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날'의 본의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타락한 후손들과 더럽혀진 인류역사의 흔적을 터전으로 한 하나님의 날은 아무리 깨끗하게 준비하더라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본연의 기준적인 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모아 이 날을 기념하고, 그 가치를 높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수의 핏줄을 이어받은 타락한 후손에 불과합니다. 이날은 그런 타락의 핏줄을 끊어 버리고, 즉 가지를 끊어버리고 뿌리를 중심삼고 접붙이는 입장에서 기념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니 본연의 뿌리와 가지가 일체가 되어서 자연적인 입장에서 축하할 수 있는 날이 못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지극히 서러운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날에 대한 역사적 동기를 찾아보면, 1968년에 통일교회에서 제정해서 생겨난 날이 아닙니다. 이날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나타나지 않은 것 뿐이지 하나님의 창조 이상 가운데 있었던 날이요,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등장할 수 있을 때 자동적으로 생겨날 수 있었던 날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소원의 터전 위에 만물을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어진 만물을 보고 지극히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이루어지게 되면 만물 자체가 사랑의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날을 축하하고 높인다는 의미에서 선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조의 위업에 모든 기쁨과 찬양의 여건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만물을 전부 그 휘하에 넣어 가지고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동기가 무엇이었느냐, 즉 하나님이 무엇을 원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다음 직계 자녀인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모시는 가정을 편성할 수 있는 날을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날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축복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날 이전에는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은 사실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횡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는지 모르지만, 전후 좌우 사방과 연결되고 하늘과 땅이 연결된 종적인 관계, 즉 입체적인 관계에서는 기쁜 날이 못 되었습니다. 또 일방적인 면에서 자기 생활에 보탬이 되는 부분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의 기쁨에 보탬이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곧 타락한 세계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사는 사람은 기쁨이 중도에서 끊기기 때문에 또 다시 고통을 받게 되고, 수고한 후 조금 기쁨을 느낀다 하더라도 기쁨은 금방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생애를 백년으로 잡으면 그 동안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이 오륙십이 되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은 권세와 경제력을 갖추어 `이만하면 나는 행복하다'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행복함 속에 자신의 마음이 딱 뻐그러지도록, 또한 자신을 망각할 정도로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내가 기뻐할 때 하늘과 땅이 호응하여 기뻐할 수 있고 동조하여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혹은 자기의 주위를 중심삼고 기뻐했지, 역사와 시대와 미래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은 어떤 기쁨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느 한 시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이상의 근본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에는 전체가 기뻐하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이 창조 이후의 역사에 반드시 등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날이 유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날이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제일 귀중한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니 본연의 가정을 잃어버렸고, 본연의 나라를 잃어버렸고, 본연의 세계를 잃어버렸고, 본연의 천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본연의 천지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본연의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처해 있는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타락한 사람들의 소망의 한 날, 희망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연의 사람을 중심삼고 본연의 주인, 본연의 부모, 본연의 자녀, 본연의 종족, 본연의 민족, 본연의 국가, 본연의 세계와 하나님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오시는가? 본연의 개인, 즉 본연의 남성을 찾아 나오십니다. 또한 그 본연의 남성을 통하여 본연의 부모를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 남성의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본연의 남성으로서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의 인연을 맺으려고 신랑 신부라는 이름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발전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종교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아 해결점을 바라고 있는 것이 예수님 이후 2천년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한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재림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그날은 본연의 한 존재인 재림주, 즉 본연의 남성을 세우는 날이며, 나아가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는 날입니다.
우주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기틀, 즉 인간이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과정에 재림의 날이 기필코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에서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제2의 소망으로 고대해 나오는 중심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 중심 종교인 기독교를 믿는 수억의 성도들이 정성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본연의 부모의 기준만 통과하면 되느냐? 안 됩니다. 본연의 부모의 기준을 통과하면 본연의 형제, 본연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본연의 종족, 본연의 나라, 본연의 세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중심이 와 가지고 다시 출발해서, 그 중심이 본연의 부모가 되어 새로운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만 남겨 놓고, 역사적으로 왔다 간 모든 선조들을 전부 심판하면서 정리해 나갈 것입니다. 육신은 없어지더라도 영은 영원히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지옥의 구렁텅이도 정리하여 없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의 소망을 전부 규합하여, 미래의 어느 역사과정을 거쳐서 천년이 걸리더라도 이 문을 통과하겠다는 정성된 마음의 방향을 세워 놓아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참된 부모의 인연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통과해서 본연의 인연, 즉 본연의 참다운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를 복귀하려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의 최종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끝날의 세계 문화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교회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남성과 여성이 되어서, 잃어버린 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을 수 있는 책임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고는 아무리 세계를 통일한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타락 전의 본연의 남성의 자세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연결된 남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 하는 가운데 여성을 찾아 하나의 참된 부모의 인연을 이 땅 위에 탄생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종교가 되지 않고는 이 우주의 종교를 통합할 수 없고, 종교의 목적을 추구해 온 인류를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내용을 결정짓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에 참부모가 나왔다면 그 부모를 중심한 자식이 나오려면 얼마나 걸려야 하겠어요?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워 부모를 소망으로 삼고, 종족을 소망으로 삼고, 민족을 소망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부모를 가르쳐 주었고, 형제를 가르쳐 주었고, 이스라엘 선민사상을 가르쳐 주었고, 이루어야 할 나라와 천국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를 대표한 기독교를 중심삼고 주님이 오시게 됩니다. 주님, 즉 참부모를 중심삼고 심판의 기준만 형성되면 일시에 아들딸을 택해 세울 수 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도 편성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위해서, 또는 형제의 사랑이나 교회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형제는 사랑하지 못하면서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는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의 인연을 맺고 부모의 자리를 거친 후 민족의 환영을 받고 국가 형성의 인정을 받아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국을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느냐? 이러한 다리를 놓아 주지 않고서는 천국에 함께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통일교회도 이런 다리를 놓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를 놓는 데는 참부모님을 맨 첫번째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그 부모를 따라가는 사람은 전부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탄은 인간 조상을 유린하여 거짓 부모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도 전부 거짓 부모의 자식들입니다.
그 어떤 주권자나 군왕, 또는 역사적으로 시대를 호령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거짓 부모의 피를 받고 태어난 의붓자식입니다. 이 의붓자식은 적자가 태어나면 상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법에도 직계의 아들이 있을 때는 양자가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적자가 없을 경우에만 할 수 없이 상속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조가 타락하였기에 지금 이 지구상에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직계 자녀는 없고, 전부 양자들만 있습니다. 하나님도 천지간의 위업을 상속해 주어야 할 텐데, 핏줄이 다른 양자만 있으니 쉽게 상속해 주고 싶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난데없이 생겨난 남의 자식에게 천지간의 위업을 상속해 주고 싶겠어요? 그것은 본래 창조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천지창조의 원칙은 본래의 아들딸에게 위업을 상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아들딸을 찾기 위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친아들의 사명과 자격을 갖추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일등신부는 재림주님의 아내가 될 사람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그러한 아버지 어머니가 나온 다음에는 그분들의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 이 아버지 어머니가 나오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은 통일교회에서만 갖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역사상에 부모의 날이 생겨난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류의 승리를 찬양하고, 악에 대하여 공의의 법도로 심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우리의 부모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위에서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날을 선포한 것이 부모의 날인 바, 이날이 바로 음력으로 3월 초하룻날인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부모의 날은 필요 없는 날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자녀를 낳았다면 그 자녀들이 아담과 해와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날이 부모의 날이고, 하나님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뭐 계산이 틀려서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결혼을 하면 아니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결혼이 그래 나쁜 것입니까?
`사랑' 이라는 말을 지금까지는 천박한 말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연의 사랑은 절대로 천박한 것이 아닙니다. 천리에 위배되는 자리에서 사랑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천박한 입장에 떨어진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천박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원리원칙에 어긋난 자리에 설 때 그것이 천박하고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정당한 사랑의 권내에 들어오게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역사과정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발견한 위대한 것 중의 하나가 부모의 날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부모는 한분밖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절대적인 구원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잃어버렸던 아들딸을 구해주는 구주의 사명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를 양자에서 친자로 입적시키는 수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명을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수속과 절차를 가르쳐 주는 교파가 나와야 하는데, 그 교파가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이 이 모든 것을 자랑한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자랑할만한 사실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도 바보입니다. 지금 나에게 천년 만년 고대했던, 역사 이래 하나밖에 없는 상이 내려졌는데, 그 상을 받아들고 부끄러워서 `아이 모릅니다' 하고 받은 상을 깔고 앉아 버리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상을 받으면 높이 쳐들고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보는 사람들도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처럼 위대한 것을 발견했기에 큰소리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윤리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만사를 참과 거짓으로 구별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정말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병신이고 못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욕을 먹었지만 그렇게 욕을 많이 먹든, 찌부래기가 됐든 뭐가 되든, 하나님께서 의논할 사람이 우주에 나 혼자밖에 없다면, 나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천지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깨어서 하나님과 가만가만 의논한 것이 꼭 맞아 들어가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몇 천억의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무슨 공식이니 원리니 하지만, 즉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니 파스칼의 원리니 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것이 전부 하나님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화를 발전시켜야 될 의논의 대상이 있어야 되므로, 그 원리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서 누구누구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참부모님을 발견했으면 발견한 그 자체로 끝내지 말고, 참부모로서의 권한을 갖출 수 있는 세계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겠습니다. 원수까지도 참부모에 대해서는 `옳습니다'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자들도 참나무 뭉둥이에 가시가 돋친 듯 해야겠습니다. 어떤 때에는 여자들이 참 무섭습니다. 남편은 덩치가 굉장히 크고, 부인은 아주 작아도 틀림없이 애기를 낳거든! 그런 것을 보면 여자들이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굳세고 무섭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무서움을 가장 잘 타는 사람이 여자이기도 합니다.
통일교회의 특허품이 무엇이라고요?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누가 몇천만 불, 또는 몇억만 불을 준다고 팔라 하면 내어 주겠어요, 안 내어 주겠어요? 절대로 내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선생님의 일에 함께 한 동참자이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대부분 사령관의 작전 계획과 명령이 들어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령관의 지휘 밑에서 이긴 것이지만 졸병에게도 이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문선생님과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동참만 해서 되느냐? 동참을 했으면 선생님과 같이 영광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즉, 여자가 시집갔다는 말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집을 갔으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부모의 날에 관한 특허권이 선생님에게 있다는데 여러분들은 거기에 찬동해요, 안 해요? 여기에 찬동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십시오. 통일교회인들은 손을 들라고 하면 버릇이 되어서 잘 들지요. 진짜든 가짜든 믿어 주면 됩니다. 진짜로 믿어 주는 사람은 망하지 않고, 진짜로 믿는다고 손을 들었다가 믿음의 받을 자리에 서지 못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여러분을 진짜로 믿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진짜로 믿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해 놓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여러분의 복이 전부 선생님에게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어때요? 이런 일은 할 만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계약을 할 때 계약서의 조항을 이행하지 못하는 측이 손해 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짐을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내가 그렇게 믿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약속한 그 가치기준만큼 빼앗기고 알몸뚱이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의 모든 조건들을 거두어 참된 사람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정말로 좋아요? 「예」 그렇다면 됐습니다. 나와 완전히 하나 됐으면 제일 중심의 것이 되기 마련입니다. 선생님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고맙지만, 눈치보아서 하는 수 없이 좋아하는 사람은 도둑놈의 사촌 족보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무슨 장사하는 사람 같군요. 그렇지만 장사를 해도 서로 좋아하도록 해주면 되지요. 또 사탄들의 것을 빼앗아 하나님을 부자 만들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부자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을 속여 먹어도 괜찮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기가 좋아서 약속하여 한 일은 넘어져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북 김일성에게 가서 술 한잔 하면서 슬쩍 이북의 전문서를 훔쳐 가지고 이북 정권을 몽땅 팔아 하나님께 바쳤다면 잘한 일이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공상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공상보다는 행동을 많이 하고, 공상을 하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공상을 해야 됩니다. 실행할 수 있는 공상을 해야지, 실적 없는 공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공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험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들로 왔으면,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들로 왔다면 아버지 어머니 되는 분들은 아들의 이름을 거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올 자가 없다'고 말하는 그 자리는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이상의 자리입니다. 부모 이상의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냐? 메시아는 메시아인데, 형님 오빠격의 메시아가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격의 메시아입니다. 성신은 어머니요, 예수님은 아버지입니다. 즉, 예수님은 참부모의 자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참된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된 가정과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를 만들어 세계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뜻이 깨졌기 때문에 2천년을 연장하여 신랑이라는 남성 아담 앞에 신부라는 여성 해와를 다시 찾아, 한 날을 이루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사고를 냈기 때문에, 본연의 어머니 아버지 기준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인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섭섭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벌써 하나님 앞에 전매특허를 냈습니다.
따라서 통일교인이라면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이상을 주고 행복을 주고 화평을 주고, 또한 세상 어떤 곳에서도 찾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권위와 승리의 요건을 갖추어 준다면, 그로 말미암아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자기 부모보다도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는 반드시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교리가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그래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를 통해 자녀를 축복하여 하나님의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누가 해주는 것인가? 부모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해줄 수도 있지만,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한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처녀 총각들, 내가 결혼 축복을 안 해주겠다고 하면 전부 가슴이 철렁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리를 알고 나면,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선생님이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부모가 시집을 보내 준다고 해도 싫어서 본부교회로 도망와서 숨어 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올드 미스라는 것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여 시집보내 주겠다면 좋아해야 할텐데, 왜 도망을 치느냐? 그것은 문선생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내용을 지녔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참부모의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80살이 넘은 할머니들도 축복 못 받고 죽으면 천국 못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몇 천리 밖에 남자가 있고 몇 만리 뒤에 남자가 있어도 둘이 명주실에 매어서 축복의 조건이라도 받고 싶어 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일을 해내야 하니 팔자가 사나운 사람입니다.
신약성서에서는 타락한 이 세계의 인간들은 전부 고아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애당초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친자식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것인데, 원수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기에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아와 같은 여러분들 앞에 부모를 찾을 수 있는 한 날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세상의 단 하루, 부모를 찾은 한 날이란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기쁜 날은,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라도 붙들고 춤출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천주의 부모의 관문을 통과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졌었습니다. 그런 기쁨과 소망으로 가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부모를 만나는 환희의 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원수일지라도 배고파 하는 것을 보면 먹여 주어야 되고, 슬퍼하면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수를 용서해 주게 되면 하나의 민족은 물론이요, 세계의 어떠한 국가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리고 그 부모의 인연을 무한히 고대하던 한 날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는, 자기 곁에 있는 원수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몇천 명의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부모가 환생해 나올 때에는, 내 한 생명을 노리던 원수 같은 존재는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아무리 물고 뜯고 싸우더라도 참부모라는 이름을 중심삼고는 그럴 수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그리고 하나님의 날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도 사람을 보고 `나를 닮았구나' 하시며 웃으실 것입니다.
창조의 동기를 놓고 보면 내가 하나님을 닮았다고 하지만, 나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님이 나를 닮은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도 어떤 사람이 `저 애는 엄마 닮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만약 첫 아들을 낳아서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아들이 이웃 동네 김서방 닮았다'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아무리 못 생겼어도 자기 아빠를 닮았다고 해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복귀의 윤리 법도를 지배하고도 남음이 있는 권위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한 자리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든 아버지가 아들을 닮았다고 하든, 거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닮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자기를 닮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뜻을 안 지 몇 년도 안 되어 `아이구, 통일교회 힘들어서 못 따라가겠구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원리적인 위치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통일교회가 자기를 위한 교회인가, 하나님을 위한 교회인가? 하나님을 위하려면 일단 어느 기간까지는 자기를 위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좋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캄캄한 밤을 지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침의 광명한 햇빛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한 발 앞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은 밤중을 거친 사람이야말로 광명한 태양이 떠오르면 누구도 맛볼 수 없는 희열을 맛보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태양을 만든 하나님이 바라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물어 볼 것도 없이, 칠흑 같은 어둠의 맛을 백퍼센트 보고 광명한 빛의 위대함을 흠모하는 사람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불행한 사람을 더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불행의 기준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돌려 놓으면 그 자리도 행복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고난과 역경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그 길을 통해서 반대의 영광된 자리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고생이 끝날 때까지 남는 자가 되면 세계의 모든 왕권을 혼자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고생길을 진실한 기쁨으로 지배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사람은 모든 불행을 쉽게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영원한 천국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누구든지 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는 것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저런 사람과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결혼을 하여, 하나님이 `나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기 책상 위에 사과 10개가 있다고 합시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집을 수 있는 혜택을 입은 사람이 제일 나중에 나쁜 것을 집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남은 사람들이 서로 좋은 것을 집으려고 싸우게 될 때, 그 나머지의 것이 전부 자기 몫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못난 사람입니다.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누구에게 변명 한마디 안 했습니다. 내가 욕먹을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를 놓고 아무리 욕을 하더라도 그 욕이 절대로 나에게 오지 않는 것입니다. 때가 바뀌면 음지가 양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오늘날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등 세상의 언어가 너무나 많은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타락된 것에 대한 응보인 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상 어디에도 짐승들은 다 같은 소리로 통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 말이 다릅니까? 선생님이 이런 것을 뜯어 고치려니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1차 선민사상이 깨어지고, 2차적으로 발전시킨 기독교의 역사적인 무대가 제2의 이스라엘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편성할 수 있는 선민사상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님과 함께 박자를 맞추어 화동할 수만 있다면, 세계는 순식간에 통일되어 하나의 평화의 세계, 사랑의 세계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 틀어지게 되면 천년 비운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고생을 해 나온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잘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잘 되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천하의 누구도 갖지 못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날들과 일치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날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날을 찾아서 내가 움직이면 하나님이 움직이고, 내가 돌아가면 참부모님도 돌아간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신념을 가지고 당당히 하나님의 왕자 왕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리에 들어서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느냐? 여러분은 이 날을 중심삼고 심정의 기점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새로운 통일사관, 새로운 통일철학,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건이 아시아의 한반도를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이상하셨던 최종적인 소망의 기점이요, 심정의 기점입니다. 또한 타락 세계를 해원성사할 수 있는 기점인 것입니다. 이 기점에서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아 너와 나 자신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승리의 패권을 쥐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여, 천리의 대도를 걸어가는 당당한 아들딸의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에 만세에 맺힌 타락의 한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6천년간 원수였던 사탄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은 부모의 날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치고 7년노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 1968년 1월 1일을 기하여 하나님이 이 자리에 내려서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는 7년노정이 끝나지 않고는 내려서실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주관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아담 해와가 축복을 받아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본 터전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면 부모, 자녀, 만물이 있게 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기준에 올라섰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문선생이 죽는다 해도 우리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종적인 역사였기에 예수님은 상위요, 성신은 하위였습니다. 종적인 역사는 한 점을 중심삼고 맞이하는 것이므로 조금만 틀려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한 점, 즉 초점을 만드는 일을 해왔지만, 지금은 뜻이 이루어지는 때가 왔기 때문에 횡적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제 아담을 중심삼은 해와,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의 횡적인 사랑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사방을 대할 수 있는 상대적 자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동방에서 책임을 못하면, 서방을 중심삼고 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한국에서 책임 다하지 못하면 어디 가서든지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찾아온 것은 종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란 한 사람만 세워서 역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벨도 한 사람이요, 노아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세례 요한, 예수님도 한 사람, 재림주님도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상대할 수 있는 기준은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중심을 세워 상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조건잡을 수 없는 첨단의 한점에서만 상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사람을 중심삼고 심정을 겨루어 나온 것이 6천년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내용을 알고 기도해야 됩니다.
봄 기운이 점점 무르익어 생명력을 지닌 씨앗에서 푸른 싹이 트기 시작하고, 이것이 점점 푸른 녹음을 이루는 것과 같이, 이제는 복귀의 노정에 촉진을 가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속도를 가속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들의 가슴은 부풀어 있어야 됩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믿는다고 하면 전부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형사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무서운 것이 없어요. 지금 당장 죽더라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죽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또다시 재림부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천국과 낙원의 중간에 중간 영계를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 중에도 거기에 머무는 무리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원통하고 비참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애를 바치면서 이 기준을 세워 나올 때,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철창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향하여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인 신앙을 이어받아야 할 사람들이 통일가의 자녀들이요, 이 길을 가는 식구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사상에 불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제는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전개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가 한 대 맞게 되면 천지가 진동되고, 사방이 바뀌어질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뜻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날개 돋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겠어요? 또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기뻐하는 것을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옛날에는 그러한 날이 나오지 않아 하나님이 행세하실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쫓기고 몰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새로운 통일문화의 이념이 발전하고 있는데 이 전통적인 사상의 기원은 어디에 있느냐? 바로 하나님의 날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찾아오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수고하셨느냐? 나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수고하셨느냐? 그의 역사적인 심정, 시대적인 심정, 미래적인 심정을 통해야 합니다. 수고한 아버지를 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정과 내용을 알아 위로해 드리고, 나아가 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통일교회의 사상적인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날과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 만물의 날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물이 6천년간 탄식했고, 하나님의 아들딸과 수많은 인류 선조들이 6천년간 신음하면서 수고했습니다. 나아가 인류의 부모인 예수님과 성신까지도 2천년 동안 수고했고, 인류의 아버지이시고 참원리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까지도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볼 때, 오늘 우리는 6천년의 고비를 전부 한테 묶어 넘겨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야 이미 죄악 가운데 태어난 죄인이니만큼 불행속에서, 그리고 원망스런 자리에서 살아야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래서는 안 되겠고, 참부모님이 그래서는 안 되겠고, 참다운 자녀들이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기준을 지닌 전통 앞에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은 뻔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전통을 중심삼아 하나님의 날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가정에는 하나님의 날이 임한 것이요, 참부모의 인연과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만물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봄날을 맞이한 가정이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만,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권위를 계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이 되어야만 여러분들 각자가 선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방에 벌여 놓은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입니다. 이 가정들이 하나님과 일치될 때는 선생님 가정의 중심적인 기준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들은 하나님의 날을 맞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하나님의 날을 세운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고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축복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난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참다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자녀로서 참부모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소유할 수 있고, 그 가정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생활전통을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은 통일교회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필요한 날입니다. 여러분들의 조상을 중심삼고도 필요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타락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복귀하여 찾았다는 승리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이러한 날을 대해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브라함보다도 나아야 되고, 야곱보다도 나아야 되고, 모세보다도 나아야 되고, 예수님보다도 나아야 되며, 성신보다도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과거에 왔다간 사람들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선조들은 부모의 자리를 중심삼고 천국의 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여 나왔습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소망이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소망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이 소망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모든 조상들 앞에도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왔다간 선지선열들, 공자나 맹자, 석가 등 모든 성현들도 결국은 이 기준을 찾아 나왔고, 소망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이 되고, 그 가정을 중심삼아 자녀와 만물이 규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틀이 무너졌으므로 역사는 그 기준을 복귀하는 것이고, 그 기준은 역사 이래 모든 성현들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소망의 기준에 서게 되면 공자, 예수, 석가보다도 몇 배 나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인 기준에서는 아버지격이 될는지 모르지만, 육적인 기준에서는 아버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육적인 기준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자리입니다. 실상은 예수님보다도 나은 자리인 것입니다.
축복을 누가 먼저 받았느냐? 예수님과 여러분을 놓고 보면, 여러분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광의 자리를 먼저 상속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예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격인 입장에 서지만, 육적인 면에서는 여러분은 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여러분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귀한 황태자로 태어났어도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만큼 자랐으니, 자신이 하늘의 왕자이고 하늘나라의 무리인 것을 알아서 자기의 모든 환경에 대한 예법을 갖추어, 자기의 본분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가정의 전통을 수립해야 되겠습니다. 또 부모의 날을 중심삼고 가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자녀의 날을 중심삼고서는 하나의 질서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날을 기념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의 어떤 명절보다도 정성을 들이고 기뻐하며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전통의 기원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날들을 축하하는 전통을 세워 자기의 천추만대 후손에 이르도록 천적인 가법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부모의 날에서 자녀의 날로 직행하고, 여기서 만물의 날로 직행하여, 하나님의 날까지 직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의해 침범받지 않은 고차원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한 하나의 회로를 조성해야 됩니다. 이런 전통의 첫 기초 발판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명절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이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격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날을 맞이하여 기념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활 전체를 이날을 중심삼고 결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충성과 정성을 다 모아서 이날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날을 축하할 수 있어야 하늘이 세우신 명분과 예법을 지키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6천년 만에 비로소 찾아진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천지의 운세가 총집결하는 날입니다.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이날을 맞이하고 기념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69년의 하나님의 날을 지내고 365일이 지난 1970년도의 하나님의 날을 맞이할 때는 부족함이 없는 내 자신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365일 동안 계속해서 정성들이는 마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성을 얼마만큼 들여야 되겠느냐? 만일 4천년이 지난 오늘, 그날이 이루어져서 이날을 기념하는 식장에 아브라함이 참석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처럼 입던 옷 그대로 입고,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참석하겠어요? 말할 수 없는 정성을 들이고도 송구스러워 옷깃을 여밀 것이며, 금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참석할 것입니다.
이날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고, 가정도, 나라도, 세계의 모든 의인들이 희생당해 왔습니다. 이러한 모든 전체의 운세가 판가름되는 엄청난 무대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식전에 참석하게 된다면 어떠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참석하겠어요? 아마 옷이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입을 것이요, 목욕을 한다면 새벽같이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 들여 이날을 기념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2천년간 고대해 나오던 이날의 의식에 참석했다면 어떠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4천년 동안 수많은 억조창생이 피와 눈물을 흘리며 찾아 나온 이날을 맞이할 때, 물론 하늘 앞에는 면목이 없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겠지만, 이날을 찾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처럼 뼛골이 우러나고 세포가 약동하는 자리에서, 이 한 날을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맞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하늘의 심정을 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심각한 태도로 이날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수고하며 정성들여 온 기준에 상당하는 수고와 정성을 들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행사가 있으면 그 행사를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들이며 준비했습니까?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제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이 스스로 제물 될 양을 길러서 제사 드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행사 때면 전부 나의 주머니를 통해서 행사를 치르고 있으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제사장이 자기의 돈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제사입니다. 그렇게 무성의하게 정성도 들이지 않고 귀한 날을 맞이하다가는 여러분의 후손이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는 하나님도 떠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하나님의 날이 어디 있으며, 참부모님이 떠난 부모의 날이 어디 있으며, 참다운 자녀의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을 중심삼고 내 정성의 인연을 억천만세까지 남기겠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날들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써 대해야 하는 날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몰랐을지라도 앞으로는 이런 입장에서 정성을 들여 주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날에 정성들인 그 정성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매일의 생활에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정성을 세워 가정의 전통으로 이끌어가면 여러분의 아들딸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좋은 위치에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2차 7년노정에는 이 기준에 올라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아들딸 3명을 세워서, 여러분의 자식이 복중에 있을 때부터 그들이 굴복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복귀원리에서도 배워서 알겠지만, 이렇듯 복귀의 길은 피나는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따라갈 수 있는 길인데, 여러분처럼 늑장부리면서 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과 같은 이러한 축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재산 등 모든 조건을 걸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러한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전부다 잃어버린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러한 날을 맞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이러한 날을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문(門)을 모르고 헤매다 도중에 쓰러져 갑니다. 이것들을 처치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천당은 재생한 아기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고향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고향에 가면 `이 녀석아 왜왔어!' 하는 경우와 `아이구 자네 잘 왔네!' 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계에 갈 때에도 환영받는 사람은 본향으로 가는 것이고, 배척받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먼저 가르쳐 주지 않고 가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그는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양심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들은 그 양심을 얼마나 잘 모시고 있는가? 양심은 인간이 걸을 때나 먹을 때나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밥보다도 해보다도 물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공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안 보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양심도 안 보입니다. 양심을 벗삼고, 주인으로 삼고 그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양심은 깊은 땅 속에서도 작용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작용하십니다.
양심은 몸과 결연하지 못하고 고독 단신으로 살다가 갑니다. 양심이 소원 성취하여 춤을 추다가 가야겠는데, 엉엉 울다가 원귀가 되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양심이 있는 것은 천지법도에 의한 원형이정(元亨利貞)입니다.
부부를 이루어 자식을 낳아 가지고 가족과 함께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제일 잘생긴 여자 혹은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목구비만 잘생겼다고 잘생긴 게 아니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둥글게 잘 화합된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입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백 퍼센트 하나 되어야 하는데, 이 둘이 몇천만 갈래로 갈라지려 하니 지옥인 것입니다.
주인인 양심을 푸대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접을 잘하면 살이 찝니다. 그러다가 환고향(還故鄕)하면 천지의 모든 것이 그 품에서 춤을 추려 할 것입니다.
가치결정은 인간생활의 짧은 기간에 되어집니다.
종교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육신생활의 시간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운명길을 돌파해야 합니다. 돌파하려면 승리해야 합니다. 한번 실패하고 가면 다시 올 수 없습니다. 승리한 자는 천하가 환영하지만 패한 자는 천하가 배척합니다.
지옥은 패자의 서러움과 탄식으로 호소하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도 대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해 주면 대해 주는 사람도 패합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입니다.
1968년은 한번 왔다 갔으니 다시는 상봉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잘못 살았으면 하늘의 기대하심에 대하여 배반자가 된 것입니다.
1969년도 또 가야 할 해입니다. 1968년도 내 마음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1969년 역시 내 마음에 남을 수 있게 살아야 합니다. 한평생 내게 없어서는 안될 시간으로 남을 수 있게 살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악한 편의 재료를 제거해 버리고, 선한 편의 재료를 수습하는 곳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하고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양심에 가책받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시집간 아내가 바람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는 변경되어도 원칙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몸뚱이의 뜻을 밟아치우고 마음의 뜻을 찾아 모셔야 합니다. 여기에 죽음을 넘어 재봉춘(再逢春)할 수 있는 계기가 있습니다.
뜻이 아무리 여러분 앞에 가까이 다가왔더라도 여러분 자신이 그 뜻을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뜻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뿐만 아니라 노아 시대에도 그랬었고 아브라함 시대, 모세 시대 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문제가 되는 것은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동화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 특별히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런 환경에 동화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뜻이 아무리 세계적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이 그 뜻을 도외시한다면 이 뜻과 여러분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뜻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적 조건, 혹은 내적인 조건을 갖추어 어떻게 그 뜻에 결부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대개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역시 지금까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신앙자들과 불신앙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불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생활만 하면 되지만 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도 아울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앙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신양명하는 것보다도 교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그것들이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외적인 사회생활은 가인적이며 내적인 교회생활은 아벨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사회생활은 내적 생활의 상징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외적인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내적인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외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신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통일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관념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교회에 모여 집회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공적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희박해지는 거예요. 자기가 내적으로 설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거예요.
내적인 모든 핵심을 결정짓는 자리가 바로 교회의 공적으로 집회하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의 공적 집회를 통해서 전통적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다 .
여러분은 아침 경배시간이라든가 혹은 우리 교회에서 개최하는 공식적인 집회 시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합니다. 도리어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과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흘러가 버리고 말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이 영원히 남아져야 할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보다도 앞설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여기에는 문제가 일어나고 병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팎에 대한 문제를 여러분들이 확실히 가려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몸을 주관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곳, 즉 임재지(혹은 임재점)가 어디인가를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한 국가면 국가가 역사과정에서 왜 망했느냐? 이스라엘 나라가 번번이 이방의 침범을 당하고 또 하나님의 뜻 앞에 어긋나는 자리에 나간 것은 왜 그랬느냐? 그 국가로서의 내적 근거지, 즉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지와 일체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지와 일체되지 못하면 그 국가가 망했듯이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이 안 나는 것은 어찌하여 그러냐? 여러분 자신이 내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지, 즉 임재점을 결정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힘이 안나는 거예요. 개인이 무력해지는 것이나 국가가 무력해지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세계의 외적 정세를 살피기도 해야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외적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적 정세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데는 섭리적 근거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크고 복잡하지만 전부다 그것은 외적인 반응 현상입니다.
그러면 내적인 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임재지, 즉 임재점이 어디냐? 하나님이 임재해 가지고 이 모든 동기를 둘 수 있는 곳이 어디냐? 여기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곳이 외적인 세계의 모든 정세를 좌우하는 미국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그곳이 어디냐? 그곳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표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표하는 곳이 바로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자체 내에 하나님의 모든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그런 내용이 있느냐 하면, 그런 내용이 통일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내가 어떻게 동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적 세계에 어떻게 동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할 수있는 내적인 본거지에 어떻게 동화될 수 있는 내 자체를 가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될 때에도 무슨 뭐 대한민국, 세계에 대한 그런 기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가 어디이며,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임재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협회장이든 누구든 전체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셨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유대 민족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으나 그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즉 제1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기 때문에 제2이스라엘 기독교를 창건해서 그 기독교를 중심삼고 역사과정을 수습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제2이스라엘도 역시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섭리하시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통일교회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어디에 머무르시게 되었느냐? 소위 말씀에 머무르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일치가 안 되고 이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될 때는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타나 여러분은 생각지도 못한 입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전체와 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한 전체를 놓고 볼 때, 어느 것이 내적이냐 하면 교회생활이 내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내적 생활의 가치의 기준을 세워 나왔느냐?
혹자는 뜻을 중심삼고 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 될 것이다'라며 자기 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겠어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뜻을 세워 나오면서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었느냐?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 즉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기점이 어디냐? 여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일체가 되느냐? 어떻게 동화되느냐? 여기에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일체성의 기반을 어떻게 세워 내적으로 적응시키느냐? 이런 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외적으로 이것을 막기 위해 방해하고, 하늘은 외적으로 막는 이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실황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 가운데 어디에 계시느냐? 한국에 계신다면 한국 어디에 계시느냐? 하나님은 반드시 교단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생활하고 있는 청파동 본부교회와 하나님의 임재지와의 관계가 어떻게 돼야 하느냐? 만약 이것이 다르다고 할 때, 통일교회는 발전은커녕 여기서부터 중단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어져 가지고는 앞으로 세계적인 동화의 기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는 기점이 될 수 없습니다. 내적 중심을 공고한 자리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어려운 환경이라도 책임자는 그러한 중심을 결정짓는 그 기점을, 그 위치를 상실하지 않고 지켜 가야 되겠다는 신념에 언제나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가지고 나아갈 때 사적 생활과 사회생활을 전부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내적 생활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나는 뜻이 원하는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을 중심하고 몸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섭리의 기점, 즉 섭리의 임재지를 중심하고 외적인 세계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지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 우리 사업대원들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사업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길을 가더라도 만사를 하나님이 임재하는 그 기점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활 전체가 그 기점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화, 즉 동화될 수 있는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긋나게 될 때에는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 잘 되고 자기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 하는데,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세계를 움직이고 모든 섭리를 움직이는 그 중심존재이신 하나님이 어디에 임재하시느냐? 임재지가 어디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누구나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철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나오게 될 때는 그것은 본심이 오고 싶어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본부교회를 오지 말라고 해도 담을 넘어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때의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달라졌든가, 아니면 여러분이 달라졌든가 무엇인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그 기점이 달라졌느냐, 여러분 자신이 달라졌느냐? 둘 중의 하나는 달라졌습니다.
교회 자체와 선생님 자신이 지금까지 뜻을 향해 가는 방법이 달라져 왔다면 통일교회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계는 협조를 안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변동이 벌어질 때는 뜻이고 무엇이고 이것은 다 중단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하겠다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교회와 선생님 자신이 뜻을 향해가는 방법이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달라진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옛날과 비교해서 자신이 달라졌다면, 그 어디에 병페가 생겨났느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점과 여러분 생활이 일치 안 되어 있으면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의 본심과 일치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질 때 병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3년이 가고 4년이 가고 하여 7년이 지나고 나니 여러분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새로이 배워서야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입니까? 그런 자리에 떨어져 있으니 아무리 보조를 맞추려 해도 보조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앉아서 꺼벅꺼벅 졸고들 있는 거예요. 즉,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대로 있고, 듣는 사람은 듣는 사람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이면 감옥 생활에서나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서도 이 한 기점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왔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은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기도할 때도 다른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통일되면 뭘 합니까? 그 기점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계 통일을 하기 위한 그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자아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를 어떻게 완성시키느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점, 그 기점과 언제나 일치화시켜야 합니다. 아무리 힘든 감옥이나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이것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즉, 복귀의 관문인 것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그로 인해 못 갈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점점점점 시간이 촉박함에 따라 스스로 재촉하게 되는 것이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더욱 심각해지는데 여러분은 어려우면 오히려 헤이해지지요? 문제가 점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여러분들에게 심각성은 더 가중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점을 결정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상대적 결정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복귀섭리를 가만히 보십시오. 옛날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였는데, 제물을 드리려면 제물을 드리기 위한 환경을 성별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지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성막 가운데 지성소가 있습니다.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별된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에는 상징적인 성전이었으나 신약 시대인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실체적인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체 성전이 된 예수님 시대에 와 가지고는 예수님을 중심삼아야 하고, 그를 기점으로 하여 언제나 일치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 되는 그곳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기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기점의 도리를 접해 가지고 일치화될 수 있느냐, 즉 동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곳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떠한 승리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했댔자 그것은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섭리의 7년노정이면 7년노정을 거쳐 나가는 길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임재점에 개인이 일치되어 나가며, 가정이 일치되어 나가며, 종족이 일치되어 나가며, 국가와 세계가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임재점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내가 국가를 위해 충성만 하면 됐지, 중심이 어떻고 임재점이 어쨌든…….' 하는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임재점에서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기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들어와 가지고 봉사하여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내적인 인연이 결과인 외적 세계에 열매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이런 것을 떠나 가지고는 교회도 아니요, 사회도 아니요, 중간에서 왔다갔다하다가 만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중간에서 왔다갔다하는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이 병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그 기점에 동화할 수 있는 생활적인 터전이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협회본부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다고 거기에서 낙망하고 지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할 곳이 딴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안식할 곳이 딴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로구나! 이 자리가 하나님이 최고로 안식할 수 있는 자리요, 이 자리가 최고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자리로구나!' 하는 것을 백방으로 느끼고 생활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맺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움을 느끼며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아무리 외적으로 큰소리쳐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충성하는 데 있어서 그 기점이 어디 있느냐? 반드시 가정에서, 그 부모의 마음과 몸 가운데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것도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입니다. 인간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의 출발도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그 기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된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의 생명도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겠습니까? 존재하는 것이 그냥 그대로 생겨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실은 우리의 탕감복귀 노정도 이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생짜를 모아다 놓았는지 앉아서 졸기나 하고……. 졸기나 해서 어디 되겠어요? 졸고 있는 사람들, 이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교회 이 자리가 진짜 그런 곳인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졸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지금 여기에 임석했다면 여러분 졸고 있겠어요? 여러분은 벌써 관념부터 틀렸습니다.
이 자리가 어떠한 자리입니까?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이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지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왜 하시느냐? 본연의 부모, 즉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참부모는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실체 성전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실제로 실감이 나나요? 그 가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의 집쯤 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몸뚱이, 여러분의 아들딸, 여러분이 살고 있는 나라, 세계와 같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무시해도 유만부동이지 하나님 알기를 자기 집의 장롱 속에 들어 있는 패물보다도 못하게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길을 닦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그렇지 않고 여러분과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겠습니까? 이것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같이하시겠나 하는 것을.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교회에 찾아오고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동화되는 생활을 갈구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향하여 머리만 숙여도 그 자리는 은혜의 자리가 됩니다.
여러분이 청파동 본부교회를 하루에 한번씩 들르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아버지……' 하고 회개를 하고, 또 못 가게 된 것을 탄식하고서 자기 가정의 누구라도 보내어서 교회 사정이 어떻게 되어 가고, 또 선생님이 무엇을 위해 활동하기를 바라고 계시는가를 알고 싶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관심이 우주보다 더 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 떠나십시오' 해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곁방살이를 하면서 무슨 은혜가 나오겠나' 하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공부를 해 가지고 출세하여 뜻을 위하겠다고 합니다. 자기 멋대로 출세를 암만 했댔자 뜻하고 관계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그 기점하고 일체 될 수 있는 자리에서, 그것을 근거로 해서 터를 닦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출세해야, 그럴 수 있는 동기가 되고 환경이 되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준을 어떻게 여러분들이 자각하느냐는 것이 중요한데 여러분은 이것이 희박하다는 거예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통일교회 본부에 오지 말라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는 세상의 명예, 세상의 권력, 세상의 부귀보다도 선생님이 안 만나 주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인식과 신념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세계적인 복귀섭리역사를 담당하고 나오지만 아직도 선생님은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기쁨을 돌려드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섭리를 해 나온 이 시점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모습을 어떻게 취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갖춰야 할 예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법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예법을 갖추어 나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는 모른다 하더라도 그 가정을 이끌어야 할 책임진 사람은 이 예법을 속히 갖추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뜻이 여러분이 활동하는 그 세계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온 복귀역사니만큼, 핵심 내용이 결정된 그 기준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외적인 기준이 전부다 사방으로 상대해 들어옵니다. 그것을 실감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신념을 갖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임재하는 임재 기점을 통하여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가르쳐 주지 말라고 해도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을 초월하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국경이라도 초월해서 이 역사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점은 한국이지만 이 임재점은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 임재점은 세계를 대표한 임재점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곳을 향해서 일치화되고 동화되기 위해서 정성들여 나오면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인식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어 놓고 에덴동산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임재하시려고 했는데 그 기점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는 6천년 동안 슬픔의 역경과 개척 노정을 거쳐 수많은 역사과정에서 희생의 관문을 택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어느 곳에 임재할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 왔느냐?
그곳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도 딴 곳이 아닌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어디냐? 결과적으로 선생님께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임재하는 그 가치를 얼마만큼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의 척도가 됩니다. 절대적인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어나온 7년노정이 선생님만의 노정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노정이 안 되면 여러분의 노정으로서 그것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일치화시키지 않겠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치점에 나도 가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생명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안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다 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큰 병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잘 했댔자 결국은 여러분이 딴 데로 가게 되고 그러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를 믿다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 기준이 일치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관계 맺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더 큰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점을 어떻게 여러분의 내적 생활에 일치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대외 생활보다도 대내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기점과 어떻게 일체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나 그 해결기점을 가려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앞으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본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겠습니까, 안 갖게 되겠습니까? 절대적으로 관심을 안 가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 살고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본부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쪽을 하나님은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10년 되었으면 10년 된 만큼 쌀이 찌고 뼈가 굵고, 그 내용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일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그 본거지에 대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어야 됩니다.
이것이 변하게 될 때는 병폐가 벌어집니다. 모든 일을 할 때는 이것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뜻을 위해 가는 길에 있어서 표준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해도 그 마음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하나님 대신자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활동을 할 때 어디에 가서 입을 열더라도 반드시 하나님 대신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적인 기준이 공고화될 때 외적 기준이 출발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플러스가 생기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기는 것은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기준이 완전하게 될 때는 외적인 기준은 자동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길을 가면서도 마음이 컬컬한 것은 왜 그러냐 하면 내적 기준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적 기준이 떨어져 있어 가지고는 뭘하더라도 만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내적인 하나님의 임재점에 동화하는 생활, 일치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점에서 개인이 탕감복귀되는 것이요, 가정이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이 지점을 떠나서는 탕감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지방에 나가서 전도를 하더라도 이 기점을 중심삼고 이 기점을 연결시켜 가지고 거기서 환경적으로 탕감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도 이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확실히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것이 희박하게 될 때는 반드시 딴 결과가 맺어지게 됩니다. 딴 결과를 맺은 뒤에 `아이쿠!' 해서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여러분들은 옛날에 자기들이 원리 말씀을 들을 때 느끼던 그 기분을 다시 회복해야 됩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말씀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서 충격적인 충동을 느끼던 것을 다시 회복해 갖고 그길을 다시 찾지 않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여러분의 생애를 걸어 놓고 죽을 때까지 해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 느끼던 그 심각한 심정을 지금도 산에 가나 어디를 가나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변화하면 변화할수록 더 심각한 심정을 느낍니다. 환경이 변화된다고 해서 자기의 내적인 기점을 상실하고 변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환경이 달라지면 달라질수록 그 환경에서 반드시 이런 기점을 수습해 가지고 하늘과 땅 관계 이상으로 이것을 조성해 놓고 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이중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언제나 이중 생활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중 생활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다 보람있는 생활, 보다 내적인 생활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기점에 있어서 아들로서 해야 할 책임이 있고 가정으로서 해야 할 책임, 교회 전체의 책임자로서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세계 복귀섭리를 책임지고 나가는 책임자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거기에는 예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상실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통일교회는 중단되는 것입니다.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가만 있어도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그 기점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발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의 도리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때에 세계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기점을 상실하게 될 때는 여러분은 선생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얼굴을 알고 상대를 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알겠지요? 「예」
1965년도에 우리 통일교회가 부흥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1965년도 이상의 부흥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부흥은 했지만 내적인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내적인 수습을 위해서 우리가 주력해야 되겠습니다.
금년 5월, 6월, 7월, 8월, 9월, 이때에는 국가적으로 볼 때 상당한 위기라고 봅니다. 북한에서는 녹음기(綠陰期)가 되는 이 기간에 간첩을 많이 남파해 가지고 국내를 혼란시키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상사가 많이 일어나리라 보기 때문에 이번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전국적으로 반공활동에 총주력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반공활동에 왔는데, 우리의 반공활동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제까지 활동해 온 것을 결실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활동을 9월까지 실시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10월, 11월, 12월, 이 3개월간은 원리연구회의 결실기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해 온 대내적인 활동을 대외적인 활동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대외활동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로 승공연합, 초교파협회, 원리연구회를 창설했습니다.
이런 단체를 세워서 대내적인 모든 계획을 대외적인 관계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활동체제를 길러 왔던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승공활동한 지도 만 3년이 지났습니다. 맨 처음에 이 활동을 할 때는 관(官)에서 우리를 상당히 멀리했었습니다. 관에서는 이것에 대하여 책임진 부서에서 전부 다 하고 있으니 당신들이 안 해도 된다면서 아주 비난했습니다. 일개 종교 단체에서 그런 활동을 할 게 뭐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활동할 때는 억울함을 많이 당했습니다. 이 분야를 개척해 나오면서 참 서러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활동한 실적을 볼 때 이제는 국가적으로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시아에까지 문제를 제기시킬 수 있는 실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사회단체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혹은 반공연맹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를 상당히 반대해 나왔습니다. 국가 단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지도 않은 단체가 전국적으로 조직을 공고화하여 자기들 이상의 활동을 벌여 나왔기 때문에 그들이 음양으로 우리를 반대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을 탓하지 않고 꾸준히 이 길을 개척하며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명실공히 국가가 우리를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국제회의에서 승공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 전체가 협조할 수 잇는 길을 금후 2, 3년 이내에 조성하려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승공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우리를 빼놓고는 안 된다고 하는 실적을 갖추었습니다. 이런 단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념적으로 민주와 공산이 대립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무리인 우리가 공산주의를 비판해 가지고 그들을 극복할 수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세계사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가 제창하는 이 승공사상은 세계 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닦여졌습니다.
이것을 잘만 하면 아시아의 문제로부터 세계의 문제로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승공연합의 활동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초교파 운동인데 이 운동을 1966년을 중심삼고 해 나왔는데 이제부터는 초교파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교회를 위하는 활동보다도 모든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종교 통일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진보적인 관점에서 초교파 운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물질적인 문제라든가 안팎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2년 동안 잘 끌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한국 교계에 그야말로 초교파의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단 앞에는 이것이 크나큰 위협적인 활동으로 부각될 정도로 지금까지 활동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종교를 대표해서는 초교파를 통해서 운동을 했고, 또 사상을 대표해서는 승공연합을 통해서 활동을 했고, 학계를 대표해서는 원리연구회를 통해서 활동해 나왔습니다. 이제 이 단체들은 모두 명실공히 사회에서 공인받을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왜 교회활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데, 그러한 내용을 가진 중간적인 단체를 세워야 되는가? 이런 근본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천의(天意)에 의한 섭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뜻을 세워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이냐? 물론 하나님은 단시일 내에 달성시키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것을 단시일내에 성사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정책적인 문제가 개재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계를 움직인다든가, 정부를 움직인다든가, 사상계를 움직이는 이런 문제가 반드시 개재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상계를 두고 볼 때 철학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새로운 철학 사조를 중심삼고 새로운 이념이 나왔습니다. 철학의 근거를 중심삼고 새로운 사관, 새로운 세계관이 나와서 이것을 중심삼아 새로운 사회건설, 새로운 이상, 새로운 사회 조직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현실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상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에 제일 위협적인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우리가 고심해 온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선두에 서서 그것을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것은 세계사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공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체제를 가지고 나섰다는 사실, 이것은 명실공히 현재 인정받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 나왔지만 우리는 이렇듯 지금까지 사상적인 분야에 있어서 첨단에 서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한 종파의 입장에 있지만 그야말로 모든 종교 가운데 최고의 우위를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7년 동안 활동해 나왔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서 정부나 일반 단체의 지도자들은 강력한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움직이는 것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이런 입장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애국 애족하는 단체요, 또 통일교회 사람과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활동을 통해서 그런 실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을 우리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세 분야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빠른 길을 선생님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 한 가지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탕감복귀라는,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입장을 취해 나가면서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 없고, 또 사회활동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대학가에서도 활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인 입장에서 이런 기반을 개척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반을 개척하기 위해 고심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의 서러운 역사였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도 그것을 양분시켜 가지고 학계와 사상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눈물 나는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목적하던 그 기준을 향해서 작전을 개시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승공활동도 해야 되겠고, 교회활동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연리연구회 활동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5월까지는 교회활동을 하고, 그 이후 9월까지는 전적으로 승공활동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가지 문제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우리 교회가 현재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전국에 널려 있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각 개인이 승공활동을 할 때, 전부 다 일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간첩을 색출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가 선두에 서야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정부와 타협을 해 가지고 여러분에게 대공관계에 대한 훈련도 시킬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에 있어서 홍콩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곳에 앞으로 우리가 세계적인 탐정소, 흥신소와 같은 것들을 설치하여 운영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문제를 뒷받침하는 모든 인재는 대한원리연구회에 관계되는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확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심각 작전을 활용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생각할 때 대학가에서 활동하는 대학원리연구회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크다는 것입니다.
교회부흥활동이니 승공활동이니 하는 그 영향을 전부다 어디에 결부시켜야 하느냐 하면 원리연구회에 결부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10월부터 12월까지 대학원리연구회를 이것을 결속할 수 있는 방향에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초교파를 중심삼은 운동보다도 대학가에 YMCA나 YWCA와 같은 이런 단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들과 우리 원리연구회가 어떻게 연합해서 활동하느냐, 또 우리가 부흥회 활동을 해 가지고 각 대학생들이 전도되면 그 사람들과 어떻게 유대 관계를 맺느냐, 이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에는 12월까지 원리연구회 활동에 집중시키려고 그럽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간에는 다른 활동은 하지 않느냐? 아니예요. 다른 활동을 계속하되, 그러한 때를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10일 이내에 선생님이 외국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5월 이내에 돌아오려고 그럽니다. 여러 가지 긴박한 국내 사정도 있고 해서 빨리 돌아오려고 합니다. 앞으로 원리연구회 활동은 대학교내의 활동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대학생이면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반드시 모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기가 재적하고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교에는 자기 개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동료들과 친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전공학과를 중심삼아 가지고 70명내지 80명의 동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기들과 사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활동 체제를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대학교 내의 활동만으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선후배 관계를 잘 활용하고 모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방과 서울이 여러 면에서 다를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현재 대학원리연구회를 중심삼아 활동하는 그것을 어떻게든지 모교에서 자기를 지도했던 스승에게까지 연결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교로 연결시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대학가에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자기 친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의 가정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대학가의 활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사회활동에 연결할 것이냐? 그냥 막연하게 할 것이 아닙니다. 자기 학과면 학과의 가까운 친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친구네 가정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의 친구가 왔으니까 그 부모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친구가 똑똑한 청년이면 그 집에서는 자기 아들과 비교하게 되고 자기의 친척 누구 누구하고도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번만 방문하게 되면 우리가 그 가정의 분위기와 그 가정의 생활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여러분들은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가족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상하관계의 예법이라든가 하는 것을 지도해 가지고 방문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방문해 가지고 먼저 원리연구회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하고 친해져야 됩니다. 우선 가까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친구를 중심삼고 그 가정의 배후에 있는 젊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분위기를 조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 또는 삼촌과 일가 친척도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하게 된다면 우리의 활동무대는 자동적으로 열려지게 됩니다.
친구의 동생, 누이, 사촌, 육촌, 팔촌들과 관계를 맺어 활동하게 되면 대한민국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대개 대학가를 두고 볼 때에 그들의 가정은 중류 이상의 가정일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애국 애족하는 사상을 발전시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가정에 가서 무엇인가 한 가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 가정에 가서 진지한 의미에서 애국 애족하고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이 속된 세상에 우리는 여기에 물들지 않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말 한마디면 많은 시간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15분이면 된다는 거예요. 아들의 친구인 여러분이 가정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친구의 부모는 직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 중에는 명문집 후손도 있을 것이고, 저명한 아버지를 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원리연구회의 학생들에 대한 신망을 갖게 된다면 자기 직장의 책임자, 혹은 자기 동역자로 채용 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 친구의 아버지가 이름 있는 회사의 사장이라면 그는 우리 원리연구회의 학생들을 중요한 인재로서 관심을 갖고 채용하려고 할 거예요. 이렇게 되면 그 가정과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앞으로 원리연구회 출신들은 인연된 그 가정들을 통해 가지고 전 사회 단체에 우리의 이념을 전파하고 공고화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장구한 계획을 추진해 감에 있어서 대학가를 중심삼은 인재 양성과 인재 배출의 문제를 두고 볼 때 경제적인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대학교 내의 활동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을 확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중심삼고 확대할 것이냐. 자기의 친구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확대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반드시 친구 집에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 집에 갈 때에는 친구와 그의 형제, 부모 친지에게까지 무엇인가를 남겨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돌아오는 활동을 여러분이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만 하게 되면 완전히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가정을 중심삼은 기반이 조성되면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대학 교수들을 초청하는 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계획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건전한 활동을 하면서 부모님에게 지도 교수를 우리 가정에 초청하자고 하면 기쁨 가운데서, 성심성의를 다하여서 부모님들이 초청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인연으로 하여 우리가 지도 교수들을 초청해 가지고 환영하게 되면 우리들도 좋고, 환영받는 지도 교수들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인연을 맺어준 그 가정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에게 자기가 신세지고 돌아갔기 때문에 인연을 맺어준 그 학생을 만나게 되면 지도 교수가 진지한 의미에서 시간을 내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반이 닦여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으로 대학 교수들을 우리와 연결시키는 작전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세부적인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토대 위에 발전을 해야 됩니다.
