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뜻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 나름대로의 뜻을 중심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 널려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자기 사업에 대한 뜻, 학문에 대한 뜻, 혹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뜻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선이 요구하는 것

그러면 이 뜻은 무엇을 중심삼고 이루어 나가느냐? 물론 사람을 중심삼고 이루어 나가되 그 마음을 중심삼고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의 마음은 언제나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고 잘되기를 바라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면적이든 입체적이든, 시대적이든 역사적이든 더더욱 잘 되기를 바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만민이 좋아하는 기준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양심은 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선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선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큰 무엇을 성사시킬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선을 따라서 뜻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자기의 연구분야나 사업분야, 혹은 다른 어떠한 분야를 막론하고 선에 입각하여 뜻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선은 어떠한 내용을 지니고 있느냐? 선은 피동적이냐 주동적이냐를 분석해 볼 때에, 선 자체는 피동적이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동성(主動性)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 어느 단체든 그 조직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중심삼고 그 사회나 단체를 움직여 선한 기준권 내에 예속화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참다운 선을 바라느냐? 선 자체가 피동적이 아니고 주동적이어서 우리의 생활에 불의와 손해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익을 갖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을 가진 사람은 선에 입각하여 자기 주체성을 갖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남한테 지배받기를 싫어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 양심을 터로 해서 바라는 선의 기준도 한계적인 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이라 해도 한국적인 사람만을 원치 않습니다. 자기가 한국 사람이라 해도 세계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더 높은 무엇이 있다 할진대 그러한 존재가 되기를 선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참다운 양심적인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참다운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주체성이라든가, 자기 자체를 중심삼은 최고의 이념을 견지(堅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자기의 절대적인 주체성을 요구하는 것이요, 절대적인 최고의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뜻이 지향해 나가는 데는 무엇이 연결되느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이상, 혹은 이념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은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은 어떤 것이냐? 그것은 만민의 어떤 생각권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혹은 어떤 시대권 내에서 그 목적을 세워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성과 역사성을 초월하고 지역적인 한계를 넘는 기준에서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어떤 상대적인 이상권을 요구합니다. 이 기준이 무한해지면 무한한 환경권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무한한 상대적인 이상권을 요구하는 마음의 주체성 역시 무한한 것이며, 그러기에 무한히 지고(至高)한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고귀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이상을 향하여 가는 길입니다. 역사 과정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살았지만 뜻은 더 높은 선을,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시대가 교체됨에 따라서, 혹은 국가의 주권이 바뀜에 따라서 그 환경이 가지각색으로 변천해 나가더라도 뜻은 언제나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데 자극이 되고 힘이 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점점 이상세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만인이 바라는 뜻은, 그 이상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세계의 정세를 바라보면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뜻이 가는 길

지금 세계에서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와 공산의 뜻이 지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인류역사와 더불어 뒤넘이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뜻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뜻, 최고의 이상적인 뜻, 그야말로 하나님의 이념과 통할 수 있는 뜻은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와 공산의 뜻은 어차피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대로,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대로 이상이 무엇이고 이념이 무엇이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현실은 하나의 귀결점을 이룰 수 있는 뜻의 방향을 찾기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세계는 역사 과정을 거쳐 20세기 현대문명을 맞이하여 비로소 하나의 이상권 내에 귀일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 선조들의 양심은 선하지 못하였던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보다 선했습니다. 그러면 선조들이 그리던 이념이 현세만 못했느냐?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전부가 하나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주장하고 나서야 했는데 왜 못 했느냐? 뜻이 가는 데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뜻은 출발과 동시에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데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인간시조가 타락했다는 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타락은 무엇이냐? 뜻의 본향성을 잃어버린 것, 즉 뜻이 향할 수 있는 본래의 바른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야 할 길을 제쳐 놓고, 가지 않아야 할 길로 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뜻과 일치되는 방향을 버리고, 뜻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간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가 인간시조의 타락과 함께 출발되었다는 것을 공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류는 반드시 그 방향을 돌이켜서 하나의 이념적인 세계를 항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 혹은 수많은 도주들은 무엇을 했느냐? 그들은 각각의 주장을 내세워 엉클어진 뜻의 방향을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시키려 했습니다. 엉클어진 뜻의 방향을 어떠한 사상적인 하나의 목표를 세워서 그 방향에 귀결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의 절대적인 이상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방향에 부합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몇 각도에서 부합시켰느냐? 평행선상에서 부합시켰느냐, 직선상에서 부합시켰느냐? 어떤 주의, 주장이나 어떤 종교가 가는 길에는 한 단계만큼 부합시키면 남은 거리만큼 시련이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각도로 출발해서 어느 정도 내려가면, 역사 과정에 벌어지는 인연이 끝날 때까지는 그 사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각도는 그만큼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양심을 중심삼고, 더 고차적인 목표점을 향해 나가기 위해 나온 것이 무엇이냐? 물론 철학도 그렇지만 철학보다는 종교가 그런 것을 더욱 깊이 취급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를 개관해 볼 때, 문화는 종교적인 기반을 통하여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즉 문화가 발전한 것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종교적인 기반을 통하여 그 시대권 내의 문화권을 하나의 방향점으로 수습해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랬느냐? 뜻이 지향하는 하나의 목적점에 귀결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뜻이 지향하는 목적

뜻을 지향시키는 데 있어서 중대한 사명을 한 것은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의 역사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현실의 문화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깊고 새로운 내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교적인 내용을 통한 뜻의 기준, 혹은 이념적인 기준은 반드시 온 인류가 지향해 나가는 뜻의 목적과 결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주주의는 무엇을 중심삼고 되어 있느냐? 기독교 사상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와 반대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뜻이 나오는 길을 더듬어 보면, 뜻은 본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은 종합적인 최선의 기준을 통하여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뜻이 귀결점을 이루려면 단시일의 과정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한 그 인연을 접합하기 위해서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그 문화역사와 더불어 관계를 가져야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랜 역사적인 이념을 가지고 현실에서 중요한 책임과 사명을 하면서 뜻에 발전을 주었던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어디서 나온 것이냐? 지금부터 50년 전인 1917년에 소련을 중심삼고 난데없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공산주의가 역사적인 뜻과 지금까지의 시대적인 모든 뜻을 전부 다 하나로 묶을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진정한 양심다운 양심에 고개를 숙이는 고차적인 기준이 유물적이냐, 유심적이냐 할 때에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유심적인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인격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인격자란 양심의 기반 위에 더 큰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서 종교적인 역사를 중심삼고 새로운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꼭지점에 앞질러 나가는 인연을 가진 사상의 체계를 갖추어야 됩니다. 또 기독사상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공산주의는 뜻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뜻의 목적은 이상을 찾는 것입니다. 이상은 무엇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느냐?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배부른 것으로 이상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뜻이 지향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밥을 먹어서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술이 목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요, 싸구려로 사 올 수 있는 몇 푼어치의 사랑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사랑입니다.

이 본질적인 사랑을 분석해 보면 사랑에는 혁명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에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시조 때부터 사람이 자식을 사랑한 마음이나 수천년 후의 후손인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똑같은 것입니다. 또한 수천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종식도 없는 것입니다. 혁명의 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이냐? 하나님이 어떤 존재를 절대적인 기준의 자리에 세워 놓고 그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혁명이 필요치 않는 사랑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명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욕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버리고, 좋은 내용을 전체 앞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것을 사회에 적용시켜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고, 종교에 적용시켜 종교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또한 다른 모든 분야에 적용시켜 그 분야에서 혁명이 벌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이 지향하는 것은 이념입니다. 그러나 이념은 그 자체만으로써는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뜻은 사랑 문제를 통해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을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 그것은 신랑 신부를 짝지어 놓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사랑의 내용을 중심삼고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리므로 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하고,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 문제를 들고 나와야 합니다. 이때의 사랑은 타당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 사랑이 아벨에게만 해당되고 가인에게는 해당되지 않거나, 대한민국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미국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혁명을 거쳐온 역사도 여기에는 아랑곳없이 한순간에 통합될 수 있고 적응될 수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에 그런 사랑이 있다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의 국가를 통합시킬 수 있으며,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결여되었을 때 기독교에는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캄캄합니다. 현시점에서 환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현재의 시점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태는 갖추었지만 내용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내려오는 것보다 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진짜 높은 나무에 올라갈 때에는 그럭저럭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더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내려왔다고 해도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는 못 올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려왔으면 반드시 올라가야 됩니다. 사랑도 ‘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면서 계속 올라가기만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올라갔다 내려왔다, 주었다 받았다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자간의 관계는 지구의 끝과 끝에 떨어져 있더라도 그 거리를 초월하고 찾아가서 서로 품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그러겠는가? 그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요, 우리는 지극히 비천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비천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사랑을 할 수 있느냐? 절대적인 존재가 비천한 자리까지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그 기준까지 연결시키는 사명을 띠고 현시점까지 이럭저럭 내려와서 세계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을 보편화시켜서 만민이 참으로 인정할 수 있는 공적인 사랑의 법도에 적용시켜야 됩니다. 그러자면 현시점에서, 현시대의 역사 과정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랑주의가 나와야 할 현시점

그러면 앞으로 기독교가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이냐? 역사 과정의 종합적인 이념과 더불어 사상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종교적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적 인연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내려올 때는 6천년이 걸렸지만 다시 올라갈 때는 6천년이 걸려서는 안 됩니다. 왜? 인생이 짧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제아무리 오래 잘산다고 해도 백년밖에 못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6천년 인류역사를 전부 다 더듬어 올라가려면 6천년이 걸려야 되고, 또 내려오는데도 6천년이 걸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단축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그것은 진리 자체보다도 진리를 중심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십년 전에 죽은 자식도 시간을 초월하여 사랑하는 마음과 같습니다. 또 역사성을 초월하여 왕래할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요인이 무엇이냐? 진리보다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셨지만 그 진리는 사랑을 가르쳐 주는 한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완전히 이룰 수 있는 활동을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적인 결과를 통한 사랑의 내용을 소개해 주지 못하고 보류해 나온 것이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새로운 뜻을 지향하는 무수한 이념들을 통합․완결지어서 인류의 행복을 조성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의가 나와야 합니다. 그 주의는 무슨 주의냐? 구체적인 역사를 통하고 시대를 통할 수 있는 사랑주의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주의를 원하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 즉 아들을 보내 신랑의 감투를 씌우고, 그의 뜻을 따르는 만민을 신부로 세우기 위해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더라도 그 심정의 인연은 언제나 평면적입니다. 따라서 종적인 역사를 거쳐왔지만 하나님은 그 사회의 평면적인, 현실적인 무대를 걸어놓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기독교는 생활적인 종교가 되고, 사회적인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교회냐?

인간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타락했느냐, 사랑을 받지 못하고 타락했느냐? 여기서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사랑하셨을 텐데, 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가운데 타락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는 데는 특별한 경로를 통해서 특별한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얼렁뚱땅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백 명이 있더라도 백 명 가운데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아들은 오직 한 명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타락한 세계에서 사랑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민사상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방계 족속이고 우리는 직계 족속이다.’ 할 수 있는 민족이 나와야 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을 한꺼번에 다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직행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재산과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이념과 사랑, 그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위해 생사를 넘어설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타락권 내의 인간 중에서 누가 사랑의 상속자가 되느냐?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의 타락 전 입장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민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은 다 사랑이 잘못됐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사랑의 천리를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타락권 내에서 반드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선민사상이 나와야 됩니다.

이스라엘이란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무엇에 승리했느냐? 어떤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것이냐? 아니면 신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승리한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데 있어서 첫 번째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세상 사람을 따라가면서 찾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상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세상 사람들과 반대의 길을 가야 됩니다. 사탄과 반대되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자기 처소를 떠나 보따리를 쌌던 것입니다.

뜻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더 간절히 사모해야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 자체를 부정해야 합니다. 세상을 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현세를 부정하고, 철학을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극성맞게 현세를 부정한 무리가 어떤 무리냐? 순교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회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서 순교를 당하면서도 사회를 부정하고 외쳤던 무리입니다. 이 기독교는 현세를 완전히 부정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몰린 것입니다. 사회를 전격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극성맞게 핍박받고 몰린 것입니다. 현세를 부정하게 되면 반드시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몰리고 쫓기며 핍박을 받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핍박하던 사람들은 망하고 핍박받던 사람은 망하지 않느냐? 핍박을 받던 사람들에게는 뜻의 방향과 연결되어 그 뜻과 통할 수 있는 이상이 있으며,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미래의 이념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천운과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인연을 마련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망하더라도 그들은 망하지 않고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한 종교적인 이념에 의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심정의 천리가 밝혀지는 날에는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군사적인 회담이나 평화적인 회담을 통해서는 통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30억에 가까운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20억에 가까운 인류가 종교적 문화권 내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 인류의 3분의 2가 종교문화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권에 공산주의가 다 파고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종교주의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통일교인은 새로운 주의와 사상을 갖고 세계적인 왕자로 나타나야 합니다. 온 인류가 종교를 갖는다면 공산주의는 초개와 같이 깨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엔 엮어진 역사와 남겨진 역사를 종합해서 해결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주인이 되느냐? 겉으로 보면 강도질하고 겁탈한 사람이 주인 같지만 아닙니다. 본래의 주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인인 것입니다. 개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다닙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총결론

공산당은 무력정치, 강압정치를 해서 인류를 죽음 가운데로 몰아넣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해도 낮에 하지 않고 밤에 다 합니다. 그들의 공작은 전부 다 밤중에 벌어집니다. 낮에 하는 일이 없어요. 밤은 그늘입니다. 그늘은 망해야 됩니다. 때문에 공산당은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뜻의 목적으로 보아서 앞으로 세계가 머물 수 있는 내용의 모체는 무엇이냐? 물질이 아닙니다. 역사와 더불어 피 흘리고, 역사와 더불어 눈물짓고, 역사와 더불어 신음하면서 역사와 더불어 해원의 한 날을 소망해 온 역사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역사적인 사랑이 실체화된 하나의 지도자가 이 땅에 나와야 됩니다. 그 지도자가 누구냐?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메시아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인류는 신부로서의 준비를 갖춘 후 신랑으로 오실 메시아를 맞아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필요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는 뭘 하자는 것이냐?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느껴야 하느냐? 역사 과정에 있어 온 사랑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그 사랑의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장하시던 2천년 전의 사랑 같은 그런 막연한 사랑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더더욱 귀한 사랑, 값진 사랑, 실체적인 사랑, 실증적인 사랑이어야 됩니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것이므로 현실적인 생활 관념을 가지고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랑을 강하게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사랑의 길이 어떻게 놓여져 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말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데도 자신을 사랑해 온 부모의 행로를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비로소 ‘아! 우리 부모는 이런 분들이었구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슬러 올라가서 그 사랑을 상기해 봅시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된 사랑은 얼마나 이상적이겠습니까?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멋지고 멋진 사랑으로 출발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이 멋진 사랑을 중심삼고 자유천지 가운데서 봄날에 취해 사는, 꿈을 꾸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은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을 맞았고, 갑자기 얼음처럼 얼었습니다. 부풀었던 하나님의 마음, 뜨거운 불과 같은 그 사랑의 마음에 얼음덩이를 퍼부어 하나님은 폭발적인 슬픔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사랑을 찾기 위해 회복운동을 해 나온 것이 인류역사입니다.

인류역사의 총결론이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본연의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한 운동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시대적으로 방법과 수단과 형태와 개념을 서로 달리하면서 인류역사는 흘러 내려왔지만, 그 목적은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오늘날 나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관계가 있으려면 얼마만큼 있어야 되느냐?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보다 더 깊은, 그 이상의 관계가 있다는 자극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님의 사랑을 못 느낍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일들을 역사적으로 해명해야 됩니다. 즉 어떻게 사랑이 발전해 나왔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해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해명한 증거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오늘날 이 시점의 내 개체를 중심삼고, 역사가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래야 되겠고, 역사가 이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나에게 이런 가치가 있다는 기준을 생활에서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생활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입장에 섰다는 기준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어느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무슨 수단과 방법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사랑하는 아내가 밥을 지어 주면 밥맛이 더 있다고 합니다. 또한 어머니가 밥을 지어주어도 괜히 맛이 있다고 합니다.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그 자식이 아무리 똥을 싸고 비벼대서 몸이 더러워져도 밉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 과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떠한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치열한 투쟁에서 몰리고 쫓기던 무리들이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입장에서도 그 나라의 주권을 다시 세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은, 그 배후에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그 역사의 배후에도, 시대마다 변천해 나가는 기독교의 역사 과정에도,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가 교류되며 상충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은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아무리 부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우리들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부패한 이 대한민국에도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요인이 있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부패한 세계 도상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몇천만 배 더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실감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악한 세계를 붙들고 사랑을 외치면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내용을 전개시킬 수 있는 종교가 되지 못하였고, 그래서 종착점이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사회를 구하지 못하고 사회를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린 종교는 기울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체제를 갖춘 형태나 어떤 기반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뼛골에서부터 흘러나온 양심의 본연의 자세에 자기도 모르게 포위되고, 포위한 그 힘이 천운과 방향을 맞추어 그 방향이 역사성을 통할 수 있는 감정을 찾으면 거기서 인간 개조, 인간 재창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회생하되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회생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절대적인 진리를 통해서 자기가 회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마음속 깊이 바라는 것은 참다운 사랑을 통해서 회생하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사람은 죽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죽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환경권 내에서 죽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금은보화를 쌓아 놓고 좋아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하여 신뢰를 얻는 그 자리에서 천적인 인연은 맺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두가 좋아하는 것

오늘날 우리들이 종교를 갖는다는 말은 종교를 가져서 사회를 위해 혁신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폭발적인 심정을 갖지 못한 종교는 그 사명을 다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는 이제까지 말없이 새로운 환경을 제시해 나왔습니다. 아무리 악한 곳으로 가는 민족이 있더라도 그 민족에게 참다운 사랑의 폭탄을 던지면 그들은 반드시 거기에 녹아나는 것이고 동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시골에서 자라서 아는데, 목에 줄을 매고 있는 송아지는 코에 코뚜레를 끼우기 전에는 끌고 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러나 송아지를 붙들고 참대꼬치를 만들어 코를 끼고 고삐를 잡아당기면 송아지는 코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끌려갑니다. 그때부터는 고삐를 힘들게 끌지 않고 송아지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뚜레를 낀 송아지라고 하더라도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이 끌고 갈 때는 잘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 송아지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이 쉽게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다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도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만으로는 안 됩니다. 남의 집 자식이 죽은 것은 가슴 아파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할 때에도 자기들끼리만 좋으면 된다고 하는 사랑은 세계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필요한가? 절대적인 세계에서 공평과 평등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돈을 많이 버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지만 곧 ‘아이구, 이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가? 고향 산천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의 품에 안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밥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 고향 생각만 하면 괜히 가슴이 부풀고 봄동산을 본 듯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에 사랑의 인연을 찾아서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즉 부모의 사랑, 형제의 정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이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이 ‘가정(家庭)’의 ‘정’ 자는 무슨 ‘정’ 자입니까? ‘뜰 정’이지요. 뜰에는 가지각색의 예쁜 꽃들이 많이 피듯이 가정에도 형제가 있고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꽃들이 서로가 좋아하는 뜰이 되어야겠어요, 서로 싫어하는 나쁜 뜰이 되어야 겠어요? 가정은 서로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는 곳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서로 싸움을 한다면 그 뜰이 어떻게 되겠어요? 황무지가 되는 것입니다.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돈을 갖기 위한 욕심으로 자기 아버지의 쌈지에 든 몇 푼 안 되는 돈까지도 빼앗아 자기 지갑에 넣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못난 자식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물질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계성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보따리는 풀어 놓으면 무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종족의 사랑, 민족의 사랑, 국가의 사랑, 세계의 사랑, 천주의 사랑의 정적 기준이 모두 다릅니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잘 자라는데, 나쁜 음악을 들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한번 실험해 보십시오. 따라서 싸움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들으면 여러분도 잘 자라지 못하는 식물과 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깃들어 나오는 노랫가락을 듣고 자라면 멋지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멋지게 살 수 있는 무엇을 가진 마음들이 사랑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사랑이 가는 길

사춘기가 왜 멋있는지 아십니까? 멋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멋진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괜히 입맛이 없고 공부도 모른다고 팽개쳐 버립니다. 언제나 마음이 들떠 있고 자신이 인공위성같이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집니까?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냐? 소원이 무엇이냐? 인간은 땅을 원해 전부 땅덩이를 부둥켜안고 땅에서 살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어디로 가느냐? 무덤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이 깃들어 있는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이요, 사랑할 수 있는 형제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아내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사랑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진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불교에는 없습니다. 유교에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신랑 신부에 대한 말씀도 하셨고 또한 형제에 대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즉 우주의 정점은 세계 인류가 한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사랑의 망태기 안에서 엉클어져서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보다 가정을 더 위하는 사랑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또한 가정보다도 종족을 위한 사랑을 찾아 나가야 되고, 종족보다도 민족을 위한 사랑을 찾아 나가야 되고, 민족보다도 국가를 위한 사랑을 찾아 나가야 되고,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한 사랑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뜻이 가는 길이요, 사랑이 가는 길입니다.

충신은 나라를 위하여 자기 개인을 무시하고 자기 가정을 무시하고 자기 종족을 무시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충신의 도리입니다. 또 효자는 자기 일신을 무시하고 자기에 속한 처자를 무시하고 부모의 뜻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효자의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이 가는 길은 사랑이 가는 길입니다. 내 개인보다도 큰 일을 먼저 사랑하는 길이 뜻이 가는 길이요, 사랑이 가는 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천지를 헤아려 볼 때 예수님은 만민의 메시아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수들의 창에 몸을 찔리고, 조롱과 비소를 당하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최후의 자리에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가져야 하고, 자기에게 인연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광명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칠흑 같은 흑암 권세도 좋아할 수 있는 아량과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배후에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문화세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은 외곽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내용을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바람이며 신앙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자신보다도 가정을, 가정보다도 종족을, 종족보다도 민족을, 민족보다도 국가를, 국가보다도 세계를, 세계보다도 하늘땅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하늘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욕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6천년 전에 인간 앞에 사랑의 기준을 세워 놓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리이기 때문에 독재가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으며, 내 제자가 못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리가 있기 때문에 사랑의 기준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면 천지 운세도 역사의 과정에서 역사를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리 기도를 하게 하여 고생을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루하지만 인간에게 몇천년 동안이나 참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죽고 또 죽으라고 하며 이 천지의 뜻을 지켜 나오게 하시면서 키워 나오셨습니다.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한 것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이상의 길

통일교회 선생님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남의 하나님으로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욕심은 죄가 아닙니다. 선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여러분을 사랑하면 여러분도 좋아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사랑하려고 하는 한국이 선생님을 제일 반대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이상의 길입니다. 이상은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 영원한 안식의 터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느 환경에서도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안정권이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가능성이 있는 입장에서 그곳을 향해 가야 됩니다. 그런데 가능성이 있는 입장에서 간다고 생각하는 종교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성을 느끼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느끼면서 갑니까? 못 느낀다면 여러분은 또 보따리를 싸서 그것을 찾아가야 됩니다. 선생님 역시 그렇다면 또다시 보따리를 싸가지고 찾아가야 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주님만을 사랑하라는 말은 인간 앞에 사랑의 동기인 동시에 결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2천년이라는 긴 역사과정에서 희생해 나왔지만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여러분, 끝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결승점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골인을 하여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한 발짝을 남겨 놓고 ‘내 뛸 건 다 뛰었는데….’ 하며 뒤에 오는 사람에게 ‘너희들 지금 뛰어오는구나, 난 이만큼 왔는데.’ 하고 구경만 하면서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천리길을 달렸다 하더라도 남은 한발짝 때문에 몇 만리 길을 더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이 되어 기독교가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골인할 수 있는 최후의 결승점에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쉰다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는 만 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그들은 결승점에서 쉬고 있는 것입니다. 쉬다 보니 ‘아이고, 여기가 어디야? 뛸 때는 몰랐는데 여기에 무엇이 더 붙었구나.’ 하면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현재의 기독교와는 달라야 합니다. 같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하에 뜻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선의 길입니다. 그러면 선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까? 남의 지갑에 있는 것을 잡아채는 것이 선입니까? 아닙니다. 선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포화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포화선을 넘어갑니다. 포화상태에서는 그 이상은 못 올라가지만 사랑은 그 기준을, 그 포화선을 돌파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사랑으로 그 활동 범위를 넘어 하나님의 가슴까지 그것을 연결시키어 인연을 맺으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연의 사랑을 찾아가야 할 인생

수십억 인류는 태어날 때도 사랑을 중심으로 나고 죽을 때도 사랑을 중심으로 죽습니다. 즉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서 사랑을 중심삼고 살다가 사랑 가운데서 죽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사랑에 의존해 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이 머무는 곳에 안식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이 머무는 곳이라면 바위 틈일지라도 활개를 칠 수 있고 코를 골며 편안히 누워 낮잠을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지요? 참다운 사랑에 의해 태어났으면 참다운 세계에서 사랑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잘못된 사랑의 일치점을 통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잘못된 사랑권 내에서 살다가 잘못된 가운데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본연의 사랑을 되찾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을 해야 합니다. 본연의 사랑 안에서 못 태어났고, 본연의 사랑 안에서 못 살고, 본연의 사랑 안에서 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서 다시 살다가 죽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본연의 사랑을 되찾아가는 노정이 되어야 합니다.

본래의 사랑의 길이 무엇이냐? 이상이 깃들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창조이상입니다. 사랑은 최고로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안식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다 도적입니다. 선생님도 남자지만 이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점령하였다고 해서 좋아하며 만족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무엇까지 점령하고 싶어하느냐? 하나님의 마음 보따리, 심장 한복판에 있는 비밀 창고 속의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이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고 나면 사람의 욕심도 그때는 자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한 경기에 출전한 용사들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선생님은 욕을 먹고 별의별 소문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돌고 있는 소문을 세상 사람들이 문제시한다면 그것을 점령할 수 있는 조건이 세워지기 때문에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려운 길도 참고 견디며 통일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을 위시한 악한 세계의 모진 핍박과 고통을 늠름하게 극복하여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무가치한 아줌마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남을 위해 기도해 주고 다닙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사랑으로 남을 용서해 주고 사랑을 희망하며 그 사랑 안에 영원히 깃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도적질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의 도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느냐? 하나님도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사랑의 도둑 중에 대도둑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웃음)

어떤 사람이 ‘아, 수고하시는 하나님!’ 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나를 사랑해 주시오.’ 한다면 그는 얼마 안 가서 사랑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는 것은 영원한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참으며 이 길에서 싸워 나온 것은 이 길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외적으로 깡통을 차고 밥을 얻어먹는다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갚기 위한 작전 때문에 며칠 밥을 얻어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죄입니까? 그보다 더 큰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부산에 피난 가 있을 적에 부둣가에서 노동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과 목적이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염전에서 소금 가리는 일도 참 잘합니다. 안 해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농사도 지어 봤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일을 다 해보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돈 한 푼이 없는 사람이지만 천하의 그 누구도 부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의 대통령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중략)

선생님은 어려울 때는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안 합니다. 아버지에게 죽을 일이 생기면 살려 달라고 하고 좋을 땐 작별하는 그런 놀음 안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세우는 사랑의 기준

여러분들이 옷을 입고 자랑하며 웃고 살고 있지만 그 전부가 임시로 빌려 입고 빌려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삶은 나그네의 걸음 같은 것이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도 여관이나 호텔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무한대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사람은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 사랑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사랑 가운데에서 죽어가야 합니다. 그 사랑은 무엇이냐? 돈 주면 왔다 갔다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존재의 기원을 발발시킨 사랑이요, 존재의 사연을 주관하는 사랑이요, 존재의 결실을 현실화시킨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계를 통일하고 싶어 하는 것이며, 보좌에 앉아서 만민 앞에 자랑하고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인간적인 욕망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욕망은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통일교회의 욕망은 둘만의 사랑이 아니라, 둘의 사랑을 합하여 그 가운데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주의를 이루어 30억 인류를 거기에 몰아넣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세계를 찾아 세움으로써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류를 얽어매서 전부 다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세우려는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세계가 기독교권 내에 있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2천년 전부터 이제 끝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부활시키어 그 가운데 하나님을 모셔 놓고 하나님에게 인간을 몽땅 얽어매서 사랑의 동산을 이루겠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지상천국이며 기독교의 첫째 이상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혈통적인 종적 관계를 무시하고 횡적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폭발시키느냐? 지금까지 인간은 종적인 사랑의 길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주도해 온 그 종적인 사랑의 길을 세계로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야단법석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종적 사랑, 자기의 혈통적 사랑을 분리시켜 놓고 그 사랑을 존중시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랑의 보따리가 풀어져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아내보다도, 아들딸보다도 더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온 인류는 다 공평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과 세계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는 다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더 귀하고 더 가치 있는 존재를 따라가 사랑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하나님 편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친척․종족․민족을 초월하여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민족을 넘어서 세계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인류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복귀해야 됩니다.

뜻의 길은 사랑의 길이요, 선의 길

뜻이 가는 길은 이상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 뜻의 길은 고생의 길이 되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상은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들이 사랑 안에서 태어나 사랑 안에서 살다가 사랑 안에서 죽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런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은 영원히 그 사랑과 더불어 그 길의 주인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그런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인은 어떤가? 사랑 안에서 다시 살고 사랑 안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의 사랑이 아니라 하늘땅의 사랑을 붙들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시조 아담 해와의 소망은 하늘과 땅을 하나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인류도 그런 사랑의 인연 가운데 태어나서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살아야 할 것인데, 인간들은 이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2아담으로 예수를 보내시어 사랑의 인연을 상속 받게 하시고 그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한 발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의 바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활동 무대를 다시 영계로 옮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세계적으로 그 사랑을 전개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오실 것이니 그날이 바로 예수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랑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어디로 갈 것인가? 사랑이 가는 길은 선이 가는 길이고, 뜻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정을 뜻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종적인 사랑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적인 사랑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인간들이 지구상에 생겨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지상천국이라는 이상세계는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잘 모르지요?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이 싫어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누가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통일교회가 나쁘다고 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에 통일교회에 온 사람들은 ‘아이구, 이거 대단한데?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대단한데?’ 합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모르면서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기 가정을 위주로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나라를 이용해 먹고 큰 것을 깔고 앉아 있는 녀석들입니다.

효충이 아니고 충효입니다. 그렇지요? 효성을 다하여 섬겨야 할 부모를 내버리고 충신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천리입니다. 그러므로 뜻이 가는 길에서는 더 큰 가치를 위해서 작은 가치를 흡수하고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이 됩니다. 통일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습니다.」 그런데 왜 기성교인들이 통일교회를 미워합니까? 머리는 통일이고 아래는 교회이니 사촌인데….

여러분! 선전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선전할 줄 모르더구만요. 선전할 줄 모르지요? 그러니 반대 바람이 여기에 몰려와서 같이 엉켜붙어야 통일이 됩니다. 아시겠어요? 「예.」

통일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뜻을 따라가야 됩니다. 한국 사람보다도 미국 사람을 더 사랑하라고 하면 섭섭해요, 안 섭섭해요? 섭섭하겠지만 한국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서양 사람들을 살려 줘야 됩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 머리카락을 잘라서 가발을 만들어 팔아 가지고라도 외국 사람들을 도와줘야 됩니다. 어때요? 섭섭하지요? 왜 가만히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느냐? 죽을 수 있는 최고의 밑창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큰일났지요? 그러지 않으면 세계주의자가 못 됩니다.

통일교회는 세계주의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일본 아가씨가 왔는데, 그 아가씨는 한국 사람들을 믿고 돈도 본부교회에 맡겨 둡니다. 한국에 있는 자기 삼촌 집에는 안 가고 핸드백 하나 들고 한국의 통일교회를 찾아온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그러나 선생님은 밥 먹을 때 마치 자기 안방에 앉아서 며느리, 손자를 거느리고 환갑 잔치를 하는 사람처럼 근사한 배포를 가지고 듬뿍듬뿍 잘 먹습니다. 그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는지 선생님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원수 중의 원수를 죽이고 싶더라도 사랑하며 원리를 자꾸 넣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품고 가는 것은 그런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종자가 다릅니다. 그래서 욕을 많이 얻어먹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묵묵히 눈물만 흘리며 세상에 뜻을 알리는 데 전심전력했습니다.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이제 선생님은 한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려고 합니다. 외국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통일교회 사람들의 코를 꿰어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민이 산다면 선생님은 죽어도 좋습니다. 이것이 죄입니까, 선입니까? 「선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코를 꿰어서 데려가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 앞에 항의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을 이끌어 왔습니다. 도중에 감옥에도 참 많이 들락날락했습니다. 이제는 감옥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박사입니다. 감옥에서 모진 매도 많이 맞아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누구를 때리라고 하면 비참하게 때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뭐 길을 가다 한 사람쯤 처리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소리 없이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것이든지 한다고 결심하면 3년 이내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 몰래 응어리진 것을 풀려고 한바탕했지만 선생님은 이미 그런 것을 다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여러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왜 좋아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어떤 입장에서 좋아합니까? 같은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좋아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입장에서 좋아합니까? 「양쪽 다요.」 (웃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은근히 하나님의 앞잡이인 척하고, 그러니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세계적인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졌습니다. 전반전에는 통일교회가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차전인 후반전에 들어와서는 승리할 것입니다. 승리의 기준이 넘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중략)

선생님은 한국에서만 활동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독일과 일본에서도 활동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복귀시키겠다는 배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아다니던 꿀벌이 꿀맛을 한번 보면 꿀이 묻어 있는 판자에 꼭 붙어 있습니다. 아무리 떼어 내려 해도 안 떨어집니다. 꽁지를 떼어 내도 안 떨어져요. 마찬가지로 달콤한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한 번 보기만 하면 자기 나라도 하나님의 뜻 앞에 바치겠다고 할 것입니다. 결사적으로 복귀시키겠다고 노력할 것입니다. 세계를 맡고, 인류를 맡고, 국가를 맡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밥을 굶고 살아가더라도 사랑이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코를 꿰어 가도 좋다고 했지요? 정말 그래요? 예수도 그런 길을 갔습니다. 선생님 역시 그런 길을 걸어 나오면서 많은 시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중략)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는 기성교회에 다니다가 온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통일교회가 실속이 있나 없나 많이 때려 보았을 것입니다. 잘 익었나 안 익었나 때려 보았을 거예요. 때려 보니 아주 잘 익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통일교회의 맛을 알게 된다면, 봄 동산 같은 통일교회의 맛을 보게 된다면 어린이서부터 할머니까지도 줄을 서서 손을 흔들며 들어올 것입니다. 마음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누가 알아주느냐?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작전법에 의해서 일을 시킵니다. 내 개인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민족을 살려야 됩니다. 따라서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그 맛을 알고 나니 너무 너무 좋구나. 기가 막히는구나!’ 할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교회의 소식에 자주 접하지 못하고 교회와 불통하다가 떨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뜻이 가는 길을 향하여 정성들여야

선생님이 이제 외국으로 가야 하는데 떠나면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갈까요, 욕을 하고 갈까요? 아니면 정을 붙여 가지고 갈까요, 떼어 놓고 갈까요? 「정을 붙여 가지고요.」 선생님은 정을 떼어 놓고 가야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정을 붙여 가지고 가게 되면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시집을 가는 처녀가 주위를 깨끗하게 하고 시집가야지 누더기처럼 해 가지고 시집갈 수 있어요? 그게 좋아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요? 사랑은 다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한국에서의 정을 떼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붙어 있는 것을 떼어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따라오는 자식이 있으면 주먹으로 쳐야 됩니다. 주먹으로 안 되면 칼을 써서라도 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떼긴 떼야 할 텐데 어떻게 떼느냐? 이것을 선생님은 항상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한 바퀴 돌고 와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연을 전부 잊어버릴 것입니다. 새롭게 재출발하는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선생님은 한국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을 떼어 놓고 가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정성을 들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여러분은 정성들인 보따리를 싸 가지고 선생님 앞에 와서 ‘이게 전부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특별히 많은 정성을 들이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정성은 어떻게 들여야 되느냐? 선은 정성을 따라가는 데, 7년노정을 허락하신 아버지가 아무 조건 없이 7년 정성을 들였으니 여러분은 그 이상의 정성을 들이겠다고 밤낮으로 줄달음쳐야 합니다. 알겠지요? 그런 정성을 들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선생님은 1965년에 한국에 있는 성지의 흙을 세계 120곳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세계의 땅을 연결시키려고 일본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선생님을 보고는 미친 사람이 왔다고 했습니다. 사실 선생님이 미치기야 미쳤습니다. 그런데 무엇에 미쳤느냐가 문제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미쳤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그다음에는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는 참다운 사람,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정성들이는 사람들의 마음과 통일교회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일치된 방향으로 연결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 자의로 여러분의 심부름을 해 주는 것까지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성을 중심삼고 그런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외국에 가서 그들을 축복해 주고 와야 합니다. 여러분,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요? 선생님은 축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실권주의자들의 향락적인 관계는 인생을 패배시키는 결정적 상태에 도달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그런 것을 모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갈 때는 일등 비행기가 아니면 안 타고 간다 하면 일본 사람들은 집을 팔아서라도 일등 비행기 표를 사다가 척 날라다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세계를 순회하고 돌아와서 7년 고비를 완전히 종결 짓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뜻이 가는 길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희생을 각오하고, 눈물과 피땀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심양면으로 세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비법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신 것은 누구를 위함이셨는가? 여러분은 미국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이 그렇게 힘 있게 손을 들면 선생님은 자신이 없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선생님이 가는 길 앞에 여러분이 정성을 들여 주면 선생님은 꼭 보답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 선생님을 욕하고 있는데 그것에 개의치 않고 몰림을 당하면서도 뜻을 위해 정성을 들인 사람한테는 꼼짝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떳떳치 않은 사람 앞에서는 위엄을 갖출 수 있지만 정성들인 사람 앞에서는 오금을 못 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꽁꽁 묶는 비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매 맞고 쫓겨나 가지고도 돌아서서 그 매를 잊어버리고 다시 찾아가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다고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아버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 때는 불한당 같은 아버지라도 마음이 녹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버지 이리 오세요.’ 하면 ‘오냐, 내 아들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포로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꽁꽁 묶으면 하나님은 ‘꽁꽁 묶어도 좋다. 더 묶어다오.’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비법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뜻을 따라가는 길에 있어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도 세계에 널려 있는 일본, 미국, 독일 등 외국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를 위해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지요?

<기 도>

아버님!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역사시대의 쓰라린 노정을 걸어오신 당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버님 앞에 효성을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마음 가운데에 머물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뜻이 가는 길, 이념이 머무는 곳, 창조이상이 실현되는 곳을 원하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상하시는 그 하나의 이상세계를 천상천하에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바람과 같은 역할밖에는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저희들은 지상에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까?

그 한 날의 실수가 천만세의 한이 되어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들의 몸과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화살 자국을 남겼고, 선조들로 하여금 피를 흘리며 끊임없이 투쟁하게 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회고해 봅니다. 저희들도 비참하였지만 아버님은 얼마나 더 비참하셨겠는가를 생각할 때,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참회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아버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마음과 흠모의 마음이 더하여 자기의 의식을 잃고 쓰러져 죽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성사할 목적을 갖고 온갖 충성과 희생을 다 드려도 부족한 자신임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뭇자녀들이 되기를, 아버님이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사옵니다.

통일의 자녀들이, 자기 스스로의 기쁨을 아버지 앞에 보일까 봐, 그 얼굴을 가리고 자기 기쁨을 억제하면서 하늘 아버지의 기쁜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한국 땅을 지켜 주시옵소서. 한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울 때는 반드시 보호하는 자가 필요한 것이요, 위로해 주는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그러할 때 당신이 그렇게 대해 주셨으니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도 그렇게 보호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뜻 앞에 선 선봉용사로서 현실적 관계에서 걸리는 내용이 아무것도 없게 해 주시옵소서. 온전한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는 개체도 하나의 핏줄을 받고 난 귀한 형제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슬픔에 같이 동하고 정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멍에를 대신 짊어지고 그 멍에를 풀어 드릴 수 있는 참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이 자녀들이 마음속에 그 무엇인가를 품고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이 물결치는 이 땅, 흑암 권세가 생명을 주관하는 이 세계에서 가냘픈 생명의 한 촛불이 애타게 아버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는 원수의 방해가 많고 원수의 저항이 많사오니, 아버지께서 직접 주관하고 직접 품으시어 저희들이 소원하여 가는 목적지까지 무난히 돌파해 나갈 수 있게끔 힘과 건강을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여, 여기 모은 당신의 자녀들은 이미 아버지 앞에 맹세한 자녀들이옵니다. 그 몸과 마음을 당신 앞에 드린다고 천만번 맹세하였사오니, 그 몸들을 아버지 앞에 깨끗이 바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몸을 성별하여 아버지 앞에 영원히 바쳐 드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대신 나타내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곳을 향하여 경배드리는 당신의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온 세계에 널리어서 이곳을 흠모하고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그리며 꿈에서까지 몸 마음 졸여 가면서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품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환경에서 거의가 자기 중심이었을망정 심정을 통해서는 언제나 같은 생활 감정으로 화하고 서로 통하는 생활권 내에 있는 그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같은 소원의 목적과 같은 하나의 승리의 기점 위에 세우시어서 아버지 앞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이후 되어지는 전부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의 영광과 사랑을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씀 요지>

선생님이 부산 범일동에서 하나님과 인연될 식구들을 그리워하던 때에, 선생님은 온갖 정성을 다하며 그들을 기다렸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들이 오기는 오는데, 실제로는 가까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범일동에서는 식구라곤 선생님까지 합하여 세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영적으로 연락하면서 산천을 친구로 삼고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27세 되던 때, 이 박사가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뜻이 빨리 이뤄질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은 이북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탕감조건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일대일로써 대해야 합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어디엘 가더라도 마음에 주름살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식구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갖추어져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공산세계는 스탈린 이후 8대를 넘기지 못하고 7대부터는 내리막길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령역사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물질은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 경제문제가 잘 해결되면 그때부터는 피어날 것입니다.

식구들이 은혜를 잃게 되는 것은 초창기부터 선생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선배 식구들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길을 가는 사람은 뜻길을 다 가기 전에는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지의 대사건을 밝혀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생명을 걸고 이 길을 가는데 옆에서 비판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힘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일은 적어도 3년 이상 지나 본 후에 말해야 합니다. 하늘의 비밀을 그대로 다 가르쳐 주면 모두 다 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적인 인연으로 만난 사람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식구들 사이에도 가인과 아벨의 두 가지 형이 있기 때문에 가인 입장에서 아벨을 비판하면 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씀 요지>

지상에 있는 세 사람이 합심하여 한 사람을 참소하면, 하나님은 참소받는 그 사람에 대해 축복을 보류하십니다. 참소받는 사람이 참소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정성을 들이고 충성하면 하나님은 그를 더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영계에 갔을 때 예수님 앞에 곧바로 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영계에서 참소했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성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탕감하고 넘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 들어온 식구를 사랑하면 탕감조건을 빨리 세울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식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옛날에 뜻 앞에 충성하다 나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애초에 만난 동기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록 반대를 하고 나갔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의 책임을 해야겠습니다. 원수가 많지만 원수를 원수로 대할 수 없는 것은, 복귀섭리의 목적이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라도 그들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도 축복받고 선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선입니다.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이 용서 받고 감사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용서 받고 감사하는 것보다 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심하고 구원의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도 용서하면 옛날에 아담에게 충성했던 것보다 몇백 배의 충성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복귀한 다음에는 사탄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役事)를 지나치게 하면 탕감이 따르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이북에 있을 때 재판 받을 날이 원래는 4월 3일이었는데, 공산당이 교회를 탄압할 구실을 만들다 보니 기일이 늦어져 4월 7일에야 받았습니다. 그날엔 식구들이 함께 모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형을 받고 감옥으로 갈 때는 오히려 희망에 찬 발걸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무소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옥에는 하오 3시경 들어갔는데, 들어간 지 3일째 되는 날에는 김 씨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원래 육군사관학교 포병과를 졸업하고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 중 종전(終戰)을 맞은 사람입니다.

종전 후 그는 북한 인민군에 입대, 포병사령관의 심복 부하로 복무하다가 국가기밀 누설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자살을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철쇄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는 꿈속에서 백발 노인이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너는 이남에서 평양으로 올라온 청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줬다 합니다.

얼마 후 포병사령관의 절대 보증 하에 그에 대한 처벌은 사형에서 4년 8개월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꿈속에서 그 노인이 나타나 믿지 않은 것을 책망하면서 몇 날 안 되어서 이남에서 온 젊은 선생님을 만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또 5월 28일 새벽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자 상심하여 병이 들었다가 설상가상으로 차 사고로 죽었던 그의 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서 그를 데리고 궁전과 같은 곳으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음성이 들리고, 3계단을 오를 때마다 3배(三拜) 하면서 올라 보니, 거기에는 눈이 부신 옥좌가 있고, 그 위에 청년 한 분이 위엄을 갖추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얼굴을 들고 저 어른을 보라.’고 하여 그쪽을 우러러보았으나 비쳐오는 광채가 너무도 눈부시어 똑똑히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들어간 감방이 바로 그가 들어가 있는 감방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나이가 27세였고, 그도 27세였습니다.

그는 선생님을 만난 처음 순간부터 마음이 끌려 선생님의 말씀을 좀 들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고 있었는데, 3일 만에야 말씀을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나온 노정을 로렌스라는 가명을 빌려 3일 동안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하나님이 약속한 사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감방장인 김 씨였습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당신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요?’ 하면서 노인이 나타났던 사실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 물음에 그는 깜짝 놀라며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것을 상세히 털어 놓고 비로소 자기가 꿈속에서 보았던 옥좌에 앉아 있던 청년이 바로 선생님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핍박하는 것을 감사하게 받으면 핍박하는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감옥에 있어 보면 자유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의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바늘 끝에 선 것과 같은 어려운 영적 분위기 속에서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를 가도 그런 일이 없는 것은 때가 무르익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요지>

신앙길은 혼자서는 못 갑니다. 신앙의 동지가 필요합니다. 3인 이상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위기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 성품의 주체이신 하나님도 세 기준을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잘못해도 직접 가르쳐 주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종적으로는 가르쳐 주지 못하지만, 3인이 하나되면, 한 사람이 잘못해도 두 사람이 잘못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잘못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예수와 성신을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산기도도 3인 이상이 함께해야 은혜가 빨리 내립니다. 기도 후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타인과 의논하면 사탄이 침범합니다.

3인이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면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은 자연히 번식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셋이 하나되면 거기서 새싹이 나오게 됩니다.

식구를 대할 때에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부모와 하나되었더라면 절대로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입장이요, 예수님은 본연의 자녀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도 심정이 클클할 때는 낮은 자리에서 은혜롭게 생활하는 사람을 찾아 말씀을 합니다. 그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기 때문에 주고받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저조한 심령상태를 수습하는 데 열두 시간까지 걸린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고생해야 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가 유구한 역사를 두고 부딪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남에게 은혜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남을 끌어당길 수 있는가? 완전히 주면 끌려오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의미 없이 주게 되면 끌려오게 할 때, 더 많은 힘이 소모됩니다. 그러므로 의미 없이 주기만 하면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완전히 주어서 상대가 기쁘게 응하는 그 힘을 받아야 합니다.

삼위기대에는 형님과 아우가 필요합니다. 형님에게서는 받고 아우에게는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주어야 하므로 전도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모시는 중간 자리에 서려면 자기의 아래가 필요하므로 전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죄까지도 책임져 줄 수 있는 신앙의 자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전도가 됩니다.

선을 행하고 전체의 마음을 다 맞추어 줄 수 있는 화동성(和動性)을 갖추고 있으면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은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진짜의 선은 좋은 것을 만민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각기 열두 사람의 마음을 다 맞추어야 했었습니다.

본심은 발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좋은 일은 3인이 의논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나눠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잘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식을 하나님이 아직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보다 더 사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참된 것입니다. 먹고 자는 것보다도, 자식보다도, 그리운 사람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자기 몸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 주위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사랑하는 입장에 설 때 비로소 창조 본연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주관하지 못하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기 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7년노정이 끝날 때가 됐기 때문에 물질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거치지 않은 것을 가지는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 식구는 자기 것이라는 소유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야 하고, 아버지로부터 다시 분배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선생님도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의복을 입고 와서 과시하는 것은 식구들 마음에 못박는 것과 같습니다. 부득이 좋은 옷을 입게 되었을 때는 미안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자들 중에 영계에 가서라도 12사도의 부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의 좋은 의복을 열두 사람 이상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측근자를 우리가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가장 비참함을 느낍니다. 인생의 길은 평탄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부모나 처자의 죽음, 또는 그들과의 이별과 같은 비참한 자리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자기 위신을 세우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일 겸손하고 낮은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 우리 선조로부터 내려온 과오에 대한 탕감을 고이 받겠습니다. 이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 일을 제물 삼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 탕감으로 넘어갑니다.

모든 어려움을 나 혼자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같이 당한다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이 서러워하지 않는데 서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안 받으려고 몸부림쳐야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4천년의 원한이 풀릴 것인가, 풀리지 않을 것인가가 결정되었습니다. 수천년 반역해 온 사탄을 그때 쳐서는 물리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모든 것을 하늘 편으로 돌리고 탕감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복을 받을 입장에서 탕감의 길로 자진해 나서면, 자기를 위해 세워야 할 탕감조건을 벗어나기 때문에 사탄의 참소권에서 벗어납니다. 그렇게 될 때 사탄은 굴복하게 됩니다.

통일교회는 수난의 길을 밟아 왔으므로 앞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침체될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커 가고, 공산권까지 굴복시켜 나아갈 것입니다.

하늘적인 사람이 복 받을 자리에서 탕감을 기쁘게 받으면 그에 비례하여 복이 찾아옵니다. 자기가 아직 탕감 받을 때가 아닌데 말씀에 의해 전도를 나가서 탕감을 기쁘게 받으면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가다가 중지하면 안 받은 것만 못합니다.

탕감을 다 받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탕감을 스스로 기뻐하는 입장에 서면 그것은 민족적인 것으로 세워집니다.

개인이 서기 위해서는 몸을 탕감시켜야 합니다. 몸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탕감을 다 하면 개인적인 싸움에 승리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가정적인 자리를 잡으려면 종족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자리를 잡으려면 세계적인 기준까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한 단계 위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횡적으로 보면 이해 못 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전도 보내는 것은 탕감시켜 주기 위한 은사입니다. 고생을 안 해도 될 사람, 즉 의로운 선조의 후손을 사탄이 치면 사탄이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사탄이 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협조해야 합니다.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약속의 자리인지 혹은 목적을 이룬 자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무엇보다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탕감노정을 분석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은혜 받은 사람은 낮아지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쳐서 내려오게 하는데, 올라간 길로 다시 내려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통해 내려오게 합니다.

