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지>

예수님에게는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완결 지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야곱의 대신자, 모세의 대신자가 되어야 하며 역사적인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가정을 대신하여 열두 사도로 울타리를 만들고 이스라엘 지파를 중심삼아 세계적으로 새로운 지파 편성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과 선생님의 사명

그러나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에게 한이 맺혔고, 뭇 영인과 땅 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이 맺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이 모든 한을 풀어야 합니다.

세 제자에게 불신 당했던 예수님은 아담가정에서 아담이 가인 아벨 셋을 잃어버린 입장, 즉 타락한 인간조상 아담과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사탄이 마음대로 침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탕감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사정을 품고 모든 것을 재탕감하여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이런 천적인 입장에 있는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한국은 유대와 같은 입장입니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는 옛날 유대교와 같은 입장이고 미국은 로마와 같은 입장에 있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를 중심하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더라면 로마는 단시일 내에 예수님 앞에 정복되어 세계복귀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한국과 기독교와 선생님이 하나 되었더라면 미국과 하나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미국과 하나만 된다면 소련 공산당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과 유대교와 이스라엘이 하나되지 못하여 예수님은 이방으로 쫓겨났다가 죽음을 모면하고 돌아와서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이를 탕감복귀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한국이 갈라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원점으로 돌아가 싸워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에서 넘어와 새로운 교단을 편성하여 기독교 대신 통일교회를 세웠습니다. 한국과 통일교회가 하나되면 예수님이 유대교에 몰리던 것을 복귀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복귀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데 21년이 걸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하란 땅에 갔다가 돌아와서 형 에서를 굴복시키고 새로운 섭리를 출발하던 것과 같은 입장을 21년 만에 세운 것입니다. 7년노정이 연장되어 21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교회와 교회, 나라와 나라, 세계와 세계가 서로 맞서게 되는 때입니다. 그러나 민주와 공산 두 세계는 꺾이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운 이유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참조상이 못 되었기 때문에 참된 자녀가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참된 자녀가 없으므로 이 세계는 사탄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1차 7년노정에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찾아 세웠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함으로 참된 부모가 못 되었고, 자녀와 만물, 그리고 하나님까지 잃어버렸으므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잃어버린 것을 복귀하기 위한 터를 닦는 기간이 1960년대입니다. 또 악한 조상이 되었으니 다시 선한 조상이 나와야 합니다. 이 기준을 세운 것이 1960년도입니다.

지금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자녀의 입장에서 나아가던 때와 같습니다. 즉 소생․장성․완성이라는 성장 과정을 통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타락하지 않은 참자녀로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나가는 때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자녀의 시대인 것입니다. 그럼 부모의 시대는 어떤 때냐? 부모의 시대는 완성시대입니다.

1960년에 7년노정을 출발했기 때문에 완성기 완성급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1단계에 7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3단계까지 21수, 즉 21년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차 7년노정에서 소생기를 마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장성급을 거쳐 완성급을 향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새로운 나라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내적 기반을 21년 만에 완결 지었습니다.

1960년에 부모의 날을 선포하고 난 후 7년 기간 동안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 나왔습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입장으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부모는 사탄이 타락시킨 부모이므로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복귀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책정하면서 7년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거쳐 나오면서 사탄세계에 잃어버린 자녀를 복귀하고, 가정을 복귀하고, 종족을 복귀하고, 민족에 대하여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었어야 할 기준을 다시 찾아 나온 것입니다.

제1차 7년노정 가운데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찾아 세우고, 비로소 1968년 1월 1일을 기하여 하나님의 날을 책정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타락하여 잃어버린 모든 조건을 찾음으로써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인 터전을 세워서 국가적인 출발을 할 때가 지금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준에 올라온 것은 아담 해와가 축복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복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탕감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세계가 이미 나라를 형성했으니 이들을 쳐부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우리가 7년노정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사탄이 꼼짝 못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탕감해야 할 것은 다 탕감했으므로 사탄과 우리가 형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21년이 걸렸습니다.

통일교회의 입장

이제까지 복귀한 기준은 아담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참된 인류의 조상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이제 잃어버린 자녀와 종족과 민족적인 형태를 갖출 때가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민족을 걸어 놓고 탕감조건을 세워 나왔습니다. 이제 그 조건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항상 가인이 아벨을 때려 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지금부터는 그 입장을 벗어나 환영받을 수 있는 복귀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물론 과거에는 선생님도 많이 맞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과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된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하나된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지상에 아담 해와의 입장과 같은 기준을 세워 잃어버렸던 지상과 영계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영인들이 있는 영계는 아담시대의 천사세계에 맞먹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입장인가? 아담 족속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 족속을 중심삼고 민족적 국가적 탕감의 고비를 넘었으므로 이제는 서로가 동등한 입장입니다. 과거에 가인이 아벨을 치던 그런 시대가 아니라 에서가 야곱을 환영하는 시대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교차될 때가 왔습니다. 지상이 이런 때가 되었으므로 영계가 지상을 협조할 수 있습니다. 천사세계와 맞먹는 영계가 지금까지 지상을 협조할래야 협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이 인간과 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본연의 완성 기준, 즉 본연의 부모와 자녀의 기준을 완성했습니다. 사탄도 천도를 알기 때문에 이제 후퇴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차지했던 자리를 천사세계를 대신한 영계가 사탄을 추방하고 차지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세계가 우리를 시봉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피해받을 일이 있으면 천사들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입장이기 때문에 천사세계에 맞먹는 영계가 통일교회를 모시며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이제는 사탄이 굴복해서 꺾일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귀한 길에 사탄이 나타나게 될 때 천사세계인 영계가 동원되어 사탄을 칠 수 있습니다. 이런 싸움이 지금 영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인들이 통일교회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영인들이 사탄을 책임질 때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영계에서 타락하지 않은 천사의 사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8년 1월 1일을 하나님의 날로 책정하였고, 1968년의 표어를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7년노정으로 6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이제는 부모로서 권한을 갖추고, 자녀로서 권한을 갖추고, 또한 만물로서 권한을 갖추고, 하나님으로서 권한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탄의 공세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사탄에게 몰리어 왔지만 이제 역으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세울 수 있습니다.

금년 7월은 7수를 넘어가는 달입니다. 즉 아담 해와가 지음을 받아 7수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7수로 과정을 넘어가는 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볼 때 아담 해와는 자녀의 입장이고 하나님은 아버지의 입장입니다. 선생님을 중심하고 볼 때 선생님은 부모의 입장이고 여러분은 자녀의 입장입니다.

1월부터 7월까지의 7개월은 7년노정에 해당하는 7천년의 운세를 복귀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넘어서면 새로운 시대가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 중에 40일 하계전도 기간을 보내는 것은 천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장성기 완성급까지는 아담 해와가 자녀로서 걸어가는 길입니다. 완성기까지 올라가야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느냐? 여러분들의 지금 이 자리는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자리와 같습니다. 또한 이 자리는 유대교가 예수님을 받들고, 종족과 민족이 일치되어 출발해야 하는 자리와 같습니다. 이 자리는 자녀의 사명을 다하여 타락한 아담가정을 복귀한 형태의 자리와 같습니다. 여기서 7년을 거쳐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출발 당시는 자녀의 기준이나 이 과정을 거치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자녀를 중심해서 한국과 기독교와 선생님 가정과 일치되어 이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하시려던 것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7년만 그렇게 하게 되면 쉽게 넘어가는 것인데 일치가 못 되었기에 21년이 걸린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의 기독교와 직계의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6천년 역사의 인연을 직접 맺지 못하고 선생님은 다른 족속을 중심삼아 가지고 21년간을 걸어 나왔기 때문에 직계와 인연을 맺을 수 없는 한을 남긴 것입니다.

7년노정 동안 개인복귀․종족복귀․민족복귀의 터전을 조성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6천년 섭리의 터전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탕감해야 되는데, 이 탕감을 누가 하느냐? 오늘날 통일교회는 선생님보다 한 단계 떨어진 자녀시대권에 해당하는 입장에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여러분들이 7년노정을 걸어가면서 6천년 역사를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제2차 7년노정은 누구의 때이냐? 통일교인들, 바로 여러분들의 때입니다.

예수님의 한은 종족과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도 그 기준을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지금까지 공적은 제일 수고한 사람에게 상속되어졌던 것입니다.

교단을 두고 볼 때, 우리 교회는 아벨격이요, 기성교회는 가인격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완전히 복귀되려면 아벨 가지고는 복귀하지 못합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서 부모를 모셔야 부모가 복귀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야 할 길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서 실체기대를 세워 자녀를 복귀하는 동시에 부모를 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 조건을 세우려면 아벨 혼자는 안되고 가인과 하나되어 세워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벨적인 교단인 통일교회와 기성교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협조하여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때가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인 아벨이 하나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초교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내용을 알아야만 탕감복귀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국가를 놓고 보더라도 민주와 공산은 아벨과 가인에 해당됩니다. 이것 역시 승공연합을 통해 이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세계복귀를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습니다. 선생님이 이 땅에 와서 그런 조건을 세우며 부모의 자리에 올라섰기에 다시 내려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자녀들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한을 자녀들이 풀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냐?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나라를 차지한 입장이요, 예수님에게 맡기려 하던 유대교단을 여러분들이 상속 받은 입장이요, 요셉가정에 주어졌던 모든 조건들을 몽땅 차지하게 된 입장입니다. 그뿐 아니라 축복가정은 예수님이 쫓기고 몰림받으면서도 찾으려던 신랑 신부의 자리를 결정 받은 입장입니다. 이런 엄청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안팎으로 핍박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아가신 예수님이 2천년 동안의 수고를 거친 후 이 땅 위에 다시 와서 이루어야 할 어린양 잔치의 자리를 넘어선 입장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우리는 교회 민족 종족을 잃어버린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찾을 수 있는 입장인 것입니다. 이런 때이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민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받았다는 것은 메시아가 2천년 동안의 수고로 땅 위에 기반을 닦아 선택받은 민족과 교단과 자기 종족을 중심하여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출발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종족적인 메시아가 될 수 있는가? 선생님과 부자(父子)의 인연이 맺어졌기 때문에 사탄도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은 참으로 엄청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성신보다 낫다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 복귀의 한을 우리가 풀어 주니 예수님도 고마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선생님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 예수님이 가신 길을 탕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아가정의 여덟 식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1차 7년노정에서는 전도를 했다 하더라도 선생님의 노정을 협조하는 의미에서 전도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전도한 믿음의 아들딸은 선생님의 아들딸이라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전도하는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가 되기 때문에 제2차 7년노정 중에 있어서 40일 하계 전도기간에 인연맺은 자녀를 그냥 남겨 두었다가는 큰일납니다.

전도한 믿음의 아들딸을 제2차 7년노정에 잘 지도하고 키우지 못하면 나중에 그들이 참소해도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축복가정들은 더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 종족적인 권내에서 해산한 아들딸을 길가에 내버려 고아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아들이 부모의 멱살을 잡고 책임추궁을 하면 답변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전도 기간에 전도한 사람은 자기가 품고 길러 주어야 합니다. 편지를 하거나 물질적 인연을 걸고서라도 그들이 여러분들을 부모같이 모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문제는 곤란해집니다. 마치 6천년 동안 수많은 인간들이 아담 해와를 참소해도 꼼짝하지 못하는 입장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각자의 책임을 다함으로 선생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때가 옵니다. 우리를 핍박하고 없애려 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자신감과 정당한 하늘의 권리를 가지고 당당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축복받지 않은 사람들은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 세워 가정을 이루어야 하며, 축복받은 가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노아의 여덟 식구와 같은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세계복귀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의 믿음의 세 아들을 중심삼은 세 가정을 기점으로 하여 하나님의 가정이 종족적으로 확대되어 나가야 합니다.

야곱의 12아들과 70가족, 모세의 12지파의 70장로의 12수와 70수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선생님은 이러한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종족적 메시아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룬 가정이 원래 아담이 이루어야 했던 가정형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종족적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뜻을 가지고 출발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위기대를 이룬 가정이 사방성을 띠면 12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세 제자가 축복을 받아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여덟 식구가 되는데, 이는 아담 또는 노아의 여덟 식구를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축복을 받지 않으면 하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삼위기대 가정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면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끊고 종족적 메시아 입장에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위기대를 이루어 반드시 여덟 식구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졸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은 아들로서 공동 운명의 길을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가정에서 식구를 잃어버린 입장과 동일한 입장에서 처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실체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할 수 없었으며, 또한 실체를 복귀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죽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은 영적인 입장에서 예수님을 다시 세워 새로이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에 일치해야

만일 세 제자가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 믿음의 세 아들딸을 두었다고 할 때에는 예수님과 하나된 12제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역사적인 죄를 탕감하기 위한 대표자입니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세 아들을 복귀해야 합니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천사장입니다. 아담시대에 있어서 천사장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세 천사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3대를 거쳐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 제자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할 때 세 천사가 협조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의 직계 자녀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순종 굴복하는 마음으로 모시지 않으면 그 기준을 찾아 세울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을 찾아 세우게 되면 세 천사가 영계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세 아들딸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 앞에 12제자는 하나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볼 때 베드로는 타락한 아담의 복귀형이요, 야고보는 예수형이요, 사도 요한은 재림주형입니다. 재림주시대에는 사랑을 중심하여 지상을 주관해야 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주 상징인 사도 요한은 죽음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나머지 제자는 십자가에 죽음을 당했지만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아담형(型)이기에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은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룩한 입장이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지파 편성을 못 합니다. 12수를 채워야만 비로소 종족복귀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축복가정은 어떻게 해서라도 믿음의 아들딸을 찾아 세워 12지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못하고 간 것이 예수님의 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종족적 메시아로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아들딸들의 심정적 기준은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 십자가상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과는 반대로 죽음의 자리에서도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믿음의 아들딸은 역사적인 가인형(型)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가인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아벨을 절대적으로 모시지 못하면 한의 조건과 사탄의 참소조건이 남아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아들딸은 부모의 직계 아들딸이 복중에 있을 때부터 순종 굴복하여 아벨로서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천사들이 하지 못한 조건을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면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남아지게 됩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은 1960년부터 이 기반을 닦기 위해 보리밥을 먹으면서 같이 고생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7년노정의 첫해 표어를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로 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상에 소망하던 그 해를 맞아 비로소 가정을 찾았고, 그다음 해의 표어로 ‘하나님 대신자가 되자’로 정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딸을 중심하여 아버지 대신 사명을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터전 위에 보여 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을 갖출 때 가정적 승리는 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반 4년은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로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연결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7년노정에 동참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의 조상들은 지금까지 복귀섭리에 아무런 공적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을 통하여 축복받은 가정들이 언제 아브라함, 노아, 모세와 같은 조상들이 협조를 하여 열매를 맺었는가?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축복하여 줌으로 말미암아 열매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열매 맺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선조들의 선한 실적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열매 맺었다는 것은 메시아인 예수님이 4천년 역사의 열매로 등장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욱이 여러분들은 6천년 역사의 결실체들이기 때문에 모든 인연과 조건을 종결짓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축복받았기에 여러분의 조상들도 승리한 혜택권 내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조상들도 자유로이 지상에 재림해서 협조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70대(代), 혹은 200대 이상의 조상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이 없으면 종말시대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복귀섭리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섭리시대로 볼 때, 선생님의 7년노정이 완전히 끝나 기반을 닦아 넘어가는 때이며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모든 승패가 결정되는 때입니다.

선생님은 1대(代)고 여러분들은 2대입니다. 2대인 여러분들이 이 7년노정에서 한국의 운세를 완전히 점령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7년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은 선생님이 걸었던 길의 100분의 1도 안 됩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에게는 선생님이 당했던 만큼의 핍박도 없고 반대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더욱 고마워해야 할 것은 아직까지도 선생님은 육신의 부모 형제에게 말씀을 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종족복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통곡하며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과거에는 차자를 세워 장자복귀를 해 나왔으나 이제 그와 같은 시대는 선생님 때까지로 끝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장자복귀의 권한을 가지고 나온 것과 같은 입장이므로 나이 많은 형님들은 동생들을 후려쳐서라도 데리고 나와야 하는 때입니다. 그것을 터전으로 하여 종족을 편성해도 사탄이 참소 못합니다.

사람은 목적이 있어야 되고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뚜렷한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방향을 통하여 생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12지파를 편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12지파를 편성하여 세계적인 출발을 하려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요 방향인 12지파 편성이 현실적인 우리들에 있어서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과 일치되기 때문에 천국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앞에서 지적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올 수 없는 귀한 시대에 후회 없는 나날을 만들기 위해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차게 달립시다.

<말씀 요지>

제2차 7년노정은 식구들이 가야 할 노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초창기의 뜻대로 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번 지방의 지역장 이동의 의의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전국을 순회한 결과는 대체적으로 안심될 정도였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70년으로 잡고 여기에서 밤을 빼면 35년밖에 안 됩니다. 또 여기에서 의식주에 할애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진짜 생활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매일 평균 30분씩이라도 천지가 부러워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하루에 단 10분도 편할 수 없고 기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마음과 몸의 싸움이 씨 뿌려져서 오늘에 거두어진 것이 마음적 세계인 민주세계와 몸적 세계인 공산세계입니다.

아무리 미미한 피조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정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되는 대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은 것은 기뻐하시기 위함이었고 함께 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오묘한 인체 구조를 보아서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잘못 지어진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은 미완성품입니다. 그래서 완성되고 싶어합니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었으면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어떻게 하셨겠는가? 최고의 자리에 놓고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자(父子)의 관계가 맺어진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해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주체가 되어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데는,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주체가 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공적(公的)인 것은 영원과 전체를 위주로 하고 사적(私的)인 것은 임시적이고 자아 위주입니다.

주고서 대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구하는 일을 수만년 후에라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의 이념은 수만년 계속됩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남을 도와주고서 그것을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를 위해서 말없이 생명까지 바쳐야 합니다. 형제를 위해서도 그래야 합니다.

선생님은 수십년 이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지칠 사이가 없습니다. 내가 춘천에 가 있는데, 윤청정심(尹淸淨心)이 춘천으로 전보를 보냈습니다. 원세(怨世)는 지나가고 영세(榮世)는 돌아왔다고.

선은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나는 최고의 저기압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기 때문에 그 자녀인 인간도 영생해야 합니다. 선하고 영생하려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심은 지치지 않고 더 예민해집니다.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은 악인(惡人)이요,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선인(善人)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종교를 만드셨습니다. 싸움을 말린 뒤에는 재생을 시켜야 합니다. 그 재생 공장이 종교입니다. 누구나 다 재생 공장을 거쳐야 합니다. 선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종교가 필요합니다.

지옥은 고장난 영혼의 창고입니다. 죽더라도 지옥은 안 가야 합니다. 죽지 않으려면 재생 공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재생 공장의 기술부장입니다.

천국은 완성품의 납고(納庫)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생사권을 좌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는 부품 공장이 널려 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종합하는 공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 주인은 재림주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병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병이나 다 고쳐야 합니다.

양쪽 세력이 비숫비슷하면 싸웁니다. 세력 대비의 차가 크면 싸움이 안 됩니다.

정성들여야 합니다. 정성들이는 부모는 외지에 가 있는 자식의 불상사를 압니다. 정성들이면 도통(道通)합니다. 고행을 해야 합니다.

6천년 묵은 돌감람나무를 자르고 참감람나무의 씨눈을 갖다가 접붙여야 합니다. 즉 고목의 목을 잘라내고 새로운 씨눈을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실체를 쓴 남성적 하나님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여성적 하나님입니다.

악한 존재는 선을 영원히 지배하지 못합니다.

예수는 후(後)아담이기 때문에 후(後)해와를 만나 가지고 성혼식(聖婚式)을 해야 했는데, 못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한 개 더 박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재림주는 제3아담입니다. 재림주는 두 차례에 걸친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아담과 예수의 실패로 조성된 모든 한을 풀고 이루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뜻을 못이룬 것은 요셉가정에 그 첫 번째의 책임이 있고, 세례 요한에게 그 두 번째의 책임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리로 기독교가 성립된 것이 아니고, 부활의 도리로 기독교가 성립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빛을 보고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눈의 목적을 갖게 한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물을 잘못 받으면 천법에 걸립니다.

1960년도는 장성기 완성급에 해당합니다. 완성기는 7년입니다.

1960년 장성기 완성급에 세 자녀를 세웠습니다. 세 자녀는 베드로․요한․야고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아담가정을 찾음으로써 사탄세계에서 결혼한 영육 세계의 복귀가 가능합니다.

36가정은 인류의 조상 복귀형입니다. 72가정은 가인 아벨 복귀(자녀복귀)형입니다. 124가정은 세계 국가를 대표합니다. (그 중에는 기성가정 4가정도 포함) 그 기반 위에서 성지 택정을 하였으니, 그것이 세계 40개국의 120개 성지입니다.

1968년 1월 1일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함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입장을 복귀했습니다. 이로써 사탄은 완전 제거되고 사람은 완전 복귀됩니다. 금년에 비로소 전면적 진격이 있게 되었습니다.

금년 1월에서 7월까지는 7천년의 역사에 해당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은 가인 아벨 형제복귀시대지만, 제2차 7년노정은 자녀복귀시대입니다. 오늘의 제2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해방 직후 7년노정을 출발하던 때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처럼 핍박받지 않고 환영받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동생쯤은 두들겨 패서라도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가인(형)이 그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것을 복귀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녀 총각들은 믿음의 세 자녀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부모인 자신들을 합해 여덟 식구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자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세 자녀는 세 천사장 복귀형입니다. 세 천사가 아담 해와 창조시부터 받들고 협조한 것같이, 믿음의 자녀는 믿음의 부모의 축복 실체 자녀를 복중에서부터 모셔 가지고 키워서 장가까지 들여야 비로소 자신들이 복귀 될 수 있는 기준까지 세울 수 있습니다.

축복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보지 않고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 전도된 믿음의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식을 낳아서 거리에 버린 것과 같은 입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7년 동안 끌고 나가야 합니다.

탕감복귀

① 아담 대신 존재 …… 7년노정

② 조건물 …… 3자녀

③ 기간 …… 선생님의 40년(1960)을 40일로 탕감복귀

7년노정 가지 말고, 40일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통일교인으로서는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창세기 1:27―31

<기 도(Ⅰ)>

아버님, 오늘은 1968년 9월 초하루,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100일 기도 기간을 마치고 또한 40일 활동 기간을 마친 날이옵니다. 그동안에 흩어졌던 자녀들이 이렇게 본부 성전에 모였사오니, 아버님, 긍휼의 마음으로 이들을 살펴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당신께서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것은 세상의 그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지금까지 고대하시던 전체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 땅 위에 승리의 선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아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본연의 세계에서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루었을 지극히 선하고 영광스러우며 사랑스러운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옵니다. 하오니 당신의 사랑의 품에서 영원히 영원히 보호받고 영원한 당신의 사랑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살 수 있는 그 나라, 그 세계, 저희의 선조들이 차지하지 못한 본연의 선한 그 자리를 저희들이 대신 추구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본연의 표준을 아버지께서 세우셨으나 저희의 조상이 실수하여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날부터 6천년의 역사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당신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한 많은 복귀의 도상에서 흘리신 아버지의 슬픈 눈물이 인류의 역사 과정에 스며 있고 현실의 저희의 생활 터전에 스며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는, 역사를 돌이켜서 아버지의 슬펐던 사실을 제거하고, 현실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슬프신 모든 여건들을 제거해야 할 당신의 아들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1968년이 과연 중대한 해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 해는 제1차 7년노정이 끝나고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여 싸움의 터전을 향하여 저희들이 총진군하기로 결정한 해이옵니다. 또한 저희들은 이미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소원의 한 날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놓고 아버지의 뜻을 위하겠다고 맹세하고 나선 몸들이옵니다. 때문에 저희들은 아버지의 승리의 한 나라를 이루어 드릴 때까지 죽으나 사나 끝까지 뜻을 따라 나갈 자신이 있사오니, 뜻을 위해 죽고 또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이 세계 인류를 위하여 피땀을 흘려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모든 것이 하늘 편으로 복귀될 때까지 저희가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각자 맡은 바의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아버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모든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산지사방에 흩어졌던 당신의 자녀들이 오늘 여기에 모였사오니, 아버지, 이들을 품으시사 권고하여 주시옵고, 상처받은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새로운 인연 가운데서 당신의 뜻을 따라가겠다고 결의한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 마음에 용솟음치는 하늘의 생명의 깃발이 움직여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사망세계에서 신음하던 자기 자신을 탄식하고 새로이 해방된 것을 감사하고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날을 기념하여 아버지 앞에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도 일률적인 은사로써 품어 주시고 생명의 은사로써 그들의 마음과 몸을 주관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뜻과 당신이 소원하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당신의 정병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도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어린 심정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당신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이국 땅 외로운 자리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지고 하늘을 대표해 싸우는 당신의 아들들도 있사오니, 그들이 있는 곳곳마다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증거하시고 그 환경에 친히 당신의 권한을 펴시사 당신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시고 당신의 영광된 터전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이 소원하는 모든 것이 온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싸워 나가는 목적이 이 나라 이 민족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복귀하고자 하는 것이오니, 승리하는 그날까지 다시 결의하고, 다시 단결하고, 다시 맹세해서 아버지의 뜻 앞에 일취월장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아침 한 시간을 아버지께 드리고자 하오니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이 오로지 아버지께 사로잡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의 쓴 뿌리의 근원을 제거시켜 놓고 아버지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참의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친히 전체를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을 당신의 적자(嫡子)와 같이 품어 주시옵소서. 이들은 한 많은 역사 과정에 있어서 당신을 외롭게 하고 당신을 슬프게 했던 후손들이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동기와 목적은 자녀였다는 사실을 아오니, 이들을 당신의 지극한 사랑의 자녀로서 품을 수 있는 인연을 이 시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 앞에 그 누가 나서 가지고 복을 빌 자가 없으며 또 복을 간구할 자도 없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무한하신 자비와 무한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수고의 공로로 말미암아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인연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셨사옵고, 그 인연을 따라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사옵니다.

아버지의 그 높으심을 저희들이 상속 받아야 되겠고, 아버지의 그 귀하심을 저희들이 상속 받아야 되겠으며, 아버지의 그 능력을 저희들이 상속 받아야 되겠사옵나이다. 하오니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온 천주에까지 남아 있는 원수들을 굴복시켜야 할 전체적인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그 사명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벌거숭이의 부족한 몸들이옵니다. 당신의 존전에 부복할 적마다 천번 만번 사죄하여야 마땅한 무리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지금까지 저희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셨사옵고, 영광의 터전을 버리시고, 고난과 역경 가운데 개척자의 사명을 하시면서 인류의 갈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수고하셨사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렇듯 수고하신 아버지를 저희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이 된 마음, 딸이 된 마음을 가지고 심정이 연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님을 부를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얼마나 그리워해야 할 아버지이시옵니까? 그러나 그 아버지를 잃어버린 6천년의 한을 지금까지 품고 있는 저희들이, 이 한을 박차고 넘어가서 다시 내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면서 그 품에 안기어 통곡하는 아들딸의 모습을 당신은 얼마나 그리워하시옵니까? 그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그러한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은 당신의 자녀들이 40일 기간인 개척자의 노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곡절을 당하다가 이 자리에 다시 모였사옵니다. 그 모든 환난 노정에서 저희들이 극복한 모든 사실은 하늘을 사랑한 연고였기 때문에 당신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기 찾아왔사오니, 이 자리에 긍휼과 자비의 손길을 펴시어서 부디부디 당신의 깊은 마음 가운데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두터운 사랑으로 이들을 덮으시어서 영원한 행복의 터전까지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더더욱 더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처음 참석한 자녀들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누구라 할지라도 하늘에 속할 수 있는 자녀임에 틀림없는 것을 아오니 그들을 품으시옵소서. 이 한 시간 저희들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당신의 혈족인 것을 자증하고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이 민족을 대신하고 이 세계를 대신하여 하늘 편에 선 자로서의 책임을 새로이 갖고 원수의 세계를 향하여 싸움의 길을 갈 수 있게 저희들을 당신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당신이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짧은 시간을 통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말씀 전체의 중심이 되시어서 저희의 마음에 새로운 변혁을 일으켜 주시옵고 죄악의 쓴 뿌리를 완전히 끊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만이 전체를 주관하시고 당신만이 전체를 관할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시어서,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능력을 여기에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원수들에게 농락받는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고, 당신의 권능과 보호 가운데서 당신의 깊고 높으신 사랑과 생명의 은사를 체휼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고, 세계 만방에 널려서 외로이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싸우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이 눈물짓고 피땀 흘리는 것은 모두 당신을 사랑하는 연고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이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그들이 가는 길을 친히 분별하시어서 하늘 쪽으로 거두어질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새로운 달의 첫날이요 첫주일이오니, 이날 위에 복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년의 3분의 2는 보냈사옵고 나머지 3분의 1이 남았사옵니다. 이제 이 남은 날들을 중심삼고 금년에 저희가 작정한 표어 ‘전면적인 진격’의 목표를 달성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사오니,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에 친히 저희와 동역하시어서 저희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에 승리의 결정권을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오로지 당신의 뜻 가운데서 당신의 자녀들과 말씀을 나누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복귀의 가정과 세계’입니다.

한 사람을 찾기 위한 하늘의 섭리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본래 하나님의 선한 아들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한 하늘의 족속이 되지 못하고 그 반대 입장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자타를 막론하고 이 세상을 악한 세상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세상이 못 되고 악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악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인간들이 선과 반대의 입장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 땅 위에 인간이 출발하게 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조상으로 출발했더라면, 오늘 우리들은 이 역사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고 새로운 이상의 곳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시조가 타락한 연고로, 우리는 새로운 소망의 나라,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된 것입니다.

만일 인류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가 되었을 것이냐? 그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혈족으로서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이루어지고, 그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또 그 세계는 하나님의 주관권 내에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을 수 있는 세계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가 그 반대의 세계가 된 것은, 타락의 보응이요, 타락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을 직접 지배할 수 있는 입장에 계시지 못하고, 이 인간들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간접적인 입장에서 지금까지 섭리의 역사를 추진시켜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종교 역사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후손이 태어나면서부터 땅 위에는 타락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타락한 종교, 타락한 국가, 타락한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타락한 세계, 원수의 세계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을 순리적인 입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원수의 세계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쓰실 수 있고 세우실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싸움의 역사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앞장서서 그 환경을 개척해 주고, 하나님의 내정을 통고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개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배후에서 죄악 된 인류역사를 다시 수습하시기 위해 수천년 동안 한 개인을 찾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개인 승리의 기반을 닦았으니 그것이 야곱을 중심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 기준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원수의 세계 앞에 승리의 권한을 갖고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세계에서 하늘이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야곱을 중심으로 하고 이 땅 위에 새로운 하나님 편의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 편의 가정을 세워서 이것을 번식시켜 하나의 종족과 민족, 국가를 형성해 나왔던 것이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선과 악의 치열한 대결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나왔던 것입니다.

개인이 하늘 앞에 서기 위해서는 개인을 중심한 싸움을 해야 하고, 가정이 하늘 앞에 서기 위해서도 수많은 사탄세계의 가정과 대결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종족이 하늘 앞에 서기 위해서도 역시 수많은 사탄세계의 종족들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종족이 민족을 이룰 때까지도 사탄세계의 민족과 싸워야 하고, 또 그 민족이 국가를 이룰 때까지 사탄 편 국가로 둘러싸인 환경 가운데서도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리하여 원수의 국가적 틀거리를 갖춘 이 세계 가운데에서 새로운 하나의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서 악의 세계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작전이요, 구원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요구하고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런 역사를 해온 것이냐? 그것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 앞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온 세계를 정복하라, 주관하라.’고 축복한 그 기준을 다시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사명

여기에서 민족 기반을 중심삼은 중심존재로,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님 대신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예수님의 뜻과 하나되어 예수님이 주관하는 민족과 나라를 만들어서 세계를 점령하고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명을 짊어진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연고로 예수님은 비운의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신만고하여 4천년 역사노정을 거친 수고의 터전 위에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놓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유대교를 만들어 놓았고,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뜻의 기반을 닦아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받들지 못함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불우한 운명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렇듯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셨지만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다시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와야 할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서 악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계대를 이어서 해 나가야 합니다.

4천년 역사 과정에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까지 찾아 세웠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 가면서 남긴 복음을 중심삼고 이후의 2천년 동안 세계적인 기반을 통하여 다시 개인을 찾아 세우는 역사를 하고,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기준을 넓혀 나온 것이 현재의 민주세계에까지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과 악이 대립하여 싸우던 결과의 세계가 오늘날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통하여 사탄권 내에서 개인을 찾아서 가정을 이루시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민족․국가를 이루시어 세계의 반을 차지하는 민주주의 기대를 세우시는 섭리를 해 오신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라는 것은 옛날 2천년 전 이스라엘 민족의 계대를 이을 수 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세계형입니다.

이런 민주세계가 이루어졌지만 여기에 과연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개인, 하나의 가정,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선진국가인 미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미국 어디에 과연 하늘 편 전체를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부 독차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 있느냐? 또 그런 아들과 그런 딸과 합하여 하나님이 품고 지극히 사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있느냐? 하나의 종족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나라도 없습니다.

이 땅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하나님의 모든 전체를 대신한 것이라고 영원히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없으며 가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종족도 민족도 국가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을 보낼 때의 이스라엘 나라는 4천년 동안 준비한 하늘 편에 속한 나라였으며, 승리한 이스라엘의 혈족이었습니다. 그러한 혈족으로 이루어진 종족이요, 민족이요, 국가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죽어간 후에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2천여년 동안 유리방황하면서 희생의 한 날을 찾아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더듬어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밟히는 민족, 유린당하는 민족, 쫓기는 민족으로 수많은 나라로부터 천대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변을 거쳐서 비로소 1948년에 독립이 된 것입니다.

그 나라가 복권되었다는 사실은, 섭리적으로 볼 때에 2천년 전의 이스라엘을 새롭게 맞이하는 출발의 기준을 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모든 사실이 다시 되돌아와 가지고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세계형(型)인 민주세계는 실체적인 이스라엘이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기독교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육의 실체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으로만 이루어진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는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온 기독교인들

이러한 입장에서 고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재림사상입니다. 주님이 다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수많은 민족 앞에 몰리고 쫓김받았습니다. 민족이 몰면 여지없이 몰려야 되고, 쫓으면 여지없이 쫓김을 당해야 되고, 또한 수많은 주권자들 앞에 학살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밟으면 여지없이 밟히고 수없이 희생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기독교는 그런 운명의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고? 그것은 땅 위에서 이스라엘의 기반을 잃어버린 연고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그토록 수고하시며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키우셔서 지상의 한 발판 국가로 이 악한 세계와 선별시켜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유린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나라 없는 백성과 같은 입장이 되어 미래의 영적인 나라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기독교는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땅 위에 기반이 없기 때문에 가는 데마다 부딪치고, 가는 데마다 몰렸습니다. 이 땅은 원수의 기반이요, 원수의 세계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그룹이 발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밟히며, 찢기며, 맞으며, 제물 되어 가면서 지금까지 맞고 빼앗아 오는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 사람을 두고 볼 때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은 선한 것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즉 선한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어서도 기독교인들이 이 땅 위에서는 희생당하지만 희생당하는 기독교인들이 무엇 하나 악한 것이 없습니다. 선한 입장에서,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아가 인류에 대해서 사랑을 품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무리가 어떤 주권자 앞에 학살을 당하게 될 때, 그것을 응시하고 주시하던 백성들 가운데에서는 새로운 혁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은 학살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왔습니다. 죽음의 터전 위에서, 즉 한 사람이 죽으면 셋 이상으로 번식되는 역사를 통해서 하늘은 하늘 편의 그룹을 키우고 하늘 편의 환경을 넓혀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그마치 세계의 반(半)을 지배할 수 있는 민주세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갈망하는 것과 복귀역사

이제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제일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미국이 없어 걱정이 아니며 민주국가가 없어 걱정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혈통적인 모든 관계들이 하나님의 심정과 내적으로 깊숙이 연결되어 일치된 자리에 있는, 타락하지 않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와 같은 입장에 있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본연의 아들딸이 있느냐, 그러한 입장에 있는 하나의 가정이 있느냐, 하나의 종족이 있느냐, 하나의 민족이 있느냐, 하나의 국가가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적으로 세계의 모든 형을 갖추어 놓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직접 품고 뜻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발판을 재현시켜야 할 입장에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시켜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는 연고로 이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한 분을 보내시는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재림 메시아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딸이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원수들 앞에 농락받을 수 있고 원수들에게 지배당할 수 있는 종족이 아니며, 원수들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무리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전권 전능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중심으로 가정을 이루게 될 때 그 가정은 온 우주의 존재가 굴복하여야 할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을 이룬 종족이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는 온 피조만물 전체는 그들을 옹위하고 그들에게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연고로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는커녕 원수들에게 농락받는 무리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간섭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고 원수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했습니다. 그런데 원수에게라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사탄의 자녀 된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 마귀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랑은 본성의 세계와 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본성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사랑의 길을 가게 되면 자동적으로 하늘 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마귀 원수는 오늘날 인류가 자기의 혈통적 인연으로 연결된 자녀의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유린해 나온 것입니다. 사랑만 하면 하늘 편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억압당해 나온 인간을 그러한 입장에서 탈피시키고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개인을 해방하고, 가정을 해방하고, 종족을 해방하고, 민족을 해방하고, 나아가 국가를 해방하기 위해 지금까지 역사적인 투쟁을 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역사노정에서 선한 사람이 그 선의 권한을 가지고 권위를 자랑하고 주장하며 산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한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번번이 밟히고 희생되었습니다. 맞고 쫓기고 죽어 갔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계의 역사는 그렇듯 맞고 몰리고 쫓기는 무리들의 혁명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을 중심한 무리가 선두에 서서 맞고 몰리고 쫓기고 희생됨으로써 오늘날 악한 세계에 선의 승리의 터전을 넓혀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면서 흘러 나왔습니다.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는 종교를 대표한 순교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첨단에 서 가지고 희생의 피를 뿌려 나온 무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이 기독교인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이냐? 원수의 지배를 받는 이 세계를 제거시키고 하나님을 영원한 부모로 모실 수 있고, 또 영원한 사랑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을 갖고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세계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복귀역사, 즉 되돌아가는 역사입니다. 출발이 잘못되었으니 잘못되지 않은 본연의 세계로 되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의 세계, 종교의 세계에서는 마음의 세계를 가고 있습니다. 깊은 마음의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참선하는 사람들도 ‘마음이 무엇이냐?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냐?’ 하면서 마음의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갑니다. 마음의 골짜기, 그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면, 인간시조가 타락하기 전 단계의 마음, 그 마음 이면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게 되면 하늘과 인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계로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하늘과 인연맺을 수 없습니다. 세상 그대로를 품고는 하늘을 모실 수 없고 하늘과 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육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마음과 몸을 중심으로 볼 때,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서 그 세계를 추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몸의 세계를 부정해야 됩니다. 백 퍼센트 부정해야 됩니다.

세상과 격리되고, 세상과 이별하고, 세상을 뒤로하고 몸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제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대의 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종교의 길입니다. 본거점으로 돌아가려면 잃어버린 본거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거점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는 그 세계를 탐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와 예수님의 차이점

인류의 시조가 타락한 연고로, 오늘날 전세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와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타락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난 후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서 살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던 인류 시조 이상 선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문일답했으며, 하나님이 자기들의 요구에 응해 주실 수 있는 환경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있던 그들이,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심정의 인연으로 연결된 그들이 천법을 어김으로 인해 그러한 자리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늘로 돌아가려면 그들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들 이상의 기준을 이 땅 위에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준을 터로 하여 타락한 인류의 시조보다도 더 높은 기준에서 하늘과 연결되고, 더 높은 기준에서 사정적으로 연결되고, 그 목적에 있어서나 모든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인류 시조보다 더 철두철미한 하나의 책임자가 나와야 합니다.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모든 욕망을 위해서 하늘을 배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생명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중심존재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를 세우기 위해서 하늘은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대표자로 보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아담 해와와 다릅니다.

아담 해와는 눈이 밝아 더 높아지려는 욕망의 발로에서 타락했지만, 예수님은 죽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3차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이렇게 기도한 것은 인간의 뜻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위로한 예수님의 출발이요, 이것이 곧 예수님의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타락한 인류 시조 이상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데에 있어서 아담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탄을 누구보다 미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 과정에서 닦아 놓은 승리의 터전을 고스란히 상속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 과정에 있었던 사탄의 참소조건을 없애야 했던 것입니다. 또 시대적으로는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이 실수해서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으면 그것을 없앨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했습니다.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본연의 기준을 전폭적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치되고 하나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주한 절대적인 기준에 서야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예수님은 아담 해와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구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4천년 만에 비로소 그런 입장에 세워진 아들, 한 나라 가운데 유대교를 중심하고 요셉가정에 하나의 씨로서 이 땅 위에 세워진 아들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때에 사탄 편은 국가를 이루어 하늘 편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 편에서도 완전한 발판의 국가적인 기준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나라를 편성하기 위해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수고하신 하나님의 공적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적인 발판이 되어 이 지구성이 완전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삼은 세계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만 그 세계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원수를 추방하기 위한 작전과 성경의 비유

그러면 이러한 영적인 이스라엘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기독교는 옛날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계의 기독교 국가 가운데 ‘주여, 우리나라로 오시옵소서.’ 하는 개인이나 가정․종족․민족․국가는 많지만, 예수님이 틀림없이 자기 나라로 온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가 올 때의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되어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천년간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습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우리 민족 가운데로, 우리나라 가운데로 오신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거예요. 나라 없는 민족보다 서글픈 것은 없는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하, 주님은 구름을 타고 와야지.’ 그럽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고생 안 하지요. 그런 식으로 믿으려면 목사, 장로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믿었을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있어서도 누구 못지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해부해 보면 영적인 면으로써만 나왔기 때문에 학살당하고 피살당하면서 나왔습니다. 땅의 기반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국가의 주권자들한테 학살당하고 희생당해야 했는데, 그것만 해도 분하고 원통한데 재림주까지 또 영적으로 와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래 가지고 기독교인만 살짝 빼돌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맏아들보다도 탕자인 차자를 더 사랑하시는 심정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주님이 오셔서 사람들을 전부 다 심판해 가지고 죽음 바다를 만들어 놓고, 재 가루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서 뭘 하겠습니까? 심판은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사탄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의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해 줘야 한다고 합니다. 왜 죄지은 사람을 자꾸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 용서해 주고 나서 나중에 전부 다 죽여 버린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용서해서 구해야 하지만 사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용서해 줄 수 있으되 사탄 마귀는 용서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거듭하는 것도 원수를 추방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이 원수들이 인간을 유린하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는 것은 원수를 갚기 위한 작전인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전체 목적

그러면 오늘날 사탄 마귀가 품고 있는 세계 30억 인류 중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됩니까? 이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주님이 오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해야 된다고 그러는데, 첫째 부활이 그렇게 쉬운 것입니까? 그것도 알지 못해 가지고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그들 중의 몇 퍼센트가 부활하겠습니까? 그 사람들만 남겨 두고 세계 인류를 전부 다 칠 것이다! 그럽니까? 그런 허황된 신앙을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땅을 구해야 합니다. 땅을 구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땅 위에서 개인을 사탄세계로부터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 가정도 땅 위에서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 하늘의 종족, 민족, 나아가 국가를 땅 위에서 구해야 합니다. 공중이 아닙니다. 땅 위에서 구해야 돼요. 타락할 때 공중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복귀’라고 하는 것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되지요. 땅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되찾아야 합니다.

실체를 쓰고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타락을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중심삼고 사탄을 완전히 부인하고, 하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선 아담 해와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지배하지 못합니다. 사탄을 지배하는 거지요. 사탄은 본래 천사장이었습니다. 천사장은 인간에게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을 되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회와 같은 교회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교인의 많고 적은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뜻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가정이 있기 전에 개인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이 아닙니까?

인류의 시조가 본래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지 않고 하나님과 영원히 일체 되었으면, 그 일체 된 사랑의 인연 가운데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을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 아들딸로 태어났고, 또 이미 장성한 후에 그들을 보고 ‘야, 너의 아버지가 누구냐? 저이가 네 아버지가 아니냐?’ 하면서 설명을 해 가지고 그것을 부정시킬 수 있는 이론이나 학설이 없는 것입니다. 총칼을 들이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행세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들딸로 사랑하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사랑하시지 못하고 또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받은 아들딸로서 성례식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하늘의 가정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그들이 다 이루었으면, 인간들이 오늘날과 같이 비참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오늘날과 같은 문화세계는 벌써 오래 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와 가지고 지금에 와서야 문화세계니 무슨 세계니 그러고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에 우리들이 가서 상봉해야 할 곳, 최후에 우리들이 가서 머물러야 할 곳, 그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세계의 국가가 본연의 조국을 찾아야 하고, 세계의 수많은 인간이 본래 자기의 고향, 본향을 찾아야 하고, 수많은 종족들이 본래의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해 오신 섭리의 전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이 복귀의 가정과 세계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의 순정을 바칠 수 있는 개인(신부)을 찾아오시는 주님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뭘 하러 오시느냐? 기독교인들은 ‘오, 주님이 이 세계에 오면 불심판을 해 가지고…. 뭐 다 체질이 녹아지고….’ 한다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와서 진정으로 무얼 할 것이냐? 세계의 주권자를 대해서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그런 발판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서로 싸우는 기독교에 와 가지고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영계에서 후닥닥 해 버릴 것 같으면 지금까지 6천년이 걸릴 게 뭡니까? 그러려면 에덴동산에서 그날 다 해 버리지 이렇게 씨족을 많이 번식시켜 놓을 게 뭡니까? 기독교인들이 믿는 대로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심판하려 해도 합당한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실 때, 하나님은 먼저 야곱가정을 중심으로, 야곱의 씨족을 중심으로 야곱의 민족을 만든 후 이스라엘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다시 오시는 주님이 세계를 대하여 심판의 권한을 갖고 행사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영적인 나라와 같은 기독교 가운데 주님이 오셔서 어떻게 행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주님은 어디로 오셔야 되겠느냐? 세계 민주국가의 기독교권 내에 있는 어떤 나라에 오시겠습니까? 나라로는 못 오십니다. 나라로는 못 오신다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데로 오실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못 오십니다. 그럴 것 같으면 선생님이 이 일을 안 합니다. 주님은 개인을 만나러 오십니다. 에덴동산에서 몇 사람이 타락했습니까? 둘이서 타락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남성으로 오시면 누구를 찾아오시겠습니까? 신부를 찾아오십니다. 여기서 신부는 뭡니까?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전부 다 예수님의 신부라고 합니다. 물론 상대적인 입장에서 신부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간접적인 의미에서지 직접적인 의미에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남성으로 오시기 때문에 남성인 주님이 찾아가서 영원한 이념을 이룰 수 있고, 영원한 행복의 보금자리의 터전을 삼을 수 있는 여건을 찾아오십니다. 또한 하늘 가정을 편성하는 데 있어서 전체를 충만시킬 수 있는 여건을 찾아오십니다. 오시는 주님이 남성으로서 그런 내용을 갖추고 오시기 때문에, 지상에서 그런 전반적인 내용과 자세를 갖춘 개인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개인을 찾아오시는데 주님이 남성이니만큼 여성을 찾아오십니다. 신부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신부라는 한 사람을 표준으로 소망해온 예수님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걸어 놓고 2천 년 동안 기독교의 터전을 닦아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이 찾아지지 않는 한 가정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또한 가정이 찾아지지 않는 한 종족이 찾아지지 않으며, 종족이 찾아지지 않는 한 민족이나 국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찾지 않고는 세계복귀를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먼저 개인을 찾아오십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은 기독교를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가운데서도 지극히 하늘 편에 가까이 서서 오시는 주님 앞에 백 퍼센트의 순정을 바칠 수 있는 개인을 찾아오십니다.

신랑 되신 주님은 신부를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부를 세워서 무엇을 할 것이냐?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 한다고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이단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이며, 누가 망하고 누가 흥할 것인지 두고 봐야 압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신부를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복귀의 가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시 찾아야 할 복귀의 가정, 그것은 인류가 소망하는 가정입니다. 6천년 역사 속에서 믿고 나오던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수많은 원수의 집권자들이나 위정자들에게 희생당하면서도 간절히 소망한 것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의 한과 원수를 갚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원수를 갚는 데는 주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혼자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 가정이 나와야 합니다. 하늘 가정이 편성되어 땅 위에 새로운 발판을 닦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심정의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사탄세계를 폭파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그냥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늙어 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서로 이성에 대한 상대적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인류의 참된 지상천국을 건설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인 아담은 하늘을 대표하고 여성인 해와는 땅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이지만 그들이 횡적으로 하나되면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두 사람이 통일하고 나면 천주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칫날

예수님이 지금까지 수고하시어 신부를 찾아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에덴에서 두 사람이 하나되어 하나님과 통일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종이 되었으니, 두 사람이 완전히 통일되어야 복귀의 기원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어린양 잔치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어린양 잔칫날이 있는데, 그 어린양 잔칫날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되는, 즉 하나로 묶어지는 날이고, 또 그날은 만세에 축하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만민은 그날을 고대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섭리의 목적도 그곳, 인류의 역사도 그곳, 종교의 목적도 그곳에 가서 종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가정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그 가정이 누구의 보호 밑에서 이루어진 가정입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오늘 살고 있는 것이 이만하면 양심적이고 나는 사회적으로 말을 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인물이다. 그러니 어디 가든지 양심의 가책을 안 받고 떳떳하고 자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근본을 파헤쳐 보면 인류 시조가 원수의 올무에 걸려 가지고 그 권내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권내에서 이루어진 가정이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종교에서는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여러분들도 아들딸 많이 낳았는데 독신생활을 했어야지요.

이것은 통일교회의 문 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불교도 그렇지 않습니까? 천주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 왜 그러는 줄 알아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니까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어야 했던 분들이 아직 결혼식을 못 해 봤습니다. 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태어나지도 않는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결혼식을 해요?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아들딸들은 전부 다 구원의 손길을 거쳐서 복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본래 우리 인간에게는 종교니, 복귀니, 기도니, 무슨 구세주니 하는 것들 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권내에서는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 두 사람이 하나님과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연이 처참히 갈라지면서 역사를 망쳐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수습하려면 두 사람이 합하여져야 하는데, 그들이 합해지는 그날이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신부를 맞이하여 신랑 신부의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6천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한 참조상이 태어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6천년 후에 비로소 땜질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붙여 놓은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이 소원하던 기준을 향해 출발할 수 있고 인류가 타락한 세계에서 본연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인 것입니다.

땅에서 타락했으니 복귀도 땅에서 해야

그러면 복귀의 가정이라 했으니 그 복귀된 가정의 중심은 누가 되느냐?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다운 아들딸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기 때문에 그 가정의 중심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딸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이겠습니까? 이 우주를 상속 받을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재림주입니다. 그 재림주가 와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가를 가야 했던 것입니다. 장가 안 가려면 뭘 하려고 남자로 태어났겠습니까? 두리뭉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지요.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와 가지고 편리한 대로 여자 행세도 하고 남자 행세도 할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허무맹랑한 것을 맹세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와요? 구름을 타고 와서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그들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주님이 다 해 주는 것을 나는 따라가기만 할 테니 좋기만 하지.’ 합니다. 도둑 같으니라고! 자기 아버지 어머니 고생시켜 가지고 전부 자기만 좋겠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타락을 땅에서 했으니 복귀도 땅에서 해야 합니다. 땅바닥 가운데서 잃어버렸으면 땅에서 찾아야지, 어디 공중에서 잃어버렸다는 말이 있습니까? 허무맹랑한 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식구의 소원은 무엇이냐? 복귀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난 안 그런데.(웃음) 진짜 그래요? 「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의 소원도 여기요, 만국의 평화의 기원도 여기요, 천상천하의 행복의 기점도 여기요, 하나님의 섭리의 기점도 여기요, 하늘땅이 뒤집어지는 천지개벽의 기점도 여기요, 모든 인생의 가치의 근원도 여기요, 소망의 출발도 여기입니다. 전부 다 여기입니다. 그러면 복귀 가정의 중심은 누구입니까? 참조상입니다. 참조상은 아버지 어머니지요.

인간들은 타락한 연고로 아버지 어머니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없습니다.」 타락의 연고로 그걸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중생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어요? 없으니 접붙여야 합니다. 목을 잘라 버리고 거기다가 예수님을 접붙여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전부 다 형제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이 서로 죽이는 싸움을 했는데, 그 형제의 싸움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전쟁 역사는 형제의 싸움이 연결되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제 국가들이 동등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권내에 들어섰기 때문에 당시 전승국가들이 패전국가들을 독립시켰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2차대전을 중심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오실 때가 되었으니 이젠 싸우지 말고 화해하여 함께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화해해야 아버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해하지 않고 있다가는 아버지 어머니가 왔을 때 전부 다 쫓겨날 텐데 그러면 둘 다 망하겠으니 화해하자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형제의 싸움으로 출발된 인류역사

지금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싸우고 있지요. 이들을 화해시켜야 합니다. 이때 화해는 통일교회가 시켜야 합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두고 보십시오.

역사는 형제의 전쟁으로 출발해서 아직까지 그 싸움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전승국가는 형이고 패전국가는 동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형이 동생을 쳐서 역사를 이루어 나왔으나 이제는 형이 동생을 해방시켜 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비로소 해방시키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그래야 부모가 오셔서 ‘이제 이 녀석들 사람 됐구나, 옛날에 동생을 죽이던 근성이 없어졌구나.’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계는 이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운세권 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가 형제 전쟁의 역사였으니 누가 와야 한다구요? 부모가 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부모가 하늘의 법도와는 반대로 타락한 부모로 태어났기 때문에, 전부 다 원수의 자식들한테 몰려나는 것입니다. 반대예요. 전부 반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둘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두 녀석이 맨날 싸움하잖아요? 본래는 싸울 것이 아니라 통일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늘을 대신하고 몸은 땅을 대신하고, 또한 마음은 아버지를 대신하고 몸은 어머니를 대신하여 하나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졌던 것입니다. 역사는 아담과 해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기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따 먹으면 죽는다.’ 그랬는데도 ‘아하, 이거 따먹어도 괜찮다. 눈이 밝아진다.’ 하고 살짝 꼬여서 따먹게 하는 사기로부터 출발된 거예요.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거기에 입각하여 심한 고생을 해야 합니다. 죄값을 해야 하는 거예요. 심은 대로 거두어야 합니다.

끝날이 되면 형제의 인연이 전부 다 끊어집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 가운데에서는 천도(天道)니, 부자지인연이니, 삼강오륜이니 하는 것들이 이 세상을 수습하는 한 모체가 되었는데 끝날에는 그것들이 다 깨져 나갑니다. 어머니가 무엇이며, 자식이 무엇이며, 아내가 무엇이며, 남편이 무엇이냐 하는 식으로 전부 유린하는 때가 되면 세상의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말이 나면 끝날이요, 형이 동생을 찔러 죽였다는 말이 사방에 분분(紛紛)하면 끝날입니다. 형제지유일이니, 부자지유일이니, 부부지유일이니 하는 것들을 전부 자기 중심으로 요리하려는 세상 판국이 되면 끝날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으로 인해 그렇게 심어졌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서 타락의 열매를 거둘 수확기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냥 그대로 흘러가서는 안 되겠으니 그것을 거두기 위한 추수 절기, 즉 수확기에 들어온 것입니다.

