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싫었는데, 사정을 좀 봐주면 어때! (웃음) 전라도 사람들은 아주 뭐 손해보는 건 제일 싫어하지요. (웃음) 손해보는 건 제일 싫어하는 거예요. 그럴싸, 안 그럴싸?

오늘은 광주의 날이 아니고 전주의 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도 광주보다도 전주를 위해서 기도하고…. 지금 마음은 전주에 가 있어요. 그런데 이 옆에 있는 사람이 자꾸 붙들면 거 아주 침범인데 어떻게 해요? 정 그렇다면 잠깐 동안만, 지금 25분인데 한 15분 동안만 얘기하자구요, 응?

아, 다 들려요? 「예」 가만히 말해도 되겠어요? 스피커 소리가 이상해서 안 좋겠구만. 여기는 들려요? 「예」

목적을 이루려면 준비와 환경과 때가 필요해

세상에서 무슨 큰일을 한번 하려면 큰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준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사람은 준비가 없어 가지고는 큰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크면 거기에 대비해서 큰 준비가 필요해요. 오랜 기간의 시련과 혹은 연단을 거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준비가 잘못되면 성공할 수 있는 때가 와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고로 영웅 열사들이 이 땅 위에 많이 왔다 갔지만서도 그 영웅 열사들이 국가적인 일이나 혹은 세계적인 일을 성취하는 데는 반드시 그 성취될 수 있는 환경적인 기반을 닦아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환경적인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또 제아무리 환경의 기반이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때를 맞추어 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경과 이 천운, 그리고 때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때가 있다는 거예요.

춘하추동의 사계절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봄철은 봄철로서의 때를 지니고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혹은 겨울이면 겨울 그 계절에 따라서 때가 다른 거예요.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큰 이 천적인 섭리를 받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왔느냐 하면, 물론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를 해 나왔지만 지금까지 세계적인 민주권 즉, 기독교문화권 내의 민주세계를 만들어 놓은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끝날에, 최후에 하나님이 마련한 한때를 맞이하기 위해서 환경적인 터전을 개척한, 즉 터를 닦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터가 어느 정도까지 된 그 기반 위에 하나님이 작정한 때가 딱 차게 되면 거기에 누가 오시느냐 하면, 누가 온다구요? 응? 온 하늘땅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적 책임을 짊어지고 재림주님이 오셔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느 시대에나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그 잘난 사람이 잘난 권한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경이 되어 있어야 되고, 그 환경이 그 사람과 하나되어야 하고, 그 사람이 때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개인도 그러하지만 어떤 단체도 그러하다는 거예요. 국가도 그러하고, 세계도 그러하다는 거예요. 개인이 성공을 하는 데도 역시 그러한 환경이 필요하고, 가정도 국가도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가정적 성공도 성공이고 혹은 국가적 성공도 성공이겠지만 하나님이 최후에 바라는 그 성공은 무엇이냐 하면, 천지를 도합한 성공이예요. 하나님은 천지를 도합한 최후의 성공을 바라고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거기에 대비한 환경을 지금까지 마련해 왔고, 그 환경이 됨에 따라서 때를 세워 가지고 앞으로 세계적인 메시아를 보내서 그 대우주적인 목적을 달성하자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때와 환경은 되어 있으나 움직일 사람이 없다

그러면 오늘날의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의 목적은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통일교회가 어떤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느냐? 아마 내가 알기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또 지금까지 보게 되면, 제일 멋진 이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여기에는 사람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영계도 침투해 들어와 있어요. 그런 거 알아요? 영계도 침투해 있다는 거예요. 사람끼리 움직이는 이 모임이 아니고 여기에는 영계도 개재해 들어가고 하나님도 개재해 들어갔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러한 대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기반이 되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의 기반이 지금 얼마나 커요? 기반은 이거 뭐, 전남 하게 되면 얼마나 큰가요, 이게? 얼마 없어요. 그렇지만 마련된 역사적인, 하나님이 수고하셔서 역사적으로 준비된 이 터전은 우리 앞에 계승하기 위한 절차를 지금 밟아 넘어오고 있다는 거예요. 수많은 종교, 수많은 주의가 그러한 거예요.

만일에 그 종교가 지금보다 고식된 과거의 전통에 얽매여서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이 준비한 터전, 즉 환경에 흡수되지 않게 될 때는 반드시 이것은 둘로 갈라놓고 셋으로 갈라놓는다 이거예요. 나중에는 그 대가리들이 부딪쳐서 싸우고…. 문제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 싸움하는 사람들은 제쳐놓고 싸움하지 않는 사람만 빼 오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물론 종교 단체도 그렇고 세계적인 수많은 주의 사상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쭉 세계를 돌아보니 이 세계적인 환경은, 통일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은 무르익었다 이거예요. 무르익었다 이거예요. 또 그리고 천적인 때라는 때를 중심삼고 볼 때, 다 되어 있어요. 지나쳤어요. 때가 다 되었단 말입니다.

그럼 문제는 뭐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국가적으로도 점점 문제가 되어 온단 말이예요. 통일교회가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어 와요.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한국에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선생님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은 뭐냐 하면 이 민족적인 전통, 민족적인 정기, 민족적인 사상을…. 사상적인 전통이 되어 있지 않은 이 민족을 우리 통일 이념으로 어떻게 뒷받침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각했던 바인데, 여러분들이 수고한 그 수고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것이 점점점 상하층에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한국 자체를 보더라도 때가 되었어요. 때가 되었는데 이제 문제가 뭐냐 하면 환경이 무르익고 때가 되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그 환경과 때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젊은 사람들이예요, 젊은 사람들. 눈이 아주 반짝반짝하고 얼굴이 아주 뭐 홍도색이 도는 아주 젊은, 전부 다 젊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전부 다 안고 출 수 있어요? 응?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금 뭐 있지만서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부족하다 이거예요.

때와 환경을 사랑하며 지성과 충성을 다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이 환경을 뚫고 여기서부터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느냐? 한국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까지 뚫고 나갈 수 있느냐? 이 문제를 두고 보게 될 때, 이것이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단 한 가지 해결할 수 있는 비결적인 요점이 뭐냐 이거예요. 응? 그건 뭐냐 하면…. 환경을 마련한 것도 하나님이 동기가 되었고, 때를 맞게 한 것도 하나님이 동기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나님의 크나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책임지고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론 외적으로 지식 많은 사람도 필요해요. 능력 있는 사람도 다 필요하겠지만 그런 환경을 사랑하고 때를 사랑할 줄 아는 참다운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때를 사랑하고 이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날의 이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했고, 이때를 맞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우리 역대 조상들이 얼마나 희생의 길을 갔느냐고…. 이 때와 환경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환경은 어디냐? 이제 여러분들이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그 터전이 될 것입니다. 때는 언제냐? 여러분이 하루하루를 맞아서 거기에 충성하는 그 사실과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이런 하루하루의 문제가 여기에 문제 되어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부족하다는 이런 입장에 서 있지만서도,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지만서도 여기에서 우리는 낙망할 것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뭣이냐 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이 환경을 사랑하고 때를 사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하고 정성들이는 그것밖에 없다는 거예요. 정성! 즉, 지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 이거면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지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절대…. 아무리 때와 환경이 마련되어 있더라도 충성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때와 환경이 절대 밟고 넘어갈 수 없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주인이 되느냐 하면, 제일 주인 되는 사람은 지성을 다하고 충성하는 사람일 것이며 그 사람만이 주인될 자격이 있다는 거예요. 학박사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예요. 만일에 학박사가 와서 일을 한다면, 협조한다면 그들은 일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주인은 못 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최후의 귀결점은 뭐, 지식이 문제가 아니고 학식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역량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뭣이 문제라구요? 지성과 충성을 다하는 것.

옛날을 보라구요. 유관순 같은 소녀가 말이지, 일본이 3천만 민족을 장악해 가지고 마음대로 주무르던 때에 있어서 말이예요, 그녀가 일본 사람들을 반대했는데 그때로 보게 되면 그거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예요, 그때로 보면. 그렇지만 그녀는 민족이 충성하지 못할 때에 민족을 대표해서 충성을 했고 민족이 민족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지 못할 때 정성을 들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우리 한민족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사상적인 지도적 권한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은 때가 아닌 때에,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 때에, 그 환경과 때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때와 환경이 되어 있을 때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누가 잡아죽일 거예요? 어떻게 될 거예요? 환경이 안 되어 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는 그런 충성을 가지고 때가 되고 환경이 되어 있는 그때에 나서는 하늘의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들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거예요.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그 자녀는 어떻게 될까요? 그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들리게 된다는 거예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대신 가다가 중단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태어난 것은 이것을 위해서 태어났고, 내가 일을 한다면 이것밖에 없다는 이런 관념을 가지고 지성과 정성을 들이는 이 자리에 있어서 한 해를 지내고 이태 삼년, 그 지내는 연한에 비례해서 그 사람이 점점점 올라간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환경과 때를 좌우하는 주인공은 사람

그런데 우리 청년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지, 어디 지방에 내보내면 1년 2년 3년쯤, 3년 반쯤은 말이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한 3년 반쯤은 말이예요, 3년 조금 넘도록까지는 그저 불이 나 가지고 좋아서 날뛴단 말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대다수의 사람이 날뛴다는 거예요. 어저께도 얘기했어요. 한 3년 반 지나 가지고 이것이 7년 고개를 넘으면 다 기운이 빠져 가지고 나가자빠진다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구요.

영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들과 같은 청춘 시대에, 소년 시대에 품었던 그 결심으로 일생 동안 충성을 다해서 가게 되면, 만일에 그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때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때는 어느 땐가 와요. 그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역사적인 운세는 찾아오게 돼요. 그래서 그 당대에는 그가 들림을 받지 못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공인받게 돼요. 이것이 역사적인 발전이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때가 되었고 환경이 되었으니 여러분이 움직이면 그 당대에 있어서 여러분이…. 하나님이 세우신 책임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선생님도 그래요. 선생님도 여러분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지만,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수단 방법을 쓰려고 하지 않아요. 요즘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잘 쓰지요. 수단 방법은 일시적이예요. 정상적인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장기간 인내력을 갖고 참고 나가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때를 맞이하고 환경을 맞이했을 때 조급해 하지 말라 이거예요. 이미 때가 되어 있고 환경이 되어 있으니 내가 10년을 참고 그 환경을 10년 동안 끌고 나갈 수 있는 충성심만 가지고 있으면, 10년 동안 움직인 그 환경 전체는 나로 말미암아 크나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인연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거예요. 반드시 그것은 하나님이 되게 해준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 살살 해보고 말이예요, 그래 가지고 좋은 성과가 안 나면 획 돌아서고…. 이래서는 안 되겠어요.

더우기나 약소 민족의 결점이 그거예요. 대개 피난 다닐 때의 생활, 피난민 생활을 봐요. 피난민들이 맨 처음에 이 남한이면 남한에 와 가지고 장사를 하는 데는…. 자꾸 뒤넘이치는 장사를 한 사람은 발전을 못 했어요. 그렇지만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나간 사람들은 거의 다 기반을 잡은 거예요. 마찬가지의 이치예요.

그러니만큼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쌓아 놓은 기반이 되어 있고, 지금 이 세계적인 운세와 또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적인 노정을 통해서 종교를 중심삼고 터닦아 놓은 이 모든 전부를 융합시키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지성과 충성을 다할 것! 알겠어요? 「예」 그 충성의 기준이 이때를 맞이한 이 세계의 환경이라면 그 환경의 터전 위에서 어떤 민족보다도 어떤 종교인보다도, 어느누구보다도 충성의 도수에 있어서 제일 높아라 이거예요. 지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제일 간절하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끝까지 후퇴하지 말고 백년이면 백년, 내 손자대까지도 밀고 나가겠다고 결의하게 된다면, 한국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하나님의 그 뜻을 아무리 옮겨 갈래야 옮겨 갈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이루고야 말지. 그러면 여러분의 1대에, 만일에 30년에 이 뜻을 하나님이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30년을 10년으로도 단축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건 뭐 어떻게 함으로 그렇게 되겠어요? 정성의 비례를, 충성의 비례를 3배 하면 돼요, 3배! 거기에 대해서 인내와 희생을 3배 해라 이거예요. 간단하다는 거예요. 간단하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그러면 이루어 놓은 환경과 이루어 놓은 때를 좌우할 수 있는 주인공은 누구냐? 사람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람이라는 것. 사람이 단결된 이러한 결의를 가지고 얼마만큼 지성과 충성을 가지고 그 환경의 전체를 넘어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인내력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그 목적 달성 여부를, 그 장단의 거리를 좌우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이 대한민국을 빨리 아버지의 품으로 복귀시키면 좋겠지요? 「예」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면서, 응? 「예」 이녀석! (웃음) 이웃 동네 사람들이 전부 다 해주고 난 다음에 자동차나 타고 다니면 좋은 거지, 번지르한 세상에서 춤이나 추고 살면 되지 내가 뭐하러 피땀 흘리고…. 요즘 어떤 사람들은 말이지, '예수 믿고, 종교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 믿는다면 말이지, 거 뭐 꽃다운 청춘 시대에 남과 같이 놀고 마시고 춤도 추고 하고픈 것 다 하고 그다음에 지쳐 떨어질만하게 될 때 할수 없이 종교를 믿으면 되지 않나! 그때에 가서 딱 졸업장만 타 가지고 천국 가면 되지' 이런다구요. (웃음)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웃으심) 그렇게 되는 법은 없어! 법이 없으니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지옥, 지옥 가는 거예요. 지옥 갈 때는 감투를 몇 개 쓰고 가는 거예요, 이게. (웃음)

그런 작자들은 종교를 자기의 이용 발판으로 삼겠다고 나온 녀석이라 이거예요. 종교 이용하니 하늘을 이용하고 천도를 이용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더 지독한 감투를 몇 개 얻어 쓰고 지옥으로 간다는 거예요. 뭐 전라도 분들은 지혜롭고 아주 뭐 손해나는 건 싫어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알면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도 안 할 거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뭐해야 되겠어요?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들여야지요? 응? 그래야지요? 「예」

소같이 충성하는 사람이 되라

동물 중에서 충성을 다하는 동물이 무엇이요? 「사람입니다」 동물 중에서? 「개, 소」 소! 잘 알았어요. 황소. 사람이야? 사람은 충성 못 해요. 요 녀석은 조금만 손해나면 그저 꽁무니를 저러고 다니는 거예요. 소가 충성을 하는 거예요. 이놈은 가죽까지도 전부 다 팔아먹고 뼈다귀까지 전부 다 핥아먹는 거예요. 뭐 고기는 물론이고 어디 뭐 국물 하나 남길 것이 없단 말이예요, 이게. (웃음) 요즘에는 뭐 발, 족발탕이라고 해서 뭐, 족발 무슨 탕? 곰탕이라고 하던가, 뭐 꼬리까지 우려먹거든.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서 이 역사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고, 혹은 시대적인 때를 우리에게 맞이하게 해줄 수 있는 때가 왔다면 여기에서 충성하는 소 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되겠다 이거예요, 소 같은 사람. 소 같은 사람! 알겠어요? 「예」 아브라함의 제단 가운데 3대 제물이 있나니 하나는 비둘기요, 하나는 양이요, 하나는 뭣인고? 「소입니다」 소! 지금 때는 상징적인 형으로 보게 되면 소 시대예요. 소 시대라는 거예요. 소를 하나님이 좋아한다 이거예요. 소 시대! 잡아먹기 위해서 좋아할까요? 소를 좋아하는 것은 고기 먹기 위해서 좋아하는 거거든요, 응? 그렇지요? 「아닙니다」 농부가 소를 좋아하는 것은 미래에 잡아먹을 고기덩이가 뭉쳐 있으니 좋아하지요?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 거예요? 「일을 시키기 위해서」 부려먹기 위해서…. 부려 주기 위해서요, 부려먹기 위해서요? (웃음) 먹기는 먹는데 그저 뭐 부려먹고 또 고기를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는 말이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도 끝날에 있어서는 소 같은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소 같은 사람. 소, 보라구! 소가 궁둥이에 살이 번질번질 찐 놈은 짐을 절대로 안 싣고 다녀요? 응? 궁둥이에 살이 펀펀하게 찐 소는 짐을 안 싣지요? 「싣습니다」 빼빼 마른 소는 짐 안 싣지요? (웃음) 아, 이놈의 소의 팔자는 그건 뭐 망해 죽을 팔자예요, 그거. 살이 쪄도 시켜 먹어야 되고, 파리해도 잡아 먹고, 또 파리해서 나가자빠지면 잡아먹고…. (웃음)

자 그런 걸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최후에 이 땅을, 이 온 천지를 기필코 하나님의 계획대로…. 계획도 가운데는 천국을 건설해야 할 계획도가 있는데,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천국이 돼요? 응? 「안 됩니다」 안 돼.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사람을 내세워서 천국을 만들어야 할 텐데, 사람이 토끼 같아서 되겠어요? 양지만 살살 찾아다니면서 도토리나 주워먹는 그런 토끼 같아서 되겠어요? 소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얼굴들이 이상해지네. '또 필시 저 선생님이 하는 말씀이 아예 우리를 소같이 시켜 먹으려고…' 이러겠지만 내가 시켜 먹는 게 아니예요. (웃으심) 하나님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자 그럼 생각해 보자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면 우리가 소 이상의 수고를, 전체를 총합한 그런 입장에서 수고를 한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는 거예요. 그러신 분이 누구냐 하면, 그게 이웃집 사람도 아니예요. 그분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의 아버지예요,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알고 보면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그렇게 수고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소 중의 대왕 소님이 되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그분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뭣이 돼야 돼요? 돼지가 돼야지요? 「아니요」 먹기만 하고…. 응?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분이 대왕 소와 같은 이런 충성과 지성을 인간을 위해서 들여 왔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서 들여 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도 소와 같은 그런 분 앞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소 새끼와 같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소 새끼 되라는 말이 아니예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소와 같은 희생의 제물로서 환경을 움직여 해방의 한 날을 맞자

그러면 오늘날 탕감복귀라는 이러한 명사를 두고 볼 때, 끝날에, 최후에 이 천적인 운세와 천적인 때, 하나님이 준비한 환경을 붙들고 뒤넘이칠 수 있는 그 장본인이 무엇이냐? 반드시 제물이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초점이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안 그래요? 아브라함을 고생 고생 고생시켜 가지고 때를 딱 맞이하게 해서 '너, 제물 드려라' 했을 때 제물 드리느냐 못 드리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지요? 모세도 역시 반석을 두 번 치느냐 안 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지요? 「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로 담판하던 그 기도에 달렸었지요? 전부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전부 제물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때가 넘어가느냐, 안 넘어가느냐? 그냥 안 넘어가요. 알겠어요? 정성들이는 그 터전 위에 있어서 최후에는 제물적인 기준을 통해서 뒤넘이치는 거예요. 거기서는 피 흘리는 투쟁이 벌어지는 거예요. 제물은 어떻게 돼요? 배를 갈라 가지고 잡아서 제사드리지요? 그것은 죽어야 돼요. 죽음의 고통을 여기에서 겪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통일 신도들은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이 민족 앞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마련한 그 운세가 우리 앞에 오고 있어요.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때가 우리 앞에 찾아온다 이거예요. 삼천만 민중의 속죄의 제단을 쌓은 것이 통일교회요, 속죄의 제물로서 등장한 것이 통일교회 교인입니다. 알겠어요? 응? 「예」 그러면 때가 출발함에 따라서 우리가 전체적인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느 한날을 위해서 그럴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지금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우리는 소와 같이 되어 가지고….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소와 같은 희생의 제물이 되더라도 감사할 줄 알고 불평해서는 안 돼요. 10년, 20년이라도…. 여러분, 7년노정만 될 것 같아요? 갈 수 있는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충성과 지성이라는 것은 거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충성하고 지성을 들여서 뭘할 것이냐? 하나님의 제일 가는 제물의 자리에 나가 가지고 사망세계와 생명의 세계를 판가리할 수 있는 칼이 되느냐 못 되느냐, 조건물이 되느냐 못 되느냐, 이것을 판결짓기 위한 것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에 어차피 그 고개를 넘어 승리적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져서 삼천만 민족에게 비로소…. 삼천만 민중의 제2차 해방의 날이 와야 돼요. 제1차 해방의 날은 왔지요? 이제 이념적인 제2차 해방의 날이 오고, 그다음에는 제3차 해방으로서 세계적인 해방의 날이 와야 된다 이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2차 해방의 날이 제일 힘들어요. 어느때나 둘째가 제일 힘들다는 거예요. 가인과 아벨의 경우도 둘째가 힘들었고, 노아의 아들도 함이, 둘째가 제일 힘들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 할 때 이삭, 둘째가 힘들었기 때문에 이삭이 제물로까지 나가야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 가운데서는 아담이 첫째 아들로서 실패했지만 둘째 아들인 예수가 와서 죽음을 걸어 놓고 심판, 담판을 지어야 되었던 거예요. 어느 시대를 보더라도 둘째가 문제예요, 둘째가. 두번째가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지금까지 외적인 해방은 벌어졌지만 사상적인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한국에 있어서의…. 사상 통일이 안 되었어요. 제각각 논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삼천만 민족을 하나의 이념적인 통일권 내에 집어 넣어 가지고 이념 통일을 이루어서 해방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게 해야만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거예요. 이것만 하면 세계는 간단해요. 세계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세계는 작전 여하에 따라서 몇 년 동안에 움직여 낼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중대한 단계로 우리가 들어가느니만큼, 여러분들이 뭘하면 된다는 거예요? 충성과 지성을 다하여서 소와 같이 희생의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만 갖고 이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움직인다면 우리 뜻을 중심삼고 이념적인 해방의 한날이 필시 온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 그거 한번 해볼래요? 안 하면 자기가 망하지. 안 하면 어차피….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져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돼야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들이 요즘에 들어올 때가 되었어요, 이제. 벌렁벌렁 나갈 때는 '너희들, 봐라! 이다음에 틀림없이 나를 따라 나올 거라' 그랬다구요. 우리를 바라보고 '이 못난 사람들, 좀 생각이 부족하고 좀 비판력이 부족한 것들, 그저 지긋지긋하게 뭘하려고 땀을 흘리노? 뭘하려고 땀을 흘릴꼬? 남을 위해서? 뭐 나 먹기도 바쁜데 뭐 굶고 남을 위해? 그런 사상은 나는 싫다' 하고 도망가던 놈들이…. 또, 한국이 별거 없거든요. 점점 그러지 않으면 점점점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찾아 들어와요. 나갈 때는 버티고 나갔지만 들어올 때는 기어 들어온다 이거예요. (웃음) 나갈 때는 사람 같았지만 들어올 때는 동물같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천대하면 천대받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제 들어오게 된다면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환영잔치 해야 되겠어요? 탕자의 비유로 얘기하게 되면 환영잔치를 해서 높은 자리에 앉혀 가지고 옷을 입히고 잘 단장해서 풍악을 갖춰 가지고 수많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아주 쌍수를 들어서 영광스러운 찬양을 해야 되겠지요? 지금은 때가 달라요. 옛날과 다르다는 거예요, 옛날과. 그런 사람들은 전부 보류시켜 놓으라고 했어요, 보류. 그렇다고 오지 말라는 거 아니예요. 오기는 와라 이거예요. 오는 데는 절차가 하나 더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오기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가기는 마음대로 절대 못 나가! 나가 보라는 거예요, 어떤가.

지금 서울에도 우리 교회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들이 많은데, 할 수 없이 세상에 가야 어디 재미가 있나! 재미가 없거든요. 궁금증만 점점점 더해서 궁금병이 들어요, 궁금증. (웃음) 그래 가지고 나간 녀석들은 갈 데가 없으니 나간 녀석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전부가. 전부가 자기들끼리, 나간 패끼리 모여 가지고 비―잉 돌아다니는 거예요. 돌아다녀 보니 암만 그래도 쉴 데가 있나! '아이구! 너 가 봐라. 너 가 봐라' 한다 이거예요. (웃음) 그래 선생님이 만나 주겠다면 만날 사람이 많을 거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보류하자는 거예요.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앞으로 이 남한 전체의 젊은 사람은 전부 다 통일교회에 솔솔 이패로 들어올 텐데…. 조금만 더 나가면 선생님이 조직력을 강화시키려고 그래요, 조직력을. 알겠어요? 「예」 조직과 단결과 실천, 행동! 조직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러기 위해서는 배후의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지, 반드시 이거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명령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가지고 철두철미한 사상을 갖게 해서 민족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소 같은 사람을 만들자 이거예요. 소 같은 사람 될래요? 「예」 소? 「예」 소? 「예」 소에다가 올, 올 자만 붙이면 되지요. 나는 그래서 옳소! 아, 소 시대인데 소가 오는 때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체를 아주 몽땅 삼켜 버리는 옳소! (웃으심) 옳소! '미래에 올 소'라는 말이예요, 미래에. 참, 볼 때, 한국 말이 재미있다는 거예요. 옳소, 옳소 하면 앞으로 올 소새끼요! (웃음) 옳소 하면 통일교회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어디 가서 '옳소' 하면, '아, 저거 통일교회로구나!'라고 생각하라구요. (웃음) 정말 그렇다는 거예요. 우스운 말이 아니예요. 여러분들, 그렇게 소화하라구요.

하나님이 협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라

그러면 그래 가지고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러한 사람이 열 사람 산다면 그 집은 망할래야 망할 수 없다는 거예요. 세 사람만 되어도 그 집을 재차 창건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 나라의 백성이 전부 다 그런 백성이라면 그 나라의 백성은 천국을 틀림없이 만들어 놓아요. 알겠어요? 「예」

내가 지금 속으로 염려하는 것이…. 보라구요. 대한민국을 이제 천국으로 만들려면 아이고…. 내가 외국을 쭉 다녀 보고, '이거, 내가 후퇴해야 되겠나? 내가 미국으로 다시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서 미국 시민이 되어 가지고 미국 백성으로서 내가 한번 활동해야 되겠나? 아이구, 한국 백성으로 그냥 그대로 있을까?' 그런 생각 할 때 어땠겠어요? 어땠겠어요?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틀림없이 뭐 미국 백성 되고 싶어요. 그것이 다 되어 있어요. 스위치만 딱 그저 올려 꽂은 것을 내려 꽂으면 돼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방향만 바꿔 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한국을 봐요, 이거. 아이구, 땅 구덩이 좀 파야 돼. 여러분들, 땅 구덩이 파고파요? 파고픈가요? 대답 안 하는 걸 보니 싫은 모양이구만. 언제 전부 다 이걸 건설해서 그 기준까지, 그 이상 기준까지…. 지상의 천국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아이구 뼛골이 녹아 나가야 되겠구만! 뼛골이 녹아나야 돼요. 그러니까 한국 저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다 이거예요. 도망가면 좋겠지요? 「아닙니다」 응? 「안 됩니다」 그런데, 도망가고 싶은데도 못 가는 이유가 하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왜? 이것이, 새끼, 소새끼들이 전부 다 굶고 '엄마, 엄마!' 하고, (웃음) 어디, 뭘 먹고 싶어서 따라다니고 자꾸 그러니 버리면 거 큰일난다 이거예요. 그러니 그걸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뭐 미련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러면 나도 그러자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안 하면 나도 안 하면 될 거 아니예요?

이제 선생님은, 선생님은 선생님이 할 책임 다 했어요. 딱 한 가지 남았어요, 한 가지. 한 가지만 하면 이제 죽어도 우리 뜻은 세계를, 세계를 어차피 통일하는 거예요. 세계를 삼켜 버리는 거예요. 만일에 사람들이 못 하면 영계가 동원되어 침을 놓아서라도 하는 거예요. '이 자식아! 할래, 안 할래?' 하고, 존슨 대통령 가슴에 창을 갖다 대고 '할래, 안 할래?' 하게 되어 있단 말이예요, 이게. 그런 거 여러분 알아요? 앞으로 공산당이면 공산당 책임자 브레즈네프한테 '이 자식! 네가 하나님이 없어? 하나님 맛 좀 봐라!' 하고 침을 놓는 거예요. (웃음) 그런데 그것을 못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장본인들이 되어 있지를 않아요. 나라의 수령들을 움직이려면 한 나라가, 조그만 나라라도 한 나라가 하나님이 침질을 할 수 있는 심판적인 기준을 세워야 돼요.

노아 하나가 12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핍박을 받는 거기에서 참고, 쪼들리는 가운데서도 거기서 인내해 가지고 승리적인 그 기대, 터전 위에 서 있을 때의 그 승리의 가치라는 것은 만민을 심판하더라도 하나님이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수 없고, 노아 자신이 지금까지 수고한 걸 만민의 영광의 자리에 올려놓아도 그것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런 기준을 세워 놓고 들이 때렸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한 국가, 민족이면 민족 기준에 있어서 각국 나라의 모든 전체 지도자들에게 침질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준이 서 있지 않았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협조해 줘요? 이것들은 그저 욕심만 있어 가지고 자기가 할 것은 안 하고…. 완전한 플러스만 생겨나면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지요? 「예」 응? 「예」 완전한 플러스가 생기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하나님이 무슨 수로 하든 다 생겨나게 해 놓았어요. 그 완전한 플러스에 필요한 상대적인 요건을 갖다 주는 거예요.

여자들은 원리 공부를 철저히 하라

그렇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를 막론하고 통일 이념을 중심삼은 우리들이, 이 민족을 완전한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서 100퍼센트 가슴에 몰아넣어 완전히 품을 수 있는 아들딸만 완전히 된다면 그 아들딸을 침범할 자가 없다는 거예요. 침범하면 들이 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를 암만 핍박해도 뭐 배탈도 안 나고 설사도 안 하지요. 응? 거 이상하거든요. 보통 잡신을 섬기는 그런 사람들은 뭐 이렇게 되면 그저 도깨비가 발동해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는데,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통일교는 왜 그럴까? 절대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도깨비는 그 마을권 내의 그 기준만 세우면 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 높다는 거예요. 높아질 때까지는 참고 시련 고통을 거쳐 가지고 거기에 책임질 수 있는 완전한, 천지에 자랑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 기준, 그 가치의 기준이 결정될 때까지는 보류시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생을 길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응? 「예」 선한 자일수록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서 고생을 오래 한다 이거예요. 큰 소원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랜 공적인 일에 수고한 사람입니다. 공통적인 이치예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앞으로 세계적인 이념을 품고 세계를 구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오랜 뭐예요? 「고생을 해야 됩니다」 고생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전라도 양반들! 해볼 거예요? 「예」 해볼 거예요? 「예」 예? 「예」 그러면 남자만 하지요? 「예」「여자도 해요」(웃음) 남자만 하지요? 「예」 남자만 하겠으면, 남자만 해! 남자만 하지요? 「예」「아니오」 (웃음) 여자는 쉬라구요. (웃음)

왜 쉬라고 하느냐 하면, 시집갈 아가씨들은 말이예요, 자기가 공부를 못 했더라도 사회에 제일 가는 대통령을 자기 남편으로 삼으면 대통령 부인이 되고 말이예요. (웃음) 좋잖아요? 뭐, 수고하기는 뭘 수고할 거예요? 천하의 일색으로 마음이 일색이요, 그 덕망이 나라에 두드러질 수 있는 미모를 갖추었으면 되지요. 안 그래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글쎄, 그렇게 되려니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꼬리를 치든가 뒤넘이치든가 무슨 요술을 하든가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래, 남자만 하자구요? 「예」 여자는 후퇴할싸, 통일교회로부터. (웃음) 환영해요? 「아닙니다」 환영해요, 안 해요? 「환영 안 합니다」그렇게 환영 안 한다고 해서 그거 통해요? 우리 남자만 하겠다는 거예요. 남자만 하지요? 「예!」 (웃음) 그래, 환영해요, 안 해요? 「안 합니다」 그래 가지고는 틀렸어요. 크게 '안 합니다' 해야지요. 그래, 하나님은 약자의 편이 되니, 내가 여자들의 편 되어 줄께요. (웃음) 미안합니다, 남자님들! (웃음) 여자들 좀 가담시켜 줘요. 선생님이 들어가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저 좋은 모양이지. (웃음)

그런데 무슨, 선생님은 무슨 사명을 하느냐 하면, 다리만 놓아 줘요. 다리만 놓아 준다는 말이예요. 이걸 건너가 가지고 그다음에는 여러분의 책임이예요. 언제나 책임져 주는 거 아니예요. 하늘은 다리 건네 주는 놀음만 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여자들도 가담해 볼래요? 「예」 아이구! (웃음) 나, 이 여자들을 보면 답답하지! 그렇지만 통일교회에서 여자들이 많이 수고했어요.

그러면, 남자하고 여자하고 씨름을 하면 남자가 이깁니다. (웃음) 그렇지만 입싸움 하는 데는 여자가 이겨요. (웃음) 장점 단점이 다 있어요. 왜 이렇게 웃어요. 단점 장점이 다 있어요, 응? 그러니까 우리의 통일교회가 지금 무기로 삼는 것이 무엇이예요? 통일교회 말씀이지요? 「예」 통일교회의 힘이 아니고 말씀이예요. 남자들은 조금 곤란하지만 여자들은 무장만 잘하면 말이예요, 이용가치가 참 많아요. (웃으심) 이용가치가 많다는 게 실례지만, 하여튼 쓸모가 많단 말입니다. 여자가 말을 잘하거든요. 남자가 세 마디 할 때 평균 다섯 마디는 해요. (웃음) 또 그리고 남자의 세계에서는 말이예요, 아주 아리따운 소녀들이 그저 원리로 무장을 해 가지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그저 불어넣으면 할아버지도 괜히 좋아하는 거예요. (웃음) 아저씨도 괜히 좋아하고….