내려오는 데 있어서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다른 힘, 즉 제2대상자가 필요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가 반드시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자기의 힘으로 못 내려오면 전도한 자녀를 통하여서라도 겸손한 자리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이 길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천대받고 핍박받는 것입니다. 전도하면서 핍박받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통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전도하는 데는 반드시 탕감이 따릅니다. 탕감조건을 세워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기 전까지의 것은 사탄의 것이 되기 쉽습니다. 반대하는 사람 셋 이상을 굴복시켜 놓으면 전도는 쉬운 것입니다. 반대하던 사람이 굴복하는 때가 돼야 독자적으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수수작용은 자신이 자리잡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수작용에 의해 자신이 자리를 잡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리를 잡기 위하여는 중심이 결정돼야 합니다.

몸으로 실천하지 못할 입장일 때에는 마음으로 3배 이상의 정성을 들이면 몸으로 행동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전보다 더 자극적인 기쁨을 느끼지 않으면 발전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극될 일을 일으켜야 합니다.

옛날의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새것 위에 운행하십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끌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가야 합니다. 더 이상 끌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피를 흘려 나왔지만, 앞으로는 선생님이 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창조는 하나님이 하셨지만 완성 기준은 인간이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완성 기준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과 심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심정을 가지면 몸은 이루어집니다. 말씀의 기반 위에 심정이 서면 그 위에 실체가 이루어집니다. 완성시대는 심정을 중심하고 이루어집니다.

제1차 7년노정은 개인복귀시대지만 제2차 7년노정은 가정복귀시대이기 때문에 더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더 큰 희망을 갖고 약동해야 합니다. 입교할 때보다 더 큰 기쁨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높여 준 자리에서는 올라오게 하신 수고와 내려가게 하실 때의 수고를 다 느껴야 합니다. 지금까지 올라가는 것은 자기가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해 주셨습니다. 올라가는 것은 누구나 기쁩니다. 그러나 내려갈 때는 절망이 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서는 자기의 것을 다 잃고 나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고생하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협회장도 지방의 작은 교회로 보낼지 모릅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이 올라가게 할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려 보낼 때도 기뻐했기 때문에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이나 내려오는 것이나 모두 힘들지만 완전히 내려온 자리에 서야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령 상태가 떨어질 때에 선생님을 찾아오는 자는 전부 도둑입니다.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도둑질하려고 옵니다. 그런 때는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새것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자는 언제나 새로운 기분을 가져야 발전합니다. 발전하는 데도 새롭고, 내려가는 데에도 새로워야 합니다.

늘 먹는 밥이지만 항상 새롭기 때문에 육신이 소생합니다. 헌 옷을 입어도 그것이 항상 새로워야 합니다. 해마다 맞는 사계절이지만 아직도 완전히 감상하지 못했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 범위만 큰 분일 뿐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고 때가 왔는데도 그 사람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으면, 그를 주(主)라고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를 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를 찾아온 하나님을 보고 한 말입니다.

오늘 이 집회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의 기쁨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새로운 것을 세우고 한국을 떠나야 한국이 부흥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최종의 길인 죽음의 길은 혼자 가는 것입니다. 탕감으로 그 죽음이 올 때는 감사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죽음의 길을 살아서 가는 것이 종교의 길인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제는 자주 피곤이 옵니다. 이것은 나이가 많아졌다는 증거입니다.

<말씀 요지>

물질을 위한 기도보다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만약 물질을 위한 기도를 하려면 자기의 재물을 다 바치고 그것을 조건 삼아서 기도하십시오. 또한 친척 중에 물질을 가지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가 전도되면 물질복귀는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물질을 위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공장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얼마나 정성들이느냐가 문제입니다.

식구들이 가야 할 길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 길을 가면 하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망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선생님은 30세까지 믿음, 지혜, 사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타락은 믿음과 지혜가 없어서 한 것입니다. 그때 아담에게도 사랑은 있었지만 그것은 미완성한 상태였습니다. 아담 해와가 부모의 입장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계를 위한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도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 때문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믿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지혜의 원리입니다.

선생님의 기도는 전부 공적입니다. 여러 가지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명사수일수록 총을 들기가 무섭게 맞춥니다. 기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정성들인 결과를 놓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천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상습적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어려운 목적을 위해서는 하루에 세 번은 기도하십시오. 모시는 때이기 때문에 잘만 모시면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고를 열고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주님이 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가정을 가진 사람이 뜻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가정과 자녀를 원수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자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하며, 남자는 신랑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합니다.

본부교회는 중앙 성지로서 세계 40개국의 120개 성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5천년 역사를 갖고도 안심할 수 있는 주권을 갖지 못했기에 최종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천적 주권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정성의 결정체입니다.

통일교인은 사(私)를 버려야 합니다. 결혼한 부부는 서로 상대자의 몸을 잊어버릴 정도까지 이른 후에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앞으로 축복은 영적으로 지도 받는 사람 외에는 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개인은 70년은 수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인해서 70년이 7년으로, 더 나아가서 7개월로 축소된 것입니다. 1960년부터 1967년까지가 7년 대환난 기간입니다. 예수님은 33세에서 7년노정을 걸어가야 할 것이었습니다.

정성들이며 정성에 취해 사는 것이 인생의 보람입니다. 정성들이는 자리는 취하는 자리입니다.

육신을 쓰고 있는 기간은 꿈결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중에 해야 할 일은 심각한 것입니다. 심각하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 정성들이려면 선생님이 사랑하는 나라와 인류를 위해 정성들였다는 실적을 가진 다음에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이 전성시대라는 말을 온 피조만물을 지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못난 사람도 좋아하고, 잘난 사람도 좋아하고,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좋아하는데, 사람을 지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도 틀림없이 좋아하실 것입니다.

누구나 바라는 전성시대

전성시대란 어떠한 때를 말합니까? 글자 그대로 보면 ‘온전 전(全)’ 자에 ‘성할 성(盛)’ 자로 ‘온전히 성한 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번창하여 그것이 사회화되고, 국가화되고, 세계화되는 때가 전성시대인 것입니다.

본래 땅 위에서 인간이 맞이해야 할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기쁨일 것이냐? 간단히 생각하면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느끼는 기쁨일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전성시대를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도 인간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최고의 전성시대를 틀림없이 바라셨을 것입니다.

높은 분일수록 기쁜 날을 맞이하면 지극히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 저 말단에 있는 사람, 그리고 빈민굴에 사는 사람까지도 같이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악한 독재자라 하더라도 자기에게 기쁨이 있다면 그 나라 전체가 기뻐해 주는 동시에 원수들까지도 함께 기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원수를 무자비하고 비참하게 학살하던 군주라도 승리의 날을 맞이하였을 때에는 그 국가의 백성은 물론이요, 그 주권과 대립하여 싸우던 원수 국가의 백성까지도 기뻐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포악한 독재자라 해도 그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사실이 그렇게 된다면 그 군주는 승리 중의 대승리를 한 것입니다.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면, 그야말로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승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한쪽이 일어서면 다른 한쪽은 기울어지는 일이 벌어져 왔습니다. 국가 대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도 언제나 서로 부딪치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작은 데서부터 큰 데로, 국가로부터 세계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승리해서 전성시대를 맞이하는 때를 가진 편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패배하여 서러워하는 편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 승리한 편의 반대적인 입장인 서러운 편이 언제나 승리한 편을 환영하고 그 편을 앙망하고 따라가려 하는 일은 역사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인간이 구상하는 최고의 기쁨이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그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계적이지, 국경을 넘은 세계적인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해 나왔던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촌은 아버지를 중심하고 보면 아주 가까운 형제요, 할아버지를 중심삼고 봐도 한 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3대 내에 있는 형제끼리도 어떤 사람이 조금만 잘 되면 입을 일그러뜨립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요, 본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주권자든지 자기에게 영광이 있으면 원수 국가까지도 함께 기뻐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권국가의 주권자가 바라는 소원 기준과 일대일의 생활환경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소원 기준이 서로 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권자는 원수까지도 그의 기쁨을 찬양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잘 되면 기뻐해야 할 텐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이상하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국(一國)을 책임진 주권자의 사정과 개인의 사정은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국운과 천운

그러면 일국을 대신하여 국가의 운세를 이끌어 가는 책임자의 입장에 선 사람은 어찌하여 자기 개인의 입장과 사정이 다른 입장에서 소망을 두지 않으면 안 되느냐? 그것은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적인 방향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그런 환경을 많이 가지고 한때 큰 영광을 누리더라도 그 영광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이 나가는 기준과 역사를 대표해서 국가가 나아가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일국을 다스리며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한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 국가의 운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연령이 있고 사람의 생리에 맞는 생활 형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도 연령이 있습니다. 국가는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생리적인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크다뿐이지 개인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가와 개인이 다른 점은 무엇이냐? 개인은 국가를 따라가면 되지만 국가는 개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들의 감정이나 사적인 명령은 언제나 사소한 분야에서 서로 상충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를 지도하는 주권자의 입장에서 바라는 소원이라는 것은 개인의 그것과 다른 일면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개인의 입장과 다른 국가의 입장이 무엇이냐? 국가는 천운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형성하여 발전하는 것은 그 나라만을 위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편성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가는 세계 편성의 이념을 향한 또 하나의 소망을 갖지 않으면 안 되며, 또 국가는 현실적인 입장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국운 이상의 천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천운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만일 오늘날 전성국가를 이루어서 영광을 누리고 향락을 누릴 수 있는 국가와 민족을 거느린 군주가 있다면 그 군주의 뜻을 천운이 따라가느냐? 아닙니다. 주권자나 독재자나 아무리 권위를 자랑하더라도 그 역시 국운은 다스릴 수 있으되 천운은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천운을 따라가야 합니다.

천운이 가는 길은 원수까지도 포섭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주권자들이 자기의 기쁨을 원수 국가의 사람들까지 찬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천운의 연결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내적 전성시대와 외적 전성시대가 상응해야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전성시대에는 외적 전성시대와 내적 전성시대가 있어야 됩니다.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몸이 있는 동시에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하나입니까? 하나 같아 보일 뿐이지 하나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김 아무개라는 사람을 놓고 말한다면, 김 아무개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보면 김 아무개의 사지백체가 곧 김 아무개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 그의 마음이 몸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김 아무개가 그 동네에서 욕심쟁이요,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그러한 김 아무개한테 당신, 이런 사람이지? 하면 그의 마음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살인강도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살인강도의 반열에 동참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고통을 느낍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그 반열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라는 사람을 두고 볼 때 몸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이 좋아하는 것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즉 몸의 전성시대와 마음의 전성시대가 상응해야 할 텐데 상반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어서 잘 알 것입니다. 몸의 전성시대와 마음의 전성시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마음과 몸이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상 하신 대로 실체를 갖추어서 만우주 앞에 버젓이 나타날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사람은 마음과 몸이 설 수 있는 자리를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모든 환경이 그 사람의 박자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동쪽으로 가려 하고 몸은 서쪽으로 가려 합니다. 이상하지요? 마음이 지향하는 것과 몸이 지향하는 것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 목적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그 목적에 부합되고 일치되는 생리적인 현상이 작용하여 나타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마음과 몸의 자리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인데, 마음도 나요 몸도 나 같은데 실제로 몸이 내 몸이고 마음이 내 마음이냐 할 때, 자신도 그것을 모릅니다. 원래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서 뗄래야 뗄 수 없고, 하나님도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을 갖추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처하는 자리와 몸이 처하는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인생의 최고 이상적인 전성시대가 올 것이냐?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려도 무난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토피아적 이념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겠다고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마음과 몸이 처하는 자리가 다른 입장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코가 찌그러진 사람이라 해서 전성시대를 요구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코가 찌그러진 사람도 역시 전성시대를 요구합니다. 불구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구자인 것까지도 찬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도 더 전성시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과 몸이 분립된 입장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몸을 쳐서 마음을 끌든 마음을 쳐서 몸을 끌든 둘 중에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몸을 쳐서 마음 안에 기를 수는 있지만 마음을 쳐서 몸 안에 기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양심생활을 해서 잘 알 것입니다. 몸에 조금만 치우쳐도 마음은 거부합니다. 그건 누가 그러라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이 가슴에서는 두 세계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세계가 싸우고 있는 이 가슴에 38선을 제거해 버리고 평안함을 얻어 천지에 자랑 할 수 있는 태평왕국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세계통일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천국 건설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에 있는 천국을 어떻게 현실에 이루어 놓을 것인가? 몸을 통해서 현현시켜야 합니다. 이상은 반드시 몸을 통하여 실천해서 실현시켜야 합니다. 사회화되고 대중화되고 보편타당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사람의 역할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사람은 누구나 두 갈래 길에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불구자나, 세상의 인간이란 인간은 전부 두 갈래 길에 있습니다. 과거의 성인 현철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그 무엇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갈래 길을 어떻게 해결 지을 것인가? 개인으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는 문제가 외적인 싸움을 통하여 세계를 수습하는 일보다도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육적인 전성시대와 영적인 전성시대, 몸적인 전성시대와 마음적인 전성시대가 완전히 하나만 되면 태평왕국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사는 사람이나, 태어나는 사람이나, 국가 형태나, 자연세계나,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들 전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들은 모두 마음과 몸의 두 갈래 길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물론자들은 마음도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음이 언제나 주체성을 갖고 환경을 주관해야 되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의 전성시대와 마음의 전성시대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가망성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있는 것 가지고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것입니다.

역사상의 싸움은 씨족시대부터 종족시대를 거쳐 민족시대로 발전해 오는 데 있어서 어떠한 경제적인 문제가 동기가 되어 싸운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이 있기 전에 몸과 마음의 싸움이 먼저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적인 싸움의 평정은 일시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몸과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한 싸움은 역사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의 공자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고 석가도 그랬으며, 이 시대에 어떠한 도인이 나온다 해도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싸움의 방법과 양상은 언제나 몸과 마음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은 새로운 제3의 환경으로 넘어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사람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며 탄식한 것입니다.

이 싸움의 역사는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말하는 이상적인 공산세계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역시 몸과 마음의 싸움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냐? 외적인 환경을 평정하는 것은 간접적인 문제이며, 직접적으로 평정시켜야 할 것은 자아를 중심삼은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근본 문제인 것입니다.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이 내적인 싸움이고 동기이며, 세상의 싸움은 외적인 싸움이요,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싸움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그 결과를 타진해 가지고 세상을 수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조이상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계획하신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는 몸과 마음의 전성시대가 일치화된 세계일 것 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전성시기를 어느 때에 일치화시킬 것인가? 이 몸과 마음의 전성시기는 역사시대, 종말시대 혹은 끝날의 어느 한때에 가서 일치화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가짜 사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짜냐? 진짜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는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역사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 최고의 이상적인 인격자가 나타나서 전성시대를 이루었다면 그 전성시대는 절대 변하면 안 됩니다. 외적인 환경의 차이는 있을망정 내적인 차이는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환경은 높고 낮은 차이가 있지만 마음의 차이는 없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마음이나 국왕의 마음이 같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급적인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본심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시대의 요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천운에 의한 전성시대를 맞이해야

인간세계를 수습하여 세계 만민이 하나되어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루기 위한 것이 오늘날 점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가는 현시대의 요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나타날수록 세계의 통일은 쉬워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가지고 될 것 같습니까?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안 된단 말입니다. 강제적인 통일로써는 하나의 세계가 구성될 수 없고, 영원한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될 수 있는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면 거기에 배치되는 또 하나의 형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변증법을 예로 들어 보면, 변증법에서는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에 의하여 서로 반대하여 투쟁함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라는 것은 벌써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반대라는 것은 두 개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두 개념은 투쟁을 하지만 통일은 되지 않습니다. 상반되는 것입니다. 플러스끼리는 서로 밀어내지요. 이별하려고 합니다. 서로 갈라지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을 외적인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제도화시켜서 끌고 나오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최고의 권한 이상으로 올라가면서도 자기 한계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불안한 세계입니다.

인간세계에는 인륜과 천륜이 있고 국운과 세계운이 있습니다. 국운을 중심삼고 세계운을 움직이려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미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약소민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구원하는 데는 그들의 재산 가운데 제일 깊이 간직한 금고를 털어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전성시대를 좋아했지요. 선생님도 전성시대를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좋아합니까?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더 좋아하면 이 전성시대를 여러분에게 양보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보다 덜 좋아하기 때문에 싫어도 선생님이 지니고 있어야 됩니다.

역사상에 전성시대를 좋아한 훌륭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전성시대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에 전성시대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종이 되더라도 기왕이면 그 동네에서 유명한 부자의 종이 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왕지사 종이 되려면 일등 가는 부잣집의 종이 되고 싶지 않겠어요? 또 그 동네에 부자가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은 착하고 한 사람은 악하다고 할 때, 여러분이 만약 종이 된다면 어떤 집의 종이 되고 싶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큰 것을 좋아하고, 더 높은 것을 좋아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맨 꼴찌를 좋아하는 분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세계를 통일시켜서 세계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온 우주가 전부 하나되어 인간이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기뻐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셔다가 함께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좋은 소식이 있으면, 한국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이 있다면 신문 기자들이 와서 세계적으로 보도할 것입니다. 관심이 있는 한 누구든지 같이 기뻐하라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하나되어 전성시대를 맞는다면 인간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모셔다가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대통령의 훈시를 직접 듣는 것이 좋아요? 대리 훈시를 듣는 것이 좋아요? 모두 대리 훈시는 싫어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계의 모든 국가가 하나되어서 역사에 없는 찬란한 전성시대를 맞이했을 때에, 우주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안다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어서 오십시오.’ 할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하나님 오지 마십시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둑놈입니다. 왜? 세계를 통일하여 전성시대를 이루는 데는 국가의 운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천운을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운을 누가 움직이느냐?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천운을 타서 전성시대를 맞이했으면 그 움직이신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 놓고 좋아해야 질서가 잡히는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몸과 마음의 장벽을 제거해야 됩니다. 이것을 무너뜨려 버리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무엇이냐? 일반 역사관을 위주로 해서 인륜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사회제도에 일치될 수 있지만, 한 국가의 주권을 위주로 한 교육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세계를 초월하여 천운과 일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인간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역사 과정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의 지성인들과 청춘 남녀들이 싫어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의 ‘종’ 자가 무슨 ‘종’ 자입니까? ‘마루 종(宗)’ 자입니다. 마루는 어디를 말합니까? 맨 꼭대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의 가르침은 가르침 중에서도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낙제생들입니다. 이런 인간은 무엇이냐 하면, 동물처럼 그저 먹고 마시며 생명을 경시하는 동물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종교는 두 세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가 하느냐? 사람이 하는데, 그 맨 꼭대기는 언제나 하나님이 지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의 맨 꼭대기에 계시는 신 앞에 심부름꾼과 같은 역할을 할 예언자가 나와야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인간 사이에 중간 다리를 놓아서 그 연락을 담당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예언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예언자가 많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몸이 원하는 대로 먹고 즐기고 춤추라고 가르칩니까? 시대가 갈수록 젊은이들을 가르치기가 어렵게 되어 갑니다. 선생님도 돈이 있으면 서울만한 광장을 사서 삼천리반도에 있는 청춘 남녀들을 전부 모아 놓고 한바탕 트위스트 춤을 추게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춤추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술을 먹는 데도 한도가 있습니다. 자기 주량을 가늠하지 못하고 계속 먹게 되면 통배가 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위가 뚫려서 죽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적인 전성시대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춤추고 놀고 싶은 것을 막는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강제로 한 3년 춤을 추게 하면 싫증이 나서 안 추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작전이 있어요.

선은 영원, 악은 순간과 보조를 맞추는 것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이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역사가 길기 때문에 끝이 늦게 나지만 나쁜 일일수록 끝이 빨리 나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영원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요, 악한 것은 순간과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망하는 행락은 일시에 취하는 것이요, 흥하는 행락은 영원에 취하는 것이니, 영원에 취할 수 있는 행락의 터전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마음의 친구, 마음의 주님, 마음의 스승, 마음의 대왕, 마음의 나라, 마음의 사람, 마음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그러한 이념을 표방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대답들은 잘 하는군요. 얼마나 좋아요? 굉장히 좋지요? 종교는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서 ‘아! 좋은 길로 갈 수 있어서 좋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느냐? 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더라도 일등할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언제나 세계 챔피언일 것이다 하면 맞는 말입니까? 챔피언은 챔피언인데 무슨 챔피언이냐? 마음세계의 챔피언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에서 갈래갈래 갈라진 마음들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갈라진 마음들을 수습하는 방법이 어찌나 치밀하고 권위가 있고 능동적인지 사탄까지도 그 권내에 들어가면 살지 못하고 뛰쳐나갈 만큼 챔피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도의 챔피언이 인간세계와 종교세계를 관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종교를 정면적으로 반대해 가지고는 세계가 하나될 수 없고, 세계를 하나의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세계의 3분의 2가 종교권 내에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전부 적화하겠다고 하지만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마음을 빼 버릴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론이나 변증법을 통하여 마음을 뺄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란 것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챔피언이라고요? 「마음의 챔피언입니다.」 예수님은 공자, 석가, 마호메트, 소크라테스와 같은 그 어떤 성현이나 철학가도 하지 못한 것을 수습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방법과 법도를 갖춘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천운과 박자가 척척 들어맞습니다. 그 시대권 내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들어맞는 다는 것입니다.

응원을 할 때에 이왕이면 챔피언을 응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3회전까지 경기를 하고 나면 4회전부터는 승세에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지는 사람을 응원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지고 있을 때 선생님은 참 기분이 나쁩니다. 첫 번엔 졌지만 두 번째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자기 혼자서 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부터 이기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은 것이지 싸우다 지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상에 없는 그런 챔피언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러니 그분이 싸움터에 나가 싸울 때에 거기에 동조하고 몸부림치며 같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모진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남들의 구경거리로 싸운 것이 아니라 목을 내놓고 싸워 나왔습니다. 싸움 중에 가장 무자비한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역사 중에 기독교사에는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피를 뿌려 가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 싸움은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될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 싸움은 칼과 창을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다른 싸움과는 작전이 조금 다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어떤 절대적인 주체를 세워서 그 주체 앞에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완전한 주체 앞에 완전한 대상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주장해 나왔던 것입니다.

정성과 은혜

지금까지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과 몸이 싸워 나오는데 그 비율이 서로 비등비등했습니다. 그 비율이 10대 8 정도였습니다. 몸이 대하고 있는 환경은 세계 전체와 접해져 있지만 마음이 대해야 할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타락한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몸은 시시각각으로 환경에 점령되어 버렸지만 마음은 한길을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는 나타나는 결과를 단속해 나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마음에 공포가 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일을 행하게 되면 이제까지 쌓아 온 것이 무너집니다. 이것을 볼 때 마음은 육신의 행동을 맨 처음부터, 초반부터 간섭하지만 종반에 가서는 육신에게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비율로 보면 10대 8 정도이지만 환경 때문에 마음이 몸에 언제나 밀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종교를 세워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이냐? 외적인 환경에 대비되는 은사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들여야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운을 좌우하는 군주가 정성들이는 이상의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하게 되면 크고 위대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의 눈은 그 힘에 의해서 육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투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실체의 이념권을 인간에게 인연맺어 주시기 위하여 종교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극시켜서 그러한 권내로 가게끔 하는 욕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초현실적인 선에 연결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에게는 순교가 벌어지고 목이 잘린다 해도 좋다고 하며 신앙길을 가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초현실적인 감정을 실질적으로 광범위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들이 사선을 넘으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천만한 힘을 팔천만한 힘으로 증대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모시고 힘을 증대시켜서 몸을 치라는 것입니다.

싸우는 데는 힘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종교는 세상에서의 몸의 욕망과 사회 요구에 의한 모든 일체를 막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전체를 부정하고 나선 종교라야만 순수한 종교요, 이상적인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버려야 합니다. 먹는 것도 버리고, 자는 것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정욕, 식욕, 수면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좋아하는 것을 다 버리라는 거예요. 사람은 본래 먹고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좋아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육신을 통해서 사망의 행로가 되었으니 이것을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몸에 폭탄을 터뜨리라는 것입니다. 원자탄을 터뜨리라는 것입니다. 옥살박살시켜 전부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몸은 높임 받기를 좋아하고 편안한 자리를 좋아합니다. 또한 울뚝불뚝한 것은 싫어하고 포동포동하고, 매끈매끈하고, 폭신폭신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 몸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투실투실한 것, 울뚝불뚝한 것, 딱딱한 것 등 몸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몸은 높아지기를 좋아하고 남의 돈을 빼앗아다가라도 잘 먹으면 좋아합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잘 살면 좋아해요. 그러니 그러한 근성을 전부 때려부숴야 합니다. 높아지기를 좋아하는 몸을 낮추어라, 온유겸손하라, 희생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이 몸과 마음 중에 하나는 처단해야 합니다. 둘 다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처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먼저 생겼습니까, 몸이 먼저 생겼습니까? 생명은 몸부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뿌리는 몸에 의거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진짜 곧은 뿌리는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주체 되는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 가운데서도 조금 더 깊은 뿌리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가 두 개 있는데 진짜 원뿌리는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뿌리를 다 뽑아 버리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조금 덜 깊은 몸의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종교일수록 몸을 치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독신 생활을 많이 하지요. 사회와 만민을 위해서 희생봉사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성의 웃돌이 되지 말고 맨 아래의 고임돌이 되어라.’ ‘기둥 중에서도 정문 기둥이 되지 말고 울타리 기둥이 되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전부 몸이 원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타락한 몸과 마음을 둘 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몸이 좋아하는 것의 반대편으로 모는 것입니다. 그래야 몸이 원하는 것이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제일 고차적인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몸이 원하는 편과 반대편으로 제일 잘 모는 종교입니다. 모든 것을 꺼려하는 종교는 최하의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잘 몰아요, 못 몰아요? 잘 몬다고요? 선생님은 못 몬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님이 ‘야 잘한다, 참 잘한다.’고 하실 수 있는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 그럴 자신 있어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지요? 믿는다고 했는데 길이 쉬운 길이겠습니까? 세상과 반대되고 상충 되는 길입니다. 환영받는 길이라면 가짜입니다. 반대받는 길이 진짜입니다. 여러분은 가짜가 되고 싶어요, 진짜가 되고 싶어요? 물어볼 것도 없이 모두 진짜가 되고 싶을 것입니다. 물어보나 마나 진짜가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가 되는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진짜와 가짜는 무엇으로 구별하느냐? 용광로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금과 쇠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용광로에 넣어 봐야 됩니다. 그리하여 달구어 봐야 합니다. 금은 천도 만도로 달구어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쇠는 달구면 달굴수록 증발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용광로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을 구별해야 됩니다. 사탄의 소굴이 되어 있는 몸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용광로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용광로는 자기가 존재하겠다고 바라는 욕구에 부합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용광로가 바로 종교인 것입니다. 참된 종교가 바로 용광로입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흔적 없이 다 물이 되어 날아가 버리는 것은 버리고 거기에서 순금과 같이 남아지는 것을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본색과 모양이 변치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인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냐? 사망의 골짜기, 즉 몸을 죽일 수 있는 길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살아나는 것이요, 자신의 몸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상반된 말씀입니다. 인간은 마음과 몸 둘 중의 하나를 처단해야 할 비운에 처해 있는데, 우리는 몸을 처단해야 됩니다.

국운을 초월하지 못했던 이제까지의 종교

죽는 데도 단계가 많습니다. 몸을 죽이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목을 잘라 죽이면 좋겠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피를 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자라서 오늘날의 내가 되었으니까 한꺼번에 죽이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피를 빼고 뼈와 살을 말리는 기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몸을 죽이기 위해서 종교는 금식을 주장하고 고행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리석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운이 그런 길로 내몰기 때문에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호화찬란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눈으로는 웃고 춤추는 것이나 꽃동산처럼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눈으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라, 귀로는 좋은 퉁소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느 누구도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들어라, 세상의 가장 비참한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먹는 것은 제일 나쁜 것을 먹되 그것도 얻어먹으라고 가르칩니다. 얻어먹는 데도 선량한 부잣집 할아버지가 주는 밥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간신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도망다니는 사람에게 얻어먹으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 앞에 가서 밥 한술 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귀한 손님 오셨군요. 안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겠어요? ‘야, 이 녀석아 귀찮다.’ 하며 코피가 나도록 때릴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얻어먹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아 올라가야 합니다. 진짜 최고의 종교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가 세계복지화운동을 재창하여야 할 현시점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운동을 하는 종교단체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종교를 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단체나 종단을 중심삼은 사회복지화운동은 했지만, 국가를 넘어서 세계 주권과 세계 통치권을 가지고는 한 번도 그런 운동을 못했습니다. 어떠한 종교의 전성시기가 있었다 해도 교단을 위주로 한 전성시기였지, 교단과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교운과 국운과 천운이 삼위일체 된 운세권 내에서 전성시대를 맞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국운을 초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독교회는 한때,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구라파 일대에서 전성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늘땅이 요구하는 기준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지 못했고, 그럴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영원한 전성시대로 연결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원한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몸과 마음의 전성시대를 동시에 이루어야 할 텐데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니, 하나님은 둘 중에 몸을 쳐서 마음의 전성시대를 이루자는 작전을 쓰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한 사람의 역사를 발전시켜 놓은 것이 세계사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내적인 면을 책임져 나온 것이 종교요, 외적인 면을 책임져 나온 것이 사회제도와 과학입니다. 오늘날 20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역사 가운데에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몸을 쳐서 굴복시키지 못하면 마음의 전성시대는 올 수 없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이상 하신 것과 반대로 움직여 나왔습니다. 외적 세상은 몸을 위주로 한 세상이고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대륙 문명시대로부터 도서 문명시대를 거쳐 반도 문명시대로 넘어갔다가 다시 도서 문명시대를 거쳐서 대륙 문명시대로 돌아오면서 저마다 전성시대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망하기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전성시대를 바라시고 사람들도 전성시대를 바라는데 왜 망하느냐? 그것은 내․외가 일치 되어서 내적 기준을 중심으로 한 전성시대를 이룬 것이 아니라 외적인 몸을 중심한 전성시대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외적인 전성시대를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세계통일화운동입니다. 그러므로 각 민족을 하나의 문화권 내에 흡수해서 하나의 문화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발전 과정의 단계를 거쳐오면서 특수한 민족 앞에 전성기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 민족에게 다른 민족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사상적인 기반이 있으면 다른 민족까지 흡수시켜 나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반이 없을 때는 그때까지의 전성시대를 망하게 하고 새로운 도주라든가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게 하신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하나의 세계 문화권을 형성해 나가면서 내적으로는 사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면 일시에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내적인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사적인 발전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적 기준이 완성되어 외적 기준을 정복하는 순간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외적 문화세계와 같이 내적인 세계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때에 내적 기준만 완결되면 순식간에 외적 사회를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외적 세계를 오늘과 같이 발전시켜 나온 것도 끝날에 가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돕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적 전성시대와 외적 전성시대 간에는 언제나 상충이 벌어집니다. 마음은 몸을 치려 하고 몸은 마음을 치려 합니다. 외적 문화는 언제나 내적 종교를 반대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때에 전성시대가 오면 그때에는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주의로부터 주권이 나와 가지고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행락을 누리게 되면,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족속이나 자기 클럽을 위주로 해서 전체를 전부 묶어 버립니다. 그런 주의 주권 국가는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개인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클럽, 자기 종족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천운과 더불어 하나님의 이념과 일치화될 수 있는 주의 주권국가가 전성시대를 맞이한다면 역사와 시대를 중심삼고 세계의 역사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세움을 받았지만 그 책임을 못했습니다. 그러한 자리를 못 잡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즉 완전한 사람을 중심삼고 완전한 땅과 완전한 주권이 삼위일체가 되어 천운과 일치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새로운 문화세계를 이루고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다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역사를 이끌어 가느냐

천운에 가까운 이념을 중심삼고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온 교단은 자기 교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종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민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니라,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끝날에 세계 만민을 위하는 성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종교의 이념은 오래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개 종파, 일개 군주, 일개 종족, 일개 민족을 중심삼은 종교는 어느 한 시대에 일시적인 명목을 갖추어서 전성시대를 맞이한다고 해도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발전한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상에 수많은 국가들이 전성시대를 거쳐갔지만, 그 국가들은 천운과 인연맺지 못하고 국운의 인연을 가지고 전성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가 기울어져 가기 시작하면 그 나라의 내적 기준을 계승할 수 있는 제2의 존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전성시대가 기울어져 가게 될 때부터 새로운 종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교는 사선권(死線圈)에서 그 나라의 주권자 앞에 언제나 핍박을 받고 몰리지만 그런 자리에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언제나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전성권 내에서 내적인 제2단계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는 사람은 사선권 내에서부터 준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적인 제2의 출발자로서의 준비를 해 나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회로부터 몰리고 쫓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누가 이끌어 가느냐? 몰리고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단계를 거쳐 발전해 나갑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여기에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는 민족은 세계평화주의를 내세우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 민족을 위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을 위주로 세계 평등화운동에 공헌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역사를 발전시켜 나오는 데 공헌한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세계 만민의 평등화운동, 세계 만민의 형제운동, 세계 만민의 대가족운동 등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왔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공세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가인과 아벨의 싸움입니다. 장자가 언제나 차자를 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치는 날에는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치면 칠수록 빨리 망하여 상대편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2의 단계로 연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전성시대에 싸움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천운의 뜻을 인계 받을 수 있는 시대적인 지도자들이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부 그 시대의 주권자들로부터 몰리고 쫓김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이와 같은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아벨이 죽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에 불림 받은 지도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려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전성시대가 되면 내적인 전성시대로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외적인 전성시대가 기울어지면 그것을 비료로 삼아 내적인 전성시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외적인 전성시대의 망함이 내적인 전성시대 발전의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패했던 환경이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일치단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저기압과 고기압의 큰 차이에 의해서 태풍이 일어나는 것같이, 새로운 이념이 세계사적인 출발의 동기가 되어 새로운 역사적 혁명이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그 시대의 내적인 전성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에도 외적인 전성시대였으니 사회 환경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환경 이상 올라갈 수 있는 내적인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외적인 전성시대를 치시는 이유

하나님은 내적인 전성시대를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절대 외적인 전성시대를 주지 않으십니다. 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외적인 전성시대를 치는 것은 내적인 전성시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내적인 전성시대의 지도자들은 환경적으로 핍박당하고 몰리는 것입니다. 석가도 그랬고, 공자도 그랬고, 마호메트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느냐? 외적인 몰림에 비례하여 내적으로 공고한 뿌리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육신의 기준보다 마음의 기준이 높은 것처럼, 외적인 기준보다도 내적인 기준이 높기 때문에 몸적인 외적 기준을 쳐서 내적인 기준에 흡수시켜 나가자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모든 민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를 놓고 볼 때, 기독교는 언제까지나 몰릴 것이냐? 언제나 외적인 전성시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를 통해서 내적인 전성시대를 이루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세계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기 교파를 중심삼고 국가적․종족적․가정적으로는 전성할 수 있었지만,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고 천운과 더불어 세계를 표준으로 한 전성시대는 아직까지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성기가 온다고 약속한 날이 끝날입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기독교가 전성시대를 맞이하려면 이 시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세기말적인 부패시대가 도래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패하는 동기가 무엇이냐? 첫째는 하늘을 모르는 것이요, 둘째는 땅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모르는 것, 즉 하나님과 사람을 모르는 것이 부패의 원인인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부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늘을 몰라보고, 땅을 몰라보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사람을 몰라보는 것입니다. 타락은 하늘땅을 몰라보고, 사람을 몰라보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인간 위주한 사랑을 한 데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든지 음란이 팽창한 사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금 민주사회에서 선진국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 국가의 미래에 국운을 책임질 청년들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 미국의 장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향락주의로 흘러가는 비운에 사로잡혀 몰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늘이 무엇인지 모르고, 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삼은 사랑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청년들이 향락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머지않아 이 나라는 망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계속 그러면 망한다는 거예요. 우리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맨 처음에 하늘을 옳게 알고, 땅을 옳게 알고, 하나님과 사람을 옳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 바로 알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악을 행하라고 해도 못하고, 사람을 참으로 아는 사람이 그릇된 길을 갈리 없고, 하늘땅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천주법도에 어긋날 일을 할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알고 인간의 사랑이 아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그 시대가 되기 전에는 태평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세기말적인 현단계에 있어서 세계 앞에 어떠한 입장에 놓여 있느냐? 환영 받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금까지의 문명을 발전시켜 외적 기준을 소화할 수 있는 테두리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민주세계를 위주로 종교의 교파가 이루어지고 자연적인 환경을 거쳐 종교가 환영 받을 수 있는 권내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주사회로부터 환영 받는 그 단계에서 안식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현재의 전성시대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적 기준, 즉 내적 기준을 세계적인 입장으로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외적인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서 백 퍼센트 이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 기반을 상실해 버린다면 기독교는 세상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를 비롯한 오늘날의 종교는 비상시에 처해 있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이 사회에서 백 퍼센트 환영 받는 자리에서가 아니라 몰림받는 입장에서 새로운 무엇을 갖고 새로운 세계의 창건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 운동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만일 기독교가 세속화된다면 이 기독교는 외적인 세계에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핍박받을 때도 내적 전성기를 이루겠다는 각오를 했다

오시는 주님이 이 세계에 천국을 건설할 분이라 할진대, 오늘날 세계에 있는 기독교가 주님을 맞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면 새로운 종교를 중심삼은 제3차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제도나 교파적인 제도와 형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사회적인 모든 것을 교회적인 입장에서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사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나라가 해방을 맞아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즈음에 삼천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해방이 왔다고 손을 들어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역사가 이렇게 움직여 나오니 통일교회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일본이 전성시대를 누릴 때 한국은 비참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세계적인 내적 전성시기를 출발시키기 위해 기반을 닦고 있을 때 외적 전성시대에 있던 일본 독재자들은 그들의 목을 잘랐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나왔던 기독교는 해방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제2차 출발을 하여 이 민족 앞에 찾아온 국운을 세계 운세로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출발을 해 놓고도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사회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미국의 풍조와 사조에 빨려들어 갔습니다. 자본주의의 그늘에 전부 파묻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개인 위주한 교파와 교권주의, 개인 위주한 교회로 나가다 보니 다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회와 더불어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교파 앞에 환영 받는 내가 될 것이냐? 이 나라와 민족 앞에 환영 받을 수 있는 통일교회를 만들 것이냐? 통일교회가 역사 앞에 서기 위해서는 교파 앞에 반대받아야 합니다. 민족 앞에 반대받아야 합니다. 시련 도상에서 부대껴야 합니다. 그들 앞에 환영 받게 되면 새로운 것을 창건할 수 없고, 제2의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통일교회가 몰리고 쫓기고 핍박받는 사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때에는 몰리고 쫓겼지만 그 가운데에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그 기반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지금은 핍박을 받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맞으면서도 찬란한 내적인 전성기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의 내적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사적인 모든 고초를 극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몰려오는 풍파와 닥쳐오는 시련과 탄식과 절망을 극복할 때, 우리는 성공을 기약할 수 있고 승리를 다짐할 수 있으며 어떠한 환난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몰리고 쫓기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갖고, 쇠고랑을 찬 영어의 몸이 되어서도 희망을 갖고 내일을 바라보며 승리의 모습이 부럽지 않다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위 환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련을 통해서 환경에 동화될 것이냐, 환경을 동화시킬 것이냐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간 투쟁 역사를 거쳐오고 있고 여러분은 7년노정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서 지난날을 회고해 볼 때 서러운 일도 있었지만 일면 통쾌하고 반갑고 기쁜 일도 많았습니다.

희망에 벅차야 할 통일교인들

우리의 재산은 지금까지 찾아 놓은 통일교회의 교인들이요, 지금까지 시련을 극복해 나온 수많은 사연들입니다. 이 재산이 세계에 퍼져 뭇사람들의 가슴에 새로이 심어지는 날, 죽었던 생명들이 부활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언제나 여러분에게 전통을 존중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어떠한 귀한 가치보다도 전통을 존중시해야 합니다. 그 전통은 외적 전성시대에 박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적 전성시대를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새로운 사회를 재결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 뜻과 아버지의 뜻이 다르면, 내 뜻은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되고 아버지의 뜻은 천륜과 접촉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사회와 접촉하는 길과 천륜과 접촉하는 두 길이 있는데 어떤 길을 따라갈 것이냐? 천륜과 접촉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합니다. 부패한 사회 환경에서 환영 받는 것보다도, 제2의 새로운 부흥과 새로운 출발을 바라보며 내적 전성기를 다짐해 가며 천륜과 접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싸움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환경이 제시하는 문제가 크면 클수록, 그 내용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핍박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핍박 앞에 스스로 후퇴하고 좌절당하는 약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상에 배반자가 되는 것이요, 천주의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파들을 수습해서 새로운 역사시대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외적으로나 또는 세계 정세로 볼 때 우리 통일교회와 기독교가 바로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들이 외적인 전성시대에서 내적인 전성시대의 기준을 세워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에 있어서의 전성시대는 어느 때냐? 지금까지 사회를 중심삼고 살았던 때가 여러분의 전성시대였습니다. 통일교회 들어오기 전 시대가 여러분의 전성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서 행락을 추구하고 거기에서 인생의 승리를 추구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통일교회에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러나 통일교회에 들어온 그날부터 자신의 사회적인 기반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 사회적인 환경이 높고 클수록 그 크기에 비례하여 당해야 하는 시련과 고통도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극복해야 됩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7년노정을 가고 있는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습니까? 사회 환경을 타개하고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벅찬 희망이 가슴에 사무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고생을 하니까 ‘옛날에는 고기 뼈다귀국도 먹었는데 이건 뭐야? 40년 동안 메추라기와 만나만 먹어야 하다니….’ 하며 애급 궁중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모세를 원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이요, 본분인 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옛날이 좋았는데….’ 하지는 않습니까?

세계적인 외적 전성시대는 망해야 합니다. 참이 나타나고 참의 기준이 세워지면 그것은 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리요, 천리입니다. 망하지 않으면 망하게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아는 사람들은 그 외적인 환경을 저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버리고 나와서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절대적인 마음을 중심삼고 내적 기준을 다시 세워서 제2의 나를 주관하고 제2의 나를 지배할 수 있는 제2의 인격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망각해 버리고 옛날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제2의 내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언젠가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미국이 현재는 세계 국가 앞에 전성시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국이 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을 위주로 하는 미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의 약소국가, 불쌍한 국가를 위하는 미국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그들의 국민들을 동원하여 세계의 못사는 민족을 자신들의 동생같이, 형님같이 대해주며 잘살게 해 주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기필코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올 것인데

그러면 통일교회의 전성시대는 어느 때일 것이냐?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있을 것이어늘 그때가 어느 때일 것이냐? 전성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통일교회의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 전성의 때가 오면 세계가 움직일 것입니다. 세계가 움직이는 그때가 오면 통일교회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 선생님은 그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국대로 전성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오게 되면 한국을 움직일 수 있는 통일신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내적 전성시대를 책임질 수 있는 통일신도들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에 통일교회를 위주로 한 전성시대가 오게 되면, 한민족은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내적인 전성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주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민족들을 구하기 위해 어느 민족도 하지 못하는 일을 선두에 서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충성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새 세계를 건설할 것이냐? 아닙니다. 반드시 통일교회에 충성했던 사람을 최일선에 내세워서 세계를 위해 고생시킬 것입니다.

만약 한국 민족이 이 책임을 못하게 되면 그런 사명을 할 수 있는 통일교회 이념을 갖춘 제2의 민족이 나와야 합니다. 일본도 좋고 미국도 좋고 독일도 좋습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공산주의라도 그런 이념을 가지고 나오면 좋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세계적인 입장에서 그 이념을 자기 이념과 같이 형성해서 영화를 누릴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이 나라가 우리 뜻 앞에 가까워 오고 환경이 우리 앞에 복을 가지고 올지라도 기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일에 갈 길이 있나니 내일의 소망을 다짐하고 내일 넘어야 할 그 고개를 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련을 넘기 위한 연단의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모든 싸움은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싸우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그때를 맞이하기 위해 삼천리반도 이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보다도 민족을 초월하여 힘차고 늠름하게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의기양양한 청년남녀들이 많지 않으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못 됩니다. 이렇게 하는 민족이 통일교회와 동역자가 되어 세계적인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느냐? 또한 선생님은 여러분이 어떠한 입장에 서기를 기대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행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계무대를 향하여 온갖 시련과 고통을 무릅쓰고, 새로운 세계의 창건을 위하여 모진 풍상을 홀로 맡으며 책임져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통일교회의 운세는 세계적인 운세와 더불어 세계를 지도하고 지배할 수 있을 것이로되 만약 그러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염려됩니다. 가정생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만족만 추구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영광 가운데 도취해 가지고는 내일에 넘어가야 할 고개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내적으로 더욱 다짐하고 결의하고 안팎의 모든 것을 정비하여 총진격을 해야 할 때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방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온 역사시대를 종합한 세계사적인 전성시대인 20세기의 전성시대를 지킬 수 있는 내적 전성시대의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그는 세계적인 통일왕국의 대표자가 될 것이요, 그러한 단체가 있다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단체가 될 것이요, 그러한 민족과 국가가 있다면 세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민족이나 국가가 있다면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주도적인 책임을 맡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아프리카의 흑암지에 찬란히 휘날릴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을 꽂고 하나님 앞에 개가를 불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한국, 아시아 등 비참한 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최후의 승리를 결정짓고 하나님 앞에 찬송드릴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겠다고 몸부림치는 민족이 되면 틀림없이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은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충분한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청년 남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상과 전통을 상속받아 실천하면

선생님은 멀지 않아서 외국에 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민족적인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년간 천신만고 수고의 길을 개의치 않고 걸어왔기에 이 민족 앞에 우리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런 강력한 힘을 국가에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활동해 온 내용을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이 여기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환영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마를 맞대고 웃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만났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대전쟁 마당에서 승리할 그날을 위하여 만났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총칼을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해 오신 작전법, 즉 전통과 사상을 상속 받아서 실전 무대에서 그것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실된 것을 만존재 앞에 보여 주고 만민과 만존재물들이 그 승리의 권한 앞에 머리 숙이고 들어와서 모든 것을 상속 받아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안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날이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이 완결되는 날이요, 만민이 평등한 세계를 맞이하여 안식할 수 있는 지상천국의 이념이 확정되는 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가야 되겠습니다. 여기 젊은이들, 갈 거야, 안 갈 거야? 「가겠습니다.」 누가 총칼을 빼들고 위협해도 가야 합니다. 그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날을 위해서 싸우고, 그날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가는 것도 그날에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요, 내가 싸우는 것도 그날을 위한 승리의 표적을 세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40개국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이 뭐냐 하면,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지금 세계의 경제권을 전부 장악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술 분야가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본래 산업혁명은 영국을 중심삼고 일어났는데 미국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경제발전을 이룩했느냐?

미국의 인종은 종합 인종입니다. 수많은 민족이 종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대개 어떠한 사람들이 모이느냐? 전에 그들이 살던 나라와 민족 앞에 환영 받던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닙니다. 모두 반대 받는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민족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나라만을 중심삼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덩치가 크고 배포가 크다는 것입니다. 색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주권 국가 앞에 배반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퓨리터니즘을 중심삼고 자유신앙을 부르짖으며 규합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상적 기준이 같고 생활적 기준이 같아진 것입니다. 거기에 강력하고 울뚝불뚝한 성격까지 합해져서 덩치가 커지니 그 앞에서 작은 것은 모두 깨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기반을 넓혀 나갔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본국에서 몰리고 쫓김을 받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기반이 없었지요. 때문에 미국에 가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가지고 본국에 돌아가서 그들의 종족 앞에 환영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경제적 기반을 세워 가지고 발전한 것이 미국입니다.

세계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나가라

오늘날의 세계를 볼 때, 서양사람, 동양사람,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전부 다 사상적으로 다릅니다. 사상이 같으면 목적관이 같아지고, 심정적으로 하나됩니다. 또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게 되면, 생활 감정이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사상이 같고 목적이 같으면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은 반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앞으로 국제결혼을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몰리고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혼혈아들입니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몰리고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혼혈인 국가를 만들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중심삼고 아시아 일대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21년 동안 한국 민족에게 쫓김받으며 싸우느라 청춘시대를 다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습니다. 춤을 춰도 누구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내가 놀았다면 누구보다 잘 놀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놀아 보지 못하고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으니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분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적으로 보면 멋집니다. 분함보다 멋지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이 일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 식구들을 뒤엎을 것입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대학을 왜 들어갑니까? 밥벌이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통일교회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대학을 가더라도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미국 갔다 오면 12개국에 선교사를 내보낼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재산만 판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잘살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민족을 잘살게 하고, 세계를 잘살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공적인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법입니다. 그러니 그러지 않은 모든 것은 공법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여러분들을 내보낼 곳이 없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환영 받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이제까지 반대받고 다녔는데 여러분들이 나가서 환영받고 다니니까 기분이 나쁩니다. 정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기분 나빠요.(웃음) 왜? 선생님이 기분 나빠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것 아닌가? 욕먹던 통일교회 선생님이 기분 좋아하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럴까 봐서 조금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웃음)

이제는 제2의 출전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은 아시아 대륙에 파병된 군대입니다. 전번에 선생님이 아시아의 남방국들을 순방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더위였습니다. 더운 데서 선교가 제일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인도 캘커타에 가서 한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온도가 41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잠을 잤습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면 병이 난다고 하지만 병은 무슨 병이에요? 선풍기 아래서 낮잠이라도 자고 나면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야! 여기에서 전도하려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거기에 갈 사람이 있습니까?

애급에서는 호텔에서 나와 가지고 조금만 돌아다녀도 땀이 납니다. 시간이 바쁘다고 해서 뛰어가게 되면 그곳 사람들이 말립니다. 뛰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사병이 나고 무슨 병이 나고 야단인데 뛰어 다니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경험하고 알려주는데 뛸 수 있어요?

