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서 엮어진 사연들과 현재 엮어지고 있는 사연들은 모두 우리가 소망하는 새로운 이상세계에 고스란히 남길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심판받아야 한다.

제아무리 사랑한다 하는 부부도 그 사랑을 우리 인류가 찾아나가는 이상세계의 표본으로, 누구든지 기념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남겨 놓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그렇다고 한다면 부모와 자식지간의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사랑은 영원하고 순수한 이상적인 사랑이 되지 못하기에 그냥 그대로 남겨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지간의 사랑이 그렇고, 부부지간의 사랑이 그렇고, 형제간의 사랑 역시 그렇습니다. 형제간에 사랑하는 그 사랑도 우리 인류가 희망하는 이상세계에 그대로 남겨 놓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겨 놓을 수 없다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자의 관계나 부부의 관계, 또는 형제의 관계 등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수 있는 동기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들을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겨 놓을 수 없다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더더욱 이상세계에 남겨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나 세계,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참다운 이상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겨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냐? 이것은 인간이 본래의 이상인 본연의 선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선과 대립되는 악의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빚어진 가정이요, 사회요, 국가요, 세계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절대적인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규정 아래 다시 판단을 받아서 그 정체를 드러내야 할 입장에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상의 인연을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에 그냥 그대로 인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이러한 권내에 살고 있는 부모들도 여기에 모였고, 남편들도 여기에 모였고, 형제들도 여기에 모였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여기에 모인 것이요, 세계의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는 인류의 일원으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있는 한 개체를 아무리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 기준이라는 것이 부정을 받아야 할 입장에 머물러 있는 가치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가치가 부정당하는 것을 인정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참의 기원을 마련하려면

그러면 이러한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참의 기원은 무엇이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성인이나 현철들이 싸워 나왔지만, 완전히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짓기 위해서 공자나 예수 같은 양반들, 혹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성인이나 현철들이 무척이나 애썼지만 해결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짓는 데 있어서 좋은 면만 바라보고 해결을 지으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기쁜 날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슬픈 날을 중심삼고 출발했기 때문에, 그 기원의 슬픔 이상의 자리까지 들어가지 않고서는 슬픈 사실을 해결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슬픔의 기원의 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이것을 떠나서 다른 데서 해결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적인 모든 일들이 해결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짓지 못한 난문제들이 널려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인류의 시조가 타락으로 인하여 슬픈 자리에 떨어졌다면, 우리는 그 슬픈 자리 이상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셨다면, 그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한 날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슬픔 이상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위로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슬픔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참다운 성현이라면, 인류가 바라는 이상세계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참다운 인물이라 한다면 이 슬픔을 밟고 올라가 이 슬픔 이상의 자리에서 기쁨을 찾아 세워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악의 권내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아무리 해결의 방안을 강구한다 하더라도, 역사의 기원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적 기쁨은 우리 인류역사상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또 나 자신이 이 길을 개척하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으로 지으셨다면 도대체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깨달은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라면 그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인류를 사랑하셨는가? 그 사랑의 기준이 무엇이냐? 이런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이 슬퍼하셨다면 어느 정도나 슬퍼하셨느냐 이거예요. 이것도 문제라는 거예요. 오늘날의 종교인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선 손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슬퍼하신 것이 물론이겠지만, 인류의 조상 자체도 얼마나 슬퍼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슬퍼하셨고, 인류의 조상이 슬퍼했습니다.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땅이 슬픔의 기원을 갖고 역사가 출발되었는데 그러한 인류역사의 슬픔의 기원을 어떻게 체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슬픈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나이가 이 땅에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 나왔지만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나이가 나와야 합니다. 인류 조상이 타락하여 느낀 그 이상의 슬픔을 느꼈던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정 앞에 설 수 있고,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과 아들과 딸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못했을 때를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슬픔을 뽑아 버리고 기쁨을 소개하는 장본인이 되신 예수

그러면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해와는 타락하고 나서 얼마나 슬퍼했느냐? 에덴 동산,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유의 세계에서 추방되어 나오게 될 때 그들은 얼마나 슬픔을 느꼈겠느냐? 그들은 어떠한 울음을 울었고, 어떠한 곡절의 심정을 가졌으며, 미래를 걸어 놓고 어떠한 낙망의 걸음을 걸었겠느냐? 또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퍼하셨겠느냐? 이러한 것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연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 아담이 통곡하던 그 이상 통곡할 수 있는 하나의 효자, 그걸 바라보며 비통해 한 하나님의 아픈 가슴 이상의 아픔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효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어느 때 나타날 것이뇨?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십자가 도상, 즉 자기의 운명이 경각에 달해 가지고도, 크나큰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사명이 미완성으로 끝나게 되어 절망상태에 임하게 될 때, 자기나름의 역량과 수고를 다 했지만, 그것을 부정해 놓고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여,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지고, 한날의 승리를 표방하며 수난의 역사를 엮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곡절이 있더라도 버릴 수 없는 이스라엘 민족, 치열한 역사의 싸움 속에서도 슬픔의 결정체로 남아져 온 이스라엘 민족,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한다고 해서 하나님도 이들을 저버리게 된다면 하나님의 4천년 복귀역사의 수고가 일시에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맺혔던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아들의 입장에 선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역사과정에서 제일 슬펐던 일은 아담 해와의 타락이었습니다. 그 다음 슬펐던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어떠한 나라가 망했을 때 그 나라의 운명을 비통해 하고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수천 수만의 애국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슬픔은 민족적인 한계내의 슬픔에 불과한 것입니다. 타락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한, 민족의 희망을 위해 살다가 죽어 갔을 뿐이지, 세계를 넘어 역사적인 심정의 중심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죽어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죽어 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담의 슬픔을 대신하여 그 이상의 슬픈 마음을 갖고 울 수 있었기 때문에 만민을 구할 수 있는 구주, 즉 슬픈 세계의 뿌리를 뽑아 기쁨의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장본인이 될 수 있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러한 사실은 논리적인 모순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맹목적으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런 입장보다 슬픈 세계를 소화할 수 있고 슬픔을 체험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모든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슬픈 자리에서 슬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것을 판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판결짓지 못하는 한 선은 이 땅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기쁜 역사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아담의 파탄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그 심정이 어떠했겠느냐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불렀을 때 그 소리를 듣는 아담의 마음이 어떠했겠어요? 아담이 가슴을 쥐어짜면서 비참하게 울던 그 장면이 어떠했겠어요?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자로서 만물의 모든 정수를 뽑아 가지고 하나의 소망의 실체로 지었던 그 아담이, 원치 않은 사탄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단숨에 파탄되어 버린 그 실정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얼마나 슬프셨겠어요?

여기 있는 아주머니들은 이러한 것을 체험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다가 그 사랑하는 아들딸이 병이 나서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모의 심정도 그러한데 본연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최상의 미를 갖춘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을 바라보시는 그 심정이 어떠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인류 조상의 슬픔을 밟고 올라서 가지고 하나님의 비통한 슬픔을 대신하여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사나이가 이 땅 위에 어디 있느냐? 아직까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찾아 나온 성인 현철이 없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 식구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아담이 타락하고 나서 느끼던 슬픔 이상의 슬픔을 느껴야 하고, 그가 흘리던 눈물 이상의 눈물을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슴을 치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그런 비통한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래서 슬픔에 가득찬 눈물을 땅에 떨어뜨리면서 하늘을 향하여 한스런 심정을 가지고 역사적인 죄를 회개하고, 당신 앞에 불효했던 심정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 흑암의 세계를 넘어 하나님이 임하시는 이상적인 기쁨의 선의 세계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눈물을 흘리려면 최대의 눈물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슬픔을 당하더라도 인류 역사상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내용과 긍지를 가지고 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공인되고, 이 땅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런 기준에 서게 될 때 이 슬픈 세상은 거기서부터 결판이 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선을 제시하고 새로운 천적인 인연을 제시하는 거기서부터 역사적인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인간이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왔지만, 이러한 것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것이 제시되는 날에야 비로소 이 땅 위에 소망의 새로운 세계가 싹터 나올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반만년 역사를 거쳐 나온 그 배후에는 수많은 애국자들의 눈물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세계가 이만한 형태의 문화적인 배경을 갖추어 나오고, 역사성을 띠고 발전적인 문화세계를 이룬 배후에도 수많은 성인 현철들의 공적의 터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흘린 눈물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흘린 눈물은 슬픔의 원점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타락으로 인한 슬픔을 체험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의 도상에서 뜻을 따라 나오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출전을 했다가 실패한 그런 정경(情景)에 내 자신을 개재시켜 가지고, 역사를 초월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천민사상이 출발되는 자리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 악을 제거하고 선을 옹호하겠다는 하나의 주체의식을 갖게 될 때,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천민사상이 출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을 해도 맨 밑창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엮어 나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는 자리, 통곡하는 자리, 그 누구도 억제하지 못하고 위로할 수 없는 비참한 환경에 처하게 될 때에는 부모가 동참하는 법입니다. 알지 못해서 동참하지 못하지 알기만 한다면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거기에 반드시 동참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부모의 사랑보다도 몇배 더 큰 사랑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이 인류의 아버지라면 그런 비참하고 비통한 사실을 접한 사람이 있다 할 때에는 하나님은 반드시 거기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있더라도 그 시련과 고통이 그를 삼켜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과 고통이야말로 참을 완전하게 귀결지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과 고통, 그것은 슬픔의 상징이 아니라 도리어 나로 하여금 영원히 빛이 될 수 있는, 선의 가치를 설정지어서 새로운 출발의 인연을 맺게 하는 절대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승리의 깃발을 갖고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악의 세계를 정복하고 타파해 버릴 수 있는 주체적인 개인, 주체적인 단계, 주체적인 세계의 사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지금까지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여러분들을 모질게 내몬 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탄식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채찍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만 되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원칙적인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운명길에 있기 때문이요, 그것이 지금까지의 비운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던 이 환경을 타파하기 위한 불가피한 작전법에 의한 공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

오늘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자리에 모일 때에 지난날의 역사를 추억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오늘날 발전하고 있는 현실, 좋은 환경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좋지 못한 것 같이도 생각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역사를 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의 기원을 박차고 새로운 기원을 제시한 그 앞에 내가 얼마만큼 참된 일원으로서 따라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여기에서 공고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은 지금까지 걸어나오는 데에 있어서, 어디를 가든지 죄의 세계는 싫어했습니다. 고생을 해도 참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비판하는 자리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영광을 누리는 것보다도, 인류가 눈을 감으면서도 죽지 말고 살아 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귀한 자리이며, 그 자리가 지금까지 우리가 표방하고 개척하여 나오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할 배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이겁니다. 본연의 세계에 들어가 체험해 보았고,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이 없고 영계가 없다고 아무리 변명한다고 해도 변명할 수 없는 실증적인 재료를 선생님은 얼마든지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재료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활권내의 인연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절박한 자리, 눈이 물크러지도록 눈물을 흘린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땅에 엎디어 며칠이라고 호소한 정성밑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배운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역사를 두고 볼 때, 아담이면 아담이상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한 그 이상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물 드리다 실수한 자리 이상으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복귀를 목표하고 가다가 실패하여 60만 대중을 광야에서 독수리밥이 되게 한 그 실패의 원인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요셉의 가정을 중심한 모든 실수의 요인을 능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역사적인 슬픔의 동참자로되 그 슬픔에 밀려나는 자가 아니라, 그 슬픔을 박차고 일어서서 선을 입증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다가오는 시련과 풍파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시련과 풍파를 자기의 무한한 가치를 완결시키려는 하나의 사랑으로 느끼게 된다면 그는 혹 패자의 자리로는 몰리는 일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세상 어디에 가든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치면 오히려 친 자가 망하면 망했지 맞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도려낼 수 있어야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맞으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세계의 인류가 제시하는 환경을 뚫고서 나왔습니다. 왜 그래야 했느냐? 그것은 슬픈 역사의 기원을 넘어 가지고 공의의 법도를 따라서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의 기원이 된 아담 해와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승리의 기준에 서서, 철두철미한 하늘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염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슬픔 이상 슬픔의 자리에 가서 하나님을 위로하기 위해 그 이상의 눈물을 흘리고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모임을 가질 적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역사가 그렇게 슬픔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가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지난 역사를 도려낼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전부 다 슬픔으로 탕감시켜 가지고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 그러한 부부,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가 벌어질 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제시하는 제3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 제3이스라엘은 슬픔에서 부활한 민족입니다. 기쁨의 자리에서 부활한 것이 아니고 슬픔의 자리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슬픔의 세계에서 사탄을 굴복시켰다는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전에 용매도 사건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피난길을 가면서도 이 삼천만 민족 가운데서 최고로 어려운 피난길을 가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까지 이 길을 가리라!내 맥박이 멈출 때까지 가리라! 아직까지 호흡이 끊기지 않았으니 가야 된다'는 결심을 하고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철석같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붙들고 눈물 흘리면서 이 삼천만 민족이 피난민으로서 고생하는 것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이 삼천만을 내 등에 업고 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리가 아무리 휘청거려도 쓰러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식구들 가운데에는 돼먹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적당히 출세하려는 사람은 적당히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서 소위 재벌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몇 대(代) 못 갑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가 닦은 이 모든 기반은 앞으로 억천만년이 지나가도 그 누구도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회는 근본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원칙을 따라서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감옥에서 출발한 통일교회이나 기쁨과 희망이 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옥중에서도 옥중의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만 4년 가량의 감옥살이를 했지만, 그 옥중생활이 나에게 슬픔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나에게 둘도 없는, 제일의 도장(道場)이었습니다.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 사형수와 코를 맞댈 수 있고 입김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이 민족의 한을 느끼고, 정열을 가지고 사회의 부정을 신랄히 비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도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우리 교회가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어떻게 인간이 갖추어야 하는, 하나님이 제시한 인격적 기준을 상실하지 않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원천적인 실체를 수습하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필승의 생활철학으로 삼아 온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삼천만 민족 전부가 우리를 반대했습니다. 반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반대하는 자들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반대하라는 거예요. 역사는 정의에 입각하나니, 역사는 원칙에 입각하나니 내가 서 있는 이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그러한 원칙적인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우리를 치는 사람은 망합니다.

참이 악을 쳐 가지고는 남을 수 있으되 악이 참을 쳐 가지고는 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다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실례하게 되면 모른 척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실례했습니다!' 라고 사과를 해야 됩니다. 거기에서는 연령이라든가 지위라든가 학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발전하는 우리를 수많은 국가가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하는 무리들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반대하느냐, 아니면 이것을 거슬러 올라와서 우리가 걸어온 이상의 시련과정을 거쳐 가지고 반대하느냐…. 당당코 우주적인 입장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대신할 선조라 하는 입장에서, 또는 그러한 실적의 내용과 실권을 가지고 반대하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아무리 크다 해도 우리가 가는 길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의 30억 인류가 아무리 사탄권내에 있다 하더라도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잘못 우리를 건드렸다간 오히려 그네들이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우리는 개척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처음 온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통일교회를 일반 교회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기에는 무시무시한 투쟁이 교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슬픈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을 능가할 수 있는 소망과 기쁨이 있는 것이며, 그 기쁨이 지난날의 슬픔을 압도할 수 있는 권위와 기준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고 아무리 환경이 바뀌더라도 여기에 서서 말하는 이 사나이의 가슴에 있는 이 희망의 줄을 끊을 자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이 이상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참된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

참된 사람의 자리에 어떻게 올라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우리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모든 사회의 악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고, 천지를 배후삼고 행복을 모색할 수 있고, 선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선다면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는 길은 앞으로 21세기 후반에 들어가도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안 되면 내가 되게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주주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한번 내가 젊은 청년들을 들이치고 내가 고문당하던 것의 배 이상의 고문을 하겠다고 쇠뭉치와 채찍을 들고 나서게 될 때, 여기에 견딜 자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거쳐서 험한 난국을 극복해 가지고 남겨진 천지의 보화를 상속해 주기 위해서는, 하늘의 시련에다 내 시련을 가하여 들이칠 때에도 달게 받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시련을 극복한 기반 위에 실천을 하여 선의 기준을 찾아 세운 자기 자신이라고 자랑하며 나설 수 있는 무리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식구라는 기준은 고차원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게 되면 자기의 혈통적인 인연이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적인 그런 혈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혈족 아닌 혈족이 형제 이상의 인연을 가질 수 있고,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 이상 모실 수 있으며, 가정 아닌 가정을 가정 이상으로 모실 수 있는 그러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극난(極難)한 사회악에 처해지더라도 이것을 넘어서 나갈 수 있고, 또한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가 될 때 이 악한 세상은 기필코 우리들의 모든 권한 앞에서 전부 다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치관

지금까지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발을 편히 뻗고 자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 놓고 밥 한 그릇 못 먹는 것입니다. 그런 처지를 지내 오면서 내가 별의별 말을 다 들었지만 변명 안 했습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변명하고 나섰다면 이 천지는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을 더듬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고통은 너무나 경(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들고 나와서 변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자신들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몰리면 몰릴수록 자기 자체를 감추려 하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그런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변명하고 나서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심정적인 배후가 폭이 넓어서 세계 역사상의 어떠한 성현들의 마음도 능가할 수 있고, 또한 현재 세계를 다스리는 어떠한 주권자의 가슴보다도 넓은 가슴을 가지고 나간다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은 기필코 이 세상에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들자는 겁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오면서 그 동안 입고 있었던 그 누더기들을 왜 가지고 나왔느냐? 그것은 팔아 보아야 일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엿장수한테 주어도 엿 반가락도 안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명주바지 저고리는 전부다 남을 주어 버리고 왜 그 수의(囚衣)만 입고 살아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지면 문적문적 솜과 같이 풀려 나가는 누더기가 무엇 때문에 필요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10년, 1세기, 혹은 수십세기가 지난 후에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보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예수가 쓰던 젓가락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설사 영국을 준다고 해도 못 살 것이고 미국을 준다고 해도 못 살 것입니다. 이런 말을 오늘날 피끓는 젊은이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천금 만금보다도 더 귀하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까지 그것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겐 양단 치마 저고리 한벌의 가치보다 못한 것이고, 자기 지갑에 있는 동전 한푼의 가치보다 못한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남겨 놓은 귀한 보물을 통일교회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그 보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자신이 그런 것을 남기기 위해서 이러느냐? 아니예요.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간다면 하나님이 남겨 주기를 바라고, 이후에 후손들이 남겨 주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고 미래의 후손들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고 후손들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생활관이요, 공직에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치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내가 고문을 당하여 피를 토하며 쓰러지더라도 `하늘이여, 이 피를 보고 나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부끄러운 피가 될 것이고, 탄식에 젖은 원한의 눈물이 될 것이어늘 여기에 하늘이 동정하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기도를 안하는 것입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을 두고 볼 때,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차원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같이 어려움을 당하신 아버님

나는 지금까지 어느 애국자 못지 않게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뼛골이 우러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애국자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변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실 것입니다.

종교분야에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앞에 놓고, 이슬처럼 사라져 가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그런 순간을 선생님은 다 체험했습니다. 죽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죽으면 안 될 운명을 가지고 죽음길을 가려 가는 것이 도리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50살 가까운 생애를 헤치며 한의 역사와 슬픔의 역사를 동반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이 배후에서 따라 나오시며 내가 슬퍼할 때에 같이 슬퍼하셨고,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같이 어려움을 당하셨다는 이 사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벗을 수 없는 짐입니다. 짐이라 이거야. 언제 활짝 이 짐을 벗어버리고 거기에 대비되는 기쁨으로 아버지를 모시어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냐? 이를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슬픔의 길은 이제 흘러갈 데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밟고 올라서서 결코 패자의 모습이 아닌 승자의 모습을 가지고, 천적인 인연을 존중시하며 나가야 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승리의 원한을 갖춰 가지고 사탄의 권한을 여지없이 분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아들로 말미암아 자신의 권위를 드러냈을 때 아들의 진가를 찬양하고 만세에 내세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럴 수 있는 기쁨의 한 날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이것을 죽고 또 죽어서라도 하여야 할 사명으로 느끼고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사명을 선생님은 지니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뜻을 모르는 사람이나 혹은 안다고 하나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과 하늘이 가야 할 입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러한 모임이 선생님의 이름을 높이고 선전이나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골수 깊은 곳에 그 누구도 접촉할 수 없는 뿌리를 박아 가지고, 절대적인 내용을 지닌 하나님만이 백 퍼센트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인연을 만들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거기에는 슬픈 면으로 뿐만이 아니라, 기쁜 면으로까지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금 선생님이 50세에 가까운데…. 50세 이상 되어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 시간이 바쁩니다.

뜻을 바라고 내일을 향해 전진하자

자고 일어나서는 죄인과 같이 회개해야 됩니다. 밥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르면 회개해야 됩니다. 이런 생활을 해야 됩니다. 나는 요즘도 내가 땅에 사는 동안 이 싸움에 끝까지 순수하게 생애를 바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나이, 그럴 수 있는 아낙네가 앞으로 나아질 수 있는 선민사상의 계승자가 될 것이요, 천적 인연을 고스란히 후손에게 넘겨줄 수 있는 조상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상, 그러한 아들딸이 귀한 것입니다. 돈푼에 팔려 다니고 사정에 몰려다니는 무리는 다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될 때에는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과거의 의식적인 탈을 벗어야 됩니다. 그런 관념적인 인식에 의한 신관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적인 내용, 직감적이며 통솔적인 권한, 그리고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그 어떠한 존재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신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슬픈 면에 있어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기쁜 면에서 새로운 출발을 영원히 제시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날을 맞이할 때마다 과거를 회상함과 동시에 새로운 결의를 다져 가지고 내일로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무대 앞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져서 핏자국과 눈물자국이 난무한다 하더라도 여기에 여지없이 투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자신을 가지고 세계의 뜻을 바라보면서 힘찬 내일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들이 모여서 기념하는 참다운 의의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디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기 도

아버지, 그 누구를 원망하오리까? 민족의 원망도 끝이 나야 되겠고, 세계의 원망도 끝이 나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심정 가운데 있는 원망도 끝이 나야 될 것을 알게 될 때에, 이 원망을 홀로 책임지겠다고 자기의 생애를 바쳐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무리가 이 땅에 나와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0월 14일, 이날은 희비의 곡절이 뒤엉키는 신세를 거쳐 가야 했던 날로서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했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아버지라 부르는 그 아버지는 불쌍해지면 안 될 아버지였건만, 그렇게 비참하였던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게 될 때, 옷깃을 여미면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불초한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와 더불어 사명을 수행하는 역사과정에서, 아버님이 찾아오는 심정적 분야의 깊은 인연을 여러 각도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아버지와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도록 관계를 맺어준 은사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당하는 시련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초로(草露)와 같은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시련의 본체가 있나니 그 본체는 아버지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극복의 본체가 있나니 그분도 역시 아버지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망의 왕이 계시다면 그분은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체면과 위신을 여지없이 잃어버린 불쌍한 분이 계시다면 그분도 역시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옷깃을 여미고 나선 저희들이지만, 감히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비통한 심정을 느끼면서 아버지의 옷깃을 붙들어야 할 자신들인 것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비참하였습니다. 3년 공생애 노정에 있어서 그 민족에게 반동분자로 몰리는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그리하여 민족적인 원한과 더불어 십자가에 사라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 중에도, 아버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부활의 권능으로 소생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을 점령할 수 없었습니다. 기쁨의 터전을 소망하시던 그날의 소망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적인 혼란된 사회를 개척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친히 중심의 원료가 되시고 누룩이 되시어서 역사의 방향을 틀어 가지고, 오늘의 기독교적 민주주의 세계를 창조하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인연을 이어받아 가지고 우주사적인 계승을 해주어야 할 심각한 자리에 놓여 있는 자신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이와 같은 6천년의 역사적인 열매의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자리가 얼마나 긴장되고 얼마나 심각한 자리인가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가 역사의 어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그러한 자리보다도 더 심각한 자리인 것을 오늘 저희들이 깨닫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가치와 최대의 노력과 최대의 힘을 투입하여, 전반적으로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지난날의 슬픔과 더불어 그리워함과 동시에 아버지의 소원 앞에 흘러가는 이 슬픔의 역사를 박차고 나서서 여기에 비례되는 기쁨의 역사를 찬양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우리들은 현실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오니,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한 해를 보호하여 주신 것 감사하옵니다. 다시 한 해를 맞이할 때까지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2차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계획하는 모든 것이 공적인 면에서 아버지가 바라는 이상의 기준을 성취하는 것이 되게 해주시고, 아버지께서 신임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맡겨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있어 기쁨의 상징이 되고, 위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실체로 남아서 영원히 당신의 품과 당신의 인연권내를 벗어날 수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도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영원한 은사의 인연을 저희 생애 노정에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이곳을 멀리서 그리워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과, 해외에 널려서 이곳을 그리워하며 한국 땅이 그리워 눈물짓는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토록 정성들이는 자녀들을 천배 만배 영적으로 보호하시옵고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천국을 향하여 달려가게 해주시고, 오늘의 이 생활감정 모든 것을 바쳐 가지고 내일의 개척자가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면 먼저 올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으로서 올바른 길을 가려면 그 가정과 사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되고, 그 국민 앞에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앞에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가야 할 정도(正道)입니다.

본이 되고 중심이 되려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 세계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까지, 즉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영인들이나 현세에 살고 있는 인류나 그리고 앞으로의 수많은 후손들 앞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가치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일반사회에서는 세계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종교를 보더라도 자기 종파가 주장하는 교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가운데서 인격을 추구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관점을 훨씬 넘어서 과거의 모든 성인 현철들이나 선조들까지도 우리의 본을 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전세계 인류들은 우리를 본받아 나가야 된다고 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앞으로 올 후손들도 우리를 조상으로 섬겨야 된다고 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인의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면 어떤 기도를 하느냐 하면, `오늘날의 우리는 6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라고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도 들어 봤지요? 여기 웃는 사람들은 그런 기도를 한 사람들이로구먼.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6천년 역사의 열매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이름이 남아 있는 영웅 열사들을 한 사람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이 떡 엎드려 가지고는 `오, 하나님이여, 우리는 6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건 그래도 괜찮다고 치고 거기에 더 보태서 `이 지구상에는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세계의 중심이 우리들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해요, 안 해요?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는 자손만대 후손에게 조상이 되고 새로운 시대의 순을 마련해야 된다'고 곧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 들어 봤어요, 못 들어 봤어요? 「들어봤습니다」 듣긴 어디서 들어 봐요? 지금 들어 보았지.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기도했다면 잘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했다면 그것은 잘 모르고 기도한 것입니다.

6천년 열매를 따려면 봄에 따야 됩니까, 여름에 따야 됩니까? 언제입니까? 「가을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여러분은 가을을 구경했어요? 「못했습니다」 못 했으면서 어떻게 6천년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계적으로 많은 민족이 있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세계적인 중심이 됩니까? 여러분이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하면 세계가 `예!' 하고 움직입니까? 그렇게 움직여야 중심이 됩니다. 육상 경기 때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뛰라고 하면 뛰게 되지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회장에서 전체에게 명령하면 전체가 움직이지요? 그런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여러분이 `세계야, 내 말대로 해라'하면 움직여요? 「안 움직입니다」 움직이기는 커녕 욕을 퍼붓고 뺨을 때리려고 할 것이며, 그것도 부족하여 별의별 짓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도 중심입니까?

또, 그 다음에는 우리들이 참된 기원이 되어 가지고 후손들이 본받게 하자고 하지요? 그렇게 할 만큼 여러분이 멋집니까? 여러분의 후손들이 여러분을 본받겠습니까? 본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후손들이 태어난 후 알고 보니 `아이고, 우리 조상이 제일이구나. 못생겼지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이구나'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잘해야 대구면 대구, 경상남도면 경상남도, 그 지역권내에서 달싹거리고 살면서 우주적인 일들을 하고 있다고? 내가 말한 대로 여러분들이 그래요, 안 그래요? 가치로는 요만큼도 안 됩니다.

사람이 한번 말했으면 한번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대구에서만 하겠어요? 대구에서 했으면 그 다음에는 대구를 떠나서 경상북도에서 해야 되고, 경상북도를 떠나서 경상남북도에서 해야 합니다. 이 삼천리 반도는 아주 작습니다. 삼천리 반도가 잠자고 있으니 나를 따라오라고 해야 합니다. 삼천만 민중이 죽든 살든 따라올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이 길을 안가면 안 되게끔 판결날 때까지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다 말고 되돌아가는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의 열매는 누구인가

6천년 열매가 되기를 기도했으면 6천년 열매로서의 공인을 받아야 하고, 수 세기의 중심이 되기를 기도했다면 그 중심으로서의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손들 앞에 선의 조상으로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조상이 되면 그 후손들이 우리의 조상이 잘못했으니 뜯어 고쳐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상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을을 못 봤다고 했으니 열매는 무슨 열매입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말을 하면 여러분의 말을 듣고 누가 따라오려고 합니까? 기성교회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반대하고 야단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다가 누가 통일교회 총각들한테 시집가겠다는 사람 있습니까? 통일교회 여자니까 할수없이 여러분에게 시집가는 것입니다. 안 갈 수 없으니까 할수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처음부터 외부에 간판을 붙이고 여기 훌륭한 남자가 있으니 대구에서 한다 하는 여자가 있으면 오라고 해보십시오. 6천년 동안 간판 붙이고 기다려 보세요. 한 사람이라도 나타나겠는지. 그래도 통일교회 여자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장가를 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장가는 무슨 장가를 가겠습니까?

보세요. 입고 다니는 옷이 전부 다 잠바 같은 차림인데 누가 오겠습니까? 얼굴도 보면 새까맣고 웃더라도 찌그러지게 웃습니다. 자기가 색안경을 쓰고 보니까 상대가 좀 부족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면적으로 달려들면 고개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남보다 부족합니다. 그러니 광고를 해봤자 여러분 나이가 30세 가까우니까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이번에는 맺을 수 있는 색시가 있어서 다행인데, 그 색시 앞에 이렇다 하고 내 놓을 수 있는 아무런 무엇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패들입니다. 또 얼굴을 가만히 보게 되면 핏기가 없고 굶고 쫓겨 다녀서인지 주름살이 생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는 환경에 따라서 사람의 얼굴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산악지대에서 사는 사람의 생김새는 울퉁불퉁하게 생겼습니다. 지형적으로나 그 지방의 분위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인도 얼굴이 잘 생겨야 합니다. 누가 만지고 싶을 정도로 포동포동하게 잘생겨야 합니다. 누가 보아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시꺼멓게 해서 나타나니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누가 말을 하는데 선생님이 대구에 오셨으니까 대구 잘 되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대구가 망할 것 같아서 그래요?

여러분은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기록을 세우고 해외에 나가야 합니다. 좋은 기록도 있고 나쁜 기록도 있지만, 좋은 기록을 세워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6천년 열매니 무엇이니 하는데 여러분이 그렇게 될 자신이 있습니까? 될 수 있어요? 여러분의 모습을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될 수가 없게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열매가 될 그 중심존재는 누가 되어야 합니까?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열매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열매가 됩니까? 여러분은 어머니의 태에서 생겨나지도 않은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되다니? 장가도 못 갔는데 내 자신이 되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되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되어야 합니까? 역사적인 열매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종지조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분이 열매를 못 맺었는데, 줄기가 생겨나고 가지고 생길 게 무엇이며, 꽃이 무엇이며, 열매가 무슨 열매입니까? 그러기에 완전한 열매가 되어야 됩니다. 그 열매가 누구라구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열매가 되려면

6천년 역사 노정에서 하나님은 열매가 못 되었습니다. 그 열매가 사람에게 맺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열매가 열리는 가지는 어떤 가지냐? 열매가 굵은 가지에 열립니까, 잔가지에 열립니까? 잔가지에 열립니다. 잔가지에서도 곁가지에 열립니까? 곁가지에 열리지 않습니다. 만약 열렸다가는 바람이 불면 다 떨어집니다. 지금까지 70년을 자랐으면 70년 동안 병충해를 입지 않고 정상적으로 영양소를 받아 건강하게 자란 가지만이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거기에 조금만 결여되어 있어도 그에 해당되는 비율만큼 열매가 결여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긴 심었는데 이 심은 인간이 역사상에서 가지가 되어 동으로 뻗고 서로 뻗어 오늘날과 같은 이런 터전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열매 하나 못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즉, 열매를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기 전에는 무엇이 납니까? 꽃이 납니다. 꽃이 나기 전에는 무엇이 납니까? 잎이 납니다. 물론 잎이 나기 전에 가지가 나고 그렇습니다만.

오늘날 세계의 인류를 보게 되면 잎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잎도 좋은 나무의 잎이면 모르지만 알아보지도 못할 잎들도 많습니다. 별의별 잎사귀가 많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수없는 복잡한 사연에 얽힌 그런 잎들이 많다는 거에요. 여러분 여기에 안지랭이 산이 있지요? 그 산을 바라보세요. 푸르러 보이지요? 산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소나무만 있어서 푸르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오면 이 나무 저 나무 할것없이, 이름을 가진 나무나 가지지 않은 풀이나 전부다 자기 나름의 푸른 빛을 냅니다. 자기 이름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자기 나름의 푸른 빛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푸르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자기 나름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를 보아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도 많은 유형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보기만 해도 가시돋힌 엉겅퀴같이 거칠고 기분 나쁜 그런 분야에 속한 사람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야의 책임자가 대왕이 되려고 하니 그게 되겠어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체로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산에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중에 제일 큰 나무가 몇 그루 있겠습니까? 한 그루밖에 없습니다. 또 제일 좋은 풀은 몇 포기가 있겠습니까? 한 포기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만일에 주인이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데 각각 하나씩만 사랑한다면 어떤 것을 사랑하겠습니까? 다 제쳐 놓고 제일 좋고 큰 나무와 풀을 사랑할 겁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세계를 볼 때,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장사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해요? 장사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슨 일로 여기에 모였습니까? 여러분은 총을 파는 장사꾼인데, 즉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패들인데 왜 이렇게 모였습니까? 「좋아하려고 모였습니다」 돈을 못 벌어도 좋아해요? 장사를 하려면 솔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안 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실까요? 그걸 좋아하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장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주장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어해야 합니다. 사탄이 주장하는 그 세계에서 장사를 하게 되면 사탄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가 그런 일을 해서 하나님의 일을 망쳐 놓았기 때문에, 내가 장사를 해서 오히려 사탄을 망하게 한다면 하나님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장사 그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장사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제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볼 때 잘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서 잘삽니까? 장사를 해서 잘 삽니까? 도를 닦아서 잘삽니까? 장사해서 잘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일본도 장사를 해서 살았기 때문에 대체로 볼 때 하나님께서 일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국은? 미국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진국가들은 약소국가를 식민지로 쟁탈해 가지고 자기들의 생산품을 소모시키는 시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장사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반대로 장사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합니까? 그래야 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장사하지 않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좋아할까요?

우선 하나하나 따져 들어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대체로 장사하는 사람보다도 장사를 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가인 입장이요, 장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벨 입장입니다. 섭섭하지만 할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하지 않는 사람들만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선진국가들을 싫어하고 후진국가들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프리카를 제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데 누구를 사랑하시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누구를 사랑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숭앙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정적인 사랑의 힘이 커야

여러분이 집에서 부인에게 무슨 일을 놓고 큰소리를 쳐도 부인은 `예' 하고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자기 부인이니까 `예'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웃동네의 아주머니를 보고 야단을 쳤다면 분명히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관심이 있어서 그 사람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깊이 간섭하게 되고 나무라게 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이 녀석아, 왜 그랬어? ' 하고 도리어 혼을 내게 됩니다. 이웃 동네 총각 같으면 잘못해도 모르는 체하겠지만 자기 자식 같으면 `종아리 걷어' 해놓고 때리며 `이 녀석아, 그것 잘한거야, 못한거야? '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리는 것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가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원수가 됩니다. 원수 중에도 큰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이혼을 해 놓고 부인을 때리면 큰일나지요? 그런 사람 봤어요? 그랬다가는 칼침 맞습니다. 이혼하기 전에는 부인이 남편을 천대했다고 하면서 남편이 부인을 때리면 부인이 욕하지만, 이혼을 한 다음에도 그러면 남편이 욕먹습니다. 남자가 이혼한 후에도 그러다 여자에게 칼 맞아 죽으면 `그 자식 잘못하더니 칼 맞고 잘 죽었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몽둥이 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렸다가는 전부다 깨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사랑하는 자리에서 때리면 괜찮습니다. 즉, 사랑을 열만큼 하고 다섯만큼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잘생겼느냐 못생겼느냐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생겼든 못생겼든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할 수 없이 무지몽매하고 번번이 일러주어도 잘하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의 속이 타겠어요, 안 타겠어요? 속이 탑니다. 그때는 할 수 없이 채찍으로 칠 것입니다. 망하라고 칩니까? 망하라고 친다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혁명의 봉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때리더라도 사랑하는 그 기준 이하에서 때려야 합니다. 때리고 나서도 기분 좋아하는 부모를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보다 더 위대하시고 사랑이 더 많으신 분인데 인류를 때리고 나서 기분 좋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식이 어려운 자리에서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을 보는 하나님은 그 자식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그런 심정을 알고서 맞고 나서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인간 세상을 찾아 나오는 정적인 인연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종교

그러면 이 세계에서 하나님을 숭상하고 좋아하며 모이는 곳이 어디냐? 교회, 즉 종교라는 것입니다. 무슨 대학교가 아닙니다. 종교입니다. 그런데 종교 중에는 물질 축복을 위주한 종교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돈이 필요한 사람은 종교를 믿으면 덕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이 없어서 아들딸을 얻기 위해 믿는 사람도 있고, 혹은 세계적인 미인을 마누라로 얻고 싶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미인을 달라고 하는 그런 녀석도 있다는 것입니다. 별의별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별의별 종교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고 제일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돈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장가 잘 가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왜 믿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다른 입장에서 요구하는 종교는 하나님과는 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종교는 하나님이 당면한 문제를 중심삼고 관심을 가지고 정성들이는 개인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종교, 그러한 주의나 사상을 가지고 움직이는 종교를 하나님은 제일 좋아합니다. 그런 종교가 어느 종교냐?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종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온 세계의 종교가 서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한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으로 사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내용을 물어보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나라의 왕입니다'라고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내 남편입니다'라고 하는 것, 이 이상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버지와 아들딸이 되면 식구가 됩니다. 이 이상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셔도 이 이상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종교 중에서도 그런 내용을 파헤쳐 나온 종교가 모든 국가와 인류의 한계선을 넘어서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종교가 오늘날 인류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의 종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누구로 규명했느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밝혀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라구요? 「아버지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는 별의별 아버지가 다 있습니다. 의붓 아버지,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양 아버지 등. 세상에는 별의별 껄렁껄렁한 아버지가 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중의 참아버지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무슨 아버지라구요? 「참아버지요」

참된 열매와 같은 참아버지와 참아들

그러면 참아버지는 두 분이에요, 한 분이에요? 「한 분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이 세계를 초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아버지입니다. 세상에서 어느 누가 위협하더라도 하나님은 `참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을 찾겠는 가 생각해 보세요. 내가 말한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을 찾고 계신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와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자식과 부모가 갈라져 살고 싶겠습니까, 이마 맞대고 영원히 같이 살고 싶겠습니까?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을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자관계에서도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데 하물며 참아버지와 참아들딸이 같이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같이 살고 싶겠어요, 안 살고 싶겠어요? 「살고 싶을 것입니다」

`참아버지'라고 역사적으로 규명한 것을 앞으로 다른 사람이 규명하려고 해도 이 이상 규명할 수 없습니다. 참아버지보다 더 확실히 발전시켜 부를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입니까, 중간입니까?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온 겁니다. 마지막 아버지라는 겁니다. 맨나중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는 마지막 열매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무엇이냐? 아버지는 열매입니다. 아버지가 나왔으므로 그 다음에는 아들이 자동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아버지와 다릅니까? 「같습니다」 아버지 같은 자식이므로 `참자식, 참아들딸'입니다. 이 참자식은 하나님이 참아버지의 자리에서 최고의 기준으로 찾아 나온 자식입니다.

그러면 참아들딸의 이름을 갖고 왔던 자가 얼마나 있었느냐? 오랜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 중에서 참아들딸이 몇명이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참아버지라면, 그 참아버지는 참아들을 만나는 것이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좋은 게 없습니다. 세계를 가지면 무엇하겠습니까? 또 대학을 나오면 뭘 합니까? 모양이 어떻더라도 자기만 사랑해 주면 된다는 말처럼 참자식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이유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가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합니다」 자기가 자립할 때까지는 필요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아버지 어머니 빨리 죽으라고 하면 되겠어요? 이것이 천리의 도리에 맞습니까? 그것은 불효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은 참아버지로서 참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 가운데에서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의 그 어느 단체도 어떠한 종교인도 어떠한 사람도 이 기준을 발견해 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누구로 말미암아 되었습니까?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되었습니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세계적인 존재가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선전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전을 안 해도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참아버지 참자식이라는 이름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참아버지는 이렇고 참자식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세상 천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상속받을 특권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버지의 사랑을 자식이 말없이 인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아들은 아버지의 권한을 자동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에서 제일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동네 문전을 찾아다니며 동냥을 할망정 사람 팔자는 알 수 없으니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 근원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뿌리에서 갈라져 나와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되었지만 원래는 종자가 같았기 때문에 종자의 인연을 따라서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감나무를 태평양 건너 미국에다 심어 놓으면 감나무 열매를 맺지요? 「예」 맺지 말라고 해도 맺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보기에는 주렁박처럼 생겼고 기와골에 올려진 호박처럼 생겼지만 자기 나름으로는 `나는 세계에서 제일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포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죽어요 죽어. 그런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도 하고 친구라고도 하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거기에는 사랑을 중심삼은 평등적인 특권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병신 자식이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그런 자식이 없기를 바라지만 생겨난 후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산골짜기에 가 있어도 부모는 다른 자식보다 병신 자식을 더 걱정합니다. 부모는 어디에 가 있더라도 그 병신 자식을 제일 걱정하는 것입니다. 허우대가 좋고 잘난 자식에게는 걱정이 덜 갑니다. 하나님도 선생님 같은 사람은 걱정을 안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잘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보다는 잘났습니다. (웃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제자들보다는 잘난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같이 허우대가 좋은 사람보다도 못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인연되어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해야 된다고 할 때는 하나님도 꼼짝달싹 못하고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났습니까, 못났습니까? 아무리 시시하게 생겼어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당길 수 있는 피를 고스란히 받고 난 아들딸의 인연을 가졌을 때는 잘나고 못 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옷이 없어서 거적대기를 쓰고 페품을 수집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산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인연을 맺게 되면 천하를 호령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생사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통일교회가 역사적인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참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면 아버지가 사는 곳에 가서 살고 아버지가 죽는 곳에 가서 죽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하며 그 마음에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그 마음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6천년의 열매로 남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같이 살고 같이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그 아들딸은 6천년의 열매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내가 틀림없이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 정말 그래요? 「예」 안 그렇다 해도 빨리 바꿔야 됩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망신당하게 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잘 피해야 합니다. 눈치를 봐 가지고 피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망신당하는 것보다는 남을 본뜨더라도 망신을 안 당하는 사람이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선생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고는 그럴싸 하면 이 시간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대신 여러분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 신념은 어떤 신념이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다는 신념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가 사는 곳에 나도 살고, 그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그 아버지가 슬퍼하면 나도 슬퍼해야 하고, 그 아버지가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나도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그림자같이 따라다녀야 합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기도하면 6천년의 열매만 되겠습니까? 열매가 되기 이전에 여러분은 새 줄기가 되어야 되겠고, 새 가지가 되어야 되겠고, 새 가지의 꽃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 이제 열매가 되었으니 하나님과 다를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죽으려 할 때 같이 죽을 수 있습니까? 「예」 정말 그래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래요? 「예!」 그러면 내가 오늘 이런 얘기 안 해도 됩니다. 나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뒷맛이 아직까지 우러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어야지요. 정말 그래요? 「예!」 그렇다면 모두 잡아다가 기합을 좀 줘 봐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고문대가 있다면 거꾸로 동여매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고문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을 파헤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와 같이 죽겠느냐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사실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칼을 목에다 대고 위협하는 데도 죽겠습니까? 「예!」 정말 그래요? 정말 그렇다면 큰일나겠습니다. 내가 보따리를 싸 들고 가야 되겠습니다. (웃음) 정말 그래요? 「예!」 그러면 하나님도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죽겠다고 결심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만 죽어라. 나만 살겠다' 그러겠습니까?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안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지 알아요? 여러분이 나한테 집중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는다는 얘기가 나와야 졸던 사람이 잠을 퍼뜩 깨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경상남도에서 여기 오려고 벌써 며칠 전부터 돈을 마련하려고 별의별 일을 다 했지요? 그래 가지고 여기 와서 졸고 가면 되겠어요. 졸면 나도 기분 나쁩니다. 자 그러면, 졸지 않기로 약속하는 거죠? 「예」 조는 사람이 있으면 코를 비틀고 귀를 잡아 당기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내가 여기서 물건을 집어 던질 겁니다.

죽는 얘기가 나오고 총알이 왔다갔다해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입니다. 졸고 있다가는 통일 못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야 통일되는 것이 아닙니까? 둘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암스트롱이 달나라 가서 내릴 때 그 사람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되지 않았습니까? 모두들 조마조마했을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도 그랬을 것입니다. 코시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듣고 나서는 자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무엇에 자신을 가졌습니까? 기도하는 데 자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는 자신을 가지고 `하나님이여, 6천 년 열매가 여기에 나타났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기도를 하십시오. `세계의 만민 가운데서 나밖에 없다. 만세의 참다운 조상이 나로부터 시작되니 후손들은 본을 받을지어다'라고 이렇게 할 자신이 있습니까?

만세(萬世)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

통일을 할 수 있는 원칙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까지의 역사는 미래를 향해 발전해 나오면서 목적을 세워 나왔습니다만 이래 가지고는 통일의 세계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에서는 혁명이 계속되며, 비참한 투쟁의 역사가 소용돌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후에 역사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과거의 역사는 지나갔지만 역사는 현실에 영향을 주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로 하여금 미래의 소망의 터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시대에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이념기반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천년 역사를 지냈으면 천년 역사가, 즉 과거가 우리에게 머리 숙이고, 현재가 머리 숙이고, 미래가 머리를 숙이게끔 해야 합니다. 3점이 한 곳으로 결합되는 기원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우리는 역사적인 열매가 될 시대적인 존재가 됐고 기원이 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3점이 여기에서 결합하여 모든 것이 해원성사될 수 있습니다. 이곳은 모든 것의 동기가 되고 시작이 됩니다. 알파인 동시에 오메가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알파와 오메가의 의미는 오메가가 알파를 능가하고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알파의 기준에 오메가가 일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기준에 도달하려면 참아버지와 참아들딸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일치되어야 역사과정에서 자랑할 수 있고, 30억 인류에게 자랑할 수 있고, 미래의 자손에게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결집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워 하나님에게 공인을 받는 날에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됩니다. 석가모니는 환상적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지만 여러분은 실증적인 기준에서 그런 말을 해야 합니다.

역사는 그런 모체와 더불어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이 세계는 역사의 모체와 더불어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역사는 모체가 바라는 대상이 되기 위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 그 원인이 되는 모체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의 세계가 안 됩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러한 자리에 서는 여러분들은 확실히 역사적인 존재입니다.

선지선열들이나 효자효녀들에게 참아버지와 참아들딸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세계 30억 인류 어느누구를 붙들고 물어 보아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육시킨다면 교육 중에서 최고의 교육이 될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르쳐주면 하나님께서도 이 교육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연을 갖게 할 수 있는 교육은 단 하나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와 참자식의 인연을 가르쳐 주는 교육자는 천상천하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스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적인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인류가 가는 길 앞에 반드시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중심존재가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입니다. 그 사상이 다시 오는 주인공의 사상입니다. 이렇게 보면 간단하지요?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추어서 사탄의 핏줄을 잘라 버리게 되면 여기에서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첫말이 참아버지와 참아들딸입니다. 한이 맺히더라도 뼛속에 이 인연을 맺어 천지가 공인하고, 이 현상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모체가 될 때까지 죄악의 세계를 수습해야 합니다. 앞장서서 하겠다는 주체의식이 철두철미하게 박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완전히 하고자 하지 않을 때 심판의 조건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런 기준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지자

그리하여 그 아들딸로 말미암아 참가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참가정은 천년 사연을 넘고 역사적인 슬픔을 넘어갈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한 날의 소망과 행복의 터전인 안식의 복지를 찾는 것이 수많은 종교가 소원하는 기준이요, 하나님이 6천년 섭리하시는 목적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비참한 역사과정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극복하게 하시는 것도 그 한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길을 거쳐 정상적인 자리를 잡아 가지고 천상세계 앞에 하나님의 아들의 도리를 다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오냐, 너 아니면 내가 살 수 없고 너를 자랑하지 않을래야 아니할 수 없구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는 날에는 천국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국경을 넘어서 세계 만민 앞에, 오랜 시대를 거쳐온 이 역사 앞에, 미래에 엮어질 역사 앞에 한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대사건을 우리가 담당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이것에 대한 각오, 이것에 대한 신념이 확실해야 합니다. 세계 인류가 소망하고 있는 그 기준을 넘어 앞으로 산 역사를 이 땅 위에서 이루려고 할 때, 이곳에서부터 새로운 지상천국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럼 하나님께서 죽더라도 총을 팔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팔아야 되겠어요, 안 팔아야 되겠어요? 「팔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팔지 말라고 하면 죽어도 팔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팔라는 말씀을 안 하면 좋아할 것입니다. 나도 팔라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수고하라고 하면 싫어하지요? 세상에서 달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까?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달라고 멱살 잡는데 기분 좋습니까? 기분 나쁩니다. 기분 나쁜 것이 좋아질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부자의 관계를 맺는 길입니다.

이러한 관계만 맺으면 지옥도 천국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도 그렇고 참다운 형제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만약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형님이라면 동생이 달라는 것을 보고도 반가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윤리나, 인간 윤리가 이 지상에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체휼적인 신앙을 하기 위해서는

체휼적인 신앙,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 가지고도 안 되며 노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됩니다. 물 한 컵을 가지고 천년 역사를 엮어 가더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여 불안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 조금도 침범하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만고의 역사가 동원되어 협조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늘의 모든 위업을 상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후에는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축복해 주시면 좋겠습니까, 안 좋겠습니까? 「좋습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어서 여러분이 돈이 필요하면 선생님이 수표에 사인만 하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합시다. 내 마음에 따라서 일 원짜리도 끊을 수 있고, 십 원짜리도 끊을 수 있고, 백원짜리도 끊을 수 있고, 일 억짜리도 끊을 수 있고, 백 억짜리도, 천 억짜리도, 일조짜리도 끊을 수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를 받고 싶겠습니까? 「일조짜리요」 그러면 언제 그 사인을 해줄지 압니까? 여러분이 없을 때 끊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없는 복을 통일교인에게 주겠다고 수표를 주신다면, 여러분은 얼마를 받고 싶어요? 한 냥, 닷 냥, 열 냥, 이렇게 배당받는 종이 아니라면 얼마만큼 필요한지 대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시는데 여러분이 달라는 대로 주신다면 얼마나 필요합니까? 「일 경요」 그 돈을 주신다면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 돈을 가지고 일 년 예산을 세워서 이익이 나게 할 자신 있습니까? 자신이 있느냐 말입니다. 자신도 없으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믿지는 장사는 안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대답해 보십시오. 「4백만 원 필요합니다」 4백만 원? 시시해서 예산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하긴 필요한데 대관절 얼마나 필요하냐? 하나님께서 준다고 할 때 얼마를 받을 것이냐? 그것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돈을 벌겠다면 쓸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여기 목적이 뚜렷하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한 사람도 없구만. 목적도 없는 사람이 돈을 받아서 무엇을 한다는 것입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하고 일했다간 95퍼센트 실패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돈이 얼마나 필요할 것이냐? 선생님은 돈이 모자라서 필요합니다. 돈이 무한히 모자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생님은 앞으로 미국도 살 것입니다. 미국을 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미국 국민을 지금보다 십 배 잘살게 해준다면 어서어서 미국을 맡아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럴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것도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대구도 몽땅 살 수 있습니다. 대구 시민의 생활수준을 현재의 3배가 되게 해준다면 굶주린 사람들이 대구를 맡아 달라고 야단할 것입니다. 사는 것도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몇 배만 잘살게 해주면 사지 않는 다고 해도 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사법

그러면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팔려 가겠어요, 팔려 가지 않겠어요? 「안 팔려 갑니다」 안 팔려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든가 팔려 가든가 둘 중의 하나는 되어야 할 게 아닙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겠습니다」 그러면 나를 사 가십시오. 날 사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웃음) 선생님이 팔려 간다고 하면 팔려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팔려가겠습니까, 안 팔려가겠습니까? 하나님도 사랑에는 팔려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외국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다리가 부러져서 사흘 동안 주저앉아 묵게 되면 부모가 보따리 싸 가지고 달려가겠습니까, 안 달려가겠습니까? 말하지 않아도 달려가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라 하더라도 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을 사랑에 팔려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손해나는 곳보다는 이익이 나는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만큼 이익을 보려고 하고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만큼 거기에 해당하는 이익을 보려고 합니다. 이익될 수 있는 것만 보여 주면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믿는데, 통일교회를 믿어 가지고 쌀밥을 먹고, 쇠고기 장조림을 먹고 있습니까? 쌀밥을 먹던 사람이 도리어 조밥이나 보리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된 것입니까, 못된 것입니까? 밤낮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편안하게만 지내다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매를 맞게 되고, 교회 왔다가 집에 들어가려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나 없나 하고 눈치를 보는데도 고마운 일입니까? 의붓자식 취급을 받는데도 좋습니까? 이것이 이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이익입니다」 뭐가 이익입니까? (웃음)

통일교회는 처음부터 이익을 보지 않습니다. 먼저 손해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사법은 좀 다릅니다. 이익만 보려다가 타락했기 때문에, 먼저 손해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손해본 맛을 모르는 사람이 이익의 맛을 알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은 처음에 손해봐야 됩니다.