대학내 활동을 사회화시키는 데 있어서 어디에 어떻게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인가? 자기 가정과 친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는 사회의 저명한 인사의 자녀들도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내의 활동 체제를 강화해 가지고 분담적인 활동을 통해서 그 자녀들에게 우리 활동에 협조하게 해 가지고 우리 원리연구회 활동권 내에 인도해야 되겠습니다. 연결된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원리연구회 부장이라든가 혹은 간부들이 그 가정을 방문해서 활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몇 가정만 하게 되면 자연히 문제가 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나 최고의 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기반을 닦기 위한 활동을 해야 되겠고, 이것을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반공활동에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대학내에 있어서 공산사상을 가진 적색분자들이 침투할 수 있는 노선을, 우리와 연결된 가정을 기반으로 반공활동을 해 가지고 사전에 봉쇄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원리연구회가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원리의 최후의 승패는 세계적인 학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원리를 세계에 제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각 대학교의 종교학과나 철학과의 권위 있는 교수들에게 우리 원리를 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국내의 종교학 또는 철학 교수들이 우리 원리를 세계 학계에 제시해 가지고, 앞으로 세계화시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기반을 닦아 놓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초교파 운동이라든가 그 외에 여러 활동하는 데 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있는데, 금년까지는 그냥 그대로 활동을 하고 내년부터는 비용을 절감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른 경제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원리연구회를 중심삼아 앞으로 장학제도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장학제도, 이것은 상당한 효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일년에 한 천만원이 필요합니다. 일년에 한 천만원을 예산하여 한달에 백만원씩을 열 사람에게 지불하게 된다면 일년에 백명이라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명은 우리 계획에 필요한 핵심 요원입니다. 서울대학교면 서울대학에서 제일 우수한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백명이라는 핵심요원을 자동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필요한 인적 자원을 찾아낼 수 있고, 또한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리라 보고 있습니다.
또, 금년에 들어와 우리 선화어린이무용단이 일본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현재 일본에서 상당한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번에 일본 협회장인 구보끼씨가 와 가지고 선생님에게 리틀엔젤스 공연을 일본에서 최소한도로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구보끼 협회장은 자기 나름대로 한국 어린이 무용단이 와 가지고 공연하면 일본 사람들이 관심이나 갖겠나 하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특명에 의해서 시작해 놓았으니 안 할 수도 없고 해서 어떻게 최소한도로 공연 회수를 줄이려고 생각을 하고서 선생님 눈치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고충을 이야기하여 선생님이 좋도록 하라고 하게 되면 아예 몇 군데 공연해 보고 일주일 이내에 쓱싹 공연을 넘겨 버릴려고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구보끼 협회장! 씨름도 시합을 해봐야 승패가 결정이 나지? 시합도 안 하고 졌다고 일어서서 후퇴하는 것은 사람이 돼먹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고 아예 말이 나오기 전에 눌러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걱정이 태산 같았는지 그 뚱뚱한 사람이 축 늘어져 가지고 상당히 걱정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다시 와 가지고 하는 말이 그러면 입장료를 얼마나 받아야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얼마를 받았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일 많이 받아야 팔백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석이 팔백원이고, 그 다음엔 오백원, 그 다음엔 삼백원을 받았으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 나는 심리 작전을 써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왕에 성공을 못하게 된다면 한 가지 어떤 조건이라도 세워 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입장권이 비쌌기 때문에 조금밖에 오지 않았다는 조건이라도 세우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만약에 공연이 실패하게 된다면 방비할 수 있는 조건이라도 남겨 놓을 생각은 안 하고 `아이쿠! 입장권도 쌌는데 많이 안 들어왔구나' 그렇게 되면 그건 망신만 당하게 됩니다. 완전히 그건 망신이고 그건 전패를 당하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할 때는 입장객이 만원이 못 되거든 입장권이 쌌으면 관객이 만원이 되었을 텐데, 입장권이 비쌌기 때문에 많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하면 망신을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 입장권을 적어도 천 오백원 이상 받는 걸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입장료는 얼마를 받아야 되느냐고 물어 온 일본 협회장에게 특석은 천 오백원, 그 다음엔 천 이백원, 그 다음엔 천원을 받으라. 이럴 때는 일단 심리작전을 써야 된다고 했더니 어리둥절해 가지고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돈을 투자하는 데 있어서도 이거 보고 저거 보고서는 내가 이거 몇 해동안 고생해서 번 돈인데 이거 투자하게 되면 아이쿠 이거 망하는 거 아닌가 하고 우물쭈물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고생해서 돈을 벌어 집어 넣은 것을 내놓을 때는 보지도 않고 내놓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들어맞으면 날아가는 거고 안 맞으면 보따리를 펴놓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놓칠까봐 쥐었다 놨다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일본 협회장이 선생님 명령이니 그렇게 안 할 수 있어요? 그래 가지고 좌우지간 갈 때는 상당히 걱정을 하면서 갔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일본의 우리 원리연구회 회원들을 전부다 동원해서 그들에게 입장권을 판매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기일내에 전부다 판매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40일 전부터 판매를 하라고 했는데, 준비가 잘못되어 가지고 20일 전부터 판매를 시작했기 때문에 상당히 바빴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실패한다고 전부다 마음에 염려를 하면서 판매를 했다는 거예요.
2천만 원쯤 투자해 가지고 하는 일인데 실패해서 그 돈이 날아가 버리면 선생님이 하는 일에 지장이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비용을 얼마 쓰겠느냐고 했더니 3천만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8백만원 이상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든 표를 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전부 다 입장권을 판 거예요. 3회 공연에 입장권이 1만장이라면 1만장 전부다 파는 거예요. 전부다 팔았으면 그건 공연장이 초만원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표는 다 팔렸는데 일반 공연과 같이 사람들이 공연장에 가면 표를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온 사람들이 입장권을 사지 못해서 난장판이 벌어지게 되고 초만원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문 앞에서 입장권을 사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아야 공연 주가가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이 다 들어맞았다는 거예요.
일본 동북 지방의 센다이에 가 가지고도 공연을 했는데 아주 초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문제가 대판에서의 공연과 경도에서의 공연을 어떻게 해야 초만원을 이룰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작은 도시에서부터 공연을 시작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초만원을 이루게 해 가지고서 큰 도시에로 공연을 하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니 전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춤추며 우리가 하는 공연에 협조를 해 주니 이거 문제가 커졌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공연장 문앞에 문화공보부가 후원한다는 플래카드도 써 붙여 가지고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만일에 환영 못 받게 된다면 그것으로 완전히 매몰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전부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우리와 관계를 가지고 후원하던 사람들은 공연이 성공하면 고개를 들고 자기가 잘했다고 선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면 우리 계획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계획에 보조를 맞추는 것을 안 좋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곳곳마다 구경했던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이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순풍이 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한국의 선화어린이무용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본의 재계, 정계 등에서 감투를 쓰고 있던 사람들에게 바람을 일으켜 놨으니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을 누가 했느냐? 통일교회가 했다 이거야.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일본을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고 일본 사람들은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한국이 일본에게 36년 동안 압박받던 것을 복수하기 위해서 미스터 문이라는 사나이가 사상적으로 일본을 점령해서 일본을 근본적으로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선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식구들이 한국 문화를 살리는 데 있어서 먹을 것을 탓하지 않고 체면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선두에 서 가지고 입장권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느 지방이든 안 가는 데 없이 가서 팔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니 민단이 큰일났다는 거예요. 교포들의 입장이 말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교포사회에서나 민단이 주도해서 한국의 무용단을 초청해 가지고 공연하게 되면 무료 공연을 했습니다. 이렇게 무료 공연을 해도 어른들은 안 오고 언제나 코흘리개들이 나와 가지고 퉁탕퉁탕하다가 온다 간다 소식도 없이 달아난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민단에서 초청한 한국의 무용단이 지금까지 망신만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 선화어린이 무용단도 일본에서 인사도 못할 것으로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난데없이 일본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이 일을 했으니 교포들의 꼴이 뭐가 되었겠어요. 이러니 센다이에 사는 교포들이 공연이 끝나면 전부다 찾아와 가지고 우리 지역장한테 와서 자기들이 협조하지 않은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는 거예요. 선생님 같으면 당신들도 한국 사람이냐고 호통을 쳤을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에 그들이 돈 한 푼 협조를 했나, 장소를 마련하는 데 무슨 협조를 했나, 이건 들이 까면 맞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일본 정부나 재계에 있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본에 있어서 우리의 권위를 한번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일본에 거류하고 있는 교포들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월 26일 특별공연은 일본 저명인사들의 협조를 받아서 했습니다. 이렇게 될 만큼 우리 선화어린이무용단 공연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방학하기 전에 선생님이 대학가에 가 가지고 학생들의 반응을 봐서 공산당 패들까지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선화 어린이 무용단을 선전하게끔 한번 해보려고 했었습니다.
사실은 공산당 패들에게 작전을 세워 가지고 주최는 우리 원리연구회가 하고 공산당 너희들은 전부다 후원해라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방학 때가 되어서 때를 놓쳤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외적으로 갖춘 모든 준비,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4년 동안 우리 선화어린이무용단이 외국에 국위를 선양한 것은 한국 내 교회 전체가 공인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에 안 가면 원리연구회 주최로 서울 시민회관 같은 곳에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시민회관 같은 곳을 빌려 가지고 대학교 신입생들을 초청해서 선화 어린이 무용단 공연을 하면서 대축하를 해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초만원이 되게 되어 있어요.
이래 놓고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확보해 교육을 시켜서 우리의 일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본질적으로 선생님이 계획한 것에 정도(正道)로 달릴 수 있게끔 내가 코치를 하려고 그럽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빨리 외국에 다녀와서 앞으로 원리연구회를 중심삼고 한국에 저명한 교수 50명 이상을 확보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50명의 교수들이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이 교수들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자기 전문분야에서 우리를 선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세계적인 기반을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부장에게 얘기했지만 원리연구회 학생들은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교수에 대해서 개인으로서는 일반적인 지식은 배우는 제자이지만, 인격과 사상적인 면에서 교수들이 탄복할 수 있고 감화 감동할 수 있는 핵심 요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교수들의 이론과 주장이 잘못 됐으면 그 이론과 주장에 반박해서 바른 이론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러면 아니 됩니다. 사리에 알맞게끔 전후 관계를 따져 가지고 그것을 밝혀 주어야 합니다. 다만 그럴 수 있는 핵심적인 원리연구회 회원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대학가를 중심삼은 활동을 사회활동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학사(學舍)제도를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학사를 각 대학 앞에 하나씩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효과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리연구회를 중심삼은 학사와 성화학생들과의 관계를 강화시켜 가지고 3학년 4학년이 된 사람들은 전부다 원리강의를 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들을 각 대학의 각 학과별로 배치해 가지고 우리의 사상을 지도할 수 있는 조직을 강화해야겠습니다. 이렇게 강화해 놓으면 짧은 시일에 급속한 발전이 있으리라 봅니다.
금년 들어와 가지고 왜 선생님이 이런 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 하면 제1차 7년노정이 지나가고 제2차 7년노정을 걸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지금까지 뜻을 위해서 자기의 일신 전체를 희생하면서 나온 사람들이 선두에 서서 나왔습니다. 지금 대학가에 있는 사람들은 예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는 우리 협회 요원들 중에 대학 출신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국에 배치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이번 집회가 좋은 집회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원리연구회 학생들은 붕 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교회에 와서 누구한테 신앙지도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대학생 하게 되면 사회의 단체에서나 교회 단체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장년들은 직장에서 책임진 일을 해야 하고 사회와 경제, 가정문제를 책임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교회에 있어서 주인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있어서 학생들이 자기의 책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분위기를 알아 가지고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 소망의 표준이 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 분위기의 여파에 장로도 돌아가고 또 중고등학생으로부터 유년부까지 돌아갈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될 텐데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 체제가 선생님이 그렇게 강요할 수 있게 못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우리 요원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럴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의 본질에 있어서 자기들이 사회생활을 리드해 갈 수 있는 기반 밑에서 교회생활의 기반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원리연구회 학생들은 교회생활에서 붕 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을 나와 가지고 직장에 들어와서 일반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 전부다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직장을 중심삼고 생활을 하게 되니 신앙생활의 가치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원리연구회를 핵심적인 활동체제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들 중 철두철미한 결의가 각오된 사람들을 서울이면 서울에, 지방이면 지방에 지역 요원으로서 배치해 가지고 활동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전도가 안 되면 자기 친구라도 데려다가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활동을 강화시켜 놓으면 앞으로 빠른 시일내에 우리 교회가 발전되리라고 보고 있고, 또 원리연구회도 상당히 발전되리라 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선생님이 그런 면으로 밀고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여러분이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 가지고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번에 선생님이 외국에 가는 것은 세계적인 승공연합 간판을 붙이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원리연구회를 세계적으로 조직해 가지고 국제대회를 많이 개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어서 장학제도뿐만 아니라 미국에 우리의 재단을 만들어 가지고 못 해도 1970년대에는 백만불 이상 우리가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만큼만 된다면 앞으로 원리연구회의 중요한 멤버들을 각 나라의 핵심 요원으로 활동하게 하기 위해 초국가적인 요원들로 양성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요원들로 양성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수가 많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 각 주의 주립대학의 학장이라든지 하는 사람들과는 우리 선화어린이무용단을 중심삼고 전부다 관계를 맺어 놓았습니다. 요전에 거기에서 장학금을 지원해 준다는 것을 여기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경제적 기반만 닦아 놓으면 막대한 우리 인적 자원을 외국에 유학시켜 가지고 우리 체제 내의 핵심요원으로 교육시켜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우리의 활동을 보게 되면 지금부터 몇 해만 지나 가게 되면 우리는 본궤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선두에 서 가지고 여기에서 기초를 닦는 데 공헌을 해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으로 갖추어진 모든 환경을 중심삼아 세계로 달려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여러분의 무대로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뜻에 따라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원리연구회 회원인 여러분에게 추천만 해주게 되면 여러분은 언제든지 외국에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으니만큼 앞으로 어떤 단체도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발전을 하리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가를 중심삼은 우리들의 요구가 큰 것을 알고 다들 명심해 가지고 1969년도에 여러분이 하나되어 나아가 주기를 부탁 합니다. 알겠지요? 「예」
선생님이 없는 동안에 대학생부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지금 대학생부장이 삼선교회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활동하는 데 상당히 지장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신앙적으로 지도하면서 활동해 나가야 할 텐데 그걸 못하기 때문에 상당히 지장이 많아서 이제 삼선교회의 책임자를 딴 사람으로 임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생부장을 원리연구회 일에만 전념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그런 면에서 단결해 가지고 잘 협조해 주고, 선생님이 없는 동안에 교회 분위기를 쇄신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곳, 실체 앞에 형상이 하나되는 곳이 임재지(臨在地)입니다.
임재지는 우리 가정입니다. 부모님입니다. 하나님이 이 가정 위에 영원히 임재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실감하느냐?
영계를 통하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생님 마음 가운데, 선생님 가정 가운데 계십니다.
잘못하면 선생님이 탕감받고, 그 다음은 자녀들이 탕감받습니다. 어머니는 지도받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탕감을 안 받습니다.
그 가정을 하늘이 얼마나 고대했느냐 하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여기를 기점으로 가정 가정에 임재하시게 하기 위한 것이 축복입니다.
축복가정은 독립이 없습니다. 선생님보다 더 편안한 가정이 있으면, 그것은 효가 아니고 충이 아닙니다.
영계에서는 선생님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여러분의 입장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임재지와 여러분의 임재지는 거리가 멀어요.
개인에서 가정을 통하여 국가까지 마음대로 갔다 돌아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천국입니다.
질적 변혁이 시급히 요구됩니다. 기도도 그것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모든 일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위신보다 하늘의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모두를 분성전으로 만들어서 사회화시켜야 천국이 됩니다.
계획보다 잠을 더 자면 회개해야 합니다. 눈만 뜨면 '아버지!' 해야 합니다. 이 땅을 떠나갈 때 하나님이 '그 이상 할 수 없으니 이만하면 됐다' 하고 상속해 주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식을 찾아 나온 아버지의 걸음이 실감이 됩니까? 같은 하나님이시지만 선생님이 부르는 아버지와 여러분이 부르는 아버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축복가정을 통해서 모두에게 전도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한 가정의 가주(家主)가 되어 있어요?
책임자는 죄 없는 죄인입니다.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평화의 안식처를 만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여러분의 가정이 됐어요? 그러한 여러분 자신들이 됐어요?
문화부(文化部)를 찾아오시는 아버님은 유광렬(柳光烈)가정에도 찾아가실 것이냐! 아버님은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함께 하실 것인가?
선생님은 자기 직계 아들딸과 친척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편의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남의 편의 사람을 사랑한 것이 지금까지의 섭리역사입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그 이상의 사랑과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 이상의 사랑으로 기성교인을 사랑했느냐?
선생님은 내 자식 이상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아벨이 되려면, 제물을 드리기 위해 가인 이상으로 정성들인 것을 부모 형제, 그리고 가인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합니다.
형 대신 3시대의 핍박을 받아라! 3대 핍박, 3대 시련을 받아야 합니다.
동생에게 나를 때려 달라고 눈물 흘릴 수 있는 가인의 자백의 터전이 닦아지지 않고는 복귀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눈물 흘릴 때 아버지의 눈물이 섞여야 하고, 내가 땀 흘릴 때 아버지의 땀이 섞여야 하고, 내가 피흘릴 때 아버지의 피가 섞여야 합니다.
아벨은 메시아입니다. 구주(求主)의 입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1957년도 1960년도에 전도 시작할 때까지는 시련에서 견뎌낼 수 있는 심정을 길렀습니다. 그러한 심정만 있으면 혼자 있어도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거지 같은 사람이라도 '하나님!'하면 '야! 이놈아!' 하시는 히나님이 아닙니다.
정성들인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준비해 나오던 생활을 여러분이 재현했어야 했습니다.
핍박시대에 식구들을 사랑하던 마음을 평화시대에 유지하지 못하면 영원한 천국 생활을 못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상을 받을 때면 감옥을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열쇠가 있어야 열립니다.
1960년도에 가졌던 그 이상의 마음으로 식구들을 그리워할 수 있느냐? 있다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단에 나서는 것입니다. 설교 준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심정이 문제입니다.
36가정, 72가정, 120가정들이 걸었던 노정은 여러분이 가야 할 공식적인 노정입니다.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이제는 땅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더불어 계셔야지, 우리를 빼놓고는 무엇도 하실 수 없습니다.
일하라! 선생님은 하루에 평균 3시간도 못 잡니다.
선생님이 3차 7년 기간 동안에는 가정을 위하여 최고의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종횡의 기준이 잡혔습니다.
36가정이 본연의 심정의 자세를 갖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예수님도 이것 하려다가 도중에 죽었습니다.
1960년도에 핍박을 받으면서 했던 것처럼 움직이면 자동적으로 발전합니다.
식구들이 왔다 가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가면 잃어버릴 것 같아서 마음 졸였습니다. 정상적인 자세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선생님이 처자를 버리고 떠나던 그 입장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 입장까지 못가면 역시 21년 연장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가정이 함께 힘을 합해서 갈 수 있으니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탕감한 덕분입니다.
선생님은 가정을 등지고, 나라를 등지고 원수의 땅을 찾아갔고 감옥의 십자가를 찾아갔지만 여러분은 이런 것 하나도 하지 않고 착착 거두기만 하면 됩니다.
원리말씀 공부하라고 할 필요 없습니다. 자식 교육 안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 없이 자기 자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선생님보다 3배 이상 준비해 가지고 밀어주셨습니다.
믿음의 아들딸들이 믿음의 부모의 자녀들이 복중에 있을 때부터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 혈대(血代)에서 혈통적으로 사탄이 분립됩니다.
여러분이 7년 동안 선생님 노정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430쌍까지 책임지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들은 다 선생님에게 속합니다. 이들은 선생님의 세계복귀노정에 공헌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전면적으로 진격해 나가야 합니다.
천국은 3대 친척을 거느리고 들어가야 합니다. 6촌까지는 증조부가 같은 분입니다.
무한히 높으시고 넓으시고 깊으신 아버지의 마음, 영원한 소망을 품고 나오시는 자비로우신 그 마음에 영원히 영원히 승리와 찬양만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민을 당신의 자녀로 품어 주시옵소서.
에덴동산에서 무한한 행복을 노래하고, 무한한 영광 가운데서 영원한 자비의 심정을 중심삼고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과 땅이 화동하는 가운데 참된 인연이 시작되기를 바라셨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였기에 다시 그러한 승리의 한 날을 고대해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비통한 사실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에덴동산에서 당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을 자아내게 될 줄은 그 누구도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하였던 사실이었음을 저희들은 아옵나이다.
아버지의 넓고 높으신 그 사랑의 마음과 희망과 소망으로 부풀어 올랐던 마음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아버님을 배반하여 역적이 된 그날부터 슬프게 되었사옵고, 이때부터 인류의 처참한 역사가 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그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아오니, 그러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억천만 번 죽어 마땅하고 버려 마땅한 이 인류를 지금까지 버리시지 못하시는 당신의 그 마음, 당신의 그 사랑, 당신의 그 자비에 천만 번 감사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하여 그렇게도 지루한 6천년의 역사노정을 걸으시고도 아직까지 당신의 마음에 흡족할 수 있는 자녀를 찾지 못하신 원통한 사실을 저희들이 체험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땅 위에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수많은 인류가 있사옵나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당신의 마음과 심정을 파고 들어가 당신의 심정과 일체된 자리에서 당신을 부모로 모시는 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극히 귀하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저희들이 인류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체득한 자들이라 할진대 당신의 진정한 효자 효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수많은 인류 가운데 불쌍한 한민족을 찾아와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불쌍한 이 배달민족을 찾아 세우시어서 숨겨 있었던 당신의 심정의 인연을 이 땅 위에 드러내고, 아버지와 만민 사이에 끊어진 그 인연을 다시 맺기 위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하게 해주신 당신의 은사를 진정으로 감사드릴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또한 이 민족도 그것을 감사드릴 줄 아는 민족이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1969년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첫달을 거의 다 보냈사옵고, 성일로서는 마지막 성일을 맞이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이 자리에 운행하시옵고, 친히 복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금년도에는 저희들이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걸어 놓고 아버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이미 맹세했사오니, 당신이 원하시는 곳을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오늘은 특별히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굽어 살피시옵소서. 그 깊은 마음 가운데 당신을 흠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사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게 하시어 아버지 앞에 하나의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처한 환경과 모습이 다를 지라도 오로지 아버지를 위한 그 흠모의 심정만은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남아진 날들을 온전히 승리로 거두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대표적인 날로서 이 성일을 맞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부족한 저희들의 마음을 거두어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오니 이 시간 찾아오셔서 저희들의 마음의 문을 여시고 친히 저희 마음 가운데에 좌정해 주시옵고, 각자의 사정 사정을 통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새로운 부활권으로 옮겨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이 특별한 날로 기억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저희들에게 새로운 책임이 가중되는 이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남한 각지에 널려 아버지의 이름 가운데 모이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 각지에서 당신을 흠모하고 당신을 찬양하는 곳곳마다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첫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당신이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의 제목은 `하늘을 사랑하자'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잠깐 동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은 자에게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들인 사람들은 기필코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 땅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남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온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 주인으로 우리 인류의 시조를 지어 놓으시고 만물 전체를 주관하고, 이 세계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치하라고 축복해 주시던 그 모든 전체, 즉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인간 앞에 찾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인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우리 인류의 시조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인류의 출발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되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면 그날부터 인류가 바라는 평화의 세계, 인류가 바라는 이상의 세계, 인류가 바라는 하나의 세계는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그 인연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인류의 역사는 비참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비참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인류가 원하는 최후의 것, 즉 최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요, 인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적인 소원이요, 최대의 희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역사로 출발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출발한 인류야말로 불쌍한 존재이며, 이 우주 가운데에서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고아와 같은 입장이 되어 버린 타락의 후손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도 `고아와 같은 이스라엘'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인류는 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긴 태어났지만 진정한 부모의 깊고 높고 귀하신 사랑을 몽땅 받지 못하고 태어났고, 그 부모와 더불어 살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자식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바라던 기준을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기나긴 역사를 붙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류의 배후에서 지금까지 수습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목적을 이루셔야 하고 인류도 잃어버린 그 기준을 다시 찾아가야 할 입장에 있으므로, 어차피 수고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소원과 찾아가는 인류의 소원이 일치되는 한 날을 천지간에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기쁨이 시작될 것이며 인류의 기쁨이 시작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류가 왔다 갔습니다. 또한 현재는 수많은 인류가 생존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 이 시대가 지나가면 다시 후대의 역사를 이어받는 후손이 대를 이어 태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지나왔고 또 앞으로 지나가는 역사 속에 남아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혈족이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혈족뿐만 아니라 그러한 민족이 남아져야 하며, 그 민족이 치리하는 하나의 국가가 남아져야 하며, 그 국가로 말미암아 통일된 세계가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인류의 소원은 물론이고, 인류를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소원도 이 땅 위에 성취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 엄청나고도 고귀한 목적을 오늘날 인류의 역사에 남겨 놓기 위하여 인류도 그곳을 향하여 나가고 있고, 하나님도 그곳을 향하여 인류를 이끌어 나간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들이 태어나서 살고 죽는 등의 역사과정의 전체가 이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볼 때 개인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 볼 때 그 가정의 소원은 무엇이냐?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과 민족과 국가의 소원은 무엇이냐?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한 나라와 한 민족을 중심삼고 무한하신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높고 귀하신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천세만세의 역사적인 슬픔과 탄식을 한숨에 쓸어버릴 수 있는 사랑의 한 날을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소원의 한 날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 수많은 인간들이 동원되었고, 또한 그 싸움터에서 몸부림쳐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아담 가정에서 아벨을 중심삼고 싸운 것도 소원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었고, 노아를 중심삼고 수많은 세계 인류를 심판해 버린 것도 그러한 한 날과 세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었고, 아브라함을 불러 외로운 이국 땅으로 행각의 노정을 나서게 한 것도 그 한 가정으로 하여금 그러한 목적을 세우려 하는 하나님의 소원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입장에 서게 한 것도 사랑의 인연을 맺기 위함이요, 야곱으로 하여금 21년 동안 나그네와 같은 슬픔의 생활을 하게 한 것도 이 소원의 한 날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야곱을 중심삼고 거두었던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보게 된 것도 이날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선민이 애급고역의 노정을 거치고 가나안 복귀노정을 거쳐 메시아를 맞이하기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더듬어 온 것도 단 하나의 목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이 땅 위에 이루는 데에 귀결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서, 인류를 대신한 사랑의 표본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과 몸에 결실되어 그 사랑을 대신 줄 수 있는 하나의 주체, 하나의 중심 존재를 보내겠다고 약속한 것이 바로 메시아 사상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요, 이분을 맞기 위해 준비했던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인 것입니다. 예수와 이스라엘 민족은 한점에서 상봉하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자신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사정을 털어 놓고 통할 수 없었고, 깊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하나님의 사랑을 토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하나님이 역사과정에서 하나의 결실로서 하나의 통일적인 사랑의 기원을 마련하려 했는데 이것이 또 다시 분립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시조로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하였으면 사랑의 인연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기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4천년의 역사노정이 슬픈 곡절의 역사로 남아지게 되었고 비운의 역사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원을 비로소 성취시켜 드릴 수 있는 중심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일체화되어 이분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의 화신체라고 환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은 이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역사과정에서 둘도 없는 슬픔이요, 비통한 사실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인들은 예수님이 죽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켜 주기 위해 오셨고, 평화의 나라, 평화의 통일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을 이 땅 위에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비운과 슬픈 사연을 그대로 가슴에 품고, 하고 싶었던 일과 이루고 싶었던 뜻을 이 땅 위에 펴지 못하고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왔던 인연을 남겨 놓아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권고하며 가신 것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2천년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나는 가나니 신랑으로 가고 너희들은 남나니 신부로 남아져라'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왔던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 평화의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평화의 종족과 평화의 민족과 평화의 세계를 이루어야 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위해 왔지만, 그의 전체적인 소원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랑을 중심삼고 교단을 바라볼 수 없었으며, 사랑을 중심삼고 민족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의 심정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수많은 가정과 개인을 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류는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소원으로 삼고 찾아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가꾸시어서 이들에게 사랑의 주체인 예수님을 보내시며 그들이 예수님과 인연을 맺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인연을 맺는 그날이 희망이 달성되는 날이요, 소원이 성취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배후에 수고한 인연을 남겨 놓은 채 가야만 했던 예수님의 비참한 사정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신 신랑을 맞이해서 혼인잔치를 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오히려 신랑을 쫓아내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역사적인 죄를 짊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소원하시던 신부를 맞이하지 못하고 가야만 했던 그 아픈 마음을 참으면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까지 고대해 나온 것이 2천년의 기독교사입니다. 이 기독교사는 지금까지 비참한 순교의 피로 물들여져 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소원의 발판 위에 우리는 부름을 받았고 이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택함을 입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뒤를 돌아보아도 몸서리쳐지고 앞을 바라보아도 몸서리쳐지고 금후의 자기의 후대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역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내 개체,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우리 가정,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우리 민족,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우리의 국가,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우리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를 가누어서 국가 앞에, 국가를 가누어서 민족 앞에, 민족을 가누어서 종족 앞에, 종족을 가누어서 하나의 가정 앞에, 가정을 가누어서 신랑과 신부를 중심삼고 혼인잔치를 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것이 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이러한 사명을 할 수 있는 종교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과 시대적인 희망과 미래의 소원의 전체를 통합하기 위한 개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다시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몸부림치며 달려온 것입니다. 그러한 내 자신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을 사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막았고, 비참한 역사의 운명이 우리 갈 길을 못 가게 막고 나왔습니다. 이것에 대항하고 투쟁하면서 지나온 우리의 역사과정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목적은 단 하나 하나님과 내 개체가 아버지와 아들, 즉 부자의 인연을 다시 찾기 위한 하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나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합니다.
내 개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쟁취할 것이며, 내 개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받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한 남자, 그러한 여자가 되어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을 편성해야 할 것입니다. 민족적 기준만이 아니라 초민족적 기준에서, 특정한 국가뿐만 아니라 초국가적인 기준에서, 하나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역사적인 새출발이 지구상에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우리의 소원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은 결코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디냐? 우리가 그자리를 찾아 나서야 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싶으신 최고의 자리가 어디냐? 우리가 그 자리를 찾아 나서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못하게 된 동기, 인간이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동기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우리들은 사랑받을 수 없는 동기가 된 내용을 파헤쳐서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천륜에 순응하는 절대적인 인간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인간이 못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잃어버린 동기가 된 내용을 파헤쳐서 타파해 버리고, 아담 해와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내용과 인격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아무리 그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도 그 인격을 갖춘 자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인격을 갖춘 대표적인 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를 참감람나무의 입장에 세우고 타락한 인간을 돌감람나무의 입장에 세워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그 자리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게 하여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상에서 섭리해 나오신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동기를 모두 타파해 버리자고 주장해 나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누가 어떻게 해서 하늘의 법도를 어겼느냐?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섭리를 하여 하나의 중심을 이 땅 위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심고자 예수님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 땅위에 결실시키지 못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두 번째의 동기를 마련하지 못하게 된 내용이 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타파해 버리지 않고는 인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인격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내용이 필요한 것이요,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이루었어야 할 가정적인 내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동기를 모두 제거해 버리고 사랑을 받음으로써 온 천주 앞에 승리의 아들딸로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시간이 통일신도들이 바라고 나온 최후의 목적점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세 번째로 소원성취할 수 있는 자리요,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상봉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 개체는 물론이요, 가정과 종족과 민족도 그러하고, 국가와 세계도 그러하며,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 중에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 기독교가 역사과정에서 시대와 더불어 싸워 나왔고, 그 시대에서 제물적인 노정을 거쳐왔지만 아직까지 나라가 없습니다. 이 땅에 기반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추구하되 상상적으로 영적으로만 추구해 나왔지 이 땅 위에 실체의 기반을 갖춘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환영했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을 마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를 통일된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실체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영적인 세계의 소망만을 품고 나오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 하나의 선민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상적인 소원만을 중심삼고 국가의 이념을 세워 나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인 것을 기독교인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고 나오는 신자는 가정에서 마음대로 그 가정을 중심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의 종족의 기반을 중심하고 신앙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를 중심하고 신앙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었으며, 땅 위에 그 어떠한 기반을 가져서 그것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무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땅에 근거지를 잡아 가지고 출발했다면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전체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족과 민족 국가 세계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하며, 천지가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이 땅 위에 세워져서 세계적인 통일의 역사가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땅 위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떠도는 구름같이 이 민족한테 몰리고 저 민족한테 몰리면서 죄의 역사를 탕감해 나왔고 이상적인 국가형을 추구해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본래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은 영적인 기준에 있는 망상적이고 공상적인 국가 이념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생전에 자기가 땀을 흘리며 살고 있는 그 터전 위에 가정과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여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소망의 나라,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나라를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 본래의 창조이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땅위에 아무런 기반이 없는 영적인 나라만을 바라며 나온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소원의 기점을 상실해 버린 기독교는 역사과정에서 비참한 피의 역사를 연결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피를 뿌리고서도 그 피 뿌린 터전을 자기들의 근거지로 사수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이 하나의 교두보가 되어 적을 무찌를 수 있는 터전으로 삼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아무리 피를 흘린 땅일지라도 그 피의 인연을 상속받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전부 잃어버린 입장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참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기독교 역사요, 그 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기독교의 조상들이 사탄으로 인해 피를 흘려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오셔서 영적으로 망상적인 국가를 창설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닙니다. 그가 다시 오는 것은 이 땅을 발판으로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신부를 맞이해 가지고 인간 조상이 6천년전에 인류의 참조상이 되지 못하고 거짓 조상이 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역사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나설 수 있는 완전한 남성과 하나님의 사랑을 통할 수 있는 자리에 나설 수 있는 완전한 여성이 이 역사시대에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이때가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신부로서 설 수 있는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자리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사랑받던 그 이상의 자리요, 아담 해와한테 축복해 주시던 그 이상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상에서 그런 기점이 생겨나야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그런 승리의 자리에 서게 되었더라면 천사장은 사탄이 되지 않고 완전한 종의 자리에서 인간을 시봉하는 입장에 섰을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를 잃어버린 인류는 고아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인류의 참된 부모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사회적 기반을 갖추고 인격을 갖추어서 양심적으로 부끄럽지 않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부모를 팔아먹은 자식이요, 부모를 팔아먹은 인간임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를 팔아먹고 부모를 잡아죽인 대역적이므로 죄를 용납받을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참부모로 오셨고 구주로 오셨는데 그를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주로 오시되 형님 입장의 구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인 입장의 구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입장의 구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그분을 몰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로 오셔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셨느냐? 어머니를 찾아 가지고, 어머니 구주를 세워서 부모의 참된 사랑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출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상이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찾아 오시던 하나님께서 4천년 수고의 결실로서 예수님을 인류의 참아버지로, 참된 남성으로 보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여 하나의 참된 여성이 나타나서 참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참어머니 입장에서 사랑을 했더라면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불쌍한 민족도 아니요, 고아도 아닌, 세계로 비약할 수 있는 민족으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쫓아냄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실체를 갖추어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키기 위해 한 아들로 오신 하나의 남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남성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됩니다.
그러니 구름 타고 와서는 뜻을 못 이룹니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고 있는 현세의 기독교인들은 허무맹랑한 신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름 타고 온다고요? 구름 타고는 절대 안 옵니다. 그런 망상적인 신앙관을 갖고 망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기독교를 대하여 우리들은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힘으로 나오면 힘으로 대결하고, 실력으로 나오면 실력으로 대결하고, 인격을 중심삼고 나오면 인격으로 대결하여 만천하에 승리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표준하고 나오는 내용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무리,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소원의 결실로 거두어질 수 있는 무리로서 이 천지간에 현현하였다 할진대, 그야말로 역사적인 한을 품고 지금까지 왔다 갔던 선조들도 현재 지상에 생존하고 있는 무리들도 모든 것을 박차 버리고 이 소원의 터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필코 그런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자기 나라를 버리고서라도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주권이 있더라도 그 주권을 저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요, 내 개체가 아무리 행복한 터전 위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가야 하는 길이 이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필코 찾아야 할 단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하나의 문제가 무엇이냐? 이 하나의 문제가 어디서 풀릴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그 사랑은 거짓 부모한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에 의해 이 땅 위에 현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참아버지가 와야 됩니다. 그 아버지의 인격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지니고 이 지구성(地球星)에 찾아오는 분이 오늘날 종교인들이 믿고 있는 종교사상의 중심적인 존재, 즉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내용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고 있는 만큼 그런 내용을 중심삼고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관과 이상적인 사회관과 국가관을 알고서 그것을 중심삼고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땅 위의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내정적인 심정의 인연을 따라서 우리 통일식구들은 지금까지 수십년간 핍박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과거의 종교가 그 시대에 탄압을 받았듯이 20세기에 하나의 종교로서 나온 통일교회도 역사적인 모든 비운의 한을 몽땅 짊어지고, 비운의 역사와 더불어 투쟁의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 핍박의 길을 걸어나왔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세계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30억 인류가 망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이 황폐한 삼천리 반도에서, 이 비참한 배달민족 가운데에서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인 이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념이 무엇이냐?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어떠한 사상적인 형태를 갖추었다고 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요, 이것도 아니요, 역사과정에 있었던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단 한가지 인류가 소망해 나오던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싸우면서 고대해 나오시던 그 사랑의 인연이 오늘 내 개체에 맺어지고, 우리의 가정에 맺어지고, 우리의 사회와 우리의 국가에 맺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그 어떤 인류, 세계의 그 어떤 국가가 가진 것보다도 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던 자리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옥에 가두고, 채찍으로 치고, 침을 뱉는 등 별의별 수모를 다 가해 왔던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외적으로 부딪쳐 오는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의 깊은 가슴속에 꽁꽁 묶여지고 다져지고 쌓여진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에게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이전에도 없었고 역사의 이후에도 없을 하나의 기원이 마련된다면 이 이념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망하지 않는 자리에서 이 민족을 붙들고 나오게 될 때에는 이 민족 또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이 세계를 붙들고 나아가게 되면 이 세계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주류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주류의 사상을 중심삼고 이러한 길을 가기 위하여 생애를 걸어 놓고 가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은 불쌍한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 민족과 세계 인류를 마음으로 동정하면서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형의 자리에서, 누나의 자리에서, 더 나아가서는 부모의 자리에서 사랑하자는 것이 통일신도들의 거룩한 사상이요, 생활관임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머리숙여 동감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영광이 깃들 수 있고, 무한한 가치와 무한한 존귀가 깃들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소원,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단 한 가지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잃어버린 참부모를 찾자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찾아서 부모와 상봉하고 고아의 신세를 면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할진대, 부모를 만난 그 자리에서는 자기의 권위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이건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의 그 무엇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모든 것을 일시에 집어치우고 참부모 앞에 나가서 지금까지 맺혔던 한 많은 역사의 사연을 다 털어 놓고 과거의 비참했던 심정에 대비되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에 잠길 수 있는 그곳이 통일신도들이 최후에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곳으로 나아가는 통일신도들이 삼천리 반도에서 비록 핍박을 받고 있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문제시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통일사상은 20세기 후반기에 들어가서는 세계적으로 문제시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여기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누가 나를 취하였느냐? 자신의 지나온 역사과정을 되돌아볼 때, 이런 엄청난 뜻 앞에 불리울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갖추지 못했다 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이 불리워졌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고 틀림없는 사실로 확신해서 부족했던 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 높고 귀하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나를 찾아오셔서 인연 맺으시려는 과정에 얼마나 비참한 역사의 죽음길이 가로놓여 있었던가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기에 불리우게 될 때까지는 아벨의 피가 호소하였던 것이요, 노아의 120년 한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고국산천을 떠나 외로운 방랑생활을 했던 나그네 신세의 한이 서려 있었던 것이요, 이삭이 하나님 앞에 제물될 것을 결심하고 아브라함 앞에 순응하였던 그 한이 담겨 있었던 것이요, 야곱이 하란 땅에서 21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복귀하려는 심정을 중심삼고 고향땅을 그리워한 심정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 기간을 지내고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가면서 40년 동안 수많은 백성들이 광야에서 병들어 쓰러졌던 한이 있었던 것이요, 거기에서 남아진 2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새로운 성전 이념을 중심삼고 메시아를 맞기까지 수많은 탕감조건을 거쳤고, 이방 민족의 침략을 받아서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받았던 그 한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망의 한 날을 맞기 위하여 로마의 속국이 된 이스라엘에 오신 예수님께서 로마를 굴복시켜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성취하지 못한 한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많은 우리 기독교 선조들의 피뿌린 역사적인 한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은 내 자신과 연결시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한의 조건, 슬픔의 요건, 피의 대가를 치른 터 위에 여러분이 연결되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여러분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심정을 지니고, 나는 비록 부족하지만 나를 세워서 나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대가를 결실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하나님이 되셨고, 불쌍한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불쌍한 역사를 가진 너와 내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신의 전체의 힘에다 백배 천배 만배의 힘을 가하여 하나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생이 끝난다 하더라도 죽을 수 없다는 간곡한 심정을 여러분의 마음과 몸 가운데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할진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배반자요, 역사적인 선조들의 소원 앞에 있어서의 배반자요, 이 시대적인 사명 앞에 있어서 배반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높고 귀하신 하나님께서 천하고 천한 나 자신을 찾아오시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여러분은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하나님 앞에 천번 만번 감사의 경배를 드려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몸을 불러 주신 것은 하늘의 선한 싸움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선한 싸움의 일선에 들어가 싸우다가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아서는 패잔병의 신세는 절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결심하는 통일신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지녀야 할 태도요, 이러한 입장에 서야 할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족하니만큼 거기에 상반되는 결심을 하되 그 몇 배의 결심을 해야 되겠고, 모든 여건을 갖춘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볼 때 자신이 부족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더 결심을 배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통일신도들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공적이 없지만 여러분의 배후에는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선조들의 공적의 터전이 있고, 여러분은 알지 못하지만 수많은 종족 중에서도 여러분의 선조들이 쌓아 놓은 공적이 많기 때문에 이 공적이 쌓이고 쌓여서 그 결실로서 태어난 무리가 여러분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불러 모아진 무리가 선조들의 공적의 결실로 거두어진 무리가 틀림이 없고, 수많은 종족 가운데 하나님이 묶어 주신 무리라 할진대는 이러한 배후를 가진 무리가 움직이는 대로 국운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복이 많고 현재 발전해 나가는 추세에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세계에 공헌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국가의 모든 핵심적인 선의 실적을 쌓아 가는 여러분을 국가와 민족을 대신해서 핍박을 받는 자리, 억울하고 외로운 자리에 세우는 것은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 날, 한 때가 오면 모든 것을 완전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 민족 앞에 매를 맞는 것은 우리가 못나서가 아닙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악한 선조의 혈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잘될 수 있는 시대적인 운과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소수의 무리를 쳐 가지고 민족이 당할 서러움을 탕감시키는 것입니다. 즉 세계의 사조에 박자를 맞추어 망할 수밖에 없는 무리들을 위해 우리가 대신 맞음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맞아야할 것이 탕감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내용을 알기 때문에 슬플 때나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자기를 중심삼은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하여 땅을 치면서 다짐해 나왔습니다. 굶주리는 자리에 들어가고 생사의 교차로에 들어갈 때에도 자기가 죽어가는 것이 애석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이 민족의 갈 길이 어떨 것이며 이 민족의 앞날이 어떨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눈물지어 왔던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가 이런 엄청난 사명을 지니고 출발하였고, 이러한 사명에 입각해서 싸워 나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맞고 몰리고 핍박받는 것은, 통일교회가 맞고 몰리고 핍박받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민족이 맞아야 할 것들을 대신해서 맞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선한 입장에서 우리를 때리심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용서해 주기 위한 거룩한 사랑의 손길인 것입니다.
이 민족이 진정 그러한 것을 알게 될 때에는 과거에 불충하고 불응하였던 것을 백배사죄하고 옷깃을 여미어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회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비로소 통일의 세계는 출발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싸워 왔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오늘도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이요, 이러한 승리의 결정을 짓고 가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민족이 해방의 날을 맞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세계적으로 해방의 날을 맞아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적으로 맞아야 할 것을 대신해서 하늘은 통일교회를 세계적으로 몰아쳐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틈바구니에서 제물적인 입장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24년의 역사를 지내왔기 때문에 앞으로 3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게 되면 한국은 세계로부터 주시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선생님은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날을 위하여 준비해 나온 것이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가 규합한 것이요, 그러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 땅을 위하여 눈물을 뿌린 것이요, 이 민족을 위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투쟁하여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보면 한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도 역시 불쌍하다면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놈들의 채찍 속에서도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지하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는 자리에서도 억울함과 분함을 참고 나온 사람입니다. 이민족에게 해방의 한 날을 맞게 해주기 위한 싸움의 역사를 지내왔던 것입니다.
내가 이 땅을 떠나면서 흘리던 눈물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땅을 찾기 위해 흘리던 그 눈물을 나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처참한 자리에서 해방을 맞았을 때에도 나는 웃고 노래 부르지 않았습니다. 맞이한 기쁨의 날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적을 막아낼 수 없는 한국의 운명을 도리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 15해방을 맞이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기쁨의 함성으로 부르짖을 때 선생님은 뜻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족 앞에 수십 번의 훼방을 받았습니다. 억울한 사연의 교차로에서 죽고자 해도 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어서는 안 될 사명이 남아져 있는 것을 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쇠사슬을 차고 형무소의 문을 두드릴 때에도 이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 길을 갔지만 선생님은 그런 마음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이어나가기 위한 사명을 짊어진 사나이로서 역사과정에 있어서 야곱이 그랬듯이 천세만세에 수많은 인류의 가슴에 불을 붙여 주는 동기와 원천을 얻기 위해 기쁨으로 감옥을 찾아든 그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감옥에서도 가중되는 핍박과 모독을 받는 것이 억울하고 비통했지만 그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사정에 가슴을 부여안고 하늘을 대한 절개를 잃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누구도 참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1950년에 6·25동란이 벌어지게 되자 선생님은 수개월 후에 남한 땅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러한 역사과정에서 선생님이 남한 땅을 그리워하며 오던 중에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내가 그리워했던 삼천리 반도, 하늘의 약속의 땅, 이 나라 이 민족이 오늘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삼팔선을 넘어서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한 땅에 최후의 결전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환경의 어려움도 무릎쓰고 싸워 나갈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면서 고대하던 그 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슬같이 사라지는 처참한 자리를 맞게 된다면 이 사나이는 어떻게 죽어갈 것이냐? 이러이러하게 죽어가겠다고 결심하면서 찾아가던 그 자리에 아직까지 나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생님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이요, 선생님의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싸워야 되겠습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민족을 좀 먹고 이 민족을 망치는 악당의 무리를 몰아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참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민족이 깨닫지 못하거든 세계 만방에 있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이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는 한 날을 마련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는 민족으로부터 몰렸지만 앞으로 기필코 세계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는 20세기 후반기의 문화를 건설하겠다는 선진국가들이 통일사상을 문제시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세계 인류 앞에 한국의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한 날을 맞기 위해서 우리는 선화어린이무용단을 창설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수천만 원의 자금을 빚을 내서 이 일을 해 나왔지만 우리 통일교인들조차도 마음으로부터 동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선생님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을 하는 우리의 투쟁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그 투쟁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실력이 있고, 하나님께서 동조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을 훈련한 연예단체들도 미국의 문화세계에 들어가 공연을 했을 때 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망해 쓰러져 갔지만 어린 꼬마들을 모아 놓고 3년의 짧은 기간 동안 훈련시킨 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미국에 가서 첫공연을 했을 때부터 대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적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꼬마들이 공연하기 전에 한데 모여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번에 공연하게 되는 이 꼬마들의 모습이 꼬마들의 모습만으로 보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하늘 백성으로서의 천명을 받들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이니 미국의 문화를 제압할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천명을 수행하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꼬마들이 서로서로 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기도를 하고 무대에 나가면 춤도 잘 추어지고 실수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더라도, 아무리 모양이 우리보다 크고 내용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우리 앞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미문화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1960년대를 넘어서게 되면 백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권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의 협회장한테,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아진 우리 선화어린이무용단이 일본 공연을 해야 되겠다고 명령했습니다. 아세아에 있어서 한 때에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한민족이 밟히고 시궁창에 버려져서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시 꽃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아세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일본 천지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일본 공연을 추진했습니다. 일본 공연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 3개월 전에야 준비했습니다. 일년 전부터 준비해야 할 것을 3개월 전에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대한민국 정부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일본 식구들은 선생님이 명령하여 그 나라를 위해서 죽으라 하면 죽을 정도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동원하여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의 책임자인 구보끼(久保木修己)협회장은 공연하기 전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공연 장소를 다시 정하고 공연하는 기간을 단축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싸워 보지도 않고 후퇴하는 것은 약자 중의 약자라는 말을 하면서 일본 공연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비싸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건너간 예술단체들은 전부 다 거짓 노릇을 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절대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 사람의 조직을 통해서 일본 사람의 돈을 이용하여 한국의 민족 문화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일본 민족 앞에 탄압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1967년도에 일본에 갔을 때 큰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자기 나라에 온다 하니까 신문 기자들이 나한테 회견을 신청했습니다. 고관이나 국가 수뇌들도 만나자고 하면 선뜻 응해 주니까 나도 만나 주겠지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만에, 그들은 선생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문전에서 쫓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분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있는 말 없는 말 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놓고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할 테면 하라 이것입니다. 그러는 너희들은 얼마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선전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 40일 동안에 일본 역사상 전례에 없는 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1967년도의 일본 언론계에 화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통일교회에 대한 내용이 톱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 40일 기간에 5억 8천여만 원의 선전비를 들여 선전한 정도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약 280여 개의 언론기관이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문선명 선생하게 되면 홋가이도(北海島)끝에서부터 가고시마에 이르기까지 소학생 이상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차 안에서든 어디서든 전국의 마을마을 골목골목에 이르기까지 전부다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청년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것을 뿌리치고 대학도 그만두고 집을 뛰쳐 나와서 밥을 얻어 먹어가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무슨 장관 아들 할 것 없이 자기의 모든 간판을 다 버리고 나서니까 그들의 동생들도 덩달아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형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혀도 문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언론 기관들이 찾아와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님 만나자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만나 줄 것 같습니까? 한국에서도 수십 년 동안 신문기자들을 만나 주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선생님이 그들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그들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나 줄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들을 때리고, 피를 빼고, 찌르고, 찢고, 별의별 소리를 다 했고, 우리들은 욕을 먹을 대로 다 먹었습니다. 있는 죄 없는 죄 다 뒤집어 씌웠으면 됐지, 아직도 욕할 것이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전번에도 모 일간 신문사에서 무엇을 해 줄 테니까 통일교회 문선생님 좀 만나자고 왔는데 그들에게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더니 대단히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일본에 갔을 때도 바람처럼, 구름처럼, 감쪽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니, 신문기자들이 톱 기사를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 간부들에게 자기 선생님을 대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물어 오더라는 겁니다.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이 언제 오시고 가시는가를 물어 오더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게 될 때에 통일교회 식구들은 비행장에 나오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아주 못난 사람들처럼 우르르 몰려와 가지고 시끄럽게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뜻을 이루지 못해 가지고 나타나면 패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선생님이 바라보고 나가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 기분이 좋을 때 만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오늘 저녁에 떠날지도 모릅니다. 비행기 표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떠나기 한 시간 전에 전화만 하면 다 준비되기 때문에 곧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은 뜻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행동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김포 공항에도 내가 지명한 사람 외에는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약속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약속 안 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봐요. 없구만.
