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온 천지에 머무시옵소서.
한 많은 복귀의 역사를 엮어 오시는 아버지, 그간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반당하셨사오며, 그 거역하는 인류를 품으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어느 한때도 당신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이 없었사옵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한,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이 없었음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스라엘을 세우시기 위해서 당신께서는 한 가정을 찾아 대표로 세우셨사옵고, 그 가정을 통하여서 당신의 종족과 민족을 세우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찾아오시는 당신을 이스라엘 민족이 수없이 배반하였던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엮어 나온 아버지의 슬픈 역사….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기쁨을 맞이하여 그것을 온 천지 앞에 나타내시어 송영의 한 자리를 추구하였지만, 번번이 인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슬픔을 품고 나오신 아버지! 이 시대에 아버지를 모시는 책임을 저희들이 지게 되었사옵니다.
지난날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로 세우셨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슬프셨던 아버지를 이제 기쁠 수 있는 아버지로 어떻게 모실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날 이 한민족이 해야 할 책임이요 사명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이 민족을 대표하여 먼저 부름받은 저희들은 하늘 앞에 없어서는 안 될 마지막 소망의 존재인 것을 절감하고 있사옵니다.
사방에 흩어진 수많은 민족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묶어서 당신의 마음을 닮게 하는 책임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 과정에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였고,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역사적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보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이오나, 이렇듯 역사의 한과 더불어 저희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9월 21일, 이달 들어 세 번째로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남기신 복귀노정에 대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싸움에서 패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승리의 왕자가 되어야 하는 엄청난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개인적인 승리의 자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가정을 찾아 세우기 위해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을 찾아 세운 후에는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복귀해야 할 고빗 길이 저희들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스스로가 이와 같은 고개를 넘기 위해서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넘기 어려운 고개요,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뒤따르는 고개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이 길을 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는 6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6천년 동안 싸워 오셨으며, 6천년 동안 참아 오셨습니다. 이렇게 길고 지루한 이 고빗길이 오늘날 저희 개인 개인 앞에 고스란히 맡겨졌더라면 그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으며, 그 누가 아버지의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는 것을 아시는 당신은 그래도 인류를 버릴 수 없는 심정에 지금까지 참아 나오셨습니다. 싸우는 슬픈 노정에 있어서나 거치른 고빗길에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오신 아버지! 당신의 그 거룩하심을 찬양할 줄 아는 저희의 모습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제 당신의 존전에 부름받은 불초의 자식들이 당신의 명령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명령해 달라고 할 수 있는 저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실체의 제물로서 이 몸을 바치기 원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당신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체로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뼛골이 연결되고, 아버지의 살이 엉키는 하나의 생명의 체휼감을 갖지 않고는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는 원리를 통해서 배웠사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아버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는 심정의 자식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원수의 혈족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저희들을 접붙여 주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당신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진정한 의미에서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고아입니다. 사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을 모아 손을 붙들고 사정할 수 있는 사람을 아직까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사옵니다. 그러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던 저희들이었사오니, 이제 다만 당신을 향하여 옷깃을 여미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로서 아버지의 거룩함을 찬양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름뿐만이 아니라 실체적 사실을 중심삼아 당신을 그리워하고, 영원무궁토록 당신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저희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아인 저희들에게 영광 가운데에서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들딸의 인연을 허락해 주신 은사에 진정 감사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저희들이 과거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아무런 공적이 없사옵니다. 아버지와 인연맺을 수 있는 아무런 선의 실적도 없사옵니다. 하오니, 그것을 스스로 느끼는 자리에 설적마다 아버지 앞에 감사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지상의 인류를 넘어, 수많은 민족을 넘어 수많은 국가를 넘어서 이 한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먹을 것 없고 헐벗은 불쌍한 이 민족 앞에 쫓기고 몰림 당한 저희를 끌어모아 놓으시고, 아들의 명분을 요구하시는 당신의 그 서글픈 입장을 저희들이 진정으로 위로해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그와 같은 입장에 선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강한 힘과 강한 모습을 닮아 가지고 당신의 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저희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한 입장에서 저희들 자신이 또다시 당신 앞에 힘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불쌍한 자리에 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인류 역사가 그러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저희 자신이오니, 저희들은 다시 한번 동정해 주옵길 아버지 앞에 간절히 호소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의 생애에 있어서 모든 생활과 생명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의 분부하신 뜻 앞에 일치화시키시옵소서. 영광의 자리에서 당신과 더불어 만민 앞에 찬양받을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며 저희들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의 문을 모두 열어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를 부르실 때, 밤이나 낮이나 그 어느 때를 막론하고 대답하고 응할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모세 앞에 들리게 될 때 홍해를 가르던 거와 마찬가지로, 당신 앞에 들린 막대기로서 방향을 분별하여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뜻을 따라나온 저희들은 과거의 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변명이 많았사옵니다. 너무나 쟀고 너무나 비교가 많았던 것을 용납하여 주옵소서. 온전히 아버지의 품안에, 아버지의 긍휼 앞에, 아버지의 사랑 앞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앞에 일치가 되겠다고 몸부림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이러한 자신이 되지 못한 과거를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옵소서.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에게 당신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당신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고, 당신을 위하여 경배할 수 있는 이 시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통일의 자녀들이 당신 앞에 엎드렸사오니, 이들이 당신의 마음 깊이 기억되고, 당신의 섭리에 일치되는 자리에서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교회도 그런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거기에 모여 분향을 드리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이 당신의 뜻과 당신의 거룩한 이념을 상속받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승리의 한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고, 소망의 기점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동안 인류를 대하여 얼마나 낙망하시고 얼마나 슬퍼하셨사옵니까? 당신의 그 슬픈 마음에 바라던 소망의 일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 자신들이 알았사오니, 그런 자리에 계셨던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되겠다고 정성을 다하는 저희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아버지 앞에 마음과 몸을 다하여 경배드리며 충성을 다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 자리에 찾아가시어서 일률적인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 앞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의 은사를 베풀어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한국을 조국이라고 그리워하면서 애달픈 마음을 갖고 책임을 다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이 그 자리에 꼭 같이하여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본부에 있는 저희들은 그들 앞에 빚지는 자들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사옵니다. 빚을 지고는 그 누구 앞에서도 체면을 세울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자신이 되지 않겠다고 충성을 다짐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외적으로는 모든 것이 부족하오나 당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특권적 권한을 가져서, 한국의 자랑이 되고 이 민족이 거쳐온 모든 수고의 한(恨) 가운데 피어나는 하나의 꽃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생명의 향수가 되게 하여 주옵고, 그 영광의 터전이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나라들 위에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고, 앞으로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찾아가는 어려운 길 앞에 탕감의 노정을 거두어 주시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환희의 자리에서 맞을 수 있는 그 한날을 그들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 앞에 맡기었사오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이 권고하신 뜻 앞에 일취월장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달과 이 해를 당신이 원하시는 뜻 가운데서 승리의 달로서 승리의 해로서 온 민족 앞에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 위에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복귀역사의 중심은 세계도 아니요, 어떠한 나라도 아니요, 어떠한 특정한 종족과 민족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는, 즉 하나님이 세워 줄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민족이 있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그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모를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 복귀 섭리역사를 해온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종결되는 귀결점이 어디냐 하면 부모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흘러 온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크고 작은 나라도 많았고 군소 민족도 많았습니다. 또한 종교인들의 가정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나라가 하나님이 찾고 있는 나라가 되지 못하였고, 그 민족이 하나님이 찾는 민족이 되지 못하였고, 그 가정이 하나님이 찾는 가정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가정과 민족과 나라는 전부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가정, 그 가정을 통해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 수습해 나온 복귀섭리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전체 대신으로 사랑할 수 있는 한 날을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신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나라를 세우고, 민족을 세우고, 종족을 세우고, 가정을 세웠다 하더라도 나라와 민족과 가정까지 수습해 나온 그 모든 수고를 잊어버리게 하는 하나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정도 아니요, 어떠한 형제도 아니요, 바로 부모입니다. 인류의 참된 조상의 기준이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오신 싸움을 종결짓고 최고의 승리도 다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바라신 소원의 기점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세우는 데 있어서 새로운 출발을 볼 수 있는 기점이 참부모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자리에 본래 누가 서야 되느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아담 개인 에게 혹은 해와 개인에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원하신 것은 그 둘을 중심삼고서 하나의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위기대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아담 해와가 하나되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자라 나오던 아담 해와가 하나의 사랑으로 묶여져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을 이루는 그 자리는 인류의 조상이 갖추어야 할 최초의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누구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체적인 사랑을 이루었더라면, 여기에서부터 인류의 참부모는 틀림없이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기준과 일치되지 못하고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즉 우리 인류의 조상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이 길이 여지없이 파탄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어떤 외부의 사정으로 인해 되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 즉 사랑을 중심 삼고 걸려 들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역사에 없는 수고를 하여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가 서로 등을 지고 갈라진 것을 묶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묶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꺼번에 전부 다 묶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 그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 그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참남자와 참여자를 세워 외적으로 갈라졌던 것을 본래의 것으로 전부 다 묶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해와 대신 인류의 본래의 부모가 되는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 여자 두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본래의 기준을 향해 거꾸로 묶어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사실임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역사입니다. 탕감복귀역사 가운데에는 수많은 가정이 동원되었고 수많은 종족이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나라가 동원되어 거쳐갔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어떤 가정이나 어떤 종족이나 어떤 민족이나 어떤 국가도 하늘의 뜻과 더불어 일치되었던 때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슬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세웠고 언제나 하나님이 낙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가정과 종족,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대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슬픔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슬픔 사연들을 어느 때에 해소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복귀도상에 있어서 지극히 난문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국가를 두고 볼 때,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일 것이냐? 또 그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며, 그 민족을 편성할수 있는 종족은 어떤 종족일 것이며, 그 종족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어떤 가정일 것이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사탄과 일체가 되어 사탄과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인연이요 끊어 놓아도 다시 맺어 버리게 되는 인연입니다. 이러한 운명 가운데 인류는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망권내에 있는 인류를 수습하여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가정 기준을 결정짓는다는 것이 어떠한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국가 기준을 만들었다 해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종족을, 종족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가정을, 가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대신할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의 기준을 이 타락한 세계에서 찾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기독교의 이름을 갖고 기독교권내에 있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혹은 수많은 종족과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설정해 나오던 그런 가정과 나라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기준과는 너무나 먼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습관화된 생활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권내에 섰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축복받을 나라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한 국가를 표준하여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심정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높고 귀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한 창조위업과 악한 현실 적인 세계의 무대와는 그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먼 거리를 누가 메울 것인가? 이것을 누가 탕감해 낼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하나님편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고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냥 메워지지 않습니다. 여기는 반드시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대신해서 탕감의 제물을 제시하지 않고는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 민족이 이 탕감의 조건을 알아서 모든 것을 탕감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 앞에 탕감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이 거리를 단축시켜 메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나온 것이 6천년의 복귀 섭리 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특정한 나라를 세웠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역사적인 탕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탕감 내용을 갖춘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세울 때의 그 기준과 그 나라가 가는 기간이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혹은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간들이 번번이 그랬듯이, 그 민족이면 그 민족 역시 하나님과 일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거리를 메워 나오는 데 협조하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몇 해 몇 달 기간은 어떤 인연 가운데서 하나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수십년 동안 하나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운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기간을 같이 맞추어 나가지 못하면 그 나라는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의 운명을 지탱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 왔느냐? 하나의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아 그 국가의 거리를 메우게 했습니다. 또 그 민족이 메우지 못하면, 그 민족 중에서도 특정한 종족, 예를 들면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로 하여금 민족이 메우지 못한 그 거리를 메우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종족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와 당시의 국가와의 거리를 메우는 데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종족 가운데서 특정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메우지 못한 거리를 보충토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종족의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특정한 가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운 그 가정이 책임 못하게 될때는 그것을 연장시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남겨야 할 기준이 무엇이냐? 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이 어디 있느냐? 참된 부모에 있습니다. 참된 부모를 요구하는 것은 참된 가정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 참된 가정을 요구하는 것은 참된 종족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 참된 종족을 요구하는 것은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대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보면 세계를 대표해서는 국가가 제물 되어야 하고, 국가를 대표해서는 민족이 제물 되어야 하고, 민족을 대표해서는 어떤 특정한 종족이 제물 되어야 하고, 그 종족을 대표해서는 어떤 특정한 가정이 제물 되어야 하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는 어떤 특정한 대표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어디에 귀결되느냐 하면, 부모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부모는 역사의 동기가 될 수 있고, 모든 국가 형성의 출발 점이 될 수 있으며, 모든 민족 편성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기원이 될 수 있는 부모를 중심삼고 복귀섭리역사를 엮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나라와 민족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참된 부모의 기준을 중심삼은 가정이 완전한 터전 위에 서 있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를 새로이 편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전체를 잃어버렸다 해도 그런 내용을 재편성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기준, 다시 말하면 인류가 바라고 나가는 소망의 한 기점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이냐 하면, 바로 참부모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점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본래 아담 해와는 영원히 변치 않는 가정의 부모가 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형성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찾아 내려와 새로운 각도에서 이것들을 편성하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뜻 가운데서 이러한 사명을 종결짓기 위해서 오셨던 분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대표해서 오셨느냐? 탕감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를 대표해서 오셨고, 국가를 대표해서 오셨고, 또한 민족과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해서 오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전체를 대표하고 전체의 중심으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그러한 분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어느누구 한 사람도 국가의 대표로 믿지 못했고, 민족의 대표로도, 종족의 대표로도, 더 나아가서는 한 가정의 대표로까지도 믿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전체의 대표로서 전체의 중심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한 예수님의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소원하신 것은 하나의 나라였고, 하나의 민족이었고, 하나의 종족과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참부모가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부모를 결정하는 데에는 하나의 여성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성을 찾아 오는 데 있어서는 그냥 끌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맞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맞을 수 있지만, 예수 님이 한 여성을 맞는 데 있어서는 종적인 환경이나 횡적인 환경에서 자유롭게 맞이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성을 맞기 위해서는 예수가 국가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되고, 민족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되고, 종족적,가정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당시까지의 4천년 역사의 섭리의 내용과 일치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걸고, 이것을 완전히 탕감시켰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예수님이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서도 예수는 신랑으로 왔으니 그 예수 앞에는 신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는 평면적이며 횡적인 기준에서 그저 하나의 남성 앞에 하나의 여성으로서 등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국가를 대표하고, 하나의 민족을 대표하고, 하나의 종족을 대표하고, 그 종족을 중심삼은 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하는 그런 기준 앞에 선 여성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대표적인 여성은 어떠해야 되느냐? 딸의 입장에서는 딸중의 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내의 입장에서는 열녀 중의 열녀가 되어야 하고, 수많은 어머니 가운데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엮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그런 여성이 있었느냐 할 때, 그런 여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가신 길, 예수가 이 땅에서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간 그 길을 회상해 보게 될 때, 그 길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지닌, 예수와 더불어 인류의 죄를 탕감시킬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 그러한 여성은 어떤 여성이어야 되느냐? 반드시 역사적 배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는 여성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혹은 이스라엘 나라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적인 배경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여성은 스스로가 나라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수많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수많은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결정짓지 않고는 탕감복귀의 기준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의 중심이 되는 부모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기쁜 역사가 아니라 슬픈 역사입니다. 이 슬픈 역사 가운데는 수많은 국가들이 말려들고,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종족들이 말려들고, 수많은 이스라엘 가정들이 말려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슬픔으로 엮어져 온 역사의 결과로 남아진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민족, 수많은 종족과 가정이기 때문에 이 모두를 대표해 가지고 나설수 있는 그 여성은 그저 단조로운 여성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특정한 내용을 갖추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결의를 한 여성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 가운데에 수많은 나라를, 수많은 종족을, 수많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을 갖춘 여성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성은 그러한 결의와 자신을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남성을 대표해 가지고 오시는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남성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국가면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이면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종족이면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 가정이면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으로 믿고 그와 하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지 않고는 복귀된 가정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이 택한 12제자와 70문도가 내정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기반이 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동원해서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적인 울타리를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기반 위에 하나의 결실체로 자신을 연결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책임 못했던 많은 남성들을 재현시켜 그 시대에 평면적으로 벌여놓은 대표적인 형이 열두 제자와 70문도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12제자와 70문도가 완전히 하나되면 역사 과정에서 실패했던, 그 시대시대마다 탕감하지 못하였던 모든 남성들의 실수가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들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실패를 수습할 수 있는 실체적인 권을 횡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완전하게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탄이 공격할래야 공격할 수 없는 하나의 남성으로서의 승리적 기반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울타리의 사명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12제자요, 70문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 즉 이러한 배경 위에 공고히 서 가지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성을 찾아 어머니의 기준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노정에서 싸워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대의 싸움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내적인 사정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12제자나 70문도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이러한 환경의 터전을 한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도 찾지 못하고, 그런 내정을 통고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제자도 찾지 못하신 채. 30여년의 생애를 지내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기에 한이 있다면 그분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한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역사를 엮어 오시면서 수고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보내시어 한 때를 맞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모든 내용이 근본적으로 파탄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 남성의 역사로 엮어 왔던 4천년 역사에 하나의 승리적인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세우지 못하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었으니 그 사정이 얼마나 딱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하나 죽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하나 죽음으로 말미암아 4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남자를 통하여 역사해 나오던 하나님의 섭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더 슬퍼하셨습니다. 자기가 죽는 그 설움보다도 하나님의 섭리가 실패로 돌아가는 설움을 더 크게 느껴 내정적으로 깊이 슬퍼하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는 죽더라도 역사적인 모든 터전을 다시 한번 수습하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각오 밑에서 십자가의 길을 당당코 돌파해 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영적으로 제자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제2의 울타리를 만들어 오늘날 남성을 중심삼은 기독교 역사를 재편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2천년간 수많은 순교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전시켜 나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막연한 국가의 이념권 내에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민족을 다시 세워 가지고 예수님 당시에 해결짓지 못하였던 모든 내적인 문제를 재현시켜 완전히 해결지어야 합니다. 그런 탕감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특정한 국가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국가는 어떤 국가이냐? 수많은 국가 가운데서 그 특정한 국가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통일교 교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 백성이 그 모든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 있는 우리들이 그런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1960년부터 3년간에 축복받은 36가정, 72가정, 124가정들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정들은 예수님이 살아생전 갖지 못했던 외적인 기준을 중심한 울타리의 사명을 완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외적으로 세계를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혹은 민족 종족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모든 탕감 내용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상대기준을 접속시킬 수 있는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울타리의 사명을 해야 할 것이 1960년부터 3년 동안 축복받은 가정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어서 가정들은 축복이라는 명사도 가져 보지 못했고 그 과정도 거쳐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기준을 거친 지금의 우리 가정들은 그 시대와는 달리 전체 가정이 외적인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한국에서는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으로 참부모와 인연을 맺은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이 800여 가정이나 되는데 이 가정들은 뭘 해야 되느냐? 그 가정에 있어서 남자는 오시는 주님 앞에 절대적인 남성을 대표할 수 있고 역사적인 한을 연결시킬 수 있는 상대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성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여성의 존재가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등장해 본때가 없었기 때문에, 횡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여성이 하나님의 섭리노정 앞에 등장해 보지 못한 그 역사적인 한을 푸는 대표자로 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등장할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게 된 것은 이들이 축복받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성 앞에 있어서 여성은 전체 여성을 대표하여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엮어 나온 모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 시킬 수 있는 내적인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그것을 가정에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이 돌아 들어간다면 800여 가정 전체가 돌아 들어가야 하고, 그 가정이 돌아 나온다면 전체가 돌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돌아 들어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참부모 앞에 연결되어야 하고,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돌아 나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에까지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한 탕감복귀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과정에 있어 온 전 남성을 대표하여 가지고 제물이 되되, 제물 가운데서도 최고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은 어떤 특정한 개인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어떠한 가정과 종족, 또한 민족만을 대표한 입장도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한 입장에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는 수많은 남성이 왔다 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벨로 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예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남성을 중심삼고 역사해 왔지만, 선생님은 그들보다 내외적으로나 혹은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대할 때 부끄러운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남성을 대표해서 세계적인 열매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탕감복귀를 완전히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보다도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일체되어야 하는 사명이 큽니다. 각자의 책임보다도 선생님과 일체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임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자기를 중심삼은 책임은 완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면 남성인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데, 하나되는 데에는 자기의 사정이나 입장, 즉 가정이면 가정에서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환경을 넘어서 가지고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 자리에는 어떠한 간격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여기를 헤치고 나갈 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일치된 기준이어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결정짓는 것은 여러분이 책임을 완수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이것은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또 여자면 여성인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성은 여성 자체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그 터전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성 여러분들과 어머니는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성으로서 해야 되는 자기의 책임이 완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 역사는 남성과 여성을 중심삼고 접촉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의 기점에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연결은 참부모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되어야 하며, 그 참부모는 역사의 기원으로 출발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가 출발되었더라면 영원한 결과의 세계까지 뻗어나갈 것인데, 이것이 틀어졌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을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을 다시 만들기 위해 벌여 놓은 역사를 수습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을 반드시 맺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시대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책임은 무엇이냐?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중요한 사명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여자는 어떠한 여성이 되어야 하고, 남자는 어떠한 남성이 되어야 하느냐? 즉, 선생님 자신은 어떠한 아버지가 되어야 하며 어머니는 어떠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나라의 문제도, 세계의 문제도, 하늘땅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완전한 승리의 결정을 짓지 않고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섭리는 다시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196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적인 싸움을 해 나오는 데에 있어 기준이 되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두 분이 하나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만나서 하나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두 나라 사이에는 합할래야 합할 수 없는 수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즉,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사회의 모든 조직들이 다릅니다. 이 다른 환경이 그냥 그대로 하나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될 수 없는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탕감내용이 걸려 있는 문제, 바로 이 두 분이 하나되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구렁텅이가 있다면 그 구렁텅이는 어떠한 구렁텅이보다도 더 깊은 구렁텅이일 것이요, 산이 있다면 그 산은 어떠한 산보다 더 높은 산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평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정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산정과 깊은 골짜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지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그 기준이 세워지는 때가 참부모가 이 땅에 인연을 갖추고 등장할 때이고, 그때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입니다. 인류사에 이러한 탕감노정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내정 가운데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려 하셨던 소원의 뜻을 아담 해와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 해와 타락 이후 슬픔의 역사를 4천년 동안 엮어 나왔지만, 그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인간들도 몰랐습니다. 4천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을 대신하여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을 취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해원성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품고 나아감에 있어서 당해야 했던 예수님의 내적인 고충을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몰랐으니, 예수님이 다른 누구에게 그 일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한 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모르고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면 문선생 자신이 이러한 내정을 몰라 가지고는 탕감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정을 여러분에게 털어 놓고 의논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될 수 있는 사람만이 해결지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난문제로서 첩첩이 가로놓여 있지만 외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엇갈린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으니 여기에 깃들어 있는 모든 사연을 탕감하고 나와야 할 길이 참부모가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펴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뜻을 펼 수 없는 실정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선고를 받게 될 때도 그것을 무난히 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환경에서는 뜻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죽임의 길로 내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깊은 곳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겉에 나타난 통일교회의 외적인 면을 보고 알 수도 있지만, 통일교회의 배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역사적인 비참사가 내적으로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인들 중에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깊은 내용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일치를 이루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참부모의 문을 통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어차피 이 문은 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씨족으로서, 새로운 생명체로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문을 통하는 데에는, 그 깊은 골짜기의 내정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저 나라에 있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어느 정도 고개를 넘을 수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1970년도를 향하여 넘어가는 이 자리에 있어서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3년 기간에 이것을 완전히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9월부터 10월달까지가 이것을 넘어 가는 중심 기간이라고 봅니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참부모님이라 부르고 외국식구들도 선생님에 대해 참부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깊은 골짜기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앞에서 들은 내용을 생각하며, 참부모가 모든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수난의 결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서 십자가 도상에 탕감의 제물로 올려질 것 가운데 최고의 제물로 등장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슬픈 사연을 지니고 그 슬픔의 고개를 넘어야만 부모의 자리를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축복가정은 어떠한 기준에 있느냐?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부모로 말미암아 복귀해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의 기원이 되는 곳은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여기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또 축복을 받은 다음 거기서 완성 단계의 기준에 서려면 7년이라는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은 선생님 자신도 거쳐야 되고 여러분들도 거쳐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과정을 거쳐야 되는 공동 운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복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밤이나 낮이나 어느 때든지 사선을 넘어서 자신이 완전히 아버지 앞에 순응할 수 있다고 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 길만 찾으면 다른 어떠한 길도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자기 남편도 막을 수 없고 자기 아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각자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완성한 입장까지는 아담 해와가 각각 개인으로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을 가는 데는 아내도 제재를 못 하는 것이요, 남편도 제재를 못 하는 것이요, 아들딸도 제재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에는 아들딸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아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깊은 무아의 자리에 들어가서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분립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그런 사람이 어떤 남편의 아내가 되어 있으면 그 남편을 분립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런 사람이 남편이라면 그 아내를 분립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그런 사람이 부모의 자리에 있으면 자식까지도 분립시키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권내에서 가는 그 길은 가정이 간섭되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전부 다 버리고 가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종교에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도인들이 독신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한 때를 넘기 위해서 수천년 동안 도인들은 독신 생활을 강조해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를 다니다 보면 반드시 이런 문제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1차 7년노정은 누가 가야 되느냐? 부모가 가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가 그 길을 가야 되는데 누구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남자면 남자를,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기에서 축복가정의 형태를 갖춘다 하여도 그 가정의 형태는 하나의 남성, 하나의 여성을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라야 합니다. 만일 뜻에 어긋나게 될 때는 서로가 아무리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 가까운 요소들을 제거시키고 넘어설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 길은 여성적 사연이나 남성적 사연을 서로가 제시해서 그것을 공정한 입장에서 통과시켜 가지고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완전히 하늘편에 치우쳐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성이 주체가 되어 있으면 여성은 그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여기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의 입장과 같은 내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남성이 아벨적 입장에 섰으면 가인적 입장인 여성은 그 앞에 절대 복종을 해야 됩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의가 있으면 그만큼 지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거쳐온 7년노정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실체적인 승리의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은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선생님은 국가를 중심삼고 수많은 민족을 대하여 싸워 나왔습니다. 또한 수많은 교단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승리의 조건을 결정지어 가지고, 그들을 굴복시킨 터전 위에 부모의 기준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날은 국가 민족을 복귀한 터전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통일교회에 세워진 하나님의 날은 통일교회 내의 하나님의 날입니다.
통일교회는 아직까지 종족 편성을 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해서 앞으로 국가 앞에 제물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통일교회 내의 하나님의 날이 민족의 하나님의 날과 국가의 하나님의 날로 등장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싸움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7년노정을 거쳐 가는 여기에는 아담이 주체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반드시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면 여자로서의 감정도 있을 것이요, 가정에 있어서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기는 많은 사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연은 제2차, 3차적인 문제이지 1차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데 있어서 1차적인 문제에는 여자의 정서적인 문제 등의 여러가지 복잡한 내용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선생님이 7년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교회를 위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민족을 위해서 외적으로 싸워 나오고 있지만, 그 배후의 뿌리를 조성하는 것은 이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서는 아무리 민족 적인 승리의 터전이나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참부모의 터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자리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을 남기지 않고 완성기준을 넘어선 자리에 올라가야만 비로소 참부모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 견해로 본 참부모의 기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견해에 합당한 자리는 간단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이러한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1968년 1월 1일을 기해서 하나님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물론 이 날이 있기 전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다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인류의 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되느냐? 이것을 알려면 먼저 축복가정들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장성기 완성급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축복가정은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는 주체면 주체, 즉 남자면 남자가 절대적인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남자면 남자로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완전히 하나되지 않고 부부끼리 하나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부끼리 하나되려면 각자가 완전히 하나의 뿌리에 접붙인 다음에 하나 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하나된 그 자리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명령이라 할 때는 죽으라면 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생사의 경지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결정적 의식을 항상 자각하지 않고는 이 길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게 될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의식 관념이 확고히 서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거기에서는 사탄을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죽음을 붙들고 싸운다면 사탄이 맞는 것입니다. 사탄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가정을 가진 남성은,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죄의 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 선생님의 분신으로 주체적인 입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때에 대상인 부인은 주체와 하나되어서 그 앞에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 가운데 자기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 앞에 남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가정이 몇 가정이나 되느냐 하면 한 가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길은 안 가면 안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 스스로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부부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이 가정이 남아지려면 종족을 위해서 나가야 하고, 종족과 연결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연을 가져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근본적인 인연을 갖기 위해서는 세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 없이 가정이 하나되어 가지고는 횡적인 기준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횡적인 기준이 연결 안 되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인연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내적 기준을 결정 하는 입장에 서려면 반드시 외적인 기준에서 자기 대신 싸워 줄 수 있는 사람을 보강해 놓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사탄세계와 하늘세계의 두 세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축복가정은 남아 있는 사탄세계를 흡수해야 됩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가인적인 입장에서 하늘편을 반대해 온 나였으니 이제는 하늘편을 지지하는 입장이 되어 하늘편을 반대하는 천사장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싸워 나왔습니다.
참부모의 기준점은 특정한 하나의 남성입니다. 그 남성은 6천년의 복귀섭리역사 과정에서 모든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과정에서 실수했던 수많은 남성을 대표하여 승리의 결정권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터 위에 하나의 상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가 사탄에게 끌려감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을 전부 다 다시 찾는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해와가 빚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성의 상대가 재차 빚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축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 기준을 넘는 데에 있어 7년노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 7년 고비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7년노정 동안에 확실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원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싸운 것은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4천년 역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예수님 때에 이것을 연결해 가지고 7년노정을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2천년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재현해 가지고 그 4천년 역사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복귀원리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내용과 성경 가운데의 미지의 사실을 전부 다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노정, 그리고 예수 시대까지 제일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펼치면 크지만 손에 쥐면 한줌에 쥘 수 있는 그물과 마찬가지로, 심정적 기준 앞에 한줌에 쥘 수 있는 내용을 가려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가려서 아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건으로 제시해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승리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통일교회가 문제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수많은 영통인들에게도 선생님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은 4천년 역사 속의 많고 높은 고지를 전부 다 평지로 만들어 심정적 기준을 중심삼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승리적 관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선생님이 세워 아무런 지장이 없는 내적 결정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사적인 탕감노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일에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은 세상뿐만 아니라 영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영통한 사람들에게 알아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외적 세계만이 아니라 영적 세계까지도 들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 속의 모든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정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조상을 대해 슬퍼했습니다. 수많은 우리 조상한테 배반당하고 배척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모든 사연들의 깊은 골짜기보다 더 깊은 골짜기에 들어갔습니다. 조상들이 가지 못한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선생님의 한마디 위로가 6천년 동안 지상에 왔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왔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사실들을 너무나 막연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원리는 그렇지만 실감이 안 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멀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 기준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하며, 영적 체험에 들어가려면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뿐만이 아니라 원수세계에 들어가서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옳은 것을 찾아서 생명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믿고 있는 통일 교회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장막을 헤치고 들어간 깊은 골짜기가 있고, 여러분이 역사 과정에서 느끼지 못하는 깊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복귀, 국가복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국가에서 민족을, 민족에서 종족을, 종족에서 가정을, 가정에서 부모를 세우기 위해서 거꾸로 수습해 나왔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 일을 해나왔습니다. 이제 때가 됨에 따라 기독교를 중심삼은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 국가 가운데서 하나의 종족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뭉치는 역사는 120년 기간을 중심삼고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세계적인 발전은 120년간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 기간 중에서도 40년 기간이 문제가 되며 이 40년 기간을 중심삼고 나올 때는 7년 기간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외적으로 엮어 가지고 6천년 동안 벌여 나오던 것을, 즉 종적으로 벌여 나오던 것을 이제는 횡적으로 전부 수습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하려면 하나의 특정한 국가와, 특정한 민족과, 특정한 종족과, 특정한 가정을 세워 가지고, 세계사적인 대표로 개인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편에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세워서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6천년 동안 세계 기독교국가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되어 옴에 따라 이 국가권에서는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실수를 재현시켜 가지고 천사장의 입장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이것이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의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역사를 엮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오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참부모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가정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언제나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 가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밖에 없습니다. 또한 선생님 가정 가운데서도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있고 자녀들도 있지만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가정들의 대표가 되어야 하고, 종족 민족 세계의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이것을 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아담 가정, 노아 가정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가족적인 차원을 세계노정 가운데에 연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선생님의 가정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성공했다고 하여도 그 성공이 자기 혼자만의 성공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성공으로는 그 어떠한 것도 수습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영광을 드리겠다 하여도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내가 뜻 앞에 충성을 다하여 앞으로 모든 것을 하늘 것으로 바쳐 드려야 하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원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동기가 누가 되어 있느냐 입니다. 내가 누구로 말미암은 나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도를 나갈 때도 전도 나가는 동기가 누가 되어 있느냐 했을 때, 동기가 여러분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이 동기가 되어 출발한 것의 결과가 자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을 세번 이상 반복하는 사람은 앞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길이 막혀서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절대로 길을 다시 찾지 못합니다. 새로운 동기의 조건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기 전에 반드시 준비를 시키십니다. 군대가 위험한 때를 대비해서 연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국가가 국민을 총동원해서 긴급사태에 대비한 연습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결정적인 큰때가 오기 전에 반드시 연습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습은 하나님이 앞장서서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떠납니다. 왜냐하면, 타락의 결정을 아담 해와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같이하시고 언제 동정하시느냐? 완전히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입니다. 둘이 아니고 혼자 남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한테도 형언할 수 없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빠져 나갈 구멍도 없는 그런 입장에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고개를 넘을 적마다 반드시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가 가야 할 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십자가를 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참부모가 가야 할 운명의 길입니다.
또한 이 길은 하나님이 협조해서 넘는 길이 아니라 홀로 넘어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을 때 하나님이 협조하여 같이 넘었다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입장에서 홀로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홀로 넘어야 할 길이 이렇게 힘들고 지루한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책임진 사람이 가야 할 운명길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
어머니도 모르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삼각 권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삼각권내에 들어가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후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책임완수하기가 어렵다고 자포자기하여 후퇴한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후퇴하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접근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막막한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려면 이러한 작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여기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기간도 여러 분이 알지 못하는 중요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국가의 운명과 세계의 운세가 한 초점을 향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국내외 정세들이 전부 7,8,9월을 기하여 기독교를 중심삼고 집중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운을 대표한 결정권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 같으면 벌써 몇천년 전에 다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것을 올바로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이 3선 문제를 중심삼고 내심적인 결의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6천년 복귀역사가 좌우되고 선생님의 생애가 좌우되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싸우는 기간임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7년노정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갔지만 여러분들은 아무도 이러한 문제를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여러분이 모르는 내적인 싸움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과정을 거쳐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도 넘어가야 할 대단히 큰 고개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늘이 9월 21일이니까 우리가 작정한 9월 30일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10월 14일까지 정성들이고 나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기간에 모든 역사적인 사연을 거쳐가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열심히 일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저희들을 당신의 품에 품으시옵소서. 이 시간은 저희들이 고대하던 9월의 마지막 주일의 아침입니다.
이 성일에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뜻을 그리워하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남겨진 복귀의 뜻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그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겨진 복귀의 노정을 따라 당신이 슬플 때 이들도 같이 슬퍼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외로울 때 이들도 같이 외로워해야 되겠사오며, 당신이 억울하면 이들도 같이 억울해 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싸움터에 나가면 이들도 같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이들은 땅 위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천정을 좇아 오늘도 어려운 환경을 탈피하기 위해서 참고 싸우면서 남아진 무리이옵니다. 그간에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위해서 충성을 한다고 하면서 따라 나왔지만 그 가운데는 중도에 낙오자가 된 사람들도 있사옵고, 혹은 배반자가 된 사람들도 있사오며, 혹은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당신이 남겨 놓으신 이들은 승리의 날을 맞이할 때까지 참고 견디어 고이 고이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들이 수고하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옵고, 자기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찾아오신 배달 민족…. 아버님께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수고하신 것을 이들이 먼저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 대한의 아들딸을 세우시어서 인류의 표상이 되고, 역사의 총대(總代)가 되고, 신앙의 원천이 되게 하시려는 당신의 엄숙한 축복의 은사를 고이 받지 못하는 이 민족의 우둔함을 저희들은 통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의 장래를 저희들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민족의 일을 생각하면 뜻을 안 저희들은 당신의 심정 앞에 부름받은 자들로서…. 그래도 남아진 이 한스러운 환경을 어깨에 짊어지고 하늘 앞에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 세울 것을 마음에 표방하고, 하루의 생활의 표준으로 삼으면서 허덕여 나온 불쌍한 무리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렇듯 한스러운 복귀의 모습일지라도, 저희가 지나간 가지가지의 일들을 회상함으로써 이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 그랬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 길이 저희들에게 인연되었으니 이 고충을 더 이상은 지연시키지 않겠다고 몸부림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민족적인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당신의 뜻을 자기의 뜻이라고 부르짖으면서 몸부림쳐 나온 수많은 무리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의 몸으로 천국을 이루어야 된다'고 하셨사옵고 `네마음에 천국이 있다'고도 하셨사옵니다. 그 천국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생활이념으로써, 사랑하는 그 모습 가운데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스스로 자기의 생애에 있어서 기쁨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 자는 천국에 설 수 없는 것이요, 천국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천국을 운운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원수를 앞에 놓고 조금이라도 원수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천국을 소유할 승리의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는 능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찬양할 수 있는 천국의 이념권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은 천국을 말하게 될 때 원수와 싸우는 격한 자리에서, 자기의 분노와 자기의 모든 혈기를 드러내어 원수와 겨루는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칼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고요히 하늘을 그리워하며 참배하는 자리, 평화롭게 그 하늘의 품에 안기는 자리, 원수의 환경을 초월하는 자리에서 천국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이 죄악이 뒤끓고 있고 사탄의 무리가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 이 역사적인 원수가 저희를 노리는 이 마당에 있어서, 원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거룩함을 찬양하며 당신의 높고 귀하심에 취하여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면서 마음의 기쁨, 몸의 기쁨을 가지고 나가는 자 누가 있으며, 내가 가진 선민의 권한을 빼앗을 자 어디에 있느냐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무리만이 천국의 일원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십자가의 환난길에서 고독 단신으로 외로이 눈물지으신 처량한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선열들은 기근과 굶주림이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도, 자기의 일신이 비참한 구렁으로 몰리는 자리에서도 천지의 고난에 의해 꺾이지 않았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참았고, 죽임을 당하고 채찍을 맞는 자리에서도 그 결의가 꺾이지 아니하였던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참고 남아져 승리의 방패를 들고 나서는 자만이 천국과 인연 맺을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진정 배워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원하는 참다운 나라는 이 땅 위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한민국도 저희가 바라는 나라가 아니오며, 이 땅 위에서 추앙받는 어떠한 선진 국가도 저희가 머무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옵니다. 그 나라 전체가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는 그 나라가 아버지의 품에 품길 수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싸워서 아버지의 나라를 쟁취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 자신이 죽는다면 원한의 세계에 뼈를 묻고 가는 처량한 모습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는 길 앞에서의 어려움과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눈물짓는 것을 원수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탄이 `너의 선조들도 매일 시련 가운데서 괴로워 눈물을 흘렸다'고 하늘땅 앞에, 또는 후손들 앞에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을 남길까봐 염려할 줄 아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너희들은 그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느냐고 할 때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누구를 위하여 살겠느냐고 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위하여 살겠다고 말할 수 있으며, 누구를 위하여 죽겠느냐고 할 때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죽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무리 초조하고 아무리 처량하고 아무리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저희들이라 할지라도 저희들보다 더 불쌍한 아버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앞에 저희가 제물이 되어 저희보다 더 불쌍하신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아버님을 모시고 효의 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위신과 아버지의 입장과 아버지의 사연을 통고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을 가진 한분이 저희를 대해 효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죽음의 길을 가라는 것이요, 충신이 돼 달라고 하는 것은 찢기고 찢기는 형극의 길을 가라는 것임을 생각할 때, 부모의 자리에 계신 아버님께서 땅을 찾아 나온 걸음이 얼마나 처량한 모습이었던가를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한 뜻을 품고 나오시면서도 그 뜻을 이루어 달라고 말 못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저희의 심정 깊숙히 갈래갈래 찢기는 아픔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 내심의 심정을 이어받아 아버지 앞에 합당한 모습이 되고 360도 어느 방향에 있어서도 참다운 한 분의 모습을 갖춘, 아버지만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 소서. 그러한 모습을 붙들고 천년사의 기쁨을 누리는 대신 고마움의 눈물을 짓는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그 아버지를 모셔 놓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고,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고하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죽음길에 부딪치게 되면 저희들은 죽을 줄 알았으나 죽지 않고 살아났던 것을 볼 때, 저희들은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통의 생활 가운데 뜻을 세우라 하신 것을 저희들이 귀히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정 때문에,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치 못한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쳐 쓰러지는 몸이 될지라도 당신 앞에서는 절개를 지킬 줄 알고, 몰리고 채찍을 맞아 객사하는 몸이 된다 할지라도, 이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이 생긴다 할지라도 당신이 맡겨주신 이념과 당신의 유업만은 남기고 죽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저희들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맹세하였사옵니다. 맹세의 실체가 되어야 할 저희들이 자신의 슬픔만을 통탄한다면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얼마나 슬플 것인가를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120일 기간을 정해 놓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였사오나 네가 소원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게 될 때, 막연해지옵니다. 네가 소원한 것이 진정한 사실이냐고, 네 뼛골을 추리더라도 너의 심정으로부터 하늘의 마음을 받들 수 있는 자리에 있느냐고 묻게 될 때, 주저하게 되옵니다.
당신이 고대하는 것은 너무도 크고, 당신이 바라보시는 소원의 기준은 너무도 높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작고 미급한 자신만으로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당신의 자비의 손길만이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없는 어린 애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아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부모의 흐뭇한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어린애는 옷이 문제가 아니요, 밥이 문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자리는 소원성사할 수 있는 만사가 형통한 자리요, 마음의 평화와 안식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부모를 바라보는 그 어린애의 얼굴에는 웃음이 담길 것이요, 평화의 모습이 어릴 것이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희는 벌거숭이일지라도 아버지의 품에 품기어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평화의 얼굴로 아버지를 반기게 해주시고, 밤이나 낮이나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생명 대신 의지하고, 생명 대신 바쳐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연결체, 심정의 연결체인 부모의 품에 안길 줄 아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20일 기간을 거의 다 지내고 사흘을 남겨 놓고 있사옵니다. 이 기간에 저희들 앞에 무엇을 요구하시옵니까? 요구하실진대 다시 통고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기도하는 그 환경과 처지에서 노력하고 있사오니, 이 아침 저희의 부족한 모습을 보시옵고 그저 꾹 참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의 해원성사를 위하여 태어난 아들딸로서 훗날에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찬양할 그날을 위해 저희들은 호소하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고 계시옵니다.
기필코 이런 용자라면 말세에 있어서 외로운 종족이 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의지할 자 없는 고독 단신으로 안팎의 중대사를 처리해야 한다고 분부하심을 아옵니다. 나라가 그러하듯이 저희들이 가야 할 길도 그러하옵니다. 내적인 기준을 책임진 저희들이 앞으로 이 뜻을 책임져 나가 이 나라 앞에 지침이 되고 참된 인도자가 되어서 삼천만 민중의 가슴가슴마다 새롭게 불을 지를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고 각자가 결심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얼마나 거룩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진정 몰랐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는 그 이름의 의미를 저희들은 깊이 몰랐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도 감정이 둔한 자신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정의 도리와 천정의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안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해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10월이옵니다. 저희들에게 있어서 10월은 해방의 달이옵니다. 온전히 1969년을 맞이할 수 있고 새로운 소망의 때를 예지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0월 11월,12월도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저희들이 또다시 정성을 들여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 민족의 해방과 세계 만민의 축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영계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내 마음과 내 뜻과 내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아무리 초초하고 비참한 자리에 서더라도 그러한 내 일신을 잊어버리고 남아 있는 복귀 역사를 종결시키기 위하여 총대를 들고 나가 싸워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개선장군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온전히 아버지를 대하여 충효의 도리를 세울 수 있는 이념과 사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당신이 분부하고자 하시는 바를 저희들의 마음에 옮겨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한국 땅덩어리를 중심삼고 금후에 어떤 세계도 갖지 못할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 있나이다. 36가정이 있고, 72가정이 있고, 120가정이 있고, 430가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계속 넓혀가기 위해서 세계에 널려 있는 10개 민족을 중심삼은 40여 종족 위에 축복의 터전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러한 하늘나라의 복귀의 터전을 개척하느라고 남모르는 수고의 역로를 걸어 나왔습니다. 이는 오로지 하늘만이 수고하셨고 하늘만이 알았고 하늘만이 싸워서 남겨 놓은 터전이오니, 저희들은 참회하면서 이것을 이 민족 앞에 남겨 주기 위해, 세계 앞에 남기기 위하여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몇몇 지구 식구들이 오늘은 야외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오니 거기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넓히고 뜻을 높이기 위하여,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움직이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의 갈 길을 친히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사연을 친히 받아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9월 마지막 주일로서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120일 정성 기간의 사흘을 남기고 있는 날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개인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도 현재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뜻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어떠한 목적, 즉 소원의 성사를 중심 삼아 가지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도하는 목적과 일반 기독교 신자나 일반 종교인들이 자기 나름의 종교를 통하여 기도하는 그 목적의 그 귀일점은 결국 하나입니다. 자기 교파를 중심삼은 기도보다도 반드시 상대적인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소원하며 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기도하는 방향에 있어서는 틀릴지 모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대충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이 내용과 일치되면 일치될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존재든지 합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국민들의 생활 수준과 그 국민들이 가진 문화 수준, 또는 그 국민들의 소원이 딴 민족이나 나라와 일체될 때는, 그들의 문화적인 배경이라든가 역사의 배경이 서로 다르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미루어 봐도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종교의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국가를 넘어 하나의 세계권을 향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종교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형성되어 있는 수많은 국가들 역시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색해 나가는 방향이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감과 동시에 내용 또한 하나의 내용으로 귀일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온 것을 볼 때, 세상적으로 보나 종교적으로 보나 그야말로 마지막 때가 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두 하나의 세계를 모색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각자가 전면에 서 있느냐 후면에 서 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목적하는 기준은 같습니다. 이제까지 동과 서가 서로 맞서 가지고 존재했던, 그러한 과거 역사가 바라고 나왔던 소망이 오늘 현실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바라보며 소망하는 터전이 틀림없이 내 시야에서 실현될 수 있는 때가 목전에 다가옴을 느끼게 될 때, 지금까지의 수많은 나라,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해 나왔던 모든 내용을 한 점에 귀일시킬 수 있는 현시대가 역사적인 종말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세계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결정지어야 할 때인 것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활권내에서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추상적인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실질적인 생활무대를 중심삼고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잘못하면 잊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많은 대가를 치렀고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오늘의 결과적 현상을 볼 때 지금이 끝날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끝날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역사의 결실, 현실의 새로운 중심, 미래에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원을 결정할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오늘날 동서 사방에서 되어지는 정세를 통해서 혹은 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실정을 통해서 엿볼 수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끝날의 현실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는 앞만을 바라보고 나가야 되겠느냐, 아니면 사방을 돌아보고 나가야 되겠느냐, 아니면 지난날을 돌아보고 나가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싸움은 과거를 현재에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요, 오늘의 우리 자신을 드높이 찬양하는 것은 미래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미래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요,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미래의 가치는 영원의 가치와 대등한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의 기준을 결정지어야 할 현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초월할 수 있는 중심적 가치를 결정해야 하고,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중심적 가치를 결정해야 하고,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중심적 가치를 결정해야 할 현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끝날의 현시점에서 우리가 자리를 잡고 넘어가지 못하게 되면 그 미래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 미래는 또 미래를 추구하는 투쟁과정을 남겨 놓고 가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적을 추구해 나왔지만 그 목적을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래에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면을 위해 다시 방향을 갖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운명에 처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또 과거의 역사의 결실도 다시 미래의 방향에 맞추어 나가야 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미래의 초점을 책임지고 이것을 규합하고 이것을 종합하고 이것을 해결지을 수 있는 사명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 사명자가 있다면 그는 삼중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다시 엮어야 할 입장에 있고, 현실을 다시 미래에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으며, 역사의 결실들을 수습하여 미래를 다시 개척하기 위해 재탕감해 나가야 할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인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입장에서 살아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재의 나 가지고는 현재에 있어서 미래의 기반을 닦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과거에 살아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소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현실에서 살아야 됩니다. 과거에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즉 말하자면 지금까지 왔다 간 선지선열들이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추구해 나오던 소원의 기점을 다 이룬 그 나라와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던 마음을 갖고, 그 사람들 가운데에 깃들어 있던 그 나라와 그 세계에는 우리들이 실천만 하면 도달할 수 있다는 기준이 각자의 마음에 세워져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고로 왔다 간 선지선열들이 고대하던 천국의 터전을 이 땅 위에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30억 인류는 과거 선조들의 후손들이기에 뜻을 아는 우리들이 그 선조들의 뜻을 모두 계승하기 위해서는 너와 나를 중심삼은 횡적인 관계를 맺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종적인 관계를 맺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 형님과 동생의 관계와 같은 대등한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종관계의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세계 인류 앞에 누가 주된 입장에 설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역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주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승리로 결정짓지 못하고 오늘 안팎으로 요구되는 모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미래에는 또다시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위하여 현실에서 올바른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이며, 새로운 미래의 터전을 현실에서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미래를 위해 살 것이냐, 현실을 위해 살 것이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때는 과거 현재 미래, 이 3시대의 모든 여건이 나 하나를 중심삼고 뒤넘이치는 현실임을 직시하고 이런 현실을 넘어 미래를 위해 살 것이냐, 현실을 위해 살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현실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중심삼고 미래의 실체로서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미래가 몰려 와서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인 현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되어질 수 없고, 새로운 이념의 세계가 지상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돼야 되느냐?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남겨 놓은 미래의 터전을 현실에서 결정지어 놓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이 지난날의 산 역사를 돌아보며, `이것이 우리들의 생명의 터전이요, 소망의 터전이며 희망봉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을 현실에서 거치지 않고는 오늘의 역사는 미래를 향하여 그저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미래를 중심삼고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미래의 중심이 되어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볼 때, 과거의 역사는 한과 슬픔으로 미래를 향하여 추구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거기에는 탕감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현실에 부정이 되는 환경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서 있는 우리들은 과거와 더불어 미래 전체를 대표했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과거의 역사가 결실되어지는 것이요, 이 시대의 중심핵이 결정되는 것이요, 미래의 새로운 기원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3시대의 종합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시점은 어느 때인가?
과거에 왔다 간 선열들은 이러한 한 때를 위하여 정성을 들였으며, 이러한 한 때를 맞이하기 위해 그때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를 고대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땅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혹은 세계를 위하여 수고하다가 피를 흘리며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뜻을 위한 죽음길을 자기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고, 그 죽음길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가치있게 여겨서 열매맺어 남기고 가려 했던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신앙심을 가지고 틀림없이 결정지을 수 있는 미래의 한날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의인들이 피를 흘려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가 어느 때일 것인가?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피를 흘린 그날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소원해 나온 그 한때는 언제냐는 것입니다. 이날을 소원해 나왔던 수많은 그 선지선열이 각각 다르듯이 그들의 소원도 달랐지만 그 지향하는 목적 기준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고대해 온,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 어느때냐?
그 한 때를 중심삼고 볼 때, 인류 시조가 타락의 역사를 엮어 놓은 그날부터 만민이 입을 열어 슬픔으로 한탄의 소리를 하였으니, 그런 원한의 소리를 들은 우리들이 오늘 부르짖는 그 인연은 그런 허망한 역사의 인연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행복의 여건이 될 수 있는 역사의 인연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 기반 위에 서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고, 조상들이 그리워하던 그 천국이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역사를 재감정할 수 있고, 이 인연을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인 동기가 되어 가지고 후대 사람들도 미래를 중심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중심삼고 과거의 역사적인 소원을 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아무리 과거의 역사가 흔들렸다 하더라도 이 기원과 더불어 영원히 일치될 수 있습니다. 영원히 일치될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결정되지 않고는 영원히 하나의 나라는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각 분야마다 새로운 문화의 세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과학도 입체적인 세계관을 향하여 꾸준히 전전할 것입니다. 그 진전된 생활환경이나 사회제도로 인해 우리의 생활적인 인연과 인정, 사정이 달라질 것인데 달라진 그 인연 가운데서 내일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게 될 때 역사적인 모든 형태 역시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회제도나 모든 국가 형태도 판이하게 달라지고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통일국가 형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의 세계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이겁니다.
그걸 볼 때, 아무리 그 문화가 발전하고 아무리 생활환경이 달라져 초세계적인 현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느 때 심어진 희망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행복이 틀림없이 연결되었다고 하는 실감이 자기 생활의 어떠한 감정보다도, 육감을 통해 들어오는 어떠한 직감보다도 강하게 생활무대에서 느껴질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움직여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는 어느 때냐? 그때를 맞기 위해서 수많은 선열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날을 맞기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흑암에 지지부진 끌려가서 탕감복귀가 미래, 또 미래로 연장되어 나갔듯이 그러한 미래를 위하여 피를 흘린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역사의 기원을 마련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천년 만년 후대의 역사를 엮어 가더라도 그 역사가 딴 데도 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준이 되어 가지고 생활의 모든 지침이 될 수 있고, 자기의 인생행로의 지침이 될 수 있으며, 심정세계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현실을 뛰어넘은 미래의 어떤 기준이 아니라 거꾸로 과거의 역사가 자기들의 현실보다도 더 높이 찬양받을 수 있고, 미래의 기준보다도 더 높이 찬양받을 수 있는 그 한 때를 지상에서 결정짓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짓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기원, 그것은 민족보다도 귀한 것이요, 나라보다도 귀한 것이요, 세계보다도 귀한 것이요, 지상에 남아질 미래의 어떠한 인류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렇게 귀한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통일교회가 말하는 이런 내용입니다. 인간에게는 참된 부모가 있어야 하고, 참된 형제가 있어야 하며, 참된 가정,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도 당신이 계셔야 할 본연의 입장에 서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런 입장에 서시지 못했느냐? 그렇습니다. 왜? 참의 권한을 가지고 치리하지 못하여 참의 결실을 맺을 수 없었으니 당신이 서셔야 할 본연의 입장에 서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된 결실은 참된 나무에서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권능이 많고 참되다 하더라도 참된 개인과 참된 가정과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와 같은 참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연의 입장에 설래야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참의 기원, 영원히 불변하는 참의 기원을 마련하여, 거기에 참의 하나님과 더불어 닻을 내리고, 그것을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터전으로 삼아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자식이 그 백성과 더불어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추구한 이유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놓고 보면 하나님 자신에게도 마음이 있을 것이고 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이 있을 곳이 어디냐? 몸이 있으면 그 몸이 횡적인 입장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손에 손을 잡고 얼굴에 얼굴을 서로 맞대고 동거할 수 있는 본거지가 어디일 것이냐?
여러분이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아하, 그것이었구나' 하고 그것을 헤치고 나오면 거기에는 참된 세계가 잠들어 있는 것이요, 그것을 헤치고 나오면 거기에는 참된 국가도 잠들어 있는 것이요, 거기에 참된 종족, 참된 가정, 참된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개인뿐만이 아니라, 참된 부부가 있고 참된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를 돌아볼 때 그런 곳은 현실에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과거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미래의 세계에 이러한 원리만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적 동기가 되는 것이요, 현실의 귀추가 되는 것이며, 미래의 기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적 사정을 중심삼고 주장하는 통일의 세계와 공산세계나 민주세계에서 말하는 통일의 세계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왜 통일이라 했느냐? 우리의 통일이란 역사적인 구원을 바라고 이 시대를 중심하고 미래의 기틀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이러한 내용은 지금까지 어느 곳에도 없었던, 3시대가 일치할 수 있는 한 때를 붙들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또한 부활된 참세계의 출발을 놓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실질적인 감정으로 깊이 체휼하게 되면 여러분은 새로운 인생을 가질 것이요, 새로운 인생의 감정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서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인류의 가슴 속에 길이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 것이냐? 과거에 있어서나 현실에 있어서, 혹은 미래에 있어서 이 한스러운 인류역사 가운데에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 것이냐? 참된 하나님이 계시고, 그 참된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가 있다면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그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냐? 참된 그 사랑을 중심삼아 형제를 찾고 그 형제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가 이루어져 그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은 참사랑만 가지고 나가면 그 국가의 남이나 북, 동이나 서 어디에서든지 환영을 받을 것이요, 어디든지 통하지 않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이런 입장에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은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단지 이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여 보게 될 때, 개인의 마음이 가는 길도 이 길이요, 국가의 마음이 가는 길도 이 길이요, 세계의 마음이 가는 길도 이 길입니다. 세계의 마음이 딴 게 아닙니다. 세계 인류의 마음이 합하여지면 세계의 마음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36억 인류의 마음이 따라 오면 그게 세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음도 딴 게 아닙니다. 역사상의 모든 인류의 소원이 이 기준 앞에 일치된 마음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행복의 요건이 어디 있느냐? 역사적, 세계적, 국가적 관념을 점점 끌어들여 축소시켜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이란 하늘땅이 공인하고 온 우주만상이 시선을 집중해 가지고 소망하는 실체, 즉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그리워 할 수 있는 한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의 아들딸이 있는 그러한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종족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민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국가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여기에 억만 마음을 갖다 합치면 이상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천년 만년 남아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 개인이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그렇게 개인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자 자체로 남아져서도 안 되며, 여자 자체로 남아져서도 안 됩니다. 남아질 바에는 둘 다 남아져야 된다는 겁니다. 반드시 둘이 남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둘이 남아지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개체의 심정적 기준과 상대적 기준이 동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모 앞에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그러한 부부, 그러한 가정으로서의 대표적인 실상이 깃들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나타났다 할 때는 역사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죽은 역사인 줄 알았는데 그 역사가 다시 살아 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비참한 역사로, 서글픈 역사로 엮어진 성경 66권의 모든 미해결의 내용이 지나간 역사로 남아졌으나 소망의 터전으로 인해 그것을 바라보는 그 종족이 살아 나오는 것이며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 소망이 없었던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라 해도 이러한 내용에 연결만 되면 그 인연을 중심삼고 미래에 부활의 혜택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바라볼 때, 여기 한 분이 정상적으로 가는 길에는 국가도 살아 있을 것이요, 세계도 살아 있을 것이요, 하늘의 질서도 세워질 것이며, 하나님도 거기에 군림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기준만이 역사에 영원히 남아질 것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우리가 필요해서 이용하고 나면 끝나 버리는 것이지,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역사적 소원의 실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조직사회를 이루어서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한 국가나 세계의 형태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곳이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이상천국은 아닙니다.