옛날에는 여자들을 보고 뭐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망한다고 그랬지만 지금 때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응? 남자들이 나라를 전부 다 망쳐 먹었지요. 응? 「예」 남자들이 망쳐 먹었어요, 여자들이 망쳐 먹었어요? 「남자들이 망쳐 먹었습니다」(웃음) 남자들이 망쳐 먹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거 안 되겠다 이거예요. 병신 남자를 얻었으니,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나는 병신이 아니니 치마를 둘렀을망정 양복으로 갈아입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여자들은 양복 입어도 괜찮아요. (웃음) 그리고 둥근 모자보다도 뾰족 모자를 써도 괜찮아요. (웃음) 그렇게 하자는 거예요. 해서 나라 살리면 됐지. 사내들은 궁둥이 따라와 가지고 여자로 말미암아 조밥 먹다가 이밥 먹으면 좋지. '허허, 내가 제일 좋은 여편네 얻었구만!' 그렇게 여편네 자랑하면 됐지 뭐. 그렇다고 그 집안이 망할 거예요? 그렇다고 부인들이 '이놈의 영감! 그저 고양이 새끼처럼 밥만 먹고…' 그렇게 천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 우리 영감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 못했을 텐데…' 해서 끌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이게. 안 그래요? 그래서 남자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우리 여자들은 남자한테 지지 않는 활동을 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원리무장을 빨리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리고 남자하고 여자하고 비교적으로 20대면 말이지, 기억력이 누가 더 빠르냐 하면 남자보다도…. 여자보다도 남자가 빠른가요, 남자보다도 여자가 빠른가요? 「남자보다 여자가 빠릅니다」 남자의 질이 본래 그렇게 되어 있어. (웃음) 여자가 빨라요. 성숙하는 것도 여자가 빠른 거예요. 그건 뭐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소녀들 다…. 내가 지금 솔직히 얘기하는 것은 이제 영어 원리, 영어 원리를 딱 이제 번역하게 되면 우리 여자들한테 전부 다 외게 할 거예요. 각자가 다 외게 해 가지고….

지금 우리는 미국에 있어서 부흥단을 편성해요, 지금. 세계적인 무용단이 한 바뀌 쭉 돌아서 한번 설쳐 가지고 우리 선교부와 합동으로 안팎의 기반을 닦아 놓으면, 그다음에 선교활동으로 딱 나가게 될 때는, 그때는 누구를 중심삼고 시키느냐 하면, 외국 코쟁이들 앞에 코쟁이가 하면 그거 실감이 안 나는 거예요. 조그만 10대 아가씨들을 전부 다 원리를 몽땅 삼켜 버리게끔 암기시켜 가지고 갖다 내세우는 거예요. 창조원리 하면 나서서 조금도 서슴지 않고 후르르―, 프로펠러, 프로펠러보다 더 빠르게…. 이렇게 해 놓으면 들이 맞는다는 거예요. 서양 녀석들이 동양을 얼마나 무시했어요? 한번, 조그만 아가씨들이 가 가지고, '나는 고등학생, 나이는 몇 살이지만…' 이러면서 들이 제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 푸른 눈이 누래서 넘어져 가지고 멍하니 정신 없을 때 차고 내려가 가지고 끌고 '이녀석, 앞서라' 하라 이거예요. 그랬으면 얼마나 멋지겠나? 제일 효과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이 통일교회 여성들을 국제 무대에 많이 내세워야 되겠어요. 좋아요? 이게, 이것들이 왜 대답을 안 해? (웃음) 남자에게는 내가 입을 열어서 물어 보지를 못 하겠어. 벌써 대답하려고 입이 탁 나와 있는 거예요. (웃음) 그거 재수없이 그럴 가망성이 많다는 거예요. 한국 여자들이 이런 습관성을 타파해 버려야 돼요. 그래, 내세우면 좋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 여자들은 공부하라구요. 절대로 빈둥빈둥 놀지 말라구요. 소학교 못 갔다고 탄식하지 말고, 중학교 못 갔다고 탄식하지 말고 공부하라구요. 공부하는 거예요. 공부하려면 책을 봐야 돼요. 노력을 해 가지고 남성들한테 지지 말라구요. 알겠지요? 「예」 응? 「예」 그거 해야 돼요. 이 양반들은 여자들한테 안 질 자신 있지요, 응? 「예」(웃음) '너희들이 암만 그래야 별 수 없어! 암만 뭐 여자가 잘났다고 해도 시집 오면 내 아내야. 아내는 별 수 없는 거다' 남자들은 벌써 그런 생각 해요. 마, 그건 괜찮다구요.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그런 얘기는 그만두고…. 어차피 앞으로 여러분들은 공부해야 되겠어요. 될 수 있으면 공부를 해야 돼요. 알겠지요? 「예」 농사를 지을망정 반드시 시간 있으면 공부하고, 우리 원리 공부를 철저히 해요. 우리 원리만 잘 알면 여러분들은 뭐 무슨 대학 나온 게 문제가 아니예요. 그렇게 우리 말씀이 위대한 거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안경을 벗겨 드리자

자, 결론을 짓자구요. 그러면 환경과 때가 우리 앞에 다가왔지만 사람이 없는 것을 우리는 탄하지 말고 여러분의 충성과 정성이 부족한 것을 탄하라 이거예요. 정성과 충성이 부족한 것을 탄하라 이거예요. 여러분이 '어느 한때 내 손길로 저 마을에 가서 내가 일을 해주었으며, 어느 한때에 내가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 눈물을 지었으며…' 하며 전부 다 자기와 연결시켜서 삼천만을 자기 품에 품고 생활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 저 농가에 들어가서 내가 아이구, 일이라도 한번 해줬으면…' 해야 돼요. 그렇지만, 그럴 수 없지만 '아, 너 잘 있거라…' 하면 거기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요, 농토가. 혹은 산이면, 높고 좋은 산이 있으면 그 산이 한번 올라와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말이예요, 마음이. '오냐, 내가 못 가지만, 나는 올라가는 것보다 더 큰 사연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지만…. 너희들이 큰 목적을 위해서 대한민국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 같은 목적, 큰 것을 위하여 내가 가니 너는 참아라' 이런 감을 느끼고 살라는 거예요. 길을 가도 탄탄….

내가 자동차 타고 다닐 때 그런 거예요. 신작로만 정작 달리게 된다면 저기 조그만 길들이 '아이구, 한번 여기 와 주소' 하는 그런 기분이 느껴져요. '오냐, 오냐' 내 마음은 그런 생각 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산이나 들을 품고 다니고, 혹은 농촌을 보면 그 마을을 안고 다니고, 길가에 그저 지나가는 할아버지라든가 혹은 형님 같은 연령의 사람들을 보게 되면 '아, 도와주지요. 내가 뭐가 도움이 되겠느냐?' 이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안경을 끼고 보다가 안경을 벗는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안경을 끼고 보는 거예요. 지금까지 세상을 볼 때는…. 그냥 벗고 보면 전부 다 쓸어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파란 안경을 끼고 보면 어떻게 돼요? 파랗게 보이지요? 「예」 노란 안경을 끼고 보면 노랗게 보이지요, 응? 「예」 죄악된 세상을 눈을 열고 봤다간 어디 뭐 구원섭리니 뭣이니, 참고 섭리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안경을 끼고…. 그러면 좀 낫지요? 응? 「예」 좀 낫잖아요? 그래야 우주의 작용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자면 지금 더러운 시궁창에 빠져서 죽게 된 사람―그 사람이, 빠진 사람이 양심적인 사람이예요―이 '아, 사람 살려요!' 할 때, '오냐' 하고 턱 나타난 사람을 척 보니까 아주 세상에 없는 금옷을 입었다 이거예요. 금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모든 차림 차림이 자기를 구해 줄 수 있는 차림을 하지 않았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그 차림을 해 가지고 구해 주려고 할 때는 그 구원받는 사람이 얼마나 미안하겠나? 양심의 가책이 되고 미안할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예」

하나님은 그것까지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험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안경으로 가장하는…. 나는 그래서 가장 대왕님이 하나님일 것 같다고 생각되는 거예요. 아까 말한 거와 같이 여러분이 이 민족을 대신해서 여러분의 마음은 이 삼천만 민족과 더불어, 혹은 세계 인류와 더불어….

그래서 선생님은 어디에 가든지 말이지, 이틀만 되면 그 나라의 사람이 돼요. 벌써 어느 집에 가서 물 먹고 싶으면 '물 좀 줘!' 하는 거예요. 거 뭐 검둥이라고 해도 검둥이라고 생각 안 되거든요. 어디 가서, 저 시커먼 광산 밑바닥에 들어가 가지고 일하다가 온 녀석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몇 해 동안에 딴 데, 딴 나라에 갔다 왔으니 별 수 있나, 형제라도 거기서 일했지. 그러니 '물 줘!' 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예요. 남을 남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전부 다 인연이 있다 이거예요. 그 사람이 내가 죽게 되었을 때 살려줄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살려줄 수도 있는 그런 생사를 연하고 있다는 생각 해 가지고, 그런 마음을 품고…. 만일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지었던 그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흠모하는 그런 모든, 산이나 들이나 사람들의 본심이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그를 불러 가지고, 그를 데리고 그와 같이 내가 더불어 지내고 일해 주지 못하고 같이 화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마음을 갖고 대하면 하나님이 안경을 썼다가 어떡한다구요? 「벗습니다」 벗게 된다 이거예요.

만일에 삼천만 민족이 그렇게 되면 삼천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러한 민족은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아들딸은 세계적인 인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어머니가, 그러한 아버지가 아무리 노동자더라도 그 아들 가운데서는 세계를 삼킬 수 있는 인걸이 나오게 된다는 거거든요. 그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고생을 더 하여 전통을 심어라

앞으로 한민족을 발전시키고 한국 백성을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걸로 만들려면 여러분이 천정과 천심을 따라서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들여서 만민을 위하여 소와 같이 제물 되겠다는 마음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다면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예요. 도리어 수많은 민족이 그 가치를 들어서 주인으로 세우려고 하는 거예요. 천리가 그렇기 때문에 그걸 알고 여러분들에게 현재 맡겨진 과업을 성취하는 데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움직여 주기를 부탁해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결론은 뭐예요? 고생을 더 해라. 고생을 더 시키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거예요. 그거 어때요? 통일교회에서는 지금 돈이 제일 필요하지요? 돈만 있으면 후다닥 전부 다 해 가지요? 응? 「예」 내가 지구장 회의 때 `야, 너희들! 돈이 필요하지?' 하면, `예!' 가만히 있다가 `예, 필요합니다' 한다구요. 그래서 어떤 지구에선 `몇 억이 필요해?' 했다구요.(웃음) 내가 이번에 외국에 가기 전에 어떤 사람에게 한 50만 원을 맡겼더니 무엇에 쓸지 모른다 이거예요. 이것 가지고도 안고 밤잠을 못 자고 있거든, 이게. (웃음) 그래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돈이 필요해? 필요하다. 필요하면,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놓아라 이거예요.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은 왜 필요하냐? 내가 밥을 굶고 있으니 나 밥 먹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그거 틀렸다는 거예요. 틀렸다는 거예요. 민족을 밥 먹일 수 있게끔 해 놓고, 수많은 사람을 밥 먹일 수 있는 완전한 준비를 해 놓고 자기 밥 먹겠다고 생각해야지, 자기가 지금 생활이 어려우니까 자기를 우선 생각하다가는 틀린 거예요. 돈이 문제가 아니예요.

선생님이 제일 지금 염려하는 것은 돈보다도 전통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전통. 민족정기를 올바로 잘 세워 놓는 게 문제다 이거예요. 통일정신을 올바로 심어 놓는 게 목적이다 이거예요. 통일정신을 어디에서 올바로 세울 것이냐? 돈더미를 쌓아 놓고 거기에 떡 갖다 심어 놓으면 다 무너져요. 어디에다? 반석 위에다 심어야 돼요. 반석은 단단한 거예요. 모래알 섞인 것이 없어요. 뼈다구 가운데 찔러 박아야 돼요, 뼈다구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예요. 통일정신을 심어 놓고 거기에서 뿌리를 박으면 나서 커서 자연히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가 맺히는 데는 무슨 열매가 맺히느냐 하면 말이예요, 황금 열매가 맺혀요, 황금 열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전도 나가게 되면 이거 돈…. 내가 그래서 전도사들이 장사해 가지고 생활 대책을 세우지 말라는 거예요. 본래가 선생님의 교육이 그런 거예요. 두고 봐요. `그래도 너희들이 장사하고 싶으면 한번 해봐라'고 하지만 결국은 또 돌아가는 거예요. 전도해 가지고 심정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자녀를 만들어서 굶든가 먹든가, 같이 먹고 살 수 있는 이런 전통을 심으라는거예요. 열 사람을 지도하는 가운데서 그런 사상만 거기에 하나 남겨 놓으면…. 그 사람이 밥 몇 끼니를 그들로 말미암아 얻어먹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밥 얻어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그 후손을 앞으로 천추만대에 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편에 완전히 옮겨 놓는다 이거예요. 밥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되었다가는 전부 다 망한다는 거예요, 그게. 알겠어요? 「예」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나 혹은 자기의 부모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살게 됩니다. 거기에 사는 동안 일면 행복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한 집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람이 제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집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집이 필요한 동시에 그 집을 세워둘 수 있는 동네가 필요하고, 동네가 필요한 동시에 면이나 군, 더 나아가서는 나라가 필요합니다. 그렇지요? 또 그 나라가 있을 수 있는 세계가 필요하고, 그 세계는 또 더 큰 하늘과 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본연의 가정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은 태어나서 생활하다 죽어 갔습니다. 한 집에서 태어나 한 가정의 부모가 되고, 자식을 낳아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나라를 위하고, 혹은 그 무엇을 위하여 살다가 영계에 갔습니다. 지금도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 갔는데, 그 가운데 선한 입장에서 살다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한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 깊은 데에서는 보다 더 행복스럽고, 보다 더 자유롭고, 보다 더 이상적이며,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국가나 사회, 가정, 부모나 형제, 그리고 내 자체 모두가 완전한 것들이냐? 어떻습니까? 완전해요? 완전치 않아요? 인간은 언제나 좀더 좋은 것, 좀더 귀한 것, 좀더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현세의 우리들은 내가 나 자신을 영원히 보장할 수 없고, 또한 내 가정이 나를 영원히 보장할 수 없으며, 내 부모가 영원히 나를 보장해 줄 수 없는 입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가도 역시 나를 보장해 줄 수 없으며, 세계의 어떠한 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을 자기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온 세계의 어디에서든지 보장해 줄 수 있는 한 분, 즉 절대적인 행복의 주체요 영원한 이념의 주체요 절대적인 선의 주체가 되는 분이 계셨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진정한 집입니까? 여러분이 태어난 고향에는 추울 때 입을 것을 주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무식한 입장에 있을 때 배움의 길을 닦아 주신 부모가 있을 것이고, 주위에는 모든 것을 거들어 주는 형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가정의 아들이나 딸로 태어난 여러분은 과연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에는 항상 좀더 완전하고 좀더 귀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를 모시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형제의 품에 안기어 ‘이곳이 영원무궁한 내 복지다.’ 라고 찬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한 만민은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가정을 박차고 나서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들이 효자 효녀가 되기를 바라고, 나라는 자기 나라의 국민이 충신 열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래 효자 효녀의 길과 충신 열녀의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의 길인데, 인간들이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의 본래 마음이 우리의 생활과 사회 환경에 부합되지 않고 서로 배치된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마음 한 면에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 새로운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로 달려 나가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나 가정을 두고 볼 때, 다른 한 쪽에서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더 좋은 것을 바라고 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불완전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불완전으로 출발한 역사가 불완전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선을 지향하는 양심과 천륜과 인연맺기를 요구하는 본성을 바탕으로 악의 환경에서 벗어나 더 좋은 환경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륜을 대하고 있는 본심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을 종교적인 명사를 빌어 말한다면 타락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연의 가정을 바라보며 나가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본연의 가정을 이룰 것이며, 어떻게 해야 본연의 형제와 본연의 부모를 가질 수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모 형제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천하 어디를 가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랑이다.’ 할 수 있는 본연의 가정과 본연의 부모와 본연의 형제를 갖지 못하고 있으니, 현세의 부모와 형제 가운데서 태어나 살고 있는 나는 본연의 나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의 자아를 부정하고 본연의 자아로 출발하는 기로에서 뒤넘이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인생입니다.

인류의 시조가 타락한 그날 이후 수많은 역사노정이 지나갔지만 본연의 가정과 본연의 형제와 본연의 부모는 아직까지 이 지구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본연의 가정과 본연의 형제와 본연의 부모를 찾아 본연의 국가와 본연의 세계까지 연결짓기 위해 수고해 오셨는데, 그것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섭리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비원리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가정 말고 다른 어떤 하나의 가정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의 가정은 하나님도 바라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소망의 가정을 찾아 내려오시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 소망의 가정을 찾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본연의 가정을 소개해 주기 위해 인간 세상을 찾아오시는 것이요, 인간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연의 가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런데 이 본연의 가정이 대번에 나올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이 땅에 참가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떠한 단계를 거쳐야 하느냐? 본연의 아들딸이 나오기 전에 본연의 종이 나와야 되고, 본연의 양자가 나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본연의 아들딸이 나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충성을 하고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 앞에는 종도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종이 되어 봤습니까?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몰라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될래야 될 수도 없었던 과거의 우리였습니다.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친 다음에야 직계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고 나서 비로소 부모가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복귀역사라 합니다, 복귀역사.

잃어버린 본연의 가정을 건설하려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이때를 말세라고 합니다. 그러면 말세라고 하는 이 끝날은 어떤 때이냐? 이 세계에는 본연의 종과 같은 무리가 있고, 본연의 양자와 같은 무리가 있고, 본연의 자녀와 같은 무리가 있는데, 이 본연의 자녀와 같은 무리 위에 본연의 부모가 오는 때를 끝날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라고 하셨습니다. 지상에 하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는 인류가 잃어버렸던 본연의 가정이 이 지구상에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연의 가정을 건설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부모가 있어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되고, 종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기반 위에 자녀가 번식되어야만 본연의 종족이 이루어지고, 본연의 민족이 이루어지고, 본연의 국가,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악한 이 세계를 전부 불살라 버리고 이러한 창조 본연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섭리해 나온 것이 복귀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식구라고 말합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 도상에서 이 식구라는 명사를 깨우쳐 준 자는 없습니다. 식구라는 말은 가정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식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이 있어야 하고, 그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형제가 있어야 하고, 형제가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예.」 기독교에서도 교인이나 신자라는 명사를 썼지만 식구라는 명사는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외적인 면에서 세계 대가족주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대가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대가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부모로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 가운데는 참식구가 있고, 그와 반대되는 식구가 있습니다. 또한 중간 입장에 있는 식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우신 천적인 가정을 중심으로 식구라는 명사를 가진 참식구는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를 가져야 됩니다. 형제가 되기 위해서도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형제는 여럿이지만 부모는 하나인 것이 원칙입니다. 즉 식구는 여럿이어도 주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부모나 주인은 누구를 중심삼은 부모요, 주인이냐? 나를 중심삼은 주인이 아니요, 나를 중심삼은 부모가 아닙니다. 형제를 중심삼은 부모요, 식구를 중심삼은 주인인 것입니다. 또한 악한 세계에서 악과 접할 수 있는 주인이요, 악과 접할 수 있는 부모일 것인가? 악과는 상관없는 주인이요, 부모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선으로 계시는 부모요, 주인이라 할진대, 그 부모는 가정이나 혹은 한국 백성이면 한국 백성을 위주로 한 부모요, 주인일 것인가? 아닙니다. 온 세계의 30억 인류 전체의 부모요, 하나의 대가족을 위주로 한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인이요, 부모요, 중심의 자리에서 누가 서야 하느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서야 되느냐? 악한 세상을 세계적으로 수습할 하나님의 대신자, 즉 구세주가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일체된 구세주를 부모로 지상에 모실 수 있어야만 비로소 참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으며 구세주를 참다이 모시는 자만이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거든 여러분은 메시아의 터전을 상속 받기 위하여 수고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천지의 주인이시고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섭리해 오신 하나님, 또 오늘의 이 현재와 미래까지 수습하실 하나님 앞에 참된 자녀가 될 수 있고, 참된 식구가 될 수 있고, 참된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는 역사대로 시대는 시대대로 갈라놓고 나쁜 역사와 나쁜 현세를 심판해야 합니다. 과거의 좋은 것을 끌어다가 현세에 세우고, 거기에 역사적인 교훈을 결부시켜서 내 것으로 상속 받을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고서는 미래를 향해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볼 때에 예수님은 어떠한 입장으로 이 땅 위에 오셨는가?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로서 하나님의 참된 형제의 자격으로서 하나님의 참된 식구의 자격으로 오셨습니다. 또한 역사적인 하나님의 슬픔과 수고와 뜻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신자로서 모든 것을 수습해 놓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조건은 제거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을 취해 가지고 새로운 천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참된 식구가 되려면

오늘날 우리가 참다운 자녀가 되고 참다운 형제가 되는 데 있어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한 자녀, 누구를 중심으로 한 형제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자녀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나도 슬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뻐하는 그 자리에 나가야 되며, 또한 예수님이 기뻐하면 나도 기뻐하고 예수님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는 자리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만이 아니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다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역사적인 구세주 앞에, 혹은 역사적인 참부모 앞에 참다운 자녀로 설 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자녀요, 예수님의 참다운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활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참다운 효자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맺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인 것을 알고 예수님의 생활 전체를 상속 받아 이 땅에서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없고 참다운 형제가 될 수 없으며, 참다운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역사적인 조상으로 왔다 간 예수님은 그냥 지나가 버리고 사라져 버린 주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늘날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상속 받아 그 뜻을 실현해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만 예수님이 참부모로서 이 땅에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은 이 지상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대신자로서 예수님이 다하지 못한 뜻을 이 세계의 30억 인류 가운데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예수님의 재림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식구라는 명사는 어떠한 것인가? 예수님의 뜻을 상속받아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명사입니다. 형제요, 가족이라는 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식구면 식구끼리, 형제면 형제끼리 어떻게 나아가야 되느냐?

예수님에게는 생활하는 가운데 있어서 부모도 있었고 형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모와 형제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형제와 부모를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념적인 부모를 생각하였고, 이념적인 형제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참다운 아들로 키워 주어야 할 지상의 부모가 못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는 참다운 아들의 입장에 있었지만, 예수님 앞에 요셉과 마리아는 참다운 부모의 입장에 서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 부모의 입장을 대신하여 재림이라는 섭리적인 기준을 세우시고 그것을 위해 2천년이란 기나긴 역사 동안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은 참다운 아들로서의 기반을 완전히 닦는 동시에 참다운 형제의 기반을 닦고 참다운 식구의 기반을 닦아 놓았을 것입니다. 또한 살아생전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한 것까지 수습해 가지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 부모의 자리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재림이라는 명사는 필요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부모의 자리를 완결짓지 못하고 가신 연고로 재림이란 명사가 나오게 되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라는 말이 남아지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의 사명

예수님은 영육을 합해서 참다운 효자의 도리와, 참다운 형제의 도리와, 참다운 식구의 도리를 세워 놓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영적으로만 세워 놓았지, 영육을 합한 입장에서는 세워 놓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이 도리를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2천년의 역사를 연장시키며 섭리해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먼저 영육을 합해서 참다운 효자의 도리를 세우고, 참다운 형제의 도리와 참다운 식구의 도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 당시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하지 못했던 한 가정의 동생이나 누나나 형님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 이 땅의 기독교 신도들 가운데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이 끝날에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다시 오시는 주님이 부모의 인연을 완결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참다운 식구와 참다운 형제의 기반을 갖추어, 예수님 당시의 동생이 되고 형제가 되고 일가친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는 하나의 가족, 하나의 종족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권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앞에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고, 참다운 형제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참다운 형제와 식구를 찾아야 합니다. 참다운 식구가 이 땅 위에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동생의 사명을 대신해야 되고 예수님의 부모의 사명을 대신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살아생전 이 땅에서 동생과 부모를 가져 보지 못하고, 가족과 친지를 가져 보지 못하고, 참다운 가정을 갖지 못한 채 한을 품고 가셨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그와 같은 전반적인 요건들을 지상에서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부모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참다운 형제의 인연 가운데 하나되어, 하나의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단결된 하나의 가족 형태를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연고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이 가족의 기반까지 당신 스스로 닦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천년 동안 준비해 온 기독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오시는 주님은 이것을 다시 개인적으로 닦아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닦느냐? 하나님의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 직계 자녀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6천년 동안을 섭리해 오신 모든 종적인 역사를, 예수님이 이 시대에 다시 오셔서 수습하고 종의 복귀역사와 양자의 복귀역사와 직계자녀의 복귀역사의 모든 내용을 이 지상에서 완전히 탕감복귀하여 참다운 식구, 참다운 형제,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참다운 식구와 참다운 형제, 그리고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예수님을 참다운 주님으로, 참다운 형님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참다운 동생이 되고 참다운 누이가 되어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형제와 식구가 되어 있다면, 모든 문제가 이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고 있으니 전체의 모든 역사를 새로이 해야 합니다. 새로이 하는 데는 대번에 할 수 없습니다. 대번에 참다운 아들딸의 자리, 참다운 형제의 자리, 참다운 식구의 자리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사탄의 아들딸들을 빼앗아 종으로 훈련시키고, 양자로 훈련시키고, 직계 자녀로 훈련시킨 다음에야 그런 자리에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명이 오시는 주님 앞에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의 슬픈 역사가 이 땅 위에 벌어지게 된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였느냐? 기독교인들이 참다운 형제, 참다운 식구가 되어 있다면 오시는 주님은 그들을 기반으로 하나님 앞에 참다운 부모로서 하나의 대가족을 이룰 수 있으나, 기독교가 그런 입장에 있지 못할 때는 오시는 주님은 또다시 그와 같은 길을 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해도 기독교를 대신하여 오시는 주님 앞에 참다운 종이 되고, 참다운 양자가 되고, 참다운 직계 자녀가 되어 본연의 새 가정을 세우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이 목적권 내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통일교회입니다.

직계의 자녀가 되면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는 종과 같은 입장에서 시련받아야 할 사람도 있고, 양자의 입장에서 시련받아야 할 사람도 있고, 직계 자녀의 입장에서 시련받아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은 어떻게 되느냐? 과거 종의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무조건 종이었습니다. 변명이 없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죽어라.’ 하시면 ‘예.’ 하고 죽어야 했습니다. 종의 자리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은 양자 이상에게 있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이겨내어 영계와 육계를 정복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 참다운 충신의 칭호를 받아야 비로소 양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너는 충신이다. 혹은 열녀다.’ 하는 칭호를 받아야 비로소 양자의 자리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의 자리에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각하는 것이 양부모와 같아야 합니다. 양부모의 심정과 같은 이념권 내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양부모의 혈통을 중심삼고 볼 때 어떻게든 인연이 되어 있어야 하고, 또 무엇인가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심정이 통하든가 생활 감정이 통하든가, 모든 면에 있어 상하관계가 통해야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횡적인 활동의 조건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의 관계 이상으로 통해야만 비로소 양자의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직계의 자리에서는 하나님 대신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양자의 자리에서는 심부름이나 하는 것이지만, 직계의 자리에 나가서는 책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믿고 명령하니 내 모든 위업을 맡아서 관리하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양자는 자기 당대에, 즉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 부모의 것을 상속 받을 수 없으나, 직계 자녀는 부모가 살아 있어도 부모가 허락한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권한이 있는 거예요. 양자가 하나님 대신 축복해 줄 수 없으나 직계 자녀가 되면 하나님 대신 축복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해 줄 수 있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사탄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종의 생활에서부터 모든 것을 하나님 대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되고 생활적인 무대(개인의 노정)에서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 어디를 가든지 제재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승리의 결정권을 가져야만 비로소 참부모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반을 닦지 않고는 재림역사가 벌어질 수 없습니다. 또 재림역사가 이 지상에서 벌어지지 않는 한 우리가 찾고 있는 참다운 식구와 참다운 형제와 참다운 가정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아들딸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으로써 탕감의 길로 나아가 하나님과 일체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종의 노정을 거치고 양자의 노정을 거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직계 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의 참다운 부모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까지도 개인주의화, 자기화하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왕왕 봅니다. 여러분은 진정 예수님이 가족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마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형이나 동생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동생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느냐?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형님같이, 아저씨같이 모시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고 싶어했던 예수님을 대신하여 효도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싶어하던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대신한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가족이나 형제를 사랑했던 그 마음을 가져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랑할 줄 아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예수님이 찾으시는 참된 형제요, 참된 식구요, 참된 가정입니다. 선생님은 한때 나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을 보면 한 번쯤 그를 의심했습니다. 저 사람이 참되이 뜻을 위해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내 대신 책임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내가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살려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까지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 자리까지 나가야만 비로소 축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선생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안 맺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만민을 대신하여, 충신의 입장에서 죽어 갔고 양자와 직계 자녀의 입장에서 죽어 갔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 천부를 대신한 입장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 중에는 종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양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직계 자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뜻을 믿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와 직계의 자녀의 시대를 거쳐야 됩니다. 그러한 세 과정을 거쳐 가지고, 자기가 전도한 사람이나 자기를 따르는 식구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희생되더라도 내 모든 전체의 복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었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자동적으로 일어나야만 비로소 축복받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식구들 가운데 그런 자리에 올라온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 식구라는 명사를 부르짖는 우리가 완전한 식구가 되어 있느냐? 혹은 하늘 앞에 완전히 부합된 형제로서의 명사를 갖추었느냐? 하늘의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하늘의 식구면 식구로서 완전히 하나되어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적인 관계나 선생님과의 관계는 잘 맺었는지 모르지만 횡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하나되어 있지 않습니다. 식구라는 명사 가운데는 형제의 인연이 담겨 있고, 또한 수많은 무리가 함께 동고동락한다는 뜻이 있는데, 오늘날 여러분은 아직까지 이 횡적인 관계가 완전히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연대적인 책임, 연대적인 십자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뜻대로 살지 못한 생활 무대를 재차 전개해 놓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으나 사랑하지 못한 동생이나 형을 예수님 대신 사랑하고, 예수님을 형제처럼, 부모처럼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복귀 과정에 있어서 만민의 형님이나 오빠의 입장에서 나왔던 것같이,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의 입장에 설 수 있지, 그러지 않으면 직계 자녀의 자리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는가 비판해 보고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식구는 물론이요, 이 삼천만 민족과 전세계 인류를 과연 동생같이 사랑할 수 있고, 혹은 언니나 형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참다운 부모를 모시고 충성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 있는가? 혹은 만민이 살 수 있는 길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신 예수님과 같이, 희생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부모를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서슴지 않고 제물이 되겠다는 결의를 갖추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공인하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형제와 식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예수님 당시의 33년 동안의 십자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2천년의 십자가로 연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다운 형의 입장과 참다운 주인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역사적인 인연을 이끌고 나온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그 당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도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십자가, 또는 가야 할 길, 그것이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만 한정된 책임이냐? 아닙니다. 전 30억 인류가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참다운 형제와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가정이 되기 전까지는, 십년 혹은 백년이 가더라도 개개인 모두에게 연대적인 십자가를 져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책임을 더 이상 연장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 당대에 끝내야 됩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여 이것을 단축시키면 단축시킬수록 역사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민족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고, 우주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단축시키지 못할 때에는, 이 역사적인 십자가는 현실적인 십자가에서 미래적인 십자가로 이어져 남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는 여러분 개체만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 전체를 대신하여 나가 싸우는 것이요, 전가정을 위해 나가 싸우는 것이요, 전형제와 전식구들을 위해 나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한번 실수하면 하나님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여러분이 구원될 때까지, 즉 여러분 개인과 관련되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 전체가 복귀될 때까지 남아지게 됩니다. 개인을 위주로 하여 전체로 연결지어 나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 각 개인이 이러한 전체적인 책임을 당대에 완결짓지 못하면, 그것이 역사적인 십자가의 고충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에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전부 완결짓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2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통해 그 시대에 해결 못한 십자가의 짐을 개인적인 십자가에서부터 가정적인 십자가, 혹은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이것을 상속해 주어야 하니, 그 주님이 영육을 합하여 개인적인 십자가에서부터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십자가까지 이 땅에서 완결짓지 않는 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십자가도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연대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연고로 부모가 짊어진 십자가가 여러분의 십자가요, 형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동생의 십자가요, 동생이 짊어진 십자가는 부모와 형님의 십자가입니다.

7년노정의 의의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 단합하고 협동하여 공동으로 보조를 맞춤으로써 한꺼번에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행동통일’ ‘이념통일’ ‘심정통일’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런 통일이념은 오늘날에 있어서 지역과 환경이 다를 지라도 행동적인 면에서는 전체를 한꺼번에 탕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3년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이 수고할 때는 여러분들도 수고해야 하며, 선생님이 고생할 때는 통일교회 식구 전부가 고생해야 됩니다. 식구들이 고생하고 선생님이 고생하면, 하나님이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주실 것이며 그러한 역사적인 수고의 대가로 지난날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 이 3년노정과 4년노정의 의의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 가운데 슬픔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개인의 슬픔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우리 전체의 슬픔이요,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 전체의 기쁨입니다. 따라서 우리 개체의 기쁨도 전체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하늘땅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통일교회 신도들의 생활은 별개의 생활이 아닙니다. 행동적으로 이념적으로 심정적으로 일치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좋아해도 같이 좋아하고 슬퍼해도 같이 슬퍼하고, 울어도 같이 울고 십자가를 져도 같이 지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넘어가고자 하시는 탕감적인 기간을 단축시키자는 것이 이 7년노정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이란 어떠한 노정이냐? 참된 식구와 참된 형제가 되어 참된 부모와 더불어 탕감의 기간을 넘어가는 노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아무리 홀로 있더라도, 하나님의 염려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것을 책임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책임자의 염려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며, 혹은 교회면 교회 전체의 염려를 대신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서 전체 목적을 위해 역사적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도상에 서셨던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 당시에 참다운 형제가 있었다면 그 형제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또한 참다운 부모가 있었다면 그 부모 역시 십자가를 같이 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입장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지만, 지상에 있는 예수님의 형제나 혹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 전부가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것을 몽땅 종합하여서 예수님의 동생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 시대에 예수님의 형제가 십자가의 길에 동참했더라면, 그때 하늘땅을 중심하고 전식구가 가정적인 십자가를 탕감하였을 텐데,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민족 모두가 개인적으로 그런 십자가를 지게 되었고 가정이 갈라지는 고난의 길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육을 합한 실체를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혹은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십자가를 져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으로 하나의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인해 세계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개인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노정을 걷는 데 있어서 전체가 행동을 일치하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기뻐도 같이 기뻐하고 슬퍼도 같이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에게 부활의 기쁨이 주어지면 그때 동참한 사람들도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승리하면 그때 같은 입장에 있던 자들도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런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전체가 국가의 기준을 넘어갔더라도 앞으로 오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십자가를 다시 지고 가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는 명사를 가지고 부모를 중심으로 하여 참된 식구와 참된 형제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서 같이 울고, 같이 싸우고,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같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7년노정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효자 효녀와 참다운 형제는 어떤 사람이냐? ‘형님을 수고 시키지 않기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 부모를 수고시키지 않고 내가 부모 대신 십자가를 지겠다. 혹은 통일교회 식구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내가 나서겠다. 내가 민족의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 고 하면서 큰 책임과 큰 십자가를 먼저 지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형제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의 승리의 기반을 닦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내외적으로 모두 승리의 기반을 닦는 사람만이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참다운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동안 내적으로 기반을 닦아 왔고 외적으로는 재림의 이념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시 오시는 주님도 내적인 기반을 닦고 외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는데, 그 내적인 기반을 닦는 것이 3년노정이요, 외적인 기반을 닦아서 종결짓는 것이 4년노정입니다.

