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오늘은 1967년 10월 4일, 음력으로는 9월 초하루이옵니다. 보잘것없는 이 민족을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택하시고, 삼천리 강토를 찾아 세우시기 위해 그 얼마나 피어린 노정을 걸어오셨나이까?

외적인 모습은 보잘것없사오나, 아버지 앞에 충성된 마음과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는 자세를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한이 풀리고 제2의 해방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옵니다. 만 12년 전의 10월 4일이 오늘에 이어져 슬픈 날로 결말이 맺어지지 말게 하옵시고,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날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모습을 대신한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축복받은 당신의 귀한 자녀들이 제사장적 사명을 다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이 7개국을 중심삼고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오늘은 양력 10월 4일, 음력으로는 9월 1일입니다.

선생님은 지난 21년노정에 기쁜 날이 없었습니다. 금년은 선생님의 21년노정과 여러분의 7년노정이 끝나는 해입니다. 이 해가 양력으로는 3개월 남았고 음력으로는 4개월이 남았습니다.

뜻 앞에 헌신하기 위한 우리 축복가정은 같은 운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36가정은 조상의 입장으로, 다른 가정들은 자녀로서 역사상에 없었던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입장이 하나님과 부모를 중심하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앞으로 올 세계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나 난처한 경우를 당했을 때는 그것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가 하고 조용히 생각하면 그 해결책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때 결정적인 행동에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부족한 정성이나마 세워 몸부림쳐 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발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준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배후에 하나님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21년노정을 두고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노정이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민족을 세우시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의 피를 연결시켜 이날을 찾은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가 뜻을 위해 나가기를 결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민족과 세계를 복귀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의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결의한 이 길을 지금까지는 민족을 중심하고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넘어 천주까지 나아가야 할 우리 개인이요, 가정입니다. 당대에 못 이루면 후손에게 유언을 하여서라도 뜻을 이루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 살다가 일찍 죽게 되더라도 살아 있을 동안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뜻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뜻을 다 못 이루고 가는 데 대하여 선생님께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떠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마음 놓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무기와 방패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7년노정이 끝나면 이 민족이 해야 할 책임이 다가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큰 책임과 사명을 분부할 때가 왔습니다. 과거를 뉘우치고 앞으로 해야 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각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만이 아는 사실들을 생각할 때, 다시 청산해야 할 것이 있음을 느낍니다.

뜻을 출발할 때의 나와 오늘의 내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비교하여 반성하고 출발시의 결의를 찾아 더욱 충성할 것을 결의해야 합니다. 출발시의 자신보다 모든 점에서 앞서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또 출발시보다 더욱 간절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도 뜻을 출발할 때와 21년노정이 끝나가는 오늘을 비교하면서 반성하고 청산해야 할 심각한 자리에 있습니다.

출발 당시보다 더 심정적으로 간절해야 하고, 출발 당시보다 더 활동적이어야 합니다.

이제 또 제2차 7년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 이중에서도 36가정의 7년노정은 개인이 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자신이 걸어온 7년노정이 심정을 중심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고, 지난날의 환경이 증거할 수 있는 본(本)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본이 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오늘 내 자체가 역사적인 결실을 어떻게 맺느냐가 문제입니다. 개인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연결되고, 식구들과는 횡적으로 연결되어서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과 심정, 생활, 행동을 같이하지 못해도 방향과 마음만이라도 같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부름 받은 사람은 지상에서 싸웠습니다. 지상에서 싸운 것은 모든 것을 탕감하기 위함이므로 이 기간 내의 기쁨과 승리는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더 큰 기쁨과 승리를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승리하고 나서 더 큰 것을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신도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니 우리들이 막혀 있는 이 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난 속에서 민족을 중심삼고 발전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생활 속에서 눈물어린 것을 체휼하려는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부모님과 한길을 간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의 한이 이 민족을 중심하고 풀려야 합니다. 그 모든 한이 나와 내 가정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어야 하고, 해원성사 되어야 한다는 심정적 기준이 확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중된 책임은 지금까지의 슬픈 역사를 거두고 기쁨의 역사노정을 우리 시대에 얼마만큼 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도 외적인 단계와 내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네가 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하는 말을 남기지 않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이가 갈리는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겠다고 맹세했던 사람이 배반한 것, 탕감복귀노정이 21년으로 연장된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의 원인 된 반대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금도 생각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과가 종족적인 것이지,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으로 21년을 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도 복귀해야 합니다. 원수를 갚아야 할 입장에서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타락하지 않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7년노정이 지나면 그 수고는 승리의 결과로 남아질 것입니다. 36가정은 야곱까지의 조상들 입장입니다. 조상들이 책임 못하면 후손이 해야 합니다. 이제 7년노정이 끝나면 축복가정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사람은 교체해야 합니다.

축복을 받으면 그 입장이 달라지고 인연이 달라질 뿐입니다. 그 자체에 다른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가정은 전체를 대신한 입장입니다. 축복은 미래세계에 대한 약속입니다. 축복가정은 하나님이 계시는 가정이 되어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후손들이 추앙할 수 있는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아버지의 심정과 아버지를 사모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지나간 7년을 반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기뻐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말씀 요지>

‘원리연구회’의 본산지는 한국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의 원리연구회는 매스컴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학부모들에 의한 반대 데모도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발판이 닦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본의 국회와 경찰까지도 이 원리운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되어도 승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9개 언론기관이 동원되어 ‘원리연구회’에 대해 보도를 했습니다.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적기(赤旗)>는 3대 타도 목표 가운데 ‘원리연구회’를 포함시키고 있고, 중공의 인민일보와 소련의 공산당 기관지에도 게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본산지인 한국의 원리연구회가 과연 세계적으로 원리운동의 물결을 밀고 나갈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종가(宗家)집 자식이 병신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찍이 선생님은 남한을 복귀시키기 위한 투쟁(원리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대학 출신 3천 명 내지 7천 명을 필요로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출신을 세워 나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큰일을 해 온 대부분의 인물들은 결코 학박사들이 아니라 그들과는 관계없는 투지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남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일을 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즉 역사는 투사들이 엮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소신을 관철하는 데 있어서 과거의 어떠한 성인 현철이나 현재와 미래의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고 양보하지도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4, 5년간 일선에서 싸워 나온 청년들의 실적과 여러분의 실적을 헤아려 볼 때, 여러분은 그들을 당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수습해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싹을 길러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패자와 승자’입니다. 간판 좋고 인물 좋은 사람을 다 승자라고 할 수 있는가? 역으로 간판 나쁘고 인물 나쁘면 다 패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강하고 질기고 단단하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강하고 질기고 단단한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승자가 되려면, 첫째는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즉 강하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고독한 자리, 가장 모험을 해야 할 자리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용자(勇者)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자신 없는 사람의 승리는 거짓 승리입니다.

둘째는 용단을 내려야 합니다. 자신의 정력을 120퍼센트 퍼부어라! 그러고 나서도 패했다면 그것은 패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동역자가 나타납니다.

남이 잘 때 자고, 먹을 때 먹고, 놀 때 놀아서는 패하는 것입니다. 싸움 길에서는 배고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생님도 30세까지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선생님이 생각하는 투쟁의 시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괴롭고, 슬프고, 외롭고, 분하고, 억울한 것을 기쁨으로 늠름하게 넘길 수 있는 신념을 배양하여야 합니다. 결심도 서 있지 않는데 어떻게 용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상, 즉 자신이 필요하고, 용단이 필요하고, 그다음 세 번째로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상을 갖추고 용단을 내려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가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말씀 요지>

오늘은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7년노정의 마지막 해에 맞는 자녀의 날입니다. 그리고 이 해는 선생님에게 있어 21년노정의 마지막 해가 됩니다.

4대 명절 중에 ‘하나님의 날’만이 미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밖에도 ‘가정의 날’이 있어야 합니다. 전 가족이 복귀된 가정에는 가정의 날이 있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이룬 가정, 즉 선생님의 가정은 물론 36가정만이라도 먼저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복귀의 노정을 가면서 스스로 앞장서는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진정 하나님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각오를 하여 제2차 7년노정 기간에는 민족적으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이끌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2차 7년노정은 36가정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이 7년노정이 끝나면 우리 가정들도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느 가정이나 가정의 날을 가져야 하거니와, 이러한 입장을 갖추지 못한 가정은 앞으로 남은 2개월 내에라도 다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못했던 말이 있으면 자녀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공적으로 이야기해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녀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은 왜 필요한가? 이러한 날들은 모두 창조목적의 완성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날을 맞이하여 영계에 대하여 감사하고, 선구자적인 식구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자녀의 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날은 아담 해와가 승리한 터 위에서 제정되어 기쁨을 함께 누리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복귀된 자녀의 날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또한 무엇을 자랑할 때도 아버님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한편 아버님의 입장에서도 역시 이러한 모든 경우를 자녀들을 중심삼고 하셔야 됩니다. 이것이 곧 부모와 자녀의 관계인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됩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처음 나설 때 우주의 근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의 근본 내용은 부자의 인연입니다. 역사는 이 관계를 복귀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귀역사는 본연의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막론하고 아버지 앞에 보고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앞에 기쁜 환경을 더 많이 만드느냐 하는 것이 복귀의 길이요, 또한 효성의 길입니다.

자나깨나 하나님 앞에 보고해야 하고, 승리적인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심정으로 인연되어야 하고, 아버지를 중심한 아들이 되어야 하며, 그 반면에 부모는 그 자식을 통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중심삼고 나오면서 나를 통하여 위안 받으실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민족을 통하여 전인류가 이 인연으로 하나될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기도는 여러 가지가 아니며, 또한 많은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 참부모를 중심삼은 가정, 가정을 중심삼은 자녀, 자녀를 중심삼은 종족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대한 것이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을 복귀한 다음에는 영국이 복귀되어야 하는데, 일본이 이것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한국과 일본, 미국, 독일이 복귀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통일교회가 문제되고 있듯이 일본에서는 원리연구회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문제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대학원리연구회는 통일교회의 자녀 입장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일본, 미국, 독일, 이 네 나라가 복귀된 다음에는 영국, 불란서, 이태리가 복귀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를 모두 합하면 7개국이 됩니다.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이 책임을 다해야 하고, 민족을 찾기 전에 자신이 종족 앞에 책임을 다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최후의 전투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퍼부어야 합니다. 남은 것은 생명밖에 없습니다. 이 생명까지도 바치겠다는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만두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해원은 울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영광된 자리에 나아가기를 부끄러워하고, 누가 충고하거든 그 충고를 백 퍼센트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두려운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36가정 중에 어느 한 가정이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부부가 무릎을 마주 꿇고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말씀 요지>

선생님의 생활은 절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집니다. 막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뜻길을 출발하려면 아예 각오를 달리해야 합니다.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결심은 좋지만 그 결심이 실패로 끝날 때에는 그 결심이 나를 구속합니다. 실패를 하지 않으려면 나 외(外)의 어떠한 힘이 보강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 길을 출발한 지 몇 년이 되었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내가 이 길에 도움을 주었느냐, 아니면 빚을 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주 짧은 시각이라도 선생님에게는 모두 심각한 시각입니다. 어느 순간 죽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아주 짧은 한순간이 내가 생명을 얻고, 또 내가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기점이니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공기, 음식 모두가 우리들의 생명에 절대적인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맹세하고 결의합니다. 그러나 가다가 번번이 흔들리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에 맹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선열들이 나라를 사랑했던 것만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영계, 지상, 그리고 후손 앞에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합이 맞아야 합니다. 3점이 결합되어야 면적이 생깁니다. 2점으로는 선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허리띠를 매려면 단단히 매어야 합니다. 한번 해보자 하고 막연하게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절대 못합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그리워해 보았는가?

원리와 통일교회와 여러분이 각각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가 형제라면 원리와 통일교회는 큰 형이고 여러분은 귀여운 동생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좋지만 명령에 따라 뛸 줄도 알아야 합니다. 탕감하려면 남을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탕감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 없이 일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동생들을 돌보고 모든 가업을 책임질 수 있어야 참된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또한 얼마나 사랑하셨겠는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시는 정도는 인간들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담 해와 이상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적자(嫡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아담 해와가 완성한 후에 들어가서 누릴 수 있는 소망의 경지, 즉 사랑의 창고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 바지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천만 번인지 모릅니다.

감옥에서 사형수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산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그들에게 3일간 기한을 주고 그동안 회개하면 부활할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심각해지겠는가? 사형수들에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들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살려만 준다면, 컵에 물을 가득 담아 이마에 얹고 서울을 일주하라 해도 할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인데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천사가 일대의 심정으로 싸웠다면 야곱은 천년의 심정으로 싸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패자는 외적인 것에 더욱 치중하는 자이고, 승자는 내적인 것에 더욱 치중하는 자입니다. 내적 기준이 더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오늘의 통일교회는 세상과는 사연이 다르고 내용이 다릅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 맺어진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것과 다릅니다. 선생님이 인류를 사랑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또한 선생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질기고 굳세어야 되며 강해야 됩니다. 또한 자신이 있어야 됩니다. 자신이 있으려면 사상이 있어야 되고, 과거․현재․미래의 역사를 통해야 합니다.

7년노정이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친히 나설 수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을 내세워서 해 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예배 인도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을 대할 때 마음을 터놓고 사연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라톤 선수 아베베가 뛰는 것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그에게는 남이 모르는 고충과 수고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40세도 아직 안 되었다고 해서 죽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혹은 공동묘지와는 아직 인연이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당장이라도 돌아다니다가 죽을지 누가 압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박달나무 방망이로 맞더라도 천국 보내 준다면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천국에 가면 그 자리를 자랑할 것입니다.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소원이 없습니다. 참사람은 소원이 없을 만큼 충족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통일’이라는 말을 점령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이라는 명패를 달고 세상의 욕을 가장 많이 먹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서 있습니다.

참 가운데 진짜 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진짜를 닮지 않으면 모두 가짜이기 때문에, 세계 만민은 참을 따르고 본받아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려면 남자 혼자서는 안 됩니다. 참남자가 되려면 참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에 ‘어린양 잔치’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남자와 참여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결합되는 행사입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요건이 있어야 합니다. 희로애락 모두가 혼자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혼자서는 외롭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천지창조를 하실 수밖에 없는 절대적 입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야!’ 하면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상대적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천지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한 날을 고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이요, 아픔입니다. 남편이 없으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적인 원리원칙에 어긋나고, 우주 공법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편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고통입니다. 모든 상대적인 요건에 부합될수록 행복한 것입니다. 아무리 간절해도 간단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창조목적은 사위기대를 완성해야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개성완성이요, 둘째는 상대기대 완성입니다. 몸과 마음의 싸움을 확대한 것이 세계대전입니다.

인간에겐 정적 분야(사랑-가정)와 사명적 분야(일)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못 가졌을 때, 그는 존재세계에서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아담 해와의 삼대상목적적인 결실체, 즉 자녀를 못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한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원리를 개인․가정․사회․국가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모든 존재는 주고받는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체 조직으로부터 지구․태양․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고받는 작용을 하고, 또 그 원칙에 의해 원형운동을 합니다.

선은 어떤 것이냐? 보다 큰 것을 위하는 것이 선입니다. 통일교회 전체를 희생시켜서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면 그것이 바로 선입니다. 또한 민족과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위한다면 선입니다. 그렇게 하여 세계가 잘될 때, 그 민족은 중심민족이 되고 중심국가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때려서라도 하게 해야 합니다.

일본 통일교회도 한국 통일교회와 똑같이 일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노숙하며 얻어먹더라도 일본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본이 삽니다.

통일교회는 세계를 살리겠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납작해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올라가고, 반대하던 자들이 도리어 납작해지는 것입니다.

사위기대 기반 위에서 하는 일은 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만들지 않으면 선생님이 만듭니다. 우리는 주일에도 뜻을 위해 싸워야 하며, 개척자의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길을 가다가 참된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 역적이 됩니다.

여러분을 수고시켜서 선생님이 잘 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무덤에 후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면 기쁩니다. 반면에 전도하지 않으면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이 일을 안 하면 괴롭기 때문에 합니다. 전도를 하면 욕먹고 나서도 기쁩니다.

참은 하나님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사람은 삼대상목적을 세우고 사는 사람입니다.

<말씀 요지>

인간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인간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한 날을 고대하여 왔습니다.

그 축복의 날을 위하여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적자(嫡子)를 찾아 세워 모든 것을 상속 받으려는 것입니다.

탕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 때문입니다. 지상에 있는 축복가정들의 뜻 대한 기준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영계에 있는 선조들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조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해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날을 위하여 정성들이며 투쟁을 해 왔습니다.

축복은 참부모의 인연을 계승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사탄세계와 싸우던 간판을 걸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아버지 대신, 여자는 어머니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신랑 신부의 한을 남긴 것도 결국 축복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세계로 가는 동조자가 곧 이상상대입니다.

탕감복귀는 아담, 예수, 재림주 3대에 걸린 섭리이기 때문에, 축복받은 사람은 3대에 걸친 역사적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에 3수에 해당하는 3만 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물질복귀를 위함입니다.

12명을 전도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12제자가 하나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라고 한 것입니다.

<말씀 요지>

기나긴 역사에 비교하면 7년은 극히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 7년을 역사의 전기간을 판가리하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6천년의 역사를 탕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순간들을 갖자

아무리 큰 나라도 망하는 것은 순간에 결정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고 먹는 생활의 한순간에 역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날, 한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일생 동안 쌓은 공적을 모두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한순간으로 말미암아 전생애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찬양하지만, 실패하게 되면 정반대가 됩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지만 내쉬었던 숨을 들이쉬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순간의 숨이 생애를 결정합니다.

어떤 한순간의 결정이 없이는 빌딩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 탕감복귀가 완료되는 것도 한순간에 의해 결정됩니다. 과정은 길지만 완성의 시간은 순간입니다.

산을 볼 때에는 그 산의 분수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 하나가 분수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떨어진 물방울도 그 떨어지는 방향에 따라서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올바른 쪽으로 떨어지도록 작용해 주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조그만 힘이라도 선생님이 가했다는 것이 없이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통일교인은 산상의 분수령에 올라앉아 있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한 순간 잘 못하면 천추만대의 후손들까지 다 잘못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밧줄에 팔다리를 꽉 묶어야 되는데 손가락만 걸고는 끌어올려 주십시오 하는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밧줄을 끌어올리십니다. 그러나 얼마나 위험한 상태입니까! 하나님께서 밧줄을 끌어올리시는 힘보다도 내가 밧줄을 붙잡는 힘이 더 세야 합니다. 우리가 틀림없을 정도로 꽉 잡으면 하나님은 일시에 끌어올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수없이 많은 밧줄을 내리시는가? 역사 이래 그 줄을 꽉 잡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그 일을 되풀이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내린 썩은 밧줄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붙잡고는 뒹굴며 좋아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필름에 찍어서 그 사진을 자신이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밧줄을 잡는 데 있어 눈은 다른 곳을 쳐다보며 손으로만 잡고 있습니다. 그것도 힘껏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생각하며 건성으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심각한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조상이 타락했으니 그 후손 된 인간들도 타락할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너로구나.’ 하실 수 있는 심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개인만으로는 안 됩니다. 부부가 있어야 됩니다. 과연 그런 부부가 있는가? 또 그러한 가정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최고로 심각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만큼 심각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사람

삼천만 민족을 안고 모든 사탄을 물리치겠다는 각오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종족, 종족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세계 전체를 복귀해야 하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심각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은 그림자, 즉 허풍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통일의 이념을 위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이들에게 빚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본의 청년들 중에는 뜻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 뜻을 몰랐다면 죽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뜻을 이룸으로써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그런 사람, 그런 가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전체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자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모습은 비록 초라하지만 내가 한번 웃을 때는 만국이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하를 통일한 어떤 영웅보다도 위대한 사람입니다.

복귀섭리로 보아 이것이 마지막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순간순간을 심각히 여기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휩쓸려 다니는 자세로는 안 됩니다.

한 번도 심각한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한순간도 심각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러한 순간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놓고 세상이 좋아하는 비율과 세상이 싫어하는 비율 중 어느 쪽이 더 큰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천지공법을 잘 지키고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살 수 있는가? 죽음에 임박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냐고 자문했을 때, 생애를 통해서 선하게 살았다는 마음이 6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지옥행입니다.

몸은 제한을 받더라도 마음은 제한 받지 않으려는 투쟁의 역사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늘과 땅, 역사와 현실, 그리고 후손을 대해서도, ‘나는 해방이 되었노라. 그러니 나의 전통을 이어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용서 없이 지옥행입니다.

제일 큰 산과 강과 아름다운 지역을 자랑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하지 않고 사탄과 일치한다면 과연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는가?

탕감복귀노정을 걸어가는 사람은 한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고 잠을 편히 잘 수 없습니다. 길을 가더라도, 밥을 먹더라도 바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의 21년은 지루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보다 6천년을 섭리해 오신 하나님은 더 지루하셨습니다. 일년 중의 장마나 진눈깨비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통일교회의 마루턱을 올라올 때마다 옛날의 심정을 돌이켜 보며 오늘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합니다.

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온 힘을 모아 정성들여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선생님은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단 치마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앉아 있는 사람보다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더 원하십니다. 담요를 걸쳤으면 어떻고 무릎이 보이면 어떠한가? 그의 정성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그리워서 하나님께 기도한 적도 많습니다.

21년노정 중에서 하늘을 반역한 자들을 자를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다가 중단한 일이 있습니다. 이 길을 가다가 못 간 사람을 불러 놓고 물어보면 그들에게도 변명할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제2의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인가? 통일교회를 떠나서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도 시간은 째깍째깍 가고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보다 더 초조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얼굴은 여러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한을 알았으니 그 한을 풀어 드리고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전도를 할 때 생사를 결하는 판가리 싸움을 한다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해 보세요. 생사의 판가리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순간순간의 신앙이 모여서 하루의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삶 후에 남는 것

선생님은 동서양의 밤과 낮 시간이 다른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모두 같은 시간에 잠을 자 버리면 사탄이 점령해 버릴까 봐, 자는 사람이 마음 놓고 자도록 하나님은 동반구와 서반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86,400초입니다. 이 시간 모두를 뜻을 지키고 세우는 데 동원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단 1초라도 내가 참여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1초씩 맡겠다고 나설 수 있는 86,400가정이 있을 것 같은가? 종족 가운데 그런 종족이 있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개인부터 천주까지 8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그런데 찌꺼기나 누더기 보따리를 가지고서 될 것 같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느 누구만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겠는가? 주님이 오시기 전부터 맞을 준비를 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고생해 왔습니다. 그리고 몰려 나왔습니다. 거짓된 뜻을 가지고 몰린다 해도 친구가 생기고 동료가 생기는데,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끝까지 몰린다면 동조자가 생기지 않겠는가? 만약 안 생기면 하나님이 행차하시고 천군천사가 우리와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재산과 은혜를 통일교회로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공세를 취하려고 합니다. 이 싸움에서 선생님이 진다면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승리한다면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 우리는 그들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 나이도 50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했나 하고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 식구들 고생시킨 것밖에는 없습니다. 선생님도 고생했지만 식구들도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 고생한 모든 것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고생을 시킨 사람이 망하면 몰라도 승리하게 되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여러분을 때려 몰아서라도 이 민족을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고를 했으면 얼마나 했는가! 그 정도도 못 한다면 안 됩니다.

우리의 고생을 세상에서 알아주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배후에서 얼마나 많이 역사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해 보면 잘먹고 잘자고 했던 것은 하나도 안 남습니다. 추운 자리에서 신문 한 장, 가마니 한 장을 덮고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것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재산 될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없으면 저나라에 가서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내놓을 것을 쌓아 두려면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산으로 가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한강을 바라보게 되면, 옛날에 선생님이 큰 뜻을 품고 일본을 향하여 가기 전에 한강을 바라보면서 비장한 각오를 하던 것과 부산에서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을 타고 갈 때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장한 결의를 하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을 때 동정하며 오버를 덮어 주던 일본 부인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형무소에 있을 때 찾아와 주고 편지 한 장 써서 보내 주었던 사람을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문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진정한 동정에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공적인 고생입니다. 이런 고생을 하고 영계에 갔는데 거기서 망하거든 선생님께 항의를 하기 바랍니다.

민족과 세계, 하늘땅을 걸어 놓고 공적으로 맞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루 86,400초 가운데 일초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긴장하여 심각하게 삶으로써 하늘땅을 자극시키고, 순간 순간을 살려서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 됩시다.

<말씀 요지>

기독교는 아버지를 찾는 종교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사명을 가진 종교입니다. 또한 사선(死線)을 넘어 신랑을 찾아 신부의 입장에서는 종교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고 가셨기 때문에 재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사명은 개인적 구원을 위한 구주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의 이상은 인간이 참된 부부를 이루어 땅을 주관하는 데 있습니다.

어린양 잔치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축복을 받아 가정적인 구원의 기준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6천년 역사가 찾아 나온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는 신랑 신부가 참부모의 사명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형을 당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자식을 용서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용서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천륜이 무너지는, 하나님 자신을 무너지게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의 종말기에 있는 우리가 이 죄를 사함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담 해와를 정죄하여 버리셨던 하나님의 한 맺힌 심정을 탕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한 분이 나옴으로써 구원의 역사는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재림주의 축복을 받으면 그 가정의 구주로서 그 가정의 구원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을 중심하고 가족회를 창달시켜야 하며, 가정순회사도 세워야 합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각자 가정에 들어가 자기의 부모를 참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축복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장에도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12제자의 기대 위에 서야 하고, 3제자의 부활기대 위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평면적인 기대로써 평면세계를 점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이룬 입장에서만 예수님의 재림이상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1년이 12개월로 되어 있는 것은 12수를 복귀하라는 것입니다. 야곱도 12대의 복귀를 위한 12자식의 기대 위에서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운 것입니다.

역사는 아담, 예수, 재림주의 3대, 즉 구약․신약․성약의 3대를 거쳐 왔습니다.

하나님이 베푼 연회는 사탄세계의 어느 연회보다도 거창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체로서는 그 기준에 설 수 없으니, 역사 이래 없었던 합동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3대의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3만원의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전도니 승공교육이니 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왔는데, 그것은 전부 다 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상대를 위해서,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일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해 온 모든 일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전체를 위하다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하는 한 고비를 넘어선 후에는 자기 자체를 돌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전체의 뜻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게 되면, 전체가 개체의 일을 협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뿌려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거둘 때까지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뿌린 것을 거두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거둘 수 있는 때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 민족 앞에 뿌리는 일은 하였지만 아직까지 거두는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거둘 수 있는 때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남을 위해서, 상대적인 세계를 위해서 씨를 뿌리는 일을 해 왔는데, 이제는 열매를 맺어서 우리 자체를 중심삼고 거둘 수 있는 단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대하여 지독하게 반대하던 기성교회도 이제는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요즈음 우리 통일교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거든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라든가 해외로 발전해 나가는 상황 등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아무 내용도 모르고 무턱대고 반대했던 사실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생각해 봐서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가만히 비교해 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되면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손해 보는 단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부다 반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만히 보니 손해만 보는 곳이 아니고 이익 되는 무엇도 있는 단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초교파 운동을 중심삼고 항간에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기성교인들이 풀이 죽어 아무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우리가 할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여러분이 모르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느냐? 각 도의 도지사나 경찰국장, 혹은 도의 유지들을 중심삼고 전국적으로 반공운동을 해 왔습니다. 그 운동을 바탕으로 하여 전국 각 도의 도민들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는 실적을 쌓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반공활동을 통해서 나가게 되면 그곳 도지사를 비롯하여 경찰국장, 군수, 서장, 면장, 각 리의 유지까지 우리를 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작년 한 해 동안에 반공 강의를 했던 대상 인원은 150만 명입니다. 이 150만 명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부분 각 도의 유지들입니다.

이 숫자를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보면 몇 분의 일이냐? 20분의 1이 됩니다. 20명 중에 한 사람이 강의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은 사람은 대개 20대부터 40대였습니다. 이들은 현재 사회의 중심 멤버들입니다. 그리고 수적으로 따져 보아도 이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치안국에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1965년부터 근간에 이르기까지 민간에 의한 간첩신고가 아주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간첩 검거의 95퍼센트 이상이 민간인 신고에 의한 것인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치안국의 의문이었던 것입니다. 그전에는 치안국에 대한 민간인의 협조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년 동안의 간첩 검거를 보면 민간인이 협조해서 검거한 것이 백 퍼센트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의 공로자가 우리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해 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리에서부터 면, 군, 도, 중앙에서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단계에 왔습니다.

큰 일은 서둘러서는 안 되는 것

대번에 성공하면 대번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대번에 성공하면 도적을 맞아도 맞고 태풍이 불어서라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번에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포부와 큰 이념을 지녀야 합니다. 그 포부와 이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대번에 이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모든 일을 하루에 다 이루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을 보고 ‘어이구! 저 원수들, 하나님 편이 아닌 사람은 씨도 없이 해 버리고 우리들만으로 환경을 개선하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안 계시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땅이 다져지려면 비가 와야 됩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비만 오면 어떻게 해요? 계속 비만 와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해가 나야 됩니다. 그렇다고 또 해만 나서도 안 됩니다. 바람도 불고,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오랜 기간이 지나야 합니다. 오래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하게 다져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진 땅을 파내려면 그 이상의 힘을 가하지 않으면 파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솜털과 같이 바람이 불면 둘둘 굴러가 버릴 그런 허술한 터전 위에 하나님이 세계를 요리하기 위한 본부를 짓겠습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거지까지 동원시킵니다. 죽은 사람의 다리까지 다 동원해서 단단히 터를 다지고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일을 하는 것도 이왕지사 빨리 하면 좋지요. 척척척 빨리 해 버리면 좋을 텐데 무엇 때문에 지지리 고생을 하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백발이 되도록 하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원치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큰일을 하게 될 때에는 언제나 서둘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처음 출발할 때는 여러분과 같은 청춘 시절이었습니다. 20대 청년으로서 이 길을 나서면서 40살이 언제 되나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었습니다. 40대가 언제 되느냐? 복귀노정에서 이 40수를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하나의 고비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해 배워서 다 알 것입니다. 40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죽어서는 안 됩니다. 지쳐서도 안 되고 후퇴해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몰리고 쫓기더라도 끝까지 전진해야 됩니다.

만일 40년 동안에 내용적으로는 발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발전해야 됩니다. 마음은 40고개를 넘나들 수 있는 강한 결의와 내적 다짐을 강화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것을 40고개를 넘을 수 있는 신념의 원천으로서 수습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40고개를 넘기도 전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40고개를 넘어 나와서 다시 7년노정이 생기고 21년노정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도 21년노정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풍상도 많이 겪었습니다.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별의별 사연과 별의별 사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로 서기 위한 역사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앞으로 세계적인 본보기노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세우는 데는 이러한 환경에서 이런 여건을 통하여 세우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시련 기간은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기간

이렇게 21년노정 중에 7년노정의 기간을 나오다 보니 이제 그 끝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뜻적으로 보면 이 기간이 원래는 성혼식을 했던 4월말까지입니다. 선생님은 햇수로 보면 21년 기간을 다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21년노정을 다 걸어 나왔다고 해서 선생님이 두드러지게 가진 것이 무엇이 있느냐? 세상에서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 누구 이상의 돈을 모았느냐? 누구 이상의 권세를 가졌느냐? 또 누구 이상의 사람을 가지고 있느냐? 아무리 보아도 제일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수적으로 볼 때도 삼천만을 중심삼고 보면 통일의 무리들은 결코 많은 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통일교회가 문제시되고 있느냐? 그것은 20여년 동안 6천년 역사를 탕감해 오면서도, 연단과 시련 과정에서도 뿌리를 박고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요, 역사적인 기반 위에 지금도 계속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죽어 버리면 문제가 안 됩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간 떨거지는 다 썩어질는지 모르지만, 그 썩어빠진 떨거지들을 거름 삼아 새롭게 뿌리를 박게 될 때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가지와 싹이 돋아납니다. 이렇게 새로 돋아난 가지, 뻗어 나온 새싹은 흡사 6천년 역사의 실체 고락을 가지고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큰 뿌리만 죽지 않으면 밑동에서 잘라내 버리더라도 그 뿌리로부터 진액을 끌어올릴 수 있으면 급속한 시일 내에 새순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요?

여기에 큰 호두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이것이 풍상을 겪으면서 가지가 다 부러져 버리고 남은 것마저도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살아 있다면 새순이 나올 때 불에 타 버린 나무 둥치를 잘라내 버리면 그 새순이 뻗어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자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뻗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예.」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생각을 중심삼고 활동해야 합니다.

그 나무가 제아무리 힘차게 자란다 해도 본질적으로 그 나무는 얼마만큼 자란다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못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철두철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느냐? 또 얼마나 큰 뿌리를 박고 있으며, 그 줄기는 얼마나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느냐? 이런 것에 따라서 거기에 비례하는 만큼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원동력이 희미할 때는 전부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로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러한 생각과 합치된, 누룩과 같은 그 어떠한 원동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아주머니들, 할머니들, 머리가 하얗게 셌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자신의 머리는 비록 하얗게 세었을망정 검은 머리의 청년들, 아가씨들을 데려다가 그 사상을 교육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삼각산에서 도를 닦다가 온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3년 이상 되지 않은 사람은 이 자리에 있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 말은 3년간 도를 닦은 기준 이상의 심정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복귀할 중심인물이 필요하고, 기간이 필요하고,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기 있는 아주머니는 오늘 처음 왔어요? 「예.」 아마도 저분이 선생님인가 하고 생각할 것이구먼? (웃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나 그런 생각과 일치하려고 할 때에는 원리 원칙을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세계를 치면 세계가 다 흔들리고, 땅을 치면 땅이 흔들리고, 천하를 치면 천하가 다 깨지게 할 수 있는 동기를 마음 자체에 지니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주를 창조하실 때 무엇을 꽉 눌러 엎어서 지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분이 ‘되어라!’ 한다고 되겠어요?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능력도 안 가진 분이 ‘지구 생겨라!’ 하면 지구가 생겨나겠어요?

여러분 기름 짜는 집에 가서 한번 보십시오. 기름틀에 깨를 집어넣고 들이누르면 참기름이 나옵니다. 그것도 강하게 눌러야 나오지 누르는 힘이 약할 때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세계면 세계, 30억 인류면 30억 인류가 가루가 되든 깨져 나가든 어떻게 되든 끌고 나가겠다는 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은 너무나 큰일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선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되고, 그다음엔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이 미치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남에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천을 해서 다져진 기반은, 뿌리를 단단히 박고 이룬 터전은 그 이상의 힘을 가하고, 그 이상의 신념을 가하기 전에는 절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의 지금까지의 시련 과정은 단단한 터전을 뚫고 깊숙이 뿌리를 박아서 장성할 수 있는 기반,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반을 닦는 데에 꼭 필요한 기간이 아니었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7년 기간 혹은 21년이란 기간이 중요한 기간이에요, 중요하지 않은 기간이에요? 중요한 기간이라면 왜 중요하냐? 사탄까지도 우리가 밀고 나가는 이 일을 감당해 낼 수 없고, 막아낼 수 없는 공고한 기반을 닦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뿌리박고 자라나고 있는 통일교회 신자는 거기에 하나의 가지요 잎인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후줄근해요? 옷은 근사하지 않더라도 영인체만은 살아 있어야지.

기독교의 덕목 세 가지 - 순종․굴복․희생

선생님이 여러분을 보면 한심스럽습니다. 교회에 간다고 남편한테 매를 맞고, 핍박을 받으며 교회에 와 가지고는 풀이 푹 죽어 있으니 욕을 먹어도 싸요. 희망에 벅차고 소망에 넘쳐 집에 들어가면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궁금증이 나서 ‘내게도 좀 이야기해 주오. 내게도 좀 가르쳐 주오.’ 할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울을 앞에 놓고 자신의 얼굴을 한번 보세요. 여러분의 얼굴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얼굴이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무엇을 시키려고 하면 ‘아이고 선생님이 또 무슨 지시를 하시려고, 무슨 명령을 하시려고 저런 말씀을 하실까? 그 말씀은 좋은데 사실은 무섭더라.’ 합니다. 그런 여러분의 뱃속이 훤히 다 보입니다. 그래도 계속 얘기할까요, 그만둘까요? 「하셔야지요.」 뭐요? 죽는 날까지요? 죽는 날까지 천년만년 얘기한다고 하는 것은 다 망발입니다. 그래도 이런 얘기 계속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뭐 그냥 듣기는 좋지. (웃음)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명 전도하라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10년 뒤에는 어떻게 할까? 몽둥이를 들고서 후려칠까? 엎어져 자라고 할까? 내리 뛰라고 할까? 죽으라고 할까? 여러분 어때요? 차도 괜찮고, 내리 찍어도 괜찮고, 굴려도 괜찮아요? 「예.」 아이구, 말만…. 너 시집가겠니? 그러면 그럼 가고 말고요. 좋은 집 아니더라도? 그러면 그럼요. 그러지요? 그런데 말만 그렇지 사실이 어디 그렇습니까?

선생님이 통일교회의 신랑 각시들 많이 모아 놓고 물어보았더니 그들은 지지리도 못난 상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류 미남자를 제 남편으로 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렇습니다. 자신은 지지리도 못났으면서 좋은 사람 만나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도 통일교회 혼인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하지요? (웃음)

하나님이 이러한 여러분을 바라보고 천년만년 살면서 얼마나 기뻐하실 수 있겠느냐? 여러분의 눈, 코, 입, 귀와 손발들을 억천만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할 하나님은 얼마나 지겨우시겠느냐 생각해 봤습니까? 사흘만 마주보고 앉아 있으라고 하면 뛰쳐나갈 텐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이런 여러분들에게 내가 뭘 또 하자고 해야 하니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여자는 한번 결혼하여 생활하면 잘 갈라지지 않습니다. 한번 맺었다가 갈라진다면 동네방네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신랑 신부를 만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를 중심삼고 삼위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관계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더 중요시합니다. 식을 치르고 난 후에도 신랑 신부는 싸움 한번 하면 갈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와 아들딸은 절대로 못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가 아들딸을 잘 만난 것이에요, 아들딸이 아버지를 잘 만난 것이에요? 어느 쪽이에요? 그 아들딸이 아버지를 잘 만난 것입니다. 이처럼 아들딸은 아버지를 잘 만났는데, 아들딸이 아주 천치 바보라면 아들딸을 보고 기뻐해야 할 그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들딸을 찾았다고 하는데, 6천년 동안 지지리 고생하다가 찾은 그 아들딸이 이 모양 이 꼴이라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6천년 동안 고생의 지팡이를 짚고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차라리 안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한탄하실 내 모습이 되지 않았느냐 생각할 때 여러분들 자신 있어요?

그러한 6천년을 돌이켜볼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를 내가 어떻게 대할 수 있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아버지 앞에 무조건 순종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는 종교는 무조건 절대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종교를 가진 사람이 취해야 할 예(禮)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순종뿐만 아니라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복종뿐만 아니라 내 생명을 바쳐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순종, 굴복, 희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희생하면서 이 세상에 참뜻을 펴 나오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

생명력(원동력)을 지닌 씨가 되어 있느냐가 문제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이냐? 우리는 2천년 전의 예수님과 성신이 소망하던 그 소망의 실체요, 더 나아가서는 6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 인생 행로의 종말시대에 심판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그 중 새로운 열매를 거두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때에 거두는 무리들입니다. 자신을 높게 좋게 평하려거든 그런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자체가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6천년의 열매라 하면, 6천년 역사라는 나무에는 푸른 시대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시든 시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열매가 열어서 점점 익어 갈 때에는 어떻게 되느냐? 잎은 말라서 떨어져 버리고 나중에는 열매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가 익으려면 가을이 되어야 하고, 가을이 되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 바람은 여름 바람과 다릅니다. 모든 환경에서 시련을 흡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려 줄 수 있는 도움 되는 바람이 아니라 그 가려져 있던 몸을 닦아내고 빨아내는 바람입니다. 불어치는 그 바람은 전체를 마이너스 시키는 바람이지 플러스시키는 바람이 아닙니다. 그런 바람이 불어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진리, 그런 도리, 그런 종교가 나올 때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가을 절기의 서리를 맞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일교회는 서리를 참 잘 맞았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동삼삭의 추운 겨울 바람이 몰아쳐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야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과일의 살마저 다 떨어져 나가더라도 그 과일 가운데 숨어 있는 하나의 씨는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본연의 참된 주인은 과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씨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과수원을 상대로 하는 장사꾼들은 과일의 살을 요구하지만, 진짜 참다운 주인은 그 열매 속의 참된 씨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숱한 고난을 받고 주위 환경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여 앙상한 가지에 달린 열매가 되었을망정, 그 열매의 살을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열매 속에 씨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새로 오는 춘삼월에 다시 파종하게 될 때에 그 씨가 틀림없이 통일교회 제1소성의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서 탄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력을 지니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나무가 자라기까지 겪어야 할 모든 풍상을 다 겪어야만 됩니다. 풍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험한 시련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만 새로운 봄 절기를 맞이하여 새생명의 싹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름이 가고 가을 절기가 되면 생명력을 지닌 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씨가 되어 있습니까? 씨가 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 누구도 집어서 떼어 갈 수 없는 자연적인 원동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새로운 때가 오면 자체 내에 자극을 발동시킬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씨 같은 것, 열매 같은 것들은 다 비료 더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왜 3년 이상 된 사람만 모이라고 했는가? 여러분이 씨 같아 보여서, 즉 통일교회의 씨 같아 보여서입니다. 온갖 풍상을 겪어 껍데기가 쭈굴쭈굴하고 썩었을망정 그 속에 숨어 있는 씨만 좋으면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씨를 심어 줄까 해서 3년 이상 된 사람을 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씨가 되었어요? 씨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이것은 틀림없이 씨다, 이것을 갖다 뿌리면 틀림없이 열매가 열릴 것이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 손 들어 보아요. 손을 안 드는 것 보니…. 듣고 보니까 처량해요? 여러분은 이 지구성에 어디에 갖다 심어도 다시 나올 수 있는 씨가 되어야 합니다.

7년노정의 목적

선생님이 지금까지 7년 동안 수고한 것은 바로 이러한 씨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름 절기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가을 절기의 찬바람이 불어오고, 겨울 절기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다 지내고 나면 그 이상의 생명력을 지닌 씨가 움터야 한다는 것입니다.

21년 노정, 혹은 7년노정이 목적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통일교회의 씨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에게 통일교회 자체를 심어 놓을 수 있는 씨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바람에 다 밀려가고, 폭풍우가 올까봐 무서워서 쫓겨 다녔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나무에 달려 있는 거예요, 안 달려 있는 거예요? 그것은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이파리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가지고 하나님이여!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역사해 줄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21년간 싸워 나올 때 그 모든 역사의 고비 길에서 하나님이 배후에서 협조해 주시던 것과 같은 인연을 여기서 재차 유발시킬 수 있어요? 이제부터 통일교회가 새 출발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을 어느 천지에 차 버려 놓아도, 거기에 폭풍우가 퍼붓는 날들이 개재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신하여 이런 모진 환경을 다 짓밟고 남음이 있는 생명체로 자랄 수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들, 있어요?

여러분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도 살아 있기는 합니다. 오히려 열매 있는 나무보다 청청해요. 잠잘 때는 열매 없는 청청한 나무 밑에 가서 자지만, 밥을 먹을 때는 열매 있는 나무에 가서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것이 귀해요? 먹는 것이 귀해요, 자는 것이 귀해요? 자는 게 귀하지요?

옛날에 선생님이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걸어다니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 신을 벗어 들고 버선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때가 좋아요, 지금이 좋아요? 어느 때가 더 좋아요? 그러나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가야 할 노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감정과 생각에 따라서 온 사지백체가 움직여 줄 수 있는 한때가 참 귀한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를 느껴 본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지금까지 살아 나온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부터 살아 나가야 할 삶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삶 자체 내에서 천지 조화의 모든 느낌이 자신의 마음을 싸고 도는 것입니다. 따스한 봄날에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노라면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고,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풍경은 처량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절대 필요한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런 시적인 감정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봐도 저것을 봐도 감사하고, 어느 것을 보아도 너와 나는 인연이 없는 것이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만약 여러분을 들이 차 버리면 다 어디로 갈 것이냐? 선생님이 모른다 딱 잘라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걸 생각해 볼 때 완전한 씨가 되었을 때는 아무렇게나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자주성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영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영계에도 영계대로의 세계가 있고, 나라가 있고, 종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개인이 있습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나는 거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할 수 있는 자주성이 없이는 못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도,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그런 자주성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자주성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자기에게 해당하는, 그 위치에 비례되는 자주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위치가 높으면 높은 기준에서, 낮으면 낮은 기준에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절대적인 자주성을 세워야 합니다. 이 특성이 하나님이 부여한 개성이요, 개성진리체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놓고 생각할 때 너는 네 개체를 위해서 완전하냐? 너의 가정을 위해서 완전하냐? 종족을 위해서 완전하냐? 이 나라, 이 세계 앞에 네 자체를 필요로 하는 모든 대상에 대하여 주체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튼튼한 신앙을 위해 필요한 것들

탕감복귀는 핵심이 결정되지 않은 존재를 중심삼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3년 이상 되었다는 여러분은 몇 점짜리냐? 자신이 몇 점이나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7년, 혹은 초창기에 선생님을 만나 지금까지 죽 따라 나온 그 종착점이 어떻게 되느냐?

이것은 성경의 포도나무 비유에도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줄기와 하나되어야만 살아 있는 가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 본질적인 모든 요소가 줄기와 같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즉 뿌리를 통해서 진액을 빨아들이는 작용도 같아야 되고, 줄기에 뻗어지는 진액이 흡수되는 작용도 같아야 되고, 또한 철따라 자라는 속도도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거든 갖추어야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 각자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봄철이 피동적인 철이었던가, 주동적인 철이었던가? 피동적인 봄철이었다면 어떻게 주동적인 봄철로 맞이할 것이냐? 주동적인 봄철을 맞이하려면 완전한 씨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피동적인 여건이라면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피동으로 끝나 가지고는 복귀의 완성이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개인을 중심삼아서 가정으로 연결시킬 수 없고, 가정을 중심삼아서 종족, 민족으로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발전해 나오는 데에 있어서 우리 식구들은 전부 피동적이었느냐, 주동적이었느냐? 피동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주동적인 환경으로 변경시켜 놓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목적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말씀이니 인격이니 심정이니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논의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논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피동적인 자리에서는 이것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개체가 어느 한때에는 피동적인 환경을 박차 버리고 주동적인 환경을 확립하는 운명의 노정을 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동적이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심정과 사정을 중심삼고 현실에서 미래까지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기 스스로 역사적인 무대를 위주한 현실 세계에서의 하나의 새로운 주체성을 지니고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승리적 기반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체요 천주의 주체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시대를 거쳐와서 역사의 주체인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피동적인 입장에서는 주체만 없으면 사탄은 언제나 공격합니다. 주동적인 주체가 없을 때에는 사탄은 언제나 공격 태세입니다.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산산조각으로 파멸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개인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동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동지만으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동지의 기준을 넘어서 자신과 피살을 연결시키고 생사의 결정적인 기준을 넘어 설 수 있는 신앙의 자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중심삼고 신앙의 동지로서의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갔지만, 최후에는 피살을 나눈 부자의 인연으로 연결시켰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최후에는 제자들을 중심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동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왜? 많은 원수들이 공격해 올 때 이것을 함께 막아내기 위해서. 그다음에는 신앙의 자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왜? 내 가정 생활의 행복을 꿈꾸고 새로운 생명의 기틀을 다져 가기 위해서.

신앙의 동지를 구하려면

그러면 새로운 씨는 무엇이 될 것이냐? 그것이 새로운 하나의 기초점을 이루며 자라나서 다시 제2의 씨로 여물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생명체는 영원히 이 존재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법도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신앙적으로 볼 때 절대적인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그 골수와 지성을 통하여 나오는 모든 사상은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 뿌리도 마찬가지요, 줄기도 마찬가지요, 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생활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부터 통일의 역사는 전개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형제의 인연이라면 복귀섭리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그러므로 이것은 종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7년노정을 넘어가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신앙의 동지가 몇 명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나온 지 오래 되었다는 사람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신앙의 동지가 몇 명이나 되는지. 신앙의 동지는 최소한 열두 사람 이상이 안 되면 안 됩니다. 내 생사와 연결될 수 있는 신앙의 동지가 열두 사람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건 왜냐? 천지복귀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사람이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것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세 제자는 꼭 있어야 합니다. 세 명 이상,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세 명이 넘어야 한 면이라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아들딸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동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3년 공생애 기간에 수고했던 그 이상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 동안 그토록 피 땀 흘려가며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깨어져 나갔는데, 여러분들이 3년 이상 정성들이지 않고서 신앙의 동지를 갖겠다면 가짜입니다, 가짜. 원리가 그렇잖아요?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이 바라시던 마음을 가지고 행여나 신앙의 동지들이 상처를 입을까 봐 감싸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그것을 내 일같이 생각하며 같이 몸부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일등 신부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서 일등 신부가 나타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동지들을 전부 다 품고 어머니의 사명을 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하나의 주체자에 대해서는 상대자요, 제자들에 대해서는 주체자로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 일등 신부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 보았어요?