선생님은 지금도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합니다. 선생님 뒤에는 항상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하면 벌써 연락이 됩니다. 미스터 문이 지금 고향에 가니 잘 감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두에 내리게 되면 모르는 사람이 `지금 오십니까? 본인이 형사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계속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 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랑의 실체인 개체를 주체적인 입장에 세워 놓지 않고는 가정도 불가능한 것이요, 나라도 불가능한 것이요, 국가도 세계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완전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예수님을 맞는 일등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일등 신부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민단은 언론을 중심하고 활동을 하다가 패했습니다. 선생님은 민단이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한국에서 뭐가 왔느냐? 어느 민족이 나오느냐 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거기에 맞서서 싸우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본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1968년 8월까지 반공사상을 무장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4월까지는 원리를 무장하고 8월까지는 반공사상을 무장해 가지고 일본 공산당 본부 앞에 가서 이념 투쟁을 하라고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본론이니, 변증법이니, 유물사관이니 하는 이론들을 비판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생명을 내걸고 악착같이 연구를 했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이론을 못 당한다는 것입니다. 못 당하면 우리에게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두에 칠판을 걸어 놓고 공개적으로 강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론에 못 당하면 그들이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몇 해만 고생하고 싸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부터 그들을 공격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하기 위해 7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해 나왔던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전에서 행사를 하고 있을 때 정보부에서 형사들이 나와서 트집을 잡았습니다. `아 여기가 통일교회요? 통일교회가 뭐하는 곳이요? 이 사람들은 뭐요? 전도대원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요? ' 하면서 선생님에게 꿈에서 깨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 통일교회는 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한 면, 한 부락 사람 전체를 우리 편으로 인도할 수 있는 때 민족적으로 통일교회를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옵니다. 그때 가서는 우리들이 그들을 모아 놓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민족을 살리겠다고 승리를 다짐하며 걸어왔던 지난날을 상기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청년 남녀, 소년 소녀들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0대, 30대는 물론이요, 40대, 50대까지 내 나라 내 민족을 구하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한때 이 민족이 찾아질 것입니다. 이 민족이 우리들의 지난날을 알게 되는 날에는 우리 앞에 머리 숙이고 눈물 짓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억천만금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내용을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도 통일교회 식구들은 악착같습니다. 예술 공연 입장표를 전부다 판 것도 우리 선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명실공히 민족을 걱정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판매 활동을 하러 나갔다가는 망신만 당할 것이니 제발 그만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자기들은 지성인들인데 그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화 어린이들은 문화가를 중심으로 찾아가서 노래도 해주고 하니 그들이 사주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하는 일들을 국가에 의존을 하지 않고 전부다 우리들의 노력으로 해 왔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우리나라의 체면을 세워 주려니 다른 곳에 있는 호텔에 가서 묵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몇 명씩 나누어서 호텔에 묵을 수도 없는 처지니 호텔비만은 국가에서 부담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가 막히는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지만, 통일교회는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도 알 만한 때가 되었으니 선생님이 이렇게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의 뒤안길에서 이렇듯 비참하고 서러운 자리에서 몰리고 쫓기고 부딪치면서, 슬픈 가슴을 붙안고 모든 것을 헤치고 살아남은 무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통일교회에 대해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살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법에 걸릴 것입니다.
지금가지 통일교회 문 선생님을 이용해 가지고 잘된 녀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줄곧 당해 왔습니다.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해 주는 것입니다. 백만 원, 천만 원을 이용당한다 해도 이용당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돌아서 다시 들어올 때는 몇 배가 더하여져 들어오거든요.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망할 수밖에 없는 죽음길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작전으로 원수들로부터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남겨 놓은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을 위해 일해 나가던 사람들 중에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니 나도 이제 출세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배통 내밀고 나오는 사람은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남아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망치는 것입니다. 80세 된 노인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지요? 「예」 원칙에 부합된 일정한 선에 자기 스스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 당하거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5년도에 미국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단독적으로 만났을 때도 대한민국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미국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놓고 경제적, 정치적, 국가적인 측면에서 선생님의 견해를 말해 주었습니다. 또 월남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여러 의견도 교환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세계적으로 큰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굵직굵직한 사람들을 전부 다 모아 가지고 교육을 시켜서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다 보니 결국은 선생님 자신을 선전한 것이 되었군요. 자기 선전이라도 좀 해야지. (웃음) 잘 모르니까 알려 주기 위해서라도 선전을 하자는 겁니다. 반공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 사람들에게 반공운동을 하라니까 전부 눈동자가 둥그래졌습니다. 한국이 일본 압제하에 있을 때 선생님이 일본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본 식구들에게 반공 교육을 시켜서 반공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하라는데 안 할 수 있어요? 반공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모두 다 죽게 되어 있는데, 하겠나 안 하겠나 하면, `하겠습니다'라고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공 운동을 해보니 진짜 실감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년 이내에 자민당의 선전기지를 전부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자민당이 반공 운동을 우리가 해야 할 텐데 하면서 통일교회에 협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많지 않습니다. 30만명 정도 되는데 그들을 우리 편으로 흡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몇 해만 지나면 우리한테 저절로 흡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반공 운동을 하는 우리 식구들의 평균 연령이 23세 정도였습니다. 그들에게 불을 달아 놓으면 걸을 수 없어서 달려갈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 명실공히 세계를 다 포위했다고 하지만, 친공산세력에 의해서 세뇌되어서 꺼떡꺼떡 죽어 가고 있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나와서 가두에서 공산당과 이념 투쟁을 벌이니까 처음에는 공산당 패들이 와 하고 몰려 들더니 나중에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물러가 버리고 결국은 모두들 후퇴해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론계가 알게 되어 통일교회가 그렇게 대단한 줄을 몰랐다고 하면서 일제 압박의 36년 원한을 풀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하여 일본 민족을 전부 팔아먹으려 한다고 선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전하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을 살리기 위해서 통일교회 패들은 대학가를 찾아갔고, 여름이면 길거리에서나 야유회 하는 장소에까지 얻어먹으면서 가 가지고 공산당들과 이념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꾸 비밀조직을 통하여 파고들어가다 보니 지금은 일본에서의 활동이 굉장히 부흥되고 있는 것입니다. 맨 처음 일본 식구들에게 반공 활동을 하라 할 때는 눈이 뚱그래지더니, 선생님의 말씀대로 반공 활동을 해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선생님한테 고맙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반공 활동은 이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부산이나 그 어디를 가게 되면 정보부나 치안국의 요원들이 선생님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기도 했지만 이 나라, 이 민족이 공산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차피 통일교회 교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산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교리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공산당이 분명 하나님의 원수라면 통일교회는 반드시 그들을 지상에서 몰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경찰서를 통해서 조직을 편성해 가지고 지방에서부터 활동해서 교육을 시켜 나가야 되지만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단독으로 공산당과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부다 탄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3백만명은 교육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7년노정에서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밤을 새워 가면서 수백 리 수십 리 길을 걸어 삼천리 방방곡곡을 찾아 다니면서 천대받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역사는 분명 그것을 증거할 것입니다. 우리의 활동이 군에서 도로, 도에서 중앙으로 확대되어 나가니 이제는 정보부에서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 장로교회에서 오신 분이 있으면 잘 알아 두십시오. 장로교인들이 지금까지는 숫자가 많은 것만 믿고 우리를 의붓자식 취급해 왔지만 이제는 손발 없이 머리만 커 가지고 무슨 소용 있느냐고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장로교회의 모 책임자가 전남지부 승공연합에 전화를 해서 도지부장을 만나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지부장을 만나서 하는 말이, `머리는 자기네들이 큰데 손발은 통일교회의 승공연합이 더 크다. 길은 조금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고 얘기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지금까지는 통일교회를 의붓자식 취급을 했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자기들이 밀리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반공연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이 닦여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핵심적인 사상으로서의 승공사상을 중심삼고 확고한 승리의 기반을 세워 이것을 가지고 앞으로 우리가 아시아에 있어서 대발전을 하기 위한 출발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두고 볼 때 우리가 지금까지 해 나온 것이 처음에는 실패한 것 같이 보였지만 하나도 실패한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요즈음 세계적으로 돌아가는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것을 밤새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선생님을 원수시하고 욕을 하더라도 웃어야 합니다. 속으로 기분이 나쁠지라도 겉으로는 웃어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선생님이 일한다면 후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죽을 일이 생겨도 좋습니까? 「예」 대한민국에서 나를 후원해 주는 사람들을 만들었군. 싫으면 관둬요. 후원을 안 해주면 외국의 코쟁이나 깜둥이를 데려다가 대신 후원자로 세울 것입니다.
작년에 기독교의 톱뉴스 가운데 두번째 뉴스에 통일교에 대한 것이 실렸습니다. 기자들도 하는 말이 1968년도에 통일교회가 크게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알기는 아는가 보지요? 그렇게 통일교회를 증거하는 자가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언론기관들이 통일교회에 대하여 깜깜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러한 사건들을 남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좋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은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괜찮지요? 「예」 그렇게 일하다가 죽게 되더라도 선생님에 대하여 원망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을 안고 죽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무슨 사기꾼이 아닙니다. 지내고 보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여자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자기 남편의 말은 안 들으면서도 내 말을 듣겠다고 하니까 욕을 먹는 거예요. 이렇게 되기까지의 기반을 닦는 데 선생님이 얼마나 진땀을 빼고 뼛골이 녹아졌겠는지 생각해 보세요. 자기의 부모, 자기의 남편, 자기의 아들딸의 말은 안 들으면서도 선생님 말은 듣겠다고 나설 수 있는 정도로 기반을 닦는데 그저 적당히 해 가지고 된 것이 아닙니다. 뼛골에 사무치는 눈물어린 사연의 터전과 피어린 사연이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이것을 절대 깰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고서라도 뜻길을 가겠다는 무리들이 진짜 통일교인들이니 만큼 악착같이 일해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공산당까지도 통째로 삼켜버리자 하는 패들이 통일교인들이니만큼 전체적인 면에서 스스로를 강화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해야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이제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동원되어 선생님을 반대하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죽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기반을 선생님 일대 약 20여 년 동안에 닦았다는 것은 세계적인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이 기적을 자랑해서 이 민족을 살리고, 세계의 만민이 한국을 자기 조국같이, 제2 조국이 아닌 제1 조국같이 사랑하고 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새로운 사조를 창건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원리를 통한 가르침보다도 선생님이 싸워 이긴 과거의 실적과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그렇게 되어지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힘차게 전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중심삼고 살림살이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중심삼고 살림살이를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복된 말씀 중에 이보다 더 복된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림살이를 시작하신다는데 만일 여러분이 그곳을 안다면 그곳에 가 보겠습니까, 안 가 보겠습니까? 여러분의 재산을 다 털어 가지고서라도 가 보고 싶지 않겠어요? 그것을 물어보나마나 누구든지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그런 기준만 넘어서게 되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금은보화를 팔고 아리랑 콧노래를 부르며 찾아올 것입니다. 그 아리랑이 무엇인지 알아요? 아리랑이 왜 아리랑이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랑애(愛) 자字)하고, 떠날 리(離) 자(字)하고 그 다음에 밝을(맑을) 랑(郞) 자(字)해서 애리랑인데 아리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맑고 밝은 날 다시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흘리는 눈물이 변하여 무엇이 되느냐?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천년의 서러운 사연을 품고 만년을 고대하면서 이 `애리랑' 고개를 넘어 와서 한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 곳에서 다시 한번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앞으로 선생님이 아리랑 노래를 하나 지으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이 살 수 있는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그 깃발이 드높이 들리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모여진 것입니다. 이 장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 통일교회 건물은 누가 산다면 한 2천만 원 정도 나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집을 가지고 자기네 가족끼리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토굴같이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집에서 살면서도 세계를 한번 요리해 보자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꿈 괜찮지요? 이 꿈에서 춤을 추다가 딴 꿈에서도 춤을 출 수 있어야 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뭐 한다 하는 어떤 사람은 청파동 본부교회 건물을 보고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본부의 건물은 왜 이렇게 형편없냐고 말을 합니다. 선생님이 보아도 형편없습니다. 지붕이 깨져서 엉망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그것을 그냥 놔두는 것은 그 기와 지붕을 고칠 수 있는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붕을 고칠 수 있는 그 돈을 아껴서 민족을 위하여 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수천만 원의 돈을 써 가면서 초교파 운동이나 승공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젠가 싹이 터서 자라는 날 이 민족은 통일교회를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민족을 위해서 소년 소녀들이 피를 팔아 가지고 싸워 나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사실을 이 민족이 알아 통곡할 한 날이 오기를 숙원하고, 삼천리 강산에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도 진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집이 상처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상처가 있는 이상 내 집이 편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제 여러분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적 인연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1969년도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기 위해서 아세아에 있어서 민족의 운명으로부터 국가의 운명, 즉 최고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더더욱 최고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때입니다. 선생님이 이제 한국을 떠나면 이러한 각오로 약 100일 동안 세계 순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제 여기에 새로 들어온 통일교인들도 과거에 어떻게 살아 왔든 이 엄청난 사상을 중심삼고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과거를 부정해서 희생하고, 나이 어린 사람은 통일교회의 미래를 위한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사상을 이 민족과 국가 앞에 하나의 기점으로 세워서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 순간까지 총진군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모셔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삼천리 반도가 되어야 하며, 삼천만 민족이 쌍수를 들어 하나님을 환영하게 되고, 이 나라의 주권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세계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삼천리 반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통일하는 것뿐 아니라 지휘할 수 있는, 20세기뿐만 아니라 수십 세기 이후에까지 새로운 역사시대를 여는 원천적인 동기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 통일신도들이 가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마음에 일편의 심정을 가하여 하나님의 뜻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작은 가치를 무시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백배 천배 크게 생각하면서 국가를 위해 죽을 줄 알고, 민족을 위해 죽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없는 동안 여러분에게 분부한 말씀대로 본부로부터 대한민국 전체에 널려 있는, 지구의 모든 식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하여 전통을 상실하고 손상시키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까? 「예」
남다른 사명과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이니만큼 남다른 행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디에 결실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개체는 물론이요, 내 가정, 내 종족에까지 결실시켜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의 통일종족인 것입니다. 통일종족은 선을 중심삼고 통일국가 형태를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을 결실해야 하며 통일세계를 창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세계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공산세계가 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통일주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주의는 무슨 주의냐? 통일교회 문 아무개의 주의가 아닙니다. 그 주의는 선생님이 머리가 좋아서 만든 것이 아니요, 연구를 많이 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무슨 조작을 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가르쳐 주는 것이 선생님의 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통일주의니 통일주의는 바로 하나님의 주의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깃들어 있고, 생활에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정이 깃들어 있고, 하나님의 소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심정의 역군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주의가 바로 하나님주의인 동시에 통일주의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내용을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이 주의를 알아 가지고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을 받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하나님께 공인받은 다음에 선생님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임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단 한 가지 염려하는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 가운데에서 내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식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렇게도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했던 그 사랑을 다하지 못하고 가는 선생님의 죽음을 놓고 그 심정에 흐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그럴 수 있다면, 선생님이 죽었을 때 여러분이 북망산천에 아무렇게나 묻더라도 나는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피어 오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정열이 역사의 기원을 뒤집어 놓고 역사의 시대적인 조류를 제쳐 놓고, 악한 환경에서 늠름히 뻗어 나갈 수 있다 할진대 내 아무리 북망산천에 한줌의 흙이 될지라도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송하고 천세 만세 하나님께 영광과 축원을 드릴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세계적인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민족으로서의 사상과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선생님은 생애를 바쳐 일해 나왔습니다.
우리 식구들 중에 이러한 선생님을 앞에 두고 식구끼리 자격을 따지고, 식구끼리 욕을 하고, 식구끼리 서로 짓밟고자 하는 무리들이 있다면 그들은 전부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리의 공법이 이러한 것을 처리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여러 시대를 거쳐 왔고 또 지금도 거쳐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선생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면 세상의 악한 무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저주한다 할진대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저주하는 것이 되고, 한 사람의 실수로 말미암아 천 대 만 대에 이르는 후손들의 앞길까지 막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타락한 인간을 저주했더라면 인류의 앞길이 막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으므로 인류역사에 구원섭리의 소망이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그 전통과 사랑의 마음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원수가 죽음길로 몰더라도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축복의 잔을 부어 주고 잘되게 축하해 주면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스승이 지니고 나온 사상이요, 여러분이 다년간 선생님을 모시고 나오면서 보고 체험한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칼을 뽑아 원수의 입장에 서 있는 이 나라 삼천만 민족의 머리를 치고 그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하더라도 풀리지 않을 하늘의 한을 품고 있는 선생님이지만 사랑의 길은 그런 인간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길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선생님이 품고 온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고 하는 사실을 설명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해야겠기에 선생님이 남아 있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더 느낀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죽은 선조들의 무덤 앞에서 실망하고 있는 그 후손들을 일으켜서 자기의 선조들이 잘못했던 것을 깨우쳐 주며 스스로 무릎을 꿇고 회개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복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승리의 행군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대열에서 전통을 지키는 하늘의 병사로서 긍지를 지니고 만세에 길이 빛날 수 있고 청사에 남는 위인들이 되기를 바랐기에 여러분들을 이런 자리에 모아 지금까지 핍박 도상에 가담시켜서 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스승임을 여러분들이 알고 부디 여러분이 죽기 전에 이러한 사상을 본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죽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의 후손은 물론이요, 대한민국과 세계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전통을 세울 수 없게 됩니다. 이 나라 조국 강토에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뿐만 아니라 세계 만민 앞에 체면과 위신과 전통을 세울 수 있는 민족이 되지 않고는 여러분은 죽어서도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위해서 태어났고, 이러한 사명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위하여 자기 후손들에게 전통을 심고 이 민족에게 이러한 전통을 보여 주고 죽겠다는 참다운 혁명적인 투사가 되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능력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민족이 추모하는 이순신 장군같이, 기생의 천한 몸으로 나라를 위해 죽어간 논개같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 위해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역사는 기필코 부활의 한 날을 맞이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우리는 죽더라도 그 날을 기해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뜻앞에 공헌하는 길로 빨리 전진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시겠어요? 「예」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종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민족과 국가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아들딸이요, 내 민족이라고 나라와 세계 앞에 축복해 주실 수 있는 그런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건하는 용사가 되고 기수가 되어 이 민족이 세계의 조국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통일사상을 통하여야만이 세워진다는 것을 철썩같이 믿어야 하고, 그러한 사상을 지녀야 하고, 선생님이 없는 기간 동안에도 여러분이 처하는 환경 가운데에 그러한 사상을 심을 수 있기를 부디부디 부탁드리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섰나이다. 당신은 어느 곳에 임재하시옵나이까? 저 높은 공간에 있는 어떠한 보좌도 아니요, 어떠한 찬란한 문화의 역사를 가진 전통의 자리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창조 당시에 당신이 소원하신 것은 참다이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눈이 물커지고 신경이 굳어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한 남성의 마음에 임재하고 싶으셨고, 그러한 한 여성의 마음에 임재하시고 싶으셨던 아버님임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의 마음에 임재하시고 나서 그들을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고 싶었던 아버지였사옵고, 더 나아가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 새로운 인연으로 상봉하고 싶었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남성과 그 여성이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조상의 심정적인 터전을 갖춘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위에 당신이 직접 임재하시고 싶으셨던 그 마음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리하여 그 가정의 중심에 당신이 임재하고자 하셨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도 당신이요, 생활 전체도 당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혈통적인 인연을 거친 자식을 사랑하고 싶었던 아버지였사옵고, 넓고 높고 깊으신 사랑의 손길로써 그 아들딸을 품으시고 싶었던 아버지였사옵고, 눈물어린 사랑과 눈물 어린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셨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러한 평화의 가정 위에, 그 자녀들 위에 평화와 사랑을 뿌리 깊이 심어서 그 가정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고 복지의 터전을 이 땅 위에 이루시고자 하셨던 것이 천세 만세에 한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통일신도들은 잘 아옵니다. 이러한 복지의 터전을 이룰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 6천년 동안 쓰라린 죽음의 길을 연이어 왔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의 제물을 쌓아 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탄과 억울함과 비참한 자리에서 희생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내 한 자체를 불러서 이 모든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모델적인 한 남성과 한 여성과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 가정 위에 주체적인 중심으로 임재하시어서 만세 만민의 가정 위에 깃들고자 하신 것이 당신의 소원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의 자녀들이 더럽히고 더럽혀진 추한 자신인 것을 스스로 느껴서 자기의 몸 자체를 하늘땅 앞에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천번 만번 죽음길에서도 아버님의 자비를 그리워하고 아버님의 동정의 손길을 갈구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뻗치며 목이 터지도록 아버지를 부르고 세포가 마비될 정도로 미친듯이 아버지라고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겠사옵니다. 당신이 소원하신 사랑을 몸소 지닌 남자와 여자가 될 수 없는 타락의 혈족인 것을 탄식하면서 오시는 메시아를 사랑하고 그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께서 이곳을 모인 사랑하는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의 마음 가운데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되겠고, 내 가정을 사랑해야 되겠고, 내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사랑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사랑은 오늘날의 혈통적인 인륜도덕 관념에서 맺어진 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인 기원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새로운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중심에서부터 방계적인 단체로 연결시켜서, 이것을 총합하여 하나의 재림사상에 의한 참부모의 심정과 연결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러한 자리를 흠모하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이러한 길을 걸어 나온 사람들은 고아의 노정을 걸었사옵고, 형극의 노정을 걸었사옵고, 행랑살이를 하였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오나, 모양과 처지는 그러할지라도 단지 마음에는 당신의 사랑이 있었을 줄 아오니,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사랑만이 빛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인연으로써 천상세계를 몽땅 감아쥐고, 과거의 역사가 여기에 빨려 들어가게 하고, 현 시대가 여기에 감겨 돌아가게 하고, 미래의 새로운 소망의 길을 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붉은 마음 가운데 아버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하늘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겠다는 붉은 마음을 지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관념적인 신앙을 타파해 버리고, 생활 속에서 아버지를 실감할 수 있는 모심의 생활하는 통일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는 저희들이 삼천리 반도에서 나그네의 신세가 된다 해도 아버지를 모시고, 혹은 빌어먹는 자리에서도 아버지를 모시고, 혹은 초가삼간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더라도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처한 환경 가운데에서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하나하나 상징적인 탕감조건과 형상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있게 해야 되겠사옵니다. 우리 통일신도들이 삼천리 반도에 이러한 근본적인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적인 분야가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월의 마지막 성일을 맞이하였사옵나이다. 이제 이 달도 5일을 남겨 놓고 있사옵니다. 지난해의 슬픔을 또 다시 품고 이 한 달을 보내게 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다음 달부터는 이 자리를 잠시 비워야 할 것 같사오니 아버님께서 이 자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부디 아버님께서 직접 임재하실 수 있게끔 각자가 자기의 터전 위에 성소를 만들고 제단을 쌓아 놓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망하더라도 남아질 수 있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책임질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세계의 도처에서 저와 만나기를 고대하며 한국을 위하여 마음 졸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순회노정이 필시 인간적인 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길이 되거든 가는 길을 막으셔서 아버님의 뜻만으로 맺어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미국 문화의 생활면과 접하는 것을 바라지 않사옵니다. 또한 세계의 그 어떠한 욕망도 원하지 않사옵니다. 머물고 있는 자리가 아무리 비참한 자리라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이 있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라면,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옵니다. 가고자 하는 곳이 당신 앞에 합당하지 않은 곳이면 당신께서 막으시옵고, 가고자 하는 곳이 당신께서 환영하시는 곳이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거든 당신께서 인도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가는 곳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버님께서 함께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자녀들이 들인 정성의 피눈물로 인해 지구성(地球星)에 있는 모든 국가의 역사적인 모든 사연이 거두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정을 체휼하고 다시 돌아와서 하늘땅을 대신하여 본연의 사명을 다시 한번 재촉할 수 있는 내용을 이번 순회 기간을 통하여 거두어들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부디 그날까지 지켜주시옵고, 여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임재하실 터전이 되는 성지를 지키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시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만을 간절히 부탁드릴 때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외국 식구들과 국내에 있는 우리 식구들을 비교해 볼 때 서로 차이가 납니다. 즉 주체와 대상, 중심과 주변이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가치를 지녀야 할 본국에 있는 통일교인들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기준을 지니지 못하게 될 때는 본국의 권위와 위치가 이동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한국에서 시작했으니 끝날 때까지 그냥 망하더라도 중심국가는 한국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영원히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누구의 간섭을 받고 나서 그 일을 하고, 누가 하니까 따라서 한다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가정, 민족, 국가, 세계 어느 곳에 있다 하더라도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 이 땅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옷깃을 여미어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는 자녀로서 내 일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본부면 본부, 지구면 지구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과연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인정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걸 생각할 때, 선생님이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픕니다.
만약 한국이 본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다른 나라가 본부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 어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겠다고 각오해야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염려시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의 소망이 임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개인이 된다면 통일교회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생명을 바치고 나갈 수 있는 개인과 가정이 조성된 본부만 된다면 지방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21년을 마치는 노정이었지만, 제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이 가야 할 노정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직접 이끌어 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36가정이나 72가정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통일교인이라면 다시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특별 지시입니다. 수련회는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수련회를 통하여 앞으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지 기도를 날마다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불쌍하고 헐벗은 나라일지라도 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는 수습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중심으로 있는 여러분이란 것을 재인식하고 본부로서의 권위와 위치를 지켜 나가길 부탁합니다.
전세계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매일 낮 12시를 기해서 세계복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간을 그런 기도의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이 세계 식구들과 동참할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나라마다 틀리지만 세계의 식구들이 하나님과 함께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런 기도의 시간으로 정한 것이니만큼, 시간에 충실하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전부터 말씀해 오던 내용이지만, 이제 전국적으로 부흥활동에 들어갈 것입니다. 앞으로 각 지구의 지구장들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통고가 있겠지만 이번 부흥활동을 통해서 새로이 전도되는 사람들을 중심삼고 7월20일에는 못해도 3천명 이상 동원시킬 계획입니다.
벌써 제2차 7년노정의 2차 년도가 시작되었지만,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할 말이 많지만 그런 말을 전부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각 지구의 지구장들이 여러분들에게 통고해 줄 겁니다.
1970년대는 선생님이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전체적으로 책임을 지고 나가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격동하는 세계적인 사조권내에서 많은 핍박을 받고 사탄과 혈투전을 하면서 하늘의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핍박의 길을 넘어서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는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는 선생님이 먼저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선포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 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족에 대한……. 나에게는 사랑하는 부모와 8명의 형제 자매가 있었고, 사돈의 8촌까지 합하면 상당히 큰 문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더욱이나 우리 형님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계와 통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것도 알았고, 다년간 고생한 병도 약 한번 안 쓰고 영적으로 치료받은 분입니다.
그 형님은 나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나에 대해서 깊이는 알지 못했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 중에서 우리 동생이 제일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내 말을 듣고 안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알았던 것입니다. 또 내가 말하지 않는 한 물어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형님은 선생님의 가슴에 품고 있는 깊은 무엇을 자기에게 얘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셨습니다. 그 형님과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문중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장래에 면이면 면에서, 도면 도에서 잘 되면 무엇이 되고, 못 되면 무엇이 된다는 등 하여튼 말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님은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이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어머니께 손수건 한 장도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도 농촌에 가게 되면 베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여러분 베짜는 것 알지요? 우리 8남매 중에는 누이가 여섯입니다. 어머니는 이 여섯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하셨습니다. 내가 어디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베를 짜고 계실 때가 많았는데, 그때 어머니와 함께 얘기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보통 마흔 자 한 필을 짜는데 5일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여덟자 내지 아홉 자 정도를 짰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 베의 표면은 참 고왔습니다. 하루종일 베를 짜고 나면 얼마나 눈이 시리고 힘이 드는지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그런 일을 우리 어머니는 수십년씩이나 하셨습니다.
옛날 농촌에서는 아들딸을 전부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려면, 입고 갈 옷은 직접 목화를 재배하여 옷감을 만들어 지어 입고 가야 했기 때문에 손이 너무 많이 갑니다.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내가 자식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어느 땐가 내가 이북에 가게 될 때에는 이미 만나 뵙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기도 한 번 안 해봤습니다.
내가 요구하면 집이라도 팔아서 돈을 보내 줄 수 있는 그러한 형님인데도 불구하고 그 형님에 대해서 내가 통일교회 누구라는 이야기나 무슨 사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에게도 얘기 못 해줬습니다. 단 한 가지 그분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그것은 알았습니다. 너무도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과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자라면서도, 동네에서 누군가가 자기가 잘산다고 해서 못사는 사람들을 천대하는 것을 보면 그가 누구이든 간에 못 참았습니다. 그러니 동네사람들도 나를 무서워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엿을 사다 놓든지 떡을 하시든지 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내가 이것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갖다 주곤 했었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신 부모님께도, 형에게도 선생님은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 동생들 중에는 나 때문에 희생된 동생도 있습니다. 내가 이 길을 가기 때문에 죽은 동생도 있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왜정 때 감옥에 들어가 고문 받고 있을때 누이동생이 죽었습니다. 그건 순전히 선생님 때문에, 탕감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하늘의 역사는 반드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가정에는 풍파가 많았습니다. 한 7년 동안 재앙과 풍파가 많았어요. 열 세식구중에서 다섯 식구가 죽어 여덟 식구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개가 죽지, 소가 죽지, 형님이 미치지, 누나가 미치지……. 사탄의 활동 때문에 그런 역사적인 탕감을 치렀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섭리적으로 볼 때에 그럴 수밖에 없는 배후의 사연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선생님이 어떠한 마음을 품고 다니는지 몰랐습니다. 형님에게도 얘기 안 하고, 부모에게도 안 했습니다.
그렇게 해방될 때까지 참고 나왔습니다. 해방되고 나서 선생님은 한국에서 `한다' 하는 신령한 사람은 다 찾아가서 만나 봤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영계의 사정을 물어보면 아무래도 그 사람들의 대답이 미흡하더라는 것입니다. 미흡한 사람은 완전한 시대에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나가다가 전부 중도에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타파해 나가고, 새로운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학생 때부터 생각해 나왔습니다.
일본 유학시절에 선생님은 빈민굴에서부터 사창굴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창굴에 있는 아가씨들의 과거를 캐보니 보통 사람의 과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회 환경에 몰리고 그 흐름에 따라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쌍한 처지가 되기도 했고, 혹은 부모와 형제를 위하여 자기 일신을 제물로 삼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비록 자기 몸이 버린 바 되어 거리에 밝히는 그런 여인이 될지라도, 쓸쓸히 사라지는 불쌍한 아낙네가 되더라도 자기 부모와 형제를 살리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하고 나섰다고 했을 때, 그들의 손을 붙들고 통곡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도 순수하고 솔직한 인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런 비참한 인류의 해방을 위해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의별 인간들이 다 거쳐나가는 그런 류의 생활 이면을 알지 못하고서는 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빈민굴 생활로부터 밥을 얻어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길이길이 세우고 싶었던 그 사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해방될 때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님은 해방의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1941년도에 일본에 유학을 가기 위해서 부산을 향해 서울역을 떠날 때 서울 장안을 바라보면서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도 한강변에 가면 불쌍한 이 민족이 해방되는 한 날을 위해 눈물 흘리며 붙들고 기도하던 그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되었지만 이 민족은 아직도 불쌍한 민족으로 남아져 있습니다.
지하실에서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로서 하나님께 호소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천지 앞에 하늘의 사연을 폭로시키고 피를 토해서라도 호소해야 할 때가 오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 길을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흑석동의 고갯길은 선생님이 많이 걸어다닌 길입니다.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전차를 안 타고 다녔습니다. 전차를 타고도 꽤 먼 곳이었지만 걸어 갔다가 걸어 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흑석동 고개를 넘어갈 때 보면 길가에서 적선을 바라며 행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차를 타지 않고 남겨 두었던 그 돈을 주곤 했었습니다. 한번은 그들을 붙들고 한없이 울어도 봤습니다. 부모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까 없다고 하고, 형제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까 없다고 하는 그를 선생님이 그의 부모 형제를 대신해서 위로해 주지 못하는 것을 놓고…….
여러분 중에 교회에 나올 때 어떤 사람은 중앙청 쪽에서부터 혹은 종로나 동대문 쪽에서부터 남대문을 거쳐 걸어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선생님이 소년시절에 오뉴월 삼복지경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다녔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전차나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편히 오더라도 지난날 선생님이 걸어다녔던 기준을 생각하고, 선생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께 안길 수 있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린 것과 같은 마음을 품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누구한테도 얘기 안 했습니다. 말을 안 해도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선생님이 학생시절에 기도를 할 때는 목이 메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그렇게 기도를 하는지 그 이유는 몰랐습니다. 20세를 전후한 청년이 목이 메어서 기도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저 청년은 왜 저렇게 기도할까? ' 하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거기에는 남 모르는 내적 심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곳에 가든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하듯이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대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명절날 같은 때에 밤을 새워 가면서 준비한 그 상을, 혹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한 그 상을 선생님 방에 갖다주지 않고서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안방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왜 그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낙네들의 정성들인 그 음식까지도 선생님을 먹이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천번 만번 이 몸이 으스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온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은 선생님이 어떠한 자리에 가 있든지 함께해 주셨고, 선생님을 위해서 그렇게도 수고를 하셨다는 것은 선생님 자신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일본에 갈 때는 보통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로 8시간 걸립니다. 나는 그때 기차를 타면서부터 오버를 뒤집어 쓰고 통곡을 했습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아서 눈이 붓고 코와 입술이 붓도록 울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눈물, 하늘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사연, 이 민족에게 심어 주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그 하소연이 이 민족 앞에 기필코 남아질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 민족 앞에 남아지지 않으면 통일의 젊은 가슴 가슴에, 통일을 원하는 사나이의 가슴 가슴에 남아 달라고 선생님이 부탁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선생님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은 그 장래가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러한 통일교회를 비판하고 선생님이 가는 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란하는 사람들은 큰 회개를 해야 될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길에는 곡절이 많았습니다. 눈물의 쌍곡선을 그으며 그 길을 개척해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무턱대고 평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배후에 선생님이 흘린 한의 눈물이 얼마나 엄청났는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선생님만이 압니다. 하나님만이 압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만이 알 수 있는 그 사연이 한국 삼천리 반도 위에 엮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모를 지라도 선생님은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남아질, 그 무엇보다도 귀한 이 사연을 죽어가면서도 품고 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연을 펼쳐서 만민 앞에 통고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나서 그 승리의 보좌에 아버님을 모셔놓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못할까봐 염려하여, 한을 품고 사는 사나이가 문 아무개인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기 바랍니다.
이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으로 말한다면 선생님은 그 어느 애국자보다 더 많이 흘렸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던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주마'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일본에 가서도 굶주린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선생님은 굶더라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굶주린 고학생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부두 노동을 했고, 석탄 짐을 지고 운반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젊은 동지들을 사랑하기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친한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친구중의 친구라면서 자기의 비밀을 자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너한테만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견디겠다고 직고하는 동지들을 남겼던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또한 선생님이 일본의 궁성을 지나게 될 때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린 한을 품은 외로운 사나이로서 그 궁성을 응시하면서, 이제부터 20년 후에는 하늘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깃발을 꽂으실 그 날이 오리라는 것을 선생님은 이미 알고 하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지금은 네가 우리 민족을 핍박하지만 앞으로는 반대로 내가 명령만 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너를 향하여, 이 궁성을 향하여 화살을 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했던 것이 25년 만인 1965년도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여자들만 눈물 흘린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반 사회 사람들은 나를 이단의 괴수라고 하는 등 별의별 말을 다 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가짜입니다. 그런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리가 아닙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리예요, 아니예요?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한 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던 친구들은 전부다 영계에서 데려갔습니다. 선생님과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을 전부다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을 영계에서 데려갔는가 하는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私情)을 나눌까봐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을 나눌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랑했던 누이동생도 데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이 세상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모두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선생님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갈래야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나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지금 통일교회 교인들이나 청년들 중에는 대학을 나왔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꺼떡거리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 어떻고 저떻고 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 문 선생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을 했어도 그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더 했고, 인류를 그리워하며 인류를 위해서 일주일 이상 눈물을 흘렸고, 너무 많이 울어서 입고 있던 솜바지까지 모두 적셔 버린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껄렁껄렁한 곳이 아닙니다. 그럴 수 없는 이념과 전통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셔 왔지만 선생님을 모릅니다. 연구를 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어떨 땐 어린애 같지만 어떨 땐 권위가 있고 무섭기가 한량없습니다. 선생님이 한 번 호령하면 여러분의 가슴은 몽땅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열지 않고는 여러분은 해방될 수 없고 수습할 수 없습니다. 그런 권위가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겉으로 나타난 통일교회를 보고 믿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외부로만 발전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리가 본보기가 되어 서로서로 심정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여 동감 동정할 수 있는 일체가 되어야 그것을 중심삼고 하늘의 초석이 놓여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초석이 세워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렇게 몰아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1960년까지 노력해 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은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을 잊어버리고 온갖 정성을 들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 놓은 영계의 모든 비밀과 모든 내용은 보화중의 보화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함께 나눌 수 없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한스러웠겠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어머니를 뒤에 두고 나설 때에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어머님, 이제 이 집을 떠나면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길로 가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과 헤어졌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찾아오셔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어머니께 위로의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께 `졸장부 아들을 낳은 어머니가 되지 말고 대장부를 낳은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청천벽력 같은 호령을 하여 눈물을 그치게 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선생님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계의 수많은 선한 영인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어머니의 가치를 천배 만배 더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일대의 혈육의 인연을 중심삼고 눈물지음으로 인하여 그 권위와 가치가 상실될 것을 염려하여 선생님은 무자비하게 어머니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처자식을 대해서도 자기 심중에 품은 말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나이가 바로 통일교회 문선명선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선생님은 하나님의 이 엄청난 뜻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를 붙들고, 형님 누나를 붙들고, 처자를 붙들고 사정을 나누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해서 룩색(Rucksack;배낭)을 메고 처자를 떠나 눈물을 흘리며 이북으로 향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 나는 친척들이 나를 원망할 것이요, 친지들이 원망할 것이요, 처자가 나를 원망하면서 눈물 흘릴 것을 알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며 대한민국을 이별했습니다. 그때 나는 `오냐, 6천년 섭리역사가 이렇듯 슬픔의 역사로 남아져 온 것을 알았으니, 그 해원을 위해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리하여 다 싫다는 이북땅을 향하여 떠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며 절규하던 그 사나이가 해방된 이 땅 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땅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남아져 달라'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했던 사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도 죽지 말고, 하나도 망하지 말고, 하나도 배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동지들과 신도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는 모두 선생님을 원망했고,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남한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했던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명주바지가 누더기가 되어서 선생님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거지 중의 상거지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서 찾아 왔다'고 서로 눈짓을 하면서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 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생님을 맞이했더라면 선생님이 이북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애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서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대개 어떤 사람을 찾아갈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그때도 틀림없이 넌 이렇게 대할 것이다 하고 예상하고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보니까 없어요. 찾아갈 때는 아예 하룻밤을 지내고 오기 위하여 오후 늦게 상거지 모습으로 찾아가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저녁 7시가 되어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해가 진 다음에 저녁밥을 먹고 기다렸는데 늦게서야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언짢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동지 앞에서 몰리고 쫓겨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부모 앞에도 몰렸고 민족 앞에도 몰렸습니다. 나는 내 뒤에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나를 몰다가는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난 그 자리에서는 `그동안 염려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그저 도의적인 입장에서 얘기했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내복도 안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방에 이불 한 채를 내주면서 어쨌거나 왔으니 덮고 자라고 했지만 그냥 그대로 그 옷을 입고 잤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거기에서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나를 박대하면 그가 7개월 이내에 어떻게 될 것인지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 집을 기쁜 얼굴 표정을 하고 들어갔다가 기쁜 얼굴 표정을 하고 나왔지만 배후의 하나님은 슬펐던 모양입니다. 그 역시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며 먼저 동지들을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까운 동지로부터 찾기 시작해서 먼 동지까지, 또 이북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서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을 찾는 데에 2년이 걸렸습니다. 여기 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내 처자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았지만 동지들을 모두 찾기 전에는 편지조차 할 수 없는 천적인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서 그들을 다 만난 후에야 집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목석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정적인 사람이요, 눈물 많은 사람이요, 동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그 친구의 옷이 찢어지면 선생님의 옷을 벗어 입히고서야 돌아섰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악은 악대로 처리하면서도 그 처량한 신세는 동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천정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역사적인 사연을 품고 나오면서도 이러한 심각한 내용을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부모에게 얘기하지 못 했습니다. 형님 누나 동생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처자한테도, 친척들한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우리 동지들에게도 때가 되기 전에는 이것을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누구에게 먼저 전했느냐? 해방이 되고 난 다음 원수들이 우글대는 이북 땅에서부터 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전파가 출발함과 동시에 원수의 총끝이 선생님을 겨누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길로부터 출발했던 것입니다. 원수 앞에서 또 몰림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몰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공산치하에서 3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죽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평양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어떠어떠한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 때는 영계에서 무지몽매한 강도, 절도, 살인범 등의 수많은 죄수들에게 `아무 감방에 번호가 몇호인 사람이 있으니 그분에게 어떤 것을 갖다 드려라' 하고 시키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는데 선생님이 입을 옷이 없을 때에는 그들을 시켜서 옷을 갖다 주기도 했으며, 또 내가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플 때에는 난데없는 사람을 통해 선생님 이름과 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평양 감옥에 들어가면 누구누구를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 가운데서 4월 20일까지 지냈습니다. 그때 감방의 창가를 스치던 버들잎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거기서 하늘의 뜻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만남으로 말미암아 거기 원수의 땅, 제일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하늘의 밀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병사를 모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몰리고 쫓겼으니 감옥에서부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을 해서 이남 땅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북에서 유엔군이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흥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쁘게 구해야 할 한 아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은 그 전전날 한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준다고 꼬여서 전부 데리고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이려고 그러는 줄은 모르고 밥을 준다 하니까 그것을 얻어먹겠다고 서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너희들은 마지막 길을 가는구나! 그렇지만, 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희들은 다 죽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어떠한 참사의 비운이 거쳐가는 자리에서도, 총살을 당해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난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해 10월 12일 형기가 7년 이상인 죄수 한 70명 정도를 30리쯤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전부 죽여 버렸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형기는 5년이었기 때문에 그다음, 다음날이 내가 끌려갈 차례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바쁘셨을 것입니다. 13일 밤거리를 내다보니 벌써 사태가 달라졌습니다. 유엔군이 흥남에 상륙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산군들은 보따리 싸기가 바빴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10월 14일 공산군이 물러가자 우리는 감옥에서 빠져나와서 이남으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지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선 사나이가 지금까지 이단의 괴수라는 팻말이 붙어 원수들로부터 몰리고 쫓기고 비난받으며 나왔습니다. 자!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은가, 나쁜가? 「나쁩니다」 그 한을 풀 수 있는 작전,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도해 온 지도방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화여대 사건 때 김 활란과 박 마리아가 주동이 되어 경무대에 가서 거짓 증거해 가지고 4개 부처 장관을 움직여서 통일교회를 없애 버리고 나를 완전히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 죽습니다. 안 죽어요! 세상의 어떠한 일이 부닥쳐 오더라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955년도에 있었던 7. 4사건 알지요? 내가 원숭이띠라서 감옥살이를 많이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서대문 형무소 소장이 기성교인이었는데, 대뜸 `임자가 문 아무갠가? 한 달은 구류 받아 이 자식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되어 먹지 못한 사람에게 농담삼아 한마디 했습니다. `이 자식이 뭐야? 당신은 이런 것을 해 먹었군' 하니까 가슴이 찔렸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 그렇게 못되게 굴던 형무관들은 선생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듣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물을 갖다 달라 하면 떠 올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때려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이곳에 아무나 와서 앉아 있지만 옛날에는 절대 아무나 못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무서울 때도 있었습니다. 경찰이 들어올려고 문 앞에 와서 문을 두드릴 때 `무엇 하러 왔느냐'고 호통을 치며 쫓아낸 적도 있습니다. 그들은 종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딸에게는 정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통일교회를 괄시받게 하고 그러한 사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전부 `문'가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를 깎아먹는 `문 장관', 이 사람도 문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집안 식구가 원수'라 했는데, 이 문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문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문'가 아니라 `통'가입니다. `통'가. (웃음)
여러분도 뜻을 위해 개명할 겁니까, 안 할 겁니까? 「하겠습니다.」 왜정 때도 어쩔 수 없어서 창씨개명을 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또 하겠느냐고 하겠지만, 아예 딴 이름으로 고쳐 버리자 이겁니다. 선생님은 `통'가가 제일 좋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가'가 되고 싶습니까? 「`통'가요.」 (웃음)
여기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 있습니까? 너무 많습니다. 통가가 하나밖에 없다면 유명해질 겁니다. 만약 그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에게도 절대로 아버지의 성인 `통'을 못 쓰게 해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나면 세계의 톱뉴스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통'가 되고 싶어요? 「예」 그럼 이제 누구든지 다 `통'가를 가져요. 그러면 선생님은 `통'가는 안 되겠어요. 대신 `천'가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천'가는 기가 막힙니다. 한자를 더하면 `천지'가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름을 `천통지' 이렇게 하면, 여러분은 `통'가가 되고 선생님은 `천지'가 된다면 `하늘땅', `천지인'이 되기 때문에 천지가 통일될 것이다, 나 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웃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피로하니까 한번 웃고 넘어가자는 뜻에서 한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해 나오면서 왜 자기 부모나 처자에게는 차마 말을 못했느냐?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혈육만을 중심삼고, 자기의 가정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처자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천법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사랑하는 무리들만 사랑했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만에 비로소 이 지상에 둘도 없는 사랑의 실체로서 보내진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악당의 무리와 원수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자기의 아들을 희생시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유대민족은 지금까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에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쫓기고 몰리고 밟히면서도 세계의 문화권을 창설하는 데에 공헌했습니다.
외적인 물질적 기준과 내적인 정신적 기준에 있어서 세계적인 기준 위에 선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인격자가 아닙니다. 자기 편의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못 됩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자식을 자기 직계의 자식보다도 더 사랑하셨다는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사탄도 그 앞에서는 머리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자기 자식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해 주시니 그 사랑 앞에 머리 숙여야 할 기준이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의 내용을 안 예수님은 죽으시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예수님이 천정의 인연과 천정의 전통을 이어받고, 천정의 핏줄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슬펐던 역사적인 사연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런 운명의 자리로 내보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늘뜻 앞에 드려질까를 생각했습니다. 민족과 세계로부터 조롱받고 몰리면서도 원수의 무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 앞으로 돌이키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었습니다. 사랑할뿐만 아니라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과 딸이 있거든 그들에게 어떻게 원수들을 위해 내대신 축복해 주고 내대신 사랑해 달라고 유언을 남길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요, 그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나온 선생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아내와 친척들과 동지들이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만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사탄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점과 울타리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저 아이가 악한 자식은 아니다. 아무리 욕을 먹고 아무리 핍박을 받고 저렇게 살더라도 죄를 짓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남다른 사상과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하는 것이지, 절대 나쁜 마음에서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남아졌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가 그러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형님이 그러했고, 철모르는 누이동생들도 우리 오빠는 훌륭한 오빠라고만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다 반대를 했지만 가정적 전통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선생님을 원수와 같이 취급했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신세였지만 배후에 부모 형님 누이동생의 심정적 사위기대의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이 험악한 세상에서도 지금까지 남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수님은 부모가 그렇게 해 주지를 못했고, 동생이 그렇게 대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고도 가족들에게 통고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하는 일에 대해서 선생님을 오해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나는 예수님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토록 반대하는 민족에 대한 마음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고 선조가 있기에 이 배달민족과 삼천리 강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마음을 갖고 소망의 민족, 소망의 나라를 꿈꾸면서 지금까지 참고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싸워 나오는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수십 성상의 복귀노정을 걸어 오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먼저 그러한 역사적 노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었고,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으며, 처자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 성진이가 왔는지 모르지만 그는 23살이 되도록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그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선생님이 누구만큼 못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적 인연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3년 전 그 어린 핏덩이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북한으로 가기 위해서 문을 닫고 나설 때, 그 어머니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믿고 떠났던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기성교회가 환영하였더라면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슬픈 아버지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받들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도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우리와 하나 되었더라면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사조가 한국에 상륙하여 맞부딪치는 정세 하에서 피폐한 이 민족으로부터 비판받는 기독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놓는 데 있어서는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각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천륜의 사명과 천도가 어떻다고 제시할 수 있는 세계적 발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를 놓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세계에 가서 다시 찾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는 데 21년 걸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과 나라를 배후에 두고 원수의 땅을 먼저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나라인 애급땅을 찾아갔던 것과 같이 그러한 비운의 발걸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수를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탕감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북 땅을 거쳐서 남한 땅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처음에 기독교에게 배척받아 이북 땅으로 간 것도 원통한데 남한 땅에 와서 남한 백성 앞에 또다시 짓밟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기반을 닦아 온 기독교 역사는 다 무너졌고, 수천년 배달민족으로서 쌓아 온 공적도 다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슬픈 사연을 품고서 통일교회는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충성하여 나왔습니다. 피폐한 황무지, 삼천리 반도에 통곡의 제단을 쌓아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고 맹세하며 나섰던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정신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사조의 기틀을 마련하여, 통일교회 사람이라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증거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수고한 실적과 더불어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애국애족하는 단체로 국가가 시인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또한 통일교회는 살아 있는 종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반공운동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단체라는 실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단이 선생님을 받아들여야 했는 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홀로 통일교단을 신설하여 2천년의 기독교 기반을 능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작년 9월에 크리스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신흥종교연구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기독교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오냐, 이제 너희들이 항복할 날이 온 것이다. 너희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쓱 나타나니 `저 사나이가 통일교회 미스터 문이라는 사나이이구만!' 하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래서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게 일을 해 왔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나를 중상모략하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늘 나를 초대한다구? 이제 말을 듣겠다고? 결론은 너희들은 패자의 입장이지만 나는 승리한 사나이가 되었다' 이렇게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외쳤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제일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주먹이 세어서, 우리가 총칼을 가져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이 무서운 겁니다. 내적 신념과 외적 신념이 서로 결합하여 있고, 실천하는 면에 있어서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강력한 단체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몸부림치면 이 세계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빼놓고 학사 박사를 비롯하여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머리도 큽니다. 학창시절에 일본에 가서 보니 나보다 큰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한 번 시작했을 때 망한 적이 없습니다. 네가 죽든가 내가 살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짓고야 맙니다. 또 망할 것 같으면 손도 대지 않습니다. 하늘이 뒤에서 밀어 주고 온 우주가 앞에서 환영해 주는 이러한 일이 많았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났다가 한 번도 기를 쓰지 못한 졸장부들은 빨리 망해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기를 쓸 수 있는 사나이들이에요? 「예」 그럼 망해야 되겠어요, 안 망해야 되겠어요? 「안 망해야 됩니다」 안 망할 자신 있습니까? 「예」
선생님은 철창 안에 들어가 있더라도 절대로 망하지 않는 사나이였습니다. 당당한 사나이였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이 `야, 물 좀 가져와' 하면 살인강도라도 `예' 하며 물을 떠왔습니다. 선생님 말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손찌검을 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들을 말없이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고 말없이 세계를 정복하는 겁니다. 거기에 선생님 대신 여러분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 대신 영광받으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뿌리이기 때문에 뿌리가 나타나면 망합니다. 그 대신 여러분은 잎사귀가 되는 것입니다. 잎사귀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 뿌리를 알지 못합니다. 학박사들이 통일교회를 아무리 연구해도 모릅니다. 결론을 못 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밖에는 결론을 짓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니고서는 일할 자가 없습니다. 해나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래,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진짜 좋아요? 「예」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아닙니다」 정말 좋아요? 「예」 그러면 됐군요.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큰소리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물삼아 나오셨고,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을 희생시켜 가지고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심정사상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본받은 예수님도 그러해야 하고, 기독교도 그러해야 하고, 또 그런 사상을 결실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짜인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원리대로 살았습니까, 못살았습니까?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가르쳐 준 원리대로 살았어요, 못 살았어요? 「못 살았습니다」 못 살았으면 꼬집어 뜯으라구, 뜯으라구! 설명을 하고 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또한 선생님이 다 하고 나서 여러분에게 하라는 데도 왜 못합니까? 하겠어요, 못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누구를 사랑했느냐? 처자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려면 민족과 종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민족은 대한민국 국민이요, 그 종족은 통일교회 식구입니다.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를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되겠고,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종족을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되겠고,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가정을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가 이 땅위에 나오지 않고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통일교 선생님은 세계 만민을 위해서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공인할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애국자들도 선생님한테 머리 숙이고 경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나중에 한번 보세요. 여러분이 흘린 눈물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흘린 것이지만 천정을 가지고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종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통일교단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종족입니다. 통일교단이 나온 것은 사랑의 다리를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통일교단 가운데 통일가족이 있으니 그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그 가족 가운데는 개인이 있으니 그 개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나왔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사랑의 역사, 심정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인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한다는 입장이니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세계적인 하나님이기에 세계를 제일 사랑하시니 하나님의 아들 된 저도 세계를 사랑해야 되겠지요? '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엄마, 아빠, 누나, 형님, 사돈의 팔촌, 그 다음엔 우리나라만 사랑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곤란하겠어요? 미국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소련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일본 한국 등 모든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몇백 분은 계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하나의 사랑권내에 품으시려는 분이기 때문에 설령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도 선생님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 말 들을 때 기분 좋아요, 나빠요? 우선 대한민국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대한민국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버리고 세계를 취하느냐, 세계를 버리고 대한민국을 취하느냐 할 때 어떤 것을 취하겠습니까? 「세계요」 세계를 위하여 세계를 사랑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은 자기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나라를 다시 부활시켜 가지고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해되지요? 「예」
그러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시아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 전통적인 내용과 현실적인 기반이 없다고 해서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21세기 혹은 수백 세기 후에도 필요할 수 있는 사상만 가지고 있다면 그 사상은 세계의 사상으로 등장할 것이요,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이 수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과 세계 인류에게 있어서 절대 필요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기도할 때에 절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가문으로 보더라도 뭐가 어떻고, 얼굴을 보더라도 뭐가 어떻고, 또 지파를 보더라도 뭐가 어떠니… 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난 배달민족의 후손이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세계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세계를 위해 수고하셨으니, 저도 한번 수고해 보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사상을 지닌 사람들은 세계가 도망가라고 천년 만년 제사를 지내도 오히려 잔치상을 준비해 놓고 그들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고 하나님.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정성들였는데 이 뜻도 안 이루어 주시고 저것도 안 이루어 주십니까' 하며 보따리 싸가지고 가다가는 난데없이 더 큰 세계적인 보따리가 머리를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잃고자 하는 자는 얻고, 얻고자 하는 자는 잃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쫓김받는 무리들로 말미암아 발전해 나왔습니다. 쫓김받는 무리들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무리 중에서 쫓김받아도 더 큰 사상을 위해서, 혹은 세계를 위해서 공산주의를 넘고 민주주의를 넘어가자고 하는 주창자가 나올 때는 새로운 시대가 온 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주창자로서 한번 해보겠다는데, 그거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기분 좋다 했으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있고도 남습니다. 그렇지만 껄렁껄렁한 패들 앞에서는 그 내용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조사해 보고 따라오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면 `통일교회 뜻이 좋고 선생님이 좋아서요!' 라고 하는데 그 사람도 뜻과 선생님을 잘 모를 것입니다. 역사적인 배후의 내용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라오겠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부 다 욕심만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과 틀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숨을 쉴 때는 무엇을 위해서 쉬어야 하느냐? 대한민국을 위해서 쉬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세계를 위해 숨을 쉬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것을 찬성하는 사람은 세계를 구하려는 큰 이상을 가슴에 품고 아시아의 한반도를 넘어서서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 꼭대기까지 가서 외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됩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고생을 해야 합니다. 십년 고생해서 한국의 부자가 되고 백년 고생해서 세계의 부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백년 고생하겠습니다」 욕심이 많구만. 이 일을 내 일대에서 하지 못하면 우리 후대가 그 일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니 포부와 희망을 가지고 역사와 전통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외국 순회를 할 때 그곳 선교사들은 선생님이 자기들 계획대로 해주었으면 하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선교사들이 선생님에게 미국이 한국의 실정과는 다르기 때문에 선교하기가 곤란하다며 자기들 계획대로 해주길 바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곤란하긴 뭐가 곤란합니까? 선생님도 계획이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또 1월 31일에 샌프란시스코에 간다 하면 그것이 궁금해서 `그날 오시는 것이 사실이요?' 하고 연락하는데,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압니까? 그날 가 보아야 안다는 것입니다.