참된 식구

그러면 통일교회가 뭘 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가정을 세우기 위한 곳입니다. 어떤 가정?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조그만 가정이 아닌 대우주적 가정을 세우기 위한 곳입니다. 대우주적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주적 사탄 가정을 정복하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정복하고 굴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의 무력을 갖고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써 정복하는 것입니다. 생사가 교차하는 모든 고난길을 넘게 해서 탕감시켜 놓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통일교회는 종족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통일민족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통일의 국가적 기반을 닦아 넘어가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식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의 가정을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제일 큰 목적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전에는 이 세계와 하늘땅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민족을 왜 우리가 구해야 되느냐? 이 민족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기에, 그것을 빨리 거쳐가기 위해 우리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나는 형제들보다 더 고생을 하고 형제들보다 십자가를 더 지겠다.’ 하는 입장에 서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각자의 나라를 위해서 전도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제일 첫째 되는 목적은 한국 백성을 빨리 하나님 앞에 인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적인 십자가는 누가 져야 되느냐? 바로 우리들이 져야 합니다. 한국적인 슬픔은 누가 지느냐? 통일교회가 져야 합니다. 한국적인 환난은 누가 당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당해야 합니다. 한국적인 어려움은 누가 당해야 되느냐? 먼저 통일교회가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자원해서, 자진해서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탄은 십자가의 길을 도피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의 길을 넘어서 찾아가십니다. 세상 사람들도 십자가의 길을 싫어하지만,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을 자청해서 갑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식구들이 한국을 위주로 한 십자가의 고개를 다 넘어간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십자가의 노정을 넘기 위해서 다시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참된 식구는 어떤 위치에 있는 식구를 말하는가?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참된 식구는 국가권 내에 있는 식구가 아닙니다. 국가권 내를 넘어 세계권 내로 들어선 식구가 참된 식구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입장에서 참된 식구가 되었다 하더라도 참된 가정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승리하지 못하면 개인적인 위치의 참된 식구는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귀된 가정권 내에 참된 식구는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 종족권 내에 있는 식구들이 종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서지 못하면 참된 가정적인 식구는 깨진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사탄세계의 고난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승리하기까지의 과정보다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더 큰 종족적인 십자가가 가중되기 때문입니다. 개체에 있어서는 몸과 마음에서 선이 악을 굴복시키면 개인적으로 승리할 수 있지만, 가정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십자가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또 종족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십자가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한 단계 넘어갈 적마다 더 큰 십자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식구란 개인적인 십자가를 넘어선 사람이 아니라, 세계적인 십자가를 넘어선 사람입니다. 그런 참된 식구의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자녀의 인연을 갖고 자라고 있는 존재입니다.

복귀 도상에서 야곱과 에서를 중심삼고 볼 때, 야곱은 사탄 편인 에서와 싸워서 개인적으로 승리했고, 하란에 가서는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한 터 위에서 모세는 민족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이러한 터 위에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승리를 하여 온 세계를 굴복시키고 하늘 앞에 참다운 아들로 등장했더라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만왕의 왕이요 만우주의 주인인 그분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식구는 이 세계사적인 과정을 넘어가야 됩니다. 참행복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사적인 과정을 넘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넘어가야 할 십자가의 고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어떠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식구라 부르는가? 앞으로는 세계사적인 모든 십자가의 노정을 탕감하고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입장에 서는 사람을 식구라 불러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한 희생의 길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역시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종족적인 십자가, 민족적인 십자가, 국가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삼천리반도에 슬픈 일이 있으면 그 슬픈 일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삼천만 민족에게 갖다 준 슬픈 여건, 곧 모든 십자가의 여건을 우리가 처리해야 합니다. 삼천만이 짊어져야 할 모든 십자가를 우리가 대신 짊어지고, ‘이제는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할 십자가가 없다.’ 고 할 수 있게끔 해야만 민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민족 가운데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배고파 울고 누구보다도 헐벗어 떨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비참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눈물을 흘리고 거기에서 쓰러지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산정을 향해 가실 때, 부활의 한 날을 위해서 백 번 쓰러지더라도 가야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면서 승리의 결의와 각오를 잃지 않고 그 죽음권을 무난히 넘어갔기 때문에, 육신은 죽었으되 개인적으로 살아난 입장에 있는 것이요, 혹은 가정적으로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살아난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또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영적으로 개인복귀, 가정복귀, 세계복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며 영계 편성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오시는 주님과 그 주님을 중심으로 한 성도들은 예수님이 골고다의 길을 영적인 승리로 닦았던 것과 같이, 실체로서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여 죽지 않고 무난히 그 십자가의 길을 돌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모인 강원도 식구들이나, 남한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식구들, 혹은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모두 십자가의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미국 식구들이 전도하는 것은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일본 식구들이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 민족적인 기반을 못 세웠기 때문에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자리를 잡으면, 전세계에 널려 있는 식구들은 거기서부터 세계적인 발판을 닦고 세계적인 봉사의 길, 세계적인 희생의 길, 세계적인 십자가의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와 참다운 형제와 참다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권내에서 참다운 자녀요, 참다운 식구요, 참다운 형제라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에 같이 동참해 나갈 수 있는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헤쳐 나가야 행복과 평화를 노래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길을 무난히 넘어가야 합니다.

이 민족을 대신하여 4년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고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기도하게 될 때는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지금까지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인 투쟁 역사를 거쳐오시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셨으니, 나도 당신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길에 동참시켜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눈물로 개척해 나왔으니 눈물로 합해야 됩니다. 피와 땀으로 개척해 나왔으니 피와 땀으로 하지 않고는 합해지지 않습니다. 접을 붙이려면 맥이 통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뜻을 알고 이 민족이 하나님 뜻 앞에 설 때까지, 그와 같은 입장에서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단계까지 닦아 놓은 터전에 이 민족을 접붙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전도 나가서 고생하고 굶주리고 욕먹고 다니는 것은 여러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집을 대신하고 형제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나라를 세우기 위한 터를 마련하기 위해서 간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젊은이들이 어려운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고 슬픈 길을 자처하여 책임지지 않고는 이 나라, 이 민족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늘과 땅이 기뻐할 수 있고,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고 만민을 축하해 줄 수 있는 행복한 자리에서 참다운 형제요, 참다운 자녀요, 참다운 식구라고 자랑해 보았습니까? 못 해 봤습니다. 비참한 눈물로 하늘땅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싶은, 그런 애달픈 입장에 있는 식구는 본연의 식구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에서 참임을 보장받기 위한 식구이지 아직 참된 식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우선 최소 단위로부터 시작하여 민족적, 국가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서야, 이 국가를 중심한 삼천만 민족이 비로소 한 형제가 될 수 있고 한 식구가 될 수 있고 하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고지를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십자가는 더 큰 것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했습니다. 어찌하여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됐느냐? 그것은 예수님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전인류, 그리고 하늘땅의 모든 십자가를 홀로 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계적인 십자가의 길을 내가 무난히 돌파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모든 고난의 길을 넘어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간곡한 마음, 아버지를 모시고 효도하고 싶은 그 마음이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간곡한 마음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길을 넘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이 세계에 참다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참부모님을 모시고, 개인의 한과 인류의 한과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적인 한을 모두 탕감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하고, 땅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행복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와 참다운 아들딸이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어 아버지를 모시고 싶다는 간곡한 마음이 있어야 오늘의 무거운 십자가를 밟고 넘어갈 수 있지, 그런 강한 신념과 강한 욕망이 없이는 이 십자가를 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선생님은 개인적인 입장을 대표한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대표한 선생님이요, 민족을 대표한 여러분들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도 꼭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 하면 다른 민족을 세워서라도 해야 되고 만일에 선생님이 그 일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와서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와 더불어 혹은 식구와 더불어 남아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고, 자녀의 입장에서 서로가 고난의 길에 선봉자가 되고 개척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약화될 때는 여러분은 낙오자가 되고 패잔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날 이 사회와 세계를 박차고 나오려고 지금까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거쳐왔는데, 그것이 여러분에게 복을 갖다 주는 것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한을 갖다 주는 슬픔의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민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넘은 후에 이 뜻을 알고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늦게 들어온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복귀섭리가 끝나지 않았을 때는 여러분이 그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기 전에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내가 모를 때에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가 지나가 버린 것이 섧구나! 종족적 민족적 십자가가 내가 모를 때 지나가다니….’ ‘이제 내가 그것을 알았으니 민족적, 국가적인 십자가를 내가 짊어지겠다. 지금까지 먼저 나온 형님들, 누님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길을 가느라 수고했으니, 이제는 그 배턴을 나에게 넘겨주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 이런 신념을 가지고 형님들에게 ‘그 배턴을 나에게 주소.’ 하면 또 형님들은 ‘아니다, 내가 가겠다.’ 하여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면 먼저 들어왔던 사람이 가자고 하든가, 아니면 먼저 들어온 사람이 그러지 못하면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든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아이구 뭐 먼저 들어온 사람이 저런데 우리야 뭐 이렇게 하면 되겠지, 저 사람들 하는 거나 보고 따라가면 되겠지.’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십자가는 더 큰 것입니다. 과거의 형님들이 싸우던 것보다 더 지긋지긋하고 더 큰 시련과 더 큰 무대의 십자가가 앞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형님들이 싸워 나온 십자가도 컸지만, 오히려 이제는 개인적인 십자가가 점점 커져 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타나는 환경적인 큰 십자가가 있으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형님들이 수고하여 개척한 그 길을 따라가 승리하겠다는 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60만 대군이 광야에서 40년 만에 다 쓰러졌을 때, 그 2세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새로운 지도자 밑에서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지고 축복받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의 3년보다도 앞으로 남은 4년 기간의 십자가노정이 더 크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들이 더 이상 괴로워 못 가겠다고 하거든 그들을 보고 방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젊은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이 동원하여 ‘가자.’ 하는 의분심과 결의를 가져야 됩니다.

불타는 신념을 가져야

민족적인 십자가, 민족적인 골고다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4년노정에 있어서 참된 식구와 참된 형제, 참된 자녀가 될 날을 그리워하며 참고 나가야 합니다.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운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의 대신자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온 천하를 자기의 소유로 하고 하나님을 길이길이 모시고 천사장을 종과 사환으로 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본연의 참다운 자녀의 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참고 또 참고 나가야 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고, 이 축복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이루어 주신다는 신념과 믿음을 갖고 21년 동안을 싸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애급에서 400년 동안 고역하는 핍박 도상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인도될 것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는 복귀의 해원성사에 대한 불타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슬프고 슬픈 하늘과 땅에 맺혀진 원한을 해원성사해야 됩니다. 누구를 통하여 할 것이냐? 아들딸을 통하여 할 것이냐? 형제를 통하여 할 것인가? 아닙니다.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해야겠다는 신념에 불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남겨진 십자가의 길을 향하여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엄숙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국내 정세를 보나 국외의 정세를 보더라도 세계는 마지막 판국을 향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기울어 가는 운세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박차고 나가야 됩니다. 물결이 세면 셀수록 거기에 따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야 됩니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으로 보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좌우로 공산진영과 민주진영이 있는 틈바구니 속에서, 복잡한 삼각지대권 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마당에 그냥 서 있다간 다 망하고 맙니다. 이것을 박차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악한 운세를 반대적인 노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할 수 있는 무리와, 그런 힘의 움직임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여기서부터 올바로 풀려 나가는 날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이런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에 돌아가 밥을 먹어도 그 가정권 내의 식구가 아닙니다. ‘삼천리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젊은 형님 누나들은 이 시간에도 수고하고 있구나, 비록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 못할지라도 눈물과 더불어 소망과 더불어 심정과 더불어 하나되어야겠다.’ 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우리의 심정이 일체가 되어야 하고, 사정을 중심삼고는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정은 생활입니다. 사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일체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원칙적인 자리에 설 수 없어요. 소망이 일치되지 않고는 목적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적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심정과 사정이 일치되든가, 아니면 소원이 일치되든가, 둘 중의 하나는 되어야 합니다.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사정은 통하지만 식구들과 같이 행동하지 못한다고 해서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을 못 하걸랑 ‘하나님이여! 당신의 소망은 절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는 심정으로 소망을 끌어다 심정에 불붙여 가지고 ‘삼천만 민족 앞에 나가 싸우는 통일의 무리에게 생활적으로나마 발판을 만들어 주겠다. 뜻 앞에 합당하고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대신 내가 마음으로 힘을 보태 주겠다.’ 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식구들이 찾아오면 자신은 못 나갔지만,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눈물을 흘리며 찾아온 식구들을 격려하여 또다시 힘차게 활동할 수 있는 자극을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같이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같이 행동을 못하게 될 때는 찾아오는 식구들을 후대하고, 가지고 있는 소망의 마음이 자기로 말미암아 더 간곡해질 수 있도록 그 마음에 플러스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사람은 비록 행동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서지 못하고 찾아온 사람을 낙망케 하고 후회하게 하는 사람은 참된 식구가 아닙니다.

이 셋을 한꺼번에 다하는 것이 원칙이로되 못할 때는 둘이라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대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고, 그들의 결실을 위해 눈물어린 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줄 때에 그들이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어 ‘이제 내가 대신 싸우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형제 중의 형제입니다. 그런데 그러지는 않고 ‘무얼 하려고 또 왔어?’ 하며 박대하는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

자녀, 형제, 식구라는 명사

그렇기 때문에 눈물짓는 것도 혼자 눈물짓는 것보다 식구들과 더불어 눈물지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힘든 십자가의 고통이 있을 때 혼자 고통 받으면서 기도하는 것보다 둘이 기도하면 그 기도가 빨리 상달됩니다. 두 세 사람이 기도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주고받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식이 벌어집니다. 번식이 벌어지면 그곳에 사위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므로 하나님이 거기에 개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식구들은 십자가의 길을 갈 때나, 혹은 슬픔과 외로움에 부딪칠 때, 혹은 환난에 부딪칠 때마다 반드시 상대적인 식구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혼자 슬퍼하는 것보다 식구를 찾아가서 붙들고 자기 사정을 얘기할 때, 그 찾아온 식구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우리의 원수를 기필코 굴복시키자.’고 서로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고 서로서로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식구가 아니요, 참된 형제가 아닙니다.

일선에 나가 싸우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십자가를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십자가를 대신하지는 못할망정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는 때는 우리를 위해 준비해 있나니 ‘동생아 내가 간다.’ 혹은 ‘형님! 내가 갑니다.’ 할 수 있는 격려의 뒷받침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사랑하는 세 제자도 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주여! 당신의 억울함을 푸시옵소서. 당신의 한은 기필코 우리 후손들이 풀어 줄 것입니다.’ 이랬으면 예수님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을 것인가! 그랬더라면 예수님이 죽는 자리에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아버지여, 우리를 세워서 이 세계의 원한을 푸시고 저들을 보시사 탕감해 주시옵소서!’ 하셨을 것입니다. 그랬던들 오늘의 기독교 역사가 2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대변하여 ‘이들은 만민을 대신하여 모든 십자가를 졌고 또한 나의 죽음길에서 나에게 힘을 준 자요, 자기의 죽음을 개의치 않고 나를 위하여 봉사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아들딸이 아닙니까?’ 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예수님은 서글펐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의 식구들은 어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비로소 식구라는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형제요, 자녀란 명사를 쓰고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이 거룩한 명사는 없어져서는 안 됩니다. 역사가 심판받고 이 시대가 심판받아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명사와 실체들은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청산되더라도 소망의 식구와 소망의 가정과 소망의 형제는 남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이 소망의 식구들이 완전히 남아지려면 세계사적인 십자가의 길을 넘어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는 개인의 십자가는 물론이요, 가정, 종족, 국가, 세계적인 십자가, 더 나아가서 천주적인 십자가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4천년만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유대 나라에 보내신 것은 유대 나라와 유대 민족과 유대교회를 수습하여 그 민족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하늘주권국가로 복귀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날 그 주권국가를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삼천리반도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지금 상당히 혼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형님이 죽음의 길을 가면 동생도 따라가야 됩니다. 동생이 가고자 하면 형도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가 가면 자녀들도 가야 하고, 자녀들이 가면 부모도 가야 됩니다. 공통적인 책임을 지고 하나의 가정을 이끌고 하나의 종족을 이끌고 가야 되겠고, 민족, 국가, 세계를 이끌고,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때문에 복귀 도상에 있어서 시대마다 단계 단계를 넘어서 더 큰 십자가를 개척하면서 가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가 그런 입장에 서 있습니다.

통일교회 젊은이로서의 완전한 생활 방법

‘이제 내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내 몸과 감정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내가 소원하는 것은 행복의 터전 위에 자유와 해방을 노래할 수 있는 평화의 가족, 평화의 식구, 평화의 형제를 그리워하나니, 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누가 빼앗아 갈소냐?’ 할 수 있어야만 하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중심하고 참부모를 중심한 하나의 가족,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중심인 하나님과 참부모가 기뻐하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기쁨이 벌어져 온 천상천하에 기쁨이 넘치고 그것을 바라는 우리의 소원은 백번 천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의무요, 타락한 인간이 가야할 최대의 십자가의 길이니, 조그마한 십자가의 길에 넘어지는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자는 시간에도 뜻을 품고 기도하는 형님이나 누님, 동생, 혹은 자지 않고 눈물 흘리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배부를 때 굶주린 식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눈물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영적으로나마 힘을 주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단을 만들어서 항상 깨끗이 청소하고 낮이나 밤이나 ‘나로 하여금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행동이나 실체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거든 그러한 내적 준비라도 해서 같이 눈물 흘리면서 싸워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환난 도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식구의 인연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야지, 그러지 않고는 여러분과 지금 나가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는 오래지 않아 갈라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낙오자요, 패잔병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젊은이로서의 완전한 생활 방법은 무엇이냐? 일선에 나가 모진 폭풍우가 몰아쳐도 그것을 뚫는 것이고, 또 모든 십자가 도상에서도 이를 악물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소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정도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슬픔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설명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하게 될 때 역사적인 십자가를 짊어진 아버지의 수고를 알게 되고, 또 아버지 앞에 참다운 효자가 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냐, 이런 자리에서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나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는데, 오! 아무개야 고맙구나.’ 할 때 거기에서 비로소 효자 효녀 충신 열녀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편안한 자리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농사를 짓든 무엇을 하든 간에 원리적인 복귀의 길에서는 호미자루를 거머쥐고 삼천리를 파서 뒤엎고, 세계를 파서 뒤넘겨야 됩니다. 심정적으로나 사정적으로나 소망적으로 형제가 되어 가지고 함께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가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리워하고 바라셨던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가정과 참다운 식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누가? 인간이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혼자 하셨으면 6천년이라는 세월이 걸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인간들이 책임을 못해서 연장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민족은 어떠한 무엇에 대한 애착심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3년노정, 7년노정을 거쳐가면서 농촌에 들어가면 호미자루를 들고, 농민들과 함께 농토를 사랑하고 진정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땅을 가꾸어야 합니다. 부모가 무식하여 못 가르친 자녀를 우리가 붙들고 가르쳐야 되겠고, 부모가 교육에 무관심했으니 그것을 일깨워 주어야겠고, 이 민족이 개인주의적 입장으로 돌아 나라에 관심이 없고 애착심이 없어졌으니 다시 관심과 애착심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락에 들어가면 반대받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일면 보기에는 원통하고 분하지만 관심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데서는 제일 좋은 입장입니다. 그들이 총단결하여 반대해도 그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서 말씀을 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해서 전체가 하나되어 자기들 멋대로 욕도 하고 천대하면서 할짓 못할짓 다 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내 놓고 보니 ‘나는 이 땅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못했는데 저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나는 자녀들을 가르치지 못했는데 저들은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구나, 나는 지방 유지로서 책임을 지고서도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했는데 저들은 그 일을 하는구나, 나는 무조건 핍박하고 반대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들은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렸고, 이 강토를 위하여 땀을 흘렸으며, 우리의 자녀를 위해 핍박을 개의치 않고 고생길과 굶주림의 길을 참고 나가는구나, 그런데 나는 무엇을 했던고?’ 하면서 반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욕먹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반대하더라도 전체가 반대하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고, 또 지나고 보면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안 되었음.)

세상에 살면서 보면 잘못되고 거짓된 것이 참 많지요? 사회에도 거짓이 많고, 나라에도 거짓이 많고, 세계에도 거짓이 많고, 여러분 가정에도 거짓이 많지요? 또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도 거짓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마음에는 순수하고 고상하고 참된 것만 숨어 있어요? 거기에도 거짓이 많잖아요? 이걸 생각할 때,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세계에까지 전부 다 거짓이 많다는 거예요.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의 근거지는 사람

그러면 거짓이 사는 고향은 어디일 것이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거짓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이길래 이 큰 세계를 활동무대로 해 가지고 지금까지 존재권을 이루고 있는 것이냐? 그 고향이 어디예요? 그 거짓의 고향이 어디냐구요. 하나님이예요? 내 집이예요? 어디예요? 거짓이 사는 고향이 어디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 고향이 어디 있어? 거짓이 있으면 그곳이 고향이지. 그래요?

자, 가정은 무엇이 모여서 되느냐? 무엇이 모여서 가정이 돼요? 식구가 모여서 돼요. 식구를 거꾸로 하면 큰일나요. 구식이 되니까. (웃음) 식구가 모여서 가정이 되고요, 사회는 무엇이 모여서 되느냐? 가정이 모여서 사회가 됩니다. 나라는 무엇이 모여서? 사회가 모여서 됩니다. 세계는 무엇이 모여서? 국가가 모여서 됩니다. 결국 세계는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이고, 가정은 무엇이냐? 결과적으로 사람이 모여서 구성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악의 본산지도 가정이다? 아닙니다. 결국은 사람이다. 알겠어요? 악의 근거지와 악의 본향이 어디냐 하면 사람이예요.

그러면 선한 것이 많아요, 악한 것이 많아요?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말해 봐요. 선한 것이 많아요, 악한 것이 많아요? 자, 여러분 자체를 볼 때 선한 것이 많아요, 악한 것이 많아요? 그거 물어 볼 것도 없지 않소? 그야 상식화된 상식 아닌가요. 물어 볼 것도 없다는 거예요. 삼척동자보고 '너 선이 많으냐, 악이 많으냐?' 하고 물어 봐도 악이 많다고 할 겁니다. 공통적인 대답을 할 거예요. 또 나이 많으신 분들은 지금까지 지냈으니 그만큼 더럽고 뭐 악이 많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회를 보나 어디를 보나 그것은 악이 발전하게 되어 있거든요. 악이 많습니다.

그러면 이 악의 출처가 인간이다 할 때, 그 악이 많다는 것은 뭐예요? 악한 사람이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겁니다. 알겠지요? 「예」 악인이 열 사람 있으면 열만큼 악한 것이요, 백 사람 있으면 백만큼 악한 것이요, 천 사람 있으면 천만큼 악한 것이요, 만 사람 있으면 만만큼 악한 것이요, 30억이 있다면 30억만큼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악을 그냥 둬서 되겠느냐 이거예요. 악을 그냥 두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성인현철이니 도주니 하는 사람들이 신앙이니 종교니 하는 명사를 걸어 가지고 이것과 대결해 가지고 '아, 이 악이 어떤 방법으로 침범해 들어오느냐? 아, 이 악이 흘러 나오는 그 모든 역사적인 흐름을 어떻게 제거시키느냐?' 하고 천신만고의 노고와 수고를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악의 근원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 악을 청산짓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생행로에서 이 악과 더불어 투쟁하는 싸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악을 여러분 자신들이 전부 다 제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능력이 있어요? 보라구요, 여러분 마음이 얼마나 악한가를. 가만히 마음의 보따리를 풀고 생각해 보자구요. 자, 다이아몬드 보석을 말이예요, 주먹만한 것하고 쌀알만한 것을 갖다 놓으면 여러분의 눈과 손이 어디로 가느냐? 거기에 아버지가 있어 가지고 아버지가 작은 것을 집으라고 하면 그걸 집을 것 같아요? 아버지 얼굴을, 눈을 가리면서 쓰윽 할 거라구요. (웃음) 그렇지요? 「예」 그게 선이예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그럴 수 있는 요소가 백 퍼센트 농후하다구요. 그렇지요? 「예」 그것들은 하나도 쓸데없는 물건들이예요. 사람이 그런 거라구요. 그러니까 호외로 취급할 수 있는 우리 인간상이라는 거예요. 아무리 점잖을 떨고 아무리 거룩하게 보인다 해도 심통이 다 그렇게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좋은 것은 네 것 나쁜 것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참사람

양심적인 사람, 참다운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예요? '좋은 것은 나, 나쁜 것은 너' 하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이예요? 참은 뭣이냐? 반대예요. '좋은 것은 너, 나쁜 것은 나' 하는 것이예요. 세상에 그런 사람 봤어요? 그런 사람 봤어요?

여러분들 시집갈 때에는 그런 신랑 얻어 가고 싶지요? 내가 농담을 섞어서 얘기하는 거예요. 왜? 조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저 젊은 군인, 오늘 처음 왔나요? 그 아저씨 앞에, 어이, 오늘 처음 왔어? 「아닙니다」 아니야? 잘 들으라구요. 들어 두면 손해 안 난다구요.

이 아가씨들한테 '너 원주에서 제일 미남자가 누구의 신랑이 되면 좋겠느냐?'고 물어 보게 될 때 '사랑하는 친구의 신랑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아가씨가 있어요? '원주에서 일등가는 미남 신랑이 있으면 누구 신랑으로 삼겠어?'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내 신랑 삼겠다'고 할 거라구요. (웃음) 또 남자들에게 '원주에 일등 미인이 있다면 누구 아내 삼으면 좋겠느냐?' 하고 물으면 '거 물어 볼 것 있소? 내 아내 삼지' 이렇게 나올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자, 여자가 한번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 얌전한 아가씨, 그래요, 안 그래요? 솔직히 이야기하지 뭘 고개를 숙이노? 거 부끄러운 줄 알지만, 그 부끄러운 동기는 어디서 시작되느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그거 뭐 물어 볼 게 어디 있어요? 상식적으로 아는 것인데. 좋은 건 내 것'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예요.

자, 이거 큰일났어요. 세상 사람들이 나쁜 것은 다 싫어하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지요? 「예」 그럼 좋은 것의 주인은 누가 되고 나쁜 것의 주인은 누가 되겠느냐?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져요.

그러면 이런 세계를 하나님이 구하려고 할 때는 하나님이 무엇을 생각해야 되겠어요? '전부 다 좋은 것을 좋아하니 좋은 것은 너희들이 갖고 나쁜 것은 내가 갖겠다' 하지 않고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한테 좋은 것이 있으면 인간들이 전부 다 빼앗아 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그래서 이런 세상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좋은 것들은 너희에게 주고 나쁜 것은 내가 주인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던 끝에 결국….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한 길을 모색하고 그러한 길을 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이 찾아가는 본향 땅이요, 선이 가야 할 길이요, 선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방향과 극반대의 방향으로 섭리하신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참다운 친구 하면 참다운 친구는 어떤 사람이냐? 오늘날 보통 인간들이 바라는 마음과 반대의 입장에서 나를 반겨 주고 나를 대해 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것이라고 하는데 좋은 것이 있으면 그 친구를 위하여 '이것은 네 것이다' 할 수 있는 친구라야 참다운 친구라는 거예요. 전부 다 반대예요.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내가 먹겠다'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인데 '맛있는 것은 네가 먹어라' 할 수 있는 사람, '슬픈 것은 네 것, 좋은 것은 내 것' 이래야 할 텐데 '슬픈 것은 내 것, 좋은 것은 네 것' 이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 선과 악의 차이가 어디서 벌어지느냐? 방향이 전부 다 반대로 돼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반대로 돼 있다는 거예요. 지극히 크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지요? 요즈음 시골 사람들 여름 절기가 되면 말이지요, 오뉴월 삼복 더위가 되면 누런 그 뭐예요? 주먹덩이 같은 거 뭐예요? 참외. 크고 단 참외는 다 좋아하지요? 크고 단 참외. 이걸 사 먹더라도 욕심 많은 녀석들은 큰 것을 집는 거예요. '제발 큰 놈이 단 참외가 되어 다오' 그런 마음 갖고 집는다는 거예요. 크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지요? 아무리 키가 작고 아무리 못났고 아무리 형편 없는 사람이라도 크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그런 것이….

하늘 길

사람들이 전부 다 크고 좋은 것을 원한다면, 하나님이 있단다면 하나님은 제일 조그맣고 나쁜 것을 원하겠느냐? 본래의 사람이 그렇게 원한다면 본래의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났기 때문에, 하나님도 본래는 크고 좋은 것을 원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들이 크고 좋은 것을 찾지만, 그 찾는 자리가 틀렸고, 찾는 목적의 대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 앞에 크고 좋은 것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가치 있는 것을 소개해 줄 책임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종교나 도의 길은 인간들이 바라는 반대의 기준을 가지고 왔고 하늘은 이런 것을 허락해 주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종교는 현실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종교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거예요. 종교는 악의 판도를 무시하고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악은 어디에서 깃드느냐? 자기를 위주로 하는 데에서부터 깃든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싶고,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의 이익과 전체의 선한 것과 전체의 좋은 것을 결부시키고자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심이요 본능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악의 근원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반드시 이 반대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방향을 달리해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향을 달리해서 언제나 작게 하기 위한 것이냐? 방향을 달리하되 그 과정을 거쳐가면 이 땅 위의 어느 사람보다도 더 크고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하늘 길인 것입니다. 크고 좋은 것을 찾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악이 이렇게 찾아왔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 반대의 자리에서 더 큰 것을 찾아 나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류 역사노정을 거쳐 우리 선조들이 자고로 수많은 수고를 해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묶어 나왔지만, 종교세계에서는 벌써 천상천하를 통일시키겠다는 통일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크고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은 종교가…. (녹음 잠시 끊김)

바라고 있는 그 자리와 그 마음 바탕이 하나님과 더불어 동반하지 않고, 지금 말한 것과 같이 선한 자리에 서 있지 않고 악한 권내에 서 있고, 세속적인 권내에서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부정시켜 가지고, 반대로 청산해 가지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청산해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잃어버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전부 다 잃어버려요. 좋고 좋은 것은 전부 다, 지금까지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다 잃어버려요. 그래 가지고 뒤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찾아가는 지금까지의 도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해라, 겸손해라'고 했던 거예요. 그거 좋은 거예요, 안 좋은 거예요? 그건 뭐예요?

천하의 어느누구든지, 더구나 사춘기 시절의 청소년들은 전부 다 '나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최고의 자유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세상의 무슨 뭐 법도적인 제도를 누가 만들었어? 적당히 필요한 그 녀석들이 다 만들었지, 내가 안 만들었다. 나는 이 법도를 무시한다' 하며 천하가 안 무서운 거예요. 전부 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젊은 사춘기 시대의 생활이요, 용솟음치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이념을…. 개인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전체가 아벨권 내에 사로잡혀 있으니, 아벨권 내에 있어서 선한 길을 그냥 그대로 심어 가지고 그것을 번식시킬 수 없으니 하늘이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해 가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적으로 발전시켜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자아를 정복하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최후에 자아를 정복해서 항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항복. 항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거와 같이 악의 근거지, 악의 고향이 어디냐 하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그 악된 인간의 본형을 이루고 있는 자기를 어떻게 정복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늘의 힘을 빌려 가지고 나를 때려잡는 거예요.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를 심판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해봤어요? 타락한 인간이 본래의 참된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좋다는 것을 백이면 백 전부 다 해서는 안 됩니다. 백이면 백 전부 다 부정하고, 그 반대로 싫다는 것을 빨리 실천하고, 싫다는 것을 빨리 내 본성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실천력을 가졌다면 그에게는 빨리 선한 하늘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가까워집니다. 반대로 돼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참된 길을 찾기 위해서는 육의 길을 부정해야

하늘은 창세기로 시작해서 묵시록으로,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창세기에서 시작한 것이 타락했기 때문에 묵시록의 오메가로 끝나는 거예요. 이 가운데에는 거짓과 참이 병행하는 거예요. 그러면 거짓은 거짓으로 가야 되고, 참은 참으로 가야 됩니다. 둘이 갔다가는 영원히 거짓과 참이 갈라지지 않아요. '거짓 너는 그리 가라. 참된 나는 이리 간다' 이렇게 거짓은 묵시록을 지나서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요, 참은 묵시록에서부터 창세기로 찾아들어가 하나님에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어디에서 결판짓느냐? '나'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결판짓습니다. 현실의 나를 중심삼고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 위치에 선 것이 나예요. 역사는 묵시록을 넘어가려 하고, 오늘날 하나님 섭리는 창세기로 끌어들여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묵시록만 넘어서는 날에는…. 오메가의 기준에서 완결지어 가지고 이것이 창세기의 목적과 묵시록이 이루어진 그 기준에 서야 할 텐데…. 그 기준에 화하여야 오메가적 기준이 알파와 연결되고 알파의 출발이 오메가에 열매맺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되는 것인데 여기를 벗어나는 날에는 심판받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있어서 지금 뭐냐 하면 요런 입장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이 그렇다는 거예요. 악과 선의 교차점에 서 가지고 여러분은 창세기로 돌아가야 되고, 악은 묵시록을 쫓아내고 추방하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달고는 들어가지 못해요. 그래서 도의 길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정복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온유해라, 겸손해라, 희생 봉사해라,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좋은 거예요? 그게 좋은 거예요? 그건 나도 싫어요. 나도 원치 않아요. 나도 원치 않는데 여러분도 원치 않겠지요?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할 수 없어서 하는 거지요. 아, 이거 보니 먹물이 묻었다 이겁니다.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이놈을 자꾸 희게 하기 위해서는 꺼풀이 벗겨지도록 비벼야 된다구요. 비벼야지요? 그러니까 붙은 것을 부정해야 되겠다, 지워 버려야 되겠다 이거예요. 지워 보니 지독히 달라붙었거든요? 만약에 가슴에 들어박혔으면 그걸 그저 가슴을 찢어내더라도 전부 다 뽑아 내야지요?

