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69년 6월 22일, 안식일이옵니다. 이날을 맞이하여 삼지사방에서 당신 의 자녀들이 성전에 모였사오니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일주일 동안 세상만사와 싸우면서 얼마나 당신의 이름을 높였으며, 얼마나 당신을 가까이 모시고 즐겁게 해드렸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지나간 그 시간을 오늘 이 현실의 초점에 집약시켜서, '나'라는 개체를 다시 한번 비판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기나긴 역사과정에서 참된 길을 찾아 나오다가, 참된 일을 위해 싸워 나오다가 쓰러져 간 자녀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승리를 다짐하고 이 땅에서 살다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서글픈 사실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와 같은 초점을 중심삼고 역사가 연결되어 나왔고, 현시점에서도 그와 같은 초점을 중심삼고 연결시켜야 하므로 최후의 운명을 결정지어야 할 자신임을 명시해 놓고, 아버지를 중심삼은 나,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은 개체를 세워 놓고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실의 나를 비교해 볼 때, 거기서 선한 의미의 차이를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면 저희의 앞날의 행로는 암담한 행로임에 틀림없이 것이옵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들이 조롱하고 농락하며 저희의 앞길을 망치려 하기에, 저희들은 마치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은 운명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이 저희에게 남아질 운명인 것을 확실히 알고, 오늘 이 시점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명시하여 아버지와의 인연을 두터이 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는 저희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악의 원뿌리가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신들이었사옵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일들을 거쳐 온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의 나를 다시 한번 혁명할 수 있는 자극적인 원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나를 제거시키고 내일의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는 자신을 다시 세우지 않는 한 자신은 선한 뜻과 선한 역사과정에 남아질 하등의 존재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물결과 더불어 자신들의 일생도 흘러가 버리게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지 말게 하락하여 주옵시고,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선의 목적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볼 때 하늘의 뜻은 역사와 더불어 제거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수습하고 역사를 솟구쳐 올라간 것을 잘 알고 있사옵고, 그러한 행로에서만이 하나님께서 저희와 동역동사하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이미 그것을 실천한 한 때를 가지고 있는 자신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내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여 아버지의 통고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선한 것에 영원히 같이하시며 절대 악을 동참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이 완전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과 더불어 짝하시고 선과 더불어 동사하시면서 선과 더불어 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뜻을 바라면서 나오신 당신이기에, 비록 내 몸은 제거될지라도 마음만은 선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하는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음이 지향하고 명령하는 대로 몸을 굴복시키고 다스려서 영원한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자아의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을 통할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염원하고,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수습하고,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의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짐하기 위하여 참석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년 6월 초하루부터 저희들은 특별한 기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기간 저희들 개개인이 6천년의 한을 품고 나오신 아버지 앞에 진정한 아들의 심정을 갖추어야 되겠고, 딸의 심정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가정적으로는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세계적인 이념을 토대로 완전한 승리의 터전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의 그 정성의 기대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120일 기간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통고하는 저희들의 모든 사연을 저희들 개개인만이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옵고, 이 나라 이 민족만이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세계적인 운명의 한 노정을 개척하기 위함이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탕감노정의 크나큰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서기 위함이오니, 그러한 입장에서 저희들이 책임을 지고 특별한 정성을 들이는 이 기간이 되고, 자기를 잊고 아버지를 위주하며, 자기를 버리고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은 일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땅의 무엇을 찾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가까워질 수 있는 인연을 흠모하면서 당신이 남기신 발자국 가운데에 숨겨진 눈물과 피땀의 인연을 좀더 뼛골에 사무치도록 느끼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옵니다. 저희들 이런 이들 앞에 무엇을 줄 것인가를 각자각자가 마음 깊이 생각해야겠사옵니다.
이제는 개체를 위할 수 있는 시대와 민족을 위할 수 있는 시대를 넘어서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접어든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시대에 아버지와 더불어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게 되었사옵고,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있고 그 반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사온데,그 공적인 책임이 얼마나 귀한가를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님,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사랑권내에서 당신을 찾아온 일본의 자녀들과 한국에 있는 저희들이 하난 되어 진정코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보내 놓고 일본 전국에 널려 있는 식구들은 이들과 동참하여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이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그들이 기도하며 원하는 모든 전부에 함께하여 주시어서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바의 플러스의 결과를 남겨 놓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하여 아버지의 즐거움이 배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인연이 각자의 심령 심령에 새로이 싹트게 하여 주옵시고, 아직까지 신앙이 깊지 못한 당신의 아들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그 사실을 탄식하면서 아버지 뜻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이 시간, 당신의 허락권내에서 부족한 자신을 헌제하기를 원하오니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추고, 자기 스스로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자신임을 폭로해 놓고, 당신의 긍휼의 손길을 바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자녀들이 남한 각지에서, 또 전세계에서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영원한 당신의 사랑과 긍휼의 은사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통일의 심정을 갖추어서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은 시간을 당신이 허락하신 뜻만이 안에서 운행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당신 앞에서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되어 당신의 품에 안겨서 당신에게 사무쳐 있는 사랑의 은사 가운데 영원히 잠길 수 있는 인연이, 참을 중심삼고 당신의 자녀로서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저희들은 그 어린아이의 시대를 지나서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아버지 앞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저희들을 품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그 한 때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는 그렇게 하여 자란 저희들이 당신의 아들 딸로서 당신편에 서서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능력을 갖추어, 원수가 있으면 당신대신 맞서서 그들의 굴복시키는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영광을 가지고 `이 모든 영광은 당신 것이오니 당신이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승리의 영광의 실체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저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의 온전한 사랑과 일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는 자리에서는 당신이 저희를 이 땅 위에 태어나게 한 보람을 찾을 수 없고, 저희 자신들 또한 생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남아진 시간을 당신 앞에 맡기오니 친히 함께하여 주옵시고, 그 누구도 이 단에 서서 자기를 자랑하는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길고 높으신 당신의 거룩함만이 여기에 임하시어서 당신이 경륜하시는 대로 당신의 사연이 엉클어져 저희 개체 개체의 심정과 더불어 그 한 몸들이 당신의 은사 앞에 화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은 주체가 되고 저희들은 객체가 되어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영광의 은사가 이곳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저희들이 모인 것은 세상의 어떠한 학식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요, 세상의 어떤 물질적 요건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아니옵니다. 텅 비어있는 내적인 심정세계,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저희들의 심정을 윤택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사랑과 더불어 화동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는 봄날이 그리워 모인 것이옵니다. 개개인의 사정도 당신과 더불어, 깊은 사연도 당신과 더불어…. 당신이 아니고는 시작도 끝도 볼 수 없는 인연이 이 시간 여기에서 출발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이상 부모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이 나라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는 이상 나라를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을 잃은 저희 인간들이니 우주의 주인 되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사모하고 간절히 사랑하여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자기의 가정과 가계를 통하여 영원한 후대들까지 당신이 원하는 그 나라 그 세계를 위하여 충성하게 하는 조상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저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비록 그런 성과는 가져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내연의 감정을뿌려 놓을 수 있고 심어 놓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님, 부디부디 찾아와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앞에 내놓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부끄러운 저희들이오며, 그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저희들이오니, 당신이 은사의 두루마기로써 저희들을 가리워 주시옵고, 굶주린 저희를 풍요로운 당신의 양식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을 잊고 있던 이들 앞에 그 소망의 한 뜻을 일러주시어 있는 힘을 가다듬어 다시 한번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폭발적인 계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깊은 심정의 동산에서 당신은 몇천만 번 불러 주셨사오나 저희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몇천만 번 오라고 손짓하셨사오나 저희들은 거기에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긍휼의 마음은 인류 역사 노정 위에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오니, 그 긍휼의 마음을 발휘하여 부족한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한번 불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오로지 당신의 뜻 가운데서 모든 것이 시작과 더불어 끝을 맺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이곳을 향하여 흠모하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펼쳐 주시어 같은 은사의 자리에 동참시켜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선악과 흥망성쇠'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개인은 물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 선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도 선을 지향하여 나왔으며, 교육자들이나 신앙자들도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며 싸워 나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도 선을 위하여 태어나야 되겠고, 사는 것도 선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고, 죽는 것도 선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엮어 온 역사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선(善)은 막연한 의미의 선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선이며, 선 중에서도 중심이 있는 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양심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데 내 생활에 선 아닌것이 어디 있겠느냐' 라고 말하지 모르지만, 이렇게 자기의 양심을 중심삼고 산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은 자기의 양심에 따라 선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가 가는 선의 방향과 틀리다면 국가는 흥하더라도 자신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선을 위해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어떤 국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국가의 방향이 세계의 양심에 따른 방향과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세계가 남아지고 흥하더라도 그 국가는 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혹자가 어떤 세계를 위하여 길을 간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세계가 맨 마지막의 선의 세계가 아닐진대는, 또 다시 선을 중심삼고 주장할 수 있는 세계가 남아 있는 한 그는 그 세계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의 양심을 중심삼고 주장해 나가는 개인이나 그런 사회,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 선이 궁극적인 선이 아닐진대 그 선을 중심삼은 모든것은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 마지막까지 남아질 수 있는 선이라면 개인 가정 사회의 선의 중심기준이 되어야 되겠고, 국가와 세계의 선의 중심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것들 역시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흔히 `저 사람은 운이 좋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의 운이 강하더라도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의 운을 넘지 못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선조의 선의 인연을 통하여 태어난 한 분자이기 때문에 나무로 말하자면 많은 가지 중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종족 전체의 선을 대신해서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운보다 종족의 운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의 운보다 민족의 운이 크고, 민족의 운보다 국가의 운이 크고, 국가의 운보다 세계의 운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운보다 큰 것은 천운입니다.
그러므로 최후로 남아질 수 있는 선의 기준은 무엇보다 큰 천운과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천운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에서 개인을 혁명시켜 종족 앞에 굴복하도록 해야 되겠고, 종족을 혁명시켜 민족 앞에 굴복하도록 해야 되겠고, 민족을 혁명시켜 국가 앞에 극복하도록 해야 되겠고, 국가를 혁명시켜 세계 앞에 극복하도록 해야 되겠으며, 세계를 혁명시켜 천운에 기여토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인류가 양심을 중심삼고 지향해 나가야 할 최종의 목적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과 더불어 하나되면 흥하는 것이고, 악과 더불어 하나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체를 중심삼고 선악을 판가리하는 도상에 놓여 있고, 그런 흥망성쇠의 와중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 세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천지가 그러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느냐? 그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을 잘 가려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된 시대권내에서의 지혜로운 사람에 불과합니다. 지혜로 와서 자기의 일대에 소원을 성취하고 그 권위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나라가 망하게 될 때 그는 망하는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두고 볼 때에도,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 지배하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천운을 받들 수 있는 개인이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도 역시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선악의 한계선을 긋는 데 있어서의 일반적인 기준은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은 남아지고 사적인 것은 없어지게 되므로,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이 더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기준은 어떠한 기준이냐? 하나의 가정을 놓고 볼 때, 그 가정의 식구가 자기보다도 가정을 위한다면 그는 공적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또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나서게 될 때는 안 됐지만 가정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그는 당당코 공적인 자리에 선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나 역사적인 위인들을 보더라도 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개인은 물론 가정까지 포기해 버리고 나섰습니다. 선을 위해, 공적인 일을 위해 개인적인 것을 다 포기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을 일대일로 보면 악(惡)처럼 보입니다. 마땅히 주위로부터 지탄 받아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공적인 국가의 것으로 남아지게 될 때에는 지탄 받게 하던 모든 사연과 경, 또 거기에 엉클어진 모든 악조건은 공정한 공적 기준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모든 어려운 환경을 참고 극복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워 나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주위로부터 지탄 받아 어려웠던 그 모든 사실들이 그 사람을 구속하는 조건으로 절대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것이 해방의 조건이 되고 승리의 방패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인 실증을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과 세계 인류를 위하는 길,이렇게 두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이냐?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세계적인 공적인 입장에는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충성을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안에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안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지, 대한민국을 위해서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자기의 나라만을 위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그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해서 세계를 제패하려는 독재주의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반드시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공인의 법도를 따라 우리 민족의 방향을 세계적인 대세에 결부시켜 현재 처할 수 있는 안일의 자리보다 십년백년, 혹은 수세기 이후에까지 이 민족이 머물 수 있는 안정된 자리를 위하여 책임지고 지도하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역사에 남을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지도자의 이념을 가진 민족이 있다 할진대 세계가 망하게 되더라도 그 국가를 통하여 세계는 치료 받을 것이며, 이것이 역사가 남길 최후의 결과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자기 일생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의 가정, 민족, 국가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인생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천륜의 대도에 일치된 자리에서, 하늘땅과 세계 만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만이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선의 결과에 도달하는 기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어떠한 성현들도 성현이라는 이름을 갖고 나오기까지는 자기의 주장이나 자기의 민족, 국가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천운의 대세와 더불어 하늘을 업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업고 나오지 못하는 성현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러지 않고도 된다면 누구나 다 성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업고 나오는 국민, 하늘을 업고 나오는 국가, 하늘을 업고 나오는 세계, 하늘을 업고 나오는 천운이 지향하는 길은 선이 갈수 있는 길이며 그 길을 여러분 개인은 물론,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 인류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양심은 어느 곳을 따라가고 싶습니까? 양심은 어디서 배우지도,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지만 더 선한 것을 찾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안락하게 산다 하더라도 `이제 내 개인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니 안식하자'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기를 재촉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만이 아니라 35억 세계 인류의 안락을 위해서 할 수만 있으면 더 큰 일을 하자' 하며 최고의 자리까지나 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최후에 안착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의 최후의 종착점은 어디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만사가 허사입니다.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여기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는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성현들 중 무엇을 가르쳐 주는 성현이 위대한 성현이냐? 하나님과 천운에 나타난 그 방향을 똑똑히 가르쳐 주어 세계인류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며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천지간에 나타나는 날 세계는 자동적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지금까지 대체로 그런 체제를 모방해 나온 것은 어떤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희미하지만 이러한 것을 표준으로 바라보고 배경과 목적을 모방해온 것은 종교였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국가는 망하여 갔어도 종교는 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듯이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적인 문화의 기반이 되어 있는 것은 종교였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4백년간 지독한 박해와 학살을 당할 때도 그 국가의 주권은 망했어도 기독교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 그렇느냐? 천운이 거쳐가는 공리와 공법에 일치하는 것은 지배하려 하고 파탄시키려고 치면 칠수록 더욱 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된 종교란 어떤 것이냐? 선을 가르치되 그 선은 개체의 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해 온 선의 관념은 민족이나 국가의 법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각자가 사회에 따른 도의적인 길을 가는 것을 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류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개인적인 생활 가운데 표본이 되고 양심이 지향하는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나 그런 자리에서 살다가 그런 자리에서 죽어간다면 그는 천국에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은 어떤 것이냐? 선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악이 결정되는 기준은 참된 선을 알아서 그 선에 반대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준을 떠나면 반드시 그 방향을 선의 방향과 달리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떠한 부락이면 그 부락을 놓고 보편적으로 봐도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남을 끌어들이려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조그만 조건이 있어도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망하는 겁니다. 망할 운명권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잊어버리고 남을 위해주려 하고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은 모두다 좋아합니다.
그러면 개인운, 가정운, 민족운이 가는 방향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세계적인 어떤 일을 중심삼고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해결하겠다는 자는 기필코 망하게 됩니다. `네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것이고, 세계의 것이다. 내 것도 그렇다' 라고 해야 합니다.
흥망성쇠는 선악을 중심삼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선악의 판가리가 나느냐? 갈라지는 것이냐? 한계선이어디냐? 대한민국이 망하는 그날에가서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갈라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고 살면서 숟가락을 든 그 가운데 두 세계가 갈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는 그 밥은 어디에서 났느냐? 즉, 공적인 기준에서 천지의 공법에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밥이 생겼느냐, 그렇지않으면 내 욕심을 통해서 생겼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내 관의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껴지는 모든 것은 바꾸어져야 합니다. 자기를 위주로 한 관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또 그런 자는 망하더라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대한민국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본인이나 세계 만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세계 만민이 다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망하느냐? 이것은 자기자신은 모르지만 자기의 생활방법과 처해 있는 위채가 선한 자리가 아니며 천운의 대도권내에 일치될 수 있는 국가의 운세권에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라가 망하면 자신도 망하는 것이니 나라를 밟고라도 세계를 위해 서야 합니다. 그렇게 세계 대운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만민이 가야 할 길을 밝혀 놓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자님이 `위선자(爲善者)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위불선자(爲不善者)는 하늘이 화를 내리느니라' 했지만 선의 개념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 선의 중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또, 하늘이 화를 준다니 그런 무인격적이고 관념적인 하늘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선악의 기준은 끝날의 심판대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은 여러분의 현재의 양심을 중심삼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심판의 시간과 같은 것입니다. 민족전체가 천운과 일치된 길을 가고 천운이 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통한다면 그 민족은 선민이 됩니다. 역사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택함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졌었는데 그것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 하늘의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선민은 어떤 민족이냐? 개인의 생활권내에 최대의 천운이 통하고, 그가 정이 살 수 있는 권내에 천운이 거쳐가고, 그 민족이 살 수 있는 권내에 천운이 거쳐가고, 그 국가가 살 수 있는 권내에 천운이 거쳐가 백방으로 그 국가 전체를 거쳐갈 수 있을 때, 그 민족을 선민이라 합니다. 천운을 띤 목적내에서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주한 주의나 사상을 가진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인명을 해치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나라에 피해를 입혔다 할 때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에 이용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권내에 있는 국민의 도리입니다. 또한 그것이 국민이 가야 할 방향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대세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민주주의면 민주주의가 그 개체의 운세에 하나님의 대운을 보태어 천운과 일치한 자리에 서서 그 방향을 가정과 일치시키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일치시켜 가지고 나가야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공산주의가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반대해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나는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산다' 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졸장부와 같이 째째하게 살고 싶은 양심과 이념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여러분들 역시 자기를 중심삼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자기의 그 기준과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후손까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지 않고 공적인 입장에 서서 남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기준으로 살다 간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 남긴 것이 없다 하더라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그런 자가 죽게 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하늘도 축복을 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선의 목적지를 향할 수 있고 흥하는 세계에 갈 수 있었는데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정해야 할 입장에 서있으므로 더 도덕적이고 더 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 세계는 비참과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 같은 분은 이 땅에 와서 메시아로서, 만민의 구세주로서 사명을 하기 위하여 공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었느냐? 예수는 땅위에 온 그날부터 세계적인 메시아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세계인류를 구원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세계를 천운에 일치시켜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길에서 십자가 도상을 바라보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결판적인 순간에 하던 그 최후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내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속될 수 있는 인간성을 밟고 올라서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여 내 뜻이 아닌 천운의 대의를 따랐던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옵소서’는 내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만일 예수님에게 가정이 있었다면 그 가정을 버리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가정의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가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를 거느리는 입장에 섰다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우리 감리교를 위해서, 우리 장로교를 위해서, 우리 천주교를 위해서...' 이런 시시한 기도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시대에 살아서 세계를 걸고 기도한다 할 때 열두 제자에게 복을 주십사고 기도하겠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열두 제자를 세운 것을 세계를 위한 것이니 열두 제자를 세계를 위한 뜻 선상에 세워 주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을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은 나 하나 보내시어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함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서 그들이 공헌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열두 제자가 민족을 대신해 싸우면서라도 죽음길을 걸어야겠습니다'라고 기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메시아요, 구세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기도도 못 했습니다. 최후로 기도한 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뜻보다 우리 교회의 뜻을 중심삼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뜻과 일치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지 못한 예수님이 얼마나 원통했을 것인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4천년동안 준비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세웠을 때 그 민족은 국가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서야 했습니다. 세계의 중심국가는 세계의 모든 국가를 무력으로 굴복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국가들을 자연 굴복시켜서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칼과 힘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월남전을 보더라도 미국은 월남에 비해 수십 배 이상의 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보아도 미국의 몇백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월남인 것입니다. 그런 월남의 힘으로는 자국을 지키지 못합니다. 또한 월맹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하루에 1억달러 가까운 돈을 쓰며 전쟁을 하고 있으니 경제력이나 정치력, 또 군사력을 가지고는 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맹이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하여 후퇴한 것입니다.
앞으로 선의 세계는 무엇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냐? 온 인류가 천리에 대적하지 않고 천운에 따르며 처음과 같은 자리에 서서 죽어 가면서도 자기 민족보다 세계를 위하고, 세계보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보편화되어 인류의 양심이 가는 방향이 모두 같아 공통된 입장에 서야만 그때부터 이상적인 세계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일을 하면 어떻습니까? 자신을 내세우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천지의 누가 뭐라 해도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그 나라 대통령이라 해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세계보다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세계는 망하더라도 하늘땅은 망하지 않고 남아집니다. 세계의 제사장은 망하더라도 하늘땅은 남아집니다. 그러니 이것을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를 엮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죽음의 길을 무난히 극복해 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냐? 무엇이든 천륜의 대도와 일치되지 못할 때에는 모두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는 자리에서 지탄을 받더라도, `지탄하기 위해 동원된 재력이나 권력, 국가의 세력 등은 하나님 앞에 선을 거둘 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는 될지언정 선을 파탄시킬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는 못 된다.'는 신념을 지녔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시대권내에서 이러한 힘을 가지고 역사를 추진시켜 나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수련회 때 박사학위 받은 유명하다는 사람에게 식구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요?' 하고 물으니, `그것은 쉽고도 어려운 문제이지'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쉽고도 어려운 문제라면 영영 뜻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동으로 가는 것입니까, 서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종교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종교관을 중심삼고 세계를 붙들고 나와 가지고는 절대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끝날이 되면 수많은 종교는 기필코 패망의 운명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의 운세와 자기 교파의 운세를 붙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운은 세계의 운세의 꼭대기를 밟아 가는 것입니다. 천운이 지상에 나타나는 시대가 되면 지금까지의 교파 교권주의는 와해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시대의 종교는 천운을 탈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이라는 말이 기성교회 앞에 기분 나쁜 말입니다. 통일교회도 기성교회를 대해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곳이냐? 통일하자는 교회입니다. 무엇을 통일하자는 것이냐? 남자 여자를 통일하자는 것이냐? 아닙니다. 시시하게 남자 여자 통일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천운과 더불어 하나 되자'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운세권내에 있다 해도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천운을 붙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 나라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대외 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를 정화시키고 국가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종교가 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국가 앞에 소화되는 종교, 세계의 사정에 흡수되는 종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소화시키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만민의 양심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생활기준을 중심삼고 사회국가 세계의 형태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민족이 다르고 전통이 다르더라도 다 초월하여 양심이 지향하는 공동의 일치점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국가권내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넘어 천운이 통하고 하나님이 좌정하실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중심삼은 기점을 마련하자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기점을 결정짓고 그런 환경을 가진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만 나오면 세계는 문제없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지금까지 기독교는 수많은 교파로 갈라졌고, 전부 다 자기들이 최고로 선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기성교회를 전부 통일시킬 수 있는 무엇이 통일교회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 내리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느냐 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게 되면 통일교인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매를 맞고 핍박받아 왔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왔습니다.
선은 어디를 통하여 가는 것이냐? 악인도 감동시킬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가는 길에 천운이 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싸움으로 사탄을 굴복시킨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인류를 구하기 위한 입장에 서서, 자신을 죽이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로마 병정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북한의 1천만 민족을 어떻게 해방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탄으로 때려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하고 충성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화합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괴수 김일성이 총칼로 위협하여 위장으로 단결시킨 것보다도 더 강하게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수 있는 기품을 가지고 책임을 다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자연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싸워서 이기면 결국은 남을 위해서 싸움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선을 중심삼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가 이 땅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자기집안만 복을 받겠다고 하는 종교라면 그 종교는 망합니다. 그러면 집안이 망하고, 집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에는 가정을 위하는 종교도 있고 종족을 위한 종교도 있고 민족을 위한 종교, 국가를 위한 종교가 있습니다. 개인을 위하는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범위가 넓을수록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지향하는 목적과 이념이 세계 만민을 넘어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 그 종교는 망하지 않고 역사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게 되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그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렸습니다.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반동분자로 몰려 죽은 것입니다. 교파나 주권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어느 곳 하나 발디딜 곳이 없는, 그 사회에서조차 용납받을 수 없는 불신분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으로 가정을 중심삼고 살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그 가정만을 위해서 산 것도 아니요 나라만을 위해서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망하는 운세권내에 들어갔지만 기독교는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아낸 유대인은 망했지만 망할 운세로 몰린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는 몰리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은 동기는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이 천운이 함께할 수 있는 그 궤도 위에 기독교를 올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개인도 천운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고, 그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도 그럴 수 있고, 교파도 그럴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활동시키지 않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전체를 위한 생각보다 자기를 위한 생각이 더 농후해져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자기를 위하여 먹으면 안 됩니다. 민족을 품고 밥을 먹어야 되며, 세계 인류를 품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활 전체가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참소하라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서 맞게 된다면 맞으면 맞을수록 그 사람의 일은 잘 성사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맞아 나왔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 몇 해만 지나면 대한민국이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떻게 천운을 타느냐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운세가 어떻게 천운과 박자를 맞춰 나가느냐, 가정의 운세가 어떻게 천운과 박자를 맞추어 나가느냐, 교파의 방향을 천운의 방향에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맞지 않으면 전부 다 틀려집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벌거숭이라도 이 기준에서 어떻게 천운과 연결시켜 나가느냐 하는 데에 따라 문제가 틀려집니다.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발전을 해 나가느냐, 못 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여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운과는 어떻게 연결시켜 나가느냐? 일치는 간단한 것입니다. 선악을 중심사고 되어지는 것이며, 선악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냐 전체를 중심삼은 것이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없애 버려야겠습니다. 여기에 전부 다 찬동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선한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국가면 그 국가를 기반으로 해서 나아가야 됩니다. 오늘날 이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외적인 면을 일치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지만, 내적인 천리가 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 민족이 모르면 그 누가 지도자가 되어 끌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밤을 낮과 같이 일하며 백성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자기의 육신을 제물삼아, 아침이나 저녁이나 하늘의 도리 앞에 일치되는 자기 자신이 되어 천부를 모실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지금까지 싸워 나온 나는 매장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갈 수 있는 그 길을 위하여, 천운이 깃들 수 있는 터전을 위해서라도 망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망하면 안 되겠기에 분한 마음이 솟구칠 때도 분함을 품지 아니했습니다. 망하지 않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분을 품지 못했습니다. 망하지 않는 나라를 갖기 위해서는 분을 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인데, 잘못하다간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이 망하는 것을 하나님도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무리가 망하기를 바라는데도, 까딱 잘못하면 그 무리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이 먼저 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책임을 지고 나오시는 하나님은 원수를 치기 전에, 자기를 따르던 백성, 가정, 개인이 잘못하면 이들을 먼저 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한 세계를 심판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 불타는 심정을 가지고 천운과 일치하여 나갈 때는 세계의 나라와 민족이 전부 다 망하더라도 이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20세기 이후에, 오늘 우리 통일교인들이 부르짖고 주장하는 사상 관념이 천운의 중심과 일치하여 통했다 할진대는 반드시 우리의 주장을 중심삼고 세계는 정리되어야 합니다.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쇠고랑을 차는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국가에 대해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대해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민족 앞에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마음으로 참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그 무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활동을 얼마 동안 해야 할 것이냐? 우리는 여기에서 충성의 도리를 세워야 하는데 시간권을 초월해야 되고, 공간성을 초월해야 됩니다. 천년을 하루와 같이 생각하며 일편단심을 갖고,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같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천운을 따라가는 길을 모색하는 민족이라면 그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규명해야 합니다. 또 가정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확실히 규명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종족 민족 국가 세계는 어떻게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까지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이 통일교회에서 시작 되었다면,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 모든 사연들이 통일교회에 불을 붙이고 바람을 일으키는 동기가 될지언정,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습니까? 사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사는 것입니까? 또한 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까? 선을 위해서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모두 선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패하여 없어질지언정, 내가 싸워 나온 것 중에서 절대적으로 남아지는 것은 선입니다. 그러므로 만민이 그선을 그리워할 수 있는 그와 같은 뜻을 품어야 합니다.
내가 수십 개 국을 순회하면서 수많은 민족 앞에 소망한 것이 무엇이냐?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을 더럽고 치사한 사람들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문이라는 사람이 무엇이 좋아서 그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문선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문선생을 사랑하려거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책임자로서 한 가지 잃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가느냐, 빚을 지우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빚을 안 집니다. 너희들이 밤을 새우며 정성을 들였다면, 나도 밤을 새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이 오고 피곤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를 거쳐온 수많은 애혼(哀魂)들이 나를 추앙하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 고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심정과 어떻게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절대 빚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고 난 후에 그들에게 남아진 것은 탕감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고생하고 갔다'는 것, 즉 고생이라는 두 글자를 안고 가야 합니다. 거기엔 당장 성과가 없어도 좋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무엇을 박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민족이 다르고, 문화배경이 다르고 생활감정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그러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120일간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도 큰 죄인입니다.' 하는 마음 갖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빚지면 안 됩니다. 밥을 먹으나, 길을 가나, 어디에 있으나 그런 마음밖에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벌받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목적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모든 조건이 불리하게 됩니다.
그러니 영원히 남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선할 수 있는 기준을 남겨 놓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뒤따르게 됩니다. 피곤하여 낮잠을 자고 나거든 회개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잘못 갖고도 행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나타나 있는 통일교회는 알고 있지만, 나타나지 않는 통일교회는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깊은 자리에 있는 내용은 아직내 자신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파헤쳐서 왈가왈부하게 되면, 여러분은 꺾여 나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꺾여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때가 되지 않으면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목적은 선입니다. 사는 것도 이것을 위하여, 죽는 것도 이것을 위해서라야 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어떤 때는 이런 운명을 가지고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더 높게 빛나는 조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과정을 넘어서 하나의 종착점을 맞이하게 될 때, 그 과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역사적인 부흥의 재료가 되고 심정을 발화시킬 수 있는 터전이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가 그 누구도 거쳐갈 수없는 수난의 길을 간다 해도 나는 낙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하여도 갈것입니다. 총탄이 한꺼번에 수 십 발씩 동서남북을 통해서 들어와도 나는 갈 것입니다. 나는 쓰러질 때도 뒤로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많이 망했습니다. 그러한 개인을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분해 가지고 기도하면 얼마 가지 않아서 해결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기필코 이루어야 할 소원은 선입니다. 그런데 선에는 개인적인 선, 가정적인 선, 종족적인 선, 민족적인 선, 국가적인 선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지방에 나가서 굶고, 자기 피를 팔아 가면서 일해 오고 개밥을 먹으면서 일했던 그런 비참한 일화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을 저주할 수 있고, 세계 인류를 저주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을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참아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를 대한민국이 공인하지 않아도 세계 여러 국가가 공인할 수 있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은 머리가 아주 좋고, 작전에 묘기가 있다고 합니다. 묘기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요. 원칙은 간단한 것입니다. 자기가 만일 어떤 결정을 잘못 내렸다면, `ㄱ'이다 `ㄴ'이다 하면서 밤을 새워 가면서라도 해결짓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합니다. 나는 `이 세계가 하나님 앞에 일치가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고 일치되지 못한 자리에 있는 인간들에게 당신이 가시는 길과 일치되어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명령을 내려놓고 배후를 수습하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잘 됐어요, 안 됐어요? 안 되었으면 내가 제시할 겁니다. 나는 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남보다 삼 배 십 배 더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천국은 어떻게 가느냐? 선생님은 그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세계 그 누구보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 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판결하는 데에도 자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일발의 촉박한 자리에 놓일 때마다 현재는 모순되고 환영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연코 하나님을 중심삼고 판별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성공하는 것입니다. 책임진 사람은 그런 관점에서 모든 것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어떤 근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닦아놓은 모든 것이 자기들이 닦아 놓은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피의 대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족을 바라볼 때, 민족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한 때, 민족 앞에 부끄러운 자리에 몰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비참함이 필요했습니다. 천운과 더불어 선을 위하여 태어났고, 천운과 더불어 선을 위하여 생활하고, 천운과 더불어 선을 위해 죽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도둑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의 요구대로 하나님이 좋다고 허락해 주는 하나님이면 이 세계의 하나님이 되시겠습니까? 뜻이 언제 이루어지겠느냐고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일에 책임을 다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는 데 있어 내가 책임을 못 하면 그 뜻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관점에서 똑바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전생애를 걸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기준이 찰떡 같은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길은 희생이 아닙니다. 그렇게 가는 길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굴곡이 있을 수 있습니다.
높은 산정을 목표로 올라갔을 때, 그 산정만으로 끝나면 전부 다 얼어죽습니다. 거기에는 동물도 꽃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짜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지의 조화가 인연 맺게 됩니다. 거기에는 새도 맞이할 수 있고, 따뜻한 봄날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뜻길을 서둘러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눈이 꽉 차있는 산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로 꽃이 피는 골짜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조화를 이루는 숲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높기만 바라는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도 망하게 되고, 공산당도 망하기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후르시초프가 유엔 총회 발언대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연탁을 쳤습니다. 그때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미국도 내려가는 것입니다. 세계의 주도권을 양보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누가 계승하느냐? 공산당도 세계의 끝을 넘어가지 못했고,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미국도 세계를 소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소화시켜야 하느냐? 이제 남은 제2의 주인이 누구일 것이냐? 제 2의 주인은 자동적으로 제 1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제1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것은 금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가장 욕을 많이 먹고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나오는 무리, 바로 통일의 무리입니다.
본래 36억 인류가 전부 다 죽어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하나만 죽겠사오니 세상에 복을 주소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하늘편이 없는데 별 수 있습니까. 자기 혼자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저를 사랑한다면 전부 다 죽이시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자기까지 죽게 됩니다. 또한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먼저 죽이시오 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죽을 바엔 너도죽고 나도 죽자고 할는지 모르지만, 다 죽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든 인사문제라든가 상속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부를 잘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자꾸 물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선은 어떠한 기준을 세워야 하느냐?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절대적 선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여 절대적 판정 기준이 나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준도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백퍼센트의 기준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선의 한계를 지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10퍼센트나 50퍼센트나 80퍼센트나 99퍼센트는 조금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이라는 것이 조금만 있더라도 모두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전부 다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문제를 심각히 다루고, 거기에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 내가 죽으니 다 벌 주소서' 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세계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세계를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에 몰리는 일각에서 남겨야 할말이 `이들을 다 죽이고 나를 살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악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하고,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환경에서 부활의 권한을 성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두고 용서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채찍으로 몰아, 제 2의 탕감을 세울 수 있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위해서 나선 것입니다. 이것만이 하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본이요, 본 뜻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제일 문제는 무엇이냐…. 여러분은 어떻게든 노력하여 중심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천운과 함께할 수 있는 개인이 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그 천운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공무원이 직장에서 일할 때 `나는 월급이 적어 생활이 어렵다. 식구에 비례해서 10만원 들어갈 텐데, 지금의 8만원 가지고는 부족하다. 3배 들어가는데 그 3배 이상을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활하던 자기기준을 낮게 설정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비례가 크면 클수록 자기가 녹아지는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자기 생명까지 버리고 가야 합니다. 천도는 그런 역사적 배후에서 닦아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반할 수 있고, 거기에 동참할 수 있는 내용의 기준을 갖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천운을 중심삼고 개인의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망하고 싶어요? 망하고 싶지 않아요? 「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욕심입니다. 그러니 전부 다 망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얼굴이 못생겼으니 되고 싶은 대로 되라, 나야 뭐 어떻든 상관없다'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거울은 더 많이 봅니다. 귀가 쑥 들어갔으니, 혹은 코가 쑥 들어갔으니 성형 수술이나 할까 하며 관심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웃는 걸 보니 관심은 있는 모양입니다.
결국 이것은 망하자는 것입니까? 흥하자는 것입니까? 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그렇게 한다고 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야 기와골에 올린 호박처럼 생겼을 망정 마음만은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을 갖자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니 그저그런데 마음을 보니 딴판이라고 하는, 얼굴은 못생겼더라도 마음이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과 마음을 비교하여 마음이 배 이상 되게 될 때는 총각은 홀딱반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얼굴 못났다고 탄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굴이 못났어도 자기 나름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면서부터 호박처럼, 무골충 같이, 찌그러진 무우같이 생겨서 천번 만번 넘어뜨릴 수 있으되 한 가지 깔보지 못할 것이 있다면 여자들이 마음에 들어 할 것입니다. 남자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큰소리하는 사람 몇 십년이나 가나 보면 3대 이상 못 갑니다. 박대통령이 지금 제 2경제부흥을 이루겠다고 하는데, 이 제 2경제부흥은 사상으로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을 소화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이 싸움에 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노르웨이 같은 나라를 보면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율이 점점 늘어가고 있느냐? 내적인 마음의 흉년을 외적인 경제적인 풍년으로 막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수만 있었으면 석가모니가 왕궁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뜻을 품은 사람들이 그러한 과정을 수없이 거쳐왔습니다. 개인이 그러했고 민족 국가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 민족에게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냐? 돈이나 권력이나 지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삼천만 민족이 한 점으로 화합할 수 있는 사상통일, 사상무장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최고의 민족이 될 것을 통일교회는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를 끌고 가되 나라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끌고 가야 되고, 세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천운을 따라가야 합니다. 또한 천운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하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이념입니다. 선생님은 수십 평생을 걸고 이 일을 해왔습니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빚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50살이 가까워졌지만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나이 많은 축에 들어가니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만 늙은 축에는 안 들어갑니다. 선생님은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생들입니다.그러나 학생들이 너무 기분 좋아하면 곤란합니다. 청년을 좋아하지만 내용이 없습니다. 또 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지만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 늙은 사람도 늙은 자체를 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원도 산돼지 사냥하러 가지고 할 때, 따라가지 못하는 무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가 아파 못 가더라도 흐느적거리며 강원도까지 따라갈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올라가야 할 텐데 다리가 조금 이상하니 어떻게 하지?' 그런 사람은 강원도 산에는 갈 수 있지만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분들은 그런 마음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손자가 스물 몇 살이 되어서 `손자 며느리까지 얻었으니 나는 구 시대 할아버지다'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젊음이라는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측에 있는 사람들이나 일반 사회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가 자꾸 커지니 야단났다고 말을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통령 출마를 하려고 한다면 별의별 소리를 다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대통령하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며, 세계를 위한 길을 닦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은 일본에서도 다루지 않는 승공문제와 반공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살리기 위해서 아시아인을 누가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며 그 누구도 아닙니다. 오직 통일교회뿐입니다. 그러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실적 앞에는 그 누구도 머리를 들지 못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 전부가 걸려들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조금만 내 의도에 맞춰 후원하게 되면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내 계획에 맞게 후원해 주겠습니까? 「예」 정말이요? 「예」 돈이 없게 되면 돈을 보내 주고,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도 지원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예」 대답만 하면 됩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을 굳게 해야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소화당하는 무리가 아니고 소화시키는 무리입니다. 그러면 금덩이 쇳덩이를 집어 넣어도 소화시키겠습니까? 「예」 배가 터진대도 소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독초라도 먹어 삼켜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삼키든 그것이 배 안에 남아 있는 한 전부 다 썩고 녹아져서 소화된 후에야 쓰러진다고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공산당을 날것으로 삼키고도 소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악한 편에서 제일 미워하는 무리는 누구냐? 그것은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에서 제일 좋은 무리가 누구냐? 통일교회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기분 나쁘면 죽으시오. 가만 있어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똑바로 가야 합니다. 종교를 가져서 무엇합니까? 통일교회 간판을 떼어 버리더라도 대한민국을 살려야 됩니다. 대한민국보다 세계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살 수 있으면 통일교회 간판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통일교회 간판을 떼어서 불살라 버리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간판은 불쌍합니다. 욕을 많이 먹은 수난의 간판입니다. 세계 간판의 역사 가운데 제일 수난을 받는 것이 통일교회 간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만족하면서 생애를 걸어 놓고 천운을 확실히 따라 갈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천운과 더불어 기착할 수있는 최고의 자리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겠고, 민족이 되어야겠고, 국가가 되어야겠고, 세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때가 되면 하나님은 세계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이 세계에서 모시고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세계 인류를 자녀와 같이 품고 사랑 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민이 존재하기 전부터 목적하고 바라셨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라는 단어의 통자의 의미는 거느린다는 말입니다. 지도 받는다는 통자가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으로 지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 지배하자는 것입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효성,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세계 만민을 사랑하는 박애주의를 가지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리까지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몸보다 하나님을 중심한 마음을 앞세우고, 가정에 있어서는 내가 주체가 되어 나로 말미암아 전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선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족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선의 가정, 민족 앞에 영향을 미치는 선의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의 통일종족으로 이 지구상에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일본 미국 독일 등 어떤 나라에서도 통일교회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족속은 세계의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평면적인 세계 도상에 하나의 이념과 하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종족 편성운동이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묵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노력하는 만큼 세계가 공인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세계의 개인들이 본을 받을 수 있는 개인, 세계의 가정들이 본을 받을 수 있는 가정, 세계의 종족이 본을 받을 수 있는 종족, 세계의 민족이 본을 받을 수 있는 민족, 세계의 국가가 본을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되어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될 때, 그나라는 세계의 조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임재하실 것이냐? 세계적인 조국복의 새로운 깃발이 휘날리는 곳, 하나님은 그 자리에 안식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위해서 싸워야 하며 이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문화를 품고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활동 목표는 `전면적인 진격'입니다. 상대가 누구입니까? 원수를 대하여 투쟁하는 것이 아닐, 이것을 초월하여 자기의 종족 민족을 찾아갈 수 있는 기원을 만들고, 세계의 통일국가형을 마련하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바라는 소원이요, 인류가 하나님께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목적을 중심삼고 이 길을 나선 무리들이니, 여자들은 비록 치마를 입은 여자로 태어났어도 남자를 능가할 수 있는 여자가 되겠다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인민군과 대결하여 싸우더라도 통일교회 여자들은 인민군 남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자신 있어, 없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인민군이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의 눈 앞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중국놈 소련놈 미국놈들이 있습니다. 미국놈도 놈은 놈인데 조금 가까운 놈입니다. 그러면 말은 놈 놈 하는데 실제로 놈 놈 하며 살아 봤습니까?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언제 되놈이라고 불러 보았습니까? 그들이 대국이란 간판을 붙이고 나오더라도 우리는 되놈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남을 무시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천운을 품고 분노를 터뜨리면 천지가 망하기 때문에, 내가 분해도 그냥 앉아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면 세상 천지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는 참습니다' 해야겠고,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무리를 공산당이 데려다가 공산당원으로 만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됩니다. 고문을 몇 백 번 하고 세뇌공작을 암만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됩니다」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되지 않게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내가 부산에 피난 갔을 때는 부두에서 목도질도 했습니다. 노동을 하면 무엇이든 잘합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잘 어울립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와 친구가 되고, 거지판에 가면 상거지 노릇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밥 얻어먹는 내기를 한다 해도 선생님이 일등할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전부 다 친구로 만들어 얻어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디를 가든 내가 좋겠다 하면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몇 달 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통일교회 문아무개라고 불렀습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형무소에 들어가 보면 전부 다 왕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잘났다는 거예요. 그러나 난 나보고 무엇이라고 불러도 아무 대답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날부터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달도 있을 수 있고 두 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두 주일쯤 지나게 되자 그들이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소변보러 가면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먹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그들 중 제일 골칫거리인 사람, 모두가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몇 마디 같이 얘기하며 잘 타일렀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골칫거리인 사람이었는데, 문이라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그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너달 지나자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감방의 사람들이 전부 다 문아무개 말을 잘 듣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형무소 소장까지 만났고, 그에게 따끔한 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올 무렵 통일교회에 찾아온 간수들이 많았습니다.
말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선생님도 그들을 위한 입장에 서서 대한민국을 대신해서 대통령도 가지지 못하는 심정을 가지고 현재의 한국의 운명과 미래의 한국의 운명, 그리고 이 민족이 가야 할 국민사상을 중심삼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심정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책임자 앞에는 머리 숙여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배척받고, 민족 반역자로 몰리고, 국제 공산당이란 말까지 듣지 않나 별의별 간판을 다 덮어썼습니다. 또한 사교의 괴수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선생님은 이 감투를 벗을 자신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쓰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선생님은 썼더라도 벗을 길을 가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요즈음도 기성교회에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친여당파라고 합니다. 통일교회가 어째서 여당파입니까? 30여년 간 얼마나 핍박을 받았습니까? 여당이 협조해 준다고 친여당파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협조해 달라고 했어요? 협조해 주든 안 해주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입니다. 누구를 믿고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 현재의 위정자들을 믿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선의 기준에서 출발했지만 선의 열매가 아직 맺히지 않았습니다. 봄을 맞이해서 싹이 트고, 여름을 맞아 줄기와 가지가 뻗어진 곳에 잎이 무성하게 되어 꽃필 수 있는 때가 오고, 꽃이 필 때가 찾아오면 나비와 벌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동서남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벌 나비처럼 날아들 때가 되었습니다.
미국인도 오고, 일본인도 오고, 모두가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못한 것이 뭐가 있어요? 10년 전에 생각하기를 대한민국의 운명 앞에 이런 날들이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벗고 나온 다음 바로 한 식구를 밀선에 태워 일본을 공격케 했습니다. 그것이 그 나라 국법에 위반되는 것이지만,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민족 앞에 몰리더라도 앞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제 2국이 필요하고 제 3국이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기반을 닦기 위해서 빚을 내어 가지고라도 계획한 일을 시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10년만 지내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종교가 움직이는 일에 통일교회 유지들과 통일교회 청년들이 아니면 안 되고, 아시아의 반공정책에서도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깃발을 날리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여러분들과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한국대사관의 그 누구도 통일교회에 와서 인사할 때가 올 거예요.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기분 좋아요? 「좋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려고 할 때, 미국 국무성에서는 `요주의 인물 미스터 문'이라고 하면서 오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년만에 전부 다 복구했습니다. 또 일본 외무성에서 한국 주재 대사관에게 미스터 문을 일본에 보내지 말라고 3개월 전에 통첩을 보냈는데, 선생님은 그들을 제치고 일본에 들어갔습니다.
못난 녀석은 집에서 왕노릇하고, 잘난 녀석은 밖에서 큰소리 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졸장부와 같은 선생님이지만 외국에 나가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통일교회가 잘나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모르는 일을 선생님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내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때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상속권을 좌우시킬 운명의 판가름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선을 주체로 삼아서 선의 권한을 가지고 선의 실적을 세움으로써, 당당코 선은 이렇고 악은 이렇다는 선악의 판가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예수의 사명을 위해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망하면 문선생은 왕지옥에 가야 합니다. 이 나라의 민족 문화가 침식을 다해 말살되고 초죽음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민족의 경천사상이 주입되어서 수십세기 후에도 그 사상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진리를 가졌다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통일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이 남아도 세계의 국가와 민족은 재편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천이 있다 할진대는 현실의 슬픔만 갖고 살 것이 아니라, 미래에 찾아올 복을 그리워하고 낭만적인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심적인 사나이가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이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넥타이를 매고 쇠고랑을 찼더라도 멋진 건 멋진 것입니다.
몇 년 전 김창룡 사건때, 허대령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자기가 전체를 책임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통일교회 이념을 가진 사람은 그 이상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교회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상이 되어 있습니까? 「예」
여기 일본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까? 「예」 정말 믿어도 됩니까? 「예」 그렇다면 그만큼의 심정을 갖고 있습니까? 「갖고 있습니다.」 1억 인구를 굴복시킬 수 있는 그 이상의 힘을 갖고 있는가, 아시아 11억 인구를 굴복시킬 힘을 갖고 있는가 말입니다.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머리가 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코가 한 뼘 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눈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빨려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맨 처음에 볼 때에는 기분이 나쁘지만, 다 같은 사람들이라서 정이 들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정들면 인종 구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어서 놀란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어지간히 싸워 나왔지만, 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을 두번째로 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길로 갈 것이냐고 물어보면, 공식화된 대답을 합니다. 죽어도 이 길을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바라던 이상의 대답을 할 만큼 훌륭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세계를 몰아넣을 그물을 뜨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수많은 국가를 놓고 그물을 떠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도 미국도 일본도 그물을 뜨는 데는 똑같은 그물을 떠야 합니다. 하나는 명태 그물을 뜨고 하나는 고래 그물을 뜨면 뜨나마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다 같아야 합니다. 미국도 독일도 일본도 가 나라가 전부 다 똑같은 그물을 치게 되면 악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됩니다」안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어디 가게 되면, 작년에 탔던 차는 안 되고 새차를 타셔야 한다고 합니다. 집도 새집이 있어야 된다고 하고, 선생님이 어디를 가더라도 일류호텔에 가야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좋은 사상입니까? 나쁜 사상입니까?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상입니다. 내가 순회하지 않고, 여러분이 내대신 가서 본부에서 왔다고 하면 전부 다 높아집니다. 아버지가 잘 나면 자식도 잘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근원이 되어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여러 사람 앞에 가면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갈 길을 자기를 낮추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굉장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 할테니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 할테니까 이야기 안 하겠어요.
우리의 이념은 참 멋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교인으로서 세계 36억 인류 앞에 개인으로 나왔지만,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중심한 하나의 종족을 이룸으로써, 세계적인 새로운 나라를 중심삼아 하나님께서 천상세계에서 인간세계로 찾아오는 데 있어서 다리를 놓아야 되겠습니다. 이 다리 끝과 저 다리끝을 연결해 놓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길을 찾아오고, 인간은 이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어떤 중심이 있을 때, 이 길을 모색해서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 기준을 어느 때 연결시키느냐? 연결시킬 수 있는 동기를 만들려면, 세계적인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판국에서 우리는 힘차게 선을 지향해 가야 합니다.
선은 흥하는 것이요, 악은 망하는 것입니다. 악은 추방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후손들 앞에 전통을 심어줄 수 있는 기준을 현재의 여러분이 세워야 합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우리가 일차적으로 이세계를 감당해 가면서 제일 정성을 들여, 공산당도 능가할 수 있는 실천적인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 문제를 중심삼고 세계를 어떻게 연결시켜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금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엄숙한 과제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불리워졌으니, 그 책임과 사명을 짊어진 자신이 스스로 택하고 스스로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실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세계의 식구들과 더불어 세계에 널려 있는 승리의 무리와 더불어 살아야 되겠으며, 내일의 만민이 바라는 표준적인 이상세계를 향하여 사는 이것이 확실한 것이라고, 세계 인류 앞에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통일교회 여러분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전세계가 한국을 중심삼고 일치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 하나의 길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사방성을 가진 길을 지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일교회는 국가를 위해 남이 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이 무용단을 창설할 때에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하더니 정말 춤을 추는구만'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자랑하고, 대한민국을 소개하는 좋은 기반을 닦았습니다. 또 우리가 승공연합을 만들 때도 지방에서는 코웃음을 치며 `통일교회가 국가 종교인가? 반공을 주도할 승공, 그까짓 걸 해서 뭘 하느냐' 등 별별 소리를 다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3년을 넘기면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95% 이상 정부의 강의를 책임지고 방첩과 승공사상을 강의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으로도 확산이 되었고, 이제는 모든 국가에서도 다 알고 있으므로 무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승공운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먼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있어야 하고,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국가 세계 천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는 일본과 중공을 하나되게 하면 아시아 일대는 간단하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구라파를 하나로 묶고, 세계 유엔 총회와 같은 아벨적인 기관을 만들어 소련을 제압하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그 일까지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찬성합니까? 「찬성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공부는 물론 불어 공부도 하고 무엇이든지 다 해야 합니다. 실력을 쌓지 않고서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가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다」 30년 동안 지지리 고생하고, 지지리 욕을 먹고, 지지리 몰렸던 통일교인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 태어났고, 선을 위해 살고, 선을 위해서 죽는 패가 통일교도들입니다. 그런 패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과 한 패가 되어서 욕을 먹었어도 그때가 좋았지요? 「그렇습니다」 그때가 통일패 시절이었습니다. 통일패라고 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통일패가 되어 가지고 통일의 무리가 되고, 그런 다음 세계의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까지도 요리할 수 있는 통일가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선을 위해 태어나고, 선을 위해 살고, 선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내 개인이 여기에 가담하여 내 가정을 여기에 가담 시키고, 내 종족을 여기에 가담 시키고, 내 민족과 국가를 여기에 가담시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공활동을 할 때, 사회에서는 `통일교회가 자기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 방법이지 무슨 재간으로 반공을 하겠느냐' 하며 말도 많았습니다. 전도는 나중 문제입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전도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가 손을 대는 데에는 죽든가 살든가, 망하든가 흥하든가 둘 중의 하나인데 단연코 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당면 문제는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목사나 장로를 믿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장로교 감리교라는 교파를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누구같이 믿어야 되느냐? 예수님같이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아야 합니다.