참가정주의와 참부모종교

타락한 부모의 인연으로 하나님에게서 이탈된 전통을 받아 이 세계가 이 모양이 됐습니다. 그러니 참부모가 와서 새로운 주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주의겠습니까? 세계주의겠습니까? 천주주의겠습니까? 참가정주의입니다. 참가정주의가 나오지 않고서는 세계주의가 못 나옵니다. 이 참가정주의의 대표자는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정적인 모든 것을 상속 받은 내정적인 상속자요, 외형적인 상속자, 그리고 만물 소유권의 상속자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상속 받을 수 있는 분이요, 몸을 상속 받을 수 있는 분이요, 만물을 상속 받을 수 있는 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라야 하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이 와야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참가정주의는 무슨 주의입니까? 참가정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주의입니다. 간단하지요? 사랑이 없으면 제아무리 세계 제일이라고 배통을 내밀고 다녀도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참가정주의는 부모가 가면 아들딸은 부모의 뒤를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 또 형님이 가면 동생이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 동생이 가면 형님이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입니다. 그러니 동생의 나라가 있으면 형님의 나라가 따라가고, 형님의 나라가 있으면 동생의 나라도 따라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주의는 어떤 주의냐? 국경을 초월하고 이 모든 평면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서로 주고받는 데 있어서, 서로가 주는 것을 먼저 하려 하고 받는 것을 더디 하려는 주의입니다. 그런 주의의 세계가 앞으로 올 이상세계입니다. 이상세계는 무슨 큰 권세를 가지고 이놈들아! 하고 호령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마음이 움직여서 하나님의 사랑에 화할 수 있는 만민형제주의세계입니다. 앞으로 그러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참가정이 나와야 되겠지요? 「예.」

구주라는 것은 메시아를 말합니다. 메시아사상에 구주라는 말이 있지요? 여러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고 누구를 믿느냐고 물으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 예수님의 가정을 믿는다고 합니까? 또 불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너 누구를 믿느냐고 물으면 석가모니 믿는다고 하지 석가모니의 가정을 믿는다고 합니까? 가정을 믿는다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가정구세주종교가 나와야 해요. 그것이 참부모주의입니다. 참부모종교예요. 참부모종교라는 것은 사위기대를 이루는 참부모 생활종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가 그 가정의 아들딸의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계시록 맨 나중을 보게 되면 복귀역사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성경 끝장에 복귀의 내용을 집어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부와 성신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신부는 주님의 아내 되는 것이며 성신은 영적인 것이니 여기에서 영육이 합한 어머니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아버지로서 남성이니 여성 가운데에서 어머니를 찾아서 새로운 세계로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릅니다. 가르쳐 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고, 도리어 이단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지요.

복귀의 가정

그러면 오늘 우리의 한이 무엇입니까?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참된 아버지 어머니로서 참된 가정을 이루어 역사를 출발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한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그러한 가정을 세워 가지고 이 지상에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깨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한을 품으시고 복귀의 역사를 되풀이해 오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한의 고비 길을 수없이 밟고 넘어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를 책임지고 해결 짓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면 그 재림주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데도 공중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종족이 나오고 민족이 나오며 국가가 나오고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새로운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재림권세를 가지고, 또 무슨 철창을 가지고 세계를 괴롭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국가적 기준을 넘어설 때 세계가 일시에 돌아갈 수 있는 발판을 굳혀 나가야 합니다. 잘못하면 예수가 이 땅 위에서 당한 비참한 역사가 여기에 되풀이될 수 있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복귀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이 한 가정을 찾기 위해 섭리하셨습니다. 이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가 어디에서 이루어져야 하느냐? 바로 이 현세의 현실사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현세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이뤄지는 그때가 끝날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소원의 기준이요, 현세 만민의 소원의 기준입니다. 인류의 과거․현재․미래의 소원의 기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왔다 갔던 수많은 성인 현철들도 이 가정을 그리워했습니다.

선을 위해 죽어 간 애혼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희생되어 갔던고? 이 하나의 목적을 돕기 위한 하나의 거름으로서 선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희생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때 비로소 역사 과정에서 희생되었던 성인 현철들도 혜택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의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 무슨 면류관 이렇게 나오는데 그것이 다 그런 혜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조들을 통해서 이 현세에 남겨진 후손들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중심이 되는 곳이 복귀의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세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 터전을 통하여서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한을 풀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라는 것은, 현세의 모든 한도 풀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역사를 향한 출발의 한 기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가정과 접붙일 수 있는 자격자

그러면 여러분, 복귀의 가정을 알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그 가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고 그 가정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나아가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어떻게 그 가정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을 듣고 이 가정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어 가지고 머루와 같은 악한 여러분이 포도나무가 되라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와 같은 여러분이 참감람나무와 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악한 개인이 그렇게 되어야 되고, 악한 가정이 그렇게 되어야 되고, 악한 사회가 그렇게 되어야 되고, 악한 나라가 그렇게 되어야 되고, 악한 세계가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비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러한 가정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통일교회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교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교리가 무엇이냐?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했던 사탄을 추방하자는 것입니다. 이 교리에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느 때이건 나타나서 사탄을 향해 ‘야 이놈, 원수 사탄아 물러가라!’ 하여 사탄을 추방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이 현세에 있어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위를 갖춘 내용이 없으면 절대로 통일 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사탄의 지배권 내에 들어갔던 것을 전부 다 폭파시키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추는 내용을 마련하지 못하고는 복귀의 가정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 즉 통일교회의 교리를 통해서 뜻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역사에 있어서 어떠한 싸움에서도 패하지 않고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오늘 현세에 있어서 제아무리 험악한 이 땅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충절을 지키고, 나아가 악한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탄과 하나님이 싸우는 전쟁에서 번번이 후퇴하고 번번이 실패한 하나님의 역사를 통일교회가 책임지고 복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그런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현세에 민주와 공산이 서로 싸우고 있지만, 그 싸움의 파장 가운데에서도 그걸 밟고 넘어가서 수습하고 이겨내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대를 지배하고 나설 수 있는 주체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늘의 가정과 접붙일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의 대인관계나 생활 가운데, 그리고 대 사회관계에 있어서 맺어지고 빚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을 농락하던 원수의 쇠고랑들이 연결되어 있는 무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모든 사탄들의 올무를 제거시키고 심판해 버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즉 역사시대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그물에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한마디해도 그렇고, 생활하는 데도 그렇고, 어떤 사회생활이나 어떤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사탄 대한 탕감복귀역사가 6천년이나 연결되어 결실된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환경이 여러분을 옹위하고 있으니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하여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하늘 가정과 접붙여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 가정과 접붙이지 않고는 하늘의 종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종족권 내에 들어가지 않으면 하늘의 민족에 동참할 수 없으며, 하늘의 민족에 동참하지 않으면 하늘 국가의 국민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하늘 국가의 국민이 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 지상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천국세계는 어떤 세계냐? 그곳은 본연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에게 참소받을 수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종족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개인과 가정과 자기의 친척인 종족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3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담가정을 두고 볼 때, 아담이 1대(代), 가인 아벨이 2대(代), 가인 아벨의 아들이 3대(代), 이렇게 3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이 1대, 아담 해와가 2대, 가인과 아벨이 3대가 됩니다.

예수님은 후아담으로 오셔서 둘째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주님이 세 번째 아담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셋째 아담은 인류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모든 역사를 수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3대를 중심삼은 기준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을 만들지 않고는 하늘의 종족권 내와 국가권 내와 세계권 내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이런 내용을 알고 여기에 관계를 맺고 그러한 가치의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시하는 사항에 순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기 도> 아버님, 이 땅은 중심이 없는 역사 과정을 거쳐온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전세계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사오나 과연 어떤 교파를 중심삼고, 어떤 종족을 중심삼고, 어떠한 가정을 중심삼고, 어떠한 개인을 중심삼고 하늘의 닻을 내리시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터전이 없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단이 이 땅 위에 나온 것은 그러한 터전을 닦기 위한 새 시대의 세계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라고 저희들은 확신하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래의 역사 과정에 있어서 저희들은 밀려 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이 땅 위에서 하늘을 대표해 가지고 악의 세계를 밟고 악의 세계를 삼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늘의 용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복귀의 과정이 얼마나 슬픈 노정인가를 아옵니다. 하오니 오늘 저희들은 에덴동산에 있어서의 아담과 해와를 대신한 자체로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은 실체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담 해와 가정에서 벌어진 사실이 내 가정 내 자체에서 벌어졌던 사실이요, 가인과 아벨 사이에 벌어진 참상이 내 자체를 중심삼은 사실이요, 노아의 가정도 내 자신을 대신한 것이요, 아브라함, 모세, 예수 이후 지금까지 6천년 역사 과정의 모든 사실은 내 자신이 당해야 했던 비참사라는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비참사 가운데서 죽임을 당하고도 부활의 실권을 갖추고 부활의 실체로서 남아져야 할 자신들이라는 것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예수님이 그러한 역사적인 운명을 거쳐 가지고 이 땅 위에 오셨던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후계자가 되고 그의 인연을 상속 받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승리의 패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런 승리의 자리를 결정짓고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갖은 풍상과, 갖은 시련과 갖은 환난과 갖은 핍박 가운데서도 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저희는 일편단심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이 복귀의 가정을 표준 하여 나왔사오니 이제 저희 개인도 이 가정을 통과해야 되겠고, 땅 위의 모든 가정도 이 가정을 통과해야 되겠고, 종족․민족․국가도 이런 가정적인 인연을 통하여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평화의 세계를 창건해 드리고 기쁨의 천국을 이룰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나아가서 온 인류가 당신의 백성들이 되고, 온 세계가 당신의 세계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나머지 시간도 친히 주관하여 주옵고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영국에서 온 안토니 부루크 경과 모니카 페리쉬 여사의 간증이 있었음)

<말 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몇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로 온 식구도 계시겠지만, 지금부터의 말씀은 앞으로 교회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영통인들의 증거

어떻게 하면 40일 활동의 분위기를 살려서 전체 식구들의 활동으로 연결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번에 오신 외국 손님들의 말씀을 통해서도 들었지만,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우리의 뜻을 위해서 외적으로 협조의 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수고의 결과가 없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뿌린 정성은 반드시 외적으로 거두어집니다. 그러니까 당장에 실적이 없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꾸준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얼마만큼 하늘 앞에 정성을 들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여기에서 이루어지면 반드시 이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세계가 점점 우리 앞에 접근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7년노정을 마치고 나니 외국의 영통인들이 와서 금년부터는 고난의 시대가 다 지나가고 영광의 시대가 도래한다고들 합니다. 그들은 잘 모르고 그런 말들을 하겠지만, 우리가 그 동기의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인 된 역사를 전부 다 해결 지어 주기 때문에, 영계는 그 결과에 대한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아 현재의 우리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외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영통인들은 앞으로 우리 한국에 매우 오고 싶어할 것입니다. 저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서 한 만 마일이나 되는 이곳을 찾아왔는데, 두 분이 오는 데 못해도 한 백만 원 이상의 여비가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만일 이런 뜻이 외국에서 이루어졌으면 한국에서 갈 사람이 있겠습니까?(웃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저분들이 한 번만 왔다가 갈 것이 아니고 앞으로 또 안 올 수가 없습니다. 몇 해에 한 번, 진정으로 이 뜻을 알게 된다면 살아 있는 동안 3년에 한 번씩 안 오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세계가 되면, 한국은 관광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들을 위한 호텔만 지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때가 옵니다.(웃음) 우스운 얘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얘기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한국에 태어난 우리들은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서 비참했던 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할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한국에서 벌어져 가지고 세계가 움직여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뭐 ‘통일교회도 한 교파겠지.’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의 교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만을 위한 교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하는 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입니다. 이 지상 세계뿐만이 아니라 영계를 총망라해 가지고 통일하는 것입니다. 영계는 이미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 영계에 속한 사람들은 전부 다 통일교회 문 선생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처음 온 사람은 미친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미친 사람입니다.(웃음)

전세계에 널려 있는 영통인들이 선생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진리의 신이니 무한한 사랑이니 이렇게 희미하게 증거하던 것을, 이제는 전부 다 선생님이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을 계시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영계는 통일이 되었으므로 이제 육계와의 중간에 통일상이 벌어지는데, 거기에 육계가 연결되면 실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영계의 영인들이 지상에 전부 재림해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협조하고 어떻게든지 우리가 가는 길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옵니다. 또한 앞으로는 수많은 선조들이 땅 위에 재림하여 가지고 그 후손들을 못 살게 할 것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를 믿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지게끔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이 7년 전에 말씀한 것이 꿈같은 얘기였는데, 7년을 지내고 보니 세계가 이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저기 외국 사람들이 지금 수많은 영통인들과 관계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선생님에게 고난의 시대는 전부 다 지나가고 금년부터는 영광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의 뜻

한국의 보잘것없는 이 장소에 처음 와서 보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본부는 세계의 본부이기 때문에 굉장하고 그 선생님이 훌륭한 줄 알고 왔는데 와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옷은 거지같이 입었을지라도 그 마음과 그 인격에 있어서는 군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는 세상의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나가는 것이 진짜를 찾는 데 있어서 작전상 편리한 것입니다.

만약 웅장하게 수십 층 되는, 동양에서 제일 큰 빌딩을 지어 놓고 호화찬란하게 해 놓으면 거지 떼들이 전부 다 와서 먼저 출세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이걸 생각할 때 이렇게 어려운 자리, 와서 앉으려고 해도 앉을 자리도 없고, 땀도 나고, 엉덩이는 아파서 죽겠고 하는 자리에서 참고 이러한 자리를 생명의 곳으로 알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이런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 것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아 여러분은 우리의 때가 얼마나 접근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직접 지도했는데, 앞으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큰 망신을 당할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외국에서 영통인들을 통해 지도받는 사람들은 죽으라고 명령하면 다 죽게까지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 사람들은 저 태평양 바다에 가서 빠져 죽으라고 하면 전부 빠져 죽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거 또 뭐 그렇겠지.’ 합니다. 그런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다가는 여러분의 정성을 그들에게 몽땅 빼앗기게 됩니다. 여러분도 들어와서 수고는 했지만 앞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더 정성을 들이게 되면 여러분이 정성들였던 것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 통일교회가 복귀역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개인복귀․가정복귀․종족복귀, 그다음엔 민족복귀, 이렇게 점점 큰 분야로 복귀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큰 분야의 세계가 우리를 찾아오게 되면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앞으로 올 세계를 연결해 상속 받아야 하는데, 상속 받을 만큼의 일을 못 하면 후에 들어와서 열심을 다해 정성들이는 사람들에게 그 상속권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몽땅 빼앗기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못해도 7년은 싸워야 하는데, 7년 이내에 못 하게 되면 21년 동안 꾸준히 싸워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런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금번 2차 7년노정은 어떠한 기간이냐 하면 선생님이 가는 시기가 아닙니다. 부모가 가는 기간이 아니라 자녀들이 가야 할 공식노정입니다. 이번 7년노정은 오늘 말씀한 가정 기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가정 알지요? 하늘의 가정 말입니다.

누구나 가야 할 7년노정

하늘의 가정을 이루려면 믿음의 세 아들딸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축복을 받아 가지고, 태어날 직계의 아들딸을 믿음의 아들과 딸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복중서부터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지 않고는 가정의 기반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적당히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최후의 죽음의 자리까지 세 제자를 품고 나가려고 했는데 그 제자들이 전부 도망을 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기에서 승천해야 했던 것입니다. 만일 세 제자가 예수님과 더불어 죽었더라면 예수님을 부활시키기 전에 세 제자를 먼저 부활시켰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부활하지 않고 성신이 땅으로 오기만 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기반이 땅 위에서 이루어졌다면 신도들이 많은 기도를 하지 않고도 영계와 직접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 위에서 부모 될 수 있는 기준이 하나도 없게 되었으므로 아버지인 예수님은 하늘을 대표하여 영계로 가야 하고, 어머니인 성신은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땅으로 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진 입장에 있으니 그 자녀 되기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세 제자가 땅 위에서 승리적인 복귀의 터전을 세우지 못하고, 예수님과 생사를 같이한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확실합니다. 이것이 법도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가정을 이루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통일교인이면 누구나 다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것 때문에 죽었고, 선생님도 그것 때문에 21년 동안 고생했으며, 하나님은 6천년 동안 그것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원리를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공식노정입니다. 이 공식노정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용서가 없어요. 아무리 선생님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가야 할 7년노정인데, 이 노정에서 여러분은 21년 전에 선생님이 출발하던 그런 시점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나라로부터 몰림을 받았고, 혹은 많은 영통인들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시대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나라와 종교와 수많은 교파와 영통인들이 세계적으로 증거할 수 있고 환영할 수 있는 시대권 내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복된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일을 하더라도 잘못하면 전부 뒤집어 탕감해야 됐지만 이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모든 여건이 나아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탕감의 시대는 지나가고 앞으로는 영광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왔습니다. 이것이 자녀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기간입니다. 부모가 잘못하여 인류 앞에 고난의 기준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완결 지었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 선 여러분은 모든 핍박과 참소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바로 7년노정입니다.

이 7년노정은 누구나 다 가야 합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가야 합니다.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이면 누구나 이 노정을 걷지 않고는 절대 천국에 못 갑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원래는 예수님도 27세부터 33세까지의 7년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40세까지 제2차 7년노정이며, 예수님이 20세부터 시작했으면 그것이 3차 7년노정이 됩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은 40세까지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했는데, 민족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죽어갔기 때문에 그것이 성경에 7년 대환난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7년 대환난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7년 대환난이 일어난다고 야단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왕 대신입니다. 그래서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 사울왕 40년 이렇게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0수를 채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도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만 40세 때인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적인 프로를 돌려놓은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1960년도를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외적인 결과만 보고 있지 그 내적인 동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7년 기간에 세계가 모두 혼란 상태로 들어가서 공산 세계가 망할 수 있는 운세권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전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할 수 있는 때가 7년노정과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일이 좀 걸리겠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이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활동을 하더라도 원수와 싸우지 않아도 되며, 여러분이 활동한 것을 직접 여러분의 수확으로 거둘 수 있는 자유스러운 환경에 놓여졌습니다.

천국 가는 공식노정

여러분은 이제 가정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딸과 사위기대를 이루고 자기 부모를 중심삼은 외적인 믿음의 사위기대를 이루어서 믿음의 자녀가 자기의 직계의 아들딸을 완전히 모실 수 있는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이 믿음의 세 아들딸은 뭐냐 하면 영계에 있어서 세 천사장에 해당됩니다. 세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지을 때부터 모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축복을 받은 후 출산할 자녀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믿음의 자녀가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아담이 창조되기 전부터 창조되어 가지고 성인이 되어서 성혼식을 할 때까지 천사장이 협조해야 할 그 기준을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세 자녀는 절대 필요합니다.

시대로 보게 되면 아담시대․예수시대․재림주시대 이렇게 되는데, 여기에서 아담은 첫째 아들이요, 예수는 둘째 아들이요, 재림주는 셋째 아들입니다. 이 3시대에 있어서 복귀역사를 누가 반대했느냐 하면 가인이 언제나 아벨을 반대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가인형 복귀를 해야 하는데 3대 천사장이 먼저 복귀되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축복을 받고 낳은 아기를 복중에서부터 완전히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지 않고는 여러분의 후손이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같이 간단하다면 왜 죽었겠습니까? 그때 뭐 색시들이 없어서 죽었겠습니까? 이런 천법의 프로에 맞추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천국 들어가는 공식이기 때문에 공식노정을 밟지 않고는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개인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전부 다 천국 간다고 그러는데 그들이 말하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낙원입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어디에 가 있느냐 하면 낙원에 가 있습니다. 신부를 고대하고 바라는 그런 기준이 남아있기 때문에 천국은 못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그 길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본래 창조원칙에 의한 천국은 가정을 중심삼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부모가 들어가고, 자식이 들어가고, 자기 일가, 전체 문중이 들어가야 행복한 것이지, 부모는 지옥에 가고 자식만 천국 가면 그것이 무슨 천국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앞으로 천국 갈 수 있는 길을 닦는 데 있어서 가정적인 기준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기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역사적인 참소 기준, 시대적인 참소 기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복귀의 공식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핍박이 없이 자유스런, 이 평면적인 환경에서 여러분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간이 제2차 7년노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이러한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축복을 안 해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제1차 7년노정 기간이어서 선생님이 책임질 수 있는 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축복을 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이 공식 과정을 통과 하지 않으면 절대 축복을 못 해 줍니다.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뜻을 따라가려면 이 7년노정을 안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앞으로 세계의 수많은 교인들이 와서 대신 갈 것입니다. 앞으로 이것이 어느 기준만 넘어가게 되면 여러분이 과거에 전도한 그 사람들이 인정받을 때가 옵니다. 여러분이 따라갈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두 자녀를 찾아 세우라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도 기쁜 것이지만, 이제 통일교회에서 닦아 가야할 자기들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至重)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도 이 노정을 가기 위해서 21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7년간에 끝날 것이 연장되어 21년을 고생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승리의 기반을 닦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기반을 전부 다 막아 놓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자유스러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자라던 그 입장을 탕감복귀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병이 나고 깨져서 구멍이 뚫어졌으니 그것을 때우고 메우는 조건만 세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적으로 하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열두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영계와 육계를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수많은 선조들이 엉클어져 있는 것을 해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계와 지상을 해방하지 못해 가지고는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의 복귀의 책임을 다 못하는 것입니다. 외적 세계, 내적 세계를 복귀해야 하는데 이 두 세계의 책임을 완결 못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12수를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땅 위에도 사방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있고 12수를 중심으로 열두 달이 있는 것입니다. 천지도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도 그렇게 되어 있고 또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을 대신한 4대문이 있고 12진주문을 대신한 12사도가 있고, 24절기를 대신한 24장로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늘의 운세인 천법이나 지상의 운세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됩니다. 이 도수를 맞추지 않고는 만약에 여러분이 천국 들어가더라도 세 아들딸만으로는 동쪽이면 동쪽, 한 방향밖에 못 갑니다. 4계절 중에 봄 절기만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문밖에는 왕래를 못 합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천국 전체가 자기의 것이 안 된다는 것이며 한 방향성밖에 가질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택한 것도 이 사방성을 거쳐 나가 사방을 모두 지배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예수님은 열두 사람의 막힌 담을 허는 역사를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전부 다 맞추어 주어서 완전히 통일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이제 금년부터 1970년대까지 이 3년 기간에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환경이 자유로워졌으므로 여러분은 잘하면 3년도 안 걸리고 한 40일 만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에 하신 역사를, 예수님이 2천년 동안에 한 역사를, 선생님이 21년 동안에 한 역사를 여러분은 7년 과정에 있지만 40일 동안에도 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못하면 망해야지요. 이 공식노정에서 5퍼센트의 책임은 각자가 해야 합니다. 이 책임을 하지 않고는 갈 길을 못갑니다.

지금은 가족과 친척을 복귀해야 할 때

금년에는 전체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뜻을 알았으면 동원해야지요.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이 원칙에 다 걸려 있습니다. 가정을 가진 사람이나 처녀 총각이나 전부 걸려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가 여러분이 하늘 길을 찾아가는 데에, 하늘의 부모를 찾아가는 데에 장벽이 되어 막혀 있는 것입니다. 이 담을 헐지 않고서는 사탄세계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귀합니다. 무엇보다 귀하다는 거예요. 자기 집에 귀하다는 어떤 것보다도 이것이 더 귀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선생님이 말씀한 하늘의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제2차 7년노정을 중심하고 활동할 때 누가 가라고 하든 말든, 반대를 하든 말든 각자가 꼭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의 친척을 전도할 때가 왔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이런 얘기를 했지만 선생님은 친척을 대해서 전도 한 번 못 해 봤습니다. 부모나 친척에게 나에게는 이러한 사명이 있고 하늘의 법도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못해 봤어요. 왜 그랬느냐? 좋은 것을 자기의 친척이나 아들딸에게 줄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원수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먼저 자기의 아들딸을 희생시키는 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인 전통을 계승해 가지고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좋은 것은 자기편에 속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 편에 속하지 못합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은 기도할 때 ‘우리 아들딸이 복 받게….’ 하는데, 그런 사람의 아들딸에게 줄 복이 어디 있습니까? 절대 복을 안 줍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인데 그들의 아들딸에게만 복 받게 하겠습니까? 기도를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는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저의 아들딸보다 선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게 먼저 복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복 받은 혜택으로 말미암아 저의 아들딸도 복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은 전부 다 제껴 버리고 자기에게만, 그리고 자기 아들딸에게만 복을 달라고 하니 될 게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데도 다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정적으로만 이 일을 해 나왔다면 핍박을 받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아버지 어머니, 문중 일가,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모인 자리에서 말씀으로 그들을 감동을 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문중이나 솔가(率家)를 전체 다 뜻 앞에 세울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의 친척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러한 모든 때를 지낸 입장이기에 친척을 전도할 수 있고, 아버지 어머니를 붙들고 눈물이라도 흘려서 자기의 간곡한 심정으로 토로할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을 맞이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 울고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동시킬 수 있는 때입니다. 형님은 아무래도 대하기가 좀 어렵지만 동생쯤은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좋다고 하면서, 그저 강제로라도 끌어내서 ‘이 자식아, 믿을래, 안 믿을래?’ 하면서 쥐어박아 가지고라도 믿게 할 수 있는 이런 자유로운 때가 왔습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했는데도 여러분이 책임 못해 가지고는 하늘 앞에 면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대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을 안 하면 천국 못 갑니다. 천국은 가정을 이루어야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합동결혼식을 하는데, 그 합동결혼식이 어떤 것이냐? 처음 온 사람들도 ‘합동결혼식이라는 것이 시시한 줄 알았더니…. 야!’ 하고 놀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멋지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온 총각 처녀들도 이제 합동결혼식에 못 들어갈까 봐 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야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안 되었음)

<말씀 요지>

인간은 타락으로 하나님을 잃고 피조만물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모․가정․종족․민족․국가를 어떻게 찾을까? 부모를 어떻게 만날까? 자기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 되어서 만날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동안 하늘과 동반한 무리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이 국가를 세움으로써 하나님과 상봉하여 역사적인 수고를 상속 받아야 합니다.

단계를 넘어갈수록 내정적(內情的)인 심정에 그 역사성이 가해지기 때문에 점점 더 어렵습니다.

개인으로서 가정복귀를 할 때 가정적 탕감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뜻과 완전히 일치될 수 없습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넘어가는 데는 반드시 탕감이 있어야 하고 희생이 필요합니다. 국가적인 경제 건설에도 정신적인 희생과 육체적인 희생과 물질적인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 전체가 수고했습니다. 한 사람 찾는 데도 무한한 역사적인 수고가 있었는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세워 가정 종족을 세워 나가게 된 것은 이 이상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가정, 아들딸, 친척, 민족의 단계로 거쳐 나갑니다.

폭발적인 심정을 가지고 나서야 합니다. 습관적인 생각 그대로는 안 됩니다.

아담가정의 아벨과 노아가정의 함이 실수했기 때문에 역사가 저끄러졌습니다. 다시는 그 걸음을 안 걷고, 오히려 그 실수를 심판하고 효자 효녀의 기준을 세우겠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모든 실수를 내 실수로 받아들여 회개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내려온 내정적인 심정을 상속 받을 수 없습니다.

일생 동안 회개해도 다할 수 없는 수고의 노정을 하나님은 걸어오셨습니다.

인간은 사특(邪慝)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거꾸로 될 때는 사탄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주체로 모시고 내가 상대적인 위치에 서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주체로 서서 하나님을 대상으로 대하려 합니다.

그동안 들어왔다가 배반하고 나간 사람들의 것을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재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선생님의 그동안의 내정적인 소원을 상속 받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기가 낳은 아들딸을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모양, 어떠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이러한 내정을 상속 받지 않고는 전통이 상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상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걸어온 과거의 역사를 알고, 현재의 사정을 알고, 미래의 소망의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봉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나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갈라져서 이중의 십자가를 지고 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도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흩어지고, 국가도 다른 국가 혹은 세계를 찾기 위해 다시 흩어졌습니다. 축복받은 부부도 단둘이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야 합니다. 죽어도 가다가 죽고, 헤어져도 가다가 헤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얽혀 있어야 합니다.

부자의 관계는 어떤 무엇으로도 깰 수 없습니다. 원자탄으로도 깰 수 없습니다. 절대로 깰 수 없고, 헤어질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맞이하고자 할 제, 그럴 수 있는 전체 통일교회 식구들이 되어 있는가?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이 못 되어 있으면 중심자의 명령에 죽고 살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도 그 대표자의 명령에 죽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고, 종족도 그 대표자의 명령에 죽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마음과 생활이 거기에 기준을 두고 일치점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표가 하나님의 내정과 일치된 길을 걸으면 전체가 그러한 것으로 대해 주십니다.

앞으로 통일교인이라면 선생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선생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절대복종하게 되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같이 산다는 공동적인 생활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일체의 관심이 교회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같은 충격과 같은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자신은 자격이 안 되지만 대신자에 의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혜택을 받습니다.

탕감조건에 순리적인 길은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뜻이 좋아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됐구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인식은 화가 됩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인정되고 보증 받을 수 있는 길이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고생과 곡절이 없는 순탄한 노정을 걸은 사람의 생활보다 복잡한 곡절의 노정을 걸은 사람의 생활이 더 깊고 넓은 맛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터전을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언제 내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라고 기쁘게 자신 있게 대한 순간을 가져 보았느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허둥지둥한 때를 가져 보았느냐? 하나님은 허둥지둥한 걸음을 많이 걸으셨습니다.

미친 사람같이 혼자 쑹얼쑹얼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부가 외아들을 낳다가 죽인 그 심정 그 이상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미친 사람과 같이 원수의 아들딸을 데려다가 친아들보다 더 사랑하기에 힘쓴 하나님의 내정을 알아야 합니다.

체면과 위신, 먹고 배고픈 것을 느끼고 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자기 자식이 앓는 데 신경쓰는 것보다 뜻의 움직임에 대해서 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안 되어 있거든 절대복종이라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면 밤잠이 안 와서 한밤중에라도 뛰어와서 물어보고 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언제나 그렇게 삽니다. 촌분도 방심하지 못합니다. 아기를 품을 때도, 쉴 때도 그 마음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 한국에 와 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소식을 빨리 알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대한민국의 땅만 짚고 살아도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내 몸을 치고 나서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탕감의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 요지>

가정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서면 그 사람을 중심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가정 중에 어떤 가정이 모범 가정이냐? 가정이 사명 못하면 가정 전체가 걸립니다. 그리고 영계에 있는 선조도 협조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정이 예수님과 성신의 실체로서의 전통을 세워야 민족․국가․세계의 전통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뜻 가운데 섰던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죽었다고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정에서는 남편이 주체이기에 그 가정은 남편이 책임져야 합니다.

지방에서 전도할 때에 식구들에게 정성들이던 것의 3배 이상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선생님은 발을 펴고 앉아 있지 못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사탄세계에 살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형무소 내에서도 물수건을 감추어 두었다가 새벽 기도를 하기 전에 몸을 닦았습니다.

세 가지의 전통을 세웁시다.

가정에서의 전통, 교회에서의 전통, 사회에 있어서의 전통입니다. 특히 가정에서는 얼굴을 찌푸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선하고 거룩하며 높고 넓고 크고 한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의미의 하나님에 대한 관입니다.

타락한 세계를 책임지고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높고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혹한 배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수고로운 사정을 오늘날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호소해 본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렵고 슬픈 일을 무한히 당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신, 넓고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이상 참은 사람이 없고, 역사노정에서 제아무리 고생한 사람도 하나님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추측도 할 수 없는 내적인 고통을 지니시고도 인간 앞에 그것을 표시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짐을 품고 신음하면서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극복해 나오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 고개를 넘고 넘어서 새로운 복귀의 섭리를 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슬픈 이면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알고 있는 원리의 내면에 비추어진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은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우리는 아직까지 고생이니 수고니 어려움이니 하는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더러 얘기를 하라고 하면 지금까지 고생한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협회장이 말한 것과 같이 영계에 간 인간들도 모르고 있고,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내적인 세계의 사실을 중심삼고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생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 고생은 하고 나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중심삼고 그것을 해결 짓게 되면 그 일도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생은 자기 일대에 결과를 볼 수 있는 고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지만 그것을 해결 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통일교회가 탕감복귀를 해 드린다고 하여도 내면적으로 충격 받았던 그 근본 마음의 상태는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해야만 합니다. 자녀의 입장인 우리 인간들이 위로해 드린다고 해서 위안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기의 자식이 위로하는 말에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위로하는 것이 부모의 본심을 근본적으로 위로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조건 삼아 위로 받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지금까지 그런 입장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생각하여 볼 때에 고생이니 어려움이니 하는 말은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생하기 전에 더 큰 고생을 하시고, 우리가 슬픔을 당하기 전에 더 큰 슬픔을 당하시며, 오늘의 이 슬픈 세상을 다시 구해야 될 책임을 지고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좋은 의미의 하나님보다도 그렇게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 그 높고 크고 깊은 내면을 알겠다고 노력하는 입장에 서서 나가면 모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으로 제시하고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그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우리 자신들은 견뎌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의 갈 길을 마련해 주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중의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중의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자인하면서, 이것을 앞날의 갈 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는 하나의 동기로 삼아 주기를 부탁합니다.

<말씀 요지>

축복가정은 전체를 좌우시킨다는 사명을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는 부부와 자녀가 있습니다. 습관성 있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점입니다. 여기에는 부부의 일체화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본래의 기준 앞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

축복가정은 자기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선생님을 중심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룩된 것이 아니고 타의적으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원하심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축복가정이 연유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위하여 오셨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는 가정의 기준 이상 가는 가정이 있기를 바라십니다.

역사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사람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배반했던 가정의 인연, 즉 일남일녀를 다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을 보냈던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남자 혼자서도, 여자 혼자서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없이는 안 됩니다.

가정이 본래의 법도에 일치되지 않는 한 종족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축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 식은 간단하지만 배후 역사의 내용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었습니다. 그가 웃으면 만우주가 웃을 수 있는 기준이 축복의 기준입니다.

부족한 점을 시정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던 부부의 의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태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축복을 중심하고 맹세합니다. 이 맹세의 기준을 어기는 사람은 땅 위에서 존재의 기대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천국은 가정을 중심하고 이루어집니다. 가정 식구들로서 지켜야 할 긍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 해와의 위치는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이지 영향을 받는 위치가 아닙니다.

습관적이고 세속적인 가정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훗날에는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완전해야 합니다. 현재가 문제됩니다. 과거와 현재가 완전해야 미래도 완전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이러한 한 날을 갖지 못한 것이 타락의 증좌입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자리가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현재를 바쳐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땅 위의 영원한 발판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종합점입니다.

가정의 기준을 실감해야 합니다. 남자는 주체입니다. 주체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지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는 안 됩니다. 중심에 서야 합니다. 이 중심이 어긋나면 안 됩니다.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중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대신 위치입니다.

동기와 원인이 주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기쁨과 행복은 주체에서 비롯됩니다. 가정이 불화하고 불행한 것은 남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타락의 책임도 첫째가 하나님, 둘째 예수님, 셋째 성신이 져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그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영원히 설 수 없습니다. 미래에 가서 이루어져도 그 과정의 날들이 참소합니다.

천국은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은 가정입니다. 여자가 실수해도 책임은 남자가 집니다.

탈선되지 않는 심적 기준과 생활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떨어져 살 때도 내심적으로는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주일 경배시간 같은 것은 엄숙하고 귀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가정을 중심한 구원의 시대

타락의 한을 넘어서야 합니다. 축복을 받고 그 한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반 가정과 우리 가정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먹고사는 것이 자기 가정 중심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가정은 현실적인 입장에서 언제나 승리해야 하며 절대 사탄의 참소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가정이 몇 가정이나 되겠습니까? 매일같이 힘써 나가야합니다.

세계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전통 있는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와 세계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통이 있느냐?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개성 완성만 해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은 안 됩니다. 예수도 와서 십자가에 죽었지만 그 개인으로는 구원섭리가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신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적 기준을 가져야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 역사에 전통으로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주(天宙) 앞에 일치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입니다.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전통이 무엇이냐? 그 기준은 가정입니다. 승패와 동기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정입니다. 이럼으로써 지금까지의 기성가정의 사랑도 심판받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심판이요 대심판입니다.

두 부부가 동방 서방이 되면 사방을 지배합니다. 그 반경이 크면 클수록 미치는 영향권은 큽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자랑해야 합니다.

800여 축복가정이 잘하면 우리 통일교회는 자동적으로 불어 나갑니다. 남이 다 부러워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을 내어 ‘뜻이고 뭣이고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망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왔으니까 축복받았지, 받고 싶어 받았나?’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가정이 성공하면 역사적인 고비 고비의 실패가 모두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이 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모두 회생합니다.

자식들이 ‘남자 가운데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고 여자 가운데서는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다.’라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새벽 경배 후에 조그만 무엇으로도 성찬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전통을 위한 생활적인 기원을 남겨야 합니다.

가정은 본인들과 선생님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의 결실점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상대자를 생각할 때 다음의 순서로 생각해야 합니다.

① 뜻을 중심한 철두철미한 사상, 선각적인 노정

② 건강

③ 미모

④ 지식

지금까지의 전도는 홀로 했지만 이제부터는 부부가 같이 믿음의 자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 역사시대는 가정을 중심한 구원의 시대입니다. 둘이서 할 진짜 전도시대가 옵니다. 부인은 남편을 어떻게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뜻적으로 훌륭한 조상이 되어야

가정은 가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이 필요합니다. 조상으로서 책임을 완성해야 합니다. 축복을 받고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은 탈선한 것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출세시켜야 합니다. 즉 내조를 잘 해야 합니다. 말씀의 완성자(실체적․심정적․생활적으로)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꽃피운 것이 가정입니다.

역사를 품고 우주를 품고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피를 흘려야 합니다.

통일은 먼저 부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남자 메시아가 있으면 여자 메시아도 있어야 하니 가정적 메시아로서의 주님은 오십니다. 타락을 아담 해와 두 사람이 했으니 복귀도 두 분이 해야 합니다.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개인노정, 가정의 노정이 앞으로의 역사의 전통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생명을 거는 부부, 통일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완용의 자손들은 어디 가서도 자기 조상이 누구라고 선조의 이름을 못 댑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가정, 교회가 바라는 가정, 여러분이 바라는 가정, 그런 가정에서 정성을 들여 태어나는 자손은 잘 태어날 것입니다.

부모는 지지리 고생해도 자손은 하늘의 운과 선생님의 운을 따라서 태어날 것입니다.

3시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① 에덴의 시대

② 타락의 시대

③ 소망의 시대

뜻을 앞세우고 사적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움직이면 하나님이 협조하십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피곤해도 마음대로 낮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배가 고프다고 막 먹어서도 안 됩니다.

배후에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셋만 있으면 원수라도 그 사람을 치지 못합니다.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충신은 백성을 울릴 수 있어야 충신입니다. 선왕(善王)은 만대의 백성이 고맙게 여겨야 선왕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선조의 소원, 자신들의 소원에 합당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원리 말씀을 모르고 뜻을 위해 수고한 실적이 없으면 앞으로 참 곤란합니다.

앞으로는 뜻적으로 훌륭한 조상을 가진 것이 자손들의 자랑입니다.

가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개체의 권위를 세우고, 개체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뜻에 대한 권위 의식을 높여야 합니다.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합니다. 배가(倍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현실이 이렇지만 후일 선생님이 축복한 자 중에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세계적인 인간재(人間財)로 남아 영광을 받을 것을 소망으로 삼고 삽니다.

남 잘 때 자지 말고, 남 놀 때 놀지 말고, 남 먹을 때 먹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최후의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데는 쉴 새가 없습니다.

<말씀 요지>

청소년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시대입니다. 목적을 세울 결심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기는 생애의 분기점입니다. 그래서 18세를 전후해서 인생의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이 시대는 인생에 있어서 교차로와 같은 시대입니다. 이 교차로에서 확실히 깨닫고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소년기․장년기․노년기를 일관해서 무난히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년기․장년기․노년기를 일관해서 무난히 갈 수 있는 사람은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에는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복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복귀의 길을 추구하고, 복귀의 사연을 탐구해야 합니다. 복귀의 길을 잘 가면 우주와 내가 관련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한을 새로운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최고의 노력을 해서 인생의 교차로를 만나야 합니다. 그 교차로는 각자의 서러움을 청산하는 길이며, 나아가 역사적인 서러움을 청산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출발한 이 길은 반드시 목적점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출발시의 속도보다 지금의 속도가 빨라야 합니다.

이 길을 잘 가기 위해서는 순간밖에 안 되는 짧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급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 마음이 변치 말아야 합니다. 이 길을 목적지까지 도착하여 승리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출발한 사람도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은 모든 것의 전통을 세워 그 전통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제1차 7년노정으로 인하여 탕감의 한 노정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땅 위의 한 기간을 넘어설 수 있는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나라, 종족, 부모의 자식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겐 그동안 소망의 세계, 나라, 부모, 형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소망의 세계, 나라, 종족, 가정, 부모, 형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成)은 창조이상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즉 우주 전체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래 완성의 기준을 세우는 시기는 인간시조가 타락했던 연령인 17, 18세 때입니다. 그래서 성화 20대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입니다. 미래의 완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 시기의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청소년기에 소원의 표준과 생애의 목표를 세우고 결심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느덧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슬픈 것은 청소년 시대에 완성하여 아버지를 부르지 못한 것입니다. 즉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와 같은 시절에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이 슬픕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정통을 인계 받은 자로서 직행해야 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장년과 청소년을 위해 간 길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가 행진하던 것과 같은 노정입니다. 그러니 씩씩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뜻을 모르는 학생들과 스승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옳지 못한 것은 굴복시켜야 합니다. 힘에 대항하여 힘 아닌 것으로 굴복시키려면 몇천 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도 수습하여 정복할 수 있는 충효의 절개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하고 확고부동한 행보(行步)로써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원리는 교통순경이요, 원리의 목표는 선생님의 생애입니다. 성심성의껏 목표를 향해 가면 표시등은 나타납니다. 여러분 각자는 자기의 처해진 환경에서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의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합니다.

서양의 선진국 사람들은 복귀를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역사와 처지로 인해 복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갖추어서 출발했기 때문에 신앙의 본향이 되고 조국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직행하지 못하면 본향의 젊은이, 조국의 형님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외로우면 주변의 학생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함락하고 ‘나는 승리했다.’고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거울 앞에서 자기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아무개야, 너는 뜻 앞에 출발한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느냐?’고 물어봐야 합니다.

‘성화’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여러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고 버틸 수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 도와주소서.’ 해야 자주성 있는 사람이 됩니다.

통일교단에서 의분심을 품은 참된 아담 해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복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 교단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다 같이 결심해도 기준이 각각 다릅니다. 본성의 물음을 듣고 본성의 부름을 받아 역사적인 출발을 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30년이면 30년 기간동안 변치 않고 꾸준히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여 나간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러려면 일편단심, 전심일력, 일심통일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하나를 붙들면 죽기내기로 해냅니다.

선생님 16세 때, 13명의 식구가 있었는데 여덟 식구만 남고 일년 동안 다섯 식구가 죽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이런 탕감을 해 나왔습니다.

한번 결심했으면 죽을 때까지 변치 말고 나가야 합니다. 필사의 각오를 갖지 않는 사람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결코 승리의 영광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를 위해 복을 빌어 주면 거기에서 남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결심은 비통한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었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맞으면서도 성공하는 길입니다.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된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악한 곳에서도 반드시 참고될 만한 것이 나옵니다. 망하는 자리에서도 반드시 무엇인가 나옵니다. 사탄에게서도 반드시 무엇인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무엇인가 나오기만 하면 자신이 틀림없이 잡아 쓰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상대적 위치는 왔다갔다할 수 있지만 중심 위치는 변하거나 왔다갔다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나무의 종대가 그렇습니다.

비료(거름)가 그러하듯이 모든 것은 간접적인 의미에서 다 좋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두를 제물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바치자는 것입니다.

해방 후 선생님은 단 1분도 방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흑암이 밀려오는 것을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선생님이 기도하지 않아도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환경에 끌려가지 말고 환경을 끌고 가야 합니다. 출발을 했으니 끝까지 힘차게 가야 합니다.

실력은 한 면만을 비추지만 정성은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면을 비출 수 있습니다.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세우려면 최저의 자리에 뿌리박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교차로를 다 타파하고 직행 길을 달리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하겠습니까?

<말씀 요지>

부부가 예배에 참석할 때, 자녀들이 부러워서 따라오고 싶도록 정답게 나와야 합니다. 도인들의 기도의 열매가 가정에서 맺어져야 합니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가정생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범적인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한 사람만이라도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모범가정을 보았을 때 우리 가정은 몇 점짜리인지 반성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의 표적입니다. 그러나 부과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낙망의 가정이 됩니다.

아내들이 가정 내의 경제문제 해결 방안을 책임져야 합니다.

현재의 축복가정들은 전통의 조상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종족 앞에 메시아적 가정이 되어야 전통이 세워집니다.

새벽 경배, 정성, 예배시간을 엄수하지 못하면서 자기의 아들딸이 잘되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후손을 세우려면 부모가 잘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인연맺어질 수 없고, 인연맺지 않은 것이 관계를 성립시킬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보기에 부모들이 싸움을 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가 서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몰라준다.’고 하는 그런 시시한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뜻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은 개인의 전통을 세우는 기간이었고, 제2차 7년노정은 가정의 전통을 세워야 하는 기간입니다. 가정적인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민족적인 전통을 세울 수 없고, 민족적인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국민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축복가정은 가법(家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 기준과 가정의 규범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만일 부모가 잘못했다가 자녀들의 추궁을 받으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전에 나라를, 세계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는 ‘우리 남편은 나라를 세계를,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분이다.’라며 존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남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즉 남자는 가정의 중심적 권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여러분이 죽기 전에, 자식을 낳기 전에 가정적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자식을 낳아 놓고 정성들이려 하지 말고 낳기 전부터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우리 부모는 어느 면에서만은 ‘다른 어떤 부모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적인 면에서 부족할수록 어떤 독특한 면에서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녀들이 ‘천하에 우리 부모밖에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모범가정을 찾아 방문할 것입니다. 그때에 보여줄 것이 있고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기성가정은 그 전보다 현격히 달라져야 합니다.

자녀들은 자기들의 부모가 나쁜지 좋은지를 바로 압니다. 뜻을 위해 움직이는 태도를 꾸준히 밀고 나가면 그 환경에서 알아줄 날이 있습니다.

부부는 죽더라도 천도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 가정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자기 자녀를 위해서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자녀를 위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하나님의 운과 세계의 운과 함께하고 나라의 운과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아 낳은 귀한 자녀들이 고생을 하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박자를 맞추지 말고 하나님과 세계와 나라의 운세에 박자를 맞추어야 합니다.

가정의 전통을 세우는 가장 빠른 길은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10리 밖에서 걸어와 선생님께 경배 드려야 합니다. 이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자기의 후손들이 망하게 됩니다.

주일은 일주일을 절약하고 계획했다가 우리 식구들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주는 날입니다. 또 주일은 함께 모여서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각 가정이 서로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자랑해야 합니다.

지방에 나가 전도하면서 들이던 정성의 3배 이상 정성을 들여서 선생님을 모셔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잘해야 합니다. 기성가정들은 새로 낳은 자식들을 위해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모두가 선배 가정들을 하늘같이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보다 무언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골수에 흐르는 심정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부부는 남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저런 남편을 가진 부인은, 혹은 저런 부인을 가진 남편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동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전도는 없습니다. 부부가 새벽에 일어나서 자녀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디 가고 없을 때 자식들이 부모를 기다리면서 그리워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한쪽이 기울면 심정과 정성으로 보충해야 합니다.

12월 20일부터 전국으로 총출동합시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홀로 했지만 여러분들에겐 따뜻하게 동정해 줄 대상이 있습니다.

전도를 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고 저나라에 가게 되면 부부끼리 붙들고 통곡하게 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주일이나 공적 집회 참석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주일날 반드시 전도해야 합니다. 주일예배는 아침 10시 이전에 교회에 와서 준비해야 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예배시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도 선생님의 이름을 통과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불쾌한 얼굴로 살지 말고 웃으면서 일어나고, 웃으면서 일하고, 웃으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마음대로 낮잠을 자지 말아야 합니다.

본부에서는 절대로 큰소리쳐서는 안 됩니다. 이 자리는 참부모의 인연이 이루어진 곳이요, 역사에 없던 일이 이 집(본부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아들 대(代)에는 세상에 다시없는 찬란한 자리에서 축복식을 올려야 합니다. 자기 자녀들보다 선생님의 자녀들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자녀들을 한번 안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기 자식에게 그러는 것보다 천배 만배 간절해야 합니다. 또한 축복가정들은 선생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늘을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그 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을 소망하여도 현실에 나타난 한 사람의 가치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현실의 한 사람을 귀하게 알면 과거를 이루고 미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달리고 있습니다. 과거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하지 않고는 목적을 향하여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적지에 가도 안 됩니다. 상속은 명령을 받고 가는 자리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없어서는 안 될 한 사람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과거에는 핍박받는 자리에서 뒤를 돌아볼 수 없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떠나 있으면 아무리 걸어가도 가치가 없습니다. 주체성을 갖춘 현실적인 자아를 갖추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은 현실적인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성진리체는 우주사적인 현실의 초점과 같습니다.

성인 현철들이 대개 비참한 길을 갔습니다. 전체를 끌고 가자니 비참한 길을 안 갈 수 없었습니다.

뜻은 전진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영원을 대신한 한 개체로 설 수 있겠는가? 전진하지 않으면 결정한 기준을 잃어버립니다. 뜻을 생각하면 길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과거의 일도 오늘의 일, 미래의 일도 오늘의 일로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에 있습니다. 즉 과거 미래를 현실적으로 인연 맺고 있느냐 안 맺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과거가 아무리 강하고 담대했어도 현실이 아무것도 아니면 오히려 과거가 사탄의 참소조건이 됩니다. 현실로써 결정됩니다. 현실이 과거와 미래보다도 더 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럭저럭 끼워 가지.’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다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살았다 하는 것은 죽었다 할 수 있는 고비를 통과하고 나서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중요한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서는 쓰러질 수 없습니다. 현실의 중요한 신념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 미래의 주인공이 됩니다.

한 사람을 찾는 데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고 현실의 한 사람입니다. 자기 멋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조심해야 됩니다. 최후의 자리는 언제나 내가 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는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할 때도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하고,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에 더 많이 해야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기 도>

오늘은 아버지 앞에 만민이 마음을 모아 경배하고 무한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존귀와 영광을 찬양해야 할 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천지창조의 이상을 중심삼고 이루려 하셨던 소원의 한때가 아직까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실 때의 아버지의 기쁨은 컸사오나 인간을 중심삼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선의 가정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의 그 심정을 아직까지 헤아린 자도 없었고, 체휼한 자도 이 땅 위에는 없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인간시조가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여 아버지의 뜻 가운데 안기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분하고 원통한 것임을 저희들이 진정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저희들이 당신 앞에 부복하였나이다. 역사 과정을 두고 자녀를 찾아오기에 그렇게도 수고하신 아버님, 상심이 크신 아버지인 것을 저희의 마음과 몸으로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진정 저희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슬픔에 잠기신 채 역사 과정을 홀로 책임지고 찾아오신 아버님 앞에 충과 효의 도리를 다하여 아버지라 부르며 선하신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어야겠습니다. 지난날 저희 자신의 기쁨이 영원히 당신의 마음 앞에 기억될 수 있는 한때가 있었는가를 냉정히 비판해 볼 때, 그렇지 못한 자신들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 저희들과 만나서 사연을 나누고 싶어하는 곳은 저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현실의 환경이 아니라, 차원이 높은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라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 세계는 타락으로 엉클어진 사연을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연을 넘고 넘어 진정한 본연의 인연을 중심삼고 느끼고 거동할 수 있는 그 한 시간을 그리워하고 계시는 아버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을 저희들이 진정 이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말로만 느낀다고 하지 말고 심정으로써 체득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얼굴을 들어 아버지의 높으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아버지의 고마우신 은사를 대하게 될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사옵니다. 그 아버지의 높고 귀하신 사랑을 잊지 말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동맥에 피가 흐르는 것으로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을 느낄 줄 알고, 호흡 소리에서도 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줄 알고, 피부의 감촉에서도 무한하신 아버지의 자비의 손길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깊고 높으신 당신의 자비로운 심정 가운데 흠뻑 잠기어 당신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천진한 어린이와 같은 심정을 지닐 수 있는 한 시간을 갖지 못한 저희들이 얼마나 슬픈 자들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타락의 한을 품고 역사를 되돌아가야 하는 복귀의 운명 길을 가고 있사옵니다.