그런데 오늘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으로 죄악의 씨가 물들어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혈통적으로 죄악의 씨가 물들어 있기 때문에, 피가 생명의 원천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동맥이 뛰면 여기에서 피가 흐르지요? 피가 생명의 원천을 이루고 있는데 이 피 가운데 사망의 요소가, 고향의 본질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빼 버리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빼 버리면 한꺼번에 다 죽지요? 수천년 동안 이것을 빼 버리는 조건으로 새로운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빼 버리면 사람이 죽겠으니 사람 대신 양의 피를 빼 가지고 작은 데서 큰 데로…. 이래 가지고 예수님의 피를 뺐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것을 부정하는 혈통적인 조건을 세우는 작용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몸뚱이가 좋아하는 건 전부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 피살을 통해서 움직이는 모든 전부는 선에 근본을 두고 출발된 것이 아니라 악에 근본을 두고 출발한 자체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만 움직여 놓으면 악은 번식 안 한다 이거예요. 이래서 하늘은 부정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도 먹지 말라, 혈기를 버려라, 욕심을 버려라, 정욕을 버려라, 금식을 해라, 자제해라, 전부가 부정이지요? 이렇게 모가지를 딱 졸라매 가지고는 그저 항복을 받고, 그다음에는 가정이고 뭣이고 전부 다 버리고 돌아서라 해서 '예' 하면, 그다음에는 돌아서 가지고 가만두지 않는 거예요. 지금까지 세상에 있어서 저끄러진 모든 죄악의 보응으로서 들이 제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탕감이란 것을 받는 것입니다. 탕감받는 노정이 따른다는 거예요.

악을 청산하려면 양심의 힘을 길러야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뭐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뭘하느냐? 오늘날 이런 싸움의 노정에 있어서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왔지만, 무슨 도, 무슨 종교가 나왔지만 아직까지 세상의 죄악을 청산하는 그러한 종교가 나오지 않았다 이거예요. 악을 청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을 그냥 둬두고 한 모퉁이만 청산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악을 잡아먹는 운동을 해야 되겠어요. 악을 잡아먹는 운동, 응? 이놈의 악의 나라가 한국만하다 할 때 선한 보따리가 세계만큼 크다면 전부 다 포위작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악보다 강한 그 무엇이 없겠느냐? 그 작용만 일으켜 놓으면 악을 소화할 수 있고, 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의 양심에는 말이지요. 여러분 양심이 어때요?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라고 해서 그를 동정하게 된다면 돌아서자마자 '야, 이녀석아! 저 사람도 또 동정해 줘라' 그런다구요. 열 사람에게 좋은 일 하게 되면 백 사람에게 하라고 그래요. 양심이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의 몸뚱이는 싫어하지요? 싸움을 하고 있지요? 양심은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을 편안히 쉬도록 자기 모든 것을 희생시켰더라도 '야 야,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만 위할 것이 아니라 30억 인류를 위해서 또 줘라' 그런다구요. 주는 데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주라고 명령하는 거예요. 이것이 양심의 명령이예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양심이란 것은 어디서 출발하는지 모르지만 좋은 일을 하고 나면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양심이 선을 대해서 하라고 하는 명령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아요? 끝이 없다구요. 끝이 없지요? 그런데 양심이 명령하는 것을 왜 실천 못 하느냐? 요게 문제예요. 그렇지요? 이것은 악의 힘이 이 피를 중심삼고, 이 고깃덩어리를 중심삼고 근거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양심의 명령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터전이 못 돼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빛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이 죄를 사하고, 이 죄를 소화시킬 수 있는 한 가지 해결 방법이 무엇이냐? 그 양심에다가, 지금까지는 다섯만한 양심의 힘이 오늘날 나를 찾아와 그런 명령을 했다면 여기에 열만한 양심의 힘을 더하면 얼마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열 다섯만한 양심의 힘이지요? 그렇게 될 것 아니예요? 만일에 지금의 양심보다도 한 삼사십 배 강한 양심의 힘을 불어넣어 가지고 그 양심의 강한 힘을 통해서 몸뚱이에게 명령할 때 몸뚱이가 부를부들 떨면서 꼼짝달싹 못 하고 그 양심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는 이런 힘을 보충한다면, 아무리 이 세상에 악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선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 양심이 얼마만하나요? 지금의 양심의 힘에 3배 내지 10배의 힘을 가중한다면, 지금 이 몸뚱이에게 '여봐라!' 하면 부들부들 떨면서 '예―예―' 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늘은 그런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은 양심을 통해서 주사를 놓는다는 거예요. 이 주사 놓는 길은 앉아 가지고 밥 먹듯이 쉬운 것이 아니예요. 이 악에 처해 있는 인간인지라 이러한 내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를 전부 다 떼어내려면 내 모가지가 동의를 안 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그냥 두고 정복하기 위해서 하늘은 어떠한 방법을 쓰느냐? 양심의 힘에다가 2배, 3배, 10배의 힘을 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다는 거예요. 그것을 지금 모색해 나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악에 대한 감각성을 예민하게 만들고, 반드시 악을 퇴치시킬 수 있는 원천적인 양심의 힘이 강하게 흘러 들어올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양심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이 고깃덩어리가 원수니 고깃덩어리를 밟아 치우기 위해서, 제재를 하는 거예요. 금식을 해라 하는 거예요. 또 머리를 숙이기 싫어하니 반대로 머리를 숙여라 하는 거예요. 이래서 하늘이 그 양심에 확 불을 질러 가지고 한 10배 이상의 힘만 집어넣는 날에는 문이 열린다구요.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새로운 인생의 혁명이 벌어져 가지고 새로이 느껴진 양심의 힘이 가중돼 들어오게 될 때는, 몸에 잠재해 있고 몸에서 준동하는 이 악의 세력을 제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여기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것이냐! 이걸 하자는 거예요.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들이 그걸 못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양심에다 몇 배의 힘을 가하자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나쁜 것을 생각하게 되면 벌써 냄새가 기분 나빠요. 나쁜 것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요, 구역질이. 이상한 징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되면 빨리 이 세상에서 청산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구요. 본연의 하늘을 찾아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완결지을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악의 근거지인 인간으로부터 다시 한 번 새로운 선의 본향의 출발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이 개인으로,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로 벌어지게 될 때는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천국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양심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악의 번식과 보응을 알아야

그러면 그러한 양심의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주리라'고 했어요. 무지할 때는, 알지 못할 때는, 잘 알지 못할 때는 악을 범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악을 한번 범하면 그것이 미쳐지는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세밀히 알아야 돼요. 잘 알아야 된다구요. 또 악이 번식해 나가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아야 돼요. 이렇게 하면 악이 이만큼 번식해서 나를 사로잡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엔 그 악을 대하게 될 때 악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고, 악이 어떻게 번식한다는 것을 알고, 그 악으로 말미암은 보응이 어떻게 크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즉, 악의 동기와 악의 결과가 자기 생애와 영생의 노정에서 얼마만큼 지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또, 그것을 아는 동시에 선이 미쳐지는 그 가치와 그 내용과 그 위대함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비교해 보게 될 때에 그것이 직접적으로 내 마음에서 비교가 됩니다. 내 마음이 감정해 가지고 실질적인 생활무대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도나 선을 지향하는 크고 작음의 여하를 실질적 생활권 내에서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악을 제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걸 만들자는 거예요. 그래서 진리를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와 더불어 실천하게 되면 그 양심은 계발돼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래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역사적인 인연 가운데 죄악의 터전이 된 여러분 자신을 정복하고, 정복된 자기의 실체를 세워 가지고 가정의 악, 사회의 악을 전부 다 소화시켜 버려야 됩니다. 병이 난 사람은 죽을 먹어도 체하지요? 건강한 사람은 돌을 먹어도 삭이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 양심이 병들었으니 건강한 양심이 되어 가지고 양심이 주체성을 확립하게 될 때 몸은 그 양심을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연의 기준에서 자리잡아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방향만 일치되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과 우리 인간이 바라는 목적,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우리 인간이 가는 방향이 일치만 되면 그 사람은 혁명이 벌어집니다. 즉 인간개조가 되는 거예요. 근본적인 인간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옛날에 자기가 술을 먹고 악한 행동을 했다면 '아,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살았다니 꿈같은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구요. 아무리 내가 담배를 하루에 열 갑씩 피웠더라도 손가락을 갖다 대면 구역질이 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술을 먹고 나게 되면 속이 뒤집어지는 거예요. 토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작용이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왜? 악과 선은 공존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의 힘이 악보다 강할 때는 악을 판단해서 제거시키는 것이 선이 행하는 규범이예요. 악이 강할 때는 선을 제거하는 권한을….

이 싸움 노정을 끌고 끌고 지금까지, 이것이 사회화가 되어 가지고 악이 중심된 세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서 무산시켜 버리고 새로운 선이 주동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악을 소화하고, 악을 제거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세계와 혹은 하늘땅을 만든다면 그것이 곧 천국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통일교회가 귀하다는 겁니다. 여기에 양심적인 힘을 가하고 혹은 사정이나 소망이나 희망을 가지고 나가는 거예요. 그 희망은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희망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소망을 갖고 나간다 이거예요.

또, 사정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겁니다. 다르지요? 「예」 또, 심정이 달라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거예요. 소망이 다르고 사정이 다르고 심정이 달라지니 생활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가정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인연을 맺으면 옛날에 가깝던 친구가 다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꼈어요? 그저 통일교회 간다면 무척 싫어하지요? 그건 왜? 자기와 같은 동료였는데 원수의 입장이 되니 싫어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여기 오게 되면 말이지요,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들보다도 통일교회 식구들이 더 가까워요. 그래요?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보다도 선생님이 더 가깝다는 거예요. 그래요? 「예」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이 더 가깝거든요. 그래요? 「예」 그런 실감이 안 나면 안 돼요. 와 앉으면…. (녹음이 잠시 끊김)

자기 어머니가 제일인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가 제일인 줄 알았더니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그 이상의 양심의 충격을 가하고 그 이상의 양심의 힘을 가해서 지금 인간이 바라는 이상의 소망하고 인간의 엉클어진 이상의 사정을 가져 가지고 이상의 심정을 노래하면서 이상의 선을 위주해서 살 수 있는 기준을 소개해 주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런 거 느껴 봤어요?

그다음엔 여기 들어오면, 우리는 식구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사랑하던 자기 형제보다 낫고, 부모보다 낫습니다. 부모 아닌 부모를, 형제 아닌 형제를 누구보다도 더 가깝게, 누구보다도 더 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거든 보따리 싸 가지고 그런 곳을 찾아가라구요.

통일교인은 선을 위해 하늘 앞에 나선 용사

하늘의 힘을 얻었다면, 그 힘으로 땅을 치면 땅이 갈라지는 거예요. 그러고 다니라구요. 힘으로 공격하면…. 오늘날 인공위성이 지구를 몇 바퀴 도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쉬─익─ 하나의 구멍이 뚫어지는 실감이 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확 쓸면 세계 만물은 한꺼번에 다 쓰러진다 이겁니다. 원수가 있으면, 한 칼로 치면 억천만인이 한꺼번에 쓰러진다구요. 그런 실감이 나는 거예요.

석가모니 같은 양반은 그런 순간적 경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했던 거예요. 태양을 부르면 태양이 대답하고, 하늘땅의 만민을 부르면 만민이 환영해 주고,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잘도 생겼지. 우리 엄마는 잘도 생겼지. 우리 식구들은 잘도 생겼지. 천하에 곱지 않은 사람이 없고, 천하에 잘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말이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러기에 암만 얼굴이 찌그러졌어도 그 자체에 미가 더 있더라 이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들이 병신 자식을 더 사랑하는 거예요. 그저 곱다고 빨고 그러는 거예요. 자식을 보면 뭐 메주 덩어리같이 생겼는데 그 어머니에게는 곱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심정의 얼굴, 심정의 메가네(めがね;안경)를 끼고 보면 천하에 자기 자식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을 느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의 마음에 그렇게 그리움이 있어요? 그리움이 있어요?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그래요, 마음이. 마음이 그렇게 돼 있어요. 마음이 가고 싶고 마음이 살고 싶은 곳, 하루 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고 싶은 곳….

영계는 그래요. 요만한 돌 같은 것을 하나 들여다보게 될 때, 천년을 들여다보더라도 싫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같은 것을 하루만 봐도 싫지요? 「예」 무한한 세계라는 거예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세계다 이거예요. 시계 같은 것을 바라봐도 우주가 여기에 깃든다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인연의 세계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멋진 세계를 잃어버려 가지고 밥 짜박지, 옷 짜박지, 집 짜박지를 찾아서 허덕이는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가 말이예요. 이것은 다 구정물이예요. 흘러가는 구정물이라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니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삼아 가지고 악을 미워하고 선을 위하여 하늘 앞에 나선 용사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자가 돼야 되겠습니다. 이러면 누가 나를 끌어갈 자가 없다는 거예요. 하늘을 향하여 나갈 길은…. 그곳에 가려고 하면 말이예요, 다리가 아파요.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앞에 쓱 가게 되면,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옆으로 쓱 지나가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냄새 맡고도 알고, 발자국을 보고도 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걸 모르겠어요? 양심의 힘이 주파수로 말하면 고차적인 주파수와 같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척 대해 보면 벌써 안다는 거예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서 여러분이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복하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더우기나 한 때는 반대의 길로 자꾸 가야 돼요. 몸이 원하지 않는 반대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것이 이렇게 될 것인데 뒤집어졌으니 뒤집어진 것을 반대로 뒤집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력으로 할 수 없으니 하늘의 힘을 의지해야 됩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하늘은 95퍼센트의 힘을 가해 주기 위해서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박자만 맞춰 가지고 거기에 가동할 수 있는 문만 열어젖히면 95퍼센트의 힘을 얻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양심에 몇십 배 이상의 강한 힘을 얻는다구요. 그러한 양심의 힘을 가져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르면 대답이 온다 이 말입니다. 양심이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차원 높아진 양심의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르면, 일문일답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버지' 하면 대답이 오는 거예요. 내 소원성사의 모든 요건은 여기서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심은 그렇게 안 돼 있지요? 「예」 이것이 다 무디어지고 뭉그러졌으니 여기에 힘을 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아를 정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런 것을 표어로 삼고 나왔어요.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자아를 어떻게 정복하느냐? 큰 싸움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지금 머무르고 있는 악의 터전을 뭉게 버리고 선의 터전을 어떻게 넓혀 나가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어요. 전부 반대의 길을 가야 됩니다. 이 입이 먹고 싶어하거들랑 먹이지 말라 이거예요. 굶는 연습을 하라는 거예요. 이 귀가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할 때는 제일 나쁜 소리를 들어야 돼요. 아주 고상한 음악, 꽹과리 소리는 듣기 좋아하지만 대개 찬송가 소리는 듣기 싫어해요. 그저 젊은 놈들은 유행가를 해야 좋아서 흥흥 하지만 찬송가는 다 싫어한다는 겁니다. '구주 예수…. 성―신…' 이거 다 싫어한다구요. 전부 다 반대를 모색해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양심의 문이 열리는 거예요. 뭐 맛있는 것이나 자극적인 것을 먹기 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자극 없는 것을 먹어야 됩니다. 전부가 그런 훈련을 해야 돼요. 방법은 그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찾아가는 길은 부정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결론이예요. 알겠지요? 「예」 그건 왜? 악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그 자체를 그냥 두면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돌아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중 수도니 수양이니 뭐니 하는 것도 몸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 양심의 터전을 넓혀 가지고 선한 하늘의 생명력을 받게 될 때는 내 몸의 모든 요건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알겠지요? 「예」 요것만 안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생의 행로가 출발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양심의 도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 우주의 모든 감도가 전파되는 거예요. 전파가 들어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다 들어온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그 양심을 들여다보면 전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멋진 가치의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인류역사는 통일된 세계를 향해 나간다

통일교회의 원리를 통해서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그것이 가능하냐 이거예요. 가능치 않거든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는 겁니다. 그런 걸 찾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가능해요? 「예」 가능하다구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전도 내보내고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여러분도 물론 가려고 하지만 선생님이 가중된 명령을 해 가지고 빨리 행동을 개시해 가지고 한 고개라도 빨리 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망이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하나님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이 되고, 하나님의 심정이 여러분의 심정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 3대 요건이예요. 첫째는 뭣? 「소망」 둘째는 뭣? 「사정」 세째는 뭣? 「심정」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망이 일치돼 가지고 그 목적과 방향이 일치하는 날에는 누구나 다 천국 갈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왕녀가 될 수 있고 왕자가 될 수 있다 이거예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전부 다 다르지요? 천만인을 불러 놓고 보더라도 악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전부 다 소망이 같질 않아요.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는 통일의 소망을 위해,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예요. 세계의 모든 민족의 문화배경이나 습관이나 풍습, 혹은 그 나라의 전통이나 모든 사상이 전부 다르지요? 사정의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심정이 전부 다 달라요. 전부 다 자기 중심삼은 심정을 노래하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이 되지 않고는 그러한 세계를 찾지 못한다는 겁니다. 통일의 세계, 천국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니, 역사도 그것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니 묵시록으로 넘어가지 말라구요. 묵시록으로 넘어가지 말고 창세기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우리에게는 오메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알파가 필요하다 이거예요.

하늘을 중심삼고 생활과 행동과 이념과 심정을 통일해야

자, 악의 본향이 어디라구요? 「내 몸」 악의 본향은 몸뚱이예요, 몸뚱이. 나의 고깃덩어리라구요. 선의 본향은 어디라구요? 보이지 않는 양심입니다. 선의 본향인 이 양심이 무력해졌어요. 무력해졌다구요. 무력해져 가지고 이 몸뚱이를 지배할 수 있는…. 명령을 하는데 행동을 같이 못 해요. 행동은 같이 못 한다 이거예요. 본심이 천 번 만 번 명령을 해도 이 몸뚱이가 드세고 악하기 때문에, 전부 다 무시해 버리고 발로 밟고 언제나 이 몸이 명령을 안 듣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강한 힘을 주입시켜 가지고 이 마음의 힘이 몸뚱이를 죽여 가지고 몸뚱이를 밟고 넘어서서 주관할 수 있는 능동력을 가해 주면 여기서부터 본성의 길이 되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고깃덩어리를 전부 다 때려잡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는 거예요. 통일교회 들어오면 금식하지요? 내가 배고프더라도 체면이고 뭣이고 형편이고 사정이고 일시에 다 무시해 버리고, 그저 지지리 욕을 먹고 쫓김을 받더라도 전부 다 이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서 나가는 거예요. 자기 혼자 하려면 힘들어요. 그저 뒤에서 때리고 쥐어박고…. 그렇지만 '한대 맞고도 참아라. 억울해도 참아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전부 다 거기에서부터 그것을 죽이고 양심을 크게 하는 작전인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걸 보면 하나님이 어떤 때는 참 잔인해요. 가기 싫은데도 내몰거든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잖아요? 그건 본성이 그러했기 때문이예요. 할 수만 있으면' 그것은 자기 뜻이예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할 때는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고생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하는 것이지요. 할 수 없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끌고 나간다 이겁니다. 알겠지요? 「예」

생각부터, 생활태도부터, 행동부터 고쳐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활통일을 말하지요? 그다음에는 행동통일을 말하지요? 「예」 올라가는 거예요. 그다음엔 이념통일을 말하지요? 또 심정통일을 말하는 거예요. 에덴동산에서 행동통일이 됐어요? 하나님하고 행동통일이 됐어요? 자기 중심삼고 행동통일이예요? 뭣 중심삼고 행동통일이예요? 「하나님」 하나님 중심삼고 행동통일 안 됐지요? 「예」 그다음에 생활통일도 하나님 중심삼고 통일했어요? 못 했지요? 「예」 그다음엔 이념통일, 이념이 하나님과 일치했어요? 「못 했습니다」 그다음에 심정이 하나님과 일치했느냐 말이예요. 「못 했습니다」

통일은 나에게서부터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중심삼고 생활과 행동과 이념과 심정통일을 이룩해야 됩니다. 이 고깃덩어리는 원치 않아요. 때려 가지고 정복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 이 길을 어떻게 빨리 가느냐에 따라 가지고 세계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이 되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악의 본향 땅은 고깃덩어리요, 선의 본향 땅은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일선 초소는 양심이요, 사탄의 일선 초소는 몸이예요. 공산당의 일선 초소는 판문점이요, 민주세계의 일선 초소는 어디예요? 「판문점」 판문점이예요. 한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네가 잘했느냐, 내가 틀렸느냐?', '하라, 말라' 하고 싸우고 있다 이겁니다. 이 양심의 싸움이 세계화되어 가지고 지금 이렇게 돼 있습니다.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지배해야 되는데 사탄이가…. 거꾸로 돼 있지요? 그렇지요? 「예」 그것이 열매맺힌 세계다 이겁니다.

내적인 민주세계에 공산당을 소화시킬 수 있고 그것을 짓밟고 넘어설 수 있는 힘만 가해 주면 세계는 통일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마음이, 내 자체가 선악의 근거지가 됐기 때문에 마음을 통하여 몸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인은 정복당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삼팔선도 빵 깨져 나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통일은 어디서부터? 「나에서부터」 삼팔선서부터가 아니고 나에게부터예요. 세계의 통일이 어디서부터? 「나에서부터」 나 하나 통일시키는 그러한 이념이 안 나오걸랑 세계를 통일시킬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왜 나왔느냐? 통일교회의 '통' 자는 지배받을 통 자예요,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거느린다는 게 뭐예요? 무능력한 자가 거느릴 수 있어요? 말 안 들으면 '요 자식!' 하고 들이 패고 밟고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통일이라는 것은 '거느릴 통'이예요, 거느려 가지고 하나 만드는 거예요. 양심이 자기의 주권적인 위치를, 즉 주체성을 갖추어 가지고, 상대적인 몸을 거느려 가지고 하나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 못 만들었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어디 있느냐, 악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할 때, '저 녀석이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녀석이다 이거예요. 내 몸뚱이는 악의 선조들이 남겨 놓은 악의 세계적인 주식회사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또, 내 양심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선의 세계적인 주식회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은 명령하기를 하루에 천 번 만 번 선한 일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이건 끝이 없다는 겁니다. 열 번 하면 백 번 하라고 하고, 백 번 하면 천 번 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냐?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선이 지향하고, 선이 점령할 분야가 하늘땅 전체인 동시에 나중에는 하나님까지도 점령하려 한다는 거예요. 그래 놓고도 기뻐 안 한다 이거예요. 양심이 어느때에 '아이고 기쁘다' 하고 쉴 것 같아요? 양심이 언제 안식할 것인지 생각해 봤어요? 이 양심은 안식할 줄 모른다 이거예요. 하나님을 점령해도 안식 안 한다는 겁니다. 쉬지 않는다는 거예요. 싸우는 겁니다.

뭐까지 하려고 하는지 알아요? 이 양심은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도 편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까지 자기 것 만들어야 쉬느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점령하고 나서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고서야 쉰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라는 말이 없다는 거예요. 양심이 목적하는 기준이 그곳까지 가는 거예요.

그러면 타락한 인간은 그곳까지 가는 거리가 얼마나 머냐? 그 먼 거리를 가려면 세계를 전부 다 주관하고 세계와 인연맺고 가야 됩니다. 그런데 양심이 7,8십 년의 타락한 인생행로에서 이 세계의 인연을 맺을 도리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천만번 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 쫓아 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면 전부 다 인생행로에서 승리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길을 소개하고, 그러한 길을 개척해야 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예」

십자가의 길을 넘으려면 피땀을 흘려야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아담가정에서부터 쭉 복귀노정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 세계가 나오는 거예요. 그 세계가 나오는 거라구요. 그 세계가 나오기 위해서는 골고다를 넘어가야 됩니다. 십자가의 길을 넘어가고 열두 고개 이상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으려면 내가 피땀을 흘려야 됩니다. 이 몸이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해야 돼요. 개인을 통한 고통, 가정을 통한 고통, 종족을 통한 고통, 민족을 통한 고통, 국가를 통한 고통, 세계를 통한 고통, 천주를 통한 고통, 하나님에 대한 고통까지 모든 고통을 내가 책임져 가지고 상속받아 하나님을 안식시킬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인간으로 왔던 본연의 모든 책임을 완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예」 이런 단계를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발전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개인적인 십자가의 시대, 가정적인 십자가의 시대, 종족적인 십자가의 시대, 민족적인 십자가의 시대, 국가적인 십자가의 시대를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의 시대는 민족적인 십자가의 시대를 넘어서 국가적인 십자가의 시대를 끌고 넘어가는 시대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이 국가적인 기준에 있어서 우리 통일 정신이 삼천만 민족의 힘보다도 우세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우세하지 않고는 지배할 수 없어요. 넘어갈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높이가 백 미터 되는 산을 넘어가려면 백 미터 되는 산을 넘어갈 수 있는 힘보다 작아 가지고 넘아갈 수 있어요? 「못 넘어갑니다」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강해야 돼요. 에베레스트산을 넘어가려면 그보다도 강한 힘이 있어야 돼요. 오늘 이 사망을 능가하려면 강한 힘이 있어야 돼요. 통일교회는 그런 강한 힘이 있어요? 너 강한 힘이 있어? 얼마만큼 강해? 뜻을 위해서 목을 잘라도 갈래요? 「예」 갈래요? 「예」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 희생해야

이것은 뭐예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원주」 원주가 뭐예요? 「'언덕 원(原)' 자 '고을 주(州)' 자입니다」 언덕골이지요? 풍상이 많구만요. (웃음) 골 하게 되면 무슨 삼태기같이 들어간 데, 골 같은 기분나지요? 언덕골이지요, 더군다나? 풍상이 많아요, 원주는.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놈의 원주는 이름이 그래서 풍상이 많은 고을이예요. 풍상이 많기 때문에 교회도 허물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허물어졌어요? 허물어졌어요? 「예」그래, 허물어졌는데 가만 보고 있나요? 「지으렵니다」 왜, 지금까지 비어 놓았노? 교회를 어떻게 비어 놓았노? 사람이 이렇게 많아 가지고 흙 조각 하나씩 떠다 붙여도 지을 텐데. 그건 무책임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서 뭘할 거예요? 여기 지역장이 죽으면 시체를 그냥 놔 둘 거라. 병이 나서 앓겠으면 앓고 말겠으면 말고,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집에 금이 갔는데 가만히 있으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변하는 집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예요. 안 그래요? 알긴 알았어요? 여러분들도 알긴 알았어요? 응? 「예」 왜 못 고쳤어요? 돈이 없어서?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돈 만들어 썼어요, 언제? 그건 편의상 만든 거예요. 주먹으로 다하는 거예요, 주먹으로. 흙이 없니, 돌이 없니? 왜 못 하느냐 말이예요. 눈들이 시퍼래 가지고. 여러분들은 모두 구경꾼이예요. 전부 다 구경꾼들이다 이겁니다.

그렇게 살아 가지고는 절대 하늘 앞에 못 가는 거예요. 이 집은 여러분의 몸뚱이보다도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왜? 여러 사람의 집이거든요. 그런 뭣이 있어요. 하늘 가는 길도 마찬가지예요. 공적인 것을 자기 것보다도 더 중요시해야 발전합니다. 그렇게 되지요, 전부 다? 나는 나보다도 가정을 위하여 희생해야 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희생해야 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해야 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해야 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희생해야 되고, 세계는 하늘땅을 위하여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이 지향하는 방향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것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더 큰 것이 작은 것보다 공적이예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러면 교회서 일할 때는…. 여러분 집 같으면 아마 여러분이 책상 깨지고 그랬으면 그거 다 해놓았을 거예요. 책이 찢어졌으면 잘 붙여 놨을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런 사상을 근본적으로 빼 버려라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당장 일주일 내로 고쳐 놓으라구요. 알겠어요? 「예」고칠래요, 안 고칠래요? 「고치겠습니다」 고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모두 손듬) 사람들이 이렇게 디글디글 많아 가지고 뭐예요, 이거! 내리라구요. 아마 자기네 집이 빵구가 났으면 다 고쳤을 거라구. 이런 것들이 순회오기를 바래? 내가 그따위 소문 듣기 위해서 온 거 아니라구. 내가 벌써 한 달 전에 들었어요. '이놈의 자식들, 내가 소리 없이 한번 가 보자, 어떻게 해놓았는지' 하고…. 그래 가지고는 안 돼요. 그런 사상 가지고는 나라 팔아먹지요. 안 된다 이거예요.

지금 말했듯이 자기 것보다 더 큰 것이 더 공적이예요. 나보다도 가정이 더 공적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돼요. 친척이 가정보다 공적이기 때문에 가정은 친척을 위한 가정이 돼야 돼요. 이 종족이라는 것은 민족보다 작은 것이니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그 민족은, 수많은 민족은 그 나라의 주권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나라가 더 공적이라구요. 세계의 공법은 이 대한민국의 국법보다 더 공적이예요. 하늘은 이렇게 본다 이거예요. 하늘땅의 이치라는 것은 세계의 어떤 국제법보다도 더 공적이라구요. 선이 이끌어 나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방향을 따라가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요 몸보다도 무엇이 더 공적이예요? 마음이 더 공적이지요? 「예」 마음은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중앙이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희생해야 됩니다. 이게 안 되거든 여러분들이 이런 사상을 길러 가지고 가야 본향 땅을 찾아간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럼 빨리 고쳐요! 자기 뜻에 자기를 완결 못 지어 가지고는 교회를 책임질 수 없어요. 교회를 위해서 책임 못 하게 되면 나라를, 나라를 위해서 책임 못 하게 되면 세계를 책임질 수 없어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녀석이 하늘의 사랑을 받들 수 없습니다. 부모 앞에 효도하지 못하면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연결되는 거예요.

활발하게 움직이면 살지만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의 있어요? 「없습니다」 이의 있어요? 「없어요」 이제부터 들이 족칠 거라구요. 여러분들을 가만 놔 둬서는 안 돼요. 잡아다가 들이 족쳐 가지고 들이 몰아 가지고…. 가 보면 알거든요, 가 보면.

그래서 지금 이 통일교회를 볼 때, 선생님 명령을 듣고 한 3년 동안 나가서 뒤넘이치며 움직인 사람은 천하가 부럽지 않아요. 어디를 가더라도 그 사람은 통일의 깃발 아래, 깃발을 꽂고, 그곳을 지켜 가지고 거기서 호령해 가지고 수많은 군중을 놀라게 하든가, 혹은 수많은 군중의 갈 길을 가르쳐 주게 돼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기운이 빠져서 싹 쓰러진다는 거예요. 죽은 것은 점점점 시들어 가는 거예요. 포플러 나무를 여름에 떡 잘라 내면 한꺼번에 오싹 죽어요? 그래요? 푸르던 잎사귀가 바삭바삭해져요? 「아닙니다」 며칠 가야 돼요? 일주일도 가고 한 달도 갈 수 있는 거예요. 소리 없이 시들어 가는 거예요. 언젠가는 내가 이렇게 된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것은 발전하는 거예요. 여러분, 곡식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되면 맨 처음에 나올 때는 요렇던 것이 언제 자랐는지 모르게 자라지요? 「예」 자라는 것 봤어요? 「못 봤습니다」 못 봤지만 자랐다는 말이예요. 소리 없이 자라거든요. 살아 있는 것은 자라는 것이요, 죽어 있는 것은 퇴폐해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들어올 때의 그 기쁨이 점점 자랐어요? 자랐어요, 시들어졌어요? 「자랐습니다」 자랐어요, 시들어졌어요? 「자랐습니다」 자랐어요, 시들어졌어요? 「자랐습니다!」 자라긴 뭐가 자랐어요?

악을 청산하는 주인공이 되라

맨 처음에 들어와서는 교회 안 오고는 못 견디겠지요? 하루에 두 번 세 번까지 오는 거예요. 선생님의 기록 가운데는 하루에 일곱 번까지 온 사람이 있어요, 일곱 번까지. 알겠어요? 곧잘 왔지요? 안 오고는 못 견디는 것입니다. 집에 가 보면 떡이 생겼다 이거예요, 아이구, 어서 갖다 줘야지. 가 보니까 또 과자가 생겼다, 아이구, 갖다 줘야지. 또 누가 뭘 가져왔다, 또 갖다 주고…. 좋은 것은 내게 두고 싶지 않아요. 좋은 것은 아버지 갖다 주고 싶지. 그렇지요? 세상에서도 그래요. 좋은 것은 그 나라의 주인 앞에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게 마음이예요. 마음이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세상의 악한 사람들은 전부 다 '좋은 것은 나' 이렇게 됐지요? 이건 악이예요! 악의 근거지는 거기예요. 나를 위주하는 자는 악이요, 전체를 위주하는 자는 선입니다.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요? 「예」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러면 악질분자가 누구냐? 자기를 위주하고, 자기 배를 위하고, 자기 감정과 자기 편리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은 악당이예요, 악당. 선당은 무엇이냐 하면 전체 동료를 위해서, 전체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대번에 차별되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여러분이 빠른 시일 내에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 놓아야 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자기 스스로의 탕감조건을 세운 뒤에는 교회를 위해서 봉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나가서 전도하고 그러는 것이 다 누구를 위해서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누구를 위해요? 선생님을 위해서 하지요? 「하나님」 누구를 위해서? 선생님을 위해서 하지요? 「하나님」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지요? 「아닙니다」 뭐가 아니예요?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나를 위해 가지고 완전히 나를 위한 그 기준이 되거든 그냥 그대로 백 퍼센트 상속이 되는 거예요. 완전한 것을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알고 남아진 복귀노정에서 여러분들이 악을 청산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 가지고, 아버지 앞에 힘차게 달려가 가지고 자기의 탕감조건으로부터 민족 국가 세계의 탕감조건을 넘어 세계 앞에 봉헌하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잠시 쉬자구요.