대한 민국을 볼 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왕래하신 깊이 있을 것입니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고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는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길이 있을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시아에서 쥐뿔만도 못한 나라가 5천년 역사의 문화 민족의 긍지를 지니고 이어 왔다는 사실을 볼 때, 이 민족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죽지 않은 씨로 남아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끝날 올바른 농부를 만나 옥토에 심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 익는 날에는 세계가 이 종자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이 같이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하나님과 심정의 끈으로 연결돼 있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는 그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통일교회가 필요하겠어요, 필요없겠어요? 「필요합니다」 통일교회가 아닌 그 어떤 교파라도 그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따리 싸 들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민족의 역사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이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친 애혼들 앞에 부끄럼 없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주체의식을 갖추어 민족 앞에 서야겠습니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진해서 해야 합니다.
오늘날 창설된지 단 50년 내에 세계 10억 인구를 농락하고 있는 공산당이 칼을 들고 나서는 그 앞에,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도 `나를 쳐봐라' 하고 나설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는 통일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엇을 중심삼고 나갈 것이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하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일 문제는 심정입니다. 그 다음은 사상, 그리고 행동입니다.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심정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기적 민족감정이라든가 종족감정을 없애야 합니다. 세계인류를 위해 내 감정을 완전히 폭발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통일교회는 천정과 더불어 일치할 수 있는 심정통일의 기준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시작과 더불어 이행하고, 실천을 중심삼고 생활하고, 그 생활을 통하여 생애노정을 연결시키자는 것입니다. 생활과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망의 세계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책임분담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을 개의치 말고 타파하여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 나면 심고 또 심어 백 번에 한번 나더라도 기어이 하나의 싹을 보아 이것을 고이 기른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천번 만번 풍파가 몰려오고 시련이 오더라도 사랑의 종자가 되는 선한 나무는 꺾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악한 쪽으로 후퇴하면 망합니다.
통일교회 후손들은 선인들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때가 오면 참된 것을 일시에 복귀하겠다는 신념과, 지쳐서는 안 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거쳐 나가면 이상세계가 오게 되는데, 그 이상세계는 싸움이 없는 세계입니다. 동서남북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동방은 서방, 서방은 동방, 남방은 북방, 북방은 남방과 서로 합해서 하나의 중심 앞에 연결되니 이 지구상에서의 공산주의는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동서로 분리되어 있는데 한 중심을 중심삼고 서로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세계가 하나댈 수 없습니다. 자기 자체의 나라보다 상대방이 진실로 더 귀하고 중하다고 하는,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선의 기반이 지상에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계적인 창조이상시대는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통과한 후에 영계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오늘날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종교라는 과정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양심과 더불어, 마음과 더불어, 몸과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천륜의 법도에 일치하고 이념화 될 수 있는 먼 장래의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내 가정과 종족을 거쳐 민족을 넘고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환경, 세계의 평면도상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사랑할 수 있는 선의 왕국을 이뤄야 합니다. 이러한 선의 왕국이 도래한 것을 찬양하고 세계만민이 그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을 천주 앞에 영원 세세토록 찬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바라는 행복의 이상세계를 영위하는 것이며, 통일교회가 모색해 나가는 종착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하며 심정을 통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운행하고 계신가 하는 것을 알아서 행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수습하여 복귀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생활무대를 모색하고 계신가를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선에서 지휘관의 명령 여하에 따라 적진을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고, 이웃 사람들과도 인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세계가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그것이 모두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활철학을 중심으로 통일교회의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하여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말로만 무성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심판받는 무리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명령하고 가르쳐 준 것들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서 가르쳐 준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 생활하지 않은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이 무어라 하더라도 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본이요, 절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가르침이 행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민족을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또 인류를 위해서 싸워 나왔습니다. 역사적인 심정을 품고 나오신 하나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현재의 `막판에서 이 길을 책해 가지고 나왔으니 내가 가는 길이 감옥인들 막을소냐, 죽임인들 막을소냐! 한번 태어났다 죽는 것이 자연의 이법이요, 진리 아니냐!' 하며 선생님은 오직 이 길만을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 말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 길이 우리의 길이요, 이렇게 행동하여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으로 알고 싸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말없이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무언의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동정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악한 세계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변명은 악한 세계가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내 심정을 남기고, 내 때를 맞아 쌍수를 들어 하나님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그 심정과 일치하겠노라고 맹세하고 나설 수 있는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또한 수천년 역사를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인내성을 본받아야 하며, 무언과 인내로 역사를 꾸려 오신 아버지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억울하게 돌아가는 기로에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했습니다. 천지를 품고 왔지만 가야 하는 마당에 있어서 자신의 후계자 한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천년 만년의 한을 품고, 그 심정을 토론하지 못한 채 묵묵히 걸었던 십자가의 고통길이 얼마나 서러운 것이었던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제 1차 7년노정에서 갖은 수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감옥길도 죽음길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길가에서 잠을 자야 하는 신세도 되어야 했습니다. 모진 핍박을 받아 왔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고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번 입을 열어 말을 하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할 말이 있지만, 우리는 무언의 가슴으로 참아야 합니다. 큰 일을 책임졌기 때문에 경거망동하면 천리의 대법도를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10년이 가나, 20년이 가나, 30년이 가나, 40년이 가나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원이요, 우리의 실천방안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제 2차 7년노정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이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면 선생님은 도리어 그러한 사람을 모시고 싶을 것입니다.
나 하나 잘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만민이 역사를 두고 생명을 바쳐 갚아도 그 빚을 못 갚고, 수천만 후손을 두고 빚을 갚아 달라고 유언을 하여 갚아도 못 갚을 내용을 남기자는 것입니다. 남겨진 이 전통적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은 세계를 요리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이 길이길이 거할 수 있는 터전이 선이 갈 수 있는 길이요. 선만이 길이길이 승리하여 영원한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중심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그런 취지와 인식을 가지고 가담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한 개체를 중심삼고 존중하는 관, 혹은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세상의 그런 이기적인 관을 몰아내야 합니다. 선과 악이 대결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악이 선의 길을 막고 있으니, 악은 제거시키고 선은 붙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선과 악이 싸우는 도상에서 반드시 한쪽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역사적으로 고찰된 전통적인 이론이 확고히 서 있습니다 이것을 끌고 나서려면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면서 하나님을 더 위하지 않고는 나설 수 없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내가 걷는 길은 조용히 가는 길입니다. 나를 찾고 나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수난보다 더 어려운 수난의 길을 거치고 극복해야 됩니다. 그래야 가정을 이끌고, 종족을 이끌고, 민족을 이끌고, 수난의 고빗길을 넘고 넘어 내일의 소원의 일념을 이루고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소원을 향해서 싸워야 하며, 출발에서부터 영원히 변할래야 변하지 않는 이념과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절대 철학을 가지고 나감으로써 일직선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결의와 신조를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에 나서 선에다 살다가 선에 죽어야 하며, 심정통일 생활통일 이념통일을 이루어 가는 것이 천운에 동참하는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임을 알고, 말없이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안 하면 아들딸들이 후손이 여기에 걸려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를 지날 적마다, 또 여러분의 방에 있는 시계소리가 들릴 적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천추만대의 후손들의 운명이 갈라진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선의 결과만 세우고, 모두가 선의 조국에 일치될 수 있는 천운을 상속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당신이 가셔야 할 길에 이 천지간의 숙명적인 인연을 따라 태어난 통일의 무리들이옵니다. 비록 저희의 모습은 초라하고 정성은 부족할지라도 눈동자는 올바로 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침 점심 저녁을 드는 숟가락이 비록 초식 소찬이지만 아버지의 눈물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그래도 이것이 아버지를 영광되게 할 수 있는 생활의 터전으로 연결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어느 한 날 당신의 애절함을 알고 난 그날부터 수십여 생애노정을 거쳐오면서 보아 왔지만, 가면 갈수록 아버님이 불쌍하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슴이 메이고 분하고 원통하며 아무리 통탄하고 탄식해도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인 원한의 터전이 남아 있기에, 이 구렁텅이를 메워야 할 탕감복귀의 대가가 오늘날 통일무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이들도 인간이기에 그 기력에 한계가 있어 가다가 지친 것을 많이 보았나이다. 그럴 때마다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아버지의 불쌍하심을 먼저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죽어도 아버지편에서 죽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이것을 위하여 민족앞에 몰렸고, 세계 앞에 버림받던 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망하고 쓰러지면 아버지의 위신과 처지가 위로할 수 없는 불쌍한 자리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아버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몇 천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가이 죽을 줄 아는 충신이 되고, 충효열을 표방해 나가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과 같이 흘러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놓고는 흘러가는 세월도 역류해야 되겠습니다. 하오나 저희들의 힘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싸우는 그 시간부터 십년을 지탱하기까지는 소모전이기 때문에 아버지만이 여기에 같이하고 아버지만이 저희와 내정을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들이 아버지의 사명을 잘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선악과 흥망성쇠의 결과가 아버님을 중심삼고 천운이 가는 길을 통해서 해결된다는 것을 오늘 들었사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길을 마련하였으면 아버지 앞에 본이 되고, 민족 국가 세계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통일의 발자취를 남기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한 날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를 모시고 전열을 정비해서, 남겨진 천명을 저희들에게 명령해 달라고 부탁하며 겸손한 산 제물이 되겠다고 각오한 몸이오니, 당신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명령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죽음이 필요하거든 죽음의 대가를 치러 만민이 살 수 있는 그 길을 기꺼이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열 두 시가 지났습니다. 전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이날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이 시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아버지, 받아 주실 줄 믿사옵니다.
천지를 우리가 다스려야 하오니 자신을 여서 전체 앞에 화동의 중심 되는 당신의 아들딸로 영원히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작은 자체를 큰 자아로 바꾸어 당신 앞에 드릴 수 있는, 그 길을 위해서 가는 당신의 참된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시간도 허락하신 뜻 가운데 일체를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금후 승공문제를 중심삼고 나감에 있어서, 그들은 나라가 있더라도 그 나라 누구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한국 본부에 와서 스승을 통해 배우고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의 애절한 입장을 보게 될 때, 목이 메이고 통탄할 일입니다. 아버님의 아들딸이 어찌하여 이런 불쌍한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까?
아버지, 그러나 그들은 외로운 자들이 아니옵니다.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는 자리에서 아버지의 심정이 심어지고 민족의 혼이 심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이 길을 자처하여 가는 그들 앞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대표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여 와 있습니다. 오늘 그들을 환영하는 이 시간이 기쁨의 시간이 되게 하시옵고, 영광의 심정적 유대를 공고히 할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깊은 심정으로 품으시옵고, 사랑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오니, 뜻하신 승리의 이념과 승리의 결과가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해의 절반을 보내는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되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이 당신이 가고자 하시는 방향과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한국 땅인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이 땅을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며 기도하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수많은 자녀들 위에,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국가 세계가 한 기점을 통하여 아버지와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될 것을 알고 도의 길을 가는 자녀들에게,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 날의 승리를 위하여 준비한 당신의 거룩한 역사적인 터전이 이땅 위에 승리의 결과로 드러나게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땅 위에 찾아오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복귀라는 이 서러운 노정을 거쳐 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저희들이 원리를 통해서 배웠사오니, 그것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친히 행하신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당신의 가슴속에 맺힌 원한의 터전을 저희들이 싸워 극복하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여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여 부족한 저희들이 시봉하고 충효의 도리를 다한다 하더라도 제한된 몸이기 때문에 어느 한계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언제나 저희들을 찾아오셔서 붙들어 주셨사옵고, 저희들이 가야 할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격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쓰러져 아버지 앞에 염려를 끼친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럴 적마다 아버지에게 슬픔을 자아내게 하였고, 아버지에게 고통을 등에 짊어지게 하였던 사실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도 당신의 뜻을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한 날의 승리를 위하여 정성들인 가정이 있사올진대, 그 가정에 천 배 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 위에서 정성들이는 무리들이 천상세계의 무리와 일치되어 하늘과 땅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현현과, 아버지의 행사하심이 실제로 온 횡적세계에 벌어질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할 수 있는 통일의 운세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침에 저희들을 모으신 당신의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넓으신 아버지 뜻 앞에 하나의 모습을 갖추어서, 거룩한 성소를 거치고 지성소를 거치어 아버지께서 임재하신 존전에 불리움을 받아 직접 당신의 명령을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사랑의 손길이 풍부하게 미쳐지옵시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신앙길에 있어서는 언제나 넘어가야 할 고개가 있다고 봅니다. 신앙길도 신앙길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생활에 있어서도 역시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그런 것입니다. 일생을 잘라서 말하면, 여러분 같은 청년시대와 장년시대도 있고 노년시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청년이면 청년, 장년이면 장년, 노년이면 노년도 그 기간이 있어서 경계선이 있습니다. 이렇듯, 넘어가야 할 경계선이 우리 일생에는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이 경계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편이냐 저편이냐 하는 두 편 가운데 한편에 속해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요, 오늘의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경계선이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보시는 경계선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가는 길 앞에는 넘어야 할 수다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혹은 국가, 세계, 천주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다한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 고개는 우연히 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계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 경계선을 넘을 적마다 자기 스스로 이것을 타개해 넘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 넘어가는 길을 예비하고, 자기 스스로 그 넘어가는 길을 열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정성을 들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경계선을 하나님과 더불어 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소유권 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경계선을 하나님과 더불어 넘지 않게 되면, 사탄과 더불어 넘어가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탄과그 경계선을 넘게 되면 사탄은 우리 인생이 가는 그 본향길에 있어서, 우리의 일생행로의 목적점을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 협조해 주고 그 길에 일치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번번히 탈선시키고 그 길과 반대되는 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그러했고, 이 시대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이러한 경계선을 넘는 데는 어떠한 동역자와 더불어 갈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협조받을 수 있는 가정이라든가, 국가라든가 하는 이런 환경적인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주체적인 인연을 갖추어가지고 스스로 동기를 일으키지 않고는 그 환경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 것이요, 사회도 사회가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 자신도 가야 할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나와 사회와 국가가 가는 방향이 전부 다 일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경우나 그 입장이나 그 위치가 전부 다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이런 경계선을 넘는 것도 물론 귀하겠지만, 사회나 국가와도 인연을 맺어 가지고 경계선을 넘어가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입장의 동기를 누가 만들어야 되느냐? 이것을 움직일 수 있는 주체는 사회나 국가를 능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회나 국가의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 혹은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넘어가야 할 그 경계선, 사회가 넘어가야 할 경계선, 더 나아가서는 세계, 혹은 천운이 넘어가야 할 경계선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어떻게 이걸 일시에 넘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 그런 사람일수록 세계사적인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지향하며 넘어가야 할 경계선이라는 것은 역사에 없는 경계선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높고 길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가는 경계선이 최후의 경계선이요, 혹은 역사적 소망의 경계선이요, 하나님과 사탄이 여기서 판가리할 수 있는 경계선입니다. 또한 하늘과 땅이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을수 있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모든 것의 해결을 볼 수 있는 선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성사시킬수 있는 이 경계선이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천주가 혹은 이 천운이 넘어가야 할 경계선이 오늘날 우리 앞에 남아진 것을 확실히 안다 할진대, 우리들은 그 고개를 넘고 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 지금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홀로 그 고개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이 그러했습니다. 뜻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넘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길을 넘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그 경계선의 고개가 어떠한 고개이고, 어디로 가야 넘어갈 수 있다고 하는 그 방향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경계선을 넘는다 하더라도 잘못 넘으면 반드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경계선을 넘어가는 데에는 어디로 가서, 어디를 넘어야 된다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길은 많지 않습니다. 그 길은 단 하나입니다. 해방 직후 삼팔선 넘듯이 아무데나 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넘을 수 있는 그 길은 반드시 단 한 길입니다. 하나님도 그 길로 가야 되고, 역사적인 수많은 성인도 그 길로 가야 되고, 혹은 복귀노정을 가야 할 모든 사람들도 그 길로 거쳐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하나밖에 없는 최후의 경계선입니다. 그 최후의 경계선이 이 종말시대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경계선을 필시 넘어가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넘기 위해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훈련을 해야 되는가? 이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활태도나 모든 관념, 지향하는 목적을 전부 귀결시켜서 이 경계선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활 전체를 집중시켜서 이에 대한 해결점을 내놓지 않는 한, 여러분 자신이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 경계선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사적 내용까지 종합한 경계선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나 홀로는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와 더불어 넘어야 할 경계선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 싸워나오던 선의 기준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드시 그 선한 기준에 닮아 가면서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못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이 시대 전체가 넘어가야 할 기준이기 때문에, 현재이 시대의 선한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기준을 다리삼아 그 기준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와 현재의 이 시대권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여기에 하나님의 귀중한 섭리의 손길이 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쌓아 나온 선의 기준을 이 터전 위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는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 왔지만, 미래의 흥망은 반드시 이 경계선을 넘느냐 못 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인류가 이 땅 위에 태어나서 갖게 되는 필생의 소원이요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무수한 사람들이 수고했어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느 한계권까지는 선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또한 이 시대가 그걸 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환경권내에까지는 선의 기반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연결시키는 데는 내 자신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개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개를 우리로 하여금 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방향을 제시했고 역사과정에서 실적을 요구하며 그 흔적을 남기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일치화된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의 모든 선의 기준을 밟고 돌파하기 전에는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끝날은 어떠한 때냐? 이 경계선의 한계에 임한 때가 끝날입니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다리 놓아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고개에서 저 고개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저 고개를 향해서 넘어설 수 있는 그 길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두 경계선이 일치된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이 각기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는 길도 그렇고, 혹은 수많은 종교가 가는 길도 역시 그렇고, 천운이 가는 길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종합시켜서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한 분의 지도자가 오신다는 것입니다.이 사명을 하여야 할 분이 오시는 재림주인 것입니다.
그분은 이러한 모든 기준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이 경계선의 한계를 한꺼번에 넘어야 됩니다. 이 한계선을 접속시키는 데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다한 탕감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선의 기준과 시대적인 선의 기준과 천운의 기준을 연결시키는 데는 그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았으니까 `이제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다'고 한다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탕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탕감의 과정 가운데서 역사적인 선의 기준을 밟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면 국가, 시대면 시대, 세계면 세계, 하늘이면 하늘, 천운이면 천운이 지금까지 성사하지 못한 모든 내용을 탕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경계선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복귀노정이라는 말을 잘 하고 있습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복귀는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벌어집니다. 그것이 우연한 역사가 아니라 필연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공식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갑이나 을이나 혹은 동서남북 사방의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 과정을 반드시 공식적으로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후 관계가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경계선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고개를 넘게 될 때 마음을 다른 데 두고 넘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신경과 관념이 집중되고, 온 생명요소가 전부 다 집중되어야 합니다. 이래서 경계선을 넘는 그 순간, 그 찰나에 승리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승리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도 못 갑니다. 또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적인 이념을 상속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 앞에 자기가 지금까지 갖추어 놓은 모든 것을 상속해 주게 될 때 자식들 중에서 누구를 찾습니까? 그 가정의 자손 중에 가정을 완전히 이끌고 갈 수 있는 자식을 찾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자체 앞에 끌려가는 자식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끌고 갈 수 있는, 다시 말하면 가정에서의 승리를 확보한 자식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에 있어서도 대표자로서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그 국가를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오늘날 천주주의라는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은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입장을 생각하게 됩니다. 천주를 끌고 갈 수 있는 천주적 권한을 어떻게 해서 획득하느냐? 천주주의권을 획득하기 전에 먼저 경계선을 넘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탕감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면 그 경계선이 험하면 험할수록 거기에 대비해 가지고 내가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어떻게 보충하고, 그 자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러한 고개를 넘고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사람들이 많아 왔다 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인류역사상에, 인류문화사에 공헌한 성인 현철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그들이 걸어갔던 선의 최고의 목표를 계승해서 넘어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현실의 이 사회라든가 온 세계를 두고 볼 때, 이 국가와 세계가 그러한 입장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선을 향해서 넘어갈 수 있다는 세계사적인 기준을 책임질 수 있는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사는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고,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복귀섭리해 가시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개 가정의 사명뿐만 아니라 이 엄청난 천주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은 이 경계선을 넘어가면서 `오늘 못 가면 내일 가지' 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됩니다. 여기에는 분 초의 시간도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지만, 미리 가서 기다리지 못하고 1분 1초라도 늦은 사람은 또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용서 없는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 길을 여러분이 걷고 있고, 여러분이 보고 있고, 여러분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경계선을 넘을 때가 언제냐?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의 개성이 다르니만큼, 자기의 인생관을 중심삼고 가야 할 그 경계선이 어느 때에 여러분과 교차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아직은 그 경계선에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하고는 관계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통일교회전체가 한꺼번에 부딪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기의 영역에서 출발해서 가야 할 경계선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각 개인이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태어난 날이 다르고, 여러분의 개성이 다르고, 여러분이 지향하는 목적관이 다르고, 마음에 지닌 바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 목적관에 차이가 있고, 전부가 천태만상으로 이 경계선에 접근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일시에 넘을 수 있는 이 길도 까딱 잘못하는 날에는 10년, 20년 더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를 소화시킬 수 있고 시대를 감정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떻게 돼 있느냐. 이 시대는 역사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경계선으로 직행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점은 무엇이냐? 통일교회 가정들이 여기에 모여 있지만,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다 전후 좌우를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식구들의 생활을 빤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 자체는 들여다 볼 수 있지만, 배후의 인연은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선조로부터 연결되어 내려오는 그 모든 배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런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저런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식구면 식구끼리 의논하고 협조하는 데 있어서 판단을 잘 해야 합니다. 내가 의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올라가는 길에 서있는지, 내려가는 길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릇되게 가는지, 바로 가는지를 잘 알고 의논해야 됩니다. 이것도 잘 가리지 못하면서 의논할 사람을 따라가면 그 사람은 신앙의 고개를 넘어가지만 자기는 못 넘어갑니다. 이런 결과가 벌어집니다.
신앙생활하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타격을 받고, 또는 어떤 사람 때문에 자기 갈 길을 못 가는 사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작용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대낮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한밤중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갈 길을 가리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을 따라가다가는 타격 받습니다. 자기는 밤을 중심삼아 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대낮을 중심삼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는 그 사람과 반드시 엇갈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른쪽으로 가는데,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원래는 같은 기준을 통해서 가야 됩니다. 이렇게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천태만상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주체는 누구냐?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개인 문제에서부터 가정 문제, 종족 문제, 민족 문제까지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 민족권까지는 자신이 개척해야 됩니다.
여러분! 60만의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가려 할 때, 바로가 열번이나 모세를 속여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입니다. 애급에서부터 가나안까지 가는 것은 큰 모험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생활기반을 버리고 떠날 때는 전부다 때려부수고 떠나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하는 통보만 하는 것입니다. 결정은 자기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정해서 가는 데는 단단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수난의 경계선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데, 이것을 몰랐습니다. 개인 문제만 해결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자기만 결정해서 나서면 될 줄 알았고, 자기 개인의 고개로 끝날 줄 알았는데, 민족적 수난의 경계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개인을 요구하는 것은 민족적 수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적 수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요구하는 것은 세계적 수난의 길을 탕감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개인이면 개인,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 전체가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엇갈려 있는 환경을 타개해야 할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필시 넘어야 할 이 경계선의 한계점을 어떻게 넘어 가느냐? 어떤 사람은 이 경계선을 넘어간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은 번번히 고생해야 하는 고생길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고생을 안 합니다.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지금까지 개척 역사를 이어 왔는데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좀 좋은 자리에 보내 주었는데도 지지리 고생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생을 안 해서 고생시키려고 어려운 곳에 보냈더니 고생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 개인이 가야 할 경계선을 이미 자기 선조의 공적을 통해서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천태만상이기 때문에, 백 명이면 백 명 각자가 가야 할 경계선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방향도 다르지만 위치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으로, 어떤 사람은 서로, 동으로, 북으로 전후 관계가 엇갈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엇갈려 있는 모든 것이 국가라는 그 영역 가운데서는 통합되는 것입니다. 또 국가를 중심삼은 수많은 민족들이 있으되, 국가라는 배경을 중심삼지 않은 개인은 전부 다 엇갈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이 통합돼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지금 엇갈려 있지만, 천주를 위해서 통일돼야 됩니다. 그러한 해결을 할 수 있는 기점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으로서 필시 가야 할 경계선을 몇 고비를 넘겨야 되느냐?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하늘땅을 잃어버렸습니다. 세계를 잃어버렸고, 나라를 잃어버렸고, 민족을 잃어버렸고, 종족을 잃어버렸고, 가정을 잃어버렸고, 개인까지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개인은 개인이자 가정이요, 가정이자 종족이요, 종족이자 민족입니다. 그 통로만 거쳐 나가면 자동적으로 세계, 천주까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개체가 전부다 이러한 고개를 해결지어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러한 고개를 넘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가‘민족을 위해서 싸우고 민족을 위해서 신앙하자, 국가를 위해서 신앙하자, 세계를 위해서 신앙하자, 하늘땅을 위해서 신앙하자’고 했습니까? 그런 종교가 어디 있었습니까?‘내가 천국 가자’는 종교는 있었지만, 그런 종교로는 하나님이 지향하며 찾아 나오고 세계 인류가 공감하고 공동적으로 가야 할 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갖고 나왔느냐?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단계적으로 해결지으려는 사명을 갖고 나온 것이예요? 우리는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입니다. 우리의 경계선은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 경계선을 확실히 아느냐? 국가가 가야 할 경계선은 이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 개체는 전부 다 다르지만, 국가가 가야 할 경계선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일치 단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인 경계선, 가정적인 경계선, 종족적인 경계선, 민족적인 경계선, 국가적인 경계선을 일시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경계선을 넘고, 가정적인 경계선을 넘고, 종족적인 경계선을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하나님을 믿으라. 네 죄를 전부 다 불태워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경계선의 중심이 누가 되느냐?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돌파해 버리고 혹은 경계선을 다 헐어버리고 결투해야 할 이때에, 복귀노정을 거쳐 온 이때에 역사적인 전체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계적이고 천주적인 중심인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기독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천태만상의 경계선을 넘어야 됩니다. 그러면 천운이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올 때까지는 무조건 신앙의 전통을 계승해 나가야 됩니다. 또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개인생활을 알뜰히 하여 개인적인 경계선을 넘고, 가정적인 경계선에서 생활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진정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정적인 경계선을 넘어서 국가적인 경계선을 넘어서야 됩니다. 그런데 국가적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강인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민족과 자기 종족을 버리는 때도 있어야 됩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종족과 민족을 버릴 때도 있듯이,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버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필시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 길에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이 경계선을 일시에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경계선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고, 경계선을 넘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경계선을 넘을 때는 혼자 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붙안고, 우주를 붙안고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넘는 데는 내가 우주 앞에 붙들려 가지고 넘는 것이 아니고, 천운을 타고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심전력을 다해야 됩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했던 그 시대에는 이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경계선을 넘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 삼아서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모든 것들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자세히 헤쳐 보면 나라를 위해서는 정성들인 것이 있을 것입니다. 국가 혹은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정성을 들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실패하면 가정이 실패하고, 가정이 실패하면 민족이 실패하고, 민족이 실패하면 국가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연속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에 국가가 승리했더라면, 이 승리한 국가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 모두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국가의 승리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실패는 가정의 실패의 동기가 되고, 가정의 실패는 종족의 실패의 동기가 되고, 종족의 실패는 민족의 실패의 동기가 되고, 민족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의 동기가 되지만 국가가 승리를 한다면 실패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 모두 승리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결국은 아담 하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계 전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담은 세계사적 책임을 진 세계사적 중심존재입니다.그렇기에 그 중심존재 하나를 중심삼고 전부다 연결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중심존재가 목적을 완성하게 될 때에, 그와 연결된 범위내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해방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사상의 목적을 이 나라에서 성사시켜 뭘 할 것이냐? 한반도의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이 넘어야 할 고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넘어야 할 고개를 선생님이 책임지게 되면 여러분은 개인의 고개를 넘어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교회 문 아무개 개인을 위해서 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선한 실적을 승리적 개인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미래에 있어서 당당코 승리적 기준을 가지고 천상세계, 혹은 지상세계 앞에 이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이루어 복귀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개인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필요로 하는 것이 이념인 것입니다. 이념, 즉 무슨 주의냐 하면, 사랑주의라는 것입니다. 사랑주의.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개인은 역사와 미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절대적 터전을 만들어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엔 가정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족이면 종족이 절대적인 기준에서 민족이나 국가를 대신하여 과거의 역사시대나 현재나 미래를 상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다른 종족들을 심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믿고 천당 가겠다고 나온 무리들은 모두 자기중심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자기 중심이 아닙니다.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중심한 자리에까지 가고자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것이 무엇이냐? 먼저 세계를 찾아 세우기 위해 개인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란 특정한 종족을 찾은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을 망각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가 자기 민족 앞에 극복할 수있는 입장에 서기를 바랐습니다. 오히려 세계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찾아온 예수님에게 한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계를 해방시켜 가지고 영광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가 해방되어야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해방되어야 개인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해방되지 않으면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될 때까지 천년사의 한을 품고 억천만년이라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횡 관계의 식구를 갖지 못하고는 이런 반열에 설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두고 보더라도 전체적인 경계선을 넘어서야 바라는 바가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국가적인 한계선을 중심삼고 우리 민족을 볼 때, 삼팔선이 문제입니다. 삼팔선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입니다. 이것을 무난히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북과 이남을 수습하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남북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 한 사람으로는 안 되기에 그러한 사람을 확보해야 합니다. 양적으로 수를 늘려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환경권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세계를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은 대한민국만 하나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제 1기반을 이루는 것은 세계를 위한 제 2기반을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이 길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빨리 결말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 싸움이 길고 길어서 지쳐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제 2의 세계전선을 향하여 출동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지쳐서는 안 됩니다. 벼락 같이 단시일 내에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모든 지혜와 역량을 총집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모든 시련을 이겨 나가야 목적을 이루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선생님이 바라는 목적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는 터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을 상속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세상적인 관념을 가지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어디를 가든지 환경의 한계를 초월해야 됩니다. 우리는 같이 먹고 같이 살고 싶은 심정적 기준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전부 다 하나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세포같이 돼야 합니다.
일체를 이루어 모든 경계선을 극복해 넘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진 최대의 과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자는 것도 그것을 위해, 오고 가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이런 신명으로 일체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나아갈 탕감의 기준에 따른 대가로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서슴지않고 치러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누가 희생될지 모릅니다. 내가 거기에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응당히 당해야 할 자신으로서 제물로 바쳐지겠다면 기꺼이 나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책임을 맡아가지고 경계선을 돌파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일본 식구들도 와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만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개인이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나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이 없었고, 그러한 종족이 없었고, 그러한 민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는 그러한 민족이 없어 가지고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도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하늘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개체 개체의 인연으로 조성된 터전, 하나님을 중심한 종족적인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을 중심한 민족적인 터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일본이 존속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감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경계선을 아직까지 못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다면 모두가 하나되어 선의 세계를 향하여 최후의 전선을 돌파해 넘어가야 할 입장에서, 세계적인 운세를 대할 수있는 자격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넘어가야 할 최후의 경계선을 두고 볼 때, 대한민국만으로는 민주세계의 구원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세계에는 서로서로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 수 없는 경계선이 많습니다. 그 여러 경계선을 무너뜨려 세계를 하나의 공동적인 생활무대로 만들어 만민이 복지국가에서 살 수 있는 그때까지 계속 싸워 나가야 됩니다.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격파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힘이 부족한 것이 한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아가씨들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는데, 얼굴이야 어떻게 생겼든간에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고 세계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가야 할 종족적인 과정과 민족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거기에 국가, 세계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세계와 국가의 거리는 멀겠지만, 그 차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에 와서 뭘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짊어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몰린 적이 많았습니다. 통일교회가 현재의 사회에 있어서도 문제를 제시하고 있지만,앞으로는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인류를 대신해서 우리의 기반을 완전히 갖추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통일교회만이 삼천만을 구원할 수 있고, 공산당이나 어떠한 사상도 통일할 수 있다고 하는 기준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국가를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개인보다도,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하는 길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운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볼 때, 이 나라가 세계 인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개인 가정 종족 국가 기준까지 한꺼번에 넘어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앞날을 살펴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어느 때에 경계선을 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모르면 지도자가 못 됩니다. 그때는 모든 정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나깨나 오나가나 모두 일체가 된 생활 전체를 동원해 가지고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일시에,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그래서 생명까지 전부 내거는 그런 판단을 해야 합니다. 부활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즉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같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이 아들딸의 자리가 천국으로 연결되고 하나님이 넘나드는 우주사적인 실체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은 가야 할 경계선을 넘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다니다가 나간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거기에 누구 보기 싫어서 못 가겠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좋은데 아무개는 꿈속에서 봐도 재수없다'는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또 `누구 누구가 먹는 것은 안 먹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될 말입니까? 우선 내가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악한 사람이 먹는 것이라고 해서 안 먹겠습니까? 악한 사람이 마시고 사는 공기라고 안 마시겠어요? 그거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먹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선생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항상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자기자유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 때문에 살지 세계적인 문제가 벌어지는 것 때문에 삽니까? 그 뜻길이 뭐냐면 온 세계 인류가 넘어갈 수 있는 고개, 즉 경계선을 넘어 가지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때문에 만민에게 필요한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 제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창한 시초가 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단결하고 일심통일해서 이 길을 가야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향해서 잘 나아갑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복귀노정을 가려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가르쳐 준 것이 절대 아닙니다. 10년 뒤에, 20년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형편없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10년 20년 뒤에 천운이 어떻게 돌아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 앞에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내가 창조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통일교회에서 새로운 말을 많이 했지만 여러분의 말을 들어 보게 되며, 뜻길에 오래 된 사람일수록 선생님의 말 그대로 되어 나간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얘기한 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난데없이 `그런 일을 해 가지고 장래에 무슨이익이 있고, 또 그 일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정말 절실한 입장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경계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가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필연적인 운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공동적인 목표를 향해서 공동적으로 가야 할 행로인 것입니다.
영계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영계에서 지상의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협조해야 합니다. 가는 데는 영계가 앞서 있으니, 통일교회가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민족을 동원하여 도처에서 우리를 공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기에 외국 식구들이 많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보면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 있는데, 여러분들이 그들을 대해 `일본 사람이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별의별 헛소문을 다 내고 다니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본에다 선교사를 보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시아를 통과해야 합니다. 아시아를 사랑할 때 일본을 빼놓고 사랑할 수 있나요? 또 대한민국을 사랑할 때 죄인들을 빼놓고 사랑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채찍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운명에서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돌보는 사람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서 자기 편에 서는 사람만 사랑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별의별 비난과 비방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에게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도는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은 원수의 뼈가 묻혀 있는 그 땅을 사랑하고, 그 민족을 사랑하고, 원수의 뼈까지도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비가 오면 비를 맞게 하고, 아침 햇살이 비치면 그 햇살이 비치면 그 햇살을 볼 수 있도록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곳은 복된 곳이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최후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감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을 보게 되면 `아이고, 난 한국 사람에게 시집 갈래' 하는데 이런 관념을 초월하라는 것입니다. 또, 남자들도 한국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한다고 합니다. 그 따위 시시한 생각 하지 마십시오. 서양 사람이면 어떻고 검둥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만 사랑하면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로 세계적인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나의 동반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의 선의 이상형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큰 것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통령을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잘 먹고 잘 돌아다니고 자동차나 굴리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해서 뭘 하겠습니까? 대한민국 대통령도 세계를 위한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과제와 책임이 각자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일생에 한번은 죽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무서운 폭풍우가 치더라도 최후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잘 나가다가 경계선 앞에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경계선에 서 가지고 뭘 하느냐? 여러분 통일교회에 들어오기는 다 잘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각자가 자기마음대로 생겼지만 잘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려 뛰어가도 끝까지 갈지 모르는데 허둥지둥하다가는 가다가 마는 것입니다. 최후의 결승점까지 경계선을 돌파하지 않으면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주복귀라는 엄청난 사명을 앞에 두고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은 싸움이 벌어졌으니, 세계적인 싸움터로 직행하자는 것입니다. `가자' 이겁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해볼 만한 일입니다. 뒤에서 반대하고 핍박하더라도 내갈 길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반대하는 것을 관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 발 한 발이라도 어서가서 이 운명의 길을 거쳐 나가야겠다는 사람이 최후의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가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기구를 개편했으니 새롭게 움직여야겠습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모든 것은 민족 또는 국가를 중심삼은 복귀라든가, 세계를 위한 터전을 넓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여러분은 순응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앞으로 개인을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남은 최후의 경계선을 돌파하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성원해 주고 기원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남아진 복귀의 길 앞에 저희들은 충성하기를 다짐하였나이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선의 결과를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행로가 그렇게도 비참하였고 슬펐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를 대할 때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당당코 아들의 모습을 갖추고 딸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사옵니다. 하지만 의붓자식만도 못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른 사람이 많았사옵니다.
저희들만은 뼛골에 통하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대해 `오냐, 내 아들아 딸아' 하시며 직접 화답할 수 있는 자리에 저희들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부모의 인연과 자녀의 인연을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은 가운데 아버지를 시봉할 수 있는 거룩한 통일교회 식구가 된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심정을 깊이 파고 들어가 아버님을 위하여 존재해 있고, 아버님을 위하여 태어난 몸이기에 아버님의 목적을 위하여 사라질 자체인 것을 스스로 자인하면서 아버님만을 위하여 가겠다고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탄식하는 무리가 역사과정에 많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렸사옵니다. 그러나 역사를 붙들고 세계를 붙들고 탄식하던 예수나 혹은 역사적인 성인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흘러갔지만 인류의 마음 가운데 신앙의 양식이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그들이 가정을 위하고 자기 개체를 위한 자리에서 탄식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하고 더 나아가 후대를 위하는 자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을 시봉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아버지 뜻 앞에 불리운 몸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개개인을 놓고 볼 때, 몸은 별 차이가 없는 몸이오나 내정적인 심정이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왔고, 어디로 가야 하느냐에 대한 입장에서 인격적 가치가 결정되고, 그 차이가 보통 사람보다 크면 클수록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통일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여 있으나 절대로 저희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옵니다. 자기의 무엇을 자랑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 결코 아니옵니다. 벌거숭이 몸일지라도, 아무리 누추하고 남루한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더 높이 사랑하고 아버님이 찾는 민족과 나라와 세계와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먼저 결의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마음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복한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 이 가운데 아버지의 심정이 연결되고, 이 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이 싹틀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아버지, 나는 갑니다. 나는 가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하고 결의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수의 장벽을 헤쳐 낼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저희들이 원수의 장벽을 헤쳐버리고 승리의 깃발을 아버지 이름과 더불어 기필코 세우고 말겠다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민족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억천만 성도들이 오늘날 저희들 앞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 한 개체의 행로가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옵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 태어났고, 당신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살 것이며, 당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사오니, 세계적인 승리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신념을 가진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있어도 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많은 무리의 수를 자랑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정예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감아 쥐고 당신의 심정을 훔쳐 낼 수 있는,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일치된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아버님을 위로하여 세계적인 경계선까지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쌍한 대한민국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이처럼 남아질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렇게 감사를 드린 저희들이오니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아 천년 만년 아버지 앞에 슬픔을 남기는 불쌍한 무리들이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 바라시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인 각자는 여기에 일치되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목적과 그 시대의 목적이 일치될 때 사명 완수가 문제 됩니다. 개인이 가정의 열 사람과 일치하느냐? 그러지 않고는 사명완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회도 나라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따라서 그 국가가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통일교회도 나라의 목적과 세계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과 어떻게 일치되느냐가 문제입니다.
개인의 사지백체도 각각의 사명분담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원대한 목적을 앞에 놓고 개척자의 사명을 해 나가야 합니다. 뜻에 대하여 느끼는 인격의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달려가는 사람도 있고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사명 완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00의 사명 중에 50의 사명밖에 하지 못했다면 나머지 50의 사명은 후손에게까지 인계해야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맡은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은 국가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사람입니다.
각자에게는 내적, 외적 책임분담이 주어져 있습니다. 목적의식에 대한 자각된 자체가 문제입니다. 수천대까지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된 특정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전도를 한다는 것은 말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자각에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해당분야에서 전체 목적에 어떻게 결부시키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전체 목적은 개체 목적을 지배합니다. 개체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일본에서 반공활동을 하는 것은 그 국가를 끌고 나가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모험을 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그 나라의 앞길이 막힙니다. 지금은 특별기도 기간입니다. 120일 동안을 기도 기간으로 정한 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운명과 연결짓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기간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한 지 수십 년 됐어도 아직 개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으면 새로 들어온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바로 가느냐, 외로 가느냐, 후퇴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명 앞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뜻이 자기를 제거합니다. 뜻을 이용하는 사람은 기필코 망합니다. 개인의 사명이 자기에게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늘의 전체 목적과 일치해야 합니다.
자각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큰 목적에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일생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몇 세까지는 무엇을 하고 몇 세까지는 무엇을 한다는 식으로 일생의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짧습니다.
현재의 자기 자리를 제 2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지로 삼아야 합니다.
세월을 그냥 흘러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해당 분야의 자료를 수습하고 기반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혹은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부르되 현실에 안주하면서 부르고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은 현실적인 면에서는 그들에게 뒤떨어져 있지만 신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빼앗기지 않고 꺾이지 않으려면 실행을 해야 합니다. 또 실행을 하는 데 있어서 별의별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배가 고프면 아주머니 있는 데 가서 밥도 얻어먹어 보고 처량한 자신의 신세타령도 해보십시오. 참 재미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길을 거쳐 나왔습니다. 어떤 때는 술집 여자들의 이면을 알기 위해서 술집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사회를 분석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술은 마시지 않고 나왔습니다.
또한 반드시 개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 시대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시대 안에서 승리의 기틀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청년들은 `이런 문제는 이렇고 저런 문제는 저럴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길을 간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공을 하는 데도 각각 사람의 소질에 따라 다릅니다. 일년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3년만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질이 있어 일년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질이 없어 다른 사람의 2배, 3배를 더 노력해야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은 10년 동안에 해내는 일을 30년이 걸리더라도 해 내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에게도 신념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위해 18세부터 모험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신념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 높은 산에도 가고 산골짜기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 전도하러 가고 싶어요, 안가고 싶어요?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말아요.
그 다음에 젊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하냐? 의욕입니다. 의욕도 필요합니다. 나는 옛날에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갈 때도 아침 일찍 밥 먹기 바쁘게 `야! 오늘 산에 올라가자' 했습니다. 그리고 가더라도 꼴찌가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습니다. 옛날 학생 때부터 산에 간다 했을 때 배가 아프고 몸에 지장이 있더라도 완전무장해 가지고 갑니다. 가 가지고 못 올라가겠으면 기도를 하고 올라갑니다. `하나님! 올라가겠습니다' 이런 조건을 세우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냥 따라 올라가는 것은 질색입니다. 자기 있는 노력을 다해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결의를 하고 이런 의욕을 가진 누구입니다' 라고. 선두에 서지 못할 때는 이런 조건이라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의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백운대에 올라간다면 정상까지 멧돼지를 달고 올라갈 수 있는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의욕 가운데는 모든 탐구력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한강에는 어떤 새가 살까? 아이구 이거 여름이 되어 더운데 저 산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얼마나 시원한지 올라가서 한번 바람을 쐬어 보자. 야! 거기서 서울 장안을 보면 어떨 것이냐? 이런 의욕, 이런 마음에 사무친 의욕이 많으면 많을수록 처해진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렸을 적부터 산을 보고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일까?' 저 산에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으며, 그렇게 생각되면 반드시 가 보았습니다. 또한 동네방네 한 이십 리 안팎에 있는 것을 환히 알았습니다. 못이 있으면 그 못에 구멍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까지도 다 알았습니다. 큰 가물치, 그 놈을 잡으려다 못 잡으면 힘은 들지만 못의 물을 전부 퍼내서라도 잡고야 말았습니다.
또 어떤 못에는 큰 붕어가 한 마리뿐이었는데, 그 놈을 잡는다고 낚싯대를 드려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은 잡히지 않고 새끼고기가 하도 많아 그런 것들만 자주 물리는데, 조그마한 놈이 잡히면 `너는 가 이 자식아' 그리고는 다시 그 놈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붕어를 잡았을 때 그 기분, 그것은 실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사실 그 놈을 잡기까지 고생은 했지만 잡았을 때의 기분으로 그런 것은 다 잊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쾌감을 느끼려면 그럴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사람들을 보면 그저 눈치는 빨라서 누가 `같이 갈래?' 하면 사실은 싫으면서 `그래 가자' 하는 것입니다. 사나이가 그러면 언제나 졸장부 노릇밖에 못 하는 것입니다. 그저 남의 뒤나 쫓아 다니면서 신세나 진다는 것입니다.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욕은 젊은 사람들의 생명입니다.
여자들은 `내년에 내가 시집가겠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어머니가 되겠다' 하며 어떤 어머니가 될 것인가를 구상해야 합니다. `나는 요런 타입의 남자한테 시집 가야지' 이렇게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남자가 없으면 시집 안 가느냐? 제 1후보, 제 2후보, 제 3후보까지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시집 간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냐? 아기를 낳아야 됩니다. 그러나 어린애 낳을 때 시시껄렁한 애를 낳으려면 아예 낳지를 말아야 합니다. 꼴도 보기 싫은 애를 낳으려거든 시집을 가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문에 어머니가 되는 데는 어떤 어머니가 되어야 하느냐? 거룩한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일생은 한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냥 길 가다가 마주쳐서 이럭저럭 살게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내가 바라는 가정은 이런 가정입니다. 남편은 이렇고 아내는 이렇고 아이들은 이런 가정을 원한다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또 자기 동네의 가정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 가정은 남편에게는 요런 소질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내가 이렇게 대하는데, 요건 마이너스요, 요건 플라스라고 하는 것을 전부 다 분석해 통계표를 만들어 봐야 합니다. 적어도 20집 정도를 분석해서 동네 잔치라도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우수한 가정이 있으면 레테르를 딱 붙여 가지고 이런 가정이 되라고 해야 합니다. 여자 분들은 이런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또 사실 이런 어머니로서 아기를 낳아야 정이 들고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여자들은 그래요. 남자들도 그렇지? 남자들은 자기가 제일의 남자가 되겠다는 의욕을 가져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려면 의욕이 있어야지 없는 사람은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의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성공하려면 그만큼 큰 모험을 무릅써야 됩니다. 그것은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모험이 아니라 입체적인 모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끈기 있는 성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배우기 위해서는 신경질이 둔경질이 되어야 합니다. 두꺼비처럼 둔해야 합니다. 두꺼비한테 배울 것이 많습니다. 두꺼비가 아침에 일어나 햇볕을 받으며 눈을 껌벅껌벅하고 버티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배워야 합니다. 또 황소가 새김질하면서 서서 얼마나 명상을 잘하고 있습니까? 그 명상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아무리 이념이 좋다 하더라도 끈기가 없으면 안 됩니다. 끈기가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10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만, 안 할 때는 한 달쯤 안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몇 달 동안 얘기 안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을 하면 무슨 얘기든 잘하지만 안하게 되면 한마디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욕을 갖고 배가 되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게 없어서는 아무리 꿈이 크다 하더라도 그 꿈을 성취하는 데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밖에는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의욕을 갖고 모험을 하는데 있어서는 단호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대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가야 합니다. 나라가 반대하겠으면 하고 국가, 세계가 반대하겠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때가 온 것을 감정해 가지고 판별한 후에는 용기를 갖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감옥에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우리에게는 이러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용기가 있더라도 그것이 무모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사리를 잘 판단해 가지고 옳으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준비한 것이 여기에서 파탄된다면 너무나 애석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준비해 가지고 여기에서 후퇴해야 하는 패자의 서러운 입장에 선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입장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백배하며 생명도 개의치 않으며 나아가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승리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의 터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승리한 것은 남의 신세를 진 것이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어느 누구의 신세도 안 졌습니다. 선생님이 도의적인 일에 신념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힘을 기울이며 용기백배해서 걸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는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천운으로 말미암아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천륜에 따라 주체적인 존재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독자적인 입장에서는 승리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가 흐르고 시대가 지나서 승리의 터전이 벌어지게 될 때 세계는 새로운 영광의 세계로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뭐가 필요하다구요? 「의욕입니다」 뭐가 필요하다구요? 「용기입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 나왔지만 아직까지 세계무대를 향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를 향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누구한테도 굽히지 않고 지지 않습니다.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맹도 누구한테 지지 않으며, 싸우는 데 있어서도 누구한테 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지 않고는 세계적인 승리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민족적인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승리의 길은 먼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발전해 나온 단계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차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통일의 이념권내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선생님이 지향하고 하나님이 지향하는 승리의 세계로 가기 위해 스스로의 입장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판하는 것으로 인해 스스로 슬픔을 느끼는 졸장부가 되지 말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천상세계가 허락하는 하늘의 왕자가되고 왕비가 되고, 영광의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젊은 시절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아버님,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조롱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핍박하던 곳이옵니다. 이곳에는 청파동이란 이름과 더불어 통일교회의 이름이 뭇 사람들의 마음에서,혹은 입에서 오르내리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 통일교회가 지나온 그 모든 역사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이 배후에 아버지가 계셨음을 다시 한번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슬픔은 물론이거니와 억울하고 분통하고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처절하신 아버지, 분노를 지니고 계신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 모시며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면서 오늘까지 걸어온 내 자신이 오늘 이 시대에 어떠한 자세와 어떠한 형상을 지니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도 높은 분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 아버지였사옵니다. 오히려 나무나 비참한 아버지임을 그 누구고 몰랐습니다. 마음으로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를 대하고 있는 저희들은 이제 명심하였습니다. 하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참했던 아버지를 피하던 불효막심한 인간들에게 다시 한번 회개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역사과정 속에서 비참한 몸을 이끌고 지금까지 나오시면서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려 하셨사옵니다. 자녀뿐만이 아니라 전통적 가정과 종족, 민족,국가를 세우고 나아가 세계를 찾으려 하셨사옵니다. 이것을 찾아야 할 천적인 사연을 아버지께 있었사오나 그 슬픔의 사연을 지금까지 누가 위로해 드렸사옵니까?
천신만고 다 가려 가지고 아버지 앞에 드러내 놓고 보답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짐하고 절개를 지키려고 모든 맹세를 한다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죄와 부끄러움이 있는 자신들인 것을 통탄하고 회개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허락해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진정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또 사랑한다고 스스로 말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 애타는 심정을 가져 보았으며, 동맥의 붉은 피처럼 얼마만큼 애타는 심정을 가져 보았으며, 내 아버지를 이렇게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며 있는 힘을 다해 천상세계를 대신하여 절규하는 자신이 되어 보았사옵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진정 비참해진 가운데 아버지를 붙들고 사랑할 수 있는 그 한 시간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마음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절규하는 그 자리가 천년 만년을 계속된다 해도 언제나 뉘우쳐야 할 입장인 것을 자각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만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나를 믿어 달라고, 나를 돌아보아 기억해 달라고, 맹세하는 것을 들어 달라고 결사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자식의 입장에 설 수 있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다시 한번 그런 입장에 서게 하시옵소서. 믿는 자리에서 배반하는 자리에 서면 아버지가 얼마나 비참하겠는가를 느낄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자리에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겠습니다.