지금 이 땅 위에는 상처를 입은 불쌍한 사람들이 살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아버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먼 거리에 살고 있사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엉클어진 환경과 사정 속에 자기 자신을 이끌고 본성의 세계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공인을 받고 이 땅 위에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으로부터 저희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깊으신 내적 심정의 인연 가운데 영원한 아들딸의 인연으로 다시 맺어져 거기서부터 새로운 분부와 약속 아래에서 재출발하여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오라고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는 아직까지 미천한 자리에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에 가지 못하는 슬픔어린 불쌍한 자신이 될 때가 얼마나 많사옵니까? 이것을 확실히 깨닫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아버님과의 인연을 생각할 때, 본래 저희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면 느낄수록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자리에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슬픈 역사를 책임지시느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배척을 받고 저버림을 받던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 찾아오셔서 저희로 말미암아 다시 슬픔을 당하실까 염려하여, 저희의 갈 길은 저희가 다 가겠으니 아버님은 기다려 달라고 외치고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효(孝)를 행하여 그 몸이 지치고, 충(忠)을 행하여 그 마음이 쓰러지더라도 아버지의 높고 귀한 뜻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흩어진 마음과 몸을 바로잡아 모심의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본연의 아버지 앞에까지 가기에는 먼 거리에 있는 자신임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먼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렀사옵고, 아버지와 관련 맺을 수 없는 탕감의 내용을 앞에 놓고 아버지를 부를 때가 많았사오니, 먼저 아버지를 부르기 전에 저희 각자에 주신 바의 탕감노정을 헤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짊어진 십자가의 길을 헤쳐 나가야 되겠으니, 싸워야 할 싸움을 위하여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들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높고 귀하신 그 이름과 거룩하심을 저희들이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에 숨어 있는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 앞에 엎드려 아버지를 부르는 자들이 있사오면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깊고 높으신 그 사랑의 품에 안기겠다고 몸부림치며, 하늘의 충신 효자가 되겠다고 아버지 앞에 간곡한 사연을 갖고 외치는 자들이 있사오면, 아버지,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 자리에 발길을 멈추시어서 아버지의 깊고 높으신 자비의 심정으로 위로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때에 있어서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때는 언제나 저희들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람과 이 땅 위의 인연과 이 땅 위의 모든 물질적인 요건은 저희 인생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할 수 있으나, 하늘의 뜻과 하늘의 섭리의 내용은 언제나 저희와 같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한때를 놓치게 되면 영원히 탄식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간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한때를 맞기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곳을 흠모하면서 마음 다하여 아버지를 부르는 자들을 축복하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세계에 널려 당신의 뜻을 중심삼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무리들 위에도 당신의 위로와 권고가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최후의 싸움터에서 승리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희들의 어깨에 짊어지워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아버지 뜻을 향하여 직행해야 되겠습니다. 선봉에 서서 원수들을 물리치고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버지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불길을 밝히어 어두운 세계에 등대의 사명을 다하고 소금의 사명을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피 어린 길이 있었는가를 그들이 체휼하게 하여 주옵소서. 눈물의 길, 슬픔의 길, 억울하고 분한 길 가운데서 참기 어려운 고통을 무릅쓰고 찾아 나온 이 길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서, 민족과 세계의 모든 탕감의 내용을 붙안고 아버지께서 참아 나오신 보람 있는 이 길을 저희들이 상속 받아 책임을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아버지 품에 안겨 드릴 날을 위하여 저희들은 달려가겠사오니 능력을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저희를 통하여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고 있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현재의 모든 전부를 아버지 뜻 앞에서 영광의 기점으로 삼아 길이길이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고, 참된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소망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는 나

어떤 존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도 동기가 있어야 존재하며 그 동기 앞에 결과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더구나 인간의 시조가 타락한 이후 6천년이란 역사 과정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자기 개인의 존재 이면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세계면 세계에도 그런 인연이 엉켜져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는 것이 인생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인생길을 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자기만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처리되고, 자기만을 중심삼아 모든 행복의 여건이 해결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문제의 새로운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에 엉켜진 사연을 해결 지어야 되고, 시대의 사연을 중심삼아서 완전히 해결 짓지 않으면 역사가 소망하는 자리, 혹은 시대가 소망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정적인 위치에 있는 내 자신이 과거와 현재의 입장을 완전히 해결 짓지 못하면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요, 시대의 인연을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역사는 지금까지 하나의 소망, 다시 말하면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시대도 하나의 소망의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바라던 소망과 현재에 바라는 소망이 차이가 있다면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행복에의 출발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에 소망하는 목적의 기점을 ‘나’ 하나에서 어떻게 해결 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동기와 목적을 잃어버린 현세대

그러면 역사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인류가 출발하던 과정에 어떤 동기가 있었느냐?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출발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동기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목적을 상실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그 목적을 향해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목적을 향해 나온 인류역사가 정상적인 길을 따라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대 시대에 따라서 돌고 도는 곡절의 노정을 거쳐 나온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떠한 곡절로 인하여 그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기도 잃어버렸고, 방향도 잃어버린 떠돌이 인생의 행로를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국가마다 바라는 목적이 전부 다 달라진 것입니다. 갑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목적과 을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목적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개개인이 바라는 목적과 국가가 바라는 목적의 기준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내 자신이 과연 한 목적을 향할 수 있는 정상적인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면 하나의 목적을 향할 수 있는 동기도 상실했고, 목적을 향하는 방향도 잃어버린 인간이 현재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또 목적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그 동기, 목적의 방향을 갖출 수 있는 그 동기란 무엇이냐? 그 동기의 내용과 방향을 완전히 결정짓지 않고는 현재의 시점을 중심삼아서 전세계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출발의 동기가 있으면, 그 동기가 출발될 수 있는 방향은 오늘날 나를 중심삼아 추구하는 내용이 되어 있는 것을 확실히 해야 됩니다. 이 역사적인 동기를 갖지 않고, 이 방향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 할진대는, 우리가 아무리 이 땅 위에서 성공을 하고, 아무리 그 나라가 부(富)하고 발전하여 영광과 행복의 자리에 있어서 세계에 자랑할 만하더라도 그것들은 전부 다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리면 그것은 역사적인 인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타락 인간에 있어 제일 중요한 인연 ― 동기의 인연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의 인연’이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인연의 기점이 어디가 되어야 되고, 인연의 방향이 어떻게 나가야 되며, 인연을 통할 수 있는 목적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인생행로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기가 무엇이며, 그 방향이 어떻게 가야 되며, 그 목적이 어디에 가서 귀결될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그 길에 들어서게 될 때, 비로소 이 인연을 중심삼고 보여지는 하나의 관(觀), 그것이 세계적이며, 전체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그런 동기와 방향과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의 기점에 서서, 오늘날 세계적인 인연이 나와 더불어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정된 자리에 서지 않고는 세상의 어떠한 행복이 찾아오더라도 그 찾아온 행복과 나와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찬양하는 그 어떤 분이 온다 하더라도, 그분과 나와는 인연 맺을래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우리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인연이 무엇이냐? 목적을 찾아가는 그 인연의 길도 중요하고 현재에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기가 될 수 있는 인연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심 동기란 무엇이고, 또 동기의 인연이란 무엇이냐?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방향이 달라지게 되고, 그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목적하는 그 목적점도 다른 결과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생 동안 자기가 갖고 싶은 것 갖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소원을 풀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본연의 소원,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오늘이 있기까지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자리에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연 중에 제일 중요한 인연은 동기의 인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과 목적을 잃어버린 인간

오늘날 전세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타락된 인연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 인연은 어떤 인연이냐 하면 이탈하려는 인연입니다. 통일되고 규합하려는 인연이 아니라, 분립하려는 파괴적인 인연입니다.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니라, 상실하는 인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아는 거와 마찬가지로, 타락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뜻과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할 때에, 오늘날 우리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과 목적이 어떤 다른 세계와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아담 해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가 아버지의 인연과 일체화될 때에, 거기에는 참다운 사람이 빚어져 나오는 것이요, 참다운 가정이 빚어져 나오는 것이요, 참다운 국가와 세계가 빚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태어났으며, 무엇을 중심삼고 가야 될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가야 될 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빼놓고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빼고는 동기 없는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동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거두어질 수 없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지을 때는 설계자가 설계한 설계도에 따라 건축을 하게 됩니다. 설계의 원본도 없이 지어진 건축물은 설계자가 목적한 건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체를 두고 볼 때 본연의 인연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찾아 돌아가야 됩니다. 선의 본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선의 나라를 찾아가야 되고, 선의 종족을 흠모하고, 선의 우주, 선의 세계를 동경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동경하는 세계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이냐? 그 세계는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가장 근본 되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하나의 몸이 있을 것이요, 하나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몸이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활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활권에서 부모와 자녀의 인연이 출발하였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회 구성이 벌어질 것이고, 그 사회 구성을 중심삼아 종족 혹은 국가의 형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전체 목적을 중심으로 국가면 국가의 목적, 세계면 세계의 목적이 갈 수 있는 방향의 기준이 서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맨 처음의 기점이 어디냐 하면, 그 기점은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삶의 동기와 목적을 정해야

그러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서 얼마나 몸부림쳐 나오신 하나님인가를 알아야 되겠고, 어떤 방향을 통해서 나오시고 있는 하나님인가를 알아야 되겠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시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해도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활동하는 대원들이 와 있지만, 그 활동도 역시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동기를 갖추지 못한 자리에서는 각도가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념과 목적, 다시 말하면 동기와 목적은 반드시 직행 과정을 통하여서 관계를 맺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긋나면 동기를 일치화시킬 수 없고 동기가 어긋나도 목적을 일치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서로 직행선상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고자 하는 직행선이 있을 것이고, 몸이 가고자 하는 직행선과 생활이 가고자 하는 직행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신의 마음이 가야 하는 책임이 있을 것이고, 몸이 가야 하는 책임이 있을 것이고,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자신이 생활을 통하여서 세계로 가는 직행선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정이 다르다고 해도 가는 그 목적점은 반드시 직행되어 세계적인 목적에 결부할 수 있는 초점에 일치화시켜야 되는 것이니,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전체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 본연의 인연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 여러분 각자의 마음을 두고 보십시오. 여러분의 하루 생활 가운데 마음에서 어떤 불화가 벌어지면, 이 모든 것이 왜 그런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내 자신이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하나님이 가지신 소망을 갖고,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생활적인 인연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매일 매일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행동은 하늘적이냐 땅적이냐 둘 중에 하나로 결정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이 호흡하는 데에 요구되는 최고의 산소 호흡량이 있습니다. 그 양을 완전히 흡수하느냐, 덜 흡수하느냐에 따라 그런 환경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 몸이 건강해지느냐, 나빠지느냐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이며, 자연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개체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과 몸과 생활의 방향이 언제나 일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자체가 그렇게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의 방향과, 몸의 방향과, 생활권의 방향이 일치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 그런 자신이 되어 있습니까? 이런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돈이니 명예니 하며 지금까지 그릇된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과 몸과 생활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길은 이미 제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래 가야 할 길과는 상관도 없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기필코 우리는 다시 그 자리로 복귀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인간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타락한 인간의 제일 폐단이 무엇이냐? 그것은 타락한 악주권을 중심삼은 이념을 중요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과 형제 친척 등 세상의 혈통을 중심삼은 인간적인 인연을 초월해야 합니다. 또한 환경과 인연 지어진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내가 설계한 대로 몸을 자유자재로 운전할 수 있는 자신이라고 자부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이 가시는 엄청난 그 동기와 방향과 목적의 세계에 들어가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재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억제할 수도 있고 취하기도 할 수 있는 내 자신임을 스스로 자부하지 못한다 할 때는, 현재 입장에서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종교의 길 ― 참된 인연을 되찾아가는 길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타락한 세계의 인연을 그냥 그대로 뒤집어쓴 채 그 인연을 그냥 그대로 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살아서는 하나님이 가시는 동기의 길, 하나님께서 가시는 목적의 길을 우리가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하나님이 같이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마음은 늘 슬픔을 느끼고, 내 자신은 가면 갈수록 내적으로 고독해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지녀야 할 하나님의 인연을 망각해 버리고 현실적인 인연만을 대하며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과정에서 타파할 수 있는 한때를 닦기 전에는 우리는 참된 인연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 터를 닦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종교의 길은 자기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찾아지는 형제와 가정․종족․국가야말로 역사가 찾아오던 이상적 국가와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가 소원하던 소망의 실체들이 된다면 이 시대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중심적인 위치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악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악한 세상이 언제나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소원하는 중심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개인․가정․종족․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뒤넘이치는 돌고비 길을 되풀이하면서 나왔던 이스라엘 역사노정을 대신 걷기 위하여 나온 것이 오늘의 수많은 종교단체입니다. 그러니 이 종교단체를 규합하여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추어 이를 끌고 나가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의 이념과 목적의 세계로 정착할 수 있도록 수수작용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는데, 개인주의적이나 국가주의적인 욕망을 가지고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념을 세우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감행해서 세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같은 입장에서 같은 목적과 같은 가치의 내용으로 같은 영광의 자리를 동경하고 모색해야 비로소 세계는 하나의 형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로 그런 자리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연의 목적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어디서 출발했느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출발했습니다. 6천년의 긴 역사를 중심삼고 출발한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과 국가가 한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노력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뜻 가운데서 만났다가 떨어지고 어떠한 국가는 지금 여기서 만났다가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든 어떤 국가든 다시 만나야 할 하나의 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중심삼은 메시아 재림의 한 날입니다. 그날이 바로 국가 전체의 소원의 날이요, 수많은 종교의 소원의 날이요, 수많은 개인의 소망의 날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상봉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쩌다가 자기에게 시기가 오면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취해 가지고 만날 것이냐? 아닙니다. 이것을 만나려면 반드시 그 원줄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 과정을 지켜보면 역사적 인연을 같이해 나온 민족은 흥했습니다. 설사 망했다 하더라도 섭리의 흐름을 탔기 때문에 밀려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왔습니다. 섭리의 방향을 잘 잡았기에 타락한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길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섭리가 땅에 밟혀 망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사를 보더라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했을 때는 망해 가다가 다시 하나님이 지시하는 길에 일치될 때는 다시 흥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제아무리 훌륭한 국가라도 섭리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가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이러한 자리에 일치되고자 역사적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역사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두고 볼 때에, 예수를 중심삼은 그 인연은 우연한 인연이 아닌 역사적인 인연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 시대의 현실적인 생활 방향에 일치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안 나와 가지고는 이 세계를 구할 수 없습니다.

선조들의 공적을 상속 받으려면

그럼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 통일교회가 나오기까지에는 수많은 개인의 길, 가정의 길, 종족의 길, 민족의 길, 국가의 길을 거쳐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의 섭리적인 출발이 나타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통일교회가 나타날 날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역사를 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당대에 자기가 잘해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역사적인 선조들의 상속의 인연을 통해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역사의 방향을 잡아 하나님이 올라가면 올라가고 내려가면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충신이라면 나라가 흥할 때에도 충의 도리를 해야 되지만, 망하는 자리에서도 충의 도리를 다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에 따라 변하면 충신이 될 수 없고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충효의 원칙이라는 것은 불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인연됐다는 사실은 여러분의 일생 중 몇 년 혹은 몇 개월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연된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역사적인 자리요, 소망의 자리입니다. 실제로 내가 살아갈 기점이 될 수 있는 역사적인 인연을 거친 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일생에서 그 역사를 보지도 못했고 그 인연을 갖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역사적 인연에 연결될 수 있느냐? 그리고 또 어떻게 역사적인 인연을 가지고 통일교회와 연결될 수 있느냐? 그것은 작으나 크나 여러분의 마음의 방향에 조상들의 마음의 방향이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같이 방향을 맞추려고 노력한 그 기준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즉 얼마만큼 가깝게 같이하려고 노력하였느냐에 따라 통일교회에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이 처해 있는 이 시점은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라는 어느 개체에 의해 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통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내 자신은 잘못되어 있고 또 될 대로 되어 있지만, 그 역사적인 인연 가운데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역사의 목적을 향하여 충성을 다하던 그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공로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공로의 인연으로 오늘날 여러분이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위치에 있는 여러분은 역사적인 인연을 받은 내 자신으로서 오늘의 자신이 생활 가운데 역사적인 인연을 빛낼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그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역사를 움직인다고 했으니 그것을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를 따라가는 사람들 전부 다 하나의 형태만은 아닙니다. 이다음에 세계의 많은 나라를 수습하려면 천태만상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직업을 놓고 보더라도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각 사람의 기점은 천태만상입니다. 이처럼 그런 차이에 해당할 수 있는 그 분야에 충성하던 역사적인 선조를 가졌으면, 그 선조의 인연을 상속 받아서 역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통일교회는 하늘의 운세권 내에 들어가게 되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 받아 가지고 여러분이 새로운 터전을 조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선조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그 터전을 상속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처해 있는 여러분 개체를 두고 볼 때, 그 개체는 열 몇 살이라든가 혹은 스무 살이라는 한계 내에 있는 개체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시대권 내에 한계선을 제정해 가지고 이루어진 개체가 아닙니다. 반드시 역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지나가는 이곳은 일생을 길이 빛낼 수 있고,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귀중한 초점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하게 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지만 잘못하는 날에는 이것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인연 가운데에서 복귀노정을 통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 선조들 또한 공을 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접선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 접선할 수 있는 때가 왔는데, 그 방향을 내 앞에서 바로잡아야지, 남을 따라가서 접선을 하려고 하다가 기준이 안 맞게 되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또한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수고한 영계의 선조들이 얼마나 간절하고 손에 땀을 쥐는 것 같은 초조한 자리에서 바라보겠습니까?

역사의 부름 앞에 선 사람의 사명

이 역사적인 부름과 사명 앞에 서게 된 여러분은 그저 흘러가는 인간들과 같은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 개인은 수천년 역사를 거쳐 나와 이제는 하나님과 상봉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가 완전히 하나되어 이 길에 남아서 싸우며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날을 고대했던 것이 역사적인 소원입니다. 그 초점에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얼마나 부모를 괴롭혔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칫 잘못하여 실수하게 되면 전부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회에 출전한 마라톤 선수를 보면, 그 선수는 일등을 하기 위해 골인 지점을 향하여 민족의 위신을 걸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골인하는 그 순간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즉 승리의 결실은 훈련의 고통과 힘의 안배와 인내, 그리고 지금까지 겪었던 슬픔이라든가 기쁨의 온갖 정성이 투입된 종합된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 순간에는 딴 생각은 없습니다.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뛰는 발걸음에는 국가의 새로운 명성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삼천만이면 삼천만의 환희의 깃발이 펴 나오는 것입니다. 골인하는 순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승패의 결정이 벌어지고, 그 순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기는 국민은 더더욱 단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가 확실히 이 시점을 완전히 장악하고 압도할 수 있으려면 여러분과 같이 아무 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래, 그저 그렇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정성들여 가지고 쟁취한 우승품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온갖 충성을 다 들여서 얻은 그 보물이라는 것은 생명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여러분이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온 인연의 결실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의 중심체, 새로운 세계를 출발시킬 수 있는 창건의 기사가 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나’라는 자체를 생각해 볼 때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라는 자기 자신을 부정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모든 원한의 가지를 제거시켜 버리고, 새로운 가지와 새순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한 환경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리에 선 사람들은 본연의 인연을 갖추어야 됩니다.

선을 중심삼고는 망하는 자리가 곧 흥하는 자리

선은 이 땅 위에서 밟혔지만 설움의 때가 뒤집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선은 언제나 밟히고 언제나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악의 조건이 아무리 크더라도 끝내는 그것을 이기고 영광의 자리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죄악 된 세상을 바라볼 때, 이 악한 세상을 당장에 휙 들이밀어 버릴 힘이 없으면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이 생겨나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외적으로 보면 그저 먹고 자고 오고 가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사람은 별다르냐 하면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인데 뭣이 다르냐? 역사적인 인연의 동기와 사랑의 근원에서 형성된 인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종교의 차이, 민족의 차이, 국가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요즘 판매대원들을 선생님이 보면 영 마음이 침체된 것 같습니다. 아침에 나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들어오면 힘이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팔기 위해서는 어떤 무엇이라도 붙들고 끝장을 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일이 많다 보면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밤까지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생각과 선생님의 생각은 얼마나 다르냐? 시작과 끝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현지에 나가서 지시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앞으로 없애야 합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가만 놔두면 영계에서 징계할 것입니다. 동기와 방향이 일치되지 않으면 목적이 왔다 갔다 합니다. 목적의 중심점이 보이지 않을 때는 끝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목적하는 기준에 있어서 단지 방향이라는 것은 인연을 통해서 나를 유도해 갑니다. 가는 데 있어서 그 동기가 따르게 되고 방향이 제시 되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향을 잡으려면 ‘내가 방향을 잡으려 하니 그 동기를 일으켜 주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모순과 고충이 벌어집니다. 사회가 그렇게 될 때는 사회의 고충이요, 국가가 그렇게 되면 국가의 고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 세계를 호령한다고 해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고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통일교회가 하는 일이 천리(天理)라고 자랑하더라도 통일교회의 원칙적인 노선에 부합되고 일치되지 못하면 고립되는 것입니다. 그 고립된 자리에서 자기를 수정하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게 될 때는 친구도 부모도 전부 다 떠나는 것입니다. 본래 망하는 자리는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망할 때 하나님도 안 계셨습니다.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참부모도 잃어버리고, 참된 종족․민족․국가․세계를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결국 내 생명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흥하는 자리는 다 찾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을 놓고 보면, 악은 망하는 자리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자리이므로 가지 말아야 하며, 선은 잃은 것을 다 찾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나쁜 행동을 할 때에는 뒤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양심이 나를 떠나는 것입니다. 양심이 가책을 받으면 ‘야 이놈아, 나 떠난다. 떠난 다음에 너는 나하고 상관없다.’라고 하며 양심이 떠납니다. 이와 같이 양심을 잃어버리는 자리에 서면 망합니다.

선을 중심삼고는 망하는 자리가 곧 흥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반대하면 무한한 힘이 찾아옵니다. 나라가 흥하는 자리라면 아무리 내가 죽게 될지라도 가야 됩니다. 천지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흥하는 것이요, 전부 다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으면 천지가 찾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주류에 접하라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도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느냐? 그것은 바로 ‘역사의 주류에 접하라’는 것입니다. 이 인연이 세계를 창건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그 세계를 창건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궤도에 따라 돌고 있습니다. 천만 바퀴를 돌고 돌아도 거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궤도에 있기 때문에 태양도 돌며 지구도 돌게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의 인연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인연은 큰 것입니다. 여기 우리들은 6천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본연의 고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목적이 일치하여 모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원리는 무엇을 알려주는 것이냐? 본연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인연을 가졌느냐? 동기의 인연과 출발의 인연이 같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는 도중에 사람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신 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인 인간을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의 이념에서 볼 때 주체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생각을 중심삼고도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것을 선언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목적적인 실체로 지었습니다. 목적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모든 만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물같이 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만우주가 결속된 자체와 하나님이 완전히 결속되어야 했던 것이 인간과 하나님의 근본 인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적인 인연 가운데 서지 못하고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셨느냐? 모든 출발의 동기 자체가 사람으로 되어 있고, 그 창조목적 자체도 사람에 귀결되어 있는데, 그런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떻게 되었느냐? 타락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다가 실수하면 그 실수한 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말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일하다 실수를 했다면 그것도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생각한 사람이 책임지고, 실행한 사람이 있으면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사람을 창조했고, 그것이 하나님이 이상 했던 창조물이라 할 때 하나님이 이상 했던 창조물이 안 됐다고 해서 그 실수를 창조물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조물이 변화가 되어 원하던 것이 안 됐다고 해서 그 물건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책임져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원하셨던 하나님은 슬픔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슬픔의 하나님이 되셨으니, 하나님의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않으면 기쁨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과 나와는 반드시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기쁨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가 앞서서 나올진대 기쁨의 동기가 될 수 있느냐?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야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슬픔의 관문을 통과해야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슬픔의 기점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출발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가는 길은 역사적인 슬픔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타락한 인생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기쁨은 선의 목적인 창조이상 실현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그 기쁨의 요건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슬픔의 요건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연결되어 인류가 비운을 당하였던 이 슬픔의 요건을 파고 들어가서 해체해야 됩니다. 그래서 비통할 때는 ‘하나님의 슬픔이 이랬구나!’ 하고 느껴야 됩니다.

이 슬픔은 하나님 자체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스스로는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야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슬픔이 시작됐기 때문에 인간이 선두에서 이 슬픔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슬픔에서 벗어나실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의 위대성

그러면 이 땅 위에서 도의 길을 책임져 왔던 도인들과, 앞으로 끝날에 오시는 주님이 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 그들도 땅 위에서 기쁨으로 출발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만민에게 주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과 일치된 가운데 역사 과정의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던 슬픔, 즉 하나님을 슬프게 했던 그 슬픔의 동기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폭발적인 동기를 찾아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슬프게 한 것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아 역사를 붙들고 새롭게 출발하는 세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슬픔을 제거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된 힘은 그 어떤 악의 세력들이 합하는 힘보다 강한 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새로운 폭발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이니 여기에 태풍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길을 따라 나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소망의 기점은 소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고개를 통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입장에 서 계시기 때문에 그 슬픔의 길을 우리도 가야 됩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잘먹고 잘살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은 우리와 근본이 다르고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부터 싹트느냐? 어떤 국가가 흥할 수 있는 동기는 어디서부터 생기는가 보십시오. 문예부흥이 어떻게 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새로운 이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류사관을 세우는 데 있어서 모체가 될 수 있는 동기에 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동기에 접했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문화적인 간격을 메우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때 부정하는 그 기준이 부정된 외적인 환경보다도 더 강하게 될 때는, 그 외적인 환경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문예부흥이 출발한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슬픔을 풀지 아니하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타락한 이래 지금까지 슬픈 역사를 엮어 나왔기 때문에, 슬픈 역사의 모든 인연을 직접 찾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로부터 6천년 역사에서 그 인연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슬픔이 있으면 다 싫다고 도망갑니다. 그 어떠한 슬픈 내용의 사연보다도 더 처참한 하나님의 슬픔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세상 같으면 슬픈 일이 있으면 전부 다 회피하고 도망가지만, 통일교회의 원리는 이 슬픈 곳을 지나가고자 하는 것이 모체입니다. 세상에서는 슬픈 일이 있으면 전부 피해 가려고 하는데 원래 인간은 그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슬픔을 알면 알수록 실제에 있어서의 통일교회는 강력한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비참한 내용을 알면 알수록 그것을 풀려고 하는 힘의 원천은 무한히 폭발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동기가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지닌 위대한 힘입니다.

복귀의 길은 슬픔의 길임을 망각하지 말자

그러니 우리는 먼저 슬픈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슬프신 하나님, 슬픔의 대왕이 되신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 그 슬픔을 밟고 올라설 때 내 마음에 강한 기쁨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그때에 새로이 맞이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쓴 것만을 먹다가 단것을 조금만 먹어도 굉장히 달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 대해서 무엇을 원하실 것이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고통을 먼저 느껴 가지고 아들의 위치에 서서 복귀노정을 걸어 나간다면, 그 본향의 폭발적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은 부끄러움 없는 한 날을 중심으로 사랑의 역사를 베푸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본연의 순수한 입장에서 슬픈 고비 길을 밟고 올라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보다, 태산이 흔들리고 뼈와 살과 세포가 약동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기준이 있습니다. 동기를 들고 나온 그 자리는 사탄이 절대적으로 침범할 수 없는 완전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완전한 복귀의 기운이 우러나는 기점과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슬픔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슬픔의 장벽을 헤치고 올라가야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그 슬픔을 자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 슬픔의 경계선권 내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되면 기쁨과는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인연의 주체인 하나님의 슬픔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슬픔을 품은 아들딸로, 슬픔의 역사를 엮어 나온 우리들은 지금까지 슬픈 길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개인적으로 맺힌 장벽, 국가적 세계적으로 맺힌 장벽을 타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것을 망각하고, 개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종족의 담을 헐어 종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 망하는 것이요, 종족은 민족에 대한 모든 슬픔의 요건을 제거시키기 위한 그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국가․세계․천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노정에는 슬픔의 길이 첩첩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아 나온 이유

지금까지 우리들이 싸워 나온 전쟁은 나라에 대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에 대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나라에 대해 싸우면서도 번번이 몰리고 졌습니다. 지는 것을 꾹 참고 극복해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더 큰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 밟혀도 가만히 있어라.’ 한 것입니다. 이렇게 못난 짓을 해 나온 것은 사랑을 중심한 싸움을 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참았던 것이며, 마지막 결판의 마당에 책임질 수 있는 때를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보하면 양보할수록 그런 내적인 모든 힘을 투입시켜 가지고 어느 한 기회에 한꺼번에 터뜨려 버릴 수 있는 길을 다짐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몰리고 쫓긴 것은 그 이후에 올 수 있는 하나의 국가적인 조건, 혹은 더 넓은 분야의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에 통일교인들은 ‘예전에 그랬었지. 예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싫다.’ 하면서 전부 주저앉아 있습니다. 때가 와서 실제로 세계적인 싸움을 해야 할 판인데도 불구하고, 옛날 동네 싸움하던 것만 생각하고 ‘아이구, 그때가 좋았지.’ 이러고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해요. 그러한 여러분들 뒤에는 국가도 있지 않고, 세계도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의 모든 장벽을 헐어 버려야 됩니다. 개인의 슬픔보다 가정의 슬픔을 제거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고,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종족을 세워서 민족을 구해야 하고,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국가를 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삼천만이 전부 희생 되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을 요구하느냐? 개인적인 승리를 요구합니다. 개인적인 승리를 요구하는 것은 가정적인 승리를 원하기 때문이고, 가정적인 승리를 바라는 것은 종족적인 승리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종족과 민족과 국가의 승리를 바라는 것은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하늘의 섭리가 바쁜 것입니다.

세계복귀를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한없이 슬픈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으로 함께 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으로 출발한 역사를 짊어지고 복귀를 향하여 개인적인 슬픔, 가정적인 슬픔, 종족적인 슬픔, 민족적인 슬픔, 국가적인 슬픔, 세계적인 슬픔, 천주적인 슬픔을 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려면, 온 세계에 벌어져 있는 슬픔의 요소를 전부 없애야 하는데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 그 책임을 미국이 못 지면 한국이 져야 되겠습니다.

오늘날의 월남전쟁을 비롯한 세계의 심각한 사건을 중심삼고 미국 국민의 여론이 뭐 어쩌고저쩌고 한다고 해서 주권자가 후퇴하면 망합니다. 세계는 어디로 가느냐? 인류역사가 후퇴한 뒤에 어떤 방향으로 수습될 것이냐?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그때는 정말 망합니다. 소련 공산당도 그렇지 못하면 망합니다.

그러면 흥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가시는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세계적인 모든 슬픔을 품고 세계를 대신해 자기들이 상처를 받고, 세계적인 슬픔을 책임지고 죽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개의치 않고 나설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민족이 설 땅이 없어 세계에 흩어지게 되더라도 그 민족이 남긴 사상이 남아 있는 한 그 사상으로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천운이 열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민족 문화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에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라고 권위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슬픔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민족이 못 되면, 이 민족의 주권과 소망은 상실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 아무리 국가의 주권을 갖지 못하는 처참한 자리에 있더라도, 거기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세계의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국민성을 지니고 있으면 그 민족은 승리의 세계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한 승리의 세계를 개인이 고대하는 것이고, 가정이 고대하는 것이고, 종족․민족․국가․세계가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외로운 목자의 생활을 하더라도, 혹은 방랑하는 종족이 되어 몰림을 받으면서 슬프고 한스런 생활을 하더라도 앞으로의 슬픔의 세계를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천년만년 축복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은 결국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 문화도 포기하고 민족의 주권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잃어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 편협적인 것과는 절연해야 합니다. 그런 관(觀)을 가진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는 기필코 어느 한 날에 결정적인 때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아이고,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죽게 되었다. 제자들이 배반해서 죽게 되었다.’ 혹은 ‘온 인류를 대표한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 못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늘땅이 책임을 못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임은 하늘과 땅의 책임이요, 한 시대만의 책임이 아니라 역사적인 책임입니다. 하늘땅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외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책임을 다 저버리고 다시 닦으셨으니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땅이 짊어진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마 26:39) 할 때의 이 기도의 뜻은 주어진 한계 내의 행복을 고대한 것이 아니라, 한 생애권 내에서 누구보다도 세계복귀를 바라는 마음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 고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보면 예수님의 뜻은 어떠한 한계권 내에서 고대하고 싶어 하는 뜻이지만 하나님은 그 한계선을 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세계를 염려하시는 아버지를 보게 될 때, 그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 세계로 가야 할 고난의 심정을 품었음을 알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예수님은 절실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냐? 세계적인 복귀입니다. 세계를 살리려 했는데 죽음이 가로놓여 못가게 되었기에 ‘내가 못가더라도 후대 사람이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인연을 맺어 주겠다.’고 하는 선포식이며 선언식을 한 곳이 바로 십자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면 패자의 입장에 섰지만, 하나님의 심정의 주체가 되어 고난과 슬픔을 점령하는 제일인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슬픔을 점령할 수 있었던 기준이 무엇이냐?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출발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는 동기의 인연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슬픔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냐? 하나의 방향, 해방과 통일의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목적이 둘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추구하는 그 길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확실히 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의 기점을 같이해야지 이것을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도 그런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쩌면 갈라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그 기준이 맞지 않고는 함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 드려야 할 통일교인

모든 것은 원리대로 되어 있으니, 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시작과 중간과 끝이 3점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섭리는 동기와 목적이 직선상에 있습니다. 직선의 한 중심을 현재로 보면 왼쪽은 과거요, 오른쪽은 미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가 과거를 움직일 수 있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고, 이 두 세계의 힘을 통합할 수 있어야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여러분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기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기가 슬픔이었기에 기쁜 역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픈 역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출발이 슬펐다 해도 언젠가는 이 슬픔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 슬픔이 끝나려면 여러분의 신앙이나 생활하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나아야 됩니다. 이 슬픈 세계의 멍에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지만 이것이 풀려지는 날에는 해방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각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님이 6천년 동안 품어 오신 원한과 슬픔의 심정을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통감할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6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슬픔을 여러분 일신에 가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6천년 동안이나 이어 나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자의 인연, 즉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슬픔은 아들의 슬픔이 되는 것이요, 아들의 슬픔은 아버지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기쁨은 아들의 기쁨이요, 아들의 기쁨은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슬픈 아버지가 가는 길에 앞서서 우리가 슬픈 길을 수습해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민족을 해방해야 되는 것이고, 아시아를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뜻 앞에 해방시키고 미국을 해방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외의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제일 먼저 피맺힌 하나님의 슬픔을 풀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현재 시점에 있는 우리는 지금 어떠냐? 통일교인들은 동기와 목적을 가진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안 가는 것은 왜 그럽니까? 거꾸로 되길 바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동기를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원인을 찾고 인연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슬펐던 인연을 찾고 슬픈 인연을 찾아가는 목적을 이루어야겠습니다. 그것을 우리 통일교인들이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은 불쌍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타락한 세상에서 선을 찾아가는 길은 슬픈 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기 그렇지 않은 선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내에 자리잡고 앉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짜’입니다. 자기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이고 뭣이고 적당히 삽시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을 가만히 살펴보면 가짜가 많습니다. 요전에 판매대원에게 돈을 준다고 하니까, 그 돈을 중심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짜입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이면 그만한 사람밖에 못 됩니다. ‘이것은 내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활동한 것의 몇 곱절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공적인 신뢰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것을 알고 이런 생각으로 활동을 해야지, ‘요거 하면 얼마나 돈을 버느냐?’ 하는 생각은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활동이 힘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병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까는 두 사람만 남겨 놓고 전부 다 약을 먹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인연맺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는 길은 슬픔의 길입니다. 또한 그 길은 어렵고 위험한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넘게 될 때는 지난 일이 얼마나 생각나겠습니까? 언제나 생각날 것입니다.

복귀의 길에는 모두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잠잘 집이 있고 먹을 것이 많으면 그것을 가지고 우쭐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것이 대부분 작전상 필요한 것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총애 받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개인․가정․사회를 수습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수습해 가지고 세계로 넓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가야만 더 큰 실천의 터전이 생기는 것이요, 불쾌한 마음이 생기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그런 마음을 갖고 일하면 낙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리고 우리의 인연이라고 했으니, 우리끼리는 특히 느끼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아내도 필요한 것이요, 남편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 젊은이들도 필요한 것이요, 늙은이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민의 여론이야 어쨌든 공통적인 꼴을 갖추는 일을 해 나왔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필요 없다고 했다가는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을 전부 다 외면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나라의 국민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이 많은 사람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되면 그 민족의 전통성을 중심삼고 볼 때, 민족성을 팔아먹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정합니다. 인륜도덕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인륜을 부정할 때는 끝날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런 현재의 사조에 장단을 맞춰 춤춰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진실로 영원히 긍정할 수 있는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뜻에는 나이 많은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 많은 사람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을 중심해서 그런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얘기해 준 것이 사실이라면 하여간 죽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남아지는 날에는 우리 식구들 전부 다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나이 많은 사람들도 전부 필요하단 말입니다. 젊은 사람들 방에 들어가 보면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이 선생님의 이맛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래에 정신이 해이해진 것 같아서 선생님이 가끔 아는 것도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나이가 많아 기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중요시하지 않았다가는 그 민족정신이 흐려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사랑하는 방법

우리가 모인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는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계도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전체가 나를 중심삼고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움직이려면 누구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는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데는 아기도 필요하고, 어른도 필요하고, 아들도 딸도 다 필요합니다. 하나의 종족을 중심삼고 다 필요합니다.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즉 감옥에 있는 죄인도 필요한 것이고 죽어가는 사람도 그 세계에서는 다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하자.’ 이것이 하늘 가는 길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나서 자기 가정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교육 받을 전통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념으로 살아야 합니다. 밥을 먹더라도 동네에 밥을 굶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굶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고 난 연후에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여러분이 보따리에 여러 가지를 넣어서 가져오면 선생님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공의의 뜻을 중심삼고 생활했습니다.

그 이상 험한 자리에서 학문을 추구하고, 죽음의 자리에서도 자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하늘이 살려 주는 것입니다. 또 몸부림치면서 ‘선의 주인공이여, 선의 본향이여, 선의 그날이여, 어서 와서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르짖는 그 마음에 하늘이 함께하십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선생님을 자기 중심삼고 대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선생님을 사모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사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받는 천지간에도 서로 맞지 않고는 사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민족을 저버리고 한국에 와서 한국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들 역시 대견하게도 하나님의 뜻을 품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자꾸 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가면 갈수록 사랑의 보따리는 자기 뒤에 태산같이 끌려옵니다.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가 서로 뜻이 통할 때 서로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 심정은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으니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이렇게 몸부림치는 심정에 사무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 그 뒤에는 위대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일시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생각하지 않아도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경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다져 온 이 터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기도에 공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고, 또 기도하는 사람들을 앞으로 붙들어 줄 수 있는 개인적인 발판이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획기적으로 뜻을 이룬 일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야 할 우리

여러분들은 사랑이 식어졌다면 누가 재교육을 시켜야 하느냐?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슬픔을 망각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아들입니다.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이나 지금 우리는 그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실감이 나요, 안 나요? 아버지가 수고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왜 수고하시는지를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아버지가 가는 길은 개인이 가는 길이 아니고 가정을 지나서 민족․국가․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을 품기 전에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품기 전에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고는 민족을 품을 수 없습니다. 또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고는 자기 가정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노정을 가는 데에 있어 우리들은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놓고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개인이지만 통일교회 하면 전체를 말합니다. 이러한 전체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오랫동안 수많은 전쟁과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들 사이의 역사적인 담을 헐어 가지고 상봉한 인연이 통일교회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심판을 받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막힌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우고 싸워서 남아진 입장입니다. 이제 이 남아진 무리들이 제2차 작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작전이 뭐냐? 그 작전은 나라와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 도상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하고 식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인연을 규명한 우리의 인연이 순수한 인연임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확실히 알고 나면 죽을 새가 있겠어요? 돈은 아무리 많더라도 싫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벌려면 통일교회가 세계에서 일등이 되도록 벌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길이 생겼으니 두 다리로 버티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이 싫어하는 일이 있더라도 과감히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벌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위하고 국가를 위해 쓸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하여 실적을 거두어야겠습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여러분의 고달픔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 고난을 이겨내면 하늘의 영광과 자기와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인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람의 눈은 보게 되어 있고, 코는 호흡하게 되어 있고, 입은 먹게 되어 있습니다. 다 그렇게 인연 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인연의 세계를 찾아 세워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중심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아버님, 슬프디 슬픈 당신의 심정을 중심으로 이 천지간에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으로 서로 상봉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얼마나 고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에는 너무나 천박한 모습들이옵니다. 거룩하고 놀라운 당신의 이름을 무분별하게 ‘아버지! 아버지!’ 불렀던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를 알지 못하던 시절에 목이 메어 아버지를 부를 때와 마찬가지의 자리로 인정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장성한 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높고, 귀하고, 거룩한 불멸의 꽃으로 피어오를 수 있는 그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이름 가운데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당신의 실체가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자식을 사랑하고 싶고, 자식을 품고 싶은 마음으로 슬픈 마음을 달래시며 영계를 배후로 하여 눈물지어 나오신 아버지시라는 것을 알아, 그 모습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정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거룩한 자리, 역사의 한의 고개를 넘어오기에 수고한 아들을 상봉하는 자리에서 그 아들을 대하여 ‘아무개야!’ 부르는 아버님의 그 음성이 얼마나 자비롭고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벅찬 말씀인가를 알게 하시옵소서. 그 자리에서 저희와 아버지는 부자의 인연으로 상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통일이라는 이 두 글자가 얼마나 거룩하고 이상이 높은 글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처럼 높고 거룩한 통일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오늘 그 통일이 어디서부터 벌어진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의 마음속 심정의 깊은 골짜기에 속속들이 젖어 있는 슬픔의 갈피를 외면하지 않고 서로 나눌 수 있으며, 아버지의 그 마음 전체가 내 마음으로부터 위로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통일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의 고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해결한다는 소망에 벅찬 마음이 그 슬픈 마음보다도 커야만 그 자리에서 통일의 인연이 싹트고 인연은 맺어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지금껏 몰랐나이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에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시옵소서. 또한 통일을 위한 하늘의 수고도 비참하였지만, 통일교회가 남길 수 있는 인연의 터전도 비참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십여 성상의 역사의 인연을 남긴 통일교회이지만 그 비참한 역사의 배후에는 수천년 역사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의 지금까지 나타난 역사를 더듬는 사람보다 그 배후에 깊이깊이 숨어 있는 역사를 느끼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통일교인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현실에 합류해서 통일교회의 이름만으로 움직이는 그런 통일교인이 아니라,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참고 나온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서 통일교회의 소망을 지니고 통일교회와 인연을 가진 교인들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인들보다도 앞서 가야 할 것이 현재의 시점인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서 알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사오니, 그 앎이 끝날에 나를 심판한다는 것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상 이 인연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영계에서 통일교회의 가치를 알고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온갖 충성을 다하여 보호하고 협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상 사람들의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지상의 사람들은 너무나 미약하고 부족한 철부지들이옵니다. 그들이 바라 나온 소망의 실체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도리어 그들 앞에 슬픔의 조건을 넘겨 씌우는 두려운 자리에 서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연의 권위와 본연의 자세를 갖춘 당신의 아들딸들이 된다면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은사가 언제나 저희 가운데 임할 것이요, 아버지의 자비와 아버지의 권위 그리고 아버지의 거룩한 음성이 저희 생활 가운데 넘칠 것이로되, 그러지 못하는 저희들의 움직임을 당신이 긍휼히 보아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슬픔을 상속 받아 기쁨의 인연을 폭발시킬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을 바라볼 때, 이 민족에게 슬픈 사연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천리반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삼천리반도에 슬픔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내․외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내적인 면에 있어서는 정신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아버님의 슬픔과 접하고, 외적인 문제는 거짓된 물질세계의 슬픔과 접하여, 내외의 모든 슬픔을 일소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충신 열녀가 어디 있으며, 효자 효녀가 어디 있습니까? 내적인 입장에 있는 슬픔의 아버지를 위로하고 우리 앞에서 슬픈 곡절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죽음 길을 책임진 자들이 충신이요 열녀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님의 내적인 슬픔과 세상의 외적인 슬픔 그 가운데 서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땅을 부정할 수 있는 충신․열녀․효자․효녀가 되게 하소서. 현재의 슬픈 세계를 부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당신의 참다운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는 인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은 개인의 십자가, 가정의 십자가, 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십자가를 전부 짊어졌기 때문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서로 위로하고 서로 나누어야 할 우리들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이 거룩한 책임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용사인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놀라운 이 천적인 인연을 완전히 상속 받고 앞으로 다가올 희망의 모든 권한을 상속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 당신의 제단에 모아 주시옵소서. 아버님을 흠모하고 기도하는 정성된 모든 마음 앞에 천배 만배 갚아 주시옵고, 공의의 목적을 따라서 죽음의 길, 희생의 길을 다짐한 자들이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언제나 그들 편에 서시어서 민족의 정기와 교회의 전통적인 내용을 남기는 데 있어서 하늘이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높고 귀하심이 저희 생활과 저희 전체에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부탁하올 때,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고린도전서 13:11 ― 13

<기 도(Ⅰ)>

오늘은 이달 들어 세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하늘의 엄숙한 과제를 맡은 개체 개체로서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당신의 품에 안길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때, 엄청난 사명 앞에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무책임하였던 저희 자신들임을 여실히 드러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세월은 슬픔을 붙안고 흘러가는데 저희들마저 그 과정에 끌려 들어가 수많은 날들을 헛되이 보낸 것을 다시 아버지 앞에 회개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은 당신께서 복을 주실 수 있는 거룩한 성일이오매, 당신의 높고 귀하신 자비와 사랑을 추구하는 만민이 당신의 존전에 모여 있사옵니다. 이 가운데는 당신의 심정을 통하여 높고 귀하신 그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시대적인 사명을 간구하면서 하늘이 맡기신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엎드려 있는 자녀들도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가정과 수많은 민족이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었사온데, 개인이, 가정이, 종족이, 민족이 하나되지 못한 실상을 바라보시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서러우시겠는가를 저희들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수많은 무리가 당신 앞에 부복하기를 바라셨사오나 그럴 수 있는 무리가 없기 때문에 소수의 무리라도 그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 주기를 바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가정들이 그러한 자리에 인연되기를 바라오나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이 세계에서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벌거숭이와 같이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부족한 몸들이옵니다. 과거도 그러하였거니와 현재도 그러하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소망의 일념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자체를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허물을 가려 주시옵고,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베풀어 주시사 저희의 부족한 것을 충족하게 해 주시옵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세계에는 수많은 모임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 보잘것없는 환경 가운데 있는 부족한 자녀들이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구하시는 기준을 갖고 아버지를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부족한 자신을 부여안고 진정 깊은 마음의 흐름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회개하고자 하오니, 저희의 마음을 움직여 아버지의 사정의 인연을 갈구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무한한 권위와 능력으로 이 땅과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해 나왔사오나, 저희들은 아버지의 능력보다도 아버지의 자비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말씀을 회고하면서 아버지라 부를 때, 아버지 심정의 품에 안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폭발될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 주시옵고 심정의 변화를 일으켜 주시어서, 저희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취해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모습을 진정 원하고 있사오니, 아버님, 여기 찾아와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정이 저희의 사정이 되고, 당신의 소원이 저희의 소원이 되어 당신의 심정과 저희의 심정이 일치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슬픔에 처하시면 저희도 슬퍼하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면 저희도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을 위주로 하여 당신의 상대 되는 실체로서 당신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는 모습을 갈구하며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일체의 모든 것을 제거시키시어 거기에 완전히 부합될 수 있고, 흡수될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일으키시사 아버지의 아들 된 자각과 딸 된 자각을 할 수 있도록 이 시간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뜻 앞에 세움받은 당신의 자녀들로서 부끄럽지 않는 하늘의 권위를 갖고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 통일교단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저희들이 가진 것을 진정으로 감사 드립니다. 하나로 통일되는 은사를 그 누가 고대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겠고, 일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겠고, 모든 움직임이 아버지 앞에 통일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 일체의 모든 것이 아버지와 동기부터 결과까지 연결된 자리에서 저희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을 기르신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저희들이 불쌍한 자리에 설 때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하시며, 저희들이 외롭고 처참한 자리에 설 때 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고 처참하신지를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몇천 번 몇만 번도 마음으로 위로하시기를 개의치 않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위신과 체면을 망각하시고 저희를 붙들고 애걸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통하여 나온 저희였습니다.

부디부디 망하지 말라고, 부디부디 약해지지 말라고, 부디부디 최후까지 남아지라고 하시는 권고를 받고 자란 저희 자신들이 오늘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려 아버지의 분부에 합당하고 아버지의 분부에 기뻐할 수 있는 결실의 실체가 되었는가 생각하게 될 때, 이 또한 아버지가 찾아오셨던 그 사연이 저희 앞에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조건이 된 것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의 요건을 주기 위해 찾아오셨사오나 저희들이 책임하지 못한 연고로 아버지를 슬픔의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고, 원통한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이 시간 깊이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소원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이 땅 위에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으며, 새로운 가정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을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당신의 소원을 붙들고 내심적인 깊은 골짜기에 파묻혀서 당신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그와 같은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체면과 위신을 세워 드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각자가 느끼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남한 각지에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때와 하늘의 벅찬 사명의 짐을 짊어지고 몸부림치는 통일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의 일에는 밤이 없고 쉬임이 없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들의 마음 몸 위에 당신의 은사를 쉬임 없이 베푸시어서 그들을 다시 일깨워 주시옵고, 새로운 시대의 역군으로서 당당코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리어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아버지의 권고와 위로가 같이하게 해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직접 지도하시어서 그 나라와 그 민족 앞에 맡기신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뭇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은 죽든지 살든지 뜻을 위해 태어났으니 뜻을 위해 살고 뜻을 위해 죽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신념에 가득 차 원수를 갚고 승리를 획득하고 말겠다는 결의에 불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부족한 무릎들을 모았사오니 아버지의 위로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 주시옵고, 이 자리를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권한을 나타내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 가운데 하늘 앞에 용납될 수 없는 쓴 뿌리가 남아 있거들랑 빼 버리시옵고 제거시키시옵소서. 아버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옵고 그 전체를 주관하시어서 사탄권 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첫 시간부터 끝 시간까지 당신만이 주관하고 당신만이 지도하여 주시옵길를 바라오며, 일체의 소원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하고 저희 전체가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남아진 은사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자비의 아버님, 이 자리가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지성소가 되도록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에 접하고, 아버지의 사정에 어리고, 아버지의 소원에 화하여 당신만이 주관할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사(私)된 것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자기 나름의 탈을 쓰고 자기 나름의 주의 주장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 굶주린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저희의 마음에 끝없는 사모하는 심정, 한없는 흠모의 심정이 온전히 그 자체로 화하여 아버지 마음속 깊이 흡수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처해 있는 모습은 부모 잃은 어린애와 같이 처참하고 불쌍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어머니 아버지를 향하여 울부짖는 애절한 절규가 저희 마음속으로부터 폭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환경을 박차기 위하여 몸에 상처를 입은 것도 잊어버리고 발버둥치면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그 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 됨을 스스로 증거할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달려와 품으면서 내 아들 내 딸이라 하시며 목에 목을 대고 눈물을 흘리며 붙안아 줄 수 있는, 그러한 인연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세상의 어떠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옵고,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니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천정의 인연이 그리워서 나왔사옵니다. 저희들은 여기에 어떤 사정의 뿌리를 박고 남아 있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정의 인연과 사정을 중심삼고 뽑을래야 뽑을 수 없고 아버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뿌리의 인연을 추구하기 위해 나왔사옵니다. 당신이 동할 때에 동하고 정할 때에 정하는 자체가 되기 위하여 나왔사오니, 부디부디 당신은 뿌리가 되시고 저희들은 줄기와 가지와 잎이 되게 하시어 만국을 소생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힘과 동력과 맥박을 대신 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든 아버지와 어머니 품에 안긴 자식들은 행복한 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살벌하고, 아무리 죽음의 준령에서 하루하루 생활한다 할지라도, 부모의 품에 안겨 잠든 어린아이는 평화의 심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악한 세상, 혼란된 세상, 사망의 물결이 출렁이는 세상 가운데 사는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갈래야 갈 수 없는 몸들이었사오나,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그 한 시간만이라도 동경하고 흠모하고 사모하여 열의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이 시간 분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둔하고 목석같은 이 인간에게 아버지의 마음에 화할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비의 마음으로 저희를 성별하시어 뼛골과 심정과 세포 세포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감정이 아버지 앞에 화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되게 하시어, 놀라우신 당신과 저희들이 일체이옴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높으심을 자랑할 수 있고, 아버지의 귀하심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땅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사옵고, 또 수많은 교단이 아버지 앞에 예배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하나의 모습을 갖추고 나선 저희는 어린아이의 벌거숭이 몸 그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심정을 지켜 나온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 주실 수 있는 적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소원이 없사오니 여기에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서 인연 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은 일찍이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외로운 환경에 처할 적마다 가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고, 가야 할 태산준령의 산길이 남아 있다고 권고하시던 당신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심정을 이들에게 상속하여 주시옵고, 그 환경을 뜻 앞에서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무리 외로울지라도 당신을 모셔 놓고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가 불쌍한 자리에 처할지라도 당신과 더불어 당신의 뜻을 붙들고 당신의 권위와 인연을 가지고 서게 될 때는 저희들이 슬픈 자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땅 위에서 몰리고 쫓기고 밟히고 배척당하더라도 하늘이 세워 주게 될 때는 천상천하에 그 누구도 그 영광의 가치와 터전 앞에 머리 숙인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거된 사실을 통하여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인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으로 부르며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저희가 마음으로 모시게 하여 주시옵고, 심정으로 인연맺어 나오는 그 인연을 저희 자체에서 하나의 결실로 맺기 위해서, 체휼적인 실체로서 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심정의 제물로 바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이 자리에 주축이 되시고 중심이 되시옵소서. 그 누구도 아버지의 인연을 통할 자가 없게 하시고, 그 누구도 아버지의 사연을 그리워할 자가 없게 하시옵소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만이, 아버지와 관계가 있는 자만이 이 자리에 있게 하시어서 당신의 분부하신 말씀을 중심삼고 영원히 생명의 주체성을 갖추게 하여 주옵시고, 새로운 생애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소망의 원천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 아버지를 모신 가운데 말씀을 나누고자 하옵니다.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서로가 하나의 주체요, 서로서로가 하나의 동기요 식구이기에 하늘의 사정을 중심 삼아서 일체화된 마음으로 이 한 시간을 봉헌하고자 하오니, 친히 군림하시고 좌정하셔서 당신이 뜻하시는 경륜의 법도와 치리의 은사를 여기에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나타난 은사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 위에도 인연되게 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과 천상세계에까지 인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새 아침 광명한 환희의 빛발을 받으며 기뻐할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은사의 한 날을 맞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복귀의 주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복귀라는 말은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근거지를 떠났기 때문에 다시 그 근거지를 찾아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바라는 것

인류 시조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자녀로서 출발하였던들, 우리에게 복귀라는 명사는 필요 없는 것이요, 구원이라는 명사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사가 필요하게 된 것은 인류 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복귀의 운명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구원받아 본연의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이 지구상에는 어느 한 때 결정적인 하나의 기준을 결정지어 가지고 복귀의 사연을 전부 다 넘어 구원의 목적을 완결 지었다는 어떠한 한 개체, 한 가정, 한 종족, 한 민족, 한 국가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이상 그러기 전에는 천국은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는 길 앞에 그 이상의 세계가 등장할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오입니다. 이미 출발할 때부터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는 원천을 지니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낙망과 절망의 비운을 지니고 출발한 연고로, 종말도 반드시 그러한 결과로 거두어져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지만 소망하는 그 하나의 세계가 과연 이 역사시대 앞에 나타날 것이냐 할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인간이 출발을 그릇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역사를 안고 나가는 인간 앞에는 참의 기준을 온 세계적으로 갖춘 세계가 올 수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상,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생명을 지닌 새로운 사랑 등 이런 모든 것은 인류가 소망하는 역사 과정과 그대로 연결되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타나려면 역사 과정을 한 단계 청산 지어야 합니다. 청산 짓지 못하겠으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찾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러한 양면의 입장을 취해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이상세계가 오기 전에 심판이 와야 됩니다. 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인 사정과 인연을 그냥 그대로 품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흐르는 대로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박차고 뒤로 돌아서서 길을 피해 가는 사람이라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이상적인 출발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세상을 버려라.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라. 세상을 가까이하지 말라. 세상과 화하지 말라. 세상과 절단하라. 부정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각심(覺心)을 키우라.’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현재를 밀고 나갈 수 있고, 미래를 타개하고, 과거를 수습할 수 있는 이러한 각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교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흘러가는 역사 과정에서 그냥 그대로 이상세계를 맞이할 수 없는 비운에 처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권내에 서 있는 우리 개체들은 이 운명을 그냥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청산 짓든가 거슬러 올라가든가 해야 됩니다.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이런 운명 길을 개척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개척하는 데는 대번에 국가적으로 개척할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라는 것은 종족 기준을 넘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대번에 세계적으로 개척할 수 있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국가의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갈 수 있는 근본적인 기원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것은 세계가 있기 전에 국가가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기 전에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기 전에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전에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기 전에는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상천국을 그리는 종교인들이 구원이니 뭐니 하며 부르짖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다 개인의 구원 목적에 결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당도 개인 천당, 극락도 개인 극락을 추구해 나온 것이지, 가정천국․종족천국․국가천국․세계천국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천당이나 극락에 갈 수 없습니다. 개인을 구한다는 결정적인 완전한 기준을 마련해 가지고 역사시대에 전무후무한 하나의 기초가 결정될 수 있는 한 날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 비로소 새로운 인생으로서 출발하여 천국이나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표본이 나와야

오늘 가야 할 역사의 조류 가운데 처해 있는 내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마음 자세는 지극히 위대한 이념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계는 하나의 가정권을 형성하는 이상세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감정이 우리의 감정과 통할 수 있고, 세계의 사정이 우리의 호흡과 접할 수 있는 시대권 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리 외적인 기준과 외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지금 이 세계와 더불어는 이상세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의 역사적인 표본이 나와야 됩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대표적인 표본이 나와야 되고, 가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표본, 종족적 민족적, 나아가 국가 형태를 중심삼고 하나의 복귀된 입장에서 그 원칙에 설 수 있는 표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표본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이상세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즉 그 표본이라는 것은 뿌리가 되는 한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상에는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찌하여 왔다 갔느냐? 그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서 자의에 의해서 역사에 하나의 소원을 남기고 갔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운명이 그렇게 만든 것이냐? 만일 역사의 운명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면 그 선열들의 운세는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재판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자의에 의해서 왔다가 갈 때 어떤 공헌을 남겼다면 그것도 우리에게는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흘러가 버리고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표준은 예고에 의해서

그러면 어떠한 인연을 갖고 와야 하느냐? 천상의 인연을 갖고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귀의 사연을 필요로 하는 그 원칙에 관계맺은 존재로서 천상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이라야 오늘날 역사적인 소망의 세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공헌할 수 있고 그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탕감받게 됩니다. 아무리 그가 역사상에 남긴 공이 커서 오늘날 문화세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더라도 그 공헌 자체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내용은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가? 자체의 노력, 혹은 시대의 환경에서 빚어진 공(功)의 실적을 통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인연을 가져야 되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누구를 찾는가? 참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성현 중에도 참된 성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최고의 실체냐? 어느 것이 주류의 핵심이냐?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이 인간으로서 제1기준에 입각했느냐? 오늘날 학문이나 인륜도덕도 그러한 기준의 차원을 표상하고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적 기준이 이 땅 위에 아직까지 확정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목적은 아직까지 이 지구상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가 있고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도 아직까지 그런 목적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소망권에서 허덕이는 종족이 되었고, 민족과 국가가 되었고, 세계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문화세계가 창조하고 현대와 같은 문명권을 형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최고의 목적에는 아무런 공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인간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되느냐? 한 사람의 표준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적인 기준을 예고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하는 말씀도 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예고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 있나니, 그것은 인간 중에 최고의 표준형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사람은 이 철칙의 법도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사상입니다.