탕감이라는 말이 복받았다는 말입니까, 손해봤다는 말입니까? 손해봤다는 말입니다. 복귀라는 말이 손해봤다는 말입니까, 손해 안 봤다는 말입니까? 「손해봤다는 말입니다」 복귀라는 말이 되돌아간다는 말이지요? 나쁘니까 되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 손해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지한 사람은 이렇게 가르쳐 주어야 아는 것입니다.

먼저 희생하고 수고하자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곧 선한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처음에 손해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그 손해보는 것이 일생 동안 끝나지 않게 될 때는 몇 대라도 내려가다가 그것이 다 채워지는 날에야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도 이 땅에 와 가지고 손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익을 주려고 4천년 동안 수고와 희생을 치르게 해 가지고 한때를 맞이하여 메시아를 보냈는데 오히려 그 메시아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그후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손해를 본 것입니다. 재봉춘할 때가 와서 이스라엘이 건국은 되었지만, 옛날에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원수 국가들이 싸움을 해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을 죽인 것을 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망하지 않게 하려면 통일교회가 전도해야 됩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손해보며 내려왔습니다. 민족적인 기준에서 손해보게 되면, 민족이 재기할 수 있는 기원은 되지만 세계가 제기할 수 있는 기원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연이어서 세계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게 될 때에는, 세계적으로 이익을 주기 위한 주인이 오시는데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재림주님입니다.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손해을 보지 않고서는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업가가 고생도 하지 않고 건달처럼 놀아서 성공할 수 있어요? 고생해야 합니다. 마음의 고생, 몸의 고생, 안팎의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신의 모든 것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해 보았다는 결과를 세워 놓아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어려움을 극복한 만큼 성사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이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주의 운세를 돌이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의 길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역로(逆路)를 걸어오시면서 지치지 않고 깨끗이 손해를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망하게 했고, 사랑하는 나라를 망하게 했고, 사랑하는 세계를 망하게 하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끝났다고 할 때는 그때부터 이익만 남게 됩니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만사는 반드시 끝이 있는 법입니다. 그 양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그 전에 양을 채워 넘어가려고 하면 아무리 채우려 해도 그것은 채워지지 않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과 순리의 법도를 따라 양을 채우고 끝까지 남아지기 위해 지성을 들여야 합니다. 끝까지 남아서 그 양이 차게 될 때는 새로운 광명한 아침의 해를 처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적인 행운아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다면 그 사람, 어떤 단체가 그렇다면 그 단체, 어떤 나라가 그렇다면 그 나라에 행운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러한 개인과 단체가 되어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먼저 그 나라를 위해서 손해를 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기를 싫어합니다. 그러기에 손해 보기 싫어하는 민족이 내 등을 타고 넘어가고 내 배를 밟고 넘어가게 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나로 하여금 이익을 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이익을 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손해를 봐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길이 그런 길입니다. 내가 그런 길을 가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런 길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하시기 전에 내가 그 앞에서 하나님 대신 고생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입고서 선두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면 고생하시겠습니까, 안 하시겠습니까? 내가 고생해 가지고 그 대가를 치렀다면 하나님은 고생하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런 곳을 찾아가십니다.

종교는 이런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먼저 민족 앞에 고생을 하고, 민족 앞에 희생을 하고, 손해를 보며 나가자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민족을 위하고, 그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가 재기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완전히 손해를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손해를 보더라도 민족을 위하는 그 정성이 어떤 민족보다 크게 쌓이게 될 때는 그 정성의 터전 위에 큰 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 피어린 투쟁의 길을 가면서 비참함을 당하면 비참하다는 말도 했고, 억울함을 당하면 억울하다는 말도 했고, 분함을 당하면 분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곱게 손해보기 위한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면서 분한 마음을 가졌다 할진대 여러분 자신은 모순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희생하고 완전히 손해를 보더라도 가야 할 길이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선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그런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천리이기 때문에 그 원칙에 순응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내 피살이 아직 남아 있고, 내 눈이 아직까지 볼 수 있는 입장에서 민족을 구원해야 할 사명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복을 받겠다고 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비판하는 사람은 벌받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에 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내적인 면에서는 인격적인 면을 갖추어서 주어야 되고, 외적인 면에서는 물질적인 면을 갖추어서 양면으로 주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줄 수 있는 입장은 되었지만, 그 한계선이 아직 이 땅에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영계에서도 그런 기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민족을 위하여 완전히 주었다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시는 데는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완전히 주면 비로소 하나님께서 오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비로소 국가적인 영광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10년, 혹은 몇년동안 믿어 왔다고 그것을 자랑할는지 모르지만 받기 위해 믿었습니까, 아니면 주기 위해 믿었습니까? 진정 잘 받았으면 잘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값 없이 받았으면 값 없이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하나의 민족에 한정을 지을 것이 아니라 세계를 넘어서 천주주의라는 엄청난 사상권내에 선 입장에서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로는 하늘을 위해 주고 아래로는 인류를 위해 주는 길을 모색해 나왔기 때문에 주는 데 있어서 하나의 정초석을 박아 놓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주는 것이 집을 짓는 데에 쓰이는 하나의 정초석과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백년 사연을 다 아는 입장에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잘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에서 믿음의 아들딸을 택하라는 말은 거룩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잘 줄 수 있는 기준을 올바르게 세워 놓으면 만국이 그 기준에 수평선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 빌딩이 이땅 위에 우뚝 세워질 수 있으되 그 기초가 어긋날 때는 전부 다 파탄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민족이 아무리 훌륭하고 역사적인 공을 세우고 선조의 혜택을 많이 가졌다 하더라도 그 기초가 잘못되게 될 때는 그 민족은 파탄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선생님이 가는 길은 비참한 길입니다. 승리하고 나서도 기뻐할 수 없는 선생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연속되는 싸움이 끝나더라도 자기라는 것을 의식해서는 안 될 이러한 과정을 거쳐가야 하고, 이러한 운명길을 개척해야 하는 지도자의 책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의 기치 아래 모인 용사들은 전국적으로 하나의 전선을 펴서 수많은 원수들이 우글거리는 적진을 향하여 진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무장을 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사탄세계로부터도 받는 입장을 넘어서 가지고 어떠한 민족에게도 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사탄한테도 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됩니다.

사탄도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탄까지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아량을 갖고 나아가게 될 때, 사탄도 틀림없이 그 용사가 자기의 병사보다 훌륭한 하늘의 용사라고 칭송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갔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잘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장사는 받겠다는 것입니까, 주겠다는 것입니까? 주겠다는 거예요, 받겠다는 거예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총을 파는 데 있어서 어떠한 마음으로 파느냐? 총을 팔기 위해서 파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촉박해 있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판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총을 판 돈을 천만금 이상 가치 있게 써야 하기 때문에 파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총을 많이 팔면 경북이면 경북이 살 수 있는 것이요, 경남이면 경남이 살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총을 파는 것은 이 민족을 위해 주기 위한 것이요,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민족의 어느 한 사람보다는 천 사람 만 사람, 민족전체에게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총은 결코 만 오천 원짜리가 아닙니다. 천만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심적 자세로 고마운 마음, 황공한 마음,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느끼고 나가 팔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아직까지 완전히 다 주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3국의 자원을 끌어다가 이 민족을 잘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 참다운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후의 복이 무엇이냐? 최후의 복은 다른 게 아닙니다. 부모가 일찍 죽은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는 아들딸의 소원이 무엇이냐? 돈이 아닙니다. 밥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의 소원은 오직 죽은 아버지 어머니가 다시 회생하는 것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류 앞에 선물을 주려면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선물을 주자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소개해 줄 때는 참된 것을 소개해 주자는 것이며, 보여 줄 때에는 정당한 것을 보여 주자는 것이고, 틀림없는 것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는 데는 무엇을 가르쳐 주자는 것이냐? 돈 버는 것을 가르쳐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잘 하고 출세하는 것을 가르쳐 주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의 이 시대에 있어서 인류 만민이 소망하는 참부모와 그와 인연된 참된 자식의 도리를 완전히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그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존중시하고 운명적으로 선생님을 따라가며 스승을 모셔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기연가미연가 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식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한 이 운명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는 삼천만 민족을 대하여 완전히 줄 수 있는 입장이지만, 육적인 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근대화운동을 제시해야 할 통일교회

오늘날 조국 근대화를 위해 통일교회가 얼마만큼 공헌해야 되느냐? 현재의 공화당 정권은 조국 근대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근대화 운동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자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나오게 되면 완전한 대상도 나오는 것입니다. 참의 중심이 결정될 때는 그 상대적인 여건이 결부됩니다. 아직은 시간적 거리가 연결이 안 되었고 상대적 여건이 나타날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한 환경이 이루어지는 때에는 세계의 물질적인 요건은 물론 세계 전체가 우리 앞에 달려 들어올 것입니다.

개인의 경제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경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미 나는 내 개체가 살 수 있는 생활기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을 어떠한 단체나 혹은 우리 교회가 쓸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의 중심으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경제적 기반 위에서 우리는 국가와 접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되겠고, 또한 세계와 접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는 데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무대를 중심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인류를 품에 안고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물질까지 줌으로써 하나님 앞에 영원히 감사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원을 오늘날 우리 통일의 무리를 앞세워 가지고 만들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면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계시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물질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양면으로 줄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탄까지 심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심판할 수 없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사탄을 당당코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내적인 분야에서도 책임을 지고, 외적인 분야에서도 책임을 져서 양면적으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탄보다도 낫고 하나님보다도 나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심판하고 하나님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명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다하기를 하늘도 땅도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도 우리를 향해서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누가 문제라구요? 내가 문제입니다. 즉, 참된 부모와 참된 자기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는 끝나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되 그 모은 돈을 가지고 내 아들딸 잘 먹이겠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들딸에게 주기 전에 세계를 위해서 주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 아들딸은 세계를 위한 아들딸이기 때문에 먼저 세계에 주고 나서 아들딸에게 주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가정보다는 먼저 민족을 위해서 주고 난 다음에 가정을 위해 주려고 하면, 하나님은 내 가정과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아들딸을 먹여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려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기에게 있는 재산 전부를 나라를 위하여 주고 세계를 위하여 주며 희생해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자동적으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어떻게 하여 세계적으로 신망을 받는 나라가 되었느냐 하면 2차 대전 이후에 전쟁에 패망한 나라들, 즉 원수의 나라에도 원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대신해서 주었기 때문에 미국의 지위가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점점 줄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후퇴해 보세요. 그러면 소련 함대가 인도양을 거쳐 점점 접근해 올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미국은 점점 후퇴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 5년, 7년만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경제복귀 활동에 있어서 취해야 할 바른 자세

1981년도는 우리의 제3차 7년 노정이 끝나는 때인데 그때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통일의 기반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그때까지 어떻게 이것을 세계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작전을 짜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 방대한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에 앞서서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만든 다음에 돈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문제입니까? 내가 문제입니까? 「내가 문제입니다」 총을 팔때 총한테 팔려가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구의 도성을 돌아다니게 될 때에는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물질적인 경제복귀를 위한 통일전선에 섰다 할진대 우리는 거기에서 온갖 힘을 다해야 합니다. 목적을 응시하면서 시가를 행군하는 병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군의 모든 보급로가 끊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하기 위해서 내가 대표로 나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구에 있는 여러분들이 전국의 생명과 통일교회의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할 때, 하나님은 전체의 기준으로 바라보던 축복의 인연을 가지고 대구의 무리를 붙들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시켜서 대한민국을 위한 기업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것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절대 총에 팔려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다 저장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경제복귀를 위한 전통을 남겨야 합니다. 나는 완전히 주기 위해서 개척시대의 용사로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렇게 싸워 왔다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자손만대의 전통으로 남길 수 있는 재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길을 가는 데에는 조롱도 받을 것이고, 침을 뱉고 돌아서는 사람도 만날 때가 있을 것이며, 넥타이를 움켜 쥐고 뺨을 후려갈기는 사람도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슬픈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찾기 위해 경제복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그 이상의 일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전부가 자신이 이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경제복귀를 하는 데 있어서 용사로서의 긍지를 갖추게 하는 하나의 절대적 요건이며, 달성해야 할 목표량을 높이게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팔리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가겠습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1년 동안 계속해야 된다면 그렇게 해야 되고, 그렇게 하고 나서도 내일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또 해야 한다면 2년이라도 계속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10년 동안만 끌고 나가면 10년 후에는 반드시 남이 하지 못하는 성공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총한테 팔려가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나는 총을 선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선전하는 사람입니다. 총을 팔되 민족을 걸고, 엄숙한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물질적, 경제적 기반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총을 팔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총이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되어 고철로 팔아야 되는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총은 고철로 팔아서는 안 되겠으니 하늘 창고에 보관해야 되겠다'라고 하실 수 있게끔 그런 마음으로 총을 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경제관

이것을 들고 보면 막대기 같은 총이지만 이 총에는 민족의 혼이 깃들어 있고, 또한 후대 만민들이 표본으로 삼아야 할 사상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마음으로 총을 판 사람은 그 총의 배후에 천년사를 엮어 나가도 끊길 수 없는 인연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백 정의 총을 팔았다면 그것은 다 자기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천 정을 팔았으면 판 만큼 그것은 다 자기의 재산이 됩니다. 그것을 본부에 바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본부에 바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본부를 거쳐 몇십 배 몇백 배의 축복을 갖다 줍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입장에서 물질을 다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한 것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나한테는 쓸 돈이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의 어떤 사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공적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이제 나라의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경제요건을 갖추어야 할 하늘의 때가 왔기 때문에 우리 모두 경제문제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나는 12년 동안 공장을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의 그 어떤 기업주보다도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결심해서 자신있게 나갈 때 악한 사탄은 후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선생님의 경제관에는 사심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운세를 지배하는 데에 하나님이 있고, 또한 대한민국의 경제를 건설하는 데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는 한, 나는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도 사심을 떠나서 공적인 입장에서 그 목적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누가 조건을 걸고 반대하면 반대한 그 사람이 꺾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다 된다는 것입니다.

호미자루를 쥐고 도라지를 캐어 먹으면서 산골의 화전민으로 일생을 산다 하더라도 그 호미 끝으로 천지를 낚는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천지 도수의 인연에 따라 맺어지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산중 초가살이를 하고 있더라도 나중에는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앞으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오늘날 이 땅을 바라볼 때 그럴 수 있는 사람, 그럴 수 있는 민족, 그럴 수 있는 국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되고, 그럴수 있는 민족이 되고, 그럴 수 있는 국가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되면 세계 모든 국가가 물질적인 기반을 하나님에게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만국의 모든 자원은 자동적으로 그 나라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리의 사상을 중심삼고 이러한 원칙적인 기준 밑에서 장사를 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의 정상적인 가격은 얼마인데 더 많이 받으려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 거짓말은 그냥 거짓말로 끝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해서 한푼이라도 더 받아서 쓸데없이 술에 날려 보내거나, 거리의 싸움판에서, 혹은 어떤 여자의 치마폭에서 날려 보내면 거짓말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그 돈이 한 생명을 살리고 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원이 된다면, 내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서라도 생명을 살려 주는 것이 선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사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마음으로 약간의 거짓말을 한다 해도 정당한 입장에서만 하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의 정보활동은 전부다 거짓말 투성이입니다. 국가정책을 무시하며 합니다. 북한이 남한의 정책을 전부 다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도 북한의 정책을 전부 다 무시하며 합니다. 남한도 북한에 공작원을 파견해서 첩보활동을 하는데 전부 다 속임수로 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는 공의의 법도에 서지 못할 망할 나라입니다. 악한 사탄권내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를 빨리 망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공작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심정천국과 환경천국을 만들자

우리 통일교회는 관(觀)이 뚜렷하게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이념을 가지고 어디에 가더라도 걸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신을 가지고 내일의 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생활천국은 내 손으로부터, 심정천국은 내 가정으로부터 이루어 나가자는 것입니다. 즉 내 가정을 중심삼고는 심정천국을 만들고, 내 손을 통해서는 환경천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임재하고자 영원한 복지의 낙원을 이루려 하셨던 것을 오늘 우리 일대에서 하나님과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하나님께 영원한 복지를 이루어 드리자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추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들딸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기 형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원칙인 사위기대의 이념을 갖추어서 사는 아들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심정천국이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정천국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물질보다 가정이 문제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신랑 신부를 표방해 나오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를 중심삼고 가정이 갖추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내 손으로 환경천국을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남한테 빚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는 데에 있어서 남의 아들딸보다 못난 아들딸을 낳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없지요? 「예」 그것이 지겠다는 거예요, 이기겠다는 거예요? 「이기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눈이 애꾸이고 병신이더라도 남보다 더 많은 사랑을 해줘야 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천국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누구한테도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미국이나 세계의 수십개 국을 돌아보면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 요즘 한국에서 고속도로를 만들어 개통하고 야단인데, 나는 그것보다는 삼중로(三重路)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화당 정부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삼중로(三重路)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대구 통일교회가 이게 무엇입니까? 칭찬할 건더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도성을 전부 다 훌훌 태워 버리고 그 누구라도 좋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기에다 수십 수백 개의 빌딩을 한번 지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생각이 잘못됐어요, 잘됐어요? 「잘됐습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바랍니까? 「예」 그래서 여러분을 죽도록 고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고생 안 하고 될 것 같습니까?

지금 홍도와 같은 얼굴과 빛나는 눈동자를 보아서는 소망이 깃드는 것 같지만 그러한 것은 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별 수 없습니다. 그때 가서 우리는 옛날에 이렇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고생을 시켜서 등골의 기름까지 다 빠지고 가죽과 뼈만 남아도 좋다는 말입니까? 정말 좋아요? 「예」 그러면 한번 해보겠어요, 안 해보겠어요? 「해보겠습니다」 이때 나는 구경만 하고 있구요? 그렇게 한다면 진짜 순악질인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이나 총 파는 사람이나 그 목적은 같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돈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움직이느냐? 나라를 위해서 움직이고 세계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 때문에 전도를 합니까? 그것 또한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하는 사람이나 총파는 사람의 목적이 다릅니까? 「같습니다」 똑 같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더 나을 게 없습니다. 같기 때문에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를 개재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총을 팔다 보면 자기가 처해 있는 이 자리가 그렇게 귀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수수료를 천원씩 주면 적으니 3천원씩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도둑놈 사촌이 된 줄 내가 다 압니다.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보니 그래서는 안 되겠다, 창피당하겠다 해서 할 수 없이 이러고 있지,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전부 다 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도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뒤집어 씌우면 남자가 되고 저렇게 뒤집어 씌우면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했으니 이제는 여러분 자신의 위치를 알았을 것입니다. 총을 팔고 무엇을 들고 다니더라도 돈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는 시시해서 그렇게는 안 합니다. 여러분이 시시한 마음으로 장사를 한다면 절대로 여기에 안 내려올 것입니다. 내가 무슨 총을 팔기 위해 선전하고 다니는 선전 장군입니까? 기분 나쁩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라를 위해 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면 체면이 섭니까? 「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도 세계를 위하는 것이요,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종교의 대표자로서 이야기하는 것도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빠를 것이냐? 만약에 이 공기총 사업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다고 생각되면 신이 나게 해야 됩니다. 즉 돈을 버는 것이 빠를 것 같으면 더 신이 나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기 위하여 교섭할 때 세상 사람들이 원리 맛이 호떡 맛보다 더 맛이 있다고 합니까? 처음부터 원리를 들으라고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호떡이라도 먹이고 나서 들으라고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서남동 교수가 원리를 이렇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초교파운동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이 초교파 운동에 많은 돈을 썼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운동을 지금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 교수들에게 자기들이 학교에서 강의할 때 받는 강연료의 3배씩만 주고 강의하라면 `아이구 고맙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돈만 있으면 안방에 앉아서도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러한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미국에 있는 유명한 목사들도 한 백만 달러만 예금해 주면 수십 명씩 달라붙을 것입니다. 보따리를 싸 들고 죽자사자 몰려와서 선생님이 도깨비라 할지라도 모시고 얼른 하려고 야단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일은 간단합니다. 선생님에게 그 정도의 머리는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선생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도깨비 사촌이 될는지 안 될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도깨비 사촌이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이 이제는 어지간히 맞아 들어가지요? 「예」 그러니 이제는 맛도 보고 지내 봤으니 속을 만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총 50만정은 팔자고 하면 하겠어요? 「예」 그렇게 하겠어요? 「예」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죽든지 살든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못 팔면 별수없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까? 「예」 그럼 됐습니다. 그러니 내가 기분이 좋습니다. 저녁 밥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그것까지도 다 잊어버릴 만큼 기분이 좋습니다.

여기에 왠 시시한 떼거리들이 이렇게 많이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시시한 떼거리들입니까, 훌륭한 떼거리들입니까? 「훌륭한 떼거리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까보다는 더 훌륭해진 것 같습니다. (폭소) 여러분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예」 이제는 많이 훌륭해졌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하게 되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주선 알지요? 내가 암스토롱을 동생삼고 싶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그가 먼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녀석들, 내가 그것을 하려고 했는데 먼저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텔레비전으로만 보고 말았는데, 그에 대한 어떤 탕감조건을 나는 세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밤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배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세계에서 일등이 아니면 꼴찌가 되라

이걸 보면 여러분이 선생님을 잘못 만났다는 것입니다. 잘 만났어요, 못만났어요? 「잘 만났습니다」 무엇이든지 세계에서 일등이 되든가, 차라리 꼴찌가 되든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죽지도 못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꼴찌가 되는 데도 구경하는 꼴찌가 되었으며 되었지 따라가는 꼴찌는 안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는 것도 일등을 못 하겠으면 차라리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통일천하를 이루겠다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깃발을 꽂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경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졌지요? 「예」 그러니까 이제는 사탄세계의 경계선을 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잘돼야 좋겠습니까, 못되어야 좋겠습니까? 「잘돼야 좋겠습니다」 또한 한국이 미국보다 잘 되면 좋겠습니까, 못되면 좋겠습니까? 「잘되면 좋겠습니다」 잘되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잘되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일본보다 고생 안 하고 잘 되고 싶습니까? 고생하지 않고 잘되겠다는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또 미국보다 잘되는 데에 있어서도 미국 사람 이상 고생하지 않고 잘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잘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잘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미국 사람을 보면 콧대가 툭 나와서 흉물 같아 보이고 눈을 새파랗게 생겨 가지고 그 눈으로 보면 보일 것 같지도 않고, 코는 어찌나 큰지 키스할 때 방해가 됩니다. (웃음) 앵무새처럼 생겼습니다. 앵무새가 키스하는 거 봤습니까? 우리 남자끼리니 다 터놓고 이야기하자구요.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보다 낫다고 하면 그것을 바로 세워 놓아야 합니다. 덮어 놓고 우월하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 이상 결심했을 때는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나을 게 무엇이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그 이상의 결심을 했을 때는 절대 일본보다 못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 문제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됩니다. 10년 뒤에는 몇개 국에 선교를 나가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상적인 결함이나 단결을 무엇으로 촉구하느냐? 그것은 통일사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 부인과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데 선생님이 같이 살지 말고 오라고 하면 오겠습니까?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오라고 하면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가겠습니다」 여기에 부인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들의 눈을 보면 다 압니다. 지금 손을 들었던 사람들, 부인을 다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예」 저 백두산 천지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보낸다고 해도 따라오겠습니까? 「예」 싫어도 해야 되고 좋아도 해야 됩니다. 싫은 것을 하라고 해도 불평 안 하겠지요? 「예」 싫은 일을 시켜서 불평 안 하면 반대로 좋은 일을 시키면 불평해야 됩니다. (웃음) 좋은 일을 시키면 불평하고, 싫은 일을 시키면 불평하지 않는 하나의 철학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실행하는 국민이 된다면 세계를 지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하루에 12시간 피땀 흘려 일하라고 한다면 좋겠어요, 싫겠어요? 「싫습니다」 싫은데도 불구하고 불평 안 하고 웃으면서 그 일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 민족이 그러한 사상만 지니게 된다면 세계의 어느누구도 이 민족을 당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남이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좋아해야 합니다」 남이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싫어해야 합니다」

인격자란 어떤 사람이냐

인격자란 어떤 사람이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상좌에 올라가면 다 좋아합니다.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시골 사람은 면장 자리에 있다가 군수 자리로 올라앉으면 `아이쿠 좋아라. 이렇게도 좋구나' 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리로 올라 앉으시오'라고 해도 `미안하지만 난 이대로가 좋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올라갑니까, 안 올라갑니까? 「올라갑니다」 인격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즉, 좋아지고자 하는 자는 나빠지는 것입니다. 좋은 데서 좋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좋아지고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빠집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이 싫어하고 전부 다 가지 말라고 철벽을 쳐 놓아도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진격해서 그것이 한꺼번에 뚫리는 날에는 세계는 일시에 통일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싫은 것이 무엇일 것이냐?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루빨리 대한민국을 복귀하고,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천적운세를 타고 앉아서 해결을 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싫다고 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이냐? 고생 중에서 제일 고생되는 것이 무엇이냐? 삼팔선 넘어가는 것입니다. 왜 삼팔선을 넘어가는 것을 싫어합니까? 목이 달아날까 봐 그러지요. 삼팔선 넘어가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녹음이 중단됨)

사업을 하는 데 1년 중에서 9개월 동안은 만들기만 하고 그 물건을 3개월 동안 다 팔아야 되는 사업이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이 공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다? 「안 망했습니다」 불쌍한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안 망하는 것입니다.

박동기라는 사람이 총을 몇천 정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고 보십시오. 그 사람 이제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현금 받고 팔아먹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월부로 해 놓았는데 삼천리 반도에 뿌려 놓은 그 월부금을 자기가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까딱하면 떼어 먹는데 어떻게 받아 내겠습니까? 결국은 월부작전에 자기가 녹아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요즘에는 안 그런다면서요? 「예」 공기총 안 만든다면서요? 「예, 안 만듭니다」 내가 화약총을 만들게 되면 그때는 완전히 보따리 싸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젖히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대로만 해보라

선생님의 말대로만 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중에는 백 원짜리 양말까지도 3개월 월부제로 팔려고 합니다. 그것이 수금되는 날에는 한국의 경제는 몇 년 내에 내 손에서 놀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가? 선생님은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감옥으로 몰리고 이화여자대학 사건으로 쫓겨다니는 처량한 입장에 있었지만 조금 더 두고 보자 이겁니다.

삼천만 민족이 조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은 `아이구, 저 사나이는 팔자가 사납고 신수가 사납구만'하며 구름같이 흘러서 사라져 버릴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그들은 구름 속에서 벼락치는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그들이 망하면 망했지, 내가 그까짓 비판에 사라질 것 같았으면 이런 일은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감옥에 정식으로 출입한 것이 여섯 번이고 형무소 생활을 만 4년 이상 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나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주관대로 나갈 뿐입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내가 우리 통일교인들을 전부다 무시해 버리고 `당신 통일교회 믿을래, 안 믿을래' 하고 한번쯤 테스트를 해볼 것입니다. 거꾸로 세워 놓고 그래도 믿겠느냐고 해볼 것입니다. 통일사상이 똑바로 서 있느냐, 위대한 통일가의 사람이 될 수 있느냐를 테스트해 본다는 것입니다. 내가 뜻을 따라 나오면서 하나님 앞에 변치 않는 절개를 세우려 하던 그 전통의 사상을 이어받아서 그러한 사상을 이 민족 앞에 넘겨줄 수 있는 사나이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을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습니다. 해보면 좋겠어요? 「예」

옛날에 선생님이 사랑하던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를 죽여야 할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 개는 나를 보더니 살려 달라는 몸짓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개를 정말 사랑했지만 앞으로 사랑하는 아들딸을 죽음의 길로 몰아내야 할 시련의 때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 개를 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시련의 때가 우리 통일교회 앞에 닥쳐 올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테스트해 본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생사의 교차로를 몇번씩 가더라도 `사나이가 정한 철석같은 절개가 변할소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왜놈들한테 그렇게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비밀을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수십 명의 생명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형제들을 위해서, 동지들을 위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극복하고 나왔습니다. 7시간, 8시간, 심지어 12시간 이상까지 고문을 받아 보았습니다. 생사의 교차로를 몇십 번 왕래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머리를 저으며 `쳐라 이 자식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배운 교훈을 너희들 앞에 한번 실험해 볼 것이다. 너희들이 지금 나에게 고문하는 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칼을 뽑아 가지고 세계의 3분의 1일 베어 버리더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몸으로는 영광의 감투를 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결의까지 하고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 어머니가 울 때는 어머니를 외면해 버렸고, 형제가 울 때는 형제를 쫓아 버렸으며, 처자가 울 때는 처자까지도 쫓아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요? 시시하고 데데한 사람은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원칙에 어긋나게 될 때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 앞에서라도 원칙이 아닌 것은 폭파시켜 버립니다. 뜻을 위해 가야 할 길 앞에 있어서 부작용이 벌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화를 내게 되면 하루 전체가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해가 질 저녁 때에 화를 내더라도 아침에는 참아야 됩니다. 내가 가는 도상에 있어서의 아침과 같은 지금은 참아야 합니다. 그렇게 나가게 되면 저녁때에 깨끗이 정리 정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공갈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독하다면 대단히 지독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녹여 냈지요? 여러분들이 그것을 다 압니까? 「예」

문제는 사탄세계와 영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마음대로 살아왔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활동하고 있는 이 경북은 굉장히 급한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대구땅을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아직은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서울에서부터 낚시질을 해 나올 것입니다. 내가 가끔 청평에 가서 잉어 낚시를 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새벽 닭 소리를 들으며 `내일의 새벽 종소리를 들을 자가 누구뇨. 그때에 있어서 새벽밥을 준비하여 오시는 손님을 맞이할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용사가 되라

우리는 전령을 받되 아침에 받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또한 최후의 특명을 받되 낮에는 받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새벽 미명에, 그렇지 않으면 밤 12시를 넘어서는 순간에 세계적인 밀명을 받아 가지고 남이 잠자는 가운데 세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그리워하십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 스스로를 비판하고 감정하면서 보다 뜻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 됩니까? 통일교회를 알았으니 이제는 더 갈데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깜깜 천지 밤중이었기 때문에 가다가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제는 점점 낮이 되어 오니 갈 길이 훤합니다. 훤해요, 훤하지 않아요? 「훤합니다」 이제는 문턱 하나만 넘어서면 됩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조금만 더 나아가면 대통령도 이 나라의 부패상을 뿌리뽑기 위하여 나하고 의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이 나라의 부패상을 3년 이내에 뿌리뽑을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의 용사 3천 명만 준비시켜서 3년 동안만 허리띠 졸라매고 나서면 문제없습니다. 일년 이내에 교육을 시켜 가지고 조직을 짜서 움직이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상이 알록달록한, 불순한 사람들에게 통일사상을 확고히 심어 주어 가지고 부패상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좋겠지요? 「예」 그러나 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 통일교회의 간부들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가정들의 심정을 전부 다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껄렁껄렁한 사나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경상도 사람의 고집을 무슨 고집이라고 합니까? 외고집이라고 하지요? 그 말이 나쁜 것 같지만 좋은 말입니다. 통일사상만 한번 들어가게 되면 경상도 사람도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한번 해볼까요? 말까요? 「해 봐요」 정말입니까? 「예」 여러분들만 단결하면 세계가 무섭지 않습니다.

나를 보십시오. 피난시절에 선생님은 혼자서 저 범일동 꼭대기에 토담집을 짓고 처량하게 살았습니다. 위에는 미국 작업복을 물들여서 입고 아래는 한복 바지를 입었는데, 봄철이 되면 할 수 없이 솜을 모두 꺼내 버리고 쓱 걷어올린 채 입었습니다. 거기다가 신발은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 거동이 근사하겠지요?

그러고는 노동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부산의 3부두, 4부두에서 다리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전부 목도 일을 했습니다. 어느 한때 하나님의 왕자가 그런 모습으로 변해 가지고 피난 시절에 겪은 이런 일들을 교육의 재료로 소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목도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못하는 게 없습니다. 염전에 가서 소금자루를 메라고 하면 못 멜 것 같습니까? 어디에 가든지 여러분은 밥을 굶어도 나는 옷만 갈아입으면 절대 안 굶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내가 그런 것을 다 졸업한 사람입니다. 거지굴에 가서 왕초 노릇을 해 가지고 밥도 얻어먹어 보고 별의별 일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술집에 들어가서 불쌍한 아가씨들을 구해 주기 위해 빼돌리는 일도 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인들 안 해 봤겠습니까?

나는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별의별 일을 다 하면서 서슴지 않고 달려 나왔습니다. 그러한 성공의 기준을 닦아 나왔기 때문에 이제 아시아에 있어서는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할래요? 여러분은 기억하는 것보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만 단결하는 날에는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경리부장 알지요? 내가 경리부장을 만났을 때, 그는 더벅머리 총각으로 19살이었습니다. 그 뒤로 4년이 지나서 23살이 되었는데 무슨 할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식당 보이도 시키고 별의별 일을 다 시켰습니다. 얻어다 주는 밥도 먹어 보고, 점심 대신 누룽지도 먹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밥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극적이고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추울 때는 사람들이 전부 다 양지로 모여듭니다. 그러면 얼굴을 찡그리며 가서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겠으니 사람 못살게 굴지 말고 제발 비켜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도 먹고, 점심도 다 먹지 않소? 우리는 아침도 못 먹었으니 아침 먹는 사람 박대하지 말고 저리 비키시오. 이렇게 해 놓고는 양지쪽에 삥 둘러 앉아서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거기에는 남모르는 철학이 있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동무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 친구들입니다. 감정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지게꾼을 보게 되면 그 사람과 천년 사연을 엮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소가 둑 가운데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것을 보면 아주 근사하지요? 공자님보다도 더 근사합니다. (웃음) 거기에 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을 품고 가는 사람이 슬프다고 해서 슬퍼할 수 없으며, 외롭다고 해서 외로워 할 수 없으며, 처량하다고 해서 처량하게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민족의 얼이 담겨 있고, 민족의 혼이 왕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그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뜻이 없던 사람들도 내가 불을 붙이면 폭파되는 것입니다.

사나이들이 가야 할 길

선생님은 어떤 노동판에 가든지 옷을 벗고 가더라도 사흘이면 입을 것 얻어 입고, 먹을 것 얻어먹고 합니다. 밥을 얻어먹는 데도 나는 안방에 가서 얻어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것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런 선생님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나는 이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극적입니까? 내가 붓을 들어 지나온 장면들을 기록하게 되면 앞으로 다가오는 2천년대의 젊은이들 가슴속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의 누룩이 될 것입니다. 이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님은 역사상에 없는 일등 배우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땀을 빼라! 힘써라! 몰아라! 몰아쳐라!' 하는 이것이 바로 사나이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통일천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를 보고 하늘땅이 놀라 자빠질 수 있고,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경상북도는 너무나 작다는 것입니다. 너무 작아서 볼 게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피난 나온 입장과 같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별 수 있습니까? 노동도 해야 하고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 전도하러 가 가지고 별 수 있습니까? 밭고랑 타고 앉아 콧노래도 불러 가면서 해야지요? 그렇게 해 봤어요, 안 해 봤어요? 이런 일을 못 해본 사람들은 한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영계에 갔을때, 선생님의 과거 역사가 나오면 전부 다 통회하며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스위치만 누르면 선생님의 과거가 전부 나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 있을 때 노동판에 다니던 일과 근자에 짐수레를 끌고 다니던 그런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밥을 먹기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 고생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본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못 나가게 된 학생을 졸업시키기 위해서 내가 몇 달 동안 학교를 그만두고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 노릇까지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밤이 따로 없었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그런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만큼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 나가서 일도 해보고, 글씨를 써서 팔아 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회사에서 현장 감독도 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공장에 가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즉 30세 이전까지는 무엇이든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내 손을 믿고 신념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하게 될 때에는 6개월 이내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믿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그저 적당히 하려고 하지요? 그렇게 적당히 해 가지고는 하나님이 콧방귀도 안 뀐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도수가 찬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몰아쳐 가지고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서 일을 시키려고 합니다. 환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을 들 때 한꺼번에 들어야 기분이 좋지 이게 뭡니까? 자, 다시 한번 들어 보세요? 죽을 때에 숨을 들이쉬든지 내쉬든지 순간적으로 죽는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처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여기에도 못 쓰고 저기에도 못 쓰는 그런 사람은 내가 싫어합니다. 성경에도 미지근한 사람은 싫다고 했습니다. 미지근한 물이 맛이 있어요?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냉수가 아니면 마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우리하고 무슨 원수가 졌길래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야단이야'라고 할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은 아직 덜돼서 그렇습니다. 내가 그러는 것은 다 사연이 있어서입니다. 이 모두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후손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범일동에 있을 때에는 옷도 변변치 못하게 입고 더벅머리를 한 채 총각 둘이서 토굴 같은 집에서 지냈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처량하게 보였겠지요. 원필이가 자신이 돈을 벌어 오겠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원리원본을 쓰고 있었는데 동지가 얼마나 귀하고 따르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사람에 대한 맛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대문에 원필이가 회사에 나가게 될 때는 반드시 1킬로미터 이상 따라 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가 되면 반드시 마중을 나갔는데 그 만나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와 가지고 밤에 잠을 자는데 이불이 없어서 포대기 한 장만 덮고 자곤 했습니다. 그때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범일동 시절

그 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우리를 보고는 사람도 좋고 성경도 많이 알고 얘기도 곧잘 하고, 또 교회를 다녔다는 말도 들리니까 우리를 전도하고 싶어했습니다. 선생님은 얼마든지 전도할 테면 하라고 하면서 가만히 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전도하려고 말할 때는 잘 받아줍니다. 그래서 전도하러 오면 `어서 오소.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 있소' 하며 몇 시간이든지 잘 들어 줍니다. 그러면 전도하러 온 사람은 내가 틀림없이 자기 교인이 된 줄 알고 기분이 좋아서 첫날은 그냥 갑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에 틀림없이 옵니다. 그때는 내가 `이제 당신 얘기 다했소? 더 할 게 없소? 그럼 내가 하나 물어 볼까요? ' 하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부 다 물어보면 그 사람들이 뭘 알겠습니까? `예수가 그렇게 무식하오? 성경이 무식하게 되어 있는 모양이군요?' 이렇게 한마디 해 놓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지만 누구든지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게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전도를 합니까? `나는 교회는 안 나가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성경 얘기 한번 들어 볼래요' 하면서 얘기를 슬슬 시작해 나갑니다. 맨 처음에는 그 사람이 들어서 체할 얘기는 절대 안합니다. 가만히 눈치를 봐서 신경질적인 사람이면 나는 둔경질 타입으로 말을 합니다. 그렇게 몇 시간만 얘기하게 되면 내 말대로 하게 됩니다. 눈을 쏘아보면서 한바탕 얘기하면 정신이 다 돈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에 우물이 있었는데 거기에 물을 길러 온 사람들이 저 집은 싸움을 안 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요즈음 싸움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얘기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니 어수룩한 사람이 그러지 않을 사람 같은데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야단하는 것을 보고 이게 화제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세계가 왔다갔다하고, 하늘땅이 뒤집어졌다 올라갔다 하는 내용이거든요. 차려 입은 모습을 보면 형편 무인지경이고,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에서 살지만 세계를 한주먹에 말아 먹고, 하늘땅이 뒤집어지고, 한국이 한꺼번에 세계를 다 통일한다고 하는 엄청난 얘기를 하니까 소문이 난 것입니다. `저 동네에 가 보았더니 우물에서는 말이 없던 그 사람이 굉장하더라' 이렇게 소문이 나니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 게 아닙니까?

어떤 때는 무슨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와 가지고는 `역사상에 당신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많이 와서 통일세계를 꿈꾸었는데도 다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당신이 통일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얘기를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도 참 처량했습니다. (웃음) 물이 흘러가게끔 도랑을 파고 그 위에다 집을 지었기 때문에 방구들 아래에서는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데 그런 집에 앉아서 그런 엄청난 말을 하니 누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믿겠어요? 지금은 그래도 한 250명쯤 모여서 동감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니 괜찮지만 그때는 일대일로 마주 앉아서 얘기했습니다. 그들이 나보다 더 잘먹고 잘입고 잘사는데 내 말을 믿을 게 뭡니까?

그러던 범일동 골짜기의 사나이가 오늘날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알았어요, 몰랐어요?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고 하지만 불과 15년 만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웃음)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지금 현재 그러한 입장에서 지방에 나가 개척을 하고 책임을 짊어지면서 문제를 제시하는 문제의 사나이가 되었다고 할진대 이 경북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훈련을 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훈련을 시켜 줄까요, 말까요? 「시켜 주십시오」 이제는 큰소리로 대답할 근력도 없는 것을 보니까 나도 말할 근력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얘기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이 더 힘들지, 듣는 사람이 더 힘들겠습니까? 저녁 밥이 먹고 싶은 모양이지요? 내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저녁을 못 먹게 할 것입니다.

책임을 완수하라

경기도와 강원도에서는 아홉시 40분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루떡을 찔 때에 점점 익어 갈수록 구수한 냄새가 나듯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한 지 세 시간 됐습니까? 이제 네 시간, 다섯 시간 넘어서면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할까요, 그만 둘까요? 「하십시오」 기분이 나빠요, 이 경상도 패들. 손님을 이렇게 푸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야기를 할까요, 말까요? 「하십시오」

여기 있는 여러분들만 동원하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범을 몰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정말 있어요? 「예」 그러면 백두산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웃음) 그때에 가서 여기에 모였던 경상도 패들만 모이라고 할 때는 진짜 모여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때에는 아마도 호랑이 아가리와 키스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 도망갈 것입니다. 그럼 호랑이는 그만두고 경상도에 멧돼지가 많으니까 멧돼지 사냥이나 할까요? 「예」 그것을 원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할지도 모르니까 한번 해봅시다. 그러면 총을 11월까지 다 팔아서 책임을 완수하고 정월 초하룻날부터 한 보름 동안 경상도 돼지 사냥을 합시다. 그러니 총을 11월까지 못 팔면 큰일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왜? 자신이 없어요? 그러면 돼지 사냥하는 것도 포기해야지 별 수 있어요. (웃음)

깊은 산속에 들어가게 되면 구멍이라는 것은 짐승이 다니는 구멍밖에 없습니다. 서서는 못 다니고 엎드려서 들락날락하는 구멍 말입니다. 여러분이 다녀 보면 알 것입니다. 아주 깊은 산중에 들어가면 나다니는 구멍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머리를 거기에 대고 있다가는 멧돼지와 키스를 할 수도 있습니다. (웃음) 한번 해봅시다! 「예」

이 경상북도에서 일등하면 내가 경상북도부터 찾아갈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돼지를 잡아서 잔치를 하자 이겁니다. 한번 해봅시다. 「예」

경북이 몇 개 군으로 되어 있습니까? 「24개 군입니다」 그러면 면은 몇 개면으로 되어 있습니까? 「238개 면입니다」 그러면 책임량 하고도 남겠구만. 이제 이 경북사람들을 전부 다 데려다가 재교육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것 원해요? 재교육시키면 좋겠어요? 「예」

선생님은 청평 호숫가 좋은 데에 자리를 잡아 가지고 오리가 넘나들고 잉어가 뛰어 놀게 만들어 누구든지 오고 싶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곳을 만드는 데 경상도 사람을 벼랑의 돌을 굴리는 선봉으로 세울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예」 그래서 산밑에 한 만 명 들어갈 수 있는 굴을 뚫어 집회 장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할 것입니다. 한번 만들어 볼까요? 「예」 정말 그래요? 「예」 틀림없이 여러분을 데리고 갈 것입니다. 갈 때는 먹고 입을 것을 여러분이 다 가져와야 됩니다.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예」

거기에서 한 6개월씩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정을 들고 곡갱이를 들고 들이 파는 연습부터 시킬 것입니다. 하루에 해야 할 책임량을 못 하게 되면 기합을 줄 것입니다. 그러면 야간에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거기에 참가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야간에 도망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웃음)

자, 이제부터는 좀 멋지게 살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본에서 보내 주게 되어 있지만, 선생님은 일본의 제1 사업부장이나 제2 사업부장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은 채 한 3년을 지냈습니다.

일본 식구들이 일본 돈을 벌었으나 그 돈은 선생님이 쓸 때 일본 돈이 아니라 한국 돈인 것입니다. 일본 식구들은 지금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다. 하루에 백만 원 이상 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저 신나지요. 이것이 앞으로 일본 식구들에겐 참으로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전통을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고생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세우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들인 물건이기에

일본 사람들 참으로 쓸 만합니다. 한번 명령하면 절대 복종합니다.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잘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손에 손을 잡고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경상남북도를 합하면 얼마나 됩니까? 「약 천 만명입니다」 참 많군요. 이제 본부를 대구 아니면 부산에다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찬성합니까? 「예」 여러분들 못 살게 해도 괜찮습니까? 「예」 선생님이 구보끼에게 일본에다 총을 판매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한국이 일본에 총을 팔 수 있어요? 한국 물건이 일본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명령을 하니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일본으로 2천 5백 정의 총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팔아야 되겠어요, 안 팔아야 되겠어요? 「팔아야 됩니다」 일본 식구들이 훌륭한 것이 뭐냐 하면 총을 붙들고 우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10여 년 동안 정성들인 이 총이 자기 문중에 둘도 없는 가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이 총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때가 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직접 사업을 할 때 이 총을 사 놓으면 이것이 자손대대로 유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집이나 다른 재물은 어느때나 구할 수 있지만, 이것만은 돈을 주고도 못 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앞으로 종가집에서 문중 회의를 할 때 이 가보를 서로 물려받으려고 하는 싸움이 일어날 때가 옵니다. 이와 같이 이 총이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 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지 못하는 여러분을 대할 때 선생님은 상당히 섭섭함을 느낍니다.

이 총은 선생님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선두에 서서 개척한 것입니다. 이처럼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들인 물건을 자기 문중의 가보로 남기겠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여러분이 무슨 총을 팔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위해서 팔고 있습니다. 그러니 총을 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본, 미국, 독일에 가서 총을 사 놓으라고 얘기를 하게 되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식구들이 그들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번에 여러분들은 월부로라도 총을 한 定씩 사야 합니다. 이것은 총을 팔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사야 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딸이 시집을 가게 되면 사위에게 집안의 유물이라고 물려줄 수 있는 가보로 남기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공기총을 만든 이유

3면이 적에게 포위된 한국 실정을 볼 때 앞으로는 사상적 관점을 올바로 세워서 국가와 민족을 보호해야 합니다. 따라서 국가방위를 위한 사상을 책임지고 아시아를 방어하다가 영계에 가게될 때에 후손들에게 엄숙히 이 총을 인계하는 식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을 아들딸이나 사위에게 계승해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1970년대만 되면 총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아예 안 만들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중에 총을 사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거 안 사면 안 됩니다. 곽정환! 「예」 손든 사람 1년이나 1년 반으로 해서 전부 다 계약하라구. 남자나 여자나 앞으로 이 총을 못 가진 사람은 통일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전부가 이것을 가지고 전국민 앞에서 국가 방위를 위해 집중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내 일대에 한국과 세계의 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을 만든 것입니다.

현재 국가 정세로 보게 될 때, 선생님은 틀림없이 방위산업을 중요시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을 중심삼고 그러한 때를 바라보며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지금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 앞에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상과 특정적인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별의별 중상모략을 당하면서도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선생님에게 공로표창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국가에서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공장을 만들려고 야단입니다. 아무리 한국의 재벌가가 수십억의 돈을 투자하여 총 공장을 만든다 하더라도 한국의 판로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육군 60만과 해군 공군 정도에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5, 6년이나 7, 8년만 지나게 되면 동남아시아 7개 국을 개척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됩니다. 어떠한 사람도 그런 일을 못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들을 훈련시켜 가지고 우리의 기반을 넓혀 나갈 것입니다. 그 기반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국가를 중심삼고 반공요원을 교육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넘어 기반을 닦아 나갈 수 있고 판로를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간 재벌들은 아무리 욕심을 가지고 투자를 한다 해도 이룰 수 없습니다. 돈을 수십 억 투자해도 장기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전부 다 보따리 싸 가지고 나자빠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현재에 와서 외제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MI소총과 똑같은 공기총을 만들어 가지고 지금 청와대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대금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는 중고등학교 훈련용과 신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금년 초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5월말까지 이것을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선생님이 좀 무리를 했어요. 여러분들이 4, 5월까지 총값을 올려보내야 하는데 그것을 선생님이 대신해서 마련하느라고 빚을 져 가면서 올려보내게 한 사실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바보 천치가 아닌데 왜 그러한 일을 했느냐? 대한민국의 현재 실정을 두고 볼 때 김일성이 금년을 제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6월쯤이면 녹음이 우거지기 때문에 무장공비들이 침투하기가 쉽습니다. 만일에 무장공비 3개 소대가 서울의 서대문, 동대문, 남대문 등 여러 지역에 침투하여 시가전을 벌이게 되면 그들을 모두 전멸시킨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경제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입니다. 사업가들이 보따리 싸고 도망가지 사업한다고 붙어 있을 것 같습니까? 한 달에 한번씩 그런 일이 생긴다면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갈 것입니다.

김신조 사건 때만 해도 땅 값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아요?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만약 그와 같은 사건이 몇 달만 계속 된다면 모든 사업가들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10년 동안 정성들인 것을 통해서 최후의 승패를 결정해야 하는 해입니다. 만일 이 때를 놓치게 되면 10년 동안 공들인 탑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무리를 해서라도 5월전 까지는 금년 계획량을 달성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시대를 책임진 사람으로 예비하지 않을 수 없고,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을 안 하면 안 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모험을 했습니다. 나는 금년에 모든 요원이 일치 단결해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정부가 요청하는 것을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진단했습니다. 원래는 6월말까지 돈을 준비해 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7월까지 돈을 준비해 놓고는 정부와 계약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만약 사격총을 10만 정이든 60만 정이든 공급한다고 계약을 체결하면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부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약 8개월이라는 기간이 소요됩니다. 8개월 이전에는 물건을 다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애로점을 내가 알기 때문에 금년에 팔 총을 제작하면서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던 것입니다. 곁다리로 하게 되면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업하는 사람 중에 우리를 시기하며 배 아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철야를 하며 일을 해서라도 정부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작년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라를 살려야 하는 비상시

정부의 모든 사정을 선생님이 추정해 보게 될 때, 정부에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달러가 없습니다. 즉, 정부 자금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방위산업을 가동시키는 데 정부가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3억 원 이상의 현찰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금년말까지 3억 원이라는 현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억 원이라는 현찰을 가지고 10만 정이든 20만 정이든 총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를 구입해 놓게 되면 여기에 모두 걸려드는 것입니다. 강철 등 모든 재료를 준비하여 계획을 세워 가지고 물건을 만들게 되면 만일 물건을 미처 못 만들더라도 정부에서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번 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백방으로 모험을 하여야 합니다.

금년 9월부터 자금 문제를 밀고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서 그런 각오 밑에서 모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7월말까지 계약을 완료했습니다. 작년에 천신만고 끝에 만들었던 수량을 금년에는 4월말까지 만들어 냈으니 굉장히 열심히 일한 것입니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회사의 비밀이지만 선생님이 여러분을 믿고 얘기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수금해야 할 돈이 2억 2천만 원입니다. 너무나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현재 우리 회사가 5부 이자를 주고 사채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2억 2천만 원이라는 돈을 5부 이자로 계산하면 매달 천 백만 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매달 천 백만 이라는 이익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당장 수금을 하다면 천 백만 원이라는 돈이 매달 우리에게 남아지게 됩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여러분이 모르는 일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8천만 원의 빚을 졌습니다. 거기에 대한 이자가 한 달에 4백 만원입니다. 이처럼 매달 1천 5백만 원이나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만일 수금을 했다면 그것은 전부 우리의 재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1천 5백만 원이라는 돈을 매달 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년이면 얼마입니까? 1억 8천만 원입니다. 우리는 일년에 1억8천만 원이라는 돈을 공중에 날려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돈이라면 우리가 얼마든지 쓰고도 남을 수 있는 돈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일전 한푼이라도 빨리 받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서 최후의 판결을 해서라도 받아야 합니다. 피땀 흘려서 모은 돈을 지금까지 이렇게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교회의 수치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전부다 받아내야 합니다.

금년에는 전부다 총 한 자루씩 사야 합니다. 그리고 매달 수금을 해 와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충을 한번 당해봐야 합니다. 수금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분들끼리 잘 상의해 보도록 하십시오.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을 전부다 수금위원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달에 열 정이면 열 정, 스무 정이면 스무 정에 대한 책임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나라를 살려야 하는 비상시입니다. 전국민이 동원되어야 하고 전영계가 동원되어야 하는 이때에 등 뒤에서 쉬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2억 2천만 원을 수금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재고가 5만 정 정도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월부로하여 만 오천 원씩 수금하게 되면 7억 5천만 원이 됩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전부 9억 7천만 원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일본으로 보낼 것까지 하면 12억 원에 해당하는 자원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되면 12억 원이라는 돈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택리에 공장을 지은 지도 만 3년 4개월이 되었습니다. 맨처음에는 트럭으로 몇 대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은 수백 트럭이 되고도 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참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수택리에 한국에서 제일가는 시설을 만들어 놨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기준을 세워 놓기까지의 천신만고

선생님이 금년에도 1천 8백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앞으로 이것이 이원화될 때 고충이 있을 줄 알았기 때문에 이것을 보급할 수 있는 보급로를 지금까지 강구해 나온 것입니다. 작년에도 8백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이렇게 비상작전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모든 일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이 복잡한 환경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천신만고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내 신념을 하나님과 일치된 입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 별의별 모험을 다 했습니다.