저희들은 역사의 슬픔의 길을 전부 다 파 버리고 슬픈 구덩이를 밟으며 나만은 아버지의 신의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충효를 다짐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일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워 나가야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한 일생에서의 싸움으로는 부족하오니 2대3대까지, 혹은 수십 대 수천 대까지 후손의 인연을 통하여 소원을 성취해 달라고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라도 가져야겠습니다. 죽을 때 눈을 감으면서도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최후의 한순간까지 정성을 다 바쳐 제물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이라는 말을 저희들은 많이 했습니다. 그 뜻은 천상세계를 움직일 수있는 뜻이요, 지상세계에 있는 모든 만물을 움직일 수 있는 뜻이요, 더 나아가서는 사탄세계의 지옥권까지도 풀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성을 가진 뜻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오늘날 저희들이 말하고 있는 뜻이라는 것은 너무나 천박하고 너무나 제한된 한계권에서 부딪히고 있는 뜻인 것을 저희들이 절감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엄청나고 크고 놀라운 아버지의 뜻 앞에 저희는 천번 만번 몸부림치더라도 그 한계선을 넘을 수 없는 제한된 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뜻이 얼마나 자기 품 가운데서 제한되어 있었는지를 발견하여 가슴을 치고 통탄하여야 할 자신들이었사오나 그런 자신을 망각해 버리고 뜻이 나를 버렸다고 탄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이 부족한 저희들인 것을 용납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7월 들어 첫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지여, 오늘 이 아침을 맞게 될 때에 왠지 모르게 당신의 서글픔이 이 민족 앞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사옵니다. 아버지! 이북의 일천 오백만을 해방시켜야 할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의 동력적인 맥박을 이어받고 아버지의 동맥에 흐르는 피의 감정을 통하여 불타오르는 청년의 의분심과 혈기를 당신을 위하여 바칠 수 있는 무리가 적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부터 수십 년 전 아버님이 이 민족을 찾아오신 서러움의 길을 알아 탄식하는 자리에 서서 당신을 슬픈 마음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당신은 아실 줄 아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통일의 자녀들, 통일의 아들딸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이 젊은 가슴가슴에 무엇을 불어 넣어야 겠사옵니까? 통일의 이름을 싫어하고 통일의 길을 싫어해 가지고는 통일의 자녀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생은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순식간에 지나감을 알게 주시옵고, 나그네의 신세가 저희 인생행로에 기필코 찾아온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침에 태양이 동녘에서 올라올 때는 모든 만물이 환희하며 그 빛에 충만해 있지만, 몇 시간 이내에 석양의 서글픈 그림자와 더불어 그 빛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알게 되옵나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청춘시대의 모든 귀한 것을 자랑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석양을 맞이하기 전에 이 청춘시대에 무엇인가 이 땅 위에 남기고 가겠다고 몸부림 칠 줄 아는 뜻 있는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통일의 이념을 통하여서 걸어 나가는 젊은 모습들이 그 무엇을 향하여 갈 것인가? 그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찾는 사람들은 졸장부들이 아닌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젊은 가슴 가슴에 세계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할 때는 왔사옵고, 새로운 도의에 불타고 의협심과 의욕에 불탈 수 있는 용맹심을 중심삼고 싸워 승리의 결정을 마련해야 할 때는 왔사옵니다. 이러한 때에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에까지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왕국의 기원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난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명이 오늘 시간과 더불어 나를 촉구하고 있사온데 저희들은 무감각한 목석과 같은 입장에서 느끼지 못하고 행동할 줄 모르는 불쌍한 자들이 되었고 불쌍한 자체들이 되었사옵니다. 그러기에 얼마나 당신 앞에 면목없는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체휼하고 탄식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한 사명의 길을 가기 위해서 태어난 몸이요, 기필코 싸워 승리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하여 태어난 몸인 것을 자처하면서 오늘도 그 목적을 위해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내 자체를 이 땅이 부르고 있사오니 그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한국의 미래상과 세계의 미래상이 저희를 부르고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가는 그 행보 행보마다 아버님이 권고해 주시옵고, 아버님이 동행하는 사실을 알게 하시어서 전체의 모든 결과를 당신과 같이 느끼면서 내일의 희망에 벅찬 가슴을 안고 개척자의 사명과 개척자의 즐거움을 찬양해 나갈 줄 아는 젊은이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또한 그러한 모습을 당신께서 고대하신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에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새로운 예물을 가지고 이 민족과 이 세계앞에 남겨 놓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자녀들, 세계에 널려 이곳을 흠모하고 있는 자녀들, 이 여름철에 일본에서 승공이라는 두 글자를 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의 길을 지켜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러한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 바로 여기 있사오나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당신이 아시오니, 지켜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눈물의 교차로에서, 아버지만이 영광을 남길 수 있는 싸움터에서 죽지말고 영광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여, 일본을 아시아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이끌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세계에 봉화를 들고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인 운동을 전개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통일의 자녀들을 연결시키시어서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의 관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는 축복의 은사를 가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도 아버지와 더불어, 오늘의 희망도 아버지와 더불어, 모든 전체를 아버지와 동고동락하고 동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본부의 각 부서에서 전국을 관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 지구마다 각양각색의 간행물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폐지하기 바랍니다. 그 대신 본부 간행물에 각 지구판을 편집해야 합니다.
각 지구에서 본부로 보고서를 보낼 때 한 부는 우송하고 한 부는 가지고 와서 전달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매월 3일 지구장 회의를 하기 바랍니다.
매월 25일까지 보고서로 작성해서 30일까지는 본부에 도착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화지 체제를 혁신해야 합니다.
발행일 일주일 전에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매월 실황 보고와 기타 원고를 열심히 써 보내고, 성화지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각 지구 본부교회의 인원을 120명 이상 확보하기 바랍니다.
2년 내에 3교회를 단위로 해서 한 지구씩 분할시킬 것입니다.
본부와 지구와는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번식이 안 됩니다.
순종은 순리적 환경에서 따라가는 것이요, 복종은 극복의 환경에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는 수단과 방법으로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위신과 체면이 깎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늘과의 호흡과 같은 생명선이 끊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뿌리인 본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본부와 하나되지 못하고는 지구장으로 자처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과 책임이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김일성(金日成)의 생각 여하에 따라 하늘의 운명이 좌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의 복귀섭리는 파탄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있어서나 일본에 있어서나 제일 귀한 것은 인적 자원입니다.
사심(私心)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서울 시민들에게 통일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시켜야 합니다. 서울 안에 있는 기성교회와 친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대(對)사회에 있어서 승공문제를 중심삼고 급속히 서(署)와 하나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 경찰관 강의와 대 공무원 강의를 실시하기 바랍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후원 기관을 조직해야 합니다.
실적을 가지고 개척해야 합니다.
(선생님 특별 주의 말씀) 구(舊) 책임자를 비판할 때 냉철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비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주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선도적인 지도성을 나타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진취적인 방식과 정성어린 행동으로 해 나가야 합니다.
하계전도 기간에 완전 포섭해야 합니다.
타지구에 본이 되도록 하기 바랍니다.
1개월에 1인 전도 철저히 실시해야 합니다.
한 사람 대해 정성들이는 고귀성을 인식하여 기도를 많이 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여자들은 하루의 4분의 1(6시간) 이상의 시간을 하늘 앞에 바쳐야 합니다.
설교하는 시간의 두 배 이상을 기도하기 바랍니다.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동심이 되어 부모의 품에 안기는 심정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간 일주간에 있었던 자극적인 내용들을 전부 적었다가 그것을 제목 삼아 설교하기 바랍니다.
영통하는 할머니의 영적인 권고는 곱게 받아야 합니다.
상대를 세워 놓고 설교하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혁신하여야 할 새로운 것으로써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견이 상치(相馳)하는 사람은 불러다가 설득시켜야 합니다.
혁신도 반성도 자기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전통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양심에 입각한 전통을 확립해야 합니다. 자기 잘못이 있으면 권위로 주장하여 밀고 나가려 하지 말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자기가 책임진 입장에서 용서해 줘야 합니다.
처리할 일이 있으면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지구나 협회 전체에 관한 문제가 나왔을 때는 독단적으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옹호해 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심정적인 식구를 배양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가정과 뜻을 구분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1961년도 이전까지는 식구들을 산이나 내로 많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항상 식구들을 위해 기도해 줘야 합니다.
여러분은 본부에 대한 절대적인 주종관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본부의 명령을 상습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식구들에게 항상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데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못 합니다.
결속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전통을 따라야 합니다.
주체 없이는 상대 없습니다.
선의 길을 가는 데는 맨 밑창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감동과 감격을 받았으면 감사한 마음이 절대 필요합니다.
저 사람이 잘된 것도, 안된 것도 하늘을 중심삼고 다방면에서 책임자로서 자각의식을 느껴 그 사람보다 더 진지한 입장에서 해결해 주기 바랍니다.
희생은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참된 자체는 해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1) 냉정한 사람이 되지 말고 뜨거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인이 무사형(武士型)인 사람은 행동을 부드럽게 하고 여자같은 사람은 행동을 남성답게 해야 합니다.
(2) 맛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알아서 대해야 합니다.
(3) 종과 같은 행동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본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선희후희(先犧後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대가를 치르고 그 결과를 받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6) 정세와 사명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언동을 절대 삼가야 합니다.
지금 미국의 한 27개 주에 우리 선교사가 나가 있습니다. 금년에 전미국(50개주)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문제는 워싱톤의 동부교회에서 책임을 질 것입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삼은 서부교회에서는 선교사가 파송되지 않는 남미 전역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금년말까지 다 안 되면 명년 4월까지는 틀림없이 시행되리라고 봅니다.
물론 우리는 세계적인 선교사업을 빨리 해야 되겠지만 우선 미국을 중심한 선교를 빨리 해야 됩니다. 세계를 쭉 돌아보게 될 때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은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으로 보나, 정치적인 면으로 보나, 군사적인 면으로 보나 모든 면에 있어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라파가 서구문명에 있어서 개척적인 사명을 하였지만 지금은 선도적인 역할을 미국에 양보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가서 젊은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 보면, 미국을 상당히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보수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고, 자기들 나라에 대한 무엇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새로운 입장에서 발전하고 있는 미국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전부 다 가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독일에서도 그렇고, 불란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란서에 척 가 보게되면 제 2차 세계대전 후로 제 2국의 선진국가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제 3국으로 떨어지지 않았느냐, 현재의 입장을 어떻게 취하느냐 하는 이런 와중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일반 청년들도 미국을 어떻게 따라가느냐 하는 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구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을 동경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미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실증적인 결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선도적인 역할을 미국이 어떻게 수행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거대한 나라이기 때문에 어떠한 민족이든 미국에 들어가 가지고 미국을 소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 동양에서도 어떤 민족이 중국에 들어가게 될 때 처음에는 큰소리치지만 3년, 10년쯤 지나면 결국은 중국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광활한 지역 전체가 현대문명을 중심삼고 일원화된 그런 사회제도를 갖춘 국가체제이기 때문에 어떠한 개인이나 어떠한 주의나 사상이 미국을 소화시켜 전체를 자기가 주장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경제적인 문제라든가, 정치적인 문제라든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가능한 것은 뭐냐 하면, 미국이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리를 못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면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국국민이 현재 정신적 빈곤에처해 있는 것은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다가 보니 결국은 전부 개인주의로 갈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원래 천태만상입니다. 각자의 성격이 다르니만큼 각자의 개성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니만큼 느끼는 감정이 다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목적관을 강조하고 개인적인 자유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전부다 자신을 위주로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최고로 고도화된 물질 문명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외적으로는 부러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 즉 1억 8천만이나 되는 이 거대한 미국 국민이 바라는 것은 뭐냐 하면 정신적인 이론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신세계를 움직여 나왔던 기독교나 천주교가 자기들 나름대로는 정신적인 면을 형성해 왔다고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현재는 미국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어떠한 양식도 보급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격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어서 금후의 제일 큰 문제는 정신적인 문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이요, 육신적인 자유는 이루어 나왔으나 정신적인 자유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구속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수많은 민족이 들어와 가지고 수많은 사상과 주의를 제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갈리고 저렇게 갈려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전미국인에게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정신적인 양식을 보급 받고, 그 거대한 나라를 그 정신력에 의해 지배 받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놓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후에 미국이 해결해야 할 하나의 큰 문제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가주 대학은 미국의 유명한 대학입니다. 그 대학에는 노벨상을 탄 교수들이 수십명 재직하고 있습니다. 학생 수도 5만명 가까이 되는데 그 학교를 척 들여다 보면 해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별의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서울의 종로나 명동을 거닌다면 굉장할 것입니다. 10대 후반 20대 전반의 젊은 학생들이나 많은 교수들도 자유분방합니다. 한 시간쯤 돌아보며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구경할 만했어요. 여학생들이 미니 스커트 입는 것은 좀 낫습니다. 수영 팬티만 입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별의별 녀석이 다 있었습니다. 또, 머리도 뭐 별의별 형태가 다 있었어요. 머리 만물상을 보려면 그 곳에 가 보십시오. 어떤 녀석은 한 끈만 잡아매고 다니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지금까지 한 지구에서 매월 돈을 얼마나 썼느냐 하면 30만원 내지 35만원을 썼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돈을 써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8개 지구에서 2백만원 이상 3백만원 가까운 돈을 썼다는 것입니다. 또, 그외 지역에 지금까지 배당한 것이 한 달에 5백만원 이상 됩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많은 경비를 써서는 안 되겠습니다. 종교단체가 돈을 위조로 하여 활동체계를 갖추어 나가면 망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잘 압니다. 물질과 사상이 동반된 자리에서는 종교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의 형태를 먼저 빚고 영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구도상에서 물질을 완전히 복귀해 놓고 영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안 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 국가도 보게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입장에서 벗어나라고 몸부리치고 있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었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확고한 경제적 기반을 어떻게 닦아 놓느냐? 우선 절약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절약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안 되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에서 우리가 물질을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도 책임을 못하여 몰리는 날에는 통일교회는 제 2차 수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런 입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대책을 강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8개 지구를 34개 지구로 개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쓰던 지구에 한푼도 안 주어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경기도의 중심인 수원이면 수원에, 즉 옛날 지구본부가 있던 곳에는 2만원씩을 주겠습니다. 대구 부산도 2만연, 그렇게 하여 전부 30만원 정도 지불하겠습니다. 우리는 체질을 개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15,000원 이상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전부 다 생활 형태가 비슷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지금까지 부작용이 많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부의 누구, 지구장누구 해 가지고 이들이 특권 계급으로 은연중 나타난 것은 생활적인 환경에서 자기들을 중심삼고 금전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설사 자기들을 위해 쓰지 않고 공적인 데에 썼다 해도 그들이 매일 모든 것을 보고하지 않으니, 일반적인 비판의 소리로서 특권 계급이라는 말이 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타파할 수 있는 비법은 체제 개선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체제 정비를 통해서 지구장들을 고생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기존 지구장들은 신임 지구장들의 생활기준에 일치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불평하는 사람들은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나가다가는 통일교회 체제내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개척노정을 가야 하겠습니다. 전국에 있는 젊은 청년 남녀들은 다시 1960년대와 같이 내몰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아버지 모시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자기 자식을 품에 품고 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그렇습니다. 선생님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참한 길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 어려운 길을 걷거든 선생님도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자기 부모가 어려운 길을 걷거든 선생님이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깊이 명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길을 걸어온 것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천륜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내 일신에 흠이 생기고, 얼굴이 초췌해지고, 혹은 남들로부터 침뱉음을 당하는 그런 형편없는 입장에 서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단 한 가지 이 몸이 죽기 전에 어떻게 전통을 이 땅 위에 남겨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환경에 처하더라도, 아무리 거지와 같은 불쌍한 자리에 놓이더라도, 아무리 민족의 반역자란 말이 씌워져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그것이 문제될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변치 않는 하늘의 전통을 남기겠다는것이 지금까지의 선생님의 생애였습니다.
이런 엄숙한 사명감을 자기의 생활목표로 인계 받아야 할 오늘의 여러분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속 받아 싸움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비통하게 생각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 앞에 나 혼자라도 책임 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신임 지구장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신임지구장으로 가 가지고 여러가지 복잡한 내용을 보면 신중히 하라. 어려운 문제일수록 그것을 해결하려면 수단 가지고는 안 되니 정성을 들여라. 그러나 아무리 정성을 들인다 하더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내려면 몇 개월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좋은 방법은 하계 전도가 있으니 이 기간에 지금까지 자기가 모시고 나오던 지구장 이상 달리는 것이다. 그 이상밤잠을 자지 않고 먹지 못하더라도 달려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방향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삼지사방으로 모두 갈라져 있습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죽고 없으면 여러분이 통일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하다가 죽었을 때, 자기 무덤에 통일의 깃발을 남기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직접 이끌고 나가니까 괜찮지만 선생님이 없게 될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는 문제가 안 되지만 죽은 이후에 이 전통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역사적인 이 일을 어떻게 승리적인 것으로 세계에 전개시킬 수 있는 발판을 닦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이 나 하나에 제한되는 자리에서 있지 않고 전체를 수습해야 할 중심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서울이면 서울, 본부에 있는 여러분의 책임이 중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못하게 될 때는 여러분과 선생님의 관계는 멀어집니다. 원리적인 견지에서 그런 얘기를 하라면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부터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선생님이 전부다 들이쳐서 내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부교회에도 못 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 만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이들을 붙들고 선생님이 들이 내몰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의 새끼를 다시 길러서 탈 수 있는 말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길렀던 말을 타려니 이것은 병신이 다 되었고, 절름발이가 다 되었고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후방으로 내 보내서 제2전선을 강화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여기에 동조하고 여기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본부요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원리연구회 회원도 통일교인이라면 개척전도를 나가는 것입니다. 안 나가는 날에는 불쌍해집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간단합니다. `탕감복귀'의 `복귀'라는 말을 음미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복귀해야 되느냐? 이 세계를 복귀해야 됩니다. 세계를 복귀하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복귀하려면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민족을 복귀하려면 종족이 있어야 하며, 종족을 복귀하려면 가정이 있어야 하고, 가정을 복귀하려면 부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부를 복귀하려면 참된 개인, 즉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귀라는 그 용어가 왜 필요하냐?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라는 용어가 필요하지 않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목적이 무엇이냐? 먼저 세계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그 모든 미완성 부분을 갖추어 가지고 완성했다는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옛날에 실수했던 것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실수했던 것과 반대로 해야됩니다. 복귀를 하는 데 있어서는 무엇부터 해야 되느냐? 첫째는 말씀이요, 둘째는 인격이며, 셋째는 심정입니다.
인격이 파탄되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타락은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이간이 하나 못 된 것이고, 사랑을 중심삼고 하난 못 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심정의 세계를 논의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요, 심정의 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심정의 세계를 논의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그런 심정을 갖지 못하면 그 세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말씀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의 3대 심판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뭐냐 하면 진리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이 진리 하나를 찾아 나왔지만 그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세계가 공통으로 가야 하는 참된 길을 뜻하는데, 이것을 막연하게나마 제시한 것이 사상입니다. 그런데 사상은 개인으로부터 사회 국가 세계까지 연결되는 체계적인 논리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별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민족과 역사성을 초월한 공동적인 내용을 가진 이념적인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적인 사상으로서 자리가 굳어지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상의 기준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또,진리가 없어 가지고는 인격이 안 나옵니다. `그 사람은 인격자다' 라고 할 수 있는 그 인격자의 기준이 무엇이냐? 사업하는 사람이면 사업 분야에서는 인격자가 될 수는 있습니다. 또, 가정적인 사람이면 가정에서는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가정적인 사람이면 가정에서는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 공동의 목표를 성사시킬 수 있는 참다운 인격자는 가정적인 한계에서 인격자라 불려지는 그 기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통해서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고, 종족을 통해서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고, 민족을 통해서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고, 국가를 통해서 세계 혹은 천주를 대신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명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관점에서 참된 진리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진리가 나왔을 때 그 진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말은 몸과 마음의 통일적인 감정을 통해서 발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 시조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하나님이 세워 준 인격을 파괴했고, 하나님이 세워 준 사랑을 파탄시켰는데, 이것들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 복귀입니다. 즉, 진리 복귀입니다. 아직까지 지상의 어떤 성인들도 완전한 진리를 설파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의라든가, 예법이라든가, 인륜 도덕을 가르쳤으나 그런 것들은 평면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평면적인 우주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입체성을 갖춘 이 세계의 이론일 수 없습니다.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사상이라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주의는 그 사상에 의거해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물주의에는 사상이라는 명사가 성립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대치할 수 있는 사상이 나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진리에 의한 사상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륜과 종교이념을 부합시키고, 결속시키고, 통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진리는 역사와 시대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진리는 과거의 어떤 선지자나 영웅 열사가 추구한 것들과 딱 들어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기준에도 딱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기준에도 딱 맞아야 합니다.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외적으로는 그런 형태를 갖추어 나왔지만 내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진리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일 큰 문제는 말씀입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은 앞으로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좌우가 싸우다가 지쳐서 허덕이는 이 순간에 그 어떤 사상도 뚫고 나가 재기하자고 외치기에는 때가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것은 이 시대가 다 주장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주장은 다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은 말세의 석양에 기울어져 가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울면 해가 저물 것입니다. 황혼의 그 시간을 재촉하게 될 때는 이 세계 가운데에서 공산주의도 지나갈 것이요, 민주주의도 사라질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기준이 뭐냐? 모두 물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론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경제 체제를 말하는 것이며, 공산주의는 물질 공유체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물질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사람은 물질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어떠한 물질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물질이상의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론지은 기준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2의 노정을 반드시 가야 합니다. 그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은 역사성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미래성을 추구해야 됩니다. 즉, 시대성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일관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원리가 이러한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점점 문제시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진리를 중심삼고 체화된, 즉 몸으로 화한 인격체는 어디있느냐? 그 체화된 실체를 역사도 고대했고, 하늘도 고대했고, 시대도 고대하고 있고, 미래도 새출발의 기원으로 요구할 것입니다. 말씀이 체화된 실체를 추구해 나오는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체화되어 인격을 이루고 그 실체를 통해서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고, 몸과 마음이 상반된 입자에서는 두 세계에 깃들어 있는 모순 때문에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이 체화된 인격은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을 연결시키려면 체화된 인격을 갖추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그 사람이 누구였겠느냐? 창조 이상으로 지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단계를 넘었으면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안길수 있는 아담 해와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사람과 그런 말씀이 안 나왔기 때문에 세계는 이 문을 못 넘어갔습니다.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도 이 문을 못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여기에서 한 고개를 돌파했습니다. 제아무리 공산주의의 이론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이념을 가지고 새로운 체화(體化)의 혁명을 일으켜 놓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민주사상을 중심한 물질관을 세워 놓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인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물질을 무시하고도 당당하게 넘어갈 수 있는 실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일주일 금식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 일주일 금식 명령을 받고 금식을 실천한 사람은 생활의 공포증을 초월합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를 생활의 무대로 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활의 공포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일주일 금식을 한 사람들에게는 생활이 문제가 안 됩니다. 이러한 것을 탈피할 수 있는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준을 중심삼고 진리를 세워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은 좋은데 사람은 나쁘다' 하게 될 때는 망합니다. 망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 앞에 말씀만 했습니까? 말씀만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전부 다 행하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지식적인 면에 있어서나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모순과 상충이 없는 이념체계를 만들어 가지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합니다. 사탄도 공인할 것이요, 하나님도 공인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아직 체화의 단계를 못 지난 입장에 있습니다. 체화가 되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말씀만 가지고 복귀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일치되고 체화된 사람, 그 사람은 말씀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씀을 소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능동적으로 행함으로써 복귀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전도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 2의 존재를 창조해야 합니다. 사탄도 창조는 아니지만 악의 말씀을 가지고 번식을 시키고 있습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창조의 말씀을 복귀시키려는 능동적인 그 무엇이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이 통일교회가 전하는 말씀은 역사상 없었던 말씀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도인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지만 주위에서 영계를 통하고, 시대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선생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다음에 때가 되어 알면 이것 이상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밤을 새워 가면서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앞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꿈도 못 꿀 만큼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모든 사람을 체화시켜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늘은 주위 환경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을 통해서 그런 준비의 터전을 넓혀 나온 것입니다. 그 기반을 넓혀 나오기 위해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옛말에 병신 자식이 자식 노릇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잘난 아들딸 같은데 자식 노릇을 못하니, 앞으로 병신 자식들이 자식 노릇을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체화는 어떻게 하느냐? 먼저 하늘을 체화해야 됩니다. 다음에는 사탄을 체화해야 되고,그 다음에는 사람을 체화해야 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여러분, 타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본래 사탄은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체화권내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해 주고 옹호해 줄 수 있는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런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먹으로 때려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인격이 파탄되었고, 인격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심정이 파탄되었습니다. 이것들을 복귀해야 할 문제가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이것들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복귀는 이것들부터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말씀을 알게 되면 가야 할 목적관이 뚜렷해집니다. 목적관이 뚜렷해지는 동시에 심정관이 정해집니다. 이것은 원리원칙적인 면에서 볼 때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새로운 심정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그런 인격 기준이 결정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타락은 자기 혼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담과 해와가 천사장인 사탄을 중심삼아 가지고 했기 때문에 복귀는 자기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과 사탄이 삼자가 대면한 자리에서 결정지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인 운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고 사탄이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서 결정지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싸움하는 심각한 그 자리에서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일선이자 하나님의 일선이 되는 자리에서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정은 누가 짓느냐? 이것은 사탄도 못 짓는 것이요, 하나님도 못 짓는 것입니다. 바로 내자신이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는 택하고 하나는 제거시켜야 합니다.
여러분, 6.25가 끝날 무렵 포로를 교환할 때, 이북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북으로 가고, 이남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남으로 간 것을 알지요? 그때 이것을 누가 결정지었습니까?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도 못하는 것이요, 이북의 김일성이도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 포로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서 그러한 현상들이 나타난 것은 오늘 이 복귀도상에 있어서도 우리 개체가 가야 할 운명의 길은 자기가 판단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절박한 역사적인 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도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결정은 내가 해야 됩니다. 사탄을 제거시키는 것도 내가 해야 되고, 하나님을 모시는 것도 내가 해야 됩니다.
뜻을 위해서는 철석같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사탄이 갖고 놀던 그런 물건은 절대취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갖고 좋아하던 것을 갖다가 드리면 하나님은 절대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사탄의 것 이상의 좋은 것이어야 합니다.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더 사랑한다는 조건을 갖추지 않고는 그 위치를 결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가치의 기준이나 그 내용은 어디서 결정되느냐? 사탄이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결정됩니다. 그런데 사탄은 대한민국을 사랑해 왔다, 혹은 아시아를 사랑해 왔다, 세계를 사랑해 왔다고 하면서 이 지구성을 유린해 나왔습니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지금까지 유린해 나온 이 지구성에 대해서 사탄이 사랑하던 이상 사랑하는 그런 운동을 못 해 가지고는 새로운 천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누가 해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해야 됩니다.
남편이 죽을 자리에 가고, 남편이 하늘을 배반하는 자리에 가도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에 칼을 꽂더라도 안 가야지 따라가는 이따위 것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간다고 따라가요? 이따위 녀석들이 있습니다. 뜻을 위해서는 철석같아야 합니다. 원리 원칙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불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 근원을 찾아가지고 참된 사랑을 세워 놓지 않고는 사탄세계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하느냐? 여러분이 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런 참된 사랑을 세우는 자리는 어디였느냐? 아벨을 중심삼은 자리요, 노아를 중심삼은 자리요, 아브라함을 중심삼은 자리며, 모세를 중심삼은 자리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삼은 자리입니다. 즉, 노아는 방주를 짓는 데 있어서 사회가 반대하고, 가정이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자리에서도 홀로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했고, 사랑하는 자식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죽겠다고 해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도, 아내를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도 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충성의 도리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여러분은 다 썩었습니다. 근거를 확실히 잡지 못한 생활터전을 가지고는 천국 건설에 이바지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사탄과 싸우는 데에 있어서 편안한 자리를 비웃어 가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아들딸들이 가야 할 의무적인 노정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아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의 자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어쩌자고 내가 이런 것들을 만났는가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워 놓고 이것을 토대로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요전에 송영감이 죽었는데 그가 어떤 문제에서 걸렸는지 말은 안 하지만 선생님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영계에 가서는 어떠한 문제로 인해 지금 떡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 와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어요.그렇지만 옛날과는 다릅니다. 옛날에는 평면적으로도 얘기하면 사정이 통해서 대해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가 간 곳은 영적세계요, 선생님은 땅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두고 볼 때 영계의 사정을 우선해서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땅의 사정을 더 중요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내가 당신을 협조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된다. 당신 개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민족을 위해 정성을 들어야 할 마음을 영계로 돌릴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영계에 가보니 선생님이 한마디만 해주면 해방이 되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책임을 완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생님은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공적인책임을 진 사람은 어떠한 사적인 기준을 놓고, 일대일의 입장에서 사정을 봐 가지고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의 사정을 봐 주면 예수님의 문제, 역대 선조들의 모든 문제가 전부다 끌려 들어옵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갈 때까지 보류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결혼축복을 받았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다 되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밤이나 낮이나 싸우며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열한 투쟁과정 속에서 쉴 새 없는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이때에 낮잠이나 자고, 안일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두고 보십시오.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년 동안 그런 생활을 했으면 그것은 영계에서 천년 동안 한을 품을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요, 영원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벗어날 수 없는 탄식의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합니까? 얼마나 귀한 순간입니까?
하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가 모셔 드려야 하며 사탄의 공세를 막아 내야 합니다. 타락은 뭐냐?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과 하나된 것입니다. 이걸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기에서 하나님만을 모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 나가는 길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일편단심이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사형수가 형을 받으러 형장으로 가는 그 순간보다 더 심각한 자리입니다.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수단과 방법을 써서 넘어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어 디디면 목이 떨어지고, 천년의 한을 품고 쓰러지게 됩니다. 이런 길을 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적당히 하려 했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일수록 누가 결정하느냐? 내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식구가 해주는 것도 아니요, 통일교회협회장이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일선의 자리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겟세마네 동산이나 갈보리 산상이 결정지어야 할 최일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도 일선에서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계전도라는 것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계전도 기간이 왜 필요하냐? 그것은 여러분에게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을 세워 주기 위함입니다. 즉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여러분이 하늘편 입장으로 결정지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참된 사람이 되어 사탄을 능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연의 인간의 권위를 회복함과 동시에 하늘 앞에 상처를 준 심정기준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하늘의 부모를 다시 모실 수 있는 기준을 생활환경에서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 백성이 못 됩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예수님도 30년 생애를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을 완전히 못 이루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2천년 동안 한의 역사를 쌓아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도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선생님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중대한 일을 놓고 `하나님 나 이거 도와주소서' 하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결정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자신이 수고해야 합니다. 도움받아야 할 입장에 서더라도 남보다 더 생각하고 남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하고, 이 이상 더 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하늘 앞에 문의를 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통일사(統一史)를 창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하기방학이 얼마나 중요한 기간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왜 40일을 정했느냐? 40고개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첫째는 중심인물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기간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조건물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그 기간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담부터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 아브라함으로부터 지금까지의 4천년역사를 탕감시키기 위한 탕감기간으로 세운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이 40일전도 기간입니다. 이런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넓고 크고 몇천리 되는 길이라도 가장 빠른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4천년 노정이 있고, 혹은 40년 노정이 있지만 그것은 전부 40수를 중심으로 한 기간입니다.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지름길을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기간이 40일 전도기간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조건물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찾아 세워야 할 조건은 믿음의 세 아들딸입니다. 바로 이 40일 기간에 찾아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기간에 온갖 정성을 다 쏟아야 됩니다.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에 연결시키기 위해서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 7년 동안에 개인 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까지 해야 됩니다. 40일을 기반으로 해서 국가복귀까지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 7년노정이 끝나게 될 때 국가적인 인연을 매듭지어야 된다고 말씀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국가복귀를 이루어야 한다는 명제하에 여러분을 내몰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40일 전도에 참가하여 믿음의 세 자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시시하고 데데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과정에 있어서 사탄의 혈통으로 태어난 자신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이상 그 믿음의 아들딸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려면 그 이상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심정기준을 찾아 세우지 않고는 믿음의 자녀를 복귀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잘못된 심정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들어왔고,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정으로 사탄을 몰아내고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의 선결 요건입니다.
사탄에 대한 사랑보다 더 높은 기준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사탄권내에서 들였던 정성 이상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기 남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자기 딸보다도 아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을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사탄의 자식들이 하늘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복귀는 자기 집안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할 때도 자기 집안에서 한 것이 아니라 나가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도 자기집안이나 통일교회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가지고 복귀를 해야 됩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황무지로 내쫓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통일교회 개척노정이 설정되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그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아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탄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세계 이 나라의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고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생님은 세계 만민으로부터 일시에 공격받는 그런 비참하고 절박한 자리에서도 생명을 걸고 천륜을 세우기 위해 이 싸움터를 지켜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기준을 남겨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더럽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된 사람들이 오히려 남이 붙들어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갑니다.
정의의 입장에서는 이용되는 법이 없습니다. 이용이라는 것은 불의 한자리에서 당합니다. 정의의 입장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이용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은 누가 하느냐?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결정지을 수 있는 판국, 그런 시련 무대를 찾아가야 되겠습니까, 안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가야 됩니다」 여기 젊은 아가씨들,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여러분 지금까지 뭘 했습니까? 통일교인들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이 원칙에 안 따라 줄 때는 이 원칙을 부정해야 하는 심각한 사정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단호한 대책을 강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금번에 이 혁신 체제를 갖춘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의 모든 생활보고를 이 체제권 안에서 총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한달 동안 전도를 안 한다면 그 보고가 다 여기에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것을 기록한 카드가 있어 여러분 개개인에 대한 생활적인 내용, 즉 자신이 걸어 나온 그 모든 것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영원한 세계를 갈 때 생사의 문제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사정 가지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지 않고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두고 안심하고 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정비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통일교회에 못 나오게됩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교회를 뭐 하러 따라 나오려 합니까? 차라리 기성교회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정 따라오려면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한테 보탬은 못 될망정 왜 신세를 지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남의 신세를 지려고 합니까? 자립성을 망각하고 신세를 지려는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이번 제 2차 7년노정의 두 번째 해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7년노정에 하늘의 신세를 갚지 못하면 21년노정까지 갑니다. 가나 안 가나 두고 보십시오. 이번 제 2차 7년노정 중에 36가정부터 정비할 것입니다. 72가정도 전부다 정비할 것입니다. 새로이 정비하는 것은 선생님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면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었겠습니까?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사는 나라가 아무리 선진이요, 또는 무슨 문화의 대국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이 원리를 알고 나면 이 절대적인 권내에 따라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을 따라야 되겠기 때문에 신접살림을 차려 네가 아니면 내가 죽고, 내가 아니면 네가 죽겠다고 하늘땅을 걸고 맹세한 부부일지라도 하나님이 분부한 명령을 따라서 신혼 벽두부터 7년을 수절하는 일도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비통한 사실이 왜 있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은 잘 알아야 됩니다.
담 밖에서 담 안을 들여다 보며 통일교회인 줄 아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문을 걸고 담을 높이는 날에는 모두 돌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대신 여러분들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있으면 책임하고 정성들인 수많은 제 2 후보자들, 즉 다시 말하면 외부인들이 몰려 들어올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여러분을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전에도 어떤 곳에서 `36가정 누구 누구가 오늘도 나가서 이러이러한 노릇을 하였습니다' 라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이름까지 다 알고 있었고, 얼굴을 이렇게 이렇게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뜻을 위한다고 해 놓고는 그런 짓을 한다고 나에게 보고가 들어옵니다. 내가 그것을 알자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르쳐 주는지 알아요? 참소의 조건을 만들어서 끄집어 내리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고 하계 전도를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집안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한 것은 집안에서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의 울타리를 넘어가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도 집을 나와서 해야 됩니다. 집을 나와서 다른 부락에 가 가지고 자기집보다 그 부락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옛날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내보낼 때도 이런 명령을 했습니다. 그 부락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그 부락 사람들이 땀 흘려 건설한 그 기준 이상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3년 이상 땀을 흘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복된다는 것입니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1960년도에 대한민국 전체가 반대할 때 선생님은 법원에 가서 조서를 꾸미면서도 싸움을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1960년대에 전부다 축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법원에 투서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싸움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을 지금까지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싸움 무대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라 `네가 깨지든지 내가 깨지든지 한번 해보자'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천륜의 법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단연코 행한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자기 딸을 의논도 없이 시집 보내는 것이 분해 가지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걸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천륜의 뜻을 역사가 어떻게 가려 줄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찾아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찬성하는 사람은 역사적인 위인이 되는 것이요, 역사적인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역사적인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3년 동안 하고 나니 별수 있어요? 반대한 사람이 넘어갔지요?
여러분이 지금 나가는 3년노정이나 7년노정은 너무나 평탄한 길입니다. 싸움이 없어요. 원수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원수들의 화살이 노릴 수 있는 그런 환경은 다 지나갔습니다. 자 이러한 환경인데도 안 가겠습니까? 안 가겠으면 여기에 나타나지도 말아요. 보기 싫습니다. 저 구석에 나가 앉아 있어요. 여기는 뭐 하러 옵니까? 앞으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교회를 위하여 정성을 들이다가 죽겠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전부 다 하늘 앞에 바쳐야 합니다. 이렇게 한 일년 동안 시켜 보면 몇 명 안 남을 것입니다.
여기 문화부장 어디 갔어요? 아침에 선생님이 얘기하려 하니까 문화부장이 `선생님 아침에는 좀 자 두셔야지요' 하는 것이었어요.그렇지만 선생님은 자는 것보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못하겠거든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피흘려 투쟁해 나오고 있습니다. 십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도인이 하는 말이, 자신이 통일교회에 대해서 정성을 들이는 것은 선생님이 망하면 자신도 망하기 때문이며, 하늘이 내몰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여러분도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 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뿌렸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수고의 붉은 정성을 들이며 피어린 투쟁을 하였으니, 그 상처를 잊기 위해서는 고이 거두어야 할 텐데 도둑놈들이 전부 다 거두어 가겠끔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야 되겠어요? 전도들만 해 놓고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똑똑히 얘기해 둡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을 사이좋게 대할 수 없습니다. 법을 가지고 다루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제시한 조건에 여러분의 행동이 부합되느냐 부합되지 않느냐에 따라 대하는 기준이 다를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점점 조여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나라와 세계를 사랑하려거든 여러분이 가는 길을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것을 하지 못하고도 나라를 위한다고요? 기도할 때 통일교회를 위해서 뭐 어쩌고저쩌고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겠으면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제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 계층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한 30, 40개 코스를 만들어 놓고 여기에 있는 본부의 부장들도 이제 선생님이 가라 해서가지 않으면 전부 다 교체해 버릴 것입니다. 절대로 용납 못합니다. 앞으로 교회 행사에도 참석시키지 않을 계획입니다. 뭐 나는 36가정이니 뭐니 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것 모릅니다. 뜻을 알고 나서 36가정이 있지 36가정을 알고 나서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72가정도 결국은 정비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이 뜻을 상속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외국 사람들이 받을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게 하기 위해서 이번에 선생님이 축복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축복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안할 얘기지만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되겠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틀림없이 그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는 여러분 마음대로 들어와서 말씀 듣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열두 명 이상의 영인들에게 심령검토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갈도 아니고 협박도 아닙니다.
그러한 때를 위하여 가야 할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사탄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에 있어서나 사회와 국가를 대하며 나가는 신앙 노정에 있어서 이러한 심정의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여기 이목사는 성북구로 파송하겠습니다.
아버님, 아버지와 저희 사이에는 크나큰 구덩이가 놓여져 있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았습니다. 수많은 인간들은 이 구덩이를 넘기 위해서 허덕이다가 전부다 매몰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교량이 있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없었습니다. 역사의 한의 구덩이인 이것을 넘는 날에는 천년사에 빛날 수 있는 영광의 세계가 저희를 맞아 줄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소망하며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피를 흘리다가 거기에 뼈를 묻고 간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 자신들에게도 이것을 지고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넘는 것, 즉 역사의 해원성사라는 것은 타락의 후손들인 저희들이 필생의 과업을 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을 수 있는 희망의 한 날이 저희들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를 들어서 찬양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의 이 탕감복귀 노정 앞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이 엄청난 내용을 알고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사탄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사는 것도 이것을 넘기 위해 살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죽더라도 이것을 넘고 죽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넘지 못하고 살다가 이것을 넘지 못하고 죽는 날에는 사탄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싸움을 또다시 전개할 때가 왔사옵니다. 7월 20일을중심삼고 제일 더운 이때에 남들은 더위를 피해서 안식할 수 있는 휴양지를 찾아갈는지 모르지만, 저희들은 더더욱 땀을 흘려야 되겠기 때문이옵니다. 어느 곳보다도 비참한 환경에 들어가 가지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사탄보다 낫다는 조건을 남겨야 할 저희들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선조로부터 받은 선의 실적이 자기에게 연결되어서 이 뜻 앞에 속할 수 있는 혜택의 기준이 되었다고 할진대는, 그 선조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도 나로부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이 7월 13일, 다음에 맞이할 주일은 7월 20일이옵니다. 전국을 대한 싸움터에 또다시 나가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오니, 이번에 임명된 신임 지구장들은 싸움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하늘을 중심삼고 전개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정(人情)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정(天情)을 중심삼아 가지고 처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기간 동안 부끄럽지 않은 자세로 부끄럽지 않는 한국의 권위와 부끄럽지 않은 통일교회의 권위를 세우고, 이 본부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본부의 권위를 세우려면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되고 거기에는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고 깨는 모든 일과 행하는 모든 문제는 하늘의 법도와 규례에 부합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여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축하하며 또한 이곳을 흠모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뜻 앞에서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수습하여 싸움터로 나가야 하는 각자의 마음 속에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맹세의 신념을 갖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탄과 대결하여 사탄을 자연 굴복시키게 해주시고, 그런 실적을 가지고 하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우고 그 가운데서 승리의 권한을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청일전쟁도 노일전쟁도 일지사변(日支事變·중일전쟁)도 한국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한국이 해방된 것은 어느 한 다른 국가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왜정말(倭政末)의 교계의 앞길은 재건교회가 책임져야 했으나 해방과 더불어 이들은 사적인 방향으로 흘러, 결국 대한민국의 사면초가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희망을 잃었을 때, 나는 홀로 이 민족의 갈 길을 염려하며, 삼팔선을 넘어 영어(囹圄)의 고난길을 갔었습니다.
그때는 나에게 맹세한 수많은 사람들이 다 배반하였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결의를 내일에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본부의 조직에 대해서 비난의 말을 많이 들었으나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36가정을 중심하고 본부의 조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에 축복가정을 세운 후에는 달라집니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탕감노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효원의 말을 들을 내가 아니고, 지구장의 말을 들을 내가 아닙니다.
이북에서는 사람들에게 원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준을 세워 놓고 난 후에야 말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하는 길만이 모든 것의 선악을 판단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을 자손에 남긴 집은 망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첫째, 탕감복귀의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를 위하여는 7년이란 탕감기간이 필요합니다. 둘째, 7년노정에서는 40수를 중심하고 기간이 결정됩니다. 셋째, 조건물로는 믿음의 자녀 3인이 필요합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야 하고, 원리의 길은 밟아가야 합니다.
입교 3년 이하 된 사람은 지방으로 가야 합니다. 6차 이상 지방에 가지 못한 사람은 지방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3년노정을 찾지 못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은 1969년 7월 20일이옵니다. 이 아침에도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무릎을 끓고 이 나라와 세계와 천주를 위해서 축수하고 있을 줄 아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남아진 복귀노정을 다리를 놓아서라도 넘고 넘어 가야 할 사명이 저희 앞에 남다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해마다 하계와 동계에 40일간씩 연 2회에 걸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또 이 세계를 위하여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사옵니다. 오늘부터 `하계 40일전도'를 출발하오니 여기에 동참한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이 땅위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복귀의 노정을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에 의해서 자기가 맡은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오니 자기의 일은 자기가 홀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엄숙한 노정 위에 각자가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에게는 땅 위에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받은 그 사명을 저희 당대에 완수하여 온 천주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갈 줄 아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해 마음 모아 기도하며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그 자녀들 위에 사랑의 은사를 내려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의 한 주일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 한 달을 친히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소서. 이 시간이 새로운 우주시대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한 기점이 될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부터 되어지는 모든 것이 섭리의 노정에 기필코 플러스가 되고, 영광의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기쁘신 심정 앞에 저희들이 인연되어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자기 생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태어난 목적은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지으실 때는 책임을 중심삼고 인류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책임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상반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책임수행은 인간을 통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은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때에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나 인간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반드시 책임 수행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목표를 정하여 놓고 일년간의 계획을 세워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하루 하루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일년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복귀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복귀라는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오게 된 명사입니다. 타락이란 떨어진 것을 뜻합니다. 목적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목적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자리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타락이란 명사의 의미로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원래의 목적과 인연을 맺었다고는 더 이상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창조목적과 인연을 가져야만 복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그러면 그 목적을 누가 결정하느냐? 타락된 인간으로서는 그 목적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도 홀로는 그 인연을 완전히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해당하는 95퍼센트 책임만큼의 인연은 맺을 수 있지만 100퍼센트를 기준하고는 하나님 자신도 완전히 인연을 맺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인연을 누가 맺을 수 있느냐? 그 인연은 인류의 조상이 타락해서 끊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만이 다시 맺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그러한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우리인간을 하나님의 목적, 즉 창조의 목적과 결부시키기 위하여 인류의 부모가 다시 와 가지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한 역사가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가정에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예수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역대 선조가 해 나온 일이요, 이 시대에 있어서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는 복귀를 완결시키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부모가 되어야 할 인간조상이 타락했으므로 타락의 동기를 넘기 위해서는 삼자가 일치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참부모의 뜻과 우리들의 뜻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귀라는 것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일치되는 자리에 도달해야 인류의 목적도 성취되는 것이며, 인류의 부모로 오시는 주님도 만민을 복귀시켰다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와 자녀가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뜻인 본연의 동산을 이루어 그곳에서 부모와 자식이 영원히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가정의 인연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완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복귀섭리 역사 가운데서 수많은 의인들이 피를 흘리며 희생되는 수난의 길을 거쳐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그런 길을 걸었느냐 하면 복구의 인연을 연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부모가 가야 할 길을 한 방향으로 닦아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의 책임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러분이 뜻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또 뜻 앞에 서느냐 못 서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여러분 자신만으로는 절대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부모님과 연결되지 않고는, 즉 삼자가 일치된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복귀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리적 견해로 볼 때 불가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책임 완수의 기준은 우리 개체에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은 개체를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민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라는이 엄청난 분야까지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명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류의 부모로 오시는 주님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느냐? 그분도 자기의 생활을 중심삼은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천주사적인 인연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 되시는 그분 역시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부모이신 하나님과 심정의 일치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치점이란 어떠한 점이냐? 그것은 타락한 자리를 넘어서는 점입니다. 타락을 넘어서는 자리는 우리 개체만을 넘은 자리가 아니요, 가정이라는 혹은 국가라는 한계권내에 머무는 자리도 아닙니다.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은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참부모와 인간이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참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할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자리 역시 그러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곳과 참부모가 바라는 곳과 여러분이 바라라는 곳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정성과 정열을 어디에다 기울여야 되느냐? 책임을 완수하는 데 기울여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을 보면 자기 개인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한정되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복귀원칙을 두고 볼 때 이런 사람은 책임 완수를 통한 어떠한 목적을 완결지을 수 없습니다. 자기 개체를 중심삼은 책임을 완수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극히 작은 한 점(點)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그 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線)을 이루어야 되고 그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면(面)을 이루어야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인 것입니다.
남자면 여자와, 여자면 남자와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선한 가정이 되어 선한 종족을 이루고, 선한 종족은 선한 민족을, 선한 민족은 선한 국가를, 선한 국가는 선한 세계를 이루어 그 선한 세계가 천주를 이루면 그 천주는 선한 천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어야 할 고개가 첩첩이 쌓여 있는 복귀의 행로를 가야할 운명에 놓인 인생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반드시 그 가는 길에서 삼자가 일치되는 기준을 연결시켜야지 그러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입니다.또 그 길을 갈 수 없는 환경에서는 승리의 기점도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 완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내적인 기준인 삼자의 일치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나는 영원히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상반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어떠한 주장을 내세워 가지고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늘은 뿌리요, 참부모는 가지요, 우리 인간들은 잎사귀와 같기 때문에 해당되는 인간들이 가지를 끌고 갈 수 없는 것이요, 가지에 해당되는 참부모가 뿌리를 끌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뿌리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지이신 참부모를 잎사귀인 여러분이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날 개체 개체를 두고 볼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개체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전체를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개체는 반드시 원칙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을 가져야만 전체를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능력과 활동력이 있어야만 복귀의 행로에 있어서 그릇되지 않는 자리에 섰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 이삼자가 하나될 수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어떠했느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이고 원칙적인 길을 거쳐야 했으나 그 길에 필요한 다리를 놓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비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 한 것입니다. 모든 사리를 초월하고 의식을 초월하고 인식과정을 초월하여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일방적이고 막연한 견지에서 하나님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러한 신앙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우리는 우주사적인 중심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중심은 오시는 주님, 즉 참부모를 중심삼고 내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신앙관은 지금까지의 신앙관과는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과 성경을 중심삼고, 즉 구주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막연하게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갖추어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믿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도 그렇고, 살면서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를 떠나 가지고는 생활할 수 없고 활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사적인 중심인 그 부모는 부모 자신만의 인연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인연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 부모가 일치된 자리에 연결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고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과 내가 언제든지 일치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탈된다면 번번이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탈되었을 때에는 뜻을 위한다고 했더라도 그 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역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역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잘한다고 한 것이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삼자의 일치점을 찾아야 합니다. 책임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기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과 내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 기반은 심정입니다. 심정이 있어야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거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삼자가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오늘날의 인간 생활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은 어디에서 형성되느냐? 가정에서 형성됩니다.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나, 이삼자가 일치되지 않고는 복귀의 완성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목적을 제시했을 때 거기에는 여러분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건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을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가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부모는 자녀들에 대해서 이러해야 된다는 기준이 서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앞에 내세우고 자기만의 이익과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부모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희생해야 됩니다. 여기에 불의한 것이 있을 때는 투쟁해야 합니다. 또 일대에 용서 받지 못할 일이 있을 때에는 수십 대를 거쳐서라도 그 일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어야 됩니다.
사람은 흔히 잘못했을 경우 그 즉석에서 용서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나가는 도상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께 와서 잘못한 것을 보고만하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일이 해결되는 데는 반드시 기간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기간 동안 탕감노정을 거쳐야 용서받을 수 있지 보고를 했다고 해서 그 당장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가 아무리 잘 통했다 하더라도 얼마 동안의 탕감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삼자의 심정이 일치되는 가운데 하루면 하루의 생활을 어떻데 해 나가느냐, 또 한 달이면 한 달의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일년이면 일년을 어떻게 그런 기준으로 수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이 확고하고 공고하게 일치되지 않으면 아무리 책임을 완수했다고 하더라도 복귀섭리노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적으로 삼자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이 어떠해야 되냐. 자식들은 모든 존재의 가치를 부모를 통해 찾습니다.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는 누구를 닮느냐? 부모를 닮습니다. 그 자녀들이 누구를 따라가느냐? 부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책임을 추구하게 될 때, 그 책임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삼자의 일치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련하지 않고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을 모셨다면 그때부터 그 관계는 맺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이 지향하는 목적 앞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의 목적도 일치되었을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된 목적을 가진 아담 해와의 자녀들 역시 같은 목적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모든 가정과 종족과 나라 전체의 소망이 되었을 것이며 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전부 다 달라졌습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전부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다른 자리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목적이 하나의 기점에 연결되지 않고 전부 다 사방으로 분산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속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산된 것이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삼고 결속시켜야 됩니다. 거기에는 민족적인 차이도 있을 것이요, 문화의 배경이라든가 지식의 배경, 혹은 소성(素性)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이 서로 상반되어 천태만상의 형태를 갖추고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속시켜야 됩니다. 출발점은 하나입니다. 뿌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봄 동산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잎으로 남아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줄기에 의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줄기와 잎이 존재 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며 거기에서 비로소 꽃이 피는 것이요,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잎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잎 자체가 꽃이 되고 그 잎 자체가 열매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갑이라는 사람이나 을이라는 사람 할 것 없이 삼천만 전부가 생각하는 것이 각기 다릅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고 저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파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수난의 길을 걸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오늘날 이만큼 발전하는 동안에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겉으로는 통일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선생님을 이용하고 통일교회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개인의 욕망을 중심삼고 움직이다 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망해 버렸습니다.