여러분이 대개 가까이 지내는 사람끼리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다투느라고 밤을 지새우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이 천국 내용은 알고 있지만 천국 생활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시집가야 할 처녀가 시집가는 내용과 시집가서 살림살이하는 모든 것은 훤하게 알고 있는데 신랑을 못 맞아들인 것과 같습니다. 설령 신랑을 맞아들였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신랑의 사랑은 차지하지 못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웠지만, 원리를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생활 무대에 세워질 수 있는 인격 기준을 가지고 그 인격을 통하여서 거두어들여야 할 가치 문제에 들어와서는 자신과 맞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맞으면 좋고, 내 마음에 안 맞으면 싫어해요? 여러분이 하늘땅 다 됐어요? 천번 만번 뒤넘이쳐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래는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입장의 권한을 가지고 도리어 그를 비판하고 무시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어느 미지의 주역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새 식구가 한 명이라도 들어오게 되면 서로가 그리워했고, 그를 방문하여 한 시간이라도 더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심정과 오늘날 식구들이 좀 많아지니 서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심정과 비교해 볼 때, 옛날의 그 심정의 터전이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그것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룹 활동을 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여러분의 심정을 바라볼 때에 안타깝습니다. 이건 모두 사탄이 마음대로 주관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를 다 잃어버린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면 열 두 형제를 갖지 못한 여러분들은 어떻게 되느냐? 열 두 제자를 잃어버린 예수님의 신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

여러분이 지금까지 원리를 배웠으니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원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천리원칙입니다. 원리가 여러분을 참소하지 못하는 기준에 서야 아버지 앞에 당당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위해 30여 생애를 거쳐서 최후에는 죽음의 길까지 갔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과 여러분들 중에 누가 더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까? 선생님이 열심히 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더 열심히 해야 돼요? 누가 더 열심히 해야 되겠어요? 이 일을 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여러분이 선두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들 꽁무니를 빼려고 하고 선생님이 선두에 서 있으니 잘 되겠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생각이나 해 봅니까? 여러분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면, 이 청파동 교회에서 지금까지 3년 이상 고생했다는 사람을 다 이끌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가서 새로이 출발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이 불을 붙여서 이 본부보다도 더 크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고참이 작전에 능숙한데, 우리 교회 식구들은 고참이 되어서도 능숙하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한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역사를 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모레, 26일에는 대전에 갈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72가정과 120가정을 중심으로 전국 집회를 갖게 됩니다. 그때 가서도 이런 관점에서 죽 얘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내 자신의 입장이 하늘의 새로운 무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데에 있어서 가인적인 입장이냐, 아벨적인 입장이냐? 또 현재 우리들의 심정 상태가 가인적이냐, 아벨적이냐? 이런 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아벨의 제물은 받고, 나의 제물은 왜 안 받아 주오? 나는 먼저 태어났는데….’ 하는 마음을 빼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기에서 들은 말씀 이상의 말씀을 남에게 해 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 이하의 것을 가지고서는 상대에게 먹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때가 수백 번을 넘어가야 할 길을 가는 때이니만큼 내가 수백 번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도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 :3)고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어린아이는 먹는 것도, 생명력도, 생활력도 또한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도, 혈통도, 존재하는 모든 동기와 결과가 모두 부모로부터 이어졌으니, 그에 있어서 부모는 생명의 전체요, 생활의 전체요, 기쁨과 행복의 전체입니다. 그런 주체적인 입장에서 부모를 대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교회의 발전 과정에서도 종적 관계를 중심삼고도 물론 그렇겠지만, 가인 아벨적인 문제, 즉 횡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럴 수 있는 어떠한 요인이 생겨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발전을 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견해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지시를 하면 잘 듣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서 출발하고 있는데 거기에 새로 들어온 몇몇 장로가 선생님을 만나자고 해도 선생님은 안 만나 주고 있습니다. 만나서 얘기했다 하면 그들도 결의를 해야 합니다. 태풍이 불어오고, 혹은 폭풍우가 몰아쳐 오는 그런 시련의 와중으로 몰아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활동해야 할 제2차 7년노정

제2차 7년노정은 먼저 들어온 사람도 가야 되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도 가야 됩니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는 제1차 7년노정을 다 갔으니 제2차 7년노정은 갈 필요가 없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리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7년노정을 통하여 기반을 잡고 출발하려 했지만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21년까지 연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못 가도 제2차 7년노정까지는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복귀의 기준을 바라던 예수님의 소원의 기반을 닦은 시대적인 권내로 들어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그런 심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느냐 할 때에,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식구들이 이렇게라도 선생님을 보러 왔다 가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주인의 입장이 아니고 손님의 입장입니다. 주인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여러분은 영원의 속성을 지닌 자체의 모습으로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묵묵히 출발해야 할 것을 다짐하고 앞으로 이 길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는 대외적인 일만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통일교회는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념적인 기반을 닦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극히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사업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욕을 먹고 맨발로 뛰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남들처럼 사회적인 기반도 닦아야 되겠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무슨 사업을 해서 그런 사회적인 생활 터전을 마련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전체 동원을 많이 시켰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일선에 출동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비상시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그 한계선을 넘어갈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양면작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즉 후방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선이 승리하려면 거기에는 보급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보급로를 계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급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 보급창을 중심 삼고 군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경제적 여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제1전선, 제2전선이 필요한 시대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벌어 자기 개인의 생활을 하면 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제2의 책임 부서에서 뛰는 사람은 돈을 벌되 자기를 위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 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소모전쟁을 했지만, 앞으로는 보급로를 갖추어서 일선 장병에게 필요한 것을 후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대가 우리 앞에 찾아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굶고 고생하면서 계몽하던 때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는 통일교회가 될 것이냐? 무엇을 하면 좋겠어요? 「돈을 벌어야지요.」 돈을 벌면 어떻게 벌 것이냐? 이것을 여러분이 개괄적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선두에 서서 우리 교회 발전에 정상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누어 후방의 경제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앞으로 각 지구와 지역 단위로 공장을 신설하자는 것입니다.

경제 기반 구축 계획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서 우리의 대내적인 기반을 위해 8개 지구를 중심삼고 150개 지역에 우리의 분공장(分工場)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자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리에서 마련하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이요, 생각입니다.

그래서 1968년에는 수택리 공장을 중심삼고 적어도 150대 이상의 선반을 확보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동반해서 설비해야 할 기계가 약 300대 가량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1968년도에는 적어도 120대 이상의 기계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1969년도에 목표로 계획한 양을 충당시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량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앞으로 많은 기계를 제작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150개 지역을 중심삼고 볼 때 한 곳에 최소한 10대씩의 기계를 시설하여 잘 운영하게 되면 앞으로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청계천 4가와 같은 시중의 실례를 보면, 한 3년 전만 하더라도 조그마한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다른 공장에 어떤 물건을 부탁하게 되면 그들이 주문을 받기 위해서 직접 찾아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가서 물건을 주문해도 당장은 요구하는 수량을 만들어 내지 못하니, 반드시 예약을 하고 나서 몇 달 후에 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현재 한국의 공업이 평면적으로 상당히 발전하지 못했고, 기술 기반도 아직까지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한국은 어차피 이제부터 한 15년간 모든 분야에 걸쳐서 발전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기간을 잘 포착해서 경제적으로 부흥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금년부터 한 3년 동안 실험해 보면 이것이 틀림없이 성공할 것입니다. 이렇게 각 지역본부를 중심 삼고 분공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1,800대의 기계가 있어야 합니다. 3년 동안에 1,800대의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년에 6백 대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자면 하루 평균 약 2대씩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선반을 생산해서 판매할 예상가는 40만 원 정도입니다. 수택리 공장은 이것을 하루에 2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의 시중 판매까지 계획하여 평균 3, 4대 이상을 제작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시설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장에서 제작해 낸 기계를 지방 분공장에 설치하기 위한 기본적인 공장시설을 빨리 마련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물품도 그렇지만, 그 가외의 모든 물품도 소정의 규격에 의하여 만들어 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공장은 무엇이든지, 외국 제품까지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본래 선생님이 3년 계획했던 것이 1년 8개월 만에 그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지금 우리 공장의 실정은 다른 일반 공장과는 다릅니다. 지금 우리 공장에 와 있는 사람들은 기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공장에서는 기계를 다룰 줄도 모르는 사람들은 일한 지 3년 이상 되어야 몇십만 원짜리 기계를 맡기는데, 우리 공장에서는 오는 그날부터 맡깁니다. 그러므로 일반 공장에서 약 5년 걸려서 습득한 기술을 우리 공장에서는 6개월에 습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느냐? 시중 공장에서 3년 이상 일하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 공장에 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사람들의 수준을 따라가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공정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일년이 걸리든 수년이 걸리든 이 고개를 넘어야만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원작부에 지시하여 미제 기계와 일제 기계, 혹은 다른 중요한 기계를 전부 분해해서 검증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계 중에 무엇이 우수하며 무엇이 안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공장에서 기술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유리한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 한 대를 만드는 데 일년이면 만들 수 있는 것을 일 년 반 걸려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모든 국부적인 난소(難所)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 혹은 거기에 필요한 모든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정밀하게 검증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산이나 미국산 선반이나 모든 기계들은 상당히 정밀합니다. 그런 기계를 우리도 제조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반은 미제보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3년 걸려야 할 것을 1년 8개월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생산 기업을 책임진 사람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능률과 정신력

현재 우리 생산부장은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운전하던 사람인데 설계도 아주 잘하고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복잡한 기계라도 돌아가는 것을 쓱 한번 보기만 하면 그 기계에 대해서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일본에 가서 일본의 10대 안에 드는 중요하고 큰 공장을 죽 다니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것을 모두 카탈로그(catalogue)로 만들어 왔는데 우리 공장에서도 그것들을 전부 다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속한 시일 내에 그런 체제를 갖춘 공장을 만들려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이런 공장 150개를 3년 기간 내에 다 만들려고 하는데 이런 공장을 하나 만드는 데 약 350만 원 내지 400만 원이 듭니다. 이것을 맨 처음부터 우리 자본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3년 반 내지 4년 내에 하려고 하는데 그 기간 안에는 우리 공장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만든 기계가 팔리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들어서 우리 공장에 보내게 되니까 만드는 물건이 달릴 뿐이지 물건이 남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우수한 기술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150개 공장을 만들게 되면 우리 공장에서 하루에 수십 대의 선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구상입니다. 현재 한국의 실정을 중심삼고 한국 공업계를 전망할 때, 우리는 문제없이 한국 공업계의 선두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수백 개의 큰 공장들보다도 우리는 질적인 면에서 그들 이상 우수한 기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일반 공장에서는 기술자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일년에 1,000대의 생산 목표를 세워 놓았다면 한 달에 80대의 기계를 생산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산해 내야 할 수량만 채우기 위해서 질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인이야 어떻게 되든 만들어 내고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공정은 슬쩍 넘겨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의 질이 엉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일하는 그들과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은 단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한 대를 만드는 데 100시간 걸린다면 우리는 70시간에서 50시간까지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전번에 선생님이 실험해 봤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제작하는 기계의 수량이 목표의 3분의 1밖에 안 되던 것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통일되어 일하니 3배 이상의 능률을 올릴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의 정신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이걸 볼 때 지금 계획한 숫자에 대해서는 문제없이 돌파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1968년도까지는 어떻게든지 계획한 양의 선반을 제작해 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반 300대 이상을 갖추려는 것은 지방 교회의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계획인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여기서 남는 이익금은 무엇을 할 것이냐? 그 돈은 선생님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고한 지구장 가운데서 제일 수고한 지구장 것이고, 지역장 가운데서 제일 수고한 지역장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 제일 수고한 사람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도록 해야겠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지금 1,700개 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교회도 면 단위의 구역교회를 중심삼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본 단위의 농토를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창 짓고 있는 농도원을 발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이 농도원에서는 앞으로 우리 뜻 앞에 들어온 청년들을 전부 데려다가 농사 지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적어도 농토를 4천 평 내지 5천 평은 마련하여 농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미소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대번에 공장에 데려다 놓으면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을 데려다가 정미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농한기에 놀고 있는 젊은이들을 전부 모아서 온 동네의 벼와 큰 농장의 벼를 전부 사서 모아 가지고 그것을 찧어서 파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중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질 있는 청년들은 정미소 발동기를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일년 동안 일을 배우게 되면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일년만 버티어내게 되면 ‘아하, 공장에서 이런 것을 만드는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미소는 중간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미소를 지방에서 운영하게 되면 우리의 경제문제는 돈 없이도 해결이 됩니다. 어디를 가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 기반을 닦는 데도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우리

1,700개의 면에 3명씩만 동원하면 5,100명이 되지요? 이 사람들은 매일 밥 먹고 이 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디 가서 밥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 경제적인 기반만 구축되면 언제든지 많은 사람들을 공적인 활동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열 사람이 농사를 지어서 스무 사람이 일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갖게 된다면 이건 무진장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매일 20명씩 한 면에 배치한다 해도 돈 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터전을 갖추어 놓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공장이 세계적 공장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어느 기준만 넘어서게 되면 일본에 있는 식구들을 데려다 공장에서 일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한 3년 후에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 독일의 우수한 기술자들도 전부 다 우리 공장에 투입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사상이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기술자, 독일 기술자, 일본 기술자 할 것 없이 전부 우리 기술자인 것입니다. 그 기술자들을 불러다가 세계의 유명한 기술체계를 전부 종합해서 한국의 한 공장 발전을 위해 주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각 나라에서의 모든 경제활동을 보면, 서로가 자기 것은 비밀히 하고 공업 첩자를 두어서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못 당합니다.

앞으로 몇 해 후에는 동남아시아 일대에는 일본보다 우리가 먼저 판로를 개척해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내외의 경쟁에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로 유리합니다. 그래서 침략국인 일본과 같은 기계를 만들어서 한번 맞서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각 나라에 선교부를 설치해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도 개척하기 힘든 판로를 개척해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를 못 당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이 일본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경제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부터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벌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일본에 백화점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간부 5, 6명을 거기에 보내서 일본과 본격적으로 거래를 열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본에 무슨 기계를 주문하게 되면 일년 내지 일년 반이 걸립니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사이가 과거에는 서로 원수지간이었고, 또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일본 사업부장이 한국에 와서 일본 대사관에 들렀는데, 대사관 직원들이 하는 말이, 한국 사람은 전부 다 사기꾼이니 절대 믿지 말라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 사람을 전부 다 사기꾼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국이니 한국의 기업주가 공장을 신설하기 위해 기계를 좀 빌려 달라고 해도 일본 사람들은 안 빌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과 거래를 트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가서 설득을 시켜 가지고 그것을 믿게끔 증거 서류를 갖춰 주면, 그들이 직접 현장 조사를 해 봐서 믿을 수 있어야만 비로소 고개를 끄떡끄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 조직을 가지고 한국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무역회사를 세워 놓고 한국에서 예산을 짜 놓으면 일년이라는 시간도 소모 안 되고 왕래하는 비용도 안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전화만 하게 되면 3시간 후에는 전국적으로 실제 활동 대원이 출동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우리의 조직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어떠한 실력가라 해도 그런 조직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만약 기계를 주문한다면 일년 반 만에 들어올 것도 몇 개월 내에 일본 사람이 직접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은 일본에 있는 우리 교회가 그것을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

일본은 지금 생산과잉이 되어서 판로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판국이기 때문에 일본 교회가 책임지고 보증만 하게 되면 기계는 얼마든지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본에서는 1년 6개월에서 2년까지 월부로 해 주고 있지만 우리는 3년까지 연기해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량으로 제작품을 가져오게 되니 기업체들이 서로 주문 받으려고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에서 제품을 월부로 가져다가 한국에 현찰로 팔면, 그 돈의 이자만 가지고도 본 값을 갚아 주고도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남들보다 빠릅니다. 남들은 일년 반이 지나야 물건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가 기반만 잡아 놓으면 일본에서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던 것도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면 일본에서부터 외국으로 수출하는 전물품에 고유 번호를 붙여 가지고 카탈로그를 2부씩 작성해서 그 중 한 부는 여기에 있는 회사가 보관해 둡니다. 그리하여 일본에 있는 우리 조직을 통해서 주문을 받게 되면, 그 물품의 번호를 맞춰서 물품을 보내라고 전보만 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물건은 수입국으로 수송되고 우리는 중간에서 중간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돈 없는 사람이 돈을 버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잘 맞아떨어지게 되면 한국과 미국의 사이에서도 할 것이고,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도 할 것입니다. 또 독일과 미국, 미국과 일본, 독일과 일본 사이에서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인 판로를 넓히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앞으로 우리 신도들이 세계적으로 많아질 때에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양복점도 만들어서 우리 통일교인은 전부 다 다른 데에 가서 양복을 해 입지 않고 우리 양복점에서 해 입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전부 협동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또한 그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한국을 국제적인 공업국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자동차를 만들고, 기계도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계획인만큼 앞으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한국을 공업화시킬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공장을 세워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앞으로는 외국의 우수한 기술자를 한국에 파견시켜서 그 공장의 정밀한 기계에는 전문 기술자를 배치해서 공장마다 하나의 특제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150가지의 특수 종목의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구상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공업기술을 단시일 내에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또 과학적인 농사 방법을 지도하면서 현지의 실무 담당자로서 실제 견습도 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한국의 농촌에 과학적인 농사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제부터 착수해 나가는 거예요. 알았지요? 「예.」

지금까지는 우리들 전체가 남을 위해서 봉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터는 공장을 운영하여 우리의 체제를 정비하고 우리의 경제적인 기반을 닦아 나가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금후의 작전계획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부인 식구들은 이제부터 기도하세요.

앞으로는 선생님이 축복해 준 축복가정들을 전부락으로 배치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전부 다 종갓집에서 시집살이를 시킬 것입니다. 시집에서 뼈가 뿌러지도록 충성해서 그 문중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대외 작전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대내 작전을 전개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만 축복받은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게 되면 모든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경제복귀의 목적

한국은 앞으로 외국 자본을 들여와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바람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와서 이만하면 투자해도 괜찮겠고 기술제휴를 해서 후원해도 괜찮겠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가 갖추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3년 동안에 150개의 공장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모든 것을 외국에서 월부로 하는 것입니다. 5회 월부로 해서 나누어서 갚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 공장 시설을 할 때 원자재 값과 운영자금으로 50만 원 내지 60만 원 정도를 일시불로 주면 됩니다. 그래서 일년 반만 공장이 잘 돌아가게 되면 공장이 본궤도에 올라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공장에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일반 큰 공장에 부속품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기면 자기들이 계획한 설계도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신용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공장들이 이 공장은 설립된 지도 얼마 안 되는데 어떤 기술진과 어떤 설비를 갖추었기에 이렇게 좋은 부속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공장은 반드시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지에 나가 있는 분공장을 우리의 판로를 개척하는 데 선전 초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제품의 질이 좋기 때문에 한 번만 사용해 보면 그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기계를 설비하는 곳에는 반드시 우리 기계를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3년 후인 1970년도부터는 기계설비를 더 확장해서 대량생산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외국 기계는 하나도 못 팔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동 기계장치를 갖추는 작업을 내년부터 착수하려고 하는데 한 3년 준비하면 본궤도에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7, 8년 후를 대비하여 지금부터 자동설비체제를 갖추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분야에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튼튼한 기반을 닦고, 실제 제작할 수 있는 공정을 짜고, 작업을 진행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돈을 벌게 되면 고생한 여러분을 그냥 놔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외국 사람이 도와준 돈만으로도 먹고살기에는 넉넉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십시오.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시킨 만큼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150개 지역의 지역장 생활 문제는 일년에 30만 원씩 대주면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한 달에 만 5천 원이면 몇 명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 돈을 놓고 이자만 받아서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자 받고 살아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에요. 일년에 50만 원 정도 대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농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땅 4천 평을 한 평에 200원 잡고 계산하면 80만 원이고, 1,700개 면이니까 13억6천만 원이 됩니다. 여기에 우리 공장을 세우는 데는 명확하게 땅 한 평당 163원이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선생님이 꼭 사업가가 된 것 같군요.(웃음) 농한기를 이용하여 젊은이들을 모아 가지고 한번 해 보자는 것입니다. 죽이 되나 밥이 되나 해 보자는 것입니다. 파이프 깎는 기계 한 대에 50만 원이니 기계에 들어가는 경비가 더 들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 보자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렇게 해서 태산같이 쌓인 것을 다른 공장에서는 몇 주일, 몇 달 걸려 깎아 내는 것을 우리는 일주일에 깎아 낸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에 무리가 가면 고장이 나지만 우리가 기계를 만드니 갖다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라고요? 사업보다도 공장 경영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제작은 많이 해도 판로가 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세계적인 활동을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한 430쌍 정도 축복할 예정입니다. 이 신랑 신부들을 중심삼고 그들의 부모만 해도 약 3천2백 명 정도가 동원되고 신랑 신부까지 합하면 약 4천 명이 될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가족이 800여 가족인데 이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된다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아마도 40만은 될 것입니다. (웃음) 그들이 통일교회 처녀 총각들이 모여서 합동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어느 것도 지원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심은 많기 때문에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합동결혼식에 어떤 총각이 어떤 처녀를 상대자로 맞이하게 될 것인가 사람들의 관심이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또 동네 처녀 총각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덩달아 신이 나서 밤낮 벌떼같이 몰려 돌아다니면서 춤추고 아마도 굉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이 퍼지고 퍼지게 되면 신랑 신부 한 사람 당 천 명쯤은 연결될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서울에 모여 손을 잡고 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4백만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하루 숙식비만 해서도 40만 원이나 되는 많은 수라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외갓집이 있지요? 또 아버지의 형제들 있지요, 누나 있지요, 또 오빠, 올케의 친척들이 있지요? 이렇게 모두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할 때는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반대했으니 이제는 그 탕감으로 관심을 갖고 모여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4백 쌍인데도 이런데 앞으로 우리가 4천 쌍 정도 합동결혼식을 하게 되면 어떨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4천만 정도는 연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사람은 얼마 안 남습니다.(웃음)

4,300년 민족사를 탕감하기 위한 430쌍 축복

이번 제1차 7년노정 후에 받게 될 430쌍 축복은 우리의 역사 4,300년을 탕감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복귀하기까지 430년이 걸린 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1월 15일까지 3차에 걸쳐서 430쌍을 채울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통일교회로부터 며느리를 맞아들이면 그 집안은 만사형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호박같이 생기고 조그마해서 볼품이 없더라도 그 사람의 충성이라든가 열정이라든가 윤리면에서 과거의 어떤 사람도 이런 며느리를 얻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성스런 맏며느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전부 다 그것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가정 순회사를 만들어서 가정마다 찾아가게 할 것입니다. 집으로 찾아가서는 ‘통일교회에서 왔습니다. 가정 살림살이를 잘하는지 취재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당신네 며느리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보았을 때 나쁘다는 말을 듣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까지 모두 다 통일교회에 나가겠다고 하게 되고, 처녀들은 통일교회로 시집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가면 어머니 아버지는 자식이 통일교회에 간다고 몽둥이로 때리던 것이 반대로 통일교회 안 간다고 몽둥이로 때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웃음) 그렇게 되면 생활 기반이 완전히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선생님이 실시할 것입니다.

금년에 처녀 총각들이 시집 장가가고 싶거든 430쌍을 채워야 합니다. 7년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수이기 때문에 430쌍 이상 안 되면 선생님은 시집 장가 안 보낼 것입니다. 이제 밤낮 가리지 않고 430쌍 채우기 위해 바쁘겠구만!(웃음) 올해 안에 430쌍을 충분히 채울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금년이 작년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장가가기 싫으면 전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통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7년노정을 중심삼고 36가정, 72가정, 120가정, 기성가정들을 축복해 주고 430가정을 축복해 줄 것입니다. 이들 약 1천 가정에서 아기 낳는 것만 해도 일년에 똑똑한 아기 50명 정도는 나오지 않겠어요?(웃음)

이번에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총각 녀석들은 벌떼처럼 도망 다닌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향에서는 잠도 못자고 일을 하고 있을 텐데 밤을 새워 가며 이게 웬일이냐는 겁니다. 이번에 시골에서는 편히 보리밥 먹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녀석들을 마룻바닥에 며칠씩 앉혀 놓으니 이거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앞으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최소한도의 생활 보조를 해 주겠습니다. 나가서 전도하면 일주일에 세 끼 네 끼 먹고, 사흘 나흘 굶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하루에 죽이라도 세 끼 먹어야 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최소한도의 생활 보조를 해 줄 테니까 축복가정 식구들은 전부 공장에 입소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떨어지면 여러분은 갈 데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책임자로서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쳐 가지고 지방의 공장 직원들을 교육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못먹고 못살던 우리도 악착같이 벌어서 잘먹고 잘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남기고 주는 사람이 되자

우리는 절대로 신세 지고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가 신세를 지우고 살면 살지 신세 지고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세지고 살아 가지고 통일이 되겠습니까? 신세를 지고 사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가더라도 절대 신세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생한 만큼 반드시 공적인 면에 필요한 무엇을 남기고 가고, 주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받고 떼먹고 가는 사람은 강도요 절도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도 먹고 남도 먹여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아프리카 주변과 동남아시아 일대에 살고 있는 비참한 국민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대외원조까지 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외국에 원조를 해 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외국에 원조를 못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팔다리가 되어 가지고 고생하면서 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선생님이 공장을 이만큼 만들기까지 수많은 반대를 받아 왔지만 그런 데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선, 제2선으로 나누어서 자력적인 기반을 다져야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하나님의 심정을 배웠지만 이제는 경제적인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경제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공장을 경영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정성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 버는 것 이상의 정성을 들이자는 짓입니다. 하늘땅이 공인할 수 있고,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러한 기준까지 정성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그 정성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재산을 전부 모아 놓고도 남을 수 있는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정성을 들인다면 그는 도둑놈입니다. 새벽 같이 공장에 가서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느냐? 선생님을 만나 보려면 공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선생님이 공장의 사장입니까? 그러나 아무도 일을 잘하지 못하니까 할 수 없이 선생님이 손을 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잘 못하니 할 수 있어요? 병신 자식들을 낳아 놓았다는 겁니다. 그래도 자식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웃음) 자식을 낳아 보니 곰배팔이도 낳고, 바보도 낳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족한 것을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 방법이 없겠느냐?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고하고 고생했지만, 좀더 고생을 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좋아요.」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눈감고 데려다가 일을 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7년노정을 가자는 겁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전도하기 쉬워질 때가 옵니다. 우리 원리연구회를 중심삼은 많은 학생들이 ‘통일교회 문 선생님을 연구하자.’ 하고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한 일년만 그들을 데리고 교육시키게 되면 완전히 달라져서 그들이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한다하는 사람들을 전부 다 데려다가 똥구루마를 끌게 하고, 농사를 짓게 하고, 피땀을 흘리면서도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은 그때까지 힘을 다하여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명년에 다시 출발하는 데 있어서 활동을 위한 결의를 하고,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여러분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담판기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이 해에 하려던 일들이 다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하고 보세요. 이것은 내가 잘먹고 잘살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 여러분들의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 도>

아버지, 이 땅 위에 당신의 성호를 찬양하는 사람은 많사옵고,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사오나 그들 가운데 진정 당신의 마음을 풀어 놓고 사정을 나눌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몇 명이나 되옵니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처량한 사실인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땅 가운데서 쫓김받던 불쌍한 이 민족을 기억하시사 삼천리반도 외로운 이 강산을 선정하시어서 섭리의 초점을 세우시려는 당신의 거룩한 뜻 앞에 먼저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 뜻 앞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무리가 심히도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면목없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은 완전한 자식보다도 불구자인 자식에게 더 깃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염려하실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이 민족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통일의 자녀들은 오늘날까지 7년이란 한계선을 내걸고 남이 모르는 가운데에서 피눈물나는 투쟁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때로는 몰리고, 때로는 가슴 치며 통곡하고, 때로는 주린 창자를 부여안고 아버지의 사정을 논의하며 하염없는 눈물도 흘렸습니다.

이렇듯 모든 과거지사가 눈물로 시작하였지만 그것이 눈물로 거두어지지 않고 웃음으로 거두어져 아버지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한 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아버지의 도우심과 보호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더더욱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를 모셔 놓고 저희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마음 놓고 다 토로할 수 있는 자유의 천지가 어서 속히 이루어지기를 저희들이 일심으로 하소연 하오니, 아버지 앞에 몸 굽혀 경배드린 저희의 모든 사연들을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이 무릎을 연하여 이곳을 바라보며 호소하는 간곡한 심정을 부디 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서글픈 사정이 있어 아버지께 아뢰올 때 친구가 되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던 것과 같은 사랑으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저희는 가진 것 없는 외로운 자들이옵니다. 당신만이 저희 편이요, 당신만이 저희 것이요, 당신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세상의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임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이들의 마음이 섭섭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서울에는 세계와 연하여 있는 통일의 본부가 있사옵니다. 여기에 남아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가 두렵다면 두려운 자리요, 슬프다면 슬픈 자리요, 어렵다면 어려운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와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고 있는 무리라 할진대는 저희가 서 있는 자리에 아버지께서 영원히 좌정하시어서 저희의 생활을 직접 주관하시고 관할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아오매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더더욱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 못난 저희들이오나 선조들이 전생애를 통하여 쌓아 놓은 공의 터전과 시대적인 혜택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와 같은 자리에 세워진 것을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감사하는 마음이 내 자신만의 입장이 아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역사적인 입장에서 감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승리의 모습은 역사상의 어떤 위인보다도 더한 가치적 존재로 아버지께서 인정하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런 자리에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저희들이 1968년, 새로운 해를 맞겠사오니 이 해에 계획하시는 천적인 모든 프로가 완결되시옵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천국을 이 지상에 이루어서 승리의 개가를 드높이 올리고, 아버지 앞에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기쁨의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된 모든 자녀들이 아버지의 심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형제가 되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부모와 믿음의 자녀의 인연을 통하여 소망의 종족을 이룰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외로운 자리에서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싸우고 있는 무리가 많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뜻 앞에 평생토록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천적인 절개를 남기고 가겠다고 다짐하고 결의하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제2차 7년노정을 가야 할 저희들, 이제 들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결심하고 늠름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모진 광풍이 불어오는 자리에서도 하늘은 승리하셨사오니 저희들도 그 뒤를 따라가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나서면, 그 길이 단축되어 평탄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새해를 맞아 새로운 결심으로 제2차 7년노정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줄 아는 뭇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에 당신의 은사와 승리의 영광이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축복은 하나님의 소원이자 예수님과 성신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져야 새 역사가 열립니다. 축복은 이 전체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은 이러한 소원을 이루는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못 이룬 소원을 책임지고 이뤄 드려야 합니다.

축복을 이룰 때까지 아담, 예수, 재림주의 3대에 걸친 한을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우지 못했던 외적 기반을 세우는 것이 바로 7년노정입니다.

선생님의 성혼식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결혼식보다도 성대하게 해야 하는데, 고난 중에 했기 때문에 성대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성대하게 해야 할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

식구들은 자기를 중심한 3대 중 외적으로 가장 결혼을 잘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 앞에 조건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제물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찾아 세우지 못한 것을 탕감하는 탕감기금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12사람과 3수에 해당하는 제물적인 조건으로 3만 원을 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조건을 세운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은 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36가정은 조상의 입장이고, 72가정은 36가정 앞에 가인 아벨을 복귀한 형입니다. 즉 36조상 앞의 이 72가정은 가인 아벨이 일시에 탕감복귀된 형입니다. 124가정은 전세계 120국가를 대표한 형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찾았으나 하나님이 거하실 땅이 없어 1965년에 세계에 120개의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성지에서 기도할 때는 36가정과 72가정과 124가정을 대표하고, 하늘을 대표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천사가 협조할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천사장인 사탄을, 선령(善靈)은 지상 인간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천사의 역사(役事)로 내적 기준을 세우게 되면 사탄세계는 물러갈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지상에는 통일의 운세가 벌어질 것입니다. 영적 승리의 결과에 따라 내적 승리의 기반이 잡혀지는 것입니다.

아벨의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가 가인의 입장에 있는 기성교회를 구해야 합니다. 야곱이 물질로 에서를 구한 것과 같이, 물질을 통해서 초교파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축복가정이 전통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지시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1차 7년노정이 끝나기 전에 제2차 배치를 하여 이 기간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으로 세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가정으로부터 떠났었지만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24가정으로 하나님 앞에 세계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종족 편성에 가담해야 합니다.

33가정도 3가정을 세운 후에 세운 것입니다.

아담형 가정(36가정 중에서)의 축복으로 영계 전체가 횡적인 연결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3가정 축복 전에는 성진, 희진과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3가정이 아버지와 일치되는 기준을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진과 희진을 하늘 앞에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3자녀와 12가정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미 이런 기대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과 통곡으로 종적인 조건을 세웠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하나되어 횡적인 조건을 찾아 세울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아무리 완전하게 완성되었다고 해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효자라도 나라에 충성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선생님과 하나됨으로써 그 조건을 세운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의 정성을 하나님 앞에 통고하여 그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 지어 주는 사명을 하지 못하면 심정의 빚을 지게 됩니다.

가정과 식구의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어서도, 누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통곡을 할 만큼 고생한 식구를 먼저 세워야 합니다.

죽을 때 눈물 흘릴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는 혜진 아기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잃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했고, 아직 죽음을 면할 만큼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태복음 26:36-46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창세 전에 품으셨던 이상으로 에덴을 창조하셨으나, 아버님의 본연의 상대가 되어야 할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존재들은 그곳에서 살지 못하였고, 또 이 세상은 그곳과 인연을 맺지도 못한 슬픈 세상이 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버님께도 슬픈 일이요, 모든 피조만물에게도 슬픈 일이옵니다. 이와 같은 슬픈 결과를 초래케 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창조된 인류요,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라는 것을 저희는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버지의 직계 자녀로 태어난 아들딸들은 선해야 했으나, 그들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인류역사에 한 많은 서러움을 남기게 되었던 것을 회고하면 회고할수록, 그동안 인간들의 노심초사도 컸었지만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그 아버지의 수고를 저희들이 마음으로 더듬어 헤아리면서 저희가 아버님 앞에 얼마나 민망한 자신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절감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담을 잃어버린 그날부터 당신께서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또한 아버지 대신 책임지고 싸워줄 자를 얼마나 찾았사오며, 아버지의 전권을 상속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얼마나 고대하며 찾아 나오셨습니까? 이것을 생각하게 되올 때, 이 땅 위에 그러한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버님의 서러움이요. 인류역사의 한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렇듯 슬픈 역사의 고비 길을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걸어 나오셨습니다. 슬플 때에는 슬픔을 참으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신 입장에서 오늘날까지 조금도 쉬임 없이 나오셨습니다. 인간들은 어두운 밤길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보다도 더한 어둠 속에서 인류역사를 섭리해 나오시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아버님 앞에 면목없고 민망한 자신들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아버지께서 6천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을 헤매며 찾아오셨던 그 걸음이 얼마나 서러우셨겠는가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민족과 국가 앞에 몰림을 당하시면서 이 나라 저 나라, 이 도시 저 도시를 헤매며 찾아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발걸음이 오늘날 이 한국 강산에 멈추게 된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저희들 아버지 앞에 진실로 면목없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 삼천리반도와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아버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민족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 땅에 왔다 간 저희의 선한 선조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때를 맞이하고 보니 아버지의 섭리의 손길이 이 민족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올 때, 이 민족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아버지 앞에 면목없음을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더욱이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의 손길을 감히 대하기조차 부족한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그 사랑의 은사권 내에 세워 주셨사오니, 저희들 진실된 마음으로 이 민족과 이 강산과 만민을 대표한 입장에서 아버님께 겸손히 경배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1967년의 마지막 날이옵니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소망하셨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역사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기로에 서 있사오니, 오늘 여기에 동참한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각자의 마음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 가운데 과거에 부족했던 내용이 있거들랑 이 자리에서 종결짓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새로운 뜻 앞에 있어서 승리의 실체를 갖추는 데 노력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새로이 약속의 세계를 향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족한 사람은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의 은사로 말미암아 아버지 무릎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을 받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알아주시지 않으면 저희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겠사옵니까? 이 세상에서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는 가운데서도 참아 나왔습니다. 핍박받는 자리에서도 오직 아버지를 우러러보고 호소하며 나온 저희들이었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을 다시 한 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남이 알지 못하는 7년노정을 설정하고 이 길에서 모진 투쟁을 해 나왔습니다. 아버지, 이 기간 중에는 핍박이 하도 심해 눈물지으며 이 길을 피해서 걸어간 사람도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민망함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심정적인 가책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마음이 떳떳하지 못해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더라도, 오직 심정 하나만을 품고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못나고 부족한 저희들이었사오나, 아버지께서 보호해 주신 연고로 저희들은 오늘 이 자리까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한 날까지 참고 나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지금까지 이 뜻을 위해 수고해 온 당신의 자녀들 앞에 마음 모아 감사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저희들의 모든 일체를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새해에는 새로운 약속의 세계를 향해서 다시 출발할 것을 다짐하고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 저희들의 21년노정도 긴 세월이온데, 하물며 6천년이라는 슬프고 긴 아버님의 역사노정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보다 더 불쌍한 분이 없었사옵고, 아버님보다 더 외로운 분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앞에 충성을 약속했으나 그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효성을 약속했으나 그것을 다하지 못했던 저희의 과거를 후회하며 아버지 앞에 사죄 드리오니, 금후에 있어서는 아버지 앞에 충성과 효성을 다짐한 바대로 다 실천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을 기억하고 축하하면서 아버지 앞에 마음과 뜻을 다하여 기도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전국에 있사오니, 그들을 마음 깊이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랑의 심정으로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모이지 못한 아들딸들 위에도 아버지의 말씀으로 친히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아버지의 뜻 앞에 합당치 아니한 것이 없도록 전체가 아버지의 뜻과 일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오직 뜻에서 시작하여 뜻에서 그 결과를 맺어 아버지의 영광만을 드러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 위에서 아버지께서 뜻하신 영광이 드러나 길이 길이 저희와 함께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1967년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주일입니다. 더욱이 이날은 통일교회에 있어서 7년노정이라는 길고도 지루했던 기간을 넘기는 마지막 날입니다. 또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뜻을 따라 나온 지 만 21년을 종결짓는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의 타락

1967년의 이 마지막 날 자체는 우리 통일교회가 소원하던 승리의 날로서 맞아질 수 있고 기쁨과 찬양으로 맞아질 수 있기를 고대했을 것입니다. 또 우리 자신들도 마음을 터놓고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고 승리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서 이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고대했을 것입니다. 이날은 이렇듯 중대한 날입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으로 보더라도 이날은 섭리도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날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의 수많은 날들은 기쁨의 날들이 아니라 슬픔으로 연결된 날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과 같이 7년 고비를 넘는 한 날이 있기 때문에 이후의 역사적인 날들은 새로운 내용으로 전환되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 좀더 범위를 넓힌다면 하나님의 소원, 이것을 통틀어 모든 존재물의 소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조주께서 우리의 시조인 아담 해와를 창조하고 그들을 중심삼고 사랑의 가정을 이루려 했던 것이 창조이상이었으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가정의 출발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참된 부모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참된 자녀와 참된 형제가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족도 있을 수 없고 참된 나라와 참된 세계도 있을 수 없는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목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목적은 선한 부모를 중심삼아 선한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선한 형제들을 세우고, 또 그들을 연결하여 선한 종족을 편성하고, 또 그들로 하여금 선한 민족을 창건케 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으나 인간의 타락이라는 서글픈 결과가 야기됨으로 말미암아 이 창조의 위업은 그 목적했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또 본래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천지 앞에 참된 남자, 참된 여자의 가치도 나타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한 모습, 이 천지간에 하나님이 세워서 자랑 할 수 있는 한 모습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섭리를 해 나갈 것이냐? 지금 이 세계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창조본연의 세계의 참다운 남자의 모습과 참다운 여자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린 후에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인간이고, 제아무리 선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타락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아 태어났고 타락으로 인한 근원적인 슬픔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슬픔의 기준을 넘어설 수 없고 타락의 한(恨)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사탄의 참소권 내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주관권 내에 머물러 있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최고의 목적

오늘날 제아무리 독실한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사탄은 그를 참소할 수 있고, 어떤 조건에 걸리기만 하면 ‘너는 내 것이다.’ 하며 빼앗아 갈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전인류가 이러한 자리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당신이 그렇게 고대하시고 원하셨던 참된 남자 한 사람을 아직까지 찾아 세우지 못하셨고, 또한 한 사람의 참된 여성을 아직까지 찾아 세우지 못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6천년 역사(歷史)를 무엇을 위해서 역사(役事)하신 것이냐? 물론 외적으로는 개인과 민족과 종족을 구하기 위하여 섭리역사를 전개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 전개하여 나온 것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간접적인 관계에 있는 개인이요, 종족이요, 민족이요, 국가와 세계인 것이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개인과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 이 땅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참다운 개인, 참다운 남자, 참다운 여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참다운 개인이 나타나지 않고는 참다운 세계 인류 조상의 뿌리가 이 땅에 내려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 족속을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이 제아무리 성별된 민족이라고 자처한다 하더라도, 그 민족은 하나님의 직계 민족이 아닌 양자밖에 되지 못하는 민족인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둘 다 똑같은 아들인데도, 하나는 아들로 취급하고 다른 하나는 아들 취급을 안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있는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을 바라볼 때 이들은 양자의 자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양자란 어떠한 존재냐? 양자는 혈통이 다른 존재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양자의 입장에서 부르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눈치를 봐야 되고 그 양자도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양자는 내정적(內情的)으로 끓어올라 뼛골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어떤 외적인 사연으로 통할 수 있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은 아버지와 친아들과의 관계와 같이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 구원을 받았다 하며 저나라에 간 사람이라 하더라도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으로 들어갔을 뿐입니다. 낙원이라는 곳은 양자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자 된 족속들을 직계의 족속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어떻게 세우느냐?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인간을 양자의 모습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인간을 양자의 모습으로 접하게 되어, 하나님은 그 양자의 혈통을 끊어 버리고 다시금 직계 자식의 모습을 접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구원섭리 기간이 6천년이나 걸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구원섭리하시는 목적은 직계로 세울 수 있는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양자가 아닌 참된 직계 아들 하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 아들은 야곱도 아니요, 아브라함도, 모세도, 세례 요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 아들 자리에 서게 되었던고? 4천년 섭리역사에 있어서 종말적인 결실체로 나타났던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첫 직계 아들로서 태어난 예수님이었습니다.

메시아가 되기 위한 선행조건

그러면 예수님이 만민의 메시아, 구주가 되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직계 아들이 되는 수속을 밟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먼저 지음 받고 태어났지만 그 자격을 사탄에게 빼앗김으로 인해 완전히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아들딸로서 입적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태어나지를 못해서도 아니요, 하나님의 심성을 예수님만큼 이어받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 몸에 상처가 나고 금이 가고 조각이 났기 때문에 입적을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의 메시아가 되기 위한 선행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입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로 입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난 부분을 전부 치료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국가가 죄악에 물들어 있고,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려 있는 것을 해결해야 했고, 사탄에게 희생되고 악의 제물로 사라지면서 남긴 한과, 전세계 인류에게 씌워진, 사탄에게 굴복한 굴레를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수속을 밟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명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천당 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내심으로 고대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승리의 왕자로 하나님의 전권을 지상에서 상속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가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있는 가정의 자리, 민족의 자리, 국가의 자리, 세계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족보를 꾸밀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였던 모든 것과, 그 타락한 후손들이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 앞에 한을 남겼던 그 모든 것들을 완전히 탕감할 수 있어야만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하는 조상의 자리에 설 수 있으며,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이 출발하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부모의 자리에 섬으로써 비로소 천적인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어린양 잔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의 자리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 즉 하나님의 일남 일녀가 타락했기 때문에 더럽혀진 사랑의 피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깨끗하게 청산 지어 놓고,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참소하고 제물의 조건을 제시하던 사탄을 당당히 막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간섭하는 영광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완전한 일남 일녀의 자리를 결정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축복받는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천국을 향한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4천년 역사노정에서 나타났던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걸고, 참소조건으로 제시되었던 모든 것을 걸고 사탄과의 싸움의 고비 길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승리자의 권위를 가지고 4천년 역사를 넘어섰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4천년 역사를 넘어선다는 그 말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수중에 넣고 통치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였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기 전에 무엇을 택해야 되느냐고 요즘 기독교인들에게 묻는다면, 그것은 사도들이다, 혹은 가룟 유다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기 전에 요셉가정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실 때는 종족적인 기반 위에 보내신 것입니다. 즉 다윗의 후손, 다윗의 족속, 다윗의 종족으로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요셉은 다윗의 후손을 위하여 예수님에게 절대복종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종족적인 기반 위에 승리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민족을 찾아 세워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 그 종족적인 기반이 다 무너져 갔던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이종사촌 형인 세례 요한까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친척, 같은 종족권 내에 태어났으면서도 자기 멋대로 행동하다가 결국은 예수님을 저버렸던 것입니다. 이렇듯 요셉가정의 실수로 말미암아 4천년을 준비해 왔던 다윗의 종족의 터전은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 종족은 예수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종족의 터전을 대신해서 어부 베드로를 찾아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비록 어부라도 찾아 세워야만 했던 예수님의 처량한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찬양만 하면 뭣 합니까?

예수님의 갈망

예수님은 이 땅 위의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왔지만, 만민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천적인 수속 절차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몰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되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메시아로서의 입장을 완료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만민을 대속하기 위하여 만민의 대표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표의 자리에서 사탄을 완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그런 천적인 수속을 밟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위치에서 가야 하는 예수님의 심정이 얼마나 심각하고 처량했겠습니까?

4천년 이스라엘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신 수고와 역대 이스라엘 민족이 했던 수고도 컸지만, 그보다도 그것을 총합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하고 새로운 천지, 새로운 천국을 건설해야 하는 주인공으로 오신 예수님이 새로운 출발은커녕 십자가의 길에 쓰러져야 했던 이 억울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늘 앞에 특별히 선 종족, 즉 다윗 종족은 아벨적인 입장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섭리적으로 볼 때, 이 아벨적인 다윗 종족 앞에 가인적인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중심삼고 이 땅에서 완전히 하나됨으로써 비로소 예수님 앞에 승리적인 기반의 민족적 기대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한 다윗 족속 일파와 예수님이 일체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실체기대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실체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지 않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교법사들, 유대교단 전체가 예수님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에 가인적인 이스라엘형(型)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권으로 들어가게 되어 사탄은 아벨의 입장인 종족에 대해서 직접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족적인 터전을 잃어버린 예수는 민족의 핍박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져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결국 십자가에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고 열두 제자들을 붙들고 애걸복걸하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까지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모두를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중 이 땅에서 최후까지 믿을 수 있는 세 사람만을 택해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가 하늘이 깨지느냐 땅이 깨지느냐 하는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듯 중대한 문제를 걸어 놓고 담판 짓는 그 시간에도 그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을 자고 있었다는 거예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자리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과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갈망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죄와 그 용서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처럼 사탄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의 비극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인류의 참아버지로 오신 분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거짓 부모가 생겨났고, 그 거짓 부모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에 이것을 전부다 다시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부모, 참부모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즉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이 세상에 다시 와야 그 아담 해와로 하여금 이 땅의 인류들을 다시 낳았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양자의 인연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타락한 인간은 거듭나지 않으면, 즉 중생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두 번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잘못 나왔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엄청나고 슬프고 딱한 사실이 부활해야 할 우리 인생행로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만민의 구주인 동시에 만민의 아버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해 주려면 무엇으로 구해 주겠습니까? 하나님이 구주를 보낼 때 종으로 보내 주면, 우리 인간을 종으로밖에는 대접해 주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간들도 종의 신분에서 종의 책임만큼만 하나님을 믿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형제의 입장으로 우리 앞에 구세주를 보내 주신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형제의 입장보다 더 높은 입장은 어떤 것이냐? 그것은 아버지의 자격을 갖추고 이 땅에서 아들을 찾겠다는 입장이 최고의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구세주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내용은 인류의 참다운 아버지의 인연을 갖고 참다운 자식을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아버지를 때려 죽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한스러운 일인데,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이는 죄까지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인류는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늘 공법의 공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을 막론하고 너나할 것 없이 타락한 족속들을 섭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구원해 주기 위해 오신 메시아, 즉 우리들을 당신의 참아들딸로 세워서 완전한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오신 구세주를 반갑게 모시고 대접은 못해 드릴망정 때려죽였으니….

