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남이 행하지 못하는 일을 행해야 되겠습니다. 그때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하지 않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하면 민족과 국가는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면 세계가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어려움을 참고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날을 세우기 위해서 오늘과 같은 날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내용들을 알고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날을 맞이함에 있어서 몸과 마음의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본부에서는 떡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잔치를 하고 전부다 떡을 해 가지고 오는 겁니다. 보리개떡까지 해 와야 돼요. 오색떡도 해 오고, 여러 가지 곡식으로 갖가지 떡을 장만해 와야 된다는 거예요. 떡 종합회사를 만들어 가지고 잔치를 할까 합니다. 그래 가지고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고 하면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려면 일년에 몇 명씩 정성들여 가지고 돈을 모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잔치를 하지요. 그렇게 되면 본부에서는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아서 크게 한번 잔치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잔치를 하여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전부 등에 지고 시가행진을 한번 해봅시다. 딴따따 행렬을 맞추어 다니면서 '이거 먹고 물렀거라' 하며 소다리를 한 짝씩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갈비도 주고 소갈비도 준다는 소문이 나면 서울 시내 사람들이 전부다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웃음) 그럴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전부 모이면 번호를 정해서 떡보따리를 들고 행렬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백 보, 혹은 오십 보를 가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애기도 좋고 아주머니도 좋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 주는 거예요. 각자가 전부 오십 보, 백보 씩이니까 굉장히 큰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복귀시켜야 되겠습니다.

위대한 사람

이러한 행사는 미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도 할 것인데 선생님이 '대표들은 한국 본부에 참석하라'고 하면 또 올 것입니다. 오는 데 그냥 오겠어 요? 떡이라도 한 보따리씩 배에 싣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싣고 부산 부두에서 청파동까지 오려면 너무 멀지요? 그래서 내가 땅을 사려고 합니다. 무엇으로 땅을 사느냐? 여러분을 팔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찬성해요? 「예」 찬성해야지요. (웃음)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래 놓고 우리 한번 멋지게 살아 봅시다. 이렇게 사는 것이 흥미없는 사람은 지금부터 물러갈지어다! 귀찮게 따라다니지 말아요.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멋지게 싸워야 되고, 멋지게 일해야 되고, 멋지게 훈련받아 가지고 멋지게 행동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자리에서 하늘의 상속권을 스스로 인계받을 수 있는 거룩한 모습을 하나님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여러분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니까 여러분이 이 소원에 일치되어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 동참자가 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제는 땅에 와서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단계까지 해 놓았습니다. 사람은 천년 만년 살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내가 만약 심장병이 나서 30분 후에 죽는 다고 할 때 수백명의 사람들이 와서 '선생님은 죽으면 안 되니까 내 심장을 떼어가라' 고 하는 싸움판을 벌이면 통일교회는 망하겠어요. 흥하겠어요? 「흥합니다」 그 싸움에 가담할 자신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 녀석들, 미적미적하고 있는 것 보게. (웃음) 또 선생님이 위가 아파서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할 때 의사들이 싫다고 할까봐 자기 배를 미리 째 놓고 '내 위를 옮겨 주시오' 할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여자 가운데 있을까요, 남자 가운데 있을까요? 어때요, 남자들? 「남자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때요? 「여자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가 여자일 때는 천상 세계에 가서 첫째 왕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 보겠다는 여자들 손들어 보세요.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큰소리치고 청파동의 왕자로 산다고 하지만 나도 사람이니까 죽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예요.

사람이 세상에서 오래 산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전성시대에 있어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그 시대에 영광을 누리고 가는 사람보다도 그 영광을 자기의 후대에게 넘겨 주어 그 백성과 세계의 것으로 남겨 놓는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같은 양반은 그러한 찬스를 놓치지 않고 죽음으로써 그것을 상속시킬 수 있는 전통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점령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뜻이 겨냥하는 목표를 중심삼고 이 엄청난 시대에 태어난 긍지를 손상시키지 않고 빛내어서 하나님의 영광된 자리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바라시던 소원의 날은 역사적인 슬픔과 더불어 밀리고 쫓겨 나왔사옵니다. 그토록 찾고 고대하시던 그날이 오늘 저희들이 맞이한 이날인 줄을 몰랐사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으며, 한 많은 역사시대를 엮어오면서 후손들을 바라보며 해원성사할 수 있는 소생의 한 날을 얼마나 고대했는가를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저희들이 구해 줘야 되겠사옵니다.

땅 위에서 살아 생전에 피땀을 흘리면서라도 목이 터지도록 저 30억 인류 앞에 새 복음의 내용을 선포하고 가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앞으로의 갈 길을 가기 위해 힘차게 출발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피곤함을 느끼고 모든 싸움의 터전을 피해 가려 하는 것이 인간적인 생리이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런 자리에서도 하늘로 직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절개와 충절을 변치 않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수십 성상을 지내고 제 3회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이 시간을 맞게 된 것은 진정 감개무량한 일이옵니다. 아버님, 그동안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누구도 모르는 그 사연을 엮어 오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셨습니까? 마음 졸이시던 사연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땅 위에서 단 한 사람을 중심삼고 인연을 맺고 나오시던 아버지의 불쌍하고 처절한 모습을 이제는 알았사옵니다. 목을 부여안고 위로해 드려도 풀 수 없는 사연을 지니신 아버지이심을 알았사옵니다.

누구보다도 외롭고, 누구보다도 분통하고, 누구보다도 비참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야 할 저희들이 오히려 아버지의 등에 저희의 슬픔을 짊어지우려고 울부짖었다는 것을 깨달았사옵니다. 저희의 슬픔을 아버지께 맡기려고 호소하던 저희 자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수고하시는 것이 응당하고 저희는 수고스러운 길을 피하는 것이 응당한 줄 알았지만, 이것이 천리 원칙의 순리가 아니라 역리인 것을 깨달았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시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자기의 아들딸을 귀하게 여기듯이 아버지의 뜻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아들딸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목구비 오관의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전체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로되 먼저 이 오관 전체가 아버지를 위하고, 아버지를 보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직까지도 눈물을 흘려야 할 길이 저희 앞에 남아 있사옵니다. 삼천만 민중의 내일의 생명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때, 그야말로 하늘을 대표할 우국지사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옵니다만 오늘날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뜻 앞에 있어서 배척받고, 밟히고, 상처입은 무리들이라도 다시 수습하여 내세우지 않고서는 민족의 최후의 한 고비를 넘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딸들을 섭리의 일선에 세우오니, 아버지. 당신 앞에 있을 슬픔의 길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시옵소서. 그리하여 1960년도와 1970년 도를 연결하기 위한 이번 동계계몽전도기간에 임지에서 눈물을 뿌리고 돌아올 줄 아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하여 축하하고 있지만, 천지사방의 외로운 자리에서 오늘과 같은 명절을 맞이하고도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조롱받고 비난받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환경에서 눈물 흘리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결코 그 자리를 싫다고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몇천만배 수고의 길을 넘기고 온 그 아들의 전통을 상속받기 위한 입장에 있고, 또 그래야 될 운명선에 서 있기 때문에 응당히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고 감사히 소화시키고 맞이하는 정월 초하루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축하받는 하나님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서울 청파동, 이곳의 스승을 향하여 만복을 받으라고 축복하는 사람들이 있사옵니까? 저는 그들의 축복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의 축복을 돌이켜 민족을 축복하시옵고 세계를 축복하시어서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여, 세계에 널려 있는 색다른 수많은 민족들도 오늘 이 아시아의 일각에 있는 한반도의 서울 청파동을 중심삼고 눈물지으며 보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스승이 걸은 원한의 길로 말미암아 그들이 해방의 조건을 상속받기를 원하오니, 그들이 저로 인하여 눈물의 짐을 갖고 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대신 무한한 행복과 무한한 희망과 자주권을 갖고 하늘의 권위를 자랑하고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아들로서 이곳을 앙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는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헤어지면 또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만나 줘야 할 책임이 많은 것을 생각할수록 몸은 하나요 사정은 천만사였기에, 그들 모두를 대할 수 없는 사정을 당신은 아시오니 당신이 직접 대하시어서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직접적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루한 1960년대의 마지막 해 1969년도는 지나갔사옵니다. 이제 1970년대에는 7수를 맞이하여 영광의 새로운 소식이 온 세계에 뻗어 나가게 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아침에 저희들이 비록 흰옷을 못 입었을망정 흰옷을 대신하여 청결한 몸과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생애의 분립조건을 청산짓고 새소망의 조건을 세우고 양팔을 벌려 마음놓고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자유의 천지, 자유의 동산, 그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아들딸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노정 위에 가꾸어진 수확의 결실이라고 칭찬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아버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은 쉬운 길이 아니옵니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들에게 이 자리를 권고하면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피흘린 역사적인 곡절의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도 그러해야 되겠사옵고, 일년 365일 전부가 그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1970년도를 중심삼고 기를 펴고 아버지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시대로 출발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의 힘이 부족하면 힘을 모아야 되겠고, 정성이 부족하면 정성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이 하나의 목적을 승리의 결과로 거두기 위하여 저희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축하하고, 이날을 기념하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뿐만 아니라 영계와 관계맺은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이날을 축하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위에도 복을 베푸시어서 통일의 혈족이 되고, 통일의 족속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만국에 해방의 깃발을 들고 나서 제 2의 해방을 성취시킬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비록 부족한 모임, 부족한 자세, 그리고 부족한 환경이 되었더라도, 아버지. 용납하시옵소서. 이제 제 4주년을 맞을 수 있는 1970년도를 당신께서 맡으시어 저희들을 승리의 권으로 이끌어 품어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님, 한국에 섭리의 뜻을 펼치시기 위하여 아버님께서 수십 년 전부터 수고하여 오신 것을 이 민족은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의 무리가 그 뜻을 받들어 역사적인 비참한 역경과 더불어 싸워 온 것을 생각하올 때 이 땅 위에서 책임을 짊어진 자들이 아버님을 위하여 충성은 하였지만 그 뜻을 받들어 최후의 종점까지 가기는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역사를 통하여 알게 되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 모인 저희들에게 이제부터 가야 할 행로를 아버지께서 맡아 가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슬픔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이어 나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한국 땅에 아버지의 뜻을 세우기 위한 역사적인 수고의 터전을 저희에게 상속해 주셨사오니, 이제 저희들은 금후에 가야 할 전체의 뜻이 아버지의 영광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제물이 되어 저희에게 맡겨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자리에는 전국에서 수고하던 당신의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여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한몸 한뜻이 되어서 1970년을 장식하여 아버지 앞에 참된 제물로서 고이 바쳐질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그 뜻이 오늘 저희들로 말미암아 결실되지 않으면 안 되고, 예수가 바라던 그 뜻이 오늘 저희들로 말미암아 결실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적인 사명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러서 저희들에게 상속되어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서부터 새로운 광명의 천국을 개문하여 입성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바라시며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참아 오셨고, 예수와 성신도 참아 오셨고, 또 죽음길을 갔으며,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포악한 원수들의 손에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이날을 고대하고 참아 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역사적인 초점상에 처해 있는 저희 개체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 한가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들레헴의 한 고을에서 외롭게 태어났던 예수도 아버지로부터 인연되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뜻을 오늘날 한국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횡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음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가 얼마나 긴장되고 심각한 자리인가를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의 실수로 인해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을 예수로 하여금 탕감복귀하게 하시어 당신의 뜻을 결실시키려 했던 6천년의 아버지의 거룩하신 복귀섭리역사를 저희들이 회상하면서, 오늘 저희 자신들의 마음과 몸을 새로이 갖추어 온전히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자녀들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에 모였사오니 2천년 전 예수의 슬펐던 사연을 동정하며 그가 원했던 모든 목적을 저희의 실체를 통하여 거두어 들일 것을 새로이 맹세하고 다짐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예수의 탄신을 축하하고, 예수의 소원을 성취해 드릴 수 있는 저희 자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기억하는 수많은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하나님의 섭리는 복귀섭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복귀섭리의 한계점은 본연의 기준을 완성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복귀섭리의 한계점

그 본연의 기준은 어떠한 물질을 중심삼고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삼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즉, 본연의 아담 해와가 완성의 기준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가정의 형태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복귀섭리의 한계선인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참된 가정으로서의 하나의 씨가 될 수 있고 모델이 될 수 있기에, 그 가정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한계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짓 부모가 생겨났으니 그 거짓 부모의 모든 사연을 제거시키고 새로이 참부모의 인연을 이 땅 위에 성립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의 인연을 성립시키는 기준이 가정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참부모로부터 참다운 자녀가 나오고, 참다운 자녀로부터 참다운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복귀섭리의 한계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서러워하신 것은 결국 무엇 때문인가? 복귀섭리의 한계점이 되는 창조이상, 즉 아담을 중심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세웠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이 여기에 개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뜻과 더불어 일치되지 못한 인간들에게도 역시 그 뜻을 완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슬픔이 개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과 인류의 한은 어느 때에 풀릴 것이냐? 본연의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이요, 인간의 한도 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소원이 성취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펼치시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타락권내에서 죄악의 혈통을 받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죄악권을 탈피한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 해와와 같은 창조이상의 사람입니다. 그러한 이상의 사람을 어떻게 재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신앙을 중심삼고 바라는 인격은 타락 전의 아담을 중심삼은 것이요, 그 소원의 중심은 죄 없는 환경에서 본연의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탄생의 목적

이렇게 볼 때에 예수는 무엇 때문에 탄생했느냐? 예수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4천년의 역사적인 기반을 닦은 것은 타락한 환경권을 수습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인연맺을 수 있는 환경을 상속해 주고 하나님이 본시 찾고자 원하던 하나의 남성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남성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상대적인 이념을 갖추어, 그 환경에서 비로소 창조이상의 기준을 실현 시키기 위해 예수를 보냈다는 것은 우리가 원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가 출발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가 생활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가 절대적으로 사명을 감당하여 나갔더라면 오늘날 기독교의 역사는 절대로 그런 비참한 역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소원인 창조이상의 한계점이 될 수 있는 그 기준에서 예수를 중심삼은 환경이 갖추어졌더라면 사탄의 참소니 핍박이니 싸움이니 하는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첫째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타락한 인간 세상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역사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죄악을 청산지어야 할 사명이 배후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요셉과 마리아를 중심삼은 가정과 유대교단이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만일 요셉 가정과 유대교단이 하나가 되고 예수와 환경권이 일치되었더라면, 예수의 배후에 남아진 역사적인 탕감내용을 그들과 일치시켜 사탄에 대한 하늘의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이 평면적으로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생전에 다 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인 배후의 인연을 살아서 청산짓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명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단순히 그 시대 사람들이 책임을 못해서라기보다 청산해야 할 역사적인 배후의 내용을 해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걸려서 죽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배후의 사연을 탕감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처한 환경이 승리적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교가 이루고 있던 그 환경이 그냥 그대로 예수 앞에 상속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속되기 위해서는 배후의 엉크러진 모든 사연을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러한 입장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하신 예수님은 탄식의 생활을 거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내적인 고충과 외적인 시련을 극복하여 기어이 그 목적을 달성하려 했지만, 끝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역사적인 배후의 인연을 청산지어야 할 것이 그냥 그대로 그 시대에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배반하여 나온 원인이 무엇이냐? 시대 시대마다 사람들이 배반해 나온 그 근본 동기가 어디에서부터 연결되느냐? 시대 시대에까지 남아 있는 , 역사적으로 탕감되어야 할 배후의 모든 요건들을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환경을 중심 삼고 계속해서 배반의 조건이 제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예수님 앞에 부딪쳐 올 때 예수님은 이것을 홀로 해결지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이런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지은 다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인 문제만 해결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지음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기준을 그 환경권내에 실체로 거두어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단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한 종교였으니 그 역사적인 종교에 남아져 있는 모든 탕감조건을 해결지음과 동시에 그 탕감해야 할 유대교권이 예수님 앞에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과정은 언제나 복귀섭리노정에 남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먼저 역사적 배후에 남아진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이것을 승리로 매듭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리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승리는 그 시대의 승리로 수습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결국 무엇이냐 하면 부활섭리로 볼 때 역사과정에서 실패했던 모든 사실들을 재현시켜 가지고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재현된 그 환경은 예수님과 상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예수를 중심삼고 인연된 환경이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새로이 출발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인연이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감돌면서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책임

여기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을 두고 볼 때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나서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어떠한 책임을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닦아 나온 기독교 역사,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년의 역사, 전체의 섭리로 보면 6천년의 역사, 이 역사적인 배후에 제시된 모든 탕감조건을 청산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청산짓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청산지은 것을 실체로 재현시켜 부활의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영광된 아들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영적 복귀를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제 2이스라엘은 배후에 영적 복귀섭리의 인연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연을 상속받아 탕감의 조건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는 기독교의 소망을 완전히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실체적 환경, 다시 말하면 환경에 있어서 실체적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환경의 일체권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영적 승리의 기반을 실체 승리의 기반으로 만들 수 있는 부활역사를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움직여 나온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인연은 여러분 개인에게도 있는 것이요. 가정에도 있는 것이요, 종족 민족 국가에도 있는 것입니다.

가정 자체를 두고 보면, 하나의 가정이 나오기까지에는 하나의 가정이 나타나기 위한 역사적 배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가정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 남아진 참소조건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참소의 조건을 끊어야 합니다. 끊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체로 부활시켜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빌어 말하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해 나온 노정에 있어서 제시했던 모든 탕감조건들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것들을 횡적으로 재현하여 탕감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그 가정이 나타날 때까지의 모든 탕감조건과 그 가정 자체가 앞으로의 환경에서 세워야 할 탕감조건, 이 두 분야에서의 사명을 완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롭게 해방된 나로서, 역사적으로 승리하고 시대적으로 승리한 나로서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섭리의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요셉 가정의 책임

이와 같은 입장에 있던 예수는 그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알고 책임을 지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예수 자신에 있어서 제일가는 소원이 무엇이었겠느냐? 그것은 가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 발판이 되어야 할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바로 요셉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그때까지 4천년에 걸쳐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 역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그 본연의 가정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정부터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찾아 세운 것이 요셉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 가정에서의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어떤 뜻이 있느냐? 그들은 역사적인 우리의 조상을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종적인 조건을 제시함에 있어서 그 탕감조건을 막아낼 수 있는 승리한 하나의 가정형태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 단계, 즉 완성 기준을 남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여 떨어져 내려온 가정이 아니라 거기서 새로이 올라갈 수 있는 가정의 기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의 기반을 예수님이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상속받는 그 자리는 4천년 역사과정의 승리적 실체를 상속받는 자리입니다. 그 상속된 기반 위에 서서 예수님은 현실적인 환경을 이루어 그 환경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연후에 현실분야에 있어서의 탕감조건이 제시되어야 됩니다. 이 기준이 비로소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 해와의 본연의 기준입니다. 이러한 본연의 기준을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지상에 평면적으로 성립시켜 나가야 했는데, 이러한 환경적인 기반을 상속시켜 주는 터전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과 정면충돌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만약 요셉 가정이 하나되기만 했다면 거기서부터 역사적인 해원성사의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요셉 가정은 복귀섭리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이 예수와 완전히 일체가 되었다면 그 종족을 중심삼고 12사도를 택하고 그 종족을 민족으로 확대시켜서 내적인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당시의 유대교가 받들지 않더라도 유대교와 대치시킬 수 있는 환경을 결정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 가정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이 모든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벗기 위한 제 2차적 싸움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쓰러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그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국 강토에서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신령한 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해방이 되기 전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이를 준비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기성교회는 그런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을 받들고 내적인 뜻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가정들을 통해서, 혹은 수많은 개척자를 통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엊그제, 여러분이 말씀을 들어서 알겠지만 그 철산의 움직임이라든가, 평양의 움직임이라든가, 혹은 원산의 움직임과 같은 이런 모든 움직임은 그 시대적 환경을 대치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받들지 못하면 안 되겠기에 그것을 가일보 전진된 환경에서 하나님은 준비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역사하신 내용과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역사하신 내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것과 한국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신령역사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 가정과 요셉 종족이 이루어야 할 그 환경의 내용을 재현시켜서 싸우는 통일교회의 역사는 기독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영향을 받고 따라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반기를 들고 이와 같은 움직임을 끊어 버리고 막아 버리는 일에 앞장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세워야 할 여러 신령한 단체들로 하여금 요셉 가정과 같은 사명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모든 탕감의 조건을 맡고 나설 수 있는 가정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백 퍼센트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들은 나타나는 결과는 알았지만 그 내용을 알아 가지고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숱한 역사노정을 통해서 이 시대권내에 나타난 그 집단들의 역사는 십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역사의 배후에는 6천년의 기나긴 섭리의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새로이 오시는 주님과 완전히 연결되어 모든 사회와 환경을 여기에 일치시켜 하나의 방패가 되고 완전한 축이 되어 그 주위를 완전히 지켜 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더라면,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되기만 하면 기독교가 믿건 안 믿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걸어온 걸음에서도 예수님이 걸어가던 때와 마찬가지의 환경에 다시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교가 반대하고 요셉 가정이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한국 강토에서도 기독교가 반대하고 신령집단들이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아 승리를 결정하여 역사적인 모든 실패했던 기준을 다시 수습할 수 있는 제1기준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는 수난의 길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직접 부딪치게 되면 이것은 내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요, 외적인 입장에서도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즉, 양면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핍박과 육적인 핍박이 일시에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개척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요셉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틀입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치는 조건을 연결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외적으로 보면 세 아들의 가정과 마찬 가지의 기준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제시하여 내적인 기준을 결정지음으로써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대 사회적인 싸움을 전개할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세운 섭리적인 뜻

그러면 앞으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축복가정입니다. 세 아들은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야곱 가정을 대신한 가정입니다. 36가정이란 어떠한 가정이냐? 역사적으로 제시된 모든 탕감조건을 탕감해야 할 대표적인 가정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결국 36가정이 무엇이냐 하면 역사상의 각 시대에 있어서 모든 가정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정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내려온 모든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이 시대에 지상에서 방패막이를 하기 위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으로 내려온 탕감조건을 막아낼 수 있는 대표적인 가정이 36가정입니다.

그러면 72가정과 120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나? 36가정은 역사적인 대표의 가정이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엮어져 나온 것을 대신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 72가정과 120가정입니다. 과거로부터 바라며 나오던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막을 수 있는 가정이 36가정이라면, 그것을 현실적인 가정의 기반으로서 막을 수 있는 가정이 72가정과 120가정이라는 거예요. 72가정은 종족을 대표한 가정이요, 120가정은 세계를 대표한 가정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기반에 있어서 요셉 가정과 유대교가 그 당시에 예수를 받들지 못했던 것을 가정적 기준에서 막을 수 있는 과거의 조건과 현실의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36가정의 책임이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모든 탕감 조건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을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정의 모든 전통과 사상은 사탄과는 완전히 격리된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이 전통을 중심삼고 횡적인 전통의 인연을 72가정과 120가정이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36가정의 책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책임

그러면 1970년대를 출발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축복해 준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실수한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빨리 청산짓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개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가정의 자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완전한 세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요셉 가정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체가 되어 민족적 기준을 탕감시킴으로써 새로운 이스라엘을 편성해야 되는 것과 같이 국가라는 형태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시되어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 당도한 시점이라 할진대, 내적 정비를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6가정은 이와 같은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36가정에 구성된 한 가정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 방파제가 되어야 합니다. 36가정의 36이라는 숫자는 사방, 즉 360곳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로도 볼 수 있습니다. 1년에 12달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위에 제1, 제2, 제3 가정으로 나뉘어 이 가정들이 종횡으로 하나되고 상하로 하나되어 철옹성 같은 완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선생님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면 여러분이 그 어려움을 중단시키고, 선생님 가정이 져야 할 십자가가 있으면 여러분 가정에서 그 십자가를 책임져서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부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해야 되느냐? 방파제가 되기 위해서 존재해야 됩니다. 이러한 사명을 완결하는 데에는 그들이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외적인 자체로서는 이 방파제를 뚫고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모든 조건을 방비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들은 오직 오시는 주님의 가정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생명과 재산 그 모든 것은 주님의 가정과 주님의 생명이 발전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러한 것들을 비료로 삼아 흡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발전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발전하려면 반드시 다른 분야에서 보급해 주어야 됩니다. 보급해 주지 않고는 발전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보급을 받지 않고는 발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보급이 영적 보급이라 하더라도 어디를 통해서 해줄 것이냐? 직접 해주자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36가정이 잘하지 않으면 보급로가 막혀 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36가정이 책임을 못한다고 참소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왜 가정이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 36가정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발전하고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누구에게 달렸느냐? 36가정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36가정이 잘한다 할 때에는 그 36가정이 주님 앞에 완전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주체로 오시는 주님의 가정은 더 잘해야 됩니다. 그 대상의 모든 것을 흡수해 가지고 일체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가정들이 문제요, 선생님의 가정이 문제가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싸움을 전개해 나온 것이 지난 10년 기간이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체 축복가정을 대표하여 책임해야 할 36가정

이제는 어느 한계의 단계를 선생님이 잡았습니다. 선생님 자체가 중심으로서 외적인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왔기 때문에 비로소 36가정을 통솔하고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시대로 넘어가는 때가 바로 1970년대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36가정을 재정비해야 됩니다. '예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 라는 말씀의 제목과 같이 이것이 지금 축복가정들에게 있어서 당면한 과제요,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당면 과제를 놓고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면 예수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고 맙니다. 예수의 탄생도 헛된 것이요,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것도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기준을 자체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36가정은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밟고 올라선 가정으로서, 현실적인 기준에서 하늘 가정을 앞에 세우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대표자와 현실의 대표자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36가정은 과거의 대표자요 오시는 주님은 현실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실이 비로소 여기에서 완전히 승리한 입장을 갖게 될 때, 이것은 원리적으로 보아서 세계적인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36가정이 지닌 책임이요, 선생님이 지닌 책임입니다. 알겠지요?

36가정은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막아낼 수 있는 결실의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탕감조건권을 부활해 가지고 탄생한 가정입니다. 그것이 역사적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그 역사와 시대적 기반 위에서 승리한 가정, 현실적 입장에서 승리적 권한을 갖고 나타난 가정입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의 가정과 36가정이 완전히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과거와 현재를 수습해 가지고 그 당시의 환경에서 출발할 수 없었던 그 기준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선생님의 가정이 없으면 이 현실에 있어서 갈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들은 선생님의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현실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로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여러분들이 앞장 서서 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 가정이 현실적 기준을 중심삼고 앞장서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뒤에서 울타리가 되고, 거름이 되어서 선생님 가정이 발전할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가정이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안 되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끌고 오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가정을 밀어 주어야 하는 데 반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끌어 오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감 기간만 넘어가게 되면 계속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동원시키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로 넘어서면서 가정을 재차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36가정부터 나서라는 것입니다. 72가정, 120가정도 이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1969년도 마지막 12월에 들어서서 특히 가정집회를 강화하면서 이러한 때를 마련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애써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적인 뜻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특별히 모임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전체를 출동시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모시고 나온 가정으로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책임 못 한 것을 그냥 그대로 봐주는 게 아닙니다. 책임을 못하면 현실적인 환경에서 재차 탕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러한 환경을 다 제거시키고 일선에 나서서 활동하는 것이 거기에 대한 탕감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금번 동계 방학 동안에 여자들을 앞에 내세우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되어진 일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감사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입장이요,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뜻이 바라고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 앞에 일체화시킴으로써 예수님이 탄생해서 생애의 목적을 달성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갖는 것입니다. 이 결실을 우리가 새로이 다짐하면서 내일의 여러분 자신을 예수님이 소원하던 이상의 실체로서 나타내 주기를 바라며,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데에 더욱 큰 의의를 두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인간이 타락한 이후 철없는 저희들을 찾아 나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사옵니까? 면목이 없사옵니다.

아버지, 이제는 저희가 철부지한 어린 시절을 넘어서야 할 때이옵니다. 자기의 있는 재산과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당신이 원하는 예법이 우리 앞에 같이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저희의 지난날을 깊이깊이 뉘우치옵니다.

변치 않는 당신의 깊으신 사랑에 고이 잠길 수 있는 자리를 더듬어 나갈 줄 아는 여기에 모인 전국의 지구장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마음대로 살아 왔사옵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것이 되지 않을 때는 불평도 하였고, 식구들을 못살게 하였고, 본부에 대한 비판도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1970년도의 새아침을 맞이하여 많은 말 많은 생각에 흐려 있는 마음을 다시 결단하고 다짐하는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오늘은 3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할 수 있는 영광의 날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재차 탄생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를 우리로 말미암아 이룰 수 있게 된 것을 증거하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한이 저희에게 맺혀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당신의 한을 거두어 드릴 수 있는 실체가 되어, 오시는 주님과 일체가 되고, 예수의 사명을 분부받은 당신의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찾으시기에 얼마나 수고를 하셨사옵니까? 아버님이 지금까지 세우신 가정이 아무리 못났고, 아무리 부족하고, 아무리 소원에 일치되지 않더라도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사연을 현실적인 가정의 부활체로 이끌어 세우신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천만 번 감사드려도 부족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 가정이 앞으로 오시는 아버지께서 소원하는 가정의 울타리가 되고, 모든 발전의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역사를 거쳐 현실로 연결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존중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앞에서 귀한 책임을 짊어진 것은 자기 스스로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역사적인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시대적인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아가 미래의 소망적인 부활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터전을 닦기 위해서 아버님께서 가정을 세워 주신 것을, 진실로 진실로 감사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감사의 마음으로 모두가 하나되어 가지고 몸부림치면서 내일의 소망의 실체인 하늘 가정을 현실적 가정으로 모심과 동시에, 그 모심의 실체 아들딸로서 사탄이 참소하지 않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전통적 역사와 현실적 역사를 그 아들딸 앞에 남겨 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남겨 주어 상속받은 아들딸은 역사를 승리하고 시대를 승리한 터전에 서게 됨으로써 미래의 대표자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날 36가정과 오시는 주님의 가정이 일체됨으로써,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적인 모든 복잡한 인연이 탕감되어 앞으로 소망의 자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72가정은 36가정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 지를 모르고 살아왔사옵니다. 120가정은 72가정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왔사옵고, 430가정은 120가정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사옵니다.

이제는 가정적 전통을 새로이 정하고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1970년대를 향하는 새아침, 예수 탄생의 거룩한 성탄일을 단장하고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 시간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기뻐하시고, 오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희 자신을 자각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내적 외적 승리의 터전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나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직까지 뜻을 성취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뜻을 성취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 때문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연고로 이 뜻이 실패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뜻 성사와 책임 수행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이 뜻을 수습해서 본래의 뜻으로 성취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수고하시며 내려오시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요, 섭리노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뜻이 이루어지려면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요셉 가정을 택해 뜻을 받들 수 있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만일 세움받은 그 사람이 하늘의 인연을 땅에 연결시키는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방향조차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섭리노정을 통해서 잘 배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가 뜻을 품고 나아가는 행로에 있어서 이 뜻을 성취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해당되는 뜻도 있고 전체에 해당되는 뜻도 있기 때문에 개인에 해당되는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전체에 해당 되는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 가지고는 뜻을 성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뜻이 성사될 수 있는 때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책임 수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 뜻을 성사할 수 있는 한때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조건

뜻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고, 그 다음엔 때가 문제가 됩니다. 언제든지 때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때와 사람 사이에 관계되어서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뜻이여! 성취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류가 오랜 역사과정에서 얼마나 이것을 고대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만이 이것을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시대에 선을 추구하며 하나님편에 서서 악한 세계와 대결해 나섰던 수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뜻이여! 성취 하소서'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뜻이 성취된 때를 아직까지 맞이하지 못하였습니다. 뜻을 성취시키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그 뜻을 성취할 사람, 다시 말하면 뜻의 목적을 완전히 성사시켜 가지고 하늘 것으로 혹은 우리 인류의 것으로 만든 사람과 그런 때가 아직까지 이 지구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과업을 중심삼고 현현했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통일교회 식구들 전체는 물론이고, 앞으로 들어올 수 많은 사람들까지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면한 과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지금까지 뜻을 중심삼고 왔다 간 수많은 선지자들과 같아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그 시대의 환경에 그냥 그대로 휩쓸려서 뜻을 대하다가 흘러가 버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면 현시점에서 뜻을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과거에 뜻을 대하려고 했고, 또 뜻을 대해 나오던 수많은 사람들보다도 오늘날 우리가 뜻을 대하는 모든 면에 있어서 월등해야 합니다. 뜻을 대하는 마음 자세라든가 생활 태도 등, 전면적인 분야에 있어서 그들보다도 월등한 자아를 뜻 앞에 세워 놓지 않고서는 뜻을 성취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개체 개체를 두고 볼 때, 옛날 사람과 지금 사람은 무엇이 다르냐? 사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환경이라든가 세계정세, 혹은 여러가지 사회제도 등으로 볼 때 단순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복잡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산만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단순한 시대에 뜻을 대하며 일편단심으로 온 힘을 기울였던 그 시대의 환경을 중심삼고 보면 그들이 결코 오늘 우리보다도 위에 섰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입장에서도 뜻을 대해 온 힘을 기울여 나왔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산만된 환경에서 뜻을 대하는 우리들은 그들보다 배가의 노력, 배가의 충성을 하지 않고는 뜻 성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이상의 심정을 소유하고 정성들여야 뜻을 이룰 수 있어

과거의 사람들 중에는 자기 혼자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협조를 바랐습니다. 자기가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하나님의 협조를 바랐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들도 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협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협조를 바라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보다 정성을 배가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사람들이 백만큼의 정성을 들였으면 우리는 천만큼, 만만큼의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협조를 바라는 데 있어서도 그들보다 월등한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을 갖추지 않고는 뜻 성사는 불가능하지 않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그런 그가 30여년의 생애를 거쳐서 십자가를 향해 가는 최후의 순간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 39)"라고 담판 기도하던 그 심각한 자리에서의 심정적 기준보다도 우리들이 월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던 것과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는 데에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예수가 하나님을 대하던 내정적 심정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내정적 심정이 달라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심정보다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심정이 우위에 설 수 있는 인연을 가지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간곡히 기도하던 그런 심정을 지니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기도하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다가올 죽음이 두려워서 그렇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온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를 잃어버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예수의 사연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슬픈 사연이요, 딱한 사정이었습니다.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인 입장에 처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우리는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민족보다도 민족과 국가와 나아가 세계의 문제를 대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자신이 수행해야 할 사명이요,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임으로 알고 몸부림쳐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자체가 예수의 심정적 인연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뜻이여! 성취하소서',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여기에는 소원이 미래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현재와 미래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피의 대가를 치르는 탕감의 길을 가야 하며 십자가로 말미암은 죽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메울 수 없는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이 엄청난 뜻을 앞에 놓고 '뜻이여! 성취하소서' 하는 소원을 가지고 뜻을 대하는 우리들 자신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 이상의 심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을 대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를 염려하면서, 이스라엘이 자신을 잃어버리면 이스라엘의 운세는 기울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이방으로 옮겨질 것을 알면서 전체를 책임지고 있던 예수님의 입장이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이런 심각한 자리에서 몸부림치던 예수님의 심정을 능가하는 우리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않고는 예수께서 '뜻이여 ! 성사하소서' 하면서 가신 죽음길을 우리가 해원성사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되는 데 있어서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자세

여러분 자신이 일을 중심삼고 뜻을 따라 나감에 있어 '뜻이여! 성취하소서' 하는 데는 내 개체가 성취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취하소서' 하는 데 있어서 주체는 하나님이고 우리는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주체와 일체화되어야 할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자신입니다. 그렇지만 뜻은 하나님과 우리가 합해 가지고 이루어야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뜻을 기필코 성취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요구요, 우리에게 남아져 있는 사명입니다.

하늘의 뜻과 우리의 사명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개인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면서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호소하던 그 내적 심정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개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개개인이 처해 있는 환경이 다 다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사정이라든가, 혹은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시대적 환경이 모두 다르니만큼 그 다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개인의 뜻과 전체적 복귀섭리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과는 백이면 백 전부가 화합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의 도수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뜻을 성취시켜야 할 우리들은 나의 뜻이라는 자기를 중심한 모든 요인을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한 전체의 요인을 표현화시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늘 전체의 인격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표현시킬 수 있는 인격적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뜻을 위해 태어났다, 뜻을 위해 산다, 그것 외에는 일체 다른 것을 요구할 수 없다고 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그런 기도의 요건으로 담판지을 수 있는 자리를 항시 우리 생활권내에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자신이 뜻을 이룰 수 있는 입장에 섰사오니, 뜻을 주관하시는 아버지여, 뜻을 놓고 나에게 지시하고 명령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어떻게 하여 내 생활권내에, 내 생애노정에 전개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뜻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 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여기에는 내 뜻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 뜻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내 뜻은 전체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나 하나를 중심삼은 내 뜻이라는 것은 국민이면 국민권내에서 이룰 수 있는 뜻의 한계선을 못 넘는 것입니다. 국가면 그 국가권내에서 뜻을 이룰 수 있는 한계선을 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이면 세상에 있어서의 한계선을 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중심삼은 뜻은 역사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뜻이기 때문에 그 뜻권내에 서 있는 사람은 이미 자기의 뜻을 이룬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 뜻은 이미 이루어진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의 내 뜻이 무엇이냐? 내 뜻은 하늘로부터 나고 하늘로부터 살고 하늘로부터 목적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담판 기도를 하지 아니하고도 '뜻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담판 기도하던 예수님이 이상했던 그 뜻을 중심삼고 그러한 요건을 넘어설 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그 뜻으로 말미암아 영속할 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뜻 앞에 세워졌다는 자각심과 주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를 잘 맞이해야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뜻을 이룰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으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때도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반드시 아침의 때, 낮의 때, 저녁의 때, 밤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가 반대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뜻을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때에 대한 시점을 올바로 맞추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예수가 왜 뜻을 이루지 못했느냐? 그 때가 예수와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때가 못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의 인연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가 무르익어 가지고 거국적으로 상하좌우의 모든 국민이 일치되어 예수를 전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의 때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때를 맞기 위해서 3년노정이라는 기간을 지내면서 때를 조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때를 맞추기 위한 예수님의 3년노정이 틀어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영영 그 때를 맞지 못하고 2천년 역사를 거쳐 우리가 이루어야 할 때로 남겨 놓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했느냐?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를 맞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출발할 때와 대한민국 교계가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때가 평행선상에서 서로가 상응할 수 있는 기준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반발이 벌어지고 상충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많은 때를 놓쳐 버렸습니다. 수없이 많은 때를 놓쳐 버리고 1970년대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때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어느때가 뜻의 종말을 볼 수 있고, 뜻의 성취를 볼 수 있는 제일 적절한 때냐 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우리 통일교회 노정에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물론 '60년대도 뜻을 이루는 시대요, '70년대도 뜻을 이루는 시대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어느때가 더 귀중하냐 하면, '60년대보다도 '70년대가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

'60년대는 기초시대, '70년대는 실천시대

뜻적으로 보면, '60년대까지는 교회의 기반을 닦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교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까지 기독교가 반대했지만 그것을 극복하여 반대하지 않게끔 외적인 환경을 갖추는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본래 6천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가 열매맺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통일교회 자체가 때를 맞기 위한 노정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이 시대가 '60년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탕감시대였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적 탕감시대를 결실맺어야 할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뜻을 이루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횡적으로 재탕감하는 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지난 '60년대였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는 눈물로 대가를 치러야 했고, 피로 대가를 치러야 했고, 혹은 다른 모든 희생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러한 대가를 치렀지만, 그 대가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있게 보답받을 수 있는 대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영영 없어질 대가로 치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 사람이 대가를 치르면 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결실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우리가 '60년대에 치른 대가는 통일교회가 하나의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뿐 때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그런 결과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70년대는 어떤 때냐? 우리가 희생을 하면 그 희생한 만큼 대가를 받아 올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60년대와 '70년 대는 시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기반을 닦는 때가 있고, 실천하는 때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성사 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반이 닦아지지 않고는 실천할 수 없으며, 실천하지 않고는 성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60년대는 터전을 닦는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라는 간판을 붙이고 나와서 통일교회로서의 기반을 닦는 시대였습니다.

이제 '70년대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실천하는 시대입니다. 성취라는 것은 반드시 실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반이 닦여졌다 하더라도 기반만 가지고서는 성취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기반 위에 어떻게 이것을 시행해 나가느냐, 또는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실천 시기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봄이 되어서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때가 있고, 뿌린 씨가 싹이 나서 자라는 때가 있고, 그것을 결실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씨를 뿌리기 위해 터를 닦는 시기와 자라는 시기, 즉 실천의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실천시기가 모든 것이 좌우되는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기에 잘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70년대는 실천의 시기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실천해야 할 시기냐? 뜻의 성취를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천하는 모든 것이 역사와 더불어 없어지는 것이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결실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려 그 씨가 자라면 씨는 없어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없어진 씨의 대가로 하나의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것입니다. 그 씨와 생명과는 절대로 다릅니다. 그래서 벼라면 벼가 이 생명을 중심삼고 결실을 맺기까지는 주인의 갖은 수고가 가해져야 됩니다. 비료를 주어야 되며 천지 자연의 모든 혜택이 가해져야 결실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60년도에 수고한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싹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곡식에 비유하면 밭이나 들에 수많은 곡식이 심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벼라든가 조, 혹은 옥수수 등 오곡이 심어져 있는 거기에 비로소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싹이 터서 그 존재성을 가지고 푸른빛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자가 되라

그러면 이제부터의 문제는 무엇이냐? 이것을 어떻게 완숙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전한 결실을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놓고 볼 때, 중요한 시기에 임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실천시기로서 가장 귀한 시기에 당도해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런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 올해부터 실천시대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1974년까지 2차 7년노정이 끝나게 됩니다. 또, 1975년부터 81년까지가 3차 7년노정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70년대가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2차 7년노정과 3차 7년노정이 마지막 고비까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때는 이미 무르익어 우리가 바라던 실천시대를 맞이할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실천시대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때는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을 갖추어 우리의 목전에 다가왔는데, 이 때를 중심으로 실천해야 하는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기독교나 세계의 모든 정세를 바라볼 때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루로 비교하여 보면 그들은 석양을 맞이한 것이요, 우리는 아침을 맞이한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석양의 햇빛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황혼이 깃들어 밤이 될 것이요, 아침의 햇빛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와 반대로 환한 대낮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야말로 중대한 실천과정의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때가 이른 것을 알았으면 인간으로서 실천해야 할 것을 다해 세상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향을 못 미치게 되면 참소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중심한 때를 맞춰 주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때를 회생시키기 위해서 2천년 동안 유리고객했습니다. 기반을 닦는 때에 있어서도 그랬는데, 오늘날 우리는 성취할 수 있는 과정에 있으면서도, 뜻 성사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이 때를 맞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반을 닦는 시대에 때를 못 맞추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회생할 수 있는 한때를 맞기 위해 2천년 수난의 역로를 거쳤다면, 우리 통일교회나 대한민국에 닥쳐올 운명은 그보다 더 비참할 것이 아니겠어요?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일치단결하여 갖추어진 이 한때, 다시 말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이 때를 중심삼고 백방으로 그 효과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것이 금후의 '70년대를 중심한 통일신도들이 해야 할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여러분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완성의 3대 절대요인

그러면 성취할 수 있는 때와 사람이 갖추어졌다 할 때 여기에는 무엇이 필요하냐? 반드시 조건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잘났다 하더라도, 아무리 때가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이 조건을 갖추는 것은 여러분 각자 각자가 다릅니다. 타고난 천품이 다르고, 각자의 소성이 다르니만큼 각자가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이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완성에는 사람이 필요하고, 기간이 필요 하고,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절대 요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해야 하는 우리가 각자의 소성은 다르지만, 이제는 인격을 갖추었고 때를 맞이 했으니 여기에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조건은 무엇이 되겠느냐? 여기에는 반드시 방향을 바로 갖춰야 됩니다.

여러분의 본성과 여러분 자체가 가야 할 방향이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과 서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그 순간까지는 방향이 일치가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과 내 뜻이 일치가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향이 일치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일치된 자리에서 조건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은 동쪽을 바라보고 계시는 데 서쪽을 바라보면서 조건물을 제시하면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된 자리에서 조건물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조건물이란 무엇이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조건물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고, 심정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3대 제물이란 것도 이것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3대 제물이 무엇이냐? 결국은 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3대 제물은 그거예요.

40일 기간이면 그 40일 기간을 중심삼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40일 기간에 있어서 3대 조건물은 3대 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즉, 세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의 세 아들 형(型)입니다. 또한, 이 조건물은 세 천사에 해당되는 것이요, 이 조건물은 3대(代)를 대신한 것도 됩니다. 이를 테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대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나에게 있어서는 내 아버지와 나와 내 후손도 됩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것은 또한, 횡적인 면에서 나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사위기대의 대표적인 형도 됩니다. 이 조건물을 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씀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과 일치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일체가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심정이 하나님과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갖추는 데는 하나님이 지향하고 바라시는 그 말씀과 일치되는 방향, 하나님의 인격과 일치되는 방향,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는 방향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조건이 되는 믿음의 아들딸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예수님과 세 제자 사이에는 방향이 일치가 안 되었습니다. 세 아들의 조건과 형태는 갖춘 것 같았지만 예수님의 뜻과 제자들의 뜻은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차이가 있었고, 또한 예수님의 뜻과 제자들의 뜻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의 뜻이요, 예수의 뜻이자 제자들의 뜻이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위로는 하나님이요, 아래로는 땅을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3대권과 일치할 수 있는 방향을 중심삼고 하나의 기준으로 총합된 목표를 향하여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상충된 입장에서 몸부림쳤던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였습니다. 세 번씩이나 기도한 내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기도하면 됐지, 무엇 때문에 세 번씩이나 기도를 했겠습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버지의 뜻과 여러분의 뜻과 여러분이 앞으로 복귀할 믿음의 아들딸의 뜻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이 3대의 뜻이 종적으로 하나되어, 이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여러분과 여러분의 믿음의 아들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것을 횡적으로 탕감하여야 되겠기 때문에 반드시 세 아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조건물을 제시해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일치되고 사람이 일치되고, 방향이 일치된 자리에서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뜻이 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뜻이여, 성취 하소서'라고 기도해도, 기도해서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일치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 은혜가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은혜는 반드시 때를 만나서 그 시점을 통과해야 됩니다. 때를 맞이한 그 자체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내 뜻이 일치된 자리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조건물과 내가 제시한 조건물이 일치되었을 때, 비로소 뜻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3대가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70년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의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임이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때를 맞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일치될 수 있는 조건물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시해야 할 조건물에는 선생님 자신이 드려야 할 조건물도 있지만 통일교회로서 드려야 할 조건물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예수의 뜻과 그 제자들의 뜻이 일치되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과 통일교회를 중심한 뜻과 선생님의 뜻이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또한, 선생님의 뜻과 선생님을 대하는 여러분의 뜻도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일치되는 데는 일직선으로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각각 떨어진 자리에서는 일치가 안 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일치시키려고 하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일직선으로 서로 일치시켜 가지고 나가야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일치시켜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제자들의 뜻과 일치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갈 길을 가려 해도 못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아닌 그 이상의 어떠한 길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미 길을 결정해 놓고 결정적인 기반 위에서 '나는 이제 간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목적과 방향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안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말씀은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꼭 교회에 나가야 되나?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그 말씀대로 살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에 딱 나와 있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보면, 하나님의 뜻과 선생님의 뜻과 여러분의 뜻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그것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방향을 잡고, 그런 다음에 조건물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치되지 않고는 아무리 때가 무르익었다 하더라도 뜻 성사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3대가 합해져서 하나의 제물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사적인 전체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사람을 세워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그 후손과 일치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일치를 이루는 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가정을 보게 되면 3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그의 자녀까지 해서 결국 3대입니다. 그렇지요? 왜 사위기대를 필요로 하느냐? 이것이 이루어지면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위기대가 완성되지 않으면 종횡이 일치되는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위기대라는 것은 3대가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할 사람들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뜻이 성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대로 남아졌고, 예수의 고통은 예수의 고통대로 남아지게 되었으며, 제자들의 고통은 제자들의 고통대로 남아졌던 것입니다.

그 고통 역시 갈라져서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한마음으로 일치된 입장에서 고통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고충을 느끼고, 예수는 예수대로 고충을 느끼고, 제자들은 제자들대로 고충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3대의 고충이 어느때에 결속되느냐? 죽음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결속되지 않겠기 때문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고개를 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예수의 뜻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치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 고충을 주었고, 예수님께 고충을 주었던 제자들은 영원히 영원히 구속받을 길이 없었으나, 죽음의 길을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심정적 기반과 실천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뜻의 방향에 반대되었던 자신들을 뜻과 일치되는 입장에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문제는 여러분 자신

하나님의 뜻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느냐? 오늘날 이 민족을 대하는 하나님에게는 분명히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책임지고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개인이 된 다음에는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씨족·민족·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중심이 무엇이냐? 바로 내 자체라는 겁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없어 가지고는 뜻을 못 이룹니다. 내가 없어 가지고는 가정의 뜻도, 종족의 뜻도, 민족의 뜻도, 국가의 뜻도, 세계의 뜻도 못 이룬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중심삼고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내 자신이 후손들 앞에 승리의 모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하나가 방향이 틀어지는 날에는 전부 깨져 나갑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은 하나님과 여러분들 사이에서 양쪽을 모두 책임지고 왔다 이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뜻 성사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 이 1970년대는 기반이 닦여진 터 위에서 그야말로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실천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실천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가느냐? 꼬불꼬불 가느냐? 직행하느냐? 꼬불꼬불 가면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직행해야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먼 길로 가게 되면 천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잘못 가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면 어떻게 직행하느냐? 혼자서는 직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같이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취한다'가 아니라 '성취하소서'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앞장서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사람이 앞장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앞장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와 닮을 사람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어디까지나 그 사람은 부모와 일치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세 제자는 예수님과 일치되어야 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로 나가기 전에 먼저 죽을 수 있는 세 제자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맞아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내적인 뼈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외적인 살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뼈인 예수가 맞기 전에 살의 입장인 제자들이 먼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임을 당할 때에 제자들이 먼저 죽는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과 선생님의 입장을 두고 분석해 보면 지금까지 선생님을 맞게 했던 사람들이 누구냐? 통일교회 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전부 외부 사람들이 친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인들이 맞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가 누구냐 하면 집안 식구라는 겁니다.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염려를 끼치고, 가는 길을 복잡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통일교인 여러분들이라는 거예요, 세상도 하늘도 전부 망치는 그런 일들을 여러분들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한 장본인이 누구겠습니까? 타락한 천사장이 그렇게 했습니다. 사탄이 세상도 망치고 하늘도 망친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여러분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바로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죽음길로 가는 길이 뜻을 이루는 길

'뜻이여! 성취하소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여러분이 모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 마음에 모셔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시켜야 되겠습니다.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적당히 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부모입니다.