영국에 있는 할머니 식구 한 분은 `우리 선생님은 구름 같은 사나이로 밤중에 도둑같이 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고 합니다. (웃음)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여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떠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선생님이 저번에 미국의 48개 주를 순회했는데, 미국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부럽지 않았습니다.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들의 키가 선생님보다 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키가 상당히 크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너희들이 키가 큰 것은 너희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순회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웃음) 그러면 선생님도 기분 좋고 그들도 기분 좋거든요.
선생님만큼 미국의 48개 주를 며칠 동안에 골고루 돌아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미국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자다가도 책상을 치며 미국 땅을 언제 복귀할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지구를 뚫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한국은 앉아서 돈 벌 것입니다. 지구를 뚫었으니 죽기 전에 그걸 지나가 보고 죽겠다고 하지, 안 지나가 보고 죽겠다고 하겠어요? 몇 백년이 걸리더라도 그것을 뚫는데 성공하는 날에는 한국은 앉아서 이것만 팔아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구라파를 돌아보았는데 그들 문화는 어디에 영향을 받았는가 했더니 전부 바티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 하나 그리는 데도 18년 동안 정성들여 그렸다는 겁니다. 이것은 종교의 영향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18년이 아니라 180년이 걸리더라도 저런 벽화를 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분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림 하나 그리는 데에 한 4대(代)쯤 걸릴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생각도 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옛날에 책의 내용을 암송하라면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빨리 암송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린다 하면 그것 못 그리겠습니까? 소설 같은 것도 소설가 이상 쓸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당장에 그런 소설을 꾸며낼 수 있습니다. 한달 혹은 360일 동안 앉아서 그것만 해라 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재료가 얼마든지 풍부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제목만 정하게 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냥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 같은 데 가게 되면 매일 재미있는 장편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삼국지는 여기에 비교하면 너무 짧아요. (웃음)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도 감독들과 금방 친하게 됩니다. 그들이 나중에 내가 통일교회 문선생임을 알게 되면 `아! 통일교회 문선생이십니까? 이럴 줄 몰랐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여봐라 하며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게 나올 줄 몰랐거든요. 같이 생활하고, 또 콩나물만 주어도 감사하다고 먹으니 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렇게 선생님은 세상 사람들이 잠자고 떠드는 사이에 세계적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옛날엔 통일교회 문 어쩌구 저쩌구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아이구 선생님'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그런 일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배포가 맞으면 같이 해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기다리지 마세요. 방해됩니다. 방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안 해도 그 일은 가능하며, 10년이 지나도 그 문제는 가능합니다. 지금 들어와서 잘못하면 푸대접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이 많은 사람들, 허리 꼬부라져 있는데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선생님도 많이 쭈그러들고 말랐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일하고 싸워서 이긴 기쁨을 자랑할 때는 누구에게 자랑하겠습니까? 바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 많은 사람들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싸울 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사상을 품은 이 사나이는 불쌍한 한국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불쌍한 한국 땅에서 태어나 그렇게도 지지리 고생했고, 그렇게도 지지리 천대받았고, 그렇게도 지지리 몰림받으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지리 고생했다는 간판이 붙어 있겠어요? 여러분은 그저 편안히 앉아 가지고 내가 팔자가 좋아서 여기에 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단단히 정신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자리에서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고 살 때, 선생님은 어느 농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해 가며 뜻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쌀쌀한 날에도 찬바람과 진눈깨비를 맞아가며 거지 신세가 되어서 거리를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전차나 혹 버스를 타게 될 때 거기에 축축한 옷을 입은 그러한 청소년이 있거든 그를 푸대접하지 마십시오. 이 스승이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고생길을 가도록 태어난 사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혹은 팔자를 보나 무엇을 보더라도 나는 고생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생하지 않고는 복귀의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민족 전체를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고,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을 통곡시켜서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을 맺고 싶었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을 맺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이 삼천리 반도 황폐한 땅 위에 맺어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가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한국 땅을 조국으로서 환영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한민족은 불쌍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조밥을 먹고 보리밥을 먹고 된장찌개 혹은 맹물을 마시고, 소금을 찍어 먹고 장을 찍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찍어 먹을 장이 없는 생활을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흑암이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광명한 새아침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에 칠흑 같은 어둠이 있다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머지않아 광명한 새 아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짓궂은 환경과 이 서글픈 과정에 있어서 신세타령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잘 이 암흑 천지를 벗어나 광명한 햇빛을 맞이할 마음의 자세와 늠름한 기반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대끼는 현세, 늙고 짓구겨진 입장에 있는 자신의 환경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 있는 대로 밀고 제치고 끊어서라도 이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명을 하는 데는 꼭대기에서부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에서부터 하는 것입니다. 쓰러져가는 불쌍한 이들을 위해 억울하고 처참한 보따리를 대신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 겁니까, 안 갈 겁니까? 「가겠습니다」 안 가면 망합니다.
아시아에서도 지극히 작은 약소 민족으로서 수천년 동안 고난의 역사와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역사의 밧줄을 잃어버리지 않고, 갈기갈기 찢어진 치맛자락을 붙들고 지금까지 남아진 삼천만 배달민족인 것을 생각하게 될때, 그것은 이 민족이 잘나서 남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적인 인연이 그 배후에 참된 이념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며, 천륜의 한 때를 준비하기 위한 하늘의 내심이 있었기 때문에 남아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수천년 전부터 고대한 참 의인의 시대가 왔느니 운을 잘 타고 났느니 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 동안 소원해 오던 그 소원이 이루어질 날이 가까왔고, 새로운 천년 역사, 만년 역사의 창업이 우리의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이 민족이 반만년 동안 슬픔을 당한 것은 몇억만 년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행운을 만들어 주기 위한 하늘의 섭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들은 지금의 환경을 수습해 가지고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 하늘 앞에 감사하고 목적을 향해 돌진할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무리의 선두에 서야 할 무리가 누구냐 하면 바로 통일의 무리입니다. 그러니 이런 입장에 선 우리들은 강한 자신감을 갖고 금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음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불쌍한 민족이 아니예요. 알겠습니까? 「예」
여러분이 직장에 가서 아무리 야간작업을 하고 힘드는 일에 뼛골이 녹아나더라도, 몸 마음을 다해서 일해야 되겠습니다. 농장에서 땅을 파더라도 외로운 하나님을 위로하겠다는 심정으로 파야 되고, 학교에 가서 책장을 넘기는 데에도 그와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아시아의 동녘에 있는 작은 한반도, 그 중에서도 한민족은 배척받은 민족이요, 쫓김받는 무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쫓김받는 이 무리를 통하여 세계적인 섭리의 주권을 세워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창건하려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민족이 말세적인 환난과 도탄에 빠져 있는 이 세계, 민주와 공산이 서로 맞부딪치는 환경 속에서 제물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공산세계에서도 민주세계에서도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국은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제물이 되어야 하느냐? 죽어 존재가치도 없는 제물이 되어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죽지 않고 부활된 제물로서 `하늘과 땅과 만민아 내 본을 받아라' 할 수 있는 승리의 제물이 되어야 하느냐? 둘 중의 하나, 즉 운명을 결정해야 할 시대가 지금 현시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사명을 못하게 될 때에는 누가 하느냐? 공산당이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산당을 물리치고 우리가 그런 입장에서, 이 세계 앞에서 `우리를 본 받아라'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새로운 전통을 들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런 무리가 통일교회의 무리입니다. 그러면 여자들도 그런 일을 할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만일에 없거들랑 그런 이념을 위해 사는 아들이라도 낳고야 말겠다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자로서 하늘과 땅을 위하여, 세계의 어떠한 여자가 들이지 못한 정성을 들여 하나님이 그러한 아들을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나의 몸을 통하여 그러한 아들을 낳겠다고 정성들이는 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 여자들 하겠어요, 못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저 시집가서 잘살겠다고 밉살스러운 짓을 하는 여자들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집을 가서도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이 세계에 필요한 아들딸을 낳겠다고 정성들일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여자는 대학가에서 꼬리를 치고 다니는 패들이 아닙니다. 어수룩하고 철모르는 가운데서 숨은 실력으로 하나님께 충성을 하는 여자입니다. 그 사람이 쉬는 한숨은 자기가 못 먹어서 쉬는 한숨이 아니요, 자기의 고통 때문에 쉬는 한숨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야 `민족과 세계의 여성을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할 수 있는가'라고 염려하며 쉬는 한숨인 것입니다. 그 한숨은 하나님의 심정의 힘줄에 당기는 한숨인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의 힘줄을 조이게 하는 한숨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아버지여!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는 아들을 낳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해 봤어요? 기도해 보세요. 선생님의 말이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하나님의 심정에 통과될 수 있는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그런 아들딸을 한 번이라도 낳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난 것이 고맙지요? 「예」 그러나 여러분들의 주먹은 독수리의 발톱 같은 주먹이 되어야 합니다. 큰사명을 짊어진 사나이가 되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늘의 공의의 법도에 따라 선의 결정을 지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정비의 책임을 각자가 져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이런 엄청난 포부를 품은 이 사나이는 이 말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누나 형님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했느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영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 땅 위의 인간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으로서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여, 저는 저 깊은 시궁창에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의 참아들이 되겠습니다. 사탄도 공인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어떤 악당의 무리들도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이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해 온 것입니다. 또한 이제까지 인류가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세계의 모든 민족이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좀 나은데 젊은 아주머니들이 말씀을 들어 보겠다며 가까이 와서 갑자기 옷을 만질려고 하고 발을 만지려고 했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입장이 곤란했겠어요? 그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 몰라요.
그러면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이 바라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머니면 어머니에게, 자식이면 자식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선생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자로서 자기 중심한 사탄적인 그런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천리 만리 순례의 길을 떠나도 섭섭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통일의 길을 간 수많은 여성들 중에는 어떤 남자가 본이 되기 위해 그 길을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를 환영하는 여자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남성과 그럴 수 있는 여성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기 전에는 선생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사랑해 달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길을 가야 할 사람이기에 여러분에게 사랑의 전통과 역사를 세워 주고, 하늘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데에는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친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자리에서는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손가락질 합니다. 3대를 못 가서 절단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리는 무서운 자리입니다. 어린아이에게 화약을 맡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한 가지를 말할 때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없어 가지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양심은 못 속이는 거예요. 세계 어디를 가든지 공의의 법도 앞에서 감당할 수 있는 권위와 그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약속을 못하는 것이 천륜의 이치요, 인륜 도덕의 이치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계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여러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밥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잠자는 것도 다 잊어버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그랬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스승보다 더 미쳐야 합니다. `우리 엄마 통일교회 가더니 귀가 먹었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딸들이 `엄마' 하고 불러도 대답을 못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에 귀가 먹었고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 `미치고 미치고 미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망한다 해도 그 충성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과 통일교회를 위해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하려면 눈물없이 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심정을 바로 건드리기만 한다면 십년 이상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을 가진 사나이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라, 미칠듯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지치고 생명이 위협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없는 죽음의 자리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천번 만번 죽겠다고 해야 거기에서 부활의 권능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되어 눈물지을 때 하나님도 눈물지으며 `오냐 오냐, 그럴 수 있는 날을 이루어 주마. 네 소원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날이 올 것이다' 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맨 나중에 자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역사에 있어서 인간이 가져야 할 중심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세계를 사랑했고 인류를 사랑했습니다. 해방 직후에 나를 죄수로 몰아 총살시키려 했던 원수들까지도 사랑했습니다. 그의 자식이 굶고 있을 때 선생님은 양복에서부터 속옷까지 다 팔아 그에게 주고 아무것도 없이 2주일 동안 살아본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입을 것이 없어서 이불을 쓰고 방에서 나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참된 이념의 길은 누구도 가야 합니다. 망해야 하는 죄인도 가야 합니다. 때문에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도 해방시켜 이 길을 가게 해야 합니다. 이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통일의 무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는 사명을 진 책임자로서 이를 망각하지 않고 책임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신임했다면 그것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여러분을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눈을 뜨면 선생님의 아들딸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을 위해서 눈물어린 기도를 해본 일이 없습니다. 눈물을 흘려도 여러분을 위해서 흘렸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여러분을 위해 눈물 흘리며 살아 온 기반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역사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에 있어서 중요한 싸움의 경계선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통일교회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에 부풀어 올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랑의 눈물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 심정과 공적의 터전을 닦으며 나간다 할진대, 통일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발전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활동을 안해도 영계에서 통일교회를 증거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에 널려 있는 영통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다 알지요?
아버지가 활동하다 죽었으면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책임을 여러분들이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것을 본받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내아버지 어머니보다도, 내 누나 형님보다도, 내 동생보다도 더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더 귀한 것을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몽땅 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나를 위하려 하고, 나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던 것만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 그랬으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최악의 죽음길을 가더라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망하는 것이니 잊지 말고 가야 합니다.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언제나 지니고 가야 합니다. 이렇게 천상세계에까지 가야 할 복귀노정이 남아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은 죽어서도 가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고생을 하라고 한다면 70년 내지 80년 걸리는 고생을 하겠어요, 억만년 걸리는 고생을 하겠어요? 지혜있는 사람이라면 70년 내지 80년이 걸리는 고생을 하겠다고 답변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이 가지 않으면 내가 발로 차서라도 쫓아낼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좋습니까? 「예」
이 길은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이요,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이요,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신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계신 줄로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쁘긴 뭐가 기쁩니까? 자식된 인간들이 전부 이렇게 되었는데 기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한국 민족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외국에 나가서 대한민국 동포들이 외국인들에게 천대받고 유린받는 사실을 보게 되면 가슴이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탄 앞에서 인류가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겠어요?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포기해야 합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오!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오! 영광의 하나님,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비참한 하나님입니다. 구속 가운데 있는 하나님입니다. 아들을 잘 낳아 가지고 해방받아야 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운명은 처량한 운명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도가 바로 잡히지 않게 되니 이 땅 위에 이상세계가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역사가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이 사명을 해야겠어요, 안 해야겠어요? 「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다 했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남아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몇 해 동안 여러분을 안 내보내고 직접 지도했기 때문에 만약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대로 주저앉게 되어 죽어버릴 것입니다. 어때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또 직접 지도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요? 선생님은 이제 대한민국과 여러분에 대해서 책임을 다했습니다. 이번에 외국에 가서도 선생님은 할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여러 나라의 언어를 한 일년쯤 공부했으면 영어든 뭐든 문제없이 할 텐데 세계를 주름 잡으려니 내가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적인 선생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대한민국에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 나라를 해방시키려면 그전에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하고 선생님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선생님을 해방시켜 줄 거예요, 안 시켜 줄 거예요? 어디 해방시켜 주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고맙지 않은 고마움이구만! (웃음) 그러면, 어떻게 해방시켜 주겠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법으로 해방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배가 9시에 시작한다면 말이야 선생님이 아까도 한 번 나왔다 들어갔지만 교회 오는 모습이 꼭 뭘 구경삼아 오는 것 같아요. 여기의 3분의 1밖에 오지 않았어요. 나머지는 다 나중에 온 패들이야. 그래 가지고 선생님을 해방시켜 줄 것 같아요? 같애요, 안 같애요?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대답을 해요.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습니다」 또, 여러분이 먹을 것 다 먹고 편안히 잠을 자면서 될 것 같아요? 될 것 같아요? 대답을 못 하누만.
내가 요전에 파마도 하고 옷도 사 입으라고 했더니 여기에 온 여자들 전부 파마도 하고 옷도 새로 사입고 왔는데, 파마 귀신, 옷 귀신들이 되려고 그래요? 그 머리 전부다 깎아야 되겠어요. 내가 깎으라고 하면 깍아야지 안 깎으면 안 됩니다. 그래, 머리 깎을 거예요. 안 깎을 거예요? 깍을 사람 손들어 보세요. (웃음) 내려요. 머리 깎아서 이 민족, 이 나라, 세계를 살릴 수 있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깎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미치광이 노릇도 다 해봤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선생님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에 갈 때는 해방되어 가지고 갈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여러분이 통일교회 주인이니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다 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갈 준비를 위해 보따리를 싸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부를 노래 하나 들려주고 가겠습니다. 노래는 ‘통일의 노래’입니다. 통일시키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을 하려면 기초가 있어야 되는데 그 기초가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노래 한번 해봅시다.
여러분은 앞으로 우리의 일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이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알겠죠? 「예」 선생님이 없는 동안에 각자가 어렵더라도 이 노래를 중심삼고 참아 나가길 바랍니다. 이것은 민족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의 전식구가 성지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비가 오는 날에는 본부교회에서,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성지에서 기도하길 바랍니다. 기도 내용은 통일에 대한 내용을 중심삼고 기도하십시오. 남한과 북한으로 분리되어 있고, 민주와 공산으로 분리되어 있고, 하늘과 땅으로 분리되어 있으니, 그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나라의 애국자, 그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세계의 위인, 그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늘의 충성인이 되겠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요구하니 여러분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충과 효는 어려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통일은 높은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맨 밑창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이 교차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이 어디에서 결합되었는가? 죽음이 교차되는 십자가 도상에서 결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분은 통일을 중심삼은 기도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먼저 삼천만 민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통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내 아들 딸만이 아니라 삼천만 민족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도(道)뿐만 아니라 나라를 사랑해야 되겠고, 수많은 면(面)과 이북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통일시키겠다는 주체의식을 가지고 성지기도를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종교를 통일하고, 종교를 중심삼고 대한민국 남한을 통일하고, 남한을 중심삼고 이북을 통일하고, 통일된 이 나라를 중심삼고 일본을 통일시키고, 일본을 중심삼고 미국을 통일시키고, 미국을 중심삼고 독일을 통일시켜야겠습니다. 이 4개 국가만 통일시키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제부터 10년 후, 1980년대에 들어가서는 어떠한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이냐? 선생님이 세계를 주관하는 기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기에 도달할 것이냐? 여러분이 꿈도 꿀 수 없는 혈투전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통일교인의 칭호를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탕감조건에 박자라도 맞춰 주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통일의 노래’를 부르고 성지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내 마음과 몸이 갈라졌으니 통일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굴복시키는 통일의 마음, 통일의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 자체를 찾기 위해서는 마음 앞에 절대 굴복할 수 있는 몸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남자가 가정을 이루어 한 가정의 남편이 되면 그 남편을 중심삼은 하나의 통일적인 이념권내로 아내를 완전히 통일시켜야 합니다. 아내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남자의 체면과 위신까지도 상실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시켜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 모체가 되고 이 사회를 통일하는 누룩이 되어서 이 세계를 통일시켜야 되겠습니다.
사람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고, 가정도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재미있고 화목하게 의기양양하여 희망에 벅차 있는 가정이 되어 이웃이나 동네 전체가 그 가정을 중심하고 찾아들 수 있고 인연이 되어 들어올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 그 가정의 남편이 나가는 직장이면 그 직장을 중심삼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그런 환경에서 하나의 제도화된 사회를 만들어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국가를 중심삼아서 남한 땅뿐만 아니라 북한까지도 통일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기르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들이 물질적인 힘으로 밀고 나오기 전에 우리가 그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때로는 금식도 해야 하고, 먹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준비도 해야 합니다. 이런 엄청난 사명을 통일교회 신도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주권자들이나 지도자들은 자기 스스로의 행복과 출세를 위해 도취되어 왔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아래 있으면서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앞으로 닥쳐올 국가의 운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스로 다짐하고 스스로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민족의 배후에서부터, 이 민족의 밑창에서부터 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거름이 되어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을 준비하는 단체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더라도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며,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지루한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기 때문에, 반드시 소망의 한 때는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 민족은 세계가 머리를 숙일 수 있고 세계가 우러러 볼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단합하여 이북 땅을 해방시켜야 되겠습니다. 더구나 그곳은 선생님이 태어난 고향 땅이기 때문에 그 본향 땅을 복귀해야 합니다. 갖은 고생과 고역, 갖은 고문과 핍박, 갖은 치욕을 주었던 원수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을 복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를 위해서는 원수를 갚는 것이요, 한 나라의 애국자도 그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죽음길을 가리지 않고 나서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를 갚는 데 있어서 우리 한 몸이 제물된다 한들 그것이 어찌 무섭겠습니까? 삼팔선을 넘어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를 해야 된다면 감옥살이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국가를 위해 이북에 첩보대도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때는 통일교회 젊은이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죽음길로 내몰 것입니다. 애처롭고 원통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도 이북 땅에 가서 그런 걸음을 걸었기 때문에, 이런 전통적인 사상을 본받아야 할 여러분은 아무 곳을 가더라도 그런 책임과 사명을 짊어졌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뼈와 살이 있어 느낄 수 있다면 그런 의식을 제일 의식으로서 느끼지 않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스승이 바라는 소원과 소망권내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에 힘을 다하고, 손에 손길을 다하고, 전력을 쏟아서 삼팔선에 그 어떤 요새가 있다 하더라도 통일신도들은 통일의 이념을 병기삼아 그 요새가 무너질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북을 노루새끼 몰듯 토끼새끼 몰아치듯이 몽땅 몰아치울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혁명을 준비할 때, 야당패들이 우왕좌왕할 때 선생님은 빨리빨리 해치우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오늘날 민방위의 날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빨리빨리 하라고 기도했습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총공장을 만든 것입니다. 국가가 바쁠 때에, 무엇이든지 급속한 시일 내에 보충할 수 있는 한 때가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종교는 사회를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고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갖지 못하는 종교는 망합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에 몸담고 있는 여러분들은 오늘날의 문화세계와 지식과 과학이 발달된 현 사회제도를 전부 다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모든 것의 최첨단을 걸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름으로 세계적인 유행도 시켰으면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 지금까지는 머리를 깎았으나 앞으로는 깎지 마십시오. 머리카락을 간수하여 발끝까지 자라게 하고, 옷도 하루는 양단 치마저고리와 능라 등으로 칭칭 감고 시간마다 서울 명동을 일주하라는 것입니다. 돈도 몇천만 원씩 주겠으니 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부 모양을 차리게 하여 바람도 우리가 일으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은 세상 바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 민족을 이러한 바람으로 몰아넣어서 새로운 길로 새로운 나라로 끌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망하는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하여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을 고생시켰지만 앞으로는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오랫 동안 고생시키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생하는 것에 대해 십배 백배 천배 이상의 대가를 치르고도 남을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고생시켜도 나는 절대로 걱정 안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복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보다 복이 많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혼자서 싸웠고 지금도 혼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복이 많소, 적소? 「많습니다」 그러면 그 복을 좀 나누어 달라구요.
선생님은 이북 땅에 들어가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원수에게 몰려 흥남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서 처참한 고문을 받고, 비료공장에 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중노동도 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는다. 나의 명령에 따라, 나의 불붙은 이 심정을 인계 받은 모든 젊은이들이 불타는 가슴으로 폭탄을 안고 이북 땅을 향하여 총진군하는 한 때가 올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혼자 지냈던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것을 철석같이 믿어야 됩니다.
이제 여름이 오면 북한의 간첩들이 삼팔선을 넘나들 때가 올 것입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반공정신을 뿌리 박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통일교인들이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반공연맹에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승공연합이 선두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을 메고 나갈 수 있는 부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생각이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우리는 움직이다가 마는 조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결심을 단단히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국민운동 이념이 만고불변의 터전이 되게 해야 하고, 하나의 사상적인 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제2의 경제부흥을 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할 것입니까?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어떤 정부 인사를 만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지금 만났지만 당신에게 손해 되고 또 당신의 위신과 체면이 상실될 수 있는 입장에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나갔으니 내 말을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박대통령을 만나자고 여러 번 요구했지만 못 만났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많은 수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미국에 가면 존슨 대통령을 만날 수 있고 일본에 가면 일본 수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날 필요가 있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반을 다 닦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과거의 통일교회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달나라에 가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이 문제입니까? 영계에는 순식간에 몇 번이고 갔다왔다 하는데…. 그러면 누가 앞섰습니까? 우리가 앞섰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에서 제일이 안 되면 밤잠을 못 잡니다. 살지 못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밥을 먹어도 이런 입장에서 먹습니다. 살이 좀 쪄서 뚱뚱하지만 이제 배가 나오려고 해서 큰일이에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이 다음에 배가 나온다 해도 용서하세요. 선생님이 뭐 도둑질해서 먹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왕 배가 나온다 하면 선생님이 세계에서 제일로 나와 봤으면 좋겠어요. (웃음)
앞으로 여러분은 통일을 중심삼고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또 성지를 중심삼고 기도를 하는데,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시간 나는 대로 성지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새벽에 못가거든 낮이나 저녁에라도 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초창기에 이 성지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제까지 성지를 책정하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책정하기까지 얼마나 수고의 길을 걸어왔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것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인 1968년 정월 초하루가 올 때까지 얼마나 수고했는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불쌍했고, 선생님도 불쌍했고, 통일교인들도 불쌍했습니다. 이제 통일의 기원을 온 세계에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여러분들에게 있으니, 비록 딱딱한 돌 위에 앉아서 기도하지만 돌이 눈물짓고 산천이 머리 숙일 수 있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따라서 내가 이번 순회할 때 여러분들 점심을 먹지 못하게 해야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성지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의 노래’를 열심히 불러 그 마음이 민족감정과 혹은 인류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통일적인 감정을 갖게 하고, 만민이 본받을 수 있게 성지를 중심삼고 정성껏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돌아올 때에는 수많은 민족에게 통일의 기원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책임을 하고 돌아오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두 문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 여러분은 전부가 일체화되어 2월부터 총진군해야겠습니다. 여기에 가담하겠다는 사람 두 손 들어 보세요. 이것은 선생님 앞에 손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손 든 것입니다. 이것은 망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요, 손해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귀한 시간을 여기에 소모시키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망하지 않은 것같이 여러분도 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할 얘기가 많습니다. 1969년 1월 26일 일요일에 세계 순회를 떠나기 전에 전하는 말씀으로서 할 말이 많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통일의 노래’와 통일을 위한 성지기도입니다. 이것은 전체동원으로 누구나 다 해야 합니다. 대학생까지도 다 해야 됩니다. 전체동원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물론 통일교회 교인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각오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통일 문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정성들이는 마음으로 성지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이것을 중심으로 또 지시하는 것은 전면적 진격에 대비하여 전체적으로 수련회를 실시하고 전도를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상태로 그냥 가다가는 망합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이 가야 할 노정입니다.
야곱노정은 모세노정의 전형이요, 모세노정은 예수님 노정의 전형이며, 예수님노정은 재림주님이 가야 할 전형노정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님노정은 누가 본받아서 가야 할 노정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가야 할 노정입니다. 재림주님이 올 때까지 개인적인 야곱노정은 상징적이요, 민족적인 모세노정은 형상적이요, 세계적인 예수님노정은 실체적입니다. 그렇지만 재림주님이 실체적으로 탕감하면 여러분은 형상적으로 탕감해야 되고, 여러분의 자손들은 상징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한 바퀴 돌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상징적, 형상적, 실체적으로 넘어가서 다시 실체적, 형상적, 상징적으로 되돌아 올 때, 비로소 세계는 평화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세계적인 실체적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일대일로 싸워 왔습니다. 세계적인 실체적 탕감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일대(一代)에 3개국의 핍박을 받아야 하고 3개국에서 감옥살이를 해야 됩니다. 또, 국내적으로도 3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유당, 민주당, 공화당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중심한 10개국 가운데서 240만에서 360만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그런 일을 다 거쳐 온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의 문씨 가문이 4대 이상 핍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의 과정 4차례의 고빗길에서 문씨들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형제지간인 한 혈족이 분립되는 역사를 거쳐 왔기 때문에 이 모든 전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대를 세우지 않고서는 복귀가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수학적이요, 우리 원리가 얼마나 엄청난 내용입니까?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 친척과 부모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실체적으로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조건만 세우면 곧 탕감복귀의 혜택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옛날의 상징적 탕감복귀시대에는 중심인물이 탕감조건을 세웠더라도 같이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할 때는 그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때문에 그것을 다시 상징적으로 찾아 세우고 형상적으로 찾아 세운 후 실체시대까지 이끌어 나와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 6천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도중에 그것이 몇 번이나 뒤집혔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실체탕감노정이 벌어진 후에는 여러분들이 세운 탕감조건은 영원히 여러분들 것이 됩니다. 알겠어요?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재산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왔다 갔던 사람들은 영원한 재산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쌓아 놓았다 하더라도 모두 무너지고 남아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사탄의 것으로 되어 버렸지만, 지금 여러분이 수고하여 탕감조건으로 세워지게 되면 그것은 여러분의 재산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전체적인 탕감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울타리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손을 중심삼고 상징적 탕감까지 3대에 걸쳐 벗겨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1대요, 여러분을 중심으로 2대요, 나아가서 축복받은 자녀들까지 3대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에서 지금까지 소문 내놓고 합동결혼식을 해 나온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방에서 세계적인 사탄에게 공격받으며 이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생님이 찾아가는 승리의 울타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부모 형제와 친척을 다 버리고 원수를 사랑해야 했지만, 이제 여러분은 이 보호권내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 처자들을 전도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 온 것입니다. 전에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뜻을 알지 못해서 반대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지나갔으니 반대했던 그 부모 형제를 다시 구원해서 천국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 주는 것이 자식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더 복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복받았다는 거예요.
조상이 수고하면 그 후손이 복받게 되어 있습니다. 스승이 자기가 열심히 공부한 모든 지식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단시일내에 상속해 주는 것과 같이, 여러분은 선생님의 터전 위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개인적인 7년대환난, 가정적인 7년대환난, 국가적인 7년대환난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개인적인 7년대환난, 가정적인 7년대환난, 국가적인 7년대환난을 거쳐야 선생님이 기독교 앞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행복시대가 오는데, 이것을 출발하는 것이 바로 제2차 7년노정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 7년은 인간에게서 타락한 혈통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올 때는 무엇을 가지고 오느냐 하면 7년환난 기간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전세계를 대표해서 환난 기간을 넘으면 전세계가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전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이 고개를 다 넘고 승리의 터전을 중심삼고 제2차 7년노정을 향해서 출발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선생님에게 제일 억울한 것이 있다면 부모 형제에게 이 원리를 가르쳐 주어 눈물을 흘리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한입니다.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머니 아버지 누나 형님을 전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 지옥가게 되어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자리에 밧줄이든, 자기의 옷이든, 자기의 팔다리든 아무것으로라도 이리저리 얽어 매서라도 그들을 지옥에서 끌어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린 이상으로 눈물을 흘려야 되고, 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던 이상으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선생님을 보고 싶은 이상으로 민족과 종족과 친족과 부모를 그리워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제 선생님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책임완수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책임을 못 집니다. 여러분이 죽어 보면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가 그른가를 당장에 알 것입니다. 선생님은 옳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천명에 의해서 어떠한 일이라도 다 실천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밥을 다 해놓았으니 먹겠으면 먹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픈데도 안 먹겠다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알고도 못하는 것은 선생님이 책임 못 집니다. 축복가정들도 알고도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책임 못 집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책임입니다. 여러분들은 5퍼센트의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3가정을 축복해 주었고, 3가정을 중심한 12가정을 중심으로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세계사적인 투쟁을 거쳐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3제자와 12제자, 70문도, 120문도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승리적 책임자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아들의 입장에서 책임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을 전도해서 그들을 중심하고 열두 사람을 전도한 다음 그들 모두를 축복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을 중심으로 70문도를 전도해서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열두 사람은 형제를 말하며, 70문도는 종족을 말합니다. 그리고 열두 사람은 지파편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형제를 중심삼고 출발했던 동기를 갖춰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이 없어 가지고는 민족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종족적인 형(型)이 4대 권내에 이루어진 것이 70문도입니다. 그래서 야곱도 열두 아들을 중심하고 70여 가족이 애급 땅에 들어갔고, 모세도 12지파를 중심으로 70장로를 세워서 가나안을 향했고, 예수님도 12사도를 중심으로 70문도를 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는 세계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120문도는 세계의 주권자 형(型)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 총회에 124개 국가가 가입되는 날에는 이 땅 위에 새로운 종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1968년까지 123수가 지나가는 때였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에서 행하는 124쌍의 축복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맞아 일치되지 않으면 이 세계가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땅 위에서 그것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21년노정을 통하여 넘은 환난과 핍박과 죽음의 고갯길을 7년노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원한과 슬픔의 길이 아닌 환영의 길이요, 기쁨의 길인 것입니다. 이런 7년노정의 길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이 길을 못 가서 망해도 선생님은 모릅니다. 이 길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야 하는데 이 길을 못 가면 몽땅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이 1차 2차 3차가 지나 끝나게 될 때에는 세계적인 지파 편성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 만일 여러분이 책임 못하게 되면 지파 편성에 못 들어갑니다. 못 들어가면 영계에 중간영계가 있는 것처럼 중간패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지 못하고 보따리 싸서 이방으로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책임을 다해서 한국으로 오게 될 때 여러분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한국을 등지고 모두 외국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고 안 가고는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진짜가 아니거든 하지 말고 진짜거든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헛것을 중심삼아 지금까지 이렇게 수십 년 고생한 못난 사나이가 아닙니다. 구름같이 바람부는 대로 몰려다니면서도 이 일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애써 이런 일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1967년 말까지 이것을 완성시켜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1968년도를 중심으로 제2차 7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갔으니 아들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되는데, 아버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넌 후에 자식들 보고 `너희들은 거기 있어도 된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세 제자처럼 잠만 자게 되면 다 망한다. 강을 건너라'고 할 것입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허우적거리든가 배를 타든가 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건너지 못합니다. 이것은 7년노정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이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은 망합니다. 생사의 결단과 흥망성쇠의 길이 여기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선생님이 성진 엄마와 성진이를 떠나던 때와 같이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성진이를 사랑하지 못하고 가정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7년노정을 출발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여러분의 가정을 떠나야 합니다. 선생님이 가던 길을 여러분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았더라도 그 자식을 사랑하지 못하는 심정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 백성들이 천국건설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서글픈 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천국건설의 탕감노정으로 이것이 영원히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7년노정의 책임을 완수할 때까지 축복가정들은 자식을 사랑했다가는 걸리게 됩니다. 선생님이 하라면 해야 합니다.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처자보다도 가정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하고 가정의 부모로서 탕감조건을 넘어서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자식을 축복받게 해서 자식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중심하고 하나 된 기준 위에서만 사위기대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서는 이것이 안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선생님이 지금까지 끌고 나왔으니 지금 제대로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하늘의 족속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을 축복해 가지고 선생님 가정 대신 끌고 나왔으나, 이제는 여러분 스스로가 책임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종적 기대에 있어서 소생, 장성, 완성과 같은 구약시대, 신약 시대, 성약시대 이 3시대를 대표해서 세계에 원수들이 발판을 이룬 것을 깨고 세계적인 승리의 권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나온 것이며, 성지를 택정하고 나서 하나님의 날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중심하고 밀어 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념을 가지고 원수와 대결하여 싸우게 될 때는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싶어서 몰려 들어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반대받더라도 말씀을 중심삼고 죽기를 각오하고 간다면 보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친척에게 천대받고 종족과 민족에게 배반당하던 그 모든 것을 탕감하게 되고, 또 여러분의 조상들이 과거에 잘못했던 것을 용서받아서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선생님이 정상적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환영받지 못하였던 것을 여러분을 통하여 탕감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사명이 제2차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일로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분은 밤이나 낮이나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먹지 않고 밤을 새워 가면서 여러분을 지도해 왔습니다. 1960년도부터 여러분들을 키우기 위해 밤을 새웠습니다. 두 시, 세 시, 네 시가 보통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 잠을 자고, 배불리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 책임분담을 언제 다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하던 것처럼 여러분도 가정에 돌아가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안하게 되면 하늘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여러분은 선생님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해 나왔기 때문에 이것이 습관적인 관념이 되어 따라만 가자고 하는데 따라만 가서는 안 됩니다. 따라만 가는 것은 부모가 농사지어 놓은 것을 자식이 축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축내기만 하면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 컸으면 부모 대신 전도도 하고 개척도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예」 그러기에 여러분이 제2차 7년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 들어가는 비결이 무엇이냐? 자기 혼자만 잘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한은 세 제자가 하나되지 못한 것이요, 열두 제자가 하나되지 못한 것이요, 70문도가 하나되지 못한 것이요, 120문도가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신랑으로 온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고 나서 120문도를 축복해 주어서 예수님을 중심삼은 족속을 편성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못 하고 죽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예수님의 원한이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 원한이 곧 하나님의 원한이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원을 풀어 드리는 것이요, 예수님의 원을 풀어 드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한이 남게 되면, 그것이 곧 여러분의 한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그 한은 종족적으로 내 어머니 아버지를 전도하지 못했던 것이요, 제일 가까운 동지들을 전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대신 통일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는 날에는 기독교의 사명은 다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떠나 버리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송장만 남게 되어 그것을 처치만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기반을 닦아 놓은 그 운세, 즉 천운을 타고 득세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서 환영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못 하겠다는 사람들은 깨깨(완전히) 망해도 나는 모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는데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죽을 때 필시 선생님을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부르더라도 나는 책임 못 집니다. 나도 공법에 매여 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이 원칙적인 기준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책임하지 않고 선생님이 변덕이 많다고 변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비결이 무엇이냐? 천국은 개인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족속을 거느리고 들어가야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 많은 족속을 가졌다는 것은 복받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 아들딸이 많고 재물이 풍성하면 복받은 가정이라고 그러지요? 이처럼 복받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개인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천국은 개인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지옥 가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자식이 천국에 가 있다고 좋아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아들은 지옥에 가 있을 경우 아버지가 천국에 있다고 좋아하겠습니까? 천국은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종족 편성, 민족 편성, 국가 편성을 하여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 목적을 재현시켜서 이루어 놓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제2차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21년 동안 갔는데 여러분이 7년을 못 가겠습니까?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발도 들여놓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피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7년노정을 가라고 했을 때 `선생님, 할 수만 있으면 7년노정은 가지 말게 하소서. 탕감복귀니 하는 것이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선생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아버지 뜻대로 해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를 중심하고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고생만 하니 나 죽겠소'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에서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친척과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와 세계를 사랑하여 그 가치를 인정 받으면 복받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못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합니다. 늙은이도 해야 합니다. 늙은 사람들은 자기의 아들딸을 전도하여 대신 책임하게 해서 탕감형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내가 나중에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늙었다고 놀 수 없는 것입니다. 죽는 날이 가까워오느니만큼 엎드려 기도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선생님 앞에 말 못할 것입니다. `네가 사랑하고, 네가 받들고, 네가 섬겨 나오던 선생님은 이렇게 살아 나왔다. 뜻 하나를 중심하고 이런 고생 해 왔는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이럴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공법은 용서가 없습니다. 거기에 걸려서 선생님이 50평생 고생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습니다. 현재의 상태로는 다 망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갈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길 떠나고 없는 동안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전부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전부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축복가정들도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70명에서 120명 사이의 인원을 중심으로 일주일씩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수련 받으면서 말씀을 중심삼고 옛날 자기가 뜻길을 출발하던 때에 뜻을 그리워하고 선생님을 따르던 간절한 마음을 회생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문을 열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안 보고는 못 살고, 안 위하고는 못 살아야 합니다. 식구들을 보고 싶어해야 하고,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어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재차 갖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열쇠를 잃게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재현시킬 것인가? 말씀을 중심삼고 옛날 처참하게 싸워 나왔던 모든 사연 사연들을 회상하며 그렇게 간절했던 그때의 마음을 재차 불살라 뜨겁게 되지 않으면 이 7년노정의 목표를 돌파할 수 없습니다. 식구들이 그러한 심정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수련을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자들은 남편을 모셔야 하기 때문에 수련을 못 받는다거나, 남자들은 직장이 있으니 안 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일주일씩만 시간을 내서 수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목사! 「예」 내가 오늘 조직표를 짜주고 가려 했는데 이 목사가 계획을 짜 가지고 해보라구요. 다른 사람들 요구대로 하지 말고 여기 명단이 있으니 순서대로 수련을 받게 하세요. 선생님이 없는 동안 여러분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믿을 만한 사람은 믿겠지만 그 외 사람은 못 믿겠어요.
아직까지 탕감복귀를 못 했는데 사탄세계에서 사탄의 혈통적인 인연으로 결혼해 가지고 어떻게 서로서로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까? 축복가정들이 재미있게 잘 살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선생님이 욕먹는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시켜서 그렇게 삽니까? 서로 잘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오누이가 타락했기 때문에, 부부는 오누이같이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서 탕감의 고비를 넘고 사탄세계를 넘어서 해방권내에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재봉춘(再逢春)하지 않으면 그 부부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종교를 믿는 부부들은 모두 영계에 갈 때 서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땅 위에서도 갈라지지 않고 영원한 세계에서도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선생님이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제 지금까지 7년노정 중에 수고한 40여 기성가정을 축복해 주려고 합니다. 선생님을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7년노정을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 「가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 명령에 의해서 갔지만 앞으로는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라 이겁니다. 이제부터는 누가 전도 나갔나 안 나갔나 간섭 안 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공부 시간에 선생님 말 안 듣다가 낙제하는 학생들이 학년을 낮추어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못 하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을 안 축복가정들은 보따리 싸 가지고 생이별하는 것을 또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7년노정 중에 협조한 것은 선생님 앞에 정성들이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하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여러분을 전도해 가지고 해 나온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가정 종족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기준을 선생님이 이루어 놓았지만 여러분이 협조함으로써 국가 기준, 세계 기준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따라 나왔다는 조건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기준을 실제로 세우기 위해서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그것도 못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7년 동안 협조했으니까 7년노정을 가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수가 탕감노정에 동원된 것이 아닙니다. 한 200명밖에 안 됩니다. 36가정, 72가정, 120가정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고생하고 욕먹고 수고한 혜택 때문에 작년 2월에 합동결혼식(436쌍)을 할 수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수고한 사람을 선생님이 책임지고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 축복이라는 것이 껄렁껄렁한 것인 줄 알았습니까?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축복해 주어도 2차 7년노정 기간에 해주는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 권내에서 수고한 사람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를 할 때는 지금까지 우리가 하던 기존의 수련회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6시에 기상하여 식사하고 운동까지 다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1960년 전까지 믿음의 아들딸을 키우기 위해 밥 먹을 것을 잊어버리고, 옷 입을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고 체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된 식구들은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매를 맞고 도망 다니면서 혹은 담을 넘어서 통일교회 오던 일이 생각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온갖 정성을 들이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전부 잊어버리고 믿음의 아들딸을 자기의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제2차 7년노정을 맞아야 됩니다.
그때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생활방식대로 하면 하늘이 역사해 줄 것입니다. 한번 오면 그냥 갈 수 없고, 만나서 말씀 듣게 되면 밤이 새도록 듣지 않을 수 없었던 때처럼…. 선생님이 7년노정을 출발하기 전에 정성들여 여러분을 키우던 것같이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역사하여 일체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으로 여러분 자체가 정성들여 가지고 선생님과 같은 심정으로 나가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선생님이 승리하던 그 실적의 기반이 여러분의 배후에 연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선생님이 말한 것이 가짜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초민족적입니다. 자기 친척을 전도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거지가 찾아오더라도 천대해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처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옷을 못 입고, 꿰맨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옷 사 입을 돈을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식으로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옷 한 벌 못 사 드렸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부모님을 뵙겠습니까?
먹지를 못하여 얼굴이 해쓱해져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먹을 것이 있어도 목이 메어 먹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도 그가 생각나서 목이 매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것이 있으면 목이 메어 못 먹고 두었다가 그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든지 아무리 못 생겼어도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감사하여 백배 사례하는 일도 했습니다. 또 선생님은 세살 난 어린아이에게도 경배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데 천지 가운데에서 오직 너 하나만은 나를 반겨 주는구나' 하며 그 아이에게 큰절을 하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어떠한 사람이 찾아오거든 천대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형님이요, 누나요. 자기의 친척 중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을 대할 때 통곡을 하면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로써 동정해 주고 눈물로써 인도해 주고, 옷을 갈아 입혀서 안식할 수 있는 터전으로 안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 형제 친척의 사이가 아닙니까? 이러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만약 좋은 옷이 있거든 다 팔아 버리고 제일 나쁜 옷을 입는 그런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라는 것입니다.
좋은 귀물을 아들딸 시집 장가 보내고 공부시키기 위해 파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들을 위해 그것을 다 팔아 치우라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팔 수 있는 것이 없어 가지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지 못하거들랑 목을 안고 통곡하며 허덕이는 안타까운 부모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 누워 있으면 돈이 없어 약을 먹이지 못하여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면서, 너를 이 지경에 몰아넣은 것은 내가 못나서라는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의 사연이 전도된 사람들과 여러분의 심정에 일치될 때, 거기에는 꽃이 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늘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한 것은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서, 땅을 위하여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가르쳐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체험하여 그 기반 위에서 행동하면 선생님이 가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을 갔지만 여러분은 21년이 아니라 7개월도 안 걸립니다. 7개월도 안 가서 이것을 성취할 수 있는 복된 환경에 있으니 이런 환경에서 책임 못 하게 되면 선생님도 여러분을 책임 못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천국은 이렇게 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 다음에는 우리의 자세와 내재적 체험, 즉 조금 전에 말한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되어야 합니다. 부자의 인연을 찾아 세우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부모의 심정과 자녀의 심정이 연결되지 않으면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안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써야 됩니다. 종살이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철이 들 때까지 기르려면 3년 동안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가며 무엇이든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똥 맛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버틸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든지 자기의 몸과 같이 씻어 주고 입혀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의 심정, 부모의 심정으로 이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을때 내적 체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세계를 위하여 눈물 지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위로의 뜻을 표할 수 있으므로 내적 체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떠나서는 절대로 내적 체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다음에는 통일교회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합니다. 통일교회가 진짜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엄청난 사명과 내용을 진짜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의 기준과, 통일교회가 갖고 있는 기준과 같으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는 다 껄렁껄렁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은 가다 말고 지쳐서 잎이 말라 열매도 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과 같은 통일교회였습니다. 통일교회를 재인식하려면 말세에 대한 재인식과 실체 선생님에 대한 재인식,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재인식, 현세에 대한 재인식을 해야 됩니다. 다시 분석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움직인 것은 통일교회의 움직임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핍박받으면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갖고 신앙생활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존재해 나오던 통일교회의 중심내용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대한 재인식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내재적 관계에 의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교회는 말로만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나와 직접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교인들도 그래야 합니다. 그런 내재적 입장에서 일치된 그 형제를 하나님의 몸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지체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교회가 되고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 위주로 자기에게 편안한 것을 위주로 한 교회와 교인이 되면 안됩니다. 자기가 좋은 자리에 있으면 형제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않겠다는 사람은 벌받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식구가 식구를 보게 될 때에 얼굴만 보고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자기 형제가 수치스런 일로 집안을 망신시키게 될 때, 집안 식구는 그것으로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파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형제의 수치를 내가 가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실감하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형제의 감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여러분에게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서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좋은데 누구는 보기 싫다고 하면 벌받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형제의 관계에 있어서 가인적 존재입니다. 동생이 사랑받는 것을 시기하던 가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인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흠이 있으면 서로 서로 덮어 가면서 일해야 합니다. 형의 입장에서 동생을 권고하고, 동생은 형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일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본이 되는 식구입니다.
선생님이 없을 때 여러분끼리 서로 흉을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안 다음 내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고, 형제와의 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가려서 자기에게 맞는 주체적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갖지 못한 사람은 7년노정을 출발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 못합니다. 알겠어요?
다음에는 자기에 대한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지만 그 사랑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됐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형제와 하나되었다면 서로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게 되면 형제들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따르고 위해 준다고 할 때는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야, 왜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만 사랑하고 따르냐'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환경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되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과 교회에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권내에서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도 자신을 중심한 사랑이 아닙니다.
복귀노정에서 이런 환경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타락한 이 세상을 에덴 동산으로 복귀할 수 없고, 해원성사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음은 가정을 중심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축복가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가정에 대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천주를 사랑하고, 천주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에 대한 사랑, 가정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사랑, 세계에 대한 사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지구상에 있어서 제일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이 바로 공산주의의 출현입니다. 이것이 왜 큰 사건이냐? 엄연히 살아 있는 하나님을 죽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는 하나님께서 엄연히 살아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 중에서 제일 큰 죄가 무엇이냐 하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그 사람을 죽었다고 하면 원수 중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가 살아 있는데도 부모가 죽었다고 하면 그 이상 불효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 이상의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수의 주인공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산주의에 대한 모든 것을 타파해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승공에 대한 훈련과 무장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번 수련회 때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반공강의도 해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반공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전부 반공투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반공강의를 할 수 있겠지만 일반 식구들은 반공강의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기라도 해야 합니다.
만약 공산당이 쳐들어온다면 통일교인들을 제일 먼저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긴박한 입장에 있는 우리들은 반공강의를 하면서 공산주의가 왜 나쁜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상 무장과 실제의 행동면에 있어서 선두에 서서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이번 기간에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9월까지 우리 활동에 상당히 지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준비해야 합니다. 정성어린 성지기도로 자녀들과 일치되어 부흥회를 하면서 통일교회 전체가 하나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올 때까지 열심히 뛰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실천해 주기를 부탁하는 거예요.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는 여기에 식구가 배 이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전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순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첫날 예배를 선생님이 인도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흘러가는 역사과정에 무력한 존재가 되어 알지도 못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영원히 죽어버리는 모습이 될까 두렵습니다. 저희들이 그 속에 사체가 되어 흘러가는 모습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그 물결을 거슬러올라가는 생명체가 되어야겠사오니, 억세게 몰아치는 세파 가운데에서도 자주성을 잃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다리를 놓아서라도 아버지 앞으로 건너가야 되겠사옵니다. 흘러가지 말고 거슬러 올라가는 무리가 되게 인도하시옵소서.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통일의 무리들의 사명을 강조하였사오니,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줄 믿사오니,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이제 100일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오니, 이들이 스승을 보고 싶어 하거든 이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스승을 위하여 정성들이거든 백 배 천 배 복을 주옵소서.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스승을 위해 기도하고, 스승이 가는 곳을 향하여 정성들이는 식구들에게도 만사형통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에서 만나기를 고대하며 준비하는 당신의 아들딸을 만나는 그 자리에 평화와 새로운 광명의 빛, 은사의 빛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인연이 연결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순회하고자 하는 나라의 일정 위에 지장 없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이것을 준비함에 있어서 본부의 권위와 위신을 잃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받는 자녀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게 하시옵고, 그 영광이 평화의 천국까지 연결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사랑의 아버님, 흘러가는 세월이 당신에게 기쁜 날이 되고,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숱한 복귀노정에서 수고하신 아버님을 또다시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아버님 앞에 효성의 도리와 충성의 도리를 다짐하기 위하여 모였사옵니다. 기필코 아버님의 소원을 성취해 드리고 그 일체를 완성시키며 뜻을 위하여 아버님 앞에 몸을 바치오니 뜻대로 쓰여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은 2월 들어 처음 맞는 안식일입니다. 이날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곳을 향하여 마음과 몸을 모아서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스러운 손길을 같이 하여 주시옵고, 긍휼의 은사를 베풀어 그들이 원하는 뜻대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전국적으로 부흥회가 시작되겠사오니, 이번 부흥전도기간을 통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되어져 이 민족 앞에 보여야 할 터전을 마련하여 당신이 활동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체제를 갖추고자 하오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간이 나라를 복귀하는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는 특별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하오니 아버님이 이번 기간에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일체를 아버지께서 관리하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에 부족함이 없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여, 널려 있는 통일의 식구들이 스승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기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가 여러 날 걸려서 돌아오고자 합니다. 가고 오는 모든 일정이 당신의 뜻을 돕기 위한 일정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어떤 개인이 원하는 뜻을 위하여서는 일체 움직이지 말게 하시옵고, 식구들을 만나는 그 자리마다 아버지의 인연으로 두터워지게 하여 주시옵고, 힘의 부활권이 나타나게 역사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을 당신의 품에 안고 싶어하시는 아버님, 그들을 묶어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에덴의 창업 당시에서부터 원하시던 것이었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숱한 슬픔의 곡절을 거쳐오시면서 억울하고 비참해 하셨던 아버지의 노정을 아옵니다. 아버지로 하여금 한을 품게 하고, 슬픈 심정을 품게 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 소원의 일념을 버리시지 않고 나오시는 아버지의 뜻이 이번 노정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한 뜻을 위하여 희생하였던 수많은 영들이 가는 길을 옹위해 주시옵소서. 그 민족을 택하시어서 하늘의 엄연하신 권위와 능력의 권한을 찬양하기에 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의 터전을 넓히는데 있어서 영계와 육계 전체가 일체화되어 당신이 걸어가시는 승리의 터전을 완전히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스승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일본 식구들 위에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일본을 거쳐서 미국 구라파 등을 순회하는 세계 순회노정을 영계에서 바라보고 있을 줄 믿사옵니다. 스승을 맞기 위하여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하늘의 은사를 천 배 만 배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의 그날까지 부디 이 민족과 이 땅을 지켜 주시옵소서. 더욱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남한 각지에서 외로이 임지를 책임지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도 서로 같은 심령으로 통하고 같은 마음으로 화하여 당신의 뜻 앞에서 일체화 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부터 제가 없더라도 여기에 친히 같이하여 이 제단을 지켜 주시옵소서. 외로운 식구들의 모든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슬픈 사정에 지친 무리를 당신의 손길로 위로하시어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디부디 당신을 따라가는 길 앞에 어긋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있는 식구들에게는 400만 서울 시민을 아버님 앞에 복귀해야 할 엄숙한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운행하시어서 승리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앞에 놓고 기도하며 해결하고자 하오니 원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협회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만사의 어려운 고비고비를 당신이 친히 지도하시어서 승리의 일로만을 남기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자리를 아버지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의 전체를 아버님께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역사이래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역사라는 사실을 안 사람이 없었습니다. 역사의 배후관계를 복귀라는 개념으로 정의를 내렸다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에 남긴 커다란 공적인 것입니다. 역사의 근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고, 또 그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지금까지 역사를 계속 지배하고 발전시켜 나오셨습니다. 그 때문에 복귀의 사명을 짊어졌던 수많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있었고, 그에 의해서 역사는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복귀역사의 완성, 즉 복귀의 목적이 언제 성취되어지느냐 하는 이것이 역사의 문제이고, 또한 모든 역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입니다.