그러한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땅 위의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알고 회개할 때는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탄할 일이고 하나님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아버지를 때려죽인 것을 알고 그것을 진정으로 통회하고 그 죄 값을 천만번 감사히 받기를 원하는 아들딸이라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재림주의 사명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눈물의 종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하니 그런 사람들은 모두 가짜입니다. 그들을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음을 피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됐겠습니까? 하나님이 4천년 만에 이스라엘 선민을 터전으로 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게 하여 천국이념, 즉 지상천국 이념을 실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교법사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왕,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그것을 당신 앞에 바친다고 통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과 종족이 하나되고, 그 종족과 민족이 하나되고 그 민족 전체가 하나되어 국가를 이루었다면 여기에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불충 불순종하였다면 참소의 조건에 걸리지만, 하나님의 직계 아들인 예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 되었으면 예수님과 접붙인 자리에 서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삼고 하나된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 되면 사탄이 참소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는 이 땅 위의 메시아가 되기 위한 수속을 필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 앞에 복귀시키고, 더 나아가 세계복귀를 완수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와 핍박 때문에 예수님도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1이스라엘은 할례로 말미암아 만들어졌고 제2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인 기독교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나라 없는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처음부터 나라 없는 민족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죽인 죄로 말미암아 땅 위의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그렇게 세계를 전전하며 수많은 민족 앞에 핍박을 당하고 희생을 당해 오면서도 세계적인 환난을 극복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나라를 가진 하나의 아들딸, 하나의 종족을 찾아 세우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서 버림 받음으로 말미암아 실체적인 기반을 세우지 못하고 영적인 기반밖에는 세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적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제2이스라엘을 창건하기 위하여 출발한 것이 신약복음인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영육을 통하여서만이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영적 부모의 자리에만 계시면 영적 구원밖에 할 수 없는, 반쪽의 구원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반쪽의 구원, 즉 육적 구원을 해 주기 위해서 재림주님이 이 땅에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재림주님이 예수님을 믿다가 간 영인들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써 제3이스라엘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제2이스라엘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를 통해야 했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잘못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의 관문을 통하여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같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구세주가 다시 나타나 행하지 않고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의 뿌리를 통하지 않고는 이 땅 위의 엉클어진 것을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중목적의 존재

예수님은 개인적인 책임을 완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고,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를 대신할 수 있는 탕감조건 전체를 세우기 위해서 뛰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는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의 핵심 중의 핵심의 자리이고 우주의 주목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적인 모든 조건을 끌어다 놓고 사탄을 판가리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 33년 중 마지막 3년의 공생애에서 판가리하려던 최후의 싸움이었지만 예수님이 몰리고 쫓겨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와 가정적인 승리, 종족적인 승리, 민족적인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을 보면 원리를 입으로는 잘 말하지만 탕감조건을 세우는 내적 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개성완성, 즉 개인이 가정의 기반 위에 안식하려면 개인의 탕감조건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탕감조건까지 세워 놓아야만 사탄이 그 가정을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이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이중목적을 달성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개인으로 있으면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을 요구하게 되고, 가정이 있으면 종족을, 종족은 사회를, 사회는 국가를 요구하는 이중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개체 완성만을 위한 승리의 터전만을 닦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체가 서기 위해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중심삼고 승리하여서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리를 닦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야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이 보호받으려면 종족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종족적인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사탄에게 승리하여야 그 기반 위에 가정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중목적 때문입니다.

그러면 종족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었겠습니까? 종족이 들어가려면 민족적 탕감조건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종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어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그 종족이 안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몰림을 받아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개인적인 기준, 가정적인 기준, 종족적인 기준, 민족적인 기준, 국가적인 기준이 이 지상에서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름을 타고 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와야 됩니다. 아직까지도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통일교인이 이해시켜 줘야 합니다.

인간세계에는 참이 거짓 같고 거짓이 참 같은 일이 많지만 진리는 이치에 적합지 않으면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참된 양심으로 치료하려면 참된 양심보다 더 참된 내용이 있어야만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단 취급을 받고 있지만 두고 보십시오. 전세계 기독교인들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 중 어느 것이 남고 패하는가. 자고로 참은 거짓 앞에 핍박을 받고, 몰리고 쫓김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니 역사의 종식시대(終熄時代)에 있어서 참이 세계적으로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을 그런 자리에 놔뒀다가 나중에 세우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거짓은 어디까지나 거짓입니다.

그런데 구름 타고 와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와서 뭘 한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인류의 참된 조상으로 오셨지만 타락한 인류를 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천지의 공법을 거쳐 천지창조의 이념을 그 위업으로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천지에 연결시키고, 만민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법도와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의 출발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것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아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육신을 쓰고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너무 망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천국에 가요?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지옥에도 못 갑니다. 다 죽어 보라구! 죽고 나면 압니다. 그땐 선생님이 필요할 거예요. 선생님이 뜻을 따라 나오는데 수십 성상을 이런 인간들에게 핍박받고 반대받은 것을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이 이렇게까지 처참해지지 않았을 것이며, 공산당은 선생님 손아귀에서 다 망했을 텐데…. 무골충같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는 안 됩니다. 참과 거짓이 뭡니까? 이제는 참과 거짓을 비교해 보고 그 성능과 진가를 타진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악이라면 쳐부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라고 기도하실 때도 그저 잠자면서 흐지부지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심령이 곤두서는 애타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앞으로 억천만 생명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동정을 바라는 입장에서 심각한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예수님의 사정도 모르고 뭐, 예수의 신부가 되겠어요? 기가 막힙니다.

예수님 한 분이 살아 계셔야만 수많은 개인이 살아나는 것이고, 수많은 가정이 해방받는 것이고, 다윗 족속들과 유대 백성이 사는 것이고, 그 유대 백성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가 살고, 하늘땅이 살고, 하나님이 해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방받는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속을 받고 있었느냐고 합니다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구속을 당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가 땅 위에서 아들딸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처량한 역사가 수레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누구나 할 것 없이 악의 세력 밑에서 춤을 추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아이구, 좋구만! 잘하는구만!’ 하시겠습니까? 우리와는 부자의 인연을 가진 그 아버지이시기에 천지천하의 내정적인 구속의 자리, 내정적으로 처량하고 비참한 환경을 없애기 위하여 애쓰며 싸우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내적인 모든 사연을 알고 하나님을 그런 자리로부터 해방시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그 당시로 말하면 유대 나라만 해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해방된 유대 나라를 중심삼아 세계를 해방하고 이 지옥세계, 사탄세계를 멸망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땅에 있는 존재, 하늘에 있는 존재, 즉 모든 존재가 사탄의 참소권 내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환희에 찬 환성을 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만물을 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해방을 맞이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연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쫓기는 몸을 재촉하여 감람산에 올라가 피어린 투쟁의 기도를 할 때도 누구 하나 그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혈혈단신 쫓겨다니며 핍박당하던 그 사정 또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의 부모까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를 모셔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이 뒤집어집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동생들까지도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3―5)라고 비아냥거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이 얼마나 딱했으면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마 13:57) 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예수님이 뜻을 다 이루었어요? 몰리고 쫓겨 할 수 없이 십자가의 길을 맞이했던 예수님의 기막힌 그 사정을 그 누가 알았습니까? 오늘날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안 나왔으면 불쌍했던 예수님의 그 사정을 밝혀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통해서 오셨기 때문에 세계의 역사와 더불어 살고 가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리하면 개인의 승리뿐만이 아니고 세계의 승리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뜻을 이루었다 하면 개인의 뜻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뜻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세계를 저울질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일신은 비참하게 이슬같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들지 못해 비참해진 이스라엘 민족

인류의 아버지로 오신 예수님의 발걸음이 죽음 길로 향할 때 한 사람도 그 손을 붙들고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먼저 십자가에 죽겠다고 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습니다. 인간 세상에 어버이로 왔다가 억울하게 몰려 죽음 길을 가는 예수님을 가로막고 동정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여 놓고 그 죽은 예수님을 중요시하면 뭐합니까? 마치 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효도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 무덤에 가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며 울고불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예수님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살아 있을 때의 예수님을 중요시 하지 않은 민족은 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효는 죽고 난 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은 죽은 뒤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지 온 누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자녀요, 하나님을 통하여 하늘나라를 창건해야 할 국민인데도 불구하고 이 자녀에 대한 소망과 국민에 대한 여망이 다 파괴되어 버리고 날아가 버릴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겠습니까?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고생시키면서 세워 놓고는 메시아를 보내기 위한 약속을 했던 것이 결국 이렇듯 비참한 민족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비참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히틀러의 손에서 6백만 명이 학살된 것도 다 예수님을 죽인 죄 때문입니다.

나라의 왕을 죽이면 역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아버지요, 그 나라의 왕이요, 천지의 중심존재요, 하늘땅의 대왕이신 그분을 죽였으니, 이 죄는 무슨 죄라고 하며 무엇으로 그 죄를 탕감할 것이냐? 그 죄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며 지지리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때가 차서 이스라엘 해방운동도 벌어졌지만, 과거의 역사 속에서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이 민족을 해방시켜 달라는 기도를 해 주시지 않으면 해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해방될 때가 되면 주님이 이 땅에 와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구름을 타고 와요? 절대로 그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한 40년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누구 말이 진리인가 알게 될 것입니다.

개인을 수습하지 못하고 간 예수님,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세계를 수습하지 못하고 땅 위에 이러한 자국을 남긴 예수님이었습니다. 개인을 수습하지 못한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다시 개인을 수습해야 하고, 가정을 수습해야 하고, 종족과 민족을 수습해야 하고, 이스라엘을 수습해야 하고, 세계를 수습해야 하고, 천주를 수습해야 하고, 천도를 개설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완결 짓기 위해서 재림주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와서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런데도 이 멍텅구리 패들이…… 두고 보자 이겁니다.

신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신 예수님

선생님이 21년 고비를 넘어가면서 생각하게 될 때, 만일에 이런 고비가 없었던들 우리 통일교회가 이 엄청난 천주의 대업을 인계 받아서 이 삼천리 반도 위에서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종교적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량한 눈물의 골짜기에 남아진 무리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의 출정을 위해 새로이 정비하고 나서야 되는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원수를 갚아야 됩니다. 하늘땅에 가로막혀 있는 원수의 장벽을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나의 살에 힘이 있고 피가 끓는 한, 이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기 위한 최후의 결전장에서 후퇴함이 없이 오직 전진 진격할 것을 이 순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가 되려면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려고 남자로 왔습니까? 예수님이 죽음에 임박해서 하신 유언 한마디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언은 그 가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요, 아버지로서 자식 앞에 남겨 주는 최후의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부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 이야기한 것도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 창건을 인해 어머니 될 수 있는 존재를 생각하면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사연을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때 유대 나라의 풍습은 한국의 풍습과 같이 여자들의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그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결국 예수님이 바라시는 그 기준까지 모셔 줄 수 있는 그런 한 여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사랑하는, 천심(天心)과 천정(天情)이 통하는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유대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은 종의 입장이었지 신부의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 왔으니 어머니를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뿌리는 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비참한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이 죄의 뿌리가 뽑히기 전에는 여자는 해방이 되지 않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리 쉽게는 안 될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어야 할 해와가 타락해서 죄를 유발시켰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인 죄를 탕감하고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해산의 수고를 거침으로써 탕감의 승리권을 마련하여 신랑을 모실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여인이 나타나지 않고는 메시아는 아버지적 메시아로 등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 해방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소원을 2천년이 지난 지금 이루어야 합니다. 제1차로 유대민족을 중심 삼고 이루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으니, 이제 우리가 제2차로 기독교의 세계적인 판도를 중심삼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봉을 실현시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점(基點)을 마련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참된 직계 아들딸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을 연결시켜 맞추기 위한 것이 재림이상인 것입니다. 재림이상에 있어서도 역시 참다운 가정이 있어야 천도가 출발하는 것이요, 이것이 있어야 참된 사랑과 참된 행복의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공인된 사랑으로 이루어진 가정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아버지 어머니가 사탄세계의 타락된 사랑의 인연으로 맺어진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니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도에게 아버지가 내쫓기고, 어머니가 겁탈당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퇴폐물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계신지도 모르는 간부(姦夫), 간부의 족속, 간부의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천국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가는 곳

그러니까 지금까지 6천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타락에 물든 인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딸로 생각할 수 있는 심정으로 복귀하시고자 했던 것인데, 그것이 6천년이 걸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간부의 자식을 당신의 아들딸로 정해 줄 수 있는 심정을 복귀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데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6천년이나 걸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겠지만, 하나님은 행복의 요건을 중심삼은 사랑의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도 여기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6천년이 걸린 것입니다. 이것을 해야 비로소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른편 강도에게 너와 내가 낙원에 이르리라고 했지, 언제 천당 간다고 했습니까? 천당에 갈 뻔했지만 천당은 가지 못하고 낙원밖에 못 간 것입니다.

천국이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성혼을 해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아들딸,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손자들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다가 그 가정이 모두 함께 들어가는 곳입니다. 자식이 못 들어가도 자신만 들어가면 천국입니까? 그러나 낙원은 아무리 정다운 부부나 부모 자식이라도 헤어져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가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곳이 천당입니까? 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 모두가 들어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을 수 있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아들은 지옥에서 죽겠다고 야단하고 있는데 부모는 천국에서 잘 살면 되겠어요? 그런 곳이 천국입니까?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옥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천지개벽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축복의 문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팔십 노인들도 재봉춘(再逢春)해야 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시 시집 장가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제3이스라엘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또 제3이스라엘 국가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려다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겠지요? 그러면 그것이 예수님 혼자만의 소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 장성하여 천지간에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룬, 개성을 완성한 일남 일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내 품에서 영원무궁토록 살라.’고 하시면서 결혼시켜 주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 중에도 축복을 선생님이 처녀 총각들 데려다가 기도해 주며 합동결혼식 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축복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축복은 그 가치를 알고 받아야 합니다. 축복을 받음으로써 제3이스라엘 백성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축복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보니 축복을 받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통일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른 취급 합니까? 인간 세상에서도 처녀가 죽으면 처녀귀신이고 총각이 죽으면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

사람은 나에게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나로부터 3단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나와 상대와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와 상대와 자녀의 관계,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리고 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한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6천년을 돌아서 장성기 완성급, 즉 축복의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지금이 어떤 때이겠습니까? 지금은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최고의 때요, 6천년간 수고해 온 하나님의 한이 그치는 때요, 이 땅에 오시어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의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이 시작되는 때요, 만물의 환희와 존귀와 영광을 받을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날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죄악이 다 사라지고 광명의 태양이 솟아오른 명랑한 천지를 맞이하는 날, 모든 자연이 화동하고, 모든 동물이 춤을 추는 화창한 아침, 승리의 아침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한과 슬픔으로 비참한 역사 과정을 걸어 나오면서 지루하고도 지루한 고비를 넘어선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그날을 맞이하는 것보다도 그 해방을 맞는 날이 더 즐거운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 낱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죽음 길로 몰아내었고, 6천년 동안 끌고 나온 제단 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기 위하여 참아 나온 그 입장을 생각할 때, 이날이 얼마나 감사한 날이며, 얼마나 좋은 날이며, 얼마나 기쁜 날이겠습니까? 만일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천지가 동하여 하늘땅 전체가 잔치를 할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만 하겠습니까? 해방 잔치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느껴 왔던 죽은 것에 버금가는 안타까움과 아픔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그날이 축복의 날이요, 성혼의 날입니다.

성신의 입장에 서야 할 해와가 먼저 타락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여자들이 해산의 고통을 겪고 아기를 낳는 걸로 믿고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타락한 해와이기에 여자가 인류를 다시 낳아 주는 수고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됩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때문에 땅 위의 인류는 성신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부활하는 것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아버지 신인 예수님을 신랑으로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들은 성신을 받아 성신이 사모하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사랑의 불길을 거쳐가게 될 때에 영적인 생명의 주인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천이 없어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무모하게 천리원칙을 떠나서는 절대 구원섭리하시지 않습니다.

인생의 귀한 생명이 부활하는 데 있어서 누가 어떤 맹랑한 논법으로 해석하려 합니까? 천리원칙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날은 축복의 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버지라고 대답합니다. 또 성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성신은 성신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알려면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예수님은 체를 갖고 태어났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여자의 몸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체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물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거기에는 그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신은 왜 땅 위에 오겠습니까?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자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였지만, 예수님은 남자로서 이 땅에 와서 죽으면서까지 뜻을 세우려는 일념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책임을 못 했습니다. 지상에서 나란히 둘이 살아서 책임을 해야 했는데, 남편인 예수님은 땅 위에서 사탄을 굴복시키고 갔지만, 성신인 어머니는 이 땅 위에서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을 못했기 때문에 온 인류 개개인에 대해 해산의 수고를 거쳐 사탄을 굴복시키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2천년간 바라고 바랐던 그 소원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 전부가 거꾸로 달려 죽고 기름 가마에서 죽는 처참한 형벌을 당한다면 이것을 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로마에서 400년 동안 핍박을 받고 별별 참사를 당하는 것을 볼 때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토록 선량한 사람들을 고생시키면서도 이 길을 포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붙들고 세계의 수많은 국가의 뒤를 따라 돌고 돌아 오늘의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민주국가들을 이루어 세상의 끝날까지 끌고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끌고 온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축복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그날을 찾기 위하여 어머니 피와 아버지의 피가 이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날은 개인의 피는 물론이요, 종족의 피, 국가의 피, 세계의 피가 교차되는 날이며,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찾지 못했던 그 소망의 아들딸을 이 천지간에서 찾을 수 있는 날인 것입니다. 이런 기쁜 날을 우리가 맞게 되면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것이요, 만세토록 그 영광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믿는 사람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축복의 날의 의미

이날(축복의 한날)은 예수님에게는 제일 기쁜 날입니다. 제일 슬프게 출발한 예수님이기에 그 슬픔보다 더 큰 비중의 기쁨이 와야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예수님이 죽음을 넘어서 2천년 만에 비로소 가슴에 맺혔던 한을 풀어놓고 웃으며 춤출 수 있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할 말은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치 못한다면서 얼마나 많은 사연을 품고 갔습니까? 춤을 추는 예수님, 얼마나 기뻐야 예수님이 춤을 추시겠습니까? 처녀 총각이 시집 장가가는 것만큼이나 기쁜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한 생명의 가치가 우주보다도 크다고 했으니 이렇게 큰 생명의 가치를 한꺼번에 제물로 바친다고 이런 날이 구현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벌써 다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탕감조건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예수님과 성신이 해원성사하는 날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 몰리고 쫓겼던 선한 사람들, 혹은 각 나라에서 몰리고 쫓기고 참살(慘殺) 당했던 하나님의 충신․열녀․효자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선해라. 착해라. 악한 자리에 가지 말고 선한 자리에서 죽어라. 선에 입각하여 살아라.’ 하고 말하던 사람들, 또한 생명을 걸어 놓고 충․효․열의 길을 가다가 죽어간 사람들, 그들이 소원하던 것이 이 한 날로 말미암아 해원 성사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존재세계에 인연된 모든 것이 이날을 위하여 빚을 갚기에 수고하였고, 이날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청산되기를 고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얼마나 기쁜 날이겠습니까? 손 하나를 잘라도 아픈 줄 모르고 목이 잘려도 웃으며 죽어갈 수 있는 날입니다. 천상천하에 이런 날이 시작되는데, 그 이상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날이 지상에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슬픔과 한을 풀어 달라고 예수님과 성신을 붙들고 기도할 줄만 알았지, 하나님께 이렇게 딱하고 처량하고 비참한 사연이 맺혀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했습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니까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배만 채우고 자기의 욕심만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얼굴을 들 수 없는 빚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성혼의 날을 고대하는 아버지 앞에 어떻게 서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그 아버지는 최후의 자리를 넘어선 승리의 왕자로서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함빡 안기는 아들딸을 얼마나 그리워했겠습니까? 그 아들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그러한 아버지 앞에 나아가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내 자신의 초라함과 부족함과 불충스러움을 생각하면 몸둘 바를 모르겠고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죄의 보따리를 짊어진, 죄의 주식회사와 같은 자신이니 우리는 천상에 진 빚이 얼마나 큰 줄 알아야 합니다. 천번 만번 죽어 제물이 되더라도 또다시 살아나서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야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요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시던 그 심정을 알아야만 됩니다. 온 우주가 소용돌이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전세계가 멸망 속으로 매도되려는 찰나에 놓여있는 그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까딱 잘못하면 모든 역사가 어긋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한 사람 비참하게 죽는 것은 괜찮지만, 4천년간 그렇게 고대하고 수고하신 하나님을 2천년이나 더 고생시켜 드려야 할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것이 낫다는 그런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던고? 회개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신부가 되겠다고 하니, 마치 강도 같은 심보입니다.

7년대환난

통일교회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 하면 이 험난한 길을 돌파하느냐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길에는 수많은 탕감조건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담 가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역대의 엉클어진 사연들을 풀어 나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선생님을 볼 때,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처량하고 간절했겠는가, 또한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어서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때가 몇백 번, 몇천 번이 있었는지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선생님이 그러한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하나님은 어떠했겠습니까? 6천년을 싸워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통일교회는 이러한 원천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헤치고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대할 수 없는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앞을 보면 무서워서 가슴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파열되는, 극한 자리에 부딪히는 그런 무서움을 느끼는 자리에 뿌리를 두고 증거하는데, 이래도 우리가 이단이란 말입니까? 누가 승리하는가 어디 두고 봅시다.

선생님은 여러분과 같은 20대 청춘 시절에 남들이 편안히 살고 있는 생활을 대했을 때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했는데, 그런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통일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뜻을 위했고,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까? 선생님이 청춘 시절의 마음으로 여러분을 비판하면 용서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하나님 앞에 간곡히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사연이라든가, 세계를 놓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사연들을 마지막 그날을 보내면서 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가슴 아픈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1960년대의 40고개를 어떻게 넘느냐? 원리가 가르쳐 주는 40고개를 어떻게 넘어야 하느냐? 예수님은 33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이후 40고개가 되는 7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세상에 7년대환난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개를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야곱이 거쳐 나간 복귀노정과 역사노정에 수많은 선조들의 엉클어진 탕감의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그 길에는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습니다. ‘따르겠다’던 그런 사람들은 가는 길 앞에 짐이 되었고, 가시를 박아 놓았으며, 돌짝밭을 만들어 놓았지, 거기에서 도움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애를 바쳐 21년을 지내고 보니 꿈같은 사연이 얽어져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 민망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래도 그 길 고비 고비에 그러한 사연과 그런 어려운 자리에 부딪힐 때마다, 한번밖에 없는 그날이 오게 되어 있으니 그날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참아 나온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을 상봉할 수 있고, 예수님과 성신도 상봉할 수 있고, 천군천사들도 상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는 승리의 개가를 올려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겠다는 마음의 기준,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갖은 핍박, 갖은 수고, 갖은 역경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 마음이 없었던들 선생님이 여기까지 이 길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 사람들은 축복이란 말, 성혼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난장판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는 좋다고 합시다. 통일교회에서 참부모 앞에 여러분은 아들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줬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그것을 안 가르쳐 주었더라면 선생님은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서도 달려드는 여러분이 비록 병신일지라도 선생님에게는 자식입니다. 자식은 다 자식이므로 눈도, 코도 없는 병신 같은 자식일지라도 부모는 먹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지가 없어 두루뭉술하더라도 숨만 쉬고 그 형태만 남아 있어서, 살아 있는 흔적만 있어도 자식은 자식입니다. 여러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또 무조건 입만 벌리고 부모에게 상속을 받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참부모라는 입장은 그런 것을 해결해 주어야 할 도리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입장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 특히 축복가정들을 보면 세상 인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탄을 추방하려면

이제 소원성취의 그 한 날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을 위해 1960년도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해원성사를 해 드리고,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해 드리고, 또 만민의 해원성사를 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해원성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려면 예수님이 세우고자 했던 탕감조건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왜 그렇게 몰리고 쫓겨다녀야 했던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 제자가 잘못했고, 또 열두 제자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철옹성같이 버티며 자기들이 먼저 죽겠다고 싸우는 무리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안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12제자를 중심삼은 70문도와 120문도까지 전부 탕감복귀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도를 중심으로 하여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7년노정의 마지막 고비를 중심삼아서 430쌍을 축복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660 이상의 축복 수(數)를 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6수는 사탄 수이며, 그 위치는 하나님 앞에서 원수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 6수를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성가정까지 모두 합해 760가정이 7년 기간 내에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역사가들이 1960년을 새역사가 전개된 해라고 말했느냐?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통일교회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공산당들이 서로 투쟁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섭리적으로 보면 우리가 3년 고개를 넘고 4년 고개를 넘어가는 중에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6년에 중공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대혼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시키는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먼저 세 명의 믿음의 자녀를 찾아 세워라 합니다. 그리고 열두 사람을 전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절대적 요건입니다. 이 믿음의 자녀 세 명이 축복을 받으면 여덟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의 여덟 식구, 노아가정의 여덟 식구의 가정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 기준 위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지 않으면 사탄을 완전히 추방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어디서부터 침범해 왔습니까? 우리는 해와부터 침범했다고 알고 있으나 해와에게만 침범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에게, 즉 아담가정에서부터 침범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침입한 사탄을 추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탕감복귀 원칙을 놓고 볼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개인으로서 사탄을 추방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개인으로서는 사탄을 추방하지 못합니다.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이지요? 더구나 사탄이 아담의 아들딸에게까지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사탄을 추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완전 굴복시키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은 완성이고, 완성은 사탄과는 영별(永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고 충성을 다했다 하더라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겠습니까? 그것은 가는 도중에 사탄의 참소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러분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낙원에까지 가서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삼위신이 사탄세계를 추방하기 위해서 공격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넘어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우리는 살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보다 우리가 낫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은 12제자를 거느렸지만 종족과 민족을 편성하지 못하였고, 12제자를 규합하여 끌고 와야 할 세 제자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탄세계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나라에서 몰리고 교회에서 몰리고 가정에서 몰리고 제자들에게 몰리고 끝내는 세 제자에게까지 몰렸으니, 맨 밑창의 사탄 앞에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는 것이 소원이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인류의 소원까지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소원이 연결되어 있는 중심 포인트가 누구였느냐 하면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뜻을 이루지 못하여 남긴 한이 천상의 한이 되었고, 또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2천년이나 연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면, 먼저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이고, 다음엔 인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한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공인하실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가 3년 공생애노정에서 세 제자를 잃어 버렸으니, 우리는 3년 공적 노정 위에서 믿음의 세 자녀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몰리고 쫓기고 핍박받는 자리에서 잃어버렸으니, 몰리고 쫓기고 핍박받는 자리에서 다시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통일교회가 가고 있는 7년노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공세를 받으며 이 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민족 전부에게, 교회 전부에게 핍박받는 환경에서 죽어 갔지만, 우리는 죽음의 그 찰나, 그 순간을 넘어서서 거기서부터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내려가야 예수님이 찾아 세우려던 제자들과 같은 아들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해서 40일 동안에 제자들을 다시 규합해서 재차 영적 이스라엘을 편성하였으나, 이제는 실체의 제자형, 종족형, 민족형을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 각자가 가야 할 노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우리가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포부가 큽니다. 6천년 역사를 대표한 세계와 민족을 걸어 놓고 모든 분야에서 탕감조건을 세우고 사탄 참소권에서 뒤넘이쳐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생님이 제물 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죽지 않고 부활의 권을 가진 다음 세 제자를 세워 아들딸의 인연을 맺은 것이 1960년의 성혼식입니다.

부모와 처자를 사랑해 보지 못한 선생님

3년 공생애노정은 절대 필요합니다. 이 노정을 걷지 않고 축복을 받게 되면, 외상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영계에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류 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이 길을 거쳐가지 못한 사람은 아들딸을 낳아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선생님은 성진이를 제대로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1960년의 성혼식을 맞기 전까지는 학비도 못 대 주고, 책 한 권도 사 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보아서 잘 알 것입니다. 이 얼마나 목석같은 사람이며 무지몽매한 사람입니까? 아버지가 자식들을 대해서 그래야 됩니까? 그것은 육신의 아들딸보다 믿음의 아들딸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딸 위주로 생각하는 입장에 있었다면, 그 아들딸을 이 땅에 보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딸을 희생시켜서 만민을 구하려 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선의 법도를 세우는 도리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선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지극히 악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러한 하나님의 도리와 뜻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 즉 공적인 책임을 짊어진 사람은 악한 세계의 사람들을 자기의 자녀보다 더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 하나님으로부터 공인 받은 후에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여야 사탄에게 참소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세계에서 승리한 후에는 사탄세계의 사람들을 사랑한 것 이상으로 자기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잡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면 사탄 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본연의 세계로 복귀된 아들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외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권내의 책임을 종결짓기 위하여 그 권내의 입장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뜻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입장에 처해 있었기에 부모와 처자를 사랑 한 번 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늘 앞에 둘도 없는 원리요, 천상천하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화의 진가를 지니고 있는 천적인 선물을 받았지만, 아버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말씀은 이렇고 저 말씀은 저렇다고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또 형님은 영적인 세계에서 자기 동생이 최고이고 육적인 세계에서도 최고라는 것을 알고 선생님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것은 기도해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형님에게도 내가 어떤 사명과 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부모, 형제들로부터 불신을 당했던 것에 비하면 선생님은 승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 어머니도 선생님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어머니 문중(門中)에서도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외가 분들에게 원리 말씀을 한 번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와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선생님이 서지 않고는 그것을 탕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 형제들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일가친척들로부터도 별의별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그들에게도 선생님의 소신을 피력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일가 친척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머나먼 외지의 사람들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한 사람밖에 없는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정성과 성의를 다 쏟으며 복귀의 터전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1960년대를 중심삼고 맞추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고개를 넘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 자식, 친척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소생․장성․완성에 있어서 장성이 문제

그러니까 앞으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믿음의 아들딸이 성혼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반과 터전을 닦아 자기의 손을 얹어 축복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마음의 기도로써라도 축복을 해 주었다는 터전을 닦아 놓아야만 자기가 축복을 받았다는 조건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출생한 아들딸이라야 비로소 그 아들딸을 품고 젖 먹이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도 모르면서 자기의 아들딸만 귀한 줄 알고 있으니….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가는 원리의 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길을 갔습니다. 갔어요, 안 갔어요? 그 길을 가는 데는 용서가 없습니다. 믿음의 세 아들을 택하여 그 상대를 결정한 후에 축복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거기에 천지가 함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했으니 우주가 돌아가는 거지요.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 성장 과정 중에서 언제나 장성이 문제입니다. 소생․장성․완성에 직선을 그으면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장성인데, 언제든지 이것을 중심삼고 탕감합니다. 선으로 그으면 직선이지만 존재세계의 사방은 입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중앙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어찌하여 언제나 둘째 수가 문제되느냐? 그것은 둘째가 소생․장성․완성의 천리법도에 있어서 중앙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중앙을 점령하면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중앙을 중심삼고 사탄과 판가리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는 가인, 아벨, 셋의 세 아들 중 둘째 아들 아벨을 중심삼고 섭리가 이어졌고, 노아가정에서는 셈, 함, 야벳 중 함을 중심삼고 섭리가 이어져 나왔습니다. 아브라함가정을 볼 때도 1대의 아브라함의 3제물 실수로 말미암아 독자 이삭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우며 번제를 드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삼고 보면 첫째 아들은 아담, 둘째 아들은 예수, 셋째 아들이 재림주입니다. 그 중에서 둘째 아들인 예수님을 중심삼고 판가리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항상 둘째 아들을 중심삼고 섭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는 무엇이 타락했느냐? 소생적인 아담가정이 타락했으니 노아가정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탄과 판가리 싸움을 할 수 있는 제1차적인 기준이 노아가정인 것입니다. 또 제2차적인 복귀의 출발기준과 심판의 출발기준 전부는 아브라함 가정입니다. 이것은 아담․노아․아브라함, 즉 소생․장성․완성의 3대이고, 믿음의 조상을 찾아가는 데는 3대입니다. 아담이 믿음의 조상이 못되었기 때문에 노아를 세웠고, 노아도 둘째 아들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깨져 나갔기 때문에 연장되어 오다가 아브라함에 이르러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36가정은 잃어버린 36대를 대신한 조상

아담가정에서의 가인과 아벨의 싸움, 노아가정에서의 셈과 함의 싸움, 아브라함가정에서의 에서와 야곱의 싸움이 오늘날까지 연장되었습니다.

그러면 복귀역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에서부터 노아, 아브라함까지의 역사가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인류의 역사는 36대입니다. 이 36대가 인류의 조상이 되어 있습니다. 이 36대를 횡적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책임을 짊어지고 이 땅에 온 사람들이 역사적인 모든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종적으로 쭉 내려와 가지고 탕감을 해서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탕감하여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원리를 볼 때도 아담가정에서부터 풀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해 오는데 제일 중심 문제는 무엇이냐? 처음에 노아를 중심삼고 했기 때문에 노아의 세 아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우주를 중심삼고 제1차로 심판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아담과 예수와 재림주가 만난 것입니다. 예수는 이 기준을 역사시대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노아의 세 아들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아의 세 아들을 찾아 세웠다는 기준이 결정되면 어떻게 되느냐? 아담가정을 복귀했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는 이 가정을 세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노아의 세 아들이 결정되면 역사적 과정으로 올라가서 그들이 조상으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조상을 결정해서 심판권 내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승리권을 마련했다 할진대는 노아의 후손들까지도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권내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부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타락은 과거․현재․미래에서 현재를 중심삼고 과거가 잘려 나가고 미래가 잘려진 것입니다. 그것을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열매를 맺기 위한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노아가정이 문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도 성혼식을 하기 전에 노아의 세 아들을 찾아야 된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세 아들을 찾은 후에는 12제자를 찾아야 합니다. 세 아들을 합한 12사람을 찾아 축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10대와 셈과 함을 합하여 12대(代)를 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됨으로 말미암아 과거와 현재가 갈라졌던 것이, 즉 영계와 지상이 갈라졌던 것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열둘이 찾아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미래의 승리적 실체가 되기 때문에 재림적인 부활의 실체, 즉 복귀된 형(型)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정 중의 열두 가정은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같이 자기들 멋대로 결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열두 가정 전부는 기혼가정들입니다. 기혼가정들이 축복을 받아 이 땅에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자기들 멋대로 결혼해서 살다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이 지상과 일체화되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영계에 있는 모든 선조들이 지상에 재림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영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영통하면 춤추고 야단이지요.

그다음에는 노아가정에서부터 아브라함가정까지 실수하여 잃어버린 것을 찾은 것입니다. 세 아들을 찾음으로써 노아가정이 실수한 것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대는 야곱가정에서 끝나는데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가 이대로 올라서서 모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결혼한 기혼가정이 축복을 받음으로써 그러한 가정을 다시 찾았다는 조건이 세워졌기 때문에 그렇게 결혼해서 영계에 간 영인들이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진 것입니다. 다음에는 약혼단계에까지 와 있는 처녀 총각들을 축복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과 성신이 약혼 단계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뜻을 바라는 내적인 심정적 기준이 깊이 있게 세워져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처녀 총각을 중심삼고 자기 시대 이상의 타락한 모든 것들을 전부 다 꿰어 놓고 대표로서 탕감하기 위해 36가정 축복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36가정은 잃어버린 36대를 대신한 조상인 것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긴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조상들이 실수로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린 것을 추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축복입니다. 축복이라는 승리적인 조건을 세워 사탄을 추방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 해와 둘에게 침범했으므로 우리가 축복가정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과거 모든 선조들의 실수를 탕감하고 지상에서 부활 승리권을 향한 출발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영계에서 참소해 온 사탄의 문을 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러한 내용을 다 알아 가지고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담이 되어야 하고, 노아가 되어야 하고, 아브라함이 되어 제물 드리는 자리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정적인 기대를 상속 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런 일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36대(代)가 실패했던 것을 복귀한 기준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조상이 된 것인데, 조상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싸움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해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로부터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이렇게 망쳐 놓았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그 후손들이 전부 싸움을 하는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36대의 아들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싸우지 않고 하나되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가인 아벨로 분립한 수, 즉 36을 2배 한 수인 72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이 72가정이 세워짐으로써 가인과 아벨이 싸우지 않고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역사적인 선조의 터전을 닦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을 방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72가정이 얼마나 심각한 자리에 서 있는 줄 압니까?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천지가 깜깜했으니,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통일교회의 축복(36가정)도 깜깜한 밤중에 해야 했기 때문에 문을 닫고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그때 ‘내 아들 내 놓아라. 내 남편 내놓아라. 남의 아들딸 데려다가 무엇 하느냐?’ 등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자기 자식 시집 장가보내는 것은 부모 마음인데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단독적으로 보낸다고 하니 아우성입니다. 바로 사탄세계의 아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탄이 빼앗아 갔기 때문에 선생님이 다시 빼앗아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잃어버린 아들딸을 다시 찾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식을 빨리 마쳤던 것입니다. 탕감복귀역사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통일교회 원리를 보면 하나님이 통일교회와 함께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며 죽겠다고 애걸복걸하던 그 부모들이 요즘에 와서는 그때에 합동결혼은 잘못했지만 사위는 잘 얻었다고 말합니다. 결혼을 잘못했는데 사위를 잘 얻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요즈음 나만 보면 그런 말을 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전화위복의 길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예수님을 아버지로 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보고 ‘야 이놈아, 너 어디에 가면 나에게 알리지도 않아?’ 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시나이까?’ 해야 되는데 그걸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원리를 알고 그 내용을 깊이 알아보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누구보다 못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는 가인 아벨의 문제입니다. 여기서부터 횡적으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또 여기에 어려움도 따라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딸들 합동결혼을 하는 것이 통일교회 원칙이기 때문에 승낙을 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일러주는 것입니다. 물론 탕감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많이 먹었지만 그 아들딸을 데려다 망하게 하지 않았고 결코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지상에서 완전히 맺어졌기 때문에 그 터전 위에서는 사탄이 반대해도 그것 모두 전화위복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 알고 있지요? 통일교회의 가는 길에는 전화위복이란 명사가 붙어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한때는 통일교회에 가면 유의해야 되느니, 뭐 어떻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의혹들이 벗겨졌어요, 안 벗겨졌어요?

예수님이 70문도를 파송하면서 세우고자 하셨던 세계적 이념을 지상에서 세울 수 있는 기준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70문도와 72가정이 연결 지어졌지요? 12제자를 택한 것은 아담부터 잃어버린 36대를 살리기 위한 것인데, 12제자를 잃어버리고 70문도까지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조상도 잃고 아들딸까지 잃어버렸으니, 어디 가서 호소하겠습니까? 그래서 부활한 후에 120문도를 중심삼고 세계 기대를 위해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120수는 무슨 수냐? 12수는 소생을 상징하는 수이고, 70수는 장성을 상징하는 수이며, 120수는 미래의 세계의 국가들을 대표하는 수입니다.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아 결성된 유엔(UN)에 120개 국가가 가입하게 되면 끝날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123개국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1967년의 고비를 중심삼고 124개국이 가입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124가정의 수와 124개국의 수가 모두 다 들어맞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통일교회 원리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120문도의 120수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세계 각국의 군주의 수입니다. 그러므로 유엔에 120개국이 가입하게 되면 끝날이 다 되어 가는 것입니다.

70여 개국이 6수에서부터 해방의 출발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6수에서부터 사람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맞추지 앉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124수를 맞게 되어서 우리 통일교회가 124가정 성혼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 도>

아버님, 기나긴 역사노정 위에 소망의 한때를 세우시어서 전체의 탕감복귀를 권고하시고 요구하시던 아버지의 섭리의 뜻이 이 한국 강토와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외로운 모습들을 불러 모으시사 21년 역로의 길로 몰아 넣으셨던 아버지이셨사옵고, 7년노정을 중심삼고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준비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사명과 아버지의 역할을 완수하시기 위해 지금까지 숱한 곡절과 숱한 사연을 남기신 것을 아옵니다.

1967년을 보내면서, 아버지의 수고를 다시 한 번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면서, 아버지, 이 시간 21년노정과 7년노정을, 지나간 과거 시절을 다시 회상하면서 1968년, 제2차 7년노정의 첫해를 맞이하게 되었나이다.

새로운 섭리의 뜻이…. 아버지여, 저희들을 향하여 역사적인 고비 길을 더듬어 오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이제 저희들이 힘찬 모습을 하여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제 새로운 7년노정에서 민족적인 운명의 판가리를 지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세계적인 사명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요구가 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불초한 모습들이 아버지 앞에 사명을 완수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슬픔만이 앞섭니다. 동시에 아버지 앞에 다시 수고의 길을 가 주시기를 바라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나 이미 떠난 걸음이기에, 원수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에, 승리의 기치를 드높이 들어 아버지의 영광의 길 위에 찬양을 드리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은 금년을 맞이하여 또다시 마음으로 새로운 결심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앞에 참다이 효도 못 한 것을 후회하며 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대신하여 저희들이 충성을 다하지 못하여 후회되는 것이 있사올진대, 다시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을 부여안고, 삼천리반도 위에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하늘의 용자의 모습을 갖추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 그 가운데 심판장이 되시는데, 얼마나 오른팔을 들어 우리가 승리했다고 선포하시고 싶어하시고, 우리가 찬양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얼마나 마음으로 고대하시고 계신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새벽 이제 새로 오는 1968년의 새아침이 시작되었사오니, 이날부터 아버님의 소원이 풀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해원성사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이 해가 되고, 7년노정이 새로이 출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이 쌍수 합장하여 이곳을 향해 아버지를 부르고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소원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그들의 염원이 당신의 염원과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또다시 당신으로 하여금 뜻하신 바의 결정적인 판결을 내리게 해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얼마나 면목없는 지희들의 모습이었사옵나이까? 하오나 아버지의 수고의 행로 앞에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수고시키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게 해 주시고, 모든 것을 희생시켜 달음질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 이 시간 멀리서 이곳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는 무리도 있사옵니다.

외로운 역사의 길을 더듬어 오면서, 남이 모르는 핍박의 도상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늘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오던 당신의 아들딸에게 새해를 맞이하고 한해를 보내는 이 자리이오니,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어떤 민족이든, 아버지, 직접 주관해 주시어서 하늘의 승리의 권한을 나타내 주시옵고, 살아 계신 아버지의 존엄한 위신을 나타내시옵소서. 아버지의 아들딸 된 증거로 그들을 직접 도우시어서 이제부터 이 7년 동안에 당신의 승리의 판도가 온 세계적으로 널리 확대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의 승리의 인연이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모든 환경과 그들과 인연 된 전민족들 위에 친히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옛날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시절부터 잃어버린 하늘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명상을 하였사오며, 얼마나 정성을 들였사오며, 얼마나 기도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소망의 한때를 저희들이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억천만 성도들이 고대하던 사명의 터전이 오늘날 저희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분담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최고의 보람 있는 자아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해 주시고, 이제 금후에 저희의 사명분야에 있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새벽에 아버지,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을 해원성사시켜 주시옵고,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뭇 선지선열들이 이 땅 위의 후손들에게 직접적으로 역사할 수 있는 선조의 인연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삼천만 민족을 복귀하고 전체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서 세계를 복귀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민족 가운데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가운데 아직까지 뜻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들 앞에 광명의 횃불을 들어가지고 새로운 시대의 사명자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날 이 시간부터 아버지, 허락하신 새로운 약속의 세계를 향하여 제2차의 새로운 각오로 이 길을 출발하고자 하오니, 아버지, 힘껏 사랑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은혜의 손길로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결정을 볼 수 있는 이번 제2차 노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 전체를 맡기었사오니, 새해에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통일의 족속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세우신 당신의 축복가정에서 태어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 앞에 이 후대에 생명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해 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의 일을 처리하시옵고, 하늘과 땅을 결속시킬 수 있는 모습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 모아 기도하는 전체 식구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삼천만이 거국적으로 아버지 뜻 앞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날부터 이제 1968년을 시작하오니 이 노정에서, 아버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슬픔 많았던 과거의 역사를 씻어 버리고 기쁨의 해로서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무리들이 새로운 힘을 받고, 생명의 인연을 두터이 느끼면서 아버지의 아들딸 된 것을 감사히 여길 줄 아는 승리의 1968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 새벽, 아버지, 허락하신 약속과 더불어 저희들이 새로운 결의를 하고 다짐하였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겨 주신 승리의 터전을 향하여 저희들은 소망을 갖고 달려가기를 약속하오니,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새해 벽두에 참부모의 성호를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제1차 7년노정이 끝나면 제2차 7년노정을 다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누차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까지 고대해 오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피 어린 투쟁을 해 온 제1차 7년노정과는 달리 시대적인 차이에 의해, 사명적인 분담에 있어서 현격하게 다른 양상을 띠는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는 때입니다.

제1차 7년노정에 대한 회한(悔恨)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이미 뜻을 안 사람들입니다. 뜻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고 투쟁의 노정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이 해에도 하나님의 피와 살의 인연을 가져서 이 시대적인 사명을 책임지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자체들인 것을 더욱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과거지사를 거울 삼아 뜻 앞에 있어서 새롭게 결의를 하는 마음이 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이 7년노정에 6천년 죄악의 역사를 종결지으시려던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2천년 전 예수님 이후 기독교가 피 어린 순교의 제단을 쌓으며 남아진 섭리의 인연을 종결짓기에 수고해 나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물론이거니와 자고로 뜻을 위해 이 땅에 왔다가 한때의 한을 남긴 채 사탄세계를 마음으로만 디디고 뜻을 세워 맹세하면서 희생의 자리, 혹은 죽음의 자리로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 7년 대환난을 최후의 결정적인 시기로 소망해 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의 요구는 한 시대와 한 기점에 집중되어 사탄과 하나님과의 판가리 싸움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러면 이 싸움을 종결시킬 사명을 책임지고 나와야 할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이 땅 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삼천만 민족 전부도 아닙니다. 그들이 누구라는 것은 세계 인류도 모르고 있고 이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민족 가운데에서 몰리고 쫓김을 받던 통일의 무리가 이런 중차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에 지금까지 우리와 더불어 험로를 개척하시고 동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우리만이 지닌 특권이요,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입니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이것을 느낄 수 있는 보람 있는 기간이 7년노정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7년노정이었기에 선생님은 여러분 각자 각자가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충효의 도리를 세울 때, 영광된 승리의 자리, 혹은 호화스러운 자리에서 충효의 도리를 세우자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피와 눈물과 죽음이 교차되는 자리,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 최후의 고비 길에서 7년노정을 가자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눈물이 나오면 더 처참한 눈물을 흘리겠다고 각오하고, 죽음 길에 처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품지 못했던 역사적인 한을 품자고 각오하면서 7년을 더듬어 나온 것입니다. 그 길을 회고해 보니 눈물어린 사연이 많았습니다.

남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길을 우리는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한 서러움보다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며 안팎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서러움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지난날 책임 다하지 못한 우리의 입장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가를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서럽게 했던 사실로 말미암아 이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인도되어 간 것도 아니요, 또한 이 세계가 하늘권 내로 들어가게 된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옷깃을 가다듬고 이 민족과 세계 인류 앞에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다시 하나님을 모셔들여 수고의 길을 재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억울하고 분한 사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수고의 길도 지루한 길이었지만, 오늘날 이 7년노정의 뒤넘이치는 탕감의 고비 길에서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수고로움이 더 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욱이 제1차 7년노정으로써 섭리를 종결짓지 못하고 민족적인 한을 지닌 채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걷게 된 사실을 우리들은 엄숙한 심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새해에는 자기가 하지 못한 책임을 다시 한 번 정비하고 새롭게 시작되는 제2차 7년노정에서는 아버지 앞에 보람 있는 제물을 바치겠다고 심중에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의 의의(意義)

지난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21년노정의 종국을 마련하기 위해서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지난 7년노정에서 여러분들은 개인으로 참가했었지만, 세계사적인 의의로 본다면 이는 역사적인 수많은 인간들을 대표해서 참석했던 것입니다. 그 기간 내에서 여러분들이 들인 정성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천추만대에 땅의 인연으로 남아질 것이며, 천상에 가서는 수많은 선한 영들이 찬사를 바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기간은 지구상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몇 분 전에 지나간 1967년으로 마감을 지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뜻을 위하여 참다운 심정으로 온갖 지성을 다해야만 합니다.

역사가 지니고 있는 한을 알게 되면 통분할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지나간 시대의 사연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역사의 한을 풀기 위해 삼천리반도에서 통일의 기치를 들고 나온 우리들은 지금까지 핍박과 비난의 화살을 받으며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몰리고 쫓김을 받더라도 자신을 내적으로 성장시킴과 동시에 외적으로 정비하는 데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대한의 삼천리반도 그 어디에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 어떠한 총칼로도 막을 수 없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다는 결심이 천적인 기준에서 볼 때 이런 엄청난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아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지난날의 힘들었던 그 길도 보람을 가지고 감당했지만 이제는 남아 있는 내적인 분야를 위해서 민족 전체를 걸어 놓고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을 정비하여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해야 하는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이요, 여러분들이 이 사명을 완수하도록 시키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선생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금년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길을 가야 되겠느냐? 이것이 새해 벽두부터 전국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에게 권고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인 것입니다. 금년에는 평화를 선도하는 전면적인 공세를 취하자, 즉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제1차 7년노정에 있어서 1차년도의 표어는 ‘생애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자’였습니다. 2차년도에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였고, 3차년도는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였으며, 그다음의 4차년도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였습니다.

이러한 표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 그 내용이 어떤 내용입니까?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인간은 사탄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탕감의 인연을 갖추어 사탄세계 앞에 분별되는 입장에 서서 역사적인 모든 죄악을 탕감복귀하여 승리하자는 것, 즉 개인복귀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소망입니다. 개인복귀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녀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이냐?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모습을 이 땅 위에 실천하여 실체적으로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개인에서부터 국가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승리적인 주관권을 갖추어서 승리적인 주관자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7년간의 목적이었습니다.