자기 자식에게 그릇되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그릇되게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원수의 입장에 있는 스승이라면 망하게 가르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스승은 두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형제도 두 종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부모는 오직 하나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나와 내 자식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영계에 가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이땅에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되는 장소가 어디냐 하면 편안한 안식 처가 아닙니다. 십자가 도상입니다. 십자가 도상에서 하나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사탄이 대치하는 최일선에서 일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그런 일선에서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일선에서 하나 되겠다는 마음 자세를 갖춰 가지고 '70년대를 넘어가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70년대를 넘어가게 될 때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근본 내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 전도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진지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생명과 모든 것을 바치는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거기에 간섭하여 모든 문의의 대상이 되어 결정적인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면 하나님은 반드시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런 일을 하시느냐? 하나님의 심정에 일치시킬 수 있는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으시면서 복귀섭리를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을 위해 그런 일을 하시는 거예요. 아들딸, 곧 아담 해와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수고하는 것은 왜냐? 자기의 아들딸을 찾아서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각 한 사람을 대하여 찾아 나오시는 데는 이중의 목적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아담 해와를 복귀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딸들까지 복귀하여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위기대는 누가 복귀시키느냐? 여러분 각자가 복귀시켜야 됩니다. 내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과 일치되고 또한 아들딸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믿음의 아들딸을 찾아 교육해서 죽음길을 대신 갈 수 있는 신앙의 아들딸로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안식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자기 일대에 이 기준만 결정해 놓게 되면 예수님보다도 더 위대한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길을 가게 되었을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 자신이 죽음길에 나가게 되었을 때 여러분 자신이 뜻을 중심하고 찾아 세운 아들딸이 대신 죽겠다고 나서게 된다면 거기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다면 예수님이 거기서 죽었어도 지상에 부활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상에 기준이 서게 되면 예수와 성신이 일체가 되어서 지상작전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위기대라도 그러한 터전이 서게 되면 지상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제자들과 일치되지 못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신랑이신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고, 신부이신 성신은 땅에 내려오게 되어 아들딸들은 공중에 떠 있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고, 어머니 되시는 성신은 땅에 내려오고, 아들딸은 공중에서 빙빙 떠돌아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상에 평면적인 터전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인격·심정의 일치와 완성실체

그러면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평면적인 기반 위에 영육을 중심삼은 실체적인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예수가 이루지 못하였던 것을 이룬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뜻과 내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자 내 뜻이 되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 39)"라고 기도한 그 자리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그 자리가 성사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 말씀과 일치되어 가지고 실천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인격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아담이 타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일치되지 못함으로 인해 말씀의 목적인 완성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인격 기준이 하나님 앞에 바쳐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 인격기준과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말씀은 실체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도 실체가 완성되지 않고서는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완성실체가 되지 않고는 화합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랑과 말씀과 인격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은 어떤 울타리 권내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아담 해와는 만국의 중심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내가 가진 말씀은 세계적인 말씀이요, 만국을 대표한 말씀이며, 세상에 나타난 나 자신은 세계를 유린한 사탄과 대결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요, 내가 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심장에 연결된 동맥에서 흘러 나오는 피의 움직임과 같은 사랑이다' 하는 실감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은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과 일치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사탄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요, 사탄을 굴복시키고 나면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인격 완성이란 사탄을 굴복시키는 그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격의 완성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격은 사탄이 개재됨으로 말미암아 파탄이 되었기 때문에 사탄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는 인격완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탄이 대치하고 있는 일선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후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선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 선상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죽음의 교차로를 향해서 찾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곳이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는 최고의 일선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은 그 길, 한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해 뜻 성취는 어디서부터 되어지느냐? 사탄이 있는 일선지대부터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기점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선생님이 걸어온 길은 언제나 일선이었습니다. 언제나 최일선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선을 지키는 장병들은 어느 순간이라도 쉴새가 없는 것입니다. 방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 적이 나를 습격할 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생활을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라는 한계선까지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찾기 위해서는 모두 버려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그 민족을 지도하는 유대교단을 거느리고, 로마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터전을 조성하여 세계를 복귀해 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었던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을 수습할 단계, 곧 민족적인 숙원을 해원성사해야 할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느냐 못 찾느냐 하는 엄중한 입장에서 예수님이 소망하였던 그런 기준을 우리가 찾아 넘어가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찾기 위해서는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가정을 완전히 찾기 위해서는 가정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야 합니다. 던져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겁니다. 종족을 완전히 찾기 위해서 종족 자체를 완전히 잃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민족을 찾기 위해서는 민족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 앞에 버릴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내 것이다'라고 하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를 주도하는 문선생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나라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나라에 바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빨리 바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자는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은 세계의 것이니 이 세계에 빨리 바칠 수 있는 길을 가려 나가는 작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은 가정의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을 위해서 빨리 바쳐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사탄세계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가정을 희생시키고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자기의 친척을, 또한 자기 친척을 중심삼고 민족을, 그리고 자기 민족을 위주로 하여 나라를 움직여 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입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와 반대입니다. 관(觀)이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세계를 위한 나라요, 우리 민족은 나라를 위한 민족이요, 우리 종족은 민족을 위한 종족이요, 내 가정은 종족을 위한 가정이요, 나 개인은 가정을 위한 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일생 동안에 어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갈 것이냐? 여러분이 자기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고 가느냐 하는 것이 저나라에 가서 인격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서 부활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나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때는 이미 무르익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때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공을 들이면 공을 들인 것만큼 결실이 거두어지는 때가 왔습니다. 옛날과는 다릅니다. 지난날은 탕감시대였기 때문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그것이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때와 제시할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방향과 내 방향과 자녀의 방향이 서로 일치되는 기준을 갖지 않고는 뜻을 성취시킬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3대를 합하지 않고는 뜻 성취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한 3대를 합했다 하더라도 그 합한 것이 일선지대에 있어야 합니다. 일선지대라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후방이 아니예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최고의 일선은 어디인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최고의 일선이 어디냐? 거기에 선 사람들이 뜻을 중심삼고 하나만 되면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세계의 최고 일선이 어디냐? 아프리카가 아닙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최고 일선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으로 보면 그래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가 기도하는 일선에 나타난 실체의 원수는 누구냐? 그 나라의 권력을 잡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겠지요? 예수를 끌어다가 죽이기 위한 원수로 나타난 사람이 누구냐? 그 당시의 위정자라든가, 교법사, 제사장이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일선은 어디냐? 대한민국이 일선입니다. 물론 이북의 김일성이겠지만, 대한민국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현정부에서 지도하고 있는 위정자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감복시켜서 뜻 앞에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하나되어 변치 않는 자가 되라

이 문제점을 풀면 세계적으로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어려운 문제인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예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지금까지 지방에서부터 일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실적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선전보다도 실적이 앞서야 됩니다. 선전보다 실적이 앞질러 나가게 되면 그 길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있어야 되고, 때가 맞아야 되며, 조건이 있어야 됩니다. 반드시 때가 맞아야 되고 여러분이 거기에 나아갈 자세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냐? 조건물이 갖추어져야 하는 데, 조건물은 3대(代)가 일치되어 가지고 일선지대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선생님이 양면 작전을 하려고 합니다. 상부에 대한 작전과 지방의 말단에 대한 작전을 동시에 펴 가지고 이것을 결정하려는 것입니다. 금년부터 이 작전을 펴 나가려고 합니다.

뜻을 이루려면 혼자서는 안 되므로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을 모시고 자녀를 복귀하여 3대를 중심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뜻은 성취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의 역사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섭리해 나오는 싸움의 노정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내 세울 수 있는 사위기대는 뭡니까? 아무리 자기 자신이 국가적으로 뜻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불구자라는 거예요. 사위기대를 결정해 놓고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기반까지 닦아야 됩니다. 아시겠지요? 「예」

그러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이 나라 어디에라도 전도하러 가라 하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가라' 하면 '아이구, 나 지금 무슨 사정이 있어서 못 갑니다' 한다고 해서 그것이 통합니까? 통합니까, 안 통합니까? 「안 통합니다」 세상의 일로 인한 사정은 통하지 않습니다. 학교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 대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렇죠? 인간 대 인간의 문제지 인간 대 사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선생님하고 여러분 개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간접적인 다른 일들을 들이대지 말라는 거예요. 학교 때문에, 집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아들 때문에 하는 그런 문제는 여기에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여러분 일대 일의 문제입니다. 그렇잖아요?

예수와 베드로·요한·야고보는 각기 일대 일의 관계였습니다. 그런 절대적인 관계로 여러분이 선생님과 하나된 기반 위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에게 완전히 하나된 후에 만물을 주관하라 했지 않아요? '생육하고 번식해서 땅을 주관하라' 했으니 먼저 생육하고 번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앞으로는 나에게 그런 얘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가 어떻고 아들딸이 어떻고 하는 그런 것들은 여러분들끼리 얘기하는 것이지 그것을 선생님한테 물어 오면 내가 무슨 대답을 하겠어요? 나도 딱하다는 거예요. 선생님과 여러분,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선생님은 일대일의 문제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외의 아무것도 개재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 자신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 대해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여러분을 참아들딸로 만들어 주려는 그 목적만 있는 것이지 여러분을 이용해서 무엇을 해먹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참다운 아들딸로 만드느냐 하는 것에 목적이 있을 뿐이지,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다른 무슨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관계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을 알고, 앞으로 수난길이 있거든 여러분이 대신해서 걸을 각오를 해야 하고, 죽음길이 있거든 여러분이 대신 죽겠다는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럴 수 있습니다」 말이야 잘 합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대답을 잘 했어요? 몇 번씩이나 대답했어요? 한번도 아닙니다. 세 번! 세 번씩이나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귓속말로 했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선생님, 남들은 다 배반해도 나는 배반 안 합니다'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시험기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그런 입장을 고려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3대를 택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와 그의 자녀가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위기대의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 대표자는 아담이지요? 그 다음은 아들입니다. 이렇게 3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뜻이 안 이루어져요.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을 중심하고 보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과 선생님과 여러분이 3대입니다. 그렇지요? 또,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어떻게 됩니까? 여기에서 횡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1대고, 여러분이 2대고, 여러분의 아들이 3대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선생님과 일치가 되어 가지고 여러분의 아들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긋나게 되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을 뜯어 고쳐 가지고 다시 수습해야 천상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연결되지 않으면 지상천국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자 내 뜻이요, 내 뜻이자 선조의 뜻이요, 선조의 뜻이자 만민의 뜻이 되고, 만민의 뜻이자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됩니다. 그 뜻이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전부다 뜻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와 제자, 이 실체가 문제입니다. 남자로 보게 되면, 하나님과 아담과 아담의 아들, 이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들이 틀어져서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한 것도 세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이 세워지지 않고는 평면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대비하여 여러가지 여건을 준비하셨으며 여기에 반대되는 여건을 제거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시면서 섭리해 오셨습니다. 한 사람을 택하기 위해서 세 사람 이상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심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예수같이 뜻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상대자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짓말인가 두고 보라는 거예요. 어떤 동네를 가게 되면 벌써 몽시를 받고 와서 인사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된 마음을 가지고 자기 나름의 꿍꿍이 생각을 하면서 하니 안 되는 것이지, 완전히 뜻과 일치된 자리에서 사위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딸을 택하겠다는 마음으로 나가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되면 아들은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는 자연히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과 일치가 되면 하나님은 미리 창조적인 준비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분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되면 영계에서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예전에 선생님을 보기를 했나요, 만나기를 했나요? 한번도 만나 보지 않은 사람이 수십년 전, 또는 선생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선생님을 모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참 이상하지요? 선생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 선생님이 나기 전부터 이미 선생님을 보고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으로 인해서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된 한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는 , 성상적으로나 형상적으로나 같은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생님이 나기 전부터 선생님의 형상을 가지고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영계를 통하는 많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일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되어 모든 시련을 대신 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나서서 일할 때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끌고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끌고 와서 이만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제는 철이 들어 알 만큼 알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겁니다. 이제야 비로소 죽지 않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베드로·야고보·요한과 같은 제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왜 택했느냐? 무엇 때문에 택했겠어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일 시키려고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데리고 일을 해봤습니까? 못 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 일하느라고 전부다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쫓겨 다니고 했지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일을 못 해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도 선생님을 중심하고 지금까지 일한다고 했지만 선생님이 끌고 나왔지 여러분이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습니까?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이 민족을 위해서 예수의 열두 제자를 대신한 입장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민족을 위해 일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탕감해 나왔습니다. 탕감은 여러분이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탕감의 대가를 치렀지 여러분이 탕감의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닙니다. 환경적으로 연결은 지어졌지만 그 대가를 직접 내가 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가를 다 치렀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이 직접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서 상속받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을 앞에 내세워 일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렇게 알고 '70년대부터는 '뜻이여! 성취하소서'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선을 향해서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요전에 선생님이 청평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우럭산(현 선인봉)이라고 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바위를 한번 굴려 보았습니다. 다섯 사람이 큰바위를 밀어서 그 바위를 굴렸는 데 굉장하더구만요. 그 산의 경사가 아주 가파르기 때문에 아마도 그 바위가 떨어지는 속력이 시속 100킬로미터 가까이 되었을 거예요. 그 바위가 산을 진동시키면서 굴러가다가 강물에 첨벙하고 빠지는 데 얼마나 멋진지…….

그런데, 그 큰 바위가 풍비박산이 나면서 떨어지더군요. 여러분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이 왔을 때 높은 산에서 눈 한 덩어리를 굴리면 이것이 점점 커져서 집덩이같이 되는 것처럼 이제 여러분도 불어 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체를 깨뜨려 버리는 때가 '60년대였습니다. 그때는 벼랑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것과 같은 때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통일교회는 뼈다귀만 남은 것입니다. 여러분 얼굴에 윤기가 있어요? 보라구요. 얼굴들을 보면 모두 앙상한 뼈다귀만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때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눈 한 덩어리가 집채만한 눈덩이로 커지는 것처럼 이제 우리도 구르기 시작하면 그처럼 커지는 거예요. 여기 산골에서 사는 사람은 알 거예요. 애초에는 산 위에서 주먹만한 눈덩이를 굴렸는데 그것이 불어나서 집채만한 큰 눈덩이로 변해저 밑 산골짜기에 들이 박힌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수고가 여러분의 소유로, 여러분의 뜻으로 거두어질 수 있는 시대를 맞이 하였으니 이제 여러분이 수고한 만큼 불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종족으로, 종족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국가로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가 왔으니, 이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뜻의 성사를 국가적 한계권내에까지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70년대의 소원입니다.

이제부터 모두가 한 3년만 움직여 보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그저 선생님의 말만 잘 들으면서 곰처럼 살라는 겁니다. 곰 알지요? 곰은 나무에 올라가 한번 떨어져서 아프면 다시 올라가서 아프지 않을 때까지 떨어져 본다고 하잖아요? 아픈데다가 두 번, 세 번 올라가서 또 떨어지면 더 아플 텐데 아프지 않을 때까지 떨어진다니 결국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곰과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 총진군하자

그렇게 하면 믿음의 아들딸과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룬 터전을 중심삼고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뜻의 성사를 위하여 여러분은 지금부터 '70년대를 힘차게 출발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출발을 하는 데 있어서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정초의 결심은 좋았는데 여러 날이 지나가면서 낮아 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선생님도 되도록이면 여러분과 같이 지방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지방에서 활동하는 여러분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금년 작전은 기동대를 조직해서 활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부흥회를 많이 열고 그 다음은 반공활동을 강화시키려고 해요. 이런 뜻에서 전국적으로 조직을 편성하여 일년 사시절을 전부 기동대를 중심으로 이 두 분야의 작전을 병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에 전체적으로 협조해 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이미 모든 코오스를 짜 두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한다 할 때 될 수 있으면 그곳에 연락을 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공장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많은 시간을 투입했어요. 그럼으로 인해서 교회 발전에 지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금년만 지나게 되면 어느 한계를 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70년대를 중심삼고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일선에서 여러분을 자주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0년대까지는 탕감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 효성은 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하늘나라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종교적인 기반을 닦아 나왔지만 하늘나라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같은 종교적인 기반은 이루어졌지만 몸과 같은 땅에 기반이 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늘나라의 종교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늘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 하늘나라의 종교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문제는 땅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탕감시켜야 했습니다. 종교가 탕감해야 되기 때문에 국가 앞에 종교가 탕감하는 데에 통일교회가 선봉에 섰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탕감하는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효성은 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시대를 아직까지 이루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어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이 하나님께 효성을 다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동참하는 혜택을 갖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알고 서울은 서울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거국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전국민 앞에 영향을 미쳐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 3년 동안 최대한의 노력을 해서 뜻을 위해 싸워 나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뜻이여! 성취하소서'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이 아침에 확실히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아버님! '70년대를 앞에 놓고 아버지와 더불어 인연맺을 수 있는 거룩한 이해의 첫달 첫 안식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이날에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자녀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뜻을 찾아 나오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고대하던 한때와 한 시기를 저희가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정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자신의 일대에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 투입해서 하늘과 땅을 대신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하여 공의의 터전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시점에 서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보람 있게 일을 해 갈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때를 놓치게 되면 하늘도 잃어버리는 것이요, 땅도 잃어버리는 것이요, 인류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이옵니다. 한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이 시점에서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아버지께서 안착하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땅 위에서 이 뜻을 필히 이루고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으로 수많은 안식일들을 이 '70년대를 통하여 맞이하게 되겠사오니, 저희들의 뼈살에 간곡히 사무칠 수 있는 당신의 은사로써 이 날들을 묶어 주시옵소서. 부디 부디, 타락하는 사람과 낙망하는 사람이 없이 아버지께서 소원하는 그 목적을 향하여 직행하는 무리들이 많게 허락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오늘 이 아침, 이 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기도하는 당신의 수많은 외로운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70년대를 중심한 축복의 손길이 그들과 더불어 같이하시어서, 많은 실적을 거두어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승리의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오늘 지방으로 돌아가게 되오니, 지방에 가서 '70년대의 새로운 출발을 보람 있게 할 수 있게 아버지께서 힘을 주시옵고, 끝까지 참고 싸워서 승리하여 영광된 아들딸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통일가와 통일의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민족에게 보람 있는 하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남북통일을 모색하여 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일전선을 갖추어야 하는 입장이오니, 저희들이 이 일을 성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에는 '승리적 통일전선' 이라는 엄청난 표어를 세워 놓고 나가고자 하옵니다. 모든 일의 동기는 아버지께서 되시고, 저희는 거기에 상대적 기준을 조성해서 절대 순종하여 아버님과 저희와 이 민족이 제 3대상 기준을 성취시킬 수 있게끔, 아버지, 협조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과 저희들이 다시 맞이하게 될 성일들 위에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저희들과 일치되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도 저희와 일치되어서, 모두가 아버지와 더불어 화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마태복음 15:10-18

[기 도(Ⅰ)]

오늘은 1970년을 맞이하여 처음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거룩하심과 당신의 은혜와 당신의 사랑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를 지내고 새로운 1970년대를 맞는 이 순간, 아버님과 더욱 가까운 자리에서 아버님과 더불어 모든 사정과 사연을 나눌 수 있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말씀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과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은혜의 자리를 동경하는 소수의 무리가 이렇게 모였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지 않는 모임과 아버지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개체는 저 나라에서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모임 위에 같이 하시어서 직접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와 동거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만은 희생시킬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남기신 뜻을 위해서 저희 들이 부름받았기에,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러서 아버지의 그 뜻을 기필코 세워 드려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는 이 새해 새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곳을 동경하면서 당신 앞에 부복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곳곳마다에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당신의 뜻과 일치되고 그들의 생활 전체가 당신의 뜻과 일치되어 금년부터 시작된 이 1970년대를 당신의 뜻과 일치되도록 엮어 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복귀의 노정이 한 많은 노정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나이다. 이 뜻을 책임지고 완전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지금까지 당신 홀로 이 뜻을 책임지고, 이 뜻과 더불어 죽을 고비를 겪어 나오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앞으로도 이 뜻을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분은 저희의 영원하신 아버님이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나이다. 이러한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어떻게 아버님 앞에 효성을 다하는 자녀의 모습을 갖추느냐 하는 것이 현재의 저희들에게 중대한 문제인 것을 느끼게 되옵나이다.

타락의 피를 받고 난 저희들은 아버님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입장이오나,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수고의 정성을 통하여 저희들을 불러 주셨고 경책하시면서 이끌어 주셨기에, 오늘 저희가 이렇게 뜻 앞에 세워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오늘날 뜻 앞에 세워진 저희들이 아버지와 의논할 수 있는 것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요, 하나에서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감사히 대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의 뜻 앞에 세움을 받았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으니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쳐 아버지로 말미암은 결과를 가져와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나이다. 그리하여 1970년을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이 뜻을 중심삼고 1970년대를 향해서 가야 할 목적점을 결정하였사옵나이다.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중심삼고 내 개체에서는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고, 그 한 개체를 중심삼고 가정을 통일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통일시키고,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통일시키고,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 세계에까지 연결시켜 전체를 통일시켜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내 한 개체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가 당신의 아들딸의 권위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내적으로는 이러한 통일전선을 펴야 할 것이 저희의 책임인 것을 알았사옵고, 외적으로는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형제들과 규합해서 새로운 역사시대에 새로운 기치를 높이 들고 아버님이 원하 시는 최후의 전선을 향하여 진격해야 할 것을 알았사오니, 그럴 수 있는 개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아무리 큰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것을 밀어젖힐 수 있는 외적인 신념의 기반을 굳건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각자가 체득하고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아침에 모인 자녀들, 또한 모이지 못한 자녀들, 개개인을 부르시어서 직접 훈시하시고 명령하시사 아들딸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이 '70년대를 힘차게 전진할 수 있게끔 언제나 붙들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내용으로 통일교단은 이제 하나의 이념을 갖추어서 이 민족 앞에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사오니, 각자 각자가 스스로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노정에서 민족 앞에 제시하여 민족과 더불어 나가야 하는 것이 스스로의 갈 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런 마음으로 하늘을 그리워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1970년대를 중심삼고 기필코 이루어야 할 저희들의 사명인 것을 절감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서 왔던 지구장들이 오늘 돌아갔사오니 가는 발걸음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새해를 맞이하여 각자가 무거운 짐을 졌사오니, 아버지시여, 그 짐을 감당할 수 있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전선에서 낙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서 안팎으로 모든 장비를 갖추어서 적진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힘차게 진군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산지사방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동절기에도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외로운 제단을 쌓고 이 시간,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어린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소원은 아버지의 소원이 아닐 수 없고, 그들이 가는 길은 아버지께서 가야 할 길이 아닐 수 없고, 또한 그들이 처하여 있는 입장은 아버지께서 처한 입장이 아닐 수 없음을 아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각 지구본부의 당신의 자녀들이 이 내적 심정과 외적 사정을 통하여 뭇 인간들을 하나로 규합하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서 허덕이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횡적인 입장에서 아버지를 대하고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버지로부터 위로받기 위해서 나선 모습이 아니오라, 종적인 입장에서 아버지의 아들과 딸의 입장을 대신하여 나선 모습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직접 거느리시사 지시하여 주시옵고,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환경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끔 하늘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시어서 협조의 기반을 넓혀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1970년대의 출발점인 이 시대에 어서 속히 당신의 소원을 이땅 위에 펴시옵고, 이 민족을 선의 민족으로 복귀하시옵고, 통일제단을 승리의 제단으로 이끄시어서 아버지 앞에 선의 제단으로 세움받아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한때를 이 과정에서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불초한 모습들이 이 제단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의 부름을 받고 누구때문에 여기에 왔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를 살리기 위하여, 저희를 부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희생하시고 수고하신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각자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사망선을 앞에 놓고 가야 할 어떠한 책임자가 있다고 할진대, 그에게는 그 사망선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생애 최대의 문제가 아니겠사옵니까?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오늘날의 저희들은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악의 종자요 악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나이다. 이러한 저희들이 악의 후예의 탈을 벗고 생명선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망의 골짜기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오니, 그 사망의 골짜기를 넘는 데 있어서 홀로 넘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스스로 장비를 갖추고 스스로 결의하지 않고서는 그 골짜기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 고갯길에서는 수많은 원수들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협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이 길이오니, 사망의 골짜기를 넘기 위해 이 길에 들어선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힘에 이끌려, 아버지의 직접적인 감동을 받고, 아버지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하여 이 골짜기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는 승리의 자녀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1970년대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사옵니다. 이 1970년대를 맞고 있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이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과 삼천리 반도는 물론이요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갈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이 땅 위의 자기 후손들과 더불어 해방의 한날을 맞기 위하여 저희들에게 책임을 해 달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만이 저희와 더불어 같이하시길 바라옵고, 저희들의 뜻이 아버님의 뜻과 하나되기를 바라오며, 저희들의 일이 아버님의 일과 일체가 되기를 바라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 인류가 바라고 수많은 국가가 바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지 않으면 안 될 숙명적인 이 과정을 넘고자 하오니, 아버지, 이 땅과 이 세계 위에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고, 부활의 횃불을 드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광명의 은혜의 깃발을 이 땅 위에 내리시어서 어두운 세상의 인간들을 광명권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중보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 책임을 지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에서 한 나라를 책임지기 위해 제단을 쌓고 있는 자녀들이 그 책임을 감당하기에 지쳐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도 아버님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고, 전후좌우로 방향을 모색하는 저희 앞에 갈 길을 나타내시어서, 그 땅과 그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하늘적인 결과만을 가져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전국 각지에서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그 자리에 친히 나타나시어서 훈시하여 주시옵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가야 할 방향을 갖추어 하늘의 동조자가 되고 동참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의 전체를 아버지께 맡기오니 당신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저희를 지도하시어서 당신의 심정이 저희의 심정에 어리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정이 저희의 몸에 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길에서 탈선할래야 탈선할 수 없는 모습이 될 때까지 저희들은 노력하고 싸워야 되겠사옵나이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다시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시간도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 거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사랑하는 아버님, 이 순간은 저희가 1970년대를 맞이하여 아버지의 집에서 생활하는 하나의 모임을 갖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간이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 앞에 현현하시옵소서. 당신을 대신하고자 하는 저희들의 마음에 당신의 모든 사정이 어리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표준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그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거동하실 때에, 당신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저희들이 당신을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는 것은 저희들이 당신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거룩한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후덕하신 사랑의 그 마음, 당신의 높고 귀하신 그 품격, 당신의 넓고 깊으신 그 심정에 무한히 무한히 취하여 체험할 수 있는 용기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제단을 세우시기 위하여 오늘 이 아침까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친히 저희를 지도하고 이끄시면서 온갖 수욕의 길과 역경의 길을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지난 날들의 억울했던 모든 사연들이 저희의 뼛골에 사무쳐 있었사오나 그것을 잊고 넘어야 할 1960년대를 지냈사옵나이다. 이제까지 저희들은 악에 받쳐 1960년대를 싸워 나왔사옵나이다.

아버지, 이제 1970년대는 우리를 다리놓아 우리를 보라고 자랑할 수 있는 하늘의 은혜가 찾아와 주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을 통하여 각자의 몸과 마음에 당신의 자비하심과 당신의 긍휼하심과 당신의 거룩하심을 체휼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축복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바람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에 마음을 연결시키고 사정에 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슬펐던 사연을 중심삼고 단단히 묶으시옵고,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과 국가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전체가 하나되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외로울 때나 슬플 때 아버지께서 친히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낙망할 때는 친히 저희들을 인도하시어서 그 자리에 서 있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장래를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고, 세계 인류의 운명을 당신께서 거느려 주시옵소서. 만민 위에 당신의 축복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중간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충성하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저희들의 몸과 마음에 간절히 솟구쳐 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심정이 저희가 처하여 있는 환경이나 대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물론이요, 원수와 싸우는 자리에서까지 변함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아침을 거룩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 나라에 있는 수많은 선한 영들이 지금까지 땅을 대하여 희생한 모든 요건을 재차 부활성사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은 저희 개체의 사명뿐만 아니라, 위로 하늘에 있는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책임까지 대행해야 할 이중의 사명을 지닌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들에게는 또 세계의 30억 인류를 대하여 제사장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지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찾아올 선한 세계에 선한 조상으로서의 전통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책임이 가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나이다. 이렇듯 이중 삼중의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저희들은 기필코 승리해야 되겠사오니,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친히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 1970년대에는 개인의 모든 생활을 직접 간섭하여 주시옵고, 그 가정에도 일일이 간섭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그리하여 그 가정이 아버지께서 보호하시는 안식의 터전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생활이 아버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고 당신이 내세우실 수 있는 가정의 그늘에 사는 아들딸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하늘을 중심삼고 살아야 하고, 하늘의 의를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러한 마음의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고, 직접 인도하여 주시옵고, 직접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수의 화살과 권력을 친히 막으시사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감사한 하루로부터 1970년대의 수많은 날들을 거룩하게 연결시켜 그 승리의 결과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림으로써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진정으로 이 한국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이오니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늘 이 한국 땅을 그리워하면서 아버님을 추앙하게 된 것은 그토록 수고하신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은 아버지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 할지라도 저희들은 감사해야 할 입장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본부에서 무릎을 꿇을 적마다 이 자리는 눈물어린 자리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리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나이다. 이 자리는 기나긴 6천년 역사에 맺힌 원한을 판가리짓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직접 싸우신 최대의 결판지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이 거룩한 곳이 아버지의 마음과 더불어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아버지의 일과 더불어 아버지의 목적과 더불어 현현시키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아들딸들이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축수(祝手)하는 자리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다짐하면서 아버지께 같이하여 주시기를 호소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만이 참석하여, 이 자리가 아버지를 추앙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이 이러한 자리를 허락하여 주셨기에,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이 자리에서 욕을 먹고, 이 자리에서 매를 맞고, 이 자리에서 수난을 당했사옵나이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어떠한 민족 앞에도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하늘의 자랑의 표준임을 생각하오니, 슬픈 사연을 품고 개척의 노정에서 남아진 당신의 아들딸 위에 무한한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자리에까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거쳐갔사옵니다. 그 가운데 아버님께 원한을 품게 하고, 아버님의 슬픔의 담을 높인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그들 중에는 아버지께서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버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다 지나갔사옵니다.

앞으로 올 사람들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왔었사오나 오히려 그 길을 막아 놓고 간 사람이 많사옵니다. 또한 수많은 씨족과 종족과 백성들이 이곳을 대하여 아버지 앞에 섭섭함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지나가고 만나게 하였던 슬픈 사연을 놓고 이 시간 고투하는 수많은 백성들 위에 다시 한번 긍휼의 손길을 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멀리하는 이들을 위해서 저희들이 손길을 가해야 하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오나, 그러지 못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발걸음이 돌아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것을 염려하시사, 재차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한국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고아와 같은 신세인 이 나라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사옵나이까? 아버지여, 책임져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사옵고, 저희들은 변함없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선두에서 달리겠사옵니다. 저희가 받아야 할 원수의 모든 화살을 아버님께서 홀로 받으실 수밖에 없는 입장에 계신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래야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무리를 붙들고 참고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 외로우신 아버지를 동정하옵니다. 그렇듯 슬프고 억울하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진정한 심정으로나마 효성을 다하여 위로해 드리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나이다. 아버지 앞에 그리운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사랑스러운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내세워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새로이 결심하고 맹세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부터의 1970년대를 당신이 거룩히 맡으시어서 승리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제단의 책임자는 당신 외에는 그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제단을 저희에게 맡겨 주셨사오니, 아버지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게 이끌어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늘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어서 그 후손이 과거와 현재의 기준에 일체화할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하는 거룩한 이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넓히고 이제 희망의 1970년대에는 부끄러운 모습을 가릴 수 있는 용기있는 통일교인이 되고, 통일교단이 되고, 본부는 세계 정상의 본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수많은 민족이 바라보는 그 뜻 앞에 있어서 부끄러움을 남기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나이다. 그러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나이다. 그러한 통일의 자녀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나이다. 부디부디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으시어서 1970년대에는 아버지의 은사권내에서 만국 앞에, 만민 앞에, 만성도 앞에, 수많은 자녀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모임이 되고 이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뜻을 위하여 왔다 간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한 선조들이 이 땅을 중심삼고 재차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허락하시고, 사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활동이 저희들의 움직임에 상대적인 보조를 맞춤으로써 섭리의 뜻이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1970년을 맞이해서 첫번째 맞는 안식일입니다. 즉, 1970년대를 중심삼고 새로이 출발하는 성일이 되겠습니다. 이날부터 1980년을 바라볼 수 있는 1970년대의 마지막까지는 우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시기입니다.

나는 하늘편의 사람인가

이 1970년도에는 과연 어떤 것이 하늘편이겠느냐, 즉 어떠한 사람이 하늘편의 사람이며, 어떠한 나라가 하늘편의 나라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내가 진정한 하늘편이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하늘편의 가정이냐? 통일교회를 중심하고 볼 때에 통일교회가 과연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소망하였던 하늘편의 교회냐? 또한 이 대한민국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연 앞으로 틀림없이 하늘편의 나라가 될 것이냐? 1970년의 새 아침에 이러한 문제를 놓고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의미심장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늘편의 사람을 그리워해 나오셨습니다. 하늘편의 가정을 모색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길을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하늘편의 씨족과 민족을 찾기 위해서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돌고 도는 역사의 고비 가운데서 슬픔을 안고 또 안으면서 지금까지 참아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 위에 그러한 민족과 그러한 국가가 있었느냐 하면 없었습니다. 그러한 민족도 없었고, 그러한 국가도 없었으며, 또한 그러한 씨족도 없었고, 그러한 가정도 없었고, 그러한 개인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정을 앞에 놓고 볼 때에, 이 자리에서 과연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한 하늘편의 사람으로 남아질 수 있는 개인이 있느냐, 하나님이 고대해 나오신 가정으로 남아질 수 있는 가정이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씨족과 민족으로서의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나 하나님으로부터 '그렇다'는 공인을 받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60년대를 넘어서서 1970년대를 새로이 출발하는 이 순간에 지나간 1960년대를 회고해 볼 때에 1960년대의 나는 과연 하늘편의 사람이었던가? 냉정한 입장에서 비판해 볼 때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느냐? 과연 내가 지금까지 하늘편의 아들로서 남아졌느냐? 어느누구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하늘의 아들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느냐? 만일에 스스로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고, 동시에 하늘이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소망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지난날이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 위안과 기쁨의 조건으로 남길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이 통일교단 가운데 없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고한 1960년대의 공은 또다시 슬픔으로, 한으로 남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1970년대를 맞아 새로이 다짐하는 이 아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 오늘 이 아침,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심은 나무는 뽑을 자가 없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그 사람과 하나님이 결정지은 그 자리는 부정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긍정하신 자리는 아무리 극악한 악으로 둘러 싸여 있는 사탄세계라 하더라도 긍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차피 그곳에 심어졌으니 거기에서 자랄 것이요, 역사과정을 거쳐 결실을 향하여 나갈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늘이 긍정하실 수 있는, 하늘편에 선 아들딸이 있느냐? '나 아무개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왔고, 이러한 투쟁의 행로를 거쳐왔으니, 나는 틀림없이 됐습니다. 내가 바로 당신이 찾고 있는 아들딸입니다. 이 사망의 세계에 생명의 실체로 심어지기에 하자가 없는 자신이오니 아버지여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에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러한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하늘이여, 나는 이렇게 해 왔습니다'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할 때, 그럴 자신이 없는 우리들인 것을 생각하면, 1970년대의 앞길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슬픔을 배가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여 이런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늘편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 자신이 하늘편의 사람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일의 소망을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 역사상의 한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하늘편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라도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편을 향해서 달음질치고 하늘편을 위해 애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설사 하늘편에 서지 못하였더라도 하늘편을 향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육신의 피곤함도 개의치 않고 죽을 각오를 하고 움직이는 자가 되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1970년대의 새로운 아침을 대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나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60년대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 앞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역사의 배후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습니다. '60년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끌고 나오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도 있었고, 외로운 장면도 있었습니다. 숱한 시련을 홀로 당해야만 되는 처절한 자리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아무리 그런 자리에 홀로 섰다 하더라도 소망의 문이 열리는 1970년대에 있어서 소망의 기수가 될 수 있고, 하늘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1970년대를 맞기에 너무 부족하고 하늘의 뜻 앞에 서기에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과거에 아무리 크고, 추억될 만한 사건이 많고 그 누구라도 감동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이 있었다 하더라도, 1970년 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제 2차 소망의 기준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는 하늘편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할 때는 상하 전체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하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던 날이 있었으나, 그날은 하나님이 같이하신 날이라는 것을 알고, 뜻을 위하여 매질을 당하고 고문을 받던 그러한 시간이 있었으나 그 시간은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던 시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이 아침 이런 환경에서 뜻을 위하여 어려운 자리에 나갔던 그날 그 시간들이 그리워집니다.

여기 이 한 곳을 바라보며 내일의 희망에 넘쳐서 나가는 것보다도, 외로운 심정으로 하늘 뜻에 동참하여 하늘의 권고를 받던 그 시간이, 하늘 편이었던 그 순간이 부정할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진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에게 그러한 순간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하여 노력해야 할 우리 앞에 1970년도 초에서부터 그러한 길이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또한 우리가 이 슬픔의 1970년대를 어떻게 기쁨의 1970년대로 바꿀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민족은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 민족이 져야 하는 십자가의 짐을 오늘날 우리 교회의 식구들이 대신 짊어지고 하늘을 향하여 몸부림치며 나아가 슬펐던 사연을 청산짓고 하늘 동족으로서의 터전을 넓혀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대한민국과 삼천만 민족을 위하여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앞에 부름을 받은 자로서 하늘의 길을 가야 할 우리의 정상적인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과거를 다시 한번 회고해 보면서 여러분의 과거 가운데서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였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러한 시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같이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들도 하나님이 같이하셨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모진 핍박 가운데서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갈 길은 한 길밖에 없다고 하며 자신을 갖고 그 환경을 타개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의 역사는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그때의 역사는 여러분들의 환경을 지켜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모든 어려움을 타개해 나온 지난날의 역사를 지난날의 역사로만 남겨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을 밑거름삼아서 그 이상의 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런 수고의 공적을 터전으로 이러한 결실을 거두었다고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서 '이러이러한 나이오니 받아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습이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혹은 천에서 만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는 달라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며 서슴지 않고 내편이라고 품어 안을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입니다.

하늘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이제 출발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문제를 놓고 새롭게 결의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사탄세계의 연장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출발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에 일치된 자아의 기준을 결정지어 가지고 1970년대를 출발해야 합니다. 1970년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출발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결말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1970년대는 여러분이 생각지 아니한 사탄세계의 결과를 맺는 기준으로 떨어지는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침을 맞는 여러분 자신들이 하늘편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심어 준 자체로서 1970년대의 역사적인 모든 여건과 환경을 타개해 버리고 이것을 통합시켜서 나의 영양으로 음미하고, 환경에서 영양을 듬뿍 흡수하여 목적점에 달할 수 있는 승리의 표준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여러분 자체가 하늘이 심어 준 자체로서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너 아무개는 하늘편의 얼굴이 되어 있느냐? 네 이목구비가 그러하냐? 네 손길이 그러하고, 네 발걸음이 그러하고, 네 사지백체가 그러하냐?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 하나님이 칭찬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가져 가지고 하늘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에,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못 되었다 할진대는 , 아무리 갖춘 것이 많고 세상에 자랑할 것이 많다 하더라도 불쌍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의 소굴이 되고 사탄의 발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벌거숭이로 몰리고 쫓기는 운명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이목구비와 사지백체가 하늘편이라고 공인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쏟아 가지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아요.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하나님의 두터운 사랑의 인연이 그의 발판이 되고 하나님의 권위가 그 환경에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간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을 우리는 흠모해야 되겠습니다. 또 여기에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으로 새로이 심어져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지루한 역사과정에서 우리를 신음하게 했던 사탄의 철망, 사탄의 핏줄을 어떻게 끊어 버리고 거기에서 탈피하느냐? 이 치열한 싸움의 역사과정을 통해 나오던 우리 자체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반겨 주실 수 있는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응당 그래야 할 것이요, 하늘의 딸이라는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응당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늘편에 서 가지고 그 집을 단장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 있고 딸이 되어 있느냐, 그러한 가정에서 신임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있느냐. 또한 그러한 아버지가 되어 있고 어머니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종족으로부터 추앙받을 수 있고, 그 종족 앞에 자랑을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가주(家主)가 되어 있느냐, 혹은 그 씨족으로부터 추앙받을 수 있는 족장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 민족 앞에 있어서 애국정신을 하나의 전통으로 남겨 후손들이 이어받게 할 수 있는 충신, 혹은 애국자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어떤 군왕도 염려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자리에서, 나라를 대신하여 그 나라와 민족을 염려하고 눈물과 피살을 뿌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희생의 길을 자처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방어선이 되기 위해 싸워 나가는 최고의 공신이 될 수 있느냐 할 때, 그럴 수 있다는 자신을 갖지 않고서는 1970년대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1970년대의 주인은 엄청난 기준의 주인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주인은 어떠한 가정만의 주인이 아니고, 또한 어떠한 씨족만의 주인도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이면 한민족, 5천년이라는 반만년 역사를 장식해 나오면서 면면이 그 운명을 이미 나왔던 이 민족 앞에 하나의 결실된 개체로 나타나야 할 주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그 어떠한 군왕도 그를 존경해야 하고 그 시대의 백성도 그 앞에는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이 민족 위에 허락하실 수 있는 1970년대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통일교회를 위주한 한국백성을 세우시어서 만국에 자랑한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백성이 되고, 그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 하늘편에 심어질 수 있고, 기억될 수 있고, 남아질 수 있는 민족과 국가가 되었다 할진대는, 그 민족과 국가를 만국에 내세워 자랑하고 만민 앞에 씨로서, 혹은 본으로서 남겨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의당한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바라는 자녀와 가정과 씨족이 되지 못하면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 남겨 주고 싶은 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아들딸, 하늘이 남겨 주고 싶은 나라에 심어질 수 있는 아들딸, 하늘편의 씨족이면 씨족권내에 남겨질 수 있는 아들딸, 하나밖에 없는 하늘가정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의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즉 하늘 족보에 오를 수 있고 하늘편 그 자체로 남아질 수 있는 아들과 딸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기 전에는 아무리 통일교회라고 해도 그 자체로서는 하늘편에 설 수 없습니다. 하늘이 바라는 자녀가 되고, 가정이 되고, 씨족이 되지 못하면, 통일교회의 역사는 하늘편의 역사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에 들어서 첫번째 안식일을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에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 수난의 고빗길에서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던 그때는 슬픔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대하고 있는 이 시대상보다도 수난을 당하던 그 시대상이 하나님과는 더 가까왔습니다. 그때는 내가 눈물을 흘렸더라도 그 눈물은 나혼자만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하나님이 먼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은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먼저 눈물을 흘림으로써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따라오면서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한 때가 된다면 그때는 아주 무서운 때입니다. 지금의 때는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눈물지으시며 내 자체를 중심삼고 권고해야 하는 때입니다. 1960년대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서 그렇게 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그 자리는 지극히 무서운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나오신 참다운 아들딸, 하나님 대신자로서 영원히 남겨질 수 있는 참다운 씨로서 이 땅에 뿌려질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누구일 것이냐? 36가정의 그 누구냐? 72가정의 그 누구냐? 아니면 120가정이나 430가정의 그 누구냐? 이것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유로운 환경을 맞이하여 우리의 때가 눈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1970년대에는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발전을 해야 할 천적인 의의를 지닌 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떤 국가나 민족의 흥하고 망하였던 역사를 더듬어 보아 흥했던 나라가 망하게 되는 때는 어떤 때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권이 절정에 달하고 그 국민의 생활이 풍부해졌는데 더 큰 무대를 바라보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 그러한 국권을 자랑하지 않고 제2의 상대국을 찾아서 더 큰 무대를 바라보며 싸워야 겠다는 신념을 갖고, 또 그러한 민족의 행로를 남겼다 할진대는 그 민족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1차 승리의 기준이 자기의 일신을 중심삼고, 혹은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은 부흥의 터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부흥의 터전이 내일의 부흥을 위한 터전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그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는 더 크고 더 높은 사상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보다 가정, 가정보다는 종족, 종족보다는 민족, 민족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를 위한 사상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상을 목적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민족이요, 하늘편에 남겨질 것이라고 자처한 개인과 민족과 국가는 많았지만, 그것은 모두 인간의 욕망을 중심삼고 제정된 기준이었기 때문에 하늘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1970년대를 중심삼고 외적인 환경도 갖추게 되고 핍박의 손길도 사그라지게 되어 우리의 앞길에는 소망만이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방심하거나 후회하는 무리는 하늘편이 못 되는 것입니다. 혹 하늘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사탄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천국의 기원을 마련하려면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민국을 뜻 앞에 복귀하고 세계를 뜻 앞에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는 것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이고, 세계를 복귀하는 것은 하늘땅을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땅을 복귀하면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모시고 일생 동안 이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가 제시한 천주적인 사상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의 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품에서 나지 못하고, 하나님 품에서 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품에서 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품에서 살지 못한 한이라도 풀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품에서 나지 못한 한은 품었을망정 하나님 품에서 살 수 없는 한까지 품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입장에서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마음대로, 그리고 자유로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천국의 기원을 이 종말 세계에 마련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도록 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기필코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 오늘날 통일교도들의 걸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계적인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적인 아들딸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아들딸이다. 대한민국의 백성이야. 그러니 죽어도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죽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 들은 하늘편에 심어질 수 없는 것이요, 심어졌다 하더라도 중간에 가다가 끊어집니다. 심어졌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복귀할 때까지는 남아질 수 있으나 때가 달라져 세계를 찾는 때가 되면 그것은 끝을 맺게 됩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언제 거두어질 것이냐? 세계를 위하는 데서 거두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필요로 한 것은 세계 만민 만국을 구하기 위해서였지 이스라엘 민족만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결심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복귀요, 세계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상 전체의 흐름은 세계복귀를 중심삼은 것이었지 민족복귀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족복귀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민족적으로 행세하고 있던 당시의 체제를 부수고 나섰던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아' 하고 신랄하게 퍼부었던 것입니다. 민족의 형태를 그냥 그대로 상속하게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계로 가는 데에 있어서 그것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 모든 요소를 전부 파괴해 버리고자 한 것이 예수님의 소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피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서 하늘편이 되고 싶습니까? 하늘편이란 편안한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사람들간에 이루어지는, 잊을 수 없는 친구의 우애 같은 것도 평상시의 보통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고 사는 마당에서, 생명을 엇바꿀 수 있는 환경에서 친구가 자기 생명의 방패가 되고 생명의 은인이 되어 줄 때에, 그 친구는 일생 동안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을 때 자기 아들딸 에게 유언을 해서라도 그 친구의 은덕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은덕을 입은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리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사연으로 인연맺어진 깊은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리는 만민의 추앙을 받는 잔치석상에서 술잔을 나누고 진수성찬을 즐기는 자리와 다릅니다. 그런 자리와는 달라요.