이제 만들어 놓은 물건만 팔리게 되면 3억 원 이상의 현찰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 판매를 위한 전국대회만 잘 치르게 되면 우리 나라의 그 어떤 대재벌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판로는 어느 단계에 가게 되면 끊어질 것입니다. 금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잘하면 1970년대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1967년 6월부터 물품세에 대한 면세를 받고 있습니다. 1967년 6월부터 지금까지 만 2년 4개월 동안 면세 혜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동안 백방으로 노력해 가지고 3년 계획으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3년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해야만 됩니다. 만일에 물품세를 납부하게 되는 날에는 총을 한 정도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사치품에 대한 물품세가 75퍼센트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장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사정이 앞으로 불원한 장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계획을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만일 총을 못 만들게 되어 통일산업이 망하게 된다면 우리 교회의 발판이 손실되고, 사회적인 위신도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4년 전부터 기계를 제작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기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모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3년을 계획했던 일이 1년 8개월만에 두 대의 기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만 3년이 된 지금은 우리 공장의 기계중 90퍼센트 이상이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수입해 오던 1천 5백만 원 가량 나가는 기계들을 이제는 우리가 거뜬히 만들 수 있습니다. 성능면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공장에서 총을 안 만들어도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으며, 공장에 있는 사람들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준을 세워 놓기까지 배후에서 선생님이 염려하고 모험하면서 결정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금년과 명년까지 판매를 하게 되면 국내에서의 판로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식구들이 피땀 흘리며 정성들인 것은 국내를 기준한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기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판로를 돌려 가지고 외국 소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서도 밤을 새워서 말씀을 하고 난 다음에 체면과 위신을 망각한 채 총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참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통일의 자녀들 가운데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또한 내가 세상의 책임을 모면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하고 헐벗은 형제들을 볼 때에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번에 일본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총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한 미국에 가서도 총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어떤 식구들은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설명해 줘야 하는 비참한 입장을 모두 망각해 버리고 지금까지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금년에 일본으로 2천 5백 정을 보냈습니다. 전 일본에 널려 있는 요원들에게 `선생님 말씀대로 하면 된다. 틀림없다. 자신을 가져라. 판매에 문제없다. 자신을 가지면 성공한다'라고 명령했습니다. 금년에 1만 5천정만 나가게 되면 내년에는 3만 정 내지 5만 정까지 더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과 미국에서의 공기총 판매 계획

만일 일본에서 5만 정을 가져 간다면 어떻게 되느냐? 일본 돈으로 3만엔 씩만 해도 15억 엔이라는 돈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15억 엔이라는 현찰을 가지고 은행거래를 하게 되면 은행으로부터 항시 그 정도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회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5만 정을 판매해 가지고 15억 엔을 벌었다 할 때에는 다음 해에도 15억 엔을 벌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경제 실정을 볼 때에, 5만 정 이상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10만 정을 팔게 된다면 도매값만 해도 8억 가까운 돈을 한국에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본 협회에 이런 돈이 없다면 은행에서 한꺼번에 빌어서 보낼 수 있습니다. 15억 엔 정도의 수량을 일본에서 팔 수만 있다면 15억 엔의 배인 30억 엔의 돈을 은행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 통일교회에서 30억 엔 정도의 돈을 운용할 수 있을 때에는, 일본 굴지의 큰 회사에다가 어떠한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때는 3년이나 그 이상의 장기적인 계약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산업 발전을 위하여 각 분야마다 수많은 공장을 건설해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이렇게만 되면 통일산업이 일본의 대기업과 제휴하여 한국에 기계설비를 갖춘 공장을 짓고 생산된 물건을 일본에 팔 수 있는 것입니다. 1년 월부로 준다면 너도나도 사 갈 것입니다. 2년 6개월 동안 현금으로 받아 은행에 예금하게 되면 그 이자만으로도 일본 돈 전부를 갚아 갈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가만히 앉아서도 돈을 무진장 벌 수 있는 길이 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금으로 20억 원을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빨리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4년만에 그러한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으로 10만 정이 나가게 되면 30억 엔이 됩니다. 따라서 근 60억엔에 가까운 큰 돈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엽총이나 공기총이 지금 1만 8천에서 2만 정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방대한 수량을 판매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실정을 비교해 볼 때, 일본이 한국보다 수십 배나 큰 시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보다 5배 이상은 팔았습니다. 그렇게 볼 때 현재 일본에 있어서 총소비가 150만 정 이상이라 할 때에 최소한 그 5배인 750만 정은 팔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몇 년 동안에 붐을 일으켜야 하느냐? 7년입니다. 그러면 1년에 100만 정은 더 팔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것을 다 못 팔더라도 반의 반인 25만 정은 틀림없이 더 팔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 진행되면 일본에 있는 돈이 한국으로 날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있어요 오야마상?

금년에 선생님이 미국으로 5백 정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최상익, 김영운 선교사가 반대를 하면서 `선생님 제발 보내지 마십시오!' 하길래, `제발이 뭐냐? 너희들이 안 하면 선생님이 직접 가서라도 할 거야.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고 했습니다.

금년내에 일본에 1만 5천 정만 나갔다하면 미국 식구들이 `아이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에서 5만 정, 10만 정을 팔았다고 하면 미국은 그 이상 팔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조사했습니다. 미국은 황금시장이요, 처녀지입니다. 거기에는 무진장의 자원이 있기 때문에 수를 초월해서 판매할 수가 있습니다. 열 집에 한 두정은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전국민의 5할이 총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선 어느누구나 총을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일본같이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구점에 가면 총을 살 수 있습니다. 국민학생도 현금 주고 이름만 적어 주면 총을 살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기총을 무진장 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직을 만들어 가지고 전국으로 판로를 개척하게 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수억 불 어치의 물건을 팔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구라파 시장은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0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사막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듯 귀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무진장한 축복이 우리 앞에 있는데 이것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거두어 들여야 되겠어요, 안 거두어 들어야 되겠어요? 「거두어 들여야 됩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 실정으로 보아서는 더 이상 총을 못판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금년에 5백 평 가까운 땅에 제2공장을 신축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생산량을 배로 늘릴 생각입니다. 일년에 못해도 백만 정, 백 오십만 정까지 만들 계획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공장을 더 지을 것입니다. 71년도 후반까지 세계적인 큰 공장을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총이 무슨 총입니까? 「공기총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모든 공적인 기반이 여기에서 나왔고 공장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선생님이 생각한 공기총에서 나왔고 공장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공기총에서 나온 것입니다.

1960년도에 제1차 7년노정을 출발하면서 여러분들을 지방으로 전도 내보낼 때 왕거지 패가 생겨난다는 것을 선생님이 생각 안 했겠어요?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의 자리에 내 보내고 그것으로 끝내겠다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틀림없이 7년만 끌고 나가면 지친 사람, 불쌍한 거지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r고생하는 가운데 선생님은 한편에서 이것을 뒷단장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특제품을 만들 것이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기반이 닦아져 있는 일반 기업체는 기술자와 자금이 있고, 또한 경영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어렵게 경쟁을 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가 자금도 기술자도 경영 경력도 없는 실정에서 한국 산업계의 한 분야를 뚫고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허품을 만들기 위해 손댄 것이 산탄 공기총입니다. 영적으로 알았지만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엽총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엽총은 사치스러운 총입니다. 그 총을 가지게 되면 일년에 십만 원 이상의 경비가 소요됩니다. 총을 쏴 보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의 엽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여건을 갖춘 것이 산탄 공기총입니다. 수렵사들에게 제2의 엽총이라고 선전하면 백 퍼센트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을 사용해 보면 날아가는 꿩이나 기러기는 못 맞추더라도 앉아 있는 것은 틀림없이 맞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렵의 맛을 톡톡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공기총은 만든 지는 오래 되었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고 팔아도 이익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산탄 공기총은 앞으로 발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탄 공기총을 만드는 것입니다. 산탄 공기총을 사서 사용해 본 사람들이 요즈음에 산탄 공기총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판매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조직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지 조직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을 보면 여러분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 기반이 없으면 사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로 나가야 됩니다. 금년말까지, 아니면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40개 국에 우리의 선교부가 설치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모르지만 현재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희랍 등지에 선교사가 나가게 돼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시 어디에다 성지를 정했는지만 연락해 주면 바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도 선교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늦어도 3년 내지 4년 이내에는 360곳에 우리의 선교부가 세워질 것입니다. 이름 없는 나라, 유엔에 가입되지 못한 나라까지 전부 다 선교사를 내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보낼 것이냐? 돈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의 총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총을 한 곳에 1년 동안 100정씩만 보내 줘도 40곳이면 4천 정이지요? 4천 정이면 우리 공장에서 반달 동안에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또 4백 정씩이면 1만 6천 정입니다. 이것은 3개월 정도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경비는 얼마 들어가지 않습니다.

100정씩 3년만 보내 주게 되면 완전히 기반을 잡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외국에 수출할 때 한 정에 얼마 받을 것이냐? 57불에서 63불까지 받아야 됩니다. 절대 싸게 팔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국세청에 가서 알아봤습니다.

따라서 100정씩 보내게 되면 6천 불입니다. 6천 불이면 몇 사람이 충분히 생활하면서 얼마든지 전도 활동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배짱을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선교사업하고도 돈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에 3백 정씩만 보내 주면 우리 선교부는 반드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의 판매 경로를 보게 되면 한 정이 나가면 3정이상 연결되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3백 정이 나가면 1천 정 이상은 자동적으로 판매된다는 것입니다. 1천 정이면 6만불입니다. 이것은 장사밑천이 되기 때문에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되었음)

통일교회가 가야 할 정상적인 길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위주해 나온 것이 무엇이냐? 선(善) 주권을 중심삼고 사람 만드는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道)를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것도 사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관념을 지금까지 포기해 나오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1967년부터 만물복귀를 시작했습니다. 만물 복귀가 무엇이냐? 경제복귀입니다. 1967년에 비로소 `경제복귀기대완성'이라는 표어를 내걸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돈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시키면서 배후에서는 경제 문제를 중심삼고 한 단계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한 7년만 지나게 되면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을 알고 선생님이 한 단계 앞서서 경제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총공장입니다.

우리 교회 체제를 볼 때에 지금까지 누가 경제를 관리했느냐 하면 지구장이 교회도 관리하고 경제도 관리했습니다. 이렇게 관리해서 교회도 잘되고 경제도 잘됐으면 좋았을 텐데 둘 다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이것을 이원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7년부터 이원화하라고 선생님이 지시했던 것입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도 이원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꼭 이원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원화시키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원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금년 6월에 선생님이 직접 단행했던 것입니다. 이원화시키게 되면 선생님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최소한도의 생활비를 대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6개월이 지난 후에는 생활비를 대주지 않는 것입니다. 왜 6개월밖에 안 대주느냐 하는 것을 설명하자면 길어지게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적인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이요, 해야 할 일입니다. 개인이 행복하게 되는 것보다도 교회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취해야 되는 것이요, 교회가 행복할 수 있는 것보다도 앞으로 국가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고생시켜서 대한민국을 살려야 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고생시켜 가지고 세계를 잘살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선생님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정상적인 길입니다.

교회를 건축해야 할 섭리적인 이유

선생님이 지구장이나 지역장들에게 지역본부를 마련하라고 별의별 명령을 다 했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았지만 지역본부를 마련하기는 커녕 전부다 자기 중심삼은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개월 동안 매달 3백여만 원을 생활비로 지불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통일교회가 1960년대보다 많이 발전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후퇴한 감마져 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대구 지구에 백만 원 연보하라고 명령을 하면 여러분들이 밥을 얻어 먹으면서 장사해서 책임을 다했어요. 연보하던 일 생각나요? 그때는 그러한 처지에서도 `아이고 선생님 나 못 살겠습니다. 생활비 좀 주십시오'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생활비를 준다 해도 `탕감복귀 원리에 따라서 신세지면 안 됩니다' 하면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탕감복귀원리 시대가 다 지나간 모양이지요? (웃음) 그저 선생님을 보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이 팔마저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나라의 신세만 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나 땅에 쓰러지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은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어떻게 해야 흥합니까? 첫번이예요, 나중이에요? 「나중입니다」 알긴 아는 군요. 그렇기 때문에 일도 할 수 있고 복귀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달에 3백만 원씩 일년이면 3천 6백만 원이 됩니다. 이 3천 6백만 원을 대주고 대구면 대구, 경북이면 경북을 중심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역장 못 하겠으면 빨리 물러나요. 선생님이 혁신적으로 재교육을 시켜서 전부 다시 편성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재정비했느냐 하면 원리에 입각해서 천명에 의한 보완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못 하겠으면 내놔야 합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40명을 전도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입니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전부다 추방해야 됩니다. 자, 가만 두어야 되겠어요, 추방해야 되겠어요? 대답해 봐요. 가만 두어야 되겠어요, 추방해야 되겠어요? 「추방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이 싫다 해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3천 6백만 원을 가지고 전국에 지역본부를 지어야 합니다. 경북지구는 3백만 원을 가지고 10개의 지역본부를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1개의 지역본부를 짓는 데 30만 원씩 배당되게 되는데, 30만 원을 가지고 2개월이면 2백명에서 3백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활하다가 보따리 싸서 떠나가면 그만입니다. 남아 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교회를 세우면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보따리를 싸 가지고 그것을 베개삼아 사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만일에 거기에 누가 찾아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통일교회에서 승공강의를 한다고 하니까 뭐 군수가 찾아오고 경찰서장이 찾아오고 합니다. 그들은 통일교회가 아주 좋은 줄 알았는 데, 좁다란 골목길로만 자꾸 들어가 보니 대문도 없는 집에다가 냄새가 나고 파리가 윙윙거리는 조그마한 방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이마를 맞대고 살면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곳에 통일교회 간판을 붙여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선생님의 사고방식을 못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역본부를 지어야 되느냐? 지금까지의 인상을 전부 다 씻어 버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책임을 안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서 공장을 중심삼고 큰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수금해 오는 돈이 적지만 금년에는 작년에 제작하던 그 이상의 수량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못 해도 몇천만 원의 자금이 있어야 되겠기에 미국에서 올 때 전부 마련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도날 수 있는 실정을 막으면서 10월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10월말에만 해도 벌써 천 오백만 원 빚을 졌습니다. 하루 평균 50만 원씩 됩니다. 급할 때에는 200만 원, 280만 원, 300만 원까지 한꺼번에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10월 31일까지는 400만 원 이상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말이 쉽지 매일 50만 원, 100만 원씩을 처리해야 되는데 쉬울 것 같아요. 만약 10만 원만 부도났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우리가 여러 곳에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수십 명이 일시에 통일산업에 몰려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배후에서 돈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라는 것은 찰떡과 같아서 한번 붙기만 하면 쭉쭉 달라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를 해 가지고 모험을 한 것입니다. 이제 11월, 12월, 이때만 되면 총 판매 대금이 전부다 들어옵니다. 11월에는 아마 1천 2백만 원 정도는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회사를 운영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금이 있어야 되느냐? 적어도 한달에 2천만 원은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한동안 쓴 것만 해도 천만 원 가까이 됩니다. 이렇듯 지금도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적인 면을 중시하는 선생님

일반 기성교회에서는 그 돈을 전부 다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투자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통일교회 발전을 위해서 돈을 투자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운명에 처하여 우리가 해결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때를 위한 준비를 못 했다가 큰일에 부딪치게 되면 그냥 그대로 넘어가기 때문에 남모르는 가운데 10년 20년의 후의 대세를 놓고 지금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통일교회는 교인도 많지 않은데 무언가 큰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지역장을 중심삼고 모든 일을 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본부를 중심삼고 지역을 배정할 때는 발전을 위해서 한 것인데 그대로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런 사람을 반드시 정리할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정리할 것입니다. 뜻이 지향하는 이 때가 얼마나 절박한데 본부에서 주는 돈 가지고 허송세월을 할 수 있습니까?

이번에 수택리 공장에다 사택을 지으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사택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장도 지금보다도 많이 지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공장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은 절대 다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또 1972년까지는 어떤 공장보다도 월급을 적게 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생 동안 일요일은 커녕 한 달에 한번도 쉬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18시간 이상 일을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자꾸 단축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대우도 개선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숙소를 보게 되면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비록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 돼지우리에서 천국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집을 보게 되면 화장실은 전부 다 수세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내에 전부 스팀 장치를 해서 아무리 추운 동장군, 시베리아 바람이 분다 해도 배를 내놓고 자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불이 필요없습니다. 그렇지만 체면이 있으니 카시미론 이불은 살짝 덮고 자야겠지요? (웃음) 앞으로 이러한 집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집을 갖추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들딸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까짓 집만 반듯이 지으면 뭐합니까? 아들딸이 없으면 집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기로에 있는데 자식된 우리가 좀 아프면 어때요. 거지라고 하면 어때요. 뜻이 망하면 전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후관계를 중심삼고 보다 큰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있어서는 별수 없습니다. 고생 안 할 수 없어요. 고생하기 싫어하고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정리해야 합니다. 이번에 한 140명 가량 정리할 것입니다. 험담이나 일삼는 사람은 다 내보낼 것입니다. 앞으로는 일에 지장을 주는 사람에게 월급을 많이 안 줄 것입니다.

수택리 공장을 지었을 때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젊은 사람들이 봉 잡았구나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전부 떨어져 나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막대한 인적 자원을 소모시켜 가면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참전 용사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역적입니다. 타락의 역사같이 떨어져 나가면 죽는 것입니다. 이런 희생을 각오하면서 지금까지 일해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통일산업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는 원리시험을 보고 다음에는 전도를 시켜 볼 것입니다. 수련을 통해서 교육이 잘 되고 쓸만한 사람을 채용할 것입니다. 개다리 사촌 같은 사람은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것이 선생님의 팔자소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 명령대로만 했으면

선생님의 눈을 보면 매섭게 생겼습니다. 나는 좋은 선생님은 아닙니다. 매정한 데가 있습니다. 한번 잘못해 가지고 틀리게 되면 그때는 무섭습니다. 대신에 참을 때는 참고, 관용을 베풀 때는 관용을 베풉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 사람 이상 다치게 될 때는 용서 못 합니다. 이것이 천상의 법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렵더라도 기술 개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동시에 여러분도 잘되고 교회도 잘 될 수는 없습니다. 둘 다 한꺼번에 잘될 수 없습니다. 둘 다 안 되는 거에요. 그렇게 되려면 어느 한쪽이 먼저 고생을 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고생해 잘되어 가지고 다른 한쪽에 옮겨 주어야 같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둘 다 처음부터 같이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62년도에 전국에 지역본부를 세우기 위해서 전국의 지구장들을 모아서 그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대로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지구장들이 안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 선생님 명령대로만 했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다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때를 놓치게 되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10년 세월이 가까와 오는데도 허송세월만 했지 큰 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선생님이 책임을 졌던 것입니다. 식구들이 책임을 다하여 하늘 앞에 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책임을 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역본부를 지으라고 명령했을 때 전국적으로 적어도 150개 지역을 완전히 지어 놓았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집 팔라고 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렇게만 해 놓았다면 오늘 교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때를 놓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교회발전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원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도 원리적인 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를 놓치게 되면 전체에게 피해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섭리적으로 본 여자의 위치와 그 책임

제2차 7년노정은 자녀시대입니다. 선생님보다 한 단계 밑인 자녀들이 책임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내적인 입장이고 여러분은 외적인 입장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에도 교회 분야와 경제 분야로 나눠져야 합니다. 즉 이원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원화의 원칙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교회 책임자와 경제 책임자를 분명히 해 둡시다. 그렇게 이원화하는 것입니다. 지구장은 지구를 위해서 힘을 내어 가지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사업분야의 책임자도 져서는 안 됩니다. 판매 기간이 1개월 정도 남아 있는데 사업 분야의 책임자가 절대로 지구장보다 못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거꾸로 되는 데가 많습니다. 교회는 여자가 책임지고, 사업은 남자가 책임지고 있는데 한번 싸워 봐라 이겁니다. 그러나 책임자는 남자입니다. 지구장이 이길 수 있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성 상대기준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이론적으로 볼 때, 사업 대원들보다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한번 결심하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면 세계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웃음) 치맛바람 한번에 세계를 망쳤으니 다시 치맛바람을 일으켜서 한번에 흥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자들, 치맛바람 피울래요, 안 피울래요?

여자들에게 밥을 주는 데 반 그릇을 주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남자한테는 한 그릇을 다 주면서 여자는 반 그릇만 주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나쁩니다」 좋아할 사람 한 사람도 없지요. 남녀평등주의에 의해 밥도 한그릇씩 같이 주고, 대우도 같이 해주니 남자도 총 한 자루, 여자도 총 한 자루 팔아야겠습니다. (웃음) 왜 웃어요? 이것이 평등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주먹과 힘으로 하지만 여자는 사정과 정서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시적입니까? 여자가 시적입니다. 사람은 시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장이나 지역장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녹아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여자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누구 때문에 죽었습니까? 여자 때문에 죽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신부를 찾으러 오셨지만 못 찾았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결국은 장본인이 여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지금가지 누구 때문에 욕먹었습니까? 「여자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대적인 모든 고통, 천대, 슬픔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 여자가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여자로서의 위신이 서요, 안 서요? 안 서는 것입니다. 그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모든 한을 한꺼번에 훅 불어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그런 자리에 세워 놓겠다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도 여자가 앞장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장사도 여자가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보따리 장사를 남자가 하게 되면 흉하고 보기 싫습니다. 궁상맞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새침하게 보따리를 들고 들어가면 잘 사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때에 써먹기 위해서 여자란 존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가 언제냐? 통일교회 문선생님 때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이 여자 때문에 망했지만, 이 시대에 있어서는 여자 때문에 출세하는 사나이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자들이 선생님을 출세 못 시키면 망하는 것입니다. 돈도 여자들이 벌어 온 돈을 전부 다 쓰고 나서 없으면 남자들이 번 돈을 써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굶기 전에 선생님이 굶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입기 전에 선생님의 의관을 먼저 차려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도 대구에 가자고 해서 왔더니 대접도 잘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대접해야 되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준비해 가지고 왔어요? 준비 안 해 왔으면 전부 돼먹지 않았다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이 어떤 것을 드시고 싶을 것이라고 미리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갖다 주면 얼마나 좋아요. 이러는 가운데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선생님을 그만큼 욕먹게 했으니 이제는 좀 동정해 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러니 여자들을 내세워 고생시켜서 선생님이 출세하려고 하는 것은 나쁜 의미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웃음) 그런 마음을 가지면 세상에 못 할 게 없어요. 지금까지 남자들에게 천대를 받아 왔는데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시켜서 출세하겠다고 해도 기분 안 나빠요? 「예」

최후의 싸움에는 남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이제 여러분에게 무엇이든 갖다 주고서 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지구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구 지역의 여자들도 금년에는 총 한 자루씩 전부다 사야 합니다. 왜 그러느냐? 우리의 원수는 이북에 있는 김일성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는 중공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도 군사 훈련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최후의 싸움은 중공 그리고 소련하고 맞붙어 싸우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의 미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세계적인 공산주의 국가인 중공을 어떻게 치리할 것이냐, 사상적으로 어떻게 완전히 일치시켜 가지고 아시아 연방을 만들어 세계를 지배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싸움에는 남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최일선에 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군을 만들어 놓아야 하나님께서 진두지휘하시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어떤 여자가 치마를 입고 모자를 쓰고 공기총을 쏘는 것을 선생님이 보았습니다. 총을 쏘는데 아주 예의가 없었어요. 실례를 많이 범하더군요. 그런데 총을 보니 아주 반가왔어요. 그것이 예화 총이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이상해요. 여자가 총 들고 남자 사촌같이 행동하는 것은 보기 싫었는데 그 총을 보고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그 여자가 남성 세계를 침입했으나 우리가 만든 총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들은 일심단결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 일편단심으로 일심단결해야 됩니다.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하나로 뭉쳐야 되는 것입니다. 일심통일하여 전면적인 진격을 해서 남자 이상의 승리를 거두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여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겠습니까? 「예」

그러면 할머니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할머니들을 교육시킬 것입니다. 할머니들을 서울에다 한 오십 명 모셔다가 고기국에 쌀밥으로 잘 대접해서 교육시켜 가지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얼굴이 늙었다고 마음까지 늙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마음 가지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 총 팔기 위해서 이런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별의별 중상모략을 받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선생님은 종교 지도자로서 세계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앞으로 20세기 후반기의 종교는 과거의 종교와 달라야 합니다. 힘으로 오는 것은 힘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정도술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회관을 지어 젊은 사람들을 전부 다 수련시킬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앞으로 우리는 큰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들도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인들이 이북의 침략을 봉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남자들보다 나은 여자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사탄세계의 남자보다 못한 여자를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선생님은 1970년부터 공장에서 손을 떼려고 합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직접 손대지 않아도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예산을 세울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 일단락 책임을 완수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총을 만드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주동적인 입장에서 이끌고 나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책임지고 해야 할 때입니다. 선생님의 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공기총에 대해 관심을 가져라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은 이 땅에서 총을 중심삼고 사업을 해 나왔으니, 앞으로 통일신도들은 총에 대한 관심을 모두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탄세계가 총을 중심삼고 정복했기 때문에, 우리가 총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을 가지고 힘의 울타리를 만들어 놔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후세 사람들이 선생님이 왜 총에 대한 관심을 가졌느냐를 생각할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공격을 방어할 울타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1970년대가 되면 선생님이 직접 정성들이며 이끌어 나오던 때가 지나가기 때문에 그전에 만든 총은 앞으로 역사에 있어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1만 5천 원짜리가 1백 5십만 원, 1천 5백만 원, 1억 5천만 원을 주고도 못 살 때가 옵니다. 각 가문마다 이 총 한 자루를 서로 보관하겠다고 싸움이 일어날 때가 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따라서 그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귀한 것으로 남길 수 있는 유물을 안겨 줘야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니 금년에 통일교회 식구들은 전부 다 총 한 자루씩 사야 됩니다. 그냥 줄까요? 받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냥 줄까요? 「사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가운데 딸을 둔 사람은 그 딸이 시집갈 때에 이 총을 가져가면 사위에게 예물로 천만금을 상속하는 것과 견줄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 몇 해만 지나가고 선생님이 세계적으로 공고하는 날에는 가치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배당받은 것, 혹은 공짜로 얻은 것을 다 물리고 사라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사야 합니다. 선생님이 세밀히 계획해서 얘기해 주는 것이니 이 총을 안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돈이 없기 때문에 1년 반 월부로 대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달에 얼마씩 모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지불해야 합니다.

총을 샀으면 그 다음에는 쏴 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총에 대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총을 사다가 가만히 놓고 구경만 하면 총이 우는 것입니다. 시집을 왔으면 애기를 낳게끔 해줘야 시집온 보람을 가질 텐데, 신랑이 손목도 한번 안 잡아 주고 가만 두면 좋겠어요? 신랑이 어떻게 해서라도 신부가 애기를 낳도록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총도 모셔 놓고 쳐다만 봐서는 안 됩니다. 누구보다도 많이 애용해야 하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만져줘야 됩니다. 만일 여자가 총을 품에 안고 애용하면 총도 좋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총은 남성적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총을 함부로 다루기 때문에 쉽게 고장이 나지만 여자들은 아무리 함부로 하려고 해도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애용하는 데는 우선 여자가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총은 남성적이니까 여자들이 반겨 주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 한쪽 구석에 쳐박아 두지 말고 자기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곳에 두십시오. 공부할 때는 필통보다 조금 뒤에 놓고 연필을 집을 때마다 한번씩 만져 주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때 선생님이 전국에 있는 여자 식구들을 총집합시켜서 실제 총알을 넣고 표적을 맞추는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대비하여 모두 총쏘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들 말 타는 것 좋아요? 영화를 보게 되면 여자가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기분 좋아요, 나빠요? 이왕이면 기분 좋게 사나이의 맛도 보면서 천하를 호령하는 듯이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가장 인기 있는 운동 경기는 무엇이 될 것이냐? 축구는 지나갈 것입니다. 축구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사격이 가장 인기 있는 경기종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자극적인 감각이 있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시를 읊더라도 `광명하고 찬란한 아침이여' 하는 식으로 형용사를 많이 구사해 감각의 뿌리를 꼭꼭 찌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자극적인 운동이 무엇이냐? 축구를 보게 되면 공을 가지고 뛰기만 하지 큰 자극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강원도의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총을 쐈다고 했을 때에 그 소리가 얼마나 큰가 생각해봐요. 우르르 탕탕─ 한 골짜기에서 쏘게 되면 그 근처 산 속의 모든 짐승들이 신경을 집중하게 되고 사람들까지도 일시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이상 자극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 뿐만이 아니라 달려가는 산돼지를 탕 하고 한번 쏘면 피를 뿌리면서 다리를 벌리고 나가 자빠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자극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사냥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많이 하게 되면 밥 먹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금후에 남아질 운동이라면 자극적인 운동입니다. 세계적인 통계를 봐도 사격에 대한 관심이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국방은 염려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극적인 경기에 여자들이 출전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출전하게 되면 선생님이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이 사격대표로서 올림픽대회에 출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력이 있는 데 여자라고 안 보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부다 총 한 자루씩 사는 거에요. 알겠어요? 사고 싶으면 사고 말고 싶으면 말아요. 총 팔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 대신 훗날에 후회하지 마세요.

나라는 국가 주권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얘기가 옆으로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선생님이 교회를 이원화하려 할 때에 지구장들이 모여서 전부 반대했습니다. 그 반대한 것이 잘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조직을 보면 입법, 사법, 행정의 3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발전하려면 각 부가 지방에까지 조직이 되어 중앙 조직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행정부의 최하 기관을 어디냐? 면입니다. 앞으로는 리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법부의 최하 기관은 지서입니다. 그러나 입법부는 하부 조직이 없습니다. 당 요원들이 전부 중앙에 모여 있을 뿐 지방까지 조직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면이면 면까지 조직을 만들어 3부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원리에 있어서 사위기대와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주권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만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리입니다.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부모를 중심한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천국도 사위기대 완성형을 이루어야 됩니다. 한 점을 중심삼고 수수작용을 하여 공동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지방에까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구조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완전히 일체화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가져 생활에까지 미쳐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만 앞으로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천국은 원리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러면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선주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완전히 되면 물질은 자연히 생겨난다고 했지요? 지금까지 교인들에게 전부다 맡겼는데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교회도 발전 못 하고 회사도 발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원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도 조직이 완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서 대표 기관이 교회요, 물질에 대한 조직이 사업부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어디를 주관해야 되느냐? 사람이 물질을 주관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자들은 사업에 대한 관리를 해야 합니다. 사업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사업부 독자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영업소장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업소장들은 원리에 입각해서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보고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된 입장에서 원칙적인 기준에 입각하여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보고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원칙에 부합될 수 없으며, 보고받기를 싫어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마음과 몸의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내적이요 외적이며, 주체와 대상의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는 천국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나라가 물질적 기반을 벗어나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가정에서부터 벌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것은 환경적 인연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화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물질과 사람이 반드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보고를 하는 데 있어서 잘못 보고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 없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자가 모르는 가운데 몸의 입장인 관리자가 자기 마음대로 관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업소장들은 교회 책임자들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원리적인 입장에서 정당한 관리 제도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제도가 없었습니다.

나라에 주권이 있듯이 통일교회에서는 선주권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사법부와 같은 입장에서 주권을 대행할 수 있는 것이 선주권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직계 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당과 같은 조직 형태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통일가(統一家)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이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입법부에 해당하는 일도 축복가정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이 가정이라는 것은 세상에 있어서 물질 생활에서 양심적으로 산 사람들이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안팎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부부 가운데 남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자는 교회와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또한 여자는 물질과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환경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가정적으로는 어떻게 되느냐?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이 셋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정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중심삼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사위기대를 갖추기 위해서는 횡적 기반을 중심삼은 형태를 갖추어야 되기 때문에 사회 환경에 있어서 사람과 교회와 물질 그리고 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위기대를 조직한 것입니다. 본래 삼위기대의 사명은 가정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표본이 되어야 하고, 경제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삼위기대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이 가는 날에는 앞으로의 천국의 이념은 깨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들도 삼위기대 조직이 있지요?

중심가정을 중심삼아 삼위기대가 하나되라

그러면 이 삼위기대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그 가정 가운데 대표될 수 있는 가정을 택해야 합니다. 그 가정은 절대적인 하늘 가정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상하시던 가정이요, 선생님의 가정을 대표한 가정이기에 그 가정 명령에 절대 순응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리고 삼위기대를 이룬 가정은 교회를 지도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교회의 지도자보다도 충성해야 합니다. 또한 물질 관리에 있어서도 어떠한 사람보다도 검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체계화된 조직을 갖춘 사회 제도와 경제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 우리 이념이 지향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합했던 것을 둘로 갈라 놓으면 이것이 발전입니까, 퇴보입니까? 「발전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 받으면 힘이 생깁니다. 또 힘이 생기게 되면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여기에서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선(善)이 결정됩니다. 선이 결정되기 때문에 선의 번식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법도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의 축복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직계 계통입니다. 축복가정이 부패하지 않는 한 우리 세계는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원리에 입각한 조직이 편성되는 것입니다. 주권이 없더라도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의 나라는 형성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이것을 앞으로 제도화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조직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중앙의 본부에 있다고 해서 본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을 중심삼고 세포가 분열하듯이 분열해야 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중심되는 가정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정이 선생님을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지느냐? 우리들의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주의냐? 가정주의입니다. 우리가 표방하는 천주주의(天宙主義)는 하늘 천 자에 집 주 자 즉, 하늘집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천주라는 뜻이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66권은 전부다 이상적인 가정을 소원한 말씀입니다. 또 만민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소원하는 것은 이상적인 아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렇다는 남자는 사람도 아닙니다. 또한 여자로 태어나서 가장 소원하는 것은 이상적인 남편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자가 아무리 학박사가 되어서 세계에 큰 소리를 친다 해도 그의 소원은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서 복스러운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뿌리입니다. 이러한 가정에 통일교회 교리를 박아 놨기 때문에 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이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발도 가정이요, 결론도 가정입니다. 아직까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소망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체계화시키고 천주화시켜서 무한한 가치를 드러냈기에 통일주의가 공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없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좋아하게 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상적인 남자가 어디서 자랄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천하에 수많은 남자가 있지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남자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만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발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교회에 있어서 본이 될 수 있는 사람, 경제무대에 있어서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돈에 지배당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돈에 지배당하는 민족과 국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가정과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라를 속이면 그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지구장, 지역장들에게 전부다 맡겨 놓았더니 본부의 승락도 없이 돈을 썼습니다. 썼어요, 안 썼어요?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이원화해야 됩니다. 둘 다 할 수 없으니 나누어 가지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원화한 것을 알고 앞으로 지구장, 지역장들은 관리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언행과 마음자세 그리고 신앙생활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어긋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됩니다.

앞으로 대표적인 가정을 선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지구마다 한 가정을 선정하게 되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삼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지상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인 세계입니다. 그러한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는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당을 절대시하는 것도 중심을 중심삼는 면에 있어서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당의 명령에 의해서 죽고 당을 위해서 존속하는 것은 일면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방에서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그 사명과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자기가 축복받고 앞으로 후대 앞에, 하늘땅 앞에 중심 가정이 되기 위해서 준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정상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공고한 기반을 자기 가정을 통해 이루어 놓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원리를 중심삼은 생활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한 날의 판가리 싸움을 판결지을 수 있는 중차대한 사명을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옵고, 아버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한 때를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저희들이 행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과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책임을 지게 될 때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 가운데 깊이 들어가 아버지의 거룩한 옷깃을 부여잡고 당신의 슬픈 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해주시옵고, 행각의 노정에 있어서 슬픈 심정을 가질 때일수록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을 위해 가는 길이 이렇듯 슬픈 과정을 거쳐 가야 할 길이지만 저희들이 이 길을 즐거움으로써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한때의 서러움과 한때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천년사에 원한의 조건을 남긴다는 것을 저희들이 염려하면서 정성을 다 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백일이라는 기간을 중심삼고 최후의 전선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물질적인 조건을 위해서 아버지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그들의 입장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것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이 민족을 찾아오신 수고의 노정 앞에, 위로의 뜻을 세우지 못한 이 민족의 서러움과 세계 인류가 가야 할 행복의 터전을 저희 일대에서 책임지고 넘어가기 위해 하는 것이오니, 행하는 모든 것이 나라와 세계를 위할 수 있게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어제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같이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영원히 같이 있고 싶지만, 아버님의 뜻을 사랑하기에 저희들이 만났고 아버님의 뜻을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사정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내일부터 저희들에게 처참한 개척의 노정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노정만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지치지 말고 용감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한 용맹심을 가지고 책임 완수를 위하여 진군할 줄 아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이면 각자 맡은 일을 위해 출발해야 할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염려하시는 그 마음이 저희들보다 더 큰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가는 발걸음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때에는 저희들이 민족을 앞에 놓고 기뻐하고, 세계를 앞에 놓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과거를 자랑할 수 있는 한때를 남기고 다시 만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대전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 떠나가야 할 행로를 아버님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순회로 말미암아 아버님께서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식구들 가슴 가슴에 심어지고 남겨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고귀하신 뜻이 길이길이 승리로 거두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0월 19일, 10월 들어 세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을 맞이하여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각 제단 앞에 모여 머리를 조아려 경배하고 마음 모아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 무리들 앞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저희들을 이 자리에 세워 놓고 저희들을 통하여 해원성사하시려는 아버님의 거룩하신 뜻이 있음을 아옵니다. 당신께서 해원성사하시려는 그 뜻 앞에 충성을 다하여 없어서는 안 될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가 있게 된 것은 저희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시작도 당신이요, 끝도 당신인 줄 알고 당신 앞에 전체를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말미암아 승리의 개인과, 승리의 가정과, 승리의 나라와, 승리의 세계를 복귀하시옵고, 더 나아가서는 승리의 천국을 이루시어서 아버님 홀로 영광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희생되고 제물되신 당신의 모든 억울한 사정을 저희들이 대신 맡아 탕감하여 기필코 당신의 한을 풀어 드리고 기쁨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될 것을 이 시간 맹세하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을 중심삼고 3시대의 인연이 맺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해원성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들이 해방의 한날을 고대하고 있고, 미래의 후손들이 해방의 한 날을 고대하고 있사오니, 그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고 땅의 뜻을 받들어 인륜의 도리를 찾아 세울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도 동서양의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고 한국을 그리워하며 뜻을 위하여 끊임없이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정성들이는 그들을 당신의 깊은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여 천하만민이 당신의 뜻앞에 부복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산제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에 경남·북을 중심삼은 당신의 사랑하는 중심인물들이 여기에 모여서 찬송 부르며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남아진 일체의 시간을 당신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말미암아 경남·북의 도민들이 당신의 뜻 앞에 올바르게 복귀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3천만에 가까운 이 민족을 위해 저희의 생명의 주춧돌이 되게 하시고 영광스런 제사장이 되게 하시어서, 당신을 찬양하는 데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제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 축복받은 가정들 위에 아버지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특별히 통일교단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대한민국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을 위시하여 아시아, 구라파, 세계 전체를, 아버지,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온 천주를 당신의 품에 품으시어서 모든 자녀들의 활동 무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던 영광의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형태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날까지, 저희들이 제물이 될지라도 온갖 충성을 다하며 참고 갈 것을 맹세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뜻을 위해 나아가는 자녀들과 세계 위에 아버지의 영광과 자비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과거로부터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참을 추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더욱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참중심되시는 분을 흠모하면서 참된 자신이 되기를 바라며 나간다는 것을 우리들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참된 것을 추구하는 인간

참된 개인, 참된 가정, 참된 국가, 참된 세계,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만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추구해 왔고, 현재에도 추구하고 있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하여 추구해 나오는 참된 그 중심이 어디에 가서 귀결될 것이냐? 세계에서 귀결되는 것도 아니요, 혹은 어떠한 나라에서 귀결되는 것도 아니요, 어떠한 사회에서 귀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되다'는 그 기준은 개인에게 귀결되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참된 사회,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우리 각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참된 나를 추구하기 때문에 참의 중심되시는 하나님을 추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의 중심이 하나님에게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참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은 막연하게 이 세계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가 그 중심이 되어서 세계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참의 중심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참된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환경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종적인 하나님은 횡적인 환경과 인연을 맺지 않고는 참의 인연을 갖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방을 갖추고 입체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권을 갖추어 중심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세계를 이루는 중심존재가 되어야 할 인간

창조원리에 의하면 이성성상을 중심삼고 모든 존재물, 천지 만물이 생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무리 영적인 중심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이 중심으로 결정되지 못하면 참으로서 완전히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류 자체에게는 스스로 하나님을 중심존재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보잘것없는 `나'라는 한 존재는 흘러가는 역사 가운데 그저 왔다 가는 개인이 아니라, 흘러가는 역사를 가로막는 오늘날 이 세계의 중심으로서, 미래의 새로운 개척자로서, 참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나고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개인은 참된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마 16:2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내 개체는 전체를 넘어선 가치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 자신을 중심삼고 참된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참된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광범한 의미에서, 예수님도 개체의 인격의 가치를 그와 같이 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 자신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일치된 자리에서 전체의 중심으로 나타날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 나타날 때 참된 모습, 의의 모습, 선의 모습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자면 남자 한 사람이 참된 모습이 되었다고 남자 하나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참된 가정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가정은 가정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참된 사회로 발전시켜야 되고, 참된 사회는 참된 민족, 참된 민족은 참된 국가, 참된 국가는 참된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중심이 아니요, 나라가 중심이 아니요, 또한 어떠한 가정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인식권내에 들어섰던 것이 아닙니다. 30여 년의 생애 기간을 통해서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 인식권내에 들어간 자기 주체적 인식을 상대적인 세계에 어떻게 반영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싸우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중심이 동기가 되어 그것을 기준삼고, 좌하면 좌, 우하면 우, 전하면 전, 후하면 후, 정하면 정, 동하면 동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식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상대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 아니라 주체적 입장에서 상대를 움직이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 `나'라고 하는 한 사람은 한 순간에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수억만 년의 영원한 역사과정에서 7, 80년의 생애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생은 그야말로 깜빡하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호흡을 해야 하는데 마치 우리 일생은 수많은 호흡 중에 한번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중심삼고 볼 때 극히 짧은 기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전체의 소원을 좌우할 수 있고 전체의 소원하는 바의 중심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시기가 얼마나 귀중하고 중대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을 중심삼고 자기 일생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일생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이면 대한민국의 운명과 더불어 일생을 결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세계 인류의 일원이 되어 있으면 세계의 운명과 더불어 자기 일생을 결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의 인연을 가지고 나가는 입장에 있다 할진대 천운을 중심삼고 자기 일생을 결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 개인을 중심삼은 어떤 운이 있다면 그 운은 반드시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 하늘이면 하늘의 운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개인의 운을 필요로 하는 가정의 운으로, 개인의 운을 필요로 하는 국가의 운으로, 개인의 운을 필요로 하는 세계의 운으로, 개인의 운을 필요로 하는 천운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개인으로서 참된 생애의 노정을 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생애라고 하는 것은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며, 생활은 하루하루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생애를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된 하루하루의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루의 생활이 실패를 하게 되면 생애에 실패의 요인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얼마나 긴장하는 생활이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판가리 싸움을 해야 하는 생활인가를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중심존재가 되려면

타락한 우리 인간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참된 개체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개체로 복귀하는 데는 자기 혼자서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앞에 추방을 당한 우리 인간은 추방당한 그 자리에서 배반했던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이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참된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에 하나님을 불신하였고, 하나님 앞에 자기 중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은 하나님을 떠난 자기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되지 않고 분립되고 격리된 자리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인간만으로는 참된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 가운데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일 가지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정적, 내정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뜻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여기에 개재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혈연적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자리, 즉 무한한 가치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된 자리,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된 자리입니다. 참된 사랑의 상대적 기준을 내 자신이 결정짓지 않고는 아무리 뜻을 위해 충성하며 따라간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에게서 자녀가 태어나게 될 때 어디로부터 태어나느냐 할 때, 부모의 어떤 외적 조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을 이어받아서, 즉 내적인 모든 인연을 이어받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도 부모의 입장인 하나님의 모든 내적인 인연을 받아가지고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적인 인연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그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체적인 가치를 대신한 기준에서 영원히 차지하고 싶어하시는 것이 바로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차지하고 싶어하시는 것이 자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 자식을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내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 중의 속이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내적인 것을 모두 계승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볼 때는 인간이 전체의 중심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소원의 중심 실체로서 현현했던 것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사랑하는 것이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자리에 섰다 할진대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는 참되고 완전한 기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복귀의 기준은 무엇인가? 개인복귀 완성입니다. 그러면 개인복귀 완성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내적 심정적 문제를 중심삼고 재차 태어나는 기준을 갖게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 기준을 바라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태어난 것은 모두 거짓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 중생 부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이고 참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내 한 개체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을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반드시 그 인연을 중심삼고 다시 태어나서 생애노정을 가야 되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인간의 생애의 중심 원동력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음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두터이하는 생애노정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에서 살고 사랑에서 끝을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세계 전체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뜻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뜻을 위해 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는 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효도할 수 있는 때가 죽은 뒤에 영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을 중심삼고 볼 때 지극히 짧은 기간, 똑딱하는 순간과 같은 이 일생 동안에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고, 하나님 앞에 효도했다는 조건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 생전에 하나님 앞에 절대 필요한 아들이라는 결정도 지어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 생전에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류들이 그러한 가치를 지닌 인간을 추구해 나왔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영원 불변의 참된 효행의 도리를 세운 하나님의 아들이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오늘 우리 시대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서도 있을 수 없고 우리들의 후손 중에도 있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맞이할 수 없는 귀중한 7년노정

여러분 자신이 이러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중심을 따를 수 있는 하나님의 심정적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 할진대, 여러분은 이 시대에 있어서 이것을 결정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이 시대의 세계 가운데에도 없는 그러한 한 때를 우리만이 지녔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무한한 은사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부여받은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천년을 기다려도 다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이 시대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10년, 20년, 30년, 혹은 50년의 생을 살아간다 하게 될 때, 그 일생은 반드시 7년노정에서부터 입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이 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입문한다면 일생에 있어서 이 7년노정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만약 이 7년노정을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화시키지 못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가야 할 생애노정에서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 7년노정 기간이야말로 억천만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장 귀한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를 놓친 사람에게는 참된 생애의 노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내 사라져 버리는 아침 이슬처럼 순간적인 7년 기간이 우리 앞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는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한 때가 찾아오는 데는 편안히 잠자는 자리에서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이 한 때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무한한 수고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한 때를 갖지 못하면 참된 아들딸로서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한 때를 맞추기 위해서 무한한 수고를 해 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뿐만 아니라, 도의 길을 통해서 선을 추구해 나왔던 성인 현철, 선지선열들도 이 한 때를 맞추기 위해 지금까지 희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이 한 때를 맞지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 우리가 맞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규정적인 일치, 필연적인 일치에 의한 것입니다. 이때가 오지 않고는 필연적인 가정, 필연적인 국가, 필연적인 세계, 필연적인 천주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이 바라는 가정, 국가, 세계가 우연히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국가와 세계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조건을 가지고 그 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한 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한 때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 한 때를 기원으로 해서 일생 동안 밀고 나가야만 참된 생애가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일생이 되어야

세상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런 행복은 그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 때의 인연과 인륜 같은 것도 후대에는 탄식의 조건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세상적인 명예나 권위로 보나 아무리 세상적으로 모든 면에서 세상의 만국,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복된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물고 낚아채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천상세계에 가서 그 자식이 한의 조건이 될 것이며, 땅 위에서 어떠한 영광의 자리에 살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자기를 물어뜯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스스로 장담하고 내세우던 모든 권위의식이라는 것도 저나라에 가서나 후대에 가서는 자기를 구속하는 요인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자리에서 행복을 노래했다 하더라도 그 행복의 요건들은 나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불행을 더해 주는 조건은 될망정 나에게 참된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조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아시기 때문에 도의 세계를 통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한 때를 표방하고 지금까지 인간을 몰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한 때를 중심삼고 온 인류가 공히 맞이할 수 있는 메시아 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오직 이 한 때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바라던 한 때요, 현재에 사람들이 바라는 한 때요, 미래 사람들이 바라게 될 한 때, 온 인류 앞에 중심이 되는 그런 한 때를 하나님과 더불어 천운과 더불어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역사시대의 어떠한 종교보다도 역사시대의 어떠한 인류보다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맞이한 이 한 때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물론 우리의 생애노정도 귀중하지만 7년노정에 있어서의 하루하루는 더없이 귀중한 것입니다. 이 기간을 잘못 맞추게 될 때는 천년의 한이 여기에 깃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한 때를 중심삼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생애는 한번 가면 그만입니다. 이 땅 위에서 영육을 갖추고서는 이런 때를 다시는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은 영원이지만 육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일치되고,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일치되는 자리에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와 같은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시기는 땅 위에서 육을 쓰고 사는 기간, 즉 일생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기간을 잘못 사는 날에는 영원히 파멸하는 것입니다. 반면 이 기간을 잘 수습하여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갈 때에는 영원한 행복의 터전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나가나 자나깨나 슬플 때나 기쁠 때를 막론하고 이 한 때의 가치를 응시하면서 빛나는 생애로 만들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의 심적 기준의 선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 이상의 곳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일년, 십년, 일생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일당백의 마음으로 하나의 선의 기준을 중심삼고 참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복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보통 흘러가는 사람같이 정성들여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모든 사람들이 총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운동경기를 할 때와 같습니다. 한국을 대표하여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있다 할 때, 그가 달리면 한국의 삼천만 국민이 그 선수와 더불어 달리는 것입니다. 즉, 그 선수가 씩씩하게 달리게 되면 그 민족의 장래는 씩씩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개인이 세계적인 승리를 거두어서 영광의 자리에 섰다 할 때, 그 영광의 자리에 그 개인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을 갖고 수많은 국민이 그 선수와 호흡을 같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우리 개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중심존재가 되라

우리는 우리 개인만이 아닌 초국가적 존재요, 초역사적인 존재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대표하고, 전세계와 전역사를 대표하고, 전우주와 천주세계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역사를 대표한 초인류적이고 초역사적인 입장에서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배후에는 역사적으로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후원해 줄 수 있는 사람, 오늘날 인류가 후원해 줄 수 있는 사람, 미래의 후손들이 후원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민족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역사상의 위인들이 자기편이 될 수 있고, 현시대의 모든 희망적인 인간들이 자기편이 될 수 있고, 미래의 소망스런 후손이 자기편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념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된 자리에 서지 않고서는 초역사적인 중심으로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 태어나서 그럴 수 있는 인연을 찾아가는 이때는 가장 엄숙한 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한 때를 놓치게 되면 천년 한이 깃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신도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뜻을 위해 출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한 때를 의의있게 보내지 못하고, 이 한 때에 생활기준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그 생애는 거짓 생애로 종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영원 무궁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한번밖에 없는 이 한 때를 맞아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하는 생활이 정성들이는 생활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의 정성을 들여야 되느냐? 또 다시 맞이해서 정성을 들이고 싶어도 다시 맞이할 수 없는 이 한 때에 있어서, 하나님이 소원하고 우리 인류의 조상과 천추만대의 후손과 초역사적인 인류가 고대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들이 감동하고 그들이 추앙하고 그들이 마음 모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한 때를 맞이한 우리들이 소원해야 할 최고의 수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이 찾아 세우기 위해 바라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한 날을 찾아서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은 지극히 엄숙한 순간입니다. 그날은 흘러가는 역사의 한 날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역사의 한 순간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맥박, 천주사적인 맥박 앞에서 초역사적인 정도를 세워 나가는 우주의 이상적인 존재들과 함께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할 수 있고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자리, 그 움직이는 모든 느낌 느낌이 그런 우주적 존재와 같이 통감할 수 있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서 충성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한 곳을 찾으시며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느 시대에 있는 것인가? 어느 한 때 똑딱하는 순간에 여러분에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똑딱하는 순간과 같은 짧은 7년노정에서도 7년 기간 전부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7년노정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정성을 들이는 중심점을 마련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7년 전체가 정성의 기점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7년을 부활시킬 수 있는 탕감의 기준이라도 남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정성들이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그 정성의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때를 잘 맞춤으로써 이 한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뜻을 알고 있는 우리밖에는 없습니다. 앞으로 뜻을 모르고 태어나는 인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가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후손들 앞에 참의 모습을 세워야 할 우리 개체의 운명, 그런 생애노정을 걸어야 할 운명을 중심삼고 미래의 후손들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냐? 그때에 현현되어질 그 가치를 지금 이때에 여러분 자신들이 그려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동으로 가고 서로 가고 뜻 앞에 정성들이고 충성하는 모든 것은 어느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 이전에 자기 자신을 세우기 위한 것이요, 세계 이전에 자기 자신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때를 잘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때를 잘 맞춤으로써 그 때가 인류의 때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자신의 때를 잘 맞춤으로써 국가의 때를 대신할 수 있고 세계의 때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서 사는 사람은 국가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요, 인류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요,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요, 역사와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그 자리는 모든 요구의 중심이 되고 모든 희망의 기점이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 기준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역사의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인류의 중심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금같은 때를 허비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러므로 7년노정 기간 전체는 그런 때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7년노정의 어느 한때에 그런 때를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때마저도 남기지 못한 사람은 참된 생애를 남기기 위한 탕감조건적인 기준조차도 세울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생 전체를 참되게 살아야 되겠지만 그러지 못하겠거든 참된 조건이라도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없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한번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청춘시대도 한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시기입니다. 청춘시대가 또 올 수 있어요? 장년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번 맞이한 시대가 언제 다시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뜻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을 보면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자고 일을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쁨과 슬픔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있습니까? 나를 중심삼고 사는 것 같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을 탄식하게 하는 요건은 될망정 살려주는 절대적인 요건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두고 볼 때, 이제는 중차대한 시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 세계의 운명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시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어느 때에 이러한 운명과 인연을 맺고 판가리를 지을 것인가? 어느 때에 판가리를 지을 것이냐? 정성을 들일 때는 어느 누구도 그 정성의 기준을 메울 수 없고 그것을 떼어 낼래야 떼어 낼 수 없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도의 길, 혹은 선의 길에서 정성들이던 그 기준을 능가하는,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의 기준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정성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7년노정을 설정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볼 때, 참부모라는 이름은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자식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 자식도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참부모, 참자식의 입장에서 세워야 할 정성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참된 기준을 중심삼고 참된 생애노정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것은 지나가다가 생각나면 멈추어서 처리하고 다시 지나가는 그런 자리에서가 아니라 긴장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처리해 가야 할 그러한 생애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역사상에 참부모로서 정성들여야 할 그 기준을 세워야 할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요구하고 온 세계가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는 그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편안히 쉬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그런 자리에서는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하여도 부족할 정성을 어떻게 다 채우느냐?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정성을 다하고 나서도 하늘 앞에 자기 면모를 내세울 때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포용해 가지고 생애를 이끌고 나가는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마저도 내 일신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겠거든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잘 해 놓고도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숙일 수 있고, 못하였을 때에는 머리를 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 의식까지도 망각해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야만 그런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자기가 무슨 일을 조금만 잘했으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느니 어쩌니 하며 불평들을 하는데, 자기가 해 놓고서도 오히려 칭찬받을까봐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칭찬을 받을까봐 부끄러워하고, 또 칭찬받으면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받는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더더욱 가중된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온 정성을 다 기울여야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직선을 그으면 아름답게 그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애 노정을 엮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에 있어서도 선생님 자신의 일생을 중심삼고 어떻게 정성들여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신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애의 3분의 2, 혹은 4분의 3을 지내버린 나이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3분의 1, 또는 4분의 1의 생애를 중심삼고 이러한 거룩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문제라는 것입니다.

