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

마태복음 6:16-34

<기 도> 아버님! 지난 1년간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새해 첫 주일을 맞아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이 한 시간이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과거의 미비함과 부족함을 돌이켜서 이 한 해, 이 한 시간부터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성별된 몸 마음이 되어 온유겸손히 경배드리고자 하오니, 사랑의 아버님, 받아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 아버지 앞에 합당치 못한 어떠한 주의와 주장이 있사올진대 이것을 다 제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에 악의 침범을 받아 더럽혀진 바가 있사올진대 성령의 불길로써 이것을 태워 주시오며, 긍휼의 은사로써 용서하여 주시옵고, 지으셨던 본성에 화하는 몸이 되어 아버지의 기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성별시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한 날부터 거룩함의 은사가 연결되어 악한 사탄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의 역사가 저희들을 통하여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 몸이 움직여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만물을 화동시키고, 천상에 계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고, 저희들의 이 모임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참된 모임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있는 정성을 다 바치어 아버님 속에 감추어졌던 사랑을 실현시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옵고, 아버님의 6천년 섭리의 경륜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오니,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스스로가 성별된 입장에 서게 허락하시옵고, 아버님의 성별된 능력을 받아 아버님이 들려주신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한 해 삼천만 민족에게 아버님의 축복을 내려 주시옵고, 이 민족을 위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 아버지의 영광과 사랑이 머무시옵고, 당신의 숨은 아들딸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뜻을 나타내시어서 어서 속히 삼천리반도가 승리의 동산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이 환희의 영광을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복귀의 뜻을 이 천지 위에 진동시킬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숨은 성도들의 정성의 마음을 저희가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교단을 움직이시어 삼천만민족을 깨우치고, 또 이 민족을 동원하여 24억 인류를 깨우쳐 본연의 동산을 어서 속히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세우신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법도로 저희의 몸 마음을 성별하여 취하시옵고, 아버지의 그 기쁨심의 은혜를 저희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약속과 화답이 여기에 성립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이후부터는 아버지 앞에 승리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도록 아버지의 보호의 손길이 길이길이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만을 위하여 저희의 몸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충효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려서 말씀을 붙들고 외로운 제단을 맡고 있는 무리가 있사오니 그들을 사탄으로부터 성별시켜 주시옵고, 어두움의 세력 앞에 아버님의 실증적인 능력을 세우시어서 존엄하신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랑스런 자녀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님의 아들딸들이 아버님의 권능의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시간 삼위신이 운행하시어 기쁨과 영광의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처음 시간부터 끝 시간까지 아버님의 성령이 저희의 몸 마음에 충만케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복귀를 위한 예수님의 생애관(生涯觀)’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 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한 인간의 생의 가치

타락한 인류는 아직까지 세계가 입증해 줄 수 있고, 땅이 입증해 줄 수 있으며, 하늘이 입증해 줄 수 있는 영원한 생(生)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개인의 생의 가치를 찾고, 개인을 거쳐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찾고, 세계를 넘어 천적인 영원한 생의 가치를 찾아야 할 복귀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섭리의 뜻을 세워 놓고 전체의 생의 가치를 찾아 나오신 그 목적은 어디에서 종결될 것인가? 그것은 여러분 한 자체나 세계에서 종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어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동시에 세계가 기쁠 수 있고, 세계가 기쁠 수 있는 동시에 개인이 기쁠 수 있는 생애의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하늘의 구원섭리도 끝날 것이요, 사탄을 중심한 세계적인 인륜도 끝날 것이며, 개인적인 도덕관념도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에게는 이러한 생애노정을 개척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개체적인 자기로만 보기 쉽지만 여러분 자체 가운데는 창조의 전체이념(全體理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야 여러분의 개인적인 생의 가치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하여 생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자체를 분석하여 자신이 요구하는 천성의 생명을 대신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되고, 역사적인 모든 이념을 하나로 귀일시켜 세계적인 생을 완결지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의 생활적인 면에서 영원한 생이나 세계적인 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의 발판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지금의 생이 세계적인 생을 거쳐 영원한 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생을 세워야 할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6천년간 수고해 오셨는데, 하나님의 이런 수고의 역사를 복귀섭리역사라고 합니다. 

이런 천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 수고의 노정을 거친 후에 그 전체적인 생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몸이로되 그 몸은 영원하고 무한한 세계적인 생을 대신하였고, 영원한 개인의 생을 대신하셨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오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분은 현실을 토대로 하여 영원한 소망을 나타내야 했으며, 하늘땅 위에 영원히 실존할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표준을 중심으로 생활하셨던가? 예수님은 자기 개인의 생을 위하여 생활하시지 않았고, 세계의 생을 위하여 생활하셨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을 위하여 한날 한날을 싸우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활의 표준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그 바라봄과 느끼신 그 느낌, 생활하신 그 생활은 자기 개인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개인적인 동시에 세계를 대표했고, 세계를 대표한 동시에 하나님을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말씀도 예수 일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세계를 위한 말씀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대신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라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의 내용을 깨달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을 성취해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 예수님이 세우신 사랑의 기준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을 내세웠던가? 예수님은 사랑을 내세웠습니다. 즉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하늘땅 위에 완결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복음의 중심이 바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이 자기 일신의 생을 영원한 가치의 기준에 결부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남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남을 자기 이상 사랑하는 것으로 생의 가치 기준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적인 전체의 생의 가치를 대표해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자기 개체의 구원을 위해서는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사랑보다도 동료를 위한 사랑, 동료를 위한 사랑보다도 세계를 위한 사랑, 세계를 위한 사랑보다도 하나님과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까지 위하는 사랑을 갖고 나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개체의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한 개체적인 관념을 가지고, 혹은 개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사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사랑하실 때도 단지 그 친구관계에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세계를 대신해 사랑한다는 관념을 갖고, 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한다는 마음을 갖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사랑은 일대일 관계에서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개인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돼 있고, 우주적인 사랑이 내포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사랑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생의 가치를 올바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신의 생의 표준을 어느 기준까지 세웠는가? 세계를 위하여 자신이 존재한다는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친구를 사랑할 때에도 그 이면에는 세계를 위하여 사랑한다는 관념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계적인 구원의 사랑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동시에 전체를 위해서도 죽을 수 있는 희생과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과 생명과 인격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하늘을 향하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노정에는 놀라운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주적인 생명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지니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해 내세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도 역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를 위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고, 영원한계 즉 영계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위하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전체 복귀의 생을 감당해야 할 우리들이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예수님의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에 부딪치든지 그날 그 시간에 느끼는 감정으로써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주적인 전체의 성품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신하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날 한날의 생활을 거쳐야만 세계적인 생을 완결지을 수 있고, 영원한 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하루 하루의 생활이 여러분 자체에만 미쳐지는 순간적인 생명의 가치를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생 동안 매일매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려 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계속 이루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3. 참성도의 생활의 중심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즉 예수님을 믿고 나가는 데 있어 우리의 중심으로 세워져야 할 관념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과 같이 개인을 위해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태어났고, 하늘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이런 관념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위해서 사는 생활에서만, 즉 남을 위하는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그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그 감사를 자신만의 감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 감사를 만민을 위한 감사로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세계적인 사명을 질 것이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사명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활의 중심을 갖고 산다면, 우리는 낙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고 어떠한 곤고에 부딪치더라도 충분히 그것을 딛고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봉독한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모든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먹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체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전체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 개인의 생활을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염려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문제보다도 천주적인 문제를 위해 염려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러한 각오를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 하나의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드려야 할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한날 한날의 생활이 자기 자체의 내외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전체적인 문제와 관계를 지어 영원한 가치를 실현시켜 놓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천적인 복음의 뜻을 성취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전도의 길을 나서면 하나님이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위하는 생 활을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의 재창조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너무나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나를 위해 수고했고, 나를 위해 사랑해 왔습니다. 금후의 여러분들은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늘을 향하여 사랑을 요구하더라도 뭇인류를 위한 사랑을 요구해야 하겠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도 위할 수 있는 사랑을 요구해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 내려온 역사가 섭리노정이요, 세계적인 생을 찾기 위해 남아진 것이 인류역사노정이며, 하루의 생을 찾기 위한 것이 생활노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의 가치적인 관계로 바라볼 때, 세계적인 생을 찾기 위한 것이 인륜이며, 개인적인 생을 찾기 위한 것이 도덕관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제가 나 한 자체에서 관계맺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영원히 아버지가 보장할 수 있는 생명의 가치를 지니려면 사랑을 중심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관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관은 무엇이었던가? 그의 생애관은 사랑을 중심삼고 위하는 마음과 우주적인 주인의 심정을 가지고 한날 한날 생활을 지배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기 위해 세운 생애관의 중심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어떤 사소한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전체적인 생명의 복귀운동을 책임졌다는 마음으로 그것을 대해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귀를 위한 사랑의 실천자로 나섰던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4. 예수님의 사명을 상속받아 뜻을 완결해야 할 우리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남을 위해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전체적인 생명과 인연맺게 되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입증해 줄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생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오신 분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봉사와 개인적인 희생과 개인적인 고난의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임을 지는 데 있어서도 당대에서만 책임지려고 하시지 않았고, 전체적인 복귀의 사명이 끝날 때까지 전인류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갖고 사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책임져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만으로 그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시자, 성신을 보내 역사하셨으며,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 동원해서 그 사명을 완결시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러한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복귀하기 위해 오셨다 갔지만 그 일을 완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그 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날까지도 이 땅 위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은 예수님 자체만으로는 완결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 그 사명을 완결시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그 사명을 완결시키고자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이 그 사명을 책임지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분 일대(一代)에서 그 사명을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느낀다면, 여러분의 일생을 통하여 기필코 그 사명을 이루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한날 한날의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섭리역사 과정에서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세워 나왔던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자로서 수고해 오셨던 그리스도의 뜻이 여러분을 통하여 완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체를 하늘 앞에 맹세의 조건물로 세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혹은 뭇백성을 위하여 단 한번 맹세의 조건을 세웠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생을 바쳐 수고해 나온 그 기준을 일시에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앞으로 어느 한 때 하늘 앞에나 세계 앞에, 또는 개인 앞에 드려지는 하나의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관념을 확실히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든지, 어떠한 곳에 처하여 어떤 일을 하든지 그날 그 시간에 처한 환경에서 언제나 맹세의 조건물로 서기 위하여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앞에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찾아 드려야 할 사명이 남아 있으니, 여러분들은 자신을 맹세의 조건물로 세워 예수님의 생과 관계맺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자체를 세계적인 조건물로 세우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수고해 온 수많은 선지자들을 대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개체 개체가 그러한 맹세의 조건을 조성해야 여러분은 하나에서부터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세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이루어질 때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한 세계적인 고난이 종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찾기 위한 세계적인 고난을 종결시킬 수 있는 터전이 여러분 개체에서 형성되어 교회․사회․국가․세계에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는 섭리의 뜻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섭리의 뜻을 대하여 나온 여러분 자체를 생각해볼 때나, 또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생각해 볼 때,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대신하는 개인과 가정이 나와서 사회․국가․세계까지 연결시킨 기준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전체가, 즉 세계 인류 전체가 그 권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끝날의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목적

참된 개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으나 지금까지 가정․사회․국가․ 세계에로 확대되어 나가지 못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이 우주적인 서러움으로 남아졌고, 또 하나님의 서러움, 천주적인 서러움으로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한 서러움을 풀고, 영원한 하늘의 승리가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신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전체의 섭리의 가치를 증거하고, 하늘땅의 전체의 사랑을 나타내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바라는 생의 가치관과 하나님께서 전체 섭리를 이루기 위해 바라시는 우주적인 생의 가치관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소망의 천륜을 표준한 생애노정을 거쳐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생활과 우주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마음 자세를 갖춰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 자세가 갖춰져 나간다면 그 뜻을 다 실천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내적인 면에서는 계속해서 전체와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너희 마음속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지니고 우주적인 사랑과 진리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 개개인에게 부여하신 모든 가치를 완결시켜서 그것이 그들 각자의 근본이 되어야 천국이 이뤄진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권에 속한 개인들이 모여 단합해 가지고 세계적인 생명운동을 일으키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영인들까지 전체와 관계를 맺게 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던 그 뜻이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종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주적인 생의 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님을 따르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그러한 예수님의 사명을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보다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더 소망하고 그것들을 생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하나님을 대신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살고, 세계를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각오를 갖고 사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홀로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 끝까지 하나님이 같이하고 예수님이 같이하고, 성신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백성들이 이러한 관계를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는 생활적인 관념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안일을 위한 것이나 개인이 잘살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잘사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이 바뀌어질 때는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이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일이 막혀 버린다는 거예요. 반면에 인간들이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문제는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을 위해 희생하면 개인적인 주인공이 될 것이요,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면 세계적인 주인공이 될 것이요, 하늘땅을 위하여 희생하여 승리적인 생애 기준을 세운다면 하늘땅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들이 자신의 인격을 닮아 생명적인 가치를 찾아 세우도록 지금까지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개체를 찾아 세워 이런 생의 복귀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인류역사적인 면에서 볼 때, 또 현실의 세계적인 면에서 볼 때, 혹은 미래의 영원한 소망적인 면에서 볼 때,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책임도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사는 모든 생활의 표준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체적인 생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겠고, 또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전체 생명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던 사랑을 중심하여 실천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생을 복귀하시려는 뜻이 여러분을 통하여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이요, 그러한 개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더욱 기뻐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복귀의 생명을 천주적으로 인연맺기 위하여 천륜의 법도를 세우시어 섭리하여 오신 아버님의 수고의 역사를 저희들이 마음으로 느끼게 되옵나이다. 아버님! 당신께서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세우기 위하여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개체에서부터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지 않는 종교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 없다는 것이 천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는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치를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생의 각오를 저희들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 개체의 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싸움터에서 사탄의 침범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생의 가치의 복귀노정을 저희들이 대신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탄의 참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 개인의 생애로부터 세계의 생, 우주의 생까지 뻗어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 받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당하게 사탄의 참소를 한 날의 생활에서 막아내고, 역사적인 면에서 막아내겠다는 각오를 지니고, 그 생명과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가 영원하신 생명의 가치를 지닌 세계적인 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땅 위에서 만물을 주관하셨던 예수님의 완전한 인격을 닮아야 할 것을 아오니 사랑의 아버님, 그리스도의 그 인격을 닮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 저희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실제적으로 싸움의 노정을 걸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사오니, 아버님, 사회생활에 있어서나 아버지 앞에 세워 나가는 인격적인 면에서, 혹은 인간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의 면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도록, 아버님, 이끌어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가 세우신 생명적인 가치를 저희들이 지니고, 그 가치를 이 땅에서 실현시킬 수 있게 주관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일을 책임지는 저희가 되어야만 개인으로부터 세계를 거쳐 하늘땅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이 시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적인 모든 조건을 물리치고 전체적인 생명의 기준과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하여 저희들 스스로 각오하여 모든 조건을 맹세의 제물로 삼아 싸워 나갈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아버님의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들을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최후의 길을 가시며 돌아보시는 예수

누가복음 22:54-62

<기 도> 아버님, 일주일 동안을 뜻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던 아들딸들, 사탄의 간교한 계교에 꼬임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싸워 나오던 아들딸들이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현현하시어 각자의 몸 마음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마음에 사무친 원한을 갖고 있는 자가 있사옵니까? 몸에 사탄의 흔적을 가진 자가 있사옵니까? 사랑 많으신 나의 아버님, 그들에게 재창조의 역사를 나타내시옵고, 긍휼의 손길을 펴시사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부족함이 없는 마음과 몸으로써 아버님께 경배드릴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끔, 이 시간 아버님께서 은사를 내려주셔서 성별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불러 우주적인 섭리를 예고시키시려는 아버지의 뜻 앞에 저희들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사오니, 이 시간 친히 저희들 마음에 명령하시옵고, 저희들 몸을 충동시키시어서 원하시는 선의 동산을 향하여, 원하시는 선의 뜻을 향하여, 원하시는 승리의 동산을 향하여 줄달음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 뜻을 향하여 분발할 수 있는 저희들 될 수 있게 일으켜 주시옵고, 자각적인 힘과 자각적인 결심을 갖고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직까지 아버지 앞에 합당치 못한 죄악의 요소가 남아 있는 저희들이오니, 아버님이시여! 존엄하신 능력의 역사로 저희들의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고, 권능의 손길로써 어루만져 주시어 회개의 마음을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이오니 민족을 위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을 축복하여 주옵시고, 승리의 봉화를 들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영광과 위로를 받기 위하여 이 시간 경배드리고 있는 수많은 아들딸들을 축복하시옵고, 성령의 역사를 내려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기 위해 모였사오니 아버지 앞에 합당한 자신들인가 다시 한번 자신들을 분석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고, 아버지께 합당하지 못한 미비한 사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을 회개하고 모든 것을 직고하여 아버님의 충고와 아버님의 권고를 받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직 싸움의 노정이 남아 있는 이때, 저희들 마음을 합하여 생명의 동산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아들딸들이 지방에 널려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수고의 제단을 쌓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어느 곳에 모이든지 아버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승리의 아들딸임을 증거해 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친히 운행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을 쌓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아들딸들, 자기를 중심삼은 어떠한 관념이나 주의 주장을 갖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써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해 자신의 부족함을 통회하며 아버지 앞에 아뢸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재창조의 손길에 붙들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사탄이 침범하는 이 시간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별의 역사로 일으키시어 아버님께서 친히 주관할 수 있으며, 아버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이 시간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최후의 길을 가시며 돌아보시는 예수’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의 강림과 유대민족의 불신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허락한 영원한 이상의 동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선의 동산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서글픈 생애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온 인간들은 지금까지 서러운 심정으로 하나님을 돌아보며 수난의 6천년 역사를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는 생애의 길을 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모든 인류도 자신들의 본연의 위치 회복을 바라서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는 생애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땅 위에서 하늘을 향하여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복음에 의해 자기의 생애노정을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 수 있기를 바라셔서 하나의 조건으로서, 하늘의 사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나, 그 당시 인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은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주인공을 맞이하여 올바로 모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며 나아가는 생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여러분도 어차피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며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자체의 힘으로는 하늘을 향하여 도저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돌아갈 수 없는 인간들로 하여금 돌아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인간들이 그가 바라보는 방향대로 바라보고, 그가 걷는 대로 걸었다면, 인간들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중심 뜻이었음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시 유대교인은 물론이요 이스라엘 민족과 온 세계 인류가 예수님을 붙들고 하늘을 향하여 돌아보며 나아가야 할 생의 목적을 완성하여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인간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인간들은 인간들대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는 걸음을 멈추고 땅을 향하여 돌아보는 입장에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들 가운데는 오늘날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을 향하여 돌아서고, 하늘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한 성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늘을 향해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행동을 바친 성도, 즉 숫것의 제물이 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무친 원한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박차고 하늘을 향하여 애원하며 나아가야 할 인간들이 땅에 고착되어 땅의 소망을 중심삼아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땅을 대하여 섭리하셨던 뜻이 좌절되었습니다. 당시 땅 위의 인간들이 원하는 뜻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로 2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하나님께서 땅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고, 예수와 성신도 땅을 대하여 다시 바라보아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바라던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그분의 소원은 단지 남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쫓겨날 때 느끼던 슬픔과 서러움의 마음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오직 남을 위하는 생활을 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당시의 인간들이 자신의 모든 소원을 회복하여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알고 예수님을 향하여 돌아설 수 있었던들 예수님은 십자가에 나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우기 위해 30여 생애를 거치시는 예수님과 동반하여 같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할 이스라엘 민족들이 예수님을 배반하니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할 발걸음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맡겨진 사명을 완결시킬 수 없게 된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다시 하늘을 향해 바라보는 입장에 서서 인간 대표의 몸으로서 하나님 품으로 찾아 들어가는 걸음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하여 성심성의를 다하고, 예수님이 걸어 나가시는 그 방향으로 대신 걸어드리고 대신 보호해 드렸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대하시듯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 대신 인간을 대할 수 있었고, 나아가 이 땅에서 기쁨의 제단을 갖추어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인간들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걸음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예수대로 인간들은 인간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원리적인 책임을 지고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가는 방향을 돌이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품으로 나아갈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땅 위에 오셨던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척을 받아 십자가에까지 나아가게 되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 섭리하신 뜻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 베드로를 돌아보신 예수님의 심정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 골고다 산정의 외로운 길을 거쳐 나갈 때 누구를 다시 돌아보았느냐 하면, 사랑하는 12사도의 대표인 베드로를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뒤를 제일 먼저 따라야 할 베드로의 마음이 변하게 될까봐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자신의 마음이 비통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드로를 돌아보셨던 예수님의 그 시선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다시 느끼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과 완전히 분리된 입장에 서게 되었으며 예수님과는 관계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셨지만 땅 위의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죽음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뒤를 사수해 줄 수 있으며, 마음으로 몸으로 동정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찾고자 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수제자인 베드로를 돌아보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참사람을 찾고자 하신 뜻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바라보는 그 시선 속에 사무쳐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를 책임지고 오신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이 이상 슬픈 장면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불신으로 인해 골고다의 길, 죽음의 길을 가는 자신의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자 하는 애달픈 심정을 알아주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의 애달픈 심정을 알아주셨고,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염려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30여 평생 오직 하늘의 서러운 사정을 대신하여 걸어나온 수고의 노정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인간 대하여 책망하고 싶고 땅을 대하여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러한 마음을 억누르고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어 따르고 있는 베드로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느끼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 인계받아 만민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외롭게 고난의 노정으로 일생을 끝맺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과거 예수님과 맺은 본성의 사랑의 인연을 잊지 못하여 외로운 가운데서 신음하며 말할 수 없이 처량한 입장에 처했을 것입니다. 서러운 예수님을 모욕하고, 죄 없는 예수님을 원망하며, 죄 없는 예수님을 묶어 끌고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마음도 물론 몹시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전인류를 돌이키기 위한 대표적인 사명을 띠고 오신 메시아인 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을 대신하여 나서지 못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입장에 서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베드로 앞에 계집종들이 나와 그리스도의 무리가 아니냐고 질문하게 될 때 세 번씩이나 ‘모른다.’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 일신의 모습이 땅 위의 인간들을 대표한 입장이었음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과 베드로의 입장을 다시 한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보신 것은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서만 벌어졌던 사실이 아니라 전 역사 과정이 그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 앞에 그리스도의 뜻을 대신한 참다운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나서는 데에는 반드시 사탄의 참소가 세 번씩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6천년 역사 속에서 아담의 입장, 예수의 입장, 재림주의 입장을 상징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끝날에 있어 세계적인 1차대전, 2차, 3차대전의 형태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처럼 전 역사노정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 개인의 신앙노정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베드로의 자각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주를 만나기 직전에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 베드로가 하늘 향하여 ‘모른다.’ 하던 배반의 시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때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외적인 베드로의 입장을 거슬러 올라가 승리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자신을 찾아 세워야 할 역사적이고 섭리적이며 신앙적인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우리들은 어떤 입장에서 어떤 책임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하시기 전에 골고다의 길을 걸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 전세계 기독교인은 재림의 때에 주와 함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최후의 골고다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한 시대가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느냐? 베드로에게 사랑하는 선생님이 아무 죄 없이 로마 병정에 의해 끌려갈 때, 속으로는 애달파하면서도 겉으로는 ‘안다.’ 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세상적인 어떤 조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예수를 ‘모른다.’고 해야 할 처지에 놓일 때가 있을 것인데, 그때에 예수님을 ‘안다.’ 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들은 그런 자신을 놓고 항상 조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땅 위에서 골고다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은 영계에서도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지상과 영계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뒤에 두고, 친히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오신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사탄과 일대 판가리 싸움을 전개시키실 것입니다. 

그런 접전의 시기가 땅 위에 나타날 때 우리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했던 것과 같은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입장에 서서 우리의 모든 사정과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털어놓고 우리 자신을 재반성하면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수고의 길을 사수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려운 입장에 서신 스승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진정으로 자신의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어려움이나 자신의 슬픔, 자신의 사정도 잊어버리시고 돌아보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은 그토록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서러움도 잊으신 채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주고, 자신의 앞길을 염려해 주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의 감정은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또 주님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옛 인연을 느끼고 순간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각오하고, 하늘을 향하여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인간적인 슬픔에 사무치지 않고 늠름하게 인간 구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부족한 자신까지도 염려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마음으로 부족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오로지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 바쳐야 할 제자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의 입장과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자신의 입장을 비교해 볼 때,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주님처럼 하늘을 중심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하고 믿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 앞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즉 불신의 자아를 놓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4. 베드로의 통회와 새 결심의 가치

하늘을 향한 신앙노정에 있어서 영원불변의 모습으로 우주적인 사명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밀고 나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베드로의 마음이 일변해서 일생 동안 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충동감이 일어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신의 자아를 깨닫게 될 때부터 베드로는 예수님과 자기와의 관계, 혹은 서로의 생애노정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더더욱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뜻 하나를 위해서, 이 땅 위의 만민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전부를 하늘 앞에 제물로 바치고, 십자가에 끌려가시면서도 원망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 제자는 자신들의 생애가 너무 개인 중심적이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중심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제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고, 예수님이 늘 소원하시던 뜻을 인계맡아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맹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베드로는 어떤 것을 느꼈는가? 자신의 불신을 느끼는 동시에 주위의 불신을 느꼈던 것입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죄 없다고 할 예수 그리스도를 악한 주위 사람들이 묶어 놓고 채찍질하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핍박당하시는 예수님의 시선 속에서 예수님의 서글프고도 외로운 마음을 꿰뚫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입장에서도 하늘 길을 지켜 나가는 것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뜨거운 시선 앞에 베드로는 주위 환경의 불손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이 될 수 없는 악한 무리들을 멸하기 위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위의 불손한 세력과 싸우겠다는 정의로운 각오를 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나가는 예수님의 선한 불변의 모습과 주위 환경의 불손함은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돌아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을 통하여 베드로는 자신의 어리석었던 생애를 청산할 수 있었으며, 주위 환경을 정화하여 선의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더더욱 하나님께로 향했던 것입니다.  

말없이 하늘을 위하여, 땅을 위하여, 만민을 위하여, 뜻을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을 통해 베드로는 저절로 주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그 돌아가심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최후로 돌아보셨던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을 알아주는 사도가 있음을 느끼게 했고, 끊어졌던 하늘과 인간의 인연이 회복되는 순간임을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 혼자만 하늘과 땅, 그리고 만민과 수많은 사도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뜻 앞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놓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통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고난당하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만이 통곡하면서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도들을 중심삼고 역사할 수 있는 기준, 예수님과 인간들이 서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만을 붙들고 부활과 재림의 때를 고대하던 것과 같은 입장을 여러분들도 어차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은 입장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의 노정에 남아진 최후의 운명이라 할진대, 여러분들은 심각한 입장에서 진지하게 예수님과 자신 사이를 되돌아보면서 예수님의 지조를 본받을 수 있어야 하며, 예수님의 그 자세 앞에 몸 굽혀 통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믿고 나오는 신앙생활 가운데서 주님이 우리를 염려하듯이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얼마만큼 염려하면서 살았느냐가 문제입니다. 자신은 예수를 염려하면서 일생 동안 살았다고 하지만, 어찌 죽음의 자리를 헤쳐나가면서 베드로를 바라보던 예수님의 생애에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음의 길에서 무리들을 돌아보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죽음의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돌아볼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신하는 입장에서는 동시에 예수님을 영광의 자리에 모셔 드리기 위해 우리가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염려를 대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한 때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에게 그런 한 때가 없다면, 끝날 즉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었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나의 주’요, ‘나의 신랑’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베드로를 돌아보심으로써 비로소 베드로와 세 제자는 찾았으나 예수님을 직접 붙들고 천국까지 가 있는 성도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을 돌아보아야 할 성도의 책임

이제 끝날에 처한 여러분이 예수님과 동거할 수 있고, 예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참성도, 예수님의 사랑받는 참제자가 되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죽음 길을 가시면서도 베드로를 돌아보신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염려하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 대해 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다 할진대는 영광의 주를 붙들고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하루 하루의 생활 전체를 통해 예수님을 위하여 염려하는 생활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수백, 수천 번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불신하는 우리의 생활 때문에 할 수 없이 돌아서시면서 서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만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서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실 때가 많았지만 우리들은 그분의 사정과 그분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했고 자신의 뜻대로만 되어지기를 바라는 편한 신앙생활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시선 앞에서 자신의 일생과 예수님의 일생을 비교해 보았을 때, 자신의 불신을 자책했고 너무나 자신을 중심하고 살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예수님의 30여 평생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역사하여 오신 예수님의 역사적인 생애노정과 비교해 볼 때, 여러분은 베드로가 느끼던 것과 같이 자기를 중심해서 살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불신의 자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쉴 사이 없이 주시하는 그 시선에 맞추어서 예수님의 마음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둔 골고다의 산정이 아니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은사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을 중심삼은 신앙관념을 가지게 된 것을 통회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중심삼고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구원얻기 위하여, 나만 잘되기 위해서 믿는다는 관념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잘되기 위한 신앙관념을 갖고 나온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여러분도 자기 중심한 신앙관념을 갖고 있다 할진대, 어느 때, 어느 순간, 어느 시기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하늘을 배척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들은 자신을 믿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 자신을 찾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는 신앙생활, 자신을 위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찾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이 그를 가로막게 되었고 드디어는 예수님과의 관계도 끊기게 되었던 사실을 깨닫고 여러분들은 그러한 자리를 피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위하는 신앙생활로부터 예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신앙생활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베드로가 불신의 환경을 믿음의 환경으로 회복하고 그가 불신한 것을 마음 아파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이 바라시지 않는 불신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의분심과 적개심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善)의 노정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도 자신을 중심삼은 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이어야 하고, 또 그 선이 자신과 관계 맺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선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을 보고 서러워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베드로의 입장을 대신하여 세계 인류를 위해 서러워할 수 있고, 하늘땅을 위해 서러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앞에, 예수님 앞에, 혹은 성신 앞에 최후의 승리의 공적을 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그분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기를 염려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잊으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선생님이여!’라고 권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염려의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의 입장에 들어가 염려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누가 이 일을 하였습니까? 다만 예수님만이 이 일이 성취되는 한 날을 고대하며 인간들을 위하여 오늘날까지 수고의 역사(役事)를 거듭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의 염려의 대상이 되지 말고 여러분에게 전소망(全所望)을 걸고 계신 예수님의 뜻과 또 하나님의 섭리에 반역하는 자신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불신한 후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탄식했듯이 여러분도 자신의 불신을 탄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애달픈 예수님의 사정을 통한 마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서서 골고다를 넘어야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실 수 있고 하늘 앞에 기쁨과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인류의 역사노정을 가로막고, 하늘의 승리의 터전을 쌓으면서 우주적인 골고다의 심정으로 슬픈 대로를 거쳐가야 할 사명이 오늘날 24억 인류에게 남아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이여, 예수님을 보내시고 염려하던 당신의 염려는 옛날의 골고다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오늘 저희들의 목전에도 그 염려가 사무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현재의 자신의 부족함을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자도 물론 되어야 하겠지만, 먼저 예수님이 뜻하시는 결실을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 자체의 불완전함을 염려하여 우는 자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악한 세상이 되어 예수님을 대하여 아우성치며 훼방하는 사탄의 농락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고, 참회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노정에서 항상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시선을 느끼면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완결짓기 위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복귀의 제물로 자신을 바쳐드렸듯이, 저희들도 어느 날 어느 때에 예수님께서 저희를 찾아오신다 하더라도 저희를 바라보시는 시선과 찾아오신 그 발걸음을 잊지 말게 허락하시옵소서. 또 이제까지 저희들이 예수님의 그 시선과 발걸음을 배척한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음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한번이 아니라 두번 세번까지 배반할지라도 변함 없이 저희 인간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심정을 얼마나 위로해 드렸으며, 얼마나 하늘 앞에 눈물 흘렸는가 하는 것을 회개하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외로운 당신의 아들딸들, 세계적인 심판의 때가 멀지 않았사옵고 우주적인 골고다의 동산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자신을 중심삼은 신앙노정을 걸어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생명은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가 생활하는 생애도 저희 것이 아니오며, 저희가 소망하는 소원도 저희 것이 아니었사오니, 저희들을 위하여 사는 생활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능력과 저희의 요구와 저희의 욕망,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갖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나갈지라도 마침내 예수님의 변함 없는 믿음을 알아 가지고 베드로가 마음으로 탄식하여 하나님을 신봉하는 동지로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고 눈물지은 것과 같이 골고다의 심판 날이 오기 전에 저희들이 예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우주적인 회개를 도맡아 아버지 앞에 울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토로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시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대신 걷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이 땅의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겨 주시옵고, 남아진 골고다의 길을 저희들이 걸어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세계 도처의 사탄을 쳐부수어서 승리의 영광의 터전을 이루어 저희들 생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끔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끝날에 아버지의 뜻을 기필코 저희들이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신의 자아를 벗어나서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자아로서 불신의 세상을 떠나게 역사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와 함께 영원토록 안식할 수 있고, 하늘 편에 서 아버님의 사랑을 갖고 억만 사탄을 굴복시켜 호령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자

요한복음 11:1-20

<기 도> 사랑의 동산과 선의 동산을 잃어버린 아버님! 오랜 역사를 경과하시면서 세워 놓으신 그 한 뜻을 찾지 못하시고, 바라시는 본연의 참된 인간을 찾지 못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이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영원한 섭리를 대신하여 아버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체들로 설 수 있도록 이 시간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나에서부터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께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될 부족한 입장에 처해 있사오니 아버님, 긍휼의 손길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또한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죄악의 힘과 성품이 저희들의 마음의 문을 닫고 있사오니 능력의 은사를 나타내시어서 어두운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옵고, 선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 뜻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원하는 당신의 아들딸 앞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가로막혀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능력의 손길로써 저희들을 붙잡아 주시옵시며, 이들에게 당신이 싸우시던 전체의 싸움을 맡기시어 이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억만 사탄 앞에 하나님의 뜻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당신의 무릎 앞에 나오게 된 저희들, 아버지 앞에 드릴 무엇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일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예물이 없다 할진대는 스스로 통회하고 아버님의 긍휼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이 저희에게 맡긴 사명은 저희 한 개체만을 위한 사명이 아니라, 민족과 인류를 위하고 천천만 성도들의 원한까지 풀어 드려야 하는 사명임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나이다.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그러한 천륜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사오니,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아들딸들의 몸 마음을 제물 삼으시어 원하시는 우주적인 그 한 뜻을 이루시옵시고, 그 뜻을 이루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저희 자체들로서 세워 주시옵기를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직까지 아버지의 뜻 앞에, 아버지의 은사 앞에, 아버지의 사랑의 품 앞에 용납받지 못할 요소를 지닌 자녀들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님이여, 능력의 역사로써, 재창조의 말씀으로써 대해 주시어서 이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하늘의 사명을 맡겨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리옵나이다. 뜻을 바라보고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싸움의 기치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우주적인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이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들이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도록 당신의 감동의 역사와 당신의 직접적인 움직임을 이들의 생애를 통하여 나타내시어 영원불변의 노정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도록 아버님, 이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억만 사탄과 싸워 이겨 모든 무리 앞에 아버님이 함께 하는 아들딸임을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 복 주기 위하여 약속하여 세우신 날인 줄 아오니,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아버님의 깊고 높으신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천성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외로운 식구들이 사방에 널리어 허락하신 말씀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는 곳곳마다 아버님이여, 약속하신 뜻을 나타내시옵소서. 그리하여 살아 계신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어두움권 내에 있는 뭇백성들을 깨워 일으키는 직접적인 역사가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아버지 앞에 엎드린 저희들, 아버지께 합당치 못한 주의(主義) 주장이나 행동이 있었다 할진대는 스스로 그것을 다 내어놓고 존엄하신 아버지의 은혜로 청산받기 위하여 온유겸손하게 경배드릴 수 있는 마음을 지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사탄이 틈타지 말게 아버님, 주관하여 주시옵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감사 경배드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직 뜻과 사랑만이 이 한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잠시 동안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자’라는 제목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 합니다. 

1. 예수님의 강림 목적

하나님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하늘의 뜻을 대신 품고 이 땅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사를 밟고 넘어 그 승리의 산상에 선 참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오셨던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어떠한 마음을 갖고 나타나셨습니까? 타락하기 전 인간이 하나님을 대하던 마음을 품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타락권 내에서 사탄이 즐길 수 있는 느낌으로서가 아니라 천성을 대신하였던 것이며,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요구하셨던 전체의 뜻을 품고 생애의 표준을 세워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시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보시던 눈, 예수님이 들으시던 귀,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입, 냄새 맡으시던 코, 모든 것을 느끼시던 그 지체들은 땅 위의 인간이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느끼는 지체와는 달랐던 것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죄악의 세상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하나님의 뜻 앞에 합당하고,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말씀을 스스로 실천하여 만민이 자기를 본받아 나올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조건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마음을 품으셨던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예수님이 바라는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 기준을 회복하는 사람이 없게 되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이 땅 위에서 성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성취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요구하시는 뜻은 예수님 자신을 표본으로 하여 세계적 승리의 조건으로 만민이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만민이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도 원하셨고, 예수님도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만민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갖고 이 땅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가 하신 말씀이나 그가 몸으로 느끼신 감정이나 감각은, 오늘날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이나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주(主)로 모시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먼저 예수님께서 하늘의 뜻을 이루겠다는 그 책임감과 우주를 대하여 구원의 역사를 완성시켜야 할 전체적인 책임을 지셨던 그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느끼고 체휼하고 생각하던 그 한 기준까지 나아가 예수님을 직접 대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력을 기울여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기쁨을 느끼려고 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마음속에 슬픔이 사무치게 되었습니다. 이 슬픔을 풀어 드리기 위해 오셨던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께서 땅 위에 오셔서 

무엇을 하시려고 하셨는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람과 같이 타락성을 벗고 원수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어엿이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참사람을 찾아 세우려 하셨던 것입니다. 

2. 주님을 모시지 못한 유대교단

이러한 예수님 앞에 4천년 동안 준비되었던 유대교가,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참사랑을 내어 드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선 예수님은 옛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기뻐하시려 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준비되었던 유대교가 불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조로 말미암아 비롯된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 드리기 위해 오셨으나, 유대교단의 불신 때문에 이렇게 다시 슬픔의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예수님의 그 원한을 풀어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모였지만, 우리 주위에는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조건들이 많이 널려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항상 우리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언제나 우리의 생활에서 참소의 조건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아담 해와가 무엇 때문에 타락했느냐 하면, 들려오는 말이 어떤 말인가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의 말을 해와가 듣게 되었을 때, 그 말이 참된 말인지, 거짓된 말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행동한데서 타락이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것을 복귀해야 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바른 귀, 참된 귀를 갖고 들려오는 말씀이 선한 말씀인가 악한 말씀인가를 스스로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들려오는 말씀이 무슨 말인 지 분별하지 못하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도 알 수 없는 사이에 사탄의 유혹에 끌려가 천륜을 망치게 하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여러분의 귀를 울리고 있는 말이 많은 줄 압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대신한 하늘의 말씀도 있을 것이요, 인간의 향락을 중심한 말도 있을 것이요, 사탄을 중심한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렇게 생활 주변에서 고막을 울리며 들려오는 이 말들이 어느 권으로부터 들려오는 말인가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여러분이 사탄의 말을 듣게 되고, 그로 인해 사탄은 여러분의 생명을 빼앗아 가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깨어 있어 선악을 올바로 분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셨던 예수님은, 당시 유대 백성에게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바른 귀를 가진 자는 자신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들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르짖은 음성을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이 하늘의 말씀으로 믿어준 자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애달팠고 슬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의 슬픔을 풀어 드리기 위해 모인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자신의 생명을 대신한 말씀이요, 하늘을 대신한 말씀으로 알고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내 자체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귀를 기울여 하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만이 예수님의 뜻 앞에 어엿이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말씀으로서,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전체의 사실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정을 대신한 말씀으로서, 감동의 말씀으로서, 타락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복귀의 말씀으로서 민족 앞에 전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자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선조를 갖고 있는 우리들,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말을 분별하지 못하고 타락한 아담 해와의 혈통을 이어받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복귀의 길을 가는 노정에 우리를 가로막는 사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 자신에게 들려오는 하나의 말이라도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올바로 구별해 들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참과 거짓을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는 여러분들이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신부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자격

그러면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과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먼저 예수님께서 귀가 있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안타까움과 서러움에 사무쳐 토로하시던 그 음성을 여러분이 다시 들어, 그분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뜻, 천천만 성도들이 원하는 뜻을 여러분 자체로 말미암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한 개인의 귀를 통하여 들려오는 말씀 가운데는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책임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올바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로부터 보내어진 메시아가 그렇게 초초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을 당시의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메시아를 보고도 메시아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 30여 생애를 더벅머리 총각으로서 목수의 일을 하던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민 앞에 보여주시려는 하나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역사적인 수고의 십자가를 지고 계시다는 것을 바르게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그의 일신 자체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신 전체의 노정을 탕감할 수 있는 수고의 제물로서 나타났던 것을 바로 볼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 한 분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4천년 역사 과정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이스라엘 선민을 형성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볼 줄 알았다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했던 유대 백성들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예수님은 홀로 골고다의 산정에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의 뜻을 안 자신이 기쁨의 자리에 처할 수 없었던 그 사정과, 자기 자체를 만민 앞에 또는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을 만민 앞에 보여주기 위해 불리어졌다는 그 사실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한 사람을 예수님은 찾아 세우지 못하여 결국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6천년 역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뜻길을 가고 있는 여러분은 여러분과 함께 뜻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을 찾아 세우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나타났을 때 몰라주었던 우리 선조들의 과오를 탕감지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버지 앞에 세워놓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어떠한 모양으로 우리를 대하고 부르짖고 있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홀로 울부짖다가 돌아가신 이후 성신까지 보내셔서 오늘날 우리를 향하여 애달프게 손짓하고 있으며, 우리를 위하여 애달픈 심정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체들이 2천년 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유대교인의 입장을 탕감하고 예수님을 대하여 “과연 당신은 4천년만에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승리적인 한 자체로 나타난 존재로소이다.”라고 하면서 그에게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여러분 한 자체를 찾아 세우기 위해 영적인 세계에서 예수와 성신이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예수님 당시에 맺혀졌던 4천년 원한을 풀 수 없고,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에 맺혀진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역사적인 빚을 지고 있는 여러분은 과거 선지자들이 전하였던 말씀이나 행동하던 그 모습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손짓을 하며 말씀하시는 그 성상 앞에, 역사적인 사명에 불타고 계신 예수님의 형상 앞에 온유겸손히 경배드릴 수 있고, 나아가 예수님의 친구 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만, 여러분은 그분을 본받아, 30여 평생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심정을 실증적으로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신부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4.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우리

그러면 여러분들이 죄악에 사로잡혀 사망의 어두움 가운데서 신음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몇 번이나 찾아오셨는지 압니까?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탕감복귀해야 할 운명이 남아 있는 이 땅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노정을 그대로 거치게끔 하기 위해 예수님은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의 뜻을 세울 수 있기까지에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에 선지선열들을 보내 섭리하신 수고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 자체를 통하여 이것을 재탕감복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한 자체는 비록 한 개인이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갖출 수 있게 하고,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을 지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의 죄악의 혈통을 벗어나야 할 여러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땅 위에 와 뜻을 성취시키지 못하였던 그 원한을 해원하기 위해 여러분을 찾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느 때,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을 대하시던 것과 같은 심정으로 여러분을 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4대 선지자 등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뜻을 이루시려 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체의 섭리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으나, 예수님도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것을 인계받아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우주의 중심존재인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과 같이 우주의 중심존재로서 역사를 대신하여 이 모든 것을 탕감시켜야 하고, 예수님이 보여준 생활 자세를 본받아 그대로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끝날에 예수님으로부터 증거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4천년의 역사 과정을 일생을 통해 탕감한 예수님이란 것을 알아야 하며, 예수님의 전 생애를 바라보며 신앙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에도 과거에 왔다 갔던 아브라함나 모세, 혹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개인적인 사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과정에 나타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이런 사명과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그 사명과 책임을 완수하려면 예수님의 전 생활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런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은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 가운데 진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예수님은 6천년 동안 어느 한 때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수고의 길을 걸어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지니고 인간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예수님의 그 존엄한 성상 앞에 예수님이 바라는 자체로 섰던 성도가 적었습니다. 오늘날 참성도가 되기 위한 길을 나선 여러분이 아직 그런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여러분도 여러분 자체를 반성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 자체를 하늘 앞에 산 제물로 바쳐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예수님께서 애달픈 마음으로 자기들을 향해 손짓을 해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들을 수 있는 귀를 갖는 동시에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동시에 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은 예수님이 전하고 싶었던 내적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에게 보고 들은 6천년 역사와 예수의 생활과 사정을 올바로 소개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님도 찾고 계시며 하나님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예수의 마음에 어리는 말을 해야 되겠습니다. 두 혀를 가진 뱀의 혈통을 받은 여러분이지만 여러분은 두 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편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성상을 보고 그 사실을 거짓없이, 즉 두 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혀를 가진 사람으로서 만민에게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당신의 혀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 예수님의 혀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5. 말씀을 전해야 할 참성도

원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빚어진 본질을 갖고 있는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천성의 마음을 닮아, 그것을 자기들의 진리의 표준으로 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참다운 성품을 지닌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본심을 우리가 다시 회복하여 예수님의 맘과 몸을 보고 예수의 말씀을 들어서 다시 그것들을 우리의 마음 몸의 중심으로 세워야 합니다. 나아가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대신 존재가 되어 이 사망세계에 예수님이 전하시던 말씀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과 혀를 가진 자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두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두 말을 하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하여 하나의 말을 하는 인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섭리역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여 말하고, 예수님의 심정과 생명을 대표하여 말하고 있다는 이런 자신감을 갖고 하루 하루의 생활을 하고 일생을 변함 없이 거쳐 나간다면, 여러분에게는 사탄의 참소가 없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사탄의 시험도 능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한 오늘 여러분은 참다운 말을 증거할 수 있는 참다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말씀, 수많은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 나아가 개체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말씀, 그리고 예수와 성신이 2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전하시던 말씀을 여러분 자체가 실체적으로 증거할 수 있고,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와 함께 할 것이요, 천천만 성도들이 그 말씀을 환영할 것이며, 하늘을 흠모하는 사람도 자연히 영계의 도움을 받아 그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또 그 말씀을 영원한 말씀으로 생애의 최고의 말씀으로 세워 불변의 심정으로 자기의 생명을 걸어놓고 전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예수와 성신 천천만 성도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가호 아래 기필코 이 땅에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2천년 전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애달픔은 무엇인가? 끝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또 심판 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예수님은 인간들이 세계 인류를 찾기 위해 오셨던 당신의 마음을 본받아 제물의 노정을 거치어 하나님 편에 안기기를 바라고 계신데,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자기 멋대로의 삶으로써 어두움에 끌려가고 심판대에 끌려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2천년 전에 구원섭리를 종결시키기 위해 오셨던 그 때 마음보다도 더 애달픈 마음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신 예수님의 마음을 더듬어 그의 내적 심정을 체휼하여 그를 대신해서 인간들에게 말씀하지 못하셨던 역사적인 전체의 섭리와 온 우주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만인류에게 전해주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당신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참사람이 나타나기를 간곡히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천륜의 말씀을 대신한 예수님이지만 그것을 다 말씀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그 안타까움을 느껴 심판의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고 성신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해 주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예수님은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의 일생을 본받아 그로 말미암아 당신의 사랑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셔서 오랜 역사를 거쳐오시며 수고하시는 것입니다. 