복귀섭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완성되지 못한 모든 기준, 즉 아담이 타락한 기준, 예수님이 성취하지 못한 기준 등을 모두 현세에 끌어들여 해명하고 거듭 탕감하여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해야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고, 스스로 그것을 실행하여 선생님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세계에 널린 통일교회의 식구들에게 그것을 행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명령을 받아 그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남자는 타락전 아담 이상의, 예수님의 대신자로 부족하지 않은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여자는 타락전 해와 이상의, 예수님의 신부로서 맞아짐에 부족함이 없는 기준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그와 같은 남녀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쫓겨나는 결과가 되어, 말하자면, 지상적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을 여러분 개개인이 탕감하고 예수님 이상의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없이 얽혀진 역사적 배후관계에 따라, 그 모든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현세에 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그것과 싸워서 그것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탕감복귀는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회의 길은 반대를 받는 길이었습니다. 다만 쫓기고 또 쫓겨도, 맞고 또 맞아도 거기에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씨족 민족 국가로부터 쫓긴 끝에 가장 고독한 입장에 세워졌으나, 최후의 심정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선생님밖에는 모릅니다.
예수님은 최후에 세 제자로부터도 반대받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길을 세계적으로 개척해 나갈 때, 세 나라로부터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 제자는 세계적 국가의 대표로서 상징되니까, 3주권으로부터 반대를 받습니다. 하나의 민족권, 곧 장성권내에서 박해받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이며 세계적인 정세의 물결 한 가운데에서 그러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승리의 기준을 쌓아 온 것이 제1차 7년노정이었습니다. 1968년부터는 제2차 7년노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탕감의 길을 먼저 승리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실패의 기준을 돌이키고 아담 해와의 타락 기준을 돌이키고, 내외의 탕감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원리강론은 역사노정에서 이루어진 것에 대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며, 이것을 어떻게 해서 탕감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싸워서 승리하여 타개해 가야 합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우리 통일교회를 어떠한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뽑혀질 수 없는 기준을 세워 완전히 승리하였습니다. 만약 악편에서 통일교회를 치려고 하면 하나님 자신이 이것을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지키더라도 사탄편에서 참소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귀중한 승리권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21년간 성취해 온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이후 그를 중심으로 한 2천년간, 혹은 그 이전의 4천년간 바라 나오신 기준을, 예수님의 실체를 중심으로 하고 과거의 실패의 기준을 우리들이 오늘의 이 말세에 성취하였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세계적, 천주적으로 기쁜 일인 것입니다. 복음 중에 이런 복음이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종적인 참소조건을 면할 수 없는 이 지상에 있어서, 종적 참소조건 뿐만 아니고 횡적 참소조건까지도 우리들은 뛰어넘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했다고 하는 것 이상의 다행한 일은 없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탕감복귀는 반대로 한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는 아담의 타락을 가인과 아벨을 중심으로 해서 반대로 올라가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을 탕감하지 않으면 참부모이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셔야 할 재림의 예수님,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화한 그분이 오시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최후에 지신 십자가를 지는 자리로부터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겟세마네나 갈보리의 최후의 고통의 한 가운데로부터 생사의 문제,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문제를 통과하여 승리한 산제물로서 오시지 않으면 복귀의 터전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로서 오시는 분의 최초의 길은 가장 가까운 곳, 가장 먼곳 모두로부터 반대받는 길인 것입니다. 일본에는 그와 같은 역사는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섭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한국에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은 밑창에서부터 부활의 길을 개척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최초의 통일교회는 어딘가? 감옥인 것입니다. 복음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도 감옥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 제2의 이스라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복귀하는 데는 자연히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탕감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감옥의 밑창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와 더불어 기반을 이루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에는 제자들도 다 도망쳐 버렸지만 지금은 그와 반대입니다. 무섭습니다. 목숨을 건 입장에 있어서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스스로 죽음의 경지를 책임지고 선두에 설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섭리는 밑창으로부터 올라오는 데 7년으로 통과할 수 있었지만 21년이나 걸렸습니다. 민족이 함께 맞이했으면,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종교가 맞이했더라면 7년간이면 족했으나 우리들은 그 환경을 갖지 못하고 21년간이라고 하는 노정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이 1960년으로부터 제1차 7년노정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배후관계는 모릅니다. 그 배후는 이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가정의 역사이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씨족의 역사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역사를 알려면 축복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기준에 있어서의 상속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것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 노정에 대한 것을 완전히 알았을 때 `아! 복귀의 역사는 이와 같이 쓰라린 길을 더듬어서 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축복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런 입장을 바라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먼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뜻을 위한 생사의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에 있어서 자기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고 하는 기준, 그 것 외에는 없습니다. `개인의 소원에 있어서는 십자가의 길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 길을 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는 뜻을 위하여 살고 있는 이상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기준에서 생사의 문제를 초월할 만큼의 확실한 자신을 갖지 않으면 복귀의 길을 맞이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가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말하지만 뜻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주성이 있는가. 그것도 자기 한 사람이 아니고 뜻을 만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입장에서, 자기의 뒤를 이을 제자들을 평안한 심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여유 넘친 태도를 가지고, 그것도 목숨을 건 자주성을 가진 자로 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와 같은 젊은 아가씨이고, 이와 같은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에게든 환영받기에 합당하며 특별한 결점도 없다. 그러한 내가 목숨을 건 일 따위를 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은 `나는 남자로서 이만한 체격이고, 가문이나 기타 외적 조건으로 보더라도 천하의 어디를 가더라도 부족한 점은 없으며, 내가 원하는 일을 모두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훌륭한 남자인 내가 초라한 모습을 해 가지고 목숨을 건 처참한 일 따위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험의 길, 생명을 건 길을 가는 데는 괴로운 얼굴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산상을 향할 때 `아 분하다.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남자가 33세나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이러한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는 남자의 사명은, 남자의 가치는 어디 있는가'라고 생각했다면 탄식거리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간다. 공포로 다가오는 십자가의 무거운 짐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체력이 다하여 쓰러진다 하더라도 나는 간다' 하며 그 내심에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당당한 기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도중 길 옆에 서 있는 자기의 모친과 제자 요한을 발견하고 오히려 그 후의 문제를 부탁하던 여유있는 예수님의 태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계의 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많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그보다 내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통한 강한 결의를 가진 남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은혜에 의해 역사는 새로운 생명의 방향으로 향하고, 그로 인해 지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출발점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2천년의 역사가 지나갔지만, 예수님의 정신은 더럽혀지지 않고 그대로 계승되고 있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 자들입니까? 그 전통을 직접 계승할 수 있는 위대한 사명을 가진 우리들은 목숨 하나쯤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어둠 가운데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심정의 빛으로 그 어둠을 제거하고, 그리고 세계에 그 빛을 비추는 내적 역사를 하는 남자가 되어 있는가, 여자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래 타락은 죽음의 경지에 떨어진 것이니까 구원은 그 경지를 타고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차피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라면, 기분좋게, 남자답게 사는 젊은이들, 청년들, 장년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있으면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들은 그 모체를 이루는 심정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내심에는 그와 같은 생사의 경지를 타고 넘을 자신이 있습니까?
선생님은 몇십, 몇백, 몇천, 몇만이 되는 생사의 경지를 넘나들며 사탄과 대결하여 왔습니다. 그와 같은 운명이 언제 다시 오더라도, 예를 들어, 발이 빠지고 눈알이 튀어 나오고, 목이 날아가더라도 한번 결정하고 출발한 노정에서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조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이전에 50명 가까운 일본 식구 일행이 한국에 와서 부산의 성지를 가봤지요. 거기는 공동묘지의 근처로 돌투성이의 골짜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한 곳에 선생님은 돼지우리와 같은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잠을 잘 때도, 이 지상의 어떠한 궁중에서 영광을 누리며 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효행을 할 수 있는 제일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깊은 내심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한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은 검을 대로 검어 있었고 복장은 동양옷과 서양옷을 섞어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대포보다도 원자폭보다도 그 힘이 더 큽니다. 너무나 크기 때문에 모두 놀라서 도망쳐 버립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환경을 맛보면서 왔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맛을 모를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다 얘기하자면 며칠은 걸립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고생을 하고 활동하여 그 환경에서 쫓기더라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십자가에 사라져 가셨지만, 내적으로 하나님의 심정에 불타 있었던 그 기준은 하나님이 보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앞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4천년 역사상 하나님의 최초의 아들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3백명 가까이 참석해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굳은 결심을 한다면 일본 43개 현(縣)의 문제는 바로 해결될 것입니다.
승리란 과정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출발시의 내적 기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그의 승리가 생사의 경계를 수백 번이나 넘나들며 얻는 것일 경우에는, 그것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결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승리, 사탄도 따라잡을 수 없는 승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현상을 볼 때, 뜻의 선두에서, 대단히 어려운 역경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고생하여 왔지만 그로써 다 되었을 것인가, 효과가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일정한 계산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역사에 남아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도 못하였던, 꿈도 꾸지 못하였던 것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상당히 통일교회가 소문이 나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들어가 청춘 시대를 다 소비하고 고생의 길을 거듭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겨우 동경대학에 입학하여 친형제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가서 온 집안이 형편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라면 세계를 무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일본권내에 있어서의 고생은 하나님의 이상권에 들어 갈 수 있는 고생은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이상권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을 목적으로 하니까, 그것을 안 우리들은 보다 큰 가치를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켰습니다. 이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출발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반대로 탕감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3인의 제자가 믿는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여 12제자, 70문도, 120문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120문도로부터 쫓기고 70문도로부터 쫓기고 12제자로부터 쫓기고 3인의 제자로부터 쫓기어 십자가까지 지시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의 입장에 설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먼저 결정하지 않으면, 안타깝지만 복귀의 노정은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섰을 경우에는 박해의 기준을 지나야만 합니다. 지금은 민족적인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제 국가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들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각자 자기로부터 3대권 이내에 완전히 복귀시킬 수 있는 결의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째서 3대인가 하면, 그것은 원리적인 수로 사위기대라고 하는 것은 3단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타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참아버지로, 참된 어버이로서 오셨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분을 팔아서 죽음의 골짜기에 떨어뜨린 그 행동은 결국 세계 만민이 한것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그것은 섭리권내에 있는 모든 백성이 자기의 참된 어버이를 판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조건으로서 탕감기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참어버이를 판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에 의해서 참된 어버이를 이 지상에서 쫓아버린 입장이 되어 사방 팔방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막혀 버렸습니다. 그 결과 사방팔방으로 사탄은 성(盛)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이것을 위해 참어버이를 판 그 실체의 값으로서 4년간 3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하나님편에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4년간이라고 하는 것은 동서남북에 해당하고, 한국에서는 1년에 3천원씩 4년간에 걸쳐 도합 12,000원을 헌금합니다. 그 돈은 자기의 땀과 눈물과 생명의 가치보다도 더한 정성이 깃들어져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기준에서 벌어서 얻는 돈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탕감노정에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은 3제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한 몸이 되었어야 할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과 같은 입장이 되어졌으므로 이것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12제자, 70문도, 120문도를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노정에 있어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의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믿음의 자녀 셋을 세우고,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12제자, 70문도, 그리고 120인의 문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선생님도 지금까지 21년간의 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뜻을 이 지상에서 다 이루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슬픔이고, 예수님의 슬픔인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 드리고 해결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며, 그것을 위해 가야 할 길이 우리들이 가지 않으면 안되는 공식노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씨족을 복귀하여 새로운 선조의 기준을 만들고 일본 민족을 복귀하여 일본 국가복귀, 아시아 복귀, 세계복귀라고 하는 기반으로 발전시켜 가자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우리들이 가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1960년에 행했던 성혼식의 배후에는 아담 이후 예수님 때까지 4천년, 예수님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년의 역사과정에서 걸렸던 모든 것을 탕감조건을 세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행사는 세계적이고 천주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에 대한 박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1953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은 박해의 시기였습니다. 그 기간에 적어도 360만명 이상의 사람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3개 이상의 교파와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그래도 탕감조건을 승리권내에 세운 것이 1960년에 있어서의 선생님의 성혼식이었습니다. 그날이 통일교회의 운명을 결정한 최초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성혼식은 지상에 있어서 기념할 만한 세계적 천주적 대사건이었습니다. 세계적 기준에 있어서 종적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이 지상에 해결하는 실체로서 영육 아울러 승리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성혼식을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은 성혼식 전에 예수님의 3제자, 반역한 그 제자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성혼식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아담 가정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어버이인 아담과 해와는 부부관계에서 타락되었습니다. 타락이 부부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니까 복귀는 한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남자 혼자서는 복귀되지 않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 입장을 복귀하여 참부모의 기준을 지상에서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는 세제자의 약혼이라고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귀는 아담 가정 복귀를 목표로 해서 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이 실수하니 그 뜻이 노아 가정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심판으로 멸하고 사탄 침입의 조건을 넘어선 가정을 세워서 섭리의 기반을 지상에 구축해 놓으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에게 옮겨지고 예수님께로 이어져서 우리의 시대까지 온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가정을 기준으로 하여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세 자식을 복귀하지 않고서는 참부모의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세 사람은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세 천사장을 상징합니다. 세 천사장이 하나가 되어 아담 해와에게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타락세계가 되어졌으니까 완성된 부모의 경지에 서기 위해서는 세 천사장격인 세 제자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없으면 사탄을 지상으로부터 추방할 수 없습니다.
영계의 세 천사를 상징한 타락권내의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의 3시대를 통과하면서, 가인이 아벨에게 복종하지 않았던 역사를 완전히 탕감하는 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가인의 대표, 예수시대에 있어서의 그러한 대표, 재림 시대에 있어서의 그러한 대표, 이지상에 그런 종적인 역사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세 사람의 대표를 축소한 가인격인 3명이, 즉 예수님의 수제자인 것입니다.
영계에 있어서는 세 천사장, 지상에 있어서는 복종하지 못했던 가인의 대표가 구약, 신약, 성약의 과정에 있어서 종적인 역사관을 만들어 왔던 재림주에 의해서 일시에 굴복됩니다.
아담의 대신으로는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대신으로는 재림주님이십니다. 그 재림주님도 완전히 복종하는 3명의 신앙의 자녀를 갖지 않으면 참부모의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생사의 경지를 넘어서, 박해의 한 가운데도 따라가고 효도할 수 있는 3명의 제자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세 제자를 1960년 4월에 찾아 세웠습니다.
복귀노정은 거꾸로 찾아 올라가는 것이니까 축복은 자식의 입장에 서있는 자가 먼저 받습니다. 가정권은 야곱의 가정이니까 12수의 기준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인의 제자, 3인의 자식을 중심으로 하고 그와 같은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 셋 3인의 부활체로서 상대기준을 이루고, 그 기대 위에서 약혼의 입장을 넘어서서 실체적으로 부모의 입장을 결정한 것이 1960년의 성혼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한이 되는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세 명의 자식과 부모가 일체된 입장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이 지상에 있어서 역사이래 처음으로 한국에서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건이고 이때부터 한국에 새로운 역사의 운세가 돌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대 위에서 1960년 4월에 12수를 중심으로 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이 기준을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12제가 복귀의 기준에 해당합니다. 성서에도 12진주문이 있고,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도 12수를 중심으로 해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림주는 2천년 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두 번째의 아들로서 이룩하시지 못한 그 모든 것을 탕감해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천지에 해결하지 않으면 영적 기독교의 이상이 영육의 땅(地)적 기준의 기반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무엇인가 하면 지상에 있어서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그 발판의 기점이 되는 개인 가정의 기준을 먼저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거기에 가인 아벨을 합하고 노아의 자녀 셈과 함까지 합하여 12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10대와 그의 아들 이삭, 야곱까지의 12대를 탕감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12명을 부활시킨 것은 아담 가정에서 아브라함 가정까지 잃은 선조들을 부활시켰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적 탕감을 횡적으로 탕감하였다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이지만 섭리상 두 아들을 중심으로 한 가인과 아벨, 셈과 함을 두고 볼 경우 12대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횡적 관계를 실체권에 있어서의 제자를 축복함으로 말미암아 탕감했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사탄이 항상 참소할 수 있는 제2의 위치를 승리권에 세운 결과가 됩니다.
노아 가정은 아담 가정의 대신인데, 여기에서 부활시킨 기반을 만들었으니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12대를 부활시킨 것이 됩니다. 또한 12제자를 축복함으로써 종적인 것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에 가 있는 영인체를 지상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 창구가 열려 영계 개방의 기준이 지상에 결정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적 관계인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의 각 12수를 지상에 있어서 처음으로 횡적 관계로 탕감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 야곱 가정의 축복이고,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그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에 해당하는 가정을 각각 제1가정, 제2가정, 제3가정이라고 합니다. 제1가정은 이미 자기 마음대로 결혼했던 사람 중에서 12사람을 축복한 것이고, 제2가정은 예수님의 입장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조건에 걸려 있는 사람들을 축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간 무엇을 바라왔는가 하면, 결혼식을 바라 나오셨습니다. 축복의 그 하루를 바라 나오셨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관계는 가지고 있었지만, 결혼식을 하지 못한 자들을 모아서 축복한 것이 제2가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줄곧 바라 나오신 가정이었습니다. 제3가정은 선남선녀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36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천주통일의 기반을 지상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시대를 통하여 선조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여 온 하나님의 통분의 역사를 현세에서 횡적으로 승리하였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이룩한 역사인 것입니다. 영계가 지상에 강림한 결과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임재하시는 곳이 천상이 아니고 지상권이라고 하는 기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로부터 하나님이 지상에 계시게 되어져 세계적 발전기준이 조성되게 되었습니다. 1960년부터의 7년간은 하나님의 지상강림의 기반을 완성하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자녀의 문제가 있다. 가인과 아벨의 싸움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에게 복종하지 않았던 잘못을 선조들이 아직까지 탕감하지 못하여 역사가 연장되어 내려왔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탕감하려면 조상의 한 가정, 한가정 앞에 가인과 아벨의 복종의 기준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72가정인 것이다. 72는 36의 배수입니다.
하나님편에서 과거의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사위기대를 이루고, 사탄의 참소조건이 되어 있던 것을 탕감하고 승리권을 이루니 사탄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적관계를 전부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지상적, 세계적 발전의 기준을 세운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72쌍의 축복에 이어 120쌍의 축복을 하였습니다. 120쌍은 무엇인가 하면 세계만국의 대표를 상징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인 입장에서 세계적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120문도를 세계대표의 승리권의 입장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영적으로가 아닌 실체적으로 이루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21년노정에 있어서의 과제였습니다. 이제 그것이 이루어졌으니 다음에는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만물 축복, 즉 만물을 복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다음에는 만물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5년 세계 40개국을 순례하여 120개소의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성지를 택정한 것이 운세를 크게 전환시킨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놀라운 날의 하나로 `부모의 날'이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들 후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부모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복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상의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타락의 결과로 잃어버린 날들을 인류가 다시 맞이할 수 없게 된 것은 복귀의 노정을 몰랐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날들을 다시 맞이할 수 있는 기준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인 복음인 것입니다. 그후 1968년 1월 1일 `하나님의 날'이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의 결정과 동시에 지상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통일교회의 발전은 지상에 있어서 급속히 촉진될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이루었으므로 통일교회는 진리를 중심삼고 영계 해방과 함께 지상 해방 그리고 지옥을 해방하는 것으로 발전해 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날'을 맞이한 그때부터 지옥이 궤멸되고 사탄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날'의 결정과 동시에 선생님의 사명은 완성되었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쫓기고 기성교회로부터 쫓겼지만 예수님은 유대교로부터 쫓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개혁하고 유대교의 실패를 제거하여 복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제2의 유대교를 세우려고 했는데 그것이 3년 공생애노정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가정으로부터 씨족, 그리고 새로운 민족으로……. 그리하여 영육 아울러 이스라엘권의 사탄을 굴복시켜 영원한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이 유대교에게 반대를 받은 것과 같이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탄진영의 한가운데 들어가서 그들과 싸워, 원상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고 말았기 때문에 쫓기고 몰리는 몸이 되어 원수의 본거지인 북한의 평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여 지금까지 기반을 만들어 두었던 서울을 뒤로 하고 원수의 본거지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거기서 싸우고 또 싸워서 참소조건을 제거하고 넘어오지 않으면 제2의 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공산권에서 걸은 옥중노정입니다.
옥중생활에 있어서는 예수님이 쫓기고 제자들이 반대했던 입장을 탕감복귀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감옥생활에서도 영계가 협조하여 12명의 제자를 전도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가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후 남쪽으로 내려오자 새롭게 기성교회가 반대했지만 물리쳤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온갖 교파, 즉 분열된 모든 기독교를 홀로 결합시키려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였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비견(比肩)할 수있는 새로운 교파권을 만들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여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 한국에서의 통일교회, 즉 통일교단인 것입니다.
1968년 9월에 크리스챤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기성교회와 정식으로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는 기성교회의 박사 등 통일교회의 선생님에 대해서 반대하였던 우두머리들 약 4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당당히 들어갈 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들은 벌써 시기적으로 보아 이러한 때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몇년 전부터 자기들 마음대로 반대하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볼 때 훅 불면 날아갈 것 같고 보잘것없이 보였던 모습이었지만 때가 바뀌고 시절이 지나고 보니까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을 대해 동정의 마음을 갖고 나타나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맞이하여 통일교회의 진리를 추거(推擧)할 수 있게 된 것은, 요컨대 머리를 숙이는 것과 같은 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통일교회가 제일 무섭다. 문선생은 스탈린 이상 가는 사람이다. 기독교에서도 손을 댈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 도무지 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상대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오합지졸같이 와글와글 떠들어왔습니다.
통일교회는 그러한 박해 속에서도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천하 모든 것이 일어서서 반대하더라도 선생님은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맞이하겠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권(圈)을 이미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수수께끼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6천년 역사를 통하여 풀지 못한 모든 역사적인 문제를 선생님 일대에 풀었습니다. 이제 죽더라도 통일원리는 세계를 제패합니다. 아무리 일본 1억이 왁자지껄 동원하여 반대하더라도 통일주의에는 못 이깁니다.
일본을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가. 일본 자체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영계와 지상세계, 천주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지금은 조금만 움직이면 세계가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시나 관념적인 신이 아니고 생활권내에 실존하시는 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감상적인 심정이 아니고 실증적인 심정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야말로 놀라운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을 완전히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천주의 모든 권내에 들어가서 사탄에게 참소받지 않은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축복의 조건을 세웠다고 할 수 없습니다.
1960년은 대체 어떤 기준의 해였던가?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입장, 즉 장성기 완성급의 기준에 올라선 해였습니다. 장성기 완성급 기준을 중심으로 하고 완성권까지 올라가는 데는 7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1차 7년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완성기준에 올라서면 하나님의 직접 주관권내에 들어갑니다. 직접이라고 하면 내외 공히 직접이니까 심정생활권 역시 직접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완성기준을 아직 남기고 축복한 해가 196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권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타락권내, 즉 사탄의 주관권에 있었습니다. 이 주관권내에서 사탄을 때려부술 가정이 나타났기 때문에 이 가정에 대해서 사탄은 총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탄과 싸우고 부딪쳐서 몰아내고 탕감하여 하나님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부모의 날, 이 4대 명절을 이 7년간에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탄이 빼앗아 갔던 것을 다시 찾은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완성기준을 지상에 이룰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신랑 신부가 사탄을 밀어제치고 만난 것입니다. 그 한 날이 하나님의 소원이었고 2천년 기독교 역사의 목적이었습니다. 신랑은 예수로 하늘을 뜻하고 성신은 여성신으로 땅을 뜻하는데, 이 둘이 서로 만남으로써 공중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탄을 깨부수고 천지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종교인의 최고의 목적을 우리 통일교회가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고 결합한 가정은 하나님의 씨족인 것입니다. 그것이 날마다 번성하여 가게 되면 민족이 됩니다. 좀더 발전하면 국가, 세계권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민족,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인이라도 지금까지의 일본의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선조로부터 상속된 혈통에 의한 자녀가 아니고 새로이 하나님에 의한 혈통권을 이어받은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설 곳은 세상 사람과는 틀립니다. 사탄의 참소를 막고 승리권을 이룰 수 있는 내용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준에 있는가? 장성기 완성급 기준에도 올라오지 못했으므로 축복이 문제인 것입니다. 두 사람, 즉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추방되어진 것이 타락이니까 두사람은 환영받지 못하는 경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경지를 넘어서서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제까지의 축복은 완성 기준에서의 축복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은 세계적, 천주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권내에서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하지만 참석은 할 수 있어도 그 길은 아직 가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의 부모의 날, 새로운 씨족의 선조로서 전환되는 참부모의 날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기무라씨라면 기무라씨에게 있어서의 참부모의 날이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기무라씨를 중심으로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결정하여 승리의 깃발을 세워서 영원히 펄럭이게 할 수 있는 그날을 우리 통일교회는 맞이해야 합니다.
이 기를 게양하고 출발하는 것이 제2차 7년노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장성기 완성권에 있어서 승리한 자, 타락한 후손이지만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 이상의 입장에서 완성을 향해서 당당히 행군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방해가 있으면 그것을 굴복시키고 물리치고 가자는 것이 우리들이 부르짖고 있는 `전면적 진격'인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에게만 한한 것은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2차 7년노정도 전면적 진격의 노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무엇인가 하면 친척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진리를 말하고 전도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주장한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이 부모라든가 선생님의 형님에게 내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알리지 못하였지만, 형님은 자기의 동생이 무언가 큰사람이라고 할까, 앞으로 큰 일을 할 세계적인 동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알아주는 형님이나 어머님에게, 그런 사실을 한마디도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에게 8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한 육신의 형제에게는 이 귀중한 원리의 내용을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비운의 사나이로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한인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자신과 가까운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부모라든가 형제를 중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반대로 사탄쪽을 자기 혈통의 부모 이상 형제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을 더듬어 온 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의 발전 과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적자(嫡子)보다도 그들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아벨로서의 탕감복귀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없으면 아벨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혈통적 적자를 대하는 것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에게 효도를 하고 받들어 주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탕감복귀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입장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수고이겠는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심정적으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환경을 줄곧 넓혀서 승리권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몰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는 다릅니다. 제2차 7년노정이 시작된 이상은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자신의 혈통적 부모와 형제들에 대해서 자기의 귀한 것을 직접 줄 수가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으니 결국 종족적인 메시아의 입장에 해당합니다. 종족의 메시아로서 제2차 7년노정 기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선생님이 이루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이루지 못한 것을 여러분의 부모, 형제, 종족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이 이루어야 합니다. 그에 의하여 하나님편의 탕감을 모두 완성시키라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 세계에까지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아담 이후 4천년의 역사 끝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마리아와 요셉에 알리고 그들과 협력해서 뜻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 기준을 세우자고 하는 것에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한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하였지만 하나님도 자신에게 가까운 자를 사랑하였다면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민족을 희생시키는 입장에 세웠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탄편의 가족, 사탄편의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녀, 가정, 종족을 희생시켜 온 것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섭리노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원수들에 대해서 축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저들은 자기들의 죄를 알지 못하므로 용서해 주소서 구원해 주소서'라고 기도를 하신 것도 하나님의 심정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이었으므로 그러한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복귀노정은 주먹에 의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인 힘에 의해서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기반을 만들지 않으면, 탕감복귀의 완성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합니다.
결국 복귀와 축복이라고 하는 문제는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축복을 우리들이 다 이룰 때, 복귀완성과 축복완성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미인은 꼭 미남과 결합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통일원리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복귀섭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세계는 인류시조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이상상대, 참된 부부의 관계를 잃어버림으로써 이와 같이 복잡한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돌이키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남자로서 자신의 좋은 여자를 맞이한다, 여자로서 자신의 좋은 남자를 맞이한다는 그런 입장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 입체성을 걸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만물 모두가 기뻐하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입장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부부에 동원되고, 그 부부에 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새는 그들을 위하여 지저귀고, 나비는 그들을 위하여 기뻐하며 날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사람도 기뻐하고, 만물 모두가 기뻐하고, 작은 곤충계까지도 기뻐하는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조상들이 출발했더라면 그야말로 이상향이었습니다.
여자가 마음속으로 남자를 그린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남자를 그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가 마음속으로 여자를 그린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자를 그려야 합니다. 그들이 이런 입장에서 서로를 부를 경우에는 하나님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뻐하시고, 모든 만물도 서로 기뻐합니다. 그들이 포옹하며 기뻐하는 그 기준은 천지가 함께 기뻐하는 가치의 기준이 됩니다. 그런 남자 여자가 포옹하는 그 자체는 우주가 일체를 이루는 장면이고, 하나님의 이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창조본연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그런데 타락에 의해서 하나님과 만물과의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자기 나름의 포옹, 자기 나름의 교제, 자기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점령, 이런 것을 생각하는 자는 사탄의 사람이고, 그는 사탄의 특권에 휘둘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의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단체생활을 해 가는 중에 복귀의 실정(實情)을 알고 엄격하게 그 위치를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못한 것은 남녀간의 타락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남녀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거기서부터 사회 국가의 문제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국가도, 세계도, 혹은 천주도 복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책임지고 충실히 완수할 수 있는 남녀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인연을 다시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중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아직 그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천사장의 사랑에 의해서 포옹한 결과가 타락세계의 시작이 되었고, 오랜 과정을 통과하여 온 인류역사는 고민의 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의 소유자는 대체 누구인가? 사랑의 주인은 누구인가?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가 없다면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상대기준은 남자 앞에는 여자이고 여자 앞에는 남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기준이고 사랑의 절대기준은 되지 못합니다. 과정의 존재로서는 인정되어지지만 그 주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랑의 소유자, 주인공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채려고 하는 것은 도둑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범한 그 범죄인 것입니다.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타락한 선조의 혈통을 이어받아 나온 인류는 이제 그 뿌린 씨를 거두어 들이는 시기가 되었으므로 젊은 사람들이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지나친 행동을 보통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20세도 못 된 그러한 청소년들이 일본에도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러한 죄악의 씨를 뿌렸으니까 세계적으로 수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을철에 당도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가 올 경우 이상적인 새로운 남녀관계, 이상적인 상대 기준, 이것을 부르짖는 어떤 자나 어떤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경우, 이상상대라고 하는 말이 이 지상의 일각에 나타나서 떠들썩하다고 하는 것은 세계에 한없이 기쁜 복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복음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지금까지 가꾸어 온 그 심정을 거리의 하찮은 남자 따위에 잡혀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들에게 밟혀서는 안 됩니다. 본래는 신앙이 깊어지고, 영적인 체험을 한 경우에는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고, 자기를 중심삼은 것은 사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쳐버리고 자신들끼리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탄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나름대로 그러한 일을 해 온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지금부터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의 선조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되고 만 것처럼 여러분들도 자신들끼리 결혼을 한다든가 하면 새로운 선조가 되기는 커녕 얼토당토 않은 결과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결혼식을 했을 경우, 하나님을 한가운데에 모시고 하나님이 함께 기뻐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관계인 것입니다. 원래 사랑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고, 가장 존귀하고 신성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법도를 범하고 나서부터 죄악의 부끄러운 것으로 내려왔습니다.
참부모님을 지상에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새로운 선조가 되기 위하여는 참부모님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통일청년이나 미국의 통일청년들도 선생님이 오시기를 목이 빠지도록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예」 기분이 좋지 않은데. 여러 가지 해 왔지요? 편지를 하는 것은 보통이고, 서로 교제하는 것도 보통이지요? 윙크 따위는 지나다가 연필을 사는 것과 같이 태연스런 얼굴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축복을 받겠다니 선생님은 기분이 나쁩니다. 본래의 축복의 기준은 그렇게 기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에게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후손으로서 본연의 기준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참된 아들과 딸을, 사랑을 담뿍 주고 싶은 그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남녀관계를 놓고 볼 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부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식으로 볼 때는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타락 행동 하나로 이 셋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이 세 가지의 심정을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 일시에 탕감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 참된 아들, 참된 딸로서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기준을 복귀하고 그 과정을 통과하여, 나이가 차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부부가 결합되고, 거기에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해 선한 자녀를 낳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최초의 출발점이 무엇이냐 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실감하는 입장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자녀의 입장을 복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이 이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으로 삼고 천주에 그것을 외칠 수 있는 심정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딸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중심삼고 그 기반이 선 것을 자신이 자연히 느낄 수 있는 권위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당당히 사탄의 본거지에 자신만만하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바로 서서 갈 수 있는 기준이 서 있느냐? 어떠냐? 아담 해와를 범한 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축복의 기준은 서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세계적인 사탄을 무찌르고 세계를 복귀할 정도의 기준,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국가, 즉 적어도 3개국에 대해서 책임을 갖는 기준을 갖지 않으면 천적 자녀의 입장,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러한 과정을 통과하여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한 부부가 지상에 태어났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천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경지를 넘어 숨막히는 그 지경에 서서 비로소 하나님의 바라시는 상대기준을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물이 기뻐하고 역사가 대망한 이 기쁨의 순간. 영원한 가치의 참부모가 확립되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참된 사랑에 의하여 존엄하고 찬양받을 수 있는 실체기준으로서의 사위기대가 출발한 것입니다.
부부가 되었을 경우 부인은 자기 남편을 하나님의 대신자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이 되었을 경우에는 또 아내는 남편의 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딸을 남편으로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타락으로 인하여 세 가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인 하나님의 딸을 남편 입장에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부인은 남편을 아버지 이상으로 믿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자기의 지금까지의 체험을 총합한 가치 이상의 가치를 발견한 기준에 서서 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심정 기준을 복귀하지 못하면 사탄이 파괴한 이상상대의 기준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남자는 자기 아내에 대해서 자기는 아내의 자식이라고 하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아내에 대해서 자기 어머니와 같은, 자기 딸과 같은 심정이 끓어오르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또 한 가지는 혹시 내가 없으면 하루도 지낼 수 없고, 밤이나 낮이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들이라고 하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부부일체가 되지 않으면 복귀의 조건은 서지 않습니다.
타락은 여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몇 살 때인가? 16세의 미성년 시기였습니다. 하늘이 신뢰하는 부모의 기준을 여자가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참어머니가 될 수 있는 그분은 20세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성혼식은 40세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은 젊은 어머니를 맞이하여 딸같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최초의 7년 간은 어머니를 키우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천적인 가문이나 가법에 의한 교육을 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날이 샌 다음에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지만 잘 때에는 계속적으로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머니는 모르겠지만 그와 같이 하여, 타락의 결과 잃어버렸던 딸의 기준과 그 상대 기준과 하나님 앞에 참부모의 기준, 이 셋을 실체에 있어서 복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누구든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자기 의사대로 상대기준을 마음대로 정하였다 하여도 그것은 천적(天的), 지적(地的), 천주적(天宙的)기준으로는 절대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결정기준을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분이 메시아인 재림주입니다. 그 기준이야말로 역사가 바라고 나왔던 만민 해방의 종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준이 나타났을 때에는 본심에 가까운 사람, 본래의 심정에 가까운 사람은 그분 앞에 섰을 경우, 설명하지 않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심정적으로는 세 가지를 복귀하지 않으면 축복의 기준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위로는 부모의 심정, 아래로는 자녀의 심정, 그리고 부부의 심정을 실현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 남자, 여자가 아니면 축복을 바라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규칙을 역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나는 서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구…. 일본에는 축복받을 자가 없구만. 어떠한 일에도 거기에는 탕감이라고 하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부활을 위한 헌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 내용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그것은 선생님에게 배우지 않으면 모릅니다. 만약 옛날에 일본에도 그것을 알려고 하는,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의 남자가 있어서 일본 전부와 맞바꾸고라도 그것을 사왔다고 한다면, 벌써 일본은 세계를 통일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세계에 그 이상 가는 장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 그것을 살 것인가, 사지 말 것인가? 어느 쪽입니까?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성서에도 있지요. `전세계를 얻고도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말씀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도 목숨을 다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목숨을 원하는 것입니다.
본래 남녀 관계에 있어서 연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섭섭해요? 「아니요」 참말을 하라구요. 섭섭해요? 가르치지 않더라도 본심에 의해서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가치를 확실히 알았을 경우에는 과거에 자기의 손으로 그러한 편지를 쓰고, 사탄인 뱀의 손끝이 되어 자기의 손이 움직였다는 것, 이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한 것입니다. 몇 번을 울어도 다 울 수 없습니다. 이 몸을 가지고…. 그때에는 생각도 못하였지만 이러한 일을 해 온 것입니다.
사탄의 더럽혀진 피에 의해서 더렵혀진 이 육체, 이것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를 끊고 처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어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탄에 의해서 사용된 이 손, 이 몸을 한 번에 다 날려 버린,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시작한 육체에는 어디에 있느냐? 더럽혀진 관계를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런 심정을 체휼해 보았어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해와는 미래의 부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과 일체요, 곧 하나님 자신이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부인을 사탄에게 침범당한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유린해 온 것을 아직까지 결말을 못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슬픔 가운데서도 창조이상을 회복할 희망을 품고 나오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부인을 빼앗아 와서 기분 좋아하고, 자기의 자식들까지 전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의 타락세계이고 사탄과 하나님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으로 볼 때도, 사탄은 우리들과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우리들도 원래는 타락세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면 단번에 끝내 버리자, 무슨 일을 해서라도 나는 정상에 있고 싶다는 타오르는 신념과 힘으로써 본연의 자신을 발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주일 금식한 사람 손을 들어 봐요. 금식하지 않은 사람에게 일주일째 되는 날 밤 12시 3분 전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몇 백권의 책을 써서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모를 것입니다. 설탕의 맛은 이렇다고 아무리 쓰고 설명을 하여도 그 입장에서 한 조각의 설탕을 맛 본것만 못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길을 믿고 싶은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실제로 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분신(分身)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중심인물이라면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원수에게 나누어 주고 참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더듬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떠난 타락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인데, 무엇인가 인간을 중심한 이론을 만들어 보거나 자기 중심한 상대기준이라든가 무엇을 말하든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통일원리에 의해서 가르침 받은 것은 심정권입니다. 이 심정의 기준은 타락권의 선조의 기준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만약 이것을 알고 타락한 경우에는 장성기 완성급 기준에 있어서 타락시킨 사탄보다도 두렵습니다. 사탄이 그 사람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러한 무섭고 무서운 최후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것은 참부모를 곁에다 두고, 하나님을 곁에다 두고 직접 타락의 사랑을 증가시킨 것이 됩니다. 선조의 타락은 아직 그러한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한계를 넘은 결과가 되어서 사탄보다 더 나쁜 것이 됩니다. 그러한 배후관계가 있었던 것을 이제 처음 알았지요?
그러니까 여자들, 특히 여자들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순진한 여자는 타락전 여자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순진한 신앙을 가지면 가질수록 주위에 있는 남자들이 와글와글 따라옵니다. 보고 싶어서 잠 못 이룰 정도로 연모해 옵니다. 남자라도 순진한 신앙을 가지면 세상의 여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일으킵니다. 이것들은 해와를 보고 사탄의 범하려던 현상이고, 타락한 해와가 아담을 범하려고 하였던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을 체험함으로써 이 원리가 영원한 진리라고 하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리의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것을 들어 보게 되면, 지금 여러분의 기준이 어떠한 기준인가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오시면 `자 축복이다. 준비하자! 선생님은 남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웬만한 일은 잘 보아 주실 것이 틀림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지배받는 선생님이 아닌 것입니다.
성서에는 끝날에 젖먹이 아이를 가진 여자는 불행하다고 되어 있지요? 자기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남편이나 아이나 어버이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그 경지를 피할 것인가? 이러한 기준의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를 넓혀 오셨습니다. 이혼도 자유자재이고, 자식이 어버이에게 반대하는 것도 보통이고, 어버이의 노고를 모르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반대방향으로 비약시켜 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법인 것입니다. 모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받기 위해서는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에 더렵혀진 일이 있으면 깨끗이 씻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힘에 의해서 그것을 하려면 되지 않습니다. 조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고백하고 호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변호사는 자기의 일과 같은 입장에 서서 그것을 변호해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의 중재자, 변화사가 되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여도 선생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비밀을 다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곤란한 일이 또 생겼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선생님은 더욱 곤란한 것입니다. 사실은 이러한 것을 상대해 주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러나 축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입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럽혀진 것이지만 지우개나 잉크 지우개로 지우고 하얀 종이로 돌아갔다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것이 안 되면 애당초 형편없는 것이었으니까 축복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푸른 눈을 하고 있는 서양인도, 굉장한 흑인도, 미국인도 다 그것을 거치지 않으면 선생님은 `나는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이 있어요. 영계 쪽에서 선생님 들으라고 말해 옵니다. 들어보면 전부 귀찮은 일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다 돈에 관한 일이거나 남녀 관계의 일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 알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캄캄한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 백주 가운데 뛰어 나오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사탄 진영이 백주에 너덜너덜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의 출발기준이 선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축복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남녀관계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자기들 멋대로 약속을 하여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하여도 어차피 선생님에게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형제 이상의 남녀 관계에서 서로 만나는 것은 사탄의 실체와 같습니다. 그러한 것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잘라 버리고 가야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새로운 축복, 새로운 가정을 위한 탕감조건을 여러분들이 세울 수 있게 해주고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내가 책임지려고 해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책임을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천법을 범하였다고 한다면, 그 죄는 몇 십대의 자손에까지 걸리는 무서운 것입니다.
만약 통일교회의 심정권을 토대로 한 것을 주장하여 온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교제하고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면, 원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누가 그들을 책임질 것인가? 하나님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음행이나 간음의 죄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어떻게 하는가? 그러니까 일본에 있어서도 이러한 것은 더욱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탕감은 누구에 의해서 통할(統轄)되어지는가? 자기인 것입니다. 주관권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밖으로부터 어떠한 간섭이 있더라도 자기 나름으로 확고한 주체성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남이 어떠한 길을 가든지 내 갈길이 바쁩니다. 옆에서 왁자지껄하고 무엇인가 하더라도 그것에 관심 둘 틈이 없습니다. 그러한 현상에 언제나 쫓기고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면 밤에 잠잘 시간이 없습니다. 편히 앉아서 밥도 먹지 못합니다. 걸터앉아 밥먹을 틈도 없습니다. 그렇게 절박한 복귀의 사정을 느끼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7천년의 역사를 바라시어 지금까지 참고 나오신 것이니까, 우리들은 최초의 7년 기간에 탕감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6천년의 역사를 어떻게 7년간에 단축하여 탕감하고 이것을 심정적으로 계승할 수가 있을까? 이것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젊을 때에 힘껏해도 하지 못할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무엇이 되는 것도 다 이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만큼의 탕감을 치렀는지,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릅니다. 감옥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문이 문제가 아닙니다. 목이 달아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가올 그 한때를 바라고 묵묵히 몇십년간 전생명을 걸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심각함이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이 선생님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가만히 있어도 세계 속의 영능자들이 선생님을 위하여 움직여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선생님의 성공을 위하여 영계가 총동원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결혼식이라고 하는 것을 문제로 해 볼까요? 이것도 전부 탕감의 역사를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합동결혼식을 하느냐?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아요?
만약 축복이라는 문제가 에덴동산에서 행하여졌다고 하면 천주(天宙)의 대사건인 것입니다. 국가적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적어도 결혼식을 알리는 방(榜)은 이스라엘 전국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이러한 천주적 기준을 이루지 못한 것을 원리에 의해 탕감하기 위해서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30가정 때는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지요? 이것을 세계가 여러가지로 문제삼았습니다.
따라서 세계적인 결혼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결혼식은 그만큼 세계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적어도 몇백대 동원한다든가 해야 합니다. 길가의 사람이나 서울 시내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면 몇천만의 사람이 동원된 것이 됩니다.
통일교회의 결혼식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결혼식은 자기들 중심의 것이었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리는 내용을 가지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의 결혼식이라고 하는 것은 탕감만이 식장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원리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루지 못한 신랑 신부의 기준, 하나님의 그 한을 통과할 것을 원리는 밝히 설명합니다.
그러한 탕감조건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해 냈는가? 탕감헌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땀을 흘리면서 얻은 것을 헌금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고 4년간에 걸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건을 선생님은 어떻게 연구했는가? 어떻게 알았는가? 이상하지요? 선생님의 머리 장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다면 그것은 탕감이 되지 못합니다. 아담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지 못하여 6천년의 역사가 연장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선생님 일대에 해명하고, 승리의 깃발을 세웠다고 하는 것은 천주적, 역사적 성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승리자인 것입니다.
죽어서 영계에 가 있는 성인들-예수님이라든가 공자라든가-과 기타 여러 사람들도 모두 선생님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영계의 통일도 가능합니다. 지옥도 해방됩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믿기 어려우면 일본의 유명한 영통인에게 가서 문선생님의 일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영계의 조직은 지상계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한 나라, 두 나라, 세 나라가 하늘 앞에 서게 되면 세계는 들리고 맙니다.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나는 갑니다.
결혼했을 경우 40일의 탕감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들은 일이 있지요? 그것은 예수님의 영적 부활이 아니고 죽지 않고 부활의 축복권에 들어가기 위한 탕감으로서 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기간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되려면 어떤 규칙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탕감 길을 승리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대로의 남녀 관계라든가, 그러한 기분이라든가, 그러한 말을 건다든가 하는 것을 오늘밤부터는 일체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축복에는 반드시 탕감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입니다. 이것은 협박이 아닙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권내에는 일촌 일획(一寸一劃)도 용서가 없습니다. 그것을 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탄이 선편에 대하여 사용한 방법으로 사탄을 쳤다하여도 문제가 없습니다. 스탈린이 종교를 숙청한 것과 같은 수단, 그러한 작전을 악편에 쓰더라도 우주의 3분의 1 가량 멸망하여 버릴지라도…. 선생님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참어머니가 되어야 했던 해와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해야 할 참어머니도 아무것도 모르는 20세 이내의 인물을 택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27세에 성혼했다면 7년노정으로 탕감노정은 끝났을 것입니다.
7년노정은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승리한 21년 기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7년노정은 부모님이 고난을 당하는 기간입니다.
재림주님은 아담 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형 가정을 찾아서 조상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담형 12가정을 찾고 다음에 노아형 12가정과 아브라함형 12가정을 찾아 종적인 조상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36가정을 세웠습니다. 이 조상들을 중심한 가인 아벨형의 가정으로 찾아 세운 것이 72가정입니다. 그리고 120가정은 세계 120개 국가의 지도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중심하고 세 가정을 축복하니 여덟식구가 됩니다. 이 세 가정이 아담, 노아, 아브라함을 대표한 가정이며 가인형을 복귀한 가정입니다. 여기에서 직계의 자녀가 나와야 합니다. 또한 이 세 가정은 예수님 시대에 반대했던 제자 대신 재림 시대의 자녀로 세워진 가인형의 인물입니다. 고로 재림주를 모심으로써 복귀한 천사장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 가정은 천사장을 복귀한 형의 가정이 됩니다.
야곱, 모세, 예수님, 재림주님 등 시대적으로 택함 받은 중심인물들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만 중심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아담, 예수, 재림주 이 세 사람은 아담가정의 세 아들에 해당됩니다. 고로 역사의 전노정도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형이 됩니다.
인류 중에는 아담과 같이 자기 마음대로 결혼한 형이 있고, 다음에는 상대를 바라보면서 나오던 예수형의 인물들도 있으며 또한 재림주형도 있습니다. 재림주님은 이 모든 인물형의 입장을 탕감해야 합니다. 먼저 노아형 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은 노아가 아벨형이요, 또한 예수형이요, 하나님편 둘째 아들형이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로 나누어져 복귀된 형이 72가정입니다.
세 아들을 중심한 12수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상 목적을 이룬 12대상 목적입니다. 고로 어떤 대상을 먼저 세워서 이를 중심하고 12대상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진주문입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 기도가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사탄세계인 공산주의도 1917년에서 40년동안 전성기를 맞이한 후 1957년부터는 중공과의 싸움으로 인하여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30년 동안 내려가서 도합 70년이 되는 기간 내에는 모두 전멸 상태에 들어가야 합니다.
공산주의와 최선봉에서 대결해야 할 미국이 타 국가를 도와주는 일은 했으나 세계의 종교를 통일하고 그것을 협조하는 일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공산국가가 타 국가의 교인들을 나쁜 면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종교 문제와 정치 문제 그리고 학생 문제가 세계적인 동향의 3대 문제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의 축소형이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민주와 공산의 일선이요, 종교 문제로 가장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의 국가요, 또한 학생들을 중심한 정권 전복 운동이 일어나는 국가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초교파운동에 의한 아카데미 하우스 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스위스에 들렸을 때는 부활절 기간이었습니다. 4월은 예수님의 수난의 달이지만 한국에서도 이 기간은 수난의 기간이었습니다. 원리적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1960년 4월에는 부모님의 성혼식이 있었고 3자녀의 성혼식이 있었으며 `심정부활의 날' 선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날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과 예수님의 슬픔을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원수를 축복한 것은 땅에서 매인 것을 땅에서 풀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함으로 사탄보다 나은 기준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사탄과 다르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을 복귀하는 방법도 사탄과는 달리 선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도 이러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며, 선생님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이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자리에 서 보지 않고는 선생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은 4월 7일입니다. 이날이 바로 선생님이 공산치하에서 공판받던 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래는 4월 3일로 정했었는데 4일이 연장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생님이 기독교에 몰리는 입장에서 공판받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공산당원들에게 종교가 얼마나 악하고 아편적인 것인가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 그 공판을 연기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들의 핍박이 그리스도의 심정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공판일이 내일로서 만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때 그들은 선생님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3년 기간은 하나님께서 공산당이 얼마나 악랄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기간으로 주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은 석방 후 남하하여서도 이 운동을 다시 시작하여 오직 한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출감 후 18년이 지난 오늘에는 국가적으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죽었던 환경을 넘어서서 새로운 기대를 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선생님의 심정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고난이 교체되는 것입니다.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나타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에 의한 종교의 자유는 우리의 외적인 길을 여는 것이 됩니다.
뜻을 위해 사선을 넘어 싸운 사람만이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에서는 우리에 대한 핍박이 적겠지만 아랍이나 공산진영에서는 핍박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랍이나 공산진영에서 핍박을 받게 되면 민주세계의 기독교는 자연히 우리를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 정부도 못하던 일을 우리가 하게 됨으로 일본이 우리를 지지하게 되는 것만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정부도 우리를 안 도울 수 없는 입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CIA가 우리를 없어서는 안 될 단체로 인정하고 돕게 되면 일은 빨리 진행될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이런 선생님의 고난의 길에 동참한다는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실체화해서 복귀섭리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일선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운동에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하는 것은 천운을 맞추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천사가 해와를 지배한 것이 타락의 시초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와 자기의 맡은 책임을 등한시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현시대는 상당히 긴박한 때입니다. 세계를 순회하면서 선생님이 느낀 것은 전세계가 우리의 뜻을 시급히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65년도와 4년 후인 금년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습니다.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제는 우리의 뜻이 아니면 세계는 수습될 수 없다는 것을 목전의 사실로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뜻은 커지고 세계는 점점 사망권내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1968년 1월 1일에 하나님의 날을 책정했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역사는 아벨, 즉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제물삼아 나온 역사였습니다. 그들을 희생시키며 가인 세계를 복귀하는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1968년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느냐? 하나님의 날을 설정했다는 것은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렸던 본연의 기준을 승리적으로 찾아 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하나님편의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구원섭리를 해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탕감역사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에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의 사람을 희생시켜서 제물 삼는 것이 아니라 사탄편의 사람을 희생시켜서 탕감하는 시대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정세를 보더라도 1968년도를 기점으로 하여 미국이 월남전에서 후퇴하게 되었고, 동구에서도 새로이 서구의 사상이 싹트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잘났다고 뽑내는 사람들의 기세가 그 이상 올라가지 않고 전부 꺾이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최고의 기준에서 세계를 움직여 나오던 그들의 세력이 이제는 전부다 내려가야 할 운명의 시대로 들어간 것이다.
선생님은 1968년부터 1970년까지의 3년기간을 섭리적인 한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섭리적으로 볼 때 1970년까지 3년기간은 우리가 전체적으로 한 과정을 혁신해서 청산짓고 넘어가야 할 기간입니다.