전면적 진격을 위한 준비

금년은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활동해야 되겠습니다. 이때에 문제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 전체 식구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활동하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활동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내적 정비를 공고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활동할 때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목표를 스스로 달성할 수 있도록 내적인 모든 사연을 정비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전면적인 진격을 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전반적인 분야에 내적인 정비를 빨리 서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내적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앙을 중심삼고 볼 때 말씀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실체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하며, 심정을 중심삼고도 뭇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번식을 일으킬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뜻을 중심삼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내적 정비를 해야 합니다. 완전히 갖추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리 말씀을 공부해야 됩니다. 물론 지난 7년노정에 있어서 정상적인 길을 밟아 온 통일교회 식구라면 원리시험에 합격했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무조건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말씀을 통하여 주체성을 갖춘 실체, 즉 말씀의 주체가 되어 창조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원리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심정적 기준이나 인격적 기준을 찾지 못하고 말씀으로만 일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면 그 말씀을 자기의 말씀으로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리를 말하되 그 원리가 어떠한 스승이 가르쳐 준 원리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뼈와 살을 통하여 생명의 인연을 갖춘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 본연의 주체성을 갖고 말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그 말씀으로 인연되어진 사람들이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중심삼은 실체적인 인격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탄과 대결하여 승리해야 됩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실체적인 인격을 갖춘 후에 남은 문제는 무엇이냐?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을 어디에서 굴복시킬 것인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나 자기가 활동하는 직장에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최고의 사망이 깃드는 자리에서 사탄과 판가리 싸움을 하여 굴복시켜야만 됩니다. 그것도 개인에게 참소하는 사탄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참소하는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개인적인 입장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남긴 한을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국가적 기준에 있는 사탄과 대결하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적 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를 대신하는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고의 국가적인 시련 도상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오면서 국가적으로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교계에서는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까지 핍박을 받지 않고는 국가적으로 승리한 인격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에 많은 시련이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진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하는 데에는 진리와 일체화되어 말씀을 해야 됩니다. 말씀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탄도 ‘옳소이다.’ 하고 공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실증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적 정비를 하라

그러면 실증적인 조건을 지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침범은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는 데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켜 심판할 수 있는 제일의 기준은 하나님의 심정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정을 다시 유발시키는 데에서 승리의 터전이 마련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는 말씀심판․인격심판․심정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과 인격과 심정이 심판의 기준인데, 그 기준이 어느 단계여야 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 단계의 기준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말씀을 다시 찾았다는 자리에서 승리의 기치를 가지고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씀과 실체를 이루었다고 하는 자리에도 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 받았다고 하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단계보다 더 차원 높은 단계에서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완성시대의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완성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왔습니다. 완성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사탄이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던 그 기준을 청산할 수 없기에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 인류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그런 자리에 나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가 나가자는 것입니다.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말씀은 특권적인 말씀입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을 통한 실천은 특권적인 실천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맺어진 심정의 인연은 역사상에 없었던, 천지를 연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심정 기준보다 높은 심정에서 새로운 세계가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이 목표하고 나가는 기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각자는 내적 정비를 완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완결된 결과의 자리에 서게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래는 이러한 자리에 입각해서 오늘부터 총진군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적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는 아무리 진군한다 하더라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으며, 또 패자의 서러움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쉬지 않고 활동하려면 이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내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목표 의식을 확립하라

그다음에는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적 정비가 아무리 완결되었다 하더라도 목표 없이 갈팡질팡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뚜렷한 목표를 세워 그 목표가 지향하는 길이 어떻고 또 목표가 이루어지면 그것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1968년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면적인 전진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중심삼고 진격해야 합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목표는 교계가 될지도 모릅니다. 통일교회는 일반 기성교회를 통해서 넘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독교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대한민국, 배달민족 전체를 하나님 앞에 복귀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우리에게 짊어지워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먹고 자고 활동한다는 목표 의식이 철두철미하게 확립되어 있어야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목표 의식을 철두철미하게 가지고 정성들이며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기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노력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내적 정비를 더욱 공고히 한 후에 정성들이며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넘어 갈보리 산상을 향해 가시던 행로를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과 같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이 여러분의 내심 앞에 확립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예수님의 심정을 부여안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 나라와 유대교단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사랑하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가정을 잊을 수 없었고, 자기를 따르던 수많은 군중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생각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목표를 수행하면 제아무리 원수들이 핍박을 하고 제아무리 어려운 길에 부딪히더라도 여러분들은 그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부터는 우리들이 가야 할 분야가 달라졌습니다. 국가적인 사명도 감당해야 되고, 종족적인 사명도 감당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을 복귀시키는 일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산치하의 북한이 남침의 기회를 엿보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팎으로 모든 정세에 입각해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섭리와 결부시켜 이것을 탕감시켜 놓고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세부적인 문제는 차후에 따로 지시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복귀시키느냐 하는 목표를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유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워야 합니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응시하면서 원수들이 출몰하는 근거지를 기필코 파헤쳐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하는 작전과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 가며 맞고 빼앗아 오고 밟히면서 빼앗는 것이 우리의 작전과 방법입니다. 그 작전 결과 우리는 패자의 서러운 자리를 모면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것을 실천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 체험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작전을 쉬지 말고 전개해야 합니다. 시간을 다투어 가며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 분야가 얼마나 많은지 몸이 백만 천만이 있어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투철한 목적의식을 갖고 총진군할 것을 여러분들이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가실 때에 지녔던 그 간곡한 심정을 반드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밟고 넘어가기를 결의하던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목표의식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패자의 서러움을 미리 느껴라

만일 우리가 실패하는 날에는, 즉 목적달성을 하지 못하는 날에는 패자의 서러움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부를 수행한다는 목적을 향해 가다가 중도에서 깨져 패자가 되어 서러움을 당하는 것보다는 미리 패자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리 패자의 서러움을 느껴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3년 공생애노정의 마지막 순간에 겟세마네 동산, 최후의 한의 기도를 드리는 자리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패한 후의 결과적인 입장에서 느끼지 말고 그 자리에 가기 전에 미리 느껴 보자는 것입니다.

패했을 때의 그 서러움이 어떻겠습니까? 패자의 입장을 예측해 봅시다. 우선 패하여 서러운 자리에 서게 되면 원수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이때의 원수는 이 시대에만 있는 원수가 아니라 역사를 유린해 온 하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요, 예수와 성신의 원수입니다.

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 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칼을 뽑고 일어난 무리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왕 칼을 뽑은 바에는 원수들을 전멸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승자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임에도 불구하고 패자의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 시간에 느껴야 합니다. 승자의 영광에 도취하는 자리를 떠나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원수요 천지의 원수를 격퇴시키기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식구들은 식구들 간에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간격을 두고 그를 비판하고 심판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아직 승리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영광의 자리, 승리의 자리에 가기까지는 아직 고난의 고개를 더 넘어야 됩니다.

만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가 타락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더라면 타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과가 이토록 참혹하고 비참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2차 7년노정의 벽두인 1968년의 연초에 서 있는 우리들도 패자의 서러움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목표 의식을 확립하고 승리의 목적을 공고히 해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패자의 서러움을 상상해 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리란 것을 알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6천년의 한에 사무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으며, 또 그들의 후손이 이렇듯 수천년을 걸어 놓고 조상을 원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예측했다면 천 만 번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타락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서 승리의 어떤 면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으로 기뻐할 것만이 아니라,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쓰라린 역경 중에 있어서도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자극제로서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고생하여 세운 가정이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무너졌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지 않은 작은 실수 하나가 예수를 십자가에 내놓아 팔게 된 동기가 되고,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동기가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이렇듯 역사상의 과거와 현재를 걸어 놓고 저울추와 같은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상상하여 그런 비참한 자리에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하여서 오늘 하루도 승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동지들의 대열에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비참한 과정 끝에 오는 성공

목적의식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되면 그 자리에서 무한한 기쁨과 통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승리의 꿈을 꾸고는 있지만 그것이 쉽게 사회에 나타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쉽게 지치고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패자의 서러움을 체험하는 입장에서 승리의 결판장을 바라보는 하늘의 용사가 되기를 다짐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출발할 때 그런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섭리 앞에 있어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최후의 담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교회의 간판 밑에서 쓰러질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천지의 그 무엇보다도 비참한 것입니다. 그 자리는 6천년의 슬픔이 한순간에 재폭발할 수 있는 자리요, 예수와 성신, 그리고 이후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 흘린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또한 역사의 고비 길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한 미덕과 선의 목적을 지향해 나오는 가운데 있어서 거둔 실적 전부가 파탄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가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한 자리이겠습니까?

영광된 자리에 있을 자신보다도 이 비참한 자리에 있을 자신이 몇 천만 배 더 두렵고, 지긋지긋하고 떨린다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은 어떠한 치열한 투쟁과 어떤 원수의 화살이 닥친다 할 때 그것을 절대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기준을 가지고 그 비참한 심정 이상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어려운 환경을 개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손발이 천개 만개가 있더라도 부족할 형편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전체를 안고 나아가 승리의 결과를 다짐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상심할 것이 아니라 패배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그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오늘 신년 벽두에 여러분은 승리에 대한 찬란한 희망에 잠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이 시간에 패자의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전체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거기에 따르는 수고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가령 인공위성을 발사한다 해도 그것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겠습니까? 그때에는 영광도 그 무엇도 없습니다. 성공의 한때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힘들고 비참한 과정을 극복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고비를 넘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목적이 성사되면 그 기쁨은 천하에서 달리 맛볼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인도 그런 고비를 넘어 맡겨진 사명을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대받으면서도 많은 일을 해 온 우리

이제 1968년부터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것을 전부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한 사명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명도 해야 됩니다. 오늘의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에 선생님은 자유당의 핍박을 받으면서 일본과 미국에 선교사를 내보내야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정부가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핍박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보내 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일본에 보내는 선교사를 밀선에 태워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법에 위반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기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선교사를 보낼 때는 자유당을 이용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오늘날 이와 같은 승리의 터전은 절대 마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1963년도 말기에도 문교부와 싸웠습니다. 그때 정부에 종교단체 등록을 신청했었는데 통일교회의 등록허가 신청을 문교부에서 각하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어엎었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알아요? 그때 이미 일본에서는 종교법인 인가를 받아냈고, 미국에서도 이미 등록을 마쳤고, 독일에서도 이미 등록을 한 뒤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문교부에 알려진 것입니다. 또 그때 우리는 그야말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지방에서 계몽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실적 앞에는 큰소리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승공활동이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비웃음을 받았습니까? 반공연맹이 있는데 통일교회가 무슨 승공활동이냐고 비웃었습니다. 세계의 절반을 삼킨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벌거숭이 몸을 해 가지고 무얼 하겠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어리석긴 누가 어리석은가 두고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만 2년도 안 되어 경찰국장이 우리를 찾아오고, 도지사가 공문을 보내어 우리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금후에 있어서도 선생님은 작전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곳에 보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사람은 어느 누구나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고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욕망과 욕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과 사명을 누구나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의 비결

그러면 책임을 지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생명과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겠다는 엄청난 해결점이 생기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 공장에서도 일을 그냥 맡겨 두었더니 본래 생산고의 3분의 1밖에 생산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상적으로 단결하기를 호소하고 내몰았더니 일주일도 안 되어 3배로 생산이 증가되었습니다. 이렇듯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자기들이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입장에 봉착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큰일난 듯 일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기가 무엇을 하든 패자의 서러움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민족적이면 민족적으로 책임지어 줄 수 있는, 자기를 증거해 줄 수 있는 동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판도를 걸어 놓은 싸움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일수록 그에게는 자기를 증거해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동맹국을 필요로 하는 것도 패자의 서러움이 어떻다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출발 당시부터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기에 에덴에서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가 그런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또다시 그런 실수를 범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패자의 서러움이 평상시에 우리에게 겨냥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 다 정복하고 나서 승리의 길로 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작전인 동시에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계획했던 모든 것이 실패하게 되어 패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큰 소망을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가 가는 길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전진에 비례해서 승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각오 밑에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필코 승리하게 됩니다. 진격을 위해서는 죽든지 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기필코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이 한 번 이기면 나는 두 번 이기고 남이 한 시간 자면 나는 반시간 자고, 남이 한끼 먹으면 나는 반 끼 먹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자본을 많이 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치 입학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같이 시간 싸움, 정신 싸움, 노력 싸움이 중요한 것입니다. 낙방한 사람들은 남보다 잠을 더 잤거나, 더 먹었거나 아무튼 남보다 한 가지라도 더 편하게 지낸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은 요즘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일어나 공장으로 갑니다. 공장에 가는 데에도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먼저 갑니다.

최대한 인내하고 나서 기도하라

이제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여러분들을 그냥 편안하게 놓아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후려갈겨서라도 내몰 생각입니다. 선생님에게는 나이 많은 사람이고, 양반이고, 고관이고, 상관없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쉴 시간이 없습니다. 뛸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뭐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가 여러분들을 승리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전도 나가라는 명령을 하게 되면 하루 아침에 모두 시내(市內)로 나가게 되는데 그거 왜 갑니까? 목적이 있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승리로 나타나지 않을 때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만사에 한번 손을 대면 반드시 선한 결과나 악한 결과, 이 둘 중의 하나로 결정됩니다.

이제 1968년을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표어는 ‘전면적인 전진’ 혹은 ‘전면적인 진격의 해’입니다. 진격이라는 말은 실감이 나는 단어입니다. 전쟁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말입니다. 진격하는 데에는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 둘 중에 하나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의 결과를 놓고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겠어요? 승리해야 되겠습니까, 패배해야 되겠습니까?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승리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렇지만 세상에는 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결과는 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을 세워서 총진격해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3천만 민족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합니다. 3천만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밟아서라도 깨울 수 있는 끈질긴 인내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한꺼번에 다 데리고 갈 수 없으니 잠자는 시간에라도 끌고 가자는 것입니다. 내 힘이 부족하니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 영계여,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개인의 목적을 위한다거나 자신의 아들딸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들딸이 망나니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 자기를 위하거나 자기 가정이나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정성으로 민족과 세계 만민을 위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내용을 다 알고 있기에 그런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천운을 탈 수 있는 자리

그러면 적은 수로써 수많은 적을 대하여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비상작전을 써야 합니다. 기습작전을 하든가 유도작전을 하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측면 작전을 하려면 힘이 세어야 됩니다. 그런데 내 힘이 부족하니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될 때 그 기도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고난 중에 전화위복을 얻는 길입니다.

맞고 난 후에 승리한 자는 승리한 후에 때릴 자가 없습니다. 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맞지 않고 승리한 자는 승리한 후에 또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좋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먼저 승리만을 요구하지 맞고 난 후에 승리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귀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맞은 다음에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쓰십니다.

힘의 비중에 있어서 그들과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어디서 보충할 것이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통일교회는 천운을 타고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의 국운이 제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의 운세가 몰아치면 그 앞에 깔리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운세가 제아무리 힘이 크다 하더라도 천운이 몰아치게 되면 세계의 운세 역시 밀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세를 대신하고 승리를 위해 천운을 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천운을 타려면 먼저 천운이 가는 길이 어떠한 곳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곳은 만민이 좋아하는 곳, 즐기고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전부가 싫어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일이든 항상 감사하고 책임을 수행하면서 영광을 하나님 앞에 돌리고 자기 스스로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사람이 천운을 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꼭 승리해야 합니다.

원수를 알고 진격해야

제1차 7년노정 첫해의 표어는 생애 중 최고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생애 중 최고의 실적을 만들자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무엇보다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7년노정의 이 표어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언제나 영속적인 표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년에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전체 요원이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활동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들의 내적 정비가 필요하고, 목적의식이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패자의 결과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승리를 다짐할 줄 아는 것이 활동하는 데 있어서 절대 요건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요건 중 첫째는 활동이요, 그다음에는 적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활동하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반대하는 무리가 생겨나는데, 그 반대하는 무리의 실체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활동하는 데는 두 종류의 적이 있습니다.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이 있습니다. 이 두 적은 항상 우리를 향하여 공동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루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을 알고, 보이는 적을 가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면적인 진격을 한다고 해도 적을 알지 못하면 습격당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날뛰다가는 들이맞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원리 말씀을 듣고 말씀이 어떻다고 하면서 은혜를 보따리째 풀어 놓고 함부로 얘기하는데, 그러다가는 오히려 걸려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걸려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까지도 걸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그 사람도 죽고 선생님도 죽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적이 무엇이고 원수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저 철부지처럼 날뛰어서는 안 되겠어요.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진격작전을 택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

진격작전에서는 수비를 하느냐 공격을 하느냐의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환경에 따라서 원수를 가려 작전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즉 저 사람은 저러니 이렇게 수비해야 되겠다든가, 혹은 이 사람은 이러니 이렇게 공격을 해야겠다든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먹혀 올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정없이 직사포를 쏘는 것입니다. 일단 공세를 취하면 한 치도 용서가 없어야 합니다.

원수 중에는 지구(地區)면 지구에 대한 원수가 있는 것이요, 지역(地域)이면 지역의 원수, 교회(敎會)면 교회의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인이면 교인의 원수가 있고, 몸뚱이면 몸뚱이의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터에 나가는 여러분은 원수를 가려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패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원수를 가려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통일교회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와 대적할 때는 간접작전으로 할 것인가, 직접작전으로 할 것인가, 또는 포위작전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우회작전으로 할 것인가 하는 이 문제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문제는 원수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라면 어떤 원수이냐? 그 원수는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녹여 먹던 원수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 원수의 지혜가 얼마나 능수능란하냐 하면,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6천년 동안이나 못 살게 한 그런 원수입니다. 그러면 그 원수가 누구냐? 사탄입니다. 사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사탄의 종족은 30억 인류의 떨거지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탄에게 진격작전을 어떻게 펼 것인가? 이것은 선생님이 먼저 시작할 것이니 여러분들도 따라 나와 어떻게 해서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인 것입니다.

삼위기대를 편성해서 합동으로 전진하라

여러분은 현재 처해 있는 자리에서 원수를 가려내야 하고, 다음에는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낮인지 밤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사가 같이하는 자리인가 은사가 떠난 자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격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협조하는 무대를 갖추어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공격하지 말고 지원병을 모집하여 함께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환경이 낮인지 밤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능력으로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탱할 수 없기에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삼위기대의 법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기대를 갖추어 가지고 합동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혼자서 전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전진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합동작전을 하면서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기대를 편성해서 전진하는 작전으로 전면적인 진격 활동을 전개하려는 것이 금년에 있어서의 선생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일할 분야는 상당히 많습니다. 초교파 운동으로부터 반공 강의, 원리연구회 활동, 그리고 경제사업과 문화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자세한 활동 지침은 따로 지시할 것이지만, 전면적인 진격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1968년을 승리의 해로서, 제2차 7년노정의 첫해를 빛나는 해로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활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내적 정비, 둘째로 목표 의식 확립, 셋째로 패자의 결과를 체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생각지도 않으면서 일만 하면 전부 다 성공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쉽사리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해 놓고서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원수를 가려내서 싸워야 합니다. 사탄이 어느 때에 공격해 올지 모르니 밤이나 낮이나 원수를 가려내는 데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원수를 향하여 진격하는 데 있어서 자기 혼자 독단으로 진격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여러분의 환경을 잘 살핀 후에 동지와 협력하여 진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리라고 봅니다.

7년 대환난과 같은 제1차 7년노정

그러면 이제 제1차 7년노정과 금년에 출발하게 되는 제2차 7년노정의 성격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년 1967년은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21년노정이 종결되는 해이자 여러분에게는 제1차 7년노정이 끝나는 해였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제1차 7년노정과 제2차 7년노정의 성격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때에 관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7년노정은 역사적인 탕감을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세 때부터 40고개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넘어야 했습니다. 성경상에는 3년 공생애노정을 걸었다고 되어 있지만 원래 가정적으로 시작한 것은 27세부터입니다. 27세부터 33세까지의 7년 동안이 제1차 7년노정이요, 34세부터 40세까지가 제2차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제2차 7년노정은 야곱이 하란에 가서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21년노정이 예수님이 가셔야 했던 노정이었습니다. 그 노정이 통일교회에서는 제3차 7년노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을 성경상에서 보면 7년 대환난과 같은 시기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7년 대환난을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끝날에는 믿음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으니 그것은 천지개벽이 되어서 다 잡아 죽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기독교인이 세계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7년 대환난을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핍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핍박은 공산당들이 하는 핍박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럼 7년 대환난이란 무엇이냐? 오시는 그분이 받는 환난입니다. 타락한 죄를 지은 자식들이 받는 것이 무슨 대환난입니까? 대(大)자가 붙어 있는 환난은 주인공 되시는 그분이 핍박받고 고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섭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땅 위에 오셔서 고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7년노정 기간에 7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됩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6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엉클어진 모든 사연을 휘감아서 일시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원리를 배웠을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는 내용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탕감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힘든 것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탕감복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큰 탕감은 하기가 지긋지긋하지만 작은 탕감은 살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4천년 만에 보내셨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오랜 역사를 거쳐서 오신 분입니다. 태어나기야 어머니 뱃속을 통해서 10개월 만에 태어나셨지만, 땅 위에 오시기 위해서 4천년 전부터 준비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인연을 지니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4천 년 역사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0세 때에 예수님이 그런 역사적인 탕감을 했어야 했는데,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그것을 하지 못했으므로 우리가 7년노정에서 그것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40일 복귀란 말을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40세 고비를 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에게 40대 고개를 바라보고 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탕감노정이 남아 있기에 다시 오시는 주님도 7년 대환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배신당한 하나님

그러면 핍박은 누구한테 받는 것인가? 남한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핍박이란 자기 집안 식구에게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분하고 원통한 것은 무엇이냐?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서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한테 당한 분함과 원통함은 천년만년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얼마나 가까웠습니까? 피가 통하고 뼈와 살이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울면 아들도 울고, 아버지가 웃으면 아들도 웃는 공동 운명의 관계였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같이 겪고, 부활의 은사도 같이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가까운 사이였는데 아들이 바로 아버지를 배반한 것입니다. 또한 천사장,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충신이 군왕을 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 역사의 출발입니다. 인류역사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때문에 끝날이 되면, 참길로 복귀하는 길에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참길이라면, 아버지가 교회에 나오면 어머니가 치고, 어머니가 나오면 아버지가 치고, 자식이 나오면 어머니가 치고, 어머니가 나오면 자식이 치는 역사가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아니고는 진짜 참길을 찾아가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나가면 가정이 파괴된다는 소문이 나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아버지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였습니다. 형제들도 나를 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쁜 의미에서 선생님을 쳤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누가 좋은 사람이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좋은 의미에서 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탕감 원칙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슴이 터지고 복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픈 사연이 왜 벌어지느냐 하면, 인간이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는 사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할 사람에게 무엇을 갖다 주느냐? 핍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가정에서 세 사람 이상의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핍박을 받게 합니다. 종적인 소생․장성․완성의 3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해 가정에서 세 사람에게 핍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형님 누나까지도 까닭 없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기백과 배포를 가진 사람이 되라

복귀역사는 차자를 중심삼고 하기 때문에 원래 세 사람이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한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형님이 있으니 차자를 중심삼고 보면 세 사람에게 반대받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하여 친척들이 반대합니다. 그러나 친척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이 친척이 아니면 못 살 바가 아니니 새로운 친척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민족을 창건하기 위해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배포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민족이 조금 반대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밀려나면 민족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민족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이 민족을 더 훌륭한 민족으로 만들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상이 그러했고 선생님의 사상이 또한 그렇습니다.

통일교회를 놓고 한때 세상이 얼마나 떠들고 난리를 쳤습니까?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밥을 잘 먹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보리밥이든 무슨 밥이든 주는 대로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단지 하나의 걱정은 내가 잘못함으로 인하여 탕감의 길에 마이너스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지 다른 것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기획과에 있던 녀석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 선생님이 들어가니까 막 삿대질을 하면서 ‘뭐 네가 통일교 문 아무개라구? 뭐 이 녀석!’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40일 후에 두고 보자, 이 자식아!’ 하고 톡 쏘아 주며 ‘이 자식, 너 뭘 해먹던 자식이냐?’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어어….’ 하길래 ‘어어가 뭐야, 이 녀석아! 죄인들 등이나 쳐먹고 사는 나쁜 녀석아!’ 하고 다시 한 번 호통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지나다니면서도 선생님을 본체만체하더니 시간이 얼마만큼 지나서는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소장까지 선생님을 만나자고 했어요. 간수들이 ‘선생님, 뭐 불편한 것 없습니까?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사다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떡을 사 달라면 떡을 사다 주고, 무슨 연락을 해 달라면 연락을 해 주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좋아서 하겠다는 것이니 죄가 아닌 것입니다.(웃음)

천하가 제아무리 반대하고 세상이 제아무리 드세다 해도 그 천하와 세상을 녹여낼 수 있고 삼킬 수 있는 기백이 있으면 그는 영웅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마 26:39) 하고 마지막 기도를 하신 것을 생각해 보면, 그처럼 심각한 자리에서 그처럼 멋진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를 걸고 넘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탕감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장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쳤기 때문에, 그것이 탕감복귀되기 위해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여러분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한 것입니다. 그 원수를 갚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껍데기를 벗겨 복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땅 위에서 승리의 왕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가정에서 불의의 심정을 통한 것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대해서도, 종족에 대해서도, 민족에 대해서도, 그리고 국가와 세계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을 동원해서 뜻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늘의 왕자의 모습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문 선생은 바로 그런 결심으로 생활해 온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심정세계

이제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심정을 시험하고 저울질하는 것에는 문제없습니다. 또한 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세계적인 것까지도 문제없습니다. 한때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한 40일간 문 선생을 집어치우려고 데모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 같은 사실인데 잘 들어 두십시오. 12사도와 예수님까지도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영계를 망치는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망치기는 누가 망친다고, 자기들이 망치고 있으면서…. 그래서 누가 참인가 거짓인가를 밝히는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40일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판결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참인지 싸워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판결을 짓기 위해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선생님은 결코 패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니까 영계도 양보하지 않고 선생님도 양보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천년만년 싸움이 계속될 것 같아 하나님께서 판결을 내려야 된다는 입장에까지 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리의 공법에 의해서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누가 이겨야 되겠어요? 여러분은 누가 이겼으면 좋겠습니까? 그 싸움에서 선생님이 이겼습니다. 틀림없이 이겼기 때문에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도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영계도 선생님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영계를 통일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지상의 통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를 것입니다. 세상에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볼 때는 어수룩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아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 엉클어져 있는 심정적인 떨거지를 무자비하게 잘라 버리고 침을 뱉을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을 치고 출발한 악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으로 엉클어진 이 세상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탕감복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탕감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한국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을 두고 보면 부정부패하는 일들이 많은데 통일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돈으로 통하는 데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수고한다고 돈 따위를 갖다 주면 선생님은 그것을 전부 돌려 보냅니다. 선거 때에 통일교회를 이용하겠다고 돈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우표 값을 제한 나머지는 반송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념적으로, 교회적으로 통일교회는 뛰어난 종교입니다. 종교적으로 통일교회, 사상적으로 통일사상, 이념적으로는 통일이념, 또한 공산주의와 유심사관을 통합할 수 있는 통일사관, 무엇으로 보나 우리가 훨씬 높은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7년노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년노정을 안 가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종적인 6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시키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6천년 역사의 사연이 대한민국 역사에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부정부패의 사연도 다 들어옵니다.

이 나라는 탕감의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부패했다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패한 일면도 때에 따라서는 유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역사의 복잡한 모든 것을 이 대한민국을 통해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악한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선한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치는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은 6천년 역사를 총탕감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담가정으로부터 지금까지 6천년 복귀역사 과정에서 비참했던 사실, 즉 하나님이 사탄과 대결하면서 제물을 세웠지만 실패했던 모든 사연들을 실체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일대(一代)에서 그 모든 것들을 세워 승리했다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평면도상의 어느 한 면에 그 조건을 갖다 맞추지 않으면 전체의 탕감기준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전 7년노정의 책임을 짊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옛날 아담이 타락하기 직전의 심정세계를 왕래해야 합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섰을 때, 민족의 배반에 몸부림치던 사연의 자리도 통과해야 됩니다. 그런 심정의 자리를 중심삼고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의 선조들이 거쳐왔던 모든 심정세계를 전부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쉬운 일 같습니까? 여러분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할 때 동정 한번 해 주었어요? 잘 입고 잘 먹고 다 제멋대로들 살았다는 거예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뭐 선생님이 고맙다고? 여러분, 생각해 봐요. 만약 선생님이 안 왔다면 어떻게 할 뻔했어요? 하나님께 큰일 날 것 아닙니까? 더욱이나 지금은 6천년 역사노정에서 심정적으로 뒤엉킨 사연을 전부 풀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의 하나님이시요, 현재의 하나님이시요, 미래의 하나님이십니다.

통일교회의 기반과 원천

여러분들 중에 처음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좋아서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까? 대개가 저기 문밖에서 삐죽이 얼굴만 내밀고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들어오려면 빨리 들어올 것이지 목만 쑥 내밀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은 한 시간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난다는 것입니다. 눈에서 불이 나게 죄어 놓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말씀이 좋기는 참 좋습니다. 무엇을 하던 사람이건, 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건 전부 끌어다가 말씀을 하면 죄다 고개를 숙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바로 합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들어 보면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가도 결국에는 옳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처음엔 다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싸움의 하나님이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어 있나 생각해 보십시오. 들어오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좀더 깊은 사실을 말해 주고 싶지만 사실을 말해 주면 다 도망갈까 봐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도망가더라도 선생님은 상관없지만 여러분들이 불쌍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7년노정은 역사노정의 모든 것을 탕감하는 기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눈물로써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가슴 막히는 탄식의 심정으로 세계를 회개시켜야 합니다.

이 민족을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가 어떻다 하더라도 이 나라를 위해 선생님 이상 눈물 흘리고 이 나라를 선생님 이상 사랑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세계를 두고도 선생님 이상 눈물 흘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선생님을 보고 싶어해 보았습니까? 어떤 할머니가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눈물 흘리다가 까무러쳤었다는데 그 할머니가 언제 이런 것을 배웠겠습니까? 선생님이 시켰습니까?

그렇게 해도 하나님께 진 빚을 다 못 갚습니다. 죽을 때까지 갚아도 그 빚은 다 못 갚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립고 선생님이 그리워 눈물을 흘려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이 그리워 눈을 뜨고 햇빛을 못 볼 만큼 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이단이고 선생님이 이단의 괴수라고 야단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겠습니까? 천법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문 선생이 있어서 통일교회의 동기와 원천이 되었고, 통일교회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세상에 어떤 권력을 잡은 사람이라도 통일교회에 와서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어합니다. 선생님의 자리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어느 누구더러 대신하라고 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선생님이나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웃음)

6천년 동안이나 서러웠던 하나님의 심정을 집중시켜 탕감 계획에 의해 한꺼번에 눈물로써 홀딱 뒤집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 역사입니다. 이 탕감복귀 역사를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7년 동안 전개해 나온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이 되는 부자관계

그러면 이 기간에 있어서 결국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수습하여 복귀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는데, 그 사명을 이 땅 위에서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부터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 이후 연장된 2천년을 포함하여 6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생전에 소원하던 기준으로 완전히 탕감복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장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기성교회 사람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바로 장가를 가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왜 장가를 가야 되느냐? 인류의 출발이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되어졌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아직껏 참된 조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참된 조상이 될 사람을 성혼시켜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 혈통의 가계를 만드는 것이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핏줄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아무리 잘 믿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왜 하셨고 아담과 해와를 왜 지으셨겠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지으셨느냐 하면 좋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좋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아담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무형의 아버지가 되고, 아담은 유형의 아버지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실체를 필요로 하셨느냐? 당신이 지으신 실체세계는 무형으로는 주관할 수 없기에 실체를 쓴 하나님이 필요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의 하나님으로 만드신 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일체가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어야 할 아담이 빵꾸를 냈으니 그것을 때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실례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마 좋아할 것입니다. 빵꾸라는 말을 쓰는 것이 실감이 나기 때문입니다. 사고니 뭐니 하는 표현보다는 빵꾸가 속된 말 같지만 자주 쓰이고 실감이 나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빵꾸가 난 것을 때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으로 때워야 되겠습니까? 타락하기 전의 아담 같은 사람으로 때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이 빵꾸 낸 자리를 때우면 타락하기 전의 아담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장가를 갈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아담이 장가를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담이 장가가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해와도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면 해와가 누구의 아내이겠습니까?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실체이므로 결국 해와는 하나님의 외적인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혈통적으로 한 몸인 아담이 해와와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번식했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탄이 어떻게 채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선생님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해 보니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즉 부자의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과의 관계인 줄 알겠지만,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자 하나님의 딸인데 그 해와를 사탄이 겁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에게 간부(姦夫)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성교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인 아담을 쫓아내고 그의 아내 해와를 타락하게 한 간부(姦夫)의 자식들입니다. 모두가 간부의 족속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존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 하면 섭섭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기도해 보면 알 것입니다. 그래, 간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기분 나빠야 합니다. 몸 안에 간부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칼로 찔러서라도 그 피를 빼내야 됩니다. 그래서 금식도 시키고, 고생도 시키고, 희생을 시키면서 들이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의 인물

여러분은 잘못 태어난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 머루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르려면 어디를 잘라야 되겠습니까? 밑둥을 완전히 잘라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한 사람은 어디를 잘라야 밑둥을 자르는 것이 되겠습니까? 발 밑을 잘라야 될까요, 목을 잘라야 될까요? 목을 잘라야 합니다.(웃음)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천번 만번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기가 무섭게 싸움을 합니다.

교회란 이런 식으로 죄 지은 후에 회개하는 회개당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많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왜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한번 지은 죄는 용서하지 못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또 사탄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회개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회개했을 것입니다. 천번 만번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리의 공법을 파탄시킨 죄는 용서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죄가 용서된다면 우주의 사랑의 법도는 근본적으로 파탄되고 사랑을 위하여 창조된 이 세계는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자체까지 침해했는데 그것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재차 수정해서, 복귀의 역사를 거쳐 타락하지 않았다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기준에 의해 사탄을 추방하고 제2의 이상적인 인물을 찾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는 데 6천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인물을 찾아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타락한 아담 해와를 제쳐 놓고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다시 찾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을 해 온 것이 6천년 역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장가를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

고장난 것은 원상태로 수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도 새 세상 되기를 원하고, 나라도 새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민족도 새 민족이 되기를 원하고, 사람도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아들도 새 아들이 되기를 원하고 딸도 새 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새 아들인 예수님이 오셨으니 새 딸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딸을 찾던 도중에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새 딸을 찾기가 왜 힘드느냐? 하나님은 아담을 본떠서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해와 때문에 아담이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해와를 다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만들어지는 해와는 예수님께 절대복종하고, 예수님과 심정적인 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일치되어, 그 이념이 내 이념이요 그 뜻이 내 뜻이요, 그 사정이 내 사정이라고 하며 모실 수 있는 신부가 등장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 그런 여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주의 소망인 어머니 한 분을 찾아 세우기 위한 예수님의 노정에는 십자가도 많고 핍박도 많았습니다.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이 벌판에서 저 벌판으로 몰리고 도망다니며 핍박받던 처량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다윗 종족의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뜻을 세우려 한 예수님이 가정에서 뜻을 세우지 못함으로 출가해서 3년 공생애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의 동생과 사촌 팔촌 등 친척들 중에서 12제자, 70장로, 120문도가 나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문중 전부가 반대했고, 이종사촌형인 세례 요한까지도 반대했습니다.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했다는 세례 요한이 그 꼴이었으니 될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하여 예수님은 1차, 2차 노정을 실패로 끝냈습니다. 그래서 제3차 노정에서 예수님은 어부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

그 모두가 신부 하나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30여세 총각이 신부 얻기가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모든 조건이 맞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은 부모 형제는 물론 3대권 내의 선조들 모두 다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촌 팔촌까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어느 한 조건이라도 안 맞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간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가정의 족보를 들추어 보았을 때, 그 가정에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터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4천년 얽힌 역사를 풀어낼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출가해서 불쌍한 어부들을 제자로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서러운 자리에 있었던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소망하던 신랑의 자리에 나가는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을 남기신 것입니다. 때문에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 삼고 신부 한 사람을 택하기 위해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남자도 신부, 여자도 신부라 하는데 그런 신부가 어디에 있어요? 남자는 신부 되겠다고 하지만 남자는 종밖에 안 됩니다. 신부는 해와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는 지금까지 여자들이 탕감해 나온 것입니다.

은혜도 맨 처음에는 선지자 안나 같은 할머니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이 먼저 은혜를 받습니다. 다음에는 아주머니들이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는 처녀들이 은혜를 받는 때가 옵니다. 그렇게 중년시대를 지나서 처녀시대로 들어올 때에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70년 역사권 내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등 얼마나 처량한 입장이었습니까? 이 해방권 내에서 통일교회가 나오게 됨으로 여자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부를 찾는 것이 일대(一代)에 이루어야 할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명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2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세계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제일 잘 믿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특등 신부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신부를 찾아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의 2천년 역사인 것입니다. 신부를 찾음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조상이 나오고, 참조상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바라는 어린양 잔치

본래 에덴동산에서 참조상인 참부모가 생겨났어야 되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6천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재림시대를 중심삼고 참조상을 찾아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 앞에 승리한 하나의 남자가 생겨나서 하나의 해와를 재창조한 기준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6천년 전에 참인류의 조상의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기준을 복귀한 것입니다. 수많은 타락의 자식들이 번식된 6천년만에야 거꿀잡이로 참부모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참부모의 배를 거쳐 나와 거듭나야 되겠기에 기독교인들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참부모를 잃은 고아들입니다. 고아들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인류를 고아들(요 14:18)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니 제아무리 잘 믿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다운 아들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 순을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들이 참감람나무가 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하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바라는 것은 참부모이고, 예수와 성신이 바라는 것은 어린양 잔치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럼 사랑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의 중심은 신랑 신부입니다. 즉 어린양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잔치는 신랑 신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중심은 참아버지 참어머니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주의 입장이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으로 보내면 종만큼 사랑하십니다. 또, 양자 혹은 성신을 시켜서 구주를 보냈으면 양자나 성신만큼 사랑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로 계시는 하나님 대신자로서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아버지이고 성신은 참어머니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아담 대신의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책임을 하고 승리한 이스라엘권을 세워야 하기에 해와 대신의 성신은 죄를 씻는 역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와가 죄를 지었으므로 어머니 신인 성신은 이 땅 위의 죄 씻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신을 받으면, 즉 어머니의 신이 임하게 되면 아버지 신을 흠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신이 임하면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모하게 되므로 사랑의 힘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 더 커지기에 새로운 부활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중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생명을 낳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자녀들과 참가정, 참가정을 중심삼고 참종족, 참종족을 중심삼고 제3의 이스라엘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 종족을 중심삼고 출발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개인․가정․종족을 찾아 세워 민족적인 승리의 터전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패한 기준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승리의 터전이 마련되고, 그 터전 위에서 어린양 잔치를 함으로써 제3이스라엘의 편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제1차 7년노정 중에 36가정 결혼식, 72가정 결혼식, 124가정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제2차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일

제1차 7년노정은 하늘땅 전체를 중심삼고 전체의 사명을 짊어진 선생님이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의 21년노정 중의 마지막 노정입니다. 예수님이 다윗 종족, 즉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 없이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탕감복귀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통일교회는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복귀․가정복귀․종족복귀를 하여 통일종족을 편성하려는 것입니다.

통일종족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앞에 민족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제1차 7년노정을 설정하고 활동해 나왔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에서는 통일교회의 가는 길을 막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권한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시대권을 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운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1차 7년노정을 감으로 말미암아 민족적 탕감조건을 세워, 예수님의 소원이었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2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으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어야 합니다. 민족을 구하기보다도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1차 7년노정에서 국가적인 기반을 닦은 후에, 제2차 7년노정에서는 종족적인 메시아의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성완성 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예수님이 다윗 종족의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유대 나라를 복귀해야 할 사명을 짊어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명을 상속 받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 참부모의 인연을 갖추면 종족적인 조상의 자리를 탕감복귀해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 짓기 위해서 또다시 제2차 7년노정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7년노정에서는 민족을 위해 충성하던 그 이상의 충성으로 자기의 부모 형제, 친척을 전부 다 복귀시켜야 합니다. 즉 종족 전체를 하나님 앞에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복귀섭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조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종족을 복귀시킴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종족적인 부모의 사명을 완수하게 되고, 영계의 선한 성도들도 여러분과 더불어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한 선조들이 지상에 무수히 재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오기 때문에, 악한 사탄세계는 점점 사라지고 통일의 운세가 새로운 세계로 점점 넘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적으로 볼 때 1974년까지 우리의 움직임 여하에 따라서 급진적인 발전을 볼 것이 예상됩니다.

제1차 7년노정과 제2차 7년노정의 성격이 이와 같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은 기성교회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의 21년노정은 야곱이 하란 땅을 버리고 자기 고향 땅 가나안을 찾아오던 때와 같은 때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야곱이 시련을 거쳐 하늘의 축복의 터전을 닦은 후에 고향을 찾아가 형님을 맞이한 것처럼, 통일교회도 기성교회와 다시 상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여러 행사를 많이 할 것입니다. 민족과 만나야 하는 이 길, 특히 청년들과 많이 만나야 하는 이 길을 중심삼고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금년 표어는 ‘전면적 진격’입니다. 진격보다는 전진이라고 합시다. 진격이라면 너무 과격한 것 같지요? 그러니 ‘전면적인 전진’이라고 합니다.

이 ‘전면적 전진’이라는 표어 아래 활동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내적 정비, 둘째는 목표 의식의 확립, 셋째는 패자의 결과를 체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상의 세 가지를 갖춰 기필코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내용을 정비하여 전진하는 데 있어서 무모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를 헤아려 알고 작전하는 데 밤이나 낮이나 그 환경을 가려서 하면 필시 승리할 것입니다.

<기 도>

아버님, 지금으로부터 수십여 년 전, 철모르는 어린 것을 불러 놓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던 그때가 어제 같사옵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고비를 넘긴 오늘, 옛날을 뉘우치며 생애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만일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희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님이 안 계시다면 저희들은 이와 같은 장소에 올 수도 없었습니다.

아버님을 알았기 때문에, 또 아버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저희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저희의 사명이 역사 속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런 절박한 책임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시련의 복귀의 길을 개척해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희들을 이끌어 주신 아버님의 노고를 생각할 때 황공하고 민망할 뿐이옵니다.

지금쯤은 언론을 통해 세계 인류를 모아 놓고 아버님의 참된 사정을 전해 주고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수의 무리를 모아 놓고 아버님의 애절한 사정을 전하게 된 것을 아버님 앞에 지극히 면목없게 생각하옵니다.

저희들에게는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또다시 이 길을 앞장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싸움의 길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도 아는 바이옵고, 아버님께서도 아시는 바이옵니다.

아버님, 아버님도 저희를 필요로 하시고, 저희들 또한 아버님을 필요로 하고 있사옵니다. 모진 시련 가운데서 연단받으며 참아 나온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몸 마음 다 바쳐서 남기신 복귀의 길로 직행하기를 원하오니, 저희들이 영광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아버지의 기쁨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통일의 자녀들이 가는 길 앞에는 과거와 같이 모진 시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 앞에 깊이 인연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리는 옛날과 같은 자리임을 아옵니다. 이제 그런 자리는 없을 것이오니, 아버지, 차후로도 이 사람들을 사랑하실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시옵소서.

작은 조건을 통해 큰 것을 탕감하게 하신 아버지, 탕감의 원리를 아시고 그 법도를 저희에게 적용하시는 아버지시여, 작은 수고로써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저희들을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새벽에 전국에 널리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전세계에 널리어서 이곳에 있는 스승을 그리워하며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심정적인 빚을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활을 통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무엇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 생활 가운데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1968년을 기꺼이 맞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의 몸 마음을 다 제물로 드리겠사오니 아버지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쏘아 놓은 포탄과 같이 적진 앞에서 폭파됨으로써 저희의 사명이 끝나는 줄로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체가 대포가 되지 않고 포탄이 되어서 적진을 박멸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의 표어를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로 했사오니, 아버지, 세운 목표를 중심삼고 통일의 자녀들이 일치 단결하여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없이 맹세하고 다짐해 나갈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목표를 향해 나가는 길을 직접 지도해 주시옵고, 싸워 나가는 길 앞에 당신의 보호와 사랑의 손길이 일층 더 하시어서 두터운 심정의 인연이 맺어지게 그들을 양육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의 영광을 가져 가지고 그것을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리고, 또다시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길을 소망으로 삼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모습들을 친히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장래에 대한 문제도 친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시어서 승리의 자리, 기쁜 그 세계에서 아버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현세에서 저희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중심 삼고 새로운 각오를 했사오니 친히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것이 아버지의 영광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은 있으나 아직 하나님의 날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그 천지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 삼고 기뻐할 수 있는 날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금년 정월 초하룻날인 오늘을 하나님의 날로 설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역할

1967년은 선생님에게는 21년노정이 종결되는 해였고, 여러분에게는 7년 고비를 넘기는 마지막 해였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금년 2월에 43O쌍을 축복하여 주면 축복가정이 662가정이 됩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 금년에 430가정, 그리고 기성가정 98가정을 합하면 760 가정이 됩니다.

666수는 사탄 수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666수는 사탄세계의 절대적인 방패 수인데 이것을 밟고 올라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66수 이상에 해당하는 축복가정을 냈습니다.

사탄과 싸워 이기려면 가정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절대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탄이 가정을 통하여, 즉 아담과 해와의 가정을 통하여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려면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부부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축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천국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닌 자리에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탄이 침범한 흔적이 있어서는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사탄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거짓 부모의 자리를 탕감복귀하여 참부모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인데 예수님은 독신으로 왔다가 독신으로 갔기 때문에 낙원밖에 못 들어갔습니다. 천국은 온 가족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다가 그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곳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리 잘 믿고, 또 부부끼리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죽으면 다 각각 다른 곳으로 갑니다. 서로 만나지 못해요. 사랑하는 자식이 지옥에 가서 엄마 아빠를 부르는데 엄마 아빠의 심정이 좋겠어요? 그것이 천국입니까?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국은 가정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에 낙원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아담 해와, 곧 부부가 끌어들였기 때문에 부부가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거짓 부모가 되었으므로 참부모가 나와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낙원에서 기도하신다는 것은 아직까지 사탄의 참소권 내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의 아브라함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시대에는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서는 축복받지 않으면 제3이스라엘 백성이 못 됩니다. 그렇지만 축복받는 데 있어서는 조건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선생님도 그 조건 때문에 40평생을 바쳤습니다. 일생을 그것 때문에 다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탄수인 666수 이상의 하늘 가정을 찾아 세워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기성가정을 포함하여 축복가정을 빨리 세워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에 430쌍을 축복해야 되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 1967년이 단기 4300년이므로 이것을 섭리적인 조건에 맞추어 놓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기까지 430년이 걸렸습니다. 즉 43수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43수를 중심삼고 7년노정을 끝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맞아떨어져서 새로운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일취월장할 것입니다.

통일족속을 편성했으니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는 길은 앞을 확실히 알고 정성들이며 가는 길입니다. 과거에 통일교회 전도사들이 지방으로 전도를 나가면 그 지방의 기성교회 목사들이 미워하며 핍박했습니다. 그들이 온다고 하면 전도사들의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금년부터는 전면적인 전진이기 때문에 기성교회를 샅샅이 뒤지는 작전을 할 것입니다.

7년 동안에 선생님은 통일족속을 만들었습니다. 통일족속을! 앞으로 여러분들은 성을 바꿔야 될 것입니다. 박 씨, 김 씨 등 온갖 성을 가진 사람이 다 모였지만 모조리 성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한 족속이니 성이 같아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참 것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왔기 때문에 왜놈들이 한국에 와서 창씨개명을 시킨 것입니다. 또 동방요배까지 강요했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은 전부 이름이 넉 자입니다. 선생님은 생각하기를 한국 이름은 석 자니 하나님의 상징이요, 일본은 넉 자니 땅 수이기 때문에 해와국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넉 자 우리는 석 자니까 합해서 일곱 자가 되니 일본과 한국은 인연이 있나 봅니다.

선생님이 일본 식구들에게 이름 중에서 한 자 빼고 세 자로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동방요배를 했지만 이제는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서방요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잘 돌아갑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 족보를 갈아야 합니다. 성을 가는 것은 이단이지만 사탄의 이단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 다 수적으로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찌하여 1967년이 4300년에 딱 맞아떨어졌겠습니까? 또 어떻게 통일교회의 7년노정과 딱 맞아떨어지게 되었겠습니까?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앞으로의 세계 운세는 통일교회가 하는 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원리가 참 멋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날, 이 하나님의 날을 설정해야 되겠습니다. 인간 세상에는 좋다는 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날은 없었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그날을 만들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족속을 편성하여 이 통일족속으로 제3이스라엘을 편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죽음의 길을 모면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핍박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종족을 찾아가서 전도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은 부모, 형제, 처자를 정성을 다하여 전도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워진 날의 첫째가 부모의 날, 둘째가 자녀의 날, 셋째가 만물의 날이었고, 넷째가 오늘 선포하는 하나님의 날이고, 맨 나중에 가정의 날이 세워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날이 생겨진 결과로 앞으로 가정의 날만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족속의 날, 국가의 날, 세계의 날이 나올 것입니다. 여기까지 가야만 완전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종결되려면 가정의 날까지 세워야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고 가정의 날을 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120가정 이상을 전도해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가정의 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중심삼고는 그런 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부부는 절대 헤어질 수가 없습니다. 멋진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이 편성되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구성되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살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삼아 제3이스라엘 민족이 벌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의 순서로 세워지고 나중에 가정의 날이 세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한꺼번에 다 세워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아담가정이 타락함으로 부모를 잃어버렸고, 자녀도 잃어버렸고, 만물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하나님이 이상하셨던 창조이상의 사위기대를 완성할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날까지 복귀하여야 복귀역사가 종결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날만을 설정하고 가정의 날은 보류했습니다. 가정의 날은 이제부터 7년노정이 지나가야 될 것입니다.