6. 인간의 가치와 완성 기준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스스로 생각할 때 지극히 미미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여러분 하나를 찾기 위해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셨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고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를 귀히 여겨 사탄과의 마지막 판가리 싸움에서 하나님께 승리의 한 조건을 세워 드리기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주성을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어엿이 책임지고 살았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어서 무슨 말이든지, 무슨 명령이든지 달게 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실제 이러한 자신들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평범한 사회생활에 있어서 외적으로 보면 택한 하나님의 아들이나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이나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애달픈 사정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려던 뜻을 대신한 인격자, 당신의 성품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외적인 인격의 기준을 완전히 이 땅에서 이루겠다는 신념을 가진 참아들딸을 찾고 계십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런 심정을 품고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 자체가 기쁜 일이 생겼다고 마음대로 기뻐할 수 없으며 즐거운 일이 있다고 함부로 즐거워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슬픈 심정은 여러분의 가정을 넘어 사회를 거쳐 온 세계,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의 원한까지 인연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서러움의 심정을 여러분 개체에서 중단시켜서는 안 되겠고, 여러분 개인이나 가정에 국한되어서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천주의 모든 존재와 심정으로 공명할 수 있는 인격 기준을 갖추어야 하겠고, 전체적인 완성을 대표한 가치의 존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 땅에 있다면 하늘은 낙심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런 사람은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지고 하루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환경의 악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면,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만 몸은 이를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와 같이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아들딸로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몸이 다시 그 말씀을 받아들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는 그 말씀이 주위 환경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뜻이 나를 중심삼고 이렇게 이루어져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마음의 중심을 통하여 내 마음이 영원을 그리면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여러분이 지상에서 완성하기 전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의 증거는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여러분의 행동 그 자체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보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행동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예수님의 친구라 할 수 있는 내적 가치의 요소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다시 실체적으로 현실에 연결되어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으로 명령해 들어오는 것을 몸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즉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원하면 마음이 같이 움직여 줄 수 있는 관계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이 땅 위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제 하나님 앞에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기도하기 전에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의 핵심을 찾아 들어가 그 마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대신할 수 있는가를 자문자답해 보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조상으로부터 사탄이 생명을 뽑아가 버렸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러한 성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인간들은 이 영원불변의 마음, 인간 양심의 핵심적 계곡을 넘고 넘어 천륜의 도리를 세워 나오기 위해 몸부림쳐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을 다시 귀일시켰다 할진대는, 여러분이 그 마음의 명령을 통하여 몸을 굴복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7.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을 자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여기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마음에 울려오는 것이 몸을 자극하지만 그 몸이 순응치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몸을 자극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몸에 강하게 자극시킬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되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심정과 뜻을 올바로 상속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님을 대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예수를 그리워하지 않고 영광의 예수만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부활과 영광이 있기까지에는 남모르는 고난의 노정을 거치신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남모르는 고난의 노정에서 승리하여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야만, 역사적인 죄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음에 상대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 위에 전체적인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여러분들은 아버지 앞에 기도할 때에 어리석은 기도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통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몸을 통하여 나타내는 말이나 행동이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과 연결되었을 때, 그 말이나 행동은 하나님과 사탄, 또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존재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영원히 실존할 수 있는 본성의 힘이 있다면 참다운 인격을 형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것을 대하고 어느 장소에 처하든지 그러한 영원불변의 핵심적인 진리를 받아들여 그것을 중심으로 말한다 할진대는, 그 말씀은 하나님 대신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싸워야 할 원수는 어디 있는가? 여러분이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을 믿고, 보여주신 노정대로 걸어가면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게 될 때, 여러분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탄, 육을 통해 침범해 오는 사탄의 화살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제일 가까운 입장에 있었던 천사장이 해와를 타락케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사탄이 제일 가까운 모양으로서 나타나 여러분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모양으로서, 듣기에 좋은 것을 갖고 나타날 것입니다. 또 나타내는 말씀이 그럴듯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의 청각이 있어야 되고, 시각이 있어야 되고, 변치 않는 마음의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그러한 기준이 없다면, 여러분이 예기치 않는 순간에 쳐들어오는 사탄의 침범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그러한 불변의 핵심을 갖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일 수 있어 항상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생활을 한다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 죄 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복귀의 운명을 벗어나려니 속죄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가장 중요한, 즉 찬란히 빛나는 태양의 힘에 비교될 수 있는 마음의 핵심을 가졌다 할진대는, 여러분이 마음 몸으로 동하고 정하여 모든 만상을 구별할 수 있는 우주적인 지식, 지적인 척도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천성을 대신하고, 전체의 뜻을 대신하였던 말씀을 여러분이 인계받아 만인류에게 전해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들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안심하고 믿고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의 행동으로서만 나타나는 자를 상대하시며, 참된 말씀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거짓된 모양으로도 나타나는 하나님이 아니고, 오로지 한 뜻, 한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인간과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8. 선한 자를 상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여러분은 사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선으로, 사탄은 악으로 각각 자체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인간은 두 가지 행동을 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설 때에는 선으로 나타내게 되고, 사탄을 중심할 때는 악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취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의 실생활에서 사탄의 입장을 취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입체적으로나, 평면적으로나 사탄의 참소 조건에 걸릴 수 있는 생활을 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정성의 생활을 통하여 예리한 칼날과 같은 지혜로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지혜만을 추구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만 추구하다 보면 사탄과 같이 간교한 사람이 되기 쉽고, 실수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으면 된다고 하던 기독교가 어찌하여 이렇게 분열되었는가? 여러분이 믿으면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되는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믿어오던 말씀의 내용은 어디까지인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세워 놓은 진리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오늘날까지의 말씀만으로는 안 됩니다. 진리의 핵심인 하나님의 인격을 갖추어서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불변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생명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면, 하나님이 불변의 모습이면 여러분도 불변의 모습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유일의 존재라면 여러분도 유일의 존재가 될 것이며,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이상동산을 떠나지 않는다면 여러분도 그 이상동산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의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나, 저녁에 자나, 낮에 행동하나 사탄보다 더 간교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보다도, 사탄보다도 더 무섭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천주를 망친 장본인은 사탄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천주를 흥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천주를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하는 것이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늘의 표적이 될 수 있고, 사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로에 서 있는 여러분이 하늘 편에 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먼저 여러분은 하늘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늘의 모양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하늘의 말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 선악을 분별하는 표본의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은 여러분 개체를 찾기 위해 싸워야 되겠습니다. 동시에 환경을 복귀하기 위해 싸워야 하고 세계와 천주를 복귀하기 위해 싸워야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찾아오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 부활의 이상적 표준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 최고의 복음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또 모든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부활의 주께서 오시게 될 때, 여러분은 버림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변함 없이 주님을 모시고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칠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관계를 맺어 하늘을 대신해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는 신부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요 20:17)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넘어서 천륜의 이상과 뜻을 느껴야 그 느끼는 마음에 주님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말씀을 대신 전할 수 있으면 주님은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이 여러분을 향하여 오라고 손짓하며 팔을 벌리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9. 참아들딸이 나타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오늘날 우리가 이런 우주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잠들어 있는 민족과 세계를 깨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4차원적인 세계로 접어들고 있는 때입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은 입체성을 갖춘 천륜적인 인격자, 혹은 천주적인 인격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하늘의 내적 심정을 헤아리면서 생활 속에서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할진대 “하나님이여, 오지 마소서. 예수님이여, 오지 마소서.” 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안 따라올래야 안 따라올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을 지옥으로 보낸다 할지라도 그는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야만 이 땅 위에는 평화가 올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올라가기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 내려오시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 내려오시게 할 수 있는 인격자,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이 이 땅 위에 나타난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거동하여 그를 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고대해 온 참다운 평화의 아들딸, 참다운 사랑의 아들딸이 이 땅 위에 나타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 만상까지 그들과 더불어 기뻐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천주적인 사명의 책임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데, 그걸 깊이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 아버지’만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역경의 노정을 뚫고 승리한 다음에 “아버지시여!”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하늘이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 그런 심정의 기준을 세워 생활하게 되면 무엇을 보고자 하기 전에 보여질 것이며, 자신이 말하기 전에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까지 여러분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을 가로막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노정에서 자기들의 인습적인 조건, 역사상에 나타난 어떠한 조건으로 예수님을 가로막았던 것과 같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사건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역사 과정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도 아니 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과거의 인습을 과감히 타파하고 나설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결실을 향하여 새로운 이상동산을 찾아 나가는 여러분! 역사의 과정적인 현상을 여러분의 몸 마음에 연결시켜 하늘 뜻에 사무치고, 그리스도를 모시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새로운 이상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말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들을 받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현실에 들어가서도 불변의 모습으로 역사 과정에 나타났던 인습적인 조건을 타파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노정을 오늘날 여러분이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늘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어려운 환경이 부딪쳐 오더라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내는 사탄의 시험이 오더라도 그것을 이기고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주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자유 중에서도 최고의 자유, 영광 중에서도 최고의 영광, 기쁨 중에서도 최고의 기쁨의 자리에서 주님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나타났던 사탄의 모든 참소 조건을 벗어나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되면, 하늘은 여러분이 말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을 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기준을 여러분의 생활 과정에서 세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당신의 우주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체휼적인 인격의 가치를 지닌 한 사람, 예수님을 대신하고 역사를 대표한 인격의 가치를 지닌 한 사람을 먼저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고, 하늘땅을 찾아 주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이 사탄의 참소 조건에 사로잡힌다 하더라도 혹은 여러분 자체를 굴복시키려 하고 억천만 역경의 파도가 밀려 오더라도, 여러분은 불변의 모습으로서 하나님과 예수님 속에 있는 전체의 비밀을 인계받아 가지고 그것을 풀어 드리는 실천자가 되고 사탄의 참소 조건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사탄과 싸워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고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거쳐 나와 십자가에 돌아갈 날이 가까웠을 때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깨닫는 신부가 되고 아내의 입장까지 나아갈 수 있는 인격의 기준을 세워서 예수님이 남긴 뜻을 책임맡고, 예수님을 안식시켜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사탄을 굴복시켜 사탄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원한 승리의 영광을 홀로 받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6천년 동안 복귀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원한이 풀어질 것이요, 예수님이 찾기 원하던 참다운 신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는 참다운 아내를 찾아 이 땅 위에 평화의 동산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뜻을 따라 나선 여러분은 자신이 사탄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고 어떠한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의 노정이 있더라도, 어떠한 험한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 마음속에 작정한 그 뜻을 붙들고 천륜의 공인을 받는 그날까지 변함 없이 싸워 승리하는 자가 되어 예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예수님이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그러한 여러분을 사랑의 표준으로서 아버지 앞 영광의 자리에 세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0:21-37

<기 도> 남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박차고 상처를 받은 몸 마음으로 아버지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니, 이 시간 많은 은사를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아버님,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그 뜻과 소망과 이상을 위해 얼마나 합당한 생활을 했는지 저희 자신들을 반성해 보게 될 때, 저희 마음 가운데 아버님께 드릴 무엇이 있사옵니까? 저희 몸으로 아버지께 자랑할 무엇이 있사옵니까? 저희들의 생활로써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린 그 무엇이 있사옵니까?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아버지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니 이 마음에 분부하시옵고, 저희의 마음과 몸을 품어 주시옵소서.  

끝날에 맡겨주신 사명 앞에 저희들이 천륜의 뜻을 어기는 반역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은 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갖고 있으되 책임 다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만의 생각과 행동은 속될 수밖에 없사오나 이 시간 아버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받아주신다면 골고다의 산정을 넘어 승리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저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마음의 근심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아버님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길 바라옵나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 자신의 생활을 내놓지 못할 사정 속에 얽혀 있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이 시간 아버님께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승리한 생활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아버님께 남몰래 내놓으면서 오히려 자신을 책망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스스로 마음의 명령에 굴복할 수 있는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인 이들이 모두 하나의 마음을 닮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한 시간만이라도 당신을 모셔 놓고 마음 몸이 천적인 사랑에 잠기고 천적인 영광에 잠겨, 당신 앞에 저도 모르게 몸 마음 부복하여, “이 몸과 마음을 생축의 제물로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간절한 심정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 이 땅 위에 있는 만민이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는 날이옵니다. 또 복 주시겠다고 약속한 날이었사오니 아버님, 만민 위에 축복을 내려 주시옵고,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는 모든 교회에 큰 축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빛과 어두움을 분별하여야 할 최종의 판가리 싸움이 저희의 목전에 당도되고 있사오니 빛을 찾아 헤매고 있는 수많은 억조창생들 위에 긍휼의 손길을 허락해 주시옵고, 발걸음마다 또 바라보는 시선 앞에 당신의 능력의 손길을 펴시어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어두움 가운데 헤매며 탄

식과 원한에 사무쳐 살고 있는 뭇백성들이 아버님 앞에 부복할 수 있는 영광의 그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분부하여 세우시려는 뜻의 섭리가 어서 속히 모여드는 자녀들을 통해서 성취되는 영광을 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또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존엄하신 아버지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옵고, 능력의 손 길, 창조의 말씀 앞에 엎드렸사오니 저희들의 모든 타락의 성품이 변하여 천적인 생명의 요소에 응할 수 있는 선한 성품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잘못된 여러 가지 의식이나 주의 주장과 모든 관념을 제하여 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버지께 솔직히 나타내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사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이 뜻을 붙들고 싸움에 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그곳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실제로 아버님께서 같이해 주시는 것을 증거해 주시옵고, 머무는 곳곳마다 하늘의 놀라운 사실을 나타내 주시옵시며, 머무는 곳곳마다 진리의 생수로써 나타내 주시옵소서. 

어두운 사망의 그늘에 사로잡혔던 생명들이 환희의 해방을 받아 아버님 앞에 참생명을 받을 수 있는 은사를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아버님 앞에 맡기오니 뜻대로 맡아 주시옵고, 섭리하시고, 또 원하시는 대로 승리를 거두시옵소서. 한 생명이라도 사탄의 품에 넘겨지는 자녀들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오며 모든 것 맡기었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시간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다시 찾아야 할 하나님의 사랑

타락한 이 땅 위에 영원한 하나의 중심이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시는 사랑도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창조함을 받은 존재들과 하나님이 영원히 극치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세계를 이루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하고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러한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 만상과 인간 앞에 소망의 표준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 피조만물에게까지도 영원한 이상의 조건으로 찾아 세워 주어야 할 섭리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하나님의 이런 내적인 사랑을 충족시켜 주고 인간의 전체적인 이상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기준은 아직까지 완전히 세워 놓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으며, 또 앞으로 인간들에게 소망으로 남아진 천적인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고, 지음받은 모든 만물이 그 사랑을 영원한 이상의 사랑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수고하셔야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가 6천년이 경과한 오늘에 있어서, 어떤 한 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 할진대는 그 사랑의 은사는 그 사람 개체만을 위한 은사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만민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랑으로 세워야 할 은사인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기뻐할 때 만민이 함께 기뻐하고 화동할 수 있으며, 천상세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가 함께 화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사가 하늘땅이 기뻐하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될 때, 다시 말하면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사랑이 찾아진 다음에라야 하나님은 비로소 모든 원한과 서러움을 잊어버리시고 기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뼈저리게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죽든지 살든지 승리적인 운명의 조건이요, 불변의 사랑의 실체인 하나의 중심존재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한 중심존재를 맞이해야만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한 날, 한 때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 일을 다 이루지 못한다면 인간의 서러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인간의 서러움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 천상에서도 서러움이 계속될 것이요, 천상에 서러움이 남아 있는 이상 하나님의 서러움도 계속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땅을 대표하여 영원불변의 사랑의 실체로 세워지는 그 하나의 중심은 우리 인간과 만물이 다같이 만나야 할 소망의 뿌리인데, 그러한 소망의 뿌리로, 영원불변한 사랑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중심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4천년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이 땅에는 하늘의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 수고한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또한 말할 수 없는 수고와 고난과 역경의 신앙길을 통해서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사랑의 기준과 연결시키기 위해 수고한 수많은 성현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의 수고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하나님의 뜻 속에 살기를 원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중심인 예수 한 분이 오시기를 바라고 행한 수고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택하여 세우셨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국가를 대표하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늘의 즐거움이 땅 위에 미쳐지고, 땅의 소망이 하늘에 미쳐져서 하늘과 땅이 비로소 4천년의 원한을 풀고 같이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사랑을 중심한 예수의 사명과 소망

예수님은 먼저 당신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로 만민 앞에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4천년만에 비로소 모든 인류 앞에 나타내고, 4천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랑의 화신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그대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의 모임과 민족을 찾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이루려고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원한의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유대민족이 예수를 하나님을 대신한 메시아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4천년 동안 선조들이 피 흘리며 싸워 나온 소망의 실체로 알았던들 그들은 예수를 붙들고 “당신은 우리들의 소망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천상의 원한을 풀어 그 기쁨을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실 분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까지 연결시켜 주실 선조로소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영원히 헐어 버릴 수 있는 사랑의 승리적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사명 앞에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 외에는 나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의 애달픔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오신 예수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며, 만물세계에서부터 천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게 해 주려고 오신 사랑의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당시의 인간들이 알지 못했고,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을 유대 민족이 알아주지 못하고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서글펐던 그 사정을 알고 믿는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천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끝날에 예수께서 다시 오시게 될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유대 백성들의 불신을 책임지고,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 나타나야 할 사랑의 화동의 실체라는 것과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서 당신의 뜻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의 유대민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오신 예수님은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서러운 사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서러움은 그의 서러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믿겠다는 결심을 품고 나온 역사상 수많은 선지자들의 서러움이요, 뿐만 아니라 창조이상의 뜻을 실현하고자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서러움이었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영인들과 선조들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 기인간 불신으로 인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나님께 서러움을 더 보태드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대민족이 저지른 잘못이었고, 그 한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던 예수님의 외로운 사정은 예수님만의 사정이 아니요, 30여 평생의 서러운 심정을 품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정 역시 예수님만의 사정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사정은 우리의 사정이요, 오늘날 인류가 가야 할 사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고 서러워하신 것은 당신이 망하고 죽는 것 때문이 아니었고, 또 서러운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 때문에 서러워하신 것도 아닙니다. 천적인 애달픈 사랑의 심정을 품고 역사의 목적지까지 가야 할 자신의 책임을 염려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땅 위에서 맞아야 할 인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신이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가 되게 하겠느냐 하는 것을 염려했고, 만인류가 서러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을 지니게 된 사실을 놓고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서러움, 자신만을 위한 안타까움의 심정을 가진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께서 4천년 섭리역사를 담당해 나온 유대교 앞에 홀로 하늘의 사랑을 실현시키는 승리적인 사명을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은 6천년의 섭리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독교 앞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영원히 즐거워하고 화동할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러 오시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명을 하지 않으면 주께서 이 땅에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메시아를 보낼래야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을 거쳐 나오면서 천륜의 뜻을 배반한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다시 선조들의 죄악의 노정을 되풀이한다면 주님이 어떻게 그런 곳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우리들은 초림 예수께서도 우주적인 사랑의 중심, 우주의 주인으로서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늘의 사랑을 호흡시킬 수 있는 중심존재로 오셨지만 당시의 인간들이 그의 동역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이상을 바라보며 나가는 길에서 소망과 믿음이 다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해 가는 길은 안 나갈래야 안 나갈 수 없는 역사적인 운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로 인류를 이끌어 주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그 사명을 성신이 인계맡아 땅에서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한 성신의 이끌림을 받아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기 직전의 입장을 거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제 우주를 품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와 성신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는 실체적인 사랑의 신부, 예수님 당시에 찾으려 했던 실체적인 사랑의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신부의 이름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신부로서의 걸음을 걸어야 하고, 주님의 신부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며, 주님의 신부로서의 표준을 세워야 할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저 말로만 믿어서는 신부의 표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분이십니다.  

또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도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예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지니지 않는 이상, 어느 한 순간 예수님을 대할 수 있는 신부의 자리에 나갈지는 모르나 예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고, 하나님의 사랑의 맥박을 이어받아 화동할 수 있는 영원한 실체로는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하는 것은 시공의 지배를 받는 현실세계에서 사랑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역사성을 초월하고, 시간성을 초월한 천주적인 사랑의 세계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노래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세워 드리고 생명적인 사랑의 가치를 즐기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예수님이 골고다의 십자가의 길을 거쳐 나가시던 서러운 발걸음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던 그 음성이 멎게 될 것입니다. 만약 2천년 전에 그런 참다운 성도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소망의 존재로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역사를 거쳐 나온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이러한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전체의 목적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 갈보리산상에서 서러움을 느끼던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 또 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 그리고 하늘땅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앞에 나아가 “찾으시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옵니까.” 하며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재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참다운 성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한과 예수님과 성신의 원한이 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4.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한 예수님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는 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뒤따라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고 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되겠습니다. 

그 말씀에는 우주의 핵심적인 이치와 우주의 이상적인 이념과 우주의 생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랑의 이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던 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씀과 같이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 우주적인 대표자는 누구였느냐 하면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뜻을 품고 나오는 자기 자신을 인정시켜야 되겠기에 사랑하는 제자와 교법사들 앞에 그러한 자신의 입장을 실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대하여 자기의 지성을 다한 분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한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혈혈단신 천륜의 큰 사명을 붙들고 하늘 대하여 충성하던 예수님의 그 충성심, 마음을 다하던 그 마음, 뜻을 대신하던 그 뜻, 또 사랑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던 그 성품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성품은 무엇을 대하여 움직이는가? 천륜을 대하여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은 무엇을 대하여 움직이는가? 마음은 역사성을 지닌 인륜을 대하여 움직이는 것이며, 뜻은 생활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륜과 인륜에 합당한 생활을 하셨고, 그러한 생애노정을 거치셨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 가운데 처음으로 천륜적인 사랑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역사성을 띤 인륜의 노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생활권 내로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즉 천륜적인 사랑을 인륜적인 사랑에까지 끌어내리려고 있는 성품을 다했고, 뜻을 다했고, 힘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상징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인류의 성품을 대신한 분, 즉 천성의 중심인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품의 본바탕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고, 그 양심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입니다. 이것은 천적인 전체의 섭리를 총괄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품이라는 것은 양심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품의 본바탕은 양심의 뿌리이므로 성품의 본바탕이 양심보다 겉으로 드러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쉬지 않고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얼핏 보면 돌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태양을 중심삼고 돌고 있고, 또 달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성의 본바탕과 양심과는 이와 똑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한 말씀이요, 천륜적인 인격과 인륜적인 인격, 혹은 천주적인 인격과 생활적인 인격을 나타내는 천륜의 전체 섭리를 대신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천륜을 세우려고 수고의 노정을 걸어 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나타내신 분이었습니다.  

5. 예수님의 인격과 제물 되신 생활

예수님은 역사 가운데에서 어느 누구도 나타내지 못했던 하나님의 성품을 처음으로 나타내신 숫것의 첫 열매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인륜 도덕을 세우기 위하여 양심을 기준으로 하여 생활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늘이 원하는 최고의 양심의 표준을 세우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4천년만에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숫제물을 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 가운데 나타난 뜻은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뜻과 일치하여 이루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보게 될 때에 역사상 왔다 간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 하늘을 향해 도의 길을 가려고 하는 우리들이 그러한 사실을 헤아리어 전체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한 순간의 생활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성이 나타나 있으며, 그것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큰 것을 대신할 수 있는 불변의 결정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30여 생애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예수님은 전체의 생애를 바쳐서 무엇을 하고 가셨던가?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찾아 세워야 할 성품에 있어서나 마음에 있어서나 뜻에 있어서나 행함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숫것으로서 바쳐진 제물로 왔다 갔던 분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 예수님의 뜻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나선 우리들, 예수님의 성품을 찾아 나가는 우리 자신들은 뜻을 위해 며칠이나 뛰어 보았는가? 얼마나 아버지께 내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했는가? 여러분은 이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본심대로 살고 싶고, 하늘로부터 받은 천심(天心)의 성품을 자신의 성품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품과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이 뜻을 세워 천륜의 뜻을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움은 여기에 얽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뜻을 간직했다 할진대, 그 뜻은 마음을 위한 뜻이어야 될 것이며 성품을 위한 뜻이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면 천륜의 뜻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어야 되겠고, 성품이 있다고 한다면 그 성품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의 전체 성상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며 우주의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30여 평생 하나님을 중심삼은 정성의 생활에서 쉴 새가 없었던 예수님의 생활, 역사와 우주를 대표하여 숫제물의 실체로 살아가신 그 예수님의 생활을 본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30여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던가? 그는 우주적인 사랑의 표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본성의 인륜의 법도를 세워 천륜을 향하여 나가려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예수께서 하늘나라에서도 모든 만민을 대표하여 전체적인 선의 기준과 의의 기준을 세워 사탄과 대결하여 싸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땅에 와서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는 생활을 통하여 몸 마음이 선의 실체로 완성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상대의 입장에 설 수 있고, 예수님의 힘이 우리에게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은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아버지께 바쳐지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 숫제물로 바쳐져야 할 기독교 신자

예수님이 4천년 역사와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즐겨 받을 수 있는 산 제물로, 생축의 제물로, 숫것으로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께 숫것의 제물로 바쳐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생활과 생애에서 인륜과 천륜의 도리를 다해야 하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왔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아픔을 대신 느낄 수 있고 예수님이 느끼시던 천적인 사랑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준비한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야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드리는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비로소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이 땅에, 패역하고 배반하는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이상을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반한 선조들을 가진 우리는 하늘을 배반해 온 노정을 거슬러올라가서 “아버지의 뜻이 이런 것이 아니옵니까? 이 몸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를 대표하고 나설 수 있는 숫것의 제물, 어느 누가 만지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던 숫것의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성품을 다한다 하더라도 현재 여러분의 성품은 사탄 세상의 용납을 받던 성품이요, 마음을 다한다 하더라도 사탄과 속삭이던 마음이요, 뜻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반드시 사탄적인 성품과 마음을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인생관과 우주관도 바꾸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신앙관을 가지고는 사탄을 이길 수 없고, 사탄의 참소 조건에 걸려 있는 무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숫것의 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인 것이며,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성품과 마음과 뜻을 이 땅의 인간들에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성을 대표하고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참되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없는, 사탄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성품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품을 느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천적인 인격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느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내적 사정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격과 내적 사정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찾아야 할 놀라운 역사적인 우주의 초점, 넘어야 할 우주적인 관문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것으로 드려지기를 바라는 예수의 소망이 남아 있는데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소망을 어떻게 찾아 이룰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 소망을 찾으려면 여러분의 과거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하고, 그 부족함을 하나님께 통회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더라도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야 할 것이며, 30여 평생 흘렸던 예수님의 눈물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여러분은 예수께서 30여 평생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일편단심 그 한 뜻을 세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던 그 소망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었던 예수님의 비참한 심정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땅 위의 믿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는 생활을 하셨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나라에 가셔서까지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할 수 있고, 내적인 천성의 이념을 알 수 있고, 내적인 예수의 생활적인 모습을 알아 가지고 눈물을 흘려 하늘땅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물이 어리고 뼈 살이 녹아지는 애달픈 심정을 이어받고, 성품을 통하고 마음과 뜻을 통한 예수님의 그 모든 사랑과 인격을 나를 통하여 표현할 수 있게 될 때 거기에서부터 여러분들은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예수와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느끼는 여러분이라면 죽음의 구렁에서 나를 살려주신 예수님 앞에 감사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 몸에 채우고 온 땅과 하늘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정도의 서러움을 느끼셨던가? 여러분은 이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실 때 하나님이 느끼셨던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서러움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또 인간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오셨지만, 자신을 보내신 그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실 때 느끼시던 그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해야 될 인간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으며, 신랑인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위로해 드려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입장에 머물러 있다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섭리 앞에 나서서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헛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하신 것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댄 하늘 땅이 감동할 것입니다. 

7.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

그러므로 여러분은 역사를 넘어서 예수와 성신의 심정을 체휼함과 동시에 6천년 전 안타까우셨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예수께서 소망하던 사랑을 하늘땅에 이루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개인적인 가치관과 편벽된 인생관을 가지고 하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내가 되면 아버지를 부르지 않아도 아버지가 찾아오실 것이며, 주를 부르지 않아도 주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포옹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 마음 몸 전체가 그 사랑에 취하여 즐거워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아버지의 사랑과 심정을 통하고 나서야 강철이 지남철에 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랑을 중심한 인연에 의해 사랑의 실체로 이 땅의 만민 앞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이루시려던 천국이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셋만 있었다면 예수님 당시 인류의 완전부활의 역사는 출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붙들고, 4천년 동안 예수님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던 하나님을 대신하고, 예수와 성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셋이라도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갔던들 사탄은 자연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 제자를 불러 세우셨고, 어려운 때나 기쁠 때나 이들을 데리고 다니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신의 역사를 대신한 이런 천륜적인 종교를 인간 세상에 세우시기 위한 뜻이 있었던 것을 무지한 제자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지혜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갖추어 천적인 내용을 밝히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의 깊은 뜻을 몰랐던 사도들과 같은 입장에 서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택해 주신 교회와 뜻 앞에 일생을 바쳐 하늘의 면목을 세워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소망이었던 천국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으며, 땅 위에서 원수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 사탄으로부터도 경배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삼위신은 역사해 왔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수고의 노정을 걸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 땅 위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 대한 성품을 중심삼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게 하며, 복귀섭리를 위해 땅 위에 이들을 모두 동원시킬 수 있는 한 인격의 실체가 땅 위에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했던 예수님의 소망과 사랑을 이 땅에 실현시킬 수 있고, 아니 즐거울래야 아니 즐거울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가증스러운 입장에서 편벽 되게 살고 있는데도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불쌍한 자신들임을 이 시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우리가 어느 한 때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아버님께 숫것으로 드린 때가 있었나이까? 인류와 민족과 국가와 세계와 천주를 대표하여 그럴 때가 없었을진대, 스스로 이것을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는 알았사오니 우리의 모든 생활을 숫것으로 드려야 하겠사옵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힘을 숫것으로 드려야 되겠고, 우리의 몸 마음을 숫것으로 드려야 되겠으며, 우리의 성품을 숫것으로 드려야 되겠습니다.  

숫것 아니면 취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면서도 저희는 쓰다 남은 것을 하늘 앞에 바쳤고, 생활을 아무렇게나 해 왔사오니 부족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심정적인 면에서 모든 것을 숫것으로 아버지 앞에 드리겠사오니 축복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이 날부터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생사를 개의치 않고 하늘을 사모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이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하늘의 성품과 뜻을 본받는 저희들이 되어 사랑을 중심삼은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고, 사랑을 중심삼은 하늘생활을 영위하여 하늘을 모실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늘이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이 즐길 수 있으며, 천천만 성도들이 즐기고, 온 땅 위의 피조만물까지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될 성도, 또 사탄을 굴복시켜 아버지 앞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는 참된 승리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되지 말게 깨우쳐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회개하여 눈물을 흘리더라도 세계적으로 흘리게 해 주시고, 마음을 다하더라도 우주적으로, 뜻을 다하더라도 우주적으로, 성품을 다하더라도 천주적이 되고도 남음이 있게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또한 저희들, 숫것으로 드리는 생활을 하여 개인의 것을 모아 전체의 것으로서 종족과 민족과 국가, 인류를 대신하여 바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허락해 주시고, 새로운 몸 마음을 단장하여 아버님께 나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멘. 

갈라디아 6:1-10

<기 도> 사랑하시는 아버님!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외로운 복귀노정에 있어서, 타락으로 말미암은 운명의 짐을 도맡아 지고 갈 자 과연 누구이옵니까?

일찍이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아버지께서 한을 품으시게 되었고 인간들의 마음 마음에도 원한이 남아지게 되었으며, 유대민족의 불신의 죄악사로 인해 이 원한은 세계에까지 미쳐지게 되었음을 아옵니다. 이렇게 원한의 호소가 하늘땅에 사무쳐 있는 이때에 저희들이 나아갈 길을 아버님께서 열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저희의 생명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되겠사옵고, 그런 다음에는 저희들의 몸 마음이 당신의 안식처가 되어야 하겠사오며, 그리하여 저희가 바라는 아버지의 사랑이 저희의 몸 마음에 깃들어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긍휼의 아버님이시여, 사랑의 아버님이시여, 인자하신 아버님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임재하시어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나의 아버님이시여! 이 보잘것없는 무리들이 더럽혀지고 상처난 몸 마음을 그냥 그대로 지니고 면목 없이 아버지의 무릎 앞에 나왔사오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저희를 용납해 주시지 아니 하시고 저희의 나아갈 바의 표준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들같이 불쌍한 자가 없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무리들은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 위하여 하늘을 바라보면서 애달파 염려하는 아들딸이었사옵고, 생활 전체를 바쳐서라도 하늘이 바라시는 생애의 노정을 거쳐가기 위해 모진 강풍에 시달림을 받고 있는 어린 아들딸이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에게는 영원한 이상도 아버님이었고, 영원한 소망도 아버님이었사옵고, 영원한 생명도 아버님이었사오니, 오늘의 저희들이 처한 사정을 아시고 저희들이 소원하는 모든 뜻을 아시는 아버님, 친히 저희에게 나타나시어서 각 개인을 주관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먼저 아버님의 주관을 받을 수 있는 본성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를 갖춘 저희들이 되어 분부하시는 말씀과 역사(役事)하심 속에 몸 마음이 사로잡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영광 앞에 아니 굴복할래야 아니 굴복할 수 없는 아버님의 직접적인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전체의 몸 마음을 주관하시어 당신이 용납하실 수 없는 죄악의 뿌리를 저희들에게서 제거해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망의 물결이 저희를 휩쓸려고 하오니, 이 모든 것을 저지시켜 주시어 저희들을 섭리의 조직으로서, 당신이 운행하실 수 있는 발판으로 삼으시고, 우리 모두가 아버님 편이 되어 악을 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는 종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널리어 있는 아들딸들이 당신 앞에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긍휼하심과 사랑의 손길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속히 택한 자들을 불러 세우시어서, 6천년 동안 아버지 앞에 원수의 입장에 있는 악한 사탄과 싸워 승리하고 돌아올 수 있는 아버님의 참아들딸들이 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의 뜻을, 하나의 사랑을, 하나의 마음을 닮아 서로 양보하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 아버님 뜻하신 즐거운 동산을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 함께 하여 주셔서, 지난 일주일 동안 당신께서 허용하지 못할 그릇됨이 저희들에게 있다 하더라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또 저희들에게 사무친 사적인 원한이 있다면 제거하여 주시옵고, 자기를 중심삼은 어떠한 마음과 뜻과 관념과 주의주장(主義主張)이 남아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시여, 능력의 실체로서 나타나 오로지 아버님만이 주관 주장하셔서 전체의 마음을 다시 빚어 아버님의 형상을 닮은 저희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은 시간도 오직 당신께 맡기오니 정성과 뜻을 다하여 이 자리에 부복하는 시간으로서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시옵고, 이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선한 실체가 된 인간과 더불어 그것들을 보시고 즐길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선(善)의 결실체가 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소원과 만물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간들의 소원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억조창생(億兆蒼生)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선의 결실체가 나타나기를 바라나왔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이 선의 결실체가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1. 선의 실체를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심정을 더듬어 살펴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서러움이 서려있고 하나님의 염려가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오늘날의 중생들을 두고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직까지도 창조의 이상인 선의 실체(實體)를 찾아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런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거두어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선의 실체가 되어 역사 앞에 섭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무친 원한과 사무친 설움과 그 애달픔을 제거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선을 지향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성(方向性)을 갖추어 가지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선의 결실체인 참된 인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나타낼 수 있는 선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 이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섭리하신 뜻도, 예수님이 성신을 보내어 역사하시는 뜻도 모두 허사가 될 것이며, 선지선열들이 피어린 노정에서 사탄과 싸우면서 승리의 한 날을 고대해 나온 그 모든 수고도 모두 허사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끝날 만민을 대표하여 선(善)의 실체(實體)를 이룬 한 사람이 심판대 앞에 자신 있게 나서서, “하나님의 소원은 이러이러하게 선한 실체이상(實體理想)을 이루는 것임을 아오니, 그런 실체를 이룬 나 하나를 보시고서 아버님의 원한을 푸시옵고, 심판의 행사를 중지하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선의 실체를 이루어 놓지 못한다 할진대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영광을 누리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기쁨이 없는 이상 피조만물에게도 기쁨이 있을 리 만무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지 못하는 이상 어느 누구도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 속에서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사명이 오늘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섭리의 뜻 앞에, 선지선열들 앞에, 그리고 참다운 우주적 선의 결실체를 거두시는 아버지 앞에 내가 나서서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정을 체휼할 수 있는 내 한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 이 시간 나 자신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내적 표준에 알맞는 선의 결정체로 나타났느냐? 우리는 이것을 반문하여 스스로 반성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때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서러워하시는 하나님께서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후 심판이라는 조건을 세우시어 이상하신 동산에서 선의 결실을 수확하시려는 심판의 때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에는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세우신 후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대신 미와 선을 되돌려 받아 즐기는 날이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소망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소망의 씨를 키우기 위해 4천년 순교의 역사를 거친 이후에야 그 결실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려는 예수님

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셨던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원한과 땅의 원한을 제거할 수 있는 선의 실체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고, 하늘을 대신할 수 있고, 땅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고대하시던 이상적인 선의 실체로서 이 땅에 오셔서 생활을 통하여 본연의 선의 수확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갖고 오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불신으로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의 수확이 되어야 할 분이 희생의 제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 이루지 못한 원한의 심정을 품으시고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다시 지상에서 이루어지길 기나긴 세월 동안 기도하고 계시며,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의 대상으로서 구원해야 할 만민들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을 퇴치하고 소멸시키는 동시에 하나님 대신자로서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즐거워하실 수 있는 생애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돌아가심으로써 이러한 뜻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생전에 이루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실 적에 이러한 일들을 완수하셨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그분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당시 예수님을 중심한 생애노정을 통해서 이미 하나님께서 이상하시고 소원하셨던 그 목적, 즉 선의 수확물은 바쳐졌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기독교인들이 2천년 동안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수고하며 애원해야 하고 또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께서 섭리적인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 땅에서 걸으신 그 노정을 본받아 걸으면서, 예수님이 세우셨던 목표와 태어나신 목적 모두를 필연적으로 이뤄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의 결실체로서 거두어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계(靈界)에서만 살도록 지으신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실체를 갖추고 영과 육이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하도록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이 영으로 계신 하나님과 통하여 만물을 주관하게 하고 육체에 영인체가 통하여 영과 육이 화합할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 이래 선의 결실체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영적인 만왕의 왕으로만 계셔서는 안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천륜의 비밀을 밝히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예수님의 이런 간곡한 심정을 알아 가지고 그 뜻을 계승할 수 있는 합당한 인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의 한 때를 소망하고 나아가는 예수님에게는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사정이 그의 가슴을 억눌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을 위하여 오셨고 인간과 더불어 사정을 나누고 싶었던 예수가 인간에 대하여 사정을 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 땅의 인간과 사정을 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예수님의 내적 외적 심정을 헤아리는 자가 나타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2천년이란 긴 세월을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아담 타락 이후 4천년이란 역사가 경과한 후에 예수님이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이 땅에 우주적인 선의 실체로 오셔서 많은 대가(代價)를 치르셨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또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과 수고의 상징으로 계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남기신 모든 선의 결실을 우리가 영적으로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18:18)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원한이 있다면 그것은 나 한 자체의 개별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원한과 예수님의 원한과 성신의 원한이 사무쳐 있으며, 나아가서는 선지선열들의 원한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이 그러한 자신들임을 깨달아 선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해 오셨습니다. 그러한 이상이 이루어지는 때가 재림의 때이며, 지금이 그때인 것입니다.  

3. 선의 뿌리․사랑의 뿌리․생명의 뿌리

그러면 선의 결실체로서 수확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돌아가신 후 다시 오시기를 소망하시며 이 땅의 인간들에게 실천적인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가를 여러분이 알았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시련과 고통, 싸움의 노정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더도 이 길을 끝까지 헤쳐 나가겠다는 각오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며,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자기 하나만을 위하려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들이 자신을 중심삼고 자신만을 위하는 생활을 해 왔고, 또 그렇게 사회활동을 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서러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짧은 생활을 통해서는 자신을 중심삼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이로되 생애를 통하여서는 자신의 중심으로 삼을 수 있는 어떠한 기준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날 한날의 생활을 통하여서는 자신을 중심삼고 모든 관계가 직접적으로 잘 이뤄질 수 있지만, 생애를 걸어 놓고는 자신을 중심삼고 자신 있게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선한 수확물로 바쳐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애를 통해 예수님과 부자(父子)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한 날을 고대하고, 그 한 중심을 찾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며, 모든 어려움을 참고 넘어가는 터전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소망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염원해 온 선의 수확의 결실을 이 땅에서 거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만의 생애노정으로는 선의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선한 말이 있고 선한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선의 원천이요 선의 아버지 될 수 있는 분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니 선이니 생명이니 하고 저마다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가 자기의 생애를 표준으로 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선의 뿌리, 사랑의 뿌리, 생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내 마음을 통하고, 몸을 통하고, 생활을 통하고 전 생애를 통하여 자신 속에 들어와서 자신이 그 본체와 통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전에는 선의 실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주 만물, 즉 억조창생의 아버지로 오셨고, 이 세상 모든 생명의 뿌리가 되셨던 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참생명의 뿌리를 찾지 못한 인간들에게 선의 뿌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상하신 섭리역사가 막연하게 이어지는 인간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데 있어 선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소개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도 영과 육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내적이고 영적인 일이 있었을 것이며, 외적이고 육적인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생애에 있어서도 내적인 생애와 외적인 생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생애에서 안팎이 겸한 생활을 거쳐 생명의 중심좌표를 설정하셔서, 이 땅 위에서 뜻을 위한 실체의 노정을 걸으면서 소망하신 기준을 이루시려고 활동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시고자 그에 맞는 생활을 하셨으나, 그 목적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셨기 때문에 다시 오시기 위하여 2천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만일 당시에 그 목적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면 성신과 예수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에게서 계승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예수님이 소망하시고 세워 놓으셨던 실체적인 선의 이념을 이어받아서 그것이 자신의 몸 마음에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까지 통할 수 있는 선의 관념, 선의 종교, 선의 표준을 세워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선한 이념의 뿌리를 지니게 되면 아무리 잘라내어도 싹이 돋아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러한 선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생명의 뿌리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뜻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뿌리를 잃어버린 인간들의 생애에서는 시간성(時間性)과 공간성(空間性)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이것을 탈피하여 선과의 영원한 관계 속에서 살 수 있는 선의 뿌리를 찾아내게 된다면 우리는 시공세계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4. 같은 뿌리 같은 열매

선이란 것은 시작과 끝이 하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뿌리 되는 선의 본체와 지엽적(枝葉的)인 실체가 화합하게 될 때, 뿌리 되신 하나님이 영생(永生)하시면 그 가지요 잎인 우리도 영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선이면 우리도 영원한 선이 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즐거우시면 우리도 영원히 즐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지엽적인 실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선의 부모로 오셨던 예수님과 성신을 믿고 중생받아 그분들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내적이며 영적인 이념을 나타낼 수 있는 외적이고 실체적인 활동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선의 실체를 이루려면 재림하시는 주님과 일체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일체된 심정을 지니고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선의 뿌리로 믿고 모시어 그분과 상대적인 인연을 맺은 사람은 그분과 같은 선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한 표준을 찾지 못하는 자는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생명,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길을 찾아 나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찾아 주시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기신 길이었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2천년간 수많은 선지자들이 개척해 온 길입니다.  

지금 끝날이라고 너도 나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이 때를 당하여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선의 수확의 실체가 되는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의 뿌리 되신 예수님에 의해 거두어질 수 있는 하나의 결실체로서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성신, 그리고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여 선을 잃어버리게 되었는가는 옛날 아담 해와의 입장을 회고하여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이 땅에서 자기들이 인간의 조상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을 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선의 뿌리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후손으로 하여금 천륜의 법도를 벗어난 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책임을 망각하고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아담 해와는 타락에 이르게 되었고 모든 인간들도 타락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 각자가 짊어지게 된 짐, 온 피조만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한 이 짐을 풀어 가는 것이 복귀역사(復歸歷史)인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께서 천륜으로 세워주신 법도의 중심을 지켜 가는 데 있어서는 누구의 간섭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상관성(相關性)만을 갖고 누가 보든지 말든지 오직 지켜야 할 하늘의 법도를 지키고 맡겨진 책임을 수행해야 할 고귀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담 해와뿐만 아니라 천사장에게도 역시 지켜야 할 천륜의 법도와 가야 할 길과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타락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짊어지게 된 이 짐을 예수님이 오셔서 맡으시고 풀어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을 통하여 풀게 되어 있었던 이 짐을 성신과 협력하여 풀어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책임을 진 끝날의 성도라면 자신이 예수님과 통하고, 성신과 통하는 심정 속에 그분들과 같은 내용의 책임을 지니고,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 또는 이상하는 관념까지도 이 기준에서 좌우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축복하여 주신 선의 결실이 이뤄지기를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소망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 뜻을 이루려 하셨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셨고 다시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탄은 이를 방해하기 위한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의 도전을 받으며 가야 하는 것이 타락으로 인해 생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5. 타락으로 가중된 인간의 책임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나 개인의 책임은 나 개인이 짊어지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이 짊어질 책임이 있는 동시에, 반격해 오는 사탄을 물리쳐야 할 책임이 더해지게 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타락이 없었다면 인간은 자신이 맡은 책임만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었고 선의 결실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사탄과 맞서 싸워야 하는 책임까지 짊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자신이 짊어진 복귀의 짐, 이 짐을 짊어지고 나가기 위해서도 천신만고의 곤고를 겪어야 하는데, 여기에 자신을 노리는 원수 사탄이 있으니 이들까지도 격멸시켜야 하는 것이 인간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써 하나님의 소망이 끊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이루시려던 생애의 목적을 이룬 승리의 실체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너는 영원히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고 축복을 내리실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어떤 하나의 종교를 통해 그분을 만나 그분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그럴 수 있는 우주적인 힘을 길러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국가적인 복귀 과정, 세계적인 복귀 과정에서 역사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선의 실체인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또 복귀섭리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 선의 실체와 관계를 맺고 하늘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끝날을 맞이하여도 심판을 받아야 할 아무런 조건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못 다하신 일을 하고, 생애 중에 그분이 이상하셨던 뜻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인데, 그동안 자신이 이러한 일을 감당해 왔는가를 우리는 반문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는 영적인 예수님과 성신이 이 세상의 타락인간을 중생(重生)시켜 본연의 생명이 되게 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은 심판의 때를 무난히 거쳐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충분히 밀치고 나설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창조성을 일으킬 수 있는 생명의 길을 걷고 선의 실체로서의 수확물이 되지 않고서는, 주님이 체휼하셨던 괴로움보다 더한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알의 씨도 가을에 여물어 추운 동절기를 지나 봄을 맞아야 비로소 새싹을 틔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끝날에 생명의 본질을 세워 나가려는 인간들이 있으면, 한편으로는 생명의 본성과 선의 본성을 혼란시키려는 세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천지에 모진 폭풍이 휩쓰는 동절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을 당한 인간들에게도 생명의 피가 말라붙고, 성령의 역사가 동결되고, 사회의 활동이 모두 마비되는 세파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 세상을 거치고, 그것을 이겨낸 실적을 가지고, 천주적인 중심과 생명과 사랑과 선의 뿌리와 화합한 실체를 갖추지 않고서는, 온 세계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고 중심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갈래의 습관이 배어 있는 인간은 사리를 분별하는 시야가 혼돈 되고 거기에 사탄이 나타나 인간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공포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대비해서 우리들은 확고한 중심을 세워 그러한 요소들을 능히 제압하고 모든 원한을 풀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는 생애의 결실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라고 있는 상태에서 봄 절기나 여름 절기를 맞는 것이 아니라, 가을 절기, 혹은 겨울 절기를 맞이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들이 6천년 역사를 거쳐 우주적인 선의 수확기에 당도한 때입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 자체가 선의 씨가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천부성(天賦性),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인품을 갖추고, 또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새로운 계절을 맞아 영원불멸한 생명의 씨로서 뿌려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원망스러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 입장이 되어 탄식하고, 하늘을 대하여 염려하고, 하늘을 대하여 수심하는 모습이 되어 하나님께 “아버님, 저는 남이 원치 않는 궂은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 선을 다리 놓아 찾아가는 하나님

6천년 동안 성부․성자․성신과 대적하면서, 또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지켜보며 공격할 틈을 노리던 사탄이 오늘날에는 자기 편에 있는 무리들을 총동원하여 일시에 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를 책임지고 저지시킬 수 있는 자녀들이 이 땅에 나타났는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신의 서러움이 이 땅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창조이상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과연 머리를 들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래도 부족하고 저래도 부족함을 느끼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파송원으로서의 자격을 지니고, 또 4천년 역사를 책임지고 싸우시던 예수와 성신의 입장에서 억만 사탄을 자신 있게 물리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6천년 싸움의 역사를 종결시키려는 예수와 성신의 사탄 대한 싸움에 가담하여 불시에 승리의 판도를 넓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풍토를 조성하는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었던가? 그러한 사람이 없어 애달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오늘의 성도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남이 아니라 하는 길, 남이 가지 말라는 이 험한 길을 나선 식구 여러분에게 이런 길을 가게 하는 나의 심정을 깨달아 주길 바라며, 여러분들 만큼은 부디 부디 하나님이 뜻하시는 그곳까지 따라갈 수 있고,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뜻이 남아 있으면 그 뜻을 이뤄드리기 위하여 끝까지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친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서로 위로해 주고, 서로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개인적인 책임과 민족적인 책임, 그리고 세계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적으로 미급하여 여러분이 심각하고 간곡한 심정이 되었을 때에도, 형제들이 구원해 주게 되어 하나님의 손길이 미쳐지지 않고도 원하는 바가 이뤄지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그 느낌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는 때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참아오시며 감당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기 위해 일하다가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나를 도와주시오.” 하고 간청할 수 있는 동지들을 많이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붙잡아 주심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예수와 성신까지도 붙들어 줄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인간을 통하여 뜻을 이뤄야만 하기에 이 땅 위의 인류를 바라보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한 많은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눈물을 흘리며 통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심정을 가진 자가 하늘땅에 사무치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서러움에는 못 미칠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원한의 뿌리가 남아 있다는 것조차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을 때에는 참다운 형제 자매들을 의지해 나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친구, 좋은 선생, 혹은 좋은 목사와 만나기를 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좋은 것과 좋은 것을 다리 놓아, 우주적인 좋은 결실체와 인연을 맺고 좋지 않은 것과는 길을 달리하여, 자신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결심하고, 자신이 믿고, 자신이 생활하는 것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느끼게 하면 그러한 생활을 본 이상 그들도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제물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 즉 그러한 목자나 그런 지도자들을 만나 그에게 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인도하는 사람이 뜻에 어긋나게 되면 여러분이 그 사람을 대신하여 하늘에 충성을 다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제단을 책임지고 여러분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책임을 완수한 자리를 거쳐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자신이 짊어진 짐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성신에게는 서러움이 남아 있고 예수님과 하나님에게 서러움이 남아 있으니, 내가 이 서러움을 해원시켜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하늘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7.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길을 여는 사람

이제 우리의 수고가 지금까지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이 싸워오신 그 수고를 능가하여 선의 결실로 수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지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또 다시 슬픈 일을 겪으시게 됩니다.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여 비운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많은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아버님, 누가 이 일을 책임지겠습니까? 제가 먼저 아버님의 뜻을 알았사오니 저 혼자라도 이 일을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이 이 땅 위에서 실제로 흑암의 세력과 평면적인 싸움을 하고, 나아가 사탄 대하여 입체적인 싸움을 해 나온 것이 이제까지 성도들의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종교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또 남에게는 각각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내용들을 보면 한결같이 의와 선을 세울 수 있는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는 사탄의 세력을 막아낼 수 있고, 자신을 파괴하려는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깨지지 않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실체로 결실되어야 할 것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모든 범죄사(犯罪史)를 일대(一代)에 청산하여 새 역사의 기원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홀로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의 수호를 위하여 하나님께, “원수들의 죄를 나에게 짊어지워 주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그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뜻은 오늘날까지 내려와 전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한국 교회를 대표해서, “하나님, 저에게 이 세상 모든 죄를 지워 주시고 생명을 다 바쳐 원수 사탄과 싸울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많이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역사의 기준은 이 민족을 통해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깨달았다면 책임감을 갖고, 골고다의 산정에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걸으시던 예수님의 운명 길을 나도 걸어간다는 심정으로 생애의 걸음걸이를, 생활의 하나 하나를 채찍질하면서 예수님이 가시던 십자가의 길을 본받아 승리해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오늘 이 민족을 대신하여 이 길을 걸어 나가야 됩니다. 나아가서 세계를 대신하여 심판의 자리에까지라도 나설 수 있는 우리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남다른 자리에서 외로운 길을 간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비록 우리들이 욕을 먹고, 희생하게 되고, 또 내 한 자체가 죽는 자리에 가더라도 그러한 우리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이 민족도 살고 우리도 사는 길입니다. 또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했던 죄과를 하나님 앞에 다 탕감하고, 인간 앞에 다 탕감하고, 또 사탄 앞에서도 다 탕감해 놓은 연후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져야 할 짐이 있고, 이루어야 할 목적이 남아 있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어느 누가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오직 불변의 모습, ―다시 말하면 “하늘땅이 변할지라도 나만은 변할 수 없다! 하늘땅이 움직일지라도 나만은 움직일 수 없다! 또 하늘땅이 혼란 되어도 나만은 혼란 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현재 나에게 세워진 이 중심을 흔들어 놓을 어떠한 피조물도 없다.”―, 우리는 이러한 불변의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춘 산 제물(祭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산 제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갖췄을 때에, 우주적으로 당해야 하는 괴로움을 책임졌다는 조건이 되어 비로소 소망하던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첫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의 죄악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게 되면, 예수님은 비로소 만민 앞에 오시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온 인류가 이 땅에서 천륜을 세우는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8. 역사를 초월한 선의 결실체

우리는 이 민족으로 하여금 책임을 다하는 민족이 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세워 드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노정을 이제까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러한 길, 즉 복귀의 길을 걸어나가는 데 있어 우리의 생활 환경에 어두운 그늘이 남아 있다면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악의 본질, 사망의 요소가 잠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두운 그늘은 외식(外飾)하는 곳에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식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외식으로 인해서 스스로가 파멸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천리원칙 앞에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해서는 절대로 통과가 안 됩니다. 그럴듯한 것 가지고는 통과가 안 됩니다. 그런 입장은 도리어 스스로를 죄악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성신과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까지도 속이는 것이며, 나아가서 온 피조만물을 탄식케 하는 요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자리에 섰던 적이 있었다면 본심의 명령에 의해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느끼고, 이후로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 앞에, 성신 앞에, 그리고 만물 앞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여러분의 행동과 생활이 흠잡을 데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여러분은 외식을 피하여 스스로가 파멸되지 않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서로 기대려 하는 것도 악의 요소인데, 여러분은 의지하려는 마음을 없이하여 악의 요소가 여러분 속에 충만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바라보고 믿으며 따르기는 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횡적으로 들어오는 사탄의 침략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사탄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어떠한 도전에도 파멸되지 않을 만큼 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을 향한 중심을 자신 속에 굳건하게 세울 수 있도록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파멸되지 않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로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으니,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사명을 놓고 절대 나태해서는 안 됩니다. 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는 이상, 어떠한 어려움도 이기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며, 싸워야 할 운명이 남아 있는 이상,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예수께서 지향하셨던 선의 목적이 무엇이었으며, 이러이러하게 가야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러한 길을 가기 위해 여러분들은 마음과 몸, 그리고 예수와 성신의 바라심에 합당할 수 있도록 생활해야 됩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 오른쪽에는 예수님, 왼쪽에는 성신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버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뤄 드리기 위하여 사탄과 싸워 승리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이 땅의 인간들 앞에 예수님과 성신의 이상을 세우고, 그에게 새로운 당신의 일을 맡기고, 또 실현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와 성신을 하늘나라에서 쉬게 하고 이 땅 위에 세우시려는 뜻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증거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대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표적인 존재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예수와 성신이 그를 통해서 기뻐하시고, 또 그가 맡은 사명을 위하여 역사하실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이뤄야 할 뜻이 남아 있는 이상, 그 뜻은 반드시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 부터 세워지게 되어 있으니, 그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뜻이 전체에까지 거쳐 나갈 수 있는 뜻으로 결실되면 하나의 종교로 결실되고, 그런 종교를 중심삼고 선지선열들이 모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택함받은 중심인물을 따라 영원하고 우주적인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되면, 그것이 곧 이스라엘 선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원한이 서린 이 땅에서 사탄의 세력을 청산하여 예수님 성신과 더불어 소원이 이루어진 기쁨을 누리게 되고, 만민들에게도 하나님이 느끼시는 기쁨을 심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있는 원한까지도 해원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 속에서 전체가 넘어야 할 한 고비를 넘기기를 원하고, 또 원한이 풀어지기를 원하다가 그것들이 해결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 역사를 초월한 선의 실체로서 결실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끝날에 있게 될 형언하기 어려운 공포와 사무친 원한, 즉 하나님과 만물과 인류의 원한을 책임지고 청산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기 도> 이 어린것들을 부르시고 우주적인 선의 결실을 찾으시기 위해 수고하시는 아버지! 저희들 각자는 아버지의 손길로 인해 선의 결실로 수확되어야 할 우주적인 운명에 처해 있음에도 저희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상상조차 못했음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까지 저희들은 이 한 길을 걸어 나오면서 뻔뻔스럽기 한이 없고, 가증스럽기 한이 없고, 오만하고 외람되기 한이 없는 자신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오나, 이제 저희는 마음과 몸이 하나를 이룬 후, 양심에 거리낌없이 나설 수 있는 그 한 자체를 통하여서만 선의 결실이 이뤄지는 것이 천륜의 법도임을 알았사옵나이다. 아버지, 저희가 그러한 외길을 걸을 수 있도록 저희의 영혼을 일깨워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내용이 있으면 이것을 정비해 주셔서 일구월심(日久月深) 아버님을 위하려는 심정만이 저희의 가슴에 사무치게 하시옵고, 아버님의 심정이 저희의 생활에 어리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은 외로운 아들딸이옵고, 또 뭇사람이 해내야 할 한몫을 담당한 자들이옵나이다. 하오니 아버님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이 같이해 주심은 저희에게 영원한 선의 실체를 갖추게 하여서 진리의 주 되신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저희들을 당신 앞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임을 아옵나이다. 그러기 위해 아버님께서는 수고하시었고, 역사(役事)하시었사온데, 저희들은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살면서 많은 날들을 허비했습니다. 또 저희가 책임지려 했던 일이나, 이상했던 일이 모두 허황된 것이었고,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그런 저희들이지만 이제 당신의 일을 맡겨주시고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또 아버님의 역사로 저희들을 다시 일으켜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평면적인 생활을 하는 저희들에게 은혜를 내리시어서 입체성을 띠고 오시는 주님을 맞아 억만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인류 앞에 영원한 승리의 표준이 될 수 있는 아들딸들로 저희들을 세워 주시옵소서. 

