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우신 아버님, 이달 들어 두번째 맞는 안식일 위에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부족한 자신들을 봉헌하고자 하오니 전체를 받아 주옵시길 바라옵니다. 기나긴 역사노정에서 인간들이 그려 오던 모든 곡절과 환경을 온전히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저희 한 개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아버지와 저희, 저희와 아버지의 관계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부여하신 책임과 사명을 저희 각자가 이루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되, 아버지를 안다고 하는 사람도 있사오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즉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알아 그 뜻을 받들려고 하고 그 뜻을 펴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의 뜻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를 몰라, 아는 입장에 섰지만 진정 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있사옵니다.
수많은 민족 가운데에서 불쌍한 이 한민족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 가운데서도 불쌍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자리에 모인 저희들은 수많은 곡절의 노정을 거쳐왔사옵니다. 슬픈 길, 싸움의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 이 길을 따라온 것이 아니오라, 아버지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서 이 자리에까지 나왔사옵니다.
이제 저희를 보내신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할 때가 왔사오니, 아버지의 그 소원과 저희 자신이 일치되어 저희들이 그 소원의 결과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에 어린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당신이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슬펐던 사정이 있거든 저희 개체 개체의 심중에 호소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와 대결하는 가운데에서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이 있거든, 그 모든 것을 복수하여 탕감할 수 있는 일념을 저희들에게 옮겨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된 저희들이기에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아나기를 원하옵니다. 하오니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따라 나온 저희들 각자의 마음에 당신의 능력과 생명의 힘이 솟구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민족의 어려움을 밟고 넘어가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저희들은 모든 혼란된 환경을 수습하고 가야 할 하늘의 명령을 받은 자로서의 책임이 지중한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목적의식에 철두철미해야 되겠사옵니다. 원수가 이 목적을 가로막을 때는 그 원수를 밀고 나가야 되겠고, 환경이 응수할 때 그 환경을 제거하고 나가야겠사옵니다. 이러한 결의에 사무쳐 있는 한 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저희들을 불러 모으실 때는 당신의 크신 뜻이 있었음을 저희가 아옵니다. 각별히 당신의 사명을 부여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명령하기 위한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러하오니 저희 각자의 몸과 마음을 아버지 앞에 온전히 바쳐서 최후의 전선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의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적 장비와 외적 장비를 갖춤과 동시에 원수가 갖고 있는 모든 기량을 잘 파악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금년에도 전면적 진격이라는 연두표어를 또다시 세우고 다짐하며 나가는 이 시점에서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추어 전진에 전진을 더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저희가 처해 있는 어려운 환경과 외로운 입장을 박차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그곳, 아버지께 지향하시는 목적의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치기에 온갖 노력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안식일이옵니다. 세계에 널려서 거룩하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 가운데에서도 외롭게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한국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 시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곳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그들 위에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신 사명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그들 위에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일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과 몸을 아버지 이외에는 그 무엇도 지배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만이 주관해야 되겠사옵니다. 본성의 인연은 당신과 영원히 생존하기를 고대하고, 본성의 심정은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영원히 봉사하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더욱더 깊이 관계맺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말씀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의 마음이 일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오로지, 아버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시작되고 아버지로 말미암음 결과를 가져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까지 당신이 친히 좌정하셔서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다 가정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가정이 없이는 참다운 자녀를 키울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사회의 형성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참다운 가정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사회, 국가,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나, 수양이나, 종교는 개인을 위주로 하고 나왔습니다.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왔지만 그 모든 목적을 달성하여 완전한 개인과 완전한 가정이 형성되었느냐고 할 때, 지금까지 인륜도덕을 세워서 강조해 나오던 모든 교양의 표준을 넘어서서 참다운 가정을 이룬 사람이 역사과정에 없었다고 우리는 단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도주들이나 성인 현철들도 그들이 바라는 이상의 세계가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공간에 자연히 실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그이상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반드시 그들 자신이 실천하여 전개시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먼저 행하여 그것을 가정에 옮겨야 되고, 종족에 옮겨야 되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에까지 옮겨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는 참다운 가정이 무엇이다 하는 정의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참다운 사람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그 한계점이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과정적인 현상에 처해 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이 자기가 도달해야 할 목적의 표준, 수양의 기준, 인간 완성의 한계점을 규정하지 못한 채 역사를 거쳐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 모든 역사와 미래에 통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의 기준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도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가정적인 기준이 형성될 리 만무한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수많은 인간들이 각자가 가야 할 인생행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더 큰 문제는 개인을 기반으로 하여 가정기준을 이루어야 하는 문제가 인류의 행로와 발전하는 인류역사 도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근본 궤도에 올라가 본연의 인류가 지향하는 본향으로 달려갈 수 있는 가정의 출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모든 인류가 고대하고 있는 이상향과 그들이 찾고 있는 목적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종교가 지향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물론 개인 구도의 목적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나아가서 가정을 구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을 찾아 악주권에 속해 있는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해방시켜야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하는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세계 인류들이 다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가정의 터전과 가정이 가야 할 정도(正道)의 기준을 확정해야 합니다. 그 가정의 제도가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이 지상에 평화의 세계를 창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이 아무리 잘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내적인 가정에 들어와서는 파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생활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행복하다고 말합니까? 외적인 어떠한 능력·권세·권위를 가졌다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또한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또 세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결코 그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행복의 터전은 가정이라고 일반적으로 느끼고 체험하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행복한 가정의 기준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부모 없는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며, 그 고아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는 동시에 부부의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것도 불쌍한 것이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없는 것도 불쌍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스럽게 지내던 부부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게 될 때는 더없이 비참하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가 자녀를 갖지 못하면 그것 역시 불행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회에 진출하여 성공하지 못하고 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권위와 자격을 갖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가정에서 참다운 부모, 참다운 부부, 참다운 자녀를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어 그 누구라도 그 가정을 본받고 싶어할 정도로 평화스럽게 산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가정의 진정한 행복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또는 친척 씨족 부족 종족을 거쳐서 민족이나 국가 앞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있다면 민족이나 국가 전체가 흠모해야 할 가정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나아가 국가를 넘어 세계가 흠모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이 지구상에 현현한다면 온 세계 인류는 그 가정을 추앙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뭇 사람들이 성인 현철들을 추앙해 나왔지만 그들이 갖고자 하는 이상적인 가정, 그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가정, 그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효자, 그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부부를 중심한 가정의 평화가 되는 기점은 무엇이었던가? 이렇게 반문하면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찾아 나가는 최고의 행복의 터전은 무엇이냐? 그것은 심정입니다. 정서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인간의 실상을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종교와 영혼 문제를 입증시키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의 심정적인 터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어디에 나타나야 하느냐? 어디에 나타나야 하느냐?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한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그것이 개인에게서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에게만 나타난다면 그것은 일세기만 지나면 다 거두어져서 끝나 버립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그 사랑을 더 깊게 하지 못하고 옮겨 놓지 못하고 죽어 버리면 그것은 일대에 끝나는 사랑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원한 혈통적인 사랑의 기준을 세울 것이냐?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가정을 이루어 혈연관계를 맺는 자녀에게 그 사랑을 심어줄 수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영원한 사랑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무형의 하나님의 사랑이 실체로 현현할수 있는 기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전체적인 기반이 무엇이냐 할 때 결국 가정이라는 곳에 귀결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그 동기의 80퍼센트 90퍼센트 100퍼센트 이상이 정서적인 문제에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형제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남녀관계에서 결여된 사정들이 원인이 되어 그런 결과를 자아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 모든 병폐를 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 역시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의 역사 가운데는 혁명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 혁명의 결과로써 세계를 움직인 사실이 많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최후의 문제는 참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한 중심이 지구상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창건, 새로운 역사적인 이상의 출발이 나타나야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 각자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올바른 가정의 기원을 갖지 못한 사람이 간다고 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갔더라도 안정된 목적점을 찾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가정으로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생 행로인 것입니다.
본향을 추구해 가는 인간의 힘이 역사 전체와 모든 환경에 영향을 미칠수 있고 행복의 터전을 이루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힘의 기반이 되는 가정이 어디에 이루어질 것이냐? 오늘날 도라든가 종교는 사회에 공적인 이익을 주기 전에 가정에 공익이 되는 기틀을 먼저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그 종교가 사회에 공익이 되는 업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가정의 기틀이 틀어지게 될때는 사회의 터전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최초의 기점은 어디일 것이냐? 어떠한 문명을 자랑하는 특정한 국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사회의 어떠한 조직이 이상적인 조직이라 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어떠한 개인을 중심으로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냐? 이 모든 것을 초월할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가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그러한 가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은 그런 가정의 문을 통과한 자격을 갖추어 승리자의 팻말을 들고 세계를 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주의와 사상을 대할 수 있는 개체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찾는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오늘날 인간들이 `아! 지금까지 우리 가정은 행복하다'고 해도 그 가정의 행복을 미래에까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화스러운 가정이라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음을 통고 받을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과 평화를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신념을 갖춘 그 가정을 이루어 어떤 슬픈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터전을 우리는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개체가 그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사람들이 이루는 가정도 그러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에서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죽는다 해도 그것이 불행의 요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가정을 찾기를 바라시고 수많은 종교도 그러한 가정을 찾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 불교의 비구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종교가 지향하는 목적이 틀렸다는 것인가. 틀렸다고 한다면 그런 종교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터전, 그 종교의 배후에서 역사해 오신 하나님 자체도 다 거부당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한때에 참된 가정이 나와야 되기 때문에 그 가정을 맞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불교와 천주교에서는 독신을 강조하느냐? 그것이 전적으로 인간의 행복의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위의 어떠한 종교도 행복의 터전이 무엇이라고 제시해 주지도 않았고, 가정의 기틀을 중심삼은 계획도 없었거니와 그 가정 자체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런 가정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독신을 강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간들이 순결하고 올바른 가정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사람이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상적인 가정과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할 가정을 추구해 왔는데, 그것이 성경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인가? 세상의 원수 가운데 누가 제일 큰 원수인가? 돈 몇십억원을 손해보게 만든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것은 손해 본 몇백 배의 돈이 생기면 그를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보다 더한 정도의 원수가 있다 해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원수 중의 원수는 무엇이냐? 심정의 적대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용서할 도리가 없습니다. 세상의 원수 가운데 원수는 무엇이냐? 사랑의 원수입니다. 즉 정적인 문제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원수는 용서할 수도 없고, 이 원수를 용서하면 천도에 어긋납니다. 이것을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하는데 하나님에게 무슨 원수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원수가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절대적인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상대가 이원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상대성을 띠고 나타나게 되면 이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도저히 용납받을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국가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두고 볼 때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두 나라는 서로가 원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동지적 입장으로 묶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이익을 중심삼고 원수가 되었다 하더라도 공동적인 사랑의 인연으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다수의 사람이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만일에 일본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찔러 죽였거나, 자기의 남편을 죽였다고 할 때는 아무리 국교가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는 원수의 나라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개인도 그렇지만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유린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법을 세워서 평화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평화의 기점은 절대적으로 단 하나입니다. 이것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기점이 둘이 되는 날에는 이상이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 원수가 있다면 그것은 선악과라는 물질적인 것으로 맺어진 원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박탈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영원히 하나님과 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원수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에 반대되는 원수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인연을 파괴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타락하던 당시에 용서해 주시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용서해 주시려 하는가? 그렇다면 모순된 하나님이 아닌가? 그것은 하나님이 절대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이 절대적인 기준의 자리에 도달하기 전에는 용서의 법도를 세우실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 준다는, 용서라는 말이 기독교에 남아 있는 것이요, 말세라는 명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세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무엇으로 원수를 청산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원수를 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면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있는 잘못된 사랑을 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지구상에 종말시대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부모의 사랑이 들이맞을 때가 왔고, 부부의 사랑도 들이맞을 때가 왔고, 자녀의 사랑도 들이맞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본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어디에 얽어맬래야 얽어맬 수 없는 때입니다. 인간이 행복의 요건이라고 주장해 오던 가정이 폭파돼 버리는 때입니다. 그러니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하나님이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는 때는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인간의 힘과 인간의 사랑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종말적인 상황에 도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은 저렇게 살려고 하는데, 아내는 이렇게 살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종말시대를 맞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된 것을 청산해 버리고 그릇되지 않은 본래의 기준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려니 옛것과 새것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정을 개인들이 아무렇게나 세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가 죄에 대해 설파한 논법은 구체적인 것이요, 또한 그럴 수 있는 법을 근거로 했기에 타당한 설법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인간들이 바라고 이루어야 할 본래의 표본적인 가정, 즉 100점짜리 가정이 나와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10점짜리도 못 나왔다는 것입니다. 10점은 고사하고 차라리 가정을 이루지 않았던 것보다 못한 마이너스 100점짜리 가정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는 여러분도 기분 나쁘겠지만, 이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은 더 기분 나쁩니다. 마이너스 100점짜리 가정, 그 가정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해 보세요. 아무리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마이너스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태산준령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런 마이너스 기준이 되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가정을 그냥 보고 앉아 있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방망이로 때려 부숴야 합니까?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오늘 저녁에 들어가서 여러분의 가정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웃음) 때려 부수기는 부숴야겠지만 부수는 데는 부수고 나서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때려부수더라도 대안을 세워 놓고 때려 부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세계 가운데 어떤 가정을 표본 삼아 가지고 다른 가정들을 수습하려고 한다면 표본적인 가정을 세워 놓고 때려부술 것입니다. 이렇게 부수는 것은 악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악한 세계를 참다운 행복의 세계로 교체시키려는 교차로에서 부정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대안을 제시해 놓고 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눈동자를 보니까 다 찬성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직까지 뜻도 모르고 그런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뭘 알아야 찬성을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찬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기준이 되는 가정이 나오면 여러분은 따라가겠습니까, 안 따라가겠습니까? 만약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망해요, 망해. 망해도 싸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들어도 섭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눈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튀어 나왔습니다. 전세계에서 눈이 제일 많이 튀어나온 민족입니다. 동양사람 가운데 한국사람이 유난히 많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눈이 나왔겠습니까? 여기에 선생님 같은 사람은 좀 예외이긴 합니다만…. 그런데 서양사람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눈이 들어갔습니다. 옛날에는 눈이 들어간 사람이 출세했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때는 눈이 나와야 합니다. 끝날에는 눈을 감고는 못삽니다. (웃음)
이렇게 볼 때, 한국 사람들은 그럴싸하게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한 뼘 정도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눈, 코, 이로써 싸움을 하더라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서양사람들은 한쪽 눈으로 다른 쪽 눈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지만 동양 사람들은 오른쪽 눈으로 보게 되면 왼쪽 눈까지 보입니다. (웃음) 아주 잘 생겼습니다. (웃음)
동남 아시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눈이 나온 사람을 보면 한국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조화의 능력이 아주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을 끝날에 잘 볼 수 있는 입장에 세우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쁘다가도 좋아집니다.
그러면 아까 말씀드린 꼴사나운 가정이 있다면 그것을 그냥 두어야겠습니까, 때려 부수어야겠습니까? 선생님의 이런 말을 좀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때려 부수지 말고 조금 두고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때려 부숴야 합니다. `때리자' 하는 말보다 오히려 `때려 부수자' 하는 말이 더 실감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무엇 하려 오셨습니까? 또한 이름하여 성인 현철들은 대관절 무엇 하러 오셨던가?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잘 이루어진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을 본받아서 그 가정과 같이 살아라 할 텐데 지금까지 가정이 있었지만 그러한 가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심각히 생각했느냐? 공자가 그랬느냐? 그 누가 그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습니까? 지금까지의 가정의 입장을 떠나서, 진정한 자리에서 참된 가정을 중심삼아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힘의 기원은 반드시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심삼고 심각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도주가 있다면, 그는 훌륭한 종교의 지도자일 것입니다. 또한 이는 세계의 온인류를 한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구세주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그런데 불교사상에서 그랬습니까, 유교사상에서 그랬습니까? 유교사상은 하나님의 실체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교에서 경천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거기서 말하는 천(天)은 인격적인 분, 사랑을 가지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는가? 예수님의 논법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라, 옳은 일 해야만 천국 간다는 말씀은 안 했습니다. 그 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배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따라가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까? 또 어머니도 그의 자녀에게 어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신랑 신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운 바가 없지만 잘합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배우지 않았지만 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여러분이 매일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야 이게 공기다' 하며 살고 있습니까? 매일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공기를 생각지도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태양 빛을 받고 살지만, 아침 저녁으로 햇빛의 고마움을 알고 인사해 본 적 있습니까? 인사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안 배운 모양이군. (웃음)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로부터 물먹을 때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그것도 안 배웠지요. 제일 귀한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귀하다는 햇빛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만일 이 지구상에서 태양이 이틀만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또 공기도 그렇습니다. `지금 인간들이 큰소리치고 있는데 저들의 세력이 얼마나 큰가, 우리가 한 15분간만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하고 공기들이 동맹파업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날에는 세계통일을 간단히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15분이 아니라 10분 이내에 세계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기나 물을 먹는 방법을 배웠습니까? 그것은 배우지 않고도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귀하다는 것은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들보다 훨씬 귀하신 분일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마찬가지로 배우지 않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에 대한 것도 배우지 않고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압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이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면 아마 이 세계를 백 개 천 개 집어넣고도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지구성(地球星) 같은 다이아몬드가 몇천 개 몇만 개 있는데 한 개만 주면 기분 나빠합니다. 이렇듯 마음은 상상도 못할 만큼 큽니다.
또 여러분의 마음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배우지 않고도 잘 압니다. 마음이 누구에게 `야 마음아, 누가 이러이러하게 하면 나쁜 것이니까 그때는 네가 파수병이 되어라' 하는 것을 배웠습니까?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 마음이란 것은 몸뚱이가 크고 큰 힘으로 대들더라도 문제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힘에 비례해서 즉각적으로 전기보다 더 빠르게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다른 마음을 먹게 되면 그 즉시 그만두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육받아야 그렇게 되겠습니까? 만약 사람이 교육을 시켜서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든다면 이것은 대성공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교육자라도 이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을 배워 보았어요, 못 배워 보았어요? 모두가 배우지 않고도 잘 알고 잘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왜 필요합니까?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지 않으니 필요한 것이지, 그렇게 되면 그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분명히 시집을 갔는데 자꾸 시집갔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세 번만 이야기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을 따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나서 먹게 하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도적질을 가르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 인간이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안 가르쳐 주어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인간들은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사고입니다. 그러면 그 사고의 동기가 어디에 있으며 누구로부터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악과'를 손으로 따먹었다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닙니다. 다른 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 문제가 아니고는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목사님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이 타락하여 원죄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원죄가 뭡니까? 원죄가 뭐예요?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사랑의 문제 때문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되어야 할 사랑의 법도, 사랑의 인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수습해야 됩니다. 인간의 출발이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비법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부터 국가 세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던 가정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그런 가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종교의 지도자들 가운데 누가 이런 가정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심각히 생각했느냐?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신 것과 같이 따라오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교주라는 자리는 어려운 자리라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은 그저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따라가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죽음의 길도 결심하고 가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천국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렇듯 천국 가는 비결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했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 친구의 아버지도 아니요, 나라의 통치자도 아니요, 세계적인 어떤 통치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첫째 아들이자 외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나쁩니다. 아버지가 들어도 기분 나쁠 것입니다. 어떤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독생자이온데, 사생자라 부르시면 안 됩니다' 했다면 그 아버지가 얼마나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웃음) 예수님은 출발때부터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의 독생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나요」 나요? 그 정도면 됐어요, 됐어. (웃음) 그러면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대답 아주 잘 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정말 사랑했습니까?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이요?'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시겠는가? 여러분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거지 건달 같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면 틀린 하나님입니다. 사랑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떤 자리의 사람을 사랑하시려 하겠습니까? 그 자리가 어떤 자리겠느냐?
누가 결혼해서 자식을 갖고자 하는데 여러분은 딸을 먼저 낳는 것이 좋습니까? 아들을 먼저 낳는 것이 좋습니까?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한번 대답해 보세요? 첫아들 낳는 것이 좋소, 첫딸 낳는 것이 좋소? 「첫아들이 좋습니다」 첫아들이 좋다는 것은 또 어디서 배웠습니까? 누구한테 배우지는 않았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둑놈 심보 가진 남자들에겐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웃음) 첫아들을 낳게 되면 말도 안 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합니다. 첫아들 낳은 사람을 들이쳐서 한턱 내게 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한국의 풍습도 좋습니다.
이렇듯 남자나 여자나 이왕에 낳을 바엔 첫아들을 낳기 원합니다.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나는 막내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는 아들이 좋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나는 맏아들이 되겠다'고 하는 아들이 좋습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도 역시 멱살을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맏아들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야곱이 에서에게 장자의 자격을 빼앗은 것도 하나님은 찬성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시겠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어떤 자리에 있는 인간을 제일 사랑하실 것이냐? 그것은 바로 부자의 관계에 있는 인간을 제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욕심이 많았습니다. 아들이 되어도 맏아들이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맏아들을 떼였기 때문에 세계가 문제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맏아들이 되겠습니까? 뭣이 되고 싶습니까?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었으면 여러분은 못 됩니다. 기분 나빠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맏아들 자리 빼앗기 싸움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었어도 형님이 될 수 있는 조건만 들고 나오면 예수님도 굴복해야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종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인 아무개에게 복을 빌어 주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이왕 기도하는 거 종의 종으로 기도하지 그래요. 나는 기분 나빠서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통일교인은 절대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밥 먹으러 집에 가서 아버지 앞에 `아버지, 여기 종 새끼가 왔습니다' 하면 그 아버지는 기분이 좋겠습니까? (웃음) 기분 잡치는 것도 유만부동입니다. `아이고, 이놈의 집 될 대로 되라! 이런 탄식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인들은 절대로 종이라는 말을 하면서 기도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그렇다고 기성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지 마십시오. (웃음) 그래야 반대하는 사람들과 한번 더 의견을 교환해 보지요.
하나님이 사랑의 본체라면 인간과는 부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관계라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랑 신부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뭘 하긴 뭘 해요, 시집 장가 가는 것입니다. 결혼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해서는 뭘 하자는 것입니까?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자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못 낳으면 그 가정은 가정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웃음) 아들딸을 못 낳으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들딸을 낳아 놓고서야 가정이 확실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색시가 미워서 내친 걸음에 이혼하고 싶어도 아들만 낳아 놓으면 그 신랑도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꼼짝없이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을 이루는 데에는 자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시고 우리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면, 신부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신랑 신부가 여보 신랑님, 여보 신부님 하면서 앞동산 뒷동산 바라보며 사는 것이 신랑 신부의 목적입니까? 진정한 내용은 생각하지도 않고 `신랑 되신 주님이시여 내가 이렇게 못생겼어도 찾아오셔서 주님의 일등 신부로 맞아 주소서' 하고 바라고 있으니, 그것은 분수도 없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늘나라의 왕자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제일 왕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권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인자의 인을 받고 태어난 아들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을 맞아서 하나님의 맏며느리가 되었어야 했던 유대 백성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기도하기를 `신랑 되신 주님!' 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보면 신랑되는 예수님이 저렇게 초라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 종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저 죽게 되어야 `신랑되신 주님이여, 내가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구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자기들이 좋을 때에는 모르는 척하다가 자기들 괴롭고 슬플 때에 가서야 `주여!'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집안 망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제일 왕자이십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조금 낫다고 하는데, 여러분 중에 그 왕자님의 신부가 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 있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손들어도 걱정이지요? (웃음) 오늘날 기성교인들에게 신랑 신부가 되어서 무엇 하자는 거냐고 물어 보면 `뭘하긴 뭘해요 천국 가자는 것이지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천국에 가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합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파헤쳐 볼 때, 신랑 신부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습니까? 그런 것이 싫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신랑 신부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늘의 왕자와 왕녀로서 인연 맺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천하를 소유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세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가정기준을 이루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신랑으로 왔기 때문에 신부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왕자로 왔기에 하늘 왕녀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며느리를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뻔한 이치 아닙니까? 처음 온 사람이라도 이런 내용을 알고 나면 정한 이치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믿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늘의 왕자가 와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쫓아 버렸기 때문에 천번 만번 사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바라는 오시는 그분 앞에 신부를 준비하여 그분이 원하시는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온 것이 바로 신부의 종교인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을 바란다면 모두 도둑놈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준비해 놓아야 할 것이 예수님이 바라던 제1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제1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제2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사업해서 성공하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1의 목적은 무엇이냐?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맞아서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 잔치는 무엇이냐? 성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제일 왕자님이 색시를 맞이하여 살림살이를 시작하는 잔치입니다.
그러면 그 잔치 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기독교인들은 구름 타고 공중으로 둥실둥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 머리가 좋아도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웃음)
하나님의 제일 왕자가 신부를 데려다가 어린양 잔치를 한 다음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되겠습니까? 땅에서 살림살이를 해야 되겠습니까? 찾고자 하는 분을 찾았으면 그 자리에서 춤도 춰야지 구경이라도 한번 하지요. 왜오자 마자 잘 믿는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데리고 올라가서 공중 잔치를 합니까? 공중 잔치는 무슨 공중 잔치예요. 올라가기는 어디를 올라간다는 것입니까? 요즘엔 인공위성을 타고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내려와야 합니다. 공중에서 돌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지 어디 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예수님의 목적은 신부를 얻어 가지고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갔더니 문선생이라는 분이 예수님이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기분 나쁘더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은 아마 일등 신부나 특등 신부가 되어서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줄 알았던 모양이지요? 그러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가정. 가정을 이루었다면 예수님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가부(家父)가 되어야 합니다. 가부가 되는 동시에 가장(家長)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이 되어 가종주(家宗主)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기준까지 갔었던가? 가정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려던 그 가정은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은 올바른 가정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잘못되어 내려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그 가정은 하나님이 좋으셔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하실 수 있는 가정입니다. 우리 민요 중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잘 노래했습니다. 한국 사람의 노래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부르고 싶은 노래일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이루어지면 그 가정이 된 가정입니까, 안 된 가정입니까? 그런 가정이 되지 못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을 이루어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자녀를 낳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녀를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자 손녀가 나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만 좋아하시는 분입니까? 어떤 사람이 자식을 10명 두었다고 해서 손자는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아들만 갖기를 원합니까? 손자까지 보기를 원합니까? 손자도 원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뿌리라면 그 하나님을 닮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뒤집어 박고 거꾸로 해도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손자가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합니다」
이러한 말을 기성교인들이 들으면 아이쿠, 예수님이 장가 가야 된다는 말도 끔찍한데 저런 말까지….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니까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살만 찌는구만. 그들은 배가 아파서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해도 선생님은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이단이 나와야 그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공부 못하는 녀석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그저 공부 못한다는 소문을 내고 창피를 주어야 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간접적인 자극을 주는 데도 선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 가서 하나님의 손자를 낳아야 된다고 했는데 기분이 나쁩니까? 만약 기분 나쁜 사람이 있으면 죽으라우. (웃음) 그런 녀석들 죽은 데는 미친개도 안 돌아봅니다. (웃음) 하나님의 손자가 필요없다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이며, 여러분도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섭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자를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자가 있다 하면 만나 보러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겠어요? 만약 그분이 미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돈 한 푼 없어서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걸어가겠습니까? 그렇다면 보따리 싸들고 `하나님, 제발 당신의 손을 좀 보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밤낮없이 정성이라도 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디로 오면 좋겠습니까? 미국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한국으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한(恨)이 많은 나라라서 한국입니다. 한국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미국으로 오면 좋겠습니까, 한국으로 오시면 좋겠습니까? 「한국입니다」 다들 욕심은 많군요. (웃음) 그런 욕심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있습니다. 선생님은 수십년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고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한국으로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오시면 주님의 다리라도 꽁꽁 묶어서 끌고 올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재간이 있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만약에 아들이 어디 갔다 와 보니 아버지가 한바탕 싸움 끝에 궁지에 몰려서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합시다. 이때 아버지를 구하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는 일단 속으로 `아버지 용서하세요' 하고 나서 아버지의 뺨을 치고 난 다음 피하게 해서 살려냈다면 나중에 아버지가 그 아들을 야단치겠습니까? 그럴 때는 아버지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일단 아버지를 구해 놓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밖에 없을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런 궁지에 몰린 입장에 계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라도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면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복귀섭리역사를 해나오시면서 얼마나 안달하셨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방법으로 구해 드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각하고 연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을 못 떠나시게 해야 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나한테 홀딱 반하게 하면 못 가지 별 수 있어요? (웃음) 내가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전부다 가지고 있으면 못떠나십니다. 설사 가셨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배짱이 두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한국으로 오시게 할 수도 있고 오신 주님을 다른 나라로 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주님과 하나님을 한국으로 모셔 오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모든 인간들의 표본적인 가정을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하셨겠습니까? 또한 타락으로 맺어진 인간들이 얼마나 그 가정을 그리워했습니까? 여러분들도 그 가정을 그리워해 보았습니까? 통일교인들 뿐만 아니라 지금 처음 듣는 사람들도 이런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해 보았습니까?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모든 인류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는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참다운 가정을 맞이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 가정의 전통을 넘겨 받고, 그 가정의 생활이념과 법도를 본받아서 그와 같은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모두 그런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세계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가정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하신 말씀이 맞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오셔서 뭘 할 것이냐?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에서 아들딸이 후대로 계속 번창하게 되면 종족이 이루어지고 민족이 이루어지고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수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가정의 혈족이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던 본연의 기준, 즉 본연의 가정을 중심삼은 복귀의 혈족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러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축복'이라는 것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가정을 `축복가정'이라고 합니다. 그 축복가정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적인 가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오시는 주님이 가져야 할 가정이요, 앞으로의 후대 사람들도 가져야 할 가정이며, 여기 있는 저 아주머니도 가져야 되는 가정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최후에 가져야 할 공동적인 목표요, 가야 할 공동적인 관문이 무엇이냐?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계도 아니요, 민주주의 세계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계가 있기 전에 본연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세계가 있기 전에 참된 민주주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본연의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여기에 대한 질서가 어디에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교육이 어디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목적 기준이 어디에 있었던가? 이런 결정적인 기준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타나기 전에는 평화의 왕국, 평화의 이상국가, 평화의 나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이런 이상적 가정, 본연의 가정, 살아야 할 가정, 만나야 할 가정, 찾아야 할 가정이 이 지구상에 반드시 나타나 인류역사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한때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안식의 복지, 안식의 보금자리가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살아오면서 이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꿈도 안 꾸어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린 인생, 무가치하게 살아온 인생에 대한 한을 품고, 기쁨의 한 곳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바빠야 합니다. 그런데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천년 만년 행복의 복지라고 찬양할 수 있는 가정을 못 가진 불쌍한 인생 행로를 걸어가고 있는 처량한 신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란 사람이 국가와 세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만 선생님이 주장하는 이념은 앞으로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만민이 가슴을 점유할 것입니다.
아까 말한 가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면 좋겠는데 그렇게 길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남자거나 여자거나 모든 사람들이 그 가정에서 한번 살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가정에 살고 싶습니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저 시시하게 살고 싶습니까? 사는 데는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라면, 때가 묻어 더럽고 헤어져 너덜거리는 옷을 입더라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니 다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가정이 됐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난번 세계순회노정 중에도 선생님이 미국과 일본과 독일에서 많은 사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선생님은 그러한 가정에 대해서 많은 말씀하시는데, 통일교회의 축복 가정과 우리네 가정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하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축복 가정이나 다른 가정이나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르다는 것입니까? 또 한국에서 제일 가난한 자와 제일 부자를 서로 비교해 보면 무엇이 다릅니까? 똑같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도 거지옷을 입혀 놓으면 거지나 다름없이 보입니다. 거지가 아니라도 거지 노릇하면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죽었다고 하지 거지가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겉으로 나타난 모양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다르다는 것도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많이 있군요.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이 이전부터 이렇게 거룩한 가정입니까? 그것이 안 되었으면 바꿔 세워야 됩니다. 그런데 바꾸는 데도 법에 의해서 바꿔야 합니다. 그 법은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안 맞아도 되겠습니까? 「맞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정에 대하여 말씀드렸는데, 여러분 중에서 통일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 가정은 망해야겠구나 하면서 `이제 내 아내는 쓸 데 없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통일교회에 물들었다고 야단할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하려 오셨느냐? 가정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복귀역사입니다. 병이 났으니 병이 낫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무엇이냐?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잃어버린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이 가정을 찾아야 되느냐? 예수님은 어찌하여 가정을 찾으러 와야 되느냐? 이것은 본래의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병이 났으니 병을 고쳐야 됩니다. 즉 타락을 했으니 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류 시조가 타락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며 그 시조가 타락할 때 혼자만 타락했으니까? 둘이 타락했습니까? 「둘이 다 타락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타락을 하더라도 혼자만 타락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혼자만 타락했다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타락을 하게 했느냐? 만약에 인간 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시집 장가 갔다면 부끄러움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타락하여 부끄러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타락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받는 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용서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만일에 부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용서 받을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물질을 먹는 것 때문에 타락했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유린한 타락이라면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시조가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유린하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인 아담이 첫째 아담이요, 예수님은 둘째 아담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 얼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망해야 됩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예수님은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참부모로 오셔서 인류의 참조상이 되어야 할 분입니다. 아담이 거짓조상이 되었으니 다시 참조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들은 부부가 하나 되어서 예수님에게 접붙여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하신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가정이 타락했으므로 그 가정을 구원하기 위하여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을 세워 놓고 구원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여야 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천사장이 아담을 타락시켰으므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타락한 천사장이 아담 앞에 절대 굴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의 혈통을 이어받아 인연맺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아담을 대신한 자리에 아벨을 세우고 천사장을 대신한 자리에 가인을 세워서 천사장을 굴복시켰다는 조건을 하늘앞에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아담이 천사장을 굴복시켰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늘의 뜻을 그르칠 때에는 자식 대(代)에서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아담 가정에서부터 엮어져 나온 죄악의 역사가 6천년이나 이어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리하여 아담 가정에서 가인적 가정과 아벨적 가정, 가인적 종족과 아벨적 종족, 가인적 민족과 아벨적 민족, 가인적 국가와 아벨적 국가, 가인적 세계인 공산세계와 아벨적인 세계인 민주세계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처음부터 그렇게 심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두 세계로 열매맺는 시대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하러 오신 분인가? 아담 해와의 실수로 갈라진 그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상에서 가인을 굴복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상에서의 가인적인 존재는 누구냐? 왼편 강도입니다. 아벨적인 강도는 오른편 강도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의 싸움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을 복귀하기 위해서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도 죽는 자리에서까지 그와 같은 조건을 통해 탕감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시작이 그렇게 되었으니 복귀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상에서도 가인이 아벨을 쳤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세계가 심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익세계와 좌익세계의 시대를 거쳐서 결국은 기독교에 흡수되어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념을 중심삼은 실상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의 부모가 다시 오셔서 이 죄악의 역사를 청산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십자가에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두 세계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가 서로 싸우던 것과 같은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을 복귀한다는 심정으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오른편 강도가 그러한 심령 기준을 세우지 않았으면, 다시 말하면 아벨이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탕감하지 않고는 본연의 자리까지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중심삼고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의 싸움에서 오른편 강도와 하나 되어 승리의 터전을 잡았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서 승리했기에 그 승리의 열쇠 꾸러미를 이어받은 오늘날의 기독교를 중심삼고 가인적인 세계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가인적인 세계란 왼편 강도형인 유물사관이며 아벨적인 세계관은 오른편 강도형인 유심사관입니다. 왼편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신이 없다고 부정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로 갈라져서 그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예수님이 사탄분립수인 40수, 즉 40세를 바라보시며 사탄 세계와 싸우셨기 때문에 1917년에 이루어진 공산세계가 40년이 지난 1957년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공과 소련 사이에 이념분쟁은 195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타락으로 심어진 전통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는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한 세계적인 터전의 기준이 이 땅 위에 현현하여 민주세계가 창건되었으며, 이에 대항하여 공산세계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즉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세계적인 싸움의 무대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항할 때에 누가 와야 되느냐? 인류의 참조상 되시는 재림주님이 와야 됩니다. 즉, 3차 아담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분은 이런 세계적인 기준 위에 인류의 조상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전까지 해결짓지 못한 싸움을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으로는 해결지었지만 육적으로는 해결짓지 못하였기에, 영육 아울러 세계적인 판도를 중심삼고 해결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으므로, 3차아담으로 참조상의 자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으로 오시는데, 두 세계, 즉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싸우는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유엔총회 석상에서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무례하게 구두를 벗어 가지고 연탁(演卓)을 치면서 연설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선생님은 `이놈들아! 지금까지는 너희들이 최고의 권위를 차지했지만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내려가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난받으실 때 오른편 강도가 왼편 강도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변호한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도 오른편 강도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왼편 강도와 같은 사람들을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줘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다. 하나님이 지금껏 수고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살고 있다'고 부르짖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런 운동을 통일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산당에 대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실재를 거부하는 그 사상을 틀렸다고 반박하며 그들을 대해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의 자리에 서서 세계를 대표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하여 예수님 당시에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써 낙원에 들어갔던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천국이 건설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적인 사실은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게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반공사상을 중심삼고 한국의 선두에 서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다는 것, 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 되지 않으면 세계가 수습될 수 없고, 새로운 세계, 즉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만민들이 확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선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피어린 투쟁을 하고, 피어린 박해를 받아 오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의 그러한 역사를 중심삼고 개척자의 행로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국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할 단계에 올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입장에 처한 여러분은 오른편 강도가 되겠습니까, 왼편 강도가 되겠습니까? 「오른편입니다」 여기에 여자분들은 어느 편이 되겠습니까? 「오른편입니다」 대답이 시원치 않습니다. 주먹에 힘을 주어 `오른편이요!' 해야 됩니다. 다시 한번 물어 봅시다. 오른편이예요, 왼편이예요? 「오른편입니다」 가르쳐 주고야 누가 못합니까? 벙어리라도 다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남자분들 어디 한번 물어 봅시다. 오른편이예요, 왼편이예요? 「오른편입니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가며 결심은 잘했는데 조금 잘못한 것 같군요, 박자가 맞지 않은 것을 보니…. (웃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외치는 공산세계와 부딪치고 있는 마지막 끝날에 처해 있습니다. 이때는 십자가 도상에서 넘어서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2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에게 `그래, 유대인의 왕이 되어 가지고 고작 이렇게 죽다니…' 하면서 조롱하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핍박을 다 받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처량하게 사라져 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운명도 그렇게까지 되었지만 하나님은 거기에서 부활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섭리는 어떻게 되어 나갈 것이냐? 선생님이 결심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을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40년 후에는 분명히 다른 세계가 올 것입니다. 2천년 쯤 되거든 보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때까지 살아 가지고 이 공산당 원수놈들을 전부 다 말아먹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인류역사는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저 여러분이 잠자면서 하는 잠꼬대같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공식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류 앞에는 반드시 새로운 소망의 터전이 현현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은 섭리가 실패했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섭리는 십자가의 길을 면치 못했지만 영적인 구원의 길은 열렸던 것입니다. 그 영적인 기반을 중심삼아 본연의 세계를 이룰 수있는 하나의 기원이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성에 의거한 결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와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이 알고 있기에 동양에서는 몰라도 서구사회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나 있습니다. 내가 어디를 간다 하면 벌써 알아 가지고는 가는 곳곳마다 찾아옵니다. 너무 귀찮게 찾아다니기에 내 할 일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문선생을 받들지 않으면 이 나라가 망신과 창피를 당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도 여기에 페이터 코흐씨가 와 있지만 외국인들이 선생님을 무턱대로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는데, 선생님에게는 그런 녀석들이 얼빠진 녀석, 미친 녀석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욕하는 기성교인들 중에는 `통일교회가 일을 잘하는데….'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에게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큰 사건들이 자주 벌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달에 한번씩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한민국에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통인들이 선생님을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그 누가 하나님이 실존을 부정하기 위한 연구를 했다 하더라도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전세계 사람들이 놀라 자빠질 수 있는 사건들이 많지만 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어떤 잔칫집에 무엇 무엇을 준비해 두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게 되면 도둑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도 없는 잔치를 고이고이 준비해 왔는데, 소문부터 나면 도둑맞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무엇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와 보고 `세계본부가 왜 이모양이야'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일하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여기에 와서 함께 생활해 보면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선생님이 세계 40여개국을 돌아보면서 별의별 내노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그들 모두가 큰 집 짓고 세계를 살리는 기준을 가진 기수가 되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누가 선생님 면전에서 `왜 통일교회가 이 모양인가'라는 말을 한다면 눈을 부릅뜨고 주먹뺨을 올려 붙일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보고 `퓨마라는 맹수와 같이 생겼구만, 몸집도 저만하면 남자답고 말하는 것도 그럴싸하게 하는구만'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다 외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나왔지만 선생님의 진정한 모습은 모릅니다. 어떠한 분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 선생님이 세계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자꾸 커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쿠! 이러한 선생님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자랑이 아닙니다. 여기서 자랑을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웃음) 사실 지금까지는 자랑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 허리 부러져 낮잠만 자는 호랑이처럼 살아왔어요. (중략)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해서는 오른편 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겠지요? 「예」 그러려면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려야 되는데…. (웃음) 그때에는 십자가에 달리는 오른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그분을 모시고, 그분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그분이 가시는 곳곳마다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오른편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형편이 무인지경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참된 가정의 기원이 그릇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육을 중심삼고 이 가정을 복귀하려고 했지만 다 이루지 못하고 영적 부모의 입장에서만 이 길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이루어야 할 예수님은 신랑으로 와야 하고 성신은 신부로 와야 하는것입니다.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남자를 상징하는 하늘에 올라갈 때 거기에 있던 성신이 왜 땅에 와야 되느냐? 타락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를 대표한 예수님이 땅에 와서 죽음의 고갯길을 걸으면서 사탄인 천사장이 하늘을 배반했던 역사를 꺾어 돌려 영적으로 승리한 기반을 세웠지만 해와의 영, 어머니신이 될 수 있는 그 신은 이 사탄세계에 와서 사탄을 굴복시킨 터전을 지금까지 갖지 못했습니다. 즉, 사탄을 굴복시킨 승리자의 자격을 갖추어 남자를 상징하는 하늘로 올라가고 땅을 상징하는 어머니신, 즉 여자의 신인 성신은 이 땅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늘을 남편으로 삼고, 땅을 아내삼아 가지고 이 부부가 평면상에서 마주보고 의논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갈라진 것입니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하늘과 땅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성신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성신은 무엇이냐? 바로 어머니신을 말합니다. 타락은 어머니가 먼저 했으니, 즉 죄를 어머니가 뿌렸으니 어머니가 수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된 어머니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릇된 자식들이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참된 영적인 아버지와 참된 영적인 어머니가 서로 사랑의 심정으로 상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수의 장벽을 헤쳐 사탄의 권한을 제거해 가지고 사랑의 진액을 받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만 모든 인간들은 영적으로 중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부활과 중생이라는 것은 바로 영적인 부모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내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성신에 대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적 부모를 중심삼은 영적 세계관, 영적 천국을 바라보면서 나온 종교인 것입니다. 본래의 천국은 아담 해와가 이 땅에서 잃어버린 이 세계를 다시 돌려놓아 가지고 영적으로 승리한 기준을 종적이 아닌 평면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어머니 참된 아버지가 평면적으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지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그릇된 이 모든 것들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육신을 쓰시고 이 지상에 오셔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무엇을 하셔야 되느냐?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 예수님 때의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의 기준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를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가 민주세계를 먼저 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1차 대전, 2차 대전에서도 악편의 국가가 먼저 선편의 국가를 침범해 왔습니다. 또한 2차 대전 후인 지금에도 악편 국가가 선편 국가를 먼저 침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극의 상황에 처한 현시대에 사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악의 세계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공산세계가 민주세계에 굴복하게 될 때에 세계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굴복하지 않을 때는 확신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해방 후에 이박사가 내 말만 들었으면 공산당은 이미 그때에 깡그리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섭리역사가 연장되어 나왔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인 유엔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떨어져서 허덕이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어느 한때에 이 나라가 다시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통일교회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은 여기에선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별의별 핍박을 가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나라 이 민족을 원수시하지 않습니다. 나 하나 망하고 나 하나 구원 못받고 나 하나 희생되어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슬픈 역사가 기쁨의 역사로 변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황무지에서 자라나 서럽고 불우하게 살아 온 이 민족이 나 하나 희생당하고 나 하나 핍박받음으로 말미암아 광명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천번 만번 감내할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폭탄 하나 떨어지지 않았던 이 나라가 왜 이렇게 황폐하게 되었느뇨?
우리는 원수와 대결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전부다 하늘이 바라는 뜻과 소원과 상충된 길을 이 민족이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져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나라, 이민족이기 때문에 세계의 운세는 또다시 한국으로 몰려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지금의 월남 문제가 앞으로는 한국의 문제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는 6월부터 10월까지 공산당으로부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이렇게 빨리 마치고 돌아온 것은 이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초하루부터 이 나라, 이 민족을 붙안고 과거의 선조들이 잘못한 역사상의 모든 죄악을 그들을 대신하여 반성하고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세계적 운세를 업고 나가서 앞으로 소망하는 천운을 맞기 위해서는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위해서 베옷을 입고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가 천운을 다시 맞을 수 있는 기점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공산당 이상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교파가 어디 있었습니까? 하늘이 세운 뜻을 위하여 일선에 서서 죽음길을 개의치 않고 원수와 대결할 수 있는 교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의 각 교파는 망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 기독교가 선생님을 맞아 들였다면 세계는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지금의 이 연령이라면 세상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선생님에 대한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선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어떻게 요리하느냐, 어떻게 해야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느냐를 염려하는 선생님입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는 필시 이렇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선생님이 `공산당은 8대를 못 넘긴다' 하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틀린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결과를 보아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세계의 움직임과 맞아 떨어지고 세계적인 모든 사건들이 우리의 움직임과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는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이 세계는 분명히 알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는 전부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도망가던 제자들과 마찬가지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한 것이 뭐 있습니까? 십자가에서까지 왼편 강도의 조롱을 받던 예수님의 입장이 바로 오늘날의 통일교회의 입장입니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이루어진 기독교의 간판을 붙인 모든 교파는 다 무얼 하고 있었더뇨? 그들은 공산당을 대하여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하고 변명할 아무런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가고 난데없이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을 위해서 변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교파가 나타나 기독교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고 죽음길도 기꺼이 가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이런 운동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해 나온 모든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공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전통과 공적을 쌓아 오기까지 생애를 바쳐 투쟁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과거를 들추어 보면 한스러운 역사의 고빗길을 거치느라 아무리 목석 같은 사나이라도 통곡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사연이 많습니다. 이런 서글픈 역사를 지닌 채 승리를 다짐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슬픈 그늘에 몰려갈 때면 거기서 사라지는 사나이로서가 아니라 광명한 햇빛을 바라보며 천지를 항하여 내 소신을 피력할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보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반드시 그러한 한 날이 올 것입니다. 오지 않을 때는 내게 있는 힘으로라도 그날이 오게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이 자리에 왔습니까?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역사의 기반을 상속받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스승의 가는 길을 따르고, 그 스승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사상을 세계 앞에 넘겨 주기 위한 공동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서 모인 무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몰리고 쫓김 받는다고 쓰러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죽이려고 하셔도 죽어서는 안 됩니다. 백 번 죽더라도 살아나서 그 한을 풀어야 합니다. 자기 후대에 대신자를 세워 놓고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의 무리들이 자기의 후손에게 굴복하는 것을 봐야 영계에 가서 안식한다는 신념을 갖고 가야 할 우리 통일교인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들이 역사의 한을 토로하고 역사상의 모든 조상들의 잘못을 원망해 왔습니다. 그런 우리 자신들이라면 오늘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을 책임지고 쟁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 스스로가 천명에 의해 가야 할 행동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생사도 개의치 않고 죽음길을 가시던 주님을 위해 오른편 강도의 입장에 서서 변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가 반대하고 그 누가 원망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봄날에 녹아지는 눈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다짐할 수 있고, 내 몸이 생명의 씨가 되어 다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참되신 분이라는 것,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라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행복의 기원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오른편 강도가 천국문을 밀치고 나오게 할 수 있고, 이 흑암권세를 헤치고 예수님과 더불어 당당히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의 공산당 앞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번에 일본에 갔을 때 느낀 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식구와 원리연구회 회원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인원으로는 공산당에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이미 미련한 대중에게 침투하여 자기들의 계획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왔는데 그런 공산당을 대항해서 그런 소수의 무리에게 하나님을 붙안고 생명의 폭탄으로 저들을 막아내라 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가야 됩니다. 죽음길을 오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가야 하고 쓰러지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쓰러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쓰러져도 망하지 않는 부활의 권한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러져 죽어도 부활의 은사와 부활의 권위와 부활의 환희를 체험할 수있으니, 타락한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일대의 소망의 기점이요, 일대의 희망의 기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세계순회 중에 일본에 들렀을 때 일본 식구들에게 `가라, 너희들이 원수의 도가니에 드러누워 죽게 되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예수님을 위로해 주고 갈 수 있었던 오른편 강도와 같은 절개를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수습할 수 없는 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가 가야 할 행로라는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 누구든지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짐해야 합니다. 심장의 고동이 그치는 날 나는 어디에 쓰러질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죽음이될 것이냐, 슬퍼하시는 죽음이 될 것이냐, 이 민족의 원한과 더불어 사라지는 인간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런 다짐이 한번 두번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민족에게 비운이 닥칠 적마다, 민족의 절망어린 한을 느낄 적마다, 골수 깊이 사무친 심정으로 천번 만번 다짐할 수 있는 그런 사나이와 아낙네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년 사연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는데, 내 자신의 일년 사연이나 십년 사연이나 일생 사연에 이끌려 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엄숙한 천명을 받은 한모습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의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귀하고 오늘의 내가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삼천리 반도를 붙들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북을 기필코 다시 찾아 팔도강산을 통일해야 할 민족의 과업이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민족은 우리를 비웃으며 별의별 탄압을 다 해왔습니다. 반공운동을 할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탄압을 할테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죽을 때에 유언을 받을 자기 자손이 있거든 눈을 부릅뜨고, `이 유언을 따라 이 일을 계승하지 못하면 죽지 못하겠노라'는 유언을 할 수 있는 결의와 신념을 갖고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는 하늘 앞에 면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 만민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이 나사렛의 뜰을 바라보며 하소연하던 그 사정과 심정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바라보시던 그 뜰과 산과 그 자연은 심정을 통했건만 그분의 친구가 되고 같이 뼈살이 녹일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죽음길도 같이 가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불쌍한 예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 기막힌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왔는데, 무엇을 위해서 따라 나온 것입니까? 선생님의 얼굴이 그리워서 따라 나온 겁니까? 선생님이 돈 많은 부자라서 따라 나온 겁니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천주의 한을 풀어 인류가 그렇게 고대하던 그 소원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공동으로 책임지고 죽어서도 그 길을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가 먼저 알고 죽어서라도 닦아 놓고 가야 할 사명을 절감했기 때문에 따라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흑암의 물결이, 원수의 노도가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해도 헤치고 나가야 됩니다. 원수의 총칼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다 해도 쳐부수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슬펐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오른편 강도의 위안을 받으시면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리라' 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말씀입니까? 4천년에 걸쳐 택함받아 나온 유대교인은 어디에 갔으며 3년 공생애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노정에서 처량한 신세로 몰려 한을 품은 예수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따르던 열 두 제자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몰리고 비판받는 비참한 자리에서도 예수와 동고동락하며 죽음길도 같이 가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그들 중에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자리에 있는 예수를 대하여 그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가 알았던고? 어찌하여 예수는 그렇게도 고독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 그 오른편 강도마저 없었더라면 인류는 그 무엇으로도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고 하늘 앞에 설 면목도 없다는 것입니다. 살인강도인 오른편 강도가 그 길을 열어 주었기에 예수님은 낙원에라도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는 길 앞에 동역자가 되어 위안의 말을 드렸기 때문에, 예수가 인간 세상에 부활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해야됩니다.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똑똑히 바라보십시오. 이 눈은 누구를 위해 보아야 하고 이 코는 누구 때문에 이렇게 생겼고, 또 이 입은 왜 생겼으며, 이얼굴은 누구 때문에 지어졌으며, 내 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컸느냐?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 이러한 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한갖 민족의 한이나 풀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한,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한까지 풀어드리기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자기도 억제할 수 없는 통곡의 생활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이 나라 이 민족을 바라보면서, 또한 무지하고 혼란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조이며 내일의 희망과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나를 종족이 찾고 있고, 민족이 찾고 있고, 국가, 세계가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곳곳을 다닐 적마다 외국사람들이 선생님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기쁜 반면에 슬픈 심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가 떠난다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인연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6천년 전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죄의 전체를 책임지고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눈물을 쏟고 갔으니, 그때의 절망으로 갈라졌던 인류 역사가 환희의 소망 가운데 만날수 있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울음 바다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탕감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고 동서양의 문화를 초월하여, 그분이 눈물의 교차로를 갈 때 나도 가고, 그분이 죽을 때 나도 죽겠다는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때문에 그렇겠습니까? 선생님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비판만 받아 왔고, 한국 민족 앞에 이단자의 명찰을 달고 있는,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단 하나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 통곡하지 못하는 인류 앞에 통곡할 수 있는 그 마음과, 매맞지 않으려는 자 앞에서 매맞을수 있는 마음,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갖춘 바의 재산이요, 또한 물려 주어야 할 위업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고, 남모르는 가운데 세계를 위해 고민할 수있는 마음밖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넘겨 줄 위업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내가 몰리고 쫓김받는 그 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단자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전통을 부활시키기 위한 길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후퇴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처자가 그리워도 가야 됩니다. 배반하더라도 가야 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칠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불쌍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나를 통하여 위로받으셔야만 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여러분은 알아야됩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나가 이 악한 세계가 뒤넘이칠 때까지 동기를 일으키고 사정을 일으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나와 세계가 하나되어야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배후에 연결되어야 할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내일의 사명을 다짐해야 됩니다. 이 세계가 그러한 나를 필요로 하고 또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다 망합니다. 사망하고 맙니다. 죽어서 오른편 강도가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있다면 우리가 자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리가 가르치는 바의 기준은 죽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죽는 자리에 세움 받는 것이 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서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는 길은 그러한 슬픔의 길이 아닙니다. 그런 슬픔의 길은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서렸던 슬픔의 운명은 사라졌고, 어디 가나 반대의 깃발 앞에 처하던 그런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상속받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벨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일생에 못하거든 후손을 세워 몇대를 거쳐서라도 이것을 했다고 하는 조건을 세우고 가야 할 것이 여러분의 갈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또 얼마나 보고 싶어했습니까?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고 진정으로 기도하고 진정으로 사모하였다면, 그것은 이 몸뚱이 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민족이 가야 할 내일의 모습이 어떤가를 염려하며 맺혔던 것을 풀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워하고 이렇게 다시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만난 여러분에게 안식하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왔으면 다시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지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낙망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 때는 너무나 촉박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잘것 없는 모습이지만 이러한 시점에서 때가 왔다고 소식이라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이 봤을 때, 앞서 가는 사람이 고생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고생을 안 하려고 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합니다. 교통순경이 하는 일은 달리는 차들을 `오른편으로 가라, 왼편으로 가라'고 길잡이 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길 가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생사문제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목적의 달성여부가 거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일 하지 말고 교통순경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소리치며 무슨 선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순경이 되어 `이 길로 가야 된다, 나를 따라가야 된다. 내가 하는 대로 하면 산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며 안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여러분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선생님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내몰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선생님이 책임을 지고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책임져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러분을 끌고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뒤에서 때려 몰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탕감할 수있는 책임을 다해야 할 상황에 들어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작전을 지방에서부터 전개하여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작전을 이제부터는 다시 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금년에 우리들은 또다시 전면적인 진격을 하고자 다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한스러운 고비를 청산지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도상에서의 죽음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서 후대에 남겨 줄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은 죽음의 교차로에서 오른편 강도가 받은 부활의 은사가 아니라, 실체의 부활권을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싸우면 백전백승할 수 있으므로 여러분은 또다시 이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돌아오면서 국제승공연합을 재정비하고, 원리연구회도 재정비하는 등 모든 단체를 전부다 재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운동을 세계적으로 펼쳐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부흥회를 한다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선생님에 대한 말만 들었지,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없는 사람 같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선생님이 표면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외국에서부터 시작해 국내로 들어올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것입니다. 또 국제부흥단도 모집해야 하는 등 이제부터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유엔은 가인적이기 때문에 이제 아벨적인 유엔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책임자들이 맡으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여기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남들은 꿈도 못 꾸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선생님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는데, 미친 사람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것입니다. 승공연합을 결성할 때도 뭐 통일교회가 어떻다고 했지만,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므로 우리는 오른편 강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분명히 드세요.