외적인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세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내적인 이면의 세계가 결정되어야 하고 그 결정된 것이 외적인 환경을 끌고 갈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서는 이상세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난날 선열들이 바라던 소원도 이것이요,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바라는 것도 이것입니다. 그러니 미래에 우리 후손들이 바라는 것 역시 이것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3시대의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생활 속에서 나를 희생시키며 실천을 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내가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생명의 모습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지옥일지라도 그 사람은 지옥의 사람이 아닌, 천국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곳은 알게 모르게 저절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를 지고 현시대에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건설자요,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개척자이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은 어디나 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이런 자리에 서게 되어야 비로소 하늘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 교인들의 마음을 싹 풀어 헤쳐 보면 그 가운데 뭐가 있느냐? 가지나 줄기나 잎은 나무 전체의 가치와 같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인도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같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양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게 되면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제한된 가치가 아니라 무한한 가치입니다. 통일교인 모두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역사상의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미래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가치입니다. 절대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여러분 개체의 마음 마음에 기쁨을 느끼며 공히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나서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새로운 자극이 생겨 새로운 역사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거기서 절대로 몰러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가진 인생관이면 인생관, 생활관이면 생활관, 우주관이면 우주관이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과 여러분을 봐도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다르겠지만 배우고 난 후에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 선생과 배우는 학생이 뭐가 다르냐면, 한쪽은 가르치는 분이요 한쪽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배우고 난 후에는 양쪽이 다 마찬가지가 되는 겁니다. 그럴 때 가르치는 그 스승의 소원이 뭐냐 하면, 그 제자가 미래에 자기와 같은 스승이 되어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때 그는 기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교훈해 나오는 것은 미래에 되어질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이 타락한 세계의 실체를 그냥 그대로 계승시킨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적인 실체를 추구해 나왔기 때문에 탕감복귀니 혁명과정이니 하는 것도 비정상적인 인물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인물은 자기보다 나아야 됩니다. 타락한 역사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과거보다도 현실, 현실보다도 미래에는 더 나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 더 나아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승이 있어 가지고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가르쳐 줄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어 나오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길이 얼마나 고통의 길이겠습니까? 통일교회는 그야말로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통일교회 하게 되면 벌써 세계가 통일교회 권내에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일을 하려면 그 사람만이 가진 사연이 있어야 합니다. 즉, 아무개가 뭘 하는 사람이냐 할 때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사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하면, 통일교회만이 가진 사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통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무슨 교니 하는 것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그 길에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가느냐, 전세계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영원히 모시고 살아야 할 하나님과 부모는 어떤 관계이며, 나와 부모는 어떤 관계이며, 나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가르칩니다. 이 관계를 횡적으로 엮어 놓은 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이 기틀이 잘 세워져 있을 때에는, 다시 말하면 머리를 중심삼고 꼬리가 정상적으로 잘 달려 있을 때에는 역사의 방향은 영원히 일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부모가 가시는 길과, 인류가 가는 길이 일치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을 향해서 나갈 때 궤도가 틀어지지 않고 어긋나지 않고 세계로 출발되어지면 그것이 나라가 되는 것이요, 나아가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큰일을 한다 하더라도, 또는 어떠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기준을 중심으로, 하나의 저울이라면 추가 되어 모든 것을 조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악에 해당하는 것이요, 일치되면 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계에 가 있는 선열들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땅 위에 하나님이 현현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참자녀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앞으로 후대의 역사과정에는 `이 과정을 밟고 넘어갈 수 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역사가 발전하고 아무리 비약하는 세계가 온다 하더라도 이 과정을 밟고 넘어가야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의 방안이 모색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통일의 방안인 것입니다. 역사가 어떠한 결과를 추구해 나온 모든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발전해 나온 세계의 모든 결과도 이것이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은 누굴 위해 살아야 됩니까? `나라는 존재는 누구를 위해 있느냐?' 할 때, `하나님을 위해 있다' 한다면 그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플러스 시키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나를 중심삼고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주체이시며 나는 대상이라는 말이며, 대상인 나는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인연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플러스시켜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입장은 어떠하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플러스가 되면 거기에 더 플러스시켜 가지고,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대상의 입장으로 올려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도입니다. 간단한 것이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이라든가, 삼단계 완성법칙이라든가, 하나님의 창조목적 등의 내용이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플러스를 많이 시키면 뭐가 좋으냐? 내가 왜 좋으냐 또는, 하나님이 왜 좋으냐 하면, 주체 앞에 플러스시킨 만큼 합해져 가지고 내 앞에 중심이 되니, 플러스를 많이 시킬수록 나는 그와 하나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커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잃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자꾸 플러스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면 뭐가 좋으냐? 그 배운 만큼 자기 활동무대라든가 자기 역량권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역량권이 넓어지면 자기의 모든 욕망에 대한 실권이 커지는 것이며 자기의 행복의 터전 또한 점점 넓혀져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행복의 터전이 넓어지게 되면 나중에는 세계가 나와 더불어 발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마음속에 세계를 전부 다 점령하겠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욕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전 인류의 관심이 이 세계에 쏠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기의 일보다도 세계의 일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어떤 민족이 자기 민족보다도 세계의 일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할때, 그런 사람들의 수가 다른 민족보다 더 많은 민족이라 할 때 그 민족은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아무리 세계를 지배한다 해도 국민들이 전부 다 세계에 무관심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후퇴하여 3년뒤에는 아시아를 찾아올 것입니다. 현재는 세계를 쥐고 흔들지 모르지만 앞으로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 관심이 없는 백성이 되면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자기가 관심을 갖고 생각하지 않은 일에 관계를 맺을 수가 있겠어요? 생각하지도 않은 일에 인연이 맺어질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자기의 생활과 자기의 현실 사회의 모든 환경을 넘어서 누구보다도 세계의 문제를, 인류의 문제를 내외적으로 염려하고 실감하면서 살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의 주인입니다. 세계적으로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세계의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 사건에 대한 관심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야 할 길은 이 땅 위에 닻을 내리는 길입니다. 그러려면 지상의 모든 것들이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본연의 자세를 갖추려면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참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 참부모가 현현할 때까지 인류는 비참한 역사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참부모가 와서 이 비참한 역사를 전부 다 바로잡아 하나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참부모의 역사에 있어서 세워야 할 조건을 모두 세우게 되면, 여기서부터 바로 참된 부모의 역사, 참된 자녀의 역사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부모가 역사적인 조건을 넘어서기 전에는 참된 부모의 역사는 출발할 수 없는 것이요, 참된 부모의 역사가 출발할 수 없으면 참된 자녀의 역사도 출발될 수 없는 것이요, 아울러 참된 세계의 역사도 출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의 역사, 참된 자녀의 역사가 정상적으로 이어져 나가게 되면, 그것이 참된 국가의 역사가 되는 것이요, 참된 세계의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시킨 초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초점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과거를 현시점에서 갖다 붙이고 미래 또한 현시점에 갖다 붙여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그 결실이 무엇이냐면 조금 전에 말한 하나님과 참부모와 자녀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 세계는 간접적인 존재입니다. 간접적인 존재로 구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직접적인 존재는 무엇이냐?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다 이겁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떼버리고 부모와 자식만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실을 맺는 과정이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행의 여건은 거기서부터 파급되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라든가 모든 사회문제들의 내용을 파헤쳐 보면 그 연유가 전부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긴 있는데, 부모의 마음이 아들딸의 마음 깊이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정이 자식들의 뼛골에 깊이 다져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부터 부모 자식간에 틈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뜯어 고쳐서 올바른 자리, 올바른 궤도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부모의 관심사와 사회적, 역사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가 추구하는 미래의 어느 기점에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가 과거에서부터 바라며 나오던 역사적인 소원을 현실적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으로 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이 세계는 갈라지지 않는 하나의 통일세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아무리 싸움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참부모의 뜻'하게 될 때 거기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주권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렇고 부모의 뜻이 이렇지 않느냐' 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질서정연하게, 강제가 아닌 자연적인 체계와 논리적인 형태로 전개하여 말하게 될 때는 그 앞에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떠나서는 그 내용에 부합될 수 있는 아무런 가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기준이 계속되는 한, 인류세계에 참부모를 중심삼은 영원한 평화의 기원과 통일의 기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열들은 이러한 부모를 중심삼고 소원해 나왔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여러분도 참부모를 중심삼고 소원하며 실천했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아브라함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아벨이 나 때문에 피를 흘렸구나' 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요, `예수님이 그런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도, 역사과정에 솔로몬왕이니 다윗왕이니 하는 사람들이 왔다 간 것도 나 때문이었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결국은 나 때문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늘날 승리의 권한은 우리가 갖고 있지 과거에 왔다간 그들이 갖고 있지 않다. 미래의 동기도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고, 내적인 세계의 동기 역시 우리가 갖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도 통일교회를 위하여, 과거로부터 흘러 나온 역사도 통일교회를 위하여, 세계가 복잡한 가운데 발전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다 통일교회를 위한 것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하면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다른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하기 전인 몇십 년 전에 이미 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리 다 생각해 보고 이 길을 출발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여러분은 선생님이 거기에 대한 비판적인 조건을 제시해서 이미 다 검토해 본 내용을 갖고 `내가 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전날 뿔을 돋혀 가지고 꺼떡거리고 다니던 녀석들이 그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습다는 거예요.
결국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할 때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요, 참된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통을 실현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참부모의 전통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법(家法)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을 때 유언해 놓는 가법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 즉 참부모의 소원인 것입니다. 참부모의 그 소원은 자기 집안을 위해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 곧 가정이 있는 것은 민족을 위해, 민족이 있는 것은 국가를 위해, 국가가 있는 것은 세계를 위해 있는 것이니, 그 최고의 목적기준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 이루는 것입니다. 그 이상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여러분이 훌륭하다고 해봤자 아무집 아버지의 그 아들밖에 더 되겠어요? 사회에서 아무리 잘된다고 해봤자 어느 회사 사장밖에 더 되겠느냔 말이예요. 그보다 더 잘된다고 해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 밖에 더 되겠어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기수는 되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휘어잡고 그 품에는 인류를 품고 돌아갈 정도가 되어야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정도라야 잘된 것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내가 머무는 곳이 의도(義道)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겁니다. 즉, 내 마음이 하늘 끝, 세상 끝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의 세계가 이 기원과 관계를 맺고 존재하는 이상, 이 존재의 세계는 내 것으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망상이 아닙니다.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며 현세를 붙들고 힘차게 나서게 될 때 거기에 역사가 동원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까지 동원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세계의 마음은 하나의 기원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중을 통일교 문선생한테 맡기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움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를 따라 나오게 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사람의 몸은 추울 때 따뜻한 곳이 있으면 `아아, 좋구만' 하면서 찾아 갑니다.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거기에 벽돌담이 가려 있어도 들이 깨고 간다 이말입니다.
이 세상에 그런 길이 있다는 데도 갈까말까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아직까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념을 터전으로 이러한 원칙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거예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이 공갈을 친다고 해서 후퇴하고, 이 세계가 자기 모가지를 자른다고 해서 후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길은 죽어도 가야 되고 살아도 가야 됩니다. 이 길은 내가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야 하는 영원한 길이기 때문에, 더 높은 가치로서 세우기 위하여 현실적인 가치를 초월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한한 내용의 동기가 우리가 가는 길 앞에 깃들어 있는 것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싸구려꾼입니다. 싸구려꾼, 싸구려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선생님이 `몇천 원만 이리 내 놓지' 하게 되면 `선생님이 자기 자식들을 위해 그러는구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남이 모르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까짓 돈 몇 푼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지구덩이도 문제가 아닙니다.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미국이 아폴로 우주선을 하늘로 보내기 위해서도 2백 5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썼는데, 그래, 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 아폴로 우주선 하나만도 못 해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을 아폴로 우주선과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이제는 선생님의 신세가 옛날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런 우주선 열 개 아니라 백 개를 준다해도 선생님과는 못 바꾼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내용은 그래요. 내 자신, 문 아무개라는 자체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그 내용은 복잡하다는 겁니다. 우주선을 천 대 만 대 재물로 가지고 온다 해도 내가 받고 싶으면 받고, 말고 싶으면 말 것입니다. 이런 말을 그들이 들으면 통일교회가 지금 허리 부러진 호랑이 새끼처럼 방안에서만 큰소리 치고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 호랑이란 놈이 봄을 맞아서 허리가 나아 가지고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어슬렁 어슬렁 나서는 날에는 천하가 곤란하단 말입니다.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일본이면 일본, 어디 가든지 통일교회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허리가 부러졌더라도 여러분은 세계의 문제가 될 사건을 일으키는 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멋진 사람들이 되어야 할텐데, 선생님이 여러분을 가만히 보면 그냥 내버려 두면 선생님을 따를 것 같지 않아요. 어때요, 맞아요? 그저 시시껄렁한 사람들이 어디서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처량하다는 것입니다. 참 처량하구먼! 여러분이 생각해 봐도 자신이 처량하지요? 그런 모습들을 해 가지고 `우리가 참부모님을 따라 살지 않으면 위선행위를 하는 것이니 할 수 있습니까' 하며 능청을 떤다는 말입니다. 거기엔 아마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실 거예요. (웃음)
이걸 보면 감투 중에서 최고의 감투는 참부모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헤쳐 나오는 데는 감옥도 여러 번 들락날락했고, 매도 많이 맞았고, 서글픈 일도 많이 당해 나왔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애국자 중 어떠한 애국자보다도 더한 애국자입니다. 눈물을 흘렸다면 그들보다 몇십 배 더 많이 흘린 사람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 하는 애국은 하늘이 공인하는 애국인 것입니다. 이 나라의 역사 가운데 있었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애국자도 선생님을 만나면 눈물 흘리며 찬양할 수밖에 없는 애국정신을 가지고 나온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대한민국이 좋은 선조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복받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애국자들이 가는 길이요, 진리의 길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충신 가운데에는 역적으로 몰리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충신이 되려는 길에서 역적으로 몰려 보지 않은 사람은 진자 충신이 못된 사람이라는 거예요.
효자도 효자가 아니라는 입장으로 반대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를 자연적으로 굴복시켜서 그 반대하는 환경을 침묵시킬 수 있는 권한을 들고 나올 때 그 사람이 참된 효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니라고 부정하는 자리에서 모두들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충신 중의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통일교회도 남들이 `아니다 아니다' 하는 부정의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탄의 괴수로도 낙인이 찍혔었고, 민족 반역의 선봉자라는 낙인도 받았었으며, 국제 공산당의 간첩이니 하는 등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잼대가 틀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잼대가 틀리다고 하는 것이 밝혀질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잼대로 재기에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너무 크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참이냐? 참된 잼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중심삼고 미국놈이 진짜냐, 영국놈이 진짜냐, 소련놈이 진짜냐? 전부 다 진짜가 아닙니다. 그럼 진짜가 누구냐? 통일의 패입니다. 통일패들이 진짜라고 하니 좋아하는데, 그럼 여러분들이 진짜입니까? 이런 통일의 패들을 믿을 수 없다, 또 그 패들 가운데 문선생, 그 문선생도 믿을 수 없다 한다면 그 가운데 믿을 수 있는 진짜가 과연 누구냐?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은 진짜다 이거예요. 진짜를 가리키는 저울의 추와 저울의 눈금과 같은 것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 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어디냐? 하나님의 몸뚱이도 아니요, 하나님의 손가락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집입니다, 마음집. 그 마음집에 살고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근본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마음집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근본이 뭐냐? 그것은 심정의 뿌리다 이겁니다. 심정의 뿌리, 그 심정의 뿌리는 어디에 나타나느냐? 골수에 나타납니다. 골수를 통해서 몸 전체에 연결되어 혈통을 타고 자녀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말하는 자녀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에서 `기분 나쁘게 통일교회 문선생이 제일 좋은 건 미리 다 얘기해 버렸구만' 하고 이야기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 털고 보면 이것만이 영원히 남아져서 여러분의 생활의 표준이 되는 것이요, 생사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별 수 있어요? 사람이 죽게 되면 누굴 찾겠습니까? 누굴 찾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누굴 찾겠어요? 죽을 땐 누구나 하나님을 찾습니다. 또 죽음길에서 누굴 따라가고 싶습니까? 안내자가 누구였으면 좋겠어요? 이웃 동네 사는 삼촌이면 좋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면 좋겠어요? 죽음길을 혼자 가는데 그때에 누가 나타나면 좋을까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타나길 바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자기 색시이겠습니까? 그래요? 색시가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강오륜이 동양사상을 지배할 수 있는 축이 된 것이며, 역사 또한 거기서부터 출발하였지만 뒤틀려 가지고 결국 돌아 나오게 되었는데, 이걸 바로 돌려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돌려 놓는 열쇠를 통일교회가 가졌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가졌는데 그것도 한국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문선생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빼앗기 위해 도둑질 잘하는 녀석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와서 고개를 쳐들고 앉아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이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에 처음 온 사람도 선생님에게 욕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거기에는 남아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모시는 데는 역사적인 하나님을 모시자는 거예요. 역사적인 심정을 지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역사적인 심정을 가지고 모시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슬픈 역사적인 심정을 가진 하나님 앞에 기쁨을 돌려드리는 효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현시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현시대를 중심삼고 나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시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서 효자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현시대적인 하나님인 동시에 미래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심정이 있을 것이어늘, 그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효자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효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이겠습니까? 그 자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눈물 지으며 `아버지, 당신은 이렇게 살아오셨습니까!' 하며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부모가 과거의 피어린 투쟁과 많은 수고를 통하여 갖게 된 재산을 상속받는 아들이 있다 할진대, 그가 많은 아들들 가운데서 부모와 하나될 수 있는 아들 중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위해 이만한 재산과 이러한 유업을 마련하려고 오늘날까지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하시고 입을 것 제대로 입지 못하시고 잠 잘 것 제대로 자지 못하시며 지금까지 슬프고 비참한 역사를 극복해 오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행복의 기원을 마련해 주시기 위함이 아니옵니까?' 하면서 부모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눈물은 옛날에 슬펐던 부모의 심정을 점령하게 되니 아들은 그 눈물을 통해서 지난날의 어려웠던 부모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에 위로받지 못한 그 부모의 눈물겨웠던 마음을 현시점에서 부활시켜 가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그날은 승리의 날로서 기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지난날에 슬펐던 어버이가 오늘 승리를 찬양받을 수 있는 어버이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에는 그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에서 현재 상속되는 재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몇 천만원, 몇 백만원, 또는 몇 수십억 원 어치의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때 이러한 재산은 현재 상태에서 응당 그 아들에게 주어야 하겠으나 그렇게 주고 나서는 기쁨의 마음에 앞서 걱정이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의 마음에 적합한 심정이 아닌 내용을 방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아들에게 부모는 `지난날 찾고자 했던 너를 만났고 오늘날에 찾던 너를 만났으니, 과거의 것들도 현재의 것들도 모두다 너에게 준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부모가 제물을 물려주기 전 이미 과거의 부모의 심정을 받아줄 수 있는 아들이요, 현재의 부모의 심정을 받아줄 수 있는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모든 재산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것이냐 하면, 슬픔으로 엮어 온 과거의 비참하였던 심정,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알고 그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정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모든 소유권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받고 나서도 현실적으로 슬픔의 조건을 제시하는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현재의 부모의 심정과 세계를 대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그 심정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것을 알았고 아버지께서 왜 내게 이것을 상속시켰는지를 알았으니, 아버지의 그 심정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는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 세계를 주고도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모든 것을 상속하여 주었는데 미래에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미래에도 틀림없이 소망의 세계에 일치된 방향과 일치된 목적으로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행동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가르침으로 보나 거기에 일치될 수 있다 하게 될 때, 그로 인하여 과거와 현재의 모든 가치있는 위업이 미래에 빛날 것을 부모가 알게 되므로 행복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는 상속해 주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나를 찾으시려던 그 오랜 소원을 이루어 무한히 기뻐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한 아들을 갖지 못한 가문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을 맞는 기쁨이라는 것은…. 상속해 주는 그 자리에서는 재산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 아들의 가치는 하늘의 가치와 같으니 그것을 찬양하며 함께 생각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자기 소원 성취를 자랑하면서 아들 앞에 상속해 주는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않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도 뜻을 엮어 온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을 것을 생각하고, 현시점에서 그 3시대를 거쳐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나서는 아들딸이 있을진대,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하를 몽땅 주시는 것입니다. 천지를 몽땅 준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을 우주적인 상속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우주적인 상속자! `그는 하늘도 내 것이요, 땅도 내 것이요, 모두가 나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 부자일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신이면 무엇으로 일신이냐? 외적인 모든 것들은 다 곁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내면의 뿌리와 같은 심정, 그 심정으로 일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을 중심삼고 통일세계를 모색해 나오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그러한 심정의 자리에 안식하는 것이 선열들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그 심정의 자리에 안식하여, 평화를 느끼며 자기의 행복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아들에게 `야 잘했다' 하실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아들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을 맞이하여 만천하가 그에게 속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대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이날을 결정지어야 할 사명을 주어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날이 결정되는 날은 메시아가 와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날입니다. 이것 외에는 없어요. 다른 것은 할 게 없어요.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행복이고 뭐고 나 배 고플 때 밥먹는 것이 제일 행복이지' 하는데 그렇습니까? 그래요? `아이고, 나 배고플 때를 생각하면 실컷 먹다가 배나 터져 죽었으면 제일 행복하겠다' 그럴 사람 있어요? 그렇다면 그렇게 먹고는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죽을 때에도 민족의 심정을 감아쥐고, 나아가 국가 세계 천주의 심정까지 감아쥐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죽게 될 때 밥 먹다 죽자는 거예요? 이런 사랑을 중심삼고는 심정이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너와 나, 둘 사이의 관계만을 가지고 죽을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이 하늘과 땅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허리띠를 붙들고, 하나님의 사랑의 노랫가락에 맞춰 가지고 춤추는 가운데서 죽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세계도 왔다갔다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모든 것을 파헤쳐 가지고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이 되는 날에는 천지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선열들이 바라 나오던 소원의 자리요, 안식처입니다.
안식처가 뭐예요? 피곤할 때 누울 수 있는 좋은 침대가 안식처인가요? 그런 곳이 안식처예요?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돼요. 이 자리는 영원한 자리이어야 합니다. 이 자리가 결정되는 날에는 또 다른 미래가 있지 않습니다. 미래의 소원의 기준도 여기에 되돌아 올 것입니다. 세월이 영원히 영원히 흘러가더라도 우리의 소원은 그날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세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타락한 세계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이 미래의 세계를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반대되면 때려 눕히고라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한 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만 결정되면 과거의 동기 자체가 미래의 소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 소원은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모두가 하나님을 모시려는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역사가 벌어지는 자리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 가정을 중심으로 재현되어 가지고 벌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응결되어 과거의 그 누구도 뗄 수 없고, 현세계의 어떤이도 뗄 수 없으며 미래의 후손조차도 뗄 수 없을,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게 될 때에 여러분은 천국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천국 못 가도록 수백 겹의 벽돌담을 쌓아 놓더라도 문제없이 직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시대를 중심삼은 고뇌의 심정 앞에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사람들은 부활된 예수님의 주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난날의 아브라함 같은 선지자들을 대해서도 `이 녀석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요? 선생님이 그들에게 `이 녀석아, 뭘 했어? 뭘 찾아 지금까지 허덕였어?'라고 물으면, 그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서 허덕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 찾았어, 못 찾았어?' 하면 못 찾았다고 할 것입니다.지금은 찾았다고 할 것인데, `그래 누구 때문에 찾았어?' 하고 물으면 `선생님 때문에 찾았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선생님 때문에 그것을 찾았으니 그들이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야지 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영계에 간 선지자들은 모두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 좋습니까? 여러분은 기분 안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웃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 믿은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 들어오면 놀라 자빠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예수님을 대해서 예수 오빠라고 부른다 이것입니다. 그럼 예수가 오빠지 오빠 아니면 뭐냐 이거예요. 그런데 그 오빠는 뜻을 못 이루고 죽었기 때문에 동정이나 받게 된 오빠라는 것입니다. 오빠도 높여서 불러 주는 거지요. 기대받는 오빠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오빠는 오빠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6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 즉, 영계와 육계의 무한한 가치를 짊어진 역사적인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 앞에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존재가 되었습니까? 그래 여러분이 역사적인 존재예요?
여러분은 시대적인 중심입니다. 30억 인류를 대표한 현시대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대적인 중심으로서 뭘 했습니까? 무엇을 해놓았느냐는 거예요. 모두들 보따리 장사라도 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를 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틀려요? 지금 통일교회가 싸워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중심삼고 이런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리는 위대한 것입니다. 만국의 만민을 치리할 수 있는 원리이기 때문에, 이것은 타락한 인간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의 천지조화탕이다 이겁니다. 천지조화탕! (웃음) 정말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올 때 좋아서 입이 벌어져 들어왔지요? 슬퍼서 울면서 들어왔어요? 어떻게든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가슴은 벌렁벌렁하고, 바람 부는 데 풍구를 대놓은 것처럼 괜히 길을 가다가도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거 가만히 보니 뭔가 훌륭한 것이 있다는 거예요. 교회 건물이야 까짓거 판자집이라도 괜찮고 무슨 굴속이라 해도 괜찮다 이거예요. 선생님만 있으면 다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대적인 중심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온 인류의 조상이요, 역사의 기원입니다. 또한 미래 인류의 조상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 자리에 딱 달라붙은 앉은뱅이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애꾸눈 사촌 같은 부족한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일을 하면서,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은 `너희들 문선생 미치지 않았어?' 하고 묻기에 딱 알맞다는 거예요. 그들이 여러분들의 꼬락서니를 보니 해괴망측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은 이렇게 죄 짓고 망명 온 거지 왕자처럼 누더기를 둘러 쓰고 앉아 있지만, 언젠가 봄을 맞아 활기를 띠고 날개를 펼 때는 천하를 그 품 안에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팔자가 시간 문제라고 하지만 시간 문제가 아니고 초 문제라는 거예요.
이런 걸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나는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역사적인 결실은 하나님이 될 것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일치되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적인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선생님이 이만하면 남자로서도 3분의 2이상의 수준은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생긴 것으로 봐도 만만치는 않을 거예요. 내가 얼굴이 누구보다 못생겼어요? 이렇게 한번씩 자랑해 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라 이겁니다.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아무리 미인도 내 말 듣고서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내가 누구만 못해서 왜정 때부터 쇠고랑 차고 콧노래 부르면서 형무소 문을 들락날락 했겠어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 곳은 내 조상이 피흘리고 간 한탄의 고개였지만 나는 무사통과라는 것입니다. `때릴 테면 얼마든지 때려라' 하는 뱃심을 가지고 악당들이 내려치는 채찍도 많이 맞았고 고문도 많이 당했던 것입니다. 칠 테면 쳐라 이겁니다. 이마가 불거져도 까딱없거든…. 그래서 나중에는 내게는 절대 고문을 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왜 해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도 안 되게 될 때는 그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그 악당들의 모든 수법을 그냥 그대로 탕감시켰던 것입니다. 종족을 위해서 그랬고, 친척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즉, 반대의 법을 지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개인별로 친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앙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몇천 만, 몇백 만, 몇 억의 생명을 내 손에 쥐고 있는데, 그 중에 3분 1을 모가지 잘라 버려도 나는 천법에 걸리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게 믿어집니까? 무슨 말인지 믿어져요?
이것이 선생님의 배포라는 거예요. 그런 무엇을 갖고 있느냐 말이예요. 내가 한번 승부를 걸게 되면 덤빌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갈 협박이 아닙니다. 오늘이 기도하는 마지막 주일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못 믿겠으면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공갈 협박을 했나 사기를 쳤나….
여러분은 아직 선생님에 대해서 확실히 모릅니다. 단지 선생님의 눈은 저렇게 생겼고, 귀는 저렇게 생겼고, 코는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이나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오게 되면 매일같이 볼 수 있고 얘기도 같이 나눌 수 있는, 평범한 환경에서 보여지는 사람으로만 알지, 진정으로 선생님을 잘 모른다 이겁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끌고 나오면서 자꾸만 새로운 말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렇지요? 다한 것 같은데도 새로운 말이 자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한 뒤에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몸소 실천하지 않고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인간으로서 절대적으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실천한 후에 몽둥이로 여러분을 후려갈기면서라도 이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욕을 하고 여러분의 뺨을 때리더라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른길로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후려갈기더라도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은 통일교인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처음 온 사람들은 오해할 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늙은이들한테도 눈하나 까딱 안 하고 어찌나 욕을 들이퍼붓는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이놈들! 쌍것들!' 하고 욕을 하게 되면, 처음 온 사람들은 선생님을 심판하기 딱 좋다는 것입니다. 누가 꺼드럭거리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그는 눈이 뒤집혀 가지고 `어! 무슨 사람이 저래?' 하는 것입니다. 그래 눈이 뒤집어질 테면 뒤집어지라는 것입니다. 한방 맞아 가지고 나가 자빠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놀음을 가끔 잘합니다.
여기 있는 협회장 지구장들이 아마도 지금 가슴을 태우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간만에 한 사람을 전도해서 오늘 처음 데려왔는데 선생님이 저런 말해 가지고 나가 자빠지면 어떡하나. 아이고, 하나님 맙소사' 그럴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이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옛날에 내가 그랬습니다. 협회장이 말 한마디를 잘못하기에 `이봐 협회장, 동생 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야. 별의별 사람이 다 와 있어' 하고 그렇게 얘기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오늘날 왜 이렇게 말을 하느냐?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은 왜 그러느냐? 우리 통일교회가 옛날보다 배포도 커지고, 그럴 시기도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도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시기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삼척동자도 모시고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시의의 법도를 따라 흰옷을 갈아입고 경배하며 정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모시는데 있어서는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까지 경배하고 모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할머니들을 대해서는 내가 얼마나 모셨겠습니까? 80이 넘은 할머니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들임에 틀림없으니 밤을 새워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최고의 하늘 대변자가 되어 상대해 주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지방에 순회를 갔을 때 할머니들 수십 명이 마루바닥에 둘러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저분이 도대체 누구냐' 하고 전부 다 선생님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어요. 나가 자빠져도 시원찮을 그런 할머니들을 데리고 밤새도록 쏙닥쏙닥 얘기를 해주느라고 병이 났습니다. 그런 놀음도 곧잘 했습니다. 사람을 모시는 데 있어서 선생님은 술집에 있는 접대부까지도 모신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선생님을 모시라고 명령 안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을 잘 모셔야 되는지 어째야 되는지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호령을 해서 모시라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모시라는 것이지.
선생님이 어떤 때는 귀찮을 때가 있어요. 선생님이 한참 바쁜데 `선생님 저 왔습니다. 저 왔어요, 저 왔습니다' 하고 따라다닌다 말입니다. (웃음) `왜 이래?' 그러면 `아이고, 오늘 새벽에 하나님이 선생님 앞에 가서 반갑게 인사하라고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럴 땐`아! 그러냐'고 그렇게 대답을 하지만 뭐가 그리 반갑다고 매일 꼬리를 저으며 자꾸 선생님 앞에 가로막고 인사를 하는지…. 선생님이 언제 인사 받겠다고 했어요? 인사를 하고 나면 여러분 마음이 편하지요. 그런데 인사를 안 해보세요. 왜 그런지 마음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거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여러분이 마음 세계를 지배하고 점령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인심은 천심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천정(天情)이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연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영원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갈 길을 알고 지도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인들은 자신들이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적인 기원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도리요, 인륜의 도리요, 천륜의 도리입니다. 여기에 부합될 수 있는 하나의 기쁨은 이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이것만이 이 세계의 모든 악한 것을 눌러서 화합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고, 내용이 될 수 있고, 절대적인 권한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룩의 모체가 되기 때문에 이것으로 말미암아 만국은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조들이 바라던 소원의 터전인 것을 알고, 우리는 그들의 힘찬 소망의 기준 앞에 그 소망의 실적을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배고픔을 당하더라도 선열들이 가던 그 길에 동반할 수 있는 하루를 맞았다고 콧노래를 불러가며 찬양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선열들의 슬펐던 사정을 위로해 주고, 그들을 위해 하늘 앞에 기도해 줄 수 있는 사정이 되게 될 때에 우리들은 그들의 역사적인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슬픔을 당하고 죽음길을 가더라도 그것이 역사와 더불어 남아질 것이요, 현시대에 갈라진 모든 것을 전부 무너뜨리고 평화의 대도를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우리의 가는 길 앞에 무슨 탄식이 있을 것이며, 무슨 낙망이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전도하러 나가 한 3년만 지나게 되면 모두 사팔뜨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요? 웃는 것을 보니, 모두들 실감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처음엔 곧은 눈이었는데 얼마쯤 지나면 사팔뜨기가 되어 가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내가 참 별꼴 다 보고 사누만요. 내가 어이타가 이 놀음을 하는 사나이가 됐는지…. 그러나 이것은 내가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 그러는 것입니다. 왜 할 수 없느냐? 전 생애를 하나님 뜻 앞에 맡겼으니 이 일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안 하면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잠을 자도 피곤하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게 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길을 택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길을 가야 심신이 제일 편하기 때문에 이 길을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반드시 이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젊은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승리하려고 합니다. 패자가 되는 것은 절대 싫어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젊은이들이니만큼 앞으로 하늘편에 서서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사회 각 분야에 역사적인 업적을 남겨야 하고, 또 그 분야들을 갱신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할 입장에 여러분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청년들입니다. 지금 세상의 대부분의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자기 나라에서 어떻게 출세를 하느냐, 또는 자신의 행복한 삶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더 차원 높은 윤리관에 입각해 가지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차원 높고 넓은 시야의 행복관을 가져야 하고 그 행복관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중심적인 사명의식을 가져야 함을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그러면 이 세계의 남성을 대표한 젊은이와 세계의 여성을 대표한 젊은이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지도자로서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젊은이들과 가는 방향은 같지만 경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반 대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을 꾸미게 됩니다. 그건 여러분도 물론이고, 통일교회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양은 비슷비슷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사회면 사회의 어떠한 도덕권내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혹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가는 방향은 다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로 나간 사람은 그 걸음이 사회에서 머물 것이고, 가정으로간 사람은 가정에서 머물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그들이 그 가정과 사회를 넘어 국가와 세계로 갈 수 있는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신념으로 하루하루 생을 개척해 나가지 못하고, 그 날들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능동적인 실체가 되지 못하면, 언제나 비관과 낙망 가운데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가는 방향은 같지만 경우가 다릅니다. 가정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 가정의 가장이 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은 개인적인 가정의 환경을 타파해서 종족에 연결될 수 있는 가정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가정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개인의 가정을 넘어 세계의 가정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일반 청년들과 입장이나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개체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체로서 능동적인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실력을 갖춰야 됩니다. 그래서 힘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몹시 혼란합니다. 세계의 정세 또한 좌우를 가릴 수 없는 혼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포위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내 자신이 그 환경에 흡수되어 끌려가는, 주체의식이 없는 사람이 되면 나중에는 분명히 패자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혼란한 정세나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우리는 그 입장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당당하게 현재의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그 환경을 수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가진 실체가 되지 않고는 스스로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없으며,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뜻에 보탬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지금까지 그러한 세파에 부딪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움직이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부가 하나님의 이념을 이어받아 가지고 철두철미한 심정적인 일체의 기준을 세우면 미래의 후손들이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그 찬양의 기준은 한 민족이나 국가권에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심정의 기틀로 마련되어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가정은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출발하는 가정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해야 할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그 자체에 있습니다. 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도 그러한 목적과 사명을 중심삼고 미래의 방향에 맞추어 가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끼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걸 실천할 수 있는 자체력(自體力)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자체력을 보유할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기필코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수 있는 사회제도가 되어 있느냐, 또 가정에 있어서도 환경이나 습관, 전통이 그렇게 되어 있느냐 할 때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회에 있어서도 가정에 있어서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다 투쟁하며 개척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이념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의 기준을 세우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불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모진 투쟁을 해야 합니다. 또 투쟁과 개척을 하는 데는 끊임없는 극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명은 기필코 달성해야 하는데 그것은 누가 해야 되겠느냐? 그러한 사명을 하려고 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기필코 어느 한때에 망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선진국가로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가려는 데 있어서, 그 국가가 끌려갈 수 있고 수많은 민족이 동행할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 나가지 못한다면, 미국은 머지 않은 미래에 좋지 않은 날을 맞이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라의 기원인 가정에 있어서도 젊은 부부들이 소망의 본체가 되어 나라를 이끌고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희망찬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그 나라 역시 망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미국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히피족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국가의 인륜 도덕관에 비춰 봐도 환영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퇴폐적인 현상을 벌여 놓고 있는 미국 젊은이들의 말로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과정의 기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그들이 동서남북 가운데 일방적인 입장에 서서 어떠한 하나의 기준도 갖지 못하고, 흘러가는 물결과 더불어 그때 그때의 만족만을 취하려는 퇴폐적이고도 용납할 수 없는 현실과 사회제도의 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이니 젊은이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있어서 문명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대 문명을 보더라도 현대 문명을 능가하는 것이 많습니다. 애급 문명이라든가 아라비아 문명, 혹은 인도 문명 등 여러가지 역사적인 뿌리가 되는 문명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명들이 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 나라는 젊은 세대들에게 자기들의 한계를 개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타오르는 세계관이 상실되고 그 가슴은 페허가 되었으니 전진이 아닌 후퇴를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은 입장에 선 젊은이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그 어느 국가가 자국의 문화를 세계적인 문화로 세울 수 있다고 자랑한다 하더라도, 그 문화에 기대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50개 주를 다 돌아봤지만, 그곳에 어떠한 미련도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상이나 어떤 사조에 휩쓸려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장래를 두고 볼 때에는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퇴폐한 그 사회 환경을 박차고 나가서 미래의 성공에 대한 흠모의 마음에 사무쳐 정성을 들이고, 자기의 올바른 주관을 가지고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젊은이가 되면 그 사회나 가정, 혹은 다른 어떤 청년들이 거기에 흡수되면 흡수되었지 그를 터치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기원으로 가정의 기준이 갖춰지면 그 가정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시일이 문제이지 새로운 사회는 반드시 발전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우리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느냐?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는 무리가 아니요, 통일교회의 교단만을 위해 기도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이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고, 이 나라는 세계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또 세계는 하늘 땅을 위해 있어야 하고, 하늘땅은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천지의 대주재(大主宰)이십니다. 그분은 최고의 이상을 지니셨기에 목적의 기준도 되고 동기의 기준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있게 된 동기도 하나님이요,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목적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그 동기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가정이며 그 가정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은 어차피 젊은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기준이요, 모든 것을 한 점에 결부시킬 수 있는 사상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서 그 어떤 사상도 따라오지 못할 내용을 지니고 있는 이것이 바로 천주주의(天宙主義)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의 어떠한 사상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서, 이 사상의 특징은 집입니다. 집 주(宙)자 천주주의입니다. 결국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집, 나라가 살아갈 수 있는 집, 세계가 살아갈 수 있는 집, 하늘과 땅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젊은이들도 이 집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집, 나라의 집, 세계의 집, 하늘땅의 집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집의 중심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개인의 집으로부터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집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세계형을 만들어 놓았지만 하나님은 아직 거기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개인의 집에서부터 사탄 종족의 집, 국가의 집, 세계의 집까지 지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대표적인 힘을 가지고서 사탄의 모든 집들을 부수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다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귀문제를 말할 때는 개인복귀를 강조해야 합니다. 왜 개인복귀를 강조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면 먼저 개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락권내에서 축복받은 조건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복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개인복귀의 목적은 가정복귀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정복귀의 목적은 민족복귀를, 민족복귀의 목적은 국가복귀를, 국가복귀의 목적은 세계복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모두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복귀의 목적은 천주복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복귀는 곧 제물복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참된 개인이 성장하여 하나의 참된 짝을 찾음으로써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었을 때, 이 가정을 통해서 비로소 참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그 참된 가정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가정을 찾고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참된 하나의 종족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종족을 찾자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참된 민족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민족을 찾고, 하나의 참된 국가를 희생시켜서 수많은 국가를 찾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을 복귀하여 가정과 민족과 국가를 형성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를 형성하기 전에 세계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세계적인 대표자가 되기 전에, 세계를 굴복시켜 세계를 지배하기 전에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내용을 연결시켜 나온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가정에 대해서 잘 모를 겁니다. 축복은 한 개인의 일대를 놓고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한 남자와 한여자가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한 개인으로서 가정적인 축복을 받는 것이 어떠한 섭리적인 내용이 있느냐? 축복가정은 자신들의 본심에 의해서 생활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을 중심삼아 타락한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복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이것이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러면 사탄에 의하여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좋아서 타락했겠습니까? 진작부터 마음에도 있었고 사탄의 말에 의해 해와가 행동할 때도 좋아서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 양심의 가책과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타락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순리입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터전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축복가정은 오늘날 사회의 가정형태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축복가정은 제물적 기반입니다.
어느 한 개인을 중심삼고 이룬 가정은 종족을 위해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종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그 종족이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한 것이요, 그 민족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이요, 그 국가가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이 찾아야 할 최후의 목적지는 천주입니다. 즉 온 천주를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물에는 보이는 땅 위의 삼라만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포함되니 그것까지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주를 지배하려면 천주를 걸어놓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겨야 하느냐? 여기에는 하나님과 사탄이 있는데 사탄을 쳐서 굴복시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최고의 시험을 통과해야 됩니다.
그 시험이 무엇인가 하면, 가정에 대한 시험을 비롯하여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런데 종족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세계의 시험은 가정이 없이는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있어 그 가정이 주춧돌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빼놓은 민족, 가정을 빼놓은 국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세계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으로 가야 합니다. 가정을 올바로 이끌어야 사회도 올바로 이끌 수 있고,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올바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관입니다. 이 사상은 어떠한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지닌 사상입니다. 그러니 이 길이야말로 마지막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혹은 세계적인 모든 권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심정적인 기쁨을 표시할 곳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거느리는 사람들이나 각료들, 혹은 추종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심정적인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 돌아와 가지고 부부가 서로를 통하여 기쁨을 느끼고, 또 자녀를 통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제1차적인 기쁨이지 2차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를 전부 복귀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없는 하나님은 기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이것은 만고불변의 기원이며 기틀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고칠수 없고, 형제도 고칠 수 없으며, 어느 나라의 어떠한 제도로도 고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고치지 못하며, 하늘땅도, 하나님께서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것에는 영원히 혁명이라는 명사가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사랑의 곳이기 때문에 혁명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는,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서로 사모하던 것이나 오늘날 현대의 젊은이들이 서로 사모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 느끼는 것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는 기틀은 천태만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데 가정으로 자리잡는 그 형태는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망하게 됩니다.
혁명의 요소를 가할 수 없는 그런 기틀로 이루어진 가정은 어떠한 주의나 사상에도 흡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의나 사상을 지배하고 능가합니다. 이런 기준이 세워진 가정은 십년, 백년, 천년이 가도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유지시키게 됩니다.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 하나님께서 서러워하신 것도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러한 서러운 입장에 계십니다. 지금도 악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회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우리들이 악의 세력과 강력하게 투쟁하여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누가 하느냐? 가정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 사회를 거치고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사회에 나가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졸업을 했다고 합시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여러분이 바로 어떠한 사회 기관의 기관장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도위원 정도밖에는 못 될 것입니다. 어떠한 회사면 그 회사에 속한 일원으로서 그 회사에 제반 규칙에 따라서 계속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여러분은 그렇게 제한을 받으며 거기에서 그냥 만족하고 살 것이냐? 아니면 그 제한이 자기 가정의 이념을 실천하기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하여 떨쳐 버릴 것이냐 하는 문제로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투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 이 투쟁의 해결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평상시에 교회를 통하여 철두철미한 사상을 정립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끌고 나가는 데 부딪치는 모든 악의 요건들을 제거시키고, 어떠한 어려움이 부딪쳐 와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통일적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1차적인, 혹은 2차적인, 나아가 3차, 4차로 계속 반복되는 사탄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는 것을 자기의 생활 철학으로 삼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싸움이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위한 싸움이 됩니다. 보다 고차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현시대에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싸워 나간다면 그러한 신념이 나라를 구하게 되고 세계를 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마음을 중심하고 자신의 생애를 지낼 때 현실에 부딪치는 모든 외적인 환경을 제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체의식과 주인의식을 지녀서 책임을 지고 결의하고 맹세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실체가 되지 않고는 악의 세파를 타개해 나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자기 만족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을 꿈꾸며 사는 것이 생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 국가가 구성되려면 주권이 있어야 되고 국민과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입니다. 그러면 주권은 무엇이냐? 그것은 국가의 정신적인 터전으로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국민은 주권을 가지고 국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권내에 여러분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에 정권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박이라는 사람이 주축이 되어 정권을 이루면 박정권이라 합니다. 그 정권이란 뭐냐? 정사, 즉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데는 올바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집권자가 되어야 하느냐? 아버지와 같은 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아버지는 자기의 자녀를 세계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아버지여야 합니다. 국민이 무입니까? 그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국토는 아들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나라의 기반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냐 하면 국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니 여러분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참된 종족의 기반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참된 주권을 형성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새로운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변혁과 혁명의 과정을 통해 참된 주권의 시대로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주권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주의 사상이 필요하며, 새로운 주의 사상이 나오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또한 세계적인 국민과 그 국민을 중심한 세계적인 국토가 나와야 합니다. 7억이라는 국민을 가진 중국이라는 나라도 세계적인 인물이 나오도록 중간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국가에 불과합니다. 현대의 과학을 통한 물질문명이나 문화라는 것도 모두가 부대조건에 해당됩니다. 이런 것들을 세계를 원활하게 체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적인 조건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사람과 경제가 문제입니다. 대한민국도 제일의 문제가 경제입니다.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만 있으면 전도하는 것도 간단합니다. 그리고 돈 버는 것도 간단합니다. 우리가 계획하여 20일만 수고하면 우리의 목표액을 벌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관리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그 돈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도 있고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민족성과 국민성을 지닌 나라는 오래 건재합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한국 국민을 볼 때, 그 국민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 그런 사람들이 구성원이 되어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단시일내에 어느 정도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 모두가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참된 사람, 참된 국민은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도 철두철미한 사상을 지녀야 하고, 그 어느 나라의 사상이라도 능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나라의 문화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이 지금 불쌍한 입장이라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거지라 해도 자식을 잘 낳으면 그의 다음 대에서는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여러분 자신이 나라의 어떤 대표적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할진대 그 나라의 기반은 거기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작전을 해 가지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냐? 지금 사회는 어떠한 사람으로서 나가야 하느냐? 참된 사람이 되어서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가지 못했던 그 길을 내가 능히 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망의 날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를 완전히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천정이 감도는 천지촌을 만들어 거기서 천의의 승리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기반만 갖추게 된다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그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기면,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문제삼고 들고 나오겠지만, 그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솔선해서 무엇이든지 해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정세에 이용당하고 소화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즉 타락한 세계의 국가나 국민에게 소화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의식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과 같이 사회구조가 제도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어떠한 운동이 벌어졌을 때 인격적인 면에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국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떤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인격적인 기준을 가지고 천명과 천의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을 공고화하고 그것을 하늘이 구원의 복지로 삼는다면 거기서부터 세계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사상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공부해서 알고 있듯이 한 국가나 민족이 망하게 되는 원인은 그 나라의 국민이 시대감정을 초월하지 못하고, 그 시대의 조류에 빨려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주의 사상이 아니면 반드시 그 시대의 조류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또 그러면 그 민족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위대합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 식구들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왜 교회를 사랑하느냐?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와 정치는 분립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종교를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그런 종교가 나라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라를 이용하고 그 사회를 이용물로 취급하려는 종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있는 종교여야지 나라에 해를 끼치는 종교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좋은 의미에서 혁신하고 좋은 의미에서 새로운 이상의 환경을 향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상적인 형태를 갖춘 종교를 나라에서는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제시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대해서 선생님이 애통해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환경입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가를 볼 때, 유명하다는 교수들이 자기들이 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몇 퍼센트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그 학교가 주장하고 있는 기본 이념이 무엇이며, 그것이 학생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며, 어떠한 상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분야는 어떤 분야이며 현재 학생들이 탐구해 나가는 사조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스스로가 혁신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룩이라는 것은 어떠한 환경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밀가루를 아무리 크게 반죽해 놓았다 할지라도 작은 누룩 몇 입자만 묻혀 놓으면 시일이 문제지 그 밀가루 반죽을 전부 다 누룩화시킵니다. 환경을 누룩화시키는 데에는 연속적이고도 지속적인 무한한 투쟁이 요합니다. 이렇게 전체를 흡수하고도 남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 교회에서는 필요로 합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들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부모의 은덕을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중국이 어떻게 해서 세계에 유례없는 7억이라는 국민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봐도 우리의 5천년 역사보다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국민이 7억의 국민을 가진 중국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4천 5백만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어떻게 하여 7억의 국민을 갖게 되었을까?
선생님이 생각해 볼 때에 거기에는 유교사상이 지대한 공을 세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삼강오륜이라는 것이 하늘이 아닌, 부모를 모시는 사상입니다. 유교는 자기의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많은 수의 아들과 딸을 낳아야 복받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상을 중심으로 나왔기 때문에 7억의 국민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교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님이 나와 가지고 시대를 거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무시하고 역사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그런 류의 사상을 단지 체계화시키고 일반화시켰을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사상을 이어받아 지니고 나온 국민입니다. 그 사상은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상이며, 하늘이 지향하는 사상으로서 천운이 함께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은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맨 밑바닥에서부터 그 터전을 닦아 온 나라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제일 많은 국민을 가지게 되었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가서 그렇게 탄압을 받고 그렇게 혹독한 고역생활을 하면서도, 자꾸 번성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하늘이 사랑하는,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선민이라는 사상을 공고히 해 가지고 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같은 운명체로서 상대방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하는, 서로 단결된 가정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형태를 이루었던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자기라는 한 자체는 가정을 대표한 개인으로서 그 가정을 복귀시키고 그 가정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룩으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한 국가를 형성하는 배달민족의 가정으로서 자기의 나라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부터 천운이 함께하게 되는데 천운과 인연이 맺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국가까지 대번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개인과 가정을 통하고 종족과 민족의 형태를 거쳐 나온 후에 국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원리에 나온 복귀섭리의 노정입니다. 그러니 천운이 함께 하는 가정으로서 종족과 민족의 형태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단점이 무엇인가 하면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전부 다 뻗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처음에는 속도가 빠르게 잘도 봅니다. 무엇을 보면 척 벗겨 놓고 뭐가 어떻게 뭐가 어떻고 하며 평은 잘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잊고 있다는 겁니다. 평을 하려면 먼저 자기를 3배 이상 평하고 나서 그것의 3분 1만 평하라는 것입니다. 눈을 반대로 돌려 먼저 자신을 보라는 겁니다. 어떠한 교수가 강단에 서면 `통일교회에서는 무슨 말을 하겠고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 하며 잘도 평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는 곤란합니다.
여기 문선생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뻗쳐 나가느냐? 국가를 중심삼고 뻗쳐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를 위해서 문선생이 나왔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문선생이 나왔다는 것은 세계가 문선생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중심하고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자기를 중심삼고 나가면 망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어떤 사회, 어떤 세력권을 만들면 전부 다 핍박당합니다. 힘들다고 손 들고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것입니다. `문 아무개 좋다'고 해서 여러분이 동화되었습니까? 그가 국가를 위해서 나왔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동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까? 그러니 비판을 할 때도 국가의 충신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결정한 후에 비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당당히 나서서 호소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당당히 나서서 그럴 수 있다 하게 되면 그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는 고생을 안 해도 새로운 세계에서 반드시 기억되는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인이 되어 가지고 `무슨 부장이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 하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부인할 수 있습니까? 청소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협회를 대표하는 입장에 서서, 협회의 중심적인 존재들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수고한 터전 위에 서서, 매일 쉬지 않고 싸워 나갔던 그들의 기준에 동화되어 그들의 동지적이며 동급적 입장에 서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활동을 권고하는 것은 협회 전체가 응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나고 못나고, 어떠한 사실을 잘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서 배우고 어디에서 알아 가지고 어디에서 동하고 정하며 열의를 다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의 전체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회는 내가 거쳐가야 할 사회요, 이 나라는 내가 거쳐가야 할 나라요, 이 세계는 내가 거쳐가야 할 세계요, 이 천주도 내가 거쳐가야 할 천주입니다. 이렇게 거쳐나가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가는 각자의 길은 다 자유로우니 여러분은 스스로가 국가의 이상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대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선으로써 승리하겠다고 해서 단번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승리 못 합니다. 악을 대해 싸워서 이겨야만 선은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악권내에서 태어났고, 악권내에 먹고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선에 접하려면 악을 제거하고 승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승리로부터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승리까지 해야 합니다. 최소한 국가적으로까지는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국가의 운명을 걸어 놓고 가는 길입니다. 국가를 위하는 것은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국가에서부터는 횡적인 문제가 벌어져 세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들은 지금 민족과 국가를 향해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런 때에 처해 있으므로 여러분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미래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고, 현세계 전체를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주체적 권한과 주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역량을 자손 만대에 남겨 주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복을 받았다면 받은 복을 전부 소비하지 않고 남겨 놓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 일대에 고생을 하여 복을 받았다면 그 복을 이 세계에 남기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국가를 위해 가되 더 큰 목적은 세계를 위해 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 가되 더 큰 목적은 천주를 위해 가자, 가는 데에는 현실에서 모든 일을 해결짓고 가자 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탕감을 할 때는, 개인적인 기준을 탕감하기 위해 제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정과 종족 전부를 합해 가지고 일시에 국가적인 기준을 탕감할 수 있을 때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물이 될 수 있는 기간이 7년노정인 것입니다.
탕감을 할 때에는 자기 혼자 해야 합니다. 탕감은 시험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하기 어려워지는데, 그 시험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함정에 걸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눈으로 바라봐도 안 보이는 것이요, 귀로 들어봐도 안 들리는 것이요, 직접 가 봐도 모르는 것이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험의 최고의 탕감복귀를 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앞으로 하늘의 뜻을 펴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악한 세계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완전한 선의 출발을 위해서는 악을 완전히 제거해야 됩니다. 개인의 기준에서 국가의 기준까지 나가는 데는 사탄을 들이쳐서 완전히 제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현사회에 당당히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하는 어려움을 회피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추석날 아침에 신자들과 간부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 있지요? 선을 행하는 데는 직행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데는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쉽게 행할 것입니다. 선의 길은 직행길입니다. 속력도 최고속입니다. 후다닥 해 버리는 것입니다. 십년, 천년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순식간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행해 오시는 그 길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6천년이나 걸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원리를 들었다고 해서 통일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등수에도 못 들어갑니다. 통일교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직행해야 됩니다. 원리 말씀을 듣고 직행해서 복귀해야 될 것을 전부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원리 말씀을 들으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활동을 해야 되고, 명령에 순응함과 동시에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해야 됩니다. 선생님의 가슴을 뚫고 직행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갈수 있는 직행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심정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법이 있어요? 지금 내가 너를 사랑하고 싶은데 3년 동안 기다렸다가 사랑하겠다 그럴 수 있어요? 어떠한 극난에 부딪치면 그 극난을 도리어 이겨내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극난에 비례되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농부의 아들, 혹은 노동자의 아들 등이 있을 것입니다. 각기 다른 부모로부터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효자가 되려면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얼굴을 잘 살펴서 부모의 얼굴에 슬픔이 있으면 그 슬픔을 지워 드릴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부모가 슬픔에 겨워 술을 마시고 계시면 안타까운 마음을 견딜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또 부모님이 걱정거리가 있어 잠을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든지 위로하여 먼저 주무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가 먹기 위해 일을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이 많은 부모가 농촌에서 혹은 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할 때, 가난하지만 지게를 짊어지고 김을 매고 밭고랑, 혹은 논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은 천년 만년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부모의 이마에서 흐르는 수고의 땀방울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땀의 결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엉키게 되면 거기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밭에서 김을 매고 노동판에서 지게질을 해도 그의 발걸음에는 새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삼천만 민중이 살고 있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그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10년, 20년 이상 지속되는 부모가 있다면 거기에는 효자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아들과 딸들은 그 부모의 얼굴만 봐도, 손만 봐도 자기들을 위해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뼛골이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될 때, 거기에서 오랜 세월의 깊은 사연이 흘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식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공헌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부모는 국가적인 부모, 혹은 세계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다는 심정에 사무쳐서 공부하게 될 때, 새로운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한 감정과 느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부를 한다 해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애쓰고, 너를 위해 수고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나를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뜻에서이다' 하는 애국지사의 심정을 가지고 교육하면,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애국지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회상할 때마다 삼천만 민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는 입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며, 자기의 민족이 비참함을 당할 때는 자기의 부모 이상으로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만 선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 놓은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국민이 천년 만년 흠모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합니다.
여러분의 학교에 어떻게 하든지간에 자기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인계시키기 위해 애쓰는 스승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권고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순응하지 말고 나라에 대해 순응하라. 나를 위해 잘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잘 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은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제자들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도 국가와 세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그 스승의 제자와 그 부모의 아들딸들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인류에 대해 `아이고,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너희들은 나의 서러움도 몰라주는구나' 하는 원한의 마음을 갖고 나오셨다면 당신의 뜻인 평화의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참다운 곳에서 살아가고 싶은 당신의 뜻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만이 편안하기 위해 복귀역사를 해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자식이라 하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구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가는 세월을 안타깝게 느끼는 것입니다. 시간 가는 것이 그토록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인간을 구하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시간을 초월하고 환경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하고 어떠한 환경도 극복하면서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충성하겠다는 아들딸이 나오면 그는 어느 누구 못지 않는 권한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아들딸과 인연된 나라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갖지 못한 충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아들딸의 모든 사지백체는 하나님의 소원의 토대요, 사랑의 기본이요, 모든 한이 풀어진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인간 세계에서 풀어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올 때, 그는 천하무적인 한 용사로서, 진정한 하늘의 대역자로서 당당하게 하늘의 뜻을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던 그 여력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대해 얼마나 정성들였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도수(度數)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배척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용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수고해 나온 하나님의 사랑의 노력을 받들어서 그것을 주장하면서 나왔지만 그는 민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어려운 입장에 빠졌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도 그는 미래에 새로운 이념을 남기고 사랑의 보람을 남기겠다고 몸부림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제2차적인 섭리로 부활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지금까지 뜻을 중심삼고 나왔을 것입니다.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내정적인 심정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리를 잡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가야 되는 운명길이라면 당당히 가야 합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평범하게 세상의 어떤 아낙네와 결혼하여 그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아들딸을 낳고 산다거나, 어떤 직장에서 과장이라든가 부장이라든가 하는 감투를 쓰고 거기에 만족해서 산다면 그건 아주 시시한 것입니다. 시시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것 가지고 뭘 할 거예요? 교회 다니면 뭐가 다르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달라야 하느냐 하면 바라는 환경이 달라야 하고 보는 관점이 달아야 하고 강평의 기준이 달아야 합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행동거지가 달라야 합니다. 행보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학을 나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지금 사망의 물결은 세계를 격동시키고 있습니다. 이 민족도 그런 처참한 환경에 휩싸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을 사방으로 타파해 버리고 격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련 노정에 있는 자기 자신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자기 생애의 목적으로 삼아 하나님의 용서로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신념이 여러분의 가슴에서 사라지게 되면 여러분은 통일의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 가담할 것이냐? 여러분은 대학을 나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을 보면 무슨 학박사 감투나 쓰고 앉아서 어떻고 어떻고 떠들기만 합니다. 비율을 보면 학박사의 8할 이상이 무책임하게 그러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 생명을 걸고 책임감 있게, `내 목을 자르시오!' 하면 자신 있게 외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죽기 싫어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미흡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떤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패들입니다.
충신 열녀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남 미녀가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추남 추녀입니다. 외모가 늘씬하게 생긴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병신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이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그렇게 보더라도 하늘세계에서는 그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생각은 대학가에서 농뗑이 부리는 젊은 청년들 전부 데려다가 뜻 앞에 충성하는 일꾼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몇 개 조로 편성을 해서 훈련시킨 후 나라에 충성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놀아나는 길, 그들이 좋다 하는 길을 가게 되면 망합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통일교회에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다'고 공박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면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각 종교에서는 자기들끼리 무슨 이단교니 사교니 해 가지고 파를 나눕니다. 그들은 전부 망파입니다. 그들에게 좋은 명사를 쓰기에는 기분 나쁜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망할 수 밖에 없는 패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서 그런 요소를 제거해야 됩니다. 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선민의 입장에서 파워를 조성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요원이예요? 전부 데려다가 혼을 내서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 겁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뜻을 사랑해요? 그렇다면 여러분들 전부 강원도 산골짜기에 몰아넣고 얼마 동안 지내게 해볼까요? 그 중에는 어렵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선생님을 두고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 길을 나선 사람입니다. 목적을 위해 칼날 같은 마음으로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품고 싶지만, 이길을 가기 위해서 부모를 저버리고, 처자까지도 저버린 사람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가 급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을 성화청년이라고 합니다. `성화', 성화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성화(成和)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야단났을 때나 다급할 때는 뭐라고 합니까? 그것도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를 한글로 쓰면 똑같습니다. 발음도 같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성화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네방네의 성화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전도할 때에도 편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아이구 그까짓 공부가 문제냐? 내가 많은 친구들을 이끌고 가서 믿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런 사람 봤어요? 그저 `듣기만 해보라'고 사정을 해야 되지요. 안 되면 멱살이라도 한번 잡아 보라는 거예요. 나쁜 의미로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아이구' 할 때까지 목을 끌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냉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비장한 각오로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죽음의 고비는 가까와지는데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노정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몰라서 그러는데 선생님 얼굴을 보게 되면 고생해야 할 팔자로 보여요? 또 선생님이 고생했다는 말만 들었지 고생하는 것을 봤어요? 그것을 못 봤으니 알 수가 없어요. 말만 듣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먹으면서 참 맛있다고 했을 때, 여러분이 먹여 보지도 않고 말만으로 그 맛을 알 수 있어요? 직접 여러분이 먹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또 아들딸을 낳아 보지도 않은 부부가 아들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성화를 좋아합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성화꾼입니다. 또 마을에 가면 마을의 성화꾼입니다. 사탄세계의 성화꾼인 동시에 하나님세계의 성화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점에서 출발해서 한 점에서 열매맺는다는 것입니다. 한국말의 의미는 참 묘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예수꾼, 절에 다니는 사람은 절꾼, 여러분은 무슨 꾼이예요? 성화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성화꾼이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부 잘해라. 말 잘들어라.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는데 그것이 성화꾼입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이 녀석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열등생이 되니 공부 잘해라 잘해라' 이것도 성화이긴 성화입니다. 또, 자식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부모가 사랑의 마음으로 알뜰히 무엇을 해준 것을 다 들고 나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불쌍하다고 나눠 줍니다. 이것도 성화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십 년이나 걸려서 무엇을 하나 정성들여 마련해서 주었는데, 이것도 두어 시간 채 못 돼 전부 다 다른 애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것도 성화지요?