그 표본이 등장하게 될 때 이 지구상에는 비로소 개인적인 행복의 요건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출현은 물론이요 사회와 국가의 형성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천국이념으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의 내용을 초월한, 복귀의 인연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사정과 인연을 갖춘 사람이 와야만 비로소 지상에 천국이 현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체가 나오게 될 때 그 한 개체는 세계를 종합한 결실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는 이 표본을 모방해 가지고 민족사상이니 민족정기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 하나의 기준 앞에 몇 퍼센트 공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그 국가가 역사에 얼마만큼 남아지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는데 사랑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어떤 자리에 갖다 놓고 사랑하고 싶겠느냐 하게 될 때 하나님이 보시면서 ‘좋구나!’ 하고 그냥 구경만 하신다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일 가까운 곳에 인간을 갖다 놓고 사랑하셔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백성의 자리에 갖다 놓고 ‘나는 군왕이니 절대복종해라.’고 하시느냐? 아닙니다. 군왕과 백성의 입장은 너무나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 동네의 어른의 입장에서 사랑하시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에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랑 중에서도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의 제일 핵심 된 자리에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

인류의 조상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들딸이 못 되었으니 참다운 자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들 멋대로 짝을 이루어 아들딸을 또 낳게 되고 거기에서 종족이 생기고, 민족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고……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원칙적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평화의 세계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희망의 세계니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만하면 천상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행복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런 외적인 것은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조건은 될 수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결정되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을 가진 사람은 거기에 해당하는 비례적인 슬픔을 느낄 것이요, 비례적인 불만이 가슴 가운데 남아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할 때는 아들의 자리, 딸의 자리에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자인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는 실감이 나요? 실감이 나요, 안 나요? 틀림없는 아들딸이라는 실감이 나요? 아무리 실감을 하려 해도 실제적으로 느껴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있기는 한데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가 뭐냐? 아버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아버지를 놓고 아버지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효 중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가장 큰 불효입니다. 아무리 국가에서 효행상을 탄 아들딸이라고 해도 그 아버지 앞에서 한 번만이라도 ‘나는 아버지가 없다.’고 하게 되면 그것은 불효 중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최고의 불효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서 눈을 껌뻑거리고 계시는데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심판받을 날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심판받아야 됩니다. 누가 심판하느냐? 선생님이 심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심정의 하나님

오늘날 인류가 추구하는 표본적인 인간은 어떠한 인간이어야 하느냐? 하나님이 슬픔을 느끼는 것은 사랑의 실체적 상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실체적 상대인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아무리 배짱이 센 혁명적인 일국의 수령이라 하더라도 아들이 죽게 되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물이 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요? 갖추어진 분야와 환경이 넓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곱절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평민이 흘리는 눈물은 그 사람으로서 끝나는 것이지만, 중심적 인연을 갖춘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사연과 더불어 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의 치하에 있는 국민으로서 그 분의 슬픔에 동반하지 않는 사람은 반역자입니다.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일 것이냐? 하나님이 정녕 우리 인간과 부자의 관계에 서 계시는 하나님일진대 아담과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으리라고 해 놓으시고 관망만 하셨다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혁명해 버려야 됩니다. 혁명해 버린다는 말이 좀 안 된 말이긴 하지만….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염려했던 대로 되는구나. 조금만 더 해라.’ 했겠어요? 아닙니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모든 감각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그걸 따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고 피 흘리며 떨고 형용할 수 없는 애절한 안타까움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있을 때 구경만 했겠나 말입니다. 칼이 있으면 역사를 베고, 이 천하를 베어 잘라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는 자기 자신을 자탄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것을 기독교인들은 뱀이 속닥거려 가지고 따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원칙이 어떻게 되어 있는 줄도 모르는 얼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역사상의 그 누구보다도 처량하고 그 누구보다도 안타깝고 그 누구보다도 비참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심장이 폭발하는 듯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 시조를 보고 하나님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까지도 정성을 들여 천신만고 끝에 7대 독자를 낳아 애지중지 사랑하는데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잘 알 것입니다.

타락한 핏줄을 통해서 맺어진 인연도 다 동기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출발한 것입니다. 그 동기의 주체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여러분이 낳은 자식이 불한당이 될지 역적이 될지 간신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 해와, 그 아들딸은 천하의 어떠한 역사시대에서도 찾을 수 없는 대표자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사랑을 해도 몽땅 합니다. 인연도 깊은 심정으로 맺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인류 시조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더냐고 물을 때 그것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설명을 앞서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청년 남녀들이 사춘기를 넘어서 이성을 느끼는 것은 배워 가지고 그런 것입니까? 남성은 이래야 된다는 공식 과정을 거치고 무슨 대학 학부를 다녀 공부해 가지고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서로 사랑하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7대 독자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 이상입니다. 또 그 사랑은 천지의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사실을 막을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만큼 사랑하려고 하셨을까요? 사랑하는 것을 봤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최고의 사랑을 가진 종교라야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시조로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종지조상의 자리에 서 가지고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받은 사람이 있었느냐? 공자, 석가, 예수님도 못 받았습니다. 받으려다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이 사랑이란 말은 안 했습니다. 그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 생명이 생명으로서 영원히 하나님을 업고 넘어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그 사랑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사랑이란 말을 거쳐야 됩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 하는데, 선생님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했습니까?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는 사랑을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그렇지 않은 종교는 다 쓸데없는 종교입니다. 인륜도덕만을 주장하는 종교는 겉치레하는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기독교가 어떻게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하면, 사랑을 가르치는 동시에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나는 천주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나는 신랑이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자신 있게 외쳤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못되었다면,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사랑을 논위할 때 어떤 종교의 교리에도 없는 심정의 골수를 파고들어 가서 부자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설파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타락으로 인한 한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해원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주님은 이 종교를 흠모해 가지고 만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즉 사랑의 주체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창조 법도에 입각하여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했지만, 그럴 수 있었던 하나의 남성이 이 지구상에서 없어졌으니 다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남성이 없어졌으니 그것을 메울 수 있는 기틀을 가져 가지고 잃어버리기 전의 자리, 그 이상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독생자다.’라는 멋진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노릇 하는 허울 좋은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쓰이는 곳은 많지만 아버지라고 한다고 해서 다 아버지가 아닙니다. 진짜 사랑이란 심정의 골수에 어려 있는 사랑을 몽땅 퍼부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몽땅 갖고 나올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아들이 여러분과 손발이 달라서, 눈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본연의 사랑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한으로 되어 버린 것을 다 타파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지녀 비로소 천지간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사랑을 중심하고 만민을 구원할 메시아입니다. 즉 사랑의 구주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를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구주입니다. 또한 자녀의 자리를 복귀해 주는 주인공입니다. 이러한 분으로서 남성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남성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부를 찾던 과정에서 뜻과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다시 오겠다는 재림의 이상을 남기고 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남성을 찾는 복귀역사였습니다. 남성으로서 하늘 앞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에 치리될 수 있는 승리적인 표본, 그 기준을 맞춰 놓기 위한 사람들이 성인, 열사, 위인입니다. 거기에는 공자, 석가 등 많은 사람들이 포함 됩니다. 큰 일을 하려면 그 이면에 필요한 여건들을 갖추듯이 기독교가 세계적 기반을 닦는 데에 수많은 종교가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표본적인 하나의 남성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남자라는 동물은 세계를 한번 내 마음대로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라는 껍데기만 쓰면 다 그렇습니다. 여자들도 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지 마음은 그렇죠? 왜 그러겠습니까? 세계를 요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 자격이 없습니다.(중략)

여러분, 우주의 별들이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쉬지 않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충돌하지 않고 지금까지 안전하게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를 지으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표본적인 남성

선생님이 옛날 공산당들에게 잡혀가서 매를 맞을 때 그 채찍질이 무척 드세었지만 뻗대면서 아무리 맞아도 안 넘어가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고 때린다면 옥살박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매도 맞아 봤습니다. 그런 엄청난 힘을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요즈음 간판이나 울타리만 커도 으스대는 판국인데, 이런 분이 아버지라니 좋아서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아서 천년만년 사랑하고 사랑해도 그 연한이 짧습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한 하나님을 진짜 알고 나면 죽어도 감사, 살아도 감사, 봉사해도 감사, 어떻게 되든 감사하기만 합니다. 이 대우주를 당장이라도 주관할 수 있는 원동력의 주체의 권한을 알게 됐으니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서 소개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 눈을 뜨고 보니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잡아죽이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 지구성을 다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배포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배포 없이는, 세계를 전부 손아귀에 넣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상속을 해 줍니다. 왜냐하면 끝없이 사랑해 줄 수 있는 끊을 수 없는 특권적인 인연을 가진 실체로 화했기 때문입니다. 그 인연은 돈 가지고도 못 끊고 원자탄 가지고도 폭파시킬 수 없습니다. 그 누가 아무리 위협하고,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그분이 내 아버지다.’ 하는 사실을 부정하게는 못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표본적인 남성이 오는데 그는 어떤 사람이냐? 만우주를 치리(治理)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주류가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하나님 입회하에 결혼식을 했으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목사 혹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인간들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딸을 시집 장가보내 봤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아, 내가 알 수 있나? 하나님이….’ 하며 대답을 못합니다. 그들은 근본문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을 누가 결혼시켜 줬습니까? 사탄입니다. 사탄들이 잘 되었다 하면서 결혼시켜 줬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타락되었으니 완성한 하나의 남성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누가 동기가 되었느냐? 여자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지금까지 남성에게 유린당하는 슬픈 역사를 걸어온 것입니다. 원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여자가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찬성입니까, 반대입니까? 지금까지는 반대했더라도 이제부터는 찬성하고 나서야 합니다.

지금 무슨 미스 코리아니 미스 아메리카니 하고들 있습니다. 60년대에 들어와서 심화된 그런 운동은 미스터를 맞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런 섭리적인 내용을 알지만 기독교인들은 지금 이 섭리의 내용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미스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스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신부가 준비되어야 신랑이 올 게 아닙니까? 그렇지요? 세계적으로 훌륭한 색시들이 준비됐다 하는 시대가 되면 미스터가 오게 됩니다. 세계적인 미스터로 그분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각 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이니, 미륵불이니, 진인이니 하는 재림사상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등 레테르를 붙여서 보내는 미스터가 세계적인 미스터 진(眞)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오죽 좋겠습니까? 그분이 오시면 온 세계 남성들이 뜀뛰고 다니면서 찬양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비록 타락의 감투를 쓰고 나왔지만 그는 미스터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는 멋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껍질에만 일등 레테르가 붙으면 안 됩니다. 그 속에 일등 레테르가 붙어야 합니다. 그 레테르가 밖으로 보이면 알지만, 속에 있을 때는 누가 무슨 재주로 알 수 있겠습니까? 겉으로 나쁘다고 해서 속도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욕을 먹어 본 사람이 진짜 욕을 할 줄 압니다.

참다운 미스터가 등장할 때 ― 하나님의 웃음보따리가 터질 때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망해라, 망해라 하지만 통일교회는 절대 안 망합니다. 저번에는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 어떤 사람에게 통일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통일교회 뭐 어쩌고저쩌고 합디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그렇게 껄렁껄렁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려면 멋지게 하지 얼빠져 죽을 짓을 왜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선생님이 수십년 동안 이 일을 해 나오는데, 목사들이 눈에 불을 켜 가지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욕을 하는데 신사훈 같은 이는 통일교회를 ‘무시무시한 이단’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무시무시합니까? 말로도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보니 어느 한때 놀라긴 놀란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그들에게 밥을 달랬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선생님은 앞길이 바빠 그들과 공론할 사이도 없었습니다. ‘아이쿠, 저것들은 그저 싸움은 잘 해 가지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안 것입니다. 욕을 먹고 두드려 맞아 가면서 세계적 발판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세력과 권세를 가진 자라도 빼 버릴 수 없는 진가가 통일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자랑합니다. 기독교에서 처음으로 온 사람이나 목사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간이 서늘해져서 나가자빠질 정도입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라면 나쁘다는 것은 다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미스터가 되어야 해요. 남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그만한 배포도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오지 마십시오. 안 와도 괜찮습니다.

선생님이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전부 나오라고 하면 나오고, 땅 속에 들어가자 하면 들어가고, 산으로 올라가자 하면 올라갈 수 있어요? ‘아이고 나는 여자니까 그럴 수 없어요.’ 이래서 되겠습니까? 산에서만 싸우겠습니까? 바다 밑에서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산에서 싸우면 문제없이 승리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지무지한 훈련을 시키려고 작정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이러한 말씨가 기분 나쁘면 오지 마십시오. 이곳은 껄렁껄렁하게 눈치나 보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껄렁껄렁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사탄세계에나 있을 미꾸라지 같은 녀석들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 가 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나간 사람들은 선생님 때문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밉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기분 나쁜 때가 있었다구요. 그러나 기분 나쁘더라도 선생님이 참아야지 어떻게 합니까? 왜 선생님이 참느냐? 세계적인 미스터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인 미스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참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분이 와서 ‘이북에 김일성이 잡으러 가자.’ 한다면 가고 싶어요? 가겠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잘먹고 잘살고 콧노래까지 불러 가면서 갈 수 있는 자리라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그런 자리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입산수도는 속세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데서, 아주 고립된 자리에서, 남모르는 어려운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도의 훌륭한 본색이요, 본질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아가씨들 ‘내가 이만큼 생겼으면 어딜 가도 빠지지 않겠지.’ 하면서 뭐 거울을 들여다보고 어쩌고 하는데, 그런 사람 선생님에게 걸려들기만 해 보세요. 걸려만 들어 봐요! 이런 말이 섭섭하면 뛰쳐나가십시오.

그분이 청춘의 깃발을 들고 천하에 행차를 할 때는 천상세계와 만국의 존재란 존재는 전부가 환영해야 합니다. 공자도 예수도 전부 손 들고 환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웃음보따리가 터져서 ‘어허!’ 하고 기분 좋게 되어야 될 게 아닙니까? 하나님이 언제 한번 웃어 봤습니까?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죽은 아들딸이 살아나길 바라면서 부활이니 뭐니 하면서 나오셨는데, 죽은 자식 들여다보는 하나님이 어떻게 웃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타락하라고 제사를 지내도 타락하지 않을 수 있는 아들딸을 보아야 비로소 웃음 보따리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 미스터가 등장하면 하나님은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대주인이니 그분의 웃음보따리가 터지지 않으면 이 불운한 세상은 구제될 길이 없습니다. 인류의 부모이신 그분의 웃음보따리가 터져야만 자식이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내용을 터전으로 하여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주체적인 표본, 즉 표본적인 남성은 신랑입니다. 그런데 신랑 되신 미스터만 와서 되겠습니까? 그에 어울리는 한 여성이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남성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 세계적인 여성의 표준을 완성해야 됩니다.

부모로서의 구주가 나와야

이 땅 위에 하나의 남성이 출현하게 될 때에 하나의 여성도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성과 여성이 출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여성에서부터 타락해서 남성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그때에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 다시 찾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그 여성을 찾아야 비로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구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성적인 구주만 가지고는 완전 구원이 성사될 수 없습니다. 완전 복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역사가 진행되고 천지가 개벽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사건은 어떤 사건이겠느냐? 전쟁으로 세계가 통일되는 사건이 아니라 천지의 대운세에 따라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 받은 남성 앞에 하나의 여성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그 남성과 여성에게 결혼식을 해 주는 사건입니다. 그날이 천지가 개벽하는 날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는 거짓 부모의 혈통을 타고났습니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잘난, 무슨 대학의 학장이 되어 수많은 학생들이 ‘우리 스승님!’ 하면서 머리 숙이는 사람, ‘이만한 자세 같으면 되겠지.’ 하고 자기 나름대로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라도 근본을 파헤쳐 보면 전부가 사기(詐欺) 공장에서 박아 놓은 가짜 레테르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은 나라의 공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구주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완전한 구주가 못 되었으므로 새로운 구주가 나와야 됩니다. 무슨 구주가 나와야 되느냐? 예수님은 성령으로서의 구주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써는 구원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로서의 구주가 와야 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들이 거짓 부모의 혈통을 받고 났으니 참된 부모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기독교인이 들으면 또 이단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했지만,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다고 ‘어이쿠, 이단이구만!’ 합니다. 하지만 누가 이단인 줄 아세요? 우리는 벌써 팔단, 십단, 삼십육단 다 넘어가 가지고 수준이 다른데, 그들은 이제 일단 올라와 가지고 ‘저건 내가 배우지 않은 것이니 이단이다.’라고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적 수준으로 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하고 싸우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참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세계가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는 때가 되면 하나의 국가적인 선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그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맞겠다고 알뜰히 알뜰히 비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두 시간에 마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한 시간 만에 말씀 끝내는 것 봤어요? 뚜껑만 여는 데 한 시간이 넘어갔구만. 하지만 결론만 내리자면 5분이면 됩니다. 어때요? 결론만 내릴까요, 더 할까요? 좀 더 하죠?

한국을 제3이스라엘 선민으로

지금까지의 역사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민사상이 있습니다. 그러면 ‘택한 백성’ 즉 선민을 만들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선민은 천민(天民)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기분 나쁘겠지만 지금 인류는 악민(惡民)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 인류는 악민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에서 선민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악민을 수리하여 선민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악민 가운데서 선민사상이 나온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역사 과정에 선민사상을 가지고 나왔던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은 비참한 민족 같지만, 그 민족은 선민족입니다. 그 민족의 가슴을 헤쳐 보면 6천년의 역사가 살아나오고, 인류역사의 근본이 살아나옵니다. 또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오고 역사적인 모든 성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전통이 통일교회의 원리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도 따를 수 없는 전통적인 사상을 지닌 것입니다. 그것이 선민사상입니다.

선민사상은 어떤 민족에 한정된 주의나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사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일신인데도 불구하고 역사를 볼 때, 무슨 헬레니즘이니 헤브라이즘이니 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을 비수로 찌른 사상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때 예수님을 완전히 알았더라면 그들은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었을 텐데, 예수님을 죽여 버렸기 때문에 그 죄로 2천년 동안 유리고객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848년도에 재봉춘(再逢春)하는 역사가 벌어져 이 땅에 새로운 하늘주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방이 벌어지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재림역사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상대 없는 역사와 목적 없는 역사는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느냐? 이스라엘 민족을 훅 불어 버리고 대한민국을 제3이스라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욕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쁜 사람은 한국 민족의 반역자야! ‘될 수 없더라도 좋다. 거짓말이라도 좋다.’ 해야 한국 민족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될 수 있다니 한번 들어 봐라 이겁니다. 될 수 있다는데 왜 들어 보지도 않고 자꾸 반대를 합니까?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한국을 제3이스라엘로 창건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제2이스라엘을 찾아왔던 예수님은 마음 깊이 눈물을 삼키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음 길을 갔지만, 제3이스라엘이 그 권한을 세우게 되면 천상천하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족보를 가진 민족이라고 자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머리가 좋아서, 선생님에게 비약적인 지혜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선생님이 남들 앞에 서고 싶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어서 안 설래야 안 설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제2이스라엘은 선민을 형성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이것을 제3이스라엘 선민을 중심삼고 세계에 선민사상을 옮겨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세계에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선 주도적인 무리가 욕먹고 쫓김받는 통일교회의 무리인 것입니다. 역사는 쫓김받는 무리의 혁명으로 점철되고 수습된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리고 쫓긴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몰리고 쫓기는 입장을 딛고 넘어 자신의 희망을 큰 곳에 둘 수 있는 자주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주의와 사상을 가졌거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날엔 희망이 빛나고 새싹이 싹터 옴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의 조사록에 적혀도 낙심하지 말고 그것을 밟고 새로운 뜻을 세워 주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가져야 합니다. 그 발판이 되는 주의가 통일교회의 통일주의니 우리는 이 통일주의로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외적인 고난은 우리의 몸을 짓누를지 모르지만, 통일주의를 중심삼은 우리의 사상은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삭막하고 무서운 단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개털 걸어 놓고 썰어 먹습니까? 들추어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통일교회가 부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선생님의 지갑에는 몇천 원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고자 하면 못 할 일이 없지요.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은데 없습니다. 있는 것 같지만 사탄이 올 때는 없고,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오실 때는 있습니다.

이상세계는 이미 배운 사실만 갖고는 이룰 수 없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각자의 마음에 선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주성을 어떻게 폭발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운명 길, 순간에 생명이 좌우되는 환경에서도 이 일에 힘을 쓰다가 죽을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주검에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런 자리에 입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본연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시옵나니….’ 통일교회 문 선생이 그런다고 누가 알아보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죄악으로부터도 승리합니다. 어디 이 세계 속에서 그런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아직까지 수료증을 받지 못하고 훈련 과정에 있으니, 승리 단계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더 박차를 가해야 되겠습니까, 박차를 여기서 정지해야 되겠습니까? 좀 더 고생시키고 좀 더 몰아쳐야 됩니다. 그게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만약 여러분이라면 그냥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개척하여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백그라운드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갖은 곡절을 거쳐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도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 다시 여러분과 상봉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죽을는지 살는지 망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렇게 만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란 최고의 독선과 통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최고의 독선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참다운 기준에 설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영원성을 보존할 수 있고 참을 옹호할 수 있는 독선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독선 그 자체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이 시대를 앞서서 훑어보고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배우지 않은 것을 내가 아나?’ 하고들 대답합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오직 배운 권내의 일밖에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세계에 새로운 이상세계를 이루는 데는 이미 배운 사실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배우지 않은 미지의 것도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에 행해지는 것은 자기의 힘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섭리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악민에서 선민으로, 선민에서 천민으로 이러한 단계로 복귀해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선민이 된다고 그냥 천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천민의 권한을 가지고 천자와 천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보면 엄청난 내용이므로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문 선생이란 사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알아보고 싶으면 하나님께 담판기도를 해 보십시오. 가짜면 큰일이니 잘 살펴보십시오.

자식을 구하려는 부모의 심정

여러분은 관념적인 생활관, 관념적인 심정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곳에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생활관을 심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생활관은 천민관(天民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소망의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둘이 타락함으로 처음부터 잘못 심었기 때문에 그렇게 거두어야 됩니다. 때문에 그것을 밟고 누를 수 있는 한 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타락한 인간들이 계속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아담 해와가 16세의 처녀 총각 때 하나님의 천도를 떠나서 자기들 멋대로 사랑하는 잘못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말세인 오늘날 청소년들이 부패하는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을을 맞이하면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청소년들이 자기들 멋대로 타락하는 것은 조상이 잘못 뿌린 씨를 거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것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힘으로 들어오면 힘으로 정복해야 하고, 머리로 들어오면 머리로 정복해야 하며, 권한으로 들어오면 권한으로 정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악의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그렇게 뿌려져서 그러한 탈을 쓰고 한의 역경 속에서 역사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나온 인간들이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거짓 부모의 출현으로 오늘날까지 탄식의 역사가 엮어져 나왔기 때문에 참다운 부부인 참다운 부모가 천지간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선생님에게 환경 중에 준비된 환경이요, 희망 중의 희망이요, 해원의 목적을 이루는 소망 중의 소망입니다.

역사가 어긋났기 때문에 그런 한 기준을 이 땅 위에 제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륜입니다. 인간을 하나님 앞에 가깝게 하고 하나님을 모시게 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제 성경은 무엇을 밝혀야 되겠습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반대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어떻게 옵니까? 비행기 타고 온다면 모르지만. 주님은 구름 타고 안 옵니다. 그런 말 하다가는 영계에 가서 억천만세 참소받습니다. 타고 올 게 없어 비행기 타고 온다면 모르지만 구름 타고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허황된 믿음을 가진 자신들이 이단이면서 선생님한테 이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계 학자들을 놓고 이야기를 하면 30분 이내에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벌벌 떨게 만들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천륜의 원칙과 더불어 생활한 인연이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날 인류의 본성의 인륜도덕이 천지에 창건되는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을 탈피하는 불행한 청년 남녀가 많은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륜의 법도에 일치된 사랑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그 가정에 좌정(坐定)시킬 수 있는 천지부모가 현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예수님 혼자 오셔서는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우리를 구해 줄 때 어떻게 구해 주어야 하느냐? 부모의 자리에서 구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이 물에 빠졌는데 그 형을 보고 ‘너의 동생이 물에 빠졌는데 구해 줘라.’ 하는 부모는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 자신이 이 땅 위에 와서 부모의 자격으로 인간들을 직접 건져 주는 것입니다. 자식이 사망세계에서 신음하며 구원을 요청할 때 구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다리를 놓아 주는 사명을 하도록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그 다리를 통해서 부모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의 대문을 열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천지의 종말시대에는 부모가 와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종교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 잔치가 벌어져야 됩니다. 그 잔치를 하는 때는, 6천년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으로 결혼식을 해 주려고 했는데 그들이 악민으로 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것을 재봉춘(再逢春)하여 비로소 하나님 입회하에 참다운 인류의 부모로 등극시키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그 부모는 참감람나무로 와서 타락한 인간인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 가지를 갖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어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름 타고 와서 무슨 천년 잔치를 한다고요? 신랑되신 주님이 오시면 떡은 무슨 떡을 드리고, 옷은 무슨 옷을 드릴지 준비도 안 해 놓고 잔치를 하겠다고 생각만 하는 기독교인들, 참 한심합니다.

때문에 앞으로는 부모로서 만민을 구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종교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입장에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가정 구주가 되어 세계의 많은 가정을 대하여 ‘가정은 이래야 된다.’ ‘천도, 천륜, 천리를 따라 세워진 가정은 이래야 된다.’는, 모든 가정이 수긍할 수 있는 도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한꺼번에 빨리 구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의 법도를 통한 구원의 도리를 부모가 따르고 자식이 따라서 가정이 몽땅 천국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면 좋겠습니까? 부모의 구주로서 가정을 대한 구주의 사명을 완결 짓고 그다음에 종족․민족․국가․세계에까지 구주로 등극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 땅에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수많은 민족, 혹은 오색 인종이 만든 문화권의 세계를 전부 타파해 버리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주의적인 가정제도, 하나님주의적인 사회제도, 하나님주의적인 국가제도, 하나님주의적인 내용을 갖춘 이상세계가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의가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주의입니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아담주의예요. 그것은 하나님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주의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찾아 나가는 지팡이입니다. 주의 자체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 주의라는 것은 변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선진국가라지만, 앞으로 돈으로 말미암아 부패하게 되어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지금 그런 실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좋긴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선 돈 때문에 별의별 모략 중상이 벌어지고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까? 그것은 특권주의적인 상태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자세히 보면 아주 이상적입니다. 자기 집에는 벽돌담을 쌓고 철문에다 셰퍼드를 매어 놓고 밤낮 집 지키느라 정신 없는데 여기에 와 보면 다 열려 있거든요. 그래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화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떡 앉아 있으면 도시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집에 가려고 하면 아이고, 그 철문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꼬? 하는 생각에 집에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선생님에게 괜한 욕을 많이 먹게 했습니다.

천주주의(天宙主義)

천주주의, 원리연구회에서도 천주주의를 말하는데 천주주의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계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천국을 건설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지금은 합동결혼식을 천하고 몹쓸 것으로 알지만, 앞으로는 입을 벌리고 눈이 뒤집어져서 ‘나 좀 살려 주소.’ 해도 안 해 줄 겁니다. 선생님이 누구보다 못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 사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이런 일을 단행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핍박과 몰림과 지탄을 받더라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싸움판이 벌어져 우리 신랑 내놔라, 우리 아내 내놔라, 우리 아들 찾아내라, 우리 딸 찾아내라고 난리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혼자 생각하기를, 지금은 모르지만 한 이태만 지나면 반드시 ‘통일교회 선생님이 딴 것은 몰라도 우리 사위 하나는 잘 얻어 줬다. 우리 며느리 하난 잘 얻어 줬다.’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선생님만 보면 핏대가 서 가지고 반대하던 사람이 지금은 통일교인이 되어 가지고 선생님만 보면 꾸벅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하나 하나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비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삼키려면 삼키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상을 가지고 통일교인을 삼켜 버리든지,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을 삼켜 버릴 자신이 있으면 삼켜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꽁지가 얼마나 긴지 다 삼킬 수 없을 것입니다. 다 삼켰다고 생각하고 눈을 떠 보면 꽁지가 몸통의 배 이상 남아 있을 테니 큰일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배가 터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삼켜 버리려 해도 안 삼켜진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갑니다. 공산당한테 매를 맞고 곤욕을 겪으면서도 ‘이놈들 다시 만나자! 공산당을 때려잡을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복수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들이 나를 먼저 쳤기 때문에 그것을 선생님이 탕감복귀해서 치는 것이 공의의 법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공의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채찍을 들어 쳐도 죄가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은 간파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청년들, 우리는 고향 땅을 탈환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본향의 부모를 탈환하기 위함이요, 본향의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탈환하기 위함입니다. 알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것을 복귀해 들어가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지의 대위업을 상속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권위와 체면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심정 일체가 되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 기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거짓 아들딸을 낳고 그러다 보니 거짓 종족, 거짓 민족, 거짓 국가, 거짓 세계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복귀의 도상에 선 우리가 탈환하여야 할 것이 무엇이냐? 참부모를 탈환하고 참부모의 사랑을 탈환하여 참부모의 혈통적인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종족을 이루고, 참부모의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천상의 대법도를 세우고 하나님께 해원성사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천주주의인 것입니다. 이것 이상의 주의가 있거든 보따리 싸가지고 억천만년 가 보세요. 다시 여기로 돌아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쫓기고 별의별 일들이 생기고 거지같이 밟히고 쓰레기같이 밀렸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핍박 도상에서도 망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선생님에게 그렇게 했던 사람이 선생님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망해 가는 것을 여실히 보고 있습니다.

복귀의 주류에는 전통이 필요하다

그러면 복귀하기 위한 주류사상은 무엇이냐? 복지(福地) 건설입니다. 좋은 말은 통일교회에 다 있습니다. 욕심도 많아요. 이상천국이니, 자유세계니, 사랑의 동산이니, 꽃동산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 전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의 어떤 개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하나님주의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기쁘고 최고로 행복해야 그 자녀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지 건설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합니까, 미워합니까?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사랑해요? 「예.」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벌떼같이 와서 서로 면회하겠다고 싸움을 하던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화여자대학 사건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세상에서는 뭐 통일교회가 어떻고 어떻고 말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일입니다. 그때 형무소에서 선생님을 괴롭히던 녀석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사나이가 통일교인인가? 잘생겼구만. 잘생겼구만! 하길래 선생님은 속으로 ‘그래, 이 자식아, 이만하면 잘 생겼고말고.’ 했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 녀석들을 주시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뼈가 없는 무골충 사나이가 아닙니다. 외적으로 보더라도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보더라도 어느 누구보다 사랑받는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내가 여기 몇 달 있는 동안에 너희들이 나에게 머리를 숙이나 안숙이나 보자.’ 하고 별렀습니다.

감옥 안에 선생님의 소문이 자자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선생님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을 푸대접하던 사람들이 만나러 오면 선생님은 벌써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여 ‘이 녀석아, 앞으로는 그런 마음을 갖고 내 앞에 오지 마라.’ 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리하여 형무소를 나올 때쯤 되니 그들이 선생님에게 ‘뭐 드시고 싶은 것 없으세요?’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나는 먹고 싶은 것 없으니 당신들이나 먹어요.’ 했습니다.

또한 거기에서 목사라는 한 양반은 선생님이 이단이요 원수의 입장이라고 맨 처음에는 서슬이 시퍼래 가지고 ‘그래, 당신이 주장하는 교리가 도대체 뭣인가?’ 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시간을 정해 놓고 찾아 와서 상당히 친해진 일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소문이 자자해지니 형무소 소장까지도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같이 들어간 제자들도 악착같이 선생님을 따르고 모시니 사람들은 ‘세상이 저렇게 욕을 하고 반대해도 저렇게 끈질기니 과연 통일교회 문 선생은 난사람이야.’라고들 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는 이렇듯 미천하지만 귀한 자리로, 누구더러 대신하라 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큰소리치는 사람도 절대 못합니다. 저기 미국의 닉슨이나 존슨 같은 대통령이라도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 한번 하라고 하면 다 도망갈 것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그들에게 이 자리를 맡기고 산천 골짜기 바위굴, 열 발짝 내디디면 겨우 한 발짝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에 가 있더라도 거기까지 찾아올 것입니다. 통일교회 지도자는 누구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밖에는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복귀의 주류에는 전통이 필요합니다. 세계를 요리하기 위해서 전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자기 주의를 펴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복지 건설을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복지 건설의 기점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점이 본향 땅입니다. 본향을 잃어버린 인간, 고향을 잃어버리고 향수에 잠겨 있는 인간은 복귀라는 서러운 탈을 쓰고 탕감이라는 어려운 고비 길을 돌아 본향을 찾아야 합니다. 나라의 행복이 있기 전에 고향으로 가는 행복의 통로를 갖추어 그 나라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복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거점이 있어야 합니다. 본향 땅에 가려면 부모가 있어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천년만년 한을 풀고 찾아진 식구로서 하나의 천지부모를 모시고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형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가까운 내용을 가진 이 식구라는 감정이 넘쳐흐르지 않는 한 통일이념은 성사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고향 정주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했지요? 「예.」 그러면 선생님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까? 「예.」 선생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인데 옛날에는 평안도 사람을 되놈의 사촌쯤으로 생각했지요? 선생님은 그런 족속입니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여러분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얼마만큼 인연이 있습니까? 국내적입니까, 세계적입니까? 절대적입니까? 이런 말은 있지도 않지요? 그래도 한번 대답해 봐요. 「절대적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복지 건설을 위하여 고향 땅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구의 고향 땅을 찾아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고향 땅을 찾아가야 되겠습니까, 통일교회 문 선생의 고향 땅을 찾아가야 되겠습니까? 「선생님 고향입니다.」 그러려면 이북 공산당을 전부 몰아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삼천만 민족을 전부 통일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은 토끼 사냥도, 노루 사냥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데리고 가까운 데 한번 갈까 합니다. 더구나 일생의 소원이요, 천추만대의 한이 맺혔다는 사람 한 사람쯤은 데려갈지 모릅니다. 데려갔으면 좋겠습니까? 「예.」

삼천만을 통일하려면 삼천만 민족 전체를 통일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통일사상이란 무슨 사상입니까? 문 선생의 사상입니다. 이 문 선생의 사상을 삼천만 민족 모두에게 집어넣어서 사상 무장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노루 사냥을 할 때 노루새끼들을 살살 얼려 몰아가면 처음에는 바위틈에 숨고 하지만 몰아 올라가면 꼭대기까지, 어찌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몰지 않아도 ‘나 살려 주소.’ 합니다. 그러면 절을 받고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 방위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에서 통일교회를 반대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음대로 헤쳐 보라고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들이 파헤친다고 해도 통일사상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떠받듦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바쁩니다. 6년 내지 7년 전부터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욕을 먹으며 이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붉은 무리가 산천을 깔고 있는 이북에는 여러분이 사랑하고 따르는 스승의 고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여러분이 이 스승의 고향 산천을 찾아가 봐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통일사상과 통일주의를 따르는 수많은 민족, 인류가 그곳을 자기의 복귀의 본향이라고 절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내 고향의 강변, 그 고향을 사랑하고 그 고향을 위해 죽어 그 고향의 흙에 묻히고 싶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 만민이 흠모하고 사모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통일주의입니다. 기필코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통일용사의 갈 길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에 그런 때를 맞아 가지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한이 됩니다. 그러니 그러한 복지 탈환을 위해서, 본향 땅을 탈환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 투쟁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복음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악랄하고 잔악한 공산 무리들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 가지고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추방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적 사상입니다.

요즈음 주위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사태들을 바라볼 때 이 나라 이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슬퍼하면서 생각합니다. 이 민족 이 나라로부터 통일교회는 몰리고 쫓김받고 있는데 이 나라 이 민족은 우리에게 이런 사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제3국에서 이 사상을 찾아 국가의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민족정기로 삼겠다고 하게 되면 한국은 불쌍한 민족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일본의 현황을 보면 그러한 단계로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한국의 정부 고관들이 외국에 들락날락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처음 알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창피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갔는데 미국의 저명인사가 당신이 한국에서 왔다는 데 통일교회(Unification Church)를 아느냐고 물어서 모른다고 했다가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각성을 해야 됩니다. 세계적인 제3이스라엘로서 특권적인 권한을 갖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세를 갖추어야 됩니다. 한국의 얼과 배달민족의 피와 혼을 이어받고 태어났으니 이 민족의 비참상을 제거시키고 새로운 전통을 남겨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신념입니다. 때문에 이 민족에게는 통일교회 활동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쳐 오는 태양 빛을 바라볼 때, 자유의 천국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만백성은 물론이요 산천초목까지도 기뻐할 수 있는 그 날을 마음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의 그날을 위해서 오늘 나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신도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 때도 이 땅 위의 악당들을 몰아내겠다는 결의를 하고 젓가락을 들 때도 이 땅 위의 모든 악당들을 처치하겠다는 결의에 불타야 합니다. 언제든지 선의 천국, 제3이스라엘을 창건하기 위해 나서는 숨은 용사요, 하늘의 밀사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제3이스라엘 창건을 위해 갈 길을 재촉하여야 할 것이 우리 통일용사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내 손으로 이 땅 위의 악당들을 제거할 날이 올 것이다.’ 하는 소망을 갖고 있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입니다.

소년시절에 매를 한 대 맞으면 그 가족이 전부 사과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더운 피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의분을 갖고 있는 사나이인데, 지지리 못난 거지, 물건을 팔러 다니는 거지 차림의 여인들까지도, ‘통일교회 문 아무개!’ 하며 비웃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한창 선생님을 반대할 때 국민학교 2, 3학년 아이들을 붙들고 ‘너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고 아느냐?’고 묻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들이 선생님의 얼굴을 알 리가 없지요. 그때는 고무신짝을 신고 미군 작업복을 검게 물들인 옷을 입고 있었으니 알 수 있겠습니까? ‘너희 엄마가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 나쁜 사람이라고 하던?’ 물었더니 그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장로교인인데, 통일교회는 이단이라 망한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그래, 소문 잘 냈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 가슴에 이 민족의 소망의 터전을 막는 선전을 누가 해 놓았는가! 바로 기독교인들이 한 것입니다. 이것을 힘으로 대결해서 멸망시킬 것이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밤이 되면 어서 빨리 아침이 오길 고대했고, 아침이 되면 저녁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저녁이 되면 밤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으면서 개척의 길, 선구자의 길, 순례자의 행각을 마다 않고 오늘날의 통일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여기에는 풍운한설이 어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슬픔의 장벽이 몇 번이고 선생님의 가는 길을 막았지만 그때마다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모든 숱한 슬픔의 여건들도 선생님의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삶의 원천이 되었고 하늘 편적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반대받으면 반대받을수록 우리는 시선을 세계에 두고 나왔습니다. 이 민족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앞으로 세계가 환영하는 민족이 될 것이요, 오늘날 대한민국 삼천만 배달민족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가 고대하는 그때는 명실공히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발걸음을 맞추어 세계로 행진해야 되겠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막을 수 없는 자유의 천국 무대를 이루기 위해서 주력을 하고 정성을 다하여 싸워 나가야 합니다. 쓰러지더라도 그러다가 멋지게 쓰러지는 것을 사나이의 보람으로 생각하며 긍지를 갖고 이 길을 가야 할 것이 통일 청년 남녀들의 갈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복귀의 주류

우리는 복귀의 주류 행각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담가정의 아벨이 피를 뿌려 놓은 복귀의 노정을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잔악한 환경에 몰리면서도 죽음 길에 찾아든 환경도 타파해 버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천신만고한 복귀의 행각을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고향 산천을 다 버리고 방랑자가 되어 밤이면 별을 바라보고, 낮이면 벌레소리를 친구 삼아 천명을 따라가던, 그 모든 사연도 복귀의 인연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바로 궁중에서 왕자의 권한을 다 버리고 몰리는 이스라엘, 핍박받는 이스라엘, 고생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누더기 옷을 입고 나선 모세도 복귀의 행각에 모델적인 하나의 기적을 남기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4천년 역사의 이스라엘 민족을 탕감하여 수습하기 위해 세례 요한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책임 다하고 천적인 인연을 따르기 위하여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준비한 그의 모든 생애도 복귀의 행각 노정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받들지 못해 천추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승리의 기원을 세워 천국을 건설하고자 한 예수님의 소망이 오늘날 전민족적인 한으로 남아졌습니다. 세계의 기독교가 희생의 피를 흘리며 싸워서 민주세계를 이룬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 얼마나 많은 피의 대가가 깃들어 있고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이 고여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그 한의 요건과 피의 요건을 찾아 나온 것이 통일이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자신의 관점이나 생활권에 갇혀 있어서는 아무것도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마음, 한 뜻, 한 행동으로 하나의 폭탄이 되어 어느 한때에 적진에 뛰어들어 폭발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 몸에, 이 가슴에 화살이 엇갈려 박혀도 죽음 도상에 나가 수난을 당했지만 선생님은 천명을 따르기 위하여 죽을래야 죽을 수 없고, 이 길을 안 올래야 안 올 수 없었습니다. 네 활개를 펴고 낮잠을 잘 수 있는 그날까지 참기를 생활철학으로 삼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참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생애의 원수를 갚고 악에서 탈피하여 선의 기원을 창설하기 위해 대도의 원칙을 이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통일의 이름을 나타내 길이길이 빛낼 수 있는 전통의 기틀을 세우고 그 자체가 하나의 화신체가 되어, ‘아무개!’ 하면 역사가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눈물이면 눈물, 피땀이면 피땀, 그 피눈물이면 피눈물을 하늘땅을 위해서 흘리고, 하늘땅을 부여안고 인연 지을 수 있는 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 형제들의 생활 원칙입니다.

이러한 내용과 사명이 있는데, 오늘날 삼천리반도가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작년에 선생님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공산당에 대해서 결심을 하고 왔습니다. 일본의 국민도, 자민당도, 대학 교수도, 그 누구도 못 하는 것을 해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그들의 질서가 잡힐 때에 그들은 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인격적인 모독을 합니다.

복귀섭리노정의 주류인 통일교회의 주류 사상

앞으로 통일교회는 철저한 관으로 무장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민족 전체의 선두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뜻과 하늘과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는 결의를 하지 못해 가지고는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충신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결판 지으려고 하는 긴급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의 모든 주의와 사상을,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님과 그의 12사도와 수많은 기독교인이 지금까지 기대하고 소망했던 종합적인 실체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는 길 앞에 나타나는 원수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원수를 축출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통일이라는 거룩한 이념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결의를 갖고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야만 통일신도입니다.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오지 마십시오. 자기 자식이나 사랑하고 자기 아내만을 사랑하고, 자기 집이나 친족을 중심삼을 사람은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만일 그랬더라면 누구보다 좋은 가정의 어버이가 됐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고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고개를 넘어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너무나 험한 길이기 때문에 부모도 이해 못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아는 사람은 가야 합니다. 눈물과 피땀이 흘러도 피는 피를 통해서 호소해야 됩니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그래도 안 되면 세 번, 세 번 해도 안 되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여기에 선 사람은 다 버리고 나선 사람입니다. 버렸던 것은 하늘이 다시 찾아 주실 것입니다.

이 길이 수십년 걸리더라도 복귀의 행각 노정을 가서 이 민족을 중심삼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해야 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 무리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야 할 길 앞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결단이 되어 있느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 하나가 망하는 날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하고, 나 하나가 흥하는 날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이 흥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망하는 날에는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망하는 자리는 자기를 위해 나라를 팔아넘기는 자리요, 흥하는 자리는 자기를 희생시켜 나라를 살리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삼천만 민족이 나 하나 때문에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위신과 권위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개인, 그러한 가정, 그러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엄숙한 권위를 선포하고, 말없이 맞으면서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인하여 스스로 무릎을 꿇고 따라올 수 있는 기반을 닦지 않고서는 완전한 승리의 기반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언이설로 그들을 설득시켜서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의 실적을 중심삼고 반대하는 무리들을 탄복시키고 눈물로 호소하여 그들을 회개시켜 손에 손을 붙들고 결의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연을 이 민족에게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민족을 새로이 부활된 역사적인 민족으로 끌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통일교회주의, 통일교회사상도 다시 전복(顚覆)될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주류인 동시에 통일교회가 갖고 나가야 할 주류사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이러한 관점에서 생활을 수습하고 사회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최후의 목적인 복지 건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향 땅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향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기 도>

아버지, 지금부터 수십년 전을 회고하옵니다. 철부지한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에 민족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그 배후에 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던 그때에 고요히 분부하시던 당신의 음성이 새롭나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자처하는 그 자리보다도 눈물과 피를 흘리는 자리에서 입술을 깨물며 아버지 앞에 맹세했던 그 시간이 그립나이다. 인간들끼리 교류하는 그 자리보다도 몰리고 쫓김받으면서도 하늘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그립나이다.

현재 이 땅의 인간들은 모르나 저희들은 하늘을 찾아가는 자녀의 길이 그러하고, 자녀들이 가야 할 인연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저희가 죽음의 길을 자청하여 가기로 결의할 적마다, 하늘은 그 길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의 길로 엮어 나오셨다는 것 또한 알았나이다.

아버님, 통일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들이 스스로 그 무엇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아무것도 갖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왔사옵니다.

통일의 이념, 이것은 하늘이 저희에게 주신 이념이고, 이 땅에서의 실천을 통하여 하늘과 인연된 이념인 것을 확실히 아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늘로부터 왔으니 하늘 것으로 거두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두어지는 데는 말씀 자체가 그냥 그대로 거두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말씀은 실체를 요구하기에 실체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말씀이 말씀 앞에 앞장서서 갈 수 있는 아들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 이념을 좋다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이념을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버지의 한인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아 아버지의 말씀을 끌고 갈 수 있는 실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말씀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말씀으로 심판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도 그런 아들딸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남이 알지 못하는 심정적 내정적 사연을 통해서 하늘의 인연을 알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천세 만세 그 어떤 한을 품고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체험을 아버님께서 저희에게 일일이 찾아와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나갈 수 없고 웃음거리로 흘러갈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요, 엄연한 실제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그러니 산 역사의 사연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씨가 되어서 싹이 나고 가지가 되어 그 가지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동산에서 수확될 수 있는 향기의 실체가 되기를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대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아버지께서 통일 제단을 쌓아 올리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수고한 결실의 수확이 오늘날 여기 머문 개체인가를 스스로 뉘우치면서 아버지 뜻 앞에서 일체화되지 못한 자체임을 탄식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복귀의 주류사상을 붙안고 가는 목적은 아버지의 나라를 건국하는 것이옵니다. 또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세계를 해원성사하고 복귀하는 것이옵니다. 새로운 천국의 이념을 오늘 이 지상에 이루어야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앞에 놓고 역사 과정에 그 누구도 실천으로 옮겨 이룬 실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저희들이 가야 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펐던 아버지의 심정 앞에 저희들은 기쁨의 상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고난과 탄식권 내에 계시는 아버지를 저희들이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 앞에 재롱부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저희를 보시고 슬퍼하시던 아버지께서 그 슬픔을 잊으시고 이제는 저희를 붙안고 기쁨으로 품어주실 수 있도록 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저희를 보고는 슬퍼하실 수 없게 해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과 이 세계와 이 땅에 대한 불쌍한 마음, 죄악이 팽창한 이 모든 실상을 걱정하시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저희를 보고 참을 수 있도록 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엄숙하고도 역사적인 사명을 오늘도 다짐하고 내일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여기에 당신의 전통적인 심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녀가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천배 만배 주입시키시어서 하늘 앞에 새로이 설 수 있고 새로이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통일의 무리에서 떠나게 될 때는 슬픈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도 알고 보면 가슴을 억제하고 살 수 없는 애달픔이 깃들어 있는 길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이 땅 위에 부모가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요, 형제가 없어서, 혹은 생활권이 없어서, 재산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오라 하늘이 이렇듯 비참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 통일의 길이요, 싸우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 통일의 길인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것을 전통으로 상속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아들딸 가운데, 이 스승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온데, 오늘 그들의 마음에 무엇을 남겨 주었사옵니까? 죽든 살든 하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땅의 전부를 뿌리치고 하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 스승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눈물이 뒤섞인 가운데서 눈물로 전하고 눈물로 몸부림치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것을 스스로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이 엇갈리는 가운데에서 뜻을 놓고 오늘도 저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그 가슴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눈물을 억제하는 아버지의 그 가슴이 얼마나 비통한가 하는 것 또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도리어 아버지의 슬픔을 동정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아들딸을 아버지께서 찾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삼천리반도 방방곡곡 어디 한 곳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준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준비된 하나의 마을도, 집도, 동산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땅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음으로써, 우리가 살아 싸울 준비와 결의를 그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께서 위안 받으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를 원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상이 무어라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우리의 사명적인 책임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부모가 죽었는데 어찌 저희들이 웃을 수 있겠사옵니까? 사랑하는 부모가 슬퍼하는데 어찌 저희가 기뻐할 수 있겠사옵니까? 저희들이 천주의 인연을 따라갈 수 있는 아버지의 모든 전체의 위업을 상속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로 삼아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바라며 지금까지 생애를 걸고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이 길을 따라 후대에 후손들이 올 수 있는 하나의 산 증거적인 표준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민에게 이렇게 가라고 가르쳐 줄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는 실체로 삼아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나라, 그 세계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신으로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늘이 오기를 고대하신 아버지 ‘이 영광 받으소서.’ 하며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치고 빈손으로 돌아서서 이 땅의 죄를 다시 용납해 달라고 눈물 뿌릴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것 삼아 가지고 기뻐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도 자기 혼자만 모시고 혼자만 행복하겠다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우리는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여 세계 만민을 구하고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천세 만세 한이 된 것을 죽더라도 이 땅 위에 재림부활하여 실천하겠다는 아들딸이 되고, 아버지의 심정을 이어받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참석한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시고, 이날의 모든 인연을 다시 한 번 명심하여 하늘의 깊은 사정을 깊이깊이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소원하는 그날을 위하여 저희들이 참음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시고, 만사에 만전을 기하여 패자가 되지 않는 완전한 자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믿고 당신이 의지하실 수 있는 아들딸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이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곳을 향하여 마음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싸움터에서 우리를 만날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교단 위에, 수많은 민족 위에, 새로운 시대의 경종이 울려오는 것을 확신시켜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자녀들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의 책임 수행 여부는 참으로 그 영향이 큽니다. 이 자녀들이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함으로써 현세인과 영계인의 해원성사가 됩니다.

이 원리의 책임은 태초부터 시작해서 복귀가 끝난 후까지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의 생활은 탕감 생활이었고, 앞으로의 생활은 원리적인 생활입니다.

두 세계의 탕감을 중심삼고 세워진 자리가 축복받은 자녀들의 자리입니다. 영계는 천사세계, 육계는 아담세계에 맞먹습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은 어느 한 가정의 일원이 아니고 각각 역사적인 대표의 입장입니다. 과거를 두고 볼 때는 과거를 탕감하는 입장이고, 현재를 두고 볼 때는 현재를 탕감하는 입장입니다.

타락도 자녀들이 해서 자녀들이 문제이고, 복귀하는 데도 자녀들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역사는 20여년이 되었고, 뜻을 중심삼고 보면 7년노정이 지났습니다. 자각된 일치성을 가지고 나왔으면 세계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었으나 36가정이 자기의 길을 걷기에 급급했습니다.

이제부터 자각하여 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36가정은 과거의 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합니다. 아직까지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슬픔을 제거하는 것이 축복가정입니다. 하나님 가운데 기쁘신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그 기쁨을 우리의 생활에 연결시키는 것이 축복가정의 책임입니다.

36가정은 역사적인 선조입니다. 승리하여 실수하지 않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기쁨의 터전을 이룩해야 할 것이 36가정입니다.

하나님과 선생님과 여러분이 삼위일체가 되어 기뻐해야 됩니다. 부모가 탄식하는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모시면 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과 선생님 가정을 모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은 여러분이 선생님보다도 더 정성들이고 더 조심해야 합니다.

공적인 책임을 지고 생활하는 시간이 하루 중에 얼마나 되느냐? 횡적인 입장에 서서 종적인 역사를 이뤄야 합니다.

영통인들이 축복가정을 공격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뜻으로 볼 때 참으로 분합니다. 여러분이 기반을 닦아야 선생님이 영계에 가서 가정 편성을 할 수 있습니다. 축복 기준을 세운 선생님을 중심삼고는 재림은 없습니다.

영계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영계를 지상에 동원할 수 있는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개인과 가정과 자녀에 대한 십자가를 지고, 여러분은 각각 상대와 가정과 자녀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천국화되었는가?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한을 완전히 해소시켰는가?

여러분이 ‘뜻’ 하면, 그 뜻이 하나님의 뜻과 선생님의 뜻에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는 싸움과 슬픔과 기쁨을 같이 당해야 합니다.

지나온 날에 있어 ‘이만하면 된다. 현재는 이만하면 본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40일 활동에도 36가정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 교회에서 사회로 연결되어야 국가를 복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조상들에 대한 책임도 졌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는 일들을 조상들이 볼 때에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손들이 볼 때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면 부부가 뜻을 중심삼고 진취적인 의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36가정의 책임이 중요합니다. 세움은 받았지만 승리의 자녀로서의 책임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계가 섭섭해하면 지상에 그것이 반영되어 남아집니다.

영계도 땅도 여러분 가정을 위하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세계를 묶어 하늘 앞에 정성들여 바쳐야 합니다. 이런 전통이 세워지지 않으면 하늘의 가법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삼위기대 가정을 통하여 어떻게 공동생활 체제를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탄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되면 권위적인 가정이지 뜻을 위한 가정은 못 됩니다.

모두들 36가정은 굉장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가정들을 보고 무엇을 본받을 것인가?

하나님은 할아버지, 선생님은 아버지, 여러분은 손자의 입장입니다. 이 셋이 알고 있는 것이 같아야 합니다. 원래는 선생님에게 가정생활을 보고해야 합니다. 나쁜 보고는 점점 없어지고 좋은 보고만 남아지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법(家法)이 세워집니다. 원래 안식일은 보고하고, 8일째 되는 날은 재출발하는 것입니다. 매월 1일은 모두들 솔가(率家)해 가지고 보고해야 합니다.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생활도 같이 하고 생활 감정도 같아야 합니다. 3년이면 1년씩 돌아가며 삼위기대의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주주의(天宙主義)인 것입니다. 가정천국을 못 이루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온 가정을 구할 수 있는 구세주와 같은 입장입니다.

낳기는 세 사람이 낳았어도 기르기는 한 사람이 기르는 것처럼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심정적인 통일을 기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심정과 아담의 심정, 그리고 예수님의 심정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지 못하면 천국에 가서 서지 못합니다.

자기의 아들딸 중심삼고 세 가정이 싸우면 안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한군데 살면서 12방을 움직여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절대 생명시해야 합니다. 말씀에 절대 복종하면 됩니다.

원래 삼위기대는 3년 이상 같이 살아야 합니다. 삼위기대는 자식을 바꿔다 살아도 똑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것을 귀찮게 알면 낙제생입니다. 삼위기대 중 한 가정의 남편이 죽어도 걱정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 때는 나머지 두 가정이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뜻에서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가?

제2차 7년노정에 들어서면서 12가정 생활권을 편성해야 합니다.

‘가인을 아벨과 같이 사랑했습니다.’ 하고 사탄이 공인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사탄이 떨어져 나갑니다.

삼위기대 가정의 아기들을 데려다 키운다면 자기의 아기보다 두 배, 세 배 정성들여 키워야 합니다.

삼위기대가 하나 안 되는데 어떻게 세계를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

세 나라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것보다 더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3국가, 3시대, 3주권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삼위기대는 한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이 하나되면 선생님 대신 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삼위기대를 망각하고 자기 가정을 위주하면 망합니다.

이름만 선생님을 대신하지 말고, 책임과 심정에서 선생님을 대신해야 합니다.

원칙은 삼위기대 중 한 가정이 세 가정의 생활을 책임지고 두 가정은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12가정이 하나의 형(型), 틀(機)이 돼야 합니다. 서로 소통하고 연락하고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제2차 7년노정의 이 한 해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후퇴하고 있는지, 전진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968년 11월 20일, 음력으로 10월 1일, 9년 전 이 땅 위에 새로이 자녀의 날을 선포한 날이옵니다.