선생님은 팔자가 사나와서 그런지 쉴 새가 없습니다. 세계를 순회하고 돌아와서도 잠 한번 실컷 자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이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두 시에 자더라도 다섯 시가 되면 눈이 떠집니다. 늦게 자더라도 그 다음날 새벽이면 습관이 되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낮에 졸음이 오긴 하지만 어디에 가서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선생님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사람인 이상 그런 것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웃음) 좋은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고 나쁜 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욕을 먹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예민합니다. 선생님의 감정을 분석해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략)
내가 지금 교회를 안 짓는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교회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정, 즉 신랑 신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보기 위해서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애기가 잠에서 깨어 처음 눈을 뜨면서 부르는 것이 `엄마'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부르는 것 이상으로 남편은 아내를 불러야 합니다.
이렇게 불러보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 부인도 남편 이상 그렇게 불러야 됩니다. 알겠어요? 서로가 그럴 수 있는 부부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실지락의 부부로서 서로를 그렇게 부르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년만년 산다면 늙어도 청춘이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축복가정 부부가 80노인이 되면 선생님이 세계일주를 시켜 줄 것입니다.
앞으로는 무엇이 자랑이겠습니까? 어떤 나라와 싸워서 이긴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공산당들을 물리쳤다고 해서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 망하면 국가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이 통일교회 문선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내가 알아냈으니 그 일의 권위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바라거든 나한테 와서 배워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나이가 50,60세 된 사람도 전부 다 선생님한테 와서 축복을 받겠다고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옛날 일본의 순사의 기억이 나서 기분이 안 좋아 `뭐, 축복을 받어?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 하고 말하면, 그들은 자기 아버지 어머니 보다도 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사실이 믿어집니까? 그럼 여러분들도 그렇습니까? 「예」 지금 대답한 사람의 아버지 어머니가 이 자리에 왔으면 기분 나빠하겠군요. (웃음)
일본 사람들도 통일교회의 축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앞으로 공식적인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해야 할 텐데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여기에 축복받을 여자들 있지요? 인간 조상인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도 여자 때문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그럴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꾀임에 넘어갈 수 있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무슨 말에도 솔깃해 가지고 달콤하면 그저 좋다고 헤헤거립니다. (웃음)
통일교회 여자들, 임지에 갔을 때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 없다느니 그런 타령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바탕이 잘 생겨야 돼요. 잘 생기지 못했으면 남편한테 미안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미인은 박명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더라도 애기 서넛만 낳고 나면 얼굴이 쪼글쪼글해지고 볼장을 다 보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얼굴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굴이 잘 생기고 못생기고간에 우러나오는 감정이 풍부하면 세계의 일등 가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결혼하게 되면 여자는 남자의 일등가는 유원지가 되어야 하며, 일등 가는 명승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방긋 웃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웃지 않을 수 없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꼬리까지 감을 만큼 안아 주면 천년 만년 동안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에서 말하는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세계의 어떤 가정보다 몇백만 배, 몇천만 배, 몇억만 배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지 안 그런지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통일교인들에게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돈입니다. 그렇지만 물만 떠다 놓고 산다고 남이 흉보더라도 자기들만 재미있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결혼을 많이 시켜 주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일이 되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눈에는 남편이 최고이며 제일로 보여야 합니다. 남편의 눈에는 아내가 그렇게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이 최고의 인연입니다. 남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지 최고입니다. 이런 것을 몇 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자기가 영원히 가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모든 사람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잘 따르고 잘 받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와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서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역사와 최고의 문화가 엎질러졌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세계를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살기 위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남자가 여자 한 사람을 못 다루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내 사랑은 이렇다'는 것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간을 두루두루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성별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가정복귀가 안 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한 선생님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깊고 깊은 자리를 파고 헤쳐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가 여기서 재미있게 살고 있으니 여기에 같이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여러분 가정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삼은 터전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자극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자극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인과 남편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리워했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떠나신 그 가정을 본연의 가정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좋아하시면서 그들이 소생, 장성, 완성의 성장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서 가정을 이루기를 고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러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려면 남자는 장가를 가야 하고 여자는 시집을 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그리고 그런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복귀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가정의 복귀섭리는 어떠한가?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중심삼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셋의 후손인 노아를 찾아 세웠습니다. 그러면 노아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복귀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에 있어서는 노아 혼자 복귀해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복귀해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아들과 그들의 아내, 이렇게 여덟 식구를 세워 사탄세계를 치는 역사를 해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서부터 들어왔느냐? 사탄이 들어온 역사의 배후를 보면 처음에 해와를 통하고 아담을 거친 후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과정을 통하여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탄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노아는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사탄 세계에서 120년 동안 터를 닦은 것입니다. 그런데 함이 실수했습니다. 가인적인 함이 아버지와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 되려면 가인을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함을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함이 실수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여 아버지를 외면한 것입니다.
노아가 그렇게 한 것은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지 못하고 종적으로 연장되어 아브라함에게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동시에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첫째 아들 대신 아브라함, 둘째 아들 대신 이삭, 셋째 아들 대신 야곱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셋을 중심삼고 복귀하려고 했던 그 소원이 어느 때에 와서 이루어 졌느냐? 노아 때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노아를 중심한 조상의 인연을 계대해서 비로소 아브라함 때에 와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노아와 세아들은 하나 되지 못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3대가 하나 되었기 때문에 야곱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에서를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에서는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굴복시키지 못했던 가인의 입장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탄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승리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3대의 하나님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승리의 기반을 닦지 않고는 복귀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세 시대를 거쳐 가지고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이렇게 역사가 반복되어 나왔습니다. 다윗 왕을 거쳐 솔로몬 왕 시대가 끝나며 그 자식들로부터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두 나라로 반씩 나누어서 복귀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까지 왔습니다. 예수님도 결국은 이런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야곱은 가정적인 섭리의 기반을 닦는 시대의 중심인물이요, 모세는 민족적인 섭리의 기반을 닦는 시대의 중심인물이며, 예수는 세계적인 섭리의 기반까지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기준에서부터 복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세 아들, 노아의 세 아들이 있었던 것과 같이 세계적인 섭리노정에 있어서도 같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을 중심삼은 예수님도 가정을 복귀해 나가야 하는 이 원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적인 조건을 걸어 놓고 승리하지 않고는 세계적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없습니다. 그 가정의 기준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 역사해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12지파를 편성하기 전에 먼저 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지파를 편성하여 그것을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이 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민족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메시아가 오면 받들어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왔을 때는 그 민족이 반대하였습니다. 본래는 메시아가 와서 지파를 편성함과 더불어 교회를 지도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로마제국을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천국이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몰림 받음으로 12지파 대신 12제자를 중심하여 12제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는 부모가 되고 유대교는 가인이 되며,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은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이 되고, 세계 국가가 가인이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집안이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교회나 한 집안에서 형제끼리 싸움으로 맞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먼저 나온 것이 가인의 입장인 유대교이며, 또 예수를 중심삼은 새로운 복음운동이 아벨적 입장인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니 역사의 흐름이 뿌린 대로 거두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척받고 몰리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이 예수님이 죽음을 당해서는 안 되고 기독교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임받고 지금까지 기독교가 죽임받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이렇듯 아벨의 역사를 두고 볼 때 가인의 공격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여기서 재차 편성한 이스라엘 역사를 대표한 12제자는 새로운 이스라엘 족속으로서 가인적인 자녀의 입장과 아벨적인 이스라엘 종족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지파들보다도 훌륭해야 합니다. 그들이 갖춘 안팎의 모든 내용이 훌륭해야 되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기준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 중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사람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토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을 대하여서 천년 만년 같이하자고 할 때 얼마나 처량하고 기가 막혔겠습니까?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탕감복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쫓김 받고 몰림 받아 죽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것입니다.
이렇게 몰리게 된 상황에서 12제자와 지파장들이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지파를 편성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하는데 가정이 없으면 지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는 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지파장을 중심삼고 세계의 터전과 연결시켜 뻗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이 실수한 것을 복귀할 입장이요, 노아 가정에 있어서 세 아들을 대신하여 복귀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이런 입장에서 책임을 하기 위해서 대표적인 중심인물로 글자 한자 모르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세웠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들이 없으면 가정의 기반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죽는 자리까지라도 따라가야 하고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 합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면 그 자식들은 전부다 역적의 자식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죽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야 할 것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가 아버지 입장에서 이 세 제자를 중심하고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를 찾아 세운 것은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세 아들을 복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가인적인 아들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 가정, 노아 가정의 식구를 중심하여 타락해 내려왔기 때문에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세 제자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세 제자를 찾았으니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가정과 이스라엘 민족을 찾으려 했던 것과 같이 씨족, 종족을 찾아야 합니다. 통일 종족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 7월 동안 수고하여 종족 편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기간에 먼저 12사람을 찾아 세웠습니다. 이 조건을 중심삼고 이 종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12제자를 찾아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야곱 가정까지 3시대를 대신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36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선생님은 어느 것 하나라도 적당히 해 나온 것이 없습니다.
노아 가정의 여덟 식구가 중심가정으로 찾아지기는 했지만 이것은 사탄세계에서 떨어져 내려온 가정입니다. 그래서 직계의 아들딸이 없습니다. 그 직계 아들딸은 세 가정을 중심삼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 세워진 세 가정은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예수님 가정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지만 세계와 연결되는 가정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첫째 가정은 아담, 둘째 가정은 예수, 셋째 가정은 재림주로서 시대를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가정에서부터 세계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으로 세운 것입니다.
이 조건은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예수의 시대를 중심삼고 찾아 나온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세 아들은 천사세계와 같은 것입니다. 천사중의 누시엘 천사가 아담에게 굴복하지 못했던 것을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기준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아담, 예수, 재림주의 3시대를 탕감해야 합니다. 즉, 가인이 반대하던 아담 시대, 가인적인 입장의 유대교가 반대하던 예수 시대, 기독교가 반대하는 재림시대를 모두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세계가 실체를 지닌 조건, 즉 영육을 아울러 굴복시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렇게 복귀를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타락한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 내용에 불과한 것이지 직계 자녀의 입장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1960년부터 3년기간에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서 찾지 못했던 가정을 안팎으로 이루어 사위기대의 기반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이루어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종족적인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족장을 중심삼고 이루어집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전부 족장들입니다. 알겠지요?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설교 형식이 아니라 보고 형식으로 해야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그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전체가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한 가정을 보고는 본을 받고 못한 가정을 보고는 잘 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천국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정 천국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의 죽을 자리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세웠던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그런 기반을 닦지 않고는 아들딸을 낳아서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리에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담이 창조될 때부터 섬기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 자녀를 내가 축복받아 애기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태어나 축복받을 때까지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천사장이 아담 해와가 결혼할 때까지 보호 육성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완전히 복귀해야 여러분의 혈족권내에서 사탄을 추방할 수있는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정을 위주로 전도활동을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2차 7년노정에서 왜 세계를 순회하면서 축복을 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2차 아담으로 와서 세계적인 사명을 하지 못한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대표하여 43가정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때까지 4천년 기준과 같은 입장으로 40수를 맞춘 것이고, 21개국을 순회함으로써 21수를 맞추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탕감조건을 세우고 돌아온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적인 성지인 한국, 일본, 미국, 독일 이 4개국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탄편이었는데, 이것이 어찌하여 하늘편으로써 축복받은 민족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 후에 세계적인 부흥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들이 축복을 받게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반대받고, 한국에서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을 때 그들 나라에서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를 환영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부흥은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원리사상이 들어가게 되어 그 길을 타고 나가면 세계의 부(富)는 한국으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 한 사람을 반대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문제까지 걸려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축소한 것이 한국이며, 공산세계를 축소한 것도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국에서 세계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 전체와 유대교 전체가 반대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서기관 몇 사람이 반대하여서 예수를 심판해 버린 것입니다. 지방의 유대교는 예수님이 왔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짧은 기간내에 이루어진 사건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늘편 국가의 민족을 대표한 책임자들이 잘못하여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그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운명이 비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2천년 동안 탕감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본래는 영국이 해와 국가가 되고, 미국이 아담 국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민주세계를 이끌 수 있는 기준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지금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이 좋아하는 통일교회라면, 또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왜 핍박을 받겠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과 상관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문제를 중심하여 기반을 닦아 나오는것입니다.
원래는 영국이 해와 국가입니다. 1960년부터는 일본과 영국에서 왕자와 공주가 평민과 결혼하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적인 사건 전부가 원리적으로 맞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해와 국가의 위치를 일본에 빼앗긴 것은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기독교에 쫓겨서 이북에 갔습니다. 거기에서부터 기반을 닦아 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방종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이 통일교회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나가야 할 텐데 어째서 그러냐? 기독교는 가인적인 유대교가 만든 것이니 아벨적인 기독교가 나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아벨적인 기독교는 반드시 이방, 즉 원수의 세계에서 나와야 됩니다.
약속을 이루려면 원수세계에 갔다 와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도 축복을 받아 가지고 하란 땅에 갔다 오고, 이스라엘 민족도 역시 애급을 갔다 와야 했습니다. 애급에서부터 다시 한번 가나안으로 복귀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에 들어갔던 것은 그런 이동이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역사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북에 들어갔다 옴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는 이방의 종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의 기반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방을 축복해 주고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런 입장에 섰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섰고, 국가도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민주세계권내에서 원수였던 일본과 미국이 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미국은 천사장 입장이 된것입니다. 천사장은 아담 해와가 축복받을 때까지 키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입장인 미국이 지금까지 일본과 독일의 부흥을 도와준 것입니다. 미국이 사탄편인 소련 공산당과 대치하여 그의 책임을 탕감복귀하였고, 그로 인하여 2차 대전후 20년 동안 일본과 독일로 하여금 세계적인 부흥을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능가하는 문화세계로 돌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본과 독일을 축복해 주신 것은 단지 그들만 잘 먹고 잘 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반공전선에서 공산당을 쳐부수는 데 앞장서도록 하기 위해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 천사장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세계의 공산당을 때려부수는 데 공동의 책임을 해야합니다.
그 책임을 하지 못하니 그것을 한국이 가르쳐 주어 이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일본과 독일, 미국이 세계인들과 함께 공산주의 전복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야 할 싸움을 지금부터 하는 것입니다.
미국 일본과 더 나아가 독일에까지 어떻게 연결시켜 해결 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아담 국가인 한국도 그렇고 사탄편 국가 입장에선 독일도 공산당과 대립해 있습니다. 이렇게 공산당과 대결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과 독일이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반공 운동을 전개하여 세계를 하나로 묶는 날에는, 공산당은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세계는 평화의 왕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에서 볼 때 이 세계는 외적으로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구라파면 구라파의 문화권을 중심삼고 통합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연합운동이 벌어져 가는 곳에 내적인 운동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고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의 전통을 세워야 할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번에 선생님의 계획은 지금까지 전국이 9개 지구로 되어 있는 것을 한개 지구를 셋으로 늘려서 편성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3배로 증가시켜 30개 지구로 편성하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것을 그냥 두면 여러분이 다 말라 죽게 됩니다.
오늘이 5월 11일이니까 작년 4월 1일부터 전도를 시작하여 만 일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의 통계를 보면 본부의 식구들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은 잘한 일입니까, 못한 일입니까? 「잘한 일입니다」 잘했으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애기도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가 떠날 때 못 견딜 만큼 아쉬워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밤 12시가 지나고 2시가 되더라도 가겠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하여 좀 더 있다가 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부흥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원칙을 중심삼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살펴보면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식구들이 모였다가 밤 12시가 넘고 2시, 3시가 되어서 가려고 해도 좀 더 있다가 가라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부모의 마음이 동하는 것입니다.
자식하고 같이 방에서 자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여러분은 상속받아야 합니다. 누가 옷을 허름하게 입었으면 그것을 보고 부끄럽게 느껴야 됩니다. 누나나 형제가 보아도 안 됐는데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들이 먹지 못하여 핼쑥한 얼굴을 보면 부모는 자기가 먹지 못하면서도 무엇이든 간직했다가 그냥 그대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또 교회가 발전하려면 노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젊은이도 사랑해야 하지만 먼저 노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무리 옷이 어떻더라도 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럼 마음으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사는 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표로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어느 누가 찾아오더라도 세상에 죽었던 아들이 찾아온다 하는 기분을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밤 12시가 문제가 아니고 밤을 세우는 것도 문제가 아니어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람을 오라고 기도하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담을 타고 넘어서라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개척 초기에는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요술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서 상처를 입고도 위안을 받을 수 없었기에, 부모 이상의 참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을 찾아들려고 하는 것인 정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벽에 뛰어오는 사람도 있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올 때 들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외국에 갈 때면 그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그것이 절대 공식입니다. 열두 시가 지나고 두시, 세시가 되어도 내가 졸음이 안 오는데 자면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찾아 이 길까지 올 때는 6천년의 기간을 거치고 수많은 죽을 고비를 거쳐 이곳까지 방문해 온 것입니다. 그를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은 어버이의 심정을 가지고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원리강의를 하지 않아도 전도가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엎드려 기도하게 되면 `아버지!' 하고 외치는 그 한마디가 뼛골에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만 가졌다면 누구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축복받아 아들딸을 낳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심정을 지녀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는 표어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은 무슨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교회 개척시대의 사람들은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이런 마음을 갖겠다고 다짐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 대한민국이 잘되려면 대한민국에 붙어 뜯어 먹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교회에 빚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교회에 플러스되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나라에 신세를 지려고 하는 사람은 기생충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교회나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교회에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에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지닌 국민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1차 7년노정에서부터 들어와 고생한 사람들 앞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내가 책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앞으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내몰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언제나 그런 선생님으로 알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넘어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교회와 선생님에게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세진 것을 다 갚지 못할 바에는 안팎으로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적인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는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왜 50평생을 고생했겠습니까? 나도 범인(凡人)의 한 사람이요, 여러분도 범인(凡人)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같은 배를 탄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에게는 여러분의 가정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장애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을 부흥시켜 가지고 교회를 돕고 선생님의 뒤를 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앞에 신세를 지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장은 여러분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신세를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공은 공이요, 사는 사, 공과 사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여러분 형제끼리 도와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절대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끼리 협조하는 입장에 서야 가인 아벨을 탕감복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를 끌어들여 부모에게 기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제복귀운동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관계를 맺어 나라에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길을 가게 하려니 할 수 없이 여러분들을 고생시켜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식구들은 전부다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재미있게 살려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가정은 어느 한 날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길을 통하는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가정도 그래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가정의 책임입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되지 않았음)
아버님, 오늘 저녁 저희들 당신의 존전에 모였사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위신과 체면과 면목을 잃지 않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생활에 있어서 아버지께 보장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엄숙한 사명을 책임지고, 나아가 생의 노정에 있어서 아버지의 사랑과 보장을 받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지금 이 시간은 주일 저녁 예배시간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내일은 전국 순회를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이를 준비하고, 혹 어떤 곳에서는 뜻을 위하여 모였을 줄 알고 있사오니,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이 뜻하시는 기반을 세우고 당신의 과업을 성취하는 데에 도움과 보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자리에서 눈물어린 사정을 품고 홀로 하늘의 뜻을 위해 참고 나오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정을 품고 외로운 자리에서 오직 하늘만을 붙들고 나오는 당신의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한국을 바라보며 한국에 있는 스승을 염려하며,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애쓰며 노력하고 있는 자녀들에게도 특별히 은사의 손길을 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 길을 걸어올 때, 친히 보호해 주시고 같이해 주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같이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니다.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때가 이르렀으므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내려 주시옵고, 그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하늘의 직접적인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세계 40개국에 있는 성지를 저희들이 지켜야만 되겠습니다. 그 곳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금년말까지 파송해야 할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사오니, 각 나라에 파송된 자녀들 위에 축복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소서. 또한 그 곳을 위하여 염려하고, 그 곳을 위하여 투쟁하고 기도하는 자녀들이 있사오니, 소망하는 나라 위에 혹은 가는 그 노정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그들이 준비하는 만사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형통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저녁에 다시 모였사오니 저희들의 사정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뜻 앞에 좀더 가까이 나아가 아버지의 깊은 사연과 사정을 체휼할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에게는 고향이라는 것이 인상적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지만 대개 그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고향이 아름답고 좋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진짜 고향의 맛은 고향을 떠나 보아야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 나라에 애국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그 나라 안에서만 살아 보아서는 잘 못 느낍니다. 외국에 가 보아서 자기 나라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자기 나라가 어떠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자기 나라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가정을 두고 볼 때도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 자식들은 그 부모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부모의 품을 떠나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향이라는 것도 본향 땅을 떠나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향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자기 나라가 있어야 될 것이요,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있어야 될 것이요, 자기가 사는 집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집이 있으면 그 집에는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나라보다도 자기의 동네보다도 더 그리운 것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다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본향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그 가운데에서 보다도 본향을 떠나서 생각하고 그리워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본향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고향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찾아나가야 할 본향 땅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우리의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 본향은 어디일 것이냐? 아담가 해와가 살던 에덴 동산이요, 그 마을이요, 그 산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간들은 `본향!' 하면 자기들이 태어난 곳을 생각하는데, 오늘날 인류가 추구하고 그리워 하고 있는 이상적인 본향이라는 것은 너무나 헛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찾아 나가는 최고의 목적지는 어디냐? 우리는 잃어버린 본향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 본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습니다. 그들이 슬픔 가운데서 우리를 맞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과 행복 가운데서 우리를 맞아 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기쁨이 일시적인 기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그 본연의 곳을 우리들은 찾아가야 됩니다.
본향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집을 떠나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은 그러한 곳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고 싶고 마음과 더불어 몸이 가고 싶은 그러한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러한 본향에 갈 수 있느냐? 갈 수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과는 상충된 거리에서 언제나 간격을 두고 서로 서로가 밀치고 밀치며 싸우는 노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그리워함과 동시에 몸도 그리워하는, 영원히 안식할 수 있고, 행복의 터전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본향을 우리는 찾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본향을 그리워하고, 추구하고, 흠모하다가 죽어갔습니다. 또한 수많은 종교인들이나 철인들도 이 본향 땅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향 땅이 기필코 나타나야 되는것입니다.
본향에 가까운 씨족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있다면 온 세계인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 본향의 땅에 가까운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온 세계인이 그리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백성이면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그 나라도 갖고 있으면서 또한 자기의 고향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인이 그리워 할 수 있는 본향 땅이 나타나면 세계인은 자기 나라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그 곳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 그러한 본향 땅이라면 세계인이 그 나라를 자기 나라보다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필코 본향 땅은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면 수많은 인류가 바라보는 그 본향 땅은 어디일 것이냐?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본향의 나라요, 한국 땅이 세계인이 바라는 본향의 땅이라면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극히 행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 가운데서 어떤 지점이 그런 곳이라고 하면 그 지점은 그 나라에서 제일 귀한 곳이 됩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식구들에게 말했지만, 만일 한국이 세계가 그리워하는 그런 본향의 나라라면 지금 백두산 꼭대기에 있는 땅이라도 일본 은좌(銀座)의 어떤 땅보다도 비쌀 때가 올 것입니다. 왜? 지금 전세계의 10억에 가까운 기독교 신도들이 앞으로 주님이 오시는 본향을 그리워하고 있거늘, 만일 그런 곳이 나타났다고 온 세계에 알려지면 순식간에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신도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라를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찾아왔다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기필코 이 한국 땅에서 자리를 잡아 행복하게 살려고 할 것입니다. 이 조그만 땅에 기독교인만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든다고 하면 여기에는 큰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인이 그리워하는 본향의 나라라고 해도 큰일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한국이 경치가 좋고 산수가 좋은 것은 앞으로 그런 사람이 찾아 들게 되면 여기에 관광호텔을 지어서 그들을 맞이하여 좋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나라에 가 보더라도 한국처럼 아름다운 곳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기후가 좋은 곳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태양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그 기분, 그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석양의 자연과 어우러진 그 풍경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은은하고도 풍요로운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자연적인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해도 어떤 나라에 떡 내리면 자기 나라와 비교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놓고, `우리나라의 국민은 이러한데 이 나라의 국민은 어떤가? 또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 제도라든가 교통수단은 이러한데…' 하고 전부다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외국에 나가 보면 조국의 땅이 그토록 사랑스럽고 그토록 그립고 하기 때문에 조국 땅의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서울에서 살 때는 남산을 보게 되더라도 아무 가치도 없게 느껴지며 또한 서울시내도 자기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막상 서울을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그 남산을 은은한 가운데서 그리워하게 되고, 서울의 거리거리 골목골목들이 전부 자기를 몽땅 품어서 깃들게 할 것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고, 조국이 이래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핏줄의 인연을 가지고 같은 땅에서 먹고 잔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렇게 생각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산을 보게 되더라도 `아하, 이 산은 우리나라의 어느 산고 비슷한데. 이 산은 우리나라의 산과 다르구나' 하고 비교하게 되면, 강을 보게 되더라도 전부다 한국에 있는 강을 중심삼고 비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닙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전부다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한국 같은 미개한 나라, 한국을 미개한 나라라고 했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까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이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왜 그러냐? 눈 앞에 전개되는 모든 것들이 우리나라의 것과 비교가 되어지니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이 풍만해지고 그러한 내용이 풍부해지니 자연히 관심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일등 국민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게 뭐냐' 하는 식으로 무관심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골 사람이 서울에 오게 되면 보는 것이 전부다 관심사이지만, 서울 사람이 시골에 가게 되면 시골사람보다 비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 수준이 높은 어떤 나라의 국민보다도 이런 후진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기에 세계의 모든 것을 감별하고, 속속들이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는 관심사를 누구보다도 풍부히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후진국의 국민이 아니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일등국가의 국민을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할 것이냐, 후진국가의 국민을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할 것이냐? 얼핏 생각하면 일등국가의 국민을 중심삼고 섭리를 하실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기 나라의 좋은 것과 자기들 스스로가 자랑하는 문화만을 생각하는 민족, 자기 나라의 형편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지극히 제한된 것만을 생각하는 환경에 하나님은 섭리의 닻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 반면에 미개한 민족에게는 관심사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관심사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섭리의 닻을 내리려 하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높고 귀한 자리에 나타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비참한 자리에 나타나면 일등국가의 일등국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잘것없다고 외면해 버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후진국가의 국민 가운데 나타나야 많은 수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많은 수가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민족 앞에 나타난다면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은 갖은 사람이 소수로 한정될 것입니다.
이렇게 고향이라는 것은 그 무엇인지 모르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 자는 방이 매일 달라지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물이 마시고 싶으면 자는 방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자던 곳의 수도가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제 자던 곳이 아니거든요. 이렇듯 다른 환경에 부딪칠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이 고향입니다. 고향의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향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는 고향을 찾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나그네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정 붙일 줄을 모릅니다. 만일 어디에라도 정을 붙일수 있다면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와 같이 나그네와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차피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고향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무엇, 고향에 가서 자랑할 수 있고, 남겨 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을 찾고자 노력하다가 고향에 가야 진정으로 고향의 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면 고향에 가더라도 고향의 맛을 모릅니다.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인간들이 고향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천국을 가자, 혹은 이상세계를 가자, 극락세계를 가자고 하는데 그런 곳은 우리가 사는 이런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 수 있는 본향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면에 있어서 종교가 본향을 추구하도록 하는 데 공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은 어떤 곳이냐?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마음과 몸이 조금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완전무결한 곳입니다. 그 곳을 인류는 지금 추구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향에 간다고 하더라도 반겨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공허합니다. 만일에 한국 사람의 2세가 외국에서 태어나 조국인 한국을 찾아왔는데 한국말을 모른다면 그것도 겸연쩍은 일입니다. 물론 고향에 가는 것도 좋지만 우선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 말이 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또 맞아주는 그 사람이 자기가 바라던 이상으로 맞이하여 주느냐 혹은 그 이하로 맞이하여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바라던 그 이상으로 맞이하여 준다면 조국에 대한 인상도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언제든지 외국 사람을 대할 때는 주의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이면 한국, 또는 찾아 보고 싶은 어떤 나라를 찾아갈 때는 비행기를 타는 등 자신의 경비를 써 가면서 몇 시간을 걸려서 찾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자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 딱 도착하면 먼저 무엇을 느끼게 되느냐 하면 그 나라의 국민성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그 나라에서 자기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데 만일에 길을 묻든가 혹은 무엇을 사던가 할 때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기분 나쁘게 대한다면, 그 나라에 대한 그들의 인상이 아주 나쁘게 기억되고 그 나라에 온 것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친절한 사람 두 명만 대하게 되면 아주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게 되면 반드시 자기가 찾아갔던 그 나라에 대해 좋지 못한 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자기가 고향이나 조국을 찾아가게 될 때 자기를 반겨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모두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조국 땅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맞이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먼저 말이 통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고향에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어서 언제나 나를 이끌어 주고, 또한 내가 언제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나를 옛날과 같이 맞아 주고,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운 사정을 동정하며 위로해 주고 나를 기쁘게 맞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본향이 그립고 좋아서 찾아가더라도 간절히 사모하던 당신의 심정은 없어지고 도리어 탄식의 조건들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향 땅에는 반드시 맞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은 각각 교주를 중심삼고 믿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교주가 주님 같다, 혹은 부처님 같다고 하면서 자기는 죽으면 누구보다도 그 교주가 맞아 줄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수십년 믿고 정성들인 이상의 기준으로 맞아 줄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주님이 자기가 바라는 만큼 대하여 주지 못할 때는 어떻게 것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본향 땅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는 갈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리를 놓고 가야 합니다. 그 다리, 즉 주님이라든가, 부처님이라든가 하는 중간 매체를 통해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본향 땅이라고 찾아들어갈 때 자기를 반겨줄 분은 누가 될 것이냐? 주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주님이 맞이하여 줄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향에 가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내가 그리워하는 그 이상으로 부모는 나를 더 그리워하고, 내가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형제는 나를 더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다 만나면 만나자마자 하나가 되는 거지 거기에 무슨 간격이 있겠습니까? 그러데 그렇게 서로 하나될 수 있을 만큼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그 차이에 따라서 본향 땅을 찾아가더라도 얼마만큼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향 땅에는 누가 계셔야 되느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부모가 계셔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는 만나고 싶은 분이 있어야 합니다. 또 거기에는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데 일순간만 봐 가지고 되겠습니까? 잠깐 만나 봐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들을 만나 보고 그들과 같이 사는 데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더라도 싫증이 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오늘날 종교에서 지향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화평이 되고, 행복의 요소가 되고, 사랑의 요건이 될 수있는 그런 분을 중심삼고 우리가 만나서 영원히 영원히 보고,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의 온갖 마음이 영원히 그곳에서 그들과 주고받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본향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가더라도 자기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자기를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리 없으면 소망을 품고 찾아갔던 마음이 슬픔의 심정으로 변하여 고향 땅을 다시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은 고향을 떠나 있습니다. 혹은 조국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본향땅과 나라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맞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분이 계시면 그분을 만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본향 땅을 기필코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여기에서부터, 땅에서부터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인연되었다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외국 식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선생님을 대할 때 외국 사람같이 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몇 사람 갔지만 그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남의 나라 사람같이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전부다 하나님이 맺어 주신 인연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라도 하나님과 어떠한 인연이라도 맺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애쓰는 것이 십년, 혹은 일생을 거쳐 가게 된다면 그들은 저 나라에 가서도 그 인연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본향이라는 곳에서는 오늘날 국경과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서로 주고받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 주고받는 것이 거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떠한 한계권내에 있어서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고받은 그 작용이 일년뿐만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서 영원히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본향을 그리워하는 우리 종교인들을 이끌고 그 본향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투쟁해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기필코 그러한 사람을 본향으로 인도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땅에서 준비를 하여 하나님께서 `네가 본향 땅을 그리워하듯이 나도 너를 그리워했다'고 하실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저나라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한국의 통일교회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의 본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일본같은 곳에서는 이곳에 오고 싶어서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식구는 선생님이 옷을 벗어 놓고 나가면 그 옷을 만지며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선생님의 옷을 다리면서 그 옷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옷은 선생님과 더불어 한국에 가겠지만 자신은 못 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옷에 대한 애착심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본부에 오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그 식구가 눈물 흘리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이 본부에 볼 것이 뭐가 있어요? 세계 통일교인들의 마음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본부교회에 사실 볼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래도 요즈음은 마루라도 깔아서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하구만요. 마루를 깔아서 흠이 안보이니 조금 나은 정도지 볼 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소문을 듣고 다 압니다. 어떤 사람은 소문을 듣고서 그림까지 그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는 와 보지도 않았으니까 와 본 사람에게 `한국의 본부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해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림을 그려서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에 목욕탕이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외워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갈급한 심정을 품고 그렇게 그리워하다가 그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이 본부교회에 너무도 오고 싶어서 왔는데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만일 본부교회를 찾아오지 못한 그 한을 풀기 위해, 10년 동안 지극한 정성을 들여 `이제는 간다, 이제는 나도 간다' 해 가지고 본부교회에 척 왔을 때, 10년 동안 정성들인 모든 사연을 들어주고 알아줄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서 짐을 풀고 정담을 나눠가며 새로운 본향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맞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 미국이면 미국, 일본이면 일본 식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우기를, 한국은 어차피 가 보아야 할 본국이라고 배웁니다. 그리하여 찾아오게 될 때,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야 물론 선생님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유협회장이 됩니까? 여기 있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관심이 많습니다. 이 점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통일사상을 중심으로 본향 땅이라 하면 한국이요,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회요, 여기에 있는 선생님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선생님이 여기에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외국 식구들이 지극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리워하던 이 조국 땅을 찾아왔는데 자기들이 그리워한 사람들이 전부다 사라지고 없다면 그들은 섭섭한 심정을 품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기둥 하나, 마룻장 하나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전부다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만일 여기에 선생님이 없고 그들이 소망했던 사람들이 없으면 전부 다 쓸쓸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며 정성 들여 나왔는데 만일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그 곳이 이상적인 본향이라 하기에, 그 이상의 본향을 찾아가면 우리 식구들도 있고 하나님도 계셔서 나를 환영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하나님도 안 계시고 거기 있는 사람들도 모르는 척 하면 기분 좋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우리 이념을 중심삼고 볼 때 한국은 세계 식구들의 조국의 입장이고, 또 한국의 청파동 통일교회는 본향입니다. 때문에 외국 식구들이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외국에 나가서 전도를 할 때는 자기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짓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진이라든가 선생님의 가족사진이라든가, 혹은 본부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붙들고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것을 보고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큰 죄를 짓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오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는 그 손님에 대해서는 주인인 주체가 없더라도 그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일본식구들이 선생님 없는 본부교회를 왔다 갔다는 소식을 보고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선생님이 순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들도 이미 각오하고 왔었을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일본에 가 있다고 하면 일본에 있는 대원들은 한국에 안 옵니다. 때문에 앞으로 이 청파동 본부교회와 세계의 통일교회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 여러분과 외국 식구들이 절대적 인연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여러분과 외국 식구들이 어떻게 절대적 인연을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부에 있는 여러분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선생님 없을 때 이 본부교회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완전한 조직을 중심삼고 명령에 대하여 절대복종하는 체제를 갖추어 놓지 않고는 본향의 입장을 취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명령이라면 누구든지 다 복종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너 이 녀석, 너에게 돈이 얼마 있는 줄 아는데 그 재산 모두 뜻을 위해 써라' 하면 전부 가지고 옵니다. 이런 저런 모든 사정을 볼 때,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세계적인 조직과 세계적인 전통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이곳을 그리워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품어 주고, 환희의 심정을 가지고 맞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미국 사람이 와 있지만 그 사람들은 수십 나라를 찾아 다니다가 그 발걸음이 여기에 멈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지나가다가 여러분의 그 모습만 봐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본부의 분위기, 본향의 분위기를 갖추어야 합니다.
고향사람을 외국에서 만나면 참 반갑습니다. 구라파 같은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길가에서 처음 만났더라도 `점심 같이 먹읍시다. 내가 저녁 사지요' 합니다. 그곳에서는 같은 동양인인 일본 사람만 만나도 반갑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본부의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와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본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만큼 이 본부에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하게 될 때는 그꼴이 어찌 되었든지간에 기대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특히 외국에 나가 다니는 사람들은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말을 주의해야 돼요. 그들은 선생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형편없는 사람이 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본부에서 왔다고 하면 선생님의 대신자라고 생각하여 극진하게 맞이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대령해야 할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백퍼센트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믿고 나오던 그 기준은 이랬는데 통일교회 사람들은 저래야 되는구나' 하면서 바라보게 됩니다. 더욱이나 축복받은 사람들은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과 접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축복가정들을 높이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 앞에 나타난 한국 사람이 형편없다 할 때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생명을 걸고 싸워나온 그 입장과 지금까지 힘들게 수고한 모든 전부를 그 한 사람의 태도, 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포기해 버리는 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본부를 그리워하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훈련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은 언제나 주의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부의 여러분은 언제나 주의해야 된다는것입니다.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찾아오게 되면 반드시 그를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 형제가 찾아오면 그들을 대접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또 본부의 식구가 외국에 나가서 본부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행동적인 면에서나, 말하는 데 있어서나 주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본부를 그리워하던 그들의 마음에, 본향을 그리워하던 그들의 마음에 마구 서리를 퍼붓는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만약 본부교회에서 온 누구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원기백배해 가지고 뜻길을 가던 사람이 무력하게 탄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본향의 권위와 본향의 위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집안을 망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집안의 식구가 외국에 나가서 자기 집을 위해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 사람은 그 집에서 추방당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앞으로 전세계 통일교회의 본부가 될 이 청파동에 드나드는 사람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새로운 법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훈련을 시켜야 되겠어요. 왜냐하면 그런 훈련을 시키지 않은 연고로 이번에 우리 식구들이 외국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무용단을 따라갔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 보았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생활적인 수준이 어떤가를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용단들에게 무용하라고 했지, 본부의 무슨 소식 전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 식구들이 붙잡고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이렇고 저렇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어떤 사람 가까이에 몇 년 있었는데 어떻다고 하면서 그들이 생활하는 것과 자기가 몇 년 동안 뜻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오면서 느꼈던 것과를 비교하면서 얘기하는데, 본이 되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본부의 기준과 자기의 기준을 비교하면서 그렇게 얘기들을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는 이 본부의 권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본향을 보고 싶어하고, 가고 싶어하고, 살고 싶고 그리워하는 그들 앞에 보고 또 봐도 영원히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음을 한층 북돋워 주고 사기를 올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전 인류를 대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 본향의 사람이 아닙니다. 본향의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서 찾아온 외국 사람들을 여러분은 하루 이틀 혹은 일년이라도 기쁨으로 맞이하여 이마를 맞대고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가 나를 좋아하게 되면 내가 그와 더불어 동고동락을 하며 지내겠다는 여유 있는 심적인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조국이라고 본향이라고 찾아오는 많은 외국 식구들에게 큰 상처를 줄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청파동은 오늘의 이 청파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워지는 곳곳마다 수많은 식구들이 이 한국을 본향 땅, 조국 땅으로 사랑하여 찾아올 것이고, 더욱이나 이 청파동을 사랑하여 찾아올 것입니다. 이 곳을 찾아올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의 현재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문화주택을 짓고 좋은 장소를 택하여 웅대한 자리에서 예배보는,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청파동 이곳을 그리워하며 찾아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아도 예수님이 태어났던 자리라든가, 감람산에 가 보게 되면 수풀이 우거지고 바위덩이가 함부로 널려 있어 형편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한 가지 기분 나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유대 나라의 사람들이 그 성지를 장사밑천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식구를 만나 줄 수 있는 예수님, 또한 세계적인 본향을 고대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 줄 수 있는 예수님이 태어났던 땅, 그곳을 추모하기 위해 가는 것이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오고 가는 모든 손님들은 좋은 기분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오는 손님들에게 뜯어먹으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앞으로 이 통일교회가 세계의 본부가 되고, 세계가 그리워하는 본향이 되게 하려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뜯어먹으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주려고 해야 합니다. 만약 외적인 그 무엇을 받았다면 내적으로 그 무엇이라도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각별히 유의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본향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권위와 자격을 갖추어서 외국사람들 앞에 그것을 성의있게 나타내고 그들에게 언제나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특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수많은 나라 가운데서 이 한국이 앞으로 인류의 마음 가운데 깃드는 나라가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념을 두고 볼 때 10억에 가까운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어차피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결국 세계 인류는 우리의 이념에 규합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계인의 본향이 될 수 있는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말씀을 듣고, 교육을 받고, 또한 여기에서 눈물지으며 단련받는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엄청나고 귀한 것인가를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이와 같은 사실이 말뿐이 아니라 저희의 눈앞에 현실로 전개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부푼 마음으로 김포공항에 내려서 이곳을 찾아오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불길을 가하시어서, 이 본향을 위해 뼛골이 녹도록 정성들이고, 다시 떠나고 싶지 않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눈물지을 수 있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기에 있는 자녀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이곳을 왔다가 돌아가서는 이곳을 관념적으로 그리워하고 상상하는 입장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실감나게 그리워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다시 찾아오겠다고 재차 결심할 수 있는 동기와 인연을 여기에서 그들 앞에 남겨 줄 줄 아는, 보태어 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본부의 식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선교부로부터 편지를 통하여 이곳에 문의할 일이 많을 것을 알고 있사옵고, 해외의 소식도 많이 날아들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통하여 수습할 수 없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왕래할 것이므로 앞으로 이 본부의 체제를 정비해야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옵니다. 그들이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본부의 식구들이 그들보다도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약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있어서나 간곡한 마음에 있어서 그들보다 절실하지 못하면, 이 본부가 세계인의 본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여기에서 눈물짓고 정성들인 것이 세계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들이는 정성과 더불어 새로운 인연이 되어 새로운 세계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오늘 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이 사실이 엄청나고, 이 자리가 얼마나 두려운 자리인가 하는 것을 이들이 다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한국 민족을 중심으로만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리에서 일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행복의 터전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관념을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민족과 국경을 넘고 또 넘어서, 세계인을 품고, 세계인과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을 맺기 위해 마음에서 생활에서 연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준다고 해야 얼마나 주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그 몸과 마음을 다하여 찾아왔던 그 마음 이상의 새로운 그 무엇을 갖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이 청파동,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곳에서 찾아오는 그들의 정성을 능가할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외국에서 찾아오는 그 사람들이 이 청파동 교회에 와서 자기가 그림까지 그려가며 기억하였던 이곳을 볼 때 그들에게는 이곳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얼마나 반갑고, 얼마나 기쁘겠사옵니까? 그러나 그들이 이 집을 보고, 혹은 이 길을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을 느껴서 기뻐하는 것보다 여기 있는 식구들을 보고 더 기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들 앞에 큰 상처를 입히고 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책임부서에 있는 책임자들이 이런 것을 더 깊이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통하지 않고, 생활환경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표정과 느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이 본향 땅이 더욱 그립고, 더욱 보고 싶고, 더욱 더 살고 싶은 내정적인 인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순회를 위하여 고향을 떠나고 보니 이 청파동이 그리웠사옵고 이나라가 그리웠사옵니다. 이러한 그리움의 동기는 내가 이 나라에서 생활하고 일한 것보다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투쟁의 역사를 해 나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터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리움에 사무쳤사옵니다. 그러한 인연을 가진 이 한국강토이기 때문에 이러한 강토임을 외국 식구들이 알면 알수록 어떤 누구보다도 더더욱 간절히 이곳을 사모할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스승이 걸어 나온 감옥이나 핍박받던 곳도 그들 앞에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 본부의 식구들은 그들이 그리워하는 그 이상으로 스승을 사랑하고, 그런 역사적인 모든 인연을 존중시하는 자체들이 되지 않고는 그들을 대할 수 없든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이곳에서 싸움의 터전을 닦으면서 수고해 온 역사적인 모든 사실이 오늘날 세계인들로 하여금 인정되지 못하고 전해진다면 역사적인 모든 것을 몽땅 빼앗기게 되어, 이곳이 세계인의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은 고향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고향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우리들은 그들보다 더 본부를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본부의 이 마룻장 하나를 누구보다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본부의 유리 한 장을 누구보다 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본부로 오는 이 청파동 골짜기 골목골목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찾아오는 세계인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갖고 눈물짓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걸어서, 이 자리를 찾아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들의 간절함 이상의 간절함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본부에 출입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저녁은 이런 사연을 확실히 아는 식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뿐인 통일교회는 지나갈 때가 왔습니다. 내용을 지닌 통일교회가 출현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로 원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지나갈 것입니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원리에 의한 삶을 살고, 심정으로 단장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식구들이 이곳을 위해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이곳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그 간절한 울부짖음 앞에, 이 본부의 식구들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본부에 있을 자격이 없는, 권위의식만을 자랑하는 그런 자들이 될까봐 아버지께서도 염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스스로가 그런 입장, 그런 위치, 그런 불비한 체면과 위신을 가진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70년대를 향한 지금까지의 경륜, 한국을 위주로 하여 투쟁해 나온 역사적인 경륜의 결과가 오늘날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가 서울을 움직이고, 삼천리 반도를 움직여서 전세계의 인류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그들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지 못하면 언젠가는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올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저희들은 마음에 마음을 다하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모든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전도하는 이상 전도를 해야 되겠고, 그들이 울부짖는 이상 울부짖어야 되겠습니다. 한국에서 태동된 이 말씀을 세계인이 울부짖는 이상의 가치를 갖고 울부짖지 않으면 수많은 민족이나 수많은 나라의 백성 앞에 혹은 세계의 식구들 앞에 부끄러운 자신들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향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본향에 살면서 아버지께서 기억할 수 있는 역사적인 가치를 천배만배 찬양하고 또한 만민 앞에 이것을 자랑할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슬픔의 대상으로 남아지고 또 그 본향은 본향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본향에 있는, 이 청파동 본부에 있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책임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더욱 신중을 기하여 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전도를 함에 있어서나 생활을 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행동적으로 뜻 앞에 봉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있는 정성을 다 모아서, 또한 기도로라도 눈물로라도 뜻에 보탬이 되는 생활을 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본부의 권위와 위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일에 제가 없다면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하고 누가 이 위신을 세워 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오늘 저녁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우리는 다시 한번 분발하여 서울과 이 삼천리 반도에 새로운 표준을 세우고 남기신 역사적인 재료를 존중시하고 아버님의 거쳐 온 걸음걸이가 빛이 되게 단장하고, 가치 있게 높이 빛낼 수 있는 증거자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그들이 눈물흘리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눈물을 보일 수 있어야 되겠고, 그들이 통곡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통곡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통곡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통곡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통일교회가 되지 않고는 본향의 형님이 될 수 없고, 동생이 될 수 없으며, 부모가 될 수 없고, 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은 간곡한 심정으로 눈물짓는데 그저 구경이나 하는 사람이 되면 오늘날 본향의 모든 권위를 자신이 팔아먹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보다도 더 노력하고, 더 가치 있게 단장하고, 누구보다 간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 하나되어 본향의 가치를 드러낼 수있는 자들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난번 여러 나라를 순회할 때, 많은 식구들이 `선생님, 나를 한국에 데려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백인도 그러했고, 흑인도 그러했고, 아시아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오고 싶어하고, 그리워하며 기도하고, 눈물을 앞세워 가면서 말하는 것을 볼 때 본부는 무한히 무한히 빚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사옵니다. 또한 여기 본부 식구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지극히 두려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맡겨 주시고 아버지께서 다져 주신 이 권위를 잃어버리지 말고, 그 가치를 높여 아버지 앞에 찬양의 조건, 자랑의 조건으로 고이고이 돌려 드릴 줄아는 순교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아직까지 교회의 마룻바닥에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자는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이 마룻바닥을 힘을 다하여 닦아 보지 못한 자는 닦아야 되겠습니다. 깨진 유리가 있으면 자신이 돈을 모아서 그 유리를 갈아 끼우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외국 식구들 가운데에는 스스로 자기 뼈를 갈고, 살을 에어서라도 그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터는 한국에서 닦기 시작하였지만 결실은 외국에서 거둘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 민족, 이 국가가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본향의 권위와 본향의 가치를 자랑할 줄 알며 누구보다 본향을 믿고 의지하고, 자기의 사연을 털어 놓고 그 품에서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은 형님 누나들이 되고, 부모들이 되고, 삼촌, 아저씨들이 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아들딸을 아버지도 그리워하고, 세계 사람들도 그리워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원칙을 새로이 알고 본부의 권위를 스스로 회복하고 준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그 동안 여러분들이 본국에서 정성을 모아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무사히 세계순회를 마치고 돌아와, 이제 부산 순회를 마치고 오늘 이렇게 대전을 찾아온 것입니다. 갑자기 많은 말을 해서 목이 쉬었으니 듣기 거북하더라도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내리십시오. 대부분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이겠지만 아닌 분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말씀을 시작하겠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어떤 대중적인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좋고 재미있는 일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나쁘고 슬픈 일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혹은 역사나 현재 이 세계의 현황을 두고 볼 때는 자연히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못하고 슬픈 이야기, 또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여러분의 시간이 아니라 말하는 이 사람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여러분과 나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할까 또 여러분은 무슨 말씀을 들을까 하고 있으니 이것은 싸움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그 눈만은 선생님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지만 오늘만은 선생님에게 팔려 왔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 시간을 한번 가져 봅시다.
이번 세계 순회 노정에 있어서 간단하게나마 총괄적인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1965년도에 40여개 국을 순방할 때와 이번에 21개 국을 순방하면서 세계적인 정세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 이제 하나님이 지향하는 뜻과 이 세계의 정세가 하나 될 때가 가까와 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1965년에 선생님이 미국에 갔을 때 미국인의 사회생활을 보고 느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미국이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로서 언제나 자기네 나라가 아니면 세계를 수습하지 못한다는 그런 자부심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들의 사회속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 느낀 것은 미국 자체의 힘 가지고는 미국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세계 전체의 문제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전국민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상황과 사회적 흐름을 전반적으로 헤아려 볼 때, 우리가 해야할 사명의 시기가 촉박해 오고 있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동남아와 기타 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구라파 일대의 모든 나라가 미국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때에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사명을 다해야 할 통일용사들의 세계적인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는 처음 온 사람들도 많고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들도 많을 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깊은 말씀을 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것입니다.