책임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의 책임은 결속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않고는 아무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조상의 핏줄과 심정을 이어받아야 했으나 그 인간 조상이 타락의 모체가 되었기에 전통적인 역사를 이어받아야 했으나 그 인간 조상이 타락의 모체가 되었기에 전통적인 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준이 저끄러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한의 씨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관념과 의식 전체를 초월하여 가지고 하나의 기준 앞에 수습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각자가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이켜 보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평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본부에 대해서 별의별 말을 다 하는데,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은 어떤 개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보면 잎이 있기 전에 가지가 있었고, 가지가 있기 전에 줄기가 있었으며, 줄기가 있기 전에 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도 필요없고, 줄기도 필요없고, 가지도 필요없는 잎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자체도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나무로 완성을 하려면 각각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일생을 거쳐 나오면서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되면 그것을 선생님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하늘이니 결과를 하늘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하루 생활에서 책임 완수라는 목적을 중심삼고 볼때에 반드시 결과를 동기에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동기와 결과를 일치하게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회 환경을 보면 이것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180도 다르니만큼 탕감을 위한 조건을세워 가지고 어떠한 기간 동안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도의 길에서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영적인 섭리 가운데서 자기 나름대로 무엇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영적으로 그런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본이 되는 원인을 추구해야 됩니다. 그 원인을 추구하는 데는 자기를 중심삼고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그 계시는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고 인류의 참부모와 심정이 일치된 것이 모체가 되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원인은 알지도 못하고 결과만을 붙드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뭇가지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국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완수를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삼자 일치점을 찾아야 됩니다. 삼자가 완전히 일치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했다 하더라도 완수한 그 책임의 결과는 하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골고다 산정에서 죽음길을 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의 남자로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셨으니,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절대적인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심정으로 복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엄숙한 과제를 놓고 소망하면서 가기에 마음을 일치시켜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리적인 복귀노정에서 예수님이 희생되었기 대문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거칠 수 있는 섭리의 손길을 펴실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동기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고는 책임을 수행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부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있는 것이요, 부모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자녀의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밑에서부터 소생·장성·완성의 단계를 거쳐 올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을 소생기로 본다면 부모는 장성기이며 하나님은 완성기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완성했다는 기준에 도달하려면 무엇을 통해야 되느냐? 심정, 즉 사랑을 통해야 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만들려면 부모와 아들과 손자가 심정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집안에 아무리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부모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혹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터전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단편적인 개체의 생활관, 혹은 그런 환경을 벗어나 사방성을 가져야 합니다.
태양이 지구를 비치는 방향이 달라짐에 따라 지구에 춘하추동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소질에 따라서 방향을 갖추어야 됩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러분들이 뜻 앞에 어긋난 것은 무엇인가? 가인과 아벨이 부모 앞에서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이 화를 입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도 삼자가 일치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이 하늘 앞에 규탄받을 내용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중심이 내세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세워진 자들이 하나되지 못해 책임을 못하면 내세운 중심이 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이 협회장을 세웠으면 그가 사람이 되었건 안 되었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그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작전하는 데 있어서 그와 더불어 필요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에게 얘기한 것처럼 선생님은 지금까지 36가정을 중심삼고 역사하여 최고의 축복기준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반을 세계적으로 닦을 때까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여러분을 이끌고 나갈 것입니다. 출발했으면 마지막 한 고개를 넘을 때까지 가야 합니다. 반드시 그 기준까지 수습하여 끝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중심 앞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망해도 믿고 망하고, 흥해도 믿고 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러구 저러구하는 소리가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사람들을 중심삼고 일을 추진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축복의 기준이 안 서 있어 가지고는 아무리 큰 책임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수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탄이냐? `하나님, 제가 먹지 못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누구 못지 않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일을 통과시켜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통과시켜 주시면 아담 해와 이상으로 하나님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탄이요, 역적이라는 것입니다.
동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제시한 동기에 순응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동기를 중심삼고 무슨 일을 하고서는 그 일의 결과에 하나님을 갖다 붙이려 합니다. 그러니 선악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악의 기준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영적세계를 통하는 비법이 어디서 나온것이냐? 그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결국 영적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 여러분은 하늘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하나님 것으로 인정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정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정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도 내가 담당하겠다는 입장에 서면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늘이 같이할 수 있는 원칙적인 삼자 일치점을 완전히 세워 놓지 않은 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 3년 이상 된 사람들은 지방에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또한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하느니만큼 자기가 사는 도면 도를 중심삼고 삼도(三道)를 거쳐야 됩니다. 못해도 삼도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7년노정에 있어서 수많은 젊은 사람들을 사방으로 내몬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해와를 쫓아내신 것은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 역시 다시 하늘과 인연 맺어 복귀의 문전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자기마음대로 통일교회에 찾아 들어오면 맺을 수 있느냐? 그것은 자기 개인이 인연 맺은 것이지 하나님이 맺어 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면 자기의 책임을 완수해야 됩니다.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아담이 쫓겨난 그 자리에서부터 아담이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찾아 가지고 들어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있는 곳에서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는 언제든지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의 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동은 왜 벌어졌느냐? 중심존재로 하여금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로 나가야 합니다. 야곱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으며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선생님도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요셉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요셉도 뜻을 이루기 위해 집을 떠나 애급으로 갔었습니다. 원래 요셉은 거기에서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왔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모가 그를 찾아 내려간 것입니다.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가나안 복귀노정이 생긴 것입니다. 부모가 찾아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전에 자식이 다시 돌아왔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 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 역시 그런 운명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은 어떠한 자리에 있어야 되느냐? 가인의 자리는 내보내져야 할 자리입니다. 그리고 아벨은 어떤 자리냐? 아벨은 부모의 슬하에 있어야 할 아들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이 아벨적인 존재와 가인적인 존재를 서로 결부시켜야 되는데 결부시키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노정을 아벨이 먼저 가든가 가인이 먼저 가든가 해야 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사명과 아벨의 사명, 이 둘을 다해야 합니다. 즉 부모 앞에 효도도 하고 부모 대신 나가 싸우기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을 세워서 한 아들로 하여금 효성의 도를 다하여 부모를 모시게 하고 한 아들로 하여금 밖에 나가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효성을 하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나 싸우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가인은 아벨을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삼자 일치점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뭐 이렇고 저렇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적 기준에서 모든 일을 행해야 됩니다. 그 기준에 대해서 뭐 어떻게 어떻고 하는 것은 선생님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타난 선생님, 즉 결과로 나타나 있는 선생님은 알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거쳐온 하늘과 관계된 선생님의 내적인 심정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해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전부 다 사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다른 여건을 중심삼고 비판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 아무리 잘해도 하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삶의 행동을 받아 주거나 거기에 상대해 주거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에 협회장이 있는데, 이 협회장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책임을 하든 못 하든 끝가지 끌고 나갈 것입니다. 민족적인 탕감이라는 이 엄청난 일을 다할 때까지는 협회장을 앞에 내세워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가 인격적인 면에서 결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함이 있다 해도 그것은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를 누가 세웠습니까? 선생님이 세웠습니다. 그러니 책임도 선생님이 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망하면 망했지 그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처리방법은 선생님이 알고 있습니다. 처리는 여름에 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일치된 기준에서 책임완수라는 명제를 걸어 놓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독자적으로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비판하면 안 됩니다.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도 내가 먼저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내가 잘해 가지고 선생님 앞에 칭찬 받고, 교회 가서 칭찬받아야겠다고하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칭찬받되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해야 부모의 심정권내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심정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공고한 인연을 하나님과 맺을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내적인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 외적인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노력하고 활동한 것이 선생님 앞에 혹은 식구들 앞에 인정받기 위한 외적인 조건 때문이었다면 큰일입니다. `인정이야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 문제는 내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과 내적인 심정을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다'하는 마음을 갖고 수고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칭찬받으려고 한 행동에서 교회 앞에 플러스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한 사람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어려움을 당하는데 교회에서 몰라줘 섭섭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려운 생활을 해 왔습니다. 누차에 걸쳐 감옥에도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항상 내가 해야 할 책임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이 잘못해서 겪은 고통이라 해도 민족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한 점에서 좌우가 갈라집니다. 생사도 한 점에서 결정되며 선악도 한 점에서 갈라집니다. 한 행동을 중심삼고도 그것이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악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결과를 교회 앞에 내세워 공인받으려고 하면안 됩니다. 교회에서야 인정하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 앞에 시달림 받고 피와 땀을 흘리며 투쟁을 하는 것이 내 자체에 엉클어진 역사적인 사연을 탕감하기 위해 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심정적인 유대를 맺을 수 없게 하는 담을 무너뜨려 가지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를 몇 년 동안 해야 하느냐? 일년 정도의 수고로는 안 됩니다. 6천년 역사를 거쳐오신 하나님의 역사노정 위에 내 자신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7년여의 수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그 깊은 심정의 골짜기까지 파고 들어가 내 자신을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 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생명이 움트는 봄철에 땅을 갈고 씨를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오는데 그것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보조를 맞추어야만 됩니다. 먼저 땅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는 봄볕의 온기 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깊이 파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풍파가 일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이것은 나를 파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인연을 공고화시키기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절대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됐으면 됐지 탄식의 조건이 되고 슬픔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교회에서 자기를 몰라준다는 생각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일을 했다는 결론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는 날에는 여러분의 행동이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 자기가 판 구덩이에 스스로를 매장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해 기대를 갖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협조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마음으로 선생님이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그 길 앞에 들여야 할 정성의 도수(度數)와 양이 적다고 탄식하면 했지, 여러분들에 대해서 기대를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이 알아서 기준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이 기준이 틀리게 될 때는 천지의 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기성종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교회에서는 생활이념을 가르쳐 주고 도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도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생활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도의 길을 찾아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도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과 최후의 결론을 참부모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참부모가 일치되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여러분 자신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울 수 있고, 참부모님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기쁜데 부모가 슬퍼하면 그 가정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가정은 천륜을 중심삼고 부모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기쁘고 자녀가 기뻐야 그 가정에서 천륜과 인륜이 통할 수 있는 것이지, 부모야 어찌되었든 관계없이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보좌하며 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보다도 한 단계 앞선 발걸음으로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책임지며 여러분의 갈 길을 닦아 주고 있는 곳입니다.
지방에 나가 있는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자기가 일했으면 일한 데 대한 수고를 알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을 하자마자 수고를 알아 달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만일 대한민국 백성이 일을 하고서 대통령에게 전부 다 자기를 알아 달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알아주기 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부터 해야 됩니다.
알아줄 때는 개체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알아주는 것입니다. 개인만을 알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인정한다면 개인을 인정 안 해줄 수 없습니다. 전체가 알아주지 않으면 개체를 알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상부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그런 무책임한 조직이 어디 있습니까?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들과 손잡고 일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없애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뜻은 모르면서 가만히 보면 별의별 소리를 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유명해지는 것이 중요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이끌고 나왔어요? 뜻이 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나라는 사나이가 한 번 일어섰으니 끝을 볼 때까지 할 것입니다. 그 인연을 하늘이 끊기 전까지 끈질기게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목적을 중심삼고 실패냐 성공이냐를 결정해 놓고 나서 다시 다른 일을 시작하든가 해야지,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청산지어 놓지도 않고 다른 일을 한다고 야단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만은 이런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타락한 핏줄을 받고 태어나 여러분인데 처참한 복귀노정을 걷지 않고 복귀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은 자녀의 입장으로 하나님과 참부모의 심정에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나서도 하늘이 자기를 대해 주면 그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됩니다. 몰라준다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을 접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타락한 여러분들은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어디서나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그 조건을 세울 때 하나님이 기쁨 가운데 찾아와서 도와주시면 고마운 것이고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도와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대한민국의 행정요원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들을 만나 가지고 그들에게 `통일교회에 협조해 주십시오' 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그런 부탁을 할 수 있겠지만 선생님은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누구를 만나 교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교섭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왜 안 하느냐?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만하면 다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2층만 있는 세계에 3층을 지어 놓으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그럴 수 있는 실적을 쌓아야 됩니다. 설명보다도 실적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구구하게 누구를 비판하겠습니까? 선생님은 누구를 비판하면서 내가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해 왔습니다. 내 갈 길이 바쁩니다. 갈 길이 바쁘니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두고 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데 있어 여러분은 정성을 들이며 가야 합니다.
주님께 접붙인 나무는 자라서 뭘 해야 합니까? 세계, 혹은 천주를 위해야 됩니다. 그러니 지금 새파랗게 자라는 새싹을 보고 평한 것을 가지고 섭섭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수십년 동안 한 것을 3년 동안 해내야 됩니다. 온갖 노력을 자기 발전을 취해 투여하는 게 목적이지 다른 게 목적이 아닙니다. 책임 수행의 과정에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잔칫집에 가서 떡을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데 먼저 김칫국 좀 달라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밥을 줄지 안 줄지 모르는데 숟가락부터 꺼내서야 되겠습니까?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 7월 20일이 세계적으로 40일 전도를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어떠한 일을 대해 실패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수고해 가지고 칭찬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해도 무슨 좋은 결과를 얻어 가지고 칭찬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받들어야 합니다. 칭찬받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 일에 대해 수고한 결과가 크기보다는 하나되어 나타나는 결과가 커야 합니다.
결과가 크면 클수록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인 결과를 얻었으면 그것이 종족적인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종족적인 결과를 얻었으면 그걸 자랑하기 전에 민족적인 결과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민족적인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을 국가적인 결과로, 국가적인 결과를 얻었으면 그것이 세계적인 결과가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더 큰 책임을 감당하며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대한민국의 제일 악한 가정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간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선의 권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악의 위치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이 끌어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알고 보면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도인들이 선생님을 찾아오게 될 때 몇 마디 이야기해 보면 벌써 그 사람의 수준을 압니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 자신은 못 먹으면서 먹여 주고, 선생님 자신은 못 입으면서 옷을 사 입힙니다. 그 사람의 부모 이상으로 잘해줍니다. 그렇게 하면 좋다고 합니다. 천지가 자기 세상인 것처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선생님의 말을 믿게 돼 있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서 수십년을 바쳐온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들어온 도인들에게 그가 해야 할 도리를 가르칩니다. 어떠한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의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선생님의 그들의 공적을 거두어 가지고 통일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종교가 자기의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망합니다. 세계만민을 위하고 세계의 발전을 위해서 나가야 역사적인 결과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놓고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가지고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용납받을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해 살았다면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녹음이 여기서 중단되었음)
오늘은 7월 27일, 이 달 들어서 네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길이 곧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가 아옵니다. 되돌아가야 할 운명길에 있어서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 고개를 필시 거쳐가야 할 산정인 것을 저희가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지나간 역사과정에서 수고해 오신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나선 몸들이오니, 당신께서 자비와 권고로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에 먼 발길에서도 이 본부를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당신의 뜻을 사모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들에게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또 세계에 널리어서 이 자리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많이 있사오니, 그들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계에는 아버지를 대신한 통일의 무리들이 많이 널려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역사적인 전통을 새로이 출발하는 아버지의 수고 앞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책임과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슬픔과 연민의 대상이 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불충한 몸들이옵니다. 하오나 아버님은 저희를 세우셨기에 저희는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사오니, 저희가 험한 길 가운데 있다면 당신이 그냥 버려두지 마시고 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시옵소서.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산정 앞에 패배자가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아버지 친히 저희들을 권고하시고 내세우시어, 자랑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길이길이 간직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은 하계 40일 전도기간을 맞이하여 일주일째 지나는 날이옵니다. 지방에 널려진 당신의 어린 자녀들, 모든 세파의 시달림 가운데서도 당신이 남기신 그 길을 더듬기에 여러가지 모양의 자리에 서 있는 아들딸도 있는 줄 아옵니다. 혹자는 어려운 자리에서 눈물짓고, 혹자는 굶주림에 허덕이고, 혹자는 거처가 없어 뜰에서 하루하루를 헤매는 아들딸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지시여, 그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하여 충성하고 싶어 외로운 길을 가는 그들은 당신과 같은 사정에 처해 있사오니, 언제나 보호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이끌어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을 다가가, 아버지의 심정을 철저히 헤쳐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혹은 딸로서의 공의의 자체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최후의 그날을 위해서 오늘은 참고 내일을 극복해야 되겠사오며, 오늘의 싸움에서 쓰러져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원수의 총탄에 저희들이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정신을 가다듬어 최후의 전선을 돌파해 넘어 갈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나선 이 걸음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저희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선의 제물이 된 저희의 이 자리처럼 아버지도 이 한 갈림길과 운명길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외롭다 해도 그 이상 외로운 자리가 없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 자신이 가야 할 이 길을 앞에 놓고, 저희 자신이 해야 할 사정을 앞에 놓고, 저희 자신이 싸워야 할 전투를 앞에 두고, 저희들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 아버지, 이날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만인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많은 아들딸들이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터전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여들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날 전체 위에도 당신의 사랑의 손길이 함께하기를 원하오며, 허락하신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여기에 쓰여 있는 `복귀의 산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민족을 책임지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빗길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운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책임진 분야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이니만큼, 거기에 해당하는 시련과 십자가의 고개가 반드시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개인이면 개인에게 그러한 시련기가 있는 것이요,가정이면 가정,혹은 교회면 교회,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가 어느 한때에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고개도 될 수 있고, 하나의 골짜기도 될 수 있는 하나의 관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이러한 최후의 한 고개에 나를 노리는 원수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와 승패를 겨뤄가지고 원수 앞에 내가 망하느냐, 아니면 원수를 내가 물리치느냐 하는 판가리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복귀의 산정'에서 이 복귀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느냐?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중심삼아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는 길과 인간이 가는 길이 언제나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섭리과정에 있어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복귀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그 길이 최고의 산정이라 할 때,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도 최고의 고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 때 그 고개를 다 넘었다고 생각될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을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 제시할 수 있는 한 날과 한 때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한 날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나의 깃발을 꽂고 거기에 승리라는 이름을 다짐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과 시대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복귀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개인이면 개인이 가야 할 고개가 있고, 교회면 교회로서 가야 할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그 고개가 어디에 나타나느냐? 물론 이 교회 전체가 가야 할 세계노정 위에 나타나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내적인 싸움의 고개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이 산정을 넘을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앞으로 다가올 시련과 고통이 겹겹이 달린 그 싸움의 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무난히 돌파해서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제일 근본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체인 것입니다. 이렇듯 어떠한 개체적인 일들이나 혹은 역사적인 어떠한 큰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의 모든 출발의 기점은 개체입니다. 복귀섭리에서는 반드시 어느 한 사람이 지도적인 방향을 잡고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에 아폴로 11호의 월세계 정복이라는 문제를 봐서도 알겠지만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수많은 공장이 가동되고 수십만명의 기술진이 동원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합심하여 결정해서 그 계획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되는 한 사람의 주장과 한 사람의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최후의 기준은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서 여러가지의 논의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가지의 제안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제안된 모든 것을 소화시키고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넘어가야 할 고개가 있게 되는데 그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우리는 복귀의 산정을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이냐?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고개가 크면 클수록 우리 자신들에게는 그 만큼의 내적 준비와 내적 실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남산을 넘는다면, 남산이 아무리 높더라도 저 산을 넘겠다 하는 신념이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질 뿐만아니라 과거에 내가 산을 넘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 산은 문제없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출발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넘어갈 때는 개척의 기준을 가지고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이 처음 가는 길일수록 거기에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심정과 여러가지의 안팎의 기준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해 가지고 그곳에 첫발을 디디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을 것입니다. 지구가 생긴 이래 수십억년 만에 이 역사적인 신비를 개방하는 순간, 그것을 책임진 사람의 그 한 발자국이 그의 생명과 좌우될 수 있는 걸음이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보았습니다. 혹은 라디오나 신문 등 여러 보도매체를 통해서 여러분들은 듣고 보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맨 처음 개척하는 입장에서 그런 산정을 넘을 때에, 지금까지의 상식적인 기준을 가지고 나선다는 것은 무모한 짓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에 잘못되는 날에는 자기의 최후의 운명을 고하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비참한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숱한 시련과 숱한 역경을 거치고, 혹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쌓은 실적과 또한 안팎으로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재료를 갖추어서 넘어야 할 산정이라 할지라도 그 산정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갈지 말지 하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틀림없이 싫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길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6천년의 긴 세월을 수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길을 가기 위해 동원되었지만 전부 다 그 고개를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언제나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육적 세계에서만 어른거리다가 결국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복귀의 산정, 극복해 넘어가야 할 고개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단체면 단체,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의 복귀노정에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크기에 비해 가지고 귀결되는 산정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산정을 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가 후원하고 그 누구 거기에 협력해 주어서 갈 수 있는 길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지도자가 있어 그가 지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좋을는지 모르지만, 따라가더라도 그 길이, 그 고개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입장에 서더라도 최후의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이니만큼 지도자가 지시하는 사항 혹은 그 방향에 행동의 일치점을 갖추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복귀의 산정을 우리가 넘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민족을 앞에 놓고 세계의 복귀라는 고개를 넘는 그 순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로이 피땀을 흘리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세 차례나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이 `아버지의 뜻과 내 뜻'이라는 것이 언제나 승패를 결정지었던 역사적인 분기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복귀의 산정을 넘어가는 데에는 내 뜻과 아버지의 뜻, 내가 가는 길과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 아버지의 관점과 내가 바라보는 관점, 아버지의 걸음걸이와 내가 걸어가는 행보의 모양이 언제나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사가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고개를 넘었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개를 넘어가는 데에는 혼자 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더불어 넘어 가야합니다.
왜 그러냐? 우리가 에덴 동산을 복귀하여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가지만 그 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인간만으로는 안 됩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천국은 인간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합류해야만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원칙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고개를 넘더라도 혼자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고개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언제나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일치점을 가져야 합니다. 점점 그 산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생사의 교차로에서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일치점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치점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냥 자동적으로 마련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고 거기에 일치단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거기에 내 실체를 어떻게 주입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서 노력해야 됩니다. 이런 기점을 어차피 어느 한때에는 마련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자체에서도 어느 한때에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 복귀라는 이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우리는 지금까지 투쟁해 나왔지만, 오늘날 그것이 종반전에 들어섰느냐 하면 아직까지 못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어떠한 산정을 향하여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때에 반드시 그 최후의 기점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 시간을 우리 앞에 초조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대하는 우리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 이상 절박하고 그 이상 초조한 입장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신념이 확고해야만 합니다. 그 확고한 신념을 중심삼아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할 수 있고 거기에 심정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그 고개를 내가 능히 극복해 넘어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고개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고개를 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수인 사탄은 골짜기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산정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산정에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중요한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실 때에는 산정을 중심삼았던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이라든가 감람산 등 종국에 있어선 언제나 산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산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사탄과 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복귀의 운명길이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가야 할 우리 자신들이 여기에 대비할 수 있고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통일교회를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 입장에 서 있는가? 평면적으로 평행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평면 기준에서 내려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평지에 솟은 험한 태산 준령의 산정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그 결론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것이 왜 다르냐?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 각자가 과거의 선조로부터 거쳐온 그 선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선의 결과적인 존재이니만큼 그 결과의 모양은 천태만상인 것입니다. 갑이나 을이나 병,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양은 모두가 같지만,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으로서 말과 생활공간은 같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 지닌 바의 복귀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또는 그 선조들이 쌓은 선의 실적을 놓고 보게 된다면 그 내용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은 현재에 있어서 골짜기를 거쳐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산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7부능선 8부능선 9부능선을 지나 정상을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떤 사람은 제일 먼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뒤의 사람을 따라가고 있는 경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어떠한 산정이 있으면 그 산정을 향하여 골짜기를 거치고 지나가는 그 과정에 있어서 천태만상의 모습과 모양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누구를 따라가야 되느냐?
넘어가야 할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기의 생사를 결정하는, 최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판가리 싸움의 순간이 있을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 고개를 넘는 데 있어서 스스로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아 있을 그 산정을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넘고자 했지만 넘지 못했던 그 고개를 내가 정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만일 거기에 원수가 있다면 일격을 감함으로써 완전한 승리의 기반을 갖추어 가지고 최고의 승리를 하나님 앞에 돌리고 넘어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산을 돌파하는 그 심정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가야 할 그 고개는 산 중턱이 아닙니다. 최고의 산정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그 산정을 오로지 목하고 모두가 후퇴했습니다. 이렇듯 그 최후의 산정에는 우리 전부를 매몰해 버리려 하는 사탄인 원수, 괴수가 잠복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대두되는 문제는, 여러분들이 여기에 대비해서 나갈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방향과 자기 스스로의 내적 준비와 자기 스스로의 방어 태세를 어떻게 갖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평상시에 신앙생활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필코 전체가 통합되어 가지고 하나의 비상시기를 거쳐야 됩니다. 통일교회면 자체에 반드시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데에는 여러분 개체가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 혹은 가정이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 종족이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 민족, 국가, 세계가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자기의 생사문제와 거취문제를 염려하는 자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이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무난히 돌파해서 넘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를 최후에 남은 싸움을 위해 재료를 수습하는 자리요, 훈련하는 자리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여러분이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다가올 최후의 산정의 싸움터를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하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신 것을 좋은 기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기도드린 것에 대해서 그분을 존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그보다도 더 심각한 입장에 계실 하나님의 사연을 듣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입장에 처할 때 `아버지시여, 당신의 사연을 저에게 통보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당한 저의 시련보다도 더 큰 시련을 당하신 아버지 앞에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오니, 제가 거쳐야 할 시련도 시련이지만 당신이 거쳐야 할 시련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제 시련에 첨부시켜 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명령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하는 마음의 기도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딱한 입장을 제시해서 조건을 세우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의 어려운 조건을 제시해 놓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당신이 가야 할 길과 세계를 위하여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저희들이 대신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복귀노정을 회고해 볼 때, 아담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천년의 와중에 있었던 그 모든 역사는 실패한 역사였습니다. 성경상에 나타난 그 모든 역사가 우리의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최고의 승리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실패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꼬리를 좇고 머리를 들면서 이 길을 따라갔고, 몰리니까 할 수 없이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길을 갔던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 걸었던 복귀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복귀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복귀의 산정을 넘어서는데 있어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지난날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눈물을 가지고 넘어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래에 어떠한 산정에서 최후의 결판을 짓기 위해 사탄과 겨루어 기필코 승리하여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원수를 갚겠노라고 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원한을 다 풀어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기필코 찾아드리겠다는 여러분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여러분이 생활하고 있는 그 터전에 있어서 무엇을 가지고 복귀의 산정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 언제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앞으로 여름이면 여름, 겨울이면 겨울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한 40일 전도기간이 역사적인 활동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그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고개를 넘어가야 되겠고 그 누구도 갈수 없는 길도 가야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의 산정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길은 기필코 가야 될 길입니다. 살아생전에 가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은 말로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하늘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주위의 모든 환경이 아무리 즐비하게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다짐하고 넘어가야 할 고개에 있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혹은 그 산정보다 낮은 기준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패배자의 행로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진 사람들은 언제나 심각합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식구의 일원으로서 따라가기에 쉬울는지 모르지만, 책임진 사람들은 전체를 걸어 놓고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 책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승패의 결과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복귀역사를 해 나가십니다. 더욱이 요 며칠 전에 여러분은 보았을 것입니다. 달세계를 정복하는 순간, 전세계를 사람들이 아폴로 우주선에 탄 우주인들이 움직이는 그 하나의 표적을 향하여 한마음 한뜻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는 역사상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상에 그런 예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시대를 개방시켜 준 그 시간은 불과 2시간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세계인이 함께 그 자리에 참석했던 그 순간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240억 불이라는 방대한 돈, 우리 돈으로 따지면 6조원 이상이 막대한 돈, 일본 정부가 자국의 3년 예산을 투입해야만 되는 자금, 그 돈 전부는 그 2시간을 위해서 투자된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승패의 기점은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 역사상 달세계를 탐험하는 데 있어서 가일층 박차를 가하여 실천을 가해 온다 해도 수백년간 개척해 온 역사를 수십년간에 탄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순간을 중심으로 해서 모두가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20세기 근대문명의 총아는 꼭대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패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언제 진짜통일교회 노릇을 해봤느냐 하면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여러분 자신이 통일된 어떤 일을 한번 했던 때가 있었어요? 통일교회는 개인적인 통일교회, 가정적인 통일교회, 혹은 국가적, 세계적 더 나아가서는 우주적인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가 언제일 것이냐?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싸움에 가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를 걸어 놓은 싸움에서는 절대로 남에게 뒤지지 않고 선두에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선봉에 서 가지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입장에서 싸워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천만을 능가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수십억 사람들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준비와 자기 스스로의 연단, 자기 스스로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어떠한 국가적인 경기가 거행될 때 운동 경기장에 가 보게 되면,서로서로 대항하여 싸우고들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 패로 갈리어 승부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두 나라의 국민들의 큰 소리가 어디에 집약되느냐 하면 농구 경기만 그 공 하나에 집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전체의 승리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는 심각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구경삼아 관전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날에 있어서 제일 심각한 사람은 그 경기에 뛰는 사람들이겠지만, 구경하는 사람들도 운동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심정을 갖고 선수 중 한 사람이 경기 중에 넘어지면 전체가 넘어진 것처럼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야말로 일심동체가 되면, 그런 입장에서 싸워 승리한 그 승리는 전체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전 청중의 몸과 마음이 일체화 된다면 비록 최후의 승리의 자리를 향하여 그들과 함께 직접 뛰지는 않았지만, 응원하는 데 있어서 한마음이 된다면, 여기에서 직접 뛴 사람들 이상의 보람과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자가 있을 것이고, 심판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뛰는 무리도 있을 것이고, 혹은 구경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구경하고 있다면 우리는 경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판부의 규칙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범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당하게 자기의 연단된 실력으로 승리의 일로로 달려간다면 갈 때까지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반전에는 승리를 했지만, 후반전에 지게 되면 그것은 말짱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반전에 80퍼센트나 90퍼센트 정도를 승리해 나오다가 후반전 맨 나중 이후에 들어가서 지게 되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심판부의 규범에 해당하는 모든 규범을 스스로 체득하여 그 규범을 어기는 어떠한 조건도 남기지 말고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싸움의 노정이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운동 경기를 한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너무나 한계적입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전체의 분야에서 수습해 가야 합니다. 가는 데 있어서는 그 산정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고개가 있을 것이고, 아시아면 아시아의 고개가 있을 것이고, 세계면 세계의 고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국가가 넘어가야 할 고개를 돌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시아를 거쳐야 할 일선을 어떻게 넘어갈 것이냐? 무엇을 중심해야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을 닦으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직행으로 가는 데는 많은 모험이 따릅니다.
여러분! 250미터 정도 되는 남산이라든가, 조그마한 산을 오르더라도 직행해 올라가는 데에는 사실 고충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넘지 못한 복귀의 길을 넘는 데는 에베레스트산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산을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밧줄을 걸고 45도 혹은 90도를 넘어가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혹은 100도가 넘는 고개도 있을 것이고,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복귀의 산정을 넘어가야만 우리는 개척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살아서 그 산정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넘어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죽으면 그만인데 편하게 살지, 그거 어떻게 살겠나?' 하고 생각하지만 죽는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길은 자기의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영원을 걸어 놓고 가야 할 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최후의 승리의 기점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못났다고 해서 못난 자리에 두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자식은 못났지만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더 높은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어서는 친구라든가 혹은 스승이 제자를 보게 될 때, 못났으면 못난 것으로써 걸맞는 자리에 세우고 싶어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은 입장에, 귀한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못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대해 염려를 적게 해 주신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못난 사람에 대해서 더 큰 염려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력도 없고, 또 안팎으로 봤을 때도 뜻 앞에 보탬이 못 된다고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하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부족한 자리를 거쳐 가지고 복귀의 산정을 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여러분들을 데려다 놓고 95퍼센트의 책임을 지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내일에 남겨진 복귀의 사명이 더 첨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보다 쉬지 말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가 최후에 넘어가야 할 복귀의 산정을 국가면 국가 앞에 제시해야 할 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혹은 아시아면 아시아에 있어서 복귀의 조건을 제시할 때가 있을 것이고, 세계면 세계 앞에 복귀의 조건을 제시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제시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 해서 가정 자체에만 하나의 목적을 두어선 안됩니다. 가정은 전부 국가의 목적이 기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에 속해 있는 개인이 자기만을 위해 사회에서 출세하겠다고 해선 안 됩니다.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출세하겠다고 하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평면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런 사회의 모든 단계를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을 모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제일 문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정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천국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전체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넘어가야 할 통합적인 고개가 틀림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야 할 이 길 앞에 있어서 언제라도 따라가는 입장에 서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자극이 되고 힘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대 앞에서도 여러분이 머리 숙이지 않는 입장에 서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에 내 실력을 보일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바라던 기준을 어느 한때에 종결짓기 위해서 몇 해 전부터 준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가 끝나지 않았기에 쉴 사이 없이 바쁜 것입니다. 낮이 지나고 밤이 지나거나, 세월이 가나 언제나 그 일념은 하나님 앞에 일치된 마음으로서 그것을 개척해 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왔으니, 여러분 각자 각자도 선생님과 같은 길을 따라가야겠습니다. 그러기에 그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에,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여러가지의 훈련기관과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단계적인 복귀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몇개월이면 몇개월, 7년이면 7년 단계를 거쳐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입장이 되지 못하고 막연하게 갑이나 을을 아무렇게나 활동시켜 뒤범벅해 놓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적인 단계를 거쳐서 가야 하는 것이 여러분이 운명길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면 국가의 최후의 고개를 넘어서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전체가 가지고 있는 한의 고개입니다. 여러분은 그 한의 고개를 돌파하는 데에 있어서 예수님이 가지셨던 신념을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책임을 맡아가지고 사탄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복귀의 산정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방에서 싸우던 당신의 자녀들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을 찾아왔사옵니다. 아버지, 이들이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가를 알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이 자리를 찾아 나왔사옵니까? 저희 한 개체의 싸움에서 승리의 기반을 통해 하나의 생명으로 발돋움했지만, 먼저는 천국건설이라는 엄숙한 과제를 택해 놓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냉철하게 반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주위의 환경이문제가 아니라 책임진 자의 자세가 문제인 것을 아옵니다. 하옵기에 예수님도 3년노정을 거치고 최후의 운명의 순간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3차기도와 더불어 아버님과 일치된 사정 가운데 맞이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는 이 서울 도성을 아버지 앞에 복귀시켜 드려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때에 아버님의 심정을 천만분의 일만큼도 생각하지 못하는 저희를 바라보시고 이끌어야 할 당신이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신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이러한 자신의 개체의식을 분석하여 전체와 관계된 자신의 입장에 어떻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부족한 자신임을 깨달아야 되겠사오며, 주위 형제들이 자신보다 낫기를 바라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숨은 실적을 쌓기를 바라는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전체의 뜻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제 서울을 복귀시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그 동안하나의 뜻을 중심해서 서울을 복귀하려 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었던 기간이 있었사온데, 저희들에게는 그 담벽이 너무나 높았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모진 시련의 폭풍에 시달리는 처량한 자리에서 하루살이의 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소모에만 급급해 왔었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공세의 때는 왔사옵니다. 아버님이 수고해 오신 행로로 말미암아 이제는 공세를 취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오니 그 최후의 싸움을 수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을 갖지 못하는 무리가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싸움의 마당에서도 그렇고 또한 승리하고 나서는 백배 혈기 왕성해 가지고 아버지께서 보시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하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중심삼아서 최후의 승리를 향해 주력하는 그 모든 활동 체계가 당신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고, 당신의 행보와 일치될 수 있어, 최후의 싸움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서울을 위주하여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자녀들, 혹은 세계에 널려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가야 할 최후의 운명길을 스스로 재촉하면서 가는 불쌍한 저희들의 모습에, 아버지, 당신은 언제나 긍휼과 동정의 마음을 아낌없이 퍼부어 주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외로울 때에 같이 외로워하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어려울 때에 저희의 어려움에 같이 마음졸이며 염려하시는 아버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의 비참함이 저희 자신의 비참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절감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저희들은 이 3시대를 해원성사해야 할 엄숙한 과제를 책임진 것을 망각할 때가 많사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선지선열들이 영계에서 저희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이 시대의 인간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고, 또한 앞으로의 저희의 후손들이 저희들을 고대하고 있사오니, 이러한 3시대의 운명길을 찾아가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짊어진 역사적인 저희들은 경기장에선 마라톤 선수와 같은 자신들인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기에서 부딪히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저희들은 극복해야 되겠사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라도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최후의 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 고개의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가는 걸음걸이에 시련과 고통이 가중될지라도 그 가중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래야만 그 승리가 세계적으로 빛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옵길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으로 산정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끌고 넘어가야 할 책임진 자들이 얼마나 하나되고, 얼마나 단결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보실 때, 명령하시기에 주저하시지 않고 이끌기에 염려되지 않는 무리가 되어, 높고 높은 산정을 서슴지 않고 넘을 수 있고, 원수의 최후의 십자가를 물리치고 최후의 산정을 돌파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그날을 위해 저희들은 염려하면서 쉬임없이 스스로의 장비를 갖추어서 하루하루에, 한번 맞이한 한 날에 온갖 정력을 다바쳐 천번이라도 싸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날 위에도 아버지께서 함께하여 주옵길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잠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어제 저녁에 구보끼 일본 협회장이 보고한 내용을 들었을 때, 오늘날 일본 통일교회가 상당히 발전한 현실의 그 이면에는 일본 정부와의 관계라든가, 혹은 대 사회 관계라든가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특히 공산당의 문제는 더더욱 심각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일본의 우리 통일교회가 제일선에 서서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측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 때문에, 일본사회의 저명 인사들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의 고위층, 경제인들 대부분이 배후에서 후원의 손길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일본 공산당들은 상당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조직적이요 체계적으로 반박 활동을 하는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본 통일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전반적인 문제를 선생님이 구보끼 협회장에게 지시했습니다. 이 책임을 수행하면서 꺾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이만큼 벌여 놓은 무대 위에서는 이제 생명을 걸어 놓고 싸워야 됩니다. 일본이 현재 아시아의 문제라든가, 국제정세의 전반적인 문제를 중심하고 앞으로 한국과 더불어 해야 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와 신념을 갖고 싸우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보고를 들어서 알겠지만, 일본에서는 10여 년 동안 전국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한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이고 북위 38도선 이북의 북한은 공산주의를 국시로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남북이 일대일로 서로 대립되는 현장이 삼팔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려면 어느 때든지 칼을 빼서 찌를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 처한 일본 통일교인들은 개인 대 개인의 그 사이가 삼팔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 한국 삼팔선에서 일어난 상황보다 더 위험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완충지대를 두고 그 중앙에 한계선을 그어 놓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앙갚음을 하려고 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원리연구회나 교회의 젊은 청년들에게 선생님이 일을 시킨 것은 금후 아시아의 방향이라든가 세계적인 사조를 볼 때, 필시 이런 일을 국가적으로 하지 못하면, 또 어떠한 무리가 희생되더라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작년부터 이 일을 강력히 추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5년 제 1차 세계순회 도중 일본을 거치면서 이런 일들을 명령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방문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아무리 존경하더라도, 그들을 처음 만나 가지고 반공을 하라는 것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어느 누구든지 거리에 나가서 반공이란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가서 그들에게 반공하라고 말했다면 그들에게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때는 반공이념을 중심삼고 출발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그런 사명적인 입장이 안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에 그들이 선생님을 이해했더라면 지금은 이러한 명령을해서 우리가 활동개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일본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 활동 실적을 통해 정부뿐만이 아니라, 전국민이 끌려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서 추앙을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3년 이상의 시간을 놓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해서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감별해 보면, 좌익활동 문제가 제일의 문제로서 반드시 우리가 넘어가야 할 그런 과정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노정에 있어서 어떻게든 다나까상을 잡아야 됩니다. 그 사람이 돈이 있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사람이 현재에 갖고 있는 세력기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은 일본 전국민이 신봉하는 애국자이기 때문입니다. 전범자였던 정계의 수많은 고위층의 사람들이 자기 생명을 위해 비굴한 행동을 하는 입장에 있을 때, 그 혼자만이 그들을 반박했기 때문에 일본 국민에게 신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에 뒤넘이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다나까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되는가? 이것을 몇년 전부터 계획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장과 관계지어서 그를 분석하고 비판도 해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일본에서 일년에 자그마치 삼천억엔에 가까운 자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의 기분만 내키면 몇백, 몇천억의 돈도, 동남아시아 일대의 국가에 후원하는 그러한 실적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금후에 일본에서 통일교회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은 힘의 삼각체제에 들어가 있습니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공산당패들도 있고, 민주세계의 세력도 있습니다. 두 세력이 대립하면 여기에 완충시키는 세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70년대에 들어가 가지고 민주세력을 중심삼은 안보대회니, 공산세력을 중심삼은 해방대회니 하게 되면, 그때에 있어서 일본은 반드시 자주노선으로 돌아갈 것입니다.과거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황을 위주로 하는 정책이 다시금 나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전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국민학교 교과서에 신화를 대입시킨 문제만 보더라도, 이것은 앞으로 원리연구회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 이들과 반드시 부딪힐 것입니다. 언젠가는 부딪히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현시점에서 양면작전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현재 일본의 우익세력에서도 필요로 해야 하고 일본정부에서도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반공사상입니다. 그런데 이 반공사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반공사상을 들고 나오기 때문에, 일본공산당이 버티고 있고 소련과 중공이 버티고 있는 한, 일본은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와 원리연구회를 절대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공산당을 완전히 추방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이 기반은 남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 반공 태세를 지향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러한 기반이 필요한 입장에 있는 일본으로서는 우리 통일교회와 원리연구회를 절대 반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기간 동안 그 기반을 닦아서 전국적인 조직을 강화해야 되겠습니다.
원래는 1966년도에 일본에 가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질질끌면서 여권 발급을 늦게 해 주었기 때문에 일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지 모릅니다. 내 한 개체가 일본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여권이 문제가 아닙니다. 금후의 아시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때, 이것은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기간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기간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1966년도에 일본에 갔더라면, 원리연구회가 이토록 비참한 자리에서 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이러한 실정에 처해 있는 통일교인은 선생님이 지시한 작전을 중심삼고 생명을 내걸고 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우리의 입장은 백주에 벌거벗은 몸으로 원수에게 총칼로 위협당하는 자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구보끼 협회장에게 협박장이 날아오기도 하고, 공갈 협박 전화가 오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그들이 불쌍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을 찾아왔다가 돌아가게 되면 공산당과 대결하는 것도 대결하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 품고 나가야 하는 다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본에 통일교회 식구가 있다 하더라도 의지할 곳은 이 본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의 식구들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명령을 따라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일본 통일교회의 젊은이들 중에는,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거리에서 조롱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여러가지로 지탄받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은 그것으로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보끼, 너 자신도 자신의 생명을 내버릴 수 있는 결의를 해라, 이러이러한 시점에 있으니까 이러한 일들을 전개해 나가라'고 지시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떠나보내고 난 뒤에 선생님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했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본부에 있는 통일식구로서 느껴야 할 것은, 현재 우리의 일선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삼팔선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일선은 바로 일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성을 모아 일본을 위해 기도하면 일본의 우리 젊은 용사들에게 자극이 되어 활동하는데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해야 할 문제요, 한국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의 신자들이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들은 본부를 하늘같이 알고 있습니다. 60년대에 활동한 모든 사실을 중심삼아 그 전통의 인연을 뼛속 깊이 사무치게 느끼며, 자기들이 계승하겠다고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 있는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이번 제 2차7년노정에 있어서 여러분이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들을 보면 전부 빚진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실정을 보고 선생님은 내적으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때는 우리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이제 한판 싸움만 멋지게 넘기면 세계의 운세와 세계의 방향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데도 불구하고 이런 실정이니….
이 한때를 맞이하기 위해 수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우리 민족은 그 대가를치러 왔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한번밖에 없을 이 축복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축복의 때를 맞이하여 하늘의 양자로서 이를 계승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이때를 놓치고 맙니다.
여러분들은 세계의 갈 길을 닦는 세례 요한적인 사명을 띠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좋습니다. 그 말은 싸움은 시작되었으니 종반에 가서 승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인연되어진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 2차 7년노정을 출발하면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7년만 참자' 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주시해 나왔지만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새로운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를 중심으로 체제 개선을 단호히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본부에 소속되어 오래된 사람들은 서울의 10개 지구로 전부 다 재편성했습니다. 전국의 지구본부도 개편했습니다. 그리고 결제부분인 기업체를 분리시켰습니다. 일원화되어 있던것을 이원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편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무엇을 하느냐 하면 재교육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교육문제를 강화해야 할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을 무릅쓰고라도 시급히 교육기관을 설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청년들을 교육시켜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지금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한국 정부의 그 누구에게 통일교회의 현재상황을 통보하며 원조를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정부의 원조를 받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정부의 고위층 인사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위정자들은 제삼자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지 않으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이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내적인 면에서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희진이의 죽음에 대해서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출발할 때, 하나님 앞에 서서 내 마음속에 칼을 꽂고 맹세한 기준이 있습니다. 내가 생명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지금 생명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정을 가진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그애기 앞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 소년의 몸으로 뜻을 위해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자랐습니다.
선생님이 일전에도 말했듯이 이 뜻길을 가는 공식노정에 있어서 제일차로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사람을 찾아서 통일교회 역사에 길이길이 자랑하겠다고 했는데, 그러한 일이 선생님의 가정에서 벌어졌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것을 전통으로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애기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오거든 여러분 가슴에 전통으로 간직하고 눈물을 흘리십시오. 선생님이 동정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이땅에 와서 갖은 치욕을 당했으며, 갖은 시련과 고통도 다 겪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려 했다면 그 누구보다도 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왜정 때 옥중에 갇힌 자식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어머님을 면전에서 박대했던 때를 선생님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느냐? 참다운 인류 앞에 있어서 기념될 수 있고 추앙받을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실현시켜 드리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불효 막심한 행동이었지만 역사는 선생님의 심정을 전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형님도 있고 누나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말씀 한번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선생님은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서 모든 시련과 고통을 달게 받았던 것입니다. 빈민가의 생활에서부터 얻어먹는 일등 모든 일을 해보았습니다.
세계는 지금 최고의 긴장상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우주 정복이라는 목표 밑에서 제 1단계인 달나라를 정복하는 입장에 있는가 하면, 미국의 정책방향이 수정되어 사상적인 문제보다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에 놓여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정세나 일본 정세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전세계는 전부 다 이러한 입장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금년 6월부터 120일간의 기도기간을 정했던 것입니다. 여러분한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금년 8월달을 어떻게 넘길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정성을 들여 나왔습니다. 열 두 시에 잠들면 한 시 혹은 두 시에 일어나 엎드려 기도하면서 날을 세웠습니다.
희진이가 선뜻 전도사업을 나선다고 했기에 선생님은 수많은 우리 통일교회 청년남녀들에게 `민족복귀라는 부과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을 흘려가며 활동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을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감이 이상하여 주의하라고 당부했는데도 결과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우리 교회에 피해가 되고 선생님의 가정에 피해가 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뜻을 위하여 왔으니 뜻을 위하여 깨끗이 잘 갔다는 것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부모 앞에 효도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서 죽음길도 개의치 않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효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죽음을 개의치 않는 것이 충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를 자기자신을 중심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하고 생각하게 되면, 슬픔 같은 것은 다 잊게 되고 도리어 하늘 앞에 감사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셔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나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가정에 그 보다도 더 비참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 피를 토하더라도 이 일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이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가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영웅 열사들이 피를 흘리며 아버지께 어려운 환경을 개척해 달라고, 이곳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피를 흘리는 핍박과정에 있다고 하더라도 천도를 중심삼고 나가는데 있어서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전통으로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에 있어서는 이제부터 희생을 치러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의 현 실정이 그렇고 한국의 현 실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보면, 천주교와 같은 종교단체가 한국에 들어온 것도 어떤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심각한 실정 가운데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서 바라는 것은 오늘날 온 세계가 다 함께 넘어가야 할 이러한 고빗길에서 우리 희진이가 하나님의 긍휼의 은사로 하나의 제물적인 조건으로서 받아질 수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간 길 앞에 여러분이 느낀 마음을 다 모아서 추모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 가정을 두고 볼 때, 그는 예수와 같은 입장이요, 성진이는 아담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렇게 그는 장성기급에 있었기 때문에 제 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배후에 있어서 천적인 섭리의 어떤 귀결점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였고, 일생에 있어서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잊을 수 없는 못자국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거기에 대한 것은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생님 가정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은 그 이상의 어려운 시련이 있다 하더라도 가야 할 이 길을 갈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떠한 사건이나 어떠한 환경을 거칠 적마다 나의 생애를 바쳐 투쟁해 나가는 데에 힘의 원천이됩니다. 즉 어떠한 모진 투쟁의 과정에 있어서도 원수를 멋지게 갚을 수 있는, 내일의 한 날을 위하여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치더라도 선생님은 지칠 수 없습니다. 내 신념이 그렇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수십년 되었다는 사람들을 볼 때 지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당장 처치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늘이 걸어온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타락 이후 6천년동안 원한의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희망의 항구를 향하여 돛을 달고 출항할 수있는 하나의 배를 만들어야 할 입장에 선 오늘날 한국 땅에 있는 우리들이 시간을 재촉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고, 모든 사명을 완결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비판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고 많이 겪어 나왔습니다. 그럴 적마다 선생님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굽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선생님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이러한 사건이 원수 사탄에 대하여 복수할 수 있는 힘의 동기를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이후에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가는데 있어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선생님은 하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통회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잃어버린 이스라엘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가지고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이스라엘을 위해서 울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고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종족과 이 민족의 운명을 걸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희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여러분의 마음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또 내가 여러분에게 늘 통고하는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선생님보다 더 불쌍한 자리에 계시고,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보다도 더 불쌍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하소연도 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하소연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제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선생님의 심정을 하소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고빗길을 갈 때 아무리 지치고 어렵다 하더라도 홀로 묵묵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가득히 남아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러한 환경에서 싸움을 하며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축복가정과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따르는 신자들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신의를 가지고 구원의 목적을 추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들 자신이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교인인가를 다시 한번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시고 따라 나가는 선생님이 가는 그 길은 무가치한 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스승이 가는 길은, 이 스승이 통곡을 하면 하나님이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이 엉클어져 있는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셨는데, 이제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뜻을 이룰 그 한때를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가는 데에 숱한 시련을 겪어 왔습니다. 내 개인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 민족을 볼 때에는 집어치우고 싶고 저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6천년 동안 고빗길을 찾아나오신 슬픈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오늘도 이 민족을 대신해서 또다시 가야 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현시점에 있어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뜻을 아는 사람, 뜻을 위해 태어난 사람, 뜻을 위해서 가야 할 자기 자체로 세워 놓고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여러분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반성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불쌍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한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주시던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수많은 선조들이 뜻을 위하여 죽음의 자리를 가야만 했던 그 한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그럴 수 있는 무대가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것을 책임지겠는가?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것을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선생님이 책임지겠습니다. 내 자신은 이미 하늘 앞에 이것을 책임질 것을 기도하고 나선 몸입니다. 이 책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희생도 치러야 되고, 어떠한 탕감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몸이 부서지는 탕감이라도 달게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는 선생님을 따라오는 여러분이 심각한 입장에 처해 있는 이 민족과 한걸음이라도 보조를 맞춰 주지 않고는, 앞으로 국가와 이 민족에게 참소를 받을 것이고, 후손에게 참소를 받을 것이고, 선조들에게 참소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영계에 가서 여러분의 체면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선생님이 고충을 느끼는 것은 여러분이 체면을 세우지 못한 그 기준을 세우려고 선생님 일생에 걸쳐 기도했던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에 가서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기 전에 오늘 현시점에서 탕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스승의 마음인 것을 알아 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은 미래 세계의 행복을 요구하기 전에 오늘의 시련 무대에서 내일의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는 탕감노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스스로 탕감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탕감시켜 나가는 싸움에 있어서 서슴지 않고 가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설령 그 길이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섭섭하게 생각하면 여러분 자신들이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항상 반성하는 입장에 서서 하늘과 내심적인 인연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아버님, 저희들이 가야 할 운명길에서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아버님만을 중시하고 오늘도 내일도 다짐하고 나가야 할 입장인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통일교회가 얼마나 시련을 받았사옵니까? 그러나 그 시련보다 앞서서 아버님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짓밟히었으며 얼마나 천대를 받고 얼마나 억울함을 당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단은 아직까지 아버님 앞에 설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교단을 지도하는 책임자로서 아버님 앞에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먼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 책임수행에 있어서 이 시대의 책임을 제가 지겠다고 다시 한번 아버지 앞에 다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책임 못할 때에는 그 책임을 부모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본연의 그 뜻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일을 경륜하시는 아버님의 승리의 결실이 사망이 점령한 이 땅 위에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슬픈 심정을 풀어야 할 입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 민족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 앞에 이 민족이 지은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통일교단의 잘못함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통일교인들의 잘못함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부모가 잘못하였더라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치열한 내일의 싸움터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갈 길에 저희들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고, 더 나아가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민족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저희들이 여기에서 탕감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오늘도 내일도 생명을 바쳐 이 길을 가기로 맹세한 몸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용사들이 되어서 기필코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므로 천상세계에서 아버지 앞에 영광을 찬양할 수 있을 때에 가치 있는 용자로, 동참할 수 있는 동지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8월 3일이옵니다. 아버지여, 오늘 일본에 있는 자녀들 중 책임자는 이곳에 왔으나 어린 자녀들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의 그 사연의 배후에는 숱한 탕감의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님이 먼저 그러하셨고 책임자들이 먼저 그러한 대가를 치렀던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은 머리로만 알고 지나쳐 버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여기에 보답할 수 있고 순응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들이요, 참다운 교인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앞길을 아버지 앞에 맡겼사옵니다. 모든 전체의 행로를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식구들 전부가 땅의 미련을 끊고 이버지의 뜻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길로 매진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위에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단이 가는 길 앞에 부딪히는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당신의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저희들이 그 은총을 받아서 민족과 국가를 넘고 세계로 달려나갈 수 있는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통적인 모체를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워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날도 저희들이 추구하고 있는 그 사실 앞에 성실하고 진실된 모습으로서 승리의 실적을 갖추어서 내일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고자 하오니, 그날을 위하여, 해방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엄숙히 달려나갈 줄 아는 선민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선생님의 자녀들을 위해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복귀의 실천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최고의 선물은 죽은 아들딸을 산 아들딸로 찾아드리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을 때는 그냥 먹고 입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먼저 돌려드려야 합니다. 길을 걸을 때도 우편에는 아버지를. 좌편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합니다.