잠자고 싶지요? 잠 안자고 버텨 가면서 이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 밤이 그리워 죽겠지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해요? 그러나 버티고 앉아서 참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매를 맞으면서 뼈다귀가 부러지는 자리에 들어가서도 참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아야, 아야!' 그랬어요? 성경에 그런 말 있어요? '아야! 아이구' 그랬어요? (웃음) '이놈의 몸뚱이야, 너는 들이 맞아라! 만민의 몸을 대신해 내가 못박혀 주마' 이래 가지고 말 없이 못박혔다구요. 자기를 어린양으로 비유했지요. 그렇지만 그 고통을 마음이 제압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늘 앞에 효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피흘리는 그 몸뚱이로 '나는 효자가 되겠나이다' 하고 엄숙히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기도 해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원수가 많지요? 선생님에게는 원수가 많아요.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나는 그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그 원수들이 들이 몰았기 때문에 선생님 몸뚱이가…. 몸뚱이를 들이 갈겼기 때문에, 원수를 시켜서…. (이후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오늘 저녁이 지나면 여러분들은 오늘과 다른 입장에 서 있을 것입니다. 내일이면 서울을 중심삼고 삼지사방으로 가야 되는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은 여러 가지로 느끼는 바가 많을 줄 알아요. 어떤 사람은 올라올 때보다 새로운 내가 되어서 '이제부터 내 생애노정이 변경될 것이다' 그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아직까지 어떤 결심을 하지 못하고 중간 상태에서, 이럴까 저럴까 하는 과정에서 내일의 희망을 힘차게 지니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백 명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이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의 사정과 그 입장에서 여러 방향이 벌어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크나큰 사명을 감당해 주기를 바란다면 과연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할 것이냐, 혹은 어떤 사람과 같이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많이 염려도 되면서 기대도 할 것입니다. 나도 역시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내 얘기를 하나 하지요. 내가 이 길을 나서게 될 때는 여러분보다 더 나이가 어릴 때입니다. 스무 살 전에, 그때에 이 길을 출발한 거예요. 그때는 천진난만한 그런 시대였습니다. 좋은 무엇이 있으면 그 좋은 것을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또 동네에 조금 색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보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아주 강한 때였어요.

그런 시절에 이 엄청난 하늘의 뜻을 알고 천적인 대명을 받들고 나서는 그날부터는…. 이 엄청나고 큰 것을 하나님이 약속함과 동시에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가야 할 자신은 그 큰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대로 그것을 삼킬 수 있는 자기 스스로가 못 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탱하기에 너무나 크고, 그것을 받들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자기 스스로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에 놓여진 큰 목적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그 목적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 책임을 어떻게 하느냐? 그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에게 맡겨진 생활과정에 있어서 내가 담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감이 얼마나 지중한가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느끼는 분야가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어서 민족ㆍ국가ㆍ세계까지 뻗어 나가는 거예요.

그런 사명이 크면 클수록 그 큰 내용의 뜻을 내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그 큰 분야에 대하여 내 스스로 뗄래야 뗄 수 없게 자기 자신의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누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예요.

그 관계 맺는 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관계된 것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양이 커 가면 커 갈수록 그때서부터 점점 그 목적에 대하여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출발이 벌어진다고 봐요. 그 기준이 서 있지 않고는 아무리 목적이 크고 아무리 약속된 소망이 크다 하더라도 그 소망은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소망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 목적을 대하는 데 있어서 기쁜 면에서 내가 즐거워할 수 있는 그날보다 그 목적에 대한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 슬펐던 역사적인 사실을, 그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투쟁노정에 있어서 희생될 그 분량이 클 것인데 거기에 스스로 어떻게 적응하고, 그 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모든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미래의 어려움이 비례적으로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현실적 분야에서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구요. 그 문제를 느끼면 느낄수록 미래에 대한 소망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현실에 있어서의 인연과 관계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는 먼저 하늘이 어떻다 하는 것을 알고, 하늘이 오늘날 어떤 사정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늘이 그 사정을 가지고 오늘날 자기를 세워서 이 땅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하는 사실을 알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기간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생애노정을 개척해야

그런 기간을 거쳐 가지고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이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다,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준은 과거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그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옛날에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천명을 받았을 때에도, '나는 이 명령을 위해 가야 되겠다'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120년을 넘을 수 있는 결의를 했기 때문에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고역의 과정을 거쳐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천명을 받들어 가지고 그 천명을 대신하여 그들 앞에 스스로의 입장을 세워서 '나는 가야 되겠다' 하는 결의를 한 것입니다. 그 결의가 생애의 어떤 어려운 역경보다, 부딪쳐 오는 어떤 환경의 어려움보다 컸기 때문에 그 환경을 참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가 가지고 4백년 동안 고역하는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이 지녀야 할 긍지가 무엇이냐, 4백 년 고역도 해야 되겠다 하는 신념이 컸던 민족이 되었더라면 그 4백년이 복지 창건을 할 수 있는, 전통적이요 사상적인 터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40년 미디안 광야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그 충절의 마음, 선민을 사랑하는 그 마음, 선민의 소망과 선민의 나라를 흠모하는 그 마음의 힘이 이스라엘 민족 이상컸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는 만민을 구속하기 위하여 온 메시아의 입장에 서 가지고 그 메시아의 엄숙한 사명을 받들게 될 때, 현실적 입장에 처해 있는 그 자신이 크나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내적인 인연과 관계를 철석같이 맺고 있다 하는 그 분량이 외적으로 바라보는 소망의 분량보다 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밀려오는 외적인 시련무대가, 그 목적 성사를 위한 시련무대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내적으로 결의한 그 관계와 인연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상은 반드시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제삼자가 문제가 아니예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사회의 악한 모든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세계가 아무리 사망의 물결에 사무쳐 가지고 탄식과 절망 가운데서 절규하는 그런 상태에 있다 해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러분 자신, 자체가 문제예요. 과연 나는 내 자신이 내일을 약속할 수 있고 내일을 보장시킬 수 있는 스스로의 그 입장을 결정했느냐? 이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예요. 오늘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미래에 소망을 세울 수 있는 스스로의 각오와 스스로의 결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원천, 원동력적인 기준에 서 가지고 부딪치는 그 실체 앞에 내가 패하는 자가 되느냐, 승리하는 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를 어디에서 결정하느냐? 자기로부터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젊은 청춘들이예요. 이제부터의 생애노정을 개척해야 됩니다. '얼마나 살 것이냐?' 하고 여러분은 생각할 때, '아, 나는 백 살을 살면 좋겠다'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좋다는 거예요. 사는 건 좋은데 사는 데는 어떻게 살 것이냐? 여기에는 천태만상이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이냐? 나쁘게 살 것이냐, 좋게 살 것이냐? 혹은 귀하게 살 것이냐? 빛나게 살 것이냐? 천태만상이예요.

그 살기 위한 모든 환경이라는 것이 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주체성을 가진 나로부터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도 좋은 것만으로 연결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예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슬픈 것이 먼저 오는 것이 인간 세상의 생활, 복귀섭리의 과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의 길

그러면, 오늘 결의한 내 자체는, 동기의 주체성을 지녀야 할 내 자체는 미래의 크나큰 소망을 지니고 가야 할 내 자신이라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알고, 그런 신념 가운데 서 있고, 그와 같은 사명을 해야 된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것을 기쁜 자리에서 거둘 것이냐, 슬픈 자리에서 거둘 것이냐? 길이 둘이라구요. 만약에 좋은 길을 통해서 그 뜻을 따라 목적 성사의 길로 나갔다 하면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돌아야 할 때는 반드시 나쁜 길로 연결이 됩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이것이 좋은 길로 성사되는, 좋은 길로 자기의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길로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이 영원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되돌아오는 거예요. 되돌아오는 데에는 더 좋은 길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으면 내려가야 되더라 이거예요.

그 반면에 나쁜 길로 이 길을 개척하여 끝까지 목적 성사의 표준을 향해 나갔다면 이것이 돌아오는 데는 어떻게 되느냐? 반드시 꺼꾸로 돌아와요. 여러분이 이제 그런 시점에 놓여 있다구요. 가는 데는 대다수의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나쁜 것은 원치 않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소원성취 일념을 통한, 그 방향이 일치될 수 있는 면만이 나에게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은 가다 보면 반드시 자기도 모르게 돌아서 내려오는 길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이 여기에서 달라지는 거예요. 세상이 가는 길은 오늘 현실 무대를 중심삼고 즐거워하면서 가는 길인데 가다 보면 그것이 그것으로 열매맺어 가지고 영원히 자기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터전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가다 보면, 가다 보면 결과에 가 가지고는 절망의 종착점을 소개해 주고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리어 출발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다는 한탄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만사의 일이예요. 그것은, 만약에 살아생전에 이렇게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종시에 가서, 임종시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종하고 난 후에라도 반드시 결말적으로 오는 것이 천리예요.

그러면, 오늘날 도의 세계나 하늘을 추앙하고 가는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는 것이냐? 내가 가는 데에는 필시 거슬러 발전해 올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길을 바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길에서 더듬어 가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반대의 길을 걸어 가지고 까꿀잡이로 돌아 올라갈 수 있는 길을 가자 하는 것이 도의 길이예요.

그 길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예요. 세상은 나를 환영하는 길에 섰지만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 길은 그 반대의 길이예요. 그러니 환영하는 길이 아니예요. 나를 배척하고 나를 멀리하는 길에서 일을 실현시켜 나간다 이거예요. 나가다 보면 그것이 옳은 길이면 길일수록, 선한 길이면 길일수록 그것은 반드시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종착점은 분산이 아니라 통일적인 방향으로 거쳐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길을 거쳐 나감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적인 일은 반드시 점점점 향상할 수 있는 결과로 벌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았다구요.

바늘 하나의 소중함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무슨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그게 연구 거리예요. 선생님에게 이런 때가 있었어요. 선생님이 4월 7일에 쇠고랑을 차고 평양감옥소에 갔는데 소망 가운데 찾아갔다구요. 이 과정을 거쳐 나가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참으로 궁금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안 되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퍼센트로 볼 때 70퍼센트 이상은 이렇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천리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이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그 가는 길은 지금도 인상적이예요. 그때가 인상적이예요.

내가 가는 것은 누구를 찾아가느냐? 세상에서 배척받고 세상에서 몰림받고 있는 어떤 선한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하늘에서 약속받고 가는 거예요. 그 자리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약속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사람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행로에 있어서 그 무엇이, 철두철미한 인연과 관계가, 누가 옮길래야 옮길 수 없고 갈라놓을래야 갈라놓을 수 없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철석같이 맺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가 그 자리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 가운데 갔었다구요. 아니나 달라, 가 가지고 거기에서 하늘이 직접 명령하는 그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직접 영계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나에 대한 증거를 받았고 나를 만나는 것이 미리 몇달 전부터, 벌써 일년 전부터 하늘의 약속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참을 추구하고 크나큰 소망의 터전을 닦게 하려니 이곳까지도 하늘이 뿌리를, 닻을 여기에 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사정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이 길을 배척하고 이 길을 멀리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천륜 앞에 설 수 없는 반역자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철저히 믿었어요.

왜 그러냐? 내가 생각하기 전에 하늘은 거기에 크나큰 인연을 나와 맺게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 앞에, 자기도 모르게 반대하고 반역하는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줄 모르는 것을 볼 때 아주 흥미가 진진했다구요.

요즘도 내 가만히 생각하면, 언제나 거울 볼 적마다 이빨을 본다구요. 여기를 보면 여기가 쪼개져 있거든요. 뜻을 따라 나가는 하늘 용사들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자기 몸에 하늘을 위해서 남긴 그런 선한 흠이 있으면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교훈 중의 교훈이요, 어두운 흑암세계의 지팡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끔 느껴요. 쓱 거울로 얼굴을 보게 되면 대번에 이게 보여요, 이게.

이게 왜 이렇게 되었느냐? 흥남 감옥에 가 있을 때, 거기의 일이 참 중노동이예요. 유산 암모니아 비료 공장인데 거기에 있었다구요. 이거 감옥에서는 바늘이 없어요. 바늘이 없단 말이예요. 옷이 째지면 옷을 꿰매 입어야 되니까 바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유산이기 때문에 이런 목면 같은 것은 일주일도 못 가서 다 해져요. 암만 새 것을 입고 다녀도 일주일만 되면 이게 다 민들민들해진다구요. 그러니 바늘이 필요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바늘을 만드는 거예요. 전기줄을 까면 강철 와이어, 강철로 꼰 쇠줄이 있거든요. 그걸 잘라 가지고 시멘트 바닥에 가는 거예요. 갈아 가지고 이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놈의 쇠줄이 길지요? 요렇게 있으면 이 끄트머리를 가는 거예요. 이놈을 갈면 끄트머리는 되는데 제일 어려운 것이 구멍을 뚫는 거예요. 바늘 구멍, 바늘 귀를 어떻게 만드느냐? 실을 꿰는 구멍을 어떻게 만드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때 가마니 묶기를 하려면 갈구리가 있어야 됩니다. 그 갈구리가 있으면 이놈을 철로에 갖다 놓고 딱 구부려서 두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납작해지거든요. 납작해지면 칼 대신 가라스(カラス;유리)로…. 그때는 참 가라스가 무엇보다 귀한 거예요. 세상으로 말하면 톱보다 귀한 것이요, 칼보다 귀한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납작해졌으니 쓰니까 이놈이 쓸어지는 거예요. 이게 강철이니까 쓸기만 해도 안 되거든요. 한편만 해도 안 되니 뒤집어 가지고 또 그렇게 쓰는 거예요. 이것이 언제나 말썽이 뭐냐 하면, 한번 구부렸다가 구멍 낼 때까지는 쉬운 데 반대로 구부릴 때 열이면 일곱, 여덟은 부러진다 이거예요. 아주 힘들여서 이렇게 했는데 부러질 때의 그 아쉬움, 아주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수고를 해서 바늘 하나 만들어 놓으면 그 기쁨은 말할 수 없다구요.

그래 가지고 구멍을 뚫어 가지고는 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이 끄트머리를 잘 해야 됩니다. 이거 손을 잡아 가지고 이렇게 해도 돌아갑니다. 그런데 돌아가면 안 됩니다. 딱 잡아 가지고 이놈을 이렇게 해야 될 텐데 이걸 단단한 무엇에 물려 놓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손 같은 것으로 이렇게 하면 강철이기 때문에 자꾸 논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잘 안 된다구요. 그래서 이래 가지고 하면 구멍이 뻥 뚫어집니다. (행동을 하시면서 말씀하심)

지금도 그때가 생각이 나요. 그때 바늘…. 이것이 요즘 얼마나 하나? 한 10전 하나? 「일전」 일전짜리 하나를 위해서 내가 정성을 들이던 그때가 언제나 생각이 난다구요. 일전짜리밖에 안 되는 그 바늘 하나가 얼마나 귀한가? 내가 거기에 온갖 정력을, 뭐 복귀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보다 더 정성들이면서 살았다구요. 그것 부러지면 안 되겠다 하면서 정성들인 거예요. 그런 정성들이던 그때 그 시절이 언제나….

그러다 한 번은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가마니 가운데 비료를 넣는데, 이 가마니는 이북의 5도 수많은 농촌 집에서 짜온 거예요. 그래서 그 가마니들은 농가 집을 거쳐서 나온 가마니들이기 때문에 혹시 가다가 한 달에 한두 번씩 수만장의 가마니 가운데 바늘을 얻는 놀음이 있다구요. 실이 바늘에 꿰어져 가지고 달려 있는 바늘을 가마니에서 얻는 일이 있어요.

한 번은 어떻게 내가 바늘을 얻어 봤어요. 그 바늘 하나 얻은 것이 소문이 났어요. 야, 몇 조 몇 반에 누가 바늘을 얻었대…. 이 하나가 얼마나 보배인지, 이 바늘 하나가. 바늘 하나 얻어 가지고 기뻐하던 그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여러분 같으면 '집에 가면 바늘 그까짓 것 많은데 뭐.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없는 가운데는 그 한 가지가 얼마나 귀중한지 몰라요.

지혜로운 사람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하나님의 복귀섭리 가운데에는 이와 같이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 작은 물건에서부터 큰 물건에 이르기까지…. 사람으로 말하면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귀한 사람, 하나님이 찾아오는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님이 요구하는 소망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진정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할 것이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을 가만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어떤 환경에서, 필요 적절한 그런 환경에서 여러분들이 어떤 가치로 사용되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의 가치와 여러분의 인격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천만금 이상의 필요적절한 가치로 쓰여질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그 자리에서 쓰임을 당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그런 때가 되면, 사정을 개의치 않고 모험을 해서라도 그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 자기 스스로 인연을 맺고, 관계를 맺고, 자기 스스로의 자세를 갖추었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인연된 그 환경이 국가적이요 혹은 세계적이라면, 그 큼에 비례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도 지금 한 개인을 보면 한 백 분의 일밖에 안 돼요. 이렇게 백 분의 일 가운데 있는데 이 가운데서 하늘이 그렇게 필요한, 감옥 같은 곳에서는 천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하나의 바늘과 같이 쓰여질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것을 생각할 때, 나는 하루의 생활을 하고 일년의 생활을 하되 어떤 자리에 가서 하루의 생활을 하고 어떤 자리에 가서 일년을 보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얼핏 생각할 때 남들이 다 바라볼 것이냐? 천만에. 이런 기준을 여러분이 생각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기준이 크고 중하면 중할수록 그 사람은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오늘날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간다면 어떤 장소에 어떤 가치의 모습을 가지고 찾아갈 것이냐? 그 장소가, 혹은 그 환경이 때로 말하면 어떤 때에 처해 있느냐? 그걸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응? 「예」

천하가 다 환영할 수 있는 그때는, 썩고 남을 그때는 바늘이 태산같이 많아도 쓸데가 없다는 거예요. 딱 필요한 그때에 쓰여질 수 있는 그런 바늘 한 개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인이 위대하다 하더라도 그 바늘 하나 앞에 정성을 들여야 하고 바늘 앞에 감사를 해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으면 그 바늘은 역사적인 유물이 되고 시대적인 모든 영광의 상징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바늘이 되면 바늘 중의 왕 바늘이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자기가 갈 길은 스스로 결정해야

그러면,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하나님의 섭리는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거쳐 나간다구요. 그러면 개인적인 시대에 있어서 내가 서야 될 자리는 어디냐?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내 자리는 이 우주 가운데 어떤 자리가 될 것이냐? 민족적인 기준 앞에서 혹은 국가적인 기준 앞에서, 세계적인 기준 앞에서, 이 천주적인 기준 앞에서 어느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갈 것이냐 이거예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줄 알면 그 자리는 만민이 좋아하고 다 환영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거예요.

제일 하나하나끼리 만날 수 있는 자리예요, 하나하나끼리. 수많은 가정 가운데 자기가 제일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는 것은, 수많은 가정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하나끼리 만날 수 있는 자리라는 거예요. 민족이 수없이 많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하나끼리 만나는 자리, 국가면 국가 가운데서 하나하나끼리 만나는 자리, 세계면 세계 가운데서 하나하나끼리 만나는 그런 자리라는 거예요.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래서 우리의 과거 역사를 가만히 보면 노아 같은 양반도 그 시대에 있어서 가정을 대표해서 하나하나끼리 만난, 하나님이 가정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하나의 대표적인 가정이예요.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하면 그 민족도 역시 수많은 민족을 대표해서 하나의 기준에서 나타난 거예요. 복귀시대에 있어서의 섭리적인 전반적인 역사도 그러한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의 정상을 어떻게 찾아 나갈 것이냐? 그 자리는 천 사람이 다 가겠다는 자리가 아니예요. 천 사람이 다 가겠다는 길로 가면 천 사람을 만날 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제일 미천한 자리예요.

선생님이 이 길을 개척할 때에는 해를 보고 살지를 않았어요. 해를 이렇게 바라보고 산천초목을 그렇게 즐거이, 반가이 대하지만 한때는 거부한 때가 있었어요. 물을 먹으나 길을 가나, 길이 좋다고 해서 그 길을 가면서 좋다고 하려 하지 않았다구요. 그 길을 내놓고 나쁜 길로 가려고 했어요. 하늘 앞에 효성하고 하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길은 이제 말한 거와 같이 하나하나 대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길이어야 됩니다. 그 자리에서 상봉하게 될 때에 그 깊은 사정과 연결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여기서부터 쭉― 사방 팔방으로 갈 때 어디로 갈 것이냐? 어디로 갈 것이냐 이거예요. 이것이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가야 할 입장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된다는 걸 스스로 작정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누가, 선생님이 명령해서 되는 게 아니예요. 그건 스스로 결정해야 됩니다. `아 나는 전체의 뜻 앞에 있어서 이 민족적인 복귀의 운명을 걸고 어떠한 인연과 관계를 맺고 뒤넘이칠 것이냐. 내가 여기서 틀어대면 저기서는 얼마만큼 놀아날 것이냐' 하는 것을 각자가 생각해야 된다구요.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늘로 찾아가야 돼

그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부터 얘기하겠다구요. 이 우주를 보면 세 사람이 있어요. 세 클럽이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클럽, 하나는 사탄이 주관하는 클럽, 하나는 사탄이 주관하는 클럽도 아니요 하나님이 주관하는 클럽도 아닌 클럽이 있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 우주, 존재세계 전체가 어디에 얽매여 있고, 어디에 달려 있느냐? 이 세 분야의 일면씩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분야가 있고, 사탄의 분야가 있고, 사탄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 그런 분야가 있다구요. 그게 뭐냐? 그게 사람이 사는 인류사회라는 거예요. 인간들은 어디에 살고 있느냐? 하나님편에 있는 것도 아니요, 사탄편에 있는 것도 아닌 중간 형태에 있어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어디에 있느냐? 이 세 분야 가운데 어디엔가는 합해야 될 운명에 놓여 있더라 이거예요. 이 셋이 언제나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디엔가는 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이거예요. 또, 하나님 클럽과 사탄 클럽이 있다 하면 이 클럽이 가만있느냐? 아니예요. 이 인간을 대신해서 서로서로가 합하게 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런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이런 삼각지대를 앞에 놓고 여러분 자체가 자세를 갖추고 있다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 자신이 두 세계를 연결시키는 이런 입장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악한 편이요 하나는 선한 편입니다. 악과 선이 대결하는 이런 싸움판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될 것이냐 이거예요.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늘로 찾아가야 됩니다. 그러나 하늘로 찾아가야 할 내 자신이 하늘로 갈 수 있느냐? 하늘로 갈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로 가기 위해서는 무한한 싸움을 거쳐 가지고 승리라는 팻말을 박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승리라는 간판을 들고 하늘 앞에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용장이 되지 않고는 이 길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싸움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연하고, 가정으로부터 사회·국가·세계·천주까지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비참한 인연을 엮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원수

여러분이 원리원칙을 두고 볼 때에,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3단계의 법칙의 세계가 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소생기 장성급까지는 사탄세계가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단 하나 완성 분야에 해당하는 이 분야만이 하나님의 섭리의 요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남아진 분야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마음에 해당하는 분야만이, 즉 우리의 일면만이 그 분야와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완성 분야에 해당할 수 있는 이 인연의 길이라는 것은 소생 장성 완성 가운데 맨 끄트머리 부분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끄트머리 부분은 무슨 부분이냐? 양심적인 부분이예요. 이 3단계 분야 가운데 완성적인 분야인 이 양심적 분야를 중심삼고 하늘의 섭리가 우리와 접선하려고 무한히 애쓰고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3분의 2는 악한권 내에 사로잡힌 것이요, 3분의 1은 해방의 한 날을 소원하면서 허덕이고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인생노정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3분의 1은 어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느냐? 환경과 내 몸뚱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생활의 한 제도권 가운데 생활하는 내 몸을 중심삼고 3분의 2이라는 발판이 되어 있습니다. 3분의 1이라는 분야는 무엇이냐 하면, 선을 추구해 나가는 인륜도덕 기준입니다. 단지 이 인륜도덕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3분의 2와 같은 환경과, 즉 생활적인 무대를 중심삼은 내 육과 3분의 1과 같은 입장에 선 하늘을 중심삼은 소망적 기준이, 이것들이 서로서로 나 하나에 접선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이 걸어가는 생활이요, 생애노정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땅을 잃어버렸고, 우리 몸뚱이를 잃어버렸고, 이념을 잃어버렸어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을 잃어버렸고, 인간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동시에 인간이 지녀야 할 행복의 요건, 우리의 소망적인 최대의 요건을 전부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망은 그 땅 위의 현실적 무대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것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 하늘과 접해 나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 현실을 몸부림치면서 탈피해 가지고 소망의 세계에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느냐 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뒤넘이치는 것이 오늘날 신앙생활이요, 도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런 상태로 우리가 알고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우리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원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새로이 느껴야 됩니다. 대개 강의할 때에 '사탄 사탄' 한다구요. 그러니 사탄이 무슨 친구와 같은 명사로 들릴 때가 많아요. 안 그래요? 으레 '하나님' 하면 하나님 앞에 있어서 상대적인 존재와 같이 생각된다구요.

이 사탄은 누구냐? 하나님의 원수예요, 원수. 하나님의 원수예요. 원리강론에서도 배웠지만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아담 가운데 임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은 하나님의 몸뚱이예요. 그렇지요? 하나님의 몸뚱이예요.

사탄을 사랑해서는 안 돼

그러면 하나님의 몸된, 그 상대된 해와가 누구냐? 누구예요? 하나님의 몸의 부부예요. 그렇지요? 응? 하나님의 몸뚱이 아내 아니예요? 그렇지요? 응? 안 그래요? 하나님의 몸뚱이가 아내예요. 본래 그렇다는 거예요. 해와는 누구였느냐 하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천륜의 기준을 밟고 올라갔다면, 아담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집이 돼 가지고 그 몸뚱이는 하나님의 몸뚱이가 된다 그 말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몸뚱이 상대는 누구예요. 해와지요? 해와는 누구의 아내예요? 아담의 아내지요? 그러면 해와의 마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역시 하나님의 여성적 성품이 임재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아담 해와가 지금의 누구냐? 하나님 대신 실체를 쓰고 외면적으로 나타난 부부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이거예요. 보고 좋아하기 위해서. 사랑스런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천도를 세우고, 이 모든 전체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살림살이로 계획해서 지었다는 거예요. 이런 말 처음 듣나요? 그런 얘기 해주었어요? 응? 처음 듣지요?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천지 만물은 무엇 때문에 창조했느냐? 결론은 하나님 자신이 살림살이하기 위해서 지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예수님은 원수에 대해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예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예요? 마찬가지의 말이지만 일곱 번씩 일흔 번이 더 신나지요? 그렇지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나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 했다 이거예요.

그러면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는 예수 앞에 있어서 사탄도 사랑해야 되느냐? 원수가 누구예요? 사탄이지요? 사탄을 사랑해야지요? 예수님이 가르치는 도리는 사탄을 사랑하라는 말이예요? 「아닙니다」 사탄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을 떼어 버리기 위해서 원수의 품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여유 기간을 두자는 거예요.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자처하고 나선 무리들의 사명

하나님은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서 6천 년을, 무한한 역사노정을 시련과 고통의 가운데 걸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사탄까지, 사탄을 용서해 주면 될 것 아니냐 이거예요. 사탄을 용서해 주면 천하가 전부 다 평온할 텐데 왜 사탄을 용서해 주지 못할까? 왜 하필 아담을 빼다가 용서하려고 하는가?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왜, 사탄을 용서할 수 없느냐? 하나님 앞에 있어서 사탄은 어떤 존재냐? 하나님의 원수예요. 무슨 원수냐?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을 파탄시킨 원수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은 간부(姦夫)의 입장에 섰더라 이거예요, 간부. 간부가 뭔지 알아요? 무슨 회사의 중역급이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알 거라구요, 간부가 뭔지. 간부가 뭔지 알겠어요? 「예」 모르는 사람은 가서 사전을 찾아봐요.

아하, 이놈의 사탄이가 뭔가 했더니 우리 아버지를 쫓아내고 어머니를 겁탈하고 집안을 망친 원수로구나! 그러니 나는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났구나!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간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간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간부를 용서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놈은 사랑의 법도를 파괴시켜 버렸고, 천리의 모든 이념은 불안과 공포의 원천과 더불어 짝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이걸 용서할 수 있어요? 용서할 수 있나? 「없습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이가 무슨 원수냐? 본래 사탄이가 침범하지 않았으면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예요. 하나님으로부터 피와 살을 받은 하나님의 직계예요. 선이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고, 선한 목적으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간부의 피살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절망의 도상에서 탄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비운의 행로를 거쳐오지 않으면 안 되었고, 역사적인 제물의 비운을 걸어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게 될 때 본연의 마음을 가진, 본심이 지향하는 목적을 희구하는 우리의 마음은 간절히 원하기를 '이 원수를 갚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천리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과 선은 원수의 자리에서 투쟁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사탄의 무엇? 「하나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예요. 우리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간부(姦夫)예요. 그때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렇지 태어났다면 이것은 내 손으로 잡아죽였을 것이다 이거예요. 태어날래야 태어날 수 없는 자리에 서 가지고…. 만약에 이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있다면 이것을 한칼로 처단해 버릴 것입니다. 6천 년은 아들딸을 보내서 이 원수를 처벌할 수 있는 한 날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내 손과 내 몸에는 원수 간부의 피살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칼로 째 버리고 찔러서 피를 내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대신 속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짤라 버리고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몸뚱이를 그대로 놔두게 되면 파괴됩니다. 천리법도 안에 있을 수 없는 원수의 종족으로 났으니 원수의 종족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갈 목적점도 없고 갈 방향도 없는 인간이 되었다구요.

여러분들은 누구의 아들딸이예요? 「간부」 간부. 이놈의 몸뚱이, 이놈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하나님의 슬픔이 깃들어 있고, 역사와 더불어 항의, 투쟁을 하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원한에 사무친 역경의 노정을 쌓아 놓은 주식회사와 같은 몸뚱이를 때려부숴도 아까울 것이 없다구요. 그래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이런 마음을 갖고 폭발적인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한 때가 없어 가지고는 우리가 갈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걸 알아요. '아하, 천륜의 비밀이 그렇게 돼 있구나. 그래서 만민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구나! 그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출발하지 못하고 한의 길을 걸어오면서 소망의 아버지의 이름을 품고 타락된 인간에게 부자의 인연으로 맺어 주기 위해서 얼마나 허덕이고 나왔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곡절도 많은 하나님인 것을 느낍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갖다 박은 그 원수예요. 무슨 못? 천리의 원칙이 되고 생명의 원칙이 되는, 모든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있는 이 사랑 가운데 못을 갖다 박았다구요. 그런 이 우주사적인 대원수가 사탄이라구요, 사탄. 이 못을 빼 가지고 복수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자처하고 나선 무리들의 사명이예요.

우리 몸뚱이는 사탄으로부터 상속받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출발을 사탄으로부터 했고, 사탄으로부터 살고, 사탄으로부터 죽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원수의 적진을 향해 나가야 할 통일용사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하는 거예요. 피를 말려라 이거예요. 그래서 40일 금식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도 피를 말리려고 금식을 한 거예요. 눈물과 피, 오늘날 내 마음에 정이 있고 내 마음에 무슨 심정적인 모든 요인이 있다면 참고 끝까지, 세상이 지처서, 세상이 지긋지긋하게끔, 지긋지긋하게끔, 세상을 원망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내려가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낙망한 자가, 세상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제일 낙오자가 가는 거예요, 낙오자. 다 줘 버리고 할 수 없이 맨 밑창에 떨어져 가지고 자기 몸을 구할 수 없는 자리에 가서 소망의 일념을 찾아 가지고 종교의 길을 찾아드는 것입니다. 그 길이 제일 빠른 거라구요. 그렇게 돼 있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환경에 몰려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자기가 자진해서 그런 길을 가는 거예요, 자신해서. 뭘 먹겠다고 하면 '이놈 먹지 마라'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야, 야 먹여라, 먹여라' 이런다구요. 그래도 뭘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이놈, 뭘 좋아하느냐, 이놈의 자식아' 하고 반대로 하는 거예요. 이를 악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야야, 그거 해라, 해라' 합니다.

모든 역경이, 만사의 역경이 사탄으로부터 출발했으니 사탄이가 '야, 나 너한테 손들었다. 이제 너한테 손들었다. 너를 못 따라가겠다. 그러니 너 갈 데로 가라!' 해야 됩니다. 이럴 때에는 그냥 가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칼을 마련해서 돌아서 가지고…. 돌아서 가는 사탄의 등을 찌르는 사명을 하기 위한 것이 도의 길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역대 우리 선조들을 얼마나 유린했느냐 이거예요. 노아 할아버지의 가정에 또다시 칼을 꽂아 버린 것이 사탄 마귀예요. 아브라함의 가정에 다시 칼을 꽂아 버린 것이 사탄 마귀예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수고한 공적의 터전 위에, 민족을 편성해 놓은 그 민족의 가슴 가슴에 칼을 꽂아 가지고 사탄의 제물로 만든 것이 대원수 사탄 마귀예요. 알겠어요? 「예」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박던 원수가 사탄 마귀예요. 수천 년 동안 기독교가 피와 눈물의 제단을 엮어 나오면서, 그 인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래도 그 흔적을 남겨 가지고 지금까지 싸워 나오면서 희생의 제물을 바치게 했던 것도 대원수 사탄이예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시련의 고비를 겪어 나온 것도 사탄 때문이예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역경의 길을 걸어온 것도 사탄 때문이예요. 이 사탄을 어느 한 때에 내 가정으로부터, 내가 사는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격파시켜 가지고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나선 무리가 하늘의 자녀들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섭리사적인 견지에서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그런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그런 책임을 스스로 촉구하면서 오늘의 생활을 다짐하고, 내일의 목표를 두고 원수의 진영을 향하여 행군의 대열을 정비하면서 나가야 할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통일의 용사들이예요. 알겠어요? 「예」

세계의 원수를 추방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의 사명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참…. 앞으로 군가 중의 군가를 해야 되겠다구요. 훈련 중의 훈련을 해야 됩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악과 악이 싸우는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심판의 손을 들어 악을 치라는 대명령을 해서 악한 민족과 악한 세계를 칠 수 있는 한 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 역사노정에 사탄세계끼리 싸움을 한 것입니다. 거기에도 물론 좀 선한 편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선한 아들딸로 인정한, 선한 자녀의 영광을 갖춘 그런 선한 군대로 하여금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공의의 심판을 할 수 있는, 공의의 투쟁을 할 수 있는, 그 대투쟁이 벌어질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요.