흘러간 생애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때를 거의 다 잃어버린 늙은 몸으로서 어떻게 혈기왕성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과 지성을 다하여 어느누구보다도 굳게 맹세하여 나갈 수 있는 그런 때를 맞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기력이 쇠진하고 소망이 흐려진 자리에서 비로소 충성을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을 원통하게 여기면서 하루를 천년으로 대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남아진 생애를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부족함을 느껴야 할 나이 많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 마음으로 살아 왔느냐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청춘시절을 참되고 의의 있게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생에 해야 할 모든 정성을 투입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 고통을 기쁨으로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국가가 당하는 시련 고통, 세계가 당하는 시련 고통이 찾아와도 부딪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그 시련 고통을 내가 참음으로써 소화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정성들이는 청년 남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한탄하는 그 길을 그들 역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여러분의 젊은 시절의 한 때라는 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때인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세계를 대신할 수 있고 자연적인 환경의 인연을 갖추고 있는, 한때밖에 없는 청춘시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한번밖에 없는 때를 잘 맞이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는 어느 때부터 참된 생활을 시작할 것이냐? 생활은 곧 하루하루를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참된 생활을 늘 연속시키지 않고서는 참된 생애가 되지 못합니다. 참된 생활을 통해 무한한 삶의 가치를 노래하고, 무한한 승리를 다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애의 참된 가치와 생애의 참된 승리를 다짐할 수 없습니다.

참패의 기원은 1년, 2년, 3년, 천년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승패의 기원은 순간에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게 될 때에는 고비가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그 고비는 똑딱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순간적인 기준을 잘 찾으면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소망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난 세월 동안 뜻길을 따라 나오는 과정에서 천지가 동원되어 자기를 맞아 주려고 할 때 그 인연을 얼마나 맞아들이려 했던고! 자기 자신이 그 뜻의 인연을 얼마나 얼마나 박대하였던고!

한번밖에 없는 때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여지없이 박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박대를 받으면 박대한 자리에서 떨어져 내려와서도 또 나타나는 것입니다. 떨어져 내려오는 데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이렇게 복귀해 나오는 것과 반대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높은 기준에서 박대해 버리면 그보다 조금 낮은 기준에서 다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옛날의 자리로 복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또 놓치게 되면 다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옛날의 기준을 일대에 복귀하기 위해 탕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탕감이 가중되면 일생은 완전히 막혀 버리게 됩니다. 자기가 알고는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제쳐 두고 지나온 생애를 다시 한번 분석하여 잘못된 것을 끌어내 회개하고 잘못된 그 인연을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거기에서의 싸움은 치열한 싸움입니다. 자기 생애를 투입해서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결정하는 싸움을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주의 인연은 삼엄한 내용을 중심삼고 한 순간도 용서없이 생사의 결정권을 걸고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천년 전, 요셉은 어찌하여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마리아는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었느냐? 이들은 역사적인 한때를 맞아들일 수 있는 주인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때를 잘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때가 온다면 기쁨으로 오겠느냐, 슬픔으로 오겠느냐, 혹은 낙심으로 오겠느냐, 소망의 기준으로 오겠느냐, 아니면 행복의 기준으로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한때가 오는 데는 행복의 기준만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기준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기준과 소망적인 기준, 다시 말하면 상극적인 양면의 방향을 다 갖추어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행복의 요건으로 오면 좋겠지만 불행의 요건으로 나타나게 될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배척합니다. 그러한 한때는 행복의 내용만으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죽음의 교차로를 거쳐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류가 이 한때를 놓쳐 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기쁘고 좋은 환경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억울하고 비참한 곳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생애를 남기려면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 불행과 행복은 한점의 교차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이 오기 전에 불행이 반드시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행의 자리에 떨어진 인간이 행복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불행의 열매를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중에서도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민족의 십자가를 홀로 지고, 세계의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야 합니다. 모든 인류가 비운이 깃들어 있다고 손을 흔들면서 도망치는 그 자리에 행복의 때가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 있어서 1960년도는 행복의 한때가 찾아온 시기였습니다. 그때야말로 세계의 역사를 결할 수 있는 한때였습니다. 그때가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시대보다 귀중한 행복을 인연지어 준 한때였습니다. 참다운 행복의 인연을 위해 환경을 포위해 가던 시기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놓쳐 버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의의있게 완전히 맞이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역사의 한때와 더불어, 우주사적인 한때와 더불어 승리를 찬양하게 될 때 비로소 우주적인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참된 생애를 남기기 위해서는 참된 하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 순간에 있어서 얼마나 진실했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을 볼 때, 선생님 같은 사람은 역사 이래 선생님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가운데 전무후무한, 한번밖에 찾아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선생님은 맨꼭대기에 서 있습니다. 꼭대기에서 이 한때를 어떻게 끌어올려서 꼭대기와 직선을 만들어 놓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것이 한쪽으로 조금만 기울어져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끼며 생애노정을 걸어가야 될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잘못하게 되면 천지가 뒤넘이치게 됩니다.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를 조금만 잘못하면 천지가 기울어진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데에 중요한 것은 정초를 바로 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못 놓게 되면 아무리 화려한 문화의 제단을, 고층빌딩을 쌓아 놓았다 해도 일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높으면 높을수록 크면 클수록 파괴되어 뿌리까지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우치지 않는 역사적 승리의 기준을 갖추어 생활의 기반과 생애의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는 데는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어떠한 전투보다도 더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의 문제를 중심삼은 싸움은 죽으면 다 해결되지만 이것은 죽어 가지고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생활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죽음의 교차로를 앞에 놓고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할 때, 그 순간은 참으로 엄숙한 순간인 것입니다. 천년사의 원한과 역사적 비운이 모두 해결되고, 역사노정에 승리의 깃발이 세워지고, 광명한 새 아침이 밝아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명이 좌우되는 엄숙하고 심각한 순간이 다가와도 그것을 내일의 소망과 인류의 참된 생애를 대신하는 탕감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기쁨으로 흡수하고 소화시켜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으로 소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인연으로 남길 수 있는 싸움을 계속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한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생애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생애를 남기고 가야 되겠습니다.

갔다가 다시 돌아볼 때 메워야 할 과거를 가지고, 미련을 가지고 과거에 살았던 땅을 흠모하게 되면 그 생애는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대하여 미련을 남기지 않을 참된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온갖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정성의 골짜기가 있다면 최고로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고, 정성의 정상이 있다면 최정상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을 자고 나서도 회개할 수 있고 밥을 먹고 나서도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찬양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수고하신 공을 찬양해야 됩니다. 또한, 내 일체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내 감정과 생활전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인연으로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 생애를 저울질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참된 생활은 참된 하루로부터 시작되고, 참된 하루는 참된 순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순간과 같은 하루, 참된 순간과 같은 일년, 참된 순간과 같은 일생을 어떻게 지속해 가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생애에 남겨진 과업입니다.

혹자는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일생이요' 하면서 한때밖에 없는 청춘시절을 헛되어 흘려 보내 버립니다. 그러한 생활은 흔해빠진 생활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도 싫어합니다. 사탄도 싫어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할 까닭이 있습니까? 사탄도 부러워하고 하나님도 부러워하는 생활을 해야 남아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러한 순간적인 생애노정에 있어서 참된 생활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참된 가치와 이 세계를 놓고 저울질하여 보았을 때 어떤 것을 취하실 것인가? 세계를 버리고, 세계를 완전히 잊고 그 사람을 완전히 취하시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찾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세계를 주더라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전국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지금까지 전도를 중심삼고 활동해 나왔는데 이제는 사업무대에도 나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의 기치 아래 인류의 역사가 우리를 중심삼고 엮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업이면 사업 분야에 있어서 참된 사업을 할 것이며, 전도면 전도에 있어서도 참된 전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생각하면 그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선과 악이 결정되는가

한번 왔다가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한때에 있어서 무한한 가치의 생애 노정을 어떻게 그려가고 어떻게 결산지을 것인가? 여러분이 출발하는 데는 평면상의 한 선을 중심삼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갈 때는 갈라져서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좋은 곳을 향해 직선으로 올라가고 싶어하지만 몸은 직선으로만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느냐? 어떤 때는 이 자리로 가고, 어떤 때는 저 자리로 가고, 또 어떤 때는 내려가고 어떤 때는 올라가는 등,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가다가 꺾어져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는 플러스냐 마이너스냐를 재보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플러스 얼마냐, 마이너스 얼마냐에 따라 천국행, 지옥행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만약에 마이너스 100이 나온다면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때에 플러스가 되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 한마디를 하면 그 한마디 말이 천지의 수평선을 중심삼고 볼 때 위에 올라간 말이냐 내려간 말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웃는 그 표정까지도 전부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씩 웃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이너스 웃음이냐 플러스 웃음이냐로 구분됩니다. 뜻 없이 웃는 사람, 실없이 웃는 사람을 뭐라고 합니까? 정신 빠진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렇지요?

여러분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는 것을 중심삼고 플러스 눈이냐, 마이너스 눈이냐를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귀도 그렇습니다. 플러스 귀냐, 마이너스 귀냐, 그리고 마음도 마찬가지로 플러스 마음이냐, 마이너스 마음이냐를 가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관의 자극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든 동작을 일으킬 때 그 동작을 플러스 마이너스로 가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섭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낚아채느냐? 하나님이 취하시느냐? 말로만 믿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에게도 부모 있는 줄 아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가 너 때문에 수고를 했느냐고 물어보면 수고를 안 했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부모가 수고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 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위해 수고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런 불효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부모의 속을 빡빡 긁어먹는 불효자라 할지라도 그 부모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잘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 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도 자신이 죄를 짓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서 죄를 짓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환경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죄를 짓게 된 경우와는 다른 것입니다. 범죄 수사를 할 때 주범이니, 종범이니, 연루자니 하는 것은 고의적이냐 피동적이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효인지 몰라서 불효하는 사람 있습니까?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하는 사람이 모르고 합니까? 다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쁜 일을 할 때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합니까? 알고 합니까, 모르고 합니까? 모르고 하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알고 한 것을 누구한테 변명하겠습니까?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을 누구한테 변명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누구 원망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고 한 잘못의 대가로 그 사람을 탕감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노래를 듣는 데도 선악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밥을 먹으나, 자나깨나 모든 것에 선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난시에 모두가 나가 싸우고 있는데 혼자 나가자빠져서 잠만 자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평상시에는 얼마든지 잠을 자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지만 전시에 동지들이 나가 싸우는데 자기만 뒤떨어진 채 싸우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다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일생의 노정을 가면서 작용을 일으킨 동작의 전체로 말미암아 선악이 결정됩니다. 말 한마디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말하는 것도 얼마나 선한 말을 하고 얼마나 악한 말을 하는지 전부 판별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그릇된 말, 실체의 말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마이너스 기준의 자리에 내려가지 않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은 아무리 노력해도 플러스 기준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중간에서 끌려 올라갔다 끌려 내려갔다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삼고 볼 때, 태어날 때는 다들 좋아서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이 차후에 갈 때 마이너스 얼마냐, 플러스 얼마냐를 결산짓게 됩니다. 그러면 플러스가 더 많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플러스가 더 많이 남게 되느냐? 일생 동안 정말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생애의 표본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하고 나빴던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면을 중심삼고 생애를 연장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인륜도덕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좋았다고 하는 그 기준이 나만 좋아 가지고 되겠느냐? 나라가 좋아하고 세계가 좋아하고 하늘땅이 좋아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땅이 같이 좋아할 수 있는 기준이 이 우주간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많은 인간이 공히 그 기준을 가질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때가 여러분의 생애노정 가운데 어느 때일 것인가? 그때를 중심삼고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때에 열만큼 노력했으면 그 다음에는 스물, 혹은 백만큼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성공을 했다고 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 성공이 자기만을 중심삼은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기가 되고 자기 후손이 된다면 그 민족은 대한민국의 운과 더불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개인이 성공했다고 거기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세계의 성공을 위해 달려가면 달려가는 그곳까지 우리들은 발전하고 남아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천주주의란 사상을 중심삼고 하늘땅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됩니다. 이 운동이 앞으로 전세계화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어 가는 과정에서 과연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늘땅, 천지에 있어서 천(天)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지(地)가 생겨났으니 인연이 있으면 어느 때 그것이 맞설 것입니다. 해와 달이 맞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침과 밤이 맞설 수 있는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이 90도 각도로 맞설 것입니다. 그때가 최고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이제까지 들인 정성을 어떻게 남기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한번밖에 없는 귀중한 일생을 중요시해야 되고, 잃어버린 여러분 자신을 찾기 위해서 하루의 생활을 가치있게 보내고, 순간의 싸움을 이겨 나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3년 정도만 가면 축복을 해주겠지' 하며 도둑놈 심보를 갖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3년동안 따라가는 목적이 축복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복이 깨져 나갈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모든 것이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인지 땅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시집 장가가는 것만을 중심삼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기까지는 많은 사연을 거쳐야 됩니다. 3년이라는 그 기간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는 기간입니다. 7년을 지내고 난 뒤에 3년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의 7년 노정에 접붙여서 가야 하는 노정인 것을 모르고 3년만 가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 몸보다 뜻을 더 사랑했느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생을 스스로 해결해야 될 때가 한때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일생이라는 것이 귀합니까, 귀하지 않습니까? 여자들에게 한 캐럿에 70만원 정도 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 주었다고 하면, 그저 다칠세라 상할세라 낮이나 밤이나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한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랑하는 것만큼 뜻을 사랑했느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뜻이 귀합니까, 여러분이 귀합니까? 크게 보면 뜻이 귀하고, 작게 보면 내가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가락 하나가 귀합니까, 뜻이 귀합니까? 여러분은 자기 손가락에 피가 나면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손가락같이 뜻에 상처가 났다고 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정성을 다해 치료하겠습니까? 그렇게 해 봤어요? 무슨 말을 하면 `하나님이 있을 게 뭐냐, 아무래도 난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또 7년노정을 가라고 하시는구나'하며 푸념하여 교회의 분위기를 흐트려 놓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매일같이 열심히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두고 `저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청소 부활체로 태어났나?' 하며 흉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도 빗자루를 던져 주며 청소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서운 사람인 것입니다.

상을 주는 데도 계급이 많이 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데도 세계적인 청소급, 국가적인 청소급 등 여러 급이 있습니다. 청소 세계의 왕자가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 분야에서 제일급 가치의 존재로 취하시는 것입니다. 거지 중에도 세계적인 거지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표 거지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지 세계에도 왕초가 있습니다. 그 거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은 어느 계급에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거지 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을 천대하게 되면, 그들은 `거처도 없이 얻어먹고 사는 이 생활이 제일이다'하며 큰 소리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잘사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들을 제멋대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앞으로 뜻길을 갈 때에도 여러가지 모양이 있을수 있겠지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만 훌륭한 줄 아느냐? 역사와 환경이 이렇게 되어 내가 지금은 비록 이런 자리에 있지만, 내 세계에 있어서는 누구와 겨루더라도 지지 않는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그 무엇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볼 때 선생님 자리가 좋아 보이지요? 이 자리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선생님 자리는 위험한 자리입니다. 한 순간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자리인 것입니다. 잠을 조금만 깊이 자도 일어나서는 회개해야 됩니다. 밥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도 기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됩니다. 좋은 자리에 있다고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자기만이 좋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정해서 좋은 자리에 세워 주셨으면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러한 자리에 있지 못한 백성과 세계 만민을 위해 동정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상하 전후 관계를 언제든지 이해하고서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기 손가락 하나 사랑한 것만큼 뜻을 사랑했습니까?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교회 하나가 문 닫는 것이 낫겠습니까, 내 손가락 하나 잘리는 것이 낫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만일 `어느 교회가 없어지게 되었으니 네 손가락을 하나 잘라 가지고 교회를 구하라'고 한다면 좋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것처럼 했다가도 다시 주저할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섭리가 6천년 걸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부 이런 사람들뿐이니 선생님이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야 승리할 수 있어

어느 한날 귀에게 `귀야, 너는 어느때 네 한때를 갖고 네 한날을 가져야 한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영계에서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귀 대회가 열린다고 하면 별의별 귀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듣기를 좋아했느냐고 물으면 `나는 육적인 것을 듣기를 좋아했다'고 이야기하는 마이너스 귀가 산처럼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 모인 귀 가운데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귀, 즉 대왕 귀가 하나 있을 것입니다. 잘생기고 못생긴 것에 상관없이 그런 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에서 눈 대회를 열게 된다면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눈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인류의 눈, 하나님의 귀와 인류의 귀, 하나님의 코와 인류의 코, 하나님의 인격과 인류의 인격, 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어야 됩니다. 전부다 좋을 수 있는 인연을 중심삼고 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살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반면에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어려웠고, 얼마나 수고하였고, 얼마나 비참했겠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이룩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좋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그 자리에 섰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기준과 정성의 기준은 유치원의 기준도 못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약 대학 이상의 기준을 가지고도 자기는 유치원 기준밖에 못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거꾸로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집니다. 천하에 공을 다 세우고도 계속해서 공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가 수고해 놓고도 자기의 수고라고 할까봐 그것을 감추는 사람입니다.

뜻을 위해 살자

한 나라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이 애국자인가? 잘먹고 호령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단의 자리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소금국에 보리밥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보리밥 상을 지나가는 외국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하고, 나라의 위신을 생각하며 자기 모습이 드러날까봐 몰래 숨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자기 국가의 체면과 위신은 생각지 않고 시기 질투하고 체통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자기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국가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고자 우리나라에는 나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고, 자기 나라를 좀더 아름답고 가치있게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으면 후손도 애국자가 되고 그 집안에 애국자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 가운데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어떤 아가씨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학사인데 지방에 나가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말 못할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1년, 2년, 3년, 핍박이 계속되었고 그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누구보다 꿈이 높았고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실력도 있고 머리도 좋고 가문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통일의 문에 들어와서 부딪치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비참한 것뿐이었습니다. 1년, 2년, 3년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딪치는 외부의 환경과 생활의 어려움이 꼬리를 물고 자기를 몰아치게 되자 옛날에 비웃었던 세상사람들을 동경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처량한 사정은 배고파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 아가씨는 배고픈 사정을 체휼하며 눈물도 흘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배고파서 밥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되었을 때, 옛날에 배고파하던 사람들을 비웃었던 자기 자신도 비판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무가치하게 알았던 그런 자리도 경험해 보았고 과거의 자신을 비판할 줄도 알았지만,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환경에 말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쌀밥과 보리밥을 놓고 뜻을 위해 보리밥을 먹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하였지만 손은 벌써 쌀밥에 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뜻을 중심삼고 이를 악물고 다짐해야 됩니다. 죽음이 교차되는 십자가의 자리라 할지라도 피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자기의 모든 존재의식을 잊어버리고 결의를 다져야 합니다.

고생시키는 이유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최후의 3차 기도를 드릴 때 `아버지의 뜻'이라는 대목에 가서는 세상에 없는 힘과 온 정력을 다 기울여서 말씀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할 때는 순순히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힘을 기울여 간구했던 것이고, 세상에 없는 결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뜻을 위해서 3년 동안 고생하겠습니까, 10년 동안 고생하겠습니까? 참된 생애를 남기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떤 것이 더 참된 것입니까? 「10년 동안 고생하는 것입니다」 10년 동안 고생하겠습니까, 100년 동안 고생하겠습니까? 10년과 100년 중 어떻게 고생하는 것이 더 참된 것입니까? 「100년 동안 고생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여러분이 고생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 일대의 고생만으로 끝내겠습니까, 아니면 수십 대 혹은 수백 대 후손까지 고생시키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것입니까? 통일교회만 고생시키겠다는 사람과 대한민국 3천만 민족 전부를 동원해서 고생시키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참된 애국자입니까? 통일교회만 고생시키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3천만을 고생시키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 나라의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3천만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 만민을 동원해서 고생시키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계의 성현열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성현들의 가르침은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는 가난하게 살지라도 남을 도와주고 덕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참을 세계적으로 접붙이기 위해서 입니다. 참을 접붙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들을 일년만 고생시키면 됐지, 무슨 원수가 졌다고 또 삼년이 뭡니까?' 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웃음) 서로 원수는 아니지만 잘 되게 하려는 인연을 놓고 생각할 때는 3년이 아니라 10년을 고생하라고 해도 그것이 바로 복받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최주찬! 최주찬이 어디 있어요? 사업부장 어디 있어요? 「여기 있습니다」 더 고생하라고 하니까, `싫습니다. 싫습니다' 했는데 잘했어요, 못했어요? (웃음) 여러분끼리 하는 것보다 선생님에게 하나의 직책을 받아서 일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맡겨 준 것이 자기들끼리 맡아 쓴 감투보다 더 작아지니까, 선생님이 잊어 버리고 넘어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생각입니까? 그렇게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뜻을 위해서 고생해 나왔고, 지금도 자나깨나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셔 보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자다가 눈만 뜨면 엎드려 기도합니다. 왜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 한밤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성은 들이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못지 않게 박자는 맞춰 줘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 잠을 잘 때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자식이 고단해서 잠자게 되면 아버지가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대신 기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절대 심정적으로 빚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고단한 표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밤 열두시에 자면 보통 세 번이나 네 번은 깹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생활을 계속해 나왔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어머님도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살게 되면 언제나 피곤하고 신경쇠약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깊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서 태풍이 불어와도 안심할 수 있고, 도둑이 들어와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를 거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 세계의 골짜기에 들어가서 그 골짜기에서부터 닦아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혼자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믿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는가

지금 여러분이 선생님을 볼 때 고생스러웠던 얼굴로 보입니까? 선생님은 아무리 화를 벼락같이 냈더라도 일단 그때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까딱 잘못하다가는 크게 걸리기 때문입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뜻 앞에 큰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런 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련이 와도 결코 그것을 원망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감옥에도 많이 끌려 다녔습니다. 아무런 죄없이 여섯 번씩이나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만 4년 동안 형무소 살이를 했습니다. 사연이 많은 선생님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피하려 하거나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고문을 받는 자리에서도 `더 쳐라'고 마음으로 외치며 참았습니다. 수많은 성현들이 이런 자리에서 비관하며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한을 남기고 갔지만 나마저 그럴 것이냐? 그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쳐라! 내 몸이 매를 맞아 터질지라도 쳐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너희들에게 교육을 잘 받고 있는 거야. 악이 선에 대항해서 채찍을 들었지만, 언젠가 선이 채찍을 들어 3배, 7배 그 이상으로 복수탕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서슴지 않고 받아야 할 교육의 시간이다. 그러니 쳐라' 이렇게 결의를 다짐하며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앞에 인간만물상이 모였다고 할만큼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끔 저 평양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를 죽 돌이켜보면 과거에 대했던 사람들의 여러 형(型)이 오늘날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많은 인간상들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선생님을 따르다가 떨어졌던 사람들 중에는 현재 여러분들이 결의하고 뛰는 것보다 몇십 배 강한 결의를 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죽도록 따라가겠습니다'고 할 때,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몇 퍼센트 믿어야 되겠습니까? 백 퍼센트를 믿어야 되겠어요, 오십 퍼센트만 믿어야 되겠어요? 「백퍼센트 믿어야 됩니다」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믿어 주었다가 여러분들이 돌아서게 되면 백 퍼센트만큼 십자가를 내가 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밖에 소개를 못 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소개한 사람이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몇 퍼센트 믿어야 되는가를 놓고 많은 고충이 있습니다.

과거에 선생님을 따르던 여러 사람 중에는 이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백두산 천지까지라도 선생님을 모시고 올라가서 그곳에 있는 반석을 갈아 밭을 만들고 감자를 심어 천년 한을 품고라도 선생님을 모시며, 세상이 다 변해도 자기는 변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반석을 갈아 그곳에 감지를 심어 천년 한을 품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 뜻을 위하고 선생님을 모시며 살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휘몰아치니까 2년도 못 가서 그만 자기만 살겠다고 선생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었지요?"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고 맹세했지만 닭 울기 전에 세 번씩 배반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죽겠습니까, 살겠습니까? 「죽겠습니다」 선생님 위해서 죽기 말고 여러분을 위해서 죽고 난 다음 선생님을 위해 죽겠다고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지 않고는 선생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해도 죽지 못하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을 위해서 죽고, 다시 살아난 후에 선생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해야 말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자기를 위해서도 죽기 못하면서 선생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죽어야 되느냐?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부활하기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용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

그렇기 때문에 참된 생활, 참된 생애를 남기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영계에 가면 자기의 일생이 그대로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떠했으며 자랄 때는 어떠했다고 하는 내용이 스위치만 누르면 전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천상세계의 사람이나 앞으로 수많은 후손들도 부러워할 수 있고 눈물지으며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귀한 생애를 남기고 가는 사람은 위대한 승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참된 생애를 남기겠다고 각오하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한 순간, 한 순간 필사의 결의를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오신 이 한때를 무의미하게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천년사를 두고도 바꿀 수 없고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니, 이것을 놓치면 큰일납니다. 이 세상을 모두 잃어버리고 찾았던 것을 다 놓치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이 없어지더라도 이것만은 남기고 가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이며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단 한번밖에 없는 7, 80년 생애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수고의 노정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영원에 비하면 숨 한번 쉬는 시간도 안 되는 똑딱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영원은 얼마나 길고 깁니까? `여─ㅇ' 해 가지고 `워─ㄴ' 할 때까지 영원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웃음) 그럴 수 있을 만큼 길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권내에서는 내가 호흡하는 회수도 다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한시간에 몇 번 쉬고, 하루에 몇 번 쉬고, 일년에 몇 번 쉬고, 십년에 몇번 쉬고, 일생 동안 몇 번 쉰다는 것을 계산해 낼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헐떡거리고 탄식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순간입니다. 매를 맞을 때 `쳐라, 한번 쳐 보아라'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매를 맞을 때 이를 악물고 그 고비를 넘어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뜻을 위해 이를 악물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길다면 길겠지만 그것은 한때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무자비하게 채찍질하며 어려운 자리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참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 그런 일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려울 때 인연을 잘 맺어 놓으면 기쁠 때는 맺지 말라고 해도 맺어지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쁠 때 인연을 맺으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한 인연은 순간적인 인연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서로 생사를 결해 가지고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지경에서도 서로 내가 죽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리, 즉 생명을 엇바꿀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길을 동반하여 어려움을 같이 겪은 사람들은 기쁠 때에 인연을 맺을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울 때에 맺은 인연과 기쁠 때에 맺은 인연은 그 맛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식은 무엇이냐? 어려울 때에 하나님 앞에 가까운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개인 때문에 어려움 당하고, 내 가정 때문에 어려움 당하고, 우리 나라 때문에 어려움 당하고, 세계 때문에 어려움 당하고 계시니, 나 자신도 내 개인을 위해서 어려움 당하고, 가정을 위해서 어려움 당하고,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어려움을 당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으니 저밖에 또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힘든 것이 있을 때는 저를 불러 주십시오. 밤이고 낮이고 서슴지 말고 불러 주십시오.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때건 부르시기만 하면 혼자만이라도 `예 예'하며 기꺼이 나설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누구하고 어려움을 당하자는 것인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한민국과 더불어 어려움을 당하자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선생님의 주의이자 하나님의 주의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내가 아니래도 할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슬쩍 남에게 미루고 기회만 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팔아먹겠다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줏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길의 개척자가 되어 참된 생애를 남기자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욱해야 됩니다. 충신들은 어떻게 보면 미욱한 사람들입니다. 조금은 미련해 보입니다. 곰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팔을 잘리고도 `어이구 여기 덜 잘랐다. 더 잘라라' (웃음) 하는, 그와 같은 미욱한 점이 있어야 합니다. 곰이나 멧돼지는 총에 맞아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입으로 잘라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걸리적거리는 것을 잘라 버립니다. 그런 미욱한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충신 열사는 미욱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조금은 어리석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같은 사람도 세상적으로 보면 바보가 아닙니까? 나이 30도 못된 젊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돌팔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했습니까?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처량합니까? 가만히 계실 일이지 뭘 하려고 돌아다니면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야단하다가 나중에 그렇게 죽어가느냐 말입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잘난 충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잘난 충신은 기회주의 충신입니다. 맹목적인 충신은 무지하고 미욱하며 곰 사촌 같은 사람입니다. 미남자 충신은 많지 않습니다. 미인 열녀도 많지 않습니다. 잘난 충신은 기회주의 충신입니다. 맹목적인 충신은 무지하고 미욱하며 곰 사촌 같은 사람입니다. 미남자 충신은 많지 않습니다. 미인 열녀도 많지 않습니다. 열녀문의 주인공을 보게 되면 대개 중간 이하의 얼굴을 가진 사람입니다. 잘생긴 사람들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사람들은 모두 못난 사람들입니다. (웃음) 그러므로 나같이 마음대로 생긴 존재야 쓰레기로 사라진다 해도 좋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골짜리를 메우는 매축공사를 하실 때 맨 첫 삽에 떠져서 부어지는 그 흙이 되게 해 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디에 묻히겠습니까? 맨 밑창에 묻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축하는데 쓰여진 흙 가운데 왕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면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웃음)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단체가 어느 단체입니까? 「통일교회입니다」 고생의 왕이 되지 않고서는 기쁨의 통일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외로운 십자가를 어디에서 질것이냐? 기쁜 자리에서 겸손하게 지려는 자가 충실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국가의 어려움을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세계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세계의 어려움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나님의 어려움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길은 어디에 있느냐? 기쁨의 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난의 길에 있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수난이라는 두 글자를 소화시키고 극복하는 것을 생애의 철학으로 삼고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계의 고난길을 홀로 책임지고 밤이나 낮이나 누가 보나 안 보나 자기의 행복을 거기에서 찾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곧 세계의 충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참된 생애의 노정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도 이제부터 그런 길을 걸어가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반가이 맞아 주는 웃음 뒤에는 슬픔이 올 수 있지만, 서로서로가 먼저 슬픔을 이겨 낼 자세를 갖추고 손에 손을 잡고 내일의 희망의 나라와 내일의 희망의 세계를 위해 결의해 나갈 때, 비로소 기쁨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기쁨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합하여 결의를 하고 세계를 부여안고 나서게 될 때 우리의 슬픔으로 인하여 세계에 웃음꽃이 필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펴고, 이러한 길을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이야 말로 참된 생애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을 피하지 않고 직행해 가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 원칙을 중심삼고 경제적 분야나 전도하는데 있어서나 무엇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정성을 다할 것이며, 책을 한 페이지 읽을 때에도 하나님을 위해서 읽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남기는 생애는 하늘과 가깝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생활을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찾아올 때 여러분의 기쁨이 찾아오고, 세계의 기쁨이 올 때도 여러분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오늘날 통일교회 지구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은 세계를 대표해서 수난길 앞에 개척자가 되고 선봉자가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기 도

아버님! 오늘은 전국에 있는 자녀들이 이날을 기념하고 찬양드리며 아버지의 인연을 추구하는 날이오니, 이 날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어제 이 대구에 와서 경남북에 살고 있는 자녀들을 만나 이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시대에 요구하는 영적인 가치의 문제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인연을 맺는 데 필요한 많은 이야기를 하였사오니, 이 모든 내용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 말씀한 `참된 생애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육신과 교차되는 교차로 가운데에서는 참된 생애의 기원이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복귀의 한의 세계를 넘어가야 할 역사과정에 있어서는 육신이 원하는 길과 반대의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를 위하여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고, 누구보다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가슴 조이는 사람은 그 나라의 참된 애국자라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뜻과 세계를 위하여 그럴수 있는 사람은 아버님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영광을 주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참된 생애를 남기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러한 아들딸로 세워 주고 싶어하시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더불어 수난의 길에 동참해야 되고,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기를 지켜 나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 이후의 전부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남한 각지에서 수많은 자녀들이 이날을 축하하고 경배드리고 있사오니 그곳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리어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이 나라에 발디디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서로서로 교통하고 서로서로 화합할 수 있는 생활무대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날 처녀 총각들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은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의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훌륭한 상대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왜 입니까?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느끼는 한편 훌륭한 아들딸을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족한 면을 상대방을 통해 보충해 가지고 더 좋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한 것들을 가슴 깊이 꽁꽁 품고 사랑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게 좋아요, 안 좋아요? 「좋습니다」

창조주의 최고의 걸작품인 남자와 여자

이제 여러분이 대학을 나오고 나이가 들어 시집을 갈 때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여자들은 자기들의 사진 중에 참 잘 나왔다고 여겨지는 사진이 있으면 골라서 보관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시집갈 연령이 되어 남자에게 사진을 보낼 때는 그 사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사진을 보낸다면 어떤 사진을 보냅니까? 어떤 사진 보내요?

그것에 대해서는 교육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할 필요가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절대 필요없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시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에요. 남자는 어때요? 통일교회 남자는 그렇지 않아요? 「예」 그렇다는 것입니다. (웃음) 자기 실물보다 더 좋게 나온 사진은 탐이 나고 자기 실물보다 안 좋게 나온 사진은 배척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은 탐이 나고 자기가 나빠질 수 있는 것은 배척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알겠어요? 자기를 닮고 자기보다 잘 생긴 것은 탐을 내고, 닮지 못한 것은 배척합니다. 좋은것을 탐을 내고 나쁜 것은 제거합니다. 또한 이익보는 것은 환영하고 손해보는 것은 싫어합니다. 간단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왜 항상 좋으려고 하느냐? 좋은 것은 자기가 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으로 좋으면 자기 자체가 멋진 어떤 모양으로 닮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여러분이 속한 그 환경이 불우하면 그 모양이 찌그러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도움이 되는 것을 바라고 더 좋기를 바라는 그 자체가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중심삼고 얼굴을 두고 봐도 그렇고, 경제문제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계실까, 안 계실까? 모르긴 하지만 있을 것 같애요? 그러면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분석해 봅시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한번 분석해 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참 괴상하게 생겼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눈을 깜박깜박하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눈이 자발적으로 깜박이지 않으면 이건 쓰레기통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기의 눈이 어떻다고 아무리 자랑하더라도 눈이 깜박이지 않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눈이 사각으로 되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눈이 이렇게 타원형으로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얼굴을 움직이면 눈동자는 가운데 있지 못해요. 얼굴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절대 가운데에 있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 잘되어 있어요. 코도 가만히 보세요. 다른 데에 가서 붙어 있거나 콧구멍이 만약 위에 뚫렸다면 어떻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이 귀도 보면 왜 쳇바퀴같이 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소리를 잘 듣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참 잘 되어 있어요. 또 입을 보세요. 손끝이나 다른 곳에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것이 얼마나 잘되어 있나요? 이렇게 저렇게 얼굴을 뜯어 볼 때, 얼마나 과학적으로 생겼습니까? 최고로 과학적입니다. 사지 백체가 전부 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과학적으로 멋지게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여자들이 `무슨 남자가 저렇게 생겼어'라고 웃는다든가, 남자가 여자들을 보게 될 때 `저 여자는 궁둥이가 크고 뭐 저렇게 생겼어' 라고 한다면 벌받아요. 아무리 못생겼어도 그 여자 남자는 창조주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웃음)

복받을 사람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복을 받느냐? 어떤 박물관장이 있다면, 그 박물관에는 물론 과거의 훌륭한 사람들이 만든 작품도 많겠지만, 그 박물관장 자신이 만든 작품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야, 참 잘 만들었다'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박물관장은 그 박물관에 관한 어떠한 칭찬을 듣는 것보다도 기분이 더 좋을 것입니다. 어떤 동반해 온 부부가 그의 작품에 감동 받아 칭찬하면서 그 작품을 가지고 싶다고 할 때,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요?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칭찬해 주니까요」 칭찬한다는 것은 뭐예요? 자기와 하나될 수 있는 권내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 작품을 중심삼고 자기와 하나될 수 있는 자기를 닮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복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에게 복받는 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복 필요하지요? 벌받는 것은 선생님도 싫은데, 여러분도 싫지요? 「예」 우리 통일교회가 벌받으면 되겠어요? 복받아야지요. 어떤 사람이 복받을 사람이냐?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복받을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된다고요? 「하나님의 걸작품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에 대해서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푸대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칭찬만 하고 좋아만 해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야 정말 그러니'라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아까 위에서 말한 박물관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 작품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데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받는 길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최고의 걸작품은 무엇인가? 사람입니다. 원숭이를 보고 하나님께 지음받은 최고의 걸작품이 뭐냐고 물어 본다면 원숭이들은 자기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아무리 자기라고 해도 전체를 두고 볼 때, 원숭이는 사람 이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원숭이는 자기들끼리는 말을 하지만 뛰어난 인간의 말은 못 합니다. 또한 아무리 재주를 가졌다고 하지만 영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만물 중에 최고의 걸작품이 뭐라고요? 인간입니다. 인간 가운데 누구예요? 남자와 여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살게 될 때 누구를 사랑하고 살아야 되느냐?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남자가 남자만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가 남자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여자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얘기해 봐요. 「남자가 여자를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웃음)

그러면 여자는? 여자는 남자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거에요. (웃음) 그런데 `女'자가 세 개 모이면 무슨 자가 됩니까? `간사할 간(姦)'자가 됩니다. 그러니 여자는 요사스러운 것입니다. 한 방에 셋만 모이면 이틀도 못가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여자이면서 `여자는 재수없어 안 되겠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자들이 고등학생쯤 되어 서로 만나서 얘기하게 될 때, `야, 나도 여자인데 나는 여자가 안 따른다. 우리 학교에 있는 여자애들 너무 좋더라. 남자 없이 여자만 있으면 좋겠더라'고 하는 여자들 보았습니까? 보았어요? (웃음) 여자 세계에 있어서 아무리 남자를 대신할 수 있는 천하 여장군감이 있다 하여도 그녀는 남자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 세계에서 남자가 없으면 여자끼리 뭐 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은 남자와 여자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순서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순서는 어떻게 되느냐? 어디서부터 사랑하느냐? 여러분,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사랑합니까? 천만에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까? 그것은 좋아서 사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온 몸이 하나되고 심정과 핏줄이 전부 다 하나되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부부입니다. 부부 없는 세상이라면 사는 맛이 있어요? (웃음)

그러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걸작품은 남자와 여자라는 것입니다. 남자도 하나님의 걸작품이고 여자도 하나님의 걸작품인데 이 걸작품을 사랑할 수 있는 본래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인가? 우리가 부모를 사랑한다고 하나요, 부모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나요? 「받는다고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잔뜩 받았지, 부모를 사랑했다는 아들딸을 봤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지,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랑했어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는커녕 부모의 피와 살을 빨아먹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적질해 먹은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부모에게 `엄마, 나 돈! 아빠 나 돈!' 하는 데, 부모가 뭐 종이에요? 그렇게 부모를 종살이 시키는 것이 사랑입니까?

사랑이 뭐예요? 사랑은 천주를 걸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종살이 시켰지, 사랑하기는 뭘 사랑했어요? 사랑받나요, 하나요? 「받아요」 사랑을 받지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디서부터 사랑하느냐? 복받는 하나의 길은 어디냐? 하나님께서 지으신 최고의 걸작품을 사랑하는 것이 복받는 길이라면 사랑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느냐? 이것 때문에 축복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 개성을 완성하는 데서부터입니다. 원리로 보면 개성을 완성한 후에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춘기를 거쳐 이성을 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천지의 조화에 일치하고 통과할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무슨 사랑이었느냐? 천지의 모든 만물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주체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주체적이고 필연적인 사랑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필연적인 사랑을 했어요, 못했어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인류는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있지만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의 이념세계는 모릅니다. 그런 이념세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여기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사랑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최고 걸작품인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요? 여러분은 전부 다 사춘기의 청년 남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복받는 길은 어떠한 길이냐? 정상적인 원리원칙을 따라가서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사람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순서가 있는데 어디서부터인가? 자식부터가 아니라 부모한테 사랑받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제일 꽃다운 시기, 꽃이 활짝 핀 청춘시대가 언제냐 하면 사춘기 시대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18세부터 7년간입니다. 이 7년간은 일생에 둘도 없는 꽃다운 사랑의 꽃이 필 시기입니다. 한번밖에 없는 꽃다운 이 시절이 얼마나 귀해요? 그러기에 선생님이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함박꽃을 알지요? 그 꽃봉오리에 색다른 노란 꽃송이가 있지요? 그것이 몇 꺼풀로 되어 있겠어요? 꽃으로 전부다 꽁꽁 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헤칠 수 있어요? 쉽게 해칠 수 없도록 꽁꽁 쌓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붉은 사랑, 노랑꽃과 같은 그 사랑의 봉오리, 그 사랑의 봉오리를 어느 때에 활짝 피울 것이냐? 천지의 조화 가운데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가 그 시기입니다. 인간으로 볼 때에도 최고로 피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어 제일 중심의 결정으로서 반짝이는 기간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자라면서 제일 꽃다운 시절, 제일 아름다운 시절이 청춘시절입니다. 그 청춘시기의 모습이 최고의 꽃봉오리입니다. 그걸 흠뻑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사랑이 이해돼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사랑이 이해돼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그럴 수 있어요? 그걸 알았다면 여러분은 남자면 남자로서 그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위기대의 원칙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부부인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서로 의지하고, 서로서로 사랑하는 그 동기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그 동기를 중심삼고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며 생활할 때, 올바른 사회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그 가정이 소생이요, 사회가 장성이요, 국가가 완성입니다.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가정과 가정을 전부다 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속에서 사랑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범위에서도 하나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회는 여러 계층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회사에는 시장이란 대표자가 있지요? 그렇지요? 국가의 책임자가 지금 몇이예요? 하나지요? 하나의 책임자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모양은 통일되는 것이고, 형체만 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갈라져 있으면서 하나되는 것이 사위기대의 원칙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사랑해야 하느냐? 나라를 사랑하려면, 먼저 남자는 한 여자를 이 나라의 대표적인 여자로서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여자면 여자, 남자면 남자 중에 제일 대표적인 사람으로 알고 사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사회의 어떤 직장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동기끼리 서로 사랑하는 데 있어서, 또는 개인의 어떤 노정에 있어서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은 완전한 남자 하나를 키우기 위한, 즉 사랑의 주인공이 될 완전한 남자 하나를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는 삼천만을 대표한 남자로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대표자의 입장에 선 남자 여자가 합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이 가정은 하늘나라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사랑이요, 초월적인 사랑이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최고의 아름다운 사랑이요, 사랑 중에 대표적인 사랑이요,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 어디냐 하면 가정입니다.

여러분이 인연 맺은 자리는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꽃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꽃봉오리 같은 때에 처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의 위치를 이것은 각도에서 정립해야 되겠고, 나아가 하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교육을 받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 준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천주적으로 빛내지 위해서 준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여러분의 갈길을 닦아 가야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부로서 앞으로 이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걸작품을 사랑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고 가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결된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육을 여러분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기원

지금까지 이 세상은 전부가 혼란된 세상입니다. 자기 멋대로 사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순수한 의미에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전부다 참된 내용을 개재시켜 사랑의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은 전부다 제거해야 됩니다. 전부다 정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전부터 누구를 사랑하셨느냐?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데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를 따로따로 사랑하셨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든지 따로 사랑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따로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똑같이 사랑해 보셨겠어요? 그것을 하나님께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어떻다고 대답하시겠어요? 남자와 여자는 둘이기 때문에 똑같이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실 때 똑같이, 공평히, 평준히, 항의없이, 틀림없게끔 사랑해 보셨겠습니까? 사랑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남자 여자라는 말을 들고 나올 때는 사랑하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셨겠어요? 둘이니까 똑같이 사랑하시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완전히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둘이 하나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가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완전히 똑같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바로 복받는 자리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을 서로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나님은 완전히 똑같이 사랑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인 사랑의 기원이 어디서 생기느냐? 본래 아담 해와는 타락하지 않고 장성하여 천지의 모든 만물을 품에 안고 행복에 벅찬, 내일의 희망에 벅차 미래의 영원만대를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벅찬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취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그런 자리에 나아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참사랑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적인 사랑의 기원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말은 원리에도 없는 말입니다.

온 피조만물을 상대적으로 지은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남자, 그런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결부시킬 수 있는 모습이 된다면, 분명히 단 하나의 같은 입장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들은 이상적인 부부가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처녀들이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려는 그 결론이 뭐냐? 좋은 신랑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가정이 하나되지 않은 가정이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이 확실히 느껴질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만든 이유

그런데 이 땅 위에는 최고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해진 가정, 하나의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이 붙들고 듬뿍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체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런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받는 길입니다. 여러분, 복을 받으면 불행해요, 행복해요? 「행복합니다」 그런데 역사상에 그런 기준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나와서 통일교회를 만든 이유는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기준과 어떻게 접선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무엇을 바라셨느냐 하면 자기 개인완성하기만을 바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까지 부정하는 말입니다. 의인이란 말은 혼자 있는 데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의인 하면 벌써 두사람 이상이 있어야 성립이 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고 또 그들로부터 입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의라는 것은 무엇이냐? 어떤 자리에서 성립되느냐? 둘이 완전히 통일될 수 있는 자리에서 성립됩니다. 가다가 갈라지는 자리는 의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의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가운데 의가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사춘기에 있는 청년 남녀들이 그런 사랑의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움직여 나타날 수 있는 그 한 때를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의 성사를 고대해 온 하늘 앞에 천륜에 의한 수천년 탕감역사를 통해 완전한 개체를, 하나의 남편을, 이러한 가정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바라신 그 모든 것이 해원성사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엄숙한 과제가 자기 자체에서 해결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 이것을 해결하게 되면 자신은 우주사적인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총각들 가운데는 자기 멋대로 꺼덕꺼덕하고 길거리를 돌아 다니면서 여자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이나 원리 말씀을 통해 볼 때 여기에 합격될 수 있는 남자가 있겠느냐?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습니다」 없지요. 이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결과이니 이제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 새롭게 청산해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이제 남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사랑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또, 여자는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 자기 몸을 꽁꽁 잘 봉해야 됩니다. 함박꽃처럼 수많은 꽃잎이 겹겹으로 싸여 있듯이 꽁꽁 묻어 두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봄절기라는 천지의 조화를 맞아 거기에 화합하여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해야 됩니다. 이것을 잘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처녀라는 이름은 좋은 것이지요? 남자는 뭐라고 하나요? 처남이라고 하나요? (웃음) 동남(童男)이라고 하지요? 동남이라고 하니 총각들은 좋지요? 처녀란 말의 처(處)자가 무슨 뜻입니까? 곳, 즉 장소라는 뜻이지요? 장소의 여자다. 타락한 장소의 여자입니까? 「아니요」 우주가 공인한 장소의 여자입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장소라는 말입니다.

남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태어나는 아들딸은 자기만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아들딸인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자식을 사랑하겠어요? 자식을 사랑할래요, 안할래요? 「사랑해요」 그렇다고 자식을 아내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영화를 볼 때 그 주인공들이 사랑 때문에 죽어요, 자식 때문에 죽어요? 「사랑 때문에 죽어요」 응당 그렇잖아요. 자식보다 더 사랑해야 할 아내를 가진 사람은 자식을 사랑해도 괜찮은지 아내에게 먼저 승락받고 자식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그러한 가치를 더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청소년 문제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전부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는 그 배후를 보면 전부다 부모가 자기 멋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子식들이 전부 길거리에서 혹은 댄스 홀(dance hall)에서 별의별 짓거리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말로에는 비참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세계의 모든 문제를 우리의 시대에서 책임지고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책임을 여러분이 짊어져야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될 수 있는 자리

인간은 원리원칙을 따라 나가야 됩니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맞고, 겨울이 되면 전부다 정리하여 새로운 생명의 근원을 자기 내심에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재봉춘하게 되면 또다시 이것이 심어질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어 여러분과 같은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의 아들딸을 여러분과 같이 키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로서 태어나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편을 맞아 그를 중심삼고 생활하고 또한 그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딸을 자기 품에서 행복하게 키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권내에 있는 아내와 아들딸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시집 장가가면 실감날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웃음) 여러분이 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훌륭한 여자는 시집가게 되면 남자한테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봤지요? 남자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여자들을 보게 되면 나가서는 별의별 짓을 다하다가 남편이 들어왔을 때는 그러지 않은 척 거짓 감투를 뒤집어 쓰곤 합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일치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얘기는 며칠 해도 못 끝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언제 완전히 하나되느냐? 언제 하나돼요? 남자들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 몸에는 신경이 있고 혈관이 있지요? 이것은 마음과 몸의 관계처럼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몸의 혈관에 아무리 피가 잘 통한다 하더라도 배후에 신경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마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비 상태가 되어 그것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둘이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이러한 것이 어느 때 완전히 하나되느냐?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종적인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지 알아야 됩니다. 그래, 맞았어요. 그러면 사람의 몸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것이 뭐예요? 심장입니다. 심장이 있는 동시에 또 마음이 있지요? 심장과 마음은 다르지요? 「예」 그 마음이 어디를 증거합니까? 사람의 중심이 어디입니까? 「마음입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고 사람의 중심은 마음이지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됩니다. 마음이 떠나면 심장은 죽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될 수 있어야 됩니다. 마음이 떠나면 심장은 죽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된다는 것이 둘로 갈라져 하나되겠어요? 하나되므로 하나되겠어요? 「하나되어야 해요」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가깝게 하나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어디냐면 일체의 자리입니다. 여기는 마음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요, 몸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요, 심정이 머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이 모두를 한꺼번에 집합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런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만한 사춘기의 처녀와 총각이 서로 만나 이야기할 때는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뛰죠? 뛰어요, 안 뛰어요? 몰라요? 뛴다고 하면 안 뛴다고 할래요? 「뜁니다」 그것 보세요. 흥분하지요? 그리고 흥분하게 되면 심장에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하나님을 중심삼지 않고 반대의 입장에 서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누구를 중심삼느냐?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중심삼은 마음과 심장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한 생애를 지내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중심한 이상과 희망을 갖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비양심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지금은 모르지만 여러분이 시집 장가 가 보게 되면 알게 됩니다.