성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망하는 것이요, 하나는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복을 주는 것이요, 하나는 복을 펴내는 것입니다. 하나는 쌓아 올리는 것이요, 하나는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을 찾아 다니면서 농촌 계몽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 활동할 때는 그 마을 사람들의 성화가 대단했습니다. `누가 우리 마을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나. 영양가 있는 것 사 달라고 했나. 짚을 때서 콩이나 팥을 삶아 구수한 냄새 맡아 가면 사는데, 왜 우리 마을에 와서 손땀내를 피우느냐. 아, 누가 밥을 해 달래?' 라고 성화를 했습니다. 반갑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이런 성화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시에서나, 농촌, 아니 대한민국의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성화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각 도에서 한 사람씩 뽑아 문공부 장관상인 통일상을 수상하는 날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식구가 떡 상을 타 가지고 와서 선생님에게 부장이 4만원이고 뭐 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일국의 정세가 통일교회 빼 놓으면 절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미워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화대학생입니다. 여러분은 성화꾼이 되어 대학가에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 통일교회에 다녀 보지 않겠는가? 이리와!' 라고 하면서 그들의 허리를 쥐려고 하면 여러분들 중에 다리뼈가 부러졌다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 대꾸를 하면 그들이 가만 안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명력이 불타오르는 꽃봉오리, 또 거기에서 퍼지는 향기와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자! 그런 하나님을 알아보지 않겠는가?' 하고 말한다면, 그들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총각들인데 장가들 때에 시집을 가 본 과부한테 들 거예요, 처녀한테 들 거예요? 대답해 보세요. 처녀한테 장가 들 거예요, 과부한테 장가 들 거예요? (웃음) 생명이 투입될 수 있는 것은 숫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숫것을 드리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아가씨들, 총각들 연애가 다 뭐예요.
생명은 숫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사람이 맨 처음 태어날 때 본래는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숫것으로 태어나지, 무슨 흠을 갖고 태어납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 몸도 숫것으로 태어났고 내 마음도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사춘기를 통하여 흘러 나오는 봄절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청년의 가슴도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몸 마음이 다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숫것이 될 수 있겠어요? 이런 것을 어디에다 갖자 바치려 하는 거예요? 그러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다른 곳에다 소비할 수 있겠어요? 탕감법칙에 의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친다고 한다면, 어느 때에 바칠 것인가? 생명은 하나뿐인데 어떤 때에 바치겠어요? 다들 신세 망친 다음에 바치겠어요? 요즘 전도하러 다니는 전도부인들 중에는 가방 하나씩을 들고 다니면서 `아이고 교회 다닌다고 남편한테 두들겨 맞았어요' 하면서 뭐가 어떻고 어떤 놈이라고 하면서 자기 남편을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웃음) 그러면서 억지 춘향이 흉내를 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 쓰레기통들입니다. 그러한 인간 쓰레기통들만 모여 있으면, 그 기독교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그런 사람들을 원치 않아요. 그렇다고 그들이 정성을 들이며 다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여기에 정성까지 들여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정성을 들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살다가 지쳐 죽게 되니까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아이고,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했으니, 하나님 나 복 주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넉넉하여 걱정 하나 없고, 입을 것도 넉넉하여 세상만사 부러울 것이 없고,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거리낄 것이 없는 가운데서도 `인생이 무엇이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아니냐?' 하면서 하나님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히 여기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정성들이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버지 이 몸을 바칩니다' 할 때 하나님은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아나니아 부부가 땅을 다 판 후에 얼마를 감춰 놓고는 베드로에게 다 가져 왔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벌을 받아 죽게 됩니다. 마땅히 벼락을 맞아야지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중심삼은 성화입니다. 나쁜 의미로, 속된 말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탕감이 없는 그날까지 필요한 말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동네를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 동네에는 하루 전날 사람이 죽든가, 싸움판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등 별의별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귀한 분이 오기 위해서 벌어지는 것이라든 등 별의별 소문도 다 들었습니다. 요전번에는 어떤 동네에 들어갔는데 `여보 당신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고, 내일 또 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니 나가 주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싸움판이 벌어지고 집안들이 싸우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니 사탄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그것은 사탄이 볼 때도 성화거리요, 하늘이 볼 때도 성화거리입니다. 또 인간 세계에서도 성화거리입니다. 그렇지만 성화거리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탕감원칙에 의해서 그런 죽음은 희생의 조건이 되어 복귀의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안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민족복귀를 하려면 누구를 내세워야 됩니까? 젊은이들을 내세워야지요? 젊은이를 내세운다고 할 때, 여러분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 손들어 봐요? 정말 가겠다고 결심했어요? 눈이 흐려서 잘 안 보이는데, 정말 그래요? 내려요.
생각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태양빛을 받고 사는 사람들 중 이렇게 썩어빠진 녀석들만 모여 있으니 기분이 나쁩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였으니 이게 뭐예요? 상부상조? 「연분입니다」 연분은 또 무슨 연분이예요? (웃음)
오늘은 9월 마지막 날입니다. 청평에서 120일 정성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을 잘 마쳐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만나서 좋은 말을 못하고 가시돋친 말을 해야 하니,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이제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따라가려면 아예 통일교회를 그만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한 십 년 후에 나오세요. 시시하게 따라갈 겁니까? 멋지게 따라 갈 겁니까? 「멋지게 따라갈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멋진 것입니까? 「아버님같이 가는 것입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해도 남보다 빨리 가는 것이 멋진 것입니다. 질질 따라가는 것이 멋진 것이 아니예요. 십자가에 죽을 때, 제일 멋지게 죽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베드로지요? 죽을 때도 멋지게 죽어야 합니다. 거꾸로 빙글빙굴 돌면서 죽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멋지게 따라가는 길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으로 그렇게 다니면서 선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 오늘 성미(誠米) 사업한다고요? 성미(誠米)예요? 성미(性味)지요. (웃음) 선생님도 이렇게 목이 마르도록 여러분에게 성미를 부렸으니, 여러분도 개선장군처럼 나가서 외쳐야지요? 나가서 꾸물거리지 말고 대한민국이 떠나가도록 뇌성벽력 같은 소리로 외치는 거예요. 개미소리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본래 그런 사람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도 맞춰 줄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따라가려면 남의 기분 맞출 줄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데데하다든가 흐리멍텅해 가지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른다든가 하면 이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알고 있습니다. 장성을 이루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의 `화(化)'자 하고 성화의 `화(和)'자 하고 뭐가 다릅니까? 화학의 `화(化)'자는 자기의 본질적인 성격과 형태까지도 변해 버리는 것이고 성화의 `화(和)'자는 주체적인 관이 뚜렷한 절대적 주체로서 상대적 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래야 상징하는 것이고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사면 회사에 가서도 일년만 한결같이 수고하면, 그 회사의 사장이 모를 수 없습니다. 또 회사에 들어가면 시간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여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 하는 데에 자신의 성장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정성을 들이면 역량이나 기능, 실력이 같은 기준에 있더라도 정성을 쌓은 사람이 먼저 발전하는 것입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벌써 퇴근 시간이 되었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군' 하는 사람과 `아이고, 시간 안 간다. 아직도 30분이나 남았구만. 요놈의 시간아 빨리빨리 가라' 하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마음은 콩 밭에 가있고, 자기 여편네가 어떻고, 아침 먹은 게 어떻다 하면 퇴근하기 한시간 전부터 시간을 팔아먹는 사람은 회사를 팔아먹는 사람입니다. 회사를 이용하고, 회사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다 될 때까지는 전부 다 자기의 사적인 생각은 없애 버리고 오직 회사의 일에만 시간을 백 퍼센트 활용하며 정성들이는 사람, 또 시간이 다 됐더라도 부장이 퇴근하고, 과장이나 자기의 상관들이 다 퇴근한 후에 모든 것을 한번 더 돌아보고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을 나와 어디를 가더라도 자기가 소속된 곳의 어려운 문제를 수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 과정을 거치면 그 사람의 태도가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진실성으로 나타납니다. 이 진실성이 무엇이냐 하면 곧 시간 엄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보면, 대학생이어서 그런지 예배시간에 언제든지 꼴찌로 옵니다. 그런데다가 찬송가 부르는 것도 힘이 없습니다. 미안하지도 않아요? 선생님이 어려서 교회 다닐 때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얼굴을 못 들고 다녔습니다. 며칠 동안을 회개하지 않고는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늦은 시간에 가면 많은 사람이 예배 드리는데 실례가 되지나 않을까 했으며, 언제나 예배 시간 전에 먼저 가서 보탬이 되도록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사회에서든지 보탬이 되지 못하고 손해만 끼치는 그런 사람은 제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화(成和)라는 것은 무엇이 다르냐? 화학의 화(化)는 본질까지도 변하지만 성화의 화(和)는 다릅니다. 절대적인 상대성과 하나님의 본질로서의 성화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성화(成和)로써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중심삼은 세계관과 생활관, 그리고 자기를 중심삼은 천적인 심정을 공고화시켜야 됩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씨알로써 결실이 되어 껍질이 갈아져야 됩니다. 그래야 알곡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모습은 훌륭한데 제자들의 모습은 그러지가 못해' 이런 소리 들으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성화라는 글자에 대학생을 붙인다면 그 대자는 큰 대(大) 자지요? 대가 어떻게 해서 큰 대(大)자예요. 이것은 하늘땅을 위해 축복하기 위한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원리연구회 학생으로서 혁신을 하기 위한 주체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대학생으로서 대학교를 탕감해야 됩니다. 대학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래 가지고는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하기만 하면 다 됩니까? 축복도 때가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학(學)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식을 말하지요? 뭘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냐? 요즘 대학생들은 매우 노골적입니다. 여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대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시집 잘 가기 위해서요. 혹은 장관집 맏며느리 되고 싶어서요'라고 말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전부 망해야 됩니다. 공부는 누구 때문에 하느냐? 그 누구와도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일등을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했고, 시집을 간 것도 자기를 위하여 갔는데도 불구하고 기분 나쁠 때면 `남자가 왜 이래' 하는 식으로 남편한테 눈을 흘기면서 절대로 싸움에 안 지려고 합니다. 남편이 한마디 하면, 입술을 발발 떨면서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요. 남자라고 다 아는 거예요? 내가 힘이 약한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 못지 않게 잘 한다'고 하면서 야단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밖에 안됩니다.
공부하는 것도 참된 남성을 만나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 한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위해서 공부해야 하며 남편을 참된 남편으로 모셔 참된 남편을 모시는 참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못하면 참된 남편을 모실 수 없고, 참된 아들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는 참된 아내가 되어 한 가정의 주부로서 남편과 백년해로해야 하는 겁니다. 시집 잘 가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대학 출신들은 전부다 부부가 백년해로해야 되지요? 그런데 백년해로 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요? 알아보나마나입니다. 일자 무식자들이 더 오래 잘산다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성화라는 것은 큰 이름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게 되기까지 섭리가 상당히 급했습니다. 선생님이 일전에 학생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선생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알아보라구요. `나는 통일교회 교인이고 통일교회의 성화학생이니, 문제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대학생들과 인연을 맺어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무슨 사건을 일으켜 가지고 그 동네가 밤잠을 못 자게 해야 하는 겁니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해서 말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 그들 잠을 못 자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대한민국은 선생님이 이렇게 하는 것을 전부 다 반대합니다. 그것은 섭리적으로 맞지 않기에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는 가만히 있지만 일본에는 싸움을 붙인 것입니다. 또한 미국도 싸움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는 가만히 있으면서 왜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그렇게 하느냐?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세계적인 모든 사정을 볼 때에 통일교회가 이렇게 망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한계권내에서 활동하고 대학가에 간판을 걸고 활동한다고 해서 한계권내에서 놀아나는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한계권내에서만 놀아난다는 것은 결국 절름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계권내에서만 놀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뒤에는 역사적인 이념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중심삼은 사회입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운명길에 반드시 부딪치는 것이 바로 가정 문제요, 사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사회는 그냥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가 가정을 위할 수 있는 심정기준이 서지 않으면, 가정에서도 사회의 문제를 환영할 수 있는 조건이 서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부정적인 사람, 이런 사람을 내세우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누가 뭐 어떻고 어떻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다 자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삽목(揷木)된 가지와 마찬가지입니다. 뻣뻣한 가지를 뚝 꺾어 가지고 흙 속에 그냥 꽂아 놓으면 열흘도 안 되어서 살아나는 버드나무 잎마냥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꽂는데는 아무렇게나 꽂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잘 살아나는 나무라 해도 아무렇게나 꽂으면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단숨에 심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지를 딴딴한 땅에다 꽂되 가지가 같은 여러분은 그 환경을 극복하고 소화해서 거기에서 꽃을 피울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까지 남아질 수 있는 자체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힘이 없어 가지고는 생명체로서의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자체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영계를 못 갔지만 선생님은 영계에 훤합니다. 그건 왜 그러냐? 여러분은 기도를 안 드리거든요. 그러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기도를 드리며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철학이었습니다.
공장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선생님이 시간만 있으면 가 봤습니다. 안 가본 날이 없습니다. 공장을 갔다오는 데는 세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이 일을 매일 계속했습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거기에 온 사람들은 선생님을 바라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다 버리고 왔습니다. 단지 선생님만을 의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본연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선생님에게도 그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선생님은 그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10여년을 한결같이 공장에서 지내면서 충성을 다했느냐? 충성을 못하고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지구장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공장에 왔다가 돌아간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들을 떨어지게 한 장본인이냐?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잘못해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반대를 해도 욕하는 그들이 망했지, 욕을 먹는 선생님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천명(天命)과 천법(天法)을 따라나온 것입니다.
공장에는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도 그 공장을 위하는 사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온갖 혈투전을 벌여 끊임없이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하면서 공장을 위해 정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또 자기의 직원들 중에서도 공장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정성들인 것에 결코 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장은 앞으로 세계적인 발전을 할 것입니다. 안 되면 안 되는 환경을 개척해서라도 기어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하늘에 완전히 바치면 반드시 하늘은 받아들입니다.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사회의 사업가들과는 관점이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일은 하면서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가능하도록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정성들이지 않고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성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정성들이는 데는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합니다. 역사 이래 어떤 사업가가 정성들인 것 이상의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 정성의 기준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넘어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 하나 잘 살고 자기의 아들딸 잘 먹이기 위해 부를 쌓아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기도드리는 데에 있어서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공장장이 뭐 어떻고 어떻게 정성을 들였다 하더라도 선생님에게는 못 당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성들이는 것을 항상 부족하게 생각하면서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할 사명감을 느끼면 느꼈지 불평이라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불평불만을 해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반대를 하고 불평불만을 하며 나가더라도 공장은 발전하는 길만이 있지 망하는 길은 없습니다. 만약에 망하더라도 하늘은 순식간에 그 이상의 대가를 책임져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는 일이나 혹은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도 적당히 생각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전부다 직접 실천해 보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저 앞세워서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다 해보고 틀림없는 근거를 가지고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볼 때 그곳이 죽을 구덩이 같지만 파놓고 보면 황금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될 것 같은 일이지만 선생님은 그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일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는 비참한 역사였습니다. 거기에는 눈물 어린 핏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선생님이 여러분을 앞세워 이용해요? 그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에 어떤 거부가 들어와서 백만원을 헌금한다 해서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헌금보다도 그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선생님이 얼마만큼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을 얼마만큼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믿고 따라 나갈 수 있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보면 전도 나갔다 하면 신세를 지고 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빚졌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바보 천치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방향을 몰라 자립할 수도 없으며 자기의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빚을 졌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하늘땅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겠으며 어떻게 누굴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겠어요? 또한 누구의 사명을 대신 맡아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빚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든 빚지지 말고, 내 자신을 온전히 갖춰 가지고 사는 동안 남에게 빚을 지워 보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우고 살자 이겁니다. 빚을 지우고 살면 아무리 고독단신이 되어도, 혹은 영어의 몸이 되어 쇠고랑을 차고 있어도 항상 주위에는 친구가 있게 됩니다.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절대로 굶어 죽지 않습니다. 먹을 것은 여러분의 친구가 전부 간수를 통해서라도 갖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에 서서 하늘을 믿고 하늘을 위하여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국가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역사 이래 누구도 들이지 못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늘에 충성하는 사람이 어느 동네에 가서 전도를 하게 되면 그 동네의 신도들은 전부 걸려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동네와 관계된 영계에 있는 충신들이 그와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굶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그가 굶는다면 그 동네 신도들이 전부가 걸려 들어가게 됩니다.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자신이 처하더라도 집단적으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다이나마이트처럼 폭파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 동네를 들고 쳐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 도화선이 되어 폭파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서 막고 있는 담벼락을 뚫으면 전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환경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망의 담벽을 폭파시켜 버리는 사명을 누가 해야 되느냐? 이것은 통일교회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심정을 폭파시킬 수 있는 화약이 되고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방법입니다. 이 사명은 통일교회교인 누구를 막론하고 당연히 해야 하되, 직접작전으로 하느냐, 간접작전으로 하느냐 하는 작전법 여하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심정의 폭탄을 폭파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내용이 되고, 또 실적으로서 뜻 앞에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인간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고,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금 여러분의 능력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의 기준 역시 미래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래 가지고는 우리의 소망인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은 역사적인 열매요, 미래의 기원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도 미래의 소망도 모두 현실을 중심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이루게 되어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자는 몇십 년, 몇백 년 후의 미래에 소망을 둔 인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권내에서 지탱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년 후에도 천년 후의 사람들이 그로부터 만년 후의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년 전의 그 뿌리를 현실에 통합하여 미래의 기원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원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하나의 통일된 세계는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민족, 나아가 국가, 세계, 천주에 이르기까지 보다 큰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미래의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 나왔지만, 그래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6천년이 되었는데, 만약 인류가 6천년 후의 세계에다 소망을 두는 세계관이 아니라 6천년 전 그날을 되돌아보면서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세계관을 가졌더라면, 이 세계는 벌써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미래에 소망을 두고 찾아 나가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는 지연되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은 미래의 소망을 그리워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내일에 대해 부정하는 관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내일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소망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인,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고 역사를 넘고 시대를 넘어서 통일의 심정권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주체적인 관이라는 것입니다.
주체는 상대편을 중심삼고 모든 관계와 인연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주체와 더불어 상대편이 관계를 맺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인 환경이 아무리 넓더라도 상대편은 주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를 중심삼고 운동을 전개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역사가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흠모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미래에만 소망을 두고 현시점을 망각하고 나간다면 통일의 이념은 미래의 세계에서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3시대의 주체로 나가자는 겁니다.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 정성은 역사에 없었던 것이며 미래에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현시대, 어떠한 국가 어떠한 사람도 해볼 수 없는, 절대에 가까운 정성, 그런 정성을 들이라는 겁니다. 그 정성이 본심에 입각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역사와 시대를 주관하고 그 권내에서 미래에도 소망의 주체가 될 때에 우리는 6천년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현시대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인류가 미래에 소망을 두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여러분을 세워 뒤로 돌아서 가지고 사랑하고, 미래에도 그리워 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3시대의 중심권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미래에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기원은 오늘이 현실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3시대를 결속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중심이 무엇이냐? 핵심적인 것은 심정입니다.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3사랑의 사위기대를 완성시킬 수 있는 그 심정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부모의 심정을 통한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는 것입니다. 개인의 탕감노정도 가정을 통해 가는 것이요, 종족적 탕감노정도 종족을 대표한 가정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 세계 역시 세계의 권위를 가진 절대적 위치에 선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천지를 대표해서 세워지게 될 때 그것이 후손에게 있어서는 본향의 심적인 기준으로서 영원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통일의 이념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역사가 비로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세계의 기준이 되는 것이며, 또 그런 사람이 되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국가에 영향을 미칠 때,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자체내에 그런 내성적인 심정을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러나 없다고 할 때는 보따리 싸 가지고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에게는 변하는 자연환경에도 변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정을 갖고 있느냐?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생님에게는 관이 없습니다. 심정의 세계는 혁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관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관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관' 이런 말 들어 봤어요? 그러면 부부도 사랑관에 의해서 살아야 되고 자녀 또한 사랑관에 의해 키워야 됩니다. 그래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 자체에 의해 지배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관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못된 것으로서 특이한 상대적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관' 하면, 하나님 가라사대 하고, 또`예수관' 하면 예수님 가라사대 합니까? 그것은 말로 할 수 있는 어떤 관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입장에도 설 수 없습니다. 사랑에는 관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발전도 없고 혁명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가 필요없다는 총각들의 말은 어거지입니다. 봄이 되면 꽃은 피게 되어 있습니다. 안 피겠다 한다고 꽃이 안 피어납니까? 그러기에, 총각들이 여자가 필요없다 해도 나이 80이 되어서 죽을 때가 가까와지면 `아이구,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색시는 없어도 되지만 아들은 필요하구나'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머무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소중히 여긴다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심정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머무실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주를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맏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절대로 둘째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맏아들, 맏것이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둘째 아들들은 외국 사람들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아들 되라고? 「맏아들입니다」 그러면 맏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역사적인 동반자가 되어야 됩니다. 왜냐? 맏아들은 둘째보다 아버지와 함께 있더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있었고 밥을 먹더라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었고 좋아하는 것을 보더라도 한번이라도 더 보았거든요. 그렇지요? 그런 것은 아버지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맏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선생님과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폭과 거리가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에라도 맏아들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잔칫날이 되어서 외국 사람들은 다 왔는데, 정작 와야 할 여러분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맏아들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도 40일전도 나가면 자기의 피와 살을 뿌려 가면서 전도를 해 나오는데, 한국의 성화인 여러분이 전도를 하는데, `40일 전도를 하자니 죽을 지경이구나. 애써 뭐 그렇게 할 것 있어? 적당히 눈치 봐 가면서 하자' 이래서 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거 눈치 못 챌 것 같아요? 이 눈을 보라구요. 무엇이든 잘 보게 되어 있어요. 영계도 넘어선 사람이예요. 선생님이 뭘 못 보겠나? 다 봅니다. 냄새를 맡아도 셰퍼드만큼 맡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거예요. 세상의 누구보다도 빨라요. 척 보면 그 사람이 장사꾼인지 뭔지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명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맏아들 정도 되려면, 그 아버지의 낯을 세워줄 줄도 알고, 그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기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 움직이겠어요, 안움직이겠어요? 「움직이겠습니다」 정말이예요? 「예」 이 7년노정 중에는 대학생 여러분이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알아요? 그거 알아 둬요. 그렇게 되면 이 세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붓자식 취급밖엔 받지 못하는 거예요. 그거 알아요? 「예」 알긴 아는군요.
그러면 의붓자식을 구원하기 위한 본 자식으로 다시 해 보겠어요? 그걸 원해요? 「예」 침을 놓더라도 심장 한복판에다 놓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예」 포탄을 안고 뛰어들라고 해도 괜찮아요? 「예」 그렇다면 선두에 내세울까 합니다. 여러분은 취직할 때도 선생님의 승낙을 받고 취직해야 합니다. 그것도 괜찮아요? 「예」 지금까지 자기 마음대로 취직했지요? 그 녀석들을 전부 다 데려다가 꼬리를 달아 가지고 지방 개척전도를 나가게 할 겁니다. 저 강원도 산골짜기에 보내서 망치 들고 굴이나 뚫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하고 굿바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개척전도를 누가 먼저 했습니까? 대학생들이 먼저 했습니까?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했습니까? 누가 먼저 개척했어요?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개척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했으니, 그 다음에는 누가 해야 돼요? 「대학생요」 대학생이지요? 그래서 1969년도는 대학원리연구회를 중심삼고 10월 25일부터 활동을 해야 되겠다고 못박아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기분 좋아요? 「예」 가두에서 동냥도 하고 다 하라는 거예요. 창피해요? 창피가 무엇인지 알아요? 「모릅니다」 안 해봤으니까 모르지요. (웃음) 창피를 당해 봤어야 알지요. 창피당하는 것도 경험해 봐야 됩니다.
여러분 각자의 몸을 닦아 가지고 그 기간에 자기의 마음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자기의 몸을 이끌어 그 환경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려울 때에 같이 동고동락하고, 같이 바라면서 같이 협조해야겠다는 생각들 해봤어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 식구들보다 선생님이 먼저 앞장섰습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갔다 온다 하면서도 못 가고 한 4개월이 지났는데 그것은 연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선생님이 가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못 가는 것인데, 지방에 떡 앉아 가지고 `선생님이 왜 안 오시나. 이 고장을 위해서 한번 오셔야 할 텐데' 이런 소리들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아이구, 선생님이 계신 청파동 교회 마룻바닥에서 심정적 기도라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라도 해봅니까? 그래요, 안그래요?
이런 심정적인 내용의 뜻을 여러분이 전통으로 삼아 가지고 몸 담고 있는 대학가에서 활동하고 그 대학을 책임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중요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춘 대학생들이 대학교에 몇 명이나 있으며, 젊은 청년들이 이 사회에 몇 명이나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하늘을 바라보고 통일교회 교인이 될 수 있는가 솔직하게 비판해 가지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은 그런 입장에서 처하게 되면 하늘은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여러분이 뜻을 따라가면서 보고 느끼고 섬기는 그 심정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나온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24살 때부터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다가 코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고 목이 부러지는 자리에서도 철석같은 신념 가지고 그 나라를 상대로 해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던 사나이입니다. `아무리 몽둥이로 쳐 봐라. 내몸이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몽둥이가 부러질 것이다. 손가락을 끊어 봐라. 어떤 독한 고문을 해도 굴복하지 않는다' 하고 버틴 사나이입니다. 심정의 골수에 맺힐 수 있는 사연,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사연의 자리에서 눈물어린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남이 모르는 깊은 골짜기에서 뒤넘이쳐야 할 고빗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숙하고도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탕감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여러분은 각자가 탕감해야 됩니다. 그 누구의 협조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 협조를 받아서는 안 되느냐? 아담은 아버지입니다. 부모입니다. 타락은 부모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될 수 있는 그 입장을 먼저 결정해야 됩니다. 아담이 아들딸을 낳고 나서 타락했어요. 타락한 다음에 아들딸을 낳았어요? 「타락한 다음에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복귀되기 전에 아들딸이 있을 수 있어요? 없지요? 그러기에 아들딸이 없는 입장에서 협조받을 수 있어요? 절대로 협조받을 수 없습니다. 혈혈단신으로 탕감해야합니다.
선생님의 탕감복귀의 노정에 있어서는 아무리 협회장이 있고 부장들이 있더라도 조금도 플러스가 되지 못합니다. 도리어 짐이 될때가 많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단계적인 조건을 세워 놓고 간접적으로 명령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민족복귀의 십자가를 넘어서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타락된 역사는 반드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하지 않으면 영원한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래가 그렇습니다.
가정적인 축복권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넘어가야 됩니다. 3기점인 3개 국가에게 몰리고 쫓기고 찢김당하면서도 거기에서 죽지 않고 남아져 해원성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천명(天命)에 임한 그때가 바로 1960년인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엮어 나오는 일들을 보면,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다 짜고 짜서 계획한 것들을 중심삼고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내용이 전부 다 원칙대로 풀려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처음 듣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선생님이 무식하고 교양 없이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반드시 내용이 있고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과정을 누가 아느냐? 그것을 여러분은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과 선생님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어떠한 때가 온다 하게 되면 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와 손잡을 시대가 온다 하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가 싸우는 시대를 거치면 이제 통일교회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민주세계도 후퇴하고 공산세계도 후퇴하는 것입니다. 남아지는 것은 통일교회뿐입니다. 통일교회는 전진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밤을 새워 분석한다 해도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그러면 멋진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사는 그 권내에서 해결지을 수 있는 통일교회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아들이나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잘 모릅니다. 똑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효자의 자식이 자기 아버지가 효자인 줄을 모르고, 충신의 자식이 자기 아버지가 충신인 줄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충신이나 효자가 되려면 불평하지 말고 따라오라는 겁니다. 누가 사정해서 따라가기 전에 먼저 따라올 수 있는 아들딸만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따라가는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가라 하면 지방에 가고, 고향에 가라 하면 고향에 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있을 때에는 선생님을 사모하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들이 나에게 편지를 하곤 했는데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나는 그여자들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하는 편지 한 장 써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다 시시하고 껄렁껄렁하다는 것입니다.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따라오게 해야지, 남자가 따라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여러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예요. 지금도 세상에서는 통일교인 중에 문선생을 따라다니다가 아들 낳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텐데 그래도 따라올 거예요? 선생님 따라 올 자신있어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기의 신념이라든가 자기가 목표한 바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감정문제라든가 모든 문제를 뜻을 중심삼고 자기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선생님이 다 여러분에게 설명하고 가르쳐 줬는데도 불구하고 복귀원리를 들으면 `복귀원리가 뭐냐? 복귀원리는 복귀원리고 나는 나야'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아닙니다. 복귀원리가 여러분 자체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앞으로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외국에 가게 되면 그곳 통일교인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자랑 좀 해보라고 합니다. 요전에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편지가 왔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한국에서도 지금 젊은 사람들이 뜻을 위해 충성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충성했어요? 안 했지요? 그러다가는 창피를 당합니다. 편지를 쓴 사람도 자기 딴에는 한국에서 무슨 부장도 하고 간부도 했는데 거기에 가서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밤이나 낮이나 전부 다 뜻을 위해 일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창피당하게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왔다고 그들이 본부 소식을 물을 때는 창피해서 혼났다는 거예요. 그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까지의 모든 실적을 비교해 보면 여러분에게 맡겨야 될 일인데도 불구하고 안 맡기는 것입니다. 그 일을, 뜻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여러분에게만 맡긴다면 되겠어요? 그런데 지각없는 사람들이 이 뜻이 여러분과 더불어 망하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 뜻은 안 망합니다. 결국에는 선생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969년은 중요한 해입니다. 그러니만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젊은이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월부터는 원리연구회 조직을 재편성하여 각 대학별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분이 선두에 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이 선두에 서 가지고 여러분에게 일 시키고 가끔씩 들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학생때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의 동지가 되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들과는 친구로서 상대가 되질 않았어요? 선생님은 그들과 말을 잘 하진 않았지만 일단 말했다 하면 그들은 선생님 말에 따르게 됩니다. 형무소에 있을 때도 사람들이 선생님을 보기만 하면 조심스럽게 대했습니다.
선생님은 소학교에 다닐 때부터 교장 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훈련을 끊이지 않고 했습니다. 지금도 기도할 때는 그런 것을 중심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승을 모시려니 여러분이 앞으로 힘이 들 것입니다. 십자가도 선생님보다 여러분이 먼저 지고 그래야겠지요? 그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하지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효자는 철이 들었으니까 아는 자로서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그렇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앞으로는 배워서라도 그래야 됩니다.
자기의 가정만을 위해 애쓰지 말고 나라를 위해 애쓰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지내니 여러분은 선생님을 통일교회의 선생님으로만 알고 있지만, 통일교회 선생님만이 아닙니다.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10년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한창 좋을 때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기분 나빠서 여러분들을 간섭 안 하려고 합니다. 나는 대학생만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이예요. 대학생들을 규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잘 주려는 생각에서 주는데 잘 받는 사람이 없어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예배시간 전에는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로서는 빵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예배시간에 누구 한 사람만 안 와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예배시간을 절대 엄수해야 됩니다. 산꼭대기에 총을 들고 있더라도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누구보다도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이 집이 될 수 있는 아들로서의 정성어린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천리길 험한 산정을 가더라도 돌아올 때는 순식간에 돌아오게 됩니다. 자기 자리를 누구에게 맡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2시에 기도를 하라고 했으면 12시에 시간 맞춰서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으면 나라를 위해 기도드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라의 피해를 제거시키고 그 나라를 붙안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이 가는 길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죽음길을 가더라도 거기에서 승리를 결정할 수 있는 쓰라린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방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그들이 뜻 앞에 부족할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대학을 나와 학박사가 되는 사람들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아들딸들과 믿음의 아들딸의 3대를 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을 시키는 것도 천적인 복을 준비해 놓고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건 여러분이 잘나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 또한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빼앗을 수 있는 자격자를 중심으로 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빼앗으려는 사람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비참하게 됩니다. 승리의 결정권을 쥐고서 사탄의 항서를 받아 천년 만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사랑의 기원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고통을 당해도 절대 표내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원수에게 복을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원수를 갖고 있는 자리에서는 천국이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은 원수를 초월해야 결정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아량을 갖지 않으면 천국의 주인이 못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자리에서도, 사탄의 화살 끝에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한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이 심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기준에서 훈련시켜 주면 좋겠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그러면 지금이 몇 시예요? 「한시입니다」 한 다섯시까지 안 재우고 얘기해도 되겠어요? 선생님은 하루에 30분만 자고 말씀한 적이 많아요.
여러분은 그렇게 안 자면 하루종일 졸려서 일도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네 시간만 자면 잠을 푹 잤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남과 같이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어 가지고 이름이 날 것 같아요? 선생님은 지금도 기도를 무지하게 많이 합니다. 큰일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텃치할 수 없는, 돌고비가 터져 내려가는, 눈물을 금할 수 없는 사명감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일을 못 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밥을 굶고 고생하는 것은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코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옛날의 추억 속에 묻혔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껍데기를 벗고 멋지게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회에 충성해야 되고, 교회에 충성해야 되고, 가정에 충성해야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인격을 형성하고 인격을 기르는 곳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을 복귀하는 데는 그냥 그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와서 무슨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격이 복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인연을 찾아서 새로운 자식이 되어 가지고 가정부터 새롭게 수습해 나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는 데에 있어서 발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교회입니다. 교회를 발판으로 하지 않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도 교회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새로운 사회도 교회를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어디에 충성해야 되느냐? 가정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됩니다. 사회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됩니다. 교회가 주체요 가정과 사회는 대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 서느냐? 대상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대상은 동서남북 사방에 있어서 360도 회전이 되어야 하지만 주체는 중심에 딱 한 곳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어떠한 역내의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둘이 아닙니다. 중심이 둘이 될 수있어요? 이것이 왔다갔다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이 바르다고 할 때에 무엇을 두고 바르다는 말이냐? 천신과 인심이 한 기점에 뿌리를 두게 될 때 바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인심이 중심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의 모든 성심성의를 다해야 합니다. 가정보다도, 학교보다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보다도 정성을 더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되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주일 새벽에는 사랑하고 주일 저녁에는 사랑 안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새벽보다도 저녁에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새벽에는 누구든지 다 인사하지만 저녁에는 인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공적인 시간을 많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공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언제나 발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게 되면 가정적, 사회적 기준이 안 되어 있더라도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주체는 상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한 모습이 되어 그 마음이 국가적인 시대에 있게 되면,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그 앞에 상대적으로 가정적 사회적인 모든 기반이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날에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의 심정에서 출발을 못했으니 역사시대를 넘어서 하나님의 복귀노정을 갈 수 있도록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교회 생활에 더 충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생활도 그렇습니다. 먹으나 굶으나 자나 깨나 생활 전부가 뜻을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끔 청평에 가서 낚시질을 하는데 그것은 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온갖 잡념을 없애는 것입니다. 스님도 염불할 때 목탁을 두드리잖아요?
여러분도 기도할 때는 대상을 두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도 어떠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이 되어 가지고 수수작용법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잖아요?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는 자리에서 뭐 한다구요? 「수수작용을 합니다」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하고 정성들여야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천년사의 심정을 넘어서 간곡히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천년사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부르는 그 자리는 거룩한 자리요, 멋진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르는 `아버지'라는 한마디의 말에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런 기도를 해 보았습니까?
시집가는 아가씨가 첫날밤에 신랑 앞에서 신랑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생각하듯, 여러분도 사랑하는 그분 앞에 일생을 바치는 첫순간에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남편에게 순종하겠다고 하는 아가씨는 시집가서 반드시 남편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라고 절실하게 부르면 그 아버지는 천번 만번 인간의 말을 들어 주시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그만큼 평화스럽다면 평화스럽고 기쁘다면 기쁘고 만족스럽다면 만족스러움을 주시는 아버지를 간곡히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간곡한 심정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국가적인 새로운 기반을 세우기 위해 뼛골이 우러나는 자리에서 `아버지, 내가 이 나라를 책임졌습니다. 오늘도 치열한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겠사오며 10년 동안이라도 그런 싸움을 할 것입니다' 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런 놀음을 하는데 실패할 수 있겠어요?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면 할수록 사연이 쌓이고, 하면 할수록 내용이 진해집니다. 만약 선생님에게 KBS의 마이크를 준다면 대한민국 삼천만 민중에게 맨 처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것까지 생각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내정적인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할 복귀의 도상에 있어서 미래에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력하고 있어요?
사회를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앞에 강해야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하늘 앞에 강해질 수 없습니다. 남은 학창시절이 가야할 길에 있어서 주체가 될 수 있고 충신이 될 수 있는 기간임을 알고, 심정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을 거치고 사회를 거쳐 세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1969년 한해의 고비였던 9월을 보내고 10월을 맞이한 시점이옵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복귀의 도상에 남기신 처량한 사연들을 전부 다 청산하고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기쁨의 조건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1969년 6월 1일부터 12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아버지 앞에 호소하였사옵니다. 정성을 들여야 할 저희들이 정성이 부족한 것을,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기간을 통하여 스승의 길을 따르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복귀의 한을 풀겠다고 하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그들에게 천 배 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을 저희의 아버님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세상의 인연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버님의 인연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버님이 여기에 개재되어 있지 않으면 저희들은 서로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리이옵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오늘 나와 인연된 이 인연은 어떤 스승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인연이 아니라 아버지를 통하여 맺어진 인연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하늘의 역사를 거쳐온 복귀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아버지의 피눈물나는 공생애의 터전 위에 맺어진 인연임을 아옵니다. 이것은 불쌍하다면 불쌍한 자리요, 기쁘다면 기쁜 자리인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젊은 시절의 한 생명은 반드시 시대와 더불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흘러가듯 저희들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에 역행하고 흘러가는 사회환경에 역행하더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받들어서 아버지의 마음에 기쁨의 심정을 고이게 하는 비료가 되고 고임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이 시간 맹세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각처에 널려 있던 성화의 젊은이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당신이 이들과 인연맺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사옵니까? 당신께서는 항상 저희들과 더불어 천정의 인연 가운데서 맥박이 같이 통할 수 있고, 그곳에 같이 임할 수 있기를 고대하시는 마음이 큰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 한계의 기준을 넘어 당신의 심정에 어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과연 아버지 앞에 합당한지를 되돌아봐야 되겠습니다. 보잘것없고 불초한 모습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 앞에 한없이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초초하고 가련한 모습이지만 아버지의 이념을 영원히 저희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아버지 앞에 체면을 세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한없는 눈물을 흘리다 실신하여 몸을 주체하지 못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붙안고 `내 아들아, 네 사정을 내가 안다'고 하시면서 머리를 맞대고 해명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가질 명분이 없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상 부모와도 갖지 못했던 그 인연, 진정 그 누구와도 갖지 못했던 그 애달픈 인연을 아버지와 더불어 다시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자녀들이 몇 명이나 되옵니까?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아들딸이 되어 있지 못하거들랑 이 시간 그 마음에 가책을 받게 하시고, 영광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스스로 각성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정의 깊은 손길로 저희를 붙잡아 주신 아버지, 당신의 떨리는 입술을 통하여 명령하셔도 그 명령을 받을 수 있는 통일의 역군이 되지 못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역사과정에서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사옵니까? 보고 싶은 그리움을 풀어 놓고 싶으신 때가 몇천 번 몇만 번이었사옵니까? 그렇게 그리워하시던 당신의 얼굴에 저희들은 배반의 화살을 얼마나 던졌사옵고, 당신의 심정에 슬픈 한의 못을 얼마나 박았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거듭되는 역사의 한을 청산하지 못하신 아버지의 그 사정은 무슨 연유이옵니까? 그것은 저희들을 통일의 기치 아래 모이게 하여 부자의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한 뜻이었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당신의 뜻 앞에 나타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자신들임을 통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 민중은 이 시간, 잠들어 있사오나, 내일의 행복을 꿈꾸지도 못하고 싸움에 신음하며 탄식하다가 잠든 사람이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 일생만을 가꾸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은 많사오나 국가와 민족과 세계와 아버지의 이념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적사옵니다. 오늘 이 밤, 저희들이 하늘편이 되어 하늘편의 사정을 나눌 수 있고, 하늘편의 발판이 될 수 있으며, 하늘의 대를 상속받을 수 있는 거룩한 모습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 저희 자신들을 기억하시사 은총으로 불러 주신 때가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저희의 손길을 붙잡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하늘 앞에 다가가라고 고함치신 때가 또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그럴 적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저희 자신들을 위해 몸부림치신 아버지께서 어쩔 수 없이 돌아서시게 될 때에, 사탄 보기가 얼마나 민망스러우셨사옵니까?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시던 아버지이오나, 저희들이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모습을 갖추지 못하여 돌아선 당신의 발걸음에는 역사의 서러움이 맺혀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사옵니다.
아버님, 통일의 역군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이 이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서 위로하시던 그 음성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간부터라도 저희들이 재출발하기를 바라는 당신의 애달픈 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한을 풀 수 있는 깊은 심정의 선조의 인연을 두터이 가진 후손이 있거든 그들에게 몽시를 통해서라도 당신의 입장을 알려 주시옵소서. 오늘날 부족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사, 그들 대신 세계를 탕감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날 당신의 소원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나타나 당신이 품고 자랑하실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이러한 기간을 통해서 저희들이 남기고 가야 할 것은 무엇이오며, 저희들이 품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통일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이들 앞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며, 스스로는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 앞에 저희들이 섰습니다. 빛 될 수 있는, 원수의 가슴에 생명의 인연이 폭발될 수 있는 그러한 붉은 마음을 저희가 품고 가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족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하나님의 자식들로서 부부의 심정의 사랑을 나눠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0월을 맞이하였사오니, 이달부터 한의 모든 고개를 넘고 환희의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기대하던 모든 해원성사의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이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당신이 분부하신 명령에 저희들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 앞에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가 저희를 내세워서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아들이다 딸이다 칭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러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아버지의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를 마음에 새기며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날까지 일체를 당신의 품에서 보호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가지고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선생님이 지난번 세계를 쭉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소원하고 또 세계 일주하기를 소원한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대개 20대에서 30대까지는 자기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40대에는 자녀교육을 시키느니 무엇을 하느니 하면서 가정문제를 해결짓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50대에는 자기가 일생동안 바라던 소원을 성취하여 나름대로 결실을 거둡니다. 대개 쉰 살쯤 되면 그 나라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이 되어 가지고 자기 전문분야를 세계무대에 실험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여행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 대개 50이 넘은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여행자 중에 미국 사람이 평균적으로 6,7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어디를 가나 미국 사람들이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만한 나이면, 대학 교수면 교수로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여 이름이 나 있고, 자기 후계자들이 자기의 뜻을 받들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50대가 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세계 무대에 나서 가지고 전문분야에서 자기의 실력을 실질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연령이 되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곳은 어디를 가나 미국 사람들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관광호텔 같은 데 투숙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3분의 2이상이 미국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미국이 앞으로도 선진국가의 권위를 지니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문적인 학술분야면 학술분야에 있어서도 국내에서 어느 기준까지 실력을 쌓아 기반을 닦은 후에는 국제적인 무대로 나갑니다. 세계적인 학계면 학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학문과 관계 있는 사람들을 만나든가, 혹은 같은 전문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발표한 모든 내용을 참조해 가지고 실질적인 세계 무대를 중심삼고 자기가 연구한 것을 실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후 그 결과를 수습하여 세계적으로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국가 예산 중 외국 여행에 대한 비용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비용은 결국 보이지 않는 이익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던 미국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때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 전문분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사하는 사람이 세계각국의 시장을 개척한다면 그 분야를 중심삼고 각 나라의 고위층과 연락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산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나라 산업계의 고위층과 관계를 맺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 나라의 중요한 몇 개 업체만 택해서 회사 내용이라든가 회사 운영 방법에 대해서 브리핑을 들으면 그 나라 회사의 사정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몇 공장만 가 보면 그 회사의 제품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회사측의 브리핑을 들어 보고 현재 그 회사에서 생산되는 실적이면 어떠한 부대시설을 해야 된다는 것을 타진하여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세계 각국을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거기에 들인 비용도 많지만 그만큼 얻어지는 것도 많은 것입니다.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깊은 자리, 높은 자리, 넓은 자리에 발판을 닦아 놓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현재보다도 장래를 위한 공고한 기반을 닦는 운동인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에 미국이 금후에 있어서도 선진국가의 권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미국내에 있는 IBM 공장에도 가 보고 다른 큰 공장도 여러곳 둘러봤지만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 한국의 공장과는 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뭐 빌딩을 몇 층으로 높게 지어 가지고 공장을 만들지만, 미국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도시 같은 데를 보면 몇 층짜리 공장도 있지만 대다수의 공장은 단층공장입니다. 그것도 자연 환경을 훼손시켜가며 지은 것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 또 그 자연 환경에 어울리게 하면서 단층으로 짓습니다. 땅이 워낙 넓고 또 재료도 풍부하니까 될 수 있으면 단층으로 짓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름난 공장이라 해도 그 공장의 외부를 살펴보면 그저 보통 공장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름난 공장이라고 해서 외적으로 볼 때 훌륭하고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좀 다르지요. 내부시설은 전부 다 과학적으로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 사람들은 실리적입니다.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겉 모양보다는 질적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떤 공장이든지 전문분야에 해당하는 모든 재료들을 빠른 시간내에 소화시킬 수 있도록 간소화시켜 놓았습니다. 어떤 공장이든지 체제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조직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다수가 오토메이션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미국은 금후의 과학문명에 있어서 어떤 나라의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한 기준에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 삼각지대에 건설된 후버댐은 1억 7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자본을 들여서 만든 세계 제1의 다목적댐입니다. 이 댐 주위는 사막지대인데 그 넓이는 말할 수 없이 넓습니다. 네바다주는 원자폭탄을 실험한 사막지대이고, 애리조나주는 서부활극에 자주 나오는 곳입니다.
그 강의 물은 각지에서 흘러 들어와 전부 다 한 구역의 모퉁이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은 전부 다 산맥으로 막혀 있어 한쪽으로 빠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강의 폭은 한 170미터인데, 강의 양쪽이 산맥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물이 고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물이 자꾸 모이게 되니 그 물의 힘에 의해 산맥이 끊어져 물이 흐르게 되어 있는데 그 낙차가 172미터나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간당 72만kw의 전력을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 보면 굉장합니다.
그런데 강이 깊기 때문에 어떻게 물을 차단하고 댐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막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데로 돌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은 그냥 두고서 옆에다가 암석을 뚫어 가지고 강물이 전부 다 흘러갈 수 있는 큰 굴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강물을 전부 다 그 굴로 뽑아 버리니까 나중에는 강이 마를 게 아녜요? 그래 가지고 댐 공사를 한 것입니다.
그 굴의 구멍은 굉장히 큽니다. 그 굴은 돌로 된 산맥을 뚫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도 얼마든지 물을 뺄 수 있지만 거기에 수도파이프 모양으로 철관을 쭉 연결시켜 가지고 물을 뺐다는 것입니다.
그 철관이 얼마나 크냐 하면 철관 한 도막이 큰 트럭 35대에 실어야 할 정도입니다.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철관을 연결하는 볼트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굴에다가 설치하고 물을 빼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50개주 중에 49개주를 둘러봤지만 그 공장시설이 그렇게 굉장한 것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큰 트럭 35대로 실어야 할 만큼 무거운 철관을 한꺼번에 뽑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볼 때 그 나라의 공업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댐을 막는데 들어간 시멘트가 얼마나 되느냐 하면,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중부를 횡단해 가지고 동부의 워싱턴까지 연결되는 큰 하이웨이를 만들고도 남을 만한 시멘트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에서 무엇을 크게 하고, 일본에서 무엇을 크게 한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 전역의 하이웨이를 보면 도심지에는 차선이 12차선까지 있지만 대개는 6차선입니다. 그런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거의가 원시림지대를 지납니다. 어디로 가든지 원시림지대를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원시림지대를 만날래야 만날 수 없습니다. 저 백두산의 깊은 계곡에나 들어가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리산도 가 보고 가까운 산도 가봤지만 그런 원시림지대는 없었습니다.
그 원시림지대에 있는 나무들을 잘라 버리고 불살라서 농지를 만들면 최고의 옥토가 될 것입니다. 미국에는 어디를 가든지 그런 원시림지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시림지대를 둘로 딱 잘라 가지고 그 한가운데 하이웨이를 닦아 놓았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현재 경부고속도로를 닦고 있지만 미국은 우리 나라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고속도로 양쪽 가에다가 고속도로 넓이보다 더 넓게 잔디를 심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폭은 차가 달리는 길과 길 좌우편에 잔디를 심은 곳을 합하여 2배 이상이 됩니다. 거기에 심은 잔디를 보면 참 곱습니다. 한국에도 잔디가 있지만 미국의 잔디는 더 고와요. 그런 고운 잔디를 고속도로가에 쭉 심어 놓았습니다. 심어 놓고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봄철에 어느 정도까지 자라면 자동차가 들어가서 깎아 가지고 잘 다듬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굴러도 먼지 하나 안 묻을 정도로 잘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그 나라의 도로시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이 2차대전 직전에 건설한 아우토반을 자랑했지만 미국의 고속도로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미국은 도로만 봐도 문화수준이 높고 부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인구가 1억 8천만명인데 미국 전역 어디를 가 봐도 그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뉴욕 같은 데는 고층빌딩도 많지만 다른 데에 가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려면 몇백마일을 달려야 합니다. 그래도 도시를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농촌에도 가 보면 대개 한 댓집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농사를 전부 다 현대식 기계를 이용해서 짓습니다. 호미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농사를 짓더라도 몇천 석 이상을 생산해 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큰 농장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큰 농장을 한 집에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지방에 농사가 너덧 군데밖에 없지만 일년에 생산되는 농작물은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남아 가지고 그것을 태평양에 뿌리기도 하고, 또 사슴과 같이 곡식을 먹는 산짐승들에게 먹으라고 산골짜기나 산등성이에 갖다 뿌려 주기도 하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일본 땅은 한국의 약 2배 가까이 되는데 지금 그곳에는 1억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만일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일본에서처럼 산다면 세계 32억 인류 전부가 미국에 살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넓은 땅에는 무진장한 자원이 있습니다. 석유 생산량만 해도 세계 석유 생산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세계 최고의 철광 자원도 갖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쭉 다녀 보고 나서 한국과 비교해보니 한국은 그야말로 한탄스러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부터 남미, 구라파와 동남아 일대까지 전부 다 다니면서 알아봤는데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소원하는 것이 미국에 한번 가 봤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1965년에 미국 갔을 때와 금년 1969년에 미국 갔을 때를 비교해 보게 될 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사회제도라든가 문화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졌느냐? 내가 1965년도에 갔을 때만 해도 미국에 히피족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아무 대학교에 어떤 히피족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히피족을 만나려면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거리를 다녀보니까 한 20보 30보만 가도 그런 족속들이 있습니다. 히피족에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습니다. 모든 행동이 멋대로예요. 누가 자기들을 흉보든 말든 별의별 모양을 다해 가지고 거리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고, 배가 고프면 아무데나 가서 얻어먹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참모습이 뭐냐는 것입니다. 그런 족속들이 4년 전보다 이번에 갔을 때는 훨씬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버클리 대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입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만 해도 82명이나 배출한 세계적인 대학이예요. 그런데도 그 캠퍼스 안에 들어가 보면 해괴망측합니다.
어떤 녀석들은 야자수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그런 짓은 사내녀석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자들도 그럽니다. 자기들 멋대로예요. 서부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 같은 모습은 보통입니다. 팬티 하나만 입은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별의별 해괴망측한 짓을 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라갔기 때문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다 하는 학자들은 전부 다 미국에 있고, 있다 하는 재벌들도 전부 미국에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의 배경권내에서 살아왔고, 그러한 생활습관에 젖어 왔기 때문에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최고 행복을 규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색적인 종교가 점점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미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무서운, 원자폭탄보다도 더 무서운 악마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이것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LSD라는 환각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이 약은 먹기만 하면 꿈나라에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편을 먹으면 세상이 자기 속에서 들락날락하고, 또 태양계가 자기 뱃속에 들락날락하는 기분이 든다는데 환각제를 먹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젊은 녀석들이 순간적인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환각제를 먹어 보지만 그래도 신통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원시시대로 되돌아가자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절대 미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데 있어서도 절대 미국에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하이웨이를 쭉 들어가 보면 차도 아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최고급 차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가령 1969년도 형으로 어떤 회사에서 무슨 차가 새로 나왔다 하면 서로 그 차를 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까지도 그 차를 타려고 경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 차를 타고 다니지 않으면 데이트할 수 있는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움직이게 되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반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 있기 때문에 일면 문화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달하여 그에 따른 혜택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을 좀먹는 운동을 하기에 좋은 시대권내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이 지금 미국내에서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월남전쟁에서 후퇴한다고 해서 미국내에서 공산권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 잘못된 생각입니다. 백주에도 공원 같은 데서 공산당들은 마이크를 들고 공산당 선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테러행위를 보통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공산당이 침투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미국이 월남전에는 후퇴한다는 닉슨 대통령의 정책은 물론 그 나라에 어떤 배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정책을 세웠겠지만 그 정책을 수행하면 절대로 미국에 플러스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모모 인사에게 미국이 태평양 가운데서 고립된다면 자국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그럴 수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 옆에는 쿠바가 공산화되어 있습니다. 만일 거기에다 멕시코까지 공산화된다면 월남전을 재판한 현상이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제 몇 해만 두고 보십시오. 반드시 그런 작전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쿠바섬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대륙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올 텐데 월남전의 재판과 같은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미국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현재 미국사회의 젊은 세대에는 그런 사상이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것이 금후의 미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실정을 중심삼고 미국은 앞으로 쭉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현재에 있어서 구라파의 선진국들인 영국이나 불란서, 그리고 2차대전 이후에 새로운 체제를 갖춘 독일이나, 이태리 같은 나라의 명승지에 가보면 동냥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라에 동냥꾼들이 많으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공원이나 명승지를 가 보면 혼자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쌍쌍이 산책하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은 있어도 뭐 얻으러 다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볼래야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국에는 동냥하러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태리도 공원 같은 데를 가 보면 그런 사람이 득실거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 나라의 보편적인 생활 수준이 어떻다는 것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도로라든가 도시의 교통질서를 보고도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대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영국이 서구문명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선봉자 역할을 해나왔지만 지금은 미국을 선망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보고 물어 봐도 전부다 미국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불란서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습니다. 전부다 미국을 선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망하는 미국이 그 꼴이니 앞으로 세계의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문제가 현재 큰 문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쭉 다니면서 무엇을 느꼈느냐? 미국이라든가 각 나라에 다니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한 나라에 가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한국은 어떠한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민족 정신과 통일된 단일민족으로서 고유한, 그 어떠한 나라한테도 굴하지 않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각 분야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 백성을 보면 대개 자립성과 자주성이 강하지 않습니다. 구라파인들이나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백만장자의 아들이라도 18세만 되면 아버지가 학비를 안 대줍니다. 학비 대주는 걸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체를 계발하고 자주적인 기반을 닦는 데는 절대 필요하지만 전통을 이어받는 데 있어서는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고유한 사상을 인계받는다든가 혹은 애국정신을 인계받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제기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쭉 다녀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과학분야는 무슨 분야든 미국인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라파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 가지고 연구해 봤자 누더기 보따리 취급밖에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주적인 관념을 강하게 하여 교육을 실시해 가지고 자기들이 미국 사회권내에서 최고의 어떤 자리를 차지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미국 사람들이 이미 다해 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봤댔자 벌거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남이 한 것을 따라간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교육방법은 자주적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강력히 개인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학자의 학설을 듣고 절대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한 전통사상을 인계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 교육제도에 있어서의 크나큰 암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동양사상은 얼마나 좋은 사상인지 모릅니다. 동양에서는 자식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부모를 중심삼고 생활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기가 확고한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까지는 부모를 떠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동양의 가정이나 사회제도, 윤리제도의 역사적인 배경은 미국과 다릅니다.
이것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큰 방해물이 되었지만 인격 완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나 사회제도, 혹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동양이 서구사회보다도 고차적입니다. 이것은 어디를 가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문화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서구문화보다도 동양문화를 중심삼고 섭리하시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계를 쭉 돌아보면서 또 한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서구의 문명은 기독교 문명인데, 현재 미국은 여기에 새로운 과학문명을 첨부해 나오면서 오히려 기독교 문명을 반박하는, 즉 기독교 문명권내에 있으면서 기독교 문명을 반박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폐단 때문입니다. 종교는 옛날 구시대의 기준을 중심삼고 그것을 절대시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창건에 있어서는 어떠한 틈바구니도 허락치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이든 천년 후든 언제나 그 기준이 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발전하는 세계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 나온 사람들과 신사회사조에 접하여 새로운 종교사상을 갖게 된 사람들이 전부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자체에서 종교가 어떻게 취급되었느냐 하면 50년 전만 해도 기독교의 고유한 사상을 절대시했습니다. 그런데 3,40년 전부터 이것이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급변하는 문화와 사회정세와 더불어 종교도 신흥 사조에 부합되게끔 변혁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회회교 문화권인 아랍 국가들을 쭉 돌아보니 역시 거기에도 새로운 혁명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21세기 이후 혹은 30세기, 100세기 이후의 신문화도 포괄할 수 있는 이념을 중심삼은 종교적인 체제를 갖추어 놓아야 됩니다. 이것을 어떠한 기반 위에다 갖추어 놓느냐 하는 것을 우리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으로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전통적인 사상은 무엇이냐?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목적하는 것을 달성하겠다는 전통을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워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래에다 소망을 두고 즉, 소망을 성취하는 입장이 아니라 바라보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신앙해 나왔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사과정을 통하여 반드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하고 나가는 것은 소망적인 기준이 아니라 소망의 실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자리에 그러한 기준을 세워서 그것을 우리의 전통적 사상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어떠한 사회나 어떠한 세계에서 혁명의 봉화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비해서 그 시대를 능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그것을 마련할 것이냐? 그것은 가정입니다.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절대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회제도로 어떠한 시대에서도 혁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가정을 중심삼고 여기에 최고의 이상적인 내용, 즉 인류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사회의 현상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이상과 접촉할 수 있는 내용만 설파시켜 놓은 날에는 이것은 영원한 이념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뜻은 금후의 어떠한 역사시대에 있어서도 문제의 초점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가정,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창조 이상의 가정은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이 되고,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이 되고,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나 지금까지의 문화는 미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추구하는 입장에서 문화형성을 하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는 여러 가지 주의 사상이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학설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금후의 시대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미래를 놓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과거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과거의 하나의 기준을 절대시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 기반을 확고히 해놓지 않고는 세계통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년 만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그 기준을 어떻게 세워 놓을 것이냐? 억만년 후의 사람들이 과거의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사력을 다하더라도 거기에 접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러면서 절대적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에 사무칠 수 있는 터전 위에 선 주의라면 그 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공산주의의 유물변증법을 중심삼은 현상세계에서는 절대 통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을 하는데 투쟁을 통해서 통일을 한다는 자체가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미래에 소망을 걸고 통일을 추구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통일된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핵심이 되고, 시대적인 핵심이 되고, 미래의 핵심이 될 사상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역사를 두고 볼 때는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를 두고 볼 때는 시대적인 중심으로, 미래를 두고 볼 때는 미래적인 기원이 될 수 있는 세계주의 사상의 중심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입니다. 그러면 그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생활관은 무엇일 것이냐? 세계를 위하여 보람있게 사는 것입니다. 둘이 사랑하는 것은 세계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고, 아들딸을 낳는 것도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기 위해 낳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우리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세밀히 알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횡적인 모든 입체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보나 종적인 세계역사 전반을 중심삼고 보나 기필코 역사는 그 기준에서 해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동적인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한 길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행복하고 성공했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 학식에 두느냐? 과학에 두느냐? 아닙니다. 심정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 나라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일국의 수령의 권한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행복의 원천은 어디에 있느냐?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정의 평화를 노래하고, 그 무엇보다도 가정의 행복을 노래할 때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니고 있는 가정의 권위, 내가 느끼고 있는 가정의 감각, 가정의 모든 체계는 그 무엇을 통해서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학술적인 면을 통해서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절대시하고 누구나 다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우리가 딱 잡아 놓는 날에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예수님은 인류 앞에 신랑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앞에 신부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정적인 최고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선생님이 세계 여러 나라를 쭉 순방하면서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되어 가지고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계를 창건해야 하는데 어떠한 나라를 창건할 것이냐? 현 세상에 있는 나라와 같은 나라를 창건하면 곤란합니다. 창조주면 창조주, 절대자면 절대자를 중심삼은 사랑과 횡적인 우리 가정이 입체적인 면에서 일체가 되는 세계를 창건해야 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 일체가 될 때까지 우리는 영원히 노력해야 됩니다.