사실 이번 지방 순회노정에서는 가정을 위주로 한 말씀을 주고 하려고 생각했지만, 처음 듣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입장에 서서 잠깐 말씀드리고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의 가정을 중심삼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왜 종교가 필요한가'가 되겠습니다. 종교가 왜 필요하냐? 오늘날의 이 사회의 지성인들이나 자기 나름대로 어떤 주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각기 종교의 이념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쟁이나 뭐니 하며 `하나님' 하게 되면 머리를 흔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가 필요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재의 사회실정을 봐서는 대다수의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이 종교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인데 통일교회도 교회라는 명사가 붙었으니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교회로서 주장하는 색다른 무엇이 있느냐? 여러분들은 색다른 무엇이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만 해도 기독교, 불교, 유교 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또, 기독교만 하더라도 여러 형태의 교파가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이냐?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상이 악한 세상이고 현재의 세상 사람들이 악한 사람이니,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람이 되어 참된 사회와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찌하여 본래부터 참되지 못하고 참을 희구(希求)하고 참을 바라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슬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래 인간이 참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된 사랑으로 출발해서 참된 가정을 이루고 참된 종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구태여 종교라는 명사를 빌어 가지고 참을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또한 종교의식에 구애받고 제재받으면서 생활해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이 참되지 못하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줄곧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결국 이 세상이 선한 세상인가 악한 세상인가 하는 문제가 남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죄악된 놈의 세상 어떻게 한번 뒤집어야겠는데, 그러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무엇이 나타나야 되는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현세를 말세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 시대를 밟고 넘어서기를 욕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오늘날 인간이 왜 이런 입장에 놓이게 되었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지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할 때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입장에서 생각할 때 계시는 것이 맞겠습니까, 안 계시는 것이 맞겠습니까? 계시는 것 같다는 사람은 종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요, 안 계시는 것 같다는 사람은 종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이런 두 패가 흥청거리고 죽느니 사느니 야단법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만일에 세계를 하나로 주관할수 있는 주관자가 있다 할진대, 세계 사람들이 그 주권자와 하나되기란 매우 쉬운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여러 자식이 사는 어떠한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자기가 일하는 집 같은 부잣집 아들로 한번 태어났으면 하는 것일 것이요, 주인한테 누구보다도 신임받고 깊은 사랑의 인연을 맺어 자기가 말하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가정에서 있어서도 하나의 중심 책임자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집안의 형제들은 자연히 어머니 아버지 있는 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형님을 조금 더 사랑하면 동생은 샐쭉해 가지고 `아이고 우리 엄마 아빠는 형님밖에 몰라' 하며 질투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부모에게나 자식에게나 어떠한 중심적인 존재 앞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본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의 중심적 존재인 대통령을 가까이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만일 세계의 대통령이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어떻게 하든지 가까이 하여 하나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이 잃어버린 본심을 통해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미 몇천 년 전에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나간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인류는 하나님을 대신할수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중심을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하나님이 계신다고 대답하겠지만, 하나님을 봤습니까 할 때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계신다고 가정해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절대적이면서도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생각도 절대적이며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그 절대적인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도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둘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한 분이신 하나님이 두 목적을 가지고 오늘은 여기 갔다 내일은 저기 갔다 하게 되면 그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격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자란 일생을 통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의(義)의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결정된 후에는 이렇구 저렇구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우주의 법칙이 변할지언정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도 그러해야 하거니와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자이셔야 하고 하나님의 목적도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가는 길도 둘일 수 없는 것입니다. 단 하나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눈이 둘 있는데 이것은 왔다갔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이렇게 가면 다른 하나도 이렇게 갑니다. 만약 하나가 저쪽으로 가면 다른 한쪽도 저쪽으로 갑니다. 이것은 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개의 귀가 있지만 이것도 둘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를 듣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을 놓고 볼 때 어떠한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인가? 어떤 절대적인 가치 앞에 상대적인 가치를 찾아 세우는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절대적인 인격자를 중심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향하는 절대적인 목적과 하나 되는 자리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가치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목적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이 안계시든가, 하나님이 잘 못 만들었든가, 아니면 인간이 고장났든가, 이 세가지 중에 하나라는 결과에 부딪치게 됩니다.
어느 한 이쁘장한 아가씨가 있을 때 `이만 하면 이 다음에 훌륭한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가씨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곱고 아름답지만 그 마음이 복잡해서 하루 아침에도 몇 번씩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아주머니들이 계시지만 여자들은 본래가 그런 소질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섭섭해하지는 마십시오. `선생님이 처음에는 말씀한다고 하시더니 여자들 흉이나 보는구나' 하지 마십시오. 원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의 말을 빌리면 남자들은 도둑놈입니다. 도둑놈이란 남의 물건을 슬쩍해 가지고 눈깜짝할 사이에 가져 가 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부모가 하라는 대로 죽도록 했어' 그러는 사람 있어요? 머리가 좀 컸다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다고 엄마가 뭐 어떻구 아빠가 뭐 어떻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자신이 김 아무개다 박 아무개다 하는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박이라면 박씨, 김이라면 김씨끼리 완전히 하나되어 있느냐? 완전히 하나가 됐어요, 안 됐어요?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디 우리 아가씨들, 하나 됐어요? 안 됐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 가운데 아무리 허울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분석해 보면,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로서 안팎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속사람과 겉사람이 대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는 언제나 선의 마음과 악의 몸뚱이가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문제입니다. 이 싸움의 출처가 어디냐? 기원이 어디냐? 이싸움은 인간이 태어난 그날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싸움은 수만년 후까지 계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오늘 이 세계가 말세에 처해 있는 것을 볼 때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종교의 목적이 무엇이냐? 만민이 선한 사람이 되어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평화의 여건은 어떠한 국제적인 정치가들의 손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정책이나 주의에 의해 가지고 세계에 평화가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더구나 군사력으로 인해 세계의 통일과 평화가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평화의 기점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근거지는 어디냐? 행복의 기점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근거지는 어디냐? 그곳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인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 속에 두 싸움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아무개 하면 김 아무개의 안팎이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싸움패가 보기엔 하나 같은데 결과는 두 패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사람이 싸우면 몇 패가 됩니까? 네 패가 됩니다. 다섯 사람이 싸우면 열패의 싸움꾼이, 36억 인구 전체가 싸우면 72억의 싸움패가 생기고, 그전부가 분쟁할 수 있는 권(圈)을 갖추고 있으니 어떻게 세계의 평화통일이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평화의 기점을 두고 볼 때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다루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방안은 맹목적이고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믿으면 천당 가겠지' 하며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만 부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알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도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종교는 본연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방황하고 있는 36억 인류 앞에 본연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공식을 제시하여, 너나할것없이 온만민이 그 공식을 통해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원칙이 세계에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수학이란 명사가 있는 한 언제나 적용되는 것처럼 종교도 그 공식을 세계에 그렇게 적용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천주복귀는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말은 참 좋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장본인을 볼 때, 그 자신의 몸과 마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자신을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들어섰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도 절대적이 되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하시고 행복의 원천이시며 본체되시는 그 절대자께서 왜 인간을 두 속성을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 빚어 놓으셨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두 속성의 싸움은 태초의 우리 조상때부터 시작되어 왔습니다. 수천년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어 인간들 속에서 깨지기도 하고 일어서서 우물대기도 하면서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 세계 인류도 그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 싸움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의 목적을 향한 전진 명령을 내려서 싸움이 근본을 청산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모험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다음의 말씀은 게재된 것이 없이 부득이 중단합니다.)
1960년에서부터 1968년까지의 탕감복귀역사 기간은 사탄의 침범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아벨이 가인에게 맞고 빼앗아 나오는 과정의 기간이었다. 그러나 하늘편에서 사탄에게 얻어맞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1968년 하나님의 날 이후에는 인류의 부모가 복귀의 기대 위에 섰기 때문에 불의의 침범을 받더라도 그것을 복귀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어간다. 고로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기 이전까지는 탕감을 받으며 복귀해 나왔으나, 하나님의 날을 선포한 이후에는 가인을 탕감시켜 나가면서 복귀하는 것이다. 아벨의 입장에 있는 존재가 가인을 쳐서 복귀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제 고생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제2차 7년노정이 시작됐다.
축복을 받은 입장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의 상태로 복귀된 입장이다. 고로 아담 해와가 성장할 때 3천사가 그들을 모셔야 했던 것과 같이 3천사의 실체인 믿음의 3자녀로부터 모심받는 입장에 서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받기 전에 반드시 믿음의 3자녀를 세워야 한다.
믿음의 3자녀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3시대의 2자녀(8식구를 위한)와 이 3 시대의 가인을 상징한다.
또한 믿음의 3자녀는 천사장을 상징한다. 타락 인간은 천사장의 혈통을 받은 실체들이기 때문에 믿음의 3자녀는 복중에 있는 본성의 자녀를 천사가 모시듯이 그 믿음의 부모를 모셔야 한다. 믿음의 3자녀는 아담, 예수, 재림주님의 3시대의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조건적인 인물들이다.
선생님이 21년 전에 기독교를 승리한 터전 위에 섰던 것과 같은 입장을 식구들에게 넘겨 준 것이 축복가정이 받은 은사이다.
기독교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2차 대전 이후에 통일교회가 나와서 기독교의 사명을 대신해서 출발해야 했다.
맥아더는 만주를 폭격해야 했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선생님은 33세에 소원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반대함으로써, 마치 예수님이 이방인 취급을 당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대한 것과 같이, 선생님도 이북에 갔다 와야 했다. 그 후 섭리의 주류는 기독교에서 통일교회로 옮겨지고 그 사명이 바뀌어지게 되었다.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와 유대 나라 전체가 예수님을 반대한 결과가 된 것과 같이, 한국의 기독교가 선생님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계열인 민주세계 전체가 선생님을 반대한 결과가 되었다.
영국이 해와 국가의 사명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명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아담 해와를 협조하는 천사장의 사명을 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독일을 도와야 한다.
일본은 지금 어디든지 마음대로 시집을 갈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여자와 같다. 즉 일본은 공산측에도 갈 수 있고 민주측에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차대전까지는 미국이 아담의 입장이었고 영국이 해와의 입장, 불란서가 천사장의 입장이었으나, 기독교가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천사장의 입장으로 떨어지고 독일이 아담이 입장, 일본이 해와의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국이 소국화 되어 가고 있다. 소련도 혁명이 성취된 이래 40년이 되는 때부터 망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지금이 한창 바쁜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 처음 오신 분들은 동네에서 우리 대원들이, 혹은 교인들이 '선생님이 지구본부에 오시니까 한번 같이 가보자'는 권고에 따라 오셨을 줄 압니다.
그 동안 쭉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목이 잠겼습니다. 여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내리세요. 아무 종교도 갖지 않다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리세요.
많은 사람들을 지도하다 보면 사람도 여러 사람이지만 그들의 사정도 여러 가지이고 때로는 복잡할 것도 많습니다. 직장을 두고 볼 때도 직장에서는 그 직장에 필요한 사람을 쓰려고 하고, 직장을 구하는 사람은 자기 처지에 맞는 직장을 구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할 때도 젊은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분들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점잖게 말을 하게 되면 젊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마이크를 들고 크게 소리를 질러가며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균을 잡아서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대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나이가 많아 보인다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저 아저씨도 그렇지만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머리가 세어서 안 됐다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하더라도 얼굴이 참 좋으시다고 말하면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젊다고 하면 다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대중을 대해서 말을 하든가 지도를 할 때는 나이 많은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이 대하기가 더 낫습니다. 말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젊은 사람을 중심삼고 들이 때리게 되는 데 그러면 나이 많은 분들은 지루해 합니다. 젊은 사람들을 대해서 말할 때는 `여보세요' 하는 것보다 `이놈아, 이녀석아' 해야 그들에게 자극이 되고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친구들과 놀던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좋은 산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산수를 말하느냐? 바위도 울퉁불퉁한 바위, 물도 모래 바닥에서 잔잔히 흘러가는 물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바위에 부딪쳐 가지고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물, 또 그런 곳에 소나무도 벼랑에 거꾸로 매달리다시피 서 있고 해야 경치가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때는 기합을 주어야 하고, 어떤 때는 격려도 해 주어야 합니다. 또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어떤 때는 구워 삶아야 되고, 어떤 때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니 청중들에게 실례를 많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을 위주로 해서 말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통일교회 문 선생이 참 젊은 사람들을 중심삼고 빠르게 말하더라도 하겠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을 중심삼고 천천히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30세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 그런 것이니 나이 많은 분들께 실례가 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처음 오신 분들은 `저 양반이 소문났던 아무개구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개입니다. (웃음) 보시다시피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제부터 말씀을 잘 해야 격에 맞을 텐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좁은 방에 손님을 잔뜩 모셔다 놓고, 교회에 많은 사람들을 꽉 채워 놓고 말씀을 하는 자신도 여러분에게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좀 힘들더라도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말씀 시간을 얼마로 잡을 것이냐? 보통, 미국 같은 나라의 공석에서 강의할 때는 길어야 한 시간 정도입니다. 한 시간 20분 이상은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처음으로 여기에 왔기 때문에 한 시간쯤 했으면 딱 좋겠어요. 여러분들은 어때요? 여러분은 얼마동안 했으면 좋겠습니까? 많이 하라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몇 시간이 많은 건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말씀을 길게 한 기록이 11시간 45분입니다. 그렇게까지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12시간 하고도 5분이 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계가 틀렸대요. 15분이나 모자라는 12시간이래요. 그런 기록이 있으니까 한 시간 하자면 한 시간 하고, 두 시간 하자면 두 시간 합니다. 통일교인들에게는 물어 볼 것도 없어요. 이건 새로 온 분들을 위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여기가 수원이지요? 「네」 어제 밤에 비가 오길래 '아이구 수원에 가려니까 물이 또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원의 수(水)가 무슨 수 자입니까? 「물 수 자입니다」 원(原) 자는 근원 원 자가 아니고 둔덕 원자지요? 새벽까지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수원에 올 때는 맑은 날씨가 되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비 온 뒤의 길을 달리면 아주 상쾌하거든요. 그러나 이렇게 자연을 보고는 기분이 좋았는데 사람을 보고 기분이 나쁘면 그것은 실패한 것입니다. 물론 수원 분들은 다 좋은 분들이니까 그렇지 않겠지요.
자연도 좋았고, 사람도 좋았으면 말씀도 잘해야 되는데 선생님이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보조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시간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시간입니다. 아무리 크다 하는 사람이 와 있더라도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 시간만큼은 눈과 귀를 나에게 팔은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또 힘이 들더라도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간 여러분의 귀와 눈, 그리고 내 입이 서로 잘 주고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세계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월남문제라든가, 중국과 중공을 중심삼은 소련 문제라든가, 또 중동의 이스라엘 문제 등 세계는 아주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점점 이렇게 나가다가는 미국도 앞으로는 민주주의 세계의 주도적인 권한을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4년 전 미국에 갔을 때와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물론 세계의 정세도 달라졌지만 미국 국민의 일반적인 여론이 달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계에서 어느 정도의 이름이 있는 사람들도 만나 보았는데, 그들의 평을 쭉 종합해 보면 미국이 이제는 민주주의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월남전을 보게 되더라도 그 말이 맞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떠한 정책을 수립해서, 혹은 특수한 지도자가 나와 가지고 이 세계를 지도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미국 자체를 지탱하는 것도 미국 국민의 힘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나돌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그러니만큼 전세계 역시 인간들의 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특정한 무엇이 나와서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지 않고는 인류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섭섭해 할 정도로 극성맞습니다. 아가씨, 총각 할 것 없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한 사람으로서 세계를 쭉 돌아보고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때가 우리 앞에 너무도 빨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통일교회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점점 유명해 질 것입니다. 구라파 일대에서는 상당한 계급의 사람들이 `미스터 문'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를 가든지 전화를 통하여 만나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바빠서 못 만나고 그냥 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즉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 세계는 너무나도 빨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로 남아 있다고 봅니다. 수습하는 데에는 남자나 여자를 내세워서 수습해야 할 텐데 그런 세계적인 문제를 수습할 수 있는 진정한 남자가 지금 여기에 몇이나 됩니까? 내 자신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의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적 자원을 어떻게 보강시키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 선교본부에 있는 요원들한테 그러한 분야를 담당시켜 가지고 지시도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운세가 한국으로 기울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세계적인 운세는 앞으로 한국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천운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월남전도 우리 한국에게는 상당히 유리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하나의 훈련기간이며 내적으로는 보충할 수 있는 보충기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의 문제의 해결점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니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세계는 각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이념을 설정하여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바라는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세계를 바라보던 민족적인 입장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일본은 지금 세 파로 갈라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권내로 들어가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주주의권내로 움직여 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옛날의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자체를 놓고 보면 옛날 제국주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런 것을 따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한 나라의 국민, 혹은 한 민족만의 행복을 위하여 움직여서는 그 이상을 넘는 현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낙오하고 마는 것입니다. 반드시 몰락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어떠한 일개국을 중심삼고 소생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바라는 그 이상세계란 어떠한 세계냐? 여기에서 '이상'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민족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전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세계이며 좋아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누구나'라는 말에는 사람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만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좋아하고 바라는 세계, 즉 이상세계가 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주인을 알아봅니다. 주인만 보면 강아지는 아주 좋아합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면 동물도 좋아하는 것처럼 식물도 자랄 때 음악을 들려 주거나 사람이 노래를 불러 주면 더욱 잘 자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만 보아도 다 만물상입니다. 사람들을 한군데 모아 놓으면 참 보기 좋습니다. 멋지거든요. 늙으나 젊으나 웃으면 보기 좋아요. 그러나 이빨 빠진 할머니는 웃지 말아요. (웃음) 자, 그러면 인간이 바라고 만물이 좋아하는 그런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다면 이 천지의 주인은 어떠하실 것이냐? 우리보다도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인간에게 과연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 시조에게부터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잘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제일 웃조상, 기독교로 말하면 아담이 되겠지요. 그 역시 이상세계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야 이것이 문제가 되었느냐? 옛날부터 사람들이 전부다 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이상세계는 그 시대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만일에 이 세상을 만든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복잡하고 골칫거리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인간에게 이상이니 무엇이니 하게 만들었겠습니까?
처음부터 사람들이 이상세계를 이루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랬다면 하나님도 좋아하셨을 것이고 여러분의 선조들도 모두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현실에 놓이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또 이 세상을 마음대로 해 버리지 않고 왜 지금까지 그대로 두고 계시겠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적인 면이나 사회적인 면 등에 있어서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풀고 이상세계를 찾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면 어떻겠습니까? 불행하겠습니까? 행복하겠습니까? 이상세계가 되면 인간은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좋아해요 안해요?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요? 돈이 백 원 있을 때보다 백십 원이 있을 때가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억 원이 있을 때 보다 십억 원이 있을 때가 좀 더 행복한 것이요, 백억 원이 있을 때보다 천억 원이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행복의 한계선이 어디냐? 국민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기분이 좋아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때가 행복한 때인데 그 행복에는 한계가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대관절 행복의 한계선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더라도 대구에 간다든지, 부산에 간다든지, 목포에 간다든지 하는 목적지를 두고 타야 합니다. 가기는 가는데 목적지도 없이 그냥 간다면 그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행복을 고대하는 데에 있어서도 행복의 종착점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곳이 어디인 줄 알고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이상세계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싫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이상세계가 다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나하고 관계가 없다면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결국은 내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세계도 나와 관계되는 내용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행복하기를 바랍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전부 다 그들에게 주택을 사주고 싶고, 고급 차들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여자들도 그래요? 「예」 정말 그래요 「예」
본래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나 모두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사람들 전부에게 돈을 한 천만 원씩 주어서 집을 짓게 하고 부자로 살게 해 놓았다 할 때 그 다음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어요, 안 생기겠어요? 「생깁니다」 여기에 있는 할머니도 그래요? 「예」
이렇게 전세계의 30억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에는 달나라나 별나라에 사람이 산다면 그 사람들에게까지도 그렇게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또 한국을 내 손아귀에 쥐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보다 더 큰 미국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출생할 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후보자의 자격을 갖추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한 사람만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미국같이 큰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만족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또 세계의 많은 나라를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대통령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계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구를 중심으로 있는 별나라에 보석이 잔뜩 쌓였고 황금광과 다이아몬드가 지천으로 있다고 할 때는 그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때는 또 그것마저 소유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달나라 별나라까지 정복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겠습니까? 거기까지 정복했다고 그 마음이 이제 그만 쉬겠습니까? 또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대관절 어디에 근거를 두었기에 그런 욕심을 부리느냐? 여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여자나 남자 전부에게 있습니다. 이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 이 우주보다도 더 큰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마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런 욕심이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사람은 그런 마음이 더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외국 사람을 말할 때 일본놈, 되놈, 소련놈 등 놈을 붙여서 잘 부릅니다. 그만큼 한국사람에게는 배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말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보다 큰 것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안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덜 된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불구자인데 그걸 가져서 뭘 하겠나' 하겠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더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 가운데에서 제일 가치 있고, 제일 높고, 제일 귀한 존재가 무엇이냐? 만약 그러한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갖고 싶겠습니까? 안 갖고 싶겠습니까? 「갖고 싶습니다」 그럼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전부 다 집어던질 수 있겠습니까? 「예」 그러한 것을 가져 올 수 있다며 대한민국이라도 주고 사 와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민족 반역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사 와야 합니다. 나라를 줄 때는 나쁘지만 그렇게 하여 사온 다음에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 자가 바로 애국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들이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대관절 이 마음이라는 것을 추구해 나오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천주의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을 점령하고 싶겠습니까? 안 하고 싶겠습니까? 「하고 싶습니다」 요전에 대통령이 어디를 갔는데, 여러분들도 대통령을 따라 함께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선한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우주의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을 점령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듯 이 마음이 지향하는 목표는 엄청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구경하러 가겠습니까, 가서 빼앗아 오겠습니까? 빼앗아 온다면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요. (웃음) 그러나 하나님을 점령해서 자기집 안방에 모셔 놓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거기에만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식으로는 점령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빼앗아 올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사랑이 없다면 통일교회의 선생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께 실례가 되겠지만 실감이 나게 하려니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 가지고 선생님과 여러분이 인연만 맺어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대관절 뭘 하려고 그렇게 야단하느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이 원하고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야 백번 천번 봐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뭘 원하느냐?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에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은 세계는 모두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 모두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자기의 부모와 형제가 함께 사는 곳을 보고 우리집이라고 말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 집이 그 아이의 집입니까? 그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의 집이지. 그렇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그것을 보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그것은 그 아이가 부모의 사랑의 줄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의 줄이 연결되어 있을 때는 그 어머니 아버지의 것이 자식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소학교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고 중학교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와서는 책보를 집어 던지고 친구들과 함께 `여기가 우리 집이니 여기에서 밥을 해먹자'고 하며 있는 집을 다 찾아먹었다면 어머니 아버지가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강도 중에서도 지독한 강도지요. 예고도 없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죄다 퍼주고 있거든요? 그래도 그 어머니 아버지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랑으로 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줄을 쥐게 되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어느 나라 대통령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어느 나라 대통령의 부인이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라고 합시다. 일자 무식이고 팔불출인 여자가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있다고 해서 대학교수가 그 앞에 와서 `나는 대학교 교수이니 나한테 좀 배우소' 이럴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교수라고 해도 그 여자 앞에서는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나갈 때도 인사를 하고 뒤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무식하긴 하지만 대통령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통령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됐느냐? 그것은 대통령과 사랑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이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게 되면 동등한 자격을 갖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여기에 점잖게 앉아 계시는 아저씨들은 사랑으로 어떻게 상대를 주관하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도 마나님한테는 꼼짝 못하고 주관받을 것입니다. (웃음)
사랑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 형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용하게 되면 멋들어진 걸작을 남깁니다. 그러한 것을 사람이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모두 죽으라구요 죽어. 하나님을 천길 만길이 되는 비밀 창고에 넣어 아무리 큰 자물통으로 채워 억천만세에까지 인간을 만날 수 없게 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줄만 쥐고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나는 하나님과 동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주관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주관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위대한 힘의 법도로는 동등, 평등할 수 있는 것이요,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가 높다고 해서 자랑하지 말고, 낮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줄에 엉키게 되면 높은 곳에 있더라도 최고로 낮을 수 있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도 언제나 낮은 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최고로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말하는 마음이 원하는 최고의 종착점이 어디냐? 마음이 비로소 보따리를 내려 놓고 ‘이제야 만사가 태평이구나. 소원성취해야 할 최고의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천년 만년 살고 지고, 만인이여 나를 본받고 내가 간 길을 따르라'고 할 수 있는 그 하나의 목적점이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자리,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자리입니다.
마음이 크고, 좋고,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뭐냐? 그것은 그러한 하나의 목적점을 인간이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므로 사람의 본심은 그곳으로 모두 끌리고 있는데 인간이 갈 길을 모르니 자연히 한탄하는 생활을 하고 있고, 이 세계는 고해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곳이냐? 여기 있는 문 선생 만나자는 곳이 아닙니다. 돈을 보태 달라는 곳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자는 곳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 또한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가겠어요, 안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 앞에 있는 자식이 자리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아들이 넷 있는데 그 부모가 그 네 아들에게 사랑의 차이를 두겠습니까? 맏아들이니까 이만큼의 사랑을 해주고 동생들은 각각 요만큼의 사랑만 받으라고 차이를 두겠냐는 말입니다.
젖을 먹을 때도 자식들에게 차이를 두고 먹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피와 살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자식에게 일일이 공급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젖먹이가 젖을 빨아 먹는 것을 보고 좋아합니다. 자식이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목을 잡고 그러는 것도 아주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기의 젖을 주면서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젖을 준다고 해서 오늘까지는 얼마짜리고 내일부터는 얼마짜리다 하며 돈을 청구하는 어머니는 세상에 없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 어머니의 얼굴은 못생겼다 해도, 여자다운 데가 하나도 없이 그저 눈, 코, 입, 볼 할 것 없이 전부 못생겼다 해도 아들딸을 사랑하는 데는 심각합니다. 젖먹는 애기에 대해서 사랑할 때는 누구보다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기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누구한테 질 것 같습니까? 안 진다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 것입니까? 그런 것을 가르치는 학교 봤어요? 또한 그것을 배워 본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배우지 않고도 아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 가지고 애기 낳는 법 배우지 않았습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남남이 만나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도 누구에게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요런 것이다 하며 갖다 먹여 주어서 맛을 아는 것도 아니고, 실험을 해봐 가지고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에도 이런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고 지금부터 수천만 대의 후손에게도 이것을 가르쳐 주는 학교는 나올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두고 보면 ‘나는 누구의 몇 대 후손이니까 우리 동네에 가면 배를 내밀고 으시댈 수 있고, 밤중에라도 여봐라! 하면 무엇을 대령하니 나는 부러울 것이 없다. 또 집에서는 독자이니 나는 행복한 사나이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서는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부인이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어디 갔었어? 다섯시에 들어와야 할 텐데 왜 일곱 시에 들어왔어?' 하고 야단을 친다면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 콧노래를 부르며 맞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가정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 심정, 사랑이 없어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목도 없이 말씀만 자꾸 하는 것 같지만 지금 행복과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행복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아마 다 들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고 싶은 사람 손들으라고 한다면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여러분들은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합니다」 그러면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들, 어떻게 행복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만 알 수 있나? 맛을 봐야 아는 것이지. 「맛이 좋습니다」 (웃음) 여러분 같은 경우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지, 만약 하나님이 없이 자기 혼자만 있다면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을 느끼는 데에 하나님은 간접적인 역할을 하십니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님을 빼 놓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말세라고 하지요? 말세란 무엇입니까? 그말은 끝장 다 본 때, 즉 살고 싶은 사람이 없는 때라는 말입니다. 장이 파해 간다는 말입니다. 장이 끝나 가는데 와 가지고 물건을 펴 놓는 사람이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말세라는 것은 살 것 다 살아서 이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떠나고 싶다는 때, 파장이 되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사람들은 보통 인생은 나그네라고도 하고 고해같다고도 합니다. 그와 같은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이 세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가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이며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모르지만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다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다리를 아프지 않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플 때는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통일교회라고 하는 시시한 교회가 나왔지만 여기에 서서 얘기하는 선생님이 혹시 사기꾼인지 압니까?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우대는 멀쩡하고, 말하는 페이스는 좀 빠르고, 체중은 백 킬로가 넘을 것 같은 사람이 오늘 이렇게 얘기하면서 혼자 잘살려고 멀리 갈 준비를 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도 좋아요? 「예, 좋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통일교회 음식은 한꺼번에 다 먹지 말아야 합니다. 맛이 있다고 해서 급하게 다 먹으려 하지 말고, 처음에 한 3일쯤 먹어 보고 설사가 안 나거든 조금 더 먹어 보고, 또 그 다음에는 설사가 안 나거든 안 나거든 조금 더 먹어보고, 또 그 다음에도 설사가 안 나거든 한 일주일 동안 먹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뒤로도 탈이 안 나고, 몸도 좋거든 많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욕심이 많아져 또 자기 것을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이곳 수원에서 선생님은 한 시간 후쯤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기를 원하지요? 자고 갈까요, 밤에 갈까요? 「자고 가십시오」 자게 되면 또 하루만 더 있다가 가라고 할 것이고 하루 더 있으면 또 일주일만 있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그럴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둑놈 심보입니다.
통일교회에 선생님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에게 선생님이 필요해요? 절대 필요하겠지요. 그러면 선생님에게는 여러분이 필요하겠습니까? 선생님에게도 여러분이 절대 필요하겠어요? 어떨 것 같아요? 필요합니다. 이 조건에만 걸리게 되면 꼼짝달싹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형제끼리 싸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형제끼리 싸우고 어떤 경우에는 재판까지 하게 되어 영영 원수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 영영 원수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둘 중의 하나가 죽게 되면 그제서야 와서 남보다 울긴 더 서럽게 웁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나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수간도 결국에는 화해하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종교 지도자이지만 이런 건 다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는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교회에 나와 마루바닥에 꿇어앉아 `아버지' 하는 것이 젊은 사람의 기질에는 맞지 않을 것이지만 들어와 보면 새로운 천지가 있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라는 곳이 대관절 무엇을 하는 곳이냐? 불행한 세상을 행복한 세상으로 만드는 이상세계를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행복한 생활과 이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내용을 세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종교라면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런 세상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정치가들이 모여 가지고 머리를 짜내어 회의하고 토론하는 그 목적도 어떻게 하면 만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상세계를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 세계 만민이 그 안에서 형제로서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소개해 줄 수 없는 종교라면 보따리를 싸 둘러메게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그럴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의 마음이 왜 이렇게 요동하게 되어 있느냐? 그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최고의 안식처는, 보금자리는 어디냐? 그곳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기필코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까 불행하다고 그랬는데, 왜 불행한 것입니까? 부모가 없습니까, 아니면 밥을 못 먹었습니까? 혹은 시집 못 갈 병에 걸렸습니까? 왜 불행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불행하기는 불행한 것 같은데, 왜 불행한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매일 싸움을 하고 사니까 불행한 것입니다. 부부끼리도 잘 싸우고 형제끼리도 잘 싸우고 여러분 자체 내에서도 잘 싸웁니다. 모두 싸움꾼들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놓고 볼 때,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의 사람, 몸의 사람, 이 둘로 되어 있는데 이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불행의 원천지는 바로 내 자신입니다. 내 몸의 마음이 어느 한때 평화스러운 때가 있었습니까? 이 몸과 마음은 항상 싸움을 합니다. 예를 들어 자다가 말고 어젯밤에 동생이 베개 옆에 놓아 둔 만두를 생각하고 일어나서는 ‘없어져도 내가 먹었는지 알 게 뭐냐’ 하면서 손을 척 갖다 댑니다. 그럴 때 마음이 ‘이놈 이거 정신이 아직 안 들었구나’ 하면서 못하게 하는 경우를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마음과 몸은 그런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 그 자체를 나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까지는 좋지만 몸과 마음이 매일 툭탁거리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 그 이상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천년 전 우리 조상도 그랬고,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천년 후의 우리의 후손들도 이와 같은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싸움은 또 말릴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하는 것이 인간의 고민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모여서 세계의 평화를 꿈꾸며 그것을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서 또 싸움을 하게 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세계만 되면 평등한 세계가 되고 어떻고 하며 주장하지만 그 단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 두 사람이 있다면 싸움꾼이 넷으로 갈라지게 되고 다섯 식구가 있다면 열이 됩니다. 대한민국 인구가 3천만이니까 6천만의 싸움꾼이 여기에 사는 것이 되며 세계 인류는 36억이니 72억 싸움꾼이 세계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평화가 있을 것 같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언제 그 도둑놈의 심보가 뒤집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곳에 평화와 행복과 달콤한 보금자리가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작전으로 이 세계를 평화스럽게 만들 것이냐? 하나님 자신은 평화의 근거지를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미국도 아니요, 소련도 아니요,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닙니다. 그곳은 바로 인간이 본심입니다. 그 말은 세상의 온갖 것도 다 내버리고 본심의 기준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내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가운데에 있는 선을 해방시켜 주지 않으면 이상세계니, 행복의 세계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이러한 역사적 기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기준을 결정하지 못하는 종교는 필요없는 것입니다. 도탄 중에 빠져 있는 인간들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냥 가만히 두고만 본다면 그 하나님은 벼락을 맞을 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러한 사람들을 평화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과정에 인간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야 됩니다. 그런 활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 할 때, 안 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잔인한 분입니까? 그러나 그런 활동을 했다 하는 그 흔적이 뭐냐 하면 바로 종교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배워서 알겠지만 세계의 모든 문화를 역사를 보게 되면 그 사상적인 뒷받침이 되는 것이 종교입니다. 인류 역사와 종교는 공동 운명으로 관계되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시대를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하나님이 이상세계와 이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기반입니다. 그 종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말하면 허무맹랑한 말 같지만 인간의 본심은 인류를 창조하고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하나님의 원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그 이상의 가르침이 없습니다. 종교라고 할 때의 종(宗)자는 마루 종 자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마루 되는 가르침, 즉 대들보 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는 그 이상 뭐가 또 있겠습니까? 이 이상의 것을 가르쳐 주는 데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대해서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내 개인이나 인간 자체를 두고 볼 때 인간의 욕망이라든가, 인간의 양심이 최고로 바라는 기준은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최고로 희망하는, 그 정상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는 기독교가 종교 중에서도 최고의 종교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하나님을 강조하고, 절대자인 이 우주의 창조주를 경외하고, 그의 사랑을 들고 나와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가짜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르쳐 주는 운동이 역사상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데 이것이 종교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인류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수습하려니 자연히 각 민족에 따른 종교가 필요합니다. 각자 역사와 환경, 문화의 배경과 풍속,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형태를 하나의 목적으로 수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을 보면, 상류에는 수많은 지류(支流)가 있습니다. 이 수많은 지류가 내려가면 내려 갈수록 서로 합하여지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가지고 결국 하나의 강이 되어 대해(大海)에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종교도 하나의 줄기로 합해 나와 최후에는 하나님을 심중에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곳에 하나가 되어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혼자 가만히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혼자 앉아서 ‘어 사랑하니 좋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하는 말입니다. 상대적 관계가 없으면 사랑이라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에도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대상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말이나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이겠습니까? 아니면 산에 있는 식물이겠습니까?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까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만약 짐승 세계, 말 세계에 가서 물으면 짐승, 혹은 말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동물과 사람을 한번 비교해 봅시다. 우선 동물하고 사람하고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서서 다니고 동물은 기어다닌다는 것입니다. 섰다는 것은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딱 들어맞았다는 것입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계가 몇이라 해도 그 중심은 하나입니다. 나무도 서 있지만 뿌리와 꼭대기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과는 반대입니다. 사람은 어디가 뿌리입니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그거 다 생각하고 말해야 되는 거예요. 사람에게는 머리가 뿌리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사람의 머리라는 것입니다.
눈을 보면 사람의 눈은 수평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눈은 둥글넓적해 가지고 생기도 없으며 45도 이하를 바라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짐승에게는 눈썹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눈썹이 있어 눈을 보호하게 되어 있는데 짐승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음성을 놓고 보더라도 소는 천년 만년이 지나도 매미소리를 낼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소리를 감별해 낼 수 있는 귀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오만 가지의 소리를 다 감별도 하고 낼 수도 있습니다. 영어도 할 수 있고, 불란서어도 할 수 있고, 독일어도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 만 가지의 언어가 있다고 해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대를 보더라도 동물 세계에는 왕이라고 할 만한 성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을 보더라도 동물은 손을 인간처럼 놀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일의 앞뒤 전후 좌우를 감별할 수 있고, 입체적인 구상을 하여 안정권을 이루기까지 어떠한 사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싶은 존재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달려오셨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의 있습니까? 인간이 이만큼 올라갔으니 선생님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인간은 그 주체 앞에 있어서 영원히 없어서는 안 될 상대자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은 왕이고 인간은 그 나라의 백성과 같은 자리에서 사랑을 받기를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인간을 종의 입장으로 사랑해 주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두가지 다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는 어느 자리이냐? 여러분, 그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는 부자관계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는 그 자리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의 있습니까? 알고 보니 인간이 이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니 큰소리를 칠 만합니다. 그만큼 올라갔으니 선생님도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기분 좋지요? 「예」
우주의 근본은 바로 이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심이 가는 길은 천만인에게 불어봐도 하나님을 내 것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해 가는 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들이 열 명이 있다고 해도 아들들 개인 개인에 대해 부모의 사랑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만민이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켜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는 불쌍한 아버지에게서 간절한 사랑이 흘러 나옵니다. 부자(富者)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머니 아버지의 심정을 거쳐서 뼛골에서 우러 나오는 사랑이 자식에게 스며들 때, 이곳이야 말로 인간이 머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의 깃점이요, 인간의 마음의 본향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세계에는 시시한 종교들이 많이 있지만 통일교회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종교가 최고의 종교냐? 최고의 종교를 잘 알고 그러한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무턱대로 아무 종교나 막 찾아가면 큰일납니다. 잘 생각해서 판단해 가지고 얻은 결론에 의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들입니다」 여자들은 하나님의 딸과 며느리 중 어느 쪽이 더 되고 싶습니까? 어느 쪽이 되든 다 마찬가지예요. 다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는 여러분이 준비하고 들어가면 됩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려면 종교를 가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벼락을 맞습니다. 내가 이렇게 강조하는 것이 전혀 근거 없이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천지간에 그러한 인연을 맺고 하나님과 천년 만년 살아 본 사람이 있었느냐? 있었다면 그때부터 세계에는 행복의 문이 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복잡한 내적인 문제를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니 교인들이 더 바짝 붙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팔자가 사나와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세상에 나가면 어떠한 일을 해도 누구한테 지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욕먹는 통일교회 선생님을 하고 있겠습니까? 허우대도 이만하면 남자로서 중간 이상은 되는데 하필이면 욕먹는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을 왜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밖에 이 일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 할 사람이 있으면 한번 나와 보십시오. 내가 그 사람에게 인계해 주겠습니다. 그러나 인계해 준다고 하더라도 사흘도 못가서 전부다 도망갈 것입니다.
선생님은 한번 이 일에서 해방이 되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가 꽃다운 청춘도 다 흘려보냈습니다. 내가 욕을 먹고 분하고 억울한 일을 묵묵히 당하는 것은 누구만큼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알아도 너무 알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너무 알아도 병신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병신을 따라다니는 것이 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예」 잘났다는 사람, 병신 아닌 녀석들이 못 살고 있는데, 병신끼리 살면서 점점 좋아진다면 그 병신 아닌 사람들이 구경하며 저희들도 본받겠다고 배우러 올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통일교인을 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미국에서는 아, 뭐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합동결혼식을 해주고 교육도 시킨다고 한다더라 합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 가지고 미국 사람들을 전부다 합동결혼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리 기분 나쁘지 않거든요.
눈이 파란 여자를 한국 남자와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을 하게 하여 우리나라에 데려다 놓으면 무척 아름다울 것입니다. 남자들도 아주 멋진 눈들을 가진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을 보면 호수 같아서 옷도 안벗고 그냥 목욕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금발의 미인인 어떤 부인을 가만히 보니까 나보다 키가 커요. 좀 작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또 금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하니 기분이 나쁘더구만. 동양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겠지요. 한국 사람들은 허우대가 아무리 커도 그들에게 눌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세계 문화를 창건하여 세계의 일등 국민이라고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한국 사람은 보잘것없이 비쳐집니다.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일본 사람들은 전부다 한국 사람 좋게 안 봐요. 지금까지도 그래요. 그런데 그런 한국의 문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이 여러분이 보고 있는 여기에 있는 이 사나이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눈이 얼마나 작은지 보십시오. 그래서 겁이 없습니다. 조그만 눈에 말은 아주 빨라서 심상치 않게 생겼습니다.
옛날에 선생님은 누구한테 한대 맞으면 3일 이내에 복수를 안 하고는 못 배겼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 앞에까지 가더라도 항복시키고야 밤잠을 잤습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한번 손이라도 대는 날에는 네가 망하든, 내가 망하든 생명을 걸고 싸우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전에는 절대로 후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기성교회도 한번 손을 대는 날에는 여러가지 난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한번 결심하게 되면 생명을 걸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을 합니다. 데데한 사람 같으면 이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데데한 사람이면 가다가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50이 되어도 아직도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젊은 사람도 많지만 여러분보다는 5분의 4.99는 선생님이 모든 면에서 더 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젊은 사람들을 무시한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더 잘합니다. 축구를 비롯하여 모든 운동을 다 잘 합니다. 사람이 크게 되려면 뭐든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진지하게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러니 선생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말을 해도 청산유수같이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대해서 욕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욕도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음식에는 매운 것, 짠 것, 쓴 것, 이것이 다 양념이 되는데 제가 양념이 되지요'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맛좋은 것만 먹으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입맛에 맞는 것만 먹다가는 병이 나고 맙니다. 여러 가지 섞어서 먹어야지요.
여러분들, 나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데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선생님은 걸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 참기 어려운 욕을 하고, 또 내가 별의별 일을 다 당하더라도 나는 대한민국이 잘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다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느냐 하면, 그저 나를 죽이지 못해서, 별의별 중상모략을 하는 패들이 있는데 길을 가다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내 입에서 `이 도둑놈아' 하는 소리가 튀어나옵니다. 내가 그런 말 한마디를 하면 그 사람은 7개월 이내에 폭싹 망하게 됩니다. 볼장 다 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문선생하고 가까운 모양입니다.
내가 엎드려 가지고 기도만 하면 나를 반대하는 패들의 꼬리가 틀려 넘어갑니다. 그래서 나는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쓱 지나가도 나는 태연합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숨어 버립니다. 자기가 한 일이 있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내가 지금은 이만큼 두두룩하게 살도 쪘고, 몸무게가 관수로 따지면 20관 가까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사람들 등쳐먹고 살았다고는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만에요. 내가 통일교인들을 벌어 먹였으면 벌어 먹였지, 절대로 신세를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무엇을 하려고 들어왔습니까? 행복하게 살려고 들어왔다고요? 통일교회가 행복한 곳인지 알게 뭐예요. 욕을 먹는 문선생 따라다니면 욕이나 먹지 별 수 있어요. 욕을 먹어도 좋다 이거예요? 욕을 먹어도 좋아요? 「예」 매 맞아도 좋아요? 「예」 쫓겨도 좋아요? 「예」 좋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만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자'고 말합니다. 아들딸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데는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입장에서 사랑받는 첫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효자로서 사랑 받는 아들딸이 되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의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재산은 뭐냐?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빈털털이였어요. 따라서 사촌에 가까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공장도 갖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보내주는 돈만 가지고도 일생 동안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외국에 전보를 치면 왕복 비행기표까지 보냅니다. 뭐 부러운게 없어요.
이번에도 20여개 국을 쭉 돌아다닐 때 참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아시아의 일각에 있는 한국에서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왔다고 누런 머리에 새파란 눈을 가진 미국 사람들이 호텔도 제일 좋은 호텔에 모시려 하고 먹는 것도 제일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려 하고 돈은 자기들이 다 내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선생님을 부러워합니다. 불란서를 가든 이태리를 가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를 가든 차가 없나 잘 곳이 없나, 그만하면 됐지 않아요. 가는 데마다 집이 있고 차가 있는데 부러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어느 나라 식구든 하늘 아래 제일 좋은 것을 주려 하고 제일 좋은 곳에 잘 수 있게 하려 합니다. 어느 장관, 무슨 대통령 했던 사람도 그런 대우는 못 받지요. 전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슨도 지금 텍사스에 들어가서 유리된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을 어느 누가 알아줘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가 밥을 안 먹으면 ‘내가 죄를 지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밤잠을 안 자고 기도하고…. 누가 그러겠어요? 형편없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외국을 순회하면서 서양 사람들 결혼시키려고 독일에 갔더니 마흔 두살 난 이빨 빠진 총각 녀석이 결혼을 못하고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결혼 안 시켜 주면 혼자는 절대 결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모가 결혼시켜 주는 것이 좋지, 통일교회 문선생이 결혼시켜 주는 것이 좋아요? 여러분은 어때요? 「선생님이 시켜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니까 야단이예요. 그래서 그 욕은 선생님이 다 먹지. 여러분이 뭘 잘했다고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느냐 말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골탕먹고 있어요. 안 가르쳐 줬으면 이거 안 해도 되는데 새빨간 녀석이나 검둥이나 노랭이나 전부다 머리를 들이 밀고 선생님에게 시집 장가 보내 달라고 합니다. 이러니 합동으로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일년 열두달 매일같이 잔치를 하다 해도 남아돌게 생겼으니 합동결혼식밖에 방법이 없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함부로 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미국에서 세계 합동결혼식을 하고 한판 차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어요.
그 바람에 잠을 못 자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또 여기에 순회를 나오다 보니 아직까지 여독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몇 시간이나 흘렀어요? 한 시간 넘었을 걸. 「두 시간 됐습니다」 벌써 두 시간이나 되었다구요? 한 30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그 꼴이 되었구만요. 그렇지만 나도 여러분을 좋아하지 나빠하겠어요? 이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이 고맙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선진국에서 정상을 달리는 대학의 레테르를 부착하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손꼽아 주장하는 청년남녀들, 그러한 상당한 간판을 가진 사람들이 내가 죽으라 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생명을 바치겠다며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소굴로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합동결혼식을 하고 돌아오는 선생님 자신이 통일교회 이념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일본을 감고 중국을 감아 넘긴다는 것입니다. 이거 좋지 않지요? 좋다는 말이에요, 나쁘다는 말이예요? 「좋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몰라도 괜찮아요. 아시아에서 몰리고 쫓기던 민족, 학대받고 핍박받던 민족, 일본놈들이 영원히 종속적으로 매 놓으려고 생각하던 이민족이 언젠가는 일본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앞세워 개척의 역군으로 심부름시킬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세월이 좋지요? 선생님이 잘했어요, 못 했어요? 「잘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잘했는지 못 했는지 잘 모르지만 이것만은 잘했어요. 그렇지요? 이것만은 찬동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일제말에 왜놈 형사들한테 무수히 고문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에서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김구 선생을 협조하기 위해 상해에도 연락하고 별의별 일을 다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그런 입장에서 투쟁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투쟁을 하고 고향에 오게 되면 아무개가 돌아왔다고 귀신같이 알고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추방당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선생님도 피를 토하며 사경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함께 일하던 동지들에 대한 책임과 의리를 위해 생명을 걸고 나 혼자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죽인다고 위협해도 말을 안 했던 거예요. 말 안 한다면 안 하는 것입니다.
서울시 경찰서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해방되자 마자 모가지를 잘라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망하여 눈물을 흘리고 가는 그들이기에 그냥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세가 불리한 것을 안 그들은 우리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문서를 전부 다 불살라 버리고 갔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것을 아는 선생님은 언제 한번 일본 황제의 궁성을 폭발시켜 버리겠다고도 생각했던 사나이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우리 민족이 얼마만큼 학살당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나이입니다.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일본을 무시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삼국노선을 펴기 위해서는 일본이 망했지만, 일본은 필시 필요한 나라입니다. 민족성으로 보더라도 틀림없이 독일 민족 이상의 단결된 힘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복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복수로 시작하면, 또 복수로 끝나고 그래서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먼저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해야겠다는 새로운 규합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자유당 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이승만 박사나 박마리아를 중심한 자유당, 이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한국이 지금 이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다 녹아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정상을 달리고 있는 선진국과도 어깨를 겨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선생님이 오늘 여러분을 앞에 놓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입장이 안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운세를 가지고 태어난 국민의 혈통을 받았으니 할 수 없지요. 그러니 고생길을 닦아 다시 새로운 운세를 맞이하여 이 대한민국에 새로운 지도이념을 가지고 난세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야 할 사명이 선생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탈이라면 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유당 시절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여러분은 그때 이화여대 사건을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의 신문을 보면 별의별 소문이 실려있어 참 재미있습니다.
이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우리의 황금 같은 보물입니다. 정의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밤을 세우고, 피를 팔아 가면서까지 이 민족을 구하려 했던 정의의 애국자들을 그들이 멋대로 때려잡고 가두었던 것입니다.
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들이 후손을 잡아다가 그들의 무덤을 파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에게 ‘너의 에미 애비가 이렇게 반대해서 우리 민족에 비참상이 벌어지고 이런 결과가 생겼다'고 일장 연설만 하면 당장에 에미 애비 무덤을 파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 능력이 선생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KBS 중앙방송국에서 내게 마이크를 사나흘만 맡겨 준다면 삼천만을 통곡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럴 만한 재료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공산당에게까지도 `너희들 언제 사랑해 봤어? 우리는 이렇게 노력했다' 라고 할 수 있는 재료를 갖추어서 수습하여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말없이 나온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변명에는 거짓이 첨가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없이 나온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패들, 알겠어요? 「예」
일본은 원수의 나라지만 그런 일본이 앞으로 한국을 위하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십여년 전 자유당 때 감옥에 들어가고 쫓기는 몸으로도 빚을 얻은 돈을 가지고─그때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밀선을 태워서 일본에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십년만 두고 보라. 이것이 법치국가의 국민으로서 위법행위인 줄은 알지만 틀림없이 아시아에는 자유롭게 이렇게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하여 내가 지금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더라도 이 일을 하겠다. 이러한 정의에 입각한 내 신념과 행동을 역사가 보증할 날이 올 것이다' 생각하고 단연코 행하였습니다. 그때 통일교회 식구들은 굶다시피 하는 때였어요. 사진을 팔아서 겨우 그날그날 사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돈으로 백오십만원 정도의 빚을 얻어서 밀선을 태워 보냈습니다.
그전에 충청도에 있는 갑사라는 절에서 선생님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잠을 안 자고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너를 위해 정성들이고 할 것이다' 며 죽더라도 임무를 다할 때까지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수를 통해 일본으로 가자 붙잡혀 오무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일주일 이내에 도로 송환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한테 표를 받아 들고 생명을 걸고 갔던 사나이가 목이 잘려서 죽으면 죽었지 돌어올 수 있어요? 환송되기 위해 시모노세끼로 가던 중 열차에서 뛰어 내리려니 기차의 속도가 빠르고 굴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모노세끼에 도착되어 다시 수용소에 갇혀서 송환되기만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 꾀를 내어 금식을 했답니다. 일주일, 열흘, 계속 금식 아닌 금식에 소금만을 먹고 나니 열병같은 것을 앓게 되어 까무러쳤다는군요. 그렇게 꾀병을 얻어 병원에서 치료한다고 입원해 있다가 도망을 쳐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도를 해서 지금의 칠팔만명의 통일교회 용사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일본 정부는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될 경지에까지 온 것입니다.
요전에 일본에 있는 한국 대사관의 홍보관을 선생님이 만나서 야단을 쳤습니다. `임자네들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비판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 통일교회의 신세를 져야 하는 입장인데도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제부터는 안 그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전에 그렇게 보고를 했어요. 이제는 통일교회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선생님이 잘했어요, 못 했어요? 「잘하셨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명령만 하게 되면 일본은 무슨 일이든 다 합니다.
공산당 놈들이나 일본의 시사한 패들을 잡아 없앨 수 있는 기반을 통일교회가 갖고 있다는 것예요. 이것이 더 커질 것입니다. 육칠 만에 가까운 건장한 청년들이 정예부대를 조직해서 지금 일본 공산당과 맞부딪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의 취지로 동경사건을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라고 지시하고 왔습니다. 앞으로 여기에 반대하는 공산당의 프락치를 어떻게 분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일본의 저명인사들과 의견을 교환하여 거기에 대한 계획을 짜 놓고 지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누가 지시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일본도 모르고 한국도 모를 것입니다. 이것이 알려지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일본을 위해 공헌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통일교회는 몰려도 괜찮아요. 중공과 소련이 노리고 있는 일본이 좌경화되면 한국도 어쩔 수 있습니까? 독 안에 든 쥐가 어디 가겠어요? 좌경화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고로 이것을 우경화하기 위해 선생님이 일본을 돕고 있는 거예요. 일본에서는 정치가들도 공산당 때문에 반공 색채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를 내세워서 조선대학 앞에 가서 반공강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원리연구회도 이 일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실업계의 경제인들이 통일교회 원리연구회패들은 꽃장사도 하고 폐품수집을 해서 생활하며 거리에서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것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는냐고 말을 합니다. 일본의 지식인이나 재벌들이 자기 나라에 절대 필요한 원리연구회패들을 그렇게 비참한 자리에서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경제인들을 소집해 가지고 자기네들이 돈을 댈 테니 일만 하라고 합니다. 돈! 우리는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일본의 자민당에서도 선생님이 일본에 온 것을 알고 선생님에게 `자민당이 어떤 코오스를 통해서 돈을 대주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하고 문의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집어치우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가 언제 돈에 팔려 다녔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일본의 경제인 패거리가 우리 정부의 초청을 받아 내일 모레인 20일에 오게 됩니다. 통일교회 패를 따라서 오는 거예요.