여러분, 3점 알아요? 3점, 이 3점이 하나될 수 있는 점은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하나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와 하나될 수 있는 자리는 그들의 마음과 몸이 일치하는 자리입니다. 심장과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주주의의 뜻과 기원(起源)

그러면 완성한 사람, 즉 완성한 남자와 여자가 있게 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늘의 공적인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을 주체로 모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있게 될 때 완성된 아담 해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어 출발하는 것이 역사적인 출발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인생행로의 첫출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아담 해와가 이루어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이런 길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원리적 관점에서 사랑이 어떻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에 있어서 마음은 하늘을 중심삼고 몸은 세상을 중심삼고 있는데, 이런 마음과 몸이 하나되었다고 할 때 그의 이념을 무슨 이념이라고 합니까? 천주주의 이념이라고 합니다. 천주주의가 뭔지 알아요? 하늘 땅, 즉 무형세계와 유형세계가 일체가 되는 자리를 이루어 가는 주의가 천주주의입니다. 그러면 이 천주를 지배하려면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이 마음과 몸이 일체가 되지 않고 되겠어요? 「안 됩니다」 일체가 되지 않으면 여기서 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일체가 될 때,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고, 자기는 외적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 되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주주의 기원은 누구에서부터이냐?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신이 되지 못했을 때는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기억해야 되겠어요.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자기들 멋대로 돌아다니다 타락했지요? 여러분,길거리에서 타락하게 되니까 절대로 거기에 빠지지 마세요. 알았지요? 여러분이 사춘기에 있으므로 7년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간다면 세상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일신에서 인연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이것이 불행한 것이에요, 행복한 것이에요?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한 거예요. 그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들어가면 하나님의 모든 것은 자기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아담 해와처럼 타락해서는 안 됩니다. 아담 해와가 몇 살 때 타락했습니까? 몇 살에 타락했어요? 19세 때입니까? (웃음) 만 16세때 타락했습니다. 아직 사춘기도 못 되어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미완성한 사랑권내에서 인연을 맺어 처녀 총각이 사랑을 한 것입니다. 옛날 한국에서는 13살 때 시집을 가곤 했습니다. 그랬지요? 한국에서 그런 풍조가 생겼다는 것, 섭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풍조가 이조 말엽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 때가 지나가서야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돼 있나요, 없게 돼 있나요? 길거리에서 남자가 휙 부르는 데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따라가게 돼 있지요? (웃음) 그런 소질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때가 올 때까지 자기 몸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순정을 도깨비 같은 남성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꺼떡꺼떡거리고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남자들은 전부다 도깨비들입니다. 자기의 운명을 그런 남자에게 맡기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기 때문에 한발자국 잘못 딛는 날에는 자기의 일생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남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여자에게 절개를 지키라고 했지만 앞으로 남자도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될 게 아니겠어요?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더라도, 여러분은 가야 할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지상천국은 어떤 곳인가

여러분은 천주주의가 좋아요, 나빠요? 「좋아요」 천주주의를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좋아해야 합니다. 그 천주주의가 이루어지면 누구를 닮은 세상이 됩니까? 「하나님요」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세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받을 때 주체의 자리에 대상이 가는 것이고 대상의 자리에 주체가 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생활에도 나타나고 자기 안에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안팎에 나타나는 그 세계가 뭐냐면 지상천국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안팎으로 가정 전체,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 세계 전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은 어떤 곳이냐?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는 자리는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그냥 그대로 환경에 나타난 곳입니다. 그러면 그 세상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은 동시에 누구를 닮아야 돼요? 사람을 닮아야 합니다. 자기를 닮아야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은 여기 누구를 닮으려고 왔습니까? 「아버님 닮으려고요」 아버님은 누구야? 아버님도 여러분을 닮자고 해서 왔어요.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만 아버님을 닮으면 어떻게 돼요?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님도 여러분을 닮아야 하니 여러분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도 여러분을 닮으려고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모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데 그렇게 됐어요, 안 됐어요? 「됐습니다」 뭐예요? 됐어요, 안 됐어요? 똑똑히 이야기 해보세요. 안 되었죠? 안 되었기 때문에 「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되려고 여기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것이냐? 간단합니다. 아버님이 아들딸을 사랑하니까 여러분도 아들딸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그것을 배워서 앞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으니 그것을 배워서 앞으로 꼭 보여 주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틀림없이 보여 줄 자신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신 있는 사람, 어디 손들어 보세요. 어! 이러면 큰일 나겠어요. 한국은 얼른 망하겠습니다. (웃음)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중심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참다운 부모도 하나에서부터, 참다운 가정도 하나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또한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도 하나에서 출발해서 하나로 끝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세계까지 전부다 헤어졌다가 하나로 끝나는 것입니다. 범위가 클 뿐이지요. 그리고 4백억에 가까운 세포가 통합해서 하나의 사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 하나의 사람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 달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합하면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요, 무한을 대표하는 하나의 개체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손을 사랑합니까? 사랑해요, 안 해요? 「사랑합니다」 손이 누구를 닮았습니까? 여러분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자기 자신만을 인정합니다. 전부다 지금 와서는 무턱대고 인정하는 것이에요. 그래 손이 누구 닮았습니까? 「나를 닮았습니다」 또, 눈 코 귀는 누구를 닮았습니꺼? 「나를 닮았습니다」 온 사지백체는? 「나를 닮았습니다」 이 중에 미워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지요? 뭐 조그만 손가락 하나라도 다칠까봐 아이쿠! 이것이 부러질세라 고장날세라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자는 누구를 닮았습니까? 「나 닮았어요」 남자는? 「나 닮았습니다」 (웃음)

자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왜 그것이 좋은 것인가? 알아 보았어요? 「하나님의 수고의 걸작품이 `나'이기 때문에요」 그 말도 맞아요. 왜 자신이 제일인자가 되려고 하고, 최고 높은 자리에 있으려고 하느냐? 「누구나 대표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상대적인 자리를 누구나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갑돌이면 갑돌이, 복돌이면 복돌이, 을순이면 을순이 각각 자기 멋대로 있지만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한 중심을 위주하고 온 인류가 도는 것입니다. 이 한 중심을 위주하고 돌면 관계맺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삼으면 여기에 상대 세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즉, 하나님과 내가 하나된다면 이 세계는 나를 중심삼고 상대적 세계를 이루게 됩니다. 36억 인류 전부가 이러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사랑의 상대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함부로 취급해서 되겠어요?

부모의 사랑과 형제간의 사랑

여러분의 모습은 외적으로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하늘 왕국에 있어서는 귀공자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병신일망정 천지의 심정이 자기에게서 기원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표준입니다. 어떤 부모가 아들이 열이 있고 사랑이 백 개라면 `너는 큰 아들이니까 50개 주고 너는 작은 아들이니까 20개 주마. 그 다음 동생은 10개, 이러면서 너는 맨 나중이니 하나 가져라' 한다면 동생이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합니다. 아마 어머니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갈 것입니다. (웃음) 그럴 거예요. 그러나 열 아들이 있으면 그 열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은 전부다 똑같이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뽀뽀해 주는 데에 있어서 형은 적극적으로 뽀뽀해 주고 동생은 소극적으로 차이 있게 해 줍니까? (웃음) 그렇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안 그래요」 동생에게로 내려갈수록 더 적극적입니다. 그러면 젖먹이 아기에게 어머니가 그렇게 뽀뽀해 주면 형제들이 보고 저기 계모 왔다고 합니까? 계모 왔다고 해요? (웃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나타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보고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할 줄 알아야 부모 앞에 더 가까운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생이 젖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에이 젖비린내 나서 기분 나빠'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어머니의 젖을 먹고 크지 않았습니까?

부모는 아들이 열이 있더라도 나이가 많은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 아들이 더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는 평등합니다. 그러니 동생이 그런 부모를 대해 어린애같이 형님만큼 자신을 키워 주라고 주장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형님만큼 사랑받아야 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형님만큼 사랑받아야 된다고 말할 수 없어요? 동생이 형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동생이 불쌍하게요. 부모 앞에서는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부모가 어디에서 등골이 부서지도록 고생하며 무엇을 사 오는 데 있어서 그것에 대해 여러분은 안팎으로 눈치가 훤하죠?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이 이해한 만큼 마이너스해 가지고 여러분을 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해성이 없어서 부모가 동생을 위해서만 큰 것 사오고 한다고 불평하지요? 형제들이 서로 비슷비슷한데 부모가 차이 있게 사랑해 주면 삐쭉거리게 됩니다. 자주 동생만 사다 주게 되면 그 엄마 아빠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 형이 동생에게 분풀이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형이 동생을 사랑하는 것은 옛날 자기도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부모가 동생을 사랑하는 것을 좋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그렇습니다.

천주사적인 가치를 지닌 `나'

그러면 여러분이 왜 자기 자신을 중요시해야 하느냐? 왜 자기가 귀하냐?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자기 자신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념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천주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것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 것을 진짜 자기의 생애노정에서 체험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갈 것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이해됩니까? 「예」

여기 남자들, 세계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되고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디 손들어 보세요. 그런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죽어요. 그런 마음은 다 있지요. 그러면 무엇을 갖고 되겠어요? 주먹 가지고 되겠어요? 머리로 되겠어요? 만민이 바라는 특권인데 무엇 갖고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들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서는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됩니다」

`형님이 좋아하는 것은 형님이 하지, 나는 동생이니 요것만 하면 돼' 이러면 되겠어요. 그렇다면 형님이 좋아하는 일이라 해서 동생을 내버려도 되겠어요? 아닙니다. 한집안의 일입니다. 이 우주가 아무리 커도 한집안의 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 세계는 전부다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나가야 한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부다 세계의 대통령이 좋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좋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계 대통령보다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밟고 올라가야만 세계는 하나로 통일됩니다. 이 통일의 운을 밟고 넘어서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싹틉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너나할것없이 밟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전부다 이것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넘어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래야 전부 다 세계에서 최고의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중의 최고의 인물이 누구냐? 예수님과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이 최고의 인물이 되고 싶거든 예수님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가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못 갈 것이 뭐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잘났어요, 못났어요? 그것은 대보아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 여러분이 된다면 예수님이 나중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런 특권적인 조건을 중심삼아 자기 자신을 무한한 가치의 존재로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에게 이런 것은 상식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닮은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은 누구를 닮았느냐? 앞으로 이상세계는 누구를 닮아야 되느냐? 하나님을 닮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떻게 지었겠어요? 창세기 1장 27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요? 「하나님의 형상대로요」 여러분을 누구를 닮게 만들었다고요? 「하나님을 닮게요」 결국 우리들이 자신을 닮는 것을 좋아하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닮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하나님을 닮아난 그것을 보시면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만물이 누구를 닮았다구요? 만물은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닮아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형상적으로 닮아 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실체 자체입니다. 이 실체를 중심삼고 사람은 형상적으로 닮아 나야 되고, 만물은 상징적으로 닮아 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닮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상대를 닮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엇을 닮아야 되느냐

그러면 닮는 데는 어디서부터 닮아야 되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도를 중심사고 영원한 사랑, 전지전능, 무소부재한 분으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신데, 어디서부터 우리가 닮아야 되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면 우리도 영원하여야 되고,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면 우리도 무소부재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디든지 가서 살고 싶지요? 그렇지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전세계를 한꺼번에 쥐고 싶지요?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니 우리도 무소부재한 것을 닮고 싶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니 우리도 전지전능하고 싶고,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하시니 우리도 유일무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닮았습니다. 그렇지요? 「예」 나 자신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나를 하나님 닮게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온 천하를 다스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후에 대통령을 해야 되잖아요? 그렇지요? 그래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다 비슷비슷하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신의 무엇을 닮아야 제일 좋아하실 것이냐? 닮는 데서의 최고의 뿌리가 무엇이고 조상이 무엇이냐? 무소부재보다 좋고 전지전능보다 좋고 유일무이한 것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한 것을 다 주고라도 한 가지, 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근원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닮게 한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만 닮는 날에는 무엇이든 다 잃어버려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 가는 대로 그것은 다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서푼어치밖에 안 될 정도로 못생겼더라도 사랑만 있으면 말 같은 총각이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웃음)

왜 따라갑니까? 좋아서 따라가지요. 좋은 것은 무엇 중심삼고 좋은 것입니까? 그 좋다는 데는 사랑이 문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분석해 보면 우주의 중심으로 남을 것이 무엇이냐? 인격이에요? 돈이에요? 권세예요? 뭐예요?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뿐입니다. 뭐라고요? 사랑이에요, 사망이에요? 「사랑입니다」 사랑 가운데에 사망이 있는 거에요. 이것을 여러분은 깊이 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사랑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사망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잘못되어진 것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누가 그 일을 해야 합니까? 이 사망세계의 잘못된 것을 뜯어고쳐 복귀시키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사망이 될 거예요, 사랑이 될 거예요? 「사랑요」 만민이 가장 좋아하는 그 어떠한 사랑 보따리를 가졌다면 통일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됩니다」 이것만 가지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가진 사람 가운데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계까지 걸려들면 되는 것입니다. (중략)

거기에는 인간 사랑과 겸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의 통로가 있을 것입니다. 복 주는 데에는 그 통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하늘 사랑의 길이 따로 있을 거예요. 그 길이 둘이겠어요, 하나겠어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길을 따라가야만 됩니다. 그러면 공중에 하나의 통로가 있다면 그곳을 통해 하늘의 사랑이 자기의 입 속으로 들어오면 좋겠지요? 전부다 그럴 것입니다. 저 무한한 하늘 멀리 사랑의 길이 있어서 입을 벌려 그 사랑이 자기의 입 속으로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데, 자기에게 떨어졌다 할 때는 그 길로 살짝 들어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떨어질 거예요? 생애노정의 수많은 날 가운데 언제, 어느 날 어느 시에, 몇 백년 후에 떨어질 거예요? 똑딱하는 그 순간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똑이 맞나요? 딱이 맞나요? 그 순간에 딱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언제 있겠습니까?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이것은 길지 않은 어느 한때입니다. 하루도 안 됩니다. 똑딱하는 그 순간에 하늘땅이 `야! 만세!' 하고 부를 수 있는 기쁨의 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한때를 만나고 싶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내 마음에서부터 만세를 불러야 한다

여러분은 만세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습니다」 만세 다하고 싶어요? 「예」 구경만 하겠다는 말이지요? 「아니요」 만세 하겠다는 사람들을 만세 부르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세」 만세! (웃음) 만세할 거예요, 만세 부를 거예요? 「부르겠습니다」 만세라는 것은 형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자, 그러면 `만세' 할 때에는 어떻게 할 거예요? 눈을 부릅뜨고 크게 `와!' 할래요, 어떻게 할래요? 「모든 것 다 하겠습니다」 전부 다 부르지요? 「예」 전부 부르는 것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완전히 세계적으로 승리하는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그래 만세 할래요, 부를 래요? 「부르겠습니다」 하는 사람 될래요, 하지 않는 사람 될래요? 「하는 사람 되겠습니다」 선생님까지도? 「예」 이제 되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을 선생님은 믿고 싶어요. 정말 그래요? 「예」 어디 두고 보자구요. (웃음)

만세 부르게 할 거예요, 만세 할 거예요? 「부르게 하겠습니다」 누구를? 「선생님」 정말 그래? 「예」 그러면 만세 부를 장소가 어디예요? 「여기요」 어디예요? 어디 가서 할 거예요? 「정주요」 「성지요」 다 틀렸어요. 내 마음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생각하지 않은 일이 인연맺을 수 없고 생각하는 곳에 인연 맺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거에요.

여러분의 몸뚱이는 무엇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활보했어요? 마음대로 활보했지? 그렇지? 만세 했어요, 안 했어요? 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안 했어요? 그러면 뭐 자기가 만세 못 해 가지고 어떻게 남을 만세 부르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병사가 철두철미한 사상을 갖고 있어야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적장까지도 내 손으로 잡아 해치우자고 적진을 넘나들어야 수많은 군중도 자기의 칼로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군대가 천이 되고 만이 되게 되면 아무리 강한 적군이라 할지라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몸이 아무리 지치더라도 또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열 번 맞더라도 나가고, 백번 맞더라도 나가고, 천 번 맞더라도 또 나갈 수 있습니다. 천번 만번 공격할 수 있는 군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역사 과정에서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은 패배자의 서러움을 남기고 갔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게 될 때 그 어느 조상도 한번 싸움에 망하여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번 싸우고, 세 번 싸우고, 백 번, 천 번, 만 번 계속 부딪쳐 싸워야 합니다. 천번 만번 부딪쳐도 신념에 있어서는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가 추구하는 이념보다 더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자리, 보다 더 위대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영원한 승리에 의한 영원한 만세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누가 문제냐? 자기 자신이 문제입니다. `나'는 `나'인데 어떠한 `나'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먼저 승리하는 것보다, 흥하는 것보다 그러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만세 부르게 하겠다고 그랬지요? 「예」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보다 더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그 집안은 망하겠어요, 흥하겠어요? 「흥합니다」 자, 선생님 자신이 그랬지만 여러분이 한번 나라를 위해 나가서 외쳐 보십시오. 여러분이 나라를 점령하고 세계를 점령해서 만세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체내에, 우리 교회내에, 너와 나와의 사이에 그런 신념의 기준이 서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앞세워 가지고 만세를 부른다면 앞으로 대사회문제, 대국가문제, 대세계문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있습니까? 부모가 완전히 점령하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만 안 되겠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또 부른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전도 많이 했어요? 했어요, 못 했어요? 한다고 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이제부터는 단연코 신념을 갖고 선생님을 만세 부르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자신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자신 있는 사람은 두시간 동안 손들고 있어요? 아마 어떤 녀석은 10분도 못 되어 내릴 것입니다. 내릴까요, 들고 있을까요? 「들고 있어요」 자, 이제 내립시다. 이럴 때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정, 그렇소' 하며 `쓱' 내리는 것입니다. (웃음)

마음을 점령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내일부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밀어야 한다고 할 때는 미는 것입니다. 미는 거예요? 여러분이 밀어야지 선생님이 밀어야 되겠어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사내 마음이 어떤가 하고 한번 뚝 차게 되면 남자는 딴 여자와 춤을 추지요? 그렇지요? 젊은 사람들은 그런 기분이 있어야 합니다. 또, 남산으로 `집합'하면 단숨에 올라가려고 뛰지요? 뛰어 빨리 올라가긴 올라갔는데 `이건 연습이다'하게 되면 `후' 하고 한숨을 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래요?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심은 연습입니다. 그러니 연습이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잘된 것입니다. 그 기준을 넘어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으로 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의 밑에서 일하게 되어도 앞에 가면서 뛴다는 것입니다. 땅을 파더라도 이것이 내가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이요, 연습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 설령 감옥 가운데서라도 죽든 살든 무슨 일이든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아니하고 남아져야 됩니다. 그때에 같이 남아진 자가 자기를 증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통일교인 가운데서 보았어요? 누구예요? 그것은 나타나야 아는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았으면 절대로 모릅니다. 왜 여기 찾아왔어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자기가 다하고 싶지요? 그러면 누가 성공했을까요? 협회장입니까? 축복가정입니까? 축복받았으면 뭘해요? 책임하지 못하는 데….

좋은 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목적을 달성시킨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성공 중에서 최고가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슨 무슨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훌륭한 사람들이지요? 물론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그만큼 성공했다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에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점령할 그때에 가서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성공했다 하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성공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까? 글을 잘 쓴다고요? 원리강의를 잘하기 때문에요? 「아닙니다」 그러면 뭐예요? 「영원히 남아져야 합니다」 영원히 남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해서 영원히 선생님의 마음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럴 것 아니겠어요? 「예」 집에 가 있더라도 선생님을 향한 마음으로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식구가 됐으면 그는 세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점령하는 길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 선생님을 점령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받는 대로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전도할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순종굴복하겠습니다」 순종굴복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가르쳐 줄까요? 「예」 여러분이 지방에 가면 지방의 지역장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지방 사람들 가운데 군자의 마음을 가진 이가 여러분밖에 없다면 거기서부터 거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지구장이면 지구장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협회장이면 협회장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게 점령할수 있는 사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지시한 대로 저 말단에 들어가서 식구의 책임을 대신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영원히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크고 우람하게 잘생긴 나무가 있는데 잎이 전부 다 마르고 뿌리도 죽었다고 할 때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생기긴 잘생겼지만 가망이 없습니다. 왜소한 나무일지라도 그 나무보다 더 싱싱하면 이것이 더 잘생긴 것이 됩니다. 이것은 칭찬하고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뿌리에서 줄기로 가는 진액을 백 퍼센트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한히 자랄 수 있습니다. 가지 가운데에는 원가지, 곁가지가 있는데 곁가지가 원가지보다 무성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도 지구장 지역장의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싱싱한 가지에 더 두드러진 가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구장이 살아 있으면 지역장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커 나가는 것입니다. 지구장이면 지구장, 지역장이면 지역장, 교회장이면 교회장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서는 그의 장단점을 알아 가지고 모셔 나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들의 마음을 말없이 몽땅 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소리 없이 그런 사람을 위로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다시 말하면 지구장이나 지역장, 교회장의 권한 이상의 권한을 빼앗아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희생과 봉사입니다. 일하는 모든 면에 있어서 백배 천배를 주면서도 손해나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들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자신이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면이면 면, 군이면 군을 중심삼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군에서 제일이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체육대회도 그렇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거쳐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군민이 그를 축복할 때 그는 그 군을 대표하게 됩니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올라가서 협회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교회장의 마음에서, 지역장의 마음, 지구장의 마음과 일체를 이루면서 올라오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올라가느냐? 협회장입니다. 그리하여 협회장이 그 사람에게 푹 빠져서 마음을 완전히 점령당하게 될 때, 자기 대신 그 사람을 협회장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 최고의 자리를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를 중심삼아 온 세계 만민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마음을 몽땅 점령할 사나이는 누구냐?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실패한 모든 것을 수습해 가지고 몽땅 빼앗아 오는 사람입니다. 아담에서부터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예수님을 거쳐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 실패한 모든 것을 몽땅 찾아 가지고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교회면 교회의 대표, 세계적 교파면 그 교파의 대표를 역사적으로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누구도 점령하지 못했던 원인을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나오는 최후의 사나이가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그러한 일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의 어떤 사람이 핍박하고 반대하더라도 망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자신이 있어야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일했기 때문에 이랬고, 나는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렇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에 있어서 위대한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을 따라갈 만해요, 그렇지 않아요? 「따라갈 만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되겠어요, 안 들어야 되겠어요? 「잘 들어야 됩니다」 지구장의 말보다도, 협회장의 말보다도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되겠어요? 「선생님 말씀요」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나무의 잎은 줄기가 아닌 뿌리의 진액을 받고 자랍니다. 진액은 가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서 온다구요? 뿌리에서 오는 것입니다. 뿌리가 멀리 있으니까 줄기를 통하고 가지를 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협회장을 통하고 지구장을 통하고 지역장을 통하고 구역장을 통하고 교회장을 통해서 좋은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크느냐? 꼭대기서부터 큽니다. 꼭대기서부터 커야 전체가 크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가지는 잘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뿌리에서는 절대적으로 수분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하늘과 땅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서 만물을 주관하라(창 1:28)"고 했는데, 주관하는 데 있어서 누가 주관하느냐?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점령하여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전부 다 우주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사나이로서 타고난 명분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세 부르게 하겠습니까? 「예」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선생님이 하지 못한 것을 해야 합니다. 자신 있어요? 「예」 여러분이 삼팔선을 넘어 이북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갈 수 있어요? 「예」 철망으로 막혀 있지만 그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할 수 있어요? 「예」 그 국경지대를 넘어가서 김일성의 목을 자를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때요? 「하겠습니다」 그럼 언제 베러 갈 거에요? 「명령에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면 김일성이 큰일나게요? 여러분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큰일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은 나이 때에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하고, 혼자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폼재고 다녔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했겠습니까? 어떻게 했겠어요? 정반대입니다. 정반대? 그래서 전부 반대했습니다. 누가 믿었습니까? 선생님이 눈 아래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눈 위의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눈 아래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눈 아래 사나이가 점점 눈 위의 사나이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되겠지요? 「예」 학교에 가면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결석해서도 안 되지요? 「예」 그러면 선생님 얘기 안 해야지. (웃음)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여기 온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손 들어 봐요? 한 사람도 없구만. 그러면 선생님의 말을 안 듣고 온 사람 손 들어 보세요? 뭐 어떻게 된 것입니까? 둘 중에 하나여야지요.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승낙 안 받고 온 사람 손 들어 봐요? 이놈의 자식들! 그럼 누구한테 승낙 받고 왔어요? 「선생님요」 그래, 그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은 꼭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 왔는데, 얼마나 견딜 것입니까? 10년, 20년, 아니면 몇 달?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은 학교에 돌아가 교장실에 가서 교장을 설득해 가지고 학생들을 한꺼번에 손들게 하고 싶지요? 그렇지요? 「예」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싸워야 됩니다. 싸워서 이기려면 작전을 잘해야 됩니다. 안팎으로 안고 추려면 팔방미인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교 다니는 딸을 둔 아버지가 `나는 틀림없이 너를 사위로 삼겠다'라는 말을 면전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용을 얻어야 됩니다. 그런 신용을 얻을 때까지 고비를 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었어요?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까지 통일교회 나간다고 반대를 받은 것입니다. 어디 반대를 받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래 기분이 좋았어요?

이 망해야 할 세상에서 환영받아서 좋을 게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날 청년 남녀들은 거리에서 흘러 다니며 세상을 망치는 벼랑으로 모두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받는 우리 처녀 총각들은 하나의 희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로 규합하여 가지고 만세를 부를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디에서 만세를 불렀습니까? 십자가에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불렀고, 하늘나라에서 불렀습니다. 이렇게 세 번 만세를 불렀습니다. 십자가에서 만세를 부르고, 죽음의 장벽에서 만세를 부르고, 그 다음에는 하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만세를 부른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한 예수님은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서 만세를 부를 거예요? 마음속에서 부르고, 나라 앞에서 부르고, 세계 앞에서 불러야 합니다. 우리의 갈 길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었느냐? 나라 때문이었습니다. 나라의 짐을 혼자 짊어지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뜻을 위해 태어나고 뜻을 위해 살고 뜻을 위해 가는 몸이요, 아버지를 위해 있는 몸이요, 아버지를 위해 가야 할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나이로서의 타고난 명분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우리는 이러한 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는데 기분 나쁜 기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도 안 하지요? 「예」 여러분은 삼팔선을 넘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은 것보다 5배 더한 죽음의 고통을 겪어 봐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도 두려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어려운 길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선생님의 뜻은 내 뜻입니다. 내 뜻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하고 계십니다. 분하고 원통합니다. 뜻을 위해 희생하신 선생님 앞에 저 혼자라도 뜻을 위해 가겠으니 저에 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를 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은 뜻 때문에 가는 거에요? 그것이 선생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여러분의 뜻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갈 수 있어요? 「예」

식구들이 가져야 할 결혼관

여러분은 결혼한 후에도 이 길을 가고 싶어요? 여러분은 결혼을 한 뒤에 어떠한 싸움에서도 사탄을 밀쳐 내야 합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36가정의 한 가정이 나가 싸우고 들어올 때 한 가정을 전도해서 두 가정이 되어 들어오고, 또 한번 싸우러 나가면 한 가정을 전도하여 세 가정이 되어 들어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결혼해야 합니까? 이렇게 싸움의 십자가를 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결혼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뜻을 위해 한마음 한뜻을 중심삼고 가다가 십자가에 못박히더라도 남자 여자모두 `난 죽어도 괜찮으니 당신은 뜻을 배반하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천추의 한을 청산지어야 되는데 이 한 몸이 두번 살기를 바라겠느냐,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인류의 원한을 풀어 주고 나아가 후손에게 영광의 자리를 남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는, 이런 천년사에 길이길이 빛날 하나의 남자가 되고 하나의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자 중에서는 그런 여자가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라면 천년 만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남자가 있다면 만세의 여인들은 그를 남성의 표준으로 삼고 영원한 남편으로 맞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남편과 그러한 아내가 죽음을 넘어서서 행복을 노래하는 미래의 세계에서 재봉춘할 수 있는 그날이 바로 아버지 앞에 축제의 날이요, 하늘땅에서도 축제일이요, 저 나라에 축하연을 남길 수 있는 날입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운 날입니까?

여러분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어디에서 하고 싶어요? 십자가상에서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 자리에서 내려와, 서로서로 뜻을 위해 충성하다가 백년가약을 맺는다면 그 부부는 부부중의 최고 부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죽음이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내가 소원하던 상대적인 존재, 즉 내가 찾고 있던 참된 어머니의 모습은 이래야 된다'고 마음속에 신부의 형상을 그리면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갔습니다. 온 마음에 사무치는 하나의 소원, 즉 성신을 그리면서 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한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성신이 이 땅에 와야 됩니다. 이런 말은 성경에도 없지요? 여러분은 한풀이한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풀지 못한 한을 이 땅에 와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만민을 사랑하고 그 만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나 그러한 이념을 갖고 한을 품은 채 죽어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영적 역사를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발전사입니다.

통일교회가 참이라면,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면 여자로서 그 뜻 앞에 충성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런 멋진 자리가 있다고 할 때 그 자리는 정상적으로 먹고 입고 자는 편한 자리가 아닙니다. 환경적으로 모든 핍박과 시련의 폭풍우가 몸뚱이에 몰아치는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에서도 진취력을 가지고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심정적인 사나이와 아낙네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현실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삼팔선도 문제없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요? 「예!」 선생님은 여러분을 한 일주일만 훈련시켜 전부다 바깥 세상에 빨리 내보내 죽이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아요? 「예!」 그런 환경으로 몰아낸다 해도 결심만 하게 되면 문제없습니다. 공산당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사선을 넘어서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사선을 넘어서 가자는 거예요.

희망은 그 사선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내일의 희망은 내 뒤에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희망, 그 희망은 내 곁에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복잡다난한 환경을 헤치고 10년, 20년 미래에 있어서도 그 이상 더 어려운 날을 거쳐야 희망이 큰소리로 환호하며 손을 번쩍 들어 안아 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밀려 들어오는 풍파 시련 고통의 시선이 아무리 겹겹이 둘러싸여 있더라도 그것을 박차고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여러분이 역사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사상의 주인공으로서, 그 시대에 공헌할 수 있는 선조로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남길 것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만인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만들자

여러분은 꽃다운 청춘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현실세계에서 온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 세계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꽃다운 시대에 있어서 꽃 피울 수 있는 최고의 순정을 하늘을 위해 백 퍼센트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렇지요? 나라에서는 몇 세 때에 징집을 합니까? 만 20세? 만20세 되는 사람을 군인으로 징집하는데,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 하면 그들은 그것밖에 모릅니다.

모든 정열과 심혈을 기울여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상으로 하나되어야만 여러분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만약 여러분이 그런 행동을 다 못 하더라도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그것을 생활의 지표로, 생활의 표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상승하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내려가는 희생이 아니라 상승하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비례하여 언제든지 시련과 고통의 희생이 동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념에 찬 미래의 주인공인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고는 여러분이 세운 그 어떠한 목적도 전부 다 망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희생하는 곳으로 가보겠습니까? 가 볼래요? 「예!」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지옥에서 결혼을 하자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하면 지옥의 악령들이 부러워하겠어요, 부러워하지 않겠어요? 「부러워합니다」 입이 터지고 가슴이 터질 만큼 부러워하여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자리는 만인(萬人)이 부러워하는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거기서 결혼하면 이상적인 부부가 된다고 했지요? 말은 쉽지만 어렵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있어요? 언제 한번 시험삼아 혼내 줄 것입니다.

선생님은 왜정 때 학생이었는데 공산당과 한패가 되어 가지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공산당과 함께 3년간 핍박당했습니다. 잡히면 사상범으로 몰려 감옥에 끌려 갔습니다. 그들 중에는 여자들이 많았는 데 정기적인 훈련을 받은 지하당원들은 사상이 주입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루된 동지들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곳에서도 생명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비밀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1차, 2차, 3차 고문을 받게 되어도 말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약하지요? 고문에 약하지요? 「아니요」 약한 반면 지독한 면도 있지요. (웃음) 고문받는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입을 열게 되면 자기로 인해 수많은 동지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공산당은 그러한 사람들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공산당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주에 발가벗고 달려가듯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볼 때 공산당을 막아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은 한가하게 얘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급박한 세계정세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지금 봉화를 들고 나선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위험천만한 입장에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세계적인 최고의 결전에 임하여 십자가를 진 무리들입니다. 그런 갈림길에서 어차피 한번은 터뜨리고 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원한의 터전을 없애야 할 여자들

선생님이 그런 길을 가자고 할 때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어요? 「예!」 선생님이 끌고 가야 가지요? 「아닙니다」 북쪽을 향하여 총진군하라고 하면 가겠느냐는 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최후의 나아갈 길 앞에는 전후좌우에 총칼이 겨누고 있고 죽음의 교차로가 겹겹이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천당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극복하면 천당은 자연히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삼팔선을 넘어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지만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 고향에 가고 싶어요? 「예!」 가고 싶어요 지금은 못 갑니다. 현재의 입장을 볼 때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못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공산당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 세계적인 원수인 공산당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젊은 용사들을 어떤 계층에서 빼낼 것이냐? 남자만 잘나서는 안 됩니다. 여자도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예」

앞으로 여자들을 전부다 총동원하여 군사훈련을 시켜 가지고 여군으로 만들겠습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여군이 되는 것입니다. 토벌작전에서 선두에 나서서 백마부대 이상, 맹호부대 이상, 청룡부대 이상으로 이북 공산당을 때려잡아야 되겠습니다. (웃음) 그렇게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세계를 농락해 온 사탄인 천사장을 이겨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천사장의 족속이 아닙니다. 해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원한의 터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여자들의 손길로, 여자들의 정성으로, 여자들의 힘으로 그 원한의 터전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출발해야 합니다. 여자들이 이것을 해야 하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에 이 원한의 터전을 없애기 전에는 여성해방은 근본적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북의 공산당들이 넘어오게 되면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는 끌고 갈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은 남겨 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수의 씨앗을 퍼뜨려 놓은 아픔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원수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 당대에 있어서 막아내야 할 책임이 여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가정에서도 사상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몇십 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살아났습니다. 나는 50살까지 살아 나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최고의 고빗길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최후의 승리의 때를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세계적인 싸움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간접적 전법으로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직접 전쟁에 임해야 하는데 대해 얼마나 염려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4백여 명의 젊은 남녀들이 모여 있지만, 그때에 임해서 여러분이 거기에 동정해 가지고 승리의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예」 선생님이 볼 때 의심스럽다. 의심스럽다! 「의심스럽지 않다」 나보다 소리가 크지 않아요. 의심스럽다! 「의심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만세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웃음)

천국(理想國家)의 형태

선생님이 요전에 강릉에 갔다 오면서 생각한 것은 고향에 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젊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야 할 것인가였습니다. 어디 한번 생각해 볼까요? 「예」 시간이 많이 갔으니 그만둡시다.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은 마음의 자세가 되었어요? 「되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예」 불청객들같이 왜 이렇게 야단입니까?

사실은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기가 막힌 얘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올라오자마자 그만 잊어버렸어요. 선생님이 오늘 아무래도 여러분한테 잘못 걸렸습니다. 내가 걸렸으니 이것을 풀고 해방되어야지요? 「아니요」 그러면 언제까지나 걸려 있으라구요? 「예」

강의한 지 몇 시간 흘렀습니까?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한 강좌만 더 합시다. 얘기하자면 끝이 없겠어요. 우리에게는 `나'라는 것은 없다고 했지요? 모두다 빚진 사람입니다. 빚을 얼마나 졌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예」 여러분의 마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요」 그렇습니다. 마음이 없지요? 마음이 자기 것이 아니지요? 「예」 마음이 있긴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못 하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의 몸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빌린 것이죠? 태어날 때는 조그만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컸습니다. 이것이 뭐예요? 이제까지 여러분의 몸은 땅의 신세를 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3대 부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3대 부모. 첫째 마음의 부모, 둘째는 몸의 부모, 셋째는 땅 부모, 곧 자연 부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 세 부모가 동맹파업, 전면투쟁이 벌어지게 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제발 동맹파업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순종하여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빌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만약 3위기대 일체를 이루어 동맹파업하는 날에는 더욱 곤란할 것입니다.

마음과 몸은 다릅니다. 마음은 어디서 받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디에서 왔어요? 「하나님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어야 합니다. 돌아가면 여러분이 이야기해야 할 내용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하늘, 몸은 부모로부터 왔습니다.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땅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땅이 뭐라고요? 이 땅은 물질입니다.

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 해와의 연장이 바로 `나'입니다. 알겠어요? 「예」 사람(人)하면 거기에는 벌써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 몇 가지가 들어와 있습니까? 땅이 들어와 있고, 사람이 들어와 있고, 하나님이 들어와 있습니다.

옛날부터 천(天), 지(地), 인(人)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천(天)이고, 몸은 지(地)이고, 사람은 인(人)이지요? 결국 `나' 하나에는 하나님이 들어와 있고, 땅이 들어와 있고,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갑니까? 몸을 중심삼아요, 마음을 중심삼아요? 「마음요」 마음이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몸은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의 중심이 되니까 의지가 있어야 되고, 관(觀)이 있어야 되고, 주장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로 일치된 사람을 인격자라고 합니다. 마음의 명령대로 몸이 움직이는 양심적인 사람을 인격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중심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대신이고 몸은 사람대신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몸을 지배하고, 사람의 몸은 만물을 지배합니다. 알겠어요? 「예」 앞으로 여러분이 이루어야 할 지상천국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나를 닮았습니다. 한 나라를 보면 무엇이 있습니까? 주권, 국민, 국토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천국이 누구를 닮았다고요? 「나 닮았습니다」 나 개인이 모여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나라에도 주권이 있어야 되고, 인격체이기에 국민이 있어야 되는 것이요, 인간에게 만물이 있는 것처럼 국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에서 국토는 사람한테 지배받고 국민은 주권 앞에 지배받는 것입니다. 이 국토 국민 주권이 국가 형성의 3대 요소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에 있어서 마음은 주권자입니다. 주권자는 국민을 지배하고 국민은 국토를 지배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국토의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이 대한민국, 국가의 소유이지만 사실은 국민의 소유입니다. 이러한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가 민주주의 세계, 자본주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공산주의 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모두 국가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지배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상적인 체제가 아닌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사람을 두고 볼 때,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몸은 만물을 지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온 세계를 보면 천지인(天地人)이라는 결정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하늘이 뭣이라고요? 인간의 마음과 같으니까 주권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인격체지요? 땅은 만물입니다. 결국 나라는 누구를 닮았느냐? 전부 나를 닮았습니다.

아무리 큰 사회, 아무리 큰 국가라 하더라도 사람을 닮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닮은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형상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국가는 무엇을 닮아야 합니까? 「사람요」 사람을 닮아야 되는 것입니다. 닮았어요, 안 닮았어요? 「닮았습니다」 천지인(天地人)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무슨 문명시대입니까? 물질문명시대입니다. 물질만능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꺼꿀잡이로 물질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망해야 되겠어요, 안 망해야 되겠어요? 「망해야 합니다」 망하지 않으면 우리 인간들이 비참해지게 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존재성까지도 파탄시켜 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히피족 같은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인간인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짓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은 마음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으셨으니 우리 개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음과 같은 부분이 있고 물질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 지은 것이 오늘날 세계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앞으로 최고로 발달한 문명세계는 어떤 세계냐? 마음과 몸과 물질이 이러한 원칙에 의해 내 자체 생활권내에서 모순과 상충이 없이 완전히 수수작용을 하여 천륜의 법도를 세울 수 있게 제도화된 사회가 지상천국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주권과 국민과 국토의 기반 위에 입법부가 있고 사법부가 있고 행정부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천지인(天地人)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입법부는 우리 신체의 폐에 해당됩니다. 사법부는 심장에 해당되고 행정부는 위에 해당됩니다. 결국 나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된 겁니다. 폐장에 해당하는 입법부에서는 신선한 공기를 섭취하여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심장과 마찬가지인 사법부는 혈액 속의 백혈구가 침투해 들어오는 병균을 막는 것같이 침범해 오는 적을 방비하여 국가의 안녕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물을 흡수하는 위(胃)같이 행정조직은 국가를 유지하지 위한 모든 것을 흡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3부 조직이 잘 주고 잘 받아야 됩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세계의 사회제도는 사람의 구조를 닮아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로 발달된 문명세계는 어떤 세계냐? 사람을 닮은 세계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심장계통, 신경계통, 마음계통이 있는데 이것은 전부 다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사상은 무엇이냐? 사랑을 통한 세계주의입니다. 세계주의로써 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씀이지요? 그렇지만 알아듣는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주권국가에는 지방조직이 잘 안 되어 있습니다. 공산국가를 보게 되면 지방조직이 세포조직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면인민위원회에서부터 군인민위원회, 도인민위원회, 국가최고인민위원회, 이렇게 도, 군, 면까지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포조직의 형태를 공산세계, 사탄세계에서 잘 흉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공산세계를 깨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구현해야 할 조직의 형태

우리 통일교회가 지상천국 건설하자는 이런 때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면, 군에 지소를 조직하여 그 지방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교회를 거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우리 교회자체 내에서 실시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자체에 이와 같은 조직이 다 있어야 합니다. 사법부와 같은 것이 있고 행정부와 같은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로 벌어져야 됩니다. 우리 교회 조직이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경제문제, 판매분야도 이원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이원화운동, 이것은 교회문제와 경제문제를 분리시키는 운동입니다.

그러면 입법부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가정 단위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오지 않습니다. 가정이 사회의 핵심으로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이 책임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엄청난 사명을 전개해 나왔습니다. 하늘나라는 이러한 조직이 산골에서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체화 되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이 되느냐? 이러한 책임을 가정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진다고요?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가정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전통적인 그 사상을 누가 이어받아야 하느냐? 아담의 종손들입니다. 아담의 종손의 가정들이 이어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조직을 세계적으로 전개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환경적인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모든 법도를 사회환경에 적응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됩니다. 결국 사람을 닮아가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기관은 인간의 청각기관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외부에 침범해 들어오는 모든 적성적인 요소를 즉각적으로 보고 받아 처단할 수 있는 강력한 체제를 갖추어야 국가가 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앞으로 발전된 사회는 무엇을 닮아간다고요? 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과 물질 사이에는 3대원칙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뗄 수 없습니다. 이 셋이 합하여 소생·장성·완성을 이루어 하나의 형태를 완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의 하늘 부모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으니 우리 인간도 이성성상입니다. 만물도 플러스 마이너스 형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을 합하여 연결시키면 7수가 됩니다. 이것은 단계로 보면 3단계요, 벌여 놓으면 4위기대입니다. 이 3수와 4수가 조화를 이루어 통일이 되면 7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7수는 창조목적 완성수입니다.

여러분은 전부다 위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전부다 셋이 하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눈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코도 쭉 들어가 보면 하나로 되어 있고 귀 역시 그렇습니다. 모두 하나되어 있습니다.

또 얼굴을 보게 되면 이것은 (눈을 가리킴) 하나님을 상징하고, 이것은 (코를 가리킴) 사람을 상징하고, 이것은 (입을 가리킴) 만물을 상징합니다. 얼굴에서 제일 높은 부분은 코지요? 이(치아)는 32개로 만물을 상징합니다. (4×8=32) 이렇듯 얼굴에 천지요소를 전부다 모아 놓았습니다. 이렇게 세개의 기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소생 장성 완성 3단계 원칙을 두고 보면 인간이 얼마나 멋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 지상천국을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 세계에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폐와 같은 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산소를 흡수할 수 있는 폐와 같은 기관이 없기 때문에 세계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세우기 위한 이상적인 재료를 흡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이 피폐하게 된 것입니다. 이상적인 주의 사상이 없는 가운데 지금까지 역사는 그 이상을 맞이해 나오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과정을 넘어 가지고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천주주의를 완결시키는 최종 기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을 닮게 지으셨고, 인간은 자기를 닮은 세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왜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하느냐? 그것은 넓은 세상이 사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자신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 원리적인 철칙입니다. 그래서 전부다 출세도 사회를 통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에 귀결되고, 그 국가를 넘어서 세계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에서 많은 것으로 갈라져 가지고 결국 하나의 큰것으로 종합됩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여러가지로 갈라졌다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갈라져 가지고 보다 더 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더 큰 하나의 세계 가운데로 전부다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거기에는 가정이 있는데 형태는 통합되기 전과 같습니다. 가정은 부부를 이룬 곳이요, 그 부부를 하나로 만드는 곳입니다. 종족은 가정을 하나 만드는 곳이요, 민족은 씨족들을 하나로 만드는 곳입니다. 민족들이 합해서 하나의 국가 앞에 전부 들어갑니다. 국가에 민족이 들어가고, 민족에 종족이 들어가고, 종족에 가정이 들어가고, 가정에 개인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에서 큰 것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하나로 전부 다 들어가면 통일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기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가정이 중심이 됩니다. 이 가정을 전개시키면 횡적인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과정에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이 그래야 되고 노아 가정이 그래야 되고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예수님 가정, 선생님 가정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가정을 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복귀할 수 없으면 세계를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가정을 중심으로 천주주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천주는 하늘땅을 총합한 것입니다. 하늘땅은 인간에 있어서 몸과 마음과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주체가 있으면 하나의 상대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의 남자에게는 하나의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이 가정입니다. 이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반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종족을 대표하는 기준으로서 가정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가정이 잘못되면 나라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어떠한 유명한 사람도 전부 다 가정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천주주의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합한 후 하나님의 사랑의 본체가 되는 가정을 이루어 그 이념을 영계와 육계에 연결시키는 주의입니다. 천주의 주자(字)는 집 주(宙) 자입니다. 집 주, 그렇지요? 「예」 그래서 천주주의란 말을 쓰는 것입니다. 천주는 무형세계와 실체세계를 합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우리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하나되지 못하고서는 천주주의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천주주의를 완결시키는 최종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행복을 찬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나 영계에서나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가정을 닮아 나왔습니다. 어떤 세계이든지 다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이상세계는 3위기대, 가정의 3위기대를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4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먼저 4위기대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전부다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고 인간을 중심삼은 사회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을 닮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에 통일교회를 세워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원칙을 통해 세계가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온 세계가 하나의 사람 모양을 형성하는 세계입니다. 거기에 있어서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합니다.

신앙인은 만민과 만물을 사랑할 수 있어야

우리 인간의 눈썹과 코의 색깔이 같습니까? 「틀립니다」 그런데 흑인에게 깜둥이 자식이라고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깜둥이 자식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세계 인류는 크게 세 개의 인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그것입니다. 흑인종은 맨 나중에 있는데 우리가 흑인종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면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다」 여러분이 검정색 옷을 입었는 데 검정옷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여러분은 검정옷을 좋아하면서 왜 시꺼먼 사람들을 싫어하는 겁니까?

검정옷은 편리하게 되어 있고 오래 입어도 좋습니다. 그렇지요? 흑인들은 24시간 일을 하고 세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웃음) 깜둥이의 얼굴에 무슨 더러운 것이 묻었는지 알 게 뭐예요? 언제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면에서 흑인이 여러분보다 낫습니다. 앞으로 같은 생활 체제가 되어 가지고 절약하여 헌금하고자 할 때는 흑인들이 더 많이 할 것입니다.

천지인(天地人) 가운데는 자기가 있습니다. 자기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세계는 하나의 집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인간 형상을 닮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를 품고 내 상대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물이 내 형상을 닮았다면 그 주체되는 나는 세계 만민은 물론 온 만물까지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갖지 않으면 근본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은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고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황금주의, 물질만능주의를 부르짖는 세상은 망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엇보다도 인도주의를 부르짖고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 종교만은 물질을 다 버리고 사람을 중시해 나왔습니다. 즉 인격을 중시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물질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물질을 버리고 사람을 중시하였느냐?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를 먼저 찾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종교는 그런 참된 남자와 여자가 나올 때까지 물질을 버리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화의 기원지가 될 한국

동양과 서양을 두고 보면 서양은 물질문명이 발달했고, 동양은 정신문명이 발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물질문명은 동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동서양이 서로 주고받지 않으면 망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어디서 먼저 주어야 하느냐? 동양에서 먼저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가 동양에서 나와 서양에 주었습니다. 주었어요, 안 주었어요? 「주었습니다」 다 주었습니다. 서양은 이것을 완전히 받았기 때문에 무엇을 주어야 하느냐? 물질을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서양이 동양에 물질을 집중적으로 갖다 주도록 중간에서 접선시키는 그런 곳은 희망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20세기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한국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한국이 문제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희망이 있는 곳입니다.

한국은 서구 문명의 접선지요, 새로운 문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곳이요, 주고 받을 수 있는 첫출발의 인연이 종국적인 결론으로 인연맺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명의 집결지가 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부다 손을 떼면서도 한국에서만은 손을 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공인하지 않으면 못 뗀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손을 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통일원리의 위대성

원리는 아주 방대합니다. 원리를 두고 보면 세상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대학가 그 어디를 가도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만이 갖고 있는 이런 특권적인 내용은 세계만유의 백과사전과 같은 내용을 지녔습니다. 이것에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왜? 인간의 근본문제를 중심삼고 천륜의 근본적인 것을 중심삼았기 때문에 공식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원칙이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어야만 공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에 들어맞는 것이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현대 철학이나 심리학에도 들어맞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세계의 원칙에도 전부 들어맞습니다.

기업을 발전시키려면 경영과 시설과 기술의 3대 요소가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전부다 이렇게 3대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철학가들은 3대 철학을 말했지만 우리는 4위기대 철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광대하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평면적인 것이었지만 우리의 철학은 입체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을 것은 우리 원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내용을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알아? 「예」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교회에 가고 싶지요? 「예!」 부모가 가지 말라고 해도 밥만 먹으면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더라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는 것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회에 가지 않으면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느낌을 가져 보았어요? 「예!」

여러분을 누가 오라고 했길래 불청객처럼 이렇게 많이 와서 밥 주고 콜라 주고 잠을 재우게 합니까? 여러분은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주인이 손님을 푸대접하면 그 집안이 복을 받나요, 벌을 받나요? 「벌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웃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대접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무슨 대접을 하느냐? 말씀을 대접합니다. 선생님을 만나 한바탕 웃고 한바탕 좋아하고 한바탕 욕도 먹으면서 제일 좋은 것을 배웁니다. 욕을 먹고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제일 가깝지요? 욕을 먹고도 좋아하면 그 이상 좋은 것이 필요없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은 가서 쉬고 밥 한 그릇 먹는 것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낫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밥을 먹이지 않아도 선생님은 가슴이 아프지 않습니다. (웃음)

선생님이 승공활동에 주력하는 이유

여러분은 한국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정신문명 핵심은 종교입니다 종교. 문명은 종교, 신을 떠나서는 발전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숭상하면 숭상할수록 물질을 버려야 됩니다. 그렇다면 내버린 그 물질을 사탄이 가지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안 되겠기 때문에 하늘편 사람인 기독교인들에게 물질문명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 문명권내에 서구 문명이 섰다는 것입니다. 서구는 앞으로 정신문명을 받아들여야 할 상대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가인적입니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교를 숭상하면 물질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런 나라는 못 살아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못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고 못사는 것이 천도에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부 다 잃어버린 것을 누구에게 주어야 되겠습니까? 사탄세계인 공산당에 주면 되겠습니까? 이것을 공산당들이 들고 가면 이 세계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막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고차적인 민주주의 세계에서 이것을 인계 받지 않으면 이 세계는 망합니다. 공산당들이 이것을 인계 받으려고 하는데 앞으로 누가 막을 것이냐? 막을 자가 없다는 겁니다. 모두다 후퇴해 가는데 이것을 누가 인계하려 하느냐? 소련 공산당이 인계하려 하고 중공이 인계하려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선생님이 반공주의를 중심삼고 아시아 문제를 제시했습니다. 일본과 대만을 중심한 동남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선진 기반으로 반공주의를 공고화시켜 사탄편에 이것을 넘겨주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선생님은 불철주야 이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망합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너무 빨리 손을 떼었습니다. 그냥 두게 되면 미국정책은 5년 이내에 실패하게 되어 아시아에 있었던 그러한 환난이 미국 대륙을 중심삼고 벌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이 동양에서 손을 뗐다고 해결될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그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은 미스터 문이 누구인지 설명하라,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얘기해 줍니다. 틀림없이 미스터 문이 얘기한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과 종교의 사명

여러분은 무엇이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사상이 필요합니까? 「사상입니다」 종교적 사상, 즉 천지인(天地人)이 결합된 입장에서 권한을 가지고 만물을 지배해야 됩니다. 그러면 만물을 언제 지배할 것이냐? 만물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이란 두 글자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만물을 이때 주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축복하실 때, `생육하고 번식하고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생육하려면 무엇을 해야 됩니까? 축복받지 않고 생육할 수 있습니까? 생육하고 번식하여 땅에 충만해 가지고 만물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가정을 갖추고 나서 만물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신랑 신부의 이름을 갖추어 참다운 가정을 이룰 때까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려면 본래의 기준, 아담 해와의 본래의 기준을 복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만물은 하나된 사람에게 주관받아야 되기 때문에 본연의 사랑을 거친 후에야 피조만물을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물은 사랑의 인연 가운데 사랑을 받고 사랑의 인연 가운데 존중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성장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곳이 만물이 머물러야 할 영원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자리와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만물이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서 만물도 모든 탄식권을 다스려 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하나님의 뭇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뭇 아들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의 가정을 중심삼고 만물이 지배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이러한 때를 바라며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때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때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종교는 그때까지 다 잃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이지요? 「예」

온 만물의 특권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데에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주장하려고 하는 데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연의 사랑의 심정으로 만물을 대할 수 있는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만물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지요? 「예」 만물은 가정으로부터 주관받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득찬 가정과 함께 있으면 만물이 탄식하겠어요? 안 한다는 것입니다. 만물도 사랑이 꽃 피는 자리에서 주관 받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의 기준은 그런 자리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자리에 나오지 못하고서는 만물을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의 주인이 되려면 신랑과 신부로서 둘이 합해져야 합니다. 이러한 신랑 신부가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을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하는 것이 본연의 법도입니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허락받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을 사탄세계에 넘겨 주고 나서 기독교를 통해 지금까지 되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문명이 발달한 아시아인들이 못사는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종교를 숭상하면 숭상할수록 못살고 물질을 숭상하면 숭상할수록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러나 물질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새로운 역사의 인연을 가지고 정신혁명을 이룬 동양사상을 중심삼고 서구문명과 일체화될 수 있는 곳을 향하여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결실되는 곳

이러한 일은 한국에서 시작됩니다. 한국 가운데서도 어떠한 종파냐? 통일교회입니다. 기성교인들이 알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기분이 나빠서 죽겠으면 죽고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생님 말을 잘 들어 주게 되어 있지 기성교회 목사들의 말을 잘 들어 주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들어 보면 선생님의 말이 이치에 닿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맺어진다고 했습니까? 그곳이 어디입니까? 축복받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한국입니다」 한국의 어디냐?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의 어디냐? 협회본부입니다. 1960년대에는 여기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역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이곳은 고귀한 곳이기에 앞으로 1억달러를 주고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여기는 중요합니다. 여기에 출입금지란 팻말을 붙일 때는 몇 억달러를 준다 해도 하룻밤을 함부로 잘 수 없는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나라의 군왕도 여기서는 못 잡니다. 그런 때가 곧 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들보다 수준이 높아지지요? 「예」 누구 때문에 그렇게 높은고? (웃음) 여러분은 사랑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말을 잘듣게 되어 있어요, 안 듣게 되어 있어요?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망하라는 것입니다. 깨깨 망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나 안 망하나 내가 두고 볼 겁니다.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살다가 선생님의 머리가 백발이 되면 재미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재미있겠습니다」 재미는 있겠지만 힘이 듭니다. 세계를 넘나들어야 할 때인데 함부로 가면 고달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선생님이 대신자를 만들기 위해서 여기에 젊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저녁 때가 지나도 밥도 안 먹고 밤이 깊도록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대신자가 될 거예요, 안 될 거예요? 「되겠습니다」

1960년대의 우리들의 표어가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생애 중 최고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다음 해에는 `아버님의 대신자가 되자' 그 다음 해에는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 그 다음 해에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생애 최고의 실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최고 실적을 남긴 해가 1960년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보여 주고 자랑하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3년 동안에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했기 때문에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는 4년노정의 표어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해 나온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표어를 중심삼고 여러분 생애의 최고의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 7년 노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과 싸우다가 밀려 나오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슬픔을 전부다 해원성사할 수 있는 승리자, 즉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사탄이 참소하던 것을 막아 놓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나서면,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딸을 천지간에 보여주고 자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사위기대 완성은 창조목적 완성이기 때문에 사탄세계를 굴복시키는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을 자연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적 주관권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가지고 대한민국과 세계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전부다 공식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표어를 가지고 나가 생애에 최고의 실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7년노정의 출발이 언제냐? 1차 7년 노정을 전부다 이루었다는 것은 전체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7년노정을 언제 출발했느냐? 그것은 여러분 각자가 다 다릅니다.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들어 보면 이 말도 그 말 같고, 그 말도 이 말 같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내가 얘기한 것은 대개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원리책에 이런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전부다 새롭고 중요한 말을 들은 것입니다. 원리시험 문제 중에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왜 만물을 주관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만물주관에 대한 원리적 견해를 제시한 것입니다. 종교가 물질에 대해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원칙적인 논리가 이제까지 설명한 그런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면

여러분은 심정을 겸해야 하늘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심정을 빼고서는 안 됩니다. 심정이 없으면 인격이 안 나오고, 심정을 통한 인격이 나오지 않으면 심정을 통한 진리도 나오지 않고, 심정을 통한 진리가 나오지 않으면 이상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상은 무엇입니까?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는 6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30억 인류의 중심입니다. 앞으로 우리로부터 기원을 삼을지어다'라고 말하면 아주 심각해질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목적이라는 것은 미래를 중심삼았습니다. 목적을 내일로 내일로 미루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미래에서 찾는 한 통일세계는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이 세계는 미래 미래 미래를 외쳐 왔습니다. 공산당들은 세계가 투쟁에 의해서 발전한다고 하지만 목적의 세계가 어느 한 때에 역사적인 중심으로 서야 합니다. 이것이 서지 않고는 하나의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오늘날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시대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미래는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참부모요」 그러므로 전체가 여기에 귀결되지 않고는 행복의 기준은 역사과정이나 우주 가운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랑의 기원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을 중심삼고 종적 횡적 기반이 다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반이 다르게 된 것을 같게 하자는 것이 타락한 인류의 소원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 중심삼고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의 진리가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제일 가깝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민주세계에 사상의 뒷받침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중심은 누구냐? 예수를 중심삼은 참부모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만민들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미래의 전통의 기원이 서게 됩니다. 통일할 수 있는 전통의 기원이 여기서부터라는 것입니다. 3수의 중심이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참부모의 교리를 가르침받고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무리입니다.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교리를 가르치는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역사가 찾아나온 중심인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곳입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중심인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곳입니다.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을 내가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역사적인 열매입니다. 나는 시대적인 중심입니다. 미래의 기원이 될 것이요, 조상이 될 것입니다. 참부모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만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이런 기도를 하면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적을 천년 후의 미래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찾는 목적은 미래의 후손들도 과거에서 찾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것이요, 현재의 것이요, 미래의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이 이념을 중심삼고 다가올 세계를 환영만 해서는 안됩니다. 참부모를 그리워하면서 모시고 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이 시대권내에 있는 여러분은 현재 살고 있지만 과거의 열매요, 미래의 기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 3시대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뒤로는 과거, 앞으로는 미래를 통합시킬 수 있는 현재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통합하느냐? 참부모의 사랑으로 통합시켜야 합니다. 누구에게 통합시키느냐? 아들딸에게 통합시켜야 합니다. 그 아들딸은 누구냐?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딸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낳을 아들딸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부터 천국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3시대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자리가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했을 망정 역사과정을 거꾸로 올라가 그 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참부모주의

그러면 천주주의는 어떤 주의냐? 참부모주의입니다. 결국 이 두 주의는 부모의 주의입니다. 이것은 우리집 주의요, 우리나라 주의요, 여러분 개인의 주의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누구의 주의가 되느냐? 아담의 주의가 될 것입니다. 그 아담주의가 바로 참부모주의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주의라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다른 주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적인 문제를 이 본연의 이상적인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참부모라는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주의와 결부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이념으로 제도화된 가정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딸은 사탄세계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사탄세계 그 누구보다 아들딸을 많이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열두 사람은 보통으로 낳을 것입니다. (웃음) 자꾸자꾸 낳아라 이겁니다. 통일교인들은 산아제한을 할 수 없습니다. 열 명 이상은 낳아야 됩니다. 내가 다 벌어 먹이겠습니다.