이런 운동이 지금은 아시아의 한반도에서 미미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인류역사를 엮어 나가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하나의 자리를 잡았다 할 때는 이것은 필시 세계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시대의 인격관은 무엇을 표준으로 할 것이냐?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중심한 심정을 기준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목적하는 것은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공산주의가 지금까지 세계 제패를 지향해 나왔지만 그들은 벌써 둘로 갈라졌습니다. 이건 벌써 끝을 보고 나가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금후에 그 이상의 세계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을 것이요, 하늘과 땅이 있으면 이것을 상징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입체적인 면에서 하나될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은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목적세계를 위한 절대적인 기준으로 어떠한 과정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의 기반이 닦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문제는 우리입니다.
지금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부딪쳤지요? 그러나 이것은 지나가는 한 장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들 자체내에서 분립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자체내에서 분립되고, 공산주의 공산주의 자체내에서 분립된다는 것입니다. 분립된 그 자체가 망할 때는 그냥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둘이 부딪쳐야 됩니다.
민주주의는 분립된 그 자체가 서로 부딪치면서도 지금까지 평화를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자기 국가를 중심으로 지배해 보겠다는, 서로가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싸우는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을 중심삼아 세계를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끝내는 세계를 중심으로 투쟁하려 합니다. 투쟁의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제패를 위한 과정에 있어서 자기를 중심으로 하려는 이념적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이념이 남아 있는 한 세계를 대해서 투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들 자체내에서 분립되어 자기들끼리 싸우는 때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중공과 소련이 맞부딪치는 날에는 그들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세계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오늘날 세계는 문화의 방향 세계 사조의 방향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가 주장하는 정치학설에 의해 움직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사상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관을 중심삼고 세계로 나가 찾다 보니,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부모도 잃어 버렸지, 아내도 잃어버렸지, 자식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다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시 찾아야 됩니다. 이제 그러한 운동이 일어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묘합니다. 결국 다 잃어버리고 나서 찾다 보니 그 잃어버린 것이 지금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다시 돌아섭니다.
이러한 시대를 세상에 만들어 놓고, 아시아 일각에 있는 우리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낙망할 민족이 아닙니다. 이러한 배후의 인연을 안 우리는 소망에 벅찬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힘찬 보조를 맞추어 새로운 역사 창조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장엄한 시대가 우리 앞에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무엇이 되겠습니까? 출세해 가지고 학박사가 되겠습니까? 학박사가 되면 뭘 합니까? 그것으로 인간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표본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됩니다. 천국이 형성되려면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형성되려면 씨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씨족이 형성되려면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형성되려면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을 위주해서 나왔습니다. 가정을 위주로 한 종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국가 창건, 세계 창건은 가정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시대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들고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에 태어난 우리는 외국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누구를 바라보고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키를 재어 봐야 자기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힘을 비교해 보아야 자기가 얼마나 센가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대국이라 하더라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국의 구성요원이 대국보다도 더 강하고, 더 연단되었을 때는 대국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혜택받은 민족입니다. 첫째는 천연적인 혜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대학에서 지금까지 공부해 왔지만 뜻을 몰랐을 때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내가 왜 이놈의 나라에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나라 한국에 태어난 게 잘 태어난 것입니다. 머리는 새까맣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눈은 서양 사람의 3분의 2밖에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눈이 큰 사람들이 세계의 문화를 지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눈이 작은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키다리들이 지배해 왔지만 앞으로는 키가 작은 사람들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천지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돈 많은 사람들이 지배해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돈 없는 사람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돈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겠느냐 할지 모르지만 지배할 수 있습니다. 사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권력이 아닙니다. 권력을 가지고는 돈을 영원히 지배할 수 없습니다. 사상을 가지고 돈을 지배해야 영원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철두철미한 사상이 아시아에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봅시다. 종교라는 것은 정신을 주장하지요. 정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질을 무시해야 됩니다. 물질도 중요시하고 정신도 중요시하다가는 망합니다. 걸을 때도 오른발이 나가고 다음에 왼발이 나가야지, 그러지 않고 둘 다 필요하다고 해서 같이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질도 필요하고 정신도 필요하다고 해서 둘 다 한꺼번에 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돈이 먼저 필요합니까, 사람됨이 먼저 필요합니까? 사람됨이 먼저 필요합니다. 사람됨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상에서 결정됩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세계와 접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과 친구로 지내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을 나타내지요. 어떤 사람이 훌륭하다고 할 때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의 친구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과 친구이며 어떤 레벨의 사람과 동반하고 있느냐, 즉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고 지내느냐 하는 것을 보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돈으로는 사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돈으로 지배하려 할 때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를 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얕볼 수 있습니다. `이 자식아, 나도 돈만 있으면 너보다 낫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나 공자와 같은 사상가 앞에서 `이 녀석아, 내가 너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돈 가지고 지배하면 `너 무슨 짓 해서 돈을 벌었느냐?' 하면서 얼마든지 깔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격자는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대충 보아서도 돈보다 정신이 먼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뚱이보다는 정신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중요시해야 되느냐? 몸뚱이를 중요시해야 되느냐, 정신을 중요시해야 되느냐? 정신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중요시하는 데는 어느 정도 중요시해야 되느냐? 한 절반쯤 중요시해서는 안 됩니다. 백퍼센트, 절대적으로 중요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도 죽도록 들여야 됩니다.
예수님이 훌륭한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간단한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말로는 천번 만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말을 알고 있지요?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알고도 하지 못하면 그것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만인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정신을 절대시해야 됩니다. 얼마만큼 절대시해야 되느냐? 생명을 내놓을 만큼 절대시해야 됩니다. 한 시대뿐만 아니라 천번을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그 생명을 또 죽일 수 있을 만큼 절대시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정신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고 종교사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모든 문제를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입산 수도하러 가는 사람이 장농 안에 돈을 장만해 놨다가 그걸 챙겨 가지고 간다면 그는 도인이 못 됩니다.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전부 다 버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버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도의 길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종교를 숭상하는 나라는 물질적인 것을 전부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시대에 신을 숭배하는 나라는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대만 같은 나라의 토착민들을 보면 전부 다 뭘 하느냐? 그저 바나나나 따먹고 춤을 추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신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를 희생하고, 개인의 인격완성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중심삼고는 물질을 버리는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을 두고 볼 때 어느 쪽이 정신적인 문화가 더 깊이 발전할 수 있느냐? 동양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느냐? 동양이 서양보다 못 살기 때문입니다. 문화 창건은 어디가 먼저 했느냐? 동양이 먼저 했습니다. 문화의 창조가 동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왜 서양이 더 잘 사느냐? 동양의 사상은 물질세계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 정신세계에 접근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물질은 다 정리해서 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버린 것을 누가 가져 갔느냐? 도둑놈들이 다 가져 갔습니다. 여러분, 영국 같은 나라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나라입니까? 해적들이 모여서 이룬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섭리상 그렇게 해서라도 관리해야 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나라를 맡기시어 발전시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물질문명은 어디로 찾아가야 되느냐? 서구 진영에서 시작했는데 다시 서구로 들어가면 세계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서구문명은 하나님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러면 서구문명의 최후의 종착점은 어디라야 되느냐? 물질은 정신 앞에 완전히 굴복해야 됩니다. 몸뚱이는 마음 앞에 완전히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동서의 문화를 두고 볼 때도 정신문화권인 동양이 그 좌표를 중심삼고 정좌해서 자리잡는 날에는 서구문명은 거기에 완전히 굴복해야 됩니다.
20세기의 후반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때에는 서구 사람들이 아시아의 정신문명을 몰라 가지고는 사람 취급 못 받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인비 같은 사람은 서구문명의 말로를 설파했습니다. 나중에는 동양문화, 동양문명을 중심삼고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는 문화적 기원과 새로운 종교적인 기반이 나오지 않고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동양의 어느 나라일 것이냐? 동양에서 옛날에 간판을 크게 붙였던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중국이지요. 그런데 지금 중국은 공산국가가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도입니다. 인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인도에는 요가니 무엇이니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 사회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금 인도에는 무슨 신령한 운동이라든가 종교사상, 특히 불교사상이 상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현재의 시대감각에 맞지 않습니다. 그 다음 일본이 있는데 일본이 종교국가가 아닙니다. 잡교국가입니다. 통일된 종교적인 전통사상을 가지고 세계사조 앞에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배경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앞으로는 우리 대한민국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기독교 문화와 동양사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건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에 아니 부딪칠래야 아니 부딪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시점을 우리는 주시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서구문명은 어디 가서 보따리를 풀어 놓아야 되느냐? 돈 많은 사람들에게 풀어 놓을 것이냐? 아닙니다. 세계의 사조와 더불어 식구의 문명이 정착하게 될 최종 종착점이 어디일 것이냐?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뿐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그럴 수 있는 천연적인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늘이 주신 자연적인 혜택을 많이 입었어요. 그래서 잘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태리 같은 나라에 가서 산을 보면 거의 다 대리석입니다. 이태리 대리석이 유명하지요? 그런 산을 보면 정이 떨어집니다. 시루떡을 갖다 붙여 놓은 것같이 얼룩덜룩합니다. 또, 로마의 성터에 가 보면 옛날에 토굴이었던 것을 파헤쳐 놓았습니다. 벽돌을 구어 놓은 것도 불그레하니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지형적인 조건을 중심삼고 보아도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더욱이나 기후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됩니다.
살기에 좋으려면 우선 기후가 좋아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오늘 비가 오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비가 오면 기분 잡치는 것입니다. 살기 좋으려면 우선 날씨가 좋아야 돼요. 사람의 얼굴도 눈살을 찌푸린 얼굴이 보기 좋습니까? 명랑하고 박력있는 얼굴이 보기 좋습니까? 물론 박력 있는 사람이 좋지요? 어깻죽지가 펴지고 통통한 것을 보면 누구든지 와서 붙들고 친해지고 싶어하고 좋아합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입니다. 작지만 아주 깊은 뒷방에서 고이고이 길러 놓은 5대 무남독녀의 신랑감을 찾다가 찾다가 드디어 신랑감을 찾게 되면 그 무남독녀와 신랑이 만나서 찾아갈 수 있는 데이트 장소로 어울릴 만큼 좋은 나라입니다. 신랑 신부가 맨 처음에 만나면 다방으로 가겠어요? 데이트장소를 찾지요. 그때 찾아갈 정도로 멋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내가 일본에서 살아봤지만 일본은 습기가 많아서 끈적거립니다. 대만 같은 데를 가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콩이나 중국대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태국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 각국을 다 돌아봤지만 대한민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입니까? 봄날에는 좀 몸이 노곤할 때가 있지요? 그렇듯 몸이 피곤하고 노곤할 때 잠을 자고 일어나서 이불을 박차고 척 나가서 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 얼마나 상쾌합니까? 해 뜨기 전에 가슴 속까지 솔솔 불어오는 바람의 맛은 또 어떻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지요. 한여름의 칼국수 맛은 또 얼마나 일품입니까?
대한민국의 겨울은 삼한사온의 날씨입니다. 이때의 3수와 4수는 원리적으로 딱 들어맞는 수입니다. 3과 4를 더하면 7수로 그것은 완성수입니다. 왜 하필 삼한사온이겠어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한국은 창조과정에 있어서 완성수인 7수를 중심삼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산을 다녀보면 어딜 가든지 전부 다 별장지대입니다. 저 구라파의 스위스 같은 나라에 가 보면 산들이 얼마나 험한지 집을 지을 곳이 없습니다. 누가 알프스 산맥 꼭대기 같은 곳에 올라가 집을 짓겠습니까? 올라가자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그래도 그런 곳에 무지무지한 고생을 해가지고 길을 닦아 놓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한국은 좋은 나라입니다. 우리 한국은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 꼭대기에 멋진 별장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산꼭대기에 멋진 별장을 지어 놓고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면 신선 놀음을 하는 것 같을 것입니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한국은 앞으로 그런 놀음을 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어디든지 자연수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인공적으로 파이프를 만들어 가지고 그 관을 통해 물을 길어다 먹는다는데, 한국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수도고 뭐고 다 필요없어요. 자연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조화로 만들어 놓은 수도가 어디든지 잘 장치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물을 마시고 싶으면 턱 엎드려서 꿀꺼덕꿀꺼덕 마시면 되는 것입니다.
구라파에 갔더니 물 한잔 값이 사이다 값보다 더 비쌉디다. 거기서는 물을 병에다 넣어 가지고 팔아먹어요. 나는 냉수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인공적인 음료수는 싫어해요. 한국 사람들은 냉수를 잘 먹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구라파에 가서도 나 좋을 대로 냉수를 마셨습니다. 수도물을 마시면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소다수니 뭐니 하는 것들을 마셔야 된다고 했지만 그만 둬라 하고 냉수를 마셨습니다. 비닐봉지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팔아먹는 물 같은 것은 안 먹겠다는 것이었지요. 수도물을 마시면 뭐 간에 돌이 생긴다나요? (웃음)
그것은 왜 그러냐? 그 나라의 수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수도국에서 화학약품을 많이 써서 소독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침전되었을 때 밑을 들여다보면 하얗습니다.
사람에게는 공기 좋고, 물 좋으면 그만입니다. 사람의 건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세 요소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공기요, 둘째는 물이요, 셋째는 흙입니다. 이 세 가지밖에 없어요. 공기 좋고 물 좋고 산 좋으면 그뿐이예요. 삼수갑산이란 말이 있지요? 삼수갑산이 옛날에는 전쟁하던 곳이었지만 평안도 사람들에게는 좋은 피난처였습니다. 평안도 사람이 도망가서 제일 안전한 곳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어디 가서 놀 때 사막 같은 모래판에서 놉니까? 그런 데서 놀다가는 세 시간만 지나면 노곤해져서 쓰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뒤로는 자연을 두고 물 좋고 공기 좋은 데를 찾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적인 혜택의 절대요인인 공기 좋고 물 좋고 산 좋으면 되는 것입니다. 청평수련소에 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 고개만 넘으면 답답해집니다. 청평에서 좀 오래 있어 보니 대번에 알겠어요. 금방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밥을 먹으면 반찬이 왜 그렇게 맛이 없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정성을 안 들인 것도 아닙니다. 그 반찬 가지고 청평에 가서 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젓가락을 가지고 장단까지 맞추면서 먹게 됩니다. 이거 왜 그럴까요? 생각해 보세요. 왜 그럴까요? 음식을 소화하는 데는 공기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폐병환자라든가 무슨 속병이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공기가 좋은 곳에 가서 요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데를 가서 경치를 보면 이건 순전히 싱겁습니다. 미국 사람들처럼 크기는 크지만 싱겁고 멋대가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에도 가 봤지만 거기서 하루 이틀만 살면 골이 떨어지겠어요. (모두 폭소) 그런 곳은 선전이 많이 된 곳이니 그저 눈을 꼭감고 지나가다가 한번 볼 만한 곳이지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은 아닙니다. 이름난 곳이라 해도 둘러봐야 뭐 바람난 뚱뚱한 여자가 치마를 감고 둘러 싼 것과 같은 그런 식입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보아도 한국의 경치가 세계적인 절경입니다. 한국의 설악산에 가 보면 아주 세계적인 절경입니다. 금강산이나 설악산은 산 중의 산이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동해안 쪽에 가 보면 거기에는 한 가지 결함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추운 지방이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다 불을 때려고 나무를 베어서 나무 없는 산만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옷만 잘 입혀 놓으면 일등 미남 미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강산을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비단에다 수놓은 강산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은 계시적인 민족입니다. 한국 사람이 계시적인 민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일례로 한국말에 `누굴 따먹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말과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계시적인 말이예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좋아도 죽겠다고 하고, 죽겠어도 죽겠다고 합니다. 반가운 일이 있어도 `아이고, 반가와 죽겠다'고 합니다. 반가운데 좋다고 하지 왜 죽겠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또, 더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맛있어 죽겠다…. 온통 죽겠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노상 죽겠다는 거예요.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죽는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죽는 데는 도통한 사람입니다. 죽는 교육, 잘 죽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은 도의 정수교육입니다. 이 둘의 비유만 들더라도 근사하지요? 뭐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지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반찬을 봐도 그렇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반찬을 보면 시금치도 통째로 갖다 놓고 먹습니다. 또 요리도 싱겁게 한 가지로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음식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맵기도 하고, 짜기도 하면서 조화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숟가락 하나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젓가락 둘은 아담 해와를 상징하여 결국 삼위기대를 나타냅니다. 그렇지요? 「예」
그리고 한국의 지역 이름을 보면 그 이름 자체가 그 지역의 내용을 나타냅니다. 명승지 같은 데나 이름이 좋은 데를 보면 이 이름 자체가 그곳의 지형과 같다는 거예요. 학고을 하면 학이 많은 고을이요, 금고을 하면 금이 나는 고을이라는 것입니다. 지역 이름을 자연 풍경과 그 지방에 적합하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이 모두 음양의 조화를 갖추어 지어졌습니다. 여러분의 고향 이름은 어때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역 이름이 나쁘면 전부 다 바꾸려고 합니다. 고을 이름들을 보면 대개 좋습니다. 선생님의 고향 이름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주고을 덕산면 덕성동이지요. 지금은 덕언면으로 바뀌었지만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름을 풀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도 운에 관심에 많은 민족입니다. 그렇지요? 지지리 죽겠다고 하면서 살 궁리는 누구보다도 많이 합니다. 국회의원들도 점장이를 찾아가서 `내 신수가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합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러지 않는 녀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운수를 따라다니는 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대체로 한국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민족은 어떠한 민족보다 많은 혜택을 받아 어떠한 민족도 갖지 못한 우월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멸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수하기는 한데 아직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우리 역사를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요?
반만년 역사, 길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길고 긴 반만년 역사 동안 우리는 뭘 했습니까? 뭘 했느냐는 거예요. 요즈음에도 경부선을 타고 가면서 집들을 보면 아직도 초가 삼간입니다. 뭐 초가삼간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구 정떨어지지요. 다른 나라의 돼지우리도 그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어떤 외국 여행자는 한국은 양돈이 참 발달했나 보더라고 했다는데 그것은 초가집들을 보고 한 소리입니다. 한국의 초가집을 보고는 그것이 모두 돈사(豚舍)인 줄 알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거 기분 나쁘기 짝이 없습니다.
5천년 역사, 반만년 역사를 가진 이 나라가 왜 그렇습니까? 자랑할 게 뭐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랑할 게 있습니다. 한국은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뭐라고 할까요? 면상(面上) 가운데에 조그맣게 붙은 사마귀 같다고나 할까요? 이 사마귀를 가진 미인은 화장할 적마다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쁠 것입니다. 요것을 잡어떼어 버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의 아픔만 참아 내면 떼어 낼 수 있는 거예요.
아시아 지도에서 한국을 보십시오. 참 잘 생겼습니다. 그런데 기분 나쁘게 너무나 작습니다. 이렇게 작은 우리 나라를 다른 나라가 면상에 붙은 사마귀를 떼듯 떼어 버리려고 했으면 벌써 수천년 전에 없어졌을 텐데 5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씨알이 남아 있습니다. 골동품이 되어 박물관에가 있지 않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문화를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해 가지고 남아졌다 이겁니다.
왜 많은 나라가 이렇게 작은 우리 한국을 못 떼먹고 못 떼어 버렸느냐? 그것은 한국 민족이 머리가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역사에 비참한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외세에 몰렸던 그때마다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별의별 놀음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자니 팔방미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남자가 여자도 되고, 여자가 남자도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니 자기에게 닥치는 일을 가려서 앞처리 뒤처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민족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북해도에는 아이누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한민족보다 못합니다. 아이누족은 벌써 전부 다 일본화되어 버렸습니다. 중국도 수많은 민족이 합해 가지고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오직 한민족만이 남아진 것입니다. 그래도 머리가 좋으니까 이렇게 남아졌단 말입니다. 해석을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해석해야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까? `우리 조상들, 이놈의 조상들' 하는 것보다도, `우리 조상 잘했소. 나라를 안 팔아먹고 남겼으니 고맙소' 해야 잠잘 때도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진 것이지요. 안 그래요?
그러면 그렇게 남아져 가지고 뭘 하느냐? 이 좋은 천연적 자연적 배경을 중심삼고 멋지게 살기 위해 한판 크게 벌이자는 것입니다. 한민족은 그럴 수 있는 머리를 가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한국 민족이 지금까지 못살았느냐? 잘살았다가는 불한당에게 도적을 맞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잘살았으면 불한당들에게 도적을 맞았을 것입니다. 불한당이 치지 않으면 하늘이 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섭리적인 내용을 두고 볼 때 우리 민족은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우리 배달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그것은 한국이 언제나 상가집이었음을 뜻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상가집 역사였습니다. 역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게 봅니다. 그렇지만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는 어떤 민족에게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에게는 하늘이 수호해줄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를 맞을 첫번 기수가 누구냐?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자연적인 혜택도 혜택이지만 앞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세계에 떨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를 창건해야 됩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서구문화의 단말마적인 현상은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냐? 우리가 갈 길을 닦는 것입니다.
내가 백악관 앞에서 기도한 내용이 이제부터 20년 후에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20년 전에 일본을 떠나올 때에도 `20년 후에 보자. 오늘은 내가 일본 천황이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몰리고 주목받고 있지만, 20년만 지나는 날에는 너희들 나라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천황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 나갈 것이다'고 하면서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20년 만에 일본에 가서 젊은이들을 모았습니다. 일본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상당히 준수합니다. 전부 다 똘똘이 패들이예요. 그런데 대학교 다닌다는 여러분들은 아무리 봐도 자다가 깬 사람들 같애요. (웃음) 그 사람들은 싸우다가 잠시 휴식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입니다. 딱 볼 때 기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격전하다가 `야! 제1고지를 점령했다, 함락했다. 다음은 제2고지로 총진격한다. 집합!' 했을 때 `예' 하고 집합한 사람들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명령을 해도 딱 잡아뗄 상입니다. 여러분이 기분 나빠해도 할 수 없습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나쁘다고 하면서 고개는 왜 숙입니까? (웃음) 기분이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그때 일본에 가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세계에서 누구를 제일 존경하느냐? 사또 수상을 더 존경하느냐, 선생님을 더 존경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높다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듣기 싫다 해도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듣기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처음 온 사람들 없습니까? 또 그들에게 `너희들, 이 다음에 결혼할 때 일본 사람하고 결혼할래, 한국 사람하고 결혼할래?' 하고 물으면 한국말로는 못해도 `강고꾸노히또다' (한국사람)라고 대답합니다. 한국 사람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일본 사람하고 결혼하겠어요? 상대적으로 놀아야 될 것이 아닙니까? 사는 데도 `여보!' 하고 부르면 `여보!' 하고 상대적으로 대답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서로가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국으로 오겠다는 사람들을 여러분, 어떻게 하겠어요? 맞아들일래요? 「예」 이왕이면 `그러고 말고요' 하면 얼마나 멋져요.
그러니 여러분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서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 나름대로 많은 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돌담을 쌓을까? 무슨 담을 쌓을까? 선생님에게도 꿈이 많았습니다. 세개 이상의 학위를 따지 않고는 살지 않기로 칼을 꽂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선생님 성격은 세개 이상의 학위를 따지 않고는 누구를 가르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은 뭘 할 것이냐? 그 이름과 더불어 생애의 말로를 어떻게 단장할 것이냐? 대학에서 교수 이름이나 받아 가지고 분필 가루를 마시면서 이럭저럭 살다가 죽을 것입니까?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문제를 얼마나 생각해 봤습니까?
선생님은 돈을 버는데 있어서도 그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정치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앞으로 관심이 있다 할 때는 그것도 다 낚아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사탄까지도 낚아채는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온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왕자를 타고 앉아 가지고 사탄으로부터 항복받고 나온 역사를 가진 사람인데 그런 것 하나 낚아채지 못하겠습니까?
요즈음에 사람들이 `문 아무개가 앞으로 대통령 하려고 그런다'고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큰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래 봬도 미국에 가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가지고 조여놓고 온 사람입니다. `당신이 1953년에 있었소?'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앞뒤 사정을 쭉 이야기하면서 대한민국 전쟁에서 휴전 협정을 한 것은 잘못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면 뭘합니까? 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거예요. 대통령을 위해 생명을 바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어요? 만일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 발판을 중심삼고 계산해 봐서 자기의 장래에 짭짤한 이익이 나올 것 같으면, 주머니가 두둑해질 것 같으면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여러분도 죽을 수있습니까? 「예」
지금이 밤입니까? 낮입니까? 몇시예요? 오늘이 며칠입니까? 「10월 3일입니다」 10월 3일이면 좋은 날이군요. 무슨 말이예요? 「개천절입니다」 무슨 절이라고요? 개천을 치는 날이라고요? (웃음) 그래 선생님을 위해 죽을 자신이 있어요? 「예」 죽으면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그야말로 국물도 안 남을 텐데 그래도 좋습니까? 「예」 이게 도의 세계의 멋입니다.
선생님은 쇠고랑도 많이 차 봤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면 `아무개 들어왔다' 하고 소문이 납니다. 그러면 다음날 왜놈들이 쑥 들어와서 인사를 해요. 그런데 그것은 반가와서 하는 인사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정말 여기 와 있나 없나를 보는 것입니다. 학생 때에도 감옥 출입을 보통으로 한 사람입니다. 또 왜놈들의 고문대에서 뱃심도 많이 부려 본 사람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은 사람이예요. 맷집 좋게 생겼지요? 선생님은 일본 녀석들한테 고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의 고문은 아주 지독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그때처럼 지져대고 하면서 고문을 하면 옷에 똥을 싸면서 하지 않은 것도 했다고 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해서 안 될 때에는 손톱을 자른다 해도 손톱을 잘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을 위해 죽겠다고 할 패들이니까 그쯤은 괜찮겠지요? 손톱 하나 잘리는 것쯤은 괜찮지요? 「예」 백명을 대신하여 대표로 한사람의 손톱을 자르자 할 때 손을 내놓을 사람이 있으면 손을 한번 내놔 볼래요? 전부 다 손이 뒤로 돌아가는구만. (웃음)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데는 웃음으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세계의 문화를 연결하는 데는 웃음과 노래가락으로 안 돼요. 앞으로 세계의 친선관계는 지금과 같은 보통의 세계 사조 가지고는 안 됩니다. 환경의 교차로를 통하여 엮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세계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화합시키기 위해서는 생명의 교차로를 거쳐야 됩니다. 어느 나라의 충신이, 자기 나라를 대신하여 희생해 가지고 이쪽 문화에 상대방 나라가 굴복할 수 있게 하는 전통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가야 할 여러분들은 달려야 할 수레바퀴의 방향을 설정하여 각 분야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해야 됩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데에는 반드시 교차로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은 생명을 바쳐서라도 사명을 다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원인이 하늘이면 결과도 하늘이어야 되는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또 그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비례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그것을 돌아서 넘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을 점령하려면 무엇으로 해야 되느냐? 돈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떠한 과학의 힘으로도 안 됩니다. 요전 7월 21일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는데, 여러분, TV봤어요? 그 순간에는 30억 세계 인류가 전신경을 모아서 하나되었습니다. 역사상 인류가 그렇게 하나되었을 때는 그때밖에 없었습니다. 어떠한 세계전쟁, 어떠한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가지고 세계의 3분의 2를 망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통일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원수인 공산세계까지도 거기에 전신경을 기울였습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그 순간에는 공산당패들도, 소련의 최고간부들도 자기를 잊어버리고 마음으로 잘되기를 빌었으면 빌었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본심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선생님은 원수를 초월해서 통일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어느때에 어떻게 영원한 생명의 동기요, 힘의 원천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세계를 만들 것인가. 우리 다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의 줄을 당기면 그 줄이 저 산악지대에 가더라도 끌려갈 수 있고, 저 바다로 가더라도 끌려갈 수 있는 주의나 사상, 세계인의 마음이 전부 다 동이면 동, 서면 서, 남이면 남, 북이면 북, 위면 위, 아래면 아래, 이렇게 사방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가지고 끌려갈 수 있는 하나의 주의나 사상이 있다면 나오게 되는 날에는 어떤 일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그날이 역사상 최고의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까, 없다고 합니까?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다고 생각합니까? 「있다고 생각합니다」 벼락이 치고 땅이 갈라지는 자리에 들어가면 `어이구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려구요? (웃음) 하나님을 봤어요? 정말 있습니까? 실감나게 대답을 해보라구요?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말이예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사실 있어 가지고 땅을 쑥 올려 놓고 하늘을 쭉 내려 놓고, 이렇게 천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두 번만 하게 되면 세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올라가도 `하나님 맙소사', 내려와도 `하나님 맙소사' 할 것입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또 천변지이가 생겨서, 하나님이 온 우주의 만민이 전부 다 보게끔 세상에 나타나 가지고 잔치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잔치를 한단다. 하나님의 색시가 누굴까?' 하며 난리를 피우고 모여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색시가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보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이 전부 다 보려고 모여들 것입니다. 아이들까지도 응석을 부리면서 어머니 품에서 기어올라 `나도 나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면, 그래서 그 아들이 오늘 여기에 나타났다면 보고 싶겠어요, 보고 싶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어때요? 「보고 싶습니다」
결국은 사람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만으로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폴로 11호 하나를 세계 인류가 신경을 곤두세워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지켜 보는데 그렇게 아슬아슬한 것 말고 기쁘고 멋지게 웃을수 있는 역사의 한때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런 때가 어떤 때인가? 내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때입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전세계 인류의 마음이 하나되어 관찰했던 아폴로 11호를 발사하기까지 그 일을 위해 치렀던 희생의 대가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리는 것과 아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잔치하시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쉽겠습니까? 아폴로를 쏘아올리는 것이 쉽겠어요, 하나님이 잔치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쉽겠어요? 아폴로를 쏘아 올리는 것이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뭘 하자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잔치하시도록 한번 해보자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먼저 그 말을 했기 때문에 나부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음이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자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뭐 예수 믿고 천당 가지고요? 천당에 갈지 지당에 갈지 어떻게 압니까? 가 봐야 알지요.
미국에 갔을 때 선생님은 백악관 앞에 가서 `20년 후에 보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주먹 하나밖에 없는데 뭘 믿고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지금부터 착착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제1차 작전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기반을 닦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제2차 작전 단계로 넘어서면 그때는 미국으로 갑니다. 그때를 위해,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대내적인 기반을 닦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일각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지금까지 서구 사람들은 쓰레기와 같이 여겼습니다. 이런 한국 땅에 명실공히 새로운 문화세계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상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찾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향해 심정을 중심삼고 역사시대를 넘어섬으로써 미래의 어떠한 세계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원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 한반도를 중심삼고 여러분의 등을 타고 굴러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이제부터 여러분은 레일이 되어야 됩니다. 레일이 될 자신이 있습니까? 천번 만번 굴러가 미끄러지더라도 견뎌 낼 수 있는 레일이 될 자신이 있습니까? 「예」 자신이 있으면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여자들, 자신 있습니까? 「예」
여러분들, 대학교 졸업하면 무엇을 하겠어요? 2만원짜리 월급장이가 될거예요? 그건 코를 풀 정도도 못 되는 시시한 것입니다. 그래 2만원짜리 월급장이가 되어서, 그 몇만 원에 팔려서 종새끼가 될 거예요? 월급장이가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안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게 뭐예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뭘 할래요? 월급장이 안 하면 뭘 할 것입니까? 월급장이가 되지 않으면 주인 노릇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주인 노릇을 해야 됩니다.
지금은 내가 그런 생각을 전부 끊어 버렸지만 옛날에는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실이 그랬습니다. 육상이든 무슨 운동이든 못하는 것이 없었어요. 무엇을 하든 3등 이내에 못 들어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체력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지만 무슨 일을 해도 그렇습니다. 내가 손을 대서 무슨 일을 한다 하는 날에는 2등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서적 중에 소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거기에 좋은 명사가 있으면 연필로 싹 지워 버립니다. `이 녀석, 내가 쓰기 전에 먼저 쓰다니…' 하면서 말입니다. (웃음) 나는 소설책 안 보고도 삼백 예순날 앉아서 장편소설을 매일같이 쓸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감옥 같은 데 들어가게 되면 감방장하고 친하는 데 선수였습니다. 몇 마디만 얘기하면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떡 앉아 가지고 거기 들어온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리를 분석해서 `아 이 사람은 얼굴이 이렇게 생겼으니 이렇게 될 것이고, 저 사람은 얼굴이 저렇게 생겼으니 어떻게 되겠다'고 이야기하면 싫어하면서도 인정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 흥미가 안 나지만, 점점 재미있게 이야기하면 흥미가 생겨서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여기에 영적 파장을 맞추면 눈이 거꾸로 돌어갑니다. 그래서 흘리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럴 만큼 선생님의 얘기에는 횡적인 면보다 입체적인 면에서 파장이 넓다면 넓고 높다면 높은 그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 원리라는 것도 누가 가르쳐 준 거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하나님이 다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영적 파장을 딱 맞추면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던 때가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차도 타고 다니고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옛날 배고플 때는 하나님이 먹여 주셨습니다. 난데없이 아주머니가 길거리에 흰옷을 입고 나타나서 그때가 저녁이면 저녁을 마련해 줍니다. 처량했지요. 그때 잘못했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개라고 하면 어쩌지 못했어요. 내겐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또 우리 교회 나온다고 하지만 전부 다 단단히 막혀 있습니다. 북문도 막히고, 남문도 막히고, 동문도 막히고, 서문도 막히고, 다 막혀 있습니다. 이렇게 동서남북이 전부 막혀 가지고는 따라가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관계를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아버지의 아들인지 그 관계를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그 관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철석 같은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단을 많이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새로 온 사람들도 있지요? 어중이 떠중이 다 모였을 거예요. 여러분의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생선처럼 간장에 절이고, 소금에 절여서 구워 먹는다 하더라도 `그래 보소' 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어중이 떠중이를 만났어도 내가 기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하고 같이 가도 기분 나쁘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 둬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전부 다 훑고 뒤집고 들이 짜고 벗기고 찌르고 비벼서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예」 `아이구,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십니까?
잡아먹겠다니요?' 할지 모르지만 잡아도 먹지요. 나는 강원도 산골에 가서 돼지의 목을 잘라 피도 빨아먹어 봤습니다. 노루도 그랬구요. 다 연습해 뒀어요. 뜻이 이뤄진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선생님을 따라다닌다고 하지만, 그저 적당히 따라다니는 땜장이꾼이 많습니다. 땜장이꾼이 뭔지 압니까? 쓰다가 남는 것으로 없을 때만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사내 녀석으로 태어나 가지고 그게 할 짓입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전부다 땜장이꾼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러분을 개조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문아무개를 만나려고 야단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이 나를 만나려면 나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나와라. 그러기 전에는 안 만난다. 안 만나고 실력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학가의 젊은이로서 밀려다니거나 처치 곤란한 쓰레기패들이 되지 마십시오. 가만히 앉아 가지고도 환경이 무시할 수 없는 패가 되어야 됩니다.
나는 감옥에 있을 때 말하지 않고도 영계를 동원해 가지고 원수를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실력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악은 반드시 선에 굴복해야 된다는 신념의 기반이 안 되어 있고, 그 환경의 문제점을 제시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그 환경에서 중심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한계선을 잘 알아야 됩니다.
천지의 운세를 중심삼고 볼 때, 복귀섭리 과정에 있어서 미국에는 미국 자체에서 수습할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미국 백악관 앞에 가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흘러가는 대한민국의 나그네로 끝나지 않고 무언가 다른 발판을 세워 놓고 가리라 생각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요원이 필요합니다. 등을 치고, 뺨을 때리고, 머리를 밟아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요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그거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아가씨들도 좋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예」 너어디서 왔나? 전라도에서 왔지? 「예」 아까 저쪽에 키다리가 있었는데 키다리에게 조그만 여자를 사귀게 하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웃음) 좌우지간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어요. 아직 1막도 안 끝났습니다. (웃음) 그렇지만 여기서 결론을 지읍시다. 여러분, 지루해요? 지루합니까?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루하지 않아요? 「예」 그러면 좋아요. 「만족합니다」 내가 여기에 온 보람이 있군요.
오늘 선생님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하루를 출발했습니다. 요즈음 청평에서 강을 보고 있으면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까 강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는데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강가에 앉아서 강태공이 세월을 낚는 것처럼 낚시질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낚시질을 하는 것은 잉어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 몇백 마리를 사서 먹고도 남을 수 있는 비용을 쓰면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우리들은 굶고 있는데, 그 비용을 우리들에게나 좀 나눠 주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달라고 하면 줄께요. 내가 왜 그러느냐? 낚시질을 함으로써 정신을 한곳에 집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부랴부랴 수택리에 도착해 보니까 10시 40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몇 시에 왔습니까? 선생님이 오후에 여기 온다고 해 놓았는데 너무 일찍 와서 수택리를 빙빙 돌면서 `빨리 12시 넘어라 넘어라 넘어라 넘어라' 해가지고 12시 5분 전에 수택리를 떠났습니다. 오후에 온다고 해놓고 오전에 오면 기분이 나쁘거든요. `선생님은 뭐 오후 3시에 오신다고 하더니 벌써 오셨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수택리에서 5분 전에 떠나 가지고 12시가 기도시간이기 때문에 차안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맨 처음에 무슨 얘기 했지요? 한국에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러니 대학생 여러분들이 한국이 나쁘지 않다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좋은 자연을 등에 지고 민족성을 가슴에 담고 새로운 세계의 이념을 품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됩니다. 대학가에서 그런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하면 미국의 퇴폐적인 학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떠한 나라의 젊은이도 문제가 아닙니다. 새로이 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자세와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내일을 건설하기 위한 제일 행보를 여기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나, 시대의 환경으로 보나, 천적인 운세로 보나, 자고로 남아진 모든 섭리적인 내용으로 보나, 현재 우리가 심정으로 느끼고 체휼하는 것으로 보나 어느 민족 어느 국가의 젊은이에게도 지지 않는 우리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현재의 입장을 사수할 것이 아니라 타파해 버리고 한계선을 넓혀 가지고 대학의 경계선을, 사회의 경계선을 넘어서야 됩니다. 나아가 일본을 넘고 태평양을 건너 서구문화의 최고 경계선까지 넘을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을 길러야 됩니다. 열을 넘으려면 열 이상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현재의 문화 이상의 문화세계를 창건하고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힘의 원동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런 자세를 가지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스스로 벅찬 가슴을 가진 뜻 있는 사나이로서, 뜻 있는 여자로서, 새로운 문화 창건의 용사로서 전원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여러분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동원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좋아요. 오늘 1막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말하기가 이렇게 힘드는 것입니다. 원리 설파하기가 이렇게 힘드는 거예요.
'젊은 놈' 가운데는 악한 짓을 하는 나쁜 놈이 있는가 하면 쓸만한 놈도 있습니다. 선악과와 마찬가지로 악하게 될 수 있는 부류와 선하게 될 수 있는 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 녀석이 강단에 뛰어 나와 대중을 향해 한바탕 소리쳐서 그 모인 청중의 가슴을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울렁울렁하게 하고 빗발치게 하여 그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 내일에 대한 희망을 솟구칠 수 있게 했다면 `역시 젊은 사람이야! 그놈 참 쓸만한데'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이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젊은 놈'이라고 하는 말은 잘했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니까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보다 젊은 놈이 선생님에게 더 가까와요. 젊은 사람은 다루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젊은 놈은 다루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은 다루기 쉬운 것이 좋아요, 힘든 것이 좋아요? 「쉬운 것이 좋습니다」 쉬운 게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놈이야, 놈! (웃음) 선생님 해석 방법이 그렇거든요.
처음 온 사람들은 기분 나쁘지요? 아이쿠 이거 뭐, 자기 손자도 아니고 아들딸도 아닌데, 전부 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나도 뭐 어떻고, 또는 장군이 되어 각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인사도 받을 수 있는 데…. 놈이라니 기분 나쁠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하는 말이니까 여러분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교수가 아무리 강의를 못 하더라도 제목을 중심삼고 잘 듣고 그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교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는 세상에 가서 망신을 당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일부러 망신도 당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입장에서 망신당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사람에게 구함을 받은 사람은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를 찾기 위해서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스스로 처하게 되면 그들과 정들게 됩니다. 그런 작전이 성공하게 될 때는 마음으로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적 관계로 볼 때 비록 열 사람에게 내가 무시를 당하더라도 천 사람 만 사람을 수습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태연하고 점잖게 그것을 당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가끔 보기 싫은 사람들이 오더라도 대번에 쫓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야, 이녀석들아!' 하면서 들이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면 30분 이내에 갈 것이다 하고 있으면 15분도 못 돼서 그 생각이 맞아 떨어집니다. 이런 일을 기분 좋게 해보는 것입니다. 여기 젊은 놈들은 선생님이 욕해도 괜찮지? 「예」 젊은 놈들은 선생님이 욕할 수 있는 상대로서 가깝다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총각들은 색시가 필요하고 색시될 사람은 총각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그만 두라구. (웃음)
여러분들, 교수들이 4, 50분 강의를 한다면 4, 50분 정각이 딱 되어 그만두는 교수를 좋아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약속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 간다하지 않으니 일부러 `기분 나쁘다' 하는 거지요? 그런 게 생리에 맞는 것이 여러분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계속 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것이 망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여러분과 선생님의 차이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간단히 하나만 얘기하지요? 선생님이 이번 세계순회를 하면서 결혼시키는 데에 세계 기록을 깨뜨렸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결혼시키는 데 있어서 세계의 기록을 가진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기록은 그 누구도 절대 깨뜨리지 못합니다. 못 깨뜨리게 되어 있어요. 다음에 할 때는 수천 쌍이 될 테니까요. 여러분도 가담하고 싶어요, 가담하고 싶지 않아요? 「가담하고 싶습니다」 그때는 조금 더 어려워집니다. 그때는 멋지게 할 것입니다. 요전에 124가정 축복할 때에는 코로나 택시를 타고 드라이브 했지만 앞으로 할 때에는 비행기를 한50대 전세 내어 김포에서 출발해서 아시아 일대를 돌아 볼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식장 때문에 큰 규모로 식을 못한다는 말이 가능해요? 식장 정도는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 계획을 하면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몇 대, 독일에서 몇 대 들어오게 할 수 있습니다. 가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몇 해만 계획하면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선생님이 미국에 가겠다고 비행기표를 보내라고 전보치면 전보가 즉각 옵니다. 독일에서도 오시라고 보내옵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의 그 어느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이렇게 선생님의 말을 들어 줄까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기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결혼시키는 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3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돌아가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게 어때요? 2막으로 넘기지요?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뛰면서 돌아가겠다는 얘기입니까? 「예」 여자들은 가다가 다리 부러지면 선생님을 원망하지 말아요. 다리 병신 되어 가지고 시집도 못 가고 대학에 가서 학사님이 되기는 고사하고 옥살박살 박사님이 될텐데, `아이쿠 통일교인 팔자 사납지' 안 그러겠어요? 다리 부러져 가지고, 아이구 내 팔자 망쳤어! (웃음) 여러분 마음은 어때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자들? 안 그러겠어요? 뛰는 데는 호박처럼 생긴 사람이 잘 뜁니다. 뛰다가 다리가 부러지면 선생님에게 책임지라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습니다」 땅 보고 대답했지, 나보고 했어요? 여자들은 걸어갔다고 해야 이 다음에 신랑한테 사랑받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 독일 사람, 일본 사람, 미국 사람 등 수십 개 국 사람들을 선생님이 직접 국제결혼을 시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결혼 상대들을 대할 때 보면 말은 활발하게 하지 않지만 상대방에 대해 그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 별의별 계산을 다 합니다. 이건, 진짜 죽을 지경입니다. 모습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자기보다 나아서 보통 사람 같으면 좋아하고도 남을 텐데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 가슴이 탈 정도로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선생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선생님이 묻고 나서 어떻게 답하나 보게 되면 어떤 사람은 한 시간 이상 말없이 그냥 서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결혼시키려면 설명이 먼저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면 나이 많은 처녀와 나이 적은 총각이 결혼해야 잘 산다고 설명해 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런데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양 사람에게는 무척 힘이 듭니다. 동양사람의 관념은 신부의 나이가 적은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관습입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정반대입니다. 앞으로 결혼하면 극에서 극으로 하는 사람이 제일 좋습니다. 극에서 극. (웃음) 왜 그래요? 좋아서 그래요, 나빠서 그래요?
자, 그것을 세밀히 이야기하려다가는 끝이 없으니까 특별한 사건만 얘기하겠어요? 미국에는 지금 삼바 클라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우리교회를 개척한 표창할 만한 여성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느냐 하면 지금 전부다 마흔 둘, 마흔 셋입니다. 결혼을 했다면 전부다 아들딸도 있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야 할 텐데 상대를 어디서 구하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여기서 갈 때부터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거기에 가서 그 문제를 쭉 설명했더니 잘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확실히 서양 사람들은 그런 관념을 초월하고 있었습니다. 마흔 두 살된 여자면 아주머니 같은데 이 색시한테 서른 세살된 총각이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서른 세 살이면 마흔 두 살과는 9년차이가 납니다.
영국 식구도 미국에 전부 들어와 있었습니다. 마흔 두 살된 사람과 서른 세 살난 사람이 결혼해야 할 텐데, 그거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나를 생각해 보세요. 가만히 속으로 생각해 봐요. (웃음) 여러분의 아주머니 삼촌 엄마가 몇 살인가 생각해 보라구요, 아기를 두 세 명은 낳았을 나이이니 얼굴이 쭈굴쭈굴해졌고 붉은 빛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아주머니 같은 처녀와 꽃 같은 젊은 여러분하고 결혼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이 나요, 안 나요? 솔직히 얘기해 봐요, 남자들? 「안 납니다」 맞습니다. 기분이 안 난다는 대답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들을 강제로 결혼시켰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보는 것은 나이 한 가지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명예를 무척 존중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만한 공적과 실적을 가졌느냐고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합니다. 공적과 실적이 그 사람의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념이 동양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왜 그러느냐? 그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보다 짧게 잘사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진취적인 면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한 사람만이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또 화란을 개척한 사람 중에 테디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미국에서 상당히 이름난 기술학교를 나온 선반 기술자였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만나 화란으로 전도 나가 화란교회를 개척하고 화란에서 일대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말할 수 없는 고충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화란에 가 탕감기간을 3개월 이상 지내겠다고 다짐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선창가에 가서 부두 노동을 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한달에 1, 300불 정도 받는 유능한 기술자인데도 불구하고, 또 합격증만 가지고 화란의 어디를 가더라도 대단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 내버리고 선창가의 부두 노동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 보니까 선원들하고 같이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형편이 퍽 어려웠습니다. 손은 두꺼비 손 같고 얼굴은 형편없는 노동자의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거지가 다 되어 있었어요. 끼니 때에 먹는 것은 단단한 빵이었습니다. 돈은 하루에 38달러 밖에 벌어들이지 못했습니다. 먹고 살기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쪼개어 통장을 마련하여 그 돈으로 원리를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혈서를 써서 선생님에게 증정했습니다. 그것을 볼 때에 선생님은 느낀 바가 무척 컸습니다.
그가 전도하러 다닐 때 걸어서 다니길래 오토바이를 사 줄까 하고 물어보니 오토바이는 싫다고 했습니다. 오토바이가 싫으면 뭘 사 줄까 하고 했더니 자전거를 사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 주었습니다. 자전거를 4년전에 사 주었는데 대통령이건 누구건 그 누가 만지기만 해도 큰일난다는 생각으로 타고 다니지 않아 지금까지도 새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정성들인 사람입니다.
이번에 축복해 줄 때 구라파의 사람들을 안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상자들을 전부다 모아 놓고 미리부터 책임자들에게 명단을 준비해 놓으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서로서로 소망하는 대상이 있었지만, 이 사람은 누구도 생각해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넌 누구하고 축복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미국에 있을 때에 참으로 뜻에 충성하며 따라 나오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그게 누구냐고 했더니 폴린이라는 여자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서른 세 살에 입교해서 8년이 된 식구인데, 도리스라는 식구와 3위기대를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뜻을 위한 세 명의 혁명투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그녀와 함께 뜻길을 갈 때, 참고 개척하면서 쌓아 놓은 공로도 많았지만 행복한 때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또한 화란을 개척한 그는 그녀가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그 환경에서 혼자 개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아직까지 결혼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이 독일에 있을 때 그녀와 결혼할 수 없느냐고 문의를 해 왔었습니다.
세상에는 미인들이 많고 화란교회에도 처녀들이 많이 있지만 사회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여자는 앞으로 화란교회를 안고 출 수 있는 사모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화란교회에도 예쁘고 자기를 위해 상당히 수고한 아가씨들이 많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란에 있어서 어떻게 하든 통일가의 전통을 남기기 위해서는 화란을 사랑하고, 그늘에 서서 안팎의 모든 궂은 일을 전부다 안고 출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에 있는 그 아주머니 같은 처녀와 축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이 이 녀석아! 그 아주머니 같은 처녀는 생기기도 말같이 생겼어' 하며 말이 서서 다니는 것 같은 여자로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축복장소에서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을 모이라고 한 구보끼도 그 아주머니 같은 처녀를 만나게 되자 `억' 하며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런 여자가 있느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못생겼으면 진짜 못 생겼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길어서 이마를 드러내면 볼품이 없으며, 등은 굽었고, 코는 크고, 키 또한 얼마나 큰지 레스링 선수는 저리 가라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웃는 것을 보통 남자가 본다면 아마 놀라 보따리 싸가지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그 여자와 백년해로 하겠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고 선생님이 기분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우선은 기분이 나빴어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젊은 청년에게 꽃다운 아가씨를 안겨 주고 싶었어요. 보다 더 좋은 미래의 소망이 부풀어 오를 수 있고, 보면 볼수록 꽃 중의 꽃이요, 향기 중의 향기가 피어나도록 하여 밤이나 낮이나 내 사랑이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과 하면 좋겠는데 말이예요. 그런데 벌써 이런 내 생각의 기준에서 멀어져 있으니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기분 좋게 된 원인이 뭐냐? 뜻을 위해서, 하나님 백성을 위해서, 3백만 화란 국민을 위해서 자신이 튼튼한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남자는 그래야 되고, 여자의 권위를 높여 줄 수 있는 남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일을 해야 된다는 그의 말에 선생님은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결혼식 하는 날 철저히 그에게 다짐을 받았습니다. `나이 많은 여자는 조금 더 지나면 아이 낳는 것이 문제가 된다. 마흔 두 살이 되었으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간이 이제 4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낳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문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구라파의 가정 중에서도 제일 복된 가정을 만들어 주실 것인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사위기대를 완성하라고 아들딸을 주시지 않겠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하면 그는 나이 많은 남자를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나는 테디에게 `정말 자네 부인될 사람 전도 보낼 것인가, 안 보낼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저를 못 믿으시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것이었습니다. 구라파는 그런 사람이 있어서 권위가 섰습니다.
비행기만 타면 미국에서도 삽시간에 날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 그녀가 왔습니다. 척 들어서는 그녀를 나는 그 남자의 입장에서 감상해 보았습니다. `아! 여자가 저렇게 생겼기 때문에'하고 선생님도 관심이 갑디다. 처녀들은 개척전도를 보내면 어느 코에 날아갈지 몰라서 걱정이 되지만, 그런 여자는 뜻을 위해 북극 지대에 혼자 가더라도 천년 만년 절대 안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 경력이 많아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머니로서 안팎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나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젊은 신랑을 모셔 가기 위해서는 겸손이 그녀의 생활철학으로 되어야 할 것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여자들을 보게 되면 허우대가 얼마나 큽니까? 그런 여자들이 그 큰 가슴을 거의 보이게 하고 다닙니다. 백악관 앞에 갔을 때도 여자들이 중요한 부분만 겨우 가리고 다니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무척 기분 나빴습니다.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것이 창피한 줄도 모르는 것을 보면 배짱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여자한테 누가 윙크라도 하고 끌어안으면 어떡할까 생각하면 무서워요.
호텔 식당 같은 데에 들어갈 때 남자들은 오뉴월 복중에도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지만, 여자들은 그러지 않고도 기세 좋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나라가 이런지, 이런 것을 보면 기분이 무척 나쁩니다. 여자들은 기분 좋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좋긴 좋다고 하지만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혼자 사는 女子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여자를 섬기는 반면 한편으로 우습게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여자는 전부다 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이 외국을 다녀 보기 때문입니다. 소련도 왔다갔다하고 일본도 왔다갔다하고 구라파도 왔다갔다해서 서구 문명권내에 있는 여자들과 아시아 문명권내에 있는 여자들과 비교해 보면, 동양 여자들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호모 섹스니 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여자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던 여자가 남자를 만나게 될 때, 상대원리에 입각하여 보게 된다면 주체가 누구입니까? 마음의 주체는 여자이고 몸의 주체는 남자예요? 그래요? 어때요? 둘 다 주체입니까? 남자가 주체이지 여자가 주체입니까? 애정은 누가 많으냐 하면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자가 주체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정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애정이 진짜 애정이 되기 위해서는 남자를 만나 모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애정의 밭은 여자요, 애정의 씨는 남자입니다. 밭이 있고 나서 씨가 있는 것이지 씨가 있고 나서 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중심삼고 보면 밭은 대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즈음 편지 온 것을 보면 평등한 남녀가 되기 위해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어 교회가 상당히 부흥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볼때 공적 관념에 대한 인식이 동양인보다 서구인들이 훨씬 앞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공적인 일을 생각합니까? 당장에 자기만 좋으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구라파인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구라파인까지도 포섭해야 할 우리이기에 그 이상의 도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난 너희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어요? 「예」
앞으로 총각들은 선생님을 이기려면 10년 이상 나이 많은 여자들과 결혼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합니다. 기분이 좋아요? (웃음) 왜? 안 좋아요? 그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공주인데도 기분이 나빠요? 그 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자인데도 기분이 나빠요? 여자가 딱 한 사람밖에 없으면 어떡할 거예요? 남녀의 비율이 천대일이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자, 힘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미국을 위해 수고한 사람은 미국 역사에 남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뜻을 중심삼고 수고한 여성들을 두고 볼 때에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역사를 찬란히 빛낼 수 있는 본성적인 기원은 그들에게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선생님이 얘기를 하더라도 편합니다. 입만 열면 벌써 감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설명을 다 해주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조그만 일에도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큰 눈을 좀 찌푸려도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양 사람들은 눈이 작기 때문에 조금만 눈을 찌푸려도 대번에 표시가 납니다. 서양 사람들은 눈이 워낙 크니까 조금 찌푸려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눈을 조금만 찌푸려도 대번에 드러납니다.
이런 저런 것을 볼 때, 결혼관에 대해서는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보다 상당히 앞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관에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배워야 되겠습니다. 배워야지요?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 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 자신도 그런 생각 안 하겠어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터전 위에서 깜둥이 중의 왕깜둥이를 선생님의 상대로 정해 주신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선생님이 맨 처음에 이 길을 나설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겠는가? 진실로 진실로 그를 환영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분들은 거기에서부터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혼하는 데는 미녀의 남편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의 추녀의 남편이 되어 누구보다도 잘살 수 있는 남편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미인도 추앙할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럴 수 있는 관(觀)을 가지고 여자를 잘 대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왜 여러분에게 이런 얘기를 하느냐? 지금 몇몇 사람은 허우대도 잘나고 실력도 있고 해서 안팎으로 보아 우리 통일세계에서 쓸 만한 사람인데 그들을 대해서도 그런 걱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생활을 결정짓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아내를 맞으면 둘 다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망하지 않느냐? 결혼이란 것을 소화시킬 수 있고, 뜻을 중심삼고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실적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갖지 않고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해줍니까? 선생님이 해줍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축복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는 데 있어서 원만한 가정이 되게 하려면 극과 극이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동과동, 북과 북이 만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북과남, 동과 서가 만나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키 큰 남자에게 키 큰 여자를 얻어 주어야 하겠습니까, 키가 작은 여자를 얻어주어야 하겠습니까? 뚱뚱한 남자가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뚱뚱한 여자가 뚱뚱한 남자를 좋아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호리호리한 남자가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호리호리한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누구를 좋아하겠어요?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겠지요? 「예」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도 훌쭉한데 여자까지도 훌쭉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산에 큰 나무만 전부 있으면 보기 싫습니다. 작은 나무도 있어야 좋지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쭉 축복해 줄 때 이 쌍은 틀림없이 아이를 한 다스를 낳을 것이다 하면 꼭 들어맞습니다. (웃음) 선생님이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선생님이 결혼시켜 줄 때는 아무렇게나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하루 저녁에 수십 쌍을 짝지어 주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짝지어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틀림없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주·관상·궁합을 보는 사람들이 그 쌍들을 보고서는 제일 좋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못 믿겠다면 사주. 관상. 궁합을 보는 사람들에게 직접 가서 물어 보세요? 틀림없이 딱 들어 맞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루에 수십 쌍을 짝지어 주는데도 그들 모두다 사주·관상·궁합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들이 하려면 하루종일 정성들여 가지고 잘해야 한 쌍 할 텐데 선생님은 하루에 수십쌍을 해도 잘 맞는 상이라며 관상가들이 탄복하며 우리 통일교회를 선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통일교회 선전부장 노릇을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인생의 근본된 문제를 중심삼고 하나의 부분 부분들로서 엮어져 세계의 운세를 주름잡는 역사가 언젠가는 순식간에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축복가정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은 앞으로 가정을 중심삼고 천국이념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가정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도 주체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의 절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남자의 절개를 가지고 이것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여자의 절개를 강조했지요? 에덴 동산에서 누가 절개를 잃어버렸나요? 여자가 잃어버렸어요, 남자가 잃어버렸어요? 「여자요」 여자라구요? 남자도 잃어버렸습니다. 에덴의 중심인 남자도 잃어버렸습니다. 아담이 해와한테 꼬여 들어가서 결국은 원래 뿌리인 남자까지 잘라졌다는 것입니다. 여자인 해와가 남자인 아담을 타락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 받느라고 지금까지 여자가 남자들에게 유린당했습니다. 그렇지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남녀평등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의 어떤 사람보다 후세인들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여자들 때문에 남자들 기분 나빠졌구만. 여자와 남자를 가만히 볼 때 이상하게 남자가 더 기분 나빠하거든요. 그런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 여자에게 장가를 가게 되더라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밖에 몰라서는 안 됩니다. 그 여자가 조건만 갖추고 있으면 만세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만세 부를 자신 있어요? (이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하나님께서는 선의 세계를 이룰 것을 목표로 설정하시고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창조이상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중도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중대한 사건 중에 첫째 가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아니한 비운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실체세계에도 비운의 역사가 출발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비운의 역사를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있어서나 인간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기쁨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시작하였고, 소망과 희망 가운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낙망과 절망 가운데서 출발하였습니다. 또한 광명한 새 아침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 아니라 황혼이 짙어가는 가운데 어둔 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청산지어야 되겠습니다. 이 어둠의 세계를 기필코 청산짓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광명한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이라는 명사를 들어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뭐냐? 한마디로 말하면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상태로 복귀하는 데에도 기준이 있을 것인데, 그 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우리 인간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여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제1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만이 아니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 부부의 인연을 맺고 참된 부모가 되어서 새로운 혈족의 인연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창조목적이요, 인류역사의 새로운 출발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어떠한 민족이 문제가 아니며, 어떠한 종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어떠한 아들딸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류 앞에 필시 있어야 할 참부모, 하나님께서 실체로 현현하실 수 있는 참부모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인류의 최고의 문제이자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은 하나님의 소원 가운데에서 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전한 사위기대를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비통하고 비참한 역사를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차피 비참하고 비통한 이역사적인 인연을 가졌으니, 이제 이것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운명은 개인을 지나고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까지 뻗어 나왔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 비운의 역사가 접속되어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그냥 놓아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척결해야 합니다. 척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그 움직이는 힘보다도 강한 힘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어떠한 물체를 자기가 목적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힘 이상의 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이 그 목적을 위해서 달리고 있는 것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그 악의 힘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강한 선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갖추어지면 악은 자동적으로 멎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런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다 알고 계십니다.