선생님이 선화 어린이 무용단 명예회장을 누구를 시켰느냐 하면 일본의 기시 전 수상을 시켰습니다. 기시수상이 한국의 코흘리개 선화 어린이 무용단의 명예회장을 되었으니 모두들 얼마나 놀랬겠어요. 사또 수상이 지금도 신망이 높은데 그 사또 정부가 발깍 뒤집어졌습니다. 누구의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떡 그렇게 해놨으니 어떻겠어요?
선화 어린이 무용단 입장권을 판매할 때도 천오백원 이상 받으라고 선생님이 일본 협회장에게 지시했습니다. 돈을 한푼 받지 않더라도 전부다 애들만 모여서 공연을 한다니 시시하다고 오지 않을 판이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그것을 전부 계산하고 있었어요. 우리 식구가 몇만명씩이나 되니 한 사람이 몇 장씩만 팔아도 순식간에 팔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미 성공해 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사정을 모르지요. 극장 측에서도 세계에서 끌어온 연예계의 정상을 달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국의 어린 코흘리개들이 공연하는 한국 무용이 뭐가 좋아서 보러 오겠느냐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임차료 전체를 현금으로 갖다 줘도 나중에 자기들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다고 극장을 빌려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계약금 얼마씩만 주면 되는데 전액을 다 주어도 안 받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그만큼 고의적으로 한국 민족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 책임자들을 보면 20대에서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예요. 때문에 그들이 우리 무용단을 받게 되면 기성세대 사람들로부터 젊은이들이 어른을 속여먹는다고 비판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퇴할 우리가 아니죠. 그들과 싸움을 하다시피 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 공연하는 날 아침에 선생님이 지시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얘기하지 말고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일전 한푼 받지 말라고. 그래 가지고 초만원을 이루게 했습니다. 표를 전부 팔아서 초만원이 되었기 때문에 문전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주가가 올라가게 되었고, 사람을 밀치고 밀치고 겨우 극장에 들어가면 백승장군처럼 기분이 좋지 않겠어요? 그렇게 해서 자동적으로 주가가 올라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원리연구회 젊은 사람들을 처처에 앉게 했습니다. 앉아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아리랑 고개가 나오고 닐리리 노래가락이 나오면 소를 지르고 박수를 치게 했습니다. 청중들이 노래는 잘 모르지만 무용을 잘하는데다 사방에서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니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선화어린이무용단 잘도 한다' 하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니 미국 춤은 비교가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일본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누가 시켰는지 그 사람들은 지금도 모를 것입니다.
일본에 사사까와 료오이찌(笹川良一)라는 재벌이 한 사람 있는데, 일년에 3천억엔의 돈을 움직이는 그 영감이 선생님의 말을 잘 듣습니다. 일본이 선박회사로서 세계에서 일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이 영감의 공입니다. 한번은 이 영감이, 자기가 선박회사 사장에다가 선박을 짓는 회사의 총재니까 한국 대사관 앞에 있는 모다스께라는 호수에 요트 시합을 주선해 놓고 선생님을 귀빈이라고 떡 초청했습니다. 선생님이 귀빈은 귀빈이지요.
그리하여 마음껏 구경하고 실컷 놀다 가라고 자기 가까운 자리에 선생님을 모셔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영감이 신아 나서 `문선생님, 한국에도 저런 모터보트가 필요하겠지요? 내가 얼마든지 기부할 테니까 한번 해보시지 않겠어요?' 하더군요. 선생님이 기분 나빠서 `이 자식아. 내가 모터보트 따라 여기 온 줄 아니?' 속으로 그러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들은 척 만 척했어요. 그러니까 그 영감 어떻겠어요 선생님 같은 사람을 보기도 처음 보았겠지요. 남들은 전부다 달라고 해서 하나라도 더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주겠다고 해도 기분 나빠 대답하지 않으니 그 다음부터는 다시 그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요번 합동 결혼식 때 선생님이 그 영감을 초청했습니다. `영감님 이번에 오셔서 한번 축하를 해주어야 되겠소'라는 초청장을 보냈지요. 이렇게 국제적인 양반들 불러다 축하를 시키니 부모들이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들딸은 잘났지 못났겠어요? 그 영감 그래도 귀빈으로 모셔서 축하를 시키니 기분이 풀어졌어요. 그리고 좋은 호텔에다 하루밤을 재웠지요. 그 영감 나이가 칠십에 가깝지만, 그래도 일본 제국시대에는 경시청을 움직이던 사람입니다. 옛날에 히틀러와 뭇솔리니처럼 그야말로 진짜 국수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수주의에서 세계주의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의 공로입니다. 선전이 아닙니다.
이 영감이 서울에 왔을 때, 선생님은 영감에게 시간을 안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시간을 딱 짜놓고 그랜드 호텔에서 점심 때 다 모이게 했는데 그 아들도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영감을 사정없이 몰아쳤습니다. `네가 사사까와면 사사까와지 모터보트로 돈 벌었다고 그게 뭐냐? 사사까와 영감이 그래도 일본에서 사나이다운 사나이인 줄 알았는데 이건 서푼짜리밖에 안 된다'고 들이 조져 놓았습니다. 일년 동안 가만있다가 귀빈으로 모셔 와서 수고했다고 치하할 줄 알았는데 반대로 뱃속에다 폭탄을 퍼부었던 거지요. 세상에 그런 인사법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이 영감이 성격을 알고 있었거든요. 이 영감에게 멋진 사나이의 기질이 있어서 정상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도리어 후려갈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한대 쥐어박았더니 이 영감 얼마나 흥분되었겠어요? 그런데 큰소리로 하하하 웃는 것입니다. 그 영감 그래도 아주 틀이 잡혔어요. 사람이 됐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한대 맞았다 이거예요. 나중에 들으니 화가 나는 것을 꾸욱 참느라 잠을 다 못 잤대요. 선생님은 사사까와 같은 사나이가 필요하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은 선생님이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다가 한 대 얻어 맞은 것입니다. 그래도 그때부터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몰라요.
이번에도 일본에서 오는데 그 영감이 비행장에까지 전송 나왔어요. 처남이나 사위 등 누가 어디를 가더라도 전화를 하고 말지 웬만해서는 비행장에 나오지 않는 영감인데 그런 영감이 손수 남부여대해서 비행장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원래는 대합실에서 이별하는 건데 귀빈이라고 해서 우리의 짐을 전부 다 들고 비행기에까지 실어 주었습니다. 이거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욕을 먹고 세상에 이상한 소문은 냈지만, 나라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는데 기분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민족 반역자입니다. 내 배 채우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나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나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라 이겁니다. 공산당 괴수가 일본의 측근에서 놀아나게 되면 한국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동경대학 출신의 건장한 청년남녀들이 선생님이 `차렷' 하면 `하이' 하고 척 부동자세를 취합니다. 일본에서 선생님이 그런 작전을 하는 것은 아시아를 요리해서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안 듣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아시아의 정세에 대해서 쭈욱 들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으니 오늘은 이만 해 두지요.
좌경화하는 일본을 우익으로 돌려 놓기 위해서 미국 CIA를 업고 넘어가야 합니다. 미국을 요리해야 합니다. 미국을 요리해야 돼요. 이 녀석들, 큰소리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걸리나 안 걸리나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린이 무용단이 미국에 가기 위해서 한미문화재단에서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트루만 전 대통령 그리고 맥아더 장군과 상하의원, 의장 등 해서 150명의 미국의 최고 저명인사들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모릅니다. 그런 일을 누가 다 하는지 한국에서는 몰라요.
이렇게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길을 다 열어 놓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누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자고 해서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선생이 곤룡포를 입고 수염을 달고 보좌에 떡 앉아서 `여봐라' 하면 하인들이 `예이!'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전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궁금해하지요. 문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궁금해하거든요. 이제는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외국으로부터 점점 역으로 들려오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지요? 「예」 이 정도 하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이거 시간이 너무 가서 미안한데 조금만 더 실례하겠습니다.
아시아의 권위를 세우는 데에 선생님이 선두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찬양해야 됩니다. 이런 말 한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기성교회 목사들 데리고 일하면 처량하기만 합니다. 통일교회의 이념을 보게 되면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듣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요, 안 들어요? 「잘 듣습니다」 여자들은 안 듣게 되어 있지요? 「여자들도 잘 듣습니다」 잘듣는 게 다 뭐야 이 상것들. 기성교회의 목사가 이렇게 욕을 하고 소리지르면 모두다 소리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인들은 욕을 해도 자꾸 오니 그것이 사고입니다. 욕을 들이다 해도 자꾸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성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자들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얼마나 먹었어요? 전부 여자 때문에 욕을 먹었지 남자들 때문에 욕 먹었나요? 이건 노상 찔찔 울고 다니니 욕 안 먹게 됐어요? 어디를 가든 여자 때문에 욕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택이나 수원에 내려간다고 하면 미리 알고 아침부터 길거리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을 만나면 `선생님 오셨어요' 하고 매달립니다. 어쩌자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그것을 보고 반대하지 않겠어요? 신경질 난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남편들, 어때요 기분 나쁘겠지요? 「아닙니다」 안 그렇긴 뭐가 안 그래요, 그렇지.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욕먹게 했잖아요? 이 여자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선생님이 지금쯤은 세계로 날아갈 수 있었을 텐데…. 이 여자들 때문에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욕을 해도 여러분은 할 수 없어요. 걸릴 때는 욕을 해야지 할 수 없어요. 아 그래야 선생님도 속에 맺힌 것을 좀 풀 거 아닙니까? (웃음) 그것도 풀지 말라는 말이예요? 이런 것을 통일교회내에서는 잘 이해하는데, 처음 오는 사람은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그것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통일교회는 아무리 치안국 경찰대 정보과에서 연구를 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소문이 왜 자꾸 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연구를 하는데 그들이 아무리 연구해 봤자 어떻게 알겠어요, 벌써 차원이 다른데. 우리는 구름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알 게 뭐예요.
선생님 말을 듣고 통일사상만 들어가면 세계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들도 오늘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잘 오셨습니다. 손자들 있거든 미리 통일교회에 집어넣으세요. 안 가겠다고 하면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밀어 넣으십시오. 절대로 손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전도를 빨리빨리 하지 언제 전도하겠어요? (웃음) 자 웃읍시다. 앞으로 좀 웃고 지내자는 말입니다.
자 또 심각한 얘기를 해야 되겠어요. 이 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나만큼 알 사람이 없지요. (컵에 있는 물 마시심) 왼손으로 먹어 실례지만 여러분은 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맛 좋구만요. 여러분이 이렇게 얘기하면 상당히 찬동할 것입니다. 이렇게 웃고 저렇게 웃고 세상만사 돌아가다 보니 여기에서 쓱 저기에서 쓱 정말 세상사가 지겹거든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만은 여러분이 확실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의 자리 이상 더 좋은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가운데 어떤 종교가 제일이냐? 불교가 좋아요? 유교가 좋아요? 그것을 가려서 선택해야 될 것 아니예요? 본래 한국은 유교에 가깝지요. 선생님도 유교의 논어 맹자 다 읽어 보았어요. 유교에서는 위선자(爲善者)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하늘이 화를 내린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그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도 보세요. 맨 처음에 뭐냐? 군신유의(君臣有義), 그다음에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부부유별(夫婦有別) 해서 전부 있는데 하늘은 없습니다. 하늘이 있어요? 「없습니다」 `하늘'이 막연은 하지만…. 가정을 중심삼은 인륜도덕의 기준이 삼강오륜이라고 했어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중심삼은 관계를 맺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류의 운명과 하늘의 운명과 더불어 박자를 맞출 수 있는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다는 거예요. 불교를 보더라도 하나님, 즉 신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無)가 유(有)요, 유(有)가 무(無)라는 것입니다. 모든 법은 전부 다 무(無)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 제시에 막연해요.
마호멧트도 하나님에 대한 그런 심각한 내용을 옳게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대한 내용을 개척해 나오신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편에 가깝다고 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 즉 예수쟁이들이 믿는 예수라는 양반이 어찌하여 역사적인 문제거리가 되었느냐? 순교와 시련의 역사 가운데에서 그렇게 핍박하고 때려죽여서 망하게 하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떻게 오늘날까지 남고 남아서 민주세계를 기독교 사상권내에 흡수시켜 새로운 기독교 세계를 창건하게 되었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이끄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를 보아도 그 시대에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서 형편없는 따라지로 죽었습니다. 따라지로 죽은 것입니다, 따라지로. 그를 따르던 제자가 그를 팔아먹었습니다. 믿는다고 따르던 제자들이 전부다 도망가 다 잡혀 죽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를 중심한 기독교가 어찌하여 세계를 정복할 수 있게 되었느냐? 거기에는 필시 인간의 힘이 아닌 절대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그 내용을 가진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그러니 데데하게 종교를 함부로 믿으면 안됩니다.
참된 종교는 뭐냐? 참된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종교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은 어디에서 안식하기를 원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자리와 동등한 자리가 없고, 그 이상의 주관권을 가진 자리가 없습니다. 거기가 최고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가르쳐 줘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 이거 똑똑히 보십시오(판서하심). 이게 뭡니까? 이게 뭐예요?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 이것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지요? 이 천지간에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이 있었어요? 있었느냐 말입니다.
지남철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그 경계선을 넘어 자력이 미치는 범위 속에 들어갔다고 할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때는 가지 말라고 해도 붙겠어요, 안 붙겠어요? 그저 어떻게라도 붙으려고 합니다. 가운데에 무엇이 있어서 이마가 깨지고 코가 터져도 마구 부딪힙니다. 황소의 힘이 아무리 세다고 하더라도 더 큰 힘에는 질 수밖에 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달라붙은 것은 떼어내려면 자기력보다 힘이 작아 가지고 뗄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힘이 더 커야 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타락한 세상에서 사랑의 인연을 맺어 나 아니면 너 죽고 너 아니면 나죽는다고 하는 처녀 총각이 있을 때, 그 부모들이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 한다고 해서 떼어집니까? 진구렁텅이에 빠져 될 대로 다 됐는데 뗄 수 있어요? 떼어내는 것은 죽으라는 것이 됩니다. 떼어내면 파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기어이 떼어놓으려고 하게 되면 둘이 헤어지게 될까봐 밧줄로 꽁꽁 묶어서 죽어도 같이 죽자고 뒹굴게 됩니다. 그 힘이 지남철보다 강할까요, 약할까요? 「강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지남철같이 플러스 마이너스가 달라 붙었을 때 세상에서 그것을 뗄 힘이 있겠습니까?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습니다」 있다면 하나님은 이상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것이 이상의 최고봉이기 때문에 이 사랑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최고의 절대적인 힘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나님도 거기에서 안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남철과 같이 딱 달라붙었다면 그것을 뗄 자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천지가 생겨난 이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런 작용이 벌어졌다면, 그러한 사랑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딱 달라붙었더라면 누가 그런 인간을 타락시키고 누가 그러한 사랑을 빼앗아갈 수 있었겠어요? 누구도 손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뭘 찾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양반은 목수인 요셉의 집에서 더벅머리 총각으로 지내다가 당시 어부들이나 데리고 다니고, 막달라 마리아 집이나 왔다갔다했습니다. 마치 동네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패처럼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습니다. 뭐 대학교를 나왔나? 뭘 했나? 그때는 대학교도 없었지요? 좌우지간 공부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까뀌질이나 하고 대패질이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사나이가 밑천이 뭐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하는 투가 참 멋지다는 것입니다. `야, 천지간에 있어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지요? 그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그때까지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챔피언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음에는 그것만 가지고는 마음이 차지가 않았는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생자가 뭘 하는 것이 독생자입니까? 차생자라는 말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독생자라는 말, 그것 처음 듣는 말인데 대관절 무슨 말이냐? 이거 쓸데없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독생자란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자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이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독생자의 권한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원동력이요, 인류의 행복의 기원이며, 사람의 머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자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고 그가 생각한 그 기준만은 천운이 부응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첫아들 낳으면 사랑합니까? 첫딸이 좋습니까? 첫아들이 좋습니까? 「첫딸이요」 뭐라구요? 「아들이요」 나는 모르겠습니다. 첫아들이 좋지요? 첫아들 좋아하는 것 누구한테 배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성경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누구를 먼저 지었습니까? 아담을 먼저 지었습니다. 전우주가 심정을 기울여서 아담을 먼저 지었을 것입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도 하나님을 닮아서 맏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딸을 안 좋아하고 아들을 낳겠다고 하는구만요. 남자는 여자한테 원수가 아닙니까? 딸이 좋지. 딸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아들이 좋아요? 「아들이요」 이렇게 눈을 부릅떠도 아들이라고 하는구만요. 이거 왜 그러느냐? 천지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남자들, 결혼해서 무엇부터 낳겠습니까? 딸부터 낳으면 기분 잡치거든요. (웃음) 물어 볼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아들이지요. 안 그렇다면 가짜입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러느냐? 하나님을 닮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을 때 누구를 먼저 지었느냐 하면 아들부터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딸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들을 먼저 짓고, 딸을 덜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 지으신 것입니다. (웃음) 그래도 좋습니까? (웃음) 이렇게 가르쳐 주며 그렇게 알아야지 별 수 있습니까? 천지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여자가 태어나서 하나님을 타고 앉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거라도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남자한테 구박받더라도 고맙게 살라는 말입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4천년 만에 이 천지간에 누가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독생자가 태어났습니다. 좋은 소식입니까, 나쁜 소식입니까? 「좋은 소식입니다」 복된 소식입니까, 악한 소식입니까? 「복된 소식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복음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리입니다. 무슨 복된 소리냐? 그때까지 하나님의 독생자가 나오지 못해서 인류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이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한 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인 남성이 나왔으므로 그 이상 복된 소리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기독교에서 쓰지요? 복음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만일에 독생자가 안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큰일나지요. 역사상에 그런 말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거늘, 온 인류가 그의 편이 되어야 하고, 천지도 그의 편이 되어야 하며, 창조의 주인도 그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길을 막으면 막는 자가 망하고 환영하는 자는 흥하게 됩니다. 미국 같은 나라가 그래서 흥한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교회를 지어 놓고, 학교를 짓고, 그 다음에 자기들의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흥한 거예요.
독생자가 나왔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자들도 독생자가 나왔다니 기분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만일 독생녀가 나왔다면 남자들은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자인 독생자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역사는 남자가 엮어 나온 것입니다.
독생자가 왔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 합니까? 「독생녀가 와야 합니다」 이 대답은 여자가 해야지요. 기분 나쁘게 왜 남자가 대답합니까? 같은 값이면 여자가 대답해야 기분 좋지요. (웃음) 독생자가 있으면 독생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독생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여자가 대답하니 좋잖아요. 또 독생녀가 있으면 무엇이 있어야 돼요? 「독생남이 있어야 합니다」 대답을 잘하는 것 보니 그것이 좋은 모양이구만요.
자, 그러면 독생녀 났다는 말 들어 봤어요? 「못 들어 봤습니다」 나오긴 나와야 되는데요? 「예」 이것이 천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자신에게도 독생남이 있으면 딸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들만 낳은 사람은 어때요? 「딸 낳고 싶어요」 그래요. 그래. (웃음) 그런데 넌(대답한 아가씨에게) 낳아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나? 참 진보적인 여성이로구나. 자, 그런데 독생녀가 안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천년 만년 살겠습니까? 혼자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요. 독생남으로 왔으면 독생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얘기, 꿈 같은 얘기인데 사실이니까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 이 복음은 그만두고 무엇이 문제라고요? 이게 뭡니까? (판서하심) 가정이지요? 가정도 그냥 가정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래 여기 남자들 독생남이 됐어요, 안 됐어요? 그러면 무슨 남입니까? 「장남입니다」 (웃음) 대답을 한번 들어 봅시다. 독생남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독생남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독생남이 되겠습니까?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꺼덕꺼덕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 가정은 좋은 곳입니다. 왜 좋으냐?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누나 오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동생이 있어서 좋은 곳이며, 친척이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향 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고향을 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입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면서 대한민국에 살고 싶어하면서 또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어디냐? 고향입니다. 고향. 고향이예요.
고향은 어떤 곳이냐? 내 심정을 사방으로, 입체적으로 몽땅 끌어 올려 놓는 곳입니다. 그 심정은 무엇이냐? 사랑으로 얽어매는 것입니다. 위로는 어머니 아버지가 얽어 매고, 좌우로는 부부의 인연이 얽어 매고, 아래로는 아들딸, 친척이 입체적인 사랑으로 꽁꽁 얽어매고 있는 곳이 본향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은 행복의 기점을 최고로 바라보기 때문에 본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향은 어디일 것이냐? 이 지구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향 땅은 어디일 것이냐? 이거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이 땅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점을 반드시 마련하였을 것인데 그 기점이 어디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 기점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 나오셨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가정을 마련할 수 있는 본향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곳은 어디일 것이냐? 딴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짜 아버지로 아는 아들이 있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 독생자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그러한 딸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딸이 결혼을 해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곳이 있었습니까?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없구만요. 없다는 것은 선생님 말씀이 다 맞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있어서 사랑의 주인이라면 그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가정이 이 지상에 있어야 할 것인데 그 하나님의 본향 땅은 지상의 어디일 것이냐? 인간의 고향은 다 있는데 하나님의 본향은 어디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고향을 갖고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본향은 어디이겠는가? 하나님의 본향 땅이 있으면 그 본향으로부터 본향의 족속이 벌어지고 그 족속으로부터 민족이 벌어지고, 그 민족으로부터 국가와 세계가 벌어지고 그럼으로써 지상에 천국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구성에 그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가고 싶습니다」 지지리 못난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가 사는 고향도 가고 싶어하는 인간인데 하나님의 본향을 안 가고 싶겠어요? 하나님의 본향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고향인데 안 가고 싶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친척 나부랭이가 살고 있는 곳입니까? 인류가 소망하고 하나님이 소망하는 곳이며, 천지가 화합하여 만 우주의 만존재가 행복하고 기쁘다고 할 수 있는 곳, 하나님이 춤출 수 있는 동시에 만 우주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춤출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을 맞이할 본향이 나왔더라면 오늘날 이 세계는 불행의 세계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랑의 원칙에 있어서, 강력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한 아들딸, 즉 독생자 독생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핏줄을 받고 태어난 아들딸들이 오늘날처럼 마음과 몸이 싸우는 패들이 되었겠어요? 이러한 문제를 얘기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하여튼 종교중의 종교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들을 가리켜 독생자라 하는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평화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그에게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실권이 있어서 그것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가정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가정이 모여져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몸과 마음이 싸움하는 패들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아무리 죽음의 고비가 오더라도 천도를 버리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독생자가 몸과 마음이 하나된 독생녀를 맞이해서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정을 만들기 전에는 세계를 복귀하더라도 그것을 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가정이 뭐냐 하면 핏줄이 연결된 것입니다. 민족 전체가 핏줄로 연결되면 동족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은 핏줄이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까?7억이라는 사람이 모두 같은 핏줄을 가졌습니까? 「안 가졌습니다」 중국 백성은 같은 핏줄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때요? 우리 대한민국은 배달민족으로서 핏줄이 다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 중의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이 기독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무엇을 구성하려고 했느냐 하면 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어떤 종교도 이 이상의 종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갖고 있고 또 가르쳐 준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종교는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적 인연을 맺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후 로마제국을 굴복시켜 가지고 온 천하를 통일하려던 것이 다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의 반대를 받아 교회도 잃어버리고, 세례 요한과 친척들의 반대를 받아 세례 요한과 친척도 잃어버리고, 요셉 가정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못난 어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것들을 다시 수습하려고 했으나 또 다시 실패하여 몰리고 몰리다가 할 수 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원으로 남긴 것이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어 가면서 다시 온다고 한 것입니다. 다시 와 가지고는 뭘 할 것이냐? 예수님이 말하기를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가정적 요건을 완전히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을 수 있는 것은 기독교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할 때 신랑은 독생남이요, 신부는 독생녀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 가운데서 남자들도 신부냐? 남자가 어떻게 신부가 될 수 있어요? 남자는 종새끼입니다. 종새끼. 여자는 신부구요. 그러나 남자가 높습니까, 여자가 높습니까? 여자가 높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70년대부터 여자가 높아진 것입니다. 미스터 유니버스라는 말 들어 봤습니까? 지지리도 못난 사내 녀석들입니다. 미스터 코리아라는 말 들어 봤습니까? 「못 들어 봤습니다」 앞으로는 나올 것입니다. 그럼 미스 코리아라는 말은 들어 봤어요? 「예」 미스월드라는 말은요? 「들어 봤습니다」 그러면 미스터 코리아 말고, 미스터 하늘땅이 온다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앞으로 미스터 헤븐 앤드 어쓰(Mr. Heaven and Earth)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신랑 되시는 독생남입니다. 신랑 되시는 독생남이 재 행차하는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독생남이 재행차하는 날이 재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종교인 기독교가 고대하는 것이 세계적인 미스터입니다.
세계적인 미스터 하늘땅이 오면 여러분은 뭐가 됩니까? 남자들은 뭐가 돼요? 「미스터 남이 됩니다」 미스터 남은 그냥 안 됩니다. 여자를 따라가서 여자한테 머리 숙이고 복종해야 미스터 남이 될 수 있습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 무엇을 잃어버렸으면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자리로 돌아가야 됩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복귀라고 합니다. 복귀. 인류 역사는 복귀역사라고 하지요?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구원은 뭐냐? 구원도 역시 복귀와 같은 말입니다. 물에 빠졌으면 빠지지 않았던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찾아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사람이 맨 처음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타락을 한 사람이 했습니까, 두 사람이 했습니까? 「두 사람이 했습니다」 타락을 하는 데는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 먼저 타락했습니까? 여자가 먼저 타락했지요? 여자가 먼저 병이 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병났습니까? 「남자입니다」
그럼 요것을 다시 복귀하려면, 찾으려면 누구부터 찾아야 되겠어요? 여자부터 찾아야 합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여자가 먼저 타락했으니 여자부터 구한 다음에 남자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어떻게 타락했습니까? 여자 궁둥이를 따라가다가 타락했지요? 「예」 해와가 선악과를 줘서 아담이 그걸 먹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병이 나은 후에 여자를 통해 가지고 수술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까지가 그것을 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70년대까지는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뺨을 갈겨도 흉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여자쪽에다 그렇게 했다가는 대번에 걸리지요. 대한민국에서도 옛날에 치맛바람이라는 말 들어 봤지요? 「예」
남자가 출세하려면 여자가 잘나야 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지금 시대는 여자가 운을 탈 때입니다. 불쌍한 여자들이 좋아할 때가 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이치적으로 밝혀 주기 때문에 여자들이 좋아하나 봐요.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여자들을 앞에 내세워 가지고 성공할 사람입니다. 기분 나빠요? 지금까지는 여자들이 남자들, 즉 영웅열사들을 녹여 먹었지만, 앞으로 통일교회 문선생을 출세시키는 데는 여자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싸움도 여자가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개척을 누가 했습니까? 여자가 했어요, 남자가 했어요? 여자가 했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만 봐도 그래요. 거의 다 여자잖아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삼팔선을 사수하는 데도 남자는 이선에 서고, 여자는 일선에 서서 인민군을 무찔러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통일은 문제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여군이 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군 사령관이 될께요. 죽더라도 한번 해봅시다. 죽더라도 선생님이 하자고 하면 할 것입니다. 죽더라도 선생님과 함께 죽자고 하면 다 따라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정말 그래요? 「예」 아이고 모르겠구만요. (웃음) 정말 그랬다간 큰일 나게요?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누가 숭상하느냐 하면 여자들입니다.
남자라는 것들은 껄렁패들입니다. 남자라는 것들은 믿는 데 있어서도 껄렁패예요. 교회에 갈 시간에도 괜히 술집에 가서 여자 방에나 쓰윽 들어가고 싶어하고 말이예요. 늘 껄렁패들이예요. 정성은 누가 들입니까? 여자가 들입니다. 왜? 타락을 여자가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사랑을 여자가 꺾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자가 유린당해 나온 것입니다. 무너진 사랑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여자가 희생하면서 죽음의 길을 거쳐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러지만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여자의 절개를 강조했지만 앞으로는 남자의 절개가 더 중요시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이상시대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남자는 우주의 대표이고 하나님 대신이기 때문에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여자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동서남북 어디 있든 문제가 안 됩니다. 여자의 절개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앞으로 남자의 절개를 절대적으로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이 버릇이 없어졌다고 소문이 날 것입니다. 남자가 어디 가서 한 달을 있다가 와도 여자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세상 여자들 같으면 남자가 한 시간만 어디 갔다 오면 어디 갔다 왔느냐고 거기 한번 가보자고 하면서 울며불며 난리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여자들은 아침인데도 잘 자고, 저녁에도 잘 자고, 먹어도 잘고 안 먹어도 잡니다. 팔자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심술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위를 얻으려면 통일교회 사위를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속이 복잡하므로 그런 사위 얻고 싶다고 해서 누구든지 얻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통일교회 가정은 참 멋집니다. 그 가정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정말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로서 통일교회 남자한테 시집 가는 날에는 천년 한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보십시오. 결혼한 그날부터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뜻을 따라 각각 다른 임지로 나갑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살리고 난 후에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리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남자는 저 남쪽에 있고 남해로 가고, 여자는 북쪽에 있는 철원으로 갑니다. 그래 가지고는 몇 개월이 되어도 여자도 남자도 편지 한장 안 합니다. 그러고도 `나 색시 있고, 나 신랑 있소!'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무슨 부부가 그래요? 일년 열두달 동안 편지 한장 안 하는 부부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만나면 그저 누구보다 반갑다는 것입니다.
전도하기에 바쁜데 언제 편지 쓸 시간이 있습니까? 그렇지요? 전도할 때는 누가 알아 주지도 않습니다. 동네방네 찾아 돌아다녀야 되는데 언제 편지 쓸 새가 있겠습니까? 책임 완수가 문제인데 말예요. 가정완수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년 열두달이 다 가도 편지 한 장 안 하는데 이 여편네들은 꿈 가운데서라도 조금도 의심하는 것 없이 잠만 쿨쿨 잘 잡니다. 그것이 잘 된 거예요, 못 된 거예요? 「잘 된 것입니다」 왜 여자가 잘 되었는데 남자가 대답을 해요? (웃음) 여자가 잘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전에 선생님이 지방에 순회하는데 남자들이 통일교회 여자들은 뻣뻣해 가지고 애교가 없어 같이 살 맛이 안 난다고들 합니다. 남편이 어디에 갔다 오더라도 `얘, 너의 아버지 온다. 나가봐라' 한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방에 떡 앉아 있다가 남편이 방에 들어오면 `이제 왔어요?' 하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색시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요? 나도 못 데리고 살겠어요? 그런 것 보면 통일교회 남자들이 불쌍합니다.
세상 여자들 사는 것을 한번 봅시다. 요전에 광주에 갔더니 그 광주 지구장 부인이 이야기를 해줍디다. 어떤 부잣집 아주머니가 매달 월급 주듯이 흥신소에 돈을 3만 5천원씩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왜 주느냐? 하면 자기 남편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이 오늘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고 어느 다방에서 어떤 여자와 만나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을 조사하는 조사비가 매달 남편 모르게 3만 5천원씩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 밤이나 낮이나 돌아다니다가 배통을 내밀고 들어옵니다. 여자는 벌써 다 알고 앉아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입을 요렇게 쭈욱 내밀고 있겠지요(웃음). 남편이 들어오는 꼴도 보기 싫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밥을 달라고 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밥을 던지고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남편은 왜 그러는지 모르지요. 그렇다고 아는 척을 하면 남편이 어디에서 알았느냐고 목을 조르게 되면 흥신소에 갔다는 말을 할 수도 없으니 자기 혼자 끙끙 앓는 거지요. 알긴 다 아는데 말할 수도 없으니 더 죽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 조사를 시작한 뒤부터는 뼈만 남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알고 말 못하면 뭘 하느냐 말입니다. 그런 여자는 그래도 쌉니다.
그래서 내가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돈을 참 많이 버는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부자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이 천쌍 이상인데 그런 여자들만 천 쌍이 되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한 사람이 한 달에 3만 5천원씩 들어가니 천 쌍이면 3천 5백만 원이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한 달에 3천 5백만 원을 버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너무나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여기 아가씨들, 얼굴 좀 봅시다. 이 아가씨들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멋대로 생겼는데 남자들이 그 얼굴을 일생 동안 들여다 보고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용합니다. 어디 뜯어 보십시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지. 생긴 것이라도 그린 듯 고우면 모르겠는데 허투루 깎은 배나무 목침같이, 기왓골에 있는 호박통같이 되는 대로 생겨 가지고, 또 배포는 세어 가지고 남자를 우습게 알거든요. 그것은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말로 하면 나쁜 것 같지만 내용을 두고 보면 아주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남의 아들딸 데려다가 합동결혼을 시키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에게 문의하거나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왜? 당당하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통일교회에 다닌다고 매질하고 쫓아 내놓고는 이제 와서 뭐 결혼식에 오겠다고 할 수 있어요? 오기만 해라 이겁니다. 용서없이 몰아칠 테니.
선생님이 여기서 권위를 갖고 당당히 결혼시켜 주는데 자기 아들딸 취급할 수 있어요? 그리고는 `당신의 아들딸 아무개가 여기서 결혼을 하게 됐다'고 청첩장을 보냅니다. 그러면 그 부모들은 자기가 한 짓들은 생각지도 않고 `내 아들딸을 데려다가 누가 청첩장을 보내다니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난리입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결혼식에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의 머리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반대하는 부모들은 기분이 나쁘니까 환영할 수 있는 부모를 보여 주어야 되겠기에, 맨 처음 결혼 때는 흰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식장에 입장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부모들도 입장하려면 흰옷을 입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문전에서는 철옹성같이 파수를 보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이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면 목이 떨어져도 안 들여보내게 되어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내 아들딸 장가가고 시집가는데 누가 감히 흰옷을 입고 오라고 하느냐? 기분 나쁘게. 양복 입고 간다' 합니다. 하지만 와 보라는 것입니다. 안 들여보내거든요. (웃음) 그러면 문전에서 들어가야 겠다, 못 들어간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경찰과 짜놓고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못할 일은 안 합니다.
그러니 들어오려면 규칙에 따라야지 별 수 있어요? 할 수 없이 우리교회 식구 붙들고 `예복 하나 빌려다우'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못 들어오니까요. 그렇다고 거기에서 자기 마음대로 파투를 놓아서 자기 자식이 다시 합동 결혼을 하려면 일년 반에서 삼년 육개월 이상 기다려야 되니 어쩝니까? 잘못했다고 사정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니 불쌍해서, 그 딸을 봐서 옷을 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양복 위에다 예복을 입고 새까만 구두를 신고 들어옵니다. 조건적인 사탄 마귀가 들어온 셈이지요.
그래 가지고 떡 앉아 있는데 그렇다고 쫓아낼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여 예식을 마치고 자기 딸이 생전 보지도 못한 사내하고 팔짱을 끼고 나오니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어요? 그렇지만 나쁘면 어떡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미 결정은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그래 봐야 부모로서 한 것이 무엇이 있어요? 반대하고 쫓아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나이가 많으면 시집을 보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 딸이 주례 앞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욕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도 자기는 사회의 유지인데, 그리고 도에서도 교육자로서 굴지의 자리가 잡혀 있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게 되면 법에 걸릴 것이고 그저 날 쳐다보고 덜덜 떨고 있습니다. 내가 단상에 서서도 다 알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 봤자 나는 내 할 일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마에 레테르를 붙여서 결혼을 떡 선포해 버리니 별 수 있어요? 그날 아침에 와 가지고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3년 이내에 `통일교회 선생님이 합동결혼은 잘못했지만 우리 사위만은 잘 얻어 주었다'고 그 사람의 입으로 말하지 않나 보자는 거예요. 요전에도 그런 사람이 사위 자랑을 하고 있더구만요.
통일교회의 남자들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억천만 재산을 팔아도 못 구합니다. 팔도강산을 다 돌아다녀도 아니팔도강산은 좁기나 하지요세계를 다 돌아다녀도 우리 통일교회 남자들 같은 사람은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교장인 그 양반이 자기 사위 자랑을 하려고 환갑날이라든가 자기 부인이 죽은 날에도 사위를 찾는다는 거예요. 딸은 안 와도 사위는 꼭 오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엔 그 영감이 사위를 보고 `자네 통일교회에서 학교를 안 세우나? 내가 잘 해줄 텐데'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데에 선두에 섰던 그 가정의 사람들이 전부 통일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통일교인이 아닌 며느리, 사위를 얻어 보니 그런 사람이 없거든요. 세상에 통일교인 같은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람을 자기 집안에 맞이하게 해주었으니 그 이상의 은인이 어디 있어요?
남자들 섭섭하겠지만 끝날에는 남자가 여자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가야 됩니다. 여자가 먼저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원칙에 의해서 여자가 먼저 구원받아서 남자가 타락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반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러한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복귀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지나가게 되면 앞으로 남자들이 동맹파업을 해 가지고 여자 추방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끝장이 되는 것입니다. 동맹파업을 내가 시키기만 하면 끝장이 난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둘이서 타락했기 때문에 둘이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을 중심한 아들딸을 복귀하고 신랑신부를 복귀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만민을 복귀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 66권은 모두 여기에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쟁이라 해서 기분 나빠해도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천지가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는 무슨 종교? 「기독교요」 듣고 보니 기독교가 그럴 만하지요?「예」
그러면 종교 중의 제일 되는 종교인 이 기독교의 주인이 누구냐? 예수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대관절 누구냐?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자리를 찾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예수가 필요합니까? 타락하지 않았으면 예수가 필요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가 어떻고 천지창조할 때부터 어떻고 하면서 말들은 잘 하는데 내가 몇 가지만 물어보면 어물어물 대답도 못합니다. 인간의 진리는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념이 되려면 사실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 가지고는 안 돼요.
아담 해와가 인류의 참조상이 되었으면 구주도 필요 없고 종교도 필요 없습니다. 종교가 필요 없는데 악이 성립하겠어요? 종교가 필요없는 세계라면 선한 세계입니까, 악한 세계입니까? 「선한 세계입니다」 선한 세계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지상에 그런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데 지상에 그런 세계가 이루어져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싸우는 판을 좋아해요, 하나 된 곳을 좋아해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지금 싸우잖아요. 하나가 못 되고 싸우고 있잖아요.
타락이 뭐냐?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부모가 못 되고 악부모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악부모의 혈통을 전부 지워 버리고 참부모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태어나고 보니 돌감람나무로 태어났습니다. 이 돌감나무를 그냥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할 것인데 돌감람나무가 되었으니 이걸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교리 가운데 접붙이는 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접붙이는 종교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성경 로마서 11장을 보면 접붙임의 종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중생의 종교입니다. 중생은 거듭난다는 것으로 재생과 마찬가지의 뜻입니다. 부활이란 다시 살아나다는 것을 말하지요. 이런 말들이 왜 나왔느냐? 인간이 잘못 태어났기에 참부모와 인연을 맺어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하늘로 돌아가는 데에 있어서 그릇된 사실을 시정하기 위해 이러한 절대적인 요건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없다면 그 성경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성립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전부다 이러한 내용과 부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배후에서 보호하시기 때문에 예수는 죽었지만 오늘날 기독교는 아무리 목을 잘라 죽이더라도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종교 중에서 제일 가는 종교가 뭐냐? 기독교입니다. 온갖 박해와 순교를 당했어도 인류를 사탄세계로부터 부활, 재생, 중생, 소생시켜서 참부모의 자리까지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으므로, 참가정, 인류의 본향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만민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냐?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의 조상 아담이 독생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여 죽어 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무엇이냐? 독생녀였습니다. 이 아담과 해와가 사춘기를 지나 가지고 성숙하여서 인생의 봄절기를 맞이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결혼시켜 주셨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며 결혼식 해줄 것을 생각하면 기분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좋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결혼식을 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해주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어린양 잔치라는 명사를 세운 것입니다. 성경 묵시록 맨 나중에 보면 어린양 잔치가 나옵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 잔치가 뭐냐? 6천년 전에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었어야 할 아담 해와가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을 해서 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역사적인 끝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신랑 신부를 세워 다시 결혼식을 해주는 잔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잔치가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잔치를 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참부모가 인류 앞에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왔기 때문에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유엔기구가 나와 가지고 세계가 달라지고 있어요. 1차 대전 후에는 전승국가가 패전국가를 마음대로 학대하고 마음대로 지배하였지만 2차 대전 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전승국가가 패전국을 전부다 해방해 주었어요. 이상하지요? 부모가 올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수많은 유엔 국가들은 전부다 형제입니다. 형제국가예요. 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모두 형제입니다. 병신이라도 형제입니다. 그러니 유엔을 중심삼고 전부가 일대일의 권위를 가지고 동등하게 한 집안의 형제와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평화의 기수로 누가 와야 하느냐? 부모가 와야 합니다. 참부모가 와야 됩니다.
오늘날 정치적인 입장에서의 제일 난문제가 무엇이냐?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부자 관계에 맞추어 결론을 지으며 다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힘든 고생을 시키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의 참된 기준은 참부모입니다. 그러니 참부모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참부모가 와서 이 세계의 사람을 전부다 하나의 심정 기준으로 일치시키고 악한 것과 선한 것을 가르쳐 주어 새로운 부모의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혈족을 이루고 세계의 새출발이 벌어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시는 주님은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 오시는 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입니다. 이래야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밤새껏 얘기해도 끝이 안 나겠습니다. 밤 새우고 내일 아침까지 얘기할까요? 「예」 출장소(화장실─편집자주) 안 갔다 와도 됩니까? 「예」 정말 괜찮아요? 「예」 그러면 또 해봅시다.
참부모 복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기를 오늘의 인류를 고아라고 했습니다. 나라도 주인없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이 나라에 주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나라도 백년 천년 갈 것이고 우리 민족은 천년 만년 살 것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언제 어떤 강도 녀석이 와서 타고 앉을지 모릅니다. 우리 나라도 믿을 수 없고 우리 가정도 언제 침해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가정도 믿을 수 없고 종족, 문화, 생활방식까지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어요. 그러므로 이곳은 평화의 기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것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것은 인간이 거짓 부모의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짓 부모의 핏줄을 잘라버리고 참부모의 핏줄에 접붙임을 받아서 새로운 천주의 가정으로 출발해야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나라의 주권자는 하나님이 되고,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그 족속은 하나님의 족속이 되고, 그 가정은 하나님의 가정이 됩니다.
이러한 절대자의 가정은 누가 찾아야 되느냐?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자그마치 그러한 가정이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칠 수가 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남녀 문제인데 그것의 원인이 되는 가정 파탄의 주체는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옥 중에도 제일 무서운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다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라고 해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통일교인들 시집 장가를 많이 보냈습니다. 이제 중매에는 신물이 났어요. 중매를 해주어 잘살면 자기들이 복이 많아서 잘산다고 하고 못살면 중매 못 해줘서 못산다고 합니다.
온 세계 인류가 희망하고 고대해야 할 것은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이며, 불교로 말하면 미륵불이요, 유교로 말하면 신공자요, 그외 정감록으로 말하면 정도령입니다. 다르게들 말하고 있지만 오는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이런 재림사상이 없는 종교는 종교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결국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거짓된, 잘못된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여러분 자체를 보게 되면 마음이 플러스이고, 몸뚱이는 마이너스입니다. 이것은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플러스끼리 만나게 되면 반발하게 됩니다. 영원히 반발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되려고 해도 하나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출발을 해서 지금 그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치료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곳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참된 종교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이 몸뚱이를 쳐서 굴복시키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거기에 반대되는 것은 모조리 다 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온유겸손하고 희생 봉사해라! 이것을 절대시하라고 합니다. 또 금식하라고 합니다. 몸뚱이를 때려잡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약하게 만들면 몸뚱이를 지배하기 힘들기 때문에 몸뚱이를 약하게 약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욕, 식욕, 물욕을 전부다 포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약하게 만들어서 마음이 지향하는 대로 끌려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은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몸과 마음이 일대일로 비슷비슷하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가 강하고 하나가 약하면 싸움도 안 합니다. 챔피언하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과 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쓰느냐? 금욕하는 것은 힘이 드니까 먹을 것을 먹고 할 일 다하면서 대신 정성을 들여서 `도통해라. 영통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통이라는 말 들어 보았지요? 도통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면 5배, 10배의 힘이 강하게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면 몸뚱이를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의 기원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 정성을 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마음에 반대되면 붙지를 않아요.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이 몸뚱이를 약하게 약하게 해서 죽여 가는 것이요, 또 한 가지 방법은 정성들여서 마음에 몇 배 이상 강한 하늘의 힘을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의 싸움을 정지시켜야 비로소 천국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고차적인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한 방법을 강력히 추진해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사명을 해야 합니다.
마음과 몸이 싸우는 패들에게 종교가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필요합니다」 덮어놓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얘기는 많지만, 시간도 많이 가고 그랬으니 결론을 지어 보겠습니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 본래 아담과 해와는 선의 부모가 될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악한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펴시어서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그들이 실수한 것을 복귀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부모가 실수한 것을 복귀시키기 위해 가인 아벨을 세운 것입니다. 가인은 형님이요, 아벨은 동생입니다.
복귀는 가정을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가정에서 타락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악과 따 먹은 것입니까? 가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했겠습니까? 선악과를 따 먹어서 원죄가 생겨요? 아버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죄라는데 선악과가 무엇이기에 천대만대 후손이 죄인이 됐겠습니까? 이것은 혈통적 관계입니다. 혈통적으로 죄의 뿌리를 심어 놓으면 유전 법칙에 의해 가지고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사랑 문제 뿐입니다. 그릇된 사랑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주관한다고 했지요? 사람은 천지창조의 법도에 의해 주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그 동네의 부잣집 딸이라도 그 동네의 껄렁껄렁한 망나니와 사랑관계를 맺었다고 하면 그 처녀는 그 망나니에게 주관당하게 됩니다. 누가 편들어 주겠어요? 해와의 타락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의 주인인데 그 종이 천사장입니다. 이 천사장이 후에 사탄이 되었지요? 이 종새끼가 주인의 딸을 겁탈한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말하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사랑의 장본인이시라면 사탄을 한번 용서해 주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은 왜 사탄을 용서하지 못하셨느냐? 사랑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수를 용서할 수있어요? 사랑의 원수 때문에 핏줄이 달라졌는데 용서할 수 있어요? 그 원수가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관계맺을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끊어 버렸는데 용서할 수 있어요?
사탄은 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간부(姦夫)입니다. 이런 말은 통일교회에서 처음 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이런 내용을 모르는 녀석들은 우리 이단이라고 합니다. 누가 이단인지는 두고 봐야 알지요. 간부 알지요? 「예」 이에 대해서 설명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구만요. 좌우지간 통일교회 문선생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역사가 거꿀잡이가 되었습니다. 본래는 형님이 하나님편으로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하나님편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동생은 뭐냐? 해와는 천사장과 사랑관계를 맺은 후에 천사장이 자기 남편이 아닌 것을 알고 아담을 꼬여 가지고 아담과 또 사랑 관계를 맺었습니다. 즉, 두 사랑의 관계를 해와가 맺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은 모두 아담의 아들이지만 해와가 사탄과 먼저 사랑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사탄도 사랑을 주관할 수 있는 법도에 의해 아담의 혈통을 자기의 혈통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뜻적으로나 본성적으로나, 그리고 창조의 법도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할 텐데 결과적으로 사탄의 아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을 하나는 하늘편이요, 하나는 사탄편으로 갈라 가지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사탄편에 세웠느냐? 장자를 사탄편에 세웠습니다. 왜? 장자는 사탄과의 첫사랑의 표시체이기 때문입니다. 해와는 첫사랑의 관계를 사탄과 맺고 그 다음에 아담과 사랑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원래 장성하면 자연히 사랑관계를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아담과 사랑 관계를 맺은 것도 타락의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거리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중심삼고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창조본성의 부모의 입장에서, 혹은 주인의 입장에서 해와와 사랑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랑의 주관권을 주장할 수 있는 천사장과 아담에게 사랑을 중심삼고 주장할 수 있는 주관권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두 아들을 세우신 거지요.
타락한 아담 해와 자체를 절반으로 가르면 죽으니까 두 아들을 낳게 하여 하나는 사탄이 갖게 하시고, 하나는 하나님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차자가 장자의 자리로 들어가고 장자가 차자의 자리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뒤넘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차자로 태어나서 장자가 되고 가인이 차자의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는 이렇게 거꿀잡이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는 혈통을 바꾸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를 보면 장자는 절대 축복을 못 받습니다. 왜냐하면 사탄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곡식을 드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쪼개서 피 흘리는 양을 드린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고 소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별의별 얘기들을 다 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자가 사탄편이라 해도 앞으로는 사탄편 전부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돌아가 완전히 굴복할 때는 사탄까지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인류역사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차자가 장자의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입니다. 천리로는 장자인 가인이 아벨인 동생을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했을망정 먼저 사랑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이기 때문에 동생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인 가인이 차자인 아벨을 쳐죽여도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천리로는 형이 동생을 칠 수는 있지만 동생은 형을 못 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는 형편인 악이 동생편인 선을 언제나 먼저 쳐 나왔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악이 하늘편인 선을 잘못 쳤을 때에는 사탄편으로부터 그에 대한 배상으로 몇백 배 몇천 배 더 빼앗아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해서 이 땅 위에 왔다간 성인 현철들은 어느 누구도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부다 몰리고 피 흘리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한 천배 만배의 배상으로 비로소 성현이라는 이름을 중심삼고 악한 사탄세계를 점령하면서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늘편인 기독교도 지금까지 사탄편을 치지 못하고 맞으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나온 것입니다.
역사과정을 통해서 보게 되면 언제나 먼저 친 쪽에서 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도 먼저 친 사탄편의 나라들이 망했고, 제2차 세계대전도 먼저 친 사탄편의 나라들이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공산세계도 민주세계를 먼저 치고 있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편이 어떻게 먼저 칠 수 있느냐? 그것은 사탄편이 형의 자리, 즉 장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한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유업을 직접 상속받을 수 있는 장자의 자리를 악이 점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편의 아들을 세워서 장자의 기준을 복귀함으로써 장자의 자리에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자리에 어떻게 올라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과 아벨은 형제입니다. 이 둘은 모두 아담의 아들입니다. 이 둘이 싸움을 하여 동생인 아벨은 형의 자리에 가고, 형인 가인은 동생의 자리에 가야 됩니다. 이것은 왜 그래야 하느냐 하면,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장자의 자리를 천사장에게 빼앗겼기에 이 자리를 복귀해야 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은 아담의 종이었기 때문에 아담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천사장이 굴복하지 않고 도리어 역주관한 것이 타락이므로 복귀하려면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제물을 조건삼아 사탄편인 가인을 하나님편인 아벨에게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굴복하지 않고 도리어 아벨을 때려 죽였기 때문에 천사장이 아담을 굴복시킨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풀이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또다시 악의 역사로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한 때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바뀌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가인과 아벨 때에 형제끼리 싸워 가지고 아벨이 장자의 자리를 복귀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장자의 자리를 복귀하기 위하여 가인과 아벨 대신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싸우는 거예요. 여기서 동생인 야곱이 형인 에서의 기업, 즉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에게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지요? 오늘날, 성경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지 모릅니다. 왜 하필이면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야곱이 축복을 받았는가 하는 내용을 모르거든요. 아담 가정에서 뒤집어진 천지 법도를 다시 뒤집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야곱의 마음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팥죽을 주고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고 얍복강가에서 천사까지도 굴복시켰기 때문에 비로소 천사장에게 굴복당했던 아담의 자리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천사장 대신 실체인 가인의 입장에 있는 에서는 야곱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죽이려 했던 에서가 야곱을 환영했기 때문에 여기서 비로소 장자의 기업이 바꾸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재미있는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인류의 타락의 기원이 사랑을 중심삼고 복중에서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차자인 야곱이 에서를 굴복하여 장자의 자리를 복귀했다 하더라도 복중에서의 복귀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쌍태로 태어나 복귀를 했다 하더라도 에서와 야곱은 성장하여 복귀됐기 때문에 태어나서 장성할 때까지의 기간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기간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시 복중에서부터 바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인 유다를 중심삼고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입니다.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날 때 맏아들인 세라의 손이 먼저 나와 산파가 그 세라의 손에 붉은 실을 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베레스가 복중에서 형을 밀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나옴으로써 비로소 더럽혀진 혈통으로 사탄세계에 태어나게된 장자의 근본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승리의 이스라엘이 되었기에 유다 지파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꿈같은 얘기인데 재미있지요?