맡겨주신 책임을 다하고 아버님 앞에 승리와 해방과 자유의 나라를 이룩하여 드리는 자가 되어 온 세상이 그 앞에 머리 숙일 수 있는 기쁨의 한 날을 성취할 자가 이 보잘것없는 모습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도는 모두가 이 민족과 더불어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고, 이 땅 위에 당신이 펴시는 전체적인 뜻을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밝혀 억만 사탄을 몰아내고 당신의 소원이 이뤄지기까지 책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인하여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자리잡게 하시고, 이 말씀이 몸 마음에 호소되어 사상과 관념을 자극하는 말씀이 되어서 신앙과 생활까지도 주관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영원한 생애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멘. 

고린도전서 15:35-44

<기 도> 나의 아버님! 태초에 아버님께서는 선의 뜻을 두시고 피조만물을 지으셨사옵고, 본질 본성의 표준으로서 불변의 모습으로 계셨사오나, 인간들이 그러한 아버님의 선의 상대가 되어 드리지 못한 연고로 아버님의 이상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였사옵고, 선한 양심의 기준으로부터 먼 거리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며, 또한 이것이 하늘과 피조만물의 탄식이었음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에게는 영원하신 선의 기준을 생명을 바쳐서라도 찾지 않으면 안 될 섭리적인 운명의 길이 남아 있사옵고, 이 길을 최후까지 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사오니, 크신 능력으로써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재촉하여 주시옵소서. 

몸을 통하여 침범해 오는 악의 요소가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길을 막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이 싸움에서 선을 지향하는 저희의 마음이 몸의 제재를 받아 패배하는 모습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로지 마음을 이끄는 선의 힘과 사랑의 힘에 이끌린 바 되어 아버님을 찾아 불변의 모습으로 화동할 수 있고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실존체로서 아버님의 형상을 닮아 영원히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게끔 붙들어 주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 죄악과 싸워 오면서 저희들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고, 죄악의 뿌리가 저희들의 뼈 살에 박혀 있사옵나이다. 이를 제거하여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나 저희들은 너무나 부족하오니, 생명의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능력의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창조의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 다시 한 번 능력의 손길을 뻗치시어서 사망의 그늘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고, 그 한 중심의 자극을 받아 승리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하늘의 직접적인 생명의 역사를 이 시간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내 자체로부터 부활의 권능을 일으키시옵고 저희들이 처한 환경에서 그 한 중심을 대신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미비한 자리에 있다고 해서 탄식하는 저희들 되지 않게 이끌어 주시고, 완전한 자리를 향해 달음질쳐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이 길을 막고 있는 원수 사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아버님의 참자녀의 자격을 갖출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억만 사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천군천사가 지녔던 무기를 저희들이 대신 지녀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소수의 무리가 아버지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직고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엎드렸사오니 저희들에게 합당치 못함이 있사올진대 스스로 뉘우칠 수 있는 회개의 마음을 주시옵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의 마음을 주시옵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올바르게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이 한 시간 아버님의 직접적인 역사가 저희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은 아버님 앞에 참예물을 드려야 할 시간이오니 아버지 앞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 할지라도 본연의 심정만은 온전히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에 물든 몸에서 악의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고, 솔직하게 자신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 아버지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에 합당한 몸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저녁에도 사방에 널려서 외로운 제단을 쌓고 있는 수많은 아들딸들 위에 아버님께서 약속하신 은사를 일률적으로 내려 주시옵소서. 끝날을 맞아 예고하셨던 당신의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감동의 역사와 감화의 역사, 권능의 역사가 당신의 자녀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참다운 제단을 찾기 위하여 외로운 가운데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는 아들딸들이 많이 있을 줄 아오니, 어서 속히 그들이 당신의 허락하신 뜻을 대할 수 있도록 당신이 명령하여 한 곳으로 모이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들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들 되게 이끌어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하늘의 제단에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님의 거룩하신 성령의 역사가 같이하여 주시옵고, 감동의 역사와 회개의 역사를 나타내 주심으로써 끝날에 이 민족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제단들 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남아진 시간도 아버지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길 빌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의 제목은 ‘너는 어떠한 부활을 성취하려는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먼 거리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전 아담 해와는 타락하게 되면 즐거움으로 대하던 하나님이 변하여 공포의 하나님이 되고, 이상의 하나님이 변하여 심판의 하나님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1. 이상의 하나님

그리고 타락의 후손인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공포의 하나님으로도 대할 수 있고, 이상의 하나님으로도 대할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역사를 거듭하여 나오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섭리에 상응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인간 앞에 이상의 하나님으로 서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요, 공포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이상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서러움을 우리가 대신 체휼하여 하나님과 같은 서러운 입장이 되어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상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없고, 또 창조이상의 주인공으로도 나타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상의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나아가는 노정에 있어서, 이 길을 막고 있는 사탄들과의 싸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가야 할 탕감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즉, 나 자신이 이상을 바라보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온 세계 인류를 심판의 공포에서 구해낼 수 있는 싸움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부활도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자연법칙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싸워서 공포를 극복하고 어둠의 세력을 분쇄한 터 위에서 부활의 역사(役事)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고난을 승리한 부활의 영(靈)만이 하나님의 이상을 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로서 진실의 본성을 갖추어 악과 싸워 승리한 부활체와 하나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의 사랑을 느끼면서 창조이상을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6천년 동안 내려오신 하나님의 섭리는 미완성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싸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노정에서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사탄의 세력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파괴시킬 수 있는 주인공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평안과 기쁨의 날을 맞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즉 그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사탄과의 싸움에서 피눈물을 흘린 흔적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슬펐던 가정생활을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생애를 바쳐서 어두움의 죄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을 전개하면서 하늘 앞에 간곡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걸으신 목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수고의 길을 걸으신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타락 이후 사탄의 품에서 잠자고 있는 인간들을 완전히 깨어나게 하여 하나님이 주관하는 자유로운 환경으로 인도하여 타락되지 아니한 참사람, 즉 본연의 사람으로 복귀시킴으로써 기쁨과 영광의 터를 이루어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분의 모든 감관(感官)을 통하여 느낀 느낌, 혹은 받은 충격과 충동은 그 한 날에 머무른 것이 아니었고, 한 때의 제한된 시간권 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바라본 시선과 움직인 걸음걸이가 당시의 한 시간권 내의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분의 목적과 이상만은 영원한 하나님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과 이상이었으며 그분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하나되기 위해 애달픈 심정을 품고 사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에 어린 마음을 체휼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분의 지식이나 느끼는 감각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느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상을 품고 생애노정에서 싸움의 길을 개척한 것은 영과 육을 아울러 부활시키어 소생․장성․완성의 복귀노정을 모두 거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을 대하여 홀로 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이상을 대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몸에 지니신 전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전체를 부활시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표준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바쳐 싸워 나갔으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을 영․육 아울러 부활시키려던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어 놓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때까지의 생애노정은 오늘 우리들의 생애노정에서 벌어질 모습을 보여준 것이며, 우주적인 역사 과정에서 어느 한 날 우리가 종말의 때를 거쳐야 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사탄 대하여 싸우시던 것처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라시던 이상과 사랑을 우리들 자신이 이어받지 않는다 할진대는 우리는 사탄을 물리칠 수 없을 것이요, 예수님을 통하여 즐기려던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영․육으로 부활한 이상의 실체를 갖추어 하나님의 몸이 되어 만민을 대하여 호령할 수 있는 우주적인 부활의 행사를 땅 위에서 수행해야 할 것이었으나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부활만을 이룬 주인공으로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영적인 부활의 목적을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해서 성신을 통하여 이 일을 성사시키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우주적인 부활의 기준을 넘기 위하여는 먼저 나와 영원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땅 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대행하는 성신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부활의 이상을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성신과 우리가 하나되어 예수께서 싸우시던 싸움을 대신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부활의 은사를 받았던 그 자리까지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2천년 전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그 길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오실 그분은 부활의 영광과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셔서 천천만 성도들로부터 숭배받는 자리에 나아가셔야 할 분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성신에게는 지상에서 예수님께서 사탄들과 싸우시던 그 일을 대신하여, 인간과 함께 제2차적으로 사탄과 싸워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서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기독성도들을 통하여 세계적인 기독교형을 이루어 나오는 역사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시던 것과 같이, 성도들과 성신이 하나되고 성신과 교회가 하나되어 사탄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의 책임

우리는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어 사탄에게 승리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을 뿐만 아니라, 살아 계신 몸으로 민족을 규합하고 세계를 규합하여 승리하셔야 했던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죄를 탕감하고 살아서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부활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탄식하여 자신에게 “너 아무개야, 너 자신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인류의 부활을 위하여 싸우신 예수님과 또, 2천년 동안 성실히 싸워 나오던 성도들의 세계적인 십자가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충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끝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너는 부활의 영광을 위해서 어떠한 생활을 했느냐?” 하고 묻게 되면 이에 대해 거리낌없이 대답해 드릴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상과 관계없는 자신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십자가의 어려운 길을 거치게 된다면 우리들 가운데는 십자가의 길이 두려워 자신의 몸을 살피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기말적인 역사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나 자신이 부활하는 데 얼마나 합당한 생활을 했는가를 냉철히 분석해 보아야 하고, 또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의 이상, 곧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이 6천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싸워 나오시던 그 십자가의 길을 늠름히 헤쳐갈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질 수 없다 할진대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 몸을 주관할 수 없고, 자신의 몸이 환경을 주관할 수 없고, 마음을 중심삼고 영원불변의 모습으로서 사탄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 영․육을 합하여 갖추어지지 않았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30여 평생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시고 돌아가신 후 성신을 보내셔서 2천년간 수고하신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끝날에 이 우주적인 공포의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하늘 앞에 다음과 같은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내적인 부활을 이루시려던 예수님의 마음의 바탕을 보게 될 때, 그분은 이 땅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만을 이루기 위해 30여 평생의 노정을 거쳐 나왔으나 운명하시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생애를 후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을 서러워하거나 자신에 대해서 원망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돌아가시면서도 하나님 앞에 황공한 마음을 지니셨던 분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생을 포기하고 하늘의 뜻을 위하여 돌아가시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당당코 승리적인 죽음 길을 가겠다.’ 하는 태도로 자신을 잊어버리는 그런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대신 져 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성상을 대신한 성신의 협조를 받아 끝날의 심판의 문을 통과하려 할 때에 알아야 할 중대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승리하시던 그 노정을 대신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통하여 하나님 뜻 앞에 서서 사탄과 싸우면서 어느 한 날 하늘 앞에 자신을 주장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기쁜 일이 있다 해도 홀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일이 있어도 자기만의 승리라고 느끼거나 자기만이 그 일을 책임지고 했다는 관념을 갖지 않고 살았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전체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땅 위에 남아질 것을 염려하여 죽는 순간까지 오직 아버지 뜻을 성취시키겠다는 심정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들까지도 구원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4. 영광의 부활, 부끄러움의 부활, 사망의 부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부활의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는 즐거워할 줄 몰랐던 예수님과 같은 심정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행사하신 수많은 이적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수고의 길을 거쳐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주 앞에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되겠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길을 마다 않고 걸으심으로써 전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던 것과 같이 있는 충성을 다하고 있는 성심을 다했으면서도 ‘나는 부족하여 감히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천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라고 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이 땅에 남아진 죄를 담당하여 지치고 쓰러지면서도 싸우고, 눈물을 흘리고 자기 있는 지성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을 다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 자신은 감히 당신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모습입니다.’라고 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는 황공한 마음과 몸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는 초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처분만을 바라며 하늘의 영광을 원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슬픈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돌이켜 주시고, 부족함이 있어도 부족다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늘 앞에 충성을 다 바치고 죽음에까지 나가는 산 제물이 되어 하늘 앞에 당당코 나설 수 있는 책임을 다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자인하면서 염려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머리 숙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염려하는 그 마음 위에 영광을 내려줄 것이요, 슬픈 그 마음에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자라야 영광의 부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는 하늘을 위해 있는 정성을 다했고 하늘을 위해 갈 길을 다 갔으니 이만하면 아버지의 신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자신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원래 인간이 하늘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가면 갈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비함과 불완전을 느끼는 데서만이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한 때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하늘을 위해 힘써 일함으로써 하늘 앞에 인정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 앞에 나타나 ‘나는 예수가 가시던 길을 이러이러하게 따라 나와 아버지 앞에 왔소이다.’라고 하면서 얼굴을 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형의 사람이 걸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과 다르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서는 십자가의 문을 완전히 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 앞에도 설 수 없고, 사람 앞에도 설 수 없으며, 또 저나라의 천천만 성도들과 천군천사들 앞에도 설 수 없는 하늘의 원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의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사후에 부활을 받을 것입니다. 

첫 번째 형에 해당하는 사람은 영광의 부활을 받을 것이요, 둘째 번에 해당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의 부활을 받을 것이요, 셋째 번에 해당하는 사람은 사망의 부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이러한 세 가지 형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부활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청산해야 할 조건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여러분은 그것을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부족하여 감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는 마음,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부족함을 느끼는 심정에 사무쳐서 머리를 숙이고 희생의 노정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창조 만물을 유업으로 받아 영생복락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맨 첫 번째 형의 사람이 주 앞에 서게 될 때에, 그 마음이 수심에 잠긴 것 같으나 결국은 영광과 소망에 찬 마음이 될 것이요, 소망과 영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대하는 두 번째 형의 사람은 결국은 수심에 잠기게 될 것이요, 또 세 번째 형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여 슬퍼할 수도 없고 하늘의 인연을 소망할 수도 없는 영원히 하늘과 관계없는 사망의 부활을 받게 될 것입니다. 

5.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신앙자의 태도

그러면 자신이 어떠한 부활의 형에 속해 있는가를 안 연후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쁨의 얼굴 혹은 탄식의 얼굴 등에서 어떠한 모습을 취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첫 번째 형의 모습이 되어 2천년 동안 소망하고 그려오던 주님을 모시게 되더라도 황공스러운 마음을 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혹은 두 번째 형이 되어 주를 만난 후 서러워진 입장에 서서 주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 번째 형의 사람이 되어 꿈에서도 예수님과 하나님을 도저히 흠모할 수 없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형의 사람은 소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소망은 자신에게서 시작하여 자신에게서 끝날 것이며, 그가 아무리 그 이상의 부활을 바라 지옥에서 고생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있는 우리들, 즉 부활의 뜻을 성취시켜야 하는 우리들은 저나라에 가서 주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황공한 마음에 사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마음을 품고 또 주님의 긍휼과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는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원수들과 싸워 승리하여야 합니다. 만일 이 일을 땅 위에서 완결시키지 못하게 되면 저나라에 가서라도 그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제물이 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희생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며 죽음의 자리에서도 자신을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하늘 앞에 아무런 자랑도 하지 않는 본성의 사람이 되어야 영원하신 하늘의 부활의 이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버지에게서 은사를 받게 될 때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을 세우려 하다가 혹시 하늘 앞에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돌려드리지나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바 은사가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크게 느끼는 사람, 또 자신이 받은 은사가 귀중하다고 느낄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욱 아버지 앞에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사탄도 그를 시험할래야 시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영광을 위해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몸 마음으로 하늘의 이상을 충만하게 체휼하여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을 찾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부활의 이상을 완결하여 하나님의 이상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활의 역사, 재창조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가 재림하실 때에 어느 누구도 갈 수 없는 영광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깨달아 이 시간부터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에 참된 빛을 증거하기 위하여 제물된 입장에 서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해 주기 바랍니다.

로마서 12:1-12

<기 도> 아버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섭리의 뜻이 오늘날 저희의 전 생명을 저울질하는 때임을 망각하지 않는 저희들 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버님! 지금 이때는 저희의 몸 마음이 온전히 아버님을 닮지 않으면 안될 때인 것을 아오니, 저희가 영원한 아버님의 품에 안기어 아버님이 뜻 하나 이루시기 위해 억천만 인류를 사랑하셨던 그 심정을 상속받게 해 주시고, 또 저희들이 그런 아버님의 심정을 지니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깨닫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은 아버님이 수고하시고 피 흘리신 땅이요, 또 인간이 어려운 십자가의 길, 세계적인 골고다의 노정을 가던 땅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오늘날 저희가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30여 평생 수고하셨던 그 발자취를 저희가 따라가고 있음을 인정할진대, 저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어떠한 환경이며, 저희가 무엇을 바라고 소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남은 십자가의 싸움이 저희의 목전에 당도되고 있는 이 때, 저희 개체로서 이 모든 고통과 원한을 밀어낼 수 있는 스스로 자각된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오니, 하늘이여, 이 시간 저희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이끌어 주옵시고, 스스로 미급함을 느끼게 인도하여 주시옵시며, 스스로 불완전함을 탄식하며 아버지 앞에서 서러움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부디 이 민족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의 공포를 제거하여 주옵시고, 이 민족의 죄악을 제거하여 주옵시며, 이 민족의 어두움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빛의 동산으로 이끌 수 있는 아버지의 능력의 손길이 속히 삼천만 민중 가운데 나타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잠들어 있는 전세계 인류를 깨우쳐 주시옵고, 역사 과정을 통하여 섭리역사를 도와드리던 천천만 성도의 원한을 저희들을 통하여 풀고도 남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아무런 주장도 세우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로지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아버지 무릎 앞에 엎드려 아버지의 긍휼하심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그러한 은사를 흠모하는 심정으로 아버지께 경배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음으로써 스스로 아무런 사탄의 참소 조건도 남기지 않게 이끌어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 아버지께서 복 주시는 축복의 날인 것을 아오니,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제단을 맡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도 일률적인 은사를 허락해 주셔서, 끝날에 처한 이때 그들 모두가 전체의 뜻을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길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의 제목은 ‘제물 된 세계를 넘어서’입니다. 

평화의 마음으로 일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본연의 인간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 마음속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또한 자유를 중심삼고 영원한 이상 속에서 살아야 할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하늘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와 이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모든 인간들은 어느 한 때를 계기로 해서 완전한 자유와 이상과 평화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자유와 이상과 평화의 세계는 인간 본연의 소망인 이상, 이것은 어차피 여러분 자체가 몸 마음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고 가정에서도 그것을 이루어야 할 것이요, 사회와 국가, 세계에서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합하여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자유의 노래를 부르고, 이상적인 사랑을 즐길 수 있는 그 한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이루지 못한다면 인간은 참다운 즐거움과 참다운 해방과 참다운 영광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이렇게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세계의 인류는 이처럼 대립과 투쟁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고, 고통의 고개, 눈물의 골고다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되었으며, 여러분도 오늘날과 같은 한 맺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소망하는 세계와 현실은 그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마음은 그 세계를 지향하나 몸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고통의 생활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법도를 세워서 그 법도에 의해 인간으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고 헤아릴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이 소망하는 이상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지, 실제로 생활권에서 인간의 이상적인 행복의 세계를 실현시킬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노정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는 가야 할 길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평화와 자유와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제물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한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마음에 영원한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고,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고, 영원한 하늘의 평화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중심이 나타나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중심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늘땅에는 결코 영원한 평화와 자유와 이상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한 맺힌 6천년의 역사 과정은 어떻게 이어져 나오는가?

하나님과 사탄과 인간을 중심삼고 어떤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이니, 이것이 곧 제물의 고개인 것입니다. 6천년의 섭리역사를 회고해 볼 때,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통하여 제물의 고개를 넘었고,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통해서 제물의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러면 다가올 성약시대에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제물의 고개를 넘어가게 되는가? 성도들, 곧 여러분 자체들을 통해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체적인 섭리역사가 제물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게 되면, 구약시대는 만물을 통해서 제물의 고개를 넘어야 했고,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삼고 제물의 고개를 넘어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약시대인 지금은 신랑 신부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을 조건으로 하여 제물의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제물의 고개를 넘기 전에는 이 땅 위에 참다운 평화와 자유와 이상의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1. 본향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

그러면 6천년을 거쳐온 인류역사는 어떤 것인가? 형(型)은 크고 범위는 넓지만 이 6천년의 섭리역사는 결국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이상과 완전한 평화를 즐길 수 있는 참다운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하여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자유와 이상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본연의 세계가 꺾여져 나갔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이지만 본연의 세계를 지향하는 본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세계를 향하여 나왔으며 우리의 그 소망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이상으로서 남아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수고의 섭리를 통해서 찾아 세우시고자 하는 그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락성과 관계가 없는 본연의 참다운 아담과 해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던 하나님의 아들딸인 아담 해와는 타락으로 인해 참부모가 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본연의 역사와는 하등의 관계도 맺지 못한 채 타락인간의 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타락한 아담과 해와로 인해 타락의 종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혈통적인 인연을 타파하고 본성의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만일 그 한 날이 하늘땅에 찾아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여 하늘땅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중심존재, 그리고 그 중심존재를 중심삼고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이 나타나 하늘과 땅이 합하여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이 땅 위에는 참다운 자유와 평화와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우주적인 운명의 탕감복귀의 역사 과정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원한다면, 여러분은 6천년 섭리역사가 수고의 역사로서 연하여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또한 자신도 그런 수고의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체의 섭리역사가 제물의 고개를 넘기 위한 역사 과정이라 할진대 여러분도 만물을 조건으로 제물을 드렸던 구약시대와 같이 만물을 조건으로 세워 제물 드리는 생활적인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제물로 뿌렸던 피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 한 자체를 조건물로 걸어놓고 그 제물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으로 찾아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평화와 자유와 이상으로 찾아오실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물의 고개를 걸어놓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셨을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의 어떠한 백성들이나 악한 사람들보다도 더 낮은 입장에서 생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만물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당신을 믿고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로 넘어오기를 바라셨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섭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를 불신함으로써 그들은 섭리적인 운명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며 이런 원한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미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소망을 품고 넘어야 할 제물의 고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먼저 만물을 대신한 물질적인 것을 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들딸까지 칠 수 있어야 하며, 최후에는 내 몸까지도 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제물의 고개입니다.  

우리가 이 제물의 고개를 넘을 때 비로소 하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것을 오늘날 대부분의 믿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러한 길에 세우실 때에 여러분은 자신 있게 그 길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6천년 역사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고 우주적인 복귀역사이며, 개인의 복귀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우주의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는 중심에 불변의 모습을 갖추고 하늘을 대신하여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의 고개를 넘어선 자가 될 수 없고, 섭리의 법도에 순응하는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랑하던 땅 갈데아 우르, 그때까지 정들었던 모든 생활 환경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을 중심한 물질적인 고통을 당하게 된 던 그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몸을 기왓장으로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욥이었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명상할 수 있었고, 그 괴로움을 넘어 하나님 편에서 병자의 심정을 체휼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이었기 때문에 그는 잃어버린 만물과 자녀를 다시 얻을 수 있었고, 하늘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복음 전파의 길을 나설 때에 먼저 자신의 모든 환경을 버리셨습니다. 즉 30여 평생 살아왔던 자기의 가정적인 생활 환경을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외아들의 입장에 있었던 자신, 인류의 영원한 참부모의 입장에 설 수 있었던 자신을 예수님은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자신의 가정과 자신의 종족과 자신의 민족을 버리고 자신의 소망까지도 버려야 하는 십자가의 길에서도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하나님 앞에 세우신 뜻, 하나님과 약속하신 섭리를 이뤄드릴 수 있는 길만을 바라보면서 망하는 자의 발걸음이었지만 소망을 갖고 골고다의 길을 넘으셨던 것입니다.  

3. 원칙을 세워 섭리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나갔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자신의 사랑하는 부모와 친척, 그리고 민족과 국가를 다 버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대에는 그 모든 것을 다시 찾는 한 날이 있게 되는 것이니, 그날이 바로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재림의 날을 계기로 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회복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 과정의 수많은 선지자들과 예수님께서 이러한 길을 가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우리는 역사를 책임진 자들로서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상징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끝날인 오늘날 하늘을 찾아가는 마당에 있어서 민족과 교회와 온 땅과 세계를 위해 희생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과 같이, 또는 아브라함이나 욥과 같이 전역사를 책임지고 탕감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여러분은 제물의 고개를 넘은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여러분에게 어떠한 형태의 탕감역사가 있는 것인가? 먼저 물질적인 탕감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심령의 은혜를 받으면 그만큼 물질적인 탕감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대하여 설 수 있는 때와 뜻을 대하여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으려면, 여러분은 자신이 땅 위에서 소망하고 있었던 물질적인 조건을 다 칠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안 여러분들이 만일 이러한 입장을 취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통과한 입장에서 성약시대의 단계로 접어들 수 없습니다. 앞으로 물질을 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치는 때가 올 것이고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또는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이러한 물질적인 궁핍을 당할 때가 이 땅 위에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한 때 가장 심하게 궁핍을 당하는 민족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 민족의 서러움은 그 민족 때문에 당하는 서러움이 아니고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당하는 서러움이요, 또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 고통은 그 민족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고통을 대신하여 당하는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극도의 고통과 서러움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세상을 살리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사람인 것을 헤아리게 된다면 그 민족은 제물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제물이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물질만 붙들고 그것을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긴다면 도저히 제물의 고개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끝날에 물질을 칠 때가 있을 것인데, 그때 하늘을 원망하는 민족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하늘을 원망하는 개인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당하게 되고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여러분은 물질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물질을 초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갈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

이제까지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을 믿고 의지해 나왔지만 이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복귀 과정에 있어서 재림 때까지 여러분들은 십자가의 도리를 중심으로 신앙했지만 앞으로 세계적으로 넘어가야 할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믿고 의지해 나오던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때에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자신을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끝날에 나타나는 심판의 고개를 결코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여러분에게는 물질이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자녀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안타까운 서러운 심정이 맺혀 있고, 오늘 우리 성도들의 서러움이 맺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의 성도들이 총체적으로 넘어야 할 고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나 자신까지도 거부하고 넘어서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를 눈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은 자신을 치고 자신을 부정하는 입장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망과 기쁨과 신앙과 심정 등 지금까지 소유해 오던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물로 바치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시대는 만물을 조건으로 제물의 고개를 넘어섰고, 신약시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제물의 고개를 넘었지만 성약시대는 개인이 제물의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여러분 자신이 6천년 제물의 역사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아버지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과, 사랑하는 아들딸과 아내와 여러분 자신까지도 합하여 하나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거쳐야만 여러분은 역사적인 제물의 고개를 넘을 수 있고,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들은 아니라고 부정하고 반대하는 이 길일지라도 이 길을 나선 여러분은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 길을 가면서 자신의 물질에 대한 소유욕과 자녀에 대한 소망과 남편 또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애착심까지 빼앗기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그런 애착심을 붙들고 세계를 넘어서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과 자녀의 사랑, 그리고 자신을 중심한 소망 등의 인정적(人情的)인 모든 조건을 끊어버릴 때에야 여러분은 세계적인 제물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길을 가야 되느냐 하면, 이때까지의 복귀역사는 제물의 역사요, 또 제물의 역사는 쪼개는 역사이며, 쪼개는 역사는 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최후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그때가 되면 여러분이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여러분을 치실 것이고, 여러분을 인도하던 성신이 여러분을 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소망으로서 믿고 나오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실 것이며, 세상도 여러분을 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이 치고, 땅이 치는 역사가 있더라도 끝까지 남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승리하는 자만이 땅 위에서 만왕의 왕의 이상을 대신할 수 있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주관주(主菅主)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민족은 서럽고 불쌍한 입장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보더라도 이 때는 개인이 맞는 때요,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맞는 때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자신이 맞는다고 탄식하거나 하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 민족이 맞는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세계가 맞는 때가 온다 하더라도 하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여러분이 가져야 할 심정은 망하거나 죽게 되더라도 하늘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은 개인의 십자가를 넘어야 되겠고, 민족의 십자가, 국가의 십자가, 세계의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은 후에야 여러분은 영광으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인간들이 소망하는 재림이상이 실현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제물의 고개를 넘고 난 이후라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이상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고개를 완전히 넘지 못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와 평화와 이상을 주게 되면 사탄이 참소하게 되고, 그 사랑과 자유와 평화와 이상이 파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계적인 제물의 고개를 넘지 못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와 평화와 이상을 허락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5. 레위 지파의 사명을 하는 세계적인 제사장

그러므로 이제 뜻을 위하여 나선 여러분은 이러한 우주적인 제물의 고개를 넘었는가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시대에 ‘십일조’가 시작되었는데 레위 족속을 중심으로 12지파로 형성된 유대민족도 십일조를 바쳤고,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인들도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 가운데 1은 전체 가운데에서 성별된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한국 민족에 있어서, 그리고 한국 교계에 있어서 이런 성별된 위치에 서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 지파였던 레위 족속과 같은 자리에서 하늘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세계와 하늘나라를 찾기 원한다면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버리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개가 여러분 앞에 남아 있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도 이 고개를 넘겨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을 안겨주었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러한 십자가의 고개가 심판의 조건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고개를 무난히 넘어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가 모이고 둘이 모여, 하나의 제단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레위 족속이 12지파로 형성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나왔고, 예수 이후에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레위 지파와 같은 사명을 하는 기독교 교단이 형성되어 세계적인 제단으로 확대돼 나왔듯이 오늘날에도 레위 지파와 같은 사명을 하는 세계적인 제사장의 종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교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이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제물의 고개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이 정성을 다해 하늘 앞에 제물을 드림으로써 제물의 고개를 넘을 수 있었던 것처럼 끝날에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택한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면 정성을 다해 제물을 바쳐 제물의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런 연후에야 제사장의 사명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자유와 평화와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각별히 정신차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물질을 칠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변치 말아야 되고, 주위 환경을 모두 끊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원칙을 안다면 하나님이 치시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자신의 물질을 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끊으시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자녀와 부부의 사랑을 끊을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여러분 자신까지 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여러분은 6천년 제물의 고개를 한꺼번에 넘어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제물의 고개를 넘은 사람들은 이 땅 위에 많이 나오기를 하나님은 간절한 심정으로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명심하고, 오늘 여러분 자체가 어떠한 입장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물질을 성별시켜 하늘 앞에 드리고 여러분 자신까지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제물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땅 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지혜롭게 아버지가 허락하시는 이상동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여 각자 맡은 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기 도> 먼저 부름받은 저희들,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위한 결정체와 같은 요소로서 우주적인 전체의 섭리의 뜻 앞에 세워졌다 할진대, 전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공적인 섭리의 길에 들어선 저희들이 제물의 고개를 넘지 못하여 당신이 저희 주위에 있는 것을 끊으셨는데도 저희들은 스스로 낙심하고 스스로 탄식하고 스스로 원망했었나이다.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이 물질적인 고개와 인륜적인 고개를 넘어갈 때, 당신이 이를 치더라도 저희가 이것을 감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거두실지라도 저희의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그것을 감사 드려야 하겠고, 저희 주위에 있는 사랑을 치시더라도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감사하며 살아야겠고, 저희 몸을 치실지라도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나이다. 이러한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옛날 선지자들과 역대의 선조들이 걸어가신 걸음을 저희도 본받아 갈 수 있게 되길 원하오니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브라함도 이러했고, 욥도 이러했으며, 예수님도 이런 길을 가셨음을 아옵나이다. 오늘날 저희들도 이런 길을 거쳐야 할 것을 아오니, 아버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원한의 고개를 넘기 위한 준비를 갖출 수 있게 해주시고, 당신이 책망하고 치시더라도 홀로 감사하며 넘어설 수 있는 선의 제단을 쌓아서 영광의 주를 높여드리는 하늘의 충복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날 이 제단을 맡고 있는 저희들 낙심 말게 인도해 주시고, 성소와 지성소에 가로막혀 있는 벽을 우주적으로 개방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 되게 해주시며, 그런 길에서 맞고 치임을 당하더라도 능히 그 고난을 넘어서서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용장들이 될 수 있게 저희들을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원수들이 가로막는 제물의 고개까지 넘고 넘어 가정을 이끌고 가정의 고개를 넘고, 민족을 이끌고 민족의 고개를 넘고, 나아가 세계를 이끌고 세계의 고개를 넘어 하늘까지 끌고 넘어가 영원히 아버님께 참다운 생명과 참다운 평화와 참다운 기쁨과 참다운 영광을 허락해 달라고 자신 있게 호소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16:13-20

<기 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청중들에게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이 저희의 심정과 마음의 귀를 통하여 들려질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때 당시에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고 오늘의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 역사성을 초월한 말씀임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에게서 느끼시던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달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답변했을 때에 하늘의 전체의 뜻을 인계받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간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도 아버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의 심정을 헤아리고 사정을 체휼하는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뜻을 위해 충성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하나님께서 전체의 뜻과 부활의 위업을 저희들에게 인계해 주시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또 주님이 그런 천륜의 사명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서 저희 스스로가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주시는 분의 내적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며,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하여 그 말씀을 깨닫는 저희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분부하시는 이 말씀이 저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말씀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증거했던 것과 같이 저희들도 주님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주님을 증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영원히 아버지의 말씀과 화(和)할 수 있는 자신들로서, 아버지 앞에서나 주 앞에서나 성신 앞에서나 온 피조만물 앞에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 때까지 저희 자신들을 살펴 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모인 전체의 형제들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마음과 마음을 합하여 하나의 은사를 대할 수 있으며, 마음과 마음이 모아져 하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전체적인 역사가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제까지 갖고 있던 저희들의 기존관념을 제(除)하여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시옵고, 능력의 아버지께서 저희를 품어 주심으로써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게 허락해 주시며, 생명을 바쳐 아버님께 스스로 굴복할 수 있는 마음, 스스로 뉘우칠 수 있는 마음,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모인 저희들을 이간시키기 위하여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은사의 분위기가 감도는 자리지만 늘 사탄이 노리고 있다는 것과 은사가 크면 클수록 그에 따라 사탄의 역사도 크다는 것을 알게 허락해 주옵시며, 모처럼 참석한 식구들 가운데 한 생명이라도 원수 사탄을 용납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6천년 동안 자기편으로 빼앗아가기 위하여 유인하는 사탄에게 끌려감으로써 원한을 품었던 선조들과 같이 저희들도 사탄에게 끌려감으로써 원한을 품는 자들이 되지 말게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탄식을 거듭하는 저희 자신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들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탄식을 하게 될까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스스로 자신들의 몸가짐을 온유겸손하게 할 수 있고, 남들과 화합할 수 있는 온유한 심정으로써 아버지께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긍휼의 은사만을 비는 마음을 갖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맡기었사오니, 이 시간 아버지의 뜻만을 나타내 주시옵길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에게 잠깐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천국의 열쇠를 우리들은 가져야 한다’입니다. 이 시간 이러한 제목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의 말씀 선포 목적

땅 위의 인간들은 이때까지 천국을 소망하여 나왔습니다.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인간들은 자신들 당대에 환경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천국의 이념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고대하며 살아왔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천국이 이루어지길 고대하시며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천국은 하나님의 소망인 동시에 인간의 소망의 중심도 되며, 온 피조만물의 소망의 중심도 되는 것을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이상의 중심이요 영원한 소망의 중심인 천국을 우리 자신들이 이루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놓고 탄식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와 천국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우리는 천국에 반대되는 악의 요소에 잠기게 되므로 선의 이상을 흠모할지라도 그 바라는 이상이 우리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며, 사랑의 본성을 흠모하더라도 우리는 그 본성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또 이렇게 되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소망이 간절하더라도 천국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천국이 하나님을 제외한 세계가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라 할진대, 우리들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 어차피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온 만물세계와 화합할 수 있는 천국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섭리하신다면, 역시 인간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소망의 천국이 우리와 먼 곳에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악의 세상, 지옥의 세상이므로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자 원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천국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면, 천국과 우리의 인연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요, 우리 당대에만 제한된 인연이 아니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영원한 인연입니다. 인간들이 늘 그러한 천국의 이념과 이상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질 영원한 천국은 이미 우리와 인연맺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눈물을 흘리시며 서러운 고난의 길을 가시면서 말씀을 선포하신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첫째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인연을 회복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그 다음엔 인간에게 천국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천국을 소개하실 때 말씀으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즉 진리로써 천국을 소개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인간과 영원불변의 인연을 맺기 위한 말씀, 이 땅에 천국이념을 건설하기 위한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것입니다. 참다운 진리를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주기 위해 오셨고, 참다운 진리를 인간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진리를 가지고 오셨던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과 온 피조만물이 소망하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인연을 회복하기 위해 진리를 선포해 주셨지만, 그 진리와 인연을 맺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 선포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된 진리의 말씀이 인간들에게 백 퍼센트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인간들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와 상징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진리를 소개해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인간들은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많은 지식을 동원하여 감추어진 진리의 관문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역사의 종말시대가 되면 인간들이 내․외적으로 찾아 나오던 신령과 진리가 만날 때가 올 것이고, 또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는 참된 신자로 서게 될 것이며, 예수님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던 진리도 완전히 소개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을 찾아 나가고 있는 여러분은 현재 어떤 길에 들어섰습니까? 이제까지는 외적 진리와 내적 진리의 체계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수립돼 나왔으나, 지금 때는 그 두 진리가 하나의 초점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때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 나왔던 것입니다.  

2. 천국건설운동 세 가지

그러면 이제까지 인간들이 소망해 온 재창조(再創造)의 역사가 완결되는 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먼저 온 피조만물과 인간들이 바라는 천국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우주적인 인연을 갖춘 진리의 한 중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중심삼고 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진리의 중심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전체의 천국의 이념은 건설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진리의 중심에 의한 진리의 운동이 일어나고, 진리가 찾아진 다음에는 그 진리와 더불어 어떤 운동이 일어날 것인가? 생명의 운동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생명운동은 생명을 중심삼은 통일의 역사로서 하나의 천국을 실현시킬 수 있는 천적인 힘의 중심으로 표시될 것이며, 그런 세계로 온 피조만물을 지향시킬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된 진리가 나타난 후에는 통일적인 생명의 운동이 일어날 것이며, 이 통일적인 생명운동이 나타난 후에 통일된 사랑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들이 소망하는 천국은 건설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바라는 그 소망의 천국은 어떠한 세계인가? 그 세계는 하나님이 즐기실 수 있는 곳이요, 예수님과 성신이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천천만 성도들이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동시에 온 만물이 화동(和動)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사랑을 중심삼고 화동하는 세계요, 생명을 중심삼고 화동하는 세계이며, 진리를 중심삼고 화동하는 세계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맨 처음 인간을 통해 일으킨 운동이 무엇이냐 하면 진리복귀(眞理復歸)의 운동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한 진리복귀 운동이었습니다. 이같이 말씀을 통해서 진리복귀운동이 일어나야 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만이 생명의 역사(役事)가 이루어지고, 생명을 통해야 사랑의 운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에도 말씀을 불신함으로써 타락한 것입니다. 말씀을 불신함으로써 타락했기 때문에 말씀의 근본인 생명과, 생명의 근본인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해와가 그르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담 해와가 그르친 사실을 우리가 어느 한 때 우주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청산해 드리는 한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들이 소망하는 천국, 우리들이 바라는 이상동산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성취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통해 성부․성자․성신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 삼위신(三位神) 가운데 성신은 인간들을 진리에로 인도하기 위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신은 진리의 사명을 담당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자 예수는 어떠한 사명을 담당하고 계시느냐 하면, 생명의 주인공으로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생명적인 뜻을 세우기 위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리를 통해 생명을 찾는 노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성신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사랑에까지 도달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삼위신의 성품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면 성부는 사랑으로, 성자는 생명으로, 성신은 진리로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은 예수님의 참 성품의 실존성(實存性)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이며, 몸과 마음을 갖춘 하나의 실존체(實存體)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내적 심정은 물론 하나님의 전체적인 내적 심정을 알았으며, 하나님의 법도를 통할 수 있는 기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베드로에게 천국 문 열쇠를 맡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을 상징적으로 표시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간은 생명으로, 또 만물은 진리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3. 진리의 열쇠를 소유한 사랑과 생명의 실체

그러면 이제 참된 진리를 찾아야 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성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 수 있는 진리의 열쇠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열쇠를 갖지 못하면 성육신(成肉身)할 수 없습니다. 또 진리의 신인 성신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자들이 참된 진리를 찾아 헤맨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천국의 열쇠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인간들은 참된 진리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수많은 진리가 있는 것 같지만 천국의 진리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의 사명을 할 수 있는 참다운 진리는 없습니다.   

만일 이런 진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런 진리를 아는 자라면 그 사람에게는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이 투입됩니다. 또 우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이 투입될 수 있는 자리에 머무른다면 온 피조만물은 그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존재가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진리,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생명,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중심자리에 서게 되면, 그는 피조만물의 소망의 중심이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핵심적인 존재이므로, 모든 피조만물은 그 중심존재로부터 이탈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기준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한다면, 그는 실체(實體)를 갖춘 하나님의 생명을 증거할 수 있고, 실체를 갖춘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으며, 실체를 갖춘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소망인 천국을 이루어드리는 중심적인 한 존재를 세우시기 위해 역사(役事)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 이 땅에 세워질 그분은, 먼저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받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실체로 서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와 생명을 중심삼은 인간의 기준을 완성한 한 존재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오랜 역사를 거쳐서 역사해 오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몸 마음이 합한 실체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타나는 그런 중심적인 존재를 맞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천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만민이 바라는 천국, 피조만물이 소망하는 천국은 결코 건설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진리가 있는 것 같고, 수많은 생명이 있는 것 같고, 수많은 사랑이 있는 것 같은, 즉 이것도 저것 같고 저것도 이것 같은 시대,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온 피조만물 앞에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드러내기 전에는 본성(本性)을 회복하고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악의 요소가 있다면, 지금 때는 열매맺는 때이니 그 악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제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터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본성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더욱 그 선의 요소를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끝날에 처한 시대일수록 우리 인간들은 찾고 싶은 것이 많게 됩니다. 즉 땅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갖고 싶어하며, 모든 것을 행하고 싶어하는데, 이것은 인지(人知)가 발달되고, 이성과 지혜가 높아짐에 따라 자연적으로 그런 욕망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처한 우리는 먼저 모든 인간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본성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스스로가 온 땅 위에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실체가 되어서 모든 만물과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야 예수님이 바라시던 부활된 사람이요, 천국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천국인이 되기 위한 마음 자세

끝날에 처한 우리, 심판날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실적이나 영광, 이상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중심삼고 참된 자신을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때가 되면 내적인 진리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내적인 생명과 사랑도 반드시 이 땅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제까지, 참진리와 참생명과 참사랑을 분별할 수 없는 무지한 자신인 것을 알게 될 때, 다른 방도가 없으므로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의 잼대로 찾으려 했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명의 감촉으로 느끼려 했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으로 헤아리려고 해 왔으나 분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끝날 참진리와 생명과 사랑이 이 땅에 나타날 때에도 인간들은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는 땅과 세상과 우주에 대하여 알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몰라보는 여러분의 본성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세상적인 관계와 인연을 단절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 하고, 생사의 결판을 짓고 진리의 등불을 밝혀서 “사랑의 진군을 계속하게 하는 이 모든 것을 나의 영원한 생명의 중심, 진리의 중심, 사랑의 중심으로 세웠나이다.”라고 하나님께 충심으로 직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먼저 우리와 관계와 인연을 맺으려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륜의 법도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흐르는 것을 놓고, 여러분은 양극에서 음극으로 전류가 흐른다고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천지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피조만물도 하나님을 지향하여 하나님과 인연을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진 인연도 하나님 쪽에서 먼저 이어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회(迂廻)해서 우리를 밀어주는 입장에 서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역사하시고 계시지만 여러분의 앞으로 와서 끌어주는 역할은 못 하십니다. 밀어주는 사랑을 하시니 그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끝날이 가까워 오는 때인데, 여러분은 끝날이 가까이 오더라도 마음이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에는 아무리 삶의 조건이 좋고 천하에 남부럽지 않은 호강을 하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에 반비례하여 심적 고통이 커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끝날이 가까워 오는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만우주의 중심이 나타날 때 여러분은 그를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즉 우주의 중심이 되시고 기점(基點)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모실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실제로 마음에 모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느낀 심정이 영원한 삶의 기둥이 되고, 영원한 진리의 주춧돌이 되며, 사랑의 봉화를 들 수 있는 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중심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주님의 마음을 갖고자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십년 동안 감당한 직책을 일초 동안에 버릴 수 있고, 일생 동안 수고한 모든 노력을 일 초 동안에 포기할 수 있는 각오가 선 사람이라면 끝날에 심판의 두려움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스승도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도 딴 데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리의 스승입니다. 예수님보다 가까운 것은 내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우주만상과 역사적인 전통을 대신한 진리를 소유하여 그 진리에 의해 생활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재하셔서 기뻐하실 것이요, 우리도 역시 즐거워질 것이니, 우리는 그 진리를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만상(萬象)을 대하면 온 우주적인 생명과 진리와 사랑을 체휼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그런 경지에서 진리의 궁극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생명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사랑의 이상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이 전해 주신 복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 예수님의 생명의 요소를 받아들여 영원불변한 마음의 근본으로 확실히 세우면, 어떤 우주적인 악의 요소가 침범하더라도 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탄식과 고통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우리 자신들에게 탄식이 남아 있고, 고통이 남아 있더라도 우리는 그 탄식과 고통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천국인의 기준─진리, 생명, 사랑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밀어낼 수 있는 것은 이 땅 위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진리에 심취될수록 그 진리는 더욱 더 어느 누가 빼앗아갈 수 없는 중심이 될 것입니다. 천만 번 혼란되는 땅일지라도, 우주가 불시에 파괴될지라도 그런 중심을 마음에 확실히 세운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고, 동요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그런 중심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참다운 진리가 나타나도 여러분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참다운 생명이 나타나도 알지 못하며, 참다운 사랑이 나타나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기독교가 참다운 진리와 참다운 생명, 그리고 참다운 사랑을 찾고자 한다면 끝까지 자기를 버리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지구는 새로운 대륙들이 발견되어 점점 더 넓어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때에는 세계가 넓은 것같이 느껴졌지만 역사가 흐르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계는 점점 좁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진리의 역사를 거쳐 이루어질 이상세계는 모든 것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우주적인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에 결실되어야 할 천국인의 기준, 즉 천국의 생명과 천국의 사랑은 여러분 자체에서 결실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리와 생명과 사랑은 한 가정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진리에는 반드시 사랑과 생명이 따라야 되는 것이고, 사랑에도 생명과 진리가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놓고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도 사랑과 진리가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과 사랑은 왜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가?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하나의 존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존재를 중심삼고 상하․ 전후․좌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러한 3수의 권(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존재의 기본 형태입니다. 이렇게 셋[三點]이 만나서 하나의 통일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힘이 역순(逆順)으로 진행하면 본래와는 다른 힘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이시지만, 타락한 이후 인간이 사랑과 생명과 진리가 균형잡힌 삼각 형태를 이루지 못할 때는 하나님은 섭리를 하시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택하여 3점이 연하여 하나됨으로써, 즉 3점이 좌우로 일직선의 형태를 갖춤으로써,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기점(基點)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이 사랑과 생명과 진리를 대신하여 나타나게 될 때, 그 기점은 방향성을 갖추어 온 땅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직선상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먼 거리에 있게 되지만 휘어져 곡선을 이루면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와 성신은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천국복귀운동에서 희소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를 직접 대할 수 없었던 인간들이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직선적인 관계가 꾸부러져 가깝게 되어 하나님의 은사를 접할 수 있게 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게 했으며,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외적인 작용체가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먼 거리에서 천국이념을 바라보아야 할 인간들에게 있어서 전후, 좌우 그 어디에도 가까이 계신 예수와 성신의 사랑은 우주적인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우주의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힘을 붙들게 될 때, 우주의 원칙에 의해 우주의 힘과 통할 수 있는 생명의 힘이 그 인간에게 미쳐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그 소망적인 생명체로서 사방성을 갖추어 사방을 연결시켜 주는 사랑의 감촉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서로를 화합시켜 주고, 통일체를 형성하게 하는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6. 인간의 자기 완성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까지 진리의 신으로 나타났던 성신과 생명의 신으로 나타났던 예수와 사랑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았지만, 이제부터는 마음속에 모셔들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신과 예수와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을 여러분의 마음에 모셔 들이려면 여러분은 자기 중심한 이기적인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자기 중심의 고집을 부리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원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회개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원수가 밖에 있는 줄 알고 있지만, 가장 큰 원수는 여러분 자체요, 여러분의 집안식구들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우리에게 남겨진 운명의 길을 걸어가야 하므로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환경을 거쳐 국가 세계를 넘어서 천국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가야 하고, 억천만년이 걸리더라도 가야 할 운명의 코에 걸려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 땅 위에서 우리들이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아직도 어떤 악의 요소, 시기와 질투가 남아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남아있는 여러분이라면 결코 자신의 죄를 청산할 수 없으며, 그런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무엇을 한 분이었던가? 목수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초초한 모습으로 말 없는 생활을 했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무슨 싸움을 전개했습니까? 비록 예수가 마리아의 가정에서 요셉을 돕고 그 가정의 생계를 돌보기 위한 생활적인 싸움을 했지만, 이것은 결코 생계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내적인 분야에서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아도 예수님은 사람의 뜻에 의해 사신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사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부활하려는 여러분에게 침범하는 원수 사탄들을 막아낼 무기를 여러분은 갖고 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자체로서는 그 사탄들을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무력하기 때문에 항상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이제 무엇을 통하여 원수의 침범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원수의 침범을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여러분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자립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성신은 그러한 여러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이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오늘날 인간들이 이것을 못 해 주기 때문에 슬퍼하고 계십니다.  