그동안 수많은 날을 보냈고 여러 해를 지내 왔사옵니다. 뜻을 따라가는 노정에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와 같은 자리에 참석할 적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기준에서 볼 때, 저희들의 모습은 거기에 너무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를 뵈올 면목이 없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저희를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이 본부를 향하여 정성을 모아 아버지 앞에 간곡한 심정으로 경배드리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외로운 개척 노정에서 지친 몸을 끌고, 이 한 날에 참석하는 가치를 마음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들도 한국 땅에서 이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고대하고 그날을 위해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비록 그 처지와 환경이 각각 다르더라도 친히 같이하시어서 그들의 마음과 심사를 살펴 주시옵고, 해원성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도의 길을 가고 정성을 들이는 종교인들이 이 땅 위에 많사오니 그들이 소원하는 자리를 찾아 자녀의 영광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고, 해방의 한 날을 표방하고 나가는 그들의 바람이 기필코 이 땅 위에서 결실되어야 하겠사오니, 그곳을 흠모하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들을 수습하시어서 그들이 실제로 이 땅 위에서 아버님과 상봉하여 저희들과 같이 이런 날을 축하하는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뿐만 아니라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을 위하여 지금까지 복귀의 탕감노정을 걸어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한 개체가 책임을 못 하면 다음 후손을 세우시어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개척해 오신 것 또한 아옵니다. 영계에 간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뜻을 따라 수고하고 공의의 터전을 세웠지만, 이 땅 위에서 해원성사의 한 날을 갖지 못했는데, 오늘날 저희들이 이 땅 위에서 자녀의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해원성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이 자녀의 날을 맞이한 것이 우주사적인 의의를 지닌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와 같은 식전에 참석할 적마다 형식적이요, 세상의 재래식과 같은 모임과 식전으로 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이와 같은 기념일이 생겨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진심으로 기념하옵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더듬어 지금까지 엄청난 수고를 하시며 복귀섭리의 길을 개척하여 오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참석한 당신의 아들딸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국의 식구들이 같은 자리에서 식전을 갖지 못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오나, 환경적인 여건이나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음으로 인하여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지 못한 아들딸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아버지를 마음껏 모시고, 아버지 앞에 마음껏 경배드리고, 마음껏 기념할 수 있는 그날을 저희들이 빨리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저희 마음에 섭섭함이 있는 것은 저희들이 책임 못한 연고인 것을 자각하면서 내일의 개척자의 사명을 더더욱 깊이 느끼게 하시고 민족복귀와 세계복귀의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새로이 결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 참석하였다가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당신의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옵고, 그들이 가는 길과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일체가 언제나 당신과 보조를 맞추고 언제나 당신과 동행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의 무리가 서 있는 자리가 우주적인 크나큰 사명의 자리요,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를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 개체들을 세워 역사적인 한을 풀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저희 가정들을 세우시어 우주적인 해원성사의 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완전히 알아 가지고, 이 엄청난 사명에 감사하며 맡겨진 책임에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축하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니다. 천배 만배 그 마음과 몸에 넘쳐흐르는 은사를 가해 주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일률적인 은사로 품으시어 지도하고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오늘 하루가 아버지 뜻 앞에 기쁨의 날이 되고 거룩하게 기념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위에도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시어서 복귀되어 가까워 오는 천국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악의 세력이 아직까지 등등하니 그들의 기세를 꺾으시어 선의 기준을 세우시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를 이 자녀들로 하여금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의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겨진 날들을 아버지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고 이 하루도 아버지의 뜻 앞에 충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맹세하옵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 승리의 영광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전체가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이곳을 찾아올 수많은 자녀들을 어서 모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선조들이 참다운 뜻을 따라 땅 위에 있는 선한 후손들을 중심삼고 재림부활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어서, 그들을 땅 위에서 규합할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자유로운 환경의 지상을 중심삼고 활동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대를 부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날이 그들에게도 복이 되고, 이 땅 위의 만민에게도 복이 되고, 온 천주세계에도 복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일체를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제9회 자녀의 날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자녀의 날을 맞을 때마다 명심해야 될 것은 자녀의 날이 얼마나 귀중한 날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자녀의 날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어 놓으신 후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자녀의 날을 맞이하셔야 했습니다. 만일 그때에 자녀의 날을 맞이하셨더라면 거기서부터 부모의 날도 세울 수 있었을 것이요, 만물의 날도 세울 수 있었을 것이요, 하나님의 날도 책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녀의 날은 어떠한 날이냐? 자녀로서 승리하여 우주적인 영광의 자리에 나갈 수 있게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 이후 전인류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된 자리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역사, 구원하기 위한 역사, 즉 다시 전과 같은 자리로 끌어다 놓기 위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주란 어떤 분이냐? 타락한 사람들을 원래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구주입니다. 자녀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이날 하루가 무슨 다른 날과 특별히 달라서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날이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없었던 인간들이 비로소 역사 이후에 처음으로 그런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녀들로서 최초로 기념하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 이날이 있기까지 노력한 분을 따라가게 되면 그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따라가게 되면 반드시 자녀의 영광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지 못해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계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저나라의 낙원에 가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셔야 됩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받고 오셨으나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가셨기 때문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장소로 출장을 가서 일을 다 끝내고 왔으면 다시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해야 할 사명의 절반을 남겨 놓고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책임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아직까지 자기가 소망하고 희망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 힘을 보급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다시 오셔 가지고, 본래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승리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이지, 영육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영적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서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천국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물론 아담 해와의 아들딸도 천국인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역사 이래 그러한 기준을 세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도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진리의 핵심은 아버지 어머니(부모)

그런데 타락은 아담 혼자서 된 것도 아니요, 해와 혼자서 된 것도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함께 타락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원한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둘이 뿌린 것을 뽑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오셔서 신랑과 신부라는 표준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뿌렸던 죄악의 쓴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같은 입장으로 오셔서 이 땅 위에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을 재현시켜 놓고 그것을 뽑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예수란 분은 어떤 분인가 하면 구주인데, 그 구주는 형님 격이 아니라 아버지격입니다. 즉 우리들을 직접 낳아 줄 수 있는 아버지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한다고 합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생명이 다시 난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다시 나는 데는 형님을 통해서 나는 법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아버지요, 성신은 어머니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은 어머니 신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이를 복귀해야만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부모가 되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표준 또한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고,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고, 또 자기의 처나 아들딸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생명 안에 진리에 대한 의욕과 욕망이 있어야 됩니다. 여기서 욕망은 자신의 인격 기준과는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해야

그러면 기독교가 2천년 동안 무엇을 해 나왔느냐?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해 온 것입니다. 이 땅의 인간 가운데에 신랑과 신부가 오셔야 되는데 신부는 어머니요, 신랑은 아버지로 오십니다.

그러면 왜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필요하냐? 우리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잘못 태어났으니 다시 태어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생, 곧 거듭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부모도 없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구원역사인 것입니다.

구원을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오셔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아버지인 예수님밖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격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형님격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장가가기 전의 총각의 뼛속에 숨어 있는 아들의 씨, 딸의 씨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닮자. 그리하여 예수님과 하나되자. 예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하는데 그게 뭡니까?

예수님은 아직까지 결혼도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디를 찾아 가시느냐? 신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한 입장에서 영적으로 남자에게 있는 아기의 씨를 찾아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 신부의 몸, 즉 어머니의 몸을 통해 가지고 그 아기를 해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중생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땜질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신을 받지 않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고, 어머니의 뱃속을 거치지 않고는 죄를 탕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신은 죄 씻는 역사를 하느냐?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어머니인 해와가 죄를 뿌렸기 때문에 어머니 신인 성신이 와서 죄를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탕감 원칙에 의해서 성신은 이 땅에 와서 죄 씻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씻어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인류를 아버지가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사람, 즉 장가가기 전 아담의 뼛속에 있는 아들의 씨, 딸의 씨의 자리에 들어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예수님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예수님을 그리워해야 되며, 여자도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예수님을 그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이 세상적인 일입니까? 세상에서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가 죽더라도 예수님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자녀의 날이라고 하는데 이건 간단한 얘기가 아니에요. 여러분, ‘자녀’는 남자 여자지요? ‘자녀’라는 글자를 거꾸로 하면 뭡니까? 여자가 됩니다. 자녀를 거꾸로 보면 남자는 없어지고 여자만 남게 돼요. 그러니 세상을 뒤집어 놓으면, 천지 법도를 뒤집어 놓으면 전부 여자예요. 이건 그냥 하는 얘기지만 그런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자녀의 날을 결정했다는 것은 아담과 해와가 뿌린 죄악의 씨를 뽑아 버리고 인류를 악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기원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인간이 자녀의 날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만물도 해방을 받지 못하고 탄식권 내에 있었고, 하나님도 탄식권 내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자녀의 날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의 날도 찾지 못하고 만물이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만물 앞에 원한이 남아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영광의 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된 모든 원인이 자녀의 날을 세우지 못한 데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의 참뜻

그러므로 자녀의 날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릇된 자녀로 하여금 그릇되게 한 것을 전부 다 시정할 수 있는 기원에서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릇된 자녀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을 시정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나와서 자녀의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영광의 자리에 나가 기뻐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되니 아들딸도 기뻐하게 되고 만물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웠습니다. 자녀의 날과 부모의 날은 서로 통하는 날입니다. 자녀의 날과 부모의 날은 한꺼번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 남성을 두고 볼 때, 그 남성을 혼자 살도록 놔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서 종의 종의 자리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떨어졌다가 다시 종의 자리로, 다시 종의 종의 자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종의 종이란 종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종의 종의 자리까지 기가 막히게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노정을 어떻게 해 나가야 되느냐? 종의 종의 자리에서 거꾸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까지 올라왔고, 신약시대에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까지 떨어진 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야곱 때부터 모세 때까지는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자리를 닦아 올라가면 되었고, 신약시대에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넘어가는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로마서 8장에 기록된 것과 같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이 되지 못한 양자입니다. 양자,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핏줄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돌감람나무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 하나가 와서 접붙이는 일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아들로 오셨어요. 참감람나무로 오신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는 무엇이 다르냐? 외모로 보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입고 먹고 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밥도 안 먹고 변소도 안 가는 줄로 알지만, 예수님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고 밥을 먹어야 했고, 변소에 가서 소변도 봐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하면 기분 나빠할 것입니다. ‘오, 거룩한 예수님이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다른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에서 밥 먹는 것이 제일 거룩한 것이요, 변소에 가는 것이 그다음으로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과 모든 자연계가 다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추방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라고 해서 뿔이 났다거나 하는 별난 것이 거룩한 것인 줄 알지만, 나비가 날고, 벌이 날고, 새가 노래하고, 어린이들이 뛰노는 것들이 거룩한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것이 ‘별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금식을 했다고 ‘거룩한 예수님이 금식을 했으니 우리도 하자.’고 하는데, 예수님이 왜 금식을 했겠어요? 좋아서 한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한 것입니다. 거룩하려면 입에 지퍼(zipper)를 달아 가지고 채웠다 열었다 할 것이지 왜 금식을 했겠어요? 알고 보면 할 수 없어서 한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이란 무엇이냐?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하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별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이냐?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잘 수 있는 곳입니다. 세계 밖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해서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진 곳이 천국입니다.

6천년 동안 계속되는 전쟁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구가 달라지느냐? 천만에요. 방향이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지금까지 뒤로 가던 것이 거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자꾸만 타락의 길을 향해 앞으로 나가지 말고 돌아서야 합니다. 돌아서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날 우리 조상이 출발한 자리를 지나가야 됩니다. 거꾸로 자꾸자꾸 올라가다 아담이 타락한 그 기준을 넘어서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도 하나님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를 모두 정리하고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날 아담이 출발하던 그 기준 이상을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가려면 세상을 부정하고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지 않고는 종교로서의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세상의 것을 부정하고 나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타락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전부 타락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에 올라가, 다시 양자의 자리를 거쳐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 아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은 감람나무와 접붙임을 받지 않은 감람나무는 어떻게 다르냐? 열매를 맺으면 서로 다른가, 같은가? 돌감람나무도 참감람나무로부터 접붙임을 받으면 참감람나무가 됩니다.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거기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는 일을 하시는 분이요, 마귀와 사탄은 참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거기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도 참과 거짓이 있는데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냐? 양심이 참이요, 몸뚱이는 거짓입니다. 그러니 이 돌감람나무인 몸뚱이가 참감람나무인 마음을 잘라 버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또 참감람나무인 마음이 돌감람나무인 몸뚱이를 잘라 버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상세계의 다른 동산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보좌에서 춤을 추고 계시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에 계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접붙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몸뚱이의 접붙임을 받은 사람은 사탄의 자식입니다. 자기를 정복하게 되면 책임 완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전쟁 중에 가장 큰 전쟁은 구라파 전쟁이나 세계대전이 아닙니다. ‘나’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 이상 큰 전쟁은 없습니다. 이 전쟁은 6천년이나 계속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났습니까, 안 끝났습니까? 계속 죄악의 보따리만 더욱 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6천년 죄악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집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죄악의 역사를 누가 뒤집어 버릴 것이냐? 여러분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의 날이 왜 필요한가? 자녀의 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가 그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잃어버리게 했느냐? 하나님이? 만물이? 누가 잃어버리게 했습니까? 아담과 해와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누가 찾아야 됩니까? 아담과 해와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실수해서 구멍을 냈으니 아담과 해와가 때워야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아담은 망치는 아담이 되었지만, 둘째 아담은 고치는 아담이 되었습니다. 첫번 아담은 망하는 아버지가 되었지만, 둘째 아담 예수는 구해주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지옥에 가서도 전도할 수 있어야

성신은 무엇이냐? 이 성신은 아직까지 땅 위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신을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주님은 재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재림하겠습니까?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고요? 뭐 탈 것이 없어서 구름을 타고 오겠어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구름이 무엇이에요? 구름은 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구름 타고 온다고요? 허황된 그런 신앙은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하지만 누가 이단인가 두고 보라지요. 진짜는 가짜를 들이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나가면 선생님이 기독교인들과 싸움하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통일교회에 한발짝 들여놓은 사람은 기성교인 몇백 명이 달라붙어서도 못 당합니다.

사탄이 무서워서 ‘아이고, 통일교회에 가지도 마라. 거기 가면 망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셔서 3일간 지옥에 있는 영들을 전도하셨습니다(벧전 3:19). 그러니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지옥에 가서라도 전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옥은 구경도 안 하겠다고 합니다. 지옥 구경을 안 하고는 천당의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고생의 맛을 톡톡히 느껴본 사람이라야 조그만 행복도 아주 달콤한 행복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꿀맛을 보고 나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고기 요리를 먹어 보았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자꾸 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것 참 약 중의 명약은 그것이더군요.(웃음) 보통 사람은 ‘그저 그렇구만.’ 할 정도인데 나는 그렇게까지 맛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고생해 본 사람이 재미있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마음에 맞지 않는 아내를 만나서 재미없게 살다가 재미있게 사는 집에 가면 그들을 참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고 장가를 두 번 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웃음) 행복해지려면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자극은 평상시 그 자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비되는 데서 자극이 오는 것입니다. 하늘만으로는 하늘이 못됩니다. 땅이 있어야만 하늘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전부 다 상대성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 계시기 때문에 불쌍한 예수님이 되셨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은 구원을 해도 불쌍한 구주밖에 못됩니다. 또다시 와서 다 하시지 못하고 가셨던 사명을 완결 지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논법입니다. 통일교회의 논법은 곧 하나님의 논법입니다. 통일교회만의 논법이라면 선생님이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된 것을 선생님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입니다.

말씀복귀, 실체복귀, 심정복귀

남자와 여자가 구멍을 뚫었으니 이것을 때워서 구멍이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참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조상이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참부모가 나와야 돼요. 예수님이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참부모로서 타락한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한을 다 풀고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의 공판정에 세워 놓고 검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이 우리를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내놓고 검사 노릇을 했습니다. 악을 중심삼은 사탄이 검사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중심삼고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의 입장에서 악을 처단하는 검사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누구냐? 인류의 아버지입니다. 인류의 어머니도 함께 나와야 합니다. 인류의 부모가 될 아담 해와 두 사람을 잃어버렸으니 인류의 참부모가 될 두 사람이 함께 나와야 됩니다. 이 참부모가 나오지 않고는 자녀의 날을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부활을 해야 됩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몸뚱이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과 인격과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하려면 이러한 것들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말씀대로 실천해 가지고 말씀대로 화하여 말씀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는 데는 사랑을 중심으로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됩니다. 사랑을 하는 데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말씀을 중심삼고 실체복귀를 해야 되고, 그다음엔 심정복귀를 해야 됩니다. 말씀복귀, 실체복귀, 심정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몸뚱이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이 세 가지를 복귀하기 위해 통일교회에서는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은 무엇이냐? 역사 이래 하나님이 찾고자 하신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일치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일치된 사람이 되라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합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은 대한민국이 반대했고, 세계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꺾이지 않고 선을 중심삼고 승리를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심정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나 여자나 그런 심정을 가진 분을 따라가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동기의 원천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타락한 이 세상을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울면 아들딸도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 여러분도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눈물 흘릴 때 여러분도 눈물 흘리나요? 남자나 여자나 동감해야 됩니다. ‘내 마음도 틀림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면 여러분은 또다시 그럴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통일교인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저 버리고라도 선생님이 좋고, 아내나 남편을 저버리고도 선생님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영적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몸 가운데 있는 아들의 씨, 딸의 씨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주님이 실체로 오시면 그 실체를 중심삼고 옛날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몸속에 있는 아기의 씨의 자리에 들어가서 앞으로 어머니를 만나 태어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죄악의 씨가 되었느냐 하면, 죄악 된 사랑을 통해서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랑함으로써 어머니 아버지의 뼛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그러한 원칙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할 때는 통일교회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또 가야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통일교회를 버리고라도 그런 내용을 갖춘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사실 그렇겠다.’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와보면 이상하다고들 합니다. 남자고 여자고 선생님을 보면 어쩔 줄을 모르거든요.

요즘은 선생님이 직접 지도를 안 합니다만, 옛날에는 선생님이 하도 욕을 많이 먹고 시끄럽게 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이들을 떼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밤이 새도록 말씀에 취해서 얘기를 하면 그들도 취합니다. 선생님이 침울하게 얘기를 하면 그들도 침울하고, 선생님이 신이 나서 얘기하면 그들도 신이 나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가짜든지 내가 가짜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선생님이 가짜가 아니면 여러분이 가짜라는 거예요. 둘 다 가짜면 여러분도 죽게 되고 선생님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자기의 부모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지요? 못 입고 못 먹고 고생하는 부모를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못 했기 때문에 그저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모가 병으로 고통받으며 누워 있다면 자기의 일생을 걸어 놓고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뼈가 녹는 듯한 감정이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떨어질 때, 그런 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슬프고 비통한 마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합해져야 조화가 벌어진다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들의 도리이지만,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친다고요? 「부모의 도리요.」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아들과 부모 중에 누가 더 높습니까? 부모가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단계 앞서가는 것이지요.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로 계신다면 성부․성자․성신의 이름으로 기도해야지,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까? 왜 한 분의 이름만 갖고 기도하느냐는 거예요. ‘부모’ 하게 되면 전부 다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기왕이면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왜 섭섭하게 한 분의 이름만을 갖고 기도하느냐고요. 여러분, 남자 여자 중에서 남자만 좋다고 떡을 주고, ‘아이고! 인절미 맛 기가 막힌다.’고 하면 여자가 기분 좋겠어요? 성신도 삼위일체라고 하면서 기도할 때는 왜 성신은 빼놓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것입니까? 집에서도 아버지는 좋고 어머니는 있으나 없으나 하는 존재입니까? 아버지 생일은 성대하게 차려 주면서 어머니 생일을 기억도 하지 않습니까? 부모라는 인연은 천지조화라는 것을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전부 다 상대적입니다. 무엇이든 합해져야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도 코도 귀도 입술도 모두 서로 합하는 데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머니 아버지 둘이 합해야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암만 해 봐야 안 됩니다.

숨을 들이쉬기만 해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들이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소를 마시고 사니까 숨을 들이쉬는 것만 필요합니까? 세 번을 계속 들이쉬기만 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내쉬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숨을 내쉬어 탄산가스를 몸 밖으로 내보내야 산소가 많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만 나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요즈음 세상은 남자를 위주로 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3년 이상을 남자가 여자한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개체가 복귀하는 데는 정도(正道)대로 거쳐가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 해와가 둘이서 떨어졌으니, 올라갈 때도 둘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재창조와 같은 것입니다. 창조할 때 아담을 먼저 만들고 해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재창조할 때도 아담을 만들어 놓고야 해와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복귀역사로 아담을 만드는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여자 성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자 성인 봤어요? 여자 성인이 있다는 것을 들어 봤습니까? 성인의 어머니란 말은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분이 성인은 아닙니다.

결국 지금까지는 재창조의 역사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데는 둘을 한꺼번에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다시 만드는 과정, 즉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냐? 창조목적을 완성한 남성으로서 천주의 상속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시는 분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 즉 에덴동산에 지어 놓은 그 아담이 장가가기 전 입장을 대표한 인격자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런데 타락하지 않은, 장가가지 않은 에덴동산의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서 오시는 그 주님은 결혼식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서는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느냐 하면 여자, 즉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역사에서 보면, 교회의 지도자나 예언자나 선지자는 전부 다 남자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한 남자를 세워 그를 중심삼고 더 크게 더 크게 성장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 인류를 대표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만큼 크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소망을 전부 다 가지고 오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오시는 주님은 하나님이 직접 관계해서 만든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마찬가지인 분입니다.

기성교인을 대하는 바른 자세

아담을 지어 놓은 후에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해와를 지었다 하는데, 갈빗대를 뽑아서 만들었다는 것은 본떠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은 남자는 갈빗대가 하나 없다고 하는데 배를 째 보라지요. 더 크고 굵은 것이 있는 데, 없기는 뭐가 없어요? 그래 가지고 천당에 가겠다고요? 유치원 울안에서 ‘나는 대학원 박사가 되겠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나왔으니 이제 기독교의 해방이 벌어집니다. 천주교의 수녀들을 해방시켜서 결혼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천당은커녕 지당에도 못 갑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지금 감투가 너무 커서 사고입니다. 감투가 너무 커서 다리가 휘청휘청하고 관절통이 걸릴 지경입니다. 머리에만 담아두어 머리만 크고 몸은 적으니 그렇지요. 그러니 몸은 기성교회 교인들 몸을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기성교인들이 필요합니다. 기성교인들은 통일교인들을 욕하지만, 나는 기성교회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 나 혼자 져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멀리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을 가까이하려고 하니 어쩌겠어요? 가까워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배척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찰거머리요 원수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을 미소로 대하고 천년만년 봉사하겠다는 자세로 대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그들이 따라오게 됩니다.

요전에 신사훈이 우리 통일교회를 비방하는 집회를 하다가 봉변을 당한 모양인데, 선생님은 춘천에 갔다 돌아와 보니 그 일이 벌어져 버렸더란 말입니다. 그 일에는 통일교회의 문 선생은 관계도 없는데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했다고 뒤집어씌우니 죄를 누가 더 지은 것입니까? 하늘에서 보면 그 사람이 죄를 더 지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위로 받습니다. 심판대에 나서면 그 사람이 선생님의 참소조건에 걸리지, 선생님은 그 사람의 참소조건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통일교회를 ‘무시무시한 이단’이라고 합니다.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입니다.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고 왜 무서워하겠습니까?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성교인들이 선생님을 보고 ‘문 예수, 문 예수!’ 하는데 예수가 되어서 나쁠 게 뭡니까? 세상 사람이 모두 다 예수를 찾고 있는데, 선생님이 예수 되면 세계 사람들이 다 나를 찾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에 불쌍한 한국 백성들을 살려 주면 되지 나쁠 게 뭐예요? 나는 그런 말도 안 했는데 기성교인들이 ‘문 예수, 문 예수!’ 하고 있거든요. 또 ‘통일교회’라는 이름도 내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이름도 과히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들의 말이 전부 다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죽으면서 자기 아이들보고 ‘나 죽으면 너희들은 통일교회 나가라.’ 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웃음)

여자가 더 고생한 나라에서부터 재창조역사는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남자는 복귀될 수 있으니 여자를 복귀하고 여자를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자를 찾아서 부부를 이루게 된다면 남자나 여자나 같다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세계적인 여권운동 및 인권옹호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신랑인 인류의 아버지가 인류의 어머니를 맞이하여 천국의 법도를 확립하는 시대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방향으로 종결점을 찾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바를 따라 하늘나라에 가기에 벌써 자격을 다 갖추어서 조금도 거리낌없다는 사람은 선생님의 신세를 안 져도 되겠지만, 전부 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신세를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전부 다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가 필요한데, 왜 처음 출발할 때 동등한 권리와 위치를 갖고 출발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아담을 창조한 후에 해와를 창조한 천지 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완성되기 전에 해와는 이 땅 위에서 혼자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천리를 뒤집어엎어서 남자까지 못 쓰게 했기 때문에, 남자가 해원성사하여 여자를 구해줄 때까지 여자가 제자리를 벗어났다가는 큰일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역사를 조명해 볼 때, 어떤 국가가 제일 복 받을 수 있는 국가냐? 여자가 무자비하게 착취당하고 처참한 고통을 받은 역사를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가까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보다 여자가 천대받고, 말할 수 없이 불쌍한 지경에 이르는 자리까지 가야 가히 세계를 대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제일 비참하고 천대받는 민족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시 빚어 만들어져야 됩니다.

다시 빚는 데는 걸레 조각처럼 다 찢어진 마지막 판국에 가야 다시 만들기에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는 역사의 배경을 가진 국가에서부터 재창조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주님이 오실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여자들이 고생을 했어요, 안 했어요?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여자가 고생을 합니까, 안 합니까? 아이가 천대받지 않으면 자기가 누군가에게 천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 없으면 하나님이 천대를 하심으로써 그 사람을 탕감하려 하십니다.

한국 여자들이 불쌍한 것 같지만 이런 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통일교인들을 좀 더 고생시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싫어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자들이 선두에 서서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간첩이 나타나면 간첩 잡는 수색작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수색기동대를 조직해서 선발대로 나가서 우리가 간첩들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인간이 복귀되기 위해서는 맨 밑의 자리인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이 되고, 양자가 되고, 거기서 다시 접붙임을 받아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계의 아들이 돼야만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 혼자서는 아무리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완전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아무리 여왕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여왕이라고 큰소리치고, 아무리 군왕이라고 큰소리치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남자들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여자가 없으면 자기 일대에 망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잘 만나는 것이 복 중의 복

복이 무엇이냐? 잘먹고 잘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상대를 잘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천지의 인연을 따라 천륜의 법도를 따라 부부의 길을 닦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그 이상의 복이 있습니까? 아무리 인기가 있고 권위가 있고 가문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아내를 잘못 만나면 그 사람은 형편 없어지는 것입니다. 간판 좋고, 허우대 좋은 사람이라도 아내를 잘못 만나면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남편을 잘못 만나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이냐? 상대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상대를 잘 만나야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 있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아들을 중심삼고 복귀하여 나중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거짓 인연을 중심삼고 거짓 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참사랑의 하나님이 주시는 참사랑을 받아 가지고, 즉 천도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천도에 따라 천법을 지킬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천국을 이루어야 되는데, 예수님도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계시는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과 같은 곳입니다. 지옥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부를 찾지 못하여 아들딸을 두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낙원에서 2천년 동안 기도하시면서 성신으로 하여금 역사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죄는 여자가 먼저 지었기 때문에 여성신인 성신이 와서 어머니의 실체로 나타나 죄를 씻고 세상을 깨끗이 하면, 예수님은 다시 신랑으로서 새로운 씨를 가지고 재림해야 됩니다. 재충전하여 새로운 천지의 참부모의 혈족으로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런 세계가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계획이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도 없이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믿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의 인간이 타락 후의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런 인간들을 아무리 구원한다 해도 나중에 또 타락할 가능성이 다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이 자녀의 날을 세웠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이 날을 제정했고, 통일교회가 이 역사적인 내용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축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돈이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벌어지느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과정을 거쳐 가지고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 부모의 날을 설정한 후에 자녀의 날을 설정한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가 등장하게 될 때에 자녀도 결정지어지는 것입니다. 자녀를 결정짓는 자리로 나가기 전에 부모의 출발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귀노정에서는 부모만이 아니고, 자녀의 인연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인 인연인 자녀를 중심삼고 볼 때는 부모의 날이 먼저 출발하고 자녀의 날은 나중에 출발해야 되지만, 복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자녀의 날이 먼저 출발하고 부모의 날은 나중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부모의 날을 설정하고 자녀의 날을 선언했기 때문에 천지간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그날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날은 천지간에 승리의 환성을 올릴 수 있는 날입니다. 이날이 설정됨으로써 영계는 때를 맞았으니 맺혔던 것이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의 악한 세력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서 점점 소멸되어 갑니다. 세계 역사는 선생님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8대를 못 넘어서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견지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0년을 지나면서 공산당 내에서 둘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1917년부터 공산당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40년이 지난 1957년부터 소련과 중공의 이념분쟁이 생겼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때를 전후해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때가 선생님으로서는 제2차 7년노정의 3년째로 들어가는 때였습니다. 그것이 다 그래야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동기에 박자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명절 중의 명절은 자녀의 날

복귀섭리의 주류를 이루는 심정 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변하던가요? 하나님도, 우리의 수백 대 아버지 어머니도 그러했으니, 그 사랑을 침범하는 존재는 이 땅 위에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지가 그 사랑을 찾기 원하고, 예수님도 그 사랑을 찾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신랑이 온다면 신부가 나와야지요. 그래야 가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나?’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자로 태어난 까닭이 무엇입니까? 시집가기 위한 것입니다. 시집간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남자를 맞아 사랑을 하고 그래서 부부를 이루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존재물이든 그 과정을 밟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가 흥한 것은 남자 창조시대권 내에, 그 천운권 내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이제는 대처승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에 신부와 수녀들만 있다면 망합니다. 만약 로마 교황에게 가인 아벨 두 아들이 있다면 이들을 ‘장가를 보내야 됩니까, 안 보내야 됩니까?’ 하고 물을 때 ‘안 보내야 됩니다.’ 하는 패들은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려고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려고 태어났지요? 그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따라서 축복권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최고의 진리권을 이탈하는 것은 최고의 악입니다, 최고의 악.

사랑은 컴퍼스의 중심대와 같아서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그 사랑의 심정적 기준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사탄이 점령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 ‘야! 내가 사람 때려잡을 때 기분 좋더라. 너희들도 사람을 때려잡아 봐라.’ 하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습니까? 자기는 악한 강도일망정 자식에게는 ‘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그 법도에는 순응하여야 됩니다. 그것이 천법입니다. 악도 그것을 점령할 수는 없습니다. 악은 언제나 상대적인 입장이지 중심은 못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에 주시하셨고 예수도 그것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세우려 하신 아들과 딸의 자리를 찾지 않고는 그 높은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은 날을 기념하고, 이것을 결정지을 수 있게 한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공적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앞으로의 역사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명절 중 제일 큰 명절은 부모의 날보다도 자녀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날은 무슨 날이라고요? 「자녀의 날입니다.」 그날은 부모의 권한을 다시 찾는 날이요, 6천년 동안 인류역사를 유린하던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타나는 날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날을 맞아야만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고,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라도 교인들끼리만 가서는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없습니다. 다리를 놓아서 모셔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통일교인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만민이 영원히 지켜야 될 날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문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제일 복된 날이 무슨 날이라구요? 자녀의 날입니다. 그 다음에 자녀의 날의 영광을 지니고 그 권위를 가진 승리의 왕자 왕녀들이 부모를 모실 수 있는 날이 부모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탕감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가만히 보면 탕감의 길을 똑바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똑히 다 가르쳐 줬는데도 가르쳐 준대로 똑바로 못 가면 선생님은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영계에 가서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 제가 청파동 교회 때부터 선생님을 뵙지 않았습니까?’ 해도 그때는 선생님은 원리의 안경을 끼고 볼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걸어온 노정으로서의 안경을 끼고 볼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으면 받아들일 것이고,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실 때에 그런 안경을 끼고 보시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거기 맞추려고 이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지고는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자! 그러면 이러한 기쁜 날을 여러분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짐작이나 했지, 확실히 알았어요? 뼛골에 찌르르 전기가 통하고 전신이 불덩어리가 될 정도로 느꼈느냐는 것입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그저 너무 좋아서 기절하고 넘어질 정도로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좋아해 보았어요?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해서 찾아온, 아들딸이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리고 함께 춤출 수 있는 날이 온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좋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 저 하나님 왜 저래?’ 하고 의아해하겠습니까? ‘아버지!’ 하고 달려가서 팔만 들어 춤출 것이 아니라, 손발을 총동원하여 춤을 추며 아버지를 더 즐겁고 더 기쁘게 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느 정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있습니까? 그저 마지못해 ‘아버지!’ 하며 흉내나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피 중의 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날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길이 빛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2층에 있다가 사흘 후에 내려오더라도, 여러분들이 여기에 왔다가 인사도 안 하고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무리 축하를 한다고 해도 축하가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종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자녀의 날은 선생님 개인에 있어서는 말씀부활, 실체부활, 심정부활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실체부활, 심정부활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겠지만 말씀부활이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말씀부활, 실체부활, 심정부활을 거쳐야 합니다. 심정부활을 거치지 않고는 주체적인 남성의 위치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남성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축복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를 재창조할 수 있는 완성한 이상적 남성으로서의 심정을 지니고 말씀을 중심삼고 상대인 해와를 재창조할 수 있는 주체적인 견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인 해와는 절대 복종해서 거기에 하나되는 기준까지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입장에서 아들의 자리를 결정하고, 그다음에 중심의 목적인 부모의 자리를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1960년도에 그런 부모의 자리를 종적으로 결정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 과정을 거치는 여러분은 그런 형태의 길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을 설정해 가지고 횡적인 입장에서 자녀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부활, 실체부활, 심정부활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한 남성을 중심삼고 여기에서 축복을 이루어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을 대해서는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을 새 시대의 아들딸로 축복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탕감노정에서 선생님처럼 실체부활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그것을 다 접붙여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여러분들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통일의 공식

자녀의 날이 기쁜 날입니까, 슬픈 날입니까? 「기쁜 날입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하면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자녀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날을 맞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부모 없이 태어난 고아와 같은 입장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들이 부모를 찾게 되니, 정상적인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와 같은 기준을 갖추어 이날을 설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도 3월(음력)에는 부모의 날, 10월(음력)에는 자녀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중심삼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2자녀를 찾아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소생․장성․완성의 3시대별로 36가정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조상된 입장인 36가정이 가인과 아벨을 세워 탕감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72가정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환경을 넘어서서 국가 형태, 세계 형태로 이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인데 선생님이 대신 찾아 주는 것입니다. 이제 가정이 들어가고 사회가 들어가고 만국이 들어갈 수 있는 때, 하늘과 땅이 겹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새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7년노정을 거쳐가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역사는 점점 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민주세계에도 끝이 오고 공산세계에도 끝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자녀의 날을 얼마나 뜻 깊이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얘기해 주니까 그렇게 알지 어디 여러분들이 알기나 했어요? 어떤 사람은 ‘아이고, 선생님은 꾸미기도 잘 꾸미는구만.’ 할 겁니다. 사실 꾸미기야 잘 꾸몄지. 아무리 꾸몄다 하더라도 그렇게 잘 꾸밀 수 있겠습니까? 그 이상 꾸밀 수 없다면 그것은 공식입니다. 아무리 꾸며도 더 이상 꾸밀 수 없고 비난받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되면 불변합니다.

공식이 무엇이냐? 어떤 한 가지를 가지고 백 가지의 문제에 적용시켜 다 풀어내면 그것이 모든 것의 모델, 즉 표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그만 원칙이 전체 앞에 부합될 수 있으면 그것은 공식이 되고 법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다 갖다 붙여도 공식은 이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갖다 붙여도 이상없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연구를 해 보아도 그것은 공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마지막 우주통일의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세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별의별 욕을 먹으면서도 버젓이 버티면서 이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쳐서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참 재미가 납니다. 이 세상에 벌어지는 가지가지의 사건들을 보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텐데….’ 하면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다른 생각 안 합니다. 복귀노정이 이렇게 되어 가는데도 여러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멋지게 죽을 수 있는 길을 가자

선생님은 통일교회라는 한 집안의 주인인 아버지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생을 하니 그 결과가 다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의 일, 우리들의 일에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협조를 못 했으면 그 결과를 보고 감사해야 하고 그다음에라도 협조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그러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전부가 엉망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몸에 때가 있지요? 그 때가 때가 되기 전에는 살이었어요. 그렇지요? 여러분은 몸에 때가 있으면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살이 되어 있습니까? 때가 되어 있습니까? 때가 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 씻어 버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좋았다고 해도 오늘에는 해가 되기 때문에 씻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필요합니까, 필요치 않습니까?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합니까?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양이 다 차면 집어던져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예 교회를 나오지 말아야지요! 여러분은 민족복귀, 구원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선생님을 필요로 하고 그 이상이 되면 집어던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천주복귀를 완성할 때까지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통일교회는 6천년 노정을 통해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접붙이기 위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이 멀고 시간이 없고 바쁩니다. 쉬면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쉬는 사람들은 도중에 침 뱉고 도망갈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얼마만큼 필요합니까? 죽을 때까지 필요해야 합니다. 뜻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죽을 때까지 필요하다는 말은 천주복귀보다 더 실감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죽고 난 후에 남아지는 것은 하늘 뜻 앞에 충성한 실적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죄수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천법에 의하면 살인강도보다 더 큰 죄인의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몇십년 후에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남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에 의해서 죽는 것입니다. 엄연히 사형선고의 팻말이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차피 죽어야 할 몸인데 죽을 바에는 멋지게 죽자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미모를 지닌 미인이라 하더라도 백년을 넘길 수 없습니다. 장송곡을 울리며 칠성판을 지고 가야 할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왕지사 죽어야 할 몸인데 멋지게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축복을 받아 사위기대를 이루어서 3대를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고 합니다. 자기와 자식만으로는 2대 복귀밖에 안 됩니다. 종적으로 보면 하나님, 선생님, 자신 해서 3대이지만,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는 선생님이 할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아들, 손자까지 결혼시켜야 종적으로 3대가 복귀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대가 완전히 복귀되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온다

신앙생활을 그냥 적당히 하다가 죽어서 다른 사람들은 이 뜻을 이루고 왔는데 자기 혼자 그러지 못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신앙인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죽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갈 길이 바쁜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언제 탕감복귀를 완결 지을 수 있겠습니까?

옆을 보지 말고 가야 되는데 여러분은 반대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옛날에 선생님은 통학을 하면서 전차를 타지 않고 거의 걸어 다녔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탕감의 길을 걷는데’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제물이 되는 입장에서 하늘 앞에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도의 길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하겠다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만 복귀의 길, 즉 탕감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탕감을 하는 데는 자기 자신이 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존재를 세워 놓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존재가 지금까지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인 물질을 통해서 탕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물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실체가 나왔으니 실체제물시대, 즉 예수님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최고의 상대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찾으려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상대는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으려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자기 몸을 중심삼고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늘세계의 사랑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자신에게서 물질을 초월하고, 몸 중심의 욕망을 초월하고, 욕정을 초월하고, 지금까지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요소 일체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출발시킨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지 못한 남자는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가 모두 탕감복귀노정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교회 교파는 망합니다. 장로의 직을 주어야 교회에 나가고, 목사가 듣기 싫은 설교를 했다고 해서 교회 안 나가는 교인들은 지옥 가는 겁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초월해야 할 우리

우리에게는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뜻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 몸의 순결을 지키며 자기의 혈족, 친족을 일시에 잃어버리더라도 뜻을 따라가야 됩니다. 모든 일가친척이 자기를 버리더라도 뜻을 따라가야 됩니다. 역사상의 노아가 그러했고,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그렇다고 전부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영원한 것을 얻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대충 알기만 했지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을 통하여 탕감하는 제물시대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를 보게 되면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갖고 만민을 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물질을 통하여 탕감해야 됩니다. 물질을 통하여 탕감하고 뜻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넘어가셨듯이 여러분도 죽음의 길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접할 수 있는 소망의 신랑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살겠다고 집 사고 살림살이 들여놓고 합니다. 잘살겠다고 하다가는 전부 망합니다.

오늘의 탕감복귀는 신․구약성서를 중심삼고 내 자신이 완성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구약시대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신약시대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성약시대에 있어서 주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체가 구약적인 입장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몸을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이 뜻 세계에 들어오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자기가 죽밖에 먹을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 죽 한 그릇을 뜻을 위해 바치면 물질을 다 바친 셈이 됩니다. 자기가 거지 사촌이 되어 가지고 누더기 쪼가리를 걸치고 있는데 거지 굴에 가서 그 누더기 나누어 주면 물질적인 것은 하루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최악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탕감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중심삼고 탕감하던 때이며,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중심삼고 탕감하던 시대입니다. 다음에는 그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권 내로 들어가야 됩니다. 거기에서 자녀의 입장이 결정되는 것이고, 거기서 신랑 신부의 입장이 결정되어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만물과 아들딸에 한정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신랑 신부가 되어야 하고 가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가 6천년을 두고 내려와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뜻 앞에서 물질을 초월하지 못하면 뜻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 드리기에 인색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소서.’ 하고 감사하면서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민족을 대표해서 세계적 골고다 언덕을 넘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지도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홀로 가야 됩니다. 홀로 가야 돼요. 예수님도 제자들로부터 버림받고 고독단신으로 골고다를 넘었듯이 여러분도 홀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골고다를 넘는 데는 예수와 같이 죽어서 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가 이 7년노정에 해당됩니다. 6천년을 7년에 탕감한다는 것입니다. 6천년에 천년을 합한 7천년을 7년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7년노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어떤 일이든지 수습이 가능해집니다. 그러기에 신령한 부흥집단도 7년만 넘어가면 바닥이 나서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그 7년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 걸리는 기간입니다. 지금까지는 제물시대를 거쳐 이 길을 다 감으로써 기독교가 길을 닦아서 예수와 성신이 영적으로 제물을 바치는 시대였습니다. 부모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실제적으로 부모가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공식적인 노정은 자식으로서 누구나 다 걸어가야 합니다. 앞으로 누구나 하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하늘 창고에 입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입적시켜야 되고 자기 자신도 입적해야 됩니다. 시집가는 신부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라 했고 우리는 신부라 했으니 전부 다 시집갈 준비를 해야 됩니다. 시집을 갈 때는 재산도 몸도 모두 가지고 가지요? 자기의 모든 것을 신랑 집에다 입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입적되어야 했는데 입적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적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속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물질을 입적시키고 몸을 입적시키고 심정을 입적시켜야 합니다. 그 입적하는 것이 바로 신부로서 신랑에게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는 외적인 예수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내적 외적인 신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가야 된다고 하면 기독교에서는 펄쩍 뛸 것입니다.

타락권 내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물질을 수습해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할 수 있어야 되고, 몸은 이 땅에서 예수님이 실천했던 것과 같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2천년 동안 역사하던 내용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여러분은 종족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가 갈 수 있는 길을 선생님이 닦아 놓았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수습해 나가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모든 여건들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날이 옴으로써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되는 우주사적인 기원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우주가 찬양할 만한 엄청난 일입니까? 지상에서는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영계에서는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녀의 날의 귀한 가치를 여러분이 알고 이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지여, 저희의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 기쁨과 슬픔이 깃드는 모든 전부는 땅 위의 자녀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사옵니다. 역사적이고 엄청난 자녀의 날이 이 땅 위에 기틀을 잡고 출발한 이날은 천추만세에 인간들이 감사해야 할 날이란 것을 저희들이 알고, 길이길이 기념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모인 뭇 자녀들이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사오니, 뜻깊은 이날, 하늘 앞에 영광을 드리고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날로,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날이 되게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체를 맡기오며, 어디를 가나, 어디에 머무나 당신이 뜻하시는 모든 것이 성취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지, 오늘은 1968년 11월 24일, 이달 들어 네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 만민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흠모하는 자리마다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과 기쁨이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인간인 연고로 어차피 생의 길을 넘고 넘어서 아버지와의 본연의 인연에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사실을 알고 따라가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마음 가운데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깃들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1968년 이 해를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지금까지 나왔사옵니다. 그간에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미흡하고 불충스러웠던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남아진 40일 기간 동안도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의 흐름 전체를 통하여 모든 것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순간을 통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남아진 이후의 기간에 저희들이 소망하고 목표하고 나오던 모든 전부가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두어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고 만민 앞에 감사드릴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를 개의치 않고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경배드리고, 충성을 다하여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자비롭고 평화스러운 마음이 깃들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이 땅을 대하여 소원하시듯이, 저희들도 아버지를 대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저희들을 대하시듯이, 저희들도 아버지를 대하여 부모를 사모하는 심정이 부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마음과 저희들의 마음이 하나된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한 많았던 아버지의 사연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를 붙들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그 한 날이 어서 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아버지의 높고 귀함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감사드릴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어차피 세계를 향하여 나가야 할 저희들이오니 속히 세계 각국에 나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준비를 다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갈 길이 바쁜 그 목적지를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이 쉬어 갈지라도 통일의 무리들인 저희들은 쉬지 않고 가야 할 곳을 직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 가야 할 그곳에는 시련과 고통과 수고의 길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원수의 총칼이 저희의 앞을 가로막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직행하려는 그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거기에 나타날 모든 외적인 환경을 쉽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아버지를 위하여 움직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이 길을 직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나긴 6천년 세월 동안 섭리해 오신 것도 이 길을 직행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셨음이요, 탕감해야 될 조건을 넘지 못하였기 때문이란 사실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과 탕감의 조건이 저희의 앞길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이 길을 찾아 나오심에 있어서 참다운 인격과 참다운 탕감의 조건이 필요하셨듯이 아버지를 찾아 나가는 저희들도 참다운 인격을 갖추고 참다운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저희 자신이 사탄 앞에 해방받을 수 있는 자체, 즉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자체가 되는 동시에 만민을 이끌고 제물을 아버지 앞에 드려 놓고 사탄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래야 갈 수 없는 나그네의 신세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갈 길이 멀고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멀고 바쁜 이 길을 돌아가서는 안 되겠고 직행해야 되겠습니다. 이 먼 길을 저희들이 돌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의 마음과 사정에 일치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저희 자체를 탓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저희 자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런 자리에서 뜻을 위하여 온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자극적인 심정을 느끼게 될 때에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간곡한 심정이 솟구치게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자리에서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역사해 주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지 앞에 간곡한 심정으로 해원의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이제 저희들의 생명은 저희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책임은 이것을 완수하는 것이요, 이것은 아버지 앞에도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이렇게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과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깊고 오묘한 당신의 뜻과 당신의 높으신 사랑을 그리워하는 자녀들이 있사올진대, 그 깊으신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헤아릴 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높고 깊으신 사랑 가운데 잠기게 하옵소서. 저희 자체를 완전히 묻어 버리고 온전히 나설 수 있는 그 모습을 아버지도 그리워하고 저희 본성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극 받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새벽에 모인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마음을 활짝 열어 아버지께 안길 수 있는 심정의 준비를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몸은 기필코 아버지 품에 안겨야 되겠사옵고,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자녀들이 이 터전을 닦아 오기까지 당신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까지 저희들을 끌고 나오시기 위하여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어제는 슬펐던 사실이 오늘은 기쁨으로 변하고, 오늘 기뻤던 사실은 미래에 소망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모인 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 한국의 강토를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만나는 그날을 몹시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그들을 아버지의 자비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으로 품어 주시옵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다시 한 번 아버지 앞에 아뢰오니 그들을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당신만이 운행하시옵고, 저희들을 한마음으로 묶어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아버지 뜻 앞에 충성할 수 있고 맡겨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위하여 눈물짓고, 이것을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하늘의 뜻이 성사되기를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간곡히 호소하는 자녀들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가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그 발걸음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자비로운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우나 괴로우나 슬프나, 당신의 기쁨을, 당신의 의를, 당신의 의로움을 체득하면서 당신을 위로할 수 있고, 생명의 인연을 그대로 상속 받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하루가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오늘 이 한 시간이 아버지 앞에 자신을 세워서 기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오늘 전체의 시간을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앞으로 따라올 수많은 인류를 아버지께서 사랑의 마음을 갖고 품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사람들은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갑니다. 이와 같이 어떤 목적을 정하여 그 목적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는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생활에 있어서 바른 목적의식의 중요성

한 해의 목적을 세우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게 될 때에도 일년의 목표를 세웠으면 그것을 생활 가운데 본으로 삼아 나가지 않고는 그 해에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두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어떤 목표를 중심삼아서 그 목표를 표준으로 하여 생활이 그 목표와 일치되어 나가지 않고는 일생의 목표를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류를 구원섭리해 나오시는 데 있어서도 맨 처음에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표준으로 하여 나오셨습니다. 목표에 대한 소망, 목표에 대한 책임, 혹은 사명, 이 모든 것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생활에 있어서 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무엇을 목표로 나오셨느냐 하면 여러분 개인을 목표로 하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개체를 표준으로 해서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을 중심삼은 가정을 목표하셨고, 이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을 목표하셨고, 그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을,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이렇게 하여 세계와 천주까지 목표하셨습니다. 소목적을 완결시키지 않고는 대목적의 터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대목적을 완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는 여러분 개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필요함과 동시에 여러분 가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필요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이 필요하고, 이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목적해 나오시는 방향과 오늘날 우리가 목적하는 방향이 서로 달라서 둘이 되게 되면 하나의 목적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아서 하루하루 책임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목적하는 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의 방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의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그 목적을 지향해 나오셨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나 선생님은 정해진 기간 내에 그 목적을 완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운 한 인간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어떠한 조건을 세워 이것을 연장시켜 후세로 밀고 나가서 목적을 성사할 수 있지만, 인간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같이 후세로 밀고 나가서 목적을 성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어떤 일이 연장된다는 것은 그 목적 성사에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제한된 권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 기준과 일치되지 않아 그 뜻을 연장시키면 일생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룬 자리는 또 하나의 출발의 자리

이것을 볼 때 우리들의 목표점,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멉니까? 우리에게는 개인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어떤 목표의 기준과 일치되어 하나님께서 ‘됐다.’ 할 수 있는, 본이 되는 기준에 섰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써 모든 것이 성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의 요인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국가면 국가 앞에 만민을 대신하여 그들의 본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할지라도, 본이 되는 그 입장이 하늘의 전체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목적을 완성한 종점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발, 혹은 그 과정의 일점(一點)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가 하는 것을 우리는 무의식중에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가깝거나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면 갈수록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찾아오신 목적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나를 끌고 가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지, 나를 현재에 머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대개 맨 처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은사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넘쳐 마치 자기 일신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듯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출발하는 그 자리가 기쁘고 혹은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느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발의 자리에 지나지 않지 목적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목적의 자리에 가려면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자리를 거쳐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목적이라는 것이 시일이 가면 갈수록 작아지느냐, 또 내가 뜻을 성사해 나가면 나갈수록 더 작아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점점 확대되고 일체성을 두고 점점 커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맨 처음에 뜻을 중심삼고 나오는 소망의 일념보다도 뜻을 깨달아 나오고, 내 자신이 뜻을 중심삼고 따라 나가는 시일이 쌓이면 쌓일수록 맨 처음에 출발하던 때보다 더 힘 있고, 더 자극적인 하나님의 은사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지향하는 목적의 자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왕왕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생활과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한 생활

그러면 우리가 찾는 참된 생활, 본 될 수 있는 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으려면 우리 개체를 중심삼은 제한된 한계성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 개체의 어떠한 소원이니, 목적이니, 생활 의식이니, 생활 감정이니 하는 것들을 지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한된 권내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하나님의 목적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제한된 이 환경권 내에 머물러 있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이 권내에서 갖는 생활 습관이나 생활 태도는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영원한 목적관에 일치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현세의 우리로서는 자기의 어떤 주장을 중심삼고 ‘나는 이렇게 산다.’는 본을 세울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러한 자리까지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은 주체성을 지니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성 복귀를 하여 주체성을 갖출 수 있는 그 날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사탄이 이 땅 위에 참소할 수 없는 자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모두의 생명체와 내 자신과 완전히 화합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목적의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적인 무대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목적과 너무나 상극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권내에 머물러 있는 내 자신을 두고 볼 때, 나를 중심삼아서 본 되는 생활이라는 원칙과 기원을 세웠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자체의 결과를 맺는 것이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 이 기준을 어디에 세워야 하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기준을 세우면 출발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거쳐가는 과정도 하나님과 더불어 가야 하고, 목적점도 하나님과 더불어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으로 삼아야

하나님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세계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는 제한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환경적인 모든 여건이 무한한 그 세계와는 너무나 머나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전부가 상충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길을 가야 할 우리의 인생길, 그런 길을 찾아가는 우리의 도의 길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는 우리 생활의 본 되는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본으로 삼고 하나님을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직접적으로 대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계실 수 없게 됩니다. 먼 거리에서 관념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뿐이지, 사실적인 내용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연맺는 자극이나 동기로 삼을 것인가 할 때에 이것은 역사시대에 섭리의 뜻을 대했던 수많은 선지자, 수많은 우리 선조들을 디딤돌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시느냐? 인간을 중심삼지 않고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인간 세상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우리 조상들이 남긴 섭리의 터전을 연결시켜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도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이 남기신 모든 사연, 즉 하나님을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접하셨던 초점, 그 초점을 우리 생활에 흡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역사 과정에 있었던 일로, 그냥 지나간 그분들의 사연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늘날 우리 생활 가운데 재현시킬 수 있는 자기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적인 섭리의 인연을 크게 해서 하나님 앞에 현실적인 기반을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먼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이 하나님과 인연맺던 간곡한 심정의 자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을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서 관계맺지 않고는 역사적으로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하나님과 인연되지 않고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미래에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적을 남기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가 문제

그럼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현재에 있어서 본 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결부시킬 수 있는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것은 역사적인 선조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명령을 받든가, 가정을 중심삼고 명령을 받든가, 종족을 중심삼고 명령을 받든가, 민족을 중심삼고 명령 받든가 해야 합니다. 이렇게 최고의 자리에서 결정된 것을 우리 생활권에 흡수시켜 가지고 이것을 현실과 결부시키는 자리에서 역사적인 재현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역사적인 재현의 기준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결정된 그 사실이 이루어졌더라도 그것을 두고 보는 자리에서는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이것을 내가 끌고 갈 수 있고, 내가 밀고 갈 수 있는 어떤 흔적과 실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 비로소 과거부터 남겨진 그런 생활 기준, 즉 하나님께서 찾아 나오시던 생활적인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원한 재산이 되고 밑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관계맺을 수 있는 초점이 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수 있었던 자리를 찾을 수 있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수 있었던 자리를 찾을 수 있고,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의 모든 여건도 헤아릴 수 있는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그냥 알고만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내가 아무리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와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 생활적으로 본이 될 수 있는 흔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뜻 앞에 본 되는 생활을 했다 할 수 있는 여러분 각자의 현실적인 기반을 어느 자리에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요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 뜻을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우주사적인 뜻이 있고, 개체로 보게 되면 개인의 뜻이 전부 다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뜻, 개인의 목적, 개인의 본 될 수 있는 기준과 가정의 목적, 국가의 목적, 세계의 목적, 천주의 목적 전부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래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중심삼아 지금까지 찾아 나오시던 과거의 인연을 현실 기점에서 상 속 받아 가지고, 상속 받은 그 기준을 나 자신을 통하여서 목적을 중심삼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생활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들어온 사람은 개체에서부터, 오래된 사람은 그 범위에 따라 닦여져 있는 생활 기반을 통하여 어떻게 실적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기준에서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민족․국가․세계 천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교회 울타리 안을 섭리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생활 무대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생활무대가 사방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여기서 여러분 각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할 때 역사를 대표하여 본 될 수 있는 생활 기준을 만들어서 개인이면 개인을 찾아 나오시느라고 지금까지 수고하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내용을 중심삼아서 현실에서 그것을 나와 관계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맺은 현실적인 기반을 통해서 개인은 가정을 연결시키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가정은 종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종족은 민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겨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서 하늘땅이 요동치고, 온 세상이 진동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절대적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이 없어서는 본 되는 생활권 내의 한 기준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역동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뜻에 일치화되어 있습니까? 일치화되어 뜻이 지향하는 그 목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이겨 나가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뜻이 크면 큰 만큼 그 자리는 최고의 훌륭한 자리이기 때문에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역사는 거기서부터 출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본 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은 너무나 경솔합니다. 한 개인이면 개인이 민족과 국가를 대표해서 그 민족과 국가를 구할 수 있는 본 되는 생활은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그런 기준을 찾고, 그다음에는 민족과 국가를 이겨내야 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민족과 국가를 대표한 본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그런 입장에서 살았는가를 비판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멋대로 둥둥 떠다녔습니다.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고 방황했습니다. 오늘 한순간 한순간을 뒤에서는 하나님이 밀어주고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앞장서서 가는, 이런 동역동사하는 마음을 느끼고 협조하면서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자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자리하고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은 떨어진 것을 말하고, 갈라졌다는 것을 말하고, 간격이 생겨 벌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압축시켜 접촉시키려면 중간에서 제지하려는 어떤 힘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 사이에는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압축시켜야만 합니다. 이것을 압축시키는 힘은 외적인 힘이 아니라 심정입니다. 우리 몸으로는 할 수 없지만 심정세계에 입각한 그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힘입니다. 이와 같이 목적의식에 대한 강한 힘, 생활의식에 대한 강한 힘, 집념에 대한 강한 힘이 작용해야 오늘날 이 간격을 좁혀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최후의 운명을 결정짓던 그때의 각오와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개인을 중심삼은 일이라면 심각한 것이 아니지만 민족을 대할 때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 패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서러움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또 나 하나 패하게 될 때 세계적인 문제가 좌우되기 때문에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결정하는 그 순간은 자기가 수십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해 왔던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수십년 동안 아무리 수고했다 하더라도 그 수십년 역사가 문제가 아니라 결정짓는 그 한순간이 문제인 것입니다.