마지막까지 하늘편으로 남아질 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교시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정은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보내심을 받는 기쁨의 그 순간, 그 자리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근본사상을 어디에 뿌리를 박았느냐? 십자가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피흘리는 자리, 죽음이 가로놓이는 그 자리, 하나님의 뜻을 고수한 그 자리, 백번 죽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심정이 불타오르는 그 자리, 피를 토하며 쓰러져간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새로운 뿌리는 생겨났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세계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은 피를 뿌리고 죽어간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죽음의 정상을 본받아 기독교는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그 목적이 지금까지 남아졌기 때문에, 2천년의 역사과정이 아무리 험난한 노정이라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바꿔졌던 그 희망의 기준을 점령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음으로 싸워 남기신 희망의 기준이 그 험난한 환경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기쁨의 고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래 못 가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서 '이 뜻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한이다. 내가 남과 같이 3년 전에만 들어왔으면, 혹은 10년 전에만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누구나 칭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3년 전, 10년 전에 들어왔으면 뭘 합니까? '그때에 들어왔으면 내가 뜻 앞에 이렇게 되었을 텐데…'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10년 전에 뜻 앞에 섰다면 지금은 이렇게 되었을 텐데…. 3년 전에 들어왔으면 이렇게 되었을 텐데…. 이제야 들어와서 이 모양이 꼴이야' 하면서 지금 들어온 것을 탓하는 사람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10년 전에 못 들어와서 대한민국과 더불어 투쟁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구나' 하며 역사적인 가치를 접하지 못한 것을 한탄해야 합니다. 내가 들어오기 전의 3년 도상에서 벌어진 하늘의 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한이고, 그것을 보지도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소망해 나온 그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는 그 순간, 그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그것을 보지도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혈족이면 혈족, 씨족이면 씨족을 찾아 나오시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어오신 그 마음을 가지고 3년사를 한탄하고 10년 사를 한탄하는 사람은 앞으로 소망의 길에 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되었을 것인데…' 하는 사람들은 뜻 앞에서 멀어집니다. 두고 보십시오. '뜻'이 3년이 되면 이루어지고 10년이 되면 이루어질까 하는 사람은 뜻 앞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류사상을 책임질 수 있는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종새끼입니다. 종새끼. 종새끼가 아니면 양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피의 쓴 잔을 이어받은 아들딸이라 할진대는 아버지의 슬픔은 바로 그 아들딸의 슬픔입니다. 아버지가 염려하는 것은 곧 아들딸의 염려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말하기에 부끄러운 자신이라고 깨달을 수 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무섭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3년, 혹은 10년 이상이 지나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은 다 흘러가 버립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하늘편을 사수하기 위한 하늘의 수고

그러면 내 자신은 어느때까지 하늘편으로 남아질 것이냐? 하늘편은 복귀의 노정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복귀하려면 개인을 중심삼은 싸움의 복귀노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복귀노정의 터 위에서 가정을 하늘가정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중심삼은 치열한 싸움의 탕감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요, 씨족이면 씨족, 민족이면 민족 등 단계를 거쳐 나갈 때마다 그에 비례하는 싸움의 탕감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 자신은 하나님이 찾는 가정, 하늘편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겠느냐? 또 민족을 대표하고 그 민족이 하늘편에 설 수 있게끔 민족을 대신한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겠느냐? 이렇게 물을 때 '나야 뭐 따라만 가면 되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복귀섭리를 시작한 그날부터 언제나 하늘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타락한 인류를 대하는 그 시간부터 지금의 인류를 대하는 것이 끝날 때까지, 만국이 해방되고 만인류가 해원성사할 수 있는 그날까지, 지옥에 있는 모든 애혼들까지도 해방시킬 수 있는 그날까지, 그것들을 수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만년을 지내온 한민족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역사는 지루한 역사가 아니었습니까?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과정이 엮어져 온 것을 보면, 돌이켜 보기도 싫은 역사가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못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피비린내나는 곡절이 엮어져 있는 데, 하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하늘편의 나라를 편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피비린내나는 대가가 치러져야 하겠는가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나라에 있어서도 간신이 흥했다면, 충신이 흥할 수 있는 역사적 시기가 있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가 있지만 하나님은 간신편이 아닙니다. 충신편이에요. 충신편인데도 간신으로부터 수천년을 몰리시고 한번도 당신의 권위를 자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사람, 당신의 집, 당신의 씨족, 당신의 민족, 당신의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가운데 지루한 싸움을 해 나올 수밖에 없는 하늘편의 비참한 사연이 역사의 배후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하늘편의 나라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내 자신이 하늘편이 되어 있느냐, 그 나라의 선두에 서서 제물이 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늘편을 생각할 때, 하늘이 지금까지 하늘편을 사수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얼마나 큰 수고의 대가를 치렀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수고는 아직까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의 수많은 어려운 환경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의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탄이 원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슬픔의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라도 가야 할 운명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 이 새로운 아침에 여러분은 하늘편이 되기를 바라느냐, 아니 하늘편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로 삼고 복귀되지 못한 자기를 제거시키기 위하여 일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1970년의 새아침을 맞는 여러분의 결의 내용은 그런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한 사람

그러면, 내가 통일교회의 일선을 지키는 데 있어서 몇 년 동안이나 수고해야 할 것이냐? 여러분은 '7년노정만 가면 되겠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7년노정이 끝났는데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배짱있게 말할 수 있겠지만, 세계로 갈 수 있는 민족적 제단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늘의 역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7년노정에 또 7년, 그 7년이 변하여 70년이 되고, 내 일대가 7대로 넘어가고, 그 7대가 70대, 7백대, 7천대로 넘어 갈지라도 나는 하늘편으로 살겠다고 하면서 하늘편으로 살아 하늘편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나의 정기를 어떻게 남길 것이냐, 또 그럴 수 있는 후예를 어떻게 이 지상에 남기고 갈 것이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의 기쁨의 환경을 버리고 미래의 세계에서 기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도 기도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적인 1970년대를 자랑하는 것보다도, 미래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도리어 미래의 행복을 위해,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역사적인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무리가 되어 있느냐, 또는 자기의 후예가 그럴 수 있는 하늘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무리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광의 상금을 받아 가지고 뭇 백성의 칭찬을 받는 것보다도 도리어 외로운 자리에서 풍상에 시달리면서, 초초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십대 혹은 수십대의 후손을 중심삼고라도 이런 결실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사는 것은 현실의 사회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요, 대한민국이 하늘편에 세워지는 단계를 넘어서 온 세계가 하늘편에 세워질 그 시대를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죽더라도 그의 소망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날이 가면 갈수록 성사의 때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혹은 대한민국의 목적을 위하여 정성들인 사람은 자기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세계의 목적을 위해선 또다시 정성들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자기의 몸이 영계에 가 있다 할 때는 자기의 후손을 통해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교차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주실 수 있는 축복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 축복을 현실적인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되겠습니다. 그 축복을 십년 후에, 백년 후에, 천년 후에 한민족이 하늘편을 이탈하지 않도록 경계선 저 너머에 심어 놓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은 망하지 않는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심어진 씨는 수십년, 수천년이 되어도 썩지 않고 기필코 싹을 틔울 것입니다. 그 싹이 날때까지 그 민족은 망하지 않고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저 너머의 소원의 세계에서 해방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천상 천하의 온 만민이 하늘을 앙모하고 찬양하는 노래와 더불어 살 수 있는 하늘왕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죽어갔던 예수님이기 때문에, 만국의 사람들과 영계의 수많은 애혼들까지도 자기들의 소원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소원을 자기들의 소원으로 대치해서 그것을 상속받기 위하여 노력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동적으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천운과 더불어 가라

오늘날 여러분 중에는 자기가 통일교회에서 수고한 것을 알아주지 않는 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하늘편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늘편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시대적인 하늘편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역사적인 하늘편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현실의 행복의 터전을 잊어버리고 본연의 행복의 요건을 민족 앞에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뜻 길을 추구해 가야 됩니다. 우리는 세계만민과 더불어 하늘 앞에 충성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고 해방의 나팔 소리와 더불어 대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 한 날을 맞을 때까지 하늘편에 서서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핍박을 받고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후손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에 우리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자랑하지 말고 현시대를 넘어서 하늘편에 심어 놓을 수 있는 자랑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1970년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심어놓은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그 한 가지가 되고 한 잎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흘러가는 물에도 반드시 주류가 있습니다. 아무리 넓고 큰 바다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 가운데에는 반드시 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선두의 흐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선두의 흐름에 따라 방향을 갖추어서 흐르는 것은 영원히 흐를 수 있으나, 자의에 의하여 흐르는 것은 영원히 흐를 수 없는 것입니다. 천운을 중심삼고 움직일 때에 영원한 운세를 탈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세는 천운과 다른 것입니다. 한 국가와 민족을 통치하는 지도자가 국가의 방향을 천운의 방향과 일치시키고, 또 천운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어서 그것을 하나의 세계적인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국민을 지도한다면, 그 국가와 민족은 세계역사에 제일 가는 국가와 민족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왜? 국가의 운세가 천운의 방향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천운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은 천운과 더불어 가는 것입니다. 국가와 같은 그런 외적인 형태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이 교차되는 자리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이라는 것을 놓고 논위합니다.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을 알고 심정의 친구가 되어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사람은 생활환경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아요. 오히려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외로우신 것은 그러한 내정적인 사정과 심정을 누구와도 논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외로우시더라도 그런 아들을 만나게 되면 그 외로운 환경을 잊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아들과 심정적인 유대를 맺게 된다면, 하나님께는 창조의 능력이 있는 연고로 이 환경을 창조의 결과의 세계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는 불안과 공포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열과 만족의 터전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심정적인 유대를 맺게 되면, 그곳이 아무리 사탄의 소굴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해서 기뻐하시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재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대해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마음에 솟구쳐 오르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는 사람, 세포를 통해 은혜의 흥취를 느끼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혹은 사탄의 총칼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평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심정이 교차되는 자리는 죽음을 넘어 희열이 창조되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자리는 사망권을 넘어 승리와 행복의 터전이 시작됨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세계를 이루시기 위해 기쁨을 중심삼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기쁨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그는 전권적인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요, 그의 권한은 반드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내정적 깊은 심정의 인연을 느꼈기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하나의 심정적 기반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 소망의 역사가 출발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에는, '나는 과연 하늘편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말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에는 생활이 달라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갈 것이냐? 사탄적인 것을 완전히 부정하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우왕좌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결심한 것이 천년을 갑니까? 여러분의 몸뚱이로 결심한 것이 천년을 갑니까? 못 갑니다. 우왕좌왕합니다. 언제나 왔다갔다합니다. 인간 조상이 왔다갔다하면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 후손된 우리도 왔다갔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왔다갔다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하늘입니다. 하늘밖에 없어요. 하늘은 영원한 것이고 불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왔다갔다하지 않으려면 시종이 여일하게 하늘과 더불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원래의 길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신앙인 것입니다.

희생하는 자리에서 인격을 완성하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종족을 이루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이루는 데는 역사를 중심삼은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온 사람은 개인적으로 승리한 자요, 가정적으로 승리한 자요, 씨족적으로 승리한 자요, 민족적으로 승리한 자요, 국가적으로 승리한 자요, 세계적으로 승리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만국 앞에 승리의 푯대를 세우고 나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권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해 여러분을 하늘편의 아들딸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심정이라도 갖추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생명을 걸어 놓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쉬워요? '내 온 정성을 기울이고, 내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가겠습니다. 명령만 해주십시오' 해야 됩니다. 천년사가 허물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결심을 했으니 가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자신을 하늘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 하늘편이 되기를 원하지요?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까? 「원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봅시다. 자신을 하늘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쇠붙이로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데 쇠붙이 그대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불에 달구어서 망치로 두드려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미 하늘편이 되어 있다면 간단하지만 여러분은 제멋대로 되어먹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 뜯어고쳐야 됩니다. 풀무 도가니에 집어 넣어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은 풀무 도가니에 집어넣어지기를 원합니까?

'아이구, 한번밖에 없는 꽃다운 청춘시대의 아름다운 용모가 이렇게 거칠어질 줄 누가 알았나? 통일교회! 이놈의 통일교회에서 청춘시대를 다 보냈으니 통일교회 선생님이 책임을 지시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풀무 도가니와 같습니다. 풀무 도가니는 그 안의 내용물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책임은 자기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풀무 도가니를 거쳐서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바로 도가니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한번 들어온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떠나서는 어디에 가도 살지 못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먹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자기 마음대로 잠자고 놀고 했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온 후에는 먹고 마시고 자는 모든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지리 못난 자리에 서야 되고, 남보다 더 고생을 해야 되고, 밥을 먹더라도 찌꺼기를 먹어야 되고, 입는 것도 남보다 못입고 살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선생님은 그걸 느낍니다. 좀 잘먹고 나서 트림이라도 하게 되면 금방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에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 통일주의는 뒤집어박는 주의입니다. 뒤집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체면이나 위신도 뒤집어박는 것입니다. 뒤집어박아야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찌그러지고 구멍이 뚫려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새것으로 만들려면 몇천 도가 되는 도가니에 집어넣어 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 속에서의 물빛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도가니에 들어가게 되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는 죽지 않고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금이든 철이든 무슨 보석이든 도가니에 들어가면 다 통일입니다. 똑 같다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편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통일편이 됐어요, 안 됐어요? 또 하늘편이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된 것 같기도 하고 안된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가 하나님 아들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워하고 고대하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면 '오냐, 너 왔구나' 할 것입니다. 유학시절에 하나님을 고대하고 그리워하듯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편지 몇만 통에 해당하는 사연을 가지고 어머니를 찾아가 만난 적이 있는 데, 그때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고 이마를 맞대고 목을 붙들고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달라졌는지 늙었는지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이고, 울지 마라' 하는 어머니의 말에 눈물을 씻고 보니 그 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늙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미인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늙어 버렸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하늘이 심은 나무는 뽑을 자가 없다

그래 하늘편이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되고 싶습니다」 정말 되고 싶어요? 「예」 선생님도 하늘편이 되고 싶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도 하늘편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하늘편이 되고, 여러분도 하늘 편이 된다고 할 때 여러분과 선생님은 같겠습니까, 좀 다르겠습니까?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앞에 서고 뒤에 서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니 옆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옆에 서면 사탄이 노리는 것입니다. 험한 준령을 넘어갈 때에도 무섭다고 해서 아버지 어머니 옆에 서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갈 때에는 반드시 여러분이 앞에 서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생소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나그네 신세와 같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앞길에 그 얼마나 천태만상의 상황이 전개될 것이냐? 때로는 외길도 가야 될 것이고, 때로는 길을 막는 원수의 창끝을 쳐 버리고 가야 될 것입니다. 이 길은 지금까지 자기 혼자서 뭣도 모르고 마음대로 가듯이 그렇게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게는 못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여러분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1970년도에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지금 얘기한 것은 그냥 적당히 해본 얘기가 아닙니다. 결판을 지은 기반 위에서 대가를 치러 가지고 결론을 얻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여기에서는 어디까지나 선생님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하늘편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길이 쉽지 않으니 늙은 사람들은 떨어질 것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늙은 사람들도 의관을 준비해 가지고 젊은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후방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죽어서 돌아온 젊은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보다도 더욱 비통한 마음으로 하늘 전선에 인연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들을 전쟁에 내보낸 부모가 슬퍼하는 마음 이상의 슬픈 마음을 가지고 일선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탕감복귀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고 있는 데 편안히 잠자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합니다. 뜻을 위하여 전체가 동원될 때에는, 눈물이 떨어지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상의 마음, 할아버지 할머니 이상의 심정을 갖추어야 됩니다. 아버지를 위해 싸움은 못 하더라도 아버지의 마음편에 선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내 자신이 하늘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늘이 심어 준 나무는 뽑을 자가 없고 하늘이 심지 않은 나무는 뽑히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늘이 심은 나무는 뽑을 자가 없는 동시에 하늘이 심지 않은 나무는 뽑히지 않을 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탄도 관계할 수 없는 , 오직 홀로 넘어야 할 고비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이 길을 하나님이 막는 날에는 무자비한 것입니다. 내가 잘 압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나를 중심삼고 나오는 데 있어서 내 가슴에 화살을 꽂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분합니다. 자다가도 '아, 그놈의 자식' 하는 말이 입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상이 남아 있으니 일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을 잡쳤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하늘을 향해 가는 길에 있어서 잘못하게 되면 책임자는 몇 배 이상의 짐을 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정이 아무리 참사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은 죽어도 갖지 못합니다. 다년간의 체험을 통해서 안 것이지만 원리를 벗어날 때 하나님은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정이면 가정을 이끌고 나가는 데 있어서 뒤에 따르는 사람이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가정도 책임져야 하고, 교회에서 책임을 못하면 교회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이렇듯 기도하는 자리에서 피뿌린 옷을 입고 제사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면서 나가야 하는 제사장의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이런 생활을 해 나가야 됩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도 체험을 했을지 모르지만, 감옥 같은 데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은 모른 척하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그때는 사탄과 하나님이 대결하는 중간지점, 즉 함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함정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도 안 꺼내 주고, 사탄도 안 꺼내 줍니다. 그러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집에 두고 어디 갔을 때에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분명히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에 갈 수 없으므로 어머니는 어쩔 수 없고 자식이 혼자서 그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넘어야 할 담입니다. 그 고개를 넘어야 그 이상 안 떨어지겠기에 하나님은 약속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대나무가 마디 마디를 맺고 성장하듯이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떨어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개인승리에서 가정승리로 넘어갈 때는 하나님은 절대 관계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싸우느냐? 홀로 싸워야 됩니다.

개인기준에서 가정기준으로 넘어갈 때에는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가 생명의 원천이 되지 않고서는 가정의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은혜의 생활을 하던 그 심정적 기준을 잃지 않기 위해 피땀 흘려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맘 하나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떨어져 나갑니다. 다 끊어지는 것입니다.

한 고개를 넘으려면 그에 비례되는 시련을 거쳐야 됩니다. 거기에 비례 되는 흑암의 과정을 거쳐야 돼요. 그럴 때는 , 피가 흐르는 곳을 꾹 누르면 그 곳이 하얘지면서 피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시련을 참고 흑암의 세계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관문을 거쳐야 돼요. 그럴 때는 아무리 감옥이라 하더라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심정적 기준을 어떻게 유발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10시간, 혹은 20시간, 아니면 몇 주일씩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심정이 퍼져 나갈 때의 기쁨은 세상의 억만장 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클 것입니다. 그러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여러분이 모르는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이 길을 어떻게 직선상으로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것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70년대에는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붙잡아 줄 수 있는 '나'가 되어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과연 하늘편입니까? 하늘편인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늘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늘편에 속한 사람이 라고 하니 내가 하나 물어 볼까요? 하늘편이라고 손을 들면 벌써 하늘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선생님 사정이 어떤 줄 알아요? 알긴 뭘 알아요? 말을 듣고 보니 알 것 같은 것이지 정말 아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어제 아침에도 '예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하면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놓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기 나름대로 살면서 선생님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여러분을 끌고 나가야겠습니다. 가정들도 마찬가지예요. 가정들도 내가 가르치면서 끌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달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내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가지고 내게 맡겨진 십자가는 내가 감당하겠다고 하며 이 땅을 수습해 나갈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염려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을 이룰 것인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단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늘이 풀어 줄 수 있는 '나' 내가 쓰러지려 할 때 쓰러지지 않도록 하늘이 붙잡아 줄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나오는 데 있어서는 죽을 고비도 많았고, 하늘의 배척을 받는 때도 많았습니다. 아마도 통일교회가 망할 길을 갔다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대를 돌아보면 50년에 가까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지금까지 남아졌다는 것은 지극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사명을 해야 할 역사는 언제나 연결되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에도 그러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과 가정을 어떻게 연길시킬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큰 싸움을 거쳐야 됩니다. 가정과 종족을 연결시키는 데도 그렇고, 종족과 민족을 연결시키는 데도 그렇고, 민족과 국가를 연결시키는 데도 그렇습니다. 어디에나 그런 고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가인과 아벨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지금까지는 항상 외적인 사탄편이 이겼습니다. 이 세상과 선생님을 두고 볼 때, 외적인 입장은 이 세상 전체요, 내적인 입장은 선생님을 중심삼은 이 길 하나밖에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개인적인 싸움과 가정적인 싸움과 종족적인 싸움과 민족적인 싸움을 대신하여 국가라는 이름으로 갈래야 갈 길이 없는 입장에 딱 부딪쳤습니다. 이제는 갈 길이 없어요. 그러므로 승공전선을 만들어서 공산주의 사상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고 주체적인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국가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갈 길이 생기지, 지금과 같이 민주주의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의 한국의 갈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따라간다고 해도 한국의 갈 길은 없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최접경지대까지 몰아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늘편의 위신과 권위를 세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금년의 표어가 '승리적 통일전선'인 것입니다.

여러분중에 금년도 표어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금년도의 표어는 '승리적 통일전선'입니다. 승리적 통일전선! 이거 말은 간단합니다. 승리적 통일전선이란 다시 말하면, 하늘편에 서서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편의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움직여 나가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를,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 개인과 가정이 여기에 완전히 일치가 되면, 주체가 되어 가지고 민족기준과 국가기준을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이 국가로 나갈 때는 국가의 위정자가 되고 최고의 지도자가 되며, 세계로 나갈 때는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섭리의 대표자가 됩니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 서야 합니다.

통일족속이 가야 할 길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의 사명을 하는 데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종족의 사명을 하는 것으로만 끝나서도 안 됩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세계로 계속 연결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어야만 통일전선에 있어서 하늘의 용사로서의 사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이 삼천만 민중의 가슴 가슴과 연결될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이 문제는 국가 기준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의 움직임이 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그러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권을 만들어서 국가를 중심삼고 외적으로 아시아와 세계에 연결시키면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편을 중심으로 해서 싸움을 할 것입니다. 하늘편 입장의 개인을 중심삼고 개인의 승리를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늘편 가정이 결정되기 전에는 가정을 중심삼고 하늘편 가정의 승리를 위한 싸움을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편 종족이 편성되지 않고는 하늘의 민족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하늘을 중심삼은 하나의 족속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하나의 통일족속이에요.

그러면 이 통일족속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냐? 통일 민족을 이루는 길입니다. 통일 민족을 이루어서 통일 족속의 주체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민족적 씨족적 기준을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통일민족을 중심삼고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서 하늘편에 심어질 수 있는 씨가 되어야 합니다. 심어지는 데는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 심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그 더러운 것들이 그 씨에게 비료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말끔한 모래밭보다도 시궁창 같은 곳에 심어지게 되면 더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궁창에 있는 것들이 오히려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영양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뿌리는 데는 어디에다가 뿌리려고 하느냐? 죽음길에다 뿌리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가야 한다는 거예요. 하늘편에서 추락한 녀석은 사탄편에서도 추락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늘편에서 일등하는 사람들은 사탄편에서도 자기 국가나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정병인 것입니다. 하늘편에서도 하늘편을 대표할 수 있는 정병이고요.

그런 정병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싸워서 굴복시키면 최대의 성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이요, 그 권내에서 국가적 승리와 세계적 승리의 기준을 차례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일생이 고달프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공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망할 운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물리치기 위하여 반공의 표제 아래 민족의 기수가 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자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의 젊은 남녀들은 물론 늙은 사람들까지도 전부 다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김일성이 공산당원이 전멸되는 한이 있더라도 남침하겠다고 한다면, 이것을 방위하여 한국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젊은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 일선에 세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김일성이 자기 당원들에게 부과하는 이상의 책임을 지우더라도 하늘의 뜻을 위하여 그 책임을 수행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때요? 그럴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을 들으니까 섬뜩하지요?

충신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일본 승공연합의 기록영화를 보았지만, 지금 일본 승공연합은 공산당하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대낮에도 싸우다가 피를 흘리고 죽어갑니다. 한국에서는 간첩 하면 도둑 중에 제일 무서운 도둑쯤으로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간첩이고 뭐고 없습니다. 형제끼리도 서로 이념이 다르면 싸움질을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얼마 안 됩니다. 수로 말하면 호랑이와 벼룩이 싸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통일교인은 벼룩은 벼룩인데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탄을 지니고 있는 벼룩입니다. 이 벼룩이 깨물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입니다. 이런 싸움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편 한 사람이 그들 백 사람 천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지금 이런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조선대학 앞에서 강의를 하겠으니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라는 식으로 조총련이 있는 데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여자를 내세워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기록 영화를 보면 그들이 나와서 방해를 하느라 잡아 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것을 보고 남들은 웃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입니다. 또 어떤 때는 한꺼번에 몰려와 가지고 한 사람을 타고 앉아서 목을 누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주일 정도만 하게 되면 우리를 동정하는 사람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동정하는 사람이 몇 사람만 나오게 되면 그들의 내부에 분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 틀림없거든요. 말에 틀림이 없고 행동에 틀림이 없고, 모든 도의적인 면에서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자기들의 말과 행동이 틀린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양심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스스로가 공산당에게 희생되었다는 불신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 자체가 폭발되게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전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민족이 가야 할 최고의 일선입니다. 알겠어요? 「예」

한국에서도 우리 통일교회는 종교계에서 제일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계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을 우리 통일교회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계에 통일전선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종교계를 통일전선화하자!' 해 가지고 초교파운동을 하는 것인데, 전부 타령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이제 기성교회가 견딜 수 있는 다리가 무너져 가니 머무적거리는 곳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들이 우리 활동에 참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종교적으로 비난을 받게 된 것이고 배척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지금 국제적인 종교 형식을 갖추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산에서 일어난 데모도, 김주열이 죽은 뒤 마산 시민들이 일어서자고 공모해서 일으킨 것입니까? 공모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면 한마디에 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민족의 심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폭파구가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화산맥이라고 했을 때, 그것만 찾아서 터뜨려 놓으면 화산 전체가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맥이, 그 근원이 크면 클수록 큰 화산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시한 녀석들은 전부 묻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충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해 가지고 삼천만 민중으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고 이를 위해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사람, 삼천만 민중의 격분한 마음을 폭발시킬 수 있는 사람, 그런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날 삼천만 민중을 책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얼굴이 예쁘장한 우리 아가씨들, 알겠지요?

내가 아가씨들에게 예쁘장하다고 했는데 그 예쁘장한 얼굴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헤쭉헤쭉 웃고 시집이나 갈 그런 얼굴이 아닙니다. 그 얼굴과 그 눈동자와 그 모습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사탄편이 되지 말고 하늘편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사탄편의 길이라면, 하늘편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복을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난다

여러분은 '아! 어려운데…' 하지만 선생님은 별의별 곳에서 다 살다 보았습니다. 자기가 비참한 자리에 가면 갈수록 하늘이 같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때는 눈을 척 뜨면 하늘에서 빛이 나고 있습니다. 하늘이 같이하면 그런 현상도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 전경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세상에 미남 미녀도 많지만 그런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 아름다움은 꿈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백 퍼센트 표현될 수 있는 곳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 즉 천국입니다. 만약 여기 박공서 같은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보게 되면 감격하여 아주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어 놓고 내쉬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아무리 외롭고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도 하늘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견뎌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억울함을 많이 당했습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 사람이 나타나서 '당신은 아직도 그 놀음을 하느냐, 뜻이 도대체 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일은 뜻을 위해서 하는 일이요, 또 하늘의 뜻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대해 참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뜻길을 가는 사나이의 마음이 변하랴. 언젠가는 그가 나에게 큰절을 할 때가 올 것이다' 하며 묵묵히 나왔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내게 같이해 주시거든, 그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복귀도상에서 사심없이 아버지의 사정을 위로해 드리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 보고 싶기까지 합니다. 언젠가 한번 다시 만나 보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외로운 인생길이기에 선생님에게는 친구도 없습니다. 단 한 분, 아버지 밖에는 없습니다. 밤에도 그렇고 낮에도 그렇고 어느때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의 요건을 찾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요건을 찾아서 주는 사람들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운명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길이로되 하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사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집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난해에 우리 현진이를 낳아 가지고, 이 녀석을 더운 방에 있게 해야 하는 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따뜻한 방에 있게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자는 방을 내주고 나는 2층 서재의 마루바닥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편했습니다. 우선 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기가 편해요. 침대는 삐걱 삐걱하고 요란해서 참 곤란해요. 침대에서 무릎을 꿇어 보세요. 푹 푹 들어가고 안 좋아요. 마룻바닥은 그냥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 되거든요. 협동을 해야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감옥에 가서 인생을 끝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도 한하지 않기로 결의한 사람입니다. 내 인생이 감옥에서 시작되어서 감옥에서 끝난다 하더라도 한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도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행복이 있다면, 그 행복을 여러분에게 전부 나누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것을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이것이 가짜가 아닐진대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가짜로 취급하여 가짜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이 진짜를 가짜로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테스트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를 중심삼으면 망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괴로운 시련과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격을 갖추고, 승리를 결정짓는 데 가장 가까운 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자청해서 앞장서 가겠다는 뜻을 품은 사람은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뜻을 품고 세계를 향해 가는 사람은 성인이 되고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하늘 편에 서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편한 것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편안한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의 국사를 책임진 사람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유럽의 국가라든가 혹은 동남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대통령이 구경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경하러 다닌다면 그 위정자는 오래 못 갑니다. 나라를 위해서,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목적하에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구경을 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외국에 나가서 외교적으로 승리한 어떤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 일가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 국가 전체의 행복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앞으로 하늘로부터 어떤 복을 받는 다면 그 복은 여러분 개인만의 복이 아닙니다. 세계의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슴지 않고 개인의 것으로 챙겨 넣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 복을 세계의 복으로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그 복을 세계에 나누어 줌으로써 그것을 천 사람이 받게 되면 천 사람은 한꺼번에 복덩이를 열매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열매적인 복을 필요로 합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복을 필요로 합니까? 보통, 사람들은 개인적인 복을 받겠다고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들어서 알겠지만, 그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에 지금 사회 체제가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자기나 자기 가족을 중심삼은 사람은 아무 말을 안 해도 벌써 압니다. 냄새가 나는 거예요. 선생님은 일생 기도해 나온 사람입니다. 기도하게 되면 벌써 사탄이 어디에 오고 있다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냄새를 맡고도 안다는 것입니다. 벌써 영적 파장이 다릅니다. 전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어떻게 해도 거기에 안 말려듭니다. 절대로 말려들어가지 않는 다는 거예요. 사탄을 대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인사조치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지구장(地區長)을 시켜주면 이렇게 이렇게 잘할 텐데' 하면서 '나는 지역장(地域長)이 맞지 않고 지구장이 맞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라고 했습니까? 지구장을 시켜 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원할 겁니까? 그 다음에는 지구장이 맞지 않으니 협회장을 시켜 달라고 할 것 아닙니까? 욕심을 가지고 자기를 주장하게 되면 한계가 없습니다. 나라를 전부다 자기의 수중에 넣고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정적인 면에서 하늘편이 되어야 한다

하늘을 중심삼고 가는 길은 자기에게 행복의 여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몽땅 주려고 하는 길입니다. 부모가 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을 자기가 갖고 죽겠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왜 발전을 못 하는 줄 알아요? 예를 들어 고려 청자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옛날의 기술자들이 그 방법을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이루어 온 것을 자기의 아들딸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집안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자기가 천년 고생을 다해 가지고 얻은 귀한 복이 있으면 그 복을 서슴지 않고 자기의 아들딸들을 위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후손에게 그런 것을 남겨주기 위해 준비하는 부모만이 역사에 남아지는 것이고 역사에 자료를 남길 수 있는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자기 일대에 모든 것을 수습해 버리고 후손들에게는 안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야 후진국으로서 경제를 부흥시키려니 야단이 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리를 넓혀 나가려는 사람, 자기부터 생각하는 사람 등 욕심꾸러기들은 앞으로 정리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제일 싫습니다. 솔직이 터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에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인격을 갖추고 내 자신의 권위를 갖추어야 하는 데 그럴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선생님은 투쟁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세워질 때까지는 눈물이 마르지 않더라도,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도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하늘편 입장에 기쁘게 화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늘편에 있어서도 기쁘고 좋은 것은 내 것이라는 사람은 악한 편의 사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 반대의 자리에서 하늘과 심정적 유대를 맺어 가지고 내일은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찬 가슴을 안고 새로운 시대의 씨가 되기 위해서 무한히 속죄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편의 사람이요, 그러한 요소를 갖춘 가정이 하늘편의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요소를 갖추어 가지고 씨족으로 세움을 받을 때 그 씨족은 하늘편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씨족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통해서 국가를 이루면 그 국가는 세계 만민 앞에 남아지는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부터 통일해야 할 전체적인 기준이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명절 같은 때에 예물을 가져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예물이 어떻게 왔느냐? 얼마만큼이나 정성을 들인 예물이냐 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겁니다. 일년 동안 정성을 들여 가지고 온 예물인데도 불구하고 일년 동안 정성들인 것을 알아 주지 못하고 마음대로 사용했다 가는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신중히 대하려고 합니다.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살고 있는데,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지방에서 누가 무엇을 가지고 오면 당신이 어쩐 일이냐고 하며 좋아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본부는 전세계의 통일 신도들이 정성들이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하나의 물건이라도 무서운 것입니다. 잘못하면 독약과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그러지 않아요? 지성소에 들어가서 행동을 잘못하면 급살을 맞아 죽는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옷을 해 오면 안 입습니다. 실례 같지만 안 입어요. 심정적인 면에서 하늘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은 여러분이 받을 복이 아닙니다. 그 복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살리고 국가를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편에 심어지는 자가 되라

기도를 할 때도 '나는 1970년도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인류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세계에서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러이러하고 이러이러한 길을 가는 사람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는 식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 있어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세계를 대표하는 하늘편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어요? 나는 압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요. 기도를 해보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우리 통일교인 가운데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서 그러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앞으로 축복가정의 아들딸들 가운데 그러한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한다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비료가 되고 거름이 되고 그를 위해 천년 동안 기도를 하고 천년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한다고 해도 하겠다는 마음, 만일 내가 세계를 대신하여 그런 영광된 자리에 선다면 기꺼이 종의 종이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고 하실 것이요, 그 사람을 중심삼고 이루지 못하면 그 사람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하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사람을 보내실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전부다 '1970년도에 통일교회를 지켜 주소' 하고 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아요.

통일교회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면 공석에서 일하는 선생님은 저절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사람들 복받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에 있어서는 가만히 있어도 그 뿌리를 통해 가지고 열매가 맺게 되어 있는 것처럼, 가만히 두면 자연히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는 데 부산스럽게 열매가 잘 맺혀야 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대로 나가면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으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심어 놓은 벼가 논에서 잘 자라고 있는 데, 벌레가 먹으면 어떻게 하나, 누가 베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걱정 말고 일단 선생님에게 모두 맡기고 가라는 거예요.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의 때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왜 망하느냐?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고, 자기 사돈의 팔촌을 위해 기도하고, 그 다음에 가서 잊어질 만하면 나라와 세계를 위해 복을 빌어 줍니다. 전부 반대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 망할 수밖에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늘땅을 위해서 가는 것이 정상적인 코스입니다.

더 큰 것을 바라는 뜻이 우리 앞에 바라는 아버지의 요구이기 때문에 그 요구에 적합한 우리 자신들의 정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에게만 복을 주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을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세계를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 가서는 '나는 하나님을 모르겠소. 내 세상인데 알 게 뭐요'라고 할 가망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제부터 여러분은 사회적으로 혁신을 하고 정신을 차려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1969년도 마지막 안식일에 '하늘편에 심겨진 존재가 되라'고 말씀했는데, 1970년대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가서 볼 때 진정으로 자신이 하늘편에 선 사람이 되었다면, '내가 하나님의 은사를 잊지 않았구나' 하면서 과연 고마우신 말씀이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은혜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1980년대에는 새로운 세계를 세울 수 있는 종족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하늘편에 서서 하늘편에 심어지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런 여러분을 중심삼고 통일 교단은 선의 뜻을 갖춘 교단으로서 민족해방의 길과 세계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을 동시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1970년대에는 좀 다른 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지난날 저희들에게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추억할 수 있고, 하늘편으로 남아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도리어 그것에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옵나이다. 저희들은 남이 갖지 못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이 갖지 못한 현실에 대한 투지를 갖고 있사옵나이다.

생명의 인연을 갖추게 되면, 환경이 아무리 반석같이 굳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제거하고 자랄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는 자력을 지닌 아들딸이 되어야만 변하지 않는 하늘편의 모습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저희들 스스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언제나 하늘편이냐 사탄편이냐 하는 것을 가려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금년의 표어인 승리적 통일전선을 앞에 놓고 힘차게 달려가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내가 칼을 뽑아 들고 싸우는 격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자기의 핏자국을 남긴 그곳을 행복의 기점으로 삼고 거기에 하늘적인 가치만을 심어 놓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하늘의 동조자를 남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혹시 자신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사정에 처하게 되면 그 자리에 하늘편의 사람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승리적인 전통의 기준이라도 세워 놓고 죽겠다고 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50여 평생 뜻을 위한다고 걸어 나온 저의 걸음이 아버지 앞에 얼마나 불효하였사옵나이까? 아버지 앞에 때와 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민족이, 혹은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서 벗어나 한을 남기고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사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하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또다시 저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사오니 이러한 저의 입장을 아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지금까지 처참한 역사과정에서 몸부림치는 입장이었음에도 오늘날 통일제단이 정성들여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이 민족을 다시 한번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갈 길을 찾다가 낙망한 사람이 있거든 당신의 후한 사랑의 손길을 다시 펼치시어서, 새로운 아침을 향하여 당신 앞에 더더욱 충성하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통일의 아들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0년도에 인연맺은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과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지방 순회를 떠나는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두터운 마음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사랑하고 용서해 줌으로써 용서법을 주관하는 천륜이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것을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과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늘편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하늘편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하늘편의 자체가 되어야 하겠사옵나이다. 하늘편으로 태어났다가 하늘편으로 죽을 때까지의 천만사를 하늘 것으로 시작하여 하늘 것으로 종결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승리한 그 누구보다도 승리한 사람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일은 오늘날의 역사적 한계를 넘고 세계적인 한계선까지 넘어서 아버지의 평화의 왕국을 건설할 때에야 결실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죽은 자들이 아니요, 망한 자들이 아니라 부활의 권내로 뻗어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새로운 힘을 가지고 희망의 동산으로 뻗어 나가게 될 때는 , 급격히 자라서 천지를 뒤덮게 될 때는 그 승리적 권한을 자유본향에 있어서, 자유세계에 있어서 행사할 수 있을 것임을 알고 그러한 소망가운데서 살고, 그러한 소망을 바라보며 하늘편에 서서 싸우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늘의 사정, 하늘의 심정을 지니고 결판을 짓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말하고 생활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새로이 출발하는 1970년대의 이 상황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아버지 안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렇다고 저희들이 편한 길을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남들은 배척하고, 남들은 버리고, 남들은 저주하는 자리라 하더라도 저희들은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를 아버지의 심정권내로 찾아드릴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자로서 하늘의 무한한 축복의 상속권을 가지고 재출발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그 앞 길에 현현할 것을 믿사오니, 천년사를 단장하고 만년사에 승리의 팻말을 꽂는 주인된 모습들로 하늘편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를 고대하고 부르고 있는 세계 앞에 남아진 저희가 졸장부의 모습이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하늘의 왕자의 모습과 공주의 모습을 지니고 그 권위와 체면을 세우는 데 있어서 부끄럽지 않도록 늠름하고, 씩씩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하늘편의 중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하늘편만이 승리하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와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 나라와 세계의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며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품어 주시옵소서.

악이 진동하는 이 세계의 모든 권한을 꺾으시어서 당신께서 품에 품을 수 있고, 승리의 깃발을 들어 당신의 영광을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어서 속히 도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세계에서 아버지께 품길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 위해 재삼 결의하는 이 아침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은 새해를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긍휼이 저희들 머리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새해에 저희들은 이미 '승리적 통일전선'을 표어로 내세우고 1970년대의 새로운 출발을 하였사옵니다. 저희가 가는 이 노정이 당신의 목적과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뜻과 당신의 섭리노정에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저희들은 하늘을 중심삼고 승리할 수 있는 그 날을 바라고 나왔사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날을 바라시고 추구해 오셨다는 사실을 아오니 저희가 온전히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소원 하시는 한날,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그날과 그때를 기필코 저희 통일교회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저희들은 그 길을 향하여 달려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음을 아옵니다.

비록 작은 개체라 할지라도 저희 개체를 바쳐 큰 목적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너와 나의 운명이 공동 운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이미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뜻을 위해서 저희들은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이 당신이 바라는 소원과 일치될 수 있게 하옵소서. 그것이 저희의 소원이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서울을 향하여 당신 앞에 기도를 드리고 있사옵니다. 금년 이 한 해와 '70년대를 위하여 정성들이고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소서. 남은 은사의 터전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하늘의 대신자가 되고, 하늘의 대역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달에는 저희들이 크나큰 행사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희 들이 경륜하는 모두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과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백방으로 바라시는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목적하신 그곳까지 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향을 통해서 역사적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아버지께서는 아시오니 저희들이 하려는 모든 대회를, 아버지,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시작도 당신이 하셨사오니 과정도 당신이 맡으시옵고 끝도 당신이 맺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에 선을 투입시켜서 그 결과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당신이 바라시는 소원 앞에 저희들이 선의 재료가 되고, 선의 공동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어 승리의 터전을 향하여 줄달음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모두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을 바라보면서 조국이라고 마음으로 흠모하며 정성들이는 모든 것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은 복귀의 터전을 향하여 세계의 무대를 밟고 나서는 저희의 행보가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아버지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저희도 생애에 있어서 당신의 보호권을 떠나지 않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을 통하여 저희들이 해야 할 큰 사명이 세계 무대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며, 40개국의 선교지가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길을 열어 주시옵고, 이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명령하시는 뜻을 기필코 성사시키려는 저희들에게 존엄하신 아버지께서 같이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할 수 있는 금년 이 한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 존전에 엎드렸사옵니다. 엎드린 저희 자신이 다시 한번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원이 당신이었으면 그 기원을 통한 과정도 당신이어야 되겠고, 그 목적하는 바의 결과도 당신이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으로부터 인연되었던 인간이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은 타락 때문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과 더불어 기원이 된 역사노정이기에 당신과 일치되게 하기 위하여 저희들이 복귀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이라는 대원수를 앞에 놓고 투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원한의 운명을 저희들이 밟고 넘어서 당신이 목적하시는 바와 일치되어 영원한 시작과 영원한 과정과 영원한 목적 성사라는 이 엄청난 승리의 결정점을 저희들 생애를 통하여, 저희들의 모임을 통하여, 이루어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귀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버지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저희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도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기 때문인 것을 아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뜻에 참여하여 영광의 존재로서 살 수 있는, 당신의 아들의 권위와 일치되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을 품어 주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긍휼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과 동정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갖고, 몇백번, 몇천번, 몇만번이나 품어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시간도 저희를 품고, 저희를 위하고, 저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소원의 목적을 흠모하며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을 아버지 앞에 몽땅 생축의 제물로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남한 각지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금년 이해로 말미암아 '70년대에 새로운 평화를 주시고, 통일의 전선에 서는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고 싸움에서 승리의 깃발을 든 선각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남아진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그곳 위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일치 단결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1월 들어 두번째 맞이하는 안식일로 금년에 있어서 중요한 한날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10일 후면 열릴 제1회 아시아 승공대회를 앞두고 전체가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의 출발이 잘 되어야 그 일이 잘 성사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시종여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보다 나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의 만사를 통해서 보아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마음이 필요

'일심통일', 즉 '한마음으로 하나의 통일을 이루자'라고 하는 것, 이것은 어떤 국가의 주권자가 있으면 그 주권자도 원하는 것이요, 어떤 단체가 있으면 그 단체도 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어떤 제도를 실행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도 원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통일되지 않고는 그 제도를 통해 성사시키려고 하는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일심통일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루의 생활에서부터, 일년의 노정, 더 나아가서는 일생의 노정, 전역사노정을 두고 보더라도 반드시 어떤 목적을 향하여 진행하는 과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개개인이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도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하나의 마음이 있는 데 저녁에 돌아올 때는 두 마음으로 변해 있다면 하나의 목적을 성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지금 여러분 자신이 접하고 있는 생활환경이 일심(一心)된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도 하루에도 마음의 방향이 여러 방향으로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요, 가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목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음이 하나되어도 목적을 이루기 힘든데 두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보게 볼 때, 한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침의 마음과 낮의 마음과 저녁의 마음이 하나되어야 하고, 초년 시대의 마음과 중년 시대의 마음과 말년 시대의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누구든지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고,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그 과정을 개척하고, 하나의 마음을 중심삼고 결속된 결과를 추구하는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사람의 바라는 목적도 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마음을 떠나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두 마음을 가지고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하나의 방향을 갖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의 마음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향이 다르고, 각 나라의 정책이 다르고, 그 사회의 사조가 다르고, 오늘날 현세 사회를 구성하는 사상이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천태만상의 배후를 중심삼고 그 인연을 통하여 현실적인 사회환경이나 제도가 갖추어 졌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 결과가 천태만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동기로 말미암아 수많은 결과가 맺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는 그 결과의 일치점을 추구해야만 하고 그래야 역사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반드시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나오기 때문에 수많은 주의 사상이 수습되어 가지고 하나의 목적하는 바의 세계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목적의 세계로 귀결되어지는 것은 우연한 결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누구도 그 형태를 변형시킬 수 없고, 그 방향을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목적하는 바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그 배후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요인과 하나의 일치점이 반드시 성사되지 않고는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즉, 일치된 그 기원으로 말미암아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이 세계화될 수 있는 인연을 거쳐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러면 오늘날 세계사조를 대별(大別)해 볼 때 어떤 세계관으로 되어 있느냐? 물질적 세계관과 정신적 세계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이 물질적인 면과 마음적인 면이 대립된 입장에서 하나의 중심으로 갈 수 있겠느냐? 그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을 두고 볼 때도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적인 것을 가지고 분석하고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환경이나 내용으로 관측해 가지고는 하나의 결과를 내릴 수 없는 것이 마음의 세계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세계가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이 물질적인 세계를 관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고차적인 내용을 갖춘 내적인 원칙을 통해서는 물질세계를 분석할 수 있으되, 물질적인 것 가지고는 그 차원이 미급하기 때문에 마음세계를 분석하거나 해결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70년대를 중심삼고 물질적, 즉 경제 부흥을 다짐하는 현시점에 있어서 물질적인 것만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뒷받침될 수 있는 정신적인 일면이 더 고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이 세계는 두 세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두 세계로 나뉘어진 채로 영속할 수 있겠느냐? 만약 인류가 두 세계로 나뉘어진 상태로 영속하게 된다면 비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귀결점을 갖지 않으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한 그 사람이나 그 나라나 그 세계에 있어서 행복, 혹은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둘 사이에 상충적 요인을 남겨 놓고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도,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상반된 입장을 고수하고서는 그 가정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체적인 입장인 하나의 중심을 기준으로 하여 그 중심과 상대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 어느 쪽이 중심에 서야 하느냐? 주체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대상은 주체를 중심삼아야 하고 주체 앞에 자신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대상으로서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체가 대상의 입장에 서가지고 왔다갔다하면 하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한 가정에서 목적을 이루려면 그 가정의 내외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가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남편이면 남편, 혹은 아내면 아내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세계로 갈 수 있는 마음과 일치되는 사람을 중심삼고 그것에 가까이 서면 설수록 그 가정은 세계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그 나라의 운명과 민족의 행운을 다짐하는 기원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둘이 상극 상충되는 입장에서는 행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회가 하나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것을 염려하겠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와는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지 못한 것도 직접적인 문제는 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의 마음을 따라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의 마음을 따라서 과거부터 살아왔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 또 미래에까지도 하나의 마음을 지니고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행복하다는 말을 할 때, 행복이라는 그 말은 승리한 과거를 가지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중심적인 자리를 결정하여 세계면 세계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만존재 앞에, 혹은 만유의 존재 세계 앞에 중심으로 세워지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는 데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있어서도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일치된 내용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데에서 비로소 행복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승리의 결정적 기준을 갖지 못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엮어 온 모든 사연들이 상충 요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상충 요인이 현재 자기가 서 있는 자리보다 크고 범위가 넓게 되면 그것이 언제나 주체적인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보다 상대적인 환경과 모든 여건이 우세하게 될 때는 그 중심은 우세한 것에 흡수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미래의 기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계의 내적인 핵심이 될 수 있고 중심이 될 수 있는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래의 세계가 현재 행복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그것보다 더 크게 될 때, 그 행복은 완전한 것입니다. 과거의 마음, 현재의 마음, 미래의 마음이 왔다갔다하게 되면 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의 성립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집안이 좋은 집안 같다고 평합니다. 그것은 그가 과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보고 그 집안을 평할 수 있고, 또 그 사람을 보고 현재를 평할 수 있고, 그 사람을 보고 미래를 관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 자신은 과거의 연장이요, 현재의 집약체요, 미래의 출발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행복이라는 것이 과거의 승리의 중심이 되고, 현재의 승리의 중심이 되고, 미래의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과거도 하나요, 현재도 하나요, 미래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이라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성현들은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그 누구보다도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참이란 것은 어디에서 성립되느냐? 참이라는 것은 미래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서만 성립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과거에도 참이어야 하고, 현재에도 참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참이 될 수 있어야 됩니다. 참이라는 것은 환경을 초월한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과거에도 중심이요, 현재에도 중심이요, 또 미래에 있어서도 중심인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참된 사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 참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가장 참에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상대적으로 나타난 스승보다도, 부모보다도, 참의 모체를 이룰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참의 상대는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곧 양심입니다. 우리는 곧잘 '그 사람 양심적이다. 그 사람 마음이 곧다'고 합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은 무엇이냐? 역사는 직행합니다. 그러기에 과거도 곧고 현재도 곧고 미래도 곧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구부러졌기 때문에 현재도 구부러지고 미래에도 구부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연들을 혁신해 버리고 마음이 직행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직행은 두 점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선입니다. 그 두점이 뭐냐? 원인과 결과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하나의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이냐? 하나의 마음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마음 바탕을 통해 하나의 목적을 그려 가는 과정의 현상적인 표시가 하나의 직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도 참의 자리에서 성립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도 참의 자리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참이 문제입니다. 이 참 가운데서는 참된 자기가 필요합니다. 그 참된 자기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수양이니 하는 것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제반 교육제도는 인간개조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짜여진 것이요, 그것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혁신운동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참의 자리가 아직까지 결정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참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 인간이 요구하는 피상적인 목적과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인 동시에 중심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돈이냐? 아닙니다.