복귀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비참한 인류역사를 타고 나온 현재의 우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 가정이 타락한 그때부터 복귀역사는 시작된 거예요. 그랬는데 모든 뜻이 본연의 소망대로 성취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아브라함을 세워 가지고 결사적인 입장에서 소생 장성 완성의 원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서 이런 기준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적 기준이지 전체를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전체 세계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브라함 가정이 중심가정으로 세워졌지만 전체를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굴복시키는 것도 전세계를 한꺼번에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나라면 나라의 대표, 세계면 세계의 대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실수한 것이, 즉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님과 사탄이 상반된 입장에서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사탄이 굴복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탄도 동참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에 양분된 그 형태가 이 지구상에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그 기준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국가가 못 되었습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재차 슬픔의 조건을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청산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기준은 뭐냐?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국가 기준은 가정 단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그 목적 또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승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민족 편성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덮치고 덮치는 역사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2천년 역사를 경과해 가지고 예수님 시대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국가적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된 승리의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을 기반으로 아브라함 가정에서 세우지 못한 승리의 기준을 결정짓고 사탄세계의 외적인 환경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책임을 다 못했기 때문에 섭리는 또다시 지연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소화시킬 때까지 점진적인 역사에 보조를 맞추면서 국가 형태의 기준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기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입니다. 국가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일을 완수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형성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나라를 형성했다고 해도 복귀섭리가 나라 단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되어 세계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모든 국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비운의 역사가 청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를 세워야 됩니다. 사탄 나라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탄 나라의 대표자가 있으니 하나님 나라에도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탄 나라의 제반 조건 이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형성된 나라가 어떻게 되었느냐? 사탄이 어떻게 나라를 형성했느냐? 사탄은 혈통적으로 나라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혈통이 순수해야 하고, 하나님편이라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혈통복귀가 되지 않으면 그외의 모든 복귀도 힘든 것입니다.
지금 타락한 인간은 혈통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이 아버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탄이 아버지로 되어 있는 권내에서 벗어날 것이냐? 사탄의 기준을 능가하는 기준으로 사탄에게 혈통적으로 말려 들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혈통을 어떻게 성립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볼 때도 그가 타락한 혈통의 후예로 태어났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탄세계의 저끄러진 열매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는 하늘편에서 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역사상의 성현들, 예를 들면 예수나 석가나 공자같은 사람이 인류역사에 공헌을 했다고 다 똑같은 성현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을 놓고 보면 반드시 한 사람이 앞서든가 뒤떨어지든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앞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 가운데 앞서 있는 한 사람이 선택받도록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 외에는 소망의 분기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었느냐? 사탄세계와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는 부모를 거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분신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가 사탄의 아들들의 권위보다도 안팎으로 나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출발의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태어나기 위해서 4천년 역사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사탄과의 혈통적 관계를 넘어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터전 위에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은 형이고 아벨은 동생입니다. 복귀역사는 바꿔치기 역사입니다. 바꿔친다면 무엇을 바꿔치는 것이냐? 옷을 바꾸어 입는 게 아닙니다. 집을 바꾸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라를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바꾸는 데는 외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몸뚱이를 바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에서부터 바꿔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근본이라는 것이 뭐냐? 근본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부터 바꿔친 후에 나를 바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바꿔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부모를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있어서 어느 한때에도 이러한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출발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어 온 모든 죄를 전부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 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광명하고, 희망에 벅찬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타락의 세계는 슬픔 가운데에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슬픔의 역사, 낙망의 역사, 죄의 역사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행로의 연속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나라가 문제입니다. 나라가 협조 안하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를 중심삼은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보이는 자신이 어떻게 아버지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사탄세계에 있는 아버지와 신념으로 믿고 추구하는 아버지와 감정의 기준에서 어떤 것이 우위이겠습니까? 원칙적인 기준에서 어떤 것이 우위냐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이것을 발견하고 찾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든 기준을 설파해 가지고 하나님을 실체의 반석으로 모시는 것을 공법으로 하는 사회와 세계를 부모보다도 더 높이 알고 더 가까이 알고 더 깊이 인연맺을 수 있는 참된 남자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다라도 그러한 참된 남자가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관계를 엮지 못하므로 복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절대 불가침적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시킬 수도 없습니다. 절대입니다. 또한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가 백번 천번 때려 부수더라도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하나된 그 세계는 어떠한 무엇으로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가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온전하게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사회에 복잡한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존재의 기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전체가 하나님 속에 있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자각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귀되는 데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더 가깝습니까? 하나님이 더 가깝습니까? 「아버지가 더 가깝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십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주체이신 하나님의 상대는 결과세계입니다. 결과의 존재란 주체를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결과적 존재는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를 일치시키는 작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의 결과와 일치하게 되면 사랑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왜 여자는 빼놓고 남자만 중심삼고 했겠습니까? 아직까지 여자의 입장을 나타낼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신랑되신 주님이 와야 여자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시집을 가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시집갈 수 없으므로 남자도 장가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일치될 때는 절대적이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사랑은 누가 먼저 주게 되어 있느냐? 아들은 사랑을 지고 다니고 부모는 사랑을 안고 다닙니다. 안고 다니는 것과 지고 다니는 것과 어느 것이 먼저이겠습니까? 애기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아들을 지고 가고, 하나님과 부모는 안고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되려면 지는 것보다 안는 것이 더 쉽습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중심이겠습니까? 사람이 중심이겠습니까? 사랑이라는 간판을 들고는 누가 먼저이겠어요? 사랑에 있어서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앞세워서 사랑은 안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 사랑을 이루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보따리를 들고 가면 어디든지 통과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주권자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그 나라에서는 어디든지 통하지 못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볼 때, 사람이 우주의 중심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분립시킬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자체이겠습니까? 인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서 벌어지겠습니까? 「인간에게서 벌어집니다」 사랑을 번식시키는 것도 인간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짓기는 했지만 원칙적인 법도를 통하고 주기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창조의 이상을 전개시키셨던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실무적인 담당자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느 누구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만 인류의 어버이이십니다. 성경에 보더라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지 `하나님이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누가 세상의 중심입니까? 세상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는 결론이 성립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처럼 사랑하는 인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분입니까? 차라리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지어 놓고도 자식이라 못하니 얼마나 서글프시겠습니까? 부모가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으면 아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덜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의 귀함도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부모가 그 아이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기를 낳아 가지고 사랑을 듬뿍 쏟으며 정성을 들여 키웠는데, 그 아이가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 나가 버리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하나님이 그런 부모의 입장에 계십니다.
처녀들도 시집을 가면 남편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집을 가기 전에는 `아이구! 짓궂은 이 남자야 내게 뭐가 필요하냐?' 하다가도 일단 시집을 가서 사랑에 딱 걸려 놓으면 `아이구, 당신이 아니면 나는 닭이나 꿩이요' 하며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보다 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부인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도 남편의 행복을 원합니다. 그것이 자신과의 관계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태어나기를 남자를 맞이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또한 남자도 여자를 맞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인공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짖고 낳기는 하나님이 했지만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 상대적 세계의 사랑의 관계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된 하나님의 사랑은 결과인 인간에게서 열매는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 사랑에 절대 필요한 요소는 인간입니다. 남자와 여자예요.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고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필요하냐?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보다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보다도 더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없으면, 백년 이내에 인류는 전부 다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아무리 천하를 통일했다고 으시대더라도 여자가 없다면 백년 이내에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왼손을 좋아합니까, 오른손을 좋아합니까? 둘 다 좋아한다는 대답은 결과를 알고 하는 대답입니다. 어느 손이 더 유용한 이용가치를 갖고 있겠습니까? 배구를 하더라도 오른손이 나가지 왼손이 나간 적이 있어요? 글을 쓰더라도, 밥을 먹더라도 왼손을 놀고 먹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왼손은 필요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한 손으로는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습니다. 전혀 필요없는 것 같지만 귀히 쓰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필요한 이용 가치는 남자가 더 많이 갖고 있지만, 그래서 마치 여자는 필요없는 존재 같지만 여자 또한 절대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인간은 다 귀한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냐? 절대적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존재를 이용해 먹는 사람을 세상에서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적인 것을 망치고 절대적인 것을 유린하고 이용해 먹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의 조상 중에 가장 위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때, 그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이용하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되려고 했습니까? 서로 양보하려고 했습니까? 또 서로에게 더 보태 주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서로에게서 빼앗아 내고 떼어 내려고 했습니까? 여자는 남자에게 보태 주려고 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보태 주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대사회의 남자나 여자는 어떻습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서로에게 더 보태려고 그럽니까? 뺏아 내려고 그럽니까? 도둑질 하려고 합니까? 갖다주려고 합니까? 솔직히 얘기해 보십시오. 세상의 남성들은 거의가 다 여자에게서 뺏으려고 하고 여자에게 마이너스 되게 하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인간에게서 뭘 빼내려고 했습니까, 인간에게 뭘 더 보태 주려고 했습니까? 빼내려고 했지요? 그래서 결국 빼낸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의 허락도 없는데 소식도 없이, 통고도 없이 몰래 빼내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도둑놈이 `나 아무 날 아침에 갈 것입니다. 기다리시오'라고 통고하고 뭘 가지러 갑니까? 문서장 써 놓고 `나 돈받으러 가요' 하고 가지러 가냐는 말입니다. 통고없이 문이 잠겨 있으면 부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고하고 가서 먹는데 그것을 막으면 막는 것이 비정상이지요? 그와 같이 에덴 동산의 사탄이 몰래 빼앗아 갔기에 타락된 역사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보태 주려고 할 때 남자와 여자는 절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적이라면 그런 절대적인 남자와 절대적인 여자가 만나서 절대적으로 주고받는 사랑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사랑으로 묶어져 가지고 둘이 합하지 않고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횡적인 입장에서는 서로서로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남녀의 사랑은 그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는 누구를 먼저 불러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 여자들은 누구를 위해서 준비하고 치장합니까? 남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남자를 먼저 불렀습니까? 못 불렀지요. 사탄을 먼저 불렀어요. 그래서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여자는 누구를 먼저 불러야 하겠습니까? 남자를 먼저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신랑되신 주님이여, 오시옵소서' 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 점을 여자들은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신랑되시는 주님이 오셔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누구입니까? 또는 주님이 둘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수님과 성신이 있어 가지고 소생 장성 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하나님 아버지보다도 `오 신랑되시는 주님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무엇을 찾아야 한다구요? 대답을 하라구요. 싫으면 그만두고‥‥‥. 그렇다고 진짜 그만두면 곤란하지요. 복귀해야 할 우리들은 그렇게 신랑을 맞이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신랑을 맞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낳았습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어야 하며 하나님만을 위해서 시작하고, 하나님만을 위하여 이루어진 그 자체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한테 필요한 것이 신랑되는 남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들의 역사는 시궁창에 빠진 입장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계에서도 지금까지 후회하며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잃어버린 아내가 편안할 리 있겠습니까? 인류역사를 보면 여자들은 사탄세계를 오고 가는 주객들이었습니다. 나그네들이었어요. 지금까지 여자의 역사는 비참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맞아야 하는데 주인이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럴 때는 누구든지 주인이라고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희망봉이 어디냐? 인생 행로에서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여자의 세계에는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날은 여자가 자기의 주인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누구입니까? 주인은 바로 신랑입니다. 그 신랑은 주님의 대신자요,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그 신랑은 사랑의 역사의 출발자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역사에서 사랑의 역사의 출발자는 누구냐? 사탄과 여자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에 있어서 우리의 원수가 누구냐? 그 또한 사탄과 여자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상에 나타난 여자의 신세가 비참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나라는 비상시에 용사들이 국운을 책임지고 행군 나팔소리와 더불어 출발할 때, 그들이 가는 길에 여자가 있으면 쏴버립니다. 이때 여자가 애기를 업고 있으면 그 애기가 여자 아이면 둘 다 죽이지만, 그 애기가 남자 아기면 둘 다 살려 줍니다. 세계 곳곳에 그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왜 남자 아이이면 살려 주겠습니까? 천주의 소원이 여자 때문에 악으로 망쳐졌지만 그 가운데서 아들을 찾으려니 그러는 것입니다. 모자협조의 인연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근본을 알아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사랑의 출발자는 사탄과 여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역사로부터 제거당해 왔습니다. 멸시천대를 당해 왔습니다. 그것은 탕감해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남자들의 뜻을 잘 따라야 합니다. 여자들은 그 모양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고 합니다. 대통령이 그 나라의 아버지를 대표한다면 부인은 그 나라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러한 자리에 서려면 대학출신이어야 하고 학박사 학위를 여러 개 갖추어야 되지요? 또 레슬링 챔피온이라도 되어야 하지요? 그렇습니까? 「아니요」 눈이 안 보인다거나 눈과 코와 귀와 입이 잘못되었거나 또 몸이 어디가 불편하면 안 됩니까? 눈도 나쁘고 코도 비뚤어지고 입모양도 이렇게 생겼어도 거기다가 왼손잡이나 절뚝발이어도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남자가 제일 중요시하는 사랑을 점령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가치를 결정하고 `아! 그는 국모다. 그는 절대적이다' 할 수 있는 권한을 천만년 이어가는 것입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종적인 환경에서나 횡적인 환경에서나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인 남편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한 부인이 절뚝절뚝하고 말을 못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가슴속에 대통령의 사랑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점령한 후에는 영원히 붙들고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가 도망가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사랑에는 무엇이든 완전히 포위할 수 있고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으면서 병균과 같이 한번만 점령하면 무엇이든지 왕창 걸려들고 맙니다.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병균이 바로 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길을 어떻게 찾아 들어가야 하느냐? 장가가기 전의 아버지의 뱃속에,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뱃속에, 또 그렇게 자꾸자꾸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뱃속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들어가지 못했으니 다시 들어가기 위해 가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제일이 되라. 하나님을 점령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제일 가는 남자가 되라! 그러기 위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듯 복귀의 길 앞에 말씀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야 되겠습니까, 다하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전부 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갈 때 복귀섭리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는 그런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세계 인류는 전부 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그 은사를 필요로 하므로 그들은 전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나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주마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경주가 아닙니다. 하나의 장벽을 전부가 잡으려고 뛰어가는 경주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누가 일등을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일등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역사를 보더라도 예수보다도 먼저 태어나 살다 간 인물들이 많지만 먼저 태어났다고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자가 있었습니까? 기록이라는 것은 뒤에 나온 사람이 깨뜨리는 것이지, 앞서 나온 사람들이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뒤에 나와 기록을 깨뜨리는 사람이 더 이름을 날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기록을 깰 수 있겠습니까? 「예」 그래요? 그러면 어디 구경 좀 합시다. (웃음) 이 일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누가 예수님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 제일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자들은 세상 없이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한테 시집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자꾸 시집가라는 말을 하니까, 아마 속으로 `아직 밥도 안 먹었는데 아침부터 시집 장가 보내려고 하는구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웃음)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 아가씨들도 있지만 속으로는 좋아서 눈을 감고 예수 예수 하다가 조금 잘못 발음하면 `예스(yes)' 하게 될 것입니다. (웃음)
가만히 보면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왔다는 말을 신랑이 왔다, 신랑이 왔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이 말 하나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신기하지요. 하나님이 없고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이신 예수는 여자를 찾는 것입니다. 남자는 원치 않아요. 예수는 족보상으로 남자계열입니다. 그렇지만 여자들과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남자들 기분 나쁘죠?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글자를 한문으로 보게 되면 `여자' 할 때, 여(女)자는 활을 두 개 갖다 붙인 모양입니다. 여자는 활을 쏠 때도 하나만 쏘지 않고 둘을 동시에 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남자' 할 때, 남(男) 자를 보면 위에 밭 전(田) 자가 있는데 그 안의 열 십(十) 자는 동서사방을 말하는 것이고, 열 십(十) 자를 둘러싼입 구(口)자는 천하를 연결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사방의 중심을 힘(力)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 남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자가 한문입니다.
남자는 자그마치 천주를 중심삼고 헤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화살을 가진 것이 여자라는 생각을 하세요. 그러면 이게 무슨 자예요? (간사 간(姦)자를 판서하심) 이런 사람 여기에 있어요, 없어요? 여자 셋이 모였습니다. 이게 무슨 자(字)입니까? 「간사 간요」 이 중에 하나는 해와요, 하나는 마리아요, 또 하나는 이 자리에 있는 여자인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망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천주교회 다니는 사람은 놀라 자빠질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남자가 수고해 나왔지만 앞으로는 남자만 중심삼고, `아! 남자가 제일이다'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보면 여자 대통령도 나오고, 여자 국회의원도 나오고 하지요? 지금까지는 남자들끼리만 거들먹거렸지만 이제부터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자들이 `옆을 봐라, 우리가 있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탕감복귀의 한도가 이 세계에 점점 차 올라 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등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라톤에서 챔피언이 되어서 일등을 했습니까? 아니면 밥 잘 먹기로 세계 제일이었습니까? 팔뚝 힘이 세계 제일이었습니까? 보이는 모양이야 절름발이이든, 애꾸눈이든, 무엇이든 국부(國父)의 사랑만 점령하면 국모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지리 못난 남자여, 뼈 위에 가죽만 씌워 놓은 남자라도 사랑만 점령하면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어질 때는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대로 끊다가는 그 사람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한번 맺어진 부부끼리 이혼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가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남편, 한 아내에게 전적으로 매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데 있어서 일등이었습니다. 일등 중에서도 최고 일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일등이라는 기록은 내놓았는데 그것을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코스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런 코스에서는 저렇게 해야 한다고 후대에 가르쳐 줄 수 있는 내용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서 일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뼛골 속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남자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 전체와 인연맺는 사랑의 상대자로서 하나님의 가슴에 꽉 찰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두 사람을 놓고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다고 하는 것을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내게는 예수밖에 딴 사람은 없다'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했어요.
아들딸이 태어나기 전, 부부의 사랑을 거쳐 가지고 뱃속에서부터 뗄래야 뗄 수 없고,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문서장을 지니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문서장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타락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출발되었으니 하나님을 모시고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4천년 역사 속에서 바꿔치기를 해왔고 지금까지 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냥 놔둬야겠습니까? 지금까지 가인은 오른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른편에 있는 가인을 왼편으로 보내고 왼편에 있는 아벨을 오른편으로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바꿔치는 놀음을 누가 하려고 한 것입니까? 사탄이 하려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부터 섭리의 주역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바꿔치는데 가인은 사탄편이고 아벨은 하늘편입니다. 여기서 하늘편이 사탄편을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창조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어서 아담은 주인이고 사탄은 종이었습니다. 하늘편에 있는 아벨은 아담 대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대신 주인된 입장에 선 아벨이 사탄편의 가인을 지배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꿔쳐야 돼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 반대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주관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거꿀잡이로 바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것을 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것을 하는 데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여자가 먼저 했기 때문에 탕감복귀하려면 여자는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남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거꾸로 점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형제끼리 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좁혀 들어감으로써 복귀되어 가고 뜻을 이루는 데 점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으로 바꿔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소생 장성 완성의 세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바꿔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에서와 야곱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이 형제가 되어 싸우게 된 것입니다. 쌍동이로서 싸운 것입니다. 쌍태로서 복중에서부터 싸웠던 것입니다. 복중에 두 나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지배하려면 어렵지요? 복중에서부터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싸웠지만 나기는 에서가 먼저 태어났으므로 에서는 가인편, 즉 사탄편이 된 것이고 야곱은 하늘편이 된 것입니다.
이 하늘편과 사탄의 싸움은 형제끼리의 싸움이 복중에 싸움으로까지 연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이기기 위해 복중에서 시작된 싸움은 태어나서도 계속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야곱이 팥죽을 가지고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몽땅 빼앗은 조건을 성립시켰던 것입니다. 이거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에서 간교하게 형님을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그것은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에서가 조건에 걸려서 약속대로 한 것 뿐이지요. 형님인 에서가 조건에 딱 걸린 거잖아요? 거기서 야곱이 약속대로 한 것은 천지 공약을 수행한 것입니다. 원칙대로 한 거예요.에서가 조건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굶주린 가운데 팥죽과 떡에 장자권을 팔았던 에서는 가인이 아벨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21년 노정을 거치며 사명을 다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쌍동이 형제의 싸움에서 야곱이 이긴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가인과 아벨이 외적으로 바꿔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바꿔쳤는데 내적으로는 바꿔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외적으로 바꿔친 권내에 선 국민이 이스라엘 선민이요, 그 국가가 이스라엘 나라인 것입니다. 사탄은 내외 안팎으로 바꿔쳤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외적으로만 바꿔쳤으니 아직도 내적 기준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내적인 기준이 바꿔지지 않았기에 안팎으로 완전히 사탄을 막아 놓고 출발할 수 있는 완전한 이스라엘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 때에 외적인 이스라엘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애급 나라가 세운 것입니다.
애급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사실은 어느 때부터 가느냐?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를 알지요? 유다의 아들이 아내를 맞았는데 죽게 됩니다. 당시에는 어떤 남편이 아들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의 계대를 잇는 것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겠지만 옛날에는, 그 당시에는 그런 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역사의 섭리적 내용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담당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 동생이 형의 계대를 이어야 했지만 그 동생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말이 가만히 보니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은 죽었고, 셋째 아들은 나이가 어려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말의 생각은 축복받은 이스라엘, 즉 야곱의 계대가 끊어져서야 되겠느냐는 데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의 어떠한 규범이나 윤리보다도 하나님의 혈통을 잇는다는 생각에 스스로 창녀의 옷차림을 하고 시아버지가 가는 길가에 서 있다가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어서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녀의 자식과도 같은 이들이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섭리가 유다 지파로서 시작되었겠습니까? 다말의 공로 때문입니다. 거기서 사위기대를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말의 쌍태 베레스와 세라도 복중에서 싸웠습니다. 세라의 손이 먼저 잠깐 나왔으나 동생인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세라의 손과 같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주의가 공산주의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공산주의를 밀치고 세계를 제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공산주의를 넘어뜨리기 위해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인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뒤에 있는 아주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근원이 잘못되었으니, 즉 뿌리가 잘못 심어져 있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됩니다. 형님으로 태어나서 전부를 주관했어야 할 하늘편이 동생으로 태어나 처량한 운명이 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것을 교체해야 됩니다. 교체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한다구요? 복중에서부터 싸워서 교체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말 이후에 어느 섭리요소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느 한 때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복중에서 굴복당한 사탄은 참소조건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복중에서부터 사탄은 참소조건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조건을 갖는 날에는 파탄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참소조건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복귀되지 않습니다. 사탄 이하의 취급을 해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정도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벼랑길에 떨어뜨려려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죽을 각오를 해야 복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라 하더라도 역사상의 어느 여자보다도 강한 마음으로 벼랑길을 기어올라가야 됩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천번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어야 됩니다. 기어오르다가 나자빠지고 떨어져 죽더라도 `아! 나는 누굴 위해 죽습니다' 하면서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지방으로 전도하러 보낼 때 먹을 것을 비롯하여 아무것도 갖지 않는 벌거숭이 상태로 내쫓는 것입니다. 이거 잘하는 것이겠습니까,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말이 씨족을 복귀하는 놀음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레스가 승리의 간판을 들고 이 땅 위에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혈통을 복귀하고 또 그럼으로써 그는 승리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가 속한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권은 세계적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판도가 안 되었기 때문에 주님이 그 당시에 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천년이 지나 국가 형성을 위해 공고한 기반을 갖춘 후에 예수님이 강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마리아에게는 아무런 전통도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다 지파의 여성, 이스라엘 민족의 여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할 것을 얘기할 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다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건 혁명입니다. 당시의 여자에게 있어서 새로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전부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마리아만은 거기에서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악의 후손이 번식된 이 땅 위에서 악의 모든 인륜도 덕을 저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자로서의 전부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위해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단 하나의 여성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 이래 하나님의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지상의 여성으로 마리아를 대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에게는 아버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누가 예수의 아버지입니까? 예수의 아버지가 있어요, 없어요? 아버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못 찾았다면 예수가 영계에 가서 얼굴을 들겠습니까, 못 들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의 아버지를 찾아 줘야 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아버지도 영계에 갔다면, 그래서 영계에 있다면 예수가 그 아버지에게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부모가 세상에서 볼 때, 좋다는 행동을 해서 예수를 낳았습니까, 나쁘다는 행동을 해서 낳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식을 한 후에 예수를 낳은 것입니까? 또 예수의 아버지는 총각이었나요,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나요? 가정을 가진 남자였습니까, 독신이었습니까? 이런 것은 원리를 공부하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물어 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예수의 아버지는 총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다말의 계대를 복귀하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말이 어떻게 해서 베레스를 낳았습니까? 시아버지 품에 들어갔지요? 그거 잘한 일입니까, 잘못한 일입니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시아버지 품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진짜 이단 괴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새겨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사랑의 역사 중에서 제일로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멋지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면에서 다말과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밀히 얘기하면 예수의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예수의 아버지를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 중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잘 믿고 몇 고비만 더 넘어가면 다 가르쳐 줄께요. 그것을 모르고 교회 다니면 천당에 가서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역사를 모르고 영계에 가서는 예수님을 모시지 못해요.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잘 알아야 됩니다. 어때요?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것을 알 것 같아요, 모를 것 같아요? 얼굴을 보니 알 것 같아요, 모를 것 같아요? 정신만 차리면 알 수 있지요. 여러분도 알잖아요?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기독교가 알고 있는 것은 예수의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고,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예수의 아버지가 지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원리를 공부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세시간 이내에 찾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또 그것만 연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떠했습니까? 그녀는 수많은 여성 가운데 사랑의 혁명의 기지를 들고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늘 뜻을 위해서 제물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거리에서 돌맹이로 맞아 죽는 처량한 운명이 되더라도 당당히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역사를 가로막고 나선 것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입장이 오더라도 하늘을 위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역사를 가로막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괜히 마리아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하늘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공연히 식은 밥 먹고 더운 수작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자 이만큼 얘기했으면 많이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예수를 낳게 되었지요. 예수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혈통적인 죄를 청산한 기반 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했다구요? 시집간 아줌마 다말이 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말을 통해 복귀의 길이 완결지어졌습니까, 안 지어졌습니까?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녀인 마리아에 이르러 완결짓는 것입니다. 그중 다말은 타락한 해와의 상징이요, 마리아는 복귀한 해와의 상징입니다. 다말은 타락한 인류의 어머니의 상징이요, 마리아는 복귀해야 할 본연의 어머니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두고 안팎으로 딱 들어맞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천민이 못 되었습니다. 선민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 가지고 비로소 제일의 천민의 대표자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입니다. 4천년 만에 비로소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싸움의 역정을 거쳐 사탄이 안팎으로 참소할 수 없는 순수한 자리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천사가 동기가 되어 타락하였으니 반대로 하늘편 천사인 가브리엘 천사가 동기가 되고 천륜을 배반한 해와가 아니라 천륜을 세우는데 협조한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탄생한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 이 땅 위의 여자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늘편 여자를 통해 낳은 남자가 예수님입니다. 모자협조라는 것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역사상에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혈통적인 면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복중에서부터 그랬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혈통적으로 계대를 이어 가지고 비로소 천주적인 심정을 대표하여 천륜 앞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기반을 결정짓고 예수를 낳았기 때문에 비로소 천지에 새로운 왕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틀림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을 크게 보면 남자와 여자, 이 둘밖에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36억의 인간이 살고 있지만 결국은 남자와 여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가 두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몇 사람이 있었습니까? 두 사람이었지요? 그러므로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자가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 타락했기 때문에 하늘편의 여자가 새로이 나와야 타락권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안 나오면 안 되는데 아직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 다음에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마치 해와가 아담을 낳은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거꿀잡이가 되어 있습니다. 해와가 아담을 낳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낳아야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낳기는 했는데 몸뚱이는 해와로부터 타락의 요소를 받아서 해와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처럼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입니까? 「하나님요」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리의 법도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꿀잡이가 된 거예요.
창조법도상으로는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다음에 아담을 본 따서 해와를 지었잖아요? 그러니 아담이 해와를 낳아야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꾸로 된 거예요. 성경에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해와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정말로 갈비뼈를 뺏다는 말이 아니고 남자를 본 따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진짜로 갈비뼈를 취하여 해와를 만들었다면, 남자는 여자보다 갈비뼈 하나가 부족해야 하는데 부족하지도 않을 뿐더러 남자의 갈비뼈는 더 굵고, 더 큽니다.
원래 여자가 남자로 말미암아 나온 것인데 지금은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 나온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거 바로 된 것입니까, 거꾸로 된 것입니까? 거꾸로 된 거지요. 그러니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타락한 어머니 해와 말고, 타락하지 않은 딸 해와가 있어야 됩니다. 야곱의 처 레아와 라헬은 바로 이들을 상징한 것입니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가 십보라를 두고 구스 여자를 얻었다고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했다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문둥병이 걸렸다는 것은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뜻을 이루고, 천리의 원칙을 바로잡으려니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면 아담보다 여자가 먼저 창조됐다는 것입니까?」 지금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복귀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담이 여자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천년 동안 해와를 찾아온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그럼 이 여자의 중심이 대번에 나오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6천년 역사의 사연을 겪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실패했던 것을 전부 다 탕감하고 이겼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해와가 나올 때까지의 내정적인 싸움입니다. 오시는 예수님 일대에 있어서 승리의 간판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복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에 이의 없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여자를 찾는 데는 마리아와 관계없는 여자를 찾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딸과 같이 키워준 여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리아가 수고한 공적을 쏟고 마리아뿐만 아니라 요셉까지도 온갖 정성을 들여 모든 것을 상속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아 주려고 하는데 여기서는 또 어떠한 자리에서 찾아 줘야 되느냐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부잣집 딸 데려오면 되겠지 할지 모르지만 안 됩니다. 복귀역사노정의 원칙에 맞아야 됩니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횡적인 문제를 종적으로, 종적인 문제를 횡적으로 탕감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4천년 역사의 내정적 심정을 감아 쥐고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가지고 사탄을 때려 눕혀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랑을 중심삼고 해와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아담이 승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담 앞에서 사탄이 `굴복하였나이다' 하도록 사람으로부터 굴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사탄이 예수님 앞에 찾아진 해와를 대신하여 `천년 만년 살고 지고…. 새로운 나라에 주인이 되시옵고, 천국에서 새출발하시옵소서' 하며 해와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하늘나라가 출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면 대단히 복잡합니다. 6천년의 역사를 통해 엮어져 온 사연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관계할 내용들이 아닙니다. 부모들이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일이며 다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남아진 문제이지, 역사에 남아져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역사에 타락이 없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선생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눅 12:49)"라고 했는데 그 말은 무슨 뜻입니다? 그 여자를 찾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터전에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받들고 자연굴복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가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30여 년 동안 이 일을 하려다가 수고만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신랑'이라는 명사를 남겨 국가적인 복귀의 기준에서 세계적인 복귀의 기준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에 기독교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세계가 그 품에 들어갈 수 있는 권내에까지 온 것입니다.
세계를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이분한다면 하늘편이 우세합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재차 해와를 찾는 일을 전개해서 복귀섭리를 끝마쳐야 됩니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마리아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에게는 마리아의 승리적 기반이 있기 때문에 그 조건을 대신할 여성을 세우면 됩니다. 그렇지만 마리아와 같은 여성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여자는 오시는 주님보다 나이가 많으면 안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어려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세 이하의 연령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참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20세가 넘으면 안 돼요. 복귀섭리에는 이렇듯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어떤 사람이냐? 나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한이 없겠구만요. 벌써 아홉시가 되었으니…. 이제 그만 할까요? 「아닙니다. 더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 이런 엄청난 내용을 알기 위해서 선생님만큼 간절히 몸부림쳐 봤습니까? 「예」 대답하는 것 보니 기분이 나빠요. 진짜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 노릇 하게요? (웃음) 여러분들이 원리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목적에 점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세밀한 얘기를 왜 해주는가 하면 성화대학생들의 머리들이 전부 알락달락해서 다르거든요. 그래서 세밀히 얘기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자세히 해부해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여러분을 믿고 있는데 과연 내가 믿는 만큼 보람이 나타날 것인가 테스트도 해보려는 것입니다. 테스트한다니까 기분 나쁘지요? 「아닙니다. 좋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테스트해도 거기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예」 정말이예요? 「예」 한번 두고 봅시다. 걸리나 안 걸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순식간에 타락했습니까? 아니면 몇 달을 두고 타락했습니까? 순식간에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도 순식간에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에라도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시집 장가를 가라고 하면 여러분은 가야 합니다. 시집 장가를 가서 복귀하게 된다면 당장에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고 축복해 주면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럴 수 있습니까? 「예」 어디 여자들에게 물어 보지요. 괜찮아요? 「예」 정말이요? 한번 해볼까요? 「예」 (웃음) 그것은 선생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암만 해도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늘의 공법에 의해 하늘에 떠억 입적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번 성화대학생 총회에서 그렇게만 되는 날에는 하늘을 향해 출발하는 기념 케이스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시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웃음)
예수가 왜 죽었습니까? 아버지를 못 찾아서, 아버지를 모시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를 모셨다면 예수가 죽었겠어요? 자식이 죽는데 죽으라고 그냥 놔 둘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있겠어요? 「없습니다」 만일 부모가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가르쳐 주었겠어요, 안 가르쳐 줬겠어요?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자식 대신이라면 욕을 먹고 죽는 자리라 해도, 그 자리에 나가 자식보다 먼저 죽으려고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아버지 어머니가 없어서, 그런 아버지 어머니를 못 찾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나가 자빠질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예수님이 피조물로 태어나서 그렇게 죽었다고 하면 하나님이 죽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람 속에 들어와 있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악한 거예요? 그렇게 믿는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망해야 됩니다. 참이 왔으면 거짓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른 길을 갔는데 돌아올 줄 모르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밤이 낮이 될 줄 모르면 영원히 영원히 무저갱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의 운명은 통일교회를 붙들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꺼떡대는 사람들도 전부 선생님의 열손가락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 걸리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걸리면 못 올라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죽더라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진짜 선생님이 필요합니까? 「예」 진짜로 필요해요? 「예」 말들은 잘하지. 내용은 그렇지 않으면서…. 여러분은 안테나가 둘이잖아요. 하나예요? 「예」 제일 높은 안테나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낮은 안테나는 수없이 많을 수 있지만 제일 높은 안테나는 세계에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입니다. 여러분은 아래에 있더라도 선생님이 꼭대기에 올라 있으면 여러분들도 제일 높은 안테나인 것입니다. 제일 높은 안테나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버지를 못 찾아서, 못 모셔서 죽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했고, 그의 어머니가 어머니 노릇을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거 무슨 말이냐? 이런 말을 들은 사람 있어요? 「예」 이런 말은 선생님이 오늘 처음 하는데 언제 들었어요? 예수님의 아버지가 책임을 못해서 예수님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종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 가정, 즉 요셉 가정을 복귀원칙에 의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문선생이 갖다 맞춘 것이 아닙니다. 통일원리 중에 타락론을 중심삼고 보면, 에덴 동산에는 아담 해와가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하는 데도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 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마리아는 누구의 어머니예요? 예수의 어머니입니다. 예수는 아담의 대신이고요. 그러면 요셉은 뭡니까? 이는 예수님과도 마리아와도 관계가 없어야 할 사람입니다. 천사장 대신이지요. 천사장의 복귀형을 실체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뭐냐? 해와의 대신입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해와를 먼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해와를 먼저 찾아야지요?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섭리를 하십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누가 여자를 빼앗아 갔습니까?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자를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편에서 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요셉이라는 존재는 천사장 대신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면 예수에게 아버지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도 아버지가 있어야 했으나 예수는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요셉도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마리아만이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에게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그 책임을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2의 아담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탄이 첫째 아담을 유인했기 때문에 사탄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지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랑을 중심삼고 침범함으로 말미암아 사탄편의 아들이 나왔으니,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어해야만 하나님편의 아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기에서 마리아와 예수가 협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형식적으로 부부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복귀하기 위해서 그러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실체가 없으므로 사탄의 실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해놓고 사실적으로는 누구하고 결혼한 거예요? 예수님의 아버지하고 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아담과 약혼해 놓고 사실적으로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지요? 그것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아버지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없어야 되겠습니까?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원리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 어머니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사탄에게 침범받아 원수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예수의 아버지 어머니는 국가적 세계적 기준에서 사탄에 대한 울타리가 되어 예수를 보호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절대로 사탄의 침범을 받은 아담처럼 되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완전히 하나되어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동생이 있었는데 예수에게 동생이 있어야 되겠는가, 없어야 되겠는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마리아와 예수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동생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동생들이 있었잖아요?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 마리아와 하나되고, 요셉은 곁다리가 되어서 종살이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요셉과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곁다리인 요셉을 떼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사탄에 속여서 타락시켰기 때문에 탕감복귀도 속여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요셉과 형식적인 부부로 살짝 속여 놓고 내용적으로 예수와 그 아버지, 그리고 마리아가 짜서 사탄을 굴복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요셉이 걸려들지요. 원리가 딱 들어 맞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탄과 하등의 상관의 없는 타락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의 자리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 갖고 처녀 해와를 찾아야 했습니다. 처녀 해와만 찾았더라면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가정이 이루어졌더라면, 사탄 세계야 어찌되든 예수의 종족은 자꾸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 아들딸 잘 낳지요? 자꾸 번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축복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통일교회 안에서 결혼을 할래요, 아니면 마음대로 결혼할래요? 합동결혼식 하는 것이 기분 나쁩니까? 「아닙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정해 주는 대로 시집 장가 갈래요? 대답해 보십시오. 맘대로 갈래요, 선생님이 정해 주는 대로 갈래요? 「선생님이 정해 주는 대로 가겠습니다」
그러려면 마음대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눈길도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거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지금 대학가가 망해 가는 이유는 아담 해와가 10대, 즉 청소년기에 타락한 것처럼 타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때의 수확시기, 즉 가을절기와도 같은 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전부 복귀하려는 것입니다. 천리법도에 따라서 수습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남자들은 함부로 젊은 여자들의 손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젊은 여자의 손목을 잡는 날에는 이미 총각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원리의 말입니다. 복귀원리의 말입니다. 그래 여러분 남자들, 젊은 여자의 손을 잡을래요, 안 잡을래요? 「잡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는 전부 다 천사장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대로 색시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결혼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의 입장으로 주님편입니다. 세상 남자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타락할 때 두 과정을 통해서 타락했으므로 복귀하는 데에도 두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사모해야 됩니다. 싫어도 그래야 합니다. 싫어도 선생님을 좋아해야 돼요.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그래야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여러분을 시집 보내려면 보낼 수 있고, 전도를 보내려면 보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검둥이한테 시집 보낼 수도 있고, 안 보낼 수도 있습니다. 또 미국 사람한테 보낼 수도 있고 안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좋아요, 나빠요?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좋다고 하는 사람들만 나와 상관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할머니까지 선생님편에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녀들이 선생님편으로 오니 세상 남자들의 기분이 좋겠어요? 그래서 세상 남자들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몰아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그러는 일은 없습니다.
원리로 볼 때 세상의 남자들은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혼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본연의 부모가 결혼을 못 해봤는데 껄렁껄렁하고 시궁창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제멋대로 사랑을 해요? 그런 사랑은 비법입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가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예」
그러면 남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도록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취급을 받아야 됩니다.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간부(姦夫)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족속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의 종 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어라'고 하면 `예이!' 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귀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제일 힘든 일을 남자들이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인 없는 여자들을 마음대로 유린했지만 앞으로 주님이 오시게 되면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면 복귀가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말인가요, 원리의 말인가요? 똑똑히 얘기해 보십시오.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여러분들, 이것이 공갈하기 위한 선생님의 말입니까, 원리의 말입니까? 「원리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원리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니 남자들을 몰아야 돼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천대받아 왔습니다. 50여년 동안 싸워 나왔는데 아직도 선생님에게 화살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사탄편 천사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편 천사장이 되어 이놈의 사탄들을 때려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앞장세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탄세계의 공석에 나타납디까? 나타나는 것을 봤어요? 될 수 있으면 안 나타나고 여러분을 대신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늘을 배역(背逆)하고 천지의 법도를 그르쳤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을 지지하는 천사장의 입장에 서서 하늘 앞에 충신의 도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복귀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앞장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오기 때문에 세계에 미스 코리아, 미스 아메리카, 미스 유니버스 등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자는 땅에서 열매맺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열매맺어야 됩니다. 땅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땅에서 논위되는 것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미스 코리아니 미스 유니버스니 미스 뭐니 뭐니 하는 거예요. 남자는 하늘에서 논위(論謂)가 될 것입니다.내가 알기로는 그런 세상이 된다고 하기 때문에 신이 나는 것입니다.
세계적 미스터 챔피언은 누구냐? 오시는 주님입니다. 세계적 미스터 챔피언이기에 세계의 주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암탉이 울어야 할 때입니다. 여자들의 치마폭을 중심삼고 섭리해야 할 때예요. 통일교회 개척의 선봉자는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이었어요. 그 다음에 남자들이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지구장들이 선생님한테 와서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여자들보다도 더 나를 신봉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종의 족보에서 모면할 것입니까? 털어 보면 먼지만 많이 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학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활개치던 사람들이 여기 통일교회에 와서 쫄딱 망했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웃음) 그러나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노릇을 시키는데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을 동원했느냐? 고등학생들을 동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장성급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복귀역사를 담당해야 하는데, 고등학생들의 입장이 복귀역사의 중심이 돼야 할 장성기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학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학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천명을 이루어야지요. 운명을 초월하고 운명을 주관하고 천명을 따라가야 합니다. 천명을 대표해서 미래를 개척하여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10대가 필요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그때에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도 20세 전후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일을 하기 위한 그때, 그 시대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천년 만년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때 참석한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터전을 마련하여 한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앞장세워야 되겠습니다. 대학을 만들어서라도 공부시키려고 하는 내가 대학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다는 것은 타락의 동기와 똑같으므로, 대학생들은 지금까지 의붓 자식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습니까? 「예」
그러므로 선생님한테 불평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원리원칙에 의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해야 할 책임을 완수하고 그때가 지났으므로 여러분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대해 책임을 다할 때에 대한민국은 복귀가 될 것이기에, 그 책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70년대로 넘어서려는 이 시점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학생에 대한 관심을 높여 10월달 이후로 원리연구회를 중심삼은 활동을 강화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해가 돼요? 「예」
그럼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출발해야 하느냐? 종의 종의 탈을 벗고, 하늘을 배반하던 그 역사적인 종의 탈을 벗고 하늘 앞에 충신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에서 제일 소외되는 계층, 노동판이나 저 빈민굴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봉사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빈민굴의 밑창을 누가 만들었느냐? 사탄이 만들었습니다. 사탄이 인간을 억압하고 유린하여 만든 것이므로 하나님의 종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 천사장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살 길이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거기에서 구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원수에게서 갈라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민족의 맨 밑바닥에 서야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본부에서부터 맨 끝, 맨 밑바닥 농촌의 머슴살이라도 해야 됩니다. 제일 밑창의 자리에까지 가서 하늘을 위하여 심정을 연결시키면 반드시 승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고받으면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반대하는 국가의 환경을 터쳐 내면서 면(面)에서부터 군(郡)을 거쳐 서울까지 온 것입니다. 이 단계를 넘어설 때까지 대학가에 있는 여러분의 참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앞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까지 수고한 지구장, 지역장들을 대학에 보내서 졸업하게 해야 됩니다. 그들을 학교도 안 보내고 고생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선생님이 책임져야 됩니다. 어떻게든지 급속한 시일내에 지금까지 수고한 고등학교 출신의 지구 지역장들에게 대학 졸업장을 받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각성하고 스스로 어느 대학이든 가서 졸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린 대학을 나왔으니 이제는 지금까지 수고한 선배들과 교대하여 우리가 이 조직의 선봉자가 되자' 하며 수고한 그들을 부추겨 주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들은 아벨적인 입장이요, 학교를 다닌 여러분들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아벨의 입장에 서서 선배들을 모시고 공부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그들을 대학에 보내야 됩니다. 그러면서 남아진 십자가를 여러분이 담당하겠다고 하며 나서지 않고는 여러분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금년에 이러한 조건을 세우고 이러한 표준을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지금 선생님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지금 성화대학생들에게는 학교를 졸업하면 갈 길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 코, 손 등 몸과 마음을 전부 다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일생을 두고 이 나라를 구하는 데 선봉에 서고 이 세계에 횃불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 문제입니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의 원리가 이렇게 멋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좌우 안팎을 밝힐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나이의 한은 종의 종의 신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억울하지만 그 종의 신세를 모면하고 아들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우리 앞에 오고 있는 것입니다. 7년이라는 한계선을 중심삼고 그런 아들이 될 수 있다면 역사적인 혁명의 대왕자의 자격을 결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7천년에 걸려 역사하신 것을 7년에 완결지을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갖추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여러분들은 종입니까, 아닙니까? 기분이 나쁘더라도 사람은 진리 앞에는, 사실 앞에는 솔직해야 됩니다. 틀림없이 종이지요? 「예」 이 말이 틀렸다는 사람은 손들고 얘기해 보십시오. 여러분들 대학에 다닌다고 꺼떡대는데,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얘기해 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종이 틀림없나 보군요.
그러면 여러분은 종으로 천년 만년 살고 싶어요? 아니면 인간의 무한한 가치와 천주적인 본연의 입장을 보장받을 수 있는 특권, 이 특권을 뒤로 돌린 채 종의 자식의 자리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이예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이 땅에 인간들에게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시는 등, 고생을 시켜 가지고 그것을 맞추어 뱅뱅 도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그렇게 공식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고생을 시켜 주기 바랍니까, 바라지 않습니까? 「바랍니다」 그런데 `나는 혼자 고생하겠다. 나 혼자 전도하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 하게 되면 사탄편의 꼬리를 그냥 달고 자기 혼자 한다는 말이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해야 됩니다. 사탄이 타락시켰으므로 그것을 해결짓지 못하고 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도적 조건, 사탄세계에 공인을 시킨 그 법도적 조건에 의해 가야 합니다. 그런 명령을 할 수 있는 특권의 왕자가 바로 주님인 것입니다.
어떤 나라의 특사가 병신 같다고 해서 특사의 대접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병신 같다고 하더라도 특사는 특사입니다. 그런 특사에게 병신 같다고 특사 대접을 안하면 국가가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물며 사탄세계에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의 아들딸, 하늘의 사람이 하나님의 가라는 명령에 따라서 왔는데, 그가 병신 같다고 하늘의 사람 대우를 안해서 되겠습니까? 그러면 하늘의 공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모가지가 걸려요. 그러므로 하늘의 공인을 받고 고생해야지 혼자 한다고 꺼떡꺼떡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따라가기 힘드니 세상에 나가서 돈을 좀 벌어다가 돈을 갖다 바치면 나를 받아 주겠지' 하지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의 탈을 벗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종의 탈을 벗으려면 이 종들은 어떻게 해야 탕감복귀가 되느냐?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한정이 없구만요. 인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으므로 복귀되려면 장성기 완성급까지 가야 됩니다.
타락은 원리권내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리는 종의 종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자리에서 특전을 받아 가지고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종의 자식이 양자가 되려면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요? 양자가 되려면 의붓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해 가지고 비로소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의붓아버지의 입장으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에도 `복음이 세계에 전파되지 않고는 내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붓아버지를 완전히 세계에 소개하지 않고는 참아버지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야 되겠어요, 안 믿어야 되겠어요? 「믿어야 됩니다」 종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안 됩니다.
본래 종들에게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고 했잖아요? 그런 자리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 하나님의 자녀의 인연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양자의 이름으로 아바 아버지를 부른 것입니다.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절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양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직계의 아버지를 부를 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똑바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기독교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짬봉이예요. 그렇지요? 양아버지와 참아버지의 과정을 거치려니 기독교역사를 인계받아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서 직계 자녀의 권한을 부여 받고 넘어가야 합니다. 양자의 기준을 중심삼고 직계의 권한을 상속받지 않고는 장성기에서 완성기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완성기는 타락하지 않은 직계 자녀가 올라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직계 자녀인 아담 해와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담 해와 두사람이 잃어버렸으므로 두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자녀를 낳으면서 복귀해야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축복은 이 자리에 두 사람을 세워 자녀를 번식하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완성기란 직계 자녀의 이름으로 올라가는 권(圈)입니다.
그곳에 올라가려면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러니 7년노정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가기 싫은 사람은 그만두어도 좋습니다.
예수님에게도 33세에서부터 40세까지 장성 단계를 넘어 완성기로 가야 할 7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가지 못한 이 7년이 남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7년 대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40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원리를 4수를 완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꾸민다 해도 이렇게 잘 꾸밀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벌어진 일이니 틀림없습니다. 이런 섭리를 알고 나면 하나님이 없다고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좀더 깊이 알게 되면 절대 그런 말을 못합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선생님이 얘기하면 그 누구도 꼼짝 못합니다. 아무리 이론에 밝은 사람이라도 해도 선생님에게 걸려들면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선생님이 이런 역사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한(恨)입니다. 이 세계가 전부 선의 세계가 되면 그때에는 밝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품고가야 할 사연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성을 많이 들이면 영계에서 가르쳐 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종의 신세를 면해야 되겠어요, 면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면해야 됩니다」 육신의 이 피는 누구로부터 받은 것입니까? 이 육적 오관의 감정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모두 사탄으로부터 받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눈을 빼고, 코를 찢고, 귀를 터뜨리고, 혀를 자르고, 다리를 얽어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철저히 부정을 해야 돼요. 부정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완전히 부정당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로부터 사회로부터 남자, 여자, 어린애, 할아버지, 자기 친척에게까지 사람이란 사람 모두에게 부정당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부정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탕감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하는 것이 고마운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고마운 것입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반대했지만 그것은 결국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준 것이 되었기 때문에, 6천년 동안 사탄이 반대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도와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거 알쏭달쏭해 하는 것을 보니 모르고 있구만요. 모르겠으면 모르라우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종 취급하는 거 좋지요? 「예」 지금까지 대학가에 있는 사람들, 선생님에게 종 취급 당했지요? 「예」 그러나 종 취급 당한 것이 여러분한테는 복입니다. 종 취급을 당하면서도 동생들로 말미암아 살겠다고 붙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벨과 부모가 합하여 가인을 복귀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기준이 지금까지 남아 나오기 때문에 형으로서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안했지만 대학교에 안 다닌 사람들 앞에 여러분들이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는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탕감조건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꺼떡대는 사람들은 못난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재봉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여러분의 위치입니다.
이제는 아벨을 중심삼고 목회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수고한 터전 위에 꽃을 피우는 사명을 성화대학생들이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원리적인 입장에서 본 견해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환영합니까? 환영하는 사람은 쌍수를 들어요. 내려요.
그러면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인가? 어제 저녁에도 성화대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자기들의 진로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습니다. 첫째로는 지역장 대리로 지방에 파송해 주시고, 둘째로는 원리연구회 활동을 하는 데 학생지도위원을 대학가 출신으로 배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대학가에 세계적인 문화운동을 펴기 위해 대학생신문을 만들어야 되겠으니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통일산업 기능 주임으로 고려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그러한 요청에 대한 답변이 오늘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답변이 됐어요, 안 됐어요? 「됐습니다」
선생님도 여러분 못지 않게 희망이 태산 같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류를 종의 길로 내몰아야 되기 때문에 선생님 자신도 먼저 종의 몸을 썼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여러분에게 종살이를 시킬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종살이를 시키려면 내가 먼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는 충실한 종이 되어서 세 살 난 아기까지 아침 저녁으로 모신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기를 하나님같이 모신 것입니다.
또 선생님은 이가 들끓는 빈민굴에서도 살아 보았고, 석탄 짐도 져 봤고, 소금 짐도 져 봤습니다.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빌어먹어도 봤고, 창녀 소굴에 들어가서 그들을 악의 소굴에서 빼 주기도 했습니다. 별의별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선생님이 염려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사기꾼이요, 이단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진정 그들을 위했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기점에서 그 한을 여러분이 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감정적, 혹은 심정적 결의의 기점을 어디서 잡느냐? 그런 기점을 잡는 자리에 여러분은 선생님 대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서부터 눈물 흘리고 핍박을 받으면 여러분의 혈관에서 선생님의 피가 뜁니다. 그자리에서 여러분은 사탄을 때려 눕혀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합니다. 원수 악당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승을 대신한 자리에서 부분 부분을 책임지고 싸우되 거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을 횡적으로, 즉 전 국가적으로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여기에서 하늘의 해원성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가서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세상에서 어느 민족도 견디지 못하는, 가장 핍박이 심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곤궁한 자리에 놓이더라도 여러분은 이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곳에 떨어졌었습니다. 그런 곳에 나를 밟고 나를 불태우고 죽이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손을 붙들고 권고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선생님이 한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런 곳에 가서 그들과 더불어 동하고 그들을 눈물로 위로해 줌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맺혔던 이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맺혀 있는 이 민족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때부터 민족 해방운동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눈을 감고 여러분들을 내몰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1차 40일 노정에서 20일을 중심삼고 나간 것입니다. 그때 과로로 늑막염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통행금지 따위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새벽 3시, 4시에도 자면서 달렸습니다.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옆구리가 터져서 들어눕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절박할 수 없는 심정으로, 사령관의 책임을 다해야 되겠다는 마음만으로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에게 심정적으로 조금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길가에서 사람들을 눈물로 만났다가 헤어질 때는 손을 잡고 하늘이 함께한 심정의 인연을 간직하라고 하면서, `내가 승리하여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에 나타날 때까지 죽지 말고 참고 나가라'고 했는데, 내가 그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지도하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길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전도활동을 지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코방귀를 뀌면서 `선생님이 고생하라고 하시는 것은 본질적으로 선생님의 태생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겠지'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누구보다 하늘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을 걷던 60년대에는 일자무식자인 여자들과 소년 소녀들, 국민학교도 못 나온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위해서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정성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2차 7년노정에서는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지식층의 젊은 대학생 남녀들이 하나되어 이 민족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민족은 순식간에 복귀될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이러한 사명이 있는데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선조가 불행해집니다. 선조뿐만이 아니라 친척과 후손들까지도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결국 한국 민족이 불쌍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달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혜택을 받았으므로 이 민족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면 할머니를 위하고, 할아버지면 할아버지를 위하고, 아주머니면 아주머니를 위하고,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을 위해서 최대의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여러분들도 전부 앞으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원리적인 견해에 의해서 여러분이 가야 할 지표가 나왔습니다.이 길을 여러분은 옛날의 선생님의 형이나 동생의 입장에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청춘시대에 민족과 조국에 대해 품었던 사무친 한을 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외롭게 홀로 몰리고 쫓기나 봇짐을 싸던 그런 처량한 사정을 밟고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과의 싸움판에서 자리를 잡고 군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해원성사의 규칙인 것입니다.
반대를 하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망하지 반대를 받는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만 믿고 나가면 여러분은 밀려나지 않습니다. 3년만 극복하십시오. 1960년에도 선생님은 3년 동안 징역살이 간 셈치고 거기서 종살이를 하라고 내보내었습니다. 생각나요? 지구장급들은 생각날 것입니다. 선생님도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탕감복귀해서 이겼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었습니다. 선생님이 몰리고 도망 다니던 때가 있었으니 여러분도 지금 그런 몰림을 당하는 환경에 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적으로 탕감해야 할 것을 탕감하지 못하여서 남긴 역사적인 한을 여러분이 횡적인 길을 걸음으로써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길이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감옥에라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는데는 혼자서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패자의 서러움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승리자의 권한을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있어서 몰아치던 모든 어려운 환경의 조건을 여러분이 인계받아 가지고 이 싸움에서 승리의 한 날을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일보 전진할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세우기 위하여 가는 것이지 퇴보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걷던 어려운 환경을 터전으로 해서 제단을 쌓아 올리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맡은 분야 그 자리가 죽을 자리라면 주저하지 않고 천번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할 때 여러분은 복받는 것입니다. 한번 죽을 수 있는 자리와 천번 죽을 수 있는 자리와의 차이는 천양지차인 것입니다.
생활 가운데 어떠한 자리에서 하늘과 동행 할 것인가 하는 평가의 기준을 키워 나가는 생활이 통일교회의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저나라에 갔을 때 재산이 되는 것이요, 앞으로 새로운 세대에서 역사의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면 낙오자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경계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명심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종의 운명을 박차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내 몸뚱이에 6천년 전부터 있어 온 뿌리 깊은 사탄의 피와 세포를 응시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불살라 버릴까? 이것이 없어진다면 분신 자살을 천번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내 눈이 좋아하는 것은 전부 멀리하고, 싫어하는 것은 모두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전부 부정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반대를 받는 겁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자들은 전부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전체가 사탄의 반대를 받게 되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인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끝날에는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다가 없는 자에게 주는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하늘의 은혜도 복도 기성교회에 줬다가 전부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우리가 반대를 받고 고생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참을 친 사람들은 전부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선의 절대적인 기준을 놓고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천지의 법도이므로 하나님도 선의 중심으로 완전히 결정하기 위해 우리를 반대적인 입장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종 노릇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종의 종살이를 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시골에 가서 목동을 보면 선생님에게도 목동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농부나 노동자를 보면 선생님에게도 농부나 노동자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식구'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언젠가 직접 설명해 줘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부모나 형제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민족을 넘어 세계 인류와 더불어 공영(共榮)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게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가라는 대로 갈 겁니까, 안 갈 겁니까? 「가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설교를 하는데, 왜 애들처럼 밀고 제치고 합니까? 선생님이 가만 놔두면 선생님 발까지 가져다 자기 발 만들겠구만! 선생님이 이만하니까 넘어지지 않고 버티지, 그렇지 않으면 넘어졌을 겁니다. (웃음) 이렇게 몸으로는 선생님과 닿기를 바라면서도 고생하라고 하면 싫다고 합니다. 또 하지 말라는 것은 잘도 하니 망종들입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래요? 안 하려거든 살겠다고 꺼덕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여러분은 거기에 가서 폭파되어야 합니다. 폭파될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지요? 「예」 여러분들은 이제 그곳에서 폭파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러니 농촌으로 가 농부가 되는 것도 참 멋진 일입니다. 상록수라는 소설에 나오는 채영신이라는 여자 주인공, 그 여자의 무엇이 빛나는 것입니까? 사랑이 빛나는 것입니다. 천하의 어떤 여자들보다도 사랑에서는 앞선 여자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훌륭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는 선생님의 훌륭하지 못한 점을 배웠다면 무엇입니까? 도망다니는 것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피난을 많이 다녔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도망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이 발판을 다 닦아 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도망다니지 말고 멋지게 맞상대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도망다니면서 게릴라 전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전면전을 해야 합니다. 게릴라전은 김일성도 했지요? 여러분은 뭐예요? 「통일도당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들과 맞붙어서 전면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결사적인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투쟁을 30대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20년 연장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은 한의 세월이었습니다. 탄식의 역사요, 슬픔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벗겨 버리지 않고는 앞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이 살 길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선생님은 이것을 벗기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를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동안 나라없는 국민으로서 세계로부터 유린당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디에 가 있다가도 어려울 때는 달려와서 여러분과 같이 직접 어려움을 겪으며 여러분들이 책임을 했다는 조건을 세워 주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천만을 위하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을 나와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천운이 태풍같이 몰아치는 행로의 첨단에 설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동원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동원되겠습니다」 저기 방자 「방자역을 했던 학생」, 동원될 거예요, 안 될 거예요? 「동원되겠습니다」 방자라면 하늘의 방자 노릇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하늘의 방자 노릇을 하려면 그만한 역사를 꾸며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그럼 하늘의 도령은 누구겠습니가? 오시는 주님입니다. (웃음)
방자를 하려면 오시는 주님의 방자는 해야지요.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 권한을 아무렇게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서 `하나님, 아무 날 아무 시부터 저 혼자 7년노정을 출발하겠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오냐'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공적인 7년노정의 고난에 참석할 수 없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7년노정에 참가하지 못하면 복귀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귀중한 공생애노정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여러분에게 부여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오늘날 지상에 이 7년노정이 있다는 것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 기간은 재창조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 7일 기간에 창조 완성을 못한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7년은 누구나 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21년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래 여자들 7년노정 가겠습니까? 7년노정 다 끝마치지 않으면 축복 안 해줄 겁니다. 그래도 가겠어요? 「예」 남자들은? 「가겠습니다」
대학생들은 어려운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특히 머리 좋은 학생들을 제일 어려운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머리 좋다고 으시댄 것을 탕감하려면 제일 어려운 곳으로 가야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일선에 있어야 하고 머리 둔한 사람들이 후방을 맡아야 됩니다. 이것이 성화 대학생총회라는 이름 밑에 여러분에게 하는 훈시의 제1조입니다. 훈시를 받은 기분 어때요? 「좋습니다」 만일에 선생님에게 이런 일이 있었으면 벌써 날아갔을 겁니다. 유도탄이 날 듯이 벌써 날아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것 하나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래서 7년 동안에 전부 다 결판을 지었지요? 「예」 이때는 7천년 역사를 다 바쳐서 청산지어야 합니다. 원래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1차 7년노정 동안에 청산지어야 합니다.