만물이 통일되면 전우주가 인간을 중심삼고 전후․좌우․상하의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 인간을 동기로 하여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일을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천적인 원한이 지금까지 천지간에 충만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느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적인 원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죄악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니, 그때가 끝날입니다. 

그러한 끝날에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나타날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어떠한 곳에 나타날 것인가? 그곳은 만 인간의 소망이며 찾아가야 할 중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곳을 모른다면 마음을 세우고 닦으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곳에 가려고 하지 않더라도 어느 땐가는 자연히 그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는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때에는 하나님도 참과 거짓을 가르쳐 주시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참이라고 가르쳐 주신 후에는 그 반대로 거짓이라고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 분별해야 되고, 인간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인간 스스로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 처녀와 비유 가운데 등불을 준비한 슬기 있는 다섯 처녀만 주님을 맞이했다는 성경 말씀의 의미를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진리의 중심이 이 땅에 나타나서 모든 것을 버리라 할 때, 참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의 중심을 세워놓고 터전 위에 하늘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7. 참과 거짓의 분별과 참진리 탐구 방법

그런데 여러분이 진리를 찾으려면 아무의 말이나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참된 진리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말씀이 참된 진리의 말씀인가? 어느 누가 듣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회개의 마음이 일어나고, 자신도 모르게 그 말씀에 끌려 들어가고, 그 말씀을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이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천륜의 이치를 통한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천륜을 대표한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마음속 깊이 새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게 되면 어떤 때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고, 어떤 때는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말씀으로 생각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는 본연의 마음으로 우주적인 진리와 우주적인 생명과 우주적인 사랑의 중심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완전한 중심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어떤 하나의 핵심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하여 돌고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반드시 있습니다. 양자(陽子)를 중심하고 전자(電子)가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자와 같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양자와 같은 하나님 마음의 핵심과 관계를 맺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헤아려 볼 때, 우리가 혼자라도 진리의 말씀을 찾아나간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이 화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의 길을 거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길이 가치 있는 내가 될 수 있는 길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내가 된 것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영원불변의 중심을 갖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야 될 것인가? 자신을 중심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성서에서도 높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면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남을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임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찌하여 자기만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만사에 임하고 있는가? 이것은 모든 인간들이 천륜을 배반한 천사, 다시 말하면 사탄과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본연의 성품은 잃어버리게 되었고, 뜻에 맞지 않는 사탄적인 성품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만사를 대해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그러한 하늘적인 높은 가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을 낮은 가치의 인격자가 지배하려 들면 그는 파멸될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끝날에는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끝날은 교만한 사람이 많아지고, 자아 중심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는 때입니다. 참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먼저 거짓이 진리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역사적인 실상이었던 것입니다. 또 우주적인 통일의 이념을 중심한 참진리가 나타나기 전에 세상을 혼돈시키는 여러 가지 형태의 거짓 진리가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적인 생명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여러 가지 형태의 거짓 생명운동이 벌어질 것이며, 참사랑의 운동이 벌어지기 전에 거짓된 사랑의 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성(理性)철학이 나타난 후에 생(生)의 철학이 나타났습니다. 앞으로는 사랑의 철학까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철학의 기준이 무엇인가? 인간인가, 진리인가? 인간은 앞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철학을 모르더라도 본심과 생심에 이끌리어 남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으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을 맞춰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한 사람이거나, 선한 사람이거나 남의 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8. 사랑과 화합과 인격 완성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면 모든 사람의 속사정을 잘 알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내적 심정 기준에 도달하게 되면 모든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즉 악인이라도 그 사람의 사정이 여러분의 마음에 비쳐지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체의 본성을 닮으려면 우리의 몸 마음이 이 땅의 어느 누구와도 화합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만일 몇 사람이라도 우리와 화합될 수 없다면 우리는 천지의 질책(叱責)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예수님은 이 땅, 이 악한 세상에 하나의 누룩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누룩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많은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누룩이란 어떤 것을 화합시키고 변화시키는 하나의 원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이 누룩으로 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타락성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본성의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사명을 갖고 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마음을 움직여 모든 사람에게 백 퍼센트 맞춰 줄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을 수련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은 끝날에 여러분을 심판대 위에 세워 놓고 “아무개야, 너는 이런 미비한 조건이 있지 않으냐?”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을 들어 참소할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고, 다른 어떠한 소망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타락성을 다 청산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침으로써 우주만상과 통할 수 있는 사랑과 선의 본질과 선의 요소를 갖추고, 하나님과 심정일체를 이루어 사랑과 선의 요소를 한꺼번에 뜻 안에서 작용시킬 수 있는 한 때를 고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의 생애에서 사랑의 이상을 완성하여 하나의 진리 앞에 인격 완성자가 되기를 고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흔히 이 넓고 큰 우주를 주관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천주주관(天宙主管)바라기 전에 자아주관(自我主管) 완성하라’는 표어를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아왔습니다. 알고 보면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이 표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갖추어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성도가 있을 때, 즉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주관성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밟고 넘을 수 있는 지름길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완성할 때 비로소 창조본연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런 가치를 지닌 참된 사람이 나와야 할 역사적인 때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이 이러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여러분은 예수님 이상의 조건을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비록 하늘의 전권(全權)과 땅의 전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뜻을 위해서는 그것을 일순간에 포기할 수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얼핏 보면 그냥 버려지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더 큰 것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침범해 들어오는 원수들은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생명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원수는 딴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잘못된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여겨 여러분 스스로 책임지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탄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여러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야 하며, 가정은 물론 국가의 탄식도 여러분이 나타나서 풀어 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의 어려움을 자기 사정으로 느껴 눈물 흘릴 줄 아는 백성이 3천만 가운데 3백만만 되어도 우리나라는 살아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이라고 할 수 있고, 전세계가 이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수가 천만을 넘고 억을 넘어 전세계 인류 전체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소망하시는 하나님 앞에 면목 없는 우리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이런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각해야 됩니다. 

9. 하나님을 모시는 참자녀의 심성

또 하나님께서는 우주만상을 창조하셨지만, 그들이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을 품고 계시며, 그들에게서 영광 받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인격을 완성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체휼하고 나서야 그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목자와 양떼가 될 것입니다. 만약 그런 목자와 양떼가 이 땅에 나타난다면, 그들을 중심삼고 새로운 천륜의 역사가 전개될 것입니다.  

또 천륜을 대신한 진리운동, 천륜을 대신한 생명운동, 천륜을 대신한 하나님의 사랑운동이 그들을 통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백성들 가운데서 이런 진리운동이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런 심적 기준을 갖고 나서게 되면 하나님도 무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한 후에 남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과 가치를 발견해 보려고 애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인류를 대신하여 그런 길을 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성신의 뜻을 본받아 살아가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의 열매를 맺게 되어 사탄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고, 인격을 완성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참자녀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땅의 어느 누구보다도 박복한 사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황태자로 이 땅에 오셨지만 불신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온갖 모략과 중상을 받으셨고, 나중에는 그들에 의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편안한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몸 마음으로 이런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여러분이 안다면, 천만년 눈물을 흘려도 부족함을 느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여러분이 느낀다면, 일생 동안 눈물을 흘려도 하나님의 심정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께 심정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의 빚을 진 처지에 있으면서, 즉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아버지이시니까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뻔뻔스러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도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시겠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움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기 전에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고, 황공한 마음을 지닐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괴로운 심정을 체휼한다면 하나님께서 괴로움을 잊으시고 눈물로 여러분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은 희망을 갖고 천륜의 길, 진리의 길을 찾아나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런 여러분을 위해 염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은사가 임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그런 자신을 염려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형제와 동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세계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원망하려면 여러분 자신을 원망하십시오. 남을 원망하기 전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을 원망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갖춘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의 30여 평생을 거쳐 골고다산정에서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그런 입장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셨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자신의 책임을 염려하는 마음을 지닌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그런 심정은 사탄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사탄 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경지의 심정으로서, 이로 인해 예수님은 이 세상의 중심이 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노정에서도 사탄세계의 어떤 사람보다 나아야지 그들과 같은 정도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적 심정과 심성(心性)을 비교해 볼 때, 감히 그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심정과 심성의 원만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 조건을 근거로 하여 여러분은 부활권 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골짜기를 넘어가시면서도 자기 일신을 염려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염려하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천당가겠다고 애걸복걸하지 말고 남은 우주적인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발벗고 나설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민족을 위해 기도하셨고, 자신은 죽어서라도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셨으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예수님을 부활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사탄은 감히 참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내용의 가치를 지닌 인격체가 되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10. 천국인은 사랑, 생명, 진리의 완성자

그러한 여러분이 되면 우주적인 진리의 중심이 나타날 때 여러분은 그 진리의 중심과 자연히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빛이 밝은 데나 어두운 데를 가리지 않고 비쳐나가듯이 진리의 빛도 세계의 모든 곳을 비쳐나갈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개개인의 책임과 여러분이 머물러 있는 환경권내에서 여러분이 맡은 책임의 가치를 알고 있을 것이나, 사회적인 책임이나 국가, 세계적인 책임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자신이 세계적인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사명과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하나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천륜을 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온유겸손한 마음으로 천륜의 법도에 순종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감동받으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뜻길을 걸어감으로써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들과 화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합하고 모든 사람에게 흡수될 수 있는 본질적 요소를 갖춘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과거부터 느끼고 알고 있던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 참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랑과 진리에 상대되는 사랑․생명․진리의 내․외적 형태를 갖춘 중심존재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그와 화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상대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본성이 추구하는 소망의 진리, 즉 영원․불변․유일의 이념에 합당한 내 마음과 몸이 되어야 내 개체를 넘어서 우주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 자신도 창조의 이념에 상대적으로 반응작용을 일으키며 기뻐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환경, 즉 우리 자신을 중심하고 이상세계를 이루게 될 때, 우리의 기쁨은 곧 하늘의 기쁨이요, 하늘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 되고, 영원한 하나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영원불변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전체를 대신하여 노래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 자체를 통해 우주를 주관하도록 되어 있는 천국이념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분이 되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로, 예수님을 대하던 것과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도 하나님을 대할 수 있을 것이고, 둘째로, 예수님과 성신의 입장에서 식구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셋째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존재가 되면 하나님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존재가 되면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상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하로 되어 있는 우주와 세계와 국가․사회․가정은 여러분을 중심하고 자동적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이런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중심존재가 되면 이제까지 악인으로 생각되던 사람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고, 모든 연장자는 나의 부모와 같이 느낄 수 있으며, 모든 동년배는 나의 형제와 같이, 모든 연소자는 나의 자녀와 같이 여길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이 우주적인 천국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운동을 전개한다면, 평화의 세계가 이 땅에 건설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만이 부모가 아니고, 자기의 형제만이 형제가 아니며, 자기의 아들딸만이 아들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사람을 나의 부모, 형제, 자녀로 여길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망세계에서 시달리는 뭇 백성들을 바라볼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을 것이며 형제나 나이 어린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그들을 구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눈물 흘리며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그러한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 땅에 천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기 도> 한 많은 6천년의 모든 내용과 아버님의 내적인 사정이 이들에게 다 전해지지 못했을까봐 염려되오니, 아버님, 이들을 당신의 품 안에 품으셔서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들의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다면, 이것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 허락해 주시길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주는 자의 책임이 이렇게 귀중한 것을 느끼는 동시에, 받는 자의 책임도 그에 못지 않게 귀중한 것을 깨닫게 되오며, 오히려 주는 자보다 받는 자의 책임이 더 중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주는 때는 한 때이오나, 받는 때는 영원을 두고 받아야 함을 알고 있사오니, 하늘로부터 한 때 받은 그 진리를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고, 한 때 받은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한 때 받은 사랑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해 주옵소서. 그러한 저희들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길 또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과거에 저희들은 많은 말씀을 들었사옵고, 많은 생명과 사랑의 은사도 받았사오나,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이 비어 있사오니, 빈 저희의 마음을 채워 주시옵고, 이제까지 수십 번 하늘을 배반한 것을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납해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진리의 열쇠를 찾고, 생명과 사랑의 열쇠를 찾아서, 남아 있는 우주적인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문을 열어 천주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사정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해주시고, 당신이 믿으실 수 있는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모든 것을 분별해 주시고, 미비한 모든 것을 채워 주옵시며, 영원한 천국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까지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18:15-20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서로 화합되는 곳에 운행하십니다. 내 한 개체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화합되는 그 위에 운행하시는 것이며, 그러한 나를 중심하여 형제와 동지들이 화합하고 더 나아가 가정과 가정이, 국가와 국가가, 세계와 하늘이 서로서로 화합하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은 운행하시게 됩니다. 

모든 피조만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하여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선의 기준을 세웠더라면 이 모든 피조물 사이에는 장벽이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은 마음과 몸이 화합되지 못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이웃간이나 종족, 그리고 민족끼리 화합되지 못했고, 국가와 국가, 세계와 하늘이 화합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화합되지 못한 이 피조세계를 화합시킬 수 있는 한 존재를 세워, 그를 중심삼고 하늘의 사랑의 범위를 넓혀 개인․가정․국가․세계․하늘 사이에 맺혀진 장벽을 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만상 앞에 화합될 수 있는 한 존재를 세우시는 것이 복귀섭리역사의 목적입니다. 복귀역사의 하나의 결실체로서, 혹은 만상 앞에 사랑의 표준과 중심체로서 천지간에 맺혀진 것을 풀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예수님을 통하여서만이 타락으로 인한 원죄의 허물, 곧 타락조건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 자신이 땅에서 타락의 조건을 맺어놓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그것을 풀어야 하는데 타락인간 스스로는 그것을 풀 수 없고 메시아를 통해서만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어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하늘땅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하늘 앞에 기쁨을 돌려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의 뜻은 땅 위에서 결실되지 못한 채 남아져 왔으며, 예수님은 사후에도 오늘날까지 2천년을 한결같이 여러분 한 개체를 통하여 이 사정을 푸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소망의 존재인 여러분 하나 하나의 움직임은 결코 여러분 한 개체를 중심삼은 개인의 움직임이 아니라, 6천년간 맺혀진 하늘의 사정을 풀어야 할 역사적인 결실체로서의 움직임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개체로서의 여러분 앞에는 선지선열․예수․성신․하나님의 무한하신 탄식이 맺혀있음을 알아야 하고, 4천년에 걸친 하나님의 원한을 대신한 예수님의 소망과 2천년을 통한 성신의 소망이 맺혀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한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형제와 형제 사이,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국가 사이, 그리고 세계와 하늘 사이에 맺혀진 모든 탄식의 장벽을 풀어헤치지 못하면 예수님과 성신과 하나님에게 맺혀진 역사적인 탄식은 풀리지 않으며,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사랑하실 수 없고 기뻐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큰 역사적인 사명의 실마리를 여러분 일대(一代)에서 여러분의 생활과 전 생애를 통해 풀고, 나아가서는 후손을 세워서까지라도 종결을 지음으로써 하늘 앞에 맡은 바의 직분을 완수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천지에 맺혀진 사정을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4천년의 탄식을 풀어드려야 할 존재임을 알고 천지간에 맺혀진 온갖 사정을 풀어드리기 위해 애타는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생활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이 아니었고 아담으로 인해 맺혀진 온갖 사정을 푸는 데만 온 정성을 기울였던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타락과 동시에 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진 사탄까지도 본연의 위치로 복귀시키는 사명을 하셨으니, 이는 사탄이 땅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땅에서 복귀시켜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잘못함으로 인하여 타락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래도 그들을 다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녀로 세우시고자 섭리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심판 날은 믿지 않는 죄인을 지옥에 처넣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과 성신의 원한의 대상인 죄인들까지도 하늘 편으로 복귀시키는 날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새 시대에 남겨진 과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사명을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담당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4천년의 탄식을 한 몸에 도맡았던 살아 생전의 예수님의 심정과 부활하신 후 오늘까지 2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예수님과 성신의 애타는 심정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합니다.   

6천년 역사를 결실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나선 여러분이 예수님의 수고와 선지선열들의 수고 이상가는 수고를 하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하늘 앞에 세워져야 할 여러분 자신의 본연의 위치를 결코 찾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님 한 분을 찾기 위하여 4천년이란 세월을 소비하셨고, 한 신부를 세우는 데 2천년이나 걸리셨으니, 여러분도 여러분 한 개체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6천년간 서러움 속에 지내신 하나님의 수고의 전체적인 사정을 품고 나타나지 않으면 결코 여러분 개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내 한 자체를 찾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싸우는 데 있어서는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탄이 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치셨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까지도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탄이 나를 치기 전에 내가 자신을 먼저 치고서 사탄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시련과 고통의 노정을 걷기 위해서는 전체가 나를 버려도 홀로라도 나를 알아줄 수 있는 동지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비를 넘을 때에도 인류는 예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과 성신은 예수님을 알아주는 입장에 있었으며, 하나님까지 버리시는 운명에 놓인 때에도 성신이 알아주는 입장에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어느 한 때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실 때가 있을 것이니, 그 때에 여러분을 알아주는 성신 대신격(代身格)의 동지가 필요하고, 인류가 여러분을 버릴 때에 여러분을 알아주는 하나님 대신 존재가 필요하니, 여러분은 그러한 존재를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그 사명을 맡기시고 안심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예수님과 성신의 뜻을 도맡아 책임짐으로써 예수님과 성신을 안심시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과 성신이 나의 예수님과 성신이 되려면, 그분들의 안타까우신 사정을 도맡아 하늘 사명을 위탁받은 주인공이 되어 그분들을 안심시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의 짐을 맡음으로서 그를 완전히 안심시켜 주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6천년간 져 오신 하나님의 짐을 도맡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주인공이 땅 위에 세워지기를 하늘이 고대했고, 예수님과 성신이 기다렸으며, 온갖 만물이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주인공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지 아니하실 수 없고, 이런 주인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민족은 하늘의 큰 사명을 인계받는 민족이 될 것이며, 끝날에 전세계의 복의 기관이 될 것입니다.  

이런 교차점(말세)에서 여러분 모두가 선의 주인공이 되어 악을 제거하고 선을 가려냄으로써 사탄이 매는 입장을 극복하고 풀어헤쳐서 하늘이 맬 수 있는 입장을 취하여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중심의 터를 이루어 놓는다면, 하늘이 매었으니 풀 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영원무궁토록 하늘의 참아들딸로서 우주를 대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9-46

<기 도>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하여 억조창생이 소생의 빛을 나타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보내시는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싸움터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는 당신의 정병들 위에 영원한 승리의 방패가 높이 들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험하고 어지러운 이 땅, 죄악과 사망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이 땅, 참다운 하늘의 심정을 품고 있는 자들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는 참혹한 이 땅에 살고 있는 저희들, 일주일을 지내면서 받은 상처를 무릅쓰고 아버님 앞에 나왔사오니 긍휼의 아버님이여! 권고의 손길을 저희들에게 펴 주시옵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들은 당신이 찾으시던 아들딸이옵니다. 하오니, 이 한 시간 친히 당신의 마음에 사무쳤던 사정을 이들에게 털어놓으시고, 또 명령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보잘것없는 것들은 아버님이 분부하시는 말씀에 의하여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 놓고 이 한 시간이라도 속죄의 제물로 당신 앞에 드려지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나의 아버님, 이 시간 버리지 마시옵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고, 세워 주시옵고,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어두운 이 세상에서 하늘을 향해 나가기 위해 애쓰다가 죽어간 성도들을 대신하여 생명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고, 죄악의 무덤을 헤치 고 나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거룩한 날, 만민을 축복하기 위해 세워주신 날이옵니다.  

이 시간에도 외로운 이 민족, 불쌍한 이 민족 중에는 갈 길이 없음을 자탄하면서 아버님 앞에 엎드린 무리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 그들의 갈 길과 그들이 행하여야 할 표준을 당신께서 열어 주시고 제시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이 나라에 당신의 권고의 손길이 커야 할 것을 느끼게 되옵고 아버님의 천정이 이 민족 전체에게 미쳐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믿고 있사오니, 끝날에 맡기실 전체의 사명을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한 아들딸들에게 맡겨 주시옵고, 그리하여 이들이 어둠 가운데 헤매고 있는 삼천만 민족을 깨우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사망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불쌍한 이방민족들까지도 깨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들이 세워놓은 뜻과 인간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늘이 움직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인간의 제도와 인간의 형식은 끝날 심판대 앞에서 사라질 것이로되 천륜을 향한 성실한 마음과 천륜을 대한 지성과 충절만은 심판대를 넘어 아버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찬양과 영광을 받는 날이 있게 하는 것을 아오니, 아버님, 하늘을 향하여 충절에 사무친 마음을 지니고 하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충복의 아들딸이 되어서 끝날에 아버님의 심판대를 넘어갈 수 있고, 아버님의 내적 심정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약속하신 말씀과 허락하신 은사가 내려지기를 바라며 엎드렸사오니, 이 한 해도 싸움의 노정을 가야 하는 이 아들딸들에게 내적, 외적으로 사무쳐 오는 아버님의 감동의 역사가 그 몸 마음을 폭발시키어서 죄의 요소를 제압하고 선의 실체로 승화시켜 갈 수 있도록 아버님의 역사가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상처난 흔적을 아버님 앞에 내어놓고 있는 그대로 바쳐드리고자 하오니 긍휼의 손길로써 붙드시옵고, 승리의 향유를 바르시어서 싸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을 아버님 앞에 맡겼사오니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주는 나의 선한 목자’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모셔야 할 주인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까지도 주인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주의(主義)와 주장(主張)중에 참다운 주인으로부터 우러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탈피하여 완전한 것을 찾으려 하고 있으며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안을 찾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1. 사랑·생명˙소망의 중심으로 오신 예수님

인간은 타락함으로 인하여 생명과 사랑과 소망의 주인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의 동산에서 영원한 이상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것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것을 다시 찾아주기 위하여 오랜 역사를 거쳐오며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하여금 마음을 따르게 함으로써 참마음의 소유자가 될 때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연히 되어지는 게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갖은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거쳐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주적으로 가로막혀 있는 운명의 길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되겠느냐? 이 운명의 길은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넘지 못하고 안타까워했던 한 맺힌 고개인데 인간이 이러한 운명의 고개를 넘기 전에는 본연의 참주인, 즉 선과 사랑과 이상의 주인공 되시는 분을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주인공이신 하나님께서는 본연의 인간과 함께 즐기며 함께 살아가려는 그 이상을 중심삼고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끌어올리시는 구원섭리를 6천년 동안이나 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본연의 이상동산을 그리워해 온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미급하고 미진하기 때문에 완전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임을 살펴보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사탄과 악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서 끌어올리시기 위하여 내․외적으로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살펴서 악의 세력과 싸워 이김으로써 이 전체의 서러움, 전체의 원한을 청산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복귀의 노정을 거쳐가지 못하게 되고, 복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끝날에 참주인공으로 오시는 아버지를 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생명의 인간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모든 인간이 영원하신 주인공을 맞을 수 있는 그 한 동산까지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미약하고 불비한 인간들에게 생명의 중심으로서, 그리고 소망과 사랑의 중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이 맞아야 할 그 소망의 중심을 역사적인 소망의 끝에 가서 맞이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실생활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는 분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소망과 생명의 중심을 이렇게 우리 생활 속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은사 앞에 하나되어서 그 참다운 주인공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주인공, 우주적인 생명의 중심존재인 예수 그리스도, 즉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이끌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으면 우리들은 소망도 찾을 수 없을 것이요, 생명과 이상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의 중심, 즉 사랑의 중심이시며 생명의 중심이신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역사하시고 싸워오신 그분의 내적인 사정, 외적인 사정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주인공 되신 예수님과 하나될 수 없는 것이요, 창조주 하나님과도 하나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에게 있어 생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또 이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예수님이 나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어떠한 수고의 길을 걸으셨는가를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쌍하게 태어나셔서 불쌍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으시며 악의 세력과 싸우셨고, 진정으로 자기의 편이 된 동지를 얻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돌아가신 후 오늘날까지 수천년 동안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사탄을 물리치기 위하여 싸우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서러운 심정 속에 지내고 계신 예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가치

이 시간 봉독한 가운데 목자가 면양과 산양 중에서 면양은 오른편에 산양은 왼편에 갈라 세운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분별하여 선한 무리는 오른편으로 악한 무리는 왼편으로 갈라놓으실 최후의 심판의 때가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판 날에는 어떠한 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좌․우편으로 갈라놓으실 것인가? 예수님이 태어나면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전체적인 생애노정을 기준으로 하여 심판의 조건을 세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려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전 생애노정을 본받아 그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고, 그분이 느끼셨던 내적, 외적 심정을 체휼해야 하며, 그분이 생각하신 것을 나도 생각해야 되겠고, 또 그분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될 수 없고, 그분을 우리의 주인공으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주인공이 되시어서 역사적인 사탄과의 싸움을 홀로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도와 그분을 대신하여 싸우고 그분의 일을 대신 맡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분을 인간의 구주로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또한 부모로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타락권 내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생각해 볼 때, 예수가 못다 걸은 생애노정과 넘어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없으며, 하나님을 우리에게 영원한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또 봉독해 드린 성경에는 예수님의 굶주리신 사정과 목마르신 사정, 그리고 나그네 되신 사정, 헐벗으신 사정, 병드신 사정, 옥에 갇히신 사정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오른편의 무리들에게, ‘내가 이렇게 어려운 사정에 있을 때 너희들이 나를 도와주었다.’고 말씀하실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생존시에 따르던 제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심판을 당하게 될 끝날의 기독교인들에게 권고하신 말씀인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됩니다. 

여기서 주리고 목말랐다 하심은 주께서 느낀 말할 수 없는 슬픈 사정을 상징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셨기 때문에 나그네 된 사정을 말씀하신 것이고,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옥에 갇히신 사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끝날에 이러한 사정을 당하실 것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생애노정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서러움과 슬픔과 고통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나면서부터 이렇게 고통스런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생애노정을 가셨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 우리 자신도 그분이 체휼하셨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천적인 생의 노정을 걸어가신 그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입장이 됩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은 30여 평생 서럽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걸으셨으며 승천한 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도 서럽고 외로운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일신을 위하여 이런 길을 가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 때문에, 즉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찾아 세우기 위하여 자진해서 그 고통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굶주리신 때도 있었고, 목마르신 때도 있었고, 또 병들었을 때도 있었고, 나그네 될 때도 있었고, 갇히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외적인 면에서만이 아니고 내적인 면에서도 그러한 어려운 사정을 느끼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아 그 뜻을 이루어드려야 할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이 고갈된 것을 느꼈고, 하나님의 소망이 고갈된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책임지기 위하여 예수님은 혈혈단신 나그네가 되어 온 이스라엘 곳곳을 헤매시면서 유대 백성들을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원래는 유대 백성이 그런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들이 그런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을 대신하여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을 찾고 참다운 생명과 사랑을 세우기 위해 그런 나그네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또 자신들이 고통을 당하고 갇히우는 입장에 있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갇히우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모셔야 할 성도들

이러한 생애를 걸으시다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여 승천하신 이후에도 지금까지 같은 심정으로 우리들을 찾아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누리거나 자유스럽게 사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도 내외적으로 극심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이 땅의 인간들을 동정하고 또 참다운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하여 헤매고 있는 성도들을 염려하며 그 스스로가 무한한 고통 속에 계시면서, 구속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대신하여 부자유한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한시도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실 수 없는 입장에 계신 예수님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열두 제자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의 서러움이 풀리기 전에는 예수님도 평안할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정을 알아서 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더욱 외로워하시고 고통을 당하시며 구속을 당하시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을 우리 자신이 몸 마음으로 체휼하여 예수님의 사정을 알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염려를 풀어드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 대신 이 땅의 인간들을 염려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끝날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고난의 30여년의 생애와 2천년 동안의 기나긴 섭리노정을 거쳐오면서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에 사무쳤던 예수님의 애달픈 사정이 예수님에게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애달픈 사정을 우리가 도맡아 가지고 예수님을 안위시켜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없고, 예수님을 대하여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전 생애를 바쳐서 마음과 몸으로 예수님의 사정과 통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참다운 주인으로 오신 예수님이지만 그분은 인간들로부터 온전히 주인으로 모심을 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 예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지음받은 만물도 기쁨으로 주관하실 수 없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인간들이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 속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룸으로써 영광스러운 입장에 계시지 않으면 만물을 기쁨으로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영광과 기쁨의 참주인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먼저 역사노정에 쌓여 있는 주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림으로써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주관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주관하시지 못하면 하나님도 역시 우리를 주관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의 주관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없으며, 따라서 예수님을 참주인공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서럽게 하고, 외롭게 하며, 그분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분을 구속(拘束)하는 요소가 여러분 자체에 남아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또 역사를 대신하여 예수님의 서러움을 여러분이 책임질 수 있는 중심을 세우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섭리를 담당해 나오시는 예수님 앞에 피주관자로 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한 사람을 주관하고 싶어하시는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주적인 소망일 것이며, 또 예수님이 세우신 뜻이 있다면 그 뜻 또한 우주적인 뜻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원하는 사랑과 영광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분 개인만을 위한 사랑과 영광이 아니고 우주적인 사랑과 영광일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생명·소망과 연결돼야 할 인간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 자신에게 서러움이 있습니까? 외로움과 고통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구속을 당하고 있습니까? 우주적인 주인공 되시는 주께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런 슬픔과 외로움, 또는 고통을 당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나 한 사람의 작은 슬픔일지라도 또는 고통일지라도 그것이 나 한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까지 미쳐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서러움이 사무치게 되면 이것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서러움이 되고, 내게 외로움이 있으면 이것은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외로움이 되며, 내게 고통이 있다면 이것은 우주를 대신한 예수님의 고통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서러움과 고통을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지 않는다면 우주적인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을 생활적인 주인공으로 모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대신 사탄이 침범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정과 통하지 못한다면 역사적인 섭리를 책임지고 싸워오시는 예수님의 사정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서러움이 풀리지 않게 되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 영광을 하늘 앞에 돌려드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개인의 서러움을 전체적인 서러움으로 느껴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각각 한 개체로되 전체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분적인 존재인 여러분 개개인이 전체의 표준을 대신하여 완성한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전체의 뜻도 성취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 한 사람이 완성되지 않으면 예수께서 세워 나가시는 전체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또 전체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예수님은 전체를 대표한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주관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앞에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서, 또 우주적인 생명의 실체, 우주적인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서 오랜 동안 역사해 오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목자의 이끌림을 받는 양으로서 그분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그분이 정하면 나도 정하고, 또 그분이 즐거워하면 나도 즐거워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통하여 우주적인 원한을 푸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하여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동시에 나를 통하여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극히 작은 개체들이지만 우주적인 선한 목자를 대신하고, 또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고,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서러움과 외로움, 혹은 고통을 당할 때가 있을지라도 나보다 더한 괴로움 속에 계신 예수님의 사정을 생각하여 그 어려움을 이겨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할 줄 모른다면 여러분은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 도> 아버님, 당신이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시어서 온 천하 만물을 온전히 주관하시고 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한 날이 어서 속히 이 땅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멀어진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영원하신 선의 주관자로, 또 영원하신 이상의 주관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으나 아버님을 대신하여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주로 모시지 못한 인간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서럽게 해 드린 것이 선조들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임을 알고 있사옵고, 오늘날 저희들이 부족하여 아직도 예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선한 목자의 위업을 상속받아 만물만상 앞에 어엿이 나서기를 바라는 아버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며, 아버님의 생명과 아버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러한 저희들이 되지 않는다면 선한 목자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운 사정을 금후에 인간세계에서 영원히 풀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오니, 저희의 마음 문을 여시어 저희를 향해 부르짖고 있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서러운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외로운 사정을 알고,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보니 몸둘 바를 찾지 못하겠나이다. 아버님이시여, 부디 저희들의 슬픔과 외로움과 수고와 고통을 예수님께 떠넘기기 위해 애걸복걸하는 처참한 모습들이 되지 말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희들 이제 사탄의 모든 비밀과 아버님의 내적 사정과 예수님의 내적 심정까지 알아서 아버님의 그 사정을 맡고, 예수님의 서러움과 외로움과 고통과 부자유하심을 맡아서 억만 사탄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의 사정을 염려하시며 수심에 잠겨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저희가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고, 예수님은 오늘도 저희들의 애달픈 사정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을 느끼고 계신 주라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늘을 대하여 서러워하고, 하늘을 대하여 슬퍼하고, 하늘을 대하여 외로운 입장이 될 때, 이것을 위로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큰 외로움과 더 큰 슬픔과 더 큰 고통을 느끼시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저희들이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고통보다도 내 고통이 크고, 예수님의 슬픔보다도 내 슬픔이 크며, 예수님의 어려움보다도 내 어려움이 클지라도 오히려 예수님의 슬픔을 제거해 드리기 위하여 애걸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외로움과 고통을 제거해 드리기 위하여 애걸하고 염려할 수 있는 참아들딸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한 목자의 뒤를 따르고 선한 목자의 사무친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저희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 모인 아들딸들, 이제 몸과 마음을 다 드려야 할 역사적인 대열에 동참한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또 저희들에게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아니 싸울래야 아니 싸울 수 없는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나아가는 길에 슬픔과 외로움과 혹은 고통스러움이 있을지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이지 않는 사탄이 저희들의 생활 속에 직접적으로 침범하여 환난과 공포를 일으킬지라도 이를 대적하여 묵묵히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예수님의 대신 사명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생을 대신 이어갈 수 있는 아들딸로서 이 시간 저희들을 새로이 세워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모두의 마음과 몸을 당신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쓰시어서 저희가 아버님의 기쁨이 될 수 있으며, 영광이 될 수 있으며, 당신의 자랑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고, 아버님 뜻대로 주관하시고 명령하실 수 있고, 아버지께서, 또 주께서 취하시어 오른편에 두실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14:1-20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습니다. 개체도 마음과 몸이 관계를 맺어 서로 위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하는 입장이 더 발전하여 가정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하고, 나아가서는 전 우주까지 ‘위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위하는 생활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평면적으로 위할 수 있는 기준을 찾고, 나아가서 입체적인 관계까지 맺어 한 중심을 위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야 하며, 그런 후에 가정․국가․세계․우주적으로 한 중심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위할 수 있는 중심기준이 없이는 우리 인간은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역사를 책임지고 우주가 지향하는 전체적인 가치를 지닌 그 위함의 중심기준을 찾아 자기와 생명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며, 사랑을 중심삼고 힘의 근본과 연결시키어 무한히 흡수하고 무한히 흡수당하며, 나아가서는 주위의 모든 환경 앞에서도 입증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자신을 의탁할 수 있는 영원불변한 그 무엇을 찾아 나왔으며, 내 한 자체를 그에게 맡기고, 그 앞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은 자기를 우주만상 앞에 영원히 보증(保證)해 줄 수 있는 한 주인공을 찾고 있으니, 이 주인공이 바로 영원한 사랑의 주인공이요 생명의 주인공이며 소망의 주인공입니다. 또한 이 주인공은 위함의 중심존재로서 위하는 삶의 대표적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위할 수 있는 주인공은 마음의 원(願)과 몸의 원을 같이 이루어 줄 수 있는 위함의 주인공이어야 하며, 역사를 책임지고 우주적인 전체성(全體性)을 책임질 수 있고 대신할 수 있는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주인공을 찾아 그와 일체이상(一體理想)을 이루어 그를 모시고 동고동락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천주적으로 이루어 놓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끝날에 입체적으로 벌어지는 우주적인 싸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이 영원한 중심적인 기준을 찾아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고, 그를 찾아 나아가는 복귀노정에서 싸움은 필연적인 것이며 한 개인에서부터 비롯된 이 싸움은 가정․국가․세계적으로 넓혀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러한 평면적인 싸움이 끝난 후에는 영계(靈界)와도 싸우게 되는 입체적인 싸움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때를 당한 모든 인간들은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소망의 기준을 찾아 그와 더불어 이러한 난관과 공포의 시대를 타개(打開)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그 사랑과 생명과 소망의 한 주인공과 영원히 같이 있는 조건을 만상 앞에 내세우지 못하게 된다면 모든 인간들은 공포와 심판의 때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우(右)와 좌(左), 선(善)과 악(惡)을 분별해야 할 역사의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선과 악, 우와 좌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한 주인공을 찾아서 선악의 분별은 물론, 우리의 모든 일이 그를 중심삼고 되어질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영육(靈肉)이 성별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우리는 결코 끝날의 그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역사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든 가치의 기준점이 될 그 한 주인공을 소망하여 나왔습니다. 이제 그 소망이 우리의 눈앞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책임을 다한 실적을 역사 앞에 내세워 역사상에 남아진 모든 사람의 소망을 풀어주고, 나아가서 하늘의 원한까지도 능히 풀어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과 인류의 역사는 한 개체를 중심삼고 교차되는 것이니, 그 교차점은 개인에서부터 국가․세계․우주로까지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이 곧 우주를 대신하는 생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6천년간 당신의 내적인 심정을 대신하고 이런 교차점을 넘어설 수 있는 실체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을 찾아 당신의 내적인 심정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당신의 소망을 이 한 존재를 통하여 이루시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항상 초월신(超越神)의 입장에만 머물러 있을 뿐, 우리 인간과는 전혀 실체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위할 수 있는 한 중심과 연결되어 자기의 생을 출발하게 되어 있었는데 타락으로 인하여 그 누구를 위하는 데에서부터 자기의 생을 출발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데에서부터 생을 출발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인연맺으려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목표하고 나아가는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한 일에 귀결시키려는 타락성(墮落性)을 벗어버리고 자기를 넘어서 먼저 그 누구를 위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이 ‘나와 위함의 관계’를 맺어 영원히 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실증적(實證的)인 사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모든 존재가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같이 우리도 모든 존재와 위할 수 있는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개인을 넘어서 가정․국가․세계, 그리고 우주적으로 전개되어져야 하며, 결국에는 이러한 모든 전체적인 관계는 한 중심존재를 위해 맺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히 불변하는 그 한 존재 앞에 우리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를 바침으로써 그의 가치성(價値性)인 사랑과 생명과 진리와 관계를 맺게 되어 그것을 전수받고 체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한 존재, 바로 그 주인공은 우리에게 인륜적(人倫的)인 소망과 천륜적(天倫的)인 소망, 그리고 역사적인 생명과 섭리적인 생명, 역사적인 사랑과 섭리적인 사랑을 일치시키어 인연을 맺어주시려는 분이시니, 이 분이 바로 오시게 될 재림주이십니다. 

그는 6천년간 여러분을 찾아오신 분이니 여러분이 그 앞에 서기 위해서는 진리적으로나 생명적으로나 사랑적으로 자격을 갖추어서 그분의 체면을 세워 줄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관계를 우주만상에게까지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으니 나 한 자체가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나 한 자체가 우주의 전체를 포용하고 동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 등 모든 것을 포용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분이 바로 오실 ‘주’이십니다. 그분은 무한대의 소망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나타나는 것이니, 여러분은 불변의 개체로서 우주적인 섭리를 대신하고 책임질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사탄 대하여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끝날에 그분을 떳떳이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본체인 것이며,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랑과 생명과 진리를 대신할 수 있어야만 만물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을 취해야 할 여러분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자기 자신을 중심하여 고민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반드시 깨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를 발판으로 삼고 모든 것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바치고, 모든 것을 버리고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 앞에 바칠 무엇이라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몸까지도 우주에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스스로가 즐거운 마음으로 당신께 바쳐지기를 바라고 계시며 만물도 그것을 고대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하면 몇 천년을 산다 해도 모든 피조물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잊고서도 우주를 소유하고 있다는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부분적이면서도 전체를 대신한 듯이, 부분적인 것을 소유했으면서도 전체적인 것을 소유한 듯이 기뻐할 수 있는 한 존재를 하늘은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피를 흘려 왔습니다. 

즉 이 땅에 평화를 이룬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분과 관계를 맺어 그의 사랑의 가치, 생명의 가치, 진리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될 것이니 그때가 무혈혁명시대요 우주적인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한 때를 맞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비어 있는 곳은 반드시 채워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의 원리이기 때문에, 내 한 개체가 몸까지 바친다면 그 빈 터 위에는 반드시 다른 어떤 것이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류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써 그 빈 터 위에 십자가의 구원의 기준을 세워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13

<기 도> 사망의 물결이 동서양을 휩쓸고 있는 이 때에 저희 개체개체의 생명의 이름으로 이 사망의 물결을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될 최종의 책임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 자신들이 미련하고 미비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자인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긍휼의 아버님이여! 애달픈 심정을 갖고 계신 당신의 사정과 체면과 위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의 긍휼을 힘입어 살아가고 있는 저희들의 사정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운 사망의 땅 위에 머물러 있는 저희들, 생령의 힘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승리의 영광을 아버님께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약속하신 은사를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고 섭리하실 바의 전체의 뜻을 나타내시어 이들에게 보여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부족한 저희들, 어찌 아버지 앞에 나올 수 있는 저희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하늘을 대하여 얼굴을 들 수 있겠사옵나이까? 저희 자신들은 천만번 죽어도 마땅한 존재들이옵고, 죄악의 형틀에 사로잡혀 심판의 고난을 당해 마땅한 인간들이옵나이다. 그러기에 저희들, 이 시간 아버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바라고, 아버님의 은사를 바라며 스스로를 직고하는 마음으로 엎드렸사오니, 저희 가진 모든 것을 아버님께 내놓고 옳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청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허락하신 대로 주신 바의 심성을 지켜 하늘을 향해 크신 은사를 호소할 수 있는 저희들로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긍휼히 보시옵소서. 남이 아니라는 이 길을 찾아 나오기 위해 마음에 사무친 슬픔에 젖었던 기억도 갖고 있사옵고, 염려와 시름에 잠겼던 때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이날 이 자리에 좌정하시어서 남이 아니라는 자리일지라도 당신만이 인정할 수 있는 은사가 내려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만이 붙들어 주시고 당신만이 위로해 주시고 당신만이 권고해 주실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땅에 살고 있는 천천만 인간들이 아버님의 원한을 느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원망과 아버님의 탄식을 체휼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억조창생들을 긍휼의 은사로 사랑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과거에 저희들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말씀도 많이 들었사옵고 자기의 행동이 옳다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사오나 그것들로 인하여 천국이 건설된 적은 한번도 없었사옵니다. 지금까지 헛된 말씀만을 듣고, 헛된 행동만을 보아왔던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이 저녁의 모임에 당신의 역사가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곤고한 저희의 몸을 부활시켜 당신이 명령하고 원하시는 뜻을 향하여 달리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무한하신 은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에게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무지몽매한 인간들 가운데 하늘의 서러움을 통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아버지여, 그가 비록 천만번 서러움의 곤궁을 당할지라도 그는 기필코 승리하게 되는 것을 아옵니다.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마음으로 몸으로 아버지의 서러움을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고, 땅을 대하여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여 주셔서 자녀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일주일 동안 상처받은 몸 마음 그대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사탄으로 인해 생긴 죄악의 흔적을 지워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친구는 여기에 모인 식구들뿐이옵고, 저희들의 의지자도 오로지 저희들뿐이오니, 땅 위에 아무런 친구를 갖지 못한 외로운 저희들을 이 시간 당신의 사랑의 품에 품으시어 위로하여 주옵시고, 권고하여 주옵시며, 숨겼던 사랑의 은사를 충만히 나누어주시옵길,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많은 교단의 자녀들 가운데에도 당신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자식들이 어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민족 무지하여 파탄될 수 있는 자리에 머물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스스로를 폭발시키어 악의 근거지를 제거하고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만을 고대할 수 있는 은사를 이 민족 위에 나타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나 아버님께 드릴 예물이 없사옵나이다.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고, 살기 위한 육적인 욕망밖에 없는 저희 자신들의 부족함을 이 시간 직고할 수 있는 회개의 마음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인 전체의 몸 마음이 당신이 분부하시는 뜻과 사랑의 은사에 사로잡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잠깐 동안 여러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입니다.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 이런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6천년 수고의 목적

하나님은 인간들 때문에 역사 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적 싸움과 외적 싸움을 전개시켜 나오고 계십니다. 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사탄을 상대하여 싸우시고, 보이는 세계에서는 선 편 사람과 악 편 사람을 통하여 싸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들이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내적 사정을 알아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내․외적 싸움의 역사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다면 이 전체적인 싸움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대로 인간을 통하여 승리적으로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싸우는 하늘의 정병이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소망을 중심삼은 사상으로 단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섭리하시며 싸우시는 목적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죄악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과 같은 영광의 자리까지 올려놓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희생시키면서 친히 염려하시며 섭리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중심,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찾아 주기를 바라시는 전체적인 사정의 중심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당신 대신 만민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하여 나오고 계십니다. 

죄악에 떨어져 사탄의 유혹에 사로잡힌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어려움도 잊으시고 오랜 역사를 통해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성상(性相)을 갖추고, 만물을 주관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참된 한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몸 마음으로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참된 한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의 전체적인 사정의 중심으로서, 모든 인간들은 결국 이 하나의 중심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전체적인 뜻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동안 이러한 하나님 뜻에 감사하여 뜻 대한 충성심이 변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이 한 친구의 성공을 위해, 혹은 그 친구를 출세시켜 영광의 자리에 세워 주기 위해 생명을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참으며 수고하게 된다면, 그 친구는 그 사람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며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인간들에게 출세의 영광을 안겨 주기 위하여, 인간들이야 알든 모르든 내적인 싸움을 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여러분 하나를 하나님 대신 온 만물을 주관하는 영광의 자리까지 출세시켜 주기 위해 갖은 수고와 갖은 염려와 갖은 고통을 겪어 나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의 몸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내적 싸움이 여러분의 내적 싸움으로, 하나님의 외적 싸움이 여러분의 외적 싸움으로 전환되는 그 한 중심에 여러분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정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우주적인 싸움을 해 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누누이 무례(無禮)한 짓을 해 왔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억조창생과 인간, 혹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하였던가를 반성해 보게 될 때, 우리들은 부족한 자신들임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만물과 만민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킬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인류를 위한 희생의 본이 되신 예수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지한 인간들을 위해 이 땅에 중심존재로 보내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내적 사정을 대표하고 나선 예수 그리스도, 그의 소망의 중심, 그의 생활의 중심은 오로지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시면서 참으셨던 그 참으심의 심정을 본받고,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서는 일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그 공적인 내용을 본받고, 또 싸움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원칙적인 내용을 본받아, 만물과 만민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을 베풀 수 있고 하늘나라의 권세를 갖추어 나타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기가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소망과 자기가 받을 수 있는 영광도 자신의 것으로만 되어지기를 바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망과 영광이 모든 타락인간에게 이루어지고 나타나기를 바라시며, 그 일의 성취를 위해 30여 평생 수고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늘나라 건설을 위한 싸움을 책임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하늘땅의 중심으로 오신 예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고,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전부를 우리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영원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이 우리에게까지 연결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늘의 정병으로서 싸움의 노정을 거쳐 역사의 종말까지 도달해야 할 것이 우리들의 운명의 길이라 할진대, 우리는 이러한 운명의 길을 타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악조건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탄의 역사가 있을 것이며 땅 위에서는 많은 인간들의 반대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싸움터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자율성을 갖추어 책임을 완수해야 할 하나님의 선민이라면, 우리들은 외적으로 사상적인 통일성을 갖추어야 되는 동시에 실제 생활 면에서도 하나님께서 참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참았던 것과 같이 어떠한 고난을 만나더라도 참고 극복해 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시간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불안을 물리치고,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될 수 있는 소망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한 날의 인연으로서만 그칠 것이 아니고 한 시간의 인연이라도 영원히 지켜나가야 할 우리들은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맺어진 불변의 인연과 같은 인연의 기대를 갖춤으로써 불변의 중심을 불변의 목표로서 모시며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함 없이 인내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앞에는 고초의 노정이 남아 있으며 이 노정은 피할 수 없는 노정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이 노정을 타개하기 위해서 30여 평생을 바치셨으며, 죽음까지도 문제시하지 않고 참을 증거했고, 참을 세우고자 했던 그 인격을 우리는 본받아야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 한 개체를 찾기 위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시면서 갖은 곤고에 부딪치셨었고, 갖은 서러움을 당하셨으며,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주면서도 원수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으시고 섭리를 계속해 나오신 하나님의 그 참으심을 본받아야 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외적으로 참아 나오셨던 그 뜻을 받들어서 무한한 고난 앞에 인내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자격을 갖추어 나왔기 때문에 십자가를 각오하면서까지 이 뜻길을 개척해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면서 그 고난 앞에 밀리는 자가 되고 비굴하고 비겁한 자가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노정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로 나타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를 책임지고 4천년 역사를 대표한 하늘의 정병인 것을 아시고 자신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죽음의 길을 넘어가야 하는 곤고가 있더라도 그 모든 고난을 참아 넘길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이 일부러 몰아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4천년 동안 수고하고 참아 나오신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렸던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망의 곤고가 닥칠지라도 이것을 피하려 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3. 하늘 정병의 마음 자세와 태도

그러한 예수님을 본받아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할 우리들도 수많은 고난이 부딪쳐오더라도 그 고난을 피하지 말고 참고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백 명으로 싸워야 할 싸움도 있을 것이고, 민족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싸움도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늘땅을 대표한 싸움도 있게 될 것인데, 이러한 싸움을 목전에 둔 하늘의 정병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는, 우리에게 어떠한 고난의 싸움이 닥쳐올지라도 이 싸움을 우리에게 내맡기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늠름히 타개해 갈 수 있는 인내력을 갖추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수고의 싸움을 거쳐가는 역사노정에서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동역자(同役者)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신들을 완전히 분석하고 검토해 보면서 우주에 남아 있는 고난의 책임을 예수님과 같이 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었는가 반성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나서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고난의 노정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후대의 성도들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 고난을 책임지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끝날에 처한 이때에 비록 우주적인 고난과 우주적인 싸움이 여러분의 가는 노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역사를 책임지고 후손의 운명까지 책임졌던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당대의 우주적인 고난의 고개를 힘겹게 싸워 넘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우주적인 고난을 책임지고 이 고난을 다 극복하여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청산해 놓음으로써 후손들에게는 결코 이 고난을 유산으로서 남겨주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싸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하나님의 정병으로서, 영광의 승리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내하면서 우주적인 싸움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많이 인내해야 할 때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고집이나 주장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가져야 할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뜻 하나를 이루어 드리기 위한 주장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정병이 되어 영원한 승리의 터를 닦아야 할 우리들은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허락을 받고 오셨습니다. 또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지니신 분이었으며, 영광을 누리고 싶은 감정을 갖고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전에는, 그리고 이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을 축복하기 전에 예수님은 영광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뜻을 다 이루시지 못하고 영계에 가 있는 예수님과 성신은 지상에서 다 못 이루신 뜻을 이루기 위해 영계에서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기 한 개인을 위하지 않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30여 평생도 그러했지만 2천년을 거쳐 나온 그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자신을 위하고 자기를 세우는 생활을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을 모시고 땅 위에 있는 전인류를 하나님 앞에 찾아 세워 놓고 모든 인류가 기뻐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셨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오셨던 것입니다. 