행복은 경제적인 것만 가지고서는 논위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를 한 주먹에 통일한 영웅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행복을 노래할 수 있으려면, 권위를 갖추고 자기가 이루어 놓은 세계적인 무대를 바라볼 때 그의 마음에 넘쳐 나는 기쁨이 세계의 이상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을 노래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이 자기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 반드시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그 목적 성사를 자기 이상으로 좋아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행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두고 보면 역사는 투쟁사였습니다. 한 나라를 두고 볼 때에 위정자가 각료면 각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의 정책을 잘 수립하여 목적을 성사한 자리에 임하게 될 때, 전체가 그 정책이 성사된 것을 중심으로 위정자 이상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느냐, 그 나라에 있어서 그 정책이 성공한 것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느냐 할 때, 그 나타나는 현상은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양당 정치를 하는 소위 민주주의 국가를 볼 때 여당이 무엇을 제안했다 하면 야당은 무조건 반대합니다. 이런 것은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의 요건은 외적인 입장에서 추구할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이룬 행복을 자기 이상의 행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대적 환경이 사방으로 갖추어지게 될 때, 그 행복은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 겁니다.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이유

그러한 자리는 무엇으로 성립되는 것이냐? 외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제도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심정, 즉 사랑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그 사랑은 돌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사랑은 현재에 연결되어 미래에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절대적인 중심은 누구냐?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절대적인 중심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선을 바라기 때문에 절대적인 중심에 놓여질 수 있는 사랑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도 외적으로 아무리 못난 자식을 데리고 있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고 나쁜 외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병신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 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왜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냐? 그것은 부모가 과거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터전 위에 서야만 자기가 사랑의 아들이 되고, 또한 사랑에 접붙일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부모를 갖지 못한 것은 불행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인연과 승리의 자리를 우리가 부모로부터 인계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것을 그냥 그대로 지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은 자식이 있다면, 그는 늙어 죽을 때까지 부모의 사랑과 운명을 같이하는 거예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유물이 있다 할 때 그 유물은 늙어 죽도록 같이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외적인 것은 스러져 버리고 마는 것이요, 다 없어지고 말지만 부모로부터 인연된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외적인 입장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 속으로 파고들어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하나될 수 있고, 그 이상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과거의 승리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세상의 권위도 아니요 물질도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무엇인지 모르게 현실에 있어서 흠뻑 피어날 수 있습니다. 현실에 있어서 만발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동시에 축복의 손길이 있게 됩니다. 반면에 무엇인지 모르게 내적 결함, 즉 심정적 결함을 가지고 자랐고 위축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사방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충신 열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전반적인 세계의 정세를 볼 때, 전세계에 나타난 결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오늘날 이 문화세계를 창건한 이 사회 조직에 결함이 있어서만도 아니요, 이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결함이 있어서만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이냐? 심정적인 결함 때문입니다. 심정적인 결함이 사회에 미쳐지는 영향으로 말미암아 결함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자체들을 중심삼고 볼 때, 어떻게 부모들이 우리를 사랑하던 그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자녀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가정의 행 불행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이 됩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그 자식이 부모의 심정과 일치되지 않을 때는 불행이 조성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들과 딸이 있다 할 때, 아들만 부모의 심정과 일치되어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딸도 일치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세계의 축소체와 같습니다. 거기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가정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이 공존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입장에 올라가게 되면 자기가 아버지의 입장에 올라가서 아들딸을 갖게 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자기의 3대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인연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은 세상이 아무리 요동한다 해도 요동하는 사회의 침범을 받지 않고 행복의 터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마음을 이룰 수 있는 곳

그러면 내 개체는 어떤 존재냐? 자기가 자기 자신을 창조해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 맨 나중에는 종지 부모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즉, 인간조상 아담 해와에게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아담 해와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아담 해와 자기들이 나고 싶어서 난 것이라면 자기가 자기 자체를 창조한 것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자기는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인간 개체를 두고 볼 때 마음과 몸은 상대적인 관계로 되어 있지만, 마음은 몸을 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3수의 일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원리로 보게 되면 제1아담, 제2아담, 제3아담을 통해야만 완성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할 수 있는 그 기준에 서야 합니다. 과거의 승리를 결정하고, 현재의 승리를 결정하고, 미래의 승리의 터전을 완비해야 여기에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분이 밀고 가느냐 지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또, 앞으로 올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이 넘어가느냐, 밀고 가느냐? 이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흘러가는 역사과정에서 이 세계를 따라가느냐, 즉 이 세계를 중심삼고 가느냐,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 세계를 중심삼고 가게 되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니 현실주의니 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으로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역사과정을 탈피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탈피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동기는 누가 되어야 되느냐?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본래 원인되시는 분, 즉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원인되시는 그분과 오늘날 우리 인류와의 일치점이 어디냐? 이것이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이고 또한 양심이 소원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 일치점이 어디냐? 미국과 소련이 일치되는 곳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그 일치점이 어디냐? 자기 개체, 즉 개인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개인으로 돌아가면 개인의 일치점이 어디냐? 심정 문제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 심정의 골짜기로 파고 들어가면 부모의 심정을 거쳐 가지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사랑하고 남기고 싶었던 기준이 있습니다. 그 사랑하고 남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냐? 자기의 생명체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직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직계를 분석해 보면 무엇으로 이어져 있느냐? 같은 피와 살로 이어져 있습니다. 같은 피와 살만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같은 정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같은 정을 이어받은 자리는 어디냐, 같은 피와 살을 이어받고 같은 정을 이어받은 자리는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상실한 것이 역사적인 한입니다. 이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주적인 과업입니다. 이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서 해 나온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신랑신부의 이념을 설파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연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이 역사의 중심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중심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올 세계를 자기 자신이 몽땅 맞을 수 있는 , 나아가 세계가 자기를 향해서 오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오는 세계와 가는 세계가 부딪치게 될 때, 오는 세계가 흘러가는 세계를 수습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가? 심정적인 일치점입니다.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이런 환경에서 일치점을 어디서 가질 것이냐? 한마음을 어디서 이룰 것이냐? 그것은 모두 심정에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심정철학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철학에는 별의별 분야가 있지만, 하나님의 심정은 그 전체적인 분야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돌아가야 하는 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이 부정확한 입장에 있기에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어디냐?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모색 가능한 길은 미래를 향해 가는 길보다도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 더 빠릅니다. 미래는 가면 갈수록 태산준령이 첩첩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늦어집니다. 돌아가는 데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옛날의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어머니 아버지 품에 안겨 사랑받던 그 시절, 그때에는 만사가 형통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인류 조상의 심정을 거쳐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것이냐? 참된 심정입니다. 그것은 과거를 이어받을 수 있고, 현재를 이어받을 수 있으며, 미래를 상속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할 때, 거기는 주체적인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분들은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위대한 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지 못한 사람은 역사적인 성현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사회를 중심삼은 사람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위인전에 기록될 수 있을 정도의 위인은 될는지 모르지만 성현은 되지 못했습니다. 성현은 반드시 천지인(天地人)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을 논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되는 거예요. 이만하면 여러분은 '아! 그는 그래서 성현의 자리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분의 사랑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역사를 부정하면 부정했지 그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현실 이상의 사실로써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가졌느냐? 하늘나라에 갈 수 있고 이상세계에 갈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종교는 어떤 종교냐? 그 사랑의 내용을 중심삼고 현실을 심판할 수 있고, 현실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녔느냐? 그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체휼적인 내용을 가졌느냐? 이것을 갖지 않고는 현실화된 종교라도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아지지 않습니다. 이 현실을 능가하고 이 현실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을 체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보다 진보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처음에 들어올 때 여러분은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새로운 말씀을 듣게 될 때, 자기도 모르는 힘에 싸여 가지고 생활환경을 잊어버리고 생활역경을 박차고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신념이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현재의 어느 때보다도, 어느 일보다도, 내일의 어떠한 소망보다도 강했습니까? 그런 것을 체휼했습니까? 그런 것을 체휼한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종교인은 종교의 목적을 이룰 수 있어야 됩니다. 종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원리 말씀을 듣고 한 3년 동안은 계속됩니다.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가고 싶어지느냐? 밥을 먹어서요? 아닙니다. 무엇을 보고 싶으냐? 누구 얼굴이 보고 싶어서입니까? 무엇 때문에 살고 싶습니까? 이것은 전부다 정서적인 문제입니다.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은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영원히 뻗어 나갈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과정에서는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언제 하나님을 사랑했느냐? 또,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셨겠느냐? 역사과정에 있어서 누구를 사랑하셨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받은 것은 영원히 남아져야 됩니다. 우리 마음이 그리워할 수 있는, 즉 다음 세계에 있어서 흠모의 대상이 되고 오래 남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남아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질적, 외적 문제를 중심삼고 주장해 나온 권력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과정에 수많은 권력자들이 있었지만 남아지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사랑을 찾는 이유

그러면 남아진 것은 무엇이냐? 역사는 변천하고 발전해 나왔지만 종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예수시대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에서도 그 종교를 세운 도주면 도주, 창시자면 창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고 있다. 그러니 종교의 제도를 믿지 말고 종교의 주창자를 믿자고 합니다. 이렇게 오랜 동안 역사의 모든 모순된 환경을 타개해 오면서 세계 인류의 마음의 방향이 되고, 흠모의 대상으로서 지금까지 남아져 내려온 것이 유심사관을 중심삼은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사랑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했느냐? 이런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여러분이 일치되는 데 있어서는 사랑을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에게 있어서 부자지애를 중심삼고 부모와 자식이 하나가 됨으로써 합동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동포애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서로가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가 된다는 겁니다.

자유당 때 이박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다'고 말했습니다. 뭉치면 무엇으로 뭉치느냐? 동포애입니다. 동포애는 무엇이 모여서 되느냐? 가정애입니다. 그 가정애는 무엇에서 연유하느냐? 자기애입니다. 자기 개체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된다는 이런 실감을 느낄 수 있는 입장에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 동네 사람과 자기 세포가 연결될 수 있고 자기 촉감이 인연될 수 있는 동포애,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자의 사랑이 확대된 것입니다. 그러한 영역이 횡적으로 넓혀지고, 그 동기로 말미암아 엮어질 수 있는 그러한 동포애를 주장하는 민족은 발전합니다.

그러면 부모애의 원천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밑바탕이 된 부모가 되고 사회가 될 때, 정상적인 진로를 거쳐 가지고 원인과 목적이 이탈하지 않은 이상세계로 갈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누가 자기를 사랑해 주었으면 합니다. 대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받으려고만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바람에 세계는 망해 가는 거예요.

타락의 기원을 보게 될 때 무엇을 하려다 타락했느냐? 불륜한 사랑을 하려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을 받으려고 야단인데 타락의 기원을 보게 되면 불륜한 사랑을 하려다가 타락했습니다. 반대지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랑을 했으면 타락하지 않았을 텐데 사랑을 잘못 받고 잘못 했기 때문에 타파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잘 받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마음입니다. 결국 결과가 달라진 거예요.

타락은 사랑하겠다고 하다가 했는데 태어난 우리는 사랑을 받겠다고 합니다. 결과가 이중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사랑받겠다고만 하는데, 인간 조상인 아담 해와가 사랑하겠다고 하다가 사랑을 잘못 받고 타락한 것을 볼 때, 이것은 파괴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면 할수록 파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세상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을 받겠다고만 합니다.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본연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보았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 본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한번 받아 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생애에 있어서 필연적인 요구가 아니겠어요? 그 사람이 천년 살았다면 천년 동안 그 일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았을 것이요, 만년 살았다면 만년 동안 그 마음을 갖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가 사랑을 못 받은 본심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타락은 뭐냐? 사랑을 잘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잘 받았다면 인간이 왜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잘못 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의 사랑

그러므로 자기가 사랑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를 재분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인륜도덕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받는 것이 정상적이냐? 마음의 본향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그 안에 있는 것이냐, 이탈된 것이냐? 이탈된 것이기 때문에 종교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의 제도도, 사회의 제도도, 개인의 인격도 무시하는 겁니다. 전반적인 모든 관습을 왜 무시하느냐? 그것들에는 참된 사랑의 기원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무시당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시할 수 있는 그 주체는 무엇이냐? 사랑만이 무시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 사랑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발굴지는 어디냐? 형제지간에 서로 사랑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느냐? 아닙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부자 관계의 사랑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피와 살이 연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으로 남기고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는 피와 살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종적 관계가 성립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종적 관계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의 사랑 이외에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이 종적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중심은 제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면 세상에서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변증법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파탄되는 것입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은 전부 하나의 중심을 보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흡수하든가 흡수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두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존재의 필연적인 환경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투쟁함으로 말미암아 발전한다고 합니다. 전쟁이 있어야 발전한다는 논리입니다.

피와 살을 따라가는 중심은 종적입니다. 자기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종적입니다. 이런 식으로 쭉 내려오면 결국은 수천의 사람들이 하나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여기에 발전이 있고 변천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것을 혁명할 수 있습니까? 혁명할 수 있다고 봅니까? 여기에는 발전이나 변천이나 혁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물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직계로 연결되는 자리는 그 자리 뿐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 주면서도 좋아하는 자리도 그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인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우주는 실체세계요, 절대자의 상대적 세계라는 겁니다. 물질세계의 중심이 무엇이겠어요?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표면화되고, 그 내정적 실상이 부자의 관계에 그냥 그대로 표면화되는 가정이 있다면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데에 계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해주셔야지 별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서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동기가 되기 위해서는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될 때 천태만상으로 돌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의 사랑을 하는 것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사랑하며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더 나아가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세계애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이것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했습니다. 여기서 결론이 뭐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와 하나되라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어디에 일치되어야 하느냐? 사도와 일치되어야 한다. 혹은 마리아와 일치되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다 허풍선이에요. 베드로고 누구고 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예요. 마리아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 일치되어야 된다구요?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어디에 일치되어야 된다구요? 중심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신앙의 중심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 가운데도 통일교회 간부를 따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디에 일치되어야 하느냐? 중심이 누군지 모르지만 중심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여자들이건 남자들이건 모두 이 중심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중심이라면 선생님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독재자가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독재자라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와서 믿는다면 누구를 믿겠어요? 선생님을 믿어야지 별수없는 거예요. 선생님이 때로는 욕도 잘하지만 별 수 없습니다. 좋아하면 누구를 좋아하느냐? 나폴레옹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에 가고 싶으냐? 보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에 보고 싶으냐? 그것은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면 세계를 완전히 점령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식에게 부모를 취하겠느냐, 세계를 취하겠느냐고 하면 부모를 취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세계와 자기 아들딸 중에 어느 쪽을 취하겠느냐고 할 때, 부모는 세계를 버리고 자기 아들딸을 취합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그것은 중심적인 흐름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는 위정자를 따르라, 주권자를 따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세계면 세계에서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왔다갔다하다가는 발전도 못하고 서로 기진맥진해지는 것입니다. 씨름판에 나가 한판 씨름해 가지고 결정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돌아가기만 하면 서로 맥이 빠지는 거예요. 왔다 갔다 밀치고 밀리고 하면 서로 맥이 빠지는 것입니다. 끝장이 나야 됩니다. 기진맥진하게 되면 다른 마음이 들지요? 다른 마음이 들면 망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공산세계도 다른 마음을 먹게 되면, 두 패로 갈라지게 되면 망하는 겁니다. 망할 징조라는 거예요. 이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의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어디 가서 일치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인들은 '70년대가 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이건 더 피곤하게 되었어. 언제는 축복해 주시며 아들딸 낳고 잘살라고 하더니 아들딸 낳고 자리잡고 살려고 하는 데, 이제는 자식들 다 떼놓고 여편네들 또 전도나가라구 야단이야. 무슨 불한당 괴수처럼……'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우리 원리를 사회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해주던 부모의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삼천 만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나라를 주관할 수 있는 소망의 터가 넓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원칙적인 지도방법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삼천만의 한 일원이 아니라 삼천만의 어버이가 되라는 거예요. 삼천만의 어머니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되라는 겁니다.

자기의 위치만 생각하는 그런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하면 그 부부는 10년도 못 가서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또,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하면 30년은커녕 3년도 못 가서 갈라지는 거예요. 자기를 돌보지 않고 상대를 위해서 전체의 생명을 투입시키는 길이 사랑의 길이 아니겠어요? 그렇지요? 부모는 자기 자식만을 위해서 전체의 생명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의 전체를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와 살을, 뼈와 살을 전부 투입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희망이 있고, 거기에 자기의 소망이 깃드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의 법칙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전체를 다 투입하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조건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동반할 수 있는 자리

삼천만이 수난길에 있으면 그 수난의 삼천만 민족을 보고 부모가 자식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애절히 여기는 이상의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 삼천만의 이 민족은 그들로 말미암아 수습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30억의 인류를 중심삼고 그러한 마음으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무리가 있다면 40년만 넘어가게 되면 세계는 그들 앞에 수습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철칙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이 관망한 결과가 틀림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내보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자비한 길을 통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생사의 경각(頃刻)을 초윌해서 가는 겁니다.

죽음과 연속시켜 가지고, 죽음의 피와 살을 여기에 퍼부어 가지고 그 목적의 세계로 나가려는 단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그 종교가 순교의 길을 걸어 나온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피와 살로 이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논위할 때 어떠한 종교보다도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얼마나 이 민족을 자기 피나 살과 같이, 자기 몸과 같이 여기면서 이 민족을 위해 목을 놓아 통곡했나요? 아무리 불의한 자식이라도 그가 법망에 걸렸다든가, 혹은 그 나라 법의 제재를 받는 운명에 처해졌을 때 그 부모가 '잘됐다 이 자식아! 그래도 싸다'고 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나하고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자식아! 왜 내 말을 안 들었느냐' 하며 꾸짖기는 해도 자식에게 사랑이 흘러가는 것이 막힌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죠?

오늘날 우리들은 그런 관점에서 일심의 세계를 중심삼고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마음을 그리기 전에는 한마음의 결과가 통일되지 않는 거예요. 한마음의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통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통일을 이루지 않고는 주관 못 하는 거예요. 즉, 거느리고 가지 못하는 거예요. 거느리는 것은 중심을 결정해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수단이나 방법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애기가 배고플 때는 어머니 젖을 먹여야 되지 물을 먹이는 방법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피와 살이 연결되어야만 사랑을 가지게 되고, 심정이 연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돌아가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도, 부부의 사랑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디로 돌아가야 되느냐?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정이라는 말이 필연적으로 출현했던 것입니다. 이 심정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뼈와 살이 하나님의 사랑에 들어가고 우러나와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심각했던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무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는 예수님은 무조건 순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드리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 몽땅 드리면 몽땅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뜻대로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갖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가치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죽음의 지옥세계를 탈피해 가지고 부활권을 가진 것입니다.

부모가 가야 할 사랑의 길은 어떤 길이냐? 열 형제가 있다면 그 열 형제 가운데서 제일 불행한 자식과 동반할 수 있는 생활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불구자의 동생이 있으면 그 동생과 더불어 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은 형제들 중에서 상속자가 되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과 같이 동반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잘먹고 잘사는 자리가 아닙니다. 부모 앞에 열 형제가 있다 할 때, 그 열 형제 가운데 제일 못난 사람과 더불어 있게 되면 그는 부모의 사랑 세계의 계대를 잇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대한민국을 찾아올 때 하나님의 사랑과 가까이 서는 자리가 어디냐? 비참한 자리에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불행한 자리에서도 나라를 염려하며, 불행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을 붙안고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거기가 부모가 같이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도시를 떠나 농촌의 농민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잘사는 사람과 사귀는 것보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과 사귀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더 찾고 싶어하시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도할 때 '저 사람은 내게 필요한 사람이니까 전도해야겠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불행한 자식이기에 자기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자식이지만 그 불행한 자식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일심의 인연을 거쳐서 부모의 사랑과 동반할 수 있는 그 심정의 자리는 어디냐? 불행한 자식에게 마음을 두고 염려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의 마음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부모의 마음의 종지조상이기 때문에, 근본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쉬실 수 있는 곳, 그 나라를 향하여 찾아 가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 마음이 계실 수 있는 세계를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곳을 흠모하고 찾아가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인 것입니다. 일년, 혹은 십년, 백년, 천년 계속 그것을 주장할 때 우리들이 역사과정에서 다 쓰러질지라도, 지금 죽더라도 한이 없는 거예요. 왜냐? 여러분은 천년 후에라도 그 세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시간 관념으로 볼 때, 천년의 수가 이 세계에서는 먼 거리로 보이지만 영계는 시간을 초월하는 곳이기 때문에 먼 거리로 보이지 않습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이 하늘세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내용

일심은 어디서 얻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마음에서 얻어야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하늘편에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가운데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무엇으로 증거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까운 자리가 어디냐? 막연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불행한 자식을 더 염려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염려를 알고 부모 대신 동생들을 염려할 수 있는 맏아들이라면 그는 아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러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장자의 기업을 이어나온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는 장자의 주권을 갖고야 주인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동서남북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일 염려하는 곳이 어디냐? 가야 하는 데 못 가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담벽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한과 북한 중에서 어디를 더 사랑해야 되느냐 하면 북한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북한을 더 사랑하려면 그 사랑의 훈련을 남한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북한을 지배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망해 가느냐? 자기들 끼리끼리 사랑하다가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밖에 있는 사람을 기독교내에 있는 사람이상으로 사랑하겠다는 운동을 해야만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사랑하는 힘이 국민을 사랑하는 힘보다 강하게 될 때, 통일교회는 국가에 필요한 단체가 못 되는 겁니다. 일시적으로 필요한 단체는 될는지 모르지만 영원히 필요한 단체는 못 된다는 거예요. 망해 버린다는 겁니다. 점점 시일이 지남에 따라 없어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으려면 우리끼리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저 원수 세계를 넘어가 불구자와 같은, 죽음의 교차로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우리 교인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모든 정력을 거기에 투입하는 운동을 하게 될 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망하지만, 그런 사람이 두 사람만 있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필코 민족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다년간 그렇게 여러분을 지도해 나온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상처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진맥진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헤치고 넘어서 가지고 민족을 더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방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역사는 발전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심은 부모의 마음을 더듬어 일심해야 합니다.

불행한 여건을 넘어 가지고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될 때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자기가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아 나가는 데 있어서 역사 이래 섭리적으로 이루어야 할 소원이 이러한 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시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겠는가? 부모의 심정을 따라서 열 형제중 불행한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가 이러한 입장에 서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고아와 같은 입장, 보따리를 싸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갔기 때문입니다. 빼앗기 위해서 갔다가는 망하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제시하는 내용은 심정통일, 생활통일, 행동통일입니다. 알겠지요?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남아지려면

일심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일심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여기에는 피와 살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슬퍼하면 자식이 슬퍼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부모가 슬퍼하는데 부모가 잘못했으니 그렇지 하는 자식은 자식이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또, 자식이 잘못하여 벌받을 때, '그 놈의 자식 그래도 싸다' 하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이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앞서 가지고 사랑을 주려고 하지 않고 원한의 마음을 가지고 '싸지' 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주려고 하시는 데 사람들은 '내 그 사랑 안 받고 지옥 가지'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뼈와 살, 피와 살이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를 '내 살과 내 피'라고 하신 것은 그런 입장에서 얘기한 것입니다. 피와 살, 뼈와 살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의 길은 부모의 마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행한 입장에 있는 형제가 있으면 이것을 염려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오래지 않아 중심적인 자격자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남아질 수 있는 교단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식구끼리만 사랑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지금 여러분은 자기 형제를 교회내에서는 사랑하지 못하지만 이것을 넘어서 자기 형제 사랑하는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기 위한 훈련과 같은 것입니다. 보호하기 위한 훈련이요, 사랑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는 이상 이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야흐로 민족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처럼 배척받고 밟히던 단체 중에 망하지 않은 단체가 없습니다. 그래도 통일교회가 남아진 것은 왜 남아졌느냐? 이 작전을 했기 때문에 남아진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실천한 거예요. 그래서 하늘은 그러한 길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얼마나 순결한 것이며, 얼마나 열과 성을 가지고 한 것이냐에 따라 하늘이 함께하는 거예요. 하늘과의 일치점을 가지게 될 때, 자연히 세계의 중심이 되고 그로 인해 이땅에 하늘의 주권이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70년대의 표어인 '승리적 통일전선'을 중심삼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무기를 갖고 하는 것도 아니요, 주먹을 갖고 하는 것도 아니요,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바탕이 불탈 수 있는 심정적 주체를 갖고 이 민족을 어떻게 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나라의 위정자보다도, 이 나라의 어떤 종교 지도자보다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생활에 접어들어 환경을 파헤치며 들어갈 수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위주로 한 대한민국의 수습은 시간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일심통일의 이념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인연 가운데 태어난 형제를 부모의 사랑 가운데 품길 수 있는 환경으로 일원화시켜 가지고 국민 앞에 베풀게 될 때 삼천만은 우리에게 품겨 올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일심통일을 잊지 말고 다시 진격해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할 수 있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지난날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아버님은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사랑해 오셨습니다. 아버님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저희들을 대해 나오셨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새롭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새로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동기를 가지고 과정을 초월해서 결과의 세계를 하루바삐 촉구하시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새로운 하나의 결과를 촉구하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인 것임을 아옵니다. 새로운 모습을 가지고 어젯날을 잊어버리기 위해 애쓰시며 고난의 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였사옵나이다.

천만사에 잘못한 사연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에 기쁠 수 있는 한 조건을 보시고 거두어 주시는 거룩한 아버지의 사랑을 저희들이 마음을 다해 찬양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1970년대를 맞이하여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걸고, 아버지, 저희들은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한마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사랑 앞에 저희들은 하나의 형제이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형의 자리에서나 동생의 자리에서나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형제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일심의 모습을 갖추어서 상처받은 이 삼천만 민중과 앞으로 세워 나갈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깨어서 제사장의 흰옷을 입고 아버지 앞에 눈물을 뿌리는 자들은 역사과정에 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 통일의 무리들은 이 길을 자처해 나왔습니다. 민족이 가는 서글픈 운명에 제물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이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피어린 수난 길에서 낙망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의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이로 말미암아 천운이 깃들고 기필코 이것이 한 사람의 뱃속에서 태아로서 이 땅 위에 옥동자로 출발할 수 있는 한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기나긴 10개월을 참아 하나의 왕자가 태어나듯이 이 땅 위에 필연코 아버지께서 기뻐할 수 있는 소망의 주체권이 이뤄질 것을 믿고 지금까지 싸워 나오는 통일의 길 앞에 아버지께서 마음을 졸이며 수고의 길을 걸어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황공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더더욱 이 민족을 품고 우리의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저희 앞에 가까워졌습니다. 민족을 규합하여 세계를 사랑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탕감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갖고 섰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원수를 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세계에 있는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품고 갈 수 있는 하나의 사랑, 부모의 마음을 지니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북한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동포들을 생각해야 되겠고, 또한 철의 장막 가운데 있는 수많은 인간들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은 악하고 나쁘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지배받고 있는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불타야 되겠사오니, 그 민족과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앞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이 가고자 하시는 길은 어디입니까? 저희 집을 거치고 저희가 살고 있는 나라를 거치고 세계를 거쳐서, 아버지, 본향의 자리에 기필코 승리의 깃발을 꽂고 영세무궁토록 행복과 희망에 벅찰 수 있는 날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 당신의 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러한 과정에 처해 있는 오늘의 저희 자신들인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의 심정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그 심정을 추구하고 그 피와 살을 이어받아, 그 심정을 실체 권한 세계에 결속시키는 저희 자체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때문에 그 원인 되시는 아버지를 현재의 저희 마음에 끌어들일 수 있고 미래의 세계에 끌어들일 수 있을 때 그 마음 가운데에는 미래도 있는 것이요, 현실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나의 기쁨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심통일'이라는 제목을 중심삼고 저희들 이 시간 말씀을 들었사옵니다. 이 말씀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심정을 따라 아버지와 영원히 존재하기 위한 말씀이었사옵니다. 오늘 하신 말씀을 중심삼고 새로운 이해에 있어서 저희들이 선두에 선 기수가 되어서 이 기수의 명예와 면목과 체면을 세우는 데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피와 살을 여기에 쏟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로이 결심할 수 있는 이 시간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아버님, 지켜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린 제단 제단 위에, 아버지, 긍휼과 사랑으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종교인들과 수많은 인간들을 품으시어서 당신의 나라로 끌어들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 땅 위에서 어서 속히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니다. 거기에 완전한 제물이 되고 책임을 지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는 1970년대에 국가적 기반은 물론 세계적 기반까지도 닦아야 됩니다. 3차 7년노정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된다는 것이 섭리사로 본 결론입니다.

1970년대에 통일교회가 이루어야 할 목표

대한민국이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사하게 된다면 중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국가체제를 갖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역시 3차7년노정을 거치게 될 때에는 이 나라, 이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를 중심삼은 기반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어떠한 종교단체 이상의 기준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가적인 정세로 보나 섭리적인 입장에서 보나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것이 말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사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주동력이 필요한데, 그 주동력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선 철두철미한 사상에 입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중심삼고 여기에 부가적인 조건으로써 경제적인 문제가 첨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통일교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목표해 온 것이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대한민국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방대한 목표를 두고 일을 추진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원리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파의 한계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범위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1945년도에 해방됐으니 벌써 햇수로 25년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만 24년 전, 통일교회가 처음 출발할 때에는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권위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교회의 책임을 졌던 것도 아니요, 사회의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25세 된 한 젊은 청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 같은 한 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개인으로부터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제기할 것이냐? 선생님이 만약 그때 국가적인 한계의 기준을 중심삼고 나갔더라면 선생님은 아마 정당에 가입했을 것입니다. 또, 사회에 진출하여 선생님 개인의 성공을 모색하기 위해서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품은 뜻은 국가적인 한계권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보다 큰 세계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세계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을 찾아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길은 종교를 규합하는 길이냐? 아닙니다. 지식을 추구하는 길이냐? 그건 그런 대로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입장의 견해이기 때문에 섭리와는 하등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생님이 정한 길은 물질을 지향하는 길도 아니요, 권력을 지향하는 길도 아니요, 혹은 이 세상의 어떤 학적인 근거를 중심삼은 길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개입시켜야 할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히 종교를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이것은 반드시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수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 각국의 형성과정을 보더라도 국가마다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시대적 환경이 다르니만큼 주장하는 국책과 정책도 전부 다릅니다. 그러므로 각각 국가의 형성을 중심삼은 이념, 혹은 국책을 중심삼고 발전해 나가는 것은 한 나라의 한계선을 못 넘어갑니다. 범문화권 세계를 이루어 나가는 역사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지 못합니다. 그것은 도리어 세계적인 문화나 다른 어떠한 사상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 지금까지 국책으로 추구하던 것마저 지배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지 그것이 동기가 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면 어떠한 노선을 취해 나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거대한 종교의 무대를 거쳐 나가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종교가 여러 종교 가운데 어떤 종교일 것인가? 섭리적으로 볼 때, 그 종교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과 그분이 이루시려는 세계는 어떠하냐? 그 문제를 추구해 보면 볼수록 그 세계는 물질을 위주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본래 물질적인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 지구를 중심한 권내에서 이루어진 물질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구의 몇 억천만 배가 되는 대우주라는 방대한 물질을 이미 보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구에 살면서 귀하게 여기고 존중시하는 보물, 즉 금은 보화 같은 것은 하나님 앞에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지구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냐?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화성이니 뭐니 하는 다른 행성에도 사람과 같은 존재가 살고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단지 이 방대한 우주 가운데 먼지 하나만도 못한 이 지구에만 살고 있는 데, 이러한 사람이 지구에 살기 때문에 이지구가 문제요,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의 물질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본래 물질적 기준을 중심삼고 그것을 소원하고 바라며 섭리를 이 지구상에서 행하셨다는 논법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방대한 우주를 창조한 주인이시며, 물질적 요인은 이 우주에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단 한 가지 문제의 요인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입니다.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져야 됩니다. 사람을 떠난 뜻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뜻을 이루어야 할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정에서 살고, 사회를 이루어서 살고, 나라와 세계를 이루어서 살고 있습니다. 가정의 일원으로서 집에서 사는 것이요, 사회성을 지니고 사회에서 사는 것이요, 나아가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국가를 초월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국가에서 살겠느냐, 세계에서 살겠느냐?' 할 때 '나는 국가에서 살겠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 앞에 지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는 세계적인 목적을 중심해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또,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 시대냐 하면 주의와 사상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즉 어떠한 사상을 기반으로 한 세계의 제도권내에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의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인류사회가 생활기반을 넓혀 나가는 방편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야 되느냐? 세계에서 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세계 안에 있는 국가요, 세계 안에 있는 민족이요, 세계 안에 있는 종족이요, 세계 안에 있는 가정이요, 세계 안에 있는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떠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 안에서 국가가 형성되어야 되고 사회가 형성되어야 됩니다. 또한 세계의 목적에 따라서 사회제도가 정비되어야 하고, 가정과 개인도 거기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이상적인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이 기반을 떠난 곳일 것이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계에 있는 천국일 것이냐? 천만에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상에서 세계와 더불어 얼마만큼 일치된 생활 내용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심정적인 면이라든가, 인격적인 면이라든가,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세계에 일치화하는 운동에 얼마만큼 기여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격의 차이는 역사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나타났던 성인 현철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세계를 위하는 보람 있는 삶의 노정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만민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자신의 분야가 넓으냐 좁으냐에 따라 역사적인 성현이 되느냐, 한 시대의 성현이 되느냐 하는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볼 때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목적은 이 세계와 더불어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봉화를 든다고 하는 것은

그러면 끝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이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지금의 세계를 쳐부수고, 없애 버리고 어떤 특정한 계급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되겠느냐? 그런 세계는 이상세계가 아닙니다. 그러한 특정한 계급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이 세계가 바라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봉화를 들어야 합니다. 봉화를 든다고 하는 것은 문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계와 더불어 사는 것은 국가 단위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도 세계와 더불어 살고 싶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 배후의 내용을 지닌 것은 종교뿐입니다. 기독교는 세계를 기독교화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 나왔습니다. 회회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 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만약 불교의 사상이 인도를 중심한 국가 목적만을 협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왔다면, 불교는 벌써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장하는 진리의 내용이 세계성을 띠었기 때문에 국가는 망하더라도 그 내용은 국가의 한계를 넘어 세계의 생활권에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생활권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에 비례하여 역사적인 발전을 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4대종교입니다. 불교도 그렇고 유교도 그렇습니다. 공자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 선과 하늘을 위해서는 자기 개체를 희생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늘을 부정하지 않았고, 선(善)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배후를 가진 조직체가 국가요, 거기에 관련된 것이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세계의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빠른 터전이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이 이런 문제를 제시하기 위해 지금부터 수십년 전에 고고한 모습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친구도 없었고, 동지도 없었고, 그 누구도 같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에서 무엇과 더불어 살려고 했느냐?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과정의 세계가 아니라 앞으로 영윈히 남아질 수 있는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심정문제라든가 하나님이 제시하는 참된 진리와 참된 인격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러한 방대한 내용을 주장하며 왜 하필 종교를 세워 나와야 되는 가 하는 내용을 알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떤 종교여야 되는 가? 먼저 사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돈을 가지고 산다는 사람은 끝장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당장 죽게 됐는데도 백만원을 예금한 예금통장을 딱 붙들고 '아버지가 죽어도 통장은 내놓을 수 없다'고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은 인륜상 남아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물어 가는 석양 빛처럼 지구의 한계선을 넘어 먼 데로 먼 데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 위의 인류가 원치 않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단간 방의 집이라도 자기 부모가 죽게 됐으면, 거지가 되더라도 그 집을 팔아 부모를 살리고 간호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볼 때, 결코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냐? 어떤 사람한테 20대의 아들과 60대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고 했을 때에, 이 나라 이 민족을 더욱 위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젊은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도리이지 나이 많은 부모는 이왕지사 돌아가실 건데…'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이익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보면 부모는 젊은 자식을 위해서 모든 희망을 걸고 여기에 주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을 보호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동네에서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어떤 젊은 부부가 아들딸을 낳아서 그 아들딸을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그것이 보람있는 삶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이 많은 노인들을 대할 때는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대해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가 많아져 가지고 나이 어린 손자를 얼싸안고 기뻐하는 그 맛은 별맛이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적은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세계에서 맛 볼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는 것입니다.

가을이 오면 열매를 추수할 때가 가까와 오는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때가 가까와지면 줄기나 잎 같은 부수적인 것은 수그러지고 맨 나중에는 열매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밤을 심었으면 밤을 수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고 하지요? 어떤 집에서 잔치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 '아이구, 옛날에 우리 아들 장가갈 때 먹던 국수가 먹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돼지고기도 넣고 기름도 발라 어떤 맛있는 음식을 장만했었는데, 그것 참 맛있었지' 하면서 방안에 앉아서 동네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그리게 됩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예요?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그 나라에, 혹은 그 동네에 귀동자가 태어났으면 그 나라나 동네는 그 동자를 훌륭히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동네의 귀한 것을 전부다 모아서 먹이며 키워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를 대표해서 고아원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갖고 하면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지도자를 길러 낼 것입니다.

천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린애 같은데 오늘날 우리 시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린애 같지 않습니까? 같아요, 안 같아요? 천년 전의 할아버지 할머니나 오늘날의 할아버지 할머니나 똑같습니다. 모양은 전부다 동서남북으로 튀어 나와 납작하고 울퉁불퉁하고 별스럽게 생겨 천태만상이지만 마음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해야 됩니다.

그 나라가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를 상속받아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데 상속받는데는 어릴 적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무로 말하면 새순과 마찬가지이므로 역사적인 진액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을 좋아하는 것은 그러한 뜻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코를 질질 흘리며 우는 애기들에게 '울지 않으면 옛날 얘기해 주지' 하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해줘' 합니다. 거 참 좋아하거든요. 젖을 먹는 시간 외에는 그것이 제일 좋은 모양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역사를 상속받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젊은이도, 늙은이도 다 아닙니다. 젊은 사람만 필요하고 늙은 사람은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살아야 합니다. 결론이 그렇습니다.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다고 손자에게 '야 이녀석아, 너희들이 하는 짓이 왜 그러냐'고 혼내는 것보다도 세계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얘기를 쭉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그 손자는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할아버지 등에 기대려 하고, 할아버지가 어디를 가면 지팡이를 붙들고 졸졸졸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너 이 다음에 커서 이 동네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 되어야 한다' 하면, 아이들은 할아버지한테서 벗어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중심삼고 '너 이 다음에 돈 벌면 나에게 먼저 갈비를 사 주고 너는 내가 먹은 다음에 먹어야 돼' 이렇게 교육하면 며칠, 아니 몇 시간도 못 가서 '할아버지는 갈비밖에 몰라' 하면서 할아버지를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어디 그런가 안 그런가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밥은 조밥을 먹고 입은 옷은 비록 허름한 보자기 같은 것을 둘러쓰고 앉았더라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 집이 이랬을 때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폭 넓고 끊임없는 화제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우수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람은 세계와 더불어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이 오늘은 비록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이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본성의 흐름이 나도 모르는 가운데 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본성의 흐름은 물질을 가지고 막을 수 없는 것이요, 오늘날 사회제도를 가지고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사 통과할 수 있도록 통일화하는 것은 세계와 더불어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세례 요한의 삶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성인이 됐느냐? 갈릴리 해변가에서 어부를 데리고 다니던 예수님은 어부의 사촌입니다. 사촌도 진짜 사촌이 아닌 의붓사촌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 없어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에게 소망을 걸고 그들을 데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전부 돌아다녀 보니까 아주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좋긴 뭐가 좋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라고 했던 것,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말하다 보니 그렇게 말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전체를 돌아다녀 봐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은 없었습니다. 어느 한군데도 정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는 찬송가를 생각하며 요단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 위해서 기대를 가지고 갔습니다. 가 보니 거기에 무슨 용이 올라가던 자리라고 하면서 들어가 보라는 거예요. 그러나 전부다 사막지대로서 모래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 강토는 너무나 좋아요. 어디를 가더라도 옥토와 푸른 초윈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같은 곳에서도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는데 우리 한국같이 옥수가 흐르는 이곳에서 왜 세례를 못 받아요? 틀림없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이스라엘 나라가 관개공사를 해서 초목이 있는 푸른 초원을 더러 만들어 놓았지만, 2천년 전 예수님 당시에는 뭐 형편이 좋았겠어요. 그때의 요단강이라는 곳은 오리새끼가 놀아 구정물이 튕기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웃음)

거기에 세례 요한이 약대털로 만든 옷에 가죽띠를 맨 이상스러운 모습을 하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 요한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남달리 풍채가 좋아서 바라볼 것이 있었겠습니까? 30년 동안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지냈으니 그 몰골이 오죽해요? 수염은 날 대로 났을 것이고 머리도 길어서 제멋대로였을 것입니다. 며칠 동안 병석에 누웠다 일어난 아주머니들의 머리를 보더라도 부스스해서 보기 흉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그 시대에 오늘날과 같이 좋은 빗도 없었으니 물만 바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구! 성경에 나온 것을 그렇게 얘기하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 ' 할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해야 부정하는 것이지 사실을 말하는 데 부정은 무슨 부정입니까? 그 주제가 오죽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설명도 안 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했으니 별 수 없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청천 벽력 같은 그 말을 듣고 누가 따라다녔겠습니까? 어른이 따라다녔겠나 신사가 따라다녔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 소위 고위층에 있다 하는 교법사들이 따라다녔겠어요? 무명실로 짠 베를 입고 옷 끈에 성경 구절을 쓰고 거룩하게 다니던 제사장들이 따라다녔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오! 거룩하신 세례 요한님' 하면서 따라다녔겠어요? 천만에요. 동네 개와 코흘리개 애들뿐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잖아요. 엿장수가 와서 가위를 찔거덕쩔거덕거리며 '싸구려 호박 엿 사려' 하면 사람들이 모여 들지요. 사 먹고 싶은 동시에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모여드는 것입니다. 모여드는 데 제일 먼저 동네 개가 왔다 가고, 그 다음에 아이들이 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면 엿 장수를 따라다니는 무리가 어떤 무리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딸들이겠어요 ?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는가? 세례 요한이 나온 뒤에 예수님이 나오니 '세례 요한의 사촌인 예수가 또 나온다 또 나와' 이런 말이 매일 뒤를 따라다녔거든요. 예수님은 그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어때요. 가당한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고 나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저것도 세례 요한 패와 같구만. 반 미치광이가 나타나더니 이제는 진짜 미치광이가 나타났구나' 하며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모진 고난의 길을 거쳐온 것은 여기에 다 근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으니 할 말이 많지만 이제 그만합시다.

선생님과 여러분은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 사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사느냐? 부모가 자기의 아들딸 중심삼고 '너와 내가 떨어지면 안 된다'고 교육한다면 그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회, 그 나라와 더불어 떨어지지 못하게 교육하는 가정은 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백정질을 하니 자식인 너도 백정질을 해야 된다', '내가 장사꾼이니 너도 장사꾼이 되라' 이런 교육을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 '너는 나라를 위해서 나라의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치지요. 그러니 오늘날은 세계가 우리 눈 앞에 다가오는 때입니다. '너는 나라의 인물이 되라'고 가르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너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야 돼' 이렇게 교육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육합니까, 안 합니까?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와 더불어 살라! 여러분의 심리가 어떤지 내가 알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을 지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대관절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보기에는 키도 이만 하면 됐고, 몸무게를 따져도 삼천만 민중의 평균 이상은 된다고 보는 데, 왜 내가 이렇게 처량한 생활을 해 나가야 되느냐? 나는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와 무엇을 하든지 진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왜 욕을 먹으면서도 가만히 있는 가? 이것은 한번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입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 중에 나를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잘 보세요. 내가 문선생이란 사람이요. (웃음) 코가 두 개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귀가 네 개 있는 것도 아니요, 입이 두 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말도 한국 말을 하고, 음식도 한국 음식을 먹습니다. 물도 한국 물을 마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감정도 한국 사람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무엇이 다르냐? 다르긴 뭐가 달라요. 아침에 밥 먹고 저녁에 변소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웃음) 여러분과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무엇이 다르냐? 눈이 뭐 남보다 두드러졌나, 인물이 잘났나…. 간판만 좋으면 뭘 해요? 겉 모습만 번드레하고 내용이 없으면 사기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만일 통일교회의 내용이 없으면 문선생은 세계의 사기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는 최고의 우두머리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간이 꽤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시간을 더 이야기할 텐데, 이 틈을 타서 바쁜 사람은 얼른 가 보세요. 바쁜 사람은 가도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육상이나 다른 어떤 운동을 해도 등수에 안 들어가는 운동이 없습니다. 몸은 누구 못지않게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인상적인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작년에 미국을 거쳐 세계를 돌아보기 위해 출국 준비를 할 때 먼저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게 됐습니다. 내가 언제 병원에 가봤나요? 병원에 가 본 경험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습니다.

그 병원 의사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자유당 시대에 이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의사가 각기병 검사를 한다고 진찰대에 올라가서 다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다리를 들라고 하면 병원에 온 사람은 자연스럽게 순서가 그렇게 돼 있나 보다 하면서 다른 사람이 진찰받는 것을 보고서 그대로 따라하는 데, 나는 잘 몰라서 다리를 그냥 쭉 뻗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사가 아주 걸작입니다. 나와 같이 갔던 사람에게 '다리 좀 붙잡아 주시오' 하더니 한바탕 다리를 때리는 것이예요. 얼마나 힘껏 때리는지…. (웃음)

거 얼마나 창피해요. 그러나 나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병에 걸려 병원에 와서 진찰받는데 능한 사람은 인간 사회에 있어서 낙오자에 가까운 것입니다. 아무리 진찰해 봐도 병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의사가 진찰을 끝내더니 '당신이 미스터 코리아다'라고 하더군요. (웃음) 그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미스터 코리아라든지 다른 어떤 분야의 챔피언이 되려고 한다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크거든요. 레슬링을 한다 해도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제일이다 이거예요. (웃음) 정말 입니다. 지금 비록 나이가 많지만 지금이라도 하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별의별 노동도 다 해봤어요. 여러분이 보기에는 내가 뻣뻣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웃음)

그런 것을 볼 때에, 나는 무엇이든지 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소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머리도 좋습니다. 영어 단어책을 펴서 열 장이고 스무 장이고 딱 한 번 읽고서 단어를 많이 외우기 내기를 하면 나를 당하는 사람이 없어요. 내가 그런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하면 낙제권에는 안 들어갈 것입니다. 또, 응용하는 것도 상당히 비상한 단계에 있기에 참 빠릅니다. 그 모든 것이 원리를 찾아 나설 수 있었던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만족을 안 합니다. 여기에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그것이 주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선생님은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주가 안 되었어도 사회에서 누구 못지않은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즈음엔 상당히 마음이 답답하여 일요일마다 산에 갔다 왔는데, 한번은 꽤 추운 날이었습니다. 힘들게 산에 올라갔다가 산 밑에 내려와 세 시 가까이 돼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통일교회의 아낙네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내려 놓는 데, 거기에 먹음직스러운 김치가 있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속이 쓰라린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 김치를 정신없이 먹었어요. 배가 고팠던 차에 잔뜩 먹었습니다.

그리고서 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차가 덜컹덜컹할 때마다 속이 어떻게나 불편한지 아주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거 배탈이 날지 모르겠다 생각하면서도 조금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계속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같이 갔던 사람이 나를 뉘어 놓고 피를 검사하겠다고 귀를 조금 바늘로 찔러 보더니 나보고 '원기가 왕성합니다' 하더군요. 그러한 경험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몸이 자꾸 살이 찌면 좋지 않으니 조심해야 됩니다'고 강조하기에, 내가 요즘은 자꾸 운동을 합니다. 여러분 내가 운동하는 것을 찬성해요? 「예」

내가 운동하는 방법은 사냥입니다. 산에 한 일주일이나 보름만 갔다 오면 이렇게 뚱뚱한 배도 금방 홀쭉해져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나에게 휴가를 주십시오. (웃음)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통일교회가 발전할 수 있고, 우리 단체가 발전할 수 있게 여러분이 책임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산에 돌아다니며 사냥하여 배의 살을 좀 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생활을 하느냐

그런 것을 보게 될 때, 내가 무엇 때문에 일생 동안 세상에서 이런 구질구질한 일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 끌려 다닌 것은 왜정 때부터 끌려다녔어요. 그러나 감옥에 잡혀 들어간 것도 내가 다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지금도 통일교회가 자꾸 크니까 미워서 배 아파하는 패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이 문선생이 명령만 하게 되면 죽음도 개의치 않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 패들도 그렇지만 말입니다.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계의 어떤 그룹에 못지 않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기쁜 마음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을 많이 가진 사람으로는 내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가라면 네가 서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사느냐? 2천년 전의 예수님은 형편없는 입장에 있었고, 세례 요한 또한 따르는 패들도 변변찮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역사적인 인물이 됐느냐? 그것은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계? 망하는 세계가 아니라 소망의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즉,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국, 새로운 주권자, 새로운 이념, 새로운 인격, 새로운 생활관 등을 만민 앞에 제시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내면을 만민 앞에 소개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것도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죽지 않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밤을 새워 가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겠습니까? 눈치를 봐 가지고 옆으로 빠져 나갔으면 죽긴 왜 죽어요? 왜 죽느냐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세계와 더불어 살고자 하시는 것을 제가 아옵니다. 그러나 세계를 위해, 세계와 나라를 위해, 또는 그 나라의 창건을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니 그들을 대신해서 희생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저에게도 현재의 입장에서 죽음길을 모면하려는 마음은 있습니다. 그리나 아버님이 찾고 있는 인물이 저 자신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니 제가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희생자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만 하시옵소서' 라고 하면서 죽음을 자청하며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새로운 봉화를 높이 들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봉화를 들었느냐? 세계를 위하여 봉화를 들었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봉화를 들었다면 그 민족이 망하게 될 때 그 봉화는 헛것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지만, 세계를 위해 봉화를 들었기 때문에 그 봉화는 세계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는 잃어 버렸어도 이스라엘 나라에서 추방당한 기독교는 로마와 서구라파 일대를 거쳐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세계로 갈 수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적인 움직임과 내용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민족권에 의해서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에 의해서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을 밟고 올라서서 세계에 수확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발판을 세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었느냐? 세계와 더불어 어떻게 하나될 수 있느냐? 세계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는 문제 등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면 지닐수록 이는 앞으로 틀림없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로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했고, 새로운 인생관을 제시했고, 새로운 생활관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이상이 그려지고 그것으로 보다 나은 영원한 가치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살고 거기에서 죽었기 때문에 역사 이상에서 사는 것이요, 역사 이상에 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후의 식사에 있어서도 그를 중심삼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살자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척도와 내용과 범위를 얼마나 갖고 있었느냐? 또한 세계와 더불어 가까이 살 수 있는 깊은 내용을 얼마나 갖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역사적인 성현들을 결정할 수 있는 내적 재료가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 그럴 것 같소, 그렇지 않을 것 같소? 여기 아주머니 그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이거 엄청난 말이지요. 자기 집안의 살림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 남편 중심하고도 지금 살듯 말듯한데 세계와 더불어 살아요? (웃음) 사실이 그렇지요? '지금 동네 할아버지 한 분도 못 모시고 살 텐데 종교는 무슨 종교를 믿고 사나'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참아 나오는데, 참는 데는 거기서부터 참는 것입니다. 요즘도 우리가 점점 발전해 가니까 죽일 것처럼 반대를 합니다. 그러다가도 먼저 나자빠지고 있습니다. 내가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은 반대해라. 우리는 전진이다' 이렇게 정의편에 서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때 대결해서 그들이 머리를 숙이는 날에는 승리의 탕감조건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해 드는 반기가 크면 클수록 역사를 들어 막을 수 있는 내용이 있게 되니 그것으로 우리는 담을 치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살자는 것이냐? 세계를 위해, 세계와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통일관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살려는 단체를 찾아보면 종교 단체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기독교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와 더불어 살려면 어떤 자리에서 살아야 될 것이냐? 한 나라의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 근무하는 시간은 여덟 시간입니다. 하루의 3분의 1만을 밖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럼 3분의 2는 어디에서 사느냐? 집에서, 즉 가정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떡 방안에 들어가서 '오 마나님! 나는 대통령이요' 이러면서 밖에서 호령하던 것같이 하면 됩니까? 그게 통해요? 부모가 자녀에게 '야! 너는 지금부터 수십 년 공부하면 이 나라의 장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는 그 과정을 거쳐 나와서 나에게 보답을 해야 된다' 그래요? 아닙니다. 결국은 가정을 중심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의 꿈을 그래도 멋있게 깊이 감상하고 추구해 나왔던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그 신랑 신부 해서 무엇 하자는 것입니까? 싸움하자는 것이예요, 씨름하자는 것이예요? 뭘 하자는 거예요?

사랑이 무엇입니까? 같이 살자는 것이지요. (웃음) 사랑이란 안팎으로 구비해서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둘이 도망가서 자기들끼리 살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을 심판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는 데는 어떻게 살자고요? 세계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산사람이 있다면 그가 거동만 해도 그 뒤를 모든 국가와 30억 인류가 따르면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할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 생각만 해도 좋지요.