이제는 세계복귀 시대입니다. 제2차 7년 노정의 3년기간인 70년까지는 세계의 모든 정세를 봐도 완전히 하나로 귀일되는 때입니다. 세계 정세가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러면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꿈같은 복귀의 배경을 말했는데 현실에서 그 근거가 제시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배경들을 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그 장본인이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말 듣고 기분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그들은 아마도 죽는 것만큼 기분이 나쁠 것이고, 여러분은? 「기분이 좋습니다」 죽는 것만큼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기분만 풀어 주면 가지고 있는 것 전부 다 빼앗아와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원리적 견해에서 볼 때 지금은 옛날에 선생님이 고생하고 쫓김받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여자들이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남편과 부모 앞에서 천대받던, 그런 말할 수 없이 슬픈 역사를 박차고 이제는 당당히 국가를 중심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분들의 슬픔을 해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사장으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영화의 주연 배우와 같이 여러분들은 실제 세계의 주연배우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 주연배우란 역사의 최고의 첨단에서 행세하는 사람입니다. 그 주연배우가 가는 곳곳마다 하늘의 역사가 파동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러니 사나이라면 멋진 사나이답게 농촌에 가서 머슴살이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짐도 잘 지고, 밥도 잘 먹고, 맨발로도 잘 걸어 다니면 칭찬받는 것입니다. 이런 일도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왜정 때 머슴살이를 해봤습니다. 왜놈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많이 해봤어요. 그러나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멋진 머슴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는 없으니 이 길을 기쁜 마음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동지들도 많습니다. 이북에 가서 그곳을 교란시킬 패들도 있습니다. 나라하고 합동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멋진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세대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까? 족보도 없고, 혈족도 없고, 근거도 없고, 내용도 없이 나타난 것이 여러분 세대입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머슴살이하다가 떠날 때는,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눈물이 쑥 빠지게 해 놓고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면 여러분은 수수께끼의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해 놓은 일은 무언의 교육으로서 남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러한 일을 해봐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걸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과 이념을 전통으로 하늘땅을 대신해서 여러분들에게 인계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길을 거쳐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손을 자르라면 손을 자를 수 있습니까? 「예」 발을 자르라면 발도 자를 수 있습니까? 「예」 그렇다면 잘라 버리십시오! 사지는 가인입니다. 그리하여 몸뚱이만 남아 빙빙 돌더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눈과 입과 코만 있더라도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배짱을 가지고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몇명입니까? 「96명입니다」 96명? 100명이 넘지 못하고 기분 나쁘게 96명이예요? 하나님이 사위기대를 채워 주니 100명이지요? 여러분은 정면으로 진군하라 이겁니다. 위기일 때는 정면 충돌을 하라는 겁니다. 살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간첩이나 첩보원들도 발각되었다고 해서 도망치면 죽는 겁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정면으로 사령관 앞에 나타나서 `이놈!' 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으니 그만합시다. 선생님도 지금 배가 고파 허기증이 느껴지는데 말씀 그만할까요, 더 할까요? 선생님은 독재자가 아니니 의논해 가면서 합시다. 말씀이 밥보다 더 맛있어요? 「예」 여러분은 밥 귀신이예요, 말씀 귀신이예요? 「말씀 귀신입니다」 밥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요? 「예」 그러나 말씀은 언제나 먹을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럼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것 먹을까요, 먹을 수 없는 것 먹을까요? 「언제나 먹을 수 없는 것요」 이럴 때 밥 타령하는 녀석들은 사탄입니다. (웃음)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책임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알지요? 시집 장가 가 보지도 않은 처녀 총각들에게는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암만 사랑을 안다고 해도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어 문을 열어야 진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알아봐야 복잡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아요, 안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아요? 솔직해야 돼요. 이것은 안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이때를 넘어가지요. 정 알고 싶거든 선생님이 했던 모든 길을 다 거치고 와서 `선생님, 이만 하면 알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라와 세계를 대표해서 장가가겠습니다' 하면서 목을 붙들고 죽어도 후퇴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가르쳐 주기가 곤란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가다가 꺾어지는 날에는 예수님이 거꾸로 달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선생님 대신 간다는 말 들어 봤어요? 예수님의 형님이 될 자격이 없으면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보다 낫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옛날에는 칠십 이상이 돼 가지고 박사학위를 따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삼십대에서 박사학위를 많이 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미 해 놓은 밥을 떠먹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직접 농사지어 밥을 해 먹는것 하고, 해 놓은 밥을 먹기만 하는 것 하고 어떤 것이 더 쉽겠습니까? 요즈음 박사학위를 따는 사람들은 해 놓은 밥을 퍼먹기만 하니까 이십대, 삼십대에 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2천년 전의 예수님보다 2천년 후의 우리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을 예수님보다 낫게 만들기 위해 가르쳐 준 것이 원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락원리를 알았겠습니까? 설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면 뭘 합니까?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원리를 알았다면 가만히 앉아 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찾아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버님 접니다' 하고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처음에는 놀라다가 표정을 달리하며 시인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예수라면 충분히 아버지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를 찾지 못했으니 선생님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선생님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여러분이 모실 만한 선생님이 됩니까? 돼요? 「예」
그러면, 그때 당시의 예수님하고 오늘날 이 시대의 선생님하고 누가 더 낫습니까? 말을 해도 내가 더 잘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한 것이 많습니다. 심문하면 걸릴 내용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가끔 딴 말은 하지만 엉뚱한 말은 안 합니다. 어떠한 말을 했다면 반드시 그 말에 대한 원인을 다 설명합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빨리 하더라도 걸려 넘어질 말은 안 합니다. 또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못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봤을 때,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낫다면 예수님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선생님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또 예수님의 제자와 선생님의 제자인 여러분들 중 누구를 더 사랑하겠습니까? (웃음)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껄렁껄렁한 패하고 통일교회 진짜패하고 어느 쪽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진짜패를 더 사랑합니다」 또 사도 바울보다 여러분이 나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부터가 다릅니다. 통일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합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대번에 대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전에 신학박사들이 모여 초교파운동을 하는 데에서, `하나님의 뜻이 뭣이요?' 하고 물었더니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웃음) 질문을 했는데 쉽고도 어렵다니, 세상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우리가 그들보다 앞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이 세상 도서에 적혀 있어요? 그런 책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러니 도서관 중의 도서관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기가 황금과 다이아몬드보다 가치있는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꺼덕꺼덕하고 있으니 영계에서 조상들이 그걸 보고 그냥 놓아 두고 싶겠어요?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뜻을 위해 희생을 하겠다구요?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됩니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은 시대를 분석할 줄 압니다. 시대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망하고 흥하는 길을 가릴 줄 압니다. 즉, 천운의 법도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역사 중 제일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 어디냐?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를 들고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현시대를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일을 하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사람 이하의 취급을 당하더라도, 양지에서 음지로 가게 되더라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에 벅찬 싸움을 오늘날까지 전개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원리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이 싸우게 되면 어디서부터 싸울 것인가? 자기 집에서부터 싸워야 합니다. 성경에도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가정을 먼저 복귀해야 합니다. 지금은 가정복귀 시대입니다. 선생님은 아직 가정복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낫습니다. 선생님은 전인류의 탕감복귀 해원성사를 하기 전에는 가정복귀를 못합니다. 그때까지는 집을 떠나서 벌판에서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 싸움은 자기의 친척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자기의 혈족을 사랑하고, 내세우고, 품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제일 가까운 사람을 원수의 자리에 내세워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일 가까운 사람을 죽음의 자리에 내모는 것이 구원섭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집안 식구가 전부 원수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형님은 기도를 통해서 한국이 해방될 것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이 났지만 기도해 가지고 고쳤습니다. 그런 신령한 능력이 있는 형님입니다. 그 형님은 자신의 동생이 잘났는지 못났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역사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인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 그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절대적으로 복종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인복귀는 완성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역사에 이러한 근거를 남긴 형님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형님한테 원리말씀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문씨 종족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 형님, 동생, 사돈의 팔촌까지 문제까지 문제없이 복귀하는 것입니다. 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두들겨 패는 겁니다. 내가 덩치가 이만하니 들고 패서라도 끌고 나오지 그냥 놓아 두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형제를 낳기는 열 셋을 낳았는데 팔 남매가 남았습니다. 아들은 둘뿐이고, 누이가 여섯인데 그 중에서도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정성들인 손수건 한 장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위하여 정성들이는 이상 세상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의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머니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야 되고, 처자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화살을 들고 나온 원수는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그 원수의 아들딸들은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천사장은 사랑하지 못해도 천사장의 후손을 사랑하여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탄에게 속해 있는 아들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목사, 장로들의 아들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 시대에는 집안 식구들이 원수가 아닙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기대를 조성해야 하는 탕감원칙에 의해서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를 전도할 수 있는 때입니다. 옛날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환영하는 때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전부 이야기해야 되겠는데 점심 때가 됐습니다. 계속할까요? 선생님은 배고파도 괜찮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괜찮습니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또 선생님과 만날지 모릅니다. 그렇지요? 「예」 선생님이 얼마만큼의 윤곽이라도 잡아 주게 되면 여러분이 나가서 싸우다가 도중에 죽더라도 멋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함께 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함께 산것은 천사장과 해와가 또다시 합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천사장이 사탄편에 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사장이 예수의 편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만 했는데 마리아의 배가 불러 오니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남자들 생각해 봐요. 자기는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여자가 배가 불러 온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도 `오, 사랑하는 그대여, 어서 오소서' 그럴 수 있겠어요? 솔직히 말해 봐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애인, 없으면 죽겠다고 했던 그 애인이 난데 없이 애기를 뱄는데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좋다는 사람은 미친 녀석입니다. 그렇잖아요? 약혼자 마리아가 어떻게 요술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애를 배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요셉은 마리아를 때려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고민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못한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보통 남자는 못하는 일입니다.
요셉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늘의 왕자가 태어나길 그리워하고 바랐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하늘의 뜻이 우리 가정내에서, 내 대(代)에서, 측근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요셉에게는 그런 것을 위해 언제나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낳아 놓고 같이 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천사한테 이야기는 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꿈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 들어올 때 몽시로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눈 시퍼렇게 뜬 대낮에 천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꿈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꿈이야 맞는 꿈도 있고 개꿈도 있는데 그 꿈이 반드시 하늘이 가르쳐 준 꿈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요셉의 생각이 슬슬 바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아기 배면 무슨 증세가 생기나? 구역질을 하지요? 마리아가 헛구역질을 하고 밥도 못 먹을 때 요셉의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남자들, 잘 생각해 보라구요. 어서 더 맛있게 먹으라고 했겠어요? 그럴 적마다 자기가 이때까지 살아온 세상적인 관념이 앞서고, 습관이 앞서고, 전통이 앞서 굉장히 언짢았을 것입니다. 그런 표정을 마리아가 보면 그녀 또한 편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수록 마리아와 요셉 사이는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마리아는 숨을 죽이고 요셉의 눈치만 살피는데, 언짢아하는 요셉을 보니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요셉은 그 아이가 대관절 누구의 아이인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여러분들에게 약혼한 여자가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아이를 배고 있다면 상대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겠어요? 알아야 사생결단을 할 게 아니예요? 여러분은 여자에게 상대가 누구냐고 물어 보겠습니까, 안 물어 보겠습니까? 안 물어 볼 수 있다는 남자 손 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구만. (웃음) 이것이 남자의 속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셉도 물어 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대답을 강요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반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도 알고 싶은 것이 없겠어요? 그러니 알고 싶은 것은 알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다그치며 물어 봤을 것입니다. 몇 번이고 마리아가 대답할 때까지 물어 봤을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답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대답했다가는 세계가 뒤집히는 것이니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요셉이 물어 올 때마다 대답할 수 있는 하나님이 가르쳐 준 비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신으로 잉태했다는 것입니다. 그 대답 잘했어요, 못 했어요? 「잘했습니다」
성신이 무엇입니까? 성신으로 사람이 잉태되는 법이 있습니까? 성신으로 잉태했다는 말을 요셉이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없지요. 그러니 싸움이 잦았을 것입니다. 이 말이 맞나 틀리나 생각해 보세요. 배는 점점 불러와 몸은 무거워지는데 요셉이 목수일을 하기 때문에 밥은 일찍해야지요? 그러니 요셉에게 마리아가 얼마나 몰라준다고 몸서리를 쳤겠습니까? 또 요셉은 요셉대로 마리아한테 못마땅한 점이 많았으니 서로 말다툼을 자주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몸이 무거워짐에 따라서 행동도 무거워지고 기분도 좋지 않은 날들을 지냈을 것이며 그럴수록 뜻은 멀고 인간적인 사정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여러분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40일 전도는 나가라고 하는데, 학교 시험은 내일 모레이고 하는 사연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마리아의 근심은 커졌을 것인데 그때 요셉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때 이스라엘에서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때려 죽이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법으로부터 내가 너를 옹호하지 않았으면 너는 돌에 맞아 죽어 벌써 무덤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어늘, 지금 나로 인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네가 네 부모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보호자 되어 있는 나를 배반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요셉은 누구 애냐고 물어보고 마리아는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대답했던 일이 한두 번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그러한 사실이 소문이 났을 텐데 요셉의 부모가 있었다면 그 눈치를 못 챘을까요? 또 친척들은 어땠겠어요? 아마도 모여서 수군수군했을 것입니다. 여자들, 그랬겠지요? `우리 요셉 가문에 저런 요물이 들어와서 임신을 했으니 망하게 됐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연 가운데서 하늘의 새로운 역사는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몰랐습니다.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갈 때에는 이미 만삭이 되어 있을 때이니 갑자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관 방 하나 준비를 못했겠습니까? 먼 길을 가면서 어떻게 포대기 하나 준비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마리아의 처지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이 아기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아는 마리아로서는 그 아기를 위해 준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이번 기간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하나님만 믿고 무사히 다녀오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국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낳아 젖을 먹이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는 요셉은 갈수록 주위에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의 친척들이 요셉에게 이 아이가 네 아들이냐고 물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때, 당당히 요셉은 `내 아들이다'라고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을 것입니다. 또 그런 소문은 집집마다 퍼졌을 것이니 아기 예수를 볼 때 집안에는 분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서글프게 태어나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젖을 먹는 시간에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만약 마리아가 젖이라도 안 나왔더라면 어떠했겠습니까? 지금은 우유라도 먹이면 되지만 그때는 미음 같은 것이라도 해 먹여야 할 텐데, 그러면 요셉이 좋아하겠습니까? `피땀 흘려서 벌면 뭘 해! 의붓자식이나 먹이는데' 하며 나중에는 뜻이고 뭣이고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요셉이 나타났다는 말, 성경에 있습니까? 있는지 없는 찾아 보라구요. 또 광야에 나갈 때도 부모 형제들이 찾아갔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아버지란 말이 나오던가요? 태어날 때부터 외롭게 태어난 예수는 처량게 컸다는 것입니다.
어린 예수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요셉에게 아빠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요셉이 좋아했겠습니까? 아마도 가슴이 섬뜩 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요셉의 눈에는 사랑과 정 대신 질투와 분노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하지요? 「예」 그러니 예수는 요셉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면서 어머니 무릎에 앉으려고만 해도 요셉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가슴을 헤치고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어머니가 먹여 주는 밥도 제대로 받아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요셉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가까이에 갈 수도, 아버지의 무릎에 가 앉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흘 만에 다시 찾는 대목이 있습니다(눅 2:4∼46). 요셉이나 마리아가 예수가 떨어진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루가 지난 다음에 예수를 찾으려 했겠습니까? 그 배후에는 예수 때문에 불쾌한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데리고 갔다가 떼어놓고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또 떼어놓고 왔다 하더라도 그 하루 동안 예수 생각을 안 했겠어요? 예루살렘에 갈 때는 졸졸 뒤따라 갔는데, 올 때 예수가 없어진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마리아는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요셉 때문에 예수를 찾아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면서도 요셉이 가자고 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가자고 부탁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고충을 안고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도 길을 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이대로 집에 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소문이 나 있는데 영락없이 이상한 소문과 함께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이러한 생각이 드니 안 되겠기에 다시 예수를 데리러 갔던 것입니다.
성전에 있던 예수가 그들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 것입니까?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는 거기에 남아서 다른 부모들이 자식을 품고 왔다가 품고 돌아가고, 손에 손을 잡고 다녀가는 모습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모는 과거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렇게 나를 고아처럼 버리고 가는구나' 하며 부모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흘을 지낸 뒤 요셉과 마리아가 와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했을 때 예수는 어땠겠습니까? 성경에는 좋게 예수가 지식이 많아서 제사장, 서기관들과 성경토론을 했다고 써 놓았지만 예수가 좋아서 그거 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불쌍한 예수의 모습인 것입니다. 부모가 책임 못한 것입니다. 하룻길을 갔다가 돌아와서야 예수를 찾을 정도였으니 예수가 후에 홀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그때 반박의 표현을 했습니다. `내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말 처음 듣지요? 그거 근사한 말입니다. 책임 못한 부모에 대한 반박의 성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예수는 길을 떠나 갈릴리의 가나 잔치 집에서도 마리아를 모른 체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길을 떠난 것은 마리아와 요셉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잘 받들었더라면 예수님에게 공생애노정을 필요없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에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선전하고 전도해서 타락한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졌습니까? 가정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어 나가면 가만히 있어도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예수가 길을 떠나 3년 공생애노정을 걸어야 했던 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탄생하는 날부터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을 받쳐 들고 귀히 모셔야 했습니다. 하늘의 왕자인데 그렇게 모셔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또 예수님에게 경배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로서 그들과 관계를 맺어 하늘의 법도에 의해 한 가정에서부터 천국을 이루어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붙들고 그와 하늘이 섭리에 따라 맺어야 할 관계를 눈물을 흘리며 호소해서라도 맺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환경에서 예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는 그렇게 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동으로 옮겨줄 만한 대상이 없었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못하고 어머니가 못했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누가 지원해 주겠습니까? 사랑의 울타리, 심정의 울타리가 다 넘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래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은 공생애 3년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게 된 동기도 요셉과 마리아에게 있는 것인데, 지금 천주교회에서는 이런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라고 해 가지고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전도할 때, 제자들이 `선생님이여, 모친과 동생들이 선생님이 찾나이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모친과 내 동생이 어디 있느냐.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아버지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때 예수님의 마음에는 `나를 이렇게 망쳐 놓고 이제 와서 왜 찾아 다니느냐'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이런 사연과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심각한 장면에 처해 있을 때, 요셉이 나타난 기록이 있습니까? 마리아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몰랐습니다. 따르던 여인들만이 눈물을 흘리자 `여인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너희와 너희 자식들을 위하여 울라'고 했습니다. 이때에도 요셉에 대한 말이 있습니까? 요셉은 쑥 들어갔지요? 그것은 요셉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야곱의 후손으로서 요셉이 하늘의 뜻을 받드는 수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요셉은 천사장의 입장이므로 하늘 뜻을 받들어 천법을 세우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천사장의 입장이 요셉은 예수를 복중에서부터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사탄의 씨가 복중에 심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선자가 하나님의 아들을 복중에서부터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부모를 갖지 못했고, 형제를 갖지 못했고, 자기의 상대를 갖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 형제와 친척들은 4천년 역사의 결과인 요셉 가정을 중심으로 12사도, 70문도, 120문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전부 예수님의 기대를 저버려 배신한 입장에 서 버렸으므로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닦아온 역사의 기반을 다시 닦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반을 닦는 과정에서 몰리고 쫓기다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위해 닦아 놓은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는 영적으로만 남아지게 되었고, 실체적인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세계적으로 배척받고 핍박받고 천대받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은 이제 재봉춘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가정적 국가적으로 몰렸던 때와 같기 때문에 이 환경에서, 즉 아랍권내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입장에서 싸워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었던 기반이 있었지만 이제는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합니다. 이런 운명에 처해 있는 현재의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서도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아랍권을 제압하고 나가는 것은 하늘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한국과 하나되어 나가게 되면 문제없이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차대전 때에 히틀러가 이스라엘 사람 6백만명을 살육하는 피의 제단을 꾸밈으로써 그들은 예수님 당시의 책임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고 비로소 새로운 역사의 해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이 땅 위에 오지 않으면 해원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성립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다 알겠지만, 역사가 이렇게 기독교를 중심삼고 엮여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역사는 어디에서 열매맺을 것이냐? 한국에서 열매맺을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은 한국의 누구를 중심삼고 해야 하느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탕감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내용을 모르면 탕감할 수 없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또 12사도의 사정을 전부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의사가 병을 모르고 수술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을 파헤쳐 가지고 오늘날의 새로운 지식과 원리원칙에 의해 확실하게 체계를 갖추어 탕감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는 무슨 망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천적인 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탄세계와 싸워서 결정한 것들입니다. 영계에서는 통일교회가 최고의 자리에 서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결정한 것입니다.
영계는 천사세계와 맞먹습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은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는 아담 해와를 짓기 전에 지었고, 재림주님은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그전에 있던 영계는 천사 세계와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가 생겼기 때문에 영계가 하나님의 뜻을 환영해야만 그 세계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또 영계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지상세계에 주님이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영계를 굴복시켜 나온 것이니 영계는 통일교회를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영통인들에게 물어 보면 대번에 증거할 것입니다. 그런거 알아봤어요? 알아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건 사건중에도 세계적인 사건, 아니 천주적인 사건입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그런 것을 상식적으로 듣고 보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다 거짓말입니다.
타락은 여자들이 영적으로 먼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역사를 보면 그것은 대개 여자들을 통해 영적인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천사장과 함께 했으므로 이걸 복귀하려면 영적으로 예수가 와야 합니다. 결국 영적으로 타락했으니 복귀도 영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선생님이 영적으로 반지를 끼워 주어 결혼식을 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코스를 가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요.
해와가 먼저 영적으로 타락한 후 아담을 중심으로 육적인 관계를 맺어 자녀를 번식했으므로 현재의 여러분은 여러분까지 직접 부부관계를 맺어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코스를 거쳐 나가야 하느냐? 그것이 전부 원리에 있습니다. 원리에 나와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원리를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타락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저지른 잘못된 사랑입니다. 그러면 완성기 완성급의 사랑은 얼마나 강하냐?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지금까지 같이 살던 세상의 남편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강력한 영력을 느낍니다.
이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은 선생님을 세상의 그 어떤 여자보다도 사모해야 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세번 이상 대성통곡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남자들이 선생님이 하고 보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차표를 사러 가는 일이 벌어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자들, 그런가? 「그렇습니다」 뭐가 그래.
타락은 잘못된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의 말은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전부 다 풀리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세계인 이 사탄세계와도 싸워서 승리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가 싸워야 되겠습니까? 사탄이 생겨난 것은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부모가 싸워야 됩니다. 부모가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키고, 그 다음 사탄의 자식들은 여러분이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1960년부터 1967년까지의 제1차 7년노정에서는 부모가 세계적인 기준에서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여러분이 횡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2차 7년노정은 장성시대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둘째를 중심삼고 판가리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2차 7년노정에는 한국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2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74년도까지는 한국이 통일교회 뜻을 협조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지 않고 뜻을 가로막고, 이 원칙에 부합하지 않게 될 때는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터전을 중심삼고, 우리는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이 끝날 때는 국가 기준을 넘어서야 하고 3차 7년노정을 넘어설 때는 세계 기준을 넘어서야 됩니다.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때는 1980년대입니다. 70년대라는 1970년부터 1979년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니 1981년에 끝나도 역사에는 80년대로 남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세계적인 기준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런 것이 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느냐? 선생님이 원리의 궤도를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횡적으로 지나간 역사를 재현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년을 중심삼고 이것이 세계적인 운세로써 넘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지금 시대는 여러분의 시대, 즉 아들 시대입니다. 그 다음 3차 때는 손자시대입니다. 그렇지요? 아담은 할아버지고, 예수는 아버지, 우리는 아들, 이렇게 3대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는 횡적 역사를 중심삼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 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은 아담형이고 여러분은 예수형입니다. 여기에 3단계가 서기 위해서는 손자시대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7년노정을 중심한 21년 동안 그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책임을 다한다면 80년대를 넘어설 때까지의 세계 정세는 섭리에 맞게 되어갈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보면 사회도 원리에 맞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선생님하고 여러분이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나서 여기 이렇게 온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보면 전부 못났습니다. 어제 운동하는 것을 가만히 봤더니 다들 키도 작고 얼굴도 못났습니다. 잘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 자신들은 잘났다고 생각하겠지요? 하기야, 너무 잘나면 제물로 바칠 때에 아쉬움이 있으니 안 됩니다. 아예 미련없이 바칠려면 못생긴 것이 더 좋아요. 그래서 `이녀석들, 제물삼기어 안성마춤이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70년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먼저 내적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외적 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내적인 일을 하고 있고 정부에서 경제복귀를 하고 있는 이것은 참 잘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이 한국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정부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통일교회가 필요하니 우리를 반대는 안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인 아벨이 박자를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런 일을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은 역사를 죽 얘기해 줘야 할 텐데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그만 하겠습니다. 이 다음에 여러분이 일을 잘하면 해주고 못하면 안 해줄 겁니다. 알겠어요? 「예」 언제 한번 모이게 해 가지고 이 이야기를 해주면 이 뜻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그것은 원리책에도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가끔 선생님이 일편씩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을 여러분이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임명받은 지구장들은 작년 지구장들보다 떨어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전도도, 경제복귀도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진격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이구, 이것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라구' 하며 불평하면 안 됩니다.
일을 하는 데는 돈을 중심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희망은 저버리고 돈이 없어서 일 못하겠다 하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가 투자한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안 해주면 여러분에게는 발전이 없고 오히려 침체만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하나님의 비밀을 중심삼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실생활에서 이루어져 나가는 여러 가지 사실을 맨 밑에서부터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사실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인간의 타락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것이 인류역사에서 제일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을 복귀해야 할 예수님이 때에도 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예수의 역사는 비운의 역사입니다. 둘째번은 예수의 가정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아담의 실수와 예수님 때의 실패의 전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단계에 왔습니다. 민족 앞에 쫓김을 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없애지 못합니다. 벌써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데 없앨 수 있습니까? 그렇지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축복받은 기반 위에서 사위기대를 이루어 자녀들이 번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은 이루어집니다.
이제는 다 끝난 싸움을 처리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빨리 그것을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싸움은 다 끝났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슬픔의 역사가 기쁨의 역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미 영계에서는 다 이루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의 2차년도인 금년 9월이 제일 지독한 고비였습니다. 2차년도는 예수님적 해인데 선생님 아들을 중심삼고 보면 희진이가 해당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자 희진이가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원래는 희진이가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에는 전면적인 동원을 해야 하는데, 식구들이 동원을 안 하니 선생님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자신이라도 가야 되겠다고 해서 허락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지도해 나왔습니다. 그 대신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넘어섰기 때문에 사탄은 아들딸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가정에 있어서 희진이가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기간에 심각하게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는 30대에 있어서 영적 구원의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희진이의 희생으로 청소년권내의 아이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는 영적 구원의 기반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중심삼고 재림부활 할 수 있는 평면적인 혜택권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공적인 입장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희진이는 제물로 깨끗이 바쳐진 것입니다.
희진이는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외적인 세계에서 태어나 외적인 세계로 깨끗이 갔습니다. 예수가 외국에 갔다 왔지요? 「예」 그러니 희진이도 외국에 갔다 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이런 역사를 엮어 가지고 복귀의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한 고충과 슬픔과 비운의 역사가 들어 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선생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되어 공동적인 운명으로서 한 구덩이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결의를 하고 틀림없이 나는 여기에서 살고, 여기에서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 데 세밀한 이야기를 해줄 것입니다.
어떤 영통인들은 희진이의 죽음을 두고 제2 조상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잘못하여 통일교회에 있어서 제2조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10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통일교회에 부활의 역사와 같은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부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가 전개될 것입니다. 또 10월 4일 오늘은 선생님의 출옥 기념일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온 날입니다. 그리고 열흘만 지나면 선생님이 21년 고개를 넘게 됩니다. 흥남 감옥 출감일을 중심삼고 21년 고개를 넘게 됩니다. 이런 것도 영통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10월 14일은 외적인 고개를 넘어가는 날이라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기나 합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이런 시대와 이런 시점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일치단결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역사는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알고 싶어요? 「예」 이런 역사를 알고 가야 선생님 앞에 얼굴을 들고 나설 수 있습니다.
이걸 알려면 싸우고 와야 됩니다. 싸우러 갈 사람 손들어 봐요. 잘 싸워야 합니다. 싸우는 데는 왕자의 권위를 가지고 싸워야 됩니다. 졸장부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복지를 향하여 갈 때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싸우고 선생님 대신 싸워 이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하늘의 대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차 7년노정 출발 첫해의 표어가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로서 어머니를 찾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 2차년도 표어는 `아버님의 대신자가 되자'입니다. 비로소 어머니를 찾았기 때문에 복귀된 천국을 향해 아버지 대신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일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번째는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입니다.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들딸입니다. 지금은 성진군과 희진군이 자라는 때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복귀노정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표어는 여러분의 표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7년노정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생애 최고의 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남성으로 잃어버린 여성을 찾는 최고의 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고 보여주고 자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완전히 복귀하였으니, 승리권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때려 부숴야 합니다.
1960년에 선생님이 `이번 7년노정이 지나면 내가 필요로 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완전한 기반이 닦아질 것이다'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 보면 그때 말한 대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1974년까지의 2차 7년노정에는 대한민국의 복귀와 천국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 복귀는 영육을 중심삼아서 해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적으로는 말씀을 중심삼고 영적으로, 세계적으로는 사상을 중심하고 육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가 하지 못하는 반공사상을 우리가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출애급할 때 그들을 인도해 주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중심삼고 밖으로는 세계 공산권을 굴복시키고 안으로는 가정의 법도를 세워 이것이 세계무대로 연결되어 나가게 되면 지상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듣고 보니 이제 섭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윤곽이 잡히지요? 「예」 그것을 위해 이번 기간에도 선생님이 주동이 되어 여러분을 이끌고 싸워 나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러분에게 돈이 있다면 여러분을 위하여 쓸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교회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도 나라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라가 터전이 되면 그 나라를 총동원해서 세계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나라를 세계의 인류는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한 많은 복귀의 고개들을 그렇게도 넘기 힘든 줄은 아무도 몰랐나이다. 그 길을 지금까지 아버지는 얼마나 왕래하셨습니까? 오실 때는 소망의 아들을 찾겠다는 희망을 갖고 오셨다가 돌아가실 때는 낙심 천만하여 가시는 당신의 모습, 그 무엇으로 형용하고 그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사오리까?
아버지, 저희는 당신이 이 불쌍한 한국 백성을 긍휼히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이제까지는 아무도 몰랐사오나 지금 저희들은 비참한 역사과정을 통해 눈물과 피의 역사를 엮어 나온 배달민족의 배후에 아버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역사를 회고하면서 이 민족의 비참한 역사는 아버지의 비참함을 상징한 것이요, 이 민족이 세계의 강국들에 싸여 침략을 받았던 것은 아버지의 외로운 처지와 닮았음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 그것을 통탄하시어 찾으시던 한 나라가 있사오매, 그것은 그 나라에 인연된 한분을 축복하시려는 것임을 저희들은 압니다. 저희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인연맺어진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돌격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 불행인 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들은 그것이 천만다행인 것을 알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은 해방 이후에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였사옵니다. 이 민족을 대표한 기독교가 책임을 하지 못하여, 이 민족은 아직까지도 UN에 가담하지 못한 이름없는 나라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이 나라의 고난을 끝나게 하여 주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자녀이기도 하고, 세상의 나라들이 이 나라에 대해 머리 숙일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엄숙한 하늘의 밀명을 받은 당신의 밀사들이기도 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는 50평생을 통하여 죽어도 이 민족을 버릴 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배척받는 길에서도,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자리에서도 도리어 아버님을 붙들고 위로하였사옵니다. 저에게 그럴 수 있는 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리옵니다.
만일 제가 아버지의 심정을 몰랐더라면 역사적으로 남겨지는 주체로 설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또 있어 온 역사의 슬픔은 지나갔을 망정, 그 가운데에 아버님과 더불어 인연되어진 심정만은 남아, 저의 재산이 되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조건이 됐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모두가 아버지가 저를 망치기 위한 간교한 계획이 아니었사옵고, 저를 위한 사랑의 후대(厚待)였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금후의 생애의 노정에서도 저의 평안을 꿈꾸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며 향락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안다는 그 자리에 서지 못했사오니, 천하를 거느려 아버지의 본연의 심정에 닿을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인연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아들로서 세계와 천주를 대표하여 대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용장으로서의 모습을 변치 않겠다고 저는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제가 위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저를 내세워 사랑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그런 당신의 마음 앞에 행여 반대되는 조건을 남길까 몸부림치는 저를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 날 그 책임을 이룰 것인가, 자나 깨나 오고 가나, 모든 생활, 모든 생각 일체가 당신을 위하는 일념만으로 채워지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앞에 공로의 실적이요 재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와 같이 거룩한 승리의 심정을 모두가 인계받아야 되겠습니다.
한의 역사를 엮는 데에 부채질하고, 아버님 앞에 슬픔의 장벽을 쌓는 데에 선동이 되던 자들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이오나, 여기 모인 젊은이들은 아버님의 서글픈 사정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쌓아 둔 담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넘어가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경계선이 되는 강이 있다 하더라도, 밧줄을 연결시켜서 다리를 놓고라도 건너야 할 운명이 남아 있음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엄숙히 분부하시는 하늘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이 부족함을 정리하여 아버지 앞에 바치려 해도 연한이 허락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부족한 자신이나마 당신 앞에 몽땅 바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꿈속에서도 노력하고, 죽음길도 마다 않고 몰입하는 그런 무리가 하늘 앞에 가깝게 서 있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역사가 그렇게 움직여 나왔사오니 여기 모인 젊은 청년남녀들은 이 현실에서 그럴 수 있는 젊은이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에 맺혔던 심각한 말씀을 이들 앞에 통고하기 위해 한 때에 서글펐고, 한 때에 억울했고, 한 때에 불행했고, 한 때에 고통스러웠던 분은 아버지였사옵고, 이 길을 개척한 아들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하오니 이 역사적인 일을 성숙시킬 수 있는 과제가 남아 있는 현실에 있어서, 엄숙히 자기 스스로를 넘어 이 업적을 찬양하며 인계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여기에 한 사람이라도 수를 더하게 하시어서, 당신이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팔도에서 몰려온 대학가의 젊은 당신의 자녀들이옵니다. 이들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이옵니까? 금후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대학가가 혼란 상태에 있사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돌격전을 제시하여 승리의 팻말을 꽂아야 할 시대이오니, 이러한 시대에 저희들은 사명을 해야 할 아버님의 밀명을 받은 자로서 책임 다할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올 때는 한갓 흘러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뜻 없는 걸음으로 왔지만 이제 돌아가는 가슴에는 그 누구도 옮길 수 없는 짐을 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슬픔의 검은 구름을 안고 가야겠습니다.
민족의 한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제물로 피의 제단을 거치지 않고는 통합의 인연을 맺기가 어렵다는 것을 저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또 저희들은 오늘날 저희 시대에 그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배웠습니다. 하오니 시시각각으로 그 사명이 촉구되는 이 시대에 여기 모인 젊은이들이 그들의 피와 살을 이 민족 앞에, 이 나라 방방곡곡에 닻으로써 내려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아버지께 순응하며 봉화를 들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용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의 형제들은 저희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책임 못하면, 그들이 대신 책임지겠다고 아우성칠 것이나 그들에게 어려운 십자가의 바톤을 갖추어 아버지께서 기뻐할 수 있는 제단의 터전을 넓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후 그들이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이고 감사의 눈물로 경배 찬양할 수 있도록 당신의 젊은이들의 가슴 가슴에 그런 심정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있어서 넘지 않으면 안 될, 이것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고, 이 책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먹을 불끈 쥐고 새로운 광명을 아침을 건설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불쌍한 이 민족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배움의 환경에서도 그 책임을 하겠다고 온갖 정성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일의 소망 앞에 졸장부가 되지 말게 하시고,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세계 앞에 승리를 남기고, 또 승리를 인계해 주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결심한 마음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반석에 부딪치면 반석이 깨지고, 철강에 부딪치면 철강이 끊어질 수 있는 마음으로 전생애를 아버지 앞에 바치겠다고 맹세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 신념을 굳게 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내일의 천국에서 아버님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고, 당신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이여, 승리의 제물이 되어 후대의 만민 앞에 남겨 줌과 동시에 역사적인 한을 기필코 풀어야 할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을 고이고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험한 행로에 있어서 당신을 배반하거나 당신을 보고서 돌아서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이들이 짊어진 짐이 너무 과중하여 지탱하고 싶으나 지탱할 수 없는 낙오자의 신세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처지와 입장에 비례하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는 길이기에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깊은 심정과 인연맺어, 하늘세계의 심정을 소화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69년 9월을 지내고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10월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걸어온 과정에 있어서 환희할 수 있는 이달이었사옵고, 새로운 여명을 받아 기쁨과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린 이달이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님, 저희의 모든 걸음걸이가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일체가 될 수 있는 이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성전에 모인 저희들이 비록 초초한 모습이더라도 당신의 마음을 모아 명령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깊은 심정에 파묻혔던 6천년 사연을 풀어 놓고 내가 이렇게 왔으니 이렇게 가야 되겠고, 내가 이렇게 가 가지고 원수를 굴복시켜 승리의 영광을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이 나의 운명이니, 내가 나를 위하여 이러한 운명길을 가달라고 명령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붙안고 인류역사의 모든 한을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의 뼈살에 사무친 인연을 두터이 맺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저희가 갖고 있는 것 전부는 아버님으로부터 인연맺은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창조의 인연을 통하여 지음받기는 했사오나 오늘날 저희가 존재하는 모든 환경이나 국가나 세계의 인연이라는 것은 아버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원수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느끼는 감정은 아버지의 인연을 통하여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그늘 아래에서 느껴지는 것이요, 원수가 기뻐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오늘도 이 싸움에서 주저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내일도 이 감정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워야 될 것을 저희들은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사옵니다.
나라를 굴복시키고 세계를 굴복시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초초하고 보잘것없는 저희 개체의 감정을 굴복시켜서 천국의 기원이 될 수있으며, 당신의 심정이 깃들 수 있으며, 원수의 모든 근원을 제거할 수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죽기 전에 넘어야 되겠습니다. 새해의 아침이 오기 전에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를 모셔 놓고 그 품에 안기어 목을 끌어안고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에 부끄럼없는 모습이 될 날이 그리워합니다. 당신의 나의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무런 간격도 없고 어떤 제삼자도 깨일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님의 일에와 통할 수 있으며 아버님의 근원과 심정이 연결되어 아버지로 말미암은 자신이요, 아버지를 위한 자신인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역사의 한을 너로 말미암아 잊었노라고, 역사의 인연을 너로 말미암아 맺겠노라고, 역사의 새로운 기원을 너로 말미암아 세우겠노라고 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를 중심삼고 소원성취의 한 날을 맞이하여 개체를 넘고 가정을 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나가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승리할 수 있는 영광스런 대열을 흠모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만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멀고 먼 이 아시아의 한국 땅을 바라보며 무한히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이 땅에 올 날을 소망하고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며 흠모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세계 각처에 널려 있사옵니다. 그들이 짊어진 십자가는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한 것이옵고, 그들이 가는 싸움터는 당신을 대신하여 가는 것이오니,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당신의 한 품에 안긴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한 집안식구의 인연을 벗어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거룩함을 알면 알수록 거룩한 반면에 그 배후에는 사연이 많고 슬픔의 무더기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것들을 눈물로 녹여야 되겠고 피땀으로 녹여야 되겠습니다. 눈물에 눈물을 흘리고 피에 피를 흘리면서 새로운 면에 도전하여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역사적인 처참한 사연이 있지만 그 눈물의 길과 피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남기신 눈물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혹은 지름길을 가고, 혹은 돌아가는 길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여, 당신을 향한 절개와 충절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의 절개와 충절을 남기는데 있어서 당신의 아들딸의 인연, 식구의 인연을 상실하지 말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수고하여 찾아오셨사오니 이들이 자녀의 명분을 갖추게끔 세워 주시고, 죽더라도 아버지의 위신을 실추시키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죽더라도 당신 체면과 권위를 떨어뜨리는 자들이 되기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국 식구들은 10월을 맞이하여 이곳 한국을 지극히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세계 40개 국에 택정해 준 각 성지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고 있사옵고, 금년에 또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세계 각처로부터 전해지는 소식을 들을 적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뜻이 어느 한 날 이 한국 땅에 퍼진다는 소식을 얼마나 듣고 싶어하시고, 당신의 아들들이 적진을 향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바라보실 날을 얼마나 마음으로 고대하고 소원하시는지를 생각하옵니다. 하오니, 아버지, 그들의 가는 길을 지키시옵고, 그들이 힘차고 강하고 담대해 나가 최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등대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고, 원수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아버지의 승리의 토성을 쌓아서 만고불변의 당신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당신의 자녀들이 처처에 모여서 당신께 경배하고 있사오니, 그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앞으로 인연되어질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 위에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정성들이고 있는 그들에게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선조들을 동원하시어 하늘을 향해 무한히 갈급하고 방황하고 있는 그들을 통일의 무리로서 하늘의 민족과 하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봉헌하는, 없어서는 안 될 제물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젊은이들이 사방 각지에서 개척하는 그 노정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선악의 분기점', (판서하심) 우리 인간이 이 선악의 분기점이라는 말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은 불쌍한 일입니다. 그런데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가야 할 길에 이 선악의 분기점에 있는데, 이 운명을 어떻게 해결짓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흘러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입니다. 더욱이나 종교라는 이름 앞에 신앙길을 허덕여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이 분기점의 한계선을 넘지 못하고 싸움을 연속하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보더라도 이와 같은 선악의 분기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이 분기의 한계점을 넘으면 가정이 넘어야 할 분기점이 있습니다. 가정이 이 분기점을 넘어섰다 하더라도 민족 국가가 또 그 기준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가 그 기준을 넘었다 하더라도 세계가 또 그 기준을 넘어가야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아도 하나님 앞에도 아니 넘어갈래야 아니 넘어갈 수 없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생겨난 분기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류가 넘어가야 할 이 분기점은 타락된 인류로서 넘어야 할 필연적인 한계점이라 할 때 하나님께서도 이 분기점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인연도 관계도 없는, 있어서는 안 될 분기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분기점을 어떻게 넘겠느냐?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즉 전지전능하시기에 문제가 아 되겠지만 그 분기점을 넘는 데있어서 홀로 넘을 수 없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요,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이 분기점에 가로막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타락의 보응으로 이런 분기점에 처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 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행복의 곳, 이상의 곳을 생각할 때, 선악의 분기점이란 한계선이 오늘날 인류역사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을 것이냐? 이것이 어떤 개인에 한하여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또 어떤 국가의 한계선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전세계 앞에서 사라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가 선악의 분기점에 있어서는 안 될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까지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앞에 분기점이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복귀의 사명을 앞에 놓고 바라보게 될 때, 오른편은 선을 추구하고 왼편은 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선이 나를 끌고 있고 뒤에서는 악이 나를 끌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려 하시고 아래에서는 사탄이 나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악이 역사의 절반 이상을 지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절반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타락 역사의 대부분은 악으로 출발하여 악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하루의 아침을 맞이하는 그 시간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우리 개체의 하루의 생활도, 선악의 투쟁 가운데서 내 한 몸을 어떻게 지탱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싸움으로 보내는것입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선에 속하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악에 속하여 지내 버리곤 하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악이 우리 자신에게 가까이 있고 오늘날 우리의 환경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내 자신이 악한 환경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내가 갈 방향을 향해 방해를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선의 권한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바울도 고민하였던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목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하며 자기 십자가를 중심삼고 탄식하면서 가는 길이 평탄치 않다는 것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바울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이와 같이 생활적인 무대에서 고통과 신음 가운데 곤고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고 또 극복하여야 할 한계선은 역사시대를 거쳐온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행로에 너무도 지루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있습니다.
그런 지루한 길은 역사시대에만 가로막혔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여러분이 존중시하는 자리, 혹은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인생행로에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눈을 뜨고서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 앞에 선보다는 악으로 남아져 전체분야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계선을 치울 수 있는 주체적인 권한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역사적인 고심사요, 시대적인 고심사요, 우리 현실생활 자체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고민거리인 것입니다.
이 고민의 한계선을 밟고 넘어서서 쌍수를 들고 환희하며 선을 찬양할 수있는 승리의 아침을 맞이하여 광명의 햇빛과 더불어 노래하고, 한 날의 기쁨을 찬양하다가 기쁜 모습으로 환희의 밤을 맞이하여 웃음과 더불어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자격자, 이렇게 하루의 생활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는 승리의 자격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길이라면 얼마든지 그길을 가겠지만, 비운의 역사의 총아로 태어난 우리들의 신세는 그렇지가 못하여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칼을 힘차게 빼서 이러한 원한의 환경에 있는 악을 베어 버려야 할 책임을 언제 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한계점을 앞에 놓고 있는 우리에게 촉구되는 문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느 때 힘을 가중하여 이 환경에서 악을 제거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환경에서 악을 제거하는 한때를 갖지 않고서는, 인생행로에서 비참한 운명을 엮고 있는 좌우의 사망선을 우리를 감돌아 우리는 이 비운의 한계선을 넘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지백체의 요구를 부정하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변치 않는 빛나는 모습, 희망에 벅찬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한 시간을 가졌다 할진대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하루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과정에서 악에게 실패하여 초래된 슬픔과 크고 넓고 많았던 그 모든 원한의 요소, 악의 요소들을 기쁠 수 있는 선의 요소로 몽땅 바꿔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바꿔치는 데 명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어느 한 날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있는 기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그만이요 오늘도 그만이라는 생활 관념을 오늘 이 순간에 종결시키지 못하게되면, 아무리 훌륭한 씨를 가져다 하더라도 그 씨는 선한 열매로 거두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결심을 할 때는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결심하였던 전체를 탕감복귀시키고 그것과 비례하여 부딪치고 무엇인가 남기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신앙행로에 있어서, 선악의 분기점을 넘어가야 할 우리의 생활에서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이 선을 추구하고 참이라는 것을 알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잊고 한 목적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내 생활 전체를 그것들로부터 치리받겠다는 마음이 생기거든, 그 순간은 비로소 선이 나와 관계맺을 수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순간이 벌어지게 되면 그것을 사수하고 개척하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결의하고 온갖 절개를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서러움을 마음속 깊이깊이 체휼하여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오늘날 이 환경을 가려 나가는 데있어서, 지루한 노정에 있어서 선의 기점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을 다음날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또 싸움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한번 관계맺은 선의 조건이 있으면 그 조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면, 그 첫마음! 첫마음! 첫마음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첫마음을 잃어버리고는 다시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무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흠모하면서 그 아들이 되겠다고 결의하고 다짐했다면 그때가 가장 귀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싸게 팔아먹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을 찾아 나오십니다. 열만한 참을 가지고 오셔서 약속하신 대로 열만한 참을 주셨으니, 열만한 참의 결과를 가져와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열만한 참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슬픈 걸음으로 돌아서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 한때가 있게 되면, 목숨을 버리고라도 사수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한때의 약속과 인연이 기필코 나를 찾아온 것이어늘, 그날을 맞기 위해 스스로 묵묵히 준비를 하여, 누구에게도 문의하지 않은채 자신을 중심삼고 본성의 터를 넓히고 그 한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인류의 행로 혹은 역사의 행로를 더듬어 보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승리에 승리를 추구하였지만 하늘땅이 승리라고 인정하고 우리의 본성이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승리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한 시간은 어느 때에 찾아오겠느냐? 어느 누가 어떤 싸움을 위해 준비하는 것보다도 더 간절히, 어떤 국가가 전쟁을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어떤 개인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고대하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그때를 기다리며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인연되는 것은 완전히 잡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자신의 소원이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 앞에 백퍼센트 접붙이고 그 일 앞에 백 퍼센트 굴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천번 만번 자기를 부정하더라도 그런 참된 기준, 참된 모습, 참된 것이 있거들랑 거기에 완전히 일치되어야 됩니다. 이런 생활태도가 오늘날 악의 한계선을 잎에 놓고 가는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느 한때를 가졌습니까? 없거들랑 여러분은 언젠가 그런 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내 마음 깊은 데서 하나님을 향해 폭발하는 사모의 심정, 흠모의 심정을 가눌 수 없어서 몸부림치는 한 날이 있걸랑 이 땅위의 어떠한 만복보다 더 귀한 복이 거기에 심어지고 인연되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한 날을 찾기 위해서 역사는 뒤넘이쳐 나왔고, 역사의 고빗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피를 흘려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한날이 오거든 천년사를 대신한 정성을 모아 그 선조들이 한스러운 역사의 분기점을 스스로 도맡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복받쳐 오르는 하늘을 향한 동경과 더불어, 자기의 뼛골에 숨어 있는 역사적인 죄의 뿌리를 전부 다 녹여 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눈물지을 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이요, 하늘나라, 즉 천국이 같이 하는 것이요, 하늘의 사람들이 같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인류의 가슴 가슴을 헤쳐 오면서 그런 자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개인을, 그런 가정을 찾아오시는 것이요, 그런 종족 민족 국가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말뿐이 아닌 사실로 삼천만 민족이면 그 삼천만 민족 전체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나라가 이 땅위에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국민 모두가 하늘을 사모하는 심정을 가지고, `이곳이 선의 본국이오니 선의 본체로 오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나라로 어서 오시옵소서'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기를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지상에서 그러한 한 나라를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노고가 얼마나 크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는 것이요,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것은 자연세계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참을 추구하는 본연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연의 실체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연의 마음과 비치되는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을 붙들고 인생이라는 행로를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성이 심어진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이지러지고 찌그러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천적인 인연을 따라 추구하고 살아야 할 인간 본연의 도리를 내 스스로 안다 할진대는 나는 본연의 자세와 인격을 갖춘 모습 앞에 모습을 나타낼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머리를 들고 행세하던 지난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간들, 또한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두고 볼 때,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인류를 바라보고 이것이 나의 부끄러움이라고 여기고 가리기에 스스로 고심하고, 그 흠을 대신 가려 주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세상에 소망이 있을 수있겠습니까?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역사 도상에서 그러한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인류는 벌거벗은 이상의 수치를 알지 못한 채 역사시대의 어떤 죄수보다 더 큰 최후의 심판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자기들의 수치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수치를 잊어버린 그 인류를 대신하여 인류의 수치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고 가려 주어야 할 한 분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되는데, 그분이 바로 인류의 어버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이 땅 위에서 무엇을 했느냐? 그는 인류의 가슴 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골수에 맺혀 있는 인류의 비참사를 추적하여 선의 근원을 발굴하고 악의 근원을 제거시키는 책임을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생각해 주고 아무리 감싸 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미쳐질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한계선을 세계적으로 헤쳐 놓지 않고서는 인간과 어버이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인연권내에서 살고 그런 인연권내에서 싸우다가 죽어간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살면서 이런 입장에 있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이 가운데에서 행복을 요구하고 이 가운데에서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있으니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얼마나 불쌍합니까? 선만을 생각하고 선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고 결정지어야 할 주체적인 입장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죄악세계를 일시에 폭파시키고 싶은 때가 몇번이나 있었겠습니까? 천만번도 넘었을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배반했고 가정은 가정대로 배반했고 민족은 민족대로 배반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오늘날 통일의 기치를 들고 나선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이런 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역사시대에 하나님을 생각한 어느 성인 현철보다도 더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신경 세포의 종합적인 감각, 인식 관념을 중심삼고 느낄 수 있는 감각 전체를 기울여 생활환경에서 언제 어느 때든지, 한 순간도 양보함 없이 하늘을 지극히 사랑하고 하늘만을 위하고, 하늘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살고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선에서 시작하여 선에서 살고 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버이의 입장에 서 가지고 자식을 향해 사랑의 자극을 느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만물을 지어 놓고 보기에 선하다고 하신 것을 보게 될 때,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는 장한 아들딸이라고 자랑하신 기원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준이 성립되지 않는 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질 수 있고 요구의 대상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인류를 찾아 나오시는 걸음보다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하게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모양이라도 갖추고, 형상적이로라도 하나님께서 찾아 나가시는 방향에 상대적인 형태를 갖춘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갓난 아기는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부모를 모릅니다. 하지만 석 달 정도 지나게 되면 반겨 주는 어머니의 얼굴을 대해서 미소를 지으며 호응하게 됩니다. 자기가 어머니인 줄로 모르고 어머니인 자기의 사랑도 모르지만 상대적인 입장에 호응해 주는 아기의 미소에 어머니는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기는 알지 못하지만 심정적 인연으로 연결된 줄을 통하여서 전체의 가치 이상의 사랑을 퍼붓는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했다 할 수 있는 체험의 기준을 가졌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했다 할 수 있는 체험의 기준을 못가졌습니다. 인연을 통하여서는 하나님 앞에 아들딸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인연 때문에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더라도 그런 관계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뼛골에 사무치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입장에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혀져 있는 이런 인간들이 그러한 하나님 앞에 상대적 모양이라도 갖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마음 가운데 잠겨져 있는 사랑을 몽땅 퍼부으실 것입니다.
더욱이나 여러분이 하늘을 알고 하늘길을 출발하게 될 때는, 어린아이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은혜와 사랑을 몽땅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제일이라고 느껴지게 해주십니다. `천상천하에 나만이 제일이야' 할 수 있도록 추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올리려고 하시는 것이냐?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나만이 제일이다'는 관념을 중심삼고 `너는 네 민족을 위해서 대표적으로 택했다. 세계에서도 너 하나밖에 없다'라고 권고하시며 그 자리까지 올려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퍼뜩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러한 약속을 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만에요. 그것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자 하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약속이 있으면 그 약속은 그냥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약속에 대비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전부 끌어다 선에 부합시켜 가지고, 그것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점령할 수 있는, 주관의 내용을 결정할 수있는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인연은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인연은 맺지 못하고 약속자체만을 추구하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로부터 잘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해서 그 표준을 중심삼고 행동하고 행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잘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사랑의 마음에 접근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정세계에 있어서 선악의 분기점을 중심삼고 타락이란 것을 원리적으로 볼 때, 소생 장성 완성 삼단계 중에서 3분의 2인 소생과 장성이 타락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3분의 1인 완성단계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소망의 기준으로 있느냐? 이것은 우리 인류역사과정에서 아직까지 체험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묻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본성 가운데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에 따라서는 마음의 맨 밑창에서 요동하고 있으며 사무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천상세계의 기준을 넘어서 하나님과 연락될 수 있는 심정세계를 맺기는 지극히 어려운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 가지고 이 세상에 무엇을 제시했느냐? 여러분에게 돈을 준 것도 아니요, 여러분에게 사회적인 성공을 갖다 준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본성 가운데 깃들어 있는 선의 요건, 즉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있는 선의 중심이 계발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다른 것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자기 부모 외에는 알지 못하던 사람이 부모 이상 가는 분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내간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알 도리가 없던 사람이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남편과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발견이요, 위한 체험입니다. 자기 자식 외에는 모르던 사람이 세계인을 자기 아들같이 생각하고 또 그러한 행동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또한 위대한 발견입니다. 이 위대한 발견이 오늘날의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한계선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랑의 인연은 타락 역사권내의 부부라든가 가정 사회 국가에서 그쳤습니다. 그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었지요? 부모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이 인류역사상에 맺어졌었다면 이런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의 인연은 맺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이 없었던 내용, 없었던 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자각된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생활관을 세울 때, 그것은 이 악한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한계선을 제시하는 기원이 될 것 아닙니까?