누구에게든 책망하였으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고 수습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선생님은 세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좋은 것만을 생각하지 말라. 선생님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수습해 나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뜻이 망한다고 할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당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리에 구멍이 뚫려 휘청거리면서도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노정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서야 합니다.
대접을 받되 상습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받은 후에는 언제나 눈물로써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위치를 스스로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진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의 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각자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원수 사탄을 무찌르기 위해 나선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일은 적당히 넘어 갈 수 있지만,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안 됩니다.
지금 인정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칼을 칼집에 꽂고 난 후 영광의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식구들이 `우리 지구장은 하나님 혹은 선생님을 위해서 미쳤다' 고 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외적인 일에 관심을 갖는다면 여러분은 내적인 선생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향기로운 심정의 역사를 꾸며 놓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3년 이상 정성들여 모셔 보지 않으면 한이 됩니다. 부부끼리라도 선생님을 모셔야 합니다. 조반석죽(朝飯夕粥)을 먹더라도 모시고 먹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일 아침 경배 후 무엇이고 대접하는 마음으로 다과라도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끼리 큰소리를 내면 그 몇 배의 회개를 해야 합니다. 아내에 대해서 노했거나 자식에 대해서 채찍을 가했으면 사과하고 몇 배의 사랑을 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심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얼마나 실감하며 생활했습니까?
중추신경의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기 바랍니다. 이것을 세계적으로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한국식구들이 외국식구들에게 져서야 되겠습니까?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삼팔선을 넘는 것보다는 쉽지 않겠어요?
전도 못 하겠으면 식구들 집이라도 열심히 왕래해야 합니다.
일은 같이 했더라도 뒤에 숨어야 합니다. 앞에서 판치던 사람들이 망하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나타납니다.
자식들이 `이런 면(面)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야' 혹은 `우리어머니가 제일이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중심과 일체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리워 헛소리를 할 정도가 되면 대번에 영통하고, 병이 들었더라도 다 낫게 됩니다.
집은 헐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고, 자기의 신상 수첩을 후손들에게 남겨줘야 합니다.
하늘과 완전히 하나 되어서 선의 종족을 번식하라. 정성을 열심히 드려 믿음의 자녀를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이고 사위기대의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믿음의 3자녀는 3천사장과 3시대의 아들복귀 그리고 3자녀를 상징합니다.
복귀역사는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자기의 생명을 제물삼아 최후의 승리를 고대하면서 복귀의 길을 갔던 애혼들이 많은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하지 못한 것은 타락된 한의 근거인 원수의 피를 받은 연고였습니다.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쇠사슬에 얽매인 자기 자신인 고로, 원수의 참소와 원수의 계획 가운데서 아니 갈래야 하니 갈 수 없는 절망의 운명으로서 사라진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듯 역사의 슬픔이 남아 있는 사실들을 직시해 보게 될때, 그 슬픔의 한이 남아 있는 복귀의 길에 저희들이 들어선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하루 한 날을 신중하게 맞이하고 내일의 소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전후 좌우 상하에 있어서 조심스럽게 이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되옵니다.
지금까지 원수가 역사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올가미 씌워 희생의 제물로 삼았던 사실이 오늘날 저희 주위에 재현되고 있사옵니다. 이런 환경을 넘어가야 할 책임이 저희들 각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오로지 아버님만을 의지하고 아버님이 남기신 길만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땅 위에서 복귀의 노정을 가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오늘은 1969년 8월 10일이옵니다. 아버지의 역사적인 노정의 모든 슬픔을 제거시켜 버리고 재출발의 8수와 10수를 가동할 수 있는 이날을 맞이하게 될 때, 이날은 저희의 복귀노정에 있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날로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부터 만23년 전, 그 한때에 있어서 역사가 지닌 슬픔의 인연과 더불어 성도들과 저자신이 이 날을 하루빨리 맞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사옵니다.
아버님, 지난날을 회상하는 동시에 오늘의 현실을 다시 한번 비판하게 될 때, 아버님이 바라시는 절박한 심정과 오늘날 저희들이 따라가는 행로와는 너무나 차이가 많은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의 아들된 가치를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바라시던 소망의 기준이 저희 한 개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고, 아버지께서 고대하시는 참된 가치의 모습을 진정 이해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흘러가는 세월을 저희들의 슬픔을 남겨두는 세월로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슬픔이 엇갈리는 자리에서도 아버님을 위하여 전진할 수 있는 심정을 지니고 아버지의 뜻을 부둥켜 안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대상이 되든가, 기쁨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운명권에 들어섰습니다. 이 지루하고 한스러운 한탄의 행로에 들어선 것을 자각하여야 되겠습니다.
그 동안 이 길을 자신하고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낙망과 절망 가운데 빠져 당신을 배반하고 당신 앞에 역적이 되어 사탄에게 다시 접붙였던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을 나서면서 생명을 걸고 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아버지 앞에 자기 스스로 맹세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었습니까? 거듭되는 복귀 행로의 서글픔과 생명의 교차로에서의 적막한 슬픔, 그러한 슬픔의 자리에 설 적마다 자신을 중심삼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알고 있사오니, 이런 내용과 사정을 극복할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의 역사를 엮어 나온 그 슬픔의 행로를 다시 걸어가야 할 통일의 역군들과 대한민국의 슬픈 사정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고 가는데 있어서 길잡이가 되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소망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개인과 단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 자신이 거기에 중심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통일의 무리와 대한민국이 너무나 불쌍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천륜의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엎드린 몸이오니, 그 천륜의 인연을 따라 살고 그 천륜의 인연을 따라 죽기 위한 몸으로서 완전히 아버지 앞에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언제나 슬픈 마음을 억제하시면서 부족한 저희들의 낙망한 모습을 보고 항상 권고하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느껴야 되겠사옵고, 아버지 앞에 진정 필요한 저희 자신이 되어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행여 싸움의 행로에 있어서 저희 자신이 아버지 앞에 슬픔을 남기는 염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날 저희들이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서 원수의 세계 앞에 하늘의 정병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저희 자신들을 놓고 개탄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저희들보다 아버지께서 그러한 자리에 있는 저희들을 보시고 더 슬퍼하신다는 사실이 더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한국과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정성들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이 외로운 자리에 머물지 않게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입장에서 서글픈 마음을 갖고 하늘을 위하고 염려하는 자리에 있사오니, 아버님께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런 자리에 동반하여 주셨듯이 그들에게도 항상 동반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에게 몰리고 몰리는 복귀의 길 앞에서도 당신이 찾으시던 그리움의 모습을 갖추어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하루를 아버지 앞에 전부 바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훌륭한 자식이 모습을 갖추어 청산지어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은 40일노정을 출발하여 그 절반인 20일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남기신뜻에 일치할 수 있는 생활적 기반 위에서 내일의 소망 가운데 굳세게 살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과 같은 실체가 되기 위하여 전진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이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물론이요 전체의 자녀들이 마음 모아 기도하는 것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들 위에 운행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기신 그날을 위하여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가운데서 아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금으로부터 만 23년전 선생님이 공산당에 의해 평양 대동보안서에 잡혀 들어 갔었습니다. 그 당시평양에서는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이 교회를 재건하면서 역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하여 새로이 출발하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을 때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새로운 원리운동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당시 교계에서는 이 민족 앞에 찾아진 해방의 기쁨과 더불어 왜정시대에 압정을 받으면서 슬픈 신앙생활을 해왔던 모든 한을 걷어치우고, 새로운 소망과 희망에 벅차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새로운 혁신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즉 새로운 재건의 불길이 번지는 마당에서 우리통일교회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선생님이 일을 하다 보니 기성교회의 중심되는 신도,혹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소속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선생님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평양에서 문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서문과 가까운 경창리(景昌里)에서 전도를 하며 통일교회의 출발의 터전을 세우던 때였습니다.
동기가 어떻게 되어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느냐? 여러분들 중에서도 복중교에 대해 들어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허호빈씨를 중심한 복중교는 그때의 복귀노정에서 하늘이 이 땅 위에 필히 준비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허호빈씨를 중심한 복중교가 출발하게 될 때까지 3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여기의 1대가 정석온씨의 어머니 되시는 김성도씨입니다. 이분을 중심삼은 하늘의 역사를 거쳐 복중교의 허호빈씨에게 하늘이 직접적인 역사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이 집단에서 무엇을 준비했느냐 하면, 이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맞이할 수 있는 전반적인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데는 우리가 기쁜 자리에서 그를 맞을 수 있는 준비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하늘의 복귀섭리는 현재의 입장만 가지고 준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기에 과거의 승리의 터전 위에 설 수 있는 현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현재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현재가 현재로서 그 위치와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과정에서 하늘이 침범받았던 모든 조건들을 전부 다 제거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실패했던 기준을 현재의 승리의 조건으로 세우지 않고는 현재의 승리의 터전 위에 준비할 수 없는 것이 하늘이 그러한 사명을 되풀이해서 준비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교는 오시는 주님을 위하여 내적으로 준비하는 집단이었습니다. 슬픔 가운데 돌아가신 주님이셨기 때문에, 그 가신 주님의 모든 슬픈 사정을 이 땅 위에서 해결짓지 않고는 소망과 기쁨을 가져오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사연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하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연을 책임분담시켜 복귀섭리의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이면 한국을 중심삼고 중심적인 책임자를 세우기 전에 그 주위에서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역사를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외적인 준비가 어느 정도의 기준에까지 도달함에 따라 내적 중심을 세워 가지고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에 있어서 외적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인 입장에서 갖추어져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심은 어디까지나 옛날에 왔다 갔던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하고 있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터전을 넓혀 나왔고 세계적인 외적 기준을 닦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외적 기준과 중심이 어느 한때 일치가 되느냐? 이것이 아직까지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와 성신을 중심삼고 역사해 나왔지만, 하늘의 내적인 복귀섭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내적 기준에 입각한 터전을 넓힌 것이 아니라 외적 기반을 닦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왔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본래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 위에 서지 못한 것입니다. 승리의 터전 위에 서기위해서는 내적인 기준을 새로이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오늘날 기독교가 엮어 나온 외적 역사를 반드시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는 상속하는 순서로 볼 때, 반드시 부녀자들이 이일을 중심삼고 상속의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역사는 안팎으로 여자들을 중심삼고 섭리의 출발을 했었지만, 여자들은 뜻이 어떻게 되며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전체의 모든 결정적 책임은 여자들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할 수 없느냐? 그것은 여자인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담이 실패한 모든 내용을 다시 수습하고 새로운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입장에서 오시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안팎의 모든 내용을 수습하고 승리의 기준을 닦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정적인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 즉 제3차 아담격으로 오시는 주님만이 해결지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그 앞에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려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입장이었지 주체적 입장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인 중심은 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세계적인 사명을 내적으로 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닦은 것이 바로 복중교입니다. 이 복중교가 나오기 전에 김성도씨를 중심삼고 평안북도 철산에서 주님을 맞기 위한 역사가 먼저 벌어졌던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탕감복귀의 노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기점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의 출발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 견해요, 복귀섭리의 원칙적 기준입니다. 그런 기준을 세우려면 한국 강토면 한국강토의 제한된 한계권내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제단과 같은 입장에 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될 수 있는 탕감의 내용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책임지고 나온 시대적인 선각자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복중교를 지도하고 있던 허호빈씨입니다. 이 부인이 뜻을 인계받기까지의 내용과 역사는 상당히 길지만 생략하겠습니다.
허호빈씨가 계시를 받게 될 때는 언제나 몸에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외적인 자극을 통한 움직임이 있는 후 반드시 영계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 계시가 허호빈씨의 배를 통하여 전달됐기 때문에 그 집단을 복중교라고 한 것입니다. 복중교라는 이름은 자기 집단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그때에 소문으로 만들어진 명사입니다.
그들이 계시를 받고 그동안 무엇을 준비해 나왔느냐? 그들은 새로운 역사시대에 하나의 중심존재가 나타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때는 기쁜 때이기 때문에 기쁜 역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엮어나온 슬픈 역사를 어느 한때에 완전히 청산짓고 자기들이 승리했다는 날을 맞기 전에는 기쁜 출발을 못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어떠한 장군이 있다면, 그 장군이 기쁜 날을 맞기 위해서는 패했던 서글픈 과거를 모두 청산지을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맞아야 합니다. 승리의 한 날을 맞기 전에는 그 나라와 민족 앞에 기쁜 날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이기 때문에 오실 그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역사과정의 슬펐던 날을 전부 제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선각자로서 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중대한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예수님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모든 내용을 재현시켜 그 당대에 탕감시키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면서부터 30여년의 생애를 지내기까지 세상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슬픈 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홀로 느끼신 고독함과 억울함과 비참함은,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도 모르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참한 사연을 품고 가셨던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시켜 그 당대에 하지 못했던 것을 전부 탕감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섭리의 입장을 중심삼고 준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요셉 가정의 모든 슬픈 사연을 중심삼고 복중교인들에게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시는 주님이 한 살부터 30세까지 사흘에 한 번씩 갈아 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심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 앞에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사명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복중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의 승리적 입장을 재생하여 그 일을 다시 추진시켰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정성들였던 그 정성의 정도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정성들이는 데는 양식으로부터 한식까지 전반적인 의식을 중심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30여년 동안 뜻을 품고하지 못하였던 모든 한맺힌 내용을 그들이 전부다 해원성사해야 할 입장에서 탕감역사를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감옥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영계로부터 일본이 망할 날짜까지 받고서 `일본 천황은 망한다. 일본은 꼭 망한다' 라고 외치며, 감옥의 쇠사슬에 매여 있으면서도 생명을 내걸고 싸우는 모습을 지녔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시대의 주권 앞에서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철창에 갇힌 영어의 몸이 되었다 할지라도, 시대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일심으로 하나님이 남기신 복귀의 뜻만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들은 왜정 때부터 그런 싸움을 거듭하면서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이 땅 위에 자기들이 소망하던 주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고 김일성이 새로운 공산당 정권을 세우게 되자 그때부터 그들은 공산당 앞에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종교라는 미명을 내세워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수많은 대중을 착취했다는 죄목을 그들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입니다.
1946년 6월, 공산당은 북한 전역에 있어서 새로운 종교 단체에 대한 탄압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에 유사한 단체가 있으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경창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왜 남한에 있다가 이북으로 갔느냐? 그 당시 한국의 신앙의 중심지가 평양이었고, 또 거기에서 그때까지 역사적인 신앙의 모든 투쟁이 엮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늘이 준비해 놓은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북에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8월 11일에 공산당에 의해 대동보안서에 잡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허호빈이라는 분은 일평생동안 모든 정성을 다 들여서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의 역사를 보게 되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종교인을 원수와 같이 취급하는 공산당의 압제하에서 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기들의 신앙심을 지켜 나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 고문받은 내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그들이 모시 적삼을 입은 그 위에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그 옷에 온통 구멍이 뚫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절을 수십번이나 하고 그의 동생은 고문에 못견디어 죽어 갔습니다. 그 전체의 책임자들 40여명도 투옥되어 가지고 비참한 가운데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입장에서 같은 단체취급을 받아 가지고 투옥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그때 수사를 담당했던 흥이라는 사람과 그 일 전체를 책임지고 지도하던 박찬정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도 어느 한때가 되면 다 만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원한이 맺혀 있는 통일교회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초창기 핍박받던 당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때부터의 통일교회는 알지만 들어오기 전의 내용은 모르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언제나 그렇게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들어오는 통일교인들은 과거의 통일교회를 모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적인 문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자기들이 맞이하는 현실은 반드시 과거에 닦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닦아진 터전을 현실무대에서 어떻게 바꿔치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역사적인 어떠한 전체를 대신한 책임자나 현재에 개체의 행로를 걸어가는 현실의 책임자나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오늘부터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기쁨을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을 추억해 보고 회상하여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습니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그리고 모세와 예수시대를 거쳐 가지고 오늘까지 나온 기독교 역사에서 피를 흘린 수많은 순교열사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었던가? 그들은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승리의 한 날을 어떻게 거두어들이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요 사명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과거가 오늘날 우리 자체를 중심삼고 또는 미래 역사의 시점을 놓고 무엇을 요구할 것이야? 물론 승리를 요구할 것이며 승리를 추구할 것입니다.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한 것입니다.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희생되었던 순교열사들의 억울함을 완전히 제거시켜 버리고, 그 순교열사들이 책임져 나오면서 소망하였던 이상의 결과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원성취할 수있는 이 한 날을 맞아들이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가 기쁜 날로서 어는 한 날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슬픈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과거를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하늘의 슬픔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되어진 사실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역사는 망각해버릴 수 있는 역사가 아닙니다.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슬픈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픈 사실 가운데 눈물로 뿌려진 슬픈 사연들을 거두어야 됩니다. 어떻게 거두느냐? 슬픈 역사이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픈 사실을 재현시켜서 과거의 슬픔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한 날, 즉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추억과 회상은 막연한 추억이 아니요, 막연한 회상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추억과 회상을 현실에 재현시켜 가지고 그들이 바라던 이상의 승리를 오늘 내 일신에서부터 결정지어 놓아야 합니다. 밖으로는 몸에서부터, 내적으로는 마음으로부터 절감하면서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에서 승리를 결정지어 놓아야 할 것이 복귀의 운명길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이런 책임을 하늘로부터 분부받게 될 때, 적당한 시기에 벌어지는 그 환경을 내 것으로 인계받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적당한 싸움이 아니라 결사적인 싸움입니다. 갖추어진 때를 상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내적인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에 갖추어 놓는 일을 해 나와야 됩니다. 그런고로 그들에 대한 추억과 회상은 현실적인 추억이요 회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문제 또는 얽혀진 사정이 종족인 면에서 심정적인 문제와 일치되어야 하고, 횡적인 면에서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가 하나 되지 못하여 역사적인 침범을 사탄에게 당하게 된 모든 슬픔의 내용을 다시 여기에 연결시켜 재현해야 됩니다.
종족 기준이 일치되어야만 하늘이 여기에 임할 수 있고, 또한 왔다 간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베드로, 야고보 등 12사도들과 그때의 모든 교법사 제사장들이 책임하지 못하였던 그 현실적인 기준을 오늘날 하나의 책임자를 중심삼고 내적 기준의 결정과 더불어 외적 기준을 여기에 확보시켜 놓지 않고는 탕감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과거의 슬펐던 자리로 기필코 끌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책임진 사람이 과거의 슬펐던 사실을 탕감시켜 가지고 승리하지 않고는 기쁜 순간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은 과거 이상의 비참한 자리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서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승리의 한 순간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선각자들의 입장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난날 역사과정에 책임진 사람들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러한 문제가 재등장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통일교회의 현실적인 기준만을 중심삼고는 통일교회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 들어온 사람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슬픔을 현실적인 무대에서 재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기쁨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선조들이 수고한 결과와 숭고한 기상을 찬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그 시대에 바라보고 수고한 희생의 대가로 오늘날과 같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아 선조들이 해원성사하기를 바란다면, 영적 세계의 인연을 연결시켜서 현실적 무대에 일치화시키는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 오늘날 여러분들이 개척해 나가는 복귀의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억은 회상적인 추억이 아니라 현실적인 추억이어야 합니다. 현실적인 추억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회상은 다각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회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섭리적인 모든 문제들을 현실적 감정으로 재현시켜 가지고 이것을 자기스스로 자가의 입장과 결부시키는 사람은, 오늘날 역사적인 전통으로 남겨진 세계적인 복귀의 기반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승리한 터전을 현재의 자가가 체휼해서 결정지을 수 있는 한 날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산 자로서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을 40일 전도니 무엇이니 하면서 개척자의 길로 내몰아치는 것은 이러한 문제에 당면해 봄으로써 일치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복귀역사의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이 외로운 자리에서 실패로 끝난 것이 하나님의 원한이 되었기 때문에, 승리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옛날 외롭고 비참하였던 그 이상의 기준까지 몰아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시대가 지나면 국가적 시대가 올 것이요, 국가적 시대가 지나면 세계적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처럼 발전해 나가는 더 큰 무대가 우리 앞에 다가옴에 따라 하늘은 거기에 상대될 수 있는 시련과 비참의 내용을 반드시 제시해 놓고 현실적인 문제를 탕감시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아무도 없는 외로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심정적으로 받들고 모셔 드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배척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배척하는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천적인 사명을 탕감시켜 주어야 합니다. 선조들의 고독하고 처량하고 슬펐던 상연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복귀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들어온 지 10년이 넘게 되고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면 될수록 어떻게 되느냐?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데는 반드시 과거를 중심삼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텐데, 과거를 망각해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국민성인 것입니다.
한 나라에 있어서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그 나라의 의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예법이나 전통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즉 생활적인 기반이 된 역사적인 내용을 어떻게 상속받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남겨진 모든 전통을 상속받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승리의 모든 조건들을 세워야 합니다. 그 승리의 조건을 스스로 먼저 행하여야 사회에서 출세도 할 수 있고 그 사회의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어떠한 단체의 책임자면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망각해 버리고 미래를 꿈꾼다면 그것은 망상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망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산중의 절에서 수도를 하고 혹은 교회에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도의 세계가 올 것이고, 도의목적이 이루어질 때가 올 것이라고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그렇게 앉아서 정성만 들여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종적인 내적 기반은 세울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횡적 기반은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안팎으로 엇갈린 문제를 오늘날 우리 일신에서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 즉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의 과거는 통일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과거의 여러분과 통일교회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 과거는 어떠한 과거냐 하면 자기 역대의 선조들로부터 죄를 이어 나오던 원한의 모든 인연을 내포한 과거였습니다.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고 영광의 자리에서 찬양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참부모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선조들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복귀섭리역사를 중심삼고 보아도 그런데, 여러분 개인이 겪어 온 역사적인 모든 섭리는 어떻겠어요?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냐? 통일교회에 인연되기 전까지는 슬픔의 한이 남겨진 역사과정에 설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쁜 자리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온 그 순간에서부터 은혜를 받아 좋아합니다.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 그것은 과거를 청산짓기 위해서요, 미래를 상속시키기 위해서요, 또 과거를 상속시키기 위한 입장에서 그것을 받아 가지고 주관하고 또 그것을 움직여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연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기쁨으로 끝나가지고 이것이 자기를 중심삼은 기쁨으로 열매 맺을 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그것입니다. 그 기쁨은 과거로부터 엮어온 한때의 기쁨이요, 현실적인 세계를 대표해 책임할 수 있는 기준에 세우기 위한 하나의 기쁨이요, 미래의 출발을 가져오기 위한 하나의 기쁨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개별적으로 나타난 기쁨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분야가 첨부된 사연을 품고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후퇴한 사람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기뻐했기에 전부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기쁨을 찾아 나갈 현실로부터 내일을 흠모하다가 전부 다 떨어져 나갔으니 과거를 회생시키는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 개인이 그러해야 되고, 오늘의 가정이 그러해야 되고, 통일교단이 그러해야 되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이 있으니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그러한 책임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대한민국 자체가 시련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시련을 겪게 되고, 대한민국의 교회가 시련을 겪게 되고, 대한민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시련을 겪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시련과정의 절박한 생사의 교차로권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래로는 백성들로부터 위로는 위정자와 국가를 지도하는 최고 책임자까지 일심동체가 되어 과거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를 상속하려면 반드시 과거의 슬픔을 완전히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슬픔이 있었다는 것은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이 승리는 과거에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무대에 연결시켜야 하는 승리입니다.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여기에는 혁신적인 새로운 운동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새로운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재현될 수 있는 지점은 과거의 부활이요, 현실의 출발이요, 미래의 기원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입각한 여러분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 민족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를 세우고 계획하시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왜 우리가 3시대의 책임을 느끼고 과거를 회상해 가지고 승리의 결정을 다짐해야 되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이 지상생활에서 전부 다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아직까지 목적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반드시 지상에 재림해서 승리하지 못한 한의 조건을 탕감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풀어 주어야 하느냐? 여러분들이 풀어주어야 합니다. 오늘 통일교회의 원리적 견해로 보면 그들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이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영인들이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통일교인에게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굴복하기 위해서는 상속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인보다 더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선조들이 지나왔던 그 기준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 첫째는 영계를 책임져야 되고, 둘째는 세계를 책임져야 하고, 셋째는 후손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복귀의 길이요, 통일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얼마나 영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느냐? 여러분은 영계의 애혼들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도 없이 죽었습니다. 친척과 가정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고독한 혈혈단신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자리에 있어서 남편이 가면 아내가 반대했고, 아들이 가면 아버지가 반대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가면 아들이 반대했습니다. 혈통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가정의 형태라든가 상대적 인연을 가지고 이 뜻길을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이 이 한 시대를 기준삼고 그러한 애혼들의 한을 지상에서 대신 풀어 줘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현실적인 시야에 보여진 어려운 무대에서 자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의 해원성사라는 관점에서 여러분의 행동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이 행동을 잘못하게 되면 천추에 한을 남기게 되고, 몇 배 가중된 탕감의 내용을 지상에 남겨 놓고 가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핍박과 시련과 고통의 길이 하늘의 복귀섭리 가운데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가인은 반드시 아벨을 통하여야 합니다. 가인은 형이요 아벨은 동생이지만, 가인은 동생인 아벨을 통해서 탕감하여야 됩니다.그러면 어디에서 탕감해야 되느냐? 현재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그 탕감은 미래 보다는 과거를 위해서 탕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3시대의 운명길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자리를 심정적으로 체휼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복귀의 행로를 갈 수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걸어온 역사를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현재로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서 남아지기 때문에, 현재의 자기가 여기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통일교회의 심정적 인연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과거의 내용을 중심삼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나오게 되었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이스라엘 국가 때문에 그렇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낼 때까지 4천년 동안 무엇 때문에 싸워 나오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싸우신 것입니다. 국가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원한에 맺혀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를 어떻게 복귀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현실적인 무대에서 과거의 탕감의 내용을 짊어지고 출발한 것이 통일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시대까지 4천년 동안 종적으로 내려왔던 수많은 선조들의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이 나라, 이 민족을 통해서 통합시켜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통합하여 거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출발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10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그러한 출발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도를 닦고, 정성을 많이 들였다 하더라도 이러한 원칙에 맞추어서 가야 됩니다.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력으로는 이 길을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간다 해도 중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협조해 주지 않고는 이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추억과 회상이라는 명사가 왜 필요하냐? 이것은 현시점에서 생활적인 감정을 중심삼고 과거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 자기자신이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결코 그러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탕감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차피 이런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다간 역사적인 중심인물들이 감옥에도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런 쇠사슬에 매이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새로운 뜻을 중심삼고 생명을 걸고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을 가는데 대한민국 전체가 반대했고 수많은 교단이 반대했으며 잡도(雜道)까지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그들이 전부 반대한 것이 이제는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승리해서 그들을 굴복시키느냐? 총칼로써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계를 완전히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현실적 과정에서 개인과 관계를 맺고, 가정과 관계를 맺고, 종족과 민족의 기준에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횡적 기반이 닦아지게 될 때, 국가적인 승리의 기대는 자동적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나는 3시대를 거쳐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과거는 아담형이요, 현재는 예수형이요, 미래는 재림주형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역사도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고 재림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1차 아담, 2차아담, 3차 아담입니다. 그런데 1차에서 실패하고 2차에서 실패했으니 3차는 성공해야 합니다. 첫번째, 두번째에 안 되었으면 세번째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왜 그런 과거 현재 미래가 나오느냐? 어느때 어디에서부터 나오느냐? 야곱이나 혹은 모세같은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과거 현재 미래가 안 나옵니다. 그런 과거가 생겨나게 된 것은 부모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미래도 부모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행복의 터전을 그때 못 가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과거 현재 미래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은 어디서부터 생겨났느냐? 그 말이 생겨난 것은 부모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현재라는 명사도 부모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와 미래는 참부모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통일교회는 가정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부모를 중심한 새로운 가정입니다. 새로운 가정제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아들딸들은 과거를 청산짓고 나서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각자의 혈통적 내용이 다르고 배후가 다를지라도 부모와 닮기 위해서는 접붙이는 역사를 해야 합니다. 뒤넘이쳐서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접붙이려면 여러분 자체에 남아진 탕감노정을 다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부모를 통해서 청산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에게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부모를 찾아나오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에 신랑 신부니, 어린양 잔치니 하는 것도 모두 부모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역사를 해 나오느냐? 지금까지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전부 개인구원을 중심삼고 나왔기때문에 가정 구원은 말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구원의 도리도 개인이 구원을 얻어야 된다고 했지, 부부가 구원을 얻어야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이 구원을 얻어야 된다는 말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부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통일교회는 이런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전통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탕감시키는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밖으로 나가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는 데는 밖으로 나가서 탕감해 들어와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도기간입니다. 예수님도 집을 나가서 제자들을 중심삼고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며 민족 복귀를 위한 역사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3년 동안은 집을 나가서 탕감해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나가서 천대를 받더라도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돈을 가지고 가서도 안 되고, 옷을 가지고 가서도 안 됩니다. 오직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그리하여 나의 과거가 산 과거가 되고 현재가 하나님과 일치되어서 미래에 통일교회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아들딸들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탕감복귀과정에 있어서는 자기 마음대로 자유로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함부로 옷을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영계에 있는 영인들이 전후 좌우 상하에서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부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에 왔다간 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제 2차의 책임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결국 자기의 조상이 누구냐 하면 아담이요, 또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재림형인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볼 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셋이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림형은 아담 해와가 실패한 것을 복귀해야 하고, 예수가 실패한 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복귀하지 않고는 재림역사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대에서도 여러분의 조상은 아담 해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 2차적인 조상, 즉 아벨적인 조상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재림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를 중심삼고 탕감해야 되느냐? 지금까지의 기독교역사가 세워 놓은 전통의 기준을 중심삼고 일치화시켜서 승리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재림주를 맞이할 수 있는 승리의 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런 3시대에서 있습니다.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가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가 앞으로 기울어져도 안 되고 자빠져도 안 됩니다. 반드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중심삼고 일치된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사연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기에서 자기의 새로운 활동무대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보면 `나는 교회에 들어온지 10년됐다' 하면서 자기의 연륜을 자랑하곤 하는데, 하늘의 섭리역사가 10년 만에 끝나는 것입니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해지지 않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발전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적용 안 될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원칙과 법도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공고화시켜서 과거의 역사를 거쳐간 선배들이 남긴 전통을 상속받는 사람들은, 그때의 역사를 거쳐 남아진 사람 앞에 추대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솔직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이 어차피 복귀의 길을 가야 하기때문에, 어떠한 환경을 제쳐 놓고라도 이 길을 가야 하는 공식적인 내용에 있어서 여러분이 실체화될 수 있는 생활적인 감정을 현실 무대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여러분이 짊어졌기 때문에 그 책임을 수행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 전체의 지대한 문제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걸어온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처해 있는 현장을 여러분의 현장으로, 선생님이 바라는 미래를 여러분의 미래로 대치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오늘날 하늘의 운세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상황이 하나에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가 오늘 나에게 있어서 엉클어져야 할 섭리의 인연인 것을 알고, 남아진 복귀의 길 앞에 어떠한 어려운 곳이냐 혹은 기쁜 자리에서도 스스로 걸어온 기점을 망각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 각처에서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곳을 바라보며 흠모하는 무리들이 있사오니, 그들이 아버지와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과거의 추억을 회상해 보게 될 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길에 저희들을 내몰아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던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과거를 짊어지고 현재와 미래를 뒤넘이쳐 나오는 입장에 서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늘진 과거를 청산짓고 현실에서 새로운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광명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시점을 알고, 아버지의 사정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당신의 이름을 가지고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손길이 항상 같이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일본에서 왔던 당신의 세 아들딸이 오늘 돌아가겠사오니, 이들이 가는 길 위에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제 이들이 일본에 돌아가 남아진 싸움터에서 역사가 엮어온 모든 슬픔의 문제를 책임지고 현실과 미래에 이것을 남겨주기 위하여 온갖 싸움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입장에 섰사오니,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이 전체를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과 남아진 그 세계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아버지 앞에 나타내어 자기로 말미암아 더욱더 민족의 수치를 드러내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민족과 세계의 복귀섭리가 저희들로 말미암아 줄어들고, 나아가 저희가 아버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겨진 복귀의 길을 다시 갈 것을 저희들이 다짐하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아침을 맞이하여 저희들이 마음 모아 아버지 존전에 모였사옵니다.
아버지, 벌써 8월 중순을 넘겼습니다. 섭리의 뜻을 대하여 나오는 저희들이 지난날 뜻 앞에 얼마나 충성을 했는가를 알 길이 없사옵니다. 이 뜻길을 따라 나오는 저희들에게 이 한 해에 맡겨 주신 책임과 사명을 다 할 것을 다짐하오니, 저희들 아버지앞에 가일층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을 온 천지에 내려 주시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고국산천을 그리워하고 무한한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부르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고대하는 정성이 크면 클수록 당신께서 그들과 저희들 사이에 사랑의 인연이 엮어지게 하여 주시옵고, 땅을 대한 복귀섭리의 뜻이 깊은 심정을 통하여 두터워지도록 함께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현재 저희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의 모든 정세를 수습하고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와 같은 중대한 시점에 있는 저희들이 강하고 담대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목적을 향하여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오늘의 생활을 개척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도 저희들이 사명을 감당함으로 해원성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사명을 놓고 아버지께서 협조하고 계시며, 아버지의 기대하심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다같이 협력하여 승리의 한날을 결정지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 새로이 느껴지는 것은 이땅 위에 왔다 간 선한 영인들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에 영계에서 이날을 기념하는 뭇영인들에게도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의 사람들이 영계에 간 영인들과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고, 지금까지 흑암의 기로에 있었던 저희들이 영계에 있는 영인들과 협력하여 이 땅 위에서 아버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책임을 완결짓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한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과같이 이 땅에 와서 뜻을 알고 간 수많은 영인들이 있사옵니다. 이제 그들을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 땅과 연결시키시어서 그들이 영계의 중심이 되어 당신의 뜻 앞에 도움이 되고 당신의 뜻 앞에 승리를 가져 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이날을 맞이하여 이 시간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전체를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뜻하신 바를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복귀의 길을 저희들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한 사람이 맡겨진 바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민족과 국가와 세계전체가 책임을 못하게 되는 것인 줄 아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책임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세계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이 중차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한 섭리적인 사명을 완수해야 할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이 땅 위에 있는 통일교회의 모든 자녀들이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전부가 하늘과 땅을 연결지을 수 있는 공고한 기반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을 위해 협조하고 뜻을 위해 움직이는 전부가 자기 개인을 위한 길이 아니옵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위하고 나아가 아버지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명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인간들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 땅은 지나가는 행로요, 이 땅에서의 일생은 하나의 강을 건너가는 것과 같은 순간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기간에 저희들이 갖추어야 할 모든 예물을 갖추고 쉬지 않고 노력하여 완벽을 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영계에 가서 조건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전체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을 위하여 가일층 저희들이 마음을 다해 하루 하루의 생활을 공고히 하고 생활 가운데에서도 아버님을 모시고 내일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생활기준을 각자가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뜻 앞에 가일층 충성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시간에 저희들 마음을 한데 묶어 바치옵니다. 당신의 풍성한 사랑의 은사로 이날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남은 이 해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제까지 좌우가 분열되어 싸우고 있던 역사적인 모든 슬픈 곡절이 교체되는이 시대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통일의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바로잡고 안팎의 모든 장비를 갖추어서 승리의 정점을 향하여 출발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내가 갖추고 있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루의 모든 생활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런 생활 가운데에서 태어나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들은 `오늘은 재수가 있다` 혹은 `재수가 없다' 라는 말들을 합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우연지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소질이라든가 일생 동안 어떤 목적을 바라 나가는 전반적인 사정에 있어서 전체 목적에 연결되는 것으로서 느끼는 감정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물도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목적이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각기 어떠한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과정적, 즉 시간적 거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 기간은 하루를 두고, 혹은 일년, 삼년, 혹은 자기일생을 통하여 나아갑니다. 예를 들어서, 국가를 두고 볼 때 국가는 수세기, 수천년의 역사를 두고 그 하나의 목적인 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자기들이 존재하기 위한 목적의 기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두고 보면, 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소년시대는 청년시대와 다르고, 청년시대는 장년시대와 다르고, 장년시대는 노년시대와 다릅니다. 또한 그 시대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들에게 맞는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년시대에 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청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고, 청년 시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장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장년시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노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도 각 시대 시대에 주어진 그 사명을 다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후대, 다시 말하면 앞으로 다가오는 목적기준을 이루는 데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역사를 두고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대한민국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과 협조하기 위한 분담된 목적으로서 책임을 지는 만큼 대한민국 자체의 목적을 완수함과 더불어 세계의 목적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복귀섭리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귀섭리역사 가운데에도, 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또 하루를 두고 보아도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침은 아침에 해당하는 준비를 갖추어야 되는 것이요, 낮은 낮으로서, 저녁은 저녁으로서, 밤은 밤으로서, 그 시간권내에 분담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이 땅을 복귀해 나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원리를 보게 되면, 복귀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의 전체 분야에서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로 갈라지듯이, 오늘날 우리 생애노정에도 이러한 원칙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뜻을 대하여, 통일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스스로가 소생기냐, 장성기냐, 완성기냐 하는 때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을 몰라 가지고는 자기 목적을 위해 준비하고, 그 목적을 향하여 나가야 할 주체적인 사명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의 천품이 다르니만큼 일생을 살아가는 각자의 목적도 다릅니다. 개인이 가진 성품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개체적인 목적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은 개체의 목적이 있는데 그 개체의 목적은 전체의 목적과 연결되어야 됩니다. 전체의 목적과 연결되어야만 그 사람이 전체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는데 있어서 때나 운세와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하는데 있어서 자기 개체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도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지금까지 교육이나 도덕이 지향해 나오는 표준인 것입니다. 따라서 개체를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를 위하여야 할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적이라는 것은 하나가 아닌 전체를 대표한 것입니다. 전체라는 관점에서 공적인 문제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체가 하는 일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라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없고 전체가 살고 있는 환경 가운데서 자기가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체가 전체를 중심삼고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수직으로 서서 전체 앞에 기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45도나 60도로 각도가 벌어지게 되면 그 각도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 공적인 것에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야 된다` 혹은 `곧게 살아야 된다' 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산에 있는 나무를 보고 `저 나무는 똑바르다' 하는 것은 내가 보는 입장에서 똑바르다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뜻은 땅과 환경을 중심삼은 그 터전을 중심삼고 보았을 때 90도 각도로 자라게 되면 그 나무는 똑바르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 되느냐 하면 자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기준, 자연적인 기준은 순리나 천리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바르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는 모르고 있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러한 원칙에 의해 `바르다' 혹은 `그르다' 하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내 자체목적을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목적을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따라서 전체의 목적 앞에 개체의 목적은 언제나 그 방향성을 맞춰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일생을 걸어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가 타고난 목적이 천지의 방향과 평행선이 되어 나가는 사람은 기필코 천운과 더불어 영원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만일 부딪히는 날에는 개체의 운은 천운에 깔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백성이면 대한민국의 운세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더욱이 우리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운세와 더불어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입장에 있는 천운이나 혹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평행선을 그어나가야 할 중간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이 나라면 이나라의 백성으로서 시대적인 현상이나 환경에 일치되는 사회생활을 하는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복귀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은 천운을 중심삼고 대한민국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또한 대한민국도 천운을 중심삼고 평행선을 걸어가야 됩니다. 또한 우리도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평행선에 서서 가야 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천운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한 백성만을 위한 길을 간다면 언젠가는 천운과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릇된 것은 깨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국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국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국가의 목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 역사적인 운세와 하등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민족이나 국가는 반드시 후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어떻게 하면 천운과 더불어 평행되게 운행할 수 있을 것이냐? 천지의 운세 앞에 대한민국의 법을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 정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도 어떤 국가든지 자국을 중심삼고 자국의 이념만을 향하여 나가게 되면 절대로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이면 미국이 지금까지 세워 나온 미국자체의 정책으로서 세계의 운세를 좌우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소련도 자체적인 이념으로 세계의 운세를 좌우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운을 중심삼고 평행선을 그리는 민족이 되면 이 민족은 기필코 세계적인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가는 방향이 이 세계의 운세와 영원히 일치되면 그 민족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의 운세나 지구의 운세, 혹은 하늘의 운세 자체가 커다란 대우주의 법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도 지구 자체가 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계의 한 유성으로서 모든 힘을 균형을 취하여 공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궤도를 벗어나게 되면 우주의 파탄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돌기 위해서는 그 궤도가 언제나 이 우주의 운동법칙에 해당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를 취하여 보조를 맞추어야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운세 앞에 국가면 국가 자체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의 운세와 부딪히게 됩니다. 여기에 부딪히면 역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의 길이 바라고 나온 목적은 한 나라, 한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바라고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은 망했던 것입니다. 자기민족도 역시 세계 운세를 중심삼고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할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 입장을 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계 정세를 두고 보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부딪힐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의 기준을 중심삼고 우주의 운세가 지향해 나가는 그 목적 앞에 있어서 소련을 중심한 공산세계와 미국을 중심삼은 민주세계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한 만드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를 중심삼고 하나로 만들 수 없으며, 공산주의를 중심삼고도 하나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 만들 것이냐 했을 때, 천주주의를 중심삼고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를 중심삼고 보면, 우주적인 때, 세계적인 때, 국가적인 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 자체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종족이라든가, 씨족이라든가, 가정이라든가, 개인이 있습니다.따라서 개인의 때가 있고, 가정의 때가 있고, 종족의 때, 민족의 때,국가의 때, 세계의 때가 각각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디에 맞추어야 되느냐? 이 우주의 때를 우리 가정에 맞추어 종족의 때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의 때를 대표할 수 있고, 국가의 때, 세계의 때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민족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의 아침에 해가 정상적으로 떠올랐다가 지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의 24시간 전부를 24시간으로서의 가치가 있게 정상적으로 완전히 천운을 지켜서 나가야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운을 따라가야 할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도 24시간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를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쪽에 해가 떠오르기 전에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모릅니다. 아침 노을이 지는 것만 보고서는 아침해가 뜰 때인지 저녁 해가 질 때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보게 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상대적으로 엇갈리게 느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이 세계의 운세를 두고 볼 때, 운세가 쇠퇴해 가는지, 발전해 가는지 모양이 같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이나 그 이치는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팎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안에서 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천운은 반드시 목적을 향해 통합운동을 해 나가기 때문에 전후관계, 내외관계에 봉착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외 그 자체가 같으냐 하면 같지 않습니다.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손과 손이 마주보게 되면 그 손의 모양은 같습니다. 그러나 한 손은 오른쪽이요, 또 한손은 왼쪽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같은 것 같지만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오른쪽 왼쪽을 분별해서 어느 것이 앞에 가는 것이고 어느 것이 따라가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나오는 여러분들이 그런 운세권내에 있습니다. 반드시 전후관계를 중심삼고 걸어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통일교를 믿는 신자의 입장에서 두고 볼 때, 통일교회의 진리를 중심삼고 세상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이런 전후관계와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즉 상대방과 비슷한 것같이 보여질 때가 있게 되는데, 이런 때는 혼동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자칫 잘못 분석하여 내적인 것을 외적인 것으로, 외적인 것을 내적인 것으로 판단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외,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갖추어 운행하여야 합니다. 우리 대하는 사람들이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갖추어 가지고 분석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틀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손을 예를 들어 말하면, 두 손을 서로 마주보게 맞추어 놓으면 똑같이 보이지만 방향이 반대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입장에 있는 것들은 다시 방향을 맞추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복귀섭리를 책임진 중심인물들이 이러한 입장에서 존재해 나왔습니다. 그들이 하늘과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관계를 맺어서 거기에 맞추어야 할 텐데 이것이 틀어졌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좌우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전후관계로 보이게 되고, 또는 전후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좌우관계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번번히 있어 왔습니다.
도의 책임을 짊어지고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 때와 그 시운에 맞추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누구든지 그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아무리 사명은 받았더라도 반드시 자기 스스로의 천운관을 갖고 이것을 결정지어야 할 시점에서 이것을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 운세에 말려서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현재 처해 있는 입장이 어떠한 입장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때가 조선시대면 조선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로서 전후관계와 좌우관계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나오기 위해서 역사는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가 지금까지 지연되고 복귀섭리가 파탄되어 나온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인류가 전후관계를 잘못 세워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거기서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도의 세계는 뭐냐?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입장에 서 있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반드시 전방을 따라가야만 그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후관계가 확고히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엄청난 반대의 결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제거되는 것입니다. 천운은 그를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해결을 지을 수 없겠기 때문에 또 새로운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가 역사과정에 번번히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의 중심인물이 세워지면 그는 반드시 하늘의 운세를 중심해서 좌우관계를 맺고 전후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위기대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두고 보더라도 선생님이 맨 처음 이 길을 출발했을 때, 신령한 집단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해방 후에 나온 나장로파니 박장로파니 하는 무리들입니다. 또한, 해방 전엔 기성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 목사시대가 있었고 그것이 나중에 장로시대, 집사시대로 이어져 나왔으며, 지금은 성도의 시대입니다. 성도의 시대라 하더라도 목사, 장로, 집사, 성도와 같은 그런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간격을 점점 좁혀 가지고 하나로 통합시켜야 합니다. 이런 사명을 해야 할 핵심적인 단체가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동서남북을 달리하게 되면 자기가 목적하지 않았던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후관계와 좌우관계를 잘못 맺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관을 중심삼고 자기의 운명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때를 알아야 됩니다. 지금의 때가 어떤 때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때만 알아 가지고 안 됩니다. 그때를 중심삼고 전후관계를 분별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 그런 고비가 많았습니다. 새로운 시대로 한 고비를 넘어갈 적마다 시련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기점이 있어서 그것을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 단계에 넘어 갈 때까지는 아담 혼자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자기의 본심이 일치된 기준에서 행동을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자기의 마음과 행동이 하나로 일치되어 천운의 방향과 일치된 선에 들어서기 전에는 모두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때와 타락한 때는 서로 결과를 달리해 나왔습니다. 좌우관계가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명령에 자기의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목적의 내용이 달라지고, 마음의 방향이 달라졌으며, 행동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그것을 복귀해 넘어가는 입장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즈음에도 선생님이 기도하는 문제이지만, 선생님이 전에 말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반드시 소련과 중공이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칠 것이냐? 원리적으로 볼 때에 가인이 먼저 치지 않게될 때에는 반대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요점은 소련이 아니라 중공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벌어져야 세계는 새로운 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지지 않고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언제나 권위를 가지고 세계의 무대를 제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딪히는 날에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세계를 재패하기 위해서 마음대로 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까지 모든 것을 투입해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뭉쳐 나왔습니다. 국력을 동원하고 전세계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투입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상하고 그들이 목적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될 때에는, 앞으로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주의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런 관계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물질적인 기준을 중심삼고는 무엇을 동원하여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두고 보면, 미국도 사회체제는 다르지만 그 바람은 같은 방향으로 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 자체의 방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을 미국이나 소련이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그때에는 반드시 하늘의 때가 가까워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때가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시점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이런 중심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 중심은 반드시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방면을 두고 볼 때 그 중심은 어디에서 결정하느냐? 사방 자체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중심을 기준하여 사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즉 절대적인 실체가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중심의 요소와 일치된 내용을 지닌 존재가 그 중심에 가까이 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에 일치되는 요소를 갖추어서, 심정적인 일치냐, 사정적인 일치냐, 소망적인 일치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거기에 전부 백 퍼센트 일치되면 그 중심에 가까운 자리에서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례적으로 집약하면 그와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세계의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중심을 가리는 데 있어서도 그 방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도는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꺼번에 사방을 붙들고만 있으면 돌지 못합니다. 움직이는 세계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면으로 대하는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려내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 때는 신앙세계에 있어서도 비상시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정세로 보아도 최고의 비상시대입니다. 미국도 최고의 비상시대요, 소련도 최고의 비상시대요, 섭리역사상에서도 최고의 비상시대입니다. 또한 종교계에 있어서도 최고의 비상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어느 누구나 세계로 나간다고 들고 나오는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혹은 그 외에 어떠한 종교들도 그런 입장에 있고,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도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오늘날 인간세계를 두고 볼 때에, 주장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주장하지 않은 세계가 없었습니다. 모두 주장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로는 문제를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해결지을 수 있는 방안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중심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하늘이라는 말이 실감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세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은 인간의 힘이 아니요, 세계정세를 수습하기위한 어떤 정책적인 세력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들은 천운과 보조가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체의 주체는 누가 될 것이냐? 우주의 전체를 움직이는 실체가 있다면 그것이 주체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작용하여 하나의 선이라는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도 이양심의 작용 전체가 통합해 가지고 전체를 수습하여 `합했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동양사람은 `그렇다' 하는데 서양사람은 `아니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심이 됐다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과거 사람은 아니라고 하고 현재 사람만 그렇다고 해도 안 됩니다. 현재 사람은 그렇다고 하는데 미래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안 됩니다. 동서고금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그들의 양심 속에서 `그것이다'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원인과 결과의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심이란 무엇이냐 하면, 원인적인 존재요, 결과적인 존재요,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관계를 통합한 하나의 집약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그 중심으로 인해서 전후관계도 있는 것이요, 좌우관계도 있는 것이요, 상하관계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됩니다.
사람이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의 한계권내에 있는 인간이 역사적인 전체 섭리 앞에, 전체 운세 앞에 전후관계와 좌우관계를 갖출 수 없습니다. 시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공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역사적인 전후관계와 좌우관계에서 세계무대를 중심삼고 동서고금의 하나의 중심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시간권내의 제한이나 공간권내의 제한을 받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또 현시점에서, 현 생활권내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능히 움직일 수 있는 능동적인 입장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습니다. 신만이 이러한 최후의 결정적인 시점을 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때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시운을 움직이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방향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통일교회요, 이것이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두고 볼 때, 사람이 사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업에 있다, 혹은 세계적인 학자가 되는 데 있다 하면, 그것이 진짜 인생이 지향해야 할 목적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심정이 문제입니다. 그가 아무리 큰 사업가가 되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고 세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슨 명망이 높은 대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이 만족할 수 있는 심정적인 안식을 갖기 전에는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서 부부로 살다가 남편이 죽든가, 아내가 죽든가 하면 왜 눈물을 흘립니까?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이며 왜 나빠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나에게서부터 규정되어 나에게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런 동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파동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은 왜 좋고 나쁜 것은 왜 나쁘냐? 자기를 중심삼고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좋다, 나쁘다 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선의 목적에 플러스될 수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거기에 마이너스되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좋은 길을 찾아가려면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상응관계를 중심삼은 상대적 관계를 맺어서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야 합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는 데도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길을 걸어 갈 때에도 두 발이 방향을 달리해서 간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길을 걸을 때에도 두 발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는데 아침 저녁으로 서로 싸우면서 몇 시간만 맞추어서 가면 되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맞추어야 되느냐? 골짜기 밑창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골짜기 밑창이 어디냐? 힘드는 곳입니다. 저 끝보다 못한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직선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직선을 그려 나가서 그 선상을 지탱해 갈 수 있으면 이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 태어나서 가야 할 공통적인 노정입니다.그러니 여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십자가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희비극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슬프냐? 가슴이 아프게 슬플 때도 있는데, 그 슬픈 것은 왜 슬프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힘이 나에게 작용해서 슬프냐? 그것은 이 우주의 대운세에 생명력을 좌우할 수 있는 우주의 공법의 작용 때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공법에 부합되지 못하고 반대되면 제거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힘은 밀기도 하고 잡아 당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힘이 크면 클수록 기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울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이우주의 공법 앞에 불합격한 기준에 해당하면 이 우주의 공적인 힘이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그러한 우주 공법에 일치되는 자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그를 안으려고 합니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하게 부여안게 되고, 강하게 안으면 안을수록 그는 그 내적인 중심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기쁨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여러분 자신에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원칙, 즉 우주의 공법을 중심삼고 벌어집니다.