아시아에서 어디에 사람이 더 많은가 생각해 볼 때, 극동지방보다 열대 지방에 더 많습니다. 중국에도 전인구의 절반이 더운 지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비율로 볼 때 아시아에서도 북쪽보다 남쪽에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때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인들의 무덤을 전부 남방에다 만들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잘 생각했습니까, 못 생각했습니까? 이거 여지껏 헛 얘기 했나보군. 못 알아듣는 것을 보니. 잘 생각했어요, 못 생각했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선생님보다도 더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남방 어느 큰 섬에 통일교인들을 비행기로 모두 옮겨 거기에서 살게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을 처음 갔을 때 미국인들은 선생님이 그들의 생활양식에 며칠만에 동화되는가 지켜보자는 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주의로 말하면 세계주의자인데 미국을 동화시켜야지 미국에 동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웃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 시간 이후부터 그들이 선생님 앞에 굴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심정은 어디나 통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같습니다. 심정적인 것은 같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 그들은 나보다 더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그리고 한국의 통일교회 식구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보다도 더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지방을 순회할 때 통일교회 여자들이 선생님을 붙들고 입 맞추자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젊은이들은 막 붙들어 잡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서양 풍속이지 결코 하늘의 법도는 아니니 절대 안 된다는 한계를 지어 놓고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에게는 미국식 인사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도 선생님이 떠날 때에 배웅을 하기 위해서 비행장에 나오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선생님이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국 식구들의 얼굴을 보면 점점 침울해집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비행기에 올라서면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비행기 타러 나가려고 모두에게 인사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다가 선생님이 가는 것도 못 보고는 또 못 보았다고 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울면 창피하다고 울지 않습니다. 부자지간에 창피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 세계순회 때는 일곱 번째 나라에 도착하니 한 아주머니가 머리를 풀고 나와서, 선생님한테 누구든지 맨 먼저 키스를 한번 하면 역사에 남는다며 그렇게 하라고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다고 하면서 키스를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 어디를 사랑하느냐, 손끝을 사랑하느냐, 전체를 사랑하느냐고 했더니 전체를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곳도 사랑하느냐고 하니 그것도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뺨을 제일 사랑하는데, 여자가 내 뺨을 건드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서양의 남편들은 이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과 다른 것입니다. 부인은 동양의 선생님과 키스하기를 바라고 뒤따라다니는데도 그런 부인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생활 감정이 동양과 그렇게 다릅니다.

그러면 심정의 기준이 무엇이냐? 남방 나라, 또는 어떤 나라라 하더라도 여러분이 심정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높은 데로 올라가게 되면 낮은 데로 내려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수돗물이 흐르는 원리를 알 것입니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은 낮은 데로 흘러서 고이게 마련입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연결만 되면 물은 흘러와서 가득 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심정의 파이프만 하나님과 연결시켜 놓으십시오. 심정의 파이프만 하나님과 연결시켜 놓으면 가지 말라고 해도 안 갈 수 없고, 넘지 말라고 해도 안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을 계승시켜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심정만 제대로 전해 주면, 주지 말라고 해도 제일 좋은 집까지도 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집을 가지고 있다가도 내가 필요하니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심정이 열대지방의 40도가 넘는 온도보다 낮을 것이냐, 높을 것이냐? 심정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높습니다. 열대지방에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국사람 이상으로 선생님의 말씀에 취하는 사람이 발견되는 날에는 45도 50도를 넘는 곳에서라도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위를 느끼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도수가 높아서 40도 45도까지도 넘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백 퍼센트 합격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운 것도, 밥 먹는 것도, 추운 것도 모두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신앙의 열도가 강한 사람이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남자가 열도에 강합니까, 여자가 열도에 강합니까? 여자가 열도에는 강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려고 합니다. 만약 인도로 보내려면 사탄세계에 여자만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잘 훈련된 인도 사람과 결혼시켜서 보낼 것입니다. 세계 사람이면 아무나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인도로 선교를 보낼 여자들을 미국 통일교회에 있는 인도 사람과 결혼을 시켜서 인도로 귀국시킬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우리나라를 위하고, 아시아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이 훨씬 값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영원한 전성시대를 위해 정성들이자

선생님은 한국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한국을 사랑하는 것같이 여러분도 한국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한국을 더 사랑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더 사랑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도 혼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사랑하면 더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한국을 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사랑합니까? 세계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조건이 뭐가 있느냐고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말로만 사랑해요? 조건뿐만이 아니라 사실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못하는 일까지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주인은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누구보다도 더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후보자는 누구냐? 한국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미국 땅에 사람이 정착하기 전부터 미국 땅을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주인은 누구냐? 한국 땅에 배달민족을 세우시기 전부터 한국 땅을 사랑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제일 어려울 때도 변치 않고 사랑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아들딸이 된다면 미국 땅도 내 땅이요, 한국 땅도 내 땅이요, 세계 땅도 내 땅이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를 사랑해요? 세계를 사랑한다면 조건은 세워야 합니다. 세계를 위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 아들은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지 않은 것이 인연될 수 없고, 인연되어지지 않은 것이 성사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들인 사람이 환영 받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은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선생님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성시대를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불교나 유교는 물론, 모든 종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도의 기준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한때 종교가 일국의 주권을 중심삼고 천하를 호령하는 시대를 맞이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도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전성시대 앞에 어떤 방법으로 투쟁을 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인 기준을 세워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창건할 수 있는 내적인 전성 기반을 마련하여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전성시대를 이룰 수 있는 세계를 창건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대를 이루어 놓지 않으면 평화의 왕국은 절대로 도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바라보고 그런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이념을 중심삼고 나가기 때문에 내적인 전성 기반 위에 외적인 전성 기준을 일체화시켜서 하나님과 일체화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국의 승리, 만천하의 승리, 최후의 승리의 종착점에서 하나님 앞에 승리를 돌려드리고, 하나님을 영원히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가야만 비로소 해원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역사상의 수많은 전성시대는 흥망의 노정을 거쳐왔지만, 그때부터는 영원한 전성시대, 즉 영원한 태평왕국, 지상천국, 천년왕국이 건설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였고, 그 세계를 창건하기 위해서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저희들 인생에 있어서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겠사옵니까? 아버지가 없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들이 인생노정에서 아버지를 발견한 기쁨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사옵나이까? 백만장자가 된다 해도 이 기쁨에 비할 수 없고, 억천만세를 통치할 수 있고, 만국에 호령할 수 있는 명장이 되더라도 이 기쁨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고귀한 인생의 가치와 무한히 참되고 선한 모습을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아버님이 누구시며 아버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이시여! 통일의 제단을 이끌어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지금까지 아버님은 수많은 역경 가운데서 저희들을 훈련시켜 나오셨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생사를 걸어 놓고 혈혈단신으로 투쟁하다 최후의 신음을 하는 그 마당에 있어서도 아버님께서는 이 세상을 버리지 아니 하시고, 오늘날까지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 개척해 나오셨으며, 저희들을 광명한 세계로 인도해 주셨사옵니다. 그 은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아뢸 수 없나이다. 두 손을 합하여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숙여 감사드리오나 억천만 번 감사를 드려도 아버님의 은사에 보답할 수 없는 황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 남모르게 저희들을 대신하여 수고하신 노고가 얼마나 크시옵니까? 세상에서는 잘산다고 좋아하는 이 판국에 저희들은 몰리고 쫓기는 눈물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사옵니다. 슬픔과 더불어 남모르는 울음 길을 걸어가며 외로움과 한숨과 더불어 아버지를 불러야 할 사연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세상에서 즐겁다고 행락을 노래하는 그들은 꿈조차 꾸지 못할 생활이옵니다. 이것들로 하여금 영원한 세계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것이 아버님의 은사요, 사랑인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넘었던 외로운 골짜기가 다시 그립사옵니다. 싸움의 터에서 ‘내가 있나니 너는 낙망하지 말라.’고 분부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그립사옵고, 아버지의 그 품이 그립나이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기에 만사를 잊어버리고 달려가는 그런 마음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사실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의 역군들이 가는 발걸음이 여기에서 정지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역사의 부름 앞에 순응하여야 되겠사옵니다.

시대의 역경을 거슬러 올라가 하늘의 정병으로서 이 시대를 창건하고, 이 시대의 악을 토벌하여 승리의 방패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들 앞에 놓여져 있사오니, 이 사명 앞에 충성을 다할 수 있고, 충절을 다할 수 있는 아버님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삼천리반도를 기억하여 주시옵고, 삼천만 민족의 운명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역사 과정에서 슬펐던 민족이요, 싸움터에서 밟힌 흔적을 가진 외로운 민족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정과 일치된 마음을 갖고 있는 이 민족을 찾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안식하실 수 있는 한 날과 환희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일의 깃발을 들고 결의하고 나선 저희들이 어느 한때 아버님을 편안히 모신 날이 있었습니까?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중심삼고 아버지를 모신다고 하면서도 저희들은 이제껏 아버지를 모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앞에 놓고 아버지를 헐뜯고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가시밭길로 만들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새로운 계기로 삼으시옵고,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새로운 신념을 이들의 마음에 깊이 주입시켜 주시옵소서. 생명이 약동할 수 있는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그 자신이 갈 방향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결정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지에 널려 이날을 기억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또한 아버지의 뜻을 알고 통일교회를 따라 나오면서 새로운 이상세계와 새로운 복지역사를 개척해 가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지켜 주시옵고, 가다가 지쳐서 주저하거나 쓰러진 자들이 있사옵니까? 다시 한번 불러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 형제들을 통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어 내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하시옵고,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시어서 실체세계와 힘을 합하여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아버지, 길을 열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품어 주시옵고, 남아진 세계의 싸움터를 지킬 수 있는 하늘의 용장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싸움터에서도 강하고 담대하여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하늘의 용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아버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앞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통일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시옵고, 아버님이 분부하고 싶은 모든 것을 분부하시옵소서. 저희들을 직접적으로 지도하시고 저희들에게 직접적으로 훈시하시어서 목적지까지 무난히 갈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은사와 승리가 저희들의 움직임마다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신념이 강한 사람, 이지적인 사람, 정적인 사람 등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중심하고 역사적인 인물이 생깁니다. 이것이 12형으로 갈라지고, 다시 이것이 3단계가 되면 36형이 됩니다. 또 이것이 양성(兩性)으로 벌어지면 72형이 됩니다.

최고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람에게서부터 배워야 합니다. 도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을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영계에서 알려주는 일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지혜를 가지고 해석하고 논하며 두고 보아야 합니다. 영계에서 3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3개월, 혹은 3년, 30년, 300년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계의 시간관념과 인간의 시간관념은 다른 것입니다.

영적으로 받은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상속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시 받은 자는 탕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시 받은 자의 말을 듣고 가는 사람에게는 탕감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시 받은 자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로서, 아버지를 따라가는 자식의 입장이므로 아버지의 위업을 상속 받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귀역사는 자기 하나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나라가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탕감역사가 벌어져야 하고, 이것이 세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일본이 발전하는 것은 전부 한국이 동기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3대의 수난기가 와야 합니다. 그것은 아담, 예수, 재림주의 3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명치, 대정, 소화의 3시대 과정에서 한국 침략의 발판이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의 40세까지의 40년 기간을 중심하고 한국에서 탕감역사가 벌어지는데 대개 선한 후손이 탕감을 받습니다. 흠 있는 후손은 탕감이 안 됩니다. 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자녀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주님이 당하는 고통은 선인(善人)이 대신 탕감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수록 주님의 고통은 줄어듭니다.

이제부터 한국에서 되어지는 일은 세계적으로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선생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자기 하나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은혜를 갈급해해야 하며, 은혜를 상속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기가 잘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하나님과 조상과 교회가 정성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가 수고하는 것도 자기 하나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빚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 좋은 것을 위해 그 많은 은덕을 갚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갚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나라와 세계를 위해 여러분이 갚아야 합니다.

역사는 자기 하나를 찾기 위해 수난으로 엮어져 왔습니다.

무당들도 사람을 좋은 길로 가게 하기 위한 점을 쳤기 때문에 무당 노릇을 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무당 노릇을 하는 것도 탕감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가 하나되어야 부모를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평안한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지시를 받은 자는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 책임자가 책임을 못하면 3대가 그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의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횡적으로 탕감해야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가 잘못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그 자식들이 서지 못합니다. 목사의 아들딸들이 잘못되는 이유도 목사가 아벨적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책임 못할 사람은 한 자리에 오래 두지 않습니다.

완성시대에는 징계로 바로잡지 않고 사랑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안고 돌면, 하나님이 그 자식을 치는 것입니다. 자식을 마음놓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벨적 인물이 책임을 함으로 선조의 정성이 쌓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적 인물이 책임을 못할 때 하늘은 그를 침으로써 그 공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탕감이라는 것은 순리적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탕감은 역리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을 먼저 사랑하고 그다음에 자식을 사랑해야 탕감됩니다.

아벨이 책임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아벨의 책임은 가인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아벨도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아담가정이 그러했듯이 가정은 천사세계에서 육성합니다.

가인을 복귀하는 기준을 세워야 부모를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는 것은 부모를 해방시키는 일이 됩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그 계시대로 하지 않으면 징계를 받습니다. 원래 징계를 하는 것은 그 일대(一代)에서 모든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인데, 그래도 자기 사정에만 얽매이면 그 징계가 자식에게까지 미칩니다.

하나님이 주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징계를 주어 탕감함으로써 그것이 후손에게 미치지 않게 하지만, 사탄 주관권 내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계시를 주어 그것을 조건으로 끌고 나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징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뜻 앞에 자기를 중심한 사람들이 많이 자연 도태되었고 병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옛날에 이 길을 가다가 떨어져 사망의 길을 가고 있는 자식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려 합니다. 아무리 사형수라고 해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려는 이때에, 떨어져 나간 옛날 식구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금년이 제1차 7년노정이 끝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복귀역사를 하는 데는 반드시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책임을 질 때는 반드시 기간을 정하여, 그 기간에 책임을 다한 후에 다른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진 사람은 그 자리에서 떠난 후에도 흠앙(欽仰)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7년 기간은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탕감기간이기 때문에, 영계를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의 지혜로 천사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 기간을 통해 실체를 완성해 가지고 완성한 실체로서 사탄을 정복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은 신령으로 시작하여 실체세계에까지 나와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다해야 그들까지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는 다시 영적인 입장으로 돌아갑니다.

뜻을 대하는 마음에 애달픔과 조급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본부교회가 세계의 중앙 성지이므로 여기에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탕감은 혼자서는 하지 못합니다. 또한 주체(하나님)가 서지 않아도 탕감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인정하지 않습니까? 이는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함이니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람이 탕감해야 합니다. 탕감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입니다.

사탄이 내려오면 하나님은 올라가고, 사탄이 올라가면 하나님은 내려옵니다. 탕감은 하나님이 올라가고 사탄이 내려가는 운세에 선조들이 나타나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예수님과 사탄이 입회하여 양쪽이 다 허락하고 찬양하는 입장에 서야만 탕감이 성립됩니다.

창조 본연의 아담과 해와의 자격을 갖추어야만 사탄의 참소조건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부러워할 수 있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7천년 역사를 한꺼번에 탕감하는 기간이 1960년부터의 7년 기간입니다.

불심판은 사랑을 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한 중심이 땅에 와 사랑의 길에서 유린을 당하는 기간이 7년 대환난 기간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선생님과 같이 욕을 먹었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듯 하늘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7년 기간에 책임 못하면 다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힘이 안 나는 것은 민족을 놓아두고 자기 자식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하늘을 등졌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맹세한 뜻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광야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애급을 떠날 때의 심정을 잃어버렸던 것과 같습니다.

끝날에 있어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뜻만을 위해 나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늦게 나온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은 그가 들어올 때의 심정기대 위에서 달리게 되면 빨리 나온 자를 앞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번 세계 순회는 흙과 돌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지만, 이번 세계 순회는 심정을 심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심어야 하겠기에 결혼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쳐서 남아지는 악이 없고, 선이 맞고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선이 맞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핍박을 받으면 핍박한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올 수 있게 됩니다. 선한 입장에서 악에게 빨리 맞고 거기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바랍니다. 그래가지고 복귀노정의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구원도 받지 못한 자가 욕심이 많아서 세계 구원이니 뭐니 하면 사탄이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3년 고개를 넘기가 제일 힘드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으로서 선생님이 책임지는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고향과 본향 가운데 어떤 것이 좋습니까? 고향은 어떠한 곳입니까? 자기가 머물렀던 곳, 떠나면 그리운 곳,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이 고향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고향, 진정한 본향을 가졌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곳은 우리 선조로부터 소원하던 곳이요, 세계 만민이 그리워하고 오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곳이요, 천추만대의 후손들이 이곳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곳, 그런 본향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옛날 예수님은 유대 나라에서 태어나셨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유대 나라가 예수님의 본향이 되었습니까? 그곳이 예수님의 진정한 본향이 되었다면 그곳을 영원히 그리워하고 거기서 살고 싶어했을 텐데, 어찌하여 예수님은 그 땅을 뒤에 두고 산지사방으로 유리고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고?

본향을 그리워해 온 인간

그럼 본향에 가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본향에 가서 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본향에 가서 손님 노릇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살자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슨 사랑?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이요, 형제의 사랑이요, 친척들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향을 찾아가서, 친척들이 거기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친척들이 좋아하는 자연과 더불어 사랑의 원칙을 전수시켜 주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강한 사랑의 힘을 가지려면 고향과 인연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고향은 그리운 곳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할 수 있는 권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자신에 차 있습니다. 만일 그 고향이 만민이 그리워할 수 있고 만복이 깃들 수 있는 본향이라면,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가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곳에서 가정을 중심 삼고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즐기면서 그 사랑 속에 잠겨 사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역사가 지금까지 흘러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 중에는 수많은 선지자들도 있었고, 또 선지자를 대표하는 성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만민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본향 땅이 이곳이다.’라고 선포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모든 성현들도 지나갔고 그 성현들이 태어났던 고향도 잊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인간의 시조 되는 아담 해와에게 그대들은 진정한 본향을 가졌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그들 역시 본향을 못 가졌다고 할 것입니다. 본향이란 행복을 노래하고 부모의 사랑과 가정의 사랑에 잠겨 천지만물을 주관하면서 천지가 기뻐하는 가운데 영원토록 살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한 본향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았던 아담 해와였느냐 할 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런 본향에 살지 못한 것을 누가 보았습니까? 봤어요, 못 봤어요? 대답이 확실치 않은데 보았어요, 못 보았어요? 「못 보았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는 말은 들었지요? 그러면 말로만 듣는 것하고 직접 보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정확합니까? 물론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는 있겠지만,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러나 말은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보는 것은 누구나 다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지요? 그런데 듣는 것이 좋아요, 보는 것이 좋아요? 「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듣는 것도 좋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으면 그 음악을 작곡한 사람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작곡가를 보면서 그와 같이 그의 음악세계에 동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가 느끼는 음악세계의 깊은 맛을 같이 느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아담 해와가 본향에서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보아서 알아요, 들어서 알아요? 보아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접 본 사람이 있느냐?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祖上)이 본향을 보지 못했으니 그 후손들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세계는 타락한 세계요, 악의 세계인 것입니다.

본향은 어떤 곳이냐

본연의 땅은 어떤 곳이냐? 악이 깃드는 곳이 아니요, 악과 절연하고 넘쳐흐르는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무궁토록 행복을 노래하며 사는 영원한 통일세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서 생활한 사람이 있었느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역사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세계를 추구했지만 그러한 세계는 이 땅 위에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세계가 어떠한 세계라고 말을 한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몸소 실천해서 그런 세계를 이룬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자도 마찬가지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본향을 창건하기 위해서 오셨으나 그 본향을 창건하지 못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예수님도 천국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왔다 간, 아무리 훌륭한 선지선열 성현군자라 하더라도 그 한 곳을 보지 못했고, 그 한 날을 맞지 못했으며, 타락한 선조로부터 악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들도 본향과는 아직까지 인연이 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기 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일 것이냐? 서로 반목질시하면서, 남이 잘되면 배아파하고, 남이 좋아하면 죽겠다고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은 전체를 대표해서 잘 되는 것이요,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전체를 대신하여 좋아하는 것이므로, 한 사람이 좋아하면 전체가 좋아하는 것이요, 한 사람이 기뻐하면 전체가 따라 기뻐하는 곳이 본향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그러한 세계에서 생활하면서 살다 간 사람이 있습니까? 혹, 영적으로 그것을 체험한 사람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실체적으로 그러한 생활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더 좋은 곳, 보다 더 좋은 세계, 이상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 또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환경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핍박의 화살을 받으면서도 찾아가겠다고 내적으로 외적으로 결심하고 다짐해 나가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할 때, 답은 간단합니다. 더 좋은 곳, 더 좋은 곳을 찾아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은 어느 정도 좋은 곳이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준의 곳, 우리가 소망하는 곳일 것이냐? 만인류가 소망하는 곳일 것이냐? 만인류가 바라보는 기준에서의 그곳이 진정한 본향일 것이냐? 우리가 바라보는 기준에서의 본향이 우리 인류가 가야 할 최후의 종착점인 본향이냐? 이상세계냐?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양심은 끊임없이 명령하는가

세계의 각 민족마다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사회의 제도가 다르고 생활 습관이 다르니만큼 본향의 세계를 구상하는 방향도 모두 다릅니다. 또한 우리 교회 사람들이 구상하는 방향과 세상 사람들이 구상하는 방향도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육적이면 우리는 영적이요, 세상 사람들이 외적이면 우리는 내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교회와 그들의 방향이 다릅니다.

동서고금의 문화권을 이루어 나온 견지에서도 같은 환경권 내에 사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방향이 각각 다르니만큼 그 소원하는 본향, 목적지도 역시 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더 좋은 곳을 찾아간다는 것만은 다를 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활에서 체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하루 24시간을 지내는 가운데 개인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생활에 있어서 부딪치는 모든 사연을 여러분의 마음이 일일이 간섭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 가서는 안 된다, 이리 가야 된다, 그 사람을 재워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을 깨워야 된다 하는 식으로 양심은 일일이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그 양심에게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간섭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그 양심의 대답은 간단할 것입니다. ‘더 좋은 나를 그리워하고 더 좋은 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밤낮없이 내게 명령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은 어느 정도로 좋은 것을 바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냐? 자신이 한 푼도 없는 가난한 나그네와 같은 신세에 있다고 해서 자신이 깃들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주는 등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당장에는 만족한다고 해도 그것이 일주일 동안 지속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당장에는 기뻐하고 좋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양심은 결코 거기서 쉬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팎으로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고 가라, 또 가라 하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억천만장자여서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은 물론 현재 복중에 있는 어린애까지도 쓰고 남을 정도의 많은 돈을 나누어 준다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안 좋겠습니까? 물론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마음에게 이제 됐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예, 이제는 완전히 만족입니다.’라고 하겠습니까?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 세계의 30억 인류에게도 모두 나누어 주시오.’ 할 것입니다. 마음에는 그런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주 가운데에서 욕심이 제일 많은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성지에 올라갔을 때 동산에 가만히 앉아서 보니 작은 벌레들이 참 많이도 있더군요. 또 새들이 종알거리고 흙냄새가 풍기는데, 자연에 깃들어 있는 신비가 참 멋있다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은 욕심 많게 많이도 창조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잔디밭 같은 데 가서 가만히 들여다 보면 조그만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하는 통로가 있습니다. 또한 잔디를 가만히 헤치고 보면 납짝한 벌레, 둥그런 벌레, 뾰족한 벌레 등, 별의별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들은 푹신해서 좋다고 하며 잔디를 깔고 앉으면 거기에서 왔다 갔다 하던 총각 벌레, 아가씨 벌레들이 불쌍하게도 ‘어이쿠, 죽겠구나!’ 하며 살려달라고 소리지를 거예요.

욕심 많으신 하나님

벌레들도 사람과 같이 호흡기관, 소화기관 등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갖추고 있는 조화스런 모든 기관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여러분은 그 세계가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세계적인 탐구가를 세워서 그런 세계를 탐구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욕심이 없다면 그런 것들을 지으셨겠습니까?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욕심이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기에 예수님도 욕심이 무한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계에 무한히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분이기에 가슴속에 품고 있던 욕심을 다 채우는 날에는 ‘깨야, 쏟아져라!’ 하며 한바탕 재미를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욕심이 많기 때문에 선생님도 욕심이 많습니다.

바다를 봐도 거기에는 별의별 어류들이 다 살고 있습니다. 또 지구도 크지요? 선생님이 수많은 나라를 다녀 보니 지구상에는 가지각색의 인종이 살고 있는데 참 흥미로웠습니다. 또 그러한 지구에 비하면 태양은 얼마나 큽니까? 태양은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데 그 태양이 얼마나 크겠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행성들이 모여서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데, 그 행성들이 움직이는 데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을 중심하고 어떤 행성은 일 년에 몇 바퀴, 또 어떤 행성은 십년에 몇 바퀴, 백년, 천년에 몇 바퀴씩 빙빙 도는데 서로 부딪치지도 않고, 또 자기 자리에서 어디로 떨어져 나가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 지구성에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어린애들의 소꿉놀이 같은 것입니다. 사실 그 정도도 안 되지요. 먼지만큼도 안 되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그래도 거기에 딱딱 붙어 사는 사람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는데 얼마나 처량합니까? 공원에 가서 어린이들이 타는 비행기만 타도 몇 바퀴 돌고 나면 어지러워서 ‘야! 야!’ 하며 소리지르는데, 24시간마다 한 바퀴씩 도는 지구에 달라붙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우스워요? 그러면서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내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큰 마음을 가진 인간은 귀한 존재

온 천하 만물에게는 그러한 소질과 욕심이 없습니다. 우주 만상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만이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마음을 펼쳐 놓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대한민국을 천개 만개 몰아넣고, 온 우주까지 몰아넣어도 다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제일 욕심 많은 하나님까지도 살짝 모셔들여서 편안히 눕혀 드릴 수 있는 아량을 가진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고귀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선생님은 과거에 생각했습니다. 만일 인간에게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그 인간은 비참할 것입니다. 아버지인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녀로서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이 마음은 무엇을 명령하느냐? 악의 자리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악은 기필코 망하게 되어 있으며, 선은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났던 모든 성인 현철들은 선한 입장에서 세상적으로 볼 때는 망하는 길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시대적 운세와 세계적 운세는, 한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천운이 가는 길을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천운의 권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운세나 시대적인 운세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세계적인 운세도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목표권 내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의 끝

여러분, 오늘 날씨가 참 좋지요? 대한민국의 날씨는 이렇게 좋지만, 전 세계의 날씨를 보면 태풍이 부는 곳, 해일이 일어나서 아우성치는 곳, 비가 오는 곳, 눈이 오는 곳 등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지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지구의 대기권 내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지구성을 넘어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면 우주에는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겠습니까?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이 절대적이고 오묘한 조화 속에서 천태만상으로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가지고 있는 돈 보따리를 모두 갖다가 소원성취를 시켜준다고 하더라도 마음에는 또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이 어느 만큼이냐 하면 하나님을 점령했다 하더라도 부족해서 ‘또 하라. 또 하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까지 점령해도 안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을 찾아야 그것을 중심삼고 비로소 영원한 안정권을 취하여 안식할 것이냐? 원수를 정복해도 안식할 수 없고, 예수님을 점령해도 안식할 수 없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점령해도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것이든 목적 없이 작용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화학적으로 관찰해 보면 잘 알 수 있겠지만, 어떠한 분자가 움직이는 데도 목적이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손해나는 작용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천지법도입니다.

우리들의 양심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 못할진대, 그 양심은 목적 없이 작용하느냐? 그렇지 않다면 과연 양심이 작용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 목적의 최종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결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 속에 있는 타락하지 않은 사랑을 점령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점령하여 내 할 일을 제쳐 놓고 역사의 한을 풀고 나서 안식할 때에는 하나님도 춤을 출 것이요, 세상도 모두 춤을 출 것입니다. 마음은 그러한 한 날을 꿈꾸는 것입니다. 참 근사하지요?

도의 길을 가는 궁극적인 목적도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좋고, 지극히 높은 영원한 세계로 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 본능이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면, 하나님을 닮아서 그런 것입니다. 천주(天主)의 욕망이 있고, 인간은 그 천주의 아들딸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은 그 기준을 닮아 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참사람의 생활 기준에 접하기를 원하고 참다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다운 마음의 중심이 서게 되면 참사랑에 영원히 접붙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아버지와 아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들은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하느냐? 모든 종교에서는 맨 먼저 신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신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신에 대해 가르쳐 주는데도 막연하게 가르쳐 주는 종교는 불확실한 종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르쳐 주는 종교가 참된 종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떠한 분으로 계시는가, 하나님의 인격은 어떠한가, 또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가 등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세계적인 종교들 가운데서 이런 내적인 깊은 사연을 가지고 나온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가르쳐 왔습니까? 아버지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땅 위의 인간들은 그 아버지와 동격의 입장으로 오시는 주님을 신랑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랑을 모실 신부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온 가정의 중심 되는 기준을 선포해 놓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많은 종교의 도주들이 찾아가는 곳은 마음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곳입니다. 만일 그들의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는 하나님을 확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확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또한 가르쳐 줄 때에도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것은 유언비어에 불과합니다. 가르쳐 주는 교리들의 차이에 따라서 종교의 분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 가운데 기독교를 중심삼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인간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말은 아버지의 뼛골을 받고 아버지의 혈육을 받아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 아버지의 피가 동하고, 살이 엉클어지고, 뼈가 마주쳐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자식이 슬퍼하면 부모는 더욱 슬퍼하고 자식이 좋아하면 부모는 더욱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그런 부자의 인연은 세상의 그 어떤 공식이나 법도로도 끊을 수 없으며, 어떤 권세나 명예로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기 아버지인데 어느 누가 나타나서 칼을 가슴에 들이대며 네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답하라고 협박하더라도 설사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 말로는 아버지를 부정할는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내 아버지다. 나는 그의 자식이다.’ 하고 더욱 다짐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를 혁신시킬 수 있고, 우주를 혁명할 수 있고, 우주를 파탄시킬 수 있는 두뇌를 가진 자라 하더라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부자의 인연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만대(萬代)를 다스릴 수 있는 특권적인 중심 사명을 갖고 왔다는 사실을 만유 앞에 천명하는 것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목적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는 신랑 신부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가 갖지 못한 사랑의 인연을, 아버지의 뼛속 깊이깊이 알뜰하게 담겨져 있는 사랑의 인연을 인간 세상에 소개해야 될 신랑 신부의 종교입니다. 많은 종교가 진리로서 자유 또는 관념적인 이상을 논했지만, 사랑이 직접적으로 생활 무대에 엉클어져서 사랑으로 뒤넘이치는 싸움의 역사를 거쳐 나가는 종교는 기독교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부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는 신랑이지만, 혼인 잔치가 끝나고 난 후에는 형제입니다. 남자에게는 형이 되고 여자에게는 오빠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님’ ‘동생’ 할 때는 벌써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횡적인 입장으로 찾아와서 주종관계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만 망상하는 종교는 이상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입체적인 세계의 내용을 갖고 횡적, 평면적인 세계의 실상을 토대로 한 종교가 아니면 이상적인 종교가 못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입체적인 세계와 관계를 갖고 몸은 평면적인 세계와 관계를 가져서 두 세계에 이상적인 터전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형제 관계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주님이면 좋겠습니까, 형님, 오빠면 좋겠습니까? 신랑 신부의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것입니다. 부부는 언제든 이혼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형제나 남매관계가 갈라질 수 있습니까?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피가 같기 때문에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나 남매관계가 더 좋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기독교가 그렇게 고대해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신랑을 모시는 것이요, 그 신랑을 맞이할 신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녀들을 찾는 것이요, 그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종족을 마련하는 것이요, 그 종족과 더불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민족을 편성해서 그들과 더불어 하나의 세계국가를 편성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보다 더 많은 전도를 하려고 하는 목적도 거기에 있습니다. 도를 중심삼고 세계인을 규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전도를 통하여 선민을 만들고, 그다음에는 세계를 하나의 고향으로, 세계인을 친척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한국 민족은 종손입니다. 종교를 믿는 후손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종자(宗子)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서양 사람들 즉 백인들 흑인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으로 하나되느냐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피와 살이 같이 통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만민은 그 살아가는 환경이 다를 뿐이지,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흑인 여자와 결혼해서 살면서 흑인 아이를 낳고, 그러다가 다시 백인 여자와 결혼해서 백인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백인의 아버지도 되고, 흑인의 아버지도 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아버지는 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세계 인류가 한 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한 형제라는 심정이 우러나게 하지 않으면 세계인의 통일은 불가능하고, 만대의 규합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청년 남녀들을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을 사랑하다가도 그 사람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마음이 변하여 그 사람을 사랑해 버립니다. 또 안팎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천하가 다 존중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나게 되면 자기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사람보다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의 남편들은 자기 부인이 예수님 믿는 것도 못마땅해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인이 남편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거든요. 또 예수님과 하나님을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신랑인 예수님보다도 아버지인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면

신랑이 더 좋으냐 아들딸이 더 좋으냐 할 때, 신랑보다는 아들딸이 더 좋은 것입니다. 부부는 갈라질 수 있으나 아들딸과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족보에서 파낸다 하더라도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이혼하고 헤어지면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들딸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그립고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녀를 가져 본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사는 부모들도 그것만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아들딸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로 바라는 것입니까? 신랑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이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랑의 사랑을 밟고 넘어서서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사랑만을 소개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만민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 39절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의 사랑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사랑 받기를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춘다느니, 뭐 어떻고 어떻다느니 별의별 욕들을 다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은 춤 한 번도 춰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물론 통일교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봤어요? 또 마음을 봤어요? 하나님이나 마음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 큰일 납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기분이 좋겠습니까? 마음이 없는 것은 죽은 몸인 것입니다.

우주 만상이 작용하는 목적

사람의 마음은 운동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창조원리를 들어서 잘 알겠지만,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기준이 되어서 잘 주고 잘 받으면 힘이 생기게 됩니다. 힘이 생기게 되면 서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면 번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 혼자서는 절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이 들어맞았다는 것입니다. 좋아하게 되면 까닭 없이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몸을 끌고 다니는데 ‘이 사람 아니면 나 죽는다.’는 식으로 죽음을 뛰어넘어 몸을 끌고 다닙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끼리 악한 사람은 악한 사람끼리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동 경기를 할 때에 잘 뛰는 사람은 잘 뛰는 사람끼리 모여서 달리기를 하고, 씨름판에서는 씨름을 잘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그냥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서로 어떠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용은 손해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느 누가 손해 보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장사를 하는 것도 손해 보기 위해서 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손해 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손해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가 손해보지 않고 무엇인가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전부 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작용입니다.

어느 누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손해 보기 위해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들의 행동도 자세히 보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그러겠습니까? 또 동물도 그렇습니다. 동물들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명동에 나가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당신 오늘 얼마나 손해 보았소?’ 하고 물어보면 물음을 받는 그 사람은 얼마나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손해보지 않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기분 나빠할 텐데 실제로 손해를 본 사람에게 ‘오늘 손해를 봤으니 잘 됐구만.’ 한다면 욕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실제로 손해를 봤다 하더라도 손해 봤다고 말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듯 작용하는 근본 목적이 무엇이냐?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다 보태가 위해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것은 전부 다 이익을 보기 위해서이지 절대로 손해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평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은 평화와 화목, 충(忠) 화(和)인 것입니다. 평등은 수평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수평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하 관계, 고저 관계에 있던 것이 어떤 작용을 거쳐야만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고저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높은 곳에서 받아서 낮은 곳에 보태는 작용을 거쳐야만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두고 볼 때 수평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부터 받아야만 수평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차적인 이념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고차적인 정신의 위안처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를 능가할 수 있는, 고차적인 세계적인 종교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수평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부터 힘을 보급받아야 됩니다. 자기 자체 내에서 보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보급을 해 주는 곳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급을 해 주는 곳은 높은 곳입니다. 높으면서도 나쁜 곳이 아니라 높으면서도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만민이 전부 가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곳, 다시 말하면 만민이 이상(理想)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이상은 뭐냐? 잘 먹는 것도 아니요, 잘 자는 것도 아니요, 참사랑입니다.

인간의 이상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여러분이 옷을 빼앗아 입어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네 집에 찾아가면 어떻습니까? 마음과 몸이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세포까지도 편해질 것입니다. 부모의 품이 그리운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얼마 동안만 지나게 되면 어떻습니까? 편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쫄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게 평(平)입니까? 화(和)입니까? 평이란 모든 것이 풀리는 것입니다. 안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끄나풀이란 끄나풀은 다 풀어 놓는 것이 안식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역사 과정에서 본연의 마음을 중심삼고, 본연의 마음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단 하루도 안식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인간은 하나의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데는 두 사람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딸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자면 사람도 모여야 되고 춤과 노래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만 하면 되지 무슨 노래가 필요하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감정을 넣어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래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 ‘가만히 서서 있으면 됐지 춤은 왜 추어야 하느냐?’ 할지 모르지만 춤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것에 도취되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창(唱)이라도 한번 불러보면 그저 뼈속에서부터 흐물흐물해지고 세포들이 들썩들썩하고 눈이 어물어물해지고 눈물까지 나오는 요동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하냐?

아버지와 자식이 둘이서 들여다보기만 해도 좋지 않느냐?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천지의 조화가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 아버지와 자식, 둘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대조건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만약 여자들만 있는 세상이라면 여자들은 여자들만 자꾸 만나는 것이 싫을 것입니다. 또 남자들끼리만 살게 되면 남자들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부모님이 있으면 자식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형제자매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을 위해서이겠습니까? 형제를 위해서이겠습니까?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겠습니까? 나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형제자매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모두가 다 나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아서 입이 저절로 벌어집니다.

인간에게 욕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보따리째로 받아서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혼자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아버지를 위해서 태어났고, 선생님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얼마나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몇천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왔다 갔지만 모두가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왔다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막 8: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위한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선생님이 집에서 아기들을 돌보아줄 때, 큰아이들을 먼저 품에 안아 주면 어린 동생이 그걸 보고 ‘아빠, 나도 안아줘요.’ 합니다. 오빠나 언니를 안고 있는 팔을 그 조그만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아빠, 나도 안아줘요.’ 그럽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본향의 땅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랑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아니면 예수님을 위해서?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나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믿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믿는 것입니까? 이것 역시 나를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야 할 세계는 본연의 세계요, 그 본연의 세계는 어차피 이루어야만 되는데 그 세계를 나 혼자서 이루려고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하면 그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나 때문에 세상에 나타났고, 하나님도 내 속에 들어 있고, 세계도 내 손에 달려 있으니 오직 택함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내가 주체이니만큼 주체와 대상이 잘 주고 잘 받으면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된 자리에 서게 되면 그도 나요, 나도 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법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도의의 조건을 찾으려고 선후 관계를 논의하고 심문하는 세계는 불안한 세계인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선후 관계가 완전히 하나되어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주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아가려면

그러면 온 세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가느냐? 본향의 땅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가인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던 것도 본향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던 것도 본향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길에 방주라는 조건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길을 단축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목적지인 본향 땅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의 고향 산천도, 자기의 조국 강토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본향은 둘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바라보던 이상세계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만민이 공히 안식할 수 있는 본향의 천지를 향하여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개성도, 자신의 일개 나라도, 내 자신의 모든 꿈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중심삼고 계대를 세워 나가려고 한다면 본향을 찾아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서 일편단심으로 본향 땅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더더욱 참다운 곳을 찾아가겠다는, 그 일념으로 먹고, 그 일념으로 자고, 그 일념으로 희로애락을 느끼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버렸고, 모세 역시 자기 민족의 본향 땅 가나안 복지를 찾기 위해서, 만민이 깃들 수 있는 본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호화찬란한 바로의 궁중과 왕자의 자리를 모두 버리고 광야 생활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고객한 것도 그들의 고향, 본향 땅을 찾아가기 위해서였으며,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유리고객하였던 것도 역시 소망의 본향 땅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이동하거나 혁명을 일으켜서 역사가 변천해온 것도 역시 본향 땅을 찾기 위함이요, 본향의 세계로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그 길은 세계 인류가 가야 할 공동운명의 길이기 때문에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그 운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운명을 해결해 나가야 할 주인공들이 누구겠습니까? 그 길에는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므로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도의 길을 책임져 나가는 지도자들과 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그러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본향 땅을 세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들로서 세상을 정화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인간세계의 인륜적인 종교인들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만 하나의 인격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인격은 몸 자체만으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격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통해서 몸이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격은 마음과 몸을 통해 평면적인 환경에서의 인간관계를 중심삼고 사회성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내적인 분야, 즉 관념의 세계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실천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영적인 면, 즉 내세만을 추구해 왔지만 사람은 내세에 가기 이전에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세계를 통해서 내세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종교는 내적 세계를 통해서 외적 세계, 현실을 그려 나왔던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외적 세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외적 세계는 이미 사탄에 의해 점령당했기 때문에 거꾸로 내적 세계를 먼저 준비해서 외적 세계를 추구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류는 본향을 찾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본향 땅을 찾기 위해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참되게 숨져 갔습니다. 온갖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않고 본향 땅을 찾아 나가다가 순교를 당한 선지선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책임

본향 땅을 찾아가는 데는 혼자서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조상의 공적이 있으면 조상을 자랑하고 싶고, 자기 부모의 공적이 있으면 부모를 자랑하고 싶고, 부모가 이름이 났으면 부모의 이름을 들어서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역사적인 인연을 존중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이 있는 것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어제를 빛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실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서, 과거를 참되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찾다 보니 참된 길을 찾게 되고, 참된 길을 찾다 보니 참된 종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종교의 터전 위에서 본향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을 빼놓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사명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믿는 사람을 생명시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화하고, 사랑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모든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되느냐? 사랑의 본향을 찾아가는 데에 영향을 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랑에 의해서만이 화평이 이루어지고 사랑에 의해서만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어떠한 사랑이 있느냐? 내적 사랑과 외적 사랑, 즉 정신을 위한 사랑과 물질을 위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도 내적인 사람과 외적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색 인종의 어느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을 하는 데는 어느 정도로 사랑해야 되느냐? 그보다 우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만민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만민을 형제처럼 사랑하고 만민을 자녀처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그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갖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갖기 위해서는 부모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부모의 심정을 찾기 위해서는 본향 땅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본향에 가서 부모의 심정을 찾아야 합니다. 아무리 도를 추구하고, 세상 일에 능숙하고 능통하다 하더라도 부모의 심정을 통하지 못하고서는 자식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부모의 사랑으로 인하여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거짓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태어났습니다. 이 말은 본향의 원칙을 중심한 정상적인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도중에 타락했습니다. 본향 땅에 들어가 안식한 후의 부모의 사랑을 중심으로 태어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부모의 사랑을 찾기 위해 본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 본향을 찾아가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부활되고 중생되어야 본향의 아들딸이 된다

그러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어디까지 떨어졌느냐?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점점 내려가서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친지의 사랑, 친구의 사랑을 지나 종의 사랑, 종의 종의 사랑에까지 떨어져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찾아 본향 길을 가는 데는 다시 거꾸로 찾아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도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종의 종의 입장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종의 종의 입장에까지.

종은 주인이 있지만, 종의 종은 주인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종의 과정을 거친 후에 양자의 자리까지 찾아 올라가야 합니다. 양자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요? 만일 자기에게 직계 자녀가 없어서 모든 유산을 양자에게 상속해 주어야 한다면 기분 좋겠습니까? 양자와 직계 자녀는 서로 핏줄이 다를 뿐만 아니라 골육 등의 모든 생김새도 다릅니다. 그런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직계 자녀로부터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또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종의 종의 사랑에서부터 종의 사랑, 양자의 사랑, 직계 자녀의 사랑을 거쳐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자식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람의 생명은 반드시 부모의 사랑을 거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는 기준이 있어야만 부모의 심정을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사랑이냐? 참다운 사랑의 주인공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다운 부모의 심정, 참다운 부모의 사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중생할 수도 없고 부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을 찾아야 하느냐? 대개 여러분들은 상대의 사랑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고 부활되고 중생되어야 비로소 본향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부모의 사랑을 받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다시 태어나야만 본향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본향에 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낙원까지는 가겠지만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누가 있어야 되느냐? 부모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려면 어머니의 복중에서 10개월을 지내는 것과 같은 입장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태아가 어머니의 모든 영양소를 받아서 자라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러한 입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부모를 만났다고 해서, 부모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세계로부터 찾아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부모가 타락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향 땅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번 뒤넘이쳐서 다시 한번 어머니 복중에 들어갔다 나오는 중생의 과정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천진난만한 어린애와 같은 입장에서부터 자라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려면 어머니 복중에 들어가는 입장에 서기 전에 아버지 뼛골에 들어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1960년 전까지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척 보면 심정적으로 다릅니다.

축복과 탕감조건

아무리 자기가 본향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하더라도 완성급에 이르러서 상대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완성급까지 나가는 데는 아직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소생급 이하에서부터 출발되었지, 완성급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생급에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서 완성급에까지 연결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의 인생살이에서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는 길에서는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믿고 아무리 잘 한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도 완성의 고개를 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본향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 수 없습니다. 그 본향 땅에 들어가려면 부모의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체가 부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심정이 중심이 되어야지 자기가 중심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소위 축복을 놓고 볼 때, 문제는 무엇이냐? 축복을 받기 위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비장한 내용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타락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타락의 혈통을 치고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천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핍박을 받아 왔고 심정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이제까지의 사적인 모든 인연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전부 갈라놓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본향 땅이기에 본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본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본향을 찾기 위해서 우리 타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은 타락 전의 입장으로 완전히 복귀되지 못했습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완성하여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지 못했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이 승인할 수 있는 참다운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참다운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세계적인 승리를 하여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를 내 동포와 같이 사랑하여 탕감의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혹은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의 접붙이는 진리는 참진리

끝날이 되면 기독교에서는 주님이 오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오신다면 남자로 오시겠습니까, 여자로 오시겠습니까? 「남자로 오십니다.」 주님은 남자로 오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허깨비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두꺼비로 태어나야 할 텐데 개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공작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수탉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격입니다. 종자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롭게 접을 붙어야 합니다. 종류가 비슷하기 때문에 접은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의 접붙이는 진리가 참진리입니다. 접을 붙이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싹둑 잘라 버리고 새로운 순을 갖다 접붙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생명력과 새로운 씨족을 접붙여서 자기의 생명 전체를 유지하는 중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는 위해 주는 종교로서 그런 역할을 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개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은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어머니입니다.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땅 위에서 여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밭이라고 하고 남자는 하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들은 생명의 씨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 그 자체보다도 생명의 씨로 돌아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1960년까지가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통일교인들이 선생님을 보고 싶어서 야단하던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선생님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뼛속에서부터 앞으로 태어날, 아직까지 선악을 번식하지 않은 아들딸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 인연을 맺는 데는 심정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내 집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처음 왔지만 처음 온 것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와서 한 3일 정도만 은혜 받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보면 마치 자기 집이 도깨비집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이 도둑놈같이 보이고 자기 자녀들이 도둑놈의 새끼들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만 오면 제멋대로 생긴 사람도 그냥 좋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고향 사람이면 어느 누구든 다 좋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인데도 대하는 마음이 옛날과 전연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뒤넘이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정을 중심하고 주님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생활 감정도 주님과 같고, 죽어도 주님과 같이 죽고, 살아도 주님과 같이 살며, 기뻐하는 것도 주님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직 장가가지 않은 입장에 있는 아버지, 즉 주님 속에 있는 아들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신랑으로 오신 주님이 신부를 맞이하여 부부를 이루면 그 신부, 즉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통하는 그 기간이 바로 여자를 상징하는 땅을 중심삼고 수고하는 기간입니다. 그 어머니를 통하여 그 자신의 부활과 동시에 조상들을 부활시키고 민족과 국가까지도 부활시켜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처럼 반드시 주님을 통해서 빚어져야만 본향 땅에서 살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내가 되어야만 역사 앞에서 비로소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 부를 수 있고, 이러한 입장에 선 개인들을 형제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형제가 모여 친척을 이루고, 이런 친척이 모여 종족을 이루고, 이런 종족이 합해지면 민족이 되고, 이런 민족이 합해져서 국가가 되고, 이런 국가들이 합해져서 비로소 세계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을 중심삼은 한 뿌리에서 생겨난 세계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세계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세계가 될 것이요, 하나님을 위주로 한 땅, 즉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본향입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있다는 자각

오늘날 ‘나’라는 존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있느냐? 이 타락한 세계의 모든 사연을 밟고 넘어서서 개인적인 부활과 더불어 가정적인 부활, 민족적인 부활, 국가적인 부활, 세계적인 부활을 이룬 자리에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모시기 위하여 우리들은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니 그런 하늘의 사명을 각자가 충실히 책임져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책임을 지고 가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도 아까 누구를 위해서라고 했습니까? 나,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오시는 것도 나를 위해서요, 참부모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도 나를 위해서요, 또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형제와 친척이 생긴 것도 다 나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잘났든 못났든 자기와 혈연적인 관계가 맺어진 친척이요 종족이니만큼 그들의 수치는 나의 수치요, 그들의 부끄러움은 나의 부끄러움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본향의 사람으로서, 본연의 사람으로서 온 천지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우주적인 자아이므로 만유의 전체는 나 한 사람의 완성을 위해서 역사와 더불어 동원되었고, 피조만물 전체도 나 한 사람의 완성을 위해서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 각자가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는 나 때문에 태어났고, 나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크고, 하면 할수록 더 발전하고, 하면 할수록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하는 데는 본향 땅을 중심삼은 사랑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있거들랑 그 사람이 누구 때문에 왔느냐면 나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세요. 그래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오는 시련은 전부 나를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나에게 원수가 있겠어요? 원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손에 못을 박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원수라 할지라도 원수로 생각하지 않고 ‘저들은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이 한때에는 나를 학대하는 골짜기에 서 있지만 결국은 나를 위해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박대해서는 안 된다. 저들을 박대하게 되면 내 사명이 완결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한 것은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도 복귀노정을 가시지 못합니다. 인간들 때문에 수고했고, 인간들 때문에 6천년 역사노정에서 슬픔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 자신도 본향에까지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하면 이단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이다.’ ‘당신은 나 때문에 있고, 내가 이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도 나 때문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가는 것이지 아버지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아의식을 더욱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기 완성의 목적-우주 완성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예수님의 남은 노정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그것도 모른다면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스로가 그러한 경각심을 높이고 일차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 하나를 완성시키고, 나 하나를 위해 주고, 나 하나의 뜻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사람의 마음 자리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돌도, 이 산에 있는 풀도, 나무도 전부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관념이 다르고, 문화의 배경이 다를지라도 모두가 나의 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를 중심삼고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그런 우주권 내에 들어간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몰림의 길을 간다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 자리는 얼마나 행복한 자리이겠습니까?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이나 겉으로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아무런 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계에 가 보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계도 지상세계와 마찬가지의 세계입니다. 그 영계를 크게 보면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영인들 가운데는 눈 같은 영인들이 있고, 귀 같은 영인들도 있고, 손 같은 영인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주를 완성하는 데도 하나의 세포들이 모여서 형성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천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눈을 통하는 피가 ‘아이고, 난 눈에만 가지 절대 저 발끝에는 안 갈래.’ 이러겠어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신을 돌아서 때가 되면 저 밑창까지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 필요합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영인들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그들과 닮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천만 민족만으로도 부족하고, 30억 인류로도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과 닮은 입장에서만이 그들과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이구, 난 달라! 난 나 혼자면 된다.’ 이러는 사람도 복귀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인류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뭐냐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 내가 있다.’ ‘만민을 위해서 내가 있는 동시에 만민은 나를 위해 있다.’ 언제나 이런 입장에 있었으므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세계를 중심삼은 모든 이념은 낡아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와 함께 그것들을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는 십자가권 내로 들어갔던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그것들도 역시 부활권내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예수님 혼자 살다가 돌아갔지,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시작부터 존재의 끝까지 전부가 나 하나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모든 것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나가야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온 우주가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기준을 넘어서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서 알아내야 됩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 하나 완성과 더불어 우주가 완성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입장에서, 부모의 심정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친척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실감적으로 느껴지는 자리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그 기도는 세계를 위한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가 되어 사는 곳이 본향

눈물겨운 참사랑 앞에는 세계가 끌려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가 일체 되는 기준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한 본향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본향 땅에도 갈 수 없을 뿐더러 본향 땅에 찾아갔다 해도 본향 땅으로 넘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향 땅에 가서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면 그 사람에게는 본향 땅이 없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마음대로 나왔다가 마음대로 들어 갈 수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주인이 이 땅 위에 어찌 거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가 가는 데는 죽어서 가셨습니다. 마음대로 왔다가 죽지 않고 마음대로 가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는 데는 핍박이 없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이 되어야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이 땅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동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와서 하나될 수 있는 아들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된 사람은 그 사랑권 내에서 영원무궁토록 만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기 때문에 하늘의 공주가 되고 하늘의 왕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복귀노정을 통하여 인간들을 찾아 나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만인의 주인이요, 만유의 주체이십니다. 아울러 만국의 주체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 즉 하늘나라의 왕자는 누구이며, 하늘나라의 공주는 누구이겠습니까? 왕자는 주님이시고 공주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그 주님과 신부를 중심삼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과 주님의 신부는 인류의 조상이 되며,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들의 사랑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게 되면 부모의 입장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제2의 왕자와 공주의 입장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민은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본심이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도록 작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백 퍼센트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의 자세를 갖추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은 본래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의 왕자와 공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모든 소유와 하늘나라의 모든 운명이 우리 것이 되며,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연도 내 것이요, 아버지의 모든 소유도 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하에 갖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즉 사랑이 있고, 사랑 이외의 모든 부대 요건까지 전부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비로소 우리 인간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요, 우리의 본향인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기 도>

저 멀리 역사적인 종말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고,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드높이 세우시고 저희들의 가야 할 길을 재촉하셨다는 것도 몰랐나이다.