4. 승리자의 자격

끝날에 처한 우리들이 이제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동안이나 자신의 일체를 희생하면서 오직 공의(公義)를 위해서 싸워 나왔듯이 우리도 사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공의의 법도를 찾아 세움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제물로 바쳐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소망을 인계맡아 승리자의 자격을 갖춘 모습으로 이 땅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내적으로는 사탄을 상대하여 싸우고 계시며, 외적으로는 악한 사람을 상대해 싸우고 계시지만 그것은 무례한 싸움이 아니요, 법을 벗어난 싸움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천리법도를 벗어나서는 절대로 싸우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와 마찬가지로 천리원칙을 벗어난 싸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끝날에 우주적인 싸움을 해야 할 때에도 천륜의 법도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법을 중심으로 해서 싸울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사탄도 역시 무례한 법을 세워서 천륜을 벗어난 싸움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조건을 세워놓고 사탄과 싸우게 될 때,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면 사탄이 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법도를 벗어날 때는 용서 없이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싸움을 거쳐야 될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도 여러분이 하늘의 법도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신한 정병으로서 승리의 영광을 맞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이후의 2천년 기독교 역사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의 내적인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늘의 법도적인 조건을 세우며 사탄을 상대해 영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있는 인간들 가운데에는 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천륜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용사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싸움에 있어서 하늘을 대신하고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의 법도에 의해 싸우는 단 한 사람이 없어 예수님은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인 세계에 계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도, 또 하나님이 사탄을 상대하여 싸우시던 4천년의 싸움을 예수님께 맡기실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과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싸움을 예수님이 책임지고 계시니, 육적인 외적 싸움은 지상의 성도들이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을 책임져야 할 우리들은, 하나님과 예수가 사탄 대한 싸움에서 하늘 법도에 의해 승리의 조건을 세울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늘 법대로 싸울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인간들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영원한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도 6천년 동안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법과 대립하여 싸워 나오는 사탄의 세력을 막아낼 도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탄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땅 위의 사탄과의 싸움에서도 결국 패배하고 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사탄을 상대해 싸우고, 예수님과 성신이 사탄 대하여 싸우던 법도를 찾아 세워 그 법도대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기준을 갖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시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인 제물 된 생애노정도 체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과의 싸움에 있어서 하늘 법도대로 싸울 줄 아는 자가 되지 않는다면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실 수 없고, 더구나 사탄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탄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있는 한 날을 이 땅 위에 세워서 이 싸움을 종결시키지 못한다면, 6천년 동안 싸워 나오던 외적인 싸움과 내적인 싸움이 우리 자신을 중심하고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의 정병이라면 하나님의 정병으로서 갖추어야 할 무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무기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세력이나 권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과 같은 영광의 자리까지 올려 주시기 위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말씀의 무기를 갖추고,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야 합니다. 다음에는 불변의 믿음으로 사탄까지 인정할 수 있는 승리적인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갖추지 못한다면 우주적인 싸움을 책임진 하나님의 정병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싸움을 앞에 둔 여러분은 자신으로 돌아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6천년 역사를 대표한 전체적인 고난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는 자격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일체의 사심을 떠나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법도를 내세워 공의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자신들로서 사탄 앞에 나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천륜을 대표하여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천륜의 법적인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스스로가 자랑하고 내세우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탄이 먼저 나의 승리를 증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며, 여러분들의 싸움의 상대자들이 악인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오히려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증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만 오랜 싸움의 노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대하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한 개체를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인격을 갖춘 개체가 되기를 소망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갖춘 인간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역사하시고 섭리해 온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사정을 이해했다면 여러분들은 사탄과의 우주적인 이 싸움에서 선봉장으로 나설 수 있는 인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4. 우리는 만민 해방을 위한 사역자

그런 인격을 갖춘 다음에 여러분은 실제 생활에서 여러분 가정의 식구들을 하늘 종족의 위치에 세우고, 나아가서 민족을 뜻 앞에 세우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와 천천만 성도들을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한 천륜의 불변의 법도를 갖추어 천국건설을 위해 일해야 하는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특히 남달리 모인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 책임이 무엇인 줄 압니까? 이 세계에는 억조창생이 살고 있고, 그 중에서도 사탄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가련한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의 책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이들을 사탄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몸 마음을 다 바치어 그 불쌍한 사람들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까지 올려주기 위해 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한 시간 한 시간을 아버지 앞에 바쳐드리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한편 만물도 지금까지 6천년 싸움의 역사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입은 참아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만물들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드리게 될 때 그 영광의 자리에 만물까지도 동참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탄식과 슬픔 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껴서, 여러분들이 승리의 기준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들도 승리의 기준을 세웠다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영원한 승리의 기준을 세울 때까지 그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책임을 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지기에 앞서 이런 책임을 지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이런 싸움을 전개시키고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우리들 모두가 그분들을 닮아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우주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여러분은 무한히 참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지 못하시더라도, 하나님께서 참지 못하시더라도 나는 참아 내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여러분은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께서 공의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 싸우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모든 체면과 위신을 가벼이 여기고 오직 하늘의 법도를 세우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하늘의 정병이 많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탄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명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으로 인하여 우주적인 싸움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세워주기 위해서, 참음의 길이든 죽음의 길이든 어떠한 조건도 개의치 않고 하늘의 명령이 떨어지면 용단성 있게 그 명령에 순종하여 나서는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늘의 정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택함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며, 이 땅을 영원한 승리의 동산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어 승리해야만, 하나님께서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도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고, 우리들까지 즐거워할 수 있는 평화의 시대가 이 땅 위에 찾아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은 선의 사령관도 되는 동시에 악을 대하여 싸우고 있는, 한 분밖에 없는 저희들의 총사령관임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6천년 동안 변함 없이 쉬지 않고 싸워 나오시는 아버님의 형상을 닮아, 또 예수 그리스도의 정성의 노정을 본받아 당신의 체면을 세울 줄 아는 저희 성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싸움의 과정에 머물러 있는 저희들, 나를 중심삼은 하나님이 되어주길 바라고 나를 중심삼은 예수와 성신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게 깨우쳐 주시옵소서. 

하늘의 싸움을 대신하고 그 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으로 나타나야 할 저희들인 것을 아옵니다. 어떤 민족을 중심삼은 정병이나 어떤 세계를 중심삼은 정병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영원한 하늘의 이상과 불변의 사랑과 하늘의 뜻을 위하여 불변의 절개를 지키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6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에, 저희가 당신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는 가치의 인격자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저희들에게 명령을 내리실 수 없음을 저희가 이 시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참되고 공의로우며 법도에 어긋남이 없으며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불변의 모습을 갖춘 영광의 자격자가 아니면 친히 명령하실 수 없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에게 남아진 우주적인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은 우리가 우주만상의 전체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병들이 되어 온 피조만물을 해방시키고 만인을 기쁘게 해 주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고, 하늘의 명령을 받들어 책임 다 할 수 있고 그 사명감에 취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뜻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기 위해서 하늘의 법도를 알고 우주의 싸움의 법도를 알아서, 불변의 중심을 대신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과 복귀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에 나타날 때까지 저희들은 변할 줄 모르고 쉴 줄 모르고, 오직 싸울 줄만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아버님의 기쁨과 아버님의 영광만을 위해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용진해 나가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길 빌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부활의 날을 맞이하여

누가복음 23:50-56

부활의 날은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날입니다. 또 유대민족은 물론 전인류와 만물까지 한결같이 타락의 상태를 벗어나 부활할 수 있는 한 날, 곧 그 부활의 날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실체적인 부활의 날이 이 땅에 찾아지기를 소망하여 나오셨으며, 예수님 또한 실체적인 부활의 날을 맞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무지의 소위(所爲)로 인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예수는 실체적 부활의 사명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후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실체적인 부활의 날은 온 인류와 만물만상 앞에 소망으로 남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해 오신 그 4천년의 섭리역사의 전 책임과 우주적인 사명이 예수님에게 걸려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아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요? 자신을 중심한 소망이 아니고,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 곧 자신의 소망이었으며, 오직 천상천하(天上天下)가 하나님 앞에 부활의 노래를 불러드리는 날을 소망하고 30여 평생 그 소망을 한시도 잊지 않고 애달픈 생활을 해왔던 예수님의 심정을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깨닫는 사람이 있었던가!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무지하여 자기를 믿어주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역사적이고 우주적 소망인 부활의 영광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를 희생하며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십자가상에서 운명할 때까지 이 한 소망인 부활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으며 고심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그 부활의 가치는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며, 또한 여러분은 그 부활에 대한 은혜에 감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지한 인류를 바라볼 때, 그들이 불신으로 인하여 앞으로 어려운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어려움을 다 잊으시고 만민이 걸어야 할 어려움의 길, 죽음의 길이 결코 후대에까지 미쳐지지 않도록 그들 앞에 부활의 한 때를 세우시려고 남 모르는 고난의 길을 간곡한 심정으로 고심하며 걸으셨지만, 이러한 사정을 온 인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생애 전체를 자신에게 귀결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소망하는 그 뜻이 우주적인 차원에서 결실되기를 바랐던 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노정을 인간들은 몰랐으나 하늘의 천사들과 뭇영인들과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으니, 당시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랐던 친구는 하늘나라의 친구가 아니고 땅 위의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 대신 하늘이 그의 친구가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주는 친구의 입장에 섰어야 했었는데 당연히 그래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되어주지 않았으므로 하늘이 대신 친구의 입장을 취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하늘 아닌 땅 위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참사람이 되어 땅 위에서 진실한 친구를 원하셨던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만물은 새 주인을 맞이하는 기쁨을 갖게 되었고, 인간은 재출발의 길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은 영적 투쟁에서 승리의 기쁨을 맞이할 수 있었고, 4천년간 사탄의 참소를 받아 왔던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외적으로나마 참소를 벗어날 수 있는 기쁨을 맛보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이와 같이 천상천하에 기쁨이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사탄에 대한 승리의 기쁨은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 생전에 가져야 할 기쁨이었으며,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하나님의 기쁨도 사탄에 대한 외적인 것만이 아닌 내적 외적 승리의 전체적인 기쁨이었어야 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물론 온 인류가 마땅히 맞아야 할 보다 더 큰 기쁨은 오늘날까지 숙망(宿望)의 대상으로 남아져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는 이보다 더 큰 우주적인 기쁨을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하는 사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도 그러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부활의 기쁨은 만물․인간․예수․하나님이 영원히 가져야 할 기쁨은 되지 못하였으니, 그 기쁨은 한편 슬픔을 내포한 기쁨이요 지엽적(枝葉的)인 기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지엽적인 기쁨을 우주적인 기쁨으로, 슬픔을 동반한 기쁨을 슬픔을 동반하지 않은 영원한 기쁨으로 이 땅 위에 세워놓아야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 이상으로 여러분의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각 개인의 소망과 의무라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대해 가졌던 소망을 여러분 자신의 소망으로, 예수님의 의무를 여러분 자신의 의무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부활의 날을 기뻐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부활할 때까지 수고하신 노정과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하신 노정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그 수고의 노정을 여러분 자신이 직접 걸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남아 있는 그 소망을 이뤄 드릴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영원한 기쁨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세계여 깨어날지어다

시편 98편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이 원하시는 창조이상동산을 저희들이 이루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선과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즐기시기 위하여 인간과 만물을 지으셨던 아버지시여, 오늘 저희의 마음은 당신의 선하심에 취하고 싶고 당신의 선하심을 닮으려 하고 있사오니 당신의 선을 만물만상(萬物萬象) 위에 나타내 주시옵소서. 또 온 피조만상과 더불어 화동하기를 저희들은 원하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현현(顯現)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허락해 주시옵고, 거룩할 수 있는 몸의 본질을 주시어서 당신의 손길이 미치는 거기에 응하여 화동할 수 있고 흥겨워할 수 있게 하여 주옵시며, 모든 것을 성별시켜 아버지 앞에 깨끗이 내놓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바라시는 영원한 이상은 인간을 떠나서는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고 있사오며, 사실적인 체험을 통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인간에게 온 우주의 선을 대표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신 창조의 기준이 있사올진대, 그것을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의 마음을 통하여 나타내시옵고 몸을 통하여 이것을 생동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본연의 나를 중심삼고 내 마음을 통하여 노래할 수 있고, 내 몸을 자복(自服)시켜 아버님께 손들고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 운행하시게 될 때에 전 피조만물 가운데 동하고 정하지 않는 존재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여기에 운행하시어서 아버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나타내시옵고, 아버지의 선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능력의 역사를 대행(代行)하지 못할 악의 요소가 저희들에게 있사옵니까? 아버님! 그 악의 요소가 저희들에게 있다면 이것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승리적인 성별(聖別)을 하여 이 한 시간만이라도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마음과, 아버지의 선의 마음과, 아버지의 6천년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할 수 있으며, 아버님을 염려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아버지를 모실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아버님의 지식을 대할 수 없고, 저희가 가지고 있는 권위는 아버님의 전체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는 것도 한계가 있사옵고, 인간이 가진 이상도 한계가 있사오며, 인간이 자랑할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한계권 내에 살고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하오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관계를 이상의 발판으로 하고 있는 아버지의 성품․성상(性相) 앞에 부족한 저희 자신들을 폭로시키고, 먼저 땅에서 각성하여 분부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허락하여 주신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의 생애노정에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적인 빛의 터전이 작용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힘의 원동력을 일으킬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대하고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시옵고, 그것이 저희들의 삶의 기준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에 간격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분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스스로 느끼고 분부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스스로 닮아 아버지께서 동(動)하시면 저희도 동하고 아버지께서 정(靜)하시면 저희도 정할 수 있는 화동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성상을 상속받게 해 주시고 창조주이신 아버지의 선의 중심을 결실하여 아버지께 영광과 미(美)를 돌려드리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잠들어 있는 세계여 깨어날지어다’라는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계신 이상 이 땅은 반드시 광명의 새 아침을 맞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인간은 온 피조세계와 더불어 영광을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망은 이처럼 인간이 이 땅에서 온 피조만물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영광과 기쁨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오랜 역사를 경과해 나오면서 인간들은 온 세계의 인류가 하나의 이상의 표준을 대하여 같이 즐길 수 있고, 같이 사랑에 취할 수 있는 그 한 때를 맞이하기를 바라왔고, 그날이 언제인지도 확실히 모르면서 그 한 날을 고대해 나왔던 것입니다. 

1. 인간을 향해 호소하시는 하나님

그러면 어찌하여 우리 인간이 이런 사망권 내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는가?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들 가운데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창조이상(創造理想)을 땅 위에 이루어서 온 만물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기쁨과 환희의 송영을 드릴 수 있는 참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아직까지 온 인류 앞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광명의 새 아침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인간이 새로운 이념과 주의(主義)를 맞이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은 오늘날까지 새 아침의 밝은 햇빛을 받아보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이 세계를 다시 깨우지 않으면 안 될 우주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데, 이것을 느끼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잠든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때의 새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이러한 귀와 눈과 감각이 없다면 잠든 이 세계를 깨울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잠든 세계를 깨우기는커녕 여러분 자신조차 깨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철학과 종교와 역사관을 통하여 새로운 소식을 들어야 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섭리를 해 오시면서 인간들을 향해 호소하시는 그 음성을 들어야 하고,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들은 새 시대의 새로운 소식과 하등의 관계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끝날이 당도했음을 예고하고 있으며, 많은 종교 특히 기독교는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느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어떤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극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서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소식에서 옵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것을 찾아 세우지 못한다면 6천년의 기나긴 노정에 맺혀 있는 모든 원한

을 떨치고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러한 사실을 헤아린다면, 새로운 귀와 새로운 눈과 새로운 마음을 갖고 우주적인 섭리가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때는 이와 같이 새로운 눈과 귀와 지각을 갖추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끝날이 가까운 이때요, 심판 날이 당도한 이때인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이 땅을 사망(死亡)의 세계로, 혹은 영원히 잠든 세계로 그냥 놔두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드시 이 세계를 깨우실 것이며, 창조본연의 세계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조금 전에 끝날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지금이 끝날인 것을 알 수 있는가?  새것의 탈을 쓴 거짓것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아 지금 때가 끝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말세에는 하늘을 중심한 참것이 나타나기 전에 항상 거짓것이 먼저 나타났던 것입니다. 

2. 참과 거짓의 분별 기준

우리는 이렇게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참된 것이고 어떤 것이 거짓된 것인지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기준은 지식이나 학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각자의 본심(本心)인 것입니다. 그리고 끝날이 가까운 지금의 때는 누가 언제 나에게 침범해 와 내 생명과 나의 영원한 소망을 유린할지 모르는 때입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세상적인 어떤 조건을 통해서 침범해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세상적인 조건을 지나치게 중요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선악을 분별해 주는 최고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들이며, 최고의 선을 단정지어 줄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만일 이것들이 최고의 선을 단정지어 줄 수 있는 것들이라면 이미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었을 것이고 새로운 소망을 향하여 나가게 해 주는 은혜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은 새로이 느낄 수 있고 실증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자극적인 것으로도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들에게 아직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소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지식이나 학식은 선을 단정지어 주는 이상적인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을 맞는 오늘날 우리들이 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마음을 찾아야 하고, 그 마음을 통하여 본질세계(本質世界)와 현상세계(現象世界)를 통일적으로 해명해 주는 새로운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마음과 진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 섭리의 중심인물들이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까지 수고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마음의 참진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음과 상대될 수 있고 화동할 수 있고 영원한 이상(理想)의 요소로서 즐길 수 있는 기준이 상대적으로 찾아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는 아직까지 어두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찾아 하나의 마음, 불변의 마음의 중심을 세워 가로막혀 있는 모든 흑암의 장벽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종교생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관념적인 사색과 신앙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보통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가가에 돌아가실 때 느끼신 고통과 그 참혹성을 상상하며 느껴지는 그 자극으로 기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기도를 하되 먼저 여러분의 본심을 불러일으켜서 여러분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닦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성부, 성자, 성신의 신성(神性)이 그 마음의 터전을 통하여 우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관계가 우리들과 맺어진다면 우리들의 몸은 자연적으로 은혜롭게 거기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잠에서 먼저 깨어난 우리라면, 어두움 가운데 잠들어 있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잠들어 있는 만민의 마음을 깨워 일으켜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인생노정에 훌륭한 스승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스승이 있다 해도 그는 일시적인 스승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여러분의 영원한 생명을 대신하여 영원한 천륜 앞에 서서 하나님의 신성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스승은 되지 못합니다. 또 그는 한 개인의 어떤 시간적인 과정에서 좋은 스승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성품과 천성을 통하여 참생명을 지닌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영원한 생명의 지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현재 여러분이 대하고 있는 스승이나 그가 가르치는 기준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본심을 찾아서 마음의 귀를 통하여 천륜의 부르심을 듣고, 마음의 눈을 통하여 신성을 보고, 마음의 촉감을 통하여 하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지나온 6천년의 역사과정을 그대로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참으로 귀한 것이 하늘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들의 마음도 그에 못지 않게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상대할 수 있는 높은 가치기준을 세우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마음의 핵심을 찾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천륜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오늘날까지 여러분 나름대로 성실한 신앙생활을 해 나왔다고 하겠지만 ‘여러분은 과연 자랑할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반문한다면 ‘나는 자랑할 것을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설혹 여러분들 가운데 하늘 앞에 자랑할 무엇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본심을 통하여 자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천륜을 대신하여 영원한 이상을 입증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여러분들은 절대로 어긋난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3. 더럽혀진 마음을 씻어내는 생활

오늘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흔히 관념적인 세계와 그런 상대로부터 위안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타락했지만 인간들은 본래부터 영원하신 천성과 통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마음 가운데는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악을 벗고 완성하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고 무한히 기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신앙자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 혹은 불교도들이 참선을 통해 무아의 경지를 찾아 들어가는 목적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마음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깨우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하나의 기준을 세워 보고 듣고 느끼는 마음의 중심을 천륜 앞에 세운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경배드리며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 가운데는 이러한 마음의 경지를 원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심각하게 파고들어 자기의 본성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주의나 사상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설 줄은 알면서도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마음을 일으키는 진리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의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혹은 어떤 사상을 위하여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일으키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천륜과 아무런 가치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마음의 핵심을 찾아 들어가 6천년 동안 선조들로부터 죄악의 혈통을 통하여 이어받은 더럽혀진 마음을 다시 씻어내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또 어떠한 일을 대하든지, 어떠한 문제를 대하든지 생명을 걸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서 그러해야겠고, 여러분이 바라는 소망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만사에서도 그러해야 되겠고, 생사의 기로에서도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는다면 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움직여 나오는 천성의 마음의 핵심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 6천년의 인류역사가 흘러온 과정에서 수많은 선지자들과 수많은 충신, 열녀, 효자, 효녀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충성을 다하고 열을 다하고 효성을 다했다 할지라도 아직까지 창조이상세계의 완전한 실현을 향하여 출발하게 하는 마음의 중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충․효․열 가지고는 복귀섭리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제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수고했던 충신과 효자, 열녀가 선을 지향하였던 그 이상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늘을 위하여 성심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 우리 한국 백성들이 앞으로 세계 인류를 깨워 새로운 아침을 맞게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면, 한국 백성들은 앞으로 하나님 뜻을 위하여 어느 민족보다 더 성심을 다해야 합니다. 

또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신앙노정을 개척하기 위한 세계적인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 앞에 충성하고 성심을 다했던 선조들보다 여러분들이 더 충성하고 성심을 다할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4. 어두움의 세계에서 깨어나야 할 우리

여러분이 만일 오늘날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충신과 효자가 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그런 신앙자들이 된다면, 또 그러한 사람들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리 한국 민족 가운데 많이 있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이 한민족은 천륜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제일 가까운 입장에 선다는 것을 나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날 새로운 무리로서 새로운 신앙의 봉화를 들고 전체적인 사명과 책임을 지니고 만민 앞에 나서겠다고 한다면 누구보다도 마음 씀에 있어서나 성심을 다하는 데 있어서 앞서야 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의인들보다도 더 높은 신앙의 입장에 서고, 그들보다도 더 진실된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신앙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복귀역사가 연장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중심삼고 섭리하고자 할 것입니다. 오늘날 악이 번성하여 이 세계가 혼돈되고 있다 할지라도, 이처럼 새로운 신앙의 봉화를 드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잠들어 있는 이 세계를 깨우치려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 사회를 들려줄 음성을 갖고 있습니까? 또 자극시킬 수 있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에게 이 사회의 발판이 될 수 있는 도구가 갖추어져 있고 이 사회를 자극시킬 수 있는 어떤 힘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상에 있었던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이 사회를 깨우치기 위해 수고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성실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이 사회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어야 여러분은 이 어둠의 세계에서 깨어 일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새로운 말씀을 들었습니까? 들었다면 어떤 말씀입니까? 내가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들은 것은 귀로 들은 것에 불과합니다. 또 새로운 사실을 보았습니까? 역시 그것도 눈으로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부분적이나마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이미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은 새롭게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확실히 세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끝날에 하늘이 ‘세계와 만민을 위하여 일어나라.’ 할 때, 여러분은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은 훌륭한 스승을 모시려 했고, 또 좋은 책을 읽으려고 했습니다. 훌륭한 스승과 좋은 책도 인간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만으로는 영원한 이상동산을 이룰 수 없고, 또 인류를 해방시켜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천륜을 중심한 마음을 통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기도를 통하여 보고 느끼고 들은 사실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나타내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즉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시간권 내에서 새롭게 깨어난 여러분들이라면 새로운 생활의 이념을 세워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제 더욱 서러운 시련을 통하여 더 크게 눈을 뜨고, 더 많이 귀로 듣고,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느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새로운 생활의 무대를 바라보아야 하고 새로운 생활의 세계와 천륜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인류가 당하는 고통은 새로운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요, 하나님의 서러움에 동참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끼면서 그 서러움을 해원해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마음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현실생활에 부딪칠 때 현실생활의 어려움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이제까지 이 세상을 고질적인 생활환경이라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천시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여 고통받는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악에 대한 공분심

이제 새로운 눈을 뜨고 새로이 듣고 새로이 보고 새로이 깨닫고 새로이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겠는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역사를 대신하여 선을 세우고, 현실을 대신하여 천륜을 세우며, 미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여 사망의 자리를 통과한 이후에 여러분은 예수의 승리의 심정을 느끼고, 악에 대한 공분(公憤)의 심정을 느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분의 심정에 사무치게 하는 예수의 힘이 여러분을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엇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의 종말기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심판의 관문을 뚫고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역사적인 결실체가 오는데, 그때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이제까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바의 진리로써는, 혹은 현실의 생활 환경에 얽매일 때는 악을 이길 수 없으므로, 여러분은 역사와 현실을 넘어 악에 대한 공분심을 가져야 되겠고, 영원한 역사를 책임지고 천륜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나아가 “아버지여, 원수들을 무찌르기 위해 나섰사오니 어떠한 책임이든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을 뒤흔들 수 있는 공분심에 사무친 여러분이 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사이에 여러분은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제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본심과 양심에 의하여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섭리를 염려하는 입장에서 공분의 심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공분의 심정을 여러분이 갖지 못한다면 사탄을 대하여 판가리 싸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께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던 원수, 우리의 선조와 의인들의 원수였던 사탄의 근본을 확실하게 알고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의 봉(棒)을 들어 그들을 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공분심에 사무쳐 현실의 모든 조건을 제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웠는데도 여러분과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상대자를 맞지 못하면, 여러분은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든 고난도 잊어버리면서 기도하였고, 우주적인 공분의 심정을 느끼면서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원수인 사탄을 무찔러야 되겠고, 여러분들이 거하는 그 자리에서 공분의 심정을 갖고 민족을 대표하여 하늘 앞에 호소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책임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동산이 건설될 때에 여러분은 그 이상동산을 자신의 것으로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공분심을 가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단결하여 천국만을 외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외치며 나가는 과정에서 천륜에 좀더 가까운 사람이나, 선을 위하여 좀더 깊은 공의의 심정을 가진 자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사람과 화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점으로 생각하여 볼 때, 이 죄악세계와 대립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그래도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공분심을 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6. 심판의 행사를 대행해야 할 성도

이제 여러분이 의인과 합해질 수 있는 공분의 심정과 공의의 심정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적인 사탄과 대결하기 위해 그러한 공분 공의의 심정을 합해야 되고, 심혈을 기울여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세계적인 사명을 완수해야 하나님께서 비로소 심판의 역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랜 역사 과정을 거치며 바라시고 참아 나오신 소망이 무엇인가 하면, 공분심을 갖고 먼저 자기 자신의 부족한 것을 칠 줄 알고, 그 다음에 모든 면에서 세계를 대표하여 사탄과 대결할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합하여 교회를 이끌고 사회와 세계를 이끌며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만 비로소 하나님은 심판의 결정을 내리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자 원한다면 6천년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 사무쳤던 의분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원한이 맺혀져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 사탄에 대한 공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원수들에 대한 공분의 심정을 가진 여러분들이라면, 여러분은 단결하여 세계적으로 움직여 나가야 하겠고,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고 있는 신자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원수 가운데 있는 죄와 악까지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라 죄악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불쌍히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도 그 사람의 죄악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끝날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죄악권 내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죄인을 다스리고 있는 사탄을 쳐야 되는데 참다운 인간을 통하여서만이 그 사탄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천국을 바라고 하나님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하더라도 그것을 요구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념과 심정권 내에서 허락받을 수 있는 때와 입장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호소하는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드리지 못하고 있고, 천륜을 배반했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의 기도만을 들어 달라고 하늘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서 벗어나 내 모든 것을 잊고 천륜을 중심하여 공분의 심정을 갖고, 내 일신이야 망하든 흥하든 모든 것을 잊고, 민족과 세계가 죽어 가는 것을 붙들고, 하늘이 서러워하는 것을 붙들고 염려하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생애기준을 세우고 “하늘이여, 나를 책임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한 연후에야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애기준을 세우지도 않고 하늘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지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해야 할 책임, 하나님이 원하는 책임을 다한 입장에 서서 사탄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또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서 공분의 심정을 갖고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탄 대한 심판의 행사를 대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책임을 각자가 질 수 있다는 중심이 여러분의 마음에 서 있지 않으면 사탄을 심판하기 위한 한 날을 맞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섭리는 세계성을 띠고 있으므로 여러분도 상대적으로 세계성을 띤 이념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찾고 있는 요구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여러분이 바라고 있는 소망이 누구를 위한 소망인가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을 요구하기보다는 자기를 중심삼은 뜻을 요구하고 있고, 하나님의 은사를 중심하고 즐기려 하지 않고 자기를 중심삼고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은사가 있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여러분 개체만을 위한 은사가 아니고 여러분을 발판삼아 세계 끝까지 전해져야 할 은사요, 모든 권세를 잡은 사탄까지 굴복시켜야 할 은사이며, 다시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은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받은 은사는 여러분 한 개체만을 위한 은사가 아닙니다. 사회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뜻을 위하고 하늘을 위한 은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은사를 자기 생활권 내에 틀어쥐고 앉아서 자기 것으로만 즐기려 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는 그 자리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떠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어떤 은사를 받았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공분의 심정을 갖고 하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심판하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허락하신 은사를 입은 자가 자기를 중심삼고 즐기려 하거나 자신을 중심삼고 남을 심판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므로 허락하신 뜻길을 걸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7. 세계를 깨워야 하는 우리의 책임

그러면 이제 심판의 행사를 대행해야 할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신을 냉정히 분석하여 마음과 몸이 합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런 것이 발견되면 여러분은 우주적인 공분의 심정으로 먼저 그것을 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요구하는 뜻 앞에 몸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그 몸을 깨워 일으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몸이 요구하는 것을 바라거나 쳐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스스로 여러분의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원수같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온 우주를 다시 깨워야 할 사명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그런 사명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일을 책임지려고 나서면 여러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탄과 보이는 실체 사탄이 나타날 것입니다. 또 제일 가까운 식구들 가운데도 그 뜻을 가로막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려면 어느 한 때 여러분 자신을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세계에 드러나는 가정이 되기를 소원한다면, 세계를 위해 여러분 가정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오늘 이 시간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주적으로 일으키려는 섭리의 뜻 앞에 어느 기준까지 깨어났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깨어나야 하는 동시에 여러분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깨워야 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욕망과 어떠한 소망을 지녀야 하겠는가? 이 땅 위에 맡겨진 사명을 다한 뿌리가 되는 것으로써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천륜과 공의를 중심삼고 이 땅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까지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공분의 심정을 갖고 단결해서 사탄 대하여 투쟁해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현재의 원수요, 과거의 원수며, 미래의 원수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탄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로 단결해서 우주적인 공의의 법도를 세워 놓고, 그것을 표준으로 하여 진격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 생활의 표준이 되어야 하겠는가? 먼저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또 슬프고 어려운 자리로 침범해 들어오는 사탄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오히려 사탄보다 더 열심히 우리의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악을 쳐부숴야 되겠습니다. 악이 밀어내더라도 그 악에게 밀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직 선이 악을 이기고도 남을 수 있도록 우리는 용진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승리한 개인이 승리한 형제로, 승리한 형제가 승리한 가정으로, 승리한 가정이 승리한 사회, 국가, 세계로 확대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의 법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려는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억천만 사탄과 대결하여 혼자서라도 싸워 승리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갖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래야만이 이상세계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이상권 내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아버님! 저희들 앞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천륜의 뜻뿐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리고 그 뜻의 중심이 아버님과 참부모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또한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참부모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저희들은 알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만민이 하나의 형제가 되는 것이요, 만민이 아버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또 당신이 소원하시는 아들딸의 입장에 서고자 원하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그들을 유린하는 죄가 이 땅 위의 그 무슨 죄보다도 크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의 참다운 성실을 유린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죄이지만, 참다운 형제애를 잃게 하는 것이 천륜 앞에 더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아오니 이것을 망각하지 않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 모인 아들딸들, 깊은 잠 가운데서 깨워주려 하는 천륜 앞에서 어떤 형제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할 때, 어찌 목자의 이끌림을 받아 움직이는 자신이라 말할 수 있겠나이까. 저희가 그런 자리에 서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형제까지도 자신이 책임지고 천륜을 대신하여 숨은 제단을 쌓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영원한 아들의 이상을 세우게 하여 주시옵고, 늘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님의 눈초리가 있음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호소하시는 음성을 듣게 허락하여 주시며, 훈계의 말씀을 하시고 애달파하시는 아버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닮고 아버지의 성상(性相)을 본받아 그 뜻 앞에 천만번 죽을지라도 경배드리며 감사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은 천륜의 원한을 해원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원수들에 대해 새로이 느낄 수 있는 말씀을 들었사옵고, 새로이 아버님의 뜻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이 느낀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 오늘의 말씀이 내 한 개인의 느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역사성을 대신하고 우주성을 대신한 천륜의 뜻 앞에서 전체에 연결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원수들을 대하여 천륜을 대신한 공의의 심정과 공분의 심정을 가지고 싸울 수 있게 해주시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한 날을 돌려 드리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며 전진하게 해주시며, 승리의 그날을 맞아 그 동안 참아 나왔던 저희들의 원한을 아버지께 아뢸 수 있게 해주시고, 아버지의 귀한 손길을 붙들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게끔 이끌어 주시옵소서. 

잠들어 있는 이 땅의 모든 인류를 깨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탄식권 내에 있사오니 저희들을 동원하여 이것을 회복하게 해주시며, 24억 인류에게 각자 책임을 완수하여 모두 천국인이 될 수 있게끔 하늘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어린 자녀들, 어떠한 싸움의 노정이라도 개의치 않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해주시고,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여서라도 뜻만을 위해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12:38-50, 마가복음 14:32-42

<기 도> 당신이 허락하신 뜻 앞에 만민을 구속하기 위하여 나타나신 초췌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오늘날 저희들이 이 시대를 대신하여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이르렀사옵나이다. 

긍휼의 아버님, 사랑의 아버님, 자비의 아버님, 능력의 아버님!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한 4천년의 역사도 기나긴 세월이었으나, 그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2천년의 역사도 기나긴 세월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 한 자체는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민망한 모습인 것을 아버지,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보잘것없는 것들을 부르시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붙들고 섭리하시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찾으시기 위하여 어언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시면서, 소망의 뜻을 두시고 오늘날 인간을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헤아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췌한 모습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을 염려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믿는 사람도 많고 택함받은 자도 많지만, 당신이 친히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은 심히 적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이제 아버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몸으로 자기 자체의 부끄러움을 폭로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를 수 있는 충복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모인 아들딸들을 중심삼고 허락하신 은사를 나타내시옵소서. 

끝날을 예고해야 하는 새로운 사명을 짊어진 저희들, 끝날에 맡기실 바의 우주적인 사명을 맡아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오니, 저희 자신들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천륜의 대기업(大基業)을 연장시키는 놀음을 하지 말게 해 주시고,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전체 앞에 원한을 남기는 행동을 하지 말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오로지 성삼위신(聖三位神)이 저희를 주관하여 주시고, 저희 개체의 모든 것까지 주관하여 주옵시며, 전체적인 성품을 대신하는 아버지의 본성의 움직임만이 각자의 마음 마음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가지고 나섰사오니, 주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에 간격이 없게 하여 주옵고, 인간적인 지식으로서 분별하는 척도를 갖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부를 아버지 앞에 맡긴 자로서 분부하신 말씀에 화합하여 아버지 앞에 하나의 제물로서 바쳐질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니, 오로지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과 잠시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주는 어찌하여 가셨다가 오셔야 하는가?’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유대민족으로부터 불신당한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부활하신 이후에 승천하셨기 때문에 다시 오셔야 할 섭리적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택함을 받은 유대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택한 하나님의 바라심이었고 또 그들 자신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뜻이 이루어지는 한 때를 바라셔서 하나님은 당신이 믿을 수 있고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전체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인간 앞에 주인으로 나타내셔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려던 축복을 이루셔야 했고, 또 역사적인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뜻을 종결지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섭리의 뜻을 성취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이상동산을 이루시지 못하고 가셨는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노정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가는 그런 생애의 노정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어려운 자리, 누구보다도 외로운 생애를 거쳐가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이상을 한 몸에 지니고 한 세대권, 한 시간권 내에 한 존재로서 나타났던 분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예수님의 가치를 하늘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가치로서 알아주는 사람이 이 땅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예수님을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사랑의 중심존재로서 모셔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을 친구로 세워놓고 자신의 슬픔을 토로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불쌍하게 살아가셨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쁨이 되고, 유대교단과 세계 인류의 기쁨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분은 온 인류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예수님은 굶주림과 슬픔을 당하는 불쌍한 생활을 하셨던가?

시대는 변하고 역사는 경과하였으나 여러분은 예수께서 생존시에 느끼셨던 서러움과 고독함을 체휼하여 그의 불쌍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하늘땅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한다면, 슬픔과 외로움으로 맺혀져 있는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릴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고 자기 자체를 희생해서라도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피조세계의 중심존재로 세워졌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이상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4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고,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시조의 과오를 책임지고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이념, 자신의 목표로 삼고 나타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대민족은 예수님의 일신이 역사적인 소망을 대신한 동시에 당시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신한 분이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고고(孤高)한 한 개인이로되 그 자체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현실을 대신할 수 있는 동시에 천륜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은 예수님이 그러한 분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협조하기는커녕 공공연(公公然)히 방해하고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2.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심정

그러면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과 인류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슬픔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그것은 당시의 보여지는 그 환경만을 보시고 슬퍼하신 서러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서러움은 아담의 타락 이후 4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대신한 서러움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4천년 기나긴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서러움을 대신한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었던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서러움은 어느 정도였던가? 4천년 하나님의 서러움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선지선열들의 서러움을 대신 지니고 오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서러움을 하나님과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은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서러움은 당신을 위한 서러움이 아니었고, 당신을 죽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서러움이요, 유대교단을 염려한 서러움이었으며, 세계적인 뜻길을 염려한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한 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의 서러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한의 심정과 지상의 인간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품고 오신 예수님을 유대교단이 메시아로서 모셔드리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의 슬픔은 한층 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이 세워 주신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망각하고 예수님을 배신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30여 평생 하나님의 눈물을 대신하여 한없는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는 생활을 거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의욕에 찬 소망을 품고 아버지의 사정과 심정을 소개하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수고하신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서러움이 북받침을 참으시며,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골고다의 산정까지 몰리며 쫓김을 당하시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하고도 처참한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간곡한 기도를 드리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하나님의 서러움과 천천만 성도들의 서러움과 만 인간의 서러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요, 당신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 당신을 따르는 수많은 성도들도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러운 심정이 북받쳐 하늘 앞에 그러한 호소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과 인간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후대의 억조창생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애달피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여러분들은 그런 예수님을 역사적인 예수님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 또 다시 그때와 같은 사정에 처해 있을지 모르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 이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님의 후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속에 맺혀져 온 예수님의 한과 서러움은 풀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을 믿는 성도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의 맺힌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되겠고, 후손들에게 이어질 서러움까지 풀어버려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이 시대는 누구나 말하고 있고, 또 많은 선지자들이 예고했던 ‘끝날’이며, 예수님께서 민족과 교단으로부터 버림받아 돌아가신 후 다시 오실 것으로 말씀하셨던 ‘재림의 때’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를 맞아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찾아오실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되겠고,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단과 유대민족보다도 더 간절하게 하늘 뜻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역사적인 서러움을 책임져야 할 끝날의 성도들

여러분들이 다시 찾아올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책임지셨던 4천년 역사의 서러움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성신까지 오셔서 애달파 했던 2천년 기간을 가한 6천년의 역사적 서러움을 대신하고 책임짐으로써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인해 끊어진 천륜의 대유업을 인계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늘을 대하는 우리로서는 역사적인 인연을 벗어나 자체만의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책임지고, 미래를 책임지고,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과 천군천사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이 땅의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날을 바라보며 타락권 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서러워하고 염려할 줄 아는 심정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의 서러움과 당신이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알겠나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간곡한 심정으로 뭇인간을 속죄해 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안타까워했던 그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역사의 주인공이요, 우주의 주인공이시며, 미래의 이상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여러분이 모시고자 원해도 모실 수 없으며, 그러한 예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4천년의 서러움에 갇혀 있었고 30여 평생 만민과 후손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걸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정을 걸어놓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며 이것을 타고 넘어가 창조이상권(創造理想圈)에까지 도달하기 위해 새로운 신앙기준을 세워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실증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앙자로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겠는가?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중심사명을 맡은 유대교단이 있었던 것같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중심한 세계적 이스라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도 어떤 대표적인 교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즉 역사는 동시성을 띠고 전개되어 나오므로 하나님은 끝날의 사명을 담당하는 하나의 종교를 세우시어 섭리역사를 귀결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끝날을 맞이한 우리로서는 그러한 대표적인 종교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종교를 찾으려 할진대 역사적인 교훈으로서 예수님 당시 유대교가 범한 역사적 과오를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지나친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웠고 지나치게 의식과 규례에 얽매이게 됨으로써 천륜의 법도에 어긋난 생활을 하였습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처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밟아 오시게 되기 때문에 세계적인 서러운 고개를 넘어 이 땅에 다시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의 반대에 의해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끝내는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갈보리 산정까지 쫓겨가셨던 것과 같이, 다시 오시는 주님도 세계적인 이스라엘과 유대교적인 교단의 반대를 거쳐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갈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 면에서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바라보고 느끼시던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고, 역사를 바라보고 느끼시던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고, 미래를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여러분은 체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서러움에 맺혀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찾아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은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가한 6천년의 역사적인 전체의 서러움을 풀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골고다의 길을 넘어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늘을 향해 호소할 때,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졸고 있던 세 제자의 모습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천적인 가치를 알고서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림으로써 부활하실 주의 영광을 확인해 드릴 때, 그 마리아의 행위를 비웃고 막아선 제자들의 모습을 대하신 그 심정이 예수의 원한이 되었음을 오늘날까지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가시면서 서러운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만은 그런 예수님을 위로하고 염려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한 예수님의 천적인 내적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환희의 은사로 그녀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체휼해야 할 예수의 심정과 사정

그렇다면 끝날에 처한 우리들은 어떠한 심정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는가? 서럽고 고달픈 수고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자기의 어떠한 입장과 위신과 체면도 다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찾기 위해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가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올 수 있는 영광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 이상으로 간절하고 애달픈 심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우리가 되지 않는다면 비록 주를 찾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주님을 모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를 만나 주의 충만한 사랑의 품에 안기고 사랑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6천년 서러운 심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고, 또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심정을 소유해야 됩니다. 그런 여러분이 될 때에 하나님과 천상의 성도들이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고, 예수님과 만민도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며, 여러분은 막달라 마리아의 입장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권 내에서 이상적인 생활 무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슬픔의 6천년 역사를 회복하여야 할 여러분의 육신은 외부와 단절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초월해서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과거와 현실과 미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 한 개체는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서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무분별하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초월한 영원한 가치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 개체에서 성취해야 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이 고통과 서러움을 당하셨던 한을 품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온 인류가 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그분이 당하신 고통과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시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 그리고 택함받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가정까지 예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사정을 여러분이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는 당시 예수님을 저버리던 중심 교단인 유대교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모시는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계적으로 배반당하신 예수님을 위하여 혼자서라도 세계를 상대로 싸울 수 있고, 유대 교법사들에게 배반을 당하셨던 예수님을 위하여 어떠한 배반도 나홀로 가로막겠다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길이 복귀의 길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리의 한 날을 예고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시켰던 요셉의 가정과 요셉의 종족까지도 예수님을 배반한 그 전체적인 불신의 조건들을 여러분 일대에서 홀로 탕감하여 승리의 조건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는다면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이상적인 민족과 교단과 가정을 가지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께서 그런 서러움의 길만 가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히 외로운 길도 가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전체의 뜻을 이 땅의 인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없어서 알려주지 못했던 예수님이었으므로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 성(城)에서 반대하면 저 성으로, 이 고을에서 반대하면 저 고을로,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풀지 못하여 안타까워하신 예수님, 자신의 서러운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찾기 위하여 감람산 기슭을 찾아 헤매시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늘의 사랑과 천륜의 인연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셨지만, 역사적인 노정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서러움과 고독의 심정을 지니셨던 그 사정을 오늘날 여러분만이라도 알아드리고 위로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예수의 심정을 느끼고 그러한 예수의 사정과 하나된 입장에서 생활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 주여!”, “아버지!” 하는 이 한마디로써 예수님과 심정으로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역사를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하여 예수님의 고독한 심정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주님을 모시는 새로운 교단과 사도와 가정

예수님은 외로우신 분이며, 서러움의 주인공이요, 서러움의 왕자이셨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불쌍한 분이셨던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어떤 불쌍한 사람, 어떤 외로운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보다 더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서러워할 수 있고, 예수님 대신 애달파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어 안타까워하셨으며,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주는 사람이 없어 더욱 안타까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심을 통하고 본성의 인연을 맺어서 하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인간들을 찾으려고 초초한 모습으로 오셨다가 그 뜻을 이루시지 못했던 예수님의 한 맺힌 심정을 체휼하고 천심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수고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헤아리며, 불쌍하신 예수님을 동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의 주님으로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수님은 땅 위에 오셨던 목적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영계에 가셔서도 만민의 죄를 감당하는 속죄자의 모습으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불쌍한 분이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우리들이 실생활 속에서 믿고 따르고 모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계적인 서러움, 천주적인 서러움, 세계적인 외로움, 천주적인 외로움을 겪으신 불쌍한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하며,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러한 자신이 되었는가를 자문자답하고 분별해야 할 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이룩하시고자 했던 그 영원한 뜻을 유업으로 계승받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성취시켜야 할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기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불신과 죄악으로 물든 6천년 역사를 종결짓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교단과 사도와 가정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 할진대는 지금까지의 교단적인 인연을 초월해서 오늘의 현실에서 역사적인 신앙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단의 기준을 갖추어야 하고, 미래의 복음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도와 가정의 기준을 조성하여 영원한 승리의 발판을 이룩함으로써 하나님의 이상동산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인류와 세계를 위해 오셨던 예수님을 당시에는 세계와 민족, 교단과 가정이 배반하였으며 심지어는 택함 받은 제자들까지 불신했지만, 오늘날 여러분만큼은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 그의 사정을 위로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배반하는 세계와 교단과 종족을 바라보며 서러워하신 예수님에게는 그 심정과 통 할 수 있는 부모가 있어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앞에 봉독한 성경 말씀과 같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선생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나이다.”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예수님에게는 진심으로 당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부모와 형제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다운 부모와 참형제가 없어서 이와 같이 슬프고 외롭고 불쌍한 처지에 있었던 것이며, 종족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의 길을 곧게 해 드려야 할 세례 요한에게까지 배신을 당하여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한을 품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예수님의 사정을 통하고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그 모든 이념을 계승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가정과 종족이 예수님 탄생 시부터 있었던 이적과 기사를 보고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무지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들지 못했습니다. 본시 그들은 예수님의 천적으로서의 사명을 깨달아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고 환경을 준비하여,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예수님의 발판이 되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후에 예수님이 따로 사도를 찾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 이후 요셉까지 60여대를 거쳐 나오면서 혈통적인 인연을 통해 세워진 예수님이었으므로 그의 가정과 종족이 그를 옹위하여 불신하는 교단과 민족과 세계에 대립하여 싸울 수 있는 하나의 종족권을 형성했더라면 예수님은 결코 서러운 입장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6. 재림주님이 찾으실 가정적 환경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게 될 때에 무엇을 찾으실 것인가? 자신과 함께 사탄세계를 대하여 싸울 수 있는 가정적인 환경을 잃어버리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다시 오시게 되면 예수님은 우선 당신의 서러움과 고통을 막아줄 수 있는 가정적 터전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과 심정일체를 이루어 그러한 가정적 울타리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가정적인 울타리가 없었던 것이 예수님의 원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시에 예수님의 가정적인 울타리가 되어 ‘예수님은 참다운 나의 주님’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다운 자녀들이 나타났었다면 예수님의 원한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오시는 주님의 가정적인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서러움을 위안해 드릴 수 있는 형제가 있었더라면 그러한 형제들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한이 해원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종족을 중심삼고 유대민족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협력자가 되었다면 예수님의 복음은 당시에 유대교단을 넘어 세계로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들 예수님의 복음이 이방에서부터 전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그러한 종족과 민족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럽게 돌아가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들은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목숨을 걸고 그분의 가정적인 발판과 종족적인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늘이여, 6천년의 원한을 나에게 맡기시옵소서. 예수님의 서러움을 나에게 맡기시옵소서. 천상에 있는 서러움을 나에게 맡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의 외로운 심정과 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사람을 하늘은 이 시간도 찾고 계시며, 어제도 그제도 일년 전에도 천년 전에도 2천년 전에도 소망하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민족을 대신한 제물의 길, 골고다의 죽음 길을 가시면서도 그러한 길을 가게 했던 불신의 민족에 대하여 원망하시지 않으신 것과 같이 부모의 심정을 소유하고 부모의 처지에 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입장도 느껴 보아야 되겠고, 하늘 가족과 하늘 종족의 입장도 느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가정과 종족을 건설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끝날인 것입니다. 창세 이후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소망의 가정,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이상적인 가정은 아직까지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을 백 퍼센트 체휼하는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만 하나님과 예수님의 원한이 풀릴 것입니다. 

그러면 남달리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2천년 전에 주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교법사․제사장․세례 요한 가정이 불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던 그 입장에서 벗어나 믿고 모시는 사명을 여러분이 담당해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의 예수님은 불쌍하신 분이었고 서러우신 분이었습니다. 6천년 역사의 종말기에 처한 우리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심정과 통할 줄 알아야만 오시는 주님을 바르게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7. 예수님이 세우신 생애의 표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은 어떠한 생애의 표준을 세우셨던가? 예수님은 뜻이 아닌 모든 것은 버릴 수 있는 생애의 기준을 세우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뜻에 합당하지 않은 나 자신의 이상이나 욕망, 또는 세상의 어떠한 조건도 포기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것을 갖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천상에서도 영원히 좋은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좋은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상에서도 영원히 남을 가치적인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지상에서 뜻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천륜에 부합되지 않는 어떠한 습관도 포기할 수 있어야겠고, 비록 모든 사람이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버리더라도 골고다의 길을 홀로 걸어가신 예수님과 같이, 여러분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길을 걸어가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뜻길을 걸어가는 여러분도 어느 한 때 버림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죄악된 세상이기 때문이며, 이 죄악의 세계에 부합되는 자리에서는 결코 천륜의 인연이 출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뜻길을 가는 여러분이 이 죄악의 세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여러분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때인 것입니다. 