이미 역사적인 소원의 기준을 완결시킬 수 있는 기점이 지상 위에 나타났습니다. 나타났어요, 안 나타났어요? 「나타났습니다」 이론적으로 나타났고, 사실적으로도 나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이념으로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뒤넘이치고 자꾸자꾸 달라지고 있지요? 「예」 제1차, 제2차, 7년노정 동안 나날이 달라졌지만 여러분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기준에 떨어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멍청이들을 감투 씌우고 끌어 준 것 생각하면 분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적극적으로 고생시킬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다고 하는 사람은 손들고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들지 말아요.

성가 `하늘의 용사'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이상을 말했습니다.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라고 4절이 시작되는데, 어떤 형제를 말하느냐? 참부모의 형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상이 감정을 일원화시킬 수 있고, 국경을 넘고 민족성을 무시하고 모든 제도를 타파해 버리고 유유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한국에서 축복해 주고 일본에 가서 축복해 주고 미국에 가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동방은 무엇이 찬란합니까? 「문화입니다」 그 문화는 심정문화입니다. 무슨 심정? 천지가 소원하는 참부모의 심정입니다. 그 심정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가 `하늘의 용사'에 보면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할 때 그 온 누리가 한국만이예요?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을 빼놓고 하면 좋아요? 「아닙니다」

부모가 똑똑한 자식보다 불쌍하고 못난 자식을 더 사랑해요, 덜 사랑해요? 「더 사랑합니다」 부모가 더 사랑하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들딸은 무엇이냐? 효자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서 나는 흑인을 더 사랑합니다. 여러분은요? 「흑인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전부다 흑인들에게 시집 장가를 보낼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 중에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어디 여자들 한번 들어 보세요. 여러분은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손 안 들지만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처녀 총각들에게 시집 장가간다는 얘기를 해주면 재미있어 합니다. (웃음) 재미나요, 안 나요? 「재미납니다」

세계적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430가정을 축복해 주고 난 후에 10개국의 사람들이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이 빠지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러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 남자 만나는 것이 영광입니까, 아닙니까? 「영광입니다」 한국 여자 만나는 것이 영광입니까, 아닙니까? 「영광입니다」 그럼 만민을 영광되게 하는 그 나라가 잘 됩니까, 못 됩니까? 「잘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영광된 아내가 되겠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국가를 넘어서 상대를 취해야 되고, 여자들은 영광된 남편이 되겠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국가를 넘어서 상대를 취해야 합니다.

'통일의 용사' 노래에 담긴 뜻

우리는 가정에 양친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로 인한 탄식권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양친부모를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친부모 모셔다가 초가삼간 집을 짓고 살자고 하는데 초가삼간이 뭔 줄 알아요? 한국의 초가삼간이 뭐가 그리 좋은고? 뭣이 좋아요?

집 중에 옷을 입은 집은 초가집밖에 없습니다. 사랑채는 포근하기 때문에 어디 있더라도 얼른 가고 싶은 곳이요, 봄이 되면 잠자기 또한 좋은 곳입니다. 그렇게 좋은 곳입니다. 이런 초가삼간 집을 지을 때는 3대가 함께 살 수 있게 지어야 합니다. 3대가 살 수 있는 집을 짓지 않으면 부모가 어디 가서 삽니까? 그런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은 근사합니다.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나아가는 민족은 한국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온누리에 빛을 비춰 주니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를 길이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녕코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겠습니다.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에계」 선생님이 세계 할 때 여러분은 하나 해요. 세에계 「하나의!」, 하나의「세에계!」 정녕코 「이루리라!」 이루리라 「정녕코!」 하나의 「세에계!」 아! 재미있다. (웃음) 이렇게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내용을 알고 이제 노력해야 합니다.

1절은 심정입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은 온 인간이 사는 곳입니다. 본향이 좋다는 것은 부모와 가족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심정입니다. 모든 행복의 길을 닦아 놓은 곳이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입니다. 본향에 가서 보면 천지가 다 내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럼 한번 같이 해봅시다. 심정의 인연으로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길이 살리라」 여기에는 심정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심정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심정통일세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다음에 2절은 인격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사람이어야 되는데 타락한 인간은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요? 「예」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데는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어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등대가 나쁜 것입니까? 거기에는 흑암세계의 모든 만물들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가치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영원히 만세에 소망의 가치로서 꽃 피우는 것입니다. 영원한 만세에 소망의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온 우주에 꽃 피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3절은 진리의 세계입니다.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그러면 그 질서는 무엇을 말하느냐? 진리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말미암은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지요? 「영원을 약속하는」 참이란 영원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일시가 아닙니다. 한 시대의 혁명정부에 지배를 받고 몰락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를 드높이 세우는 진리의 푯대입니다. 이러한 푯대를 지닌 사람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사람입니다.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한다는 것입니다. 길이길이 뻗어나가는 선한 날, 선한 하루하루를 단장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날들을 단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루하루 선을 세우고, 하루하루 의를 세우면서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4절은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이렇게 볼 때 심정으로 인격을 이루고 인격을 이루려면 진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의 세계에 영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런 영광을 얻기 위해서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통일교인 전부가 이러한 내용을 갖추어 자기 자체와 일체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의 생의 목표로 삼고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용사인 것입니다. 통일용사의 노래에 이러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자, 한번 불러 봅시다.

1.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영원히 주고 받는 우리의 본향/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힘 있게!)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힘차게 정을 모아 용진하리라.

2.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우리는 자랑이라 (힘 있게!) 통일의 용사/힘차게 뜻을 세워 용진하리라.

3.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힘 있게!)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힘차게 외치면서 용진하리라.

4.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온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영차! 영차!)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힘차게 그 세계로 용진하리라.

5. (여자만!)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남자만!) 온누리 그빛 속에 형제가 되어/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다같이 힘있게!)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남자만!) 우리는 자랑이라(여자만!)통일의 용사/(남자만!) 힘차게 그 세계로 용진하리라.

기 도

아버님! 여기 모인 청소년들이 귀한 이때를 아버님과 더불어 고이고이 예비해 가지고 아버지 앞에 몽땅 바칠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해 전국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여기 모였사옵니다. 이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중. 고등학생들이 이 섭리의 길을 가는 참된 효자 효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기회에 이들이 새로운 모습이 되어 아버님의 아들딸로서 변함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까지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 시간 이후에도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식구들에게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같이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위하여 사명을 다하려고 하는 아들딸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위하여 사명을 다하려고 하는 아들딸들 위에 충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우리 민족 전체가 아버지 뜻 앞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민족을 이루어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제단을 갖출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인간들이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절규하고 있는 참상을 바라보시며 눈물지으시는 아버지의 크나큰 아픔의 심정을, 느낄 수 있고 살필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숱한 세월 동안 외로움 가운데 눈물지으셨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참다운 심정의 인연을 붙들고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애달프신 그 사정을 지금까지 토로하시지 못한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저희들은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괴로와하는 이상 자기 생명의 귀함을 절규하였고, 자기 스스로 성공을 추구하였사오나 누구도 그 성사의 결과를 가지고 하늘땅 앞에 자랑한 모습이 없었사옵니다. 또한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갈 바에는 하늘만을 숭상하고 하늘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더욱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결의하고 산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아침 외로운 무리들이 당신의 존전에 모였습니다. 나 자신이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를 스스로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나는 누구로 인해서 이 시간 여기에 왔으며, 어떠한 인연을 맺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있는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세상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처해 있는 자리를 완전히 구명해 가지고 아버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결정지어 생애 노정에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맺은 인연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큰 것이요, 무엇보다도 귀한 것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솟구치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스스로 하늘을 그리워하는 흠모의 심정, 이것이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원동력이요, 사망의 물결을 밝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방패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몸으로 찬양하여 증거적인 실체로 살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참다운 사랑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낱낱이 분석하는 데 있어서 내 얼굴은 누구를 위해서 갖추어져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내 눈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내 귀는 무엇을 향해 기울이고 있으며, 내 입과 내 코는 무엇을 맛보고 무슨 냄새를 맡기 위해 있으며, 또 내 손발은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진정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내 전체의 모습을 갖추어 아버님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을 모시며 충성하는 자신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러움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사정을 통하는 마음을 가진 한때가 저희에게 없었던 것을 탄식해야 할 자신인 것을 깊이깊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땅 위에서 산다 한들 7, 80년 또는 100년 이내의 제한된 생활권내에서 살다가 흙에 묻히게 되는 모습들이옵니다. 땅 위에서의 모습이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 땅에서 실적만을 가지고 생활적인 환경을 닦아 나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태어나 살면서 나의 사지백체가 아버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실히 알고 하늘만 의지하며 나가는 모습,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지고 결사적인 자세로 천태만상의 어려움을 헤치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고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가는 모습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슬플 때 아버지와의 인연을 생각할 줄 아는 저희 자신들이 되고, 기쁠 때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갖추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몰리고 몰린 이 역사를 대신해서 모든 어려움을 딛고 나오시는 살아 계신 아버지가 있다고, 지금 이 시간도 쉬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선의 기준을 찾고 있는 아버지가 계신다고 온 천지가 감동할 수 있도록 목놓아 호소하는 참다운 사람을 당신께서는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저희들은 이 땅의 인류와 더불어 실체로 당신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진정 그렇게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못 됐다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선의 제물을 흠모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그 심정 앞에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빛을 보여 주고 아버지 앞에 사랑스런 자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세가 얼마나 귀하다고 하는 것을 저희들은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감사하며 그런 가치 있는 모습을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아침을 맞이하여 광명한 햇빛을 바라볼 때, 아버지의 심정을 이어받기 위한 아들로서 사망의 무리들 가운데 생명의 나팔을 불고 생명의 뜻을 전해 아버지와 인연을 맺게 함으로써, 그들 앞에 구세주의 햇빛과 같은 광명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가치 있는 생애를 보내며 아버지의 실체를 찾아갈 수 있는 자리, 아버지의 아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리를 저희들은 흠모해야 되겠습니다.

가고 오는 인생 가운데 저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녀시대를 자랑하기 위해 택함받은 모습들인 것을 이제야 알았사옵니다. 사탄과 인연을 끊고 자신을 내세워 하늘과 생명의 인연을 맺어 스스로 아버지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자리, 한많은 역사 가운데 당신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자리에 동참하였다는 가치 있는 사실을 저희들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나,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진정 이 땅 위에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버님만이 걱정하시며 아버님만이 홀로 불쌍하게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불쌍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하고 당신을 대신하여 뜻을 책임질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오늘의 역사시대에 통일제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 계신 아버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입장을 체휼하지 못한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님의 은총을 받기를 원하고 아버지 안에서 은사의 삶을 살 수 있고, 신뢰 받기를 저희들은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러한 저희들은 당신의 인연을 필요로 하고 당신의 경륜을 필요로 하오니 부디 당신의 생명의 영광만이 저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초초한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러 당신 앞에 감사하는 무리가 있습니까? 아버지여, 그 자리에 찾아가시어 지켜 주시옵고, 그 자리를 붙들어 주시옵고, 그 자리를 보호하시옵고, 그 자리를 사랑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싸움터로 달려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기를 당신께 약속드리는 이들로 하여금 하늘의 정병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도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아버지, 친히 여기에 같이하시어서 이들이 하늘을 위해 일하거든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 함께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지금 저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저희는 어떠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습니까? 혹은 저희 자신, 아버지 앞에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여기에 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저희들을 바라볼 때, 아니면 역사적인 선조들이 저희들을 바라볼 때, 오늘 저희 자신의 모습이 진정 아버지를 흠모하는 심정을 갖고 있습니까? 그러한 심정을 지닌 효자효녀의 모습을 갖춰야겠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아버님만을 위하여 살겠다고 모든 어려움을 불사하는, 아버님께서 간섭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기를 그리워하는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를 보시사 대한민국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사망선 앞에서 소망의 터전을 뒤로 남기지 말아야 되겠고, 나아가 아버지의 심정 가운데 못을 박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아버님을 그리워해야 되겠고, 또 몸으로 아버지를 붙들고 충성하는 민족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저희와는 너무나 거리감이 있는 것을 느끼옵니다. 하늘이 이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생사를 결정하는 싸움의 행각을 벌어야 될 것을 생각해 볼 때, 아버님만이 홀로 서러워하고 계심을 느끼옵니다. 이러한 섭리노정을 아버님 한 분만 초초한 모습을 지니시고 가셔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패자로서 서러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가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저버리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나서는 그 걸음을 힘차게 시작하여 당신을 기쁘게 따라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지못해서 따라가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과 더불어 맺어진 그 인연을 하늘을 중심삼은 인연으로 세우기 위한 역사를 지금까지 해 오신 아버지시여, 부디 이 나라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을 기억하시어서 이 날도 깊은 심정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옵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이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소원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저희를 암흑의 세계에서 불러 세워 명령하시며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고, 나를 위하여 얼마나 바빴고, 나를 위하여 얼마나 마음 아파했느냐 할 때, 진정 저희 스스로 아버님을 모시지 못한 몸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처럼 모시는 자리에서 들어가서 아버지를 맞기 원하였던 나 자신이 아닌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족함에 사로잡혀 눈물로써 아버지를 대할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거룩한 자리에 들어가기를 고대했사오나,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한 과정적인 노정을 걷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고대하는 소원의 동산을 그리워했사오나 저희들은 억천만사의 사연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가려 했습니다. 저희들이 당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서 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억울함을 당할 때에도 아버지 앞에서 당하고, 오직 아버님을 향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아침에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방에 널려서 외롭고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무릎을 연하여 당신과의 인연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그 누구도 친구가 되지 않고, 식구의 인연조차 갖출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서 멀리 아시아의 한 땅인 한국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그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의 배경이 다르고 시대적 환경이 다를 지라도 하늘의 인연을 따라 눈물지어진 그곳에 기필코 당신이 임재하실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분부하시고 보호하여 주셨듯이 그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그들에게 빚을 지시려는 분이 아님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수고를 천배 만배 갚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이 받들지 못하거든 천상세계에 있는 선조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삼아 주시옵고, 땅을 아버지 품에 품을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우시어 한꺼번에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넓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을 스스로 감출 수밖에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앞에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내 눈과 코와 귀와 입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부끄럽사옵니다. 이러한 내 전체를 감추지 않고는 당신을 바라볼 수 없고, 당신을 기억할 수 없는 모습이옵니다. 하오니 이 부끄러운 자신을 폭로하여 한없는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를 부르게 하여 주시옵고, 마음으로는 아버지의 사랑만이 같이해 주시길 간절히 원하고 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윽한 당신의 자비를 고대하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을 깊이깊이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약한 모습을 가누며 힘 없는 손을 들어 아버지의 뜻을 붙들려 할 때, 당신이 `오 내 아들아! 내 딸아!' 할 수 있는 모습이라도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딸에게 응답해 주기를 원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답하실 수 없는 아버지의 사연이 얼마나 딱하고 얼마나 안타깝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먼 곳에 계셔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의 생활 가운데 계셔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생활 가운데 뿐만 아니라 저희의 마음 가운데, 저희의 뼛골에 사무쳐서 세포의 한 부분 부분에 계셔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위한 나 자신이 되어 원수의 세계를 쳐부술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겠습니다. 나를 세워서 사망의 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 삼아 달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아버지 앞에 절규하며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복빌어 주옵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1969년도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연두에 세운 `전면적 진격'이라는 그 표어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저희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아진 이 두 달! 저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중대한 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제 통일의 무리가 가는 길 앞에 운명이 가려지는 중대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밤이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고 낮이면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 빛과 광명을 보게 하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요, 하늘의 방향인 것을 느낄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 빛을 바라보며 깊고 놀라우신 아버지의 역사 그 자체를 찬양할 수 있고 흠모할 수 있는 동기를 삼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여지는 자연 만상이 저희들과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저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연인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찬양하고 땅이 찬양하고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에 당신의 자비를 같이하여 주옵고, 통일가에 있어서 새로운 날을 찬양하고 새로운 달을 찬양할 수 있는 이날과 이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남아진 이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이 뜻하신 뜻대로 주관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 앞에, 당신이 요구하는 그것을 위해서 고이 사라지고 고이 바쳐질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임을 지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생각해 볼 때, 부모는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으며 자녀는 자녀로서 그 부모 앞에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사회와 국가 앞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두고 보더라도 그 나라는 세계의 정세, 세계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보더라도 그 세계도 하나의 우주를 지향하는 섭리 노선 앞에 어떠한 단계적인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이 땅을 대해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책임을 수행하기에 수고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게 됩니다.

모든 책임의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아닙니다. 개인이 태어나서 책임하는 것도 그 책임의 동기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나라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인 기준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져야 할 책임의 동기도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국가형성의 동기도 국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세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동기는 전부다 하나님께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기의 기원을 찾아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니 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로 말미암아 천태만상으로 벌어져 우리들 앞에 부여된 그 책임도 하나님으로부터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책임과 일치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에게는 마음이 원하는 책임이 있고 몸이 원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원하는 책임은 무엇이냐? 이 모든 책임을 부여한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이러한 책임을 하라고 명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그 명령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성사하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어떻게 치리하느냐 하는 이런 과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살이인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개체의 마음과 몸은 매일같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과 몸이 원하는 것이 상반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사회 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혹은 자기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 가운데서도 마음이 원하는 것, 몸이 원하는 것이 상극되고 상반되는 사실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일년을 중심삼은 자기의 계획도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거쳐 가는 동안 마음이 원하는 목적을 수행하는 방향에 몸이 일치되지 못하고 상반되는 방향을 취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 되려면

그러한 개인을 합한 것이 가정이 되었고, 가정을 합한 것이 사회와 국가가 되었고, 국가를 합한 것이 세계가 되었다 할진대, 그 세계의 정세라든가 세계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귀결될 것이냐? 오늘날까지의 모든 역사적인 현상은 마음의 형상에 의해서 빚어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각자가 마음과 몸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모든 흐름과 역사도 수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 마음과 몸이 방향을 달리하여 싸우고 있는 형상을 그려 놓은 것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진정한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진정한 책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책임을 진 사람, 즉 책임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과 더불어 역사과정을 거쳐 목적한 바 결과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양심을 중심삼고 일생에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참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역사적 동기와 더불어 그 목적은 이루는 과정에서, 동기와 목적을 일치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온 천지 앞에 `나는 책임을 다했노라!'고 하며 자신 있게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는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있기 때문에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한 그 목적을 이룬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오늘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이냐? 또한 오늘 이 시대를 어디서부터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아 수습해야 될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의 동기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 인연을 따라서 태어난 우리가 그분의 목적과 우리의 양심의 방향이 일치되어서 최고의 결과에 이르게 될 때, 오늘날의 사회나 우리가 바라는 목적은 거기에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개체를 두고 미루어 볼 때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양심의 기원으로부터 양심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양심의 목적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흐름에 부딪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위인들이 이 땅 위에 왔다 갔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땅위에서 수고하고 갔다 하더라도, 그 지향한 목표가 천륜의 방향과 일치됐느냐, 즉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목적과 일치된 방향으로 갔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갔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나'라는 한 개체는 아무리 작더라도 어떤 가정의 가장이면 그 가장의 한계권내에 머무는 개체가 아닙니다. 가정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아무개의 자식이라는 한계권내에 머무는 자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개체는 비록 한계권내에서 태어났지만 그 한계를 넘고, 역사적인 한계를 넘고, 세계사적인 한계를 넘어서 최후의 책임을 완수하는 목적의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양심의 방향을 여러분은 생활권내에서 잘 느낄 것입니다.

마음의 지향성과 인간의 가치

그러면 그 양심은 어찌하여 내 자체를 이렇게 재촉하는가? 그 양심은 그런 방향을 원함과 동시에 `나'를 향하여 악하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라' `참되라' 혹은 `모든 사람이 추앙할 수 있는 중심이 되라'고 매일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몸인 것입니다. 이 몸을 여기에 백방으로 상대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백방으로 반대가 됩니다.

이렇듯 마음이 돌아가는 방향이 오른편이라면 몸이 돌아가는 방향은 그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도는 방향이 오른편이고 몸이 도는 방향이 그 반대라 할 때, 마음과 몸이 상충되는 환경 속에서 어느 정도만큼 몸을 바른쪽으로 돌려 놓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이 태어나 일생 동안 살다가 운명하기 직전에 남겨 놓을 수 있는 인격이 되고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중심삼고 역사가 흐르는 방향 앞에 얼마만큼이라도 플러스되는 내용을 남겨 놓았다고 할 때에, 그것은 그 사람이 천법과 천도에 의해서 선한 기준을 이루어 놓았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요, 책임을 수행했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철이나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은 자기 민족만을 중심삼고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만을 위하는 사람은 성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를 넘어서 천륜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역사시대를 두고 후대가 그 사상을 추앙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실질적인 생활을 통하여 계대를 이어 지상에 인연을 맺어 놓은 그런 사람이 될 때, 성현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1세기 혹은 수 세기, 혹은 수십 세기, 수천 년 역사가 그로 말미암아 인연되어진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는 역사적인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구상하고 주장하였던 거룩한 뜻이 현실사회나 온 세계적으로 얼마나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내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 소원하던 것이 그 당대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역사시대에 얼마나 책임적인 가치로써 남아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세계사를 중심삼은 그 사람의 책임을 타진해야 합니다. 그 타진의 결과는 그 사람의 인격의 비중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도 알다시피 예수는 민족에게 몰리고 쫓기다가 사라져 간 한 청년에 불과한 것입니다. 30세가 갓 지난 한 젊은이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의 생애는 비참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손가락질했습니다. 자기 부모마저도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달려가 품어 줄 수 없는 부끄러움의 자리에서 사라져 간 예수, 갈릴리 해변을 거닐던 그 예수가 오늘날의 세계적인 문화세계를 창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 그 시대에는 꿈도 못 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 결과를 세계에 남겼느냐?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책임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그 뜻, 하나님이 동조하시는 그 방향을 통하여 목적의 세계를 이루어 드리려는 마음에 사무쳐 살았습니다. 그 삶이 역사의 어떤 사람보다 훌륭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를 역사의 대표자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희생과 순교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도 남아질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냐? 우리의 본심은 이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지남철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이것을 어떠한 외적인 힘으로 제지하게 될 때, 마음은 그 세력을 뚫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소망하는 역사의 인연이 남아졌기 때문에 그 길을 추구하는 인생들은 필시 마음이 원하는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재촉하는 본연의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용을 지닌 인간을 어떤 힘으로 아무리 막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은 막아질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그 어떠한 세력을 가지고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죽음의 고개를 밟고 넘어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며 발전한 것이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종교보다도 순교의 피를 많이 흘린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이러한 본심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왜? 인간의 마음이 선의 방향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본심이 천륜의 방향에 일치하고자 하는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한, 이것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부정하는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지 본심 그 자체는 부정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오늘날 수많은 사상계, 문화계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어떠한 문화든지 종교를 기원으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종교가 마음이 원하는 세계, 마음이 가고자 하는 목적의 세계로 향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그 길을 폭넓게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또 종교가 시대 시대에 있어서 마음을 수습하는 중심이 됐고, 역사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심이 됐기 때문에 종교를 중심삼고 문화가 창건되고 발전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미루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개체를 두고 보면 개체는 지극히 작지만 어떠한 한계권내에 제한받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책임의 동기가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질 때까지, 온 세계가 한 가족의 인연 이상의 세계를 빚어낼 때까지 반드시 그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마음이 소망하는 최고의 기준

비록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창조본연의 목적이 사랑의 가정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잃어버린 인연을 재차 수습해 가지고 선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온 만민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을 중심한 인연의 고개를 넘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참된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참된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참된 종족을 찾아야 됩니다. 참된 민족을 찾아야 됩니다. 참된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참된 세계를 형성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류들이 막연하나마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세계의 평등, 만민의 평등을 부르짖으며 공히 평화와 행복의 이상세계를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상적인 참된 기원, 이상적인 참된 개인, 이상적인 참된 가정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은 모르지만 일면적인 입장에서 막연하게 추구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연한 가운데서는 성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지에서는 성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성사시키기 위한 참된 하나의 이상적인 기준이 무엇이냐? 그 기준은 몸만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나'라는 관념권내에는 몸과 마음이 있지만 반드시 마음이 중심이 돼야 됩니다. 마음을 떠난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최고로 높일 수 있는 자리, 즉 마음이 소망하는 최고의 안식의 기준에서부터 참이 나오는 것이지 이것을 넘어선 참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 나왔느냐? 마음 기준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참된 마음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참된 인연을 가지고 태어나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보면 참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된 결과의 세계를 가지기 위해 깊이 찾아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는 기필코 신(神)의 관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절대자를 중심삼게 됩니다.

그러면 절대자와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 국가를 형성하는 주권자와 국민과 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높은 자리, 그보다 더 심각한 자리에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인연은 부자의 인연입니다. 부자의 인연밖에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처할 수 있는 최고 동기의 기원지가 어디냐? 어디서부터 동기의 목적, 동기의 기원을 삼아 가지고 어떤 결과를 목적하고 있느냐? 절대자와 나와의 상대적 관계로는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우리 인간은 아들딸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 무엇이 있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 논의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이상을 중심삼고 논의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누구를 만나 같이 살고 싶은 이상의 자리를 추구하게 될 때 그 기점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발원은 부자의 인연입니다. 아버지가 없어서는 내가 번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기원을 파헤쳐 보고 우리가 존속하는 가치의 내용을 파헤쳐 보게 될 때, 아버지, 아들, 딸 그것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이런 관념에서 보니 종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럴 법한 원리에 입각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강조하고 그것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여서 우리의 생활감정과 육적인 생활 환경에서 부정할 수 없게 법도화시킬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종교가 나오게 될 때, 그 종교는 아무리 복잡한 세계권내에 있다 하더라도 천지창조의 기원에 입각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로 돌아가지 않고는 올바른 종교의 기원이 되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동기가 되어 그 인연을 따라서 역사과정을 거치고 시대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때를 맞게 될 때에 비로소 인생으로 태어난 본래의 사명과 책임을 완수한 그 결과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

그러면 그 기원이 무엇이냐? 참된 하나님, 참된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럼 참된 목적은 무엇이냐? 이 세계에 참된 이상의 길, 모든 인간이 안식할 수 있는 본연의 그 길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아들딸이 참되게 살 수 있는 가정을 이루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아들딸의 자격을 갖추어 환희의, 광명의 그날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온 천지간에 나타날 수 있는 사나이와 아낙네가 누구인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바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승리의 기준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것에 대해 세부적이고, 분석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제시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후에 새로운 문화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지니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주장하고 나온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라는 칭호를 갖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충과 효의 내용을 가진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자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그 심정에는 슬프고 기쁜 모든 사연, 즉 역사와 더불어 동반하였던 슬픈 사정이나 소원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심정을 알게 될 때는 인류의 역사적인 심정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고빗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류가 알게 될 때 인류는 비로소 참된 인생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인류는 무관심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모습을 갖추려면 역사를 주도하며 역사의 인연을 만들어 나왔던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는 책임자'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책임은 여러분 혼자 뚝 떨어져서는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배후에 울타리가 되고 터전이 되는 하나님의 심정과 역사의 인연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수습하고 책임진 하나의 중심의 가치를 들어내 가면서 싸워 나가는 데서만이 역사적인 책임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 일생에 하나님이 원하는 책임자로서의 소행이 있을 수 있지 그러지 않고는 있을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중심삼은 목적의 세계를 이루는 사람이 되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양심을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냐? 대한민국의 어떤 예법을 중심삼고 바르다고 할 수 있느냐? 그 예법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풍습과 습관은 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바르다고 하더라도 역사시대의 어느 시점에서 부정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바르다는 말 자체는 절대적인 기원, 절대적인 것을 중심삼고 보면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동등한 입장이라든가 상대적인 입장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자기 독자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역사의 종착점까지 직선으로 흘러 나가는 길이 있다고 합시다. 인간은 일생을 두고 그 길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올라가서 죽으면 선한 사람이 되고 내려가서 죽으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몸과 마음이 싸움을 하는 가운데 부대끼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대끼더라도 최후에 남아지는 문제는 몸과 마음의 싸움에서 어디가 승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올바른 양심의 기원과 목적에 얼마만큼 일치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싸워 나가야 됩니다. 그 가치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 오늘 우리의 일생 가운데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행락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제시할 때 악한 사회를 혁신하여 새로운 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동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런 목적을 두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눈이 올바르고 내 오관이 바르게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애노정의 모든 것을 그 목적에 조화시키고 일치시키기 위해 활동해야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그 가치와 목적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소망이 기필코 역사노정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내 생애의 종착점에 반드시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루겠다고 이것을 응시하면서 가는 사나이와 아낙네가 있다 할진대, 이러한 인생이 있다 할진대 이는 힘찬 인생인 것입니다. 이는 역사상의 어떠한 영웅보다도 어떠한 성현보다도 승리적인 입장에서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될 때 비로소 책임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요, 또한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짊어지고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서 세계를 향하여 주장하고 나설 때에 세계가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합니다. 개인도 좋고, 가정의 주부도 남편도 자식도 좋다는 것입니다. 다 좋다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과 일치된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기존의 주의나 사상으로는 행복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는 결국 무엇을 빚어 놓았느냐? 나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고 있는 인간입니다. 이처럼 나와 같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상충되는 인간을 합해 놓은 것이 세계의 36억 인류입니다. 이 세계는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을 합해 놓은 결과의 세계이기 때문에 싸움이 안 벌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의 싸움이 이 세계의 싸움의 형태와 결과를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오랜 역사노정에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계가 거쳐온 역사요, 또한 오늘의 현실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세계를 수습하는 데는 어떤 주권국가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마음을 중심삼고 전부가 승리할 수 있는 참된 동기와 결과의 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는 날에는 세계의 모든 문제가 풀려 나갑니다.

그러면 세계의 싸움을 누가 말릴 것이냐? 오늘날 세계의 어떤 주의나 사상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중심삼은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사람의 마음이 자기로부터 시작됐어요? 그렇다면 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됐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본주의를 중심삼고 세계는 하나될 것입니다.

태초에 인류의 시조가 자기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태어나야 되겠다고 해가지고 태어났습니까? 인간은 어디까지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주체적이라고 아무리 큰 소리치고 우겨도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본주의 사상의 종말은 부정적인 결과에 봉착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문명이 전부 좋다고 주창해 나오던 것들을 부정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금 미국에서는 히피족들이 난리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선물입니다. 천륜을 어긴 악에 대한 보응입니다.

그러면 부정적 세계의 종착점을 바라보는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본주의 사상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질제일주의, 물질만능주의로도 안 됩니다. 양심이 인간을 존재하게 한 동기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도 그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기원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세기 말엽부터 시작된 문예부흥 당시의 사상이 인간을 신(神)의 이름권내에서 박탈하기 위해 공세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역사를 거쳐 오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신(神)은 죽었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살았느냐? 신이 죽었다면 인간은 망해야 합니다. 신이 죽었다면 인간은 살았느냐? 신이 죽기 전에 사람이 먼저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송장 떼거지들이 신은 죽었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제도에서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인본주의 사상과 유물사상, 공산주의 체제로는 인간의 행복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인간의 이상과 해야 할 책임을 아무리 수행하여 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흘러갑니다. 부정당해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마음앞에 몸은 언제나 부정당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몸을 위주로 한 것은 부정당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는 신(神)을 부정하고, 양심을 부정하고, 인격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을 중심한 논리법도내에 사람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논리나 이론을 지배하게 되어 있지 얽매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세계는 이론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론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은 어떻고 어머니의 사랑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상적인 사랑이 이념에 흡수된다면 그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이론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만들어 놓을 수 있어요?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목적 자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이론을 능가하여 세계적인 정상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여기에서 비약해야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비약해야 되겠습니다. 어떻게 비약해야 되느냐? 수직으로 비약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의 역사로는 안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렇게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사라지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계가 요란하고 혼란되더라도 각자의 결의가 문제입니다. 절대적인 양심의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천년을 내려온 선조들의 양심의 방향이나, 몇 억천만 년 후의 후손의 양심이나 그 방향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혁명할 수 있어요? 그것을 혁명할 수 있는 주의 주장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은 혁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유물변증법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양심세계에 혁명이 있어요? 사랑의 세계에 혁명이 있어요?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혁명할 수 있어요? 사랑을 투쟁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엉터리 사상이 오늘날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약하고 부족한 인간 자신을 반성하며 통회하는 일이 벌어져야 됩니다. 이러한 세계를 돌이켜 새로운 목적지, 새로운 이상의 본향을 향하여 힘차게 앞서서 출발할 수 있는 사상이 있다면 그 사상은 세계를 재패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무슨 책임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상세계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참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이상세계에 거짓 사랑에 있으면 되겠어요? 이상세계에는 어떤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참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참된 사람, 즉 참된 아버지, 참된 어머니가 있어야 됩니다. 또 참된 형님, 누나, 참된 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아버지와 참된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참된 아버지와 참된 어머니를 중심삼은 참된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이들이 없어서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성경 66권의 난문제를 전부다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중심으로 하였느냐? 참된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때려 보세요. 안 망합니다.

참된 가정을 찾아가려면 그 참된 가정의 중심이신 참된 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참된 아버지가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분이 참된 아버지시라면 그 참된 아버지를 모셔야 됩니다. 그런데 참된 사랑을 못 했습니다. 참된 사랑을 못 했으니 참된 생활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마음의 동기가 되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의 제일 원천이 되는 분입니다. 우리 이상의 기원이 되는 분입니다. 이 기원을 빼고서는 결과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빼놓고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참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기준은 어디냐?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 이 땅 위의 인류입니다. 그런데 그 고아 앞에 잃어버렸던 부모를 찾아 주게 되면 그의 환희의 함성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세상을 정복하여 억만 거금을 손에 쥔 명장의 승리는 이 기쁨에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 어머니 앞에 가지 않고는 참된 자녀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이 사실적인 하나님이었느냐? 관념적인 하나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적인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생활을 위주한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됐습니다. 생활권 밖에서 하늘나라를 조성해 온 하나님은 됐지만, 심정세계에서 우러나 가지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하나님은 못 됐습니다. 이처럼 막연하게 하나님을 추구해 나왔기 때문에 현실적인 과학세계에서 종교가 추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말로는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새로운 분야를 제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다시 살 길이 어디 있느냐? 이것을 신앙노정에서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역사노정에서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절대성을 지닌 긍정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역사세계에 승리의 가치를 더할 수 있고, 승리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타락 인간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

그런 관점에서 참된 아버지가 가는 길 앞에 여러분은 어떤 참된 일을 일생 동안 그려 놓을 것이냐? 아버지의 일을 실천해야만 참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도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동작이라든가 움직이는 작용은 반드시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는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시작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과가 나빠지길 바라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시작이 되었으면 동기보다도 플러스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동기 없이 결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목적이 이루어지면 동기와 결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플러스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세상에 있어서 여러분의 활동이나, 혹은 물질세계에 있어서 화학작용과 물리적인 현상 등 전부다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손해보기 위해서 운동하는 것은 없습니다. 가만히 두고 보십시오. 손해보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가.

여러분! 여기 통일교회에 무엇을 하러 왔어요? 대답해 보세요. 손해 보기 위해서 왔어요?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 활동하는 것이나, 혹은 일은 없지만 아침에 일찍 밥을 먹고 명동거리에 나간다 했을 때 손해보기 위해 그럽니까? 여러분 자신이 오늘 나가면 손해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암만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갑니다. 마음이라도 플러스되어야 나가는 것입니다. 전부다 그렇습니다. 손해본다 하는 마음이 있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손해보는 곳은 목적과는 너무나 다른 곳입니다. 그 말이 뭐냐? 손해보는 것은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려면 반드시 작용을 하면서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손해보게 되면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종교적인 논리로 보면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왜냐? 종교는 이 세상을 위해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손해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나에게 별의별 욕을 많이 합니다. 문선생이 빨리 망하라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었으면 죽었지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기는 내가 왜 망해! 인류 역사는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오면 그런 무리를 깔고 뭉개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돈의 8촌까지 모두가 반대하여 원수가 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탄압해 보십시오. 일본이 들고 나올 것이요, 미국이 들고 나올 것입니다. 많이 탄압하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그들을 칠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천륜이 여기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상은 없습니다. 이길을 가기 위해서 과정을 통하고 있는 사람들, 인생의 귀일점을 향해 가며 이 길을 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벌을 준다면 하나님은 망합니다.

예수도 그런 관점에서 죽어갔습니다. 아무리 쳐도 치는 사람이 결국은 말 없이 정복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큰소리 치더라도 걸려 들어가게 됩니다.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그만한 이익을 봤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알지 못해 그러니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만큼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남들은 전부다 손들고 말았지만 예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역사시대에 나타날 큰 부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벗고 거지새끼 되고 후손이 자기 이상의 비참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심정으로 동정할 수 있었고 나눠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세상과 전부다 격리되어 있습니다. 종교, 즉 신앙생활에 들어가면 물질과 격리돼야 됩니다.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요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완전히 부정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부정은 이익이에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모순이 있는 것 같지요. 그렇지만 그 반면에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종교는 이것을 찾아야 됩니다. 이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외적이 면을 완전히 청산짓자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식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가정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숭배하고 있는 그 나라의 어떤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그 무엇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과 권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참을 중심삼고 또한 가치 문제를 중심삼고 미래에 제일 가치 있는 것, 제일 위대한 것을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이 타락인간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인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길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을 도의 길이라고 합니다. 도(道)의 길은 사람을 중심삼고 가는 길입니다. 도에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있습니다. 천도와 인도를 합한 것이 도입니다. 천도의 길이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인도를 버리고 천도를 따라가지 않고는 인도도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인간이 천도를 버리고 타락함으로 인하여 인도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본연의 천도로 돌아가야 됩니다. 천도로 돌아간 다음 인도를 합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의 인도를 종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에서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앞으로 이것을 통일교회 신도들로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네가 네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네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네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2천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유대교를 믿으며 선민권을 자랑하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독재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천리에 입각한 말입니다. 공언(公言)을 한 것입니다. 그 공적인 말이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말을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확신해야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교의 능력이 있습니다. 손해보는 길은 안 가는 것입니다.

백만 원을 벌 수 있다면 난데없이 처음 만난 사람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해도 믿고 줘야 됩니다. 그렇잖으면 계속해서 백만 원을 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확실성이 80퍼센트 있다 하면 다 줘야 합니다. 일생 동안 천신만고 끝에 모아 둔 돈이라 할지라도 한꺼번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이상 하나님의 뜻 앞에 가까운 내용을 제시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가 오늘의 20세기 종말기에 있어서 최고의 문화세계를 움직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앞에 기독교가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기독교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영계에 가서 혼자서 전부다 합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러한 길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심성을 넓히고 인격을 높은 자리로 끌어 올려야 되겠습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세계적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세계로 전개시키기 위해 죽음의 고개도 개의치 않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보람 있는 생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는 그 길에는 폭풍우도 몰아칠 것이요, 태풍도 불어올 것입니다. 원수들의 화살도 날아올 것입니다. 맞아 죽는 데는 정면으로 맞아 죽어야지 비겁한 자리에서 헛되이 맞아 죽지는 말아야 됩니다. 죽더라도 제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역사에 빛날 그런 죽음길을 가야 됩니다. 이런 모습이 지혜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어제 어떤 아주머니와 얘기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그 영감이 뜻을 알고 나서는 죽을 날을 미리 알고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해 왔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이 고행을 안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한 모금씩만 마시며 자기의 몸뚱이의 살을 빼고 꺼풀만 남게 해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세상사람 같으면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 허둥대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참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개를 앞두고 착착 환경을 정리하며 뜻깊이 엄숙히 처리하는 그 모습, 내일의 터전을 준비하며 맞을 수 있는 그 자세는 존귀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가 되라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힘차고 진지하고 멋지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백만장자가 되어서 벤츠 같은 차를 타고 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옷을 입고 명동거리에 바람피우며 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초췌한 모습이라 해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만국에 최고의 결과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의논하고,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한 동지가 되고 그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참다운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연결시키고, 국가에 연결시키고, 세계에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사명 분야는 천태만상입니다. 사명이 작으냐, 크냐? 사명이 크다고 해서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입니다. 한 집안에 아들이 아무리 소용이 있다 없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집의 아들입니다. 아들이 성공하면 성공한 것이 누구냐? 결국 남이 아니고 자기 가족입니다. 형님이 성공하는 데 나빠할 동생이 있습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있어도 형제가 땅을 사는 데 배 아프다는 말은 없습니다. 가인적인 형제가 되기 때문에 사촌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아벨의 형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촌이 되는 것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는데 배가 아프다는 말은 있지만 형제가 논을 사는데 배가 아프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높아져도 내 형이요, 잘 되도 내 동생입니다. 동생이 잘되면 형님은 뒤따라 잘되는 것입니다. 모두다 한집안 식구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품에서 나눠 받으며 그 부모의 슬하에서 행복한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어떻게 효도하며 잘 사느냐가 문제이지, 논밭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 앞에 효도하며 그 심정적 인연을 어떻게 지니고 사느냐가 문제이지 세상에서 출세하여 대통령이 되고 뭐가 되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 앞에 자녀의 심정을 갖추고 사는 것이 복입니다. 심정 세계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위해야 되고,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을 위해 주어야 됩니다. 또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더욱 위해 주어야 됩니다. 결국은 자기를 대신해 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형님이고 나는 동생입니다. 내 대신 남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그를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범위는 다르겠지만 개인으로서 하나님이 제시한 결과의 세계를 이루는 과정에 있어서 절대 마이너스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마이너스시킬 때는 어디로 가요? 지옥 갑니다. 하나님의 뜻앞에 하나님이 가는 길 앞에 하나님도 이익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시킬 때는 떨어져 나갑니다.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플러스시킬 때는 천당 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것은 공갈입니다. 있기는 있는데 선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협박입니다. 불신하는 악당들에게는 공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무엇을 하나 연구해 내야 되겠습니다. 이 지상에 제일 무서운 공갈이 무엇일까? (웃음) 공갈을 쳐서라도 올바른 길을 가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망하게 하면 천벌을 받지만 흥하게 하면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농담이고 여러분들은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됩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면 아버지로서 책임자가 되어야 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 책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책임자가 되어야 되고, 교회면 교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고생하라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가정은 사회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공식화되어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운을 타야 됩니다. 가정은 사회의 운을 타야 되고, 사회는 국가의 운을 타야 되고, 국가는 세계의 운세를 타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근대화되고,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세계의 운세 앞에 처진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전역을 거의 다 점령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일본은 천운을 타지 못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는 세계 운세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세를 중삼삼고 국가를 움직여야 합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미국이 주장하는 정책이념도 세계 운세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의 운세가 치고 갑니다. 두고 보라구요. 이제 한3, 4년만 두고 보십시오. 아시아 정책에 실패했다는 역사의 공정한 심판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닉슨 대통령이 지금 책임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의 이 문선생과 의논한다면 좋을 텐데, 책임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을 위주로 한 세계가 될 것 같아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태평양을 끼고 있다고? 앞으로 멕시코 주변이 공산국가가 되어서 미국의 멱살을 잡게 되면 미국에서 월남전의 재판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내에 됩니다. 10년은 무슨 10년, 한 5년만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공산주의 지도자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5년이 아니라 당장에 내년부터라도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가 미국에 가서 많은 저명인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정곡을 찌르니 그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지금도 쿠바한테 골탕먹지 않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지금 동서가 작전을 해서 미국의 모가지를 딱 매서 당기고 있습니다. 월남 전쟁에서 후퇴한 미국은 죽은 시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렇게 큰소리만 치다 어떡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속이 썩어 있기 때문에 도려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사회의 내부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몇 해 후에는 미국에 가서 싸워야 될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은 세계를 살리기 위한 책임을 하여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한국을 중심해서 아시아와 서구 문명권까지도 밟고 넘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지배한 어떤 문화적인 배경을 못 가졌다고 탄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및 그 이후의 세계에 절대로 필요한 사상적인 이념을 가진 종족이 있다면 그 종족은 세계를 주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그런 종족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지금 시련을 당한다고 해서 탄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천대받는 다고 낙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시련 고통을 빛낼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맞이하게 될 때, 즉 새로운 시대에 찬란한 문화의 기원이 나타나게 될 때, 그 시련 고통은 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방패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가 통일교회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혹독한 반대는 몇 십년 후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말 없는 양심의 폭탄이 되어 던져질 것입니다. 원자탄이 되어 던져질 것입니다. 한번 듣게 되면 가슴이 터질 듯이 악에 대한 적개심을 가질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시대는 물론 현실을 넘어 미래에까지 남아질 수 있는 좋은 생명의 원천이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야 남아진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책임을 해야 하느냐? 여러분이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목적하는 방향을 달리하지 말아야 됩니다. 가정의 주부면 주부로서, 혹은 사회의 직장인이면 직장인으로서, 한 나라의 위정자면 위정자의 입장에서 천적인 방향에 일치하여 공리에 따라 책임을 수행해야 됩니다. 한 나라의 위정자가 그러한 입장에 설 때 그 나라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한국이 그럴 때는 미국이 물러가고 공산당이 물러갑니다. 다 물러가는 것입니다.

미국도 후퇴하고 민주세계도 후퇴합니다. 앞으로 민주세계가 그냥 안 남아집니다. 두고 보라구요. 야당들이 민주주의를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남아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남미를 보면 전부다 새롭게 군사정권을 중심삼고 민족 위주한 정책수행을 하는데, 그것은 일국의 발판밖에 안 됩니다. 미국을 반대하고 나서려 하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전부다 민족 위주의 이념권에 휘몰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에 대한 참뜻을 알고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공산주의도 안 됩니다. 그러니 결국 자기 민족주의적 관념을 몰아내야 합니다. 세계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세계주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민족주의 관념을 중심한 세계주의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버리고 세계와 살아갈 수 있고, 민족보다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촉구할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을 대한민국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서 세계를 살리겠다고 나서도록 만들 수 있는 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 사상과 주의가 나오면 그 사상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각오하고 세계를 위해 봉사하다 보면 결국 세계를 구하게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 식구들, 특히 청년들은 고생해야 됩니다.

하나님주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그 책임을 다하라

민주주의는 세계를 향해 넘어갈 장벽 앞에서 국가주의로 빠져 못 넘어 갔으니 졸장부들의 말로가 됐습니다. 공산주의도 그렇습니다. 국제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이제 국가적 공산주의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씨족, 종족적 공산주의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교조주의란 말이 자꾸 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세계적인 이념의 장벽을 헐어 버리고 세계를 위해 자기 민족을 희생하고 밑거름을 삼을 수 있는 주의가 나타나면 그 주의가 바로 하나님주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계를 위해 제일 가까운 아들딸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금까지 기독교가 피의 제단을 쌓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기원을 갖추어 놨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주의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어떤 정책에 수반되고 거기에 포함된 사나이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권 혹은 공산주의권내에서 사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이러한 주의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에 종말이 오더라도 세계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심정을 지니고 세계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의 입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뜻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에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오늘 통일교회가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방대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역사를 수습해야 할 책임을 현실에서부터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이념을 중심삼고 더더욱 현실적인 어려운 장벽을 밟고 넘어가서 하나되어야겠습니다. 몸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은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늘과 마음과 몸이 일치된 그 사람에게는 평화와 행복과 이상이 정착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기원이 되기 때문에 그 종족도 필시 선의 결과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내적인 동기가 선의 결과로 나타나서 하나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때를 형성하여야 이상세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 그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을 알아서 개체면 개체, 가정이면 가정, 교회면 교회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일치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기 도

아버님! 한없이 부족한 저희들이오나 당신의 무한한 심정을 헤치고 들어가 영원히 안식하고 싶사옵니다. 아버지, 내정의 세계에서 발버둥치다가 피곤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잠이 들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저희들은 흠모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남의 아버지를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가운데는 의붓아버지도 있고, 남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런 명사는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명사입니다. 참아버지, 뼈에 사무치고 살로 느낄 수 있는 그 아버지를 부르고 싶습니다.