예수님의 사상과 그가 그리던 가정

그러면 예수님의 사상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하나의 모델, 하나의 근본, 하나의 형태를 요구했습니다. 즉, 견본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 견본이 무슨 견본이냐? 세계가 바라는 견본이요, 역사가 바라는 견본입니다. 미래에까지 우리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견본입니다. 그것은 견본 중에서도 단 하나밖에 없는 진짜요, 진짜 가운데서도 조금 더 긴 진짜입니다. 어떤 것이 진짜입니까? 조금 더 긴 진짜와 한 사흘쯤을 더 가야 할 만큼 긴 것 중에 어떤 것이 진짜예요? 더 긴 것이 진짜입니다. 길이만큼 거기에 들어가서는 나올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오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들어가 있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벌이 어떤지 압니까? 길러 봤습니까? 옛날에 우리 집에서 벌을 참 많이 길렀습니다. 집에다 벌집을 준비해 놓으면 벌들이 철따라 꽃이 피는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꿀을 따다가 전부다 거기에 저장해 놓습니다. 이 꿀을 꺼내려고 벌들을 털어 내는 데 그놈의 벌들이 꿀을 한참 맛있게 먹을 때는 뒤에서 꽁무니를 잡아당겨도 그냥 먹습니다. 잡아당기면 딱 버티면서 벌통에 달라붙습니다. '이 자식아! 안 나와' 하고 잡아당기면, '네가 나가. 나는 안 나가' 하는 것처럼 버티는 것입니다. 결국 몸이 뚝 끊어져도 그것을 모르고 정신없이 빨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맛은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보다도 강한 맛을 봤습니까? 이런 맛 봤어요. 못 봤어요? 그런 맛을 못 봤다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가짜 사람입니다. 그런 맛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맛보지 못했으면 가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맛을 봤다면 목숨을 잃는 다고 해서 그 맛을 안 보러 가겠습니까? 벌도 그 맛을 알고 죽인다 해도 '나 모른다' 하는 데 말입니다.

사람이 백년을 살면 뭘 하겠나? 요즘 말에 가늘고 길게 살지 말고 굵고 짧게 살자는 말이 있는 데 그 말도 헛된 말이 아닙니다. 그 맛만 보게 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 살아 뭘 합니까? 한 번을 살아도 천년 만년을 다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한꺼번에 후다닥 다 뛰어 버리지요. 여러분 벼룩의 운동을 알지요? 벼룩처럼 한꺼번에 탁 뛰어서 전에는 한 시간 두 시간 걸렸지만 이제는 일시에 갔다 오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맛을 내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최고로 추구했던 사람이 누구일 것인가? 자그마치 2천년 동안 '예수님이여, 오소서!' 하면서 성도들이 기다리는데, 아직까지 안 오시는 그 낭군님이 꿈꾸는 보금자리가 대관절 어떤 보금자리이냐? 예수님이 그리던 가정이 어떤 가정이겠느냐 ?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기만 해서 영생을 얻는 다면 그것은 가짜 영생입니다. 여러분은 같이 살아서 영생을 얻는 것과 그냥 믿는 것과 어떤 것을 더 원해요? 신랑이 미국에 가 있는데, '사진만 봐도 기분이 참 좋구나! 오지 않아도 좋다' 하는 여자를 봤어요? (웃음)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과 같이 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으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신부, 즉 같이 사는 신부를 거느려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예수님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를 구해야 됩니다. 어디에서? 땅 위에서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이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것을 여러분들이 모르잖아요? 아무리 세상을 오래 살아 머리가 허옇더라도 모르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한테 배우겠어요, 안 배우겠어요? 안 배우겠다는 사람은 보따리 싸 가지고 일찌감치 가십시오. 배우겠다는 사람만 남아 있어요. 여러분은 안 가르쳐 줄까봐 되레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던 가정은 무엇이냐? 그 가정은 개인과 더불어 너와 내가 진정 하나될 수 있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가정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사는 가정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 땅, 천지와 더불어 사는 가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인류는 내가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과 그 위대성

오늘날 통일교회는 천주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천주주의가 무엇입니까? 하늘땅과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여러 분은 '야! 이것이 근사하기는 근사하지만 가당치 않은 얘기로구나' 할 것입니다. 어때요, 꿈같은 얘기지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세계를 추구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평면성을 띠고 나가면 통일교회는 입체성을 띠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가 더 위대하냐? 이렇게 얘기하면 자화자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디가 더 위대합니까? 통일교회하고 기성교회하고 어디가 더 위대해요? 통일교회가 더 위대합니다. 천주주의가 더 위대합니다. 통일교회는 '천주와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3시대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을 해방시키고, 오늘날 이 죄악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앞으로 올 후대의 사람들도 여기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3시대의 해방권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방대하고 엄청난 일입니다. 이처럼 꿈 같은 내용이 사실로 나타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은 하염없이 벌어지고 귀는 쫑긋하겠지만 머리는 숙이게 되지 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로 급하게 뛰어갈 때 허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뛰는 사람은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다 허리를 숙이고 뜁니다. 지금 통일교회가 가는 것은 무엇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급진적으로 뛰고 있습니다. 뛰기 때문에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교리나 말씀은 좋은데 가는 방법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 길을 따라가려니 자기 다리가 째지겠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왜 틀리느냐? 현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적인 걸음걸이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지고 망한다면 내 목을 치십시오. 그렇게 살았는데도 망한다면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내가 세계와 더불어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이 걸어 나오는 길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대한민국과 더불어 사는 길입니다. 이것이 멋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혼자 독불장군 노릇 하려고 그러느냐? 내가 독불장군이 아니라, 세상이 모르는 것을 내가 처음으로 알고 하니 독불장군같이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나를 원수라고 합니다. 어디에 나타나서 어떤 일을 슬쩍슬쩍 하게 되면 항상 그것이 문제거리가 됩니다. 또 그것이 지금까지 기성 단체들이 전부다 깨져 나갈 수 있는 것이 되어 우리가 위협을 받으며 나왔던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는 세계로부터 거센 바람이 몰아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좋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이라도 좋습니다. 그 바람을 대해 싸움을 하겠습니다. 너희들이 여기에 제방을 만들어 한번 막아 보라는 것입니다. 금방 날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못 막습니다. 지금은 순풍이 불어오는 봄절기라고 생각할 때 태풍이 불어올 것입니다. 퇴폐사조가 몰아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에 대한민국 정부가 받는 타격이 얼마나 클 것인가? 아시아에 들이치는 파도를 막을 자신이 있느냐? 세계로부터 몰려드는 정세를 막을 자신이 있느냐? 있으면 막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못 막습니다. 이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몰리고 쫓김받으면서도 참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현재의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내가 알기에 동정해요. 그렇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고아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역사적 동지도, 시대적 친구도, 미래의 후원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의 주인이요, 시대의 주인이요, 미래의 주인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후원자로 삼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움직이려면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세계와 더불어 사는 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동참하고 그 사람과 동거하며 그 사람과 목적지를 향하여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욕먹는 길을 자청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이런 길을 당연지사로 알고 지금까지 20여 년을 참으며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목표를 향해서 전진을 하고 있으니, 결론은 세계와 더불어 사는 자는 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사상의 많은 성현들도 그런 내용을 중심삼고 말했고, 그런 내용을 중심삼고 생활했고, 그런 내용을 중심삼고 생애를 살다 갔습니다. 그렇게 살다 간 사람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은 시대적인 과정을 거치는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의 세계로 규합되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에, 그 원칙에 입각하여서 세상을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리를 가지고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녹음이 일시 중단됨)

통일교회는 약 20개 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금년 안으로 40개 국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반대해도 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틀렸어요? 틀리지 않다는 것을 지금까지 증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그런 역사를 붙안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교회를 중심하고 나올 때는 밥을 얻어먹으며 나왔습니다. 물론 기가 막힌 입장이었지만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수십년 생애의 결과로 나타날 때, 내가 예수님의 뜻을 알고서 그런 입장에 서서 남긴 사상은 앞으로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반드시 주체적인 사상의 사명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수많은 젊은이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봉화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고 내가 움직여 간다는 것입니다.

역사 앞에 비판을 받고 역사의 지탄을 받아서 하늘이 볼 때 천년의 행로를 가로막는 자신들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선생님이 승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완전히 기반을 닦아 놓은 통일교회에서 이러한 탕감조건을 갖추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사상, 통일주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데데하게 작은 파도로 인해서 사라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해서 가는 길이 통일의 길이지만, 우리는 세계 이상의 발전을 하여 승리의 날을 맞으시려는 하나님의 작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을 걸어 나오다 보니 세계적인 뜻, 세계적인 천운이 오늘날 우리의 문전에 당도한 것을 절감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제 1970년도를 지나면 중대한 시기에 들어갑니다. 알겠습니까?

1974년이면 제2차 7년노정이 끝납니다. 그 안에 명실공히 세계적인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은 1973년까지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섭리의 물결입니다. 1960년대에는 통일교회가 7년노정을 거쳐 국가적인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때 그것을 다 닦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이런 작전을 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 돈도 많이 모았으니 외로운 사람과 식구들에게 떡으로라도 잔치를 하든지 해야지 이것이 뭐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나는 정말 그럴 줄 몰랐다. 자기의 손가락이 다쳐도 피도 안 흘릴 사람이요, 거렁뱅이한테도 눈 하나 까딱 않을 의리 없는 사람이야' 하고 말합니다.

물론 민족과 세계를 위해 살겠다고 맹세했던 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뻔히 볼 때, 선생님의 마음도 아픕니다. 나는 지금까지 눈물어린 환경을 극복하고 이 험한 길을 따라가면서 십 년, 이십 년을 지내고 어느덧 반 세기의 인생을 세계를 위해 투자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완성하기 위한 정상적인 노정이 이것이 아니냐 할 때, 이 길을 가면서 말할 수 없는 힘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많았고 별의별 유혹의 손길도 많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앞으로도 별의별 수난길이 많다 하더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세계를 살리는 길

여러분이 가는 이 길은 자기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세계와 더불어 동행하지 못하고 틀어지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혹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이런 기준에서 세계와 더불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갖는다면 선각국(先覺國)이 되어 세계를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의 문이라는 사람이 거기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이런 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요단 강가에서 세운 기준을 갖고 세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상처를 입거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과연 누가 내 대신 피땀을 흘려서 '하나님 아버지를 해방할 수 있는 한날이여 어서 오소서' 하며 그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를 먼저 살려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계를 우리의 노정에 맞추게 해 가지고 우리의 무릎 앞에, 즉 우리의 발판권내로 몰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자의에 의한 목적과 야욕을 세워 가지고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 왔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다 망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래, 좋아해요? 「예」 여자들은 그저 좋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남자들에게 먼저 해주면 여자들은 토라져서 안 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타락한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고생하는 것도 여자들 때문입니다. 상당히 괴롭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어디 있느냐? 사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나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면 사탄입니다. 뜻 앞에서 나를 위해 욕심을 부리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주의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통일교회 선생님이 됐기 때문에 그것을 맞춰야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고, 또 통일교회 전체를 지도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느냐? '고 말하겠지만 천만에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기도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될 수 있으면 여러분 모두를 천주 앞에, 세계 앞에 내세우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주의입니다. 나를 높이 뛰어넘어 가지고 하나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생각하여 수천년의 역사를 깨닫는다 해도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갈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 여러분들은 춤을 춰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두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니 망하더라도 나중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승리하게 되면 둘 다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전작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작전을 펴나오십니다. 처음에는 사탄이 이겼다고 좋아하며 춤추지만 결국 나자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내가 앞에 나와 앉아 있기 때문에 처음 온 사람들이 저이가 통일교회 선생님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지, 옛날에는 통일교회에 와도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인지 몰랐습니다. 알 게 뭡니까? 옆에 같이 앉아있었으니….

서양 사람, 특히 미국의 많은 언론인들이 일본에 왔다가 한참 일본에서 통일교회와 선생님이 화제가 되고 있으니까 한국에 있는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자고 한다고 누가 만나 주나요. 내가 필요할 때만 만나지 그 외에다는 안 만나요. 여러분들도 오늘 선생님을 미리 다 봐 두십시오. (웃음) '아이구, 신문에 소개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는데, 선생님은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주의가 그래요.

이번에 그들이 와서 통일교회는 왜 선전을 안 하느냐고 하면서 코치까지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지지리 욕먹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했더니, 오히려 그들이 근심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통일교회의 주류사상

우리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이 무엇이냐? 이 세상에서 통일교인으로서만 단결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쓸데없는 고집입니다. (웃음) 이것이 쓸데없는 고집입니까, 좋은 고집입니까? 「좋은 고집입니다」 그런 좋은 고집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화어린이무용단을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어떤 일이든 자신이 없으면 시도하지 않습니다. '두고 봐라. 세계적인 무용단이 될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미문화재단을 만들 때도 박보희를 총책임자로 삼았는데, 여러분은 하늘의 일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하늘의 밀사로 상속을 받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전부 못난 것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우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손을 댄 것은 세계적인 문제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손을 대서 이것을 돌이키는 날에는 당해낼 자가 없게 됩니다. 그것만큼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사지에서 별의별 고초를 겪으면서도 죽지 않고 남아진 것은 지구상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다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눈 뜨고 다녀도 찾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는 데도 안 하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어디 가서 뭘 해먹든 난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선생님이 미친놈 같습니까? 그래, 미친놈이 이런 소리를 할 것 같아요? 내가 미친 일을 할 것 같소? 내 눈을 좀 봐요. 코를 좀 봐요. (웃음) 반대하는 기성교인들도 이렇게 해서 다 따돌려 보냈어요. 마음껏 떠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기 전까지 떠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나면 웃지 못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제 세계적인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번 하게 되면 한정이 없으니 이제 그만합시다. 그러면 선생님이 가당한 관을 가지고 나왔다는 결론을 세워도 미친 사람 축에는 안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망할 자리에서도 안 망했으니,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무슨 교육을 시킬 것이냐 하면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을 시킬 겁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오느냐?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때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때를 중심삼아서 가고, 싸우고, 노력하고, 가르치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자리에서도 죽기는 죽되, 다시 새롭게 부활할 것입니다.

한 알의 밤을 심으면 그 자리에서 밤나무가 나지요? 그 밤나무가 때를 지내 가지고 결실을 하게 되면 밤을 말로 따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밤나무임에 틀림없고 또 그것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에 세워졌다 할진대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시기는 오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계에 봉화를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자들은 '아! 가냘픈 여자로 태어난 내가 어떻게 세계에 봉화를 들 수 있을까? 그저 듬직한 남자에게 시집가서 사랑받고 사는 것이 여자의 제일 큰 행복이지'라고 합니다. 그것이 제일 좋으면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대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지가 될지라도 나중에 제왕이 된다면 그 길을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틀림없이 가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가겠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나중엔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 길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역사의 귀추

지금까지의 역사의 귀추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걸어왔다면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더욱더 발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과 선생님이 말하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는 이 큰 지구촌이 달라 보입니다. 세계를 수평으로 긋고 그 중심에 추를 놓으면 처음엔 추가 조금씩 왔다갔다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어떻게 되느냐? 양 끝까지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별일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믿겠어요? 「예」 그렇게 됐을 때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도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편승되어 가지고 조금만 노력하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똑' 하면 10분의 1이 올라가는 것이고, '딱' 하면 벌써 다 올라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런 기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일교회에서는 탕감복귀라고 말합니다. 알겠어요? 그런 생각도 못하고 '길이 또 있구나. 지겹구만'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삼각지대에 있습니다. 수평의 힘과 우주의 힘이 있는 여기는 하나님과 사탄의 일선이기 때문에 인간의 책임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한 발자국이라도 이북으로 가면 공산당이 되는 것이고, 한 발자국이라도 이남으로 오면 민주세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6·25때에 완충지대를 중심삼고서 포로를 교환했던 것을 알 것입니다. 서로가 '이리로 넘어오라'고 선전했었습니다. 한 발자국을 뒤로 넘으면 이북이었고, 한 발자국을 앞으로 넘으면 이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열어 놓고 그런 선상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누가 되느냐? 그런 선상에 설 수 있는 국가, 그것을 추구해 가지고 올 수 있는 나라가 있을 것이냐? 그런 나라는 있어야 됩니다. 사탄세계를 청산하고 하늘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나라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나라가 있기 전에 그런 종교가 있어야 되니 통일교회가 그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부상(浮上)할 수 있는 나라를 중심삼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필연적인 욕구인 것입니다.

1970년대에는 대한민국이라는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저울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만두면 사탄의 입장에 머뭅니다. 지금까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 36가정, 72가정, 120가정들에게 모두 모이라고 하니까, 가정이 아닌 사람들이 '선생님은 가정만 중요시하고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는 구나' 하면서 섭섭해하고 기분 나빠하는 것을 봤습니다. 축복 가정이 무엇입니까? 축복가정들은 다 쓸 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아 가지고 담대해지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통일교회는 죽지 않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3년 전도의 필요성과 그 의의

여러분에게는 남편도 있고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부모를 버린 지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근래에 와 할아버지 묘를 찾았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비통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한 2개월 동안 장사하는 것을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 동안은 힘이 들더라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며칟 날에 오라고 했더니 떼거리로 몰려왔는데, 그 아주머니들의 모양을 보니까 옷은 꼭 패잔병처럼 입고 있었고 애기까지 업고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서로 반갑다, 잘 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니 모양은 패잔병 같았지만 참 근사하더군요. (웃음)

남들이 봤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얼마나 기가 막힌 모습이겠습니까? 거지떼가 모여서 세계복귀니 뭐니 하니까 우습겠지요. 좋다! 웃어라! 그것이 멋진 것입니다. 그 애기들의 코는 구슬 같은 코가 될 것입니다. 천년사를 길이길이 더해 갈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년 만년 우리 후손 앞에 남아질 천국이념의 성전이 되는 것이요, 공고한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못나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기가 막히겠지요? 그들은 그래서 거기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것입니다.

이 길은 반드시 가야 됩니다. 옛날에 학교에 다닐 때는 졸업한 뒤에 취직할 걱정 등으로 해서 사정이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이 있으니 자연히 여자들이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할 것이 없잖아요? 애기들도 다 낳았으니 여자가 할 일은 다 했지요. 그래 더 바랄 것이 있어요? 여러분이 남편을 누구 때문에 만났습니까? 자식은 누구 때문에 낳았죠? 내가 다 결혼시켜 줬으니 그것도 다 나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좋았으니 여러분은 여기에 대해서 보답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 안 나갈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나도 없군요. (웃음) 그러면 어디로 내보낼까요? 여러분들은 옛날에 활동하던 임지로 다시 가야 합니다. 이제 한 3년 동안 전도를 하게 되면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말씀을 한번이라도 들었던 사람은 다 우리에게 협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수고를 안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다 한 3년 동안 부처(夫妻)끼리 파송되어야 합니다. 맨처음에 파송이 안 되었었기 때문에 재차 탕감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책임못하면 선을 그어 버릴 것입니다. 그 선에 못 미치는 몇 사람만 쫓아내면 정신이 바짝 들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쫓아 내는 것이 제일 무서운 줄을 알거든요.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선생님도 무서워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안 무서울 수 있어요?

여러분은 '봉화를 들고 나가서 싸우고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걱정만 해 가지고는 세계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은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는 미련하고 무식한 곰 같아야 됩니다. 곰의 사촌이 다 되어야 합니다. 곰은 나무에 올라갔다 떨어지면 아프더라도 또 올라갑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여전히 나무 밑인데도 말입니다. (웃음) 내가 곰은 못 되어 봤으나 말은 들었습니다. 곰처럼 미련한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미흡한 면이 많습니다. 선생님도 미흡한 대장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여러분이 전도하러 나갈 때 누가 오라는 곳이 있어서 갑니까? 여러분이 아는 사람에게 가서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인사했을 때도 본체만체 하면 기분이 나쁜데, 오지 말라고 하며 천대하는 데 가서 '안녕하십니까?' 하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어떤 때는 침도 뱉는데 기분 좋겠어요? 별의별 일을 다 당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여름인줄만 알지, 가을이 지나 가지고 겨울이 오는 줄은 모릅니다. 우리는 한 단계 앞서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봄을 맞이할 때 가을을 맞이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을을 맞이하여 떡을 해먹고 흥청거리며 좋다고 하지만 그때 우리는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며, 그들이 겨울을 맞이할 때 우리는 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들이 우리가 오지 말래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 얘기의 핵심으로 돌아갑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 가정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해서 산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와 더불어 사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사느냐? 세계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본체가 하나님이시면 하나님은 천지의 대주재요 군왕이시니 그 군왕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아들의 친구가 오지 못하도록 대문을 걸어 잠그는 부모를 보았습니까? 오히려 오지 않아서 걱정이지요. 그러니까 아들과 같이 안방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들의 친구라든가 그 집 주인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도 세계적 생활을 해야 할 텐데, 하나님이 세계의 끝에 앉아 가지고 '여봐라, 나를 바라보고 살아라!'고 호령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생활을 하는 거기에 들락날락할 수 있는 제일 빠른 길은 주인하고 친구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딸하고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딸 자식에게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딸 뒤에는 도둑놈이 따라 들어올 가능성이 많아요. 그러니 딸의 친구는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까? 아들의 친구가 되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 가르쳐 준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결론은 잘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요, 아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시니 우리는 예수님이 제일 사랑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는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를 통하지 않고는 손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거기에는 걸려 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기독교가 종교중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참종교라는 것입니다.

봉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로 가는 생활이념을 들고 나온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나는 교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회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에 기독교도 망해 가고, 불교도 망해 가고 다 망해 갈 것입니다. 사회운동을 하지 못하는 종교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세계적 사조, 종말적인 사조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방파제를 만들기 위하여 벌써부터 승공활동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미리 다 계획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에 대해서 봉화를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이미 든 지 오래 됐습니다. 그럼 봉화를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자기가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봉화는 봉화끼리 번지는 것입니다. 하늘의 봉화를 중심삼아 가지고 3만 군중이 이심전심으로 일시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그 거대한 세력은 세계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우리는 새로운 의미에서 세계를 중심삼고 봉화를 들어야겠습니다.

봉화를 들기 위해서는 불을 붙여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불을 붙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럼 내게 하늘의 봉화가 있으니 나한테 와서 제일 먼저 붙이는 사람이 일등입니다. 이런 것은 내가 먼저 하지 나중에는 안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밤을 새워 가며 수십 년을 지켜 앉아 있더라도 내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제 1차로 불을 붙일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이것도 경쟁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것이 제일 멋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것입니다. '세계에 봉화를 들자!' 이 말은 여러분이 들어도 가당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을 나쁘지 않은 곳에 들어왔다고 대략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재목이 마련되어야

이제부터 통일교회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집을 지으려면 먼저 재목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재목도 마련하지 않고 집터를 먼저 닦는 것은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하늘의 섭리를 중심삼고 재목이 마련되어 있느냐? 한 채의 집을 지으려면 그 집을 짓는 데에 필요한 재목이 있어야 하고, 문 하나를 짜더라도 방의 수에 맞춰 가지고 짜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집을 지을 때는 설계에 의한 재목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설계도, 즉 그 집의 구조를 중심삼아 가지고 집터를 닦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오는 길 가운데 재목이 준비되어 있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것을 준비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사회에 내가 사기성이 많다고 평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비판 안 해요? 선생님이 재목이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습니다」

아까 함부로 뛰쳐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대중이 모여 있으면 대표자에게 인사를 하고 대표자의 지시를 받고 나와야지, 자기 마음대로 뛰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기가 막힙니다. 그런 눈치도 없이 어떻게 천상세계로 가는 길을 따라갑니까? 도둑질도 어느 정도 손발이 맞아야 같이 하지요. 선생님은 어디를 가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대할 때 가끔 단상에서 욕을 하는 것은 그렇게 안하면 탕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생명이 그 자리에 처음 왔다가 상처를 받아 떨어져 나가도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는 당당히 내가 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해를 하겠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천치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의 공을 들인다는 데 때려 주고 싶겠습니까?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런 실수는 안 합니다. 벌써 눈치를 척 보고 움직입니다. 내가 방을 얻어서 따로 살아도 통일교인, 종교인의 냄새를 안 낸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밤을 새워 기도하지만 낮에는 주위에서 내가 종교인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냄새를 안 피웁니다. 왜냐하면 나를 알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은 전부 다 거들먹거리며 심판하는 일을 하는데, 나는 그런 냄새를 안 피운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눈치를 봐야지요. 이것이 정당한 길입니다.

효자는 부모가 배고플 때에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배가 부른데 맛있는 것을 먹으라고 하는 사람은 효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미급한 자식이지요. 어떤 환경에서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 나가서 왜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자꾸 자랑을 합니까? 선생님이 여러분들한테 자랑하라고 그랬습니까? 세상에서는 지금 전부 다 욕을 하고, 소문도 나쁘게 나고 있는데, 여러분이 선생님을 자랑하면 욕만 먹지 별 수 있어요? 그냥 나중에 전도 끝나고 올 때 선생님을 소개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 가서 칭찬받을 수 있고, 또 동네 사람들이 전부 다 따라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치가 빨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떠냐? 통일교회를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 자신이 재목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재목이 됐어요, 안 됐어요? 「됐습니다」 안 됐으면 비판하십시오. 누가 내 앞에 와서 한바탕해도 괜찮습니다.

지구장 회의 때에 지구장들이 조용조용히 얘기를 하더라도 벌써 입만 봐도 무슨 마음을 갖고 어떤 얘기를 하려는 지 다 압니다. 선생님은 자기 의견을 확실히 얘기하지 못하고 꾸물꾸물거리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은 누구 말도 안 들으시면서 그런다' 하는데, 말을 들어 봐야 뻔합니다. 그러니 바쁜 세월에 그런 말을 듣고 앉아 있을 수 없으니까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시한 말을 하려면 차라리 딴 일을 하십시오. 이 길은 이미 다 계획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가 선생님을 모시고 있지만 언제 따로 말씀 준비하는 것을 못 봤을 것입니다. 특별히 책상에 앉아서 책을 뒤져 가며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와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맹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이치에 맞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통일교회의 이념을 성취시킬 수 있는 재목으로서 가당한 것 같습니까, 아닌 것 같습니까? 「가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 정확히 한번 따져 보자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모두 선생님의 일을 찬성해요? 「예」 여러분은 자기에게 필요하면 찬성하고, 불필요하면 안 합니다. 또, 이익이 나올 것 같으면 하고, 손해날 것 같으면 안 합니다. 그렇지요? 「안 그렇습니다」 안 그래요? 손해나도 찬성합니까? 「예」 거 기분 좋구만.

선생님의 소질과 작전

얼마 전에 어떤 종교 단체에서 몇 명이 모여 통일교회를 비판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내가 그들이 말하는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면, 통일교회는 이미 수십년 전에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내가 그런 껄렁껄렁한 박자에 춤춰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약속하면 천지가 변하기 전에는 , 또한 그들이 배반하기 전에는 내가 먼저 밟고 넘어서겠다고 하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나를 배반한 사람들도 세 번은 찾아가서 충고하고 권고해서 동지를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전통으로 지니고 있는 사나이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어떻고 저떻다고 비판해도 선생님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보다 몇백 배 일하고, 몇백 배 고생하고, 몇백 배 수고해도 안 됩니다. 그것이 될 것 같으면 내가 이 일을 안 합니다. 이 일을 안하면 욕먹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회에서 출세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소질이 있습니다. 나는 사교성이 풍부하고 눈치가 빠릅니다. 척 보면 무엇이든 백 퍼센트 안다는 것입니다.

어제 병원에 가 건강진단을 받으면서 의사에게 산에 같이 가자고 얘기하고 왔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위신 때문에 사람들과 가까와지면 곤란한 일이 많습니다. 서로 가까와지면 식사도 같이하게 되고 전화가 오면 '네 나갑니다' 하고 나가서 친구도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 대접받았으면 두 번도 대접받을 수 있는 데 두 번씩이나 대접을 받았으면서 세 번째도 대접 받으려고 입을 내밀면, 그 사람에게 뺨도 철썩 맞고 '자식 틀려 먹었다'고 비판받습니다. 그렇지요? 그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았으면, 한번은 우리 집에 그 사람을 초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따르고, 통일교회를 위해서 충성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초대해서 모시려 했을 때, 내가 얼른 가서 식탁에 앉아 봤느냐? 그것은 내 양심상 못 합니다. 그러나 외국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나도 여러분들과 더불어 큰 잔치를 멋지게 하고 나서 삼천만 민족을 대하고 싶지, 여러분을 고생시켜 놓고 나 혼자 좋은 자리리 앉고 싶지 않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앞으로 울타리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예외로 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그렇게 대해야 되고, 또 서로 오고 가야 됩니다. 그러나 오고 가는 것을 내 양심이 아직 허락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늘에서 사는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내가 소질이 풍부한 것을 알고 있지만 전체적인 하늘의 위신과 수고한 사람들의 권위를 세워 가지고 앞으로 인류가 통일교회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권위가 설 수 있고, 터전은 공고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금후에 통일교회가 갈 수 있는 민족적인 발판과 국가적인 발판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발판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초대하더라도 안 갑니다. 초대받고도 안 가는 것은 먹을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안 됐다면 어떤 정치가의 비서라도 했을 것입니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많고, 또 영리한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다 감독할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당에 관계됐다 하면 거기서도 누구한테 지지 않고 어떤 일이든 틀림없이 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들이 방해작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저런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왔다 간 성인들이 이 길을 밟아 이름없이 갔고, 그것은 한 시대가 지난 후에 드러났습니다. 그런 결과를 추구해 나오는 것이 하늘의 작전이기 때문에 나도 이 길을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하늘이 선생님을 버리지 않으셨고, 또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협조하고 있습니다.

지치지 말자

어제도 그랬습니다. 어제는 효진이 생일이라 내가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이시이(石井)와 아이들 몇 명이 모여 앉아 함께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본부 가까운 곳에 사는 부장들이나 지구장들은 생각도 못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딴 곳에서 축하 케이크를 보내 왔습니다. 이것을 볼 때, 내가 부끄러웠어요. '통일교회 식구들이 이젠 지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불교인이었는데, 날짜와 이름까지도 어떻게 알아 가지고 만수무강이라는 표를 달고 축전을 넣어 자기 제자를 시켜서 보내왔습니다. 내가 얘기해 주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은 번번이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면에서 앞으로 재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재교육을 받아야 되겠어요, 안 받아야 되겠어요?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금년에 전 식구가 수련을 받자는 것입니다.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만 끝나게 되면 여러분을 전부다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직접 방법을 지시하며 이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인으로서의 기본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늘 보기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공은 우리가 쌓고 영광과 축하는 딴 사람이 받는다면, 결국 복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패잔병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을 볼 때, 고맙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통일교회 선생님은 망할 운세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맹목적으로 나섰다면 벌써 망해 떨어져 나갔을 것입니다.

오늘날 나는 일대에 내 개체를 중심삼고 세계적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400년 역사 위에 이룬 것을 나는 불과 10년 기간 안에 찾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세기의 기적입니다. 만약 우리 통일교회가 초기와 기독교와 같은 입장에 섰다면 전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통일교회를 못 믿습니다. 이 길은 죽어서도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이때에 틀리지 않는 자리에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인정합니까? 「예」

통일교회를 나가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선생님은 다 좋다고 합니다. 또 '협회장이 보기 싫어서 안 갑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다니기 싫다는 얘기는 안 합니다. 그래 여러분은 전부다 선생님을 싫어합니까? 싫으면 저리 비켜 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시시하게 놀아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어코 갑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런 문제를 대해 잘 처리해야 되겠습니다.

기초를 튼튼히 닦자

그러면 누가 뭐라고 해도 집을 지으려면 먼저 재목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터를 닦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재목의 입장에 서있으니 이제 터를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터를 닦는 데는 어디서부터 닦아야 되느냐? 지하에서부터 닦아야 됩니다. 고층 빌딩을 지으려면 먼저 땅을 깊이 파고 튼튼하게 기초공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 고생할 필요 없이 넓은 모래사장에다 짓지' 이렇게 생각하면 집을 못 짓습니다. 기초공사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기초공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기초를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초가 얼마만큼 닦여 있느냐? 현재의 시점에 보이는 만큼 닦여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 박대통령이 근 두 시간 15분 동안 연두 기자회견하는 내용을 쭉 들어 보았습니다. 그 내용이 국가의 경제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국민 헌장이 될 수 있는 내용일 것인가? 우리 국민만을 중심삼고 국민헌장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급변해 가는 세계사조에 부합될 수 있고, 대비될 수 있는 인류헌장은 못 됩니다. 그러면 인류헌장 앞에서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 국민헌장이 아니냐 할 때 어떻게 답변하겠습니까? 그것이 내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방안이 없지 않느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그런 문제에 부딪치는 그때에 가서 통일교회가 필요하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 경계선에 가서 통일교회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를 위해서 말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일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그런 엄청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기초가 닦여진 터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초를 닦아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콘크리트로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시멘트보다 자갈과 모래를 먼저 준비해 놓아야 됩니다. 시멘트 한 차를 준비하면 거기에 몇 배 되는 자갈과 모래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갈과 모래는 어디에 있느냐? 강변에 있습니다. 강변은 누구나 살지 않는 곳입니다. 또한 돌은 산에 있습니다. 초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들이 지금 서글픈 입장에 방치된 물건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자갈이 될 수 있는 사람, 모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섭섭하지요? '아이고 선생님이 정초부터 말씀하시는 것 들으니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는 것이 우리네' 하며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칙인데 어떡하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는 모래와 자갈 따위를 물려 주자는 겁니다. 찬성해요, 안 해요? 「합니다」

그러면 모래와 자갈에 시멘트와 물을 부어 섞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의 덩어리가 됩니다. 여러분이 밤낮 없이, 부모와 자식을 잊은 채 이일을 할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과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기초로 하여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어날 때는 돌덩어리도 불어나고, 모래 덩어리도 불어나고, 시멘트 덩어리도 불어납니다. 그것이 삼천만보다 더 크게 될 때는 세계에 요란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 높은 산에 올라가서 한번 돌을 굴려 보십시오. 돌이 굴러 내려가면서 와지끈거리는 것을 보면 참 근사합니다. 큰 돌이 구를 때는 문제가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시멘트가 되고,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은 물로 삼고, 여러분의 몸은 모래로 삼고, 여러분의 뼈는 자갈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져진 터전은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천년의 역사가 지나가도 허물어질 수 없고, 만년의 역사가 지나가도 허물어질 수 없고, 또 어떠한 단체가 천년 만년 노력해도 허물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터전을 다져 가기 때문에 세계에서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 와서 이것을 배워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금후의 통일교회의 갈 길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나 와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산당 이상의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정치혁명을 중심삼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3차, 4차 해 나오는 소련 공산당의 근대사를 보면 알 것입니다. 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 기간에는 공무원들한테도 쌀을 백퍼센트 배급하지 않았습니다. 쌀 몇 퍼센트에다 풀가루를 섞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무를 보다가 쓰러지는 공무원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핵심적인 사업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노동자 농민들의 단결을 강조하며, 세계의 부르조아 계급을 타도할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바라보며 가자고 했습니다. 그 사상이 얼마나 철두철미했는지 자기 손으로 사회환경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산주의자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의 체제를 가진 국가로서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미온적인 훈련을 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일주일 금식을 해야 되며, 그래도 안 되면 21일 금식을 해야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못할 때는 내가 21일 금식을 할 것입니다. 백사장에 나가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면서 해야 됩니다.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필시 피가 싸늘해지고 살이 싸늘해질 것입니다. 그것을 꿋꿋하게 참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하여 더렵혀진 개체의 세포에 대한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인내심과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흘린 피와 땀이 내 일신을 지배할 수 있을 때까지 금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한 곳에 다리를 놓으려고 한다면 제일 깊은 데부터 기초를 닦아야 되듯이, 우리도 최하의 자리에서부터 기초를 닦아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통일교회를 부정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인들 중에서 특히 대학교 출신들이 전부다 밑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정성을 들여 가지고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싫다고 도망가는 사람은 이 나라로부터 욕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밭에 나가 일을 하더라도 남들은 밥 먹고 나가지만 자신은 밥을 안 먹고 나가서 남보다 먼저 김을 매야 합니다. 그것을 주인이 밭에 나와 보게 되면 자연히 그 사람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네에서 전부다 반대하다가도 머리를 숙이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에서부터 부락을 거쳐 오늘날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교회의 시대는 지나갑니다. 인류가 바라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타락권내에서 복귀의 운명길을 갈 때에 필요한 것이지, 새로운 때를 맞게 되면 교회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교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교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 확청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나라와 그 민족, 또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가 하지 못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지금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도래하기 때문에 아무리 위대하고, 아무리 역사에 공헌했던 기독교라 할지라도 초개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 열매가 없으면 그 터에서는 열매를 딸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따려는 그 열매는 하나님께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 열매는 세계에서 따고 나라에서 따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시대를 넘고, 교회시대를 무시하고, 산 사회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활동무대를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사상을 중심삼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결하는 중간에서 이것들을 대처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작전입니다. 세계적인 종말시대가 선생님이 예상했던 대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이념만 가지고는 세계적인 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이념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역시 그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세계적인 생활이념의 터를 닦아 나오는 것이 하늘의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위해서 살 수 있는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어 가지고, 세계인과 더불어 특수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가는 것이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야 할 방향입니다.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위하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을 수 있는 기반이 없으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원리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주체국이라면 상대국가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나라를 상대국가로 세울 것이냐? 현재는 일본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사랑해야 되느냐? 자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1970년대의 하늘의 작전법은 상대적 입장을 내세워서 우리를 몰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작전도 그렇고 대사회활동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반공사상을 중심삼고 세계 운동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그것을 어떻게 수습하여 귀결시킬 것이냐? 여러분이 수습하지 못하면 선생님이 수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딴 분야에서부터 수습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한국교회, 혹은 종교계에 있어서 남모르는 가운데 그래도 앞으로 미래의 종교관을 모색하고 미래에 종교가 혁신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가고 있는 것은 현재 통일교회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배후에 비참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최후의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의 생활권내에 침투해 들어오는 공산당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동포애로 연결되어 마음대로 자유롭게 뻗어 나갈 수 있는 평면적인 인연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해야 공산세계를 수습하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상을 중심삼고 발전한 것이 공산권인데 이것을 어떻게 흡수,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최고의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흥망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핍박받고 몰려도 우리는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 밑에서 1960년 대부터 이 길을 걸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계몽활동과 전도활동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공산당 이상 사상적으로 철두철미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사상이 아니면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생활적인 지도방법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불행한 생활을 하여 노동자 농민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철두철미한 사상을 갖추게 되면 그 불행의 여건이 도리어 행복의 여건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이상을 창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옹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이라야 빛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물질이 풍부해지면 환경을 중심삼고서는 신앙의 얼이 파고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권내에서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농촌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행복의 터전을 닦기 위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더욱 하늘을 위해 투신할 수 있는 움직임이 이 한국에서 통일교회의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나왔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노동자면 노동자, 빈민이면 빈민인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그 이상의 무대를 찾아가는 현 사회에 있어서 거기에 공헌하는 것은 응당 인간들이 해야 할 자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자리보다 더 비참한 자리로 가자고 하는 것이요, 지금보다도 못한 환경을 기쁨과 소망으로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이 한국에서 새로운 기원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통일교회를 성원하고 계십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상을 분석해 볼 때, 나의 민족을 사랑하고 나의 형제와 종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내 자신을 소망의 사나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통일사상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통일사상이 위대하다는 것을 이 민족 앞에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민족을 공산당보다도 더 지독하다는 통일교인과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는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향을 이 민족 앞에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지와 빈곤을 타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지를 극복시키는 데에 있어 지도자, 선각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빈곤하여 굶는 사람보다 더 어려운 것을 참아야 됩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먼저 무식을 깨우쳐 주는 친구가 되어야 하고,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먼저 빈곤을 해소해 주는 어머니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리하여 절망의 와중에서 낙담하고 낙망해서 자기의 모든 전체를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기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무리들을 모아 가지고 활동체제를 갖춘 것이 오늘날의 통일교회입니다. 이것을 볼 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아시아 승공대회 개최를 위한 준비상황

이제 우리는 국민 앞에 한국민이 지니고 가야 할 사상과 방향을 제시하고, 생활에서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계몽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민족의 무지와 빈곤을 타파하고 이 민족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농촌에 가서 호미로 김을 매고 이삭 줍기를 해야 합니다. 농장에 들어가 발벗고 일하면서 농민들과 같이 땀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공산당의 침략의 마수가 뻗쳐 오는 것을 막아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활동의 본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이 민족이 반대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핍박을 받는 시기가 올 것을 알고 그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스스로 몰리는 자리를 찾아가 그늘에서부터 그 일을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수천 장의 표창장을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한 증거의 표시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문공부에 등록할 당시에는 추방당할 뻔한 단체였지만 이제 우리는 이런 실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전부다 배척을 받았습니다. 국가와 사회 앞에 일시에 배척을 받은 것입니다. 이 문선생이 반공활동을 하는 것을 놓고도 정보부에서 우습게 알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것을 참고 우리는 지방에 가서 50리, 60리, 100리 길을 걷고 산을 넘나들면서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은 전부다 자기들 잘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반대 속에서도 통일교회는 말없이 전진했습니다.

그렇게 나왔는데 이제 통일교회 부흥회를 통해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러나 참석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늘이 알아주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이 알아주어 방파제의 역할을 해주느냐, 안 해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들이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라. 욕을 하겠으면 하라, 길고 짧은 것은 재 보아야 안다. 너희들은 너희의 욕심을 중심삼고 일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신념으로 일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활동 뿐만 아니라 반공운동에 있어서 세계반공연맹을 중심삼은 대회 개최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이런 오늘의 현시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위대한 기적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이번에 우리가 개최하려는 아시아 승공대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될 수 있으면 정부기관과 접촉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에 관한 준비가 어느 단계까지 진척되었느냐? 맨 처음에는 정부측에서도 좋아하며 후원해 주겠다고 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후퇴하지 않습니다. 지금 거리 곳곳에 아시아 승공대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요? 문공부에서 그것을 보더니 문공부 장관의 결재도 안 받았는 데 왜 간판을 붙였느냐고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실무자들끼리 이미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 고 대답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간판을 내린다면 신문 기자들이 가만히 안 있을 것입니다. 관력(官力)으로 우리를 핍박했다가는 우리가 가만 있어도 신문 기자들이 가만 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몇몇 간부들을 선후 공작하라고 내보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는 발전을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막대한 물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선생님이 후원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렇죠? 「예」

그동안 수많은 대회를 했는데 통일교인들 중에는 교회에서 대회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떨어진 떡잎과 같습니다. 죽은 자들입니다. 원리연구회 학생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 교회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1970년대에는 그런 사람들을 정비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아시아에 봉화를 들어야 합니다. 아시아에 봉화를 들면 세계에도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가만히 있어도 세계에 맞춰 나갈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이미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계획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제1단계가 이미 성공리에 끝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 우리를 협조하지 않으면, 그때에 가서 대한민국은 세계에 위신을 세우지 못합니다.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안 된다면 여러분이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 거기에 가담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남을 쳐다보기는…. (웃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선화 어린이 무용단의 일본 공연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내가 조직을 짜서 일일이 지시했습니다. 그것은 당사자인 박보희도 몰랐습니다. 두 달 이내에 전국적인 대회를 하기 위해 밀고 나간 것입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사람들이 통일교회로 몰려들고, 전국적으로 대성황을 이룰 것이다. 선생님에게 그런 작전이 있다'고 하니까 일본 책임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몇 번씩 만나 가지고 '너희들은 선생님을 믿어. 망하면 내가 망하고, 죽으면 선생님 일신이 죽는 다' 이래 가지고 구슬러 나온 것입니다. 무엇이든 여러분 주관대로 하면 다 실패하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장권을 준비하는 데 A권은 3분의 2를 만들고, B권은 남은 3분의 1중에서 3분의 2를 만들고, 나머지 C권은 신문으로 판매했습니다. 이렇게 입장권을 만들어 놓으니 나중에는 표가 없어서 신문을 팔러 다니느라 야단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4만 5천 장의 입장권을 팔아야 되는 데 공연하기 일주일 전까지 4천 장밖에 못 팔았습니다. 공연 일주일 전까지 10분의 1도 못 팔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까와씨와 기시 전 수상까지 시종 쫓아다니며 그들에게 표를 판 것입니다. 선화 무용단이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특별 지시를 해서 사사까와씨를 회장으로 세우고 기시 전 수상을 명예 회장으로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한번 바람을 불러일으키려고 그 계획을 전부 짰습니다. 그런데 중간 보고를 들어보니 공연 일주일 전인데도 4천 장밖에 못 팔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사까와씨는 일본 재계에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사사까와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기시 전 수상은 일본 정치계에 있어서 유일한 원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시 전 수상이 명예 회장을 맡은 공연이 실패하게 된다면, 그도 역시 큰 망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망신시키려고 이러느냐고 야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사까와씨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사나이가 한번 약속했으면 밀고 나가야지. 그래야 망해도 조금 망하지' 하며 계속 후원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보끼 협회장이 대단히 기뻐하며 바쁘게 뛰어다녀 표를 판 것입니다. 선두에 서서 제일 좋은 곳부터 집중 공세한 것입니다. 인원을 투입하는 데에 있어 나중에는 처음과 반대의 방법으로 투입한 것입니다.

기동대를 편성해 가지고 활동하는데 세 번의 공연만 성공하게 되면 신문에 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붐이 일어나게 되므로 그것을 위해 공연장 곳곳에 우리 요원들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우리 한국 곡에는 근사한 데가 많으므로 좋은 곡조가 나올 때는 반드시 박수를 치라고 했습니다. 세 사람만 그렇게 하면 모두가 그렇게 합니다. 봄 바람이 불어와서 늙은이도 춤추고 젊은이도 춤추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전부다 민족 감정을 가지고 한국을 평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평을 받기 전에, 일본 사람들이 스스로 좋다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평론가들도 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작전을 하여 나고야 공연을 끝으로 모든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내가 특별히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주 기분이 좋아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봉화를 들자

여러분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안테나가 있습니다. 그 안테나는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만약 선생님이 보통 사람과 같았다면 일본은 통일교회를 팔아먹고 구워 먹고 지져 먹고 볶아 먹고 별의별 짓을 다 했을 것입니다. (웃음)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듣고 와서 '당신 이렇게 했지?' 라고 하면서 공갈 협박하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녀석아! 했다. 그래 무슨 일이냐?' 라고 했습니다. (웃음) 그런 때는 이렇게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망할 뻔한 위기도 몇백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망하지 않는 작전을 묘하게 펴 나왔기 때문입니다. 1선이 망하면 2선, 2선이 망하면 3선, 3선이 망하면 4선까지 세워 나왔습니다. 설익은 소대가리가 시장에서 먼저 팔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제 반공연맹의 이사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만났는데, 그는 한국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이 누구요? ' 하니까 '구보끼라는 젊은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구보끼를 누가 그렇게 만들어 줬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반공연맹의 중요 멤버들을 불러다가 얘기를 해줬더니, 그들이 '그 스승이 한국에 있었군요' 하면서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전상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한방에 완전히 굴복시켰습니다. 중간 원조사격도 필요없이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제부터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궁금해할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입니다. 외국식구들이 내게 편지한 것을 읽어 보면 그 내용이 참 간절합니다. '선생님, 언제 오시겠습니까?' 하면서 죽은 신랑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화를 들자는 것입니다. 무슨 봉화를 들어야 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봉화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는 1970년대의 개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곱하기 7은 21입니다. 이렇게 정초부터 수리적으로도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1월 21일은 이 민족에게 큰 원한을 남겨 놓은 날입니다. 또한 이날은 이 민족이 공산주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날입니다.

여러분은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하는 1968년 1월 21일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사건이 한국이 봉화를 들고 새로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한 날을 맞이하는 고빗길에서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나온 것은 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70명의 우리 식구들이 한국에 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반공전선에서 최초로 원수들과 격돌한 사람들입니다. 백주에 몽둥이로 얻어맞고 쓰러지면서도 공산당과 부딪쳐 싸인 승리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국의 식구들이 과거에 그렇게 움직였다는 말을 듣고, 한국 식구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1년 9개월 동안 그러한 역사적인 투쟁에 의하여 새로운 힘을 얻어 가지고, 1·21사태의 만 2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 새로운 봉화를 들어 세계로 나가려고 조국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조국의 힘에, 그 모체에 접하여 내일의 전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 찾아 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일본의 동경에서 대회를 할 때는 서울 시민회관의 몇 배 이상 되는 곳도 다 채웠습니다. 여러분도 오는 21일에 시민회관을 채워야 할 텐데 자신 있습니까? 「예」 아저씨 아줌마들,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 자신 있습니까? 「예」 남녀 청년들도 자신 있어요? 「예」 자신 있으면 됐습니다. 내가 이 앞에 온 영감을 볼 때, 기분 좋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전에 이 영감의 세 아들이 같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 내가 좋은 며느리 얻어 줬소? 「그러믄요」 (웃음, 박수)

승공대회를 앞두고 여러분이 해야 할 책임

이제 금년만 잘하여 넘기게 되면 문제가 커집니다. 일본 식구들이 상당한 기대를 갖고 오는 데, 우리가 그 기대에 어긋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은 안 쪼입니다. 지지리 못나고 형편없지만 주인의 아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주인의 아들입니다. 옷은 허술하게 입었지만, 그 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대회를 위해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움직인 정도에 따라서 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민회관의 좌석과 입석을 합하면 약 4천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년 초에 우리가 활동해서 4천 명만 채우면 대회는 문제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리를 쩔룩거리는 아줌마한테 20명을 데려오라면 데려오겠어요. 안 데려오겠어요?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럴 아줌마는 없는 모양이군요. 그래 정상적인 아주머니들, 20명을 데려오라면 데려오겠어요, 안 데려오겠어요? 「데려오겠습니다」 또, 아가씨들은 데려오겠어요, 안 데려오겠어요? 「……」 이런 망할 아가씨들…. 젊은 세대가 의욕이 없고 소극적이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가씨가 있으면 아줌마들이 천대해야 됩니다. 그래 아가씨들, 아줌마들한테 지고 싶어요? 「안 지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안 지겠다니 됐습니다.

그 마음을 내가 다 보고 있습니다. 여자는 시집가기 전에는 부끄러움이 앞서게 됩니다. 또, 가랑잎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혼자 웃습니다. 그렇지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앞서서 가만 있는 것이죠? 그렇죠? 고개를 끄덕끄덕하네. (웃음)

남자들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장년, 청년들, 20명을 데려오겠어요, 안 데려오겠어요? 「데려오겠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웃음) 사람들이 진득하지 못하니 쉽게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웃음) 그렇다면 이번 대회는 문제없습니다.