오늘은 지구장들과 몇몇 가정들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 선서식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복도 준비하지 않은 것 같고….

오늘 같은 날은 음식을 잘 차려 잔치를 해야 합니다. 사흘쯤 노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우리 무용단이 있었으면 춤도 추고 할 텐데 미국에 가고 없어서 서운합니다. 상오 3시에 예복을 입고 식을 할 것입니다.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이런 날들은 하나님이 무척 기뻐하시는 날들입니다. 이 날들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복잡했는지 모릅니다. 심정을 걸어 놓고 전부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딱 들어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자기가 태어난 날을 축하해 왔고, 자기들이 결혼한 날을 축하해 왔습니다. 또한 국가는 국가대로 기념할 수 있는 날들을 축하해 왔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어떠한 날을 축하하는 시대로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많은 날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진정으로 기념한 한 날, ‘하나님의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큰 슬픔 이며, 하늘땅에 사무친 한인가를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날까지 하나님이 제일 수고하셨다

하나님 앞에 타락한 세계가 가로놓여 있는 한 이 하나님의 날은 책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타락한 기준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타락한 부모가 생겨났기 때문에 이 타락한 부모를 탕감해야 되는데, 이 타락한 부모를 탕감하고 승리의 날로 세운 것이 바로 부모의 날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타락한 부모를 가진 것이 한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 편에서 승리한 부모의 날을 찾아 세움으로 인하여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축복받은 통일의 족속들이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날을 책정했지만 완성 단계를 다 넘어서 책정한 것이 아닙니다. 완성은 세계를 통합하고 세계를 스스로 주관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추는 것인데,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단계를 넘어서 완성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그 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부모의 날을 책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을 책정해 놓고, 그 부모를 중심삼고 타락하지 아니한 본연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상에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사탄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의 날을 책정함으로써 사위기대의 영광의 터전을 지상에서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녀의 날이 책정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완성급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만물을 찾았다는 기준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와 같이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운 날이 만물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날들을 책정해 가지고 7년노정을 거쳐오면서 민족적인 투쟁을 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온갖 정성을 다 바치며, 생명까지라도 바칠 각오를 하고 싸워 나왔습니다.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나 사상적인 기준에 있어서 앞으로 한국 국민이 우리들의 길을 따라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 국민의 생명이 보전되고 경제가 부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인연과 접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기치 아래 머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우리들은 알고 싸워 나왔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원수시하는 가운데서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루한 투쟁의 역사 과정을 지내 가지고 7년노정의 마지막을 넘어서는 지금은 새로운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한 기준을 세운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윗 족속을 중심삼고 이루려 했던 하나님의 내적인 뜻을 종결지을 통일의 족속을 설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의 족속이 설정되었다는 것은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웠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책임을 완수한 기준 위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적인 안식의 터전에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족을 중심삼고, 또는 가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자유스럽게 운행하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소망하던 그 기준을 이제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여 선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탕감의 시대는 흘러갔다

이날이 설정됨으로써 이제 하늘땅 앞에 새로운 방면에서 발전 단계를 향하여 더욱 전진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의 역사였기 때문에 우리들이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희생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탕감을 위한 것이었을 뿐,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수고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가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수고한 모든 실적은 사탄세계에서 탕감조건이 되어 흘러가 버리지 않습니다.

이제부터의 우리의 수고는 자체의 것으로 연결되고 자체의 실적으로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권 내로 들어온 것입니다. 즉 우리의 수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승리로 결정지어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영광의 시대권 내로 들어섬으로, 즉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시대적 한계가 설정되었으므로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날을 설정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날이 시작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1차 7년노정과 선생님의 21년노정을 넘기고 이제 제2차 7년노정, 그 후의 세계에 있어서는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연결시켜 종족을 세운 것은 민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은 사명은 민족을 중심삼고 복귀의 사명을 완결지어 나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단계에 있어서는 핍박은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루하고 어려웠던 그 탕감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우리가 뿌리면 거둘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열만큼 수고하면 그 열만큼 수고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시대권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는 무한한 자랑이 되었고, 사탄 앞에는 무한히 원통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1968년 1월 1일 상오 3시를 기하여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이날은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모든 정성을 다 들여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날은 천추만대의 우리 후손들이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게 한 이날을 길이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시점에,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날에, 이 식전에 참여한 이 영광은 저나라의 수많은 영인들도 부러워하는 것이요, 이 자리는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가 바라던 희망 중의 희망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을 축하하는 의의를 알고, 또 축하하는 심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분 1대(代)만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선조들도 기뻐할 수 있는 사실이요, 또한 후손들까지도 기뻐할 수 있는 사실인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욱 분투하자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이날에 대한 깊은 의의와 높은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날을 지표로 하여 이날 앞에 영광이 될 수 있는 각자의 생활 토대를 개척하고, 나아가 통일족속으로서의 책임을 추구하여 민족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이날을 영원한 하나님의 날로 모실 때까지 끊임없는 전진을 계속해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다짐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날이 책정됨으로 인해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지상에 내려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중심삼고 본격적으로 전투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려 그것을 변상하며 방어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이 사탄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하나님이 공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지상에 내려와서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전개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40개국에 120개 성지를 택정했고, 이런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120개 국가를 대표한 124가정을 찾아 세워 축복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 운세는 되돌아가는 운세였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도 그 은혜를 세상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여러분들이 거둬들일 수 있는 시대권 내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열 번 노력하면 열 번 노력한 그 대가는 여러분 자신은 물론 후손과 여러분의 족속들도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두고 생각할 때에는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도 더 행복스러운 자리에 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선생님도 고향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서 전도하거나 혹은 하나님 앞에 그들 대신 탕감조건을 세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 시대적인 영광을 차지함으로 인해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즉 영광의 기대를 갖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보다 더 영광된 자리에 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직접 그런 시기를 갖추어 가지고 이루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이 이 시대에 있어서 전민족을 대표하고 전세계를 대신해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즉 내가 원하던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승리의 영광을 거두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우리가 더더욱 기쁜 일을 해서 앞으로 추진시켜 나갈 것을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결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날이 세워졌으므로 우리는 이제 참충신이 갖추어야 할 바를 갖추어 나갑시다.

여러분들은 이 영광된 하나님의 날을 가졌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여 완성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의 날을 책정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천국 출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민족적 책임을 다하여 넘어가야 할 시기입니다.

선생님은 제2차 7년노정에 우리가 책임을 다하게 되면 가정의 날이 이루어지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따라갈 것을 결의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후대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유언으로 삼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 30억 인류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아침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아버님의 섭리를 알고,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 앞에 서서 기도하는 이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전세계,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무리가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사옵고, 마음에 마음을 연하여 이날을 선포하는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대표하여 모였사옵니다. 삼천리반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를 대표하여 모였사옵니다. 기쁜 이날을 흠모하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동참의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국가들도 동참했다는 조건을 세워 주시옵소서.

40개국에 정해진 120개 성지를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수많은 민족들을 지도하고 있는 천천만 성도들을 바라보시옵고, 이날에 그들에게도 축복의 인연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30억 인류, 지구의 땅 끝까지 아버지의 영광의 날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영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성도들까지 아버지의 날에 동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중에는 사탄까지 아버지 앞에 서게 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이 민족을 다시 품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민족 전체를 당신의 뜻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지도하고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을 기하여 지금까지 맺히셨던 아버지의 한을 푸시옵고, 원수의 발 아래 몰리는 입장에 있었던 당신의 자녀들이 효자 효녀의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사탄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고, 선의 실체로서 책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일체의 복귀의 과정을 저희들이 책임지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러한 대열에 참여한 것을 감사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 것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뜻의 인연 가운데 있는 수많은 자녀들과 앞으로 인연될 수많은 자녀들이 이날을 기하여 연결되는 조건을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재림할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해 주시옵고, 이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땅 위에 직접적으로 왕래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여 주시옵고, 선한 후손들을 아버지 품에 안기게 할 수 있게 특권적인 은사를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새로운 은사를 허락하시어서 직접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을 넓혀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후손들이 아버지를 드높이기 위해 성소를 준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한 삼천리 반도가 되고, 삼천만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이 민족을 복귀하여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과 세계의 수많은 민족들을 아버지 앞에 결속시켜 드릴 수 있는 기쁨의 연결점이 어서 속히 마련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아버지, 직접적으로 공세를 취하시어서 영광을 나타내고, 승리를 드러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만만세의 영광이 이날과 더불어, 아버지의 기쁨이 이제부터 충만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영광 받으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 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도행전 1:6-8

<기 도>

아버님이시여, 아버지께서 그리시던 본연의 창조이상세계는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가정이 즐길 수 있고, 모든 만물이 화동할 수 있어 행복이 우러나오는 곳인 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세계, 본향 땅은 우리 인류 앞에 소망으로 남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사옵나이까?

인류의 조상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기나긴 역사노정 가운데 수많은 후손들이 침해를 받았으며 쫓기는 길, 눈물의 길, 피의 길, 죽음의 길을 자진하여 걷지 않으면 안 될 복귀의 길을 더듬어 나왔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지루하고 슬펐던 역사노정이었음을, 아버님,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껴야만 되겠사옵나이다.

타락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본향 땅을 잃어버리고, 본연의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본연의 참다운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종족, 이상적인 국가, 이상적인 세계, 이상적인 천주를 모두 잃어버렸사옵나이다. 아버님을 중심삼은 권위의 세계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이란 슬픈 운명에 부딪힘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아버지와 아무 관계가 없게 되었사옵고, 이상 하시던 아버지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는 세계가 되었사옵나이다.

저희들의 주인이신 아버지께서는 주인이 되지 못하셨고, 당신의 원수인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 사탄이 주관하는 흑암권 내로 저희들이 끌려내려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사실인가를 다시 한 번 저희들이 회고하면서 이 지구상에서부터 수많은 영인들이 머무는 영계에 이르기까지 억천만세에 원수 되었던 사탄을 추방하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시며 참된 인류의 소원이었음을 이 시간 저희들이 명심해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사탄의 권위와 권세의 터전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생활 가운데에서 느끼지 못하는 저희들이옵나이다. 시간 시간을 보내면서, 한 날 한 날을 지내면서도 사탄의 권세와 권한이 저희들의 생활권 내에 얼마나 침투해 있으며, 저희들의 생활 무대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가를 지금까지도 느끼지 못한 저희들의 신앙생활이었음을, 아버님,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더럽혀진 것을 청산 짓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도저히 나갈 수 없는 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은 눈물의 길 가운데 서서 아버지 앞에 울부짖으면서 당신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지 않으면 안 될 처량하고 불쌍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저희들임을 잘 아시는 아버지시여, 긍휼의 마음을 펴시사 저희의 갈 길을 다시 한 번 지켜 주시옵고, 저희의 주위를 맑게 하시어서 사탄권 내에서 저희를 분별시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과 직접 관계맺을 수 없사옵니다.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죄악의 뿌리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마음으로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였사옵고, 원치 않는 악의 행위를 즐겨하는 저희들 자신과 그러한 생활권 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희들 자체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의 권한과 부활의 권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권 내, 아버지의 부활권 내, 아버지의 생명권 내의 인연을 따라서 지금까지 따라 나왔사옵나이다. 이런 저희들을 아버지께서는 기르시고 복귀섭리의 뜻을 펴시려는 사정이 있는 연고로, 버리시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품고 옹호하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드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복귀의 싸움터를 알았사옵고 생명의 은혜에 속하게 된 것을 깨달았사오니,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저희들은 생애노정에서 사탄과 격리되어야 되겠사옵고, 부활노정에 있어서도 사탄과 격리되어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지와 일체가 되어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생활과 생애가 되지 않으면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사오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몸과 마음 전체를 바쳐서,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생애를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다시 한 번 아버지 앞에 결의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저희의 모든 사정과 저희의 모든 내용을 살피시옵고, 금후의 저희들이 뜻 앞에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해야 할 책임과 사명에 대해 공고한 결의를 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촉구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할 줄 알고 있사오니, 모인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울부짖고 호소하는 모든 전체가 땅에 떨어지지 말고 아버지의 심정을 움직이게 하시어, 아버지가 일하시는 소원을 전해 받을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자로서 이 땅 위에 있는 사탄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제2의 책임자의 사명을 감당할 줄 아는 당신의 참된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저희들로 하여금 당신이 소원하신 이상세계를 실현하여 탕감복귀를 완결짓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고, 아버지께서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이 시간 전체를 아버지께서 친히 맡아 주관 주장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복귀의 한계점’이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복귀의 한계점’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복귀라는 것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한계점은 복귀가 필요로 하는 최고의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귀가 필요하게 된 이유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누구나 다 이 세상이 악한 세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소원은 이룰 수 없고 그와 반대의 실상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절실히 체험하고 있으며, 또한 그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입장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 이와 같은 사정과 내용이 어떻게 해서 벌어졌느냐? 이것은 본래의 선한 중심이 정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기준, 즉 선과 반대되는 출발점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상을 타파해 버리고 정상적인 세계, 즉 마음이 원하는 창조 본연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각자들이 되었으며, 또한 그러한 현실이라는 것을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이상 하신 참다운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획하고 바라시던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세계가 이 땅 위에 이루어졌다면, 그 세계는 평화와 사랑의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통일된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을 중심한 통일된 세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참된 이념을 중심삼은 사랑과 이상의 세계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악의 세계를 청산 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끝날이 와야 된다고 말합니다. 이 땅을 일대에 청산 지을 수 있는 때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악된 세계이기 때문에 공정하고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가 왜 필요하냐?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탕감하지 않으면 복귀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제물을 놓고 싸우는데, 탕감의 길은 그런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반드시 제물이 필요

그러면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이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제물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입니다. 즉 사탄이 악의 주체로 생겨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물을 가운데 놓고 하나님 편에 속하느냐, 사탄 편에 속하느냐 하는 쪼개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쪼개는 일은 필요 없습니다. 분별하여 갈라 놓는 이런 일은 절대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물이란 조건을 세워서 탕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인간이 잘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사탄이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잘못하게 되면 사탄의 침범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못하기를 원치 않으며 무엇이든지 좀 더 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잘못하지 않는 자리에는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잘못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 편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본래 인간조상은 어떻게 해서 타락했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타락했느냐? 본래의 인간이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한 연고로 혈통적인 기준이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6천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여 나오신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훔치거나 무엇을 따먹고 타락했다면 그것은 그와 똑같은 환경을 제시해서 간단히 탕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혈통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사탄의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탄의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죄악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노정을 중심삼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것이 복귀역사의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은 떨어진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떨어진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진 것입니다. 즉 불륜의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동기가 되어 타락했느냐? 사탄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불륜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가 되었기에 거짓 부모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물의 실체, 부활의 실체로서 승리한 결실체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사탄의 침범을 유발시킨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누가 되어야 하느냐? 타락의 장본인인 아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과는 관계없이 오신 예수님

해와가 사탄에게 유인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담 앞에 주관 받아야 할 해와이기 때문에, 주관권을 갖고 있는 아담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남자 조상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해와에게 끌려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아담에게도 사탄이 침범했으니, 결국에는 아담의 입장을 통해서 사탄을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제물의 실체, 제물의 완성체가 누구냐 하면 아담을 대신한 입장에서 오신 예수님입니다. 타락한 아담 이후 4천년 만에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대신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아담은 사탄을 끌어들였으나 타락하지 않은 아담 대신 오신 예수님은 사탄을 추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을 추방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타락한 세계의 이 몸뚱이는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혈통과는 아무 관계 없는 내용을 지니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과 혈연적인 내용을 지니고 와 가지고는 사탄을 추방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혈통과는 관계없는 분별된 자리에서 오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에는 교주가 있습니다. 불교, 유교, 회회교에는 전부 다 그 교의 교주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예수, 불교에는 석가, 유교에는 공자, 회회교에는 마호메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민의 구주가 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일반적인 타락한 세계에서 그냥 그대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사탄세계의 핏줄과는 관계없는 분입니다. 탕감을 거치고 태어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일반 종교의 교주들은 타락한 혈통을 받은 자 가운데 택함을 받은 자들이지만, 예수님은 타락한 세상의 혈통의 내용을 역사적으로 탕감하여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혈통적으로 성별된 입장에서 오셨습니다. 그 점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사람은 태어날 때 잘못 태어났습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아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짓기는 했지만 사탄으로 인해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아무리 잘 났다는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인간이지만, 핏줄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핏줄을 타고 나왔습니다. 오늘날 이런 사실을 일반 종교는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을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선악과(과실과 같은)를 따먹은 것이 죄가 되어 6천년 동안이나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셨겠습니까?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지었고 하나님과 인연 맺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의 불륜한 사랑으로 인해 잘못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의 사랑으로 낳지 않았다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리의 골자는 부활(復活)입니다. 즉 부활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곧 중생(重生)의 도리입니다. 인간은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나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인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가자고 합니다. 그것은 거듭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날 때는 영적으로만 나서는 안 됩니다. 몸뚱이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육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중생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영적으로 중생하면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사람은 영육을 통하여 완성한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땅 위에 자녀를 번식하여 지상천국을 이루고 나아가 천상천국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사탄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의 노정을 통하여 영적인 구원의 토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생을 거쳐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낙원에는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을 이루려면 예수님이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완성된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잘못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제아무리 잘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선하고 조금 더 악한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은 근소한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근소한 차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복귀해야 됩니다. 이렇게 거꾸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아담으로부터 4천년 후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을 대신한 입장에서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즉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자리,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자리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부터 역사해 오셨습니다.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 중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는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사탄도 그 사람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도 그 사람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가까이 설 수 있는 사람을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래서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 편에, 가인은 사탄 편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하나님 편이 되고 순종하지 않으면 사탄 편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불순종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도인 천륜 앞에 불순종한 것이 사탄이었기 때문에 사탄이 불순종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의 법도는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이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공의의 법도는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악한 세계를 선악으로 분별해 나오는 역사를 거듭해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구세주로, 만민을 구해 줄 수 있는 총책임자로 오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고 와야 하느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보다도 훌륭한 자격을 가지고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힘의 비율로 말하자면 아담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와야 하며, 하나님을 믿는 데도 아담보다 더 강한 믿음을 갖고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아담보다 더 강한 실천력을 가지고 와야 하며, 사랑에 있어서도 더 강한 사랑을 가지고 와야 됩니다.

인류의 시조가 사랑을 망각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이 세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고차적이고 강한 참된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침몰되고 있는 이 악한 세상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가운데 영원히 계실 수 있는 참된 남자, 완성된 남자의 자격으로 구세주가 와야 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예수님은 타락한 기준을 넘어선 아담으로 오신 분입니다. 아담의 대신자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후아담, 즉 둘째 아담입니다.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복귀된 사람으로서 이 지구상에 나타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수많은 인류 가운데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은 4천년 만에 다시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 무엇이 다르냐? 인간은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났는데 예수님은 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느냐?

가인과 아벨의 싸움에 있어서 가인이 이기면 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사탄 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선으로 출발했느냐, 악으로 출발했느냐? 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기에 첫 번째로 태어난 아담은 실수로 인해 사탄이 가져갔지만, 두 번째 태어난 예수는 하나님이 가질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후아담으로 오셨기에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편 입장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하나님이 가질 수 없지만, 다음에 태어나는 차자는 하늘 편에 설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차자를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경 역사는 차자가 복 받은 사실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애급에서 장자를 내려친 것도 사탄 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태어난 사람으로부터 지배받는 만물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설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첫번 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첫번 태어난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거듭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에게 반항하는 자는 다 망하고, 순응하는 자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아도 전부 다 둘째 아들을 중심삼고 복귀해 나왔습니다. 노아 때의 함, 아브라함 때의 이삭, 그리고 야곱도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둘째 아들이 복귀의 중심인물이 되느냐? 사람은 악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악한 사람이 먼저 태어났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실 때는 처음도 나중도 모두 선한 인간이 되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해 악의 혈통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장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차자를 세워서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차자를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사탄이 머리를 끌고 가면 하나님은 꽁무니라도 붙들어 잡아야 합니다. 가인은 사탄이 가져갔지만 아벨은 하나님이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에덴동산에서 가인은 아벨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침범한 범죄를 재차 행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서 또다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투쟁의 역사가 전격적으로 벌어지고 악이 선을 치는 역사가 계속해서 벌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선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끝 날에는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느냐? 이때는 기독교가 사탄세계로부터 들이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맞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맞고 거꾸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이 싸우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배반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과 인간 앞에 마음이 플러스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몸뚱이가 플러스가 되려 합니다. 그러기에 두 개의 플러스가 대립되어 서로 상충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탄적인 요소를 때려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때려잡는 방편으로서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해하기 바랍니다. 때려잡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굴복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금식을 해야 합니다. 복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복귀노정에서 가인은 아벨을 때려죽였습니다. 이것은 형제끼리의 싸움이었습니다. 태어나긴 했는데 둘 다 잘못 태어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혈통복귀역사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가인형인 에서와 아벨형인 야곱이 서로 싸웠습니다. 여기서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던 것을 야곱이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죽임을 당한 아벨의 입장인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자인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가지고 21년 동안 수고하여 고향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에서는 야곱을 때려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가인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에서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지혜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종과 재물을 전부 다 에서에게 예물로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을 묵인시키고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자가 되어 복귀의 노정에서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복귀역사를 하는 작전 가운데 이러한 작전을 제물의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사탄세계의 장자의 권한이 무너졌으며,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거짓된 사랑에 의하여 먼저 태어났던 가인의 후계자와 같은 에서를 하나님 편인 야곱이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승리한 것입니다. 이렇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기 때문에 지상의 사탄권세가 무너지는 조건이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땅에서 육신을 쓰고서 이겼기 때문에 장자의 권한을 상속 받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자리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나서 형을 이기고 장자의 기업을 펴 나왔지만 진짜 맏아들로 태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맏아들로 태어나느냐? 맏아들로 태어나지 않고는 장자의 축복을 받아 실체의 권한을 가지고 사탄세계를 심판할 수 없습니다. 즉 작은 아들로 태어나게 되면 장자격인 사탄세계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장자의 권위를 갖고, 사탄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실권을 지닌 맏아들로 태어났다는 절대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고 나오셔야 했습니다. 이 기준을 통해 나오지 않고는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쌍둥이들이 태어나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형제끼리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뱃속에서부터 형제끼리 싸운 역사가 있습니다. 복귀의 역사는 이렇게 사연도 많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과 상관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베레스와 세라가 유다 지파를 대표할 수 있는 상속권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베레스와 세라가 장자권을 두고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쌍태가 복중에서 서로 먼저 나오려고 싸워 산파가 먼저 내민 형의 손에 빨간 실을 묶어 주었는데 동생 베레스가 형을 밀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장자권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베레스란 이름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제까지는 참다운 권한을 갖고 태어나야 할 하나님 편의 장자는 태어나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받은 사탄 편의 장자만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베레스가 복중에서 싸워 이긴 것을 승리의 조건으로 삼아 장자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다 지파가 장자의 기준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탄생할 수 있는 섭리적인 내용이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원래 복중의 베레스와 세라 가운데 세라가 장자였습니다. 그러나 베레스가 먼저 태어나서 장자권을 복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레스부터 장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발전되었습니다. 베레스는 세라가 나오기 전에 복중에서 탕감복귀했기 때문에 베레스에 대해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없게 되었습니다. 베레스의 혈통을 통해서 메시아가 탄생될 때, 그 메시아 자체는 하나님 편의 장자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메시아를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혈통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역사적인 싸움의 내용이 성경에 완연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점

인간이 복중에서부터 잘못되었으니 다시 복중에서부터 하나님 편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혈통적으로 장자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는데, 베레스가 복중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움으로써 탕감복귀된 중심 혈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발전되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으로서의 확실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지만, 이러한 혈통적인 기준을 세움으로써 4천년 만에 예수가 메시아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을 벗어난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혈통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예수가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혈통적인 탕감노정을 걷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 편에 속해 있습니다. 즉 예수는 역사를 두고 하나님의 장자의 위치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나온 혈통적인 기반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종교의 교주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 편의 장자권을 지니고 나왔습니다. 예수는 누구냐? 예수는 아담을 통해서 이루려던 하나님의 본래의 이상과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맏아들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전부 다 사탄의 아들딸이었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독생자이며 제2의 아담입니다. 제1의 아담은 타락했지만 제2의 아담인 예수는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 된 아들입니다.

남자․여자의 복귀의 한계점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지으실 때 누구를 먼저 지었겠습니까? 「아담입니다.」 아담을 먼저 지었습니다. 아담을 짓고서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 해와를 어떻게 지었다고 했습니까? 어떤 기독교 신도들은 남자의 갈비뼈 하나로 해와를 지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의 갈비뼈 하나가 없다고 합니다. 갈비뼈가 없긴 왜 없어요? 더 굵지요.(웃음) 그래서 성경의 내용을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비뼈를 뽑아서 해와를 만들었겠습니까? 그걸 뽑기 위해서 째고 뽑았겠어요? 갈빗대를 뽑아서 만들었다는 말은 본떠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책에서 요점을 추리라고 할 때 뭐라고 합니까? 골자를 뽑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뽑았다고 하는 것은 골자를 추렸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와는 아담을 본떠서 지음받은 것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지음받았으므로 해와보다 아담이 문제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부 다 의붓자식이며 사생아들입니다. 원수의 자식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성별하여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즉 창조 직후의 아담과 마찬가지의 입장으로 복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락한 사탄세계의 사람이 가야 할 최고의 복귀의 한계점입니다. 이것이 남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귀의 한계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여자로서의 복귀의 한계점은 무엇이냐? 아담의 말에 절대복종하여 아담을 닮은 여자가 나와야 됩니다. 아담을 통해 지은 해와가 깨져 나갔으니, 아담의 대신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처럼 예수를 닮은 해와가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여자가 신부입니다. 완성한 아담의 신부가 되는 것이 여자에게는 최고의 복귀의 한계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는 아들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신부는 생활권 내에 들어가면 남편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예수 앞에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원리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잘못 지으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복귀의 한계점은 신부가 아니고 아내입니다. 신부는 결혼식장에서나 필요한 것입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다 도망치면 아내가 못되는 것입니다. 즉 생활권 내에 못 들어간 사람을 신부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부를 맞기 위하여 다시 오시는 예수님

이 땅 위에는 완성한 아담의 입장으로 남자 한 분이 왔다 갔습니다. 그런데 완성한 해와 입장의 여자 한 분은 왔다 갔습니까? 왔다 가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와서 여자도 못 찾고 가면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뭣 하러 와야 합니까? 영육을 중심삼고 혈통적으로 더럽혀진 이 몸뚱이를 사탄에게서 빼앗아 참다운 아들딸을 낳기 위해 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고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들딸 낳았습니까? 예수 믿고 신부를 맞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으면 그 아들딸은 천국 가겠습니까, 지옥 가겠습니까? 「천국 갑니다.」 정말 그래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손자입니다. 하나님의 손자가 지옥에 가겠어요, 천국에 가겠어요? 가기는 어디 갑니까? 땅에서 태어났는데…. 본래는 이곳이 천국입니다. 본래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러한 원칙적인 기반을 갖추었을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잘못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복귀의 한계점은 무엇이며, 남자의 소원은 무엇이냐? 여러분, 남자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아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지금까지 신부를 맞지 못했습니다. 소위 더벅머리 총각으로 살다 갔습니다. 신부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몰리고 쫓기다 죽었습니다. 신랑으로 왔던 예수가 신부를 맞이하지 못하고, 최후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다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도 신부가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있어요? 그 신부는 여러분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신부가 아닙니다.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남자는 타락한 천사장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또한 해와는 예수가 찾으려는 신부의 입장입니다. 또한 타락한 남자들이 하늘 편에 가까운 여자들을 유린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사탄이 유린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리고 타락한 장본인이 해와이기 때문에 죄악도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중의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탕감을 하기 위하여 지긋지긋하게 고생을 해야 합니다. 여자는 남편에게 팔리고 부모에게 팔리고 오빠와 동생에게도 팔리는 격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해와가 하나님을 팔았고, 아담을 팔았고, 우주를 전부 다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하나님의 사랑까지 팔았기 때문에 해와의 후손들이 억울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되었기에 이런 고난을 여자가 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이런 입장에서 역사 과정을 거쳐왔지만 그 곤고의 자리를 모면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세계 제1차대전 전후를 중심삼고 여권해방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뺨을 갈겨도 괜찮지만 남자가 먼저 그랬다간 법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워싱턴에 가서 제일 기분 나빴던 것이 무엇이냐면, 여자들이 반나체가 되어 짧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길을 비켜 주면 무슨 창녀가 지나가는 것같이 으스댑니다. 여자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요즘 미남대회를 먼저 합니까, 미인대회를 먼저 합니까? 「미인대회를 먼저 합니다.」 세계미인대회를 해서 일등 미인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부를 찾아오기 때문에 땅에서도 하늘의 운세를 맞추어야 하므로 신부추대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미스터 유니버스나 미스터 코리아 같은 미남대회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회가 공공연히 벌어지면 세상은 끝입니다. 그때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할 것 다하실 때입니다.

예수는 신랑, 성신은 신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가 구름 타고 와야 되겠습니까, 육신 쓴 사람으로 와야 되겠습니까? 구름 타고 오신다면 근사하겠지만 주님은 육신 쓴 사람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통일교인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분석하고 생각해 보더라도 절대 구름 타고 오셔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야 천리가 풀립니다. 따라서 주님은 육신을 쓰고 와야 된다는 결론입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육신 쓰고 있었어요, 영인체로 있었어요? 아담이 육신을 쓰고 있을 때 타락했습니다. 사탄이 육신에 침범하였습니다. 육신 쓰고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2천년 동안 준비하여 온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신부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집 장가가는 법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잘못 지은 것이 됩니다. 아직까지 시집 장가가는 법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인간의 시조가 시집 장가를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짓 자손으로 태어나서 참부모의 혈통의 인연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태어나지 않은 거와 마찬가지인 너희들이 시집 장가가 뭐냐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독신생활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중심은 무엇이냐? 예수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신부를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어린양 잔치는 예수와 성신인 한 여자가 실체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는 하나님, 성자는 예수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신은 무엇입니까?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인 성신을 받지 않으면 중생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신인 성신이 낳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신은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리운지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신인 성신이 신랑 된 남편의 신을 사모하는 마음이 사람의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이 태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예수는 아버지, 성신은 어머니, 즉 예수는 신랑이요, 성신은 신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신이 임하여, 성신이 신랑 된 예수를 사모하는 힘과 여러분의 마음이 일치될 때 불을 받는 것입니다.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적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주입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重生)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참부모를 모시는 것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영적 아버지의 사명을 다하고 사탄을 영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사탄을 이기고 갔습니다. 남편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로 가야 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땅에서 사탄과 싸워 남편처럼 이기지 않으면 신부의 자리에 나가지 못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남자 여자를 유린한 것을 탕감하고 승리하여 재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신을 중심삼고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한계선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의 힘인 부활의 능력, 부활된 생명의 힘을 받아 가지고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생 살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어린양 잔칫날은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모셔 놓고 잔치하는 날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아니한 인간은 자식 된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잔치하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중에 왔기 때문에 거꾸로 된 것입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참자녀를 낳아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할 텐데(칠판에 판서하심) 타락한 인간이 번식되다 보니 거꿀잡이로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된 것을 반대로 다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따라서 거꿀잡이로 태어난 인간은 전부 다 반대로 가야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반대의 길로 가야 됩니다. 이렇게 가면 갈수록 타락세계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인연을 전부 다 끊어 버리고 가는 길이 종교의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서 비로소 본연의 세상, 즉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이 세상의 왕이나 대통령이라도 전부 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 아담 해와의 성혼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하나님의 후손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사탄의 후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6천년 전에 잃어버린 하늘 편인 참부모를 다시 이 땅 위에 찾아 세워 그 참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중생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서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들은 무엇이냐? 양자입니다. 직계 자녀와는 핏줄이 다른 양자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직접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마음에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고대하고 있으나 그 양자 된 자리에서는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양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핏줄이 아니고 사탄의 핏줄입니다. 그러나 이제 참부모를 찾아 세움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직계의 아들딸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직계의 아들딸을 포도나무라 비유한다면 타락한 인간들은 이 포도나무의 순에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접붙이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5)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을 돌감람나무라고 말씀하시면서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 나타난 모든 철학과 모든 생활들을 전부 다 일소해 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철학, 새로운 생활,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을 중심삼은 예수님의 사랑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이렇게 이끌어 나오시는 것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중심 내용입니다. 알겠어요? 「예.」

남자의 복귀의 한계점은 무엇이냐?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아버지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아버지 앞에 참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이러한 가치적인 내용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를 이루고 나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참다운 가정을 이루고 그러한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남자의 복귀의 한계점은 개성완성하여 사탄을 분별한 승리의 터전 위에서 상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 역시 개성완성하여 상대인 남성을 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신랑 신부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분이 바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리를 닦아 놓아야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의하여 태어날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전부 다 고아입니다, 고아. 참다운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있으되 이 부모는 가짜 부모인 사탄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아버지와 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사랑하게 되면 복귀의 한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는 원래 하나님의 자식으로 지음 받았지만 원수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사탄의 주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류는 원수의 자식으로 취급을 받아 나왔습니다.

따라서 참부모가 결정되면 이 참부모는 자녀를 찾아야 되며, 역사적인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은 6천년 전에 했지만 오시는 참부모는 이 역사 과정에 더럽힌 모든 것을 청산할 수 있는 자리, 사탄이 참소 못하는 그런 자리를 세워 놓아야 합니다. 육계에서 영계에 올라가도 사탄이 막을 수 없으며, 영계에서 땅 위에 내려와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이런 자리를 닦아 놓아야 합니다.

즉 6천년 전 타락한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까지, 참부모가 왕래하는 길에 있어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다 막아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의 조상이 실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참조상으로 오시는 참부모는 과거․ 현재․미래에 통할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어떻게 되었느냐? 원래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할 터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와 자녀가 갈라졌습니다. 따로따로 떨어져 나가서 네 조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되어야 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반대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을 통일시켜야 합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고 잘못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된 남자, 참된 여자, 참된 부부, 참된 자녀의 자리를 전부 다 잃어버렸습니다. 산산조각으로 다 깨졌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참다운 남자와 여자가 합해서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참다운 부부를 이루어 참다운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참부부․참아들딸이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참다운 아들딸이 우주와 인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중심한 나라가 중심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는 나라는 망하고, 중심이 없는 세계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세계를 돌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심을 가지고 출발하여 발전한 문화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는 하나님을 모셔 오고 온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생활 제도는 만민이 생활할 수 있는 생활 제도요, 여기에서 바라보는 국가관, 여기에서 논의되는 세계관, 여기에서 가르쳐주는 이념은 전세계 만민이 공통적으로 지녀야 할 국가관이요, 세계관이요, 이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류는 하나의 문을 향하여 끝날의 때를 바라며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참부모의 소원은 인류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은 주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엉뚱한 망상입니다. 또한 통일교회에 대해 이단이요, 사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없애 보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아무리 벽돌담을 높이 쌓아도 거기에서 굶주리게 되면 담을 타고 우리한테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10년 내지 20년 정도 굶주리게 되면, 속이 타서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게 손과 발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통일교회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잘 왔다고 생각합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이 잘했다고 생각해요? 「예.」 잘하긴 뭘 잘해요? 지금까지 한 것을 보면 하나도 잘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는 1968년 올해부터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시대도 타락했고, 날도 타락했고, 모두 다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사탄주관권 내에 들어가 있습니다. 수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한 날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하고 참다운 자녀를 번식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참다운 날을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날들을 사탄이 전부 다 유린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완전히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잃어버린 이날들을 찾기 위해서 부모의 날을 세웠고, 자녀의 날을 세웠고, 만물의 날을 세웠던 것입니다. 부모, 자녀, 만물의 날을 세웠으니 이제 이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한 나라의 책임자가 등장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원래 에덴동산 때부터 이런 날이 있어야 하는데 타락으로 인해 다 깨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도를 중심하여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맞이하였으며 1963년도에는 만물의 날을 찾아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탕감복귀하려고 노심초사하며 7년이라는 기간을 중심삼고 민족적인 책임을 지고 나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참부모와 참자녀가 있어야 한국에 표본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 길에서도 충효의 도리를 세우신 예수

예수는 인류의 아버지로 왔고 성신은 인류의 어머니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육을 중심삼은 부모가 되지 못하고 영적인 부모로만 역사해 왔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영육을 합한 자리에서 사탄에게 승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탄에게 몰려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는 사탄에게 내주고 영만이 부활했던 것입니다. 40일 후에 부활하여 제자들을 모아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제2이스라엘을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2천년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제1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 제1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제1이스라엘인 유대 나라는 예수를 죽인 죄로 망하고 제2이스라엘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보호하고 육성하여, 4천년간 수고한 그 공적의 기반 위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민족은 메시아를 받들지 못하고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이 민족은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부터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다시 올 때까지는 독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죄를 탕감하기 위하여 2천년 동안 지지리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만인류를 위해, 만민의 조상으로 오신 예수님을 형장에 세우고 피를 흘리게 하였기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그렇게 고생을 한 것입니다.

그때의 이스라엘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어디에 내놔도 당당한 권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국가권 위에 오셔서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복귀하여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아니하고 죽음의 자리로 몰아내니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영계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충효의 도리를 다 했습니다. 죽음 길을 가면서도 만민을 대신하여 천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마 26:39)라고 하면서 충효의 도리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죽었다 할지라도 그 정성의 기준은 사탄이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영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이스라엘의 기준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실체를 쓰고 오셔야만 된다

기독교는 영적인 제2이스라엘입니다. 영․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요, 영적인 이스라엘밖에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가는 곳곳마다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나라 없는 백성같이 흘러가는 민족이 되어 영적인 나라를 위주로 하여 실체의 나라를 소망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2천년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무엇 하러 오시느냐? 그것은 영적인 나라를 중심삼고 실체의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함이요, 제1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을 영적인 제2이스라엘 위에 결부시켜서, 땅 위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았다는 기준을 세워서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반드시 이 땅 위에 실체를 쓰고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구름을 타고 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30평생 수고한 그 노정을 전부 다 탕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33년 생애노정을 통한 십자가의 노정을 가면서까지 사탄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해원성사하고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려면 새로 오시는 주님은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인 핍박과 전교계로부터 반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핍박받는 때가 있으면 그때는 주님이 오시는 때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로 이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는 몰려서 죽는 자리에 나갔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이제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세력자가 나와서 들이친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세계적인 기반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제2이스라엘의 영적 기준을 중심삼고 제3이스라엘 민족 편성을 위해 재림주님은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영적인 나라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제2이스라엘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즉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건설하기 위해 제3이스라엘의 탕감 역사가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세워야 했던 모든 탕감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자는 신랑으로서 신부를 맞고, 여자는 신부로서 남편을 모셔야 됩니다.

여러분은 신부와 같은 입장이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분을 신부의 입장에서 모셔야 합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해와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절대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는 것도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것부터 죽는 것까지도 예수로 말미암아 인연맺어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참부모의 역사가 이 지상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로부터 몰림을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유대 나라로부터 몰린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림주님이 오실 때에도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특정한 교파를 중심삼고 특정한 민족의 반대를 받는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오시는 주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입장에 선 것이 바로 한국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잘 모셨다면 그 민족은 섭리사에 길이 남을 영광된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은 제일 불쌍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재림주님을 맞이한 나라가 책임을 못하면 유대 나라와 같은 실정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재림주님이 오신다면 한국은 제3이스라엘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한국이 제3이스라엘로 선택을 받으면 한국에 있는 기독교는 유대교가 되는 것이요, 기독교를 믿는 신자는 유대교인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 신자들은 재림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시면 이단이라고 핍박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몰라보고 이스라엘 민족이 몰아낸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교회에서 추방당하고 핍박받고, 나라에서 핍박받고 그 백성에게 핍박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나라와 교회와 백성이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핍박을 받는 과정에서 죽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시는 주님이 사탄세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인을 세워야 합니다. 그 개인을 통하여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편성해야 합니다.

또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원래 아벨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그 아벨이 책임을 다하여 완성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못하였기 때문에 아벨의 사명을 대신 할 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진 곳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새로운 종족을 편성해야 하고, 새로운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나라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한국을 세계 만방에 대하여 평화의 종주국, 조상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교회로부터 몰리고 백성들로부터 몰리고 나라로부터 몰림받은 것을 전부 다 탕감해야 합니다. 이것을 탕감하려면 그런 현상이 재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가정적으로 벌어지고 국가적으로 벌어져 나갈 때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는 고생이 지겨워서 죽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움 받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갈 곳이 없어서 남아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억지로 이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어디에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이단이니 사교니 하며 모함하고 핍박하지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돌감나무인 줄 알았는데 가을이 되어 감 중에도 왕감이 열리니 눈이 둥그래져서 도둑놈처럼 몰래 담을 넘어와서 이것을 따먹겠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겠다고 야단을 치지만 선생님은 그들에게 걸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겠다고 난리를 치더라도 선생님은 태연합니다. 그러니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선생님이 그들 가운데 3분의 1이나 절반만 빼내면 그들은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개 박사, 아무개 박사가 아무리 그래 봐야 다 헛일입니다. 누가 밀려 나가나 해 보라는 것입니다. 전보다 더 심하게 핍박해야 됩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끄떡없습니다.

제3이스라엘의 일꾼이 되어야 할 우리

지금까지 세상에 예수의 한을 풀어 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가 바라던 소원의 나라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이루려던 나라는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던 완성된 이스라엘 국가입니다. 또한 예수가 찾고자 원했던 것은 승리한 이스라엘 민족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승리한 가정이었습니다. 이것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반대하는 사탄세계에서 뽑아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반대하는 목사와 장로의 아들딸들을 전부 다 통일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전도할 때 목사, 장로의 아들딸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가짜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났다고 머리를 휘젓고 다녀도 다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누가 심판하느냐? 그 아들딸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대했던 부모의 무덤을 파 버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의 무덤을 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의 소원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죽지 않고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소원은 무엇이냐? 예수의 소원을 다시 연결하여 이 땅 위에서 사명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을 못하고 반대하던 유대나라, 유대교단, 유대민족을 탕감시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은 통일교회를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더라도 그들을 전부 다 때려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기하는 형제들에 의해 구덩이 속에 들어갔다가 상인들에게 팔려서 처량하고 슬픈 사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혈연적인 인연을 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축복의 은사를 받은 자신인 것을 알았기에 수난을 당할 때마다 그것을 참아 가며 뜻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형제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들이 반대를 하더라도 그들을 전부 다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어차피 핍박하던 사람들도 통일교회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는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 편, 즉 유대교를 대신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천국을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앞으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합동 작전을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명령 한마디에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싸울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금년부터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 어떤 용기를 가져야 하느냐? 예수를 몰아내자는 원수의 일당들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옹호하고 새로운 이스라엘 종족과 민족을 편성해서 유대교를 대신한 새로운 제3이스라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능가할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 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은 6천년 역사를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쳐 복귀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7년으로 탕감복귀의 사명을 단축해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제1차 7년노정을 요구했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이스라엘이 거쳐온 6천년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연결하여 탕감하자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복귀역사는 맞고 빼앗아 오는 역사

통일교회가 출발되었을 때 본래는 기성교인부터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인들을 전도했더라면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22년간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삼고 기성교회를 전도하여 세계적인 발판을 이루어 그 기대 위에 세계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민족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21년 동안 돌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의 종적인 역사를 탕감하기 위하여 횡적으로 21년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야곱이 레아를 얻기 위한 7년, 라헬을 얻기 위한 7년, 만물을 얻기 위한 7년, 이렇게 7수를 중심삼고 복귀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통일교회가 재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통일교회가 출발되었을 때 기성교회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선생님 자신이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아벨적인 입장에 서서 장자의 위업을 복귀했을 것입니다. 장자의 위업을 복귀하기 전에는 축복의 자리에 갈 수 없으니, 하나님 편으로 장자의 위업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열렬한 크리스천이 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잃어버린 12사도형, 예수를 중심삼고 수천 명이 따르던 그 형을 선생님이 복귀해야 됩니다. 어려운 십자가의 노정에서도 생명을 각오하고 도망가지 않을 수 있는 무리를 규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부딪쳐 나가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많은 핍박을 받고 있지만 아벨이 사탄 편인 가인에게 맞았던 거와 마찬가지로 들이맞아야 한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기왕 맞는 바에는 실컷 맞아야 합니다. 변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중심삼고 말없이 맞으며 나온 역사입니다.

선생님은 공산당들에게 끌려가 맞으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에게 우선 맞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으로 서려면 사탄을 대표한 가인적인 사람들에게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은 가인적인 사람들에게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가인편입니다. 우리는 가인 아벨의 싸움을 거쳐 맞는 자리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 자리는 망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빼앗아 오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개인이 맞게 되면 세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맞는 자리에 서게 되면 세 사람을 빼앗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복귀원리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한 사람을 사탄이 빼앗아 감으로 말미암아 아담, 예수, 재림주의 3시대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 편의 참된 아담을 칠 때 하나님이 세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되고 선한 자리에서 맞는 날에는 반드시 새끼를 친다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맞고 빼앗아 오는 역사입니다. 그동안 우리 통일교회는 많이 맞아 왔습니다. 교회에서 반대받고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늘이 필요로 하는 사람, 제3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을 닦을 수 있는 핵심 요원은 이러한 때, 즉 교회 반대 시대에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중심 식구들은 기성교회가 전적으로 반대할 때에 하늘이 빼앗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외적으로는 나라에 예속되어 있지만 내적으로는 소생기․장성기․완성기를 거쳐가고 있습니다. 이 정권, 장 정권, 박 정권들은 통일교회가 힘이 없다고 들이쳤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맞는 가운데서 우리는 발전했습니다. 박 정권은 조금 협조했습니다. 협조하고 싶어서 협조한 것이 아니고 통일교회 이념이 욕심나서 할 수 없이 협조한 것입니다.

악은 먼저 치고 망하는 것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자유로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피눈물을 흘리며 갔던 죽음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1960년을 중심삼고 새로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즉 2천년 전의 예수가 소원하던 기준을 이 땅 위에서 복귀할 수 있는 섭리의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역사적인 기점이 마련되었으므로 1960년부터 새로운 역사 시대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 7년 기간 내에 전부 다 복귀해야 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의 7년 동안에 민주주의가 세계를 수습하지 못하고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 이 세계는 엉뚱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망하고 있는 것을 흥하게 할 수 있는 이런 7년 기간을 중심삼고 민족을 복귀하여 국가적인 민족 형태를 이루어야 하며, 나아가 세계가 하나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소원하시던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 자신을 중심삼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찾아 그 찾아진 부모와 자녀와 만물을 중심삼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날을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가 소원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목표를 중심삼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웠으며, 제1차 7년노정을 넘어온 1968년 정월 초하루를 하나님의 날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출발을 하여 교회를 이루었고, 그 교회를 통하여 민족해방운동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삼천리반도와 삼천만 민족에게 희생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맞고 핍박받으며 몰림받으라는 것입니다. 몰림받는 사람은 반대한 사람들의 모든 복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악은 선을 치고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은 먼저 치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두 나라가 싸우게 되면 먼저 싸움을 시작한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악은 먼저 치고 망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하늘 편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치려면 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치는 사람들은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적인 자리에서 실컷 맞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동네에서 죄 없고 의로운 사람이 핍박당할 때,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 전부 다 그 사람을 도울 것입니다. 이같이 통일교회가 지금 핍박받고 있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기성교회에서 반대하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이 언젠가는 들고 일어설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방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들은 그저 선한 입장에서 묵묵히 일만 하면 됩니다.

우리들이 걸어온 7년 동안의 공적인 역사의 배후를 보면 지긋지긋하게 고생한 내용이 있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역사적인 실적을 가지고 부락이면 부락에 들어가서, 우리는 과거 7년 동안을 세계적인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토로하게 되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나이라도 통곡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연을 우리는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아무리 잘났다는 사람들도 다 우리에게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활발하게 승공운동을 벌여 온 통일교회

요즘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설교하기를 통일교회의 교리는 나쁘지만 통일교인들의 활동은 본받으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우리들의 움직임을 보면 기성교인들은 꿈도 못 꾸는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방에서 활동한 공적이 면을 통하고 군을 통하고 도를 통해서 중앙권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도원에서 5․16민족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교회에는 상을 탄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상장대회를 열면 아마 수천 명은 참여할 것입니다. 세상은 통일교회가 이렇게 잘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했고, 빨갱이를 잡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잡았습니다. 학사 출신인 우리의 젊은 청년들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동네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밥을 굶어 가면서까지 뜻을 전한 것입니다. 또한 노동을 하면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 나온 길이고 또한 가야 되는 길입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 중에는 국민이 납세한 국가 재산을 가지고 별의별 짓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정부패의 실정에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누가 바른 사람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판정하고, 양심 있는 사람들이 판정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신도 수로 보면 우리 통일교회의 신도는 많지 않을지 몰라도 이제 우리 편을 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을 중심삼고 이제 우리는 세계적으로 확산된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서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지금 세계의 3분의 1을 삼키고, 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까지 그 조직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모르는 아기와 같은 통일교회가 공산당을 때려잡겠다고 하며 나서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알았습니다.