당신이 슬플 때 저희도 슬픈 마음을 가진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 대답하는 아버지를 모셔야 되겠습니다. 또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명령하실 때, 그 명령을 따라 생명의 교차로를 지나서라도 갈 수 있는 아들로서의 고귀한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 자리까지 저희들을 수습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오늘날 이 모든 사악된 환경에 있어서, 혹은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문제의 나라라는 것을 저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그런 날이 기필코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당신께 버림받아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늘땅 앞에 새로운 운동을 벌였던 곳이 통일교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눈물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말 그대로 비참한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저희들이 외로울 때마다 언제나 먼저 찾아 주셨고, 슬플 때마다 먼저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붙들고 있는 아들과 딸이 있기 때문인 줄 아옵니다.

당신의 그 은사는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영어의 몸이 될지라도, 매를 맞아 피를 토하여 쓰러질망정 당신을 염려시킬까봐 자기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탄식하며 몸부림쳤사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보다 더 가슴이 메어지시면서도 그 아픔을 참으며 나는 괴롭지 않다고 오히려 저희를 권고하셨사옵니다. 당신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외적인 행복을 찾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과정에 패자의 낙인을 찍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남아진 저희들, 저희들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사연을 품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에 세워진 것을 무한한 가치로 알고 있었사옵니다. 또한 지난날 역사에 슬픈 사실을 한탄하지 않는 무리가 된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옵니다. 도리어 그것을 감수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의 슬픈 역사노정에 심정적인 동반자가 되었고, 내정적인 깊은 인연을 나눌 수 있는 영원한 인연을 가지게 되었고, 사연을 나눌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옵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통일의 역군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이요, 힘이요, 행동이요, 가치입니다. 아버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이 무한한 가치를 역사에 길이 빛낼 수 있는 모습을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들인 모든 정성이 아직까지 부족하옵니다. 저희가 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부족하옵니다. 싸움터에서 극복하여야 할 사연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은 죽음에 또 죽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성의 끝을 찾아내고 충성하려는 도리의 근본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스스로 안식하겠다고 찾아오실 수 있는 행복의 자리, 충효의 자리를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런 자리를 당신은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옵나이까?

그 자리까지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도 그 세계를 염원하고 내일도 그 세계를 염원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전진하는 힘찬 모습, 힘차게 행군하는 늠름한 모습을 삼천리 반도의 삼천만 민족 앞에, 보이고 세계만방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이 기필코 와야만 되겠습니다. 원수와 인연되어진 세계를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그날을 기필코 하늘과 더불어 이루어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사명이 저희에게 있음을 작자가 명심하게 하여 주옵소서.

죽어서는 안 될 자신의 가치를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살아 남아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살지 않으면 안되고, 내일의 희망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 나가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을 스스로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많았던 역사의 슬픔을 밟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있는 것을 쳐부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격파하기 위해서 정면으로 충돌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참다운 효의 모습, 충의 모습을 지닌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을 맞이했사옵니다. 이제 맞이한 이달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슬픔을 자아내는 달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달이 아버지께 슬픔의 결과를 돌리는 달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달로 말미암아 올해를 자랑할 수 있는 해로 장식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의 그 세계는 저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초췌하고 보잘것없는 저희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향하여 무한한 기대를 하고 있사옵니다. 그 기대하는 함성을 듣고, 성원하는 역사적인 선조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내일의 승자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가냘픈 저희 모습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모습들이 힘이 없거든 힘을 가해 주시옵고, 낙망하였거든 격려해 주시고 내일의 소망을 북돋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자리를 흠모하고 있는 남한 각지의 식구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통일의 역군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소원성취의 한날이 기필코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지 않으면 오게 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결의에 찬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아들딸로서 자신을 가진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날의 영광과 미래의 영광, 이 세대와 후세의 모든 영광이 당신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신께 귀결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씀 요지]

여러분이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은 자기 위치, 전후관계, 가인 아벨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과 내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 제1대상이요, 내 마음과 내몸이 하나되는 것이 제2대상이요, 하나님과 자녀가 하나되는 것이 제3대상입니다.

복귀역사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봉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의 근본구조를 보면 부자지정(父子之情)과 형제지정(兄弟之情)이 있습니다. 부자지정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요,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로 종적인 사랑입니다. 형제지정은 형제간의 관계요, 식구들과의 관계로 횡적인 사랑입니다.

복귀섭리의 단계적 공식을 보면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복귀, 가정을 중심삼은 국가복귀, 국가를 중심삼은 세계복귀로 되어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을 누구를 중심삼고 좋아하느냐? 제일 슬픈 것을 무엇을 중심삼고 슬퍼하느냐? 주체를 중심삼고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노정이요, 제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의 노정입니다. 1970년 이후는 모심의 생활이 문제 됩니다.

대상은 주체 앞에 절대 복종하여 완전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하늘 대신 주고, 나라 대신 주고, 부모 대신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소생이요, 왕은 장성이요, 하나님은 완성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주고, 나라를 위해서 주고, 세계를 위해서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3대상 원칙입니다.

걸을 때는 남자는 바른발을 먼저 내딛고, 여자는 왼발을 먼저 내디뎌야 합니다. 어디 가서 앉을 때도 남자는 동쪽에 앉고, 여자는 서쪽에 앉아야 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밥상을 놓는 것, 옷을 거는 것 등 모든 일에는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준을 넘어서야 천국이 오는 것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의 첫 해의 표어는 `생애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였는데, 그것은 사탄을 완전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두번째 해의 표어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대신의 입장에서 주체가 되라는 뜻입니다. 세번째 해의 표어는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였는데 그것은 사위기대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해부터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였는데 그것은 사위기대를 완성해 가지고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 정면적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자녀가 필요합니다. 이 정면적 주체와 하나됨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입장을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1970년도까지는 아들딸을 찾아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주의(主義)가 나타나지 않고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2차 7년노정에는 국가복귀를 해야 하고, 제3차 7년 노정에는 세계복귀를 해야 합니다. 1980년대는 우리의 사상으로 세계가 화합니다.

교회가 망하고 흥하는 것은 신앙심과 경제기반에 달려 있습니다. 못해도 1970년도 6월까지는 공장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일본에 대해 관심이 대단히 큽니다. 그래서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특별 지시

1. 공식 예배 참석을 엄수할 것이며, 가정심방 및 헌신예배를 행하기 바랍니다.

2. 신입식구 접대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3. 대화에 있어서 경어를 사용하기 바랍니다.

4. 가정 싸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5. 오랜 식구들일수록 개인 교섭을 자주 가져 상대방의 말투나 동작만 봐도 상대의 현재 사정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6.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민을 미칠 듯이 사랑하시는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을 미칠 듯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가정, 국가, 세계에 필요한 사람이 인격자입니다.

[기 도]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통일의 자녀들과 이 민족과 이 세계 위에 내려 주시옵소서.

흐르는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지만 그 가운데 기필코 이루어야 할 복귀의 뜻을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내일은 자녀의 날이옵니다. 이날은 아버님을 위시해서 한국에 있는 자녀들과 세계에 있는 자녀들이 수많은 민족에 대하여 수고했던 것을 기념하는 한날이옵니다. 땅 위에서 속죄함을 입을 수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해방받는 한날로 기념할 수 있는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신 은사에 대해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날이 나타날 때까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자녀의 모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역사의 고빗길에서 홀로 슬픔을 당하시면서 참아 오신 아버지의 노고에 땅 위에 있는 모든 만민들이 머리를 숙이고, 그 고마움에 몸을 굽혀 경배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한마음으로써 접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사오니,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가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때가 요구하고 있는 이 시점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에 일치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곳은 온 만민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저희들은 선각자가 되어 모든 싸움과 책임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내 일신을 아끼지 않고 정비해서 달려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날 아침에서부터 저녁까지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날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 찬양을 돌리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직접 동참하시어 그들에게 생명의 불길을 붙이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삼천리 반도 위에 역사적인 새로운 기원을 마련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지내고 내일을 맞이하는 이 한 때가 시점이 엇바뀌는 중대한 한 때가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그리워하고 이곳을 향하여 경배하는 외국에 널려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을 내려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들을 땅에 중심삼고 해원성사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해방의 은사를 받은 만민이 아버지 앞에 충효를 돌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시간들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는 길, 더욱이나 자기의 생명이 위협받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는 길은 피하고자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길을 피하려 할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인생길

오늘 한때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길이라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생의 행로를 고해라고 한 데에는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타락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 인간에게는 그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원한의 과정을 어차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타고 났기에 수천 수만 년의 역사과정을 거쳐서라도 그것을 넘지 않으면 그 한의 길을 우리 앞에 영원히 남아있게 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시점에서 하루의 생활을 살펴 볼 때, 어떤 사람은 하루의 생활을 의미없이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그 하루의 생활을 일년의 생활을 좌우할 수 있는 귀중한 것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하루를 생사의 문제를 걸고 뒤넘이치는 심각한 자리에서 담판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날을 맞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연고로 그 순간부터 우리 인간은 행복의 요건을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불행의 요건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가 행복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행의 세계를 박차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느누구도 행복한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만이 불행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함께 불행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행복의 곳을 찾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행복해 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나 인간이 같은 입장이 되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도 역사과정을 거치며 현 시점까지 찾아온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험한 길 중의 험한 길이요, 세상의 인간 그 누구도 원하지 않고 또 가고 싶어하지 않는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런 고로 타락으로 인하여 남아진 이 길은 그 누구도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의 길을 가는 아담 해와를 버려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는 입장에 계셨기에, 이 천지는 소원을 한날을 소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고 심각하고 그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 험한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험한 길 자체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험한 길을 넘어가야 할 목표가 있고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목표와 사명을 이루기 위해 거기에 배치되는 모든 요건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과정에 복귀의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이 넘어야 했던 험한 고개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넘기 어려운 험한 고개를 넘어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그 고개를 넘지 못하셨다면 구원섭리니 복귀섭리니 하는 명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명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인연된 환경을 끊을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인연된 환경을 끊고 넘어가는 것이 험한 고개 중의 험한 고개요, 가기 어려운 길 중의 어려운 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단연코 넘으신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인류역사상에 하나님과 다시 상봉할 수 있는 날이 남아졌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인류는 하나님과 격리되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 자꾸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책임질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 인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개척하고 가라고 하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배후에서 우리 인간의 갈 길을 밀어 주셨지만, 그런 노정에 있어서 인간은 번번이 하나님께 가중된 슬픔을 남겨 드리는 역사적인 노정을 거쳐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를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복귀하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기필코 형으로 모셔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고개가 가인에게 있어서는 넘기 어려운 험한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오늘날 인륜 도덕으로 볼 때 가장 넘기 어려운 길입니다. 그렇지만 가인의 입장에서 아벨을 모시고 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 험한 고개를 못 넘었기 때문에 역사는 되돌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또다시 과거의 슬픈 길을 밟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에 있어서 가인이 넘어야 할 험한 길을 넘지 못했기에 인류의 복귀섭리역사는 아담으로부터 10대인 노아까지 연장되어 내려왔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인류를 대신해서 또다시 험한 고개를 넘어 가야 했는데, 그 고개는 가인이 넘어가던 고개보다 더 험한 고개입니다. 노아 가정에서는 가정 전체가 험한 고개를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개를 넘어가는 데는 아버지 어머니만이 갈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일원인 자녀들도 일치단결해서 그 길이 가정적인 시련이나 고통, 가정적인 환난의 길일지라도 기필코 넘어야 할 천적인 사명, 인간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이루어야 할 노아가정이 험한 고개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뜻이 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이 일을 재차 그 후손을 통하여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노아에서부터 4백년 동안 고역의 노정을 거쳐서 아브라함을 세웠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험한 길을 참고 넘으려 하던 역사적인 노정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넘어야 했던 험한 고개

그러면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볼 때, 아브라함이 가는 길이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관계맺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그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모든 인연을 그냥 그대로 환영하고, 인정하는 자리에서 인연맺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는 그와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인연을 끊으라는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친척과 아비가 살고 있는 본토인 갈대아 우르에서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타향살이의 길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는 기준만큼은 못 될지라도 자신이 그러한 한때를 반드시 거쳐 가야 한다는 내심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천명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집시의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는 말할수 없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험한 고개를 앞에 놓고 과거의 인연을 아쉬워하고 남겨진 자기의 인연을 중심삼고 슬퍼했더라면, 제1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뜻 앞에 나서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그 길 앞에는 험한 고개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험한 고개를 넘지 않고서는 결코 하늘을 찾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동기와 기원은 어디에서 생기느냐? 아브라함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런 길이 생겼기에, 그 험한 길을 가야 할 운명이었다면, 거기에서는 자기의 잘못을 자극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되는 결의를 가지고 험한 길을 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자신으로 볼 때에는 그런 험한 고개를 넘어야 할 아무런 사연이 없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저지른 역사적인 죄과나 혹은 과거에 저끄린 허물이 없는 입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아브라함은 제1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평탄한 길을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험한 고갯길을 가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 이것은 아브라함 자신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시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조의 모든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후손으로 태어난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에,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선조가 저끄린 험한 고개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밟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하늘로 돌아갈 수 없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번번이 공식과 같은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이 고개를 넘어가라고 명령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부모를 버려야 되고 사랑하는 형제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물은 물론이요, 자기가 그 땅에서 소원하여 인연으로 남기고 관념으로 남겼던 모든 사연을 일소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새로운 인연, 즉 새로운 부모와 새로운 형제의 인연 속에, 새로운 마음, 새로운 이념을 갖고 그런 환경을 밟고 넘어서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인간으로는 갈 수 없는 어려운 고빗길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것을 일소하고 고향산천을 뒤로 하고 황무지와 같은 광야를 향해 떠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복귀섭리의 한때를 맞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어렵고 험한 길이었지만 그 고갯길을 무난히 넘을 수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역사적인 새로운 기원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험한 고개를 넘은 야곱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도 아브라함에게는 하나의 험한 고개였습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 야곱이 에서와 싸우는 것도 험한 고개였습니다. 아담 가정이 하나님께 한을 남겼기 때문에 아담 가정을 수습하여야 할 야곱에게 있어서는 아브라함, 이삭 등 선대에 저끄린 모든 전부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형인 에서를 굴복시켜야 할 운명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 에서도 아우인 야곱에게 굴복해야 하는 것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즉, 야곱에게도, 에서에게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이런 험한 고개를 어떻게 넘어가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21년 세월의 광야노정은 참을 수 없는 시련의 길이요, 참을 수 없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험한 길이 앞을 가로막는 입장에 있더라도 하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험한 길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자기의 모든 주의를 거부하는 환경에 처했어도 그런 것을 밀고 나설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란광야와 이스라엘의 경계선을 넘을 수 있었던 하나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와 같이 사무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시련의 고빗길이 닥쳐 오고 험한 모든 사정이 밀려왔어도 그것을 무난히 넘을 수 있었고, 악한 세파나 사탄의 계교가 때와 환경을 따라 밀려왔어도 무난히 넘을 수 있었습니다. 내외적인 면에서 어떠한 지배나 침해를 받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의 기반을 갖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런 시련의 날들이 자기 마을과 자기 고향을 찾게 하는 연단이고 더 나아가 소망하는 이스라엘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연단이라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그 시련의 날들을 이기고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런 시련의 날들을 이기고 넘지 못했다면 이스라엘 선민권을 갖고 나타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선민권을 찾기까지는 21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21년 동안 거쳐오는 그 길은 한의 길이요 시련의 길이요 험한 길이었지만, 야곱은 그런 길을 개의치 않고 이스라엘을 추구하는 하늘을 추구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선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야곱은 약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생활 가운데 있어서 그는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도 당하지 않은 슬픔을 당했습니다. 하늘로 돌아가는 복귀도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내심으로 굳게 다짐하였기에 환경에서 부딪치는 어려운 고빗길을 무난히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1년 동안 첩첩이 가로놓인 험한 태산준령도 넘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편에 서서 출발한 그날부터 야곱의 신념을 상속받고 야곱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혹은 가정적인 전통의 인연으로써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생애노정을 거쳐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과정에서 넘어 나왔던 험한 고개, 혹은 야곱이 넘었던 험한 고개가 그 후손들 앞에 또다시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고개를 넘은 가정 앞에 종족의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이요, 민족의 고개를 넘은 하나의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국가의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이요, 국가의 고개를 넘은 이스라엘 나라 앞에는 세계의 고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복귀의 길에는 더 크고 험한 고갯길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연의 역사를 연결시켜서 국가의 기반을 중심삼고 세계의 무대로 갈 수 있는 하나의 태산준령을 넘어가서 만민의 해방의 기치를 들고 이 땅위에 새로운 천지를 이루어야 할 사명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사상을 주어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 나가게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고개를 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가 넘어야 할 험한 고개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와 완전히 하나되어서 세계적인 험한 고개를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4천년 동안 그 고갯길을 넘기 위해 준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개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출발도 해보지 못한 채 일시에 후퇴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공로를 완전히 무산시키고 완전히 소비시켜 원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가 발전하고 진전하고 승리해 나오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십자가의 고개, 가정적인 십자가의 고개,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종족, 어떠한 나라이든 기독교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피 흘리는 싸움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걸어 놓고 최후의 험한 길에서 판가리 싸움을 해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기독교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무리 몸부림쳐 나왔다 하더라도 영계와 육계를 통합한 자리에서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영계로써 육계를 통합시켜야 하는 크나큰 고개를 앞에 놓고 이 길을 타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고개를 넘고 난 후에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새로운 이스라엘 종족과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여 새로운 세계적인 무대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 남아진 험한 길 중의 험한 길을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땅 위에 나온 통일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영계와 육계에 남아있는 험한 고개를 타개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계를 중심삼고 육계를, 하늘을 중심삼고 땅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복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땅 위의 여건에 소화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여건을 가지고 땅의 여건을 소화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자리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체적인 의식을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심령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반드시 모험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렇게 험한 길이라는 것은 역사를 비추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의 험한 고개를 타개해야 할 통일교회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영계를 중심삼고 육계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땅위에 찾아오는 이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땅 위에서 험한 고개를 넘어 영계와 육계가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기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전체적인 기준이 아닌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웠다 할진대는 또다시 가정적인 험한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가정에 대한 험한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한 길입니다. 역사과정에 맺힌 모든 곡절은 가정을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정을 찾아 넘어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한의 고개와 엉클어진 사연을 밟고, 넘어야 할 험한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가정만으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종족을 향해 넘어갈 때에도 험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향하여 넘어갈 때에도 탕감해야 할 험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로 넘어갈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요, 국가에서 세계, 세계에서 천주로 넘어갈 때에도 우리들의 앞에는 언제나 험한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3대시험에서 승리하게 되었을 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민족을 걸고 다시 나타날 것을 얘기하고 떠났습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개인이 스스로 험한 고개를 넘어 승리했다 하더라도 민족을 중심삼고 싸워야 할 고빗길에서 승리하지 못하게 되면, 개인적으로 승리한 그도 패자의 서러움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 탕감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험한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습니다. 이 고개를 누가 넘어야 할 것이냐? 이 고개는 그 누가 대신해서 넘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부모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기에 그 부모가 넘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함께 따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전부가 쇠사슬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이 사슬을 끊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은 부모가 끊고 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가 겪어야 할 시련과 고통이 탕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는 반드시 각자가 책임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인간 조상인 아담 해와 이 두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인류에게 남녀의 인연을 중심삼은 탕감의 조건이 제시되었고, 오늘날 30억 인류에게도 이것이 제시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신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즉, 지옥에 간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이 험한 고개를 넘어가기를 싫어한 자기들이요, 험한 고개를 회피해 가려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험한 고개를 맞아 자기가 응당 넘어가야 할 필생의 노정으로 알고 그 고개를 넘기 위하여 들인 힘과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넘어가야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그 고개를 넘어 서러운 역사과정을 뚫고 나아가서 하늘과 관계맺고 중간 영계인 낙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낙원에 가 있는 사람들의 배후를 역사과정을 통해 미루어 볼 때, 그 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험한 고개를 많이 넘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가정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국가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세계적인 고개를 넘었느냐 하는 차이에 따라 천적인 위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적인 험한 고개를 홀로 넘으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간 것은 일생에 있어서 최후의 험한 고개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하여 담판하기를 `내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길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가능한 한계선까지 하나님께서 양보해 주길 바라셨고 그 길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를 바라셨지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는 데는 생명을 내놓고, 즉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갖고 나온 자리였지만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환영하시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천지까지도 부정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할 험한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렇듯 생명을 내놓고 담판지어야 할 사정이 예수님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험한 고개를 홀로 넘으려 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수만 있으면…' 하는 이 조건을 절대시했던들 오늘날의 기독교는 이 지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분이 천년 역사를 지니고 오셨고 역사적인 사명을 종결짓기 위해 오셨다 하더라도, 이 험한 길을 넘지 못했다면 거기서부터 기독교의 역사, 새로운 복귀섭리의 역사는 이 지상에 현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걸어 놓고 넘어가야 하는 험한 길을 갈 때 꿋꿋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미래의 천국을 구상하는 마음,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험한 길을 밟고 넘어서서 돌파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그 험한 길에 비례되는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라를 대한 투쟁 목표였던가, 세계를 대한 투쟁 목표였던가? 예수님이 험한 길을 넘기 위해 싸웠던 그 내용과 기준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역사의 출발의 동기가 되고, 또 출발한 이후에도 어떠한 과정을 거쳐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험한 기점으로 맞은 기준은 세계적입니다. 혼자의 몸이지만 온 하늘땅을 구하겠다 하는 입장에 서서 세계적으로 가로놓인 험한 길을 돌파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념이 험한 길에 감겨 넘어간 것이 아니라 험한 절정을 죽음과 더불어 넘어갔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세계적인 복귀의 역사가 출발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청산짓고 나가야 할 우리

삼천만의 국민이 있는 한 나라가 난시 혹은 비상시에 처해 있다면, 그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그 삼천만 국민 전체가 아닙니다. 국민이 수억이 되더라도 그들 전체가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의 기준을 세운 한 사람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누구보다도 이 민족이 쌓아온 역사적인 선의 실적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그는 현시점에서 이 민족이 가야 할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미래에는 이 민족이 이러해야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단호히 나서는 애국자입니다.

그런 애국자가 제창하는 내용이 하나의 기점이 되어 이 국가를 구할 수 있는 길이 개척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국민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국민을 대표하는 분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운세를 맞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새로운 운세를 맞이한 입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제창하는 사람은 새로운 운세를 맞기 위해서 험한 길을 가야 됩니다. 그에게 밀려오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앞으로 올 소망의 세계와 비교했을 때 소망의 세계를 향하는 마음이 더 강해야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험한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가 생명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준이 몰아쳐 다가오는 환경의 험한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그 이상의 기준이 되지 않고서는 역사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기반을 세울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 민족을 대하여 이제부터 행진해야 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전진을 추구하는 현시점에 있어서 나라를 향하여 가는 길이 험한 길이라고 후퇴하는 사람들은 나라 앞에 심판받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세계앞에 심판의 받는 거에요. 그러기에 우리들이 이 험한 길에서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나라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를 심판할 수 있어야 원수를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원수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세계를 심판할 수 있어야 원수인 사탄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들이 가야 할 행로는 험한 길임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이 길을 향하여 직행해 가느냐, 돌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천년사를 좌우하였습니다. 수천년 역사를 연장시키느냐, 수천년 역사를 반목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시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심각합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이 험한 길을 지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생명이니 재산, 모든 것을 다 투입해 가지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결의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차피 떠나가야 할 이 길이기에 떠나는 우리는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청산짓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그 모든 것을 돌파하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향하여 출발한 노정에 있어서 우리는 이 세계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우리 앞에 험한 길이 가로놓여 있다면 그 길을 박차고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왜 존중시하고 절대시하느냐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상대적 요건으로는 부모와 처자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은 물질의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가족과 물질을 비교해 볼 때 물질보다는 가족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가족을 버릴 것이냐 물질을 버릴 것이냐라고 할 때, 지금까지의 인륜도덕의 관념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든지 가족을 위해서 물질을 버리는 것을 상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것이 가족이냐, 자기 자신이냐 할 때에는 가족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가정을 두고 볼 때, 제일 귀한 것 하나만을 취해야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가정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세계를 축소시킨 횡적인 기반입니다. 여기서부터 국가와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엇이냐? 가정은 세계의 횡적인 축소형으로 절대적인 중심 앞에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냐? 절대적인 중심이 머무를 수 있는 발판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어머니를 찾는 데 누구 때문에 찾느냐? 어머니 때문에 찾는 것입니까? 어려운 상황에서 어머니를 찾고 그것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 때문이냐?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가 `나'입니다. 그러면 나를 왜 존중시하느냐? `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중심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그 중심존재 앞에 절대적인 상대형입니다. 그 상대는 평면도상 위에 자리잡은 입장에서의 절대가 아닙니다. 입체적인 하늘 앞에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절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되었다가는 갈라지고 하나되었다가는 갈라지고 했던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떠하든지간에 자신을 존중시하는 것,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들에게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직까지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중심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갖추어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에 있는 나이기 때문에 자신을 존중시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에 있기에 자타를 막론하고 자신을 존중시하고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절대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상대적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빨리 완전하게 갖추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늘편 중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어가는 데 있어 반대하는 것은 전부 다 끊어야 됩니다. 물질이 반대하면 물질을 끊어야 되고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를 끊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펼쳐 나오신 이러한 상대적 기준을 타락으로 말미암아 남자나 여자나 할 것없이 전부다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대적 기준을 갖추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필생의 욕구입니다. 죽을 고비에 있더라도 그 상대적 기준을 갖추어 놓고 죽어야 됩니다. 이러한 원인이 있기에 자기 자신을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험한 길을 제시하시는 이유

그러면 타락권내에 있는 우리가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 절대시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느냐? 우리 자신이 타락권내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는 절대시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타락권내에 절대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중심삼고 그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절대시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보면, 각기 성품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나름대로의 하늘과 일치되는 세계관, 천주관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한 생명이 우주보다 큰 원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적인 기준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동서 사방에서 부딪치는 모든 길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할 때에, 자기 자신이 절대적 기준을 세워 자리를 갖추었다 할 때에, 하늘과 자기 자신이 완전히 일체가 되었다 할 때에는 거기서부터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평면적으로 잃어버리면 입체적으로 찾게 됩니다. 오늘날 평면적인 가정으로서 타락한 이 세계에서 평면적인 물질과 가정을 잃어버리는 대신 입체적인 물질과 입체적인 가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이익을 얻고자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현재의 실정을 잃어버리기 위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십만원 가진 사람이 백만원을 남겼을 때는 십만원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우리 인류에게 험한 길을 제시하시는 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장사로 말하면 몇배 이상의 이익을 남길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죽음의 길이지만 가도록 사정없이 우리를 내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러시는 것입니다.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 기준에 서야 합니다. 타락하였기 때문에 둘이 그냥 그대로 하나가 못 됩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절대적 기준에 서지 않고는 함께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둘이 하나되어 가정을 이룰 것이었는데, 해와가 먼저 타락하여 전후관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횡적인 관계, 즉 좌우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평면적 기준에서 하나님과 일치되어서 비로소 횡적 기준이 일치될 수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은 세계가 깨지 못하고 하늘땅이 깨지 못합니다. 그 가정으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룰 때까지는 역사적인 모험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은 재림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분의 역사를 보면, 그분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험한 과정을 거치고 그 누구보다도 비참한 운명을 띠고 오시는 부모입니다. 그분도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그 이상의 길을 거쳐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이러한 기준을 결정짓기 못하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예수께서 중생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중생하려면 지금까지의 사망의 세계를 떼어 버려야 합니다. 떼어 버려야 합니다. 세계에 대한 욕망이나 나라에 대한 욕망, 그리고 사회를 중심삼은 권위 등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떼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떼어 버린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복귀'라는 관념을 생각할 때 복귀의 길은 험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길에는 `평탄' 이란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비참한 길입니다. 여기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 길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갈라져 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것이요, 인류가 갈라지는 것이요, 모든 인연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일시에 탕감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죽겠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그러니 `내 뜻을 하나님 뜻에 일치시키고 죽음의 길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항상 `내가 지금 사는 것은 죽을 몸이 덤으로 사는 것인데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하여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왕에 죽은 몸이니 이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위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왕 죽었던 몸인데 뜻을 알고 가는 길에서 다시 살아 남게 된 것만 해도 이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살려 주셔서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공을 갚아 드려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죽고 사는 것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의 목숨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대해서 충신이 되고 역적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과 고통의 의미

그러면 자기의 눈 때문에 타락한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귀 때문에 타락한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입 때문에 타락한 사람도 있을 것이요, 손 때문에 타락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의 오관 전부가 뜻에 완전히 일치되어 죽게 되면 완전한 부활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예수처럼 뜻에 완전히 일치되어 죽는다면 예수와 같은 완전한 부활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밟고 넘어서게 되면 세계를 대표하게 됩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생명을 밟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도 생명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입장에 여러분이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한 준비로 여러분은 자기의 가정을 버려야 됩니다. 아내와 자식을 버리는 것이 자기의 생명을 버리는 준비로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버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섭리도상에 남아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딪쳐 오는 시련과 고통을 피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죽음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잘 희생하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나갔기 때문에 그 나가는 길 앞에 돌변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놓고 이미 결심했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기도가 자기 자신을 재차 다짐할 수 있는 길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게 되면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 자기가 응당 넘어야 할 고개인데도 불구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그것이 자기 때문이 아닌 제삼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 험한 길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빨리 넘어 가게 하기 위한 힘이 되고 다리가 되는 사람이라면, 결국 그 제삼자는 자기의 원수가 아닙니다. 그는 여러분이 고개를 넘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실제의 길이 여러분 앞에 있다 할진대, 그 길을 자신에게 제시하여 준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를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나라가 여러분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그 나라는 원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생명을 걸고 넘어가야 하는 하늘나라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험한 고개를 넘어가게 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합격자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시험조건에 제시되지 않았을 때는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차지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차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 나라가 동원되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결국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인입니다. 하나님을 믿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6천년 동안 지배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에 대해서는 증거를 합니다. 사탄도 그런 아들딸은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사탄이 6천년 동안 지속적으로 반대해 나온 것은 결국 하나님이 인류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한 것이 됩니다. 사탄이 세계를 걸어놓고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인류를 사랑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될 때, 필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인류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타락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동기도 되고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도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탄도 사랑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그렇습니다. 자기는 못살더라도 자기 나라가 잘살기를 바라고 이 세계가 잘살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되어 대한민국을 위하여 거름이 되고 세계를 위하여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바치더라도 이 길은 필시 가야 할 길이고, 평생을 두고 가야 할 길임을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국민이 추앙하는 개인이 되고 세계 인류가 추앙하는 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시련과 고통은 빛나는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험한 길을 가게 하는 이유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에는 험한 고개가 숱하게 많았습니다. 그 숱한 길, 험한 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청사에 빛낼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해주고 승리적 조건을 세우게 하는 하나의 요건이 되었으면 되었지, 파탄시키는 요건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 험한 고개를 어떻게 극복해서 넘었느냐에 따라 승리의 발전을 얼마나 잘 닦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런 험한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인류를 희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에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야곱도 그런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것을 완전히 알고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내일에 당할 시련과 고통을 이 기준에 맞추어 결정짓지 않고는 내 생애의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때 아무조건도 제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어느누구도 대할 수 없는 비판 받는 자리에서 그것을 양팔로 붙들어 책임지고 정면에서 부딪쳐야 합니다. 그래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자리에서 우리 인생으로서 천적인 권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엄청난 조건이 이때에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험한 길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겁니다」 한창 꽃다운 청춘시절에 자기의 둘도 없는 신랑과 신혼살림을 해야 할 여성이었는데, 통일교회를 믿고 이런 길을 걸어 나오다 보니 누더기옷만 입게 되고 나이만 먹게 되어 이제 주위를 돌아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서 `그냥 살았으면 세상의 아들딸이라도 낳고 살았을 텐데 이게 뭐야. 안착할 곳도 없이 쓸쓸하기 짝이 없고 적막강산이다. 통일교회 괜히 믿었다' 라고 후회를 합니다. 여자들, 이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잘되었으면 감사해야지, 불평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잘될 수 있는 자리에서 못되었으니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위해 몽땅 바친 그것을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꽃다운 청춘시절을 배신자를 위해 바쳤으면 다시 빼앗아 와야 합니다. 배신자는 상대방으로부터 마구 밟히고 밟혀 죽게 되었을 때에야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나 믿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키우는데 여러분이 인재될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라도 됩니까? 흠 투성이요, 형편없는 무리들이 자신들을 받아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눈을 감고 왼손으로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될 수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이키게 하려고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얼마만큼 따라 나오다가 `아이고! 싫소 싫소. 살려 주시오. 다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왔으면 반대로 그 만큼 더 가야만 되는데 여러분은 그러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왔던 걸음이 수고한 공적에 반대되는 형벌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래요, 안 그래요? 효자의 한마디의 불효한 말은 부모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었던 만큼, 가깝던 만큼, 절대시했던 만큼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 돌아갈 수도 있는 자유의 길,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자유의 길, 옆으로 비켜갈 수 있는 자유의 길, 나그네처럼 가다가 쉴 수 있는 자유의 길, 그런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못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두다 못난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길을 가다가 점점 깊은 골짜기가 나오게 되면 절벽강산이라고 가던 길을 포기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거나 아무리 길이 있어 간다고 해도 전부다 염려하기 때문에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길을 가는 데는 가다 보면 절벽강산도 있고 큰 수렁도 있는 것입니다.

넘어야 할 고개를 넘지 못하면

여러분은 그러한 수렁이 있는 줄 알면 가겠어요, 못 가겠어요? `아이구, 내 이 길을 끝까지 가면 죽겠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식할 것 없이 모두 가지 말라고 말리니 난 그 길을 못 가겠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고개를 끝까지 못 넘게 될 때는 나중에 가서는 사망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아는 한 지금은 아무리 절박하고 험한 길이라 해도 끝까지 간다면 역사가 알아주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을 해서 가르쳐 주면 생사지경을 넘어서 부모의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효를 다하는 자식은 가다가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가 가라는 대로, 부모의 명령대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며 그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뜻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사랑하는 처자가 있더라도 두고 가야 하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더라도 두고 가야 합니다. `가자'고 하는데 `나는 못 가겠습니다' 하면 여러분은 큰일입니다. 여자는 천도에 따라 순응해서 여자로서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남편이 같이 죽자고 하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죽더라도 저나라에 가서 같이 살면 됩니다. 남편의 명령을 절대시하고 남편의 명령에 순종한 뒤에는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륜 세계의 도덕관에 있어서 악한 타락권내에 있다 하더라도, 삼강오륜을 중심삼고 절대 순응하는 사람들은, 절대 순종이라는 기준을 세운 사람들은 다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제는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영계가 있는지 알아요, 몰라요? 영계가 있다는 것만은 알지요? 세상의 인류가 다 모르더라도 영계는 틀림없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그것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영계에 가는 길은 반드시 이 길을 통해야 합니다. 이 길에는 하나님께서 같이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험한 길이나 끝이 있다

여러분에게 통일교회 문선생님 말을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말은 안 들어도 좋으니 하나님 말씀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듣고자 하다 보니 선생님이 필요하지요? 선생님도 이제는 나를 따르는 것 기분 나쁩니다. (웃음) 하나님을 사랑하려니 통일교회가 필요하고, 통일교회 말씀이 필요하고, 이것을 책임지고 가야 할 사람이 필요하니 통일교회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목적지가 있겠어요? 이것을 위해서 먼저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제자리에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제비는 음력 9월 9일이 되면 강남으로 갔다가 음력 3월 3일이 되면 돌아온다고 합니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 참 용합니다. 어떻게 자기의 살길을 찾아 강남으로 갔다가 다시 살길을 찾아 돌아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제집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생각해 보아요. 봄이 되면 제비들이 몰려와서 지지배배 울며 집집마다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야단입니다. 그렇게 살다가도 가을만 되면 여기서는 살기 어렵다고 전부 다 강남으로 갑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갑니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하루나 이틀을 지나도 기온의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면 기후를 다 가려 가지고 자기의 살 길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겨울이 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른척 해도 압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모릅니까? 알면서 안 한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 했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지만 알면서 안 했다면 그의 가는 길은 지옥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원망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만을 믿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사람들은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릅니다. 밤인지 낮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심치 않고 하나님을 믿고 간다면 통일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길을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지도 않고 의심한다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험한 길이기는 하지만 끝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끝을 보는 날에는 세계는 나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끝은 언제 올 것이냐? 그 끝이 오는 날이 끝날입니다. 여기에는 세계가 동원되어야 하고 온 인류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이 험한 길이 막혀 있기에 뚫고 가기 위해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절반 이상이 동원되었다는 기준을 넘어서야 정상 코오스로 가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하나님이 없다고, 죽었다고 할 때가 오게 되면 전부다 공산주의 사상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과학적인 견지에서 하나님을 밝히려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오늘날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이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절반 이상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권내로 넘어가게 되면 세계는 끝입니다. 그러기에 하늘편을 향하여 자동적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얼마나 걸리는가? 선생님이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오늘날 민주세계도 끝이요, 공산세계도 끝입니다. 이제 둘 다 기울어져 갑니다. 여기서 싸움이 한바탕 벌어지게 되면 전부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끝이라는 것입니다. 정상을 어느 정도 돌파하다가 후퇴하게 되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월남에 있는 베트콩이 싸우자고 하면 싸우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싸우자면 싸우는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싸워 나오셨기 때문에 10년, 100년이 아니라 6천년이 걸려도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를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싸우는 목적이 다릅니다.

공산당들이 세계 곳곳에서 싸워 자기들의 기반을 구축해 나왔지만, 세계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소련을 위해 싸웠으니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련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은 민주세계의 선도적인 입장에서 전세계를 위해 싸워 나가야 합니다. 세계를 찾기 위한 민주주의이지, 미국을 찾기 위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세계를 세우기 위한 민주주가 못 되고 미국만을 세우기 위한 민주주의라면 이 주의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민주주의는 필요없습니다. 그런 공산주의도 필요없습니다.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민주주의,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공산주의라면 이 세계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을 위해 사는 것은 대한민국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세워 가지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민족주의시대는 지나간 시대입니다. 대한민국을 찾아 세워 그것을 제물삼아서 세계 앞에 바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자기의 국가관념을 중심삼고 세계가 어떠한 문제의 정면에 부딪쳤을 때 자기의 민족 국가를 전부다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찾겠다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늘의 자식이요, 효자입니다. 자기 아들딸을 희생시켜 남의 아들딸을 찾겠다고 하고, 자기 민족을 희생시켜 남의 민족을 찾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기독교를 희생시켜서 사탄세계를 찾자는 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희생시켜서라도 대한민국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 코오스예요, 아니예요? 정상적인 지도법이에요, 아니예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희생시킨다면 여러분은 선생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여러분을 희생시켜서 대한민국을 찾으려 하십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뜻 앞에 있어서 생명을 다하여 한을 풀어놓는 것은 여러분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적 과정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단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민족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위해 망할 수 있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험한 길

우리가 가야 할 험한 길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험한 길과 내용이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험한 길을 가라면 전부다 울고불고 야단합니다. `아이고 힘들어서 못 가겠다. 이 길은 비참한 길이야. 생각도 하기 싫고 보기도 싫다. 끔찍끔찍한 길이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그 끔찍끔찍한 길도, 울고불고하며 가는 길도 소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아무리 가까운 이를 보내야 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에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가정이 희생되는 것은 분하고 원통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가정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찾아야 할 국가의 운명이 섭리앞에 다가오는 것을 볼 때, 자기의 가정의 희생된 것을 보고 눈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국가가 해방이 되었거든 쌍수를 들어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국가가 해방이 되었거든 어머니의 시체를 옆에 놓고도 만세를 부르는 것이 나라의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처자의 시체를 옆에 놓고도 아픈 가슴을 억누르며 수천년 역사 속에서 민족이 바라나온 그 소원이 이루어진 해방의 날을 맞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사람, 아픈 가슴이지만 오히려 기쁨으로 나라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야 애국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통일용사들은 못 갈 데가 없어야 합니다. 삼팔선도 넘을 수 있어야 겠습니다. 반드시 여기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죽는 자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살기 위해 도망가는 자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민족통일의 해원이 자기의 죽음 앞에 가까운 것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이것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 죽음길에서 찬양해야 합니다. 민족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해방의 역군들이 필요합니다. 이 민족의 해원과 더불어, 민족의 해방과 더불어 승리의 영광을 삼천만 민족 앞에 돌리는 역군들은 길이길이 이 민족을 사랑한 애국지사의 행렬에 동참하게 됩니다. 거기에 죽어간 사람들은 그 민족과 더불어 부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내려다보시게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왔지만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해 가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민족을 대신하여 자기의 생명을 걸고 세계를 위하여 간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죽음으로 인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가까운 길에서 민족해방의 길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을 위한 길이요, 더 나아가서 세계를 위한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내몰았지만,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세 시간 동안 천지를 어두움에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에 얼마나 억울한 사정이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돌리는 그 순간에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셨지만 소망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독교의 역사, 새로운 제2이스라엘의 건국의 역사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반 사람들이 험하다는 것과 통일교회에서 험하다고 보고 있는 것과는 그 내용에 있어서 다릅니다. 선생님은 그런 차원에서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매를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 수많은 가정들이 이 이념을 따라가다 몰릴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 전에 당한 일이 천년의 한계를 뚫을 수 있는 하나의 정이 되고 망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치를 횡적으로 종적으로 넓히기 위한 마지막 싸움의 자리에서 하늘의 보화가 되고 열매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수많은 인간들 앞에 역사적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담 해와는 얼마나 지탄을 받고 참소를 받았습니까? 아담 해와가 당한 그런 슬픈 운명을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단연코 맞을 수 있는 길로 우리는 가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는 길에 있어서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됩니다. 하늘편에 서서 실전에 나아가 생명력을 가지고 악을 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담 해와가 참소받던 그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때가 오게 되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들이치더라도 선생님은 걸리지 않습니다. 탕감법에 의해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7배까지 칠 수 있습니다. 7배가 아니라 70배를 치더라도 선생님은 천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생명을 건 자리에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쉽다고 할 정도로 기절하여 쓰러지는 일을 수십 번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최고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갖추게 하는 것이 시련의 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험한 길은 흥하는 길

예수가 사탄세계에서 만세의 하늘세계를 이룰 수 있는 메시아의 권한을 갖게 되는 승리적인 조건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그 조건을 제시할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시면 누구나 쉽게 하늘길을 갈 수 있을 것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가는 것과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간 것과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앞세우고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 험한 길은 망하는 길이 아니고 흥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알겠지요? 「예」 험한 길을 가는 것은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 험한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놀부사상입니다. 반면에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은 흥부사상입니다. 놀부가 잘했어요, 흥부가 잘했어요? 「흥부가 잘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좋았어요? 처음에는 놀부가 좋았고, 나중에는 흥부가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사탄편인 놀부가 좋았지만 나중에는 하늘편인 흥부가 좋았습니다. 하늘편인 흥부가 따라가는 가지가지의 사연이나 곡절은 가지가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에 입각해서 살고, 정의에 입각해서 싸우고, 정의에 입각해서 죽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사람을 사탄세계의 역사에서는 밟고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그 시대에서 볼 때는 배반자요, 그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자같이 보이지만, 역사는 그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통일교인이 가는 길을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선생님이 가자고 하여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여러분은 앞으로 복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전도하지 말라는 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40일 전도를 가지 말라, 7년노정을 가지 말라는 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중에 특정한 사람만 뽑고 문을 닫아 걸 때가 옵니다. 7년 노정을 가게 하는 것이 좋아요, 못 가게 하는 것이 좋아요? 마찬가지로 40일 전도를 가게 하는 것이 좋아요, 못 가게 하는 것이 좋아요? 「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그 길이 환영받는 길이에요, 배척받는 길이에요? 그 길은 세상에서는 배척받는 길이고 하늘에서는 환영받는 길입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우리를 배척함으로 어떻게 되느냐? 사탄세계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싸움에서 지게 되면 그 대가를 갚고 돌아서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탄을 쳐서 승리하지 못하면 후퇴할 때 그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전법은 맞고 나서 복을 몽땅 빼앗는 전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게 한 것은 사탄세계의 사망권을 몽땅 처치하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예」 그렇기 때문에 선한 자리에 있는 자는 맞아야 합니다. 맞으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맞으면 빼앗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작전입니다. 사탄세계는 치고 망하는 것이고, 하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역사를 상고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치고 빼앗았어요, 맞고 빼앗았어요? 「맞고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전법에 합격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는 험한 길이라는 것은 희망에 벅찬 길이지, 절망과 관계맺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밥을 얻어먹는 처지에 있더라도, 주먹밥을 쥐고 먹는 순간에도 희망에 넘쳐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이것이 변하여 훗날 죄악세계의 옥상(玉床)에 차려 놓은 진수 성찬을 때려부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이 손가락이 수많은 금수저를 때려부술 날이 올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은 거적대기 같은 것을 입고 있지만 왕실의 보좌를 때려부술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손을 대지 않고도 싸우지 않고도 때려부술 수 있게 됩니다. 멋진 방어진지, 멋진 성을 쌓는 일에는 시련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갈 것이냐, 안 갈 것이냐? 박기옥!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조금 전에 한 말 들었어? 「예」 박기옥이는 눈과 귀가 다른 모양이지? 귀는 듣고 눈을 요술했구만. 안경 낀 여자들, 아침부터 떡 버티고 앉아서 기분 나쁘게…. 그것도 하나의 험한 고개인 모양이지요? (웃음) 최용석! 가겠어 안 가겠어? 「가겠습니다」 하얗게 머리가 센 늙은 부모가 시키더라도 가겠어?

이 뜻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 나오던 과거지사를 절대 후회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기뻐서 자신이 책임지고 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가라 했지만 여러분은 선생님 말을 듣고 갔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능동적으로 했고 또한 자기 자신이 한 것이니 스스로 책임을 진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휴! 통일교회 문선생을 찾아 들어왔다가 신세 망쳤어'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망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망해 놓고 누가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선생이 옳고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유효원이가 보기 싫어서 통일교회 못 가겠다고 야단입니다. (웃음) 유효원이가 밥을 달라고 합니까, 뺨을 쳤습니까? 그것이 타락한 사탄법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니 유감스럽고 뭐고 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서 `내가 한 것이요, 내가 기뻐서 한 것이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천적인 인연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움직인 것이므로 영원히 자기의 소유입니다. 자기의 소유로 철강석을 삼고 영원한 밑천을 삼을 때 하늘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물건을 빌려 가지고 갈 것입니까? 아버지 어머니를 빌린 몸뚱이가 누구입니까? 아버지 어머니에게 받았지만 자기의 것입니다. 자기의 것으로 상속받은 것입니다.

이 뜻은 누구의 뜻입니까? 통일교회를 위한 문선생의 뜻입니까? 여러분의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뜻을 위해서' 라고 말은 잘 합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이냐? 하고 물으면 `뜻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누구를 위해 죽을 것이냐? 하고 물으면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뜻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다 빚지고 매일매일 신세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가 신세 지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를 위해서 얼마만큼 했는데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수작을 부립니다. 선생님이 몰라주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아이구, 뭐 이렇고 저렇고…. 자기는 잘하는데 지구장이 잘못하고 지역장이 잘못하고 뭐 어떻고 저떻고' 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 사람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죽을 고비에서도 불평하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죽을 길에서 원수까지 동정해 주었습니다. 죽을 자리에 내몰리더라도 동정을 해주는 입장에 서야 원수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원수가 원수를 낳게 되어 또 다른 원수가 생겨난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알게 될 때, `아하, 험한 길을 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험한 길 중에도 험한 길을 가라

그러면 여러분에게 삼팔선을 넘자고 하면 넘어가겠어요? 「넘어 가겠습니다」 그것을 잘 넘는 날에는 민족이 추앙할 수 있는 애국지사가 되는 것입니다. 안중근이 대학교 교수를 했습니까? 유관순이 대통령 부인이었습니까? 뭐 결혼이나 해 보았어요? 이들이 한 행동이 얼마나 미욱해 보였겠어요? 일본 관원들이 총칼을 겨누고 있는데 감히 어쩌자는 것입니까? 만세를 부르고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죽이고 그랬겠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것은 전부 다 나라를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존속하는 한 청사(靑史)에 그 이름이 빛날 것이고 그 이름이 부활할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으면 세계가 사는 날에는 부활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세계를 위해서 싸우다 죽어 한 줌의 흙밖에 남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계가 있고 하나님이 계시는 한 반드시 승리하여 부활의 한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영광의 꽃을 가지고 장식하여 꽂고 승리의 권한을 갖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식을 하고 꽃을 꽂는 것은 그 영광을 이루기까지 시련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승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시련과 고통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이제는 시련과 고통이 좋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불러 다시 쉬운 명령을 해주기를 바랍니까, 어려운 명령을 해주기를 바랍니까? 「어려운 명령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평탄한 길을 가겠어요, 험한 길을 가겠어요? 「험한 길을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험한 길중에서도 험한 길을 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가는 지도자를 찾고 있습니다. 일본 식구 중에 누구라도 평탄한 길을 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일본 협회장인 구보끼에게도 옆구리에 총을 들이대더라도 뜻을 위해 가겠느냐고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큰 뜻이 이루어지는 한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을 내보내겠어요? 세상에서도 믿는 사람을 내보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내세워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보낸 그 사람이 원수의 세계에서 변절하는 날에는 하늘나라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수천년의 역사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 가까운 사람을 사지(死地)에 내보내는 것이 사랑의 도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가기 힘든 험한 길로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못한 명령을 받을 만큼 하늘에 가까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을 걸고 그런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용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통일의 용사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가야 할 험한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지내시며 싸워 나오신 것은 실패한 역사 같사오나, 여기에는 반드시 승리의 경과를 가질 수 있으며 맞고도 또다시 재기할 수 있는 인연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빚을 지우는 자리에서 저희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인연의 자리에 세우시고, 또 도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더라도 가게 하신 것은,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내정이 있었던 것을 저희들이 헤아리게 되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험한 길은 원수의 길이 아니요, 저희들이 망하는 길이 아니라, 아버지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까운 자리에 인연맺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되고, 사랑의 내용을 결합시키는 절대적인 끈이 되고,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그러하오니 그 자리를 찾아 민족을 대신해서 세계를 향하여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현재의 세계정세를 볼 때, 통일의 자녀들이 가야 할 최후의 길만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아오니,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통하여 수많은 민족이 세계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게, 아버지, 각자의 마음을 재촉하시옵고, 그 사정을 가리시어서 당신이 뜻하신 승리의 한 날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아홉 돌을 맞는 자녀의 날이옵니다. 전국에 널려서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자녀들 위에 당신의 사랑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무리들을 보시고 당신을 슬프게 해드린 이 나라, 이 민족의 모든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들에게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분부하시사 새시대의 역군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당신이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기필코 이루어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을 기하여 만백성 위에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손길을 펴시어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에 있는 만인류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 혹은 뜻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부활하여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그들에게 남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 통일교회의 활동을 중심삼고, 저희들의 움직임을 중심삼고 배후에서 그들이 인연맺어지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저희들과 일치가 되고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일치시키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통일의 나라를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사오니 그들로 말미암아 그들이 처해 있는 그 나라 위에도 당신의 직접적이고 주도적인 역사를 일으키시사 부활의 권한을 세우시어서 만민을 당신의 품에 품을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우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을 기하여서 당신이 원하시는 바의 뜻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횡적인 노선을 통하여 세계에 본격적으로 퍼져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영광의 한 날로서, 자랑의 한 날로서, 기쁨의 한 날로서 세우시어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축복을 받고, 당신의 은사 가운데에 품길 수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뜻을 위하여 희생했던 복귀 도상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 위에 친히 당신께서 해방의 역사를 일으키시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참부모님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자녀가 되고,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가정을 이루고, 참다운 가정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과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와 참다운 천주에로 당신을 중심삼고 전진해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이해에 저희에게 남아진 탕감의 노정을 더욱 힘차게 달려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1970년대에는 저희들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 즉 민족적인 사명과 자녀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형통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의 뜻 가운데 세우시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첫시간이오니 끝시간까지 영광 가운데에서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자녀의 날로 여러분이 기념하고 있지만 자녀의 날은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마음들을 가지고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자녀의 날을 선포한 의의

오늘날 이 세상에는 어린이 날은 있지만 자녀의 날은 없습니다.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나님의 날이니 하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에서만 정하여 발표한 날입니다. 이러한 날들은 그저 적당히 생각해서 정한 날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생각대로 적당히 `이러면 되겠다'해 가지고 정한 날도 아닙니다. 전부다 공식적인 복귀노정을 거쳐 가지고 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에 의해서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를 두고 볼 때, 자녀가 있으려면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선포하고 나서 자녀의 날을 선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본연의 부모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인간은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만물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전부다 잃어버렸으므로 이것을 전부다 복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했고, 그런 다음에는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담 해와에게 온 만물이 주관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만물도 이런 영광의 한 날을 맞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만물 주관은 혼자 못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가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사위기대가 복귀된 기반 위에서 만물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혼자는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만물을 주관하고 이 세계를 주관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에게 축복을 해주신 것이지 아담에게만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만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종적인 중심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내적 외적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이성성상이 실체적인 이성성상으로 나타나서 개인적인 이성성상을 갖추어 가지고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하나의 남자가 되고, 하나의 여자가 된 것이 아담 해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되어야 비로소 평면적인 사위기대의 중심이 되어 중심기대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중심이로되 종적 기준을 대표한 횡적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면서 주체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 있어야 되는데 그 대상이 자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위기대가 세워졌을 때, 비로소 하늘땅이 연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입니다. 가정을 두고 보면, 부모는 하나님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류의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부모의 말이 그 후손의 말이 되는 것이요, 그 부모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그 후손들의 생활방식이 되는 것이요, 부모가 느꼈던 환경적인 요건들을 그 후손들이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부모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그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본래의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탄이 중심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탄이 중심주체가 되고 인간이 그 대상이 되어 거짓 사랑의 열매를 맺어 거짓 세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해야 되는데 복귀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인류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6천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복귀해 나왔는데 그것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된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새로운 문화역사를 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요, 종족이 생겨나는 것이요, 민족 국가 세계가 전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역사가 출발하였다면 그들은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것의 기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되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삼고 되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보면, 모든 것이 불완전한 세계입니다. 하늘도 땅도 전부다 사탄세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왔으니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않으면 하나님도 인간을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는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고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과정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상세계의 출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상하시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하시던 것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상은 언제 출발하느냐? 그것은 많은 날들을 거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하루 가운데도 똑딱하는 한 순간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삼팔선을 두고 볼 때, 그 삼팔선은 분명히 있지만, 그 삼팔선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고자 할 때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삼팔선이 접하는 곳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이라는 것은 지극히 가늘어서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선이 두 나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날이 결정되는 것도 결정되는 그 순간은 하루 전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로 책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면도날과 같이 날카로운 순간,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되는 경계선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데도 이와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어서 결정한 시간이 있고, 결정한 시간이 있어서 결정한 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하는 날에 있어서도 그냥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똑딱하는 순간과 몇 시라는 시간권내에서, 며칠이라는 날 권내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는 데에도 소생 장성 완성과 같은 개념이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념들 중에서 하나님의 날이 정해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의 도리, 즉 우리들에게 시간적인 단위로써 보편화된 개념이 하루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날이 어떤 날이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날이 하나님의 날인데, 이날은 하나님의 이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상도 이루는 날이요, 만물의 이상도 이루는 날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이상 가운데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 성립되면 그와 동시에 부모의 날이 성립되고, 자녀의 날이 성립되고, 만물의 날이 성립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도 무엇부터 찾아야 되느냐 하면 맨 먼저 인간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이 세워지지 않으면 자녀의 날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복귀역사는 탕감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이 분열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올라가고 사탄은 내려오는 와중에서 선과 악이 서로 다투어서 올라 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싸움의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러느냐? 복귀를 위해서 그렇게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의 경계선은 어디냐? 본래 선과 악은 한 점에서 출발되었습니다. 한 점에서 출발되었는데, 한 점은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을 혼자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방향이 악한 쪽으로 틀어져 나간 것이 악한 부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부모의 때를 맞기 위해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시느냐? 이제까지 강력히 세워 나왔던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도덕을 때가 되면 모두 희미해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등한시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선이 악한 세계의 한계권에서 떨어져 나와야 되기 때문에 하늘이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가 되어 가면 되어 갈수록 부모와 자식간의 윤리도덕은 더욱 희미해집니다. 그 대신에 다른 한쪽, 즉 하늘편에서는 누가 나오느냐 하면 재림주가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참부모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참의 세계가 출발되고 새로운 주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을 해야 했던 예수

그러면 거기에서 중심은 어디냐? 악한 부모와 선한 부모가 각각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도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렀던 그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양자로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 앞에 양부모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이제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양자의 입장에서 양부모를 부른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가 있고 나서 있는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보다 먼저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기독교가 불렀던 아버지는 오늘날 우리들이 추구하는 아버지와 그 입장이 다릅니다. 그들이 불렀던 아버지는 양부모권에 있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것도 오늘날에 와서야 양부모와 양자의 입장이 된 것이지 그전에는 양부모와 양자의 관계도 못 되고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아들이 종의 자리에 있는 천사의 주관을 받고 타락했기 때문에 종의 종의 입장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그 가운데서도 야곱 이전까지는 종의 종의 시대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시대섭리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에 선민사상을 중심삼은 종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으로는 아들딸로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들을 아들딸로 인연맺게 하기 위해서 그들 앞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한 단계 끌어올려 양자의 입장에 세워 놓게 된 것입니다.