이렇게 천상의 법도에 부합되어 천국에 도달하는 지름길을 가는 과정에는 역사적인 눈물의 고개, 역사적인 골고다의 길,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찾아 나선 우리는 세상과 교회, 가정에서 배척받고 버림받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6천년 역사를 대신한 핍박과 조롱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망의 마음을 품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남달리 모인 여러분들, 핍박이 있다고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울더라도 여러분 자신만을 생각하고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늘 앞에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세계적인 서러움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어떠한 고통의 자리도 개의치 않고 나가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세계적으로 불쌍한 자리, 죽음도 개의치 않겠나이다! 이 일을 위하여 나의 모든 욕망도 버리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인륜의 고개를 넘어 천륜의 법도를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즉 부활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몸 마음에 나타내어 행동하는 여러분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인간, 본성을 갖춘 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이 크면 큰 만큼 악한 세상과의 큰 싸움을 책임져야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지금까지의 신앙관념으로 영원한 천륜을 헤아리고자 하면 안 됩니다. 영원한 천륜을 대신하여 나타나는 메시아를 그처럼 간절히 기대했던 유대민족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러한 유대교적인 신앙과 모세오경을 중심한 유대교 교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영원한 이상의 기준을 세워 고질화시킨다면 여러분은 유대민족처럼 자신도 모르게 사망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라고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생애노정을 거쳐 골고다의 길을 가지 않고 자신만을 돌아보는 생활을 하셨다면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의 심판 때인 오늘날은 어떤 때인가? 오늘의 시대는 소돔 고모라에서 롯이 살던 것과 같은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역사의 종말기에 처한 오늘날 모든 것을 하늘 앞에 맡기고 하늘의 명령에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소돔 고모라의 심판에 휩쓸려 들어간 롯의 아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예수님을 불신한 유대교 신자나 유대민족과 같은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순간도 사탄에게 양보해서는 안 되겠고 지금 이 순간도 생사의 판가리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8. 재림주님을 영접하는 참된 신앙생활

그러면 이러한 사탄과의 싸움에서 상하․전후․좌우에 사탄이 공격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예수님의 서러운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부모 형제의 입장에 서서 함께 눈물 흘리고 서로 위로할 수 있어야 하며, 뼈 살이 녹아지는 하늘의 은사에 함께 감격할 수 있는 동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내 것으로, 기쁨이 있으면 부모의 것, 형제의 것, 친구의 것으로 돌려야 하겠고, 예수님이 인류를 사랑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형제들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아주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게 용서해 주는 것도 그 사람의 사정을 백 퍼센트 알게 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정을 아시기 때문에 인간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형제의 사정뿐만 아니고 예수님의 사정을 잘 알아서 서로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는 하늘 가정을 만들고 종족을 이루어서 예수님께서 복귀하시려던 선의 세계를 이 땅에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택함 받은 지상의 성도들이 뭉쳐서 하늘 가정으로부터 하늘 종족, 하늘 민족을 이루어서, 예수님께서 민족과 4천년 역사를 대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차원을 넘어서 세계와 6천년 역사를 대표해 나타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행사는 거두어질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 여러분들의 가정과 종족과 전체가 하나될 때, 가신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현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기준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걸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식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과 같이 우리는 식구입니다. 우리는 형제 아닌 형제로서, 종족 아닌 종족으로서 하나의 형제와 종족이 되어 천륜의 뜻을 책임지는 이스라엘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예수의 서러움을 체휼하며 개척의 길을 가야 되겠고, 사탄과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자리까지 나가야 될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야만 서럽게 가셨던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찾아오시어 가르쳐 주신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최후로 찾아야 할 근본은 형제와 부모라는 것을 깨달았사옵나이다. 

하늘을 중심삼은 가정과 종족이 이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소망인 것을 깨달았사오니, 오늘날 남달리 외로운 길을 출발한 저희들, 예수님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부모의 입장을 대신하고 친구․형제․종족의 입장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세계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는 사탄의 세력을 분쇄하는 싸움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간절히 기도하오니 오늘 여기에 참석한 아들딸들, 저희들을 통하여 뜻의 소망을 이루시옵고, 이상적인 뜻의 가정, 종족이 저희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즐길 수 있고 노래할 수 있으며 쉴 수도 있는 저희의 몸 마음이 되어, 하늘을 중심삼은 형제가 되고 식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21:33-46

<기 도> 

사랑하시는 아버님! 일주일 동안 저희들을 여러모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앞에 자신의 모든 사정을 가지고 나왔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존엄하신 아버지 존전에 엎드릴 적마다 자신이 부족한 모습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이 시간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고, 저희들 각자의 마음 마음에 언제나 아버지께서 임재하여 주셔서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모든 사심을 버리고 천성이 원하는 본연의 마음에 따르고 화하여 본성의 뿌리가 되는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주일 동안 어둠의 죄악과 싸우느라 지쳐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나타나시어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고, 저희들을 훈계하여 주옵시며 저희들을 권고하시어서 사망의 등성이를 넘어 뜻 대한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줄달음질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기뻐하여서 아버지께서 저희와 함께 하여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뭇자녀들을 이 시간 일일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각자의 모든 것을 아버지가 분별해 주셔서 아버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모든 조건을 제거해 주심으로써 성별된 몸과 마음이 되어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모셔 놓고 경배드릴 수 있는 전체의 무리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을 불러주신 아버지의 수고의 뜻 앞에 저희가 황공스러움을 느끼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긍휼히 보시옵소서. 당신만이 저희들의 친구가 되시옵고, 당신만이 저희들을 믿어주시어서 영원하신 뜻 앞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이와 같이 저희들을 모으시기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뜻하신 바를 여실히 나타내시옵소서.  

섭리의 뜻을 이루고자 수고하시는 아버지, 저희들 당신의 외로움을 위로하여 드리는 사랑스런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만사를 모두 제쳐놓고 오로지 아버지 뜻만을 위해 싸우고 달음질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이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고 있는 수많은 제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이 당신의 분부하신 뜻 앞에 오로지 일편단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기쁨의 은사를 어서 속히 이 민족 전체와 민족을 대신한 수많은 제단 위에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택하신 민족으로서 택하신 교단으로서 끝날 이 땅의 24억 인류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에게 갖가지 사정이 있사올진대 모든 것을 아버지께 아뢰고 순종하여 따를 수 있는 제물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아버지께 경배를 드리고자 하오니, 삼위신(三位神)이 전체에 운행하시어서 각자의 몸과 마음을 주관하시옵소서. 저희들 나름대로 아버지 뜻을 대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고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서 아버지의 전체의 뜻 앞에 화동할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지방에 널려서 경배하는 식구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옵시고, 승리의 뜻, 아버지가 세우신 뜻을 기쁨의 은사로써 이루어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오로지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삼위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해 볼 말씀의 제목은 ‘천국을 차지하는 백성이 되자’입니다. ‘천국을 차지하는 백성이 되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누구나 소망하는 세상이 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천국은 타락한 인간들만이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창조이상이었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인간과 영원한 부자의 관계를 맺어 영원히 즐기며 살 수 있는 그 천국 실현의 때를 바라시고 지금까지 삼위신을 통해 수고의 역사를 거듭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1. 천국이념의 완성과 예수 그리스도

오늘날 우리들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천국, 이 천국은 인간의 소망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이념은 개인을 거쳐 세계성과 우주성을 띠어서 천륜에 부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완결될 수 없는 것이요, 우리의 신앙목표도 완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은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의 책임이 있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이루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타락한 인간들도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책임을 지고 찾아 이루어야 할 천국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이 천국의 이념을 실현하고 인류를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 소망해 나왔으나 아직까지 이 땅에 그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찾고자 원하시는 천국이념은 한 개체의 이념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개체의 이념이 되는 동시에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이념으로서 피조만물이 추구하고 있는 영원한 이념입니다. 그러한 이념이 세워질 수 있는 한 때를 바라시면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의 인내의 길, 수고의 길, 고난의 길을 거쳐오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다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어떻게 인연맺을 수 있느냐? 천국이념을 중심삼고 인연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건설될 수 있는 그 기준에서 인간의 이념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창조이념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이후 4천년의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섭리하여 나오신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때에 사람을 세워놓고 전체적인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외적 이념을 통할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존재로 세우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전에 택하여 세운 세례 요한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 앞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예고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통해서 그 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하면 세례 요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에게는 전 이스라엘 민족을 결속시켜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례 요한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가 부르짖었던 천국이념은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부르짖었던 그 외침은 그 당시에만 해당되는 천국이념으로서 끝나지 않았고, 세례 요한 이후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례 요한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을 통해 예고시키는 천국의 이념으로서 남아지게 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수고의 손길이 계속 끓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 수고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부르짖었지만 그 천국을 실제로 소개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 오늘날까지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소망의 중심인 천국이념은 인간을 통하여 지상과 천상에 건설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은, 결국 세례 요한이 예고했던 천국이념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 앞에 평면적으로 부딪쳐 오는 시련을 이겨내게 할 수 있는 천국의 주인공까지도 잃어버린 결과가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잃어버린 그 천국이념을 되찾아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국이념의 내용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국은 영계에서만 이루어지는 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국은 먼저 지상에서 이루어진 후에 영계에서도 이루어지는 천국입니다. 인간이 죽은 이후에 그 영인체들로 이루는 영계와 이 지상세계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승리적 실체를 갖추어 천국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천륜 앞에 설 수 있는 동시에 인륜 앞에도 설 수 있어야 하고, 천륜과 인륜을 통할 수 있도록 천국의 이념을 여러분의 생활권을 통하여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천국의 이념이 개인적인 천국이념이 되는 동시에 가정적인 천국이념, 사회, 국가, 세계, 천주적인 이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천국이념이 여러분 자체를 통하여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부르짖었으나 그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듣지 않음으로써 천국의 이념을 실현시키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처럼, 오늘 이 시대에 천국의 이념을 예고시키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그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천국의 실체이념을 세우시기 위한 3년 공생애노정에서 이 산 저 산으로 쫓김을 당하면서도 민중 앞에 외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의 새로운 복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자리에 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거니와 여러분들이 천국의 이념을 천성(天性)을 통하여 만민 앞에 소개할 수 있고, 수많은 종파를 통하여 세례 요한적인 새로운 이념을 예고시킬 수 있는 하늘의 역사적인 사정을 체휼하고, 그와 함께 그 천국의 이념을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끌어들여 그 말씀에 동(動)하여 살 수 있는 자체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이 바라는 소망의 천국,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는 소망의 천국이념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이 알고 있는 천국은 원래 하나님께서 찾고자 원하셨던 창조이상의 천국이 아닙니다. 예수님 이후 오늘날까지 영적인 천국 건설을 위하여 수고해 나온 2천년 동안의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노정을 더듬어 살펴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천국이 아니고 낙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온 인간들이 소망하고 있는 천국의 이상도 낙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인간들이 갖고 있는 천국의 이상은 하나님과 인간이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이상적인 본연의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국 건설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조건적인 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원이라는 명사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천국이상을 실현할 하늘 정병으로 부름받았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낙원의 주인공으로만 계시게 할 것이 아니라 영계의 모든 영인들과 땅 위에 살고 있는 만민들이 합하여 낙원 문을 개방시켜서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주인공으로도 계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천국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자신과 성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며, 이 땅 위의 만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사실을 인간들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복귀노정을 걸어가는 인간들에게 있어 그 가는 길은 아득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인간들이 가는 다른 어떤 슬픈 길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 이상 슬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선지선열들의 슬픔을 우리의 슬픔으로 체휼하면서 그들의 싸움의 노정을 우리들이 다시 걸어야 하는 복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땅에 와서 넘었던 험한 태산준령이나 십자가 골고다의 길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걸었던 그 모든 어려운 노정을 넘어서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결단코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뒤따라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가는 길,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 자신만을 위한 삶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것은 낙원에 가 있는 영인들을 위함이며, 나아가 여러분에게는 지상에서 천국을 성취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개인의 생을 위해 슬픔도 많이 당하고 맹세도 많이 했겠지만 개인의 삶만을 위해서는 결코 여러분 개인의 뜻조차 성취시킬 수 없습니다. 

이 땅은 여러분이 홀로 걸어가는 길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지배하는 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천년 동안 하나님과 대적해 왔던 사탄은 여러분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의 책임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일 것이냐? 골고다의 험한 고개를 넘고 사탄이 지배하는 이 땅을 해방시켜 천국을 이루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이 길을 한결같이 소망해 온 인류가 실질적인 역사 과정에서 무수한 탕감의 노정을 걸었던 그 세계사처럼 여러분도 탕감의 길을 가야 하므로 우리가 택함 받은 사람들이라면 대단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국을 여러분 역시 원하고, 또 일생을 다 바쳐 그 천국을 이루는 일에 책임을 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세례 요한처럼 생각한다면 여러분도 세례 요한이 30여 평생 안타깝게 천국의 이념을 부르짖었지만 결국은 망하고 말았던 것처럼 끝내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소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던 길에서는 자기 개인을 중심삼았기에 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면 여러분의 행동이 여러분 개인을 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늘이 원하시는 이상(理想)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 사정만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루의 생활과 일생을 지배하면서 하늘의 길을 반대하는 사탄적인 성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사실을 뼈 속에 사무치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천국 실현의 길이 우리가 어차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우주적인 운명의 길이요, 창조이상으로 남아진 천륜의 운명의 뜻이라 할진대, 우리들은 이 길을 자신의 길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운명을 책임지셨고, 영원한 천륜의 운명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으로부터 예수와 성신의 심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걸어오던 역사적인 수고와 여러분을 관계맺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한 사람의 외침에 과거에 왔다 갔던 천천만 선지자들이 응할 수 있고 예수와 성신이 이를 환영할 수 있으며, 6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실 수 있는 터전을 닦아 사탄과

의 대결에서 여러분이 이길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여러분에 대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 앞에 먼저 부름받은 여러분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이 중차대함을 자각하고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이때에 이러한 일을 여러분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적인 서러움을 누가 맡겠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애달픈 사정은 인간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많은 민족 가운데 불쌍한 이 한민족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신함으로 인하여 이방에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던 것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들 앞에도 세계적인 환난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박해와 반대의 시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종교가 종결을 고해야 하는 때에 봉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이 민족이 부여받은 세계사적인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온 힘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념적인 갈등으로 인해 공포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여 나오던 사탄이 최후의 발악으로 여러분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여러분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사탄과 악령들이 여러분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의 침략은 여러분 자체만의 힘으로는 막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과거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대표한 승리자가 되려면 역사를 지배했던 사탄의 실상,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의 실상, 미래를 대하는 사탄의 의중(意中)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예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여 혈혈단신 감람산에 올라 기도하시고, 생애를 바쳐 하늘 뜻을 가로막는 사탄과 대결하면서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대표하는 고난의 표준을 세우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길을 여러분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가는 노정에 이러한 시련의 고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제물의 입장이 되어야 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자신의 원한을 풀고 아울러 하나님의 원한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목적을 달성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책임을 다함으로써 그분들이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실적을 천상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 이 땅의 온 피조만상 앞에, 그리고 사탄 앞에까지 드러내게 될 때, 우리는 오랜 동안의 사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천륜 속에서 화답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4. 천국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개인의 가치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인 천국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까지 우리들이 믿어온 하나님이나 예수님, 따르고 있는 목자나 천사도 모두 사탄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늘과 인연맺은 여러분들은 아버지 앞에 어떠한 존재로 세워졌으며, 자신에게 어떠한 시대적인 사명이 있는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무한한 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인간과 만물을 대표하여 하나의 승리적인 천국이념을 갖추어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수많은 내적인 고통을 이어받고 예수님과 성신의 고통도 상속받아서 역사적인 모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이런 승리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그런 승리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속속들이 찾아주려 하시는 천국이념을 찾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원한의 땅 위에서 어떤 한 존재가 하늘과 땅을 대신하고 인간들을 대신하여 천국이념을 이 땅 위에 세울 수 있다면, 그의 가치는 하나님의 수고와 예수님과 성신, 그리고 수많은 선지와 성도들의 전체적인 수고의 목적을 결실하고 대신할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 가치적인 존재야말로 지금까지 뒤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배반했던 수많은 선조들을 구해낼 것이며, 현재 죄악 세계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해 냄과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의 천국을 건설할 것입니다. 

역사를 초월하여 인간들이 찾아 나온 천국,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며 이루어지길 바라셨던 천국, 또 미래의 인간들도 그 천국을 완전히 이 땅 위에 실현할 수 있는 가치적인 한 존재가 나타나기를 바라게 되었고,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그 가치적인 존재의 출현을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가 이 땅에 나타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를 영원히 보호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지시게 됩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중심삼고 영원한 국가, 세계가 이 땅에 이루어져야 됩니다. 불쌍한 우리 한민족, 되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세계에 드러낼 만한 어떠한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해 있는 정성을 다 들이게 되면 미국이나 영국, 혹은 어떤 나라에서 천국이 먼저 이뤄지는 것이 아니요, 우리는 불쌍한 민족이로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누구보다도 먼저 천국을 우리의 것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천국을 찾아가는 수많은 민족은 이 민족을 거쳐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명과 역할을 해야 될 것인가? 오랜 역사가 흐르는 동안 지금까지 싸움의 길, 죽음의 길을 거쳐 밟히고 찢기면서도 “천국이여 어서 오소서!”라고 호소해 왔던 그 천국이 바로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개인적으로 그러한 천국을 이룬다면, 다시 말하면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개인적인 천국이 실현된다면 다음에는 가정적으로도 천국을 이루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국가․세계․우주적인 천국으로 확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이러한 천국을 이루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 과정에는 수많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이 왔다 갔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들을 통하여 제대로 당신의 내적 사정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내적인 사정을 완전하게 밝히고 천국 중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은 천국 궁전에 있는 보물함까지도 열 수 있는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사람이 이 땅에 나타난다면,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임재하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5.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충효의 생활

그러면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환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각오하고 생사를 개의치 않고 하늘의 뜻을 위해 나선 여러분들, 6천년 기나긴 세월 인간들에게 말씀하시지 못한 하나님의 사정을 찾아나선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 나섰습니까? 충신 열녀가 되기 위해 나섰습니까?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이 뜻길을 나섰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느꼈으며, 또 하나님께 무엇을 나타내 드렸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중심이 있었다고 해도 예수님보다 더한 중심이 없었고 어려운 환경을 참고 넘는 데 있어서도 예수님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참고 넘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 때문에 넘기 힘든 죽음의 고개를 넘으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분이었습니다. 이 길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지 못했던 예수님만의 독자적인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가 연상해 볼 때 그의 길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가신 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성서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대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새로운 주장을 가지고,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대하기 위하여 준비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에게 개인적인 참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새로운 생사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개인적으로는 슬픈 길이었으나 땅 위의 인간들이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습관적인 신앙태도를 가지고 살던 유대민족으로 인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 입장에서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셨습니다. 

친히 인간과 만물을 지으셨고, 만우주의 주인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만물을 대하여 당신의 뜻대로 명령할 수 없고, 주관할래야 주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자들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마음대로 인간과 만물을 주관하신다고 알고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을 누가 창조본연의 이상의 하나님으로 온 피조만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실 수 있게 해 드릴 것이냐?

인간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온전히 주관하실 수 없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해 드려야 할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대표하여 역사적인 모든 주의와 사상을 대표한 자리에서 인간을 타락케 하였던 사탄의 침범조건을 없애야 할 기로에 서시게 되었던 것이며, 그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종족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 끝내는 자신까지도 버리셨으나 인간의 불신으로 인해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온전히 주관할 수 있는 입장을 회복하시지 못한 채 서러워하고 계신 것입니다. 

끝날에 처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소원하시고 이상하시는 천국,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30여 평생을 바쳐 싸움의 길을 걸어가셨다는 사실을 안다면, 여러분 자신들도 예수님의 승리를 이어받아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체면과 위신을 염려할 수 있는 참크리스천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수많은 사람과 민족이 있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더듬어서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회복해 드리기 위해 애달피 호소할 수 있는 민족이 있다면 하나님은 세계로부터 거둔 시선을 그 민족을 향하여 돌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교단과 유대민족과 세계를 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예수님의 내적인 심정을 갖춘 여러분 자신을 세워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자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병으로서 민족이 배반하고 세계가 배반하더라도 선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 불변의 신념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드리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땅에서 사탄 대하여 싸우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체면을 상실하게 했던 사탄의 죄상을 파헤쳐 그를 공격하는 일을 예수님이 맡으셨고, 성신이 맡으셨던 것입니다. 또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드릴 수 있는 천국을 건설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6. 하나님(父)과 인간(子)의 관계 회복

원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부자(父子)의 관계였으나 인간들은 타락으로 인해 4천년 동안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슬퍼했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완전한 부자관계를 맺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을 구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이시요 조상이십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예수님의 위신과 체면까지 세워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완전히 맺어야 되는 것이 천륜의 인연입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어떤 한 분이 이 일을 먼저 완수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분을 만나 하나님을 부모로 모셔놓고 하나님의 서러움을 우리의 서러움으로, 아버님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아버님의 억울함을 우리의 억울함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무치게 호소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맺어지지 않았고, 천륜적인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이러한 입장으로 떨어지게 된 원인과 내용을 알아야 하고, 사탄의 진상을 확실히 밝혀 본래의 입장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로써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 예약만으로써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는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뼈 살이 녹아나는 고통 속에서도 참고 승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아버지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고개를 넘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까지도 능히 넘어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천국이념을 배반해 나온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가까이 계시고, 누구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려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육친의 사랑이 제일 큰 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크고 깊으며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인 사랑보다도 깊고 큰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의 서러움을 내가 알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체휼하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을 모신 천국을 소유한다면 그 천국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의 고통을 여러분이 책임지고 풀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통 당하시는 데 대한 분개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4천년 동안 하나님을 괴롭혀온 사탄에 대해 분개심을 품었고, 4천년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도 넘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지셨던 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고 뜻길을 걸어가지 않는 사람들까지 끌고 가서 역사와 현실을 새롭게 하신 후 “아버지여, 제가 당신의 고통을 책임지고 있사오니 염려를 잊으시고 섭리의 고통을 푸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천상과 천하를 통하여 느끼시는 고통까지도 함께 느끼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동안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담당해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들이 예수님을 골고다의 죽음길로 내몰 때, 예수님은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억울하고 서러운 심정을 품은 하나님에 대하여 도리어 자신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붙들고 위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같이 어려운 처지에서도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천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나가는 길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7. 천국 건설에 대한 성도들의 책임

역사적인 하나님의 수고와 고통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을 가진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권을 행사하시어 예수님을 부활시켰어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같이 6천년간 복귀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의 고통과 원한을 책임지고, 인간들의 불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인간을 대표하여 받겠다고 나설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은 하늘이 그러한 성도들을 요구하는 때인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서 이 민족의 고통은 물론 인류의 고통과 6천년의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책임지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홀로 감당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성도가 나타난다면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제2의 그리스도의 부활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는 자연히 천국이념이 연결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4천년 복귀역사를 대신 담당하고 하나님을 쉬시게 했던 것과 같이, 2천년간 사탄 대해 싸워 나오시는 예수님께 “주님이시여, 이제는 쉬시옵소서. 당신의 일을 저희가 책임지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수고하신 예수님의 일을 여러분이 대신 책임져야 할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땅 위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고통과 서러움, 그리고 예수님과 성신의 고통과 서러움을 대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이 일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된 것입니다.  

또 우리는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대적해 나오던 사탄의 침범을 물리쳐야 하고 복귀섭리를 책임져야 하며, 인간의 모든 죄를 탕감한 환경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환경을 이루어야만 거기에 예수와 성신이 임재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것이며, 비로소 창세 이후 오랜 기간 하나님과 인간이 소망해 오던 천국이 이 땅에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들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돼 있으며, 여러분은 복의 기관도 될 수 있는 반면에 화의 기관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복의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성신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고하시던 그 일을 대신 책임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머물러 있으니 모든 분야의 뜻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개인 천국을 거쳐 지상천국까지 건설하는 데 부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원리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민족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님과 같이 세상이 반대하더라도, 세계적인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상에 있었던 충신 이상의 충신, 효자 중의 효자, 열녀 중의 열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천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고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사탄 앞에 여러분을 자랑할 수 있고, 사탄도 하늘 앞에서 여러분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모습이 되지 않는 한 천국의 기준은 이 땅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기를 바라신다고 할진대, 예수와 성신이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드리기 위하여 고통을 당하시면서 아버지를 부르시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하나님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부자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고 하나님의 사정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리 민족 중에서 많이 나타나게 된다면,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버리고 예수님의 12제자를 중심삼고 제2이스라엘을 형성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은 한국 민족을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을 만들어 지상천국 실현의 성업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 민족이 그리스도의 심정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뜻을 세계 인류 앞에 전파하기에 성심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책임을 다하게 될 때, 이 민족은 천국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8. 한민족의 사명과 새로운 진리체계의 정립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보이는 물질만을 추구해 나오다 보니 20세기 물질문명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물질세계만 연구하고 그 가치만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욕구는 아니었습니다.  

물질세계를 초월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무형(無形)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교의 이념에 의해서 무형의 하나님 앞에 나가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가는 무리가 있고 그러한 민족, 국가, 인류가 있다면 그들을 중심삼고 20세기의 물질문명을 초월한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가 가치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가 이룩될 것입니다. 

물질세계를 추구하다 보면 물질의 제일원인(第一原因)인 힘의 세계를 거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궁극에 가서는 보이는 세계를 주관하는 신의 세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상응적인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열심히 기도하고 정성들여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는 사무친 내적 심정을 체휼하고, 예수와 성신의 심정을 체휼하게 되면 어느 민족보다도 먼저 천상의 모든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류역사는 종교적인 입장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을 추구하고 있는 과학에 있어서도 단순히 평면적인 문제, 땅과 바다 등의 물질세계를 연구하는 데서 벗어나 이제는 입체성(立體性)을 띠고 물질세계 이전의 근원적인 본질세계를 연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어 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실체적인 종교의 분립과 투쟁을 거친 후에 다가오는 영적 세계에서의 투쟁입니다. 오늘날 물질세계에서 핵융합에 의해 최대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앞으로는 영적인 세계에서도 그러한 힘이 발견될 것입니다. 

그것은 현재의 자연과학 수준으로서는 알아낼 수 없는 힘입니다. 이 힘은 초월적이요 초자연적인 세계에서 비롯되는 힘이지만 그 힘이 이 우주만상에 미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인간을 중심하고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없으면 인간의 소망도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이상적인 천국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통해 영적인 세계의 전체적인 이념을 이 실체세계에 나타내야 하고, 우주의 어떠한 존재보다도 가치 있는 자신인 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되고, 나아가서는 천주적인 힘의 실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어 창조주를 찬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면, 더 큰 힘 앞에 작은 힘이 끌려오는 것과 같이 여러분의 그 천주적인 힘 앞에 사탄이 자연굴복해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도 열심히 종교를 신봉해 온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세계적인 최대의 관문을 뚫고 나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의 종교의 형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이상한 형태의 종교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수습하여 이 땅에 주님이 오실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 천적인 힘에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심정을 중심하여 생활권에서부터 천국을 형성해 가지고 천주적인 천국까지 형성해 가지 않으면 여러분과 하나님이 바라던 창조이상인 천국이념은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이 민족을 통해서 세계 인류 앞에 그러한 천국이념을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지를 통하여 마음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세계가 무한히도 그립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불신에 젖어 있고, 한이 맺혀 있는 세계이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을 오늘 이 시간까지 인도해 주신 아버지의 사랑 앞에 스스로 면목 없음을 느끼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당신이 맡겨 주신 사명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아버지의 분부가 크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이 낮고 연약함을 알게 되오니 아버님, 크신 권능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사탄의 권한을 제거할 수 있는 백성, 천국에서 필요로 하는 하늘의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사탄의 침범을 물리치신 예수님의 천적인 승리의 노정을 우리도 뒤따라갈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창조본연의 이상으로 바라던 하나의 승리적인 인간으로 만우주 앞에 설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도 어엿이 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은 저희의 아버지이시니 이제 전체 인류가 당신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을 때까지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천륜의 뜻을 온 만상 앞에 나타낼 수 있도록 아버님의 능력을 저희들의 마음과 마음에 내려주시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저희 모두를 당신이 진정으로 맡아 주관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베드로전서 4:7-19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아담의 서러움이 저희들의 서러움이요, 하늘의 원한임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또 에덴동산의 이상을 즐겨야 할 인간조상이 그 이상을 즐기지 못한 것이 하늘의 원한이라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타락의 역경을 밟고 있는 저희들의 책임이 무겁기에 저희들을 다시 분별된 입장에 세워놓고 재창조의 손길을 펼쳐 주시지 않으신다면 저희와 같이 불쌍한 자들이 없는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이시여! 긍휼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이 시간 아버님께 바치고자 원하오니 받아 주시옵고, 아버지의 성상(性相)대로 빚어 주시사 당신의 뜻을 맡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외로운 아들딸들이 사방에서 머리 숙이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사오니, 그들에게 같이해 주시옵고, 인간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날 모인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이들로 하여금 줄달음치면서 나아가야 하는 노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싸움의 노정에서 패배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며, 당신의 영광을 영원히 노래하고, 당신의 사랑을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환경이 어렵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싸움의 노정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일어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 민족을 대신하여 모인 수많은 제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아벨적인 제단을 이 땅 위에 준비하여 모일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서도 아버지의 존전 앞에서 불화했던 조상들의 죄를 책임지고 탕감하는 아벨 제단의 자녀들 되게 인도해 주시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지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제단의 자녀들이 경배의 시간을 갖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이 한 시간만이라도 당신이 같이해 주시옵고, 외로운 제단에 속해 있을지라도 승리의 방패를 잡고 굳건히 싸워 이길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일률적인 은사와 일률적인 역사를 나타내 주시옵고, 끝날에 불리움 받은 이들이 충성을 다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며, 평소에 진실된 생활을 하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자리에 모인 식구들을 하나로 묶어 주시옵고, 당신이 분부하시는 말씀 앞에 순종하고, 아버님께 경배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회개하여 성별된 산 제물로서 아버지께 바쳐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주일을 지내는 가운데 사탄으로부터 상처받은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아버님, 이 시간 이들의 마음과 몸을 주관해 주시옵고, 새로운 하늘의 기쁨과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기쁨의 제단을 쌓아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모였사오니 저희들이 갖고 있던 품성이나 의식이나 관념을 다 아버지 앞에 내어놓고, 사탄의 참소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억만 사탄들이 참소하고 있사오니, 한 생명이라도 그들의 참소 조건에 걸리지 않게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오로지 몸 마음과 있는 성심을 다 드리어 생축의 제물로서 바쳐지길 원하오니, 아버님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모든 식구들에게 찾아가시어 영광을 나타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본문 가운데서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는 말씀을 중심삼고 ‘본향인 에덴을 찾아가는 우리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본연의 에덴동산

여러분들은 창조본연의 동산인 에덴동산에 대하여 말씀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타락하기 전에는 아담 해와가 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 의논하면서 살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하여 이루어지길 바라셨던 그 소망의 에덴동산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이 찾아가야 할 본연의 에덴동산은 타락의 인연과는 관계없는 세계요, 그 세계는 우리의 소망의 세계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찾고자 원하시는 소망의 세계인 것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에덴동산에서 이상의 영광을 보시려던 하나님께서, 사람을 잃어버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소망의 뜻인 에덴동산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있어서도 그 동산은 오늘날까지 소망의 동산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 타락의 혈통을 받은 우리 인간들도 생애노정을 거치고, 역사노정을 지나오면서 영원한 소망으로서 이 동산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만일 이 동산을 찾지 못한다면 인간이 누려야 할 참다운 행복과, 인간이 찾아야 할 참다운 생명과, 인간이 가져야 할 참다운 사랑과, 인간이 가져야 할 천적인 이념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개체를 세우시어 수고의 섭리를 해 나오시는 귀일(歸一)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에덴동산을 다시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만 즐거워하는 에덴동산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 즐거워하실 수 있는 에덴동산을 그리시며 6천년 기나긴 세월을 사탄 대하여 싸워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타락으로 인해 이러한 소망의 동산을 잃어버렸으므로 우리는 그 소망의 동산을 그리면서 다시 찾아가야 할 운명 길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 길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천륜적(天倫的)인 운명의 길이며, 인륜적(人倫的)인 운명의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기거동작(起居動作)하는 전부가 여러분 개체만을 통할 수 있는 관계로서 나타나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 나타나는 전부가 여러분 자체에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전체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인륜적인 법도나 천륜적인 법도와도 인연을 맺어서 창조주의 이념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개개인은 역사와 우주를 대신해서 아버지께 무한한 행복과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동시에 무한한 생명과 사랑을 갖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책임을 모르고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바라는 본연의 에덴동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되고, 하나님과도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본연의 동산, 창조의 이상으로서 인간을 통하여 나타나야 할 그 본연의 동산은 어떠한 동산이었겠습니까? 그 동산은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이 즐길 수 있으며, 피조만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산은 행복의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너나할것없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행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행복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는가? 그 행복은 영원한 희락(喜樂)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동시에 영원한 감사(感謝)를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본연의 에덴동산은 어떠한 동산인가? 그 동산은 생명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어떠한 시간권 내에 머무는 생명의 동산이 아니라, 영원을 중심삼고 나타나는 생명의 동산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생명의 동산이 이 땅에 이루어졌다면 인간들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로서 하나님의 생명의 은사에 대한 고마움과 영원한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본연의 에덴동산은 인간이 모든 생명의 주인의 입장에서 생명의 빛을 나타낼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즉 그 세계에서는 개개인의 생명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소망의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는 동시에 무한한 가치의 존재들로서 빛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연의 그 동산은 사랑의 동산인 동시에 평화의 세계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가 화목하며, 모두가 하나되는 통일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본연의 동산을 이루어서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우리의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6천년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나은 미(美)의 실체로 나타날 때에만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시는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께 그러한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미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미는 어떠한 미이겠습니까?  

그것은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나타낼 수 있는 미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영원한 가치로서의 미인 것입니다. 본연의 에덴동산이 바로 이런 미(美)의 세계였습니다. 

2. 실체세계와 타락인간

이와 같이 우리들이 찾기를 원하는 본연의 동산은 행복의 동산이며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려드려야 할 세계인 것입니다. 또 그 세계는 생명을 중심삼은 소망의 세계요, 생명과 사랑을 중심삼은 평화의 가치와 통일의 가치가 실현된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모든 가치가 결합되어 미로 나타나는 세계이며, 모든 개체 개체가 노래와 웃음과 춤으로써 하나님의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찬양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인간이 움직이는 대로 온 피조물이 함께 동(動) 하고 정(靜)하며 화동하는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창조본연의 세계를 인간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이상적인 세계가, 인간이 살아야 할 본연의 동산이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막혀 버리고 산산이 깨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날 어떠한 세계에 처해 있느냐? 행복한 세계가 아닌 불행한 세계에 처해 있고, 기쁨의 세계가 아닌 슬픔의 세계에 처해 있으며, 감사하며 사는 세계가 아니고 원망하며 사는 세계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런 불행한 세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여러분 앞에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불행한 자신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빼어낼 수 없는 비통한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증거입니다. 또 여러분에게는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지요? 이것은 본연의 에덴동산을 향해 나가지 못하도록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 철망을 씌워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생명이 없는 사망의 세계이며, 절망과 암흑의 세계입니다. 인간들은 원래 생의 가치를 노래하면서 살아야 할 입장에 있었고, 생명을 중심삼고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과 화동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의 이상 앞에 설 수 있는 소망이 끊겨져버린 가운데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절망 가운데 놓이게 되면 하나님도 절망 가운데 계시게 되며, 지상에서 인간들이 사탄에 사로잡히게 되면 천상에도 사탄이 주관하는 흑암의 세계가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主)를 따라 천성(天城)의 이념을 찾아나가는 여러분들이라면 악한 세상에 나타나는 요소, 즉 하나님의 이상의 본질과 배치되는 요소들을 여러분 개체에서 싸워 분별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분별시켜 놓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본연의 동산과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은 타락한 땅이요, 불행한 땅이요, 사탄의 땅이요, 소망이 없는 땅이요, 아버님의 영원한 이상을 노래할 수 없는 땅이요, 생명의 빛이 없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절망의 구렁 가운데 사로잡힌 자가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상세계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또 흑암 속에서 전후․좌우․상하를 분별하지 못하고, 무질서한 혼미의 와중에서 중심을 망각하며 천륜의 법도를 유린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도 역시 천성의 이상동산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동산과 반대되는 이 세계는 실체적으로 분열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중심한 평화의 이념이 구현된 진리의 세계가 아니라, 사탄이 우거하여 천륜을 파괴하는 세계요,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투쟁과 분열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천성, 즉 본연의 이상동산을 찾아가려고 하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심이 있습니까? 또 분쟁과 분열의 마음이 있습니까? 이것들이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결코 본연의 이상동산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땅은 어떠한 세계인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세계가 아니고 절망과 탄식의 한숨소리, 고통과 슬픔의 눈물이 가득 찬 세계입니다. 본래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함께 화동하면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살지 못하고 한숨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서로 춤추고 웃으며 살지 못하고 서로 훼방하고 싸우며 눈물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강림 목적

이렇게 오늘날의 이 사탄의 세계가 이상동산과 상극적인 형태로 형성돼 나왔다는 것을 명심하여 여러분은 본연의 이상동산을 향하여 천적인 행복과 인연을 맺고, 나아가서 천적인 생명과 사랑과 영광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앞에 본연의 동산이 온다 할지라도 그 동산은 여러분과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두 세계, 즉 사탄의 세계와 창조본연의 세계와의 다리를 놓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위해 싸우셨는가? 예수님은 하늘적인 행복․이념․사랑․생명․영광을 이루기 위해 싸웠다기보다는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악의 요소와 싸우셨으며, 또 그 싸움에 있어서 선봉자로서 책임을 지고 수고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께서 자신의 행복을 바라시기 전에 사탄의 도성을 공격하여 그 세력을 쳐부수고, 나아가 그 세계에 매여 있는 불행한 인류를 하나님의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로 이끌어내기 위하여 외로운 입장에 천적인 책임을 지고 싸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불행과 슬픔과 원망에 사무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보다 높은 하나님의 행복의 마음을 갖게 해 주셨고, 그 행복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더 큰 불행의 요소가 부딪치더라도 모두 탕감하고도 남을 수 있는 조건을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 하늘의 행복의 요소로 남아질 수 있었으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하는 과정에서 불행을 탕감하여 행복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영원한 하나님 주권 안에서의 생명도, 사랑도, 영광의 조건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불행과 비애와 원망에 사무쳐 있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에 빚어진 것입니까? 자기 일 개인만을 위해 살다가 빚어진 결과입니다. 민족이나 국가 또는 세계를 위해 사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려는 것이 사탄세계의 본질입니다. 즉 사탄세계의 본질은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귀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인간들은 불행한 입장에 처할 때마다 자신을 중심삼고 슬퍼하고 남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행한 자리에 처했을 때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이 세계를 염려하시면서 그 불행한 입장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에게 원망이 있었다면 이 악한 세상에 대한 원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원망과 예수님의 원망은 본질적으로 그 방향이 달랐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슬픔과 원망의 세상을 거쳐 불행의 문을 박차고 행복의 본연의 동산을 찾아나가야 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예수님과 신성을 찾는 일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슬퍼했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수고했고, 나아가서는 사탄세계를 원망하면서 불우한 처지에 있었던 것이므로 여러분이 참으로 이러한 예수님의 사정을 알았다면 온 피조만물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모든 뜻을 대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을 때만이 여러분은 영원한 본연의 행복의 하늘 동산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처한 세상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 위에 실현시키기 위해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이 있을 줄 알았는데, 버림받는 입장에 세워졌고, 크나큰 소망을 가지고 나온 30여 생애의 마지막에 결국 십자가를 져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것이 자기의 일신의 생의 결과가 아니요, 전세계 인류를 대표한 입장에서 받는 시련과 고통으로 여겨 그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절망하실까봐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기와 질투 등 악의 요소들을 탕감하고자, 즉 하늘의 본질적인 요소인 사랑을 반대하는 사탄의 모든 요소를 탕감하기 위해 무한한 희생의 제물이 되시면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인간들이 헤아릴 수 없는 사탄 대한 원망의 마음과 땅 위의 원수들을 심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들을 용서하셨고 원망과 심판의 마음을 밟고 올라서셨다는 것입니다.  

4. 본연의 에덴 건설자로서의 마음 자세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하면서 죄악에 빠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해방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과 인간들의 조롱을 극복해 낼 수 있었으며 전인류에 대한 사탄의 참소 조건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사탄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긍휼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이기셨으며, 하늘을 위하는 마음과 우주를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서러움을 대신한 예수님을 부활시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 고난의 길을 넘어 하나님의 본연의 에덴동산을 향해 나가려면, 자신의 불행한 환경은 물론 세계적인 불행까지도 책임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제물로 하여 어려운 길이나 불행한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자리에서 슬픔이나 사탄의 훼방에 구애받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불행한 자리에 선다 하더라도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순간적이거나 개체적이어서는 안 되고, 영속적(永續的)이고 전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히 세계적으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제물적인 자세를 여러분은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행복의 동산을 전체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 땅 위에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께 웃음과 즐거움과 기쁨을 돌려드리는 하나의 존재가 나타난다면 아버지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망과 한숨의 환경에서도 천적인 승리와 천적인 소망과 천적인 생애의 빛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 시기와 질투로 인한 싸움과 분열이 극심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화평과 통일의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원한과 탄식과 한숨과 훼방과 눈물에 사무쳐 있는 이 땅 위에서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웃음과 기쁨으로 송영(頌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사탄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참석한 여러분 마음 속에 어떤 악의 요소, 새 에덴의 이념과 반대되는 악한 사탄의 성품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가 아버지 앞에 나타날 때는 기쁨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역사상의 어느 누구도 기뻐하지 못하였던 최고의 기쁨을 지니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길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소망을 갖는 데 있어서나 생명과 사랑과 영광을 이루고 그 가치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사탄 편 사람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역사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서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십자가를 져도 최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불행한 자리에서도 하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노정을 거쳐야만 사탄도 감히 참소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사탄 앞에 당당히 나서서 사탄의 권세와 땅 위의 모든 악의 요소를 비웃을 수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누가 나를 빼앗아 가랴.”라고 했던 것같이 땅 위의 모든 악의 요소들을 비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고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하고, 전우주를 대신하여 본연의 인간의 모습으로서 본연의 행복과 사랑과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하나님이시여! 나로 인하여 당신의 6천년의 서러움을 잊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한 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한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슬퍼하셨던 그 모든 심정을 해원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5.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참된 생활

그렇다면 이제 본연의 에덴을 찾아 나가는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우주적이고 천적인 행복의 요소를 찾아내어 하나님 앞에 영광을 실체로 나타나는 동시에 여러분이 머무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행복과 사랑과 생명과 영광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도록 교육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말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타락도 말씀을 불신한 결과로서 나타났고, 생명의 부활역사도 말씀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성(天城), 즉 본연의 에덴동산을 찾아 나가는 여러분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간직하여 그 말씀으로 천적인 행복을 소개할 수 있고, 천적인 사랑과 생명과 영광을 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땅 위에 살면서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불행한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슬픔에 처해 있는 사람을 더 슬프게 하고, 원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더 원망하게 만들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또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더 절망으로 몰아 넣고, 혼돈 가운데 있는 사람을 더 혼돈 속에 빠뜨릴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든지 이런 가인적인 놀음을 할 때가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바로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증적(證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세상을 박차고 그 반대 방향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참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 사람이 잘 되기를 원해야 하겠고, 그 사람이 천적인 행복을 갖고 즐거워할 때 나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감사하면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빛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평화의 심정을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두가 하나로 맺어질 수 있도록, 그러한 마음을 생활을 통하여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생활을 통해, 생애를 통해 나타내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려면 먼저 지상에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위해 말씀을 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사망권 내로 끌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생명권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그리스도를 대신하여서 진리를 선포해야 하며,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협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없으며 천성의 유업을 영원한 유업으로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본연의 동산을 소개하는 생활, 하늘의 생명과 사랑과 영광을 노래하는 생활을 해야 하며,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재창조의 역사를 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들은 지상에서 생애를 바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피조만물을 대신하여 선한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본연의 이상을 노래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참아들딸이 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권 내에서 하나님과 길이길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저희들의 마음의 동산 위에 당신의 행복이 심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생명이 심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이 심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영광이 심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행복과 생명과 사랑과 영광이 저희의 영원한 마음의 기초가 되어 땅 위의 불행한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게 허락하여 주시고, 흑암의 세상을 밟고 올라서게 허락하여 주시며, 분열과 투쟁이 극심한 이 세상을 밟고 올라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숨과 훼방과 울음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고,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옮겨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부족한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 내 한 자체가 아버지 앞에 참자녀로 서야 되겠사옵고, 악의 입장에서 행복을 누리거나 나를 중심삼고 행복을 누려서는 아니 되겠음을 아옵니다. 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생활한 것도 자기를 중심한 생활이 아니었음을 아옵니다. 

하오니 아버님, 자신이 행복하기 전에 형제들이 먼저 행복하게 하여 주시옵고, 자신이 즐겁기 전에 형제들이 먼저 즐거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을 넘어서서 천주적인 생애노정을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생애노정을 본받아 참된 형제끼리 선으로만 대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며, 하나님의 행복과 생명과 사랑과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고, 참된 형제들의 인연을 중심삼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진실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연의 동산은 그 사람을 통해 영원한 가치를 나타낼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 여기 참석한 자녀들, 부디부디 아버지의 사랑권 내에서 아버지가 소망하셨던 하늘의 아들딸이 되어 부끄러움 없이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미의 대상으로서 개체적인 가치를 드러내고,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으로서 경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부디 영원한 승리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저희들의 전체를 맡기옵나이다. 이 시간 주관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25:31-46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고을에서 쫓기면 저 고을로 피해 다니시던 그리스도의 3년 공생애노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상고해 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천심을 지니시고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간곡한 심정으로 무한히 서글픈 눈물을 흘리셨으나, 이스라엘 민족들은 반대의 화살로 그를 부인하였고 갖은 중상모략을 다했다는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이 다시 느껴야 되겠나이다. 

오늘날 저희들은 옛날의 유대교인과 옛날의 바리새교인과 옛날의 유대백성들을 경솔하게 평하여 그들이 당시에 잘못했던 일들을 책할 때가 많았사옵나이다. 그러나 저희들은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그 당시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반대하여 그분을 빌라도에게 내주고도 남을 속된 인간들이요, 오히려 그들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있고 우주는 변하고 있으며 섭리의 때는 돌아가고 있으나, 복귀의 새 역사는 돌 고비를 돌지 못하여 아직도 이 땅에 탄식과 원망과 원한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 불신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천륜이 파괴될 수 있고, 하늘의 일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셔서 여기 있는 아들딸들 천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제물 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나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이 하늘 것을 하늘 것으로 세우지 못할 때 아버지께서 슬퍼하신다는 것을 알고, 이제 저희들, 하늘 것을 하늘 것으로 세워드리고 저희 자신의 것까지도 하늘 것으로 바쳐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 있는 아들딸들의 마음을 아버님께서 하나로 묶으시옵고, 받는 자의 마음과 주는 자의 마음에 간격이 없게 하여 주시며, 저희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되게 하셔서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뜻 앞에 귀결되어 화동의 주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은사 앞에 화합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본질과 본성이 아버지를 영원히 흠모해야 하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갖고 있는 이지적(理知的)인 마음과 저희들이 갖고 있는 제물이 아버지를 흠모하려는 마음을 막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신은 지극히 작은 존재인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엄연하신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스스로의 부족함을 직고하고 천진스러운 마음으로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흠모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을 오로지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인도하여 주시옵고, 곳곳에 널려 수고하는 식구들에게도 같은 은사로 나타내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제목은 ‘우리는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입니다. 

1. 하나님·예수님·인류의 소망

타락한 인류는 자신들의 소망이요, 이상인 영광의 날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한날을 찾기 위하여 6천년 동안 기나긴 세월을 수고하여 오셨고, 예수와 성신도 2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싸움을 거듭하면서 수고하여 오셨고, 또 하늘을 신봉하는 수많은 성도들도 이 한날을 찾기 위하여 무한한 희생의 고개를 넘어왔음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고개는 백번 죽고 천번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고개입니다. 이 고개를 넘기 위하여 이제까지 인간만이 동원된 것이 아니요, 많은 교단은 물론이거니와 영계의 수많은 도주(道主)들, 더 나아가서는 삼위신이 동원되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절절히 느끼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 한 날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6천년간 참아오셨고 인간들은 수많은 고통과 역경을 거쳐오면서 새로운 소망, 새로운 지도이념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두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창조된 피조만물은 하나님의 그러한 뜻에 귀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인간이 하늘과 땅이 기뻐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아 세우지 못한다면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인간의 수고는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에게 소망의 한 날을 새로이 소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성취시켜 드릴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재료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힘과 재료를 갖추기 위해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소망하신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그의 생애를 통하여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한 날을 찾아 세우고, 천륜과 인륜을 이 땅에서 찾아 세우고, 인류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나 인간, 또는 만물 앞에 그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승리적인 발판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최고의 영광의 주, 인류를 대표한 만민의 주인공으로서 모시고 자랑할 수 있는 때와 환경을 맞았고 천적인 은사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러한 은사를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우려 하신 새로운 승리적인 터전은 이 땅 위에 세워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거쳐 오늘날까지 2천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역사(役事)해 나오시면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다시 이 땅에 오셔서 30여년의 생애를 바쳐 이루시려다 못 이룬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 당신과 성신의 영광, 만민의 영광이 될 수 있는 한 날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이러한 날을 맞아 역사의 종국을 거쳐나가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끝날에 우주적으로 나타나는 영광의 날, 하나님이 바라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바라시고 인류가 바라는 새로운 영광의 날을 어떠한 자세로 맞이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2. 영광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 태도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서러움의 발자국을 거쳐 다시 인류를 찾아오시게 되는데 그때에 또 다시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전철을 되밟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늘의 영광이 찾아오는 것을 가로막는 자요, 예수님이 소망하는 한 날을 가로막는 자요, 인류가 소망하는 한 날을 가로막는 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을 맞이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은 4천년 동안 소망해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기쁨으로서 맞이하지 못하였던가! 어찌하여 예수님을 민족의 지도자로 모시고 만민 앞에 영광의 한 날을 세우지 못하였단 말인가!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범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살아 계셨을 때 유대민족이 이 땅에 하나님을 중심한 국토를 찾고 하나님을 중심한 백성을 찾아 천국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왕국을 찾아 세웠던들, 오늘날 우리들은 주님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을 우리들의 소망으로 물려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의 실체로 모시지 못하고, 또한 역사적인 주인공으로 모시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전부 중단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이 민족적으로 교단적으로 천륜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했던 것입니다. 