우리는 지방에서 경찰국장들과 도지사들로부터 표창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은 승공연합이 활동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반공연맹에서도 우리에게 강사를 보내 달라는 입장입니다. 반공연맹의 간부들이 '우리는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으니 같이 합동으로 합시다' 하는 것입니다. 이거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이 활동을 계속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전국적인 인사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책임지고 일하던 간부들 대신 지방의 어떠한 사람이 가더라도 대치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에서 일하던 8도 지구장들을 불러다 전부 그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금년 6월까지 들이쳐서 때려 몰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구마다 적어도 36개 지역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각 지구별로 그렇게 발전하겠다고 약속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 이래 가지고 무얼 하겠나?

독일 국민들을 보면 코도 크고, 얼굴의 윤곽도 뚜렷합니다. 우리와는 좀 다릅니다. 북구쪽으로 가면 사람들의 얼굴 윤곽이 뚜렷합니다. 그 나라의 민족성과 성격에 맞게끔 되어 있습니다. 내가 독일에 순회갔을 때 통일교회 식구들이 한 백 명쯤 모여 있었는데, 내가 쓱 들어가니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서 차렷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풍조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이 존경하는 스승이 들어오면 반드시 전체가 일어서서 예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많은 나라를 가 봤지만 그처럼 일시에 예를 갖추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것을 보니 참 기분이 좋더군요. 그래서 내가 독일에 가서 진짜 춤 한번 춰 봤어요.

이런 독일 사람들을 보다 한국 패들을 보면 힘이 나지 않습니다. 어물 어물거립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의 눈치만 봅니다. 이것은 피압박 민족의 고질된 풍조예요. 남 쳐다볼 게 뭐 있습니까? 그러다가 사태가 불리하게 되면 그것 필요없다 하고, 사태가 유리하게 되면 짝합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눈치를 봐서는 자유도 없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조금만 더 있으면 욕이 나올 것 같으니까 움찔거리고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찬성합니까? 「예」 그러면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주인이 되어 가지고 평생 고생을 해야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세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와 9월의 일본 대회까지 마치면 반드시 문제가 벌어집니다. 미국에서 아시아의 사건 중에 제일 큰 사건을 '승공연합 사건이다'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고 연구하게 됩니다. 그것을 연구하는 날에는 공산주의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통일교회를 세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내적인 통일교회의 활동을 세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때가 되었고, 외적으로도 세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한 10년 동안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뜻만 바라보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따라가야 될 것이냐? 선생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는 데는 기분 좋게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 승공대회를 할 때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우리 춤 한번 춥시다. (웃음)

여러분은 대회중에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박수 칠 때 박수 치고, 신명을 내어서 '옳소'도 하면서 박자를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번 대회에 큰 성과를 거두어서 아시아에 봉화를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승공연합이 두 날개가 되어 아시아 천지에 휘날리자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 주십시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을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니 내가 이런 남다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복잡한 사건과 복잡한 사조를 알고 또한 거기에 장단을 맞추고, 호흡을 맞출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가 당당코 세계로 나갈 수 있고, 세계도 우리를 환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때가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고, 실패의 봉화가 아닌 승리의 봉화를 힘차게 들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양손을 드십시오. 됐습니다. 내리십시오.

나는 이제 승공운동을 안 해도 됩니다. 나는 이제 다 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여러분이 봉화를 들겠다고 했으니까,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승공대회 개최를 위해 드는 경비

그러면 이번 대회에 얼마의 자금이 투입되겠느냐? 한번 계산해 봅시다. 일본 식구들이 이번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를 거쳐서 오는 데 오는 경비만 한 사람당 기본적으로 10만 원이 듭니다. 그러니 70명이면 7백만 원입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100명은 넘겠지만 100명으로 잡고, 한 사람에 13만 5천 원이 드니까 1천 3백 5십만 원입니다. 이 비용만 해도 엄청납니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대회부터 서울 대회까지 2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대회에 참가하는 경비입니다. 거기에 그 외로 소모되는 경비, 즉 일반 사람들이 일주일간, 또는 우리 식구들이 보름간 차 타고 다니는 것 등의 경비는 포함이 안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여기에 올 때에 일반 사람은 30만 원을 내고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유 있게 돈을 더 가지고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오는 사람들은 전부다 중류 이상의 계층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도 제주도만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거쳐가기 때문에 30만 원의 비용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백명 오면 3천만 원이 됩니다. 그럼 우리 식구들이 같이 움직이는 데 딱 그 경비만 들겠습니까? 못해도 4천만 원 정도의 경비가 여기에 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에서 중류 이상의 사람들은 2백 명 정도인데, 그 중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백 명으로 잡습니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투입되는 돈이 2백만 원입니다. 이것을 합하면 4천 2백만 원입니다. 이렇게 많은 경비를 투입하여 서울 대회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부에서는 어느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느냐? 얼마 전에 제1차로 5명이 왔을 때에 한 사람 앞에 4만 원씩 해서 모두 2백만 원의 경비가 들었습니다. 그럼 이번에 70명이면 280만 원이 들 것입니다. 또, 대회를 준비하는 데 드는 120만 원과 그들에게 기념품이라도 사주려면 5백만 원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협회에서 5백만 원의 경비를 대야 됩니다. 보름 동안 머물고 가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정도의 경비가 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총 경비는 4천 7백만 원입니다.

여기에서 3천만 원은 뺀다 하더라도 1천 7백만 원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시민회관의 좌석이 3천 3백 석입니다. 그럼 1천 7백만 원을 3천 3백으로 나누면, 시민회관의 한 좌석을 채우는 데 평균 5천 원의 경비가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백 석이 남으면 50만 원, 천 석이 남으면 5백만 원이 손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데려오면 하루에 5천 원을 버는 것이 됩니다. 열 사람을 데려 오면 5만 원을 버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해야 여러분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스무 사람을 데려오면 얼마입니까? 10만 원을 버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꽃사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번다고 큰소리치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많이 버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이 노력해서 20명만 참석시키게 되면 협회 본부에 10만 원을 헌금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할 만하지요? 할 만해요. 안 해요? 「할 만해요」

이것이 누구의 일입니까? 교회의 일입니까, 선생님의 일입니까? 선생님은 일은 안 해도 됩니다. 선생님은 이제 죽더라도 내 갈 길은 다 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누구의 일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자식을 위해서 빚을 지면서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대회를 하는데 선생님의 마음을 알고 돈 한푼이라도 갖다 줬어요? 아마 한 사람을 데려오는 데 5천 원씩 준다고 하면 다 잘 할 것입니다.

지금 협회 본부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실감나는 일을 한번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 가야 합니다. 이번 대회의 성과만 좋으면 앞으로는 대부흥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식구를 중심삼고 이만큼 제시했으니, 다음에는 시민 회관을 얻어서 일주일 동안 대부흥회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기분 좋아요? 「예」 그러면 이번 대회에 내가 돈을 대겠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모으십시오. 이번 대회가 안팎으로 시범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멋지게 성공리에 마치고 부흥회를 하자는 것입니다.

인원 동원 방법

이번 아시아 대회가 끝나면 5월말이나 6월초에 일본에서 세계대회를 하려고 합니다. 세계대회를 앞에 놓고 중간 작전으로써 이번 대회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적으로 한 10개 국을 몰아올 것이지만 이번 대회가 잘 되면 하는 것이고, 못 되면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이기에 내가 책임을 안 집니다. 알겠지요? 「예」 초만원을 이루게 해봅시다.

지금 기관에서는 매일같이 찾아와서 '당신들 거기에 사람을 채울 수 있겠소?' 하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웃음) 국가에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기관을 중심삼고 인원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내무부 장관이 통, 반장까지 대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KBS라디오 방송에서도 계속 선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수한 단체 가운데에서 승공연합이 낮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서 활동하니까 '대관절 뭐하는 단체요? 정말 자신 있소?'라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을 보니 사람들은 꼭 미친 사람들 같고, 대회는 잘못될 것 같거든요. 또, 시민회관을 교섭하는 사람이 덩치가 좋고 크면 모르겠는데 조그마한 최창림이 왔다갔다하니까 기분 나빠하고 눈을 흘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꾸 만나러 다녔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시민회관에 사람들이 차겠어요, 안 차겠어요? 「찹니다」 안 차요? 「찹니다」 진짜는 내 소리보다 더 커야 됩니다. 차겠어요, 안 차겠어요? 「찹니다!」 여러분의 대답이 시원찮았으면 여러분을 한 대씩 때려 주려고 했습니다. 나한테 맞으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맞을 때는 아프더라도 나중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마울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 한 사람이 20명씩만 데려와 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악착같이 일하다가 한 50명이 죽어서 신문에 나면 유명해지지 별 수 있어요? (웃음)

그러면 봉화를 들자! 들자, 말자? 「들자」 나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원합니다」 내가 반대하면 선생님을 후려치고라도 나가야 됩니다.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의 뺨을 때려도 내가 기분 좋게 맞아 주지요. (웃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가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해서 사람을 찾으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참석시키십시오. 이번 대회가 한 시부터 시작되는 데 열두 시 반쯤에 좌석이 다 차게 된다면 그 이후에 오는 사람은 참석을 못 하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늦게 왔소?'하고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알겠어요? 시간 전에 빨리 들어와야 됩니다. 좌석이 다 차고 난 뒤에는 천만 명, 또는 서울 시민 전체가 동원된다 하더라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선전할 때는 '빨리 가야 됩니다' 하는 말을 반드시 넣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빨리 와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늦게 와서 못 들어가게 하면 그들이 여러분의 넥타이를 잡고 '이 자식아! 바쁜 사람을 오라고 하더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이게 뭐야?' 이러면서 싸움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시간 전에 빨리 가야 됩니다' 하는 말을 한 것을 세 사람만 인정하면 그도 별수 있어요? 그러니 빨리 가야 된다는 것을 언제든지 주장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 놓고는 50명도 좋습니다. 백 명이 되더라도 데려오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말하지 않고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가는 내게 모두 매를 맞습니다. 한 시까지라고 말하지 말고 틀림없이 열두 시나 열두 시 반까지 오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야 됩니다. 이것이 작전상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이렇게 선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하기도 참 곤란합니다.

그냥 초대권만 나눠 주고는 '한시 반까지 온대요' 하면 안 됩니다. '온대요'가 뭡니까? 이번에는 틀림없이 청한 대로 멋진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도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오십시오. 한시 전에 오지 않으면 못 들어갑니다'라고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런 후에 백명 아니라 천명이라도 데려오십시오. 그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말만 하고 데려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책임은 끝납니다. 사람들이 많아 못 들어가게 막으면 어떤 사람은 '나는 어제부터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요'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돈을 몇천 원씩 주고 여관에서 자며 이곳에 참석 하기 위해서 왔소' 그러면서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버스 값만 있으면 이 곳에 올 수 있지만 아시아 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벌써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최하는 국가의 국민들이 늦게 와서 이러면 되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한마디 슬쩍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활동범위가 무제한이니, 사람들을 얼마든지 모셔 오십시오. 대찬성입니다. 이번 대회에 많이 데려오는 사람은 내가 표창할 것입니다. 불고기 백반으로 식사를 한번 멋지게 하도록 해준 것입니다. 그때는 나이 많은 사람은 싫습니다. (웃음) 영화에서도 젊은이가 나와야 좋아요. 그 영화를 살려줍니다. 그러니 가짜 영화가 아닌 진짜 영화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여러분들을 믿겠습니다.

아시아 승공대회의 섭리적 의의와 우리의 목표

이번 대회에는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승공연합의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대회에 세계반공연맹의 간부들이 왔다 가기 때문에 아시아에 상당한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 동안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배후에서 내면적인 투쟁을 해서 이만큼 이루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본부와 교회의 움직임에 방향을 갖추어 보조를 맞추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낙오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왕 이 길을 개척하면서 수고해 나왔으니 동역동사할 수 있는 한때를 앞으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때에 여러분이 중심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길 바라서 이런 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든 새로운 봉화를 중심삼고 서울 대회를 기준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학생부장, 초대권 뿌릴 사람을 다 준비했나? 「예」 저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훈련도 해보라구요. 우리 젊은 청년들이 앞장서서 한번 해봅시다. 일본의 조직부장을 중심한 활동정예부대가 와서 보고 비판이나 동정을 하게 해서는 안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예」

선생님이 금후의 세계를 놓고 큰 작전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일본 정부가 움직였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서 반대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가 큰 의의가 있으니만큼 여러분은 그것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이번 제주도 대회는 여러분이 다 아는 것과 같이 수렵대회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대회에 왜 자꾸 관심을 갖느냐? 앞으로 제주도에서 세계적인 수렵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남자들은 총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총을 좋아합니다. 여기에 반지와 총을 갖다 놓으면 남자들은 총을 갖지만 여자들은 반지를 갖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어 낸 말이 있습니다. 여자는 반지를 좋아하니 끼어 사는 것이요. 귀걸이를 걸기 좋아하니 걸려 사는 것이요, 목걸이를 좋아하니 달려 사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말을 짓는 데는 선생님이 명수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들도 직장에 가서 대중을 지도할 때, 또는 여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데서 좋은 얘깃거리로 한번 써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총을 좋아합니다. 총을 좋아하니 총각이지요. (웃음)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 안 되고 사회에서 활동했으면 친구가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선생이 되다 보니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고독단신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고독단신이 아닙니다. 고독이 변하여 유독이 됐고, 단신이 만신이 되었습니다. 유독만신이란 말은 없지요? (웃음)

선생님도 총을 한 10년 이상 갖고 있지만 총은 참 묘한 것이며 위험한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청년들은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 오면 총을 들고 나가 그들을 대해 싸워야 합니다. 과거처럼 밀리던 때는 지났습니다. 이론적인 원칙이 딱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힘으로 나오면 우리도 힘으로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입니다. 그들이 힘으로 나오면 우리도 힘으로 해야 됩니다. 찬성이요, 반대요? 「찬성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공산당을 쳐부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김일성이 알면 배가 아플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흥남 감옥에 들어갔던 문 아무개가 이남에 가서 이런 일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들어가면서 '이 녀석들, 몇 년 후에 두고 보자, 고급 간부 이놈들, 지금 무엇을 해먹고 있는지 내가 다 안다. 두고 보자' 이런 맘을 가졌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고향에 한번 가 보고 싶지요? 「예」 가 보고 싶어요, 안 가 보고 싶어요? 「가 보고 싶습니다」 내가 가 보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가 보겠습니다」 가 봐야지요. 내가 안 가더라도 여러분은 가 봐야 됩니다. 내 고향에 가면 참 좋습니다. 선생님도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고향에 가 봐야 됩니다.

선생님은 삼팔선을 왕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삼팔선을 넘어야 됩니다. 틀림없이 그러해야겠기에 항상 철두철미한 사상무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시아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여 나가야 됩니다. 우리 나라로서는 김일성도 원수지만 소련과 중공도 원수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소련, 중공과 어떻게 대결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통일방안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뚜렷한 방안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아시아 안보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 자신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금후에 우리의 원수는 중공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대결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아시아로부터 어떻게 마련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종교를 어떻게 단합시키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국내의 종교와 일본의 종교를 기틀로 삼아 반공노선을 형성해야 됩니다. 이러한 작전으로 지금 준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지하에서부터 지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선봉이 되어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모아 이 뜻에 투입하라

세계에 봉화를 통일교회에서부터 들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파문을 일으켜 이것이 퍼져 나가게 되면 다음에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을 갖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때에 일을 못 하면 다 죽습니다. 여러분에게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기 싫으면 보따리를 싸야 합니다. 피난 보따리로 시작한 통일교회가 뿌린 씨앗이면 뿌린 대로 거두어야 됩니다. 고생으로 출발했으면 고생으로 거둬야 됩니다. 피난 보따리로 시작했으면 피난 보따리로 성공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피난 보따리를 짊어지고 전도 나가라는 것입니다.

저기에 허봉구 아버지가 왔군요. 「예」 그래 이번에 몇 사람을 데려 오겠어요? 「20명 데려오겠습니다」 나는 한 사람도 안 데려갈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을 구경하며 심사, 평가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가 끝나면 표창할 것입니다. 표창하는 데에는 전도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이 일등입니다. 여러분 모두 총진력을 해서 이번 대회를 성공리에 끝냅시다.

여러분, 내 넥타이 어떻습니까? (웃음)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것을 어제 내가 나가서 샀습니다. 누가 사다 줘야지요. 넥타이를 매는 것은 싫어하지만 정월 초하룻날 옛날 것을 매고 나올 수 없어서 하나 샀습니다. 생각할 줄 아는 여자가 있으면 넥타이라도 하나 사다 줄 줄 알았는데 없었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못난 자식, 병신 자식을 두었다고 치고 내가 어제 나가서 뒤적뒤적해서 하나 샀습니다. 이것이 좋아요, 나빠요? 좋다고 해야 여러분에게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공석에서 이런 말을 하면 바보 천치 같지만 여러분들이 자꾸 넥타이를 들여다 봐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뜻, 민족적인 운명, 섭리적인 관점, 그리고 안팎으로 엮어진 세계 정세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계획하는 것은 앞으로 몇 고비만 넘기게 되면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이기는 것입니다. 몇 고비만 넘어가게 되면 참 좋은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일본 교회는 예정된 권내에서 잘했습니다. 1년 9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이러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은 일본의 역사 이래 기적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을 우리의 방파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앞으로 불가피하게 주체적인 입장에 안 설래야 안설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왜냐하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여성국가인 일본은 벌거숭이로서 이것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끝날에 우리의 통일전선에 있어서 책임을 안 지면 안 됩니다. 모진 풍파를 겪어야 됩니다. 벌거숭이의 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이 급박하다는 것입니다. 급격히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기에 대만이 필요하고 한국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정 속에 대만과 한국은 공동운명의 처지에 있어야 된다고 강조하는 말을 여러분은 신문을 통해서 봤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일본 경제를 움직여서 아시아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빠른 길은 이 길밖에 없고, 또 이 길을 가는 것이 안전한 코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러한 작전을 하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여기에 정성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는 데에 물심양면으로 여러분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투입시켜 주길 바라는 바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섭리 노정은 진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섭리의 뜻은 실패를 가져오게 되고 그와 동시에 역사적인 모든 발전현상도 반드시 연장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역사는 선악의 투쟁역사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나타나는 그 역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모든 문제가 사람에게 귀결됩니다. 어떤 사상에 있어서도 그 사상의 흐름보다도 그것을 실천하여 성사시키는 사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의 흐름을 보면, 선이 이루어 오는 역사와 악이 이루어 오는 역사가 언제나 뒤넘이치면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선악의 투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선악의 투쟁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본래 선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악이 역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선이 먼저 출발을 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악이 먼저 출발했고, 선이 위에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악이 위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당한 전체적인 내용을 정당한 본연의 자세로 돌이켜 놓기 위한 투쟁이 오늘날 역사적 투쟁사의 모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올바른 본연의 자리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최상의 목표요,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시는 최대의 목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연의 모습을 이 지구상의 역사과정에, 혹은 복귀섭리노정에 성사시켜 놓는 것만이 하나님과 인간이 해야 할 최종적인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선악이 교차되는 전환점을 이루어야 할 인간

이것을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역사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섭리노정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다할 수 있고, 그릇된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전환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익사는 선악이 교차되는 전환점을 이루어 나온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차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회에서 말하는 교차점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의 사정에 의한 교차점이 아니요, 어떤 시대의 교차점도 아닙니다. 또한 국가에서 말하는 정권의 교차점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이 세상 자체가 뒤집어져서 하나님이 예정하셨던 본연의 모습으로 복귀되는 교차점인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차의 전환점이란 문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없으면 가정이 있을 수 없고, 사회가 유지될 수 없고, 국가 또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없으면 세계도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이상천국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참된 사람입니다. 그 참된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시며, 역사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바라던 대표적인 인간으로서 구약시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요, 오늘날의 인간들까지 전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찾아 나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위와 아래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위 아래가 변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횡의 관계에 있어서도 차이를 가져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전후의 관계에 있어서도 언제나 일치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전면에서도 후면을 바라볼 수 있고, 후면에서도 전면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전후의 관계를 보더라도 서로 안팎이 다른 것 같지만 거기에서 일치점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 타락으로 벌어진 문제

다시 말하면 역사가 바라던 인물과 하나님이 바라던 인물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일치될 수 있는 그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이 나와야만 하는 문제의 기원이 어디에서 벌어졌느냐?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러한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잘못 때문에 문제가 벌어졌으니 이것을 다시 뒤집어야 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첫째는 심정 문제입니다. 둘째는 혈통 문제입니다. 세째는 인격 문제입니다. 네째는 언어 문제입니다. 다섯째는 생활 문제입니다. 여섯째는 국가 문제입니다. 일곱째는 세계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타락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본연의 가치를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느냐? 심정의 교차로가 생겼습니다. 그 다음은 혈통의 교차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격의 교차로가 생겼습니다. 또 언어의 교차로가 생겼으며, 또 가지각색의 교차로가 생겨 생활에 연결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전부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데 있어서 이것이 전부다 갈라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첫번째 문제에서부터 일곱번째까지 하늘을 중심삼고 통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의 문제가 무엇이냐? 갈라진 것이 합치기 위해 교차되는 때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민주와 공산이 교차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교차되기 전까지는 통일이 되지 않고 하나가 안 됩니다. 여기에 이상적 개체가 합해서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방안입니다.

한 국가면 국가도 역시 야당이니 여당이니 해서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부딪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딪치는 와중에도 둘이 잘 주고 받으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나선형을 그리며 회전작용을 하면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도움의 작용을 하지 못하고 부딪치는 파탄작용을 평면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통일방안도 제시해야 됩니다.

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을 보게 되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조아 계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계급이 서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평등화가 이루어 지지 않고는 통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비슷해야 합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서 주고 받는 것이지, 너무 차이가 생기면 어느 한 쪽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언어도 지금 그렇게 되어 있고 인격도 전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한 중심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연결하는 데에는 평면적으로만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입체성을 띠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아야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어느때에 심정의 교차시대를 통과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느때에 사탄의 혈통을 받았던 것이 하늘의 혈통으로 교차되느냐? 또 어느때에 사탄세계의 인격이 하늘세계의 인격으로 교차되느냐? 말씀과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 삼고 볼 때, 내가 어느때에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기준에 서서 오늘날 거짓된 말씀세계를 참된 말씀세계와 교차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선악이 투쟁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나가 버릴 수 밖에 없는 그 생활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생활로 어느때에 교차되느냐? 또 국가는 어느때에 교차되고 세계는 어느때에 교차되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어디서부터 기원이 되었느냐? 아담과 해와, 즉 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거짓 부모가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심정 문제, 혈통 문제, 인격 문제, 언어 문제, 생활 문제, 국가 문제, 세계 문제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한꺼번에 축적시킬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총합할 수 있는 참된 기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이것은 어떠한 종족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사회권내라든가 국가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권내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기원이 거짓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서만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란 명사를 중심삼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혈통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인격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언어가 본래의 위치에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생활이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국가형성이 벌어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체를 총집약한 핵심적인 모체가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라는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모든 사상을 내가 전부 인계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의 심정, 그의 인격, 그의 생활관, 그의 국가관, 그의 세계관을 전부 인계받지 않고는 중심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의 복귀섭리를 보면 지금까지는 역사가 어떻게 출발한 것인 지를 몰랐습니다.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빼놓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민족을 중심삼고 맥을 이어 나왔습니다. 이것이 선민사상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나오면서 희생한 것은 전부 국가를 이루려는 개인들의 희생이었습니다. 기독교가 국가를 형성해서 싸워 본 적이 있습니까? 사회를 형성해 가지고 대결을 해본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개인들이 대결하고 희생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역사가 발전해 가지고 오늘의 기독교를 형성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들은 전부 개인 구원받겠다는 소리는 해도 교회 구원받겠다는 소리는 안 합니다. 기독교 교인들이 단결해서 사탄세계를 쳐부수자고 하는 일을 못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전부 개인 운동만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 운동의 목적이 무엇이냐? 그 목적은 모든 것을 참부모에 귀결시킬 수 있는 터를 닦기 위한 것입니다. 개인이 완전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완전한 인연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개인 완성을 표본으로 하여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의 심정 앞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정을 중심삼고 나왔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참부모의 심정적인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혈통 문제, 인격 문제, 말씀의 문제, 생활의 문제, 그리고 국가관, 세계관, 천주관이 참부모와 얼마나 하나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 자체만 가지고는 불안하기 때문에 어떻게 여러분을 참부모와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즉, 그 핵심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인받는 자리에서 참부모의 가정을 대신한 가정을 이루라

이런 점에서 볼 때,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지도자들이 1960년대 전까지는 누구를 위해 일했느냐?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아서 일했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올바른 혈족으로서 일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는 참된 인격을 가지고 일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행자가 되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개체가 되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하늘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애국자가 되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의인, 또는 성현의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생활을 했느냐 하면 그건 더욱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하여 그 모든 것을 새로이 청산짓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교차되는 전환점을 가졌느냐?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을 표준해 가지고 복귀섭리를 진행시키는 데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여기에 일치되는 자세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찾아온 역사적인 이 공적의 터전을 여러분들이 가로막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관에 입각하여 산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어떤 때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식구들에게 분풀이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형제관계에서 먼저 나온 사람이 가인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구원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을 구해 놓지 않고는 아벨이 못 됩니다. 즉, 복귀된 가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가인도 아벨도 아닙니다. 아벨이 무엇입니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구해야 합니다. 아벨이라는 입장은 복귀된 가인의 입장입니다. 결국은 장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복귀된 가인이니까 장자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가인, 즉 사탄편에 있는 그 형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복귀시키는 데는 때려서 강제로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 주고,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생활관, 새로운 미래관, 새로운 인격관, 새로운 혈통, 새로운 심정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다른 면모를 보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1960년대를 돌아보고 1970년대를 바라보면서 금후에 가야 할 자세를 여기에서 확립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어느 한 때에 하늘이 바라는 천리원칙을 중심삼고 악의 세계와 투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스스로 공인하고, 하늘이 공인하고, 주위 환경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하늘 앞에 제신하고, 역사 앞에 제시하고, 인류 앞에 제시할 수 있는 공고한 터전을 갖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터전을 갖추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이런 엄청난 전체의 내용을 대신할 수 있는 사명을 짊어진 참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과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1970년대부터 가정을 위주로 한 복귀섭리를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참부모의 가정을 대신한 가정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아버지의 대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대신이요, 아들딸들은 그 참부모의 자녀를 대신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처럼 참부모의 가정과 심정적인 일치점을 가지고 상대가 마이너스면 플러스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는 천국복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일신하여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리자

이런 과정을 넘게 하려니 1970년대에는 여러분의 가정에서 아내를 임지로 보내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틀림없이 자기 환경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아들딸을 업고 나가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 길은 예수님을 데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피난 가던 것과 같은 입장 입니다. 여러분이 피난 가지 않고도 어린 예수와 마리아가 하늘의 뜻을 위해서 피난간 것과 같은 자리에 여러분을 세워 주기 위해서 여러분의 아내를 임지로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남편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 반대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은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는 가야겠습니다.

이 점을 중심삼고 우리는 심정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전환된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다시는 더럽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공의의 법도와 공의의 질서를 확립한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인격과 새로운 진리를 중심삼고 새로운 생활이념과 새로운 국가를 이룩하여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첫출발을 해야 합니다.

출발이 거룩하고 출발이 완전해야 그 목적과 결과도 거룩하고 완전할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분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1970년대를 제패하여 그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 「예」

그리하여 내 개인의 교차의 전환점을 넘어서서 내 가정을 복귀할 수 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앞으로 각자 맡은 바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함부로 살아 왔고 말도 함부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가정에도 규율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부모가 성이 난다고 자녀에게 마음대로 몽둥이를 들어 때리고 '이놈의 망할 자식아' 하는 세상적인 속된 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모두가 일신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말부터, 태도부터, 생활부터 일신된 입장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역장 지구장들 가운데 식구들에게 반말을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해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명령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을 머리숙이며 반성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부탁하는 입장에서 끌고 나가지 않고 자기가 하늘을 대신했다는 입장만 고수하게 되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벌어지게 됩니다. 자기 고집대로만 밀고 나가려 하면 전부 파탄이 벌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사탄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많은 피해를 가져 왔던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번에 여러분이 일신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새로이 1970년대를 맞이하면서 교차되는 전환점에 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지, 저희들은 하나된 몸 마음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엄청난 6천년 복귀역사의 노정을 해결해야 되겠사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하루같이 바라시는 아버지, 그 복귀의 뜻 앞에 부름받은 모습으로서 저희는 진정 참된 자신이 되었는지 스스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저희 자신이 머물러 있는 이 자리가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고 축복하실 수 있고 명령하실 수 있는 자리인지, 또한 당신이 바라보시는 저희 자신이 당신의 기쁨의 대상이 되어 있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되겠사옵니다.

저희 스스로의 위치를 확정지어야 할 책임이 아버지께 있는 것이 아니오라,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저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천국은 영원한 곳이온데,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 하는 것은 땅 위의 인간 스스로가 노력하고 행한 것, 또 그 심정이 문제라는 사실을 저희는 역사과정을 보아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확실히 알고 있사옵니다.

뜻을 알고 난 몸으로서 뜻을 향해 가야 할 걸음이 되지 못할까봐 스스로 염려하면서 하루하루를 하늘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고, 땅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하오나 아버님께서는 이러한 저희 들의 마음을 통하여 생활 속에 나타나시고자 한다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선과 악이 저희 자신 속에서 판결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서글픈 인생의 행로를 따라 그 무엇을 바라보며 넘어가고 있는 저희들에게 있어서 아버님을 빼놓고서는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타락의 후손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에게 있어서 하늘 만이 선이요, 하늘만이 전체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늘과 더불어 살고 하늘과 더불어 죽을 수 있는 그러한 용기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며, 얼마나 인간다운 모습인가를 평가해 보고 반성해 보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과정에 선한 사람으로서 위인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성현이라는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인간 세상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생활 목표가 오직 인류와 더불어 사는 것이었고 아버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었기에, 그들의 이름이 거룩하게 남아진 것을 아옵니다. 그들은 모든 세계인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한 생애노정에서 지치지 않고, 시작과 더불어 끝을 맺기 위하여 무한한 투쟁의 노정을 걸어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도 그러하였는데, 오늘날 역사의 총결산을 지어야 할 복귀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하늘의 아들딸이라는 이름을 가진 저희들이 어떻게 가야 한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이렇게 저희를 부르신 것은 저희 자신들이 합당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 전부터 아버님이 소원하시던 창조이념을 세우기 위해 타락 이후 한 많은 6천년의 개척의 노정을 통하여 소인의 실체로서 부르신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한스러운 복귀의 심정을 가지신 아버님의 외로움과 처참함을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옷깃을 여미며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을 채찍질하여 주시옵고,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거룩한 정성의 터전을 갖추지 못한 것을 책망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그 어떠한 예물보다도 저희 자체가 당신의 소원하심에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완전한 예물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할 수 없사옵니다.

세상적인 어떠한 여건이나 외모와 같은 외적인 조건이 문제가 아니오니, 가슴속에서 우러나와 하늘을 위하여 살고 싶고, 하늘을 위하여 간증하고자 하며, 하늘을 위하여 몸부림치고자 하는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전생애노정을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런 마음으로 생활해 나가지 못하게 될 때에, 아버님은 저희와 더불어 살 수 없는 먼 자리에서 홀로 뜻을 일으키셔야 할 입장에 서게 되어, 아버님의 슬픔과 저희의 슬픔이 소용돌이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아침에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개개인의 마음 마음에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어서 각자의 마음의 바탕이 어디에 근거하여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에 대하여 당신께서 저희들의 환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사옵기에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공적인 기준을 쌓아가야 할 인생의 행로를 남겨 놓고, 사적인 기준 앞에 져서 넘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할 수 없사옵니다. 이 자리에 자기 한 자체만이 아버지 뜻 앞에 가까이 가기 위한 것보다도, 이 민족이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고, 험한 길을 개척하여 그 길을 넓혀 주기 위하여 나온 자녀들이 몇 명이나 있사옵니까? 있다면, 아버지, 그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러한 아들딸을 당신께서 찾고 계신 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자리에 나와서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스스로의 모습을 정비한 후에는 민족을 위하여 가야 할 사명과 세계 인류를 위하여 공헌해야 할 사명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나를 위한 사명은 남아져 있지 않사옵니다. 나를 넘어서서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걸어가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가 이 사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얼마나 골몰해 보았고 얼마나 몸부림쳐 보았사옵니까? 아버지의 슬픔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 저희가 처량한 모습으로 얼마나 몸부림쳐 보았사옵니까? 이제껏 그러하지 못한 자신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이상 비탄스런 일이 없고, 이 이상 부끄러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 벽두부터 저희 마음은 조급하였지만, 그런 저희 마음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은 더 조급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금년이 아버지 앞에 기억될 수 있는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아버지를 높이 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싹터야 되겠사옵고, 아버지와 더불어 절규할 수 있는 간절한 심정이 폭발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여기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아무리 이 땅 위에서 천년 만년의 행복을 꿈꾼다 하더라도 그러한 행복의 터전을 다 닦은 사람은 이 땅 위에 아무도 없었사옵니다. 그 행복의 터전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당신 앞에 재차 평가를 받아서, 그것이 진정한 행복의 여건이 못 된다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 하게 됩니다. 비록 아버지를 위하여 사는 모습이 때로 처량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적막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 같지만, 아버지 앞에 평가받았을 때에는 아버지의 것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본연의 길이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본래의 욕망인 것을 알고, 저희 스스로 그와 같은 자리에 설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가시는 길은 그렇게 외롭고, 그렇게 불쌍하고, 그렇게 처참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에 있어서의 통일의 역군들은 그러한 아버님의 굶주림의 동반자요, 헐벗음의 동반자로서 몰리고 추방당하고 몸부림치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한스러운 아버님의 사연이 그들과 더불어 또다시 남아지지 않을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될 때에, 더더욱 불쌍하신 아버지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나 아버지시여, 당신 앞에 그러한 사연을 통고할 것밖에 없는 모습 들이기에, 아버님을 향하여 통곡하는 그들의 갈급한 사연을 들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그러한 자리에 있는 것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이 사탄세계의 상례이오나, 저희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참고 넘어가야 되겠사옵니다. 한 번 참는 것이 어렵거든 백 번도 더 참아야 할 미래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참아 나갈 수 있고, 백 번도 참기를 바라는 하늘 앞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백 번 참을 때, 아버지는 천만번 참아야 하는 사정을 알았사옵기에, 눈물과 더불어, 한숨과 더불어, 통곡과 더불어, 메이는 가슴을 억제 하지 못하는 외로운 자리에 있어도, 그 자리가 당신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사옵니다. 이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당신께서 남기신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지켜 가려고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삼천리 반도와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가 이와 같은 절개를 갖춘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외로울 때면 예도를 갖추고 참부모의 거룩한 승리의 소망의 한 날을 고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러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참부모의 인연을 갖추기를 소망하는 그들의 모습이 불쌍할지라도, 그들은 하늘 부모의 인연을 찾는 것이 더 좋은 길임을 알고 있사오니, 그 인연을 따라 아버님의 영광의 세계에 영원한 자녀로서의 명분을 남기기 위해 굳건히 붙들고, 굳건히 싸우고, 굳건히 지키며 나가는 당신의 자녀 들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세계의 한을 맡을 자가 그 누구이옵니까? 그 누가 민족의 원한을 책임질 수 있겠사옵니까? 통일의 역군 외에는 없사옵니다 통일의 역군 가운데서도 그 누가, 그 누가 할 수 있겠사옵니까? 어머니이옵니까? 아버지이옵니까? 형제이옵니까? 그 누가 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 한스러운 제단을 지키고, 제사장의 직분을 해야 하는 그 일을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에게 누가 그 책임을 지겠느냐고 물었을 때, '천년 사연의 간곡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몸부림치면서 아버지가 남겨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쳐 나가겠습니다' 하며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몇 명이나 있겠사옵니까? 많은 사람이 앞을 다투어 서로 제가 지겠다고 하며 나서기를, 아버지,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니까?

저희들은 부족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땅 위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영원한 사망의 터전에 자신을 매장시키는 터를 닦아 나왔다는 것을 폭로 시켜 주시옵소서.

아버지, 새로운 이 한 해에는 복되고 거룩한 자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 앞에 서슴지 않고 버젓이 나타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과거에도 그런 모습이었고, 현재에도 그런 모습이고, 또 미래에도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그 가치에 있어서 변치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사람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하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해야 했고, 현재에도 그러해야 하고, 미래에도 그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정도(正道)

그러면, 오늘날 뜻을 따라나가는 여러분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은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정해 놓은 목표가 없다고 그냥 정지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정지상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 우리 인생입니다.

이 사회와 세계의 역사는 우리 인간들로 말미암아 엮어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까지 움직여 왔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으며, 미래에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같은 운명을 지니고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행로인 것입니다. 그러니 가야만 됩니다. 가야만 해요. 어차피 가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오고 가는 이 가운데에 있어서 자나 깨나 좋으나 나쁘나 가야 됩니다. 가는 데에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개척하느냐 하는 문제를 규명하고 결정짓기 위한 것이 우리 인간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결정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어떤 문제가 제기되어 가지고 당장에 결정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결정된 사실은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내용에 비례한 그런 과거가 있을 것이며, 그런 현재가 있을 것이며, 그런 미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결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 누가 동기가 되어야 하느냐? 거기에 나타난 어떠한 상황이나 어떤 물건이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이 그 동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것도 역시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목표를 향하여 가는 운명을 해결짓기 위해 모인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백 명이면 백 명의 마음이 뜻을 중심 삼고 한 목적 기준을 중심삼고 한 방향으로 통합되어서, 그 목표를 향하여 가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가는 데에 있어서 천태만상의 차이가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목적의 방향을 중심삼고 하나의 직선으로 상하관계가 성립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이 땅을 중심삼고서 여러가지 방향과 천태만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느냐? 종교를 통해서, 처음부터 중간과정을 거쳐 끝을 맺을 때까지 다른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출발점에서부터 그 목적점에 이르기까지 직행하기를 바라시는 깃입니다. 이것이 정도(正道)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길을 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사정이 변하더라도 가는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길이 하늘이 가는 길이요, 그 길이 바로 우리 인생이 추구해야 할 정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여러분이 직접 생활하고 있는 현실적인 무대를 두고 볼 때, 신앙이라는 이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가야 할 목적을 향해 각자가 상하·전후·좌우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맞추어서 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이것을 맞춰 가기란 참 어렵습니다. 이 관계가 크면 클수록, 멀리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어렵고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삼고 본래의 천륜이 가는 길 앞에 일치되어야 할 그 기준을 어떻게 접선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그래서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볼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막연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시는 정도를 알아서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보다 더 구체적인 사랑의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하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참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길을 가는 데는 진리의 길을 가야 되고, 또한 생명을 지니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지닌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날이 가면 갈수록 시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력은 주위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앞에 무엇인가 영향을 미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인간 앞에 있는 많은 길 중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길이 결과적인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 할 그 목적을 마음속으로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인생이요, 마음뿐만이 아니라 실제에서 그 마음이 원하는 길을 추구하여 완결지어 놓아야 할 것이 인생 행로임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의 나인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어디에 처해 있느냐? 그런 입장에 일치되어 있느냐 하게 될 때, 거기에 일치되어 있다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첫출발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권내에 들어가 고아와 같은 자리를 거쳐 가지고 중심적인 하나의 결실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본연의 기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30여 생애노정을 거쳤지만, 그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또 그 죽음으로라도 이것을 해결하려 했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갔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해 민족의 갈 길을 개척하면서 생애를 바쳤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한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오늘날 타락권내에서 태어나서 하나님과 인연도 없는 우리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가? 어떻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어떤 조그마한 공적이 있으면 이것을 전체적인 것에 연결시켜 백방으로 나타날 수 있게끔 수습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 여기에 백 사람이 모여 있는데, 그 백 사한 개개인이 맺어 놓은 어떤 선한 결실이 있다 할 때, 그 맺어 놓은 결과에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뿔뿔이 놓아 두지 않고 하나로 묶어서 전체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 사람이 갖춘 그 모든 가치를 자기 가치와 함께 거두어 가지고 하늘 것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합니다. 어떤 분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학구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합니다. 여기에서 그 노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의 전공분야에 있어서 지금까지 역사상의 많은 사람들이 남겨 놓은 관념과 그 내용을 어떻게 해서든지 단시일내에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가지고,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대치시킬 수 있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6천년의 복귀섭리 노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는 입장이라 할 때, 그 길을 전부다 따로따로 떼어놓은 입장에서 가는 사람보다도 그 길을 전부 집약시켜 가지고 이것이 최고의 가치, 즉 '세계에서 최고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만을 역사과정에서 빼내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이미 지나온 6천년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노정을 전부 빼내서 한꺼번에 묶어 가지고 최고의 골인지점에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탕감복귀역사를 거슬러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역시 이런 문제가 대두됩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길인데, 가는 데는 어떻게 갈 것이냐? 갑이 가고, 을이 가고, 수많은 사람이 가고 있는 데 그들이 가고 있는 모양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모든 핵심적인 가치를 집약시켜 가지고 내 일대에 연결시켜 어떤 효율적인 결과를 갖추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우리 일상생활에 서도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러면 여러분이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그 자리는 이제부터 역사를 이끌고 결정지어 갈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는 이 하나의 핵심의 귀결점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입장도 이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 자리에서 빛나는 것이요, 미래도 이 자리를 거쳐 새로운 방향으로 나감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입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참이라는 것입니다. 즉, 참이라는 것은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되고, 현재를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되며,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면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할 수 있어야지 '나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하는 말은 여러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고, 아무리 위대한 그 무엇이라도 '나는 할 것이다' 할 때 그것은 여러분과는 관계가 없는 미래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겠다' 할 때는 아직까지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것은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하는 자리에서 선한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이지, '하겠습니다' 하는 그 자리에서는 아직까지 선한 사람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조차도 모르는 것입니다. 더우기 미래와는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생행로를 통해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 앞에 나서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고, 세계 인류 앞에 나서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고, 하늘 앞에 나서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의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며 '옳소이다' 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세계 만민이 추구하는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 앞에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했을 때, 그 민족이 모두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자가 있다면 그는 민족의 앙모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섭리 역사상에 있어서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간들이 기필코 가야할 그 행로를 찾아 그들 앞에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분은 하늘땅 앞에 앙모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역사과정에서 인류 가운데 누군가가 지상에 하나님을 모셔 놓고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때, 하나님께서 '오냐, 네가 한 것이 과연 내가 한 것과 마찬가지의 것이로다' 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보낸 30여년의 생애를 볼 때, 그가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하는 그 내용이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그 소망의 기준 아래에서 소망이 으스러지고 문드러져 가는 것을 막아 지탱시키기 위한 일면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본래 하나님이 추구하시던 목적이 이루어져 기뻐하실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될 십자가의 죽음길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조건은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승리적 기반이 되어서 영광과 더불어 찬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일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그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되겠느냐? 어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기 아들딸 앞에 '이렇게 했노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이렇게 했노라' 하는 것은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혹은 한 남자의 아내의 입장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하는 것은 그 일족에 있어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자랑할 수 있는 조그만 조건이 될는지 모르지만,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들딸의 입장에서 자기 부모 앞에 효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가정에 있어서 평면적인 효의 기준으로 남아질지는 모르지만 입체적인 세계, 즉 국가의 운명이라든가, 미래의 국가 이상을 놓고 볼 때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습니다' 하는 그 내용이 고차적인 내용이라야만 거기에 반드시 역사적인 사건이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갖고 있어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그 가정을 넘어서서 민족을 걸어 놓고 민족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전부 해 놓고 그 다음에 보다 큰 것을 위하는 것이 순차적인 원리이겠지만, 보다 작은 기준인 가정을 버리고 민족을 위해 살아 가지고 승리했다 할진대는 가정을 버린 것이 마이너스가 아니라, 도리어 가정을 버리고 민족을 위해 살았다는 데에서 그 사람은 보다 큰 인격자로서 추앙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사람은 누구나 가정의 일도 다 하면서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그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 택일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즉, 타락한 우리 인간은 보다 큰 선을 추구해 나가야 할 급박한 운명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한 선의 실적보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의 실적이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것을 더 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자기 가정이나 종족을 위주한 인격자가 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민족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인격자가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 자체는 보다 큰 분야에서 공헌할 수 있는 중심적인 인물을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 또한 보다 큰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가정이 선하기를 바라실 것이냐, 국가가 선하기를 바라실 것이냐? 국가가 선하기를 바라 시는 것입니다. 더 큰 세계가 선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내 개체는 그 중심을 어디에 세울 것이냐? 어디를 목적으로 하고 설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그 목적과 더불어 나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에 살았다 하는 그 사실이 평범하지 않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했던 그 목적 기준에 도달했을 때에는, 지나온 그 모든 것이 비참한 타락의 여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참했던 모든 과거지사가 도리어 그날에 있어서는 영광의 조건이요, 자극적인 상징의 여건으로서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남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 만민의 구세주로 오셔서 피흘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보아도 처참한 사실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아도 비참한 사실입니다. 물론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비참한 내용이었지만, 그 비참한 내용이 오늘날 기독교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는 일이 비참하고 가는 길이 어렵다는 사실을 놓고 통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할 길을 놓고, 통일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이냐? 통일교회 자체가 '이렇게 했습니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떤 단체가 크면 클수록, 구성요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아시아를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진실 그 자체만을 거쳐 나왔고, 그 자체가 결과가 될 수 있는 길을 거쳐 나왔어야 됩니다. 과거에도 그러한 참된 길을 걸어 나왔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렇게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저는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할 때, '옳소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 할 때는 부정적인 입장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도상에 서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하루 생활은 심판의 생활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 생활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변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 하나를 이기지 못한 것을 변명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결정짓고 가는 것입니다. 그 나타난 결과를 놓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람 때문에……' 하는 것은 다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잘못하고 나서 변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예요. 잘한 사람 중에는 자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잘못한 사람 중에 그 잘못한 것에 대해 변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변명 가지고는 통하지 않습니다. 솔직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평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비교해서 비판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은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입으로 자기는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변명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보다도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은 엄청난데 그 엄청난 뜻 앞에 선 나 자신이 부족하니, 내적인 모든 것을 갖춰 가지고 하겠다'고들 합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거룩히 바라는 것, 그 바라는 것을 갖추려면 10년이 걸릴지 누가 알아요? 일생이 다 지나도록 가다가 말지, 어떻게 알아요?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후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것처럼 틀림없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행로의 차이가 반드시 벌어지게 되고, 가치적 내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될 통일교회의 우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비판 받을 수 있는 요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요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귀도상에서는 누구의 협조도 받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책임을 완수하며 가야 하는 5퍼센트의 노정에 있어서는 절대로 남의 협조를 받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선생님이 다년간 걸어온 길입니다. 협조 받는 자리에서는 탕감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의 협조를 받지 않은 자리에서 온 우주, 만 천하 앞에 당당코 '이렇게 했습니다' 할 때 이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동역자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이렇게 했지', '그래 그렇게 해야 된다' 해가 지고는 안 됩니다. 스스로 '이렇게 했습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뜻을 아는 여러분이 잠자리에 들어가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자신의 마음에 가책을 받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는 사망과 생명이 뒤넘이치는 자리인데, 생명의 권한을 가지고 정리하지 못하는 자리에 있으니, 그런 생활이 습관화하게 되면 그는 사망권내를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제일 무서운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원수가 쳐 놓은 죄악의 철망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사망의 결정적인 요인을 밟고 일어선 사람이 되어 자신있게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만 결정적 승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지난날을 회고해 보면, 맨 처음에는 열심히 합니다. 그 열성이 몇 해나 갈까 하고 선생님이 가만히 분석해 보면, '성격이 이렇고 욕망이 이렇고 또 태도가 이러니 틀림없이 몇 달밖에 못 갈 것이다' 하면, 아니나 다를 까 제대로 가야 몇 달 갑니다. 그러나 몇 달 가지고는 안됩니다. 몇 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아담 하나를 찾기 위해 6천년이나 걸렸습니다. 하나의 남성을 찾기 위해 6천년을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의 여정을 찾기 위해서도 6천년에 플러스해서 여성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후보자를 찾기 위해서 많은 집단을 세워 나왔습니다. 그래서 후보자를 결정하는 투표를 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후보자가 결정되면 싫든 좋든 결정된 그 중심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그 중심을 통하여 가지 않고는 갈 길이 없습니다. 결정났으니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책임을 짊어지고 당당히 헤쳐 나온 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나간 과거인데, 오늘날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어떤 집을 짓는 데도 짓다가 말려거든 아예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지은 것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집을 짓다가 말고 일년쯤 지나게 되면 이것이 부서지고 부식되어서 다시 뜯어고쳐야 되는 데, 그것은 집을 새로 짓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하는 데 있어서의 마음가짐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는 어느 한계선까지는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내 일체의 것을 회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 한계선까지 넘어가서, 이제는 내가 죽더라도 이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고 자기 스스로 마음에 다짐하게 될 때에 자신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까지는 마음을 못 놓는 것입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실적을 가지고 그것을 현실에 투입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즉. '했습니다' 하는 그 사실이 그때의 것으로만 남아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남아져야만 그것이 영원한 세계에서 자기의 재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집을 짓다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인계해서 완성을 시켰다면, 누가 지었느냐 할 때는 나중에 완성시킨 사람이 지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데에 백 사람이 동참했다 하더라도, 맨 나중에 완성시킨 사람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은 모두다 삯군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흔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나깨나 나는 이렇게 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백만장자, 천만장자가 되는 것도 현실에서의 생활태도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신앙자들이 흔히 현실을 부정하다 보면 나중에는 허무 해지고 맙니다. 현실적인 가치추구를 망각해 버리고 미래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다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고 보면, 원리관은 현실을 부정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르침이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해 나왔다' 할 수 있는 실적이 필요 합니다. 거기에는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봐 주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협조도 받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100퍼센트 협조해 준다 해도 인간 책임 5퍼센트는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 비어 있는 5퍼센트를 중심삼고 사탄이 인간을 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데는 하나님의 협조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독자적으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능력을 갖고 최고의 절대적 승리의 권한을 우리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창조원칙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이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소용없고 자식도 소용없어요. 다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부모 앞에 할 말이 있고, 자식한테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이 무슨 일을 할 때 부모가 자식한테 '이녀석아 네 맘대로냐' 하고, 또 자식은 부모에게 그러면 부모 마음대로인가요' 하며 서로 욕심꾸러기같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이 홀로 남아졌을 때에도 협조받으려고 하지 않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찾고 있어요. 협회장, 누구, 누구, 다 있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떠나라

여러분들 중에는 통일교회는 말씀은 좋지만, 누구 누구 지도자들이 틀려 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문제입니까? 길이 문제인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격이 있든 없든, 길가에서 누가 싸움을 하든 말든, 도둑질을 하든 말든, 사기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 길이 옳으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시시한 말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 하는 녀석들치고 잘 하는 녀석이 없습니다. 이렇고 저렇고 하는 녀석치고 끝까지 잘 가는 녀석이 없다는 거예요.