패하게 되면, 패자의 서러움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뜻을 대하고 나갈 때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과 결부된 생활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벨도 그런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였고, 노아도 역시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맺어 나왔고, 아브라함도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으며,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고 기도하실 때 얼마나 심각하셨겠습니까? 얼마나 간절하셨겠습니까?

왜 우리 선조들이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맺어 와야 했느냐? 그것은 우리 인간이 타락한 세상권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번식된 몸이니 이 권내의 의식이나 인식을 가지고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기준과 접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정성이 합할 수 있는 그 초점상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터전을 닦아 온 우리 선조들이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자리가 후대에 연장되고 계승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우리들이 현실에서 과연 하나님 앞에 본 되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 우리는 한 나라와 한 세계를 대표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큰 짐을 져야 큰 복을 받는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옛날에 아담이 타락하지 않은 기준에서 천사장이 유혹하던 그 자리를 넘고 나가야 했던 길, 노아가 120년 동안 수고한 자리를 넘고 나가는 길,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않고 나그네 신세가 되어 걷던 외로운 길, 모세가 가던 길, 예수가 가던 길, 역대의 모든 우리 선조들이 가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중심 섭리의 때가 가정적인 시대면 가정적인 기준을 넘어서야 하고, 민족적인 시대면 민족적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시대면 국가적 기준을 넘어서야 하고, 세계적인 시대면 세계적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시대에 해당하는 시련 과정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여기에 들어와서는 전부 다 짐을 풀고 홀가분하게 되어 자기 혼자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그러나 짐을 풀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짐은 바꿔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그 짐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짐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짊어지고 가는 이 짐은 우리가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해서 가벼운 짐으로 바꿔 져서는 안 됩니다. 그 짐이 만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힘이 없으니 가벼운 짐을 지겠다.’ 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할 큰 복의 터전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고대하고 만민이 필요로 하는 복을 나누어 주어야 하므로 짐을 무겁게 지면 질수록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복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귀한 복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만일 민족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복을 짊어지고 가겠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인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적인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 되는 사람이 역사의 주류로 남아진다

통일교인들은 여기 들어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옴으로 시작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짐을 지는 이것은 그야말로 여러분의 선조면 선조 앞에 본 되는 길입니다. 아울러 지금 이 현실세계의 만민 앞에 본 될 수 있는 길이요, 후손들 앞에 본 될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선조가 잘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기서부터 박차를 가하고 여기서부터 힘을 다하여 나아가야 됩니다.

나라가 크면 클수록 살림살이 또한 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진 사람은 책임을 진 만큼 그 범위에 해당하는 복잡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표자와 미국의 대표자는 위치가 다릅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이 조그마한 삼천리반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큰 나라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큰 나라의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해결 짓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의 운명과 운세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해결 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크면 클수록,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거기에 해당하는 십자가와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피해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즉 내가 남을 시켜서 공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시점에서 역사를 몰고 가야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향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필요한 것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탁 받을 사람으로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내게 옮겨서 국가를 거쳐 세계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인도 현재의 이 자리에서 기뻐하는 자가 될 것이 아니라, 여기에 기반을 형성하여 수많은 교파 앞에 이것을 밀고 나가고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묶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지상에 있어서의 본 되는 사람입니다. 뜻을 위해 싸워서 승리하여 본 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여러분은 발전하는 역사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을 따라 나왔지만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한강이면 한강을 중심삼고 볼 때 흐르는 주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주류는 언제나 주류로 남는 것입니다. 시대가 교체되고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그 주류는 언제나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함없이 흐르는 주류와 함께 흘러 나가던 물줄기라 하더라도 그 주류가 흘러가는 방향에 조금만 거슬려도, 혹은 조그마한 조건만 걸리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주류는 어디로 가느냐? 이 주류의 방향이 세계로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민족을 위하여 가다가 돌기 시작하면 세계의 주류와는 인연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새로운 주류는 이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 이어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그 목적 기준이 어디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목적은 일개 국가가 아닙니다. 세계도 아닙니다. 지상만이 아닙니다. 이 온 소망 세계의 수많은 억천만 사탄까지 추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류의 목적을 향하여 우리는 희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라는 것은 돌아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길이 있다면 죽으나 사나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류는 가는 도중에 어떤 것과 부딪친다 해도 무섭지 않습니다.

승패는 오늘 이 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딪쳐도 먼저 부딪치고 상처를 입더라도 전체를 위해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주류가 흘러가는 길입니다. 그러지 않고 구경이나 하고 있다든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나야 이 정도로 가면 되겠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류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주류의 물줄기를 먼저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반대되는 여건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기동대의 능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모든 물줄기는 반드시 주류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이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역사적인 모든 시점이 시작되는 이때에 우리는 노아의 심각했던 기분을 느껴야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 위해서 자기의 고향 산천을 이별하고 가던 그 심정을 찾아가야 됩니다. 모세는 자기 민족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 민족과 더불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의분심에 불탔습니다. 그래서 내심에서 원수들의 모든 장벽을 일시에 폭파시키고 싶은 간절함이 폭발되어 물질세계의 영화로운 모든 생활을 저버리고 뛰쳐나갔는데, 그와 같은 결의를 우리들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승패라는 것은 과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원수를 대하여 싸워야 할 때에 그 원수가 수십년 동안 어떤 분야에 종사해 전문가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과거에 닦은 모든 실력을 가지고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기준을 밟고 넘어서 이겨야 최후의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밟고 넘지 못하면 자기가 배운 지식이라든지 능력, 혹은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것이 자기에게 있다 할진대는 그것을 들고 나가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탕감복귀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피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는 자리, 보통의 인간들이 하기 좋아하는 자리가 아닌 슬픈 여건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연결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애국자는 반드시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과거의 역사가 비참했다면 비참한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선전포고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현재에 대해 부정할 수 있는 능력과 능동성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시대를 혁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애국자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선지선열들이 거쳐왔던 모든 뜻은 한때밖에 안 됩니다. 그들을 영원한 표준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들도 역시 생활적으로 본 될 수 있는 것은 한 부분이지, 내 생활 전체에 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도 나의 혜택을 받아야 된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선지선열들이 지금까지 남긴 실적을 연결시켜서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에서 밀고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와 더불어 준비하여 엉클어진 역사를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지선열들의 생활 기준은 하나의 재료는 될 수 있지만 전체의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전체의 기준은 누가 연결시켜야 되느냐? 우리가 연결시켜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성도들의 생활 관념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본 되는 생활의 기대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어려울 때 무엇이든지 끌어다가 인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한번 잡아당기면 전부 다 끌려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과거의 그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고는 더 큰 인연의 실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또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전력을 기울여 현재에 본 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복 받던 그런 본이 될 수 있는 자리,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인연을 들고 나오는 그런 본이 될 수 있는 자리,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본이 되는 이런 기준을 여러분이 연결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본 되는 생활의 기본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우리는 이 복잡한 것을 다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모든 것을 풀고 무난히 넘어갈 수 있고 갔다가 다시 올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이 길을 못 가겠다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개척 노정이기 때문에 ‘너희들 와라.’ 하면 전부 다 달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선 통일교회 교인들은 목적 완성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가서 거기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와 가지고 만민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아이구, 이놈의 세상! 다시 올 것 생각하면 진저리난다.’ 했더라면 이 땅 위에 오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셨다가 오셔야 할 운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실 때도 오실 것을 생각하고 가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다시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이 민족의 선두에 서서 개척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 고개를 넘어 평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소원의 닻을 내려 놓고 다시 돌아와서 만민을 데리고 가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후대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는 사탄이 참소한 역사요, 하나님께 불충한 역사였기 때문에 앞으로 올 사람에게는 쓸데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말미암아 그들의 역사를 잘라 버리고 선한 역사와 연결시켜 지금까지 선한 역사의 기로에 가려 있었다는 입장에 서서 새로운 미래를 갖추게 될 때, 거기서 비로소 천국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선은 선끼리 연결할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축복가정들을 보게 되면 그저 자기 가정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둘이 합하여 서로 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보다도 나라를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도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다가는 자기의 목적도 잃어버리고, 나라의 목적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본 되는 생활의 기본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사람, 우리의 역사를 밝히는 데 필요한 사람, 이 시대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사람, 미래의 터전을 닦는 데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적 기준에서 내가 짐을 지고 밀고 나가야겠습니다. 그리하여 10년이면 10년 기간에 이룩해 놓은 그 업적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자기의 소유로 남겨 놓을 수 있는 재산이 되게 하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남은 복귀섭리 과정에 얼마만큼의 흔적을 남길 것입니까? 귀찮다고 집어치워서야 되겠습니까? ‘아, 그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수고한 공적을 반드시 보태 주어야 되겠다.’ 하는 것을 느껴야 하며, 뜻을 이루려는 때의 환경을 확인할 줄 알아야 됩니다.

<기 도>

아버님, 저희는 효자 효녀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겠다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 땅 위에서 불효자로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란 한의 역사 가운데서 참된 효자 효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았사옵니다. 또한 충성하지 못하였던 역적들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이 타락한 세계를 지금에 와서 비로소 충성으로 탕감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런 것이 자명하기에 그 누구라도 피가 끓어 솟구치는 마음으로 자기의 말 한마디가 역사를 심판한다는 마음으로 신중히 판단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이 모든 사연을 거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수많은 선조들이 저희 앞에 남겨 놓은 것들이 전체의 생활에 표준이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도 다시 한 번 저희들로 인한 혜택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은 역사의 모든 초점을 연결시켜 현실 무대에 이것을 밀고 나가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는 전통과 실적을 남기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여,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 민족의 운명을 해결 지어야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세계가 기필코 저희들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세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필요로 하시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아버지 앞에 필요한 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 저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필요로 하는 자는 역사적인 부활의 실체로서 필요한 동시에, 그 부활의 실체는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세계를 향해 항진하는, 그 내적인 사정, 생활적으로 본 될 수 있는 기준을 남기는 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뭇 자녀들이 이와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아버님이여!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요구하시던 그 뜻이 이렇게도 엄청난 줄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버지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할 것을 알았사오나, 이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걸고 결의하지 않고는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와 같은 각오와 결의로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가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면 아버지께서 전폭적으로 같이하시고, 전폭적으로 그 마음과 하나되시어서, 위로하시고 권고하시고 힘의 원천이 되시어서 오늘날 이 환경을 가려 나가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앞으로 통일의 무리가 가는 길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그 길을 가는 데 심혈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길을 따라가는 데에 있어서 저희들이 아니면 만민을 살릴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기고, 갈 길을 닦는 데 있어서 온갖 충성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 개인 생활이 본 됨과 동시에 내 생애가 본이 되고 내 생애가 만민에게 생활의 본이 되어, 만민이 그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고, 수많은 후대 사람들이 그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는 그러한 기반을 닦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그와 같은 생활 이념을 중심삼아서 현실에서 책임을 지는 아들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딸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와 같은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불붙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위하여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흠모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이 충천하여 기필코 아버지를 위하고 모셔 드리겠다고 절규하는 자녀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내가 아니라, 사랑의 뜻을 세우겠다고 노력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현실에서 이와 같은 심정을 느끼고 결의를 하여 본 되는 역사적인 생활 기반을 남김으로써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은 기준이 될 때 아버지께서 위로 받는 것이요, 이와 같은 터전 위에서 아버지와 저희가 새로운 의논을 함으로써 내일의 소망의 일념이 더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다할 때까지 온갖 노력과 온갖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버지여, 만민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시고, 이날 당신의 영광이 저희들과 인연맺을 수 있는 귀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것을 위하여 경배하고, 이것을 위하여 사모하고, 이것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여 만나 보기를 고대하는 수많은 민족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내일의 승리의 표본을 세우는 데 있어서 그들의 온갖 수고의 경륜을 하나의 뜻과 결부시켜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우주관을 연결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고 오는 시대 앞에 빛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잡아서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뭇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전체를 맡겼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나 자체를 보면 몸과 마음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이 문명사회와 문화의 세계를 볼 때, 내적인 면보다 외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를 봐도 옛날에는 신령한 종교로서 출발한 것이 지금은 현실적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종교로 출발한 것이 육적인 종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누룩의 사명

지금은 물질적으로 변해 버린 종교를 영적인 종교로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물질적인 인간으로부터 영적인 인간을 되찾아야 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책임을 누가 해야 될 것이냐? 다시 말해서 누가 물질적으로 변한 종교를 영적인 종교로 변화시키는 기원을 만들고, 물질적이 되어버린 인간을 영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기원을 만들 것이냐? 통일교회 이념을 가진 우리가 그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념으로 교회나 이 사회를 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반 기성교회와 이 세상 앞에 누룩의 사명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누룩이 되려면 두 세력보다 더 강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사탄세계를 폭파시키고 남기 위해서는 사탄세계보다 강한 내용을 가져야 됩니다. 남북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힘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북의 공산당들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거짓 이념으로 완전무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이 민족의 아픔을 대신하여 우리가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가지 못하는 곳까지도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이 안 됩니다.

한국을 통일한다는 것은 세계 전체를 통일하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적인 초점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모두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둘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래야 둘을 다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야만 그 터전 위에 하나의 존재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죄악 된 세계를 통일해야 합니다. 죄악 된 세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죄악 된 세계에서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누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눈물과 피땀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일반 사람 중에는 우리 통일교회를 반종교단체로 보거나 사회주의의 본이 되는 종교단체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게 되면 통일의 이념이 이 땅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이념을 기반으로 해서 삼천리반도에서 공산당을 전부 몰아내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중공을 몰아내야 됩니다. 더 나아가 공산당의 머리인 소련까지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배후 세력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념으로 우선 남북을 통일하고, 그다음에 중공을 통일해야 하고 소련을 통일해야 합니다. 공산당을 3차에 걸쳐서 통일해야 합니다. 이제 소련과 중공이 근본적으로 이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하기가 쉬워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요즘에 어떻게 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느냐 하는 것을 놓고 작전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역사를 통일할 것이냐? 역사를 통일한다는 것은 역사상의 모든 것들을 재현시킨 후 그 가운데 최고의 기준을 현실에 적용하여 그것을 새로운 역사의 기원으로 출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주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려면

지금까지의 종교는 교주가 죽어서 영계에 가 가지고 지상과 관계를 맺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세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이나 혹은 각 종교의 교주들은 영계에 간 후 영인체가 지상에 와 가지고 협조하였지만, 우리는 그런 종교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땅 위에 살아 있으면서 영계에 간 영인들과 여러분들을 통하여 뜻을 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는 지상에서 실체를 쓰고 영계를 조정하여 그 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여러 명의 영통인들의 얘기를 쓴 사람이 말하기를, 그들이 기도하면 선생님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성립되려면 생활적인 환경이 공통되어야 하고 감정이 서로 공감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감정과 환경이 같은 생활권에서 공생(共生)하는 것이 부자의 인연을 중심한 생활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생활권에서 그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식구들 중에서 선생님을 가깝게 모시고 사는 사람이 말하기를 천국에서 사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물어보면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그렇게 산다는 겁니다. 사실은 여러분 모두가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서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 총각이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서 생명을 건 그 이상의 자리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면 직접 통하게 됩니다. 그 자리까지 모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인류는 복귀해야 합니다. 그 복귀란 무엇이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심정 기준 이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기준 이상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우주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중심존재라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선생님을 안 보고는 못 견디고, 사모하지 않을 수 없고, 위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으로 바꿔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현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타락의 고개를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보다 높은 사랑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흠모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사탄세계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다는 새로운 심정적인 개척지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서게 되면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죽음의 자리라도 문제없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명령에 이러쿵저러쿵 이유를 다는 사람은 전부 다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을 모시려면 정성들여 기도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외국 식구들이 혼자서 선교 활동을 하며 싸워 나가는 것도 선생님이 그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직접 만나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도 그들은 선생님의 지시를 압니다. 본부가 좋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뒤떨어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지도하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신 직접 지도할 때의 명령이나 말씀이 영적으로 나타나서 가르쳐 주는 것보다 2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그저 몽시나 자기가 하는 기도 가운데 가르쳐 주는 것만을 놓고 극성스러워할 줄 알았지,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이 그것의 몇 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르다가는 지금까지 영적으로 지도받던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복을 몽땅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금은보화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은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활의 기준을 확고히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사흘만 기도하면 선생님이 반드시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을 거친 이후에야 부자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옷을 입어야 되고, 하나님의 몸을 대신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정성을 들인 후에야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제물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부활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학생들이나 할머니들 전부 그렇게 지도받았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생기면 혼자 먹을 수 없어야 합니다. 또 좋은 자리가 있어도 자기 혼자 갈 수 없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움직여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공적(公的)인 생활을 해야

여러분들이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은,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일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미리 압니다. 될 일에는 몸과 마음이 쉽게 빨려 들어가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이 뻗쳐 나갑니다. 그런데 안 될 일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전부 다 이것을 믿어 주지 않으니….

선생님은 할 것과 못 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일이 손해가 난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정성을 들이며 간절히 요구할 때는 손해날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그 일에 대해서만은 선생님도 그 사람 이상 정성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만은 그 사람이 제일 정성을 많이 들였으므로 그 일이 망하더라도 그 정성이 자기 욕심을 떠난 공적인 입장에서 들인 것이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안 되었다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많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공적인 욕심은 어디든지 통합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중심한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고 해야지, 내가 살아 가지고 나라에 무엇이 되겠다 할 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 줍니까? 그런 식이라면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었으면 하고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다 나를 중심삼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공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돈을 벌 때나 활동할 때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지, 내가 돈 벌어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축복이란 문제를 놓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축복은 탕감복귀의 조건입니다. 탕감복귀 조건이라는 것은 자기 가정의 운명을 책임지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을 일일이 복귀하여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켜 세계로 가는 길을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지, 자기 자신이 복 받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한 내가 되어야지, 복을 받는 내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 중심삼은 생각이므로 망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선과 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축복이 귀하긴 귀한데 잘못 받았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가정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 같은 입장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 같이 옷도 없이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옷들은 다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옷을 입었습니까? 오직 무화과나무로 가렸을 뿐입니다. 집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축복가정이 어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축복가정이 집이 없나, 옷이 없나.

완전히 탕감복귀하려면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해와가 생활하던 자리 이상의 자리에서 복귀해야지, 그 이하에서 복귀하려면 복귀의 기준이 안 맞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벌거벗고 춤추는 일도 말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아담 해와가 벌거벗고 춤췄을 테니까 벌거벗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벌거벗고 춤을 추는 신령집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입은 옷이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그 옷을 벗으라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벌거벗고 춤췄다는 소리를 듣게 될 때 그런 일이 없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 벌거벗고 타락하여 벌거벗은 상태에서 슬픔이 시작되었으니 벌거벗고 기뻐해야 그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욕을 먹어도 가만히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에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도 당했는데, 그런 것을 아는 선생님이기에 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의 누명 보따리를 많이 뒤집어썼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집단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것을 누가 보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방에서 부부가 벌거벗고 춤춘다고 그것이 걱정할 일입니까? 그러나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다면 그것은 사회에 지탄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부부끼리야 벌거벗고 춤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누가 상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축복가정들도 둘이 벌거벗고 춤도 추라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하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

우리에게는 유언이 필요합니다. 악한 부모의 유언이 아니라 선한 부모의 유언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유언은 절대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언이라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의 10대 후손인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의 기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인 우리들은 어떤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 축복가정 자녀들이 사탄세계의 참소조건을 구별하지 못하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축복을 이루려면 소생․장성․완성의 세 번의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축복가정들은 교회 안에서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적인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축복은 세계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앞으로 합동결혼식을 점점 크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가 우리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때가 빨리 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 일곱 차례 정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까지 네 번 했고, 내년에 선생님이 외국 가면 외국 식구들에게 세 번 축복하여 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금년 말까지 우리는 틀림없이 40개국에 선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선생님이 음력으로 보면 12월 하순경이나 1월중에 일본, 미국, 구라파의 통일교회 청년들을 축복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외국에 나가서 약혼 준비만 해 주고 봄에 한국으로 불러서 결혼식을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계 각국의 청년들을 결혼시키면 각 나라의 대사들을 초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축사는 누가 하겠습니까? 그 나라의 책임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단체는 세계적인 단체가 안 될 수 없습니다. 각 나라의 대사들이 오고 그 나라의 책임자가 축사한다면 세계적인 톱뉴스 아니겠어요? 우리는 그런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만 하게 되면 외국 식구들은 그 명령에 무조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한 40개국 이상의 청년들을 틀림없이 축복을 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적어도 10개국은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사위기대를 이루려면 10개 국씩 책임져야 되겠지요? 40개국이면 40수이므로 10개국씩을 책임져서 복귀시키면 그 40개국을 중심삼아서 7년 이내에 120개국에 선교 나가는 것은 문제없게 됩니다.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이 끝나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겠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고 보면 알게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그때까지 구경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구경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들의 잔치를 할 때, 제일 먼저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준비할 것입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준비를 하는 데에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구경하겠다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준비하는 사람하고 구경하는 사람이 무엇이 다릅니까? 구경하는 사람은 몇 시간밖에 관계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영원히 관계되는 사람입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귀찮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입니까, 구경하는 사람입니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준비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큰 잔치이니만큼 멋진 구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할 것 다 하고, 놀 것 다 놀고 어떻게 그런 큰 잔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구경꾼이 됩니다. 여러분은 몇 년 동안 구경하는 구경꾼이 되려고 태어났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영원한 목적을 중심삼고 준비해야 되는데, 잘못하면 구경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억울함과 분함을 참고 가라

대한민국에 있다고 해서 전부가 대한민국 백성입니까? 아닙니다. 그 중에는 구경하러 온 외국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나라의 건국을 위해 선두에 서서 개척정신을 발휘하여 나라에 공헌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라에 신세만 지고 있다든가 나라를 뜯어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도둑놈이나 사기꾼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대한민국에 손해를 끼치게 되면 도둑놈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손해는 끼치지 않지만 구경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보면 도둑놈 백성, 구경꾼 백성, 준비하는 백성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백성이 되겠어요? 여러분은 도둑놈보다 나아야 되고, 구경하는 사람보다 나아야 됩니다. 그래서 나라가 슬플 때 먼저 울고 나라가 어려울 때 먼저 그 어려움을 해결하여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 신세지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통일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통일교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를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통일교회에서 준비하는 사람이 되면 선생님과 마음이 일치됩니다. 그러니 설교 말씀에 유념해서 여러분의 생활 관념에 이것을 흡수하여 자기 나름의 환경을 중심삼고 거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을 조성해 나갈 줄 아는 사람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잔치를 치르게 되면 주인은 잔치에 오는 손님에게 먹을 것을 다 내어 줍니다. 그러고 나서 주인은 잔치가 끝난 후에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먹습니다. 잔치 중에는 음식 맛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치르고 난 후에야 마른 떡을 먹더라도 그것이 맛있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떡이 우리 집 잔치하는 데 공헌을 했구나 생각하니 맛있는 것입니다. 잔치하는 동안은 주인은 먹어도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재미있어도 그 재미를 모릅니다. 주인에게는 재미보다는 그 잔치의 주빈이 음식의 맛을 어떻게 느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과가 좋게 되었다면 만사가 다 좋을 수 있지만, 나쁘게 되었다면 고통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잔치를 시작했습니까? 지금은 준비 과정에 있으니, 조금 있으면 잔치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들을 하고 똥바가지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잔치를 할 때 거지 패들이 와서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똥바가지가 왔다 갔다 하여 난장판이 된다면 내용 모르는 사람은 주인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엔 어떤 주인이라도 할 수 없이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누가 와서 못되게 굴었구만.’ 하고 주인 편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똥바가지 뒤집어쓴 거지 뭐. 그러나 통일교회 문 선생이 껄렁 껄렁한 분이 아닌데 할 수 없이 뒤집어썼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기야 지금 내가 제일 더러운 걸레 쪼가리 똥바가지 다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다음에 봄철이 오게 되면 필요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원리적으로 해명해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을 거름 삼고 비료 삼아 키울 수 있는 재료로 쓰는 것입니다. 이왕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사탄세계에서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비료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반대받는 것을 늘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상에 제일 나쁜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거기에 뿌리를 박아 흡수하여 소화시킨 후 새로운 생명체의 부활을 일으켜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 생각입니다. 똥통에 빠져도 거기서 새로운 생명을 지닌 뿌리를 박을 수만 있다면 그곳은 천년 동안 기도해서 이루어진 성소보다 더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경하는 사람입니까, 준비하는 사람입니까? 요즘에 준비하려니 별의 별 일 다 하지요? 통일교회는 머리를 디밀고 배를 내밀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 필요한데 거꾸로 된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20년 전 이 길을 출발할 때와 지금의 여러분을 비교해 본다면 여러분은 무척 행복합니다. 선생님이 처음 이 길을 갈 때는 2차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해방된 직후였습니다. 그때 기성교회만 잘 했다면 선생님은 뜻을 빨리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다면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기성교인들이 선생님을 잘 따라 주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은 고충을 이겨 가며 피땀과 비지땀을 흘리는 자리에서부터 싸워 왔던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해서 슬픈 눈물을 흘린 이상의 슬픔, 아담의 원통함 이상의 원통함을 참아 가며 싸워 나갔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의 명(命)을 받은 암행어사

선생님이 기도하면 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선생님이 주파를 내보내면 그 주파의 파동이 건너가서 다시 방향을 돌이키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정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미래에 큰 희망으로 벅찰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경쟁률이 높은 학교에 시험 쳐서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의 기쁨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입학식 날이 되어 그 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의 기분, 그때의 기분이란 말할 수 없이 기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뜻을 중심한 매일매일의 생활이 그래야 합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대주재에게서 온 호출 명령에 의해 가는 거룩한 도상에 있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 쉴 사이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부모에게서부터 받은 습관적인 관념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천명을 받아 나선 여러분들이 왜 그렇게 삽니까? 옛날 암행어사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하늘의 특사, 밀사의 천명을 받아 악한 세상에 돌아다니면서 감리하고 시찰하는 사람입니다. 옛날 암행어사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복귀운동을 하려니 변장도 하고 못난 노릇도 하는 등 별의 별 일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한 일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사가 상주들 앞에서 술 먹었다고 해도 죄가 아닌 것입니다. 어사가 술집에서 막걸리 먹고 춤추며 밤을 지샌다 해도 그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깊은 골짜기를 탐지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반항하면서도 탐지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고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적인 어사의 책임을 졌으므로 미국 같은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하건 여러분이 흉보지 않으니까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천명을 따라 내가 이러이러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청산 지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적을 쌓은 보고서를 가지고 어전에 서서 보고할 수 있는 날에 내 앞에 다가올 때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죽는 게 무서운가, 안 무서운가? 「무섭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 무서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수 있는 소망이 없어요. 환고향(還故鄕)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고향에 갖다 묻는데 이것은 계시적인 것입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절대 교회에 신세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신세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신세를 지우려 하지 내가 절대 신세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패하느냐 승리하느냐에 따라서 탕감받고 안 받고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한 형제

통일교회는 3개국을 거쳐야 합니다. 아시아면 아시아의 끝을 거쳐야 하고, 구라파면 구라파의 끝을 거쳐야 하고, 아프리카면 아프리카의 끝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을 중심삼고 국경을 넘고 민족 감정을 넘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 눈물짓고, 그들을 위해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고생이 되더라도 자기의 고향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더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앞설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됩니다. 타국에 나가 있을 때는 텅 빈 가슴에 눈물이 앞설지라도 하나님께서 6천년간 찾아 헤매신 한스러운 이 땅에 하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지름길을 내가 개척하여 기쁨의 한 날을 맞겠노라고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팻말을 꽂는 거룩한 자리에 들어가게 될 때 이 민족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기쁨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피가 끓어야 합니다. 그 피맺힌 심정 이상의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그런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심어 준 심정은 후대 사람들에게 뜻과 이념과 민족을 위해 각오하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터전 위에 세계적인 성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성지는 나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지구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불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전력 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님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기 일생을 뜻과 더불어 보람 있는 생을 사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이나 문화의 차이를 초월해서 전부 한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라고 해서 의형제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세상에서 형제라고 하면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은, 즉 혈육의 부모를 중심한 아들딸을 형제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형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중심삼은 형제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입니까? 여러분을 낳아 주신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오늘날 이 세상의 존재의 기원이 되는 가장 모체이신 분입니다. 그분은 존재 가치의 기원입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오늘날 이 현상세계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분은 어떤 시대에 변화가 있다고 해서 변하는 분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시간이나 공간에 제한 받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제한을 초월한 자리에서 모든 제한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누구라구요? 하나님이라고만 할 게 아닙니다.

그분은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뭐라고 불러야 한다구요? 「아버지요.」 그 아버지는 여러분을 낳아 준 아버지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했기에 다시 낳는다는 말이 필요한 것이지 그분은 본래 여러분을 낳은 아버지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여러분을 다리 놓는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는 영계에 가면 아버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웃음) 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전부가 기독교에서 부르듯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한 집안에서 할아버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손자도 역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집안 식구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 모두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아버지 되시고 인간은 서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끔 정말 그렇게 된다면 영계에 가면 참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계에서의 종손(宗孫)

인간은 서로 형제라고 했으니 영계에서 제일 가까운 형제가 누구이겠습니까? 영계에서 제일 가까운 형제는 횡적인 형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의 관계와 형제의 관계 중 어떤 관계가 더 가깝습니까?

형제의 관계보다 부자의 관계가 더 가까우니까 영계에 가서도 내 아버지가 제일 가깝고 다음은 할아버지, 그다음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위의 할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면 종지 할아버지가 누구겠습니까?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세상에 친구가 없다고 외로워할 것 없고, 혼자 살다가 죽었다고 해서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영계에 가면 위로 봐도 옆을 봐도 가까운 형제가 무진장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특권을 갖추어야만 이 모든 분들하고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형님 삼고 할아버지를 형님 삼았다고 해서 기분 나쁠 것 있겠습니까?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버지라 불렀는데, 영계에 왔다고 해서 형님이라 부르니 아버지가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런 자리에서만이 종갓집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종갓집 아들은 하나밖에 없는데 전부 다 종갓집 아들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영계에서는 전부 다 종갓집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으면 전부 다라도 종갓집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잣집 주인이 죽으면 그의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해 줍니다. 그때에 종손이 될 장남에게 재산을 절반 주고 그 외의 아들들은 나머지를 받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계에 있는 영인들은 전부 다 종갓집 자손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지고 계신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형제지간이 하나만 되면 형님의 것이 되는 동시에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지간에 하나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선조의 대수를 따져 보면 대수(代數)는 서로 차이가 날 것입니다. 하지만 종갓집 조상들이 완전히 하나만 되는 날에는 그 이후의 후손들은 우주를 상속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종갓집의 자손을 중심삼고 천상세계를 치리(治理)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손을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하지 못했기에 전부 다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정통과 이단의 차이

그러면 그러한 종갓집 권한을 누가 가질 것이냐?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 못하였기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상태이므로 이것을 어느 나라가 다시 차지할 것이냐? 노력하는 나라, 노력하는 국민, 노력하는 사람이 반드시 이 우주적인 종갓집 자손이라고 표방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가 하자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자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해 보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 통일교로 오던가요? 오늘날 장로교, 혹은 감리교에서 서로 자기네들을 정통파라고 하면서 우리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데, 이단인지 정통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선 기분상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좋습니까? 그들이 정통이고 우리가 이단이라 할 때, 이단과 정통을 비교해 보면 달라야 합니다. 달라도 현재만큼 달라서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모든 종갓집의 유업(遺業)을 상속 받기 위해서는 달라도 이만저만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선조로부터 전부 다 하나의 형제같이, 한 몸과 같이 될 수 있는 혈통을 따라 종갓집이 상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인들은, 더욱이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태어났던 우리 조상들을 조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 중에는 좋은 조상들도 있었겠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불신했으므로 조상으로 취급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선조 취급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조는 누구입니까? 타락한 우리 선조들은 하나되지 못한 선조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빼어나게 특출한 선민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후손들의 계열에 서 있는 분들을 존경하자 해 가지고 지금까지 성경에 나타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같은 조상들을 붙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조상들을 중심삼고 우리가 그분들과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부르던 아버지, 그 분들이 모시던 아버지, 그분들이 위하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자는 것입니다.

종갓집이 흥하려면 선조로부터 내려온 가법이라든가, 예법을 잘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까짓 것 뭐 될 대로 되라지,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은 종갓집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은 종손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종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선조의 대유업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종갓집 후손은 어떤 무리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의 선조들보다도 나아야 되며, 그 어떤 선조도 하지 못한 무수한 책임을 할 수 있는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이 그런 후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손이 되려면 선조를 좋아하는 내가 되지 말고 선조들이 나를 좋아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좋아하는 내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사람이 되지 말고 땅 위에서 하나님을 모시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 통일교회가 내세운 이념이 기성교회보다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일반 기성교회에서 정통이니 뭐니 하고들 있지만 그 무리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효자가 되자, 지상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충신 열녀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정통을 상속 받는 면에 있어서 기성교회보다 우리가 앞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 기성교회와 우리를 두고 볼 때 누가 정통입니까? 누가 정통인지 이단인지 한번 부딪쳐 봐야 됩니다. 정통을 가리는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싸움할 것도 없습니다. 가만히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풍화작용이 일어난다고 해도 진짜 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풍화작용이 일어나면 변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통인 통일교인들은 풍화작용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지만 기성교회 교인들은 풍화작용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정통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풍화작용에 변화를 받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습니까?

천년 역사가 변하더라도 우리가 세워 놓은 사상은 변치 않는다 할 수 있는 사상이 천년사를 움직일 수 있는 정통적인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그 사상이 변치 않는다는 정통적 기준이 서게 된다면 세계는 그 사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됩니다. 만약에 어떤 주의가 백년 가다가 변하면 그 주의를 변하게 한 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천년 동안 흘러오던 주의가 변했다면 그 주의가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서 정통으로 존중 받아 왔다 해도 그 주의와 사상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해야

여러분이 하늘의 슬픈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장손이 되어서 천주의 대기업을 상속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배포를 지닌 사람들이라면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러한 마음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이렇게도 자신이 없으니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세상을 이끌어 갈 주인의 자리를 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채무 기간에는 어느 누구든지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님을 다 빼앗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누가 벼락같이 해치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 경계선에서 내가 빼앗느냐 빼앗기느냐 하는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 ‘나야 본래부터 선한 사람인데 당신이 이기시오.’ 하고 양보해서야 되겠습니까? 싸워야 됩니다. 만일 거기에서 양보한다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믿어 오던 기독교가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던 특권적 권위, 지금까지 지니고 오시던 종손적 전통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길 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기준에 있어서는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심판의 기준보다 강한 것이 있더라도 그것과 부딪쳐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지 않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정도(正道)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와 선생님은 세계가 전부 우리 이념에 사로잡힌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념을 갖고 있느냐? 30억 인류가 화살, 총, 대포로 일시에 공격해 오는 자리에서도 이겨낼 자신이 있느냐?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조들, 즉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까지도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조건을 결정짓지 않고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종손이 되어 모든 권한을 지상에 뿌리박는다는 것은 만부당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신념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았습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대개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지, 성경을 믿어야 된다니까 믿지 하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믿으니 어떤 사람이 와서 건드리기만 해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저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건들건들하고 꺼덕꺼덕 거리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이니 나도 절대적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여러분들은 가는 길이 힘들면 ‘아이구, 어렵고 고통스러워 못가겠다. 옛날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울까?’ 하고 불평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살림살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하에 천 명을 거느리고 사는 주인과 만 명을 거느리고 사는 주인을 비교하면, 후자가 전자보다 10배 이상 복잡하고 고달픈 것입니다.

바람만 훅 불면 날아가 버릴 배포와 결심을 가지고 ‘천주를 창조한 하나님!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면 들어주실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뜻을 이루는 두 가지 방법

모름지기 신앙과 종교라는 것은 본래 살아서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근원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저나라의 천국 이념을 이 땅 위에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죽어서는 그러한 것들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몇 고비 죽음을 극복한 승리적 기준 위에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믿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천국을 이룬다는 것은 그만두고 천국에 갈 자신이라도 있습니까? 통일교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고차적인 기준에서 나오고 있는데, 통일교회에 속한 여러분들이 가는 길과 처한 현재의 위치가 그 기준에 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자인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점을 자인합니까, 안 합니까? 아줌마들, 생각해 봐요. 자인해요, 안 해요? 「자인합니다.」 자인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하면 강제로라도 시켜야 합니다. 자인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면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데리고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런 무리들을 전부 다 쓸어서 쓰레기통에 잡아넣고 새로이 출발하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이런 무리들을 다시 불에 달궈 구워 내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생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재생하려 할 때 재생 당하는 물건이 ‘나에겐 이것이 제일 좋으니까 이건 건드리지 말고 저것으로 재생해 주시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무조건 고생해야 됩니다. 덮어놓고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따지고 뭐하고 할 것 없는 것입니다. 무슨 고생을 하느냐?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한 고생입니다.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 나라를 이루어야 됩니다. 하늘나라를 찾아가려면 세상 나라를 이루지 않고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먼저 세상 나라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을 밀어 버리자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한 것을 없애야 합니다. 만약 대한민국을 세우려 할 때 대한민국도 악한 것이 있다면 전부 다 쓸어 버려야 됩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용서하지 말고 쓸어버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참된 입장에 서서 승리하지 않고는 천국을 건설하거나,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적당히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 나라를 위해서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애국자가 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에서 충신 열녀도 되지 못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내 아들딸들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만일 그러면 사탄이 ‘이 세계에는 당신의 아들딸보다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고생시켜 나온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고생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천대시해서 그 나라 전체를 고생시키는 입장에 몰아넣는 하나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가 있어야 하며, 그 나라가 시련을 극복하여 승리의 기준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그런 입장에서 나라를 중심삼고 시련을 극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수많은 도인들이나, 혹은 선지선열들이 이 땅 위에서 비참하게 생애를 마친 것도, 그런 입장에 서서 나라를 중심삼고 대결하여 시련을 넘어서려다가 죽어 간 것입니다. 그런 사람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이요, 그 나라의 애국지사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냥 남아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36가정도 그런 사상을 가져야 되고, 72가정, 120가정, 430가정의 축복받은 가정들은 어떠한 개인을 막론하고 전부 다 그런 사상을 중심삼고 실질적인 권위를 가지고 시련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에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하고 밀려난 입장에서 천국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그것은 잠꼬대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밤에 하는 잠꼬대가 아니라 낮에 하는 잠꼬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젊은 사람들 앞에 뜻이 있는 한 통일교회의 장래는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종손이 될 수 있는 민족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최종적인 종손이 되어야 합니다. 종손이 되는 데는 수천년 동안 내려온 선조들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종손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가정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실수한 것을 해원성사해 주고, 아벨이 가인에게 억울하게 죽은 것을 해원성사해 주고, 노아가정의 여덟 식구를 남겨 가지고 이 세계에 심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전부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물론 모세,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들 전부가 필요로 하는 최후의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국경을 넘어서 많은 나라에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그 수없이 많이 왔다 간 민족 자체들도 앞으로 종손이 될 수 있는 한 나라를 선택해야 됩니다. 그 나라가 어디가 되겠습니까? 미국이 되어야겠어요, 한국이 되어야겠어요? 「한국이 돼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한국 사람들이니 한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결사적으로 미국이 돼야 된다고 말합니다. 세계 역사상 미국이 어떤 민족보다도 우월하기 때문에 축복해 줄 수 있는 바탕이 필요 없으니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수로 볼 때도 오늘날 한국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을 비교하면 누가 많겠어요?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을 수로 비교하면 6대2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신자는 약 1억 2천만 정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수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미국과 한국이 같은 입장에 있다면, 수적으로 많고 준비된 터전 위에서 일을 이루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은 한이 많아 한국입니다. 사람들은 한 나라를 이루고 하나의 핏줄이기 때문에 한국이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한이 많아 한국인 것입니다. 그 한은 돈이 없어 못사는 한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한입니다. 여러분은 고아입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선진국가들이 자기 나라의 힘을 중심삼고 약소민족을 장악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듯 비원칙적인 힘으로 싸워서 착취하다가는 벌 받게 됩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께서 닦아 주시는 길을 따라가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종교에 치고 때리고 빼앗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힘을 중심삼고 치고 빼앗아 승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종손은 그 어떤 선조보다도 나아야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쩌자는 말인가? 세계가 망하더라도 우리는 종갓집 자손이 되어야 하고, 세계가 하나되더라도 종갓집 자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서자가 종갓집 장손 앞에서 조상에게 제사 드리겠다고 한다면, 그 장손은 망신살이 뻗쳤다고 흉볼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종손 팻말을 어떻게 받아 가지고 꽂아 놓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도 그다음 문제이고, 세계도 그 나중 문제입니다. 제일 문제는 종갓집의 종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종갓집은 누구의 집이냐?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집에서 종손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종손이 되느냐? 그 옛날 아브라함보다 못해 가지고는 종손이 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손이 될 수 있었다면 그때에 뜻이 이루어졌을 것이요, 노아가 종손이 될 수 있었다면 노아 때에 뜻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2천년, 4천년, 6천년까지 내려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아벨이 종손이 되었다면 그때에 뜻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 종손의 사명을 다했다면 그때에 뜻이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뜻을 다 이루었다면 뭐 하러 다시 옵니까? 그렇기 때문에 종손은 예수님보다도, 그때의 사도들보다도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한다고 기성교회 교인들은 우리 주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하고 삼위일체이신데, 예수님보다도 더 나아야 된다니 건방진 이단이라고 합니다. 어디 이단만 되나 이백단, 이천단, 이만단은 돼야지요. 우리는 예수님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우리에게 간절히 부탁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손이 되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종손이 못 되었으므로 다시 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진장한 우주의 보화가 들어 있는 창고가 있는데, 그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종손인 것입니다. 끝날에 심판대에 서서 열쇠로 보화 창고를 열 수 있는 권한은 종손의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는 욕심도 많구만.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열과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을 전부 뒤로 치워 버리고 제일이 되겠다고 하다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상을 지녀야 앞으로 세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지, 남이 먹다 남은 것을 집어먹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과 선생님

어디에서 얻어서 통일교회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역사에 없던 새 것입니다. 잔칫상이라고 해도 새 상이고, 망하는 상이라고 해도 새 상이어야 합니다. 굵게 살아야 합니다. 흥하는 상이라도 최고의 새 상이어야 하고 망하는 상이라도 최고의 새 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망할 것 같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야 되고, 흥할 것 같으면 가까이 가야 합니까? 잔칫집이라면 넘겨다보면 얻어먹을 수라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얻어먹고 가는 무리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잔치에 손님으로 와서 얻어먹는 것은 힘도 들지 않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죽을 지경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준비하셨다면 6천년 이상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잔치를 준비하려면 3천만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기력이 있어야 되고, 돈이 필요하다면 또 주겠다는 배포가 있어야 3천만을 위해 잔치를 치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30명도 치를 수가 없다고 한다면 주인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30억 인류에게 잔치를 베풀고 나서도 ‘더 와야 될 텐데.’ 이런 생각으로 밤잠을 자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30억 인류를 먹일 수 있는 잔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0억 인류가 있는데, 한 1억쯤 왔다 갔다고 ‘이젠 됐구만.’ 하고 잠자다가는 또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멋지고 엄청난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적인 권한을 자기 내심에 스스로 결정해서 그 자리에서 주판을 놓아 따지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반도 못 이루고 따지다 보면 따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구경도 못 하고, 냄새도 못 맡고, 가 보지도 못하고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문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종손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오늘 처음 온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소위 통일교회 문 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똑똑히 보십시오. 소위 문 교주라는 사람입니다. 그런 호칭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어준 것이고, 그 이름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들이 지은 집에 좋은 것 좀 주고 들어가 잔다고 뭐 죄가 됩니까? 그 사람들이 문 교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나쁘지 않기 때문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문 예수’라고 소문이 많이 났었습니다. 내가 예수보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력을 보더라도 예수님보다 공부 많이 했고 무엇으로라도 예수님한테 이길 자신이 있어요. 씨름을 해도 예수님이 나한테 질 것입니다. 또 뜀뛰기를 해도 운동을 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하고 무엇을 하더라도 지지 않으려는 기질이 있습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 또한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일 대학 교수가 되려고 했다면 한국에서 이름난 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라고 만사에 일등 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레슬링에도 일등이에요? 마라톤에도 일등이에요? 밥 먹는 데도 일등이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일등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 골탕먹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하는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전지전능합니까? 전지전능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해당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분의 아들일 뿐입니다.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끝날에 남아지는 종손이 되자

인류의 끝날에 심판대에서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종손입니다. 통일교회의 문 선생님은 하나님의 종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이것 때문에 일생을 바쳐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종손이 되려면 360도 가운데 0도 선에 서야 됩니다. 그 자리가 알파와 오메가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거꾸로 서도 그 선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에 맨 처음으로 들어서는 날에는 가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천상천하를 상속 받을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멋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보고 있고 여러분도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서 있는 선생님을 보는 각도가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를 옆에서 보는 사람은 선생님은 코가 이렇게 생기고, 옷은 이렇게 입고, 몸은 두툼하더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쪽에서 보는 사람은 어디가 어떻고 어떻게 생겼더라 하며 전부 다른 의견일 것입니다. 이렇듯 각 방향에 따라 전부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찾는 정통적인 종손도 한 사람뿐인 것입니다. 이 세계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결코 둘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종손이 되었다면 그때부터 천국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종손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종손다운 종손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땅 위에 종손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손은 영적으로 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를 떠나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적으로 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손으로 오는 사람은 종손이 되기 위해 표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인 것입니다. 이 말이 맞든 안 맞든간에 그 종손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여러분이 나를 칭찬해 줘야 됩니다.(웃음)

종손이고 아니고는 다음 문제입니다. 이렇게 공정하게 표적을 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종손이 되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환호하고 손뼉을 치며 환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의 마라톤 대회에서 아베베가 2연패했다고 유명해졌지만, 선생님이 종손의 표준이 된다면 세계적으로 아베베 이상 유명해질 것입니다. 유명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이고 세상 천지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표준이 되는 날에는 어디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선전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이 땅에 오신다면, 그분의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한번 보고 죽겠다고 하면서 보고파서 한이 맺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눈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시는 그분을 한번 보고라도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할 수 있다면 천지에 무서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생활한다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한쪽 팔이 잘려 나가도 좋고,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가도 좋고, 한쪽 눈이 빠져나가도 좋고, 아니 다 날아가 버려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상에서 천국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순회하면서 쭉 보니까 전부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대접해 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알아주었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존재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겠어요.

여러분들 생각에는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고 종갓집 아들이 되면 편안할 것 같습니까? 여기 있는 아주머니들은 옛날에 시집살이를 해 봐서 알 것입니다. 호랑이 같은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아들딸도 다 낳았고 나이도 50줄에 들어섰다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면 동네가 수군거리며 문젯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팔순이 되었지만 오뉴월 삼복더위에도 버선을 신고 자기의 위신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종갓집일수록 권위를 최고로 높이지 않으면 종갓집이 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인도 종손이 되기 위한 목적을 향해 나간다 할 때, 그 길은 최고로 힘이 드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렵게 해내는 일이 맛이 좋은 것입니다. 피곤해서 아무렇게나 곯아떨어지더라도 자기의 책임을 다 해놓고 자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 인간의 가치가 있고, 그렇게 하는 데에 세상이 녹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좋고 나쁜 것이 구분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길은 종손이 되기 위한 길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이 뜻을 위해서 나오고 있는 것과 선생님이 이 길을 개척해 나오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선생님은 요즈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몇 마디 하지 않아서 구역질이 나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편하게만 살려고 생각하고 그런 관점에서만 말하려고 하니 어디 박자가 맞겠어요?

선생님이 통일교인들에게 지상에 천국을 이루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 천국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천국을 이루려면 종손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종손이 되려면 종갓집에 시집을 가든지 장가를 가든지 하여 그 집에서 명분을 세우지 않고는 종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 선생은 뭘 하자는 것이냐? 선생님이 할 일이 없어서 이 나이에 욕을 먹으며 이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머리에는 뿔이라도 났습니까?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뭐 있어요? 세상에서는 통일교회 문 선생이 남의 가정을 파괴하고 남을 등쳐먹고 그런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선전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내가 여러분들에게 먹여 주려고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년에도 경비로 2천4백만원 정도 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2천4백명을 전도했습니까? 선생님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전부 다 건들건들거리는 건달패들입니까? 선생님은 여러분을 태어나서 아직까지 첫돌도 맞이하지 못한 어린 아기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런 어린 아기한테 바랄 수 있겠어요? 조금 더 먹여 주어야지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에 맡겨야 책임질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해야 편합니다. 그렇지 않고 직접 만나서 대하게 되면 속만 뒤집어집니다.

종손이 되는 훈련을 잘 받으려면

거듭 말하는데 우리는 종갓집 자손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종갓집 자손은 될 수 없는데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그런 사람은 유치원생이 대학원 논문 쓰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보따리 싸 가지고 가서 더 커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여기는 누가 오라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나라를 움직이는 데 30명 이내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자진 후퇴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후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언제나 하나님에게 진 빚을 염려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면 한껏 열어 놓고 먹이고 기르고 훈련시켜 가지고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훈련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

훈련을 받으면 밥 세끼가 모자라니 네 끼씩 먹어야 되겠고, 잠자리도 우리 집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망합니다. 훈련을 받으려면 무지무지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훈련 받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손 들지 않은 사람은 탕감조건에 걸릴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하고 어울리기 힘든 사람입니다. 훈련 받겠다는 사람 다시 손들어 봐요. 내리고 싶은 사람은 내려도 괜찮아요. 전부 훈련 받겠다고 손들었으니, 무지무지한 훈련 받아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예.」

그러면 그 무지무지한 훈련은 어느 정도일 것이냐? 훈련 받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 뒤에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사람도 훈련을 받기는 받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길가에 상점이 있으면 음료수 사다 마시고 과자 같은 것도 먹으면서 따라다녀도 훈련을 받기는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는 훈련이 잘 받는 것이겠습니까? 훈련을 잘 받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효의 기준을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초월해서 일관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어느 시대에는 이것이고, 어느 시대는 저것이 되는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녀의 기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참된 부부가 사랑하는 것도 역사를 초월하여 칭송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역사의 어떤 시대에도 세워질 수 있으려면 훈련을 잘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훈련을 잘 받아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 받을 자신이 있느냐 하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에서부터 만 가지까지 전부 다 동정을 바라는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저분이 왜 저렇게 큰소리를 하나?’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판하려 해도 별수 없이 내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학박사나 일국의 수상이라 하더라도 이 원칙에 위배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의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어떤 진리나, 어떤 참, 어떤 공식, 어떤 단위, 즉 하나에 하나가 더해져서 둘이 되는 원칙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 혹은 여자의 권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를 움직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을 했다가 지키지 못하는 하나님이 된다는 결론이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원칙을 개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을 훈련시켜야 되겠는데 어떤 훈련을 시키느냐? 무지무지한 훈련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 무지무지한 훈련의 정도는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삼천만을 대신하여 고생을 해야 되고, 삼천만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대신하여 선두에 서서 천국을 건설하자고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고방식을 갖기 위하여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위해 살라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우리 아들딸에게 복 주소.’ 하면 벌 받습니다.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복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 가정에 복을 주겠습니까? 복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바치고 가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흙을 파고 나라에서 살았으니까 죽을 때는 나라에 두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나라의 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보다도 나라를 위해서 더 복을 빌어야 됩니다. 자기 아들보다 나라에 있는 젊은 청년들을 위해 복을 빌고 ‘그들에게 주고 남는 복이 있거든 우리 아들에게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딸에게 복을 주소.’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만일 복을 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촌들도 복 주소, 또 사촌들에게 복을 주고 나면 팔촌, 십촌, 백촌 혹은 문씨 성을 가졌다면 모든 문 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복 주소 하는 것입니다. 문씨들이 대한민국의 요직을 전부 다 맡게 해 주십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최근에 선생님이 통일교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골탕 먹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후에는 하늘과 땅을 중심삼고 세계 전체의 민족을 중심삼아 그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하늘땅은 그만두고, 한국도 그만두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지 하고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지리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고생하라는데 고생 안 하겠다고 하는 무리들은 망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 여러분들, 훈련 받을래요, 안 받을래요? 「받겠습니다.」 그러면 오뉴월에 팬티만 입고 나와라 해도 나올 자신 있어요? 체면 차릴 새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편없는 자리에 계시는데 자기 형편을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까?

선생님도 그런 입장에서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나는 생명을 바치며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쇠고랑을 차고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갈 때, 대한민국 전체가 나를 비난하고 비소했지만 ‘이제 두고 봐라. 10년 후에는 승리의 한때가 올 것이다. 20년이 되어도 좋다. 내가 지금은 비록 이런 몰골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너희의 후손들이 지금 내가 받는 것의 몇천 배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당당코 들어갔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졸장부가 아닙니다. 거기서 행차한다는 기분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런 위신과 권위가 없다면 되겠습니까?

선생님이 평양 형무소에 들어갈 때도 식구들은 선생님이 이제 가면 언제 오시나 하면서 자기 남편이 죽은 것보다도 더 간절히 애를 태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너희들을 위로하는 것보다도 내가 가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그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라는 약속을 받았기에 선생님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다리가 떨리고, 탄식이 나오고, 통곡이 나오는 원한의 길인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갔습니다.