아버지! 이렇게 무지한 저희들이 곁길로 갈 적마다 앞으로 인도하시어서 역사의 종말시기인 오늘날까지 이끌어 오시기에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던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시여! 저희의 마음이 어디에 깃들고자 하옵니까? 또 저희의 몸이 어디에 더 머물고자 하옵니까? 저희의 마음과 몸이 깃들어야 할 곳은 본연의 깊은 아버지의 사랑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 자리까지 가지 못한 뭇자녀들을,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 자리를 그리워하는 데는 눈이 시리도록 그리워해야 되겠고, 그 자리를 사모하는 데는 마음이 아프도록 사모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그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모진 투쟁을 해야 되겠사옵고, 천번 만번 망하여 쓰러져서 패자의 서러움을 당할지라도 또다시 재기하여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저희의 의무인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저희의 마음과 몸을 친히 지휘하여 주시어서, 이 싸움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패한 자의 서러움을 저희들이 뼈저리게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타락한 후손이라는 사실 또한 뼈저리게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조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아버님의 복귀섭리를 담당해 나온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였사옵니까? 그 사실 또한 뼈아프게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저희들이 아버님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자신들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되겠사옵나이다. 지난날의 자신을 보고서도 그렇게 느껴야 되겠사옵고, 현실에 처한 자아의 모습을 보고서도 그렇게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리워할 줄 아는 모습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승리,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을 찾아 드리기 위해 저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스스로를 존중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모든 존재의 양상을 통하여 아버님을 찬양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야 되겠사옵고,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주체적인 그 무엇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아버님의 사랑을 느끼는 마음 마음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이 없다면 저희들은 안식할 수 없사옵고, 아버님의 사랑이 없다면 저희들은 아버님의 심정을 느낄 수 없사오니, 결핍된 저희들의 마음에 아버님의 사랑의 물결을 퍼부어 주시옵고, 재생의 은사를 불러일으켜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통일의 역군들이 이날에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예배드리고 있는 줄 아오니, 그 자리 자리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실 것을 저희들은 믿사옵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져서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비록 혈통이 다르고 역사와 전통과 풍습은 다르지만 아버님을 중심삼고 같은 혈족과 같은 심정권에 있는 무리들이옵니다. 이들이 같은 눈물을 흘림은 심정이 서로 통함이요, 이들이 서로 사연을 나눔은 같은 인연으로서 사정이 통함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모든 사연이 세계 만민과 같이 나눌 수 있는 사연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모든 체휼적인 감정이 만민의 심정과 생활 가운데에 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이렇게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하늘을 동원시키고, 땅을 동원시킬 수 있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 아래 싸움의 행로를 향하여 전진해야만 된다는 것을 저희들 각자가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복귀의 노정을 바라볼 때에, 이 노정을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아버님은 이 시간도 애타게 호소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싸움터에서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 책임만은 끝까지 짊어져서 아버님 앞에 승리의 개가를 불러 드릴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복귀의 싸움터에서 승리의 영광을 갖추어서, 아버지께서 만유 앞에, 만민 앞에 내세워 자랑하실 수 있고 아버지로부터 칭찬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향의 땅을 찾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본연의 형제를 찾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본연의 부모와 본연의 자녀들을 가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님께서 사랑으로 경륜하시려던 기쁨의 목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오늘을 거룩되게 받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아버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모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고, 아버님 앞에 절대로 손해나는 행동을 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전체 앞에 이익 되는 그 무엇을 남길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선의적인 일을 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사랑의 터전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사명과 선각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민의 한이 아직도 남아 있사오니 이 한을 풀기 위해 새로운 생명의 원천을 개척하여 그들에게 사랑의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게 해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직접 운행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공헌자가 되고 선각자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남아진 날들 위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영원한 당신의 소원이 저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여러분은 6월부터 9월까지의 4개월 동안에 매월 3명씩 12명을 전도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여러분의 친척이나 친구들이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정성들여 전도해야 합니다.

정성들여서 얼마나 하늘이 협조하는가 보세요. 땅에서 자기의 친척과 친지를 전도하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그들의 참소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들인 것을 누구에게도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자는 남몰래 정성들인 사실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원래 천국은 세계복귀를 완성한 후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아직 천국에 못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자격자로 오시는 분이 주님이기 때문에 그와 일체를 이루어 세계복귀를 완성한 후에야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악을 대해서는 무자비하지만 선을 대해서는 한없이 약하기 때문에 사탄보다는 하나님을 더 무서워합니다. 영계의 일은 복잡한 것인데, 자기가 영계에서 받은 것만을 가지고 교만한 태도로 나가다가는 꺾여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사장과 아담이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천사장과 내가 하나되어 사탄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협조하는 천사가 있어서 나와 천사가 하나될 때 비로소 사탄을 막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신령역사로 기반을 닦고 진리로써 실체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신령을 세우고 실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 전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 받았던 사람이 뒤에 더 클클해하는 것은 신령은 있으나 진리에 의한 실체가 없으므로 플러스만 남아 수수작용의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이제까지 생모(生母)에게 수건 하나를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먼저 정성들인 후라야 허락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형님은 가인 중의 가인이었습니다. 동생이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형님에게 진리의 말씀이나 다른 알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밤에 자다 일어나면 다시 그냥 자지 않고 반드시 기도를 하고 잡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식구들은 선생님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지구(地區)에 있는 식구는 지구장의 마음, 또 협회장의 마음, 마침내는 선생님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모두를 천국에 데려가고 싶지만 하나님 앞에 내세울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공사(公私)의 구별을 확실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백 명의 식구가 있을 경우 백 명의 화목의 중심이 되면 하늘 앞에 기억될 수 있습니다.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빚을 져 가면서도 초교파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탄과 하나님이 화해하게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는데, 이 조건을 세우면 하나님도 곤란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어떤 일을 해도 이 조건에는 걸리지 않기 때문에 사탄까지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자녀들도 사탄세계의 법도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선생님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법도로써 해결하여 청산해야 합니다.

뜻을 위해서 자기의 자식을 버려둔다 해도 그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거양득인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여자는 본성의 딸이 못되고 신부가 못되고 어머니가 못되었습니다. 남자도 본성의 아들이 못되고 신랑이 못되고 아버지가 못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담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어려야 하는데 그것은 딸, 아내의 심정복귀실체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선생님이 출생하기 전부터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 요지>

혼자 살더라도 기쁘게 천국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천국에 갈 수 있고 축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로운 자리에서도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아도 영계에 가면 천법에 걸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복을 받고 그것을 만민에게 나누어 주어서 그들도 기뻐하며 감사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보다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지할 수 있게 해주려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 고난의 길을 가려는 사람입니다.

축복을 받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축복을 나누어 주려는 사람은 적으니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선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영적인 지도를 받는 사람이 불평하게 되면 천법에 걸리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불평은 풀 수 없는 죄과를 남깁니다.

축복을 받지 않고 천법에 걸리면 일방적으로 걸리는 것이므로 벗을 길이 있으나, 축복을 받은 후에 깨어져서 천법에 걸리면 사방성을 갖고 걸리게 되므로 수습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야 할 마지막 초점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국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은 감사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부는 천국 건설의 총본부이기 때문에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뜻을 중심삼고 만민에게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본부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판받는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한 인격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열두 진주문을 왕래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천국을 바라고 나가는 자로서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를 언제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혼자서라도 기쁨과 감사로 생애를 마칠 수 있는 사람이나마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를 빨리 받는 길은 자기의 자식이나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에 있습니다.

교역자들의 아들이 잘되지 못하는 것은 교역자들이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보다도 남의 자식이 잘되기를 기도해야 그 복이 자기 자식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출발점을 떠나서 다시 그 점에 돌아올 때는 출발시보다 더 높은 기준 위에 서지 않으면 승리한 자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축복은 왜 받느냐? 복을 나누어 주어서 그 복이 온 세계에까지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는 일에 절대복종하겠다는 태도를 가지게 되면 모르는 가운데서도 그 주님의 뜻을 상속하여 주님이 가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심은 시대의 운세에 의해 끌려가지만, 천국을 이루는 일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천국을 이룬 후라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불평불만이 있는 사람이 축복을 바라는 것은 그 상대자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기 혼자서도 천국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축복을 바란다면 그는 도적입니다. 탕감의 노정을 끝내는 것이 축복보다 더 중요합니다. 축복을 바라기 전에 탕감의 노정을 마치기를 더 간절히 원해야 되며,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할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식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식구들도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서게 되면 완전한 대상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 중의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뜻 가운데 서야 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를 아벨의 입장에 세우고 따라야 합니다.

후세에 복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사람은 편안히 지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도 그러했으니 식구들도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판가리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자리에서 복귀섭리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세상에 퍼져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반대 받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반대를 받긴 받았지만 그것은 세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반대하라고 하면서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반대 받는 입장에서 이루어진 실적은 참것으로 천국 창고에 쌓이게 되는데, 이것을 꺼내어 만민에게 나누어 줄 때 그것은 만민이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받을 수 있는 귀한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뜻

여러분들은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작은 조건을 통하여 큰 것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백 사람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한 사람이 그 백 사람을 대신하여 사탄에게 맞는 자리에 있어도 불평 불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마음으로는 천국을 소유하고 그 자리를 감당해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선한 한 사람이 맞은 대가로 백 사람의 죄가 탕감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추위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천국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죽어도 하늘이요, 살아도 하늘이요, 태어난 것도 하늘 때문이요, 사는 것도 하늘 때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출발하여 하늘의 과정을 거쳐서 하늘로 종착점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그런 자리를 감당해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백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인간 백 사람의 대표로 한 사람을 세워서, 그가 백 사람 대신 맞아 백 사람이 맞을 것을 용서 받아 가지고 악한 자리에서 선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탕감복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탕감복귀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여기에 있는 참다운 사람 서너 명만을 중심하고 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이의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런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일본에 간다고 하면 지방에서는 밤새도록 기다리며 전화니 무엇이니 해 가지고 ‘내가 그 은사를 천번 만번 갚을 테니 그저 편지 한 번만 해주소.’ 하고 부탁들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지방에서부터 그런 연락이 옵니다. 이것은 본부에서도 모르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번 기간이 어떤 기간입니까? 탕감복귀의 기간입니다. 또한 이번 기간은 전도기간이기도 합니다. 전도기간으로 출발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선생님이 세계 40개국을 중심삼고 그 3배인 120개 이상의 성지를 택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땅과 인연을 맺어야 할 관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탕감복귀를 위해 3년간 많은 생각을 해 왔고,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인류역사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좋은 세계가 이루어져도 그것이 영속되지 못하고 어느 기간이 지나면 나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탕감하는 데 있어선 반드시 들이맞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어떤 중요한 일이나 중대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면 그것을 앞에 놓고 정성을 들입니다. 또 자기가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도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백일기도니 무슨 기도니 하며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더욱이 종교를 믿는 신앙자들은 열심히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성은 왜 들이느냐? 그것은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성과 탕감

여러분이 앞으로 해야 할 중대사가 사탄에게 침범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택함 받은 사람이 버림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모든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탕감을 달게 받겠다는 입장에서 모든 악의 요소를 탕감 지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제대로 하면서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성이란 먹을 것 다 먹고, 잠잘 것 다 자고, 입을 것 다 입는 그런 자리에서는 절대로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중대사를 앞에 놓고는 반드시 하나님과 자신과 담판 짓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리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리지 않거든 내가 솔선해서라도 미리 맞는 것입니다. 맞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상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해 오신 복귀섭리의 법칙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이 기간을 특별한 기간으로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성지도 일정한 기간 내에 순방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공장에도 여러 번 들르지만, 그런 때에도 마음으로는 우리가 가는 길을 위해서 선생님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외국 식구들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크나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 본부교회 식구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까지 생각하느냐 하면, 선생님은 층계를 구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선생님은 밥을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화장실도 안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뜻을 알고 나서는 최고의 기준으로 한국과 선생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보면 낯이 간지럽습니다.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낯이 간지럽고 마음이 간지럽다는 것입니다. 어디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들 이상으로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현금이나 예물을 드릴 때에도 몇십 번씩 기도하고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성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때 그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그 정성들인 예물에게 심판당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군왕도 자기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즉 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또 그 군왕을 따르던 동료들도 그 사람을 반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렇게 정성들이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 있어서 틈틈이 성지를 돌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과거에 하나님이 선생님을 대해 나오던 모든 것을 돌아보면서 반성할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사정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협조해 주신 그 은사를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여 있는 수많은 식구들이 자라나온 과정은 천태만상입니다. 출발에서부터 앞으로 천국문에 연결될 때까지 모두가 다른 길을 갑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심정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협조해 주신 심정의 인연을 그들에게 연결시켜 가지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기간에 성지를 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특별히 집회하는 것도 역시 그 취지에서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할 때 옛날의 통일교회 식구라는 기분으로 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기분으로 여러분을 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 기간 동안 어떻게 해야 여러분과 더불어 하나님이 내려 주신 새로운 사명과 목적을 중심삼고, 새로운 심정과 새로운 도의의 법도를 토의하면서 서로 하나되어 가지고 나아 갈 수 있는 새로운 심정을 유발시키겠느냐 하는 것이 이번에 선생님이 생각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간에 여러분이 통일교회 초창기 때부터 들어와서 하나님을 믿고 모시고 나오면서 생활했던 전반적인 상황을 전부 발표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신앙 고백이라든가 간증을 통해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많은 사연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이냐? 그것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복귀노정에 있어서 기필코 그러한 사연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복귀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 그 사람은 몰랐지만 하나님이 공식적으로 그런 책임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그들 앞에 그런 사연들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런 사연들로 말미암아 탕감역사가 발전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일본 식구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선생님이 지금 제일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심정이 일본 식구들의 간절한 심정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외로운 자리에서 허덕이면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점령하고 저 나라의 천군천사 앞에서도 그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높은 심정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을 긍휼의 마음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저 뭐 어떻구 어떻구 하면서 오가는 손님같이, 습관적으로 집회에 참석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조건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또 한국 사람 앞에 일본 사람은 민족적인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뜻을 대하여 나서는 그 발걸음이 언제든지 그들보다 우세한 기준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요, 그들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욕망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보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심적 기준과 모든 것을 탕감해 나오는 그들의 심적 기준을 비교해 볼 때 여기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대학 가는 것을 제재해야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이 있다면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명을 듣게 되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새로운 희망을 일본 식구들에게 넘겨주고 자랑하고 보여 줄 수 있는 심적 기준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가장 큰 염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사람들한테 사탄 노릇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늘이 바라볼 때, 심정을 다하여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 한국 식구들이 일본 식구들에게 져서야 되겠어요? 또 가만히 앉아서 ‘지지 않겠다. 나는 천국을 이루겠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니 꼭 해낼 수 있다.’고 말만 해서 됩니까?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해낼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자신 있습니다.」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보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 세계 순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 하나님 앞에 공증을 받았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마중 나오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요전번에 해외에 갔다 올 때에 약 천여 명의 식구들이 비행장 구석 구석에 모여 가지고 선생님이 온다 하니까 뭐 고개를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했는데, 다음에는 그것 좀 단속해 달라고 내게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곤란한 점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돌아오는 길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기도를 하려고 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기분이 조금 상했었습니다. 마중을 나왔으면 조용히 비행장 한쪽에 서서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이번 특별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좀 섭섭하긴 하겠지만 선생님의 사정을 보아서라도 요전에 명단을 적어 냈던 확실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참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라는 명사가 왜 중요하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탕감복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연의 길을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찾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길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어느 사람이나 모두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했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반드시 조건을 세워 놓고 가야 합니다. 탕감 길을 가기 위해서는 조건이라는 다리를 세워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중심-하나님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소망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바라는 소망인 것입니다. 또한 본연의 창조이상세계를 부여해 주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던 하나님의 소망도 역시 인간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하는 자리가 영원한 본연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셔야 하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서 내려와야 되고,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는 그냥 올라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계약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기 위해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도 여기에는 반드시 계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약은 누구하고 하느냐? 또한 계약하는 데는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 계약하는 데는 반드시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반드시 복귀되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본연의 세계로부터 떨어졌으니 탕감복귀하여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데는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탕감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이 무엇이냐? 계약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혼자서만 ‘내가 여기에다가 하나의 조건을 세웠으니 여러분들이 천년 동안 여기에 있으면 모두 천국 갑니다.’ 하게 되면 그것이 탕감조건으로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근본 중심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다음에는 인간을 타락시킨 사탄과 타락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타락된 사람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타락된 사람은 탕감조건을 세울 자격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계시고 사탄도 있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높이로 말하면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지옥의 맨 밑창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과정을 다시 복귀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얼마나 멀고, 복귀의 고개가 얼마나 험하냐 하면 그것은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는 곤욕스럽기 그지없는 험산 준령과 같습니다. 높기로 말한다면 히말라야의 산이 문제가 아니고 깊이로 말한다면 태평양의 해저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분수령이 있고 한없이 깊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 누가 감히 넘을 수 없고, 파고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의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추측할 수 있느냐? 광대무변한 온 천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찾지 않으면 그들이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들이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하나님의 본래의 마음이 발동할 수 없고, 그 본래의 마음이 발동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본래의 이상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본연의 기준에까지 올라올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렸느냐? 지금까지 성경상에 나타난 역사를 두고 볼 때에 6천년이나 되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을 복귀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깊이 떨어진 인간입니까?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6천년이나 걸려서 찾아오셨지만 아직까지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찾지 못하셨느냐?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구원섭리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렇게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왜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억울하게 몰리고 쫓기는 자리에 처해 있어도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고, 또한 죽음의 길에서도 갈급한 심정으로 감사해하던 그들을 왜 동정하지 못하셨는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탕감조건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건은 사탄으로부터도 공인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도 공인 받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도 타락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공인을 받지 않고는 이 조건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의 방법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탕감조건이라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이라는 말을 막연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을 분석해서 탕감조건이란 무엇을 말하며, 또 그것은 어느 때에 성립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탕감조건을 세운다 해서 그것이 꼭 성립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탕감조건을 절대 못 세웁니다. 여러분, 그런 말을 듣고 보니 큰일났지요? 그렇게 하면 복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인간 사이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으면 구원을 받아요, 못 받아요? 「못 받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어요?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탕감조건을 어떻게 세워야 하느냐?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접붙여야 됩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자리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으로부터 먼 거리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종의 종의 자리에도 서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사탄의 지배하에서 억천만세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비참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을 하나님이 탕감복귀해 나오려니 복귀역사 과정이 오래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두 시간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천지창조의 원리법도에 의해서 다시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종도 못되는 자리까지 떨어졌습니다. 본래 인간은 무엇으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본래는 아기로 태어나서 성장과정을 거쳐서 장성하게 되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 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사람을 지었느냐? 상대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사랑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적인 위치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기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하나님의 몸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몸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에 아들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과 일체 되는 자리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하나된 후에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번식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녀 역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했다면

만일 아담 해와가 완성했더라면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이 완성해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갔다면, 즉 남자 여자로서 완전히 성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우주와 모체적인 결합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가지고 이 우주, 천지창조권 내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비로소 하나의 출발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 본래 출발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되었어야 할 인간들이 타락했던 것입니다. 본래는 이 출발의 원점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되어서, 인간의 모든 생애가 출발되어야 하고 거기에서 족속이 생겨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출발 시기를 사탄이 겁탈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서운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선악과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대답합니다. ‘그것을 내가 아나?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거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나? 선악과는 그냥 선악과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말이야 얼마나 간단하고 좋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짓궂은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선악과를 지어 놓고 따먹게 해서 자기 아들딸을 망하게 하는 그런 하나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를 보고 사교니 이단이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다. 이 세계 인류는 원래 본연의 핏줄을 통하여 나왔어야 했는데 불륜의 사랑으로 인하여 사탄 마귀의 핏줄을 통해서 번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구의 족속입니까? 사탄의 족속입니다. 세계에서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전부 다 사탄의 족속입니다.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탄의 새끼들인 것입니다. 새끼가 무엇입니까?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아들딸입니까? 타락했으니 누구의 아들딸이겠습니까? 사탄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에게 사탄의 아들딸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요? 그런데 그 말을 진짜로 기분 나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요즈음 아가씨 아주머니들 뭐 자기 얼굴에다가 분 바르고 뭐 바르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화장을 합니까? 사탄의 새끼 잘났다고 자랑하기 위해서 입니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종교인은 탕감을 위해 몸을 쳐 왔다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참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늘의 참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핏줄 속에 흐르는 사탄의 피를 풀어 깨칠 수 없고 점령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는 진리를 중심삼고 ‘싸워라. 밀어라. 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면으로 싸워 나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몸뚱이를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놈의 고깃덩이, 이놈의 몸뚱이를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피를 빼라, 금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원수입니다. 이 육신은 자꾸 편해지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것은 쉽고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즉 타락하기는 쉽다는 말입니다. 타락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수많은 성현들을 동원해서 교육을 시켜 왔어도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들도 타락하려고만 하면 타락의 급행열차 일등석을 탈 수 있는 소질이 농후합니다. 왜냐? 타락의 대왕인 사탄의 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놈의 고깃덩어리…. 그거 사실이에요, 아니에요? 참이에요, 거짓이에요? 선생님이 괜히 하는 말입니까? 이 고깃덩어리들, 글러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때려잡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언제나 넘어갈 것인가? 이것을 정복하여 천상세계 앞에 주장하고, 역사상의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하고 후세의 만민들과 온 세계를 향해서 이 승리를 자랑할 수 있는, 천지가 나를 환영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겠는가? 여러분들은 이런 승리의 참다운 인생이 되고 싶어서 몸부림쳐 본 일이 있습니까? 그저 감투 같은 것 하나 쓰고서 끄덕끄덕하며 ‘이럴까 저럴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힘만으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자기 힘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기에 비상대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과 맺은 혈통의 인연, 육의 모든 악의 조건을 어떻게 추방할 것인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투쟁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그냥은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부 다 후려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일은 뼈속을 파고들어가고, 눈물의 원천으로 들어가고, 땀의 원천으로 들어가고, 피의 원천으로 들어가야 되는 일입니다. 사랑의 눈물 골짜기를 파고들어가야 되고, 땀의 골짜기를 파고들어가야 되고, 피의 골짜기를 파고들어가야 되는 일입니다. 쓰고 있는 모든 가면을 벗겨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통곡을 해야 됩니다. 눈물을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럽고 서럽고 서럽구나! 어찌하여 이 몸은 원수의 피살을 받고 있는가!’ 그런 자신이 충성 길을 가기 위해 하늘과 인연을 맺고 나서겠다고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조여 오고 배가 꿈적거리는 분통함과 원통함으로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통곡할 수 있는 내가 못된다 할 때는 단칼에 쳐서 분개심을 폭발시키게 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폭발시켜서 산산조각을 내어 날려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기의 모든 원한과 감정을 초월한 자리에서 결사적으로 하늘을 부여안고 몸부림치지 않고는 그것을 절대로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량하고 딱하고 한스러운 인생행로였기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가 6천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좋은 것은 무조건 먹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몸뚱이를 분석해 보면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완전히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때는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의 가슴속에 맺혔던, 뼛골 속에 사무친 하나님의 서러움의 흔적을 전부 다 뽑아 버려야 합니다. 한 맺힌 원수의 핏줄기를 전부 다 뽑아버리고 아버지의 피살을 받아 ‘아버지여, 내가 왔사옵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효도할 수 있는 참다운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나섰사오니 오늘부터 안식하시옵소서. 당신의 가슴과 뼛골 속에 맺힌 한을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지구상에 그런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는 하나님은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자리는 피눈물을 흘리는 자리

여러분들은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려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소원인 것입니다. 인류를 부여안고 눈물을 뿌려야 됩니다. 눈물을 뿌리는 데는 그냥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심정과 본연의 동산을 잃어버린 그 처참한 정경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소망 가운데 이들이 다시 한번 해방 받아야 할 그 길 앞에는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태산준령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이것을 넘어가자 하며 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길을 개척하는 입장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려도 끝이 나지 않거든 내 생명을 산산조각 내어 하나님 앞에 바치고라도 가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몸으로 살아 드릴 수 없는 부정의 씨앗이기에 죽을 때는 하나의 동정이라도 남기고 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돼야만 도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입장에서 이 땅 위에 왔다 가신 것입니다.

탕감조건은 자기 스스로 세울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사탄과 참다운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는 아직까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오기 위한 준비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탕감역사는 단계를 두고 맨 밑창에서부터 시작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의 중심 사명은 무엇이겠는가? 사탄과 인연되어진 전세계를 대해 중심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는 데에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싶은 것 대신 뜻을 놓고 통곡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가야 됩니다. 보고 싶어도 그래야 합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자리를 통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만사를 전부 잃어버린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섰을 때와 마찬가지의 무가치한 입장에서 하나님이 동정해 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려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그런 자리를 지켜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그냥 놀음놀이로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정을 통하고 인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과 사탄이 좋아하는 사람, 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까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세워진다고 했습니다. 사랑에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탄이 지극히 사랑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일 사탄이 좋아하는 사람이 사탄세계를 본질적으로 좋아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사탄세계에서 충성을 하지만 그 충성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 편에 있는 사람이로되 하늘 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탄세계로부터 빼내 오시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살아서 세우는 사람과 죽어서 세우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설명한다면, 여기에 박이면 박, 김이면 김, 어떤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탄세계로부터 빼내어 사랑할 때까지는 그 사람이 전부를 탕감받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 사탄아, 내가 그를 사랑해도 되지?’ 하면 ‘글쎄요.’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충성하고 밤이나 낮이나 만민을 위해 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혹은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복귀시키기 위해서 일하고, 모든 행복의 여건을 중심삼고 만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탄아, 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지?’ 하면 ‘글쎄요. 지내 보아야 알지요.’라고 대번에 그런다는 것입니다. 지내 보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싸워 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일 네가 알아보아서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면, ‘그러면 인정하지요.’ 이런 식으로 진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다! 그러면 알아봐라. 해봐라.’ 하게 되면 그때부터 사탄이 시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인류가 당해 오던 모든 시련 고통을 그 사람, 즉, 대표 급에서 수고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부 옮겨다가 들이 퍼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편안하겠어요? 그저 복 받고 편안하게 살겠느냐 말입니다.

만일에 사탄이 ‘하나님, 그 사람 손을 베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래, 그러면 그 손을 잘라 봐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손까지 자를 수 있겠습니까? 또 그 사람이 많은 재산을 사랑하는 것을 사탄이 시험해서 모든 재산을 홀랑 벗겨가 버린다 할 때 ‘아이고 하나님, 난 싫습니다.’ 하게 된다면 탕감이 되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만일 사탄이 벌거숭이를 만들어 놓겠다고 할 때, 더욱이 밀실에서 벗기는 것도 아니고 종로 네거리에서 벗긴다고 할 때, ‘아이고, 그 것만은 안 되겠습니다. 나 원 참 하나님도 사정을 좀 알아주셔야지요. 이건 너무 합니다.’라고 불평을 하거나 거부해서는 탕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로 네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보다 몇백 배 더 번창한 뉴욕의 한복판에서 벗겨 놓는다 하더라도 ‘벗기려면 벗겨라!’ 하면서 그것을 넘어 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다리가 어정어정대고 있으니 그놈의 다리를 잘라 버려야 되겠다 할 때는, ‘하늘을 대하여 어물거리고 있어서 아주 귀찮으니까 잘라 버려 주십시오.’ 하며 두말없이 내놓아야 합니다. 목을 자르겠다 해도 좋게 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그것을 잘라 내면 어떻게 되느냐? 죽는 것입니다. 죽는 거예요.

사람은 죽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도 있고, 살아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죽어서 세운 사람이 있고, 살아서 세운 사람도 있습니다. 충성이 천상에까지 사무치게 하고 반대하던 사탄까지도 눈물 흘리게 만들면 사탄이 못 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본래는 천성의 인연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자기가 한 일을 뉘우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살아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사탄으로 하여금 스스로 회개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지 못하는 사람은 탕감복귀노정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가인과 아벨의 제단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깊이 사랑하시는 아들을 중심삼고 이러한 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탕감에 사탄의 시험이 뒤따르는 이유

아벨은 죽어서도 하늘 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의 피가 호소했던 것입니다. 아벨은 죽어서 탕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중심인물이 죽으면 대신자를 세워 나오십니다. 그렇게 해야만 탕감을 해서 가인세계를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또 하나님은 아벨을 통하여 세운 전통으로 1600년을 내려오면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받들어 나갈 수 있는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지만,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들인지라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때, 즉 절기로 말하면 봄절기를 통해서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봄 절기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 시대가 돌아가는 데는 봄 절기도 있고 여름 절기도 있고 가을 절기도 있으며 겨울 절기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네 절기 중 봄 절기만을 통해서 역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옛날 아벨이 정성들이던 그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계대를 이어 노아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때의 세상은 이미 타락에 빠져서 땅 위에서의 천정(天情)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하나님 앞에 나선 것입니다.

아벨이 피 뿌린 그 정성을 이 땅 위의 인류가 계승 받아야 할 터인데, 천정의 인연을 맺을 수 없었기에 노아는 악한 사탄세계를 단념하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노아는 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천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노아만이 오직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벨의 핏줄을 통해서만이 탕감의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에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기 전에도 많은 탕감을 받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120년에 걸쳐서 조건물을 세워 놓자 사탄의 공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놈 잘하는구나. 얼마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보자. 네가 120년 동안 배를 짓게 되는가 어디 보자.’ 하고 사탄이 시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배를 강가에다 짓는다면 모르지만 산중에 짓는다니 이것은 근본적으로 틀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반대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절대 정상적으로 봐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노아가 배를 지으러 갈 때 ‘오늘 점심을 먹고 산보 좀 하다가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산에 올라갔겠습니까? 아닙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배를 지으러 산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120년 동안에 배를 지으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지만 120년의 그 기간을 단축시켜야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전심전력을 다했던 노아였습니다. 그렇게 천성의 절개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선 이론부터가 추상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은 강이나 바다에 고이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물이 고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욕을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동네의 부인들이 욕을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내가 그것을 보았더라도 면상에 대고 욕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떠했겠습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와 같은 처지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정상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노아 할아버지를 반대할 수밖에 별도리가 있겠습니까?

사탄이 사랑하는 인물을 빼내어 복귀의 인물로 세우시는 하나님

만일에 극성스럽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 노아 할아버지를 120년 동안 일하는 장소까지 쫓아다니면서 끈질기게 반대하겠다.’고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반대해서 노아 할아버지가 넘어가면 너를 노아 대신 세워 주겠다.’ 하나님이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하나님 앞에 충성하던 그 충성보다도 130년 150년 그 이상 걸리더라도 노아를 반대하여 기어이 꺾어 놓고야 말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노아가 실수해서 넘어가는 날에는 하나님은 그 사람을 빼내서 노아 대신 그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를 제일 마지막까지 반대하는 목사를 찾아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일교회 문 선생이나 통일교회 식구들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사람들을 전부 다 한 데에 묶어 버리고도 또 통일교회 사람들을 찾아 세계를 둘러보며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잔인무도하게 통일교회 사람들을 숙청해 버리고도 자기가 한 일이 정당한 일인 동시에 하늘을 위한 일이며, 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뽑아다가 통일교회로 탕감복귀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것 멋지지요? 앞으로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구요.

그 목적 기준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데에 있고 세계 인류를 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빼내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은 전부 다 사탄 편 대표자였는데, 하나님이 빼 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들의 심정과 소원으로 볼 때 미래에는 기필코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빼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탕감의 제물로 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 중 이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가 제일 사랑하는 자식을 빼내다가 하늘 편의 충신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 이상의 복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사탄이 복수를 하려 해도 자기 아들을 죽이지 못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복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세상이 무너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런 전법을 쓰시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를 완전히 해방시킨다 해도 자식이 부모에게 원수를 갚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원수를 갚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갚을 수 있으려면 인간이 복귀되어야 합니다. 사탄의 자식을 빼내서 충신으로 만들었을 때 사탄이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자리에서 원수를 갚지 못하면 지금까지 닦아 온 터전을 다 버리고 후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노아에게 어느 누구를 앞세워서라도 반대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이 한참 공모를 꾸미고 있는데 하나님 편으로 노아가 등장했으니 사탄이 밤잠을 잘 수 있겠어요? 저주심에 불타서 죽을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그저 아무데서나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120년 동안 그런 역사를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 할아버지는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워질수록 하나님을 붙들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 사탄은 하늘 편의 아들딸들을 끌어다가 제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부인을 동원하고 아들을 동원해서 반대하게끔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 편과 사탄 편이 서로 빼앗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노아도 함 때문에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언제나 아들이 문제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

노아 할아버지는 핍박이 심하고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앞에 자식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환경의 비정함을 느끼고 서러움을 당했으나, 그런 때일수록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갔기에 그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120년 동안을 지내 온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노아 한 사람을 놓고 사탄세계는 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로 반대했지만,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운 그 기준에서 노아는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 기준은 천주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세운 것이요, 우주의 정의의 인간으로 세운 것이요, 참의 승리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기준에 반대되는 모든 원수의 요소들을 청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끝까지 맞고 나면 멋진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맞았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깜박깜박하는 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이 답답해진다구요.

아브라함도 노아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상 장수의 아들 아브라함은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똑똑하고 사랑스런 그 아들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망하던 세계는 그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원수의 아들이긴 했지만 생각하는 것이 그 아버지와는 달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정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이스라엘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빼앗아 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라날 때는 그의 환경과 친척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것이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욱이 자기 나라와 종족을 이탈하고 자기 부모를 반대하고 나선 아브라함이 갈 수 있는 집이 어디 있으며, 친척이 어디 있으며, 나라와 세계가 어디에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에 갔을 때는 바로 왕이 그의 부인을 빼앗으려고 했고, 어디를 가든지 몰림받는 집시의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몰림받는 행로에서도 아브라함은 자기 부모와 친척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잘사는 것보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부르고 있고, 승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고, 행복의 터전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집시의 행로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직 하나님 앞에 바랐던 것은 소망의 천국으로 가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앞에 닥쳤던 쓰라린 고통과 어려운 환경은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을 불러낸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입장을 탄식했을 것이나, 아브라함은 그런 입장에서도 하나님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모셔 나왔기 때문에 그의 앞길에는 행복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자기 민족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종족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민족적인 시련을 받아야 할 시대를 넘어서서 다른 민족이 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까지는 자기 친족, 자기 종족이 쳤지만 아브라함 시대에 와서는 이방 민족들에까지 넘어간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그렇게 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3개 이상의 이방 민족에게 몰림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세 때 와서는 민족적인 탕감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을 걸어놓고 종족적인 탕감과 민족적인 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가는 길에 수많은 민족이 반기를 들고 참소를 하며 가는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가 인도해 가는 길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협조했더라면 그들이 광명한 천지를 맞이했을 것인데, 불평 불만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치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먼저 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 일파는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재차 그들에게 다가온 민족적인 시련을 달갑게 맞이하면서, 가나안 7족이 던지는 원수의 창끝도 감사히 받으면서 하늘 뜻과 더불어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나선 그 걸음 앞에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민족적인 탕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탕감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

하나님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사람들을 중심삼고 그 시대 시대마다 탕감적인 사명을 연결시켜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종족 시대, 민족 시대, 선민 시대를 거쳐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가지고 예수님 때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듯 그 판도가 점점 넓어지다 보면 국가 시대를 넘어서 세계 시대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민족 편성을 이루어서 하나의 법치국가, 주권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세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국가의 세력이 모든 원수 국가를 능가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중심삼고 모든 원수세계를 청산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인 것입니다.

거기까지 하나님의 세력을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시련을 거쳐서 가나안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복지가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의 동산이요, 환난이 없는 세계요, 하나님이 자기들의 소원을 모두 이루어 주시는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탕감복귀의 원칙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창건 이념을 전세계에 심어 주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그 세계로부터 먼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2천년 전에 맞아야 했던 것을 못 맞고 나왔기 때문에 이 시대에 와서 다시 맞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잘 맞아서 옛날의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서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워서 하나님을 모셨던 당시는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침략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하여 밤이나 낮이나 일편단심으로 국가와 세계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 앞에 충성하고 세계적인 기반을 대신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민족적인 기반을 닦았던들,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땅 위의 모든 인류를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를 모셔 가지고, 만왕의 왕이 다스리는 주권국가를 이루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탕감의 노정을 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탕감을 하기 위해 세계적인 시련과 세계적인 압박을 달갑게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자세를 갖춘 터 위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 것이냐?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자세만 갖추었더라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예수님은 총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단결시켜 로마에 반기를 들고 나서게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로마로부터 압제를 받던 모든 연방국가들이 여기에 동조할 것이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로마는 거기에 완전히 말려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럴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자신들에게 그러한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무엇을 해야 했느냐?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탕감해야 할 것을 대신 탕감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인류로부터 핍박받는 자리에서 승리의 여건을 마련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함께 세계적으로 핍박을 받는 자리에 섰더라면 하나님이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 앞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일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그런 핍박받는 도상 위에서 무엇을 해야 했느냐 하면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넘어가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민족에게 몰려서 오히려 자기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를 넘지 못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인계할 수 있는 기반조차도 조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땅이 얼마나 몸부림치며 서러워했을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탕감의 길에는 지름길과 고른 길이 없다

예수는 원래 죽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서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의 가정․사회․종족을 중심삼고 민족과 세계를 대표하여 탕감해 나갔어야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인데 몰림받아 죽음으로써 영적 구원의 터전만을 마련해야 했으니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겠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데에는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선민권을 찾아서 오실 터인즉, 기독교 중의 기독교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 전체가 오시는 메시아를 환영하여 사탄 편에 있는 공산주의를 무난히 돌파해서 그들을 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현대가 안고 있는 고민이요, 오시는 주님이 넘어야 할 최대의 고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신자들은 그런 것을 꿈도 안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메시아를 몰아내어 다시 잡아 죽이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복이 있어서 그런지 화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과 기독교로부터 시련과 핍박을 받고 있고, 환난 고통을 당하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와 하나되고,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더라면 한국의 현실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 문제는 벌써 선생님이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배반하는 자리에 섰고 기성교회가 배반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핍박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갖은 모략을 다해서 통일교회를 핍박하고 선생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 나오시는 하늘 뜻 앞에 선생님이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면 그들한테 걸려들었겠지만, 천번 만번이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탕감노정을 걸어갔기에 그들에게 걸려들지 않은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해야 했던 일이 뭣이냐? 그것은 전통을 세우는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참소하는 조건에 걸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떻게 해서 탕감의 고비를 넘어갈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선생님의 생활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생활 가운데에는 나그네와 같은 행로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둠을 재촉하는 석양 빛을 받으며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은 길도 많이 걸어왔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처자를 남겨 두고 저는 가야 합니다. 안 갈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던 때를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하면 충성의 길이요, 잘못하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기로에서, 하나님을 맞이할 때까지 나는 처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7년 대환난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는 각오로 떠났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떤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민족을 찾아 나가는 길은 이 이상의 길이 없다는 각오로 나왔던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피맺힌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각오가 없으면 참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자기 처자, 자기 집안을 붙들고 눈물 흘리지 말고, 찾아야 할 미래의 크나큰 세계를 붙들고 눈물 흘려야 됩니다.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길을 가는 나그네 행로에는 지름길이 없고, 고른 길이 없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찾아가야 할 곤고한 길인 것입니다. 나그네의 행로를 걷는, 하늘길을 찾아 나가는 청년의 모습은 몰리고 쫓기는 한 마리의 양과 마찬가지입니다. 찾아가는 그 길에서 흘리는 눈물은 나의 눈물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인 것입니다.

탕감노정에서 필요한 것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머리를 깎일 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손에 끌려와 강제로 머리를 깎이는 것이라고…. 그때 선생님의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모릅니다.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내가 원하던 행복을 버리면서, 더욱이 원수 앞에서 머리를 깎이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복귀의 사연을 엮어 가는 노정에서는 그 모든 역경이 한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낼 때는 한스러웠지만 지내고 보니 그것이 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쓰러지는 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매를 맞는 것은 나를 위해 맞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맞는 것이요, 내가 흘리는 눈물은 이 민족의 아픔을 대신한 탕감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잡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까지 이 탕감노정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나 홀로 이 길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복귀의 길을 나선 그 발걸음 앞에 떨어지는 눈물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 길을 염려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죽음 길을 염려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배반하여 천상에서 받아야 할 최후의 심판을 염려한 눈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보니까,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까지 올라가던 도중에 쓰러졌다는 곳에 팻말이 박아져 있었습니다. 열두 번이나 넘어졌다는 그곳을 바라보며 ‘이런 탕감 길을 거쳐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암흑과 같은 2천년 전에 새로운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사막과 광야 같은 이 한복판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애달프셨습니까? 그러나 크고 부유한 많은 민족을 다 제쳐 놓고 이렇게 지지리도 보잘것없고, 지지리 메마른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오신 것은 민족복귀의 한을 하루라도 빨리 풀고자 했던 아버지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이 품었던 사연을 깊이 위로해 드리는 기도를 하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자리에서 사탄은 마음 졸이고 하나님은 위로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슬퍼서 울고 하나님은 기뻐서 우실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통곡하셨고, 사탄도 아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배신하여 쫓겨났기 때문에 눈물 흘렸고, 아담 역시 타락으로 인해 눈물 흘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눈물을 흘렸고, 사탄도 눈물 흘렸고, 아담도 눈물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고개 길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을 눈물 흘리게 하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눈물 흘려야 됩니다. 내 눈물이 하나님을 울리고 사탄까지도 울릴 수 있는 눈물이 안 되어 가지고는 그것을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노정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세계의 크나큰 문제를 걸어 놓고,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나온 이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운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동정 받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따르기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그 누구에게도 동정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탄에게도 동정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도 동정을 구할 수 없습니다. 동정을 구한다면 내 자신의 지혜에 동정을 구하고, 눈물과 피땀과 정성이 어린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에게 동정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한스러운 길을 가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도 그래야 될 것이고 내일도 그래야 될 것이고, 또한 이 민족을 넘어 세계복귀 노정에 있어서도 그런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선생님이 외국에 간다고 하니까 어떤 식구가 어쩌면 이번이 선생님을 마지막 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눈물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잘못 갔다가는 돌아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배반자의 낙인이 찍혀 가지고 가게 된다면 이 민족은 정녕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무리 반대받고 쫓김받고 아무리 억울한 자리에서 간다 해도 돌아올 길이 있지만, 이 민족은 돌아올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민족을 위하여 울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스승을 다시 만나지 못할까봐 염려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 있어야 합니다. 진정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자기 일신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세우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동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잘했더라도 남이 잘못한 것을 대신해서 맞으려 해야 하며, 민족이 잘못하면 민족을 대신해서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비참한 자리에 서는 것은 세계 인류의 한을 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한 날의 시련을 다시 한번 내 앞에 펴 달라고 팔을 벌려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가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싸웠을 때 그 마음이 피로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찌하랴! 또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겠다.’고 다짐하며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가야 할 행로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는 데에 있어서 이런 길을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러분은 진정 통일교회를 사랑했습니까? 진정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사랑한다면 먼저 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진정 이 세계를 사랑합니까? 그저 막연하게 울타리만을 보고서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일시에 지나가는 행락객은 될지언정 주인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그들을 수습해 주고 그들을 품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민족과 세계를 사랑해 보았습니까? 참다운 조건을 세워 하나님도 긍정하는 자리에서 탕감해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내 일신에서 탕감의 조건을 남기고 가야겠다고 몸부림쳐 보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세워 타락의 인연을 벗어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 꼭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내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졸이고 사탄도 마음 졸일 수 있는 그런 입장에 나가 가지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맺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타락의 인연을 벗어 버리고 하늘땅과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 받아 사탄의 공격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탕감의 행로에 승리의 팻말을 꽂고 돌아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그것이 결정적인 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정녕 그런 행로를 거쳐왔느냐고 질문당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이냐?

한 많은 역사의 노정을 누가 갈 것이냐? 나라를 위한 그 길은 통일의 역군들이 가야 되고, 인류를 위한 그 길은 삼천만 민족과 대한민국이 가야 됩니다. 최후의 시련의 행로를 넘기 위한 복귀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세계를 통일할 용사들의 노정인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그냥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는 길에는 조건을 세워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길을 가셨고 스승이 그런 길을 갔거늘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절대적인 원리를 찾아 놓고 미래의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승리자의 모습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의 길에는 지극한 그리움이 필요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을 찾아 나왔는데 여러분은 가정과 자식이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까? 자식이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을 탕감해 놓지 않으면 자식으로부터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넘어서서 친족 전체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도록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정, 종족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이 민족을 찾아 나올 수 있도록 탕감조건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림으로써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짐을 지고 가는 데 있어서도 우리들만이 복을 받고 사랑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감으로 많은 무리를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우고, 그 사람이 미래에까지 미쳐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 길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천적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이런 환경, 이런 사연, 이런 사정이 있으니 하나님이 공인하실 수 있는 조건이 되겠지.’ 하며 안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부모 처자를 바라보게 될 때 눈물 흘리면 그리움으로 인해 한이 맺힐 만큼 그리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종족을 향하여 한이 맺힐 만큼 그리워해 봤어요? 탕감의 길을 가는 데는 그리운 마음이 앞서야 됩니다. 자기의 존재 의식을 넘어설 만큼 그리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움이 앞서 사선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야 할 여러분에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심각한 말씀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이 시점에서 새로이 각성하기를 바라서입니다. 탕감노정은 피와 땀과 눈물로 엮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어떤 나그네를 위해서, 개천가에 던져 버릴 그런 말이 아닙니다.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통해서 이러한 이념을 찾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가지고 민족복귀와 세계복귀의 선봉에 서자는 것이 우리의 사상입니다.