결국은 더럽혀졌던 핏줄을 복귀하지 않고는 천륜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럽혀진 핏줄을 장자복귀를 통해서 복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중의 애기가 태어나도 사탄의 혈통권내에 그냥 그대로 있게 됩니다. 즉, 원죄를 지닌 아들이기 때문에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말의 역사를 통해서 사탄의 핏줄을 선의 핏줄로 교체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이 선의 혈통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가까운 시대를 지나 와 가지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승리의 기간, 복귀된 장자의 권한을 갖고 오신 인자이기 때문에 독생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따라서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로 태어난 예수님을 사탄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원죄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죄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죄가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니 원죄가 없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로소 독생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신학자들에게나 얘기해야 할 하늘나라의 비밀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껄렁껄렁한 목사들이 알게 뭐예요 그런데도 수박 겉핥기를 하는 자기들은 진짜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과 수많은 도주들을 놓고 보면, 일반 도주들은 사탄의 참소권내에서 참소받을 수 있는 입장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원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이렇게 얘기해야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기록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문 선생이 꾸며 가지고 성경에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의 이치가 이 속에서 다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볼때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부모가 복귀되지 않는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지요? 「예」
아담은 타락함으로 인해 선한 부모의 자리에서 악한 부모의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부모는 부모인데 악한 부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부모로 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즉, 선한 부모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악한 부모는 사탄편이요, 선한 부모는 하나님편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자리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담 가정에 있어서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 어느 쪽이 가인이며 어느 쪽이 아벨인가? 나라를 두고 보면 이스라엘이 아벨이요, 로마가 가인입니다. 본래 이스라엘나라와 예수님이 하나되었다면 로마를 40년 동안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죽은 예수님이 4백년 동안에 굴복시켰던 것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하나되었으면 40년 동안 완전히 굴복시켜 정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반대하면 유대교가 아벨이 되고, 이스라엘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대교가 반대하면 유대교가 가인이 되고, 예수님의 씨족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씨족도 반대함으로써 예수님의 씨족이 가인이 되고, 예수님의 가족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들 마저 반대했습니다. 다 반대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면 가인과 아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 가인과 아벨을 복귀하지 않고는 예수님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부모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원칙이기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모 형제 자매도 예수님을 버렸고, 또한 열두 제자 중 세 제자까지도 전부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예수님을 중심삼고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싸웠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입장이므로 예수님을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을 복귀하려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오른편 강도는 아벨의 입장이요, 왼편 강도는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있는 예수님을 놓고 싸우는 거예요. 즉, 부모의 자리를 복귀하느냐, 복귀하지 못하느냐? 이와 같은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왼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야 소문나서 떠들더니 손목에 못박히느냐? 나와 다른 것이 뭐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비난했지요? 그때 오른편 강도가 왼편 강도를 향해 `야, 이 녀석아 당연히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졌기에 그에 대한 보응으로 죽지만, 예수님은 행한 것이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꾸짖었습니다. 만약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여기에서 후퇴했으면 예수님은 부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적인 기반을 닦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른편 강도가 끝까지 예수님편에 서서 왼편 강도의 진영을 눌러 놨기 때문에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적인 편을 굴복시켰다는 조건을 세웠던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따라서 복귀했다는 조건은 세웠는데 이것은 영육을 중심삼은 복귀의 기반이 아니라 영적인 복귀의 기반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증거하는 오른편 강도의 훌륭한 믿음을 보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영적인 세계를 중심삼은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육을 중심삼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상낙원이 아니라 영계의 낙원을 중심삼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더라면 이 땅에서 기독교의 주권을 중심삼고 새로운 이상세계가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땅의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떠도는 구름과 같이 동에서 몰리면 서로 가고, 서에서 몰리면 동으로 가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나라 없는 백성으로 영적인 나라를 추구해 오기를 2천년, 그래서 여기에 민주세계를 발전시켜 가지고 그 기반을 대신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오른편 강도가 없었으면 예수님은 부활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 셋, 이 세 아들이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떨어졌기 때문에 아담 대신 부모의 입장으로 오신 예수님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세 아들이 하나 못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아 하나 만들지 않으면 부모의 자리를, 아담의 기준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지(死地)까지라도 하나되어 데리고 나아가야 할 예수님의 운명이기 때문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가서 밤을 새우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부모의 입장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누가 먼저 죽어야 되느냐 하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가 예수님보다 먼저 죽어야 됩니다. 예수님보다 그들이 먼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부활시킬 때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지상에서 사위기대가 이루어집니다.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권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시지 않고 이 땅 위에서 가정의 기반을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신부인 성신을 맞아야 합니다. 실체 성신을 맞이하게 되면 평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들딸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적으로 조건만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이와 같이 지상에서 완전 탕감의 기준을 못 세웠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은 승천하게 된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 대신이요, 여자는 땅 대신입니다. 그러면 성신은 무슨 신이냐? 어머니 신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참아버지요, 성신은 인류의 참어머니입니다. 따라서 성신이 실체를 쓰고 임해야 하는데 실체 되는 독생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체가 없는, 즉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 불 같은 성신, 기름 같은 성신, 그 본 성품만이 이 땅에 외서 영적으로 잉태하여 해산의 의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신에 감동을 받아 신랑을 사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공중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탄과 싸워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랑의 힘을 갖게 되면, 예수께서 거기에 임하여 하나됨으로 영적으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이 연결되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 없이는 생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데 별의별 얘기가 많습니다.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는 어떠한 분이냐? 타락한 아담은 1차 아담이요, 예수님은 2차 아담이요, 재림주는 3차 아담입니다. 이 3차 아담은 비로소 완전한 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기준을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부모의 자리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왼편 강도형으로 나온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없다. 기독교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라고 주장하는 공산세계입니다. 공산세계를 좌익이라고 하지요? 왜 좌익이라는 말이 나온지 알아요? 왼편 강도를 대신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알겠지요? 「예」 이것을 하나님 앞에 직고해야 합니다.
여러분 악한 사람들이나 도둑놈들이 어떻게 살아요? 숨어 살아요, 당당하게 살아요? 「숨어 삽니다」 그늘진 곳에서 숨어 살지요? 이들은 결국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른편 강도처럼 하나님을 증거해야 됩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흥한다는 것입니다. 즉 악은 망하는 것이요, 선은 흥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에 있어서 사탄은 악한 존재이므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는 천륜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절대자의 심판정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악하기 때문에 왼편입니다. 그래서 좌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빨갱이라고 합니다. 빨강색은 위험을 나타내는 색이죠? 「예」
그리고 오른편 강도를 대신해 나온 것이 민주세계입니다. 오른편 강도를 대신해 나왔기 때문에 민주세계를 우익이라고 합니다. 기를 보면 좌익인 공산세계는 적색기이고, 우익인 민주세계는 백색기입니다. 끝날에는 정체가 전부 다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체를 직고하는 증거의 시대입니다. 전부다 직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이 참부모를 중심삼고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실체적인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영적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체적으로 두 세계를 놓고 벌어지는 것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오른편 강도와 같이 공산당 앞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교파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해야 할 기독교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른편 강도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증거함으로써 그 순간에 예수님으로부터 `너는 나와 같이 낙원에 가리라' 하는 약속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계를 대표하고 기독교를 대표하여 끝까지 사탄세계인 공산당과 대결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너희들은 나와 함께 지상천국에 들어간다'고 공인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교파가 어디 있습니까?
민주세계의 주체국인 미국을 중심삼은 국가들이 하나님이 죽었다는 내용을 가지고 1967년도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것을 알고 있지요? 역사상에 한이 맺힐 일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죽었는데 부활할 수 있습니까? 3년 이내에 부활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죽었으니 살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역사를 누가 해야 하느냐? 이것은 오늘날 민주세계의 기독교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 세계적인 사상을 가진 공산주의를 능가할 수 있는 이론을 기독교는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능가할 수 있는 이론을 가진 통일교회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반공사상뿐만 아니라 승공사상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공산당을 이론으로 이겨야 합니다. 공산주의 이론은 이러이러한 것이 틀렸다고 비판을 할 뿐만이 아니라 대한 대안까지도 제시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전국적으로 통일교회가 승공사상을 가지고 선두에 선 것을 알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먼저 세계를 향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운세가 꺾여 망해 들어가는 최후의 고빗길에 부딪쳐 있습니다. 그런 운명길에 있어서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무신론 사상을 물리치고 민주세계를 하나님편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오른편 강도와 같은 사명을 누가 해야 한다구요?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 공산당이 괜히 나온 줄 아세요? 공산당이 나온 것을 볼 때 지금이 끝날이예요, 끝날.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이 공산당을 수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엄숙한 세계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아시아에 있는 공산당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주세계 전체가 공산당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중심삼고 고민하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한 대안을 들고 나올 때는 전세계가 우리의 품으로 안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현재 민주세계는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있지만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범벅이 된 기독교 사상 가지고는 공산당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사상만 한번 들으면 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서 어느 신학박사를 만나 30분만에 통곡이 나오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전부다 통일교회가 이단이라고 야단이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이제는 천륜을 배반하고, 천륜의 길을 막던 세력을 몰아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온 천주 앞에 천명의 대의를 받들어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1970년대까지는 우리의 사명을 촉구시켜야 할 시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산당을 한국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한국 역사는 세계 역사를 축소시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북과 이남을 중심삼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최일선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휴전선에 있는 판문점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토론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대립해 있는 문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적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능가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지고 휴전선을 밀고 넘어갈 수 있는, 기독교의 부패성을 막아 새로운 세계로 달려갈 수 있는 힘의 모체, 단결의 모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이름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새로운 이상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가는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경기도 깍정이들, 이 길을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겠습니다」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알았으면 가야지요.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과업과 사명을 성취하기를 하늘땅이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격 또 진격해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러면 이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양손을 들어 보세요? 내리십시오.
제1차 7년노정과 제2차 7년노정이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필히 알아야 합니다. 소생 장성 완성, 이 3단계 가운데 아담이 장성기 완성급에 이르러서 타락했으므로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이 기준까지 거쳐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었는가?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또 참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다음에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이 네 가지를 우리가 찾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인해 장성기 완성급에서 떨어져 타락한 인류의 조상이 되고 타락한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또한 만물도 타락권내에서 사무치는 한을 가진 만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사탄 주관권내에 들어갔기 때문에 전부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러한 것들을 복귀한 기준을 세운 때가 제1차 7년노정인 1960년도부터 1967년까지의 7년간입니다. 즉, 잃어버린 것을 복귀할 수 있는 기준에 올라섰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인해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복귀시대에 있어서 이런 날을 찾아 세워서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이 7년 기간 동안에 찾아 세워서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 내에 통일교회가 왜 반대하느냐 하면, 원리결과주관권내에 있어서의 소생 장성 완성 단계가 타락권내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핍박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간접주관권내에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로 들어갈 수 있으니, 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직접주관권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까지는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것을 원리적으로 풀어야 하지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7년 대환란이고 통일교회로 말하면 제1차 7년노정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하면 40세에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로마를 거쳐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데 33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남아있는 7년인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역사적인 한을 탕감하기 위해서 7년노정을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받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 그때가 재현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울하고 분통한 역사과정을 거쳐오는 것입니다.
이 때는 3개국의 핍박을 받아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일본, 공산당, 대한민국의 핍박을 받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원수들 앞에 핍박을 받아 나와야 되며 주권도 거쳐야 됩니다. 그래서 자유당 정부, 민주당 정부, 혁명 정부를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유당의 이승만 정권은 아담형이요, 민주당의 장면 정부는 해와형이요, 혁명정권은 천사장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형의 혁명정부가 통일교회를 협조했던 것은 원리적으로 보아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7년노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역사는 우연히 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전부다 천리원칙을 중심삼고 돌고 도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1차 7년노정을 거쳐 가지고 1968년 1월 1일에 무엇을 설정했습니까? `하나님의 날'을 설정했습니다. 인류와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가정을 찾아서, 1968년 초하루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날'을 설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 자리는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과는 관계없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천사장도 완전히 굴복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사탄편 장자의 기준을 탕감복귀하여 하나님편 장자의 기준을 세운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 자신도 완전히 굴복해야 될 때가 들어온 것입니다.
1967년까지는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 나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탕감복귀해 나오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자의 기준을 복귀한 입장이기 때문에 장자의 권한을 하나님편이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차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을 치게 되면 사탄까지도 복귀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사탄세계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녹음이 되지 않아 중략함)
1967년도까지는 여러분 가정의 식구들이 여러분을 환영하지 않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가정은 가인 입장이요, 여러분은 아벨 입장이니 아벨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장자권을 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입장인 여러분의 가정을 전도하려고 할 때 아벨의 입장인 여러분에게 굴복하게 되면 장자의 입장에 있는 자기의 복을 다 빼앗기게 되므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통일교회가 장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러 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복을 빼앗으려 하니까 반대했지만 이제는 복을 주려고 하니 반대하지 않는 때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을 부모들이 환영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1967년도까지 이 역사적인 한은 누구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느냐? 타락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 자신이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식들에게 넘겨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1967년도까지 탕감하는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2차 7년노정은 어떤 때이냐? 승리의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요셉가정, 세례 요한, 유대교,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복음을 전파할 때 배척받던 그 자리가 아니라 그들 전부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뭣이냐? 유대교를 대신한 통일교회이고 요셉가정을 대신한 통일교회 축복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통일교회에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열어 주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꿈같은 사실들이 여기서부터 풀려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967년도에서 1968년도로 넘어가는 때는 판이한 천지의 분기점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입장에 있느냐? 예수님은 성례, 즉 어린양 잔치를 하지 못하여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동안 고대하던 그 기준을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이 승리한 가정의 자리에서 종족 민족 국가를 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즉, 종족적인 메시아로서 사명을 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축복을 해주면서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라고 당부한 것도 이러한 원리적인 원칙에 의해서였던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현시점에 있어서 이런 엄청난 사명이 우리가 가는 길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에 없는 명절인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랑입니다. 이것을 풀려면 역사를 풀어야 되며, 이것을 증거하려면 사랑을 중심삼은 하늘 가정의 근본을 전부다 풀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이렇게 복된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의 시대는 참부모와 참자녀를 중심삼고 참가정을 이루게 되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는 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는 행복의 꽃이 필 것입니다. 이번에 세계 순회를 다녀온 것도 가정적인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복귀하지 못한 것을 세계적인 가정의 사위기대로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기반으로 미국 독일 일본을 중심삼은 평면적인 사위기대의 가정기준을 마련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인 메시아 이념의 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교회 이념은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렇게 엄청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오늘날 우리의 축복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받은 가정들 한번 손들어 봐요! 여러분은 이러한 엄청난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은 부모로서 자식을 품고 천법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아무리 괴롭고 여러분이 아무리 어려움에 부대끼며 살더라도 자식에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많은 자식을 거느려야 하는 어머니에게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울 때는 눈물이 나오고 괴로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이 나오려하고 괴롭더라도 자식이 엄마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때는 씻은 듯이 괴로왔던 일들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오냐' 하면서 어젯날 기뻐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지 못하면 자식을 교육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자식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세계의 어떤 왕궁의 왕이나 왕후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사이가 천하에 없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식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축복가정 여러분이 그런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어머니 아버지다' 라고 할 수 있도록 자식들의 골수에 그 전통을 심어 주어야 됩니다.
세상의 부모들을 보면 자식들이 그 옆에서 `엄마 아빠 왜 싸워! 왜 싸워!' 하는데도 난장판을 벌입니다. 그때에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란 자식들이 그런 세상의 모습을 보고 `과연 우리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이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하신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분은 자식들에게 본을 보여야 됩니다. 자식들의 뼛골에서 흘러나오는 심정을 통하여 동경을 받을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말없는 가운데 하늘의 가훈, 가법을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식들도 후대에 있어서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입장에 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을 무엇으로 세울 수 있느냐? 통일사상을 통해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통일사상 앞에 절대 복종할 수 있는 가정적인 교훈을 지금부터 세워 가야 되겠습니다. 자녀들이 이것을 알 때에 자연복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여러분은 가정의 본이 되어야 됩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던 가정의 길, 예수님을 중심삼고 소원의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하여 2천년 간 개척해 나왔던 한 맺힌 수난의 길이 있어야 했던 원인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가정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은 이 엄청난 복귀의 기준이 되는 것이요, 천지의 운명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제단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서 축복가정의 거룩함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한 남성이요, 땅을 대신한 여성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가 여기서 뒤넘이쳐 돌아가는 승패의 결정을 하여 영원한 승리의 기반을 하나님께 겸손히 바쳐 드릴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의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 후대에 하나님께서 찾아온 그 나라와 그 세계에 있어서 복을 받고 찬양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흘러간 역사의 날들이 어려움과 슬픔의 역사를 엮어 가는데 봉헌되어졌던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슬픈 날들을 가로막고 이 민족의 한을 여기서부터 풀겠다고, 세계적인 한의 근원을 찾아 여기서부터 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무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오나 그런 무리가 이 땅 위에 없었고, 나타날 수 있는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오늘날 통일의 무리들을 이 땅 위에 세워 주셨사오니 감사하옵니다. 대한민국 황폐한 이 땅에 저희들을 모아 주신 아버지의 크신 사랑 앞에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그 어떠한 핍박의 자리에서도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나왔나이다. 이제는 발전만을 저희들이 희망으로 바랄 수 있는 때가 왔고, 승리를 다짐하면서 내일의 기쁨을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는 때가 왔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의 배후에서 아버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진정 알 수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이 고생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를 알았고 아버님께서 저희들의 억울함과 분함보다 수천만 배 더한 억울함과 분함을 당하시면서도 참아 오셨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는 아들딸이 되어서 이 길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참고 참아 나왔사옵니다. 이제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할 시대의 한계점이 저희들에게 이른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아버님의 엄숙한 천명 앞에 좀더 온유겸손한 자세로써 자기의 전체를 아버님께 바쳐 드릴 수 있는 어린양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경기도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여기에 모이게 하였사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동안 그리워하고 사모하던 그 마음과 만나고 싶고 듣고 싶은 사연을 이 날 이 시간에 만나고 들을 수 있게 이 자리를 허락하여 주심을 아버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인간의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함이 아니요, 인간들이 좋아하는 어떤 조건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었사옵니다. 오직 아버님만이 여기에 임재하기를 원하오며, 아버님만이 거룩하시기를 원하는 것이 저희들의 일대 소원인 것을 당신은 잘 알게 계실 것이옵니다.
저희들은 눈물어린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참아 나오신 아버지를 훌륭히 모실 수 있는 효자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위로하기에 이미 생명을 각오한 몸들이기에, 아버지가 위로 받을 수 있다면 죽음의 고개라도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무리이옵니다. 그런 이들을 대견하게 생각하시어 이 민족, 이 나라를 복귀하는 데 선두에 내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고해 주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강하고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역사에 서려 있는 눈물을 걷어 치우고 역사적인 환경에 스며있는 모든 슬픔을 제거시킬 수 있는 하늘의 왕자와 왕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함께 모여 의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님께 맡기옵니다. 그때까지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또다시 저희들은 싸움의 길, 개척의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내일부터 저희들이 삼지사방에 흩어져 이 경기도 일대를 아버님의 뜻 앞에 복귀해야 할 천명을 받들고 가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가는 데 있어서 아버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으로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의 모습을 갈구하고 보고 싶어하며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 생명이 귀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의 생명이 귀한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남은 생명을 아버지 앞에 몽땅 바쳐 드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내적 외적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저희들이 생축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참된 종교란 어떤 종교인가?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를 주관하는 존재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자기가 만든 창작품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작품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좋아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당신의 창작품을 당신 이상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제일 사랑하실 것이요, 그 사람에게 모든 재산과 권력, 그리고 사랑까지도 온전히 상속하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 이상으로 사랑하고 아껴 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아들이며, 그 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은 하나님과 동등한 주관권을 갖습니다. 그러기에 에덴 동산의 아담, 즉 인류의 참아버지가 될 존재가 하나님과 동등권을 갖는 하나님의 실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아들의 종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의 종교가 제일 참된 종교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걸작품을 찾고자 하는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 그와 인연을 맺고자 하는 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기 위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부정하며, 새로운 인연을 중심삼고 과거의 인연을 부정하며, 새로운 가정,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중심삼고 이 세상을 부정하는 종교가 참종교인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는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으로 알려 주고, 부부의 사랑으로 알려 주고, 자녀의 사랑으로 알려 주는 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을 찾기 위해 세상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는 종교는 어떤 종교인가? 그것은 기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선포하셨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으니, 이는 도의 깊은 경지를 말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으며,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끝날에 만왕의 왕으로,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다시 오신다고 하신 것을 보면 기독교가 제일 참된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죄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참소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곧 사탄과 혈통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선악으로 인한 혈통적인 인연을 바꿔치기 하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상 첫번째로 섭리하신 흔적은 아담 가정에 있습니다. 선악이 혼혈된 입장에 있는 아담을 악의 혈통적 입장에 있는 가인과 선의 혈통적 입장에 있는 아벨로 분리하시어 혈통적 복귀섭리를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거기에서 아벨이 승리했다면 선의 혈통을 복귀한 입장이 되고, 그 터 위에 곧 메시아가 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승리함으로써 죄악의 혈통은 계속 번식해 내려온 것입니다.
두번째의 복귀섭리 흔적은 아브라함 가정에 있습니다. 이삭에게 쌍태를 주어 가인 입장인 에서와 아벨 입장인 야곱을 주시고 장자를 복귀하게 하는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21년간의 하란 광야생활을 마치고 얍복강가에서 영적 사탄 상징인 천사를 굴복시키고 고향으로 돌아와 육적 사탄 상징인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역사 이래 처음으로 장자를 복귀하여 승리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승리한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 하나님은 다시 쌍태를 주시어 복중에서부터 장자를 복귀하고자 하셨으니, 그것이 곧 베레스와 세라를 통한 복귀섭리입니다. 장자의 입장에 있는 세라를 밀치고 차자인 베레스가 먼저 태어남으로써, 혈통적으로 선한 입장에 있는 베레스가 악한 입장에 있는 세라를 굴복시켜 장자 입장을 복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승리한 선의 혈통을 통해 예수님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예수님을 탄생시키지 않은 것은 탕감기간 때문이며, 당시 사탄세계가 국가형을 이루고 있었기에 국가적 기준에서 복귀시키고자 그후 2천년이 지나서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선의 혈통이었던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의 성격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5일 동안에 만물의 창조를 마치시고 제6일에 인간을 지으신 후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조된 만물과 인간이 완성되었더라면, 제일 먼저 만물의 날, 그리고 자녀의 날, 그 자녀인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인류의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부모의 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날이 세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 모든 날들을 세우지 못하고 말았으니, 그런 날들을 찾기 위한 것이 복귀섭리인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제1차 7년노정을 정하고 잃어버린 날들을 복귀하였습니다. 1960년에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찾아 세우고, 1963년에 만물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이 끝나고 1968년 1월 1일에 비로소 하나님의 안식의 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가 제1차 7년노정이요, 부모의 노정이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부터 제2차 7년노정이 시작되었으니, 그때로부터 곧 자녀의 노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걸었던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믿음의 자녀를 복귀하여 부모의 축복을 받아야 되고, 만물의 축복까지 받아서 사명을 인계하고 안식의 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이 7년 동안에 못하면 21년으로 연장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날은 참부모님이 하나님의 실체로서 나타나시는 날이니, 인간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하나님의 실체를 입으신 부모님께 굴복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날을 세움으로써 천사가 아담에게 굴복하고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했다는 조건이 세워졌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은 복귀된 장자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기간입니다. 과거에는 차자의 입자에서 장자의 입장을 빼앗아야 했기에 핍박을 받았으나, 이제는 장자의 입장에서 복을 나눠 주는 입장이 되었으니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고 핍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불응하면 때려서라도 하늘의 자녀로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장자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1차 7년노정에서 부모님이 메시아의 사명으로 역사하신 것처럼, 제2차 7년노정에서는 여러분이 종족 복귀를 위한 메시아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아버님,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본향의 나라가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가 본향이라고 찬양하며 살고 있지만, 자손만대에 영원한 행복과 안식의 터전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가 없사옵고, 아버님이 영원히 안식하실 수 있노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이 땅 위에 없사옵니다.
아버님, 수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저희의 생활을 통해서,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여실히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고대하시고 찾아오신 본연의 나라와 본연의 세계가 당신이 수고하신 터전으로 남아 있사온데, 그 터전 위에 당신의 수고의 대가로 세우시려 한 한 중심, 온 역사와 더불어, 온 시대와 더불어, 또는 미래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너무도 부족한 수에 머물러 있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아옵나이다.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수천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선지선열들의 입을 통하여 증거하였으나, 이스라엘 국가는 예수님에게 비운의 한 날을 맞게 함으로 말미암아 흔적을 잃은 채 수많은 국가와 민족 앞에 몰리고 쫓기었습니다.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의 축복의 인연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제단을 묶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다시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도록 민족적인 해방은 받았사옵니다. 하오나 그 민족은 세계 앞에 아버지의 제단을 갖추어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사명은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현시대의 실정을 미루어 볼 때, 아버님의 섭리역사는 어떠한 자리, 어떠한 나라, 어떠한 사람들로 하여금 시작되며, 운행되고 종결지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이 땅 위의 수많은 민족을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가가 아닌 것을 당신의 심정의 역사를 통하여서 여실히 저희들은 알고 있나이다.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 비참한 역사 과정을 통하면서도 아버지를 향한 일편단심, 충성의 마음과 절개를 갖춘 민족, 당신을 위함에 있어서 불변의 모습을 갖춘 그런 민족, 시기와 환경은 변할지라도 아버지에 대한 충성만은 변하지 않는 그런 민족, 그런 나라가 아니고는 당신과 인류가 찾고 있는 이상의 민족과 나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아옵나이다.
제3이스라엘의 현현을 저희들은 말씀을 통하여 알았사옵고, 그 제3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역사적인 어떠한 위인보다도 시대적인 어떤 유명인보다도 귀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와 같은 가치를 뼈살에 사무치도록 알고, 아버지 앞에 그와 같은 자리를 찾아 드리기 위해 온갖 정성과 희생을 다하고,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이루기 위하여 충성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 저희들 다시 한번 반성해야만 되겠습니다.
여기에 외로이 모인 통일의 무리가 있사옵니다. 통일의 무리는 통일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끌림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이끌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무리입니다. 그리고 주관받아야 할 무리들이 아니라, 주관하여야 할 무리라는 것을 저희가 이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주관하는데 있어서는 원리 원칙을 떠나서는 절대 주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적인 어떠한 힘을 가지고 주관하거나 통일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되어진 결과를 보아서 알았습니다. 하옵기에 저희들은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해야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마음이 동하면 저희의 마음이 동해야 되겠고, 아버지의 마음이 정하면 저희의 마음도 정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슬픔을 당하시게 될 때 저희가 먼저 십자가를 짊어지고 아버지 앞에 쓰러질 수 있어야 하겠사옵나이다. 이와 같은 각오와 신념이 없어 가지고는 이와 같은 사명을 다짐할 수 없고, 이와 같은 심정의 인연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국을 중심삼은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을 오늘날 저희들을 통하여 증거하고, 저희들을 통하여 나타내고, 저희들을 통하여 성취하시고 싶은 아버지의 내적인 사연이 있다 할진대, 오늘날 저희 개체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입장인가를 알고, 스스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이것을 알았을진대, 아버지의 뜻앞에 엎드려 최후의 명령을 기다릴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을 확실히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이 이제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아버지 앞에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현재는 이러한 몸이라고 직고하고, 당신이 요구했던 뜻 앞에 불충하였던 사실을 비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난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죽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증거하고 사라지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생활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살 수 있는 진실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을 돌아보게 될 때, 아버지의 슬픔이 그 나라와 그 민족에게서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보았습니다. 아버님, 한국도 그와 같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슬픔의 새싹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쁨의 새싹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슬픈 내정을 살펴 보게 될 때, 아버지의 역사적인 슬픔의 모든 결과가 저희들로 말미암아 되어졌음을 알게 해주시옵고, 오늘날 저희들이 새로운 내정적인 인연을 폭발시킬 수 있는 한 동기를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5월 들어 마지막 성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저희들이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할진대 저희의 일생은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덧없이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흘러가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흘러가는 세월을 막고, 악한 모든 터전을 무찌르고, 선의 터전을 닦고, 악한 사람을 교화하여 선한 사람으로 복귀시켜야 할 천명을 받들었음을 절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450만이라는 이 서울 시민을 앞에 놓고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사옵고, 삼천만 민족을 앞에 놓고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더욱이 앞으로 무엇을 중심삼고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 민족 앞에, 하늘 앞에 어떻게 봉헌해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이 있는 충성과 노력을 다해서 아버지의 원하시는 소원의 일념을 남겨 주고 가겠다고 온갖 성심과 정성을 다 드리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을 생각하게 될 때, 그때에는 저희들이 말씀을 들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설 수 없었던 것을 그토록 분하게 느끼던 한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심정의 인연이 이렇게 귀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린당한다고 아버지를 부여안고 통곡하던 시대가 있었사옵니다. 언제 마음 놓고 저희가 권위를 갖추어 아버지의 안타까웠던 사정을 당당하게 통고할 수 있는 한 때를 가져보았습니까? 그와 같은 시대에 처해 있는 저희들이온대, 아버지의 뜻 앞에서 진정 아버지가 원하시는 바를 이뤄 드리겠다는 갈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만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아들딸이 없는 이 비통한 사실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여기에 몇 명이라도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중심하여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경배드렸습니다.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움직일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하늘이 맡겨 주신 책임을 맡았으면서도 저희들이 맡은 바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것을 회개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 앞에 다시 한번 흩어진 마음을 수습하고, 상처 입은 자리에 기름을 바르고, 헤어진 옷이나마 기워 입고 아버지 앞에 나와서 겸손하게 엎드려 회개하여 지난날을 청산짓는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새로운 소망의 뜻 앞에 당신의 마음과 하나 되기 위한 내적인 심정의 터전을 다시 묶어 바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끔 이 시간 역사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나 저희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들을 바라볼 때, 아버지가 저희들을 믿고 바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 앞에 자기 몸을 내세우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만으로 아버지 앞에 충과 효의 인연이 닦아지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싶사오나 그럴 수 있는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느끼옵니다. 무화과나무로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던 아담 이상으로 더럽혀진 후손된 자신임을 자탄하면서,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바라고 한 없는 눈물을 뿌리며 과거를 회개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마음 깊은 가운데서 아버지와 저희와의 인연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와 저희와의 인연이 저희 자신들의 생활을 통하여 맺어진다는 것을 알진대, 오늘의 이 현실이 얼마나 통탄할 현실인가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생활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심정적 절개를 갖지 못할 땐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큰 반역을 하는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에 있어서는 아버지 앞에 효도하는 효자 효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활에 있어서는 아버지 앞에 충성할 수 있는 충남 충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마음을 털어 놓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모습이 추하고 남루할지라도 아버지의 품을 향하여 달려가는 마음만은 변치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매를 맞는 자리라 할지라도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마음대로 하시라고 할 수 있고, 당신의 한이 풀리실 수 있을진대 고이 눈물로 감사하며 맞을 수 있는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매질하시던 그 자리에서 다시금 새로운 사랑으로 저희를 복돋워 주시고, 부모의 심정을 다시 한번 폭발시키게 할 수 있는 역사를 오늘 이 시간 내려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진정으로 아버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님의 뜻을 위하여 진정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적인 것을 겸한 자리에서 행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아버지를 찾지 못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일할 수 없었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심히 부끄러운 모습이었사오니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거룩한 무리들을 얼마나 찾아오셨습니까? 성별된 무리를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그러하시기에 가정의 핍박과 나라의 핍박 속에서도 아버지께서는 깨끗한 자리에서 저희를 성별시키시어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만들기 위하여 수고하셨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때는 그럴 수 있었던 저희들의 모습이 다시 더럽힐 대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당신이 성별시키던 때보다도 더 부끄러운 모습으로 다시 회생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의 통탄하심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자인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는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이 많았사옵니다. 이 시간에도 당신을 아버지라고 절규하는 무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당신께서 `오냐, 내가 바로 너희가 찾던 아버지다'고 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얼마나 되옵니까? 그 자체가 아무리 추하고 비참하다 할지라도 당신이 아들딸이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이 있다 할진대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할 때, 또다시 아버지는 영원히 슬플 수밖에 없는 역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수많은 원수들 앞에 조롱을 받으면서 선두에 서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목을 놓아 통곡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천주의 대주재자이신 아버지께서 그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야만 되옵니까? 저희 스스로 자초한 한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당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자녀의 모습이라도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내가 이와 같은 사정과 이와 같은 입장에 있었던 것은 저희들을 찾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또 당신의 아들딸이 이 땅에 남아지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나오셨는가를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은 잘 배우고 알았습니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행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문제인 것을 우리들은 이미 알았습니다. 지금은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인 것을 배웠사오나 저희들은 마음 깊이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였고, 생활 가운데에서도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저희들의 말과 생활 전체가 사탄과 동반하기 일쑤였고, 아버님의 마음에 못박기 일쑤였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스스로 회개하고, 다시 한번 아버지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의 섭리노정을 가는 사람들은 시대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그러하고, 금년 한 해도 그리고, 앞으로의 10년도 그러하고, 전 생애를 바쳐도 그럴 수 있는 생활을 연결시켜 수십 수만의 후손까지 연결시켜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당신의 참다운 아들딸, 당신의 뜻을 맡길 수 있고, 당신의 심정을 영원히 통고시킬 수 있으며, 당신의 뼛골 속에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것을 책임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책임지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기를 다시 한번 아버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아버지, 이 나라의 입장과 앞으로의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삼천만 민중이 아버지 앞에 베옷을 입고 일대 회개하여야 할 시대가 당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제 6월 초하루부터 9월 말일까지 아버지 앞에 기도의 제단을 쌓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를 향하여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긍휼의 눈물을 흘리시며 돌볼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민족 앞에 다시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될 것을 절절히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자녀들이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이 시간에도 외로운 제단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사오니 천배 만배 복을 빌어 주옵소서. 그 자리에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공고히 하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횡적인 면에 있어서 거룩한 생명의 등대로 삼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두운 세상에 광명한 빛을 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의 기준이 되고, 아버지의 영원한 승리의 방패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리어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통일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이 시간 아버지와 더불어 저희들이 심정과 사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아버지, 저희의 마음 자체를 아버지 앞에 솔직히 헤쳐놓고 하나하나 문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 하나를 세워 놓고 아버지께서는 진정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몰랐던 내 자신이거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진정 이 시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는 내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사랑의 인연을 내 생명을 들어 찬양할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변치 않는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금후의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당신께서 영원히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아버지 앞에 사랑의 대가를 이것으로써 대신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사옵니까?
과거에 각자가 지녔던 생활 환경과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무대에 있어서도, 이 자리에 참석한 마음의 바탕에서도 이것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명서요, 이것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통고하는 통고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겠사옵니까? 만일 그것이 없다 할진대는 당신의 사랑을 유린한 자요, 당신의 사랑을 배신한 반역의 아들딸이요,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사탄세계에 팔아먹는 역적인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아버지께 사랑을 돌려 드린 적이 있었사옵니까? 내 발이 그럴 수 있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내 몸 자체가 그럴 수 있는 내용을 지니지 못하고 있고, 내 마음 자체가 그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의 터전이 되지 못한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자격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기에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두려운 자신이 것을 다시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눈은 자기 이상을 중심으로 하여 아버지를 뵈오려고 하였고, 저희의 입은 저희의 지각과 저희의 지식의 기능과 지능의 기준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사연도 말하고 간구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께 전부다 자기 이상을 추구하였사오나, 아버지께서는 우리 이상의 자리에 설 수 없는 아버지인 것을 생각할 때, 만약 그것을 몰랐으면 회개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위에 계신 줄 알고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는 마음을 갖고 찾아 왔사오나, 알고 보니 아버님은 저희의 발 밑에 계셨던 것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느끼며, 부끄러운 자체를 감출 길 없어 통탄하는 신앙을 뼛골에 체험한 자들이 되어야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인류의 앞에 서서 지도할 수 없는 불쌍한 아버지가 되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듯 낙오자의 처진 걸음을 걷고 계시는 아버지, 세상 그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는 절망 속에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모르고 철없이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불쌍하고 초조한 입장임을 잊어버리고 한 생명을 위하여 사경을 극복하면서 나오시는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세포와 감정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당신의 많은 사연이 이 역사 가운데 묻혀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 사연을 드러내지 못한 저희들은 천년 만년 한하여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의 자식들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내정을 이 민족을 통하여 마음 깊이 느낄 줄 알고, 묻혀 있는 수많은 역사의 비밀과 더불어 체휼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와 같은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될 때에 그 사연을 대하기에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 앞에 이 몸 다 드리기를 고대할 수 있고, 부모를 잃고, 하늘을 잃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이상의 슬픔을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복귀의 궤도에 저희들이 접어들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에게 은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언제 변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저희가 십년 세월을 통일가의 문 안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외치며 나왔사오나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하루에도 몇십 번, 몇백 번 변하는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렇게도 불신할 수밖에 없었던 저희 자신들이기에,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 앞에 동조자 되지 못했던 과거를 탄식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다시 묶어 달라고 할 수 있고, 쓰러진 모습이나마 아버지를 향하여 일으킬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 당신의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기 전에 당신의 사정이 이렇다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현재 사정이 그렇다고 말하기 전에 그 이상 비참하였던 과거의 사정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모습을 바라볼 때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알게 허락해 주시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할 내자신이 되어야 할 것을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에 이 서울 도성을 향하여, 또는 전국을 향하여 통일의 무리들이 새로운 역사적인 표어 아래 진군의 행보를 내놓는 이 한 시간을 가졌사오니, 오늘 그들 앞에 새로운 역사적인 심정의 인연을 두텁게 맺어 주시옵고, 가야 할 방향과 살아야 할 생활의 지침을 그들 마음 깊이 새로이 정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 나머지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은 생활하면서 고향이 그리운 것을 많이 체험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고향 하게 되면 물론 자기 집이 연상될 것이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환경이 연상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연 가운데 묻혀 있는 집이면 집을 중심삼고 부모의 품에서 자라온 그 사연이 그 자연과 더불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고향은 변해 간다 하더라도,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높은 산봉우리나 우뚝 솟은 바위와 같이 제일 높은 곳, 제일 깊은 곳, 제일 넓은 곳은 언제나 잊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인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인류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랑의 본향 땅을 세웠다 할진대는 이 본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왔다 가는 수많은 영인들도 저 나라에 가면 이 땅을 바라보며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워할 때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 있는 친척, 혹은 친구라도 만나게 되면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연을 듣고 싶고 그 동정을 살피고 싶은 것과 같이, 만일에 오늘 이 세계가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이상적인 본향의 천국이 되었더라면, 이 땅을 거쳐가는 영인들에게는 이 곳이 본향의 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본향의 땅에서 자라던 그 환경의 인연과 그 땅에서 지내던 모든 친지라든가, 나아가서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 나라면 나라, 인류면 인류가 영인들에게 더없이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한번 가면, 물론 영적으로는 다시 올 수 있지만 실체를 가지고는 영원히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볼 때, 살아 생전에 이 땅에서 느꼈던 모든 환경, 느꼈던 모든 생활적인 인연을 통하여 엮어진 모든 심정의 내용이라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찬양의 조건이 되고, 영원한 천국에 있는 모든 동료들 앞에 자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땅에서 타락이 벌어지지 않고 천국을 이루었다면 이 땅을 거쳐간 수많은 영인들이 자랑할 수 있는 곳은 우리 개인이 본향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곳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인들도 거기에 높은 곳이 있으면 그 높은 곳과 자기를 관련짓고 싶어하고, 명승지가 있으면 명승지와 더불어 자기를 관련짓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가 있으면 그곳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전부가 그리워하고 자랑할 수 있는 한 곳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외적인 자연 환경도 그렇지만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이 땅 위에 왔다 갔다 수많은 영인들에게도 고향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들과 맺어진 여러가지 사연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의 조건이 됩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사랑의 심정적인 사연을 가졌다면, 그 사연 역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사연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모도 잘나기를 바라고 내심으로도 누구보다도 깊은 심정의 소유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 하는데 있어서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나 혹은 형제들과 얼크러진 심정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람과 동시에 자기 고향에 특수한 곳이 있으면 그곳을 자랑하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 있어서도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애국자가 되고 싶어하고, 누구보다도 그 나라에 있어서 인기를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욕망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모두 영계에 가게 됩니다. 땅 위에 사는 것은 잠깐이지만 영계는 영원한 세계요, 불변의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그 불변하는 세계에 가게 되면 변하는 모습 가지고는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예측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어찌하여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아 인간의 전체의 내정을 생각하게 되었느냐, 부모의 심정을 교훈 삼아 주장하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보게 될 때, 형제지애나 동포지애 같은 것은 외적인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심정만이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부모의 심정이야말로 저나라 즉 영원한 세계에 가서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상대적 심정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심정을 통해서 사랑하던 자연 환경이 있으면 그 자연 환경도 역시 변하지 않는 심정의 상대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일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것은 명승지 자체가 아니라 심정적으로 인연이 맺어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사연이 담긴 곳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곳을 일생을 통하여서 그리워하게 되고 일생을 통하여서 회상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변치 않는 진정한 사랑의 심정이 거기에 인연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 역시 퇴보해서는 안 됩니다. 영원히 발전하고 영원히 흥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비운을 맞이하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을 지니고 자기의 온갖 충성과 온갖 정성을 다한 흔적이 있다 할진대 그 흔적은 자기 개인의 흔적일 뿐만 아니라, 그 흔적이 민족 앞에 공인 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갖추게 될 때는 이 민족 전체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는 흔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민족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남아지게 되고, 그 민족이 영원히 회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상에 사는 동안 여러분들은 어차피 그런 대상의 인연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의 마음을 지니고 자식을 사랑한 것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그 나라의 동량지재를 만들기 위하여 사랑했다면, 부부면 부부끼리에 있어서 남편보다도 사랑했고, 아내보다도 사랑했고, 어떤 친지보다도 사랑했고, 자기의 형제들보다도 사랑했다면,그것은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아니 할래야 아니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걸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자식을 위해 사랑한 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많은 세월과 정성이 투입되었으면 투입되었을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자식에 대해 기대하고, 그 심정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은 어느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그런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일에 자식에게서 불효하고 변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타나게 된다면 그 부모가 지금까지 자식을 위했던 모든 마음이 일시에 폭발될 수 있는 자극이 되고 비탄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식을 사랑했다고 해서 자식을 사랑한 그것으로써 그 부모가 하나님의 본향땅에 가서 살 수 있겠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났으면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해야 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가정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민족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세계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기준이 자기의 혈육을 중심삼고 인연되어진 심정의 터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 할 때는 그 마음을 중심삼고 어디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세계의 어디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세계의 인연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통일교회는 어찌하여 부모의 심정을 제일로 들고 나왔느냐? 우리는 인간 조상의 타락은 불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심정세계에는 하나님 앞에 속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남아진 불변의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인류역사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단 하나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는 순간까지 사랑해 나오던 본성의 심정의 인연이 우리의 본심과 육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아져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만이 타락권에 있는 우리 개체에 연결되어 남아질 수 있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앞으로 영원한 기준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상세계 즉, 지상천국이 이 땅 위에 벌어지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이냐, 지상천국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냐 할 때, 그것은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떠나서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변치 않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내 마음을 어떻게 회생시키느냐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 진정한 개체로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와 같이 역사적 기반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 세계를 만들어야 할 분이요, 그것이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까지 연결될 수 있는 영원한 세계를 만드시려는 소망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 할진대는, 이 길을 개척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분이라 할진대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가정이라든가 종족이라든가 민족을 사랑해야 하고, 민족을 넘어 세계까지 끌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분명한 사실로 체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식구지간에 만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 하는 식의 얘기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서울 교회는 어떻고 지방 교회는 어떻고 하며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말을 무엇을 근거로 해서 말하느냐?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서, 즉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아니면 현재의 자기 입장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자기 입장을 중심삼고 말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기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정세계의 복귀를 위하여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배경 삼고, 그 터전을 희망으로 해야 하는 오늘날 신앙자들에게 있어서 매일같이 변하는 자기의 모습과 불의한 자기의 생활환경을 중심삼고 좌지우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신앙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게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좋으면 좋아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슬프면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가 우주의 공법을 통하여서 맺어질 수 있는 위치이냐, 즉 선의 결과적 존재이냐? 다시 말해 우주의 공법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주체라든가 대상의 입장에 섰느냐고 할 때, 타락한 인간은 그런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그냥 그대로 대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신을 메우기 위해서는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제시하는 탕감복귀의 노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는 기쁨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과는 반대인 딴 곳에서 기쁨을 맞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찾아나오셨느냐? 오늘날 인류가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찾아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선의 목적은 인류가 나가는 방향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어디에서부터 선을 맞이해야 하느냐? 반대의 자리에서부터 선을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이상의 기준에 계시는 분이 아니고, 그 자리로 찾아 오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의 뒤에서 인류의 비참사를 책임지고 나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타락인간의 방향을 따라 전진하며 선의 목적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자리에서 선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맞기 위해서는 반대의 자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 역사과정에 있어서 비참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찌하여 우리의 소망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의 세계에 현현하지 아니하시고, 지나간 역사과정과 더불어 비참한 환경에서 터전을 닦아 놓으셔야만 하느냐!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타락한 역사의 운명의 와중에서는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고 했습니다. 이것은 절대 불능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부자가 바라는 그 기준의 자리에는 하나님이 절대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낙오자요, 세상의 패망자요, 세상의 핍박을 받는 입장에 있어야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갖출 수 없고, 자기 스스로를 가꿀 수 없는 완전히 상실한 그 자리에서부터 선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참한 운명에서 싸우다가 이러한 비참한 운영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이 정상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짓밟혀져야 합니다. 오늘날 변해야 할 입장이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영원한 해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인간들이 지상에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그 생활 자체가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가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없고, 새로운 뜻, 새로운 선의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찾아 나오신 기준입니다. 그러면 그 변하지 않는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애쓰는 것과 같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따라 나오고 계시기 때문에, 그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하나님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서 비로소 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과 복귀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이념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표방하는 변치 않는 것은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으니 바로 과거 역사에 비추어 봐도 변치 않았고 지금도 변치 않으며, 시작도 변치 아니하고 끝도 변치 않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랑이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이요,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역사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내세운 신조의 중심 골자가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땀을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종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수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수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하나님의 효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피의 제단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거쳐가지 않을래야 거쳐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건을 제시하고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랑의 기준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나님을 위하여 뿌리자는 것입니다.
지난날 역사과정에서 복귀섭리의 인연을 맺어 나왔고, 남아져 나온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느냐? 하나님을 위하여 순교의 길을 갔던 선열들의 피의 공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2천년이라는 역사 속에서도 지금까지 남아져 왔던 것입니다. 만일 무수한 핍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이것을 지켜 나오지 않았던들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지 이미 오래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배후에서 변치 않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을 인류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움직여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내정을 일편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서 하나님의 사정이 통과되는 그 순간에 있어서는 죽음의 길도 당당하게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듯이 그러한 심정을 체휼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찾아 줄 수 있는 가정을 위해, 하나님이 찾아 줄 수 있는 교회를 위해 꿋꿋하게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정적인 터전이 역사의 배후에서 연결돼 나왔기에 기독교가 존속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간 피의 대가를 치르고 남아진 제단이 기독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 동안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지킨 종교의 진리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도 그런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갖추지 않고 그것을 상속받으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공을 들이지 않고 남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강도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불변의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 앞에 상대자의 입장에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땅 위에 실적의 조건을 남겨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나를 넘어서 하나님이 동행할 수 있는 기준에서 하나님이 움직였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한 위업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눈물짓는 자리,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자기 일신을 망각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그 마당에 있어서 다른 부모와 달랐던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형제를 위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심정은 몰론이요,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위하는 심정과, 이스라엘 나라는 물론이요, 로마와 세계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수의 창끝을 넘고, 원수라는 그 울타리를 넘어가서 복을 빌어 주었기 때문에 사망의 세계, 원수의 세계, 형벌의 세계를 넘어서 소원성취의 사랑의 씨를 뿌릴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악한 죄악의 세계를 넘어서 심정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기원이 여기에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는 그런 자리에서도 천도를 따라서 원수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던 것과 같이 우리 민족이 처하여야 할 방향을 가려내야 합니다. 그래서 현세에 처할 수 있는 안일의 자리보다도 십년 백년 수세기, 혹은 수천년 이후에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위하여 책임지고 지도하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 그 지도자는 세계에 남을 수 있는 역사적인 인물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런 지도자의 이념을 가진 민족이 있다면 이 세계가 망한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이 역사에 남겨질 최후의 민족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녹음이 여기서 중단됨)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오래된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사랑에는 한도가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려면 우리보다 불쌍한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비율이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보다도 외적인 사람, 악한 사람을 사랑하면 같은 사랑을 해도 그 사랑의 몇 배가 됩니다. 꼭 그렇기 때문만은 아니나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종족이나 자기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그 외의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큰 비율로 커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못 받을 것 같지만 그것이 같은 사랑이라도 몇십 배 몇백 배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 도상에서도 우리는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권유하는 사랑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래도 이 민족을 휘어잡고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중심적인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반대받는 와중에서도 그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그 이상 되지 않고는 이것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극심한 핍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사랑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원수들을 위하여서도 기도했기 때문에 이 사망세계에 사랑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천국이념을 품는 기반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원수에게 핍박받는 고개를 넘어 이 민족 앞에 나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에게 기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준이 세워질 때에는 우리를 앞장 세우지 않고는 그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저 고생해 나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그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고생해 나가다가 끝날에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와 같은 심정으로 핍박을 받으며 눈물과 피땀을 흘려 사랑한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천운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가 앞장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를 들어 활을 쏠 때 활로 과녁을 맞추듯 불변의 기준에 나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준은 먼저 무엇부터 맞추어야 하느냐? 마음부터 맞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행동하여 그 과녁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기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부자간의 인연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하고 귀국할 때 오래된 식구들은 선생님이 좋은 소식을 갖고 올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이나 깨지 말지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나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통일교회가 다시 한번 수고할 때에 들어왔습니다. 과거에는 종적인 기준으로서 뜻을 세우기 위해 심정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수고했으나 이제는 횡적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여러분 각자가 책임을 지고 다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인류를 위하여, 땅을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기준만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만약 발전하지 않는다면 통일교회에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을 중심삼아서 정성을 들여 가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는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가짜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없다고 해서, 선생님이 죽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개의 종교가 창시자가 죽으면 쇠퇴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뜻은 선생님이 없더라도, 선생님이 죽더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어디 가든지 이 기준이 심어지는 날에는 하나님이 역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많이 낳으면 그 집안은 망하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거지 같은 자식이라도 많이 낳다 보면 그 중에서 잘난 자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기원입니다. 예수님도 이 원칙기준에서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폭발적인 원천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 심정권내에 들어와서 3년 내지 7년만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7년으로 안 되거든 21년만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죽더라도 여러분의 무덤은 꽃밭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불변의 모습, 그 자체는 변치 않습니다. 선생님이 옛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그 감옥에는 살인강도를 비롯한 별의별 사람이 다 갇혀 있었는데, 그 죄인들이 선생님에게 몰래몰래 먹을 것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그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통일교회 문선생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런 것을 시켰겠습니까? 배고파하건 말건 모른 척하면 될 것인데 말입니다. 그 안에서는 미싯가루 한 사발이면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 가치는 밖에서와는 다릅니다. 그처럼 귀한 것을 선생님에게 주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왜 주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선조들이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영계에 가 있는 선한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 면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나가서 전도를 할 때 그 지방 사람들보다 더 배고프고 더 고생을 하게 되면, 그 마을 후손들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계에 있는 선조들이 후손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밥을 굶게 되면 동네의 처녀 총각들이 자기 밥을 안 먹고 갖다 주고 도시락을 갖다 줘서 먹이는 것입니다. 안 갖다 주면 망하기 때문에 영계의 선조들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작전 중에 이 이상 입체적인 작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모든 것을 영적으로 경험하고 실체적으로 경험한 결과를 통해서 이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중심삼고 작전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렇게 남아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남았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생활철학으로서, 신앙의 신조로서 하나님을 모신 그 시의의 전통적인 사상을 여러분에게 넘겨주었으니 선생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시험해 봐서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야 그런 심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부다 갈라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변하는 날에는 복귀역사에 의한 세계는 전부다 파탄되고 맙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번에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서 책임을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은 1960년대 초기와는 다릅니다.
인간들이 타락했기에 복귀역사를 걸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완성해야 할 부모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으니 다시 부모의 자리를 찾아서 올라가야 됩니다. 복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가인·아벨·셋의 세 아들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류의 부모로 오시기 위해서는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를 찾아 세우지 않고는 부모의 자리에 못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 셋이 하나되지 않고는 예수님은 복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이것이 공식이므로 복귀역사를 하기 위해서는 별수없이 이 공식에 의해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식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공식을 무시하고 아무리 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덮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식에 의해서 올라가야 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전부다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전부다 어떻게 도로 찾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조건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는 세 제자로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세 제자 가지고는 안됩니다. 모든 것은 소생 장성 완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기준도 거기에 맞춰서 결정돼 나와야 합니다. 이것을 지금 통일교회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단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완성단계의 기간이 7년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3단계의 7년씩을 전부 더하면 21년, 만으로는 20년이 됩니다. 한국 나이로 보면 21살, 만으로 보면 20세, 이때는 인간이 성숙기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성숙기에 들어가게 되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동적으로 결혼시켜 주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복을 받아 인류의 참된 부모로 공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못 받은 것입니다. 전부다 허락하지 않은 권내에서 타락하여 이런 단계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남아진 7년의 한에서, 6천년 역사에 천년 왕국을 더해서 7천년 역사의 한이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1년이 천년, 7년이 7천년으로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7일을 중심삼고 7년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7년노정입니다. 성경에 하루를 1년에 탕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년노정,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심판, 즉 7년대환란입니다. 타락권내에 있는 가정이 복귀해 올라와 가지고 비로소 타락권내와는 상관이 없는 하늘의 가정으로 올라가기 이해서 핍박받는 것이 대환란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는 가정이 핍박받는 것은 역사상에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대환란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처음 있는 가정이 핍박받을 수 있는 권내에서 받는 시련이 대환란입니다. 이 7년노정에서 책임 못 하는 가정은 망하는 가정들입니다. 올라가는 가정이 아닙니다.