이 악한 세계를 청산지으려면 무슨 기원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은 돈의 기원도 아니요, 어떤 권세의 기원도 아니요, 세상의 어떤 영광의 기원도 아닙니다. 그 기원은 상대적으로 추구하는 외적인 기원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어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 것이냐? 그것이 왈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기쁜 것은 뭐냐? 좋은 것입니다. 좋으려면 마음대로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대로 되는 최고의 것이 뭐냐? 그것의 정상을 찾아가면 사랑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왜 지으셨느냐? 기쁘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기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제일 기쁘게 하는 것이냐? 그것은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고아에게 있어서 제일 큰 기쁨은 부모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열녀에게 있어서 제일 기쁜 일은 그 남편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제일 기쁜 것은 죽었던 자식이 회생하는 것입니다. 왜냐? 죽음을 극복해서 세워지는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장벽을 헤치고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사랑의 인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에게 있어서는 그 고아의 입장을 모면할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갖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고아가 되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부모가 필요한 입장에서 사랑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어떻게 하셨느냐? 천지 만물을 대하여 하나님께서 `여봐라 이렇게 이렇게 되어라'고 하시니까 만물들이 `예이!' 하며 방자가 출동하듯이 말씀대로 된 줄 아십니까? 그 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을 품을 수 있고 그것을 존재시킬 수 있는 모든 기원으로부터 목적까지 관계맺을 수 있는 심정적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영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생할 수 있는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자리가 어디냐? 사랑입니다. 사랑. 자기 혼자는 영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영생의 본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영생의 본거지가 되는 동시에 목적 성취의 본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천지 창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끝맺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영광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영광이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 부부 사이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 살던 처녀들 중에서 한처녀가 시집을 갔다가 처음으로 자기 친정에 찾아오면 동네 친구들이 대뜸 물어보는 것은 `너의 시어머니는 어떻든? 너의 시아버지는 어때? 무던하든?'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맨 처음에 물어보는 것은 `네남편이 예뻐하든? 사랑하든?' 하는 것입니다. 친구 집에 척 가게 될 때, 자기를 싫어하면 인심이 달라지고 좋아하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죽도록 좋아하면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하나님을 두고 죽기 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활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죽기보다더 좋으면 되는 것입니다. 죽기보다 더 좋은 약속을 하고서 출발했는데, 그것이 죽음보다 못하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해서라도 죽기보다 더 좋은 사랑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기보다 더 좋은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무엇이냐? 통일교회 사람들을 어찌하여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그 어떤 민족보다도 어떤 무리보다도 위대하다고 하는 것인가? 위대하다고 해서 몸집이 남보다 천배만큼 뚱뚱하거나 키가 만길만큼 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사람이라도 해도 깜박깜박하는 눈을 가졌고 하나의 코를 가졌고 두 개의 귀를 가졌습니다. 뭐 별것 없어요. 가짓수로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위대하냐? 그것은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느냐, 나라를 사랑하느냐, 세계를 사랑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성현은 뭐냐? 몇천년 전부터 목표로 한 세계적인 이상세계를 사랑한 사람이 성현입니다.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사랑이 하늘을 중심삼고 가지고 심어져서 땅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이 교훈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언제까지 남아질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한계점은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새로운 사랑의 심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내용을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기 때문에 이 사랑이 결실될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그 사랑의 목적은 만민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만민이 사랑으로 결실될 때까지 통일교회는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누구든지 믿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부모 아닌 부모를 모셔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지요? 「예」 그 부모는 바로 참부모입니다. 또한 세상 형제와 다른 형제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식구지요. 그리고 세상 가정과 다른 가정을 가져야 하고, 세상 민족과 다른 민족을 이루어야 하며, 세상 국가와 다른 국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과 전부 다릅니다.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은 언제 합할 것이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합할 수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두 나라는 점점 갈라져 나갑니다. 안 그러겠어요? 언제 세상과 합할 것이냐? 합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골수는 통일교회 원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뜻을 알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교회에 가고 싶어합니다. 잠자리에서도 교회가 그립고 밥을 먹으면서도 교회가 궁금합니다. 이러한 모두가 선악의 분기점이란 명사를 쓸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선악의 분기점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선악은 하나의 사랑에서 벌어진다고 원리에서 배웠지요? 선악의 분기점은 하나의 사랑에서 벌어지는데 여기서 사랑은 누구의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왼쪽은 악이요 오른쪽은 선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니 이 분기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슨 문제부터 해결지어야 하느냐? 심정문제입니다. 부모와 부부와 자녀의 사랑을 근원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위대한 거예요. 여기서부터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부모의 출현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개체의 출현이 이루어져 새로운 핏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결혼식은 세상과 다르지요? 다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결혼식을 하고 첫날밤에 신부가 신랑 노릇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렇게 하여 부모가 되면 하나님을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다 알지요?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요. 달라야지 같아서야 되겠어요? 같아서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사람 자체는 같지만 가는 방향이 다릅니다. 무슨 방향이 다른가? 사랑을 바라보고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가느냐? 대학교를 졸업한 대졸꾼들, 그들은 월급 많이 주는 회사나 은행에 취직하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거예요. 그래서 밥바가지의 터를 닦은 다음에 멋진 여자나 만나서 아들딸을 낳고 살면 되지 합니다. 그렇게 살면 뭐가 되겠어요? 세계 인류니 뭐니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말이야 그렇게들 하지만 지갑에 돈이 슬쩍 들어오면 나라고 뭣이고 전부 다 제껴 놓고 별일을 다 합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부패하는 것입니다. 부패가 무엇입니까? 썩었다는 것입니다. 병이 났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야 그것밖에 더 있어요? 그리고 외국이나 왔다갔다하면서 출세나 한번 해보겠다고 설 자리에서 발뺌이나 하고 중상모략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그런 거예요. 그래 그런 것이 근사합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악한 세계에서 선과 악의 분기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분기권을 몽땅 제거시킬 수 있는 한 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분기권은 사탄의 근거지입니다. 사탄이 거할 수 있는 본원지입니다. 여기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의 목을 자라 뿌린 그 핏줄기가 뻗어 나가는 데 원천이 되고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는 방해의 원천이 되고 본산지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거지를 돌파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데 오늘날 인류는 그것을 망각한 채 살고 있습니다.
사탄이 아버지를 죽여 놓고 어머니를 빼앗아다가 겁탈하여 자식을 낳은 것이 타락 아닙니까? 뿌리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악당의 근거지를 불질러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절개를 가진 남자와 절개를 가진 여자가 필요합니다. 절개는 무엇을 중심삼고 성립되는 것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을 중심삼고 절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사무친 마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전체를 주고도, 이 세상의 가치 있다는 것 천배 만배를 주고도 그것을 사기에는 부족하다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몽땅 한꺼번에 집어넣고 값을 치르더라도 살 수 없는 것, 30억 인류를 몽땅 합하여 이 지구성을 한꺼번에 주더라도 살 수 없는 것, 그런 것을 우리의 마음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통하여 폭발된 자리에서 그러한 부모로 말미암은 자녀, 그러한 부모로 말미암은 형제, 그러한 형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가정, 그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종족 민족 국가, 그 국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심정동산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분기점의 해결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말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중심지가 있으면 잠을 잘 때도 자기도 모르게 그곳으로 머리를 향해서 자려고 합니다. 일을 하더라도 그곳을 중심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이 떠오를 때 모든 생물들은 그곳을 향합니다. 동물도 그렇고 나무의 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모든 생물은 그곳을 향합니다. 나무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습니다. 혼자 들어박혀 있다가도 태양빛이 밟아오면 퍼뜩 일어나 그곳에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자동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재미있는 것입니다. 깊은 뼛골에 인연을 울려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인 것입니다.
부모는 어린애의 똥걸레를 빨면서 냄새가 나도 아기의 봉실봉실 웃는 모습을 생각하며 그저 좋아합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눈에 어른어른하거든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똥을 찍어 가지고 맛을 보는 어머니들이 많잖아요. 여러분도 그래 봤어요? 그래 보지 못했으면 어머니가 못된 것입니다. 똥 맛 봤어요, 못 봤어요? 우리 어머니가 아기들이 아프다면 똥을 찍어서 맛 보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머니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어머니 되는 사람들, 그렇게 해봤어요, 못 해봤어요? 못 해봤어요? 이제는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그래 보려고 해도 이제는 늙어서 아기를 낳을 수가 있어야지. (웃음)
자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에서 구린내가 나면 기분이 나빠요, 안 나빠요? 자기 혼자 사는 사람은 사흘 나흘 발을 닦지 않고 발구린내를 맡으며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 발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싫긴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는 그렇게 싫지는 않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이런 얘기 해서 안 됐지만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뭐가 거룩하다고 비단 보자기 싸 놓아요! 우리 팔자가 다 그런데 털어놓고 말합시다. 누가 방귀를 뽕 하고 뀌면 아이구 냄새야 하면서 야단하지요. 그래 본 적이 있어요, 없어요? 안 그래 봤다면 사람이 아니예요. 그러나 자기가 방귀를 뀌고 나서 이래 본 사람 있어요, 없어요? 그래 본 적 있는 사람 손 들어 봐요? 하나도 없는 모양이구만. 그건 왜 그래요? 나쁘긴 나쁜데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백 퍼센트 자기로부터 동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거 간접적 동기입니까, 직접적 동기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것이라면 안 좋은 것이 없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것이 어려운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깊은 골짜기에 묻혀 있는 사랑의 줄이 울려 나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힘든 가운데에 일하다가도 아이를 척 끌어안고 젖이 아파서 멍할 정도로 젖을 먹이는 모습은 정말 멋지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그런 재미있는 맛을 알겠지만 나는 여자가 못 돼서 그런 맛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자가 위대하니 그 면에 있어서는 나도 어머니 앞에 굴복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위대한 것은 그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아기가 좋다고 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기가 자기 살을 쏘욱쏘욱 빨아 가는데 어떻겠습니까? 아기가 젖을 빨 때 피가 몇 퍼센트씩 섞여 가지고 기름이 몇 퍼센트씩 섞여 나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먹이겠습니까? 여러분 모기가 윙 하고 날아와서 피를 빨아 먹을 때 기분 좋아요? 벼락 중에서도 날벼락이지요. 죽으면서도 좋아할 수 있는 길은 사랑의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분기점의 모체가 뭐냐?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악의 사랑이 무엇이고 선의 사랑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으로 생긴 혈통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선의 인연으로 맺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국가적으로 해결하셔야 합니다.
선진국가에서는 지금 부모의 권위가 다 파탄됐습니다. 추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미국 같은 나라는 가정이 거의 파탄상태에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권위를 다 잃어 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부부의 위치도 파멸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이혼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보장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헤쳐 버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묶어 나가는 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선택된 사랑을 다 잃어버리고 자기까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지나 히피족 등, 별의별 무리들이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자기를 찾을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미국에서 자리만 잡는 날에는 순식간에 그럴 수 있는 길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에 숨어 있던 내용을 헤쳐 가지고 선이 폭발되는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합니다.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혈육의 부모 이상 천주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참된 부모, 참된 형제의 인연만은 빼앗겨서는 안 되겠다, 이것만은 영원히 내 가슴의 보물로, 생명의 원천으로 지니고 가겠다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하나님도 빼앗아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것을 지닐 수 있는 특권이 우리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 중에 제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인류를 사랑하고 애국심을 주장하던 사람들 이상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하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박애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기원이 되기 위해서는 뿌리가 그들과 달라야 합니다. 뿌리가 같으면 어렵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역사시대에 없었던 다른 것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원리의 모든 내용도 전부 다 그런 것입니다. 참부모를 제시하는 거예요. 참부모.
우리 성가 `하늘의 용사' 라는 노래의 4절에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온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참부모는 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에게서부터, 하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 인류를 무엇으로 시작했나요? 기원은 둘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입니다. 이것이 둘이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원은 둘도 아니요, 셋도 아닌 하나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 절대적인 하나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있어야 참자녀가 있고, 그 참자녀를 통해서 참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참자녀를 거쳐 나가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 새로운 선의 세계의 형상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승리의 결정적 기준이 어디며, 그 기준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심정이 사무치는 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사무치는 그 마음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의 비밀창고에 고이 간직되고 간직된 보물단지가 있다면 그것이 뭐냐? 총도 아니요,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참부모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부부의 사랑, 참자녀의 사랑, 참형제의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식구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연결된 힘이 세상의 인연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만의 선의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그 분기점은 근거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 어떤 군이나 면에 갔다가 돌아와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 앞에 갔다가 돌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일본, 나아가 세계 각국에 갔다가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식구의 사랑이 있는 곳은 갔다 다시 올 수 있는 본거지가 되고, 또한 그 본거지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로 태어난 자식의 마음은 그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부 다 집중됩니다. 세계는 이런 심정적 선의 분기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인연되고 여기에서 느껴지고 여기에서 기쁨으로 결실될 수 있는 그 결실점을 고이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고이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사흘 꽁꽁 싸매야 됩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옛날 모습과는 다를 것입니다. 여기에서 잎이 나오고 가지가 나올 것이어늘, 느껴지는 감정이 사무치고 심정의 요건이 사무치거든 당장에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40일 전도기간에 전도하게 되면 두 패로 갈라집니다. 마음이 가라고해서 가는 행동파와 마음은 가라고 하는데 몸이 가지 못하는 패로 갈라집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마음이 원할 때 행동을 같이 못하게 되면 얼굴을 못 들지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느껴 봤어요, 못 느껴 봤어요?
시간관념이 강한 사람들은 예배 시간과 같은 시간을 공적 시간으로 세워 놓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공적인 사람들이 존중시하는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공적 시간을 지킨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지킨 사람이 삼천 명 혹은 삼만 명이면 그만큼, 수가 많을수록 그만큼 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느낌을 받아 보았습니까? 하늘을 찾아가는 기준은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 더욱이 대학가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선악의 분기점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엇인가 바꿔 가져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은 스튜던트 파우어니 뭣이니 해 가지고 야단하며 대학가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고, 대학을 이상한 소굴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자기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좋고, 자기 형제보다 더 좋고, 그 나라보다 더 좋은 것을 갖다 줘 보십시오. 어떤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 같이 춤을 추겠어요, 안 추겠어요?
이제부터는 금을 그어야 됩니다. 금을 그어야 돼요. 여러분은 이 선악의 분기점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 와서 며칠 동안 있을 때는 좀나을 것입니다. 이 정도에 있을 거예요. (판서하심)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지내게 되면 `아이구! 뭐 연약한 사람들이나 종교고 뭐고 믿지 하나님이 뭐 보이나? 죽어 봐야 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죽어 보세요. 한번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겠으니 들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둔 사람이 나가면 망하고 벼락을 맞습니다. 가만히 두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녀석들은 전부 다 누더기 보따리를 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가다가 길이 막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구 길이 잘못 되었구나 하면서, 다리를 절룩절룩하면서 물어물어 통일교회를 찾아오게 됩니다. `여기가 통일교회요?' 하고 들어와요. 그때 보따리를 풀어 보면 국수 나부랑이라도 사먹을 점심값도 없습니다. 옷도 전부 누더기를 걸친 신세들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 다 나한테 신세를 지는 거예요. 내가 신세를 진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사정으로나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밥을 먹지요? 이 세상에 밥맛을 탓하는 사람 나와라 할 때나올 수 있습니까? 나올 수 있나 대답을 해보시라요! 한 사람도 대답 못하는구만요. `어떤 게 참 밥맛입니까?' 하면 글쎄 내가 생각하는 참밥맛은...' 합니다. 자신이 없거든요. 그렇지요? 자신 있어요, 없어요? 70,80년을 살아 공동묘지에 청원서를 내 놓은 사람들도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밥을 그렇게 먹고 다 소화시켰지만 그 밥맛에 대해서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 있어요? `밥맛이 이것이다. 하나님이 맛을 보거나 천지의 만민 그 누가 먹어 보더라도 밥맛은 이것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밥을 먹어 보았어요? 이것 참 맛있구만 하고 밥을 먹을 때 어떻게 먹어야 되겠어요? 소리를 내면서 먹는 사람도 있더구만요. 그런 거룩한 본질을 가진 밥은 어떻게 먹어 주길 바랄 것이냐? 밥 먹을 때에도 이런 것을 생각하면, 밥을 먹는 데도 천하가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요즘 술 많이 먹기 대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밥을 제일 맛있게 먹는 대회, 어때요? 그러면 몇번이나 씹을 것이냐를 생각할 때, 열번 씹는 사람하고 백번을 씹는 것이 더 맛있을 거예요. 백번보다 만번, 만번보다 오만번, 백만번 씹으면 어떨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는데 삼개월 걸릴 수도 있겠죠. (웃음) 그렇게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자신은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람들은 모두다 자기 나름대로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 걷는 방법, 가장 표본적인 스타일이 어떤 형일 것인가? 거 있을 것 아니예요? 어떤 사람은 쿵쿵 걷고 어떤 여자는 아장아장 걷기도 하는데 표본이 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표본 말예요. 사람들은 그것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선악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왔다 그냥 가면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가지 않으면 눈알이 뒤집히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냥 가면 눈알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눈알을 빼버리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눈을 빼는 것을 원해요? 「예」 원해요? 원한다고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눈을 빼게 될 일은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또 코를 훌쩍거리고 돌아다니면 코를 막아 버립니다. 감기가 걸리면 코가 막히는데 그때 기분 좋아요? 나쁘지요. 숨까지 막히는데요. 그러니 코를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지 말라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열시만 지나면 청소년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라디오에서 방송을 하지요? 「예」 대학생이라면 대학생으로서 그 나라의 미래의 중추적인 책임을 지고 이끌고 나가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이렇게 (판서하심) 벗어나면 악한 편입니까? 선한 편입니까? 탕감노정에서 배웠지요? 이것은 악보따리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탄은 `사서 타니까' 사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감나는 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누가 사느냐? 자기들이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산 자들인데 머리를 끌고 올라서겠다니 그게 무엇입니까?
이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반대로 와 가지고 요만큼 남은 것이 누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면 반드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높아졌으면 낮아지고 올라갔으면 떨어져야 하는 것이 자연현상입니다.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이 선을 넘어서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그만큼 높아지고 악은 그만큼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높아질 때마다 탕감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의 방향을 잘 잡아 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 사람이지요? 밥 먹는 것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구. 그래요? 선생님은 1960년도가 지날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너무 바쁘거든요. 여러분도 이러한 입장에서 분기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선을 중심삼고 생애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일편단심의 그 심정을 뿌리로 삼고 기준으로 하여 폭을 넓혀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평화로운 가정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과 화하고 하늘과 주고받을 수 있으면 그곳에서 국경을 넘어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기점을 분기선으로 화하고 분기선을 일시에 분기면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비결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 그 다음에 충청남도, 그 다음에 경기도, 그 다음에 서울로 선이 이어지지요. 이것이 리(里)에서 면(面)까지 이어져 사방으로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분기점에서 분기선으로 분기면까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심정의 기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뜻을 중심삼고 나갈 때 `뜻!' 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아담을 생각하는데, 아담을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요?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아담 해와의 타락을 말하려면 감정이 복받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또 고의적으로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담!'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냐? 예수입니다. `예수!' 하게 되면 기분이 조금 좋습니다. 그렇지만 또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놈의 이스라엘 민족! 개인이 원수라고 생각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집단적으로, 국가적으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서 `선생님!' 하면 기분 좋아요? 「예」 그 반대이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3대 국가의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아시아적이요, 세계적인 국가의 핍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동아권을 주장하고 나온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공산당과 민주주의 세계 앞에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3대 주권, 즉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미운지 꼬리를 물고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이런 것을 알아요? 삼천만 민족은 환영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선생님은 그런 과정에서 `누가 참인가, 누가 큰가, 누가 멋진가, 누구를 만민이 요구하는가, 민족이 누구의 말을 듣나, 두고 보자!' 하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멋진 것입니다. 용기가 크니만큼 내가 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간절하여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세계를 연결시키면 그것은 누구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압축시키면 하나요 연결시키면 천리만리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들락날락하면서 지금까지 세계인을 소화시키고 훈련시켜 나온 것입니다.
악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넘겨치는 싸움을 해온 것입니다. 씨름해서 이기면 참 재미있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신이 쓰러지지 말고 섭리의 분기점을 지나 끝까지 가는 날에는 머물러야 할 나라에 도달할 것입니다. 어분이 머무를 곳은 그러한 가정, 그러한 사회,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세계가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인 줄을 알고 분기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지요? 「예」
참부모와 참부부와 참자녀와 참형제 자매의 전통을 체계화시켜야 됩니다. 세계적인 남편을 대표한 남성을 세계에 널려 놓고, 세계적인 아내를 대표한 여성을 세계에 널려 놓고, 세계 곳곳마다 그러한 형제 자매를 널려 놓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참부모와 참부부와 참자녀와 참형제를 모체로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놓으면 그곳이 천국사회인 것입니다. 그 나라가 또한 지상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좀 달라졌습니까? 어디 성화대학생들, 좀 달라졌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안달복달해 나온 것은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달라지기를 원해서였습니다. 이 선을 중심삼고 원리에 어긋난 일은 절대 안한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사탄이 몰고 들이칩니다. 사탄에게 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것만 완전히 붙들고 있으면 천국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씨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서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기준만 넘어서면 가만두어도 자동적으로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봅시다. 부모, 부부, 자녀를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누가 가르쳐 주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없더라도 심정적 기준에 사무칠 줄 아는 자리에 있으니 남자로서 사무친 힘이 있으면, 즉 천지에 플러스가 생겨나면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생겨나면 완전한 대상이 자동적으로 창조되고,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 한 사람 생겼으니 이번에는 여자를 한 사람 만들자' 이렇게 장부를 꾸며 가지고 대조하듯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까? 그것은 원리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되면 아들딸을 낳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아들만 들입다 낳고 어떤 집은 딸만 들입다 낳습니다. 또 어떤 집은 하나도 못낳습니다. 이와 같이 동서에 울쑥불쑥 태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합하여 보면 그 비율이 비슷비슷합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한때는 여자가 많은 시대가 오고 한때는 남자가 많은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세와 열세입니다. 그런 기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볼 때, 여자가 하나밖에 없는데 남자가 열 명이나 태어나면 그중 아홉은 죽어야 되겠다고 합니까? 그런 걱정을 해요? 여자가 빽하고 울며 태어나면 남자가 어디 있나 하고 찾습니까? 남자가 태어나면 처녀가 어디 있는지 찾습니까? 그러지 않아요? 짝은 어디엔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걱정하느라고 아들딸을 못 낳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그 때문에 산아제한을 해야겠다고 연구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남자가 전도 나가게 되면 심중에 그리던 남자라고 그 동네의 여자들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핍박을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원칙에서 여자를 전도하러 보내는 작전을 해 왔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한 명의 여자 앞에 말 같은 남자들이 20명 정도 달려들어 가지고 큰일났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 앞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달려들면 큰일났다고 합니다. 통일교회가 핍박을 받는 것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혼자인데 많은 여자들이 전부 다 선생님을 따르고 야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에 있어서 세상의 모든 현상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끊어지면 천지만물들은 자동적으로 인간에게 주관받겠다고 하겠습니까, 안 받겠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연결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만물은 자연히 인간의 주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생명체가 자동적으로 흡수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렇지요?
자녀들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으면 눈물이 나오나요, 안 나오나요? 부처끼리 살다 둘 중의 한 사람이 죽으면 왜 우나요? 자식이 있는데 왜 울어요? 눈물이 어디에 쌓여 있다 나오는 것입니까? 죽으면 죽었지 왜 우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일들이 있으면 왜 슬프냐? 또는 왜 좋으냐?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권내에서는 좋은 것이고,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은 권내에서는 슬픈 것입니다.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기에게 마이너스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자기에게 플러스 되면 좋아합니다. 어디 마이너스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반대로 플러스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거야 다 들지요. 뭐, 뱃속의 애기까지 손 들려고 할 것입니다. 다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플러스 중에 최고의 플러스가 뭣입니까? 부모입니다. 부부입니다.
자녀입니다. 부모가 최고의 플러스 기준이요, 부부가 또한 최고의 플러스 기준이요, 자녀 또한 최고의 플러스 기준입니다. 이것이 국가 형성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이요, 세계 형성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인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의 발전에 있어서 기틀이기 때문에 이것이 일치화되지 않고는 완전한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힘의 원칙이 이러한 기준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딱 맞아야 합격품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결여되어도 불합격품이 됩니다. 불량품은 우주의 힘에 의해 자동적으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면 자동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스런 우리, 이런 사이가 됩니다.
사랑이 왜 좋으냐? 최고의 선의 근본과 연락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선의 뿌리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못하면 왜 불행해 지느냐? 천지의 공법이 보호할 수 있는 천지의 운세가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 불합격되면 구멍이 뚫린 만큼 거기에 비례하는 우주의 힘이 반발하여 여러분의 가슴에서 밀려 나가기 때문에 그것이 슬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을 한 만큼 비례적으로 완성하여 평면적인 하나의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기준에 해당하는 우주의 힘이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우주를 유지시키기 위해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압니까, 모릅니까? 작용하고 있어요, 작용하고 있지 않아요? 중력이 우리를 당기고 있어요, 없어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마음이 그 힘의 작용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 기뻐하고 슬퍼하느냐? 우주의 공법에 합격하면 기쁘고 불합격하면 슬픈것입니다.
자기의 현재 기준에 있어서 기쁨이 찾아오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전체의 기준에 부합될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성을 띨 수 있는 남편이나 아내가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완전한 존재로서, 완성된 합격품으로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어도 마찬가지요, 자식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만 있거나 딸만 있어도 안 됩니다. 아들 형제만 있는 사람은 왜 딸을 낳고 싶어합니까? 협회장, 딸 낳고 싶지? 아들만 낳은 사람은 딸을 달라고 딸, 딸 합니다. 그거 왜 그래요? 상대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되고, 아내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되고 남편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됩니다. 아들을 사랑해 보기도 하고 딸을 사랑해 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천주의 공법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몰랐지요? 이것이 우주를 구성하는 이상적이고 근본적인 표준이기 때문에 이것에 완전히 부합될 때, 이 내용과 완전히 일치될 때 기쁜 것입니다.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 불행이 깃드는 것이요, 이 원칙에 완전히 부합될 때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에 플러스 시키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요, 악에 플러스 시키는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선에 마이너스시키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예요. 이러한 것들은 심정적 내용을 중심삼고서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시여, 역사적인 귀추를 바라보게 될 때, 진리의 목적 기준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인간이 무한한 가치를 갖고 있으되 어떤 상대적인 여건에서 그 가치가 찾아지는 줄을 알았지만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는 자체에게 심어진 것을 몰랐습니다. 세계의 인연이 상대적인 세계에서 어떤 과정을 통하고 거쳐야 할 줄로만 알고 저희의 본성 가운데 그것이 깊이 잠겨져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참된 가정을 중심삼고 참된 부부와 참된 자녀의 인연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공식이 전체 앞에 보편화될 때, 그 공식은 비로소 완전한 것으로 성립되듯이 가정이 세계 창건에 절대적인 요건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공식이 되어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고, 동서 사방으로 그 막힌 길이 없이 통할 수있으며, 세계 창건의 결정적인 기초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것이 저 멀리, 저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희 마음 가운데 묻혀 있고 저희의 환경 가운데에 묻혀 있으므로, 당신께서는 지금까지 저희들 속에 계셨고 저희의 생활을 주관하셨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악의 분기점이 생사의 기로이기에 영원한 불멸이라는 기준이 여기서 생겨졌다는 사실, 참과 거짓이 여기서 생겨나왔다는 사실, 희망과 낙망 또한 여기서 생겨났다는 사실, 혹은 행과 불행의 모든 여건이 여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 전체를 구성하는 주체적인 모든 요건이 무엇이냐 할 때, 남자와 여자라는 결론이 나오는 기원은 어디이옵니까? 이성성상의 모체가 아버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남자와 여자의 존엄한 가치를 찬양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귀한 가치를 더 더욱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여기서 느껴지는 감동이 이 세상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이 세상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또한 그와 같이 강한 자극을 주는 마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저희를 자극시킬 수 있는 원동력의 모체가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십여년 기간 성경을 목표로 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에게 십년을 열흘같이 느낄 수 있도록 자극시키고 충격시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힘의 보급이 필요한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그 힘은 인간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천운의 기반이시고 힘의 모체이신 아버지를 중심삼고 연락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권내에서 살고 생활하는 사람은 영원히 힘차게 승리의 권한을 갖출 수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중심삼고 새로운 자아를 갖추어 이제부터 새로운 행보로 힘차게 출발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제 젊은 가슴에 새로운 불길을 안고 자기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삼천리 반도 고향 산천에 돌아가 가지고 이 뜻을 심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오니 이날을 사모하는 자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소망의 곳을 추구하는 자들의 갈 길을 열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 남아진 생애노정의 생활권내에 당신께서 같이하시어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전국에서 예배드리는 식구들을 대표하여 여러분들이 여기에 모인 것으로 알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지금은 가을입니다. 가을이 되면 스산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은 봄을 지나고 여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기 직전입니다.
자연의 풍취는 계절에 따라 변합니다. 나무를 예로 든다면 계절에 따라 잎이 변합니다. 그렇지만 가지가 줄기는 변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지만 떨어지는 그 잎이 있었기 때문에 가지와 줄기는 자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나무만 예를 들어 말한 것이지만 그이치는 한 나라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대한민국은 뿌리로부터 돋아나 줄기가 형성되었고, 가지가 뻗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고 있거나, 혹은 이미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잎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잎들은 떨어지더라도 줄기요 가지인 대한민국은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를 섭리를 중심삼고 보면 섭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뿌리와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줄기와 같은 종교를 통해 잎과 같은 수많은 신자들이 생애노정을 거쳐간 것입니다. 그 거쳐간 사람들은 섭리노정, 즉 가지와 줄기가 자라는데 있어서 보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이제 멀지 않아 겨울이 오지만, 이러한 것을 보면 자연도 어떤 하나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속할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어떤 인연을 벗어나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뿌리와 같은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형제는 가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형제들로 말미암아 그 부모가 영광을 얻을 수도 있고, 불행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존재든지 뿌리와 같은 인연을 통해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형제를 두고 본다면 거기에는 남자도 있을 수 있고, 여자도 있을 수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줄기에서 뻗은 가지와 마찬가지입니다. 가지에도 중심가지와 곁가지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형제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형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자기가 맺으려고 해서 맺어진 인연이 아니라 부모로 말미암아 맺어진 인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연은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으로 맺어진 형제이기 때문에 형제들은 그 인연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 사이가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하나의 뿌리에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국가에 주권자들이 있지만, 그 주권자들도 반드시 어떠한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흐름과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입니다.또한 어떠한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분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모든 국가가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흘러 나가는 그 역사적인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각 국가들을 뗄래야 뗄 수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국가의 힘 가지고도 막아낼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따라가기 때문에 모든 국가는 그 인연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의 우리 식구를 중심삼고 보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은 개개인에 지나지 않지만, 이렇게 모이기 위해서는 모일 수 있게 한 그어떠한 인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이라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섭리적인 인연입니다. 이렇게 모이지 않을래야 모이지 않을수 없는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이 있어 가지고 관계가 맺어졌기에 오늘의 우리들은 이런 입장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보아도 부부가 우연하게 만난 것이 아닙니다. 숱한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숱한 생애의 노정을 엮어 오면서 인연이 연결되어 상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헤쳐 보면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세계의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좀더 헤쳐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크고 넓은 인연을 통하여 관계가 맺어진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생각할 때, 여러분의 한 개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여 준 부모를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인연을 따져 보면 하늘과 땅을 대표적으로 종합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인류를 36억이라 할 때 18억의 남자와 18억의 여자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그 18억의 남자와 18억의 여자를 대표하여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모든 남자 여자의 관계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입장의 대표적인 분이, 자기와의 관계를 맺고 나타난 분이 바로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우리들이기에, 세계 36억 인류를 놓고 볼 때에 세계 인류는 그런 관점에서는 같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즉, 모두 형제도 되고 자매도 된다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이렇게 총합한 실체상으로 인간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인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빚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연까지 연결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인간관계에 대해서 등한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침에 만나 인사만 하는 것으로 끝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더라도 그저 매일 보는 사람, 얼굴이 어떻게 생겼고, 아무개의 아버지로만 알고 있는 정도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뜻 있게 보게 된다면 크나큰 내용을 지니고 있는 인간관계인데, 이러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개인을 대할 때 만약 그 사람이 좋지 못한 인상을 주었거나, 혹은 한 때에 손해를 입혔다면 불쾌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원수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갚으려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인연을 좀더 깊이 들어가 보게 되면 지금 현재에 맺어진 원수 관계보다도 더 큰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현재에 맺어진 원수의 인연보다도 더 높고 깊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원수라고 치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는 커녕 도리어 자기가 맞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복잡한 관계가 인간들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혹은 도를 닦는 사람들은 모두 `선행을 해라. 적선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한 인간의 배후에도 반드시 그러한 인연이 맺어져 있고, 혹은 역사 시대권내에 나타난 모든 것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느끼고 비판하는 기준보다도 더 높고 귀한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잘못 치다가는 친 자신이 도리어 반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들여야 되고,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인연 중에서도 최고의 인연을 맺어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을 중심삼고 볼때, 그들을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먼저는 하늘을 생각하고, 땅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사람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을 생각하고, 땅을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막연합니다. 예를 들어, 땅을 생각한다 했을 때 땅의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중심은 과연 무엇이냐?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 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인연 중의 최고의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런 표준은 어떤 것이냐 할 때, 그것은 사람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을 좋아하느냐?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간을 사랑한다 할 때,그 사람 자체가 인류를 대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 되는 비결과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비결은 사람을 누구보다도 미칠듯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와 창세기를 보면, 모든 만물은 전부 다 사람을 위해서 지음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도 역시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사랑하고, 사람을 위할 줄 아는 그런 세계가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행복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을 위하고, 사랑할 줄 아는 그 곳이 어디냐? 오늘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높일 수 있는 곳은 가정입니다. 부모의 눈으로 자식을 볼 때, 그 자식이 철부지한 개구장이라 하나에서 열까지 자랑할 만한 것이 없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요, 자기를 높일 수 있는 곳입니다. 자기를 무한한 가치로 나타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이 행복한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앙모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그곳은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사랑이 존속할 수 있는 곳입니다. 또 자기 스스로를 높임을 받을 수 있고 곳이고, 자기 가치를 백 퍼센트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즉, 영원히 행복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세의 환경과 국경을 넘어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람을 높이 볼 줄 아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자로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는 자녀로 설 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도가 바라는 최고의 생활방법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엮어 나온 모든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그인연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이냐? 사람의 행복을 충만케 할 수 있는 자리에 인연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그 인연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을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동참할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하고, 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인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과정에 나타난 모든 인연을 종합해 가지고 결실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모든 자연, 다시 말하면 주변에 널려 있는 자연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들도 나와 그와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반드시 직접적 관계라든가 간접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 원리로 보게 된다면 만물은 상징형이요, 인간은 형상형이요, 하나님은 실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 직접적 관계냐 간접적 관계냐, 인연에 있어서 직접적 인연이냐 간접적 인연이냐 하는 구분만 있는 것입니다.
간접적이라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간접적이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인연을 넘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또 직접적이라는 말도 간접적 내용을 인정해 놓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 인간을 중심삼은 인연을 보더라도 간접적이냐, 직접적이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 하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서로 떨어질 수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대한민국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직접적인 사랑이지만, 외국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간접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이 간접적인 것이라고 해서 직접적인 입장에서 이것을 떼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를 간접적인 관계 이상으로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가 국가와 국가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느냐 못 맺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인 관계를 직접적인 관계로 소화시킬 수 있게끔 할 수만 있게 된다면, 여기에서 인간이 바라는 새로운 역사와 소망의 세계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식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그 일원을 식구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식구란 말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고 싶은 고귀한 그 인연과 그 관계, 그리고 하나님이 본래 찾고자 하시는 창조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식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우리들의 인연이라는 것은 역사상의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이 우리의 식구라는 말 속에 있는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중심적인 인연을 갖고 나타났기 때문에, 사랑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입장에 있더라도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서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간접적인 입장에 있더라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높은 자리에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타락한 세상에서 하는 직접적인 관계의 사랑과 하나님을 중심삼은 간접적인 관계의 사랑 중에서 어느 것이 높아야 되느냐 할 때에, 세상을 중심삼은 직접적인 사랑보다도 오늘날 간접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기준이 낮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낮다 할 때는 높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연이 벌어지게 되면 그 누구도 이 자리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인연과 관계를 존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이냐?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하늘과 인연도 없고 관계도 맺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연과 관계가 맺어진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사랑을 실현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들이 식구라는 이름 밑에서 서로를 사랑함이 민족을 사랑하는 이상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세계를 사랑하는 이상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사랑의 터전과 환경을 이루는 입장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여러분이 한 식구의 생명을 얼마나 존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식구 한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식구 사이에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협조하는데 우리에게 그 이상의 인연, 그 이상의 관계가 발전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타락한 세상에 흡수되는 우리의 모임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소망하는 사람의 인연을 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교회의 책임진 사람들은 뚜렷한 관이 서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전체에 미쳐지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기업체나 교회를 책임진 사람들도 언제든지 공적인 마음, 즉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세운 그 인연 가운데서 사랑할 수있어야 합니다. 공적인 법도를 따라 자기를 위함과 같이 식구를 위해야 합니다. 또 책임자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는 것 이상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기준이 오늘 사탄세계의 어떤 인연보다도 높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36가정이나 72가정을 보면, 하늘의 엄청난 인연 가운데서 관계를 맺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식구를 사랑하였느냐? 또한 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자기를 중심삼고 놀아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런다면 망하고 맙니다.
사탄세계에서의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도 자기를 초월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것을 인륜 도덕으로 삼고 있을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뜻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보다도 못하다면 남아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섭리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심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심정을 보면 가을날의 낙엽과 같이 곧 떨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아무리 정성을 들인다 하더라도 잎과 같은 사명만 하려 한다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무에 있어서 줄기와 가지가 못 되고 입이 된다면 가을이 되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지가 되고 줄기가 되기 위해서, 즉 세상 가운데 남아지기 위해서는 세상의 바람에 떨어질 수 있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더 높은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남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래된 식구들을 보게 되면, 소망도 없고 희망도 없어 보입니다. 내 자신이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여 마음을 헤쳐 놓고 이야기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선생님은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런 식구들을 보면 선생님과 여러분의 둘 중에서 어느 하나가 잘못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선생님이 잘못되었는가, 여러분이 잘못되었든가 둘 중의 하나이니 하나는 반드시 시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선생님이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고 우주적인 인연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하나되고, 또 하나의 목적에 동하고 정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다면 하나는 떨어지고 하나는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오늘 우리 식구가 된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결과가 어떻게 될것이냐, 나의 인연이 오늘날 이 뜻을 위한 터전 위에서 어떻게 사랑의 실체를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살던 마음 이상으로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에 하나될 수 있는 공적인 입장, 혹은 주체적인 입장을 언제든지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지나 줄기와 같은 입장에 서지 못하고 잎이 되어 가을이 되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떨어지더라도 그 사람이 우리 교회에 들어와서 한 일은 우리 교회에 녹아들어 영양소가 될 것입니다. 그 무성한 잎을 통하여 나무가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원한 인연을 상속받아 남아질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서 열매가 맺어질 것이냐? 사람, 즉 인류 앞에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단체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모임이라 할진대는 반드시 온세계에 사랑의 열매로 남아질 것입니다. 열매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나무들이 무성하게 동산을 덮었을 때에는 어느 것이 소나무이고, 어느 것이 사철나무인지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드러납니다. 겨울에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 사망의 세계에 찔림을 당하더라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인류를 대하여 사랑할 때에 그는 하늘을 대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저 젊은 사람끼리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데에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어린 사람까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됩니다. 요즈음 청년들을 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공경해야 할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은 만나기만 해도 되겠지만, 활동하기도 부자유스럽고 힘도 부족해 제3자의 신세를 져야 할 노인들에게는 사랑도 해주어야 하고 동정도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풍조를 이 사회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역사상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온 사람들을 살펴본다면, 처음에 하늘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 아브라함 할아버지, 모세 할아버지 등 전부 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년시대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 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 장년시대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이후의 모든 사람이 장년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장년들이 움직여 나왔고, 요즈음에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사랑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세계를 지배하여 나왔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노인들이 세계를 지배하였고, 그 다음에 장년들이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청소년들이 세계에 문제를 제시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가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발전해 나왔는데 거꾸로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젊은 사람으로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식구들을 중심삼고 보면, 우리 식구중에도 노인들이 있고 장년들이 있고 젊은이들이 있는데, 이들 서로서로가 갈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한 집안, 한 울타리 안에 있고, 피차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성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인연과 가치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늘나라의 인연이 여기에 빚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래된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옛날의 식구들에게는 은혜의 역사, 하늘이 걸어준 은혜의 역사가 많았습니다. 초창기에는 식구한 사람 알기를 전부 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상습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늘의 전통을 따라서 상습화되었으면 정상적인 것인데, 자기들이 살던 세속의 입장을 중심삼고 상습화되었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탄이 제일 주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사탄이 노리고 공작하는 것 가운데 최대로 노리고 공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사탄이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이걸 타파하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을 낙엽과 같이 자기도 모르게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이끌어 주어도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을날을 맞이하기 전에 방향을 갖춰 가지고 여름 절기와 같은 그 인연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횡적 관계에 있어서 횡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서로 존중하는 일이 없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 대해서 전부 다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귀찮아지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데에는 우리 대한민국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30억 인류를 전부 다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인 무리라 할진대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아까 말한 인연 중에 최고의 인연을 결실하는 자리에 설수 있는 것이요, 관계를 맺는 데있어서도 최고의 관계를 맺는 자리에 설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아서 앞으로 식구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 고난을 당할 때에 서로서로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장선다 할진대는 아무리 가을이 오고, 겨울과 같은 시련의 고비가 온다 할지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생명력은 봄을 향하여 힘차게 남아져 새로운 세계에 생명의 모체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아버지, 인간은 무한한 가치와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보시기에 부족한 자식들이 나와서 아버지를 부르고 있사옵니다. 저희 개체가 오늘의 시대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배후에 수많은 선조들과 아버지의 눈물의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30억 인류 가운데에서 인연 중심삼아 가지고 저희들이 부름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에,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존재요 초라한 존재이지만,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엄청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이 있음도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요, 땅이 있음도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고, 또 아버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도 사랑하기 위한 것임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최고로 목표하는 것은 온인류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제재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의 천지, 자유의 환경에서 그 누구에게나 미쳐질 수 있는 사랑의 권이 아니옵니까?
그것을 위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이런 인연 가운데 부름을 받았고, 식구라는 인연을 가지고 모인 저희들에게 아버지께서 사랑하고 싶은 그 원상이 드러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사랑하는 자리는 자기를 중심하는 자리가 아니오라 자기를 잊어버리는 자리요, 사랑을 받는 자리도 자기 개체를 잊어버리는 자리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아버지의 섭리적인 내용을 저희들이 상속받아 가지고 직접적인 자리에서 온 인류를 향하여 외치고 울부짖을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역사가 여기서부터 전세계에 펼쳐질 수 있는 동기를 저희가 마련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이루어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전체가 과거를 자랑할 것이 아니요, 현실적인 사회 조직과 형태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옵니다. 역사적인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적인 사람을 사랑하고, 미래적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입장에서 저희들이 이 길을 밟고 나섰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다운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역사상의 선지선열들, 혹은 수많은 선조들의 한을 저희 일대에 풀어야 되겠고, 오늘 이 시대의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였던 것을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서 만민이 추구하는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새로운 출발의 인연을 여기서 연결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인 조건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근본적인 내용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식구라는 말을 부르짖고 나왔습니다.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인연은 자기 스스로 갈라 놓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형제와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위에 부모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모는 어떠한 것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으로 자기의 모든 인연의 중심이요, 생명의 본체요,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그런 근본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었음)
아버님, 오늘은 10월을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 이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거룩하심을 추앙하면서 남은 생애를 아버지와 더불어 정성을 다하며 지내는 자신들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새시대의 개척자로서, 혹은 통일의 용사로서 막대한 책임을 자신들의 두 어깨의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해져서 스스로 자신들이 아니면 안된다는 결의와 자세를 아버지 앞에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 땅을 밟고 싶어하고, 한국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의 동기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 결과도 아버지에게서 맺어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무지했던 인간들은 생의 과정에서 낙망하고, 아버지를 배반할 때가 많았사옵나이다. 하오나 저희들은 역사적인 슬픔을 자아냈던 선조들이 그 모든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아버지께서 특별히 보호해 주시고 지도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권내에서는 서로 상충하는 일이 많이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여기에 매개자가 되시옵고 충고자가 되시어서 저희들이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일체화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완전히 통일될 수 있는 형태가 갖추어지기를 얼마나 요구하셨고, 얼마나 고대하셨고, 얼마나 바라셨사옵니까? 이제 그것을 저희들을 통하여 이루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청파동 본부교회이옵니다. 세계의 수많은 식구들이 이곳을 그리워하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이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의 뜻을 펼치신다는 것과, 세계 각처에서 이곳을 향하여 마음과 몸을 다하여 정성을 들이고 눈물을 흘리며 사모하는 자녀들을 생각할 적마다, 이곳은 저희들 자신이 만국 백성이 바라보는 가운데 지성소를 대신하여 분향할 수 있는 성전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재차 생각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침마다 마음을 모아 이곳을 향해 분향하는 저희들 각자의 모습이 되게 하시옵고, 이 자리가 만민의 행복을 위하고 만민이 당할 수 있는 환난의 길을 막기 위하여 스스로 아버지 앞에 다짐하고, 내일의 소망과 오늘의 책임을 위하여 스스로 아버지 앞에 결의하여 아버지께 새로운 임명을 받고 명령을 받은 자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에 한해서만 미쳐질 것이 아니라 만국에 미쳐져 그들이 살수 있는 본연의 길과 본연의 자세를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전통을 바로 세우고 역사과정의 모든 슬펐던 사실을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현재 막혀진 모든 담을 헐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할 먼 행로를 단축시킬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 살고 아버지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많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초초한 무리들이 모였사옵니다. 이들은 당신의 손길이 아니면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 자들이요, 당신의 은사가 아니면 자기가 서있는 자리도 모르는 자들이옵니다. 이렇듯 벌거숭이와 마찬가지요, 고아와 마찬가지요, 세상의 불쌍하고 처량한 무리들과 마찬가지이옵니다. 그러나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사랑권내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알았사옵고, 남이 느끼지 못하는 당신의 심정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이 잘나서가 아니요, 저희들에게 공적의 터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역사의 노정에 있었던 아버지의 수고와 슬픔으로 인한 것이오니 저희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희를 맞이하는 만상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높고 귀하심을 찬양하고, 사람을 만나면서도 아버지의 소망의 날이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느껴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싸움터를 바라볼 때 아직까지 아버지의 수고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저희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맹세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그 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를 격파시키어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든가 참되게 죽든가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들임을 알고 아버지 앞에 부복할 수 있는 자녀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있는 이들 각자각자가 스스로를 정리하여 그 전부를 아버지 앞에 내놓고, 자신이 내적으로는 어떠한 가치가 있으며 외적으로는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를 스스로 알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간은 이 땅에 왔다가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사온데, 자기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옵니다. 수많은 역대의 성현들과 선조들도 이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고개를 넘기 위해 몸부림쳤사오나, 주어진 운명의 길을 피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한을 품고 사라져 갔사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아무 공로도 없는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몰랐다면 이 땅위에 왔다가 그저 초개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무리가 되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알고 지금까지 걸어 나오신 당신의 길이 얼마나 수고로운 길이었사옵고,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이며, 앞날을 개척하여야 할 당신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여기에 동반자가 되고, 조력자가 되고, 당신 앞에 충복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 저희들의 마음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신이 어디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저희 스스로는 알지 못하오나 천지의 권한 가운데 있어서나, 혹은 아버지의 영원무궁하신 기준 앞에 있어서는 스스로 자기 입장이 어떻다는 것이 확실히 나타날 줄알고 있사오니, 그 기준이 슬픔의 기준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동정과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여기에 임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가 저희 자신들만 머물러 있는 자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무리들이 이날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교회를 중심삼고 이 나라에 영향을 미쳐야 되겠사옵고, 이 나라를 중심삼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쳐야 되겠사옵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독일 이 4개 국가를 중심삼고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사오니, 만국에 새로운 형을 갖추고 승리의 터전을 넓혀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그 나라가 어서 속히 나타나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자리를 그리워하면서도 참석하지 못한 뭇자녀들에게도 같은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인간은 일생을 사는 데에 있어서 경쟁이라든가 투쟁, 혹은 싸움의 환경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성공을 하기 위해 세운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는 거기에 비례되는 고생의 환경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스스로 지녀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한 대학생이면 그 대학생이 큰 목적을 가지고 성공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성공의 길에서 그는 목적에 비례하는 대가를 치르고야 목적 성사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가정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이면 그 가정이 민족과 나라를 중심삼은 가정의 실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즉 가정 전체가 단합해서 가정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의 관계와 거리의 관계를 넘어야 되는 것이며,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거기에 대비되는 시련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면 그 비례되는 대가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가 어떠한 크나큰 포부와 목적을 달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운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못해도 백년이면 백년 단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민족이 단결해서 극복하지 않고는 세계에 드러날 수 있는 민족적인 성공을 가져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를 보게 된다면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도 지금부터 120년 전에는 초원지대요 사막지대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백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곳을 개척하기 위해서 많은 인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을 투자해 왔습니다. 그것으로만 개척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 낼 수있는 끈기 있는 국민성이 뒷받침이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대가를 계속해서 치른 결과 오늘의 샌프란시스코가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뿐만이 아니라 미국 자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근 2백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권을 조성하기까지에는 말할 수 없는 인적인 대가와 물질적인 대가를 치렀습니다. 또 신앙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대가를 치른 결과가 현세에 와서야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세계를 지도할 수있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섭리를 계속해 나오셨는데 그 결과는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될 것이고, 방계적인 입장에 있는 수많은 종교가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고해 나온 그 결과인 오늘날의 종교가 세계 앞에 공헌을 못하고 세계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있어서 플러스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기나긴 세월을 싸워나온 모든 싸움의 공적은 여기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와 더불어 동반해야 하고, 시대와 시대를 거슬러 나가야 할 것인데 그것이 중단되어 그 섭리의 방향이 빗나간다면, 그만큼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며 다시 제2의 전술을 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여기에 새로운 인적 자원을 투자해야 되고, 새로운 물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되고, 새로운 정신적 자원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듯 복귀섭리를 중심삼은 중대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인인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가령 남자가 행복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필연적으로 공식적인 환경이어야 합니다.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행복을 그리게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적인 형태는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은 개인이 바라는 행복의 기준보다도 범위가 넓고 크기 때문에 더 복잡할 뿐입니다. 때문에 복잡한 내용을 거쳐 가지고 여러가지 인연이 여기에 부합되고 혼합되어 하나의 목적을 지향시킬 수 있는 국민성을 갖지 않고는 그 나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복귀섭리는 어떤 지역적인 한계권내에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지역적인 한계권을 넘어 국가권내로 넘어가야 하고, 국가권내에서 세계권으로 넘어가야 하고, 세계권내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천주, 이 광대하고도 엄청난 범위로까지 넓혀 가지고 이것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물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고,인적 자원도 투입해야 할 것이고, 정신적 자원도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귀전선에 있어서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어떠한 개인이면 그 개인, 종족이면 종족이 여기에 정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 이 3면을 얼마만큼 투입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 어떠한 종족이 그분야를 중심삼고 이 3면을 얼마만큼 투입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거기에는 같은 모양으로 투입했다 하더라도 정성을 두고 볼 때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모양이 모두 다르고 심성이 모두 다르니 그들이 들이는 정성의 기준도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10억 가까이 있는데, 그 기독교의 배후를 헤쳐 보게 될 때에 과연 우리 통일교회가 이복귀전선에 있어서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물질적인 면이라든가 인적인 면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세계의 어떠한 종교든지 능가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있느냐 하면,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보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으로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내적인 입장에서는 그러냐? 만일 그렇다 할 수 있는 자신이 없고, 그렇다 할 수 있는 실적이 없다면 복귀섭리의 방향은 아직까지 정상적인 곳을 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갑이면 갑, 더 나아가서는 30억 인류 각자가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양과 처해진 환경은 천태만상이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는 모두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있고,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있고, 또 인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각 국가면 국가가 그 국가 기준에 맞는 어떠한 분야에 임하고 있고 각 민족이면 민족이, 각 개인이면 개인이 그 기준에 의해 나름대로의 분야에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복귀전선이라는 것은 하나의 경주마당이라면 경주마당이요, 생사를 결정하는 담판장이라면 담판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귀의 전선은 우리들이 계획한 그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는 전신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비참한 투쟁을 거쳐 가지고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인 대전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직까지 우리 환경 가운데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적군이 얼마만큼 강하냐? 원수의 배수진이 얼마만큼 강하냐? 우리를 공격해 오는 적군의 병력이 얼마나 집결되어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 임하는 통일의 용사들은 각자의 결의의 기준이 그들을 능가하지 않고는 이 전선을 무난히 돌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심적 자세와 생활적 자세, 혹은 결심의 정도에 있어서 적군의 기준을 어떤 면으로도 능가할 수 있어야만 그 전선에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온당한 주장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분야가 결여된 입장에서 승리를 꿈꾼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요,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강조하는 그 자체는 만용으로밖에 단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할 때 급으로 말하면 천만 급이 있겠지만 여러분 각자는 자기 나름대로의 급에 따른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만이 그러냐?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지금까지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인의 인격이라는 하나의 표준을 정해 놓고 그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영계에 갔다 하더라도 그 인격 표준은 자동적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과 근본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쳐놓은 철창을 부수고 쇠고랑을 끊어 그 인연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또 개인의 인격완성이라는 표준적인 규격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되는 극복이라든가 승리라든가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를 위한 투쟁과 혈투전이 틀림없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가정도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고, 국가도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고, 세계도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적진의 울타리에 첩첩이 포위되어 있는 이 현상을 생각해 보게 될 때 내 자신은 오늘날 어떠한 입장에서 진군해야 하며, 어떠한 입장에서 이 울타리를 타개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없습니다.
그러면 각각 각자가 이 복귀전선의 어느 방향을 중심삼아야 하느냐? 사방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남극이면 남극 북극이면 북극의 어느 방향과 어느 거리에 있더라도 천태만상의 급이면 급, 단계면 단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1세기면 1세기를 걸어 놓고 투쟁하게 되면 패자냐 승자냐 하는 결과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여 타락한 인간, 즉 30억 인류는 현재의 평균적인 그인격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가(可)면 가(可), 부(否)면 부(否), 정(正)이면 정(正)이라는 결론적인 입장을 반드시 판단받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운명은 종적으로든 횡적으로든 반드시 있게 됩니다. 그것은 종적인 문제와 횡적인 문제를 타개해 가지고 승리의 한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그 날이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이 전선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인간으로서 목표하던 인격완성을 하여 사탄을 굴복시킨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나 그러했던 자들의 후손으로 태어난 현재의 세계 인류를 두고 볼 때, 이 싸움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지상태에 있지만 여러분의 생활 환경을 끊임없이 파고 들어와 여러분의 생애 노정까지 감아 넘기려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복귀전선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 소강상태에 있느냐, 열전 상태에 있느냐? 열전이면 열전에 응할 수 있는 용사들이 있느냐? 열전이면 열전일수록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를 좌우할 정도로 긴박하다는 것입니다.
소강상태가 지나면 반드시 열전상태가 올 것이어늘, 여러분들은 스스로 거기에 응할 수 있는, 스스로 내적인 준비를 보강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 병사로서 갖출 바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라도 스스로 내적인 준비를 하여 국가적인 기반과 세계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이러한 복귀전선의 일원으로서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미 생사를 걸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엄청난 천주주의의 기치 밑에 서서 사탄이라는 큰 적을 정면에 마주보고 있는 여러분들은 용감한 용사로서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그 전선은 남자만이 싸우는 전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군대라 하면 남자들만이 가는 것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군인이 되어야 할 공동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자기 개체가 북쪽이면 북쪽, 남쪽이면 남쪽, 서쪽이면 서쪽, 동쪽이면 동쪽 중 어느 곳에 처해 있는지 그 환경을 파악하지 못하는 용사들이라면 패자의 서러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적을 향해 총을 겨누고 전면적인 진격을 해야 할때, 적진의 심장부를 향해 공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위치와 방향을 알지 못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행동을 한다면 그 전쟁에 있어서 승리를 거두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적인 섭리노정에 있어서 통일전선,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섭리하는 데에 있어서 이 통일이라는 명사가 전체를 이끌 수 있다는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일대에 끝날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만방에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우수한 문화 민족이 되어 가지고 세계를 통치할 수있는 권한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 싸움은 그 민족정신을 타고 계속될 것입니다. 그 사회의 방향과 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면서 이 싸움은 계속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국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좌우가 부딪치는 현세계의 정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금후의 역사 시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될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참여한 병사들이 자기 나름대로 돌아가려 한다면 전과는 점점 불리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싸움의 관문을 전부 지나가는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용사란 적을 앞에 두고 피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적을 향하여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돌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적장을 대해서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투쟁하고, 난국이 정면적으로 부딪치게 될 때 비장한 자세로 그 난국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 서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복귀전선은 어디에 있느냐? 아시아면 아시아, 구라파면 구라파, 오대양 육대주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선을 언제나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역사의 배후에서 수고한 공적의 터전을 이루어 놓은 복귀전선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복귀전선을 펼 수있느냐? 이들은 이미 싸우다가 지친 낙오병이요, 패잔병에 가까운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을 다시 수습하여 제2차의 명령을 할수 있겠느냐 하면 그럴 수없는 것입니다. 이들을 수습하기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부딪쳐 입은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이들보다도 새로운 무리들을 중심삼고 복귀전선을 펴지 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세계 무대를 중심삼고 6천년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복귀전선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복귀전선을 재편성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를 통하여 복귀전선을 재편성할 것이냐? 대한민국, 혹은 세계적인 기독교의 현상이나 종교계의 현상을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 무리들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가르쳐 주듯이 그 전선이 통일전선이 아닐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세우려 하시는 주권이 국가적인 입장과 세계적 입장을 대신해 가지고 강력한 체제 밑에서 강력하게 단결되어 있다면 그것을 끝날의 복귀전선에 투입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전면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세계적인 정세를 앞에 놓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하는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최일선 장병으로 모병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부름받은 병사이니 병사로서 갖추어야 할 장비를 완전히 갖추어야 합니다. 그 장비라는 것은 하늘에 있는 장비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장비를 말합니다. 문제는 하늘에 있는 영인들이나 지금까지 왔다 간 성인 열사들이 아니라 오늘날 그들의 후손으로 남아진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입장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 현철들이 역사적인 모든 패자의 서러움을 품고 수많은 한을 남겨 놓은 모든 싸움을 인계받아 그것을 정비해 가지고 승리의 결정을 내려야 할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복귀의 전선을 중심해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몸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복귀의 전선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갖춘 장비나 무기, 혹은 화력을 집중해 가지고 적을 격파해야 합니다.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고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 하나의 심정으로 일심 단결하여 적을 격파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같은 귀로 듣고 같은 세포로 느끼면서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참석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을 중심한 승리의 권한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싸움을 그냥 구경하는 병사가 있다면 그 병사는 나라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선에서 자기의 생명을 안고 전선을 피하고자 하는 자는 낙오병입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좀먹고 병사들이 가는 길 앞에 방해꾼이라는 것입니다.
복귀의 전선을 향한 진격은 기필코 있어야 합니다. 기필코 있어야 될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이 세계를 엮어 나오는 복귀섭리의 배후를 두고볼 때 하나님은 시대시대마다 그러한 때를 집중시켜 왔다는 것을 알 수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하나님은 4천년 동안 복귀섭리의 전선을 하나에 집중시켜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 대열의 전반을 투입시키고 여기에 지도할 수 있는 총사령관으로 예수님을 세웠으니 그의 작전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단결하여 적진을 향해 공격해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역사에 없었던 승리를 하여 그 승리의 팻말을 들고 전세계로 진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말할 수 없는 패자의 서러움을 당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하나 망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복귀 전선을 구축하려고 찾아 세운 그 한 나라가 망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에 치명적인 참패의 서러움을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그 대가를 치러도 치를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한 손해를 가져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말없이, 이유없이 희생되어 가는 제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한 나라가 주권을 지탱할 수없습니다. 미국이면 미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최후의 전선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복귀섭리에 의한 피해자, 즉 세계적인 전선을 중심삼고 볼때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미국 위싱턴에 갔을 때 FBI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의 중요한 간부가 쭉설명하는 것을 보면, 미국이라는 번화한 사회도 현실적인 모든 형태가 지속되고 있고,그냥 그대로 보이고 전개되고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 계속적인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배후에 막강한 경제력이 투입되고 수많은 무명용사들이 말없이 제물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화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을 능가하고 미국의 주의나 사상에 대치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그 위치를 지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대결하여 국가의 운명이 계속되는 그날까지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전시(戰時) 이상의 결의와 비장한 각오를 하며 그것을 책임지기 위해 말없이, 이름도 없이 쓰러져 가고 제물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나라의 주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북이 남한을 대해서 첩보활동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은 언제나 피습받는 입장에 있습니다. 첩보전에서 패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전면적인 전쟁에 있어서도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내적인 모든 결의와 사상에 있어서 북한에 대응할 수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갖추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강한 사상을 가졌다 하더라도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극복하지 못할 행동이 적군에게 제시되었다 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갖지 않고는 반드시 적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어느 한 때에 그것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해도 패자인 것만은 부정할 수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도 배후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희생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 복귀의 전선에서 배후의 인연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의 주권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를 좌우하면서도 배후에서 말없이 원수와 대결하여 그들에게 대가를 치른 후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전진적인 전법과 행동적인 조건을 제시하여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적의 포위권내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들과 대결해서 포위망을 터치고 그들을 밀어낼 수있는 행동으로 전세를 연결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서도 능동적으로 적을 타개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전선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복귀전선에서의 승리는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법은 게릴라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는 활동도 게릴라전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승공활동을 하고 있는데 공산주의가 50년 동안에 세계의 3분의 1에 가까운, 아니 절반에 가까운 나라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사회에까지 공산당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판도를 가진 공산당에 대해 승공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소수의 무리가 나선 것을 일면적으로 보고 어리석고 세상을 모르는 자들의 행동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잘못 봤다는 것입니다.