요즈음 입장이 거꾸로 되었습니다. 이제는 통일교회의 강사 아니면 안 되겠기에 차를 가지고 찾아다니면서 서로 모셔 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통일교회에서는 공산당을 이기자고 하니 승공계몽단이라 하라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습니까? 천사가 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승리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실권을 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때려잡는 데는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이 통일사상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났더라도 천만 군중을 울릴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일화(逸話)가 많이 있습니다. 전에 우리 어느 지역장이 반공 강사로 어느 고장에 갔을 때 일입니다. 거기에는 동네 유지들이 다 모였으며, 경찰서장으로부터 군수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은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반공사상 강좌를 책임진 선생님이 온다고 했는데 그 선생님은 안 오고 웬 더벅머리 총각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강사의 심부름꾼인 줄 알고 ‘임자 어디서 왔나? 강사 선생님은 언제 오시나?’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강사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강사로 통일교회의 아무개가 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냐고 묻길래 제가 아무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더벅머리 총각이 강사인 줄 몰랐던 그들은 쑥덕공론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 또래의 어린 청년이 강사라니 면구(面灸)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공문으로 초청했으니 단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두어 시간 반 강연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눈이 뒤집어지는 것이었습니다.(웃음) 반공 강사인 우리 지역장들은 전부 20대 청년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군수나 경찰서장의 친구가 되었으니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요즘 이만하면 출세한 것이지요? 선생님 말 듣고 행했다가 망한 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이념이 좋다고 하더라도 실천한 실적이 그 이념의 기준에 못 미칠 때 그 이념은 아직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적이 이념의 기준을 넘을 때에는 그 실적 이상으로 이념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적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맨손으로 나왔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실적을 쌓아 인근 사람들을 규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사상과 이론, 그리고 다른 면에서 보더라도 공산당보다 더 지독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해 크리스찬신문과 교회연합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공산당은 세상을 모릅니다. 그들이 지독하긴 지독한데 알고 지독한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지독한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통일교회 사람 같으면 이 나라는 바로 됩니다. 통일교회는 소망이 있는 애국 단체요, 통일교인은 어느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은 한국 실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식구들이 어떠한 사정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7년 동안 어떻게 일해 나왔는가를 선생님은 빤히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탕감을 해야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선다

이제 우리는 예수가 이루지 못하고 죽었던 이스라엘권을 세우고 이것을 통하여 세계적인 사명을 연결시켜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이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즉 구약시대․신약시대․재림시대의 3시대를 이 기간을 통하여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7년노정을 넘어서면 어떻게 달라지느냐?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7년이 되기 전까지 통일교회는 어떤 기준이냐 하면 소생기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이 기간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장성기에 해당하는 시대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은 누구냐 할 때에, 축복가정은 아벨이고 축복받지 않는 식구는 가인입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통일종족을 이루어서 민족적인 탕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탕감을 해야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과 축복받지 않은 통일교회 교인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서 사탄세계의 가인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편으로 복귀된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이 복귀된 기준에서 서로 합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을 넘어감으로써 하나님의 6천년 복귀섭리역사를 일시에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충성을 다해서 7년노정을 넘어가게 되면 대한민국 전체의 사탄 편 가인이 이것을 조건으로 하나님 편 가인으로 연결되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7년 기간에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서 국가적인 기준에서 통일교회가 아벨이 되어 복귀하게 되면 그 권내의 사탄 편 가인은 자동적으로 하나님 편 가인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전체가 가인이 되고 통일교회가 아벨이 되어 이렇게 복귀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과 통일교회가 하나되어 세계적인 탕감조건만 세우게 되면 사탄 편 가인인 세계 인류가 하나님 편 가인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는 복귀의 단계를 넘어가면서 발전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복귀노정은 이렇게 이중목적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종족적인 입장에 서서 민족적인 탕감 기준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민족적 기준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통일교회가 나가는 길을 반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권 내에는 기성교회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 기성교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기성교회는 아벨의 입장이며 믿지 않는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족적 사명을 완수한 대한민국의 외적인 아벨의 입장에서 가인의 입장인 기성교회를 탕감복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단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와 다리를 놓기 위하여 초교파를 중심삼고 활동해야 합니다. 또한 국가와 다리를 놓기 위하여 사회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 승공연합이란 단체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사명

종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게 된다면 제1이스라엘 시대는 소생기에 해당하는 민족적 탕감복귀시대이고, 또한 제2이스라엘 시대는 장성기로 국가적 탕감복귀시대이며, 제3이스라엘 시대는 완성기의 세계적 탕감복귀시대입니다. 제1이스라엘이 완성되면 그 기반 위에서 제2이스라엘이 탕감복귀의 사명을 해야 되고, 제2이스라엘이 완성되면 제3이스라엘이 탕감복귀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제3이스라엘은 제1, 제2이스라엘의 내적인 모든 것을 완전히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과정의 엄청난 내용이 다시 한 번 재현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명을 연결시켜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 개인이 뜻을 세워 갈 때는 소생기가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는 장성기가 되며, 그다음 완성기는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뜻을 세우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가정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에게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의 출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족복귀는 종족의 기준만으로는 안 됩니다.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적인 환경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의 아벨인 축복가정이 나서야 되고, 그다음에는 통일교인, 다음에는 기성교인들이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중심은 어디냐 할 때에 통일교회입니다. 그 중심 자체는 점점 발전하여 큰 분야와 연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교회를 연결시키고, 교회와 가정은 반대하는 일반 교파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일반 교파가 하나되어서 국가를 연결시키고, 그 국가와 교회가 하나 되어서 세계까지 연결시켜 탕감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적 기준을 횡적으로 탕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완전히 탕감복귀시키려면 가정에 대한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교회 핍박, 국가 핍박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책임지고,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소생기와 장성기를 거쳐서 완성기로 나가지만, 뜻적으로 볼 때는 국가가 소생기에 있고, 기독교가 장성기에 있으며, 우리가 완성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뜻을 대할 수 있도록 누가 만드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는 자동적으로 완전히 복귀되어 넘어오는 것입니다. 복귀의 책임을 완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로 보아 참부모가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사명의 한계점은, 7년 단위를 세 번 합쳐서 21년 기간을 중심삼고 총탕감하여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21년노정을 다 마치게 될 때 한국은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고 세계는 가인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지금까지 7년 동안 세계는 전부 다 천륜에 반대하는 가인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국가적인 기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넘어가게 되면 세계의 모든 인류와 수많은 국가는 하나님을 지지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국가가 아벨적인 국가로 서려면 반드시 세계적인 탕감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세계적인 탕감 기준을 세운 그 나라의 외적인 기준은 사탄 편 가인의 입장에서 하나님 편의 가인의 입장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하나님 편에 사탄과 사탄 편이 접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제부터는 선한 영계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편 가인의 입장에서 하나님 편 가인의 입장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탄이 후퇴할 때

7년노정의 한계선을 넘어가기 전까지는 외부의 모든 권세를 사탄이 전부 다 지배했으나, 여러분이 7년 기간을 넘어가서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게 되면 사탄의 참소조건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을 사탄이 참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가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준에서 세계가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는 입장에 서면, 아벨을 중심삼고 승리의 결정권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승리의 결정권을 갖추었기 때문에 실체를 중심삼고 볼 때 가인의 입장인 사탄세계에 대해서 승리했다는 기준의 시대권 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는 하나님을 반대하던 사탄이 후퇴해야 할 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책정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관하는 권내에 사탄이 참소하는 권한이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사탄세계가 무너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한국의 탕감 기준을 세계와 연결시켰기 때문에 여기에서 승리한 기준은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실체적 상대의 기준만 결정되면 여기에서부터 승리의 기반은 자동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복귀의 노정에서 승리한 기준과 하나님의 날이 결정된 기준을 갖추게 되면 영계가 소생됩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이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승리권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편의 영계가 사탄세계를 추방하는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선한 영계가 소생권을 차지하고, 이 지상 인류가 영계 앞에 장성적인 입장에 서게 되며, 한국은 완성 기준에 설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날과는 무엇이 다르냐? 옛날에는 아무리 수고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며 사탄과 싸웠더라도 그것은 다 인류의 죄를 탕감하기 위해 사탄에게 빚을 갚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수고하는 것은 빚을 갚는 수고가 아닙니다.

악의 재산을 자기의 모든 소유로 결정지을 수 있는, 즉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수고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탄 세계에서 도를 닦던 사람들도 자기를 중심삼고 종족복귀, 민족복귀의 사명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명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도를 닦다 영통한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증거했지만 통일교회에 와서 굴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7년의 고비가 넘어갔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편에 서지도 못하는 시대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부터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통일교회에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도 이런 일이 가끔 있습니다. 사정이 아주 긴박하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한계점을 넘자

이제는 이 사람들이 들어와 가인 아벨 복귀를 해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적 입장에서 탕감복귀하려면 실체복귀를 해야 합니다. 실체복귀를 함으로 말미암아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기대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7년노정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해원성사하기 위한 탕감복귀의 조건으로 소모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하여 자신들의 소원을 해원성사하기 위한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개개인은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어서 세계적인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세계로 향하는 여러분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반대받는 길이 아니라 환영받으며 갈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권 내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참부모를 중심한 세계적인 복귀의 한계점이라는 것이며, 7년 기간을 중심삼고 그 기준을 넘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남자나 여자가 복귀하게 되었다면 하나의 신부와 신랑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다운 부모의 자리를 결정해야 되는 것이며,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을 편성하여 복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한 것이 7년노정의 싸움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 편성을 마친 후 국가적 기준의 탕감조건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국가적인 한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시대권 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권 내에서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운세가 우리 앞에 다가왔고, 한국이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었으니, 가인적인 사탄세계와 하나님 편의 영계가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통합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이제 30억 인류가 이러한 책임을 중심삼고 협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에 지금까지 있었던 처량하고 비참한 역사 과정은 없으리라고 결론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2차 7년노정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복귀의 한계점을 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민족적인 한계점을 넘어 책임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은 전부 다 가정적 메시아의 책임을 완수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민족적인 탕감 기준을 위한 소모전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소모전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과 가정․종족․국가․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여러분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제2차 7년노정에서도 여러분 각자가 책임을 다해 주길 부탁합니다.

<기 도>

아버님! 대한민국이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저희들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 앞에 감사드리면서 바라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이 자리에까지 나오기 위해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제물적인 가정을 연결시켜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소망의 기준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 나왔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이 나라와 세계가 가는 길 앞에 섭리의 방향이 어떻게 갈라져 나갈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수고하여 세우신 공로로 말미암아 개인복귀 기준과 가정복귀 기준, 그리고 종족복귀와 민족복귀의 기준을 중심삼고 국가복귀의 기준을 넘어서, 이제는 세계복귀의 운세를 규합할 때가 되었사옵나이다. 지금까지 탕감을 위해서 세우신 뜻 앞에 아버지께서 승리의 터전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은 하나님의 날을 가질 수 있을 때가 되었음을 아옵나이다.

저희가 하나님의 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디를 가든지 아버지를 중심삼고 영광의 나라를, 영광의 백성으로서 찬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반대하는 무리가 없게 하시옵소서.

지금까지 저희들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탕감복귀하는 시대권 내에 있었지만, 이제 아버지를 대신해서 승리의 기준을 갖추었으니, 여기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거든 그들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을 중심삼고 믿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의 마음에 쌓인 근심과 걱정을 벗어 버리고 자신감과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제2차 7년노정을 넘어야만 되겠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때가 다가오기에 저희들이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나아가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뜻을 펴시사 당신의 승리의 모습을 자랑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믿고 실천하는 가운데 아버지께서 직접적으로 간섭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살아 계신 당신을 시봉하고 사는 아들딸이라는 산 증거를 보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심정의 인연을 일치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살고, 아버지와 더불어 싸우고, 아버지와 더불어 전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아버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세계의 국가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 앞에서 역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사오니, 금년부터 저희들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아버지 뜻 앞에 일취월장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과의 인연으로 영광의 실체가 되어 아버지의 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시대에 있는 저희들이 생명을 내걸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난날의 지루한 역사 과정을 넘어서 새로운 소망의 세계로 달음질칠 때 저희들의 말 없는 실천이 아버지 앞에 연결되고, 영원한 저희의 후손 앞에 남겨질 수 있다는 것을 감사드리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7년을 꾸준히 싸워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반을 마련하여 온 세계에 아버지의 심정을 알리기 위해, 저희들은 거름이 되고 제물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뜻을 달성하기 위하여 저희들은 충효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아버지 앞에 가까워지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이 시대에 있어서 저희의 있는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이제는 그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과 화합하여 하나되는 길을 모색하고, 대한민국과도 서로 화합하여 하나되는 길을 모색하고, 세계까지도 화합할 수 있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 통일된 세계로써 새로운 운세와 새로운 천륜을 따라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새로운 이상세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터전을 준비하기 위해, 저희들이 노심초사 정성을 다하고 기도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제 복귀의 한계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정이 가야 할 길이 있고, 종족이 가야 할 길이 있고, 민족이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그 한계점에서 사탄을 막고 아버지를 모시어 아버님의 날을 중심삼고, 천하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직접적으로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되겠사옵나이다. 그리하여 참다운 자격을 갖추고 그 가정의 무기를 가지고 아버지를 시봉하여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있는 때가 불원한 장래에 속히 올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이러한 사연을 털어놓고 스스로 이 땅 위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시대, 직접적인 조직과 뜻을 중심삼고 실천하여 고지를 장악하고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어서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길을 위해서 저희는 모든 수고를 바치겠사오니, 남아진 여생을 기울여 총진군하는 데 있어서 생명의 원천이 되고 힘의 원천이 되시어서 승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오며, 다가오는 일년도 승리의 해가 되게 저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각자가 주저함이 없이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믿는 가운데 자신을 가지고 실천궁행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고, 하늘의 용사로서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모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성경을 보면 끝날에 천주적인 중심존재로 신랑 되시는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오늘날까지 이 땅 위에는 어떠한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 자기의 뚜렷한 양심의 기준을 갖고 몸을 지배할 수 있는 용자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천륜이나 천정에 동하여 인간의 모든 심정을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용자가 없었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을 가려면 먼저 나(예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으며 갖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며, 갖고자 하는 자는 잃게 되고, 잃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갖게 되며,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이런 역설적인 말씀을 하셨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마음과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마음 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몸이 몸 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심정이 심정 된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이 한탄할 일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땅 위에서 마음의 기준을 세워 몸을 정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이 경과하였지만 아직까지 온 인류의 마음을 중심하고 몸을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승리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한스러운 문제를 놓고 누가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냐?

천정에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는 확고한 중심을 찾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천륜의 심정을 가지신 분 앞에 정복시킬 것이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이 땅에 예수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런 사명으로 오신 예수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부가 가져야 할 양심 기준은 어떤 것인가? 땅 위의 생활에 젖은 인습적인 양심 기준이 아닙니다. 이 땅의 인륜도덕에 화하거나 그것을 입증하는 양심 기준도 아닙니다.

또 참된 신부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현재 이 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신랑으로서 신부의 모습을 찾아 나온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이었느냐? 하나님의 심정을 사모하고 그 심정을 체휼하여 영원한 양심 기준과 영원한 몸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방향성을 갖춘 하나의 용자이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 할진대 예수님은 인류의 참다운 심정의 신랑 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문명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모든 문화는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은 번화한 세계를 만들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 문제, 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못되고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복잡한 환경과 복잡한 조직 형태가 나타났으나 그 모든 전체와 내 심정이 통하지 못해 모든 것과 화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하늘땅이 같이 즐거워하고 하늘땅이 같이 외쳐 줄 수 있는 기준을 갖지 못한 이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과 심정이 찾고 있는 방향과는 판이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내 한 자체는 외적으로 말할 수 없이 끝에 도달하였고, 내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공허만이 남아 있으니 나를 세울 수 있는 그 중심은 어디에 있는고? 오늘날 인류는 허덕이는 입장에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마음과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을 요구하므로 그러한 심정에 대하여 외적인 생활을 통할 수 있는 몸과 실제의 인연을 조정하는 어떠한 기준이 서 있지 않으면 인류는 어느 시대고 허덕이는 입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하나님이 목표하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오늘 현세의 이런 문화세계와 문명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기준과 심정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문명을 지배할 수 있는 세계가 하나님이 원하셨던 세계요, 우리 선조들이 후대 만민 앞에 남겨 주어야 할 세계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찾아가신 자리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세계를 이루기 위해 환경이 복잡할 적마다 그 와중에 뛰어들어 수습하려고 하지 않고 그 환경을 피해 갔습니다. 피해서 가는 곳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데가 아니었습니다. 남몰래 깊은 숲속과 산골짝을 더듬어 다니는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그의 생활은 보이는 세계에서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도를 보이는 세계에 구현해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그 시대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기도하고 호소하는 순간은 모든 만민이 찾지 않는 순간이요, 만민이 생각하지도 않는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간 노정은 온 인류가 공통적으로 걸어가야 할 노정이었습니다. 그 노정은 하나님과 사탄, 선과 악이 부딪치는 접경지대였습니다. 그런 자리를 예수님 혼자서 찾아 들어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그 자리는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접선하는 중심점이었습니다. 중심을 찾아 들어가는 자리였습니다. 혹은 인간에게 고통이 있고 슬픔과 어려움과 죽음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 슬픔과 어려움과 고통, 혹은 생사의 경계선을 밟기 위하여 찾아 나갔던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지를 찾아가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천상과 지상의 어떤 것이 자기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갈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심정만은 불가침적이었습니다. 그 심정만은 철석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섭리적인 조건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탄을 쳐부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예수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천상에 대하여 사무친 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무친 심정을 걸어 놓고 싸웠기 때문에 사탄도 손을 든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기도해야만 인류가 흠모하는 심정의 주인공, 신랑의 자격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워 놓으신 기준

예수님은 이 땅에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요, 어차피 어느 한때 해결해야 할 세상이기에 이 세상을 해결해 버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이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을 해결하는 세계가 문제입니다. 해결해야 할 세계가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는 세계가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심정이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는 심정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구원의 세계, 구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용자이셨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찾기 위해 만민을 대신하여 혈혈단신 탐험의 용자로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많은 안타까움이 그 심정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었습니다. 스스로 만민의 구주라고 인정할 수 있고, 하늘과 땅을 걸어 놓고 하나님과 사탄을 걸어 놓고 싸움하는 그 노정에서 이것이라고 해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탄세계에 대해 하나의 승리의 중심을 세울 수 없고, 하나의 승리의 뜻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를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예수님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모험가였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는 탐험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떠한 인연과 사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세계를 찾기 위해서 모험의 자리로 뛰어드신 분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나 혹은 어떤 지역을 탐험하기 위해 뛰어드는 모험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상에 있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험의 표적으로 세워 놓은 최고의 기준은 무엇이냐? 예수께서 공인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은 무엇이냐? 순교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참된 그 무엇이 있다 할 때는 죽음을 걸어 놓고 사무친 심정을 붙들고 나설 사람들이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정의 세계를 세우려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갈보리 산상에서 애통하게 죽어갔던 예수로 하여금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입장에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참의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과 어떠한 모험과 함정이 있다 할지라도, 내 몸을 던져서라도 일생을 바쳐 찾아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참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것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탄이 이 싸움의 역사를 연결시켜 나온다는 것을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을 이겨 놓고 ‘하나님!’ 하고 불러야 할 본연의 아들딸은 어디에 갔습니까? 심정에 사무치고 심정에 화하여 ‘내 아버지시여!’ 하고 부를 수 있는 그 아들과, 내 아들아! 하고 부를 수 있는 그 아버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또 그 세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은 지금까지 그런 세계를 보지도 못했고 찾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말씀하시길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 하였습니다. 또한 ‘너희는 나를 신랑으로 모셔라.’라고 하였으며, ‘너희를 신부로 맞이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천상에 인간세상의 참의 역사만을 주도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그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어지러운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있으나 없으나, 나중에는 타락한 세상과 함께 없어질 것들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알고, 앞으로도 수고하셔야 할 아버지를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버지를 알고서 심정에 북받쳐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의 아들이 그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그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인류에 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못하니 기뻐할 수 있는 표적으로 예수님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참을 찾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모두가 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우주에 있어서의 참의 주체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참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갖지 못한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부부,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형제, 참다운 민족과 국가․세계․천지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참의 내용은 인간이 찾고 있는 참의 내용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대해 섭리하시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뇨? 하나님은 참다운 만민이 되어 주길 바라고 계십니다. 참다운 전인류, 참다운 백성, 참다운 충신이 되어 주길 바라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서는 참다운 자녀가 되어 주길 바라는 것이요, 참다운 부모가 되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의 만물, 참의 자녀, 참의 부부, 참의 부모가 온 인류 앞에 나타난 후에야 하나님은 땅 위에 실체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참의 실체가 하나님이라 할진대 하나님은 반드시 참의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어떤 한때에 심정과 마음과 몸, 생활환경, 세계가 옳다고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머리숙여 경외하며 인류가 영원히 내 주인이 되어 달라고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심정으로 바라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실체를 상봉하는 날은 인류역사가 선과 참을 찾아 헤매던 것이 종결되는 날로서 역사를 정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소원성취의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날, 그러한 곳, 그러한 때를 세우기 위해 찾아 나오고 계십니다. 죄악 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나, 가정, 사회, 국가 이 모두는 그 한 날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심정의 말씀을 토로할 참제자를 갖지 못한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해원과 인류의 선의 목적을 해결하기 위한 중심적인 사명자로 왔지만 ‘그 심정에 속속들이 스며있는 모든 우주적인 선의 이념을 나에게 소개해 주시옵소서.’ 하며 따를 수 있는 하나의 제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하시며 한탄한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렇게 참의 자체로 나타나 참의 결실을 위해 참의 행동을 해야 할 예수님이 참의 말씀을 하지 못했고, 참의 행동을 하지 못하고 가셨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한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예수가 아닙니다. 참의 개인은 이러한 사람이다, 혹은 참의 가정은 이러하고, 참의 사회, 참의 국가, 참의 하나님과 일치하는 세계는 이러한 세계이며, 그 복귀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면서 마음 깊이 소망해 왔던 참의 중심 기준을 회생시키는 것이 예수가 인류를 찾아왔던, 구세주로서 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명의 내용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 가신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가는 대합실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참을 찾아 나가는 노정은 6천년이 걸렸어도 해결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각자가 느끼고 깨달은 심정을 통하여 내일부터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7년노정에도 또다시 끝이 날 가망성이 없거든 아버지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호소할 수 있는 분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됩니다. 꿈도 안 꾸는 인류가 어찌 하나님의 백성으로 충의의 도리를 다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효자․효녀․열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선민으로서의 할 일은 복귀섭리, 즉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운동입니다. 구원섭리의 목적이 무엇이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지음받았던 사람이 깨져 나갔으니 다시 말씀을 통하여 재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내 몸을 통할 수 있는 말씀이 떠나 버렸고, 내 마음을 통할 수 있는 말씀도, 내 심정과 더불어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말씀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말씀, 즉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진리는 무엇이냐? 진리는 곧 말씀이라 했습니다. 또한 진리는 조직의 원칙이며 천륜의 근거입니다.

지금까지 세계는 진리를 찾아 나왔으나 이제는 참된 말씀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나 참된 말씀이 나오지 않았으니 참된 생명의 실체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참된 생명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으니 참다운 사랑의 실체가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으니 참다운 우주관이 하늘땅과 더불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싸워 나오고 계십니다. 개인을 정복하고, 가정을 정복하고, 민족․국가․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모험과 개척정신에 의해 섭리는 진전된다

노아는 자기 일신을 정복하고 자기 가정을 정복하기 위하여 120년 동안을 싸웠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노아는 ‘일년이 지났으니 이제 119년 남았구나.’ 하며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뜻을 품고 큰 뜻을 대하고 나오는 사람 앞에 한 번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 하나님에 대해 변치 않는 충절의 심정을 가지고 가정의 핍박, 사회의 핍박, 혹은 자신의 육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욕망, 즉 정욕이나 식욕 또는 탐욕 같은 이런 복잡한 모든 것을 정복하여 승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은 택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를 정복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정복이 무엇이냐? 말로 해서 안 되겠으면 때려서라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사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6천년 역사의 종말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전체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 뜻 앞에 귀일시켜, 나로부터 전체를 정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춘 승리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자기 일신을 정복하기 위하여 모험을 하였고, 어떠한 어려운 길이나, 어떠한 개척자의 길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20세기,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는 옛날 선조들이 걸어 나왔던 그 환경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개인․가정․민족․국가를 대해 나온 섭리시대였으나, 오늘 이 시대는 세계를 넘어서 천주를 대하여 섭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떠한 모험이 있다 할진대,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나 이상 모험할 사람이 없다.’ 할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자신을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가정을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가정을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사회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사회를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국가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국가를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세계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세계를 붙들고 우는 자는 천주를 건설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개인의 심정을 세계로 끌어올려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해명하고 하나의 세계적인 실체를 갖추었다고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신비스런 경지에 들어가 보면 그 세계는 모험에 의해서 교체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단계의 범위를 넓혀 가는 데에는 반드시 모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어 놓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가정의 기준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몸을 쳤습니다. 몸을 정복하기 위해 몸을 치기를 120년, 별의별 비난과 조소를 당하고 억울한 환경에 처해서도 노아는 하나님이 세워 준 심적 기준, 하나님이 이끌던 그 심정에 사무친 것이 변할소냐 하며 그 기준을 중심삼고 120년 동안 몸을 쳐 나왔던 것입니다. 노아가정이 끝까지 세상적인 욕구와 모든 조건을 치면서 민족을 흠모하고 나왔던들 하나님은 그 노아가정을 중심삼고 민족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정은 수고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모든 곡절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노아가 세운 심적 기준을 붙들고 그의 후손들이 민족을 바라보고 나갔던들, 그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텐데 노아가정이 가정적인 뜻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 민족을 통하여 이루려던 하나님의 뜻이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뜻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진행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깨졌다고 개인을 붙들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천륜의 때이며, 가정이 깨어졌다고 해서 천륜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은 깨졌어도 천륜은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이 깨져 나가더라도 때는 가정을 세워 섭리하셔야 할 때이기에 하나님은 개인과 가정까지 복귀하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이 깨졌다고 해서 거기에서 섭리를 지체하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회를 복귀하기 위한 때로 움직여 나가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환경을 넓혀 가면서 섭리의 때를 맞추어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안다면

개인으로서의 노아와 그 가정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400년 후에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또한 뜻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다시 400년 후에 모세를 세워 역사하면서,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할 때와 같이 환경적인 조건을 맞춰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할례의 법도를 세워서 이방 사람까지 끌어넣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해, 민족적인 시대가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애급에 때려 몰아넣고 연단시킨 것입니다. 때려 넣은 것은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 그것은 합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하나되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대하고 있는 바로 궁중은 원수다. 애급 사람들은 철천지원수야.’ 이렇게 연단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살 수 있는 한 곳이 있다 할진대 전부 다 ‘옳소이다.’ 할 수 있는 한때를 바라보면서 몰아넣었습니다. 몰아넣는 그 시기가 민족적인 섭리 시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민족을 대표하여 모세를 모험의 선봉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는 미지의 가나안 땅을 향하는 정탐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결의를 가진 탐험의 용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바로 궁중을 반대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미지의 노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조로부터 약속한 가나안 땅, 그 본향을 찾아가는 그의 마음이 어찌 변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바로의 땅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 심정에는 가나안 땅에서 행복을 노래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까지 백절불굴의 심정을 갖게 하고 전진의 일로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60만 대중을 거느리고 출발하였으나 광야의 40년노정에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같은 심정으로 모험할 줄 알았던들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어떤 곳인지 그 땅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어떠한 생활적인 의식과 감정보다도 강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절대로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구, 배고파 죽겠구나. 아이고, 우리는 죽는구나.’ 하고 아우성쳤던 그들이었기에 광야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역사상의 어떤 위인, 혹은 선각자가 있다 할진대 그들은 그 시대에서 즐기고 만족을 느끼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더 높은 이념의 한 곳을 향하여, 약속된 한 곳을 목적지로 삼아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고 탐험적인 길을 갔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홍해가 웬말이며, 또한 광야에서의 아말렉 족속의 공격이 웬말입니까? 40년 동안 유리방황하다가 바로의 속박에서 풀려 나온 장정들은 모두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고 그들을 인도했느냐? 12지파를 대신한 열두 사람을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은 자기들 힘으로는 가나안 7족을 당하지 못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열두 사람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시대에 있어서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욱박이이며 고집쟁이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모험 기질이 왕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반기를 들고 있을 때, 당당코 나타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바로의 목을 쳐누르던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 쳐서 탄탄대로의 길을 만들어 건너게 해 주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광야에서 굶주림에 허덕일때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주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라고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개척의 복귀노정을 찾아가야 할 이스라엘이었던 연고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시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의 세계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민족시대를 거쳐 국가시대를 맞음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때는 이미 국가적인 섭리시대였기 때문에 국가를 걸어놓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얼마나 수고하셔야 했습니까? 국가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사회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가정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개인의 형태까지 모두 다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위치는 갖추었으나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전 승리의 발판은 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곡절을 품고 역사해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개인을 찾기에 허덕이셨습니다. 가정을 찾아 헤맸지만 가정도 잃어버렸습니다. 민족을 이끌고 나오시던 하나님은 민족도 잃어버렸습니다. 즉 축복하였던 이스라엘 민족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에서 유리방황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세계적인 복귀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이 땅 위에 대표자로 오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났으나 그가 움직인 지역은 갈릴리 해변가나, 예루살렘성 근처의 몇몇 도성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한 내용을 가지고 움직이신 사실을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길에서 허덕이다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의 중심을 세워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하려던 그 뜻을 세계적인 기준으로 맞추기 위해 나온 것이 하나님의 2천년 역사요, 예수님을 중심한 2천년 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끝날입니다. 무슨 끝날이냐? 개인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가정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민족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국가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세계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더 나아가서 천주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과업을 이끌어 온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허덕이며 찾아왔던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념권 내로 인류를 몰아냈으나 인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이 세계는 세계적인 형(型)은 갖추었으나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간섭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찌할 것인고? 나는 세계를 향해 외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던 역사적인 사람은 어디 있으며 애급에서 고역당했던, 하나님이 품고 사랑한 그 민족은 어디 갔느뇨?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자 했던 그 백성은 어디 갔느뇨? 살아생전 손에 손을 붙잡고 마음과 마음을 나누면서 심정에 심정을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이 찾고 있던 하나의 기준이 없어졌으니 이 이상 한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꼭 찾을 것입니다. 참의 하나님이요, 참의 내용을 가진 하나님이라 할진대 그 하나님은 무엇을 찾겠습니까? 참의 개인, 참의 가정, 참의 사회, 참의 국가, 참의 세계 그리고 참의 주권을 통하여 천상과 지상에 하나의 심정이 움직일 수 있는 그 세계를 찾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또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민족이면 민족으로서, 국가 세계 전체가 혈통적 인연이라든가 전통적으로 내려온 모든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청산해야 합니다. 그런 심정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세계는 어떤 세계였습니까? 그 세계는 참의 세계, 참의 부모가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혈통의 부모는 가졌으나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참부모는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큰소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소리쳐도 타락한 부모의 종족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랑할 아무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참다운 부모라고 손을 들어 축복하고 천지 만상이 영원히 노래할 수 있는 본연의 부모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라진 것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시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한을 누가 풀어 주어야겠느냐?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본연의 부모는 어떤 부모입니까? 영원무궁토록 계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녀로 살 수 있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그런 참부모가 없어졌으니 인류는 그 참부모를 꼭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심정을 가져야 할 통일교인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이념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와 참부모와의 인연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통일의 심정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그 사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참을 찾아 헤매는 양심의 소리가 내 마음에 안 들려온다 할진대 그 참에 호소하는 내용을 표어로 지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참의 부모, 참의 부부, 참의 자녀, 참의 백성, 참의 만물, 참의 주권, 참의 우주가 참의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할 수 있는 그 한때를 한꺼번에 맞추는 그날이 앞으로 인간세계에 있어서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이들이 바라고 있는 재림시대는 어떤 시대일 것인가?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서 사람의 몸이 공중에 둥둥 떠 올라가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허무맹랑한 망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과거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내용을 상대로 해서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대는 어떤 때이냐? 엉클어진 곡절의 비운의 역사를 탕감하여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국가를 거쳐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때입니다. 전체는 개인을 세워서 종적으로 묶어진 전체의 형을 횡적으로 연결시켜서 역사적인 개체, 역사적인 가정, 역사적인 사회, 역사적인 국가, 역사적인 세계를 이루는 때입니다. 거기에서 살 수 있는 날, 그날을 찾는 것이 우리가 선을 바라고 참을 바라고 나오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무슨 날이냐? 하나님과 상봉하는 날이며 참부모와 상봉하는 날입니다. 참자녀․참부부․참백성․참세계․참하늘땅이 이 땅에 실현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프로를 일시에 맞추어 종결짓고자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외적인 형은 그럴 듯하게 바탕이 되어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주의나 사상은 그럴 듯하지만 기준이 안 서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끝날에 서 있는 인류는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참을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참을 찾고 찾고 또 찾아 나왔지만 참다운 개인을 찾아 세우기 위해 개인적인 입장에서 싸우던 그들은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가정,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 참다운 우주가 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한때를 다시 맞아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그 한때는 어떠한 때이냐? 개인과 개인이 통하니 가정이 통하고, 가정이 통하니 사회가 통하고, 사회가 통하니 국가가 통하고, 국가가 통하니 세계가 통하고, 세계가 통하니 하늘땅이 통할 수 있는 그런 때입니다.

하나님을 자신 있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 그것이 개인이 지향하는 최고 목표의 정수라 할진대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6천년 종말시대에 있어서 잠이 웬말입니까?

오늘날 외적으로는 섭리를 대할 수 있는 모양은 갖추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합니다. 6천년의 돌고 도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의 가슴이 답답하고 전기관(全器官)이 답답해진다는 것입니다. 허우대가 잘나고 돈이 많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무엇인지 모르게 허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6천년 전으로 뛰어 나가려고 하나 몸이 6천년 후로 얽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말하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라고 했습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려면

오늘 우리들이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창조목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 소원을 대신한 실체로 예수님이 오셨으나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나는 너희 앞에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명제만을 남겨 놓고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찾아 세워야 할 참부모의 모습을 끝날에 세워 가지고 형제의 인연과 자녀의 인연을 갖추어 인류역사를 바꾸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안고 있는 숨가쁜 소망이요, 2천년 동안 고생해 나오셨던 하나님의 소망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2천년 전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붙들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유대교단은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 전부는 예수를 만민의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자처하면서 예수를 배반했고 배척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인해 예수가 소망하던 모든 것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 나라 역사가 끊어졌고, 유대 나라를 통하여 나오던 이스라엘 백성도 끊어졌고, 모든 것이 다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 한스러운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울고불고 하며 살아가야 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지요? 이렇게 예수란 명사에 얽매여 사는 그 사실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소망은 무엇이냐면 그를 따르는 이념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실체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예수가 바라던 행복을 찾아내야 되고,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이 잃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잃은 것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원수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는 처참한 환경에 처했던 예수였기 때문에, 그 심중의 모든 사연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말씀만 붙들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기독교는 망합니다.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 자취, 애달프게 말씀하던 그 심정 자체를 붙들고 나와의 인연을 종결지어 세상 것을 청산해야만 예수님의 한이 해원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과 실체를 그리워하라

타락한 우리 인간들에게 참부모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할 진대 비유와 상징이 아닌 사실 그대로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2천년 전의 예수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자신의 해원과는 하등의 관계를 갖지 못하는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의 목적은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나왔던 기독교는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느냐? 그 말씀에는 모험이 따르고 곡절이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끝날에는 성경을 붙들고 밤새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고 했습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데는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갖고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찾아오실 것인가?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본래 예수님이 말씀에서 주장하고 바라던 목표의 자리인지를, 또한 이 자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느끼면서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자리인지를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통하여 내 심정에서 혁명이 일어나는가를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즉 이 말씀이 나를 격동시켜 죽음의 골짜기도 능히 넘어가게 하는가, 내적으로 충격을 주어서 행동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2천년 동안 말씀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말씀을 그리워하는 반면 행동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예수가 이렇게 이렇게 갔으니 나는 이렇게 가야 되겠다.’ 하는 행동을 그리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분이냐?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죽어 갔으니 여러분은 가실 때의 그 행동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그리워하고, 행동을 그리워하고, 그다음에는 그 모습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 이상으로 그리워해야 합니다.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모든 처신도 잊어버릴 정도로 보고 싶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까?

행복은 어떤 길에서 이루어지느냐? 말씀을 잘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잘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그의 손발이 어떠할 것 같습니까? 그 코와 눈, 그 모습은 이러할 것이니 그 모습을 만지고 싶고, 그 모습을 더듬어 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최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씀의 중심인 예수님, 그러나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여러분을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외적인 것이기 때문에 실체의 예수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예수님, 가실 때 다시 온다고 했던 그 예수님은 왜 안 오시는가? 부활 직후 사도들 앞에 나타났던 그 예수님은 어찌하여 온 만민 앞에 못 나타나는가? 이게 무슨 곡절인가?

오늘날 우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데 무슨 곡절이 있길래 나타나지 못하시는 것인가?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변함없이 예수님의 모습이 그리워 허덕이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람에게는 기필코 그분과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된 예수님의 죽음

오늘날 우리들은 고아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고아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잘사는 가정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한 고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인류는 본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또한 참형제를 잃어버렸고, 참부부를 잃어버렸고, 참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처럼 고아와 같은 내 자신을 볼 때 편할 리가 있습니까? 이 몸은 재촉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재촉하느냐? 본연의 부모와 형제, 본연의 자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느냐? 본연의 부모를 찾는 데는 이 지구를 돌고 돌아도 찾을까 말까 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도 찾을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니 어디 가서 찾는단 말입니까?

그러니 이제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 사무쳐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죽음의 길도, 어떠한 험산준령도 가겠노라고 다짐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것을 아버지가 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런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골고다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갔습니다. 그러나 찾다가 안 되니 결국 죽음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부모와 상봉할 날을 고대하던 무리가 부모의 그 모습을 붙들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주여 하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언제이겠습니까?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이 중심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상의 어떤 주의나 사상보다도, 혹은 자기 아들딸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그분이 그리워 못 살겠다고,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만지고 싶어하고, 그분의 손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싶어하는 그리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로 나와 인연맺어져 있으니, 그 품에 안겨 지난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고, 그 수고로움을 친히 위로드릴 수 있는 한때를 맞는 것이 온 인류가 찾아 나가는 최고의 소망인 것입니다.

말씀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행동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그 자체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 자체를 붙들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마음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만나기 위하여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또 보고 싶어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독생자인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서 이 땅에 보낸 것은 천대받게 하려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역사 이래 단 하나의 중심 존재로서 만민의 아버지로 예수님을 보냈으므로 만백성은 그분을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해야 하고 만나서 기뻐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슬픔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간다는 말씀을 남기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부모의 심정을 느껴야

그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혹은 사도들을 예수의 참아들딸로 세웠던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어야 할 그분은 마음에 사무친 이 비밀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또 한마디의 유언도 하지 못하고 가신 것입니다. 불효 중에 이런 불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역사적으로 저끄러진 세상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복귀해야 합니다.

인류는 부모를 죽인 죄를 지었기에 모두 회개해야 됩니다. 어떻게 회개하느냐? 아버지를 죽인 죄를 뉘우치고 깨달아야 합니다. 목석같은 자식이라도 그분이 나의 진정한 선의 아버지라고 깨닫고 느꼈을 때에는 눈물로써 회개하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두가 회개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본연의 가정과 본연의 자녀, 본연의 형제와 본연의 식구가 그리워서 6천년 동안 뜬눈으로 일하며 수고해 오셨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30여 평생을 홀로 지내 오면서도 외로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면서도 사모하던 하나의 기준이 있다 할진대 그것이 무엇이냐? 본연의 자식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쓰러지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했던 예수였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본연의 자식을 찾고자 했던, 부모의 입장에 있었던 예수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예수를 흠모하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역사상에 제일 불쌍하고 불쌍했던 예수님은 그 시대에 있어서 역사상의 괴수요, 배반자의 괴수요, 이단자의 괴수로 몰렸습니다. 오늘날 역사에서 말하는 예수는 훌륭하였으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불충했고 믿을 수 없는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에 승리자로 나타난 예수가 아닌, 영광으로 오신 예수가 아닌 실체의 모습으로 오신 그 예수를 찾아 헤매야 할 것이 오늘날 끝날에 있어서 성도들이 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들딸을 찾기에 수고했던 예수님의 그 심정 가운데서 부모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본연의 아들딸의 모습을 찾기에 허덕였던 그 부모와 아들딸이 상봉하는 그날이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는 날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과 부자의 입장에서 상봉하려면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단계를 지나 예수의 실체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은 인격 뒤로 숨어야 합니다. 말씀은 신랑으로 오신 예수가 신부 앞으로 보낸 편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주체이신 실체가 나타나면 그 편지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는 말씀을 중심삼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사탄세계를 정복하여 세계를 하나님 앞에 내어줄 수 있는 자리를 완결 지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예수님이 바라던 아들딸 이상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뚫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혈족과의 인연을 끊고 뜻을 위해 나가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육적인 인연을 끊기 위한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싫다 하는 자는 예수님을 못 만납니다. 절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다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고개를 통과한 심정의 동반자는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12사도를 위주로 하여 70문도는 시련의 담을 문제없이 넘어섰습니다.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는 모험을 각오하고 나왔기 때문에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기독교는 세계를 위하여 무조건 희생해 나왔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올라섰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사탄세계를 대하여 하늘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실체의 세계를 위해 마음을 합하여서 죽음을 각오하고 총진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시대를 거치고 실체의 시대를 거친 후에야 상봉의 한 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봉의 한 날이 이루어진 후에야 천국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봉의 그날에는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그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요, 그의 어려움이 내 어려움이요, 그의 상처가 나의 상처로 느껴질 수 있는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그의 마음도 내 마음이요, 그의 심정도 내 심정으로 되어야 천국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완결되어야 천국 가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앞에 부모의 입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만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자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 할 것이냐? 말씀을 중심삼고 행동함으로써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찾는 데에는 산중에, 밀실 가운데, 혹은 죽음의 자리 가운데에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밀실의 노정을 거쳤고, 산중의 기도의 시간도 거쳤고, 죽음의 고개의 노정도 거쳤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도 그러한 노정을 걷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의 그런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상봉하는 그 날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분을 대해 가지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 것인가? 참부모를 만나는 그때에는 그분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여! 나는 이러이러한 곳에서 싸워 왔고 이러이러한 예물을 가져왔나이다. 6천년 기나긴 세월 동안 나 하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수고해 오셨습니까?’라고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주님과 상봉한 후에 해야 할 일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은 천국이 이루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전부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되는가? 나의 소원, 나의 기대, 나의 소망 모두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 날부터 그가 부르는 자리로 나설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 길을 찾아 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으며, 6천년의 긴 역사노정을 거쳐오시면서 참을 찾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느냐고 뼈와 살에 사무치는 마음을 갖고 그분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6천년의 역사를 거쳐왔던 하늘의 사정이 어떠했느냐고 하면서 위로해 드리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입니다. 먼저 칭찬 받겠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 직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앞에 나타날 때 눈물 흘렸던 것같이 찾아갈 때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묵묵히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청산해야 할 내용이 있거늘 그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역사적인 허물을 청산해야 합니다. ‘아담가정에서 이러이러했고, 노아가정에서 이러이러했고, 아브라함가정에서 이러이러했고, 이삭가정에서 이러이러했고, 야곱가정에서 이러이러했고, 모세를 거쳐 역대 선지선열들이 이러이러했고, 예수까지 이러이러한 모든 것이 다 내 죄이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사죄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봉한 자리에서 우리들은 역사적인 허물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은사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내 아들아!’ 하며 칭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의 가정을 향하여, 천국 가정을 향하여 찾아 나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끝날은 직고의 시대

여러분은 역사적인 하늘의 슬픔과 예수의 슬픔을 철저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 6천년 동안의 힘든 그 지경에도 혈전을 치르면서 역사의 피어린 그 자리까지 더듬어 가지고 나온 것은 나 때문이요, 나의 형제 때문이요, 혹은 나의 식구 때문이요, 우리 민족 때문이오니 아버지 앞에 황공하다고 아뢸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어떻게 하셨고, 인간의 타락은 어떻게 된 것이며,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렸을 때 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셨는가?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대 하나님은 왜 나오게 되었으며, 야곱이 왜 그런 간교한 행동으로 장자권을 빼앗았으며, 12아들을 세우고 70식구를 만들어서 왜 애급으로 보냈으며, 애급에서는 왜 60만 대중을 만들어서 모세를 그들의 중심자로 세웠으며, 가나안 땅을 복지로 택해 싸우게 했는가? 그런 선민권과 주권은 왜 세웠으며, 예수님은 왜 이 땅에서 죽었으며, 또 왜 다시 와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런 역사적인 범죄와 시대적인 범죄와 미래적인 범죄상을 낱낱이 직고해야 됩니다. 끝날은 직고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 하나만 직고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인 죄를 직고해야 되고, 시대적인 죄를 직고해야 됩니다. 또 미래의 죄상을 모두 뽑아 버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로서 직고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청산하고 미래의 새로운 세계를 천주 앞에 내세우게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개인을 찾아 나온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가정, 혹은 ‘나는 하나님의 식구의 일원이다.’라는 생각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있어요?

내 한 개체는 완성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내가 대하는 아버지는 역사적인 아버지요, 시대적인 아버지요, 미래적인 아버지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심정에서, 혹은 몸에서, 말씀을 들어서 ‘옳소이다.’, 그 말씀을 대하여 행동함으로써 ‘옳소이다.’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심판 날에는 무엇을 가지고 심판하느냐?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영원한 하나님의 심정을 기반으로 한 탕감복귀의 조건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였지만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붙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더라도 실체적인 메시아를 통하지 않고는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리 실천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동하여도 실체와 관계맺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의 시대를 열자

오늘날 우리들은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청산해야 되겠습니다. 회개는 무슨 회개냐? 아담가정으로부터 6천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그분과 일체가 되어 이루어야 할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을 오늘 내가 책임지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적인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역사적인 죄상을 걸어 놓고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하나님이 나를 찾기 위해 소망해 오셨던 하나님인 줄 알고 그분과 인연맺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의 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하나님, 또한 미래의 소망적인 하나님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지나 미래에 하나의 터전을 이루어 거기에서 새로운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이 우리가 영원무궁토록 살 수 있는 천국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망의 아들딸로 하여금 하늘의 계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 가정의 아들딸로서 인정받으며 거기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신앙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소망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6천년 역사의 이 땅을 전부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서글픈 역사의 페이지는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몸과 마음을 심정적으로 해결 지을 수 있는 탕감의 터전이 ‘나’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한 시대가 오게 되면 과거에 청산한 짐 누더기가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시대는 골동품 시대입니다. 왜 그런지 알아요? 우리 조상이 잃어버린 본연의 것을 찾아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6천년 전 에덴동산에서의 잃어버린 참조상의 자리를 찾고,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는, 최고의 골동품을 찾아가야 합니다. 찾은 후에는 그 골동품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이념을 갈망하며 찾아 나가는 시대로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새것이 나오면 때려 잡아먹고 삼켜 버리니 망해야 될 세상입니다.

이제 소망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상 하는 그 세계를 세워야 합니다. 세우는 데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만 우주가 추앙할 수 있는 그 세계를 세워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참선이라는 것은 마음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과거의 모든 잘못을 결단지어 청산 받은 후에는 과거와 현재를 끊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씨알맹이도 없이 끊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새로운 이상세계와 소망세계를 이루기 위한 시작인 것입니다.