축복가정들이 책임 못 하게 되면 7년노정은 연장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원리결과주관권, 즉 간접주관권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가야 할 권내를 사탄이 침범했고, 따라서 간접주관권 전부를 사탄이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7년 대환란이라는 것은 핍박 받아야 할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핍박받지 않아야 할 가정과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7년 대환란이요, 역사상에 처음 있는 환란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7년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소생 장성 완성을 거쳐 성장하게 되면 간접주관권내에 들어가게 됩니다. 직접주관권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자리를 이루는 것이 직접주관권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1967년과 1968년 사이에 이 권을 마련했습니다.
장자가 하나님이 직접주관권내에서 뜻을 이루었으면 장자는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을 중심삼은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원만한 가정이 되고, 국가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국가가 되고, 세계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를 통해서 이렇게 장자복귀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핏줄이 달라졌습니다. 사랑의 특징은, 사랑만 하게 되면 동등한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천한 신분에 있는 지게꾼의 딸이라 해도 일국의 대통령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귀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하나님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아들딸이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인류를 사랑할 줄 알아야만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사랑의 방법을 배워 인간들이 하나님과 상봉하게 될 때 그 법도를 맞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써 장자는 사탄편이 되었고 차자는 하나님편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했는데 내정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아버지요, 타락한 결과로 보면 사탄이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법도를 중심삼고는 외적 사랑이든 내적 사랑이든 사랑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아들이라고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왜 못했느냐? 사탄이 인간과 사랑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창조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게 되면 천도가 다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걸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꼼짝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당당코 들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
사랑의 법도를 놓고 사탄이 동등권을 주장하고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도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주관성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동등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차이가 있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에덴 동산에서 가졌던 본래의 아담 해와와 천사장의 자리를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동등한 자리에 있어서는 저대로 탕감복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차자는 장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차자는 단계로 보아 장자보다 한 단계 아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엎자는 것입니다. 차자는 장자의 자리를 얻고, 장자는 차자의 자리를 얻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자와 차자는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자가 한 단계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장자의 자리를 빼앗는 역사였습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에서서 장자의 자리를 샀습니다. 세상에 그런 역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워 나오신 토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역사시대에 수많은 선조들이나 나라의 주권자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먼저 태어난 맏아들의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차자의 입장에서 이 땅에 와서 장자의 권한을 찾아 세워 이 세계를 장자 앞에 돌려 세우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동등한 권리와 주관의 권리를 무시해 버리고 원래의 위치로 복귀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장자복귀는 하나님편인 차자로 하여금 첫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장자가 되지 않고는 첫사랑을 받는 사람이 못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7년간 장자의 자리를 얻기 위한 싸움을 해 가지고 여기에 비로소 직접주관권내에 들어가고, 장자가 되어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이 첫사랑을 받고, 그 다음에는 그 민족이 첫사랑을 받고, 그 국가가 첫사랑을 받고, 그 세계가 첫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여러분 자체는 첫사랑을 받기는 받았지만 그것은 사탄을 중심삼고 받은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의 가정도 첫사랑을 받기는 받았는데 사탄을 중심삼고 받은 것이고, 민족 국가도 첫사랑을 받기는 받았는데 사탄을 중심삼고 받은 것이고, 세계도 첫사랑을 받기는 받았는데 사탄을 중심삼고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을 중심삼고 첫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원수와 같이 생각하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이 나라에서 우리가 해방되어야 합니다. 해방되기 위해서는 세계를 이기고, 국가를 이기고, 가정을 이기고,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7-38)"고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역사적인 공식, 즉 공리 법도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우리 통일교회가 장자권을 복귀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성교회는 장자와 마찬가지요, 통일교회는 차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기성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안 빼앗기겠다고 해도 2세들은 모두 우리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40년 광야 생활이 있는 것입니다. 해방후 24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16년쯤이면 40년노정이 끝납니다. 이것이 3차 7년노정 기간인 21년이내에 다 끝나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2차, 3차 7년노정과 3년노정이 있기 때문에 16년과 맞아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1960년대는 국가를 중심삼고 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역사는 발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1960년대를 중심삼고 생사를 결단해야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생사를 결단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968년부터 3년 기간입니다. 이 3년 기간에 남북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사탄을 굴복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 정세를 중심삼고 공산주의가 깔려 넘어가느냐 안 깔려 넘어가느냐를 판가리하는 싸움을 일으키는 분기점이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만 깔려 넘어가면 세계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장자의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차자의 입장입니다. 정부도 이북보다 뒤에 세워졌고, 모든 것이 열세합니다. 그들에게 먼저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현실이 치면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맞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부모를 모시는 자리에서 맞아야 됩니다. 부모편이 되어 가지고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을 붙들고 맞으며 조롱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를 붙들고, 부모와 하나되어서 맞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통일교회가 이 민족과 국가를 대표하여 반공이념을 중심삼고 공산당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는 아벨적인 기준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해 나가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국가기준을 넘어가고, 세계기준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기준과 사상적인 기준에서는 통일교회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념적 기준, 사상적 기준, 그리고 실천면에서는 아무도 통일교회를 못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통일교회가 앞서 있습니다. 그 실천도 자기를 위한 실천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실천입니다. 이런 면은 위정자들이 우리한테 배워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면을 세워 가지고 지금 교차점을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둘째번이 중요합니다. 생사를 판결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부름을 받고 입교한 여러분 자신들이 대한민국 전체를 대해서 한 달을 일년으로 잡으면 일년이 12년 꼴이 되므로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열두 사람을 전도하면 예수님이 30세에 하신 것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3년을 중심삼고 세 아들도 못 찾았잖아요? 우리에게 있어서 세 아들은 아담 시대, 예수님 시대, 재림 시대를 넘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 사람이 최소한 세사람 이상씩 전도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장자는 타락한 사탄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준(세 사람 이상 전도)을 통해 하나님을 중심삼고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세계적인 4대국가를 중심삼은 가정주의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4대국가를 편성하여 가정주의 운동과 탕감기대 승리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종족 기준을 넘어서 사위기대를 세계적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국가 운세와 더불어 세계 운세 앞에 우리가 일치해야 합니다. 한 가정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한 마음으로써 세계를 복귀하는 데 가담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9년 6월 초하루부터 10월 말까지의 기도회에 다같이 동참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세계선교본부는 본부에서 유효원 협회장이 직접 관할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알겠어요? 그것은 세계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같은 제사를 드려 가지고 넘어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앉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지만 선생님은 이런 원리원칙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의 배후에 숨겨 있는 원리원칙에 기원을 두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뭐냐? 장자를 기준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 성혼식을 할 때 수십명이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예수님을 부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패들도 딱 12명이었다는 것입니다. 12명이 서명 날인하여 고소를 하는 바람에 선생님이 법원에 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선생님은 남모르는 가운데 싸움을 했다는 거예요. 바늘방석에 앉아서 죽느냐 사느냐,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운명을 가리는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수백만이 예수님을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하는 사람이 360명 혹은 360만명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을 닫아 걸고 그 놀음을 다 한 것입니다. 그것도 제1차, 제2차, 제3차로 하는 것도 다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잘못 결혼하고 가인 아벨이 싸움함으로 인해 갈라졌기 때문에 합동 결혼과 사탄과의 싸움을 통해 굴복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싸움을 중심삼고 실패했으니, 하나님편으로 말미암은 싸움을 중심삼고 실전을 통하여 복귀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축복가정을 중심삼은 통일교인들을 삼천리 반도에 전부다 내쫓았습니다. 가나안 복귀과정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편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지방으로 전도를 보내서 3년 기간을 중심삼고 재편성해 나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민족과 국가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시대가 전체의 7년노정입니다.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는 한국이 한 단계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에 있는 모든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은 전국을 상대하여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되는 운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가정적 편성을 했다는 것은 복귀섭리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세계적인 가정이 연결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의 수많은 색다른 민족들이 우리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운세가 땅으로 내려 왔으니 이것을 세계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으므로 선생님이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여러분이 복받았다는 것은 뭐냐? 한 시대를 앞서서 조상의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국과 우리가 다른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보다 한 시대를 앞서 있다는 혜택을 받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탕감의 제물시대에 있어서 차자로 태어났지만 제물시대를 거쳐 싸우지 않고도 장자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탕감의 제물시대에 있어서 차자로 세워져 제물시대를 거쳐 싸워 가지고 장자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여러분은 그냥 혜택을 받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천년 만년 죽도록 그 은공을 갚아야만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선민이 되는 것입니다. 만민들이 우리를 모시고 받들어야 된다는 원칙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도 원리도 모르면서 따라 나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개인적 장자기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는 것, 그 이상 가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해서는 선생님이 장자라는 특권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을 중심삼고 나온 사람은 세계에서 통일교회 문선생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인격관을 통하여서 남자 여자를 복귀하는 사명이 있었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가정을 편성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보다 한 단계 앞에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겠지만 죽어 보면 내 말이 맞나 틀리나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개인복귀를 위한 사명을 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가정복귀를 하여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를 못 찾았지만 선생님은 세 제자와 마찬가지인 3개 국가에 3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줄 알아요? 이미 짜여진 공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통일교회 시대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지금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만 더 낳게 되면 축복받을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딸을 낳을지 아들을 낳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웃음) 그래서 선생님이 서둘러서 한국에 돌아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은 꿈도 안 꾸는 일을 선생님이 해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선생님은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다고 하게 되면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장자 개인에서부터 장자가정, 장자국가, 장자세계를 사탄이 모두 가져 갔으니, 이것을 탈환해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장자 탈환은 무엇을 가지고 하느냐? 돈 가지고요? 아닙니다. 심정을 가지고 탈환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심정보다도 더 큰 심정이 아니고는 탈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야야 돼요.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하다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활동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66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통일원리를 보아도 딱 들어맞게끔 그 내용이 이론화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개인복귀에 있어서 세 아들을 찾아 그들을 통해 가정을 이루려고 했으나 못 했습니다. 이것을 통일교회가 복귀해야 합니다. 금년은 제2차 7년노정의 2차년도입니다. 2차년도는 둘째 아들에 해당하므로 우리가 열심히 하자는 것입니다. 2차년도는 전반기 3년 기간을 넘어가야 할 고비이기 때문에 금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금년 6월부터 14개월 내지 16개월 동안 대한민국에 있어서 가장 큰위기입니다. 대한민국이 위기라는 것은 공산당이 침략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고 언제든지 보튼만 누르면 쳐내려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기간에 하나님을 모실 준비를 하여 정성을 들여 가지고, 사탄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입장에 서서, 역사적인 한을 다 잊게끔 공산당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베풀어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기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이번달부터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외적으로는 반공운동을 하고,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심정을 심어 놓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자의 기준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장자 가정, 장자 국가, 장자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오늘날 한국에 다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하나되게 하고, 대한민국을 통일교회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책임을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국가적으로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일치시킬 수 있는 기준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전세계가 야단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는 둘째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갖고는 통일교회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가정도 사랑을 중심삼고 장자의 기준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축복가정 여러분들, 축복받고 태어난 아기들이 사주 팔자에 오래 산다고 되어 있는 것도 그래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으로도 장자의 가정이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회적으로 장자의 기준을 결정해야 합니다. 복귀는 무엇을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철학을 중심삼은 사상에 지배받는 것이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는 어떠한 사상의 다스림을 받는데, 현재 모든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사상은 통일교회 사상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민주주의가 사상적인 면에서 공산주의에게 몰림을 받았습니다. 차자가 몰림을 받았는데 이것을 기독교의 입장에서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부활체와 같은 통일교회가 이런 사상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때려잡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이 이러하므로 현재 우리는 개인 승리, 가정 승리, 국가 승리, 세계 승리를 한 단계 높여서 싸우고 있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왜 수도를 중심으로 복귀역사를 하지 않느냐? 다시 말해서 7년 동안 서울을 중심삼고 활동하지 않고 왜 전부 지방으로 내보냈느냐? 지금 시대는 복귀역사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방부터 복귀하여 서울로 재창조하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볼 때에 이 나라는 외적이고 우리는 내적입니다. 또 이 민족 이 나라는 장자요 우리는 차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보게 되면 우리가 외적인 입장에 서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복귀역사를 비교해 보면 누가 이 나라를 더 사랑하느냐?3천만 민족을 누가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은 어느 편이 되시느냐? 6천년간 사탄이 하늘을 참소했지만 하나님과 사탄과 비교해 가지고 잘라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올라오느냐 하면 서울까지 복귀해서 올라오는 거예요.
대한민국과 통일교회를 비교하여 볼 때 누가 하나님을 모시고 복귀해 올라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재탕감형입니다. 또한 이것이 7년 역사이며 7천년 역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내부의 결정적인 자리를 못 잡으셨기 때문에 미루는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은 부모를 결정하는 노정인데, 부모는 자녀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원리적으로 보아 알겠습니까? 내적인 기준을 자녀들이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아담 해와가 했지만 결과는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종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게 한 것도 그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복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입장에 서서 이것을 갈라 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복귀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맞추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리적이지 않습니까?
복귀역사를 거쳐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 죽으면서, 매를 맞으면서, 쫓기면서 걸어 나왔습니다. 차자의 입장에서 장자로부터 맞으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차자가 동등한 입장에 선 것입니다. 차자도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제는 사탄도 차별할 수 없습니다. 가정적 기준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국가적 기준에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차자의 입장에서 장자의 입장을 복귀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장자의 입장과 차자의 입장을 뒤집어 놓아야 거꾸로 된 장자의 역사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가인이 복귀되고 다음에 부모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여러분의 사명기준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에서는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빨리 이 뜻을 알아 가지고 이 민족을 위해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본부는 서울을 책임지고 이 노정을 가야 합니다. 이제는 본부가 지방에 갈 틈이 없습니다. 지금은 반대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여기서 반대하게 하면 불리한 입장이 되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는 시대권은 모두 지나갔습니다. 나라도 교회도 이제는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한 사회가 반대하더라도 국가를 중심으로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시대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반대하는 현상은 일반적으로 발전하는 세계에 있어서 있을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탕감복귀하는 과정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작전을 하고 있는 이유는 섭리적으로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이와 같은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외적으로 책임 못한 것을 내적으로는 어떻게 책임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책임을 다하고 통일교회 가정 전체를 재편성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적으로 책임을 못하게 되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다시 고생시켜야만 됩니다. 다시 말하면 7년노정에서 잘못하면 21년노정을 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또다시 고생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다 가정적 장자가 되어 가지고 이 나라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가정적으로 무장해서 내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적으로 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7년노정을 통해서 가정적인 복귀역사를 원리가 제시한 노선에서 넘어설 수 있는 발판을 닦지 않고는 36가정부터 재정비하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복귀역사를 푸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 장자가 되어서 가정복귀를 하겠습니까? 따라서 여러분이 이것을 7년노정 기간에 복귀해야 합니다.
세계 정세가 점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몰려옵니다. 월남전쟁도 공산주의의 분출구가 되어 가지고 생사를 결판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10년전인 1960년대부터 대한민국 전부를 중심삼고 반공사상을 무장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가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우리만이 절대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상적 교재도 갖추었기에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때가 오기 때문에 미국도 후퇴하는 것입니다. 지금 소련과 중공이 국경분쟁 때문에 회담을 하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중공과 소련도 적당한 때가 오면 우리의 사상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가인 아벨의 싸움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 아니라 자체내의 가인 아벨 싸움이 되면 파탄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상대적인 싸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임자와 하나되지 못하고 자체내에서 분열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통일교회는 고개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는 그렇게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높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협회장은 대한민국의 기독교 간부들과도 만나야 합니다. 이제 그 사람들이 망하게 되었으니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꺾여졌으니…. 그들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고 요셉과 같은 입장에서 보면 열한 형제와 마찬가지가 아니냐 말입니다. 그들이 지금 흉년이 들어서 굶주리며 갈 곳이 없어 허덕이고 있으니 먹던 것이라도 나누어 주자는 것입니다.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누가 주사를 놔주면 그 사람이 참으로 고맙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 사람들을 만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았던 원리원칙을 세워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을 자꾸 만나 얽어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데는 야곱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배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을 주고, 그 자식이 공부를 못하고 있으면 공부도 시켜 주자는 말입니다. 그만한 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까지 가인 아벨이 싸운 것은 제물을 놓고 싸웠던 것입니다. 서로 형제지간에 제물을 놓고 싸웠죠?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제물과 같은 조건을 세워 놓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어 탕감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인들은 돈이 필요하면 집도 팔고 땅도 팔아 가지고 이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통일교인 몇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털어서 세계 기독교를 구할 수 있다면 그 일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선생님에게도 돈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험도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렇게 되어 들어왔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작전을 가르쳐 줄 때가 되었으며, 그것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우리가 수습할 것인가? 한꺼번에 전부다 몰려들 수 있는 때가 왔는데 이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지금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한 대학생들을 포섭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중에 많은 학생들이 가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통일교회가 발전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고 해도 통일교회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옛날 그대로이거나 옛날보다 더 작아지는 것 같아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망하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면 이 나라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넓혀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국제적으로 모든 일을 증거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앞으로는 외국에서 영통인들이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한 달에 서너번씩 김포 공항을 통해 찾아오게 되면 아마도 통일교회가 와이로를 써서 그들을 불렀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우리를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탕감원칙에 의해 우리에게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이 1960년도부터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간다는 말을 하는 것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명이 세계를 중심삼고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만 지나게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해야 합니다. 타락권내에 있는 여러분은 이것을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사탄세계의 자식들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장자인 사탄세계가 차자인 여러분을 치게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은 내 아들딸보다도 여러분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밥을 먹지 않으면서 사랑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 있어서 장자가 차자를 칠 수있는 기준을 완전히 방지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장자가 차자를 칠 수 있는 기준이 남아 있지만 차자보다도 장자를 더 사랑했으니 차자를 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대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가인을 좋아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가인의 제물을 못 받은 것이 한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딸을 내놓고 사탄세계의 자식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사탄세계가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원리적 관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성진이를 버리고 삼팔선을 넘어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자식을 버리고 삼팔선 이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 기준을 세워서 공산당에 대비할 수 있는 세력을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내외적인 현실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개인적인 길이 아닙니다. 가정적인 길도 아닙니다. 개인적 장자를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선생님이 미리 한 단계 앞서서 세워 나왔고, 가정을 중심삼고도 한 단계 앞서서 세워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안식하려면 여러분은 종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평면적으로 보면 이중의 십자가를 지고 있으며, 종적으로 보면 삼중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종적으로는 아담 시대·예수님 시대·재림 시대 이 3시대에 대하여 탕감복귀해 나왔고, 횡적으로는 여러분이 가야 할 가정적, 종족적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나왔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미리 여러분이 가야 할 국가적 기준, 세계적 기준까지 조건을 세워 길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탕감노정을 남겨 놓아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타락하지 않은 부모를 참부모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타락한 부모가 됨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는 6천년 동안 싸움의 탕감역사가 남아진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되느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까지 참소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전부다 부모가 탕감조건을 세워서 끊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끊어 놓는 기간이 제1차 7년노정인 1967년 말까지였습니다.
그리하여 제2차 7년노정에 들어와서는 여러분 앞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무사통과권내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남아진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정적 탕감조건을 세워야 할 책임, 가정으로부터 저끌어진 것을 탕감해야할 책임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것만 여러분들이 책임하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준비해 가지고 선생님이 닦아놓은 기준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부자의 인연이라는 심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그런 권한을 갖고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사탄세계에 참소받지 않으려면 어떤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권이 생겨났으니 이것을 복귀해 가지고 올라갈 때까지 부모가 길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길을 가는 자녀들이 고생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돈을 많이 번 부모나 혹은 세상에 권력 기반을 닦아 놓은 부모의 그 기반 위에 자식들이 남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고학을 하거나 혹은 노동을 하면서 기반을 닦아 놓았다면 자식은 자기의 실력만 플러스 하면 그런 기반의 자리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에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모라는 말이 기분 나쁘지만, 여러분 입장에서는 그 말이 복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공을 몽땅 넘겨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받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받아야 됩니다. 무언가 있는 자리에서 받게 되면 사탄한테 쫓겨 나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문제도 복귀의 심정, 인격문제도 복귀의 인격, 생활 문제도 복귀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무시한 기준에서 상속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 나오면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간이 바로 7년노정입니다.
만약 장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났다면 사탄이 생겨났겠어요, 안 생겨났겠어요? 「안 생겨났을 것입니다」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에 사탄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자를 복귀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사탄이 무력한 권내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세계에서는 이제부터 이런 질서적인 원칙 밑에서 지상에 있는 통일교회의 활동을 방어해 주고, 옹호해 주고, 협조해 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알겠습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직계 선민을 통해서 복귀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찾기 위한 역사, 즉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이루려고 했는데 실패하였기에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여러분이 축복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섭리하신 터전에 예수님을 보내어 뜻을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했다는 승리적 기준에 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후손들은 복귀섭리에 있어서 아무 공로가 없더라도 여러분의 승리의 기준을 통하여 4천년 복귀섭리에 공신되었던 선조들의 은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는 곳곳마다, 부모와 부자의 관계를 맺은 심정을 들고 나오는 곳곳마다 선조들이 총동원하여 협조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 후손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선한 영인들이 들이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탄편이 장자였는데, 이제부터는 하늘편이 장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의 사탄도 아벨, 즉 복귀된 장자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쳐서 직접 주관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차자를 복귀하기 위해서 하늘편이 맞고 빼앗아 오는 역사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치고 빼앗아 오는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이 치고 빼앗았지만 이제부터는 맞고 빼앗기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때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진로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과거는 하늘편이 장자의 입장이었습니다. 장자는 아버지 대신이기 때문에 차자를 다스리는 것이 천리법도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장자의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승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로부터 복귀되어야 하는데 안 되었기 때문에 차자가 언제나 맞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장자로 결정되었고 아울러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삼위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칙에 의하여 과거에 사탄이 차자를 치던 것의 3배, 7배, 70배, 혹은 300배 가중해서 쳐도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어느 기준만 되는 날에는 복귀원칙을 중심삼고 일시에 결론을 낼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주먹구구가 아닌 원리원칙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맞고 넘어가라 할 때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탕감노정을 무엇을 기준삼아 갈 것인가?7년, 21년 동안 몸을 치며 나가야 합니다. 다음에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그렇게 되면 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 문제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돈을 받으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7년 동안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맹목적으로 혹은 주먹구구식으로 그저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맞아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도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기도하면 맞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예전에 반대하던 목사, 장로들이 지금은 많이 들어왔지만 지금 반대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작전상 확실한 금을 긋지 않고 어영부영하고 있지만 확실함 금만 긋게 되면 목사, 장로들은 다 걸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21년 할것을 2배, 3배로 걸려 60년 이상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3시대를 대표하여 기독교와 싸웠습니다. 그것은 사탄에 대해 일대일의 입장에서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3시대의 조상을 반대했다면 그때는 탕감이 3배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성제단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러한 입장에 세우지 않고 살려주기 위해서 내가 지금 이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손해나는 것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주인이고 또 부모이니까 잘났고 못났고 간에 살라주어야지 어떡합니까?
앞으로 장자권 시대는 지나가고 차자권 시대가 옵니다. 이 7년 역사가 작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미국 같은 곳은 기독교에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안 남아 있고 늙은이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없어지면 망하게 됩니다. 복귀역사는 늙은이부터 시작했으니 따라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회개하여 역사를 부활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느냐? 전부다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이들이 경계선을 넘어 전부다 통일교회편에 서야 됩니다. 젊은층들은 통일교회가 이론적으로 이치에 맞는다고 경계선을 넘어서 통일교회를 향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에게 이익될 수 있는 길만 열어 주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모든 것들을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복귀역사는 무모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마음이 악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클클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보아도 별것 없고 클클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라, 통일교회에나 가보자' 하게 되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와 연결짓게 하기 위해 지금 다리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와 연결짓게 하기 위해 지금 다리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선생님은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 앞에서는 아무도 머리를 못 들게 되어 있습니다. 큰소리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큰소리했다가 나에게 멱살을 잡히더라도 꼼짝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통일교회를 믿어도 헛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에 가게 되면 미국에는 바람이 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국가적 기준에서 우리가 나라를 넘어 발전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다시 돌아온 것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 앞에 자녀의 책임을 3년동안이라도 협조하여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런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원칙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공연히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복귀섭리에 근거해서 하는 것입니다. 불변의 모습은 어디 있으나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몇백 번 죽더라도 뜻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다른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않을 것입니다. 이 뜻 가운데 태어나서 뜻가운데서 죽는 것을 판박아 놓은 운명으로 알고 다른 것은 생각조차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치 않습니다. 여러분을 대하여 역사하는 것이 옛날보다 범위가 조금 넓어졌을 뿐입니다.
식구들이 몇 몇이었을 때는 아직 인간을 짓기 전에 하나님이 천사장만을 사랑하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지어 놓으시고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시자 아담만 사랑한다고 시기하던 천사장처럼 여러분들도 그렇게 시기해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는 한국만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외국 식구들에게 본부에서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말을 해주었습니다. 즉 귀국해서 여기서 해야 할 말을 많이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그런 말을 해줬다는 그것이 그들을 여러분들과 똑같이 사랑한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자식이라면 이 자식에게 떡을 먹였다면 저 자식에게도 옷이라도 해 입혀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의 입장이 전환해야 하는 시기에 대하여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미리 프로그램을 짜 가지고 이길을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심하시고 밀어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이 이것을 재현시키기 위해서는 책임이 커지는 것입니다.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의 심정과 자식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우리의 도리를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끼려고 하는 한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 탕감의 심정을 중심삼고 복귀의 심정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인연은 어떻게 연결시켜야 되느냐?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사탄세계의 장자를 사랑한 후에 자기의 아들을 사랑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왔으니 여러분도 그런 길을 가야 됩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귀섭리의 길입니다.
탕감노정에는 반드시 믿음의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축복을 받아야 하고,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인을 복귀해야 합니다. 자기 개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즉, 아담이 부모의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고 아담 자신이 복귀되기 위해서는 가인이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원칙에 의한 탕감노정에 있어서도 여러분이 믿음의 자녀를 장자의 입장에 세우고 여러분의 아들딸을 아벨의 입장에 세워서 가인 아벨을 복귀시켜야 완전히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참부모의 자리에 못 올라갑니다. 참부모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굴복하는 데는 어디서부터 굴복해야 되느냐? 복중(腹中)에서부터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축복받고 태어난 아들딸을 중심삼고 복중에서부터 모실 수 있는 믿음의 세 자녀를 못 가지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 예진이를 낳을 때 여러분과 같이 보리밥을 먹는 3년노정을 걸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동참한다는 인연을 세워 가지고 심정적으로 민족을 중심삼고 복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는 36가정이 그런 인연을 맺어 가지고 나와서 복중에서부터 복귀의 기준을 닦았다는 역사적인 기원을 만들어 그들이 축복받을 때까지 완전히 하나 되어 나가면 세상은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여러분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적당히 여러분을 전도활동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많은 고생한 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서 고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축복을 받으려면 이 원칙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타락에 대한 보응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고생한 기준을 중심삼고 심정적 내정도 변하지 않고 복귀의 내정도 변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할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국가적인 것에 원수가 있는 것이 아니요, 세계적인 것에 원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 남아진 원수는 공산권입니다. 이것은 우리만이 아니고 세계적인 운명을 식별할 수 있는 국가적 기준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여러분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러한 모든 것을 맞추어서 넘어갈 수 있는 순간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아버님, 지루한 복귀노정을 걸으신 후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이 땅에 가슴을 헤쳐놓고 사연을 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아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의 그 누구도 당신의 심정의 인연을 받아들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못하거늘,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내가 할 말은 많으나 너희들이 감당치 못하리라'고 하시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심정을 홀로 품고 갈릴리 해변가에서,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수고의 터전을 찾아 헤매던 예수님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이 땅 위에서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시대에 오셨던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저희들은 진심으로 동정하옵니다.
아버님, 이와 같은 당신의 원한의 씨가 오늘날 저희 시대에서 꽃피워지고, 이것이 새로운 복귀의 터전에 씨뿌려지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여 예수님의 기뻐하는 은사를 받아 가지고 영계는 형님의 입장이요, 땅은 동생의 입장에서 하나되어 아버님 앞에 경배드리지 않으면 복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저희들이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야 하고, 예수님도 저희들이 아니면 복귀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역사적인 해원이 오늘날 통일교회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통일교회를 통하여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님만이 알고 계심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날 이러한 환경에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는 자유롭게 왔고 자유롭게 갔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올때는 자유롭게 올 수 없는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제 이 민족을 통하여 저희들이 해야 할 책임이 어떠한 단계를 넘었고, 세계의 정세와 천지가 어떠한 시점을 넘어가는 순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는 마음이 있고, 뜻이 있고, 뼈가 있고, 살이 있는데도 올바른 감정을 갖고 천륜의 도리를 생각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하늘의 충의 도리를, 하늘의 효의 도리를, 하늘의 열의 도리를 세움으로써 아버님이 저희들을 세워 자랑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만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하여 저희들이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서 세계를 통하여 열매맺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아벨만을 사랑할 수 있는 부모시대였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가인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여기에 다른 시대에 없었던,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새로운 부모의 심정이 싹튼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아버님께서 새로운 역사적 실체의 기반을 여기에 세워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불변의 모습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을 사랑함과 동시에 세계를 더 사랑하고, 아벨을 사랑함과 동시에 가인을 더 사랑할 줄 아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인이 없이는 아벨이 있을 수 없으며 가인 앞에 굴복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축복의 인연을 이 땅 위에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자기 스스로가 가야 할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앞으로는 자기 혼자만의 자식이나 공적으로 아버님께 상을 받고 추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하늘 앞에 심정적인 생활을 하고, 그 가정에서 얼마만큼 아버님의 아들딸로서 교육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아버님으로부터 상을 받고 추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이 이제껏 이 땅 위의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횡적인 가정의 인연이 연결되어 아버지의 소망의 천국이 이 땅 위에 건설되어 가는 기반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떼지 마시옵고, 오늘을 내일에 연결시키시어 일년, 십년, 천년, 만년 동안 기쁨의 영광 가운에서 승리를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민족 앞에 몰리고 쫓김받던 이 대한의 아들딸들이 아버지의 승리의 권한과 더불어 사랑받을 수 있는 칭찬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될 수 있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사오니 저희들에게 맡겨진 7년 기간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누구를 찾는 발걸음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를 찾는 발걸음보다는 바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 무엇에 대한 욕망이 아무리 간절하고 다 할지라도 이 길을 가겠다는 저희들의 욕망보다는 큰 것이 이 천지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여기에 저희들의 온 정성을 다하고, 온 기력을 다하여 사탄이 지금까지 날, 민족, 충신열사를 중심삼고 자랑하던 그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심정적 유대를 공고화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저희들이 선한 조상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도와주시옵고, 저희들이 부끄러움 없이 세상의 인연을 마련할 수 있는 각자가 되게끔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세계 위에 길이길이 승리만이 있게 하시옵고, 영광만이 저희들과 같이 동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까지 지루했던 어둠의 세계는 지나가고 광명한 햇빛이 이 땅 위에 바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의 왕자와 왕녀가 되어 쌍수를 들어 찬란히 비치는 아침의 태양을 자랑하고, 이것을 아버님의 영광으로써 엄숙히 경배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의 무리가 되고, 당신의 가정의 무리가 되고, 민족과 국가의 무리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영광이 아시아의 일각인 한국을 중심삼고 벌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광명한 새 아침, 온 만민이 찬송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저희들의 사명이요, 생명을 걸어 놓고 해야 할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이 책임을 다하여 이 생명의 전선에서 승리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전승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감사드리오며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어디 가서 선생님이 지역장수련회를 마치고 6월 2일 돌아올 테니 그렇게 알고, 서울에 있는 우리 식구들을 세계를 대표해서 6월 1일부터 9월말일까지 4개월 동안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하여 정성 들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금년에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떠날 때 여러분들이 통일의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그 노래는 우리만 부를 노래가 아닙니다. 삼천만 민중이 다같이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지금은 국가적인 위기가 우리 앞에 촉박해 있기 때문에 남한이 일치단결 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아벨적인 입장에서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맞기 전에 정성을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인을 위해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마음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특별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마치고 서둘러 돌아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삼천만 민족이 책임 못한 역사적 시대적 과오를 놓고 선생님도 기도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에 대해서 한이 있다면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3정권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핍박을 받은 나로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말만 생각나도 신물이 나고 진저리가 납니다. 그러나 뜻이라는 문제를 놓고 보면 나 하나가 쓰러지면 이 뜻이 수만년 연장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아무리 밸이 꼴리고 분개심이 일어나도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나이가 되어서, 뼈 없는 사나이가 되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배달민족으로 지금까지 수없이 침략당해 온 수난의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 민족에게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가까운 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민족 역사의 배후에 있는 모든 참사(慘事)는 가인 아벨의 참사의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세계에 유래가 없는 궁중 비사가 있었던 것을 세계 복귀노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의 탕감싸움을 대표로 해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나라가 섭리역사가 있어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금년으로 우리 나라가 해방된 지 24년이 되었습니다. 햇수로는 25년으로 넘어가는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이 참 중요한 때입니다. 그렇잖아요? 1945년 8월에 해방되었으니까 금년 8월이 되면 만 24년이 되지요?25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국가적 운명을 두고 볼 때에 3곱하기 8하면 24가 되므로 재출발을 중심삼은 시대적인 한 단계를 넘기는 때이기에 우리가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 있는 이북의 국민들은 독재자 김일성의 총끝에 혹은 채찍에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원한을 품고 일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이 품고 있는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는 전국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우리의 선교사가 있는 곳곳마다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6월 1일부터 4개월간은 전세계적으로 신앙의 조국 한국을 위하여 정성을 들일 것입니다. 세계 식구들이 아침이면 한국을 향해서 간곡히 기도한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이번 세계 순회 기간은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큰 싸움의 기간이었습니다. 피로하다고 하면 그 이상 피로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수년간 선생님이 오기를 내심으로 고대하다가 비로소 만났기 때문에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았습니다. 밤 12시가 되든 1시가 되든 선생님이 좀 더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것을 무시하고 피곤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부터 구라파, 독일, 일본까지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탱해 나왔지 그렇지 않았으면 쓰러졌을 것입니다. 정말 무리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생님에게 큰짐을 지워 주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오시기를 바랐지만 결국 선생님을 고생시키기 위해서 오시기를 바란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반성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자극을 주기 위해 선생님이 남기고 온 말씀을 생각하고 선생님을 고생시킨 것을 후회하면서 자기들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한국을 위해 정성 들여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알겠지요?
그러므로 본국에 있는 우리들은 그들에게 빚을 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6월 초하루부터 서울을 중심한 3개 구 33개소에 여러분을 내보내겠다는 원칙적인 조건을 이미 세워 놓았습니다. 전도가 되고 안 되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조건이라도 세워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요나가 니느웨 성을 위하여 기도하라던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서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리에 선 것처럼 되지 말고 여러분은 이번 기간에 이민족을 위하여 재를 깔고 베옷을 입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한과 더불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시기적으로 보아도 지금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할 때입니다.
만일 정성을 들이지 않아 이러한 조건을 세우지 못한다면 선생님이 가는 길 앞에도 지장을 주고,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도 지장을 줄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의 운명뿐만이 아니라 국가적 민족의 운명, 더 나아가 아시아 운명, 세계의 운명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런 때가 곧 오기 때문에 일본에서 반공전선을 강력히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원리연구회나 승공연합에 속한 사람들은 이번 기간에 자기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하고 싸울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정성들이는 입장에 있느니만큼 우리 한국 식구들, 더욱이나 여기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은 각별한 정성을 들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정성들이는 모든 것을 다 모아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할책임이 이 본부에 있느니만큼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그에 해당하는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떠나면서 여러분에게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 것은 선생님이 걸어온 탕감노정의 인연과 여러분을 연결시킬 수 있는 심령적인 유대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한 기도를 하나 안 하나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보다도 범위가 더 커졌습니다. 이번 기간은 이 나라와 이민족을 위해서 우리가 심정적인 제단을 쌓아 가지고 세계 민족 앞에 전통을 세워야 할 때이니만큼 여러분은 더 한층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지역장 수련회 마치고 돌아올 때는 이미 그 기간이 시작되었을 테니까 오늘 여기에 참석한 사람은 물론이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연락하여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특별기간 4개월 동안 정성들여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 특별기간 동안 북한 공산당과 우리 통일교회가 영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영적인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더 한층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알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총무부장, 공문 냈나? 「아직 안 냈습니다. 이제 낼 겁니다. 그런데 8월31일까지로 알고 있었는데요.」 누가 그런 소릴 했나? 9월 30일까지 4개월이야. 알겠나? 오늘이 며칠인가? 빨리 내도록 하라구. 「예」 하기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선생님이 얘기를 다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더불어 서울에서는 6월부터 반공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중 작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라의 일과 세계의 일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역자(전도자)는 무엇보다도 경험이 있어야 하며, 피전도자에게 충격적인 마음이 동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설교할 때에 은혜받는 사람과 은혜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은혜받은 사람을 동원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의 터를 닦아 주도록 해야 합니다. 즉, 은혜 받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식구를(피전도자)를 대할 때는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재미있게 대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뜻에 취해야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전달되는 것입니다.
식구를 대함에 있어서는 밤이 늦더라도 은혜를 높이기 위한 귀한 계기를 놓치지 말고 시간 관념을 떠나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시간을 염려해서 한창 은혜가 고조되었을 무렵에 말씀을 멈추면 다음날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핵심요원은 밤을 새워서라도 정성을 들여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3일간만 정성들인다면, 그 사람은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은혜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시간이 늦어 피전도자가 돌아가게 되더라도 전도자가 오히려 아쉬워하고 안타까와하면 영계에서 협조를 줍니다.
자기로서는 지성(至誠)을 다했는데 지도자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알아주고 자기는 몰라줄 때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지금은 저를 인정해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저 때문에 너털웃음을 웃으실 수 있는 때를 마련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자리에서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라는 기도를 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데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을 오히려 기분 나쁘게 생각해야 됩니다.
10명의 동급의 동료와 같은 일을 할 때, 자기가 가장 못한다고 생각될 때는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 말고 이후에 자기에게 맡겨질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까와지는 비법입니다.
자기가 맡은 지역을 위하여 3년간만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면 반드시 크게 부흥됩니다.
매월 한 사람을 전도하기 바랍니다. 전도할 때는 일대 일로 해야 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아벨이 탕감하는 기간이었으나 제2차 7년노정은 아벨이 가인을 탕감시키는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8년 이후부터 부모되는 가정이 복귀의 기준을 넘어섰습니다.
작년 아카데미 하우스 행사 이후 기성교회는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를 반대하면 그들 자신이 탕감받아 갈라지게 됩니다.
축복가정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출발합니다. 축복가정은 부모님의 아기들처럼 새롭게 태어난 입장입니다.
1968년 2월 8일을 기해 가정을 중심하고 심정적으로 장성기 완성급으로 넘어서는 식을 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모리아 땅으로 데려갈 때 이삭이 순종하며 따랐듯이 여러분도 순종하며 선생님을 따라오기만 하면 됩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하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축복가정이 사위기대를 이루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금년에 4개국의 10개 민족을 중심으로 축복가정을 세움으로 한국을 위하여 축복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기독교가 하나되어 반공운동을 해야 합니다. 반공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공산당들에게 학살당한 영인들이 있으므로 그 영인들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철저한 사상무장을 해야 합니다.
여성을 중심한 섭리는 김성도, 허호빈,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박노파로 이어졌고, 남성을 중심삼은 섭리는 이용도, 백남주, 김백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인서가 신앙잡지를 통하여 이용도 목사를 매장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새 예수교를 창립하여 에덴 복귀역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모란봉에서 기도해온 것에 이은 것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심령검토를 거울같이 하고 치병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근처에 3대 독자가 폐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부모가 이 노인을 찾아와 자기 자식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기도를 시작했는데 하늘은 그것을 말렸습니다. 그래도 그 노인이 계속 고집하므로 하늘은 그 노인으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치러도 좋다는 대답을 받고서야 허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노인이 물을 떠놓고 정성을 들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백일기도가 끝난 3시간 후에는 컵의 물을 끓기 시작하며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컵의 물을 들고 가서 환자에게 먹이되, 가는 도중에 누구를 만나더라도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노인은 컵의 물을 가지고 쏜살같이 달려가서 환자에게 마시게 하니, 그 3대독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곧 그 노인의 자식이 대신 죽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죽은 후에 김백문에게 나타나 사명 인계식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1945년 10월 김백문을 찾아가 상봉하여 그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누워서 잠을 자지 못했으며, 선생님이 앉은 자리에는 눈물이 마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 이상으로 정성들여야 그들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만 8개월 후에 평양으로 갔습니다.
김백문은 그때 선생님에게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증거하고 축복을 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인과 중년 부인, 혹은 20대 부인들이 선생님을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축복한 후에는 선생님에게 굴복해야 했었습니다. 당시 김성도 등 정치적 환경도 되어 있었으나 불신하여 선생님은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평양으로 가기 두 달 전에 성진이가 탄생하여 선생님은 김백문의 문산 집회에 참석하고 그 수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쌀을 사 가지고 오려고 출발했는데, 그 도중에 북한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곧바로 평양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1946년 8월 11일, 북한 공산당에 의해 종교를 지칭해 사기했다는 죄목으로 대동보안서에 투옥됐습니다. 옥중에서 허호빈과 같은 방에 있게 되었는데 3일 후에는 허호빈 집단의 협회장 입장에 있는 사람을 한 감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벌써 계시를 받고 나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었으며, 다음날 아침에는 내게 경배를 했습니다. 그는 허호빈 집단의 내정을 실토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만난 것과 같은 셈이 됐습니다. 그들은 경배를 7천 번이나 하며 이날을 고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황원신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감옥내에서 허호빈에게 생명을 걸고 연락하여 그에게 계시 받은 책임을 다하도록 당부했습니다. 후에 그 사실이 발각되어 공산당에게 악형을 당했습니다.
1946년 6월 4일, 선생님은 이북에서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자칭하는 박노파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박노파의 집에서 종살이부터 시작하여 옷을 빠는 것은 물론 변소 갈 때 수건 시중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박노파는 선생님이 여호와라는 계시를 받았으나 자기 자신만을 높여 갔습니다. 만약 그때 박노파가 선생님을 축복하고 증거한 후 선생님을 섬기고 따르며 선생님에게 순응했었다면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40일간을 싸웠습니다. 그 싸움에서 양보하면 복귀섭리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축복했으나 섬기지는 못한 박노파는 후에 미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명의 남자와 여자의 축복을 받아 아담의 입장을 복귀한 입장에 섰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복귀의 중심은 국가기준입니다. 국가를 어떻게 찾아 세우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체가 되고, 예수님과 백성이 하나되는 국가기준이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국가가 목적인 동시에 이스라엘 세계가 목적이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한번도 완전한 승리는 못 했지만, 그 발판은 점점 넓혀 나왔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6천년 역사의 내용을 재현시켜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승리의 기준을 세운 국가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사탄 국가들이 참소합니다. 오시는 주님은 실패했던 전체 역사를 승리적으로 상속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에 첨부되어야 할 것은 선생님의 역사가 들어가 있는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복귀역사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영계에 가서 그 모든 것을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즉, 영계를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은 영적인 승리의 열매요, 육적인 승리의 출발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따라만 가면 됩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역사를 한번만 거치면 됩니다. 가정을 끌고 국가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기준을 넘어가야 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의 축복은 그 기준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핍박없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소원은 누구나 가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가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목적은 국가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2천년 동안 싸워왔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상속받아야 합니다. 부모가 닦은 조건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부자의 인연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을 중심삼고만 될 수 있습니다.
중심 국가를 복귀해 가지고 세 나라만 복귀하면 국가적 사위기대를 세우면 됩니다. 이번에 세 나라의 사람을 중심으로 43가정을 축복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정 자체를 중심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 가정이 몸과 마음을 합하여 선생님 가정과 일체되었다는 기준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제일 가까운 형이 핍박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핍박입니다. 성경에 네 집안에 원수가 있다는 말씀은 이것의 표현입니다.
아카데미 하우스 집회가 고비입니다.
목사시대에서 장로, 집사, 평교인시대가 옵니다. 평교인시대는 민주주의 시대와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와 하나된 통일교회 대(對) 국가시대가 옵니다.
우리가 사상적(반공사상)으로 무장하여 북한과 삼팔선에서 만나야 합니다.
금년이 고비입니다. 소련·중공·북괴가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하게 되면 공산주의는 마지막입니다.
공산주의 중에서도 북괴가 제일 지독하고, 이편(자유세계)에서는 통일교회가 제일 지독합니다. 1969년이 고비입니다. 그 중에서도 6월에서 9월까지가 고비입니다.
사탄세계에서는 하늘편의 일을 먼저 흉내내어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소련도 중공도 뒤로는 민주세계와 손잡으려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소련이 가장 그렇습니다. 소련 편에 붙은 북괴가 남한을 치려면 소련이 이것을 잘 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괴에서는 강제로 아버지라 부르게 합니다. 거기에서는 강제이지만 우리는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자동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저들이 하는 행동 이상의 행동을 하면 자연적으로 통일이 됩니다. 가인적인 형제와 같이 생각해서 사탄만 제거하면 저들이 칠 수 없습니다.
이제 1971년까지 3년이 중요합니다.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하나 만든다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영육 아울러 타락했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복귀하는 동시에 육적으로도 복귀해야 합니다. 우선 그 대신형으로 우리 식구끼리라도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되어야 합니다.
요셉과 같은 구실을 해야 합니다. 사탄세계와 연결시킨 것이 요셉이었듯이 대한민국에서 미움받던 우리가 나서서 북한과 남한을 연결지어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다. 7년 동안에 여섯 아기를 낳았습니다. 현진이가 이번에 탄생한 것은 대한민국의 큰 승리입니다.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 완성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귀국한 것입니다. 여행 중에 아기를 낳으면 복이 그곳에 떨어집니다.
이제는 가정을 중심삼은 공격전을 해야 합니다. 특히 축복가정은 전부 공격전에 가담해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하나되어 재미있게 살고, 그 종족에 영향을 미치게 해 가지고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채찍을 드는 날이면 세상의 3분의 1이 달아납니다. 그래도 사탄세계나 하늘세계에 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과 하나되고 남북한만 통일되면 3년 이내에 세계는 하나됩니다.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여 일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이제부터 6년이면 한국은 완전히 돌아갑니다. 말로써 타일러 안 되면 힘으로라도 해야 합니다.
여자들이 합심하여 선생님을 출세시키지 못하면 저 나라에 가서 얼굴을 못 듭니다. 여자가 아담을 꼬여 타락하게 한 것은 탕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자 때문에 욕을 먹었으니 여자 때문에 출세한 입장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들이 밖으로 나서야 합니다. 여자들이 싸우다가 쓰러지더라도 남자들이 그 터전을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은 6월 8일, 이 달 들어 두 번째 맞는 주일을 아버지 앞에 맡겨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달을 지내고 나면 이해도 반을 넘기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여, 이 한 달을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섭리의 뜻 앞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달로 거두어들일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통일교회를 찾아 들어온 지 몇 년 되지 않은 자녀들이 남아 있사옵고, 먼저 뜻을 따라 나와 수고의 길을 거치며 싸움의 노정에서 하늘을 붙잡고 몸부림쳐 나오던 수많은 자녀들이 서울 도성의 30개소에 분립되어 있사옵니다. 이날 외로운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경배하는 그 무리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의 생애를 바치겠다는 결의뿐이고,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온 일체는 당신의 영광의 흔적에 보탬되기 위한 것이었사오니, 그들이 머무는 구역 구역에 당신의 자비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을 당신의 영광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권내에서 이 한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청파동 본부교회를 향하여 이 시간 같은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하늘을 앙모하면서 아버지 앞에 충성을 하려는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권고와 축복의 손길을 떠나지 말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남은 저희들은 형님 누님들이 뜻을 위하여 몸 바쳐 수고하고,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 나왔던 그 터전을 이어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이 본부를 빛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사옵고, 그 개척자의 사명을 이어받아 하늘의 거룩한 뜻 앞에 있어서 또 다시 몸부림치며 생명을 다 기울여 원수의 적진을 향하여 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엄숙한 사명과 과제가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진정으로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소수의 무리가 이 제단에 모여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사오니, 당신이 지금까지 찾아오시던 간곡한 마음으로 저희 개개인의 심정에 다시 찾아오시어 당신의 높고 귀하신 인연을 저희들의 마음에 연결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게 될 때 견딜래야 견딜 수 없는 격동의 마음이 되어, 다시 일어나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고 삼천만 민족을 품기 위한 당신의 간곡한 사정을 대신하여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각자 각자의 모습은 다르오나 이들이 당신의 긍휼하신 사랑과 당신의 현현하시는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필코 통일의 모습을 갖추어서 하늘을 흠모하고 정성들이며, 온갖 사모의 심정을 다 퍼부을 줄 아는 하늘의 열남 열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충신충녀들이 되고 효자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시간 일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저희의 사정이 외로운 자리에 들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더욱이 이날은 안식일인 연고로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거룩히 예배드리는 수많은 교단,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 가운데 하늘의 최후의 뜻을 위하여 준비된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을진대, 그들의 마음과 몸을 아버지, 직접 주도하여 주시옵고, 최후의 전선에 나서서 하늘 앞에 충신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늘의 싸움터를 책임질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이 본부교회를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마음을 묶어 이날을 축하하고 이날을 노래하며 아버지 앞에 스스로 승리의 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다짐하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직접 현현하시어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한반도의 삼천만 민중 가슴 가슴에 새로운 하늘의 불을 던질 수 있는 당신이 사명을 직접 책임진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수많은 자녀들이 이 한국을 흠모하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고, 또 만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아버지 앞에 경배하고 있을 줄 아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일률적인 사랑, 깊고 넓으신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그리하여 나라와 나라는 격하여 있을지라도 당신의 심정을 중심삼고는 다같이 형제지인연의 심정을 가진 하나의 가족으로서 아버지 앞에 감사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존전에 엎드렸사오니, 저희 각자의 마음 깊이 뿌리 박고 있던 사탄의 그 어두운 세력을 완전히 제거시키시고 광명한 햇빛 앞에 나타내주시옵소서. 불꽃같은 눈으로 어두운 그들을 전부 제거시켜 주시옵고, 생명의 은사의 빛으로 충만히 채워질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정과 처지를 초월하시어 현현하시는 그 은사에 저희가 완전히 하나 되어서 이 시간을 몽땅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예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번 지방에 있는 지역장들이 청평에 모여서 며칠 동안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그 기간에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오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최종적인 섭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이 끝날에 어떤 민족이면 민족, 어떤 교단이면 교단, 혹은 한 개인이면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이제 여러분들도 이러한 내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원리가 가르쳐 주는 것은 예수님까지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가정의 타락하여 잃어버린 것을 이 땅 위에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오셨으나,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다만 영적 부모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세계적인 복귀의 터전을 넓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끝날에 영육을 중심삼고 재차 이것을 수습하여 놓지 않으면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지상의 천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재림사상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나라가 어느 나라냐?' 이런 질문을 통일교인에게 한다면 `아! 그 나라는 한국이지요'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신령한 세계의 체험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국은 앞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이 되고, 세계의 신앙의 조국이 된다는 계시는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신앙세계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떠한 내용과 어떠한 인연의 계통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한국이 하나님이 택한 나라가 되고, 한국 민족이 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한국 백성에게는 지극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한국이 세계적인 이스라엘, 세계의 수많은 민족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 앞에 택함을 받은 제3이스라엘 민족은 그냥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탕감복귀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 원칙에 입각하여 가지가지의 사연을 탕감해 놓은 기반이 없이는 한국의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타락은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벌어졌습니다. 해와에게 아담이 주관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또한 해와 자신은 천사장에게 주관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인 해와가 천사의 주관을 받고, 개인인 아담이 해와의 주관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개인적인 역사를 국가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 벌여 자기고 반드시 청산지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세계의 모든 국가를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택함을 받기 위해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경로에 입각한 탕감조건을 국가 대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나가야만 됩니다.