일본 방송에서 보도했듯이 일본에서는 지난 27일에 전국 승공국민대회를 동경의 하비야 공원(日比谷公園)에서 가졌는데, 여기에 한 5천여 명이 참석해서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공산당은 지금까지 일본이 자기들의 뜻대로 틀림없이 적화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활동하면서 적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우리 소수의 통일의 무리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의 공산당에도 문제가 되었고, 일본 정부에도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국민이 새로운 각도에서 스스로를 비판하고 앞날을 재검토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행동은 미미했지만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볼 때, 이것은 일본에 하나의 파문을 일으킨 결과가 되었으며 이 파문은 아시아의 전역에 미쳐질 수 있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써 끝낼 것이냐? 공산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릴라 전법을 써야 되나 그 후에는 대병력을 투입하여 전면적인 싸움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모험을 해야 하느냐? 오늘날 세계의 어떠한 사상이나 단체도 공산당에 대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가 이런 운동을 전개함으로 말미암아 공산당과 대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은연중에 국민 대중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승공이론과 국민의 신념이 하나만 된다면 공산당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진 자라면 소수인이 남는다 하더라도 공산당을 능가할수 있고, 공산당의 역사 기반 이상의 분야를 차지할 수 있어 결국은 그무리로 인해 공산당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희생과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때문에 지금 통일의 무리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구보끼 회장을 중심삼고 있는 일본의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각오하라고 했습니다. 진지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담판짓고 넘어가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싸움에 임할 때에는 절대로 혼자서는 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싸움이 점점 격렬해지면 격렬해질수록 수많은 적군의 화살이 나를 겨누고 있고, 수많은 적군의 총칼이 나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이 엄숙하고 주체적인 권한에 의지하여 모든 면에서 그분의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어떠한 책임자도 큰 대회를할 때에 수많은 군중 앞에 서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악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이상의 정성을 들이면 그 자리에는 사탄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격전이 벌어진다해도 생명을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아시아에 있어서 이미 싸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일본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를 조종하여 그 배후에서 천적인 섭리를 파탄시키려는 원인자,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탄이 우리의 원수인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 사탄이라는 말을 어린 아이들이 밥을 찾는 것과 같이 습관적인 단어로 생각하는데 이 사탄이 바로 6천년 동안 창조주, 즉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무한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무한의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무소부재하시는 그분을 지금까지 패자의 입장에서 쓴 잔을 마시게 해 놓은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인간은 사탄에게 걸려 있기 때문에 그 걸린 낚시를 빼기 전에는 사탄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빼느냐? 하나님은 못 뺀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빼야 된다는 것입니다. 낚시를 빼는 데 있어서는 동정을 가지면 안 됩니다.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꿔채야 됩니다. 한 부분이 병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꿔챌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힘이 누구에게 있느냐? 그 힘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슨 역사를 해 나오셨느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나꿔채 왔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당기는 힘보다도 하나님이 나꿔채는 힘이 더 강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무한한 힘으로 인간을 당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게 될 때에는 병신이 된다 이겁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승공이라는 것은 말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의 첩보망이 세계에 널려 공산당과 싸우고 있지만 공산당이 오히려 그런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소련의 첩보망이라는 것은 굉장합니다. 이러한 공산당을 대해 가지고 우리는 칼도 없이, 무기도 없이, 두 주먹만을 가지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혁명 대열에 참가했습니다. 혁명전선이라는 것은 천리 행군이나 만리 행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군은 생애를 걸고 몇 대를 거치며 계속될 것인데, 지금 행군하는 전선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전선이 더 치열할 것입니다. 그 치열한 것에 박자를 맞추어 다짐한 결의가 배가 되어야 할 텐데 그것이 감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패배할 것이 당연합니다. 스스로 포위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판국에서 싸움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이미 뺀 칼을 다시 꽂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에서 승공활동을 한 것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적기)'에 게재되어 전세계 공산국가에 다 들어갔습니다. 이 신문은 모스크바는 물론이요 중공에도 다 보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활동은 민주세계보다 공산세계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각도에서 공산당들에게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공산당은 여당과 같은 입장이요 우리는 야당과 같은 입장인데, 공산당은 우리의 참소에 걸려 가지고 자기 스스로 해명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공산당 역사상에 없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금까지 대중의 옹호를 받아서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당이 야당의 반박을 받아서 해명을 해야 하듯이 해명을 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섭리상에 있어서 처음 나타난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운동은 하나의 운동으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대양을 건너 가지고 세계를 이끌어 갈 운동으로 전개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급진적인 성과를 어떻게 가져 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전선의 일선에 선 지도자, 혹은 책임자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책임자들은 앞으로 아시아 전선을 책임지는 데에 있어 정예대원들이 되어 선두에 서 가지고 대중을 지도해야 됩니다. 또 지도자로서 전략 전법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경험이 있어야 하니, 이런 것을 볼 때 지금까지 실전에 임했던 경험들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복귀의 전선은 이미 세계적인 전선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나의 여력만 가지고 유지될 것이냐? 이것은 어떠한 동네의 잔칫집에서 잔치 준비하는 데 심부름을 해주는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내 생명을 투입해야 합니다. 일대에 안 되면 그 사상을 주입시켜 수천만 대를 거쳐서라도, 항서를 받을 때까지 전진하겠다는 장엄한 결의를 해 가지고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홀로 그 한 길만을 직행하여 나왔습니다. 여러 길이 아니라 오직 한 길만을 지금까지 걸어 나왔습니다. 이제는 최후의 결단을 지어야 합니다.
나라가 망했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때를 하나님은 반드시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원칙에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천지의 인연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아무리 실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배후에서 스스로 반성해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실패했더라도 그 실패를 밟고 일어서게 될 때에는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실패해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요, 성공한 그자리에서도 다시 제2의 출발을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1차 7년노정에 있어서 각자가 실패했다고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7년노정에서 하늘 앞에 충성을 못 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써 끝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안 되었으니 반대 방향으로 나가야 되겠다는 자기 나름의 새로운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1차에 실패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되어 가지고 재차 수습할 수 있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내가 이렇게 나갔기 때문에 안 되었구나. 이제는 이렇게 나가야 되겠다. 과거에는 인간적인 견지에서 비판하다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실행하기 전의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런 후 올바른 방향을 취해 가지고 행동으로 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기력이 빠진 쓰러진 몸을 붙들고 새로운 방향의 길을 모색하여 보란듯이 제2의 목적을 향해 강력히 나서지 않고는 제2의 전선에 참전한 영웅으로 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전면적 진격'이라는 이 표어는 몇 년 동안 계속될 거예요. 명년에도 표어가 같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삼팔선 이북에 첩보 요원으로 보낸다는 특명을 내렸다면, 이런 밀명을 자신이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것이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국가의 비운을 막아야 할 비상상태에 임하게 될 때에 그 국가의 제물의 자리에 세어 주신 것을 종족적인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세를 여러분들이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선두에 서서 삼천만이 숙망하던 하나의 제물적인 존재가 되어 가지고 엄숙히 책임을 수행하며 승리의 결정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서 하늘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천운이 그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가는 길이 아무리 비참하다 하더라도 그 일개인이 비참한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의 국가는 새로운 광명의 길을 개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전면적인 진격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나서서 삼팔선을 넘을 때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에게 끌려 갈 때는 최후의 결의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여기서 그런 각오를 안 가지면 안됩니다.
우리의 뜻은 어느 한 때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필요 적절한 어느 한 시기에 하늘은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총진군의 명령을 내려 우리에게 따를 것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 명령 앞에 어떠한 자세를 갖추고,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과 방비를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 일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비참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가까운 것을 제물로 바쳐드려야 할 것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비참하게 원수를 제물로 바쳐 드려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나의 제일 가까운 전부를 내어 주어서 제물로 삼아야 할 것이냐? 아니면 원수를 제물로 드려야 할것이냐?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원수가 남아 있는 한은 제물을 드려야 할 과정이 반드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두고 해 나왔습니다. 1년, 혹은 10년을 그런 희생의 제물을 바쳐 연결시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가까운 인연을 중심삼아 끊는 역사를 오랜 기간을 단위로 해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일에 있어서 무관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원수와 단판을 지어야 합니다. 만일에 단판을 짓지 못하게 될때에는 여러분이 원수의 칼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 앞에 있어서도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악한 세계의 역적으로 몰려서 하나님 앞에 슬픔의 조건을 남기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하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운명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의 수반은 심각한 때가 많습니다. 하나의 결정을 잘못하면 역사에 길이길이 비판을 받을 것이고 잘하게 되면 길이길이 찬양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중심삼고 각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애국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통일의 무리들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이들은 서로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결심했느냐? 세계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결심을 했느냐, 아니면 민족적인 내용을 가지고 결심을 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의 무리들은 민족적인 운명을 뛰어넘어 세계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내용은 필시 세계사적입니다. 세계사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시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내용을 갖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이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배척한다고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아가 배척한다고 낙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언제, 어디서나 필요로 할 수 있는 하나의 자세를 갖고 남아지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끝까지 남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요 적절한 환경이 국가적으로 몰려 오게 될 때, 국가는 그 남아진 무리들 앞에 머리 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쓰러져 갔지만, 예수님은 그 가운데에서 다시 솟아났습니다.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여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은 피를 흘린 사람에게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수가 많은 것을 원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수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이라는 것은 수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은 하나입니다.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중심은 자유자재입니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며, 있기는 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양면을 연결시킬 수 있는 모체는 하나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천태만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프로필을 가지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이러한 사람으로 왔다가 저런 사람으로 스쳐갈 것입니다. 혹은 갑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욕망만을 가지고 자기의 이익을 찾기 위해 살다 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이 언제까지 남아지겠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자는 오래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뜻을 따라가는 과정에 전부다 쓰러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아침에도 선생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10년 후에도 전부 남아질 것이냐, 혹은 20년 후에도 남아질 것이냐? 또는 초로와 같이 사라지는 절박한 운명에 임하게 될 때, 거기에 동참하여 남아질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와 상관 없었던 사람들, 혹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무리 가운데에 그러한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사람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칼을 꽂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그럴 수 있는 환경권내에 있는 무리였습니다. 8할 이상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사, 아버지라 부르는 명사까지도 전부 다 지배할 수 있는 그 주체자가 누구냐? 대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세 제자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떠한 한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겪어야 됩니다. 나자신을 그렇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그 시련의 무대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 시련을 이겨내게 하기 위해 열 만한 크기의 사람에게 백 만한 기준의 시련을 퍼부을 것입니다. 열 만한 자리에 백 만한 시련을 퍼붓는 것은 그것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백 만한 시련을 가해서 구십구 만한 실력을 갖게 하기 위한 작전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여기에 퍼부어 주는 시련은 탄식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운을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복된 조건인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며 자기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최후의 결정을 지어 뜻하신 대로 가겠다고 결정할 때까지는 막강한 시련의 무대가 우리의 뒤를 포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땅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하늘로 올라가느냐 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땅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땅에 들어가지 않고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 그길보다는 하늘을 향하여 생명을 내놓고 죽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큰 일을 하고 싶습니까? 하나의 위대한 조상이 되고 싶습니까? 생과 사의 갈림길을 왕래하는 경지를 거쳐가지 않으면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훈련을 배가해야 합니다. 적의 포위가 강하면 강할수록 후퇴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밀어낼 수 있는 강한 주체적인 힘을 어떻게 집중시키느냐? 적이 천이고 우리가 천 백일 때 일대 일로 싸우고 나면 백밖에 남는 것이 없는데, 그 백 가지고 세계를 어떻게 지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위해 여러분들은 훈련을 배가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천적인 운세를 좌우할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가진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운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천운적인 힘과 주체적인 권한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선진화하는 데에 지장이 되는 모든 여건과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핵심적인 내용을 얼마나 전체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대한민국의 부흥을 좌우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귀전선에 있는 우리도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영향력을 어떻게 보강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국가의 운명도 내가 좌로 갈 때에는 망하는 것이요, 우로 갈 때에는 흥하는 것입니다. 세계도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좌로 가면 망하는 것이요, 우로 가면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언행일체를 통하여 판가리 싸움을 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악과 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행동 여하에 따라서 악이냐 선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탄편이냐 하늘편이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전선을 향하여 총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아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는 행동에 따라서 통일교회의 운명이 좌우되고, 선생님의 생사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생활철학이 되어야 하고, 신념에 사무쳐 이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망하면 하나님도 망하는 것이요, 후대도 망하는 것이며, 상하관계에서 보면 하늘땅이 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좌우관계에서는 민족이 망하는 것이요, 전후 관계에서는 내 친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비운의 와중에 몰아넣고 나를 포위하고 있는 사탄의 세력을 격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이 부족하니 천운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최후의 병력을 공급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작전법이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의 내일과 이 세계의 내일을 염려하는 데에 있어서 하늘을 부여안고 통사정할 수 있는 땅 위의 요원들이 얼마나 있는가? 하늘의 정병을 얼마만큼 적군 앞에 전진시킬 수 있으며, 또한 얼마만큼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것입니다.
하나의 큰 전쟁을 맞이해야 할 지휘관이 있다면, 그 지휘관은 적군이 막강하면 막강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안팎으로 틀림없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대비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첩보병을 보내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첨단에 서 있는 병사가 얼마만큼 강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일대일로 볼 때 우리 병사가 능히 십을 대할 수 있다고 하게 되면,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십배의 강력한 적이라 해도 장기전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한국에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보다도 하나님 앞에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심정적인 사람은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심정에서부터 가정적인 심정, 민족적인 심정, 세계적인 심정으로 발전하여 체휼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심정을 가지고 더욱더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붙들고는 하나님은 작전을 하지 못합니다. 천국 보위의 명령을 받은 입장에 서 가지고 자기의 위치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큰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행동 하나를 잘못하게 되면 역사가 좌우되므로 후에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는 것이나 먹고 입는 일체의 생활을 신앙을 중심삼고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주력부대는 얼마나 되느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60만 대군이 있는데, 전부가 주력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력부대를 리드할 수 있는 사령관은 누구냐? 이러한 관점에서 불 때, 사방천지의 전면적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어떠한 전선을 맡고 있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 전쟁이 크면 클수록 전황이 여러 가지 분야에서 가중될 것이어늘, 그 가중되는 분야에 미치지 못하게 될 때는 급진적인 보강을 해야 하므로, 거기에 대비할 수있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막강한 군대가 되려면, 여러분 각자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사령관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기보다는 병사가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사들 자체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잘하면 이 나라 이 민족이 흥하는 것이요, 내가 못하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천운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로 커 갈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가는길 가운데 아무리 깊은 골짜기와 아무리 높은 고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난히 극복하고 세계로 커 갈 것입니다. 세계의 정상으로 커 갈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지고 세계를 위해서 결정지을 수 있는 신념을 가졌다면, 세계적인 이상세계가 등장하게 될 때에 이 민족이 세계를 지도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에 적과의 싸움에 있어서 사령관이 전사를 당했다면 사단장이 그 사명을 대신해야 합니다. 또한 사단장이 전사하면 연대장이, 연대장이 전사하면 대대장이, 대대장이 전사하면 중대장이, 중대장이 전사하면 소대장이 이어서 해 나가야 됩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하나의 지도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면적 진격을 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있어서 불리한 전세를 맞게 될 때에 자기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무리보다 이 풍난을 견디고 나설 수 있는 무리가 얼마나 되느냐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죽고자 하는 무리가 사는 것입니다. 소수의 무리라도 이런 무리라 할진대, 다수의 적군을 능히 무찌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참다운 애국자는 `나는 삼천만을 위해서 죽을 것이다. 나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죽을 것이다' 하고 나서는 자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이 복잡다단한 복귀섭리를 안팎으로 책임졌다 할진대 며칠이나 몸부림칠 것이냐….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세계적인 복귀섭리를 책임졌다고 한다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수많은 민족이 전부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욕망이나 자기의 국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기도를 하는데,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어야 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실전에 임하기 전에 어떤 기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의 심정적 기준을 세울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입장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할 때 어떻게 해요? 자기를 중심삼고 기도하지요? 교회도 자기를 중심삼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은 창조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했을망정 그 기준은 언제나 불변하기 때문에 그 욕망의 발현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세계 각처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소리와 같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리실 것이냐, 그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어떤 것이냐를 알아야 합니다. 이북 방송이 언제나 크게 김일성 수령이 어떻고 박정희 도당이 어떻고 하는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아무리 떠들어 봐야 낙엽처럼 먼저 땅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반공전선에 입각한 요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왔다갔다하다간 오히려 그들에게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의 인류가 전부 다 기독교에 침식이 됐다 해도 하나님이 곤란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 세계 인류를 빼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전쟁보다도 더한 운동을 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전쟁을 그만 두고 그보다 더한 운동을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국 체육대회를 하려면 몇 개월 걸리지요? 전국 체육대회를 하려면 선수를 군에서 먼저 추리고, 군대표자들을 도에 보내서 도에서 추리고, 그다음에 도 대표가 중앙까지 나와 가지고 추리려면 몇 개월이 걸립니다. 인구가 삼천만 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에서도 전국 체육대회를 한번 하려면 수많은 요원이 동원되어 가지고도 몇 개월 걸리는데, 하나님은 복귀섭리라는 판도를 세계적으로 떡 벌여 놓았다 이겁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간 어떤 사람들은 더 올라가기 싫으니까 `아이구 나 더 이상 못 올라가겠으니 내려가겠소' 하고 내려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아이구 힘듭니다. 나 못가겠습니다' 하면서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각기 금으로 표시한다면, 별의별 금을 다 그어도 모자랄 정도로 복잡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예선대회를 언제 할것이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아들딸을 선출하는 예선전을 언제 했었다는 말을 들어 보았어요? 그 예선대회장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기독교면 기독교 등이 전부 자기 나름대로의 대회를 치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나름대로 대회를 치러 나왔는데 워낙 그 판도가 크니 어떤 데는 10년 전에 대회가 끝났는가 하면 어떤 데는 10년 후에나 시작하게 되는 데가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 전에 출발한 종교가 있는데 10년 후에도 출발이 안 되어 있는 종교가 있으니, 그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마이크를 대고 호령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그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고 기가 막히겠나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튼 예선대회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올림픽 대회는 어느 나라에서 하느냐? 특정한 나라에서 하는 것입니다. 대회를 개최하는 그 나라 사람은 혜택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경기를 치르는 데 있어서 외적인 구애라는 것이 그 주최국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경비도 들어야 하고, 풍토가 다르고, 기후가 다르고, 모든 여건이 다른 데에서 경기를 해야만 하니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그 나라 사람은 달리는 데도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응원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앞질러 가게 되면 수많은 군중들이 `야 이 자식아! 기다가 다리나 부러져라' 하고 야유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탄의 사촌이 다 되는 것입니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번에 세계 챔피온 결정전 때, 김일 선수가 상대 선수의 밑에 들어가 가지고 바둥거리고 있는 것을 볼 때, 그저 꼭대기에 올라가서 발로 차 가지고 그냥…. 그런 생각이 울컥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쿠 이거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욕망의 방향도 역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떠나 가지고는 제2의 대상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예선대회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그 나라도 해요, 안해요? 대회를 맞기 전에 본국에서도 예선을 치러야 합니다. 본국이라고 해서 구경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나라 역시 예선대회를 치러야 합니다. 예선이 끝나야 본 대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계에 있어서 예선대회를 언제 했느냐? 그 예선을 거쳐서 챔피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라를 들이쳐야 합니다. 세계를 들이쳐야 합니다. 세계를 들이치는 데에는 몰아서 들이쳐야 됩니다. 한꺼번에 퍼부어야 됩니다.
전에는 통일교회 무리들이 몇 명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장로교 및 감리교 등 전체가 동원되었고, 이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패들도 우리보고 이단이라 했습니다. 삼천만 모두가 통일교회를 쳤습니다. 그 치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이만큼 예선대회가 지루한 것입니다. 왜 지루하냐? 비가 와서 장마가 지고 태풍이 부니까 가다가 말고 선수들이 다 지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놀음에 지쳐 있습니다. 예선이 끝나면 본 대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본대회를 어디에서 하느냐? 예수님도 본 대회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수많은 민족이 자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나와 가지고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주장대로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전부 해보라는 여기에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뛰다가 보니까 강이 있는데, 그 강에 썩은 다리가 있다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등이 탐나거든 죽든 살든 썩은 다리를 건너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건너가기 전에 무너지느냐, 건너는 중에 무너지느냐, 아니면 건너가고 나서 무너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때에는 무너지겠으면 무너져라고 하면서 무너지기 전에 쏜살같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면 안 무너지는 것입니다. (웃음)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심판관한테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회를 다시 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는 후다닥 빨리 건너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통일교회식이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가만히 있다가 언제 할지 모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과 같이 불쑥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예선대회에서는 그래도 남아났습니다. 이제는 세계대회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어느 때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예비심사를 했느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심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최고의 정력을 다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만은 망하지 않고, 죽지 않고 이것만 넘었으면…' 하고 가슴 졸인 사람이 있었느냐? 그렇다면 그분은 누구였겠는가?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게 했어야 될 것인데, 죽였기에 소망하던 모든 것이 꺾여 나갔던 것입니다. 때문에 몇 천년이 가도 그분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떤 민족의 사람이 그런 재림주가 되어야 할 것이냐?
이것은 세계적인 과제입니다. 과거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그렇잖아요?
만일 한 남자가 세계 제일의 미인을 맞아 가지고 살아 보지 않고는 못죽는다고 천년 만년 버티는 사나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참으로 곤란할 것입니다. 또 여자로 말한다면 세계의 위대한 자를 맞아 가지고 그의 후계자를 낳지 않고는 못 죽는다고 몇 천년을 두고 버티는 여자가 있다면, 역시 하나님은 곤란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해 보았어요? 밤낮으로 수만년 버티게 된다면 하나님이 참 곤란할 것입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소원도 못 들어 주는데, 나라의 소원, 세계의 소원을 어떻게 들어 주시겠습니까?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본래 그런 것입니다. 인간에겐 본래 그런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필 수 있는 꽃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보다 하나님의 무한한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 수 있는 남성이 되고,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못 하고서는 민족복귀의 출발을 못 하는 것입니다. 타고 앉아서 태평하게 있으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예선대회를 하는데 심정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누가 제일이냐? 그런 심정을 대해 가지고 나가는 남자 앞에 대한민국에서 제일인 여자와 코가 비뚤어졌지만 심정이 맞는 여자가 나타났다 할 때, 그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때 누구를 택하겠습니까? 코가 비뚤어진 여자를 택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더 좋은 것이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더 좋은 최후에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덜 좋은 것은 정리해 버리고 더 좋은 것이 남아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섭리노정에서 이 대회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걸어 놓고 나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금후의 본선대회에 앞서 있을 예선대회에 예수보다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인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습니까?
맏아들을 낳았을 때는 그 아들만을 몽땅 사랑하지만, 만일 그 맏아들이 죽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난 아들이 얼굴도 비슷하고 무엇으로 보나 맏아들보다 월등한데도 그 죽은 맏아들만을 생각하고 `난 너를 모른다'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 가운데 있어서 선생님과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누구를 먼저 부르실 것이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안 되었지만 예수님을 먼저 부른다면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하나님 앞에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이 틀렸으면 어디 한번 말해 보세요.
예수님은 큰 일을 해야 하는데, 이적기사니 뭐니 하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입니다. 무엇을 그렇게 바쁘게 했느냐 말입니다. 작전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의붓 아버지인 요셉 하나를 왜 구슬리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했더라면 밤에도 `아버지 계십니까?' 하고 불렀을 것입니다. `왜 그러노?' 하고 한 번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 대답하도록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못 했습니다. 그것을 나는 작전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됩니다.
복귀섭리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선발전을 해나오는데 여러분이 `이거 왜 싸움만 치르노?' 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도 그 이상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자리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쓴 잔을 면케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환영하는 승리의 자리에서 하늘의 영광을 앞에 놓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내세우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나간 역사과정에서 예선대회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영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전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문아무개는 하늘의 역적이다'라는 레테르를 붙여 놓았었습니다. 난데없는 불순동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돌배밭에 참배 하나가 태어났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게 전부가 들고 나섰습니다.
이렇듯 맞서는 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공산당이 잘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보따리를 둘러메고 `내 신세가 이렇소' 하며 간판을 내렸을 것입니다.
미국이 자기만 제일이라는 독자적인 권한의 시대는 다 지나갔습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에게 맡겨라. 우리는 가담했다가 후퇴한다'라고 하고 있으니, 그 상판대기에 `이 자식들아' 하고 침을 뱉아도 미국이 할 수없다는 것입니다.하다가 그만 두려면 아예 손을 대지 말든지, 그게 뭐냔 말입니다. 이제 미국의 앞날을 두고 보십시오. 닉슨도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 생김생김은 그럴 듯한 사나이로 생겼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미국은 내려갈 것입니다. 걷잡을수 없이 내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닉슨 행정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미국의 모든 여론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지금까지 공산당이 간접적인 지원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어떤 나라가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선발대로 입후보할 것이냐가 큰 문제입니다. 유엔총회에 있어서 총장의 권한이 모든 의결권에 대하여 중요한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심적인 존재가 처하는 나라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은 한국의 통일교회로부터 되어지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기분이 나쁘겠지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겠으면 죽으라는 것입니다. 판결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영계가 덜 되었기 때문에 반대로 침을 놓아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식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통일교회식입니다. 공산당식이라는 말도 있지요?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공산당식은 자기의 라이벌 있으면 상대방의 목을 자르고 밟고 올라서지만, 통일교회식은 내가 먼저 종의 입장이 되어 상대방의 머리를 숙이게 해서 굴복시키는 식입니다. 작전이 정말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계라든가 지상을 중심삼은 복귀의 전선은 이미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의 책임자로서 무엇을 뚫고 나가야 할것인가 하는 것이 전면적인 진격을 수행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 나왔지만 언제든지 선생님이 하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습니다. 여기 정도술 관장들도 왔지만, 통일교인들 보리밥도 못 먹고 있는데 정도술은 무엇하러 가르쳐 주느냐고 쑤근쑤근 했습니다. 그거 무엇하러 가르치고 있느냐…. 내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그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정도술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혹은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만의 정도술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나 통일교회만의 정도술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만의 통일교회냐? 최소한 아시아의 통일교회가 되면 되었지 대한민국만의 통일교회는 아닙니다. 이것을 후원하는 데 있어서는 적어도 7,8년은 준비해야 됩니다. 3년 이상, 5년 이상, 7년 이상을 내다보고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박자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악당들이 암흑가를 만든다면, 선당의 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선당들이 주먹을 쓰면 그것은 공판정에서 어떤 선의의 판결을 하는 것보다도 뜻적인 판결에서 빠릅니다. 그렇지요? 때문에 그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주먹으로 나오는 데에는 말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주먹으로 대항하는 것이 직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아들딸도 이것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그래서 관장에게 `네가 갖고 있는 모든 비밀을 며칠 이내에 전부 다 털어 놓아라' 하고 특명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엉큼하게 비밀을 전부 가지고만 있단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라를 망치고 우수한 민족이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원인인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타파해 버리고 국가와 민족의 정신적인 기능이라든가 예술적인 면을 모두 능동적으로 단시일 내에 접합시켜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모든 골수를 단시일 내에 뽑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원리라는 간판을 써 붙여 가지고 총괄적으로 수습하는 데 있어서 제일 빠른 경력을 가진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즈음 젊은 녀석들 중에 `선생님 한번 이렇게 합시다!' 하는 기백 있는 녀석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렇게 따라가다가는 6천년을 가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모험을 해야 됩니다. 모험을….
요즈음은 일본 공산당이 아시아에 있어서 중공이나 소련보다도 이론적인 면에 있어서 전반적인 기준이 높게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 공산당을 대해 가지고 일본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을 5백명쯤 모아서 반공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선생님 미쳤다고 자기들 나름대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자!'고 했습니다. 만일 일본에서 반공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통일교회의 위신은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에 할 때는 전국에 있는 지구장들을 모아다 놓고 6개월 이내에 반공활동을 해야겠으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방대한 공산당 이론을 6개월 이내에 준비해 가지고 강사가 되라고 하니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 6개월 이내에 전국적으로 반공활동을 하는 것을 책임을 지겠다는 배포를 가지게 하고, 녹음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과 같이 외워 가지고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새로운 모습이 생겨나려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실전에 임해 가지고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것입니다. 대학교 나와 가지고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직접 실전에 임해 가지고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것입니다. 필요적절한 환경에 들어가게 되면 귀띔만 해줘도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박한 환경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이 어떻고 복귀의 심정이니 무엇이니 말하고 있지만, 그 복귀의 심정이 맛이 납니까? 노처녀에게는 젊은 시절에 시집가서 남편의 사랑받는 맛을 암만 이야기해 주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하고 여러분하고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하는 것과 여러분이 `아버지!'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똑같지만 내용은 천태만상입니다. 이렇게 얘기하자면 한정이 없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를 하는 데도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만 하더라도 그렇고, 수많은 종교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떼어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품고 나오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정과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그런 자리에 한 시간도 있지 못 할 것입니다. 십분도 못 가서 전부 다 정신이 돌아 버리고 말것입니다.
기러기도 남아갈 때 하나의 선두가 있어 가지고 질서 있게 날아가지요? 먼 거리를 날수록 대열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할 때에도 맨처음에는 전부 다 한꺼번에 다투어 뛰느라고 복잡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리고 돌아올 때쯤 되면 순서가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한 백오십명이 마라톤을 할 때 순차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지어서 뛰게 됩니까? 그건 명령도 할 수 없거니와 명령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귀섭리는 단기작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장기작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6천년이 짧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나와서 6천년의 역사를 짧은 시일내에 복귀하려고 하니 바쁜 것입니다. 6천년 역사에 비해 통일교회의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시련 과정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천년쯤을 대결해야 할 선수들인데 7년쯤 되어 가지고 `이제 조금은 왔겠구만' 하다가는 망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실을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십시오. 만인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일등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노력하면 천리도 문제없고, 만리도 문제없습니다.
왜정 때, 우리 동네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았는데, 조금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 형사들이 와 가지고 3.1운동 때 만세 부를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그 일경들이 사람을 잡으러 올 때에는 저녁에 옵니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아 이 사람들이 왜 저녁에 오는 거야. 대낮에 와서 잡지. 나를 잡아라 나를 잡아' 했습니다. 하지만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전부 잡아다가 물어보니, 그 노인이 주동이라고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인이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주모자로 몰린 그 할아버지가 바로 낮에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하던그 노인이거든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붙잡혀 와 가지고 `죽어도 만세! 살아도 만세!'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노인을 공판정에 데리고 갔다간 창피만 당하겠으니 그냥 내쫓아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그 노인 참 명이 길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세를 부르려면 그렇게 죽어도 불러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만세 부르다간 오히려 다 죽는 것입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으니 하나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반을 쌓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귀전선의 최일선에 누구를 믿고 내보내시겠느냐 죽을 일이 있으면 먼저 죽겠다고 덤비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참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선조의 공적이 있는 사람을 중심삼아 보내고 싶은데 난데없이 아무 공적도 없는, 세상적으로 보면 백정과 같은 상것이 자식이 나타나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죽는 길의 선두에 서겠다고 하니 이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은 응당 그런 사람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할 때는 역적의 자식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써야 되는 것입니다.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런 배포를 가진 사라면 역적의 자식이라도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박한 입장에서 누구를 믿겠습니까? 역적의 자식이라도 죽음길의 선두에 서겠다는데 `너의 아버지가 역적이니까 넌 안 돼' 할 수 있겠습니까? 역적 집안, 역적의 아들 중에서도 충신이 나오는 거예요.
이러한 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에 죄를 져서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라도 적진에 들어가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오게 되면 살려 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생명을 걸고 나서는 데 있어서 충신과 역적은 일시에 뒤넘이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복귀섭리의 원칙이 그러니까 할 수 없는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협회장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협회장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협회장이 죽든가 병석에 눕는 불상사가 벌어질 경우 벌써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 앞으로 복귀전선에 나갈 믿음의 용사가 나타나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간판을 들고 나서야 되느냐? 일병이면 일병, 병장이면 병장등 무엇이든 붙이고 나서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을 붙이고 결전에 임할 것이냐? 생명의 용사라는 간판을 붙이고 임해야 합니다. 생명의 용사는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생명의 용사는 그 행동의 목적이 사선을 넘어 적진을 격파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용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선민적인 터전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해 왔는데, 우리는 여기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포탄도 쏘지 않고, 총칼도 쓰지 않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지금 아랫도리를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몰려들 것입니다. 내가 걸어 낚아채면 순식간에 몰려올 것입니다. 이제 한순간의 작전 계획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것을 위하여 전진하고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대열에 있어서 참된 용사가 되어야 하겠으니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비상사태에 임했을 때,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 전선이 전체 국민의 애국사상과 얼마만큼 깊이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크면 클수록 그 국민의 승리는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가는 입장에서도 여러분의 하루하루 생활 전체를 얼마만큼 그 시간권내에서 실감있게 전체화해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깊이, 혹은 높이를 기독교가 출발하던 그때와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많게 되면 우리는 급진적인 발전, 급진적인 승리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아야 합니다.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수치를 느껴 보아야 하고, 망신도 당해 보아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도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가기 전 법정에 섰을 때, 과거에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이 "이북에서도 감옥살이를 하더니 여기 와서도 감옥살이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그 버릇을 못 버렸구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내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감옥을 드나들면 투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때가 올 것입니다. 이 모든 원한을 모아 가지고 가다 보면 그 원한을 전부 다 풀고도 남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칠래야 지칠 수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술을 부르트고 몸뚱이가 불편해도 양양해 하는 원수의 등을 내가 양발로 딛고 넘어설 때까지 나는 갈 것입니다. 사탄을 대해 끝까지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라구요, 깊이.
여러분, 또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참이나, 아니냐 하는 문제입니다. 함부로 믿지 마십시오.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혹은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그 동기가 인간의 생각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바로 하늘이 동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계에 문의해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식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함부로 믿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만난 사람을 친구라고 잡아 끌어 가지고 뚝배기 막걸리나 마시면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원수를 갚을 칼을 품고 최후의 길을 재면서 가는 도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 잘못하다가는 원수들 앞에 끌려갑니다. 잘못하다가는 큰일이 벌어집니다. 양자택일입니다. 이런 길을 우리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왜정시대에 별의별 고문을 받았지만 `패라. 쳐라 모든 정치의 조직을 통해 쳐라. 나는 죽음의 한계선을 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의 고개를 여러 번 넘어선 사람입니다. 7,8시간까지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이 피를 흘릴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한마디만 하면 내 혐의는 풀릴 수 있었지만 안했던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민족이 피를 흘리고 동지들이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갖은 시련을 극복하고 남아진 이 고빗길에 와서 내가 양보할 수 있느냐며 버틴 것입니다. `쳐라. 또 쳐라' 하며 버텼어요. 나는 그러한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 천황에게도 원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복수한다고 해 가지고 일본 천황의 궁전에 들어가서 천황을 한 칼로 쳐서 과거의 전체의 원한을 전부 다 갚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패자인 것입니다. 하늘은 망한 자를 또 치지는 않습니다. 망한 자 가운데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사죄하는 자에 대해서는 긍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이 있기 때문에 패자에게 또 칼을 들어 치게 되면 친 자의 후손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친구 이상 가까운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대해서도 그래야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그 형무소의 구치과정이 한 이야기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한울 풀 때까지 이를 악물고 기다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삼천만의 반대를 받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척을 받으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더라도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앞으로 가면서 모험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나는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아시아를 중심삼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중심삼고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미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일 큰 문제점을 제시하는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아직은 지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에 죽는 날에는 이 땅 위에 다시 와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와서 일을 할 때에는 몇 배의 수고가 들어가느냐? 지금의 몇배나 많이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니 한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한시간이 바쁜 사람이예요. 선생님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수면시간이 평균 4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피곤하기는 계속적으로 피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이 연구한 운동법이 있습니다. 피곤할 때, 그 운동을 해서 등골에 땀을 쭉 빼고 나면 피로가 풀립니다. 이러한 운동법은 앞으로 통일교회 식구 전체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 식구들은 뜻을 위해 남보다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됩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등이 구부러지고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무릎에는 옛날에 기도하면서 생긴 굳은 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기도는 마루바닥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도 흘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고비를 몇번이나 넘긴 사람입니다. 흘러가는 사나이처럼 거리에서 여인들이나 만나 가지고 박자에 맞춰 춤추는 사내가 아닙니다.
이렇게 펴 나온 복귀의 전선에 여러분이 생명의 용사로 참전하였으면 국가의 정기라든가 천적인 운세 앞에 정상적인 보조를 맞춰 나가야 됩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죽음의 길도 각오하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든 그러한 일을 해야 됩니다. 어느때에 가면 누구를 시켜 가지고 훑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뜻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앞으로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일을 감쪽같이 시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흥남감옥에서 비료가마를 묶어 내면서 그곳이 최후의 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포로병이 되어도 나는 이러한 비운의 역사에 대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북이 이북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총궐기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북의 45만 병사니 120만 병사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삼천만에 우리 사상을 집어넣어 가지고 몰아치면 아시아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선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포위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몇해만 두고 보십시오. 반드시 그 작전을 할 것입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조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습니다. 공석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나타나 버릇하면 갈 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한 번 만나면 두 번 만나 줘야 되고, 점심식사를 같이 했으면 저녁식사도 같이 해야 되고, 그러다 보면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하고 동료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친구가 된다고 해도 나의 친구관과 그들의 친구관에는 천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만나게 되면 어차피 몇 번 이내에 결별이 되어질 것이고 합할 수 없는 요건이 많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먼저 갖다가 나누어 주는 일은 합니다.
일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전역에 우리의 작전 그물을 쳐가지고 젊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는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일본의 모모한 인사들이 청파동에 찾아와 가지고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하고, 신문보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신문보도를 하려고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집안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모를 것입니다. 집안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훌륭한지 잘 모르지요? 대통령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보고 아빠라고 부르지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밥 먹는 아빠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별다르게 혹이 난 것도 아니고 얼굴도 옛날 모양 그대로이고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아빠가 대통령이라는 간판을 들고 삼천만 민중을 대표해서 외국에 나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품에 안길 때는 그냥 아빠니까 좋아서 안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을 그저 아버지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시작한지 벌서 몇 시간이나 지나 버렸군요. 내가 자꾸 이러니까 이러는 것이 습관인 줄 알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요령 있게 참 잘 합니다. 요점만 이야기한다면 3시간 이야기할 것을 15분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말 저말 다 하는 것은 여러분의 얼굴을 보게 되면 사정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살아온 세계가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기준에서도 한마디 하고 저사람 기준에서도 한마디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떡을 나눠 주는 데 있어서 사람이 적으면 금방 나눠 주는데 사람이 많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에 대하여 다시 연구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정하다면 아주 무정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눈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눈을 통해 가지고 마음까지 꿰뚫어 봅니다. 또 귀를 보십시오. 얼마나 잘 붙었나? 절대 누구 말 안 듣습니다. 한편으로는 잘 듣는 것 같지만 나는 내 계획대로 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살아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소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을 대해도 당신은 선생님이지만 나보다 몇년 먼저 배웠다 뿐이지 인격적으로는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은 못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사를 하더라도 절대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했어요.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씨름을 해도 나이가 나보다 몇살 더 많은 사람과 해도 반드시 이겨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학교에 가도 무슨 꼬투리를 잡아 가지고 질문을 해서 혼내 주고 내가 뭐라고 하면 다 들을 수 있게끔 해놓고 나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또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을 절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냥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해보고 내가 했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 나서야 믿는 것입니다. 문학서적도 마찬가지로 좋은 말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절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할 말을 먼저 했구만. 내승락없이 왜 했어?' 이렇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동네에서 싸움을 해도 어린아이들과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3,4학년 위인 아이들과 싸우고 또 어떻게 해서든지 골탕을 먹였습니다. 무엇이든지 결판이 날 때까지 싸웠습니다. 상대방이 집으로 도망가면 하루고 이틀이고 끝까지 달라붙습니다. 상대방이 집으로 도망가면 하루고 이틀이고 끝까지 달라붙습니다. 상대방의 부모가 말려도 안 됩니다. 결국은 자식 싸움에서 그 어머니 아버지가 항복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에게까지 항복을 받은 역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섣불리 반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려면 통일교회 문선생의 목을 잘라다 놓고 반대를 하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무리 반대해도 이상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허투루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하고 같이 말하면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심정세계를 대하며 살아 온 사람이예요. 눈만 한번 깜박하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 `당신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구요'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빨리 잡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몇 번만해 놓으면 작전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작전을 해나왔습니다.
적당주의나 관습주의로는 안 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야 합니다. 여기 젊은 사람들은 `오늘 교회에 한번 나가 보자' 하고왔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장사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까? 얻어먹으러 왔습니까?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렇게 되고야 말겠다 하는 배포가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배포를 중심삼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것도 없이 그냥 따러오다 보니 조금만 달려도 지치고 맙니다. 지금은 총동원해야 되는데 발길로 차기만 해서 되겠나요? 차면 좋겠어요?
내 안중에는 승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나이가 많은 사람 젊은 사람 따질 사이가 있습니까? 이럴 때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장애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삼고, 죽이지는 못하겠으니 멍이 들더라도 때려서 알아달라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뼈가 꺾어져도 좋아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작전상 일반 사람을 불러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일의 전사들입니다. 전사라 할 때 `사' 자는 무슨 `사' 자입니까? 죽을 `사(死)'자입니까? 선비 `사(士)'자입니까? 선비 `사'자가 죽을 `사'자보다 낫지요? 그러면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선비입니까? 하늘땅을 뒤집어 놓는 사람이 선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독일사람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너희들, 잘 만났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찾아 오셔서 너희들을 만나기까지 이렇게 힘이 들었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리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천황이 행차했다가 돌아올 때 모든 관리들이 환영하는 입장에서 돌아왔습니까?
선생님은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의 사람을 중심삼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행을 할 때에도 `선생님이 오신다 오신다' 해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기다리다가 내가 가면 꿈이라고 생각하지요. 선생님은 세계를 다녀도 훌훌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박자를 맞추려니 힘이 듭니다. 선생님이 제2차 세계 순회노정에서도 제일 먼저 그것을 봤습니다. 외국 식구들은 충성하는 데 챔피언들입니다. 충성하는 데 세계의 기준에 있는 그들 앞에 어떻게 내가 그렇게 쉽사리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밑바닥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끝까지 해야지 지치면 안됩니다. 끝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외국에 나가서 이야기하려면 통역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통역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통역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통역은 해야겠으니 어떻게 합니까? 말도 내가 하고 통역도 내가 해야 되겠으니 어떻게 해요? 그러니 일본에 가야지요. 내가 21년만에 일본 강단에 서서 일본말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일본말을 하면 옛날 일본 사람보다 배나 빨리 합니다. 어느 한 때 써먹을 때가 올 것이다 하면서 미리 배워뒀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말을 천천히 하지만 빨리 하다 보면 혓바닥이 아픕니다. 내가 처음에는 말을 아주 느리게 했었어요. 그런데 남이 한마디 할 때 열 마디를 해도 질 판국인데 남이 한마디 할 때 반마디도 못해 가지고 다른 세계 사람들을 이길 수 있겠어요? 처음에 이 평안도 사람이 서울 땅에 와보니 말들을 얼마나 빠른지 내가 암만 빨리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나도 말을 빨리 해야 했어요. 하숙집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 키는 작달막해 가지고 말이 얼마나 빠른지 일찍도 일어나서 나불나불거리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요. 듣다 보면 아침부터 기분 나빠요.
이거 내가 밥 좀 주세요 하는 시간에 벌써 그 아주머니는 밥을 다 먹고 소화까지 시키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아주 기분 나빴어요. 그래서 6개월 동안 골방에 들어가서 기역 니은부터, 가 갸부터 전부 발음 연습을 다시 했어요. 발음을 전부 파악할 때까지 훈련을 했어요. 그래서 말이 빨라진 것입니다. 말투도 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방대한 말씀을 제한된 시간 내에 전해야 되기 때문에 어떠한 위엄을 갖추어 가지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할 말을 다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은 다른 사람이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과 같습니다. 바쁠 때에는 다그치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라 이겁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귀의 전선이 망하지 않고 나왔지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망하지 않고 복귀섭리를 끌고 나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세계가 전부 다 반대해도 선생님한테는 다 걸려서 넘어갔습니다. 영계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반대했으니 세계 기준까지 반대한 모든 것을 복귀하는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 있는 식구들도 전부 다 규합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과정을 다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을 그저 허스름한 통일교회 선생님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때를 저울질하는 사람입니다. 강태공이 양자강 푸른 물에서 낚시질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놀음을 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비장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러니 아시아 전역을 편답하기 위해 보따리 하나 들고서 몽고 대륙도 시베리아 대륙도 갈 수있는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그러한 작전을 해나왔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심각한 전투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복귀의 전선의 어느 분야에서 사명을 해야 되느냐? 통신병이 되든가 포병이 되든가 보병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섭리전선의 어느 분야에선가 역사의 요원으로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통일용사들의 필연적인 사명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을 볼 때 한편으로는 서러운 때가 참많습니다. 만약에 통일교회가 반대받지 않았으면 얼마나 비약을 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반대 안 받고 몇몇 사람만 선생님의 말을 잘 들었으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을 것이고, 하늘의 운명도 통일교회 운명과 더불어 비약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국가 민족 앞에 선두의 책임을 해야 됩니다. 생활에 있어서 애국 애족하는 데에도 선두에 서야 되겠습니다. 내적인 사명의 책임자로서, 아벨적인 사명의 책임자로서 국가 앞에 전체적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여러분인 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나는 지금까지 무수한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그러한 고개를 넘어오면서 여러분을 만났느냐? 언덕배기에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내가 언덕배기에 오기까지 어떠한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 개인 개인을 수습하기 위하여 어떠한 지시를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러한 말은 여러분에게 참고로 해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아시아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나라에 그 나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왕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 바쁜 판국에 언제 비자를 내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비자 없이도 일이 벌어질 때는 비행기를 타고 달려갈 수 있고 하루밤에라도 갔다 올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까지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아시아를 중심삼고 세계를 향하여 나가기 위하여, 이러한 모든 사업분야의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정보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준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소련의 군대 상황이라든가 세계에 대한 그들의 모든 정보를 우리 통일교회가 보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선교사가 체코가 들어가 있습니다. 중공에도 들어가 있고, 소련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닦지 못하는 기반을 우리가 닦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 이 세계의 장래를 위해서 말없는 가운데에서 소련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위 작전을 하고 있어요.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독일 사람이면 독일 사람, 불란서 사람이면 불란서 사람, 영국 사람이면 영국 사람, 체코 사람이면 체코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돈 주고 될 것 같습니까? 여기서 명령만 하면 생사를 초월해서라도 보고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 공산당의 총부리는 대한민국의 통일교회 문선생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관지의 일면 전부에 대서 특필한 것이 한 번뿐이 아니예요. 일본 공산당 기관지로서는 최고 기관지에 그런 적이 있는데 그것이 130만에서 150만부 정도 발행되었습니다. 그들이 문제시해 가지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전선에서 원수를 밀고 나갈 선생님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물론 형편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그냥 그대로 계승하여 나갈 사람은 누구일 것이냐? 문제가 심각합니다. 선생님은 이 땅을 중심삼은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제물들이구요. 그러니 여러분은 앞으로 선생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경제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초국가적인 기준에서 이 운동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국제 결혼을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일본과 제일교포 경제요원들은 우리 통일교회에서 한국인과 묶어 줄 것입니다. 이것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아 그들에게는 없는, 이상세계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고차적인 민족사상을 고취시킬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민족 결성대회를 해 나오지만 내적 문제라는 것은 어떠한 민족을 중심삼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는 만들 수 없습니다. 권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정치 가지고도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무슨 존슨 대통령도 닉슨 대통령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데 주체적인 권한을 가져야 하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일본에 우리 통일교인들이 얼마나 안 되지만 전국적인 활동을 개시하면 일본 공산당에게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모체는 대한민국이고, 그 중에서도 통일교회 청파동 본부교회입니다. 앞으로 이 마루바다에서 하룻밤 자는 데 천불씩 내라고 해도 싸우면 자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사진도 찍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한 번 가보고 싶으냐'하면 '죽기 전에 한 번 가 보는 게 소원이요'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회회교인들이 그들의 성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게 해야 되겠어요.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생각하는 이상으로 한국을 생각하게 해야 되겠어요. 한국에는 예루살렘에 비해서 자랑할 점이 많습니다. 자연 자원이 아주 좋습니다.
내가 평양에 가서 역사할 때 하늘은 얼마나 준비했느냐? 나를 만나기 20년 전에 그 집에서 이런 분을 만나서 말씀을 들을 것을 전부 다 알게 하실 정도였습니다. 선생님이 27세에 이북에 갔으니까 선생님이 일곱살 때부터 하늘이 역사한 것입니다. 그때에는 선생님도 몰랐지요. 그것을 세상이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몇십년 전부터 선생님을 주시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땅 위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의 앞 길에 있어서 천사장의 입장에서 증거적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계획하실 당시부터 천사는 인간을 받들어야 되지요?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데 하루 걸렸겠어요, 몇백 년 몇천 년 걸렸겠어요? 이런 것 생각해 봤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 나와라'하시는 말씀 한마디에 나온 게 사람이겠어요? 몇백 년 몇천 년 걸렸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천사는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복귀섭리 원칙을 중심사고 볼 때, 그리고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이 나오기 전에 선생님이 이상의 도를 닦아야 됩니다. 그래서 몇세기 전부터 선생님을 모실 영인들이 실체시대에 이 땅을 협조해야 지상의 사탄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닦이는 것입니다. 그런 영이 몇백 년 전부터 선생님을 모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무엇이냐? 최후의 목적은 체(體)를 쓰는 것입니다. 실체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만민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체를 쓰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가지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으로 서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됩니다.
전도가 한참 시작될 때에는 영적으로 선생님을 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치지 마십시오.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지쳐 쓰러지면 쓰러질수록 걸음을 더 빨리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외국으로 빨리빨리 내보내려고 합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책임을 못하기 쉽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허덕이다가 죽지 않고 남아지면 그 공적으로 수 많은 도인들 앞에 추앙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지만 우물우물하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게 되면 일했다는 녀석들, 전부 다 선생님 뜯어먹고 선생님 등쳐 먹고 삽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 앞에 갈 수 있어요? 여러분, 통일교회는 지금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습니다. 이러한 실적을 중심삼고 통일전선이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천사장의 입장인 만큼 하늘을 받들고 정성을 들이며 올바로 모시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 되어 그러한 터전을 닦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청평의 신선봉이라는 높은 곳엘 올라가는 것도 무슨 사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늘의 군사가 되기 위해 연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곳에 올라가는 게 아니예요. 그런 전반적인 문제까지에도 정견을 가질 수 있고 안목을 넓혀 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통일교회의 운동팀을 만들려고 합니다. 만들었을 때 그 팀원들은 누구에게나 지고 들어와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고 오게 되면 대성통곡하십시오. 역사상의 누구보다도 패자의 서러움을 뼈아프게 느끼면서 대성통곡해야 합니다.
아버님, 금후에 삼천만의 이 민족과 이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알았사옵니다.
오늘날까지 역사과정에서 수 많은 선지선열들이 비참한 운명길에서 죽어간 것을 잘 알고 있사옵고, 오늘날까지 패자의 쓴잔을 마신 자는 섭리의 도상에서 사라져 간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과거의 실수를 거울 삼아서 또 다시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그 실수의 기원을 밟고 올라서서 남아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날까지 통일의 제단이 외로운 길을 걸어 나왔지만 그래도 저희들은 외롭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외로우셨겠습니까?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이 엄청나고 방대한 과업에 참가시켜야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처량하시옵니까? 저희를 붙들어 놓고 이 엄청난 경륜을 논의하여야 할 아버지께서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침 햇빛, 그 찬란한 광명의 빛을 바라볼 때에는 아버지 앞에 환희의 빛이 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고 싶사옵니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의 세계에는 강한 심정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불효막심했던 선조들이 저버린 모든 죄를 닦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땅 위에 인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아버님의 상한 가슴을 부여안고서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어디에 있사오며 하나의 딸이 어디에 있사옵나이까? 당신을 모셔 놓고 천년사의 해원성사를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천천만대의 후손이 잘 되라는 유언을 한 사람은 있었어도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권고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사옵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죽음길에서 그 민족은 축복하는 유언들이 많이 남겼지만 그 모두가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유언이었던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통일의 무리들은 그런 무리가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인류는 사라져 갈지라도 그 유언만은 남아져야만 위신이 세워질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길이 인류가 거쳐가야 할 길이기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그러한 길을 가야 할 마음을 심어 주신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통일교회의 문아무개는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 제물이 되겠사옵니다. 옆문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난시에만 필요로 돌파구가 되어서도 안되겠사옵니다. 평상시 생활무대에서 출입할 수 있는 가장 필요로 하는 정문이 되어야 하겠사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을 붙들고 모든 심정적인 사연을 통고 시킬 수 있는 인연을 저희가 갖추어야 되겠사옵나이다. 목적을 향한 아버지의 사정 앞에 최후의 승리를 각오하고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으로 그 길을 통과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이러한 은혜 가운데, 며칠 동안이나마 이러한 생활 가운데 취해서 살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만 배의 빚을 진무리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슬픔의 눈물이 교차하는 길에 있어서 아버지의 옷깃을 붙들고, 아버지의 사정을 붙들고 통곡하고, 남은 수난의 길을 나에게 부탁하라고 고집하는 모습이 되지 못한 저희들, 옷깃을 여밀 수 없는 부족한 모습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정성을 다하였더라도 당신 앞에 너무나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자신이요, 너무나 부족한 자신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매를 맺고 상처를 입어 선혈이 낭자한 비참한 모습이 되더라도 핏자국을 감추어야 할 수치스러운 몸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몸이 찢기어 거리에서 객사하더라도 그 몸으로 인해 당신의 눈물이 가해질까봐 가리고 싶은 마음에 거적대기라도 덮고 죽지 않으면 안 될, 수천만년 이어온 죄인의 후손인 것을 저희들은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선을 취해 절규하다가 목이 터지고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저희들은 응당히 그것을 감당하고 그 길을 가야 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생명을 바쳐 하늘의 곡적을 풀어드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이런 자신들을 수습하여 끝까지 남아지는 무리에 동참하기 위해 생명을 다하는 열의를 가지고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을 맞이하여 이와같은 시간을 대할 수 있게 하여 주신 망극한 은사를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해가 지고 세월이 가서 춘하추동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정성의 예물로 하늘 앞에 무엇을 바칠까 가슴 태우며 몸부림치고,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신을 피할 수 없어 고민하고, 정성 못 들인 모습이나마 아버지를 모시는 주동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자신이 못 됐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앞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한 눈물을 흘려야 되겠사옵니다.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은 거룩한 분이옵니다. 불쌍해서는 안 될 분이옵니다. 당신은 창조주로서 권위와 영원한 영광의 상징이시온대 어찌하여 이토록 불쌍하게 되셨사옵니까? 당신께 어찌하여 패자의 쓴 잔을 홀로 마셔야 되는 억울한 사정이 남아졌사옵니까? 인류 시조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이렇듯 억천만세의 역사를 그르쳐 버렸사옵고 원한의 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것은 단지 아담 해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인 저희들도 대대로 선조의 피를 이어온 타락의 후예로서 같은 타락된 후계자의 몸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생각할 때 치가 떨리는 분함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하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복귀의 노정에 보잘것없는 이 통일의 무리를 모으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사옵니까? 아버지의 그러한 수고의 공적이 무의미하게 헛수고가 되고, 석양이 모든 빛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정체를 어둠 가운데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무리들이 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칠흑 같은 흑암 속에서도 촛불이나 반딧불 같은 빛이라도 발하여 흑암을 밀어내고 하나의 방향을 분별하는 기점이라도 될 수 있는 빛의 모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통일 역군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등대가 되고 하늘의 광명한 태양 빛을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천년사의 한을 품고 그 빛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다리를 놓는 고임돌이 될지라도 그것을 행복으로 알고 나가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10월 12일이옵니다. 지금으로부터 만 19년 전의 이날을 생각하옵니다. 그 옛날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의 운명을 염려하던 때를 생각하옵니다. 오늘 12일에 맞는 일요일, 12수를 중심삼고 120일에 해당할 수 있는 제2의 안식일인 이날, 남한 각지에 널린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나를 생각하고 나를 진정으로 느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입장에 계시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을 잘못두고 후손을 잘못 둔 조상의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도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도 당신의 표준에 합당치 못하거든 기필코 후대를 깨우쳐서 다시 영광의 제단을 지킬 아들딸을 보내 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오늘날에는 몰리는 자기에 있지만 훗날에는 이 천지 운세가 환영하는 자리에서 하늘 땅이 함께 기쁜 날이라고 찬양하고 세계가 찬양할 수 있는 날이 기필코 와야만 되겠사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의 제물로서 핏자국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물이 땀이 되고, 땀이 피로 화할 수 있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부르며 정성들이는 것보다도, 해산하는 여인의 최후의 순간을 넘기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숨가쁜 시간, 긴박한 시간을 갖는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사정하여 하늘의 인연을 끌어들여야 할 운명에 높여 잇는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도 불충한 모습임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회개의 제단을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저희 자체를 보고 복을 주시기를 원치 않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려도 아버지 앞에 나타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부끄러운 자신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고 어떻게 아버지의 권속이라고 할 수 있사오며 어떻게 하늘나라의 백서이라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 몸을 감추고 싶고 이 몸이 혹사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혹사하고 싶사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희의 걸음걸이와 행동을 당신께서 대신 책임져 주신 것을 알게 될 때에 감히 가까이 모시고 가까이 찾아 볼 수 없는 아버지이신 것을 통일의 자녀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머물러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한의 아들딸을 찾아오셨사옵니다. 수 많은 선조들이 배척받으면서 처량한 역사를 엮어온 이 민족, 아무 결실도 맺을 수 없는 황무지와 같은 이 땅 위에 아버지께서는 찾아오셨사옵니다.
오늘날 민족적인 해원성사를 하여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수확기에 있어서 열매로 거두어져야 할 저희들, 이 민족 앞에 창피한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발자국을 더듬어서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이 길을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몸부림치고 생애를 다 바쳐서도 아버지의 옷깃을 못 잡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가는 길에서 쓰러질지라도 이 길을 응당히 가야 할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찾아 온 아버지의 뜻 앞에 택함을 받은 저희들의 책임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나이다.
뜻을 위하여 저희의 팔이 부러지고 저희의 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되지 못하고 저희의 몸이 상처를 입지 못한 것을 무한히 탄식하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래의 민족 중흥의 역사를 창건하기 위한 하늘 용사의 모습들로서 대열을 갖추어 끝없는 행렬을 계속하여 할 것인데도 그러지 못 할까봐 두렵사옵니다. 하늘의 판가름을 가해야 할 입장인 것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부르시던 아버지, 불쌍한 입장을 위로해 주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하옵니다. 역경의 노정에서 슬픈 한 날 한 날을 거쳐 나오시면서 이것들이 후퇴하고 쓰러질까봐 마음 졸이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처량했던가 하는 것을 때가 지나 철이 들어 깨닫게 되니 그 때의 내가 한없이 원망스럽사옵니다. 하오니 이제는 그러한 입자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를 진정한 아버지로 모시고 또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모든 안팎의 일을 책임지고 아들의 자격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을 갖고 나서야 할 무리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청파동을 비롯하여 만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동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물지으며 최후의 한 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강산의 삼천리 반도에 널리어 외롭고 배척받는 행각의 노정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슬픔 속에 몸부림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하늘이 친구가 될 것이며 하늘이 가까이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런 자리를 감사히 맞고 그런 생활을 기쁨으로 알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복귀의 전선에서 아버지가 찾는 아들이 무엇이며, 가정이 무엇이며,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무엇이며,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승리를 자랑할 일이 있거든 아버님을 내세우고, 수치를 당하는 일에 내가 나서겠다고 스스로 다짐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하루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제차 준비하여 1970년을 맞이해야 되겠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나머지 3개월도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도 남한 각지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곳곳마다 은은한 가운데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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