양자는 어떤 입장이냐 하며 가인의 입장입니다. 여기서 가인 아벨이라는 입장을 두고 볼 때, 아벨형은 하나님편 아들딸이요, 가인형은 사탄편 아들딸입니다. 이들은 서로 핏줄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권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직계의 아들로 왔는데 그 직계 아들의 입장을 결정짓지 않고는 양자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기독교가 나왔기에 양자라는 말도 나온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나오지 않았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종의 입장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아들의 사명과 더불어 부모의 사명까지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아담이 하나님 앞에는 아들이고 인류 앞에는 부모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입장을 거쳐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두 사명을 짊어지고 오셨기 때문에 아들의 입장으로서 탕감해야 할 사명과 부모의 입장으로서 탕감해야 할 사명, 이 두 사명을 겸하여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양자의 기준이 성립되려면 양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인한 양자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양자의 부모 입장에 영적으로 섰던 분들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종의 자식들을 모아서 영적인 조건을 세우고 다시 낳았든 입장에 세웠을 때 인간들은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자는 하나님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간접적인 입장에 있는 천사세계, 즉 영적인 세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직계의 아들딸은 실체를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영적인 기준을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을 다 설명하자면 하루종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양자의 세계권을 만들었습니다. 양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양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데, 영적으로 그러한 양부모의 사명을 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영적인 세계란 어떤 세계냐 하면 천사형의 세계입니다. 원래는 이 영적 세계의 천사장인 사탄까지도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충신이 되어야 할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성신이 영계에서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관계를 중심삼고 충신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출현의 배경

오늘날 선생님이 왔기 때문에 예수님도 하나님의 장자라고 인정을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하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맏아들의 도리를 다 못 한 것입니다. 실체적인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야 진정한 맏아들이 되지 영적인 사랑만 이루어 가지고는 진정한 맏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실체로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실체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참된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그를 믿는 신도들은 직계의 아들딸이 못 되고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양부모를 받들어서 참된 부모의 역사에로 연결시키기 위해 전개해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나온 것도 참부모를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참부모는 곧 재림주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시는 재림주는 아버지요, 신랑 신부는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인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 식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횡적인 기반을 지상에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는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으면 예수님과 성신에게서 부모의 권한을 상속받은 입장이 되기 때문에, 지상의 기독교인이나 영계의 영인들이 모두 지상에 오신 참부모와 축복가정들의 주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육계에서나 영계에서나 예수님의 주관을 받는 것보다도 참부모의 주관을 받는 것을 더 영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으로 하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면서 기뻐하겠습니까, 슬퍼하겠습니까? 세상 같으면 아마도 야당과 여당이 싸우듯이 서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가인과 아벨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천지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여 아벨 앞에 가인이 굴복하는 기준을 결정짓고 나와야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속받는 데는 그냥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축복을 받게 되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력 대결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당시에 복귀섭리의 책임자로 온 것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력대결입니다.

복귀역사를 해야 할 텐데 예수님이 그것을 알았다면 이 땅에 왔을 때, 왜 인간시조가 음란으로 타락했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만 남겼으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생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리적 견해에 있어서의 문답을 해야 합니다. `알았는가, 몰랐는가'해 가지고 만일 모르고 있었다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런 실력대결을 해 가지고 그 터전 위에서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예수님의 통솔을 받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상에 한 존재가 나와서 예수님을 휘어잡겠다고 한다 해서 그럴 수 있겠습니까? 실력대결을 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실력대결을 하는 데는 천리의 원칙을 중심삼고 법을 따져 가면서, 이것은 이렇게 되었고 저것은 저렇게 된 것이 아니냐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네 말이 옳다'하고 인정하는 정당한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절차를 거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엄청난 곳입니다.

부모의 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오늘날 기독교는 양자의 입장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르니 양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땐 직계 자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다음이라야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성들여 키워준 양아버지가 있어도 친아버지가 어디엔가 있다면 어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찾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참부모의 자격을 갖추려면

그러므로 양부모가 참된 부모의 입장이 되려면 자기가 그 아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면서 정성을 다하여 길러 준 사연을 그 자식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식은 언젠가는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복귀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종의 자식이 나오려면 종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도를 통해서 나타난 선한 아들딸이 그러한 종의 부모인 것입니다. 또한 종교와 관계없는 애국지사니 뭐니 하는 사람들도 종의 부모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공자나 석가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종의 부모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무슨 부모냐 하면, 양자의 부모입니다. 그러니 많은 부모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다른 부모들보다 조금은 낫다는 것입니다.

종의 부모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양자의 부모를 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못 갑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을 두고 보았을 때에 예수님은 공자나 석가 등 많은 다른 성인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나 석가나 예수님이 다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같아요, 달라요?

예수님 이외의 다른 성인들은 종의 부모요, 예수님은 양자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 오셔야 할 분은 누구겠습니까? 참부모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종교인들을 가만 보며 엉터리들입니다.

이것이 전부 얼크러져서 세계사를 이어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되풀이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되풀이되면서 점점 커져 가지고 하나의 형태를 구축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부모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렇게 되었으니 부모가 전부다 책임지고 수습해야 합니다.

어떤 나라의 왕이 있다고 할 때, 그 왕이 태어나면서부터 왕권을 갖고 출발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왕권을 걸어 놓고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가 출현하는 데는 어떤 조건을 중심삼고 출현하느냐 하면 그 국가의 비상시를 맞이하여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고는 나라의 주권자가 탄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판결을 지어 최후의 승자가 결정지어지기 전까지는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오히려 횡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싸움을 중심삼고 선도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지고 그 나라를 구해낸 사람이 그 나라의 주권자의 자리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대로 해서 태어난 왕자가 왕의 자격이 있는가, 또 왕이 될 만큼 잘 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왕자는 선조가 승리한 업적의 기반 위에서 승리자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왕조 역사의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그 승리의 권한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국가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한 후손은 그때까지 남겨 주는 것이 천법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반 위에 태어난 왕자에게 그 나라를 지휘할 수 있는 왕의 권한을 주는 것이요, 그때의 권한은 천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인 것입니다.

그러나 끝날이 되면 그들도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하지 못한 백성은 어떻게 되느냐? 그 백성 역시 그들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참부모의 입장으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력전을 해야 됩니다. 참부모로서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승리해야 됩니다. 먼저 사탄을 굴복시키고 나서 그 다음에는 영계에 가서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소생 장성 완성으로 부모의 3대역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사탄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대도 천륜을 중심삼고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킨 다음에는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땅 위에 자녀의 입장으로 태어난 인간들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심정적 내용이라든가 살 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전반적인 조건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와 인연을 맺으려면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부모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모에게는 죽은 자식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은 3시대의 부모의 역사를 거쳐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최후에 남아질 부모는 육계나 영계나 사탄세계에 있어서 승리의 결정권을 가지고 나오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그 승리라는 것은 천정을 넘어서 얻는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시대에는 많은 주권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들을 보면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공자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들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석가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지금까지 세상에 왔던 그 누구도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참한 것입니다. 형편으로 보면 종의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 비교해 본다면 못하다는 거예요. 노아나 아브라함에 비하면 형편이 무인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태어나되 누구로 말미암아 태어났느냐 하면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있다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참부모를 중심한다는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병신 자식이 되면 되겠습니까? 반벙어리가 되어서 심판대에 서면 되겠느냐 말입니다. 거기에서 선악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판결내게 될 때, 참부모의 정상적인 전통을 계승받아서 그것을 선의 세계나 악의 세계에서 모두 `옳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 권한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 교리문제, 인간에 대한 훈련문제, 심정문제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3대 심판을 거쳐야 합니다. 3대 심판은 진리심판과 인격심판과 심정심판입니다. 여기서 교리는 진리입니다. 이 3대 심판을 거쳐야 참부모와 인연을 맺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에 패스하지 못한 사람은 축복도 못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었다가 자기 멋대로 별의별 놀음을 다하고 다니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법을 모르는 사람을 재판관으로 세우면 자기 마음대로 판결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복귀의 법도가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 원리같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부모를 잃어버렸기에 그 부모를 찾아 들어가는 공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런데 원리를 몰라서 되겠느냐 말입니다. 또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알기만 하고 구경만 해야 되겠습니까? 실천을 해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 익히고 실천해야 됩니다. 원리 말씀대로 실천하려면 원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원리말씀을 들어서 무엇 합니까? 부모가 몸소 그 원리를 중심삼고 실천했기 때문에 법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녀들도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실천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만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한 아들딸이라면 영적인 양자의 부모까지도 지시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지, 지도를 받고, 지시를 받는 자리에서 참된 부모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의 아들딸의 자격을 갖추려면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의 아들딸의 입장과 양자의 부모가 되는 예수님과 성신의 입장을 서로 비교하면 어느 것이 높으냐 했을 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느 자리가 더 높겠어요?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자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성신의 위치보다 더 높습니다.

축복의 가치

현재 여러분을 보게 되면 형편이 무인지경이지만, 그래도 예수님과 성신의 위치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참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나는 하나된다. 말씀과 행동과 심정이 참부모와 하나된다'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가 복귀의 원칙인 원리말씀과 하나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된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원리에 입각해서 사탄을 굴복시켰습니까? 못 시켰습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이 참부모의 아들딸로 태어난 자리에서 참부모와 심정이 일치된 자리에 섰습니까? 못 섰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조건을 거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축복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어요? 이웃 동네의 누군가가 돈 백만원 가져다 주는 것 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말입니다. 또, 몇억 원의 돈을 갖다 주는 사람이 있으면 축복도 저버리고 그것을 따라 갔을지도 모릅니다. 축복이 몇십억 원의 돈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인 줄 알아요? 몇 나라의 땅을 주고도 못 갖는 것입니다. 나라를 주고도 가질 수 없어요. 그것도 모르고 이런 내용을 설명해 주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은 원리책에도 없는 말씀입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하나님이 새로운 말씀을 하실 것이니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성전에 들어와서 말씀을 받기에 합당한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조반금식이라도 하면서, 많은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이 그 정성의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첫째로 꼽고 기억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나온 사람 있습니까? 이런 여러분들을 데리고 자녀의 날을 맞고 있다니 참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이 자리는 아무렇게나 해 가지고 참석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정과 변명이 많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런 뜻을 알겠습니까? 이날은 부모와 상봉하는 날입니다. 부모와 상봉하려면 다리를 놓아야 할 것 아녜요? 그러니 이런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또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하면, 참다운 자녀로부터 참다운 가정,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죽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참다운 세계로 가야 합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볼 때, 소련 중공 미국 할 것 없이 세계는 전부다 여기서 하나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가 얼마나 귀한 자리입니까?

기독교는 우리에게 흡수됩니다. 세계의 모든 기독교는 우리의 발판이 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언젠가는 로마 교황청까지도 움직여 나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하는 도중 바티칸에 들러 궁전 맨 꼭대기에 올라가 있을 때, 마침 교황이 고위 성직자들을 데리고 광장에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교황 당신보다도 더 위에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들도 모두 우리에게 흡수될 것입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의 수가 세계에 10억 가까이 되는데 이것을 발판으로 삼게 되면 오늘날 문화세계의 모든 내용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쉽게 창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원이 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기독교를 흡수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우리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지어 놓은 밥을 누가 가서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법도와 순서를 갖추어서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먹어야 할 것인데,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먹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이 밥을 그냥 거리에 갖다 놓으면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농후합니다. 안 그래요? 소질을 가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좋은 것을 갖다 놓으면 삵괭이같이 서로 덤벼들 것입니다. 그러니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뜻을 위해 자기를 버려야 할 때

어떤 사람은 왜 뜻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뜻은 이루어지지만, 역사를 대표하여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올바른 물건을 상속해 주었는데, 그것을 영원히 영원히 보관하여 맡긴 분이 훌륭하다고 칭찬할 수 있는 보관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뜻이 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뜻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가는 길도 민주주의가 가는 길도 이제 내리막 길로 들어섰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점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넘어가는 길은 공산주의의 길도 민주주의의 길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세계를 못 넘어 가는 것입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세상을 지배한 것은 사탄이었지만 사탄은 이 세계 이상은 못 올라갑니다. 사탄은 사탄을 중심삼고 완성한 국가 기준까지밖에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나 사상을 아무리 끌고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애국심을 밟고 넘어서서 세계적인 애국심을 못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세계를 찾아 나갈 때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소련도 지금까지는 세계 공산국가를 규합해 나왔지만 이제 세계를 넘는 경계선에서는 자기 국가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국가의 형성 과정은 자기에게 끌어다 붙이는 놀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자기를 버려야 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나라의 주의나 사상은 세계를 규합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은 자국 국비의 3분의 2를 다른 나라를 위하여 써야 됩니다. 국비의 3분의 2를 외국을 위하여 쓸 때 미국은 역사에 남아지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전체를 소생·장성·완성 3단계로 볼 때, 이 3분의 2라는 것은 소생·장성권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장성기에서 타락한 연고로 3분의 2권, 곧 장성권(長成圈)까지는 사탄이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분의 2권까지는 사탄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권내(圈內)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이 하늘편을 대신하여 국비의 3분 1을 자기 나라를 위하여 쓰고 3분의 2를 다른 나라를 위하여 쓰게 되면, 3분의 2권이 사탄권(圈)을 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미국은 소생 장성권을 벗어나 완성권 내에 있게 되므로 완성된 국가형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꾸로 자기 나라만을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만을 위하여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의 경제 부흥만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착취해가는 나라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고 거기에 덧붙여서 장사를 해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 원조를 해주고도 욕먹는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이 원조를 해준 것이 언제부터냐?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 시작해서 트루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까지 해 나왔습니다. 이것을 계대로 보면 4대입니다. 여기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일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이 닉슨 시대에는 세계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되는 날에는 얻어맞습니다. 역사적인 오점을 남기는 거예요. 내가 교회 안에서나 하는 말이지만 세계에 대해서 방송을 한번 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전세계에 소문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림주님의 나라가 오기까지 세계에 나라를 형성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통일의 나라를 세워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를 넘어 세계로 나갈 때는 그 나라를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못 하는 나라는 역사적 과정에서 공헌을 해도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새 시대의 주인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란 나라를 넘어 세계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가진 세계적인 지도자라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럴 수 있으면 대한민국이 그런 주인의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나 여러분은 대한민국만 위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세계를 주도해야 할 대분수령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됩니다. 분수령 가운데서도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인과 아벨이 갈라져서 싸웠지만 이제는 합쳐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관념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또다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내 자신도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가정도 제물이 있어야 할 것이요, 통일교회는 하나의 종족인데 종족 전체도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이요, 삼천만의 한국 민족 전체도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영계 전체까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세계 인류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 30억 인류 전체가 한꺼번에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대표자들을 세워서 그들이 희생되었다는 조건만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만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이면 미국의 위정자나 그 국민이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세계를 더 사랑하고 세계를 더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공산당들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모르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이 모든 것을 청산해 주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이 앞으로 세계 최고의 첩보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흥신소를 만들어서 세계적인 정보망을 조직하여 이런 것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모두 사탄세계이니 필요하면 팔아서라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무찌르기 위하여 최고의 험한 골짜기라도 들어가서 사탄과 대결을 해서 승리할 부대를 파송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선생님이 이 시대를 대해서 싸워 나가자고 선동하는 것 같지만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아들딸을 교육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라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다. 애국자다. 어머니로서의 애국자가 아니라 애국자로서의 어머니, 충신으로서의 아버지다'라고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도를 가르치는 데도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영원한 이념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영원한 사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면 그만큼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제재를 받는 만큼 영계에서의 위치와 계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누구보다 훌륭하다고요? 석가나 공자보다도 훌륭하고 예수님보다도 훌륭하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요? 참부모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간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간판은 세도와 같은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사위만 되더라도 세도를 부리는데…. 그러나 사위가 될 수 있는 길은 있지만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성(姓)을 따서 바꾼다 하더라도 그 성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입니다. 아들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간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충효의 도리

여러분이 죽을 때에 누구를 붙들고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창조이상이 무엇입니까? 창조목적이 무엇이라고요? 인간을 중심삼고 말하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에는 죽는 법도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죽는 법도 있는데, 죽는 제1법도는 무엇이고 제2법도는 무엇이고 제3법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어요? 죽을 때 제일 가까이에서 지켜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죽을 때 제일 가까운 인연이 누구입니까? 죽을 때 옆에서 눈물 흘리며 울어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자녀들입니다」 또 누가 있습니까? 「배우자입니다」 또 누가 있습니까?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흘리는 눈물 중에서 누가 흘리는 눈물의 도수가 제일 높겠습니까? 「부모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눈물은 상대적입니다. 여기에는 종횡의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눈물이 제일 꼭대기에서 떨어지느냐 하면 부모의 눈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죽을 때 무엇을 중심삼고 죽겠습니까? 사랑을 모두 잊어버리고 죽겠습니까, 꼭 끌어안고 죽겠습니까? 「꼭 끌어안고 죽겠습니다」 사랑 중에서도 누구의 사랑을 붙들고 죽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먼저 붙들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부부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사위기대 원칙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에 제일 먼저 누구를 부릅니까? 하나님을 부릅니다. 최고 어려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최고 진실입니다. 죽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죽는 자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죽음의 도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칙에 가까운 자리에서 그 원칙만 붙들고 죽게 되면 회생할 수 있는 길이 뚫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죽을 자리에 가서는 `아이고 하나님' 하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훈 중에 진실한 교훈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그래도 옳은 말을 하고 죽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런 것을 볼 때,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잘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은 말 중의 옳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에는 부모를 먼저 모셔 놓고 나서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찾아야 천도가 서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내나 남편을 부른 후에 자녀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해야지, 자기 남편이나 아내는 못 오게 하고 자녀들만 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아내보다 자식이 먼저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할 때, 해와가 실수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귀된 세계에서는 부모를 모셔 놓고 자기 배우자를 부른 후에 자식을 불러야 됩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도 사위기대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갖추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죽음길도 올바로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난 후에도 영혼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을 아는 여러분은 죽을 때 누구를 붙들고 죽겠습니까? 「하나님요」 그 다음에는 「참부모요」 태어날 때도 그분을 통해서 태어나고, 죽을 때도 그분을 통해서 죽어야 영계에서도 영원히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나서 그분을 통하여 결말짓는 것입니다. 전부다 이 원칙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 효의 도리요, 충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효와 충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 인생행로에 있어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가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는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 가운데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부모를 먼저 생각합니다. 좋은 것을 보았는데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에게 귀한 것을 먼저 사드리지 않고는 자기 아내에게 사 줄 수 없는 것입니다. 36가정 중에는 이런 말을 듣고 걸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 아내에게 옷을 해 입히려면 부모에게 먼저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자기 아내에게도 못 해입히는 것입니다. 그 아내도 자기 남편이 부모에게 못 해 주었는 데도 불구하고 무슨 양장이니 뭐니 하면서 `이것이 마음에 드는데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하나 해주소'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 알겠습니까?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옷을 해 입으려면 부모에게 먼저 해드리고 나서 해 입고, 아내에게도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부모를 모시고 먹어야 됩니다. 사탄세계의 부모가 돌아가시더라도 3년상을 모시는 것이 한국의 풍습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3년 이상 정성들여서 부모를 모셔 보지 않고는 천상세계에 가서 대한민국의 후손이라는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여러분들, 집에서 부모를 3년 이상 정성들여서 모십니까, 안 모십니까?

옛날에 효자들이 부모의 3년상을 모실 때에는 묘소에 움막을 짓고 거기서 기거하면서 효의 도리를 이행했던 것이 한국의 예법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그 이상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하고 있습니까? 축복 가정 중에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전부 다 엉터리입니다. 엉터리 중에서도 이런 엉터리가 없는 거예요. 그런 여러분들이 하늘을 모시겠다고요?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이해됩니까, 안 됩니까? 죽을 먹고 살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부부끼리만 좋으면 축복가정입니까? 서로의 좋은 면을 갖추어 가지고 부모를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수없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자신임을 깨달으라

부모를 모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매일같이 기다리지만, 부모가 오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사랑하는 하늘의 형제들이라도, 하늘의 아들딸들이라도 자기 집에 오기를 고대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이 하늘의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옛날에 한국의 선비들 중에서는 지나가는 길손이 묵어 갈 수 있도록, 사랑방을 잘 꾸며서 손님을 접대하는 방으로 썼습니다. 이런 것은 한국만이 가졌던 내력입니다. 이 법도는 하늘의 법도를 미리 사탄세계의 역사과정에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집에 누가 올까봐 걱정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손님이 집에 오기를 원합니까, 오지 않기를 원합니까? 「오기를 원합니다」 오기를 원한다고요? 선생님이 한 석 달 동안만 매일같이 여러분들 집에 가면 어떻겠습니까? `아이구 지겨워'하면서 싫어할 것입니다. 안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손든 사람이 적은 것을 보니 그러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아닙니까? (웃음) 선생님이 이런 저런 할 얘기가 참 많아요.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는 선생님이 기가 막히겠습니까, 트이겠습니까? 기가 막힌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자기 위신도 모르고 처신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을 교육시켜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적인 권한,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입니까?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인 것입니다. 막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여러분의 생활감정으로서 여러분의 세포에도 느껴질 수 있는 시대권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태어나는 것도 그렇게 태어나야 하고, 살기도 그렇게 살아야 되고, 죽는 것도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습니까? 그러지 못했지요. 그러니 죽을 때라도 어떻게 죽어야겠습니까? 태어날 때는 그렇게 못 태어났지만, 죽을 때라도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만약 태어날 때도 그렇게 태어나지 못하고, 죽을 때도 그렇게 못 죽으면 아주 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어서 갈 데를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앞으로 여러분의 자식에게 무슨 유언을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유언을 할 것입니까? 부모가 하지 않고 자식에게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부모는 자식을 이용해 먹겠다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실천하고 나서 죽기 전에 아들딸에게 `나는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게 살았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라' 하고 유언을 하게 되면 그 유언은 하나님이 영원히 지켜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을 때에 후손들에게 그렇게 유언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류가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와 양자의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 과정에는 수많은 제물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을 추구하던 수많은 개인들이 희생을 당했고, 그 선을 중심삼은 가정이 희생당했고, 그러한 종족, 민족, 혹은 수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희생을 당했습니다. 이제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희생당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전세계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기 시작해서 다 망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제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찾아온 것이 이 한 기준이라는 것입니다.그러니 지금까지 희생해 온 모든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그 기준이 우리가 지금 배우고, 알고, 실행하고 있는 이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여러분을 수많은 종족과 민족 국가를 희생시킨 대가를 치르고 산 것입니다.

위신을 지켜야 할 축복가정

그러면 이 자리가 지닌, 그럴 수 있는 자격이 무엇입니까? 이 자리가 지닌 내적인 가치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자리를 지금까지의 낡은 사상이라든가 그외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샀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주적인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통일신도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자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시시껄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을 생각해 보더라도 지금까지의 반만년 역사 가운데에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애국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 희생을 전부다 합해 가지고서도 그것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선을 추구해 나오던 사라들을 전부 합하고 나라를 전부 투입해서 산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이것만 남겨 두고 세계를 쓸어 버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럴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으로서의 책임을 잘해야 합니다. 축복 받은 가정과 세상 가정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요? 천상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요? 여러분들이 축복가정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일을 했을 때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여러분 자신들의 경우를 놓고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 자신들을 사랑하지요?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잘못해서 역적이 되더라도 역적된 그 자체는 미워하겠지만, 자기 혈육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입니다. 선생님의 염려는 부모로 인해 그 자식들 조차도 역적이 될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만둘 수 있겠습니까? 나이 값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두고 보면 형편없습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모두들 반성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위신과 축복가정의 위신이 어떻게 될 줄 알아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는 말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각자의 마음에 비상을 걸고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약속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이유가 없습니다. 자녀의 날에 이런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자녀의 날이기 때문에 자녀들의 나쁜 점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고 선생님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러왔던 아버지나 어머니는 전부다 가짜입니다. 그렇지요? 그 가짜 세상을 부활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때려부숴야 되겠어요?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 밀어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아버지! 나는 대한민국을 향하여, 더 나아가 세계를 향하여 갑니다' 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가는 도중에는 분명히 원수가 있을 것인데, 이 원수를 어떻게 해서 강제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자연 굴복을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여러분들은 때려부수는 것이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때려부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해 나오시기 때문에 이것으로 끝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다 같이 살 수 있는 고생길

선생님이 어제 `가야 할 험한 길'이라는 말씀을 할 때, 고생한다는 것이 좋다고 얘기했습니까, 나쁘다고 얘기했습니까? 「좋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을 고생시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이 다같이 사는 길입니다. 내가 사는 길이요, 네가 사는 길이요, 대한민국이 사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 전체에 직접 부딪치려고 합니다. 3국을 동원하여 포위작전을 쓸 것입니다. 3국이 동원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이 포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밥을 먹고 돌아서나, 혹은 자나깨나 어디를 가든지 삼천만 민족을 하나로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따라와야 할 길입니다. 세계인류도 따라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밥을 먹더라도 그것을 위해 먹고, 살더라도 그것을 위해 살고, 죽더라도 그것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전생애를 바쳐서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모심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명령이 있거든 그 명령을 향하여 직행해야 됩니다. 돌아갈 생각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생명이 엇갈리는 한 초점에 서서 가는 길이 효의 도리요, 충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것은 살아 있는 최대의 가치와 죽을 수 있는 최대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효의 도리를 세울 수 없고 충의 도리를 세울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길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다가 아무데서나 쓰러진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왕에 죽을 바에야 직행하다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돌아가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 하나의 수단 방법으로 교섭해 나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바쁜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국의 누구를 만나려고 하는데 그가 한번만 거부하게 되면 전부다 걸립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와야 됩니다.

만약 통일교인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 혼자밖에 안 남았는데 그것도 병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 하나를 부르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셨구나. 나 하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해서 외로워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대가를 치러 가지고 결국은 나 혼자 남았구나'하는 마음을 갖고, 나 하나에 대한 기대가 더 배가된다는 사실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못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못났으면 못난 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고 생명을 걸고 나서게 될 때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통일의 이념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못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 죽고 밀리고 쫓기고 찢기는 가운데서 자기 혼자 남았지만, 하나님이 자기 하나를 남기기 위해 희생을 해 나왔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는 비록 약하고 부족하지만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천만 배의 책임을 내 어깨에 짊어졌으니 `하늘이여,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깨끗이 빛을 내고 갑니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가 흐지부지하게 인연을 맺고 갔지만, 나는 일편단심으로 출발하겠다고 하면서 나가게 될 때는 망하지 않습니다. 죽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적인 역사의 슬픔을 현실에 재현시켜 가지고 횡적인 면에서 탕감하는 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령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밉다가도 고울 수 있겠지만, 남자 앞에 여자 얼굴이 미운 것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축복도 좋지만 얼굴도 고와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거기에 대해서는 설명을 안 합니다. 얼마나 무지무지하고 엄청난 역사가 말려 들어가는지…. 이러한 엄청난 뜻을 알게 되면 아무리 못난 여자를 만났더라도 그가 도망갈까 봐서 염려할 것입니다.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어째든 간에 그 여자가 없어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만점

그런데 축복받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해요? 내가 복수할 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은 하늘 것으로 남아질 것이고 사탄의 것은 사탄 것으로서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데로 시집가고 장가가서 자식을 낳게 되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축복을 받은 사람이 다른 마음을 먹고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이것 때문에 선생님이 골머리를 앓습니다. 선생님이 최대의 노력을 해서라도 그 길을 막을 수 있다면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막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랑이 아닌 것을 알기에 그냥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배반자의 수치도 당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까지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상에서는 배반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원수를 갚는 것이 하나의 도리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배반한 자에게 복수하는 역사를 전개시키어 사탄을 굴복시켜 나가셨는데, 용서해 주는 법도를 선생님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딱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몰라도 관계없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을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하면 앞으로 축복받은 세계가 전부다 참소받게 될 것입니다. 난데없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 원한의 터전이 남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을 죽음길에 보내어 몇 배의 어려움을 당하게 해서라도 탕감의 조건을 세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문제까지도 염려하고 있습니다.

기미꼬(君子)!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문화부장(유광렬)과 결혼하게 되어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했지? 좀더 멋진 남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했었지? 「예」 만일 문화부장이 여기에 없었다면 한국으로 시집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 봤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만 만점이야.

얼굴이 못생겼어도 좋고, 집이 없더라도 좋고, 아무런 자격증이 없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구. 그런 것 알아? 남편 앞에 순종하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구. 기미꼬가 가장 모범이 되어 주지 않으면 일본 처녀들은 한국으로 시집올 수 없는 거야. 기미꼬만의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우. 기미꼬가 열심히 잘해 나가면 일본의 처녀들도 다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라구.

그렇게 되면 일본의 처녀들도 한국으로 시집오고 싶어할 것이며 일본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보다도 한국의 남자와 결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게 될 거라구. 알겠어? 「예」

여러분들이 축복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하루종일 걸린 것인데, 여러분은 하루종일 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땀이 나서 죽겠는데…. 오늘도 한복을 입고 나왔더니 상당히 덥구만. 양복을 입고 있을 때보다 더 더워요.

그러면, 여기서 이 선을 넘어서야 되겠나, 안 넘어서야 되겠나? 넘는 데는 그냥 넘어갈 것 같아요? 이 선은 사탄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은 혼자서는 못 넘어갑니다.

타락할 때 혼자서 했습니까, 둘이서 했습니까? 타락할 때에 둘이서 타락했기 때문에 혼자서는 못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 선은 사탄을 앞세우고 출발했기 때문에 다시 넘어오려면 사랑을 중심삼고 넘어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복귀섭리가 얼마나 복잡한지 잘 모를 것입니다. 원리를 알고 나면 간단하지만, 이것을 전부 꿰매야 합니다. 인간들이 얼크러뜨린 것을 전부다 꿰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온 것이 오늘날 이만큼 나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우리가 갈 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머리를 쓴다는 사람은 알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뜻은 기필코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필코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뜻

선생님의 일대에 이 엄청난 일을 수습해 가지고 나온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그러면 기적의 조상이 누구이겠습니까?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홍해를 건넜으면 무엇합니까? 예수님께서 행했던 여러가지 기적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귀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엄청난, 가장 세계적인 사상, 하나님이 6천년 동안에도 결정짓지 못한 것을 내 일생의 수십 년 생활노정 기간에 묶어 놓았다는 사실, 이것이 간단하였겠습니까, 복잡하였겠습니까?

선생님이 어떤 새로운 말씀을 하게 되면 그것은 그냥 하는 말 같지만 선생님은 이미 전부터 다 생각하고 알아보고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자녀의 날, 부모의 날을 선포할 때 여러분이 그것을 알았습니까? 선생님의 세 아들딸이 어떻게 되는 지 알았습니까? 모두다 해 놓고 나서 설명을 해 주니까 알았지. 그렇지요? 또 난데없는 심정부활의 날, 실체부활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무엇이냐? 어때요, 그것이 원칙에 틀렸습니까? 원칙과 순서가 맞게 짜여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가 막히게 짜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짜여진 사실을 목표로 정해 놓고 지금까지 실행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때가 어느 때인지,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압니다. 선생님이 `10월 1일은 자녀의 날이다' 하고 선포를 하게되면 그날이 하늘세계의 명절이 되는 것입니다. 조계사 신도회 회장인 윤청정심씨가 통일교회를 알게 뭡니까? 그 사람은 하늘과 직통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통일교회의 명절날이니 케이크를 사 보내야 한다면서 케익을 보내 왔어요. 선생님이 케이크를 사오라고 통보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케이크를 보내 왔더라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성들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오늘같은 명절날에 자기가 알아서 정성들이겠으니 그렇게 알아주소' 라고도 합니다. 또`하나님의 날이 가까와 오니 오늘부터는 정성 못 들이고 내일부터 定성들일 테니 그렇게 알아 주소' 하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밖의 사람들이 하나님 날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날에 대하여 압니까? 그 사람들이 아는 만큼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가치적인 면에서는 그 사람들만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들을 결정짓는 데는 사탄을 입회시킨 삼각권내에서 결정짓기 때문에 그날이 역사를 지배하는 날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1960년대에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입니다. 또 1970년대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이고 1980년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 20년간이 세계적으로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21년노정이 어떻게 된 것이냐? 선생님은 20년 후에는 `이렇게 된다'고 결론을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선을 넘어가는 데는 혼자서는 못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축복은 그 선을 넘는 열쇠입니다. 그러면 축복이 고마운 일입니까, 고맙지 않은 일입니까? 「고마운 일입니다」 축복가정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습니까? 「좋아합니다」 또 자기를 축복받기를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까? 「원합니다」 자기가 축복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까? 축복가정을 더 좋아합니까? 「축복가정을 더 좋아합니다」 축복가정을 좋아해 보지 못한 사람은 축복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가정도 조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언제 축복받은 가정을 제일 좋아해야 하느냐? 1960년도의 성혼식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날을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날을 고대했어요, 안 했어요? 고대했다고 했지만 막상 그날이 왔을 때 떨어져 나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날이 왔다고 저주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주머니들은 알 것입니다. 얼마만큼이나 알아요, 거기에 장단 맞췄어요, 안 맞췄어요? 밑지는 장사도 이렇게 밑지는 장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밑졌느냐? 선생님에게 직접 원수라는 말은 안 했지만, 참부모라는 이름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인데, 지지리 못난 통일교인들한테 참부모라는 말을 가르쳐 준 것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골탕 먹으며 나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러나 자를래야 자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긴 올바로 가르쳐 주었으나 그들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올바른 입장에 세워 주기 위해서는 자를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서러움입니다.

자녀의 날을 맞아 생각해야 할 것

축복을 받겠다고 하면서도 축복받은 가정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과거에 사랑하지 못하였으면 지금부터라도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축복받은 가정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축복받은 가정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찝찔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젊은 사람들, 축복가정을 존중시했어, 안 했어? 「안 했습니다」 그러면 축복받을 자격이 있나 없나? 이런 모든 원칙이 아직까지 질서가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우려면 내가 핏대를 올리면서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서라도 여러분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아주 몽둥이로 두들겨 맞을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맥도 못추게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바로 세워 주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먼저 넘어야 하느냐, 재림주입니다. 즉 참부모가 먼저 넘어야 됩니다. 참부모가 넘어가면 그 문이 열리게 됩니다. 이 문을 통하여 한 사람만 넘어가면 다른 자녀들도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하여 하나의 문이 열 개의 문, 백개의 문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운세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녀의 날을 맞게 될 때에 뼛골에 사무치도록 감사해야할 것은, 여러분에게 참부모의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부모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사무치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찾아 나왔던 단 한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참된 부모의 날입니다. 자녀의 날보다도 참된 부모의 날이 이 땅 위에 탄생하기를 바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나오지 않고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설령 아버지라 부르더라도 심판기준을 넘어서지 못할 입장에서의 아버지이지, 심판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서의 아버지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심판기준을 넘어설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라 불렀지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서는 아버지라 못 불렀습니다.

심판의 기준을 넘어서서 부를 수 있는 아버지는 영원한 해방의 아버지입니다. 해방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지의 출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사탄세계에 포위되었을망정 그것은 어디까지나 퍼져 나갈 것입니다. 또 퍼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자녀의 날을 맞기 위해서는 6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가름길을 결정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참부모로부터 인연을 부여받아 참부모의 축복을 받아야만 비로소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는 데에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지 그냥은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하기 전에는 여러분은 참부모와 하등의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뼛골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자녀로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

여러분들이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는 탕감법을 통하여, 부모의 뼛골을 통하여서 나왔다는 원리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딸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을 세우는 기간 이 1960년도를 중심으로 1961년, 1962년의 3년간에 걸친 40일 전도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그랬지요? 왜 보리밥을 먹어야 되었느냐면, 그 3년 동안이 탕감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선생님의 직계의 자녀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복귀해 넘어가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부모를 중심삼은 가인 아벨의 관계를 세워서 가인 아벨을 일치화시켜 나가는 기간이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일치화시켜야 되느냐 하면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일치화시키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전단계로써, 1960년 이전에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될 때였습니다. 그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생님을 참 좋아했습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있겠지만, 남자가 남자를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자끼리 그리워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는 자기의 부모, 형제, 아내, 자식을 다 버리고서라도 달려가고 싶을 만큼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해와가 태어나기 전에는 누구의 몸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해와의 몸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아담의 몸 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아담의 뼛골 속에 아들딸의 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지만 거기서 자녀의 씨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일치되어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서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로부터 자식이 태어나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과 마찬가지 입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여자들,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안 했어요? 너무 좋아해서 소문이 많이 났지. 할머니든, 처녀든, 남자로 말하면 할아버지든, 젊은 남자든 전부다 선생님만 좋아서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심정적 일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첫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이 부모의 배를 통해서 탄생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생명의 인연이 시작되지 않으며, 원칙적인 복귀를 하지 않고는 완전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의 감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모든 감정이 선생님과 일치되고자 하는 심정적 방향이 알게 모르게 움직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참부모의 뼛골 속에서부터 심정적으로 접붙임으로써 참어머니의 복중을 통해서 본연의 아담 해와 입장에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어머니를 중심삼고 복귀되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이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에 그 애기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장자복귀섭리

기독교 역사를 두고 보면, 아담 가정에 있어서 형제인 가인 아벨이 싸웠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복중까지 끌고 들어가야 됩니다. 즉, 복중에서 생명이 출발했기 때문에 이미 태어났지만 다시 복중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서 동생이 형의 입장에 서고 형이 동생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가까운 입장에서 싸우는 것이 쌍동이 형제가 싸우는 것인데, 이것이 야곱과 에서의 싸움입니다. 형제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와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베레스와 세라는 어디에서부터 사웠어요? 복중에서부터 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장자와 차자의 입장을 바꿔쳐야 하는 것입니다. 장자가 차자되고, 차자가 장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를 두고 볼 때, 본래는 세라가 형입니다. 그런데 서로 먼저 나오려고 싸우다가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먼저 태어나 형님의 자리를 빼앗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예수님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원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중에서 형과 동생이 싸우는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꾸로 된 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세계가 형님으로 남아 있는 한, 형이 동생을 주관하기 전에 먼저 동생의 주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꿔쳐야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복중에서 형과 동생의 입장을 바꿔치기한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이런 일이 역사시대에 유다의 아들을 중심삼고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내용을 잘 알지요? 복중에서부터 먼저 나오는 세라의 손에다가 산파가 홍사로 표시했지요? 그것이 오늘날 공산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라가 먼저 나왔다는 것을 알기 위해 홍사로 표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이 형을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라고 불렀습니다. 베레스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동생으로 태어날 아벨의 입장인 베레스가 가인의 입장인 형으로 태어난 세라와 싸워서 복중에서 장자권을 탕감복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하여서 하나님이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시대에 있어서 싸우면 하늘이 앞서는 것입니다. 싸우면 하늘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소란하면 소란할수록 끝날이 가까이 온 줄 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하늘은 이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레스가 복중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역사적인 승리의 기반을 세웠기 때문에, 예수님이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되었을 때에는 싸울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서 장자의 입장으로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모의 역사가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를 중심삼은 복귀원칙에 있어서 내적인 복중세계에서는 이겼지만, 외적인 세계에 나와 보니 아직까지 사탄세계가 남아 있으므로 다시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국가를 중심삼고 빼앗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개인을 중심삼고는 승리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기준이 세워졌지만, 국가를 중심삼고는 아직 그런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국가를 중심삼고 빼앗는 싸움을 해서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게 되면, 여기서 가정적인 기준과 국가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요, 동시에 세계적인 기준이 결정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통일교회의 3년노정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은 예수님만이 거쳤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것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상속받지 않고는 역사적인 기원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므로 영적으로 이것을 상속받아서 다시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렇게 재탕감역사가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선 근본을 완전히 복귀해야 합니다. 탕감조건복귀로는 양자의 기준으로밖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복귀를 하는데 있어서 그 아들딸 앞에 누가 굴복해야 되느냐? 천사장이 굴복해야 합니다. 천사장이 직접 굴복해야 된다는 거예요. 천사장이 실체로 눈물을 흘리면서 굴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실체로 굴복한 형상을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평면적인 입장에서 세워야 합니다.

이렇듯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면, 천사장이 사탄의 입장이 아닌 충신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에게 순종굴복하여 탕감복귀하는 입장에서 양자에 대하여 계대를 이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입장을 취해 나오던 사탄편을 차자의 입장에 세우고 하나님의 축복받은 본래의 직계 아들딸을 장자의 입장에 세우기 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3년노정의 역사입니다. 3년노정의 역사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하나된 조직을 세워야 합니다.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걸고 이 싸움을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3년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도 보리밥을 먹는 동시에 여러분도 보리밥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애기도 보리밥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심정적으로 일치된 내용을 중심삼고 복중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국가를 걸어 놓고 싸워 근본복귀의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비로소 평면적인 가정의 인연과 종적인 인연이 탄생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복잡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참부모가 나왔다 하면 그 참부모 앞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여기에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 셋의 세 아들의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세 아들을 중심으로 여덟 식구가 지옥에 떨어졌으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노아의 여덟 식구가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 기준을 넘기 위해서는 여덟 식구를 갖추지 않고는 못 넘어갑니다. 선생님도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세 아들과 같은 입장을 중심삼고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타락한 사탄세계의 인류를 수습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중심삼고 심정부활의 조건을 세워서 심정부활의 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적인 심정의 인연을 가졌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적인 심정적 기준을 통해서 복귀역사를 해 나왔지만 그것으로써 아벨적인 심정적 기준을 그대로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에 심정부활이라는 조건을 세워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심정부활을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아들딸과 연결되어 가인적 형의 입장에서 심정적으로 하나되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 탄생하는 실체부활의 조건을 세워야만 축복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은사권내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그렇게 되면 도저히 깨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는 심정부활의 날을 지극히 거룩한 명절로서 기념해야 합니다. 실체부활의 날을 기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부활절을 중심삼고 선포했습니다. 부모의 날과 심정부활의 날을 합하여 사흘 동안을 명절로 지내게 한 것을 알아요? 왜 그렇게 했는지 알아요? 복중세계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을 결정지어 놓자는 것입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하는 바른 자세

이렇게 볼 때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큰 명절입니까? 자기 생일과 같은 날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잔칫날 정도의 날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천적인 인연을 가진 명절날을 소홀히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면목없는 자신들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그저 지나가는 한날로서 기념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러기에 세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모의 날을 선포하고, 자녀의 날을 선포하니 그날을 중심삼고 하늘땅이 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해 놓고 다음에 세계적인 만물의 날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진짜 명절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들을 세계에로 연결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계 40개국을 순회하면서 120개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놀기 위해 다닌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국에 있는 8개 도의 성지들을 중심삼고도 한국을 세계와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세계 각국의 성지가 한국의 돌과 흙을 중심삼고 하나의 핵심적인 축복의 기점이 되어야만 그것이 중심으로 해서 세계가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은 기반 위에서 1968년 초하루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의 날을 선포했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터 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한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뼈살을 자극하면서 온갖 정성을 모아 가지고 피어린 투쟁을 했는지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들어보니 그렇게 되는 구나 할 뿐이지, 그 깊은 내용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위하여 일생 동안 정성을 다하고 천년 만년 정성을 다하더라도 그 은혜에 보답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국가 전체가 합해서 이 뜻을 중심삼고 충성해도 선생님의 은혜를 갚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날에는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되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을 세워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곡절을 거쳤겠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날을 맞기 위한 여러분의 자세는 어떠해야 되는가? 이날을 대대손손, 천추만대에까지 귀한 날 중의 제일 귀한 날로서 찬양하고 모시며 지키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자녀의 날인데도 자녀들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전부다 엉터리 자녀라는 것입니다. 교회면 교회, 부모면 부모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중에 축복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이런 날을 중심삼고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또 앞으로 세계가 이날들을 영원히 기념할 수 있는 날로서 선포해야 합니다. 이날에는 소를 한 50마리 정도 잡아서 잔치를 벌여 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 접대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들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통일교회 자녀의 날이 다시 오기를 고대할 것입니다. 이처럼 앞으로 전세계의 인류가 그날이 오기를 고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미리 한 달 전부터 준비하여 잔칫상을 잘 차려서 배고픈 사람, 먹고 싶은 사람은 전부다 와서 먹어라 하게 되면 상당히 많이 모일 것입니다. 떡봉지를 한 10만 개 만들어 놓고 준다고 하게 되면, 이것을 받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설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다가 별의별 것을 다해놓고 준다고 했을 때, 교통이 단절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요, 그렇게 되면 여기에 모여들 사람들의 행렬을 수습하기 위해서 경찰이나 시경 경비과 직원들이 모두 동원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못 만들것 같아요? 「만드실 것 같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서, 세계 인류가 통일교회에서 자녀의 날이라고 하면서 잔치가 크게 벌어졌는데, 그날이 대관절 무슨 날이냐? 하게 될 때 `역사가 기념하는 날이다'할 수 있는 그런 날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인류를 자동적으로 조화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나서서 이런 준비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꿈만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한 자의 할 일

선생님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나라에 가서 자랑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 가려 해도 갈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이제까지는 모든 일을 선생님이 지시해 가지고 해 나왔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시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스스로 이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싫지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자녀의 날을 맞이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맨 먼저 여러분 아들딸의 집에 가서 잔치를 하고, 다음에는 자기집에 모여서 잔치를 하고 그 다음에는 교회에 나와서 잔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생 장성 완성의 3시대 형으로 잔치를 해야 합니다. 상징복귀, 형상복귀, 실체복귀의 입장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징적인 아들딸들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천상에 한이 맺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해야 하고, 나를 중심삼고 낙원에 가 있는 모든 선영인들을 복귀해야 하며, 교회를 중심삼고 하늘땅의 도리를 찾아 나와야 합니다. 이런 3단계 원칙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은 가정적인 환경에서부터 이날을 기념해야 됩니다. 자녀들이 그날이 오기를 고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이들이 명절을 기다리듯이, 때때옷 입고 맛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오나 하면서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자녀의 날이 온다고 좋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그저 건달들같이 그러니 그런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그러면서도 여러분들이 `나는 통일교회 교인이다'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은 그렇게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 날로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탕감의 기준을 넘음으로써 국가를 거쳐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하늘의 자유의 천국이 우리 목전에 다가온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무엇으로 보답하고 무엇으로 감사할 것입니까? 이것을 위해서는 쓰러지는 것도 시련을 당하는 것도 영광으로 알고, 갖은 수욕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정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기뻐하면서 가야 할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피해서 갈 수 없습니다. 만약 그 길을 피해갈 수 있다면 선생님이 왜 고생을 했겠어요? 피해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전통을 세우라

이런 점을 중심삼고 결론을 내리자면, 자녀의 날이 역사적인 수난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대한민국에 기점을 잡을 때까지 선생님이 걸어온 노정은 수난의 노정입니다. 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수난이요, 횡적으로는 선생님 일대의 수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필생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세워 놓은 자녀의 날입니다. 이날을 여러분이 맞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대한민국의 남북통일 定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와 공산이 서로 손을 잡아서 전세계를 하나의 평화의 왕국으로 건설했을 때 환영하는 그런 정도의 입장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시정받아야 할 모순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날을 맞이한 것을 놓고 그 이상 감사한 마음과 그 이상 기쁜 마음을 가져 가지고 이날을 대하며 내 자신을 놓고 자랑할 수 있고 이날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자녀의 날을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제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1970년도부터는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0년도에는 여러분의 3년노정이 있게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여러분의 일입니다. 그저 적당히 눈 껌벅껌벅하다가 죽으면 다 될 줄 알아요? 아닙니다. 죽기 전에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날을 세계의 만민들 중에서 우리만이 가진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 정성들이는 그 정성 계보에 있어서 누가 제일의 아들의 입장으로, 누가 제일 권세 있는 입장에서 하늘의 명부에 남아질 것이냐?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은 결혼한 날이나 혹은 자녀가 태어난 그런 날에도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기념하고 있지요? 그러나 자녀의 날은 여러분이 결혼한 날이나 자녀가 태어난 날, 그런 날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모심으로 구원받는다는 입장에서 이런 날들을 존중시하고 그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심적 태도가 365일을 얽어매는 그 기준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런 날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심적 자세를 공고히 하여 가지고 여러분 가정에서 그와 같은 전통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얼마나 얼마나 당신이 수고하셨습니까? 이 길을 찾아오시기에 많은 노고를 해 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시여!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역사를 오늘 이 한 시간권 내에 저희들은 듣고 이해할 수 있었나이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태어난 것을 아버지 앞에 무한히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의 아들과 딸의 입장에서, 하늘가(家)의 전통을 상실시키고 아버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사람들이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사옵니다.

아담 해와가 천륜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원수 조상이 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 시대의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천적인 심정을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심정의 기반을 세우지 못하고 오점을 남겨 역사상의 모든 조상들과 후손들 앞에 참소받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모든 것을 매듭짓고 이 모든 것을 해결지어야 할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축복이라는 엄청난 명사를 앞에 놓고 나가는 데 있어서 더욱 아버지 앞에 가까와지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가꾸어져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부터 만 8년 전에 이 날을 허락하여 주셨사옵고, 올해는 저희들이 9회로 이날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아버님 앞에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당신의 자녀들 또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고, 얼마나 외로운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녀들도 필시 그래야 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줄 아옵니다. 하오니 이런 것을 알고, 저희들 앞에 아무리 눈물 흘리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길에 있어서 승리하여 당신을 해방시켜 비로소 안식하는 자리에 모셔 드려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모든 영광을 되찾으시어 아버지의 권한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주관하실 수 있는 그런 본연의 아버지의 자리를 저희들이 마련하는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저희들이 나아가는 길 앞에 새로운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소망에 벅찬 힘찬 가슴을 안고 모든 백성을 대신하여 아버님이 기뻐하시는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달려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을 다시 맞이할 때까지의 기간을 아버님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내년에 이날을 다시 맞이할 때는 저희들이 기쁨과 영광 가운데에서 전국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께서 축복하신 이날들은 온 세계 만민 앞에 자랑하여 그들이 우러러보는 날들로 세울 때까지, 저희들의 온갖 것을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향해 나아가 싸워 승리를 거두어 아버지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후 모든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선조들과 땅위에 살고 있는 인류와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까지 오늘의 이 축복의 은사에 다 같이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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