아시아의 정세도 급급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을 중심하고 볼 때 현 남북한 정세에 있어서 금년이 위험한 고비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세계 순회 도중 일본에 와서야 한국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도저히 한국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의 EC 121 정보기를 북한이 격추시킴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제7함대가 동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이동되고 있다는 사실과 소련의 순양함이 미국의 함대를 길잡이하여 인도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한국은 국제정세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아무리 남한 침공하려고 해도 현 국제정세로 볼 때 그들은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소련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국제정세로 보나 앞으로의 문제를 놓고 볼 때, 어차피 중공과 대결해야 하기 때문에 소련은 서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한국으로서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아시아의 정세가 상당히 급급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신문을 보아서 알고 있겠지만 일본에서는 천황의 탄생일과 메이데이(노동절)같은 날에는 시가전이 벌어집니다. 1965년도에 선생님이 일본에 들렀을 때 일본의 어떤 고위층 인사를 만나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당신들이 지금처럼 미미한 태도를 취하다가는 결코 공산당들에게 배겨나지 못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공산당들은 1970년도를 기하여 대학가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대학생들을 앞세워서 대학가뿐만이 아니라 일반사회에까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단순히 대학가의 혼란만으로 그치려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직기반인 노동조합을 앞세우지 않고 현재 대학생들을 내세워 일을 저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다가오는 70년대를 앞두고 모든 계획을 세워 놓고 대학가를 통하여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이러한 안팎의 문제로 인하여 매우 긴급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반공 노선의 선두에서 승공을 부르짖고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승공운동을 선포하고 나선 지 일년밖에 안 되었지만 그 동안에 우리 청년 남녀들은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관가나 자민당의 모든 간부들은 반공전선에서는 원리연구회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자민당의 모모한 간부들이 앞으로 이 운동에 대하여 자금조달을 하겠다고 제의해 왔지만 선생님은 전부 거절했습니다.
이렇듯 현재의 일본 사회가 긴박한 실정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반공전선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 요구되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거기에 대한 어떤 대책이나 방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곳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만한 단체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원리연구회인 것입니다.
지금 오오사카(大阪), 나고야, 교오또(京都)같은 곳은 공산당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원리연구회의 학생들이 생명을 걸고 결사적인 활동을 한 결과로 말미암아 일본의 모든 경제인들이 공산당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이 원리연구회의 배후에서 자금 조달을 하겠다면서 거국적으로 후원회를 조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일본의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산당의 조직 활동과 원리연구회의 활동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역사와 사탄의 역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에 희생을 각오하고 대항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중공계의 공산당이나 조총련계의 공산당들과 우리 원리연구회의 학생들과 충돌이 생기기 마련인데, 만일 그러한 충돌이 일어나서 우리 원리연구회측이 한 사람이라도 희생을 당하게 되면 우리는 일본 사람이 희생당했다는 점을 들어서 민족 감정을 걸어 놓고 전일본 민족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일본 사람이 희생을 당했을 때, 중공계의 공산당의 조종에 의해서 일본 사람이 죽었다 할지라도 중공계 공산당들이 죽였다고 부르짖어야 하고 또 조총련계를 거점으로 하는 공산당들이 일본 사람을 시켜서 죽였다고 할지라도 아시아에서 제일이라고 자처하는 일본 민족의 감정에 호소하여 조선 공산당에 의해서 일본 민족이 희생당했다고 부르짖고 나가야 합니다. (중략)
그런데 일본에서는 민단이 너무나도 무력합니다. 더구나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2세들을 일본 정부측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고, 한국 사람들로부터도 신망을 받지 못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마치 암과 같은 존재여서 어디서도 손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민단조직이 유명무실한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공산당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안 이상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일본 지구장들에게 앞으로 이 민단이 좌익화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통일교회 청년들이 민단과 절충을 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너무나 긴박한 현시점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일본이 공산화되는 날에는 한국이 제아무리 반공의 왕국이라고 큰소리치더라도 독안에 든 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일본이 적화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 한국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지금까지 생명을 걸고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민단이 일본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활동하게 되면 일본과 한국의 안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본의 식구들은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현재 일본의 유명한 우익주의자 `사사가와(笹川良一)'선생과 만나서 어떻게든지 민단을 포섭해서 좌익 세력을 제거시키자고 얘기하고 왔습니다.
섭리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1968년부터 3년 기간은 중요한 때입니다. 그러니 무슨 모험을 해서라도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극우익단체를 조직하여 거국적으로 총궐기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유학을 마치고 일본을 떠날 때 앞으로 21년 후에는 일본에 다시 와서 어떠한 명령을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떠났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20년만에 일본에 가서 명령을 하게 됐으니 무슨 일이든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5월이 지나고 녹음이 짙어지는 6월부터는 간첩활동이 활발해지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전국적으로 조직을 더욱 강화시켜 향군(鄕軍)과 협력하여 간첩 적발과 방위운동에 총진력해야겠습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의 단계에까지 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각자가 정예부대와 한 요원과 같이 되어 전국적으로 조직을 강화시켜 일선과 후방에서 실질적이고도 조직적인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계는 이제 우리의 뜻이 아니면 안 되는 환경으로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1965년에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미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들이 세계의 일등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들 스스로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시아에서 반공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을 끌어들이고 중공을 공산권에서 끌어내기만 하면 미국은 자연히 여기에 하나가 되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몇년 전부터 얘기해 왔습니다. 이렇듯 섭리적인 면에서 볼 때 지금의 때는 그런 상황으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믿고 천당 가기를 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이 땅 위에서 어떤 실적을 쌓지 못하면 설혹 천당에 간다고 해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기성교회 사람들처럼 관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천당 가겠다는 무리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모든 노력과 정성을 쏟아서 천국을 건설하겠다고 하는 무리입니다. 이것을 반대하거나 제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심신은 물론이요 자신의 모든 소유물과 환경까지 전부 투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고 나아가 아시아의 운명까지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이 그런 때인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의 갈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이번에 선생님이 미국에 좀더 머무를 수 있었다면 기독교계의 권위자들을 더 많이 만났을 텐데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그곳에 40일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도 선생님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거의가 절망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떠한 학박사들이라고 해도 과거에는 어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결같이 대안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나 과학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미국이 이 기성교단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만이 그 일을 할 수 있고 통일교인만이 그들 앞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에 불만 붙이는 날이면 기독교는 한꺼번에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내정세를 보더라도 뜻이 내외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국내정세가 그렇게 되어야 우리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앞에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꺾이는 시대가 왔습니다. 때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전과는 달리 이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걸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선생님이 안 계실 때에는 본부에 대해 책임을 느끼던 사람들도 선생님이 돌아오니 태만해질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활동을 완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굳은 각오를 하고 식구에게 더욱 박차를 가해서 서울 본부 식구에서부터 전국 식구에 이르기까지, 또한 한국 식구에서부터 세계 각국 식구에게까지 모두 자극시켜서 그들이 생사를 가리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후원해 줄 수 있는 본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과거와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활동해야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국제부흥단을 만들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전부 한데 모아다가 한국이나 일본, 혹은 미국에서 세계적인 대회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우리가 계획한 새로운 세계적인 이념을 실천하고 그것을 계획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지금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선생님은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선생님이라면 선생님이 왜 규탄을 받겠습니까?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핍박을 받은 것은 한국 사람들로부터였습니다. 선생님은 한국 사람들만 좋아하는 사상과 이념을 갖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이론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낮은 것을 높게 하기 위해서 가지고 나온 이념입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김포공항에 내리면서 왜 내가 또 다시 이 땅을 찾아와야만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세계적인 일을 하려면 통일교회의 힘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사상은 젊은 사람에게는 더욱 멋진 사상입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번 발벗고 나서 볼만한 길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순회 중에 뜻 앞에 선 세계의 젊은 남녀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축복해 주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흑인이나 백인, 황인 할 것 없이 모두들 선생님이 축복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지요. 이런 일은 미국의 대통령이라도 못 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연구해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명령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날뛰고 있는 미국에서도 일단 우리의 사상이 들어간 사람들은 한국 식구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욱이 선생님이 놀란 사실은 미국이 남녀관계가 문란한 사회이지만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남녀들만은 참으로 순결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학에서부터 뜻을 알고 10여년의 세월 동안 순정을 지켜 나온 젊은 남녀들이니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이 새까맣고 키가 큰 미스터 문을 무엇 때문에 그들은 필요로 하는가? 그렇지만 알고 보면 필요로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그들을 대하고 나서 느낀 것은 사상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뜻에 대한 그들의 절대적인 신념은 세상의 그 어떤 나라의 주권이나 역사보다도 강하며, 지금까지 그들이 사랑해 왔던 주위의 어떤 환경보다도 강합니다.
그들 앞에 뜻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어떤 대상이 있다 할진대 그들은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서 생사를 개의치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말뿐만이 아니고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멋있고 또한 무섭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이 세계에서 제일 무서운 무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몇만 명만 더 많아지게 되면 세계는 우리의 계획권내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큰 백지라도 한쪽 귀퉁이에서부터 말기 시작하면 다 말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번 축복은 전부다 국제결혼으로 했습니다. 미국인은 독일인과 화란인은 영국인과, 모두 이런 식으로 국제결혼을 시켰지 자기 나라 사람들끼리는 결혼시키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민족 감정이나 사랑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감정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전부 국제결혼시킨 것입니다. 그래도 모두들 좋다고 하니 그것을 보는 선생님의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고 나서 그들에게 한국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모두가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역사상에 있어서 아시아의 한 젊은 사람이 유럽 세계에서 이런 일을 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통일사상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 사람들을 약 1억명만 교육시키면 한국은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10억에 가까운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전부 한국으로 몰려 가자 할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이 뜻을 알게 되면 전부 한번씩은 와 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죽지 못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외국식구들에게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모두가 한국에 보내 달라고 합니다. 사실은 선생님이 보내줄 것 없이 자기들 스스로가 오면 되지만 올 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어야 오는 것입니다. 그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어가 세계의 공통어가 되어 있지만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 전통을 세워 놓으면, 앞으로의 세계어는 틀림없이 한국어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독일에서 11개국의 선교사를 모아 놓고 회의를 하였습니다.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성지로 택해 놓은 40개국에 전부 선교사를 파송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3년 후에는 120개국에까지 선교사를 파송시킬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때가 가까와졌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사상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 민족이 앞으로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된다는 것을 알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합니다.
지금은 이러한 중대한 사명이 최고로 무르익은 때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모두들 가일층 분발하여 일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높고 귀하고 거룩하신 당신의 섭리역사는 기나긴 인류역사를 더듬어 왔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도 저희들을 세워 놓으시고 세계적인 책임을 추구하시는 당신의 입장이 얼마나 처량하고 불쌍한가를 저희들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은 그 누구와도 끊을 수 없는, 우리와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하시는 사랑의 아버님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에게 안겨서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기 보다는, 당신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그 말 한마디가 저희들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아버님을 사랑한다고 천번 만번 말하는 것보다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믿어 주는 그 한마디와 그 한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부디 그럴 수 있는 자녀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그 누가 이길을 막고 핍박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알아주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외로운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가 외로운 눈물을 흘리기 전에 세계를 통해서 저희를 위로할 수 있는 터전을 먼저 닦아 나오셨습니다. 저희의 슬픈 자리를 염려하시면서 세계적인 위로의 터전을 넓혀 나오신 것을 생각할 때, 그 무엇으로도 아버지 앞에 은혜 갚을 길이 없는 저희 자신들임을 더더욱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20여 개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거쳐 온 곳곳마다 당신의 뜻이 그 곳에 심어지기를 고대하고 정성들이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아버지의 무한한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머나먼 이 한국의 한 모퉁이를 그리워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스승을 염려하며 아버지 앞에 눈물로써 간곡히 호소하는 무리가 세계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이 본부가 얼마나 무섭고 엄청난 자리인가를 저희가 잘 알게 되옵니다.
겉으로 나타난 모습들은 부족하고 초라하오나 당신의 심정을 붙들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진정으로 모실 수 있는 마음만은 간절하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과 인연을 찬양할 수 있고, 당신이 세워서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라 할진대, 그 모습과 그 사정과 그 처지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한국을 그리워하는 통일의 무리들 위에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들은 한국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마음으로 추앙하면서 이 땅을 위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사옵니다. 이 땅을 위해서는 뼈라도 묻고 싶어하는 수많은 무리가 통일의 이념과 같이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을 한데 묶어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나라를 세워야 되겠고, 하나의 세계적인 이념을 성취해야 되겠사오니, 그 뜻을 이룰 때까지 저희들은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가야 되겠사옵니다. 6천년의 지루한 역사과정을 묵묵히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본을 받아서 우리는 말없이 참으면서 가야 되겠사옵니다.
갈라져 있었던 수천년 동안에 저희가 아버지를 대하여 몸과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호소하던 모든 사연이 이제는 다 지나갔사옵니다. 이제는 다시 만났사오니 저희들이 아버지의 내정을 품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대신하여 앞날을 다짐해야 할 입장에 섰사오니 저희의 스승이 어느 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저희의 스승이 되어야겠사옵고, 어느 누가 당신의 뜻을 맡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책임지고 나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기나긴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당신의 슬픈 사연을 저희들은 느낄 수 있사옵니다. 수많은 세계 국가를 바라 볼 때, 당신이 찾아야 할 땅과 당신이 걸어가야 할 노고의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피땀 흘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온 세계를 향하여 쉬임없이 달음질쳐야 할 책임과 사명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 실천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젊은 피가, 동맥을 통하여 울려 나오는 그 고동소리를 들을 적마다 당신의 울부짖음이 크다는 것을 그 마음 가운데 느낄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들의 타오르는 심정이 아버지와 더불어 같이할 때마다. 아버지의 거룩함 앞에 머리 숙이고 통곡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인도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제 다시 한국에 돌아왔사옵니다. 이후의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을 중심하고 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슬프고 억울한 사정과 십자가의 고빗길을 몸부림쳐서라도 막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은 이제 또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의 외로운 사정을 품고, 가야 되겠사옵고, 이 나라의 황폐한 실정을 다시 한번 더듬어 가야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은 불쌍한 민족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세계 만방에 자랑하여야 할 아버지의 섭리의 뜻이 통일의 무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이 먼저 알게 되었음을 아버지 앞에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그 동안 당신께서 얼마나 수고해 오셨는가를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으로 정성들이는 당신의 자녀가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천배 만배의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사무쳐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며 민족을 부둥켜 안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간곡한 소원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이 이 한 때를 극복하고 넘어가 세계를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해방의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에 천국을 창건할 수 있는 제3의 이스라엘 민족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만남의 기쁨과 더불어 아버지와 새로운 인연이 맺어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돌아가는 발걸음 위에도 당신께서 보호하여 주시옵고, 이후에 저희들에게 맡겨지는 모든 일과 만나는 시간시간마다 당신의 거룩하신 손길이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옵나이다. 아멘.
정성들인 수고는 기필코 세계의 어떤 곳에선가 이루어집니다. 기도가 얼마만큼 빨리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하늘의 목적과 얼마만큼 일치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체적인 동기가 되어 이루어 놓게 되면 여기에 탕감이 따르게 됩니다. 아직도 통일세계에 식구가 많지 않은 것은 본부의 책임입니다.
본부는 주는 것이요, 상대방은 받는 것입니다. 하늘은 섭리의 목적을 알고 나왔지만 땅은 대개 모르고 따라왔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오셨습니다. 본부도 그렇게 창조의 역사를 개척해야 합니다. 세계를 위하여 보내져서 환경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1968년을 분수령으로 해서 시대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행동적으로 주어야 합니다. 여기는 몇 명이 모인 교회가 아니라 세계의 본부라는 것입니다.
자꾸 갈라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입장을 대신합니다.
한국 전체 식구가 한국 전체를 복귀하지 않으면 세계복귀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 다음 단계의 복귀를 위한 환경을 닦습니다.
한국은 세계로 가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 계절에 3일씩 4계절에 12일을 일해 벌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본부에서는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먼저 받고 주는 것은 빚 갚는 것이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종을 대해서는 자기가 안 먹고도 먹었다고 하고 주는 것이 주인의 입장입니다. 심어 가지고 거두어 오는 것은 좋지만 심지 않고 거두어 오려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으면 안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 실천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귀합니다.
외국에 가 봐야 주체적인 애국자가 됩니다. 외적으로 갖추지 못한 사람은 더더욱 정성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서 주었는데 상대방이 상대기준에 서지 못하면 복이 다시 되돌아옵니다. 높은 위치에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부모가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두었다가 애기에게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실천해야 합니다.
주고서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하늘에 보관됩니다.
일본이 먼저 축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436쌍 축복 때 구보끼(久保木修己)를 불러다 넣었습니다.
6월, 7월, 8월, 9월까지 반공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나라(한국)를 위해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합시다. 사형수(死刑囚)에게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라면 못 하겠나? 우리도 몇십 년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연사형(自然死刑)권내에 있습니다. 그날에 원리가 참소합니다.
축복가정이 믿음의 자녀 못 가지면 막심한 참소를 받습니다. 공식을 알고서 안 하고 먹고 자는 것이 이상합니다. 공식을 가르쳐 주고, 전도하지 말라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 아들딸 기르는 3배의 정성을 들이고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기 가정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천국건설 일을 이웃동네 일처럼 여기면 천국도 이웃동네입니다.
아버님!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시간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예배드리고 있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께 경배드리는 곳곳마다 당신의 영광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따라 세계 순회의 긴 노정을 마치고 다시 이곳에 돌아왔사옵니다. 그간 아버지께서 많은 식구들의 정성어린 기도를 들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그리던 마음들이 다시 이렇게 만났사오매 아버지의 사연을 말해야 하고, 이때의 우리의 사명을 놓고 책임 다할 것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이 시간 아버지께서 친히 주인 되시어서 저희들을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누구도 이 시간, 이 자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시고 아버님께서 친히 이 자리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바쳐 드리는 시간 전부가 아버지의 소원과 일치되어서 저희들이 뜻 앞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드리는 주일예배를, 아버지, 거룩히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친히 직접적으로 주관해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뜻의 결과만이 이 자리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정성들이고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귀국 후 처음 맞는 주일이니 이 시간 여러분들 모두 허락하신 말씀권내에서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들은 오늘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지루하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세계에서 되어진 모든 일의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들이 뜻을 대해 가지고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우리의 뜻을 중심삼은 전반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왔고, 어떠한 길을 가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내용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수와 우리'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구원섭리란 곧 복귀섭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복귀라는 것은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에덴 동산에서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기준을 능가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 식구들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이 실수하여 잃어버린 모든 내용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님의 전반적인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되돌아가야 합니다. 되돌아가는 데는 그냥 아무런 내용도 없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타락한 경로의 반대의 길을 통해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 4천년 만에 하나님이 선택해 놓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민족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은 자기 한 개인의 어떠한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이 아닙니다. 전반적인 복귀섭리, 즉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의 내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생활 그 자체는 자기 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전반적인 역사를 대신해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출발한 생활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치며 수고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는 데,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이것 또한 하나님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비통한 사실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느냐? 이 내용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예수님의 내용과 우리의 내용도 확실해지지 않는 동시에,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확실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세운 후 그 가정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후에 요셉의 보호를 받아서 예수님을 탄생시켰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타락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시려면 원죄와 관계없는 입장에서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나신 예수님이 원죄와 관계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왜? 마리아 자신도 타락한 조상의 후손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런 마리아의 피와 살을 받고 태어난 예수님이 어째서 원죄와 상관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원죄가 없는 분이라고 우리들이 말은 하지만 왜 예수님이 원죄가 없는 분인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들의 교주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의 뜻을 세워서 세계적인 종교로 키운 종교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의 지도자들과 예수님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 즉 만민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니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수많은 종교는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세계가 하나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자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기독교와 그 외의 딴 종교가 다른 점은 무엇이냐?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원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볼 때 수많은 종교의 지도자들도 타락한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 입장에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성신으로 잉태되었다고 하지만 타락의 후손인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태어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어떻게 해서 예수님에게 원죄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태어날 때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생활하고 그 뜻을 받드는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타락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기는 났으되 잘못 태어났으니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데는 옛날의 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가 아닌 새로운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부모는 어떠한 부모냐? 옛날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아담 해와는 타락한 부모이지만 앞으로 인류를 다시 낳아 주어야 할 그 부모는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본래의 부모인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뜻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품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선의 자녀를 번식할 수 있는, 그런 본래의 기준에 설 수 있는 부모인 것입니다. 그 부모는 타락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된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타락과 관계없는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의 근본 뿌리는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밟고 넘어서서, 즉 원죄와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자격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타락한 인간이 요구하는 구주는 어떠한 구주냐? 타락한 부모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서 인류를 낳아 줄 구주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원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 올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타락권 이하에서는 아무리 구원하려 해봤자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 이상의 참된 부모를 이 땅 위에 다시 보내 가지고, 그 부모를 통해서 인류가 다시 해산되는 노정을 거치게 해서 사탄과 영원히 관계가 없게 하시고 사탄이 참소할래야 참소할 수 없게 하시어서, 하나님만이 주관하고 하나님만이 간섭하실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류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원죄를 가진 인간이 원죄가 없는 자리에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 다른 종교가 구주의 내용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구주에 대한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을 보면 하나님 앞에 종의 사명을 가지고 온 종교도 있고, 하나님 앞에 양자의 사명을 갖고 온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인류를 다시 낳아 줄 수 있는 부모를 대신한 입장에서 이 땅 위에 보내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종교 중의 최후의 종교요,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보낸 수많은 종교 가운데 마지막 종교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갖지 못한 종교는 세계의 수많은 인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그러한 입장에 선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은 무엇이냐?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 자신은 타락한 부모의 자리가 아닌 타락하지 아니한 부모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예수님 자신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수많은 인류가 있지만 그 인류는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번식된 인류이기 때문에 모두 원죄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것입니다. 원죄를 넘어서서 타락의 침해를 받지 않은 자리에 선 참된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사람이 병이 났으면 병을 고쳐야 합니다. 만일 약한 사람이 병이 났다면 병나기 전의 약한 상태만큼만 고쳐서는 안 됩니다. 그 상태 이상으로 건강하게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타락이란 인간이 고장이 난 것이요 악의 세계로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고장난 것을 고쳐야 하고 떨어지기 이전의 자리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곧 복귀입니다. 복귀를 하는 데는 옛날 타락하기 전의 그 기준이 아니라 그 기준을 넘어선 자리로까지 복귀해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원죄를 가진 거짓 부모를 통하여 태어난 인류는 원죄를 넘어선 참된 부모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를 다시 낳아 줄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한 분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그분은 아담이 실수했던 그 기준 이하의 자리에 오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반드시 원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탕감의 과정을 거친 터전 위에서 참부모는 탄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 종교에는 없는, 기독교만이 지니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인과 아벨에 관한 내용입니다. 가인 아벨은 한 사람씩 따로따로 나와 가지고 형제끼리 싸웠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동생이 형님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타락론을 배워서 잘 알겠지만, 본래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짓된 부모의 피를 받고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혈육을 받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을 실감하느냐 실감하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원죄를 확실히 청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부모를 통해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비유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 자신은 참감람나무요 우리는 돌감람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가 무엇이 다르냐? 모양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접붙여야 됩니다. 그냥 그 뿌리에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모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다고 할지라도 그 결실은 참감람나무와 아무 관계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감람나무를 잘라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왜 접붙여야 하느냐?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돌감람나무가 된 것은 타락했기 때문이에요.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감람나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돌감람나무가 된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도 필요없고 종교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서로 싸우는데 그것도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서 인간은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 입장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는 구원역사, 즉 복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타락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들어서 알겠지만 타락의 실상은 무엇이냐?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성경의 말씀은 비사(比辭)입니다. 지금까지 그것을 그대로 믿고 나온 것이 참으로 용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라는 그런 맹목적인 신앙 기준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을 하고 20세기 문명을 창건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배후에서 많이 협조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확실치 못한 것이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어요? 무지에서는 완성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악과가 무엇이냐? 선악과가 그냥 선악과입니까? 성경에는 알쏭달쏭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왜 하체를 가렸느냐는 것입니다. 왜 하필 하체를 가렸느냐는 것입니다. 부끄러우니까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끄러우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타락한 사회의 관습적인 관념을 가지고서 `부끄럽다고 생각하니까 부끄럽지'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부끄럽다면 왜 하체만 부끄럽느냐는 거예요. 부끄럽다면 눈은 부끄럽지 않고, 코는 부끄럽지 않고, 귀는 부끄럽지 않고, 머리는 부끄럽지 않고, 손발은 부끄럽지 않느냐 이거예요.
또, 성경에 보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은 잘못 태어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무엇을 통해서 태어나느냐? 선악과를 통해서 태어나느냐? 아닙니다.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의 조상은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기는 태어났는데 하나님이 사랑할수 있고 만 우주에 자랑하고 선포할 수 있는 기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슬퍼하고, 사탄이 지극히 좋아하는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도 잘못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사랑을 통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지를 완전히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참된 사랑의 가지에 접을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수천년 자란 돌람감나무 가지를 완전히 잘라 버리고 정성을 들여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인들은 성신을 통해서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세례가 무엇이길래 불세례를 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느냐? 이런 것을 알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까지 전부가 얼렁뚱땅 덮어 놓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가 지금처럼 계속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찾아내는 발달한 과학문명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또 생활적인 면에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인연을 맺지 못하고 현세계에서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현재 비판받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잘못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잘못된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잘못되지 않은 사랑을 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잘 태어났을 것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잘못된 사랑을 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했었습니다. 그러면 할례가 무엇이냐? 왜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냐? 그것은 탕감법에 의해서 그런 것입니다. 고장이 나면 고장난 부분을 수리해야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역사를 보면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왜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느냐? `장자는 축복을 못 받게 되어 있으니까 못 받았지' 이렇게 대답하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차자는 왜 축복을 받았느냐? `차자는 축복을 받게 되어 있으니까 축복을 받았지'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태어난 이것을 전부다 뒤집어 엎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발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출발을 뒤집어 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이 땅에서 다시 참된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출발은 잘못된 길을 되풀이하기 위해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는 잘못된 결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참된 결과는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출발부터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할례를 했던 것입니다. 할례 받게 되면 애들도 순수하고 좋다고 그러지 않아요? 여러분도 그런 말 들었을 거예요. 왜 그러냐?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모든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인류의 조상은 처음에 심을 때 잘 심었느냐? 잘못 심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 심었느냐? 선악과 나무를 잘못 심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열매가 열리는 나무의 씨를 잘못 심은 것이 아닙니다. 그릇된 사랑을 잘못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릇된 사랑을 잘못 심었으니 끝날에는 반드시 그릇된 사랑의 결실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어느 때 타락했느냐? 청소년 시기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에 거짓된 사랑을 심었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사랑을 심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거짓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거두어져야 할 때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가장 큰 사회문제가 청소년의 윤리문제입니다. 왜 이 젊은 녀석들이 자기들 멋대로 타락의 행동을 하느냐? 그것은 아담 해와가 그렇게 뿌려 놓은 씨가 열매를 맺어서 이제 거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렇게 심어 놓은 것이 인과법칙에 의해 그냥 그대로 결과를 맺어서 해결짓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사랑이 심어졌습니다. 거짓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기에 전부다 거짓 아들들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짓 아들들이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된 아들을 보내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아들을 보내시자마자 이 세상을 전부다 대번에 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혈통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아서 번식되어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끊고, 그것을 밟고,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새로이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역사 과정에서 그 혈통을 바꿔치는 일을 해 오신 것입니다. 혈통을 바꿔치는 일을…….
아담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한 창조주로서 원리적으로 그를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해서 끌고 가요? 못 끌고 갑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이 안 끌려갈래야 안 끌려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래 창조원칙을 두고 볼 때,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그 상대의 주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주관권내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동네에서 한 총각이 부잣집 맏딸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면, 비록 그 총각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더벅머리 총각이라 할지라도 그 부자집 맏딸은 그 총각에게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부정하고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총각이 한마디만 선포해 놓으면 아무리 부잣집 맏딸이라고 해도 꼼짝없이 주관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는 주관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창조의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이 먼저 인간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공식적으로 사탄의 주관권내에 들어감으로써 사탄이 아담 해와는 내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적인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은 창조한 주인의 입장으로서 아담 해와를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되겠는데, 사탄이 옆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완전히 주관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서 하나님과 사탄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놓고 둘이 서로 자기가 가져야 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주관받게 되어 있는 것이 원리인데, 이 원리를 세워 놓으신 하나님 자신이 원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비법적으로 개입이 되었다고 해서 사탄을 쳐서 없애버린다면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사랑의 원리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지요.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부터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를 분립시켜 가지고 고장난 것을 고장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으로 수리해 나온 것이 구원섭리역사인 것입니다.
사랑을 먼저 한 사람이 상대를 주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누가 먼저 했느냐? 천사장과 해와가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해와와 아담이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탄이 주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의 법도가 거꾸로 되었으니 이것을 원리원칙대로 회복해야 됩니다. 그러자면 아담을 하나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 놓아야 되는데 아담을 직접 가르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아담의 아들들을 통해서 나누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들은 사랑의 열매이니만큼 하나님도 주관할 수 있고 사탄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을 각각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번 사랑은 천사장과 해와의 사랑이기 때문에 장자인 가인을 그 사랑의 표시체로 사탄편에 세우고, 둘째번 사랑은 해와와 아담의 사랑이기 때문에 차자인 아벨을 그 사랑의 표시체로 하나님편에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의 승패는 하나님이나 사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사탄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타락한 장본인은 인간이므로 그 인간 자신에게 싸움의 승패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구원섭리가 이루어지느냐 못 이루어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구원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원래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사장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아들 앞에 완전히 순종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인 천사장이 아들인 아담한테 주관을 받아야 할 것이 거꿀잡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주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주관성이 전도(顚倒)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편에 서 있었던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원리적인 주관권을 가지고 해와와 천사장을 주관하여 천리의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창조원리적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탄이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늘편으로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관받아야 될 천사장이 거꾸로 아담을 주관했기 때문에 반대로 주관받는 자리에 들어가 원래의 기준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편에 세워진 가인이 하나님편에 세워진 아벨에게 역으로 굴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굴복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첫번째 섭리의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르고서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의 제사가 왜 필요해요?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피의 제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타락하기 전으로 어떻게 돌아가느냐? 근본적으로 입장이 바꾸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은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고, 또한 천사장은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꿀잡이가 된 그 기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로부터 주관을 받아야 했던 천사장이 거꾸로 아담 해와를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주관성이 전도되었던 것을 바로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난 장자는 사탄편에 세우고 나중에 난 차자는 하늘편에 세워서 잘못 난 것을 바로 고치기 위해 나중에 난 것을 먼저 난 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과 예수님을 놓고 보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은 전부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니 결국 타락한 아담과 마찬가지 입장, 즉 가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둘째번 아담, 즉 후아담으로 태어난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가인과 아벨의 입장을 바꿔치기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먼저 장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주관의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에 동생도 자동적으로 주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빼앗아 나오는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로부터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는데, 그런 간사한 사기꾼 같은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3대 하나님의 거룩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본인이 되었느냐? 알고 보면 야곱은 사기꾼인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래야만이 탕감복귀가 되기 때문입니다. 형이 그르쳐 놓았으니 동생이 그렇게 해서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이 전부다 이러한 내용으로 얼크러져 있는 것도 모르고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덮어놓고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덮어놓고 믿어서 천국에 갈 것 같으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 이런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못나서 이 놀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헤치고 또 헤치고, 깨치고 또 깨치고, 알아보고 또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 내용과는 사고의 기원부터 다릅니다. 이것을 해명해 가지고 그 근본을 시정하지 않고는 인류 구원섭리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를 물리치고 차자가 장자의 권한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이것을 이루려고 했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아담을 침범한 내용을 다시 되풀이한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연장된 것입니다. 왜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구원섭리를 이루지 못해 가지고 인간들로부터 `하나님은 무력하다' `하나님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가? 왜 꼼짝 못하는 입장에 서시게 되셨는 가? 그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냐 이거예요. 하나님도 딱 걸려드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 해도 법을 제정해서 국민들 앞에 공포해 놓은 다음에는 그 자신도 법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편인 가인이 하늘편인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본래는 아벨이 가인을 순종 굴복시켜서 사탄을 사람 앞에 굴복시킨 자리에 세워 놓아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탄편인 가인이 하나님편의 사람인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아담을 타락시킨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을 다시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뜻은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다시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두 아들을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되풀이한 것이 이삭을 중심삼은 에서와 야곱입니다. 야곱이 처음에는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팥죽을 가지고 약속으로 빼앗고, 그 다음에는 실체로 빼앗아 온 것입니다. 하란에서의 21년간의 생활은 그것을 빼앗기 위한 싸움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생 야곱을 형인 에서는 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환영을 받는 데는 그냥 환영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여 천사장을 굴복시킴으로써 인류의 조상 아담이 천사장에게 굴복당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천사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천국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천사와 싸워서 천사를 굴복시켰다는 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인간이 다시 하나님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탄을 굴복시켰다는 권한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못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뿐만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왜 무서우냐? 본래 사탄은 천사장이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니 천사는 우리의 종입니다. 그런데 종이 왜 무서우냐는 거예요. 그것은 원리원칙에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잣집의 아들이라 해도 죄를 짓고서 쫓겨나게 되면 종보다도 못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사탄에게 굴복당했던 것을 탕감하여 어느 한 때에 다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 내용이 성경에 없다면 성경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성경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천사와 싸워 이기고 천사로부터 축복을 받음으로써 그러한 조건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왜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까? 하고많은 뼈 가운데에서 왜 하필이면 환도뼈를 쳤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도뼈를 잘못 써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을 잘못해서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떠한 맹세를 할 때는 환도뼈에 손을 얹고서 맹세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사랑을 잘못함으로써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것과 같은 입장에 다시는 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아담이 그릇된 사랑을 해서 타락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빨갱이니 좌익이니 하는데 좌익이란 왼쪽편으로 사탄편을 말합니다. 또,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직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말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따로 태어나서 싸웠지만 야곱 때에 와서는 쌍동이로 태어나서 싸웠습니다. 싸움의 형태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가인 아벨 때에는 따로따로 태어난 형제들을 중심으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에서 야곱 때에는 쌍동이로 태어난 형제들을 중심으로 복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본래는 인간이 태어날 때 쌍동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태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쌍동이로 태어났느냐? 사탄편 아들이 하나님편 아들을 쓰러뜨렸는데 결국 먼저 태어난 장자의 자리를 차자가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은 형과 동생으로 따로 따로 태어났는데 서로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쌍동이는 단 몇분간의 차이밖에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과 동생의 거리를 그만큼 단축시킨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데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쌍동이를 통하여 역사하시느냐? 가인도 아담의 아들이요, 아벨도 아담의 아들인데 그들이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져 두 갈래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 뱃속에 집어넣어 싸우게 하신 것입니다. 거기에서 동생이 승리하여 장자의 입장으로 이 땅에 나와서 전부 다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기려면 결국은 뱃속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단계씩 점점 내려가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거기에서 이겼다는 기준을 찾아 세우지 않고서는 장자 복귀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역사는 뱃속으로 몰아넣는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 아벨 때보다 에서 야곱은 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에서와 야곱은 쌍동이로 뱃속에서부터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편인 형을 하늘편인 동생이 굴복시키면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어라, 절대적으로 믿어라 하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사탄을 굴복시켜라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혈통적으로 보면 타락하여 사탄편이 된 아담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으니 타락한 아담에 속하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아담은 몇천년 묵은 고목이요, 여러분은 그 고목의 잎사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꺼떡대는 사람이라 해도 그런 패들이라는 것입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오셨던 분이지만, 태어난 그 근본 입장을 놓고 보면 우리보다 나중에 태어난 동생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생 되는 그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예수님을 형님으로 모시고, 만왕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타락세계에 많은 왕이 있었지만 왕 중의 왕이요 만왕의 왕입니다. 또, 전인류의 아버지이셨습니다. 즉, 부모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했을 때 만약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형에게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천사를 영적으로 굴복시켰기 때문에 영적 세계의 수많은 선조들도 야곱편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승리한 터전 위에 선 야곱을 에서가 환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갈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을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기업을 복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 가인은 아벨을 때려 죽였지만 에서는 그런 원수와 같은 입장의 야곱을 때려 죽이지 않고 환영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역사가 되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제끼리 싸움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근원이 연장되어 나오던 역사에 야곱과 에서가 화목하여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페이지가 장식되었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태어나서 자란 뒤에 싸웠고 야곱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태어나기 이전에 복중에서부터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다말의 역사가 나옵니다. 다말이 유다를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를 잉태했습니다. 여기서 다말이란 여인이 누군고 하면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길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창부의 행세를 하여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잉태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역사에, 기독교 역사에 어찌하여 그러한 창녀가 어머니의 입장에서 역사를 전개시켜 나왔느지 압니까? 솔로몬왕의 탄생도 그렇습니다.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서 관계를 맺은 비법적인 것 같은 행동을 통해서 솔로몬왕이 태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랬는지 모르지요? 이런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물어 보면, 목사나 신학박사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알 수 있느냐고 하면서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무지를 전부 다 잘라 버리고 뭉개 버려야 할 것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사명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네들이 정통이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기가 막힙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귀가 썩을 만큼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기성교회 다니다가 우리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데 기성교회 믿다가 들어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주 이마에 핏발이 섭니다. 지금까지 자기 멋대로 믿다가 지쳐 가지고 머리를 휘젓다가 갈 데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들어온, 꼴사납고 꼴불견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갔다 왔다고 하니 구경삼아 가보자 해 가지고 떡 들어옵니다.
그래 와 보니 어때요? 이래 뵈도 여러분보다는 낫지요? 여러분은 배워야 되고 나는 가르치는 선생이니 선생이 제자보다 나을 수밖에요. 처음 온 사람들 섭섭할지 모르지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선생님을 핍박하고 욕해 왔습니까? 오늘 여기에 기성교회에서 새로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선생님한테 욕한 사람 많이 있지요? 욕했어요, 안 했어요?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했지' 할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다말이라는 여인은 왜 그렇게 해야만 되었는가? 그것은 혈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음란의 씨가 뿌려졌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서 새로운 씨를 찾아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복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이렇게 4대 음녀가 나와 있습니다. 성경상으로 보면, 그들은 전부 다 음녀입니다. 왜 성경에, 그것도 마태복음의 맨 첫머리에 그런 사람들을 기록해 놓았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악한 사람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하는데, 말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그렇게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다말과 통한 유다의 지파를 통해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러한 유다지파를 통해서 태어나야 했느냐? 유다 지파의 조상이 누구냐하면 바로 유다입니다. 이 유다의 장손은 다말을 통해서 태어난 베레스인데 왜 예수님이 다말을 통해서 낳은 그 장손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긴 왜 그래, 하나님이 그렇게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렇게 태어났지' 할는 지 모르지만 그런 대답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비법적인 입장에서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에 그렇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나무 그늘에서 타락했지, 어느 벽돌 집안 무슨 침실에서 타락했어요?
그래서 베레스와 세라가 다말의 복중에서 서로 싸운 것입니다. 성경 말씀 창세기 38장을 한번 읽어 보세요. 거기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산모가 만삭이 되어서 산파가 와서 기다리는데 복중에서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이 먼저 나오는 것을 밀치고 동생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처럼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란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복중에서 형 세라를 밀치고 동생 베레스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거기서 하늘의 역사는 실체 복귀의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성경이 참 재미있게 되어 있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하기 좋으라고 그렇게 되어 있겠습니까? 사람이 태어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이 땅 위에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이 거기에서 닦여진 것입니다.
아담은 타락한 후 패자의 조상이 되었지만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승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중에서 승리한 기반을 못 가진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이 아니라, 복중에서부터 형을 굴복시킨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야곱의 아들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가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과 그 아들들 2대를 중심삼고 복중복귀 역사를 해서 하늘편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다음에 태어난 동생은 그 형에게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복종하고 자동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터전이 닦여졌으므로, 거기서 하나님의 섭리는 비로소 이 땅에 발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핏줄, 즉 혈통을 바꿔치는 역사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학박사 아니라 목사 할아버지라 해도 부정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무슨 신학박사니 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와도 아무도 만나 주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필요하기 전에는 안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도 신학박사니 목사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기에 만나 보았습니다. 머리털이 샛노랗고 눈이 시퍼렇고 코가 말처럼 생긴 녀석들이지요. 저기도 한 사람 와서 앉아 있구만요. 그런 사람들과 성경을 놓고 얘기하는데 선생님이 얘기하면 자기들도 모르게 자꾸 빨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대 가면서 하나 둘 얘기를 하면 찡찡하는 바람에 어떻게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엔 믿기지 않는 거짓말같이 생각되다가도 나중에는 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베레스가 세라를 복중에서 굴복시켜 가지고 태어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복중에까지 닦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혈통은 타락인간들과는 다릅니다.
복중에서부터 승리한 터전 위에 선의 혈통을 중심삼고 선조들의 그러한 전통을 이어, 충성을 다한 이스라엘 민족의 여인들의 정성어린 계대를 이어, 2천년 후에 마리아에 이르렀습니다. 마리아가 다말을 중심삼고 복중복귀에 승리한 혈통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비로소 예수님을 잉태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중에 애기가 잉태되면 벌써 사탄이 참소합니다. 그러면서 `이 자리는 나의 자리요, 여기에 잉태되는 사람은 모두 그릇된 사랑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전부 나의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다말의 복중에서 하늘편인 베레스가 승리한 혈통적인 기반 위에서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복중에 잉태되었을 적부터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반 종교의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그것입니다. 태어난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사탄과 싸워 승리한 기반 위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장자의 기준을 세우고 예수님은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도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2천년 만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2천년 만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는가? 복귀는 가인 아벨의 복귀, 즉 형제 복귀인데, 사탄세계의 국가들이 먼저 태어난 가인형의 나라들입니다. 이 가인형의 나라들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아벨 나라가 새로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아벨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2천년 동안 길러서 하나의 아벨적인 나라를 이루어 사탄세계의 수많은 가인적 국가들을 굴복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죽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십자가에 죽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고들 말하지만, 그런 시시한 얘기는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지 않고는 구원을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놓고 볼 때, 그는 마리아의 복중에서 잉태되어 태어났지만,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 위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을 전부 다 걷어 치운 입장에서 잉태되어 탄생했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다는 것은 원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것이 죄라고 하는데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게 죄라고요? 원수가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원리원칙에, 법도에 어긋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걸려드는 거예요. 예수님은 태어나기를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자리를 벗어난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분입니다. 사탄의 주관권내에서 사탄과 접하는 것이 원죄인데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 조건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을 넘어 태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원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꿔치는 역사를 해왔던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 때 바꿔치고 또 야곱이 아들 베레스 때 바꿔치고 안팎으로 바꿔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다는 뜻인데 무엇에서 이겼느냐 할 때, 이제 보니 단순히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지에 엉클어진 모든 사연을 풀기 위한 열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태어나되 원죄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한 10년 후나 20년 후에 모두 얘기해 주려고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으로부터 세계적으로까지 다 기반이 닦여진 다음에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다는 것을 전부 다 세밀히 설명해 주겠습니다. 이것을 얘기하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것입니다. 성신으로 잉태했다고만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모르고 믿는 것도 퍽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세계를 빨리 복귀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영계에 갈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요렇게 조렇게 다 풀어 놓으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한 단계 더 올라가겠지만 아직은 때가 일러서 부작용이 벌어질까 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서 어떻게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까? 이웃 동네의 어느 부잣집에서 외동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있는데, 난데없이 그 동네의 어떤 종의 딸이 와서 `저 사람은 나의 남편이다. 나의 신랑이다' 하고 떠든다고 해서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그의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좋아하는 것을 전부다 갖다가 장식해 놓고 그가 웃을 수 있는 내용과 그가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 놓고 간판을 척 걸어 놓으면 그는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와서 웃지 말라고 해도 웃게 되어 있고 신랑이 되지 말라고 해도 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준비를 해놓고 맞아들여야 내 남편, 내 신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그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겠지' 하고 있습니다. 이건 멋대로 살다가 주일날이 되면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고 중얼중얼 몇마디 하고는 다시 나와서는 싸움질이나 하고, 또 교회에 가서 `아이고 하나님! 또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죄많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런 세상에 사는 인간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라고 기도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어느 신랑이 그따위 신부를 취하려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신랑이라면 그런 신부 취하고 싶겠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늘의 왕자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신부감이 없어서 값으로 친다면 몇푼밖에 안 되는 신부를 찾아가서 취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는 동네 이장 아들도 안 취해 갑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천국이 자기 입안에 들어 있고 배안에 들어 있는 줄 압니다. 모두 사기꾼들입니다. 사기꾼들이에요.
이제는 기성교회를 공격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수십년 동안 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때려잡기 위해 반대했으니 이제 그만하면 됐지요. 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기성교회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끄떡 안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얘기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힘으로 대결해서라도 듣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통령을 해 먹으려고 무슨 결당운동을 한다느니, 정당을 조직한다느니 하면서 우리가 하는 반공운동에 대해서 별의별 소리를 다하지만 욕하려거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하려고 그러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기독교를 굴복시키기 전에는 다른 일을 안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중요한 때에 이 자리에 찾아 들어오기를 잘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것 같습니까? 선생님 눈을 좀 보라구요. 절대로 누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웃음)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을 골탕 먹이는 데는 제일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하게 되면 선생님들이 꼼짝달싹을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예를 들어 아르키메데스 공식은 이러니까 물어보지 말고 믿어라 왜 못 믿느냐고 하는데 나는 물어보지 말라고 한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들은 심지어 내가 이 나라의 역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했는데, 되다 보니 역적은 못 되고 이렇게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미국놈들, 독일놈들, 불란서놈들, 영국놈들, 이태리놈들-전부다 놈들입니다-을 불러 놓고 `너희들,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시켜 주는 것이 좋겠어? 통일교회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는 것이 좋겠어? 어디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했더니 `아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셔야지요' 하며 전부 다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기분 나쁘게…. 하지만 손 든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렇죠? 기분 좋을 때까지 손 들어야지요.
지금까지 어느 동양 사람한테 서양 사람들이 그렇게 해본 적이 있습니까? 뭐 유명한 무슨 대학을 나오고 무슨 학사코스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일단 말씀을 듣고 원리에 딱 걸려들면 자기들 마음대로 결혼할 수 없으니 선생님을 모셔 놓고 축복을 받으려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곳에는 가나요? 아주 재미있는 일입니다.
아시아인, 동양 사람이 가 가지고 서양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놈들아!' 해도 그들이 `예이!' 할 수 있는 기반, 죽으라면 죽을 수 있고 나가라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일생에 가장 귀한 결혼문제를 선생님한테 맡기고 따릅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 말은 안 들어도, 자기 나라 대통령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듣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금만 그어 놓으면 누구든지 잘 따라갑니다. 요전에도 선생님이 얘기했지만 또 한번 놀란 것이 무엇이냐? 사상이라는 것이 참 멋지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람들을 사상으로 한번 돌려 놓으면 정말 멋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의 일각에서부터 서구 대륙에 이르기까지 모든 청년 남녀들을 불사를 수 있고 펌프질할 수 있는 것이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결혼도 많이 시켜 주고 왔습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슨 탕감이니 뭐니 하는 놀음을 한다고 결혼을 시켜 주다 보니 결국 중매쟁이 왕이 되었습니다. 기분 나빠 죽겠어요. 세상에서도 가장 골탕먹는 것이 중매쟁이입니다. 결혼을 해서 잘살면 자기들이 잘나서 잘살고 못살면 중매쟁이 때문에 못산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잘살아도 중매쟁이 때문이고 못살아도 중매쟁이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조금 더 낮지 않느냐는 말이에요. (웃음)
그런 사람들은 쭈욱 모아 놓고 보니 사상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고 느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칼로 자를 수도 없고 불로 사를 수 없는 세계적인 그물을 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그물로 자꾸 떠서 일본도 건져 내고 미국도 건져 내고 동반구, 서반구를 다 건져야 합니다. 그래서 다 건져 낸 다음에는 조롱같이 끈으로 졸라매서 그것을 하나님의 어깨에 걸고 하나님을 끌어 내면 세계복귀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웃음) 하나님 앞에 실례되는 말인지 모르지만 사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끌고 다니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끌리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럴 수 없어서 한이지요. 선생님이 지금 그 일을 해드리기 위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코를 꿰이기 위해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래요? 「예」 얼굴들은 참 잘 생겼구만요. 무슨 할 일이 없어서 이 일을 합니까? 만약에 선생님이 무슨 공부를 해서 학박사 되기를 원했으면 박사학위 한 두개 따 가지고 만족할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3개 이상 따내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칼을 꽂고 맹세하고 나갈 사람입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이면 세계적으로 크게 이름이 났을 것입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돈을 좀 모았지만, 돈을 모았다 해도 지금보다 더 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꿈도 안 꾸는 이 일을, 세계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이 일을 선생님이 해낸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해 놓았으니 한국으로 보면 잘한 일이에요, 못한 일이에요? 만약 한국 사람으로서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민족의 반역자입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변소를 자랑할 것입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인 선생님이 서양의 청년 남녀들을 모아 놓고 짝을 지어 주어서 결혼을 하는 데도 그들은 자기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이 18세만 넘으면 모든 것이 자유이기 때문에 결혼 문제 같은 것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낳는데 부모가 필요하지 결혼하는 데는 부모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을 할 때도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개판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 같으면 결혼식을 한번 하려면 아예 파수꾼을 세워 놓고 결혼식을 하는 데, 미국 사회 같은 데에서는 백주에 전국에다가 선전을 하면서도 자기들의 부모들한테는 몇월 몇일 몇시에 결혼을 하니 오고 싶으시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라고 전보를 칩니다. 그렇게 해도 그 부모들은 또 비행기를 타고 결혼 장소까지 잘들 오더구만요.
미국은 땅이 넓어서 우리 나라처럼 기차를 타고 왕래 못 합니다. 비행기를 타야 돼요. 그래도 전보를 해서 오라고 하니까 자기 아들딸이 인생에 한번밖에 없는 거룩한 결혼식을 하니 그 자리에 참석해야겠다고 하면서 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요? 우리 한국에서 36가정이 합동결혼식을 할 때, 그 사위도 지금 이 자리에 있지만,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자기의 두 딸이 모두 통일교회에 걸려 들었다는 거예요. 자기는 어느 학교 교장 선생인데 좋은 사위감으로 어떠 어떠한 선생들을 골라 놓았다고 절대 합동결혼식을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반대를 하려면 하라. 당신네 딸들은 내가 시집을 보내 주마' 했습니다.
결혼식을 하는데 오라면 연락도 안 하면 욕먹으니까 전보를 쳐서 오라고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는 데는 조건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조건이냐면 흰 옷을 입고 오라는 것입니다. 여기는 거룩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곳이니까 흰옷을 입고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흰 옷을 안 입고 오는 사람은 정성을 안 들인 사람들이고 반대하는 패들이니 대문 안에 들여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들딸이 결혼을 하는 자리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흰 옷을 안 입고 양복 입은 채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복을 입고 와가지고 아무리 큰소리를 쳐봐야 문을 지키는 젊은 사람들이 일보도 양보를 안 하거든요. 그러니 나중에는 별 수 있어요? 결국 울고불고하면서 `제발 하얀 의복 좀 빌려주시오' 했습니다. 결국 굴복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은 양복 위에다가 그대로 하얀 옷을 입고 축복받는 자리에 들어와서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들어왔는데 또 자기가 세상에서 그래도 무슨 간판이 붙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지몽매하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예식을 마치고 자기 딸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총각을 데리고 나오는 데 별 수 있어요. 그때서야 판 깨기는 다 글렀지요. 선생님이 자기 딸들을 축복해 주려고 할 때는 욕을 들이 퍼부었지만 욕을 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축복해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가 욕을 하고 그러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이웃 동네 개가 짖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생각하기를 지금은 그렇게 욕을 하지만 두고 보자. 3년 이내에 나한테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합동결혼식 시킨 것은 잘못했지만 우리 사위만은 잘 얻어 주었다고 하는지 안 하는지 두고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이 앞에 앉아 있었구만요. 그때 그러던 것이 생생한데, 지금은 그 사위를 자랑 못해서 안달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한 것 같이 보였지만 잘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여러 가지 비판도 받고 여러 가지 소문을 들어 가면서 일해 나왔지만, 그 모든 것은 한국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도 팔아먹고 국가도 팔아먹고 그럴 줄로 생각들을 해 왔지만, 이제 그들이 통일교회 신세를 많이 질 날이 올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에 더 많은 돈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로 나가기 위해 아시아와 미대륙과 구라파를 연결시켜서 여기에서 잡아 당기면 세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차차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서 6천년 동안 슬프고 외로왔던 하나님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죽을 길, 살 길을 넘나들면서 생애를 바쳐 일해 나온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이런 통일교회가 망할 것이냐?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해서 내가 몇 번 죽을 자리에 들어갔었는데 나는 죽지 않고 살았고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은 죽어 갔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리 원수라 해도 그에게 벼락이라도 맞으라고 저주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가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극적인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백년, 수백년 후에 극으로 그려져서 나오게 되면 세계의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통곡할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멋진 일이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부터 얼마 안 가서 선생님이 세계적인 사건을 많이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이번 순회 기간에 일본에 들렀을 때도 대단하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얘기하면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일본에서 간판을 붙이고 자랑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선생님이 한국으로 오기 위해 비행장으로 향할 때 선생님의 짐을 들고 비행장까지 따라 나오려고 자기 비서랑 부인이랑 다 데리고 나와서 야단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 봐요.