오늘 왜 이런 말씀을 하느냐면,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후의 일각을 참고 넘어가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있지만, 한순간을 참지 못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맺힌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면 선생님은 고생하라는 말씀밖에는 안 하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탕감 법칙을 중심삼고 분석해 볼 때 탕감의 길을 결론짓는 기점이 어디냐? 그 자리는 세계적인 자리입니다. 유대민족처럼 이 길을 걷기 싫어하는 민족은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탕감의 길을 피해 가는 민족과 국가는 망합니다.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갈 길이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4천년의 피나는 역사노정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의 고비 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 앞에 몰리는 슬픔보다도 자기 자체에서 일어나는 슬픔이 더 억울했다는 사실을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외부로부터 핍박받는 것보다도 내부에서 하늘을 등한시하고 하늘 앞에 무감각한 상태가 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원수가 누구냐? 민족이 아닌 여러분들 자신이 원수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귀의 대열은 점점 치열한 싸움의 무대로 전개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이 먼데도 불구하고 가야 할 발걸음을 묶어 놓고 환경을 도피하려는 사람이 누구냐? 먼저 들어온 사람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망하더라도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족은 망하더라도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가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복귀의 뜻이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숱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탕감노정을 걸어갔던 우리 선조들은 비참한 죽음의 길에서도 역경을 참아내며 하나님을 위하여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더더욱 그러한 역사의 과정을 되살려, 내 움직이는 손길이 어디 가서 묻힐 것이며, 내 몸이 어디 가서 쓰러질 것이냐를 다시금 깨닫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승리의 탕감조건을 세운 용사라는 팻말을 들고 쉴 새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 용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 그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책임

탕감해서 가는 길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이 민족을 하나님 앞에 소개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는 탕감의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해방을 소망하는 자 있거든 자기 친척과 자기의 종족을 붙들고, 친구를 붙들고 나라를 사랑하는 길, 나라를 구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됩니다. 눈물과 피땀을 흘려서라도 그들에게 보여 줘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준 교훈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며칠 동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해도 자그마치 3년은 걸려야 됩니다. 3년 이상 준비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은 참아라, 3년 동안은 죽도록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3년을 못 참겠습니까? 30년도 개의치 않고 가야 됩니다.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탕감이 가는 길에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또는 타락의 인연을 받지 않은, 즉 탕감복귀한 사람이 아니고는 완결 지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자리와 그런 때를 맞이할 수 있겠느냐? 여러분은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으로부터 승리했다는 터전을 남겨 놓기 전에는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입니다. 그다음에는 개인복귀․가정복귀․종족복귀․민족복귀․국가복귀․세계복귀를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책임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권 내에서는 몸과 마음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가정권 내에는 식구가 해방을 받는 것이요, 종족권 내에서는 각 가정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민족권 내에서는 각 종족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국가권 내에서는 수많은 민족이 해방을 받는 것이요, 세계권 내에서는 수많은 국가가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6천년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개인복귀․가정복귀․민족복귀․국가복귀․세계복귀의 기틀을 마련해서 하나의 기준이 되는 중심이 와 가지고 한의 행로였던 개인복귀․가정복귀․종족복귀․민족복귀․국가복귀․세계복귀를 위해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이 사명을 짊어지고 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책임이요,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오늘도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한국 민족을 위해 눈물 흘렸던 그 이상의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눈물 흘리는 내가 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얼굴 모습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사상도 다른 미국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이 한국을 위해 눈물 흘렸던 그 이상의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민족과 사회와 역사의 배경이 다르더라도 국경을 초월한 동족의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이 세계를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민족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마음을 어떻게 유발시킬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전도하지 못해 몸부림치던 그때보다 환경이 자유스러운 이때에 민족을 구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그 마음이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민족의 사명

여러분은 스스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의 등을 타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등을 타고 가라, 내가 심천(深川)에 놓인 다리가 되어 줄 테니 타고 가라는 것입니다. 어깨를 밟고, 머리까지 밟고 가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닦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싫습니까? 그것조차도 싫다고 하면 망해야 합니다.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시대, 6천년 역사의 종적인 한을 횡적인 기준에서 탕감할 수 있는 복된 시대를 맞이하고도 그 시대를 모두 놓쳐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7년 행로가 서러우면 이 민족이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말뿐이 아닙니다. 7년, 7년 하는 것이 말뿐이 아니란 말입니다. 서러운 눈물이 앞서는 이 해를 보내 버리고, 이제는 제물적인 탕감조건을 제시해 놓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만약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사람, 하나님께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모두 어느만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모두들 욕심은 크지만 욕심대로 될 수는 없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3배 이상 수고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주는 복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복을 감당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땅이 수고한 것의 3배 이상 수고한 기준 위에서 받은 복이 아니면 그 복을 전통으로 후손 앞에 남겨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3배 이상의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하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요즈음 통일교인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또 뜻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하는데, 그것은 복 받는 사람이란 뜻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탕감의 조건을 세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냐? 민족의 대열 앞에 탕감조건을 세워, 수천만대의 후손들과 혹은 선조들이 여러분에게 머리 숙일 수 있는 민족적인 승리자로 만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외국에 선교사를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천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탕감이 가는 길’, 거기에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한국 백성을 믿고 찾아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믿고 찾아온 그 뜻을 세계에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연결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민족보다도 한국 사람이 세계에 많이 가서 하늘의 깃발을 꽂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한국에 내려진 복을 그대로 지탱할 수 있고 다른 민족에게까지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조건을 갖고 가야 됩니다. 최봉춘 씨도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을 한국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외국으로 선교를 나가게 될 때 거기에서 자기의 부인이나 자기의 자식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가는 참소조건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내 자식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부인이나 자식이 그리워 자꾸 편지하게 되면 집에 있는 그 부인과 자식에게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나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원수가 공격해 오는 비상사태를 맞이했으면 그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싸우는 장수와 마찬가지로 그 싸움을 다 끝낸 후에야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시점인지를 정확히 알고 탕감이 가는 길에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이번 세계 순회를 떠나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심각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그런 심각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마음만 앞서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모양이지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사랑해 주는 것이 좋겠어요, 사랑을 안 해 주는 것이 좋겠어요? 「사랑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 원리의 길은 밟아 가는 길

선생님과 여러분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같은 길을 가야 됩니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인연이 있어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과 여러분은 이 인연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들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7년노정이 끝나면 다시 제2차 7년노정을 넘어가야 합니다. 7년 노정에서 탕감해야 할 기준을 중심삼고 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제2차 7년 노정을 세워 놓고 다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요전에 선생님이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여러분은 자기 식구든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부모든지 한 사람이 열두 사람을 걸어 놓고 정성들이고 인연을 맺어 그들 앞에 아벨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탕감 길에서 조건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여러분 스스로 세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즉 선생님이 간 길이 여러분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식구들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기준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앙노정에 있어서는 말씀으로 인해 사망의 세계로부터 부활되어 나와야 합니다. 그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 가던 자식이 소생할 때와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며, 내 가치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고 내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슬픔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를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 생명이 고귀하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마 16:26)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요? 「예.」

여러분들은 조건을 세울 자격자가 되어 있습니까? 정말 자격자가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지 못합니다.」 언제 여러분이 사탄으로부터 찬사 받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았고, 언제 여러분이 사탄을 지극히 감동시킬 수 있는 일을 해 보았노?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사 탕감의 길을 개척해 놓고 그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때까지 따라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것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탕감복귀의 길을 나올 때 선생님의 일생은 찾아 나오는 노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미 찾아 놓은 길을 따라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못 하겠어요? 따라오지도 못하겠어요?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타락권을 벗어난 기준을 세운 사람이 아니면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이 이루어지는 자리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과 사탄 앞에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는, 즉 사탄 세상은 내려가고 하늘 세계는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꿀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내려가려고 하면 할수록 올라오는 운세를 타고 올라오게 됩니다. 탕감은 편안한 자리, 높은 자리,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서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이는 예수님이 태어났던 말구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갔던 그 골고다 산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사를 판결 짓는 자리, 사망과 부활이, 생명과 사망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탕감은 그런 자리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탕감을 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들에게는 선생님이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선생님께 복종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탕감조건을 이끌고 나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공인하고 사탄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기뻐서 눈물짓고, 사탄은 슬퍼서 눈물 흘리며, 여러분은 기뻐서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만 거기에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승리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제시해 주느냐? 여러분의 심정적인 조건을 유발시켜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마지막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유발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진리도 유발시키고 그 진리를 통해서 인격 혁명을 일으키지만, 거기에는 심정을 유발시켜야 할 주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따라가야 됩니다. 아벨이 지시하는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아벨이 죽으면 죽고 아벨이 살면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아벨적인 기준으로 모시고 아벨을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나와야 됩니다. 이 길이 최후의 길이기 때문에 사망선까지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인류 역사노정에 있어서 이런 길을 제시한 곳은 통일교회뿐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러한 심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조건을 세워서 넘어가게 되면 최후의 고개 길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가 마지막 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소원이 풀려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것이요, 사탄이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것이요, 우리들 자신도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 이와 같은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곳밖에 없으니, 그곳이 바로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느껴집니까? 「예.」

탕감조건은 혼자 세워야 한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는 둘이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다 해서 남편을 옆에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나 아내도 데려갈 수 없습니다. 전후관계는 용허(容許)되지만 좌우관계는 용허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예.」 둘이 서게 되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둘이 설 수 없습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주체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부모 앞에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또 아내는 남편을 모시기를 하나님같이 모셔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가는 길을 절대복종해서 따라가야 전후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따라갈 때는 울고불고 하면서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서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어디에 가더라도 선생님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서 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빨리 오면 좋겠어요? 「빨리 오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강조한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은 여러분이 돈을 모으고 잘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전통이냐? 탕감노정에 있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전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뜻 앞에 있어서 그러한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선생님이 출발한 후에 더욱더 많은 기도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날 막연하게 살아온 생활을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자기의 부모를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옛날의 신앙 동지들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누룩과 같은 작용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서 세계 앞에 나가게 되면 세계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967년 6월 4일, 6월에 있어서 첫주일을 맞이하는 날이옵니다. 이 해 전반기의 마지막 달을 맞게 되었사옵니다. 허구한 날 슬픔이 엇갈리는 속에서도 아버님의 사연을 깊이깊이 느낄 수 있는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아버님을 위하고 아버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사연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얼마나 믿으셨사오며, 저희들을 불러 놓고 확인하고 싶으신 내용과 동정하고 싶으신 사연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또한 저희들로 하여금 승리의 영광을 갖추어 주기를 얼마나 바라셨사옵니까?

너무나 초라하고, 보기에 너무나 미비하여 감히 아버지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몸들인 것을 아옵니다. 몸을 감싸기에도 부끄러운 자신들이요, 입을 열어 아버지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자신들인 것을 스스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이 자체가 타락의 여운을 지니고 있는 어리석고 패악무도한 자신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어엿이 나설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에 급급함을 금할 바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가 목을 놓아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효자 효녀의 마음을 갖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나라를 해원성사하기 위해서, 충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몸이 찢기고, 화살을 맞아 죽어 가더라도 아버지를 위해 몸부림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한 충효의 길이 저희의 앞에 남아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저희들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날을 당신이 기억해 주시옵소서. 탕감노정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 조건은 저희 스스로 세울 수 없기에 아버지께서 친히 희생하셔서 역사를 연결시키셨고, 시대에 얽매인 죄악을 풀어 나가기 위해 탕감의 제물로 선조들을 세우신 것을 아옵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 와서 한숨으로 살다가 한숨으로 죽어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그러한 운명의 길을 상속 받아 그와 같은 환경을 혁신하고 개척하는 지침돌이 되어야 할 저희 통일의 역군들이 지금 어떤 과정에 처하여 있는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적인 기준 가운데 어느 기준에 처해 있는 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 앞에 부복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스승이 가고 오는 길을 염려하여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 아버지여,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괴로울 때 당신이 위로해 주시던 마음을 그들에게도 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정으로 맺어진 사람들도 서로 만나고 싶어하거늘 천정으로 얽혀진 사람들이 어찌 만나고 싶지 않겠사옵니까? 하지만 자유스럽게 만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니, 다시 만나기를 그리워하고 서로 사정을 염려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오면 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제가 이들의 동정을 받고 신세를 지며, 아버지의 동정과 책망을 받는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서러운 조건을 남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을 아버지는 아실 것이옵니다. 다시 만날 그 시간을 고대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릴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오직 이들이 아버지의 유업과 아버지의 사랑의 기준을 영원히 이 민족 앞에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의의 터전을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부르고 그리워하는 모든 것이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사오니 이 모두가 땅에 떨어지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기간 동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죽든지 살든지 당신이 머무는 길 앞에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이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에게 전한 말씀이 이들에게 새롭게 기억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보고 싶거든 이 스승을 만나는 것보다도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기 생활권 내에서 탕감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남이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노력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남들이 편안히 지내더라도 그 안식의 조건을 밟고 넘어서기 위해 쉬지 않고 싸워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전체의 날에도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하루 이틀만 걷고 말 길도 아닌데 뭐 그렇게 충성을 하는가?’라고 말함으로 말미암아 충성된 길을 못 가게 했다면, 그 조건은 저나라에 가서 천추만대에 한이 될 것입니다.

충신 효자는 국운(國運)을 타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뜻을 위하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합니다.

아벨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인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모를 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신앙길에서는 형제․종족․민족이 가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가인을 복귀시키지 않고는 자기의 부모를 복귀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선생님의 부모를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식구들을 거느리고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화목치 못하는 사람은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본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만을 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쁜 것도 좋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효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효자의 길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장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대신 형제들을 잘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 5:9) 했습니다.

총각 처녀 때 충신 되는 것과 결혼한 후에 충신 되는 것, 그리고 자녀를 낳은 후에 충신 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결혼한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의 입장을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미혼자로서 충신 되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총각 처녀들은 자기 몸이나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피땀을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뜻만을 위해서 3년 이상을 진정으로 충성을 다해 보세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충성할 수 있는 훌륭한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봄날을 모릅니다. 봄을 감상하는 일보다도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선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그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외국에 선교사를 많이 보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 나라의 국비를 쓰는 것은 선 중의 선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많은 식구들이 외국에 나가 선교사로서 몸부림치게 되면 세계의 운세가 한국으로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선생님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열두 사람의 마음과 열두 나라의 마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 중에는 원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짧은 기간 동안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가장 많이 반대하던 사람이 복귀되면 그 가정을 복귀시키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나 국가 내에서 가장 많이 반대하던 사람이 복귀되면 그 사회와 국가를 복귀시키는 것은 용이합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반대하던 사람들이 복귀되어야 합니다.

내가 몇 마디 말만 해 주었더라면 영계에서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구가 몇몇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아직까지 때가 안 되어 말해 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할 일을 다하고 나면 아무런 공포도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탕감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은 그들이 예복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누구라도 축복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특권입니다. 여기에는 사탄도 참소하지 못합니다.

책임을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뜻에 절대 순종하면 됩니다.

자기 대신 죽음의 자리에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믿음의 자녀요, 누구든지 이런 믿음의 자녀를 3명 이상 세워야 원칙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의 골짜기는 눈물로, 피의 골짜기는 피로 덮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축복은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축복가정들이 축복받은 후 거지 노릇을 하면서라도 3년 이상만 뜻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더라면 이 나라는 벌써 복귀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3년 이상 충성한 사람에게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습니다.

자기의 갈 길을 다 가지 못한 채 네 활개를 펴고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도 편히 잠 한 번 자 보지 못했습니다. 형무소의 죄인들 앞에 내 몸의 다리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뜻을 위하는 자리에서 죽어 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섭리역사도 단축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를 아픈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사모하고 생각하면 병도 낫습니다.

선생님이 인사를 받지 않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함입니다.

7년 고비를 넘는 이 기간에 있어서 특히 40세 이상 되는 사람들은 눈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선생님의 공적인 생애는 26세에서부터 21년 기간입니다. 이 노정이 만약 40년이 걸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지상생활은 영계에서의 생활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영계를 위한 생산 공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말씀 요지>

부모의 심정이란 완성한 아담의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라야 하며, 그러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면 단번에 완성한 기준을 대신하는 자리, 즉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아벨의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가인이 나타나는데, 그때는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자리가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인과 아벨이 세우지 못했던 기준을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설사 그 기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선생님이 그것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는 배고픈 어린아이가 젖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역사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탕감역사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탕감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때의 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봄에 씨를 뿌려야 하는데, 가을에 뿌린다면 겨울 동안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권 내에 있는 해와와 같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리 잘라 버려도 걸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먹고 자고 하는 일거일동이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 항상 살펴보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쓰지 않습니다. 노트 한 권을 가지고도 4년이나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보고했다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탕감하지 않고서는 영계에 가서 걸립니다.

땅 위에서 실체의 부모를 3년 이상 자기의 친부모 이상으로 모셔야 합니다.

전도는 제2의 나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몸을 죽음의 자리에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늘 길을 일대(一代)에 넘어설 수 없습니다.

<말씀 요지>

신앙 길에서는 자기를 생각하게 되면 때를 놓치고 맙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합니다. 선생님은 현재도 그러합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여전히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3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성지 순례는 그곳에 가서 기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고 가는 시간이 모두 정성들이는 시간인 것입니다.

국가의 위기는 혼자서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하늘을 붙들고 가야할 운명에 있습니다. 잘만 하면 선민권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험과 충성과 순종을 하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의 어느 한 가지 종류에라도 속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이 세 가지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유효원 협회장은 오늘까지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앞에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유 협회장이 교회에 들어오게 된 데에는 지나간 역사노정의 결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계와 지상이 연결되려면 그 전에 많은 과정의 결실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여기에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냥 올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예복을 갖추고 와야 합니다.

내가 도인들을 만나 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 곧 탕감을 받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나, 복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복종을 통해서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뜻이 사실이냐? 사실인 것이 확실하다면 지금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이 뜻 앞에 합당한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말이 생소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재인식해 보면서 소생해 나가고 심정을 회복하곤 합니다.

<말씀 요지>

만물의 날이 정해짐으로써 하나님 앞에 국가적인 기준이 세워져야 했었습니다. 만물의 날도 개인 중심한, 가정 중심한, 민족 중심한, 국가 중심한, 세계 중심한 만물의 날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복귀됨으로써 만물도 복귀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중심은 가정, 가정적인 중심은 국가, 국가적인 중심은 세계이듯이 만물의 날을 중심하고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지를 중심하고 국가와 국가를 연합하고 연결시켜야 합니다. 성지를 중심하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앞에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7년을 넘어서면서 성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을 40개국에 보내어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만일 40개국에 선교사를 못 보내면 선생님 자신이 3년 내에 그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를 연결하여 평형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7년노정이 끝나는 대로 40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심정기준이 높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받지 않은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 종적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서 첩경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도 축복 받은 가정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세운 선의 기준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결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역사와 시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결실체가 돼야 합니다.

만물의 날을 기하여 내적인 단결을 다시 해야 합니다. 우리 당대에 못 이루면 자손을 통해서라도 기필코 이루게 하겠다는 결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후대들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때는 절박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적인 요구가 여러분을 거쳐서 국가와 세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셨으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들이 책임지고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활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실 줄 알아서는 안 됩니다. 각자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사탄을 주관하는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한 단계를 넘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이 필요합니다. 실제 생활을 중심하고 이것을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개척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날 그날의 생활 속에서 마음을 통하여 어떻게 이 뜻을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물 복귀는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물질 중심한 환경 가운데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물과 사람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 가운데서 제물적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우리의 생활이, 그 각도가 다른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국운의 때가 왔을 때 그것과 하나님이 연결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내적 노정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므로 조건적으로나마 연결시켜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지향하는 것에 몸으로 안 되면 마음으로, 그것도 안 되면 탕감을 통해서라도 세워야 합니다.

가정은 민족을 대신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민족과 연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승리자는 못 된다 하더라도 승리의 권내에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탕감노정을 걷기 위해 이북으로 갈 때는 이미 옥중생활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선생님의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외국 선교의 길에 나서야 합니다. 이러한 노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생활은 그것과 먼 거리에 있습니다. 이날을 기하여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7년노정에는 자녀의 날만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못가면 7년노정을 또 가야 합니다. 나를 중심하고 하나님과 연결지어 가는 생활 태도로 가야 합니다.

현시점에서의 생활 무대를 하나님의 뜻에 연결 짓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기 도>

영원하신 경륜의 뜻으로 이 땅 위에 기념할 수 있는 한 날로 이날을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만 4년 전에 이날을 아버지 앞에 책정해 드렸사옵니다. 이날이 나오기까지에는 역사 과정을 더듬어 오시는 아버지의 수고가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민족의 배후에 서려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통분해야 할 엄청난 역사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아울러 이러한 슬픈 역사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가인과 아벨의 싸움이 시작된 그날부터, 사망의 터전이 자리잡은 그 시간부터 아직까지 그 사망의 세계는 옮겨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러한 환경의 굴레를 벗지 못한 가운데에서 아버님의 투쟁의 역사가 엮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현재 저희들이 느끼고 있나이다.

이제 탄식의 조건이 남아 있다 할진대 그 조건을 풀어야 되겠사옵고, 저희가 해야 할 노고가 남아 있다 할진대 그것은 잘못된 이 터전을 정비하고 청산지어야 할 노고임을 다시 한번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선한 자리에서 승리해야 했습니다. 하오나 저희가 처한 환경은 아직까지 슬픔과 고통으로 휩싸인 환경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선을 추구하는 역사적인 저희의 선조들과 선지선열들이 선을 세우기 위하여 선두에서 싸워 나온 때가 그립사옵나이다.

슬픔의 역사는 선(善)을 기본으로 하여 고비 길을 연이어 나오면서 지금까지 일어났다가 다시 슬픔에 부딪쳐 쓰러지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또 부딪치는 역사로 연하며 내려왔사옵고, 이 슬픔의 장벽이 현세의 목전에 나타나 세계적인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이 장벽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개인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뜻 있는 몇몇 동지 가지고도 안 되겠사옵니다. 그러하기에 아버지께서는 개인을 불러모아 가정을 이루게 하였고, 가정을 불러모아 종족을 이루게 하였고, 종족을 불러모아 민족을 편성하게 하였고, 민족을 불러모아 국가 편성을 하게 하였사옵니다. 국가를 이루어도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행군해 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었사옵나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뜻하신 목적대로 죄악을 청산 짓고 당신의 일을 책임질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해야겠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슬픔의 역사가 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세계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얼마나 있나이까?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오늘 통일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부르고 있사옵고,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과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내적 인연과 외적 인연을 갖추고 있사옵나이까? 뜻 앞에 심정이 일치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아라는 것을 저희들은 명백히 발견하게 되옵니다.

내적 기준의 결함, 외적 기준의 결함, 뜻을 대하는 행위의 결함된 모습이 아버지를 부를 때, 그 음성을 듣는 아버지께서 ‘과연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하며 기쁘게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 어서 오라고 할 수 있는 저희들의 입장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겠사옵니다. 도리어 저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른 음성이 아버지의 귀에 거슬리고, 또한 저희들이 아버지의 면전에서 박대받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자리에 서 있을 때가 많았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슬픈 노정을 보고도 저희들은 슬퍼할 줄 몰랐고,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을 알고도 몸부림칠 줄도 모르는 저희 자신이었사옵나이다.

하오니 이제 하늘과 땅의 인간이 나아가는 방향이 이렇게도 대치된다는 사실과, 내적 사정이 상충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르면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복을 빌고 아버지를 위하여 복을 받는다는 그 자리가 저희들은 기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지 못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 기쁜 자리에서 기쁘다는 표시를 하지 않으시고, 기쁘지 않은 자리에서도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진정으로 아는 아들딸들이 이 자리에 얼마나 되옵니까?

각자의 심정을 통하여 다시 한번 반문하고 아버지 앞에 다시금 새로운 자세를 갖추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긍휼의 조건과 긍휼의 태도를 가졌다고 아버지께서 기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줄 아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당신은 괴로우면서도 저희의 요구에 답을 하시어 어느 한때에 복 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날들을 연결하시어 6천년 동안 서러운 역사를 대하시는 아버님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심하였으며, 아버님의 그 심정에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게 일그러지고 맺혀 있는 심정적인 한을 벗겨줄 자 누가 있나이까? 참다운 효자가 아니면 안 될 것이요, 참다운 효녀가 아니면 안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가정을 중심삼은 효자 가지고도 안 되겠사옵고, 종족을 중심 삼은 효자 가지고도 안 되겠사옵고, 민족을 대신한 효자 가지고도 안 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를 대신하고 하늘땅을 대신하여 사탄 앞에 나타내어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가 되지 않고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사무쳐 있고 감추어진 그 심정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엄청난 내적인 고충을 짊어진 입장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한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만물의 날이라고 저희들이 기념하는 날이옵니다.(녹음이 잠시 중단돼 일부 수록하지 못함)

<말 씀>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심정적인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담 해와도 자유의 동산에서 추방을 당할 때 내적으로 슬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충격은 슬픈 감정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민망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와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의분심에 불타고 당신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한스러운 마음을 중심삼은 심정적인 충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날,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역사 과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시대마다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조들은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자기 시대의 책임을 후대에 남겨 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하나님은 역사를 끌고 나오셨고 우리 선조들은 그 역사를 따라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섭리

그렇지만 어느 한때가 되면 역사적인 사명을 책임진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여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세울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았다 할지라도 야곱이 자유롭게 출발할 수 있는 입장에서 불리움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원수들을 물리쳐야 할 크나큰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개를 넘는 데에는 야곱을 중심삼은 야곱가정과 야곱 종족,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가 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 고개를 무난히 넘어서 평지에 도달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한 이스라엘 민족으로 남아졌을 것이었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축복권 내에는 섰다 할지라도 수많은 이민족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끌리면서 하나님 앞에 변변히 책임 한 번 못하고 후퇴했던 사실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도 완전한 승리의 터전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 땅에 나타났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안팎에서 전부 다 승리한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찾지 못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민족을 찾지 못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세울 수 있는 주권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아직까지도 승리의 날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의 과정에서 한때에는 올라섰다가 어느 한때에는 내려가고, 또 어느 한때는 사탄을 쳤다가 어느 한때는 사탄에게 맞기도 하면서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그 형(型)을 넓혀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형을 넓혀서 가정형으로, 가정형을 넓혀서 종족형으로, 종족형을 탕감하여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적인 시대에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대신한 전세계의 기독교나 혹은 민주세계가 아벨적인 입장에 섰느냐? ‘……’ 아벨적인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이 가야 할 고개가 남아 있으니 그것은 이스라엘을 대신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넘어야 할 외적 고개입니다. 그 고개가 바로 공산당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세계는 이 고개를 무난히 넘어 자유의 세계, 평화의 세계에 당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적인 터전을 닦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섭리를 하는 사람이 하다가 못했을 때에는 후보자를 세워서 가정적인 섭리를 첨부시켰고, 가정적인 섭리를 못 했을 때에는 다시 후보자를 세워 종족적인 섭리를 첨부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적인 섭리, 세계적인 섭리까지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때에 가서 안팎으로 완전한 승리가 결정지어지겠는가? 2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아벨적인 내적 승리의 기준을 닦아 역사 앞에 책임을 다하여 외적으로 공고한 터전을 만들어 놓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그 주위에 있는 이방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만 예수님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내․외적 사명

그러나 예수님이 이와 같은 고개를 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세계적인 형까지 벌어져 나왔지만 내적으로는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 그리고 세계를 해결 지을 수 있는 승리의 발판을 이루지 못하고 소망으로 남긴 채, 역사는 지금까지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족, 종족이면 종족으로 편성되는 시대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 범위가 점점 넓어져 나왔지만 우리의 선조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탕감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안팎으로 승리한 입장이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의 통일교회는 이스라엘이 못 넘은 세계적인 기준까지 넘어 가지고 승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사명을 다하기를 요구하고 계시며, 이스라엘의 승리자가 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자리는 개인적인 판단의 기준은 물론이요, 가정적인, 종족적인, 민족적인, 세계적인 판단의 기준이 한 울타리 안에서 모두 벌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누가 걸어야 합니까? 가정적인 탕감노정, 종족적인 탕감노정, 민족적인 탕감노정을 누가 걸어야 합니까? 역사는 오늘날까지 옛날 이스라엘 시대의 상황을 되풀이하면서 내적인 이스라엘의 기준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기준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못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승리의 기준을 아직까지 갖추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내적 이스라엘권이 해결 짓지 못한 역사적인 사명을 상속 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아담이 잘못한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노아, 아브라함, 모세가 잘못한 것도 내가 책임져야 하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에 걸쳐 선지선열들이 잘못한 것까지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 앞에 서 있는 여러분은 자신의 갈 길이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어느 한때 내가 은혜를 받고 또 내 마음속으로 천국의 일면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확대하여 동지를 모아서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과 부탁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처해 있는 입장과 선생님이 처해 있는 입장에서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의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노정을 걸으려면 역대의 선조들이 해결 짓지 못한 내적인 이스라엘권을 확정시켜야 할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적인 이스라엘권을 확정지으려 하면 외적인 사탄세계에서 그것을 반대하려는 징조가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안팎으로 하나되어 그 세력을 한꺼번에 물리치며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노정을 가는 인간의 사명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내적 사명과 외적 사명이 서로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팎의 사명을 통일할 수 있는 때입니다. 내적인 사명은 영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하고, 외적인 사명을 하려면 선조들이 지금까지 저끄러뜨린 것들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들이 알아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외적인 기준을 개인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세계적으로 승리했다고 하는 기준이 세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7년노정이라는 기간을 세워 나아가고 있는데, 여러분이 완수해야 할 사명이 어느 기준까지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림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권을 다시 조성해야 할 것이 7년노정 중에 해야 할 중대한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새로운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인 이스라엘권을 세계적으로 이루기 위해 내적인 이스라엘을 상속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다가 이스라엘 민족 및 유대교단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과 한국의 교계(敎界)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을 탕감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비참했던 일

선생님은 원래 한국 교계를 중심삼고 출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단의 반박과 민족의 반박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길을 걸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맨 밑에서부터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다시 더듬어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완전한 진리의 터전을 닦아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가 걸어온 노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통일교회가 역사 과정을 탕감해 나오는 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접붙이기 위해서는 처음에 만물을 조건 삼아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조건 삼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재림이상이 이루어지면 재림주님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조건 삼아 가지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것은 말할 수 없이 탄식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제물로 놓이게 된 만물은 더 큰 탄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만물 자체로 보면 타락권 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탄식할 일이지만 인간을 참되게 끌어서 해방의 한 날을 맞기 위하여 제물적인 입장에서 희생되어 온 것 또한 탄식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해방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물 된 만물이 탄식하는 기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물 된 만물과 일치되어 제물 없이도 살 수 있고, 또 제물 없이도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만물은 인간의 뒤에 가고 인간은 만물 앞에 내세워져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자리에서 양자를 거쳐 아들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락하지 않은 아들이 나타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을 중심삼고 그 뒤에 있는 만물과 함께 해방권을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교단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만물이 제물의 기준에 세워진 것 역시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한 일들이 만물에게 탄식을 더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제물시대를 지났기에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이 제물 대신 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었더라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제물은 만물이 되어야 했지만, 그 당시 제물의 실체형을 갖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요, 유대교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던 것은 유대교단이었습니다.

제물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 앞에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제물이 되지 않고,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제물이 된 것은 결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억울하고 비통하고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 스스로가 타락해서 그처럼 슬픈 자리에 떨어진 것이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타의에 의해서 슬픈 자리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으로 보면, 아담과 해와가 스스로 타락해서 죽음의 자리에 나간 것보다도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된 사실이 하나님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유구한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심정에 있는 가장 큰 못 자국은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 과정에서 비참한 일 중의 제일 첫 번째는 아담 해와의 타락이었으며 두 번째는 예수님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세계를 대표한 입장이었고 유대교는 세계의 종교를 대표한 입장이었습니다. 동시에 유대교는 내적인 것을 대표했고 이스라엘 민족은 외적인 것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안팎의 것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또다시 어둠의 길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는 영적 사망과 육적 사망의 두 골짜기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기독교가 영적인 골짜기를 차지하기 위해서 육적인 골짜기를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골짜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육적인 골짜기를 타개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육적인 골고다 노정에서 영적인 골고다 노정으로 가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육적인 골고다 노정과 영적인 골고다 노정을 다 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길에 나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슬픔의 기로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길을 걸어 나오기보다는 좋든지 싫든지간에 죽음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때에 이러한 한을 풀 것이냐? 이 한을 풀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가슴속에 남겨진 못 자국을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슬픔과 눈물로 엉클어진 그 한의 근본을 해원성사하지 못하면 사탄은 ‘하나님이여, 아직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참소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앞에 세우고 제물을 동원하여 땅 위에 영육을 통할 수 있는 주관권을 세워 행사하여야 할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이 고스란히 남아져 재림의 한 날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가는 끝날의 노정에는 탄식이 그들 앞에 놓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사명과 책임

그러면 끝날의 이 탄식을 누가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선민을 대신하여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 남모르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효도하는 우리들이 이 일을 상속 받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교회를 통일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메시아와 같은 사명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된 기준을 갖추어 비로소 승리를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완전한 승리의 기준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어려운 고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판국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 민족을 제물로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을 세계적인 제물로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유대교단이 하지 못한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유대교단은 이스라엘 민족을 제물로 바쳐 가지고서 역사시대의 인연을 닦아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 터전을 닦기 위해서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국가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유대교단은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예수님 앞에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즉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예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모든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가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사상을 자랑하는데, 그 이스라엘 국가는 어디 갔습니까? 교회도 나라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2천년 전에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한 것을 놓고 예수님이 골고다의 산상에서 슬퍼하셨던 것 이상으로 슬픈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살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제2이스라엘 민족을 상속 받아 나가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독교가 세계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이 되었습니까? 세계적인 이스라엘 나라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이스라엘, 즉 기독교가 한 나라 앞에 서서 그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세계적인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느냐? 세계적 이스라엘의 형태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릴 수 있는 무리가 어디에 있느냐? 오늘날의 기독교가 유대교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있으니, 이 교회를 수습하여 세계적인 유대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교회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이 바로 그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수습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아버지의 심정과 일치시킬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세계적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유대교를 표방할 수 없는 기독교는 2천년 전 그 시대를 대표한 예수를 맞아들이지 못했던 유대교와 같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은 예수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민족은 그런 이스라엘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날을 마음속으로 불러 왔던 것이요, 그러한 입장에서 내일을 위한 생활의 무대를 개척해 나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늘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싸우는 투사라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 나라를 일으키지 못하면 교단이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에 유대교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라의 터전이 있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기반을 쌓지 않으면 기독교는 망합니다.

하나님은 발전적인 섭리를 해 나오시기 때문에 교회도 발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하는 목적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 것이냐? 세계와 국가의 가인적인 기준을 아벨적인 기준에다 연결시키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전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세계적인 기준과 교단적인 기준이 확고하게 세워져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예수님은 사탄이 예수님을 쳤기에 꺾여 나갔으나 오늘날의 통일교인들은 사탄이 제아무리 쳐도 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위치에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또 세계적인 국가의 통일을 위하여 우리들은 온갖 충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떠한 교회도 바치지 못했던 정성과 충성을 우리들이 바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제물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제물 되기 위해서 나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떠한 위치에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한 가정을 복귀시키기 위한 제물이 될 것이 아니라,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어서 하늘땅을 통합할 수 있는 그런 제단에 올라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통일교회 교인들은 만민이 고대하는 제물의 자리에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물의 자리에 나가되 죽지 않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교가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크나큰 못 자국을 남겨 맺혀진 그 한을 풀지 않고서는 하늘과 땅을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복귀를 위해서는 원래 만물의 제물시대, 자녀의 제물시대, 부모의 제물시대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배반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부모의 입장에서 제물을 드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앞에 부모의 날이 세워지게 되었으니, 부모를 통할 자녀의 날이 나와야 하고, 만물의 날이 나와야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심정을 해원성사하고 부모의 심정, 자녀의 심정, 만물의 심정을 해원성사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담은 타락했지만 우리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조건을 세워 탄식권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러한 날들을 정할 때에 거꾸로 부모의 날을 먼저 정하고, 그러고 나서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정했던 것입니다.

‘만물의 날’의 의의

그러면 만물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만물을 해원성사시키는 날입니다. 그런데 만물을 해원성사시킬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은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해와의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만물의 날을 기념할 수 있는 완전한 자격자가 되어 있습니까? 그저 여러분들은 막연하게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날을 맞기까지에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피어린 투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만물은 본래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해서 주관을 받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이 없다면 자녀의 날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녀가 참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만 나오듯이 만물의 날도 참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자는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느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 이상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만 이룩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인연된 자리에 태어나고 보니 우리들은 원치 않았던 사탄의 주관권 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여기에 참부모님을 중심삼고 참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의 가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았던 사랑의 가치보다도 더욱 큰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참부모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출발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해 있느냐? 우리는 죽어도 하나님과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는 내 생명의 전부요, 소망의 전체요, 내 운명의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이라고 자기 부모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부모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앞으로 오시게 되는 주님은 참부모의 자리에 있게 되니, 그 부모와 자녀와의 사이를 어떠한 고통이나 위협이나 협박의 총칼을 가지고서도 갈라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갈라져 타락했지만 여기 이 자리는 갈라질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복귀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뼈와 살이 일체를 이루어 천주를 사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만물의 날을 맞이할 수 있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3단계 성장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처럼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도 3단계를 거칩니다. 만물이 소생이고, 자녀가 장성이고, 부모가 완성입니다. 이것이 역사시대의 제물의 역사입니다. 구약시대 때의 제물, 신약시대 때의 제물, 성약시대 때의 제물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땅 위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만물의 날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의 날로 인하여 만물세계가 해원이 되었고, 자녀의 날로 인하여 역사적인 해원이 한국을 중심삼고 벌어졌습니다. 또 부모의 날로 인하여 역사적인 해원이 한국을 중심삼고 벌어졌기에 지구상에서 사탄이 하나님 세력을 몰아낼 수 없는 공고한 터전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지상 섭리의 출발을 공고하게 다져 가지고 사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커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하늘 편의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커 가는 것입니다. 하늘 편의 힘과 기준이 크게 되면 하늘 편이 승리하고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3년에 만물의 날을 책정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민족은 옛날의 외적인 이스라엘 입장이요, 우리 교회는 유대교를 대신한 입장인 것입니다. 또 이 기준은 제물을 대신한 것이니 세계 만민 모두에게 들어맞을 수 있는 탕감기준을 우리 교회가 세워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발전하여 평면적인 발전을 전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노정을 걸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물건 일체, 즉 집과 자기의 세간 전체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아들딸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도 세계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런 것들을 갖춘 입장에 설 때 탕감 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녀의 날, 부모의 날을 세웠고 이제 만물의 날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물의 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그러면 이런 숱한 날들 중에 최고의 기준이 되는 날은 어느 날이냐? 그 날은 예수의 한이 풀리는 날이요,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날을 축하하려면 축하의 예물을 갖추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의 각 국가들, 혹은 통일교회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관점에서 이날을 축하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날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교를 제물 삼아서 넘어갔어야 할 섭리를 해원성사하여 승리의 기반을 닦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이날을 맞이했어요? 뭐 그런 날이려니 했지요? 뭐 틀림없이 사탄이 어쩔 수 없는 그런 기준이 있기는 있겠지 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만물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녀의 날이 없이는 이날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이 나오기까지, 또 자녀의 날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핍박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36가정을 택할 때 그 부모들한테 선생님이 의논했나요? 남의 자식들을 데려다가 의논도 않고 청첩장도 내지 않고 전부 선생님 마음대로 결혼을 시켰으니, 욕뿐만 아니라 몽둥이 찜질까지 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 같았으면 옷을 찢기고 칼을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게, 깜짝하는 사이에 후다닥 해치웠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넓고 얕은 강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강 넓이를 한꺼번에 좁히면 그 깊이는 수십 길이 되지만 그 넓이는 좁혀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뛰어넘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자식들을 전부 끌어다가 하나님의 자식으로 만들어 결혼을 시켰습니다. 하늘의 우주적인 운세를 가지고 복귀노정을 완결하는데 누구한테 의논해야 합니까? 축복해 주는데 누구한테 의논해서 합니까?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36가정은 무엇이냐 하면 조상들입니다. 조상이 되는 사랑을 이루는데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한테 의논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의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2가정은 자녀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 만물의 날을 찾아 세우기까지 선생님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것이요, 또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자녀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사탄의 참소조건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통해서 만물의 날을 찾아 나왔지만, 과연 이 만물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얼마나 정성을 들여 봤습니까?

축복가정의 섭리적 의의

이러한 종적인 역사적인 인연을 전부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탕감할 수 있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를 전부 다 종횡의 관계로 결정지어 놓으면 거기에서 기본 단위인 가정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부모, 자녀, 만물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정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 그래서 축복이 귀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축복이 귀해요, 안 귀해요? 모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하늘의 제단이 가정인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자녀를 갖추어서, 자기의 전 소유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임할 때,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총합한 횡적인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축복가정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역시 이러한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기준을 이루어 놓았으면 여러분들은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밟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인 종적 인연을 넘어섰다는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축복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그 기준을 통과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만물, 자녀, 부모의 순으로 된 시대였어요. 그러나 지금 시대는 거꾸로 부모, 자녀, 만물의 순으로 된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범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축복이 귀하다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축복받은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그러면 여러분은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이런 천법에 적응하는 생활을 했습니까?

통일교회 7년노정을 기준으로 해서 죄목을 따지자면 한 사람도 남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을 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소생, 장성의 단계를 넘어 완성의 단계로 나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종(縱)으로 된 몇천년 역사를 한꺼번에 횡(橫)으로 넘어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즉 6천년 역사를 전부 한꺼번에 넘어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침범권 내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사탄권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해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리를 대신하는 자리를 부여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의 것이자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체는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자녀의 것이 된 후에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그 법도가 땅 위에 남아 있고 인간 생활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보고 자식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사방(四方)을 가릴 줄 알고, 위도 아래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물을 주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까지 사랑해야만 자기 생이 자기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받더라도 줄 수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받을 수는 있어도 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받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주고받고 해야만 되는가? 그것은 창조원리에서 밝혔듯이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주고 받으면 마음이 왜 좋으냐? 우주의 힘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같이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 개척하러 나가면 거기에 누가 따라가느냐? 그곳엔 혼자 가더라도 자기 아들딸이 따라다니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가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혼자 가더라도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간다고 할 때 아담 해와만 가는 것입니까? 실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자녀도 타락했고, 만물도 타락권 내에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조건에 걸려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민이 타락권 내에서 허덕여야 했고, 만물이 타락권 내에서 허덕여야 했던 것입니다.

천지 법도

복귀한 가정이 아버지 앞에 가는 데는 무엇이 먼저 가겠습니까? 무엇이 먼저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에 무엇부터 먼저 지었겠습니까? 만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역사에 먼저 만물이 나타나야 합니다. 천지의 법도를 재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을 막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고생하는 공적인 길에 내세우기를 주저하는 것은 자기 갈 길을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갈 길을 찾아가려니 예수를 공적인 길에 내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물질에 대해서 초월하지 못한 사람은 도의 세계에서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 것이라는 물질은 다 버리고, 처자도 다 버려 두고서 뜻을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만물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으면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고 아들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는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만물이 먼저 나타나야 하느냐?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짓기 전에 만물을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 제물로서의 만물이 먼저고 그 다음에 자녀와 부모입니다. 복귀는 거꿀잡이로 해 나오는 것이기에 만물, 자식, 부모의 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질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앞으로 이런 원칙에 따라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탄세계의 소유물을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할 것인가? 만물이 사탄의 소유가 되고 싶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의 소유가 되고 싶겠는가? 만물은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인류의 참부모의 품에 안기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권 내에 복귀의 인물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만물을 제물 삼아 낙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이것을 해야 할 선지자요, 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사람들이 있습니까?

통일교인은 앞으로 이 모든 기반을 넓혀서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단계로까지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몸으로 우리의 무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축복을 받아서 축복가정의 기준에서 이런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기간만 지나면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복귀 과정에 있어서는 뜻을 위해 몸부림치고 자기의 아들딸이고 재산이고, 무엇이든지 전부 하나님 앞에 남모르게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만물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한 말을 개인적으로, 종족적으로, 단체적으로, 세계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우가 그렇지 않습니까? 아들이 죽는 판에 물건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자식이 죽을 때에는 부모도 죽을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천지 법도가 그런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살라

오늘날까지 선생님이 한 일은 원리를 지상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종적인 역사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하기 위하여 선악을 분립해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역사적인 축복을 해 주는 것입니다. 축복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기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복가정은 우주적인 가정이요, 종횡의 역사를 총합한 가정이기 때문에 전체가 일치단결하여 하나님의 자식 된 도리로서 사탄세계를 완전히 넘어뜨려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은 7년노정 기간에 6천년의 역사를 복귀하여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21년노정 중에서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전부 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이 지나가면 선생님의 집도 사야 합니다.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부자가 안 되려고 해도 부자가 될 것입니다.

요즘 영통인들이 기도하면 영인들이 통일교인들을 자꾸 못 살게 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은 헐벗고, 못 먹고, 못 입고, 쫓김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있을 곳이 없어도 낙심하지 말고 나아갑시다. 우리들은 천하 만민 앞에 원리를 선포해야 할 귀한 존재들입니다. 알겠습니까? 거기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축복가정이 나온 것입니다. 세계를 축소한 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벌어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가정이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자리는 위로는 선조들이 바라보는 자리요, 앞으로는 후손들의 소원을 이루어 놓는 자리인 것입니다. 위로는 공경해야 하고 아래로는 사랑해야 합니다. 영계에 있는 선조들 대신 탕감해야 하고, 또 자기 후손들 대신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자기 아들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천대만대 후손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하는 역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천국 가야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려면 천국을 땅 위에 이루어 놓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천국에 가면 천국은 누가 이루어 놓습니까? 하나님이 이루어 주기를 바랍니까? 역사적인 가치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조를 모시고 후대를 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조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고, 후대의 소원을 성사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통일교인들이 바라는 이상은 우리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나라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소망에 찬 의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생각으로 이상향을 그리고 생활로 의의 법도를 세우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나라가 있어요? 없으니 그 나라를 찾아 이루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나라는 무슨 나라냐? 이상의 나라, 통일의 나라인 것입니다. 만민이 갈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 나라를 이루는 데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가정도 협조하고, 종족도, 민족도, 세계도 다 협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을 통일할 수 있고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 뜻을 위해서 나가서 전도를 해야지! 세계가 복귀되어야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생활을 그렇게 못 해서 되겠습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그 가정을 책임지고, 직장에 나가면 그 직장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의를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고, 물질을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의 공동목표를 위하는 것이 그 가정에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내 자신이 어느 때든지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뜻은 안다고 하지만 생활은 엉망진창입니다. 그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는, 뜻을 떠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데,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기에 보조를 못 맞추고 있습니다. 보조를 못 맞추다 보니 하나님과의 간격이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천국을 이루자

그러면 이 간격을 어떻게 하여 메울 것이냐?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보조를 맞춰야 되고, 보조를 맞추려면 비약해야 합니다. 또한 비약하려면 탕감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때가 되면 통일교회에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여러분이 지금 출발 명령을 받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념은 가정의 이상을 연결지어 나아가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탕감조건을 세우며 전체를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운 것을 터로 하여 구현될 것입니다.

가정의 재산과 자녀와 부모를 위하는 것보다 인류를 위하여 복귀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가정을 돌볼 때도 뜻을 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곧 생활 자체가 하나님 앞에, 전체 운세에 흡수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의 결과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천적인 실체는 횡적으로 볼 때에 탕감역사에 동참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천운을 따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종적으로 비약해야 합니다. 탕감역사를 하려면 제물을 그 조건으로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생활은 생활대로 뜻은 뜻대로, 이렇게 생활해서야 되겠습니까? 특히 축복가정은 책임졌다는 기준을 가지고 세상의 어떠한 가정보다도 특별한 기준을 갖고 하늘의 뜻을 세계화해야만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까? 전도나 직접적인 활동을 못하겠으면 간접적인 생활양식을 갖추어서 사탄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책임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재차 탕감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세운 사람에게는 전도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전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딸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아들딸의 문제보다도 전체목적을 두고 볼 때 막연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숨을 쉬는 것도 그렇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기도를 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면을 전체적인 목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천운을 따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이 기준만 인식하면 됩니다.

가정에서 할 것 다하고, 욕심 낼 것 다 내고, 자기 할 것 다하고, 뜻이니 뭐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철두철미한 자리에서 국가적인, 세계적인 일을 해 나가야 앞으로 천국이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여러분의 생활 터전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국을 이루어 주어도 자기 스스로 천국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어 줄까요, 이루어 나가겠어요?

아무리 세상이 불화하더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천국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뜻을 중심삼고서 우리는 마음천국․개인천국․가정천국을 지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가정천국을 이루지 못하셨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천국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천국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느냐? 민족을 대신한 축복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 역사적인 제물이 되어 탕감하면 그 탕감했다는 조건을 만민 앞에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이렇게 중대한 길임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소망이 넘치는 가정천국을 이루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날이 어떤 날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예.」

역사적인 면에서 만물의 날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서, 섭리적인 중심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기 도(Ⅰ)>

아버지! 아무리 동분서주한다 할지라도 저희의 갈 길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곳을 향하여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사옵나이다.

탕감복귀노정을 가면서 저희들은 낙망할 때가 많았사오나, 낙망하지 않고 참아 나오게 해 주신 아버지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수많은 민족을 세워 놓고 오늘날 한민족을 세우신 아버지시여! 지금까지 싸워 나온 역사 과정에서 한도 많고 깊은 사연도 많았지만, 오늘의 저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시려는 아버지임을 알 때 그 배후에는 무언가 서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 자신들의 고달픔과 저희 자신들의 어려웠던 모든 사실을 생각하다가도 아버님을 대하게 되면 그러한 것들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몇천 번 맞아도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뼈살에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몰리는 고비 길에 있을 때에 아버지를 저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이 그러한 자리에서 도움을 요구할 때에 마음대로 돌아설 수도 없는 입장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저희들은 아버지에 대하여 돌이키는 한때가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런 때가 없었다는 것 또한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한번 돌아서는 날은 천지가 파괴되는 날이요, 인류의 모든 소망이 전면적으로 무너지는 날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6천여 년 기나긴 세월을 지내 오면서 저희 선조들이 아버지 앞에 얼마나 간구(懇求)했으며, 저희들 또한 자진하여 아버지 앞에 모인 때가 얼마나 되옵니까?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돌아설 수 없기에 참고 또 참았으며, 믿고 나왔던 자식들이 모욕을 퍼붓는 자리에서도 혀를 깨물고 마음을 억누르며 참아야 했던 아버지의 사연을 대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할 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 것이며, 사랑하는 딸이라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런 무리들이 합하여 한 종족을 이룩하게 되면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종족이요, 그런 종족들이 합하여 한 민족을 이루게 되면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민족이요, 그런 민족이 국가 형태를 갖추어 세계무대에 나서게 될 때 아버님은 그 국가를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 모인 통일의 자녀들 중에는 이런 길을 가는 데에 아버지 앞에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니 실지로 행하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고, 저희들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할 외적인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을 알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개를 넘어 승리하게 되면 아버지를 땅 위에 모심으로써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되어,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세계가 된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이 모르는 탕감복귀의 노정을 걷고 있는 저희들이 옛날에는 아버지 앞에 충성하기를 원했으나 어떻게 충성해야 할 줄을 몰랐고, 어느 한 날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했으나 그 자리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리를 찾았사옵고, 아버지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 위에 서 있사옵니다. 여기에 모든 피와 살을 뿌려 생사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승리하는 한 날을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나갈 줄 아는 하늘의 용자의 모습을 갖춘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만물의 날을 기하여 저희들이 가야 할 새로운 환경을 마련했사옵나이다. 저희들이 막연히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앞에 작정된 행로를 밟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을 가는 저희 자녀가 가야 할 길임을 알았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가야 할 길이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것을 알았사옵고, 그 길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축복가정이 중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러니 축복가정을 중심삼아 해원성사의 한 날을 맞아야 되겠사옵니다. 천추의 한을 풀 수 있는 하나의 가정 단위를 아버지 앞에 이루어 드리겠다고 하는 거룩한 자녀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사랑의 가정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는 저희들이 평탄한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각자 맡겨진 책임을 다하며,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며, 부족한 자신을 책(責)하면서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리반도에서 이 시간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그때까지 보호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과 저희들이 바라는 이념의 세계가 어서 속히 온 천지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들 각자가 탕감적인 제물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지금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할지라도 충성을 다하여 언젠가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겨진 시간을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아버님의 창조이상, 높으신 그 이상이 인간과 일체를 이루어 억만년 선한 세계를 이루어 나갈 것이었사오나, 우리 인류 시조의 한 날의 실수로 인해 그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옵니다. 창조의 이상을 유린한 인류 시조의 죄상을 저희들은 낱낱이 폭로해 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그 후손 된 저희들은 아버님 앞에 저끄러진 역사적인 그 죄상을 참소하고, 다시 한번 인간 시조를 참소해야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을 이 시대와 역사적인 모든 죄상을 결박해서 제거시킬 수 있는 모습들로 삼아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했으며,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수없이 명령하였사오나 그러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던 저희 선조들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오늘의 이 시점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 된 모습으로 세워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간 모든 역사시대의 서러움이 저희 인간세상에서는 사라진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계 전체의 수많은 영인들과 역사 과정에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가슴 가운데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에 슬픔이 남아지는 한 영계에도 땅과 인연된 고난이 남아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일대에 모든 것을 제거시켜야겠사옵니다. 이와 동시에 역사적으로 한 맺힌 모든 것을 뽑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후손으로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아서 이와 같은 사명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며 죽음의 길을 자처해 나간 사람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었사옵니까?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마지못해 간 사람은 있었사오나 자기 스스로 자처해서 이런 길을 가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통일의 자녀들의 마음과 몸을 다시 한번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내심에서부터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폭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셔서, 아버지의 소원성취를 위한 노정을 스스로 걸어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고 또 아버지를 섬기는 생활을 하였더라도, 진정으로 아버지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자체가 못 되었사옵니다. 아울러 아버지께서 세우신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회개하오니, 저희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충고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땅 위에서 어느 누구도 지키지 못했던 거룩한 만물의 날을 저희들은 지키고 있사옵니다.