2차대전 당시 아시아에 있어서 사탄편 해와국이 일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일본 앞에 한국이 왜 40년 동안 지배를 받았느냐? 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끝날에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역사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사탄편에 선 해와가 아담을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천지가 뒤집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도 해와국가인 일본에게 한국이 지배만 받고 만다면 망합니다. 주관을 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국이 지배를 받던 입장에서 반대로 일본을 지배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타락한 해와가 아담을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적 기준에서도 역시 사탄편 해와 국가가 하늘편 아담 국가를 지배하는 한때가 없고서도 탕감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아무리 받았더라도 해방을 중심삼고 여기에 반드시 아담적인 주체의 권한을 갖고 나타나는 역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어떠한 역사냐 하면 바로 신령한 역사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하는 집단들이 반드시 나타나야 됩니다. 즉 신령한 무리들이 집단을 이루어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해방을 전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택함을 입은, 즉 하늘의 복귀의 사명을 할 그 역군들은 왜정 탄압하에 만주에 벌판이나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남모르는 가운데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나왔습니다. 그런 숨은 역군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남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조직 운동이 북으로부터 남으로 연결되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망할 것을 그 내부에서 공공연히 발표를 했습니다. 망하는 날과 시간까지 계시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신령한 사람들 대다수는 일본이 1945년 8월 15일을 중심삼고 망한다는 것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이 반드시 망할 터이니 끝까지 참고 넘어가라. 사탄한테 굴복하지 말고 절개를 지켜라. 여기에서 승리의 터전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오시는 주님을 맞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한국 해방과 더불어 오신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해방을 맞이함과 더불어 이땅 위에 주님이 오신다는 계시를 받아 가지고 준비를 한 집단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도 그들이 찾고 있는 주님은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모르게 흘러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불쌍한 역군들은 일생 동안, 또는 수십 년을 준비하며 아무리 정성을 들였다 하더라도 까딱 잘못하다가는 주님을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이 해방될 때까지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복귀역사는 무엇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냐? 에덴 복귀입니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에덴 복귀의 노정을 걸어와야 했는데, 에덴 복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던 그 반대의 경로를 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을 중심삼고 신령한 집단들이 역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에덴 복귀를 하려면 아담과 해와가 저지른 역사를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한국이 지금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이와 같은 역사를 해야 됩니다. 1945년을 중심삼고 20년 전후, 우리 원리적으로 볼 때도 20년 전후를 중심삼고, 좀더 나아가서 40년 전, 한국이 일본의 압제를 당함과 동시에 기독교도 압제를 나아가서 역사권내에 들어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와에게 아담이 주관받음으로 아담은 망했지만 주관받은 그때부터 하늘편은 다시 발전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해방 직후에 성신 강림 40주년 기념예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념예배를 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예배를 본 때가 해방 직후입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40년 역사를 근거로 해 가지고 하나님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일본에게 지배를 당함과 동시에 새로운 운동을 급진적으로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어느 국가 이념, 지금까지 기독교 선교 역사상에 없던 비약적인 발전을 한국에서 한 것도 그러한 복귀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해와 국가인 일본한테 압제를 받는 한국이었지만, 미래에 아담의 특권,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권한을 쥐고 일본에 대비해 설 수 있는 섭리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압제받는 터전 내에서도 비약적인 부흥을 가져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 기간에 발전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전성시대가 어느 때냐 하면 1930년대입니다. 192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 1930년대를 맞이하여 최고의 전성기로 접어든 것입니다. 그때에 복귀역사를 하는 데는 남성적인 역사와 여성적인 역사를 이 한국 땅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철산의 김성도 할머니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김성도씨가 바로 정석온씨의 어머니입니다. 정석온 노친 왔어요? 「예」 그 김성도씨가 한국에 있어서의 해와격 사명, 즉 한국 복귀의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개문(開門)한 대표적인 여성입니다. 그 여자는 보편적인 계통을 밟아 가지고 시집을 가서 가정을 이루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석온 씨에게는 어머니가 둘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갈라내 가지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러한 혈통을 따라오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습니다.
두 가닥이면 하나는 하늘편, 하나는 사탄편입니다. 하나를 중심삼고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해 갈라 가지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역사는 반드시 특정한 부인을 중심삼아서 해야 됩니다. 부인이 이러한 역사를 할 때 그의 남편은 온 힘을 다해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탕감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탄편의 주관을 받던 여자인데 하늘편에 빼앗기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극성스럽게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목에 칼을 들이대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복귀가 안 됩니다. 보통 여자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비참한 운명에 부딪쳐 가지고 천명에 의한 절개를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택한 새로운 딸의 입장에서 역사시대의 여성을 대신하여 그 절개와 충절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고난의 길을 20년 이상 가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못 하게 되면 21년을 거쳐야 되는데 21년을 거쳐도 책임을 못하게 되면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중략)
강은 대부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려 가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두만강 같은 것은 예외이고, 대부분 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릅니다. 한국 강토에 있어서 1920년도를 넘어서면서 1930년도를 전후해 가지고 이러한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때부터는 여기에 정착을 해야 됩니다. (판서하심)
여기가 원산입니다. 원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하는 세밀한 내용을 여러분은 잘 모를 거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신령한 섭리역사의 기반을 중심삼고 이것을 복귀의 조건으로 세워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나왔습니다. 이 원산에서 무슨 역사가 벌어져야 되느냐? 원산은 동쪽이기 때문에 남자, 에덴 복귀 운동을 하는 남자 신령집단이 나와야 됩니다. 또 철산은 서쪽이니까 누가 나와야 돼요? 여자, 에덴 복귀 운동을 하는 여자 신령집단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남한과 북한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이 벌어져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민족을 왜정의 압제하에서 무지무지한 탄압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 환경을 대비하여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가지고 항쟁을 벌여 나온 것입니다. 그 바람에 기독교가 급진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면 철산의 책임자가 누구였는가? 여러분들 그 책임자를 알아야 돼요. 김성도 할머니입니다. 그 할머니 따님이 여기 나왔는데 그 할머니와 얼굴이 많이 닮았어요. 그런데 그 김성도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적어도 두 아들 이상이 있어야 됩니다. 이 가정을 중심삼고 에덴 동산에서 아담 가정이 잃어버린 가인 아벨의 탕감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들은 세밀히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섭리가 있기 때문에 두 아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 아들이 있어요? 몇인가? 「둘입니다」
장자와 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김성도 할머니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가 있었지요? 「예」 그 아버지(김성도 남편)는 죽도록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극성스럽게 반대를 합니다. 이렇게 반대를 하는 여기에서 이 김성도 할머니가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반대하는 것을 완전히 점령해야 합니다. 반드시 점령해야 됩니다.
모자(母子)협조에 의하여 작은 아들은 찬성을 합니다. 그러나 맏아들이 문제가 됩니다. 맏아들이 반대를 하게 되면 문제입니다. 혈통적인 관계에 있어서 사탄편이지만 아버지를 동조하는 입장에 서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장자는 그 어머니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에덴에 있어서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머니와 하나됨과 동시에 부모가 하나 되고 부모가 하나됨과 동시에 가인이 굴복하면 되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함으로 천지가 저끄러진 것입니다. 여기서 이 가정도 하나만 되면 무한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만 되라는 것입니다. 이 남자는 여자한테 굴복을 당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 역사의 과정에서 그 영감은 부인을 따라가야 됩니다. 부인의 치마 끝만 붙잡고 그저 하라는 대로 시적시적 하기만 하면 이것은 천지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은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반대하는 여기에는 선악 투쟁의 전반적인 내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영감이 하늘 앞에 지나친 반대를 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정상적인 죽음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반신불수가 되었다고 했지요? 「예」 약을 먹고 죽었다고 했지요? 「예」 그렇게 됩니다.
만약에 여기에서 그 아들 형제가 어머니와 완전히 하나 되어 어머니를 모셨더라면, 그 가정의 계대를 연결시켜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누가 책임을 못 했느냐 하면 정수원의 아버지인 정 장로가 책임을 못 했습니다. 정 장로 이 영감이 책임을 못 했습니다.어떻게 책임을 못했느냐 하는 내용은 여러분에게 세밀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책임을 못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은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재탕감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재탕감역사를 하기 이해서 정수원의 어머니를 잘 믿었을 것입니다. 거 잘 믿었어요? 「예」 잘 믿었어야 됩니다. 이 재탕감역사를 하는 데에서도 남편은 그저 부인이 시키는 대로 절대 복종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게 되면 그 가정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되는 마음 가지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별 문제입니다. 7년 이상 성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 모르겠어'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래서 걸린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명령을 받은 그 부인 자체는 물론이고 그 남편 자체도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정수원 어머니가 죽은 것도 다 그래서 죽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몇 살에 죽었지요? 「예순 둘인가에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 장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듯 하늘의 법도는 용서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 말은 선생님이 꾸민 말이 아닙니다. 원리의 법도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철산을 중심삼고는 이러한 기반을 닦으면서 준비를 해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에덴의 복귀가 어떻게 되고 해와가 어떻게 타락했나 하는 것을 자세히는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대강 그 윤곽적인 내용은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가 서쪽에서 벌어짐과 동시에 동쪽의 원산에서는 남자편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역사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의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백남주입니다. 그로부터 신령한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리하여 그를 중심한 사람들이 철산의 김성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원산에서부터 철산까지 맨발로라도 전부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백남주 그 사람이 공로가 컸습니다. 왜정의 탄압을 받는 자리에서도 성주교단이 조선총독부에 등록을 해 가지고 종교적인 터전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백남주 그 사람의 공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여자 홀로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남자와 둘이 합해 가지고 공동작전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터전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백남주가 그런 일을 해 주었지요?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완전히 하나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백남주라는 사람도 영계의 계시를 통해서 앞으로 한국이 어떠한 시대에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역사를 받들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된다는 내용은 몰랐습니다. 철산을 찾아가 그 쪽과 죽든 살든 하나 되어 가지고 의논하며 나가야 될 것이었는데,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갈라졌습니다.
그리하여 복귀섭리의 제일대적(第一代的)인 터전에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명을 옮겨집니다. 철산의 김성도 여인을 대표하여 개척자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반을 닦으려고 했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1대에 있어서는 뜻을 해결짓지 못하고 2대로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도표 참조)
그래서 서쪽은 허호빈에게 넘어가고 동쪽은 이용도 목사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백남주는 아담형입니다. 완전히 둘로 갈라져 어느 한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신령한 역사편도 되고 진리편도 되고…,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정적으로 결정짓지 못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스웨덴보르그라든가 한국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 사람들의 일파입니다. 이 사람들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용도 목사가 나오는데, 그는 허호빈과는 파가 좀 다릅니다. 원래 그들은 합해야 됩니다. 그런데 한때는 합했다가 다시금 갈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이용도 목사는 무엇을 만들었느냐? 예수교회를 만들어서 나옵니다.
중앙 신학교 교장이었던 이호빈 목사나 박재봉 목사는 한국 기독교에 불을 붙인 사람들입니다. 1930년대에 이용도 목사는 한국에서 그야말로 엘리야적 불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강의를 하면 수많은 군중을 하늘의 역사에 잠기게 하는 등 하늘의 은혜를 물 붓듯이 퍼부어 주었습니다. 왜 물 붓듯한 은혜를 부어 주었느냐?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로마를 반박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있어서도 기독교가 한국을 온전히 업고 넘어가서 반대하는 일본을 물리치고 하늘의 권위를 세워야 할 싸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그에게 강력한 불을 주어 가지고 전 기독교가 하나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 기독교가 완전히 하나만 됐더라면 절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끝날에 가서는 일본이 강제로라도 굴복시키기 위하여 총칼을 들이대는 일이 반드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무난히 넘기 위해서 기독교가 거국적으로 이런 불길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 되어야 했습니다. 전부 일치단결하여 일본을 반대하고 나섰으면 총칼을 들이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 아담의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되었는냐? 이러한 특정한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사람들을 반대했습니다. 그 반대한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김인서입니다. 여기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은 죽었습니다만 이 사람이 이용도 목사를 붓으로써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거국적인 선동을 했습니다. 하늘이 사자를 보내 전국의 기독교를 통일시키려고 했는데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 배후에 기독교의 간부들이 가담되어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용도 목사가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이용도 목사는 2대(二代)째입니다. 이 2대에서 승리냐, 실패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중요한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이용도 목사를 한국 기독교인은 일제히 환영을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가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하면 그 교회의 교인들이 전부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기네 교회목사는 우습게 보고 뒷전으로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분해 가지고 이용도 목사에 대해 반기를 들고 반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양을 중심삼고 출발하여 새 예수교 운동을 했던 이용도 목사는 1933년에 죽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몇이었느냐 하면 33세였습니다. 예수님이 연령과 같습니다. 그가 33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계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신령한 사람들이 이 땅에 책임을 지고 왔다 가게 될 때에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용도 목사는 혼자 외로이 원산에서 죽어 갔지만, 그가 운명하는 순간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이 먼 거리를 초월하여 하늘 앞에 특별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좋다고 춤을 췄을지 모르지만 그가 죽은 후 3일 동안 흰옷을 입고 추도를 드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 있을 때 찾아온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27세였는데 그 할머니는 72세였습니다. 길선주 목사 때부터 이용도 목사를 거치면서 은혜를 받은 할머니인데 굉장한 역사를 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이적역사를 많이 했습니다. 평양을 중심삼은 모란봉 기도를 이 할머니가 했습니다. 그때 모란봉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울창했기 때문에 도저히 사람이 다닐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일본이 기필코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기독교를 완전히 밀어치우려는 놀음이 있을 터이니, 너는 그때를 준비해서 준비하라는 계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자가 중심이 되어서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서 모란봉 기도를 개척한 할머니입니다.
그 할머니는 기도를 언제 하느냐 하면 반드시 밤 두 시나 세 시에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남편은 죽자꾸나 반대를 했습니다. 그 반대가 굉장했다는 겁니다. 그런 반대를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 할머니는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다년간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은혜를 받아 큰 역사를 많이 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병자라도 손만 대면 벌떡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천리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다 압니다. 일본의 누구 하게 되면 앉아서 다 알고, 거리에 나가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누가 몇월, 며칠, 몇시에 무엇을 했는지 전부다 알아냈던 겁니다. 굉장한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을밀대에서 모란봉까지는 1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여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는데 눈이 오거나 하면 여자의 몸으로서는 도저히 눈길을 가려서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을밀대에 올라서면 하나님이 `눈을 감아라' 해서 을밀대에서 모란봉까지 공중으로 옮겨다 주는 꿈 같은 역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할머니는 한국이 택함받은 나라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평양에 있는 여자들에게 앞으로 이러이러한 세계가 되고, 한국에 기쁜 행운의 때가 올 것이라고 전부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용도 목사가 재림주의 입장인 것을 알고 이용도 목사를 따랐던 분입니다. 그 할머니는 이용도 목사가 운명하는 시간에 평양에 있었는데, 하늘이 너는 `이용도 목사가 운명하면 베옷을 입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라' 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해준 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의 뜻이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홀로 와서 몰리고 쫓김받아 가지고 홀로 죽어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자기의 생명을 제물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상대적인 입장에서 기도를 해줄 수 있는 이러한 여성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터전이 이 땅 위에 남아질 수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거리를 초월하여 알려줘 가지고 이용도 목사가 운명하는 그때부터 3일간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이 할머니에 대해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갔을 때 그 할머니를 누가 전도했나? 지승도씨인가? 그랬지요? 지승도가 교회에 오는데, 그 할머니 집 앞에서 발이 땅에 붙어 하늘로부터 `이 집에 하늘이 택한 특별한 딸이 있으니 들어가서 전도를 해라' 하는 계시를 받아 가지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평양에서 역사를 하던 때입니다. 그래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니 대번에 압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대번에 아는 겁니다. 선생님한테 와서 자기가 지금까지 지낸 이야기, 하늘이 비밀적인 이야기,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면 미치광이라고 누가 들어 줍니까? 그러니 선생님 만나 가지고 전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 알고 있으니까 전부 이야기하라고 그랬지요. 그래 그 이야기를 전부다 들어 보았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장한 역사를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부다 할 수는 없고 특별한 이야기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이 할머니가 은혜의 역사를 해서 수많은 병자들이 손만 대면 낫게 되니 그 소문이 평양뿐만 아니라 전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매일 환자들 치닥거리하느라고 다른 볼 일을 못 보던 판국이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병자를 보고 기도를 해서 `너 나았다' 하면 낫는 겁니다. 이런 굉장한 역사가 벌어지니 그 이웃 동네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부모까지도 이 할머니 만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옆동네의 3대 독자가 폐병에 걸려서 오늘이야 내일이냐 하며 시간을 다투는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할머니도 과부요, 어머니도 과부였습니다. 세 식구가 그 아들 하나만 믿고 살아 나왔는데, 죽으려고 할딱할딱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외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있는 것 없는 것 다 썼지만, 그래도 그 아들을 구하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정성을 들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그 어머니와 할머니가 찾아와서 자기의 아들, 혹은 손자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그랬는데, 하나님이 절대 그들에게는 기도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것 보고 하나님이 누구는 기도해 주고 누구는 안 해주나 하겠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조가 선하든가 해서 민족적인 탕감의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사람들은 기도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모르지요. 하늘에 기도를 해보면 절대로 기도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동네 같이 사니까 그 부모가 와서 얼마나 간청을 했겠어요. 그러다 그 아들이 거의 죽어 가게 되니까, 나중에는 그 어머니와 할머니가 와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희가 딱한 사정에 놓여 있을 때 기도를 해주는 것이 당신의 책임일진대,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선을 행하고 있으면서 왜 저희 아들을 위해서는 기도를 해주지 않느냐며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정상 기가 막힌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이런 아들을 위해서 동정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전능의 하나님이 아들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어떠한 일이든 할 터이니 낫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담판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묻는 말이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겠는데, 그 대신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기쁜 말입니까?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고 말고요'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부터 100일동안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정성을 왜 들여야 되느냐 하면 탕감복귀의 원칙에 있어서 그 사람이 이 땅 위에 민족적인 제물의 사명을 해야 할 텐데, 그 터를 세우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탕감복귀의 내용을 잘 몰라서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래서 모란봉 100일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을밀대 앞쪽, 즉 대동강 가의 능라도 건너편에 용문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인적이 끊어진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부인의 몸으로 혼자서 그 용문사에 가서 100일 동안 기도하며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려 올라갈 때는 어떠한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아들이나 영감을 만나더라도 절대 아는 체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0일 동안 그렇게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성들이기 시작하여 99일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100일째 되는 날 두시에 기도를 하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분명한데…. 그렇지만 하나님은 해가 떠오를 즈음, 새아침을 중심삼고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광명한 햇빛과 더불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이러한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해가 떠올라야 하루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잘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이 다 지나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래 해가 떠오를 때쯤 되니 명령이 내린 것입니다. 무슨 명령이냐? 기도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화수를 떠놓고 하라는 명을 받고 100일 동안 그렇게 하고 나니 명령이 내리기를 네가 떠다 놓은 물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끓고 있을 터이니 그 끓는 물을 가지고 환자에게 직행해라,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반드시 한 목적만을 중심삼고 가고, 그 집에 당도하여 그 어머니 할머니가 인사를 하더라도 대답하지 말고 들어가서 그 물을 청년에게 마시게 하면 나을 테니 그렇게 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100일 동안 정성을 들여서 죽어 가는 한 생명을 하나님 앞에 부활시켜 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쏜살같이 그 집에 찾아가서 말을 해서는 안 되니까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가 나와서 새벽에 누구냐고 물을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안 하는데 하도 심각하게 대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었대요. 그리고 보니 아들의 병을 부탁했던 그 할머니가 서 있는 것입니다. `아이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는 겁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본체만체 하고 방에 들어가서 병석에 누운 그 아들한테 물을 먹이니 그 즉석에 나은 겁니다.
그렇게 되니 그 집안에 경사가 났습니다. 그런 경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 식구가 그 할머니를 붙들고 감사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릅니다. 아침이 되어 이 할머니가 집에 돌아가려고 하니 그냥 가게 했겠습니까? 절대 못 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서 잔치를 하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떡을 하고, 닭도 잡아 잔치를 했어요. 그걸 얻어먹고 오후 두 시가 넘어서 자기 집에 돌아간 거예요. 집에 들어서니 자기 아들이 무슨 장사를 하다 일찍 돌아왔던 모양입니다. 먼저 들어와 있다가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오시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새벽 5시 전에는 돌아왔으니까. 그래, 일이 좀 있어서 늦었다고 하고는 안방에 들어가고 그 아들도 윗방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배가 아프다며 자리에 눕더니 몇 시간 후에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3대 독자 대신 그 할머니의 아들을 제물로 삼아서 그 아들을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해도 원망하지 않겠지 했을 때 대답한 그 말이 언중유언(言中有言)이었습니다. 즉 그 말은 네가 그 환자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네 아들과 바꿔서라도 그 환자를 살려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맏아들을 데려가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이 할머니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정신이 다 아찔한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도 참 무심하시지…. 나를 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수많은 사람 앞에 증거하게 하고 드러내게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 주시지 않는 것이 없더니, 이렇게 내 맏아들을 데려가시다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아들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왜 내 아들을 데려가십니까?' 하고 하소연했지만, 그 모든 사실이 자기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서 아무데나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거의 반년 동안은 그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령한 부인으로 존경을 받아 왔었는데 미쳐서 돌아다니니까 평양시내에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평양에 가면 서문밖이라는 사거리가 있는데 이 할머니가 원한에 사무쳐 정신이 돌아가지고 중얼중얼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런 어느 날 오후 2시쯤 된 대낮인데, 그 서문밖 사거리를 지나려니까 난데없이 죽은 아들이 나타나서 `어머니! 어디 가십니까? 서문밖에는 못 갑니다' 하더랍니다. 그 아들 때문에 그러고 다니는데 갑자기 그 아들이 나타나니까 이 할머니는 꿈이냐 생시냐 하며 그 순간에 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하고 대화를 했던 것입니다. 무슨 대화였느냐? 선생님이 시간이 없어서 그런 내용을 다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아들이 `어머니, 왜 나를 못 살게 굽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의 행색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 위대했던 어머니가 이렇게 졸장부 같은 어머니가 될 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꼭대기에서부터 내치는 것입니다. 천상세계에서 어머니 때문에 자기가 죽을 지경이라는 겁니다. 왜 죽을 지경이냐 하는 해명을 하는데 `내가 이 땅 위에서 어머니의 아들로, 또한 아무개 집 장남으로서 하나님 앞에 내 몸과 마음을 전부 불살라가며 정성을 다하는 충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가 있는 곳보다 더 좋은 곳에는 못 갑니다. 나는 어떠한 곳에 가 있느냐 하면 내가 살아생전에 더 좋은 곳에는 못 갑니다. 나는 어떠한 곳에 가 있느냐 하면 내가 살아생전에 들인 정성으로 하나님께 공신이라는 인정을 받아 갈 수 있는 그 자리와, 병을 앓다가 살아난 그 사람이 이 땅에서 정성들여서 갈곳을 합한 그 이상의 자리에 가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자기가 정성을 들여서 갈 천국 외에 자기 때문에 나음을 받은 사람이 이 땅 위에서 정성을 들임으로써 하늘의 공신이 되어 가야 할 자리를 합친 자리보다 더 나은 자리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절벽이 되어 있으니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들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를 더 이상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를 더 이상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아들된 위치에서만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었다면 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 넓은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인 공인 있기 때문에, 그 3대독자와 내 생명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나 자신과 우리 가문에 있어서는 천년 운이 깃들 수 있는 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그러고 다니면 우리 집에는 큰 화가 미치게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가 아들한테 야단을 듣고 나니 정신이 들겠어요, 안 들겠어요? `아이쿠! 머리야 내가 잘못 했구나' 하고 거기서 엎드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모르는 이상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가정에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구나' 하고 눈물로써 감사의 기도를 하고는 정신이 돌아왔답니다.
이 할머니가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그러한 내용을 전부 보고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게 될 때, 그런 사람들은 모진 역경에 부딪치면서도 복귀의 개척자의 사명을 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들의 정성에 비하면 여러분들은 건달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통일교회패들은 전부다 껄렁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로 왔던 이런 사람들이 죽을 운명에 처했을 때 자기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식구와 마찬가지로 같은 운명의 자리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산을 초월하여, 그 원산과 평야의 거리를 초월해서 죽어 가는 자기의 형제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정성을 들일 수 있게끔 하여 준 사실을 볼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려는 섭리의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서 이런 역사를 해 가지고 새 예수교를 중심삼고 새로운 불길을 한국의 기독교에 옮겨 붙여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하나 되면 가인 아벨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새로 나온 새 예수교가 아벨이 되고, 지금까지의 기독교가 가인이 되어서 이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는 입장에 서면, 그때부터 한국 강산에는 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을 맞기 위한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있어서 유대교와 같은 교단을 한국강산에 세워 가지고 그 교단을 중심삼고 세밀히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이러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완전한 발판이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갈라져 나오게 되니까 일본 사람들이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람들을 몰아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몰리고, 동네에서 몰리고, 어디에 가든지 요주의인물(要注意人物)로서 몰리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집회도 못하고 식구들을 못 만나고 외로운 병석에서 밤이슬 같이 사라져 간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뜻을 받들어 남이 모르는 가운데 정성을 들인 아낙네들이 있었기 때문에 섭리의 계대를 이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섭리역사과정에 있어서 첫번째 여자를 중심삼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것을 두번째 여자를 중심삼아서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두 번째 여자의 남편도 역시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허호빈씨의 남편은 반대를 하지 않고 협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이 기반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허호빈이라는 부인을 중심삼고는 무슨 역사를 했느냐? 오늘날 복귀역사를 완수하기 위한 안팎의 준비를 전부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이 땅의 해방과 더불어 하늘나라에 맺힌 한을 해방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해방과 더불어 영계의 해방이 벌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이 부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남편과 하나가 되어 해야 됩니다. 에덴 동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형(型)으로 볼 때 어떠한 형이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축복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사장 형입니다. 남편은 천사장입니다. 천사장이 해와를 강제로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번번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에 있어서는 남편이 반대하는 한때도 있었지만, 여기에서 되어진 역사적인 사실을 보게 될 때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체휼했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부인에게 절대 복종한 것입니다. 그 부인의 남편이 아닌 부인의 종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부인은 어떤 입장이 되느냐?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해와가 아니고 복귀된 해와가 됩니다. 천사장을 지배해야 할 해와가 천사장의 지배를 받음으로 타락했으니 지상의 실체를 중심삼고 복귀해야 됩니다. 그 남편이 부인 앞에 완전히 천사장이 복귀된 것과 마찬가지의 기준을 세워서 탕감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남편이 절대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보면 해와는 신부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남편은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이 남편은 간신(奸臣)이고, 간부(姦夫)입니다. 본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직계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남편은 간신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남편은 땅 위에서 남자로서는 도저히 못할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를 유린하고 이용해 나오던 남자 세계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별의별 일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벌거벗고 쫓아다니는 일까지 명령하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부인의 말을 듣고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남편은 하나님 앞에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에 부인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믿고 쫓아다니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몇 개월이라도 나가서 부인이 돌아오라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런 일을 해서 탕감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모른 탕감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또한 남자로서 하지 못할 그런 일까지 전부다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전부다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처(夫妻)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이 부처는 요셉과 마리아의 형(型)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받들지 못한 원한의 터전에서부터 세례 요한이 받들지 못하고, 유대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가 받들지 못한 모든 원한이 천상세계에 맺혀 있고, 하나님의 가슴에 맺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야 됩니다. 해방 전에 그런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왜정 때에 사편편 해와 국가인 일본과 싸웠습니다. 사탄편 해와 국가와 하늘편 해와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편 해와 국가인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가지고 하늘편 해와인 이 부인의 절개를 유린하려고 갖은 만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그러다가 그 부인은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굴하지 않고 해방의 날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보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일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해방을 맞이한 후에 북한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공산당이 들어와서 공산정권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1946년도에 선생님이 평양에 갔는데 이 허호빈 집단을 만난 것이 1947년도입니다. 그런데 이 집단이 종교를 빙자해 가지고 사기를 했다고 해서 공산당의 보안서, 지금으로 말하면 치안 경찰서에 적발이 되었습니다.
그 사기 내용이 무엇이냐? 예수님을 요셉 가정에서 받들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맺혀 있기 때문에 이 한을 풀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상세계에 있어서는 비통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가 태어났는데 말구유에 누이다니 이게 웬말이냐는 것입니다. 갖추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예비해 가지고 보내는 메시아,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는 메시아, 만왕의 왕의 권한을 갖고 오신 메시아가 실제 말구유에서 났고 비참한 목수의 일을 하다가 마쳤으니 예수님 일생에 있어서 이것을 풀 수 없는 원한으로 사무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탕감하지 않고는 다시 오시는 주님의 길을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이 태어나는 그날부터 33세가 될 때까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3번씩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집단에서 그 준비를 전부다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잘살고 영광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집단이 그러한 일을 전부다 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재산을 바쳐 가지고 한 것입니다. 하늘의 계시대로 되니까 교인들이 안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온 재산을 팔아서라도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맺힌 한을 풀어 줄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한을 풀 수 있는 기반을 닦지 않고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들에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서양 사람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오신다. 한국 사람으로 오시는데 키는 얼마고 체격은 어떠하다'는 것을 전부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해원성사를 한 그 터전 위에 오시는 주님이 이 한국 강산에서 누구보다도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 가지고 출발할 수 있는 생활적인 기반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해 놓았는데 종교를 모르는 공산당들이 몰려와서 보고 종교를 빙자한 사기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모두 계시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주님을 만날 때는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던 것처럼 감옥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춘향전 같은 소설이 나와 있다는 것은 앞날에 이 나라, 이 민족이 말할 수 없는 시련 가운데서 하나의 소망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계시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시 오시는 주님은 감옥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면서 간부가 한 곳에 다 모이게 되면 그때에 주님이 현현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건이 벌어져 대동보안서에 모두 검거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복귀역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용도 목사를 중심삼고 3대의 계대를 이은 이 중의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김백문입니다. 김백문은 남자를 중심삼고 에덴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두번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집단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선생님이 찾아갔습니다. 그때가 해방직후인 1945년 10월이었습니다. 이 집단은 세례 요한격의 집단입니다. 거기에 찾아가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탕감복귀역사를 해야 됩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을 축복해 준 것처럼 반드시 축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탕감역사를 해야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 집단에 가서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 종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뜻은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상속받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들이지 못한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이 흘린 눈물을 여러분은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여러분은 상상하지도 못할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얼룩져 가지고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세상에서와 같이 공작해서 사람을 슬쩍 빼낼 수 없는 것입니다. 참은 참이기 때문에 있는 인적 자원을 그 집단에서 발굴해 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단 속에서 말없는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가 가르쳐 준 진리의 내용을 비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계시라도 받아서 입만 열면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아무 말없이 봉사하는 생활을 계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하나님이 같이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영이 맑은 사람들이라 하늘이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3월의 부활절을 맞이해서 그의 식구들을 중심삼고 하늘의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상속 계대를 이은 것과 같은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흰옷을 입고 축복을 해 주는 것입니다. 무슨 축복을 해 주느냐 하면 솔로몬 왕의 축복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선생님은 그럴 수 있는 시간을 바랬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렇게 축복을 해주고 나니까 그 집단에서 신령한 은혜의 역사를 하는 부인들이나 식구들 전부가 김선생 따르지 말고 문선생을 따르라고 하는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거 이상하지요? 지금까지 정성껏 모셔 오던 김선생을 따르지 말고 문선생을 따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을 내세우거나 변명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앞뒤를 전부다 갖추어 놓았던 것입니다. 준비할 수 있는 기준이 다 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났을 때 그 집단에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선생님이 바랐던 것은 무엇이냐? 그 시대에 사명을 받은 부인이라면 그 부인 자식은 자기가 해와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해와는 타락 이후에도 해와입니다. 따라서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다'라고 말하는 부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다' 그 다음에는 `인류의 어머니다' 하며 엉뚱한 말을 하는 부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증하는 부인이 나야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역사를 하는 부인이 삼천리 강토 어디에 있는가 하고 찾아 다닌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은 박재봉 목사라든가 이호빈 목사를 잘 압니다. 그 사람들의 신앙 기준이 어떠한가 다 테스트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기준에 있는가 선생님은 다 압니다.
그런데 소문을 들으니 평양에 이상한 할머니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집단이니만큼 그러한 사실은 서로가 속속들이 연락을 하거든. 소식이 오는데 무슨 소식이냐 하면 그 이상한 할머니가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그 할머니를 미쳤다고 하지요. 기성교회에서도 정신이 나갔다고, 뭐 뭐 어떻게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돌았다고 평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러한 부인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소식을 듣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늘이여! 복귀의 사명을 중심삼고 천륜의 법도의 터를 이 삼천리 반도에 마련하였으니 이러한 부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닦아 나온 것을 해결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제가 평양에 가겠습니다'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1946년 6월 2일에 선생님은 이제 나는 나로서의 가야 할 길을 작정했기에 마지막 인사겸 해서 당시 김백문씨가 수도원을 만들어 특별 집회를 열고 있던 문산으로 떠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났다가 떠나갈 때는 간다는 인사라도 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해방 직후였기 때문에 쌀을 사기가 굉장히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그때 쌀을 한 트럭쯤 사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낭을 짊어지고 트럭으로 쌀까지 가지고 올 계산을 하고 출발했는데, 가는 도중에 갑자기 이북으로 가라는 하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쌀이고 뭐고 다 날려 버렸지요.
그때 우리 성진이 어머니와 성진이를 남겨 놓고 간 것입니다. 이거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진이 어머니와 성진이가 고생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결국 기성교회가 받들지 못함으로 그러게 된 것입니다. 그건 불가피한 것입니다. 재탕감역사를 해야 됩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품고서는 복귀역사를 못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모르는 제삼자의 입장에 갈라놓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겁니다. 이북에 갈 때,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잃어버린 열두 제자를 감옥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삼팔선을 넘을 때도 무지개가 앞을 인도해 줍니다. 120리 길을 직접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이런 놀라운 인도를 받아 평양에 그 할머니를 만나 가지고 탕감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지상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자기 혼자서 이겼다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실력으로 직접 대결해서 이겨야 됩니다. 그때 선생님은 26세의 연령이었지만 영적인 세계의 프로그램을 다 짜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복귀의 길을 이렇게 가는 것이다' 딱 짜가지고 나오는 겁니다. 영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기반을 닦아서 실체의 세계를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역사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신령한 역사를 해야 되느냐, 누가 먼저 복귀되어야 하느냐 하면 해와가 먼저 복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하는 명사가 먼저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할머니를 만나서 무엇을 하느냐? 그 할머니의 종이 되는 겁니다. 완전히 종살이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수많은 인류의 탕감복귀 노정의 길이 전부다 막혀 있기 때문에 이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극히 높은 영광의 기준을 알고, 하나님이 축복한 기준이 높다 하더라도 최하의 자리, 종의 기준에서부터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를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 있을 때, 전부다 선생님을 따르지만 선생님은 그 할머니에 대해서 어머님 이상으로 효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입장에서 천대를 받으면서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10남매의 자녀가 있는데 전부다 개구장이고 세상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아주 껄렁껄렁한 패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그 아들딸들에게 경배까지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은 왜 그러냐? 그런 사람들의 살 길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식구들은 선생님이라며 하늘과 같이 따르고 모시고 있는데 그 아들딸들은 뭐 철부지들입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도 두 가지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하늘의 역사를 하고 하루는 사탄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웬만해서는 이거 이해 못합니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모시고 싶어서 무엇이든지 귀한 것을 갖다 주게 되면 선생님은 할머니 가정 식구들 앞에 전부다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야 돼요. 오늘날 통일교인이 이 민족을 복귀하기 위하여 농촌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보살피고 애기들 코를 닦아주고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까지 했는가 하면, 여자들도 하지 못할 그 할머니의 빨래까지 다 해주었습니다. 무슨 명령이든 시키는 대로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복귀노정의 공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탕감복귀역사는 종의 기준에서부터 올라왔기 때문에,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서도 반드시 종과 같이 취급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처럼 취급받는 그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면 자꾸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이 기간은 선생님이 `원리는 반드시 이렇다' 하는 것을 딱 펴놓을 때까지 실험기간입니다. 사실이 그러냐 안 그러냐 하는 것을 실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했으면 하늘은 반드시 이런 축복을 해주어야 됩니다.
종의 종 자리에서부터 축복복귀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나면 종중의 제일 가는 종이 됩니다. 그리하여 더욱더 정성을 들이면 양자의 자리에서 양자의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남자한테 축복의 상속을 받았으면 여자한테도 축복의 상속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김백문 집단을 중심삼고 남자 앞에 축복을 받았으니 여자한테도 축복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까지 한국 강토에서 하나님이 닦아 놓은 모든 섭리의 기반을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 앞에 그러한 기준을 세우고 갈라져 나왔으니 이제는 여자 앞에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근본적인 타락을 했기 때문에 근본복귀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거쳐온 것입니다. 종의 문을 열고, 양자의 문을 열고, 아들딸의 문을 열기 위해 역사노정에서 수난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간 길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종이 간 길과 그종의 종이 간 길을 전부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복귀의 과정을 거쳐 나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이 뜻을 정확히 몰랐다면 이렇게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할머니는 선생님을 양자 중에 제일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렇게 올라가는 겁니다. 자꾸 올라갑니다. 그 다음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형이고 문선생님은 동생이라는 것입니다. 자꾸 올라가는 거예요. 여기 기성교회 사람들 나가겠으면 나가고, 바른말이 그래요. 그래 이번에는 아무개가 `아이구 예수님보다 문선생님이 더 훌륭하다' 하는 겁니다. 복귀하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에 가서는 이 할머니가 `나는 해와 입장이고 선생님은 아담 입장이고 하나님 입장이기 때문에 나도 따라야 되는데...' 하고 증거를 다 했습니다.
그런 후에야 선생님이 `내가 당신을 모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나를 모셔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관성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주관성이 전도되고 이로 인하여 온 인류를 뒤바꿔쳤던 것을 선생님이 복귀의 길을 닦아 가지고 그 한 날의 증거와 더불어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의 종 입장에서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며 자기를 모셨던 사람이 자기의 한마디의 증거와 더불어 권위를 세우고 당장 내가 했듯이 나한테도 그렇게 종 노릇을 하라고 하니 청천벽력과 같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증거하는 그 말을 받아 가지고 당장에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복귀하기 위한 주관성 전도입니다. 주관성을 전도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명령을 하는데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늘 것을 선생님한테 몽땅 빼앗기고 사탄 것만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즉석에서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 버렸습니다. 의심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의 갈림길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역사를 해 나오던 그 할머니는 불쌍한 복귀의 역군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즉석에서 정신이 돌아 가지고 영계를 들락날락하면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아담의 주관성을 복귀했기 때문에 해와는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아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 복귀의 행각을 거쳐서 오늘날 통일교회 수십년 역사가 이루어진 겁니다.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배후에서 역사를 어떻게 해 나왔는지 세밀한 이야기를 다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한 복귀의 기준, 주관성 전도의 기준을 닦았으면 실제로 가서 찾아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인류의 종의 기준까지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최하의 자리인 감옥에까지 가는 것입니다. 감옥에서부터 문을 열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흥남 감옥에 가서 공산 치하의 모진 압제와 학대를 받게 된것도 그러한 천명을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총칼 앞에서도 이 옥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사람을 찾는 데 하늘은 다 찾게 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영계의 영인들이 전도를 해가지고 선생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공산당들이 감방에 첩보원을 배치해서 정보수집을 하고 있는 판국인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입을 다물고 있지만 자기 선조들이 직접 나타나 가지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12제자 이상의 제자를 감옥에서 찾은 것입니다.
감옥에서 출역하는 시간이 되면 공산당들의 심한 감시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하려 가기 위해 낭하에 나와 웅성웅성하는데, 물론 거기에 간수들이 총을 들고 지켜 서 있지만 그 간수가 서 있는 바닥으로 기어서 오니까 알 게 뭐예요. 간수들은 항상 고개를 들고 다니거든. 하늘이 택해 만나게 해준 사람들은 그렇게 기어와서라도 선생님께 먼저 인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감옥에서는 미싯가루 한 숟가락이 이 사회에서 소 한 마리보다도 더 값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식구들이 미싯가루를 가져다 주면, 그것을 감방에 있는 동료에게 한 숟가락씩 맛보라고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미싯가루를 그냥 먹지 못하고 물에 개어서 일하러 갈 때 가지고 나가는 겁니다. 아침은 전부다 금식이거든. 아침에 나올 때 검사하기 때문에 잘못 걸렸다가는 큰 야단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에 차고 자기 공장으로 가져 가는 것입니다. 공장이 크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만날 수 있습니다. 점심 때 종이 울리면 모두 만나서 미싯가루 떡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그 맛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선생님은 거기에서 탕감기준을 세웠습니다. 이북에서 사위기대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 기준을 세워 가지고 다시 남한에 와서 복귀역사를 하면서 기성교회의 반대와 정권의 반대를 받으며 지금 이만큼 올라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빠 엄마 소리도 못하는 어린아이한테까지 경배를 하면서 모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모심의 생활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 준 것은 선생님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길을 재차 따라갈 수 있어야 시의(侍義)의 법도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복귀역사를 연결시켜 선생님 때에 와서 전체 분야를 중심삼고 탕감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몸은 하나지만 3시대의 사명의 역군들, 즉 6천년 역사의 수많은 성도들이 실패한 것을 전부다 수습해서 승리의 조건을 닦는 데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나왔다는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한국을 중심삼고 봅시다. 일본과 한국을 봅시다. 일본이 어찌하여 사탄편 해와 국가로 등장하느냐? 사탄편 해와 국가라면 벌을 받고 망해야 될 텐데. 이것을 잠깐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본래는 영국이 해와 국가요, 미국이 아담 국가입니다. 미국이 본래는 그렇습니다. 하늘편적 국가형으로 보면 영국이 해와 국가형이요, 미국이 아담 국가형입니다. 이러면서 한국이 앞으로 승리한 아담 국가형으로 서게 되면 미국과 영국은 복귀된 아담 해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죄악세계에서 거쳐갈 복귀된 국가형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한국이 승리한 하늘편 아담 국가가 된다면, 영국이 해와 국가가 되고 복귀된 미국이 복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2차대전 이후에 일본과 독일이 복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참 이상하지요? 독일은 사탄편적 아담 국가요, 일본은 사탄편적 해와 국가였습니다. 하늘의 원수인데, 왜 그러한 국가가 지난 20여년 동안 세계의 문화권을 이루고 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국가가 되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것은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기성교회는 어떠한 것이냐. 민주주의에 있어서 사상적인 중심단체입니다. 그러한 기성교회가 반대한 것은 전 민주주의가 반대한 것이나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원수의 세계에 들어가서 빼앗아 찾아 나오는 역사를 했습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길에서부터 복귀의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출발처가 어디냐? 민주세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세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늘이 준비된 사람들을 중심삼고 준비된 기반 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원수의 자식들을 빼앗아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의 반대적 자리에서 출발하는 기준을 닦아진 것입니다. 그렇게 원수의 국가에서부터 살 길을 닦았기 때문에 살 길은 어디서부터 트였느냐?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영국이 아니라 그 반대국가인 독일과 일본에서 트였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통일교회의 출발기지가 어디냐? 민주주의 권내가 아니고 사탄권내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에 가서 닦아 나왔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된 터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는 입장에서 종교를 모르는 무리들을 중심삼아서 이 권(圈)을 만들어 나왔습니다. 결국은 준비한 터전 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않은 터전에서부터 복귀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국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미국과 영국이 아담 해와 국가가 되지 아니하고 독일과 일본이 대신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미국과 영국은 독일과 일본이 부흥할 수 있는 뒷바라지를 해주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일본, 구라파에서는 독일이 근래 20년만에 부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이 전체 경제를 부흥할 수 있는 책임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미국은 복귀될 수 있는 축복권을 열쇠를 빼앗겨 버리고 자기들은 한 단계 후퇴한 노선의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과 독일이 지금까지 복을 받는 자리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일본과 한국을 중심삼고 봅시다. 이 일본은 한국의 원수 국가입니다. 선생님도 일본과 헌병과 관원들에게 고문을 당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용서할 수 없는 원수 중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일본에 원수로 대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 원수의 세계로부터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의 중심적인 기준을 이 한국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터를 닦은 기준에서 원수의 입장인 상대적 세계를 대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10년 전 비밀리에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10년 동안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일본이 만약에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한국은 독안에 든 쥐와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10년 동안 남모르게 일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반공 운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정계 전체가 반공 운동의 노선에 들어설 수 있도록 그 책임을 수행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한국이 가는 노선을 일본 정부가 반대했지만 이제는 반대로 따라 올 입장에 설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국가인 한국을 중심삼고 새로운 사상적인 분야에 있어서 일본을 완전히 하늘편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면 세계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축복도 일본과 미국과 독일을 해주는 것입니다. 본래는 1967년에 축복해 주려고 일본에 갔었는데 못 했습니다. 그래서 1968년 430가정 축복을 해줄 때 일본 대표로 구보끼를 데려다가 먼저 축복의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먼저 일본을 축복해 준 다음 미국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적인 아담국가였던 독일을 중심삼고 4대 국가에 하나님의 닻을 내릴 수 있는 입장에 섰습니다. 따라서 온 세계의 국가를 대표한 전체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고 돌아온 거예요.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가 타락했기 때문에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1960년 성혼하고 난 이후로 여덟 식구 기준을 넘어서야 됩니다. 그걸 위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여덟 식구가 되어야 할 텐데 하고.
이번에 어머니를 모시고 부랴부랴 돌아온 것은 해산을 한국에서 해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낳은 자식이 현진이입니다. 현진이가 여섯째입니다. 선생님 가정 자체 내에 있어서 완전히 여덟 식구 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안팎으로 딱 들어 맞았습니다. 또 우리 성진이와 희진이는 복귀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성진이는 아담형이요, 희진이는 예수형입니다. 그래서 희진이를 일본에 가서 낳았습니다. 일본에 갔다 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선생님은 그러한 일을 다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꿈같은 사실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복귀역사를 가려 나오기 위해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배후에서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땅에서 맺혔던 예수님의 한과 역사노정에서 특별한 사명을 짊어진 선지자들의 희생의 제물이 되면서까지 닦아 놓은 터를 완전히 수습하여 1대에서 탕감해야 합니다. 이것은 세계를 걸어 놓고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러한 것을 가려 가지고 승리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만이 아닌 천주사적인 영광의 권에 섰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에서의 통일교회는 어떠한 입장이냐? 현 단계에 있어서 반공대회의 90퍼센트 이상을 우리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지방에서 강의한 90퍼센트 이상을 우리 강사들이 한 것입니다. 반공연맹을 통해서 정부도 하고 있지만 자수 간첩을 데리고 가서 이북의 실정이 어떻다 하는 것만 들려 주는 정도입니다. 그들은 군단위로 한번씩 돌았지만, 우리는 면은 물론이요, 부락 부락까지 전부다 돌아다닌 것입니다. 전국적인 조직을 움직이면서 이번 한 달 동안 우리가 선두에 서서 활동한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도 우리를 내세울 수 있는 단계에 접어 들었습니다. 또한 우리 통일교회 사상이 아니고는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국가도 이제는 알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우리가 앞서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도 지금 모든 기성교회는 시들어 가고 있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한 이때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북한의 실정을 보면 지금까지 김일성이 북한의 주민들을 자기 휘하에 동결시키기 위하여 김일성 종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이 김일성을 어떻게 부릅니까? 「아버지라고 합니다」 아버지라고 하지요? 그들은 공산세계에 있어서 최악당입니다. 소련보다도, 중공보다도 더 악당입니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최악당인 것입니다.
김일성이 무엇을 가지고 국민 전체를 처리해 나오느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통일교회에서도 아버지라고 하지만 잘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참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와서 득세해야 되는 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에, 참이 오기 전에 거짓이 먼저 온 것입니다. 김일성의 이름도 풀어 보면 태양을 이루었다. 그렇지요? 즉 빛나는 태양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이북에서는 김일성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민주세계에서 누가 이러한 공산세계와 맞설 것이냐? 통일교회가 맞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하지요? 「예」 김일성이는 자기의 조상들이 전부다 역사의 주인들이라 하고 있고 한국역사의 맨 꼭대기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3·1운동도 자기 아버지가 했다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합니다. 김일성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가인적 기준이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은 아벨적인 기준입니다. 이 남한에서는 하늘편 아버지의 이름을 품고 나온 반면에 북한에서는 사탄편 가인적인 아버지가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누가 먼저 준비를 하느냐? 가인이 먼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인의 세계에서는 먼저 나라를 가져 가지고 아벨을 마음대로 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는 배후에서, 가려진 상태에서 지금 이 꼭대기, 최고의 정점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탕감복귀에서는 가인과 아벨 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부딪치는 나라가 어디입니까? 어디예요? 한국입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이 대치하고 있는 곳이 판문점입니다. 이 판문점을 중심으로 하여 절반은 사탄편이요, 절반은 하나님편입니다. 그래서 사탄과 하나님이 `아이구! 아무개가 잘못했소. 그러니 이것을 내게 주소' 하며 주고 받는 곳입니다. 이런 곳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이상하게도 이 한국에 들어맞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판가리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이 싸움으로 인하여 망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반드시 통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해야 됩니다. 통일하는 데는 사탄을 가입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입장인 김일성을 추방하고 가인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이북의 동포들을 구해야 됩니다. 이러한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우리 남한을 침범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벌거숭이입니다. 우리에게는 제물 드려서 하나님 앞에 축복받는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이번 기도하는 내용도 이것입니다. 우리는 제2차 7년노정 가운데서도 제2차 년도를 맞이했습니다. 2년 고개를 넘는 때인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세계적으로 딱 들어맞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기느냐? 여러분들은 공산당들이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모시는 정성 이상으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공산당들은 위협과 공갈과 협박, 그리고 강제로 시켜서 하지만, 여러분들은 자유스러운 환경 속에서 누가 명령하지 않고 누가 보지 않지만 있는 정성을 다 들여 그들이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충성하는 그 이상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다음 공산당들은 조직적으로 하나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획일적으로 하나 되는 이상, 위협으로 강력히 뭉치게 하는 이상으로 통일교회 무리들, 하늘의 식구들은 누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뭉쳐야 합니다. 공산당 이상 강력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첫째는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셋째는 행동하는 데 있어서 그들보다 앞서야 됩니다. 그들에게 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남한에 간첩을 내려 보내는 것처럼 우리 통일교인들도 앞으로 이북으로 가라 하면 못 가는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누구든지 그러한 곳에 가고도 남을 수 있는 결의를 가지지 않고서는 통일교회 식구가 못 됩니다. 행동적인 분야에 있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부모를 중심사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가인형입니다. 그러니 먼저 대한민국을 찾고 다음에 북한땅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고 형제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 되지 못했으니 남한에 있는 사람들을 가인과 같이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정성을 들여서 이 나라, 이 민족을 형제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영적 기준에 있어서 영적 세계는 천사세계에 해당하는데 천사세계는 무엇이냐? 가인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영계에 있는 영적 천사세계는 가인격입니다. 가인 아벨 탕감복귀 승리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전체 영계는 통일교회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영계와 지상이 완전히 하나 되면 기독교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인 실체를 굴복시키는 것은 문제없는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굴복시킨 야곱에게 형님에서가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 전체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나가니 가인형 실체세계인 공산세계는 무너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소련과 중공이 하나되었지만 하늘에서 하나되기 위한 운동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공산세계는 갈라집니다. 중공과 소련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공과 소련은 1957년부터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7년기간 동안 이러한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하냐? 공산세계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어제도 신문에 났지만 중공과 소련이 전부다 탱크를 동원하면서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원수냐 하면 이북이 원수가 아닙니다. 소련과 중공이 서로 싸우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들이 앞으로 세계에 있어서 누구를 동역자로 만들 것이냐 할 때 미국밖에 없습니다. 서로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기 때문에 소련의 정책은 이미 친미정책으로 향하고 있고 중공도 친미정책으로 나갈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싸움이 벌어지면 미국은 어느 나라를 협조할 것이냐? 미국이 만약에 같은 백인인 소련과 합하게 된다면, 북괴는 그 기회를 틈타서 행동 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개를 우리가 정성을 들여 가지고 넘겨야 합니다. 그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이번 120일 기간을 중심삼고 심정일체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늘 앞에 완전히 일치된 마음으로 공산당을 능가할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만 닦아 놓으면 이 어려운 고개를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 앞에 완전히 공인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김일성을 하나님이 데려가게 되면 간단하겠지요? 그러나 통일교회가 안팎으로 그 궤도를 맞추도록 하기 위해서 김일성을 살려 두는 것입니다. 그가 깐족깐족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와 한국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양면작전입니다. 김일성이가 지금까지 큰소리치고 나오는데, 그것을 일면으로만 보면 어려운 입장이지만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우리 통일교회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까워져야 할 우리 입장에서는 이 때와 시운에 맞춰 줄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세워서 참된 효자, 효녀, 충신, 열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일사천리로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정상을 넘어서 뻗어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이 삼천만 민중을 우리 통일교회의 사상을 중심삼고 무장시켰다 할때 공산당이 문제겠어요? 문젠가, 문제가 아닌가?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복귀섭리역사에 있어서 인민군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하늘편 해와들은 그들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하늘편 해와들은 공산세계 인민군을 전부다 처리하고 요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동에 나가 보면 여자들이 미니 스커트 입고 뭣이다 하며 휘젓고 다니고 있는데, 거기에 이럴 수 있는 여자가 있겠어요? 하지만 소수의 통일교회의 무리인 우리만 해도 인민군을 문제없이 정복하겠다는 결심을 가진 아가씨들이 있을 것입니다. 있어요, 없어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인민군을 처치하는데 통일교회 여자들을 동원할 것입니다. 여군으로 나가서 인민군을 전부다 처치하고도 남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자들을 한번 써먹을 때가 올 것입니다. 원리를 두고 볼 때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사탄한테 굴복당한 원한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가서 탕감복귀해야 되는 겁니다. 삼팔선을 넘어 이북에 가서 탱크를 몰며 대포를 쏘아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고 전군을 무장시켜야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가뭄에 그물로 물고기 건지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사탄편 이북이 남한의 2배였지만 오늘날은 하늘편 남한이 이북의 2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정신적인 무장, 사상무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상무장, 사상무장 하는 것입니다. 사상무장을 시킬 수 있는 사상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곁눈질해 나왔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편에 있어서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해결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의 충신이 되고, 또한 이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우리편에 서 가지고 앞으로 갈 길을 백방으로 준비하고 개척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최후의 결판시대에 있어서 한 사나이로 태어났고 한 여인으로 태어났으면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망의 한 날을 중심삼고 불쌍한 민족으로서의 복귀의 역군이 되어 가지고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한 채 무덤에 묻혀 버릴 무리가 되지 말고, 뜻을 알았으니 어렵고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을 다 거쳐 승리의 깃발을 꽂기 위해 원수의 진으로 총진군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땅을 어머니로 모시며 만민을 형제로 부활시키기 위한 선상에 섰다면, 그것이 얼마나 통쾌하고 신나는 일입니까?