민족과 교단은 물론이거니와 개개인, 즉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환영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환영해 주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보내셨던 하나님께서는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서러움이 민족의 서러움으로 남아졌고, 교단의 서러움으로 남아졌으며, 각 개인의 서러움으로 남아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은 어떠해야 하느냐? 우리들은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단과 개개인이 범한 죄악을 책임지고 개인적으로, 교단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역사 과정을 지내오면서 이 죄악사를 청산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기쁨의 역사가 되어야 할 인류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이렇게 슬픔의 역사로 남아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불신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기독교인들도 그것을 탕감하기 위한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인류를 대신한 영적 이스라엘의 책임이 있는 여러분들도 이런 탕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며, 또 여러분은 외로운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믿는 민족에게 그 교리를 전파하여 기독교 신앙을 세우려 할 때는 반드시 피의 제단을 쌓아야 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 역사는 고난과 핍박의 노정을 걸어온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그러한 순교의 길이 개인을 거쳐 가정, 민족, 세계에까지 확대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를 중심하고 투쟁의 길을 거쳐오면서도,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면서도, 일그러지고 엉크러지면서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따라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길을 걸어온 선지성현들이 여러분의 선조 가운데 많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모시게 된 것은 그 민족이 잘나서가 아니요, 유대교단의 수고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4천년 동안의 역사 과정에서 민족을 대표하여 하늘을 염려하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온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하늘의 뜻을 세우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이 이 땅에 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주를 믿고 있는 우리, 역경의 길을 거쳐 세계적으로 이 원한을 청산하여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할 우리는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 우리는 2천년 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과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3. 섭리의 전통을 계승한 예수님의 정병

지금 우리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이 책임 못 한 원한을 청산하기 위하여, 반대하는 민족을 대하여 싸울 수 있고 반대하는 교단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예수님의 정병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그를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보내려고 하는 가이사 일파와 대적하여 국가적인 투쟁을 거쳐 이를 저지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대표하는 어떤 민족이 이러한 민족적인 승리의 기대를 찾아 세우기를 소망하시며 지금까지 싸우시면서 어려움을 참아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은 왜 싸워야 했던가? 평화의 예수님이요, 평화의 성신이요, 평화의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6천년간 이 땅에서 악의 판도를 넓혀온 억만 사탄으로부터 인간을 수호하고 악의 역사를 종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의 이러한 고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자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란 말은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인가? 이것은 사탄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하늘권 내에 있는 아들딸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지 죄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사탄이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이상을 숭상할 수 없고, 거기에는 천국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도 어느 누구를 원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더라도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 무리들에게서 예수님은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4천년 기나긴 세월 동안 섭리하여 오신 하나님의 수고를 느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피의 제단을 닦아온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들을 원망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자신을 십자가에 내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하늘에 심판을 호소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섭리역사를 회고하여, 즉 인간들이 하나님이 세운 사람을 반대하더라도 사탄과 분별된 곳에 있을 때는 하늘이 그들을 용서하심을 보고서 하나님과 같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셨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 심판을 모면하여 기뻐하는 자리에 선 경우가 있었을지 모르나 하늘이 심판을 하시지 않은 것은 그 사람들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역사성을 대신하고, 섭리성을 대신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용서해 주는 선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주의 영광을 받으려면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겠느냐? 예수님의 사정과 통할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을 세워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신 걸음을 더듬어서 하늘 앞에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이 죄악의 땅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6천년 동안 수고하신 피의 걸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아서, 하늘이여, 심판의 채찍을 참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섭리역사를 계승할 수 있는 민족적인 이념, 세계적인 이념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형태와 내용이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사회나 국가를 막론하고 그 사회, 국가에 속한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좋은 행동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요, 나쁜 행동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살아가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이상세계, 영적인 이스라엘의 이상을 실현시켜 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되겠고, 실제 그렇게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소망의 한 날을 고대하면서 수고하고 투쟁하여 오신 하나님의 전통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또 섭리적인 전통, 역사적인 전통, 종족적인 전통을 세워나갈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일을 성취하였다면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메시아’라는 이름 하나로 온 이스라엘의 성읍(城邑)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4. 예수님과 선지자들이 불신당한 이유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할 때 동방의 세 박사, 그들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 시대의 점쟁이들인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을 때에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말로만 메시아를 고대하였지 어느 때 어디에서 메시아를 만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하늘이 보내는 사람이나 천륜이 어느 때 어느 곳에 나타나더라도 그를 불신하지 않고 척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사실과 역사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겉으로 보고 비판할 줄은 알았으나 내용은 알지 못했습니다. 즉 볼 줄은 알았으나 맛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줄만 알고 그 마음을 몰라서도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높이 받들 줄은 알지만, 예수님이 비천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지니고 계셨던 분이란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저질렀던 역사적인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다시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될 때,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그날을 맞이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예수님의 행로를 살펴보면, 사도를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기쁠 때 따르던 무리도 있었고 슬플 때 따르던 사람도 있었으며, 재출발할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쁠 때 예수님을 환영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 명을 먹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여 민족의 마음을 움직일 때는 많은 무리가 그를 옹위했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어찌하여 전진하는 역사 과정에서 주위 환경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쓰러지게 되었던가?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때 모세를 불신했던 그 역사노정을 반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때, 그의 뜻과 그가 세운 표준이 민족의 뜻이나 민족의 표준과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는 모세는 그가 지향하는 목적지가 뚜렷하였고, 방향이 뚜렷하여 1년 후 또는 10년 후의 일을 내다보며 살길을 생각하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에 반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이 떨어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아브라함에서부터 4백년 역사를 거쳐 영광의 한 날을 맞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던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그 한 날을 맞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졌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뚜렷이 했고, 10년 혹은 20년 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활권 내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목적이 예수님과 달랐고, 그들의 생활이 영원을 향한 섭리의 뜻과 달랐기 때문에, 좋을 때는 예수님을 환영하였으나, 자기들이 불리하게 되면 서슴지 않고 예수님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조건적인 목표를 설정했었고, 조건적인 방향을 잡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또 예수님의 죽음 길을 재촉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배반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던 불신의 행동을 되풀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바라보면서도 광야에서 40년간을 헤매야 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2천년간 세계적인 가나안복지의 이상을 바라보며 헤매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한을 품고 계신 예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했던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몰랐고, 하늘 가는 길을 직선으로 올바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개인만으로서의 예수님이 아니라 세계를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또 자기들의 영원한 생명까지도 책임진 분임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께서 자기들의 생명을 구해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따라야 했었고, 민족을 위해 오신 분인 줄 알았다면 민족을 저버리고라도 그분을 따라야 했으며, 교단과 세계를 위해 오신 분인 줄 알았다면 교단과 세계를 버리고라도 그분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고 불신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후 오랜 동안 탕감의 길을 거쳐온 것입니다.  

5. 전체를 위한 희생의 가치

뿌린 대로 거두어지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의 출발때부터 뿌려진 것도 그대로 거두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역사상에 뿌려졌던 모든 것을 그대로 거두는 날이 끝날이요, 영광의 한 날을 맞을 수 있는 날이 끝날임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배반하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향하고 있는 신앙의 방향과 목표, 그리고 여러분들의 생활 환경은 6천년 동안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하고, 예수와 성신이 재촉하고 있는 그 방향에 부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기에 일치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안 오시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여러분 자체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받기를 원합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갈 길을 다 간 후에, 싸울 것을 다 싸운 후에야 복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거쳐서 부활하셨듯이 여러분도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거친 후에야 소망의 한 날, 부활의 한 날, 기쁨의 한 날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바알신을 섬기자, 엘리야가 여호와 앞에 나가 자기를 죽여주기를 간청하면서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호소했는데, 그때 여호와께서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은 7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계는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고, 혼돈되어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민족을 붙안고 여호와께 호소하던 엘리야의 심정과 통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먹을 것이 없고,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을 헤맬 때, 시내산에 올라 40주야를 금식하며 여호와께 호소하던 모세의 심정과도 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자기 일신의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자신을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보내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제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며 나가는 우리들도 이러한 모세의 심정을 이어받아야 할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전진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 이제 제3자의 입장에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한번 비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한 날 예수님처럼 민족을 위해 슬퍼한 적이 있습니까? 어느 한 날 예수님처럼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또 유대민족이 마음대로 자고 마음대로 놀고 있을 때에도 민족을 위해 40주야간 기도하면서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로 무릎을 적셨던 모세와 같이 민족을 위해 눈물의 제단을 쌓은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하고 여러 형태의 문화를 갖추게 된 것도 현재의 인간들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각오하면서 외롭고 험난한 비탈길을 거쳐왔기 때문이요, 움막이나 토굴같이 외로운 곳에서도 외로움을 이기며 죄악과 싸워 왔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6.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전진해야 할 때

이제 인류는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나 그들의 지도자였던 제사장들같이 편안한 자리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거나, 신앙을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 때는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홀로 하나님께 담판기도를 하시던 때와 같은 어려운 때입니다. 또 모세가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대신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생명을 걸어놓고 40주야를 간곡히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과 세계를 위해 간곡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끝날에는 이와 같은 사명을 담당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많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진실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모세 때의 12지파와 70장로, 예수님 때의 열두 사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들의 사정을 다 버리고 시내산에서 40주야 금식기도를 하고 있던 모세를 옹위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던들 그들에게는 광야에서 표류했던 원한의 40년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함께 엎디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도가 있었던들 고난의 2천년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조들의 역사적인 이러한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서 세계적인 원한을 종결시켜 하나님이 바라시는 행복의 동산을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본향의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러 간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외로운 자리에서 깊은 기도를 하실 때에는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베드로․요한․야고보 등 세 제자에게까지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때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의 조상이 하나님 몰래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을 때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워 놓아야 할 섭리적인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한 날을 바라보며 하나의 관문을 넘어가야 할 말세에 있어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초월한 자리에서 민족과 세계와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도 이하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자기들만을 위해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고, 예수께서 좋은 일을 해도 자기들만을 위해 하는 줄 알았으며, 예수께서 천한 자리에 들어가도 자기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근본적으로 용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이때, 영광의 한 날을 찾아나가야 할 여러분들은 이제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겠는가?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런 개인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이것이 세계와 온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발판적인 환경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런 환경을 만들면 그것이 뭉쳐져서 세계적인 이스라엘의 생활 환경이 형성돼 나갈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현재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것을 한번 여러분 자신에게 반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혹시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 하나를 세우고 나 하나의 행복만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에게 신앙의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기쁘실 때에도 하나님을 위하여 염려하는 마음을 지니셨는데, 그를 따르는 군중들은 그러한 기쁨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이 지상에서 자기들이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 자기들의 지상 명령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염려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그러한 자리에 서면 앞날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또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가신 길은 어떤 길이냐? 방금 말씀했듯이 예수님은 자기를 저버리고 기쁠 때에도 자신의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고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는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도 예수께서 기뻐하실 때에 기뻐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중심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귀일되는 목적을 세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귀일되는 목적을 세울 줄 아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와 우리는 갈라질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갈라지고 여호수아와 갈렙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갈라진 것과 같이 갈라질 것입니다. 또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과 같이 산양과 면양으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7. 부활의 기준

그런데 최초로 가인과 아벨이 갈라진 장소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세계에서부터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최후의 심판 때도 하늘에서 심판의 행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인간들을 중심삼고 선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마음이 둘로 갈라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즉 천륜을 세우려는 마음과 자기를 중심한 인간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두 마음으로 갈라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선악의 분기점(分岐點)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의 소망을 향해 어떠한 역경도 뚫고 나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섰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생기면 그 기쁨을 민족과 하나님께 연결시키고, 또 우리에게 소망스런 일이 생기면 우리 개체에서 끝나는 소망이 되지 말게 하고, 그 소망을 민족과 세계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예수께서 기뻐하실 때 우리가 함께 기뻐하고, 예수께서 괴로워하실 때 예수를 위로해 드리면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됩니다. 또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성부․성자․성신이 긍휼히 여길 수 있으며, 성부․성자․성신이 긍휼히 여길 수 있어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부활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고, 천륜의 뜻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그 사실이 하나님의 부활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기준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부활의 영광을 바란다면 스스로 부활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기준을 세우며 살아 나왔습니까? 부활의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나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확실히 설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역사상에 인간이 세운 어떠한 기준보다 더 강하게 여러분을 자극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처음부터 뜻을 따라 나왔다 할지라도 얼마 안 가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떨어져 나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그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자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이제 여러분 자신이 나가야 할 목표가 천륜을 세우는 것이요, 하늘과 땅을 위하는 것이요, 인륜을 세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여러분들은 이 땅의 어떤 불리한 조건이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를 물리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어야만 통일교인들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을 인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도 예수님과 같은 심정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도들은 그만큼 자신들이 영광받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호령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날이 가면 갈수록, 따르는 사람 중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예수님에게는 그만큼 더 근심거리가 많아지고, 그럴수록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예수님에게는 더할 수 없는 슬픔이 되었지만 반대로 사탄 편에게는 기쁨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근본적으로 선악 분별의 역사, 심판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믿는 무리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적인 최후의 판결을 앞에 놓고 있는 이 때에는 만민과 민족을 대신해서 어려운 자리, 외로운 자리일지라도 하늘 뜻을 놓고 즐거워하고, ‘할렐루야, 아멘!’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고, 부활의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참사람

하늘 뜻을 위해 가는 길은 혼자서 하늘의 영광이나 생명의 가치를 누리려고 해서는 갈 수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하고 남을 비판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그런 행동이 타락을 성립시킨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끝날의 영광을 바라보는 이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위치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을 갖고 탄식과 수심에 싸여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그러한 하나님과는 달리 편안한 자리에서 자신만 즐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오늘날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모세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군중과 같이 비참한 입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행동을 하면 산양과 면양으로 갈라지는 끝날의 분기점(分岐點)에서 산양 편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과 심정일체를 이룬 사람일 것입니다. 만약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슬퍼하실 때 같이 슬퍼하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성도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더욱 기뻐하셔서 천륜의 모든 뜻을 그들 앞에 나타내셨을 것이며, 영원한 승리가 그들에게 안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무리가 많아져도 믿고 당신의 모든 것을 인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말할 수 없이 처량하고 슬픈 심정이었는데,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끝날에도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근심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6, 7천의 무리보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악과 대항하여 싸우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으로 호소하실 때, 인간들은 예수님보다 3배 이상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호소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요한․야고보는 3분의 1도 느끼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를 수고하면 여러분은 그의 3배 이상을 수고해야 하고, 하늘을 대표한 사람이 하나를 수고하면 여러분은 그보다 3배 이상의 수고를 해야 하며, 하늘을 대신하는 사람이 하나를 염려하고 하나만큼 수난을 당하면, 그보다 3배 이상의 염려를 해야 하고 3배 이상의 수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의 3분의 1도 수고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 민족을 망하게 했고, 독생자 예수님을 팔아먹었고,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은 진정으로 통일교회를 따라가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문(文)이라는 사람이 어떤 고충을 느끼고 있을 때 여러분도 3배 이상의 고충을 느끼면서 하늘 뜻을 세우기 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사람이 되기는커녕 자기만이 편안한 자리에 있고자 하는 이런 무리가 웅성댈 때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주검의 무더기를 남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사탄이 침범할 것입니다. 

역사의 종국을 맞게 되는 이 때에 여러분들은 6천년의 원한을 품게 한 사탄을 향하여 ‘내 어찌 너의 권한을 자랑하게 할소냐!’ 하고 외치며 혈혈단신 사탄과 싸워 승리한 실적을 하나님께 보여 드림으로써 온 우주 앞에 소망이 샘솟게 할 수 있는 영광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적당히 넘겨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9.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신앙생활

여러분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는 심각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이 참이라 한다면 우리들은 심각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각오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책임을 지시고 구원해 주셔야 했기 때문에 행여 소망을 걸 수 있었으나, 영광의 주가 다시 오시게 되는 끝날에는 인간들이 책임을 못 하면 다시 구원섭리를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구원섭리를 완결하지 못하면 옛날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것 이상의 원한이 남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운 때를 맞이한 우리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정과 천륜의 뜻을 알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해 드릴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스스로 겸손한 자리에 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아시면서도 겸손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가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이하 12사도 및 수많은 군중들은 자신들이 기쁠 때에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이런 입장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런 심정을 지니고 아버지를 불러 보십시오. 아버지는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그와 같은 심정으로 땅을 위해 정성을 다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편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남기신 모든 원한을 풀어드리고 예수님을 죽은 제물이 아니라 영광의 산제물로 세워 지상낙원을 건설해야 할 2중, 3중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돌아가시게 되었던가? 예수님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 없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이 땅을 사랑하신 분이요, 인정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하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아가는 방향을 인간과 달리했고, 결국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쁠 때에 같이 기뻐할 수 없었고, 그들과 같은 길을 걷지 못했으며, 자신의 슬픔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신 길과 인간이 가는 길이 달랐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최후의 영광의 한 날을 바라보며 하늘 앞에 나서서 “나를 만물 만상 앞에 세워 주시옵소서!” 하며 요구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되겠는가? 한마디로 죽음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 가는 정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셨던 이러한 길을 여러분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루만 골고다의 십자가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30여 평생 한결같이 십자가의 기준을 세워놓고 싸워 나오신 분입니다. 또 며칠 동안에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닙니다. 30여 생애를 걸어놓고 4천년 섭리역사를 책임진 입장에서 ‘잘 되면 이렇게 될 것이요, 잘못 되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예상하면서 한날 한시도 골고다의 서러운 심정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준비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민족․ 국가․교단을 다 뒤에 두고, 나면서부터 각오한 길,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께서 생애를 통하여 세우신 골고다의 승리의 조건들을 여러분의 생활에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다가 예수께서 뭇사람들의 배척과 비난을 받으면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죽음의 길을 가시게 될 때, 얼굴을 돌이켰던 제자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또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따르는 자들이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기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10. 구레네 시몬과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의 신앙

예수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을 대신하여 매를 맞고 당신을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면서 골고다의 죽음 길에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애타는 음성이 들려오기를 소망하였습니다. 3년, 혹은 30년 생애를 통하여 이와 같은 음성이 들려오기를 소망했으나 그 소망이 사라지게 될 때,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아픔을 체휼하여 그 아픔을 동정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 나 자신도 온 세상 만민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죽음 길, 천만번 죽는 길을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면서 심히 지쳤을 때, 그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간 구레네 시몬 같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도 이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방 사람인 구레네 시몬만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가 되지 못하고, 이방의 종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 나가겠다는 여러분, 여러분은 꿈에서라도 구레네 시몬과 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각오가 서 있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변명할 수도 있었고 반박할 수도 있었으나 묵묵히 순응하여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3년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한 사도들은 온데간데없고, 생각지 않았던 이방의 구레네 시몬이 당신을 대신하여 처참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이를 바라보는 예수의 마음은 민망함이 컸을 것이고, 슬픔에 슬픔을 더했을 것입니다. 

만일 12사도 중에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를 바라보며 죽음의 고난도 잊고 도리어 그를 동정하면서 당신의 아픔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여 예수님은 슬픔에 슬픔을 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기독교계에 있어서도 구레네 시몬적인 교단이 나타나야 하겠는데 어떤 교단이 이 책임을 맡겠습니까? 따르고 있던 사도들의 예수가 되지 못하고 이방인 구레네 시몬의 예수가 되었던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레네 시몬적인 교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사정과 고난의 심정적인 동반자가 되어 그분의 생애와 같이 영원한 뜻과 섭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나 홀로라도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고난의 주와 동참하는 사람이 되고, 재출발하는 부활의 주와 동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쌍하신 분이었습니다. 3년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간곡한 심정으로,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부활할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제자들은 이 말씀을 잊어버리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무덤을 지키고 있던 제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고 원수인 로마 병정이 지키고 있었으니 웬일이었던고! 오늘날도 기독교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지 못하고 로마 병정과 같은 원수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로마 병정을 둘러싸고 예수님의 무덤을 사모하는 무리가 이 땅에는 없는 것인가! 그 당시에는 이런 무리가 없었다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이런 무리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나마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내버려두고, 예수님을 잃어버려 놓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던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예수님을 찾아 3일간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자기의 몸둘 곳을 모르고 헤매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장 아끼던 세 세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까지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미명삼경(未明三更)에 예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었으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살로메 등이었습니다. 

민족의 반역자, 국가의 반역자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그리워하며 3일간 눈물 흘리다가 참다 못해 찾아온 그들이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이것은 끝날의 성도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11. 주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마음 자세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의 무덤을 찾아 허덕여야 할 끝날이 되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활의 주를 만나야 할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해서 무덤을 찾아 허덕이던 여성들이 먼저 부활의 주를 만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부활의 주가 찾아오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자고 싶어도 자지 않고, 쉬고 싶어도 쉬지 않으면서 말할 수 없는 클클한 심정으로 산과 들을 헤매며 하늘을 위하여 서러운 눈물을 뿌리는 사람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놓고 사도들도 서러워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사도들이 아닌 무명의 세 여성이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서러워하였고, 동정의 눈물을 흘렸으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부활의 주를 누구보다도 먼저 만나게 했는데, 마찬가지로 끝날에도 이러한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자기의 생명을 초월하여 자기 민족과 세계 만민의 생명을 위하여 밤잠을 못 이루며 마음 조리는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에 다시 찾아오시는 영광의 주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올 것이며, 여러분은 생각지 않은 가운데 주를 맞이하는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에게 예수님이 나타났습니까?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세 여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할 때 함께 있었던 사람인데 그들이 엠마오로 가면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예수의 사정을 동정했고, 예수님의 슬픈 심정과 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상의 동산, 끝날의 세계적인 새로운 영광의 날을 맞기 원한다면 여러분들은 서러우신 예수님의 심정, 서글픈 예수님의 생애를 염려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며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 입장에서 주의 영광을 바라는 자가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그런 사람이 곧 적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입니다. 사도들이 예수 앞에 적그리스도의 입장에 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또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이 적그리스도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끝날에도 이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놓고 자신이 혹시 적그리스도의 입장에 서 있지 않나 염려해야 합니다. 지금은 남을 비난하고 남의 일에 간섭할 때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교단이 문제가 아닙니다. 끝날에 자신이 사탄이 될까봐 염려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남을 문제삼던 사람은 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역사노정을 거쳐왔습니다. 

여러분은 새 에덴의 이상의 동산에서 만우주가 바라는 영광의 부활을 기쁨으로 맞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심정을 느껴 함께 눈물 흘리며 함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영광의 부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끝날이 가까워 오는 때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심령 기준에 도달한 자들은 클클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어도 기뻐하지 않고 불의 체험으로도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뛰쳐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울타리를 치고 교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자신을 찾아 세워야 하는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과 세계와 천주를 대표할 수 있는 참아들딸이 나타나야만 분열을 일으키려는 사탄의 공작을 다 분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 역사적인 노정에서 승리자가 되어 원수들의 죄까지도 책임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신 예수님을 대신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라면 비록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가면 부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고난을 피하여 편안한 길을 택하는 자들은 그가 가는 길이 부활의 길인 줄 알고 가지만 결국 죽음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12. 하나님께 바쳐지는 산 제물의 생활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예수님을 죽은 제물이 아닌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승리적인 조건을 찾아 세워야만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소망하여 오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부활의 영광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6천년 동안 수고하여 오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산 제물로 바쳐질 때 여러분은 영 육이 부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6천년 동안 사탄 대하여 원한을 품었던 하나님의 고난과 슬픔을 종결시키는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고 온 우주만상 앞에, 혹은 사탄 앞에, 혹은 천천만 성도들 앞에, 천군천사들 앞에 자랑할 수 있고, 영원한 이상의 동산에 들어가 영원히 그 동산에서 영광을 갖추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여호수아 1:1-9

<기 도>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세우시기에 수고하신 아버지시여, 그들을 세워 놓으시고 뜻을 성취시켜 달라고 분부하시던 아버님의 간절하신 심정을 회상하면서, 오늘 저희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기독교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나이다.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저희들이 모실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랜 세월 저희들을 염려하시며 사탄 대하여 싸워 오신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미래의 소망을 두고 택한 아들딸들을 품어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염려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저희가 있게 된 것은 저희 자체의 뜻이 아니옵고, 저희가 누리고 있는 생의 영광도 저희로 말미암아 갖게 된 것이 아니었사오며, 오늘 저희가 아버지 앞에서 기뻐할 수 있음도 저희의 수고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오라, 모두가 수천년 역사를 거쳐 수고해 오신 아버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은사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자신을 세워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사옵니까? 저희 중에 진리를 갖고 우주를 대하여 호령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한 일들이 오늘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이 아님을 알게 옵소서.

저희들이 아버님의 은사의 능력을 대신하는 동시에 세계의 인류를 대신하여 천륜의 전체적인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을 세워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하시는 아버님이심을 알고, 그 뜻을 이뤄드리려는 무리가 이 땅에 있습니까? 그러한 무리는 당신께서 만민을 축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며, 온 우주를 축복하실 수 있는 영광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모두 깨닫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의 나를 내 한 자체 속에서 찾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우주를 대신하고 미래의 세계를 대신하여 천륜의 뜻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런 아들딸이 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기쁨의 영광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자신을 아버지 앞에 솔직히 나타냈사옵니까? 스스로 아버지의 허락하신 제단 앞에 엎드렸사옵니까? 또 자신들을 희생하여 역사적인 죄악을 탕감할 수 있는 생축의 제물이 되어 있사옵니까? 현실의 죄악을 책임진 새로운 제물이 되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넘어가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본받는 자녀들이 되어 있사옵니까? 미래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님 대신 사탄과 싸워 승리한 영광의 실적을 저희들은 갖고 있사옵니까? 

아버님! 이러한 아들딸들이 되어 당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한 뜻을 위하여 아버지를 따를 수 있는 충직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날을 허락하셨사오니,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허락하신 뜻 앞에 모인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버님, 불쌍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수많은 교단을 축복해 주시고, 중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민족과 제단 위에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불길이 어디에서 타오르는지 모르는 불쌍한 민족과 교단 위에 아버지 긍휼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옵고, 이 인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새로운 축복이 어서 속히 이 땅과 민족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불길이 교단을 통하여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인간의 이성만 중시하는 경향을 제거시켜 주시옵고, 인본주의만 강조하는 모든 사상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천륜을 세우는 신본주의를 받드는 인격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하늘 뜻을 경건히 받들 수 있고 아버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이 민족을 대신하여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나이다. 또 저희들이 수많은 교회를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저지른 모든 과오를 청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분부하시는 새로운 말씀과 허락하시는 새로운 은사에 잠기고 당부하시는 아버님의 그 뜻과 내리시는 깊은 사랑에 잠겨 우주만상 앞에 아버지를 자랑할 수 있고, 아버님께 영광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길 빌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입니다.  

1. 인간 타락의 결과와 복귀섭리의 목적

본연의 인간에게는 복지(福地)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산 그 자체가 복지이며, 인간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미의 동산인 동시에 영원히 향락을 즐길 수 있는 동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천륜의 법도를 어겼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원한이 남아졌고 그들이 응당 살아야 할 복지는 소망의 복지가 못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도 다 아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면 창조의 이상이 있었을 것이며, 그 이상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었다면 창조주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피조물도 기쁨의 동산에서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요, 또 인간은 자신들의 기쁨을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인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앞에 미의 상징인 만물들도 오늘날까지 원한에 사무친 채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 나왔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성취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이상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반드시 성취시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이나 복귀섭리역사의 목적도 기쁨의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뜻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 땅에 살고 있는 만민도 생의 가치를 느낄 수 없고, 온 우주도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조목적을 기필코 성취하기 위하여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 목적이 귀일되도록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기나긴 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되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으신 것을 후회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탄식은 여러분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뼈저리게 느끼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탄식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온 피조물도 기뻐할래야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의 중심이 슬퍼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을 세우시고 만민을 통하여 그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홀로 슬퍼하시며 탄식하고 계시는 당신의 그 슬픔과 탄식을 제거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귀일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탄식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한 사람, 다시 말하면 6천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을 탄식하시게 했던 인간조상으로부터 비롯된 인류의 죄악 역사를 가로막고, 이 죄악 역사를 청산하여 하나님의 탄식을 제거해 드릴 수 있는 한 사람, 즉 역사를 대표한 본연의 한 사람을 찾는 것이 복귀섭리의 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설 때 속죄의 은사를 받기 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혹은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걸어놓고 속죄의 은사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슬픔과 탄식을 해원하여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단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마음속 깊이 사무쳐 있는, 창조 이후 인간이 잘못하여 품으시게 된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한 호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로 하여금 소망의 동산 복지의 동산을 흠모하게 하고, 그 동산에 들어가 피조만물을 대신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그는 인간들이 하나님께 저지른 모든 범죄를 탕감하기 위해 회개의 제물이 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은 이제까지 인간이 저지른 모든 역사적인 범죄를 탕감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일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6천년 동안이나 거듭 수고해 오시도록 했던 역사적인 선조들의 죄까지 책임지고 “아버지시여, 말 못 하셨던 당신의 소망과 탄식 전체를 나에게 맡기시옵소서. 제가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어드리고 당신의 탄식을 해원해 드리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본래 당신의 기쁨과 이상과 영광의 실체였던 인간조상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땅 위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죄악의 역사를 벗어나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악과 탄식의 요소를 청산하고 하나님을 향해 “이것으로써 당신이 품어 오셨던 모든 원한을 푸시옵소서. 오늘 이후에는 기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 역사상에 없었던 생축의 제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 중심인물들을 세우신 목적과 그들의 실수

이제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 1천6백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서 노아 한 분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노아를 세우심으로써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려 하셨으며, 나아가서는 노아로 하여금 인류를 대표한 제사장의 입장에 세우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노아가 1천6백년 동안 자기를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의 수고를 알고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꼈던들, 그리고 노아가정의 여덟 식구가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느꼈던들 그들에게는 함의 실수로 인한 원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개인의 탄식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죄를 회개하는 동시에 우주적인 죄악사를 청산해야 되겠고, 사탄에 의해 하나님의 가슴속 깊이 박혀진 탄식의 못을 빼낸 후 “아버님이시여! 안심하시옵소서. 오늘날까지 복귀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이시여, 원한을 푸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승리자가 땅 위에 나타나기를 모세 이후 오늘날까지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은 심판에서 구속을 받았으므로 감사하는 생활을 했어야 하는데, 습관적인 생활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천륜을 대하고 나선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습관적인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구해 주신 하나님을 언제나 새롭게 대하는 노아가 되고, 온 인류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한 날을 바라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직시하고 나선 노아가 되었던들, 또 하나님 앞에 절대의 믿음을 세우는 노아의 가정이 되었던들 제2의 타락을 성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정의 실수 이후 4백년 만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나 아브라함 역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을 통한 제물의 조건을 거쳐 야곱 대에야 비로소 축복을 이루기 위한 야곱의 21년 노정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21년간 남모르는 서러운 심정을 품고 하란 땅에서 양을 치며 머슴살이를 한 야곱의 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신 목적은 야곱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셨던 뜻을 성취시키는 것이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진 탄식과 원한을 해원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택함받은 인간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하란에서 21년노정을 끝내고 돌아옴으로써 야곱은 일대복귀기준(一代復歸基準)을 세웠고, 그 기준에서 하나님의 내적(內的) 심정을 해원할 수 있는 승리적인 발판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수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후손들이 4백년간 애급에서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모세와 예수님의 사명과 유대민족의 불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의 뜻을 세우시고 2천년 동안 갖은 수고를 하심으로써 찾아진 한 분이 야곱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야곱 이후 4백 년의 역사노정을 거쳐 하나님은 야곱이 세운 일대복귀의 기준에서 민족복귀의 중심인물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이리하여 오랜 세월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전체섭리의 결실체로서 모세가 찾아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책임을 완수하면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 속에 맺힌 원한까지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조건적인 입장에서 민족의 대표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전 역사를 섭리하셔서 얻은 결실체로서 민족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택함받은 모세는 역사적인 원한을 탕감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모든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하고, 민족적인 서러움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바로 궁중 생활 40년, 미디안 광야 40년, 도합 80년 동안 성심을 다하여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이스라엘 선민권을 잃지 않고 지조를 세워 나왔습니다. 

모세는 바로와 상대하여 싸우던 그 당시에도 하늘이 바라시는 뜻만을 대할 수 있는 지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 모세는 민족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격을 갖추었고 사탄 편과 대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으나,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를 수차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를 대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그들은 모세를 하나님께서 수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또한 그의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노력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주고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 찾아 세워진 하나의 중심인물로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희생시킨 대가로 찾아진 모세인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와 세계를 대표하여 세워진 모세 개인의 가치를 민족 전체의 가치로서, 혹은 인류 전체와 동등한 가치로서 느끼고 그와 하나되었더라면 그 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 이후 수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선지자들이 이 땅에 오신 목적, 또 세계를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수고와 탄식을 대신하기 위함이요, 인간과 만물의 탄식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예수님이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난 조건적인 분임을 알았습니까? 예수님이 4천년 동안 탄식해 오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에 대해 승리의 조건을 세워놓을 분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던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탄식과 인간의 탄식, 그리고 만물의 탄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그 한 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분과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에게서 소망도, 하나님의 영광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갖고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었는데,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택해 놓은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단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그들이 오신 메시아, 하늘과 땅에 맺혀 있는 탄식을 해원할 한 중심을 불신하고 그분 앞에 죄악의 반기를 들었던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서러운 역사와 이 서러운 역사를 해원해야 할 천륜의 내용을 아는 백성들이 있었던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을 때, 오른쪽 강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할 것이 아니라 좌우를 지켜보던 성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러한 책임을 감당한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인간의 탄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한 존재를 이 땅 위에 보내시기 위해 수고하셨고, 인간은 그러한 분이 나타나기를 바라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역사인 동시에 인류역사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사명적인 섭리관에서 보게 될 때, 모세는 애급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7족을 멸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고, 예수님은 모세가 세운 그 민족복귀의 기대 위에 세계복귀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막이나 광야와 같은 이 땅, 바로 궁중과 같은 이 사탄세계에도 그러한 예수님의 뜻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능권을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7족을 멸하고 천국을 건설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것을 못 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광야노정에 있었던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모세와 분리되었던 원한의 조건은 무엇이었던가?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 원수의 품에서 살던 애급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나타나 모세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천륜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처음 모세를 앞세우고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 민족이 지게 되어 일체의 관계를 이루었으나 나중에 달라졌던 것입니다. 

4. 모세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의 시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는 사람은 먼저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고, 다음에 보이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물질의 곤궁을 통한 싸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도 떡으로 시험하는 개인적인 시험이 있었고, 성전을 중심한 환경적인 시험이 있었으며, 또 산꼭대기에 세워져 세계를 걸어 놓은 상징적인 시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싸움이 있어야 하는 원칙 밑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던 모세는 어떠한 마음을 지녔었느냐? 그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원수와 싸울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광야에 나와서는 아말렉 족속과 싸울 수 있는 마음, 굶주림과 싸울 수 있는 마음, 죽음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나설 용기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 궁중생활 40년, 미디안 광야 40년, 도합 80년간을 사탄과 싸웠고, 자기 일신과 싸웠고, 굶주림과 싸웠습니다.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길을 간 자는 모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에 있어서도 사탄과의 대결을 상징하는 사탄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제물로 하여 굶주림과 싸운 40일 금식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물질의 조건을 넘어서기 위하여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하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의 위신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시 찾기 위한 조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이 나아가는 노정에도 개인이나 민족, 국가, 세계를 막론하고 악의 세계를 대표하는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딸의 영광 대신에 십자가의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당하는 굶주림의 고난을 거쳐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단결하여 사탄적인 시험을 격퇴시켰으나,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광야에 나와 아말렉 족속과 싸우는 마당에 굶주림이 함께 부딪쳐 올 때는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무엇 때문에 원망하게 되었느냐? 그들이 광야에서 태어나 그곳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대했더라면 모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4백년간 애급에서 생활해 나오던 그 습관, 그들의 생활적인 환경이 광야에서 걸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를 믿고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이었으나 그들은 출발하기 전의 생활환경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 망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것이 모세의 나아갈 길을 깨뜨려 버렸고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을 분리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 가나안 복귀의 전체적인 이념을 받들어 나가는 제 2의 선민, 즉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있는 전세계의 크리스천들은 제1의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고역시대와 같은 시대에 처하여서도 하나님의 선민다운 지조를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홀로 민족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지도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40년 광야시대에서 굶주림을 당하자 모두 원망하고 불신하여 망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앞길을 망친 자는 누구였던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역사성을 대신하고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여 택함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하고 거기에 신앙의 기준을 세워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즉 모세의 뜻을 받들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광야에서 쓰러지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그분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뜻을 여호수아와 갈렙이 인계받아 2세들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 같이, 이제 제2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예수님의 뜻을 인계받아 제2의 사도들을 데리고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요, 재림이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뜻을 위해 부름받고 택함을 받은 우리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섭리적인 뜻을 알아 민족적인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가던 범죄의 행로를 다시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5. 다시 오시는 주님과 기독교인의 사명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끝날에 오시는 주님은 6천년간 하나님을 탄식하게 했던 조건들을 없애고 수많은 성도들의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모세를 맞을 때에는 자기들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모세를 따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출발했듯이, 광야에 나와서도 자기들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모세만을 믿고 따랐다면, 그들과 모세와는 갈라지게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상의 동산을 바라보며 재림의 한 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오실 주님은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선조들이 수고한 결실로 찾아지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일입니다. 

그분이 만약 이 땅에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께 다 바쳐드리고, 그분만을 역사의 대신존재로, 죄악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존재로, 그분만을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 그분만을 인류를 대표한 존재로 모실 줄 아는 마음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수천년간 수고하여 세우신 모세가 광야에서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원한이 남게 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해 수고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고 나가던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로 세워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역사적인 입장에서 인계받고 있다는 것을 각자는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수천년간 땅에 맺힌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제물적인 조건을 갖추고 나선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결심과 각오를 갖지 않는다면,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이 민족을 수습하여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없고,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원한을 알았으므로 기도하는 목적이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와 불신하는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 2세들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신 그 심정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단계에 도달했는가? 선조들이 고난받으며 걸어온 6천년 역사를 발판으로 하여 심판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할 입장에 도달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요단강을 건너가자고 호령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위치에 와 있는 것입니다. 

6. 강하고 담대하라

그러면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과 사명을 맡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강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의 사명을 인계맡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강하고 담대하라.’고 강조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고 거기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면서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여러분의 몸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 이 땅 위의 기독교를 이끌어가기를 하늘 앞에 호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혼돈과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광야시대에서 이를 수습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교파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두 감람나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의 노정을 출발하기에 앞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대신하여 나타난 여호수아와 갈렙이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 새로운 소망의 가나안 복지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무리들이 가나안 7족을 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는 사탄을 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용장들이 되어야 하고, 그런 노정을 걸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말씀을 주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 땅의 어느 곳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어 놓고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위할 수 있게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걸은 길은 어려운 개척의 길이었고 싸움의 길이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부딪쳐 오는 시련과 싸워야 했던 노정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출발하려 할 때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 했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모세를 불신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도 그러한 일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대 시험을 통해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데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여러분도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길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개인의 싸움의 노정으로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의 노정을 걸어가야 할 모세 대신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대하는 개인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민족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땅을 원수의 땅으로 알라.’는 충고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호수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우리라 한다면 우리에게도 가는 곳곳마다 개인적인 원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경도 우리를 때릴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도 우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우리들이 단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는 제2의 여호수아들이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세계 기독교를 책임질 수 있는 성도들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전개되는 어떠한 싸움의 길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을 놓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비판할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30년 혹은 40년 생애를 거친 자신이라고만 생각하지 맙시다. 살아 있는 현재의 자신으로서만 알아서도 안 되겠습니다. 

7. 인간의 존재 의의와 사명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세계적인 싸움을 거치며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에 의해 찾아진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길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한 제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있기까지에는 여러분을 찾아 세우시기 위해 고난의 길, 험하고 어려운 싸움의 길을 거쳐 나오시며 말씀하시지 못한 하나님의 원한과 탄식이 있었다는 것과 수천 수만의 선조들의 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해 주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한다 할진대 ‘6천년 전의 아버지의 마음과 6천년 후인 오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버님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죽든 살든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있어야 되겠고, ‘이미 제물로 바친 저희들이오니, 아버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수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피의 제단을 쌓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셨으며,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 성도들도 피의 제단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러한 제단의 터 위에 올려진 자신들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원한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여러분 자신들이 판단하고 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를 종결짓기 위해 수많은 선조들이 세워온 전통을 받들어야 되겠으며,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조건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원수 사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 티끌 만한 세포의 한 분자까지라도 동원시키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른다면 하나님은 옛날 모세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요, 이스라엘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 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요, 역사 과정에서 선조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이요, 오늘날 나를 대해 주어야 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용단을 내려 하나의 제물로 바쳐지려 했을 때 함께 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민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희생 정신이 후대 인간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옴으로써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있는 성도들은 장차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사탄의 철망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를 구해 줄 수 있는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광야에서 사탄의 밥이 되었던 전철을 되밟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설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정성들였던 그 지조를 신앙의 뿌리로 삼아야 되겠으며,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80일 동안을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했던 그 끈질기고 강인한 모세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제2이스라엘 선민권을 대표하여 세계 가나안 복귀의 이상을 성취시켜야 할 재림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것을 생각하여 “아버지! 6천년 섭리 과정에 나타났던 전체의 싸움이 내 일신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넘겠나이다.”라고 맹세하고 나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어 온 선지선열들의 대신자가 되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 족속을 향해, “나는 폭탄이다. 너희들의 가슴을 폭발시키고 말 것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12사도를 중심하여 재탕감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여호수아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천국이념을 건설하기 위해 이 땅을 찾아오시는 주님도 여러분과 더불어 수난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복지에 대한 소망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6천년 섭리역사를 대신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원수들과 일대 판가리 싸움을 하여 승리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서야 비로소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한 날을 맞게 되고, 수천년래의 선조들이 하늘 대하여 피의 호소를 하던 그 원한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의 기쁨이 나타나고,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천천만 성도들이 즐기고, 땅 위에 있는 만민들이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탄 앞에 세워 자랑하고, 여러분의 선조들도 여러분을 세워 자랑하고, 여러분도 형제가 되어 서로 서로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는 당신의 아들이니 그를 사랑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여러분 가운데서 나타나야 됩니다. 참된 진리에 의하여 그러한 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쁨도, 영계의 기쁨도, 하나님의 기쁨도, 천지의 기쁨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날을 위하여 6천년 원한의 죄악사를 청산하고 “하늘이여, 저를 보고 기뻐하시옵소서. 저를 보고 원한을 푸시옵소서. 저를 보고 6천년의 탄식을 잊으시고 창세 이후 처음으로 웃을 수 있는 한 날을 맞으소서.”, 또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이여, 하늘이 기뻐하니 우리와 함께 화답하소서.”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만 허락하신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락에 의한 6천년 원한을 사탄권 내에 떠넘기고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자가 되어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있고, 70문도를 대신할 수 있어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는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고,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민족이 되며,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국가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영원한 행복의 동산, 이상의 복지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6천년 섭리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때이므로 최후의 용단을 내려 뜻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하게 될 때, 롯의 처는 옛날 고향에서의 가정생활이 그립고,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곳의 환경과 습관이 그리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을 떠나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도 광야에 나와 고생이 되자 옛날의 애급을 그리워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나와 머무를 곳도, 먹을 것도 없게 되자 ‘애급에 있었더라면 떡도 먹고 가끔 고기도 먹었을 텐데….’ 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그에게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불평을 했던 자들은 누구였느냐 하면 애급에 있을 때 부유했던 자들이었고, 남을 지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교훈 삼아 여러분은 이 순간 무엇을 바라보아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입니까, 여러분이 사귀고 있는 친구들입니까? 여러분의 집과 친구는 여러분이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집이 있다면 그것은 황무지와 같은 광야일 것이며, 여러분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형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민족, 국가까지 갈라 세워 세상 것은 다 버리고 하늘 것으로 모든 것을 대치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세상의 나를 버리고 하늘의 나를 찾아야 하고, 세상의 가정을 버리고 하늘의 가정을 찾아야 하며, 세상의 종족을 버리고 하늘의 종족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민족을 버리고 하늘의 민족을 찾아야 하고, 세상의 국가를 버리고 하늘의 국가를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라면 개인을 찾는 마당에 개인이 쓰러져도 감사하고, 민족․국가를 찾는 마당에 민족․국가가 쓰러져도 감사할 수 있는 지조를 가진 하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각오로 개인을 대하여 싸울 수 있고, 가정․국가․세계를 대하여서도 싸울 수 있으며, 이 땅 위의 사탄 대하여 ‘물러가라.’ 할 수 있는 용맹심을 갖추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한 지조를 가지고 생애노정의 끝날까지 나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죽더라도 부활하여 그 복지에 나타나 영광을 누릴 것이요, 만일에 죽지 않으면 제2이스라엘로서 허락하신 복지 동산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오늘 모인 이 모습들, 아벨이 부르짖던 애원의 호소를 들을 줄 아는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 아벨의 피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산상에서 피의 제물로 바쳐질 때 만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하지 못하신 원한에 사무친 그 심정을 저희의 피를 통하여,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저희의 지각을 통하여 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 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발걸음이 그들만의 발걸음인줄 알았는데, 이제야 그 발걸음은 오늘날 저희들도 걸어야 할 발걸음인 줄 깨달았사옵니다. 땅 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사옵는데,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찾아오시어 6천년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시는 당신의 사정을 아는 아들 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잘난 사람도 많사옵고, 훌륭한 사람도 많사옵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많사옵는데, 부족한 저희를 찾아오시어 하늘의 사정을 알아달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옛날에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대신하여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고, 세계를 대신하여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오며, 땅을 대신하여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오니, 아버님, 부족한 저희들과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모든 고난을 저희 일신에서 탕감하고 넘어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죽고 또 죽더라도 가나안 복지를 찾아 들어가고야 말겠다고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강하고 담대한 무리들이 세계 기독교인 가운데 어서 속히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에 참석한 아들딸들, 천륜에 의거한 심정으로 부활의 생명의 약동감, 하나님의 생명의 약동감을 느끼고 아버지와 함께 화동할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어서 속히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말씀을 저희의 생명의 씨앗으로, 저희의 생명의 중심으로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제단과 지성소 앞에 나아가 분향하는 대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

누가복음 19:8-44, 22:39-46, 23:44-49

<기 도> 아담 이후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오신 아버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눈물과 땀과 피의 열매로서 아버님의 실체로서 아버님의 눈물을 대신하고 땀을 대신하고 피를 대신해야 할 사명과 아버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사명을 띠고 오셨던 것을 저희들이 아옵나이다.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대신하여 눈물의 길을 걸었고, 만민을 대신하여 쉴 사이 없는 수고의 길을 걸었고, 땀 흘리는 공생애노정을 걸었던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 저희들이 그러한 그리스도를 대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지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온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의 제단을 연하여 그 실체로 찾아오셔서 피 흘리며 가시던 그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애도하는 연약한 여인들을 보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시던 간곡한 그리스도의 심정을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이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정경을 알지 못하는 자는 십자가의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십자가에 나아갈 때의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모르는 자는 진리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모인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것 없고, 아버님께 드릴 것이 없을지라도 겟세마네 동산의 외로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 침범해 들어오는 원수들을 맞아 싸우고 선의 파수꾼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쳤던 그 최후의 호소를 저희들이 오늘날 황무지와 같은 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면서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을 넘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오니,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자신을 위하여 사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 모인 이 수다한 생명들을 아버지께서 책임지시어서 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가고자 하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옵고, 이 자리에 불길같은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님!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또는 사망에 파묻히어 아버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아버님, 성령의 불길로써 나타나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를 나타내셔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부활의 역사가 저희들에게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저희들을 불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희들이 맡겨주신 사명을 받들어 아버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까봐 염려되옵나이다. 

아버님! 여기에 엎드린 아들딸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에 자신이 먼저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자신의 먼저 그 슬픔을 책임지고, 자신이 고통을 당하여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이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싸워 나갈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참석한 아들딸들 중 한 생명이라도 사탄에게 끌려가지 말게 하옵시고, 모처럼 살길을 찾아 이곳까지 왔사오니 버리지 마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이 시간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셔서 아버님의 마음에 저희들의 마음 몸이 동(動)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아버님과 하나되어 화동할 수 있고, 아버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로서 재창조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이 시간 곳곳에 널려 외로운 제단을 쌓고 기도하고 있는 아들딸들이 있사온데, 그들에게도 일률적인 은사로 역사하옵시고, 사탄이 틈타지 말게 해 주시옵기를 부탁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도 지으신 만물들과 더불어 기쁨과 영광을 누려본 날이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날을 맞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승리의 날을 맞지 못한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공으로 지음받은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의 날은 하나님만의 노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합해져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과 피조만물이 승리하는 영광의 날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소망과 예수님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선의 목적을 달성한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온 만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6천년의 기나긴 싸움의 역사 과정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 이후 지금까지 우주적인 승리의 한 날을 맞지 못하신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소망하시는 그 승리의 날을 맞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그날을 찾아드리지 못하면, 이 땅에서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사탄을 처치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천상에서 하나님 앞에 인간을 참소하는 사탄의 세력도 물리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수고도 개의치 아니 하시고, 어떠한 희생도 개의치 아니하시며, 어떠한 싸움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오늘 이 시간까지 여러분 개개인을 세우시기 위하여 방패가 되어 나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체 개체를 세우시어 인간을 타락케 했던 원수 사탄을 분별하여 사탄이 주관하는 악의 역사를 종결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고, 하늘 앞이나 만물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고, 하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오신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승리의 날을 찾으려 하였으나, 이제까지 찾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승리의 한 날을 찾을 수 있는 한 분을 보내주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인간들을 구하시기 위해 섭리해 오신 내적 심정과 만민의 모든 억울한 사정들을 체휼하신 분이었고, 이 땅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표자로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뜻과 인류가 소원하는 뜻을 성취하기 위해 나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을 대하여, 창조주의 심정을 지니고 피조만물을 대표한 역사적인 책임자로, 또 선봉자로 서서 용감히 싸우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위업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 그가 소망하던 뜻을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물론이려니와 하나님의 서러움과 전인류의 서러움이 이 땅 위에 또다시 맺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더더욱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인계받아 하나님과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할 책임을 진 우리들은 이제 어떠한 생애노정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오늘날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자기 일신을 위해 살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 즉 모든 만상을 홀로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한 날을 표준으로 하여 묵묵히 싸워 나간 생애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머무르는 장소나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또 보이는 세상의 모든 핍박도 개의치 아니하셨고, 나아가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전체적인 책임을 지시고 싸우셨던 용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선봉자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분이 가면 같이 가고 싸우면 같이 싸우며, 즉 동고동락하면서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뜻과 인간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싸움을 전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시고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오셨고, 나아가서 영계의 수많은 생명까지도 책임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일신을 위하여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민족만을 위하여 싸우셨거나 세계만을 위하여 싸우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와 우주를 초월한 천륜의 사명을 그 한 일신에 지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이러한 싸움은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를 거쳐오면서 계속되었고, 돌아가신 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쉴 때가 있지만, 그분은 쉴 사이 없이 오직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뜻,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성신과 함께 싸움을 전개해 나오시는 것을 여러분은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실수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분한데, 그분은 돌아가신 후에도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오늘날까지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영적인 골고다의 십자가노정을 거쳐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이제까지 어떻게 믿어왔던가를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시게 된 동기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그분은 하늘의 독생자요 하늘의 황태자이며, 만민의 구세주요 영광의 메시아로서,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한 메시아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을 맞이하는 만민도 그분을 찬양하며 기뻐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분을 불신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임을 누가 짊어져야 되겠습니까? 뜻을 안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적인 기독교권이 형성된 것은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인류를 위하여 남모르는 수고의 눈물을 흘렸던 그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오늘날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役事)해 나오신 2천년의 서러움과 한 맺힌 역사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눈물 흘리며 가셨던 그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서럽게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과오까지도 책임지고 사탄 대하여 복수하기 위한 싸움을 전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이 공생애노정을 준비하는 기간에 단지 명상에만 잠겨 생활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 목수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은 수없이 남 모르는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서러운 사정을 형제들도 알지 못했고,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할 요셉과 마리아까지도 알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심정 속에서 외로운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천년 죄악 역사를 종결짓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인류의 서러움을 청산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서 뜻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불변의 모습으로 사탄 대하여 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의 실천적인 생애를 본받으면 승리적인 생활의 기준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와 같은 피눈물을 흘리는 생애의 길을 가게 되었던가? 그것은 4천년의 기나긴 역사 과정이 눈물의 노정이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눈물의 역사를 거쳐 나오셨고, 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온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이런 눈물의 길을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도 역시 그런 눈물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며, 자신의 생활이 미래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선지선열들이 흘린 역사적인 눈물을 모두 탕감해야 할 책임을 느끼면서 모든 인류에게 소망을 안겨주기 위해 피눈물 나는 고난의 길을 자처해서 걸으셨던 것입니다. 