오늘날 이북에서는 공산당이 설치고 있어요. 현재 이 세계 민주주의와 대결하여 공산당이 설치고 있는 이런 판국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상 설칠 수 있는 하늘의 정예부대는 없느냐 이거예요. 그걸 찾아보자. 그런 분야의 사명을 담당하기 위해 나선 무리들이 통일교회 패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나는 교회라는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할 수 없으니 그렇지, 이걸 떼어 버려야 되겠다구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태어난 목적은 부모의 유언을 받는 것입니다. 그걸 받아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구요. 너의 유언은 무엇이냐? 이 역사의 원수인 사탄 마귀를 쳐부숴라 이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오늘 이 자리에 있어서 제물을 드리고 감사하는 것보다 세계사적인 원수를 지구상에서 추방하는 게 목적이다 이거예요.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악이 번영하고 있는 이런 판국이니 대악당을 쳐부숴라 이거예요. 그것이 예수가 이 땅 위의 인류를 대신하여 부모의 입장에서 유언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 유언을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마음 깊이 품고 나온 숙원의 소망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언하지 못했던 그런 사실을 알아 가지고―지내고 보니 그러한 아버지인 걸 알았고 부모인 줄 알았습니다―그 원수를 내 손으로 갚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신념을 가진 용사의 입장에서 하루의 생활을, 목적을 다짐할 수 있는 생활방편을 세워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늘 족속이 될 수 있고 하늘 군대가 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담가정에서부터 아벨을 통하여 찾아왔던 하늘의 뜻은, 하나님은 슬픔으로 돌아섰고 사탄은 원수의 깃발을 드높이고 자기 스스로 승리를 찬양하는 가운데 역사가 출발했던 그 사실은 결사적으로 나는 환영할 수 없다' 이것이 통일된 예수의 심정적 기반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부터 승리의 통일성을 갖추고 나서는 거예요.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 가지고 40일 심판한 그 기간에 사탄이 또다시 침범하여 하나님의 천륜를 넘어뜨려 가지고 승리의 권한을 자랑하던 사탄을 내 손으로 복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하늘 앞에 대신 내가 원수를 갚았다는 심정적 조건이라도 세워야 됩니다. 현실적 무대에 널려 있는 이 세계의 사탄을, 세계의 원수를 추방해야 하는 것이 오늘 통일교회 신도들의 두 어깨에 짊어진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하늘의 한 초점으로부터 선의 판도를 넓혀야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목적이 뭐예요? 여러분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온 게 아니예요. 구원이 있기 전에 원수를 갚아야만 됩니다. 여러분이 목적을 보기 전에 원수를 굴복시킨 항서를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목적을 볼 수 없는 거예요. 구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원수를 이 땅 위에서 전멸시켜야 됩니다. 원수를 굴복시켰다는 항서를 받기 전에는 구원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항서를 받아서 하나님에게 지금까지 사무쳐 있던 원한의 심정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불효, 역적되는 이런 입장에서 역사를 꾸며 하나님 앞에 슬픔을 자아내게 했으니 오늘날 우리들은 이 원수를 퇴치시켜 버리고 승리의 개가를 드높이 부르면서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원수와 더불어 맺혀진 당신의 모든 한을 나로 말미암아 푸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이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목적 성사의 한 날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허락할 수 있는 천주의 생활이 출발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 원수들의 근거지는 어디냐? 어디예요? 이 원수들의 조직망은 어디냐? 이곳이 세계로부터 연결되어, 대한민국으로부터 연결되어 우리의 친족으로부터 내 몸뚱이까지 들어왔구나! 내 몸뚱이까지 세포조직이 돼 있구나! 옳도다! 내 세포들 가운데 내가 들어가 있구나. 아하, 사탄의 세포권 내에 내가 들어가 있구나! 포위된 환경권 내에 내가 있구나! 그러니 내 환경을 들이 쳐버리고, 이것을 제껴낼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절감해야 되겠어요.

이 세포의 근거의 터전이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사회 기반 위에, 이것이 세계적인 사조와 더불어 오늘날의 환경인 대한민국을 거쳐 생활무대, 내 몸뚱이까지 세포조직이 되어 있구나! 이래 가지고 치열한 투쟁을 쉴새없이, 내 마음세계에서 언제나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 진격의 명령이 내 마음에서부터, 내 마음이 그 명령 앞에 사로잡힌 바 되어서 이것이 평등할 수 있는 내 개체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을 찾기 전에는 종족을 구할 수 없고 민족을 구할 수 없고 세계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열이면 열 번 질 수 있는 가망성에 잠겨 있는 오늘날 현실 생활권 내에서 내 자신이 이것을 틀어 가지고, 외로 틀어진 것을 바로 틀어 가지고 뒤집어 박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여기에 비장한 결의와 비장한 각오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해야 됩니다. 아, 사탄의 세포권 내에 내가 들어왔구나!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하겠어요? 여기에 있어서 공작을 하는 거예요. 흠― 그러면 조심 안할 수 없어요. 그런 걸 여러분들은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개척하게 될 때 언제나 첩보원, 간첩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하, 사탄세계에 있어서 나는 하늘의 한 첩보원이구나! 실감이 나는 거예요. 아, 이 세계는 사탄세계요, 사탄의 나라요, 사탄의 사회권이구나! 나는 하늘의 한 초점으로 여기서부터 조직을 편성해 가지고 대악당을 대하여 선의 판도를 넓혀 가지고 이 나라, 이 세계를 하늘 앞으로 돌려서 뒤집어 박았다는 투쟁의 결과를 가져와야 할 이런 사명을 짊어졌구나! 언제나 원수가 어떻게 움직이냐 하는 것을 주시하는 거예요. 그런 싸움의 판국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걸 느껴 봤어요?

아하, 사탄의 갈구리가 여기에 걸렸구나! 내가 나타나는 사람은…. 이번 기회에 간첩들이 여기에 와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환영하면서 '아, 오소!' 그러더라도 그러나 전부 감정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감정해야 된다구요.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냐? 성분을 파악해야 됩니다. 그렇게 만민을 비판하고 분석해 가지고 자기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빨리, 감쪽같이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자기의 울타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위기일발의 초점에 서 있는 우리인 것을 절감하고, 뼈살에 사무치게 느껴야 됩니다. 그런 걸 느껴 봤어요? 느껴 봤어요?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그런 과정을 밟으면서 발전해 나온 거예요.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에는 그야말로 하늘의 첩보원이예요. 그야말로 하늘의 정보 참모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러면서 싸우는 거예요. 세상이 가만있지 않는다는 거예요. 백방으로 공작하는 거예요. 이런 싸움을 거쳐서 이제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불원한 장래에 통일의 이념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단계까지 내가 만들어 놨다구요.

이제 조금만 더 지나가면 손짓만 해도 전부가 몰려들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백두산 천지에 가 가지고 배를 만들 거예요. 그곳을 무대로 삼아서 내가 훈련을 시켜야 되겠다구요.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쁜가요, 기분 좋은가요? 아낙네들 기분 좋은가요, 나쁜가요? 여러분을 내세워 가지고 가서 멧돼지를 잡아오라고 하면 총을 메고 나가 멧돼지도 잡아오고 곰도 잡아와야 됩니다. 그런 놀음도 할 수 있는 기백을 길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50년대에 들어서 가지고 총을 만들었어요. 사탄세계를 때려잡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를 어떻게 점령하느냐 하는 것이 통일의 과제

지금 우리에게 제일 사탄, 세계적인 사탄은 공산당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런 그들을 어떻게…. 결론은 사상적인 면에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들은 3분의 2라는, 사탄세계는 3분의 2라는 우세한 조건하에 있지만 하늘은 3분의 1이라는 조건이예요. 그렇지요? 장성급 완성급에서 타락했지요? 「예」 그러니 소생 장성, 3분의 2가 아니예요. 완성급은 선한 권으로,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권이예요.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3분의 1권에 있기 때문에 3분의 2 이상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적으로 3분의 3, 3분의 3을 만들어 가지고 까꿀잡이로 만들어 가지고 대결하는 거예요. '오너라! 억센 사탄아 모두 공격해 오너라!' 이래 가지고 민족과 국가 세계를 대표해서 하늘의 정병임을 자처하고 나설 때 비로소 원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첫번째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 사람이 되어서 승리해야 돼요. 그 가정을 중심삼고 싸워서 이기게 될 때 그 가정이 하늘 앞에 돌아오는 거예요. 그 가정을 내세워 가지고 싸우게 될 때 그 가정이 하늘 앞에 종족을 구할 수 있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종족이 하늘 앞에 서 가지고, 또다시 민족에 대해서 싸워서 이김으로 말미암아 하늘권 내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종족적으로 하늘편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서 승리해 가지고 들어와서 하늘편에 서게 됩니다. 그래 이렇게 한 단계 떨어져서 자리를 잡아 나오는 거예요. 알겠지요?

개인이 싸워서 승리하고 나서 가정적인 싸움을 하게 될 때 개인적인 참부모가 여기에 옮겨지는 거예요. 알겠지요? 가정적인 기준에서 종족적인 싸움을 하게 될 때에,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가정이 나오게 될 때에 가정적인 참부모가 여기에 옮겨지는 거예요. 하늘은 한 단계 떨어져 나온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주관하면서, 결과를 복귀 주관하면서 싸움을 연속해 나오는 역사적인 섭리라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음― 이렇게 되어 있구만' 하며 자나깨나….

이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되고. 우리의 친척의 원수를 갚아야 되고, 우리 민족의 원수를 갚아야 되고, 우리 나라의 원수를 갚아야 되고, 우리의 세계의 원수를 갚아야 되고, 우리 하늘땅의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의 나라가 있어요? 지금까지 나라가 있었어요? 종교를 중심삼은 권내의 사람은 나라가 없어요. 나라 없는 백성이예요. 민족이라고 어떤 기반을 가져 가지고…. 민족 없는 백성이예요. 바람이 동으로 불면 서쪽으로 밀려가야 되고, 서풍이 불게 되면 동쪽으로 밀려가야 됩니다. 삼지사방에서 불어오는 폭풍우에 시달리고 그 방향에 초췌한, 흑암 권세의 어두움 길을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길을 걸어왔느냐? 개인을 찾아 가지고, 가정을 찾아 가지고, 종족을 찾아 가지고, 민족·국가·세계를 찾아 가지고 본향의 세계, 본향의 나라, 본향의 종족, 본향의 가정, 본향의 식구를 찾아서 본향의 자체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과 상봉하기 위해서 이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이와 같이 엄청난 역사적인 원수가 이 우주에 꽉 들어찬 것을 우리가 죽기 전에 우리 손으로 복수 탕감하고 가야 되겠다는 신념을 갖추어야 할 것이 통일 용사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지요? 「예」

그래서 하나님의 가슴에, 심정에 박힌 못을 뽑아야 됩니다. 아벨의 가슴에, 혹은 노아의 가슴에, 아브라함의 가슴에,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에 혹은 모세의 가슴에, 예수의 가슴에,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이 피의 제단에서 한을 남기고 왔던 그들의 가슴속에 박혀 있던 원수의 화살을 빼야 됩니다. 빼 가지고 도리어 원수들을 반대로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한을 이 땅에서 풀어 드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한을 풀어 드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늘이 약속하고 소망으로 남긴 천국과 승리의 세계를 우리에게 마련해 준다는 거예요. 그런 사명을 짊어지기 위해서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모였다구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그런 사명을 한번 해볼래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가야 합니다. 어차피 가야 된다구요. 어디를 가느냐? 사탄의 조직 세계, 사탄의 조직 세계에 들어가 봐야 한다 이거예요. 그런 환경에 포위돼 있는 것을 알고 여기에 치밀한 조직과 우리 배후진의 연락을 강화해 가면서 이 사탄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점령하느냐 하는 것이 금후에 남아진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상에서 이러한 책임을 하는 것이 통일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에 여러분들이 생애를 바쳐서 하늘 앞에 봉헌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리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런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이제는 종족적인 권은 이루어졌어요. 그러니 이제는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권에서 싸워 가지고 넘어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특이하다는 거예요. 다르다는 거예요. 생활 체제가 다르다구요. 이래 가지고 이것이 점점점 판도가 넓어져요.

이것을 빨리 이루게 하려니 세계적인 무대를 강화시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거기서 점점점 범위를 넓혀 가지고 이 이념권 내에 사탄세계를 사로잡아서 이것을 전멸시키고 여기에서 승리적인 하늘의 기반을 넓혀 나가자는 거예요. 그런 싸움을 지금 현재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그 싸움은 학교면 학교에서 벌어질 것이고, 가정이면 가정에서 벌어질 것이고, 직장이면 직장에서 24시간 계속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몸뚱이는 쉬더라도 그 싸움은 쉬지 않고 세계와 더불어, 천운과 더불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는 분야에 있어서 이 싸움의 낙오자가 되지 말고 승리자가 되어 하늘에 세워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지요? 「예」

우주사적인 원수를 갚기 위해서 여러분이 철저히 움직이고 잘해서 스스로의 입장을 확고히 세워 가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기 도

한 많은 아버지의 싸움이 이렇듯 원한 많은 세계사적으로 전개되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한 사람 조상의 실수가 이렇게 후손에게까지 맺혀진 것이 얼마나 분통하고 억울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수록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나이다.

악한 선조의 피를 받아 가지고 땅 위에 태어난 이 몸을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생활과 그 사회를 증오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역경 가운데서 오늘날 원치 않는 길을 가고 있는 인생의 행로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길을 박차고 나가서 본향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 시련 고통, 원수가 막는 모든 토성을 헐고, 성벽을 헐고, 교두보를 파탄시켜 버리고 아버지의 승리의 도성을 이 땅 위에 창건하여 아버지를 영원토록 모시고, 그의 나라 그의 종교 그의 가정이 되고 그의 자녀가 되어서 개체의 행복을 영원무궁토록 전민족적인 행복, 혹은 국가적인 행복, 세계적인 행복으로 찬양할 수 있는 본연의 세계를 저희들이 찾아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 이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사오니, 지금 현단계의 입장을, 이와 같은 입장을 관찰하게 될 때 지금은 어떤 단계에 있다는 것을 저희 자신들이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저희 선조로부터 유전해 내려오는 유언을 상속받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유언을 상속받아 가지고 원수를 이 땅 위에서 격퇴시켜 버리고 하늘을 환영할 수 있는 그 한날을…. (녹음이 잠시 끊김)

운명을 판결지을 수 있는 중차대한 입장에 서 있는 자기 개체의 인연을 중요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고, 이와 같이 인연되어 있고 관계되어 있는 것이 우연한 사실이 아니라 제가 알지 못하는 하늘의 슬픔의 곡절을 통하여 인연되어졌고, 하늘이 미리 마련한 준비의 터전의 공로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을 알고 감사하면서, 이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환영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고 그 마음 앞에 굴복하면서, 억센 사탄세계를 정복할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많은 아버지의 원한의 심정을 저희들이 복수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사랑의 심정을 유린한 이 간부의 혈족을, 간부의 작당들을 저희들이 이 지구상에서 몰아내어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 앞에 상속받게 하여, 공의의 심판을 내려 이들 무리를 추방하고 승리의 한날을 온 세계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저희들은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맹세한 무리들이었사오니, 고이 받들어 승리의 한날을 약속한 그때까지 저희들을 권고하고 저희들을 채찍질하시어서 낙오자가 되고 퇴폐자가 되지 말게끔 하여 주시옵고, 승리자가 되고 용사가 되어 아버지 앞에 영광을 드리는, 개가를 드높여 아버지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고, 아버지의 평화의 나라를 건국할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예수도 이 목적을 위해서 왔다 갔고, 예수 이전의 수많은 역대 우리 선조들도 이 사명의 일단적인 분야를 책임지고 왔다 갔던 것을 잘 알았사옵니다. 종적인 모든 원한을 횡적인 기반에 있어서 이 시대를 중심삼고 탕감 복수하는 싸움을 오늘날 저희들이 심정적 분야에 있어서, 혹은 실제 생활 분야에 있어서, 환경 분야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세계적으로 전개시키어 승리의 판도가 아버지에게 거할 수 있고, 본연의 세계로 복귀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이 싸움 노정에서 패하지 말고 승리할 수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억센 사탄세계의 조직과 사탄세계의 운세권 내에 내가 홀로 간다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자리에 투시된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을 모시고 하늘 앞에 효자 충신 열녀의 도리를 다 갖추어 승리의 영광을…. (녹음이 잠시 끊김)

스스로 기뻐하면서 아버지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게끔 아버지 격려하고, 저희들 스스로는 다짐하면서 그날그날 싸움에 있어서 저희들이 승리를 거듭하여 아버지 앞에 이것을 봉헌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남아진 전체의 시간을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이들이 가는 생애의 전체를 친히 주관하시어서 새로이 약속하시던 결의와 맹세를 잊지 말고 꿋꿋이 지킴으로써 승리의 방패로서 아버지의 영광의 존전에 칭찬받고 자랑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내가 이 길을 나설 때는 여러분과 같은 청년이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는, 그 큰 책임을 어떻게 다 해내느냐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나는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적하는 길로 가겠다고 하는 힘이 누구보다도 강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48년 2월 22일, 선생님이 평양 감옥으로 갈 때는 천리의 원칙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리어 소망 가운데 갔었습니다. 벌써 일년 전부터 내가 올 것을 하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보고 반역할 수 없는 심정이 일어났습니다.

선생님의 앞니에 금이 간 것은 흥남 감옥에 있을 때 바늘을 만들려다가 상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바늘이 그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찾고자 하는 사람도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산천초목을 즐겼으나 때로는 해를 볼 수 없었습니다. 만물을 거부할 때도 있었습니다.

우주에는 세 그룹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 속하는 그룹과 사탄 편에 속하는 그룹과 하나님 편에도 사탄 편에도 속하지 않는 그룹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이 셋 중 어딘가에 속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편에 속하려면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사탄을 떼기 위하여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간부(姦夫)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그 간부의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원수입니다. 이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에 사무친 사람이라야 하나님 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이 원수의 근거지는 세계에서 내 세포까지입니다.

인간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은 전체 노정의 3분의 2를 점령하고 하나님은 3분의 1권 내에서 섭리해 나가십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 가운데는 우리 교회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0여 년 동안 한국 강토에서 모진 투쟁을 해 나왔습니다.

통일이념이 나가야 할 방향

내가 제일 절실하게 느낀 것은 뭣이냐 하면, 앞으로 이 한국 강토에 있어서 기필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루어야 할 텐데 이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이것을 반대하는 사상과 사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절감하였습니다.

그 사회에 있어서 반드시 우리 뜻 앞에 부합될 수 있는 기반이 기독교가 돼야 할 것인데, 기독교가 전면적으로 반대를 해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목적하던 모든 전체는 여기에서 붕괴되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래는 최고의 위치에서 계획하여 민족적인 섭리의 뜻을 전개시키려 했던 것이 뜻한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하의 기준을 통해서 지금까지 반대적인 경로를 타개하기 위해서 수고해 나왔습니다.

현재 국제 정세로 봐서 한국은 대공 전선의 제일 초점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민주세계에 있어서도 이것이 초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2대 진영인 좌우세력이 여기에서 시범장을 벌여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6.25 동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세계사적인 사회환경 가운데 있어서 한국 민족이 취할 입장, 한국 민족이 천적인 뜻을 받들 수 있는 민족 기반을 어떻게 세워야 되느냐? 이것은 민주주의적인 기반을 통해서도 안 되는 것이요, 공산주의적인 기반을 통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두 진영을 앞에 놓고 이것을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길을 타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현재의 통일이념이 나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7천명의 정예요원이 절실히 필요한 현실

그래서 이것을 개척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할 때, 상부로부터 이 길을 뚫으려 하던 것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맨 말단 단계로부터 거슬러올라가자 이거예요.

선생님이 제일 절실하게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남한 팔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 면을 보면 2천 한 4백 면이 됩니다, 면이. 도의 수로 말하면 8도지만, 군의 수로는 한 250개 가량 되고, 면의 수로 말하면 2천 한 4백 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2천 4백 면 가운데서 적어도 한 면에 한 사람씩은 통일이념에 무장된 핵심분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단위로 하여 이것을 발전시켜, 이것을 최하 기준으로 잡아 가지고 하나의 환경적인 기반을 닦는 데는 한 사람을 기반으로 하여 삼위기대, 세 사람 단위가 반드시 필요하겠다, 그래서 한 7천여 명의 정예부대가 필요한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분야에 속하는 그 인적 자원이라는 것은 못해도 대학 출신 이상, 중고등학교 교원의 능력을 지닌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되겠다! 이러한 사람들 7천 명만 사상무장을 할 것 같으면 사람들이 오래지 않아서 불어난다는 거예요. 몇년 이내에 대대적인 성과를 거두어 이 민족이 가야 할 새로운 노선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를 하는 데 있어서 먼저 주목하였던 곳이 어디냐 하면 대학가였습니다. 연세대학 등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을 타개하는 인적 자원을 배출시키기 위한 계획에서 출발하였던 것이 사회적 여론으로부터 대대적인 반박을 받아 가지고 막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안 됐기 때문에 중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면, 대학가보다도 중고등학교에 중점을 두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발전시켜 나온 이런 인재들은 어떤 분야의 청년이었느냐 하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돼 가지고 우리 교회의 기반을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활동을 하는 데는 개별적인 교파 운동이 아니라 어차피 전국적인 운동을 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 혹은 천적인 운세가 도래해 있는 연고로 우리 교회에서는 어떤 도시나 도를 중심삼고 집중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상대하고 있는 전선이, 싸움터가 전국이 돼 있는 연고로 전국을 대하여 우리는 준비하지 않으면, 싸우는 것보다도 미래의 싸움의 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준비 기간으로써 지금까지 싸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3년노정에서 통일신도들이 해야 할 것

그러면 한 면에 세 사람씩만이라도 단위가 되면 어떠한 분야에 책임을 지울 것이냐? 하나는 사상적인 면, 즉 이념적인 면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하나는 경제적인 면에, 즉 생활적인 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하나는 교육적인 면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이런 3분야의 형태를 갖춘 인적 자원이 한 면을 중심삼고 핵심 요원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전면적으로 이것을 충당할 길이 없는 연고로 우리들은 이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갖고 지금까지 활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분야가 전국적인 분야인 연고로 전국적인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7년노정을 정해 가지고, 전 3년노정 후 4년노정을 정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3년노정에 있어서 우리 통일신도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단 한 가지 이 민족 앞에 제시해 줘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떤 세력 단체로 나타나는 것보다도…. 우리 자체들이, 통일교회의 주인인 우리가 이 민족 앞에 보여 줘야 할 것이 뭣이냐 하면, 3년 동안의 목표가 뭣이냐 하면, 통일신도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고는 이 나라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이 나라를 살리는 데는 공산주의를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요, 민주주의를 가지고도 안 된다 이거예요. 세계적인 사조앞에 이 나라가 자타가 공인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신도들이 뚫고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이냐? 시련과 고난의 길, 역경을 타개해 나가면서 여기 이 3천만 민족 앞에 보여 줘야 할 제1 목표가 무엇이던고? 통일신도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저렇게 움직여 나가지 않고는 이 나라를 살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자는 거예요.

그 목표가 달성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지금 국내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의 세력이 강화되어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선 우리가 하고 있는 그 방향에 있어서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동시에 이념적인 기준을 우리가 민족 앞에 제시해 놓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공산당이 이 남한을 침투하는 데 있어서의 제1 루트가 뭐냐 하면, 중류계급 이하다 이거예요.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삼아 가지고 방향을 갖추어 주력을 하고 있는 연고로 우리는 이 노동자와 농민을, 중류 이하의 대중을 대해서 이념적인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들을 지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전면적인 개척의 노정을 나서면서 그 중류 이하의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적인 면에서 신념을 보여 주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농촌에 들어가게 되면 농사짓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혹은 어떤 부락에 들어가면 그 부락을 혁신하기 위한 선도적인 입장에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왔습니다.

둘째는 생활적인 분야에 공고한 터전을 우리가 은은한 가운데 닦아 놓아야 되겠습니다.

세째는 뭣이냐? 무산 대중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연고로…. 국민학교는 물론 대다수가 같은 입장에서 졸업한다는 것입니다. 동네면 동네, 면이면 면에 있어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자녀들이 소학교 시대에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이지만, 소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에는 무산계급의 자녀들은 농민으로 돌아가고 돈이 많은 사람들의 아들딸들은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까지 진학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간격이 벌어져요.

어제까지는 친구였지만 이와 같이 갈라지는 학창의 행로가…. 유산 계급의 자녀들은 자기 뜻대로 갈 수 있으되 무산계급의 자녀들은 땅과 더불어 친구하고 농촌에 들어가 묻혀야 할 입장에 서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거기에서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친구였던 그들이 서울이나 도시에 가 가지고 중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다니다가 돌아오게 된다면 농촌에 돌아간 자기 친구들을 친구시하지 않고 또, 농촌에 가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은 자연히 자기 스스로 격리되는 입장에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두 길이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할 수 있는 루트가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융합시키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계몽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다른 여러 운동을 전개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피어린 투쟁을 해왔다

이러한 우리의 움직임이 어느 단계의 환경을 움직일 수 있었고,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어느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정받을 수 있는 단계를 거쳐오면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발전해 나왔습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 단계에서는 우리의 운동이 리와 면에서부터 문제화되어 가지고, 군이면 군에서 면장회의 때 군의 문제로 여론화되고, 군을 중심삼은 여론이 도면 군수회의에서 도의 문제가 되고, 또 이것이 점차적으로 도지사, 중앙에까지 반영될 수 있는 그날을 바라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때가 지남에 따라 가지고 그 반응이 전 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서 아니나 다를까 면을 통하여, 군을 통하여, 도를 통하여 중앙까지 그 여론이 확대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현재 국내에 있어서 종교 단체로서 대한민국의 그 어떤 종교 단체도 갖지 못한 강력한 힘을 가진 단체라는 것을 국가의 위정자들로부터 대다수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피어린 투쟁을 해 나왔습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군이면 군, 도면 도의 활동을 하기 위해서 보행운동…. 경기도면 경기도에 집합을 하게 될 때는 될 수 있으면 걸어와라 이거예요. 걸어오는 데는 행렬을 지어 가지고 걸어와라 이거예요. 이렇게 해서 사방에서 몰려오기 때문에 그 행로에 있는 모든 지서들, 혹은 면의 책임자들이 우리의 활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세워 가지고, 이런 것을 보여 가지고…. 이런 활동을 전개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 있어서도 그래요. 치안국이면 치안국에 있어서 우리 교회를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강력히 수천 명, 한 5천 명 이상…. (이후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

<말씀 요지> 민주와 공산, 두 진영을 통일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전국 2,400개 면에 적어도 한 사람씩은 배치해야 됩니다. 삼위기대를 이루어 배치하려면 약 7천 명은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대학출신 이상이어야 합니다. 원래는 이대(梨大)와 연대(延大)를 중심하고 하려던 것이 무너져서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중․고생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3년노정 기간은 이 민족에게 통일신도들과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남한은 현재의 상태를 가지고서는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중류 이하의 계급에 침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원리를 전파하고, 생활지도와 계몽운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각 면의 삼위기대는 이념지도와 생활지도와 계몽운동을 책임져야 합니다. 원래 이념지도는 교회에서 책임져야 하고, 생활지도와 계몽운동은 농도원에서 책임져야 하지만, 여러분이 면에 가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대학생들을 일년씩 지방으로 보내서 중학교육을 책임지게 한다면, 그들은 농촌의 사정도 체득하고 애국심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제물이 되는 참다운 사상을 대학가에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판자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젊은이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본회(전국대학원리연구회) 창립의 목적입니다.

앉아서 간단히 얘기하겠어요. 여기서 받는 사람들은 조금이지만 본부에서 하게 되면 벌써 몇천만 원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전국적으로 보면. 이렇게 되면 이건 뭐 그 비율 될 수가 없어요. 대개 어떻게 됐느냐 하면, 지역장 교회장들은 여기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들이 왔다갔다하게 되면, 자꾸 돈이 있으면 쓰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뭣이냐 하면, 앞으로 금전관리에 대한 체계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방법은 별것없다는 거예요. 지역본부, 구역본부가 자리를 잡고 생활대책을 먼저 세워 줘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 놓고 요 사람들만 딱 중심돼 가지고 생활대책만 세워 놓으면 관리해 가지고 앞으로 무엇이든지 소모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 전반적인 조직을 살려가지고 앞으로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만약에 이 대구로 말하게 되면 사과가 유명하잖아요, 전국적으로? 이러면 본부에서 돈이 이제 몇억만 있으면 각 지구면 지구에 몇천만 원씩 떼 준다는 거예요. 떼 줘 가지고 철따라 우리가 전국 상대할 수 있는 물품을 말이예요, 본부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이거든요.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더구나 이 강원도 같은 데는 잡곡이 많이 나니까 전국 상대하고 잡곡을 소모할 수 있는 수량도 일시에 우리 지역 대원, 지구 대원을 동원해서 전부 다 사들인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전국으로 발송하면 그것을 분배해 앉아 가지고 큰 장사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장사를 하되 왔다갔다하는 여비, 여비를 제해야 되고 그다음에 거기에 드는 비용, 만일에 쌀을 산다면 쌀을 사는 데 있어서도 수매하는 사람의 비용도 줘야 되겠고 거기에 일하는 사람 전부 다 이거 뭐 임금도 지불해야 되는데 우리는 필요 없단 말이예요. 우리는 식구들이 모든 것을 잘 움직여서 협조해 줄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국의 경제권은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전부 다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고생하는 것이…. 물론 뜻을 중심삼고도 그렇지만 앞으로 이 16개 부락 부락에 들어가 가지고 활동만 해 놓으면 그 부락의 청년 혹은 그 부락 사람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공적인 뜻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 하는 간판만 딱 붙고 그다음에 경제적 뒷받침만 딱 해줄 수 있는 그 기준만 만들게 되면 우리에게 몽땅 말려 들어옵니다.

이걸 보게 될 때, 현재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이것이 정상적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정상적인 과정이 나올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상을 목표로 해 가지고 비정상 과정을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우리가 이 경북을 밀어 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더구나 여기 저 누군가? 영양의 소비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관심이 상당히 많다구요. 앞으로 그런 활동을 대대적으로, 농촌에 들어가 가지고 해야 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민심을 정화해 가지고 앞으로 우리가 지도할 수 있는 기반을 딱 잡아 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익 나는 것은 우리 개체적인 이익으로 소모하려고 하지 말고 공적인 이익으로 돌려 가지고 우리가 그들의 갈 길을 열어 주고 생활적인 대책을 취해 줄 수 있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우리가 어느 기준만 되면 말이예요, 면이면 면을 중심삼아 가지고 유지들이 많으면 유지들을 움직여 가지고 제일 못사는 사람들 위해 내라 이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봉사해 가지고…. 나라 살리고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수고한 실적만 있으면 부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쌀 두 가마니 내소' 하면 내는 거예요. '나는 피와 눈물과 땀을 팔아 가지고 이 부락을 위해 봉사했다' 하면서 거두는 거예요. 거두어 쌓아 가지고 못사는 사람들한테 나눠 주고, 앞으로 우리가 이 민족을 살려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준비 공작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이 고비를 허리띠를 졸라매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하나님도 욕심이 많을 거예요. 얼마만큼 많을 것이냐? 몽땅 삼키고도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하나님이예요. 무엇을? 죄악도 몽땅 삼켜 없애 버리고, 선을 몽땅 한 주먹 안에 넣어서 이 온 우주를 주관한다 해도 부족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멋진가요, 안 멋진가요?

보다 크고 선한 편에 서려 하시는 하나님

만일에 하나님이 나쁜 생각을 해 가지고 나쁜 편에 서는 하나님이 한번 되어 보겠다고 하는 날이면…. 그런 일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아이구, 이거 못 해먹겠구나! 내가 아주 나쁜 편에서 한번 하나님 노릇해 보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쁜 편에 절대 설 수 없다 이거예요. 절대 설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편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선한 편에 서는데는 조그만 선에 서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종족, 종족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 천주보다도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심정 끄트머리까지 전부 다…. 더더욱 큰 것! 심정세계는 무한에 통하는 거예요. 더 큰 분야의 것을 하늘은 요구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것은 탕감하기 위해서 나온 교회예요. 탕감하지 않고는 절대 통일이 안 돼요. 그러면 조그만 분야의 탕감을 할 것이냐, 큰 분야의 탕감을 할 것이냐? 「큰 분야요」 그 크기가 누구만큼 크기를 바라느냐 이거예요. 응? 누구만큼? 「하나님만큼요」 하, 하나님 만큼! 그래, 여러분들이 하나님만큼 크기를 바라요? 그만큼 크지는 못 하더라도 크고 싶기는 하지요? 「예」 그런 생각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할까요? 하나님도 거기에 찬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많은 것은 누구를 닮기 위하여, 무엇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냐 하면 하나님을 차지하고 하나님이 만든 세계를 내 것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 욕심이 다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암만 뭐 세상에 보잘것없는 그런 여자들한테 '너! 이다음에 시집 갈 때, 어떤 신랑 얻어 갈 거야?' 하고 물어 보면, '세계 대통령을 얻어 가고 싶다' 한다구요. 그거 죄예요? 「아닙니다」 죄일 게 뭐예요? 수단만 있으면 얻어 가라우. (웃음) 그게 능력이 부족해서, 그 사연이 닿지 않아서 못 하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야 좋지요. 남자도 그럴 거요. 뭐 색시를 얻는다면 말이예요, 미스 유니버스니 하는 세계적인 미인이 있다면 전부 다 '나,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런다구요. (웃음) 도적놈 같은 심보가 남자에게 많다구요. (웃음) 여자들은 괜히 좋다네! (웃음) 뭣이 '아이고 야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큰 분야를 탕감해야…. 그러면 통일교회는 뭐 기독교만 통일하려고 그래요? 「아니요, 세계요」 여기에 어디의 사람이 많아요? 김제 사람, 김제 고을 사람이 많이 왔어요, 전주 사람이 많이 왔어요, 정읍 사람이 많이 왔어요? 어디의 사람이 많이 왔어요, 지구장? 응? 「지구내에서…」 거창하게 왔구만, 거창하게 왔어요. 하여간 여기가 무슨 지구요? 「전북지구입니다」 조선지구요. (웃음) 지구장이면 무슨 장이예요? 세계 제일의 장이예요. 지구가 땅덩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지구장! (웃음) 아, 여기 나 물 좀 줘요.