만약에 선생님이 치마를 입었다면 삼팔선은 선생님의 치맛바람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북에 갔다온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이북에 갔다와야 합니다. 갔다와야 되겠어요, 안 갔다와야 되겠어요? 「갔다와야 됩니다」 벌거벗은 몸이지만 이제는 옷을 바로 입고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나라의 거동에 보조를 맞추어 세계로 행군하는 날에는 우리가 인민군도 전부 다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민군들도 써먹어야 됩니다.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것은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합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지 않고 승리를 결정하고, 화해하여 우리가 만주를 타고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이 앞으로 한 1억쯤의 인구가 될 때 만주땅이 없으면 정착할 수가 없습니다.
만주는 본래 우리 땅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장개석을 끌고 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배후 조종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모모한 사람을 중심삼고 장개석 아들로부터 부총리, 그런 사람들을 불러 가지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못 하는 일을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꿈같은 일을 개척하며 바람에 날리는 구름처럼 움직여 나왔지만, 제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더라도 구름을 밀어내지 못할 때가 옵니다. 이러한 길을 이제부터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합니다.
이제 결론을 지어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아오시기 위하여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의 배후의 역사를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심의 생활을 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다. 부모가 그러한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러한 전통적인 사상을 받아서 민족을 붙안고 세계 인류를 위해서 제물 드릴 수 있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 위에 하나님을 모시는 왕자와 왕녀가 되어서 그 가정에 전통적 사상을 심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역사한 사람들, 허호빈 같은 사람도 감옥에서 선생님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 가지고 연락을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로 약속한 모든 일을 그 집단이 연락해서 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한 그여성을 책임져야 되겠기에 선생님을 감옥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경창리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종교 사기 단체라고, 또 그런 동역자라 해 가지고 붙들어 간 것입니다. 1946년 8월 11일에서부터 11월 21일까지 수감되어 있는 동안, 선생님이 그들 집단의 간부들이라든가 그 부인의 남편, 그집단의 협회장 같은 사람을 만나서 그들이 갈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 그냥 있으면 너희들은 전부 학살당하니까 어떻게든 감옥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황원순이라는 사람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전부 부인하고 감옥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고문을 많이 당해 가지고 나온지 3개월만에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역사가 많았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 선생님은 이러한 역사를 편찬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선생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왜정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서 이루기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준비했던 사람들은 언제 만났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허호빈씨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락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락을 해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1946년 9월 18일이었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감방에서 한 청년으로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노니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라는 내용으로 썼습니다. 그렇게 하여 선생님은 책임을 다했지만 공산당의 감시에 그것이 탄로가 났습니다. 그래서 공산당에게 책상다리로 맞았는데 이빨에 금이 갔습니다. 이러한 투쟁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지우면 어느 한때 그 책임을 반드시 메꾸어 나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준비했던 모든 집단들이 실패한 역사의 모든 것을 수습하여 연결시키는 작전을 해 나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모두 망하고 쓰러져 갔지만 이것을 상속 인계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남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 역사에 몰리고 이단자로 지탄받았던 사람들이 다 희생되었으니,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 공석에서 이단자의 괴수라고 지탄받은 이 사람이 여러분을 대해 또 세계를 대해 나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같은 사람이 나와서 다시 부활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허호빈 집단에서 모시는 데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 여러분들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하늘을 모시는 법도를 다하기 위하여 얼마만큼 정성을 들였느냐? 하늘의 왕자로, 이 역사의 부모로 오시는 그분, 6천년의 한을 품고 오시는 그분, 타락한 우리 후세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맺힌 그분의 한을 정성을 들인 터전으로 풀어 드려야 합니다. 1대에서 풀어 드려야 되는 이러한 사명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면서 모시는 전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단 믿는 사람의 집에는 언제 어느 때든지 주님이 찾아오시면, 아침, 점심, 저녁을 대접해 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들인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경배를 얼마나 했느냐? 3천 번은 보통이고 7천 번까지 했다는 겁니다. 7천 번, 알겠어요? 경배를 3천 번 하려면 5시간 내지 6시간이 걸립니다. 7천 번을 하려면 10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혹은 새벽부터 시작하여 밥도 먹지 않고 7천 번 경배를 하면서 모심의 훈련을 했던 집단들이 그 갈 길을 잡지 못하고 다 깨어져 나간 것입니다.
하늘의 준비된 전통적인 역사였지만 다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의 깊은 사연이기 때문에 앞으로 천법을 중심삼고 우리 후대에서 그러한 정성과 더불어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이 매장되어 있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러한 정성을 들여서 복귀의 길을 갔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복귀의 길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그보다 열 배, 백 배의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피살이, 세포와 뼛골이 언제나 모시는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러한 자리에서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해야 할 생활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볼 때 오늘날 여러 통일교인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다시 정비해야 됩니다. 조금만 더 지나게 되면 영계에서 준비한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들어옵니다. 거 오늘 아침에 전도관에서 왔던 아주머니 왔어요? 아직까지 때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어 있지 않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수십년간 영계와 직통하는 사람이 여러분의 수백대 선조부터 들추어 가지고 `당신은 무엇 무엇을 한 사람이구만'`당신은 요런 결점이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가'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럴 때가 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때가 오기 전에 선생님의 명령을 들어서 탕감조건을 빨리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공갈도 아니고 협박도 아닙니다. 반드시 그럴 때가 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진이를 낳은 다음에 선생님이 청평에 갔을 때입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으로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불교 조계종에서 상당한 레벨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우리 통일교회를 위해서 14년째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하루라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면 오늘 몇 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간다 하는 것까지 전부다 아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죽 돌아서 온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바빠서 연락해 주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그래도 전화를 걸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화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도 같은 수화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아무리 통화를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통화가 되었는데 그 사람 하는 말이 선생님이 언제 돌아오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이번에 미국에 가서 몇 일 날 뭘 했고 뭘 했지요? 전부다 보고하는 거예요. 그만큼 세밀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돌아와서 전국 순회했지요? 청평에 훈련시키러 갔다 왔지요, 또 가지요? 미리 다 알고 앉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애기 낳았지요? 셋째 아들을 낳았는데 하늘세계에서 어떠한 잔치가 벌어지고 뭐가 어떻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다 알고 있는 얘기입니다.
영계에서도 알고 외부의 사람들도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땅 위의 통일교회 패들은 모릅니다. 그런 얘기하면 선생님의 자랑이 될 것 같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숨어서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과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식구들이 다리를 놓아서 선생님이 전부다 오라고 하면 올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겁니다. 지금 그러한 사람들이 상당한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면 여러분의 똥바가지까지 다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일 안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해서 무슨 위신이 서겠습니까? 다 준비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파수꾼으로 세워 놓고 세계를 중심삼고 호령하고 살 수 있는 백성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거 원해요, 안 원해요? 「원합니다」 원하면 원할 수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격자가 되는 것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이래저래 안팎을 뒤집어 보고 제껴 보아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선생님의 산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세밀히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아무리 목석 같은 사람이라 해도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갈 때 어떠한 사연을 기고 갔는지 기록해 놓으면 통곡할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선생님 따라간다는 패들 중에 건들건들하는 상건달이 많아요. 이번에 전국의 조직을 재편성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지금까지는 수비전이었습니다. 아직 세계적인 기반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수비전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한데 뭉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공격전이기 때문에 전부 나가야 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은 상당히 많이 나갔지요? 그래서 30여개로 갈라 놓았습니다. 지방의 지구도 4배 이상 벌려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직접 관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상당히 부흥할 거예요.
2차 7년노정을 중심삼아서 1차 7년노정 이상으로 정성을 들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는 탕감시대였기 때문에 탕감했지만 지금의 때는 탕감시대가 아니라 탕감시킬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백 번 뿌려도 한 번 거두기 어려운 때였지만, 지금은 백번 뿌리면 백 번 거둘 수 있는 때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모든 기준이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최고의 정성을 넘어갈 수 있는 기점에 놓여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한때를 바라보면서 생명을 걸고 닦아 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여러분이 안다 할진대, 이때에 있어서 현재의 생활환경에 직접 지배를 받으면서 하라는 것을 못하게 되면 영계에 가서 큰일납니다. 얼굴도 못 드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정성을 들여서 기반을 닦았던 허호빈씨 같은 사람도 선생님 말을 안 듣게 되니까, 공산당들이 전부다 후퇴할 때에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종말의 뜻을 가려서 최고의 기준에 이르기 위하여 최대의 정성을 들이며 이러한 목적으로 인도하던 것이 비참하게 거꾸로 떨어진 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장 무서운 곳입니다. 선생님도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대할 때 수단 방법으로 적당히 이용해 먹겠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그랬다가는 큰일납니다.
여러분들이 정성을 100만큼 들였을 때 그 100만큼 정성들인 것을 선생님이 알지 못하고서는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뜻을 모르고 살면서 밥 먹고 하던 사람들 병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렇습니다. 하늘의 법도가 있는 거예요. 그 법도를 어기는 날에는 망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갖은 풍파 속에서, 갖은 역경이 몰아치는 과정에서 이 길을 청산해 가지고 이러한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현실세계의 생활 가운데서 이것이 어떠한 단계로 발전되어 나가는지 알고 그 공식적인 과정을 쌓아 나왔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백 번씩 넘어 서가지고 오늘 여러분을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과거에 왔다간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이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정성을 들이며 소원하던 것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판가름 지을 수 있는 운명이 여러분 개체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안 하고는 선생님이 모릅니다. 여러분이 안한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망하고 선생님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죽더라도 선생님의 갈 길은 다 갑니다. 통일교회라는 이름은 세계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이 길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 길을 최고의 정성이니 만큼 위신을 세워야 됩니다. 체면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들 이상의 정성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가정, 혹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닦아 나오는데 있어서는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부다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상당히 급합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참아 나온 것은 한번 엇그러지면 억만년 역사가 틀어져 나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먼저 화를 내면 하늘땅이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사람들하고는 선생님이 대화를 안 합니다. 그렇게 알고, 이런 길을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단단히 정신 차려서 들어요. 남 든다고 들지 말고. 손내려요.
그러면 지금의 때가 어떤 때냐?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총공격 시대로 들어갑니다. 남한 각지에 부대편성을 해서 자리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6월 1일부터 해야 하는데, 지금 전국 반공주간이기 때문에 인사이동을 못 합니다. 전부 우리가 책임을 지고 반공강의를 하고 있는 입장이니 인사이동을 하면 지장이 생기므로 7월 1일로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본래는 6월 1일 특별 기도와 더불어 사탄세계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세계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본부로부터 30여 곳으로 갈라놓은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신입생들일 것입니다. 통일교회 역사를 잘 모를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두드려 패기도 하고 힘이 부칠 정도로 기합도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기합을 주더라도 자기들이 등쳐 먹게 되면 벌을 받지만 그 기합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잘 되면 좋은 것 아닙니까? 자 그렇게 해도 괜찮소, 싫소? 여기 아주머니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정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쉬지 않고 갈 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게 복귀역사를 엮어 나온 수많은 애혼들, 지금까지 우리를 위하여 준비했던 사람은 다 지나가고 네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만 여기 왔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속을 썩었을까요? 속 썩었겠어요, 안 썩었겠어요? 복귀의 역군들이 죽지 않고 여러분 대신 전부다 통일교인이 되었다면 선생님이 명령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훈련이 오죽 잘 되어 있습니까? 이거 해야 되겠다 하면 죽을지 살지를 모르고 할 텐데, 여러분들은 말을 해줘도 들을까 말까 머리를 젖히고 야단을 치며 별의별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갈 길과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길은 여러분 자신이 가야 합니다. 부모에게서 자식이 태어났으면, 그 자식이 자라서 또 부모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탕감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기준을 세워서 슬프고 불쌍한 복귀의 역군과 같은 그러한 사람들이 되지 말고 선조의 모든 복을 다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옹호하고 변명하고 해원성사를 하여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가인적인 입장에서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시대에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까지에 있어서 영계의 애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벨적 입장인 우리가 저들을 부활시켜야 됩니다. 부활시키는 데에는 그들의 행적까지도 부활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선생님이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 앞에 체면을 상실하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님, 흘러가는 역사의 그날들은 슬픔을 옮겨 주고 하늘에 탄식의 조건을 제시한 날들이 되었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한국의 운명을 통찰하시옵소서. 아시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입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하며 호소했던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의 마음을 얻고 온 영계를 끌어들여서 최후의 담판을 짓지 않으며 안 될 엄숙한 시점에 놓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오늘은 6월 8일이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 통일의 무리를 통하여 당신이 요구하는 간곡한 심정과 일념을 저희들이 상속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누가 배반하고 배척할지라도, 저희들이 벌거숭이 몸이 되어서 천번 만번 굴욕을 당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위해 죽겠다며 그 절개를 지킬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남북한이 분립돼 역사적인 한의 접경선을 통일시킬 수 있는 기점을 만들기 위하여 아버님께서 수고하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것이 국가 대 국가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이 민족이 당신의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 대 민족이 분립된 입장에서, 이것을 가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원한의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원통해 하셨는가를 잘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선봉에 선 저희들이 이제 엄숙한 마음자세를 갖추어 지성소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아버지 앞에 진정한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실체를 봉헌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제물들이 되겠다고 눈물어린 심정과 겸손한 자세로 아버지의 존전에 사죄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복귀의 길을 개척하기에 애쓰신 그 누고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사연들을 온 천하에 알게 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와야만 되겠습니다. 가슴 가슴을 열어놓고 당신의 사정을 통고시킬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와야만 되겠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만민이 그런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께서 그렇게 슬프고 원통한 입장에 서게 된 것은 저희의 잘못이오니 저희를 치시고 모든 슬픈 사연을 풀으시옵소서. 용서를 구하며 몸부림칠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통일의 길은 누구도 원치 않았고, 사탄까지도 원망하였던 길이옵니다. 이 길에서 저희들만은 원망의 무리로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남아진 무리가 되어서 결단코 승리의 팻말을 꽂고 하늘을 해방시키고 땅을 해방시켜서 아버님을 영광의 터전 위에 모시고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지 못하면 천년 만년의 한이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그래서 온갖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아버님을 모시고, 저희가 환희의 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심정에 저희의 진정함 마음을 수놓고, 해방된 마음을 가지고 당신을 아버지라고 하고 아버지는 저희를 아들이라고 부르며 서로 목을 안고 통곡할 수 있는 그날이 와야만 되겠사옵나이다.
각자 각자가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각 나라가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하늘을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무리들과 통곡할 수 있는 그러한 날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아직까지 제물적인 모든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을 여기에서 스스로 탄식할 수 있고, 이 민족을 해원성사하여 제사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나이다.
밤이 지나고 새벽은 지나가지만 당신을 위하는 일편단심은 지나가지 말고 거슬러 올라가야 될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나이다. 오늘은 이랬기 때문에 내일은 더, 금년은 이랬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실적을 가져야 되겠사옵고, 아버지라는 명사 가운데 천년사의 심정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아버지를 시봉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 서울과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다시 만날 것을 고대하며 눈물지어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품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고 원하옵니다.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은 슬픈 눈물과 더불어 한을 남기고 갔사옵니다. 이것을 수습하여 오늘 통일의 교단을 중심삼아서 모심의 근원되는 거룩한 터전에 몸을 담근 당신의 자녀들, 그들이 수고한 기준을 유린하거나 밟고 넘어서는 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이것을 부활시켜서 자랑의 조건으로,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하늘 앞에 세워 놓고 넘어가겠다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이상 정성을 들이고 그들 이상 나라와 당신 앞에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아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때가 때인 연고로 이러한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이들 심정의 골짜기 깊은 데서 하늘을 재인식하고 자기 스스로가 어떠한 입장에 섰다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 비판의 기준을 세우게 하시옵소서. 새로운 하늘의 역군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자세를 갖추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하였으니, 이 말씀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아버지 앞에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금년은 작년과 다릅니다.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지난번 축복받은 40여 가정들을 중심삼고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 순회시에 선생님이 특명을 내리고 왔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본국에 있는 식구들, 특히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은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있어서 그들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금년부터 우리 통일교인은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두 사람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달에 각각 한 사람씩만 전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전세계적으로 전개시킬 것입니다. 일본은 물론이요, 미국, 독일 등 지금까지 세계 순회를 하면서 세계의 통일교인들에게 이 운동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만약에 정성들여 가지고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두 사람, 세 사람 전도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씩만 하세요.
사람이 태어날 때는 한 사람씩 태어나는 것이지, 두 세 사람씩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을 좋아합니까? 한 사람씩만 하라는 거예요. 한 사람씩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 달에 한 사람씩 해서 일년에 열두 사람을 전도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일년 열두 달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열두 달 동안에 정성을 들여 갖고 12명을 전도했다 하게 되면 한 사람당 50명 이상이 늘어납니다. 왜? 그 사람이 자기를 전도하기 위해 정성들인 것을 전통으로 이어받아 전도된 사람 모두 그렇게 전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아! 나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저렇게까지 정성들이는구나' 하면서 전도된 그날로부터 말씀을 들으며 앉아서 `나도 누구누구를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며칠 안가서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그 사람에 의해서 들어온 사람이 전통을 잇게 되어 그것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러한 것을 의식하면서 복귀의 일로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활동한 것은 사탄세계의 외적인 환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반대받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서 민족을 찾기 위한 작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자체에 소모가 많았습니다. 소모전을 한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그럴 때가 지났기 때문에 개인이면 개인이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한 달에 한 사람씩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만일 천 사람이 한 달에 한 사람씩만 전도하게 되면 일년에 1만 2천명이 되는 것입니다. 일년 뒤에는 14만 4천명이 됩니다. 그렇게 3년만 지나면 통일교인이 150만명이 넘는 것이고 4년째에는 1,500만명이 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몇 해 이내에 한국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러한 원칙을 계획해 왔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막 전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씩만 전도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다음 달에는 여기 있는 숫자의 곱절이 되겠지요? 그럴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지금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갈 길이 바쁩니다. 선생님이 전도시키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갈 길이 바빠요. 바쁘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작년에 430쌍 축복을 해주고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원리를 아는 여러분 앞에는 이와 같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공장엘 갔는데 마나님들이 있더군요. 축복받은 가정이 한 백가정 모였나봐요. 거기서 부인들을 전부다 모이라고 해 가지고 밥먹고 남편만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나가라고 지시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때입니다. 바쁜 때예요.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갈 길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과거와 다릅니다. 과거에는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왔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앞장서서 선생님을 모시고 가야 할 때입니다. 모시고 가는 데는 선생님이 공식적인 노정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냥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앞으로 3년 이내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2차 7년 기간에 못 가는 날에는 21년으로 연장될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십시오. 이러한 엄청난 일이 앞으로 여러분이 가는 길에 가로 놓여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면 해방 직후에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와 함께 출발했던 그때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정으로서의 기반을 닦기 전에 기성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를 기독교 앞에 남겨 놓았으니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기성교회에서 수습해 가지고,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우고 그들을 중심으로 가정적 기반을 결정해서 아담 가정의 복귀의 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성진이 어머니가 그랬더라면 성진이가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성진이가 고생을 왜 합니까?
선생님의 역사노정에는 비참함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소문난 것은 전부다 성진이 어머니 때문입니다. 성진이 어머니 때문에 통일교회에 이러한 비참한 역사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과거로 인해 선생님은 자식을 낳았어도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가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정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왜?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가정을 세워 사랑해야 하는데 그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한꺼번에 무너진 자리에 세워 놓고 다시 수습해 나오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1960년에 아담 가정의 세 아들딸의 입장에 세워 세 가정을 축복해 준 다음 미국에 갔다 와서 비로소 성진이와 희진이를 한 집에 데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워 놓지 않고서는 아들딸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도 아들딸을 낳았다고 해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서 아담 가정의 기준을 복귀하지 못해 가지고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 가정도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믿음의 아들딸을 빨리 복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 한가지 원칙만은 해결 지어 놓고 축복해 주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러한 조건을 세우지 않고 지금까지 축복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것을 2차 7년노정 중의 3년 기간 내에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축복가정들 알겠습니까? 그 조건에 통일교인 모두가 걸리는 것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도 다 걸립니다. 예외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은 여러분이 정성만 들이면 한 달에 한 사람 전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와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도하기 쉬운 때가 왔어요. 여러분의 천지를 찾아가서 옛날과 지금이 달라졌는가 안 달라졌는가 비교해 보십시오. 전부다 맥이 빠져서 후줄근해 있을 것입니다. 반대할 기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서라도 살 길이 있다고 하면 누구든지 한 번 가보려고 하는 좋은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이니만큼 여러분은 한 달에 한사람씩 전도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이 달이 가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에 있는 10개 구를 중심삼고 지구를 편성할 것입니다. 용산구나 성동구, 혹은 동대문구가 각각 지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각도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도 전부다 서울로 끌어올려 가지고 서울에서 활동하게 하려 합니다. 지금까지는 지방에서만 활동했지요? 그건 다 선생님에게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은 복귀해 올라오는 기간이었습니다. 원래는 서울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지방에서부터 올라왔으니 이제는 선생님이 1946년도에 평양을 중심삼고 이 길을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됩니다. 이제 우리는 복귀의 새로운 때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하던 그때의 입장이지만,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환경을 받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는 기성교회 대신 길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핍박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길에는 순탄한 것이 없었습니다. 한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이 모두 반대를 해요. 어디를 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인류가 가야 할 길을 거짓 부모가 전부 막아 놓았기 때문에 참부모가 그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부모의 책임을 못하는 것이 됩니다. 때문에 선생님이 그 길을 책임지고 개척해 놓아서 여러분의 갈 길을 완전히 열린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정적인 탕감조건과 국가에 대한 충성의 고개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정의 고개와 나라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개에 예수님이 걸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요셉 가정에서의 가정의 고개와 국가의 고개를 못 넘은 원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고개들을 다 넘어가면 예수님이 이루지 못했던 하늘 나라를 이룰 수 있고 에덴 동산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넘은 다음에는 국가의 고개를 향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넘어야 했던 그 고개만 넘으며 세계복귀는 시간 문제입니다. 그 고개만 넘으며 세계복귀 어렵지 않아요. 3년 내지 7년이면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가 21년노정만 지나게 되면,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만 정상적으로 지나게 되면 하늘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이것은 여러분이 정성을 들이느냐 못들이느냐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만하면 2차 7년노정에서 끝날 수가 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이 복귀섭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기간인 것입니다.
지금 이 때 아시아 정세와 세계의 정세가 전부다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그렇게 이끌어 오셔 가지고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딱 맞아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금을 긋고 넘어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와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추느냐 하는 것이 큰문제입니다. 이러한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여러분 각자가 가야 합니다. 혼자서는 천국 못 갑니다. 절대로 혼자서는 천국 못 갑니다. 아담 해와가 둘이서 타락하여 지옥문을 열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 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신부를 맞이해 가지고서야 천국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전부다 예수님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갔다가 다시 와야 됩니다. 가정을 이루어 가정적인 복귀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가정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야만 됩니다. 잃어버린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계의 세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되고 지상의 세 가인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영적인 세 천사장을 대신한 것이 믿음의 세 아들이요, 육적 세 가인을 대신한 것이 실체의 세 아들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영계와 육계에서 반대한 세 천사장과 가인형의 세 아들을 복귀하는 기준에 섬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복귀한 기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믿음의 아들딸이 복귀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통일교회를 믿고 나서 인연된 것이지 복중에서부터 인연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축복을 받아 가지고 낳을 아들딸을 복중에서부터 모실 수 있는 천사장격 믿음의 아들딸 세 명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박박사 세 사람이 와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것은 천사세계의 세 천사가 반대한 것을 지상에서 실체로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동방박사와 같은 난데없는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과 인연을 맺고 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내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 대신 나타난 예수님의 세 제자들은 생명을 바쳐서 예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래야 실체복귀가 되는데 제자들이 그것을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메우기 위해서 여러분 자신에게 믿음의 세 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천사장은 아담 해와가 창조되는 그 시간서부터 그들이 시집 장가 갈때까지 모시고 봉사하고 받들어야 했습니다. 이 복귀의 과정이라는 것은 맨 처음 아담 해와가 창조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세계에서 아담 해와를 받들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 한을 재차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 그들이 여러분의 애기를 복중에서부터 모시는 자리에 서지 못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만으로 그냥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 놓고 축복을 받아 아들딸을 낳으면 그 아들딸에게는 메시아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못하면 천국 가기 전에 딱 걸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성진, 희진, 예진, 효진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중에서부터 복귀해 나옴으로 전부 다 그런 조건을 다 세웠습니다. 그때에 여러분들 미역국 먹었지요? 「예」 그리고 우유도 먹고 밥도 먹었지요? 그게 다 조건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여러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의 표어가 무엇이었느냐? 즉, 선생님이 생애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인류 역사 이래 최고의 선물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대신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축복을 받으면 가정을 갖추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심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위기대를 복귀하여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갖추어 가지고 4년 동안 승리의 발판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차 7년노정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생애 최고의 목표는 원수와 대결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1년 36가정 축복식때도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대문에 파수병을 세워 놓고 결혼식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리 누가 떠들어도 할 일은 다 합니다. 36가정 부모들이 몰려와서 별의별 소리를 다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심지어는 선생님을 감옥에 잡아넣겠다고 법원에 몇 십장의 투서를 하여 선생님이 법원에 불려다니기도 했습니다. 특히 극성맞게 연탄가루를 뿌려가면서 통일교회를 없애야 된다고 하던 사람이 12명이 있었습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자리에서 컸습니다. 반대받는 그 자리에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를 받고 모험을 하는 자리에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야 된다는거예요.
1960년대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출발하는 때입니다. 지금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역사를 끌고 간다는 것을 세상에서 모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원리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으면 원리가 거짓말인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가정에 대한 탕감조건과 국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조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가정을 가졌으면 이스라엘 교단과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의 고개를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정을 가졌으면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통일교회 가정, 통일교회 민족, 또 통일교회 국가와 통일교회 세계를 세울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여러분을 잘먹고 잘 살고 편안히 쉬라고 축복을 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민 대신 속죄할 수 있는 가정의 제물이 되라고 축복해 준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처녀 총각들은 이러한 내용을 확실히 알고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이러한 말을 전부다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다음에 모른다고 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확실히 알아야 될 내용입니다. 선생님도 이것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왔고 예수님도 일생을 이것을 위해 싸웠으며 하나님도 이고비에서 6천년간 수고하셨습니다. 이 고비를 반드시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고비를 넘긴 축복가정이라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않고는 천국에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상에 있을 때 선생님을 알았다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고비를 넘지 않고 영계에 가서 선생님에게 `선생님, 지상에 살 때 나를 알지 않았습니까?' 해도 `내가 너를 언제 알았어?'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왔던 예수님이 왜 죽었는지 알아요? 바로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가정과 종족을 중심삼고 이런 조건을 갖출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낳은 아들딸보다도 믿음의 아들딸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해 왔습니다.
6천년의 복귀역사는 그 기준을 찾기 위한 역사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인데 여기서 제물은 만물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6천년의 종적인 역사를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갖고 있는 돈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부모의 아들딸이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자기의 소유가 아닙니다. 자기의 소유라는 명사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물도 그들에 대한 소유권을 복귀해야 됩니다. 아버지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도 김아무개의 집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으로 소유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아버지로부터 분깃을 받아 내것이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 가정의 물질은 구약시대의 제물을 대신하고 여러분의 아들은 신약시대의 예수님을 상징하며 여러분 자신은 오시는 주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고 넘어서지 않으면 천국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자기를 중심삼고 내것이라고 하는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미련을 가지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세워 놓은 기준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세우지 못한 국가의 기준까지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내 가정의 물건은 하나님의 것이요, 내 아들딸은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내 몸뚱이는 하나님의 분신이라고 하며 희생의 자리에 실체로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축복받은 가정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전부다 거지처럼 맨손만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옷 한벌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옷도 자기 옷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옷이 세 벌 이상만 있어도 그것을 벗어서 세 사람에게 입혀 주어야 됩니다. 믿음의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그런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것을 알지요? 여러분도 그러한 전통을 세우지 않고는 그들을 규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원수의 자식들이 밥을 굶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팬티와 포대기 하나만 남겨 놓고 전부다 갖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팬티만 입고 포대기 하나만 덮고서 일주일 동안을 살아 봤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 남아 있는 포대기까지 그들을 위해 팔았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 선생님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귀의 길을 가려면 원수를 사랑했다는 절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원수의 자식들을 위해 있는 살림을 다 팔고 심지어는 팬티 하나 포대기 하나 남은 데에서 포대기까지 팔았으니 할만큼 다한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실천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일까지 한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는 데는 여러분같이 건달식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뜻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압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야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재차 인식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천년 만년 지나도 쓸데없이 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사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것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지금 있는 집이나 그 밖의 전부를 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공적으로 처분하는 데에 문제가 없습니다. 선생님에게 돈이 몇백만원, 몇천만원이 예금되어 있는 통장이 있다 하더라도 공적으로 없애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을 자기가 쓰는 것보다 기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서는 하늘 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장사하지 않으면 못 산다고, 남처럼 살아야 되겠다고 허우적거리면 안 됩니다. 안돼요. 절대로 안 됩니다. 만약에 돈을 자기 욕심에서 갖게 되면 나중에 도둑을 맞든가 잃어버리든가 하게 됩니다. 아니면 강도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십시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재산을 가지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사니까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잘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것이 아닙니까? 밥을 선생님보다 잘 먹어도 안 되고 옷을 선생님보다 잘 입어도 안 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옷을 잘 입고 밥을 잘 먹는 것을 선생님이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왜 그러는가 지금 기도해 보십시오.
한집 살림이기 때문입니다. 한집 살림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여기에 들어와서 밥을 먹는 것입니다. 세상 같으면 쫓겨날 사람이 여기에 많습니다. 그냥 왔다갔다하면서 일도 하지 않고 밥을 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본체만체합니다. 다 알고 있지만 선생님을 보면 부끄러워하니까 일부러 선생님이 본체만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직장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래서 밥을 먹여 주는 거예요. 그렇게 몇 달동안 있었는데 나중에 이사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까지 구해준 일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선생님이 이 땅에 왔다가 전통을 세우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재산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전통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예금을 하고 뭘 하고 하는 것은 앞으로 축복가정들이 못살게 되면 안 되겠기에 그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축복해 주었으니 잘 살게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돈도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거쳐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하늘 가정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아들딸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공식이기 때문에 36가정도 전부다 믿음의 아들딸을 세우지 않으면 지파 편성하는 데 들어가지 못합니다. 2차 7년노정이 끝나게 되면 12지파 편성을 할 것입니다. 지금은 지파가 없지요? 지파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파를 편성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지파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이라야만 됩니다. 가정이라도 그때 가서 이러한 원리적 구조의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한 가정은 제외 당하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하는 것은 그때에 가 보면 압니다. 그때 가서 사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그때가 반드시 올 것이니 여러분은 최소한 아담 가정을 복귀하는 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면목도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가기 전에 빨리빨리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몰아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 하면 몰아쳐서라도 하게 해야 되기 때문이에요.
이 활동은 가정을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을 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집회도 하고 활동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에 해주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역사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고 일치된 마음, 한마음만 갖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실제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고마움을 느끼고 새로운 결심을 하여 자신을 갖고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가다가도 언제 어디로 흘러가 버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누구의 것으로 생각하라고요? 아버지의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들딸은 누구한테 바쳐야 된다고요? 아버지한테 바쳐야 됩니다. 예수님 대신 하늘을 위해 충성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지 못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되었으면 무슨 짓을 하든지 아들딸이 통일교회의 정도를 가게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정도를 가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고 나서 자식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자식을 교육시켜야지, 자기는 하지도 않고 교육시키려 하는 것은 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모든 것은 선생님이 먼저 실천해서 승리의 기반을 닦고 난 다음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십시오.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바쁩니다. 때가 바쁜 때예요. 그러니만큼 이제 여러분은 한 달에 한 명씩 전도해 가지고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준비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한 달에 한 명씩 전도가 되지 않으면 정성을 들이십시오.
자식을 잃어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 서러운 그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는 만약에 그 애기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떠한 정성이라도 다 들일 것입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고 전도해 보십시오. 문제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다음 주일에는 전부다 그냥 오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을 오늘 처음 보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많이 있구만요. 처음 온 사람들 앞으로 통일교회 가끔 올 것입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그리고, 3년 이상된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지금 손을 든 사람은 조금 있다가 또 내보낼 겁니다. 3년 이상된 사람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내보낼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선생님의 계획은 앞으로 이 본부교회에는 많아야 360명 정도만 남겨 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크게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회, 까짓껏 크게 지으려고만 하면 여러분의 협조를 받지 않고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짓지 않습니다. 왜 안 짓느냐? 교회를 크게 지어 놓으면 건달들이 많이 생기고 구경꾼이 많이 생깁니다. 또 거지 떼들도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안 지으려고 해요. 전부다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한 교회에 식구가 120명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집안식구 같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많으면 자꾸 갈라놓는 것입니다. 조금만 지나도 자꾸 많아지니 자꾸 내보내는 것입니다. 죽겠으면 죽고 살겠으면 살라고 내보내는 것입니다.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어제도 선생님이 공장에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와서 하는 말이, 세상이 반대해도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담을 타 넘고 몽둥이로 얻어맞아서 다리가 부러져도 끌고 다니면서도 선생님을 만나면 좋다고 하던 시절이 기억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따라다니기만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직접 교회를 관리하면서 식구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맛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죽지 않고 산 것입니다.
봄이 되어도 가지에 새잎이 나지 않고 가지가 뻗지 않는 나무는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좋았지만 거기에서 새잎이 나지 않고 새로운 가지가 나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죽는 거예요. 새잎이 나지 않은 채 3년 이상만 되면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꽂아 놓으면 살아 가지고 거기에서 새잎이 나고 새가지가 나와서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가르는 것도 가지를 삽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부교회에서 내보낸다고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본부교회에서 오라고 오라고 하면 `아이구! 그까짓 삼일 저녁예배는 드려서 뭘하나? 오늘은 누가 설교하나? 에이, 안 가도 되겠구나' 하면 안 됩니다. 또 `아이구! 그놈의 청파동 고개는 왜 그렇게 높은지. 여름이라 더워서 죽을 지경인데 무엇하러 가나? 잠이나 자야지' 하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전부 후회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가면 이 청파동 고개 오고 싶어도 못 옵니다. 오고 싶어도 못 온다는 거예요. 못 와요. 지금 내보내서 나가는 사람들, 알겠습니까? 그렇게들 알고 여러분, 단단히 준비를 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자 그러면 이제부터 이 통일교회 본부 식구가 되어서 일해 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아니 그럴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나와 보십시오. 일해 보겠다는 사람은 이쪽으로 나오고 구경삼아 다니겠다는 사람은 이쪽으로 나와 보십시오. 남자고 여자고 다 나와요. 어디 한번 헤아려 보자구요. 자 어서 일어서요. (여기서 녹음이 끊김)
아버님, 인류는 영원히 당신을 찬양해야 할 실체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위업이 성취되는 날, 인간이 만물과 더불어 본연의 세계에서 당신이 사랑의 품에서 일체의 이념을 이루어 영원무궁토록 존귀와 찬양을 당신 앞에 드려야 하고, 그것을 영원한 당신의 것이 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나이다.
아버지, 그럴 수 있었던 기쁨의 세계가 우리의 인간 조상 아담 해와의 실수로 말미암아 억천만세에 한의 기원이 되었다는 슬픈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외적인 인연이 아니라, 혈통적인 인연을 통하여 수많은 인간에게 참상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날 온 피조세계 앞에 주인으로서 책임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또 다시 아버지 앞에 사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인간이 복귀되는 데에 만물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지 못하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사옵니다.
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오늘의 생활무대, 즉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가, 사회를 중심삼고 국가가, 국가를 중심삼고 온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오늘의 환경을 생각할 때, 오늘날 내 한 자체 앞에는 현재의 가정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가 세계까지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문에 저희들 개체 개체가 가정으로부터 온 만상을 연결시켜 실체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원리를 통해서 확실히 알았나이다.
아버님, 우리 통일교회는 복귀의 사명을 책임지고 나가면서 남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날과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햇수로는 7년을 맞이하고 만으로는 6년을 맞이하는 만물의 날이오니, 아버지, 이 날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이 음력으로는 5월 1일이옵니다. 이날을 통해서 만물의 날을 책정했던 지난날을 생각하옵나이다.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은 외로운 자리에서 하늘 앞에 통과된 이날이 새로운 역사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데 있어서 영원한 하늘의 발판이 되고 하늘의 고임돌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생각하옵니다.
만물의 날을 책정하고 3년을 맞이한 해에, 세계의 수많은 국가를 중심삼고 평면적으로 혹은 횡적으로 세계적인 기반을 공고화시키기 위해서 세계 만국을 대표하여 40개국에 120개 성지를 설정했사온데, 이와 같은 성지의 인연들이 만물을 복귀하고 만물의 날의 터전을 공고화시키는 데 있어서 하늘의 발판이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에게는 만물을 사랑함과 동시에 성지를 사랑해야 되겠고, 동시에 만물을 사랑하지 않으면안 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이 길을 개척해 나오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감사를 드리옵니다. 오늘과 같은 날이 지상에 이루어지기를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마음을 다해 이날을 찬양하고 축하하며 이날을 기념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천주는 아버지께서 인간을 위해 지으신 인간의 실체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마음의 실체이신 아버지와 인간의 몸의 실체인 만물이 인간을 중심삼고 연결될 때에 우리 인간은 만 우주를 대표한 소우주의 실체요, 천주의 중간 매개체로서 엄청난 입장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하면 무형의 하나님과 더불어 무형의 영계와 천사세계, 즉 무형의 피조세계 전체가 연결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이 한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이날을 연장시켜 온세계에 일치될 수 있는 형제국가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평화스러운 하나의 통일세계를 이루어, 천주가 그 세계권내에 안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을 맞이할 적마다, 아버지, 저희들이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인간 조상의 기준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실 수 있는 복과 은사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의 인연이 하늘을 사랑하는 만국의 사람들에게 인연되는 것이옵니다. 1969년부터 새로운 복귀의 역사가 오늘날 일치되어 하늘의 영광을 상징할 수 있는 기쁨의 터전이, 영광의 주관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성심을 다하여서 이 날 이 시간을 기념하고 아버지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운행하심과 은사의 손길을 이 시간 함께 나타내 주시고 친히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 위에 기쁨과 영광이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한을 품고 간 수많은 순교열사들도 함께 아버님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원한을 해원성사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제7회 만물의 날입니다. 본래 만물은 인간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요, 인간에게 주관을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은 지금까지 인간에게 주관 받지 못하고, 사탄에게 주관받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만물과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물까지도 사탄이 주관권내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 만물권까지 침해하고 있는 사탄의 권한을 제거시키지 않고는 만물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적인 관점에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만물의 날을 하늘 것으로 돌려 드려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인간들이 만물을 탄식권내에 몰아 넣었기 때문에 만물을 해방시켜야 할 책임도 인간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1963년 음력 5월 1일을 만물의 날로 책정한 지 햇수로 7년이 되었고, 만으로는 6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1965년도에는 세계 40개국을 중심삼고 120개의 성지를 택정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성지를 택정한 것은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제는 한 국가를 중심삼은 복귀가 아니라 전세계를 중심삼고 복귀의 인연을 연결시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성지를 택정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을 중심삼고 만물의 날을 찾아 세운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만물의 날을 세운 기반이 없었다면 성지를 세계적으로 택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만물의 날을 지키고 기념하는 곳은 세계에서 우리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이 만물의 날이 설정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사탄권내로 몰아 넣었기 때문에, 만물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참된 조상이 현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자녀의 인연을 중심삼고 아담에게 축복하신 주관성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시켜 전 피조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자녀의 날을 세우고, 거기에서 다시 만물의 날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만물의 날은 어떤 한 개인만이 기념하는 날로 남아져서는 안 됩니다. 또,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이나 교인들만이 기념하는 날로 남아져서도 안 됩니다. 이 만물의 날은 개인은 물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거쳐 온 피조세계가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로 세워져야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이 소망하는 세계로 복귀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러한 날을 맞이할 때마다 각자 재삼 느껴야 할 것은 이날이 우리들만이 기념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확장시켜서 국가적인 만물의 날로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 통일교회가 해결해야 되는 당면 과업으로 남아져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국가적인 만물의 날로 끝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합하여 세계적인 만물의 날로 성립시킬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온 세계 인류와 더불어 만물이 완전히 하나님 앞에 바쳐진 입장에서, 주관성을 복귀하는 기준을 세우지 않는 한, 아담 해와에게 축복하셨던 만물 주관권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체가 기념하고 축하하는 만물의 날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이 생활하고 있는 가정을 중심삼고 만물의 기원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만물 전체가 여러분의 것만은 아닙니다. 그 가정을 연결시켜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통일가정, 통일종족, 통일민족, 통일국가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는 옷이나 하나하나의 필수품까지도 만물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자기가 쓰고 있는 일상생활의 모든 필수품들을 자기 생활의 한계권내에 머물러 있는 만물로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피조세계의 만물을 축소시킨 직접적인 상대물로 대하고 그 가치를 세계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활 자체가 하나의 산 제물의 표시가 되도록 하여 그 제물된 환경을 중심삼고 언제나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생활하지 않으면, 만물의 참된 가정적 기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통하여 복귀시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제물을 중심삼고 사람과 하나되기 위한 섭리를 했고, 다음에는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섭리를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역사입니다.
이제부터는 이와 같은 일들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이 제물과 같은 입장에서 만물과 하나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종적으로 내려오던 역사가 이제 횡적으로 여러분의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물들은 사탄세계에서 사탄의 자녀의 이름으로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습니다. 또 사탄세계의 국가 앞에 주관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이유요, 만물이 탄식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해원하여 하나님편으로 복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만물을 주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주관받기를 원하는 만물을 아담뿐만이 아니라 해와까지도 주관해야 됩니다. 또한 인간조상 아담 해와의 후손인 인간들 역시 하나되어서 만물을 주관해야 합니다.
따라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에서 축복받은 가정은 그 자녀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님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가(統一家), 즉 통일 종족으로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인이 갖고 있는 만물을 통일교인의 것만으로 제한시킬 것이 아니라 통일교인의 것으로 인정시킴과 동시에 통일교회가 소원하는 나라의 것으로, 통일교회가 소원하는 세계의 것으로 연결시켜 나가게 되겠습니다.
오늘날 모든 피조만물은 사탄권내에 있는 사탄의 자녀들을 통해서 주관받아 나왔기 때문에 사탄의 것이라는 입장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것을 전부다 하나님의 것으로 복귀시켜야 됩니다. 복귀노정의 원칙적인 기준으로볼 때, 만물은 먼저 인류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인간 앞에 내려 주신 축복의 기준을 중심삼고볼 때, 인간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타락하지 않은 선의 부모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한 자녀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우리가 만물의 날을 맞이함과 동시에 언제든지 생각해야 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날을 세우긴 했지만 아직까지 만물을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자리에 연결지어 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사상의 요체는 신랑이 오게 되면 신부가 신랑을 맞아 혼인잔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를 하여 신랑 신부가 하나 되면 신부가 가진 모든 것을 신랑의 소관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시집가는 처녀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신랑에게 맡겨 신랑의 것이자 신부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피조세계의 만물은 아무개 아무개의 것으로 남아져서는 안 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거쳐서 하나님의 것이 될 때까지 복귀의 단계를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새로운 나라에 입적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은 다음에 사람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을 먼저 입적시키고 다음에 인간이 입적되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역사가 6천년 역사에 해당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통해서,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중심삼고 하늘과 연결시켜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한계권내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국가를 넘어 세계권까지 확대시켜서 그런 역사를 완전히 종결짓지 않고는 완전한 복귀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만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날을 맞이하고 자녀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만 있어 가지고도 완전한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축복하실 때에 생육하고 번식하여 모든 피조만물을 주관하라 하셨기 때문에, 부모와 번식된 자녀가 있으면 그들 앞에 주관을 받을 수 있는 만물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만물의 날을 맞이함과 더불어 가정을 중심삼고 만물을 먼저 하늘과 연결시키고 참된 가정을 이루어 만물과 완전히 하나된 다음이라야 자기 자신을 하늘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아직까지 참부모와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 해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입니다. 참부모와 인연을 맺은 자리에 가정이 벌어지면 그 가정은 만물과 연결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만물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만물의 날을 책정한 그날부터 종적으로 보면 만물 위에 가정, 가정 위에 하늘입니다. 이것이 종족으로 완전히 한 점에 귀결되어야 합니다. 횡적으로도 보게 되면 피조세계를 창조할 때에 먼저 만물을 짓고 그 다음에 아담 해와를 짓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종횡으로 한 점에 귀결될 수 있는 입장을 결정짓지 않고는 전체적인 복귀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말하기 전에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이것을 제2차 7년노정이 지나기 전에 세워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1차 7년노정은 부모로서 가야 할 기준을 세우는 기간이요, 제2차 7년노정은 자녀로서 가야 할 기준을 세우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제2차 7년 노정이 끝나면 새로운 민족 편성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축복받은 가정에 속한 일체의 모든 것은 그 가정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의 것임과 동시에 국가의 것이요, 통일교회의 것이요, 전체 식구들의 것이요, 그 다음에 `나'의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크게는 세계의 것이고, 작게는 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만물을 중심삼은 상속시대가 와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정을 중심삼은 입적시대가 와야 됩니다. 이것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기준까지 입적시킬 수 있을 때에 그 나라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을 거친 가정들이 연결된 사회, 그러한 인연을 거친 사회가 연결된 국가가 이 지상에 건설되게 될 때 비로소 그 국가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수 있는 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인으로서 알아야 될 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 혹은 자기 소유의 재산은 자신이 잠시 관리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각자가 잘 관리하여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할 이 만물은 참된 부모의 품을 거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것임과 동시에 참부모의 것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살아온 관례로 보게 되면 어떤 것을 아무개 아무개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 모든 것은 부모의 이름을 거쳐야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쳐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복귀한 만물의 기준이 완결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런 날을 맞이할 때까지 소유주가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때문에 주인 앞에 돌려 드리는 그때까지 관리인으로서의 책임을 잘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분명히 구분 지어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그래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그런 것을 왕왕 보게 되지만 `공적인 물건' 하게 되면 대개 사람들은 등한시합니다. 더구나 통일교회 본부에 속해 있는 공적인 것이라 하게 되면 그것은 이 본부권내에 속해 있는 수많은 통일교인들의 물건입니다. 이것을 개인적인 것과 비교해 보면 더 넓은 범위의 내용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 먼저 바치면, 즉 공적인 물건을 먼저 바치면 그 외에 모든 사적인 물건도 완전히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공적인 물건과 여러분의 사적인 물건을 반드시 질서적으로 구별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기준을 분명히 하여 공고한 원칙을 중심삼고 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대개 보면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사적인 물건은 소중하게 여기고, 공적인 물건은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은 공적인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적인 물건을 통해서 만물 복귀의 고개를 넘으려면 먼저 그것을 공적인 물건으로 만들어 가지고 교회면 교회, 국가면 국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물건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물건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놓고 봤을 때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떠한 생활관을 가져야 하는가? 어떠한 물건에 대해서든지 자기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유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때가 되면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입적 문제를 논하게 될 것입니다. 김가니, 박가니 하는 여러가지 성씨가 있지만 그러한 성씨도 언제 한번 모두 규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참부모를 중심삼고 새로운 성의 인연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만물보다도 사람이요, 사람보다도 하나님입니다. 오늘날의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제일이다'라고 하는데 자기를 중심삼고는 세계복귀는 어림도 없습니다. 물건보다도 사람이요, 사람보다도 하늘입니다. 하늘을 중심으로 모든 만물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완전한 복귀는 `나' 하나만 복귀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내가 하나되고 그 다음에 외적인 만물과 완전히 하나되어 `이것은 하늘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을 결정지은 다음에야 `내것이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노정에 이러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자기가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 해도 그것을 자기만이 소유하고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서 존속하지 못하게 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기 전에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참부모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기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런 관념을 철두철미하게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그런 관념이 철두철미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만물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만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이런 관념을 보편화시켜야 됩니다. 통일교회 사람이라도 이런 과정을 거처야 된다는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지 않고는 만물의 날을 맞이하는 의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을 그런 자리로 끌어 올려 공적 인연을 거치게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나를 통한 물질적인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물질적 인연보다도 더 큰 물질적 인연의 기준을 거쳐서 빨리 대한민국을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이면 개인이 사유재산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도, 다시 말해서 돈을 번다든가 물질에 대한 애착심을 갖는다든가 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기준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이 일반화되어야 해요.
그런데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자기의 습관과 관념을 중심삼고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이러한 인연을 거쳐야 되겠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물건보다도 교회의 물건이 중요하고, 교회의 물건보다도 국가의 물건이 중요하고, 국가의 물건보다도 세계의 물건이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모든 물건은 최후로 세계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의 것이요, 세계적인 참부모의 것이 되고, 세계적인 참자녀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그런 물건으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만물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철저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만물이 내 품안에만 있어 가지고는 탄식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이름 밑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으나 앞으로는 반드시 부모의 이름을 거쳐나왔다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의 성을 따라서 전부다 문가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그러한 내용을 지니고 제2의 성을 가지고 산다는 관념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분은 다 거쳐야 됩니다.
만물은 부모의 이름을 통과해야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통과해야 됩니다. 인간도 반드시 하늘에 입적해 가지고 부모의 심정적인 인연과 하나님의 심정적인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완전한 복귀의 가정 기준을 세웠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것은 교회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고 교회의 것은 나라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말하는 천국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확실히 알고, 그런 기준을 자기의 생활권내에서 어느 한때에는 해결 짓고 넘어가야 하는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을 재삼 느끼기 바랍니다. 오늘이 바로 그러한 만물의 날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버님, 우리 인류의 조상이 아버님의 사랑의 인연과 더불어 부부의 사랑을 이루어 일체가 되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와 인류의 조상과 일치된 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만물이 사위기대의 인연 가운데에서 일치되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탄식권내에 들어갔고 하나님께서도 탄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복귀섭리역사의 노정을 회고하여 볼 때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물을 앞에 내세웠습니다. 그 만물과 더불어 하나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도록 연결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을 중심삼고 그러한 인연을 연결시켜 나왔으나 오늘날은 우리 통일교단을 중심삼고는 개인 가지고는 안 되겠사옵니다. 인류의 시조가 부부를 이루기 전에 타락했기 때문에 부부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완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부부를 중심삼은 모든 물건을 기필코 하나님의 이름을 통과해야 되고, 참부모의 이름을 통과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거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가 창조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선한 물건을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물건을 통하여 우리가 빚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하나의 한계선을 넘어서 하나님과 만물의 해원성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평면적인 세상에서는 세계적인 기준의 원천이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럴 수 있는 물건을 위해 저희들은 지금까지 정성을 들이지 못하였고, 먹고 쓰고 남기고 관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물건을 아버지 앞에 온전히 바쳐 드릴 한 날을 위해 정성들이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오늘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들을 하나의 가정의 인연으로부터 국가의 인연을 거쳐 세계의 인연까지 연결시켜 순차적으로 아버님 앞에 봉헌할 수 있는 봉헌의 날이 이땅 위에 기필코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가정을 통하여, 종족을 통하여, 민족 국가 세계를 통하여 거국적으로 인류 전체가 자기의 모든 소유권한과 자기 가정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는 축하의 날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 가정으로 입적되는 날이 성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날이 오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서로 앞을 다투어 그 기쁜 날을 찬양하고, 하늘의 날로 그날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겠다고 시간을 다툴 수 있는 현실적인 무대가 지상에 나타남으로써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슬퍼하셨던 모든 탄식의 조건을 무너뜨리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역사적인 소망만이 남아진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기가 갖고 있는 일체를 아버지 앞에 몽땅 바치고, 자기의 몸과 가정 전부를 아버지 앞에 바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부모, 즉 참부모와 인연맺어 그 사랑의 품을 통하여 다시 내 것으로 분배받아 영원한 기업의 상속자로 남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러한 엄청난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일이 개인적으로도 일어나야 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도 일어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일이 온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저희들이 성별식을 거행하여 모든 것을 하늘 것으로 연결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축복을 받은 가정들도 이 자리에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언제 이와 같은 식전을 거쳐 가지고 그러한 조건을 갖춘 물건을 하늘 앞에 통과시켰으며, 언제 하늘 앞에 입적됨을 받아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실체의 조건을 갖추었습니까?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그러한 터전을 이루기 위해서 저희들이 나가는 과정에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결의를 하고, 그런 자극적인 순간과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저희들이 이날을 축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날을 축하하고 있사옵나이다. 그들이 당신의 힘과 능력과 당신의 권위와 일치되어 활동함으로써 온 만물이 해방을 맞을 수 있는 환희의 날이 어서 오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와 더불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떠한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제2의 해방권을 만들어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릴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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