이날이 오기까지 역사노정에서 아버님께서는 슬픔의 길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나이다. 탕감의 길을 가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 나오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또한 핍박의 길을 개의치 않고 탕감의 고개를 넘기 위해 몸부림치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저희들이 먼저 보답해 드릴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아버지의 권고와 부름에 응해 나선 형제들이오니 과거 잘못된 선조들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있는 형제들을 아버지 앞에 세우심과 동시에 민족 앞에 내세울 수 있게 하여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마음이 어떤 자리를 넘어가게 되는가를 다시 한번 회상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앞에 참된 모습이 기준을 갖지 못하였다 할진대 아버지께서 명령하시어 저희의 죄악의 심보를 굴복시켜 주시는 이 시간이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마음과 몸이 합하여서 회개할 수 있는 심적 동기를 일으키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자체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아버지여! 이날을 거듭 축복하여 주실 줄 믿나이다. 또한 이날을 사모하고 이날을 위해 정성들이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의 외로운 자리에서 이날을 추앙하고 본부를 사모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당신을 위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는 자리에서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이날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아버지여, 그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의 호소함과 그들의 정성들임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잘 알고 있사오니, 그 결과가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현존하심과 아버지의 임재하심을 이 민족에게 실제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현재 그 뒤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지친 발걸음을 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참을 수 있는 한 기간을 세워 놓고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한과 분을 풀 수 있는 저희들로 인도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타락으로 인연된 그 모든 것을 붙들고 탄원하며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그들의 갈 길을 평탄케 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환경적인 모든 전부를, 아버지, 죄로부터 막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승리할 수 있는 터전에 동참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 과정에서 저희의 선조들이 남긴 죄악의 요소가 오늘에 미쳐져 있다는 사실을 오늘의 저희들이 알고, 그것들을 제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대신한 승리의 모습을 갖추고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 짓기 위해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시대적인 사명을 간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옵고, 이 나라를 위해 눈물어린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그들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7년노정에 있어서의 마지막 만물의 날을 보내게 되오니, 이날 저희들이 보내는 모든 전체가 아버지 앞에 기쁨의 조건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책임분담을 스스로 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일을 위하여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날도 영광되게 하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천 사람 이상을 거느리는 사람은 영계의 감정을 받고 세워진 사람입니다.

신앙의 길은 사선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여기에 자식이나 부모가 어찌 문제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렵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 사람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만 사람의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주시고, 주시고 나서 통곡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나의 수고와 정성 앞에 인간이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도 그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뜻을 위해서 자식을 버리면 그로 인해 후손이 복을 받게 됩니다.

책임진 자리가 자기 생의 승패를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제한된 수명으로 단 한 번밖에 없는 생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복귀의 뜻을 위해 일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빨리 넘고 직행해야 됩니다. 말씀 앞에 서든지, 책임을 맡고 일하든지, 기도를 열심히 하든지, 이 셋 중 하나의 터 위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정성이 나의 생활의 3분의 2 이상의 비중을 차지해야 됩니다.

민주주의는 천국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한때 필요한 주의입니다.

천국에서는 천리법도대로 다스립니다. 이러한 때가 오는데 책임할 사람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심정의 대표자가 영계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중에 제일가는 사랑을 가지고 갔기에 영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투표율이 굉장히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국민이 모두 선거를 귀찮게 생각하며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돈으로 권력을 팔고 사고 합니다. 그렇게 나가면 민주주의는 망합니다.

<말씀 요지>

오늘은 이(식구들의 간증) 집회의 30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로써 이 집회를 마감지으려고 합니다.

제2차 7년노정에서는 이제까지 우리가 바라고 나오면서 만나려고 했던 기준에 어떻게 부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를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서 열두 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가슴 깊이 느끼어 ‘제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왔는데, 아버지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저는 아버지를 버릴 수 없나이다.’ 하면서 자신이 넘어질 때의 고통보다도 최후의 고개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것을 더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된 그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는 사탄도 참소하지 못합니다.

선생님 앞에는 원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원수를 갚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내가 핍박받는 것은 누구 때문이며, 하나님이 나를 그러한 자리에 서게 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나라가 나를 환영할 수 있고, 세계와 하나님이 나를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야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큰 자리에서 환영하려고 하시는데, 중간에서 넘어진다면 누가 동정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싸우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천년대계를 바라보고 참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선조로서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배고파 죽어 가는 자리에서도 떡 한 조각이 있을 때 자기가 먹지 않고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서 천년을 먹고 살 수 있는 보상을 얻습니다.

자기에게 상을 안 준다고 만민이 다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설 때, 하나님이 끝까지 남는 자를 보고 오라고 하여 상을 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고생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보다 큰 상을 주기 위한 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생활에서 자는 것, 입는 것, 먹는 것을 주관하고, 이 세 가지 위에 노력을 더하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리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나는 한때 서러움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6천년간 한 순간도 서러움을 당하시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라는 것이 오늘 여러분에게 주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세계 순회를 하고 돌아온 후 우연한 기회에 장년 식구 몇몇 사람이 현하의 국제정세에 대한 개관을 얘기해 달라고 해서, 선생님이 보는 견지에서 중동사태로부터 기타의 지방에 대한 정세에 이르기까지 세계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희랍과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한 지중해 정세와, 통일아랍공화국의 낫세르라든가, 소련을 중심한 동구라파 일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앞으로 공산주의가 세계 평화에 암적인 존재로 크게 부각될 것이라고 개략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별히 중동 일대를 유심히 돌아본 이유

나는 이번 세계 순회시 시리아, 이스라엘, 요르단을 중심삼고 중동 일대를 유심히 다녀 보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배후에 있는 영인들이 어떻게 움직였나 하는 것을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또 새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들의 수용지, 야영지라고도 할 수 있는 수용지가 있습니다. 이 민족은 복고사상과 더불어 주권을 복귀하자는 복고사상을 가지고 옛날에 아브라함이 축복받은 땅에 다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그 사상을 뺄 수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의 선민사상은 그들이 어떤 환경에 몰림을 받더라도 철두철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에 가더라도 외국 사람들과는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자기 민족들끼리만 결혼을 합니다. 만일에 어떠한 도시에서 아들을 가진 유대인이 며느리를 얻어야 하는데 그 도시에는 유대인 처녀가 없고 그 주위의 다른 도시에 딸을 가진 유대인 가정이 있으면 서로 의논해서 합동생활을 해서라도 자기들만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딸을 출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어디에서부터 왔느냐 하면, 유대교를 중심삼은 친혼사상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가든지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머리가 좋고 상술이 참으로 뛰어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최고로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비상한 방법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최고로 심각한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심각한 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환영 받지 못했고, 쫓김받는 민족으로 수천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어떤 지역에 들어가 살더라도 그때부터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그곳에 기반을 닦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못하고 특이한 신앙사상 하나만을 갖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외국 사람들은 물론 아는 친구들과 같이 술을 마시러 가서도 술은 안 마시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기들 주장만 세우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환영 못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서로 단결하여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근 2천년 동안을 나라 없는 민족으로, 쫓김받는 민족으로 내려오면서도 자기 민족끼리 잘 단결하였기에 아직까지 그 사상과 민족성을 잃지 않고 남아진 것입니다. 유대인 중에 세계적인 학자와 인물들이 많습니다. 또 뉴욕에서도 경제권의 4분의 3을 이들 유대인이 갖고 있습니다. 유대계 사람은 불과 4분의 1밖에 안 되는데, 경제권은 4분의 3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민족이 언제나 바란 것이 무엇이냐? 유대민족의 사상은 무엇이냐? 그들은 언제나 자기 조국을 생각하고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경천사상과 선민사상,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들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국광복의 기쁜 날을 맞이하여 사방에서 몰려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그들은 ‘이스라엘을 창조한다.’ 하며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복잡한 국제 상황과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겠지만 그들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단시일 내에 부흥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요르단 같은 나라도 전부 다 쫓아내 가지고 점령해 들어왔기 때문에, 이 아랍지역 국가들에게는 상당히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유대인을 만나게 되면 가던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몰리고 쫓김받는 자는 망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이번에 여러 가지 사실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때가 왔다. 너희들이 얼마나 담대하냐? 이제까지 품어왔던 역사적인 모든 한을 전세계에 폭발시킬 수 있는 때가 유대 민족에게 왔다. 수많은 민족에게 압제받던 그 한을 이제 직접 상대하는 이 아랍권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폭발할 때가 왔다. 너희들이 일치단결해서 나가려 할 때에는 하나님이 협조한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렇게 몰리고 쫓김받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들어오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깨깨 맞고 탄압을 받아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후원을 받아서 겨우 자기 자리라고 잡고 있는데, 또 때리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치다가는 오히려 자기가 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스라엘을 잘못 때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물론 다얀이라는 국방상이 군사작전을 잘하고 병력을 잘 이용해서 그렇게 성공을 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중해에서 큰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낫세르를 중심으로 군부가 다스리는 애급을 방문한 날이 애급군을 창설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 군사 수효라든가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애급군도 현대식 무리로 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급의 수도 카이로에서는 그들의 공업이나 산업 발전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이로에서 4백여리 떨어진 알렉산드리아에 가 그들의 산업과 공업 발전상을 보니까 너희가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보니까 애급은 이스라엘보다 10년 내지 20년은 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이 동서냉전을 이용하여 계획한 것이 1차 적중해서 발전되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왜 이런 얘기를 지금까지 했느냐 하면, 몰리고 쫓김받던 사람들은 그 끝에 가서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 공생애 기간의 시작에서부터 갈보리 산상까지 몰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 민족에게 몰렸고, 유대교단 한테 몰렸습니다. 또 친척과 형제에게도 몰렸으며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배신을 당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믿고 있지만 이것에 대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 배신을 당하고 반대를 받은 내용에 대해서는…. 제사장한테까지 몰림받고 쫓김받은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이 크나큰 뜻을 품고 와서 정성들이며 보내신 30여 평생의 최후에 믿었던 세 제자마저도 예수님을 부정하고 보따리를 챙겨 다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혼자 끝까지 남았습니다. 모두가 다 배반하고 도망간 그 자리에서 누가 살려 주었느냐? 하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자기 자력으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어 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부활된 예수님은 다시 작전을 해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역사 발전의 공식이 되어 있습니다. 자연 현상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발전하는 것이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한국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니 뭐니 하는 판결이 벌어진 것을 우리 지방의 조직을 통하여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보게 될 때 섭섭한 일입니다. 부정선거를 하지 않고 공정한 선거를 하더라도 불과 2석 내지 3석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금번 투표에서는 많은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또 여당과 야당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야 됩니다. 그 이유는 선생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천운으로 볼 때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런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보도를 들으니 상당히 섭섭합니다.

한민족의 살 길

한국 민족은 지금까지 맞고만 나왔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걸어 나왔지만, 자주적인 권한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침략한 때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침략을 받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침략을 모면하기 위한 반격은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언제나 몰리고 쫓기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왜정 때에는 모진 학정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때에 우리의 민족 사상과 뿌리를 잃었다면 이 민족은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 사상과 뿌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포츠담 회담에 의하여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살길이 무엇이냐? 단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단결하지 않으면 하늘이 들이치는 것입니다. 공산당에 몰리게 해 가지고 이 민족을 단결시킬 수 있는 일을 하려 할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북한과 중공은 물론이고 일본에마저도 공산당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한국 민족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이 민족이 이스라엘과는 그 성격이 조금 차이가 있지만 불원한 장래에 그런 운명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까지 억울했던 입장을 다시 한 번 타파해 버리고 자기들의 2세를 세워서 보무당당하게 천하에 새로운 선민의 권한과 이념을 나타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하는 사실을 듣게 될 때에 전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전부 다 그래야 됩니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은 물론이고 흑인이든 백인이든 또는 황인이든 모든 인종을 초월해서 전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일대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낙심한 것은 구예루살렘에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그 자리에다가 회회교 단을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시리아에 가서 성지를 택할 때에 7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성지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 시리아입니다. 선생님이 그곳을 갔을 때에 동구라파 일대를 중심삼은 세계박람회, 즉 국제박람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전부 자기 나라의 산물을 갖다가 전시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소련 전시관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때의 인상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낮에는 성지를 택하지 못하고 밤에 택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만약에 낮에 서서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있으면 사람들이 돌로 때려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앉아 있던 세르비아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성지를 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지를 택하던 것이 엊그제 일 같군요. 그것은 또 회회교권 내의 문명이 영적으로는 어느 단계에 있을 것인지 알고 싶어서 선생님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애급의 낫세르도 이 회회교권을 중심삼고 아프리카의 개방운동, 백인추방운동을 하는데, 그 배후의 목적은 아프리카 회회교권을 자기의 수중에 넣어 제3지역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야망이 다 깨져 나갔습니다. 그것은 아주 잘된 일입니다. 평온한 이스라엘을 단번에 물리칠 줄 알고 침범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단시일에 그들을 격파할 만큼 어떻게 그렇게 단결할 수 있었느냐?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외국에서 이민족들에게 몰리고 쫓기면서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에 철두철미하여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더라도 우리는 기필코 망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목이 잘려 죽는다 하더라도 그 사상은 버리지 않은 거예요.

이스라엘이 이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적인 사상이 그들의 생활을 통해서 흘러 나가 새로운 문화세계에 접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우수한 힘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면 20세기 후반에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주체적인 사상을 역사 과정을 통해서 상실하지 않고 지니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목숨이 선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 우리는 조국광복을 위해서 살아왔다. 세계 도처에서 몰리고 쫓기더라도 망하지 않고 반드시 복권하는 날을 보고야 죽겠다. 우리가 못 이루고 죽어도 너희들은 그 날을 보고 죽어라.’ 하고 후손들에게 유언으로 남긴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바로 이스라엘의 사상입니다.

누가 이 민족의 전통사상을 고취시킬 것인가

한국을 볼 때, 한국도 망하는 운명에 처했다가 자력으로 독립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후원과 천운이 도래하여 이 민족이 해방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에게는 주님을 고대하는 씨알 같은 사상을 가지고 해방과 더불어서 국가 통일을 위해 하늘의 원수를 격파하기 위한 제2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이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는 구주가 오실 나라입니다. 반면 이 나라에서는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시달리고, 지치고, 뒤넘이치는 바람에 원수들이 이 민족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6․25동란을 통해 한 대 들이맞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 난리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크게 맞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에 있는 한국 민족을 단결시키고, 경천사상을 고조시키고 선민사상과 조국 사랑하는 마음을 누가 고무시키겠느냐? 그것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 목표를 향해서 여러분들을 끌고 갈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이 사회에서 환영 받는 것을 선생님은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몰리고 쫓김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쫓김받는 그날로부터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움받게 될 때에는 우리를 칠 자가 없습니다. 만약에 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위해서 준비해야 됩니다.

자나깨나 그 목적을 위해서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데, 그 아버지는 삼천만 국민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부르는 그 이상으로 불러야 됩니다. 그 아버지로부터는 사랑이 흘러나올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즉 이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민족이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니까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빌딩을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얼마 커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먼 데서 보면 크고 근사하게 보입니다. 뉴욕이 넓지만 그곳에 들어가 보면 뭐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장엄하게 지어 놓고 그 장치와 설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바닥에도 타일을 붙이는 등 아주 현대식입니다. 아주 으리으리합니다. 1931년에 지었으니까 37년밖에 안 되었거든요. 그런데 바닥이 까만 대리석으로 깔린 것이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외형과 내부 장식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건물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만 가지고는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탱해 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철골입니다.

사람이 참회를 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자리, 있는지 없는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가서 버티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제일의 미인과 못생긴 아가씨하고 무엇이 다릅니까? 살이 다릅니까? 살은 다른 게 없습니다. 살은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깃덩어리는 다른 게 없어요. 고깃덩어리는 싸구려예요. 비싼 것은 뼈입니다. 인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살이 아니라 뼈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인을 사랑한다고 해서 미인의 뼈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미인의 두개골과 키스를 하고 미인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인체에서 살이 진짜예요, 뼈가 진짜예요? 물어볼 것도 없이 뼈가 진짜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미남 미녀라 해도 뼈에는 정을 붙일 곳이 있어요? 이 살이 없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의 어떤 사람도 거기엔 정을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뼈에 살이 붙어 멋지고 근사하게 되어 배짱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진짜가 진짜 노릇을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존대 받아야 할 것이 존대 받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한 나타나야 할 것은 나타나지 못하고 가짜가 나타나서 으스대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아무리 핍박받고 쫓김받는 민족일지라도 천년 만년 변하지 않는 뼈와 같은 사상을 지니고 없어지지 않고 남아지면 그 민족은 역사를 주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기독교 문화권이 형성된 것도 기독교인들이 변함없이 그 사상을 중심삼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흐름이 그 사상을 꺾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하나의 형태를 이루다 보니 기독교 문화권이 된 것입니다.

단결해야 산다

이제는 중동의 이스라엘을 잡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선생님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내가 이야기 못 하겠어요. 또 선생님은 이스라엘에 선교사를 보내려고 합니다. 좋아요, 안 좋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누가 갈 것인가? 말은 좋다고 했는데 누가 갈 것이냐? 「…….」 이런 불신의 이스라엘과 같은 패들은 망해야 해요, 흥해야 해요? 「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망해라! (웃음)

한국 민족은 그러한 비참한 역사 속에서 몰리고 쫓김받으면서도 천당 가는 실오라기 같은 길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섭리의 중심 국가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또 와서 짖어 대면 그 주인은 박살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살려 줄 때는 그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살려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와서 그 짓을 하려고 해요? 거기엔 하나님께서도 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타의에 의해서 몰렸고, 타의에 의해서 죽어 갔습니다. 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모든 것이 공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거기에서부터 부딪히는 창살을 꺾어 버리고, 날아오는 화살을 꺾어 버리고, 사망의 물결을 밀어 버리고 지금까지 세계를 정복해 나왔던 것입니다.

한국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면 우리 삼천만 민족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단결해야 합니다. 못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가 하나로 단결되지 못하면 이 역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종단도 마찬가지로 서로가 하나의 공의의 법도를 세워서 그 법도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지 못하면 망합니다. 우리는 망하게 하는 이런 운세들을 쳐부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깃발을 높이 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그 대신 우리가 백 퍼센트 맞고 천 퍼센트 맞자는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맞음으로 말미암아 100분의 1, 1000분의 1로써 청산 짓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하나님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10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100을 맞게 될 때에는 90에 대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보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맞을 때는 고이 맞으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은 단결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위정자와 국민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 국민들끼리 서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동서남북이 서로 갈라져 나가게 되면 진공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가 견제하는 입장에서 한 중심을 세워서 전부 다 목적이 일치될 때까지 그 중심을 향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방이 다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소망의 기회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놓여 있는 한국 실정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러한 쫓김받은 민족 앞에 우리 통일교회는 또 쫓김받는 것입니다. 그것 섭섭해요? 그러나 사실은 쫓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왼손으로 이렇게 치면 어디로 가요? 오른쪽으로 갑니다. 또한 오른손으로 이렇게 치면 어디로 가요? 왼쪽으로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의 왼쪽을 쳐서 바른쪽으로 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역시 선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누가 치느냐? 하나님이 치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는 대로 하지 말아라. 너 그렇게 하겠니?’ 하고 이방 나라를 시켜서라도 치는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선과 하늘나라의 선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능선을 넘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짐을 지고는 안 됩니다. 먹을 것을 배불리 먹어서도 안 됩니다. 배가 고파서 허리가 짜부라지고,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38선과 같은 분수령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사탄세계를 완전히 청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세계의 어떤 것 하나라도 붙들고 넘어서지 말고 완전히 청산하고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통일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최고로 사랑하는 자식에게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그런 사상을 받은 가정은 그런 자리에 서야 되고, 그 사상을 받은 민족도 그 자리에 서야 되고, 그 사상을 받은 국가도 그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산정을 향하여 2천년간을 넘어질 듯 말 듯, 넘을 듯 말 듯하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이제야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몰림받고 쫓김받던 자리를 극복하고 넘어서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들 앞에는 시련이 없을 것이다 하는 거예요.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사람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지 모를 아랍권 국가와 민주주의 세계와의 싸움입니다. 공산주의는 아랍권과 하나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낫세르 군부한테 놀란 것이 소련입니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망하게 되면 아랍권과 합동해서 제2의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섭리적인 책임을 진 통일교회가 이것을 어떻게 쳐부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파키스탄 일대로부터 인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공산주의와 회회교권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의 예상과 판단이 그대로 꼭 맞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여러분은 누구 편이냐? 편이라고 하게 되면 아버지도 있고, 누나도 있으며 형님, 사촌, 팔촌도 있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민족과 비슷합니다. 극동의 유대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일전쟁이 한국 때문에 일어났고, 노일전쟁, 대동아전쟁도 역시 한국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난문제의 나라도 한국이요, 유엔 기구가 생겨난 후 국제위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의논했던 나라도 바로 한국입니다. 거 이상하지요? 그러나 이런 수많은 사연들 속에서도 이 민족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한민족은 개인적으로 보면 전부 다 아주 우수합니다. 세계 어느 민족과 비교하더라도 일대일로 보았을 때는 최고 우수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교육을 잘못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 아버지가 교육을 제대로 못시키니 우리가 의붓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데려다가 교육을 잘 시켜 훌륭한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일교회가 하자는 것입니다.

왜 한국에서 통일교회가 몰림을 당하느냐? 몰림 많이 받았지요? 「예.」 자유당 때도 몰렸고 민주당 때도 몰렸으며 혁명정부 때도 몰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로부터도 몰렸습니다. 또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처음 선생님이 이렇게 해야 되겠다고 가르쳐 주면 속으로는 못마땅해 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무것이나 말해요? 가능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통일교회 교인들은 많은데 사지에 들어갈 때는 선생님 혼자입니다. 정말이에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지 말아야 됩니다. 그 자리를 천년만년 고수하고 나가 보십시오. 그러면 세계가 우리에게 말려 들어옵니다. 따라서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그 자리를 천년만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통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몰리고 또 몰려 보자는 것입니다. 10년도 괜찮고, 20년도 괜찮습니다. 또한 30년, 40년, 50년, 60년, 70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그다음에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자기 중심하고 몰리게 된다면 2년도 못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방을 위해 간다고 할 때에는 가면 갈수록 그 중심이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중심이 잡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10년이면 10년, 50년이면 50년 동안 몰림받고 나아가 쓰러져 없어지지 않고 서 있으면 간 것만큼 그것이 반경이 되어 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국은 5천년 동안 몰림받고 왔는데, 그래도 5천년은 되어야 여기서 자리잡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5천년의 모든 움직임이 전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 큰 게 좋아요, 작은 게 좋아요? 누구나 큰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들과 같으니까 큰 것을 좋아합니다. 다 이해합니다. 지금은 그런 세상입니다. 그 복도 큰 것이 좋아요, 작은 것이 좋아요? 모두 큰 것이 좋지요. 그러면 매도 큰 게 좋습니까? ‘아이구!’ 하며 그것은 다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큰 것을 받으려면 반드시 큰 매를 맞아야 됩니다. 큰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배포가 아주 두둑합니다. 오늘 선생님이 돈이 있어서 빌딩을 짓는다 하게 되면 한 360층짜리 빌딩을 한번 지어 봤으면 좋겠어요. 돈만 있으면 짓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 같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선생님이 지금 반대를 받고 있지만 반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선생님은 더 커져서 점점 파워가 세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누가 이기는 것입니까? 그들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러면 다 큰 것을 좋아하는데, 통일교회는 무엇을 좋아하느냐? 큰 복은 싫다는 것입니다. 복을 덮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또 행복을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진흙탕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보석을 캐려고 할 때 그 보석을 덮고 있는 것은 반석입니다. 보석을 캐려면 이 반석을 깨내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을 덮고 있는 것은 매와 수고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찾으려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흥진비래(興盡悲來) 또는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알고 보니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을 복 받게 하기 위해서는 통일교인들을 죽도록 고생시켜야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욕심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어요? 그것이 정리(正理)인 것이며, 공인(公人)의 도리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생하라고 했습니다. 7년 동안 나가서 고생하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고생하기 싫다고 욕을 해도 선생님은 끌고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선생님도 이런 일을 하기가 좋지는 않습니다. 선생님도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그런 이야기는 하기 싫습니다. 선생님도 여러분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의 입이 벌어지고 눈이 커져 가지고 죽어도 좋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는 안 하고 매일 죽도록 고생하라는 말만 하느냐? 무슨 원수가 맺혔다고 여러분을 대해 고생하라고 하겠습니까? ‘집안을 대해, 식구들 대해 이렇게 하라고 하는 이유가 뭐야?’ 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행복한 터전을 닦고 있는 이 한국에 반드시 고생덩어리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복 받을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려면 그 고생 덩어리를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덮여 있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영원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조국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조국을 창건해야 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이상을 이루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조금만 참을지어다!’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여러분이 삼천만 민족 앞에 봉화를 들고 나가, 여러분이 눈물 흘릴 때 그들이 눈물 흘리며, 여러분이 피땀 흘릴 때 그들이 동정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삼천리반도에서 악의 터전을 타파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지상천국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반석을 깔려면 정과 망치가 소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모되기 싫어하는 사람은 구경꾼밖에 되지 않습니다. 화평한 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좋지 못한 모든 것은 다 떨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해야 할 옳은 말을 얼마나 했고, 옳은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쳤느냐?

통일식구가 가야 할 길

대한민국의 해방과 더불어 세계 만민 앞에 전통적인 사상을 넘겨주고 가자는 것이 통일의 무리입니다. 그 발자국을 만민이 따라가면서 눈물지을 수 있는 역사적인 전통을 마련하는 것이 통일의 식구들이 가야 할 방향입니다. 이 길은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삼천만을 위하여, 세계복귀를 위해서 가야 됩니다. 아시겠지요? 「예.」 오늘 우리가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단결하지 못하는 한 떠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요즘 국제정세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시켜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대한 맹주의 꿈을 다시 배양시켜 한․미 강화조약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때 다시 한국으로 거동을 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일본 통일교회 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선생님이 일본의 청년들을 모아 놓고 훈시할 내용입니다. 이것은 직접적인 내용이고 간접적인 작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들이 모릅니다.

결론은 많은 매와 큰 고통을 달게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그러했기 때문에…. 그 고통이 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민족이 에워싼, 죽음을 재촉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철석같은 신념으로 자기 민족의 역사적인 전통에서 뿜어 나오는 사상,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섭리적 사상을 대적할 자가 그 누구겠습니까?

이제는 이스라엘이 중동의 좋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만 점령하고 있으면 아무리 낫세르라 하더라도 힘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애급 땅이 애급 민족의 것이 아니라 전부 다 하나님의 땅인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모인 것을 보니 서울 사람들은 얼굴이 흰데 지방 사는 사람들은 얼굴이 까맣군요. 얼굴 까만 식구들에게 미안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출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쁩니다. 꾸중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울 사람 중에서도 공적 노정을 위해서 출입을 많이 했으면 그 사람을 잘 대접해 주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왜 모였습니까? 그건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모인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 모였을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에 대한 참다운 선물

선생님이 이번에 세계 순회를 일본에서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작년 3월에 일본에다 초청장을 보내라고 했더니 30여매를 보내 왔습니다. 선생님이 한국의 일 다 해놓고 간다 또 간다, 말로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웃음) 통일교회 식이라고 해서 웃지 마시오. 알고 보면 하나님 식입니다. 통일교회 식에 의해 움직이게 될 때에 하나님 식하고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일본 식구들은 ‘초청장을 보내 드렸으니 한두 달 후에는 선생님이 오실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전부 방문할 것이다. 그러니 선생님 오시기 전에 더욱 교회를 발전시키자.’ 하며 활동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일본에 안 간다.’ 했더니 일년 동안 상당한 발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간다 간다.’ 하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간다.’고 하는 날짜를 정해 두었으면 거짓말한 것이 되지만, 선생님은 ‘언제 갈지 모른다.’ 고 했으니 거짓말은 안 한 것입니다. 그 ‘모른다.’는 말이 참 고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하며 끌고 나오다가 보니 이것이 한바퀴 뺑 돌아서 서로 이마를 맞대게 되었습니다.

안 가게 되면 다 틀려 버립니다. 이젠 안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마가 맞닿은 날이 6월12일, 바로 내일입니다. 내일은 꼭 김포공항에 나가야 됩니다. 내가 지방에 있는 여러분들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차비 없애면서 왔군요. 나는 본래 전송 같은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에서 공부하던 학창시절에도 절대로 전보를 안 쳤습니다. 역에서 집까지 한 20리 됩니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바람 불고 추운 날 또는 비오는 날에 걸어가면서 가만히 기도해 보면 ‘참, 훌륭한 분이 세상을 지었구나!’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에 부모나 형제들이 와 가지고 쑥덕쑥덕하게 되면 고향의 맛을 다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해가 기울어 밤이 되었을 때와 또는 흰눈이 내리던 그런 밤의 추억들은 일생 동안 잊혀지질 않습니다. 조그만 선물이나마 양손에 번갈아 가면서 들고 갈 때, 부모가 어떤 얼굴로 대할까? 생각하면 아주 감상적인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기간이 얼마나 복된 기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선생님이 오늘도 여기에 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마음으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좋다고 나왔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에게는 손해가 많습니다. 듣기에 섭섭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번 순방 길을 위해 여러분들이 환송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을 넘게 해서 춤을 추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들에게 선물을 가져가야 되겠습니다. 그럼 무슨 선물을 가져갈 것이냐? 돈으로 산 선물을 가져갈 것이냐? 돈으로 산 선물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는 데에도 선생님 혼자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전체 식구를 마음에 싣고 거기에 하나님이 중심이 되시어 하나님이 기뻐하고, 통일교회 식구들이 기뻐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심부름꾼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이 분주스럽게 해 가지고 와서 선생님이 기도하려니까 정신이 산만해져서 한 10분 동안 상당한 고충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이 준비 없이 왔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을 오라 하는 사람입니까? 지방에서 온 사람을 혼내 주려고 했으나 선생님 때문에 왔다고 하기에,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본래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주인의 입장에서 박대하는 것이 됩니다.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가방을 들고 떠나야, ‘아이구, 선생님이 언제 가신지도 모르고 놓쳤구나!’ 하고 울고불고 해야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 대부흥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남이 모르게 살짝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동경에 도착해서 ‘동경 도착’이라는 전보만 쳐 놓으면 울음판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라면 전부 다 울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콧물까지 나오도록 울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가겠다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여기 와서 선생님이 언제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한 시간 반쯤 후에 ‘선생님께서 가셨구나.’ 해봐야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생각할 때 선생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나타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젊은 사람들을 전부 다 겉으로 드러내서 출세시켜 보려고 하지만 그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선생님 말만 듣고 나가서 죽으라면 죽고,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엎드리라면 엎드리고, 일어서라면 얼어서고, 들라면 들고 시키는 대로 해 보라는 것입니다. 출세가 되나 안 되나 그렇게 매달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짱이 맞고 마음이 맞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에서 수준이 있다고 하는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가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제일인 것처럼 으스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데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면 아주 거북합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교육 받기를 그렇게 받지 않았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낮아집니다.

일본 식구들은 선생님이 오길 바라고 여러분은 가길 바란다 할 때 여러분이 ‘어서 가십시오.’ 하고 밀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어서 오십시오.’ 하기도 전에 받다가 꽝 넘어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밀어 보라는 것입니다. 참소해 봐라 그말이에요. 그렇게 하면 합격입니다. 식구라는 명사는 다 같을지 모르지만, 일본 식구라고 하면 그래도 기분이 조금 다릅니다. 여러분들, 일본 사람들에게 질 거예요, 안 질 거예요? 「안 질 겁니다.」 그런 정신나간 사람들 무색하리 만큼 뛰어 보세요. 그렇다고 노래하거나 박수를 치지는 말고. 그리고 눈을 깜박거리지 말고 눈을 뜨고 ‘너희들을 사랑해!’ 해야 됩니다. 나중에 일본 사람들이 그 무엇인지 모르게 위압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일본이 하나님의 계획에 포위될 수 있도록 일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바람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물 같은 성신

성신에는 무슨 성신이 있습니까? 불 같은 성신, 비둘기 같은 성신, 바람 같은 성신, 물 같은 성신, 기름 같은 성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체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이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물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름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비둘기, 즉 성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유겸손하고, 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물 같은 성신, 바람 같은 성신, 구름 같은 성신 하며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 살겠어요? 물 없이 살겠어요? 기름 없이 살겠어요? 모든 관절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신의 속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 그 속성을 가만히 분석해 볼 때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내일이면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떠나는데, 내일 못 나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오늘 이 시간에 작별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면서 여러분에게 제일 가깝게 관계된 분야의 말씀을 남겨 주고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가까운 것, 곧 우리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밥을 할 때나 청소를 할 때, 즉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또 인간이 밥을 하고, 씻고 하는 것보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 보면, 큰 집을 지을 때 수평을 재야 하는데 그때에도 고무 호스에 물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재는 것입니다. 물을 왜 사용하겠습니까? 물은 언제나 수평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물은 수직의 중심 앞에서는 언제나 90도가 됩니다. 이 90도가 될 수 있는 바탕을 영원히 유지합니다.

그러면 이 수직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물은 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물이란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틀림없이 모신다는 것입니다. 또 모시려는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은 수평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평은 수직에 대하여 영원한 입체적인 구성체를 이루는 절대적인 안정된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성신의 속성 중에 물 같은 성신이란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만민을 고루 넓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물론 물에도 여러 가지 속성이 있지요. 그런데 성신이 다른 것보다도 전세계 만민을 그렇게 만들기 위한 사명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선생님은 옛날에 한강의 잔잔한 물결 위에 돌을 던지는 놀이를 많이 했는데, 아침보다는 저녁에 더 맛이 납니다. 저녁노을이 질 때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돌아가는 광경과 복잡하게 지낸 하루해가 뉘엿뉘엿 고요한 물결 속에 잠기는 것을 보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럴 때 납작하고 동그란 돌멩이를 손아귀에 감아쥐어 가지고 던지면 이 돌멩이가 살랑살랑 날아가다가 수면에 닿을 때마다 튀는 것입니다. 돌멩이가 너무 커도 안 됩니다. 그 돌멩이가 날아가다가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튀다가 끝 부근에 가서는 그냥 물을 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 느껴지나요? (웃음) 여러분들이 웃는 것을 보니 다들 실감이 나는 모양이군요.

성경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들이라 할 때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복수를 뜻합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정말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 귀한 복수인데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서 딸이 없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들 가운데에 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창조하기 전에는 아들밖에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아들을 찾아 나오는 일입니다. 아들만 찾으면 딸은 자연히 나오는 것입니다. 땅은 여자를 상징하는 것이요,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남자 상징이고 출처는 하늘이며, 땅의 선지들은 신부 상징이며 출처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신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 되시는 주님만 오시면, 해와가 아담의 갈비뼈를 통해서 만들어졌듯이 딸은 자연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 말고, ‘야! 그 아들 멋지구만.’ 해야 됩니다.

하늘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늘의 아들이 된다.’ 했으니, 여러분, 그런 물의 성격을 본받으십시오. 즉 성신의 그런 성격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특히 아주머니들은 그 마음에다가 모래 하나만 던지면 그것이 큰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탄의 불화가 터지고 지리멸렬하는데 그래서 되겠습니까?

물에는 생명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4분의 3이 물입니다. 물은 사람한테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물은 땅의 육신에게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영적으로도 그와 같은 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도 물이 싸고 있는 것이요, 복중에 있는 아기도 물이 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주머니들은 아기들의 물주머니를 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부 다 물에서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기름 같은 성신

그다음에는 기름입니다. 기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러면 석유가 더 좋아요, 휘발유가 더 좋아요? 자동차에는 석유가 더 좋아요, 휘발유가 더 좋아요? 휘발유가 더 좋다고 할 것입니다. 또 기름이 무슨 작용을 하느냐 하면 윤활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성신이 와서 윤활작용을 하게 되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신을 거쳐 나가는 데는 통일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또 조화가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가 닥치더라도 흐흐거리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름이 그런 거예요. 다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기름을 발라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건강해지면 힘이 생겨납니다. 그 힘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몸에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기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면 기름은 어떠한 성질이 있느냐? 기름은 뜨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기름이 가라앉는 것 봤어요? 기름이 뜨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됩니다. 양반처럼 에헴 하고 버티고 있는 사람은 무거운 사람입니까, 가벼운 사람입니까? 「무거운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뜰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주의해야 됩니다.

세계의 만민을 누구든지 들어 일으킬 수 있는 분이 성신입니다. 들어 일으켜지려면 가벼워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물건은 비쌉니다. 값은 비싸지만 질적으로 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근량은 있지만 모든 면에 있어서 참을 중심삼고 가벼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악을 중심삼고 가벼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들어 올리려고 하더라도 항상 참을 중심삼고 다른 사람의 이상에 떠오를 수 있는 가벼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서로서로 감싸야 됩니다. 누구든지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치로 볼 때에 높아지려면 온유겸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교만하지 않고 온유겸손하며 항상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름의 성질은 어떠합니까? 본래 빳빳하지도 않고 깔깔하지도 않으며 보들보들합니다.

미국에 가면 캘리포니아주하고 애리조나주와, 그리고 네바다주와의 삼각지역에 후버댐이 있습니다. 이 세계적인 건설 공사에 18,500만 달러를 들였습니다. 수천년 동안 몇개 주에서 흘러내린 물이 그 한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반석 위에 떨어지는데 이 반석이 엄청나게 패었습니다. 이 댐의 낙차는 172미터나 됩니다. 이 댐에 발전기가 있는데 그 발전량이 수십만 kw가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 큰 발전기가 상당한 속도로 돌아갑니다. 발전기의 축에는 베어링이 들어 있는데 여기는 반드시 기름이 들어가야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 큰 발전기를 회전시키는 데는 기름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회전하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기름을 교환해 주는 일입니다. 만약 축과 베어링이 닿는 경우에는 높은 열이 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국은 발전기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에도 기름과 같은 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신의 속성에는 기름과 같은 면도 있습니다.

불 같은 성신

다른 것도 있지만 다음에는 불 같은 성신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도 조금만 힘을 가해 세 번만 문지르면 불을 만들어 냈습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 가 있을 때에도 아무것도 없지만 불을 잘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가다가 산에 가서 아무것이나 몇 가지만 챙겨 가지고 돌에 다 대놓고 마찰을 시키면 불이 잘 일어납니다. 거기에 성신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아, 붙어라.’ 하며 붙으라고 소리만 친다고 해서 불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기적이 안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이 나려면 빨리, 그리고 열심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열이 혈관을 통하여 지금 빠른 속도로 돌면서 주고받고 있는 것입니다. 열은 가만히 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고받아야만 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받을 것은 없어도 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받을 것은 있지만 줄 것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고 선을 주장하는 사람은 도움을 주려고 해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짐승같이 악한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지만 불행한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영원히 받을 수 있고 영원히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영원히 받고 영원히 주는 것이며, 세계를 통해서 영원히 주는 사람이 기쁜 사람입니다. 또한 그 사람이 복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중심삼고 만민이 주고받으면 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열이 생기면 부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로써 새로운 부활이 벌어집니다. 나무가 타면 재가 되어 없어지지만 불로써 새로운 부활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불같은 성신이라는 것입니다.

바람 같은 성신

다음에는 바람 같은 성신입니다. 바람은 기압의 변화로 인해 생깁니다. 이것이 이동할 때는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은 최고의 고기압과 최고의 저기압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이것은 대양을 넘고 지구의 반경을 넘어서라도 가는 것입니다. 의기양양하게 갑니다. 거기에 원수까지 밀어젖히고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태풍을 좋아합니다.

몇 년 전에 배를 타고 낚시질을 갔다가 바람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배가 파손되고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빗발이 들이쳐서 얼굴이 따끔따끔해도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사나이라면 한번 해 보고 뭔가를 느껴야 됩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필생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얼마나 고민을 하는지, 어머니 아버지도 없고 하나님만 부르게 됩니다. 그때 모든 신경을 기울여서 자기의 살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어떻게 불을 피우냐가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신념을 가진다면 대학에 가서도 모든 과목에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온 우주가 전부 고기압일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의 삼천만 민족이 한꺼번에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우주의 기압의 상태는 그 높고 낮음이 언제나 고른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늘의 높으디 높은 사랑이 땅 위에 인간이 없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무제한 공급해 줘야 하는데, 그러한 사명을 해야 할 자가 성신입니다. 성신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기성교회 신자들이 예수 믿고 성신을 받아서 천국 가자 하는데, 갈 수 있어요?

성신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성신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물이 든 컵에 무엇을 집어넣어도 수평이 되듯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기름같이 가벼워져서 뜨라는 것이며, 다음은 정성들여 주고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없어진 사람이 있으면 보충해라, 언제나 고르게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평화의 주체가 되고 평화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세움으로써 성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하나님도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식구들은 물 같은 성신, 불 같은 성신, 기름 같은 성신, 바람 같은 성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전부가 되지 못하겠거든 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물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6천년 동안 별의별 사람들이 너를 때렸을 텐데 얼마나 울었겠니? 너무 울어서 나온 눈물이니…?’ 이거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역사가 바뀌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기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만약에 기름이 없다면 살 수 있어요? 이 기름은 모든 힘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바람 같은 성신입니다. 저기압권 내에 있는 자들은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전체가 골고루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져야 봄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직접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중심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딪치는 곳으로 가서 물 같은 사명을 하고, 바람 같은 사명을 하고, 불 같은 사명을 하고, 윤활유 같은 작용을 해야 됩니다.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여러분이 각성해서 백 퍼센트 변화되고 그러한 인격을 갖추어 사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언제 돌아올까 생각날 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며칠 전에 집회를 끝내면서 결론적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때 식구 50여 명으로부터 통일교회에 들어온 간증담을 들었는데, 그동안 전 통일교인들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구경하지 못한 것이 없어요. 매를 맞아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치고, 코피를 흘리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을 다 보았습니다. 그 무지한 인간들…. 헤아려 보면 역사적으로 비참한 사실이 많습니다. 인간이면서 서로 복수하고 원수를 갚으려 했던…. 눈물 흘려야 할 사연이 많습니다. 내 자신 일대를 중심삼고 보았을 때 나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참고 나온 것입니다. 내 손에 놀아날 사람이 많습니다. 참으라 이겁니다. 내가 억울하고 비운에 처해 있으면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 있어요. 여러분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진정한 충신과 효자

이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이 선생님과 같은 핍박의 길을 가야 되겠고, 또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전세계 만민이 가야 할 탕감노정의 합격권을 만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만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고난을 극복한 그 장면이 여러분 개인에게서 벌어질 수 있는 때는 한때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을 거느리고 복귀섭리를 책임지고 계신 아버지께 있어서는 그러한 사건이 연속되는 입장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을 보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대개 자기 서러움에 북받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충신은 그렇게 못 합니다. 효자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내 자식이 죽고 내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그 자식을 붙들고 아내를 붙들고 울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 지도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진정한 충신이라면 자기의 사연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의 뼈에 사무쳐 있을 뿐이지 나타내 울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군왕을 위해 그런 한때를 못 가졌지만, 부모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선한 위치에 서서 군왕보다 더 서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을 때에는 하늘이 그 할 바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효자 효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될 때, 자신이 슬프더라도 자신의 슬픔만을 중심삼고 서러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또 분함이 있어도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서러움보다 몇천만 배 더한 하나님의 서러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0억 인류를 품으시고 복귀의 한 날, 소망의 한 날을 이루시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천태만상의 곡절이 있고,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충스런 가슴을 억제해 가면서 내일의 소망인 승리의 한 날을 이루시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오늘의 슬픔을 잊어버리고 넘어가고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모시는 우리는 자기의 서러움과 괴로움에 몸부림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 전도할 때 여러분이 욕을 먹으면…. 자식이 다른 사람에게 매 맞으면 부모의 가슴은 얼마나 아픈지 압니까? 만민의 입장에 들어가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가슴에는 편한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 많은 부모는 쉴 새가 없고, 고달파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민의 구원을 책임지고 섭리해 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걱정하시는 것을 내가 책임지고 거쳐가야 할 길에서, 악과 더불어 대결할 때에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악에 대해서 한 번도 비굴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안심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오냐! 만복이 있으면 너에게 주마.’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세에 이어질 아버지의 위업이 있으면 고이 계승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네 사정과 내 사정이 통하고 하나되어 서로 붙들고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천하가 해방을 맞는 한 날에 있어서는 숨겼던 만복을 우리에게 상속해 주기 위해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깊은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도 지금 원수가 많지만 원수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매를 맞고 피를 토해도, ‘피야 넌 아무개 피가 아니다.’ 하며 그 피를 보고 ‘아버지여, 이 피는 세상의 어떤 사정이 있는 사람의 피와 다릅니다. 절대로 다릅니다. 저는 오늘도 낙심하지 않겠사오니 아버지도 걱정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선생님은 절대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이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용사의 갈 길

선생님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모진 매를 맞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분합니다. 분한 일이 있을 때에는 전부 갈아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할 때는 원수들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이 원수들 앞에 아직까지 미련이 남아 이들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소원을 갖고 나온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할 때 위로해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이 맞고 돌아올 때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네 개가 짖든 말든, 바위가 굴러가든 말든 내 갈길이 바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이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십 평생을 바쳐서 이 일을 해 왔습니다. 왜정 때에서부터 이 일을 하다 반대받아 감옥에도 갔었고, 가는 데마다 쫓기고 몰리고 배척받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사탄을 원망치 않고, 다만 그 환경을 탄식하며 이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세상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싸움이 끝나는 날에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 선생님의 갈 길입니다. 선생님은 그 행로를 걷기 위해 준비하기가 바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주인 된 입장에서, 내일의 승리를 표방하는 그 자리는 자기 자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 싸움판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용사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연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마음에 필름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펴 보았을 때, 역사의 갈림길, 혹은 시대의 뒤안길에서, 온 인류가 쪼개지는 그 자리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사연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사탄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대신하여 사죄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이 나오게 되면 사탄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가 진정한 충신과 효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탄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공적을 세우게 된다면 악한 세계는 이 지구상에서 근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은 지옥을 해방할 수 있는 한 날이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나가는 데는 기성교인들이 이단이요, 사교라고 하더라도 참고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몇십 번 통곡시킨 사나이입니다.

선생님은 죽음 길에 처해 있을 때에도 원수들이 득실대는 그곳을 거침없이 들어갔습니다. 얼른 죽으라고 사지에 몰아붙였지만 오히려 그들이 죽어 갔습니다. 하늘이 죽음의 보따리를 바꿔 쥐게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몰리고 쫓겼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가자! 한 걸음이라도 더 가자. 앞으로 우리가 크게 되면 원수와 대결해도 패자의 서러움을 느끼지 않고 승리의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받드는 정성을 가지고 힘차게 나가자.’고 결심하고 나왔습니다.

해가 지면 어둠이 올 것이나, 우리는 그 어둠에 잠길 것이 아니라 이 지구성에서 광명의 새아침, 새로운 햇빛을 바라보면서 가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라 이런 길을 가게 되면, 이제는 통일교회가 드러나게 되고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고 싶거든, 잠시도 쉴 수 없는 억울하고 분통한 자리에서도 아버지 앞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또 이러기를 바라고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사정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할 때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일생이 서럽고 분하고 원통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고생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고, 매를 맞지 못한 것이 한이 되고, 억울한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이 한이 되고, 피를 토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하면서 가는 것이 하늘 앞에 하나의 조건을 세우고 충성을 다짐하며 나가려는 사람들이 느끼며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디 내가 쉴 때에 여러분들이 평소에 굳혀 왔던 뜻을 펴 나가 주길 바랍니다. 또한 아버지를 위해 억울함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 과거가 있거든, 그 시절을 회상하며 변함없는 일념으로 누구도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인내의 일로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해 충성하기 바쁘고 고통 중에서도 감사하기에 바쁜 사람이 된다면 천국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못 가게 된다면 왜 이러겠습니까?

그러한 여러분은 이제 선생님이 몇 개월쯤 나가 있을 텐데,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어렵더라도 견디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이제 헤어지면 여러분은 섭섭하겠지만 다시 만날 날과 우리들이 함께 할 날이 있다는 소망을 걸고 활동하기 바랍니다. 그러니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소망을 갖고 정성들이면서 잘 싸워 주기를 부탁합니다. 아시겠지요? 「예.」

긴박한 한국의 실정을 생각하면 오늘이 바쁘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원리를 통해 볼 때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개인을 중심삼고 하늘의 책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선생님이 부탁한 대로 모든 것을 뜻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한없이 슬픈 아버님의 사정, 한없는 원한에 사무쳐 가슴이 막히는 입장에 계신 아버지의 사정, 그 사정을 지니시고도 표현할 수 없었던 아버님, 수고의 탕감복귀노정을 걸어 나오시면서도 사정을 그 누구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달림을 받은 아버지이신 것을 아옵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 누가 형통의 모습으로 단장하고 나타나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가 있겠사옵니까?