그것은 소망하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가게 되면 지옥도 천국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을 다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새로운 결의를 하여 제2차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이 쇠고랑을 차고 굶주렸기에 지금도 차를 타거나 좋은 음식을 대하게 되면 그때 선생님이 왔다고 음식을 해 주던 은인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젓가락이 없으면 안 되니까, 주머니에 젓가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 고개를 넘지 못하면 제1차 목적을 완성할 수 없다고 결심한 바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요즈음 하루에 한 번씩 공장에 갔다 오는데, 한 세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래서 차를 샀습니다. 차를 산 것에 대해서 안팎으로 욕을 할지 몰라도 앞으로 외국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게 되면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소리를 아무리 했어도 차를 사는 데 콧방귀조차 뀌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효자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배후의 내용

그 차는 결국 선생님이 벌어서 샀습니다. 차가 있으니까 한 가지 편한 것은 공장 가는 도중 피곤할 때 차 안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맙다는 것입니다. 공장에 가서는 낮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 공장에서 남의 집 귀한 아들딸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편하게 잘 수 있겠습니까? 몸이 피곤하여 눈이 감기려 하면, ‘이놈의 눈아, 네가 몇천만년 살 거냐?’ 하며 스스로를 자책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이 사리사욕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 선생님이 아주 대단하게 행세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여봐라!’ 하면 ‘예.’ 하며 행차 나발을 불어 가며 사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없으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백이면 백 모두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를 삼천만 민족이 알고 세계 인류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날 선생님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세계에 문제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한때에 폭발시킬 수 있는 좋은 재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갖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거부들을 전부 모이게 하여 대한민국 사람들을 먹여 살리게 할 수 있습니다. 꿈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영계에 들어가서 수많은 악영인들을 전부 다 몰아내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춤추고 살 수 있는 기지를 만들어 놓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시시하게 남의 뒤나 따라다니며 그 사람이 흘리는 것은 주워 먹겠다고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통하는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 선생의 제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이 있다면 ‘아! 저분이 통일교회 문 선생이라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지만, 여러분의 눈으로 바라보는 정도의 문 선생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배후에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믿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종갓집 자손이 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선생님에게 와서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선생님에게 와서 배워야 하고, 예수님도 역시 선생님에게 와서 배워야 됩니다. 공자나 석가 전부 다 선생님에게 와서 정성들여 선생님의 사인을 받아 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자신을 갖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 여러분이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는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면 이단이라고 욕하면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들만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뜻을 따라 무엇이든지 하라

어느 날 양가집 귀부인이 찾아와서 선생님에게 묻기를 ‘선생님은 신앙생활 한 지 몇 년 되었습니까?’ 하기에 선생님이 한 20년쯤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많이 알고 계시겠네요.’ 하며 또 물어 왔습니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교회 다른 사람에게는 지지 않소.’ 하고 대답하고 나서 선생님은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얼마나 믿소?’ 했더니 그 부인이 말하기를 절대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선생님이 다시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할 리야 없지만 당신에게 남편 버리고 다시 시집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자신이 있소?’ 그랬더니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도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시집가서 이 세상이 한꺼번에 하나님에게 돌아온다 하면 다시 시집가겠습니까, 안가겠습니까? 어디 할머니에게 한번 물어보겠소. 어느 사람이든 이렇게 물어보면 대답을 못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는 시집도 보내고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또 너의 남편을 잡아서 제사 지내라고 한다면 하겠습니까?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니까 그런 것은 안 시키겠지.’ 하고 안심하다가는 한번에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희생당하더라도 이 뜻길을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훈련을 다 한 사람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나를 사랑했습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어 통곡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어머니에게 서릿발 같은 호령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그런 졸장부 같은 시시한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에는 그 이상의 험한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부인과 어린 자식을 집에 두고 짐을 싸 가지고 이북으로 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선생님이 지금 돈이 없어서 이 일을 미친 듯이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이북에서 살 때는 한푼도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돈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생겼다면 선생님은 가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하늘의 역적이 되겠어요, 충신이 되겠어요? 여러분은 충신은 못 되더라도 충신의 흉내는 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걸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미국에 가서 백악관 앞에 성지를 정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했고, 로마 교황청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황청 앞에서 ‘로마 교황 이 녀석아, 네가 지금 왕 노릇을 하고 있지만 어느 때 나하고 한번 만나서 부딪쳐 보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팔아먹겠다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세계를 연구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는 것이지, 나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선생님이 공장 종업원 부인들을 전부 다 공장에 모이게 하여 여러분들은 이곳에 남편 따라왔소, 뜻 따라왔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뜻 따라왔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뜻이 누구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뜻과 선생님의 뜻이 다른 것입니까? 만약 그것이 다르다면 깨져 나가는 것이고,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니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뜻을 따라가기 위해서 남편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부인들에게 40일 동안 친족관계 등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관계를 전부 다 잊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모두 공장에 입소하여 곳곳에 배치 받아 일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점심때부터 보따리 싸가지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책임을 완수 못하면 선생님이 기합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스스로 약속해서 기합을 주어야 합니다. 편안히 앉아서 일하는 곳이 있겠어요? 죽자 하고 눈물 흘리면서 손톱이 닳아지고 살이 갈라지게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충은 누구에게든지 있는 것입니다. 편안히 하려거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밥 먹고 앉아서 졸고 있는 무리들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무리들은 망해야 됩니다.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하게 할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져야 할 신념

여러분을 훈련을 시킬 때 어떤 훈련을 시킬 것이냐? 이번에 동해안을 통하여 침투하던 두 명의 간첩을 잡았다는 신문을 보면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좀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전계획을 단단히 세워 훈련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한과 북한이 협상을 통하여 통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력대결을 해서 먹히느냐 먹느냐 하는 이자택일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남한이 밀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나도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선생님이 미국을 왕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우리의 원리연구회가 일본의 공산당에게 역습 당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지금 원리연구회하고 정부하고 싸움을 붙이려고 별의별 짓을 다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주가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여기 있는 선생님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상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한 사람도 모르거든요. 이 민족이건 식구건 한 사람도 몰라요. 협회장도 그 누구도 몰라요. 자기들이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대한민국과 아시아 세계에 있어서 억천만세에 한을 남기게 된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있는 정성을 다 들여도 하늘 앞에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자리에 선 것도 모르고, 잠 잘 대로 다 자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엔 총회에 중공이 불가피하게 가입될 것입니다. 민주세계인 미국이 깨닫지 못하니까 중공을 가입시켜서라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이 죽을 사정이 되어서 ‘하나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할 수 있는 때까지 나가라 이겁니다. 그때가 오기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힘차게 나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생각을 달리해야 되겠습니다. 큰 사람들이 덩치 값 좀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보다 못해서, 공연히 일이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점점 늙어도 10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맞춰 가기 위하여 이 일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모르면 고개 숙이고 속으면서라도 따라야 됩니다.

오늘 이 목사가 설교 중에 탕감법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했지요? 내가 못된 사람이라면 오늘까지 이 길을 따라 나왔겠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하면서 내가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이 길을 나선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몸이 쓰러 지지 않았으니 아직까지 내 갈 길이 남아 있고, 거쳐가야 할 약속의 길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의 사람이라면 그런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호랑이를 바라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고양이 중에 제일 못난 고양이 새끼가 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훈련을 받아야 되겠어요, 안 받아야 되겠어요?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남자에게는 여자가 하는 일을 시키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하는 일을 시키겠습니다. 그래도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전부 역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오래지 않아 고위층 간부들부터 훈련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45세 이하의 아주머니들의 훈련은 선생님이 직접 시키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훈련 받을 준비를 해 놓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옆에서 보면 탐험적 기질이 많은 사람 같은데 앞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요. 앞에서 보면 어디를 보든지 사정이 많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아주 급합니다. 내가 하겠다고 하는데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후닥닥 해 버립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정신차리고 따라와야 합니다. 밤을 새우더라도, 먹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치우고 맙니다. 그렇게 해서 방해물이 떨어져 나가든가 따라올 가망성이 없을 때 발을 펴고 쉬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그런 정신으로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아 나온 이유

지금까지 선생님이 21년 동안 참은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선생님 성격에 21년 동안 들이박혀서 콧대를 땅에 박고 굶으며 참았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너무 잘 압니다. 선생님이 자칫 잘못해서 하늘에 피해를 입히는 날에는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입을 다물고 참다가 어쩔 수 없이 잘못하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수습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자리에서도 참고, 매를 맞고 쫓기고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참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할 일이 많고, 준비할 것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우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의 종갓집 장손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구경할 것 다 하고 언제 이루겠다는 것입니까?

자, 그러면 멋진 훈련을 받으러 갑시다. 할머니들은 할 것 없습니다. 60살 넘은 사람들은 편안히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 대신 손자들의 재롱도 받고 잘 달래 주면서 기도 많이 하십시오.

기도를 할 때는 먼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해야 하고, 다음에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그다음에는 대를 이을 후손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핏줄을 받아서 태어난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속을 썩혀 드릴까요? 내 일생 동안에도 말을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가 막힌데, 이런 핏줄을 받아 태어난 아들딸들이 얼마나 속을 썩이겠습니까? 그러기에 후손을 위해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후대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 하나님께서 그 후손에 대해 동정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죽을 때 무릎을 꿇고 죽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을 연결해 가야 할 통일교 신자로서 해야 하는 의무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들! 만약에 선생님이 돈을 벌어야겠다면 여러분들이 협조할 것입니까, 안 할 것입니까? 「하겠습니다.」 협조하는 데는 편한 자리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는 할 수 없습니다. 여름에는 더위 참아가며 겨울에는 추위도 참아 가며 어려운 자리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법에 의하면 반대의 경로를 통해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생을 하더라도 지치지 말고 죽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죽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인은 천민선조(天民先祖)가 되어야 한다

기성교회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에 대해서 많은 반대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았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쯤 상당히 빨리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문 선생님은 30대에 세계적인 성공을 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더 발전해야겠다고 하며 희망에 벅차 있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규탄받는 자리에 서 있을 것이냐?

선생님이 20대, 30대에 사기충천하며 정열에 불타는 젊은 가슴으로 희망에 벅차서 앞날을 생각하던 그 이상의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새로운 결심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손이 돼야겠다는 결심입니다. 종손들은 방계 혈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다르기 위해서는 다르게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중심삼아 앞으로 세계주의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식구가 일본 사람이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는 일본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 식구도 미국 사람이지만 우리에게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뜻이 한국에서부터 벌어진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분들에 의하여 천민선조(天民先祖)가 배출되어 만국의 조상 국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사장 국가가 되자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타난 제사장 국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 아들을 바칠 수 있습니까? 자기 몸뚱이를 바칠 수 있습니까? 어디 대답해 보아요. 젊은이들,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자기 몸뚱이 그까짓 것 태평양 바다에 상어 밥 되라고 집어던질 수 있다는 배포를 가지고 삼천리반도, 삼천리 민족, 불쌍한 이 민족, 불쌍한 이 나라를 위해서 내 육신 하나 던질 자신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정말? 「예.」 세속과는 다르게 아주 폭발적일 수 있어요? 「예.」 그렇게만 된다면 선생님이 걱정 안 합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선생님은 졸장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됩니다. 나 스스로 큰사람인 줄 알았는데 졸장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할 만한 사나이가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놀라 자빠질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알아서 행하고 싶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만 나온다면 여러분에게 무엇이라도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비실비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자고 해도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몸은 분명히 나오는데 모양은 비실비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활은 검소하게

여러분 중에는 통일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각 지구에서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통일교회 문선명이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보고 선생님이라고 하더라. 자기가 선생님이라고 하는 사람 내 처음 봤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처음 봤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공적인 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문제를 책임을 졌기 때문에 죽어도 공적으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에 ‘님’ 자를 붙여도 실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집안의 어른이 식솔들에게 ‘나 주인님이 가라사대….’ 하는 것이 죄가 됩니까? 우리의 가법은 이러이러하니 그 전통을 본받으라고 훈시할 수 있는 주인이 돼야 합니다. 그런 권위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칭 ‘문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눈이 문어처럼 생겨서 문 선생이 아닙니다.

지금 훈련 받기 싫은 사람들은 훈련에 방해되므로 한 10년 뒤에 찾아오십시오. 어차피 찾아오기는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때쯤 오라는 것입니다. 훈련을 받으려면 생활을 간소화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은 양복을 입고 이 강단에 섰지만 사실은 잠바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회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 선생이라는 사람은 매일 잠바만 입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에 오늘은 양복을 입었습니다. 사실 이 강단에서 3년 동안 잠바만 입고 설교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부터 탕감복귀해서 지금 양복을 입는 단계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맨 처음에는 미군 작업복을 물들여 가지고 주름 잡은 옷을 입고 설교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복귀하여 계속 올라와 잠바를 입었고, 그다음에는 세련된 양복을 입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옷을 잘 입는 것이 좋습니까, 못 입는 것이 좋습니까? 「잘 입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입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좋으면 여러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자신이 옷을 잘 입고 다니면 여러분들에게 잘 입지 말라는 말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언제나 입고 다니던, 방안에서 입고 있는 그런 옷을 그대로 입고 공장으로 갑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 위신도 있고 통일교회 간판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고 손가락질한다고 염려합니다. 내가 차를 산 것도 우리 식구들의 충성에 자극 받아서 산 것이 아니고, 외부의 소문을 듣고 기분 나빠서 당장 차를 산 것입니다.

일전에 미국 대사관에 여권을 내러 갔었습니다. 지프차를 타고 가서 대사관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있는데, 대사가 탄 차가 온다고 하며 우리 지프차를 치우라고 하여 서로 실랑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운전수가 그런 데는 아주 경우가 바릅니다. 틀리지 않은 데는 양보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붙어 삿대질하면서 싸우는데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덮어놓고 같이 싸움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해서 별수 없이 눈만 껌벅껌벅하면서 구경할 도리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기분 나빠 선생님이 한 5천만 원쯤 하는 차를 사려고 생각했습니다. 세금이 한 100배 붙더라도 살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차를 타고 다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차를 사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그 차를 살 때는 여러분에게 신세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벌어서 차를 사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어요? 그렇게만 되면 우리 축복가정들에게는 지프차나 세단차를 한 집에 한 대씩 사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선생님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선생님이 한 2백 살까지 산다면 틀림없이 그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50이 가까워졌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에게 한 1세기만 허락된다면 틀림없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의 삼천만 국민은 먹여 살리고도 남을 것입니다. 세계를 수습하겠다고 영계에 가서 통일시키겠다는 간판을 붙이고 온 내가 그것도 못하면 아예 집어치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선생님 말을 들어주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을 통 믿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을 세우라

여러분이 훈련 받을 때 선생님이 하는 일이 여러분의 상식으로 통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바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바람도 보통 바람이 아닌 태풍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태풍이 불 때는 사방팔방으로 무목적하게 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목적지를 향해 일정하게 부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조를 같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거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오늘 어느 식구가 훈련에 와 가지고 ‘지금 아기가 병이 나서….’ ‘아기 낳은 지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하며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아기 낳은 지 며칠 됐는지 선생님이 알 수 있습니까? 하지만 나왔으니 그 사람은 그래도 참석한 것으로 이미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죽자고 하면 죽는 흉내라도 내고, 미치자 할 때는 미친 흉내라도 내라는 것입니다. 또 말을 잘해야 한다고 할 때는 말을 잘하는 흉내라도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동할 때는 선동에 따라가는 흉내라도 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가 잘되고, 우리가 잘되고, 또한 세계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길이 닦이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사상적인 자세를 갖추어야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갓집이 되어야 하고 종갓집 자손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나에게 와서 부탁하고, 천사들이 나에게 와서 부탁하고, 선조들 모두가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겠다고 나서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통일교인은 다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빛은 선생님이 없으면 전부 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나이가 더 들기 전 거동할 수 있는 이때에 지팡이 짚고라도 다니면서 동네방네 뜻을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에 기쁜 소식이 있고, 더 나아가 세계에 기쁜 소식이 있을 때 그 기쁜 소식이 바로 우리 통일가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아 있을 때, 그 혀가 말을 할 수 있을 때 다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말할 때는 상당히 빠릅니다.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보다도 더 빠릅니다. 그런데도 영계에서 말할 때에는 한마디를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열 마디를 하더라도 부족합니다. 어떤 때는 혓바닥이 갈라지는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일이 다 신경써도 부족합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은 건달 중에서도 상건달입니다.

지금까지 행동했던 모든 생활을 일신해야 됩니다. 더구나 요즈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초보적인 사상을 아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맡은 부서에서 폭발적인 거사를 해야 할 사명이 분배되어 있는 것을 알고 마음대로 잘 수 없고,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내일의 이 나라의 승리를 위해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들이 우리 한국을 조국시할 수 있는 권위와 전통적인 자세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없습니다. 1분이라도 아끼어 인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위신을 세웠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돌아다니며 편안한 생활을 할 것입니까? 그런 사람들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속이 단단한 열매를 맺자

옛날에는 선생님이 영감들에게도 호통을 쳤습니다. 장로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이고 목사이지, 여기에서는 장로 목사가 아닙니다. 여러분, 송 영감 알지요? 그 영감 나한테 혼났어요. 그 영감 성격이 괴팍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엄하게 다뤘습니다. 훈련 받는 군법이 이런 것이라며 마구 쳤더니 결국 군대에서 훈련 받는 것처럼 ‘예,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되었습니다. 매를 맞아도 자기가 잘못해서 맞는 것이기에 영감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 양반 죽었지만, 내 말 안 듣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면 다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선생님 말을 듣지 않다가는 죽어서 비료밖에 될 수 없습니다. 비료도 요즈음 나오는 암모니아 비료라면 좋은 것이지만 그만도 못한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뜻 앞에 있어서 방해되는 사람은 선생님이 하나님한테 ‘이런 사람 데려가십시오.’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아까 이 목사도 말했지만, 전통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통일교회 문 선생도 바뀔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 같은 사람은 올 데 갈 데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는 사람입니다. 그처럼 껄렁껄렁한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뱃속에는 씨가 있어야 됩니다. 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무골충같이 참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깊어 갈수록 잎은 떨어지지만 열매는 단단히 열리는 것같이, 여기 있는 여러분들 중에 지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 때에 뜻을 세계 전지역에 선포하고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그 자리에서 마음껏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내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 내가 외치고 싶던 사연들을 외치면 만천하의 존재물이 내 외침에 따라 동하고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떠한 훈련이라도 감당해내겠다는 배포와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긍지를 지니고 선생님을 따라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예.」 더구나 지역장 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본부에서 지시하는 원칙 기준에 이탈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책임자는 선두에 서서 자기가 완전히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닦아질 때까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자진해서 쉬라고 할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질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합니다. 그러니 그 이상 발전해야 됩니다.

유행에 휩쓸리는 인간이 되지 말라

그렇게 알고, 오늘 처음 온 분이나 각 지역에 있는 여러분 모두는 그런 각오로 임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한번 따라해 보세요. 종손이 되자! 「종손이 되자!」 모두 종손이 되는데 무슨 종손이 돼야 합니까? 하늘나라의 종손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종손이 되어서 역사상의 어느 성현에게도 자신 있는 태도로 그들을 비판하고 심판할 수 있는 선악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기준을 해야 할 것인데 못 했다고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께서 종손을 찾아 나오는 것에 대한 열매가 비로소 땅 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출발이 횡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니 잠을 잘 때도 편안히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닦아 나올 때는 모든 것이 미완성이기 때문에 똑바로 누워서 자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잤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알고 난 후에는 내 몸뚱이를 함부로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아가씨들이 미니스커트라고 하는 짧은 치마를 입고 궁둥이 휘젓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다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통일교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그러지 맙시다. 그런 옷차림으로는 우리 통일교회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있으면 제발 사라져 주길 바랍니다. 만약에 그런 옷을 입고 여기에 온다면 한 대 때릴 것입니다. 우리 서로 약속합시다. 오늘 오지 않았던 여자가 그런 옷차림으로 온 것을 때리게 되면 실례가 되니까 오늘 오지 않은 여자들에게도 광고해 놓도록 하세요. 또 여러분들이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때리게 되면 실례가 되니까 친구들한테 미리 알려주도록 하세요. 그러니 지금부터 단단히 일러두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는데 그 여자에게 ‘너 전번 주에 왔던 누구누구 아느냐?’ 하고 물어서 안다고 하면 그때는 여러분들을 때릴 것입니다. 약속하자구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기분 좋게 약속하자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아가씨 아주머니들, 약속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옛날에 선생님이 혼자 살 때도 다리를 펴고 살지 않았습니다. 미처 도를 닦지 못하고 책임도 못했는데 다리를 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살아온 전통을 책자에 전부 기록하여 남길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해라 했는데 하지 않고 그때에 가서 하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때 떨어지는 무리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런 각오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여기 아가씨들, 알겠어요? 「예.」

그리고 남자들 요즘에 청바지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것을 입고 다니는 데 딱 붙게 입고 다닙니다. 그게 어디 신식이에요? 행동하고 앉기에 얼마나 불편해요? 미국에서 써먹다가 남은 찌꺼기가 한국에 들어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이나 영국에 다니면서 보니 히피족들이 그런 청바지를 입고 다니고 있어요. 그런 녀석들은 전부 다 소탕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것을 소탕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강건해야 한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정도술(正道術)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당수 한다고 깝작거리는 녀석들이 있으면 그들을 휘어잡아야 됩니다. 누구든지 외적 힘으로 나오면 외적 힘으로 물리치고, 내적 힘으로 나오면 내적인 힘으로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안팎으로 다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믿어 천당 가자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천국을 만들어 놓고 살다가 저나라에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적인 근거로 그런 확고한 신념을 만들어 놓고, 바람이 불고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고 주도적인 활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지, 기준이 없이 끌려 다니고 바람 부는 대로 쓸려 다니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내가 바람에 넘어갈 것 같습니까? 그리고 내가 고생을 안 한 것 같습니까?

선생님은 아무리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더라도 눈만 한번 껌벅 하면 다 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도를 닦았습니다. 집에서도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아이들한테 아버지의 성난 얼굴은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불쾌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그러한 훈련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여러분도 그런 면에 훈련을 받고 뜻을 확실히 알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가 잘못하면 천하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훈련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속한 집이라든가 환경에서 거리낌을 받으면 그것이 여러분을 잡아먹는 죄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의 화살이 우리에게 옮아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희망찬 미래에 낙오자가 되지 않기를 내심 단단히 각오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수제자들로 출발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중에 못다한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많이 갔으므로 그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부탁 한 가지 하겠어요. 이제 16일 내지 17일만 있으면 한 50명 이상의 일본 식구들이 옵니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하면 먼저 무엇을 보게 됩니까? 맨 처음에 그 집의 부인을 보게 됩니다. 그 부인의 손톱에 때가 끼지나 않았나, 머리가 비듬이나 끼지 않았나를 봅니다. 그다음엔 집안 어디에 먼지가 묻지나 않았나를 봅니다. 집안의 몇 가지만 보면 그 집안을 다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오면 교회의 부인들을 본 다음에 교회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화장실 한번 보고, 방안을 한번 휙 돌아보면 우리 교회에 대해서 대강은 알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주머니들, 그것을 인정합니까? 「 예.」

그런데 일본에서 여자들만 오면 그 여자들이 그것을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여자들이 오는 것이 아니고 남자들이 옵니다. 그러니 준비 잘 하시길 바랍니다.

<말씀 요지>

1960년의 표어는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였습니다.

1960년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최대의 실적을 남겨야 할 해였습니다. 최대의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환경을 흡수하여 출발해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사탄의 참소조건을 제거할 수 있는 해가 1960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민족적 국가적인 메시아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때는 사회 환경으로부터 핍박을 받던 때여서, 우리가 자유로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때는 언제 올 것인가 하고 마음을 졸이던 때였습니다.

싸우는 그 자체가 탕감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늘 것으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는 것은 실적을 세워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이 끝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입장과, 가정을 이루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뜻이 이뤄진 입장이 된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남자는 예수님의 실체 입장이고, 여자는 성신의 실체 입장입니다. 즉 예수와 성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처럼 살아서 이 민족을 구하겠다고 주저하지 않고 나선 입장이 바로 축복가정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은 종족적인 메시아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올 때에 애급을 치고 출발한 것같이, 제2차 7년노정은 자기 식구들을 치고서라도 나서야 하는 때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갈라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식구들과 축복가정도 갈라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부부는 어느 모로 보든지 일치된 한 모양을 가져야 합니다. 그 중심은 참부모와 하나님의 심정으로 기반이 닦여져야 합니다.

야곱의 21년 고난이 결실을 거두어 천사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을 수 없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6천년간의 종적인 역사를 일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입장입니다.

올해는 야곱가정이 하란을 떠나던 때와 같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난 때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모든 것을 몰고 가자고 한 것입니다.

모든 신령집단은 이 7년노정을 협조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7년이 지나도록 증거 못하면 망합니다.

제1차 7년노정 기간에 한국의 흙과 돌을 가지고 40개국에 120개 성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잠잘 때에도 이 흙과 돌을 베고 잤습니다. 만약 이것들을 잃어버리면 3단계로 연장되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를 이 민족보다도 더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한국에서 뒤넘이칠수록 한국은 세계에 더욱 잘 나타나게 됩니다.

이번에 세계순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중 나와야 할 식구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천재가 한국에서, 특히 통일교회에서 나옵니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7년노정이 있었으므로 식구들이 축복을 받으면 필히 7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이 중요성을 깨닫고 올해 남은 한 달 동안에 지난 11개월 동안에 못다한 일들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기 도>

아버님, 이 아침은 안식일이옵니다. 자녀들과 더불어 아버지의 영광에 접할 수 있게 하시옵고, 높고 귀하신 당신의 인격에 접할 수 있게 하옵시며, 당신의 소원성사의 승리적 일념을 저희들이 체휼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당신의 성업이 저희 인류의 시조로 말미암아 이렇듯 유린당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슬픈 일이 겹치면 겹칠수록 저희들은 당신 앞에 면목없는 자들이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의 책임을 아버지께서 홀로 지시고, 역사노정을 그렇게도 비참하게, 그렇게도 처량하게, 그렇게도 외롭게 걸어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사옵니다. 이제 이것을 안 저희들은 힘을 다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 찬양해야 되겠사옵고, 정성을 들여 아버지의 귀한 심정을 본받아 저희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지금까지 개척해 나오신 개척자의 희생의 길을 저희들이 고스란히 상속 받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린것들이옵니다. 저희들은 부족한 것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던 무리였사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거룩한 자리에 동참시켜 주신 아버지 앞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옷깃을 여미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적마다 당신의 모든 수고를 상속 받을 수 있고, 깊은 심정의 흐름을 통하여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날들을 맞이할 적마다 아버지의 깊은 심정에 안겨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명령을 받기를 고대하는 어린 적자(嫡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이 많사오나, 저희들은 서자의 자리가 아닌 적자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천만세에 슬펐던 아버지의 한 맺힌 가슴을 헤쳐 놓고 저희들이 모든 사연을 털어놓아 아버님의 슬펐던 한을 상속 받아 가지고, 수천만세에 얽혀 있었던 원수에 대한 모든 원한을 완전히 해원성사해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자녀를 찾으시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셨나이까? 그 자녀를 찾으신 후에는 가정을 찾기 위해 수고하셔야 할 노정이 남아 있고, 가정을 찾은 후에는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찾아야 할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외로워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따라가야 할 자식들인 저희들은 아버님의 슬픈 표정을 바라보고 슬퍼할 줄 알아야 되겠사옵고, 아버님께서 처하신 입장이 얼마나 딱한 사정이라는 것을 체휼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난 아들딸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사오니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하여 봉헌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봉사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맞고,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억울함을 당할 줄 아는 효자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효녀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기나긴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당신이 찾아 나오신 가정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나왔습니다. 당신이 찾아 나오신 본연의 민족 형태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나왔습니다. 당신께서 바라시는 하나의 국가 형태, 만우주의 상속권을 가지고, 아버지의 높으심을 찬양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일체의 소원이 이 불쌍한 민족을 통하여, 불쌍한 이 한국 땅을 통하여 아버님의 거룩하신 뜻이 돛을 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범하게 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배후의 모든 수고의 공적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을 진정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들이 편안한 마음을 갖고, 저희 생애의 모든 문제와 인생에 있어서 고민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추앙하는 마음을 가질 때마다,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그 배후에 아버지의 슬픈 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것을 일깨워 주시어서 저희 자신이 당신의 분부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와 하나의 생명의 원천으로 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몸으로써, 또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써 세상의 어떠한 사적인 것도 없이 피어나는 미소를 그냥 그대로 담뿍 담고서 아버지를 향하여 반겨 드리지 못한 불충 불효의 모습이었던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나타나기에는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요, 아버지 보시기에 끔찍하고 아버지께 원한을 쌓이게 하는 원수의 후손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의 웃음은 도리어 당신 앞에 비소의 결과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저희들이 하늘을 대하여 움직이고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심정 가운데에 또다시 한의 조건을 남기지 않기를 원하지만, 먼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신이 되어 있다는 것을 무한히 슬퍼할 줄 아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제의 역사에 아버지께서 슬퍼하셨음을 알았사옵고, 오늘의 사정이 이 땅의 원수의 침노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하늘의 슬픔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버님께서도 어찌할 수 없고, 다만 저희 자신들이 여기에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책임만이 남아 있는 것을 절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저희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옵니까? 저희들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까? 전부 다 널려진 역사를 수습하고, 벌어진 세계를 수습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역사를 창건하는 자로서, 아버님을 대신한 대역자(代役者)로서 여기에 모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가 있는 것도 아버지를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는 것도 아버지를 위하여 사는 것이요, 저희가 생명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음도 오로지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연약한 손길을 벌리고,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지치고 지칠 정도로 간절한 사모의 마음을 갖고, 그 마음속에 울리는 아버지의 심정 앞에 굴복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이 오늘 이 아침에 이곳을 향하여 경배를 드리고, 이곳을 향하여 당신의 은사를 고대하고, 참부모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면서 당신의 가깝고 귀하신 사랑을 찾고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 앞에 위로와 행복의 심정을, 아버지, 갖다 주시옵소서. 하늘을 잃어버리고는 견딜 수 없어 몸부림을 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고, 자기의 모든 세포가 선을 대하여서는 하나의 마음에 화하고, 악을 대하여서는 슬픔의 표정을 짓고 거기에서 자동적으로 빠져 나올 줄 아는, 아버지, 당신의 선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은 선으로써 결속해야 되고, 악은 악으로써 처치하지 않으면 안 될 이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삼천리반도를 하나의 활동 무대로 삼아 이 나라 이 민족의 생명을 구하는 구도자의 사명을 책임지고, 제2의 메시아적 사명을 완결하겠다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하여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개의치 않고 산 제물로서 바칠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1968년도 다 기울어 가고 있사옵니다. 흘러간 과거의 역사를 반성할 적마다 슬픈 마음이 앞서는 것을 억제할 수 없음은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제 아버님 앞에 책망받고 슬퍼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를 위하여 살고, 아버지의 뜻을 세우겠다고 몸부림치던 모습을 기억하시옵니까?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있사오나, 실제 저희 자신이 그렇지 못함을 발견하게 될 때는, 하염없는 슬픔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오랜 역사의 날들, 역사의 노정들은 아버님의 슬픔과 더불어 흘러갔습니다. 앞으로 저희 앞에 다가올 역사적인 하나의 시간과 하나의 날과 하나의 해를, 기쁨의 시간, 기쁨의 날, 기쁨의 해로 맞이하여 아버님 앞에 돌려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또 이것을 분별시켜 승리한 가치의 날들로서 아버님 앞에 거두어 드려야 할 책임이 통일의 역군들에게 있다는 것을 진정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죄악 된 세상에서 이미 손을 털고 가진 것 없이 나선 이 몸은 아버님 앞에 적신(赤身)으로써 봉헌하기를 자초했사오니, 당신 앞에 저희 자신을 끌어내리고 다시는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앞에 맡긴 몸이오니 분부하신 땅, 분부하신 곳, 분부하신 사명을 위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가겠다고 맹세할 수 있는 당신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숱한 슬픔의 역사는 흘러갔나이다. 한국 땅 삼천리반도에도 당신의 자녀인 통일가 역군들의 눈물 자국을 재촉하던 슬픈 날들도 많이 흘러갔나이다.

이 가운데 저희가 잊을 수 없는 한 지역의 슬픔이 있었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당신의 딱한 사정을 안고 몸부림쳤던 일들이 저희의 생활에 있어서 자극이 되고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가진 것이 저희들의 지난날의 생애에 보람인 것을 알고 있기에 오늘 이 슬픈 길을 자초하고 나섰사오니, 저희들의 발걸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반대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향하여 전면적으로 일보 일보 가일보 접근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찾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상봉할 때, ‘아버님!’ 하고 부르는 말과 더불어 잃어버린 전부를 다시 찾고 희생시킨 전부를 부활시킬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될 수 있는 한 날이 저희들 앞에 올 것을 바라며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 설 때 아버지께서 야! 아무개야, 왜 이제 왔느냐? 하고 불러 줄 수 있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안 될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 스스로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의 목전에 나타나게 될 때, 아버님께서 묵묵한 얼굴로 바라보시는 슬픈 자식들이 결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나섰사오니,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를 향하여 일보 일보 가일보 전진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역사를 창건해야 되겠사옵니다. 이 역사는 저희를 위한 역사가 아니옵고, 하늘땅을 위한 역사요 시대를 위한 역사요 후손을 위한 역사라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흘러가는 모든 물줄기도 대양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 통일의 역군들의 심정의 방향도 아버님의 넓고 크신 대해(大海)와 같은 심정으로 그 방향을 취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움이 많고 부대끼는 곡절의 흐름 가운데 있어서 아버지의 인연을 따라 한곳으로 가는 마음만은 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곳을 향하여 충성하고, 한곳을 향하여 결속시키고자 하는 그 마음만은 변치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의 모든 전체를 아버님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한번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으면서 만나기를 고대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이 아니면 그들과 저희들이 인연맺을 수 없는 것이요, 한국과 수많은 세계 국가가 인연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한국은 외롭고 불쌍한 나라요 세계에서 낙후된 민족이옵고 낙후된 나라로서 끝날 것이었사오나, 아버지가 세우신 인연을 통하여서 세계가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 강토를 그리워하고 한국 사람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있는 스승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평화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옵고, 그들이 그러한 겸허한 마음을 간직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높고 귀하신 당신의 거룩한 뜻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고, 아버지께서 세계의 국가 국가에 거룩한 터전을 마련하고 거룩한 승리의 발판을 확대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저희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도의 길에서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묶어 주시옵고, 앞으로 이 민족 앞에 다가올 모든 어려움을 제거시키시옵고, 당신의 뜻에 일치되지 않는 모든 것을 제거시켜 주시어서 당신의 뜻 앞에 귀일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수많은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 아버님 앞에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세상에 살고 있는 그 어떠한 사람과 다르고, 역사적인 그 어떠한 사람들과도 다르다는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성현들은 그들 자신 스스로가 자각하고 깨달아서 부모면 부모,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자기 나름대로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가정에서부터 종족․민족․국가, 혹은 세계에까지 반영시켜서 발전시키고자 하였던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스스로 어떤 역사적인 선지선열들도 갖지 못한 느낌과 각오를 하고 새로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이념의 나라와 세계

내 한 개체, 또는 우리의 한 단체를 두고 볼 때에 과거․현재․미래의 과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민족․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이 바라는 개인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볼 때에, 진정으로 그 이념을 중심삼은 개인, 그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종족․민족․국가, 더 나아가서 세계는 어떻게 형성될 것이냐? 아직 우리 통일교회 앞에는 그러한 부분 부분의 분야가 실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서 살고 있지만, 이 나라, 이 세계가 우리가 지향하고 우리가 바라는 나라와 세계가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이 세계는 타락한 세계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타락권 내의 생활을 청산 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권 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와 세계는 지금 현재와 같이 탈피해야 할 입장에 있는 나라와 세계가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 가지고 새로운 이념의 나라와 세계를 향해서 나가야 됩니다. 그 나라와 그 세계가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이 바라는 나라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야 됩니다.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야 할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라를 바라기 전에 민족을 이루어야 됩니다. 새로운 자각 가운데 있는 민족이 없으면 그러한 나라가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바라기 전에 새로운 자각 가운데 선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종족이 없으면 민족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종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 위에 선 가정이 없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기 위해서도 역시 새로운 자각을 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개인이 자각하지 않고는 새로운 개인이 될 수도 없고 새로운 가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자각을 한 개인이 있어야 되겠고, 그 개인을 통해 하나의 가정이 형성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가정을 통하여 종족, 그 종족을 통하여 민족, 그 민족을 통하여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고차적인 체계가 내 개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새로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자각된 자들의 할 일

역사적인 어떤 성인 현철과 비교해 볼 때, 혹은 한번 맞부딪쳐 보게 될 때, 우리가 자각하고 결의하여 자각된 좌우의 확실한 결정이 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를 창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자각한 입장과, 과거의 성인 현철들이 어떤 사상과 이념과 그 생활권을 중심삼고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의 만민을 사랑하겠다고 스스로 새로운 분야를 타개하고 어려운 환경을 밀고 나가야겠다고 자각한 애국지사들의 입장을 비교해 볼 때, 그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 앞에 우리가 져서는 역사를 수습할 수 없고, 시대를 창건할 수 없고, 새로운 미래를 창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새로이 자각된 세계의 출발을 볼 수 없음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상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습니다. 예수와 공자와 석가 같은 분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부패상과 사회의 환경을 보고 그 반대되는 입장에서 홀로 그 사회를 밀어내고 청산 짓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가 갖고 있는 사회관, 자기가 갖고 있는 국가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정관과 인격관을 중심삼고 새로운 분야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모험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기에 비례한 새로운 자각을 갖고 나타났던 성현들 앞에는 모험이 개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 국가의 모험이 개재되어 있고, 민족 종족의 모험이 개재되어 있고, 개인적인 모험이 개재되어 맞부딪쳐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모험 가운데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몰려오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몰려오는 그 환경을 넘을 수 있는 자각된 심정을 중심삼은 인격을 가져야 됩니다. 아무리 처참한 환경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그 인격이 변하지 않아야 그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자각적인 존재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성현들은 생명을 걸고 환경과 싸워 나왔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각된 입장에서 그런 길을 가셨다면, 예수님 자신이 자각된 입장의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내심적인 소원의 국가와 세계는 가졌지만, 실체적인, 현실적인 국가 세계는 갖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와 가지고 내심적으로 바라던 소원의 나라와 세계를 현실적으로 실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생활권 내에 자랑할 수 있는 나라와 세계를 가지고 이 땅 위에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그 사명을 완결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자각된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예수님이 바라시던 소망의 세계를 상속 받아 가지고 현실적인 사회 기반 밑에서 우리 생활권 내에 이것을 성사시킬 수 있는 책임을 져야 하고, 예수님 이상 자각된 신념을 가지고 그 세계를 대하고, 국가를 대하고, 민족․종족․가정을 대하고, 개인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예수님이 바라시는 소원의 천국을 이 땅 위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통일교회 자체가 온 우주, 혹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이념을 가졌다 할 때, 그 이념 가운데 자각된 사람은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당당한 입장에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을 접합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자각된 실체의 가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그 비교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지난날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오늘 현실적인 환경에서 싸우고 있는 처참한 우리 개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어떤 입장에 있느냐? 현재의 자기 위치를 상실한 입장에 있습니다. 자각해야 할 현재의 입장이 얼마만큼 위대하고, 얼마만큼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찾아 나온 것이 뭐냐? 오늘날 현시점에 서 있는 통일교회의 무리입니다. 즉 자각된 모습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각했다는 입장을 고수(固守)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역사적 소원과는 대조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왕왕 느끼게 됩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이 살던 그 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이 살던 그 당시에도 배후의 역사시대가 있었고, 그들이 살던 현실적인 시대가 있었고, 그들이 바라던 미래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결실체가 누구냐 하면 오늘날 이 시대의 우리 통일교회의 자각된 모습들입니다. 그들이 과거 현재를 청산 짓고 소망했던 것은 미래의 자각된 하나의 실체세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시대에 그들의 자각된 전체적인 가치와 역사가 소망해 나온 전체적 소원의 가치, 그 시대의 전체적 소망의 가치를 모두 합한다 해도 오늘날 우리들의 실체 가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전체 가치, 시대적인 전체 가치를 중심삼고 주체 입장에 선 자체까지 플러스시켜도, 오늘날 소망의 결실로 나타나야 할 통일교회의 자각된 모습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위인을 불러일으키게 될 때에 그가 부활할 수 있고, 그의 소원을 이루게 될 때 그가 이 땅 위에 있는 우리와 더불어 결실될 수 있다는 엄청난 사회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망각해 버리는 무리가 많습니다.

사회에 어떤 훌륭한 가문이 있다고 합시다. 그 가문의 후손들에게 자기 선조들로부터 상속 받은 유물이 있다면, 그 유물을 대할 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역사적인 선조들의 가치를 추앙하면서 선조를 접하려는 것이 그 가문의 후손들이 취해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이 자기들을 위하고 추모하는 후손들을 바라보고 ‘오! 너는 사랑하는 내 후손으로서 응당히 해야 할 책임을 다했으니 너는 나의 효자요, 내 후손임에 틀림없다.’고 칭찬할 수 있는 입장에 우리들은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 앞에 부름 받은 우리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이 선조를 추앙하는 반면에 그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조들이 나라에 반향을 일으켰던 그 이상으로 세계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끝날에 있어서 자각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자기가 추앙하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소망의 가치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그 선조를 추앙하는 것을 제일로 삼는다면 그 선조의 갈 길을 막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추앙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만을 추앙하는 입장에 서지 말고, 그가 바라던 역사적인 소망과 접할 수 있는 가치를 흠모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옷깃을 여미며 예수님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님 앞에 한의 조건만 남기게 됩니다. 예수님을 추앙한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고 그것을 본으로 삼아 새롭게 자각하여 나가는 것을 예수님이 고대하시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어떤 도주면 도주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혹은 시대적인 어떤 지도자면 지도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들은 후손들이 자신들을 중심삼아 개인적인 가치만을 결정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 더 높고 더 귀한 가치를 찾아서 예수님이나 도주나 지도자의 반영으로 말미암은 인연이 맺어지게 될 때, 그들이 역사 과정에서 결실 맺어 나왔던 사실을 인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이 역사와 시대의 결실로 맺어지는 동시에 결실시킨 그 자체도 현실에서 결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영계에 있는 선조들, 즉 성인 현철들이나 지도자들이 이 땅 위에서 부활적인 현실 과정을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원리 가운데 부활론에서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처해 있는 우리의 자각된 입장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역사의 기준과 시대의 기준에 밀려가서는 안되겠습니다. ‘내가 오늘의 시대 앞에 불리움을 받았으니, 불리움을 받은 내 자체도 당당히 역사와 시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또 그래야 나를 믿어 줄 하나의 상대가 나타날 수 있는 당당한 동기가 생긴다.’고 할 수 있는 자각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입장에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인 입장과 시대적인 입장과 미래적인 입장으로 계시지만,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즉 역사적인 아버지로서의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입장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맺힌 복귀노정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자식들이 된 우리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야 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승리의 권한을 가지고 아들딸을 세웠다는 주체적인 입장에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미래에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중심도 결정하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자각하게 하는 입장에 서시지 않고는 하나님도 우리와 더불어 결정적인 위치에 서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이런 입장에 있는 개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당당하고 엄숙하고 역사상의 모든 가치를 합하여도 바꿀 수 없고, 시대와 비교해도 바꿀 수 없는 우주적인 새로운 자각관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통일교회에 있는 여러분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회에 나가게 되면 거기에 동화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와 환경에 동화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악이 벌어져 누룩과 같이 되어 있는 이 세상에 동화되어 악의 누룩에 녹아나는 무리가 많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제아무리 악의 누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의미에서 새로운 것으로 융화시킬 수 있는 자각된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철두철미하게 자각된 입장에 선다 할진대,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중심삼고 나가면 어느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주체성이 확립될 것입니다.

자기가 관계해 있는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입장에서 그런 작용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동반하실 수 있는 주체적인 기반이 자동적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기점을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평면적인 세계를 복귀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과거․현재․미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세워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각된 자체들이 이 천지 가운데에 얼마나 있느냐? 지금까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자각된 사람들을 발생시키고 그들의 입장을 결정지어 주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입장을 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자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것을 강요하고, 활동을 할 때도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살아가는 일체의 모든 언행심사를 기울여 가지고 이것을 위해 움직이고 존재해야 합니다.

생활 가운데 분함과 억울함을 느끼게 되더라도 이것을 중심삼고 여기에 마이너스(-)가 되면 슬퍼하고 플러스(+)가 되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는 그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천운이 우리 인륜의 배후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륜 가운데서 그와 같은 마음과, 그와 같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천륜은 반드시 인륜을 접해야만 천지조화의 법도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만나 가지고 조화가 벌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이 세계 전부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은 접하려고 지금까지 무한히 애써 나온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각된 새로운 사람을 우리들이 품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재평가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개인복귀 완성을 고대해 오셨다

현실적인 생활 무대에서 아무리 작은 분야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 토굴에 사는 사람이라도 그가 자각되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들어가는 토굴은 토굴이 아닙니다. 그곳은 세계를 하나로 형성하는 모의 장소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모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가 활동하는 무대는 홀로 활동하는 곳이 아니요, 또한 그는 홀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역사적인 모든 이상적 사람들과 접하는 것이요, 앞으로 올 시대적인 모든 이상적인 사람들과 접하는 것이요, 이상을 품고 나오시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내적인 기반, 내적 가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할진대 그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누가 들이 치더라도 거기에는 반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큰 바람이라도 태산을 만나서 부딪치게 되면 그 바람은 후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새로운 조화를 일으키고 그 권내를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길을 가면서 어두운 흑암세계를 혼자 가더라도 그 흑암세계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밀려가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과거에 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했던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느껴야 합니다. 오늘 현실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과거의 그 어떤 성현도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껴야 됩니다. 미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간절한 소망의 세계로 진일보하겠다는 각오 가운데 기쁨을 느끼면서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이 자각된 개인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개인이 완성되지 못하면 새로이 자각된 가정이 형성될 수 없는 것이요, 새로운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의 완성을 결의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복귀 완성을 그렇게도 고대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성이면 남성 한 사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걸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전반적인 목적을 시대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의 남성 완성에 두시고 그것을 표준해 나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완성한 남성을 중심삼고 하나의 여성을 세워 가지고 하나의 가정 완성의 표본을 만들고자 하신 것인데, 그것이 메시아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메시아사상을 중심삼고 신랑 신부를 세움으로써 복귀섭리의 귀결점을 지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 생활의 기반을 세우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이 세워 놓은 생활관이나 그분이 지향하는 이념은 일체 후대의 만민이 본받아야 할 표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각기 그 모습이 다르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치고 보면 같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생활관과 예수님의 우주관과 같아야 됩니다. 거기에는 차이가 없어야 됩니다. 우리들의 얼굴은 전부 다 다르지만 핏빛은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양과 모든 생활 방식과 역사적인 모든 문화의 배경은 다를지라도 그 가운데 생명의 원천으로 흘러나가는 사상은 예수님과 일치되고 오시는 주님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생활의 일치를 할 수 없는 것이요, 국가 세계 또한 일치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이 자각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공인하실 수 있으며, 과거와 현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새로운 의미에서 여러분 자신을 자각된 모습으로 공인할 수 있는 입장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자기의 가치를 확실히 알아야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은 엄청납니다. 과거의 교차로요, 현재의 교차로요, 미래의 교차로입니다. 과거에 완성을 바라고 나온 것도 교차되어야 합니다. 현재 어느 한때에 서로 교차되어야 합니다. 미래에도 역시 이 교차로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타락했으니 바꿔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새로운 자각을 통해 뚫고 나가야 됩니다. 현재도 새로운 자각으로 뚫고 나가야 됩니다. 미래도 역시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되기 때문에 6천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과거의 기준, 현재의 기준, 미래의 기준, 이 3선을 모두 합해 가지고 총결산을 지어야 합니다. 과거에 공들인 모든 수고가 현재에서 거두어져야 됩니다. 현재에서 공들인 모든 수고가 미래에서 거두어져야 됩니다. 또 미래에 바라는 모든 전부가 거기에서 거두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3수의 결실체로서 이 실체세계를 중심삼고 자각된 자체를 세웠다고 할 수 있고, 우주 앞에 그런 내용을 결정지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과거․현재․미래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사적인 교차로를 통과하기 위해서 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소망하던 것이 현실에서 결정지어져야 됩니다. 과거는 현실에서 열매 맺는 것이요, 미래도 현실에서 출발의 기점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역사시대의 어느 한때에 역사 과정의 이 3점이 우리의 인격을 중심삼고 교차되어야 합니다. 그런 결정적인 권한을 여러분이 갖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활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됩니다. 그러니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딪치는 환경에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뚫고 나가야 됩니다.

새로이 자각된 모습으로서 신념을 가지고 사회를 혁신시키고 악의 세계를 결속시키면서 새로운 분야에 전환의 기준을 성립시키고 나가야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새로이 자각된 그 입장을 결정지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가 자각되어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역사는 수천년 동안 뜻을 알지 못하고 걸어온 역사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역사는 비록 짧더라도 장담코 우리 교회를 대해 수천년 역사, 또는 그 어떤 인물도 심판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자각성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갖고 있는 역사의 가치를 망각해 버리고 예수님만을 믿는 교회의 사람들처럼 과거 이스라엘 역사의 내용을 더 중요시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는 흔히 자기의 가치를 망각하여 버리고, 타인에게서 자기의 가치를 보충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발전할 내심적인 욕망이 있게 되면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자기가 지닌 가치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이것을 몰라 가지고는 플러스될 수 없으며 역사의 주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역사에 끌려 나가고 환경에 끌려 나가는 사람이 지성을 가지고 그것을 소화시켜 상응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역사는 짧지만 세상에 없는 역사, 그 어느 역사 과정에도 없었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시대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역사적인 후손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국보면 국보라든가,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찬양하는 것보다도 새로운 역사 과정에 남아질 수 있는 실체를 찬양해야 됩니다. 우리가 걸어 나온 100여년간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역사 과정을 지내면서 남겨 놓은 것을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남겨 놓은 어떤 것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것을 감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을 망각해 버리고 잃어버리는 사람은 현재 자기의 자각된 자체를 팔아먹는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신문에 났지요. 한국의 귀중한 그림 수백 점이 일본의 천리교에 의해 팔려 갔습니다. 그림이 자기의 본고향이 아닌 외국 땅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국가의 손실입니다.

통일교회의 가치

이것을 보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6천년 역사의 내적인 사명을 완결 짓기 위해서 지금까지 걸어 나온 역사적인 가치라는 것은 무한한 가치에 해당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있어서 국보로 하고 있는, 혹은 세계의 어떤 국가에서 국보로 할 수 있는 귀중한 국보보다도 오늘날 통일교회의 짧은 역사 가운 데 천세 만세 만민이 수용할 수 있는 국보적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새로운 역사시대를 창건할 수 있는 자각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역사가 과거 역사보다도 빛날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고 자각해야 되겠고, 현재 우리의 입장이 이 시대의 어떤 사회, 어떤 생활권의 가치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자각된 입장을 현재의 기준과 비교할 때, 자각된 입장이 모든 면에서 더 나으냐? 낫지 않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는 현재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느냐? 외적으로 보아서는 그 가치를 모릅니다. 보기에는 처량하고, 보기에는 안됐고, 보기에는 서글프고 비참한 자체가 되어 있지만 현재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여러분들이 거리 거리에서 방황하고, 혹은 그 누구보다도 못사는 어려운 입장에서 혹은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현재 여러분이 지닌 자각적인 가치는 역사시대 그 어떤 사람이 지닌 가치보다도 나은 것으로서 천대 만대에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인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현재의 가치를 팔아먹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 나라의 국보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팔아먹는, 즉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일본이면 일본 등 자기 나라의 귀중품을 모두 팔아먹는 후손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역사적인 지탄을 받아야 됩니다.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무한한 가치로 지녀 가지고, 이 가치를 만우주 앞에 천대 만대 빛내야 됩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어떤 가치보다도 더 훌륭하게 적응시키겠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 자리가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처량하더라도 그 가치는 우주사적인 것입니다. 그가 객사했다 하더라도 객사한 그의 몸뚱이는 하나의 사람으로 객사한 몸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인 가치를 남길 수 있는 입장에서 객사한 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생활권 내에 응고되어 있는 모든 사실들이 오늘 이 세계에 호화찬란한 행복이 깃들 만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창건해 나가는 자각된 환경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눈물이 흐르고 여기에 어려움이 교차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과 눈물은 시대를 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적인 체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없이는 새로운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즉 그것이 없이는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전환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가치를 느껴야

그런 입장에서 외적인 기준이 동떨어진다고 거기에서 낙망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한 낙후된 입장에 서서도 절대 안 됩니다. 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자각된 가치가 세계의 어떤 현실적인 가치보다 귀하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뒷마루까지도 어느 고층 건물의 호화찬란한 자리,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거룩히 볼 수 있는 그 자리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먼지 하나, 공기 하나도 세계의 무엇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렇습니까? 본부교회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이구, 답답해. 아이구, 답답해.’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와 가지고 좋은 방도 모두 불편하다고 그저 재간을 피워 가지고 나가서 자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 가치를 알게 되면 나가서 자라고 해도 안 갈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생활권 내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한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가치를 무한히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앞으로 미래의 세계를 창건하고 미래의 권한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미래세계의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래는 현재를 통과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를 무한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무한한 미래의 가치를 상속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현재 가치는 뜻을 중심삼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중심삼고 이 시간 이후 미래를 향하여 출발해야 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면 그 말씀은 이미 미래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모든 것은 미래의 역사가 수습하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것을 현재가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가 수습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있었던 전부를 미래의 역사가 수습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이제부터 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말을 하고 나면 그것이 벌써 상대적으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어 가지고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선악은 어디에서 탄생하고, 선악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현재와 미래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밀려나는 존재는 미래에서도 수습될 수 없다

여기에서 현재와 미래의 선의 양이 과거와 현재의 선의 양보다 크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각된 세계의 존재로 남아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와 미래를 갈라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체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큰 미래의 세계를 찾아 나가야 되므로, 오늘날 우리 자체에 뒤넘이치는 환경에서도 현실 과정에서 더 큰 미래의 가치를 심어 놓지 못하면 미래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만, 내일도 그만 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가치보다도 내일의 가치에 치중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중심삼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이 기준을 자각해 가지고, 여기에 현재보다도 더 강하고 더 소망적이고 더 철두철미한 의분심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는 폭발적인 원동력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미래의 세계가 우리들 앞에 접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가 어떻다고 하면서 낙망한 사람들을 미래는 원치 않습니다. 현재에서 밀려가는 존재는 현재 청산되어야지 미래에 수습되고 출발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밀어내고 수고를 감당하고 나가면서 현재를 전부 다 청산 지을 수 있어야만 미래의 출발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게 되면 오늘이 온다고 합니다. 오늘이 온다는 것, 아니 오늘이란 것은 지난날과 지금 이 시간에 연결된 과거의 권내와는 다릅니다. 오늘이 옴으로 말미암아 곧바로 내일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내 개인의 입장이 내일의 가정의 입장을 추구하는 것이요, 오늘의 가정의 입장이 내일의 종족의 입장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의 종족의 입장이 내일의 민족의 입장을 추구하고, 오늘의 민족의 입장이 내일의 국가의 입장을 추구하고, 오늘의 국가의 입장이 내일의 세계의 입장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분야를 추구하고, 그것을 안고 위해 주기 위해서는 더 강하고 강력하게 플러스(+)될 수 있는 자극적인 모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데는 일심(一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1년, 2년, 혹은 처음 한 3년쯤은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하다가는 그만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나 돼지와 마찬가지입니다. 개나 돼지는 봄철이 되면 좋다고 뛰고 야단입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아이구!’ 하거든요.