현재 여러분은 이런 엄청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에는 그런 일을 했었는 데…', '그런 일을 하겠습니다' 또는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 가지고는 끝이 안 납니다.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이렇게 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을 중심삼고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길이길이 빛날 수 있는 승리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 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나 승리감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미래에 다가오는 시련을 앞에 놓고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 힘을 축적 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비례해서 큰 시련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피해서 가게 되면 결과만 나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공(功) 없이는 선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공과 비례되는 가치로서의 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수고는 안 하고 좋은 결과만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그럴 수가 있어요? 악한 세상에서는 소모전이기 때문에 열을 투입해도 절반인 다섯을 찾을까 말까 한데, 열을 투입하고 열 다섯을 찾겠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에 공상만 가득 들어 가지고 공상 속에서 살다가 원칙적인 노선을 무시하고 가려고 하니, 갈 수가 있어요? 「없습니다」 무슨 발판이 있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충실해야 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갖추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각 교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기도를 할 때에 '아버지여, 내 편이 되어 주시고, 내 업적을 통해서 복도 주시옵소서' 또는 '나는 아무개 집 외동딸로 태어나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어쩌고 저쩌고…' 또 '내 아들 딸을 이렇게 해주시오' 하지요? 그건 자기 뜻입니다. 자기 중심인데, 하나님이라고 해서 상관할 수 있겠어요? 그건 자기 뜻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뜻을 놓고 아무리 기도해 보라 이겁니다. 아무리 밤을 새워 기도를 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한 세상을 부정하고, 한 세상을 붙들고, 그 세상을 위해서 가야 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예를 들면, 가정을 부정하고 나라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더 큰 것을 위하는 것, 그것이 공적입니다. 그래야만 남아지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 중심삼고, 가정 중심삼고 가는 것, 그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보다 큰 목적을 중심삼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보다 큰 것을 위하여 공적인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횡적으로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공상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의 결실로 나타내기 위해 창조적인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자는 현실의 환경과 부단히 투쟁을 해서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모험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최고의 개척자의 생활이요, 최고의 투쟁 자의 생활이요, 최고의 전도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 결과로 나타나야 최고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사탄보다 더 적극적인 자리에 서라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했느냐? 이 민족 앞에, 이 세계 앞에 무엇을 했느냐? 그리고 '통일교회는 이 세계 앞에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선생님은 그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협조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 교회를 지도해 나갈 책임을 지고 있는 선생님은 그 문제를 중심삼고 원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금년의 표어가 정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협조하고 싶거든 협조하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협조하지 않으면 선생님 혼자서라도 이 표어 앞에 부끄럽지 않게끔 책임을 다 할 것입니다. 아무 문제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을 위해, 세계를 위해 맹세하고 투쟁해 나갔을 때 여러분은 죽어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이 남긴 것은 대한민국 백성의 소망으로서 그 가슴에 남아질 것입니다.

그것을 위업으로 남기기 위해 정성을 다했을 때 대한민국이 잘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것은 하늘나라에서도 절대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만이 아니라 두고두고 만인의 가슴에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뒤돌아보면서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하긴 뭘해. 통일교회에서 선생님 줄줄 따라다녔지' 이렇게 대답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만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따라나오지만, 사탄은 반대하는 입장에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누가 더 적극적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보다 사탄이 더 적극적입니다. 적극적이라는 면에서는 여러분이 모자란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탄보다도 더 적극적이지 않고서는 사탄세계의 한계선을 못 넘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적극적인 입장에 서서 언제든지 자신있게 대처해 나가야 됩니다.

과거의 실적을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지 말라

여러분 각자가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과거에 그렇게 좀 살았다고 하면서 현재에 자기를 알아 주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는 사람들은 자기를 전부다 팔아먹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저당잡힌 격입니다. '내가 과거에 이렇게 했는데, 교회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한 일은 자기 재산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소유요 자기 재산인데, 남이야 알아주든 몰라주든 자기가 알고 있으면 됐지, 꼭 누가 알아줘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도둑놈 심보를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를 알아 주기를 바라면서 그저 자랑하고 다녀 보라는 거예요. 전부다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몽땅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제껏 뜻 앞에 해 나왔던 모든 것을 자기보다 앞장서서 하겠다는 사람에게 몽땅 빼앗긴 다는 것입니다. 무슨 자랑을 하겠다는 겁니까? 자랑하려면 모든 것을 다해 놓고 난 훗날에 가서 지나간 것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몇 단계가 지난 후에 해 놓은 것을 자랑하면 모르지만, 하고 있는 일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것은 도둑을 불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보면, 통일교회 패들 입들이 불길합니다. 자기 자랑으로만도 부족해 서, 선생님이 뭐 어떻고 어떻게 해주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 세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자랑해서 뭘 하겠느냐 말입니다. 자랑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또 몰라요. 그런 여러분들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욕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욕을 먹고 있다는 거예요. 시시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말해 가지고 욕먹게 만들어 놓지 않았느냐 말예요. 안 그랬어요?

자기가 말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여러분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약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있을 때는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말한 것을 부정하는 것은 심판정에 들어가서 심판관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공판정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판검사를 모욕하는 거예요. 주권자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말한 것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됩니다.

거리낌없는 생을 살라

그러니 여러분 마음에 맺힌 것을 다 풀어야 됩니다. 풀지 않고는 갈 수가 없습니다. 다른 길로는 갈 수가 없으니,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걸리지 않는 사람은 내일을 향해 갈수 있지만, 걸려 있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걱정거리가 있으면 다른 일이 잘 됩니까? 안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에 천국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가려면 '마음에 꺼릴 것 없는 완전하고 자유스런 환경'을 지녀야 됩니다. 그러한 천국이 되어야지요. 내 자신이 완전하게 가고 싶은데, 그러자면 걸리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들은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전도할 때에도, 여러분은 하겠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땅 앞에 부끄럽지 않게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권내에 있는 모든 나라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신령한 기도를 한번 해 보라는 겁니다. 하늘적인 내용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 제목이 차차 달라져 갑니다. 무슨 기도를 하게 되느냐? 그 기도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거든요. 좁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청파동 본부로부터 시작해서 민족을 규합하여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세울 것이냐? 민족을 위해서 가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를 위해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런 여러분을 그냥 두어 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 하여 그 책임자와 합심해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하는 그 말은 죽을 때도 갖고 가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 섰을 때 '너는 누구냐' 하게 되면 '아무개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불려 올 게 아니예요? 미국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세계 사람이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과 문답을 하는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하면 '아무개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 '한국에서 왔습니다'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 ' '이렇게 이렇게 통일교회 믿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통일교회 믿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 믿었으면 어떻게 믿었느냐' '어떻게 믿긴 뭘 어떻게 믿었겠습니까? 그저 교회에 들락날락했지요'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믿었으면, 통일교회의 뜻이 무엇 이냐? 너 하나 구하기 위한 것이냐,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냐? ' 했을 때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면 '그럼 잘 믿었구만'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나깨나 이 민족,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당신이 찾고자 하시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이렇게 가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제가 이 민족을 인도해 나가야겠기에 나는 현재 이렇게 하고 있사옵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힘이 백이 되어야 할텐데, 아흔 다섯밖에 안 되오니 다섯은 어디서 보충 해야 되겠사옵니까? 아버지께서 보충을 못 해주신다면 제 동지와 제 혈족에게서 보충시켜 가겠사옵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복귀의 길은 민족에게서 보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피살을 가해 주고,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혈족을 재구성하여서 보강해 나가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정이 갔다는 조건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세계를 위해서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아버지 뜻 앞에 세웠으니, 이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살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민족이 감사하면서 가게 될 때는 ,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충신열사로서 역적의 모함을 받고 매를 안 맞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 모함에 걸리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그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뜻 앞에 있어서 제물되는 입장에 섰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런 생각들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걱정하고, 그것을 하늘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을 놓고 용서를 빌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그는 망하지 않습니다. 제단이 무너지고 제물이 도적 맞더라도, 그 터전을 다시 찾아올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정성들인 핏자국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제물로서 나아가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하는 것과 '이렇게 합니다' 하는 것과 '이렇게 했습니다'라는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이 생명을 걸어 놓고 지금 가야 할 길이, 이 민족을 구하는 길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높고 귀하신 보좌에 계시는 아버님,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시면서 낮고 천한 이 땅을 복귀하시기 위하여 한없는 싸움의 역로(逆路)를 거쳐오신 아버님이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아버님께서 생각하신 본의가 아니라 인간시조의 타락의 결과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실패의 책임이 얼마나 엄청나고 엄중한가 하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만 없었다면 당신이 소원하시던 귀중한 역사 노정이 핏자국과 눈물자국으로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한 많은 당신의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으시지 못하고 홀로 이 세상을 복귀해 오신 아버지의 슬픔과 억울함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고, 그 동안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아버님께서 소원하시는 그 목적과 일치되지 못하고, 시대 시대에 따라 섭리하시는 그 섭리의 뜻 앞에 도리어 배반 하기 일쑤였던 선조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를 한 때, 한 시기가 아니라 수천년 역사 동안 거듭해 왔습니다. 한 번뿐만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을 가(加)하여도 그칠 줄 모르는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인간 가운데 아버님의 분하고 원통한 사정을 아는 아들도 딸도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땅 위에 살고 있는 만민들이 손을 모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회개의 통곡을 연속적인 역사와 더불어 같이한다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죄인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버님 앞에 배반의 역로를 더하여 왔던 사실을 그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사오리까? 다만 아버지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과 동정만이 크고 높으신 그 심중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려,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면서 마음과 몸을 다하여 당신과 같은 사랑을 갖고 구원의 손길을 펼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소서.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세계에 남아지는 민족이 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가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더불어 이 땅 위에 남아지고, 세계와 더불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없고 그러한 민족도 나라도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있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바라볼 적마다 슬픔을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세상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는 아버지의 두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가 얼마나 과중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벗어 버리고 쉬고 싶으시나 벗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6천년 역사의 고빗길을 거쳐 찾아 나온 것은 잃어버린 아담 하나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아벨을 통하여, 노아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예수님까지 연결한 것은 땅 위의 인간들을 종의 입장에서 양자의 입장으로, 양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까지 끌어올려서 본연의 아들딸의 모습을 찾기 위한 역사적인 싸움의 노정이었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아들이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그날은 온 천지가 환희에 벅찬 날이요, 온 우주는 영광 가운데에서 기쁨으로 찬양했어야 할 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홀로 계시는 아버지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 나타났었지만, 나라를 위하여 보내신 아들이었지만 나라가 없었기에 그 아들은 불쌍한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는 민족을 위해 보내셨고, 가정을 위해 보내셨지만, 민족이 없고 상대가 없었기에 불쌍한 예수님이었던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동정하실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탄이 접하여 화살을 퍼부었으며, 몰고 몰아 십자가의 길로 내몰았던 그 역사적인 원한을 저희들은 알아야겠사옵니다.

그날의 한스러움은 아버지에게 슬픔을 가했사옵고, 이 땅 위에 원한의 담벽을 높였사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슬픔을 헐기 위한 싸움의 역사는 또다시 시작되었고, 땅 위에 사망의 장벽을 헐기 위한 싸움도 우리를 통하여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님과 이 땅 위의 사람들이 하나되어서, 하늘에 맺혀 있고 땅에 맺혀 있는 모든 싸움의 여건을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주체적인 입장에 계셨지만 땅 위의 사람들이 그 상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싸움은 어느 한 때도 하늘편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역사가 연장되어 2천년이 흘렀사옵니다. 수많은 국가와 대운을 더듬어 오시면서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중심삼고 머무르실 한 날을 고대하던 그 발걸음이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중 위에 머무신 것을 아는 저희들, 당신의 내적인 동정의 마음을 길이길이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옵니다. 한민족은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경배해야 하고, 이것을 아는 저희들은 생축의 제물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물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 땅 한 곳에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펴신 그 날이 바로 50년 전 이날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불쌍한 모습의 아들을 이 땅 위에 보내주셔서 저에게 개척자로서의 사명을 분부하신 아버지의 그 명령에 따라, 철이 들던 시절부터 이십여 성상을 지낸 지금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남겨진 사탄권세를 무너뜨리는 싸움의 역로를 거슬러 올라오기 위해, 아버님,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사옵니까? 아버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얼마나 분하셨습니까? 얼마나 억울하셨습니까?

그러나 분해도 분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되는 아버지였사옵고, 억울해도 억울한 표정을 할 수 없는 아버지였사옵고, 비통한 사정을 통고할 수 없으셨던 아버지였음을 저희들은 정말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민족이 알아 모셔야 할 때에 민족은 배반하였사옵고, 교단은 갈수록 그 영광을 찬양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늘편을 원수로 몰아쳤던 과거지사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분함이 가중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오늘 반세기의 고개를 넘는 이날을 맞이하여 제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 영광의 손길로써 같이하여 주시옵고, 해방의 첫발을 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천주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의 모습들이 되고, 아버지의 무한한 슬픔을 풀어 드리는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기쁜 날이 되어서 이들에게 쌍수를 들어 축복 하여 주옵소서.

남한 각지에서 이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마음을 모으는 자녀들 위에 아버님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세계 만방에 널려서 이날을 축하하고 이곳을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당신의 외로운 무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눈물의 길을 걸어왔사오나, 이제부터는 눈물의 길을 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이 살아 계신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시어서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같이하신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권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고, 아버님의 전권과 전능, 전체의 역사가 그들과 더불어 동반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영계의 수많은 애혼(哀魂)들의 해원성사를 저희들이 할 수 있게 하시고, 후손에 미쳐질 죄의 뿌리도 저희들로 말미암아 뽑아버리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참부모의 인연을 통하여서 연결되어 있는 혈족이 여기 있사옵고, 참부모의 가정을 통하여 세상에 세운 당신의 족속이 여기 있사옵니다. 이들을 통하여 민족을 해원하시옵고, 아버지 앞에 제물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이들 위에 아버지께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날의 역사를 전부다 청산짓고 새로운 역사를 맞게 하시옵소서. 환희와 영광의 새 아침과 더불어 금후의 1970년대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날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사랑하는 딸을 이 땅 위에 보내신 지 만27주년이 되는 날도 되옵니다. 참부모라는 이름을 세우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안팎으로 준비하셔서, 이 자리에 승리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녀들에게 축복의 은사를 베풀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을 갖추어 주신 이 놀라운 은사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그 사연이야 어떻든 내용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승리의 결과를 가져 온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이제는 걱정 마시옵소서. 아버님, 이제는 기뻐하시옵소서. 다시는 패망의 흔적이 이 땅 위에 없을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승리의 천국은 기필코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의 통일교단이 그럴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되어서, 이것을 중심삼고 횡적인 세계로 뻗어나가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에 당신이 승리하고,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으로부터 자녀의 인연과 축복받은 종족과 민족의 인연이 온 세계에 뻗쳐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들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내적으로는 수많은 종교를 대표하여 통일의 제단이 들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이 여기에 일치된 가운데서 안팎을 하나로 통일시킴으로써, 당신의 권위와 존엄을 찬양할 수 있는 거국적인 터전을 갖추어 만방을 해방할 수 있는 제 3승리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아버지의 은사를 감사하오며, 지금까지 피의 제단을 통하여 모든 역사과정에 의의 터전을 연결시켜 놓아준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을 찬양하옵나이다. 아버지, 그들을 이 아침에 특권적인 은사로 품어 주시옵고, 그들에게 땅을 대신하여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이 시간 부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아버지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고, 그 다음은 열두 제자를 중심삼은 열두 교파와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저 나라의 영인들, 그리고 땅 위에 결속되어 있는 수많은 교도들과 기독교를 중심삼고 방계적인 입장에 있는 4대 종교 위에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내릴 수 있는 특권의 은사를 가하시옵소서. 그들도 평면적 기준을 통하여 땅 위의 자기 후손들과 자기와 인연되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천국을 향하여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동역자가 되고, 민족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땅이 아버지의 뜻 앞에 절대 굴복하는 가운데 당신은 참부모와 더불어 절대 중심이 되시어, 온 천주의 영광을 홀로 장악하시고 주관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제 3해방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을 중심삼고 전후좌우의 날들 위에 아버지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번 기회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축복할 수 있는 터전이 높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도 이후에 찾아올 통일의 운세, 천주의 운세가 하나되어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가 빛나서 태양과 같은 생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온 천주의 권한을 세우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이 아침에 행해지는 모든 전체를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부탁하옵나니,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원한을 맺히게 했던 수많은 원수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수십 성상 뜻을 따라 나오는 노정에 있어서 반대했던 역적의 조상들도, 아버지, 용납하시옵소서. 하늘 앞에 반기를 들지 않고, 순응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면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기의 사명과 본분으로 알게끔 그 마음과 몸을 주관하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들도 그러하옵기를 부탁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부를 맡기오면서 나머지 여생도 당신 앞에 완전히 제물될 것을 맹세하옵니다. 자녀들이 완전히 하나되기를 다시 한번 원하면서, 참부모의 성호를 받들어서 이 아침에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양력으로는 1970년 2월 11일, 음력으로는 1월 6일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이 태어난 지 만 50년을 맞는 날입니다.

반세기 동안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주신 연고로, 오늘날 우리의 뜻은 세계적인 기반을 닦게 되었고, 이제는 뜻이 가는 길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승리의 결과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터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터전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분이 나를 따라오면서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다하여 이만한 기반을 닦을 때까지 순응해 준 그 노고에 치하를 드립니다. 또한 역사과정의 수많은 우리의 선한 선조들과 이날의 승리를 바라면서 죽어갔던 모든 순교 선열들이 이 땅에 승리할 수 있는 한 터전이 닦여진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배후에서 영적으로 협조해 준 공로 앞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와 같은 감사의 터전 위에 우리들에게 한 가지 소원이 남아 있는 것은, 우리들의 후손이 되고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의 후손이 될 수 있는 세계 30억 인류를 승리의 족속으로 세워 아버님께 몽땅 바쳐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님 앞에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현재 인류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 1대나 3대 안에 이 세계 복귀노정을 완결지어야 할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기해 여러분 앞에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래 인간에게 맡겨진 사명

이 땅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존재할 수 있는 원인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나라,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계도 결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환경의 인연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그 환경이 갖추어질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의 사회 형성, 하나의 국가형성, 하나의 세계 형성을 두고 볼 때에, 그것을 이어오는 것은 물론 우리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그 인간이 형성될 수 있는 근본 원인은 인간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 존재의 입장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형성될 수 있는 그 동기와 내용이 있어야 되고, 원인이 필히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개체 가운데는 무한한 소망이 있고, 무한한 욕망이 있고, 무한한 이상이 있습니다. 결과의 실체인 우리 인간이 이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럴 수 있는 원인의 실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 원인의 실체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神)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전체적인 동기이며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인 하나님께서 그런 내용을 지니셨기 때문에, 결과되는 인간도 그와 같은 내용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인된 하나님과 결과적인 우리 인간이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귀결점이 인간세계를 중심삼고 나타나야 됩니다. 이것이 인간을 찾아온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철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그 씨를 통해서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함이듯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세운 것도 그 목적이 아담 해와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를 통하여 거두어야 할 세계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세계인은 본래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전체적인 상징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전체적인 상징체에게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 동산을 온 세계를 중심삼고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완성시켜야 하는 양세계에 대한 사명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 개체가 지니고 있는 사명은 우리가 칠, 팔십년 혹은 일세기 미만의 생애를 지내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개체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천주사적인 전체 이념세계를 완성하고 완결시키기 위하여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난 목적 이요, 살아가는 목적임을 다시 한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엄청난 것이 인류 시조에게 생을 지니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 위업이었음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은 인간이 생을 지니고 그 생의 과정에서 세계화를 이루는 그날을 얼마나 바라셨겠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소원과는 정반대로 비통한 슬픔의 출발을 보았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 인류와 만우주에 있어서, 또 이 우주와 인연되어 계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요, 견딜 수 없는 비통한 사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슬픔과 이 비통함이 역사의 어떠한 슬픔과 비통함보다 컸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서 이 비통함과 슬픔이 제거되는 날을 맞이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행복의 요인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이 품고 있는 꿈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꿈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이 필연적 결과인 것입니다.

통일교단의 사명

그러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생애를 바쳐 살아가는 하나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상세계의 실현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제일 동기되시는 하나님에게 맺혀져 있는 슬픔과 비통함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 생애의 목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인생행로에 있기 때문에 자고로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남아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슬픈 인생이라는 것은 슬프신 하나님이 동기의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들이 갈 길이 어디냐? 우리는 행복의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없는 타락의 후예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락으로 인한 원한의 근거를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고, 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해결지을 때까지 몸부림치며 찾고 또 찾아 넘어가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나고, 그러한 자리에서 살고, 그러한 자리에서 죽어간 역사적 사실을 바라볼 때에, 이 땅 위에서 이러한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느냐? 이러한 원한의 근거를 파탄시켜야 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성현이 있었느냐? 또 그러한 책임을 진 구세주가 있었느냐?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이요, 땅의 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길을 출발하였으되 그 목적을 성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에 널려 있는 종교는 석양길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의 비통함과 슬픔을 제거하기 위해 출발하였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기에 동역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종교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수많은 종교도 그 사명적인 책임이 이 원한의 근거지를 폭파시키는 데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정을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 통일교단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이상세계의 실현이 아니라, 이 원한의 근거지를 폭파시켜야 할 것이 우리의 제일 사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50년을 넘기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회개해 나온 그날 그날들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기쁨의 날들이 아니었으나, 역사적 흐름 가운데서 맺혀진 사연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 역사과정에서 남아진 원한의 근거 지를 폭파시킬 수 있는 해원성사의 날들이 되기를 바라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우리 앞에는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 평탄하지 못하다는 것을 현대의 세계 정세를 통해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가 가야 할 운명이 평탄하지 못한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인류가 가야 할 금후의 역사가 암담하기에 하나의 등불이나 횃불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어둠가운데서 허덕이고, 사망권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의 무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가일층 결의하여 이 어둠의 행적을 타개하고, 원한의 구덩이를 메워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개척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결과적인 승리의 터전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그 어떠한 것을 추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승리의 결과로 남아질 수 없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여러분 앞에 말하고 싶은 우리의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남아진 하나님의 슬픔을 제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단은 이러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우리들은 민족의 한스러운 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민족이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세우시어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이 민족 앞에 한이 되는 요건이 있으면, 그것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것을 민족이 책임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효도를 다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다고 부르짖는 통일의 역군들을 통하여서만이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민족의 슬픔을 도맡아 책임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드릴 수 있는 민족적 해원의 기반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민족 해원성사를 위하여 1970년대를 맞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최후의 통첩

나 자신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1970년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50여 년의 생애를 지내면서 나머지 여생을 앞에 놓고, 어려운 민족의 해원을 다시 맡아서 이 민족의 한을 폭파시킴으로써 우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승리의 기점을 쟁취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게 될 때 하나님이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인연과 하나님의 재출발의 분부가 그 자리에서부터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죽든지 살든지 이 민족의 어려움을 책임져야만 되겠습니다. 세계를 거쳐가야 할 원한이 아직까지 하나님 앞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민족의 원한을 책임짐과 동시에 세계에 남아진 원한을 책임질 수 있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나라는 많더라도 그 중에 책임질 수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더라도 그 가운데 어떤 종교도 책임질 수 없는 시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무리는 오늘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죽는 것은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죽는 것도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여러분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된 제물이 되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무리가 되었다 할진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고스란히 바쳐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제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크면 클수록 이 원한을 끊고 해결시켜 나가고야 말 사랑의 시기가 속히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원한의 조건들을 탕감해 주고 싶어하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들이라고 축복을 해주셨으나 사랑하는 혈족이라고 축복하신 이 무리들을 또다시 죽음의 자리에 내세워야 하는 비통한 입장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난 그날부터 행복을 추구하고, 이상세계의 모든 영광을 그들 앞에 상속해 주고 싶은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은 컸지만, 그럴 수 없는 아버지의 비참하고 비통한 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의 고개를 넘어 원수의 적진을 전부다 소탕하고, 원수의 후예들이 자연굴복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굴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히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수고한 아들딸들을 내세워 자랑하고, 또 천상에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들을 세워 축하하는 기념일을 책정하자고 하는 날을 맞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야 할 행로가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과정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나온 과정을 생각하여 볼 때, 개인으로 싸울 수 있는 한의 구덩이는 메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중심삼은 한스러운 고빗길을 이미 넘은 기준 위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럴 수 있는 권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중심삼은 기준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앞에 분부하는 특권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이 비참함과 원한이 남아 있는 구덩이를 메우고, 막힌 담을 헐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는 최후의 통첩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명심해야 될 것

1970년대에는 이 민족 앞에 가로놓인 원한의 구덩이를 어떻게 타파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애를 바쳐 싸워 나온 그 경험에 온갖 정성을 가일층하여서, 승리적인 결정을 다짐해야 할 것이 선생님에게 남아진 생애의 사명이요,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그대들의 사명인 것을 명심해야만 되겠습니다.

한국은 불쌍한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불쌍한 나라입니다. 사방이 원수들에게 포위당해 있습니다. 우(右)로도 갈 수 없고, 좌(左)로도 갈 수 없고, 앞으로도 갈 수 없으며, 뒤로도 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단 하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에서 비상천(飛上天)하든가 날아 옮겨가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죽음의 고비고비가 우리를 놓고 울타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과 더불어 깨지고 망할 수 있는 각오를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더불어 망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깨지는 자리에 섰을 때 부활의 역사가 있었듯이, 이 민족의 운명도 그와 같은 운명을 띠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한국이 제 2이스라엘권의 역사를 상속받은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예수님이 민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개인으로 넘은 것을 대신하여 국가적인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넘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에도 한국을 위하여 먹어야 됩니다. 한국을 위함은 세계를 위함이요, 세계를 위함은 하나님을 위함입니다. 이처럼 전체가 하나로 결속된 자리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 식사를 대하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호흡을 통하여 울려 나오는 고동소리를 이 민족을 통하여 해원성사하게 해 달라고 분부하시는 하나님의 절규로 듣고, 내 피를 퍼부어 이 민족의 한을 해결짓겠다고 제물의 자리를 솔선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축하해야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기쁨의 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이날이 우리 자체의 기쁨의 날이 되지 못할지라도 미래의 기쁨을 대신할 수 있고, 또 상속받을 수 있는 날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회상하여 마음속에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내가 아무리 비참하여도 우리의 비참한 동기의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억울하여도 우리의 주체되시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이 땅 위에서 죽음길을 간다 하더라도 일생의 죽음은 한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영생의 노정을 바라보며 나오시는 길 앞에 있는 타락한 후손들을 사망권내에서 부활시키기 위해 수고해 오셨습니다. 사망의 고빗길을 거치지 않고는 부활의 옥동자를 볼 수 없는 것이 천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죽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숱한 죽을 고비와 죽음을 체험하게 하지 않고는 부활시킬 수 없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몇천만 번 죽음의 수난을 당한 아버지의 내적 심정의 상처를 헤아려 볼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한 번 죽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상심하시고, 아버지 앞에 피해의 결과가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길을 맞이해도 한을 가지고 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며 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죽어 민족을 살릴 수 있다면 그 민족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실 것이고, 내가 죽어 세계를 살릴 수 있다면 그 세계는 하나님과 함께 남아질 것입니다.

나는 갈지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남아지는 일은 영원한 승리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남을 수 있는 민족을 바라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고개를 결단지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그 내심의 애절한 사연은 천정의 사연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은 혼자요 하나님은 무한인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고통은 한번이요, 하나님의 죽음의 고통은 무한인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마음과 세포와 뼈에 같이 느껴지는 체휼적인 자리에 들어간 예수님은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여 책임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충(忠)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이요, 또 세계적인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를 원하는 사람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그 반열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성현이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행적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되고, 하나님 혈족의 왕자 왕녀의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걸음 가운데 천만보의 죽음길이 가로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가치기준으로 봐도 응당 비례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유업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것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위하여 죽을 것을 몇 번이나 결심해 보았습니까? 여러분들이 뜻길 앞에 이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겠다고 얼마나 결의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어떠한 기반을 닦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높은 명망을 남겼다고 해도 그것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단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한의 터전 위에서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르어 그 원한의 분량을 감소시켰느냐 하는 그 양이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동기요 재료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절대적인 자랑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민족해방을 위하여 승리적 충의 전선을 결정해야 합니다. 1970년의 연두에 이날을 맞아 우리들이 모여 마음을 아버지 앞에 향하고, 하나님 앞에 자세를 갖추고 옷깃을 여미면서 내 자신은 아버지 앞에 바쳐진 몸인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불행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한을 감소시키기 위한 탕감의 제물로서 바쳐진 몸인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이 걸어온 길이 그러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단지 이 민족 앞에 남아진 해원의 날을 고대할 뿐이었고, 세계에 남아진 해원의 날을 고대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전체의 목적인 것을 이날을 기하여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유업으로 남겨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복도 아니요, 하나님의 위업도 아닙니다. 아직까지 원한의 근거로 남아 있는 세계적인 한입니다. 그것을 유업으로 남겨 주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축하하는 이날을 맞이하여 나는 무한히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서러움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우리들로서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을 알고, 감수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의 한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상대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하나의 친구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의 제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의 아들딸을 찾아 나왔습니다.

이 아침을 맞이하면서 심정의 절대적인 자리에 있는 그 하나를 찾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 서러움보다도 6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그럴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앞에 나도 미급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서러움이 더욱 큽니다.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한을 남기고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남기고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남기면서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가든지 하나님의 한을 취하면서 죽고, 살고, 가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소원하시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임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명심하면서, 여기에 서있는 스승을 생각하는 것이 이날을 축하하는 자로서의 가치를 자각하고 그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 가정을 뒤돌아보면, 사탄권세의 울타리 속에, 사탄의 철망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낳아 주고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키우기 위하여 밤낮으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에 대한 수고의 대가를 원치 않으면서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을 돌아보게 될 때에도, 이들은 우리와 같이 동반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본을 갖추어서 전진하는 명령의 방향을 갖추지 못한 자리에 선 것을 볼 때에 이것이 또한 비참한 것입니다.

나를 낳아 준 부모도 그렇지만 한 부모의 혈육을 받고 나온 형제도 아직까지 사탄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또한 형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친척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며 세계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 유업을 상속받는 길

이 세계의 죄악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인간 개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해방을 추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해방을 가져와서 자기 형제, 자기 가정, 자기 종족, 자기 민족, 자기 국가를 찾아 나와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이 국민이 되고, 아들이 되고, 형제가 된 의리요 또한 그 책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가정에 대한 원한의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요, 종족에 대한 원한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요, 민족이 대한 원한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요, 국가에 대한 원한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제 중에 기억될 수 있는 형제가 되는 길이요, 친족 중에 기억될 수 있는 족장이 되는 길이요, 민족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책임자가 되는 길이요, 국가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선군(善君)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전체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수고의 대가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영광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돈을 투자해서 제2의 수입으로 이익을 추구하듯이, 오늘 우리의 생애를 바쳐서 그 대가를 치르라는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니요, 망하는 길이 아닙니다. 미래에 영광의 대가로써 갚아 줄 수 있는 하나의 준비된 유업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흥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당신의 혈족, 당신의 친족, 당신의 선민을 무정하게 죽음의 길로 내몰아 오셨던 것입니다. 미래에는 선민보다도 더 큰 상급이 있기 때문에 선민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국가보다도 더 큰 상급이 있기 때문에 국가를 희생시켰고, 세계보다도 더 큰 상급이 미래에 남아져 있기 때문에 세계라도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앞에 이러한 것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완전히 알았다면, 그 대가를 치르는 데 있어서 서슴지 않고 몽땅 치를 수 있는 결의를 이 아침에 하기 바랍니다. 이러한 대가를 책임지고 치르겠다고 나서는 길이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노정이요, 그 책임을 감당하는 자리가 통일신도들이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야 할 책임, 승리를 결정지어야 할 책임을 완수하지 않고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제3 해방의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왜정치하에서 제1의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2의 경제적 해방을 표준으로 하여 나가고 있지만, 제3의 정신적 해방을 갖추어야 할 문제가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제3의 해방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책임진 우리들은 제3의 해방을 맞이하는 그때까지 남아질 수 있어야 하고, 그때까지 책임진 싸움노정에서 언제든지 주체성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3의 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 주인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는 민족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운세를 맞을 수 있는 경계선에 도달하여 있습니다. 국운으로 보나, 사회적인 모든 민심으로 보나, 개인적인 마음으로 보나, 이 모든 것이 막다른 골목에 다 달았습니다. 끝을 맺어야 할 접경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는 시간은 삼팔선을 중심하고 이북에서 이남으로 넘어오는 그런 시간과 같이 절박한 시간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닦았다는 사람은 그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계선을 넘는 사람치고 자기의 생명과 재산 전체를 가지고 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경계선이 험하면 험할수록 내 생명을 어떻게 지니고 넘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경계선을 넘으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가 되지 않고는 넘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돌파하는 한 순간을 갖지 않고는 평면적인 환경에서 소원의 무대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넘어야 할 경계선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역사적인 섭리도 그야말로 접경에 다달아 있습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온 지금은 삼팔선과 같은 경계선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넘어야 할 경계선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한 개인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가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한 민족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1970년대를 통일의 시대, 또는 통일의 연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듣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섭리로 볼 때에도 통일의 연대인 것입니다.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해원성사하는 해방의 기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하여 가야 되겠습니다. 이 경계선에 원수의 보초가 있고, 원수의 복병이 있으면 이것을 무자비하게 폭파하고, 밀어버리고 넘어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나 혼자의 몸으로는 약하여 그들을 무찌르기에 부족하다면 우리의 편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할 엄숙한 사명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누가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하나의 교파를 세우고 싶어서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번 만번 용납하면서라도 기성교단과 합하고 싶고, 그들을 하늘같이 모시면서 뜻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들은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로운 길로 쳐 몰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길로 쳐 몰았던 것입니다.

선생님과 통일교단이 싸워 나온 길

그렇지만 나는 외로워해서는 안 될 운명이었습니다. 죽어서는 안 될 운명이었습니다. 외로워했다가는 기성교회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외로워도 외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만나게 될 때에 복수라든가 탕감이라는 조건을 남기고 만나면 하늘에 한이 남아지기 때문에, 원수를 위하여 뒤를 바라보면서 복을 빌어야 할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이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

이런 쫓김의 길, 몰림의 길, 추방의 길을 피해서 이제 해안선에 다달았습니다. 그리고 해안선의 맨 끝에 머물러 섰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새로운 한 아들의 모습을 세워 새로운 장비를 주어서 민족대결이라는 운명을 걸어놓고 지금까지 나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원수의 무리를 헤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했습니다. 종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그런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십년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그러한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그늘에서 산 사나이였습니다. 나에게 원수가 많더라도 그 원수를 갚아서는 안 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며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오늘 이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을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협조를 받아서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나이가 홀로 모든 정열과 열의와 성의를 바쳐서 갖추어진 기반인 것입니다. 그 기반 밑에는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터전이 천길 만길, 천년 만년 깃들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그 수고의 결실에 한 꺼풀 씌울까 하는 문제를 일생의 책임으로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의 그늘 아래서 소생(蘇生)의 한 날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온 것입니다. 원수들이 버티고 있는 바위 밑에서 생명을 가진 하나의 씨의 모습을 갖추어, 가느다란 새싹으로 그 바위를 뚫고 햇빛이 스며드는 길을 찾아 나오듯이 통일의 교단을 그렇게 찾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단이 이루어진 거기에는 바위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모습, 혹은 구부러진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우리의 가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방 이후에 민족의 서러운 역사를 대표적으로 책임지고, 민족이 소망하는 터전을 바라고 나온 길이 있다면 그것은 통일의 길이요, 그러한 모임이 있다면 통일교단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하나님 앞에 당당히 증거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온 통일교회이기 때문에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지방에 전도나갔을 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몰림을 받았습니다. 조롱받는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이슬같이 맺혀 떨어지는 서글픔을 품고 나왔습니다. 아침 햇빛을 보면서 내일은 광명한 햇빛을 맞을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을 소망삼고 오늘은 슬픔의 날, 오늘 이 하루는 인내의 날, 오늘에 찾아오는 밤은 십자가의 시간으로 삼아 이것을 극복하 기를 수 십여 생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몰림을 받던 통일의 무리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애국애족하는 무리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나라를 위해서 모두 노력한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국에서 어떤 종교단체를 말한다면 통일교회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배척하던 무리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써 환영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때로는 내 자신도 앞이 캄캄한 장벽에 부딪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적마다 하나님은 죽지 않았다고 하시던 그 음성이 나의 뼛골에 아직까지 잠겨져 있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나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서글픈 사정을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나만을 알고 있어야 하고,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분부하시던 말씀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여러분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스승에 대해서도 평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살아 왔습니다. 책임자들을 대신하여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자격과 비판할 지성을 갖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내가 그런 입장에서 자신이 불쌍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보다도 더 불쌍한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이날 우리는 역사의 분함과 더불어 지금까지 참아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무한히도 가슴 아프게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역사상의 그 어떤 아들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효자 중의 효자가 되고, 효녀 중의 효녀가 되지 않았느냐? ' 고 하며 당당히 나서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그것을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스승이 지닌 전통적인 사상을 인계받으라

이러던 통일교회가 이제 세계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종교단체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어떤 모략 중상을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총칼로 습격을 하고,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누른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 터전을 정복하지 못 할 것입니다. 정복의 칼이 도리어 우리의 세계적인 기반 앞에 흡수될 수 있는 날이 불원간 올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딪쳐 오면 올수록 그런 날들의 끝이 가까운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총단결해야 됩니다. 주체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천만을 휘어잡고 끌려가느냐, 끌어오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총칼을 들고 무력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자신을 몽땅 바칠 수 있는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을 위하여 이 아침과 더불어 다짐하고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승공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지방에 있는 순경들까지 비웃었습니다. 어떤 지서 주임이 우리 식구의 멱살을 잡은 일도 있었습니다. 의붓자식 취급을 받고,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억울한 자리에서 매를 맞은 역사가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하지 않는 일을 우리들이 한다고 해서 거지나 의붓자식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또한 서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원통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원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불쌍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

어떤 나라의 군왕이 나라가 망하여 도망가다가 원수의 총칼 앞에 쓰러졌다면 그 군왕의 아들로 태어난 왕자는 원수 앞에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우리는 그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제 2의 죽음을 당하지 않은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철부지한 우리들이 지방에 가서 몸부림쳤습니다. 우리 소년소녀들이 나가서 활동할 때에 한편에서는 반대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들이 보고 싶어서 밤에도 찾아왔습니다. 부모들이 반대해도 그 2세들은 수리들이 배고프고 굶주리는 것을 염려하여 손수건에 먹을 것을 싸다가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안타까와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여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전권을 지니신 아버지가 그런 비참한 자리에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할 때, 그 위신이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에 느낀 체휼의 마음이나 그때에 이루어진 환경의 인연을 자랑하면서도 그 환경의 배후에서 비참하셨던 아버지의 사정은 우리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과거, 혹은 몇 년 전의 1960년대가 좋았다고, 선생님과 더불어 피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우면서 기도하던 그때가 좋았다고 추억의 한 날을 그리워하는 여러분이 되어 있습니까? 물론 그것은 추억할 날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비참하셨고 억울하셨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 그날을 기념하고, 그날을 회상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리하여 승공활동은 4년이 채 못 되어서 이 민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하는 일은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민족을 위하여, 천대를 받으면서도 민족을 위하여, 빚을 지면서도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우리는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과거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나는 돈이 있다고 해도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 것입니다. 스승을 기억하고 스승이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것보다 스승이 지닌 전통적인 사상을 인계받는 것이 더 귀한 것입니다. 그러한 부활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스승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하늘을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하라

이제 우리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에 가졌던 자세를 그대로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1970년대는 민족의 엄숙한 사명을 위하여 옛날에 충신열사들이 갔던 그 기준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가던 모습, 유관순 열사가 가던 모습 이상의 모습을 지니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 시대에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원수가 없다고 해서 안일의 터전을 닦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없어야 할 후손을 위하여 빚을 청산짓는 책임을 다하겠다고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늘을 위해서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온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하나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하나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기도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축전을 통하여 '참부모님 만수무강하옵소서'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축하는 무서운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은 역사의 수많은 고빗길을 넘어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 인연을 생각해 보면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연이요, 그 인연을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로 지닐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고요한 새벽에 홀로 다짐했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더라도 나는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이 길을 저버리더라도 나는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민족을 원망하더라도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족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자기가 수치스러운 옷을 입은 것과 같이 느낄 수 있는 애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보면 자기 일신을 투입해서 민족의 수치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싸우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나라를 앞에 두고 가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세계를 앞에 두고 가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비통함과 서러움을 탕감시켜 드려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고 나면 최후의 해방의 종소리가 이 땅에 울려퍼질 것이요, 영원한 승리의 깃발이 그곳에서부터 나부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깃발은 우리의 문화와 더불어, 우리의 민족과 더불어, 우리의 혈족과 더불어, 이 세계에 영원히 영원히 새겨야 할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세계에 남아질 후손들 앞에 선한 조상이라고 추앙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 시대의 공신들이 되기 위하여 오늘날 있는 정성을 다할 것을 이 시간에 결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날 여기에 모여서 추구하는 의의 중의 의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을 다짐하는 일이요, 책임을 완성시키는 동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러한 결심을 하는 의미에서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합시다.

기 도

아버지, 주신 손길을 기억하면서 저희는 아직까지 심장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고동소리를 통해 저희의 세포가 살아 있는 것을 자각하옵니다.

살아있는 자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는 후대에 계승하는 것입니다. 원한의 세계에 고비가 생길 때에는 둘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상대적 세계가 원한의 세계일지라도 살아 있는 저희 자체는 하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둘로 갈라진 원한의 세계를 하나되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터뜨려 내는 일을 저희들은 계승하겠다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기 위하여 쌍수를 들었사오니, 저희들, 당신의 마음을 닮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을 닮아 용자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소원 하시는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진 수난길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당신의 후계자가 되고, 모진 싸움 중에도 기량을 가지고 이 싸움을 치러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날 대한민국에 올 수 있는 새로운 운세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세계의 운세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같이하게 하시옵고, 이날 천운이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같이하도록 통일교단과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을 기쁨의 한 날을 바라고 탕감하며 극복해야 할 고비의 과정을 힘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용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중심한 40개 국가와 120개의 성지가 연결되어 천운을 모셔들이는 그 인연이 승리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 영광을 당신 홀로 거두시옵소서. 이 모든 전체를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기를 바라오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금년에는 우리가 세계적으로 소문이 날 만한 일을 한 가지 하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어요? 「축복입니다」 예, 축복입니다. 약 700쌍이 합동 결혼식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축복 대상자들이 취해야 할 마음 자세

여기에 처녀 총각들이 많이 왔는데, 축복에 대해 궁금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면서 언제 처녀 총각들이 다시 이렇게 모일 것인가 하면서 왔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랬을 거예요.

3월부터 전국에 있는 우리 청년 남녀들을 불러다가 특별 수련을 시킬 계획입니다. 그런데 700쌍을 짝지워 주려면, 하루에 다섯 쌍씩 결정한다 하더라도 140일 가량 걸립니다. 약 5개월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들이 5개월 동안에는 잠잘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항상 축복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한 5개월 동안 씨름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처녀 총각들이야 축복받는다고 좋아하겠지만 이것을 책임지고 전부다 치다꺼리해야 할 선생님에게는 크나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에게는 왜정시대에 왜놈들한테 고문을 받으러 끌려 들어가던 거와 같은 기분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나가느냐를 생각하면, 독가스가 가득찬 긴 굴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특별수련회에 참석할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때에 와서 제발 속썩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선생님의 이 사정을 알아주었으면 하여 이 부탁을 드립니다.

전례를 보면, '축복받을 상대자를 결정해 주기 전에는 아버님이 택해 주시는 상대자는 틀림없는 사람일 것이니 절대 순종하고 절대 복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자기의 남편이나 자기 색시를 결정하는 문전에 가서는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상대편의 사진을 척 보여주며 '이 사람 어떠냐' 하면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어디 봅시다'라고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전부 인상을 쓰고 바라봅니다. 그런 날은 선생님이 하루종일 기분이 나쁩니다.

여기에 온 처녀 총각들은 제발 선생님에게 불려와 심사받을 때 선생님이 제시해 주는 여러분의 남편될 사람이나 아내가 될 사람의 사진을 대할 때 좀더 기쁜 표정을 지어 주기를 바랍니다. 전부다 와 가지고 선생님이 제시하는 사진을 쓱 보고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은 사람 같으면 좋아 하고,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못한 사람 같으면 얼굴 표정이 찌그러지는 거예요. (웃음)

이상적인 상대

많은 사람 가운데 마음대로 짝을 고르라고 하면 자기에게 이상적인 짝을 못 고른다는 것입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고, 남쪽이 있으면 북쪽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형의 사람이 동쪽형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서쪽이 없기 때문에 이상적인 만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남쪽 형의 사람이 남쪽형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북쪽이 없기 때문에 이상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형의 사람은 서쪽형의 사람을 찾아가야 되고, 남쪽형의 사람은 북쪽형의 사람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얼굴이 말처럼 길게 생긴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말상보다 더 긴 상이 무엇입니까? 메뚜기상이지요? (웃음) 그런데 그 사람을 메뚜기상의 사람과 맺어 주게 되면 그들이 어떤 형의 자녀를 낳겠습니까? 어떤 형의 자녀를 낳겠나 생각해 보세요. 아마도 틀림없이 도마뱀 같은 형의 자녀를 낳을 것입니다.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자연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다 반대형을 맺어 주는 것입니다. 말같이 생긴 사람에게는 호박이나 바가지를 타 놓은 것처럼 옆으로 퍼진 사람을 맺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로 반대형이 잘 조화되어서 열을 낳으면 그 중에 한 둘이라도 쓸 만한 자식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좋다는 사람을 그냥 맺어 주게 되면 열을 낳으면 열 전부다 못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짝을 맺어 주면 무엇을 믿고 결혼하느냐? 자기 눈으로 봐서 좋은 사람보다도 앞으로 좋은 아들딸을 낳기 위해서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위해서 결혼하라는 거예요. 만일 여러분들이 서로 좋다는 사람과 맺어 주어서 아들딸을 낳았는데, 세상의 남자나 여자나 어느 누구도 바라보지 않을 그런 아들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보다 더한 불행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생 동안 불행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불구의 몸이거나, 또는 자기에게 어떤 결함이 있어서 느끼는 불행보다 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결혼은 후손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생김생김은 그렇지만, 그들이 가진 좋은 점만을 닮은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사람끼리 어떻게 짝을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축복은 후손을 위한 것

선생님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결혼시켜 주었습니다. 결혼을 시키는 데에는 선생님이 세계에 기록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700쌍을 결혼시키게 되면 그것은 아마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얼마전에 전남 순회를 마치고 왔습니다. 거기에 전에 축복받을 때 기억나는 어떤 색시가 있었는데, 여기에 그 남편이 왔는지 모르겠어요. 혹 그 색시도 같이 왔는지 모르겠구만. 그 색시가 어떤 색시였냐 하면, 남들이 다 골라 가고 남은 색시였습니다. 그런데 책임자로서는 심정적으로 그 사람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난 사람은 아무렇게나 굴러 보내더라도 데리고 갈 사람이 많습니다. 데리고 가지 말래도 싸움하면서 데리고 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물건과 달라서 싫어 하는 사람은 제사지내며 데리고 가라 해도 안 데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골라 가고 맨 나중에 한 두 사람 남았는데, 그 색시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자의 눈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고운 인물을 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남자의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하면 누구한테 그 여자와 결혼하라는 말을 못 하겠더구만요. 그런데 그 사람을 어떻게 중매를 서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중매해야 할 입장이라면, 어떻게 말을 꺼내겠습니까? 여자나 남자나 하나같이 선생님을 믿으면서, 자기들에게 최상의 상대를 짝지어 줄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 눈은 높아 가지고 바라보는 기준은 굉장한데, 그보다 아래 기준에 있는 사람을 짝지어 줄 수 있겠느냐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려면 최고의 기준에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짝지어 주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말을 했느냐? 이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틀림없이 2세는 멋진 미남과 아름다운 미녀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와 결혼하여 그런 자녀를 낳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여자와 결혼해서 함께 살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자기들을 닮았으면 어떻게 합니까? 틀림없이 그는 선생님에게 항의할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나를 속여 가지고 결혼시켰다고 얼마든지 항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미인을 낳았다 하면, 모든 것은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각한 입장에서 그들을 짝지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전에 전남 순회하다가 잠깐 들르는 중간 역인데, 우리 식구들이 나왔다고 해서 쓱 보니까 그 색시와 그 남편이 나와 있었어요. 대번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데 애기를 데리고 왔나 하고 그 색시를 보니 애기를 업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야 인사를 하든 말든 그 색시에게 가서 '어디 보자' 하고 그 애기를 들여다보면서 '그놈 한번 잘 생겼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색시에게 용기를 주고 왔습니다. (웃음, 박수) 자, 그러니까 이에 대해서는 웃고 넘어 가자구요.