충신의 모습으로 만우주를 대표하여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다하는 자기 자신이 못되었을 때는 죽음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숱한 역사노정에서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수고시킨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옵니다.

불쌍한 한민족을 중심삼고 눈물을 흘리신 아버지의 애절한 사연이 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달리고 있는 자식에 대해 박차를 가하고 채찍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그 누가 알겠사옵니까? 불초한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괴로움을 들고 나와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변명할 적마다 슬픔에 사무쳐 통곡하며 저희들과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사연이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지워주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저희 자신들을 다시 한번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스승이 가는 길을 따라 나오기가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죽음의 길을 가는 그들의 힘이 지쳐 있사옵니까? 그 마음이 나약해졌사옵니까? 하늘은 죽지 않았나이다. 스승도 죽지 않았나이다. 하늘이 남아 있고 스승이 남아 있으니 재기하여 가야 할 길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이 부르는 최후의 그곳을 넘을 때까지 저희 앞에는 가시밭길이 남아 있기에, 오늘도 그 일을 재촉하고 내일도 그 일을 재촉하더라도 아버지 앞에 충효의 절개를 다하여 모든 것을 굳혀 놓고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은 거룩한 안식일이옵니다. 오늘 이 아침, 각처에 널려 있는 모든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아버지께서 그들을 옹호하여 주시옵고, 권유하고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 길에서 떨어져 나와 유리고객하는 저희들이 아니었사옵고, 당신의 수고로 말미암아 엮어진 이념권 내에 저희들이 들어가 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눈물 흘리고 있거든 품어 주시옵고, 제가 눈물 흘릴 때 아버지께서 위로하시던 것과 같이 위로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손길이 거하시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7년 6월, 아버지께서 특별히 지켜 주시는 이날을 맞이하여 저희들의 갈 길을 염려하시는 그 마음 앞에 황공하옵나이다.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가다가 지쳐서 길가에 쓰러져 객사하는 몸이 될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위해 전력을 다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민족에 한아 남아 있고, 세계에 한이 남아 있고, 천상에 한아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눈물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발전이요, 천운의 사명으로 알고 그 길에 순종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서러움이 있거든 아버님께 옮겨 드릴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정 가운데에서 지내더라도 위로하여 주시옵고, 한국 땅 전체를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일본에 있는 식구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내일을 고대하면서 바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먼저 기뻐하신 후에 저희들이 만나는 기쁨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저희 인간이 기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은사를 베푸시어 당신의 흡족한 사랑과 긍휼을 저희들에게 내려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만민의 영광을 아버지께서 홀로 주관하여 주시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것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오늘의 이 모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이 한 해를 승리로 이끌어 주시옵고, 저희들이 지난해의 크나큰 모든 일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사오니, 지방에 흩어져 있는 식구들과 본부에 있는 모든 식구들이 온갖 충성을 다하고, 아버지를 위해 매일매일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7년노정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제2차 7년노정을 넘어설 수 있는, 아버지의 사명을 책임자의 입장에서 상속 받을 수 있는 뭇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선생님의 가정이 한 고비를 넘는 식전(式典)입니다.

축복가정은 신도들 앞에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가는 곳마다 36가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다들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일본에 가서 귀하게 대접 받으면 받을수록 반성해야 합니다.

36가정이 많은 지구(地區)에는 36가정에 대한 태도 표명 때문에 대단히 고충이 많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지역이나 지구의 교회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본(本)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에 부합된 생활을 36가정이 못 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36가정은 다른 축복가정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하고 시범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가족 동반하여 외국에 가서 살아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하나님 앞에서나 식구들 앞에 본이 되지 못하면 부끄럽게 되고, 죽어서 영계에 가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책임자의 입장에서 내외적으로 모든 가정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혼식 이전에 아담가정, 노아가정, 아브라함가정 대신으로 3자녀를 세워서 내적으로 결정을 짓고 성혼식을 했습니다. 즉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세워야 했기 때문에 전체가 반대하고 모략하는 가운데서도 그런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아담․노아․아브라함을 대신한 3자녀를 세웠기 때문에, 예수님 때까지의 3심판을 탕감한 기준 위에 섰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를 대신한 3자녀의 결정을 지었기 때문에, 아담가정형 12가정, 노아가정형 12가정, 아브라함가정형 12가정이 세워졌고, 이렇게 해서 모두 36가정입니다.

아담가정에서 노아가정까지는 하나님이 대할 수 없는 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노아․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은 형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36가정을 세우는 것은 선조 아담부터 아브라함 때까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조건이 됩니다. 따라서 그 조상들을 대신합니다. 즉 아담․노아․아브라함의 가정이 책임 못했기 때문에 각 12가정을 택했습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가정생활을 하다 갔던 모든 영들의 복귀 중심입니다.

아담가정형은 박보희, 한상국, 한인수가 대표 가정으로,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10대가 1인같이 일체가 되어 탕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약혼기와 같은 입장에서 실체로 결혼할 한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완성하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한 기간이 2천년 기간입니다.

예수님 이후 뜻을 이루지 못한 성도들과 노아․아브라함까지의 모든 것을 내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야곱가정을 상징한 12가정은 모두 처녀 총각입니다. 야곱가정은 종적인 기준을 세운 터전 위에 섰기 때문에, 이것을 횡적 기준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 가정은 심정적으로 생명을 초월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탄 앞에 세워야 복귀섭리가 이어집니다.

선생님 가정과 36가정은 타락한 부모들의 가정에서 허락을 받고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36가정은 72가정 앞에 전통을 세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도 가인 아벨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적 기준이 될 때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한국이 통일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심정이나 축복은 원래 땅의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었습니다.

120가정은 세계형입니다. 1965년에 40개국을 중심하고 120개 성지를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36가정은 36대의 조상이요, 축소하면 12지파를 대신한 소생․장성․완성을 상징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시범적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 경도(京都)의 신도 대표자회의 때, 주님은 한국에 오셨다는 계시를 받은 사람이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신문에 좋지 않은 기사가 나면 영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금번 일본에서는 한 센터에 1인씩 1,000곳에 전도를 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120일(12월 말까지) 기간에 7년노정에 못다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세계는 지금 대단히 곤란한 시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고 있는 정점에서 어떻게 우리 통일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진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인간의 이상을 이루려면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진로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경제적 문제도 있을 것이고, 국가적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주의(主義), 즉 이념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문제가 있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된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참된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심정(心情)입니다.

만약 여기에 참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참으로 세계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심정입니다.

참된 인간이 되려면 사랑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 문제로 귀결되어야만 합니다.

사랑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유자재로 잡기도 하고 버릴 수도 있는, 그렇게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와 반대되는 입장에 섰을 때 사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서로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게 되면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 문제는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같이 그 문제를 의논해서 해결 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자기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부모로서의 독특한 사랑과 절대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법칙 아래서 절대적인 권한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 자신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도 부모 자신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사랑의 주인은 누구일 것이냐?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것도 아니요, 자식을 사랑하는 그 부모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랑은 인간 자신에게 출발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파고들면 그 사랑의 출발점은 결국 하나님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사랑이 만약 아담의 것이거나 천사장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해서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내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솔직한 입장에서 받아들인다면 우리 인류사회는 사랑에 굶주린 입장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결과의 세계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국가적으로 행복을 구하거나, 또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번영을 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회를 성스러운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랑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세계의 모든 나라와 만민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류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기 위해 한 사람을 세우셔서 하늘과 지상과 관계를 맺게 하시고 평화의 기점을 조성하시려 하십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역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그 부의 정점에 서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사랑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면 참다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근본문제는 사랑 문제인 것입니다.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섭리는 한 아들과 딸을 만나 사랑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소망의 때를 찾아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한 세계, 즉 지상천국을 이루는 데 있어서 아무리 외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과 인간이 상통할 수 있는 한 점, 즉 같이 만날 수 있는 기반을 이 지상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견고하게 안착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바라고 해 오신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가정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 많은 고난을 주셨습니다. 이 민족이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게 하면서 이끌어 나오시며 그 터위에다 4천년 만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시봉할 수 있는 경지에 서 있었더라면 하나님이 바라신 사랑의 결실을 맺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 사랑의 결실을 이 지상에 맺지 못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기점이 지상에 자리잡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신부의 입장에 세워 놓고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하는 역사를 계속해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타락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원리에 입각하여 본성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부모 되시는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복귀의 노정을 통하여서 주인이 없고 종이 주인의 입장에 있는 종의 종에서, 주인이 있는 종의 입장과 양자의 입장을 거치게 하시며 참자녀의 자리로 나아가게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인간은 참자녀로서 책임을 완수하여서 승리함으로써 하나님과 참자녀가 상봉할 수 있는 한 기점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참다운 심정의 인연을 찾아 그 누구도 위로해 드리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고충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타락 이전에 지니신 심정이 자녀의 위로로 말미암아 복귀되었다고 하는 그러한 기점이 세워지지 않는 한 완전한 심정복귀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귀의 기점이 조성된 연후에야 비로소 참부모가 나타나게 됩니다.

원리에는 소생기로부터 장성기, 그리고 완성기까지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재림주님은 무엇을 하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쓰라린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 있는 아픔을 없애지 않으면 참다운 자녀로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다운 자녀로 설 수 없게 되면 지상에 참다운 부모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다운 자녀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한층 높여서 참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6천년 섭리역사를 탕감해야 합니다.

탕감조건을 세우고 사탄과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하여, 사탄으로부터 단 하나의 참소도 받지 않는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참부모의 자리에 결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이러한 입장에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섭리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상에서도 우리의 선조들과 성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또는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여 왔으며 혹자는 희생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고찰한다면 통일교회는 평면적인 입장에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주체적 입장, 하나님의 심정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출발점이 다른 종교와 다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일교회가 현재 이 기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그 배후에는 그 누구도 모르고, 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더듬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6천년의 종적 역사를 평면적인 시간권 내에서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사탄이 반대해서 이긴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섭리의 중심 가정을 공격해서 가정적 섭리를 흐트러 버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민족적 섭리나 국가적 섭리를 전부 침범해 버렸던 기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역사를 탕감해야 하는 재림주님에게도 사탄은 세계의 모든 사탄 세력을 총동원하여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6천년간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해 나왔던 사탄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림주님 홀로 전세계에 있는 사탄들과 대결해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 승리하려면 진리와 실체, 그리고 심정이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말로 침범했고, 실체를 침범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도 아담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재림주님 홀로 사탄과 투쟁해야만 됩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원칙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준을 세워서 탕감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이기에 오늘날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인의 승리를 기준으로 해서 가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가정적인 승리를 기준으로 해서 민족적인 승리, 국가적인 승리, 그리고 세계적인 승리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심정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심정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탕감을 할 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께 충실한 종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셨던 6일간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던 그 이상의 마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탄의 참소를 받게 됩니다. 재림주님은 그러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사탄과 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대결은 쉽습니다. 그러나 가정적인 대결은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정보다 민족, 민족보다 국가, 국가보다 세계가 더욱 어려운 문제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오늘날까지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더욱 박해를 받고 또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민족이 반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탄 세계를 완전히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민족이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입장으로 몰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들은 오늘날까지 개척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동안의 노정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한테 몰리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맞기도 했고, 또는 수족이 부러지는 등 비참한 일을 겪어 나왔습니다.

한 주권에 한해서만 반대당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3개의 주권을 거치면서 박해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3주권이 교대해 나왔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유당 정권, 다음에는 민주당 정권, 그리고 현재에는 공화당 정권, 이러한 정권들과 우리는 싸워 나온 것입니다. 복귀를 하려면 완전한 탕감조건을 세우고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방에 나가 전도를 하면서 고생이 많았으리라 생각되지만, 복귀의 목적을 완수하려면 높은 자리에서는 안 됩니다. 복귀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해 나가야만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최고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하의 자리에서부터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면 패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복귀의 길이 거기에서부터 열려져 나왔던 것입니다.

복귀, 그 험난한 고개를 넘어가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기독교인들도 오늘날까지 역사 과정을 통과하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세계적인 탕감의 인연을 가지고서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2천년이 지나서야 기독교가 예수님의 이념으로 민주주의를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금년부터는 우리 통일교회는 민족과 국가의 탕감 과정을 통과해서 다시 세계적인 탕감 과정을 통과해야 됩니다. 만일 한국에서 이 기준을 완전히 탕감하게 되면 어떠한 조건이 있다 할지라도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탕감 기준이 국가적인 기준에서 세워진다면 3년쯤 지나가면 세계가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것이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같이 수고하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슬픈 심정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피어린 싸움의 절정에 서서 슬픈 심정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하나님의 심정이 매우 슬프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거기에 참혹한 흔적이 남아져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떠한 지방에 전도를 나가서 그 지방으로부터 쫓김을 당하는 경우에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에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할 대상이 없으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보다도 역사적으로 더욱 비참한 입장에 계십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슬픔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자녀들에 대하여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시기 위해 위로도 해 주시고, 혹은 지도도 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몸을 바쳐서라도 하나님 앞에 승리의 일점(一點)을 더하겠다고 하는 입장에서 기도를 올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책임지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용이한 길을 걸어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있는 그 장소까지 오시려면 많은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같은 비참한 입장에 서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은 직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활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내 자신이 희생하는 입장이나, 상심한 입장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참된 마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시인하시게 되고 또 동정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으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일본을 복귀하려는 우리 앞에서 수많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느냐? 이것은 한 방편이 될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으로 타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할 것인가? 심정과 몸과 말씀이 삼위일체가 되어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는 물질적인 조건이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참자녀의 입장인 장성기 완성급 이상의 기준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신념과 신앙심을 가진 자녀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다운 심정을 지닌 참다운 실재, 즉 하나님의 참다운 자녀로서 책임을 진실하게 완수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탕감 기준을 전체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 탕감의 중심인물로서 일본 복귀를 위해서 탕감조건을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종교단체라고 해서 종교의 기준을 중심으로 한 탕감조건만 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사회 전체를 복귀하려면 참다운 신앙심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에서 자유 의지에 의한 책임을 지고 일해야 합니다. 즉 이와 같은 입장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해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 부문에서 이러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는 방법

그러면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최초의 조건이 무엇일 것인가? 물질적인 조건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물질적인 문제를 부정하고 출발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부정하고 출발합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인간이기에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부정하라는 기준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을 때까지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그 기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구세주나 또는 대표적인 지도자들을 세워서 그들이 세운 탕감조건을 타락한 인간들에게 연결시켜 나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가정섭리의 중심인물인 야곱으로부터 시작해서 민족의 중심 지도자인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계속 그 대표적인 기준이 연결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신앙인으로서 타락한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그러한 입장에서, 그 주체적인 대표자가 세운 탕감조건 위에 서게 되면 탕감의 인연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기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탕감했다는 기준에 설 수 없게 됩니다. 즉 가정부터 종족․민족․국가적인 과정을 통과하려면 일정한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간에서 승리한다면, 승리한 그 심정 기준을 세계에 퍼져 있는 통일식구들이 참다운 신앙심으로 연결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각자가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복귀의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적인 한 곳에서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인 고난을 겪고 사탄 쪽에서 공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탕감조건까지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식구들은 항상 긴박한 정세 속에서 오늘날까지 복귀의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한국 민족이 이것을 모른다 할지라도 복귀하기 위해 어떠한 단계를 통과하여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모르고서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복귀의 권내로 인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할 때 앞으로도 또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의 수가 많아져서 전 국가적인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단지 수적․양적인 문제만을 중심해서는 완전한 승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질적으로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에서의 선생님의 전법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때로는 슬픈 입장에, 때로는 한탄하는 입장에,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입장에 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에게 위로를 구하거나 구원을 요구하는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부여받았지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그것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의 한계에 들어가게 되면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도도 할 수 없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모든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시면서도 어떻게 손을 대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에게 사탄의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별권 내에 머물고 있는 단계에서는 심정만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별된 후에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때에는 심정을 중심하고 심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까지 나가는 데는 지혜를 가지고 사탄의 유혹을 분별해 나가야 합니다. 인간이 사탄을 분별해야 하는 권내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도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체험에 의해서 사탄에게 대응할 수 있는 전법을 써야 합니다. 즉 이러한 방법을 모든 방면에 활용하면서 환경을 분별하고 사탄을 내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러한 전법으로 싸움을 하고 있다. 탕감복귀노정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습니다. 오직 홀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절대복종만 하면 모든 것이 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던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해와가 아담에게 완전히 주관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전방에서 싸우는 것은 아담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30억의 인류를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놓은 장본인은 사탄이지만, 천사장으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사탄이 되게 한 사람은 해와가 아니라 아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최후의 결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최후의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 어떠한 쓰라린 입장에 서게 되거나 그 어떠한 괴로움의 극치에 빠진다 하더라도, 나보다 더 괴로워하시고 쓰린 마음을 지니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갑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 40여 년의 고생은 한정된 고생입니다. 그러나 6천년간 이어진 하나님의 고생은 우리 인간들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러한 고생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백번 천번 죽어도 하나님의 심정 앞에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세계적인 탕감의 길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 괴로운 일, 견딜 수 없는 쓰라린 일을 당하는 입장에 서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항상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더듬어 보면 괴로운 심정을 안고 계시며, 기쁨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 통일식구들의 중대한 책임인 것입니다.

표준으로 삼아야 할 심정 기준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싸워서 승리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승리는 결코 우리들에 의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아니 천에 이르기까지 승리의 결정적인 동기는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눈물겨운 길을 통과하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노정을 통과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돌려드렸던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부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탄과 싸우고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승리하고 나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진격하여 싸움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 복귀의 과정에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고통은 누구든지 참을 수 있지만, 타락 이후 오늘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고통은 참을 수 있는 그러한 고통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참아 나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에게 ‘타락 이후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떠했습니까?’ 하고 질문하면 인내라고 답변하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있다면 어떠한 고통의 길, 아무리 어려운 복귀의 노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책임지고 갈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복귀에 대한 책임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전체 인류를 책임지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을 안 통일교회 식구들의 심정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세에 있어서 지금까지 고생해 나오신 하나님 심정 앞에 일대(一代)에 지상천국을 완성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상과 천상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지상 해방운동을 호소하면서 영계로 간 모든 영인들이 해방을 얻을 수 있는 기쁨의 한 날을 이루어 놓아야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우리들 일대에 성공한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대에 이 기준을 세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1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완전한 탕감 기준을 완수했다고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1대 2대 3대로 조건을 세워서 복귀의 노정을 연장시켜 나가는 문제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선생님의 책임은 중대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그러한 문제를 염려하면서 일어나고, 하루를 생활하는 모든 활동에 있어서도 그러한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역시 그러한 심정의 기준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꿈속에서도 그런 심정을 갖기를 바랍니다.

천주 가운데에서 제일 불쌍한 분이 누구일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위로해 드리는 사람은 온 인류 가운데 선생님 혼자뿐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홀로 서 있는 슬픔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누가 선생님의 슬픈 이 마음의 밑창을 건드린다면 한꺼번에 울음이 터질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중심으로 한 생활을 계속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귀노정의 탕감조건하에 있는 선생님의 입장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을 복귀하기 위한 마음가짐

여기에 있는 동경지구 식구들을 움직여서 어떻게 일본을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들 앞에 고난의 길이 계속될 것입니다. 누구나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가 맡은 분야의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나설 때에 일본 복귀의 시간은 단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거기에 비례되는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현대 청년들의 취향에 따라 일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은 어떠한 환경이라도 극복하고 참다운 탕감의 길을 책임지고 나가야 합니다.

일본에 있어서도 청소년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기 만족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풍조에 젖어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을 어떻게 해서 복귀시킬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즉 그 방편으로 세워진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재림주님이 오셔서 세계의 주권을 하나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민주주의를 허락하셨습니다.

지난번 선생님이 서양에 갔을 때, 그곳의 청년들을 지도하려면 많은 희생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깊이 느낀 바 있었습니다. 그러한 점을 두고 본다면 서양보다는 동양의 복귀가 빠를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나라보다는 처참한 나라가 더욱 빠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심정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운 입장에서 슬픈 일들을 심각하게 느끼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일대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은 중대한 것입니다. 동양을 움직여서 서양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하간 일본의 복귀를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여러분 1대의 시대권 내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더욱더 희생을 해야만 됩니다. 개인적 희생도 희생이지만, 통일교회적인 희생이 필요합니다.

복귀는 안정된 입장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입장에서는 맞아야 되고, 피를 보아야 합니다. 맞고 맞아도 참고 견디는 자리에서 남아져야 탕감조건이 세워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맞고 맞으면서 기다리는 전법을 쓰십니다. 따라서 우리 식구들이 선의 입장에 서서 일본 전체로부터 몰림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본 전체가 하나되어서 한꺼번에 몰려와도 우리 통일교회가 그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부터 일본 복귀의 출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전국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선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선한 입장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선한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길을 가다가 괴로울 때가 있으면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맞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도 함께 맞으시고, 여러분들이 눈물짓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도 같이 우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도 같이 고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이끌고 구원의 단계로 인도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해 위로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보다 더 쓰라린 입장에 계시면서도 여러분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괴로운 입장에 있어도 괴롭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노방전도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나 혼자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심정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전 일본 국토를 하나의 제단으로 생각하고 그 최정점에 서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모든 사탄들아! 올 테면 와라!’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용기와 경험이 필요합니다.

타락권 내에 있는 우리들은 누구든지 7년간의 고생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 가운데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7세기권 내에 재림의 기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천년간, 지상에서는 7백년간,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70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이 길을 가려면 70년간을 독신으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참다운 종교, 고급 종교는 독신생활을 주장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70년간의 독신생활이 지나게 되면 모두 늙어 버리기 때문에, 그때 결혼을 하면 쓸모가 없게 되므로 70년을 7년으로 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7년간은 봉사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타종교로부터 얻어맞아야 하며, 7년 동안은 전체의 밑창에서 전체를 우러러보면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벨의 신앙 자세와 복귀하시는 하나님의 전법

이 7년간은 아벨로서의 위치를 결정하는 기간입니다. 아벨이 아벨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로 인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7년 동안에 아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 아벨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면 가인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나님의 입장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아벨이기 때문에 그 아벨이 가인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인을 구원하려면 아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의 기준까지 가인에게 주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인 복귀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아벨의 입장에 섰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에게 굴복하라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세우신 이유는 가인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을 가인에게 송두리째 주는 동시에, 자기의 사랑까지도 보태서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래의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입장을 기준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복귀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귀한 자식과 종을 사탄 편에 보내어 몰리고 쫓기며 희생당하게 하면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 편 인간이 희생을 당할 때 아벨 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기의 사랑까지도 같이 합하여 희생하게 되면, 여기에 참가하고 관계되었던 모든 가인권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복귀의 길은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당하고 희생이 된 아벨을 조건 삼아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하는 자를 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 보면 타락한 인간은 사탄의 자식이요, 원수의 자식인 것입니다. 이들은 심판받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구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습니다. 타인의 아들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자식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어 희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제물 삼아, 즉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세 사람 이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희생시켜 나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법을 알고 있는 선생님으로서는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절대적인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로마 병사를 위해서 기도했었고,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는 입장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다는 그 기준을 사탄 편에서도 가인 편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부활권 내에 대해서는 참소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게 될 때, 어떠한 사람이 통일교회의 형제이며 식구일 것인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자기 혼자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사람이 일본의 아벨입니다. 그리고 얻어맞고 빼앗기는 것이 나의 생활이라고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본의 복귀는 빨라집니다.

선은 빼앗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면 빼앗길수록 번영하고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과는 정반대입니다.

선한 하나님 앞에 아벨의 입장에서 얻어맞고 빼앗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이 길을 가다가 죽었는데도 지상의 사람들이 그 입장을 몰라준다면 천상의 천사들이 그 입장을 지켜 줄 것이며, 하늘의 모든 영인들이 그날을 축복해 줄 것입니다. 지상에서 축복해 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천상에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 편이 지상에서 번영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선의 희생자들을 중심으로 복귀의 길은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참한 자리로 내모는 이유

하나님의 심정은 지상의 재림주를 중심으로 하여 어느 한 점에서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기쁨의 심정권에서의 일체를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슬픔의 심정권에서 일체가 되지 않는 한 기쁨의 심정권에서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심정 문제를 운운하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의 경계를 중심으로 해서 슬픔의 심정과 기쁨의 심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님의 심정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은 슬픔의 심정뿐이었습니다. 기쁨의 심정은 아직도 요원한 미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슬픔과 괴로움의 심정으로 위로하기보다는 기쁨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위로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이며,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면 이 길의 경계선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전인류가 경계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낙원에 가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한 국가를 빨리 복귀해야 합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손에 손을 잡고 민족을 초월하고 민족 감정을 초월하여 천적 감정으로 엮어져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가 앞장서서 세계적 복귀의 문제를 책임질 것인가?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앞장서야겠다고 싸우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나라들끼리 하나님을 위하여 서로 봉사하겠다는 입장에서 다투는 것을 환영하십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원해야 되는가? 최고의 나라가 아니면 최하의 나라가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중간의 나라는 필요치 않습니다. 최고와 최하의 두 극을 돌리면 원이 그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비참한 최하의 나라는 몇 개국이 필요한가? 3개국이 필요합니다. 또 상급의 나라는 4개국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합하면 7개국이 됩니다. 이 7수만 섭리권 내에 들어오게 된다면 세계는 복귀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많이 가진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를 대하는 마음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잘 구비되어 있는데, 막내아들은 불구자라고 할 때에 심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모의 마음이 어느 편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불쌍한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신의 입장에 세워 나오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이 행복의 근원이 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역사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구자와 같은 생활을 해 왔습니다. 왜 그랬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참다운 심정을 제물로 바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그런 입장에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 어린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순교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항상 맞고, 항상 쫓기는 불구자와 같은 생활을 해 온 것과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비참한 입장에 서 왔던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그러한 입장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심정적으로 선생님은 우리 교회의 식구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정신으로 충성을 다하라

그러나 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더욱 범위를 넓혀서 세계적인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은 절름발이와 같은 불구의 입장에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심정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 서서 개인․가정․민족․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복귀노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권내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오랜 역사를 두고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고생시키셨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두고 고생한 그 슬픔의 심정을 하나님과 함께 체험해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권 내에 맨 처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의 기독교는 비참한 종교였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통과해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일치단결해서 일본 복귀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불구자와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1억의 일본 국민이 어리석게 보일는지 모르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듭 거듭 계속해서 최후까지 뚫고 나가라! 거기에는 세계적․우주적인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약한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려 해도 서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안 이상 이 길을 팽개치고 아무리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설혹 다른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깨끗하게 일직선으로 가야 됩니다. 부모가 반대할 때도 있을 것이요, 친구들이 욕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선생님들이 비판하고, 혹은 사회적으로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족이 없어져 둥그런 몸뚱이만 남는다 하더라도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부모님을 위한 효도의 제일인자가 된다면 그는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계속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들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나아갈 때 만약 맞아서 병신이 된다면, 그것은 행복의 상징이 됩니다. 자기의 몸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은 영원한 빛의 세계에서 빛의 근원이 되고, 찬미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일들을 언제나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감옥에 들어가서 맞고 또 맞아 피를 토하는 입장에서도 ‘아! 이제는 때가 가까와지고 있다. 만일 여기에서 실패를 한다면 귀중한 역사를 잃어버리고 만다. 선한 조상들의 공적이 날아가 버리고 만다. 민족적인 기반이 허물어지고 만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긴장된 처지에 놓여진다 하더라도 그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法)에 철저하자는 신념을 가지고 역사상에 있었던 인물 이상의 입장에서 나아간다면 그 후에는 승리가 결정됩니다. 선생님이 이러한 신념을 가진 후에는 아무리 죽고자 하고, 또한 죽을 자리에 뛰어들어가 보았지만 그곳은 평화의 자리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노정을 완전히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곱 번 이상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또 이 길을 가야 한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알고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가야 합니다.

오랫동안 고생하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중대한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에 몸을 던져서 죽어 버리고 말자! 폭발해 버리고 말자! 이러한 각오를 갖는 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멋진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최후를 마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훌륭한 곳에 가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누가 제일 먼저 순교자가 될 것인가? 여러분들은 세계복귀를 위해서 세계적인 선의 싸움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때 공격을 당해 가지고 생각지 않는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제1대의 순교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이 땅 위에 심기 위해 책임을 다하라

‘스데반’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모험성이 있고 좀 모자란 듯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 때는 멋지게 결정하고 나서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질이 순교자로서의 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그는 기독교에서 제1대의 순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스데반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하나님은 슬픈 심정으로 역사 과정을 통과하고 계시지만 아직도 기쁨의 심정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이 심정권을 형성시킬 것인가? 우리들의 어린 몸을 바쳐서라도 이 길을 개척해야만 됩니다. 고생과 희생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우리들이라면 괴롭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 우리들 이상으로 쓰라린 입장에 계시면서도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지 않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은 더욱 더 쓰라린 것입니다.

아직도 세계 만민이 죄악 가운데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구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음의 경계에서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은 불행한 입장에 있는 것이요, 우리들은 행복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며 자기의 쓰라림을 잊고, 만민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생명을 걸고 나가야 합니다. 자기의 희생을 기쁘게 생각하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입장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고생의 입장, 쓰라린 입장에 동참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야 하나님의 심정이 여러분들로 인해 이 땅에 나타 날 수 있으며, 이러한 입장, 이러한 권내에서부터 천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위로해 주시듯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세계 만민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민의 축복이 여러분들의 손으로부터 시작되고, 만민의 행복과 지상천국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위해서 슬픔의 심정으로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러한 입장에서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만민을 위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짐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말씀 요지>

선생님이 지난번 일본에 갔을 때 느꼈던 것은 신앙의 본국에 대한 일본 식구들의 마음을 단일화시켜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외국에 나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를 중심으로 움직여 나갔기 때문에 하나의 방향으로 일정하게 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체 식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치리라고 생각되었고, 또한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본부의 간부들을 일본에 데리고 간 것은 각 지방마다 그들을 파송하여 일본식구들과 심정적 유대를 맺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획하고 간부들을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국도 거국적으로 단결해야

그래서 일본에 도착하여 2주일 동안 수련회를 개최했고, 그다음에는 지방을 13일간 순회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일본의 중요한 공장을 대부분 다 가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우리들에게 종교적인 문제를 놓고 신앙운동도 중요하지만, 또한 한국의 국가발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일본 산업계의 실황이 어떠한가를 보려고 열 개 이상의 공장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느꼈던 것은 한국도 이제부터는 거국적으로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업문제를 놓고 볼 때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기에는 늦은 감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다방면으로 세계 수준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산재한 공장들을 통해서 물품을 생산하게 된다면 그 물품은 아시아 전역에 공급되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본이 앞으로 10년 만 더 발전해 나가게 된다면 유럽인들도 일본 때문에 상당한 고충을 당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발전문제를 생각했고, 또 우리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서 새로운 분야에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라는 한 단체를 제쳐 놓고서라도 삼천만 민족이 일치단결해서 아시아에서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일본과 대결하여 그들을 능가하려면 앞으로 20년 내지 3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철주야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을 일본에 못지않는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걱정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한국에서 통일교회라는 한 종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편, 반공강연을 해 나왔던 것이 이제는 발전하여서 국가적인 차원으로까지 성장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아시아의 반공체제를 책임지고 선두에 나서서 투쟁하는 자리인만큼 이 자리가 얼마나 고독한 자리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들에게는 동지가 없다는 말입니다.

일본을 반공대열에 참여시키는 문제

지금 한국의 실정을 볼 때, 소련과 중공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일본은 정치적인 면에서 3분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좌익 계통과 우익 계통, 그리고 민주진영을 대신한 것과도 같고 일본의 독자적인 노선을 대신한 것과도 같은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정치세력, 이렇게 3분파로 갈라져 있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동경에 가 보면 시내에 일본공산당이라는 간판이 빨간 글씨로 쓰여져 당당하게 나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대낮에도 동경 역전이나 시부야(澁谷) 역전에서 자신 있게 공산당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회에서도 공산당원들은 사회당과 손잡고 대 자민당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민당이 발의한 것은 모두 반대하는 등 국회에서도 공동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사실 그 내용을 보면 반대할 만한 조건이 없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일본의 공산주의자와 전체의 노동자 농민들을 선동해서 그들을 하나의 이용 도구로 삼아 지하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런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일본의 정식 공산당원은 13만 내지 17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중심해 가지고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수효는 무려 280만 내지 350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력이 지금 일본 전역에 분산되어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간교하고 악질적인 무리들은 조총련(朝總聯; 재일조선인 총연합회)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공산당의 행동부대로서 선봉에 서서 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일본의 실정입니다.

지금 주일 한국 대사관은 행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국가적인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재일 거류민단과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중간적인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일본 정부와 대등한 입장을 취하면서 민단활동에 관여했다가는 자기들의 활동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중간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민단 자체에서는 이번 8․15행사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을 약 3천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민단의 간부들이 배후에 있는 교포 재벌들을 매번 찾아가서 갹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공산당과 북한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면,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약 50억 원 이상을 일본 공산당에 투자해 가지고 맹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이 일본에 유학을 가기만 하면 무조건 장학금을 대주려고 하면서 그들을 공산당에 흡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만을 위주로 반공 체제를 구축해서는 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공산진영과 대치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일본을 이 반공대열에 참여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각해 온 문제였습니다.

어렵게 이루어진 일본에서의 첫 반공강연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에 어떻게든지 길을 뚫어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대사관과 민단을 찾아가 본국에서 활동했던 반공 강연에 대한 실적을 제시하며, 일본에서도 교포를 중심으로 반공강연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대사관측은 국가의 대표라는 입장에서 고자세로 나오고, 민단측은 60만 교포를 대신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단장 이하 간부들은 한국의 어떤 장관도 부럽지 않다는 식의 고자세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그곳에 최창림 지구장을 보내었습니다. 최 지구장은 일본 말을 못하였지만 조 씨라는 사람을 세워 통역을 하게 했습니다. 이 조씨는 본래 민단 창설 당시, 창설의 공로자 박철 씨가 나왔을 때 일본에 있는 교포들이 단합하는 기회를 이용해 민단 조직을 주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그는 20여 년간 활동해 오면서 일본에서 큰 활동을 하려면 경제적인 기반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민단의 일을 그만두고 사업에 투신하여 지내 오다가 이번에 최 지구장의 통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먼저 일본 전국의 47현에 있는 부인회 대의원들 약 450명이 모인 자리에서 최 지구장이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교포들에게 사상 통일을 위한 반공강연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차 부단장에게 강조했던 것입니다.

전국 부인회 대회가 열리는 그날, 부단장을 찾아갔는데 그때 마침 부단장 이하 문화국장 조직국장 등이 차를 타고 대회장으로 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전국 부녀자 대회장에 가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어떡하죠. 우리는 당신들을 만나러 왔는데 그냥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같이 가자고 해서 그 길로 곧장 그 대회장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막 시간이 된 대회장에 들어갔는데, 전부터 그곳의 몇몇 인사들과 미리 절충을 해 왔기 때문에 쉽게 최 지구장의 강연을 한 번 들어보면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최 지구장이 그곳에 가서 그날 회의를 진행하는 총책임자와 인사를 하고 그 사람과 30여 분간이나 대화를 나누면서 진지하게 설득을 했습니다. 본국에서 온 승공계몽단이란 이름의 출처부터 죽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부에 조회해 보면 모르는 단체일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전역에 영향을 주었고 집집마다 영향을 주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부녀자들이 사상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니 한번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20분의 시간을 얻어 전국 부녀자 대의원 대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사관과 민단에서 먼저 인사를 했고, 부인회 자체에서도 몇 사람이 나와 인사를 끝내고 난 뒤에 최 지구장이 나가서 강연을 했습니다. 20분 동안의 강연을 하는데 무려 열두 차례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청중들은 그 강연에 아주 매혹되어서 ‘조그만 양반이 세상에 저렇게도 말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모두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그 집회 진행 책임자인 총무와 민단 책임자들도 충격적인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우리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기에, 매일같이 찾아가서 반공강연회의 개최를 교섭하였습니다.

반공강연을 하는 데 있어서는 자수 간첩이나 혹은 북송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북한의 실정을 폭로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람들이 김일성이 어떻고 북한 실정이 어떻다고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것은 일본 실정으로 보아서는 믿어지지 않는 애매한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말은 도리어 모두가 대한민국 정부가 조작해 가지고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 그렇게 해 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구태의연한 반공 태세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론적인 면에서 공산주의를 근본적으로 파헤쳐서 공산주의가 어떻고, 또 이렇게 나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반드시 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을 적나라하게 제시하며 강의해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강조했습니다.

교포 학생들에게도 감명을 주다

그런 후 민단측에서 나고야 교포 학생들의 하기 집회가 4일 동안 해안 지대에서 열리게 되니 시범 케이스로 시간을 줄 테니 한번 가서 요령껏 해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민단 본부의 소개를 받아 가지고 거기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회장 한 사람과 부회장 세 사람의 간부가 있었는데, 이 부회장 셋이 우리의 강연을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여기까지 올 때에는 일본에 있는 청년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왔는데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고 눈물로 호소를 했더니 회장이 깊이 감동하여 우리를 동정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있어서의 모든 결의권은 회장과 부회장에게 있고, 그다음에는 8명의 간부진이 회의를 열어서 결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부회장이 모두 반대하니 회장으로서도 자기의 주장을 내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회장은 다른 도리가 없어 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가 여덟 명의 반장을 소집해 가지고 ‘본국에서 유명한 선생이 왔는데 학생들에게 단 몇십 분이라도 강연을 들려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은데 부회장들이 반대하니 참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반장들을 내세워 학생들을 전부 집합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부회장들은 도망치다시피 그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들은 모두 조총련계의 빨갱이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대개가 밀선으로 일본에 들어온 학생들인데, 북한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교포 학생들을 포섭하여 활동 기반을 넓힌 뒤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그런 지하조직을 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이번 일로 뒤늦게 발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일본 전역에 있는 교포 학생들의 대대적인 심사가 벌어졌습니다.

여하튼 이 하기 집회에 소집된 학생들에게 40여 분 동안 열변을 토한 것이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갔었던 민단 부회장과 문화부 책임자 그리고 조직 책임자 등 세 사람이 모두 탄복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많은 강사들을 일본에 초청해 가지고 교포들에게 강의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해 보았지만 모두 별다른 효과 없이 끝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최 지구장의 강연만은 부인회 측에서나 젊은 사람들 측에서도 모두 환영 받게 되었으니 아주 특이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의 실정을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맨 처음에 사회자가 나와서 약 5분 동안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마루를 쾅쾅 치면서 집어치우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2백여 명의 학생들이 무더운데 그런 시시한 이야기나 들으려고 온 줄 아느냐면서 의자에다 다리를 올려놓고 남녀 구별 없이 치워 버리라고 소리치면서 혼잡한 분위기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판국에 키가 조그만 최 지구장이 등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기만 해도 날아갈 것 같은 사람이 단에 섰으니 같이 갔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일본 사람인 나고야 통일교회 지구장은 그때 그 정경을 목격하고 사회자도 쫓겨나는 판인데 최 지구장은 틀림없이 1분도 못 가서 쫓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 없어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 지구장은 등단하자마자 처음부터 마구 폭탄처럼 그들을 말로 후려치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대학 실정은 이러이러하고, 국내의 사정은 이렇고, 또 통일교인들이 민족을 위해서 이렇게 피땀 흘려가면서 몸부림치고 있으며, 어리고 젊은 학도들도 이러이러하게 내 나라를 위해 염려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가장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는 재일교포 학도들이 이 모양이냐고 눈물로써 책망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바짝 죄어 놓더라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약 5분이 지나니까 의자에 올려졌던 그들의 발들이 어느새 내려가 있고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면서 자리가 다 정돈되더라는 것입니다.

40여 분간 후려치는 듯한 강의가 끝난 다음에는 모든 학생 간부들이 강사를 만나 명함을 받으려고 야단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대학 회장이니, 나는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다느니 하면서 신분을 밝히더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거기에서도 우리들의 길이 훤히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8․15 기념행사 때도 초청을 받다

민단 측에서는 오는 8․15 기념 행사 때에 강사들을 초빙하게 되어 있는데,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특히 반공강연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낮에도 공산당들이 활개치며 날뛰고 있는 판국이기 때문에, 공산당이 나쁘다고 비판하면 누구 손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기 생명을 내놓고까지 공산당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반공 자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60만이 살고 있는 일본 교포사회에 유명한 강사들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행사 때마다 유명한 강사들을 세웠지만 그 성과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만 두고 전번에 부인회 때도 강의했고 나고야 학생대회 때도 대단한 실적을 거둔 최 지구장을 이번 8․15 행사 때에 내세워야 된다고 지방의 대의원들과 부인회장들이 주장하여 상당한 논쟁까지 벌어졌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이틀 동안 옥신각신한 끝에 다른 여덟 사람은 취소하고 최 지구장과 다른 한 사람, 이렇게 두 사람만 내세우자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행사 진행 중 10시에 기념 강연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념 강연의 내용을 어떻게 잡아야 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한국은 제2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연제를 걸고, 제2의 해방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 공산주의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며 공산주의의 내막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경각심을 심어 놓으면, 그 다음 일본에서는 우리가 하는 반공강의를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를 여러분들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본의 정세를 두고 볼 때, 일본 국회에는 사회당 의석이 111석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당 의석이 100석이 훨씬 넘는 데 비하여 자민당 의석은 200석이 조금 못 된다고 합니다. 전부가 4백 몇 석이니까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양당이 거의 대등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들은 1970년도에 들어서면 일미(日美) 안보조약이 해제되는데 그때가 바로 공산당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즉 아시아에 있어서 공산주의가 죽느냐 사느냐의 판가름을 하는 그러한 때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를 대비해야 된다는 입장에서 그들은 지금부터 맹활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과 중공이 노리는 일본

그러면 1970년도에 이르게 되면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미국의 지도를 받아 오던 일본이 보호조약권을 벗어나게 되면 틀림없이 자주 노선의 입장을 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는 일본에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배경으로 친미주의적 관계를 맺어 나오던 자민당을 중심한 일본의 노선이 결국은 민주노선과 공산노선, 그리고 국수적인 자국노선 이렇게 세 가지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으로서도 아무거나 좋다고 다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좌면 좌, 우면 우, 또는 자국노선 중 하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반드시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본의 실정을 두고 공산국가들, 즉 소련과 중공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일본이 미국과 한 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효과적인 선동과 공작도 못해 왔고 또 적극적인 행동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은, 1970년도에는 안보조약권 내에 있는 일본이 미국의 보호권 내에서 해방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으로 하여금 반미적인 입장에 서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방면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보자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그러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계기를 얻기 위해 소련과 중공은 어떠한 정책을 쓰게 될 것인가? 그들은 일본과의 친교를 밀접히 하기 위해 일본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필요치 않아도 수입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될 수 있는 한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간격을 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미국과 손을 떼는 날에는 일본은 처량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먹힐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만일 중공이 일본의 모든 생산 물자를 수입해다가 기간산업을 중심하여 자기들의 군사적 기반을 공고히 한 후에는 일본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이념을 중심하고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일본을 침노할 계획을 세울 것이며, 그것을 위해 일본의 내부를 혼란 상태로 몰아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을 위해서 중공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일본이 동남아시아, 중동, 혹은 아프리카, 유럽 일대에 수출하는 무역품은 거의 대만해협을 통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은 1970년을 전후해서 이곳을 차단하기 위해 일시에 대만을 침공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3일 내지 7일 이내로 대만을 점령해 버리면 미국의 의회 결의를 통한 군사원조는 이미 늦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중공이 대만을 점령하는 날에는 대만해협은 완전히 봉쇄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본의 무역도 6할 이상이 중단되기 때문에 경제적 혼란 상태는 불시에 일본 내에 번질 것입니다.

이때를 기다려 일본에서 공산혁명 기반을 조성하자는 것이 저들의 획책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일본이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면 한국은 독안에 든 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우익

지금 일본에서는 북송이니 뭐니 하며 정경분리정책이란 미명 아래 내면으로는 북한을 대한민국과 동등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꿩 먹고 알 먹는 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로 보아 상부에서는 반미적인 운동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공산당들이 기필코 들고나서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70년대에는 미국과의 간격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될 것이며, 일본은 자국 위주한 노선을 취해 나가고자 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 가서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선생님은 일본 행정가들의 실태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중앙에서 일하고 있는 과장, 국장급 이상 되는 사람들의 연령을 알아본 결과 평균 45세 이상이었습니다. 45세 이상이면 모두가 제국주의시대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국내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국장급 이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본은 필연적으로 자국 위주의 노선을 취해 가면서 제국주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일본에서 문제가 된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빼어 버렸던 신화(神話)를 다시 삽입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1971년도부터 신화를 다시 국민학교의 교과서에다 넣자고 하는 움직임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자국 위주한 노선의 준비 태세를 넘어 이미 그 이념의 옹립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시대 사람들이 위정자로 활약하고 있고, 또 경찰 내부도 제국주의 군대식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 사상이 농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대개가 우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우익이 자주적인 노선을 취해 가지고 어느 한때에 들고나설 것이 예측됩니다.

그러나 그 우익 자체가 과연 공산주의를 능가하고 민주세계의 정세적 파동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은 초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지지자의 수가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우익 세력의 지지자는 150만 정도인데 이는 좌익의 절반도 안 되는 수입니다. 그러면서 우익은 자체 내부에서 분열이 있어 서로 갈라지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염려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

그런데 이 우익파에서 손꼽는 인물이 한 사람 있는데 그가 사사가와 씨라는 분입니다. 이번에도 일본에 가서 그 사람과 내밀히 접촉해서 여러가지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 일본 경찰을 중심하고 반공 태세를 갖추면서 일본 내에 있는 창가학회․입정교성회․기독교 등의 종교집단을 어떻게 해서라도 흡수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크나큰 일을 우리 통일교회가 주동이 되어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작전을 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지금 일본의 통일교회는 한국의 통일교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한국에서 반공전선을 책임지고 나선 공산당의 원수라고 한다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산당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도 한국과 같이 통일교회의 노선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일본에서도 전면적인 계획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이내에 전국의 청년학도들에게 반공사상을 철저히 무장시켜야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왔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반드시 때가 올 것입니다. 그 기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그때가 되면 우리가 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 민단에 등록되어 있는 교포는 60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이 다 되어 있는 교화한 사람들, 한국말을 모르는 2세들, 또 한국말을 하게 되면 일본에서 활동하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 등 이러한 사람들까지 통틀어 계산하면 그 수는 백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 교포의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지금 일본의 비공개적인 추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일화로 약 5조 엔이라는 막대한 액수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액수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한국 사람의 재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후에 있는 재산까지 합하면 10조가 넘을 것이라고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금액을 대개 해방 이후에 모았다고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서 모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한국 사람들은 미군들이 일본에 상륙하게 되더라도 자기들은 피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본에 와서 박해를 받고 살아왔던 모든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해야 되겠다는 강한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변동기의 기회를 잡아서 돈을 벌어 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모험적인 활동을 했고, 거기에서 성공하여 거대한 재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교포 재벌들이 지금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느냐 하면 일본 정객들의 배후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일본에서의 유대인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위치에 있는 교포들을 사상적으로 단결시켜 한 대열로 규합시키는 날에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일본에서도 크다는 철공소를 몇 군데 가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철공소는 종업원이 약 3만 5천여 명이고 회사의 총자본금은 일화로 약 850억 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자본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야와도리’라고 하는 철공소는 자본금이 약 1천 8백억 엔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포 재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이 1천 8백억 엔이란 돈은 얼마 안 되는 금액입니다.

교포 재벌들에게 원리를 교육시킨다면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교포들의 그 막대한 재산이 그냥 넘어가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의 부인이 거의 일본 사람이요, 아들도 일본 사람 행세를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환경이 그러니까 어머니가 일본 사람인 것을 내세워 일본 사람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도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은 한국 사람의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교포 재벌들은 돈을 적당하게 쓸래야 쓸 데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을 위하여 쓸 수도 없는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또 한국을 위하여 쓰려고 하니 둘로 분단되어 끝없는 싸움만 하고 있으니…. 여하튼 그들은 어느 쪽이 잘되는가 두고 보다가 적당한 때를 기다려 재산을 쓰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그들을 사상적으로 단결시켜 가지고, 한국이 세계를 리드할 수 있고, 또 일본을 사상적으로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원리로써 인식시킨다면 그 돈은 한꺼번에 세계 복지건설을 위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돈 이야기는 그만두고라도 앞서 말한 방법을 가지고 교포 세계에 공산주의의 조총련을 몰아내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이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 내에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세계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민단과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으니 기필코 좋은 결과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일본의 47개 현에서 교포를 상대로 강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간부들을 그곳에 배치해서 강의를 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 어디서 옆구리에 총구를 들이댈지도 모른다는 것을 늘 각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선 민단을 중심하고 교포들의 사상을 통일해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한국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나이 많은 부모들은 조국인 한국에 대해서 꿈도 안 꾸는 그들의 자식들을 바라보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한국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우리의 사상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기뻐서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현재 교포 60만 중에서 20만은 민단에 속해 있고 20만이 조총련에 속해 있으며, 그밖에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20만이 있는데, 이 20만 중의 3분의 2이상은 조총련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활발한 원리연구회 활동

이번에 일본에서는 약 천여 명의 학생들이 하기 개척전도를 나갔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통일교회의 문 선생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5대 신문을 비롯하여 많은 잡지들이 통일교회 때문에 떠들썩해지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매일같이 취재를 하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일본 천하에 있는 유치원의 아이들로부터 시작하여 대학가에 이르기까지 통일교회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길거리에서 야숙까지 하면서 일본을 구해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이색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각 신문마다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라고 하지 않고 ‘전국대학원리연구회’라고 하는 명칭을 걸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모임이 어떻게 되어 있기에 학생들이란 학생들은 전부 다 집을 뛰쳐나오게 만들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그들을 데려다가 넝마주이를 만들고, 그다음에는 개척전도니 뭐니 하면서 걸식을 하면서 돌아다니게 하고, 처마 밑이나 벌판에서도 잠을 자게 하는 등 별의별 일을 시키면서까지 일본을 살린다고 야단법석을 떨까? 이렇게 큰 소문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남녀 학생들이 합숙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녀관계가 엄격하다는 사실이 공인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오오모리 씨라고 하는 사람은, 아시아인으로서 세계적인 언론인 상을 탔던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우리 원리연구회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가 발간하고 있는 ‘옵서버’라고 하는 신문이 있는데 이 신문을 이때까지 우리 원리연구회가 판매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 원리연구회 학생들의 취지라든가, 실제 행동면에서의 철두철미한 모범적 생활을 보고 크게 탄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일본의 현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청년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원리연구회의 근본 사상을 알아보기 위하여 여름 내내 개척전도지에 직접 가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편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 내용이 그렇지 않다고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학생들의 부모들이 전부 일방적인 입장에서 반대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양면을 대하고 있는 그 학생들은 너무나 솔직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부모에게 사탄이라고 했다 해서 그것만 가지고 나쁘다고 하지 말고, 어머니 아버지를 사탄이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피맺힌 사연이 많았겠느냐며 학생들의 부모들을 달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도 우리를 이렇게 지지 찬동하고 있는 상당한 세력이 있습니다.