그러면 그 우주의 공법이 무엇이냐? 남자와 여자가 맨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일치되어 가는 길이요, 또한 이 길이 천운이 가는 길입니다.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일치되어, 즉 부부가 일심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이런 말 들어 봤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죽겠다고 야단법석인 사람들은 빨리 제거당합니다. 공적 법도권내에서 합격품이 아니 불합격품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디로 갑니까? 쓰레기통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즉각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없으면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부부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리법도가 사위기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 되었으면 반드시 아들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합격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아들만 있으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맛은 알지만 딸에 대한 사랑의 맛은 모르거든요.
여러분, 꿀맛이 어떻다고 누가 설명을 해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설명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명하기 전에 직접 입을 벌려 가지고 먹여 주고 나서 이것이 꿀맛이라고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없으면 왜 섭섭하고 불행하다고 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딸만 가진 사람은 아들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면 세상에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조금 둔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감정들은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 동양사상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완전히 하나 되어 처음부터 목적지점까지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게 되면 이 가정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론적인 원칙입니다. 그런 가정이라야 영생하는 것이지, 혼자서는 영생 못하는 것입니다. 설령 영생을 한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에서 고생이라는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요건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영생의 세계에 못 들어갔습니다. 즉,하나님의 나라, 이상세계에 못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에 찾아온 운세라고 해서 자기 가정, 자기 종족만을 위하여 찾아온 운세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의 우리 나라를 한번 이야기 해 봅시다. 그때는 고문(高文)에 패스하기 위해서 일본법을 중심삼고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일본의 행정과라든가 사법과를 통과하면 국가의 어떠한 자리도 부럽지 않을 출세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망했을 때는 그런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 갔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고 나서는 이 헌법을 통과할 수 있는 새로운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헐어버리고 다시 고쳐 나가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국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추구하며 좋다고 주장하던 것이 국가와 국가간에도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니 그 자체로는 천운과는 더더욱 일치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고로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야 할 것은 뭐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천국창건이라는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라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사는 것도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이 세상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주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뭐냐? 국가의 운세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운을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 천운은 막연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천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체적인 천운에 부합될 수 있는 세계적인 종교운동등의 구체적인 어떤 내용이 제시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물질적인 관심을 가지고 세계 제패라는 목적을 세우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나온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사상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내적, 정신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더 구체적인가? 물질을 중심삼은 공산주의 형태가 더 구체적인 것 같기 때문에 오늘날 지성인들이 거기에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면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 기독교 사상에 입각해서 종교적인 사상을 배경으로 한 민주세계의 자체는 구체적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형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종교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런 사명을 알고 이 사명을 완수하면서 넘어가야 되는데, 넘어가는 데는 어떻게 넘어 가야 되느냐? `나는 교회 안 나가고 직접 가면 되지, 내가 교회에 안 나가지만 이렇게 가면 되지 않느냐, 교회 안 나가도,누가 뭐라 해도 나는 교인이야, 누가 마음이 변했나, 통일교회에 다니는 당신들과 다니지 않는 나와 무엇이 다른가, 통일교회 다니는 당신들은 복잡한 환경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대하면서 슬픈 사연을 엮어 가지고 나가지만, 나는 그런 풍파 겪지 않고 혼자 산중에 들어가서 도를 닦으면서 보조만 맞추어 가면 되지',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통일교회의 천운은 반드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내 일생의 때를 반영해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서 한 바퀴 돌고, 가정을 위해서 한 바퀴 돌고…. 이렇게 돌아가는 중입니다.
복귀섭리에는 동시성시대가 옵니다. 그러나 그 동시성시대가 똑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 크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형체는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이냐, 가정적이냐, 종족적이냐, 민족적이야, 국가적이냐, 세계적이냐, 천주적이야 하는 그 형태는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면 결정체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지만, 그 모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이냐, 국가적이냐, 세계적이냐 하는 그 내용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의 운세를 책임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운세를 책임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계 정세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원리가 제시하는 복귀섭리의 원칙대로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할 때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거기에 대한 방안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러한 책임을 여러분이 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책임자는 지금 때가 어떤 때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때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그 사명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하는데 있어서는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의식이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또한 목적의식이 아무리 철두철미하다 하더라도,선생님이 이리 가자고 하면 거기에 대해 여러분이 반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십 배 이상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의식이 강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주체와 일치되었다는 기준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은 마음대로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원칙에 의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죄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일이 원리원칙에 그릇되는 것이 있습니까?
원리원칙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이 아닌 사방 중심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전후관계, 상하관계, 좌우관계를 잘 살펴서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길을 개척하면서 뼛골이 녹아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게 될 때는 그만큼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가게 됩니다.그렇게 되면, 천운의 작용이 있어 가지고 내 자체의 기쁨과 슬픔을 좌우시키는 심적 자극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내가 후퇴해 보고 나서 다시 돌아와 가지고 전진해 보게 되면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종의 자리에 내려갔지만 다시 자녀의 자리에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입장을 떠나 가지고 반대의 자리로 떨어지는 데는 자기의 표준을 잊어버리고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떨어져 내려왔지만 올라가는 데는 일시에, 최대한으로 빨리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후 좌우를 전부 다 가려서 똑바로 해놓게 되면 거기에 천도가 운행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라든가, 모든 생활무대는 언제나 있습니다. 때도 언제나 있습니다. 때에는 개인적인 때, 국가적인 때, 세계적인 때, 천주적인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때는 언제든지 있지만 자기의 때와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개인의 때를 거쳤으면 가정의 때를 거쳐야 되고, 가정의 때를 거쳤으면 종족의 때를 거쳐야 하고, 종족의 때를 거쳤으면 민족의 때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결과 그는 세계를 잃어버리고, 국가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리고, 종족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리고, 자기 개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대의 경로를 뚫고 나가야 됩니다. 따라서 개인의 때에 내가 완전히 합격해야 합니다. 또한 내 개인의 때를 중심삼고 일대에 모든 것을 탕감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을 중심삼을 것이 아니라 천운을 중심삼은 가정으로부터 천운을 중심삼은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추구해 나온 것은 무엇이냐? 천운을 중심삼은 가정을 추구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오실 재림주도 어차피 우주 공법에 있어서 천운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어 세계를 향하여 가는 입장에서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이런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가정은 자기 종족을 위한 가정이 아닙니다. 자기 친척과의 전후관계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운을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과 가는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야단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와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분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탄을 받고, 친척들의 지탄을 받고, 자기를 가르친 스승들의 지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천운과 일치될 수 있는 방향성이 반드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수도 끝에 주의 깊게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생 행로의 걸음을 걸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때라는 것을 알더라도 정성을 들여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언제나 사방에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거와 그들의 움직임과 그 결과를 언제나 주시하면서, `저 사람은 저렇게 나가더니 저런 결과가 되었구나' 하는 비교의 기준을 중심삼고 천운의 기준을 스스로 갖추어 나가야 됩니다. 우리의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이것을 갖추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하늘땅이 일치되어야 됩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관계를 올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정도 그렇게 되어야 하고, 국가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평행하게 됩니다. 이 세계가 상대적 이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실체세계이고, 또 그런 세계에서 살다가 영계에 가면 이런 관계를 중심삼고 주고 받기 때문에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르치는 날에는 주체와 대상이 똑같은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상충돼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종의 관계를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느 때냐 하면,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입니다. 그러면 날 때는 어떻게 나야 하느냐? 잘 태어나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면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태어나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결혼할 때입니다. 결혼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주의 공법을 지구상에 세워 놓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도가 지향하는 내용을 갖추고 그 형태를 갖추기 위한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작은 사회에 입각한 작은 국가입니다. 작은 국가요, 작은 세계요, 작은 천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떠나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정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의 말씀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으로써 정립되느냐면 축복이라는 말로써 정립되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다 풀어서 살펴보면 축복받은 승리의 부부 앞에 전부 합리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못나서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소원하시던 가정은 천운을 중심삼고 우주적인 기준 앞에 설 수 있는 사위기대를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 구성되어 있는 사위기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 세상은 사탄을 중심하여 어차피 제거되어야 할 사위기대를 갖춘 가정의 기반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기반은 언젠가 반드시 주님 앞에 부딪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방향이 다른 사위기대를 하나님을 중심한 방향으로 맞추어 거기에 평행선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새로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만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때를 안다 하더라도 그때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한 공식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참담한 현상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때 가서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최후에는 이런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때는 전후, 좌우가 전부다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기에 있으면서 약 일년 반쯤 그 문제를 가지고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원리로 보면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반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즉, 원리는 이런데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볼 때는 오른쪽인데 상대방이 볼 때에는 왼쪽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대쪽에서 주장할 때는 왼쪽이 오른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도의 세계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 그것을 가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어떤 원리로 남아져야 되느냐? 그래서 우리통일교회가 우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넘어가는 시대에 있어서 세계 앞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가 비상시대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철학도 종교도 비상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민주세계도 비상시대요, 공산세계도 비상시대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올바른 해결방안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적인 새로운 운세권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도 비상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때와 사명이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때를 안다고 해서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수준에 맞추어 자기 멋대로 하게 되면 될 것 같아도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할 텐데, 자기 맘대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여! 이제 됐습니까' 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를 부정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책임지고 가야 되는 불쌍한 무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 방안이 과연 어느 곳, 어느 쪽에서 나올 것인가? 사람을 통해서, 혹은 암시나 계시를 통해서 혹은 직접적인 명령을 통해서, 세계로 하여금 전부 그것을 증거하게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환영했을 때는 이것도 저것 같고, 저것도 이것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두 교파가 되고 두 교파가 네 교파가 되고 네 교파가 여덟 교파가 되는 복잡한 문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런 것을 일고 또한 때와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때는 찾아옵니다. 이제 때는 세계적인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사명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가정으로서의 전후관계가 무엇이냐? 자식을 사랑하더라도 전후관계를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이 가정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번영시키고 세계를 돕기 위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대되는 길을 통일교회에 연결시키고 입장이 바뀐 반대의 자리에서 가지고 그들의 입장을 대신 우리가 지켜 주고 우리의 입장이 그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때와 사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연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한 시점에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맞추어 일치시키게 되면 문제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선생님이 움직여 나가는 길에 반드시 맞추어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양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구라파 사람들이 선생님이 언제 또 오시느냐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랑하게 되면 그런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은 전부다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손해 보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하나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철칙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사랑을 받기는커녕 외적으로는 고생하고 욕을 먹고 몰리고 있지만, 내적으로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도 남아져서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지, 외적으로 내적으로 전부다 손해난다고 생각하면 떨어지지 말라고 아무리 제사를 지내더라도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아져 있는 것은 그래도 무엇인가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냥질을 시킨다고 해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익이 될 수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 그것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을 동시에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교회는 세계에서 일등 가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앞으로 자국의 주권만을 위해서 나가면 안 됩니다.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들이 해야 할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원리적 견해를 중심삼고 언제나 순리적으로 명석한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이 개인복귀시대에서 가정복귀시대에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판단을 지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걸어 놓고 판단을 지어야 합니다. 가정복귀시대 종족복귀시대에 있어서도 반드시 이것은 국가적 세계적인 문제를 걸어 놓고 결정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복귀시대에 있어서 민족을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종족 전체를 희생시켜서라도 이 민족을 구해야 됩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천운이 나가는 방향과 대한민국이 바라 나가는 목표가 다를 때, 그 대한민국과 천운이 부딪힐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서 막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신 희생을 해서라도 대한민국은 살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시대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정부가 행정적으로 통일교회 형식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요 간부들이 지방에서 승공강연을 하게 되면 나라가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계적인 때를 향해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공산당을 완전히 요리할 수 있게 되는 날에는 그들은 반드시 분열될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제 사명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중소관계가 복잡하게 되면 북한의 김일성도 곤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산 각국이 서로서로 미국을 우방으로 취하려고 합니다. 중공도 미국을 우방으로 취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정책적으로 인도를 우방으로 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도를 아시아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국가로 등극시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기서 인도와 소련이 손잡게 되는 날에는 유색인종의 공산주의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색인종공산주의와 유색인종 공산주의가 하나라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도의 정세는 급변하여 별나고 독특한 민족을 발전할 것입니다. 이렇게 소련도 인도를 중심삼고 관심을 가지게 되니, 인도는 이왕에 손잡을 바에야 소련보다 중공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후퇴하면 그 찬스를 이용해서 소련이 아시아에 대하여 접근을 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복잡하게 벌어지지만 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만일에 중공과 부딪히게 되면 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부딪히면 세 나라가 싸우게 됩니다. 그런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가 중공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미국을 중심삼고 책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소련이 아시아에 있어서 소련형(型)의 공산주의의 형태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결국 이 아시아의 방향을 결정짓고 나왔습니다. 또 소련은 미국과 손잡고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정책을 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 중공 지역에 무기 공장을 철회하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미국과 중공이 손잡는 날에는 소련이 곤란하게 되니까 소련이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중공에 무기 공급을 중단시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련이 미국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도 옛날의 미국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국가에도 드나들고 해서 다른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실수 없이 처리하느냐? 앞으로 통일교회가 미국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면 설수록 한국의 정세는 유리한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북괴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북괴는 소련의 정책에 병행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소련이 손을 잡으려고 하는 판인데, 북괴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를 철수하라고 하게 되면 소련정책을 파탄시키는 결과가 되니 북한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이 바라던 코스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때는 가까워졌습니다. 이런 때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선교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세계 정세 앞에 있어서 복귀섭리시대의 천운이 어떻게 벌어질 것이냐? 천운은 세계 정세 앞에 끌려 나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천운이 앞장서서 세계를 바르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또한 아시아에 있어서 세워 놓은 방향을 재편성해서 반공문제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천도를 중심삼고 군사적인 면에서 공동사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나라들이 자기 나라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 아시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시아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대만의 정부는 자기나라만을 위해서 싸울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볼 때, 모든 사상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지금까지 기성교인들이 그러던 것처럼 친구 따라 오고 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계 운세를 맞기 위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탕감해 나가야 하고, 또 여러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주의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즉 복귀섭리의 운세가 우리에게 바라는 사명의 내용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일치화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승리한 3승리의 기준을 세워 어디든지 입증시킬 수 있는 내적인 결정을 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던 것을 통일교회가 승리함으로써 그 승리는 과거의 승리요, 현재의 승리요, 미래의 승리라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현재를 중심삼고 현재의 대신이요, 미래의 후손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종족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메시아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족적인 메시아는 혼자서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으로 오셨던 예수님도 신부를 찾아 세워서 부부를 중심삼고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입장인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의 입장과는 다르지만, 여러분의 운세에 따라 원리적으로 순서를 밟아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가는 도중에서는 선생님의 입장과 다르지만 어차피 세계적인 위치에서야 하기 때문에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명과 때를 두고 볼 때, 때는 맞이할 수 있지만 그 사명을 완결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도자가 얼마나 귀한 입장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알려면 지도자들이 걸어온 길이 선생님과 통해야 됩니다.
참된 사연을 엮어서 섭리해 나오시는 하늘의 내적 사정을 알고 그런 문제를 해결지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일년에 몇 천년의 섭리역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명을 다 완수해 가지고 보람있는 새역사를 엮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아버지, 통일의 재단이 가는 길 앞에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대가는 자기만을 위한 대가로서 끝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민족과 세계가 그 대가를 인연으로 하여 마음을 풀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땅 위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사람이요, 이 땅 위의 그 누구의 아들딸이 아니라 아버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날까지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고 남아진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 동안 아버지께서 마음 졸이시면서, 이것을 지키기 위해 내심으로 얼마나 수고해 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의 통일교회의 자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내일의 통일교회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통일교회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없사옵니다. 과거 또한 그래야 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랑할 수 없는 통일교회의 운명을 붙들고, 이 길을 개척하면서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지금까지 국가의 지탄을 받았사옵고, 민족과 종족의 지탄을 받았사옵고, 친척과 형제들의 지탄을 받았사옵니다. 세상의 스승에게도 지탄을 받았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들과는 반대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모두 잃어버렸사옵니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을 밟고 올라설 때의 기쁨이 잃어버린 뒤에 있어서의 슬픔보다 벅차고 크다는 것을 아오니, 그 자극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조건이 되었지만 그것을 기쁨의 눈물로바꿀 수 있는 생활 자세를 갖추어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재산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세상의 숱한 핍박과 저주 가운데에서 아버님께서 눈물과 더불어 섭리하시어서 저희들을 인연지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이 모든 천적인 은사 앞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옵니다.
생명이 다하는 것을 염려하는 마음보다도 생명이 깨어나는 희망에 벅찬 가슴으로 내일을 맞을 수 있는, 하늘이 소망하시고 희망하시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 의 기점에 있어서의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그 가정에 있어서의 때와 사명을 감당하고도 남을 내가 되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온 주위에 나타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있어서의 때가 있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의 기쁨을 민족을 넘어 세계의 기쁨으로 외칠 때까지 가기를 바라는 것이 천운의 욕망인 것을 알게 될 때에, 이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오나 사명은 언제나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옵기에, 6천년의 역사는 한때의 사명을 짊어지고 연장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슬픈 과거의 인연을 저희들이 똑똑히 알고 오늘날 저희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을 책임지고 완결지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개인적인 사명을 완결짓고, 가정적인 사명을 완결짓고, 나아가 종족, 민족, 국가의 방향에 일치되어서 거대한 사명을 완수해야 할 저희들은 누구보다도 심각해야 되겠사옵니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보다도 더 심각해야 되겠사옵니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세계를 책임지고자 했던 어떤 인물보다도 더 심각한 자리에 서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믿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진지하고 명확하게 진리의 앞길을 판단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진리의 방향을 갖추어 나가는 데 있어서 심판은 항상 있었사옵고, 인격을 갖추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심판은 항상 있었사오며, 심정을 갖추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심판은 항상 있었사옵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 그러한 진리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내적인 자체의 판단에서 승리의 결정권을 지니지 않고는 외적인 내용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고, 우리 스스로 진리와 인격과 심정을 갖추어서 자기자체의 세계를 밟고 넘어가야 할 판단 기준에서 승리하여 외적인 판단기준을 가지고 나타날 때 통일교회는 우주사적인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때와 사명의 이렇듯 엄청난 관계를 가지고 역사가 흘러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한이 6천년 동안의 한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한 때의 한이 아니었사옵니다. 때는 몇 번이고 찾아왔건만 그때마다 사명을 완결짓지 못한 그 사연의 한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울러 오늘날 우리가 책임진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나아갈 방향을 갖추어서 당신과 일치되는 자리에서 사명을 완결하여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고, 당신의 축복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엄숙한 자세를 갖추어 미래를 수습하고 미래의 사명을 완결지을 수 있는 스스로의 완벽한 준비를 하도록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의 섭리와 일치하고 당신이 섭리하시는 방향과 평행선을 그어 나가게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대한민국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고, 세계가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가 지켜 주시듯이 저희들도 지켜 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것을 피하고 방관하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책임져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달려가는데 있어서 저희들이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사명을 기필코 완수해 나가겠다는 결의에 불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 나오셨고, 그런 사람을 역사과정에 남기려고 하시는 것이 곧 천륜을 위한 아버지의 욕망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저희 자체가 되어서 남아질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 저희의 사명이요, 아버지의 희망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렇게 저희 자신이 사명을 다하여 당신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모습이 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남아진 시간도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기념하고 당신 앞에 경배 드리는 곳곳마다 당신의 가증(加增)한 은사로써 같이하여 주옵고, 세계 각처에 널려서 이곳을 흠모하는 당신의 자녀들의 정성에 저희들이 빚지는 자리에 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저희들의 앞길에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어 당신의 영광의 존전에 충효의 기준으로 설 수 있게끔 이끌어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오늘은 음력으로 7월 7일, 24년 전 이날은 대한민국이 해방되기 바로 전날입니다. 그때 해방과 더불어 뜻이 기독교와 일치되어야 했는데 기성교회가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섭리가 연장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섭리역사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민족 위에 특수한 교단을 세워서 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 인간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책임 분담엔 하나님도 천사도 영도 협조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신이 그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셨으나 인간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땅은 신부의 입장이고 하늘은 신랑의 입장입니다. 이 땅에 신랑으로서의 갈 길을 준비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하늘이 세운 세 교단이 대한민국에 있었습니다. 만일 그 시대에 그들이 사명을 다했더라면, 목사 장로들을 중심하고 이 땅 위에 뜻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책임 못한 것이 세계가 책임 못한 것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선생님 자신이 이 외적 종교가 잘못한 것을 21년간 내적으로 재현하여 수습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1, 2, 3차에 걸쳐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담의 역사가 합쳐집니다.
6천년의 역사를 21년으로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을 종적으로 재현시켜 완전히 탕감해야 합니다. 그 재현하는 외적 조건이 36가정입니다. 36가정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아무 가치가 없으나 선생님이 세운 후부터는 기독교전체를 대신한 입장인 동시에 민족, 국가, 세계의 형으로서 주님을 모시는 형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는 부활한 기독교의 입장과 같습니다. 복귀하기 위한 것이므로, 제2차 7년노정은 기독교가 실패하여 책임 못한 것을 완전히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 되면 전 기독교가 하나 된 결과가 됩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제 2차 년도에 해당하며, 희진도 제 2의 아들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아들로서 하늘 앞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희진은 예수가 마굿간에서 탄생한 것과 같은 입장에서 태어났고 예수가 십자가의 노정을 걸었듯이 십자가의 노정을 걸었습니다.
오른편 강도와 같이 민주세계는 옳은 것을 주장해야 하고 그 중심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민주·공산 속에서도 가인·아벨 싸움이 있습니다. 소련을 사탄편적 가인이라 하면 중공은 사탄편적 아벨입니다.
이제 선생님 자신이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중간 영계는 협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선생님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의 선생님은 어머니를 중심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희진은 얼마 전부터 원리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계몽 나가야 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것을 나로서는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희진이의 죽음으로 인하여 영계에 있는 모든 기독신도들에게 해방의 길이 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일선에 세워 오던 중, 희진이가 제1 순교자의 입장에 세워졌습니다. 나도 지상에서 희진이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선생님은 자녀들을 위한 3시대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선생님은 가정 중심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책임 못했기 때문에 윤청정심 등과 같은 이방 종교의 사람이 나와서 대신 책임한 것입니다.
그가 선생님과 어머니의 옷을 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옷깃을 둥글게 만들지 않고 4각으로 만들되 띠를 묶어서는 안 되며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주었는데 실행치 않으면 부끄러운 구원이 되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 않고 내가 책임지고 이끌고 갑니다.
1968년 하나님의 날을 제정할 때 준비없이 한 것을 나는 서럽게 생각합니다. 그날은 온 기독교가 하나 되어 기쁘게 맞아야 할 날입니다.
음력 7월 7일 7시, 7수가 세 번이면 완성수인 21수가 됨으로 완성 단계로 넘어갑니다.
지금은 원자시설이 있는 중공의 신강성(新彊省)이 문제이지만 앞으로는 만주가 문제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문제는 풀려 나갑니다.
한국, 일본, 중국이 군사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유색 공산주의와 백색 공산주의의 대결이 있을 것입니다.
소련과 중공은 서로 일본을 노릴 것입니다. 일본의 극우파도 공산당이 남아 있는 한 통일교회를 치지 못합니다. 일본 통일교회 식구를 조총련이 죽이면 일본 민족이 조총련을 추방합니다. 일본을 복귀시키는 것이 북한의 김일성을 묶어 놓는 방법입니다.
모녀, 형제, 전 후처 관계에 있어서 사랑 싸움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의 싸움입니다.
최선생은 마리아와 예수의 부인격인 동시에 레아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장성기 완성급까지 복귀해야 할 타락한 어머니형(型)입니다. 완성기는 타락인간의 심정으로는 안 되므로 완성기에 도달하려면 어머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것 때문에 어머님도 고민했고 선생님 가정에서 희진아기가 탕감되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8월 24일, 안식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이곳을 사모하며 마음을 모야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사오니, 높고 귀하신 당신의 자비와 긍휼이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은 그 무엇을 찾고 그 무엇을 한다고 자기 나름대로 주장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행로를 걸어 갔사옵니다. 그러나 지난날 역사상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뜻 앞에 보탬이 되지 못하였사옵니다. 도리어 당신이세워 나오시는 뜻을 깨뜨려버렸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이것을 다시 세워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 개체 개체의 과거가 흘러가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당신이 남기신 필승의 사명을 해내야 할 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본연의 인간들의 생활이요 생애이온데, 하늘 앞에 남길 수 있는 실적을 갖지 못하여 역사적인 한을 남겼다는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저희 자체들도 한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있기에 아버님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외롭다면 더없이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사명을 이루어 나가야 할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진 무리이옵니다. 보잘것 없는 모습이옵고,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분석하여 볼 때 아버지께 그 무엇을 돌려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이미 뗄래야 뗄 수 없는 자녀의 인연을 맺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저희들 자체를 보시고 슬픔과 기쁨의 분기점에서 저희들을 대하여 나오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해야 할 것이 천륜의 도리요, 모든 인륜의 원칙이었사옵니다. 그런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을 생애를 통하여 남기고 가야 할 인간들이었사오나 인간들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생활 터전을 갖지 못하였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지니지 못하였기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있사옵니다.
이렇듯 흘러간 슬픔의 역사노정을 저희들이 반성하고 오늘 저희들에게 남겨진 사명을 다할 것을 촉구하는 이 시간과이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을 거룩한 아버지 존전에 내어 놓고 새로운 사명을 분부받고, 새로운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벌거숭이와 같은 모습이옵니다. 언제든지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 있는 한계권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알고 죽어야겠사옵니다. 또 아버지를 알고 난 후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천적인 사명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체를 갖추어 아버지의 엄숙한 존전에 설 때 저희들이 과연 이 아버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얼굴을 가졌으며, 또 아버지 앞에서 행동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지체를 가졌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면모가 없음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렇듯 불쌍하고 제대로 설 수 없는 부족한 모습들을 대하시는 아버지의 입장이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진정 알게 되옵니다.
진정 저희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시간을 넘고 세월을 넘어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려는 마음이 간절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아버지와 아들딸의 인연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침이 되어 아침 밥상을 대하고, 또 점심 때도 그렇고, 저녁 때도 그렇듯이, 이렇게 하루에 삼시 세끼가 필요하듯이 아버지를 대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배고플 때 밥을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이 북받쳐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일생 동안 저희의 심장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 없듯이 아버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이 느끼는 모든 촉감과 감각이 일생을 통하여 내 몸을 보호하고 내 행복의 여건을 위해 방향을 갖추어 움직이듯이 저희들도 아버지 앞에 행복의 여건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물론이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뜻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사모하는 그 마음 앞에 당신의 자비와 긍휼의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을 당신의 깊은 심정에 인연지어 주시옵고, 당신이 찾아갈 수 있는, 영원히 쉴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시어서 이 천주사적인 인연으로 역사의 거리를 초월하고, 민족적인 한계선을 넘어서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 승리의 원천이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나 무엇을 가지고 엎드렸사옵니까? 아버지 앞에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한 저희들이옵니다. 과거도 그러하였거니와 현재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지도 모르는 비통한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옵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힘을 의지하고 아버지의 긍휼과 아버지의 자비의 손길을 바랄 수밖에 없는 모습들이오니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의 모습인 것을 알게 해주시옵소서. 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 앞에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고대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인 줄 아옵니다. 그 마음이 부모와 자식가운데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자식이 그 부모의 아들임에 틀림없고 딸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부모에 대해서 자비의 마음과 긍휼의 마음을 고대하는 그 자식 앞에 부모는 부모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오니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사오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끝맺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모든 요건이 저희의 요건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모든 소원이 저희의 소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희로애락 전체를 느낄 수 있는 아버지의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 마음 위에 함께하시어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인연의 끈을 공고히 하여, 하늘 앞에 하나의 제단을 묶어 드릴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폭풍우와 노도를 헤쳐 나오면서도 남아진 이 통일의 무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이 항로 앞에 행복의 항구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옵니다. 환희와 기쁨의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가는 도상 위에 어찌 풍파가 없겠사오며 어찌 시련이 없겠사옵니까? 그러나 저희가 어떠한 시련과 고통을 당하더라도 목적과 목표를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방향을 투시하는 입장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칠흑과 같은 어두움 가운데 처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향한 그 마음만은 잃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외적인 기준에서는 모든 방향을 잃었다 할지라도 내적인 기준에서는 그 방향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방향을 갖추지 않고는 남아질 수 없고 어려운 고해와 같은 이 사탄세계를 기필코 건너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잠잘 때에도 쉬는 때에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마음의 방향을 아버지와 일치될 수 있게 하시어서, 자체를 수습하고 이끌어 내어 아버지의 협조와 더불어 저희들이 일치되어서 같이 행동하여 그 결과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사랑받기를 얼마나 고대해 왔사옵니까? 당신의 은사를 얼마나 고대했사옵니까? 그러나 고대하는 만큼 아버지 앞에 보답할 수 있는 내용을 저희들이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 나타날 적마다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조롱하는 사탄의 무리들 앞에서 그래도 자식을 품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과의 인연을 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의 체면과 위신을 망각하면서라도 저희의 모습을 품고 당신의 자녀라고 공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불쌍한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그 뜻을 몰라 번번히 실패하였사오나 이제는 알았사오니,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효자 효녀가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원수 앞에 강한 모습이 되어서 그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아버지의 권위와 권능을 갖춘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저희들이 잘못된 역사의 흐름을 막고 하늘의 흐름을 연결시켜서,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저희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태어났으니 오직 이 사명을 위하여 싸우고 이 사명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용병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최후의 승리를 아버지의 것으로 결정지어 바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 아들딸이라고 부르고 싶은 수많은 백성들 위에 당신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독일, 이 네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 40개 국의 120개성지가 연결되어 있사오니, 당신의 실질적인 모든 요구가 당신의 내적인 모든 요구와 일치될 수 있는 그 세계가 이루어지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 모아 당신을 사모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기쁨의 날, 자랑의 날, 영광의 날이 어서 속히 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한 가정의 중심은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중심하고 그 집안의 대를 이어 부모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중심인물이 없게 되면 그 가정은 소망이 없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그러하듯이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나라의 주권자를 중심한 이념과 사상이 있으면 그 투철한 사상을 계승하여 책임질 수 있는 대신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신자가 없게 될 때는 그 나라의 전망, 즉 그 나라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도 이 세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에 있어서나, 혹은 우리가 속하여 있는 이 나라에 있어서 여기에는 언제나 대신자가 있어서 역사와 더불어 계속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공고화되고 완전히 자리 잡힌 가정들을 중심삼은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세계적으로 공고한 기반 위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 혹은 구원섭리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가정이 있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종족이 있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민족 국가 세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섭리적인 내용을 통하여서 찾고 있는 그 가정과 혹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믿는 사람들이 기필코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세계에는 그러한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늘의 권이 결정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커녕 국가의 중심도 아직까지 결정짓지 못하였습니다. 국가의 중심을 결정짓지 못한 것도 물론이지만 먼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완전한 하나의 가정적인 기준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의 중심을 결정지었느냐를 냉정히 생각해 볼 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의 일원인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내 한 개체가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바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자체가 되었느냐 할 때 이것 역시 그렇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러한 자신을 중심삼고 영원한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가정이라든가 국가라든가, 혹은 세계를 추구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도 그목적을 대하는 내 자체가 한 중심을 결정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일을 성사시켜야 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국의 주권자가 그 국가의 주권을 자기가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할 수 있는 기반이 없을 때 그는 지극히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백성들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책임진 장본인은 누구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시간을 넘어서서 찾아오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국가적인 고통도 당해야 하지만 그 환경에서 벌어지는 고통도 당해야 합니다. 그런 자체를 중심삼고서는 그 고통을 극복할래야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중심존재는 안팎의 고통을 지니고, 생명을 걸고 생사의 기로를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알 수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계시냐? 그분이 계시다면 그분에게도 분명히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떤 개인적인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목적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목적을 완전히 성취시켜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 할진대, 그분이 얼마나 비참한 입장에 계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분이 능력이 많으시고 그분에게 전지전능하신 권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과 그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그분의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고충이 얼마나 클 것이야 하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을 책임진 자가 가정을 책임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이는 그 가정의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며, 혹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그 중심존재가 민족에 대한 책임을 못하게 될 때, 그는 그 민족의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의 국가를 보더라도 그 국가의 대표자가 자기의 본의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때는 국가의 누구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우주사를 책임져야 할 하나님이 그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면 그분은 누구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만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오늘 이 시간을 넘고 순간을 넘어 가지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분은 중심을 결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본의에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결정짓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혹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삼고 그분이 요구하는 국가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중심이 결정되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무대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세계를 수습하기 위한 어떤 목적을 중심삼고 바라보며 나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하나의 중심적인 터전을 이루는 데 있어서 상대적인 입장이라도 되어 줄 수 있는 세계를 요구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의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과연 하늘 앞에 중심적인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존재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오늘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라든가,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그밖에도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 단체 가운데서 어떠한 종교가 진짜이겠느냐? 진짜 종교는 외곽적인 그런 내용을 가진 종교가 아닙니다. 내적인 그 심정을 통하여 연결될 수 있는 기준에 서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라 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모든 만민들을 형제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한 국가의 형성도 한 가정을 기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그 이념을 연결시켜 나갈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기독교가 과연 하늘이 바라는 모든 전체의 내용을 결정지어야 할 전반적인 책임을 시행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 책임을 하고 있는 기독교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고 있느냐? 나타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하나님 자신이 내심적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역사상의 모든 수고가 컸던 데에 비례하여 큰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책임을 짊어지고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이 시대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여기에 무엇하러 왔느냐?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규합되었느냐? 단 하나의 목적은 지금까지 슬프고 불쌍한 자리에 계셨던 그 하나님 앞에 내적인 심정의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안 되거든 외적인 하나의 발판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가는데 디딤돌이 되든가 다리가 되든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건너가는데 쓰이는 하나의 분자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슬픔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빚을 지기 위해서 왔느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왔느냐 할 때,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빚을 덜기 위해서 왔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빚을 더는 데 있어서는 내 개체에 대한 빚만이 아니라 가정에 대한 빚을 청산하고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여, 세계를 대신하여 빚을 덜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안 가면 그 누구라도 가야 할 길이요, 내가 이루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빚을 덜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자신이 하늘 앞에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신념을 공고히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뜻을 이어나갈 대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뜻을 같이해야 합니다. 부모의 모든 뜻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대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아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런 뜻을 중심삼고 이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가는구나' 하고 부모의 뜻을 알고 그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즉, 가정의 미래를 생각하며 가정이 걸어가야 할 목적을 중심삼고 그 관념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뜻을 같이해서는 뭘 하느냐? 암만 그 뜻이 같으면 뭘 하느냐? 같이하는 것만으로는 그 부모의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뜻을 받들어서 그 뜻을 중심삼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뜻이 영원하면 내 안에 있는 모든 내정적인 심정도 영원하게 됩니다. 뜻이 영원하다면 행동의 목표도 영원해야 합니다. 그런 기점을 갖지 않으면 대신자의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대신자가 되려면 뜻이같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행동이 같아야 합니다.
어떤 부모도 가정의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 자기의 대신자를 내세울 때는 자기보다도 못한 자를 대신자로 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 그러냐? 자기자식이 부모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는 자기 이상의 대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자기보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천을 초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요구 조건입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가정의 요구입니다.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주권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를 능가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번번이 목을 잘랐습니다. 그런 비참한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기반을 중심삼고 섭리의 역사를 진행하실 것이냐? 국가라는 터전을 중심삼아서 섭리의 출발을 하실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섭리의 출발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를 중심삼고 섭리의 터전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가정과 일치될 수 있는 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한 대신자를 요구해 나왔습니다.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세운 목적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책임자라 할지라도 자기를 거름삼아 자기보다 더욱 비약할 수 있는 책임자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와 국가가 서로 때리고 잡는 일을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뜻이 지향하는 방향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를 수습하기 위하여 환경의 터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전통을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통은 무엇이냐? 세계를 위하여 충성하고 세계를 위하여 하나되고, 세계를 위하여 살고, 또 세계를 위하여 싸울 수 있는 무리를 가려 나온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에서 터를 닦아 나온 기독교가 이 전통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 자체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교파를 초월해야 됩니다. 자기 교파를 중심삼고 전부를 흡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권주의자들이 자기 교파의 틀에 얽매여서 종교를 고질화시킨 사실은 일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만히 두지 않고 치는 것입니다. 왜 치느냐? 하나님의 대신자를 그런 자리에서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해 수고해 나오신 터전이 어디까지냐? 개인을 중심삼아 가정을 표준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십억의 인류는 전부다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서로의 생각이 다르니 뜻이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목적을 통합시키는 통합운동을 해야 합니다. 주류사상을 통하여 인연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좌와 우가 서로 자기 것이 옳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갈래의 길에서 자기 스스로 어느 한쪽을 결정해야 할 이런 시대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두개의 관(觀)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두 길을 다 간다 할 때는 언제나 고통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를 결정해 놓고 다음에 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둘이 있다 할 때는 여기에는 반드시 순서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먼저 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해야 하느냐? 혹은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리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오늘의 세계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세계의 모든 정세를 움직여 나간다 할 때 어떤 것을 먼저 손대고 어떤 것을 다음에 손댈 것이냐? 그 다음에는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하나를 버리든가 혹은 옳은 것을 먼저 받아야 하고, 사랑도 먼저 받아야 하고, 모든 의논도 먼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대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많이 받아서는 안 된다 하는 입장에 설 때는 망하게 됩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를 대표하여 미국이 하나님 앞에 먼저 대함을 받았다고 자기네가 받은것 이상의 사랑을 다른 나라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 망합니다. 다른 나라가 그 이상 사랑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세계가 더 빨리 수습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세계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국 이상으로 하늘 앞에 가깝고 미국 이상 하늘과 내용적으로 통할 수 있는 그런 국가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입장에서 금후의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미국은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책임자가 나와서 그 책임을 수습하게 될 때 그를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커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무슨 대신자가 되어야 하느냐? 여러분 자체는 비록 잘 생기지도 못하고, 아무런 경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마음은 최고의 기준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대신자가 될 것이냐? 집안을 책임질 수 있는 대신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더 나아가서 나라의 대표자, 세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세계적인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이 세계적인 기준을 가지려면 절대적인 기준에 가까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가정의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중심을 거쳐 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민족의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중심을 거칠 수 없으며, 국가의 중심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의 중심으로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역사의 방향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고 싶어하고, 책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먼저 가정의 문을 넘어야 되고, 종족의 문을 넘어야 되고, 민족의 고개를 넘어야 되고, 국가와 세계의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이라는 것은 일등이라는 것입니다. 일등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받는 데는 일등을 좋아하겠지만 그것에 반대되는 핍박과 시련과 고통을 받는데는 대개가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적인 가정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가정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의의 자리에서, 전부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스스로 일어서 가지고 모든 것을 극복하며 타개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그만치 세계적인 가정의 중심이 되려면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에는 그 국가 나름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애국자란 그 나라의 명승지나 찾아 다니며 풍류를 즐기며 유람행각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 애국자의 역정에는 피의 가름길을 거쳐온 내용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사의 기로에서 승리의 실적을 많이 거둔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대승리자이며, 그 나라의 전통을 세워 놓는 애국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한 아들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될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학교가 많은데 거기에서 교육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육은 일생 동안 해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부모가 정성들여 키운 자식에게 가문을 맡길 때, 즉 그 대신자로 세울 때는 부모의 마음과 일치되게끔 하여 그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하면서 대신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계적인 이런 책임을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섭리해 나오셨느냐?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이 인간들이 타락의 보응을 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응을 받아야 할 것을 대신하여 타락의 누(累)를 벗겨 주시려는 것입니다. 누를 벗기는 데는 그냥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책임질 수 없으니 하나님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온 역사를 수습하고 세계를 책임져야 할 하나님은 개인을 대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싸움의 무대는 개인적인 것이 이니라 세계사적인 것입니다. 그 싸움은 세계사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사적인 개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개체는 미미한 존재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수고의 공적과 수고의 노정을 생각할 때 역사적인 결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되지 못하고 슬퍼하시는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슬프고 비참한 고아의 입장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기쁠 수 있는 행복의 욕망을 가지게 하고 이들을 살려서 그 기준까지 나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서러움과 고충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기쁠 수 있는 자리에 태어나 그 길을 간다 해도 어려울 텐데 지극히 비통하고 슬픈 자리에 태어난 인간을 대하여 최고의 기쁨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슬픔을 느끼면서 끌고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과연 여러분이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현재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런 입자에서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하나를 위해 하나님이 짊어진 그 심정적인 부담은 무엇을 주고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빚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싶고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사탄은 여기에 조건을 걸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사탄은 `아무개는 이러한 빚을 지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은 슬픈 자리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그렇게 대드니 재차 시련과 고통을 받아야 되는 더욱 슬픈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대신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니 얼마나 불쌍한 하나님입니까? 이러한 사람 가운데에서 대신자를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은 뜻을 이룰 수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하나님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세계적으로 빨리 넘어가고 싶고, 그런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지만 그럴 수 없는 하나님의 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된 죄밖에 없습니다.
이런 비참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은 대신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그러했고, 노아 가정에서도 그러했고, 아브라함 가정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역사적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도 하나의 승리의 민족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승리의 민족은커녕 승리의 개인도 찾지 못한 하나님의 서러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4천년 역사의 수고의 터전 위에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적인 대표자, 가정적인 대표자, 국가적인 대표자, 세계적인 대표자를 애쓰시며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고 세계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을 잡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고한 아버지의 심정 앞에 역사적인 모든 것을 전부 범한 결과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죄악된 세계가 가정의 대표, 국가의 대표, 세계의 대표로 오신 분을 쳤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되고,가정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되고, 민족 국가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되고, 세계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가 왔다 간 이스라엘, 섭리적인 입장에서 선민이라는 그 나라가 역사상 비참한 노정을 거치면서 고아가 되고 몰리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기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여러분들은 그냥 지나가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에 와서는 기필코 무엇을 하나 결정지어 가지고, 사명적인 분야에서 대신자로 서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 놓고 판단지으려고 모인 무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을 찾고 있으니 개인도 그래야 되고, 가정도 그래야 되고, 가정을 통할 수 있는 종족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종족은 또 민족과 국가 앞에 전통적인 사상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민족과 국가뿐만 아니라 이 민족과 국가를 움직여 가지고 세계에 전통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의 이념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마음은 더욱 간절해야 됩니다.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거리를 끌어당겨 가지고 중심기준을 이 시점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기준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통한 사실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통일신도는 먼 거리에서도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고서 하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사명적 책임을 대신하기 전에 심정적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상대적인 입장에 서지 말고,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대표한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역사가 흘러 나온 그 중심자리에서 한번 위를 올려다보고 앞을 내려다 보십시오. 과연 여러분이 처한 자리가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 자리입니까? 아닙니다. 그 자리는 영원히 비판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영원히 책임질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부활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개인과 가정의 형태가 나오지 않고는 민족과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가 나오더라도 또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고생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실적을 세워서 상대적인 입장에서 발판을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는 뒤넘이쳤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책임자가 아무리 책임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 앞에 일치화될 수 있는 환경적, 대상적인 실체가 결정되어 공고화되기 전에는 그 대신자가 불쌍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럴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나갈 때 통일교회의 식구면 식구 앞에 빚을 져서는 안 됩니다. 절대 빚져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가정이면 가정 앞에 절대 빚을 지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이 철저해야 합니다. 종족이면 종족,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각자가 뜻을 대하는 자리에서 남에게 빚을 지우는 자리에 서야 하나님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족이 나와야 합니다.
뜻을 저 멀리 두고 생활하는 제 3자의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모가 바라는 아들딸은 부모가 눈물짓게 되면 그 눈치만 보고서도 가슴 아파하는 자식입니다. 환경적인 그 기준 앞에 있어서 부모의 걱정을 자기의 걱정으로 알게 될 때 부모가 슬퍼하는 입장에 있으면 자식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자관계에 있어서의 심정적인 인연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된 입장에 있는 우리가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는 절대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자의 역사가 슬픈 역사가 되지 않고서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대해 나가는 여러분 자신이나 선생님이나 심정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부모와 자식간은 직접 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부모가 아니며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효자라는 것은 부모 앞에서 이로운 일에만 살랑살랑하여 사랑이나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효자가 뭐냐? 효자나 부모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열만큼 일을 하는데 자식은 열 다섯만큼 노력하였다면 부모는 다섯에 해당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를 어떻게 보충하여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효자인 것입니다.
교회에 있어서도 여러분은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자기집안의 어려움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의 아들딸이 죽었다고 하면 굉장히 놀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때는 집안일같이 나서야 됩니다. 또한 나라에 있어서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책임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에 처했을 때 자기 아들딸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사람은 그 나라의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아직까지 그 한계선을 넘지 못해 신음하고 거기에서 결정을 못 짓고 가는 사람은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정에서 대표자가 되려면 그 가정의 모든 어려움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분담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전체의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도 역시 그런 역사적인 책임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세계 앞에 빨리 나타나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뜻을 안 지가 몇 년 혹은 10년 이상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날부터 과연 내 자신이 뜻을 위한 대신자로서 얼마나 충성을 하고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진정으로 심각한 생활을 하며 뜻을 따라가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개인 기준을 넘기 전에는 가정 기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건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또한 가정 기준을 넘지 않고는 종족 기준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책임자가 되어 가지고 짜증낼 것 다 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자기 중심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러했다면 세계가 다 망했을 것입니다.
책임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합니다. 화를 내고 싶어도 함부로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적인 슬픔에서라든가 종족과 가정의 슬픔을 품은 입장에서 그러했다면 죄가 안 됩니다. 자기를 중심하고 `이놈의 나라가 망할려고 저러나!'라고 하면 스스로 자기의 목을 자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보더라도 잘못된 것을 시정하게 될 때 그 나라의 국법이 `이렇다` 하는 원칙으로 판결해야 합니다. 판결하는 사람이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판정해야 그것이 정상적인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 판결을 받게 될 때는 받는 사람도 불평을 하지 않고 순응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자의 자리는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어떤 책임자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을 부려먹으면서 자기는 편한 자리에 있다면 그 책임자는 엉터리입니다. 그런 사람은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하늘이 요구하는 대신자의 입장을 여러분 자체에서 발견해 내야 됩니다. 그리하면 통일교회에 있어서 앞으로 대신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표준이 나올 것입니다. 또한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어떠한 가정이 되어야 하느냐 할 때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표준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의 대신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표준이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세계에도 없었고, 나라에도 없었고, 민족에도, 종족에도, 가정에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세계가 지금까지 계속 남아져 나왔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하고 규합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에 대해 잘 모르지요. 들어온 지 며칠 됐는데 하면서 앉아 있기만 해서 알 수 있어요? 통일교회가 거쳐 나온 그 길을 내가 가야 되겠다 하는 사람이 진정한 통일교인인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애국자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싸워 나온 길을 나도 걸어야 되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상속받지 않고는 시대적인 책임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있게 이어받아서 적진을 향하여 총진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미래에 전통을 세울 수 없습니다. 국가의 비상시에 대처하기 위해 환경을 타개하여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책임자가 되어야 새로운 미래의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과거의 역사를 짊어지고 현재를 책임지고 싸워서 승리를 결정지어야만 비상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전통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비상시국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대한민국을 위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미래에 어떤 전통을 세울 것이냐? 이러한 비상시대를 맞아서 우리는 나서서 싸워야 합니다. 어차피 남북이 부딪혀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어떤 세계적인 힘을 규합해서라도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상사태가 목전에 다가온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는 피해서 가야 되느냐? 천만에요. 피해서 가다가는 망합니다. 피해서 가다가는 지친 발걸음을 갖고서 또 해야 할 일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로서 받아들여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능력을 어떻게 배양하느냐? 원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현실에 당면한 이 고개를 넘어 평화의 시대에서 새로운 승리적인 전통을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누가 세워야 하느냐?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책임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 민족에게 사상적인 면에서 필요한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또 사상뿐만 아니라 여기에 적극적인 태세를 갖추어서 투쟁할 수 있는 패기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은 새로운 역사시대에 전통을 세우는 실체로서 등장한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파를 통일해야 합니다. 교파를 통일하는데 있어서는 잘 되고 잘못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가지고는 통일할 수 없습니다. 무턱대고 통일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상을 통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하지 못하고서는 사상을 통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세계사적인 책임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일하는 데에 있어서는 영계가 협조해 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통일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입니다. 여러분 알아요, 몰라요? 영계가 통일교회를 협조하고 있는 것을 알아요, 몰라요? 영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영인들이 얼마나 우리 편이 돼 주겠어요? 한 32억 될까요? 여지껏 지상에 왔다가 간 모든 사람들은 영계에 걸려 있습니다. 거꾸로 걸리든 옆으로 걸려 있든, 어떻게 걸려 있든지 간에 모두 영계에 가 걸려 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다 통일교회를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협조하겠다고 하더라도 참여시키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영계에서는 야단입니다. 여러분 그런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영계에는 불교를 믿던 영인도 있고, 유교를 믿던 영인, 회회교를 믿던 영인 등 모든 종교를 믿던 영인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이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에 통일의 운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지상에도 아무리 싫다고 해도 통일의 운세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게 되어 있는데 봄이 오면 안 되니 봄을 방어하자고 해서 오는 봄을 막을 수 있습니까? 겨울 동안에 방어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봄은 다른 데서부터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체 내에서는 해결 못 합니다. 해결을 짓자면 자체 내에서가 아니고 다른 데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하자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 통일의 방안은 자체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딴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딴 데가 바로 영계입니다.
통일은 기필코 이루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통일이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됩니다」 여러분들 같아서 되겠어요?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가정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정에 들어가서 전체의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적인 대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어느 누구든 나도 저런 가정을 가져야겠다고 할 수 있는 전통적인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추앙하는 세계 최고의 대표적인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축복이라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빨갱이들도 축복의 대열에 끌어들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영계에서 통일해 준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하고 구경만 하면 되겠습니까? 떡도 잘못 먹었다가는 배탈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는 사회의 풍습에 따른 역사적인 미담이나 미신적인 내용을 지닌 말이 있는데 그런 말들은 근거가 없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굿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살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무당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굿을 하는데 거기서 구경을 하다가는 살맞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도망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들어붙는 것입니다. 즉, 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여기에 모였습니까? 구경꾼이 되려면 아예 참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아직까지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 위해 지내 왔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혹은 세계면 세계를 거느릴 수 있는 실적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를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어디서부터 세울 것이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이 세계를 지탱해 낼 수 있는 전통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역사와 더불어 세워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앞장서서 교파 통일을 해야 됩니다. 한국에서 우리가 욕은 먹었지만, 통일교회를 다들 못된 곳이라고 하고 있지만 신문 기자들도 통일교회가 초교파 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영계가 배후에서 틀림없이 협조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의 역사를 누가 짊어지고 갈 것이냐, 통일교회 역사를 누가 엮어 갈 것이냐? 물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앞장서서 엮어 갈 것이지만 선생님 혼자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다 이루셨습니까? 하나님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보기 싫은 여러분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어떤 때는 피가 푹푹 내릴 때가 있습니다. 뭐 여편네하고 라면 문닫고 살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엿이 간판을 붙이고 이마를 맞대고 살 것을 생각하니…. 또 거기다가 뭐 부자 관계라고 기가 막히지….