고대문명은 희랍문명의 재판이었습니다. 고대문명을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고대 정신을 부합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만을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 인류의 소망이 못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해결 지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것을 청산해 버리고 오늘의 새로운 생활 모습으로 돌아가 새것을 위하여 노력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모습이 되어 있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옛날처럼 사탄세계에서 뒤넘이치고 누더기 보따리를 짊어지고 구석구석을 쑤시며 다니던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족도 보기 싫고, 그런 인류도 보기 싫고, 그런 주권, 그런 역사, 전부가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슬픈 하나님이심을 모르면

하나님은 새로운 소망에 불타 가지고 아버님의 영광을 추앙하면서 모실 수 있는 그런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을 찾아 헤매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붙들면 붙들수록 우리의 이상적인 모든 뜻은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구약성경만을 믿던 유대교인들은 구약에만 얽매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몰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그렇습니다. 자기들의 사상만을 붙들고 있다가는 유대교인들처럼 또 새것을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온 과거를 청산하고 그 행실을 청산하고, 이 지상의 모든 것을 청산해 가지고 미래의 나로서 과거의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망하는 하나님의 가정을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탄 편의 아들딸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가정에 독생자인 참예수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생들이 ‘형님!’ 하는 말이 듣기 싫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랬느냐? 본래 신앙노정을 거친 후에 예수를 믿고 예수의 심정과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몸과 예수의 행동과 예수의 말을 통한 후에야 형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아들이라고 하는 것도 예수님은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 신앙노정을 다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혈족에 있었던 그 모든 내용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어떤 세계의 일등신부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을 때는 ‘아, 저 사람은 아무개 딸, 아무개 조카, 아무개 누나, 아무개 동생이구나.’라고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존중시했던 유대민족들은 이런 자리를 넘어서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6천년간 피의 혈통을 계승했던 역사상의 비참상을 회고해 볼 때, 이와 인연된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였으니 하나님은 보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 손을 잡고 ‘나는 아무개 아버지요, 나는 아무개 어머니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산다.’라는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죄악사와 더불어 인연된 결과이니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하나님, 역사적인 하나님, 현재도 몰리고 있는 슬픈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심판받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슬픔과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역사적인 슬픔과 고통을 맡아 가지고 죽음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 것만 해도 황공한 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이런 하나님께 슬픔과 고통을 더해 주는 사람들은 전부 다 심판받아야 됩니다.

슬픈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혼자 울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알아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어려운 나날 가운데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크옵니까?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뜻을 제가 맡겠습니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인간은 하나님께 머리 들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머리를 들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들어가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마십시오.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뒤넘이치면서 나왔습니다. 또한 오늘날 세계가 권력도 변하고 세력도 변하는 판국에서 자기 혼자 잘되겠다고 하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핍박받고 비참한 자리에서 낮아지려고 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신도들은 핍박받고 몰리는 길에 서도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서러워 마십시오. 주께서 가신 길이 그러했고, 아버지가 걸으신 길이 그러했거늘 불효 죄인이야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심한 고통을 가하여서 이 민족의 고통을 제하고 미래에 서러운 고난을 통하여서 하늘의 서러움을 감하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은 사탄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배반 속에서 나오셨지만 하늘 가정을 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계는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나님 가정의 식구가 됨을 동경하고 그 식구와 인연맺는 것을 존중하면서 나를 잃어버릴 수 있는 일원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흠모해야겠습니다. 내가 그리워서 하나님을 붙들고 울 수 있는 심정의 소유자와 이런 마음을 통하여 나가는 무리를 하나님은 고대하고 계십니다.

모든 한을 해원하는 길

오늘 우리들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늘땅을 붙들고 호소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죄악을 놓고 통곡해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중의 운명을 놓고 통곡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딛고 민족을 구하기 위해 수고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통치할 수 있는 그날이 이 민족 앞에 찾아지지 않고는 이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수고는 다 지나가 버립니다. 그런데 그 과거를 연이어 갈 수 있는 종적인 친구는 어디에 있느냐? 그 식구는 어디에 있느냐? 이러한 느낌이 저마다의 심정에 뿌리내려져 이런 길을 찾아가야 올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못 먹어도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가 억울하더라도 인류와 미래의 후손까지 염려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마음의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현실에서 잘 아는 바와 같이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 때를 중요한 역사적인 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오늘의 이때가 역사적인 전환 시기이므로 생사의 기로와 절망과 탄식의 분기점이 우리의 목전에 당도하여 사탄이 우리의 생활권 내로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국 실정을 바라볼 때, 한민족은 가망이 없는 민족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것이 없는 민족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6천년 죄상을 탄식하고 시대적인 한을 탄식하며 쌍수를 들어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움직임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할 것인가? 오늘 현실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우리 교회를 맞아들여야 합니다.

천국은 목사 장로들이라고 해서 다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참된 아들딸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목사와 장로들이 뜻길을 취할 수 있는 기둥을 만들어 놓았으니 불원간 세계에 널려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우리 앞에 전도되어 들어올 수 있는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뜻있는 젊은이들이여! 이러한 시기가 기필코 온다고 하나님은 외치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목사 바람이 불어서 다음 시대를 해방시키는 ‘아무개 목사, 아무개 목사!’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무개 장로!’ 하는 장로 바람이 불었고, 다음에는 집사 바람이 불었고, 이제는 평신도 바람이 부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기필코 맺힌 것을 풀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섭리역사 앞에 있어서 절대로 막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인은 그런 사명감에 불타 가지고 이 움직임을 끝까지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비록 욕을 먹고 있을망정 끝까지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방향을 바꿀 적마다 시대시대에서 변화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피끓는 젊은 남녀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끝날 천적인 이념시대가 찾아 들어올 때 또다시 배반하여 천추에 한을 남기는 불쌍한 민족이 될까 봐 염려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을 해원하는 길이요, 역사적인 예수와 성신의 한을 해원하는 길이요, 선지선열들의 한을 해원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전체의 책임, 인류의 책임은 나로부터 책임져 하나님을 대하여 친히 아버지라 할 수 있고, 하늘 가정으로서 예수님과 영계의 많은 무리에게 존중시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아들딸로서 남은 길을 대하여 늠름히 호령하며 나갈 수 있는 모습을 하나님도 찾고 계셨고, 우리도 그것을 소망의 기틀로서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지!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던 아버님, 억울하고 억울하고 또 억울했던 아버님의 심정을 알지 못했던 배은망덕한 저희들의 죄상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찾고 싶었던 철든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 찾아지지 않은 사연을 통하여 아버님의 원통함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할 것이어늘, 아버님, 이 민족을 찾아 복귀해야 했던 불쌍한 아버님이었음을 저희들이 알아야 하거늘, 오히려 환희에 처하여 있던 저희들이었음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은 그 모친과 동생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나의 모친과 나의 형제가 누구냐?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내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을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옵시고, 본향이 그리워 찾아가는 당신의 참된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본연의 부모를 그리워하고, 본연의 형제를 그리워하며 모든 것을 갈구하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에게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아니 할래야 아니 할 수 없는 하나의 천적인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고, 이 땅에 맺힌 한이 해원되고, 새 천지가 벌어지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오니, 그들이 생의 지침으로 좋은 조건을 세워 일생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선한 양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셨음에 감사드리오며,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1960년에서 1963년까지는 외적으로 가정과 종족을 찾아 세우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124쌍까지 축복을 완료한 것입니다. 그 이후는 선생님의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는 기간이었습니다.

1968년 2윌 8일을 기해 지난 40일간의 활동에 의해 선생님의 가정이 어떤 매듭을 짓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선생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에는 말씀에 대한 기준 향상과, 기구 개편을 위한 준비라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식구들의 지적 수준의 저하를 볼 때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책임감을 느낍니다.

6월 1일부터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벨은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북은 이길 자신이 있을 때 남한을 치려 할 것입니다. 한국은 축복가정을 중심하고 이것을 영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이북에서 치려는 힘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려는 힘이 더 클 때, 이북은 칠 힘을 잃습니다.

이제 중․소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미․중공이 가까워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이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철산의 새주파(김성도)와 허호빈의 복중교는 예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복중교에서는 예수께서 33세 때까지 고난받은 것을 탕감하기 위하여, 재림주님이 오시면 매일 새 옷을 세 번 갈아입을 수 있는 많은 양의 옷을 준비했습니다. 그때가 일제 말기였습니다. 그들은 일본이 망할 그 시일, 시간까지 알았습니다.

이용도 목사가 여자(유명화)를 주(主)라고 한 후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이용도의 뜻을 김백문이 이었습니다.

선생님은 1945년 10월 김백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했습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백문 씨보다 문 선생을 따르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라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 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은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축복을 했는데,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봉 후 21개월 만에….

그뒤 선생님은 성진과 그의 어머니를 남겨 놓고 서울을 떠나 1946년 6월 6일 이북의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하는 인물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김백문이 축복한 터전 위에 하나님의 부인이라 하는 여인에게도 축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부인이 박○○ 할머니였습니다. 그 남편은 한 씨 성을 가진 지방의 유력자였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박 씨 할머니를 어머니 이상으로 모시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10남매가 있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동생의 입장에 섰습니다.

이때 박 씨 할머니는 선생님을 처음에는 종으로 증거하다가 그다음에는 양자, 예수님의 동생으로 증거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즉 하나님의 실체이니 자기 남편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이때부터 선생님은 주관성을 바로잡고 박 씨 할머니에게 섬기라고 명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할머니에게 경배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위치가 바꿔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그 할머니는 40일간을 영육 아우른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선생님을 하나님의 역적이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박 씨 할머니가 선생님을 반대하므로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해와는 재창조할 수 있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함으로 인해 평양에서 1948년 2월 22일에 입감되어 옥중에서 2년 8개월간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사명을 못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옥중에는 라헬의 입장인 김○○씨가 같이 입옥(入獄)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김○○는 라헬의 입장, 박 씨 할머니는 레아의 입장이며, 또한 나○○ 이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세 부인이 선생님을 협조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옥중에서 출감한 후는 실체로 부활한 입장과 같으므로 원리를 그대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국가로부터 핍박을 당한 것같이 선생님도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김○○는 선생님과 같이 옥에 들어갔었으나, 재림주가 옥에 갇힐 수 있는가 하는 시험에 걸려 떨어졌습니다. 선생님이 영안으로 볼 때, 그녀의 영인체가 ‘육신이 가니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하면서 눈물 흘리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딸, 누이, 어머니 이 3대의 심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할머니로부터 20대 연령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다 복귀해야 합니다.

옥세현 할머니는 이북에서 연결 짓는 사명을 했습니다. 원래는 옥세현 할머니 가정이 중심이 되어야 했으나, 남편의 반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득삼씨가 그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선생님은 3시대의 여성을 복귀하는 기준을 세워야 되므로, 심정의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 외적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 씨 할머니는 영계의 역사를 실체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전부 재림하여 역사했습니다. 천사장의 실체 역사와 같은 역사도 하였습니다.

원산의 백남주 씨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 씨(정 장로 모친)를 맨발로 걸어가서 만났고, 김성도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 사명자였습니다. 그 뒤로 그 뜻이 이용도, 김 백문에게로 옮겨졌습니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입니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을 다 찢어버린 날이었습니다. 이것을 찢은 후 선생님은 책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이날이 없이는 평양에 갈 수 없었습니다.

<말씀 요지>

1960년까지는 개인을 중심하고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즉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을 세우기 위해서 노심초사한 기간이었습니다.

1960년에는 선생님이 어머니를 맞아 가정을 세워야 했습니다. 여성을 대하여 하늘땅 앞에 정성을 다했다고 하는 기준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정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 기준을 이루기까지는 심정 기준이 중요합니다. 가정 기준을 이룬 후에는 경제복귀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은 종족(宗族) 앞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이 공금을 쓸 때에는 전체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선생님은 종족적인 책임을 다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외부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종족 기준, 외적으로는 국가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외국에서 외부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하고 가인 아벨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선생님과 축복가정 사이에서 가인 아벨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개인노정은 아담으로부터의 종적인 노정을 실체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노정입니다.

야곱이 천사와 싸워 이긴 노정을 걸은 것이 해방 이후의 노정입니다.

야곱이 천사와 싸워 승리했기 때문에 에서를 굴복시킬 수 있는 영적인 기준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천사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소유 관념이나 존재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아벨은 제물과 하나된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 기준에 서게 되면 가인이 아벨을 반대해도 뜻은 이루어집니다. 또한 아벨이 완전한 아벨이 된 후에 사탄이 치면 영계가 협조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됩니다.

사탄은 장성기의 아담 해와를 쳤으나 삼위기대는 칠 수 없습니다. 또한 부모는 쳤으나 자식은 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낳으면 사탄이 칠 수 없는 기준이 세워집니다.

일요일에 경배를 드리는 행사는 전가정을 하나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영계로 간 다음 어머니가 어떻게 가정을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설정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입장에서 명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가정적 메시아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가정을 찾은 기준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은 탕감복귀섭리에 의하여 인간을 종의 종, 종, 양자의 단계를 거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참자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뜻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재림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온 것이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역사입니다.

한국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제1이스라엘이요, 기성교회는 제2이스라엘, 통일교회는 제3이스라엘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이 섭리의 중심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섭리에 있어서 하늘 편이 번번이 실패했으나 심정적으로 승리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정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심정 이상이어야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정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운 후에 실체적인 승리의 기준 위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영적으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승리하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인물, 기간, 조건물이 있어야 합니다. 조건물은 제물 된 심정으로 바쳐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심정적인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심정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절대 순종함으로써 심정적 기준을 세우고, 가인이 책임하지 못한 것까지 이중으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노아․아브라함 가정에 있어서 아벨의 입장은 물론 가인의 입장까지도 복귀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는 축복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입장에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상의 심정 기준 위에 서면 사탄의 참소를 이길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담 해와의 기준을 탕감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의 부인, 남편의 아내, 남편의 자식의 입장에서 남편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내는 남편의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중탕감이 필요합니다.

가정적 기대를 세우면서 개인완성을 해 나가야만 그 가정이 울타리가 되어 개인완성의 공고한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정도 종족을 울타리로 세우면서, 가정완성을 향해 나가면 공고한 가정완성의 기준을 세울 수 있으며, 종족․민족․국가․세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축복 행사시에 소생․장성․완성을 의미하는 21인, 즉 12인의 들러리를 세웁니다. 이것은 3수를 대표하는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12제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7보를 가서 소생을 넘은 조건으로 3차례 경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노정은 아담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원래는 성진이를 먼저 결혼시킨 후에 효원이를 비롯한 축복가정이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12지파, 24장로의 영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들러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경배를 함으로써 탕감조건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성수를 뿌리는 것은 여러분이 탕감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또한 영계의 조상들이 닦아 놓은 터전을 넘는 조건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성주식은 세 어머님에게서 태어난 조건을 세우는 식입니다. 성주에는 탕감의 피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주를 마심으로써 내적으로 성결케 하고, 성건으로 몸을 닦음으로써 외적으로 성결케 하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10 ― 13

<기 도(Ⅰ)>

아버님이여! 오늘 거룩한 날을 맞이하여 아버님의 존전에 부족한 모습들이 부복하였사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진실된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시고, 그와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을 중심삼고 영원한 인생으로 출발케 하시려는 당신의 간곡한 소원을 자기 자신과 일체화시키지 아니하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 전체에 맺힌 복귀의 한을 풀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기쁨의 자리이거나 슬픔의 자리이거나 자리를 개의치 마시옵고, 아버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는 본향을 저희들에게 찾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부족한 모습들이 아버님 앞에 정성들인 것이 아버님이 소망하고 찾아 나오신 그 기준에는 절대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님 앞에 힘이 되어 드리기 위하여 능동체가 아닌 피동체의 모습이 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그 무엇을 가지고도 아버님을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말미암은 전체는 없어지고 온전히 아버님의 전지전능하신 그 힘에 지배받음으로써, 아버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새로운 모습으로 지음받는 그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3월 10일, 이달 들어 두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금년에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출발하였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여러 가지 사정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처한 입장이 아버지를 따라가는 자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나, 저희 자체를 무시하고 저희 자체의 환경을 타파할 줄 모르는 불초하고 미력한 자식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맞아 전국 각처에 모여 아버님 앞에 경배드리는 수많은 형제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또한 수많은 백성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특히 외로운 통일교회의 무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여기저기 널려서 이 시간 이곳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아버님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땅 위에 그 무엇을 갖지 못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을 갖도록 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을 통하여서 가정과 종족․민족․국가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이 땅 위에 완전히 이루어 놓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첫 시간에서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아버님만이 직접 주관하시는 가운데 온전히 이 시간을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저희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아버님의 거룩한 존전에 전체를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친히 받아 주시옵길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저희에게는 아버지와 더불어 살고, 아버지와 더불어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이 맺어져 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와 같은 인연 가운데서 빚어진 저희 한 개체는 하늘을 대신한 마음과 땅을 대신한 몸이 일체가 되어 마음의 기쁨이 하늘의 기쁨이요, 몸의 기쁨이 땅의 기쁨이 되어야 할 것을 아옵니다. 아담 해와가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된 완전한 사람이 되었던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본성의 사람만이 존속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본성의 사람만이 통할 수 있는 본성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되어야 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님, 저희의 마음과 몸이 이렇게도 상처를 입고, 아버지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이것이 타락의 보응인 것을 저희들이 절절히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탄식하신 말씀처럼 저희 자체를 두고 볼 때도 그와 같은 싸움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사오며, 앞으로의 역사 과정에도 연결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의 질식된 환경을 통탄할 줄 아는 참다운 사람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땅 위에서 외적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환경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내 마음과 몸이 투쟁하고 상충하는 한, 저희는 행복의 여건, 평화의 여건, 자유의 여건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저희는 참다운 자녀가 되기를 바라고 있사오며, 아버님의 인연으로 세워질 수 있는 참다운 행복과 참다운 평화를 바라고 있사온데, 아직까지 아버님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 이 슬픈 사실을 아버님,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생의 목표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가는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 가를 아버님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녹음이 중단됨)

<말 씀> ‘본향의 나라’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본향의 나라란 다시 말하면 복귀해야 할 나라입니다.

본향의 세계를 소망해 온 인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의 모든 희망이 이루어진 행복한 세계가 아닙니다. 자타를 막론하고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런 세계에 살고 있고, 가정이 그러하고, 민족․국가․세계가 그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소망하며 찾아 나왔던 세계가 이와 같은 세계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더 높고 귀한 소망의 나라일 것이냐? 그리고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어떠한 이상적인 나라가 있을 것이냐?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어 왔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기에 인간 자체의 능력으로써는 본심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심이 바라고 있는 그 나라를 ‘내가 만들겠다. 어떻게든지 내가 이루겠다.’ 하는 마음보다도 그러한 나라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런 나라를 확고히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라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이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본향의 나라, 즉 이상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힘뿐만 아니라 배후에 어떠한 절대적인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이 세상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슬픔의 세상이요, 고통의 세상이요, 비탄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을 심판해 버리고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본향, 즉 새로운 이상세계로 가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들도 그러한 이상의 나라를 흠모하는 중심사상을 세워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필코 본향의 나라, 본향의 땅을 찾아야 되겠고, 본향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온 인류의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종교

오늘날 이 세계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본향의 사람이 아니요,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역시 본향의 국가가 아닙니다. 하나의 이상세계를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현시대를 보아서도 지금의 세계는 본향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자인하면 할수록 이러한 환경 전체를 환영해야 할 것이냐, 배척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의 나라와 세계가 우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본향의 여건을 갖춘 나라가 아니요, 그 세계가 아닐진대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보류시킬 것이냐, 환영할 것이냐, 아니면 배척할 것이냐? 우리가 이런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차적인 종교는 현세와 타협하는 것을 부정해 왔고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즉 현세계에 목적을 두는 것을 용허(容許)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개인을 중심삼고 자의에 의해서 생활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역사상에 아무리 훌륭한 세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도 역시 그러했고, 또한 앞으로 아무리 훌륭하고 고차적인 세계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 세계는 본향의 나라를 고대하는 사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환경이요, 사회요, 국가요, 세계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환영도 할 수 없고 처단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인 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할 것 없이 타락권 내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요, 또 더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비탄의 자리에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슬픔과 고통이 연속되어 사망과 파괴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종말을 맞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를 거쳐오면서 그 무엇인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이 세상이 파괴될 끝날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또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그 절대자는 절대자의 본의에 화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바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절대자도 이 땅 위에 끝날이 온다는 사실을 예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끝날이 온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하게 되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운명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 이 세계를 청산지어야 하는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생활이 행복의 기원이 되고, 행복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태어나기를 불행한 자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불행한 환경을 거쳐 불행의 종말을 맞아야 할 인생인 것입니다. 본심이 고대하는 본향의 가정, 본향의 사회,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들이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욕망하는 그 모든 것은, 현재 처하고 있는 생활환경을 토대로 해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처리해야 되겠습니다. 쳐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깨끗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처리해야 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타파해 버리고 처리해야 합니다. 만약 이 세계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 활동이나 세계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아무리 이것을 처리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고 처리하게 되면 그것은 완전한 처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인간들은 자기들 나름으로는 아무리 잘 처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본향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격의 기대, 가정의 기대, 또한 사회의 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만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 것’이라고 자칭하는 ‘나’가 되어야 자주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주권을 가져야 나를 주관하고 나를 심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여러분 자신인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역사는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스스로를 동기로 하여 출발되었다면 주체성을 가진 나는 자동적으로 거기에 대한 결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태어났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생한 지 10년 혹은 50년, 아니 90년이 되어 죽을 운명에 놓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마음을 주관할 수 있고, 승리의 팻말을 들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출생한 그 당시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동하고 내가 주관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기반에서 우리의 본심이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나와 상관이 없는 가운데서 흘러 내려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그 무엇이 동기가 되어서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나는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상의 입장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좌우할 수 있는 어떠한 생명의 근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체가 거기에서 흘러 내려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는 자체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 세상을 처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본심의 기준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 처리되지 않았다면 처리된 그 문제가 또다시 부정의 인연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현재의 인간으로서는 이 세계의 그 무엇을 부정할 수 있고 처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강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이나 새로운 세계를 보장하는 절대적 기준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새로운 이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의 주류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행을 당하였고 또한 망해 왔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인간 자체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서 야기된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거할 수도 없고 방어할 수도 없는 운명의 길 가운데서 인간은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탄 가운데서 인간이 방향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그 방향이 애매하여 암중모색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개 속의 허공을 뚫고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다.’ 하면서 생애의 모든 정력을 다 바쳤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가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큰 뜻을 품고 세계와 인류의 장래를 염려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 역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이상을 찾아 허덕인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13) 하시며 탄식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 배후에는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것보다도 내적인 이면에 깊은 그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악과 악한 세상을 처단할 수 있는 동기요, 기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마음속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습니까?

불행의 요건은 자기가 치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험난한 모든 환경이 자기를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통일교인들은 이것을 뚫고 나가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이 아무리 평화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지만 인간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는 세계적인 평화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만약에 가능하다면 지금보다도 옛날의 많은 도인들이 정성들인 것으로 이미 그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서 실존주의,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그 이상을 탐구하겠다고 허덕이는 판국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와는 달리 과거의 도인들은 심산유곡에 들어가 ‘마음이란 무엇이냐? 마음의 욕구, 마음의 본향이 어디일 것이냐? 그 마음이 찾아 세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서 내적인 내용을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인격 기준을 찾아 세워서 그 인격이 기뻐할 수 있는 선의 세계인 인류의 지상천국을 이루려 했습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정성들이고 기도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땅을 정비하고 이 세계를 해결 지을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한 것을 볼 때에 주님이 와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느냐? 여러분은 우리 인생이 소망하는 유토피아, 즉 본향의 나라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몸 마음이 하나되어야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몸과 내적인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과 몸이 통일되어 있느냐 했을 때에 이 몸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곧바로 가기를 바라는데 몸은 반대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마음이 비뚤어졌다.’고 말할 때에 마음이 비뚤어진 것을 보았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그 행동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도 역시 행동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은 사람은 통일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곧은 직선이 되려면 두 점이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즉 마음과 몸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선은 반드시 한 점에서 또 다른 한 점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만 가지고 안 됩니다. 마음이 비뚤어졌다는 것은 그 직선에서 한 점이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몸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을 하나로 합하여 서로를 받들 수 있는 이상(理想)의 인격, 이상의 중심, 그 이상의 양심을 중심하고 일체화된 이상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체화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자리에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임재하고 싶은 사랑이 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기 자신을 내버릴 정도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종교나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마음을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태양계가 어떠한 원칙에 따라 끝없이 도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일체를 이루어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 자연법도의 힘에 일치되는 것보다도 더 고차적인 일체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냐?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구조를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신비경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달했다고 큰소리쳐도 아직까지 사람의 눈에 대한 것 하나도 완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천년 몇만년에 걸쳐서 연구해야 할 분야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몸으로써 화해진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그 사람 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이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인륜도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또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부터 폭발되어 흘러나오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가정관․사회관․국가관․세계관․우주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는 상대적인 어떤 세계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도 자체 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도피해서 본연의 세계, 즉 마음의 세계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절대 부정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부정의 한계선에 하늘땅을 걸어 놓고 부정할 수 있는 확실한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을 구하는 종교가 되려면 대한민국을 흥하게 하든가, 망하게 하든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인간이 본향을 찾아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인격을 이루었다면, 그 인격은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진 인격권 내에 지배받는 인격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인격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기준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본연의 가정․종족․민족을 세울 수 없습니다.

본심의 기준과 본향

자기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자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 마음과 몸이 화합하지 못하는 한 그 집안은 망하고 비참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화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재미나게 살고 평온하고 뭐 어떻다고 할지라도 그런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서 그때마다 그 마음 기준이 깨지게 됩니까? 몇십 번을 그러했더라도 심정 기준은 깨지지 않습니다. 작용을 못할 뿐이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의 횟수에 비례하여 가중되는 내적 고충을 극복할 수 없어 몸부림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계의 어떤 고난보다도, 어떤 환난보다도 그 무슨 전쟁의 피해보다도 내 몸과 마음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해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패전으로 인한 산더미 같은 슬픔의 패잔물이 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과의 싸움에서 마음이 번번이 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은 일년, 아니 일생 동안을 잊지 않고 ‘몇십년 전에 여기서 내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었지.’ 하며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의 싸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패한 것은 잊어버리고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 해도 그 자체는 패잔병의 팻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마음과 몸이 싸워 마음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언제나 몸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변함 없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인 것입니다.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과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세계 인류와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또한 땅을 사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갖고 있습니까?

본심 자체를 분석해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본심은 아무리 없애려고 애를 써도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상세계, 즉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추구하며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심작용은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간판만을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확실히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물질주의로는 행복의 세계를 이룰 수 없어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마음의 만족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몸의 만족을 위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몸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의 행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즉 몸을 위주한 외적 세계를 중심삼고는 자기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나 권력, 그 무엇을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몸이 ‘야, 마음아 이만하면 됐지? 무엇으로 보더라도 네가 좋아할 수 있잖느냐?’고 하면 그 마음이 ‘그래. 네 말이 옳다!’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럴 때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편하게 쉬려고 하면 마음은 몸에게 ‘그렇게 하면 너는 망한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그 돈을 내 것으로 삼지 말고 세계의 것으로, 하늘땅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마음을 중심삼아야 하는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지도 않는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 현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부 물질문명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고 훌륭한 이 마음을 눈에 보이는 돈 때문에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마음이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대치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마음의 자리가 어디냐? 본래의 자리가 어디냐? 그러한 자리를 중심삼고 출발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느냐? 그러한 개인으로 말미암은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새로이 이 천지간에 다시 한 번 싹트지 않고는 이 세계를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음의 종교시대

그래서 결론은 여러분 자신들이 현재 소망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절대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한 번은 거부당하고 제거 당해야 할 운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번은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에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싸움은 대동아전쟁보다 더 위급하고, 핵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쟁은 휴전이라도 있지만 여기에는 휴전도 없고 종전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 땅 위에 존속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의 마음 바탕에는 휴전도 없이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었으니 더 싸우게 되었고, 이러한 민족과 민족이 합해졌으니 더 싸우게 되었고, 국가와 국가가 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 날 전쟁이 그치는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싸움의 근거지는 어디냐? 몸과 마음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움의 근거지가 됨으로 인하여 개인․가정․종족․국가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종국에는 이 외적 세계를 청산해야 됩니다.

그러면 나 하나를 중심삼고 통일될 수 있는 절대적인 안식처가 어디냐? 예수님도 그것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이요, 하나님도 그것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 기점을 찾아야만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 수많은 종교인들도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로 고심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인류가 찾아가야 할 최고의 기준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에 의해서 통일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의에 의해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힘에 의해서 통일될 수 있는 것인가? ‘자유’ 하게 되면 미국입니다. 그 미국 헌법에 있는 평화․행복․평등의 주체적인 내용을 이용하여 통일시킬 수 있다면 이것을 어떠한 종교가 받들 것이냐? 세계보다 우주보다 더 귀하게 받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남도 믿지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종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전에 먼저 마음을 믿는 마음의 종교시대가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더라도 인륜도덕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언제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일을 행하여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 무엇도 무섭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한 세계의 폭군 앞에 가더라도 당당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주장해 온 인륜도덕 등 모든 가르침은 마음의 종교시대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망해 들어가는 이 몸뚱이, 고집통이인 이 몸뚱이를 때려잡고 악의 요소를 전부 다 추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중심삼고 아무리 가르쳐 줘도 안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상대책과 비상작전이 이 우주상에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그 비상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동기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영원불변한 어떠한 힘의 존재가 동기가 되든지 해야 됩니다.

그러한 동기가 인류역사상에 침투해 들어온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가 고마운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사실이 그렇다면 고마운 것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서라도 절대적이고 폭발적인 분화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좋아서 한꺼번에 전부 다 몰려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길을 모색하고 개척해 주는 운동이 이 지구상에 벌어지지 않으면 타락한 이 세상은 망합니다. 하지만 망해서는 안 된다는 창조주의 욕구와 인간 본성의 욕구가 일치되는 자리를 모색하는 길이 있으니 그 길이 바로 종교의 길입니다. 종교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잘살고 있는 줄도 모르며 살고 있다면 문제

그러면 종교가 어떠한 힘을 가져야 되느냐? 이 세계의 환경을 점차적으로 부정하는 힘을 가져야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어느 한순간에 한꺼번에 청산 지을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에 몇천년 동안 얼어붙은 얼음덩어리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따뜻한 봄날을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지내 온 역사상에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보다도 급진적이고 폭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내 자신은 무척 고대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그리 되면 그만이지.’ 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책임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의 앞길을 생각해 봅시다. 배는 엔진이 돌아가고 스크루가 작동하면 가게 되는데, 그 배를 운전하는 항해사는 그저 키만 잡고 가기만 하면 됩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스크루가 돌아가듯이 그저 밥 먹고 일어나서 회사와 가정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럭저럭 방향도 잡지 못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까? 그러다가 목적지인 항구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목적지에 어떻게 내리겠습니까? 그 이상의 위기일발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길을 가다가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가긴 어딜 가? 내 아들네 집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가시면 무엇을 하십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주는 밥과 반찬도 먹고 어쩌다 닭 잡아 주면 닭도 맛있게 먹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러면 먹고 나서 무엇을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먹고 나면 별것 없지.’ 이런 식의 대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가게의 장부를 정리할 때에도 수입이 얼마이고 지출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결산을 합니다. 이렇게 장부를 정리하는 데에도 수지결산을 철저히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합니까? 일생 동안 산 것을 수지결산을 해 보았습니까?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적자라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살려고 허덕이는 것은 적자 인생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절대성을 중심삼고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흑자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해 주기 위한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 종교는 점진적이 아니고 폭발적이고, 순간적으로 딱 떼어 버릴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 종교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이해가 됩니까? 그러한 종교가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약 2천년이 되었고, 불교 역사는 2천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2천년을 산 사람이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역사적인 종교를 세워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본향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강원도 인제를 가 보면 보기에는 5분 거리도 안 될 것같이 가깝게 보이는 거리지만 막상 걷다 보면 20리도 더 되는 길이 많습니다. ‘차를 타고도 넘을 수 없는 길을 왜 내가 걷는다고 했던가?’ 하면서 걷다 보면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됩니다. 여러분도 가다 보면 그러한 날이 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여러분은 돌아가는 길을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직행하는 길을 원하겠습니까? 여기에 헬리콥터가 필요하고, 로켓 같은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비상 대책을 취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이 지구상에는 그런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인간이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 ─ 본연의 사랑

그러면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하느냐? 마음에서부터 뜯어고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보따리 안에는 내 마음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본 복귀란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근본 된 인생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그것은 사랑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동기로부터 본연의 사랑의 기준을 복귀하자는 것이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류들이 소망하던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어디서부터 시정해 갈 것이냐? 아무리 자기가 일평생 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했다고 해도 본연의 사랑을 중심하지 않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또 그런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연의 사랑의 기준에 의하여 부부를 이루어 자식을 낳아야 모든 것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륜 대도를 펼 수 있는 법도의 세계, 질서의 세계에서 운행되는 모든 궤도를 주관하는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한 인간 본연의 가치 기준에 서서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인류의 시조도 좋아하는, 행복의 꽃이 피는 봄날을 맞이하여 그 환희의 천지를 한꺼번에 품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본연의 사랑이 기원이 되고 중심이 되어 새로이 태어난 본연의 아들딸들은 그 본성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사무쳐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제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으로부터 통일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인간들에게 막연하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넘어야 할 고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테마를 걸어 놓고 그 방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한 방법을 쓰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유치원생보다 못한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 대학원에서 하는 교수법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본향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종교가 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불교의 ‘자비(慈悲)’, 유교의 ‘인(仁)’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 사랑의 본향의 터전을 다시 찾아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가르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의 마음이 하나될 때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어 영원까지 골고루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빼놓을 수 없고 분립시킬 수 없는 힘의 모색권 내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일치화할 수 있고,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의 근원 되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부부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이 있다면 그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님이고 예수님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적인 가정에 있어서 예수님은 형이고 우리는 동생으로서 형제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개인의 기준과 가정의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것은 우주적인 복입니다.

본연의 사랑으로만 세계통일이 가능

오늘날 기독교가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우리 인생은 본심이 추구하는 본향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알려주는 내용을 들고 나온 기독교가 자동적으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로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 이 세계를 주도하려면 민주세계의 사상보다 차원 높은 그 무엇을 가지고 주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하느냐? 개인적인 권위나 힘이 아니요, 이 땅의 인간들이 세운 기준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으로써 주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 세상은 본연의 사랑의 보따리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었다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그 무슨 문제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타락한 세상은 죽고 망하고 못산다는 세상입니다. 남녀의 사랑을 보더라도 부모가 반대하면 ‘나 죽소.’ 하면서 결국은 짝자꿍해서 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자체의 시발점이 이 땅 위에 출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것이 종교에 있어서의 의문점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만이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형제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마음세계에 대한 것을, 유교는 인륜도덕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기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의 법도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요즘 노래를 보나, 영화를 보나 사랑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는 형태는 갖추었지만 본래의 사랑의 내용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향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본연의 사랑이 출발이 안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연의 사랑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있는 사랑을 아무리 억천만금을 주고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즉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것을 몇천 개를 준다 해도 그 사랑과는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을 알고 보아야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세계에 본향에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설계자, 기술자가 되는 그 한 분이 이 땅 위에 온다면 만우주의 인간들은 모두 그분을 붙들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통일되지 말래도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무엇으로 통일하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청산 지어야 할 타락한 세계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사람들이 일생 동안 즐기고 같이하지만 영원한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부를 이루어 아무리 부모 모시고 천년만년 잘살자고 꿈꾸고 노래했다 하더라도 죽으면 다 천리 만리 헤어지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인간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천도에 의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랑권 내에서 사랑의 목적을 중심삼고, 원칙적인 자리에 선 부부가 되어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왜 갈라져야 됩니까? 본향을 찾아가야 할 인간이 하나님과 갈라섰으니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행복을 붙들고 천년만년 살고자 해도 며칠 지나면 ‘아이고, 난 왜 이래?’ 그렇게 됩니다. 이러한 불행의 상태가 횡적으로 전개되어 세계화된 것이 오늘날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해야 됩니다. 세상 것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아이고, 암흑의 천지가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보고 따라가야 됩니다.

새로운 사랑의 역사가 벌어져야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피를 많이 흘렸고 어떤 종교보다도 순교의 길을 많이 갔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본향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입니다. 거꾸로 서도 바로 선 것 같은 그 세상에서는 부닥쳐도 좋으니, 빨리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이 세상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것을 선생님은 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반대하고 핍박해도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 온 사람 중에 나를 환영한 사람이 있습니까? 요즈음 전부 다 문 선생이 뭐 어떻다고 흉보고 하지만 애당초 근본적으로 통일교회는 반대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대표적인 탕감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과 악의 싸움을 종결지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옥중에서 고문을 당할 때, ‘그 몽둥이가 하나 부러져서는 안 된다. 둘, 셋, 넷 자꾸 부러져야 한다.’ 하면서 극복했습니다. 역사의 선열들도 이러한 고난의 길에서 승리의 팻말을 들고 선두에 서서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올바른 중생의 궤도를 달릴 수 있는 출발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따라 나선 사람들은 자기는 팔자가 고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랑의 보따리는 무슨 보따리이겠습니까? 본향의 나라에 가서 그 보따리를 풀어 보면 이상적인 남편이 튀어나오고 이상적인 아내가 튀어나옵니다. 또한 이상적인 가정이 튀어나오는 복주머니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은 일등 복귀입니다. 그래서 개인도 일등, 가정도 일등, 종족도 일등, 민족도 일등, 국가도 일등, 세계도 일등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일등이면 서로 높고 낮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형제도 가정도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적인 기반을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 보물단지인 보따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맛을 알고 나면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대하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요, 반대하는 아내, 친척, 선생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학교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자동적으로 내 마음에서 불덩이가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의 화산대를 만들어 가지고 생동하는 생명을 내뿜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면 거기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도 이 사랑에 불붙으시면 폭발적인 충동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가 이 지구성에 벌어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랑을 종교의 교리에 적용하게 하고 그런 관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를 자기의 생활 무대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개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를 틀림없이 뜻 앞에 세우겠다는 설계도를 지니고 다니는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에 여기에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본향의 나라’를 연결해 주는 다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사는 것보다 본향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더 원할 것입니다. 나 자신도 통일교회 선생님이지만 여기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본향의 나라는 한정된 나라가 아니다

‘본향의 나라’, 그 나라는 어떠한 곳에 한정된 나라가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헤어져 있어도 사랑할 수 있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어디 가서든지 환영 받을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본향의 나라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제약이 많습니다. 사탄을 때려잡는 과정에 있어서는 짐이 커서는 안 됩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갈 때에 솜 보따리를 자기 키보다 더 길게 해 가지고 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미련한 바보 천치입니다. 그럴 때에는 팬티 바람으로 솜 보따리를 뭉쳐 가지고 건너가야 합니다.(웃음) 남들이 보면 미친 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편히 갈 수 있는 비행기, 자동차를 다 두고 저게 무슨 짓이냐? 부모들은 집안 망신시킨다고 난리를 칠 것입니다. 남편들이 땅을 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럴 때 건너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책임자이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국경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얼마 전 싱가포르에 갔을 때, 거기의 일류 호텔에 들어가니 그 호텔 주인부터 종업원들까지 귀한 손님이 왔다고 서비스가 대단했습니다. 그곳의 과일 중에서 제일 맛있고 흥미있는 것이 바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바나나’라고 하지만 거기에서는 ‘빨다 내버린 나’라고 합니다.(웃음) 종류도 많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온도에 따라서 각각 틀리는데 어떤 것은 껍질은 두꺼운데 알맹이는 아주 작은 것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바나나 얘기 들으니 한번 실컷 먹어 보았으면 할 것입니다. 나와 비슷한 이웃 사촌들인데…. 선생님도 그 심정 이해합니다.

워싱턴에 가서 아침 먹고 런던에 가서 점심 먹고 또 싱가포르에서 저녁을 먹고 한국에 돌아와서 잠을 잘 수 있는 세계가 된다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나는 좋은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웃음) 자, 그럼 내가 좋고 여러분도 좋은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무리 천번 만번 물어봐도 ‘좋지.’라고 대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이 땅의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각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문화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본향의 나라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국경을 폐쇄해 놓고 살아온 민족들이 쌍수를 들어 본향의 나라를 환영하는 그 한때를 중심삼고 국가에 힘을 작용시킬 수 있는 이런 세계가 와야 합니다.

어떠한 나라에 있어서 외국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고 해서 그 나라가 망할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에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구보키 씨, 어디 있어요? 구보키 씨! 한국에 대한 느낌이 좋은지, 싫은지 어디 말해 봐요. 「좋습니다.」 구보키 씨는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매일 서울 뒷골목만 찾아다니며 보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귀한 것이 있는지 매일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지만 서울 뒷골목은 지저분합니다. 아무것도 구경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들이 자기 나라에 가서 악선전하겠습니까? 이들은 오히려 한국을 두둔하고, 한국을 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본향의 나라를 위주로 생활해야

선생님은 비록 욕을 먹고 살았지만 내 민족 앞에 나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있는 저 사람들은 선생님이 죽으라고 명령 한마디만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백병전이라면 일본 사람들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력으로는 통일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을 통일시키려면 사랑의 힘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사랑의 근본을 중심삼은 행복의 요건을 알고 위할 때는 만민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본향의 나라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위주로 할 것이냐,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위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생활을 해야 됩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해 왔습니까?

여러분이 집에 가게 되면 통일교회 다닌다고 남편이 험악한 모습으로 대합니다. 기막힐 노릇입니다. 못된 짓 하러 다닌다고 난리칠 것입니다. 처음 본 얼굴도 아닌데 그렇게 좋던 영감이 악마의 얼굴로 변하여 폭군도 비교 못할 정도로 변해서 핍박하는데 그 영감더러 사랑해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할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더 흉한 얼굴이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내가 못할 것이 어디 있어?’ 하면서 통일교회 다닌다고 가정 파괴하고 나왔지요? 그래, 선생님이 ‘너, 가정 파괴하라’고 설교하고 다녔습니까? 자기들이 그랬지요.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선생님을 가정 파괴자라고 몰고 있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반대하는 어떠한 것들이 있다 할 때, 그것은 서로 상반된 두 개의 모습이기 때문에 별개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반대 요건 가운데서 상대적인 요건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느냐? 서로 반발하는 플러스와 플러스가 합하는 세상의 이치가 어디에 있느냐?

어떠한 것이 모순이 된다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두 개의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통일된 하나의 개념으로 규합할 것이냐? 서로 투쟁하여 한쪽이 손해보면서 합쳐진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변증법이 적용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중목적적인 삶

태양계도 태양 혼자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적 입장에 있는 태양과 상대적 입장에 있는 행성들이 방대한 우주권 내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법도권 내에서는 손해가 나면서도 서로 합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여기가 손해나는 곳이라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이중의 이익을 보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을 파괴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정해지면 목적관은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 목적은 둘을 합한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합하는 것은 서로 모순 대립하여 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 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이념의 근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변증법만 뒤집어 놓으면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이나 경제이론 등 마르크스의 모든 이론은 전부 다 뒤집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몸의 목적과 마음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큰 목적이요, 어느 것을 더 빨리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의 목적을 먼저 이루어야 됩니다.

개인의 작은 목적과 큰 목적이 있을 때 작은 것을 버리고 보다 큰 목적을 추구하면 여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발생하여 작은 목적에도 이익이 되고 보다 큰 목적 또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목적세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목적세계에서 목적세계로 바뀌는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파괴적인 투쟁의 역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은 언젠가는 뒤집어지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전체를 위한 목적과 자기 개체를 위한 목적, 즉 이중목적의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국가의 목적이 전세계 국가를 전부 정복하여 경제적으로 약탈하고 노예화시키려는, 즉 제국주의적인 것이라면 세계적인 운세권에서 그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세계의 강대국들이 이 이치를 저버리면 천신만고 수백년 동안에 이룩한 그들의 부강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이중목적의 세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본연의 천도를 세워 세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목적은 희생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우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나 개인이 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도 앞으로 역사 과정에서 남아지려면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더 큰 것을 위해 희생해야

오늘날 미국은 민주세계에 있어서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30세기 이후에까지 계속 이어 나가려면 세계를 위해 국가를 희생하는, 즉 자기 나라의 주권을 넘어서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기울어지게 됩니다.

개인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가정이 망하는 운세에 있으면 그 가정의 운 앞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요, 가정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종족이 전부 다 몰리고 쫓김을 받게 되면 그 가정의 운도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국가의 운이 흔들리면 종족의 운도 깨어져 나가는 것이요, 국가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세계의 운세가 몰아닥치면 국가의 운도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도 천지의 운이 세워지게 되면 다 천지의 운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 가정의 운도 지나가고, 종족 민족의 운도 지나가는 그때에는 개인에서부터 민족까지 한꺼번에 복귀해 나가야 합니다. 개인을 찾아 가정을 찾고, 가정을 찾아 종족을 찾고, 종족을 찾아 민족을 찾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목적지에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민족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개인에게 세계관과 우주관이 없을 때는 막히게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 세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할 때 개인․가정․종족․민족… 이런 8단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화충대(和沖帶)를 짜 가지고 네가 아니면 내가 안 되고 내가 아니면 네가 안 된다는, 둘이 하나 될 수 있는 경지에서 우주적인 승리의 왕자의 권한을 들고 나오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역사시대를 심판할 수 없습니다. 역사시대를 심판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의 운은 가정의 운을 위하여, 가정의 운은 종족의 운을 위하여 희생당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은 가정 앞에 흡수되고 가정은 종족 앞에, 종족은 민족 앞에, 민족은 국가 앞에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 국가가 개별적으로 세계 앞에 서면 영원히 존속할 수 없지만 세계를 위한 국가와 민족이 되면 영원히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운이 끝나면 그들의 존재 가치는 없어집니다. 세계의 운이 끝나는 그 자리에서 천주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개인복귀의 목적은 내 개인이 잘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갑시다.’ 하고 외치고 다닙니다. 그러나 천당은 그렇게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은밀한 곳에서 세워집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민족의 내적 심정을 울릴 수 있고, 천주의 내정(內情)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애정을 가진 그 효자 효녀는 깊은 비운이 감도는 자리에서도 그 비운의 주인공이 된 왕이면 왕, 부모면 부모의 마음을 풀어 드리고 그 배후의 전부를 혼자 막아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충효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혼자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당은커녕 지당도 못 갑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지금까지 욕먹고 핍박받아 온 것이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총칼을 가지고 복수해서는 안 됩니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희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지연되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 승리를 거두어 세계무대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복귀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죄인 중의 가장 큰 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언제나 그런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광명한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 광명한 빛을 갖추어 본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지녀야 합니다. 봄빛이 찾아오면 그 봄빛을 백방으로 흡수할 수 있는 생명의 자주성, 생명의 흡수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봄철보다도 먼저 꽃을 피울 수 있는 봄철의 왕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운세가 왔으면 그 운세를 가지고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즉 대한민국을 위한 아시아가 아니라 아시아를 위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의 국가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아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의 입장에 서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됩니다. 일본도 그래서 망했던 것입니다.

삼팔선 이북에서 한때 잘살던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한푼 두푼 모아서 자신의 아들딸과 자손만대에 영화를 누리기 위해 살았지만 나라가 어려운데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국운이 어지러우니 남하하여 피난생활을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유엔이 창설되어 세계를 위한 공동적인 목표를 중심삼고 큰 목적을 달성하고 행복한 세계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내심의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 하늘과 더불어 그 무엇인지 모르는 사정에 합할 수 있는 기반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선시켜 통일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한 시대를 수습해 나가는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민족 앞에 신앙생활을 제일 잘한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냐? 교회의 마룻바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자기의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내 자신이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내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가정이 서게 되면 가정은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란 표어를 내걸고 나라를 찾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전부 다 복귀하자는 뜻에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자유의 천지, 자유의 천국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동산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 8단계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희생시키고라도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하고 전부 다 깨어져 나갔던 사람들이 이것을 다시 부정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본연의 사랑으로 만들어 세우는 때가 와야 됩니다. 그때가 안 오면 이 세상은 천국을 찾아가는 노정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상대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이 창조의 원칙

앞으로는 통일사상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통일교회가 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일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몰리고 쫓김받는 자리에서도,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빌어먹는 자리에서도 남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들은 개인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가정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종족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요, 국가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천륜의 운세와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선진국가의 일등 국민이라도 천륜의 운세를 역행할 때에는 망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외국 사람들은 잘 울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보니 더 잘 우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시에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그날 온다는 소식만 듣고 비행장에 나와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지쳐 몸이 달았는지 선생님이 도착하여 비행장에 천천히 나타나니 나온 사람들 중에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지만, 같은 통일교인이 되고 보니 웃는 것도 모두 같고 우는 것도 모두 같았습니다. 웃을 때 이빨이 보이고, 울 때 눈물 흘리는 것도 여러분과 같았습니다. 여러분과 별 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웃는 것과 우는 것은 사촌지간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상응작용․상극작용이 있습니다. 상응작용이 되려면 서로 일치해야 됩니다.

이 세계에서는 상대를 위하는 것이 창조의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싫다고 하는 것은 악입니다. 이것을 이루어야 영존할 수 있는 기원이 생깁니다. 우주의 보상 원칙에 의한 존속의 기원이 생겨나기 때문에 온 우주 앞에 인간으로서 원리원칙에 합격되고 생활에 적용시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너도 나와 같이 되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곧 선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하고 상대를 결정해야만 영육이 합해지는 것입니다.