언론계에서도 관심을 가지다

이번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학생의 부형들이 일본에서 셋째 가는 큰 신문사에 반대 투서를 보내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찬성 투서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일이 있었습니다.

아사히(朝日)신문에서는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내용만을 보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문은 좌익 신문이기 때문에 반공 태세를 취하는 통일교회는 사상적으로 적대적 입장이므로 우리 교회를 모략하고 있다고 역선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케이(産經)신문에서는 다른 신문사의 보도 내용은 모두 사실과는 상반된다고 보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언론기관에서도 우리를 반대하는 편과 찬성하는 편이 있습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신문은 부모들이 보낸 찬성 투서의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반드시 통일교회에 청년 남녀들을 전부 다 보내야 한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한 신문 기사는 전부 거짓말이다. 우리 아들은 거기에 가서 이러이러한 점이 좋아지게 되었고 현재 어느 대학의 무슨 과에 재학중이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문사끼리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문 선생의 이름이 매번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민족적인 감정을 고취시키기 위해 그러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어차피 선전될 건데 선전이나 많이 되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는 말에 의해서, 즉 말에 혹해서 넘어갔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이 먼저 쳐야 하는 법이니까 대신 신문이 치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심판을 하려고 하니 사탄이 먼저 치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끝나게 될 때에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다. 40여일 동안은 각 언론기관에서 통일교회에 찾아와 간부들을 만나려고 굉장히 떠들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참은 남아져 승리한다는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만나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선생님이 한국으로 가는 줄을 알고 기자들이 공항에 나와 취재 하려고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선생님이 지방에 갔다고 하니까, 언제 갔느냐? 북해도(北海道)에 갔느냐? 구주(九州)에 갔느냐? 북쪽이냐? 남쪽이냐? 그것만 알려주면 각 지방 지사를 통해 행방을 알 수 있으니까 그것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측에서는 모른다고 잡아떼어 버렸습니다.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AP, UPI 등 외국 통신의 특파원들도 서로 취재하려고 떠들썩했습니다. 여기 한국에서도 통신사의 기자들이 오늘도 찾아오고 있는 그런 형편입니다.

한편, 미국 최대 방송국의 하나인 CBS의 본사에서도 일본 주재 특파원에게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의 실황과 또 교회의 내정에 관한 것을 컬러로 찍어서 미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일이 벌어지라는 것입니다.

원리 강의를 내무성에서까지 하면 승공문제는 쉬워져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민단을 우리 편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민단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그 민단을 통해서 반공강의를 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교회의 간부들을 내적으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통일교회의 일본 사람들이 재일교포의 집에 가면 모두 환영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 사람이 한국 교포 집에 들어가서 이 진리가 한국에서 나왔고, 우리의 신앙의 본국은 바로 한국이라고 말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게만 하면 그들이 호기심을 안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효과는 백발백중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각 현(縣)에 흩어져 있는 한국 교포들의 가정에 들어가서 투숙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객지생활을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록 어렵게 살망정, 차라리 부부가 다른 집에 가서 자는 경우가 있더라도 우리 전도사들을 잘 대접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 식구들과 교포들이 뜻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원리로 무장을 하게 되면 조총련계의 빨갱이들이 반드시 깃발을 들고 민단과 싸울 것입니다.

그렇게 싸우게 되면 보안을 책임진 일본 경찰과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경찰 간부의 거의 다가 군인 출신이어서 모두 공산당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불가침조약을 위반했던 소련에 대한 배소정신(排蘇精神)이 강한 경찰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공산당과 싸우게 되면 그들은 우리 편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공산당과 대결하는 우리들의 편에 서려면 너희들도 공산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개괄적으로나마 비판이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기 위해서 통일교회의 내용을 알아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게 될 때에 경찰 간부들에게도 원리강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원리강의를 듣기만 하면 반드시 좋다는 소문이 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서 내무성에 가서 원리강의 할 수 있는 길을 뚫어야 합니다. 일본 내무성의 적극적인 지원만 얻게 된다면 공산당은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도 틀림없이 잘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런 일들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부터 그 배후 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가와 씨의 초청으로 그 사람을 만나 아시아에서의 할 일들을 계획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일본을 가게 되면 또 연락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에서 그러한 터전을 준비해 가지고 이 나라가 하지 못하는 일을 추진하여 한국과 아시아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의 47개 현에 원리로 무장한 사람들을 내년 3월까지 천 명이 넘게 파송하라고 했으며, 한편 대학 출신 중에서 230명을 선발해 가지고 역시 내년 3월까지 원리를 무장시켜 전부가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왔습니다.

또 매달 수련회를 실시하여 합격된 사람을 한국 본부에 보고하도록 했고, 교포와 상대적인 작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빨리 만들어 가지고 일본에 크나큰 혁신을 일으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를 구할 수 있는 사명은 우리가 아니면 그 누구도 맡을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이런 일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그물에 걸려드는 날에는 일본이고, 미국이고, 모두가 다 우리의 이념 앞에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민단을 통해 가지고 8․15 광복절 행사에서 반공강연을 하게 된 것, 즉 ‘승공계몽단’이라는 이름 없는 한 단체의 이름으로 전례를 깨뜨리고 강의한 것과 통일교회의 한 사람으로 교포 학생들의 하기 집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나서서 강의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했던 그 강연의 결과는 매우 중요한 것이며, 우리의 예측은 틀림없이 들어맞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에서의 발전이 한국보다 빠를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본 말을 할 줄 아는 젊은 사람들을 모두 일본으로 보내 가지고 반공의 일선에 세우려고 합니다.

내년 1월에는 틀림없이 보내게 될 것입니다. 가서는 모두가 죽을 각오를 하고 공산당과 맞서서 싸워야 되겠습니다.

일본 식구들도 이번에 원리에 대한 방향성과 본부와의 심정적인 유대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습니다. 원리에 대한 지금까지의 태도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이제는 한국 식구들과 같은 발전 궤도에 돌입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이야기해 왔습니다만, 비록 민족이 우리들을 배반하고, 우리가 쫓기고 몰림을 당하더라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만 하겠습니다.

<말씀 요지> 지나온 역사를 회고하여 보면 우리는 몰리고 쫓김받던 무리요, 서러운 눈물을 남몰래 삼켜 가면서 그날 그날을 이어 나왔던 무리입니다.

반성해야 할 한국의 청년 식구들

여러분들 중에는 환희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해방을 맞이하려는 마음마저 잃어버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랬을망정 오늘에 와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삶과 슬픔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이제 어떠한 인연을 중심하고 일어나야 할 것인가를 선생님이 떠나면서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또 이것을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남이 모르는 뜻을 알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따라 나왔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은 내가 슬퍼하는 가운데서도 높게 받들어야 할 하나님이요, 또 그 하나님을 떠나서는 내가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뼈가 굵어졌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이 붙어서 인간이 된 이 몸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여러분이 갖추었던 지난날의 자세마저 흐트러진 채 슬픔에 잠겨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현재 우리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방의 일들을 바라볼 때, 우리들이 책임 해야 할 분야는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정세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본에 머무는 동안에도 신문을 통해서 한국의 소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휴전선을 중심한 일선과 후방 곳곳에 무장간첩이 빈번히 출몰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그대로 보고 있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한국의 이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맡기시고 세계를 대신하여 세워주신 세계의 본부인 것입니다. 이 인연으로서 본부라는 그 이름이 얼마나 가치가 크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곳 본부에서는 어떤 책임자의 위치에 있지도 않고, 입교한 지도 며칠 안 되는 사람이지만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의 최고 책임자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에 대한 그들의 기대가 하늘같이 높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본부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에 있는 우리들의 자세가 지금 같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가미가와(神川)라고 하는 곳에 우리 공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 걸쳐서 통일교회의 청년들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폐품 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힘든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본부를 그리워하고, 본부와 인연된 소식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들은 생활환경에 있어서는 우리들보다도 부유한 입장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받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떠한 심정을 가지고 어떠한 입장으로 활동을 하느냐 하면, 젊은 사람들이 혈기왕성한 기백과 정력을 소모할 길이 없던 차에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보니, 한번 가담하여 일해 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생겼기 때문에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볼 때 취미적인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 무리들이 많습니다. 또한 그들을 살펴보면 신앙의 연조도 길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신앙의 연조가 오래된 사람들과 같이 활동을 전개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 사람들이 신앙적인 도수가 차면, 그들은 그러한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생활을 할 것입니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현재의 한국 청년 식구들과 일본의 청년 식구들을 비교해 본다면, 한국의 청년 식구들이 틀림없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싸워 왔고, 또 연단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이젠 지쳐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 청년 식구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이지만, 하나님은 더욱 큰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그러한 터전을 찾고 계시기에, 같은 기간의 활동 실적이 세계적인 실적으로 나타나는 곳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곳을 발전시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 아닌가 합니다.

새로운 결의로 재출발해야 할 때

이런 내용을 생각하여 볼 때,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의 자세는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고생을 했고, 또 싸워 나왔다고 할지라도, 본부의 이 귀한 위신이 명목상의 위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내용상으로 위신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귀국했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무엇을 강조해야 할 것이냐?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자세를 갖겠다고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한국을 떠날 때, 여러분들 중에서 120명을 선택하여 43조의 삼위기대를 조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성지순회 기도와 특별 활동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떠났던 것입니다.

일심단결해서 움직이게 되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볼 때 1957년도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새로운 역사적인 터전이 마련되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책임하지 못한 것도 있었겠지만, 사회적인 환경과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를 놓쳐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한 주기적인 기간으로서 7년 내지 8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때가 왔으므로,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결의를 하고 단결하여 세계 앞에 본부의 위신과 본부 식구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긍지를 잃지 않고 나서게 될 때, 외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환경을 휩쓸고 넘어갈 수 있는 내적인 터전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 나오던 활동을 그대로 계속해 나가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돌아왔으니 더욱 박차를 가해야만 되겠습니다. 차원을 달리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본부교회에서 일어나, 그것이 하나의 터전으로 마련되어서 세계적인 위치에 놓여지도록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 각자가 내적인 자세와 외적인 자세를 정비해야만 되겠습니다. 즉 자신과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지금까지 뜻이 지향하고 나왔던 방향과, 현재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관점과,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를 명확히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 7년의 고비를 넘고 새로운 8년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지친 몸이 더욱 더 단결하여 어려운 환경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그 내적인 가치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들의 동지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러한 요인을 꾸며 놓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비참한 민족입니다. 쫓기고 몰림받던 이 민족의 설 자리가 비록 어느 한 모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시 한번 역사를 후려치게 될 때에, 이 민족의 역사가 내 밑에 깔려 들어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재기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회고하면서 과거의 낡은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딛고 넘어설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모습들이 될 것을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본부에 속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단체적인 교회 생활보다도 개인생활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있으면 같이 먹고, 없으면 같이 굶는 단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자리에서 자신을 연마해서 공동적인 활동목표를 향하여 행군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여러분들을 비교할 때, 한국은 지금 뒤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대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교회 활동과 개인 활동이 유대가 되어 있지 않고 떨어진 입장에 있으면 반드시 그 사람은 고립되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의 조국’의 위신을 세우라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하고 축복가정들을 볼 때에, 그 가정들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들이어야만 합니다. 그 가정들은 사탄세계와의 최전선에서 축복가정으로서 승리의 터전을 확립해 나아가야 하고, 하나님 편에 속하는 사람들을 번식시킬 수 있는 처소가 되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이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써, 이번의 전체 활동을 통하여 그들을 이끌어 주지 않고서는 전체적인 승리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다시 한번 성령의 불을 받고 재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성령 역사를 하면 탕감이 많았고, 핍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때가 지나갔기 때문에 잘만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는 어려운 시험의 고개가 있어서 그 고개를 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9월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넘어야만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일을 놓고 새로운 결의를 해야 됩니다. 따라서 이번에 여러분들은 전체적인 각도에서 다시 한번 심정을 부활시켜야만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새로이 정비된 모습으로써 제2차로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는 기분을 가지고, 이 민족을 대표해서 제2차 7년노정을 향하여 출발해야 될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 우리들은 모든 어려운 일들을 물리치고 출발해야만 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지구장이 관할하던 인사발령도 선생님이 직접 관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통일교회를 지양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한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불쌍하고 비참한 민족을 위해, 또한 조국의 새로운 광복의 사명을 지닌 본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여러분들은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번에 일본 식구들의 축복문제도 생각하고 갔었지만, 그들은 축복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년 내지 3년만 더 있다가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자기들의 개인 문제보다도 일본을 위해서 참되게 살아 보지 못하고, 참 되게 활동해 보지 못하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을 미루어 보더라도, 여러분들의 새로운 자세가 얼마만큼 긴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때인가를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번 기간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 대해서 얼마나 큰 기대와 소원을 걸고 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교회를 둘로 완전히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제1교회 제2교회 제3교회를 전부 재편성하여, 둘로 분립시키려고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가망성이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가망성이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움직이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한 자리에다 섞어 놓으면 지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정도 잘 되면 다시 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싸움은 한꺼번에 전부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선두에 있는 사람이 해야 됩니다. 그리고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선두의 싸움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계가 가인이요, 지상이 아벨이라 하게 되면 영계의 영인들은 지상에 재림하여 협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공동운명체

선생님이 일본 대판(오사카)에 갔을 때, 그곳의 장년 식구들이 ‘일본에서는 청년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학교나 가정을 저버리고 헌신을 해서 교회의 명령에 군대의 병정들처럼 움직이는데, 우리들과 같이 가정을 가진 장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그들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또 책임자가 새파란 젊은 사람들인데, 장년들이 그들 앞에 가서 순종하며 명령을 받게 되니, 하는 일이 전부 다 일방적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둘 중에 누가 싸워도 하나는 싸워야 될 게 아닙니까? 장년이 싸우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이 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말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싸우는 그 싸움이 자기들만을 위해서 싸우는 싸움이 아니요, 당신들을 위해서 싸우는 줄을 왜 모릅니까? 선두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지상과 같고,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가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영계와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영계의 협조를 받아서 부활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년 식구들의 협조로 말미암아서 젊은 사람들이 복귀될 때에 여러분들도 같은 혜택을 받아 복귀할 수 있습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은 식구일수록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현재 선두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물심양면으로 일선에 나선 사람들을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뜻 앞에 서서 책임을 다하게 될 때, 그 공적으로 그들을 따라가서 횡적인 면에서 실체부활의 혜택을 받고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되었다는 통일교회의 장년 식구들은 그러한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와야지.’라고 말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방향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원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선두에 나서서 싸우면, 그들의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를 대신하여 싸우고 있다는 이런 일체적인 관계를 갖고, 후방과 전방이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도록 해야만, 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 내의 어떠한 책임을 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푸대접하는 교회는 발전할 수 없으며, 퇴보의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잘못된 경향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만 뜻 앞에 세계가 빨리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원을 높여서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들과 후방에 있는 사람들이 일치되는 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만 되겠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고 활동할 수 있는 체제를 조직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이것을 적극적으로 추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공동적인 책임을 완결해야 할 운명이 우리들에게 있으며, 그 운명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분들을 지도해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해결 방법이 수행되지 않는 경우에는 최후의 방법을 강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목사님들에게 원리 책을 몇 권이나 나누어 주었습니까?

선생님이 일본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늦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옛날의 속담 중에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돈은 없지만, 금년 가을에는 틀림없이 일본 식구들을 한국에 초청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초청을 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열다섯 명이 일본에 다녀왔으니, 그 절반 내지 3분의 1인 다섯 명 정도라도 초청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승리한 실적을 쌓으라

선생님이 일본에 있을 때에, 한국 본부에 대한 선전을 아주 잘해 놓았습니다. 마루방에서 잠을 자야 되고, 맨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되고, 비좁아서 몸을 비벼대며 옷이 벗겨질 정도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식구들 웃음)

이번에 같이 간 유광렬 씨가 북해도에 갔다 돌아올 때에 통곡을 하고 왔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눈에는 눈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그들과 헤어져 돌아가야만 하는가?’라고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두 줄기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서 통곡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시급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외국 식구들을 통해서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니, 그 외국 식구들을 대할 때 자신이 참으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한국 식구들이 일본에 가서 전부 다 무슨 말을 했는가 하면, 과거에 교회에 들어와서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였다면서 자기가 활동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에 가서나 식구들이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 자기가 과거에 어떻게 고생했다는 간증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간증한 그 내용들을 들어 볼 때 그다지 훌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본부에서 갔다는 식구로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선생님과 관계를 맺어 고생을 했다는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 식구의 재산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딴 것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중심하고 볼 때에는 재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재물을 가지고는 그와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과거에 어떻게 고생하며 투쟁해 나왔느냐 하는 것보다는 현재에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것이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 자신은 그 무엇을 가지고 외부에 자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남달리 어려운 자리에서 고되고 힘든 일을 참고 견디어 이긴 승리의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실적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화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을 하고 어려운 고개를 넘어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이해하여 주시기를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하는 바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새로 온 분들을 위해서 잠깐 동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통일교회에 새로 들어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종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역사 과정이 어떠하였고, 또 이제부터는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통일교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하고 명백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목표 앞에 철저히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가가 문제

이 시간 말씀드릴 제목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입니다.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라는 것은 과거의 사람은 물론 현재의 사람, 또 미래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천추만대에 이르도록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추만대의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런 중에 ‘통일’이라는 간판을 들고 나온 통일교회가 이 한국에서 생겨났으니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은 과거에도 모두가 바라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수많은 군왕들은 약소민족을 흡수해서 하나의 통일된 왕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들의 판도를 확장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보아 과거나 현재의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이나 예전부터 통일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일교회 교인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도 역시 통일을 원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원하고 있는 통일을 어떻게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무엇이 제일 가깝겠습니까? 나라가 가까워요? 나라도 가깝기는 하지만 제일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제일 가까우냐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제일 가깝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사이가 제일 가깝다고도 합니다. 물론 부부 사이도 가깝고 부모와 자식 사이도 가깝지만 그런 사이보다 더 가까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때문에 제일 가까운 것이 누구냐 할 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자기 자신이 제일 가깝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라는 존재가 제일 가까운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모 때문에 서럽다, 형제 때문에 서럽다, 혹은 자식 때문에 서럽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서럽다는 말도 결국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좋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여건을 통해야 그런 결과가 나오겠지만, 결국 그것도 자신의 관념에서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도, 제일 서러운 것도, 제일 좋은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주통일 바라기 전에 자아통일 완성해야

지금도 세계 만민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은 이 통일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서 세계를 지도하는 최선봉에 선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를 비롯한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고, 천주가 통일된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통일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통일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즉 외적 세계가 통일이 되어서 행복의 꿈나라에 잠길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세계가 전개된다 할지라도 그 세계가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성공을 해야지. 성공을 하면 이렇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 성공이 자기만을 중심삼고, 오직 자기 기준에서 이루어진 성공이라면 그 사람은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세계를 통일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를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되지 못하는 한, 그 통일은 불행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도 단지 이 세계만을 중심삼고 통일하려 한다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도 완전히 통일된 주체로 계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의 변천에 구애 받지 아니하고, 시대의 존망에도 영향 받지 않는 확고부동한 통일의 주체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완전히 이루어진 통일세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도 그러하시거늘 자녀로 지음 받은 인간도 역시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싸우며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더라도 이 민족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일 기준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그 구성된 모임 자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실체로 규합될 수 있는 통일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그러하듯이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통일을 바라기 전에 자아통일을 완성해야 하며, 우주 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해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교회 자체가 통일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선 여러분 자신이 통일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좋은 방향으로 통일시키려면

사람을 가만히 보면 참으로 이상한 존재입니다. 한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한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극에서 극으로 연락할 수 있고, 극에서 극을 뒤넘이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통일하는 데는 나쁜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과 좋은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 두 가지의 방향이 있습니다. 나쁜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는 연구도 필요 없고, 생각도 필요 없고, 궁리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통일은 급속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는 많은 연구와 생각과 궁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있느냐? 절대로 혼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반드시 몸과 더불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없는 자리에는 마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없을 때는 마음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불행하지만 할 수 없이 영계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은 몸과 완전히 하나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각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과는 서로 친구가 될까요, 싸움패가 될까요? 만약 친구가 되지 못하고 싸움패가 된다면, 어느 것이 싸움의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싸우게 되면 언제든지 몸이 마음에게 먼저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만히 있는데 몸이 마음을 못 살게 구는 것입니다. 남자의 몸이든, 여자의 몸이든 그 몸은 마음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한 개체에 있어서 마음과 몸의 통일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마음아, 몸아, 너희들 통일해라.’ 명령한다고 해서 마음과 몸이 통일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완전구원을 위해 썩은 부분은 베어 버려야

하나님이 인간을 왜 구원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만민을 전부 분열시켜서 이 세상을 싸움터로 만들려고 구원하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통일되어서 서로 좋아하고, 서로가 하나의 목적 아래 화동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세계를 구상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만민구원을 목적으로 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평화를 고대하고 계신다 하더라도, 언제나 말썽만 피우는 말썽꾸러기 이 몸을 그대로 놔둔 채 통일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만민이 바라고 소망하는 이상세계, 통일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먼저 통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그대로 있어서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외과 의사가 병이 나서 썩어 들어가는 환자의 다리를 놓고 수술은 하지 않고 ‘이 다리가 수십년 동안 이만큼 자라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 불쌍하구나. 지금까지의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손대면 안 되지.’ 하고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그냥 놔둔다면 그 환자의 생명까지 잃게 되고 맙니다.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데 그냥 두었다가는 몸뚱이마저 썩어 버리겠다.’ 하면서 환자가 아무리 아파하더라도 무자비하게 병든 다리를 자를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입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 이 둘 중에 하나는 싸움패입니다. 여러분, 싸움패 좋아합니까? 싸움패라면 누구나 기분 나빠합니다. 싸움을 하지 않는 평화주의를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몸 가운데에는 싸움패적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이 있게 된 원인은 타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개체를 두고 보더라도 선과 악의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가 내 몸 안에 있습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반하여 악을 지향하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 짓지 못하면 수만년 역사 가운데 원수의 괴물인 몸은 언제나 그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이시라면 비수를 가지고 인간의 썩은 부분을 베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훌륭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하나님을 바랍니까? ‘몸아, 죄 많은 세상에서 이만큼이라도 남아지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했느냐! 공로가 많았다.’ 하고 등을 두드려 주는 하나님을 바랍니까, 아니면 무자비하게 이 몸을 처치하는 하나님을 바랍니까? 어떠한 하나님이 좋을 것 같습니까?

이 몸을 단번에 해치우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몸은 타락세계와 연락할 수 있는 안테나입니다. 또한 이 몸은 인간세계의 죄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몹시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 사람은 속죄해야 합니다. 속죄의 역사가 지상에서 벌어지게 되면 통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몸을 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두 목적을 지닌 사람을 지었다면 그 하나님은 논리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두 개의 목적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개의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는 존재할 수가 없고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명동에도 가고 종로에도 가겠다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갖게 된다면, 한 몸이 두 곳을 동시에 갈 수 없기에 먼저 두 목적이 서로 싸움을 해야 됩니다. 이기 가라, 저리 가라고 하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어찌하여 인생행로를 고해(苦海)라고 하느냐? 두 목적세계의 기로에 서서 어느 한 곳을 결정지어서 가야 할 숙명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민거리를 타개하기 위한 싸움이 남아졌기 때문에 인생행로는 고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 개의 목적 중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목적에 완결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본래에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기에 두 목적에 이끌려 살다가 보면 어느덧 백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평화를 가질 수 없고 행복이 깃들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해일 뿐만 아니라 고통과 비애, 그리고 비참과 탄식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지상의 인간에 대한 처리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종교는 만민에게 필요한 것

그 처리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돈과 권세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지상에 종교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라는 것은 만민에게 필요한 것이냐, 아니면 어떤 특수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냐?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늙어 죽게 되었을 때 교회에 찾아가서 그저 예수님 믿다가 천당 가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천당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통일된 하나님으로서 수천년을 이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의 요소와 일치될 수 없는 사람은 통일된 세계인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으로는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세계의 상도(傷悼)를 해결 짓고 인간을 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세워 놓은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떠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냐? 오늘날의 대학교수들, 혹은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종교란 약자가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을 본질적인 입장에서 분석해 보면 그들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들은 대부분 통일의 요건을 반대하는 악당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세계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는 특별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에게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죽었을 뿐입니다. 또 미래의 사람들도 알아야 하며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어떠한 것인가? 여러 사람 가운데 나쁜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그 나쁜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 종교인가, 아니면 좋은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 종교인가? 어떠한 사람을 키워야 될 것인가? 종교의 가르침은 좋은 사람의 양심을 키워 주고, 사람 속에 있는 나쁜 요소, 즉 악을 굴복시키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원수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그러면 고차적인 종교란 어떠한 것이냐? 세상과 타협하는 종교는 시시한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결국 망하고 맙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의 고비 길을 모조리 청산할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선에 가까이 접하는 고차적인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육신을 부정하고, 생활을 부정하고, 악의 세상을 부정하고 나서야 됩니다. 외적인 전체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 참된 종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도 섬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육정을 따라가는 생활에서 벗어나 독신 생활을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세계에 종교라는 것이 나와서 육신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절대적인 선을 세울 수 있는 어떠한 주인이 인류역사의 종말에 나타나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는 선한 세계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에는 재림사상이 있으며, 천국을 동경하는 이상세계와의 접경을 지어 놓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육신을 완전히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입장에서 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세워지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룬다고 한다면, 그 세계가 바로 지상천국이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 세계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의 모든 전쟁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과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육신을 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이 인류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육신은 원수의 모태요, 죄악의 근본 뿌리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이렇듯 몸을 치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의 근본이기에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통하여 처참하게 몸을 치셨던 것입니다. 몸은 높아지기를 원하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데, 종교는 몸에게 복종하고 순종해라, 죽어서 제물 되라고 가르칩니다. 전부 반대로 가르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을 침으로써 세계적인 밧줄을 타고 나가기 위함입니다.

무한히 큰 인간의 마음

여러분은 마음이 좋은 것임을 알지요? 마음이 선을 지향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갑에 돈이 백 원 있는데 불쌍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러면 마음은 ‘야 그 돈을 불쌍한 사람한테 줘라.’ 하고 명령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너는 속에 내의라도 입었으니까 그 윗도리도 벗어 줘라.’고 합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마음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 좋은 사람이 삼천만 동포에게 각각 이천만 원씩 나눠 주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야, 이제 너 그만큼 했으면 네 할 도리는 다했으니 이제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마음이 그래요? 천만에! 야 이 녀석아, 한국을 구했으면 일본이 있지 않니? 아시아가 있지 않니? 30억 인류가 있지 않니?’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계에 가서까지도 그렇게 하라고 마음은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마음은 나를 위해서는 독재자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놈의 마음을 따라가다가는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 안 해 봤습니까? 여러분, 마음이 나와 제일 가까운 것을 보면 좋긴 좋은 데, 이 놈을 따라가다가는 다 가지도 못해서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마음이 하나님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마음이 말하기를, 세계를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편안히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지구보다 더 큰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보다 더 큰 우주가 있고, 이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 하나님을 점령해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도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마음도 하나의 결과인데 마음이 활동할 수 있는 동기가 없어 가지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과 수수작용

오늘날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를 막론하고 과학자들은 이 우주, 이 자연이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물질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물질은 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힘은 그 자체만으로써는 생길 수가 없는 것 입니다. 힘도 주고받는 작용을 하지 않으면 상대적인 기준이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에서 작용하고 발생하는 힘도 사지백체에서 주고받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그것에 비례해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주고받는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고받는 작용을 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혼자서는 절대 주고받는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고받는 작용을 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상대입니다. 이것은 모든 존재 양상의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서부터 먼저 주고 받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상대적 요건을 갖추어서 서로 주고받아야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남자는 여자가 필요 없다고 하고, 여자는 남자가 필요 없다고 한다면 백년도 못 가서 세계는 다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즉 주고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며 가정을 이루어 왔던 것입니다. 때문에 사랑이란 주고받는 작용을 일으키는 힘을 말합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작용의 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힘의 모체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작용이 있어야 되고, 주고받는 작용이 있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즉 상대요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맨 처음 출발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또한 지금까지 발전해온 것의 출발은 무엇인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모순에 의한 투쟁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가 성립되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즉 상대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데서 우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어떤 사람이 명동에 가려고 하는데, 상대적인 목적이 없이 간다면 그 걸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간다 온다 하는 작용도 반드시 상대적인 요건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절대로 작용이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용이 벌어지지 않으면 힘이 나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근본도 역시 상대적인 요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적인 요건은 마이너스(-), 즉 손해 보는 일에 작용을 하겠느냐, 이익 보는 일에 작용을 하겠느냐? 만약에 어디에 갈 때 손해 보기 위해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플러스(+), 즉 이익이 되는 요건이 있을 때에 가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데에는 손해 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물질의 구성 요소인 원소들의 작용을 살펴봐도, 두 원소가 합하려면 합하기 전보다 더 나은 요건이 있어야만 서로 화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에게 도움 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지 않고는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의 동기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모순 대립되어 서로 작용한다고 하는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명동 거리를 오가는 청년 남녀들이 괜히 오가는 것 같지만 자신들에게는 플러스(+)가 되는 요건이 있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단돈 100원이라도 플러스(+)시키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지, 손해 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감각이 이러할진대 만물도 이 법도의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을 발견하기 위하여 기쁨과 행복의 내용을 풀어 놓은 것입니다. 손해 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힘이 나오기 위해서도 상대적인 요건이 필요한데, 그 상대적인 요건은 반드시 플러스(+)될 수 있는 데서만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보면 마음이 자꾸 욕심을 부리는데 그것이 손해 보는 요건을 위해서 그러겠습니까, 아니면 이익 되는 요건을 찾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러겠습니까? 그것은 이익 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온다.’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천지원칙적으로 플러스(+)작용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철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양심은 어찌하여 나라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지를 넘어 창조주까지도 넘고 또 넘어가는 작용을 하려고 하느냐? 이것은 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점령해서 기뻐할 때에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것도 사람 그 자체보다는 그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속에 숨어 있는 사랑까지 점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최고 높이 올라가서 머무를 수 있는 궁극적인 안식처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고서는 인생의 행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해야 세계통일이 가능

이렇게 엄청난 사람의 마음을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를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게 될 때에 비로소 마음이 그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점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아가씨라도, 한 나라의 총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나이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아가씨는 그 나라에서 첫째 가는 여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아가씨라도 그 아가씨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 아가씨를 국민학교 졸업생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부인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가씨가 대통령의 사랑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대통령과 동반적인 가치를 지니고 그 자리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권위와 권한을 갖게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당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본질적인 터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가 흘러왔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내용을 보다 철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고차적인 종교요, 세계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비교해 볼 때 기독교가 그런 내용을 가장 많이 품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가르칩니다. 또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들은 신부라고 가르칩니다. 신랑 신부가 된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세우려 했던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하나님이 세운 세계적인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기독교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믿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악한 마음을 빼 버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안 믿어도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팽개친 인간이기에 그 사랑을 다시 찾지 않으면 사람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계심을 밝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통일교회를 세워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세계의 판도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사랑을 빼 놓고 이상과 행복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망할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망할 무리입니다. 만약 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망하게 해야 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사랑을 무시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적인 모든 정적(情的)인 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부정되지 않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 만복의 근원이요, 모든 힘의 총괄적인 중심의 모체요, 절대적인 통일의 실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통일세계에 가담할 수 있고, 통일세계의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거기까지 이른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런데 마음은 어찌하여 현실을 부정하느냐? 부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찾기 위해 현실을 폭군과 같이 때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던 것 이상의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현실을 부정하고 몸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희망봉의 표준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세계통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들을 빼놓고는 통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바탕을 증거할 수 있고 점령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는 방법

사람의 마음과 몸을 통일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는 이 몸을 옥살박살내서 점령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몸을 치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설사 났을 때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서 먹이면 잘 낫습니다. 그렇지만 개구리를 잡아 죽여 놓고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몸을 주관하는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마음은 허풍선같이 한 번도 몸과 대등하게 싸워 보지 못하고 번번이 져 왔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에다 주사를 놔서 힘을 한 2~3배쯤 늘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면 몸을 끌고 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열심히 잡아끌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튜브에다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이 마음에도 힘을 강하게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이 강하게 되겠지요? 그런 다음에 이 마음과 몸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정없이 몸을 때려서 점령하는 방법과 마음에 힘을 가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 배, 몇백 배, 몇 천 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통일을 향해서 올라가는 승강기이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이 없이는 하나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사랑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힘이 개체를 위하는 힘보다 강할수록 더 이상적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완전히 하나로 얽어매는 그것은 사랑의 밧줄입니다. 쇠로 만든 줄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끊어지지만 사랑의 밧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는 밥으로도 돈으로도 얽어맬 수 없습니다. 오직 부자관계의 사랑으로만 얽어맬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 하나되는 것도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간에도 사랑이요, 한 가정을 중심삼고 친척간에 하나되는 데도 사랑이요, 종족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한 나라, 혹은 세계를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오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 전체를 통일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완전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사랑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완전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슬퍼하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셨겠습니까, 아니면 기뻐하기 위해서 창조하셨겠습니까? 플러스(+)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플러스(+)되면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의 대상에게 사랑이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일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만국을 소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요, 만국을 품고 영원히 끌고 가더라도 더 끌어 주었으면 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면 할수록 기쁨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어느 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이러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르쳐주는 진리로 말미암아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사랑이 있으되 내게는 필요 없는 사랑입니다.

나를 보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모르면 그 사랑은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도 또 듣고 싶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시조가 때 아닌 때에 사랑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주고, 그 사랑을 소유하여 자신이 그 사랑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만일 통일교회가 그런 내용을 갖고 있지도 못하면서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였다면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란 사람은 사기꾼인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끌고 가는 것이고 나로 말미암아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사방에서 전부 다 몰려듭니다. 천하일색의 미인이 있으면 천하의 모든 남성이 관심을 갖고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한번 들어오면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관계를 맺은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맺는 사랑의 인연은 본성의 인간이 그리워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전부 다 지상에서 녹아 없어질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면 지상에서 아무리 금실이 좋던 부부도 남이 되고 맙니다. 틀림없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결합해서 출발한 부부라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히 일체 된 부부가 들어가는 곳이요, 그 일체된 부부에 의해 태어난 자녀들,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체가 된 가정․종족․민족을 전부 다 거느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정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에 머물러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부부가 아니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상대적 이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전부 다 들어가야 되고, 자기 종족과 나라가 전부 다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전부 다 천국 가는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문이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문이 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국문을 열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지만 땅 위에서 그 상대적인 실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에 플러스(+)될 수 있는 상대적인 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면서 천국문이 열릴 그날을 고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재림하는 날에 만민 중에서 하나의 신부를 택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진짜 이단입니다. 언젠가는 한번 걸려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안 오면 선생님이 오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어차피 걸려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 중에도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은 통일교회를 반대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기 계신 아주머니도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회개하고 전도 나갔다 왔군요. 통일교회가 인정이 많고 배포가 크니까 그것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지금 날씨가 덥기도 하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배도 고플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침도 못 먹었습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금식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루든 이틀이든 입을 다물고 있어 보십시오. 약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무슨 힘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에다 펌프질을 강하게 해서 몸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한 힘을 길러서 이미 태어난 사람들을 통일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서만 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진리는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그 사랑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만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민이 원하는 심정세계를 건설해야 할 통일교회

이 장소가 지금의 5분의 1쯤만 되면 어떨까요? 그러면 전부 다 대여섯 시간을 서서 예배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진짜 통일교인이라면 그냥 서서라도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 자리에 엄청나게 찾아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면 자기 집은 이웃집 같아지고, 이 땀내 나는 교회가 자기 집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웃집에 가서 살겠습니까, 자기 집에서 살겠습니까? 모두가 이웃집인 통일교회에 와서 살겠다고 하니 선생님이 욕을 많이 먹게 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통일교인에 대해 기도만 해 주면 강렬한 힘이 발동합니다.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던 모든 것을 쳐부수라고 명령하면서 가르쳐 나온 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심정적인 차원의 세계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 선생’ 하게 되면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호령이나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 와 본 사람들은 분위기가 너무 자유스러워서 위가 아래 같기도 하고 아래가 위 같기도 할 때가 있어서 곤란하다고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은 누가 선생님인지 잘 모르고 대개 협회장을 선생님으로 압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이렇게 나왔으니 알아보지만 저 구석에 앉아 있었다면 새로 온 사람들은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통일교회 분위기는 참 자유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그야말로 해원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해방이요, 나라에 있어서도 해방입니다. 약소민족 국가인 대한민국에 태어난 똑똑한 사람들, 얼마나 이 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했습니까? 그러나 그 한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천하통일을 한 명장이라도 발 끝에 굴러다니는 조약돌 같아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그저 감투나 씌워 놓고 춤이나 추려고 그러신 것 같습니까?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서 개척하고 건설한 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선생님이 진실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누가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역사적인 산 증거가 태산 같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믿는다고 욕을 먹더라도 겁내지 마십시오. 욕은 들어왔다가 돌아 나가기 때문에 걱정 없습니다. 욕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욕을 좀 먹고 나서야 기분이 좋지 칭찬받고 나서면 문제가 됩니다. 남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해 놓고 나서 큰소리치는 것이 사나이의 기질에 맞지, 처음부터 순종만 하는 것은 사나이의 기질에 맞지도 않고 재미도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길은 문 선생의 기질에 꼭 맞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물질 천국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믿는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물질 천국이 최고의 목표가 아님을 압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의 이론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요, 가정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구하는 이상(理想) 앞에서 천하가 울 때가 있으니, 그때를 위하여 충효의 절개를 천세만세에 기릴 수 있는 자체로서 나서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입니다. 때문에 통일교인의 가치는 세상적인 성공과 희망과 행복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은 나의 몸 마음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를 나오면 남처럼 멀게 지내던 사람도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부모가 아닌 부모님을 모시고 서로 다른 형제와 서로 다른 나라와 서로 다른 민족이 더 강하게 규합될 수 있는 고차적인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곳을 ‘만민지원 통일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이러한 소망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용사의 사명

통일교회는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 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가르쳐 줍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현실을 알 수 없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을 모르고는 오늘의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용사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숨어 있는 희로애락을 찾아서 현실에 표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인류에게 달려가겠다고 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통일의 절대 요건이란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한때는 세상 사람들의 핍박이 벌어지는 것이고, 우리들은 이것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난과 비소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더 가게 되면 잘못된 모든 사실들을 대중매체를 통하여 선포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울 중앙방송국을 사지 못하면 그보다 더 큰 방송국을 새로 세울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사흘만 맡겨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처럼 엄청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하늘의 용사가 되고 하늘의 전령이 되어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나가야 합니다. 승리가 깃드는 그 나라에 가서 머무르고 승리가 깃드는 그 세계에서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용사들은 싸움의 행로가 아무리 길고, 행군이 지루하다 하더라도 그 길에서 낙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의 숙원을 풀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소신은 여러분을 앞에 세워 놓고 혼줄을 내어 때려서라도 그 세계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안 가려고 하면 목을 매서라도 끌고 가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따라갈 자신이 있습니까?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지금은 잘 모르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걱정이 많은 길입니다. 편안히 잠잘 날이 없고, 편안하게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힘을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퍼부을 기력이 남았으면 계속해서 전진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에 지루한 사람 있습니까? 지루하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열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열 사람을 위해서 선생님은 말씀을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단순한 의식혁명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받은 심정적인 내용을 고차원의 사랑의 세계로 회오리바람과 같이 옮기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에는 쉴 사이가 없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은 그 누구에게 대신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세계의 어떤 유명한 박사라도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일꾼으로 쓰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외국 갔다 와서 김포 비행장에 내려서 한국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파 속으로 울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한국을 바라보며 울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에 이 뜻을 이 민족과 세계 앞에 세워야겠다는 계획이 그대로 되었다면 지금 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오십이 가까워 오는 지금 또다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학창시절에 세웠던 계획대로 되었다면 아마 이렇듯 황폐한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통일교회를 몰라보니 선생님의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국에 통일교회가 없었다면 한국의 앞날은 단 하루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동양에서 통일교회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일본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공산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현재 통일교회에 속한 여러분에게는 이 민족을 살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개척자의 사명을 견지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하루 하루를 정리하면서 내일의 승리를 위해 달려갈 것을 맹세해 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사랑의 세계와 선의 세계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어려움과 악을 점령하는 하늘 용사의 책임을 다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기 도>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내 나라 내 땅을 밟고 서서 눈물어린 식구들을 바라볼 때에, 가슴에 어리는 한 줄기의 슬픈 사정을 어이할 수 없음을 아버지께서는 잘 아시옵니다.

저희의 심정이 이러할진대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시옵니까? 오늘의 내 슬픔을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부끄러운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자비와 동정의 아버지를 다시 한번 그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많은 사람이 부르던 아버지의 이름이 오늘날 통일교회에 의하여 증명되고,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천추의 한의 곡절 가운데 저희를 대하여 소망의 심정을 갖고 계시는 아버님께 저희들이 슬픔의 충격을 남길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의 수십 평생의 행로가 싸움의 길이었고, 슬픈 십자가의 곡절 가운데 몸부림치는 길이었사오나, 저희들의 행로보다 천만 배 이상 고난의 가시밭길을 아버지께서 걸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슬펐던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오니 이 마음들을, 아버지, 귀엽게 보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 이 시간 뭇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이들의 마음이 누구를 동경하오리까? 누구를 위하여 부복한 몸이 되오리까? 또한 이들의 생명은 누구를 위한 생명이 되오리까? 모두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이 민족은 사연과 사연이 엉클어져 있는 내정적인 민족이고, 아버님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의 사랑에 화합할 수 있는 이 민족이옵니다. 그리하여 상대적인 실적을 갖추어 아버님을 위로할 수 있는 효자의 모습이 되는 것이 저희에게 문제의 초점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면 아버지는 우리와 같이 계실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세상을 대하여 탄식하기 전에 내 자신을 놓고 탄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심정과 사랑이 솟구쳐 오고 폭발되어 오는 그 힘에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을 만들어야겠사옵니다. 민족을 넘고 바다를 건너 이 지구성을 돌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될 때라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아버님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아버지의 자녀들이 있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는 아버지의 채찍이 필요하고 슬프고도 강한 아버지의 권고와 지도가 있어야 할 것도 느끼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게 되오니, 그 일을 저희들 각자가 대신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삼천만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어린 자녀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박대받으며 뿌린 피눈물의 자국이 사탄에게 저주의 터전으로 점령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그 터전 위에 아버지께서 호명하실 수 있는 후세들을 세우시어서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하고 거룩한 지성소를 갖추어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것이 소원이기에 오늘도 그것을 위하고, 내일도 그것을 위하며, 여생의 전부도 그것을 위하여 바쳐져야겠사옵니다. 하오니 죽더라도 바쳐진 그 자리에서 죽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문제는 자기가 염려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오니, 남겨진 뜻을 위하는 염려만이 저희의 전부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자녀들 가운데 스승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자녀들이 있사올진대는 그 어린 심정으로 한 세계를 그리워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치의 내용이 얼마나 굉장하고 놀라운 것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돌아가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반도 곳곳에서 외로운 눈물과 더불어 아버님의 심정을 붙들고 불쌍한 사탄세계를 향하여 선전포고하고 나서는 외로운 무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흘리는 땀 자국과 눈물자국과 핏자국을 아버지께서 영원히 점령하시어 거기에 좌정하시옵소서.

승리의 팻말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그 가운데 영원히 이어받을 수 있는 선한 민족의 후손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이라도 남겨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일본에 남기고 돌아온 뭇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바람이 불어오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지께서 그 가운데 완전히 주인이 되시옵고, 아버님의 손길과 뜻으로 그들을 품으시어서 상처 받을 자리를 모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본향의 스승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자녀들을 아버님께서 직접적으로 위로하여 주시옵고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민족적인 감정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천정적(天情的)인 내용을 중심삼고 소망의 세계를 위하여 단결하여야 할 것을 아옵니다. 이렇듯 아버님을 위하는 모습이옵기에 그곳에 친히 좌정하시어서 오늘의 주인이 되시옵고, 이 해의 주인이 되시옵고, 저희들 생애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친히 주관하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형제들을 기억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오늘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전체가 아버님이 경륜하시는 뜻을 이루고 승리의 개가를 울려 만민평등의 세계 앞에 제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더더욱 간절히 바라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선생님이 지금 팔당에 나와 있는 것은 야곱이 21년 기간을 청산하고 재물을 에서에게 나눠 준 것 같이 기성교회에 나눠 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곱의 축복을 완결 짓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우리 식구가 모든 것을 희생하여 기성교인들에게 주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기성교회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다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순교자의 유가족들을 도와주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초교파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3천만 원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구장들이 봄 절기 같은 심정적인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땅이 봄을 맞을 수 있는 터가 됐기 때문에 봄을 맞을 수 있는 것처럼, 지구장들이 그런 터에 심정과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못했기 때문에 9월 말일까지는 여기 팔당에 머물러 있을 예정입니다.

이제 심정을 중심하고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은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문제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갖지 않고는 자녀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보다도 뜻에 대한 원칙이 위에 서야 합니다. 가정보다도 교회에 더 큰 관심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이 평양을 떠날 때 식구들과 상봉하고 새로운 길을 걸은 것같이, 이제 선생님이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여 새롭게 출발해 나가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는 충신과 효자가 되자

타락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의 심정적인 내적 인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내적 심정을 다시 복귀한 터 위에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내 자신이 그 기준 위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이 길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헤치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잃어버렸기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우리는 신앙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복귀의 길은 심정세계에서는 한없이 가까우나 심정세계를 벗어났기에 한없이 먼 거리에 있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 역사상의 많은 선열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희생해 나왔던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조들이 희생하고 간 복귀섭리의 전체를 수습하여 연결 짓는 날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라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뜻을 이룰 수 없기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영계와 하늘과 땅을 대신하는 개체가 되어야 새역사의 기점을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열의 애혼(哀魂)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중심하고 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효자․효녀․충신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최상의 기준에 있는 사람을 원하고 계십니다. 충효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의 그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아벨의 심정 기준, 노아의 120년 정성 등 역사노정의 그 누구보다 앞선 입장에 여러분이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효의 기준은 역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잘 싸우는 것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심정을 중심하고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나로서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재개척해 나온 것이 선생님이 걸어온 30여년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며 나온 길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모인 무리가 바로 통일의 무리인 것입니다.

이제 7년노정 마지막 해의 3분의 2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역경을 거쳐 나왔습니다. 집을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을 한 것도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처한 자리는 하늘과 땅이 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원하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대하여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충성을 해야 합니다. 효자 충신은 마음, 뜻, 성품을 다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입장이 하나님이 공인하는 기준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지 못하면서 그 자리에 있는 것같이 대해 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불효는 없습니다.

타락 전 아담의 심정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원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서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처럼 큰 불효는 없습니다.

부모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고 가정에 평화와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는 자는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재산이 무너질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파탄되었으니 생명, 재산, 평화, 이상을 유린하는 자리에서는 충신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을 위해 내 일같이 안타까워했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의 생명에 대해 위업을 느꼈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 가정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몸부림치며 싸워 보았느냐? 하느라고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충효가 되지 못하고 불충 불효가 되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것은 교회의 것, 교회의 것은 국가의 것으로 생각해야 하며, 국가의 것이 바로 세계와 천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만을 생각하는 무리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자기 것과 자기를 주장했던 사람치고 충신이 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달려가자

통일신도들은 종국에 자신을 제물 삼아 사탄을 물리치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재산이 위험에 직면할 때 자기가 대신 희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의 마지막 고비에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 노정이 지나갈수록 슬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도 자신을 재고하며 비장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운에 사라지는 그 장면을 몇천만 번 생각했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핍박을 하더라도, 또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타지 않고 남아지는 내가 되었는가? 여러분들이 국가와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면서 120일을 특별 기간으로 정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뜻 속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갔던 어떤 식구가 만나 줄 수 있는가 하고 선생님에게 물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10월이 지난 후에 시간을 내 보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씀하심)

세상으로 떨어진 뒤에 다시 돌아와 하나님 앞에 구원 받기를 사정하며 당부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선생님도 못 견딜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해서 기뻐할 선생님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자기를 내세우며 알아 달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은 이 7년노정을 가는 여러분들이 무슨 일에서든지 도취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식구들에게 도취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아버지 앞에 갈구하는 자리를 사탄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제물의 자리요, 제단입니다.

이제 불원간 21년이 지나게 됩니다.

공산당은 8대를 넘기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 받으려면 효자가 되는 것 외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탕감복귀하여 심정적 기준을 넘지 못하면 사탄의 참소를 면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승리한 선생님의 뒤를 따르기 바랍니다. 따라오는 많은 무리들 중에는 자기대로의 지혜를 가지고 따라오는 자도 있고 그대로 따라 오는 우직한 자도 있습니다. 생사를 초월하며 무조건 따라오는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더라도 그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달리는 말 등에 붙은 자와 같아서 최소한 말이 가는 곳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명을 받지 않고도 따라가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공인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 오신 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은 다만 아들딸 되기 위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벨의 사명을 다한 후에는 가인을 동원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의 일이 끝난 후에는 영계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은 지상에서 부모를 중심하고 자녀가 되는 기간입니다. 그런 후에는 영계가 동원되어 형제의 인연을 맺으려 합니다.

천지법도를 가는 선생님의 이 길을 어기지 말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선생님의 직계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불효의 자식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와는 심정의 중심으로 일체를 이루는 것이 큰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심정의 제2차 십자가노정이었습니다.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은 축복가정들과 그들의 후손, 그리고 통일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존재입니다.

기성교회가 반대했기 때문에 일본이 해와국가로 등장했습니다. 원래는 영국이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찾아야 할 국가가 미국과 독일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서 통일교회 식구 이상 하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잘못하면 대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4개국을 중심하고 40개국에 120개 성지가 택정되었습니다.

7년노정은 부모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인정을 받는 기간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남은 문제는 선생님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7년노정의 나머지 3개월 동안 총동원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 왜 식구들이 나태해져 있습니까? 선생님은 10월 12일까지는 야외 생활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식구들에게 120일을 정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명령하여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나, 선생님도 선생님 나름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8권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