그러니 여러분을 통해 말해야 하는 선생님은 얼마나 어렵겠느냐?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면 `과연 그렇다! 만민공동의 진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도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국가를 버리고라도 세계를 향해 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엮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관을 중심삼은 사상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상을 버리고서라도 이러한 사상을 가지는 것이 행복하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부터 새로운 목적의 이동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목적의 이동과 더불어 개인적인 대신자로서 책임하던 사람이 가정적인 대신자의 책임분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동이 없이는 대신자의 영역을 큰 무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대신자의 분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거기에는 시련과 고통이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탕감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책임시대를 지나서 가정적인 책임시대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대신자가 되기 위하여는 이러한 탕감을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교회의 책임을 지고 가는 데는 이중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버릴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개인적인 책임을 질 때는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되지만 교회의 책임자가 되었을 대는 사방성을 갖추어야 하는 책임자로서의 사명이 점점 가중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책임자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책임자를 빙자해 가지고 일신의 외적인, 육에 대한 행복의 터전을 넓혀 나온 타락한 인간들은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비참한 싸움을 청산짓고 대가를 치러야 할 입장에 있는 책임자는 지극히 비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이 이러한 책임을 진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그러한 길을 가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망해야 될 세상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을 짤라야 됩니다.
이제 이 세상과 부딪혀 가지고 밀고 나가서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렇듯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만의 전통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통일교회만의 전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뭐 복잡하고 야단스럽게 하느냐, 조용조용히 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할 것입니다. 조용조용히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목을 놓아 통곡을 해야 되고 온갖 충성을 다 바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은 가만가만히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오려고 결심하고 나면 반드시 시험이 따릅니다. 혹은 원리 말씀을 들으러 가겠다고 약속해 놓으면 반드시 집에 무슨 사고가 생긴다든가 번번히 어떤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전도 책임자들은 잘 느꼈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공식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개인적인 환경에서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면 사탄이 꼭대기에서 눌러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내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내일의 전통을 세우기 위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조건, 즉 싸워서 승리했다는 기준을 갖지 않고는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이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러한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가만 두고 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타락할 때도 그냥 두고 보기만 했지요? 사탄이 기원이 되어 타락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사탄을 이겨서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뜻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예루살렘의 아들딸을 위하여 울라` 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아들딸의 시련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가면 너희들도 이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지 않으면 내일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 그러니 현재의 기준에서 나를 보고 울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내일의 대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 이 시간부터 전통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판가름할 수 있는 전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당당히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요구하는 기준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 새로 온 사람들이 많군요. 새로 온 사람 손들어 봐요. 본부교회에 처음 온 사람도 손들어 봐요.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새로운 전통은 심각한 자리에서 세워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생명을 걸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 길 앞에 그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방해의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적개심을 가지고 원수의 배후를 타파하는 재료를 만들어 줄 뿐 내가 가는 길 앞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주저하는 자리에는 설 수 없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뜻을 전하여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이러한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 갈 수 있는 고개를 넘어왔으니까 이제는 이 선생님의 울타리가 되어서 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무얼 하자는 것이냐? 대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민족에 있어서 혹은 종교면 종교에 있어서 모든 것을 책임질 대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 대신 수단과 방법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적인 핵심에 있어서는 진지한 입장에서 하고 외적인 면에 있어서는 춘하추동 4계절이 돌아가듯 그렇게 순리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책임자의 입장에 선 사람은 절대로 수단과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쓰면 쓸수록 그 교회의 책임자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에 그 책임자 이상 교회를 위해서 책임을 지면 어떠한 작전을 펴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도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성교회에 대해서 기도해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기도를 해 온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 가지고 수단과 방법을 쓸 때는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단 방법을 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이라는 것은 계시에 의한 것이라야 합니다. 계시라 하더라도 진실이 아닌 것은 전통으로 남아지지 않습니다. 전통으로 남아지지 않는 것은 역사와 더불어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책임자가 되어 지방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국가적 기준에서 종족을 대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책임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족이 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어떠한 입장에서든 아무리 버리게 하더라도 그 국가의 책임자는 그것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과 같은 사람이 저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이 가만 두고 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항소할 수 있는 기준이 대한민국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국가의 기준을 만들지 않고는 들이칠 수 없습니다. 그럴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될 때는 아무리 사탄이 포악하더라도 하나님이 처리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와 세계의 종교가 통일이 안 되고 흐지부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에 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에서부터 전부를 협조해 가지고 이 나라만이라도 절대시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작전은 많은 사람보다도 몇 사람 안 되더라도 이들을 중심삼고 제 2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 제 2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을 하기 위해서 통일신도들은 어떠한 길이라도 가야 합니다. 세계의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는, 미래에 세워질 전통의 바탕을 여러분이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주인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습니까?
기독교가 순교의 역사를 엮어 나왔으니 그 이상의 새로운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독교 역사에 못지 않은 일을 전부 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3시대를 거치며 싸워 나왔습니다. 3시대를 거치면서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여러분 앞에 당당코 명령할 수 있는 실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실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의 욕망을 위해서였다면 벌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미래의 전통을 위해서 강력히 추진하고 싸워 나왔기 때문에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미래의 세계는 더욱 탄탄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통일교회에 대한 시련을 더욱 강화시켜야 하는 하늘의 뜻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을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민족적인 대신자의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민족 앞에 있어서 대표자로서 하나님이 바라는 민족적인 책임을 다해야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자들도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는 교파를 통일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혼란시대에 있어서 종교를 통일해야 합니다. 간판이 근사하지 않습니까? 간판은 근사한데 내용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으면 안 됩니다. 간판을 내걸기 전에 먼저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내용을 전파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뭐 내 자랑하고 여편네 자랑하려고 사람들 모이라고 합니까? 내가 나 혼자 자랑한다고 되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자랑해야 됩니까? 부모는 무엇을 자랑해야 되겠습니까? 뭘 자랑해야 돼요? 자녀를 자랑할 수 없는 부모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신 아들딸이 와서 엄마 아빠를 부른다고 할 때 부모는 그 아들딸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남이 볼세라 끌어 안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사정 속에서 지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은 `당신 아들딸 잘 낳았더군요' 하는 사탄의 조롱을 받으며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유린해 나온 그것을 깔고뭉갤 수 있고 덮어 버릴 수 있는 싸움이 우리 통일의 무리에게 닥쳐올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을 잘 포착해서 반갑게 나서서 내 손으로 처치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격전에 대비해 나가야 할 통일신도들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1950년대나 1960년대에 이렇게 했지…'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에게 `그래 그때는 좋아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하고 물을 때, `글쎄요…' 하게 되면 기분 좋겠어요?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을 고스란히 상속받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온 식구들이 잘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들어왔다고 해서 발전할 수 있는 무대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들어올수록 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 본연의 전통과 주류사상을 받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주류라는 말과 비주류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에 비유를 하자면 나무에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줄기가 되려면 곁가지가 되어야 합니까, 종대가 되어야 합니까? 종대는 뿌리로부터 언제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대가 가지처럼 자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나무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숙청해야 합니다.
사탄을 바로 이 중심(종대)이 못 자라게 하기 위해서 몰아댔고, 하늘은 자라게 하기 위해서 사탄과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싸움의 결판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그것은 주류라는 이 바톤을 인계받을 때 벌어집니다. 그 싸움의 결정을 짓지 않고는 진전이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무리 싸움을 하더라도 승리의 결정을 짓지 않으면 그 싸움에서 진전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야 됩니다. 싸워서도 끝이 안 나니 다시 180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중심은 둘이 될 수 없으며 영원히 하나이기 때문에 전통은 그 주류에게 상속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애국자는 누구냐? 애국자는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있고 또 누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진짜 애국자는 누구일 것이냐? 그건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류사상이 없으면 갈 곳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싸움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 나라에 애국정신을 고취시켜 줄 수 있는 진정한 애국자가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요, 주류가 못 되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이면 미국도 주류가 못 됩니다. 혹은 세계 국가 중의 어떤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모두 주류가 못 됩니다.
주류사상을 못 가진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도 못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걸 가지고 있느냐? 선생님 말고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원리가 여기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의 유교사상이라든가 플라톤의 사상, 그리고 기독교사상도 모두 그것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힘의 패권주의가 아니라 문화권을 중심삼아 통일사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그 주류사상이 무엇일 것이냐? 통일의 중심이 주류사상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온 것입니다.
최초의 전통적인 주류사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국가나 세계가 바라는 이상세계는 모두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상적인 원칙을 횡적으로 벌여 놓았기 때문에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그러면 부모의 주류사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에서부터 시작되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밤에도 좋고, 낮에도 좋고, 자면서도 좋고, 꿈에도 좋고, 도망가다가도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곧 행복의 열쇠입니다. 세계 만민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좋아할 수 있는 것, 거기에 대해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통적인 주류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혁명할 수 있습니까?
만일에 남자가 훌륭하다고 해서 여자들을 없애고 남자들만 살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망해요, 안 망해요? 100년을 못 갑니다. 또한 한집에 여자만 살게 하면 망해요, 안 망해요? 여기 여자들, 여자의 행복은 어디서부터입니까? 몰라요? 그럼 남자들, 남자의 행복은 어디서부터입니까? 「가정입니다」 가정요? 여자로부터입니다. 남자는 여자로부터입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 이런 말 하면 남자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 사람은 남자를 잘못 만나서 그런 겁니다. (웃음) 그래서 세상에서 혼자 살다가 죽은 귀신을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몽달귀신이 잘 된 거예요, 못 된 거예요? 똘똘 뭉쳐서 몽달귀신인가요? 혼자가 되었으니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었느냐? 얼굴을 보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사랑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 선인 것입니다. 사랑의 참된 줄을 중심삼고 연결된 것이 참된 가정이요, 참된 국가이며, 참된 세계입니다.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무슨 권세의 기반을 닦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의 교리는 성경 66권을 풀어 가지고 가정이라는 것에 결론을 지었습니다. 인류가 남아지는 한 통일교회의 사상을 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존재가 내세운 사상보다도 어떠한 내용보다도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사실적인 근거의 터전 하에 역사적인 실증을 기반으로 해서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이 사상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10대 청소년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부모의 사랑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부터 뱃속에서부터 뒤집혔는데 세상은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이 청소년 문제를 중심삼고 누가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냐? 통일교회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청소년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자면 얼마나 주어야 되겠어요? 대학을 다니는데 수십만 원 이상의 돈이 들게 됩니다. 선생님이 만일 대학교 이상 가는 그런 교육을 시킨 대가로 돈을 받는다면 통일교회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돈을 주고 자기의 생명을 얻은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들은 이러한 사상을 생명을 주고도 받지 못했지만 통일교인들은 그러한 은덕을 받았으니 여러분은 그 은덕에 보답해야 합니다. 또한 은덕을 받으려면 보자기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는데 누더기 옷을 입고 시집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보물단지를 지금 상속받아야 할 텐데 거적대기나 부대자루 같은 치마를 입고 가서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실례가 됩니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양은 비록 그렇지만 반드시 때가 옵니다. 그때에 가서 자신이 정성들인 물건을 뭇 사람에게 내주고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준비를 해 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이것만 해 놓으면 종교가 통일되지 말라고 해도 통일이 됩니다. 또 종교만 통일되면 국가도 통일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사상을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의 사조가 혼란되어 가지고 공산주의가 옳으니, 민주주의가 옳으니 하면서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여자를 남자라고 해도 남자라고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남자다운 남자를 모르는 사람은 여자 남자를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남자를 아니까 남자를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남자는 이렇게 생긴 것이 남자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이러했기 때문에 남자이며, 또한 앞으로는 이렇게 될 것이기 대문에 남자다 하는, 즉 남자라는 것은 역사성을 초월한 입장에서 결정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과거와 오늘이 다르고 미래가 다를 수 있는 것은 결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통일교회의 진리는 '좌는 이렇고 우는 저렇다, 너는 남자고 나는 여자다' 하는 것을 정확히 가릴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하늘을 대표한 종교로서 이 세계를 대표한 사상을 가지고 흐트러진 사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주의입니다.
선생님은 이 '주의' 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주의'라는 것은 지팡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리를 건너가려면 지팡이가 필요합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둘이 가다가는 그 다리가 무너진다고 하면 둘이 먼저 건너려고 싸울 것입니다. 의논해서 건너가자고 할 때 누가 먼저 건너갈 것이냐를 두고 또 싸울 것입니다. 다리를 먼저 건너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수가 생긴다면 필시 이런 싸움을 할 것입니다. 이 다리를 잘 건너가게 하기 위해 역사를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가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아들주의라는 말 들어 봤습니까? 부모는 아들주의 입장에 서야 하고 아들은 아들주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 있습니까? 그 주의는 가정주의 권내에 있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가정주의라는 것은 가정을 합해서 국가 형성을 하려니 필요한 것입니다. 국가주의 앞에는 이 가정주의가 흡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주의는 세계주의 앞에 흡수되는 것이고, 세계주의는 천주주의 앞에 흡수되는 것이며, 또한 천주주의는 심정주의 앞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입니까? 무슨 주의예요? 「심정주의입니다」 통일교회의 주의는 심정주의입니다.
'천주주의' 할 때 천주의 '주'자는 무슨 '주'자입니까? 천주주의라는 말에 하필이면 집 주(宙)자를 쓰느냐는 것입니다. 천대주의(天大主義), 혹은 천왕주의(天王主義)라고 하든지, 천주주의(天主主義)라고 하든지 할 것이지 왜 이 천주라는 말에 집 주(宙)자를 썼겠습니까? 이것은 집, 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슨 주 자라고요? 「'집 주'자입니다」 왜 집 주 자를 씁니까? 그것은 하늘의 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축복 받은 가정들이 이 기준에서 떨어지는 날에는 지옥,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축복을 받고서 헤어지려면 무엇 때문에 축복 받았습니까? 축복을 받은 후 잘못 되었을 때 앞으로 그들이 당하게 되는 비참함을 그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계약을 할 때 그 내용을 모르고 했더라도 그 계약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들의 전후 좌우를 가려서 서로가 문답을 하게 한 후 축복을 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꼼짝달싹 못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못하면 자기의 70대 이상의 조상까지도 걸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고 무서운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어디서부터? 천주주의로부터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어이구 그 이상상대라는 것이 마음이 맞아야 이상상대지! 솔직히 난 저런 상대가 싫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럴 수 있어요?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에는 지극히 근사한 가정이 있고, 지극히 안 된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함정에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부다 똑똑한 사람들만 장가가고 시집가면 밑창의 못난이하고는 누가 결혼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모두 죽어야 됩니까? 애꾸눈 여자시집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까? 팔 병신 남자는 장가 못 간다는 법이 있습니까? 그런 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들과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해야 됩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바로 그런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불구자와 사는 부인에 대해서나 그런 남편에 대해서 그 나라의 전통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환경적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것이 안 되었지만 앞으로는 필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일생의 소원은 세계에서 제일 못난 추남과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녀를 결혼시켜서 그 가정이 만민의 대표가 되는 가정으로 숭배 받고 높임 받는 것을 한번 보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찬양하기 전에 깊은 골짜기를 찬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할 게 아닙니까? 선생님이 아무렇게나 여러분들을 짝 지어 주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여기 협회장도 잘 모르지만 선생님은 다 그런 원칙적인 내용을 다 알고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남들은 저렇게 해주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해줄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두고 보아야 합니다. 쉽게 되는 가정이 있고 어렵게 되는 가정이 있습니다.
천주주의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면 심정에서부터 옵니다. 통일교회는 통일을 좋아하지요? 그러면 왼쪽 눈, 바른쪽 눈이 통일이 되어야 하겠어요, 안 되어야 하겠어요? 「되어야 합니다」 통일되자면 한쪽 눈을 떼어다가 갖다 붙여야지요? (웃음) 그게 아니라 3점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위기대라는 것인데 통일교회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런 사위기대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면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른쪽 눈과, 왼쪽 눈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인이 나타나고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인 결과가 이루어지면 사방은 전부 다 이 사위기대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사위기대가 안 이루어진 것을 죄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지요? 사위기대가 이루어졌어요, 안 이루어졌어요? 「안 이루어졌습니다」 원리를 모든 것에 대입해서 풀어 보면 꼼짝달싹 못하고 원리대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도 꼼짝달싹 못하고 걸려 있습니다. 걸려 가지고 망하느냐? 아닙니다. 걸려서 뺑뺑 그냥 돌아가게 되면 돌면 돌수록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탑을 쌓는 데 있어서 점점 높이 쌓을수록 더 크게 쌓는 사람은 없습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맨 꼭대기에는 하나만 남습니다. 그 하나 위에 더 쌓을 수 있습니까?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더 쌓아 올라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부다 망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올라갔다가는 내려와야 합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함께 사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꽉 붙들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를 붙들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들딸 이렇게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듯 천지의 법도가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도 천도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죄가 뭐라고요?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께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됩니다. 부모의 모든 것은 몽땅 아들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애국자입니다. 그 일대에 충성을 다하면 그 전통을 받는 후대는 기필코 나라의 귀감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세계를 중심삼은 사위기대 전통을 이어받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부부라면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축복 받은 사람이 선생님의 기준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전통적인 사상을 받아서 딴 종자가 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보면 부모의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종적이요, 사상은 횡적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이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종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며 산 하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사상으로도 산 하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생활적인 면에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 그리고 참된 부모의 자리에서 자녀를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중심 삼고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는 이 땅 위에서 대신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가정을 두고 볼 때도 그렇게 해야 되겠고, 종족을 두고 볼 때도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종족이 무지하면 우리가 그 대신자이니만큼 그 종족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나라가 무지하거든 또한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나라가 남아지는 날까지, 전통이 계승되는 날까지 이 사명과 책임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도 주춤거리지 않고 강력히 밀고 나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피눈물을 짜내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폭군입니까? 이런 말을 들으니까 기가 막힙니까? 아니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섭리적인 역사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이 지구상에 36억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데, 일년에 3천 6백만의 인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만큼 죽어가고 있습니다. 10년이면 3억 6천명이 죽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 인구의 거의 두 배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늘나라의 손해가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10년이면 3억 6천만, 즉 미국 인구의 2배가되는 인간들이 죽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단축시키고 싶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내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여러분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책임자의 입장에서는 강력해야 합니다. 세계 제일의 폭군과 같은 입장에서 무자비하게 내몰지 않을 수 없는 하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을 고생시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10대 후손까지 고생시킬 것이냐, 여러분 일대를 고생시킬 것이냐? 여러분을 고생시킴으로써 일대에 탕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음길도 개의치 않고 무자비하게 내몰아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독교가 순교의 길을 걸어 나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는 것을 응당히 가야 할 도리로 알고, 가법으로 알고, 미래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상으로 알고, 엄숙히 책임을 다하는 통일사상을 지닌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떠한 한계선을 넘어서라도 온갖 정성을 다해 나갈 때 세계는 우리의 편이 되지 말라고 해도 불원한 장래에 우리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가정, 종족, 민족,국가,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사하는 분야에 세계적인 사상을 투입하여 제한된 환경 속에서 생애를 바쳐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이 일이 세계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갖 정성을 퍼부어야 합니다. 피땀 흘려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생애 최고의 활동 장소요, 생의 핵심을 결정지을 장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일어나고 거기에서 일하고 거기에서 죽어 가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알고 싸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통일사상을 지닌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면모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책임을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배후를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수많은 민족들이 피흘려 싸워서 남겨놓은 역사를 가려 오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 오셨는가를 저희들은 막연하게나마 마음에 그릴 수 있사옵니다.
과연 아버지는 불쌍한 아버지였사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아들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들이 책임을 못 하였다 할지라도 딸이라도 내심적인 입장에서 미래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자극이라도 가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들을 내세워서 복귀의 터전을 닦아 나온 역사과정이 비참했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딸이라도 아버지의 심정 앞에 설 수 있어야 했지만 그럴래야 그럴 수 없는 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게 지내셨사옵니까?
이제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을 세워서 딸을 찾을 수 있는 때가 된 줄 아옵니다. 아들과 딸이 서로 아버지의 사정과 내정적인 심정을 헤아려서 처참한 형상의 한 부모를 말없이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앞에 역사상의 인류와 더불어 눈물을 흘릴 수 있고, 현시대의 인류와 더불어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미래의 새로운 사명을 절감하면서 효성을 다하는 모습이 되겠다고 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고 통곡하며 사정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할 저희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엮어 온 역사의 배후는 지극히 처참했사옵니다. 그 누구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사옵니다. 아버님이 동정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들도 동정 받기를 원치 않았사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동정하기에 마음을 졸였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미래의 소망을 이뤄 드리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믿고 나아가는 통일의 무리는 아버지의 소망의 실체가 되어야 되겠고, 소망의 산 기반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이 뜻을 중심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산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하겠고, 또한 이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 인류가 산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벌거숭이로 몸부림치는 통일교회무리에게 채찍을 가하여 민족과 세계 앞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비참하고 비참한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될 때 뭐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없는 입장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약자가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여기에서 주저하고 머물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최후의 결전장을 향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몸이오니 주저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최후의 싸움의 기지를 향하여 달려가야 되겠사옵니다. 전면적 진격을 하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전통을 연결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참소의 조건, 처참한 모든 저주의 조건들이 오늘날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연결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아버지를 상심시킨 그 뿌리를 뽑아서 순수한 마음으로 내일의 소망 앞에서야 하나 그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은 다시 소망을 가지고 늠름한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로 말미암아 미래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많게 하여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사람의 말을 듣고 따라온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저희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따라오지 않았사옵니다. 인간 사이에서 맺어질 수 있는 어떠한 인정에 끌리어 따라온 것도 아니었사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인연을 가지고 따라 나온 걸음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삼고 결판지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 각자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충효의 도리와 인연을 맺고 책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각자 앞에 맡겨진 영원한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하늘이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8월 24일이옵니다. 이달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시련의 달이었고 눈물 자국을 메워 나가는 달이었사옵니다. 오늘 24일을 해방 24돌과 더불어 넘기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넘기고 나서 탄식이 그늘에서 신음하는 민족이 되지 말게 하락하여 주시옵고,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환희의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해방 25주년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통일의 깃발을 드높이 들고 아버지의 자비를 자랑하고 아버지의 권한을 찬양하는 새로운 한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늘이 칠 것을 알고 있사오니,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할 줄 아는 하늘 사람,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아버님의 대신자가 되라는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았사옵니다. 말할 수 없이 슬픈 역사 과정에서 개인을 대하고 가정을 대하고 민족과 세계를 대해야 했던 아버지 앞에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일신을 잊어버리고,환경을 잊어버리고, 그 국가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전통적인 내정을 상속 받아야 하겠사오니, 그것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외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고, 주류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세계의 사상을 수습하는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지에서 이날을 기념하는 자녀들을 특히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서 이곳을 사모하며 눈물짓는 자들의 눈물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호소하는 호소가 민족에만 그치지 말게 하시옵소서. 그 제단이 세계를 찾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복지의 제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를 부르고, 또한 모든 인류가 저희를 부르고 절규하는 그 음성을 듣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면서 목적지를 향하여 달음질 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부를 주관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을 복귀시키려는 아버지의 노고가 역사과정에서 슬픔과 더불어 연속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회상하올때, 역사노정의 어느 한 때도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게 복귀의 사명을 감당해 낸 사람들이 없었던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뜻을 중심삼고 나이 많은 사람에서부터 나이 어린사람에게까지 대상자들을 찾아 나오셨사옵니다. 그러나 당신으로부터 영원을 두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당신께서 친히 영원을 두고 사랑하고 싶었던 아들딸이 없었던 것이 한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올 때, 그와 같은 슬픔을 남기게 항 선조들의 토대를 밟고 넘어가야 할 현실에 처하여 있는 수많은 인류들을, 아버지, 다시 한번 굽어살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역사과정에 있어서 슬프고 처참하였던 당신의 모든 사정을 대신하여, 젊은이로서 늙은이로서 혹은 소년으로서 아버지의 심정 앞에 소망의 중심이 되고 아버지의 사정을 승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과 딸이 모두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슬픈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옵니까? 딸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옵니까? 그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참다운 아들과 딸을 찾아서 당신의 품에 품고 기뻐하시며 승리의 노래를 온 천지간의 만물과 더불어 공히 부르지 못함이 얼마나 한 맺히는 사연인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아버지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으며,그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의 실체가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며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역사를 통하여 내려온 인류의 소원이요, 비참한 역사에 대한 해원성사의 시점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는 그 하나의 기점이 오늘 현실적 자아의 한 개체를 중심삼은 가정이옵기에 저희들은 그 가정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엄숙한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 과제 앞에 있어서 충효의 도를 갖추어 아버지의 본연의 뜻을 다시 한번 고이고이 인계받아 에덴의 한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은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습니다. 땅도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움직이는 방향과 땅이 움직이는 방향이 서로 일치되지 못한 것이 서러움이 되었기에 이를 일치시켜야 되겠사옵니다.이것을 일치시켜야 할 존재는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이 중간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배반해 역사적인 역로의 터전을 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비참한 싸움이 오늘날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연결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하늘의 원수보다도 땅의 원수보다도 더 무서운 원수가 사람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슬픔과 한을 쌓아 오셨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엔 지금까지 처참한 피의 역사가 엮어져 왔습니다. 이 모두가 참다운 한 사람을 세우지 못한 연고였음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은 참을 세워 놓고 참된 사람을 찾아야 되겠사옵니다.찾아서는 그와 완전 일체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절대 순종하며 가야 하는 것이 복귀의 노정임을 알았사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온 정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여기에 머리 숙일 수 있고 땅이 여기에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아버지와 일체가 되고 아버지를 모실 수 있으며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의 모습을 갖추어서 원수인 사탄에게 조롱받지 않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그리워하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속에 피끓는 정열이 있사올진대 이 정열이 어느 개인을 위한 정열로서 끝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 정열이 당신의 정열로서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청년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거든 그도 역시 마찬가지이며, 장년, 노년에게도 그 정열의 심정이 있거든 그것이 당신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찾아야 할 그 자리를 오늘도 내일도 그리워하며 나가야 하는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이 타락인간의 후손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아버지를 고이 모셔 드려야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존전에 몸 굽혀 과거의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되겠사옵고 용서를 간구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찾아와 주시옵소서.저희에게 긍휼의 마음을 펴시사 저희를 잊지 말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의 소원과 일치될 수 있는 참된 대상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을 흠모의 대상으로 삼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 하늘이 정할 수 있는 정열의 마음과 땅이 정할 수 있는 정열의 마음을 합하여 당신을 아버지라 칭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기준을 저희들이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그럴 수 있는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겸손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8월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 안식일을 맞이하여 이 자리를 거쳐간 모든 원한의 조건들이 아버지의 심정 앞에 상처를 남기지 말게 하여주시옵소서.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슬프던 아버지의 사정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이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이면 새달을 맞이하게 되옵니다. 이렇듯 9월을 맞는 귀한 경계의 자리에 서 있사오니, 저희들을 아버지의 뜻과 시봉하는 무리로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뜻에 일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여기를 찾아온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반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서울을 향하여 심정을 다 기울여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그 호소가 아버지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옵고, 그 음성이 아버지의 거룩함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를 잊어버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한때의 처량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사옵니다. 기쁘게 출발해서 기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기에 있어서 저희들이 당신의 힘차고 강하고 자랑스러운 용자를 지녀서 만세의 군왕으로 천년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해외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인간이 존속하는데 있어서는 혼자서 살 수 없기에 태어날 때부터 혼자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우리 개체는 사회와의 인연과 관계를 벗어나 자기 독자적인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개체는 태어날 때부터 일생을 마칠 때까지 자기만을 중심삼고 나가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의 배후의 환경을 헤아려 보아도, 전체의 인연 가운데에서 내 개체의 인연을 수습하여 설 때에야 비로소 나의 자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하는 그 '나' 가운데는 반드시 배후에 숨겨진 인연이 깔리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생활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그 자체가 내 자신을 지지하고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내가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 서게 된다면 세계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우리가 섭리의 뜻을 알고 보면, '나'라는 한 개체 가운데는 하늘과 땅이 모두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이념과 환경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내가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혈육을 통해서 태어나고 자라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하늘의 상징이요, 어머니는 땅의 상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가 있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전후관계와 좌우관계가 연결되어있습니다. 즉, 가정이나 친척이라는 환경 가운데에서 태어난 내 자신을 두고 볼 때에, 그 자리는 내 개인만이 처하여 있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의 환경을 축소시킨 관계와 인연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나'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나'로서 주장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흔히 개인생활에서 잊어버리기 쉬우나 생활 가운데서 그 사실을 발견해야 됩니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는 가정을 대표하고 친척을 대표하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 세계, 하늘과 땅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면서부터 확실히 알았더라면 살아가면서 그것을 확실히 하고 살아갈 텐데,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이 희미했기에 오늘날 일생을 희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 있는 나 한 개체가 타락을 하고 실수하게 될 때에는 그것은 나 혼자만의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그 실수는 나 자신이 속한 환경과 전체의 문제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내가 한번 방향을 잘못 잡게 될 때는 나 하나로 말미암아 가정도, 국가도, 세계도 그 잘못된 내용이 인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 하나 잘함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이 새로운 의미에서 승리의 한 가정의 자리를 닦을 수 있는 것이요, 그 가정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사회가 승리의 자리를 닦을 수 있는 것이요, 사회가 그러하기에 국가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이요, 국가가 그러하기 때문에 세계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나'에 관한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요, 내가 있기 때문에 욕망이나 희망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배후에 이런 관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간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내가 정의에 입각하고 참에 입각하여 내 나름대로 용맹을 가지고 어떤 국가적인 대표자라든가 세계적인 대표자가 되겠다고 소망하며 나간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삼은 절대적 위치에서 관계맺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위치에서 관계맺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는 가정을 대표하고 있는 동시에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임을 언제나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교인이라는 입장에 섰을 때 여러분들은 '나'라고 하는 그 '나' 한 자체는 통일교회를 대표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감정, 이런 관점, 이런 결의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나, 그 단체나, 혹은 그 가정에서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경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의 결과가 되고 싶어하고, 혹은 자신이 동기가 되어 상대적 세계에 결과를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적인 입장에서 지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서부터 결정되느냐? 나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 욕망이 달성되고 내 희망이 성사되는 판가리의 길은 나로부터가 아니요, 오히려 나와 관계되어 있는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성공했다면 그것은 나로 말미암은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것이 나로 말미암은 성공이라면 그 성공은 반드시 오래 못 갑니다. 즉, 나로 말미암은 주장은 일시의 주장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 주장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일시의 순응은 있을지 모르지만 생애를 통하여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부터 인간은 관계된 환경의 터전을 중심삼고 존속하기 때문에 그 생활기반이나 활동기반을 떠나서는 자기의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제거됩니다. 나라도 그렇고 세계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륜도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륜도덕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개인의 감정과 사정을 통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치면서 이루어져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인륜도덕은 현실을 비난하고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인간의 표준이 되어서 인생행로의 적절한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아의 가치를 수습하도록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인륜도덕이 닦아나온 길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내가 존경을 받고 내가 어떤 욕망을 달성한 자리에 섰다 해도 그 배후에 더 큰 가치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볼 때, 자기가 처해있는 그 자리가 절대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다른 길로 가라 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내가 한 발자국 걸으면 반드시 여기에는 자기 스스로의 그 가치보다도 더 큰 가치가 그 배후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한발자국 잘못 가게 될 때는 여러분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여기에 얽혀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면, 그 가운데에서 주장하는 자기는 가정의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이요, 사회의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이요, 국가적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이요, 세계적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입니다.비록 그런 위치에서 그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간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이 마련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기필코 국가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요, 세계에 주체적인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땅 위에 왔다 간 성인 현철들은 모두 이 기반을 닦기 위해 살았던 분들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현실에 처해 있는 자기를 중심삼고 살지 않고,역사가 지녀온 과거에 더불어 살았습니다. 왜 그랬느냐? 환경의 인연과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고, 그런 환경에 존재하는 '나'이기에 그 나를 확실히 명시시키고 그 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영원한 발판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계를 벗어나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역사노정에서 남달리 이름을 남기고 간 성인현철들은 그 길에서 살고, 그 길에서 싸우고, 그 길에서 죽어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말한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되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위한 가운데에 자기를 세우려 했으며 환경을 위한 가운데 자기를 세우려 했지, 전체를 무시하고 환경을 무시하면서 자기를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속된 인간들은 이것에 있어서 왕왕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통일교회 원리를 두고 볼 때도 자기라는 것을 무시하게 되면 전후·좌우·상하관계를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내용입니다. 때문에 어떤 중대한 문제를 걸어 놓고 자기가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이 전체 문제가 환경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혹은 여기에 관계된 인연의 세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즉,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도 자기 자신의 잘잘못보다도 이 환경적 인연 앞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분석하고 비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분석적인 기준과 비판적 기준에 맞는 절대적인 자리에 설 수 없었기에 그런 자리에 서려고 싸웠던 성현들이 필요했고, 도의 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류가 성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도덕이 가는 최후의 목적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륜만이 아니라 천륜이 인간과 같이 있기 때문에 천륜의 길을 가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인륜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천륜을 기반으로 하여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 땅이 무엇이냐? 오늘날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막연한 관념적인 용어가 많이 생겨 났지만, 그것은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 인간이 이렇다 할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륜이 서기 전에 천륜이 먼저 서야 하기 때문에 하늘, 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땅, 하늘이라 하지않습니다. 상하를 말할 때도 상이 있어 가지고 하가 결정되는 것이지 하가 있어 가지고 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천(天)이 있어야 지(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야 어머니가 결정되고, 형이 있어야 아우가 결정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류역사는 인륜만으로 엮어진 역사가 아닙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역사를 개척해 나왔으나 그 배후의 동기가 되고 내용을 갖추게 했던 천륜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고로 인륜만을 주장한 사람은 성현이 못 됩니다. 성현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성현은 천륜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문제를 다룬 사람이라야 천륜적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자나 석가, 또는 마호메트보다도 누가 천륜을 중심삼고 더 깊이 분석하고 거기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느냐?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천륜적 입장을 세울 수 있는 공고한 토대를 이루기 위해 천륜의 심정 기반과 더불어 살았던 분입니다. 인륜을 넘어서서 천륜의 심정 기반과 더불어 살고 그러한 환경의 터전을 닦아 세우려 했던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생각하고 그분이 가셨던 길은 세계적인 역사 종말과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디며, 처해야 할 자리는 어디냐? 통일교회는 어떤 선생으로 말미암아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통일교회는 여러 사람이 합해서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것이 그 누가 마음대로 설치할 수 있는 단체라 한다면 통일교회는 하나의 수양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어느 한 때에 반드시 수정당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인륜적인 토대 위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천륜의 내정을 어떻게 기반 닦아 나왔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세계의 어떠한 종교 단체보다도 세계의 그 누가 가지고 있는 심정보다도 높고 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 세우는 동시에 세계인의 심정과 천륜의 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세우게 되면,세계인을 통합하는 것은 자동적인 결과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천정을 논의하고 나오는 곳이지 인정을 가지고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면 인정의 최고봉은 무엇이냐? 부모입니다. 인정의 최고의 꼭대기는 가정을 중심삼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삼강오륜의 모든 핵심적인 내용도 여기에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수 없고 나라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내와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륜의 최고의 중심인 부자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모든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정의 최고봉은 어디냐? 이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이것 역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은 통일될 수 있습니다.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최고의 기점도 종점도 시발점도 가정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은 통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언제 통일될 것인가, 인륜과 천륜이 연결될 때입니다. 어디서 연결될 것이냐? 바로 가정이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천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집이 어떤 집이냐?사람끼리 사는 집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살 수 있는 집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집의 일원이 누구냐 하면 나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닙니다.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 것이 물론이지만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란 말이 멋진 말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란 무엇이냐? 하늘 부모를 말합니다. `참'이란 언제나 정의의 귀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긍정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거기에 순응하고 화합하기 위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볼 때 '나'라는 입장이 엄청난 것이어서 내가 기분 나쁘면 대한민국 전체가 기분 나쁠 수 있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밥술이나 먹으니까 좋아하는, 남들이 다 배고파해도 응당 나 하나 배부른 것에 머무르고 마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동물입니다, 동물. 오늘 여기에 젊은 사람들 많이 왔는데, 어디 새로 들어온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들은 밥을 먹어야 할 때 밥을 먹었으면 황송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밥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보다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짙은 사람은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요,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갔던 사람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 나라의 장래와 호흡할 수 있고 세계의 역사와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것이요, 미래의 소망의 천국과 호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의와 협력하지 못합니다.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하늘땅을 점령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계를 아직까지 점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심정적 기반이 남이 있는 한 앞으로 다가오는 세계는 어떤 주권자에 점령되어 가지고 주권자의 권한에 좌우되어 움직여지는 세계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간 위인들은 한결같이 소망의 천국을 맞기 위해서 싸우다 간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본받으라'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나를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미래에 볼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라고 하신 말씀도 현재의 고생하고 쫓기고 핍박받는 입장에 있는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가면 반드시 해방의 세계, 해방의 천지,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중에 큰소리 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현이나 위대한 인물을 비판하게 될 때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자로 재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책의 처음 몇 장만 보더라도 그 책을 쓴 사람이 몇 점짜리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 학교 선생님은 이런 분야에서는 몇 점이지만 저런 분야에서는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륜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천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천륜은 무엇을 세우기 위한 것이냐? 천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원리를 몰라도 생각해 보면 자연히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원리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입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환경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는 어디서 하나 될 것인가? 하늘과 땅이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희로애락을 공감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디인가? 바로 천정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참자녀의 인연이 갖추어진 참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역사가 소망하는 기준이 어떠한 세계를 통일하는 것도 소망이겠지만 그것은 2차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먼저 기쁨의 동기를 갖추지않으면 소망하는 기쁨의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낙망적인 사람이 희망의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소망이 여기에서도 격동하고 저기에서도 힘찬 원동력이 솟구쳐 나오게 될 때에야 거기에서부터 세계가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슬픔에서부터 천국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우리 나라에 있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내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내 마음은 천정과 더불어 영원히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천정이 무엇이냐?예수는 그 말을 못했을망정 천정의 핵심을 간파하여 참부모와 참아들딸의 인연을 맺고자 하셨습니다. 그 인연은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참부모를 대표한 자리입니다.
그러면 참된 기준이 결정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천정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이 길입니다. 이 길은 개인도 가야 되고,가정도 가야 되고, 국가도 가야 됩니다. 이 길은 여러분 모두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야 하고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나라와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참부모를 모신 참아들딸로서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 천륜을 통하여 갈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천륜을 통하여 가게 되면 인륜은 반드시 분리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인간세상에 타락이 없게 되고 고통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천정에 어긋난 것입니다. 통일가에서는 이것을 사랑의 문제로 다룹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찾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종교는 사랑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사랑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늘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 땅 위에 많은 종교의 형태가 갖추어져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단계적으로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수천년 동안 문화배경이 다른 이것을 수습하려니 그 방편으로 여러 가지 방법과 형태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놓아야 세계가 모두 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가 머무를 수 있는 자리에서 '나는 인륜을 대표한 사람이요, 천륜을 대표한 사람이요, 인륜과 천륜이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다. 또한 나는 우주와 천지를 종합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인 동시에 하나의 중심존재다'하는 생각으로 자기 스스로의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개체가 되어야만 거기서부터 천지가 통일되고, 거기서부터 역사가 수습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기원이 시작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핵심적인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서 나오는 사상이 앞으로 이상사회의 사상이 될 것입니다. 그 사상을 책임진 사람이 누구냐하면 바로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그 재림주하고 나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분은 나를 빛내고, 나를 찾고, 나를 세우고, 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타락한 인간은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이 '그냥 이대로 가면 되지 뭐, 남달리 바쁘게 할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을 품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지 역사와 더불은 생각이 아닙니다.이 현실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된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와 동떨어져 있는 생각이요, 현재와 동떨어져 있는 생각이요, 그런 생각으로 아무리 선두에 서 보았자 결국은 여러분의 조상들이 역사과정에서 걸어 나왔던 그 모양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생명을 잃고 온 천하를 얻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의 생각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륜이 상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반드시 참부모를 중심삼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과 땅이, 인륜과 천륜이 상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란 말을 생각해 볼 때, 재미있는 것은 참부모 없이는 참자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부모를 하늘이라 보면 자녀는 땅이요, 부모를 상으로 보면 자녀는 하요, 부모를 전으로 보면 자녀는 후가 되는 것이요, 부모를 우로 본다면 자녀는 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밥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런 관점에서 지내 왔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더불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거 멋지지 않아요? 구경을 가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모시고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 관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그렇다'하고 실감하는 날에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틀림없이 그렇다'하고 체험하고 실감하는 사람들은 어느 무엇에도 굴복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벗어나서 굴복했다 할지라도 기필코 그 원칙에 또다시 귀결되기 때문에 결국은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령 굴복했다 하더라도 그 원칙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그것에 완전히 굴복하고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하에 정복당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모심으로 인해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서는 모심의 생활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신념을 가진 종교는 세계의 어느 곳이라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통일교회의 사상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소망을 걸고 감사해야 할 것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이 바라왔던 소원이었습니다. 수많은 남자가 바라왔던 소원이요, 수많은 여자들이 바라왔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만일 이 땅위에서 이런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핵심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이 천정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나설 수 있는 그때가 바로 우리가 소망하던 천국이 출발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거기에서부터 하늘땅의 끝날이 오는 것이요, 인류가 바라던 목적과 희망의 한 정착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혼자 주장하는 시대는 다 지나가게 됩니다. `내가 제일이다'라고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때부터는 공동세계입니다. 즉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공생이다, 공영이다, 공의다 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는 인류가 바라왔던 이상천국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절대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는 혼자만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나' 하면 반드시 상대가 있는 것이고 또한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있어서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활무대에 있어서 실제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천국의 세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왼 눈과 오른 눈의 보조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것은 공영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부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콧구멍도 둘이지만 한 콧구멍이 막히면 좋아요,나빠요? 마찬가지로 귀도 하나가 막히면 좋아요, 나빠요? 병신이 좋아요, 나빠요? 다리를 잘라 버리든지 팔을 잘라 보세요.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관계를 갖춘 모든 존재물은 스스로 천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여기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이런 것은 서양사상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동양사상이 서양사상보다 한 단계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터전에서부터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을 떠나 가지고는 '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혼자서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교회를 위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보다 더 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에서 대장 되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교회를 위하는 것은 내가 더 크기 위해서요, 나라를 위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위해서요, 세계를 위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 위해서요, 하늘땅을 위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 위한 것입니다. 얼마나 크기 위해서냐? 최고로 크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크다고 하는 것은 부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최고의 원만함과 원숙함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자리에서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수준의 무대에서 만민과 더불어 살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야 할 나의 길이 남아있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의 출발점은 통일교회가 잡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출발을 했으니 목적점에 가서 머무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전도를 하라, 혹은 세계의 선교사가 되어라, 다음에는 하늘땅을 위하여 공상당이면 공산당하고 싸워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체의 가치를 잘 알아서 오늘날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버님, 저희는 지금까지 내 한 생명이 가련한 존재인 줄로 알았사옵나이다. 그러나 이제 내 한 생명이 역사와 더불어 빚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신의 슬픔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을 풀어 놓고, 화를 낼 수 없는 내 개체인 것을 여기에서 발견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그렇게 인연되어 있는 내 자체를 저희가 얼마나 존중했사옵니까? 빛나는 역사가 상대적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개체의 역사의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승리의 영광이 어떠한 천주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더불어 승리의 선물이 머무를 수 있는 그 자리는 내 한 개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온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나 하나가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결정 짓지 못하게 되면 그 세계는 지극히 좁아지는 것이요,지극히 작은 내 한 개체이지만 온 세계를 굽힐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을 결정하였을진대 그 결과는 온 세계가 닮고도 남을 수 있는 내 개체인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에 예수는 '온 세상을 찾더라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결정적인 말을 하였고,석가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의 가치를 설파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 모든 것이 내 한 개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그 모습이 천태만상일지라도 걸어가야 할 노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심정이 갈래갈래 찢겨졌더라도 하나의 심정으로 수습할 수 있는 표준적기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행위의 사실이 여기서부터 좌우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가 결정될 수 있는 영적인 한 기준이 나타나게 될 때,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천국이 창건되어나가고 새로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지닌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인정만을 위하다가 끝냈던 과거의 역사를 비웃고 천정과 더불은 인정을 천 배 만 배의 가치적인 자리로 끌어올려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나는 온 세계 만민이 심정의 세계에서 소망하고 이상하는 그 무엇을 갖고 나선 사람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통일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처럼 엄숙하고 가치 있는 내용이 천만년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혹은 우주 전체의 존재와 더불어 이 자리를 알게 된 것을 진정으로 감사하지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이 자리가 이때까지 찾아 나온 수고의 역로를 넘어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책임을 다 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제 그럴 수 있는 마음과 아버지께서 바라고 계시는 기쁨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찬양의 기준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자리가 저희의 몸과 마음을 몽땅 퍼부어 취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자녀들은 이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자기의 모든 환경을 잊어버리고 교회를 중심하여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마음깊이 스스로 느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몸이 마음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그것은 어떠한 요술도 아니요, 어떠한 새로운 조화도 아니요 오로지 천륜의 원칙에 따라 움직여지는 하나의 자연적인 법도인 것을 저희가 깨닫게 되옵니다. 하오니 순응의 도리에 따라 절대 승리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은 그 누구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그것은 저희 자신을 위한 길인 동시에 세계 국가를 위한 길임을 알게 하여 주옵고,어떤 개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태어날 때 `나'라는 존재가 김 아무개면 김아무개만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님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아무개는 이 길을 가기 위해 태어났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그것이 내 생활의 천륜인 것을 밝혀 갈 줄 아는 모습이 되고 그 가치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문제를 명시시키고 해결지어서 그 가치를 더욱 가치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핵심적인 실체를 찾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교인이 된 목적임을 알게 하여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이 길을 가는 것이 절실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위해 모였느냐 할 때,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위해 모인 것도 아니요, 통일교회의 그 무엇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옵니다. 나를 위해서 가려 하니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이요, 또한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와 세계가 있기에 믿고 따르고 있사옵고, 또 거기에 가까운 길이 이 길이기에 이 길을 따라 나왔던 것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통일교회를 통해서 나라로, 통일교회를 통해서 세계로,통일교회를 통해서 천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불변의 심정이 상심되지 말게하여 주시옵고, 그 심정이 고이고이 뻗어 흘러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동맥의 고동소리와 천정의 심장을 통하여 울려나오는 동맥의 고동소리가 저희의 몸과 일치되어 생활감정을 움직이고 돌아가게 하는 정맥의 역할을 저희 자체가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그 정맥의 맥박이 역사와 더불어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수 있고,생활에 있어서 만민의 동지가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겠느냐고 아버지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묻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귀한 `나`를 길이길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찾아 세워야 할 그 '나'를 위해서는 저희는 모든 타락한 후손의 피를 흘려서라도 투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투쟁은 내일의 나를 빛내기 위한 것이거늘, 그 빛남과 더불어 천지의 인연이 빛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오늘의 한 시간 한 때를 존중시할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전국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과 이곳을 그리워하며 정성들인 무리들에게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과 아버지의 귀하신 심정이 더하여 주시옵기를, 사랑의 아버님, 부디부디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사옵니까? 저희의 몸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사옵니까? 과거의 사된 마음의 자리에 머물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과거에 망할 수 있는 자체에 몸을 숨기고 벌받을 수 있는 자리에 머무르는 자신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을 짊어지고 땅 위의 인류의 마음에 싹틀 수 있는 자리에 몸과 마음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다짐하며, 천만사에 빛이 될 수 있는 그 '나'를 그리면서 아버지의 왕자와 왕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흠모의 정열이 싹틀 수 있는 그 나의 자리, 혹은 사모의 정열에 빛날 수 있는 그 나의 자리가 고이고이 자랄 수 있는 내 자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빛나는 내일을 소망삼고 저희들은 궐기해야 되겠습니다. 빛나는 내일의`나'를 소망삼고 저희들은 궐기해야 되겠습니다. 빛나는 새로운 천국을 위해서 저희들은 궐기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들은 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겠습니다. 빛날 수 있는 저희의 모습을 안팎으로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천정의 인연 앞에 고이 잠들고, 고이 깨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겠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부를 수 있는 참자녀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그 사랑 가운데서 하루의 생활을 노래하고 그 사연 가운데서 하루의 일을 거룩히 찬양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영광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가 나를 찬양하는 데 있어서 참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진정한 의미의 우리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 집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질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이 나에게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엔 누가 있습니까? 부모, 형제, 친척, 우리의 마을 등 이러한 모든 요건을 갖출 때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부모 형제와 부부가 다 같이 기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기뻐질 수 있는 것이 집입니다. 이것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고아와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을 고아라고 합니다.
우리는 남의 집이 아니 우리의 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완전한 행복의 터전인 집을 떠나서는 나라도 세계도, 그리고 어떠한 목적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집을 중심삼은 부모 부부 형제들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의 요인이나 원망의 요인도 집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출발점과 결착점은 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이상(理想)하시는 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파멸과 불행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고의 행복의 터전인 집이 절망의 터전이 되고 불신의 터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늘은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이러한 가정적 불행은 아담과 가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영원한 이상의 집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상하시는 집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남이 아니라고 하는 길을 가는 무리가 바로 통일의 무리입니다.
원리를 통해서 보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 조상의 후손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간부(姦夫)의 자식입니다. 아무리 잘났다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공인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또한 천륜의 배도자(背道者), 역적의 피를 받고 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대하여 한없이 부끄러운 자입니다.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무리가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런 네 자체를 주장해서 얼마나 가느냐? 이런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도, 나라도 전부 불쌍합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혼자 가야 합니다. 정비하는 데는 몸에서부터 감정과 육감의 세계까지 정비해야 합니다.
스스로 만물의 티끌만도 못하다고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해야 합니다. 하나님 책임분담 95퍼센트에 인간 책임분담 5퍼센트 합해서 새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가서 살자. 즉 하나님의 집에 가서 살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닮은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견딜 수 없이 좋아하시며 '네가 몽땅 내 사랑이다'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은 기성시대를 자꾸만 부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해놓고 수습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닮기를 싫어하는 세상 사람에게 우리는 닮기를 주장합니다. 일체를 닮게 합니다. 그 나라의 군왕을 닮아 가지고 충신도 닮아야 안팎으로 서로 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마음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자는 자리에서도 마음은 늘 깨어 있습니다.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몸은 꼼짝 못합니다.
상대이념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 되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는 관계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신랑을 찾아야만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종적)을 닮고 하나님의 사정(횡적)을 알아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하나님을 현재의 하나님을 알고 미래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많이 닮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도 있고, 아들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세계에 심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거리 관계로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그 나라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는 하나님, 부부는 아담해와, 자녀는 세계 인류를 대표한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구애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따라서 전면적인 진격이 필요합니다.
전쟁의 동기는 남, 여, 나, 너입니다. 그리고 부모, 부부, 형제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엔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서 자녀가 되고, 신랑 신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가정보다 더 높은 가정, 더 나은 부모, 형제, 부부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개척해 나오시는 선생님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노정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은 더 비참하고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소망의 집을 찾은 나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느냐? 이 뜻을 알고 나면 자기 집에 가는 것보다 통일교회에 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가짜요, 그렇지 않으면 또 이 길을 다시 가야 합니다.
같은 남자끼리라고 하더라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랑 신부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아내를 가질 수 없고,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아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들어오면 아버지, 신랑, 오빠같이 되는데, 남자의 경우는 타락할 때의 사정을 탕감하기 위하여 상극적인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통해서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형님, 선생님은 동생, 예수님은 영적 신랑, 선생님은 실체 신랑, 예수님은 영적 아버지, 선생님은 실체 아버지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것을 상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버님! 오늘은 9월 14일, 이 달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성일이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을 참사랑의 형상으로서 빚어 주시옵소서. 저희 인간은 피조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을 알았사옵고, 거룩하심과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는 아버지의 섭리가 인간과 더불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인해 결실되어야 할 이 엄청난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때, 각 개체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이 미미한 존재에게 이렇게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한 가정의 일원이 되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봉사하면서 생애노정을 개척하다가, 그것으로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는 줄 알고 살아 나오던 저희였사옵나이다. 하오나 저희 자체가 역사적인 실체라는 이 엄청난 사실과 중대한 가치적 내용을 지닌 모습인 것을 말씀을 통해 알았사옵나이다.