왜 내가 이런 농삼아 얘기를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처음 온 사람은 '아이구, 선생님은 오셨는데 무슨 말씀을 시작할꼬?' 눈이 둥그래 가지고 '아이구, 뼈다구 같은 말을 할까, 혹은 폭신폭신한 요런…' 계란같이 만지면 흐물흐물한 무슨 빵 있잖아요? 옛날에 그런 거 먹어 봤지요? 꽉 쥐면 뿌욱 나오는 거? 아, 그거 먹는 것보다 만지는 것이 더 기분 좋더라구요. 만져 봤어요? '아, 그런 폭신폭신한 말을 할 것이냐? 무슨 말을 할 것이냐?'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나 그런 사람들을 골려주는 걸 참 좋아해요. 웃기 싫어도 다 웃었단 말이요. (웃음) 이러고 보던 사람도 '저 사람이 웃나 안 웃나 보자' 하고 내가 척 보니까 그 사람이 먼저…. (흉내 내심. 웃음) '그러면, 그렇지! 저 사람을 웃겨 놓고야 내가 얘기할 터인데…' 하고 생각했는데, 첫마디에 웃으니 이제 기분 나빠 못견디겠어요. (웃음)

미국 순회 중에 있었던 일

참, 사람이 말이지요…. 내가 이번에 미국 가서 말이예요, 미국 가니까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굉장히 났어요. 신문에도 났고 뭐 이렇게 이렇게…. 전부 다 유명한 사람들이 팜플렛 해 가지고 구라파까지 선전해 버리니 이름이 굉장히 나니까, 나중에 다…. 미국 사람들이 이름난 사람 만나는 것을 참 영광으로 알아요. 이건 뭐 자기의 직장이 문제가 아니예요. 다 집어 던지고 만나자고 매일같이 전화가 와 가지고 '바쁘지만 만납시다' 해서 몇 녀석을 만나 주었더니 만난 사람은 좋아서 선전하는데, '하, 무슨 얘기하고 무슨 얘기하고 굉장하더라' 하고 선전한 모양이예요.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 내가 이용당하는 입장에서 만나 주고 싶지 않단 말이예요. 그러면 이녀석들, 코가 들창코고 눈이 시퍼런 녀석들에게 말이예요, '찾아오겠으면 내 명령에 순응해서 오라'고 해 가지고 어떤 명령을 했느냐 하면 '자, 나를 만나고 싶으면 우리 통일교회의 워싱턴 중앙 복판에 훈련소가 있다. 강의, 훈련소가 있다. 합숙소가 있으니, 3일 동안 꼭 들어박혀 가지고…. 너희들이 비용은 내야 한다. 3일 동안의 비용 내고 와서 자면서 사흘 동안 원리 안 들은 사람은 절대 만나 주지 않는다' 라고 했어요. 아, 이랬더니 이녀석들이…. 자기 딴에는 이게…. 미국에는 박사가 많더라구요. 그런 사람이 와 가지고…. 50이 넘고 60이 넘어 눈이 꺼부둥해 가지고 '내가 내일부터 듣겠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데려다 놓고 토요일 일요날에 들어가서…. 강의를 듣고 나서 만나자고 해 놓았더니 가는 거예요. 한국 사람 같으면 한 녀석도 안 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만큼 진취적이예요. 그리고 새로운 소식에 대해서는 흥미가 진진해요. 알면 알수록…. 그런 면에서는 참 폭이 넓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가히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국민성이 되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더라 이거예요. 한국 사람 같으면…. 요즘에 신문기자 짜박지만 해도 꼬리를 젓고 다니고서 뭐…. 여기 신문기자 안 왔소? 잘 들으라구요. 만나 주면 뭐 '세상 천지에 나만큼…' 하면서 꼬리를 젓고 돌아다니고…. 재수 없게 그런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하면 할수록 말을 더 들으려고 하거든요. 삼척동자 같은 어린애의 말도 들으려고 한다구요.

신학교 알지요? 세계에서 유명한 신학교 학장이 나를 찾아와서 만난 거예요. 만나 가지고 '내가 바보 놀음 한번 해보자'고 해서 진짜 바보 노릇한 거예요, 어떻게 하는가 보게. '이녀석,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해 가지고 아주 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바보 놀음 한 거예요. 세상 사람 같으면 이럴 거 아니예요? (흉내 내심) 그래도 참 무서워해요. 말을 못 해요. 그 사람들이 대인 관계에서 얼마나 조심하는지 몰라요. 그걸 보면 한국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많이 배워야 돼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을 내가…. 어떤 사람들은 '저런 말은 왜 하나' 할는지 모르지만, 왜 하느냐 하면…. '이거 공석상에 처음 온 사람들을 설렁설렁하다가 쓱 감투 씌워 가지고, 뭘 씌우는 말이 아닌가?' 하겠지만, 그건 아니예요. 참고로 알아두라고 말한 거예요.

사람이 이렇게 척 만나 가지고 심각한 사람들을 떡― 이렇게 해 가지고 말씀을 하려면 말이예요, '또, 그거! 저 분이 아무개 선생님이신데 무슨 말씀 할까?' 해 가지고 심각해 있으면 층으로 보면 맨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지요? 심각해 가지고 이러고 있으면 나무로 말하면 맨 꼭대기에 올라 앉은 사람이예요. 이건 조금만 하면 거꾸러지는 거예요.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이 사람들을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턱 털어놓고 허허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게 해줘서 다 속이 풀릴 수 있게 해야 돼요. 그래 놓고 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을 내가 그렇게 해서 한번 다 허리띠를 풀고 웃을 수 있게끔 해 가지고 얘기를 한번 해보자 이거예요.

내가 미국 가서 그랬어요. 아, 이녀석들이 두 대의 택시로, 덩치가 말 같은 녀석들이…. 또 이 여자들도 부스대고 오는 거예요. 미국 여자들은 참 부스대더라구요. 남자하고 가더라도,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면 여자가 재수없게 먼저 달랑 들어서요. 남자는 떡 구경하고 있어요. 이게 미국식이예요. 그건 복귀식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여자들이 또 '선생님은 여자하고 원수인 모양이구만! 그 사람들은 그렇게 좋아하는데 왜 그래?' 할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좋아해도 천리에 어긋났으면 거꾸로 뒤집어 박아야지!

아주, 여자들도 아주 뭐…. 요거 여자들 보게 된다면 뭐 쓰고 다니는 모자가 천 가지 만 가지예요. 내가 뉴욕지구에 가 가지고 뉴욕 복판에 한 30분 동안 서서 구경하는데 무슨 구경 하느냐? 오고 가는 뭐 차 구경하는 게 아니예요. 차야 뭐 그까짓 것 뭐뭐 썩어지게 있는 게 찬데, 가만히 여자들을 내가 한번 관찰을 해봤어요. 거기에는 차 타고 다니는 것보다도, 뉴욕에는 차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가서 차를 가지고 나오면 갖다 세워 놓을 곳이 없어요. 차가 너무 많기 때문에 세워 놓지 못 하므로 타고 나오면 내릴 수가 없어서 뺑뺑 돌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어디 가서 출입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차는 차고에 가두어 두고 사람이 11호차 타고 나가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되기 때문에 거리 복판으로 사람이 막 줄을 지어 가지고 이렇게 다니는데 가만히 보니까, 남자들이야 뭐 그런 거고, 여자들을 보니까 여자라는 여자는 전부 다 모자를 쓰고 나오는데 하나도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이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말이예요, 나무 토막에다 턱 놔 가지고 여기에 무슨 닭털을 물들여 가지고 쓱 해 가지고 이걸 떡 쓰고 있더라구요. 아이구…! (웃음) 미국 여자들은 다 창작력이 훌륭한지 뭐 못 갖다 쓰는 게 없더구만요. 누가 자기와 같은 모자만 써도 기분 나빠서 벌써 치워 버리는 거예요. 그거 보면, 여자들이 참 이상하지요. 연구해야 할 것이 여자예요. 안 그래요?

이 서양 사람들이 밖에 와 가지고 '아, 저분이 미스터 문인데 한번 구경하러 왔소이다' 하고 한 3백, 4백 리 되는 거리에서 찾아와서 기다리고…. 4백 리 가까운 곳에서…. 두 시간 반, 시간 반, 한 두어 시간 되니까 여기로 말하면 한 8백 리 되겠구만요. 미국에는 회사 출근을 4백 리 밖에서 해요. 그거 믿어지지 않지요? 한 시간이면 한 4백 리 달린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4백 리 밖에서 출근하는 데…. 서울이 여기서 얼마인가요? 「오백 한 사오십 리 됩니다」 오백 사오십 리는 말이예요, 한 시간 이십 분이면 가는 거예요. 기분 좋지요?

그런 곳에서 왔다는 거예요. 아, 이녀석들이 왔으니 거 어떻게 해요? 모두 차렷하고 그저 걸상 위에 앉아서 조용히 있는 거예요. '무슨 짓 하나 보자!' 하고 있더라구요. 그럴 때는 '차렷!' 해 가지고, 이렇게 해 가지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쓱 나서서 '당신들, 노래 좋아하지요?' (웃음) 하면 대번에 풀어지는 거예요. 아, 그 말에 저 선생님을 보니까 노래 한번 할 것 같다 이거예요. 쓱, '노래 좋아하지요?' 하니까 노래 할 것 같거든요. '예스!' 하는 거예요. '나도 노래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는 하기는 싫어하고 듣기는 좋아합니다' 그랬다 이거예요. (웃음) 둘이 맞았거든요. 서로 좋아한다니까 말이요. 좋아한다니 그건 뭐 하는 걸 좋아하는지 듣는 걸 좋아하는지 알 게 뭐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나도 좋아하는데, 여러분에게 지지 않게 좋아하는데 노래 하는 것보다 듣기를 좋아한다' 하니까, '하하…' 웃더구만! 그래서 '거 왜 웃소, 왜 웃으시오?' 이래 놓고는 '나는 한 사람으로 왔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내가 손님이요. 그러니 여러분이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나를 후대할 책임이 있고 오늘 이 단체의 입장에서는 여러분이 손님이니 단체의 입장에서는 내가 대접할 입장이요. 그런데 사람이 욕심이 많기 때문에 큰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을 비교합니다. 그런 걸 볼 때에 나라의 입장에서 처리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손님 대접해 주소!' (웃음) 그건 그렇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렇게 때려잡는 거예요. 그래서 노래 한번 하라니까 뭐 서로 안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여자가 이러더라구요. (웃음) 저기 왼쪽에 있는 젊은 아주머니가 와서 나를 쓱 보더니…. 그 사람들 다 눈 보면 알아요. 한국 여자들은 첫눈이 마주치면 그저…. (흉내 내심. 웃음) 아주 이게 뭐 심장이 뒤집어지는지 뭐 요지경이 벌어지지만, 그 사람들은 쓱 의견이 통하고 서로서로 타산이 형성되면 반겨 웃어 주는 거예요. 그럴 때는 내가 쓱 노래 한번 불러 주기를 바란다. '너, 한번 해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내가 한국 노래를 멋지게 부른 거예요. 또 그렇다고 여러분들도 이번에 '선생님이 노래 한번 불러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생각한 사람이 뭐 3분의 1은 될 거라구요.

그럴 때는 노래가 아주 그저…. 그 사람들이 모르는 우리 한국 민요곡을 해서 꼬불랑꼬불랑 길고 이상한 노래, 아주 인상에 남을 노래 한 곡 한다구요. 아, 이렇게 해줬더니 다…. 이래 놓고는 보니까 그 딱딱하던 분위기가 그저 전부 다 팥죽 같아 가지고…. (웃음) '그럼! 그러면 그렇지!' 그래야 내가 골라잡으면 순순히 풀리지, 그렇지 않으면 뼈다귀 있는 그런 생선 떼거리 조그만 것들을 말이예요, 그냥 쥐면 되나요? 들이 삶아 놓고 쥐어야 물렁물렁 녹아 떨어지는 거예요. 이건 다 이렇게 뒤집어 엎어서….

지금까지의 역사가 찾아온 것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아, 저 선생이 오시더니 뭐 처음 온 사람이라고 해서 뭐 어린애 취급해 가지고 저렇게 말씀하시나' 하면서 섭섭하게 생각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여튼 웃고 보니까 십년지기보다 더 가까와졌어요. 그렇지요? 「예」 그렇게 되어 가지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다음에 오지 말라 할 때는 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려요. 알겠어요? 왜, 오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와서 거기 있어? 기분 나빠 죽겠어! 양심은 다 있는 모양이예요. 쓱 이렇게 보니까, 그저 그냥 온 사람은 내 눈이 이렇게 가면…. (흉내 내심. 웃음) 그거 보면 사람이 양심은 다 있구만요. 오늘만은 용서를 해줄께요. 이다음에도 그럴 줄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보라구요. 내가 언제나 이 놀음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이 지구에 찾아오면 이제부터는 교육도 해야 되겠고…. 할 일이 많습니다. 이 공석에 와서 그저 뭐 이렇게 몇 시간 이러다가 내일 이제 대구에 가게 되면 아무 말도 못 해요. 또 그러고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일선에 나가 가지고 싸우는데 갖은 사연이 많아요. 눈물 나는 사연, 지친 사연, 이런 것도 듣고 싶고…. 그럴 거 아니요? 그러기 위해서 공적인 입장에서 또 한번 만나 줘야 할 책임감을 느껴서 본부로부터 지구장을 통해서 그렇게 당부해 가지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보면 규율 위반자들이 많아요. 그것이 얼마나 기분 나쁘냐 이거예요. 이왕지사 그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고, 다음 번부터는 안 그럴 거예요, 응? 안 그러겠지요? 「예」 안 그러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다 용서해 주지요. 좋아요? 「예」

그러고, 한 가지 또 부탁하겠어요, 한가지 또 부탁을 해야 되겠어요. 아, 이번에 내가 전북에 오다가 혼났어요. 지금 전북에 왔지만, 전북에 들어서 내가 혼났다구요. 왜 혼났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뭐 선생님이 그렇게 알뜰하게 보고 싶은가요? 진짜 보고 싶어요. 「예」 보고 싶으면 내가 감옥소 들어와 있을 때 전부 와서 실컷 보고 가도록 찾아 주지요? 「몰랐습니다」 누가 모르래요? (웃음) 모른 게 죄지 뭐 아는 내가 죄인가요? 그랬으면 내가 얼마나, 죽어도 못 잊을 터인데. 아, 대전에서 전라도인지 무슨 땅인지, 전북인지 무슨 땅인지 들어서니까 차가 왜 그렇게 지지리 덜거덕거리면서 멎기는 왜 그렇게 자주 멎는지, 급행차가 완행차보다 더하더구만요. 그렇지요, 차가? 「아니, 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예요, 시간이 좀 늦어 가지고 한 십 분간 늦더니 그저 정거장마다 내 집이예요. 이렇게 되니까, 머무는 곳곳마다 통일교회패들이 있거든요. 이건 한 십 분 가다가 멎게 되면 와 가지고 떡 이러고 있으니 내가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있어요?

보라구요. 대전에서 얘기해서 피곤한데, 찻간이 피곤한 걸 풀어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자꾸 와서 이러니, 어떡하라는 말이예요. 그렇찮아도 찻간에 척 올라가면 나와서 전송하는 것을 볼 때, 거기에 탄 사람들이 수상해서 눈을 이렇게 해서 '저거 누굴까?' 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아, 이거 들락날락 내가 어떻게 부끄러워서, 사나이의 담은 가졌지만 부끄러워서 어떻게 어떻게 견디겠어요? 부끄럽겠는가 안 부끄럽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배우인가요? 배우면 다 좋아할는지 몰라도…. 조금 가다가는 앉지도 못 하고 또 나가야 되고, 조금 가다가 또 앉지도 못 하고 또 나가게 되고…. 여러분은 한 번이지만 선생님은 수십 번 고통인데 이거 해먹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녹음이 잠시 끊김)

잘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거예요. 잘될 수 있는 길은 있기는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잘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많지 않아요. 이 우주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어진 모든 피조물 세계 가운데 있어서 혹은 하나님까지 합해 가지고, 그 하나님과 피조물이 합해 가지고 잘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을 거라 이거예요. 잘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면, 잘될 수 있는 입장은 못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좋을 수 있는 길을 찾고 또 가고, 가다가는 또 찾고, 찾다가 또 가고, 조금 낫다고 해서 그걸 붙들고 또 나아가다 또 찾고, 또 가고 또 찾고, 또 가는 거예요. 찾았다고 해서 좋아했지만서도 그것이 잘된 것이 아닌 것을 알 때 나중에는 후회하는 일이 역사노정을 걸어오면서 수수만만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이 이렇게 가야 좋다. 저렇게 가야 좋다. 요렇게 가야 좋다. 이리로 돌아가야 좋다' 별의별 주장을 한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 주장하는 그 당시에 있어서 그 사람은 이렇게 가야 좋다고 하는 목적에서 움직여 나갔지만 그것이 가다가 보면 자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될 때는 그는 역사 발전과정에 있어서 제거를 당한다는 겁니다. 좋을 수 있는 인연을 내포한 소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소성을 바탕으로 한 주의나 사상은 역사시대와 더불어 긴 시기를 따라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도 역시 좋지 않은 것이 드러나게 될 때에는 끝이 온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지금까지…. 그거 어떻게 보게 되면, 수많은 줄을 그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6천 년 동안 어떤 섭리 역사를…. 하나님이 있든가 역사의 흐름이 있어 가지고 흘러 나간다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어떤 역사의 방향이 있으면 그 방향을 따라 가지고 거기에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어떤 주장이나 인생의 행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행로는 6천 년 섭리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방향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인연을 가져 가지고 남아 나올 수 있으되 그 행로가 가다가 끊기는 날에는 제거당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옥닥복닥해 가지고 '야, 이거 안 되겠다. 또 다른 것 찾자' 해 가지고 많은 주의가 나오면, 거기서 서로서로간에 논쟁이 벌어져 수많은 교파들이 싸우고 이래 가지고, 거기서 또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해 가지고, 거기에서 하나의 줄기가 나와 가지고 이만큼 가서는 또 싸우고 또 가다가 또 싸우고…. 이거 그러면서 지금까지 왔다는 거예요.

좋을 수 있는 길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해

그러면 인간들이 지금까지 좋아질 수 있는 그 길을 찾아 나왔는데 억천만세에 생을 지니고 왔던 수많은 인간들이 너도나도 할것없이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과연 이것이 인생이 좋아할 수 있는 길이다. 이것만이 진리다!' 할 수 있는 길이 이 땅 위에 나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 그런 길이 나왔어요? 그런 길이 나왔어요?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나왔습니다」 뭣이, 나와요! 지금까지는 안 나왔지요. 지금까지는 안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인간이 좋아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왔습니다. 인간이 합한 것이 국가가 되고 국가가 합한 것이 인류가 되는 거예요. 만인이 공히 기뻐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길이 동양 사람 서양 사람을 막론하고 동서양의 어떤 문화세계에 나타난다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동서양의 교류는 물론이거니와 동서양이 거기를 향하여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전부 다 몰려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런 길이 아직까지 안 나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를 보거나 지금의 사회적인 현상을 보더라도 역사가 끌어 나와 가지고 열매맺힐 수 있는 단계에 놓여진 민주와 공산을 두고 볼 때에도 이 두 갈래 길이 있어서 '네가 나쁘고 내가 좋다'고 서로 주장하는 대립적인 입장에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는 만인이 공히 갈 수 있는 좋은 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필시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길, 인생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길, 혹은 행복이 있다면 인생을 중심삼은 행복의 길, 이 모든 길을 통합한 단 하나의 길이 나와야 된다하는 것은 역사적인 귀결점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해결해 놓지 않고는 좋다는 세계를 지니는 것이 불가능한 거예요.

좋다는 세계를 못 지닌 사람이 좋은 나라에서 살 수 없는 것이요, 좋은 나라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좋은 종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요, 좋은 종족을 갖지 못한 사람이 좋은 가정을 가질 수 없고, 좋은 가정을 갖지 못한 사람이 좋은 개인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자고로 지금까지 성인현철들은 무얼 한 것이냐?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최고로 좋은 것, 맨 마지막으로 좋은 것, 최후에 남아질 그 좋은 것을 찾기 위한 이 경주장에 와서 어느 한 분야를 책임지고 허덕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에 있어서 애국자요, 혹은 역사시대의 동서고금에 왔다 갔던 성인현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의 가치는 어느 것이 오랜 역사의 인연을 끌고 나올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 결정해요. 역사가 깊은 인연을 지니고 오는 사상일수록 인간들이 사모하고 인간들이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체로 봐서 우리가 헤아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좋은 것은 그것이 좋지 않다고 아무리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모든 과거지사를 헤아려 보게 될 때, 많은 주권자들이 이 세상에서 지나갔어요. '아, 이런 주의가 옳다!' 해도 흘러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보면, 로마 시대에 있어서의 네로황제 같은 사람들! '기독교는 이 지상에서 없어져야 된다! 인생이 거기로 가면 안 된다!' 해 가지고 가는 길을 전부 다 막고 막고 막고 막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이거예요. 만민이 전부 다 욕구하는 것은 좋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좋을 수 있는 길의 내용을 그 자체가, 기독교면 기독교 자체가 지니고 있게 될 때에는 아무리 반대를 받더라도 그 반대하는 것이 망하지, 좋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기독교면 기독교가 안 망해 들어가요.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모든 주권 국가는 시대를 따라 변해 내려왔지만 종교의 역사는 그대로 남아져 내려온다는 거예요. 기독교면 기독교, 유교면 유교, 불교면 불교, 회회교면 회회교가 오랜 역사적인 노정을 걸어 남아 나오는 걸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 이것들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좋은 것은, 만인이 전부 다 좋아할 수 있는 것은 둘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이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끝날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있단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되겠으니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그 인연의 발판을 가진 종교가 세계성을 띠고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이 인류 앞에 대체로 봐 가지고 좋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역사적인 실적으로 미루어 보게 될 때 기독교가 인류에게 있어서 좋을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하는 것을 어느 종교보다도 더 생각할 수 있는 면에 가깝다는 거예요. 이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수많은 교파가 있어서 서로 싸운다 이거예요. '네가 옳고, 내가 옳고…' 하면서 싸우고 또 싸워요. 이런 기독교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여기에서 복잡하게 싸우니 이것이 더 가야 돼요. 이놈을 훌쩍 끌고 나가 가지고 더 가야 돼요. 이래 가지고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등의 딴 종교가 비교할 때 상대도 안 될 만큼 나가야 되는 거예요.

이런 길이 만민이 좋아할 수 있고…. 사람만 좋아해서는 안 돼요. 땅 위의 인간들만 좋아해서는 안 되고 천상에 가 있는 성인현철 모두 다 좋아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인류가 지상에 그러한 주의가 나오기를 기다린 것은 물론이지만 천상세계에서 볼 때도 과연 그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공인할 수 있는 소망적인 내용을 지닌 종교적인 발판이 나와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길, 인지당행지도(人之當行之道), 인생으로 필시 가지 않으면 안 될, 만인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도의 길, 만인이 좋아할 수 있는 본향길, 만인이 좋아할 수 있는 조국광복의 길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인이 좋아할 수 있는 세계 해방의 날, 만인이 좋아할 수 있는 천지가 화평할 수 있는 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나와서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으면 그분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그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가 이 땅에 나온 이유

그러면 통일교회는 말이요, 통일교회가 이 땅에 뭘하러 나왔어요?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나쁘게 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좋게 하기 위해서요」 무엇을 좋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아닙니다」응? 여러분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만인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여러분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으면 그건 며칠 안 가서 다 쓰러져요. 여러분들이 시집 가 버리고 여러분들이 죽으면 다 망할 거 아닌가요?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 전주 바닥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전주 바닥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한 백 년 후에는 없어질 거예요. 그러면 자동적으로 망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나오는 데는 현세의 세계 앞에 있어서의 만인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의 한 촛불을 들고 나와야 되고, 역사적인 모든 과거의 현철 성인들이 소망하시던 소망의 실권을 갖추고 나와야 되고, 현재를 대신할 수 있는 이런 가치적인 내용을 지니고 나오는 것은 물론이지만 금후 20세기, 이후 30세기, 혹은 100세기, 천추만세의 역사시대에 있어서도 필요로 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나오지 않으면 어느때라도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좋다, 나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어느 중간적 입장에서 그 사명을 하기 위해서 나왔다면 이건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에 휩싸여서 한때에 가 가지고 비운의 문명을 맛보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 이상의 것이 나오게 될 때는 거기에 만사의 모든 내용을 양보해 놓고 새로운 역사 창조 시대의 개척분야에서 공헌해 달라고 축수를 드리고 후퇴해야 할 운명에 놓이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통일할 수 있어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교회냐 이거예요. 나에게 대답하라고 하면 '통일교회는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다. 나로 말하면 만민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요, 만민으로 말하게 되면 좋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이 선생으로 말하면 좋게 하기 위해서 나왔고, 앞으로의 수많은 인류들은 좋게 되기 위해서 나왔다 이거예요. 거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좋겠어요? 「예」 그래,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뭐 좋아진 게 있어요? 좋아진 게 있어요? 좀 물어 보자구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너, 메가네(めがね;안경) 낀 녀석 한번 대답해 봐. 있어? 「있습니다」 있기는 뭐가 있어. 그 얼굴의 그 모양이구만. 뭐가 있어, 뭣이? 보라구요. 있기는 뭐가 있느냐 말이예요. 없어요.

나도 이 길로 지금까지 생명을 바쳐 나왔지만 뭐 나는 그냥 이렇게 있는 거예요. 가는 데마다 욕을 먹고, 핍박받고, 감옥에 들어가기 일쑤이고, 쫓겨나기 일쑤이고 못 볼 것을 보고…. 핍박받은 것만 해도 무더기 산이 되었어요. 백두산보다 높게 핍박받았단 말이요. 여기 여러분들도 전부 다 핍박받은 사촌 아니면 사돈의 팔촌 아니면 12촌권에는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게 뭐가 있어요? 새빨갛게 나빠, 새빨갛게 나빠요. 하얗게 나쁘면 동정이나 하고 거기에 무슨 여유가 있지요. 새빨갛단 말이예요. 새빨갛다 못해 새까매졌어요.

통일교회에 나오면 일어나는 현상들

보라구요. 내가 한바탕 또 엮을까요? 여러분들, 보라구요. 통일교회 믿고 나서는 '아이구, 옛날에 내 어머니 내 아버지와 살던 때는 자유 천지더니 통일교회 믿고 난 다음에는, 아이구! 우리 집이 아니고 남의 집이 되어 버렸어. 아, 그 집에 들어가게 되면 가슴이 답답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거 사고 아니요? 또 어머니가 '오라, 오라' 하면 가슴이 철렁해요. '이거, 또 어디 보내려고?' 지금 스무 살이 넘어선 처녀가 되었으니, '야 야, 아무개야! 와라' 그러면, '아이쿠 어머니야! 저 뭐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틀림없이 시집보내려고 그러누만!' 하고 가슴이 철렁해요, 안 해요? 아가씨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 통일교회 처녀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시집보내겠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왜, 웃기만 하나? 뭐 동감이 되는 모양이구만! 그래 됐다. 대답하기는 거북하거든요.

우리 남자는 괜찮아요. 장가보내겠다는 것이 제일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안 무섭습니다」 그래, 장가 가라우. (웃음) 왜 다 웃어요, 장가 가라는데? 뭣이 틀린 모양지요? 그 녀석 덜되었다 이거지. (웃음) 그 말이거든요. 그래, 너희 엄마 아빠가 장가보내겠다는 게 좋아? 「예」 제일 무서워하는 거예요. 누가 또 '좋아요' 그래? (웃음) 그거 제일 무서운 겁니다. 군대 가는 게 낫지 장가 시집 보내겠다는 게 제일 무서운 거예요.

세상 사람과 다르지요. 아, 이거! 나이가 벌써 이쯤 되었으면 결혼할 때가 됐는데, 제 철이 떡― 됐는데…. 제철이라 하면 이상하지만 말이예요, 제 철이 떡― 되었는데…. 아, 꽃필 때면 꽃이 피어야 할 텐데 아, 이놈의 노처녀는 뭐 어떻게 되어 있나? 머리를 만져 보니 꼿꼿이 버틴 그대로구만! 이렇게 신세타령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만 엄마 아빠가 동정해서 '야, 시집가라' 하게 되면 '아이구…' 하게 된다는 거예요. 사지가 녹아난다 이거예요. 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그게 잘된 거예요, 그게? 잘된 거예요, 그래? 지지리 못됐어요, 지지리.

보라구요. 사랑하는 친구들 말이예요, 엊그제까지 한 교실에 앉아 가지고 '너 죽으면 나 죽고…. 내가 너보다 먼저 죽으면 좋겠다' 하던 친구지간에도 통일교회만 들어오면, 쌩―! (웃음) '언제, 언제 족속이 되어 버렸어?' 하면서 쌩― 해 버리는 거예요. 보기만 해도 그저 입을 찡그리고 그저 눈을 모밀눈으로 해 가지고, 그저 독사 할아버지 눈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들, 그것을 거룩하게 구경 잘했지요? 그래, 그게 잘된 거예요? 잘된 거예요?

통일교회를 믿고 다니려면 말이예요…. 내가 밤중에 암만 동네에 드나들어도 개가 안 짖더니 통일교회 믿고 난 다음에는 개까지 짖는다 이거예요. (웃음) 왜 개가 짖느냐 이거예요. 왜 개가 짖느냐? 내가 분석을 해봤어요. 옛날에야 그저 마음놓고 '쿵 쿵 쿵…' 이렇게 돌아 다녔는데 통일교 믿고 그다음부터는 '아장 아장…' (흉내 내심. 웃음) 냅다 짖지 않는 그 개가 정신나간 개예요. 개까지 짖더라 이거예요. 잘됐어요, 그래? 나는 싫어, 나는 싫어!

또 보라구요. '아이구, 당신 아니면 나는 죽습니다. 아이구, 죽습니다' 그래 가지고 뭐 '그 색시 아니면 나는 죽소' 하면서 상사병이 나고 이래 가지고 결혼한 부처끼리도 통일교회만 나오면 그 사내가 눈이…. (흉내 내심) 한 곳밖에 안 보여요, 한 곳. 어디밖에 안 보이느냐? 교회밖에 안 보인다 이거예요. 이건 뭐 색시가 밥을 먹었는지 살림살이를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관심해져 버렸다 이거예요. 이래 놓으니 색시는 '나 살려라!' 하고 와서 야단하는 거예요. 그게 잘된 거예요, 그게? 잘된 거예요, 꼬락서니가?

또 여편네들도 그래요. 아무리 재미있게 둘이 만나 가지고 뭐 '꽃 중의 꽃이요, 향기 중의 향기요! 아이구, 귀염둥이 아가씨!' 하면서 뭐 어떻고, 그런한 타령하다가 결혼을 딱― 해 가지고는 말이요, 이 색시가 좀 있다가 나중에 통일교회만 들어서면 남편이 방에 있으면 답답하고 '어서 나가면 좋겠다! 출근 시간이 어서 되면 좋겠다' 해 가지고 '나 회사 가야 되겠어' 하면 그저 마음이 벙실벙실한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대문을 나가게 되면 '하!' 하는 거예요. (흉내 내심. 웃음) 그런 일이 벌어진다 말이예요. 그리고 또 저녁때가 되어서 다섯 시쯤에 가 가지고 대문이 찌꿍거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하거든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래, 그것이 좋은 거예요? 이 아주머니들은 다 훤하게 통하니까 으레 그럴 줄 알고 있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은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 같이 들릴 거예요. '거 세상에 그런 변이 있나?' 하겠지만, 그런 변이 있어요! 그래, 그것이 잘된 거예요?

보라구요. 또 그다음에, 그건 또 그렇다고 하고, 집에서 몰리고 가정적으로 그렇게 외로워져서 교회에 들어오면 '오, 어서 와라' 하면서 어깨도 툭툭 두드리고 '아이구, 집에서 그 어려움을 견디느라 얼마나 수고했나?' 하고 동정이라도 백 퍼센트 해줘야 할 텐데, 도리어 또 꼬리표를 붙여서 노동판에 내보내고, 흙짐 지는 데 내보내고, 농사하는 데 내보내고, 가서 고생하라고 들이 때려 몬다 이거예요. 할 수 없어 눈물 흘리고, 이리 나오면 이게 싫고 이리 나오면 이게 싫고, 그래도 나오면 이게 싫고 이래 가지고 길이 안 보여 가지고 갈 지(之)자 걸음을 해서 하염없이 정처없이 오라는 데도 없는 동네를 찾아가는 그것이 잘된 일이예요, 그래? 잘된 거예요? 「예」 이게, 뭣이 잘된 거예요? 그래, 잘된 거예요, 임자네들한테? 「예」이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게 뭐이 잘됐어!