선생님은 10년 전 비밀리에 일본에 선교사를 보낼 때 충청남도 갑사에서 여러 가지 지시를 하면서 십년 후에는 반드시 이 민족과 일본 앞에 플러스 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것은 그때, 즉 자유당 시대에는 법적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것이 제한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했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는 대한민국이 감사하고 일본 정부가 선생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니, 선생님이 아시아에서 할 만한 일은 다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선생님 말씀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듣겠습니다」 여자들 잘 듣겠어요? 「예」 얼마만큼이나 듣겠어요? 아들의 말만큼 듣겠어요, 남편의 말만큼이나 듣겠어요? 다시 시집보낸다고 하면 다시 시집 가겠어요? (웃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치에 안 맞지요. 남편이 죽은 다음이라면 몰라요.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군요. 5분이면 결론지을 수 있었는데 벌써 1시간 20분이나 지났군요. 그래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귀한 말씀을 할테니까 졸고 싶은 사람은 뒷자리로 가서 계속 졸고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빨리 가십시오. 여러분도 덥겠지만 나도 덥습니다.
그건 그렇고, 예수님이 2천년 전에 태어났는데, 태어나는 데는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원죄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입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거짓 부모의 피를 받아서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데, 원죄가 없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느냐? 참부모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 혼자서 부모가 될 수 있습니까? 신부가 있어야 되지요. 신부가 있어야 해요. 부모가 되려면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으니 신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뭡니까? 아내지요. 그러면 아내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신부는 한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전부가 예수님의 신부 되겠다고 하니 어떻게 신부를 골라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골라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요런 조런 조건을 갖춘, 그래서 예수님께 백 퍼센트 딱 들어맞는 신부는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좀 더워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이야기하다가 땀을 흘리는 거니까 여러분이 미안해 해야지요. 왼쪽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앞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또 뒤에도 사람이 있다면 뒤에서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니 코가 어떻게 생겼고, 눈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합니다. 말이 빠르다는 것은, 무엇을 하나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미라는 것입니다. 손을 대는 날에는 끝장을 봐야 합니다. 보기에 몸은 좀 뚱뚱하지만 신경이 예민합니다. 안테나가 대단히 높지요. 하지만 진짜로 나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와 일직선상에서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진짜 봤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있을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과정에 별의별 제사장 목사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나왔지만, 신부 같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진짜로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회에 각국의 대표선수로 출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일등을 하겠다고 하면서 나갑니다. 세계의 수십개 국에서 모이는 사람들이 전부다 일등을 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등이 어떻게 결정되느냐? 그냥 결정하려면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회고 뭐고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뛰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뛰게 되면 십리도 못가서 쓰러지는 사람, 절반 가서 포기하는 사람, 3분의 2쯤 가서 그만두는 사람, 결승점을 한 발짝 앞에 두고 넘어지는 사람 등등 가지가지의 사람이 나옵니다. 결승점을 한발짝 앞에 놓고 넘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등 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그때까지 아무리 잘 뛰었다고 하더라도 일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기성교회가 결승점까지 거의 다 와서 세계적인 골인지점을 뛰어넘으려고 하는데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성교회가 전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가자빠져 있습니까? 우선 통일교회가 일등을 한다고 그래 봅시다. 날씨도 더운데 기분이라도 좋게 그렇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웃음) 또 사실 우리 통일교회가 일등하지 별 수 있어요?
지금, 세계적으로 예수님의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교파가 몇백 개입니까? 그 많은 교파들이 일시에 신부가 될 수 있습니까? 모두 일등할 수 있어요? 그럼 이 세계에 개인적으로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교회적으로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 것이며 그 교회는 어느 교회일 것이냐 할 때 여기 서 있는 이 사람과 통일교회가 둘째로 꼽힌다면 이런 노릇 안 하겠습니다. 절대로 안 한다 이겁니다. 요전에 미국에 갔을 때 신학박사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실력 앞에는 그들도 별 수 있습니까? 실력 앞에는 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운동' 하면 무슨 운동이든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슨 시합을 해서 하다 못해 3등권내에라도 못 들어가게 되면 견디지 못하는 성미입니다. 선생님이 옛날에는 동네에서나 면에서 이름난 씨름꾼이었습니다. 동네의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해서 졌을 때면 우리 집 울타리 안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큰 둥치를 부둥켜 안고 밥도 안 먹고 밤새도록 `이놈아 너는 언젠가 나한테 진다' 하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과 다시 씨름을 해서 이기고 나서야 밥도 먹고 밤에 잠도 잤습니다.
좋은 신랑 신부란?
선생님은 어떤 것이든 손을 대는 날에는 끝장을 내고 맙니다. 미국의 포오드 회사도 말아 먹으려고 합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여기 미국 사람들이 있는데 기분 나쁠 것입니다. 틀림없이 말아먹을 것입니다. 그 이상 가는 자동차 회사도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돼요, 안 돼. 선생님이 몇 개월 만에 돌아와서 보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통일교회와 선생님을 직접 대하고 선생님에게 지도받는 통일교회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한가지 틀림없는 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의 신랑이 못 되면 여러분이 신랑을 만날 수 있게끔은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단단히 결심하고 따라 나가라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젊은 사람들은 단단히 결심하고 세계를 위해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의 앞길은 더욱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를 때려잡아 죽이겠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만일 백주에 길거리에 쓰러져 죽더라도 선생님이 주장한 사상과 닦아 놓은 터전은 그 누구도 점령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제 새로 들어 온 식구들은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고,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의 입장에 서기 위해 여간한 훈련을 해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김새도 잘 생겨야 됩니다. 못생긴 사람은 아예 신부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웃음) 잘 생기는 데는 어디가 잘 생겨야 되느냐? 겉이 아니라 속이 잘 생겨야 합니다. 속이 잘 생기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또 허위대도 좋아야 됩니다. 마음씨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조그만 일을 가지고서도 싸움하기 일쑤고, 바늘 하나 가지고 사흘 나흘 가슴을 앓는 여자들, 그들이 신부는 무슨 신부입니까?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신부는 커녕 주님이 발에 신는 신발도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신부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에 갔을 때에 일본 식구들에게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70내지 80년 후에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처녀 식구들에게 좋은 신랑 얻고 싶냐 나쁜 신랑 얻고 싶냐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얼마나 다정스럽고 따뜻하게 들었는지, 좋아서 눈물을 다 흘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기 처녀들, 좋은 신랑 얻고 싶어요, 나쁜 신랑 얻고 싶어요? 또 남자들은 좋은 신부 얻고 싶어요, 나쁜 신부 얻고 싶어요? 도둑 같은 남자들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지요. (웃음)
그러면 어떤 신랑이 좋은 신랑이냐? 얼굴이 잘나고 허위대가 좋고, 일류 대학 출신, 일본으로 말하면 동경대학 출신 정도면 좋은 신랑이지요? 그래요? 어느 사람들은 `그렇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류 대학 출신 신랑감이라 하더라도 통일교회 믿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절대로 시집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안 믿는 일류 대학 출신의 신랑감을 만나고 싶어요, 한갓 농촌의 지게꾼이지만 죽을지 살지 모르고 통일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물어볼 것도 없이 통일교회에 충성하는 지게꾼을 만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처녀들한테, 제일 못난 사람이 통일교회에 제일 충성한다면 그에게 시집 가겠느냐고 했더니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더구만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대답 안할 수 없지요. 결국 `제일 못난 사람한테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더라 이것입니다. 사람은 틀림이 없거든요.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그럼 일본에서 제일 잘 믿은 사람과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믿는 흑인이 있는 데 아프리카 흑인이 못난이지만 그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십배 이상 통일교회를 잘 믿는다면 어디로 시집 가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했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아프리카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섬나라에 현재 1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30년 후에는 1억 7천 내지 2억에 가까운 인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50년만 지나면 2억이 넘을 것이고, 7, 80년 후에는 4억이라는 인구가 일본 땅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같은 좁은 땅에서 4억이란 인구가 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태평양 바다에 땅을 만들어서 집을 짓고 살 것입니까, 공중에 땅을 만들어 가지고 파먹고 살 것입니까? 그때 가면 별수없이 일본 천황은 외국에 가서 머리 숙이고 `당신네 나라에 우리 일본 사람 몇 천 몇백 명만 받아 주십시오. 우리 좀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이민교섭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는 날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일본의 백년 이내의 장래만 생각해도 통일교회의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상을 불어넣어 가지고 세계로 시집 장가 보내는 운동을 일본에서 벌이려고 합니다. 일본이 살 길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일본의 저명한 인사를 만나서 산아제한에 대해 얘기했는데 아무리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해도 국민들이 거기에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아들딸 하나만 놓고 만족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적게 낳더라도 아들 둘 딸 하나 정도는 낳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기들보다 수가 많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의 신부가 누가 될 것이냐? 구라파에 사는 어느 금발에 호수 같은 눈동자를 가진 백색미인이 될 것이냐? 아닙니다. 아까 말할 바와 같이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신부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신부가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 자리에는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디 결혼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래 결혼생활이 재미있습니까? 재미 있어요? `입을 벌리고 하- 재미있기만 하겠소. 나를 좀 보시오' 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신랑이신 예수님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다면, 얼마만큼이나 그 사이가 좋아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것 생각해 보았어요? 예수님과 신부는 깨가 쏟아지기 전에 날아갈 만큼이나 재미있게 살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상적 부부란 어떠한 부부? 최고의 예술을 실체로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입니다. 최고의 문학을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인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 세계 최고의 문화세계를 접하기 전에 최고의 사랑으로 부부가 주고 받는 달콤한 사랑이 세계 최고의 예술 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최고의 문학 작품이요, 그 자체가 문학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하늘의 왕자로 오는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신부는 최고 중의 최고 신부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부가 되려면 그 심정이 어떠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2천년 동안 사랑해 오셨고 2천년 동안 일해 나오셨는데, 2천년 동안이나 그토록 수고해 나오신 예수님의 사연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떠한 조상을 통해서 태어났는가? 또한 예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맛있어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좋아하는가, 또 누구를 만나면 좋아하시는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것을 아느냐? 선생님이 이런 것을 모르고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으니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부를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다. 그러면 신부를 찾아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로서 인류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여 부부를 이루어서 인류를 다시 낳아 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된 부모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서 쫓겨난 거짓된 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 핏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핏줄을 밟고 밟고 뽑아 버리고 뽑아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혈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절대 개인적으로는 못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알아보니 천국은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그런 망상적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천국은 가정 단위로 가게 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정이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이 같이 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같이 살 수 있는 곳이 이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고, 동생은 천국 가고, 누나는 지옥 가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천국 갔다고 해서 좋겠습니까? 천국은 가정으로서 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의 시발은 어디에서부터 벌어질 것이냐? 참된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참부모와 거기서 태어난 아들딸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다가 그냥 그대로 이삿짐을 싸 가지고 옮겨가서 사는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락한 가정은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은 모든 인류는 천국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 있느냐?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들 하지만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아니면 거짓말을 했는가 하는 것은 죽어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반대만 하지 말고 죽어 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죽어 보면 다시 살아 올 수 없으니까 안 되지요.
여러분, 예수님은 신부를 찾기 위해 이 땅 위에 다시 오십니다. 6천년 전에 참부모의 자리에 서야 했던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인류의 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한의 심정과 인류의 한의 심정을 해원시켜야 할 사명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파송하신 구주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주, 구주, 구주는 누구냐? 구주가 오는 데는 아들딸까지 끌고 와서는 참된 구주가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격으로 오시는 구주를 모시고 싶습니까? 아무리 내가 죽은 자라고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종의 자격으로 와서 구원해 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양자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로서도 완전히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면 부모가 구원해 주기를 바라지 아들이 구원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또는, 양자나 혹은 종이 와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겠느냐는 것입니다. 구주의 최고의 기준은 참된 부모입니다.
참된 부모로 온 구주가 인류가 소원하는 마지막 구주입니다. 아들 구주, 양자 구주, 종 구주로 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타락한 것이 부모이기 때문에 형제나 자매가 구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부모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구주 또는 부모로 와서 부모가 타락한 것을 전부다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참된 부모의 사명을 가지고 와서 부모로서 이 땅의 인류를 구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풍기는 그 가슴에 흠뻑 묻혀서 해방과 자유와 부활을 맞이하는 한 날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예수믿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이신 예수 앞에 신부가 하나밖에 있을 수 없으니 그 신부가 누구냐? 예수는 아버지요, 그의 신부는 어머니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님과 그 신부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보내시느냐? 우리가 거짓된 부모의 인연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된 부모를 갖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참부모를 찾아서 참부모의 사랑을 받고 참부모가 인도하는 나라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땅 위에 평화의 왕국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신랑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장가를 가야 되겠어요, 시집을 오게 해야 되겠어요? 장가를 가는 것도 좋고 시집을 오게 하는 것도 좋지요. 어쨌든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또 기성교인들은 `아이고 거룩한 우리 주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가를 안 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장가가는 것을 반대하는 패들은 악당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장가를 갔다고 합시다. 기성교회에서 이 자리에 처음 온 사람들, 예수님이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다면 예수님의 핏줄을 타고 난 그 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 안 하시겠습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의 아들은 뭡니까? 하나님의 손자지요. 그래 하나님이 손자가 있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없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물어볼 게 뭐 있어요. 영감들이 전부 다 손자들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손자를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정은 원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을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누구의 가정입니까? 예수님의 가정인 동시에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뿐만이 아니라 그 친족도 원하시는 것이요, 그 예수님의 종족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다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보아서도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이단입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갔더니 통일교회 선생님이 땀을 흘려가면서 예수님이 장가가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기분 나빠할는지 모르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그런 내용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알고 나서 그것을 의심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보다 못해서 이 노릇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보다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힐 때까지도 기도해 보았습니다. 영계에 대해서 보고 듣고 분석도 해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껄렁패들은 빈 깡통이어서 발로 차 보면 소리만 요란하게 크지, 내용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자기네들이 빈 깡통인지는 모르고 통일교회를 깡통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였느냐 하면, 예수님의 결혼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잔치를 한다면 얼마나 큰 잔치를 하겠습니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고 아직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어린아이까지도 구경하고 싶어서 뛰쳐 나오도록 크나큰 잔치를 하고 싶을 것입니다. 뱃속에서 팔삭동이가 뛰쳐 나와서 벌떡 일어나 가지고 예수님 혼인 잔치에 구경하러 가겠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느라고 합동결혼식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은 왜 죽게 되었느냐? 예수님 자신의 가정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의 부하로 만들기 전에, 그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자기의 수중에 넣기 전에, 유대교 앞에 제사장의 입장에 서기 전에 맨 먼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늘 앞에 먼저 가정을 찾아 세우지 않고서는 제사장이 된다 해도 헛된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된다 하더라도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심만고하여 3년의 공생애노정을 거쳤지만, 이번에 순회하면서 예루살렘에 들렀을 때 선생님이 감람산에 올라가서 3천년 묵은 감람나무,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배드로·요한·야고보 세 제자를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3차 기도를 드릴 때, 베드로·요한·야고보 세 제자는 아마도 그 나무 밑에서 졸았는지 모릅니다. 그 자리가 예수님한테 책망을 받은 자리요, 예수님을 그의 제자 유다가 와서 팔아 넘겼던 장소니, 기가 막히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자리에 오는 사람들마다 우리 주님 죽기 위해 여기에 오셨다가 나를 위해서 죽어 가셨으니 잘 죽어 가셨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참 기가 막히는 자리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셨다면 뭣 하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 세워 가지고 4천년 동안이나 길러 왔겠느냐는 것입니다. 죽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려면 악질들, 강도들만이 사는 나라에 보내시지 않고 왜 4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시며 길러 오셨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보내셨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정성을 다해 선민으로 길러나온 것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였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이나 `너희 나라에 메시아가 온다. 만왕의 왕권을 가지고 와서 세계를 지배할 것이니 기대를 갖추고 정성을 들여라' 하면서 길러 오셨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죽이라고 그랬겠느냐는 말입니다.
악당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자원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악당들이 잡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한 것이 일이 잘되어서, 좋아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입니까? 나빠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입니까?
근본이 틀어진 기독교의 역사를 바로잡아서 세계적인 사명을 다하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은 꿈 같은 일입니다. 끝날이 가까와질수록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사회적인 비판을 받고 사상적인 세계에 있어서 그늘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런 자리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놓고 보니 예수가 죽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해서 죽은 것입니까? 책임을 못 해서 죽은 것입니까? 「못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사연에 대해서 좀 얘기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잘하고 요셉이 책임을 다했다면 예수님이 죽었겠습니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해서 죽었는가 요셉 가정이 잘못해서 죽었는가, 이것부터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녀석들은 무슨 연애니 뭐니 해 가지고 길거리에서 바람 피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지만, 교회 들어오기 전에는 그랬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남자를 사랑하던 여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마음이 싹 돌아가 가지고 이제껏 사랑했던 사람한테 `굿 바이, 굿 바이' 하고 돌아서 버리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나쁩니다」 얼마나 나쁘겠어요? 아마도 그 여자는 깨 버리고 싶고, 그 남자를 날려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남자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남편을 그렇게도 사랑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여자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만일 기분이 좋다는 사람은 차라리 죽어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 생각해 보세요. 남자의 체면에 여편네가 그러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요? 칼침을 놓고 하더라도 여자가 자빠지는 것을 봐야 속이 시원할 것입니다.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는 남자는 남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춘 남자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할 수 있고, 눈이 올바로 박혀 있고, 사지백체가 멀쩡한 남자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사회는 간음한 여자는 율법에 의해서 돌로 쳐서 죽이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가 난데없이 애기를 배었을 때 요셉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나빴겠습니까? 피가 끓고 뼈가 저리도록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으니 고민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꿈에는 진짜꿈도 있고, 개꿈도 있고, 시시한 꿈도 있으니 그냥 그런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에서 깨어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개꿈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너무 고민을 하니 그러다가 죽을까 봐서 조상이 나타나서 위로하기 위해서 그런 꿈을 보여 준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별의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안 좋았을 것입니다. 결국 숱한 고민 끝에 마리아를 데려오긴 데려왔지만, 그래, 둘이서 재미있게 살았겠어요? 재미있게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면 갈수록 마리아의 배가 불러오는 데 모두 용서해 주고 데리고 오긴 왔지만 마리아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궁금해서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하늘이 역사를 하고 하늘의 명령을 받아서 나갈 때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지만, 그것이 지나고 나서 보면 꿈을 꾼 것 같다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서 갑자기 해가 나타난 것과 같은 기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해가 뜨고 보니 집이 무너지고 부서진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그것을 아느냐?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 보고 숨겨 있던 모든 비밀을 전부 들춰 보았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는 이런 말을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영계에 가서 죄인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마리아에게 그런 일을 물어 보았겠어요, 안 물어 보았겠어요? 남자로서의 마음보를 가지고 있는 요셉이 그런 말을 안 물어 보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안 물어 보았다면 그 사람이 바보라는 거예요. 바보. 그런 사람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마리아에게 물어 보았는데 때에 따라 어떤 때는 다정하게도 혹은 성을 내가면서도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마리아는 `나는 모릅니다. 성령으로 잉태했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요셉이 믿었겠어요? 여러분이 만약 요셉의 입장이라면 믿겠어요? 믿을 남자 어디 한번 손들어 보세요. 믿는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엉터리입니다. 엉터리. 그러나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틀림없다고 그렇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다그쳐도 성령으로, 죽인다고 해도 마리아는 계속 성령만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었던 요셉이 그 당시에 있어서 마리아에게는 유일한 보호자였습니다. 요셉밖에는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모른다고 잡아떼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구약시대의 법에 의하면 음행한 여인은 모두 돌려 때려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있어서 요셉은 생명의 은인이요, 보호자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해도 결론은 언제나 같은 것이었으나 요셉은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뭐 성령으로 잉태하는 것을 보았나요?
그래서 남이 모르는 사이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말다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것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알았더라도 그것은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내용을 써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써 놓았다가는 오히려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끝날이 되어 밝혀야 할 때가 되었으니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그것을 전부다 밝혀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싸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그러면 탕감복귀역사에 있어서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마리아가 요셉에게 시집을 가서 요셉의 애기를 배었다면 요셉이 마리아에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공식적인 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무엇을 했느냐? 해와와 사랑 관계를 맺어 가지고 나아가서는 아담까지 타락시켰던 것입니다. 즉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것을 탕감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유린당해 왔던 것입니다. 여자들이 섭섭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밝히 얘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아담과 예수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요전에 누군가 예수는 창조주인데, 창조주인 예수하고 아담을 통일교회에서는 혼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모르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시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아담과는 무엇이 다르냐?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필요없습니다. 따라서 구주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도 나지 않았는데 의사가 필요합니까? 설사가 났으면 설사약을 먹어야지, 감기 걸린 데 먹는 아스피린을 먹어서 돼요?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구주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선생님이 일생 동안 피땀을 흘려서 찾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도, 여러분들은 `아, 그게 사실일까? ' 하니 선생님이 기분 나빠서 얘기해 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얘기할까요, 말까요? 진짜 듣고 싶어요? 듣기 싫은 사람이나 반대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귀를 막으세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느뇨? 차라리 안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무엇하려고 만들었느뇨? 성경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3:1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뚱이가 타락해서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도 몸뚱이를 뭐라고 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합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여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이 된다 하더라도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과 그 사람들과는 누가 더 나아요?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백년이고 천년이고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대관절 무엇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주관하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가 아무것도 모르는 멍텅구리라면 주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천지를 창조한 기술자와 같은 실력이 없어서는 주관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주관의 능력을 주실 것이냐?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서 아담을 콘트롤해야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이 하나님의 실체를 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기분이 좋아요?
이렇게 볼 때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으로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의 몸뚱이가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의 몸뚱이로 지은 이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무슨 아내냐?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쓴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뚱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과 해와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성품을 그대로 닮아서 한몸을 이루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이 아담 해와의 아들딸이자 누구의 아들딸이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통해서 아담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궤도 위에서 사랑의 인연을 세우지 못한 것이 억천만대의 한의 역사요, 오늘날의 이 비참한 타락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정상적인 사랑의 인연을 못 세운 것이 한이었다.
사랑이 무엇이냐?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성숙하여 자연법칙에 의해 가지고 서로가 하나되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들도 성숙하게 되면 수컷은 암컷을 찾아가고 암컷은 수컷을 찾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21세가 넘게 되면 자동적으로 서로가 그리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의 인간들은 사춘기를 거침으로써 서로가 정적(情的)으로 합할 수 있는 최고 기점의 때를 맞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사람은 제일 더러운 것으로 말하고 있는 데, 이것을 연결시키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전부다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적인 기준이 없이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도 독자적으로 성립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 해와는 어떤 존재냐? 하나님의 실체와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내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되고 외적으로는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 이룬 가정은 무슨 가정이냐? 바로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누구의 아들딸이 되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해와를 겁탈해 가지고 아담까지 타락시켰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16세의 틴에이저와 같은 철모르는 때에, 사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사탄이 침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법적인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할 자리에 사탄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아버지가 누가 되는 것이냐?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타락한 인간을 대하여 예수님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했고, 또 말하기를 `독사의 새끼'라고 했으며 세례 요한도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뱀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인간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탄은 원수지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아무리 사탄이 원수라 할지라도 용서해 주면 평화의 왕국이 쉽게 이루어질 텐데 왜 하나님이 사탄을 용서 못합니까? 인간들에 대해서도 죄 지은 자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서 왜 하나님은 사탄을 용서하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여러분, 사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간부입니다. 간부. 간부라 해서 무슨 회사의 간부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사랑의 원수인 간부(姦夫)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용서해 주면 천리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탄세계의 인간들은 백번, 천번 용서를 할 수 있어도 사탄만큼은 절대적으로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대심판은 누구를 심판하느냐 하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주인인 양 임재해 있는 사탄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해요, 아버지라고 해요? 아버지라고 하지요. 본래 여러분들은 태어나기를 전부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의 핏줄을 타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영생할 수 있게끔 태어나야 할 것인데, 해와가 원수 사탄에게 겁탈을 당함으로 인하여 거짓된 혈통을 받아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이 본래의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머니를 빼앗아 태어나게 한 자식들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인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기분이 나빠해도 이것을 어쩔 수가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피와 살에는 전부 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서 없애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에서는 몸을 때려잡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때려잡는 운동으로 `몸을 쳐라! 희생하라! 금식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의 30억에 가까운 인류는 전부다 사탄의 종자들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만약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기준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삼위일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서 난 자녀들은 전부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기도가 왜 필요하고 종교가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즉, 신앙이라는 명사는 인간에게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믿어요? 아버지를 구주라고 구원해 달라고 빌긴 뭘 빌어요? 그냥 아버지의 품속에 덥썩 뛰어들어 가지고 아버지를 타고 앉아서 수염을 뽑아도 되는데 믿기는 무얼 믿는다는 것입니까?
이것들에 대해 확실히 밝혀 주지 못하고 흐지부지하여 이 땅에 떨어진 것이 오늘날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가 깨졌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대신으로 세워진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실패한 삼위일체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도 모르고 예수님이 뭐 하나님이라구요?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합니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래 하나님이 두 분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닙니까? 이런 엉터리의 모순 투성이를 믿고 신앙한다고 하고 있으니 현재 지성인들에게 몰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누가 아버지 된다구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까? 사탄입니다. 타락함으로 인하여 사탄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부다 하나님의 자식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전개되어 가는 이 세상은 전부다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되지 않는 원수의 세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 다 뒤집어엎어 본연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을 중심삼아 본연의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어서야 되겠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어떻게 탕감복귀해야 하는가? 탕감복귀원칙에서 살펴보면 처음에 사탄이 해와를 끌어들였고 그 다음엔 아담을 끌어들였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대로 복귀해야 합니다. 해와를 빼앗겼으니 빼앗긴 해와를 도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창조의 원칙에 의해 아담의 본을 따서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탕감복귀를 하려면 아담 창조와 같은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분이 4천년 동안 준비한 기반 위에 보낸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복귀하기 위해 재창조된, 타락하지 않은 제2차 아담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제1차 아담은 산 영이 되었지만 제2차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2차 아담은 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리아는 해와를 대신한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와가 아담을 죽였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해와의 입장에 선 마리아가 아담 대신자인 예수님을 다시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무슨 입장입니까?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천사장의 입장. 에덴 동산에 있어서 천사장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모시고 섬겨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천사장의 입장에 선 요셉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탕감복귀의 원칙에 따라 예수와 마리아를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같이 살아야 하겠어요, 안 살아야 되겠어요? 안 살아야 됩니다. 원래는 살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될 예수를 낳아서 인류의 어머니의 입장에 있는 마리아를 요셉은 천사장의 입장에서 받들고 모셔야 했습니다. 요셉은 종의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의 해와를 유혹하여 불륜한 사랑을 맺었던 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이 절대로 하나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볼 때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마리아에게 누구의 아들을 낳았든간에 물어볼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다가 살면서 이것이 누구의 아들이냐는 등 항상 툭탁거리며 싸우니 요셉의 친척들이나 주의의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애기 가진 처녀를 데려다가 사는데 숱한 싸움을 하니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위의 동네 사람들의 말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친척들도 요셉에게 `야! 이 멍청이 자식아. 얼마나 못났으면 마리아 뱃속에 있는 자식이 네 자식인지 아닌지도 모르냐'고 조롱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아마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런 사실을 부모까지도 다 알고 그 친척 전부가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꾸며낸 이야기 같아도, 인간 남자의 생리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요? 이제 이것을 선생님이 성경을 중심삼고 여러분에게 밝히 알려 주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에다가 세 가지를 더 첨가하고 넘어가야겠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대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타락하지 아니한 해와를 찾는 것입니다. 깨끗한 혈통으로 태어난 해와와 같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사장에게 침범받지 않은 부모의 기준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지만,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동네에서나 주위의 친척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몰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을 알고 그 눈치만 보면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주위에 있는 친척들도 전부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래는 요셉 가정에 있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늘의 왕자이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합심해 가지고 장래 이 땅 위에 메시아로 등장하도록 새로운 가정을 건설할 수 있는 전면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을 두고 이스라엘 민족을 길러서 준비한 축복의 터전 위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 되어서 예수님을 철옹성처럼 보호하고 그를 위하여 생명을 걸어놓고 싸웠던들 예수님이 비참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이라는 것은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의 신부는 자기의 친척 가운데에서 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본래는 사랑하는 12제자도 지지리 못난 천한 무리들을 택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직업이 어부라고 하면 전부 다 사람 대접을 받기가 힘든데 그 당시는 어떠했겠습니까? 선생님이 갈릴리 바다에도 가 보았지만 지금도 형편없습니다. 베드로가 살았다는 집도 형편없는 토굴이었습니다. 그처럼 아무 보잘것없는 베드로를 수제자로 택해 이 세계에 복음 역사를 일으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 가정이 책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터전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재차 출발해야 하셨던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 요셉과 마리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집안에서부터 하늘의 법도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매일 아침 진지상을 올리고 아침 저녁으로 경배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사이가 좋지 않은데 그렇게 할 수 있었겠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유대땅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은 그저 좋은 일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분하고 원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간 준비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메시아가 마굿간에서 태어나다니,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사실입니가? 선생님이 가서 보았더니 그 말구유가 돌로 판구덩이에요, 구덩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을 향해 가면서도 마리아 자신은 어느 때에 예수님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만삭이 되어 해산 날짜가 내일 모레로 임박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갔으니 마리아가 책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또 그 뒤에는 모른 척하고 따라갔던 요셉이 책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마리아는 사이가 나쁜 요셉을 보고 무슨 준비를 하자고 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는 약 20리 되는 거리입니다. 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은 집 한 칸 없고 입힐 옷 한 벌 없고 기저귀 하나 준비하지 못한 가운데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왜냐? 가정의 불화로 인해 마리아가 요셉에게 말할래야 말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이 하늘의 왕자로서 죄많고 비천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고들 하니, 그런 수작들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의 왕자를 사탄세계로 보내는 것도 분하고 원통한데 사탄세계의 자식들이 쓰다가 버린 걸레 조각을 하늘의 왕자가 쓰게 되었으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으셨겠어요? 아무리 단장된 피복이 있다 하더라도 기분 나쁘실 것입니다. 그런데 4천년 역사를 두고 사탄 족속들이 쓰던 포대기와 기저귀 조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 했으니 기분 좋으셨겠어요? 그것을 이스라엘 민족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죽인 죄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유리하면서 피값을 갚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기 위해서 왔어요? 할 수 없으니 그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 두 살 때 일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백리 길이 됩니다. 걸어서 3, 4일 이상 한5, 6일 걸리는 먼 곳입니다. 걸어서 가는 그 길을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갔는데 가서는 어떻게 되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흘간이나 예수를 잃어 버렸어요. 그것도 요셉과 마리아가 하룻길을 간 후에야, `아이쿠! 예수가 없구만!' 했으니 그게 얼마나 엉터리같은 수작들입니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없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돌아서면서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남편인 요셉에게 예수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기분나쁜 존재였기에 빤히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지 아니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룻길이나 돌아온 후에야 안 되겠으니까 할 수 없이 예수를 찾으러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던 것입니다. 되돌아와서는 성전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반박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어머니 아버지인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될 것인데 그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친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의 왕자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환경에 몰리고, 친척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오해와 몰림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뜻을 감추어 가면서 하루하루 생활했을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에 있어서 자기가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고 친척을 사랑할 수 없고 동생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선 예수, 그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요?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요?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자식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친척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친척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민족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이런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껄렁한 무리들이 통일교회를 보고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이단인가 아닌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기독교인들에게 몰리고 몰려서 감옥에 들어가 별의별 악형을 당하고 고문을 당했지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과 우리'라는 제목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냐?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 형제와 친척을 사랑할 수가 없었고 또한 종족과 민족, 교회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처량한 신세를 알고 난 우리들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네방네, 심지어는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사생아라고 비웃음을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종 사촌인 세례 요한도 그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노정이 여기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내용은 모두 모르고 그저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받는 줄 알고 있는 것은 옛날 로마의 가톨릭 신부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새롭게 혁신시켜 하나님의 천륜의 법도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적인 인연을 이 땅 위에 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하며, 친척을 사랑하지 못하고 민족, 국가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원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한의 역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밝히 알려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를 갖지 못한 사람이요, 진정한 형제를 갖지 못한 사람이요, 자기 민족과 자기 나라를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외적으로는 모두 갖추었지만 진정으로 뜻을 같이하는 부모, 형제 친척,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곡절의 비운의 역사가 예수님의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단 소리를 듣고 별의별 수욕을 당하면서도 이런 숨겨진 곡절을 다 밝히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고 보십시오. 진리는 역사를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념은 일시적으로 지배할는지 모르지만 진리는 영원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천만세에 누적되었던 하나님의 한의 심정을 이 땅 위에서 풀어드리기 위해 사랑의 가정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증거하던 동방 박사들은 다 어디 갔으며 또한 선지자 안나와 세례 요한은 다 어디로 사라졌던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모시는 것이 그들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섬겼다면 예수님이 몰림을 받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슬픈 사정을 품으시고 사랑의 기원을 이루기 위하여 천신만고하시며 4천년을 준비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이 땅 위에 전파하고 역사적인 한의 구렁텅이를 메우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지만, 그 예수의 신세가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는 바람이 불 적마다 그 바람을 친구로 삼으려 했고,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자기 생활의 한을 읊었고, 철새가 찾아오면 그 철새를 친구삼아 자기의 사연을 얘기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사연을 숨기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환경에 몰렸던 불쌍한 예수님의 생애를 여러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30년 생애는 무골충의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묵묵히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조수로서 일해 왔던 것입니다. 친구 하나 없고 알아 주는 형제와 친척 하나도 없었던 예수, 알아줄 교회도 없었고 나라조차도 없었던 예수님의 그 심정을 하나님만이 알아주었지, 예수님의 이런 사정을 낱낱이 파헤쳐서 가슴속에 맺힌 한의 심정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동지가 어디 있었겠느냐 말입니다. 부모 형제와 그 친척, 그리고 교회와 나라에게도 배척받는 입장에 선 불쌍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하늘의 왕자로 천국 건설을 이루려고 왔으니 천국 가정의 건설을 이 요셉 가정에서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즉, 마리아 당신을 통해서만이 하늘가정의 법도를 세울 수가 있다'고 예수님은 간곡히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자신도 요셉에게 눈치보며 붙어서 사는 신세요, 환경에 몰려 자기 처신하기도 어려운 신세였으니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하는 아들의 사정을 알았지만, 예수님의 말대로 따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딱한 마리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하늘의 가정을 중심삼은 법도를 세워야 할 사명을 가진 예수이기에, 30살이 되기 전까지 마리아에게 간곡히 권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되도록 그런 하늘가정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고대하고 그리워하며 참고 나왔으나, 요셉 가정에서는 그것을 찾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보따리를 싸 가지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4천년간 준비한 근본 가정의 터전이 다 깨어져 나가고 예수님이 집을 나서게 될 때, 사탄은 `야! 잘됐구나, 예수야!' 이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할 수 없이 사탄에게 끌려가 시험을 받을 때 예수님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사탄에게 끌려갔느냐? 사탄이 말하기를, `예수, 네가 찾고 있는 하나님의 4천년 역사의 가문을 내가 차지했으니, 이것을 다시 네가 찾으려면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조건으로 삼아 복음이란 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셔야 했으나, 이것을 실체적으로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구원밖에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에수님에게 말할 때, 그때 말하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집을 나와 뜻길을 걸어가는 노정에 있어서 나를 만나서 하는 부탁이 겨우 그것이냐고 질책하셨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부탁하는 간곡한 사정은 몰라 주고 어머니는 이런 인간사적인 부탁을 나에게 하는가 하는 반박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 풍습으로는 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 그럴 수 없는 것이, 어머니 마리아가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이러한 고생의 길을 나서게 됐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예수였기에 이런 선포의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는 말은 상관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나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당신이다'라는 질책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흩어진 가정의 기반과 흩어진 민족의 기반, 흩어진 이스라엘의 기반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 걸었던 비운의 노정이 바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돼요. 똑똑히.
하나님은 주의 깊게 많은 준비 기간을 거쳐서 요셉 가정을 찾아 세웠습니다. 요셉 가정을 방패로 삼아 예수님이 뜻을 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즉, 이종 사촌되는 세례 요한을 이스라엘 선지자로 보내어 유대교 전체가 그를 받들어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 모셨던들 예수님은 비참하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이 멍청이 같은 녀석이 예수님을 증거하기만 했지 믿고 따르지 못했습니다. 삼시 세끼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수도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만나서 증거했으면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끝까지 따라다니며 모셔야 하는데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돌아다니고, 세례 요한은 세례 요한대로 세례 주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시시한 헤롯왕의 연애 사건에 걸려서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야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 우리가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까…….' 성경 마태복음 11장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은 이것을 물어 보라고 시킨 세례 요한이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에 같이 있었던 그의 제자들, 즉 물어 보러 온 그 제자들이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세례 요한이 여인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메시아를 맞기 위해 준비하고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어떤 사람보다 해야 할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수많은 선지자들은 몇백년, 몇천년 후대를 걸어 놓고 예언했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메시아로 증거할 수 있었기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세례 요한이 제일 큰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그것은 이제까지 죽어 간 수많은 영인들, 즉 죽어 간 강도패들도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알고 모시고 싶어 하는데 세례 요한이는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제일 꼴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겨우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아니 그게 무슨 수작입니까? 증거할 때는 언제고 또 의심하는 것은 무슨 수작입니까?
마태복음 11장 12절 이하에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믿고 모시기만 했다면 베드로의 수제자 자리도 세례 요한의 차지로 될 것이요, 또 그 친족 중에서 열 두 제자와 70문도, 120문도까지 다 세울 수 있었는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했으면, 그 당시의 유대 민족이 모두 세례 요한을 믿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 유대 민족이나 교회가 몽땅 예수님에게로 넘어왔을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의 12사도는 어부와 같은 천한 무리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족 집안에 의해서 소리없이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족복귀, 민족복귀를 전부다 이루어 놓고 난 다음에 교회와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와 연결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할 이가 세례 요한의 무리들인데, 이 준비한 기대가 다 무너져 나갔으니 예수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교회에서 몰렸고, 나라에게 몰렸으며, 친척에게서, 세례 요한에게서, 또한 형제에게서 몰리게 되었고, 요셉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에게까지 몰렸던 것입니다. 이러니 예수님이 갈 데가 있어요? 이렇게 판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죽어 갔는데 그래, 잘 죽었어요? 성경을 찾아 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말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보라는 거예요. 이런 근본 문제를 알지 못하고 뭐 얼렁뚱땅해 가지고 천국에 가겠다고요?
예수님은 요셉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탕감복귀하고, 거기에서 신부를 찾아 세웠어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삼아 사도들이 일치단결하여 생사를 같이하는 입장이 되었어야 하며, 세례 요한의 무리들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전부 하나로 일치시켰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 당시 예수를 중심삼고 유대교와 유대 민족이 단결하여 하나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은 40년 이내에 점령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죽은 예수가 4백년 걸려서 로마를 점령했으니 산 예수는 40년 이내에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지중해 문화권을 중심삼고 로마제국이 세계적인 판도를 가지고 호령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된 것은 사탄세계의 가인형 대표 국가로서 로마제국을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아벨형 국가로 세워 가인인 로마제국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국가와 세계를 탕감복귀하고, 바라던 천국을 이루시려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2천년간 되풀이되어 오늘날 미국이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죽은 것이 잘 죽은 거예요?
오늘날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믿고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데 그래, 마리아 믿고 천국갈 수 있어요? 베드로를 믿고 천국갈 수 있어요?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적인 내용도 모르면서 신부가 되겠다는 엉터리 패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가만히 보십시오, 어떻게 되어 있나. 복귀역사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가 죽은 것이 잘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왜 식구라고 부르며 또 그 명사는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동생이 있었지만 동생을 사랑하지 못했고, 부모가 있었지만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고, 친척이 있었지만 친척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있고 나라와 민족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은 젊은 청년들을 대할 때 부모처럼 사랑하여 요셉과 마리아가 부모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완전히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 서서 부모의 심정으로 친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청년 식구들을 아껴 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들은 예수님처럼 이 나라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왕자의 입장에 서서 생명을 내걸고 움직여야 하며, 형님과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은 친형 이상으로 사랑하여, 예수님이 형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그 한을 풀어 드려 형님의 자리를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비난했던 입장을 떠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동생을 갖지 못했던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 누구라도, 혹은 친척, 교회, 나라를 예수님 대신 사랑하고, 예수님 대신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재현하여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의 기준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사랑의 기준을 잃어버림으로 해서 남아진 한의 심정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식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의 식구란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지 여러분들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핏줄이 다른 형제 아닌 형제가 되어 친형제 이상으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안 되면 여러분들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통일교 문선생에게서 빨리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손자 같은 젊은 사람을 붙들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셔야 했던 것처럼, 식구들을 위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여기에 깃들어 있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중심삼고 예수의 한을 해원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남자든 여자든 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사랑한다는 사람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내리세요. 세상의 어떠한 단체, 어떠한 가정에서도 맛볼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지 않고는 예수에게 맺혀 있는 한을 절대로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풀지 않으면 복귀역사를 이룰 수 없으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나온 이유입니다. 만약에 통일교회에 이런 큰 뜻이 없다면 아예 통일교회를 갈아치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선두에 서서 선생님 대신 죽음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이 예수님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스승을 배반하였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죽음의 자리에 있더라도 선생님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가슴을 내놓고 총탄을 막겠다고 하며 쓰러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럴 자신이 있어요?
베드로가 맹세를 몇 번이나 했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변해도 자신만은 결코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베드로도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진짜로 선생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겠어요? 「예」 그럼 당장에 죽어 봐요? (웃음)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명령했던 것은 선생님이 전부다 알고 보고 먼저 실천해 본 다음에야 시켰던 것입니다. 원리를 남 모르게 알아 가지고 남 모르게 실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교주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합니다. 통일교회를 어느 누가 지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선생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죽기 전에 세계적인 역사의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사명감에 불타서 오늘도 내일도 한 시가 바쁘게 움직이고, 자기의 갈 길이 바쁜 것을 알고 내일의 일이 오늘 저녁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통일의 길임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좁기 때문에 옆으로도 못 들어가고 혼자서도 못 들어갑니다. 가는 데에는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태어나야 하느냐? 머리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꿀잡이로 뒤집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탕감의 길은 거꿀잡이로 가야 하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좁은 길입니다.
아무리 학박사라 하더라도 공식적인 원리의 길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전부다 여기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통일교회는 무섭다면 지극히 무섭고 강하다면 지극히 강한 교회입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통일교회의 원리는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제2 예수님의 부활체로서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지닌 사명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대신 오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뭘 해야 되느냐? 아담이 부모로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즉, 인류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타락하여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귀역사입니다. 아담 해와가 실패한 것을 가인 아벨을 중심삼아 복귀하려 했으나 복귀하지 못하고, 셋까지 본래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떨어졌으니 그것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 가정의 여덟 사람을 어떻게 택했느냐? 기독교에서는 노아 할아버지가 믿음이 좋기 때문에 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이야 번지르하지. 그러나 왜 여덟 식구가 아니면 안 되느냐? 왜 40일간 홍수 심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자이십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전부다 공식 법도를 통하여 그 결과를 타진할 수 있게끔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최고의 과학자요, 지혜의 왕이십니다. 때문에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섭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을 대신한 입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누구를 찾아야 되느냐? 신부(해와)를 찾아야 합니다. 역사를 걸어 놓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찾은 다음에는 세 아들(가인, 아벨, 셋)을 찾아야 하는 것이니, 그들이 바로 세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영계에 있는 베드로에게 기합을 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뭐냐고 야단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선생님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선생님한테 배례해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배가 아프겠지만……. 배가 아프면 아프라 하십시오.
인류 역사는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나라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2천년 역사가 들어가고 6천년 역사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풀려니 지금까지 죽을 고생을 겪어 왔던 것입니다. 세 나라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했고, 세 주권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했으며, 세 종파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120만 이상의 세배인 360만 이상이 선생님을 반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이 복귀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담이 책임하지 못한 것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아담의 입장)이 신부(해와)를 찾아 부부를 이루고, 또한 이 부부를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직선상의 대표자 한 사람씩만 연결시키면서 세계 정복은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즉, 아담의 입장인 예수님 앞에 해와의 입장인 신부 그리고 가정을 대표한 요셉, 종족을 대표한 세례 요한,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 유대국왕, 로마 황제, 이 일곱 사람만 찾아 놓았다면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세계 정복은 저절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힘들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책임 다한 한 사람이 있었어요? 가정에서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종족의 대표자였던 세례 요한이 어떻게 했습니까? 전부다 꼭대기에서부터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틀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것을 몽땅 집어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형제들이 반대했던 모든 내용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례요한이 반대했던 것을 복귀해야 하고, 또한 유대 민족 앞에 새로이 기독교를 만들어서 유대교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때 기독교가 하나의 아벨의 입장에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유대교를 굴복시켜 복귀시켰다면 이 세계는 그때 완전히 복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주님이 오시면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믿고 있지요? 그래, 주님이 구름 타고 와요? 뭐 탈 것이 없어서 시시하게 구름 타고 오시겠습니까? 구름이 뭐예요? 인류 조상이 이 땅에서 잃어버린 것을 구름 속에서 찾아야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해서 복귀될 수가 있겠어요? 땅에서 잃어버린 것은 땅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주님은 땅으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온다고 아무리 믿어 보십시오. 억만년이 지나도 안 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선생님의 말이 틀리면 내 목을 치십시오. 하기야 영계에 가서는 선생님을 만나려 해도 만날 수가 없을 거예요. 이단의 괴수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지옥 밑창에 가 있을 줄 알지만 너무 높은 데 있어서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웃음) 그런 신앙 하려면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당장에 무엇을 해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핍박받고 욕먹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뭐 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줄 아십니까?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려니 할 수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 유대교를 중심삼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려 했으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영육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하나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발판의 나라로 세워진 이스라엘이 전부다 깨어져 나갔습니다. 즉 4천년 동안 섭리하여 준비한 이스라엘의 발판이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영적으로 나라의 터전만을 가지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백성이 되고, 유리방황하는 신세가 되어 사탄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영육 아우른 기독교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4천년간을 준비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이스라엘 민족이 몰라 불신하여 잃어버린 것을 다시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나라를 찾으려 오셨습니다. 하나의 나라를 찾으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나라를 영육 아울러 찾지 못하시고 다만 영적으로만 찾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이 땅 위에 실체의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내 나라요, 내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까지 하나님 나라의 터전이 이 땅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아들인 예수를 중심한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을 중심삼고 영육을 아울러 연결시키려던 터전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즉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만 복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나라 없고 주권이 없는 백성과 같은 입장이기에 어디를 가나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순교의 피를 흘림으로써 발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렇게 심은 기독교이니 그렇게 순교의 피를 흘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피를 흘리며 박해받던 시기가 끝났으나 그것이 그대로 죽어 없어지지 않고, 기독교의 영적 기반을 중심삼아 잃어버린 실체의 나라를 세계적으로 찾아 이루기 위해 그 나라를 흠모하고 주님을 고대하며 나온 것이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한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탕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중심삼고 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을 이루어 하나님이 그 종족을 내 종족이요, 그 종족을 중심삼고 이룬 민족을 내 민족이요, 그 민족을 중심삼고 이룬 그 나라 역시 내 니라라고 사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역사임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통일교회는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를 살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동안 정보부에서 우리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습니까? 승공연합을 만든 이유가 뭐 통일교회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등, 별의별 오해를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때리려면 때리고 치려면 쳐 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먼저 맞는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온 세계에서 높다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꺾어져 나가고 낮은 자리에서 밟히고 놀림받고 저주에 싸여서 망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국가를 이루어 세계의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흔들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 가지 말라고 하면서 반대했던 사람들이, 남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니까 할 수 없이 통일교회에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목과 통일교회의 식구들의 목을 자르든지, 아니면 전부다 통일교를 믿든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싫으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가야 합니다.
앞으로는 이북의 공산당들도 모두 굴복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은 삼천만 민족이 전부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잘될 수 있다면 선생님이 천년 만년 고생길을 간다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여러분은 무얼 해야 되느냐? 다른 것보다도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못 넘은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 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몰리고 저기서 몰려 종족을 중심삼은 70문도와 120문도를 전부다 잃어버렸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이 12제자 중 세 제자를 세워서 가정을 이루게 하여 아담 가정에 있어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살아 생전 신부를 맞아 가지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가 예수님께 축복을 받았으면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복귀한 기준이 되었을 것인데, 이것이 전부다 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도 여기에 걸려서 지금까지 생애를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이것 때문에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으며, 예수님도 여기에 걸려 수고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여기에 걸려 있으니 최소한 가족 기준에서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하늘나라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축복해 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일대에 이루어야 했지만 그 책임 못한 것을 선생님이 전부 다 복귀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거리에서 객사하는 일이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사상은 세계를 지배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 앞에는 핍박의 길이 무너졌고, 여러분을 가로막던 사탄세계의 모든 담장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환경에서 자발적으로 선생님이 닦아 놓은 공식적인 법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닦아 놓은 공식적인 법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국가와 싸우고 세계와 싸우고 수많은 원수와 싸워 그들을 격퇴시켜 터를 닦아 놓았으니, 여러분들은 그 외적인 모든 원수가 없어진 가운데서 그저 공식적인 궤도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여러분들에게는 자신의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자유롭게 열려져 있으니 여러분 자신이 그 조건을 맞추어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이렇듯 아담이 실패했던 가정적인 여덟 식구를 세우지 않고서는 복귀의 길을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찾아 세움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었던 본의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니, 승리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이 여기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모두가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남자든 여자든 세 사람 이상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 두 사람 가운데에서 세 제자를 택하여 그들을 중심하여 가정의 기대를 이루려던 예수님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아 남의 자식이지만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는 것보다 3배 이상의 정성을 들여서, 그들을 축복시키고 그들이 낳은 아들딸에게까지 복을 빌어 줄 수 있게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하신 것이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냐? 한 나라를 찾기 전에, 혹은 민족과 교회를 찾기 전에 뭘 찾아야 했느냐? 가정입니다. 가정. 즉, 자기의 상대를 찾고 가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근본이 뭐냐 하면 가정입니다.
예수님도 4천년 역사의 기반 위에 가정을 이루어야 할 터인데, 가정의 근본되는 해와, 즉 신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또한 믿음의 아들딸인 세 제자를 세웠어도 그들이 가인적인 입장에서 예수님의 직계 아들딸을 모시지 못했고 소생, 장성, 완성과 아담 시대, 예수 시대, 재림 시대, 이 3시대를 대표하여 가인이 반대한 것을 가정적인 기준에서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생활권내에 사탄을 분립하고 추방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침범해 들어왔던 그 기준을 넘어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생활에서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을지 모르지만 똑바로 그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낙원에 계시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낙원에 계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신부를 찾고 아들딸을 찾아 세워, 아담이 실수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천국에 들어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아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서 세계적인 터전을 닦아 나가는 것이 바로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예수님이 핍박받으며 가셨던 길을 재차 되풀이하는 역사노정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실패의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입장에서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이 찾지 못했지만 하늘가정을 우리는 이 땅위에서 찾아 세우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팻말을 지상에 꽂아 놓고 그대로 직행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서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서 종교와 구주라는 명사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이러한 아들딸을 낳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 단계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가? 그것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에게 배워야 됩니다. 그러기에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증거하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지 못한 사명을 이루어서 예수님을 위로하고 예수님의 길잡이 노릇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을 여러분이 감당해 내야만 예수와 우리의 사명이 완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사람들은 한국의 한 모퉁이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이 일이 몰리고 쫓겨 흘러가는 물처럼 사라져 없어질 줄 알았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 일본과 미국과 독일, 전세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세계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오라 사탄세계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인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오라 사탄 자체를 이 땅 위에서 추방하기 위한 역사적인 사건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런 엄청난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하늘의 용사들이오니 부디부디 강하고 담대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배후에는 언제나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이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저희들에게는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오니 이 나라를 위해 가야 되겠사옵고, 이 세계를 위해 가야 되겠사옵니다. 온 천주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해방시켜야 할 엄청난 사명이 오늘날 우리의 복귀노정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처음 참석한 사람이 있거든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것이 수리적이고 실증적이라는 것을 생활에서 체험하고, 예수님의 서러움을 실제로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십자가의 절정에 이르면서도 오히려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겠다고 몸부림치던 예수님의 심령의 경지를 더듬어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죽음에 얽힌 한과 어둠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더럽히는 인간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와하시던 당신의 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도리어 그 마음을 격려삼아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하늘의 왕자와 왕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처럼 엄청난 역사의 새로운 정도는 이 땅 위에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조직이 이 땅 위에서 파급되기 시작하였사오니, 온 세계를 감동의 와중에 몰아넣고 승리의 깃발을 들어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세계가 어서 속히 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생명과 모든 것을 투입하고 그것을 위해 결의한 몸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분부하고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대양도 서슴지 않고 건너갈 것이오며 대륙도 횡단할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에 당신의 평화의 손길을 같이해 주시옵소서. 승리의 방패가 저희의 주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실증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수많은 나라를 방문하게 될 때마다 저희의 사명이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촉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오니,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더더욱 충성해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이 민족을 위하여 살 때는 지나갔사옵니다. 세계를 위하고 천주를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오니 저희의 개인적인 생활환경을 넘어서서 생명의 원천이요, 사랑의 원천이요, 이상의 원천이신 아버지를 중심삼고 생활권내에서 저희의 전체가 아버지와 접하여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옵기만을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참석했던 자녀들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도 당신께서 친히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역사의 배후에서 홀로 만민을 수습하시며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당신의 뜻을 이어받아 생명을 걸어 놓고 당신을 위해 정성들이는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놀라운 평안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수많은 나라 가운데 보잘것없는 한국을 택하셨고, 이 수많은 백성 가운데서 소수의 무리만이 오늘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습니다. 저희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받아 아버지가 원하시는 소원의 목표를 위하여 생애를 바쳐 달려가기로 이미 결심한 몸들이옵고, 이미 아버지 앞에 맹세한 몸들이옵니다. 하오니 일편단심만을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도 고대하고 그렇게도 사모하던, 외로운 무리를 수습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또한 소원의 실체인 복귀된 아들딸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대하시는가 하는 것도 저희들은 아옵니다. 옷깃을 여미고 합장하여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정성들이는 사람들은 많사오나 아버지의 내정을 살피어 이 땅 위에서 아버지 대신 원수가 거하는 적진을 점령하여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없는 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그 얼마나 외로우셨고, 그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우셨사옵니까? 그런 심정과 그런 가슴을 억제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셔야 했던 아버지이심을 저희가 진정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지의 모든 권한을 당신의 장중에 쥐시옵고, 모든 생명의 운명이 당신께 귀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만물이 아버지로 말미암기를 고대하고 있는 줄을 알기에 만물을 주도하고,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은 온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한 날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슬픈 사실인가를 저희는 아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세상 그 누구의 인연을 존중시하여 모인 것이 아닙니다. 뼛골을 통하여 흘러나온 죄악의 근원을 끊어 버리고 생명의 원천인 아버지와 인연을 맺기 위하여 나온 몸들이오니 묶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제거시킬 수 있는 자체의 힘을 허락하시옵고, 강하신 당신의 사랑의 힘으로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키고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으시어서 아버지와 직행할 수 있는, 천정에 사무친 마음과 당신의 마음 가운데 사로잡힐 수 있는 간곡한 흠모의 심정만을 이들이 갖게 하옵소서. 이들에게 자녀의 명분을 갖추시어 확고한 자리에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부터 하루 전체를 아버지 맡으시옵소서. 그 누구도 흠모하지 말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말며 당신을 흠모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모습들이 이곳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사오니 거기에 온전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슬픔 가운데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면서 슬픔이 물러가기를 고대하는 자들까지도, 당신의 옷깃을 붙들고 같이 눈물짓는 자들까지도 당신이 품으시어서 이 한 날을 해원성사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 앞에 저희들은 온유겸손한 어린양이 되어 당신 앞에 전체가 흡수되어질 수 있는 하나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부터 온 하루를 아버지 앞에 맡기고 저희들은 가겠습니다. 또 가야만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가는 도상에서 쓰러지는 것을 저희들은 보았습니다. 하늘 앞에 충효의 인연을 자랑하며 당신의 아들이요, 당신의 딸이라고 절규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 못 가서 하늘의 배반자, 패배자가 되어 하늘 앞에 역로의 길을 가는 것도 저희들은 보아 왔습니다. 쓰러져 아버지를 원망하는 자도 있었사옵고, 돌아서면서 아버지를 저주한 자도 많았사옵니다.