민족 구원과 연결되는 합동결혼식

시간이 없지만 700쌍이란 말이 나왔으니, 아예 이것을 얘기하고 넘어갑시다. 오늘은 내가 새신랑이 된 기분입니다. 내가 이런 옷은 처음 입어 봅니다. 재봉춘(再逢春)이라더니, 그야말로 재봉춘한 기분입니다. 그렇잖아요? 「더 젊어 보이십니다」 새신랑 같은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새신랑될 많은 사람을 대표해서 축하의 말씀을 한번 해봅시다. (박수)

앞으로 700쌍을 축복한다 할 때, 축복받을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오면 이 자리가 꽉 차겠습니까, 안 차겠습니까? 얼마나 되겠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곳의 두 배 만큼 넓은 곳에 들어가면 그 자리가 다 차겠습니까, 안 차겠습니까? 여기에 한 5백명, 480명 정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모인 여러분 수의 몇 배나 됩니까? 3배가 넘습니다. 그 많은 사람 들을 결혼시키는 데, 하루에 한 쌍씩 결혼시킨다면 2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여기에 그들을 키우기에 수고한 아버지 어머니만 동원한다 해도 2천8백명이나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거기에다가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동원한다면 얼마나 됩니까? 5천 6백명이 된다는 겁니다. 굉장하지요?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보통 아들딸을 몇이나 낳았겠습니까? 요즈음 한국이 산아제한을 시도하고 있지만, 네다섯 정도는 낳지요. 그러니, 평균을 네 명으로 잡아서 그 수를 계산해 보면 얼마나 되느냐 하면, 5천 6백명이나 됩니다. 이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직계 아들딸들만, 즉 전부 다 시집 장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로 계산한 것입니다.

만일 그 절반만 시집 장가를 갔다고 하더라도, 그 며느리 사위까지 더하게 되면 그 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이 700쌍의 부모들을 중심삼고 그들의 사위나 며느리, 부모 형제들, 그리고 사돈네와 그들의 가족들, 이렇게 700쌍을 중심삼은 직계 가족들만 합하더라도 10만이 넘는 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할아버지대까지 합하게 되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으며, 그들에게 딸려 있는 아들딸, 손자들까지 포함하게 되면 20만이 훨씬 넘을 것입니다. 직접 관계된 사람들만 해서 20만 이상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하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다 연결되는 것입니다. 팔도강산을 다 덮고도 남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포중에도 왕대포를 쏘는 기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제외해 두고 라도, 한 동네에 축복받은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으면 무시하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은 동네뿐만 아니라, 그 면에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왜 소문이 났느냐 하면, 축복받은 가정이라 하면 지나가는 아주머니들도 한번 들러보고 하니 전부다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고 사는 부부가 생활하는 모든 것을 지내면서 본 결과, 며느리 잘못 얻었다는 시부모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사위 얻은 사람은 여러 사위 가운데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아 얻은 사위가 제일 낫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사실들이 일반 여론화될 수 있는 단계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이 700쌍 합동결혼식을 할 때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하게 될지, 효창공원에서 하게 될지, 서울운동장에서 하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하면 좋겠습니까? 「서울운동장에서 하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축복을 한다 하게 되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기 동네의 어떤 총각이나 처녀가 서울에 올라가서 어느 날 몇 시에 합동결혼식을 한다고 잔치를 하게 되면,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이 합동으로…. 큰 경사가 날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에 잔치가 열리면 자기 집에 먹을 것이 없는 사람도 며칠 동안은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아무개네는 아들딸 시집 장가를 보내면서도 떡 하나도 안 하고 부침개도 하나 안 부치고, 아들딸만 쏙 빼서 서울로 데리고 가서 합동결혼식을 시킨다고 흉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동네에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한 부부가 있는 데, 동네에 소문난 효부라더구만' 하면서 뭐가 어떻고 저떻다고 칭찬을 하게 되니까, 동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까지 몽땅 자동적으로 선전이 되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선전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한 백호 되는 동네라면, 그 한 가정으로 말미암아 백 집이면 백 집 전체가 들썩들썩할 것입니다.

펑과자 잔치라도 해야

이번에 축복받기 위해 올 신랑 각시들은 그냥 오지 말고, 잔치를 열어 동네사람들에게 한턱 내지 못하겠으면 펑과자라도 두어 가마니 튀겨 놓고 광고를 써 붙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날 몇 시에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는 데 여기에서는 잔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펑과자 잔치를 한다는 글이 라도 써서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백 원 안 들어갈 것입니다. (웃음)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신랑 각시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서울로 올라가고 없으니,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붙잡고 술을 사 달라고 할 수 있어요, 떡을 사 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전국적으로 펑과자 잔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웃음) 세상에 잔치상에 펑과자를 놓고 잔치하는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도 여기 있다 이겁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먼저 와서 얻어먹겠다고 야단일 것입니다. 또, 아무개 아들 잔치 하면 떡이라도 얻어 먹겠다던 할아버지들도 그 펑과자를 얻어먹기 위해 올 것입니다. 이렇게 한판 벌이자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이 사람들이 펑과자를 먹었을망정 잔치날에 얻어먹은 것은 틀림없으니까, 합동결혼식을 하는 시간이 되면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을 향하여 아무개 이름을 부르며 '복 받으소' 라고 축복을 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축하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만약 그 동네가 백 집이고 한 집 식구가 다섯 사람만 되더라도 오백명이나 되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서울을 향해서 그 사람을 위해 축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지금도 소문이 나 있는 데 앞으로 9월이 되고 12월이 되면 그 소문이 얼마나 자자하겠어요? 지금도 소문이 났지요? [주간 여성]이 소문을 잘 내놓았거든. 그러니, 사람들이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한다고 하더구만' 하면 그 소문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동네에 합동결혼식을 한 사람이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도 그 가정을 찾아가서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또, 어느 동네에 합동 결혼식을 해서 사는 가정이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우로 퍼지고, 좌로 퍼지고, 위로 퍼지고, 아래로 퍼지고 해서 전부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자기 직계 친척과 그 사돈의 팔촌까지를 합하여 100명 이상 소문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들이 10명 이상씩 소문을 낼 게 아니예요? 그렇게 되면, 즉 20만에 100배를 하면 얼마나 되느냐 하면 2천만이 된다 이겁니다. 잔치에 모인 손님이 2천만이라 이거예요. 2천만의 손님을 모시고 잔치를 하는 이날이 무슨 날이 되겠습니까? 이 이상 복된 잔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많은 사람을 일시에 통합시키는 일은 역사이래 없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그렇다고 할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여당 야당이 있습니다. 이것은 2천만 군중이 우리를 중심으로 단합되어 한꺼번에 뒤넘이칠 수 있는 그런 일이라는 겁니다. 그럼 이 일이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번 해볼 만한 일이요, 안 해볼 만한 일이요? 「해볼 만한 일입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구경할 만한 일이요, 안 해볼 만한 일이요? 「해볼 만한 일입니다」 생각해 볼 만한 일이에요? 「예」 여기 온 사람들은 대다수의 여자들이 구경할 사람들이겠구만. 그건 해봐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직접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총각님들도 멋있게 한번 해봅시다. 「예」 아가씨들도 한번 해 보자구요. 해 보고 싶어요, 안 해 보고 싶어요? 「해 보고 싶습니다」

축복을 위해 정성들이자

서울 인구가 450만 명인데, 그날 잔치가 벌어지게 되면 담뱃대를 허리 춤에 끼고 돈쌈지를 차고 있는 그런 할아버지까지도 라디오에서 그 방송이 나오면 신나게 들을 것입니다. 신나게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KBS방송국에서 700쌍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이 기분이 나쁘다고 방송해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반대한다는 포스터를 붙인다고 하면 그것이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안 통합니다」 누가 아무리 말려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르게라도 와서 취재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 방송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서울 시내에 있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젼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것을 보면 반가운 듯이 '누구야, 나와서 저것 좀 보거라. 이 다음에 너희들도 시집 장가갈 때 저렇게 가거라' 그럴 것입니다. 이왕이면 그렇게 하고 싶거든요. 결혼식 날 초라하게 무슨 군 무슨 양이 어느 날 몇 시에 무슨 주례를 세워 놓고 결혼식을 한다 하고 동네의 시시한 사람들 많이 오는 것보다 이처럼 고급스럽게 행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도망가는 비둘기처럼 둘이 결혼식을 하는 것이 재수 있는 일이요, 없는 일이요? 재수 없어요. 그런 결혼은 지상에서 물러갈지어다. (웃음)

이번 700쌍이 축복받을 때는 육군·해군·공군의 밴드를 데려올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지, 안 하는 지 두고 보세요. 그것은 돈만 주면 되는 거예요. 실제로 육군·해군·공군의 밴드도 그 자리에 오면 기분이 좋겠지요? 그러면 4분의 3박자면 4분의 3박자에 척척 맞춰야 됩니다. 거기에 맞추지 못하면 안 되는 거예요. (웃음)

그때는 700쌍이 그냥 한쪽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청중이 보는 가운데 한 바퀴 빙 돌아서 산으로 올라갈 듯이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처녀 총각들이 그렇게 한 바퀴만 돌게 되면, 청중들은 눈이 휘둥그래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내 나이 칠십이 되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게 한이구나. 다시 재봉춘하여 아들딸을 낳아서 합동결혼식 시키면 한이 없겠구만' 할 것입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안 그런다면 사람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웃음) 처음 이런 옷을 입고 신나는 얘기를 하니까 덥구만요. 나 이거 좀 벗겠소. 터놓고 얘기하자요. (웃음)

선생님이 7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다른 생각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겠어요? 합동결혼식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요, 안 따라가는 사람들이요?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 말을 잘 들어요, 잘 안 들어요? 「잘 듣습니다」 선생님의 머리에는 합동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꽉 차 있는데, 여러분 중에 그 합동결혼식에 가담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과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르려면 지금부터 달라져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라져야 합니다. 안 갈라지려면 나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합동결혼식을 놓고 지금부터 정성들이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할아버지 할머니,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은 물론 그들의 아기들까지도 선생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자나깨나 축복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주길 부탁합니다.

자, 그러면 시민회관에서 행사할 수 있겠어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장충체육관이 8천명 정도 들어가는 데, 거기도 안 됩니다. 물건 쟁이듯이 해야 겨우 일만 오천 명 정도나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해야 하느냐? 효창공원은 5, 6만 정도 들어갈는지 모르겠는데, 거기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싸움이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가 주먹에 맞아 죽기라도 한다면, 그 죽은 사람의 어머니 아버지가 통일교회 문선생이 왜 이런 일을 했냐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합동결혼식을 축하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축하해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막는 방법이 뭐냐? 선생님이 이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웃음) 사람들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 행사는 국제적으로

그러면 여기에 몇 개국이 참여할 것이냐 하면, 7개국이 참가할 것입니다. 시시하게 한국 사람끼리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국제적으로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신랑도 국제적인 신랑을 얻자는 것입니다. 아가씨들, 국제적인 일을 하니 신랑도 국제적인 신랑을 얻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신랑도 오─케이 하자는 거예요. 그거 원해요, 안 원해요? 대답이 없으니 기분 나빠서 얘기를 못 하겠구만. (웃음) 그러면 세계적인 일을 하자는 것은 무슨 말이냐?

자, 그러면 우리 남자들, 얘기해 봅시다. 세계적인 일을 해보자구요. 「예」 세계적이니까 저 아프리카 색시도 오-케이지요? 「예」 (웃음) 웃지 말아요. 웃음도 잘못 웃으면 욕입니다. 그까짓 욕이야 하겠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간판을 붙이고 별의별 욕을 다 먹은 사람인데, 그까짓 욕 정도야 선생님 꼬리도 못 따라 올 텐데, 그런 욕이 문제가 아닙니다. 욕을 먹더라도 내가 하고 싶다면 합니다. 선생님이 하면 여러분도 따라서 해야지 별 수 있어요? 그것이 무서운 사람은 지금이라도 도망가고, 이 일을 찬양하는 사람은 여기에 가담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 7개국 이상 축복에 참가케 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외국 사람을 여기에 얼마나 참가시킬 것이냐? 한 절반 참가시킬까요? 3분의 2정도를 참가시킬까요? 3분의 1정도나 참가시킬까요? 「3분의 1이요」 그래요, 3분의 1쯤 참가시킵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짝을 맺어 주기 위해서는 전부다 불러와야 되겠어 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불러와야 합니다」 그들을 불러 오게 되면, 결혼식 날까지 여기서 묵게 해야 되겠어요, 다시 갔다 오게 해야 되겠어요? 「묵게 해야 합니다. 갔다 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똑똑히 대답해 보세요. 왜 우물우물 해요! 한 사람이 미국에 갔다 오려면 50만원 정도의 돈이 들게 됩니다. 여기에 묵게 해야 되겠어요. 갔다 오게 해야 되겠어요? 「묵게 해야 됩니다」

그들을 여기에 묵게 한다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되겠어요? 「본인들이 내야 합니다」 본인들이 내야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어떻게 되요? 위신이 서겠어요, 안 서겠어요? 그들은 천리길을 멀다 않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만도 부모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게 뭡니까?

여러분들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저 먼 땅 한쪽에서 간신히 여비만 달랑달랑 마련해 가지고, 한국에만 가면 다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죽자사자하고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갈 비용도 없다고 할 때 어떻겠습니까? 그 이튿날이라도 돌아가고 싶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외국 식구들을 맞이해야 할 한국 식구들

여러분,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에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요? 6백만 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거짓말 같지요? 그만한 돈이면 현재 고생하는 처지에 있는 우리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까워해서는 큰 일을 못 합니다. 그러면 돈을 어떻게 해서 마련할 것이냐?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돈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여자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돈을 가지고 일을 하고 돈이 없어도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간판을 붙여 놓고, 너나할것없이 돈을 벌어야 되겠구만. 그러면 될 것 같아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천만 원은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등가죽을 벗겨서라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찬성해요, 찬성하지 않아요? 「찬성합니다」 이것은 실례같은 말이지만…. 실례같은 말이지 실례의 말은 아닙니다. 실례같은 말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되겠소, 안 해야 되겠소? 「해야 됩니다」 여자들도 그래요? 「예」 그럼 등가죽을 벗기소 하면 하겠어요? (웃음) 그렇게라도 해서 대한민국을 잘되게 하겠다고 하면, 여러분이 거기에 순응할 자신있어요? 「예」 정말이오? 「예」 그렇다면 선생님이 살 기운이 생깁니다. 내가 용기를 얻는다구요.

그러니 여러분이 협조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거기에 남자들은 협조할 것이 없습니다. 여자들이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왜 여자들이 해야 하느냐? 그 많은 사람들의 밥은 누가 해주어야 되겠습니까? 남자가 해야 하겠어요? 여자가 해야 하겠어요? 「여자가 해야 합니다」 그러니 밥을 해주어야 되고, 그들의 많은 빨래도 해주어야 할 것이고, 청소도 해주어야 할 것인데, 그 일을 전부다 여자들한테 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못난 사람을 데려다 시켜야되겠어요, 잘난 사람을 데려다 시켜야되겠어요? 「잘난 사람요」 세계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거기엔 미국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도, 전부 들어 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얼굴이 매끈매끈한 사람, 자기가 거울을 보고 감정해서 통일교회 여자들 가운데 잘난 편에 들어간다고 판단되거든 보따리를 하나씩 준비해 두라는 것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또, 그런 아내를 데리고 사는 사내들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하면 아무 불평없이 자기 아내를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상관하지 않고 내어보내 줄 것을 약속해야 합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인 자신을 갖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합동결혼식이 되게 하자

여러분들이 오늘 선생님 생일을 축하한다고 와 앉아 있는데, 선생님은 이런 날에는 홍역을 치르는 것입니다. 어제도 새벽 한 시가 넘어서 자 가지고 세 시 이십 분에 일어났습니다. 그저께도 그랬습니다. 지구장 지역장들이 밤에 잠은 안 자고 왔다갔다하고, 문을 탕탕거리니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아침에 그랬으면 그만이지, 무슨 팔자가 사나워서 저녁에 또 여러분을 앉혀 놓고 이러고 있느냐는 거예요. 그런 선생님을 동정할 만해요, 안 해요? 동정할 만한가, 남자들? 「예」 그러니 여러분의 아내를 데려다가 일 좀 시키더라도 괜찮겠지요? 「예」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절대적으로 후원하겠지요? 「예」 그렇게 하겠다는 남자 손을 들어 봐요.

여러분, 보세요. 재탕한 약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몇 시간 전에 선생님을 이미 다 걸러 먹어 찌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좀 잘 들어 주고, 거기에 답례도 잘 해야 할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예」

자, 그러면 이런 판국을 한판 벌여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시아 승공대회가 문제 아닙니다. 700쌍 이것을 한번…. 이게 뭐야 이게. 한번 「들었다」 들었다 이걸 꽝 놓아요, 가만히 놓아요? 「꽝 놓습니다」 꽝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웃음) 그 꽝 하는 소리에 천지가 진동할 것입니다. 왜 천지가 진동하느냐? 그때는 내가 틀림없이 한 50만 명 정도 동원시킬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일이 났지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정리하겠어요? 제가 기도하고 있으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하겠습니까? 만일 효창공원에서 한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하루에 전단을 50만 장 정도는 뿌리자는 것입니다. 지방에서부터 뿌려 올라오는 것입니다. 저 멀리 두메산골, 통일교회라는 이름을 아는 곳에는 전부다 전단지를 뿌리자는 것입니다. 한 전단지를 6천만 장 정도 뿌리면 삼천리 강산이 전부 다 시끄러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 전단지 한 장에 십전이 든다면 전부 얼마 듭니까? 6천만 장쯤 하게 되면 6백만 원쯤 들 것입니다. 투전판에 가서 보면 몇 억 달러를 놓고도 노름을 하는 데, 통일교회 문선생이 6백만 원쯤 가지고 그것 한번 못 하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것쯤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쌍쌍을 맺기 전에 두메 산골에서부터 미리 선전을 해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봄이 되어 소 궁둥이를 두드리며 밭갈이하는 노총각이 그것을 보고, '이놈의 노총각, 소 궁둥이 두드리고 어디로 가느냐' 하고 신세타령도 나올 것이고, 탄식 소리도 나올 것입니다. 별의별 일들이 마구 벌어진다는 거예요.

만약 어떤 아가씨가 그것을 보았다면 '700쌍이니 700명의 남자 가운데 한 남자를 고른다니, 얼마나 멋진 미남을 고르겠느냐. 여자로 태어나서 한번 해볼 만한 일인데. 나는 동네방네 다 가 보아야 더벅머리 총각도 하나 없으니, 어이구 내 팔자야! 내가 밤낮 여기 있다간 시집가기 다 틀렸다' 하고 탄식도 할 것입니다.

물 길러 가는 아가씨도, 밭을 갈러 나가는 노총각도, 그 뒤를 따라가는 할아버지도, 밥을 먹는 것도 잊고 왔다 갔다 어쩔 줄 모르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1개월에 한 번씩 6천만 장쯤 한 6, 7개월에 걸쳐 뿌려 놓으면 전도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됩니다」

그렇게만 해 놓으면, 요새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다 가는 데 차비가 900원쯤 들어가는 데, 한 2천원 정도만 마련해 가지고 올라오면 하룻밤은 자고 갈 수 있으니까 누구든지 구경하러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잔칫날 아주머니들 구경시켜 준다면 전부다 보따리 싸 들고서 올라오게 될 것입니다.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러지 않겠어요?

만약 그러지 않겠다면 천국갈 소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웃음)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도둑놈 같은지 모릅니다. 그러지 않고는 어떻게 보이는 세상 나라는 제쳐 두고 보이지 않는 천국에 가겠어요? 그런 배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종교인들이라는 거예요. 나도 그런데 여러분도 그런 기분을 못 갖는다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을 올라와 보겠어요, 안 올라와 보겠어요? 올라와 보겠지요? 「예」 그러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불꽃놀이도 하면서

그래 놓고 장충체육관을 빌리는데, 하루만 빌려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 3일쯤 빌려야 됩니다. 그때는 우리 어린이무용단을 데려다가 춤도 추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까지 준비할 계획이에요. 또 무엇을 할 것이냐? 영국·미국·일본·독일·불란서·이태리·스페인 등 이런 나라들에서 오는 각국의 신랑 신부들은 한 짐씩 지고 오라고 할 것입니다. 무엇을 지고 오느냐면, 불꽃놀이할 화약을 한 짐씩 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남북의 높은 곳에다가 영국이면 영국의 국기를 세워 놓고 '이것은 영국에서 온 신부가 오늘 잔치에 터뜨리는 불꽃이요' 하면서 꽝꽝 터뜨리는 것입니다. (웃음, 박수) 그러면 그것을 누가 반대하겠어요? 반대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합니다」 한 3일 동안 '이것은 독일 것이요' 하면서 꽝 꽝, '이것은 미국 것이요' 하면서 꽝 꽝 터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고도 모자라면 이왕지사 시작한 것이니, 그 나라 대사관 안 뜰에 찾아가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게 하겠습니까, 못 하게 하겠습니까? 대사관 뜰에다가 대포를 걸어 놓고 꽝 꽝 쏜다는 것입니다. (웃음) 오늘같이 좋은 날 이런 얘기해서 화푸는 데 좋구만. 여러분은 하루 종일 이야기 들어도 이렇게 기분 좋은 얘기는 못 듣지요?

그날, 10만 명쯤 동원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러면 자동적으로 종로 네거리의 교통이 두절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무리들이 손을 들고 길을 막아서면 교통이 두절될 테니까 바쁜 사람들이라도 어쩔 수 없거든요. 몇 명이 앞에서 이렇게 하게 되면 줄줄이 밀려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이런 일은 혼자 하면 위험합니다.

자 그러니까 사람 모으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말아요. 선생님 혼자 해도 되는 일입니다. (웃음)

여러분은 그것이 될 것 같아요, 안될 것 같아요? 「될 것 같습니다」 한50만 명의 무리를 생각해 보세요. 소문에 휩쓸려서 보따리 싸 들고 구경 오는 패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 축복 때는 시내를 행진했으면 좋겠는데 걸어서 할 수가 없으니까 고속버스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그것을 할 것입니다. 1천 4백명이 타려면 버스가 몇대나 있어야 되겠습니까? 한 대에 45명씩 타면 한 40대 있으면 되겠어요? 40대에 나누어 타고서 서울을 한바퀴 빙 돈다는 것입니다. 차가 갈 때 천천히 가라는 거예요. 빨리 가면 빵꾸날 테니까, 천천히 가야 됩니다. (웃음) 그러면 경찰들이 별 수 있어요? 그때 선생님은 맨 뒤에서 여러분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일이 경사예요, 아니예요? 「경사입니다」 경사지요? 「예」

합동결혼식은 우리의 잔치이자 내 잔치

그렇다면 누구의 경사입니까? 「대한민국의 경사입니다」 크게 보면 대한민국의 경사요, 그 다음에는? 「세계의 경사입니다」 세계의 경사요,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의 경사입니다」 통일교회는 빼 놓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경사입니다. 그러면 이 잔치는 무슨 잔치입니까? 「천국잔치입니다」 이 천국잔치를 누가 합니까? 「통일교회가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하는 잔치이니 우리가 하는 잔치입니다. 우리가 하는 잔치이니까 누구의 잔치요? 「내 잔치입니다」 내 잔치! 내 잔치하자는 거예요. 「예!」 금방 대답한 사람, 좋은 색시 얻겠다. 이래저래 나만 큰일났구만. (웃음)

자, 누구 잔치라고요? 「내 잔치입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총각은 총각대로, 처녀는 처녀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아기는 아기대로 내 잔치를 벌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잔치 하는데 그 잔치의 비용을 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웃음) 왜 웃어요? 자, 잔치 비용을 내야 되겠어요, 안 내야 되겠어요? 「내야 됩니다」 안 내겠다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그럼 내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문제는 간단하구만…. 그래서 말이 좋긴 좋은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이 그래서 밥 먹고 사는 겁니다. (웃음) 또 내가 이런 선전 요원이 되어서 밥 먹고 사는 거예요. 자, 힘이 나요, 안나요? 비용을 몇천 원, 몇만 원, 몇십만 원을 내더라도, 집 한 채가 날아가더라도 남자라면 한번쯤 해볼 만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 집아, 내 잔치하는 데로 가자' 이렇게 몇십만 원, 혹은 몇백만 원에 집을 팔아 가지고 잔치를 했다 하는 날에는 …. 그 힘이 얼마나 센지 그 힘에 말려 대한민국 정부도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타고? 전파를 타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KBS중앙방송국 동원하지 말래도 자기들이 필요하면 동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에 일본 NHK방송국에서 온 사람만 식장에 들어오고 다른 방송국사람은 하나도 못 들어오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한국은 그만 두더라도 일본사람들이 지켜 봐서 그들이 좋다고 하게 되면, 한국은 망신당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내가 그런 악질적인 마음을 갖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되면 문제가 심상치 않게 된다는 거예요.

자기 아들딸 이상 축하해 주어야

잔치 내용은 그렇게 될 것이고…. 자, 그러면 여러분 동네에서 잔치를 하게 되면 부조를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잔치집 주인은 부조금을 가져 오는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안 가져 오는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가져 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공술밥 먹으러 오는 사람 좋아해요, 부조금 들고 오는 사람을 좋아해요? 「들고 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대답은 바로 하는 것 보니까 알기는 잘 알고 있구만요. (웃음)

그러면 여러분은 부조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럼 얼마씩 정할까요? 돈은 틀림없이 낸다고 했으니까, 말로만 내겠다고 하지 말고 정해 놓자는 말입니다. 부조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똑똑히 볼 거예요, 누가 안 드는 가. 이 사람 안 하겠구만. 탕감조건을 세워야 되기 때문에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남자들은 자신 있다면서도 이게 뭡니까? 손을 번쩍 들어요. 좀 봅시다. 내려요.

그러면, 부조금을 정하는 데 누가 정해야 할까요? 누가 잔치한다구요? 「내가 합니다」 그러면 내 잔치를 하는 데 만원으로 정한다면, 그것 가지고 시집장가 갈 수 있어요? 그러려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런 여자는 미친 뭐라고 해요? 「미친년이라고 합니다」 남자들은 뭐라고 합니까? 「미친놈이라고 합니다」 도둑놈이지 뭡니까? 혼례비로 만원 들고 와서'나 결혼할래요' 또 아가씨도 '나 만원 있으니 결혼할래요' 그러면 되겠어요?

만원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얼마쯤 가져야 되겠어요? 부조를 하기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부조금을 모으라는 겁니다. 부조금 안 가져 오면 기합을 주겠습니다. 기합을 받기로 약속합시다. 약속을 하고 나서 기합을 줘야 되겠습니다. 약속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러분이 안 하면 내가 어디서 생기는 것 있어요? (웃음)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죽도록 고생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래도 낫다는 거예요.

부조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이건 전부 몽둥이감이로구만. 그래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러면, 부조금을 정해야 되겠습니다. 얼마씩으로 정하면 되겠어요? 누가 정하겠어요? 그것은 자기 자신이 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부조금을 마련하라는 거예요.

부조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지금 자기가 며느리 얻겠다고 준비해 둔 공단 이불, 양단 치마 저고리 옷감을 그대로 장농 깊숙이 감추어 두었다 가는 그것이 참소합니다. 딸 시집갈 때에 신랑 것은 뭐 어떻고, 시어머니것은 어떻고, 시아버지것은 어떻고 하며 준비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 이상의 어떤 조건을 세우지 않을 때는 참소받을 것입니다. 왜? 이 잔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 경사중의 최고의 경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최고의 경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딸 이상 축하할 수 있는 마음 안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그렇습니다」 부조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얼마나? 「이십만 원요」 이십만 원? 지금부터 각자 부조금 마련하라요. 자, 남자들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은혜에 보답할 줄 알라

내가 피땀 흘려 가지고 시집 장가 보냈는데도 요즘에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요. 옛날에는 시골에서 중매 한번 잘하게 되면 춘하추동 절기마다 참외 날 때면 참외 갖다 주고, 사과 날 때는 사과 갖다 주고, 새곡식이 나면 갖다 주면서 인사했습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만일 그렇게 안 하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달떡 같은 색시를 얻어 주었는데도 자기들만 좋아하고 선생님 생각하기를 어느 동네 할아버지 죽는 것만큼도 생각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대신 이번에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부조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노골적으로 터놓고 다 부조하겠다고 했으니, 여기서 정하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 교인들은 부조를 안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큰 잔치를 하는 데 와 가지고 하다못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해서 흥이라도 돋구어 줘야지, 방해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기분이 나쁜 모양이구만요. 말씀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 보니까 결국은 돈 들어가게 생겼거든. (웃음) 여러분들이 그렇게 안 하면 통일교회가 벌받습니다.

그래서 이번 잔치를 위하여 아까 말한 할아버지들을 모신다면 효창운동장도 만원이 되고, 서울 운동장도 만원이 되니까, 그런 작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한번에 한 3일 동안만 하는 거예요. 기껏해야 장충체육관에 만명 정도 들어가는데, 만약 거기에서 식을 한다면 몇만 명이나 모일까요? 2시에 결혼식이 있다 하면 아마 새벽부터 몰려와서 줄 서 있을 거예요. 수만 명이 몰려 올 것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이 변사가 돼 가지고 마이크를 잡고 한바탕 웃겨 놓고는 '좋아요, 나빠요? 이 자리에서 우리 부조합시다' 하고 선동할 겁니다. 부조를 받는 것이 실례 같지만, 법은 우리가 정하면 되는 거예요. 민주주의 체제는 다수가 정하면 소수는 거기에 순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새로운 시대의 혁신적인 내용을 가지고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나온 사람들인데, 이들이 축복받는 이 경사스러운 날에 부조한다면 얼마나 큰 영광이요' 하고 선전을 해 놓고는 '자, 부조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시오' 하면 부조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부조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문을 닫고 입장권을 만원씩에 파는 거예요. 입장권을 만원씩에 판다고 잡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원이면 싸다는 것입니다. 들어가는 것이 소원인데 돈이 없으면 모를 까, 돈이 있으면 만원이 문제입니까? 만원을 내고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겠어요? 「들어갑니다」 여자들은 모르지만 남자들은 열이면 열, 백 퍼센트 다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이렇게 해서 만명만 들어가면 한 명에 만원씩이니까 1억 원이 되는 거예요. 1억이면 여기에 쓴 비용과 이자를 다 갚고도 남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비용이 나오는 거예요. 허허 그저 좋다는구만! (웃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입장권으로 부조는 했다는 조건을 세웠으니까 우리도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1970년도 700명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들에게 주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7원입니까, 70원입니까, 아니면 700원입니까? 7만 원이예요. 7십만 원이요, 7백만 원이예요, 7천만 원이예요, 7억 원이예요? 자, 어디 한번 대답해 봐요. 여기 이 남자, 얼마나 하면 되겠어요? 「700원입니다」 겨우 700원이 뭐야? 차라리 70원으로 하지? (웃음)

국민학교 학생에게 물어봐도 이만한 잔치에 700원 이상은 해야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에서부터 어른까지 통틀어서 700원은 공식적으로 다 해야 됩니다. 70원은 너무 적고 7원은 상대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에 7천원 이상 해야 된다고 하겠지만, 사정을 봐주는 거예요. 70원 할까요? 70원은 국수 한 그릇 값도 안 됩니다. 적어도 어머니 아버지께 점심 한 끼는 대접해야지요? 명색이 축복인데 잔치를 하려고 준비했으면 불고기 백반 한번 대접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3인분 하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그건 그만두고라도 대다수의 공론에 의한 자동적인 결정이 700원 이상이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 70년, 700쌍, 700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에게 돈이 있으면 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내겠습니다」 내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 안 든 사람이 있지만 선생님은 협조할 것으로 믿겠습니다. (웃음) 여기 남자들, 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내겠습니다」 우리끼리 결정하고 넘어갑시다. 이것은 강제가 아니예요.

자동적으로 전 세계가 동원된다

그러면 이런 판국에 부조도 안하고 어디 가서 돕겠다고 할 수 있어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번 행사를 맞아 전국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다 700원을 내야 됩니다. 그렇게 결정되었지요? 「예」 지금 여기에 지구장들도 왔고, 지역장들도 왔고, 젊은이들도 왔고, 각 지방에 이 내용을 알릴 수 있는 핵심요원들이 다 왔으니 선생님이 결정한 이 내용이 빠르면 일 주일 이내에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다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 부조에는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까지 18세 이상은 전부 다 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천만 원은 나올 것입니다.

돈 많이 벌었지요? 한 시간 넘게 선전해 가지고 천만 원 벌었다는 것입니다. (웃음) 기분 좋은가요, 나쁜가요? 「좋습니다」 오늘 들은 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거예요.

그러면 한국만 할 것이냐? 아닙니다. 우리 실정이 이러하니, 일본의 구보끼 회장이 와 있는데, 얼마씩 하면 좋겠어요 할 때, 만일 일본이 7천원씩 하게 된다면 몇 천만 원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일본 사업부장 에게 한국이 천만 원을 만들면 일본에서 2천만 원 내겠느냐고 물었더니 오케이 하고 갔어요. 그것도 선생님이 명령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돈을 벌더라도 선생님 결재 없이는 못 쓰는 거예요.

나중에는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가담하지 말라고 해도 가담합니다. 왜 ? '일본은 가담하는 데 왜 우리는 가담을 못 합니까'라고 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 나라에 가서 선전만 하게 되면 전부 다 나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갈 수 없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선전하는 거예요.

자, 이렇게 되면 세계 각국에서 전부 다 여기에 가담하는 거예요. 이렇게 외국에서 자기 나라 신랑 각시의 위신을 위하여 보내 온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몇 천만 원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한3천만 원만 들어오면 선생님이 3천만 원 부조할지도 몰라요. 돈은 없지만 그렇게 하려면 합니다. 선생님은 일억 원쯤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동원하기 위한 기도

그러면 신랑 신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어머니 아버지, 사돈의 팔촌까지 오고 싶으면 다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대신에 입장권 한 장에 700원씩이니까, 전부 다 입장권을 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장권 10장을 못 파는 사람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팔겠어요, 안 팔겠어요? (웃음)

그러면 그렇게 돈을 모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3·7장학회를 만들어서 장학금으로 쓰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거지 떼거리같이 자식만 자꾸자꾸 낳는 다는 거예요. 이게 무섭다는 겁니다. 조금만 낳을 줄 알았더니 꼬박꼬박 낳는다는 거예요. (웃음)

장충체육관에 약 1만 5천 명만 들어온다면, 천만 원 정도는 나올 거예요. 그러면 우리 교회 자체 내에서 천만원 나오고, 그 다음에 다른 나라로부터 들어오는 돈까지 합하면 못해도 5천만 원은 될 것입니다.

만일 1만 5천 명이 모여서 700원씩 내고 들어오게 되면, 언제 거스름돈 계산에서 내 줄 시간이 있습니까? 5백원짜리 두장 내고 밀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 거스름 돈을 받을 수 있겠어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 친척 가운데 사장이 있다면, 그들을 상대로 해서 우리 인류와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서 책임지고 나갈 젊은이들을 위해서 특별헌금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 아무개 사장은 700쌍 결혼식을 위해서 축하금을 얼마 냈소 하고 유명한 사람 몇 사람만 선전해 놓으면, 다른 사람은 체면상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이 지금 기분 좋아서 웃어요, 기분 나빠서 웃어요? 「기분 좋아서 웃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한번 해야 되겠어요. 앞으로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700쌍 성혼식을 중심삼고 7년이 되는 때에 1977년도를 회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7년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여 나가자고 선생님이 선동하게 되면 여러분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돈은 날이 가면 갈수록 막대한 자금으로 불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세상의 회사를 몽땅 사고도 남을 자금이 될 것입니다. 이 돈을 전부 한 은행에 예금시켰다가 한꺼번에 찾는 날에는 그 은행도 우리에게 끌려오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 될 것입니다. (웃음) 이게 우스운 얘기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런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문제가 벌어지겠어요, 안 벌어지겠어요? 「벌어집니다」 한국에서 이런 문제가 벌어짐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언론기관의 특파원들이 전부 다 와 가지고 세계적으로 실황방송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430쌍 축복식을 할 때도 화란 식구들이 직접 텔레비젼을 틀어 놓고 춤추다 보니 끝날 때 되니까 고장이 나더라는 거예요.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몇천만 명 동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동원될 것이냐? 사람이란 사람은 다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천운을 몰아오는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따라서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 다음에는 부조할지어다. 「예」

무한한 관광자원

지금 몇시예요? 「6시입니다」 딱 여섯 시간 됐구만요. 잔치 한번 하는데 여섯 시간 걸렸어요.

지금 우리 통일교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여러분은 잘 모를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들 고생이 많았어요.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도 여러가지 운동을 일으켜 지금은 멋지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본을 중심삼고 한국 역사를 짊어졌습니다. 지금 일본은 북해도(北海島)에서부터 구주(九州)에까지 우리 조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본 식구들은 명령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일본 전역에 우리의 조직을 이용해 가지고 일본 고등학생들의 졸업기념 수학여행을 한국으로 오게 하는 것입니다. 정 안 되면, 일본 문부대신을 통해서 그렇게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 고등학교 학생들이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오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한일수렵대회를 하는 것입니다. 유지들을 불러서 전부다 선봉장으로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한국에 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한번에 2백 명씩으로 하여 여러 개의 코스를 마련한다는 거예요. 그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전부다 달러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물건만 수출해야 달러를 버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작전을 해서 한번에 200명씩만 다녀가도 방대한 자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동쪽코스 서쪽코스 등 팔방으로 코스를 만들어 놓으면 한꺼번에 몇천 명도 데리고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관광회사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은 고등학생들이기 때문에 승공연합이 배후가 되어 가지고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관광은 '세일관광' 회사를 통해서 관광시키려고 합니다. '세일관광'이란, '세계 제일가는 관광회사'라는 뜻이며, 또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관광 회사'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로 세일관광회사를 만들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일본의 이 젊은 학생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할 것이냐? 앞으로 그들을 새로이 교육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일본은 지금 공산주의의 마수에 휩쓸려 들어가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처해 있는 일본을 어떻게 구원할 것이냐? 고등학생들을 데려다 교육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국에 찾아오면, 한국의 고유문화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데리고 다니면서 관광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에다 큰 극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천 명 정도 들어가서 관람할 수 있는 극장을 만들어 거기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거예요.

우리 한국은 어떤 나라이고, 한국의 문화는 어떻다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비롯한 일본의 모든 문화는 한국을 통해서 전해졌다는 사실, 결국 일본 문화의 조상 국가가 한국이라는 것을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의 생활 풍습을 소개하고, 지금 세계적으로 공산권내에 포위된 한국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한국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반공문제라는 것과, 이를 위해서 승공연합이 조직되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한국에 온 것을 기념할만한 물건을 하나씩 가져가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랑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남기게 할 것이냐? 친선사절단과 같은 입장이니, 고등 학생으로서 이 나라에 자극을 주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극을 주는 데 있어서도 이 나라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반공운동이니, 그런 자극을 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공 전단지를 만들어서 전부다 한국을 한 바퀴 돌아다니면서 뿌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반공 전단지를 뿌리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한국에서 반공 삐라를 뿌리고 일본에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일본에 가 가지고 '이번에 고등학생들이 한국에 가서 반공 삐라를 뿌리고 반공운동을 하고 왔다'고 선전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의 아버지 어머니 가운데 공산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이구 이 자식아, 너 학교에 보내 주니까 한국에 가서 반공 전단지 뿌리고 다녀!' 하면서 꾸지람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은 '나는 기분 좋은데 아빠 엄마는 왜 그러세요'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을 공산권에서 구제하기 위한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길을 만들어야지요? 「예」 만약에 북괴가 남침해 가지고 상황이 급하게 된다면 어디로 갈 거예요? 부산에서 어디로 들어갈 거예요? 태평양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때는 일본 선박진흥회 총재에게 '몇만 톤 배를 갖고 오소' 하면 가지고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통일교회 무리들만…. (웃음) 그것을 생각 안 하면 바보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편도 생기고, 돈도 생기는 거예요. 6월에는 광주를 중심삼고 일본 학생 한 500명 데려다가 구경시킬 것입니다. 그들이 15만 원만 쓴다 해도 약 7천 5백만 원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30만 달러 되지요? 이렇게 한국에 들어오는 돈이 막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

전라남도 사람들 손들어 봐요. 일본이 안 되면, 세계를 갈아엎어서라도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전남 광주에 천명만 동원해서 나가게 되면, 전남 도지사로부터 전체가 동원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경상도를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우리 원리를 중심삼고 사업부대가 편성되어서 전체가 분산하여 곳곳에서 전도도 하며 사업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 후에는 내가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돈을 많이 벌게 될 거예요. 그때는 여러분들이 쓰고 싶다는 대로 줄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알고, 우리가 현재 갖추어진 발판을 중심삼고 이 계획대로 수습하게 되면, 우리 통일교회의 기반이 아시아에 닦여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되면 선생님이 어떤 비행기를 타더라도 '어서 오십시오' 할 수 있는 기반이 불원한 장래에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찬성해요, 반대해요? 「찬성합니다」 여기 일본 구보끼를 비롯해서 관계되는 여섯 사람이 있는데, 전부 다 비행기를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됩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타고 왔다갔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가서 선생님 하자는 대로 살겠어요, 여러분 멋대로 살겠어요? 「선생님 하자는 대로 살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말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여기 젊은 사람들, 선생님 말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듣겠습니다」 안 듣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럼 선생님 말 잘 듣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잘 들을 수밖에…. 어쩔 수 없이 아들딸로 다시 태어났으니 별 수 있나! 이제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오늘 700쌍 잔치 잘 해 먹었습니다. 밥은 안 먹었지만 든든하지요? 「예」 그 동안 밥 생각을 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진지하고 재미있게 얘기를 잘했다는 말이지요? 「예」 나도 기분 좋구만요! (웃음)

자, 통일의 노래나 한번 부릅시다. 내가 오늘 정주고을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북진통일합시다! 알겠어요? 「예」 60만 대군이 통일교회 사상으로 무장한 날에는 마른 웅덩이에서 고기를 손으로 건져 내듯이 공산당들을 몰아내고도 남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1970년대는 우리 통일교회가 교단적으로 장성기 완성급에 들어서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형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축복가정들에게는 종족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은 가정이 탕감해야 할 때

이전까지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는 개인완성을 위한 7년노정을 갔습니다. 이제 1970년대에는 가정완성을 위한 7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까지 7년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1960년대는 개인적인 탕감노정기간이었습니다. 가정을 지니고 오더라도 개인적인 탕감노정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2차 7년노정이 시작되고, 1970년대를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여러분들도 가정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보다 7년 앞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완성단계의 부모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들도 완성을 향해 출발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단적인 제1차 7년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1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여러분 가정들이 탕감하는 시대입니다. 아직까지 가정이 완성 단계에 못 올라갔기 때문에 가정이 완성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탕감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7년노정을 안가면 안 됩니다. 전부다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은 자녀가 부모를 중심하고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부모가 책임을 못 하면 자녀들과 함께 재탕감받게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가인 아벨과 함께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부터 복귀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귀해 올라가는 조건으로 믿음의 아들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직계 아들 딸이 못 되기 때문에 축복받은 후에 자기의 직계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복귀된 사위기대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제 1차 7년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2차 7년노정은 어떤 기간이냐? 세계적인 가정의 전통을 세우는 기간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세계적 가정의 중심을 결정하는 시기였고, 그러한 가정의 기대 위에 족장들이 자리를 잡는 때가 제2차 7년노정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제 2차 7년노정은 가정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는 누구를 위해 져야 하느냐? 선생님을 위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부모가 가진 소망과 자녀가 가진 소망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정이 탕감해야 됩니다. 가정에서 사탄의 참소 조건을 남기면 완성의 길을 못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개인의 입장으로 전도를 내보냈지만, 이번에 여러분들을 전도하라고 내보내는 것은 자기 가정을 대표한 입장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가정을 대표해서 나가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나가야 하느냐? 복귀노정이니까 여자가 먼저 나가야 합니다. 누가 먼저 수난을 당해야 하느냐 하면 여자가 먼저 수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7년노정은 어머니가 탕감받는 기간이었습니다. 어머니 한 분을 길러 나온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아내를 내세워서 가는 이유는 선생님이 간 길을 여러분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하느냐? 탕감복귀해서 가야 합니다. 해와가 실수한 것을 어머니가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 씨를 뿌리고 거두지 못한 것을 재차 가서 수습하여 거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축복가정 부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다 전에 나가서 전도하던 곳으로 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남자들한테 나가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알겠어요?

그렇지만 아내는 남편과 마음이 서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남편의 마음을 몽땅 이끌어 갈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남편을 제물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들여 남편에게 보고를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남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가정에서 어머니 혼자 나가서 전도하지만 집에서는 남편과 아들딸이 하나되어 가지고 승리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쁨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땅 위에 타락한 해와의 아들딸을 복귀할 조건이 세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아야 됩니다. 이런 놀음을 하는 지금이 섭리적으로 어떤 때인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이 전도를 나갔던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담이 실수한 것과 예수님이 실수한 것과 선생님 자신의 사명을 합하여 3차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나갔던 지역은 여러분과 인연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곳을 수습해야 합니다. 이번에 나가서 그것을 전부 다 책임지고 수습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물(物)·신(身)·심(心)을 투입하라

제1차 7년노정에서 책임 못 했던 것을 제2차 7년노정에서는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남편도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이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중에서 축복가정 부인들 손들어 봐요. 이중에서 이번에 전도하러 나가지 않았던 사람은 손을 내려요. 3분의 2이상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소생 장성급을 넘어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 봐요. 작년 여름에 선생님이 특별한 심정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명령했고, 전체 축복가정이 총진군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때 모두 나갔더라면 우리에게 어려운 길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하면 선생님이 그 일을 혼자 책임지는 거예요. 여러분을 다 끊어 버리기 전에는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탕감법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이 이제부터라도 책임을 다하게 되면 통일교회는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작년부터 용서해 주는 것을 들고 나오는 때가 되었던 것이예요.

옛날에는 사회에서 손꼽힌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통일교회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들을 원수시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옛날에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나는 오늘 이날까지 그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런 기쁜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왔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통일교회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1970년대는 통일교회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아시아에 드러내야 합니다. 지난번에 한국에서 아시아 승공대회를 한 것은 우리를 외부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통일교회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통일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부터 내가 세계적으로 이런 일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여러분이 협조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협조를 하느냐? 물(物)과 신(身)과 심(心)으로 협조를 해야 합니다. 물질은 소생이요, 몸은 장성이요, 마음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전부 투입해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일에 협조하면 선생님이 받은 것은 전부 다시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시대가 달라지면 협조한 만큼 돌려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이 가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 내가 여러분을 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수택리 공장을 중심삼고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제 1970년대부터 여러분이 경제적인 것이나, 몸과 마음을 다해 협조해 줄 수 있는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나왔던 것입니다.

1970년대를 넘어서게 되면, 가정이 어려운 경제적 사정에서 풀려 나갈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에게 동정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물·신·심, 이 모든 것으로 선생님을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복귀역사를 두고 보면 제물시대가 있고, 아들시대가 있고, 부모시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형(型)으로 보면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자녀의 입장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물질과 같은 제물의 입장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의 몸은 무엇이냐? 이것은 예수님의 육신이 제물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체 제물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은 부모를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하면 세상은 자연복귀된다는 겁니다. 거기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지요? 「예」

여자들이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이냐?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자들의 몸도 하나님 것이요, 마음도 하나님 것입니다. 해와가 이것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몰라 가지고….

사탄이 뗄 수 없는 가정적 기반을 다지자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여자들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 모르게 그저 정성을 들이면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가르쳐 나왔어요.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 2차 7년노정 기간에는 여러분이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1960년 이전에는 개인을 위한 시대였고, 1960년부터는 가정을 중심 삼고 출발하는 시대였습니다. 이제 가정을 완전히 이루어 해방된 국가를 세워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주먹질하고 싸운다면 복귀가 되겠어요?

자, 그러면 금년 여름에 다시 전도하러 나가겠어요, 안 나가겠어요? 「나가겠습니다」 나가기 싫으면 그만두세요. 안 내보내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으니까.

제 3차 7년노정에는 남자들도 쫓아 보낼 것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뒤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여러분이 한꺼번에 모두 나갔으면 그런 놀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으니 남자들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 따라가겠어요. 안 따라가겠어요? 「따라가겠습니다」 시시하게 따라가요? (웃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밤잠을 못 자면 남자도 밤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께서 정성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정성들였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땅 위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땅 위에서 재림역사를 전개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여러분이 책임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대보다 오히려 더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일년 삼백 예순 날을 준비하고 정성을 들여 그것을 몽땅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974년이면 제2차 7년노정이 끝나는 해이지요? 금년이 7년노정의 3년째이고 3년노정으로서 마지막 해입니다. 그 3년노정이 원래는 금년 6월까지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고 입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직 입적 안 했지요? 앞으로 무서운 때가 올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만일에 걸리는 날에는 잘라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법도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은 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나라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모든 인류가 그렇게 개인 위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새로운 마음을 가져서 우리의 힘으로 세계를 뒤넘이쳐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태풍이 분다고 거기에서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여러분 가정들이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가정들이 교회를 붙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아무리 크고 통일교회 사상이 아무리 위대하다 하더라도 이상적인 가정의 사상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기대가 안 이루어졌으니, 여러분 가정들이 이것을 공고화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정적인 기반을 여러분이 싸워서 다져야 되겠습니다. 즉, 가정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할 5퍼센트 책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제 2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74년까지 완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말씀 요지]

남편이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아내를 가졌다는 뜻이요, 부모가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녀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주면 완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 사랑을 주고 자녀에게 사랑을 줄 때에는 그것이 그들에게서만 머물게 줄 것이 아니라 세계에까지 미칠 수 있게 주어야 합니다.

불륜의 사랑은 망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세계적인 아내가 되기를 바라고, 아내는 남편이 세계적인 인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에는 영원할 수 있는 요인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무한히 줄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행복합니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만족만을 위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애국자는 나라를 위해 산 사람이요, 위인은 세계적인 야망을 가지고 산 사람이요, 성현은 하늘땅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평면 세계에서 하늘을 대신한 것이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각 나라의 역사는 사상적인 세계를 추구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그것은 사상이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이 애국자로서 죽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욱한 사람이 애국자의 대열에 섰습니다. 아무리 평생을 나라를 위해서 산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에 나라를 위한 유언을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충신이 되지 못합니다.

연합, 통일은 오래 남자는 것입니다. 행복도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원히 남는 것은 교리보다도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골라 가지고 사랑해서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박애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주어 보세요. 주어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전도도 대상을 골라 가지고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한 나라로서 천년 역사를 자랑한 나라가 없습니다.

자기 자체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누룩이 못 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줄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돈 가지고 친구를 사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잊을 수 없는 정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가정은 세계성을 띠어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물려받는 것입니다. 잘못 주면 망합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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