나무도 상대적 환경이 갖추어져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순의 투쟁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모두 상대를 위하는 세계를 찾는 과정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운세를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의 운을 따라서 심정세계, 즉 창조이상세계를 말하고 있으니 기막힐 정도로 좋다고 할 것입니다. ‘좋다.’라고 하는 그 말의 조상이 무엇입니까? 엄마가 있어서 ‘좋다.’, 엄마가 없어 ‘나쁘다.’, 애인이 있어서 ‘좋다.’, 애인이 없어 ‘나쁘다.’, 아들이 있어서 ‘좋다.’, 딸이 있어서 ‘좋다.’, 아들딸 중 하나만 있으면 ‘조금 섭섭하지만 좋다.’ 합니다.(웃음) 그 ‘좋다’는 것의 뿌리가 무엇이길래 보기 싫고 만지기 싫은 것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아기 엄마들이 아기가 똥을 싸서 냄새가 지독히 나는 것을 더러운 줄도 모르고 치웁니다. 여기에 무엇이 있어서 그러합니까? 지독한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잘못하면 ‘죽을 사(死)’ 자에 ‘서방 랑(郞)’ 자의 사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웃음)

행복한 가정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겠습니까? 사랑의 보금자리가 없어지게 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그 집에 울타리가 되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위로는 하늘을 대표한 부모를 모시고, 횡으로는 가정을 대표한 남남끼리 모여 사는 그 인연의 사랑을 부부로 묶어 이 부부들이 천륜의 법도를 받들며 그 계대를 이으면서 사는 가정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도 갈라져 나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느냐?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어 영원히 갈라지면 이것 이상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서 갈라지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자꾸자꾸 갈라지는 것이 불행입니다. 아버지가 먼 곳에 가시는데 어머니가 좋다고 춤추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좋아서 신이 나는 자식도 없습니다. 죽어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좋아할 수 있습니까? 장가가는 날, 시집가는 날이 나빠요, 좋아요? 갈라지는 일이 벌어지는데 좋습니까?

인생세계의 인연을 맺고자 하면 남자와 여자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가야 됩니다. 한 사람만 잘 한다고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남자 여자의 힘이 합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중앙으로 돌진해야 됩니다. 중앙을 향해 돌진하는 힘은 사랑의 힘입니다. 상대가 나타나게 되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하는 것 가운데에는 중심에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즉 거기에는 평면적인 모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심과 연결된 힘이 없는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자동 파괴만을 일으킬 뿐입니다. 빨리 돌수록 위험천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만 결정되면, 빨리 돌면 돌수록 거기에는 천지의 조화가 벌어집니다. 지구가 얼마나 빨리 돕니까? 하루에 자그만치 한 바퀴를 거뜬히 돌아 버립니다. 여러분의 다리 갖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근원을 결정할 수 있는 그 기준을 세우고 돌면 돌수록 춘하추동의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자가 시집가면 갈라지고 남자가 장가가면 갈라지는데 그것은 결국 무엇 하는 것이냐? 천지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넓고 넓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중심을 중심삼고 정착하는 것은 무엇이 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잘하면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가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같이 있고 싶어 합니다.

한국의 민법은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하고 이족 결혼을 장려하는데, 이것은 통일을 사모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했습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그랬습니까?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에 귀결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주사적인 남자의 대표자와 여자의 대표자는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그 본연의 인연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천주상에 이루어 놓아야 그 세계로부터 행복의 터전이 벌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이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랑 신부 독자적인 구원관의 위치를 결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방적인 본성에 하나님도 끌어들이고, 인륜도 끌어들이고, 과거․현재․미래의 소망을 끌어들여, 여기에 부부의 이념을 중심삼고 통일의 기준을 세우려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의 각도가 직선상에서 90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90도가 360도로 되게 되면 원만히 갖추어져 있는 평등,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천정을 위시한 믿음과 실천을 통해 인격을 세우자

통일교회는 왜 합동결혼식을 하느냐? 여기에 대한 얘기를 다하게 되면 할머니들은 뼈가 녹아날 것입니다. ‘내가 다시 회춘할 수 있으면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을 할 것인데….’ 남이 욕하든 말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쁠 때는 좋아하고 웃습니다. 그러나 너무 기쁠 때는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통일의 권내의 선두에서 모든 인류를 규합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 인류역사에 드러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만 이 천지간에 행복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소망의 개인과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이 종족을 이루어 종족으로부터 민족, 민족으로부터 국가, 국가로부터 세계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즉 이 지구를 뒤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 나라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의 운세를 따라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생님은 그냥 가만히 두고 봅니다. 그들보다 선생님이 못나지 않았고, 힘을 겨루어도 이길 수 있고, 이론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즉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선생님은 현재의 교회 지도자들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길을 가는 아줌마에게 가는 곳을 미리 알고 아줌마, 어디 가고 있지요? 하면 놀라면서 그렇다고 합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무엇이 있습니다.

20세기의 말기에 있어서 영계를 통하는 사람 중에서 꼽는 한 인물이 있다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입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면 사실인지 아닌지 간절히 기도해서 알아보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도인과 수많은 영통인들도 전부 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라고 하는 팻말을 목에다 걸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 아십니까, 우리 선생님이 어떤 분입니까?’ 하고 생년월일과 이름만 말해 보세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이런 것을 다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주름잡고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는 그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에서 큰소리치다 보니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나 망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정을 바라 가지고 지상에서 지․정․의의 법을 찾고, 천정을 위시한 믿음과 실천을 세워서 인격의 도리를 수습하자는 것이 통일원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쳐 주면 누구든지 그렇게 안 될 수 없습니다.

참된 농부는 봄이 되면 씨를 뿌릴 줄 알아야

그러면 이 엄청난 사실을 중심삼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본향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본향의 나라를 원할 것입니다. 인류가 원하는 본향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본향의 개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개인과 더불어 가정이 일치되어서 종족은 이래야 된다, 국가는 이래야 된다, 세계는 이래야 된다, 하늘땅은 이래야 된다, 하늘의 사랑의 법도는 이래야 된다는 논리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논리 위에서는 아무리 무식한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을 가지고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열매를 맺는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혁명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지구성을 갈라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가 많아질 때에 본향의 세계가 창건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세계에 가고 싶거든 여러분이 진정 자기를 돌보아 가지고 현재의 자기 자체와 자기 입장을 유지해서 새로운 수습 방법을 찾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미 내가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본향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할머니든지, 청년이든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천하만민이 원하는 소망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자유의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내 자체에 속한 것이 귀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봄철이 찾아오면 농부는 씨앗을 뿌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귀한 볍씨를 뿌려야 됩니다. 뿌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모르는 농부입니다. 그리고 제철에 씨를 뿌릴 줄 모르는 사람은 농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데 있어 벅찬 소망을 갖고 미래의 열매에 대해 축복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신록의 계절인 여름을 맞아 현실의 모든 전통을 뛰어넘어 새 농토에 씨앗을 뿌릴 수 있게 수호해 주자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출발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서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싸워 나가는 통일의 정병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려운 상황하에서 출발을 했으니 부디 목적한 결과가 거룩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향하시고 인류가 소망하는 심정의 세계까지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한 본향의 땅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뜻 앞에 용진할 수 있는 정예부대가 되어 주기를 부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 도>

아버님! 한 많은 역사의 슬프고 서글픈 고비 길에서 불초한 모습들을 수습하여 천륜과 경륜으로 섭리하시고 의논하시던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을,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과거지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옵니다. 어려운 고비 길에서 낙망할까 봐 염려하시며 마음 졸이시는 아버지 앞에 감응할 길이 없사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낙심하지 말라고 분부하시던 아버님의 그 음성 앞에서 출발했던 21년 노정 중 7년노정을 보내고, 1968년 3월 10일이란 거룩한 날을 맞이하였사옵나이다.

이날을 기하여 통일의 역군들이 천지의 운을 따라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저희들이 처한 자리가 너무나 비참하고, 너무나 비굴했던 자리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시고 뉘우치게 하시옵소서. 이 우주가 절규하고 하늘이 분통해하신다는 것을 느끼면서 서로서로 교차되고 규합되고 서로 하나되어, 통일의 본향땅을 흠모하시는 아버지의 소원을 해원해 드려야 할 것이 저희 부족한 육척 미만의 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잃어버린 고향을 쌍수를 들어 부모 품에 돌려드려야 할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주의 운세가 나를 불러 일깨워 주었지만 그것을 잃어버렸사옵고 많은 한의 날들을 보냈사옵니다. 저희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였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였고, 마음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였던 과거지사를 진정으로 뉘우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자녀들은 모두 다 본향의 나라를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본향의 나라를 찾아가는 이 길이 이렇게 어려운 길일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아버님, 한 많은 탄식의 세계 위에서 이 원한의 터전을 밟고, 이것을 박차고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유도탄같이 날아갈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폭탄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의 폭발력과 추진력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이 길을 막고 반대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가야 할 발걸음이 바쁘고 바쁘기 때문에 쉴래야 쉴 수 없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통일의 자녀들인 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들의 앞길을 평탄케 해 주시옵고, 가는 길 앞에 한 고비 한 고비의 싸움을 다짐하게 하시옵소서. 올라갔다가 부디 전체가 떨어지지 않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숱한 역사 과정에서 슬픔의 가슴을 억눌러 가면서 참아 나온 이들을 기억하시옵고, 이들의 얼굴에 수심과 낙망과 패자의 빛이 어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러한 과거를 지녔지만 소망에 넘치고 희열에 넘치어서 내일의 희망 가운데 벅찬 가슴을 안고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68년을 중심삼고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라는 표어 밑에서 저희들의 생애와 실생활을 아버님께 다 바치고자 하오니, 아버님, 친히 허락하여 주시옵고 통찰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상세계에서 탈선되지 않는 입장에서 보고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에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일년의 생활의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생애노정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어서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허락하시려는 행복의 터전인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수 있는 건국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여 아버님을 모셔 놓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 위에 평화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녀들의 행복의 노정 위에 아버지의 가호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충성과 희생을 각오하고 나가는 데 있어서 아버님의 동정의 심정이 언제나 이들의 생활 가운데 넘쳐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세계 인류를 책임지겠다고 맹세한 이들의 마음을 거룩하다 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아버님께서 동반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성경에 나와 있는 알파와 오메가는 복귀를 의미합니다. 출발과 끝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끝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끝을 보는 날이 창조이상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알파로 계십니다. 자기의 관점으로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우리를 끌고 가실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이스라엘의 족장,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중 어느 한 사람에 해당하는 책임을 다했다고 장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철저한 신앙생활과 교육을 통하여 전통을 세워야 천국에 갑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뜻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뜻길에 들어와서 가만히 있으면 뜻길을 막는 것이 됩니다. 자기 가정과 종족을 구해야 합니다.

5퍼센트 인간책임분담인 탕감조건은 개개인이 세우고 가야 합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마음이 백만큼이라면 공적인 것을 생각하는 마음은 백 이상 되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공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이 더 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과 공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한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천국을 이루려 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천국을 이루려 하느냐? 다시 말하면 개인을 중심한 천국을 이루려 하느냐, 전체를 중심한 천국을 이루려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좋아하는 것도 누구를 중심하고 좋아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 기뻐했던 것 이상의 기쁨을 가져야 정상적입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좋아했던 마음을 누가 잡아먹었는가? 자기 자신이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알파는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창조이상입니다.

통일교회에 빚지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심정으로 마음과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앞에 훤히 보이는데, 여기서 문턱을 못 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운세를 밀고 나가야 합니다.

알파의 심정, 처음의 심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 은혜 받고 기뻐했던 것보다도 지금 더 기뻐야 합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은 에덴을 창조하시고 하나의 이상을 세우셨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이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잃어버린 에덴을 다시 찾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은 하나님, 아담, 해와가 일체가 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상을 예수님이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는 신랑 신부를 찾아 세워야 할 과제가 남아진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일체를 이루는 날이 뜻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역사의 목적은 하나의 완성된 아담을 찾는 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을 택하여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국가의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함으로써 예수님은 다시 사탄이 참소하는 권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뜻을 이루지 못한 예수님은 재림주를 사탄이 다시는 죽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영적으로 역사하여, 민주주의 세계를 이룬 것입니다.

이상상대 기대란 사탄이 범할 수 없는 자리에서 맺어진 부부를 말합니다. 즉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부부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은 하나님을 중심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기대 이상이 아니면 새로운 이념은 출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싸워서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위치에 선 것이 아니라, 이 이념을 믿고 따르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인 기대와 실체적인 기대를 세우지 않으면 축복도 무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방도에 남아져야 합니다.

사랑에는 혁명도 없고 발전도 퇴보도 없는 것입니다.

타락은 사탄을 중심하고 불륜의 사랑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으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체완성, 상대완성을 이룬 후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으로 공인을 받아야 진정한 이상이 이루어집니다.

통일은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이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입장에 서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 잔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새사랑, 즉 창조법도에 의한 사랑이 결정된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상이 출발됩니다.

전체를 완전히 주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일방성을 가지고 주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육체 내에 하나님의 뜻이 머물 수 있고,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가정에 개성완성한 인간이 설 수 있으며,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민족과 국가가 전개될 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선은 반드시 핍박받은 자리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아야 완전히 설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자리에서만 사탄이 자연굴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가정을 이루어야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했습니다.

선은 악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워 악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때가 되면 현실을 부정하는 종교는 망합니다.

이상적인 사랑은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다운 아들딸을 갖지 못했습니다. 참다운 형제를 갖지 못했고, 부부를 갖지 못했고, 또한 부모가 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것을 이루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곳이라야 사랑이 머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옵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탄을 중심한 사랑을 심판하는 것이 대심판입니다.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원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로서 왔지만, 부부의 기준과 부모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원래 한 인간은 그의 상대를 두고 부모, 부부, 형제, 자녀의 4대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 요지>

36가정은 아담, 노아, 야곱의 세 가정을 대표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을 희생시켜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는 것은 가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는 승리하셨지만 지상에 이스라엘권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영계의 이스라엘권을 지상에 이루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지상 이스라엘권을 세우는 것도 개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영적인 제1, 제2이스라엘을 연결하여 제3이스라엘권을 지상에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재림주는 제1이스라엘을 대신한 제1가정(아담가정)과, 제2이스라엘을 대신한 제2가정(노아가정)과, 제3이스라엘을 대신한 제3가정(야곱가정)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36가정은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 못한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에 재림주는 이것을 풀어야 하고, 아담 해와가 실수한 것을 탕감하는 제2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책임지기 위해서 36가정은 재림주님(제2조상)의 뜻을 받들고 그의 길을 따라서 제3이스라엘을 형성해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지파를 편성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결혼한 사람들과 처녀 총각들을 하나로 묶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뿌리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은 모심의 생활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중심하고 참소합니다. 즉 심정과 사정과 소망을 갖고 참소합니다.

우리는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하여 이상적인 사회와 국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 부모의 심정, 개인의 심정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즉 개인의 모심의 심정과 가정의 화목의 심정과 사회의 안정의 심정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의 조상이 여러분입니다.

세계를 품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중심하고 여러분들이 사방(四方)에서 선생님을 대신하여 12수방(數方)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세울 때는 사탄 불가침의 입장에서 축복한 것이었습니다. 각자가 3대를 거치며 전통을 세워 주위 사람들을 선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듯이, 내가 36가정을 사랑합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가정을 세우는 기간이요, 제2차 7년노정은 여러분들이 책임을 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효영, 효민, 요한의 가정을 무정하게 끊고 새로이 세운 것은 그와 같은 세계적인 면을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72가정은 36가정의 자녀와 같습니다. 36가정이 가인 아벨로 분립되어 복귀된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종족을 위한 선조가 되어야 합니다.

영통하는 사람들은 어머님에 대해서도 책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심정을 중심하고 하나의 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선생님이 원리를 내놓은 것도 실천하고 난 다음에 선포한 것이기 때문에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역사를 수습하여 현재의 중심을 세워야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난 후에 세례 요한은 물론 아브라함 등 그 선조들은 얼굴을 못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한을 풀기 위하여 36가정을 세움으로써, 그들을 수습하여 협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책임 추궁을 못한 것은 선생님 가정이 완전히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 맞는 부모의 날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의 부모가 결혼한 날을 축하하는 날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식이 태어났으면 그 자식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자식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게 되어 축하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또 국가적으로 보면, 그 국가가 타국의 압제를 받다가 독립을 하게 되면 그날을 경축일로 정하여 축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축하의 날은 많습니다.

섭리적인 축하의 날

그러나 그러한 모든 날들은 섭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들입니다. 아무리 세계 만민이 밤을 새워 그러한 날들을 찬양하고 축하를 하더라도, 그러한 날들은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빚어진 날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귀섭리와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필요한 날들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런 날들은 어차피 다 지나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서 한 시대를 살고 갔던 사람들이나, 지금 현세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축하하고 사랑했던 잊지 못할 날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나 현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축하하는 날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날들은 어차피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서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영계에 가면 그들이 축하했던 기준에 따라 슬픔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서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날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앞으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축하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자기가 축하했던 것은 도리어 부끄러운 조건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바라는 축하의 날은 어떤 날이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태어난 날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슨 날이겠습니까? 결혼식을 올린 날입니다. 또 그다음은? 돌아가는 날일까요? 내가 태어난 날이 제일 중요한 날이고, 그다음은 내가 상대를 맞이하는 날이요, 또 그다음은 아들딸을 낳는 날입니다.

세상에 제아무리 축하할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원칙을 벗어난 축하의 날은, 상대적 관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심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축하의 날은 아닙니다.

이 세 가지 중요한 날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한 인간의 첫째 소망이 개성 완성, 곧 개인이 타락했기 때문에 부활한 하나의 개체를 중심삼고 새로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둘째 소망은 상대완성이니 태어난 그 자체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의 자녀를 번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 동네의 어떤 잔칫날에 참석을 못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경축일을 갖지 못해서, 또는 세계적인 경축일을 갖지 못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고 좋은 날이 있다 해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좋은 날과는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좋은 날은 자기가 이 땅에 태어난 날, 자기의 상대를 결정하는 날, 그리고 부부의 사이에서 새로운 자녀가 태어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날을 갖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이렇다면 하나님은 어떨 것인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태어난 날이 있고, 결혼한 날이 있고, 아들딸을 낳은 날이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평면적인 천국, 실체적인 천국의 첫 출발

하나님께서 제일 기쁘신 날은 아담이 태어난 날입니다. 이날은 실체세계의 하나님으로서 출발하는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주적인 하나님의 가치로서 태어날 수 있는 실체적인 첫 출발이 아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아담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내재적인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적인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즉 어떤 목적에 대해 바라는 욕망을 충당시키는 데 있어서 상대적인 입장 여하에 따라 그것의 현실적인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신 날, 다시 말해서 만물을 지으신 그날보다도 더 기뻐하신 날은 아담을 이 천지 가운데 세우신 날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아담이 결혼하는 날입니다. 아담이 결혼하는데 하나님이 왜 좋아하실 것인가? 아담의 결혼식은 천적인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의 결혼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아들딸을 낳는 날이라고 했지요? 마찬가지로 아담의 아들딸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전후 좌우, 즉 평면적인 천국을 건설하는 중심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천국, 실체적인 천국을 건설하는 데 첫 출발이 되는 것이 아담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날은 아담이 태어난 날이니, 이날을 축하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누가 아담이 태어난 날을 축하해 보았습니까? 혹은 하나님이 ‘인간들아, 내 아들 아담이 태어난 날이 몇월 며칠이다!’라고 선포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담을 낳기는 낳았는데 어느 날 낳았는지 모릅니다.

그다음으로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날은 아담이 잔치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잔치를 했습니까? 잔치를 하기는 했는데 그 잔치는 원수가 도둑질해서 한 잔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쁜 날을 맞이하시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광명 천지에 기쁜 날을 맞이하시지 못하고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기쁜 날을 갖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풀어야 할 하나님

기쁜 날을 갖지 못하신 하나님이 무엇에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내용도 모르는 일반 기독교인들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높으신 보좌에 앉아 계시니, 당신이 명령하시면 천하가 다 움직이니 그 이상 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으니 하나님이 기쁘시겠습니까, 슬프시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한량없이 슬프십니다. 그 슬픔을 풀어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슬픔을 못 푸신 하나님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더욱이 이러한 것이 세상에서라면 아무도 좋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새끼라면 싫더라도 좋아하려 하고, 자기 새끼가 아니면 좋아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날 이런 천지가 벌어지고 있어요.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그날부터 출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이라는 말에 꼼짝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날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들이 무슨 기쁜 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제아무리 꿈을 꾸고 행복을 노래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슬픈 인생의 행로인 것입니다. 결국 자탄(自嘆)의 자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하늘의 입체적인 세계, 즉 천주와 관계를 맺어서 심정의 세계가 천지와 더불어 자극을 받아 기뻐할 수 있는 실체의 세계를 절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날들은 걷어치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세계에서는 일단 자기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세계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워하는 그 세계를 그대로 두고 살면서 그냥 그 자리에서 그리워해야만 하겠습니까?

하늘을 찾아가려면 뒤로 돌아 복귀의 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한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실 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잠자고만 있겠습니까? ‘만민아, 깨어라! 만민아, 말하라! 만민아, 춤춰라!’라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딸과 백성이 있다면, 그 아들딸과 백성을 세워 놓고 혼자 웃으시면서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좋을 때는 다 같이 좋아해야 합니다. 날아가는 파리새끼들까지도 박자를 같이 맞추어 줘야 좋은 것입니다. 만약 그럴 수 있는 날이 한국 강산에 왔다면, 이 한국 강산만 좋아해야 할 날이겠습니까? 누구나 지구상을 하루에도 몇천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천국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 날이 이 지구상에 한번 오기를 바라지만 아직 그럴 수 있는 날을 못 가졌습니다. 아무리 보고 싶고 갖고 싶어도 그날이 나타나지 않으면 못 갖는 것이고, 못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평등․평화․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 천국의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나라가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실상과 섭리의 내용

인류역사는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기쁨의 연속이나 그 기쁨에 사랑이 첨부되었어야 했습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의 보(褓)가 한 겹 덮어 씌워져 있습니다. 또 그 자식이 자랄 때 ‘얼른 얼른 커라.’ 하며 마치 자식이 하루 만에라도 다 커서 그 이튿날부터 아빠 엄마를 모시고 다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5대 독자니 몇대 독자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게다가 홀어머니가 그런 아들을 길러 나온 집에 시집을 간 여자는 아무리 성품이 좋고 훌륭하더라도 귀여움을 받지 못합니다. 도리어 시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부부의 사랑이 덧붙는 것인데, 거기에 왜 시기와 질투가 따르는지…. 그것은 사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이념을 아는 사람은 아들과 며느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며느리가 좋아하면 춤을 추며 기뻐해야 할 텐데, 왜 시기하고 질투하느냐 말입니다. 아들이 태어난 날의 기쁨 가운데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그 사랑 가운데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도 있다는 것입니다. 둘이 옹기종기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하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시고 ‘야야, 통행에 방해된다. 비켜라!’ 하고 싫어하시겠습니까? 고속도로상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교통 방해를 해도 좋다!’ 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이 비켜가게 되어 있지 밀치고 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신만고 끝에 아담과 해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들을 만들기 위하여 우주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천신만고 끝에 피조 세계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담 해와를 힘들게 지으셨으니 그들을 다 지으시고 난 후의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좋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때가 있어야 할 것이니, 그때는 바로 지으신 아들딸이 하나되는 시간, 즉 아담이 신부를 맞이하는 때입니다. 이러한 기쁨이 천지간에 태어난 모든 것들에 연결이 되는 것이고, 인류 전체에는 사랑의 중심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지파가 벌어져 폭발력으로 화하면 이 세계가 다 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을 닮아서 태어나게 되고, 닮아서 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아서 태어났습니까, 닮으려고 합니까? 어느 쪽이에요? 닮으려고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아 나왔다면 여러분들이 기뻐해야 할 날은 무슨 날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닮았다면 모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아 났다면 여러분은 무슨 날을 기뻐해야 되겠습니까? 태어난 날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다음엔 결혼한 날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들딸을 낳은 날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기원이요,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발전해 나온 것이 역사의 실상이었고 섭리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신부

하나님은 지금까지 바로 이러한 날들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들을 찾아 세우려 하셨고 딸을 찾아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구원섭리는 누구를 중심삼고 했습니까? 남자를 중심삼고 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남자들이 섭리를 위하여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싸움에 일등 한 사람이 있으면 싸움에 일등한 가정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그런 종족과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일등 한 나라가 모셔야 됩니다. 그러한 터전을 만들기 위하여 선민사상이 역사 과정에 나왔던 것입니다. 그 선민사상으로 선민을 지도해 나온 책임자는 바로 남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상대적으로 하셨습니다. 남자는 이 평면 세상, 횡적인 세상에서 내적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내적으로 서서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맞지 않고는 외적인 천지에서 그 무엇이 이루어진다 해도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내적 환경에서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한 국가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것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민의 규모보다 더 큰 민족으로서 선민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를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한 남자를 찾아 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서 기뻐하는 것은 누구의 기쁨이 되는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은 그 사실을 볼 때, 그것은 남자를 중심삼은 구원섭리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런 역사 과정에서 슬픔과 고통과 비참함이 사무쳐 있는 역사적인 고난의 노정을 헤치고, 현실세계의 비참한 요소들을 제거시키며, 또 그 가운데서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는 하나의 중심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만민이 고대하던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 즉 예수님이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그 아들이 탄생하던 때의 기쁨을 다시 느끼실 수 있는 때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태어나서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싸움을 잘 해야 하는 것도,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장가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장가를 갔습니까? 못 갔습니다. 왜 장가 못 갔습니까? 예수님은 신랑으로서 너무나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신부로서 갖추어진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세계 앞에 복귀의 한을 풀 수 있는 부활의 날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신 날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광명의 날은 어떻게 해야 올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복의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 소원의 날이 절벽에 부딪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향하여 달리던 배가 돌개바람을 만나 돛대가 부러지고 방향도, 목적도 다 잃고 만 것과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왜 신부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고한 남성들 앞에 상대적인 내용을 지닐 수 있는 한 여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가 아니고 역사를 통해서 왔습니다. 아벨에서부터 싸워 가지고 노아, 아브라함 등을 통하여 수천년을 거쳐왔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심정을 가진 사나이 앞에 역사적인 심정을 지닌 여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나타나서 예수님 앞에 상대적인 존재로 설 수 있었더라면 예수님 일대에 역사적인 슬픔을 한꺼번에 탕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해와가 죽지 않고 역사적인 출발을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함께 해와가 출발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해와와 같은 존재가 나와 그 일대에 역사적인 모든 것을 탕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 해원의 터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외로웠던 예수님

남자는 수천년을 통해서 왔지만 ─찾아진 아담의 신부는 하루아침에 천지의 대위업을 파탄시켰기 때문에─ 여자는 그 복귀에 있어서도 일대에 사탄세계를 전부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적인 모든 탕감조건을 해와에게 전부 연결시켜야 합니다. 해와는 일생 동안 그것들을 탕감해야 합니다. 뜻을 모르는 자리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뜻을 알아 가지고 일대에 이것을 넘겨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해와가 당초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서 사탄의 말을 듣고 타락했던 것을, 본연의 남편의 말을 듣고 복귀했다는 뜻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 받아 예수님의 신부의 입장을 책임질 수 있는 여성이 그 당시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4천년 역사를 수습하고 그 역사의 한을 해원성사하여 만민 앞에 해방의 깃발을 세우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입니다. 그런 예수님이니 뜻을 대하는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천지를 한꺼번에 움직이고 옮기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행보를 옮겼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상대 될 수 있는 이스라엘이 어디 있었습니까? 잘났다는 교법사, 제사장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반대하기에만 급급하고 자기들이 잘났다고 법석을 떨면서 모두 예수님을 몰아냈습니다. 그리하여 소망의 닻을 내려야 할 이 땅 위에 소망의 닻을 내리기는커녕 패망의 닻을 내리고 가야 했습니다.

그러한 운명에 부딪혔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 찾아가신 예수님은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아버지!’ 하고 부르던 그 기도는 4천년 역사를 꿰뚫고도 남을 수 있는 심정과 피와 땀과 눈물어린 기도였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은 공연히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쓰러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이 나는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모르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잠을 자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이었습니까?

예수님의 그러한 심정 앞에 태산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상대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나선 자가 없었습니다. 기가 막힌 시대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이 교훈을 잘못했다고 봅니다. 너무 사랑만 많았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은 제자들 편이었습니다. 밀밭을 지나다 밀을 비벼 먹는다고 바리새교인들이 비난을 하는데도 제자들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공인도 유대교단의 공인도 받지 못했습니다. 교법사나 서기관, 족장들에게도 공인받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자기 가정, 즉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난 요셉가정에서조차도 몰렸습니다. 가정에서 몰리고 제자들에게까지 배신당하신 예수님은 갈 데라고는 십자가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 가면서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이스라엘의 아들딸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올 이스라엘의 해방의 날을 위하여 울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 눈물 흘리며 예수님의 사정을 다시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기독교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하지 못하면 망합니다. 예수님은 죽어 가면서 가정의 기준을 후대의 약속으로 남기셨습니다. 갔다 와서 다시 만나자는 것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예수님의 길과 선생님의 길

예수님의 그 길은 2천년이 걸려도 만들 수 없는 길입니다.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고, 또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비참한 눈물 속에 뼛골을 녹여 가며 그 길에서 죽어 갔던가?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혹은 이곳으로, 혹은 저곳으로 오실 줄 알고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하신 주님은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몰아쳐 오는 죽음의 물결만이, 즉 가정적인 죽음의 물결, 종족적․국가적․세계적인 죽음의 물결이 이 시대를 휩쓸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진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지 않고서는 주님은 이 민족 앞에 올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이 민족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족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1차, 2차, 3차노정을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시대까지 거쳐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가정, 국가, 전부가 사상적으로 고침을 받고 새로운 국가적인 체제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미국이나 그 어느 나라의 도움도 받지 않고, 공산주의를 누르고 이 민족을 세계적인 지도국가로 세울 것인가, 이상적인 모국으로 세울 것인가를 선생님은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족의 정신이 흐려지니 지금까지의 전통이 흐려지고, 문화도 흐려지고, 윤리도 흐려지고…. 전부 다 죽음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의문점을 제기하고 올바로 파고 들어가 연구하고 깨닫고 해야지,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입니까? 자기가 탄 배의 방향과 속도만 알았지, 바람이 불어 밀려간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전부 다 파선되는 것입니다. 바람 부는 속도를 알아 키를 잡고 방향을 돌려야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 길에서는 목표를 향하여 그냥 그대로 가야 됩니다. 세계적인 종말에는 폭풍우가 몰아쳐 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제아무리 올바른 목적을 가졌다 하더라도 방향을 잡지 못하면 풍파에 몰려가게 됩니다. 풍속과 풍향을 알아서 키를 돌리고 그에 대비하는 행로를 가지 못하는 사람은 파선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가정의 사랑 문제를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라든가, 부부관계 등 가정에 대한 실체 기준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6천년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부자관계 부부관계 등 가정에서의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사탄이 이것을 깨뜨리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끝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혼란한 시대가 세계적으로 퍼져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거든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자리잡은 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제일 기쁘신 날은 아담이 태어난 날, 그다음은 신부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팻말을 박아 놓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독교인들은 남자들도 신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종이며 천사장입니다. 해와를 유린했던 천사장의 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외적인 것을 세우면 내적인 것은 여자가 했습니다.

완성급에 올라가려면

은혜의 역사는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이 많은 80 이상 된 사람, ‘안나’ 같은 이도 80이 넘었습니다. 옛날 은혜의 역사는 70, 80이 된 할머니를 중심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70, 60, 50등으로 내려와 30대에 은혜가 머물 수 있는 때가 되거든 주님의 때가 온 줄 알라는 것입니다. 20대부터 40대를 중심삼아 은혜의 역사가 국가적인 바람을 일으키거든 주님이 오신 줄 알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우시겠어요, 웃으시겠어요? 두고 보세요. 인간 역사노정에서는 아직 완성 기준을 넘어가야 할 소망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이 소망의 기준을 연결하여 완성권 내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못 넘었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그 책임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주님은 아담 대신 그 책임을 지고 이 지상 세계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급에 있는 자는 아무리 영통을 한다 해도 완성급으로 척 올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비조건도 다 갖추지 않고 올라선다는 것은 부모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완성급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안팎의 모든 구비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위로는 하늘을 대표하고, 아래로는 땅을 대표하고, 뒤로는 역사의 모든 과정을 통합하고, 현재에서는 세계 인류를 통일하여 다가올 시대를 대신해서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격자라야 옛날 아담 이상의 권한을 가지고 왔다는 공인을 받아 이 선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이 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사탄세계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야곱을 중심삼은 야곱가정, 야곱종족, 야곱민족으로 발전하여 세워진 그 승리의 터 위에서 출발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속죄 받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 대신 속죄할 수 있는 제물을 드릴 때, 그 중심된 한 사람과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된 모든 사람은 탕감 받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세계 국가의 하나인 이스라엘을 중심 삼고 신랑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기준까지 가게 되면 양자가 됩니다. 양자는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상속 받을 수 없습니다. 양자는 양부모에게 옛날의 친아들보다도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양부모가 기쁜 마음으로 자기에게 상속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양자권 국가형입니다. 그러기에 그 민족 모두는 옛날 하나님의 아들딸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던 그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 이상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복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올라가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그 옛날 선지자들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30여 년 광야에서 정성을 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돌감람나무 입장이었습니다.

죄값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

그러면 그런 단계에서 완성권에는 누가 나가야 되느냐? 창조원리로 볼 때, 인류와 부모가 나가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부모입니다. 인류의 부모는 이 땅에 와서 타락으로 인하여 고장난 것을 바로 고쳐야 됩니다. 당초 해와를 중심삼고 아담이 끌려 들어가 타락했습니다.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해와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빼앗긴 해와를 빼앗아 와야 되는 것입니다. 빼앗아다가 재창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사정을 알기나 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12사도가 뭡니까? 선생님만 보면 설설 기는 그들을 선생님은 우습게 알아요. 기독교에서는 바울이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바울이 훌륭한 게 뭐가 있습니까? 선생님이 ‘당신, 이런 것 잘못했지?’ 하면 쩔쩔매는 겁니다. 오늘날 신학사조는 예수님의 종교가 될 기독교가 바울의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면 모든 것을 탕감복귀했어야 합니다. 탕감복귀, 에덴에서 잃어버린 전부를 탕감복귀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의 여성을 이 땅 위에서 택하여 세워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두가 찬양할 수 있는 가정에서 새로운 출발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광명한 새 아침이 되어 만물이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한낮은 어느덧 지나가 석양 길에 들어서 버렸고, 많은 군중들로부터 찬양 받아야 할 것인데, 반대로 사망의 외로운 길에 몰려 들어가 사탄들에게 에워싸여 죽음과 싸워야 하는 길에 있었으니, 기가 막힌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잘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천년, 6천년, 몇억천만년이 걸려도 그 잘못한 것을 용서 받기 어렵습니다. 천상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에 그 민족이 피로써 저지른 죄를 지워 버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족이 아무리 정성들여 지우려 해도 그 종족 자체로서는 지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섭리상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세계에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죄 값으로 참살을 당하고 몰림받고, 종살이까지 하면서 천대받고, 제물로 사라지는 민족이 되어 6백만이나 학살당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이제 독립이 되었다는 것은 주님이 이 땅 위에 올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2이스라엘이 이 땅이 요구하는 기반을 갖지 못했기에, 영적 기반으로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형성해 실체적인 제2, 제3이스라엘을 연결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제1이스라엘의 사명을 하지 못했던 그 민족이 다시 회생할 수 있도록 1947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원수의 국가 앞에 몰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입장에서 보면 천사장이었던 아랍권에 포위되어 있는 것은 옛날 예수님을 몰아내고 죽이던 것과 같은 입장에서, 이스라엘권을 찾기 위한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정성을 다하여 옛날 잘못을 저지른 것을 회개하면서 나오게 되면, 하나님은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시대에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아랍권과의 싸움에서 일주일 이내에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것도 하나님이 도운 것입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예루살렘 성지를 위한 보호의 일념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또 싸우던 기준 이상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세우려던 그 마음과 회개의 깊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역습 당하게 됩니다. 요전번 그들을 가만히 보니까, 이겨서 좋다고 춤만 추었지, 춤춘 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상실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민족도 8․15해방 후에 좋다고 춤을 추었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바라보고 골방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어제의 기쁨이 오늘의 슬픔으로 뒤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뼛속에 깊이 깊이 사무쳐 후손에게 전통적인 사상으로, 이 민족의 애국심으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예수님

그런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 것인가? 하나님을 끌어들여 민족적 현실과 결부시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민족적인 기준을 세울 자는 누구냐? 없다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까지는 옛날에 아담과 해와가 올라갔던 기준입니다. 그 아담 해와가 올라갔던 기준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거기까지 올라갔다가 타락했으니, 이것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부모가 남긴 기준입니다. 거기에서 타락해 사탄세계가 이루어졌으니, 예수님은 이 사탄세계에 대해 하늘의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의 길을 닦아 놓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뜻에 맞게 모셨더라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완성의 기준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 기준까지가 7년노정입니다. 3x7은 21, 21년노정은 야곱 14년 노정의 연장 노정이고, 이 야곱가정을 중심삼고 가나안을 복귀하던 기준입니다. 그러니 이 7년간에 성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30세 때 공생애를 출발하기 전에 이미 내적인 기준의 뜻을 이루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만, 27세부터 33세까지의 7년 기간 동안 내적인 기준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27세부터 7년노정을 중심으로 국가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다음 새로이 제2차 7년노정을 세워 세계적인 기준을 만들어, 영적 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국가로서 천국 기준을 넘어가는 7년노정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34세부터 40세까지의 7년노정은 7년 대환난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40고개가 문제입니다. 선생님도 지금 40고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야곱의 14년 고개, 즉 14년노정을 넘어 가지고 비로소 가정적인 축복의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야 만물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적인 기준에서 이 고비에 올라갔더라면 일단 가나안 복지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아담 때에 아담이 상대했던 천사장 세계는 어떠했을까? 천사장보다 낮은 것이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세계는 문제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 길을 뚫고 부모의 기준을 결정할 수 있도록 민족적 국가적 기준을 모색했기 때문에 끝날에 세계국가를 통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행복의 터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왔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으니 하나님은 기쁜 날을 맞이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입니다. 아들로 왔으니 결혼을 해야 합니다. 아들의 상대를 정하여, 아들의 날을 세운 다음에 부모의 날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되어야 아들이 나올 게 아닙니까? 자녀를 낳지 못하면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부부는 될지언정 부모는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아들딸을 낳아 보아야 하늘과 땅의 정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알아야 사람의 정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그래서 자녀만으로도 안 되고, 부부만으로도 안 됩니다. 꼭 부모의 자리까지 나가 보아야 합니다. 즉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을 세울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일생에서 제일 기쁜 날은 이러한 것을 찾을 수 있는 날입니다.

이보다 더 기쁜 날은 없습니다. 이러한 날을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녀, 부부, 부모, 이렇게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이 인생 행복의 터전입니다.

오늘날 사탄세계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는 항상 가을바람이 몰아치는 것입니다. 그래, 가을바람이 좋습니까, 봄바람이 좋습니까? 가을바람은 사실 시원하고 기분은 좋지만 내면에는 죽음을 재촉하는 듯한 압력이 들어 있고, 봄바람은 사실 낮은 따뜻하지만 파고들면 춥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비로소 천지의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사는 사람은 가을 동산에 사는 사람이요, 부부가 같이 사는 사람은 봄 동산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봄 동산에서는 벌과 나비가 날지만, 가을 동산에는 벌 나비가 얼마나 날아다닙니까? 물론 가을 동산에도 나비가 날지만 생각해 보세요. 봄 동산에서 벌 나비가 날게 되어 있지, 가을 동산에서 벌 나비가 날게 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가을에는 굉장히 바쁩니다. 모든 곡식들을 추수해야 하고, 또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서 월동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봄은 풀어 헤치는 때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잔디밭이 있으면 거기서 한잠 자고 싶어집니다. 여러분은 봄이 좋아요, 가을이 좋아요? 선생님은 봄이 좋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행복을 노래하고 뭐가 어떻다고 해도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합니까? 부부가 살다가 한 사람이 죽으면 슬프다고 엉엉 웁니다. 혼자서 자기의 갈 길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왜 짝이 없으면 불쌍하다고 합니까? 천지가 기뻐할 수 있는 모든 중요한 날들 앞에 불합격자이기 때문입니다. 천지법도의 규율 앞에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 법도를 통해서만 천지의 운세는 돌아가고, 행복의 요건과 그 동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슬프다는 것도 그만큼 법도에 멀어졌기 때문이며, 그러한 슬픔의 기준에 한해서는 천지법도가 순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좋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세계에서 환영해 주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슬픈 것은 쫓겨나는 자리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갈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에서 참감람나무로

하나님을 옹위하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오면 올수록 기쁘다는 것은 원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계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박자와 그 파동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내가 거기에 어울릴 수 있는 요소를 지상에서 닦고 가지 않으면 거기에서 화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이 세 사랑을 완성해야 됩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복귀해야 되느냐? 먼저 양자의 세계로 올라가서 그 후에 아들의 세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을 맞이해 가지고 이상상대를 맞추어 축복을 시켜서 부모의 자리까지 나가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역사를 분석해 보면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자기들끼리 뭐가 어떻고 하면서 싸우고 야단입니다.

이스라엘이 양자에서 직계로 넘어가려면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직계로 넘어가기 위한 접붙임을 받으려면, 옛날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의 심정 관계와 사랑관계를 중심으로 그 사연이 깊지 않아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아담 해와보다도 더 나아야 됩니다. 더 낫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절대로 못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접붙인다는 것은 예수님의 팔이나 다리를 떼어다가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그 법도, 즉 ‘인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모셔야 한다. 이웃을 이렇게 사랑하라.’는 등 하나님의 심정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서 그것을 나의 생명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에게 접붙임 받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즉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지상천국입니다. 이 지상천국을 통해서 천상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여자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은 지상천국에 들어가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지상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떤 문을 통과해야 되겠습니까? 지상천국에 들어가려면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본래는 천국에서 자녀의 입장에서 충성해야 되는데, 낳고 보니 피난살이 신세로 쫓겨다니다가 낳았다는 것입니다. 다리가 하나 부러지고 머리가 비틀어지고…. 그런 사람을 치료해서 겨우 살려 가지고 업고 다니는 실정입니다. 보기 싫지요? 기분 나쁘지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의 날과 선생님

영계로 말하면 낙원권 내에 해당하는 기간이 7년 기간입니다. 즉 이것은 영계에서 고대하는 7천년 역사의 해원을 통일교회 패들이 7년 기간에 걸쳐 그 기준에 맞게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이 낙원권 내에 있는 패들은 누구를 따라가야 하느냐? 참부모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통일교회가 일반 교회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르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낙원에 가 있는 패들은 그렇게 부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땅을 대신해 왔고, 성신인 어머님이 왔고, 하늘 대신인 부모가 부모 이름을 가지고 왔으니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는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해도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가,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를 보고 열매를 찾다가 없어서 저주를 해 가지고 말라 죽었지요? 그 열매가 재림주님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하늘과 땅 앞에 공헌한 것은 부모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은 찾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부모의 날이 나오려면, 양자의 과정을 거치고 자녀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상대기준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이것을 세우지 못했으면 절대로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이스라엘 국가를 이 기준까지 끌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 기간이 34세부터 40세까지의 7년 기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도 대한민국을 중심하고 기도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만일 기성교회가 선생님을 받아들였더라면, 선생님은 벌써 세계적인 선생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위대한 선생님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 위대한 선생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이름이 날개 돋친 듯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졸장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자식들을 낳았는데 전부 병신 자식뿐입니다, 곰배팔이, 다리 병신 등. 그렇다고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습니다. 낳아 보니 이런 자식들을 낳았는데, 누가 잘못해서 이런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아비가 잘못해서 이런 자식을 낳은 것도 아닙니다. 종자는 좋은 데 밭이 나빴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몇 대만 지나가면 유전법칙에 의해서 좋아질 수 있습니다.

오늘 같은 부모의 날에 선생님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여러분을 데리고 말씀을 하자니 기가 막힙니다. 기분 좋겠어요? 하나님도 좋아하시겠어요?

예수님이 만약에 국가 기준의 뜻을 세웠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들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한 자리에 섰으면 상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아들과 딸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지 못한 아들의 사명을 우리가 알아서 완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해야 할 상대적 기준을 결정지어서, 양자를 직계 자녀로 복귀시키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0년도를 중심삼고 36가정을 축복시키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72가정, 124가정을 축복시켰습니다. 이러한 일은 역사상의 모든 영인들과 영계를 해방하는 일입니다.

부모의 날이 생기게 된 배경

부모의 날을 책정할 때 7년을 넘기는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책정한다면 부모의 날로서 본래의 뜻에 합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전에 사탄세계와 싸워서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세워야 본래의 부모의 날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 고비를 넘어서 부모의 날과 더불어 새로운 하나님의 날을 세운 것입니다. 금년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세운 것이 역사적인 기적 가운데 기적이요, 그 이상 기쁜 일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 해와와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하나님의 날이요, 부모의 날이요, 자녀의 날이요, 만물의 날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서는 자녀의 날을 세워 가지고 부모의 날을 세웠고,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세워 가지고 7년 고비를 끌고 나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추방하고 십자가의 길로 몰렸지만, 오늘날 우리는 7년노정의 역사를 거친 후, 그 기준 위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세계를 통일시켜 나가면 섭리의 기대가 올라가면 올라갔지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이러한 시대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았고, 게다가 세계적인 기준을 대표한 예수님이 발벗고 나서서 하나님 앞에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셔 들일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날과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이 4대 명절이 비로소 통일교회 제단을 중심삼고 결정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역사 과정을 통한 복귀섭리에서 최대의 승리를 거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날이 나오기까지의 7년노정을 따라오지 못한 사람은 자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불만을 느껴 떨어졌거나 아니면 여기서 축출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7년노정을 넘을 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따라와라. 1967년도까지는, 눈물을 같이 흘리고, 외로워도 같이 외로워하고, 핍박을 받아도 같이 받자.’ 하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오는 여러분도 외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몰리고 쫓기고 눈물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길을 걸어온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7년의 고개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서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중심하고 이 길을 걸어오면서 수고를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의 날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나 내부에서 분열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모든 현상이 부패하고 붕괴되어서 마지막 하나까지도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미국도 지금 월남전쟁으로 싸움판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세계를 감아쥐고 멋있게 한번 요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알고 보면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운명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몰리고 쫓기더라도 하나님을 찾아 세울 수 있는 위신과 권위를 갖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몰리는 자리, 쫓기는 자리, 감옥에 들어간 자리에서도 책임을 다했다는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사탄 앞에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기준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복귀역사에 있어서의 우리의 책임입니다.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행로

우리가 부모의 날을 세웠는데, 이 부모의 날이 오늘날 통일교회만의 부모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만 맞이할 수 있는 부모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 만민이 맞이할 수 있는 부모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날에는 만세의 한 맺힌 고개를 넘기 위하여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선생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절박한 심정을 품고, 이 죄악의 세계를 파탄시켜 해방의 나팔소리와 해방의 환호성이 천지에 가득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해방군으로서의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부모의 아들딸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날은 통일교회 울타리 안의 소수의 무리만이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아니고, 만민이 축하할 수 있는 날입니다. 전역사에 걸쳐 길이 찬양할 수 있는 날입니다. 미래의 만민들이 이날을 자랑의 날, 기쁨의 날, 영광의 날로 길이 기념하고 찬양할 수 있는 날입니다. 이렇게 축하를 해야 할 날이 오늘날 한국 강토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그 누가 알고나 있습니까? 지금도 때가 어떤 때인지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꿈도 안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가 한 점에서 교차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결판을 내야 합니다. 60년대를 중심으로 지금까지는 우리가 공격을 받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전면적인 진격을 취할 수 있는 한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맺힌 한을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풀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가졌고, 부모의 날을 가졌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날을 그리워하고 찬양하고 이날에 얽힌 모든 한을 해원해서 만물이 이날은 우리의 날이라고 손벌려 맞이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날을 하나님은 고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제는 전면적인 진격으로 삼천리반도를 재차 편답하고, 세계 무대를 응시하면서 최후의 결전을 노리고 나가야 할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언제나 그러한 사명에 사무치고 그러한 사명에 불타고, 내일의 천국 앞에 당당히 제3이스라엘의 권한을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되고, 그런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길이길이 찬양을 드리고 길이길이 자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날의 영광을 위하여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현실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행로인 것입니다.

이번 축하의 날을 계기로 해서 덧없이 보낸 과거 7년노정을 반성하고, 이날 이후부터는 일심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재차 인식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민족과 이 세대 앞에 책임을 다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이날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고, 또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통하여 소망의 마음을 계속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진격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진격하면 여러분과 같이 가겠지만 여러분이 후퇴한다면 여러분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갈 것입니다. 여러분, 가겠어요, 후퇴하겠어요? 「가겠습니다.」

선생님의 자리는 편안하고 행복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바라시던 참다운 자녀, 참다운 부부, 참다운 부모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하늘땅 앞에, 또는 사탄세계 앞에, 가인적인 아들딸 앞에 당당히 나타날 수 있는 내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백성이 되고, 천국 가정을 가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도 지금 이 길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길을 통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각자가 인식해 주기를 바랍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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