한결같이 참으셔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누구 한 사람 위로한 자 있었사옵니까? 천년 만년, 천세 만세 아버지의 아들딸이요, 아버지의 소망이요,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내정적인 사정을 토로할 수 있는, 그 누구한테도 본이 될 수 있는 참된 아들을, 참된 딸을 아버지, 품으시옵소서. 지금까지 불신의 종족이었던 한을 풀고 당신께 향하지 않는 마음을 터놓고 당신의 기쁨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가 영원히 자랑하면서 안고 사랑하고, 안고 칭찬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당신의 이념을 따라 나선 수많은 자녀들이 뜻을 받들며 소원하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의 일생은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어난 후 어머니의 품에서 키움을 받아 소년시대를 거치고 청년시대, 장년시대를 거쳐 노년시대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생애 가운데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살았는가, 자기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있었는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라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전체의 소원을 대신해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타락권내에 있는 자신들이 세속적인 욕망과 사정(私情)을 걸어 놓고 따라 나온 것이라는 것, 또 우리가 소년시절, 청년시절을 거치며 자라 나온 과정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슬퍼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우리가 대한 전체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이었음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또한 오늘부터 내일을 향해 여생을 살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난 이렇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있을 것인가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 위에 왔다 가게 될 때 반드시 귀한 것을 남기려 하고, 하나님이 의도하는 표적을 세우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무엇을 남기려면, 여러분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자기가 볼 때 이것은 어떠한 것이라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떠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보람된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한때를 갖지 못하면 하늘 앞에 가서 이 땅에 왔다 간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이렇게 했다' 하는 조건을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보게 될 때도 어떠한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냐 하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무엇인가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남이 집을 가졌으면 자기도 집을 가지려 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으려 하고, 그 자녀들이 보통 자녀들보다 특별한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나라에서 고대하는 자녀, 나라가 기억할 수 있는,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자녀를 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면 나라에서 필요로 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도 이러하거늘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갔을 때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모습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큰 문제입니다.
여기 부인들은 알 거예요. 시집을 가 봤으니까. 시집 간 아주머니들은 잘 알 거예요. 남편이 사는 동네로 시집을 가게 되면 아무 인연도 없었던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야 됩니다. 그럴 때 자기 스스로 갖춘 것이 없으면, 즉 외적인 물질적 조건이나 내적인 모든 조건, 즉 언행심사, 혹은 행동적인 모든 문제, 혹은 마음씨에 있어서 남편이 사는 부락 전체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물론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사람들 모두가 우선 외형적으로 대합니다. 생긴 모습이 어떤가, 학식이 어떤가, 교양이 어떤가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데 외모도 갖추지 못했고, 가진 것도 없고 하면 그 부끄러움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만일 전체가 바라보는 자리에 있어서 흠이 있다든가 혹은 불구자이든가 하면 시집가는 날이 좋기보다는 그날처럼 괴로운 날이 없고 그날처럼 서러운 날이 없을 거예요. 시집가 본 아주머니들은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시집가서 자기로 말미암아 좋아질 수 있는 어떠한 조건, 혹은 외적인 물질이나 다른 무엇을 가져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인연맺지 못하면 그것 역시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적인 문제, 즉 생활해 가는 데 있어서 그들 앞에 칭찬을 받고 그 가정 혹은 종족 앞에 보탬이 되어, 그로 말미암아 그 가정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게 된다면, 그리하여 모두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가게 된다면 과거에 슬픔이 있었고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과거는 어떻든간에 그 내적인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기준을 세울 때까지는 고생을 해야 됩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세상에서 흔히 보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일생 동안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갑니다. 오늘도 통고 없이 오고 통고 없이 갑니다. 이렇게 무정히 흐르는 그 세월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 세워 뜻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의 혈육을 받아서 한 가정에 태어난 내 자체가 간단해 보이고 내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뜻을 생각해 볼 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과 인연된 환경을 움직여 나가게 될 때는 국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요, 세계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동기의 기원이 내 자신부터 싹트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가정이면 가정에 속한 자기 개체는 자기 하나에 국한된 자기가 아님을 여러분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일원으로서 가정에 플러스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이며 장래에 어떠한 본을 이 가정에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가정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또 가정이 어떠한 위치에 처하게 될 때는 자기의 일신을 던져 하나의 방패가 되고, 방파제가 되고,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라도 그 가정을 구하는 것이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입니다.
이와 같이 태어난 환경, 즉 가정을 두고 볼 때에도 우리 자체에게 요구하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도 그런 관계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면 너는 대한민국에 무엇을 보태기 위해 왔는가,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왔는가, 어떻게 가기 위해 왔는가, 대한민국에서 자기의 일생의 노정을 보내게 될 때 거기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뒤따릅니다. 이러한 것을 자기의 생애를 잊어 버리고 자기의 생활을 잊어버리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싸워, 나라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사람은 애국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생각한 것도 자기 나라나 자기 가정이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일원으로서 운명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계 앞에 무엇을 보탤 것이냐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 앞에 보탬될 수 있는 내용을 남기고 갔을 때에 그는 세계가 추앙하는 성현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국가와 세계까지 나아가서는 하늘까지 천주까지 더 나아가서 하나님까지 계시는데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개인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태어나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다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죽을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개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개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보태어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학술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면, 그밖에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민족이면 민족, 그 족속이면 족속, 그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 인류 앞에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남기기 위해 여러분은 언제나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그 뜻 앞에 봉사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났습니다. 통일교회라는 간판이 나오기까지 오랜 역사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로서 탄생할 때까지의 그 자체를 진정한 의미에서 선생님이 잡았습니다. 교회 자체에도 복중시대와 같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년시대를 거치고 청소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떠한 입장일 것이냐? 지금까지 소년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장년시대로 넘어설 수 있는 때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때가 언제냐? 소년시대가 아닙니다. 청년시대를 넘어서 장년시대로 가는, 즉 20살을 넘어서 40살에 이르는 그 사이가 제일 중요한 때입니다 사람은 20살부터 30살에 이르기까지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터를 닦고, 거기에 자기가 은거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또 앞으로 뚜렷한 목적을 중심삼고 갈 수 있는 기반을 환경적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사람은 30살이 넘어서 40살을 향하게 될 때 무의미한 인간, 평범한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우리 교회의 일원입니다. 때문에 `나는 교회에 어떠한 자취를 남기고 갈 것이냐? '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교회에 있어서 식구면 식구라는 이름을 중심삼고 자신이 식구들 앞에 본이 되고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에 플러스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됩니다. 또한 가정이나 국가, 세계가 가고 있는 길 앞에 필요한 인재로서 그 길 앞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어 추진시킬 수 있고 거기서 기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일생은 생활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활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어떻게 해도 시간권내를 넘을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도 뛰어넘지 못하는 생활노정을 가고 있다면 기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어서 가는데 그것이 발전하고 있느냐, 내려가고 있느냐, 올라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돈이 있고 없음을 잘 압니다. 그것은 자기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알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생활에 있어서도 자기가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가, 스스로의 목적과 출발점을 중심삼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출발이 아무리 좋고 목적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일생을 두고 볼 때에 다 가지 못한 입장에 설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다가 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가는 길에 있어서 오르막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리막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내려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하는 선에 머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체를 두고 한탄할 것이요 교회를 탓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지금의 때가 청년시대에서 장년시대로 넘어가는 때라 할진대 이 때는 발전할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의 심정적인 기준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소년시대에 있느냐, 노년시대에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때는 장년시대, 즉 책임을 완수해 가지고 그 가치를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소년시대에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때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때는 장년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노년시대에 서 있어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때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 그러지 않으면 교회 앞에 플러스되고 교회 앞에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일을 같이 시작했지만 그 가운데에서 일등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두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입장에 설 수는 없습니다. 그 한 사람이 좋아야 전부가 좋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일생을 두고 볼 때도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경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이 전세계에 널려 있지만 그들도 전부다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발에서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그 노정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가다가 후퇴하는 사람, 후퇴하여 거꾸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결심하고 가는 사람, 그렇게 뒤넘이치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의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걸음걸이는 어떠합니가? 여러분들은 생애에 어떠한 선을 그으면서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더불어 계실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제시해 주신 길을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동정을 해주고 싶고, 가는 길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일생을 산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필요한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남아질 것이며, 영구히 모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한 모양으로 이 길을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느냐 플러스가 되고 있느냐, 혹은 교회에 빚을 지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앞에 빚을 지우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영광의 자리에 서느냐 불행한 자리에 서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가는 한 시간 한시간에도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이렇게 살았고, 내일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금년에는 이렇게 살았으니 내년에는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식으로 살아 반드시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야 됩니다. 반드시 남기고 가야 돼요.
세월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연령과 더불어 세월은 언제나 흘러가는 것입니다. 뜻의 시대도 흘러갑니다. 여러분의 연령도 흘러갑니다. 그러면 언제 흘러가는 천운과 흘러가는 이 세월의 운세와 흘러가는 우리 생애의 생활을 일치시킬 것이냐? 그리하여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을 일치시키고, 거기에 세계의 운세까지 일치시켜 그것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 내가 연결시키지 못하면 고임돌을 고여서라도 연결시킬 수 있는 한때를 마련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평범하게 생활하는 그런 일상 생활 가지고는 도저히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태어났으니 가야 되고 가는 데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야 됩니다. 빚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우고 가야 합니다. 그 나라 앞에 빚을 지워야 됩니다. 빚을 지운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이 세계 앞에 무엇인가를 주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사람이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과거의 역사는 수습될 것이요, 현세도 그로 말미암아 수습될 것이며 미래 또한 그로 말미암아 수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영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아무리 영원하시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려감이 있고 세상과 하늘땅 앞에 손해를 준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류, 혹은 피조세계, 존재세계 앞에 있어서 필요적절하고 가치로운 내용을 언제나 보급해 주는 자리에서 영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없다 할진대 그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하나님을 추앙하고 그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찾아 나가고 영원한 생명을 갖겠다는 우리 자신은 과거에도 하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래야 되고, 현재에 하나님이 그러하시듯이 우리도 그래야 되고, 미래에도 하나님이 그러하실 것이니 우리도 그래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영원한 하나님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의 처지에 따라서 그 무엇인가를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수고하면 그 수고는 자식의 마음에 남아서 그 자식은 죽을 때까지 부모 앞에 감사합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무엇인가 남기고 간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그를 추모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마음을 다하여 세계 앞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간 성현이 있으면 세계 사람들은 그를 추모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활노정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심정세계를 그리워하시고 소망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활환경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외적이거나 내적이거나 무엇인가를 남겨 놓아야 됩니다. 내 특징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내 자신이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구나. 그렇지만 이것만은 내가 남겨야 되겠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필요한 것이요, 현재에도 필요한 것이요, 미래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필시 영원하신 하나님께도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속성을 가지신 영원한 실존의 하나님과 영원히 동반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여러분 각자가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경쟁하며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길을 단장하며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한 때 하나님 앞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외로이 혼자 가야 할 최후의 운명길입니다. 그런 길을 갔는데 만일 하나님이 환영을 해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 태어나게 될 때에 외로운 독자나 아무것도 없는 자의 아들딸, 그런 불쌍한 처지에 있는 아들딸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그러기는 싫을 거예요. 누구나 유복한 환경, 즉 유복한 가정, 유복한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그 나라가 자신을 환영하고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나라에 태어날 것인가? 유복한 환경을 가진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 혹은 온 천지가, 하늘나라와 땅 전체가 환영할 수 있는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 하는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이 짧은 생애 노정임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제2차의 세계와 당면하게 됩니다. 그 세계는 어차피 가야 할 세계입니다. 새로이 탄생해서 그 세계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고독한 독자의 신세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유복한 환경, 즉 자기의 태어남을 환영할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러분이 가는 길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이 땅에서 이렇게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저 나라에서는 유복한 환경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내적 생활에서나 외적 생활에서나 다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그러한 동기를 교회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가졌느냐?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여기에 인연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커서, 여기에서 살다가 어느 때는 갈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 것인가를 알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2천년간 수고한 터 위에 인연되어 태어났고, 또 지금까지 교회에서 신세를 졌으니 여기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 무엇을 남긴다고 해서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밑천이 됩니다. 여러분의 밑천이예요. 어떤 사람이 좋은 가문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그 부모의 것이 모두 그의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다 여러분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저 나라에 가게 될 때 자신이 그런 환경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에 사는 이 생애노정에 있어서 어느 때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것인가? 또한 어느 때 전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찬양해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줄 수 있는 인연을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언제나 생각하고 느끼며 생애 노정을 가야 됩니다.
사람 가운데에는 두 종류, 즉 기쁜 처지에 태어나 기쁘게 살다 가는 사람이 있고 슬픈 처지에 태어나 슬프게 살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엇바뀌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아무리 기쁜 환경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슬픈 면을 거쳐가는 것이요 슬픈 처지에 태어난 사람도 기쁜 면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결과적으로 어떻게 갈 것이냐? 생활에서 어떤 때에 그런 것을 찾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현시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그러한 한 때를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그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오늘은 1969년 5월 11일, 이달 들어 두번째 맞는 주일이옵니다. 내 실체를 존재세계에 전개시킨 그날부터 공간과 시간권을 이어 가면서 싸움은 벌어져 나왔고, 지금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아버님 존전에 모였습니다. `나는 여기에 왔나이다. 이렇게 싸워 왔고 앞으로 이렇게 가겠나이다. 과거의 모습은 이랬으며 오늘의 모습은 이렇고 내일의 모습은 이럴 것입니다' 하면서 당신과 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당신이 싸우시는 싸움터로 따라가고, 당신이 가시는 행로를 따라 이 치열한 투쟁의 세계를 거쳐 가야 할 저희들이옵니다.
초라한 저희들은 연약하고 가냘픈 자체들이옵니다. 황량한 광야에 홀로 서서 맹수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외로운 자리에 서 있사오니, 야곱이 하란을 향하여 가던 광야에서 그 외로운 심정을 다 모아 아버지와 동하던 자리를 생각하며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에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아버님이 거하실 수 있는 자리가 된다면 거기에 생명의 동기가 있는 것이요, 영원한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당신을 즐거이 불러 보겠사옵니까? 아버지란 그 말 가운데 피가 맺히고, 심장의 모든 동맥이 동하여 맥박이 최고로 박동하는 그런 자리에서 저희가 아버지를 불러 본 적이 있사옵니까? 어떠한 자리에서 아버님을 불러 보았는가 스스로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자리에서도 아버지를 위해 일할 것이고, 어떠한 자리에서도 이 몸을 다 드리고 이 생활을 다 드리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고 그렇게 살다가 자취없이 무의미하게 떠나는 자는 하늘 앞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의 인간세상에도 그런 사람은 필요치 않습니다. 가정에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사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라 가정을 이끌고 나라를 이끌고 세계를 이끌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전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정한 이치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교회를 위하여, 아버님을 뜻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 대신 그 길을 열흘 일년 혹은 일생을 되풀이하여 가면 하늘 대신 찬양받는 영광의 한 날을 맞을 것이며, 인류를 위하여 그렇게 가면 인류 대신 높임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며칠을 이 땅 위의 인류 앞에 남기고 갈 것인가, 몇 해를 이 땅의 인류가 추모할 수 있는 날로 남기고 갈 것인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위하여 몸부림을 치면서 아버지의 모든 애달픈 심정을 홀로 체휼하고 당신을 증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를 비웃는 사람도 있는 것을 저희들은 보아 왔습니다. 아버지! 기쁜 얼굴을 하고 쌍수를 들어 환성을 지르며 아버지를 찾아와 감사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저희들은 보았습니다. 기쁨의 얼굴이 원수의 얼굴, 증오의 얼굴로 변하여 아버지를 저주하는 모습을 저희들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럴 적마다 마음에 기억되는 아픈 심정은 세계의 그 어떤 이의 심정보다 고독하고 처량하고 비참하였사옵니다. 그런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이보다 더한 어려움을 당했던 사실을 생각하옵니다.
가야 할 운명의 길을 개척해야 할 저희들, 새로이 결심하는 내용은 이런 원수들을 아버지 앞에 회개시키겠다는 것이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촉구하여 재출발의 원천으로 삼지 않으면 저희들도 그와 같은 운명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무엇을 남겼는가를 생각하면서 하늘의 슬픔을 가로막고 `하늘이여! 나를 믿어 주시옵소서' 하며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홀로 책임지는 동시에 그 전체 앞에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대하고 얼마나 찾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해 가는 데 있어서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비웃고, 비판하는 이들은 아버지 앞에 자연적으로 멀어지고 다 떨어지고 다 흘러가 버리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먼 거리를 가면 갈수록 거기에서 새로이 결심하고 싸움의 행로를 가서 실적을 남기게 하옵소서. 아버지를 위해 몸부림친 그 내막의 실적을 남긴 자들로 말미암아 거룩한 새로운 세계의 창건의 기원이 생긴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부터 온 하루를 맡아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 이 시간도 스승을 그리워하면서 정성들이는 모습 위에 천번 만번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자녀들 위에 영광의 은사를 베푸시어 현재의 싸움에서 낙오자가 되지 말게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하늘 앞에 맡겨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고, 혹은 연락을 해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한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될 때 그 위기의 내용 전체를 국민한테 알리게 되면 그 국민의 사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위기로 이 나라는 끝날 것이다'라고 생각해 가지고는 그 나라를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그 위기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책임을 진 사람은 누구보다도 고심을 해야 됩니다. 옆에서 구경하고 평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진 사람의 입장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위기, 위기'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했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새로운 움직임이 연결되어야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천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개인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자기가 책임진 듯이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두려운 일입니다.
선생님이 일하는 데 있어서 환경적으로 부딪칠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사방에서 바람을 맞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본부를 믿고 실낱 같은 본부의 소식, 본부가 잘되고 발전한다는 소식만 바라고 있는데 본부가 어떻고 어떻다고 평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목을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특명에 의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쓸데없는 편지들을 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들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 흉을 보게 되면, 이 철없는 본부패들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순회 가서 보면 제일 골치 아픈 것이 그것입니다. 난데없는 말들, 선생님은 생각지도 않은 말들, 사실과 맞지도 않는 말들을 전부다 편지로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편지를 누가 해주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무슨 책임자인 것처럼 해가지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들을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은 어느 한 때가 오게 되면 전부다 청산지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 전부 청산짓고 넘어 가야 됩니다. 앞으로 그런 역사적인 사건은 순회면 순회도상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제2차 7년노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런 사건의 동기를 선생님이 만들어 주었습니까? 아니면 누가 만들어 주었습니까? 이것도 앞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청산지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책임지지 않은 사람들이 마치 책임진 사람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한 모순입니다.
개척시대에, 개척하는 자리는 시작부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싸움은 출발부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자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담도 하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편지를 합니다. 왜 그런 편지를 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입니까? 소망을 주고 희망을 북돋워 주지는 못할망정 왜 상처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외국에 편지 보내는 것을 통제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편지라는 것은 받는 사람을 격려해 주고 그 사람이 가는 길에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편지는 헛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뜻을 위해 충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편지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책임은 여러분이 지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편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지를 보내면 부담이 될까 봐서 자주 못하지요. 그렇다고 간부들이 하는 것도 아니고 통일교회의 떠돌이들이 편지를 해가지고 이렇게 형편없는 오해를 하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편지를 써도 좋은 내용을 써야 됩니다. 본부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따라가는 사람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잘 된다, 좋다 할 때, 책임진 사람들은 편안한 자리에서 거기까지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 그들은 내부에서 그 이상의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이상의 고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사람이야 나쁘면 돌아갈 수도 있고 비켜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도하는 사람은 나쁘다고 비켜갈 수 없습니다. 나쁘더라도 그런 것을 소화하고 지나가야 됩니다. 내부에서 치열한 고통을 치르더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곤란한 일이 많은 것입니다.
일본이나 구라파와 미국에 가서 보더라도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식구들이 자기들끼리 왔다갔다하면서 뭐 어떻고 어떻다고 그럽니다. 이건 미국이나 어디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세계에 있기 때문에, 또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서로 보탬이 될 수 있는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어디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고는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들 합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교회로부터 전부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떨어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폐단이 무엇이냐? 교회에 속한 모든 물건을 존중시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것이니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어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발전하려면 자기가 수고한 공로를 자칭해서 표창해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일했으니 교회에서 나를 도와줘야지' 하는 사람은 장사를 한 사람입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했으니 교회에서 나를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도와 달라고 해도 안 도와 줍니다. 배반자가 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교회가 지금보다 더 치열한 개척노정에 있었던 생각은 잊어버리고 자기의 짐보따리를 갖다 맡기려고 합니다. 교회가 가는 길 앞에 자기들이 지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있어서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생각을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무리들도 이젠 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환영했지만 선생님을 만났으면 선생님에게 짐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짐을 절대로 교회에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짐을 지되 사적인 입장에서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적인 입장에서 응당히 짐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평이 많습니다.
외국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서양 사람은 자립정신이 강합니다. 벌써 18세만 되면 혼자 자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철저한 교육방침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양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것이 현재의 세계관을 만드는 분기점입니다. 자립정신이란 스스로 개척해 가지고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때가 어떤 때이기 때문에 어떤 노력을 해야 된다는 기준이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망각해 버리고 그 기준 앞에 염려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을 원수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공적인 길에서 개인이 이익을 보겠다고 하면 거기에서 모든 부패가 벌어집니다.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에는 보탬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일에서 개인의 이익을 보겠다고 하면 망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단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국민이 많은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고 뭐고 위함이 없이 전부 자기들만 좋으면 된단 말이에요? 공적인 것에 신세를 지게 되면 그 나라나 그 개인은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되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다 하늘땅 앞에 부끄럼이 없는 자리에서 져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세를 지면 하늘이 다 갚아 주십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신세지는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세를 끼치는 자리에 서지요.
여러분들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지만 언제나 한 면은 공적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생활과 움직이는 면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공적인 입장에서 앞장서서 일하겠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오래된 사람들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사람들을 한 20군데로 갈라놓으려고 합니다. 자꾸 갈라놓을 것입니다. 갈라놓아야 둘 다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삽목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를 보더라도 미류나무 같은 것들은 가지를 쳐 주어야 합니다. 그냥 두면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무자비하게라도 처음부터 순을 꺾어 삽목을 하면 나무도 살고 그 가지도 새로운 나무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썩은 가지로 인해 나무가 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하나의 십자가를 붙안고 나가야 합니다. 외로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 때문에, 그 일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고달프고 어느 때보다 마음 놓을 수 없지만 당당합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오래된 식구가 간증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간증은 자신이 활동하던 그때 이상의 신념을 가지고 그때 이상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 사그라진 심정을 가지고 간증하는 것은 도리어 화가 됩니다. 왜 화가 되느냐? 그 간증을 듣고 대중도 그렇게 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자기식으로 만들어서 동정을 받으려 하면 오히려 큰 화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여러분들도 가야 한다. 내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이렇게 갚아야 한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난날을 간증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간증할 수 있는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날과 오늘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간증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헛것이 됩니다. 즉, 과거에 아무리 잘했더라도 하루의 실수로 역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천번 만번 잘했더라도 한 번 법을 어기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적인 자리는 외롭다면 지극히 외롭고 무섭다면 지극히 무서운 자리입니다. 언제나 마음놓고 잘 수 없고, 마음놓고 먹을 수 없고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생활의 비결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자기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이끌어 주고 누구보다도 심정적으로 품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품에 끌려 안기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도 그런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딴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간을 더 연장시키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욱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남이 자는 시간에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그 사람을 위해 복을 빌면, 그것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기도해 준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가 오기를 밤잠을 안 자고 고대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밤잠을 안 자고 오는 것입니다. 끌려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어디 가든지 그 경지까지 깊이 들어가게 되면 밤이 와도 졸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딴 세계의 자극, 즉 졸음보다도 더 강한 심정세계의 자극이 나와 더불어 주고받게 되면 졸음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피곤보다도 강한 자극을 주고받을 때 그 피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힘의 원리를 알고 있겠지만 그 마음이 없어서는 절대 전도 안 됩니다.
따라서 사람이 오자마자 그 사람 보고 `저 사람 왜 왔지? 보기 싫은데 또 왔구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를 만나더라도 원수를 대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거리감 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원수의 세계도 점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들까지도 싸우지 않고 말없이 점령해 가지고 자기편을 만들 수 있는 동기를 가진 사람을 도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뜻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뜻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어정어정하거나 같이 다녀서는 안 됩니다. 반갑지 않은 사람하고 같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인연을 떠나 분립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모아지면 사고를 칩니다. 사고쳐요. 전도도 그렇습니다. 서로 만나면 반가와하고 밤새워 가며 얘기하고, 헤어져 있으면 서로 그리워야 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끼리 그리워하지 못하면 그들은 같이 살 가치가 없습니다.
이제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원수가 없으니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겼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 때가 되면 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본부에서는 책임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원리원칙대로 책임을 다한 사람 아니면 안 됩니다. 원리원칙대로 책임한 사람 아니면 부장이나 지구장, 지역장이 보직을 절대 못 줍니다. 그러므로 원리원칙대로 공식적 노정을 거친 사람이 아니면 본부나 선생님 가까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36가정들, 다른 가정들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원리원칙대로 하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 가까이 있지 못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원리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데 원리원칙이 아니면 무엇으로 그 세계를 만들겠습니까? 본부도 그렇습니다. 책임을 완수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완수해야 본부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본부에 대한 인사는 책임을 완수했다는 조건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결정하겠습니다.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서, 부장이니 뭐니 하는 사람은 앞으로 고생을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부장들도 책임 못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내보낼 것입니다. 전부다 내보내서 책임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갈 길을 못 닦으면 선생님이 앞으로 저나라에 가서 책임추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못한 사람들은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지구장들까지도 인사이동 시켜서 지방으로 개척전도 보내어 자기 갈 길 닦게 할 것입니다. 자기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본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부에 있는 데 무슨 책임이 있어요? '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본부에서 무슨 책임을 지고도 원리적인 믿음의 자녀 셋을 두고 12명 전도를 못했다고?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전도란 편지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조언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지는 읽어 보면 되는 것이잖아요?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 안 갈 수 있어요? 남자로 태어나서 장가 안 가도 됩니까?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사회의 일원도 그 나라의 국민도 못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믿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전체 원리가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가정입니다. 복귀는 개인복귀가 아니라 가정복귀입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안팎의 조건이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여기에 대한 확실한 사상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분 중략)
피곤할 때 반작용을 일으키게 하면 그 피곤이 풀립니다. 갑자기 팍 누르면 정신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갑자기 더 피곤하게끔 단단히 결심하면 거기에서 반발이 온다는 것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참 이상합니다. 몇 시간은 자야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렸는데 몇 시간 자고 나서 하자고 합니다. 죽을 때에 `아 몇 시간 자고 죽겠소' 하면 그것이 통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난 나올 때 삼팔선 근처에서 접경선을 넘어야 하는데, 당시의 때가 아주 긴박하다는 것을 예감했습니다. 접경지대가 위태하다는 걸 알아 가지고 접경선을 넘으려 하는데 경비대원들이 쫓지 않아요. 쫓으면 쫓는 만큼 밀려나갔다가는 경비대원들이 앞으로 가면 또 그들 꽁무니를 따라서 그만큼 나가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벌써 확실히 알거든요. 그래 가지고 경비대원들이 전부다 꽁무니빼는 것을 현장에서 봤어요. 그날 밤에는 졸리기는 한데 잠은 안오고 예감이 이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비대원들이 보따리를 싸서 내빼는 겁니다. 그럴 때는 다르게 가는 길이 없어요. 그 사람들을 따라가는 수밖에요. 일선 경비대니까 그 사람들이 제일 빠른 길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가만 따라가니까 배를 타고 용매도로 가요. 해주에서 청단까지가 80리 길인데 그때가 새벽 2시였어요. 경비대와 같이 퇴각 안 하면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긴박한 와중에서 선생님은 걱정이 되어 숨이 막힐 지경인데 이 녀석은 걸으면서 졸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서 갔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걸으면서 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녹음이 중단되었음)
본부에 있는 식구들은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느끼는 일을 할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본부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외국에 있는 식구들은 본부에 와서 파수꾼 노릇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변소 청소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생 동안 그런 일을 해도 감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걸레를 들고 빗자루를 들게 될 때 본부에 사는 사람은 그러한 전통을 계승시킬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앞으로 우리가 본부의 체제를 새로이 갖추는 문제가 얼마나 시급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더구나 금년에는 일본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외국사람들도 여러 명 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한 10여 명 데려와서 새로운 세계적인 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오게 되면 벌써 본부부터 들어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본부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청파동 이쪽에는 효창공원이 있고, 저쪽에는 기차길을 따라 서울역이 있고, 또 어디에는 무엇이 있다고 하는 상세한 약도를 만들어 세계로 보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 저런 것, 지금까지 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 책임을 다해서 이런 전반적인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김포공항에 내리면 이곳에 어떻게 와야 된다는 것과 걸어오려면 어떻게 와야 된다는 것까지 전부다 미리 알 수 있도록 하려면, 우선 소재지에 대한 약도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성지에 가보면 옛날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돌아가신 예수님을 세마포에 싸서 얼굴에 향료 같은 것을 뿌리고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모셔 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수십년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마음으로 그리워하던 주님이 그 무덤에 들어가 누웠다는 것을 생각하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거기에 오는 사람들을 등쳐먹으려고만 하는데 그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나서 수천년이 지나 이제 역사적인 인물이 되셨기 때문에 그럴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현재 살아 있기 때문에 세계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곳을 찾아오게 될 때 여기 본부에 있다는 사람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평소의 그런 환경으로는 여러분들이 절대 선생님에게 보탬이 못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축복가정들 외에는 본부에 들어와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 지방에 나가서 전도를 하여 실적을 쌓고 하나님의 심정을 어느 정도 체휼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영통인들을 세워놓고 그들을 통과한 후에 들어오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런 사명을 맡아서 준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본부교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별의별 녀석이 다 붙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생님이 이런 공식적인 집회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안 하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선생님은 가정에 대한 규범, 천국가정으로서 가져야 할 생활에 대한 규범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귀의 노정을 걸어야 할 사람들은 원리를 중심삼고 가르쳐 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그런 문제를 책임지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가정 하나하나를 중심삼고 재차 수습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조직은 가정조직입니다. 가정을 위주로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주로 해 오던 것을 가정을 위주로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가정을 우습게 봤습니다. 우습게 알던 가정이 알고 보니 여러분에게 필요한 가정이더라는 것입니다.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지금까지 무가치하게 느끼던 가정이 이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나타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축복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야 외국식구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떳떳하고, 가정의 도리를 통하여 그들을 가르쳐 줄 수도 있고, 그들에게 본을 보여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축복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축복가정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 개인을 놓고 보면 여러분이 그들에게 집니다. 그렇지만 가정이라는 것을 중심해서 움직일 때는 그들이 여러분에게 머리를 숙이고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지금 여러분이 그들 앞에 보여줄 수 있는 것 딱 한 가지는 이 축복가정의 생활입니다. 그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에 젊은 사람들이 많지만 이곳에 와서 마루 한 번 닦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리가 깨져도 선생님이 일부러 가만히 두고 부면 어느 누가 자기의 점심을 굶고라도 갈아 끼우려는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것들은 다 성물이에요. 본부는 나라의 명승지인 동시에 우리교회의 명승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에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보면 먼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망신스러운 일입니다. 일단은 교회 안팎을 깨끗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이 본부에 있는 사람은 항상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알겠지요? 「예」 그래서 앞으로 강력히 이 본부를 정비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외국식구들이 첫째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다는 부장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부장들은 그 조건에 걸릴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부장이라는 작자들이 주일예배도 참석하지 않는 녀석이 몇이나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벌써 본부를 팔아먹는 녀석들입니다. 그것은 돈 받고 팔아먹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부장이면 부장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진 자리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외국식구들은 선생님의 가까운 측근, 본부의 책임자들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본부를 중심하여 자기들이 일한 것을 비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임자라는 사람들이 본체만체해요?
그 다음에는 무엇에 관심이 많으냐? 축복받았다는 36가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축복받았다고 하게 되면 장성기 완성급에서 완성기 단계로 나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믿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하는 선한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가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행복스럽고, 그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여러분이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 생활이 극도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뜻을 위한 모심의 심정이 지극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생활을 하면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강력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예수를 중심삼고 보면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 다음으로 12제자, 그 다음에는 70문도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그 다음에는 72가정, 그 다음에는 120가정, 그 다음에는 430가정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중국 사람이 왔다가 갔는데 그 사람이 뭘 보러 왔다고 했습니까? 통일교회 원리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알고 있는데 축복가정들이 과연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왔다는 말을 여러분도 들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이 한 사람을 뽑아 보낼 때에는 그 나라의 슬픔보다도 더 큰 슬픔을 당하면서 그 사람을 특사의 자격으로 보내는 것이요, 대사의 자격으로 보내는 것이요, 밀사의 자격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를 박대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나라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는 국빈 이상의 국빈입니다. 그는 역사를 대표하여 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모시고 나오는 자는 그저 재재거리며 말을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안팎으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무턱대고 쓸 말, 못 쓸 말 주어 모아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진 사람은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본될 것이 뭐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점수를 따내야 합니다. 지금 이러니까 1년 전, 2년전, 3년 전, 4년 전, 5년 전에도 그랬겠구나 하는 추측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가정에 있어서 주체자가 될 때가 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국식구들은 첫째로 선생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소망하고 그리워하던 그 본부의 책임자들인 부장들이 공적인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생활터전은 어떻게 갖추고 나가느냐? 자기들과 어떻게 다르냐?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자인 여러분은 믿을 수 있고, 그들이 바라는 기준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그들이 직접 만나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와 상대되는 부장이면 부장급, 과장이면 과장급의 사람들을 중심삼아 연구하게 됩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볼 때 이제야말로 본부의 체제를 갖추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면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본부에 척 오게 되면 환경을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지, 아침이 되면 몇 시에 일어나는지, 또는 살림살이를 어떻게 해 나가는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에 있는 공장에 갔을 때 어떤 청년식구 한 사람을 보고 탄복했습니다. 취직한 지 일년 반쯤 된 그 청년은 공장에 입사해서 한달 만에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전부 배우고 난 후, 내력있는 기존사원들도 알지 못하는 공장 구석구석의 일들을 샅샅이 뒤져 결론을 딱 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청년은 전문가도 아닙니다. 나이도 겨우 스물 여섯살밖에 안 되었고 학교도 3년 전에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공장의 다른 사람들은 꿈도 못 꾸었던 것을 전부 해치웠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그 청년은 관심을 많이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쇳조각도, 하나의 기계도 틀림없이 본 것입니다. 그 마음의 배후에는 공장을 그리워하고, 또한 공장에 가게 되면 전부 다 내 손을 거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그 어떠한 사람보다도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심을 가졌기에 한달 동안에 3년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도 앞으로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외국식구들이 척 오게 되면 전부다 분석할 것입니다. 여기 이 칠판부터 유리 한 장까지 전부 다 분석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누구인데 얼굴은 어떻게 생겼고, 그 사람은 어떠한 성격을 가졌고…. 하면서 본부에 있는 사람들을 분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이 본부교회에 와서 큰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이 본부에 와서 떠드는 사람도 있고, 또 주먹질까지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옆방에서 자고 있으면 소곤소곤거리는 말까지 다 들리는데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산당의 말로 숙청의 대상입니다. 이들이 언제 사람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우리는 교육을 통하여 시정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곳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앞으로 이곳은 미국을 준다 해도 팔지 않을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모나리자 그림이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 보게 되면 그 그림 하나를 놓고 한 50명은 항상 그 앞에서 구경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가보니까 못난 녀석, 잘난 녀석 할 것 없이 그 그림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전부다 미술에 대해서는 미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앞으로 이 통일교회 본부는 역사적인 곳이 됩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서 절대 인연 못 맺습니다. 앞으로는 어느 누가 여기에 와서 하룻밤에 몇백만 불 줄 테니까 재워 달라고 해도 안 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안 오면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허풍선이 도깨비 같은 녀석들이 들어와서 이 마루에 한번 앉았다가 저나라게 가게 되면 거기에서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 나는 그 마루에 가서 앉았더랬지….' 그런데 조금 졸았구만? (웃음) 하루 저녁 가기는 했는데 조금 졸았다는 것이 무슨 자랑입니까? `아이구 힘들어! 무슨 설교를 세시간이나 해. 아이구 저 사람은 배도 안 고픈가. 주일날은 아침밥도 먹지 말라고 하더니 세시간이 지나도록…' 하고 별소리를 다 합니다. 이것을 보고 영계에서 칭찬하겠습니까? 아무개의 13대, 18대, 30대 손녀딸이 졸았으니까 선조들이 `예! 감사합니다' 하겠어요?
여러분은 영계와 대면을 못 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선조들은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게 되면 `아, 우리 손녀딸이 가는구나' 하고 서로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절대 우스갯소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영계에 가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이름을 알고 선생님을 붙들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선생님이 제일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할 일을 다 하고 하늘 앞에 기도하고 나서 일단 한번 금을 그으면 다시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아무개 손자가 교회에 나오면 서로 돌아가면서 `그놈 잘한다' 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뜻을 배반하고 떨어져 나가게 되면 여러분을 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로써 영계와 통하여 보면 알겠지만 영계에서는 후손들을 하늘 앞에 가까이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조상이나 욕하고 나만 잘살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죽어 보아야 안다는 것입니다. 여기 어떤 할머니도 요전에 영계에 갔더니 원리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이 맞나 안 맞나 죽어 보십시오. 그러나 죽었다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죽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공갈을 해도 아주 근사한 공갈을 한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아주 멋진 공갈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어 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뭐 할 짓이 없어서 이런 말하고 있는 줄 알아요?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이 민족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중심삼고 총진격을 해야 합니다. 금년도의 표어도 전면적 진격이잖아요? 이런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데 `아이구! 전면적 진격이야 소질이 있는 사람이나 하지 건달패가 그걸 할 수 있나' 하고 구경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기사 건달패는 먹고 마시는 것밖에 못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 통일교회 전체에 총동원 명령이 내려진 때입니다. 아가씨도 해야 되고, 할머니도 해야 되고, 심지어 아기 가진 어머니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이끌고 다니면서 복귀노정의 본을 보여 주는 것은 이렇게 뒤넘이 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면서라도 나를 진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여자를 원했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조금만 사정을 봐주면 좋으련만 하는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도 전혀 사정을 안 봐줍니다. 선생님 나이가 일흔이 넘어 몸이 노쇠해졌을 때도 지팡이라도 짚고 가야 합니다. 이 길은 기어코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도 밤잠을 안 자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선생님은 연구할 수 있는 연구대상입니다.
자! 이제부터는 우리가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를 내걸었으니만큼 서울에서 확실한 전도활동을 시작하여 하늘이 믿을 수 있는 자신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본부에 들어온 지 3년 이상 되는 사람은 전부 전도 보내야 합니다.
선생님도 한국에서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명년쯤 미국으로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전번에 미국 갔을 때 미국 식구들이 선생님의 집을 자기들이 사겠다고 `5만 달러면 되겠습니까? ' 이렇게 말하는데 선생님이 `다 집어치워! 선생님은 가난뱅이가 아니야' 하고 거절했습니다. 돈이 없어 못사는 게 아니라고 큰소리치고 왔습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긴 뭐가 좋아요. 한순간이나마 부끄럽게 생각해야지! 그러나 선생님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선생님은 단지 내가 태어난 한국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제 9월이 되면 선생님이 외국에 또 나가야 됩니다. 이제는 미국 워싱톤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국의 상원의원들과 연결짓기 위하여 발벗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긍지를 가지고 나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하면 선생님이 앞장서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에게 전부다 맡겼지만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선두에 서 가지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마구 몰아낼 것입니다. 만약에 미스터 문이 미국에 가서 부흥회를 한다면 많이 몰려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한국에서 욕먹고 비판받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비판을 하게 되면 이제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가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그렇게 알고 선생님이 있는 동안에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 나라에 갔을 때 여기에서 선생님의 명령을 백번 천번 듣고 따랐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암만 명령해 주기를 바란다 해도 명령을 안 할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두고 보십시오.
지금의 때는 제일 귀한 때입니다. 여러분은 제2차 7년노정을 맞아야 합니다. 이제 서울을 중심삼고 활동할 수 있는 때가 왔으니만큼 여러분은 한결같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역사적인 때이니만큼 있는 정성을 다하여 선생님이 걸어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현시점에서 승리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총무부장은 우승기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본부가 있는 서울에서 쓸 것 하나, 그 다음에는 지방에서 쓸 것 하나, 세계에서 쓸 것 하나, 이렇게 세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의 제2차 세계순회기념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뭘 하느냐 하면 앞으로 쟁탈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걸어 놓고 각 교회가 매달 한 번씩 쟁탈전을 가지는 것입니다.
매달 그렇게 하는데 일년 동안 거기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교회는 전부다 벌로 떡이라도 한 말씩 해 가지고 와서 예배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컷 먹게 하고 노래도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반드시 선생님도 참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한 사람만 참석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 교회마다 적어도 40명 이상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40명이 미만이 될 때는 참석하지 못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40명이 안 되면 밤을 새워 가면서도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랬는데도 40명 미만일 때는 그냥은 못 와요. 과자로라도 대치해야 됩니다. 이제 1회, 2회, 3회 이렇게 일년 열 두 달을 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서울에서 전국으로, 또한 지구 구석구석의 교회에까지 이런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40명이라고 해봐야 열 집만 전도하면 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전번에 일본에서도 작전계획을 짜서 지시한 바와 같이 절대 욕심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한꺼번에 다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안 됩니다. 하루가 모여서 일년이 되는 것입니다. 10년 동안 쌓아 올려야 될 일을 하루에 전부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어떠한 책임을 지느냐? 한 달에 한 사람을 전도하는 거입니다. 두사람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달에 그저 한 사람만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딴 집에는 가지 말고 딱 한 집만을 중심삼고 매일 정성을 들이고 매일 원리말씀을 전하여 한 달에 한 사람을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면 일년이면 몇 명입니까? 12명이 되지요? 12명 이상 해도 안 됩니다. 12명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12명 미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만일 일년에 열 사람밖에 전도 못 했으면 두 달 동안 금식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12명을 다 채울 것입니다. 또 한달 동안에 한 사람을 전도 못 했을 경우에도 한달 금식을 하라고 하면 모두들 다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이 작전을 써 나왔습니다. 이렇듯 이제는 우리의 작전법도 옛날과는 다릅니다. 아기를 낳을 때에도 한꺼번에 두 쌍동이를 낳게 되면 그만큼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이런 놀음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복귀시대이니만큼 통일교회가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에 한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끼씩 밥을 먹는데 밥을 먹기 전에 먼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될 수 있으면 여러분이 한주일 동안에 이틀은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전도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도 안 되거든 선생님한테 와서 항의하십시오.
그 한 생명을 위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전도가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한다면 우리가 만 명이라면 일년이 지나면 몇 명이 되겠습니까? 12만이 됩니다. 2년이면 120만이 되고, 3년이면 1, 200만이 됩니다. 이렇게 매년 10배씩 식구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복귀는 문제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한달에 한 사람을 목표해서 총진군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랬습니다. 일본에서 동대사건이 터졌을 때 간부들을 모아 놓고 좌경화 학생 데모에 시달리고 있는 동경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동경대에 우리 학생들이 약 20명이 되는데 이들 한 사람이 10명씩만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원리연구회니, 통일교회의 원리니 하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뭘 하느냐?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된다. 그런데 데모만 하다보니 일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러다 졸업을 하고 밖에 나가려고 보면 꽃다운 청춘이 다 흘러간다. 그러니 공부를 못하게 하는 녀석이 있으면 몽둥이로 때려죽이자'고 하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한 사람이 10명씩만 동지를 규합하게 되면 200명이 됩니다. 이 200명을 훈련시켜서 200학급에 투입시켜 그 학급의 반장만 끌어들이면 1,000명, 2,000명 만드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전교생이 공부를 하자, 공부를 못하게 하는 공산당들은 때려죽이자고 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완전히 그 방면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가지고 파고들게 되면 그들의 조직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좌익성이 짙은 아사히(朝日)신문이 우리 민단을 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논리적인 계획도 세워 놓고 왔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이 아니면 그들로부터 일본을 구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북 공산당들이 전쟁에 미쳐 있는 절박한 시점이지만 국민 모두가 통일교회의 사상으로 무장한다면 그들과 맞부딪쳤을 때 후퇴하겠어요, 전진하겠어요? 「전진합니다」 전진해야지요. 그렇게 하여 전방에 70만 명을 통일사상으로 무장시키고 후방에 250만 명을 통일 사상으로 무장시키면 가뭄에 메마른 저수지에서 그물로 고기떼를 살살 몰아 건지듯이 빨갱이들은 문제없습니다. 한국의 전쟁은 곧 아시아의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 공산당들은 전부다 소련과 만주의 국경에 몰아 넣는 것입니다. 만주는 옛날 우리 땅이 아니예요? 그것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앞으로 우리에게는 북진통일을 할 때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인가는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나를 만나러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미 거기에 대한 모든 작전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래서 벌써 외국에서부터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만의 누구누구를 움직이고, 일본의 누구누구를 움직이라고 하면 당장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하여 모두가 책임자의 입장에 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전체 통일교회에서도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체 통일교 교인들은 한 달에 두 명도 안 되고 한 명만 복귀하는 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한국 복귀는 문제가 아닙니다. 삼천만 민중의 3분의 1은 애들이고, 또 3분의 1은 노인들이니까 젊은 사람, 즉 20대에서 40대 사람들은 천만밖에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음만 젊으면 되는 것입니다. 매달 1인 전도를 합시다. 알겠지요? 직장이면 직장에서 전도를 하고, 공장이면 공장에서, 학교면 학교에서, 전차 칸이든 어디든 전도를 하는 거예요. 노름판에서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 나가 보면 뜻이 있는 사람은 벌써 눈치를 보면 척 압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전도를 나가게 되면 사람 찾는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한 사람을 찾으려고 얼마나 골몰했습니까? 이제는 척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매달 1인 전도 못 하는 사람은 여기에 절대 못 오게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회사를 책임지고 있어서 못 한다고 할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있는 부장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부 다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이목사도 해야 합니다. 여기 앉아서 설교를 할 때는 하더라도 시간을 내서 하라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명 전도, 이것을 전세계적으로 명령을 하고 왔기 때문에 한국이 몇 퍼센트 달성하는지 통계를 낼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지역마다 경쟁을 하게 될 텐데 이 지역은 몇 퍼센트, 저 지역은 몇 퍼센트라는 것이 전부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더 힘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수를 주어 가지고 전부 다 통계를 내려고 하는데 사람이 많을수록 더 힘이 드는 것입니다. 10명에서 40명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40명에서 일년이면 12배니까 480명, 그것도 쉬운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그런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은 절대 큰 교회를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120명 이상이 들어갈 교회를 만들었다가는 부패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는 핍박이 많으니까 서로 힘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꿰어 차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기 혼자 뜻을 따라갈 수 있는 기반도 다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관을 세워 천국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가정적인 울타리를 만들고, 가정적인 터전을 공고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이 있기 때문에 축복가정들은 이제부터 전부다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안 하겠다는 사람 나가세요. 그렇다고 강제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총 공장을 만들어 가지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갔더니 일본 정부가 뒤집어져서 야단이었습니다. 내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한 번씩 사건을 일으켜 놓기 때문에 그들이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합동 결혼식을 안 할 줄 알았지만 선생님이 해 놓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이고 그 사나이가 오기만 하면 사건 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제 유월 초하루부터는 한 사람이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는 것입니다. 절대 둘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찌 하다 보니까 첫달에 두 명을 했다고 해서 한 사람을 그 다음달로 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낳다 보니 쌍둥이를 낳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매달 새 사람을 한 사람씩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사람을 놓고 정성들이면 한 사람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때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일년 열 두 달 계획을 세우세요. 어느 달은 제1후보 누구, 제2후보 누구, 제3후보 누구, 이렇게 짜는데 여기에는 엄마 아빠도 들어 있고, 누나 동생도 다 들어 있습니다. 동생 같으면 `이녀석아, 가자' 그럴 수 있습니다. 뭐 사정을 봐 줄 것이 뭐 있습니까? 살살 얼러서 안 되거든 때려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누이동생이나 사내동생 전도하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형님 누나는 그런 방법으로 안 되더라도 동생들은 강제로 끌고 올 수 있습니다.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역사가 있는데 너 한테 죽을래? 형의 말을 들어야지' 이렇게 하면 누이동생, 남동생 전부다 통일교회에 쑥쑥 들어오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여러분들이 하루 세 끼 먹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이 진정 같은 밥을 먹으면서도 하나의 이상을 위하여 같이 눈물 흘리지 못하던 것을 이제는 같이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고, 다 함께 이 나라를 염려할 수 있는 그들이 되도록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먼 곳에 있는 사람부터 전도하려고 하지 말고 가까운 친척부터 전도해서 사돈의 8촌까지 다 전도해 나가야 합니다. 알겠지요?
이것은 내가 이번에 외국 갔다 오면서 사 온 선물입니다. 좋은 선물을 사 오고 싶었지만 김포세관이 선생님한테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못했습니다. 만일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가 외국에 갔다 오는 길에 무엇무엇을 밀수해 오다가 걸렸다고 하여 신문에라도 나게 되면 통일교회의 위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 아무것도 사오지 않고 맨손으로 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그냥 오면 섭섭합니다. 그래서 여기 부장급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사해에 가서 구경하면서 돌을 주워 왔습니다. 이것은 아마 제2차 순회노정에서 제일 기억되는 좋은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일본을 떠나오면서 일본인들에게 선물 중에 이 이상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은 없을 거라고 말했더니 아주 좋아서 야단이었습니다. 이것은 많이는 못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은 그림엽서입니다. 먼 곳에서 가지고 오면 짐이 되기 때문에 전부 일본에서 샀는 데 6백장을 사왔습니다. 좀 더 많이 사오려고 했지만 너무 많이 사면 또 가치가 없습니다. 못 가진 사람도 있어야 재미도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선생님이 특별히 모이라고 한 것은 이것이 270장 남았으므로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고자 해서입니다. 여기 인원이 270명이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넘어도 나는 모릅니다. 여기 앞에서부터 줄 테니까 맨 꼴찌는 싸움을 하든지 뭘 하든지 알아서 가지기 바랍니다. 누가 꼴찌 나오라고 했어요? (웃음)
이것을 앞으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이것이 일본돈으로 20엔입니다. 20엔 짜리 밖에 안 되지만 이것이 백년, 아니 몇십 년만 지나도 이 한 장을 몇천만 원 주고도 못 사는, 여러분 가정에 있어서 둘도 없는 가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주는 것보다 이것이 기념으로 제일 적당할 것 같아서 한 장씩 나누어주는 거예요. 싫은 사람은 안 받아도 좋습니다. (웃음)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선생님이 직접 나누어 주겠습니다.
이날까지 저희를 보호해 주신 은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금후에 저희의 모든 생명 여하를 당신이 기억하시어 뜻하신 대로 주관하시옵소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가정과 그 가정에 태어난 어린 자녀들 위에 당신의 풍부한 사랑을 영원히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내일은 이곳을 떠나 8개 지역을 순방할 것입니다. 유월 초하루부터는 저희들이 새로이 역사를 전개시켜 나가야 할 책임과 사명을 짊어졌사오니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는 이렇게 가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하고 출발할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민족을 앞에 놓고, 불쌍한 인류를 앞에 놓고 있는 저희는 쉴 수 없는 운명길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한 몸들이오니 머물지 말고,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3년간 정성을 다하게 될 때는 이 나라의 갈 길이 가려지는 줄 알고 있사오니 부디부디 있는 정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높이 올려다보는 것보다 낮게 내려다보면서 갈 길을 다 가게끔, 아버지,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 기간 동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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