3. 역사적인 고난의 노정을 완주해야 할 끝날의 성도

오늘날 우리가 우주적인 소망의 한 날, 승리의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사탄과의 싸움의 노정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우리의 책임도 큰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 큰 눈물의 골짜기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아무런 미비함도 없이, 또 하나님 아들 이상의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고 사셨는데, 제자들까지 동반하지 않은 가운데 홀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눈물의 호소를 드리게 되었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여러분은 그러한 피눈물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승리를 재촉하려는 오늘날 여러분은 진실로 예수님이 가셨던 우주적인 눈물의 고개를 예수님과 함께 넘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후 인류역사는 눈물로 이어져 내려왔으므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물의 노정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하나님의 섭리노정에서뿐만 아니고 한 민족이나 국가를 위해 가는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 민족을 붙안고 눈물 흘리는 자를 우리는 선지자(先知者)라고 합니다. 한 국가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선지자들이 이룩한 눈물어린 파란곡절의 승리의 역사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이 역사적인 눈물의 고개를 넘지 않고서는 절대로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0여년 동안 눈물의 고개를 넘어 골고다의 길, 개척의 길을 가시면서 피눈물을 흘렸듯이,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해원해 드려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도 남 모르는 피눈물이 용솟음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형제를 위하여 눈물 흘리고, 세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뿐만 아니라 하늘을 위해서 막을래야 막을 수 없이 흐르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하늘의 사도가 있다 할진대는, 여기에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서러움에 북받쳐 우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서러워 우실 때에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었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연고로 타락한 아담의 서러움을 해소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한 타락으로 인한 죄를 청산하기 위한 제2의 아담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까지도 해소시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소생의 역사요, 장성의 역사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책임을 하는 것으로서 뜻 앞에 설 수 있었지만, 완성시기를 맞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런 부분적인 사명을 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완성시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왔다 갔던 사람들이 분발했던 것보다도 천 배 이상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붙들고 놓지 못하시고 서러워하신 애달픈 심정을 붙안고서 추우나 더우나, 자나깨나 어떠한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이 땅을 붙들고 누구보다도 많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민족이 통일의 법도를 찾아 세우려면 위의 사람은 아래로, 아랫사람은 위로, 이렇게 상하로 눈물이 교환되어 하나님 앞에까지 상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민족은 망하라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서러운 사정과 땅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 아버지의 마음과 통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눈물 흘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끝날에는 슬픔의 눈물이든 기쁨의 눈물이든 인간들은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천년 전 예수님께 고난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을 지나야 하는 어두움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와 같은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놓인 세기말적인 종말의 때를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남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셨으니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도들이나 그 민족이나 세계의 만민들도 모두 눈물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과 세계를 위해 흘려야 할 눈물

이와 같이 끝날의 인간들에게는 어차피 넘어야 할 눈물의 고개가 놓이게 되는데, 그때에 우리는 하늘을 위하여 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하여 울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 사탄이 어떤 사람을 노리는가 하면 천륜의 뜻을 가로막고 개인의 야욕을 충족시키려는 사람을 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역사적인 눈물을 흘려야 할 자리에서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게 되면 사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천륜의 뜻을 붙들고 눈물 흘리게 되면 하늘 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이 동하게 할 수 있었고, 또 피조만물이 예수님을 모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흘리신 눈물이 자신이나 자신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소망의 뜻을 품고 흘리신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눈물은 하나님의 소망과 통하고, 만민의 소망과 통하고, 만물의 소망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온 피조만물을 위하여 흘린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눈물 흘리며 살다가 돌아가셨으니, 그분을 모셔야 할 우리들도 그분이 눈물 흘리셨던 우주적인 슬픔을 체휼하여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만물까지도 함께 서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하늘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는데 오늘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도 뜻 앞에 서려면 예수님과 같이 개인을 중심삼은 눈물의 길을 거치고,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중심삼은 눈물의 길을 거친 연후에 천상의 영인들의 원한까지 붙안고 눈물 흘리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늘이 원하는 소망의 동산에 서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자기를 중심삼고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그물에 걸려들고 맙니다. 진심으로 여러분이 하늘나라의 가정권 내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개인을 넘어 가정을 책임지고 예수님 대신 눈물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또 하늘나라의 종족권 내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예수님 대신 종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고, 민족권 내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땅과 천상까지 책임지고 가신 예수님의 면목을 세워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항상 염려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후 2천년 동안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가 하면 인간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기독교인들이 가는 길은 눈물의 길이었고, 눈물 없이 섭리역사는 이루어져 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시대를 거쳐 70문도들이 로마에서 오랫 동안 눈물의 제단을 쌓아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점점 넓혀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의 판도를 이루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사 가운데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우는 자는 있었으나, 진심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계를 위해 눈물 흘렸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종말의 때이므로 세계적인 눈물의 골고다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을 위하여 울 때도, 가정을 위해 울 때도, 국가를 위해 울 때도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천년 동안 역사해 오시면서 우리들이 세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붙안고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그러한 내용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없었으니, 우리들이 이 일을 책임져 하늘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시게 되고, 하나님께서도 또다시 눈물을 흘리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께서 승리자로 서시기 위하여 인류역사를 책임지시고 사탄과 싸우면서 눈물 흘리셨던 것처럼, “저희도 눈물의 선봉자로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사조(思潮)를 보더라도 지금까지 기독주의(基督主義)를 지향할 수 있도록 국가주의(國家主義)를 폐하여, 오시는 그 슬픔의 주인공을 영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제는 인류가 세계적으로 예수님을 맞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인류는 세계적인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울더라도 ‘하늘을 위하여 우느냐, 땅을 위하여 우느냐, 아니면 자신을 위하여 우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서 누구를 위하여 우느냐에 따라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길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전체의 뜻을 망각한 채 자신의 뜻을 중심삼고 서러워하고 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는 뜻을 향해 가는 길에서 자연히 추방당하고 말 것입니다.  

뜻을 따라가는 우리들은 자신의 사정으로 눈물 흘려서는 안 되며, 또 뜻을 위하겠다는 민족․국가․세계가 있다면 그들도 자체만을 위해서 눈물 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직 전세계 인류를 위해서 눈물 흘려야 합니다. 

5. 피·땀·눈물 흘리는 생활의 가치

인간과 중단되어진 천륜의 뜻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연결시켜져야 할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사탄과 싸워 승리의 눈물을 흘려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그날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세계적인 승리의 한 날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뜻을 이루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가셨듯이 여러분들도 우주적인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주의 역사도 눈물의 길, 고통의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고, 어느 한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피땀 흘리는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어려움을 참고 고통을 넘으면서 사탄과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하늘을 위하여 얼마나 애써서 싸웠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을 위하여 혹은 가정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땀 흘린 적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가정뿐만이 아니고 민족․세계를 넘어 책임지고 눈물 흘리고 땀 흘리셨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여러분 한 개인을 넘고 가정․국가를 넘어서서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땀 흘리는 길을 가야 합니다. 

눈물과 땀 흘리는 싸움의 노정을 거치는 이것이 승리할 수 있는 첫번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눈물의 길을 거치고 땀 흘리는 길을 거치면서 고난과 싸워 나가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 흘리며 땀 흘리는 기도를 하셨는데, 여러분은 그와 같은 예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눈물 흘리고 땀 흘리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단결된 민족은 지금까지 망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영계에서 천국권 내에 들어간 영광의 영인들은 어떠한 무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가신 길을 본받아 이 땅에서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땀 흘리면서 싸움의 노정을 개척해 간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승리의 조건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이 땅에 왔다 갔던 역사상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가정을 위하여 땀 흘려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민족을 사랑한다면 민족을 위하여 땀 흘려야 하며, 세계를 사랑한다면 세계를 위해 땀 흘려야 합니다. 우리도 남이 가지 않는 숨은 제단을 쌓고 세계 인류를 대표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본받아 세계 인류를 위해 땀 흘리고 눈물 흘릴 줄 아는 제2의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생명을 걸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땀 흘리면서 기도한 시간이 있습니까? 비록 우리가 눈물의 과정을 거치고 땀 흘리는 길을 갔더라도 우리 앞에는 최후로 피 흘리는 죽음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 공생애노정을 거치신 후에 만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영적인 승리의 날을 갖기 위해서 생명을 아버지께 바치며 피 흘리는 노정을 거쳐가셨거늘, 오늘날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주적인 사명을 담당하겠다고 나선 우리들일진대 예수님의 가신 그 길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6.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희생 정신

여러분들에게 생명이 남아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나아가려는 뜻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그의 생명이 자신을 위한 생명인 줄 알았다면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을 성취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인 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는 고난과 시련을 참고 나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십자가의 길은 결코 예수님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여러분의 생명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니며, 이 세계도 인간의 것이 아니며, 우주도 인간의 것이 아니며, 만물도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상과 이념을 중심에 세우고 있습니까? 아버지를 위하여 호소하는 주의와 이념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어도 아버지를 위해 죽고, 살아도 아버지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하늘을 위해 살아간다 할진대는 죽더라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면 살더라도 영광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운명의 죽음 길을 넘어야 하는 우리는 왜 이런 길을 가야만 되느냐를 각자가 판단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물 흘리는 길, 땀 흘리는 길을 걸으신 후 최후에는 당신의 일신까지 하늘 앞에 바치셨습니다. 하늘을 위해서는 자신을 인정하시지 않고 전부를 바치면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이처럼 피 흘리는 생축의 제물이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온전히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탄세계에 대해 승리해야 할 여러분이라 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하늘 앞에 바치려 하지나 않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려야 할 지극히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한다면, 거기에 나를 중심삼은 그 어떤 요소가 있다 할진대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딸아!” 부를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것을 원한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진리, 하늘의 생명, 하늘의 사랑을 세워야 하고 만물과 여러분 자신을 하늘 것으로 찾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다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자신의 뜻을 아버지 뜻으로 귀결시켜 하늘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소망을 성취할 수 없으며,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수천년 동안 땀 흘리는 수고의 길을 거쳐 나왔고, 피눈물의 고개를 거치고 죽음의 길을 거치면서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도 그와 같이 민족을 위하여 제물 된 길을 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뒤를 따르는 자들도 그 길을 따라갈 것이며, 원수 사탄까지도 굴복시켜 친구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6천년 동안 수고하여 왔던 인간이 이제는 승리적인 영광을 갖추어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책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반대하여 온 사탄이 여러분까지도 반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탄의 반대가 돌변하여 사탄이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앞에 제물 드리게 되는 그날이 바로 끝날, 대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이 하나님 앞에 승복(承服)할 수 있는 조건, 즉 천륜을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고 사탄에 대하여 명령하게 될 때에는, 사탄도 그 명령에 순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여러분은 하늘땅에 있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 하나님과 영원한 부자의 관계를 맺는 길

우리가 이처럼 승리자가 되어 하늘 앞에 나타날 때 우리들은 비로소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이상의 동산에서 사탄과 인연이 없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한 영원 불변의 참모습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탄도 이 최후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온 힘을 기울여 침범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지성을 다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인 여러분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는 사탄은 맹목적으로 여러분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는 인간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하여 대항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위하여 눈물 흘리듯이 사탄도 사탄의 뜻을 위해 눈물 흘리고, 우리가 하늘을 위하여 땀 흘리듯이 사탄도 자신을 위하여 땀 흘리며,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듯이 사탄도 자신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두 세력이 대결하는 데 있어서 우리들이 승리하려면 나를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아버지를 위해 살아야 되며 자신의 뜻을 무(無)로 하여 아버지 앞에 전체를 바쳐 아버지의 가치를 세워드리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사탄을 무찌르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더욱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이 이제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길은 눈물의 길이요, 피와 땀의 길이요, 또 이 길은 자신의 피와 살을 모든 원소로 분립하여 만민 앞에 나눠주는 제물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길을 벗어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아버님이 소망하시는 우주적인 승리의 동산에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나이다. 아버지! 저희의 생명이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 사랑이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의 자녀도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의 모든 물질도 저희 것이 아닌 것을 아옵나이다.  

저희들이 저희의 욕심으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한다면 저희들에게 소유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제물된 입장에 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6천년의 원한을 탕감하고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오니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 이 길을 가기 위해 눈물의 길도, 땀 흘리는 길도,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사명을 다하여 복귀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원수 사탄을 주관하고 기쁨의 눈물로써 아버지 앞에 만물만상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녀들의 모습으로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승리를 위한 눈물의 길, 땀의 길, 피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승리의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오늘 저희들에게 부여되었사오니, 저희들이 이 역사적인 승리의 사명을 다하여 십자가의 제물로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나는 아버지의 제물입니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탄을 위하여도 눈물 흘리게 되면 사탄까지도 “옳소이다. 과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가 그러한 무리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15:7-18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고하시며 섭리하여 오신 것은 오직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뜻의 귀일점을 어디다 두었느냐 하면 인간과 하나님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데에 두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소망하시는 뜻을 성취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의 참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곧 인간의 뜻이 되는 것이며, 인간은 온 피조만물과도 화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하나님의 지혜로우심과 인자하심과 은혜로우심을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오기를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바라고 있습니다. 

뜻은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이요,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도 영원한 이상(理想)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이 이뤄지면 하나님과 인간이 일체가 되어 하나님께서 즐거우시면 인간도 즐겁고, 인간이 즐거우면 하나님도 즐겁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뜻이 되어 둘이 아닌 하나로 화동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께 영원한 이상의 즐거움을 돌려드리고, 또 자신도 그로 말미암아 영원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뜻을 세우기 위해서 당신과 완전히 통할 수 있고 일체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하여 뜻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와 인자하신 성품을 지니고 그대로 만물에게도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닮아서 머무르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그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은 그를 보시고 영원히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에서 하늘은 복귀섭리를 해 오셨으며 복귀섭리역사는 흘러왔던 것이니, 만일 인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이념과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들은 하나님과는 하등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기를 중심한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념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같이 인간의 이념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지배하여 오던 인간의 이념이 하나님의 이념과 어느 한 때 만나지 못한다면 인간은 영원한 이상세계를 맞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두 이념을 일치시키려는 것이 종교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사정을 깨닫지 못한다면 인륜적(人倫的)인 이념권 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거쳐온 인륜적인 도덕과 주의(主義)․주장은 천적인 이념에 귀속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두 이념을 결부시켜야 할 책임이 종교에게 있는 것이며 특히 기독교에 그 사명이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이러한 인륜적인 이념을 천륜적(天倫的)인 것에 일치시키지 못한다면 기독교를 중심하고 영원한 창조의 이상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즐길 수 있는 불변의 창조이념을 갖지 못한다면 어느 한때에 하늘의 배반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천륜적인 창조이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구현해야만 천륜적인 이념이 생활화되고 실체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뜻을 위하여 6천년 동안 섭리하여 나오셨습니다. 그러 므로 여러분이 이 뜻을 성취시켜 드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수포로 돌아갈 것이요, 하나님의 뜻은 한갓 이념에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하고 변할 수 없는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지혜를 대신한 진리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우주적인 자비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대신한 관용심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길을 개척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천적인 이념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념을 인간생활 속에 실체화시키기 위해 순수성과 고결성을 지니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하나님의 성상(性相)을 대신하여 순수성과 고결성을 지니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인격을 알아주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천적인 성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화동의 심정을 지니고 오셨습니다. 그 화동심은 선한 사람들은 물론 악한 사람들까지 화동시킬 수 있었으나, 인간들의 불신으로 이 땅에서의 화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변의 절개를 지니고 나타났으나 당시의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후대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실현하고자 원하시고 애쓰시던 그 천적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천적인 순수성과 고결성, 그리고 화동심과 하나님에 대한 절개를 지니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실천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 한 예수님에게 맺혀 있는 한을 풀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륜적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천적인 이념을 생활규범으로 세움으로써 인륜적인 모든 것을 천륜에 일치시키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념을 지니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예수님이 소망하는 창조 본연의 이상세계는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인륜적인 모든 이념을 천륜적인 이념으로 대치시킬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인륜적인 것을 천륜적인 것속에 완전히 소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지상천국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2천년 동안 영적으로 인륜의 뜻을 천륜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이라 한다면 그 뜻을 이어받아서 인륜을 천륜에 일치시키는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먼저 생활 속에서 모든 악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생활이념을 지녀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는 것은 사탄과의 인연을 영적으로 끊는 것이었으나 이제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생활이념을 지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영․ 육으로 사탄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심판은 어떻게 하느냐? 인간이 지상에서 얼마나 천륜적인 이념을 세웠느냐 하는 것을 놓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모면하려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책임져 이를 성취시킬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도 전에 사탄이 먼저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자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 예수님의 순수한 성품을 소유한 자가 있습니까? 그를 찾아 친구로 삼으십시오. 어느 누가 고결합니까? 그를 따르십시오. 또 어느 누가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고 화동시키는 자가 있습니까? 그를 따르고 모셔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생명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또 그분을 따르고 모셨다는 조건으로 심판을 모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순수성과 고결성과 화동심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까? 가져본 적이 없다면 자신을 상대로 싸우십시오. 사탄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천적인 성품과 사탄적인 성품의 차이점을 발견하여 분별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 다음으로 여러분은 불변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하실 줄 몰랐다는 것은 천적인 이념을 놓고 불변했다는 말입니다. 사탄의 주관을 받는 타락한 인간은 간교한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의 사탄은 자기의 죄악상을 밝혔으나 끝날의 대심판 때에는 사탄이 자기의 죄악상을 밝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불변의 심정으로써 자신의 환경, 자신의 생명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 다 버리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예수님의 불변의 심정과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롯한 모든 환경은 여러분 자신이 싸워야 할 상대인 것을 아십시오. 불변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 앞에는 모든 것이 투쟁의 상대요, 모든 것이 원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예수님을 공격해 왔습니다. 하늘땅 전체가 예수님 앞에 싸움의 상대였으니 예수님은 얼마나 불쌍한 분이셨습니까? 이런 가운데서도 그분은 불변의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불변의 모습으로 서서 사탄 대하여 불변의 모습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모여 땅 위에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발판을 이루어야  만물이 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이제까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사탄을 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소망의 한 날을 맞이하여 기쁨과 영광을 노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선의 본성을 찾아 죄의 보응을 면하자

모든 피조물은 본래 선하게 지어졌으나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그 선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고, 죄악의 보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선(善)을 추구하여 내려오고 있음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동산에서 선만이 존재하여야 할 것이었는데 이 선이 이 땅에 아직까지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온 피조만물이 지금까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어떠한 고난의 역사 과정을 거쳐서라도 이 선의 이념을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목적을 개체에서 달성해야 되는 동시에 국가, 세계, 온 천주에까지 넓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 선의 뜻을 드러낼 수 있는 그 한 때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러분이 이러한 절대적인 선의 뜻을 이루어 우주적인 전체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사람들이며, 또 여러분은 그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본연의 선을 흠모하는 우리는 먼저 선하게 피조만물을 지으신 선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의 실체(實體)를 알아야 할 것이요, 또 하나님의 선한 가치를 알아 그 말씀을 전파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한 말씀을 통하여 지으신 모든 피조만물의 선한 가치를 여러분 스스로 찾아 세워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였던 선의 목적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하게 창조되어진 만물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이며 선한 말씀을 통하여 피조세계를 지으셨는데, 그 중에서도 인간은 전가치적(全價値的)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선을 노래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체(中心體)로 나타나야 되는 것이 창조 본연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러한 가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떻게 다시 선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느냐? 먼저 양심을 통하여 본체의 선을 닮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여 하나님의 본체의 선과 말씀의 가치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피조만물을 지으시던 선의 이상인 기쁨을 찾으실 것이요, 선의 목적을 지향해온 인간들도 하나님의 선의 가치를 느끼는 선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전부 좌절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체들이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것을 깨달아서 선의 목적을 달성한 선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여러분이 아담 해와로부터 물려받은 죄상(罪狀)은 여러분 자신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각 개인을 통하여 온 세상에 나타나온 피조세계와 하늘에까지도 미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 한 자체를 올바로 세워 하나님이 고대하시던 본연의 선을 대신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으신 피조만물의 선한 가치를 느끼고 만물을 선하다고 칭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선의 본체로 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의 가치를 여러분의 양심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전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여러분이 바라는 선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이 본연의 선은 하나님의 영원․유일․불변성을 중심삼고 실체를 통해 나타나야 하는데, 그 영원불변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선의 성품을 상대적으로 나타내야 할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불변․유일의 가치인 선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생활이념으로 선을 세울 수 있는 자주성과 존엄성, 가치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찾으려는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주성, 존엄성, 가치성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불변․유일하신 하나님의 선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이 세 가지를 세우기 위하여 죽더라도 이 일을 위하여 죽고, 살더라도 이 일을 위하여 살았다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소망으로까지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인간들은 스스로 선의 자주성과 존엄성과 가치성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선을 중심 삼고 영원한 동산에서 즐거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의 잘못으로 이것이 오늘날까지 인간 개개인이 찾아야 할 소망으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절대적인 선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상대적으로 선의 자주성, 존엄성, 가치성을 가질 수 있었던들 오늘날 이 땅 위의 인류는 공포와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대신한 창조주적인 입장에 있었고, 전체를 책임진 입장에 있었음을 생각할 때, 그들이 지은 죄는 그들 일신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요, 선하게 창조된 피조세계 전체에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두려운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아담 해와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을 상대적으로 이 땅에 찾아 세웠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신은 물론 미래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 슬프게 한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죽기를 각오하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영원․불변․유일하신 말씀을 따라 나섰던들 이러한 역사적인 죄상, 시대적인 죄상, 미래적인 죄상은 있을래야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을 따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타락의 순간부터 역사적, 시대적, 미래적인 죄상이 그 일신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될 때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반면 사탄의 유혹에 끌리는 몸이 있었는데, 몸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담 해와는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는 양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공포도 컸던 것입니다. 

이 공포의 마음이 예고한 것은 그들의 타락 행위가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영원히 죄악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려고 할 당시 두려움을 느꼈을 때, 그들은 그 공포에 자극을 받아 절대적인 선을 붙들고 그 악의 마음을 억누를 의(義)의 불변의 중심을 세워야 할 것이었는데, 반대로 악의 본체와 결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서러운 사실은 비단 그들에게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라 타락의 혈통을 받아 내려온 여러분에게까지도 미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도 양심을 통하여 악의 본체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죄악이 이렇게 역사를 통하여 미래에까지 인간의 양심과 대결하여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여 우리는 타락권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비록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일지라도 절대적인 선의 주체를 따라 공포의 마음과 싸우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과 싸우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담 해와는 공포의 길을 택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행로에는 비애가 초래되었고 슬픔이 초래되어 절망하는 자리에까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공포의 입장에 서니,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계시던 생명과 사랑의 근원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떠나게 되어 그들은 말할 수 없는 비애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고 보니 이상의 동산이요, 선의 동산이요, 향락의 동산으로 지으셨던 에덴동산은 아담 해와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동산이 되었고, 그들은 어두움의 세계로 떨어지는 절망의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악의 역사를 거쳐온 우리 인간들은 일생 동안 생의 목적을 찾아 절대적인 선의 기준에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개척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말씀에 의지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의지하여 절대적인 선을 지향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이 의지할 수 있는 양심과 양심이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고, 몸이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실체를 세워, 그 하나님의 말씀과 그 실체에 자신을 연결시켜 절대적인 선의 목적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영원․불변․유일하신 선 권내(善圈內)에 들어가 본성의 자주성과 존엄성과 가치성을 나타낼 수 있으며, 6천년간 섭리하여 오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절대적인 선을 회복하여야 할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세운 윤리 도덕도 선을 지향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말씀을 주어 실천하게 하신 것도 인간이 생활 과정에서 역사적인 선의 절대적인 기준을 찾아 선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선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아담 이후 6천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싸워 나온 역사를 대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후의 과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담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우주적인 선의 말씀을 개체적인 말씀으로 대하다가 타락의 원한을 남겼던 것과 같은 자리에 서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의 말씀을 붙들고 영원불변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배반하여 뜻을 어겼던 역사적인 죄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인하여 공포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 비애를 느끼게 되었고, 절망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것이 역사적으로 이어져 내려와 끝날의 인류도 이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을 지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악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악을 지향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선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항상 만족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없으며, 그들도 어느 한 때 알 수 없는 공포와 부딪치면서 신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을 지향하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 영원한 선과 이념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은 복귀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공포와 비애와 절망이 우리들에게까지 나타나는 끝날에 있어서, 우리가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죽을 힘을 다하여 무한한 공포와 비애와 절망과 싸워 이기고 홀로 승리의 부활권을 조성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 위에서 무한한 공포와 비애와 절망과 싸워 승리하는 그 순간까지 자기 일신을 망각하고 싸워나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세워 자신의 가치를 전체에 나타내려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통한 가치성을 발휘시키려는 이 본성은 좋은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이 본성의 가치를 백 퍼센트 나타내게 되어 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가치성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주장하여 전체의 존엄성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자리에서 자신이 유린되고 무시될지라도 변하지 않는 신념으로 죄악과 싸우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또 전체의 소망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위한 소망을 전부 포기했습니다. 자신이 남기는 전체의 소망이 천년 후, 2천년 후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선의 본체를 세우기 위하여 불변의 모습으로 모든 비애와 절망과 공포와 대결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하늘이 지향하는 선의 목적을 위해서 참고 견디면서, 미래의 소망을 위해서 현실의 희생을 견디고, 미래의 희락을 생각하여 현실의 수고를 잊어버리고, 현실의 공포를 이겨 미래의 권위로 바꾸겠다는 신념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예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심정을 본받아, 자기 일신이 현실에서 말할 수없이 무시당하고 유린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이겨 나갈 수 있어야 타락권 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망각하고 모든 고통도 다 이겨내기 위해서는 절망 중에서도 소망을, 비애 중에서도 희락을, 공포 중에서도 권위를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또 이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사탄의 침범을 결코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사탄의 침범을 제거시킬 수 있는 하늘의 희락과 소망과 권위를 지니고 하늘의 선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선의 가치를 이 땅에 상대적으로 나타내어 잃어버린 만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자주성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하나님도 여러분을 마음대로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성이 본성으로 복귀되는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만물만상 앞에 나타나게 될 적에, 만물이 승리의 영광의 한 날을 고대해서 하나님 앞에 묵묵히 머리숙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존엄성 앞에서도 말없이 순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 선의 가치를 발휘해야 합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주장하거나 입증하려고 하지 않아도 남들이 여러분의 선의 가치를 흠모하여 여러분과 영원한 인연을 맺기 위해 따라 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지녀 영원한 소망, 영원한 희락, 영원한 권위와 선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비로소 안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라야만 죄악의 보응을 받아야 할 역사적인 섭리노정에서 이를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 죄의 보응을 받아 천추만대의 원한을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갖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자주성과 존엄성과 가치성을 나타낼 수 있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까, 선의 본체를 보고 느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위신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오신 천적인 자주성을 잃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갖고 있는 말씀이 영원한 선을 소개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습니까?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은 하늘을 대신하여 어디에 가든지 자주성과 존엄성과 가치성을 잃지 마십시오. 사탄은 항상 여러분의 자주성을 노릴 것입니다. 존엄성을 노릴 것입니다. 그리고 가치성을 노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이 권위와 위신을 상실하지 않고 나아갈 때, 영원하신 선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탄세계를 심판할 권한을 부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타락의 고개를 넘어 본연의 동산에 들어가자

창세기 1:28, 3:6-24

창세기 1장 28절과 3장 6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를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셨던 사실과 다음에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아담 해와의 타락 직전부터 타락한 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까지의 기록입니다.  

이 일은 아담 해와에게서 일어난 것이지마는, 그들이 인류의 조상이요 만물의 주관자였기 때문에 그들만 심판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모든 존재에게도 그 영향이 미쳐졌던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쁨은 슬픔으로 변하였고, 인간의 소망은 낙망으로 변하였으며, 하늘땅이 서러움과 원한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망으로 떨어지게 되었던 그 당시 아담 해와의 심경이 분명히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온 만물을 앞에 놓고 아담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에 기뻤던 그 심경과 타락 후 만물을 잃어버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추방당할 때의 그 심경과는 양 극단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아담 해와는 온 만물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으며 상하․전후․좌우를 살펴봐도 중심을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처참한 인연을 벗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담이 저지른 죄악은 역대 선조들을 통하여 시대와 국가 또는 민족을 초월하여 법칙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내 한 자체가, 다시 온 우주적인 가치를 가지고 천성의 뜻을 나타내어 그 가치가 천성의 가치와 동일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는 어떠한 역사적인 어려움을 거쳐서라도 내 한 자체가 우주 가운데에 찾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한 인간의 이상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본연의 동산은 나를 통하여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에덴동산의 서러움은 한낱 에덴동산에의 서러움에 그친 것이 아니요, 타락한 아담 해와를 대하던 하나님의 서러움과 낙망은 오늘날의 억조창생에까지 이어져 있음을 여러분들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나는 어느 한 가정 혹은 종족에만 국한된 존재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거기에만 국한된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나는 소망의 이상을 걸어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추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우주적이요, 역사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면 모든 인류는 나와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생각할 때, 나를 세워 이들의 소망을 이루어야 하고, 또 이들과 함께 내 본성의 미를 하나님 앞에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아담 해와의 타락 직전의 입장과 타락 직후의 입장을 여러분들이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대하여 친히 ‘내 아들딸아!’ 하고 부르는 것이 소망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타락이란 무엇인가? 타락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부자의 관계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 해와가 맨 처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실이 역사적인 서러움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불신하여 배반하였던 것이 우주적인 한(恨)의 씨로 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끝날에는 부자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인간 조상에게 하나님을 배신했던 불신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 혈통을 받고 난 인간들에게도 끝날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대항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시대가 올 때에, 배반할래야 배반할 수 없는 참부모를 이 땅에서 찾아야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머무르는 현재의 환경은 믿음의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이러하고 부부의 관계가 이러하고, 또 일가친척의 관계가 불신의 풍조가 되어, 인간들이 지향하고 있는 의지까지도 근본적으로 파탄시켜 버리는 거부 현상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면 여러분은 그때가 끝날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그러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사탄의 말을 들어서 타락하였으니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동시에 생각지도 않은 사탄의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 땅에도 이러한 두 갈래의 말이 생기게 되었는데, 하나는 참것에 속하고 다른 하나는 거짓것에 속하여 언제 어느 때나 여러분의 생활에 직접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바라는 참아버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통하여 나온 말씀을 지켜 그 말씀을 여러분의 생명의 표준, 이념의 표준, 싸움의 표준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땅 위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중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어떠한 주의나 계통에 의한 개인의 이념을 중심한 말씀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영원한 표준으로 삼아 변할 줄 모르는 모습으로 생명을 걸고 투쟁하는 무리는 점점 없어져 갑니다. 사탄처럼 자기를 중심한 말을 하는 자가 자꾸만 늘어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꼬인 존재를 뱀이라고 하는데 이 뱀은 혀가 둘인 것이니 한 혀를 가지고 두 말을 하는 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륜을 대신한 말씀을 품은 자는 아니면 아니고, 그러면 그렇다는 말씀을 중심을 세워서 그 말씀을 사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닌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은 이쪽에 가서 혼란만 일으키고 저쪽에 가서 혼란을 일으키는 입장보다 더 나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하여 자신의 몸을 잃었고, 믿음을 잃었고, 말씀을 잃었고, 동시에 실체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믿음과 말씀을 다시 찾았으며 남은 것은 오직 실체를 복귀하는 것뿐이니, 이 실체를 복귀시키는 때가 왈(曰)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된 실체적인 기준에까지 오르기 위하여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데,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운행하실 수 있는 실체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상대적 입장에서 명령하셨고, 상대적인 입장에서 믿음의 조건을 보고 그를 대하셨지만, 앞으로는 실체를 찾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이 일체됨으로써 내 한 실체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실체를 찾기 위해서는 창조의 법칙을 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몸과 상대되는 모든 것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상대기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참상대기준을 통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지향하는 이념을 찾아야 하고, 마음이 명령하면 몸이 따르게 되는 마음과 몸의 일치점을 찾아야 하고, 또 몸과 마음이 함께 지향하는 어떤 목적을 땅 위에 남겨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 과정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모순되었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어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고, 또 하늘의 중심을 대할 수 있었던 타락 전의 아담 해와의 입장에 있다면, 내 마음은 몸과 하나될 수 있고 몸은 마음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만물과도 하나되는 생활 환경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의 여러분에게는 어떤 사명이 있는가? 우주적인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복귀를 위하여 준비하여 온 역사적인 천적인 가치를 인계받아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의 실천 여하에 따라 여러분에게는 상대적인 이 땅에서 지도적인 권한이 부여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며, 그 부여되는 권한 여하에 따라서 천적인 인격이 형성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성막으로부터 출발하여 성전을 거쳐 실체에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인격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중심하여 하나님은 섭리역사를 이루어 나오셨고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신앙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그리스도를 닮게 되면 죄악 역사는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심판의 결전장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복귀섭리를 책임진 자신임을 생각하고 자신을 온 우주 앞에 세워 보십시오. 천 가지 물건이 있으면 천 가지의 주인으로서, 만 가지 물건이 있으면 만가지 주인으로서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만물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다른 어느 것도 아니며, 오직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영광의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실체대상이 되려면 어디에 가든지 어떤 환경에 머무르든지 이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도 내 일이고 저것도 내 일이구나! 어느 하나 나와 관계없는 일이 없구나! 아버지여, 제가 살아서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이루게 하소서!” 이렇게 호소하면서 무슨 일이라도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만물들은 나와 관계를 맺고 나와 함께 살면서 즐기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지금까지 슬픔이 있게 한 사탄이 하나님께 인간들을 참소하는 데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 싸워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버지! 사랑하시는 아버지, 제가 아버지 대신 싸우겠습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제가 갚아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것을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념을 찾기 위해 저희 자신을 아버지의 뜻대로 쓰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실체 성전 복귀의 뜻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들은 처해 있는 생활 환경 가운데서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항상 천륜에 합당한 자신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선악을 분리하는 성별(聖別)의 생활로 자신에 혁신을 일으켜, 영원불변의 투사로서 하늘의 정병으로서의 승리의 모습을 갖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 것을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끝날 심판의 고개를 넘어가 복귀된 에덴의 이상동산에 들어가 진리체로서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7:1-27

<기 도> 일주일 동안 허락하신 뜻을 따라 아버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싸워 나오던 자녀들이 이 시간 아버님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사랑의 아버님, 자비의 아버님, 당신이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초한 입장에 처해 있사옵니다. 

저희들 마음에 친화(親和)의 은사와 하늘의 위로가 없으면 저희와 같이 불쌍한 자가 없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저희들을 헤아리시어 긍휼의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약한 자의 친구가 되시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것도 아버님이시라는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오니, 연약한 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자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천륜의 놀라운 뜻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기고, 하늘의 은사에 잠기어 감사경배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바라시는 영광을 나타내 드리고, 기쁨의 송영을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이 곤고의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섰다 할진대는, 그것이 아버지의 즐거움의 영광이 되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사옵고, 저희들의 슬픔과 저희들의 낙망과 저희들의 탄식이 나를 중심삼지 않고 만물과 천주를 위한 것이라면 그 이상 영광스러운 것이 없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을 위하여 염려할 수 있고, 땅을 위하여 염려할 수 있는 마음만이 이 시간 저희들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시옵고, 자기 스스로 하늘로부터 맡겨진 사명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는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자체가 천상의 뜻을 대하고 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움직이는 것도 하늘을 대신하여 움직인다는 자각적인 심정을 갖게 해 주시고, 민족을 대신하여 사탄과 대항하여 싸우고 당신이 맡겨 주신 책임을 완수하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당신이 허락하신 축복을 민족을 대신하여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을 깨우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두움에 삼켜 들어가는 전세계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책임을 지되 내 개체의 생명만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지 말게 도와 주시옵고, 저희의 생명을 아버지 앞에 내놓고 민족을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한 책임자로 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저희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저희의 몸 마음의 충절을 아버지 앞에 다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충절이 아버님 마음 깊이 사무치어 아버님께서 저희들을 위로할 수 있고 복빌 수 있는 이 시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지방에 널려서 외로이 아버지 앞에 싸움의 봉화를 올리고 있는 곳곳마다,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고, 주관하여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여 역경 속에서도 자랑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외로운 사정에 처하여 있는 아들딸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환경과 모든 사정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위로하여 주시며, 일률적인 은사로써 그들 앞에 나타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맡기었사오니 허락하신 뜻과 허락하신 영광만이 저희의 몸 마음에 충만히 나타나 역사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시간에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위한 예수님의 지정(至情)’이라는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인간 본연의 길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인생의 근본 목적을 확실히 모르는 채 자기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왜 이 땅에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정확히 모르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인간은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위하여 태어나, 위하여 살다가, 위하여 죽는 것이 인간 본연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조상 아담 해와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즉 서로 위하여 사는 상대적인 길을 갔어야 했는데, 그런 길을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한 타락의 근원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위하는 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이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 태어나고 자기를 위해 살다가 자기를 위해 죽은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인간은 모를지라도 창조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주적인 생애의 가치, 우주적인 생명의 가치를 찾아 세워 나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다시 한번 헤아려 보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천륜을 대하여 인간의 절개를 지켜 천상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고, 인륜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으며, 우주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대해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는 여러분의 입장을 회복하여, 영원히 위하여 사시는 그 한 분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고, 여러분 자체가 전체와 인연을 맺어 그 인연의 실천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미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생의 가치를 찾아 나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우주적인 인간 본연의 절개심을 찾아 세워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고 만인간 앞에 자랑할 수 있으며 피조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 날을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죽어서라도 그 한 날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우주적인 운명 길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불변의 절개의 기준을 세워 하늘을 대하든, 인류를 대하든, 혹은 피조만물을 대하든 그 가치와 영광을 홀로 나타낼 수 있는 사람, 또 변할래야 변할 수 없고 어길래야 어길 수 없으며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충절을 갖춘 참된 인격자는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역사상에는 하늘이 보내 주시고 증거해 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참된 인격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 하나의 인격자를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이제까지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들의 사명과 믿음을 인계받아 천륜과 인륜 앞에 불변의 모습으로 서겠다는 맹세와 각오를 하고 나선 그 한 분을 만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바라는 책임을 수행할 수 없고, 인류역사는 천륜이 바라는 그 하나의 목적지에 가까이 나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을 대신할 수 있고, 온 피조만물을 대신할 수 있는 영원한 절개의 기준을 갖추어 나선 그 하나의 인격자, 우리 인간들이 닮아야 할 인격의 실체, 인류역사를 이끌어 가는 책임자가 인간들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천륜의 뜻은 완성될 수 없고 이 악한 세상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의 중심존재가 이 땅에 기필코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종결시대에 나타나겠다고 하신 분이 이 땅에 현현하실 수 없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타나야 할 중심존재는 온 피조만물의 가치와 영광을 대신하여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천적인 이념의 가치를 나타내고 전체와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핵심적인 힘의 작용체가 되어야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섭리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섭리역사의 시대 시대마다 그러한 중심인물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인류역사가 이러한 연관적인 역사로, 즉 중심인물들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오늘날 우리가 인계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역사의 최후의 목적은 하나의 세계관을 통하여 귀일의 이념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 복귀섭리의 귀일점과 참종교

그러면 그러한 섭리역사의 귀일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들이 천륜 앞에 영원히 세워질 수 있는, 천륜과 인륜과 우주를 대신한 하나의 인격을 갖추어 불변의 충효의 자세로써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의 목적이 그 하나의 귀일점을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류역사가 어떠한 이념을 중심삼고, 어떠한 주의를 중심삼고, 어떠한 건설적인 활동을 중심삼고 추진되어 나간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표준은 역사적인 표준이요, 인간 본연의 표준이요, 지금까지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소망해 왔던 하나의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또한 이제까지 그 하나의 표준을 완성한 중심인물이 자기들의 목전에 나타나기를 소망해왔습니다. 

즉 과거나 미래에 그 중심인물이 나타나지 않고 자기들 당대에 나타나서 자기들과 관계를 맺어 자기들도 천륜의 표준을 완성한 존재, 영원불변의 시조의 영광을 누리는 존재가 되어 만물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기를 바라온 것입니다.  

실제로 그 한 존재가 여러분의 목전에 나타나게 될 때, 여러분은 그분을 중심존재로 모실 수 있고 그분의 절개를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는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수천년 역사를 거쳐오시면서 그 시대를 대표하고 그 시대에 적합한 하나의 중심인물로서 그 시대를 책임지고 그 시대 인물들이 지켜야 할 천륜을 계승시킬 수 있는 충절과 지조의 인격자들을 보냈으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 인류역사는 많은 주의가 하나의 이념으로 통합되면서 귀일의 목표를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주의가 하나로 통합되어 나오는 이유와 천륜의 섭리가 출발에서부터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귀일되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섭리의 목표가 시대 시대마다 변경되면 섭리의 귀일의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가 영원한 축을 중심삼고 일관되게 하나의 표준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념을 통하여 나타나는 주의가 아니요, 이념을 통하여 나타나는 법도도 아니며, 이념을 통하여 나타나는 인륜 도덕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륜을 초월한 천륜의 법도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모든 것과 홀로 투쟁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노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륜의 뜻을 대신하여 불변의 지조를 세울 수 있는 천륜의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의 출발점에서부터 목적지까지 불변의 행로를 거쳐 하나의 귀일의 가치를 찾아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찾아진 그 귀일의 가치가 전체 복귀의 조건으로 세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천륜의 이념을 대표한 인격자로 세워 섭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을 살펴보면 민족과 지역을 중심하여 거기에 알맞는 종교가 형성되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랜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불변의 인격을 주장하며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가치의 인연을 결부시킬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종교는 시대와 환경은 변할지라도 이 일을 위하여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끝날까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종교는 인간이 태어난 목적, 살아야 할 목적 등을 제시하고, 또는 역사와 문화 등의 어떤 면에 있어서도 공헌할 수 있는 역사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종교를 찾으려면, 그 종교가 신앙적인 이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땅 위에서 무한히 투쟁해 나온 종교인가를 헤아려 보아야 되겠고,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일관된 하나님의 이념과 사랑을 인간 앞에 나타내기 위하여 시대와 주의는 변할지라도 불변의 모습으로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그것을 수습하는 데 공헌하는 종교인가를 헤아려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종교라면 그 종교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근본 목적은 천륜을 대신하는 것이요, 인륜을 대신하는 것이요, 온 땅 위의 이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불변의 절개를 갖춘 하나의 실천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나오기까지에는 예수님을 중심한 이념이 있었고,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생활이 있었으며, 또 그 이념을 이루어 놓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부르짖고 있는 이념은 예수님이 출발하던 이념과 맞아야 하고, 기독교인들의 실천적인 생활도 예수님이 행하신 실천적인 생활과 맞아야 하며, 기독교인들의 욕망도 예수님의 욕망과 동일해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불변의 지조를 대신하고, 그 허락하신 천륜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겠다는 기독교의 이념과 인류를 하나로 귀일시켜야 할 이념을 불변의 절개를 갖춘 하나의 이념으로서, 하나의 주의로서, 하나의 실천적인 대상체로서 천륜 앞에 나타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인격과 지조를 지키신 생활

그러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인격을 살펴보게 될 때, 예수님은 그 당시에 국한된 일개인의 인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격은 자기 일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천적인 가치의 인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주장하시던 이념은 어떠한 이념이었느냐 하면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역사적으로 바라왔던 소망의 이념인 동시에 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창조주의 이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피눈물 나는 길을 걸었던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불변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념과 생애를 통하여서 그의 지조와 인격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천륜의 지조를 세우기 위하여 무한한 투쟁도 개의치 않고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 예수님이 남기신 사명을 이어받아 2천년을 첨부한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불변의 절개심을 갖춘 인격자로서 하늘 앞에 나타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천륜을 대신한 이념,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하신 이념, 오늘날 우리가 찾고 있는 이념과는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는가?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애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천륜 앞에 맹세하고 나선 이후 자신의 안락을 생각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예수님을 만민의 구주로 세울 수 있었던가? 4천년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예수 한 분만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전체의 생애를 바쳤고, 창세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절과 절개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영원한 메시아로 세워질 수 있었으며, 모세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섭리역사가 예수님의 이념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무한한 공포의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야 할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호소를 무엇으로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이 땅에 있는 이념으로써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막혀져 있는 우리의 갈 길을 헤쳐 주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도 당시의 이념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지향하는 수많은 종교를 통하여 섭리의 중심인물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곧 재림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여 혹은 피조만물을 대하여 상대적인 가치기준에 서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인격과 절대적인 하나님의 불변의 이념과 천적인 생활의 이념을 대신한 중심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처음과 끝이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만물만상 앞에 자신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진리를 찾기 위해 나선 여러분들이라면,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소망, 예수님이 바라던 이념, 예수님의 생활의 표준을 이어받고 거기에 새로운 이념을 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스스로 그러한 활동 무대를 여러분은 찾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념적인 기준과 실천적인 기준을 갖추어 모든 면에 통솔할 수 있는 절대적인 위치를 여러분 자신들이 찾아 끝날에 하늘이 찾고자 원하시는 인격자, 천상의 전체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심정이라도 지닐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이지만, 개인으로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한 종교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계와 인류를 위하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인류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인류의 역사적인 소망을 책임질 수 있는 동시에 인륜과 천륜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와 역사적인 소망과 인륜과 천륜의 이념이 여러분이 생활하는 환경과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느껴야 하고, 불변의 인격자로 소망의 실체로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 앞에 부끄럼 없이 나타나 “주여, 당신의 소원이 이것이 아니옵니까? 제가 이루어 드리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륜의 원칙을 대신하여 변치 않는 절개를 가지고 하늘 뜻을 위해 책임을 다한 후 “하늘이여,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4. 외로운 환경을 극복하신 예수님의 마음 자세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자세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개척해 나오셨는가? 예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인륜을 회복하게 해주고 천륜과 관계를 맺게 해주며, 인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어느 누가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비장한 심정을 품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운 사정에 처하셨던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인간들에게 침범해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억만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그 당시의 인간들이 가로막고, 역사적인 모든 습관성과 시대적인 사조가 가로막는 길을 홀로 개척해 나가야 할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고 외로운 입장에 처해 있었던 예수님을 위해 누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웠으며, 누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용기를 내어 그 어려운 길을 개척해 나왔던가!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러한 입장에 있었던 예수의 사정을 대신하여 어느 한 때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 땅 위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예수님이 바라신 이상을 이 땅 위에서 이루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인격을 대신한 존재로서 타락한 인간을 구해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당시의 사람들은 몰라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극히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인적인 소망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지신 소망은 오직 타락한 인간을 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때까지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외로운 사정과, 또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자기 일신을 생각지 않고 인류를 구해내는 데 전체적인 소망을 걸었던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슬픈 고독자의 대왕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 일신만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한 모든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역사를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하고, 천륜을 대신하여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실존적인 가치를 나타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 흘리며 서글픈 생활을 하셨지만 위대한 뜻을 품으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그런 어려운 환경을 다 잊으며 창조주의 이념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사탄과 싸워 나가야 했던 안타까운 사정에 처해 있었음을 감히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또 스스로 탄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일신을 위한 이념을 세우지 않았고, 천륜을 위한 이념을 세우셨습니다. 그의 이념은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표한 불변의 이념이요, 역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주의나 사상 등의 근본 이념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이념을 갖고 나선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던가?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환경을 극복하고 하늘과 인연을 맺었던가?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선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본연의 인간,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실체요, 무한한 가치적 존재였지만 타락한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어려운 환경을 제압하고 나서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슬픔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하고 사망의 세계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슬픔과 고통과 사망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 원한을 밟고 서 가지고 그 마음에 천륜의 중심을 세워 이것을 붙들고 싸우신 주인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기 위해 슬픔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가 안타까워한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해 안타까워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 일신을 통하여 역사적인 민족의 서러움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를 대신해서, 섭리를 대신해서, 민족을 대신해서 안타까워한 것입니다.  

5.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충성·인내

예수님은 아무리 피흘리는 자리,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리, 공포에 사로잡히는 자리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중심만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하늘의 이념을 인계받아 지상에 하나의 불변의 길을 개척하는 전체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할 예수님이 그러한 환경에서 중심이 변하였던들 승리적인 천륜의 역사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환경, 소망이 끊어진 입장, 사탄이 참소를 받는 자리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적인 천륜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역사상에 없었던 사랑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죄인들이 악을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이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타락권 내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해서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인내, 천적인 충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국의 이념을 달성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념인데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또 인내와 충성심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현현하신 사랑의 화신체였으며, 서러운 골고다의 길에서도 만민의 고통을 염려하신 인내의 주인공이었으며,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 하늘 대해 충성했던 충성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것들은 예수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던가? 그는 하나님과 뜻을 위하여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실 때 논리적인 면을 앞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정의와 사랑에 대한 논리를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의 실천적인 면에서 역사를 대표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느끼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실천적인 사랑은 어디서 나왔는가? 예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더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내적 심적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간들은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천만번 배반하고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인간들이 몰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배반하고 불신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내심은 어디서 나왔는가? 하나님이 싸움의 역사를 해오신 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악을 대하여 무한히 참아 나오신 것은 선의 생활이념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인간 하나를 세워 놓기 위한 변할 수 없는 천리법도의 기준을 세워 놓고 6천년을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참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 대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먼저 충성하셨으며, 무한히 인내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륜을 중심삼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한히 인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사정을 체휼해야 하겠고, 이 뜻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희생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 또 미래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당신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심정, 무한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자기의 어떠한 주의 주장, 자기의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사랑을 주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는 누구였던가? 그런 자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외로울 때도 그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천년 동안 슬퍼하시고, 4천년 동안 싸우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인내심의 가치의 결과를 나타냄으로써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자는 어디 있었던가? 역시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통해 인간의 갈 길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망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인내를 대신하여 홀로 천륜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수님은 비탄에 사무쳤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6.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끝날의 성도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충절의 심정을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의 충절의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탕자의 입장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으로 세워 놓았던 하나님의 천륜의 전체적인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고, 천주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가치가 자신 하나의 가치와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내심과 하나님의 충성을 느꼈던 예수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며 참으셔서 찾아진 소망의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던 예수님을 본받아, 그의 사랑과 충성과 인내심을 인계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한 사람을 찾기 원하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사랑을 대표한 분이요, 하늘의 충성을 대표한 역사적인 분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즉 천륜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천상의 모든 싸움이 땅 위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신 그 남겨진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땅과 인연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믿어 주지 않는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죽음의 길을 넘어야 할 입장에서 자기 하나를 찾기 위해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여기에 가중된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신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비웃는 사탄과 원수들을 대하여 오히려 그들을 비웃을 수 있었고, 죽음을 초월함으로써 사탄이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주인의 길을 개척하였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세계에 없는 인내와 사랑과 충성심을 계승하여 사탄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즉 자기를 죽인 원수를 대해 복빌어 주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중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천륜의 원칙을 아는 이상 천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만번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신 예수님의 이런 심정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충절과 인내심을 본받아 그의 계승자가 되고 이 땅에 남겨진 그의 유업을 계승하여 실천하는 부활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 없는 심정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번식해 나가며, 사탄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을 대신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예수의 형제요,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애달프게 찾고자 하셨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심과 충성심을 본받아 예수님의 대신자로서, 예수님의 이념을 평면적으로 완성할 뿐만 아니라 입체적으로도 완성해야 하며 역사적인 모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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