아버님, 대한민국은 불쌍한 나라이옵니다. 이 민족은 아시아에서 유린당하고 쫓김받고 핍박받던 민족이었사옵니다. 어느 한 때, 하늘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권한을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없었던 불쌍한 민족이었사옵니다. 이 민족의 배후에 있는 역사적인 슬픔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래서 슬픔을 탕감하고 나면 아버님의 영원하신 축복의 인연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은 슬픔의 주인공임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만민의 축복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그래서 아버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최후의 승리의 권한과 최후의 영광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고, 높고 귀하신 중심이신 아버님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만상과 대세가 좌우된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분을 아버지로 모셨사오니 아버지를 입으로만 불러서는 안 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홀로 짊어지고 나오시는 아버지의 사정과 심정을 알았사옵고,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는 분부하고 싶은 자녀를 찾기 위한 간곡한 소원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사옵고, 무한한 심정의 인연 때문에 억제할 수 없는 비통한 자리에서도 아픈 가슴을 참고 찾아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도 갈망하시고 그리워하고 요구하였던 그 자체들이 오늘날 저희 자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렇게도 비참하고 불쌍한 자신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가냘픈 이 생명의 인연을 스스로방관하고 포기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무가치한 이 모습을 무한한 가치로 세우시려는 아버지를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심정의 골짜기를 파고 들어가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딱하셨는가를 알게 되옵니다.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저희 자신들은 이 모습으로 감히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부족한 자들이옵니다. 혈통적 인연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더불어는 아무 내용도 갖추지 못한 원수의 자식들임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저희를 당신은 크신 사랑을 통하여 순수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버지의 내적인 심정이 얼마나 고충스러웠는가를 저희들이 진정으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그 누구보다 저희들이 백배, 천배의 노력을 한다 해도 아버지의 마음 앞에 합당할 수 있는 내 자체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께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겠사옵니까? 저희 자체를 찾기 위하여 험한 행로 가운데서도, 그 한 날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아버지께 저희들은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대할 수 없는 자신임을 알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간은 흘러가는 역사과정에서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륜의 인연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가치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소원의 일념을 대신할 수 있는 결실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구에게 저희가 시험받고 부름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온 천지를 창조한 아버지 앞에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희는 가진 것이 없어도 아버지를 모시게 될 때에는 행복하옵니다.
어떠한 불행한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와 같이 있게 되면 불쌍한 자가 아니옵고, 외로운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외로운 자가 아님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연약한 자리에서 저희 자체가 연약한 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원천 되시는 아버지와 하나될 수 있는 그 마음 가운데 처하게 될 때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기를,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희 자신들이 역사적인 실체인 것을 알게 될 때, 이제 저희의 말과 행동이 저희 개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가는 그 행로는 저희 자체의 일생을 그리는 행로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이 민족과 세게 인류 앞에 대표적인 역사적 기원을 마련해야 되는 이 엄청난 세계사적인 사명을 각자가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선을 위하여 새로운 깃발을 들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엄숙한 제단 앞에 스스로 제물 되기 위하여 부름받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소원을 이루시고자 저희들을 부르셨사오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는 예물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한 모습이오나, 순결한 마음. 정성스런 마음. 진정한 마음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 접붙일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입으로만 아버지를 많이 불러왔사옵니다. 아버지의 사정과 심정이 어떠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아버지를 불러왔사옵니다.아버님께서는 언제나 애달픈 마음, 언제나 심각한 마음, 언제나 비통한 마음을 가지시고 저희를 부르셨사오나, 그런 아버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기에 합당한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의 원한의 사연을 풀기 위하여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을 아옵니다. 수많은 인류 가운데에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한 사람, 아들의 명분을 가지고 효를 다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그 깊은 심정에 맺혀진 사연을 풀기 위해서, 인류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여 이 땅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을 알았습니다.그는 요셉 가정에서 외로이 자랐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연을 가지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천륜 앞에 있어서 하늘의 승리의 왕자가 될 수 있도록 매일 매일의 생활을 촉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환경에 부딪히면서 참고 나가야 하는 예수님의 사정을 알게 될 때, 그분은 불쌍하셨고 외로우셨고 억울하셨고 비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보다 가까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상속받아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에게는 예수님의 사명보다도 더 큰, 실체를 통하여 넘어야 할 탕감적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사명이 저희에게 있음을 알면서도 그 사명을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하지 못한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복귀의 길 앞에 있어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삼지사방에 있던 몸들이 이렇게 모였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여기까지 찾아오기에 수고한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여기에 모인 자녀 중에 아버지의 이름을 중심삼고 뜻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새벽을 그리워하며 찾아온 자녀가 있사옵니까? 그 자녀 위에 천 배 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또한 마지못하여 참석한 자녀가 있다면,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게 하시고, 회개의 마음으로 가일층 아버지심정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외로이 무릎을 끓고 당신 앞에 호소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바람이 부나,눈이 날리나, 때와 환경이 변하더라도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살기를 각오한 무리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는 길 앞에는 억만 사탄이 가로막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부르고 나가는 그 길 앞에는 언제나 원수 사탄이 막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원수들이 막아 나왔던 그 길을 저희들이 뚫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영계를 동원하여서라도 기필코 이것을 제거시켜야 할 사명과 책임과 의무가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온 영계가 수고하는 그들에게 협조하여 그들의 갈 길을 개척하여 주옵고 그들의 주위를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마음놓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평화의 그날, 마음놓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찬송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새로 나온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들 위에 아버지를 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흠모하는 심정이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아버지만을 그리워하는 심정에 사무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그러지 않고는 저희가 부활의 영광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거룩되게 받아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로운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아버지 앞에 몸부림치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깊은 심정으로 그들을 품어 주시옵고, 가꾸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시간에는 '참된 형제' 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보다 가정을 위하고, 가정보다도 민족을, 민족보다 국가를, 국가보다 세계를 먼저 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개인이 참되기 전에 가정이 참되어야 되고 나아가서는 국가, 세계가 참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개체로서는 모든 복의 동기가 될 수 없는 복귀노정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는 무엇이냐? 참입니다. 인간이 참된 모습을 이루려면 모든 생사화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인간 개체내에서는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수습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갖게 될 때 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갖지 못하면 `참'이라는 명사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참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게 될 때 참도 떠나게 됩니다.거기에는 참이 아닌 악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참이 있어야 참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니 선이니 하는 명사는 인간을 위주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타락한 인간이 마음대로 관리하는 그런 자리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참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참을 세우고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현실적인 생활이나 혹은 양심생활을 미루어 보더라도 참은 완전히 하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가치를 지닌 참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참된 사람이 있으면 참된 형제가 있어야 하고 참된 형제가 있으면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참된 부모와 형제와 자기가 합하여 참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가정이 있게 될 때, 거기에서 참된 종족이 나오고 그 종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과연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할 수 있고 자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동기의 내용을 지닌 참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할 때 참의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에 대한 정의조차 애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면, 사상을 중심삼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에 있어서 민주주의가 참인지 공산주의가 참인지 완전히 해명을 내릴 수 없습니다. 제창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에 대해 해명해 줄 수 있는, 결과를 가지고 '이것이다' 하고 제시하는 사람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의나 사상은 아직 과정적인 입장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과정적인 그 자체를 가지고 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다시 말하면, 익어가는 열매는 완전한 열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익었을 때 참된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기원을 중심삼은 그 열매에서 새로운 나무가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참을 중심삼고 볼 때 참의 결과에 입각한 참은 아직까지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참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천륜이 바라고 우리의 인륜이가야 할 참된 사상이나 주의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수많은 성인현철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은 참을 그리워하다가 갔지, 결코 참된 사람이 되어서 살다 간 사람은 없습니다.그렇기에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도 없다는 이 말 가운데는 자기 자신도 부정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참은 독자적인 입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 참된 사람을 어떻게 세우느냐? 즉, 타락한 후손인 수십억의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참된 역사의 기원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참된 하나님,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막연히 습관에 의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써 연결될 수 있는 기원은 인간들이 걸어온 역사의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초월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즉, 기원은 환경을 초월한 자리에서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종교는 사람을 중심삼고 믿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주를 중심삼고 신앙의 표준을 세워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추월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개재시켜 참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이것을 볼 때, 역사과정을 거쳐온 수많은 인간의 생활노정에 있어서나 현실사회에 있어서도 참의 기원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자체들로 연결된 자리에서는 참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절대적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혹은 절대자, 신이라는 문제가 여기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지금까지 땅 위에 참사랑이 없었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참을 지향하면서 사는 사람자체로서는 참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종교나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최후의 중요한 분기점에 가서는 신이 등장합니다. 절대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 즉 진리를 통하여 최후의 목표를 두고 추구해나가거나 문제, 초월자, 절대자라는 명사가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모든 학문이나 모든 존재의 가치의 기원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심각한 자리에서는 반드시 이 관계를 맺고 참을 통하여 해결 지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의 기원은 인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이나 절대자, 혹은 하나님이 개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을 주장하는 종교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을 주장하는 인륜 도덕도 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천(天)을 중심하고 한 말입니다. 반드시 하늘을 개재시켜야 합니다. 그 흥망성쇠의 기원이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늘이 동기가 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지 않고는 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가운데 참된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참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어디냐? 인간의 어디에 처해 있을 것이냐? 물론 하늘이 기원이 되어 참의 자리를 땅 위에 세우려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우리의 몸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우리의 마음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참된 나라인 천국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깊디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을 분석해 보면 지정의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지정의 중에 무엇이 근본일 것인가 할 때, 의(意)도 아니요, 지(知)도 아닌 정(情)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두고 싶습니까? 자기만이 아는 곳에 두고 싶을 것입니다. 거기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즉 자기만이 절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는 것입니다. 이곳이라면 안심하겠다 할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흔히 귀중품을 넣어 두는 장롱 같은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자신의 마음의 깊은 자리입니다.
정은 혼자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상대적 관념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좋은 부부가 있다 하더라도 자식이 없으면 심심합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처끼리 다니면 허전하고 심심합니다. 그 앞에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가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자식은 소망입니다. 그 자식이 없으면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그 자체는 영원한 소망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소망이 아닌 영원한 소망으로 뻗어 나갑니다. 또 심정적인 것도, 영원한 소망과 함께 영원히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을 중심삼고 볼 때,아무리 잘난 여자나 남자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상대적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적 관계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개인적인 자체에 있어서 내적으로 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 자체가 동기가 되고 기원이 되어 참된 내가 되고 참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이렇게 내적인 참의 인연을 중심삼은 개체가 아담 해와 둘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야 할 것은 형제의 관계였습니다. 완전한 형제애의 인연을 중심삼은 개체는 아담 해와 둘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야 할 것은 형제적 관계였습니다. 완전한 형제애의 인연 가운데 하나되어 완전한 형제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대적 이념의 세계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형제지간의 관계를 거쳐야 상대적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역사를 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박애주의 사상을 선포하면서 만민은 형제라고 합니다. 그처럼 `만민은 형제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참된 형제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참된 형제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 만민을 위해서 평등을 주장하고 박애사상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의 기원을 기독교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삼고 형제라고 하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중심삼고 형제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떠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형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그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는 형제의 관계를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망각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갖고 있는 참된 인생관이나 참된 우주관이 어떻게 되어있느냐 할 때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지않았습니다. 그분의 생활관, 인생관은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관이고 인생관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분이 주창한 세계관 역시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관입니다. 그 어떤 성인보다도 나은 것입니다.이처럼 모든 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창하고 사랑으로 그 관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그 어떤 종교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형제와 신랑 신부와 부모를 논의하고 참을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는 어떤 종교도 갖지 못한 내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참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가 출발했습니다. 그러면 참을 추구해 나오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실 것이냐? 심정적 관계를 중심삼은 곳에 계십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은 심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기반을 중심삼은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형(型)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 부모의 입장에 서서 인생관과 우주관과 세계관을 제창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이므로 예수님 자체가 동기입니다. 오늘날 복귀노정을 볼 때도 심정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랑 신부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중심하고 볼 때 종말에는 신랑 신부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좌우가 결정됩니다. 또한 전후, 상하가 결정되고 여기에서 참된 사랑이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참된 사랑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고 타락의 인류역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기필코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이 결정의 한 날을 추구해 나오셨습니다. 또한 인류역사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생명의 세계로, 참의 세계로, 희망의 세계로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참은 심정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심정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서 모든 종교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으로 민주세계가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계로 볼 때 복귀과정이란 참된 형제를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 최후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참된 형제를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후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물론 참된 형제가 개인적으로는 상대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상대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그 천국을 가는 데 있어서 입문할 수 있는 기준, 즉 나는 천국백성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냐? 형제입니다.그것은 복귀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이고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입니다. 우리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성약시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양자가 되어서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부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약시대에는 양자가 아닌 직계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양자는 혈통이 다릅니다. 부모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즉 양부모로서의 아버지와 양자로서의 아들이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부자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이게 될 때, 양자로 들어오는 그 아들이 양아버지가 바라고 있는 목적과 일치되지 않으면 양자로 택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리 가는데,아들은 저쪽으로 가겠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느 땐가는 갈라집니다.
그렇지만 직계 자녀가 되면 목적이고 뭐고 필요없습니다. 양자는 목적을 중심삼고 결합되지만 직계 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는 이리 가고 아들은 저리 가더라도 아무것도 갈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이 나쁘다고 느끼면 둘이 같이 좋은 곳을 찾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양자와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한때를 중심삼고 만나는 것이요, 직계 자녀는 부자의 관계 속에 영원을 두고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자는 혈통적 관계에 있어서도 핏줄이 다릅니다. 핏줄은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역사의 끝까지 이어 내려갑니다.이것은 끊어 놓는다 해도 잘라지지 않습니다. 수천만 대가 흘러가더라도 수천만 대 전의 핏줄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담의 혈육을 갖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 자체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의 혈통적인 요소를 전부다 통합한 하나의 결실체입니다. 얼굴을 보면 눈이 이렇게 생긴 것이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역사과정에 왔다 간 선조들의 모든 특성을 총합한 기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나는 어떤 선조의 성품을 많이 닮았다 하는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핏줄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양자는 한때를 중심으로 때의 목적을 위해서 만난 것이고 직계 자녀는 영원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러면 섭리적으로 볼 때,양자 자체가 직계 자녀가 될 수 있느냐 할 때 될 수 없습니다.복귀역사에서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리에 보면 실체복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참된 형제라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어머니 아버지를 가졌다고 자랑하더라도 그들은 참된 형제가 아닙니다. 참된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났어요? 대답해 보세요. 김 아무개라는 아버지와 박아무개라는 어머니가 합해 가지고 자식이 생겨났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났겠습니까? 그 동기를 볼 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역시 하나님이 기원이 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이라는 명사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개재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참된 부모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참된 자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 땅 위에 참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를 인정하고 그 참부모를 발견해서 모시자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되면 무엇을 하느냐? 참부모가 갖고 있는 것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갖고 있는 상속권은 하늘땅 하나님까지입니다. 하나님까지도 상속받자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주인이 없다면, 그 하늘땅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그 하늘땅의 가치를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고, 그 가치를 영원히 주장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공인해 줄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의 상속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상속권이 무엇이냐? 하늘땅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상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무엇이 좋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 사랑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온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여기에 학생들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있으면 엄마 아빠는 그저 자식들이 예뻐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귀여워해 줍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가 귀여워하면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전혀 안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돼지새끼예요. (웃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이 평화스러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에 전부 매달려야 됩니다. 나라가 하나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으로 치리 하는 나라에서 주권자와 백성이 정으로 서로 엉켜 있으면 그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도의 세계, 즉 종교는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나왔느냐? 역사적인 모든 국가의 흥망성쇠의 과정에서도 종교만은 왜 망하지 않고 남아져 나왔는가?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주와 믿는 신자들이 정으로 엉켜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가 남아져 나온 것입니다. 종교가 강하고 종교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상과 교주와 순종하는 신도가 역사시대를 넘어 얼마만큼 일치되는가에 있습니다. 이런 강한 내용을 지닌 종교일수록 세계적인 종교가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중심으로 예술가면 예술가대로,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면 자기에게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야단을 합니다. 그것은 중심존재로 의지하여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던 것입니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을 통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냐? 봄날 향기 풍기는 봄동산에서 꽃이란 꽃은 전부다 보고 향기란 향기는 다 마셔서 취한기분과 같습니다. 또한 봄철 잔디에 앉아 있을 때 솜같은 뭉게구름에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무엇을 느끼는 기분과 같습니다. 거기에서는 세포가 춤을 춥니다. 세포도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력을 지닌 모든 존재의 힘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입니다. 희락이나 평화, 인생이 소망하는 것의 절대적인 요건이요, 신앙의 절대적 요소가 됩니다. 또, 영계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이 법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고 못 가고의 등급은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하면,세상의 무슨 권력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화합할 수 있는 소성을 얼마만큼 지니고 왔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결정합니다.거기에 따라서 영계의 모든 등급이 결정됩니다. 사랑의 질서에 의해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거기에서 자기가 천리를 따랐는가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행로의 원천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났습니까? 여기 있는 청년들은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을 도와주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7,80년 살면 어머니 아버지는 흘러가지만 여러분은 남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아진 들러리가 합해져 오늘날 30억 인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30억 인류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참의 기원을 만들기 위해 복귀행로를 거쳐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복귀행로를 따라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 직계 자녀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녀의 자리에 나아가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영적부모를 중심삼고 영적인 형제 입장을 세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영적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성부성자 성신은 영적인 부모입니다. 성부는 하나님, 성자는 아버지, 성신은 어머니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나와서 참부모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상에 있어서 최고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복된 소리입니다.세상의 복된 소리 가운데 무엇이 가장 복된 소리입니까? 동생이 자기 형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온 것도 복된 소리입니다. 그렇지요? 그것도 복된 소리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복된 소리는 무엇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복된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한 것이냐? 마태복음,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이 4복음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사후에 가서 하늘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복음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서는 영적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영육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지 못하고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즉 참부모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거듭나야 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자체를 거부하고 다시 나야 합니다. 중생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의 존재를 거부해야 합니다. 존재를 거부하지 않고는 재생의 동기를 마련할 수 없습니다.
참을 찾아 세우려면 진짜 부정이 있어야 됩니다. 종교는 긍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기반에서는 완전한 참을 세울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입장에서만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부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났으니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문제는 양자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자 입장에서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직계 자녀에 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참사람이 땅 위에 와야 됩니다. 땅 위에 와서 양자를 직계 자녀로 바꿔치기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자녀를 중심삼고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접붙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잘려져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는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잘라야 합니다. 몽땅 잘라야 합니다. 십년 백년 된 노송이라 하더라도 밑둥치까지 몽땅 잘라야 됩니다. 그 다음 접붙일 수 있는 씨가 무엇입니까? 눈입니다. 그 작은 눈 하나를 가져다 접붙이는 것입니다. 이 눈 하나 받기 위해 자기를 몽땅 자르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해야 됩니다.
접붙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눈 하나와 자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현재의 나 전체를 부정해 버리고 아들 될 수 있는 자신을 긍정적인 입장에 세워야 합니다. 그 긍정에 부정이 흡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참된 종교가 세워 나가는 길입니다.
따라서 개인을 부정해 기지고 거기서 접붙임을 받아야 되고, 그러한 개인들이 합하여 참된 가정을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또 참된 종족을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되고, 참된 민족을 중심삼고, 참된 국가,참된 세계를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개인만 접붙임을 받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귀노정에 있어서 중심 기준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만 세워지게 되면, 그 다음은 간단합니다. 대한민국이 국가 기준까지 복귀되면 국가적 기준에서 세계를 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삼고 참의 기원이 마련되면 그것이 가정이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기원이 되고, 종족이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중심만 결정되면 문제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할례를 제정하여 이방 사람들도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아들로 취급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접붙일려면 자기를 굴복시켜야 합니다.그렇다고 자기 자신이 자신을 끊을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만약 접붙인다고 자기 목을 자르면, 그것은 자살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부정시키는 그 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럼 그는 누구냐? 사탄입니다. 하나님과 접붙이는데 있어서 사탄은 인륜적으로 부정시키는 책임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탄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지금까지 사탄을 가만 놔둔 것입니다. 필요없으면 뭣 때문에 두겠습니까? (웃음) 사랑의 하나님이 사탄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정시키기 위한 책임자는 사탄입니다. 하나님의 뜻길을 가려면 사탄은 반드시 막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는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죽음과 싸워 나온 것입니다. 죽음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죽지 않고는 안 됩니다.영원한 세계에 가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을 때 죽음을 극복해야 됩니다. 죽음을 극복하려면 자기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반대를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정성들여 기도하게 되면, 누가 와서 목을 누르고 타고 하는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할 것입니다. 그래도 '천번 만번 날 죽여 잡수소.나는 독수리 밥이 되기를 결심했소' 하면서 산골짜기, 평지 등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지 다니면서 다 극복해야 합니다. 살아서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즉, 영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절대로 부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체험합니다. 여기에 있는 오래된 사람들은 다 이것을 체험하고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체험하지 않았다면 남들이 반대하고 핍박하는 통일교회를 누가 믿겠습니까? 선생님도 통일교회 안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체험을 하게 되니 안 믿으면 못 살게끔 영계에서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못합니다.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가서 영계가 있을 게 뭐야' 하고 했다지만 그런 곳은 전부다 영인들이 관리하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영인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정의를 위해 죽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사람은 참 지혜롭습니다. 자기에게 손해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심각하게 가르쳐 주면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어 죽으면 천국 간다는 막연한 내용을 가지고도 밟히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로마제국으로부터 4백년 동안 핍박받으면서도 지금의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로서 세계의 예술이나 문명을 창건하는데 있어서 사상적, 정신적 밑바탕이 됐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도 우린 죽어야 되겠습니다.
죽는데 있어서 누가 죽게 하느냐? 사탄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할 때 '사탄아 어서 오너라' 이렇게 기도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오라고 해도 못 오고, 사탄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가깝습니까? 사탄이 더 가깝습니다. 사탄이 우리와 더 가까우니 우리는 사탄의 아들딸임이 틀림없습니다. 나면서부터 사탄에게서 났고 사탄과 살았기 때문에 이 사탄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면 사탄세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 사탄세계를 어떻게 해탈하느냐? 이를 위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사탄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3년 이상 종살이를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미국 대통령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도 해야 합니다. 그도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들어가서 3년 이상 종살이를 해야 됩니다. 우리 중·고등학교 학생들, 종살이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위해서 종살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보다도 이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찾아 나가는 것은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세상나라를 사탄이 주관했습니다. 그러니 세상나라를 극복해야 됩니다. 가정이 아니라 나라를 극복해야 됩니다. 나라를 극복하려면 저 나라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 극복해야 됩니다. 그래서 죽음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자원해서 갈 수 있습니까? 가기는 가되 어떻게 극복하며 갈 수 있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해탈될 수 있느냐 할 때, 저 깊은 골짜기 굴속에 가서 기도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극복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우리 통일교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리에 가야 하느냐? 그곳은 힘든 자리, 고난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힘든 자리, 고난의 자리에 간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누구를 찾아가셨습니까?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시지 않고 왜 제자들을 찾아가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의 길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상대적 관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즉, 예수님이 아무리 극심한 시련과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혼자 짊어진 십자가입니다. 형제와 더불어 짊어진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사탄이 무엇을 잡고 나타나느냐, 형제를 잡고 나타납니다. 자신은 됐다 하더라도 형제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반한 열 두 제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아들로서 책임할 때이기 때문에, 열 두 제자와는 형제지간이었습니다. 이 형제 가운데 접해있는 사탄을 극복하지 않으면 예수님 자신이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즉, 양자를 접붙여 놓지 않으면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자를 접붙여서 자기와 같은 자리에서 감람나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녀를 만들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사시켜야 할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부정의 자리입니다. 제자가 선생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자기 자신이 배반 받는 자립니다. 형제에게 배반 받는 자리, 이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역사시대는 언제나 이러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아벨은 자녀 입장이고 가인은 양자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벨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배반당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을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도 부활하여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벨도 가인에게 죽음을 당하였지만 찾아가야 합니다. 배반한 가인의 후손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을 대신한 것이 노아 시대의 함과 셈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은 배반한 인간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을 찾아오시게 하려면 부정의 인연을 완전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주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찾아오시는 데는 무엇을 갖고 찾아오시느냐? 원수의 마음, 복수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 제물과 희생의 마음, 봉사의 마음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사탄세계에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사탄세계에는 이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이 땅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배척 받는 자리에 섰다고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배척 받고 억울한 자리에서도 원수를 사랑했다는 데에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저들이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 것은, 메시아로서 담당해야 할 응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출발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마감입니다.
원리적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은 배척한 무리를 다시 찾고 계십니다. 그들이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죄를 할 때 구원의 닻이 이지상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때, 어느 시대에 복귀섭리는 뒤넘이치느냐? 복귀섭리의 승패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이것은 양자인 가인과 자녀인 아벨에서 결정됩니다. 누가 부정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반드시 아벨이 부정해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부정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그래서 아벨 한 사람이 만민을 대표해서 오게 됩니다. 그는 아무개네 집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한 사람입니다. 이 아벨적 기준에 선 사람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느냐?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외로운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몰리게 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몰아넣는 것입니다.그는 그 나라의 거지, 빌어먹는 사람까지도 싫어하는 자리, 그런 최하의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까지 떨어져야 합니다. 즉, 제일 외로운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고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부터 뜻을 대하여 나왔던 사람들은 전부 다 희생당했습니다. 참과 선을 위하여 노력하던 의로운 사람들도 전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선열들은 한 번 가고는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예수님만은 돌아가시면서, '내 다시 오마'라고 당당코 약속했습니다. '다시 오겠다' 이것은 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다시 오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로서 다시 오셔서 이 지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와 같이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여러분들이 아벨적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국가나 민족 앞에 배척을 받아야 됩니다. 대한민국에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에는 국가적인 입장에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받았습니다. 배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해 마음대로 죽일 수도 없고 원한을 풀 수도 없는 최악의 궁지에 몰리는 것입니다.그러나 국가적으로 몰리는 이런 자리에서 뜻을 중심삼고 하나됐더라면 국가적인 십자가를 완전히 넘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회와 국가의 운명은 수난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식과 원칙은 현사회를 중심삼고 역사의 배후에 엄연히 전승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여러분들을 들이 몰아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녀석…'이런 별의별 일을 다 겪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초창기에 자식이 교회에 나간다고 반대하는 부모가 많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칼을 들고 자식이 교회에 나가면 목을 찌르겠다고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형제들이 교회에 나간다고 때리기도 했고, 나가면 다리를 꺾어버리겠다고 위협도 했고, 머리를 빡빡 깎아버리기도 하면서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 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유대를 가진, 즉 자기로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가정을 부정해 버리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내용, 즉 탕감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이 성경에만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시대상을 대표하여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핍박을 잘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잘 받았습니다. 핍박을 받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진맥진했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 기진맥진했습니까? 예수님의 3년노정과 마찬가지로 3년만 지나가게 되면 지칩니다. 우리는 3년 반이지요? 전 3년 6개월, 후 3년 6개월 해 가지고 7년노정입니다. 전 3년 6개월은 기뻐서 뛰는 기간이요, 후 3년6개월은 지쳐서 따라가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통일교회를 믿습니다.그렇지요?
그리고 나서 또 뛰는 것은 제2차 7년노정입니다. 2차 7년노정은 발전입니다. 이 권내에 들어간 사람은 사탄세계에서 지배하지 못합니다.그래서 2차 7년노정이 제일 중요한 기간입니다. 알겠습니까? 2차 7년노정도1차 7년노정과 마찬가지입니다. 3년 6개월은 쉬지 않고 올라갔다가 3년6개월은 내려가면서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남아지는 것입니다.여기서부터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3년 6개월쯤 지나면 지치게 됩니다. 그렇게 7년쯤 와서 지쳤을 때 일어서려면 자기 마음대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사람은 지치게 되면 옛날같이 신나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하늘은 전부 때려부수는 것입니다. 환경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몸까지도 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3년 6개월쯤 가서 중단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가야 합니다. 사탄이 어느 기간까지 지배할 수 있느냐? 7년간은 사탄이 다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7년간을 택한 것입니다. 그 기간은 사탄으로부터 단련 받는 기간입니다. 단련 받지 않고 극복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사탄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이 죽게 하고, 못 가게 해도 여러분은 목숨을 내걸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7년간은 그렇게 고생해야 됩니다. 해방 후에 신령한 역사를 하는 사람, 은혜 받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7년 이상 가기 힘듭니다. 아무리 잘하는 부흥강사가 나와 큰소리 떵떵 친다 해도 7년 이상 못 갑니다.
통일교회는 7년간을 넘었습니다. 통일교회는 그들과 다릅니다. 보통 신령한 사람들은 7년정도 가다가는 내려갑니다. 거기에서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이 고비가 책임분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책임분담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유명한 말입니다. 이 책임분담을 하지 않고는 고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간을 중심삼고 책임해야 합니다.순식간에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생 장성 완성 각 7년씩 21년 기간이 필요합니다. 7년을 단위로 역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 7년 기간은 사탄을 떼버리고 양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직계 자녀로 접붙이는 기간입니다.
접붙이려면 방안에서 어머니 아버지 사랑 받고 접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면 지방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서울에 대학교가 많으니 거기에서 젊은 청년들 전도하지, 돼지 똥 냄새 나는 시골 가서 농부들 전도해서 무엇하겠느냐 하겠지만, 그게 필요합니다. 거기서부터 복귀해 와야 합니다. 최하의 자리인 종살이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의 인연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종의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상으로 아들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지방에 가서 전도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본부에 있다가 지방 순회를 가게 되면, 무슨 집회라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강한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떨어져 있어야 됩니다. 일본에서는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시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간격을 중심삼고 어려움이 많을수록 그 어려움을 극복하여 하나될 수 있는 힘의 모체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부교회에 나올 때는 체험하지 못 합니다. 선생님이 매일 말씀한다 해도 영계에서 안 가르쳐 줍니다. 그렇지만 일단 본부를 떠나게 되면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은 전부 떠나야 됩니다. 떠나가서 복귀노정의 7년간을 거쳐야 됩니다. 이 7년 기간을 통해서 사탄을 떼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사탄을 굴복시키느냐? 심정을 중심삼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골가서 어떤 심정의 십자가를 졌다고 해도, 그 십자가는 자기 자신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 기간은 상대를 구원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다시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누구를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시골 사람 중에서도 제일 미천한 사람을 중심으로 봉사를 해야 됩니다.
제일 낮은 곳에서 충성하면 제일 높은 데서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일 비참한 자리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일 영광스럽게 부활했습니다. 이 부활역사를 여러분 앞에 천적으로 부여하기위해, 선생님은 통일교회에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저 먼 지방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 가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쫓김 당해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가게 되면 영계의 선한 영인들이 앞잡이를 하지만 누구의 말을 듣고 쫓김 받아 가게 되면 사탄이 앞잡이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전도 가고 싶어 밤잠을 못 자고, 세상에 어떠한 귀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다 제쳐 놓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으로서 뜻을 위한 한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차 타고 가면서도 '차야, 잘 간다. 오늘은 내 일생에 귀한 날로서 한 페이지를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제일 어렵고 힘든 자리에서도 '나는 일등 국민이다'라고 당당히 선포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여러분은 욕심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가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원리 원리 하더니 원리 가르쳐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웃음) 그렇게 말할 것을 선생님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갔다 오면 또 그 일을 해야 합니다.그 복귀노정이 지금까지 6천년 걸렸습니다.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박장로 무리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한 일이 잘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까? 통일교인들은 박장로의 전도관에서 개척하던 그 이상의 고생되는 자리에 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박장로 교단에서 믿던 신앙 가지고는 천국 못 갑니다. 영계에서 보면 책임 못한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들도, 장로들도 전부 책임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들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이들을 복귀시키기 위해서 가야 됩니다. 이것은 전쟁과 같습니다. 치열한 전쟁이니만큼, 이기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천국의 아들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아들딸이 서울 본부 마룻바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없고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에서 자기 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하나님 입회 하에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체가 되어 한 것이니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사탄 이놈아! 너하고 짝하여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너를 굴복시키고 나는 돌아가겠다'고 해야 합니다.그래서 사탄을 굴복시킨 증서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3대 시험에서 승리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승리했다는 사탄의 사인을 받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려면 사탄의 증서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곳은 통일교회뿐입니다. 기성교회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 통일교회 문선명이란 사람은 사탄의 증서를 받아야 천국 간대, 그러니까 사탄이지 뭐야'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그들은 선전하기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선전에 떨어질 우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탄의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3대 시험을 받고 승리했을 때, 그 자리에서 사탄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와 나는 영원히 다르다'고 인정했습니다.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가는 자기의 모가지가 덜렁 떨어지는 것입니다.알겠습니까? 그걸 반대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적인 십자가를 선생님이 지고 나오고있습니다.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까지도 선생님이 지고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그 내용을 모릅니다. 이것을 알려면 원리를 자세히 알아야 하고 기도를 못 해도 십년 이상은 해야 합니다. 부모가 고생한 내용을 말하지않으면 자식은 모릅니다. 부모가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종족이 되어, 이 땅 위의 모든 민족을 복귀해야 하는 사명을 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커 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통일교회 교리는 좋지만 통일교회 사람들은 싫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좋지만 통일교회 협회장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뭐 별의별 말을 다 들었습니다. 통일교회가 망하면 사탄도 좋아하겠지요? 그러나 사탄이 좋아하는 통일교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불평할 수 있게끔 일을 만들어 놓고 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참다운 아들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 같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그들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진리는 좋지만 통일교인들 봐서는 통일교회 별다른 것 없다 하면서 통일교인들 싫다고 안 나오는 무리들과 여기 나온 무리들 중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나오는 무리들이 낫습니다. 싫든 좋든 좋은 뜻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 나오는 무리가 낫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진격할 때 맨 꼴찌에서라도 따라와야 합니다. 따라만 와도 혜택이 있습니다. 만약에 큰 싸움에서 승리하여 참전한 사람 모두가 상을 받는다면, 이들이 제일 먼저 뛰어나갈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우리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볼 때 기성교회는 가인의 입장이고 우리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입니다. 또한 우리 통일교회 안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즉,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그러나 까딱 잘못하면 바꿔집니다. 먼저 난 아들딸이 책임 못하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대신자를 세워 역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안에서도 먼저 나온 사람이 잘못하게 되면 가인이 되고 나중에 나온 사람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전반적 7년 시대 후반전 7년 시대로 되어 있습니다. 1960년부터 1967년내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전반적 7년 시대에 해당합니다. 이 기간에 잘하면 승리의 왕자가 되는 것이요, 못 하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무엇입니까? 사탄편입니다. 이같이 통일교회 안에서도 사탄편과 아벨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해왔고, 7년이 끝난 지금도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도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왜 쫓아내느냐? 그냥 두었다가는 여러분 자체가 죽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못 삽니다. 그러니 제 2차 전선에 나가서 책임을 지고 다시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3년 이상 된 사람들을 전부 내보내려고 합니다.그것은 제 2차 7년권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잘못하여 가인이 되면 자기가 설 발판도 수습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몸부림쳐 봐도 안 됩니다. 옛날 같은 은혜의 기도가 안 나옵니다. 옛날같이 그렇게 되려면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려면 다시 개척해야 됩니다. 개척자의 길을 잃어버린 나를 복귀해야 합니다. 개인복귀시대, 가정복귀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처음보다 힘들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제 2차적인 사명 기간에 있는 여러분은 기진맥진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기진맥진해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 전부 책임질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책임지고 가야 합니다.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길이니 자기가 책임지고가야 합니다. 지방에 나가면 본부교회 오고 싶어도 오기가 어렵습니다. 그곳에서 고생하면서 본부교회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한숨을 쉬면서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닦아 놓은 기준 위에 자기보다 나은 기준의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그때부터 심정의 불이 붙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이 아벨을 만나지 않으면 복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래 어디서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의 기준을 완결짓기 위한 책임, 즉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접붙임을 받기 위한 일을 하려다가, 거기에서 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다시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접붙일 수가 없습니다. 즉, 여러분이 가인 아벨 기준을 세워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접붙이는 데는 어떻게 접붙이느냐? 눈접을 접붙일 수 있는 가인적인 줄기를 만나면 죽어요, 살아요?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으로 보면 맏아들은 하나님의 장자 계대를 이을 사람입니다. 이것을 사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맏아들이 사탄세계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차자가 장자의 계대를 잇도록 취했지만, 사실은 맏아들이 계대를 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독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동네에서 전도활동을 하면 제일 먼저 반대하는 사람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올 때, 제일 먼저 할아버지들이 반대를 합니다. 이 할아버지들이 담뱃대를 물고, 흔히 양반들이 걷는 팔자걸음으로 와서는 '이놈들, 누가 와서 이렇게 설치나' 하면서 반대합니다. 그 다음엔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그 다음엔 형님 같은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그렇게 3대로부터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반대 받지 안으면 안 됩니다. 타락의 역사를 보면, 할아버지는 아담형인데 사탄편의 아담형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탄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 할아버지, 가인 아버지, 가인 형님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역사를 보면 옛날에는 어느 시대든 다 할아버지시대 였습니다. 모세도, 노아도 할아버지 입장입니다. 그것이 예수 시대에 와서 젊은 시대로 내려왔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30대 40대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느 시대냐? 가인 아벨 시대, 시집장가가기 전의 젊은 시대입니다. 이렇게 종족으로 3시대형을 중심삼고 3대를 거쳐 나왔던 것이 이제는 횡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평면적으로 벌어져 할아버지로부터 가인인 형님에게까지 전부 공격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반대하는 할아버지가 있으면 '아, 할아버지가 나타났구나' 하고 반가워 해야 합니다. 안 나타나면 일부러 나타나게 노력해야 됩니다. 이러한 할아버지가 세 사람만 나타나서 반대하면,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역사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극성맞게 반대하면 반드시 한 사람은 나도 모르게 찾아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위기대 법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위기대는 하늘입니다. 따라서 세 사람이 반대하게 되면, 한 사람은 찾을 수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를 대개 누가 하느냐? 남자들이 합니다. 여자들은 반대를 잘 안 합니다. 할머니가 바들바들 떨면서 반대합니까? 도리어 불쌍하다고, 고생한다고 걱정해 줍니다. 또 아주머니들도 대개 자기의 아들딸을 생각하면서 걱정해 줍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나가서 전도하는 데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했습니다. 즉, 통일교회 자체로 보면 3시대를 부활시키는 시대입니다. 원래는 시집장가를 간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집 장가를 간 누더기보따리를 수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됩니다. 처녀 총각들을 앞에 세워서 3시대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하늘은 어떤 기준에서 부활하기를 바라느냐? 시집 장가 가서 누더기보따리를 쓴 사람들은 순수한 부활체가 되기 힘듭니다. 순정을 품은 처녀총각의 부활을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부활을 바랄 것입니다.이러한 젊은이들이 나가서 전도할 때, 남자들은 반대를 더 합니다.왜냐하면 남자는 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세 사람을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탄에게 3대시험을 받았던 것입니다. 3대시험을 통해서 처음에는 개인, 그 다음은 가정, 세계,이렇게 복귀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3시대를 대표한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이러한 대표형을 거쳐서 전부 복귀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어디에서 맞춰야 하느냐? 여러분의 안방에서 맞춰야 됩니까, 아니면 깊은 산골짝 사탄의 소굴에 들어가서 맞춰야 됩니까? 어디에 가야 됩니까? 「산골짜기입니다」 그래서 지방에 가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선생님은 이제 제 2차 7년노정의 3년이 넘기 전에 본부에 있는 오래된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도 전부 전도하러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결정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수고에 대해 작년까지 갚아질 수 있는 최대한의 모든 노력을 해서 조건적인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이 길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옛날을 회상하면서 재봉춘하는 봄날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겨울같이 마음이 얼어붙었으니, 봄날을 그리워하면서 소생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내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귀원칙을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접붙이는 것입니다. 접붙여야 됩니다. 그것은 형제의 부활입니다. 아벨이 아벨로서 가인에 대해 승리했다 하는 것은 형제를 부활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타락의 한이 형제를 죽인 것입니다. 그것을 복귀하려면 형제를 부활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부활시키지 못하면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들어와서 아벨 입장에 있다고 해서 나중에 들어온 가인 입장인 사람들에게 '나를 섬기라' 할 수 없습니다. 먼저 들어왔다 하더라도 교회를 중심삼은 아벨적인 가인입니다. 여러분은 가인적인 사람들을 백 사람, 천 사람 이상 계속 전도해서 그들과 연결을 맺어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자신이 머물 수 있는 탄탄한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명령하니 마지 못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아침 햇빛을 보고 좋았으면 이 햇빛을 '엄마 아빠에게 보이면 좋겠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 좋구나!' 할 때, 어머니 아버지도 웃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즉 내가 웃는 것을 동기로 해서 어머니 아버지를 웃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끝나야 됩니다. 죽음의 길도 기쁨으로 가야 됩니다. 그래야 기쁨으로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아이고, 하나님! 30여 평생을 더벅머리 총각으로 지내다 장가도 못 가고 그냥 죽으면 억울해서 어떡합니까' 하면서 그때의 그 사람들에게 굴복했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결전장에 나가서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3차에 걸쳐 인간으로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불충으로 십자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울면서 따라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후손을 위해서 울라(눅 23:28)'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도 그만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죽을 수 있는 곳에 가게 되면 '아이구, 나 좀 도와주소. 전도는 왜 나 혼자 보내나. 둘을 보내지' 할 것입니다. 십대 소년 소녀인데, 어디 동네방네 전도 갔다가 말같은 남자들이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마치 이리 가운데 양새끼들을 보내는 것처럼 힘도 없는 처녀들을 혼자 보낸다고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무지몽매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고 여러분의 엄마 아빠한테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둘이 갈 수 없습니다. 생사의 기원을 둘이 협력해서 출발합니까? 아이를 낳을 때 한꺼번에 둘을 낳습니까? 쌍둥이라 해도 낳을 때 한꺼번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 나오고, 다음에 또 하나 나오는 것입니다.생사가 결정되는 자리에서는 오직 홀로입니다. 태어날 때도 혼자 태어나고, 죽을 때도 혼자 죽습니다. 그 누구도 동참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같이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고 엄마아빠, 같이 죽어요'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부디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대신해 달라고 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생사지경에는 같이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는 혼자 나가야 됩니까, 둘이 나가야 됩니까? 혼자 가야 됩니다. 왜 가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인 원수에게 달려가 그를 아벨인 나에게 접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내 대신 살아난 것을 보고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늘의 기본 원칙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개벽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나라가 뒤집히고 세계가 뒤집히는 것이 천지개벽입니까? 천만에요. 어머니가 딸이 되고, 딸이 어머니 되는 것이 천지개벽입니다. (웃음) 그 이상으로 천지가 개벽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천지개벽인 것입니다. 꼴찌가 일등 되고, 일등이 꼴찌 되는 것. 전진할 때는 꼴찌였지만, '뒤로 돌아!' 하면 일등이 꼴찌됩니까? (웃음) 이것이 복귀, 즉 천지개벽입니다. 천지개벽은 한번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무엇이 됩니까? 손자가 되고 증조할아버지는 증손자가 됩니다. 통일원리로 보면, 역사상 제일 마지막 손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아담입니다. 후대에 태어나는 것은 마지막 손자가 아닙니다. 조상입니다. 즉, 후대는 손자가 아니라 조상이라는 것입니다.알겠어요? 이것이 천지개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는 뭘 하는 무리냐? 천지개벽운동을 하는 무리입니다.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가 반대 안 하겠어요? 사탄세계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봤을 때 우리는 불한당입니다. 그들은 모르지만 통일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세계에 있는 위신이나 체면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배짱을 가지고 나가는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 무리입니다. 정말 근사하지요? 그러나 사탄세계는 근사한 것이 아니고 작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하러 갈 때도 혼자 가야 되고 접붙임을 받을 때도 혼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사탄이 반대하는 싸움에서도 혼자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언제나 혼자 했습니다. 혼자 힘을 다했습니다. 선생님은 친구도 없습니다. 여기 협회장 누구누구 뭐 많지만 아직까지 형제가 아닙니다.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선생님에게 누가 권고하는 말 상당히 기분이 안 좋습니다. 권고를 들어가지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권고하는 말 들어가지고는 절대 탕감복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고 편히 쉬어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밤에도 쉬지 않고 자지 않고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쉬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따리를 싸 들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때려죽이자고 선동하여 데모한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수고한 것이 있기 때문에 세계는 선생님을 반대하지 않고 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반대를 하고 기성교회가 수십년 동안 별의별 반대를 계속한다 해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잎은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뿌리는 자꾸 깊게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한꺼번에 잎이 피는 것입니다. 큰 나무는 자랄대로 다 자라면 죽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뿌리가 깊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뽑아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도 뽑아 내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도 빼내지 못합니다. 가인편 사람들이 빼내려고 우리를 당기고 있지만, 저런 녀석들이 빼낼 수 있습니까? 무한대로 뻗어있는 뿌리 속을 들추어보면 아담 해와를 넘어서 하나님의 심정권까지 뻗어있어서 하나님까지도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뿌리가 제일 깊은 곳은 통일교회입니다. 원리를 듣게 되면 뿌리가 깊은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질긴 것은 어느 것이냐 할 때, 질긴 것도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50살이 다 되어 가지만 젊은 여러분에게 어떠한 내기를 해도 지지 않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여러분은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기 있는 유협회장이 '자, 여러분 전도 하시오' 하면 '아이고, 기분 나쁘다. 자기가 무슨 간부라고 되게 그런다' 하면서 기분 나빠합니다. 협회장의 말을 듣고 왜 기분이 나쁩니까? 그건 기분 나쁘게 생각하니까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왜 전도 안 하고 있소?' 하면 `내가 동기가 되어서 해야지, 왜 협회장님 신세집니까?'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지금 40일노정이라고 하시는데 전도 나가야지요. 제가 생각해보니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식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웃음) 그렇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출발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7년노정을 절대적으로 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3년노정을 가다가 실패했습니다. 이 3년노정을 걷고 7년노정을 넘어갔으면, 40대로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3년노정을 걸음으로써 제 1차 7년노정이 33세까지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못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즉, 제 1차 7년노정을 못 넘었다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을 출발하여3년노정에 걸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복귀를 못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3년노정에 전부 가정복귀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복귀역사를 해야 합니다. 이런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은 고귀한 자부심을 가져야 됩니다. 천하를 대하고 서게 될 때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고, 일사천리로 생활할 수 있는 통일교회입니다. 어때요? 통일교회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러나 좋은 때를 맞이할 때까지는 고개가 있습니다. 탕감복귀를 하지 않고는 그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명령하면 절대적으로 믿고 심정 일체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역사하게 됩니다. 틀림없이 역사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싸우고 야단이지만, 잘 싸워라 이겁니다. 우리는 지금 포위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포위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든가, 못 믿겠으면 죽든가, 아니면 도망가든가 해야 할 것입니다. (웃음) 사실입니다. 반대하던 우리를 믿든가, 믿기 싫으면 죽든가, 도망가든가 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손금을 들여다 보아도, 관상을 보아도 팔자는 어쩔 수 없습니다. 팔자가 이렇게 생겼으니 탕감복귀 해원성사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이 일을 홀로 개척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사탄세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려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늘의 환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된 형제가 필요합니다. 참된 형제를 찾지 않고는 부모를 모실 수 없습니다. 실체기대를 세워 놓아야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기대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즉, 재림주님을 모시기 위한 실체기대인 참된 형제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제 1 차 의문입니다.
그러면 형제가 몇 사람이 필요하냐 하면 3형제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세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면 그 하나된 기준 위에서 나는 부모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축복은 이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세 자녀가 없으면 축복을 못 받습니다. 이들이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알고 예수님이 부활하여 배척했던 베드로와 요한을 기쁨으로 찾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을 배척하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반대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그러면 기성교회를 어떻게 포위하여 굴복시키느냐? 선생님은 지지않습니다. 교단적인 위신과 국가적인 위신을 중심삼고 그들을 찾아갈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각자가 이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탕감은 법도를 중심으로 어느 기간과 환경에 적용시켜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이 참된 형제의 자리를 세워야 됩니다. 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또한 여러분이 지금 지쳐서 세우지 못하면 그것은 언제까지라도 이어집니다. 즉, 7년노정을 못 가면 또 7년, 21년 이렇게 자꾸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장되더라도 여러분은 반드시 이것을 넘어서야 됩니다.
세 사람 이상의 형제를 접붙여 그들 앞에 자신이 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인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아벨로서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루겠다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 자리를 통해서 사탄을 굴복시켜서 형제들을 하늘 앞에 복귀시켜야 합니다.그것은 하나님편에 가인, 아벨, 셋을 세워 놓은 입장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승리한 장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위업을 받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 앞에 그들의 대표로 나서서 축복의 혜택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심정적인 터전을 밟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참된 형제입니다」
여기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형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가인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동시에 아벨입니다. 그런데 서로가 먼저 장자가 되려고 옥신각신하면서 싸우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좋겠어요? 그런 것은 경쟁도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높고 높은 산등성이와 깊은 산골짜기 같은 두 무리들이 서로 웅성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통일교인들 정 줄 곳도 없고 정 둘 데도 없습니다. 전부가 부딪히면서 그런 싸움에 자신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상은 하나 뿐이고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 상을 타기 위해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상을 탈 날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경쟁을 하느냐? 심정을 가지고 합니다. 즉, 심정적으로 경쟁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할 때 '제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니 하나님도 저를 가장 사랑해 주시오' 하면 망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하나님이 받으셔서 만민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할 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사랑하는데, 사랑 안 해 주나요' 하면 제거당합니다. (웃음) 선생님은 이러한 원칙을 중심으로 해서 식구들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영계에서 경쟁의 상대를 보여주는데, 굉장합니다. 상은 하나인데 받을 사람이 둘이면, 반드시 거기에서 가인과 아벨이 나누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통일교회 교인들이 좋긴 좋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서로가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참된 형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접붙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접을 많이 붙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접붙인 것을 일일이 다니며 전부 문질러 버리고 떼버리는 것은 사탄입니다. 다시 말하면 '접붙이는 기둥이다' 하는 것은 아벨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고, 접붙여 놓은 것을 떼내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사탄의 표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식구들 중에,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평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그것은 하나님과 접붙이는 데에 있어서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관계하는 연극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서로서로 화평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의 교리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형제로부터 부활의 역사가 이어질 때 통일의 전통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제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완전히 넘어서야 됩니다.여러분들이 횡적인 관계에서 하나되기 위해 얼마만큼 인연 맺은 입장에 서있느냐, 안 서 있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하늘나라에 가서 자신이 하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형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 땅 위의 불쌍한 인간들이 지금까지 원한의 터전 위에서 한의 역사를 이끌며 요동해 온 실상을 바라보게 될 때,여기에 아버님의 긍휼의 손길이 가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깊이 느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는 참된 형제가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이 행로에 있어서 가인 아벨의 싸움이 전후관계는 물론이요, 상하 좌우관계를 뒤넘이쳐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배척 받으면서도 말없이, 국가 민족에게 배척받으면서도 말없이, 세계 만민 앞에 쫓김 받는 그 자리에서도 말없이 단 하나 하늘 뜻을 대하여 아벨적인 책임을 완수하기위해 싸웠습니다. 사탄을 여기에서 분립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서 생명을 주창하면서 싸웠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로를 회상할 수 있도록 이 시간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역사적으로 최후의 운명의 고빗길에서 전후 상하를 분립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또한 하늘 것은 하늘 것으로, 땅의 것은 땅의 것으로 영원히 분립시켜야 하는, 이 중요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알았습니다.
참된 사람이 필요함과 동시에 저희는 참된 개체가 되어 참된 형제의 인연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참된 가인 아벨의 인연을 저희의 생활권내에서 분석하여 놓고, 자기 자신을 통하여 아버님 앞에 선의 번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이것을 일생의 생활철학으로 삼아 아버님을 시봉하는 노정을 거룩히 갈 수 있는 자녀로 삼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멀리 외국에서 이곳을 흠모하고 스승을 생각하며 심정을 가하여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그들에게, 제가 빚지기를 원하지 않사오니, 저에 대한 그들의 은혜를 당신이 갚아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여 충성하고 정성들이는 자들에게 천 배 만 배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았사오니, 저도 그러한 마음으로 그들의 권고와 그들의 축복의 길을 당신 앞에 간구하오니, 용납하여 주옵시길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운과 더불어 천운은 반드시 교차되어, 천운의 때를 전폭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점점 다가오는 것을 아오니, 세계적인 교차 시점인 이 시기에 있어서 낙오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을 졸이며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제단을 붙드시어 당신의 은사권 내에 있게 하시고, 특별히 승리의 영광을 갖출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 앞에 칭찬 받을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날을 위하여 매일 새롭게 결심을 하고 아버지 앞에 승리한 용사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내적 외적으로 준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전체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구하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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