우리는 쉬되 때가 없이 쉬어서는 안 됩니다. 잠을 자되 때가 없이 자서는 안 됩니다. 더 크기 위해서, 더 굵어지기 위해서 쉬고 자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심판받을 세계가 통일교회에서 출발한 여러분의 과거를 끌어가려 해도 끌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통일교회의 입장은 어느 현실 세계도 끌어갈래야 끌어갈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통일교회를 삼켜 버릴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통일교회 교인들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또 지금까지의 세계가 바라던 소망의 길이 이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됩니다.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역사보다 찬란했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국사면 대한민국 역사는 이래서 망했고, 미국이면 미국의 선조들은 이래서 흥했다 하는 것은 앞으로 역사를 교육하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복귀역사의 주연배우가 되라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며 살아 나왔습니다. 뜻을 위하겠다고 발버둥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남들은 모두 안 하는데 왜 나 혼자 해야 돼? 그저 적당히 따라가지.’ 하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닦아 놓은 터전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국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개인이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과거의 움직임은 자기 한 개인에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사에 길이 빛날 수 있는 국가와 세계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팔아먹는 악당 분자들이 많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국가의 것이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요, 보화 중의 보화를 자기 혼자 쓱싹 팔아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보면 선생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말씀은 설교로 해야 되지만 지금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하고 와서 지금 그냥 끄덕거리고 졸고 있는데, 말씀의 내용이 절대로 졸아서는 안 될 내용입니다. 조는 것은 영계에서 볼 때 말씀을 팔아먹는 것이 되므로 어느 단체에 가서 졸리면 얼른 나와야 됩니다. 왜 그 단체에 마이너스(-)가 됩니까? 차라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말하는 사람의 속을 썩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도 고단하겠지만 선생님도 고단합니다. 선생님은 새벽 두 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합니까? 여러분들이 지치면 자신의 보물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몇 해 동안 뜻을 위해서 굶고 다녔다고 할 것입니다. 어디 굶어 본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좌우지간 손들어 봐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세입니다. 선생님도 밥을 많이 얻어먹어 봤습니다. 우리는 무대에 선 주연배우들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면 그 가정의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가슴이 메어 통곡을 해야 됩니다. 감격을 느끼며 움직이는 사람은 주연배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복귀역사의 주연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밥을 달라고 해서 얻어먹는 것도 얼마나 멋집니까? ‘야, 이런 역사적인 시점에 새로운 의인이 나타났구나.’ 할 것입니다. 그런 가치를 가지게 되면 아주머니들도 잘해 줍니다. 그렇지만 ‘밥! 밥을 얻어먹어? 아이구, 창피해라. 사내 신세에 밥을 얻어먹다니, 우리 할아버지께서 아무리 못해도 밥 얻어먹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하시고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러셨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다니!’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런 사람은 오래 못 갑니다. 3년, 7년도 못 갑니다. 간다고는 하면서 뒤에서 보따리를 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생이 많지요. 하지만 그 고생이 얼마나 멋집니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생하는 곳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역사가 세계의 역사보다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뜻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 보화

통일교회 역사를 창건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움직였던 그 모든 시간을 자기가 상속 받아 그것을 자기의 보화로 가슴에 품고 자기 집안의 보화로 남기겠다고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나는 지금까지 움직여 나오는 데 있어서 작업화나 운동화가 뚜껑만 있고 바닥은 없을 때까지 신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입장인데 신발을 사 신을 수 있겠어요? 발가락에 흙이 끼이지만 신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뜻을 위해서 언제 그렇게 해 보겠습니까? 내가 걸어오면서 신었던 그 신발이 천년만년 대웅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그 한때를 수습하는 현재의 때가 없으면, 우리의 이념은 그 가치를 이 세상 존재 앞에 진동할 수 없습니다. 향기가 진동하려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포근한 바람이 불지 않는 봄 동산에 향기가 진동할 수 없습니다. 봄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져야 향기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흥남 감옥에서 한 3년간 있을 때, 암모니아 비료 공장에서 입던 옷들, 입을 수 없게 된, 더욱이 내복 같은 것을 전부 다 올을 빼가지고 누더기 보따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덮고 잡니다. 그럼 사람들이 우르르 모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봤으면 ‘저 친구, 나중에 누더기 보따리 장사할 거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 동안 입던 옷들을 전부 다 고스란히 보관했어요. 그래 가지고 그 누더기 보따리를 가지고 나왔지요. 지금 통일교회에 그것이 남아 있으면 세계적 보화일 것입니다. 보기에는 한푼의 가치도 안 되지만, 그것이 있으면 억천만세 영원히 말없는 웅변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와 같은 보화를 캐낼 수 있는 현실의 가치가 얼마나 귀합니까? 내가 역사적인 사명을 지닌 가치를 스스로 자각할 때, 내가 걸어가는 길은 앞으로 역사의 후대에 후손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기준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곡절과 사연 많은 인연의 동산, 그 사연의 엉클어진 지역에서는 영원토록 세계를 향하여 방송을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빛난 가치를 남길 수 있는 한 곳, 그 한때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못 먹고 어렵게 고생하면서 처량한 죽음의 교차로에서 하늘땅을 구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가치를 심을 수 있는 고생

여러분들도 앞으로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지금 당대에 있어서, 현재의 어려운 생활권 내에서 여러분의 후손들이 천추만세 여러분의 정신을 길이길이 받들고 선조인 여러분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보물을 찾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할 것이 현재 여러분의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외적으로 벌어지는 환경이 편하면 편할수록 그 가치는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이 외로울 수밖에 없고, 슬플 수밖에 없으며, 억울함과 분함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당하는 그 고충이 세계적인 고충으로 남아지게 된다면, 그 한 사건으로 세계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세계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동기와 세계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재물과 보화가 발굴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순간을 내가 거쳐 나간다고 생각하니 내 뒤에 채찍이 온다 해도, 내 가슴에 창끝이 온다 해도 탄식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의 고생이 무한한 가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배신을 하고 낙망을 하려고 해도 지난날의 산 역사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엉클어진 인연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이끌고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일이 다가올수록 세계가 나와 연결되어 흘러가는 것을 생각할 때,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딴 생각을 할래야 할 수 없으며, 지칠래야 지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나의 사명과 위치는 돈과도 바꿀 수 없고, 세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무한한 가치를 여기에서 심을 수 있고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나고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모르고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꺼떡거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현실에 나타나는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은 나타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명의 원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타납니까? 여러분들의 생명의 원천을 아십니까? 생명의 원천이 어디에 있습니까? 심장에 있습니까? 심장이 아닙니다. 생명의 원천은 잘 모르는 것입니다.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보화의 가치에 인연되는 것은 대중이 ‘야!’ 하며 손을 붙들고 몰려드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모르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와!’ 하는 데서 위대함이 빚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와!’ 할 때는 이미 껍데기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위대함이란 때를 알 수 없는 몇십년 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두고 볼 때, 나무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나무를 잘라다 쓰는데, 혹은 집 짓는 데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죽은 나무 자체를 인간이 사용하는데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무 자체의 생명의 가치는 나타나지 않는 뿌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잎이 아무리 무성하고 많다 하여도 그것은 모두 다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가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잘라 버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잘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가야 할 길 앞에 있어서 새로운 자각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출발한 것이 얼마나 무한한 가치를 지녔는지 모르고 자기의 보화를 전부 다 팔아먹으면 ‘아이쿠, 저것이 세계에 둘도 없는 보화였구나.’ 할 날이 기필코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서 그 가치를 빼앗기 위해 살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값을 주고 그것을 사려고 할 때, 여러분들이 그 가치를 모르면 한푼에도 팔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입장에 있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선생님이 보면 대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이 오늘 ‘공적인 일을 하라.’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이구, 공적인 일을 해도 뭐 생기는 것이 있나? 우리 아들딸이 굶게 되었는데 아무리 일 해봤자 남는 것은 국물도 없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야, 내가 돈 만 원 줄게.’ 하면 ‘야, 선생님에게 오늘 나 무슨 일 있다고 해라.’ 하고는 얼씨구 하고 그리로 갑니다. 여기에도 그런 껄렁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불순주의자요, 역사를 팔아먹고 나라를 팔아먹는 반역자와 같은 무리가 많다 이겁니다. 만일 통일교회 선생님이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통일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무한한 가치로 싹틀 수 있게 심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내가 심은 나무는 천세 만세 고이 잘 자라라고 하면서 심어야 되겠습니다. 가장 순수한 것을 심어야 되겠습니다. 선별하고 선별해서 참된 것을 심어야 되겠습니다. 한번 심으면 나지 않을 수 없는 참된 씨를 거룩한 곳에 심어야 되겠습니다. 피땀을 흘리고 정성을 다해서 심어야 되겠습니다.

새롭게 자각하자

정성을 들이면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찾아오실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역사적인 모든 가치와 내가 그 길에서 다져 놓은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거두어 드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각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역사적인 과거는 흘러갔고, 지금 현재 시대도 남아진 것이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많은 현재들이 과거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에는 박물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수의 무리들은 완전히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통일교회는 역사의 인연을 중심삼고 남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동산 가운데,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나라의 중앙에 간직할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는 귀한 보물들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현실 환경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현실에서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 어느 역사시대의 과거보다 무한한 가치를 지녔고, 우리의 현실은 그 어떤 시대의 현실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으며, 우리의 미래는 그 어떤 사람들의 미래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에 반영되는 인격이요, 무한한 가정이요, 무한한 종족이요, 무한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보람을 느끼며 여기에서 살고 여기에서 싸우고 여기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무한한 세계관이 되는 것이요, 여기에서 수고한 것은 무한한 세계의 공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이상 보람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가치를 알았으니, 세상이야 욕을 하든 세상이야 뭐라 하든 깨달은 그 가치를 찾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다이아몬드 광(鑛)이 있다고 합시다. 자기만 아는 그런 곳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남이 모르게 허가를 낼까요, 안 낼까요?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의 가정도 팔아야 될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자기의 부인을 팔아서 수많은 가정을 구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자기 자식을 팔아서 그 나라의 수많은 아들딸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팔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광산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요, 세계 만방의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길이라 할 때는 그 허가를 내기 위해서 부인과 자식을 팔았다고 해서 역사의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부인이나 자식을 파는 것은 안 될 것 같지만, 거기에는 오히려 세계가 찬양할 수 있는 보화의 근원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지금 현재 우리가 가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마지막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보람을 무한히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역사적인 입장에서 심판받을 일을 날마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자각이 필요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이 맨손을 들고 있더라도 저희들은 무한히 가진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세상에 탄생하기까지 수고로운 길을 걸어오신 아버님 앞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통일교회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재산을 모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옵나이다. 벌거숭이 몸뚱이와 눈물의 흔적과 처참한 상처의 흔적을 남기고 이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 이 모임과 이 단체를 남기시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 번 아버님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은 맨손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자리에 서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옵고,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옵고, 세상의 어떠한 문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것보다도 더욱 필요하고 굶주리면서도 저희가 갈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이옵나이다. 그리운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본향 땅에서 하늘 아버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저희들은 추구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그러한 가정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세상에 또 있겠사옵니까? 금은보화가 태산같이 많다 하여도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그 가정의 인연,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의 인연, 그 이상의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이것을 아버님께서 찾아 나오신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이 여기에서 무한한 가치를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서 즐기고 여기에서 다짐하며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동기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장본인이 되기 위해서 통일의 역군이 된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기나긴 역사 과정에 있어서 슬픈 눈물을 흘려 왔사옵니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는 환경마다 슬픈 사연이 스쳐 가고 역사의 고비 길에서는 하늘의 탄식을 자아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날 저희들은 남성과 여성들이 하나 된 가정을 이루어서 아버님의 한을 풀고, 원수를 방위할 수 있는 철석같은 교두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런 입장에서 저희 자체를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아서 새로이 자각된 세계로 저희들은 달려가야 되겠사옵나이다.

오늘도 쉴 새 없이 가야 할 자신인 것을 알게 될 때, 잠자리에서도 내일의 나를 개척할 줄 알게 하시옵고, 오늘의 한스러운 수고의 역로 가운데 내일의 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의 피곤함을 잊어버리고 내일을 생각하면서 희망에 넘쳐 하늘과 땅을 중심삼고 나가게 하시옵소서. 자기 힘이 연약하거든 하늘의 힘으로 부축 받고, 자기 자체가 부족하거든 땅의 힘을 빌리면서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이 땅 위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을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들었지만, 당신을 모시기 위한 자기의 사명을 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사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젊은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 거룩한 날이지만 거룩한 날로 지키지 못하고 이 시간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곳이 이 민족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자리요, 아버님 앞에 경배드리는 자리인 것을 더더욱 느끼게 하시옵고,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이날 아침 다시 한 번 저희들의 활동 무대를 서울 이 도성으로 연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걷는 모습이 처량하고 초라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용자의 모습으로서, 아버님의 명령을 따라 원수를 공격하고 돌격할 수 있는 충정의 모습으로서 행군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슬픔이 넘쳐 뼈와 살에 사무칠 때, 그 마음에 아버지를 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눈물이 교차되는 자리에서 자기를 위하고 자기 족속과 자기 나라와 자기 이념을 중심삼고 눈물짓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종족․민족․인류를 위해 눈물지을 수 있는, 새로이 자각된 모습이 되어서 하늘의 새로운 역사를 편찬할 수 있는 새로운 역군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의미에서 아버지 앞에 경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부터 남은 기간, 저희들이 어떤 길을 가든지 아버님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고, 일편단심 아버님을 사랑하고, 뜻 발전을 위해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해원성사시키고 세계 만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해방의 용사들로서 당신이 세워 주신 그 위치를 상실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남은 역사의 모든 사실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권들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발에 상처가 나더라도 그 발을 이끌고 가야 할 사명이 남아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곳을 향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운 밤에도 가야 되겠고, 꿈속에서도 가야 되겠고, 눈을 뜨고 살아생전에 기필코 가야 되겠사오니,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길 앞에 아버님께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나이다.

저희들이 아버지와 같은 사정을 갖고 있고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 길이 아버지의 눈물이 따르는 자리요, 아버지의 탄식이 같이 접할 수 있는 자리요, 아버지의 곤경과 외로움이 같이 깃들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아옵니다. 또 그 길이 아버지 앞에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버님께서 찾아오시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천번 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위로의 음성과 더불어 죽고 싶어하는 마음이 저희에게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명령을 받고 아버지께서 위로해 주시는 자리에서 가고 싶사옵나이다. 채찍을 맞는 자리라도, 죽음의 교차로라도 그것이 저희들의 소원이 아니겠사옵니까? 그것이 아들 된 자의 본분이요, 아들딸이 가야 할 의무가 아니겠사옵니까? 그럴 수 있는 각오를 가진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이들이 가는 길에서 당신을 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자리, 외로이 한숨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설 때 아버지의 눈물을 먼저 생각하고 아버지의 한숨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를 중심삼은 일체의 감정을 가지고 살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 만방에 편입되어 들어오는 모든 사연들이 저희의 뜻과 접근되어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들은 쉴래야 쉴 수 없는 촉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쌍수 합장하여 아버지의 거룩한 지성소 앞에 엎드려 거룩히 밤을 새워 가면서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고, 아버지의 일을 염려하고, 그것을 책임져야 할 사명을 가지고 복귀의 사명을 염려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나라에서 충신 열녀의 이름을 받기에, 또한 효자 효녀의 이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들이 한국에 많으면 한국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전통이 부르고 전통이 찾는, 한국의 얼을 지닌 아버님의 아들딸로서 이 민족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있어서 과거․현재․미래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 과거의 세계가 주목하고, 현재의 세계가 주목하고, 미래의 세계가 주목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들이 여기에서 살면서 여기에서 터를 닦아 나가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의 가치를 찬양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내일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겠다고 다짐하며 머리를 숙여 기도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역사의 선두에서 달려가던 사람이 말기에 가서 흐지부지되는 수가 많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나이 많은 분들은 공이 많습니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각자는 발전하고 있는가, 정지 상태에 있는가, 후퇴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 속하고 있을 것입니다.

젊어서 애국을 한 사람이면, 늙어서 활동은 할 수 없어도 마음으로라도 끓어오르는 애국심을 유지하여야 진정한 애국자인 것입니다. 늙었다고 마음에서 애국심을 포기하고 젊었을 때의 애국적인 희생을 후회한다면, 과거의 애국적인 실적은 무(無)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념에 찬 생활을 통한 전통적 기준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위치에 서서 일해야

지금은 영계의 사람들을 축복하는 때가 아닙니다. 지상인의 복귀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계에서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것도 뒤로 미루고, 지상인 위주로 축복의 섭리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시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영인들의 참소를 받습니다.

현재 우리들을 중심삼고 새로 시작되는 일을 맨 처음부터 시작한 사람들은 입교한 지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뜻을 맡은 사람이 뜻을 절대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뜻 앞에 더 이상 세워질 수 없습니다. ‘옛날이 좋았지.’ 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은 벌써 이 시대의 혜택권에서 밀려난 사람입니다.

옛날 선생님만 따라오면서 충성하던 때와 여러분 자신이 충성해 나가는 때와는 달라야 합니다. 옛날은 선생님이 영적 기준을 맡아서 복귀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그것을 인계 받아 각자를 중심삼고 번식하는 때입니다. 즉 실제적으로 복귀하는 때입니다. 자기 활동의 기반을 갖지 않으면 절대적인 위치에 설 수 없습니다. 형님 나라인 가인격의 영계와, 동생 나라인 아벨격의 육계를 누가 연결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래된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도 아직 자리를 못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하나님이 직접 다스릴 수 있는 국가적인 기준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리를 잡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한을 품고 계속 투쟁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한 사람은 선생님이 절대 책임집니다. 늙어서 몸으로 정성들이지 못하겠으면 마음으로라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또 뜻을 계승해 줄 후계자를 남기면 하나님이 알아줍니다.

영계에 가면 ‘영계에 온 지금의 기준이 옛날 처음 뜻을 대할 때의 기준보다 더 간절하냐?’ 하는 물음을 받게 됩니다.

뜻을 위해 죽으면 어떻습니까! 구질구질하게 천년만년 살아서 뭘 할 것입니까?

성경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갈 6:9)라고 했습니다.

과거시대에 속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가 왔을 때에 앞장서지 않으면, 그 사람은 역사의 방해꾼이 됩니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제거되기 마련입니다.

축복가정들에게 제2의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축복을 해 주었는데 오히려 짐이 되고 있습니다. 뜻길에 된서리가 몰아칠 때 사명을 못하면 축복이 오히려 화가 됩니다. 따라서 자리잡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잡는 것이 자기들의 안락을 위해서라면 더욱 안 됩니다.

한집안에서 가인 아벨이 생기면, 여기엔 심판이 필요하게 됩니다. 축복을 해주고서 또 심판을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입장을 두고 보아도 벌써 가인과 아벨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선생님이 뜻을 중심삼고 기쁜 말을 하면 천지가 떨도록 환희할 수 있고, 슬픈 말을 하면 천지가 울리도록 통곡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여기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아벨이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선생님 말씀에 절대복종해야 합니다.

나라의 일을 위해 행군하는 사람들이 도중에 주막에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있다간 칼침 맞아 죽는 법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정성을 들이자

내가 드리는 제물은 순수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뜻을 안다면 제대로 자리를 펴고 자지 못하는 것입니다. 뜻을 상속 받을 때는 시험을 거치고 나서 받아야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는 한 전도지 한 장이라도 돌려야 합니다. 지금처럼 이래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까? 이래 가지고 이루어진 뜻이라면 그 뜻이 여러분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한 생명을 전도하면 일찍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그랬듯이, 밤을 새워가며 말씀도 해 주고 따뜻이 대해 주어야 합니다. 식구들이 찾아와도 본체만체한다면 누가 다시 찾아오겠습니까? 초창기에 새 식구를 간절히 그리워하던 심정을 잃으면 망합니다.

정성을 들여라! 선생님을 모시는 사람은 선생님 이상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가 사명을 다하지 못했으면 일찍 와서 기도라도 하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인연맺은 사람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뜻길을 촉진시키는 구실을 하는가, 해이하게 만드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을 자기 자식 이상 위해 주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따라 나오면서 가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은 뜻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되어 있다면 전국 각지 어디에서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정성들입시다. 정성의 터가 남아 있는 한 부활합니다. 지금은 필요상 주로 외적인 일을 하지만, 또다시 필요한 때는 내적으로 세차게 몰아칠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한국에서 안 합니다. 미국 워싱턴 같은 곳에 가서 세계적으로 합니다. 그때에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때에 따라갈 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내 자신의 몸을 때려야 합니다. 몸은 잘 먹여 주고, 잘 입혀 주고, 편안히 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행복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 민족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중심삼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정말 어마어마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적당하게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뜻길에 있어서 방해꾼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후진들 앞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공적인 자신의 위치를 고수해야 합니다. 뜻 외엔 없습니다.

새 시대의 전통을 세우자

오래된 사람들은 선생님이 걸어온 걸음을 본받아 선두에 서야 합니다. 소생시대보다 장성시대가 나아야 하고, 장성시대보다 완성시대가 더 나아야 합니다. 새 시대의 정성 어린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중․장년들은 실무 담당자입니다. 서로 만나면 진취적인 대화를 해야 합니다. 즉 그동안 뜻 중심삼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을 화제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또한 부인들끼리라면 ‘나는 남편의 이런 점을 이렇게 했더니 이러이러하게 달라졌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런 식으로 말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기껏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뜻을 외면하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중년이 뜻에 대한 책임을 못하게 될 때는 중년들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는 지나갑니다. 이제 중년 남녀들을 설치게 만들 것입니다. 언제든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운데 층입니다. 뜻의 때가 물밀듯 밀어닥칠 때 그때 헤엄쳐 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적어도 일년에 새 식구 3명은 인도해야 합니다. 나무의 가지 하나가 한 해에 적어도 세 가지는 쳐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한 가정만을 위한 부(富)는 나라 전체의 부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의 부를 나라에 기여하면 그 가정의 부력(富力)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본부의 부장들은 아무리 바빠도 본부의 발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두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전진인가, 정지인가, 후퇴인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적 내적인 모든 실적을 타진해 가지고 재출발을 해야겠습니다. 이제 여기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말기 바랍니다. 뜻을 중심삼고 살다 보면 먹을 것이 저절로 들어옵니다. 선생님이 아는 것은 하늘이 나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이 일이 좋으면 이익이 나도 좋고, 손해가 나도 좋아야 합니다. 왜 한번 밖에 없는 중요한 때를 허송세월합니까? 본부에 사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자기 전에 자서는 안 됩니다. 낮잠은 절대 잘 수가 없습니다. 부엌에서 들리는 칼 소리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면서 칼질하는지 다 알 수 있는 선생님입니다.

높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회는 망합니다. 그러니 망하지 않는 비결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특권계급이란 없습니다. 12월 20일에는 모두들 전도 나갈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1969년을 기해서 우리 교회는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우리 교회는 가정적인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즉 1960년도에 성혼식을 함으로써 가정적인 단계에서 출발하여 3년 동안에 120가정까지 축복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반 교회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와 가정이 결부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1960년도를 중심삼고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져 나왔습니다. 제1차 7년노정 동안에 우리는 매년 하나의 목표를 세워서 추진해 왔는데, 첫해의 목표는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였고, 다음 해는 ‘아버님의 대신자가 되자’였고, 그 다음 해는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였습니다. 그렇게 심정적인 하나의 표준을 세워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7년노정의 4년째부터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라는 표어 아래에서 제1차 7년노정의 완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면적인 진격’의 표어에 대한 섭리적 의미

이 기간에 천적인 내적 섭리에 맞추어 개인적인 탕감 기준에서부터 민족적인 탕감 기준까지를 세워서 민족적인 탕감을 하기 위하여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조건을 수습해서 하나님이 지향하는 기준까지 올라서려던 것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나라와 통일교회는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야는 아니지만 우리는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천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외적 환경을 우리가 바라던 기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7년노정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제2차 7년노정의 출발과 더불어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였는데, 오늘은 그 제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역사상에 없었던 날이고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기념일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우리들이 기념해야 할 중요한 날입니다.

1968년은 제2차 7년노정의 출발과 동시에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세워서 밀고 나온 해였습니다. 전면적인 진격은 어떤 개인을 중심삼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중심삼고 전면적인 진격으로 세계를 움직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하듯이 한국도 그러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이 그러하듯이 아시아도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되고, 세계도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세계나 아시아나 우리나라나 모두 뚜렷한 목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 없이 흘러가는 시대사조를 따라서 고초를 거치지 않으면 새로운 문제를 중심삼고 개인적인 면을 전체적인 동향에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천적인 목적을 중심삼고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 밑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는 전면적인 승리를 성취하지 못하면 표어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출발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니, 최소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국가적으로 통일교회를 전면적으로 시인할 수 있는 기준까지 가야 됩니다.

그때까지는 우리가 이러한 작전체제로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금년에도 역시 ‘전면적인 진격’을 표어로 삼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1969년도까지는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체제와 활동을 강화하면서 움직일 것을 여러분에게 천명합니다.

전면적인 진격을 해야 할 입장에서 우리 교회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첫째는 우리 교회가 있고, 둘째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교회를 중심삼고 외적인 활동 체제를 갖춘 승공연합과 원리연구회가 있고 사업 분야가 있습니다. 이렇게 5개의 활동 분야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체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측면에서 총진군시켜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들을 입체적인 면에서 전면적으로 진격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긴박한 요구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의 실정은 평면적인 기준도 완전히 갖추지 못한 비정상적인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즉 여건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니, 첫째는 인적 자원이 부족하고, 둘째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부족합니다. 이 두 가지 여건이 전체의 활동에 막대한 손해와 지장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과 일치된 신앙의 전통을 세워야

금년에는 교회 내의 수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얼마만한 수가 필요하냐? 외부에서 바라보는 통일교회와 내부의 실상은 너무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금년 안에 내적인 기반을 공고히 하여 외적인 인식과 평형을 이루고, 나아가 어떻게 주체적인 권한을 갖고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이런 기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결국 신앙 기준이 문제가 됩니다. 이 신앙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의 신앙 길은 일반 기성교회의 교인들의 신앙 길과는 다릅니다. 통일교회가 원리에 입각해서 걸어가는 탕감복귀의 노정은 공식적인 노정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단체보다도 공고한 사상의 기준을 갖춘 기반 위에 교회의 수를 늘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신앙적인 전통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은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전통을 중심삼고 수를 확보해야지, 전통이 없이 수를 확보하면 오합지졸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통에 입각한 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는 교회를 중심삼고 전통을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제1차 7년노정에서 선생님이 강조한 것은 전통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대한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한국의 통일교인이나 일본의 통일교인이나 미국의 통일교인이나 모두 말씀을 체득하는 데 있어서 통일된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즉 원리에 입각한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로써 말씀을 중심삼고 일체된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각기 나름대로의 전통을 세워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세계에까지 통일된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외국을 순회할 때도 이 점을 중점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말씀에 대한 세계적인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말씀과 더불어 일체가 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즉 말씀은 말씀대로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결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의 심판에는 3대 심판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말씀심판, 둘째는 인격심판, 셋째는 심정심판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된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절대시하여 전통을 세웠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타락하였으니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최후에 나타날 하나의 진리 말씀과 하나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하늘에는 그러한 전통이 세워져 있는데,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전통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이 전통이 세워지지 않으면 통일교회도 지금까지의 기성교회처럼 수많은 교파로 분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말씀을 중심삼고 일체 되는 전통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하는 것이 절대적인 문제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인격 기준

말씀은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자신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은 사탄과 관계되어 있는 말씀이요, 지금 여러분이 추구하고 생각하는 사상 체계라는 것은 사탄과 관계된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모든 구성요소는 어떠한 것이든 인간을 중심하고 나타난 것이기에 타락권 내를 벗어나지 못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새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혁신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래의 말씀에 그냥 화(和)해 가지고 같이 갈 수 있느냐?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재래의 말씀은 완전히 결렬되고 청산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탄세계에서 갖고 있던 사탄적인 관념과 믿음 및 습관까지도 모두 일소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기준의 말씀을 중심삼고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말씀을 세울 때의 선생님 마음의 기준에 여러분도 접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중심삼고 배운 그 기준에서 믿기 위한 것이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의 배후에 전통적인 기준이 숨어 있으니 그 기준을 체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말씀에 대한 전통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인격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의 인격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인격을 말하는 것이니, 바로 개성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말하는 개성완성의 기준은 어떠한 것인가? 통일교인으로서 몇 년을 지냈다고 해서 개성완성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을 6천년 동안 시달리게 했고 하나님께 고통을 주었던, 억천만대에 용납할 수 없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시어 타락하지 않은 인간 본연의 인격기준입니다.

사탄은 누구입니까? 천사장입니다. 천사장은 하나님의 종이었으며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을 꼬인 뱀입니다. 아버지의 종은 아들에게도 종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원수가 되어 하나님 앞에 참소조건을 들고 나오는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연의 인격을 갖추어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이요, 굴복시키려면 힘만으로 안 되는 것이니 말씀으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시험도 말씀을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씀을 중심삼고 사탄과 대결해서 사탄이 사탄 된 동기로부터 역사적인 범죄의 모든 사실을 공적인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제시하고 검사의 입장이 되어 사탄을 비판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 사탄을 굴복시키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의 공판정에 내세워 가지고 전부 지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물론 인간에게 죄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그 동기부터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한을 상속 받아 사탄을 지배해야 했던 본래 아들딸로서의 권리를 상실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된 기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연의 권리를 회복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지의 대주재이시요 천주의 공법을 중심삼고서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어다가 그의 모든 죄악을 폭로해서 구형(求刑)할 수 있는 검사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자격

종교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뜻하시는 세계로 들어가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 들어가려면, 사탄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 짓고 사탄과 영원히 이별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아서, 여러분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됩니다.

통일교인들은 사탄을 굴복시켜서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사탄을 잘 알아야 됩니다. 6천년 인류역사의 배후에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밝게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야 사탄은 머리를 숙여 그것을 공인하고 그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인강도가 있다면 그는 어느 환경, 어느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숨어 살 수 있습니다. 양심상으로는 잘못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생활은 여전히 계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척동자라도 범죄한 진상을 적발해서 그 강도에게 당신이 범죄한 것을 보았다고 직고하게 되면 그 앞에 머리를 수그리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사탄이 저지른 모든 죄의 진상을 낱낱이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소 내지는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나타날 때에, 비로소 사탄은 굴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천사장과 더불어 타락한 그 입장을 넘어서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도 타락하기 전에는 타락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나가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먼저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어야 됩니다. 끊는 데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끊어야 됩니다. 사회적인 모든 여건을 부정해야 됩니다.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모든 종교는 자기 부정에서 계통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즉 정도(正道)는 자기 부정에서 벌어집니다. 위대한 종교일수록 어떤 부분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을 전부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이전의 구약까지도 부정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과정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고 싸웠지만 지금까지 발전하여 나온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인간의 인격 기준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일치되어서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과 일체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딱 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모든 말씀의 내용을 내 것으로 체득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말씀과 일치된 인격을 갖추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지 않고는 종에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

종의 입장인 천사장이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지만, 천리의 원칙은 자기가 처한 위치를 부정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던 그 자리보다 높은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해와보다도 높은 자리입니다. 즉 천사장에게 명령을 하면 천사장이 ‘예.’ 하고 순응해야 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그저 믿고 천당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천당에 가기 전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의 인격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제한된 환경 내에서가 아니라 하늘과 땅, 영계와 육계의 언제 어디서든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된 하나님주의, 천주주의

인류역사는 문화를 통해서 발전해 나갑니다. 문화세계를 형성하는 배후의 목적은 하나의 인격을 중심삼은 진리체를 찾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중심삼은 인격체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류역사는 진리를 찾아 나가는 역사입니다. 즉 참된 말씀과 참된 도리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나 사상은 무엇인가요? 맨 처음부터 어떤 주의나 사상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태여 그 주의나 사상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아담주의요, 아담사상입니다. 아담주의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부모주의입니다.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아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들과 딸이 되었다면 이들을 중심삼은 주의는 하나님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주의는 만민이 주체와 화동할 수 있고, 전체를 긍정할 수 있고, 전체를 흡수할 수 있고, 자신을 흡수시킬 수 있는 그러한 주의로서 거기에는 무슨 파(派)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그러한 주의가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된 하나님주의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한 아들과 딸의 주의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말합니다. 천주주의는 아들과 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천주주의의 주(宙)를 왜 주(主)로 안 쓰느냐고 문의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군요. 천주주의 할 때 주(宙)는 집이라는 뜻인데, ‘집 주(宙)’ 자를 쓰는 까닭은 집은 가정, 곧 부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아들만 있어 가지고 안 됩니다. 이 땅에 예수님 한 분만 나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은 부부가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복귀노정에서는 반드시 부부가 나와야 됩니다. 부부를 이루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한 아담과 해와, 즉 선한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부모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에서의 재림주와 그의 신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인격을 갖추어야 하고 여자도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격이 구성되는 개성완성의 기준은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성완성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격을 갖추어 아무리 사탄을 주관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탄을 주관해야 영원히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아담 해와로 인하여 사랑의 감소감을 느낀 것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인간이 지어지기 전부터 오랜 기간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자, 이들을 타락시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원래 아담과 해와는 장시간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 완성된 후에 부부가 되어 사랑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지상에서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사탄에게 승리했지만 세계적이고 전체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사탄을 굴복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생겨날 때 부부를 통해 생겨났기 때문에 부부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완전한 승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성신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삼위일체가 되어서 실체적으로 사탄을 굴복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인격이 갖추어져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실체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실체가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라는 말을 중심삼고 거꿀잡이로 맞추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소유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는 것이 신앙자의 소원입니다.

통일교인들을 일선에 내보내는 이유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가는 길 앞에 반드시 진리의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이 진리에 부합되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심판받는 것이요, 가정이 진리에 부합되지 못하면 가정적으로 심판받는 것이요, 민족이나 국가나 세계가 진리 앞에 부합되지 못하면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서 인류는 주의나 사상을 세워 나왔습니다. 그러나 주의나 사상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즉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갈라졌기 때문에 부부의 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그 부부의 주의가 무엇인가 하면, 가정의 인연을 중심삼은 아버지 어머니의 주의입니다. 이것이 천주주의(天宙主義)입니다.

여러분이 천주주의의 전통을 세우려면 말씀과 더불어 일체가 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인격을 보아 하나님께서 만우주의 전체를 상속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은 능동적인 주체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부부를 중심삼고 이러한 천주주의의 인연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전통을 세우려면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을 전부 박차고 나가서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울타리 안에서는 사탄에게 패합니다. 여기서 뛰어나가 전부가 공인할 수 있는 맨 꼭대기에서 사탄과 만나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일선이자 사탄의 일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후방과 사탄의 후방은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사탄의 최전방은 하나님과 싸우는 곳입니다. 즉 이 민족에게 있어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치하고 있는 삼팔선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선을 넘어가겠다고 하는 그 순간이 문제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결투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결정은 여러분의 안방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교차점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자리를 찾아 나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이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순간, 죽음이냐 삶이냐가 결정되는 그 순간이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지금은 1968년과 1969년이 교체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어요? 벌써 넘어섰는데 못 느껴 보았어요? 여러분 개인에게도 교차되는 순간이 있고, 가정․교회․국가․세계에도 그런 순간이 있는데,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일선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국가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는 자리, 어느 한 사람도 편들지 않는 어려운 자리로 내모는 것입니다. 예수가 ‘오! 나만 남았나이다.’ 하고 느끼던 그러한 자리로….

여러분들이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선으로 가야만 합니다. 따라서 최소한 3개 부락을 거치고 3개 읍과 3개 군을 거쳐서 3개 도를 찾아가야 되는 것이요, 3개 국가 이상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최소한 3대 국가의 시련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정시대, 공산당, 민주세계에서까지 핍박을 받으며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개인 개인이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제2차 7년노정 중에 우리가 해야 할 일

말씀을 선포하려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더불어 싸우다가 죽겠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걸고 뜻을 따르겠다고 맹세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맹세는 사탄과 승부를 판가름하는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맹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맹세하는 입장을 거쳐서 자신을 하나님의 대신자로 세워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알아내어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사탄을 일선에서 굴복시킬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후에야 비로소 심판 과정을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원리가 가르쳐 주는 통일교회의 전통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이 끝나고 제2차 7년노정을 걷고 있는데, ‘나야 뭐 예외니까 그 전통과는 아랑곳없이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말씀을 세우기 위하여 영계의 모든 것을 중심삼고 사탄과 결투를 했고, 육계의 모든 핍박과 전후 좌우에서 몰리는 자리에서 사탄과 결투를 했습니다. 최고의 일선에서 개인적으로 그러했고, 가정적으로도 그러했으며, 종족과 민족과 국가적으로도 그러했습니다. 선생님도 말씀을 세우기 위해 그런 길을 걸어왔고, 그러한 자리에서 말씀의 전통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말씀을 중심으로 일체화된 전통, 심정을 중심으로 일체화된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대신자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으로 인류를 사랑하겠다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사탄과 대결하여 사탄으로부터 ‘네, 옳습니다.’ 하는 사인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즉 사탄으로부터 ‘너는 승리했다.’ 하는 확인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큰 과제가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에게 해당될 게 뭐람? 우리 선생님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하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국가적․세계적․천주적인 범위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여러분은 한 단계 낮은 단계에서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뜻을 안 입장에 서서 진정한 의미의 통일교인이 되려면, 일선에 나가 개인적․가정적․종족적으로 승리해야 됩니다. 자그마치 종족적으로 승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은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을 해야 하는 기간이 제2차 7년노정입니다. 그러니 이 기간에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전통과 종족의 전통, 그리고 교회 전체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7년노정에는 이 사명을 중심삼고 살고, 이 사명을 중심삼고 싸우며, 이 사명을 중심삼고 죽어야 합니다. 승패의 조건들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이요, 전면적인 진격도 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여기서 전통을 확립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금년으로 전면적 진격의 제2차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제2차 단계가 문제입니다. 제2차 7년노정에서는 필연코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제1차 7년노정의 첫 번째 표어가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 하는 것이었지요? 인간에게 있어 생애 최대의 실적은 개성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즉 개인적으로 하늘과 땅 앞에서 사탄을 굴복시키고 자신이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돈이 많아 나라의 일부(一富)가 되는 것이나, 권세를 누리는 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흘러가 버리는 것이니, 자기 생애의 목적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생활의 목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생애의 목적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생애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개성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일체화, 인격일체화, 심정일체화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자가 되어 사명을 다하려면 남자 혼자만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하나님 대신자의 입장에 섰지만, 신부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개체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하듯이 상대기준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의 개체를 두고 볼 때에도 완전히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둘이서 타락선을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둘이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그 타락선은 절대로 혼자서는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완전한 남자와 완전한 여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는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였습니다. 이것은 사위기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신자로서의 사명을 다한 결과로 나타난 사위기대를 말합니다. 이렇듯 전부가 다 가정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단체를 구성하여 국가에 공헌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하여 하나님과 천상세계에도 보여 주고 만물세계에도 보여 주어야 비로소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위기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 사위기대를 복귀하려면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방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승리적 주관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을 맞이하여 전면적인 진격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개성완성을 해야 합니다. 개성을 완성하는 데는 말씀이 필요하고, 인격이 필요하고, 심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전부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전면적 진격이라는 표어 아래 나가는 우리가 허풍선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개성완성 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전면적인 진격을 해야 됩니다.

전면적인 진격을 하여 평화의 복지 동산을 만들어야 됩니다. 평화의 복지동산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행복의 터전인 하나님의 축복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는 그 목적은,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평화와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자는 것에 있습니다.

축복가정들은 각성해야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1960년도를 중심삼아 평화와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7년노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내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외적으로 축복의 기준을 세웠으면, 내적으로는 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 노정에서는 사위기대를 완성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표어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민족적인 상속권을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에게 죽음을 당했던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국가적으로 반대를 하더라도 환영 받을 수 있는 기준으로 기어이 올라서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리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원리 공부를 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으로 천주주의 사상을 갖추고 가는 길은 절대적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문제인데, 이것을 재정비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 수를 확대시키고 공고한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중심삼아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중심존재와 일체가 되어서 가정과 그 외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전통적 실체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체를 쓴 입장에서 말씀의 전통, 인격의 전통, 심정의 전통을 세워서 선생님을 대신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중심삼고 사탄과 결투해서 승리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갖은 고역과 고난을 극복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팻말을 굳게 박았습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만이 아는 심정의 기반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역사 이래 어떠한 성인도 철인도 이룰 수 없는 실적과 심정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교회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요, 통일교회가 갖고 있는 내용, 내용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 기반 위에 서서 지시하는 선생님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역시 하나님의 명령 앞에는 절대적입니다. 거기에는 절대로 에누리가 없습니다. 자기의 사정이나 소원, 마음이나 심정을 초월해 가지고 엄숙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적당히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책임이나 하는 듯 마는 듯 해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될 것 같으면 벌써 6천년 전에 다 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뚜렷한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실현시키는 데는 무엇보다도 가정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들이 힘을 잃고 있습니다. 축복을 싸구려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가정을 6천년 동안 고대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정들이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40여 평생 그것을 찾아 나왔습니다. 역사노정에서 온갖 희생을 치르고 모든 것을 버리면서 그 터전을 닦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군왕이나 백성이나 사인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천지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축복에 있어서도 외적으로 보면 별게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과 가치를 두고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들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씨 중의 씨요, 뿌리 중의 뿌리인 축복가정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4천년 동안 인류는 원수 악당들을 굴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아벨적인 피를 흘리며 수많은 민족적인 노정을 거치고 제물의 조건을 세워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하여 억천만대에 한의 뿌리를 박게 되었습니다.

이 한을 풀기 위해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1,600년을 섭리해 왔었지만 풀지 못했고, 아브라함을 거쳐 모세를 거쳐 예수에 이르기까지 4천년이 지나도 풀지 못했습니다. 아담가정에서부터 아벨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줄 하나의 남성을 찾았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섭리는 4천년 동안 연장되어 예수님이 세계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까지도 그 한을 풀지 못했습니다. 남성이 풀지 못했으니 여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여자들이 축복을 받아서 책임을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듯 남성 한 사람을 찾기 위해 4천년간을 ‘주여! 신랑 되신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 가면서도 ‘주여 오소서!’ 하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한 여자가 실수함으로 빚어진 한 많은 역사의 곡절을 안다면, 오늘날 여자들은 더욱 책임을 크게 느끼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한 남성이 승리하기 전에는 아무리 기도하고 애를 써도 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곡절의 역사노정을 거친, 6천년의 역사가 흐른 오늘의 이 종말 시대에 비로소 통일교회라는 간판 밑에서 역사에 없는 새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는 세계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은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남성이 나타나기 위해서 6천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왔고, 수많은 나라가 채찍을 맞아 나왔습니다. 6천년의 한의 고개를 넘겠다고 비틀비틀하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뜻을 감당해 나온 무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남자가 설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한 해방의 은사를 주시고, 그러한 해방의 특권을 부여하고, 그러한 해방의 자리에 무조건 설 수 있게끔 남자를 축복하는 자리에 내세운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천지의 운세와도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억천만세에 길이길이 고이 간직해 온 선지조상(先之祖上)이라고 하시며, 뿌리 중의 뿌리요 씨 중의 씨라 하여, 귀하고 귀한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이 축복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빚어진 인류의 악한 부모의 기원을 넘어서고 이것을 반대로 더듬어 올라가서 선한 부모의 기준을 결정짓고, 선한 세계의 선한 조상의 권리를 갖는 특권적인 은사를 갖고 나타난 것이 축복가정을 이루는 부부입니다. 그러니 그 부부가 기뻐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증거하는 수많은 영통인들을 만나 보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수많은 영통인들이 왜 선생님을 증거하는가 궁금해하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증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이 길, 오직 이 한 길을 가기 위해 선생님은 50평생을 바쳐 왔습니다. 오늘부터 선생님에게 50이라는 간판이 붙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한 많은 40고개 어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제 50고개로 들어서서 60까지의 10년 기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으로서의 전통을 세우게 하고 그 사명을 다하게 하고자 합니다.

축복가정의 사명

가정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이 없으면 가정은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가정을 위주로 자기 멋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몸부림쳐도 망하게 됩니다. 결국 통일교회 자체가 발전하는 기준에 따라갈 도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발전해 가는 그 기준을 절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가정의 발전, 그러한 가정의 혜택을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님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정이 통일교회의 혜택을 받지 통일교회가 결코 가정의 혜택을 받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선생님 자신도 축복가정들을 세워 놓고 그들로부터 혜택을 받겠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오른발, 여자는 왼발과 같습니다. 결코 상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가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가정이 지극히 성스러운 지성소와 같이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무서운 자리입니다. 가정이 잘못하는 날에는 앞으로 아들딸들을 완전히 망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 중에 어느 한쪽이 훌륭하면 상대방의 부족한 분야를 보충하며 나가면 되지만, 만약 둘이 다 잘못하게 되면 완전히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의 씨가 봄 동산에 뿌려져 그 씨가 완전하게 발아하여 자라면 완전한 결실을 가져오지만, 발아하지 못하면 씨조차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아벨을 세워 가지고 축복가정을 찾으려 했고, 노아가정에서도 아브라함가정에서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기에 사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은 재미있게 사는 것보다도 회개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사랑하는 처자를 고생시켰습니다. 지나가는 거지까지도 천대하는 자리에서 고생을 시키며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과 국가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무리 천한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행동만은 하늘의 가정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마치 시집을 갔으면 남자의 집의 전통과 법도를 지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축복가정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을 세우고, 하늘의 전통과 법도를 지켜 책임을 다하고 있는 가정이 얼마나 있는가? 공적인 가정은 하늘의 전통을 세워 놓고, 밥을 먹으나 길을 가나 호흡을 하나 그 전통을 철석같이 지켜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일심동체가 되어 지켜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최소한 40년은 특별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선생님도 40평생 동안 민족 앞에서 별의별 억울함을 당하고, 뼈에 사무치는 한을 품고 이 길을 닦아 나왔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선생님 앞에 참소받습니다. 하나님이 6천년간, 예수가 2천년간 수고한 공적 앞에 또한 참소받습니다. 이런 엄청난 배후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잠을 잘 수가 있어요? 3년 동안 냉수로 목욕을 하고 정성을 들여도 부족한 것입니다.

반드시 믿음의 세 자녀를 가져야

우리에게는 공적인 법도가 있습니다. 죽어도 공적인 일로 죽고 살아도 공적으로 살아야 될 공적인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달들이 많아요.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지구장들에게 오늘부터 3일간을 하늘의 명절로 지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불교 계통의 교주로 있는 어떤 분이 영계에서 오늘부터 3일간은 세계에 다시없는 명절로 하라고 명령했다며 내게 찾아와서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부 증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번 한․일 수렵대회와 한․일 승공대회에 어떤 사람들이 왔다가 갔다는 것까지 이야기해 주더군요.

이제 때는 왔습니다. 선생님은 이날까지 가정을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여러분만큼 가정을 사랑할 줄 모르고 가정의 사랑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또 여러분만큼 가정을 수습할 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민족과 교회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선생님의 가정에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선생님은 고통을 홀로 고스란히 받으면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이라면 그 가정이 비틀걸음을 치면서라도 아버지를 부르며 최후의 승리의 종점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전통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통일교회 운명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은 내적입니다. 내적이면 채찍을 가해야 됩니다. 그러니 삼천리반도와 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 가정을 제물 되게 해서라도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을 사랑해 주시옵소서. 세계 인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기 아들이 아무리 고생한다 하더라도 만민을 구원하고 만민을 해방시키겠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나도 성진이가 있지만 성진이를 붙들고 다정다감하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탕감 복귀의 원칙이 가인을 세우지 않고는 아벨이 결정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가인이 결정되면 아벨은 가인을 구원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복중에 있는 아기를 중심삼고 배후의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다고 기뻐 날뛰며 마구 돈을 쓰지만, 그런 돈이 있으면 뜻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백일잔치도, 해마다의 생일잔치도 못 해 본 사람입니다.

여러분 복중에 있는 아기까지도 3단계를 거쳐오기 때문에, 가인격인 3명의 믿음의 자녀를 찾아 세워서 그들이 복중에서부터 아기에게 굴복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신의 자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즉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천사장이 모시며 종노릇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가인격의 3명의 믿음의 자녀를 세워서 여러분의 자녀를 복중에서부터 모시게 해야 됩니다. 가정이 가는 길에 이러한 곡절이 있습니다.

독재는 최선과 통하고 영원과도 통합니다. 절대라는 것은 최고의 독재입니다. 독재를 써서라도 평지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사명은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 가지고 복중에 있는 자식들부터 정돈해야 됩니다. ‘복중에 있는 아기여! 어서 빨리 탄생하소서.’ 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과 딸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7년노정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아기가 20세를 넘어 장가를 갈 때까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기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생명까지 바치고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 원칙하에 예수님은 그 세 아들을 끌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신랑으로서 신부를 맞이하여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때 믿음의 세 아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서 아기가 어서 태어나기를 바라고, 그 아기가 태어나 20대가 되어서 장가갈 때까지 사고 없이 고이고이 길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보호해 가지고 축복을 시켜서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의 기준을 복귀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원리 생활의 실천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 앞에 천사장이 잘못했던 그 인연이 후대에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믿음의 아들딸을 고이고이 길러 가지고 시집 장가보내기 전에는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아들딸을 잘 길러서 축복시킨 다음에야 여러분이 하나님의 족보에 아들딸로 기록되어 하늘나라에 등용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중에서의 복귀,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인 가인과 아벨이 싸웠고,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중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싸우던 것과는 반대로 모셔야 됩니다. 가인은 아벨을 모셔야 됩니다. 이처럼 모시는 기준을 찾지 못하면 완전복귀는 못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뭐 믿고 천당 간다고요? 그것은 천당을 잘못 알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문제를 풀어 주어야 여러분들도 사탄세계에서 해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계를 주도하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원칙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통일교인이라면 자기가 어떠한 자리에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리적인 생활을 통하여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원리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다른 원리는 모두 없어지고 창조원리만 남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기 때문에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통일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좋은 대로만 행하면 통일은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심을 붙들고 양심이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도록 매일같이 가르치면, 통일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양심은 언제나 인간이 나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참소합니다. 또 양심은 나쁜 것을 제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양심은 누구에게나 다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미지수입니다. 이 양심은 나쁜 것은 나쁘고 좋은 것은 좋다는 두 가지밖에 모릅니다. 잘하면 기뻐하고 잘못하면 슬퍼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자연작용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서로 작용하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힘은 혼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이라 할 때, 내가 마음에 나쁘다고 느껴져도 주체가 있어야 되고, 좋다고 느껴져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곳에서 살아야 되느냐? 지극히 행복한 곳에서 살아야 됩니다. 지극히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하면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곳입니다. 즉 좋은 바람에 취해서 사는 세계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것을 못 느끼면 곤란합니다. 세포까지 웃는다는 것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노래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인생길 또한 무엇을 찾아 나가는 길이냐 하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하나님은 현실적인 하나님입니다.

공적인 것은 하늘과 통하는 관문

본연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서 왜 마음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통일교인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체가 있으면 반드시 대상이 있어 가지고 사위기대를 완성해야만 창조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통일교인은 주체의식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져야 하는데, 바로 주체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주체 의식이 민족을 위하고 민족을 사랑하게 되면 민족을 지배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 주체 의식은 반드시 양성(陽性)의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또 양성의 형태를 갖추는 데도 고립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거국적인 자리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사적인 형태가 아니라 반드시 공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은 사적인 사정을 떠나야 합니다.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공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공적인 기준에 서서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주체성을 발휘하라는 것이요, 절대적인 입장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천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공적인 기준을 요구하느냐 하면 공적인 것이 하늘과 통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삼천만 민족과 전인류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면 비록 행하지 못할지라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주체 의식을 갖는 데는 절대적인 주체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사람, 절대적인 의(義), 절대적인 선(善), 절대적인 사랑, 그 모든 것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고, 여러분의 마음이 주체가 되어 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몸, 내 자체가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즉 여자는 남자와 서로 하나가 되어서 마치 하나의 세포처럼 되어 공적인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공적인 입장에 설 때는 반드시 부부의 입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적인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국가를 지나서 세계적인 모든 것과 하나가 되고 완전한 주체 앞에 완전한 대상으로서 완전히 하나가 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인들은 생활에서 어떻게 원리를 실천해야 되겠는가? 통일교인들은 어디를 가나 완전한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대하는 모든 것은 완전한 대상이 되는 것이니, 그 모든 것을 자기의 부인처럼 생각하고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제2의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완전히 주고받아서 일체가 되는 기준을 통과해야만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한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고 창조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사위기대의 법칙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주도 주고받는 사위기대의 법도를 중심삼아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이 사위기대 법도를 중심삼고 존재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천륜이 그렇고 우주의 힘이 그렇게 생성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뻐지고 슬퍼지는 원인

그러면 인간은 어디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가요? 마음이 원치 않는데도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주체인 마음에 대상인 몸이 따르지 않아 마음이 몸으로부터 소외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치의 기준은 감소되어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디서 오는가? 마음의 요구에 몸이 응할 때 생깁니다. 마음과 몸이 완전한 주체와 대상이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인 천운이 옹호해 주니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단축되어 가까워지니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심에 가책되는 일을 하여 마음의 상대 요소가 없게 될 때는 결국 그 주체까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원칙은 주체만 있게 되면, 대상이 반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몰아내는 힘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슬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과 슬픔이라는 것은 내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운동의 법칙, 힘의 작용의 원칙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우주의 박자에 맞는 천운의 법도에 맞추어 갑니다. 그 천운의 법도에 맞추어 가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위기대의 법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사위기대의 법도에 자신을 부합시켜서 사위기대의 법도를 옹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부실하면 불합격자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간에 아무리 잘 주고 잘 받는다 해도 그 결과적 존재인 자녀가 없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법도와 원칙이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돌고 있는데, 삼위기대밖에 못 이루게 되면 영원히 도는 사위기대 법도 앞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니 자연히 슬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가 주체 의식을 가져야 되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존재세계의 한계권 내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한계권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단계로 넘어서기 위해 존재의 가치를 찾아 세우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존재세계의 한계권을 넘어설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주체이신 하나님의 주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음받은 만물이 하나님과 하나되려면,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사상과 심정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우주를 주관하시는 완전한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완전한 대상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발전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과 영원히 연결되기 위해서는 힘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작용의 힘,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면 영원히 뗄래야 뗄 수도 없고 뿌리칠래야 뿌리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결부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즉 양심적인 생활로 일생을 걸어 놓고 싸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원리적인 생활 태도를 실현해야 합니다. 반드시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해서 절대적으로 원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악의 분기점, 흥망성쇠의 분기점

양심을 중심삼고 볼 때, 양심의 어느 기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기쁘고 조금이라도 마이너스가 되면 슬픈 것입니다. 양심은 천륜의 법도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선하라고 명령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절대로 양심에 가책 받을 일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도 여러분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누구 때문에 못 간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사실은 자기의 갈 길이 바쁜 것이니, 보기 싫은 사람은 천법이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의 갈 길만 열심히 가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망하는 법도를 지지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흥하는 법도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의 분기점이요, 흥망성쇠의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위기대의 법도를 중심삼고 무엇이든 자기가 대하는 것은 항상 자기의 아들딸과 같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땅 위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됩니다. 부부끼리 마음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주체면 여자가 대상이 되어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십년을 보내고 백년을 보내어 일생을 마치고 저나라에 가게 될 때 슬픔 속에서 살았던 사람은 지옥행이요, 기쁨이 많았던 사람은 천당행입니다. 이처럼 우리들 마음속에 사탄의 일선과 하나님의 일선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철학계에 있어서도 통일원리가 최고 정상에 이르게 되면, 세상의 어느 정치기관도 종교의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탕감복귀라는 것을 두고 볼 때 정치나 학문이나 무엇이든지 종교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학문들이 종교의 형태를 갖추고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가장 밑창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지금까지 슬픈 역사의 운명을 띤 걸음을 걸으면서 종교의 형태를 취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종교라는 형태를 취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전세계의 정치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학문적인 문제들을 타개해서 발전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연합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승공사상을 부르짖는 것은, 오늘날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그 공산주의를 우리가 타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주동이 되어 승공연합을 발족시켰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 민족 앞에 최고의 기준까지 끌어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에서는 원리연구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진군해야 합니다. 승공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공산당을 이기려면 공격을 해야 합니다. 즉 공세를 취해야 합니다. 승공활동을 중심삼고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진격을 해야만 됩니다.

모든 방면에서 오직 진격만을

대학가의 활동은 후대를 책임지는 것이요, 승공활동은 현대를 책임지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영원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오직 진격만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는 가정적인 전통과 종교적인 전통과 경제적인 전통을 세워서 확고한 기반을 닦아야 하겠습니다. 1970년도까지는 총진군해야 합니다.

나라가 망하면 여러분의 몸과 재산이 남아질 것 같습니까? 우리는 모두 공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보다 가치적인 면에서 생각해 볼 때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합니다. 이런 공적인 노정을 밟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할 시급한 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바쁩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모든 것은 망해도 결코 나라가 망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망한다고 할지라도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이 망하더라도 하늘이 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보다 공적인 것을 위해 작은 것은 제물이 되어 희생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전부 역적입니다.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도 3년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겸손한 태도로 머리를 숙이고 나가야 됩니다. 나쁜 것을 먹다가 좋은 것을 먹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좋은 것을 먹다가 나쁜 것을 먹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전자의 입장을 취해 나가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항상 남겨 줄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더욱이 금년도는 전면적인 진격의 해인만큼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교회의 전통을 더욱 공고히 확립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원리연구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서 각 분야에서 각자 나름대로 노력하며 활동을 하지 않으면 통일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총동원되어서 70년도의 아시아의 위기에 대비하여 천적인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시급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여러분은 만반의 준비를 하기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습니다. 새 역사를 창건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해야겠습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1권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