보라구요. 여러분들은 가만히 보면 얼굴들은 그래도 그 무얼 먹고, 그 본바탕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얼굴들은, 그 형은 다 그럴 듯하게 생겼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웃음) 그거 근사하지요? 옷들을 바라보니 잠바 짜박지 아니면 미군 군복 짜박지나 얻어 입고 신발도 보게 되면 찢겨지고, 꿰어 신고 남이 집어 던진 거나 주워 신을지 모르지요. 그런 거 신고 다니고 그렇게 살면서, 그게 잘된 거예요?

아, 이거! 내가 노동판에 가서 돈을 벌어도 내 마음대로 쓰기나 하나, 뭣이 있어 가지고 내 마음대로 처분하겠나. 집이야 있다고 그대로 팔아 가지고 내가 한껏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사 먹기를 하겠나! 집을 팔면 때까닥 마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야! 그 집 팔았으면 그 돈으로 너, 뭐해야지!' 딴 명령이 후닥딱 뛰어 나오거든요. 아, 이건 집을 팔아서도 내 마음대로 못 하겠으니…. 점심 한 끼를 마음대로 못 사먹어 본다 이거예요. 그게 좋은 거예요? 처음 온 사람들은 이상할 거예요. 하여튼 이상한 소리로 들릴 겁니다. 그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마음이 그렇게 알아요. 그걸 볼 때 그게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그래 가지고는 그게 다 거꿀잡이가 되어 가지고는 한 가지 남은 것은 '하늘을 위해서 죽으면 좋겠다. 그저 아버지 뜻을 위해서, 뜻을 위해서 죽겠다' 그래야 된다고 하니 말이지요, 그게 잘된 꼴이요?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잘된 겁니다」

자, 못됐든 잘됐든 하여튼 되기는 됐어요. 되기는 됐단 말이예요. 되기는 됐어요. 그건 내 눈에 보기에는, 혹은 사람들의 눈에는 안됐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눈에 그것이 됐으면 됐다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악질 분자니까 모르지만 옛날의 성인현철들이 보고 '야 잘됐다!' 하면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 있어서도 수많은 참된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아, 그 사람! 잘됐네. 햐! 훌륭하다' 하게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됐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남들은 다 없어져도 통일교회만은 남는다

자,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남들은 서로 가게 되면 우리는 동으로 가고, 또는 남이 남으로 가게 되면 우리는 북으로, 전부 정반대였다 이거예요. 남이 먹으려고 하게 되면 우리는 안 먹고, 남이 입으려고 하니까 벗고, 남 자게 되면 안 자고 하는 겁니다. 정반대예요. 여러분들이 입을 보니까 얼마나 잘먹겠어요, 이게! 입을 보면, 이놈의 입은 피곤한 줄을 모르거든요. 늘었다가 줄었다가 아주 박자를 얼마나 잘 맞춰 주는지…. 피곤한 줄 알아요? 다리는 피곤한 줄 알아도 이놈의 입은 만 년 가도 피곤한 줄 모르거든. 얼마나 잘 먹는 입이예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의 선생님과 더불어 '우리, 봉쇄령을 한번 내려 보자' 해서 한 일주일 동안 먹지 말라 하면 이러지요? (흉내 내심. 웃음) 여기 청년들이 있거들랑 일주일 이상 금식해야 돼요. 뭐야, 김 뭐야? 「수명입니다」수명이 길겠구만! 오래 살겠구만! 만세를 살고 싶어요? 금식했어? 「예, 했습니다」 언제? 소식도 없이 했나? (웃음)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 이제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일주일쯤은 금식해야 돼요. 일주일 금식해 놓으면 무엇이 편리하냐 하면 말이요, 밥 걱정이 없어져요. 운명 타령이 없어져요. '내가 밥 굵어서 밥 때문에…' 이런 것이 없어져요. 사람이 암만 죽을 팔자고, 아무리 공동묘지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아, 사흘 동안에 밥 한 끼 안 들어가겠어요? 사흘에 밥 한 끼 들어가게 되면 사는 거거든요. 죽지 않아요. 대한민국 사람 다 죽어도 통일교회 사람들은 남는다구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선생님도 웃으시고 식구들도 웃음)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이거예요.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를 복귀시키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아직까지 남은 땀이 많이 필요하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눈물이 많이 필요하고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피가 많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가 굶주림과 더불어 투쟁해서 이것을 깔고 앉을 줄 알고 굶주림과 더불어 싸워 가지고 승리할 줄 알아야 먹고 만들어진 피살을 희생할 수 있는 동기가 거기서 벌어져 나온다는 거예요. 안 먹으면 내 피가 마르는 거예요, 살이 비어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복지 운동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모양이 처량하고 그 모습이 비참하지만 그 비참한 모양과 모습이 그것으로서 매장되어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진다면 그것은 불쌍하고 처량하고 망할 길밖에 되지 못 하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것은 원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흘러가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의 일로를 거쳐가면 거기에 비로소 무엇이 생겨나요. 좋을 수 있는 참다운 동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엿보았다 이거예요. 여러분들도 그걸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통일의 역군들은 가자! 망한 것 같지만 망하고 나서…. 지금은 망할 수 있는 인연을 통해서 태어난 인간이요 사망의 물결을 타고 나왔던 인간이지만, 그 사망의 물결과 망할 수 있는 그 사회환경에 태어난 이것을 부여안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완전히 이별하고 완전히 청산하고 또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데 있어서 인간이 가야 할 새로운 희망의 출발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기에 이 길을 출발하는 거예요. 남이야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1년 가고, 2년 가고, 3년 가고, 4년 가고…. 세월이 감에 따라서 우리는 흘러 내려가는 것이 아니예요. 역경에 부딪쳐서 우리는 거기에서 깨져 나가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를 때리고 우리에게 부딪쳐 가지고 무모하게 대들던 그 녀석들이 깨져 나가지 우리는 그냥 그대로 여전히 바르게 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될 때는 대조적인 현상이 벌어져요. 시일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이 움직여 나가는 그 보조(步調)에서 광명의 천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그 모습이 바라보이되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함정 구덩이로 들어가는 자체를 보니, 인간이 좋을 수 있는 길이 세상 만인이 좋다고 춤추는 자리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엿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길을 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당장에 좋은 것이 아니라, 1년에 좋은 것이 아니라 1년 시련과 고통과 역경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10년 후의, 천 년의 대운세와 행복의 터전을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서슴지 않고 이 길을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불행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룩하게 행복하구만요.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지금까지 오히려 고생시키려고 일을 시킨 것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얼마만큼 잘했어요?

세계를 향하여 행군하는 통일의 역군이 돼야

아직까지 대한민국 전체가 우리 뜻 앞에 서지 못했으니 대한민국만큼 잘하지 못했어요. 아직까지 세계 전체가 하나의 뜻 앞에 서지 못했으니 세계만큼 잘하지 못했어요. 내 욕심은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고 하나님 상투 끝까지 올라가게끔 해 가지고 자랑하고 싶은 것인데…. 그러면 여러분들, 어때요? '아이구 선생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니까 또 벼락 감투 써야 되겠구만!' 그런 결론이 나온다 이거예요. 괜찮아요? 「예」

당장에 고생하는 이 사람을 끌어다가 여기에 또 옮겨 놓고 더 큰 고생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 선생님의 사정인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거 이해돼요? 「예」 그래도 괜찮아요? 「예」 정말? 「예」 정말이야? 「예」 나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거예요. 정말로 그래요? 「예」 여자들은 안 그렇겠지, 남자들은 그럴는지 모르지만. 여자들도 그래요? 「예」 말만 그렇겠지 뭐! 진짜 그래요? 「예」 붉은 가슴속에 깊이깊이 뿌리박고 거기서부터 우러나오는 대답이예요? 「예」이 '예'가 거 시원찮다! 그래? 「예!」 그러면 내가 속아 주마. 남자들은 어때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전라북도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가게끔 고생시키면 좋겠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야? 세계에서 제일 좋은 복을 그 자리에 주면 좋겠다는 그 말이 되거든요.

예수님은 왜 죽었을까요? 십자가를 지고 나갈 때, 고생 철학의 원천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면서도 원수를 대해서 기도할 수 있는 아량이 있었다는 겁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까다로운 자리에서 어려울수록 만인이 알지 못하는 역사시대에 비로소 그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고생길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그런 팻말을 갖고 가면 그는 천상세계에 있어서, 흐르는 역사세계에 있어서의 새로운 방파제의 터전을 만들 수 있고 새로이 승리의 방파제가 되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 세울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아직까지 세계가 두 패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시련 고통이 남아 있고 환난의 역경이 가로놓여 있는데, 이것을 박차고 나가 우리의 생명의 포탄으로 이것을 쳐내야 하는 수고의 역경이 우리 앞에 가로놓인 것을 여러분이 알고, 세계를 향하여 행군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날에는 통일의 역군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운 해방과 새로운 통일의 세계가 광명한 새아침의 태양빛과 더불어 우리 앞에 안겨 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결국에는 여러분들을 때려 몰아야 되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내가 지금부터 한 7년 전에 말이요, 1960년도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모아 놓고 얘기한 말이 있어요. '자, 이제부터 3년 노정을 가자! 우리 통일교회는 분하고 원통한 한가운데서 걸어온 통일교회다. 여기서 하소연을 하려면 좁쌀로써 하늘로 올라갈 것이야. 날아다니는 먼지를 붙들고 개개인의 한을 해도 한을 풀 수 없는 한을 남기고 있는 통일교회야. 이 한을 풀지 못하는 한 삼천리 강토에는 해방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이 한을 풀지 못하면 천상천하에 한이 맺혀 있던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해방시킬 수 없는 것이어늘, 이것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느냐? 이것은 기쁨의 노랫가락과 더불어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비참과 더불어 피를 흘리는 자리에서 아버지라고 부르고 한 인류라고 부르고 참다운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아우성 소리를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것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것을 다짐하면서 고생하자' 하며 여러분 앞에 명령하던 지난날 선생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 여러분에게 그 당시에 있어서는 그 얘기가 꿈같은 얘기였을 거예요. '이리하여 3년노정이 끝나거든 4년노정을 합해서 7년노정의 역경을 우리는 걸어가자. 가고 나거든 그때에 가서 우리가 무엇을 했고 우리가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 것이다'라고 예고했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제 6년이 지날 수 있는 때에 왔다 이거예요.

이제 와 보니 하늘이 좌정하고 보호하사, 오늘 우리의 가는 길은 세상의 조롱을 받고 세상의 비난을 받는 역경 가운데로 이어져 나왔지만, 오늘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우리 이념이 아니면 이 나라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상하의 모든 3천만 민족은 공인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지금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여러분이 알지요? 「예」

그리하여 세계의 원수가 되어 있고 세계의 모든 정세를 악의 세계로 지금 끌고 들어가는 공산당까지도 통일의 이념이 아니면 이것을 막아낼 수 없다고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엄청난 사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돼요. 이제 공산당을 녹여낼 수 있는 하나의 깃발을 꽂고 그 이념을 품고 행군하는 개인이 있다고 할진대는, 세계는 순식간에 그 이념권 내에 통일의 운세를 이루어 놓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 엄청난 사실이 우리의 목전에 당도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지금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현하의 통일 청년들이 짊어진 사명

그러면 지금 제일 바쁜 것이 무엇이냐? 뜻을 안 우리들의 마음은 조급해요. 동으로 뛰고 서로 뛰고 남으로 가고 북으로 날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예요.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직까지 못 되어 있어요. 오늘날 이 한반도를 기점으로 하여 세계 국가로 우리는 날아가 가지고 하늘의 소식을 전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그렇지만 이 삼천리반도에 그럴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지 못해요. 그러면 이 근거지를, 이 거점을 어떻게 우리들이 성취시켜 놓느냐,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하는 것이 현하(現下)의 우리 통일의 청년 남녀들이 짊어진 사명인 것을 다시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므로 맡겨진 분야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희생과 고통과 역경의 피눈물을 가해 여기에 탕감에 비해지는 보수의 형태로 갚아 줘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돈을 내 가지고…. 그러면 누가 그 일을 당장에라도 할 것이냐? '아니, 이제 들어온 사람들이 해야지! 나는 좀 쉬어야 되겠소' 그럴 수 있어요?

요전에 강원도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우리의 운동이 충남을 거치고 경남을 거쳐 전남까지 지금 반공강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일대 아주 뭐 태풍적인 바람을 일으켜 놓았어요. 충남에서도 지금 '아이구, 통일교회가 그렇게 엄청난 줄 몰랐다' 하고 군수, 경찰서장들이 그저 지구장을 따라 다니면서 빼앗아 가려고 싸움하고 있어요. 이녀석들이 그저 20년 전에만 통일교회를 앞에 세웠더라도 이 나라가 이렇게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행차 후의 나팔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동안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을 했다는 거예요. 민족이 책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가시의 길이 짊어지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밭길이 앞길을 가로막았다는 거예요. 험한 길, 괴로운 길, 슬픈 길을 눈물을 머금고 피를 여기에 뿌려 가면서 우리가 이 길을 넘어오기에 지금까지 20여 년이라는 성상을 흘려 보냈다는 거예요. 그 기간에 있어서 이 민족의 처참함과 이 민족이 받은 바의 치명적인 손해가 얼마나 막대했던가! 그것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미쳐진 손해라는 것은 막대하다는 거예요. 미국 나라가 하나 없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섭리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이 민족의 주권자들이 책임 못 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이것이 분하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본래 여러분들의 어머니 아버지, 이 나라의 주권자, 이 나라에 났다하는 사람들이 뜻을 받들어 만방에 선포하여 만민을 지도할 수 있는 책임을 졌더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와 같이 훌륭한 여러분들의 어머니 아버지, 여러분들의 아저씨나 형님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아들 같은 여러분들이 땀을 흘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부모가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그 후손이 책임을 해야 될 것이 복귀의 길인 연고로 부모의 입장에 선 선조들이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여러분들과 같은 20전후한 청년 남녀들이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이 피땀 흘리기를 마다하면 망하게 돼요. 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안 선생님은 어린 여러분, 20전후한 사춘기에 그 이념인들 얼마나 높으며 그 생각인들 얼마나 깨끗하고 그가 바라는 욕망이 얼마나 클 것이냐! 그러나 그런 욕망과 이념과 자기의 소원을 전부 다 일소해 버리고 사망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를 가야 돼요. 이렇게 가라고 하는 선생님의 가슴도 말할 수 없이 아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알지 못한 죄 때문이요, 우리의 부모와 우리를 지도하던 지도자들이 하지 못한 연고니 하지 못한 그 책임을 그대로 또 흘려 버릴 것이 아니라 그의 대를 이어 이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없으면 이 나라는 망한다는 거예요. 망한다는 거예요.

5퍼센트 탕감의 조건을 채워 넘어가야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앞에 내세워서 어려운 길을 몰아쳐 가지고 지금까지 끌고 와 보니, 그 과정에서 뜻 앞에 항상 손 올리고 입술을 깨물면서 스스로 맹세하던 수많은 청년 남녀들이, 통일의 깃발 아래서 출발했던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갔어요.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갔어요. 어떤 사람은 한 고개를 넘다가 '나, 못 가겠다'고 돌아선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두 고개 세 고개…. 어떤 사람은 가시밭길을 헤치고 가다가 거기에 쓰러져 가지고 '나, 못 가겠다'고 돌아선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 맨 초창기에 청년 남녀들이 맹세하고 출발했던 그 동기의 열의는 하늘을 찌를 만한 열의를 가지고 출발하였지만 가다 보니 험한 길에 들어와서 다 쓰러져 때가 왔고 시대가 찾아와 가지고 우리의 세계가, 우리의 소원하던 세계가 목전에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옛날에 그토록 고생 많이 한 여러분의 형님들은 다 간데없이 돼 버렸어요. 그들이 이제 통일교회를 바라보게 될 때 가슴을 치며 '내가 왜 어리석게 과거에 그런 걸음을 갔던가?' 하고 한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걸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길이야 누가 닦았든 굴이야 누가 뚫었든 그 길을 가고 굴을 지나서 목적지에 가는 사람이 승리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희생하여 닦아 놓은 토대, 쌓아 놓은 공적의 터전 위에 여러분의 탑을 쌓는 데 있어서 마지막 돌을 누가 올려놓느냐 하는 문제를 걸어 놓고 승패의 결정이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지금에 들어온 통일교회의 청년 남녀들은 무한히 행복한 사람들이예요.

과거에 우리가 전도하게 될 때는 나가서 통일교회의 통 자도 못 내놨어요. 오늘날은 국가 전체가 환영하고 기관의 최고 간부들이 우리의 말씀을 요청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와 말씀만 붙잡고 전하는 날에는 어느 자리에 가든지 환영할 수 있는 자유천지의 환경이 되어 있고 그 환경에서 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환영할 수 있는 이런 가운데서 활동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은 여러분은 무한히 행복하다는 거예요. 반대에 반대가 거듭되던 시련과 눈물 어린 역경 가운데서 투쟁의 날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과거 여러분의 형님들과 누나들이 얼마나 쓰라린 길을 걸어왔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오늘날 여러분이 들어온 통일교회의 지금의 이 모습이 다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기에는 한 많은 눈물 자국이 참소하고 있는 줄을 알고 한 많은 핏줄이 여기에서 내 생명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역사의 인연을 엄숙히 받들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 인간의 책임이거늘 오늘날 이 책임을 진 우리에게 있어서는 역사적인 선조, 우리 형님들과 우리 누나들이 가던 길을, 우리들이 다시 마음을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삼아 매일매일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그와 같은 형님의 길 그와 같은 누님의 길은 따라가지 않겠다고 재삼 각오하고, 그들은 한국만을 위해서 싸웠지만 오늘날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싸우겠다는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할 환경에 들어온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다시 다짐을 해야 되겠어요. 아시겠어요? 「예」

이렇게 시련과 고통을 겪어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점점점 시련의 고비가 없어져요. 여러분들은 그저 괜히 좋을 수 있는 때로 와요. 괜히 서럽던 그때의 환경은 흘러가 버리고 괜히 기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할 수 있는 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은 가는 길을 생각해 보게 될 때 내가 그래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요, 만민, 양심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환영해야 되고…. 수많은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도 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 앞에 협조하고 그들의 소원이요, 그들이 바라던 최후의 목적지가 어디라고 권고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영통인을 통하여서, 증거를 통하여서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이걸 볼 때, 우리가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좋고 좋은 길입니다. 내 개인이 좋을 때, 가정이 좋을 때, 종족이 좋을 때, 민족이 좋을 때, 국가가 좋을 때, 세계의 좋을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과정에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러려면 거기에서 각자가 분담된 5퍼센트 탕감조건을 제시해 놓고 그것을 메워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좋다고 했지요? 얼마나 좋은 거예요? 「하늘땅만큼요」 말은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하늘땅만큼 좋은 자리에 못 나갔다 이거예요. 좋을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영계에서 통일교회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보라구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영통인들 중에는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거 알아요? 통일교인들, 그거 알지요? 「예」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영통인들 중에서는 통일교회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통일교회 선생의 졸장들이요, 졸장. 졸병이예요. 요즘에 통일교회 선교부에서 날아 들어오는 편지를 보게 되면…. 세계의 유명한 영통인들을 다리 놓고 가서 물어 보면 '하아! 동양에서 어떤 누가 찾아와 가지고 너하고 인연맺게 해준다고 벌써 몇 년 전에 약속한 것이 이제 왔구만!' 그러면서 선생님의 사진 보고 '아이쿠, 그렇구만! 이분이 그분이었더랬구만!' 한다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선생님은 동양에 사는데 서양의 훌륭한 영통인들에게 선생님 노릇하고 있더라 이거예요. 재미있지요, 그거? 사진만 보고 연락하니…. 그거 왜 그런 거예요? 영계는 통일되어 있어요. 영계에서 바람이 불어서 통일이 되었다 이거예요. 통일되면 시작한 것과 꼬리가 맞무는 거예요, 안 맞무는 거예요? 「맞무는 것입니다」 맞물어 가지고 돌아가는 데는 천천히 돌거예요? 맨 처음에는 천천히 돌지요, 맨 처음부터 빨라요?

기계를 돌리게 되면 맨 처음부터 쓔우욱― 그렇게 돼요? 천천히 돌다가 쓔욱― 하는 거지요. 그렇지요? 천천히 도는 이게 이렇게 되니 이렇게 돌아 가지고 여기서 밖으로 돌아 나가야 되겠어요? 밖으로 돌아나가야 돼요? 어떻게 되어 있어요? 안으로 돌아 들어가야 돼요.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지구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바퀴 뺑― 돌아 가지고 맞춰서…. 맞춰지면 뻗어 가지고 어디로 가요? 이거 비행기로 날아가요.

그래서 태풍이라면 어떤 태풍이냐 하면 이 방향을 중심삼고 직선으로 날아가는 태풍이 아니예요. 태풍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선풍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선풍이 뭐요? 돌아가는 거지요? 돌기 시작해요. 돌기 시작해 가지고, 바람이 돌기 시작해 가지고…. 이것이 도는 힘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속도는 배가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돌기 시작해서 이 바람이 어디를 중심삼고 도느냐 하면 이것이 지구성을 향해서 집결해 오는 거예요. 그러니 뭐 할아버지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앞으로 통일교회 안 믿으면 다 죽어요. 죽는다고 벼락을 때리는 게 아니예요. 죽나 안 죽나 보라구요. 여기서 안 죽게 되면 저 영계에 가서라도 죽어요. 여러분 큰일나면 '아이구, 사람 죽겠다. 죽겠다. 그 사람이 죽게 되었어' 그러지요? 그러다가 조금 더 하면 죽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영계를 끌어내려 왔어요. 알겠어요? 「예」 영계를 끌어내려 왔어요. 지상 인간을 끌어 올라가요. 끌어 올라가는데 여기에 무엇이 붙었느냐 하면 도깨비들이 붙었어요, 도깨비들이. 사탄들이 붙었다는 말이예요. 한 놈 끌어 올리려는데 열 놈이 붙었으니 열 번 싸움해야 넘어가게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 주위의 전부가 다 도깨비들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대한민국…. 통일교회가 나왔으면 세계를 위해서 나왔지 대한민국을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예요. 세계 사탄이가 전부 다 무진장으로 때려 잡으려고 싸워요. 그래서 내가 이번에 세계를 쭉 돌아다니면서 '옛날 한국에서 싸우던 악령의 힘, 그 압력이 세계에도 한국만큼 강한가 보자' 하고 세계 국가를 돌아다녀 봐도….

옛날 애급하게 되면 이스라엘의 원수 국가 아니예요? 애급을 가 봐도 그런 기분이 하나도 없어요. 애급에 가면 뭐가 있느냐 하면 말이지요, 죽음의 도시라는 게 있어요. '데드 시티(Dead city)'라는, 죽음의 도시라는 곳이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공동묘지인데, 잘사는 사람이 죽게 된다면 그 공동묘지에 가서 영이 산다고 그래서 좋은 빌딩을 지어 준 큰 사망의 도시가 있어요. 그 도시가 뭐냐 하면 말이예요, 죽음의 도시로서 공동묘지의 마을이예요. 마을인데 보게 되면 뭐….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것은 거기는 사막지대이기 때문에 말이예요, 비가 안 와요. 일년 사시장철 비가 안 온다 이거예요. 비가 온다고 해봐야 불과 일 년에 그저 비 한 여남은 방울 구경하면 그것을 보고 '비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그 정도거든요. 거기 애급 같은 데 나가게 되면 말이예요, 이 대청마루가 없어요. 아주 편리하지요? 그런 공동묘지에 떡― 들어가 앉아 봐도 말이예요, 악한 영들이 반대하는 현상을 볼 수는 없어요. 그런 걸 볼 때 세계에서 영적으로 제일 지옥의 맨 밑창바닥의 똥통자리입니다. 지옥의 똥통자리예요.

그래서 세계는 이미 하늘의 운세에 따라 들어가 가지고 방향성을 갖추어서 한국에서 탕감해 준 것이 세계적인 운세를 밟고 넘어가 어디에 가든지 그 운기는 평화의 운기로 방향을 갖추어 이루어지기를 바라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국이 제일 지독해요. 그러니까 교파 교파간의 싸움도 세계적으로 제일 지독하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욕을 먹고 반대를 받고 20세기의 대표적인 핍박을 받는 교회단체로서 등장한 것이 통일교회인데, 이 통일교회가 반대받는 것은 사람들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세계적인 사탄이 발동해서 그런 거예요. 이걸 보면, 그렇게 되었던 것이 이제는 많이 올라왔지요?

진리에는 예외가 없다

하늘은 최고로 출발하지 않으면 최하로 내려 보내는 거요. 예수님도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마굿간에서 탄생하시사 여기에서부터 천신만고 끝에 도를 닦아 가지고, 여기에서 보좌까지 만민이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가지고 길을 열어 놓으려고 했던 것인데 이 길을 영적으로만 닦았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종교인들로서는 지상의 나라가 없고 영적 나라만 주장해 나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통일교인들은 영적 나라만이 아니예요. 지상, 영육을 중심삼은 지상, 공통으로써 소망하시던 그 나라를 표방하고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맨 처음에 전도갈 때 어디로 갔어요? 우리는 농촌에 내려갔지요? 밑창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을 밟고 올라와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자 이거예요.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니…. 뭘 보노, 뭘 봐? 기분 나쁘게. 너희들이 그거 볼 권리가 있나? 눈은 나한테 팔아 놓고…. 내가 너희 눈의 주인이야. 어디를 보는 거야?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맨 처음에 나가서 전도하고 그럴 때, 고생할 때 말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비참했어요! 그저 욕먹고 다니면서 처마 밑에서 자지를 않았나, 모기가 득실거리는 들판에서 자지를 않았나, 산꼭대기에 가서 자지 않았나, 별의별 놀음을 다 했거든요. 통일교회 역사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어요. 이렇게 다니면서 일하는데, 대학교 나온 사람들이 가 가지고, 그 동네에 들어가 가지고 똥통 져 주는 아주 뭐, 뭐라고 그래요, 그거? 청소부 노릇도 해주고 밭고랑도 타면서 일자무식한 아주머니의 종 노릇도 해주고…. 그 놀음 했어요.

여기 청년들 중에서 그런 청년들이 있어요, 없어요? 요즘에 들어오는 이 젊은, 뭐 대학교 다니고 뭐 이런 녀석들, 어서 들어와라 이겁니다. 거꾸로 꽂아 가지고 전부 다 그런 놀음을 시키려고 그래요. 기분 나쁘거든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 이거예요. 그건 그렇게 안 가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려면 정상적인 코스는 국민학교를 밟아 가지고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들어가 가지고 졸업해야 되는 것이 원칙이예요. 통일교회에도 국민학교 시대가 있는 걸 알아야 돼요. 조금 더 교육받고 그 가정에서 규범이 있고, 사회적인 모든 명망이 높은 집 아들에게는 유치원도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에 학박사가 들어온다고 해도 나는 학박사 몰라요. 그것은 자기가 아는 학박사지 내가 아는 학박사는 아니예요. 면장이고 뭐 군수고 그건 자기가 아는 군수지 내가 아는 군수는 아니예요. 대통령이든 뭐 장관이든 앞으로 통일교회에 들어오더라도 그건 자기가 아는 장관이지 내가 아는 장관이 아니예요.

전부 다 진리에는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참다운 진리 중에 무엇이 참다운 진리냐? 배고플 때 밥 먹는 것이 참다운 진리요, 목 마를 때 물 먹는 것이 참다운 진리예요.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 대통령 나는 배고플 때 밥 안 먹어!' (웃으심) 하는 예외가 있어요? 마찬가지의 이치예요. 장관들은 아주 뭐 목마를 때 '물 안 먹어!' 그래요? 예외가 있어요? 그럼, 죽으라구. 죽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죽어 나가 자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원리라는 겁니다. 원리! 원리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요. 할아버지든 누구든 전부 다…. 할아버지도 여기 들어오면, 저기 할아버지 들어왔지만, 할아버지도 들어오게 되면 애기가 되어야 된단 말이예요. 지금까지는 막 들어와 가지고는 먹고 자고 가고 다….

자기 멋대로 먹고 자고 자기 멋대로 전부 다 산 사람들은 세상을 중심삼고 산 사람들이지 하늘을 중심삼고 산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님 아버지 품에서 애기로 한번 안겨 봤어요? 저기 아저씨? 못 태어나 본 게 한이라는 겁니다. 언제 하나님이 '야, 아무개야! 이쁘구만!' 그래 봤어요. 못 그래 봤으니 한입니다. 사람은 부모님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음받았으니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받는 것이 본래의 출발점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못 되고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인간의 소원이 뭐냐? 어린애기로서 하나님의 품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출발하는 것이 소원이예요.

거짓된 혈통을 바로잡으려면

이렇기 때문에 예수는 말하기를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잘 때려 놓았거든요. 그게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라는 거예요. 저기 나이 많은 아저씨가 있구만요. 수염이 난 아저씨!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고향 동네에 가면 내가 제일 종주인데…' 하고 큰소리하실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할아버지일수록 손자한테 머리 숙여야 된다는 거예요. '어디, 그런 법이 있나!' 하겠지만, 왜? 자기 손자가 핏덩어리지만 하나님이 그 애기를 사랑할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 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볼 때에는 늙어 가지고 어린애의 사랑을 받겠다는 것보다도 어린애로서 어린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높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두고 볼 때, 할아버지가 손자를 부러워해서 '나는 부럽기만 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는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린애 같다면 똥 싸고 뭉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머니의 품에 품겨 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젖통을, 자기 아버지도 마음대로 못 하는 젖통을 그저 마음대로 밤이나 낮이나 들이 빨아제껴도 엄마가 '어서 먹어라, 어서!'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랑, 그런 게 왜 좋으냐? 사랑, 사랑 떡판에 누워 가지고 그저 사랑을 먹고 춤출 수 있는 자리가 어린애의 자리거든요. 그래서 어린애 같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는 거예요. 나, 그 자리가 부러워요. 여러분들은 안 부럽지요? 「부럽습니다」

언제 여러분들이 그래 봤어요? 고아라는 말을 성경에서 했다는 거예요. 고아 같은 만백성들! 전부가 고아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전부 다 여러분을 낳아 준 것은 어떻게 되어서 낳은 줄 알아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의 조상 가운데, 우리 할머니가 뭘했는지 알아요? 자기 본남편을 내버리고 바람이 나 가지고 간부(姦夫)를 사랑해 가지고 이 땅 위에 인간이 태어났단 말이예요. 간부가 뭔지 알아요? 고등학교 지나고 대학 간 사람은 알아요. 그다음에 모르는 사람들은 가서 사전 찾아봐요. 회사 간부도 있고 간부가 많아요. (웃음) 족보를 파 보면 무엇이 있느냐 하면 말이예요, 우리 할아버지가 의연히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놈의 할망구가─여기 여자들은 왜 또 머리 숙이나? 본성은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할망구가 곁눈질하다가 새끼를 배서 낳은 것이 오늘날의 인류예요, 인류. 섭섭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우리 할아버지의 자손은 못 태어난 거예요. 본연의 우리 할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이래서 이것을 잘라 버리고, 다시 본연의 할아버지의 혈대(血代)를 참감람나무로서 보내 가지고 돌감람나무―감람나무의 모양은 같지만―는 잘라 버리고…. 자를려면 어디를 잘라야 돼요? 어디 잘라야 되나요? 「밑둥을…」 밑둥을 잘라야지요? 그러면 사람은 어디를 잘라야 돼요? 발밑을 잘라야지요? 「모가지」 사람은 모가지를 잘라야 돼요. (웃음)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떻게 하려고 저런 말 하노? 그건 이치가 안 닿는 말이야' 하겠지만, 설명을 들어 보라구요. (웃음)

이래서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지니까 진짜의 가지가 되어야 됩니다. 포도 같은 것도 있고 머루 같은 것도 있단 말이예요. '너희는 돌감람나무요 나는 참감람나무다.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지 않으면 구원 얻지 못한다' 했어요. 이게 천리예요.

그러니까 여기 잘나고 뭐 뺀뺀한 녀석들은 전부 다 죄가 많아요. 왜? 그 녀석들은 눈이 높다는 것입니다. 눈이 높으니 뭔가 하면 도깨비 세상에 있어서의 도깨비 감투를 많이 뒤집어썼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보다도, 뭐요? 미인 반대는 뭔가요? 추인! 미남 반대는 뭐요? 추남! 그래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나는 얼굴 못생긴 여자를 제일 좋아합니다. 아주 추남을 제일 좋아해요. 얼굴이 못생겼다고 추남이예요? 그 속이 잘생겨야 미남이 된다 이거예요. 얼굴이야 아무렇게나 생겨도….

보라구요. 곰배팔이 병신이라도 하나님은 그가 정성을 다하게 되면 그 아들을 보고 '흥흥' 하는 거예요. 부모는 병신자식을 그저 더 받아 주려고…. 세상에 그런 것이 많잖아요? 무슨 병이던가요, 그거? 사지 못 쓰는 그런 병이 있잖아요? 그거 뭐라고 그러나요? 소아마비! 그래, 그 자식이 말이요, 어머니가 불쌍해서 그저…. 어머니가 맛있는 것을 주고 어딜 가면, 이걸 먹지 않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거예요. 자꾸만 문밖을 내다 보는 거예요. 개가 짖어도 내다보고, 인기척이 있어도…. 엄마에게 맛있는 떡을 주겠다고 하며 그 떡을 붙들고 엄마 오기를 기다리는 자식이 있으면 그 어머니의 가슴이 찢어진다는 겁니다. 천하를 다 주고도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병신자식이면 어때! 잘난 자식보다도 간곡한 부모의 심정과 부모의 골수를 통해서 흘러 나오는 그 사랑의 심정을 몽땅 점령할 수 있는 그 자식이 부모에게 있어서는 효자 중의 효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생겼다고 낙심하지 마소. 그러고 보니까 대체로 못생긴 사람들이 많이 모였구만! 제멋대로 생겼네, 그러고 보니까! 좀 무난하게 생기지…. 가만히 보면 다 제멋대로 생겨났어요. 뭐 그것도 좋지요. 제멋대로 살려고 하니까 제멋대로 생길 만했지요. 「하나님…」 뭣이? (웃음) 뭐라구?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주셨잖아요」 아니, 그렇게 만들게 뭐야? 하나님이 그러기를 원치 않았지만 너희들이 그렇게 되었으니 그렇게 되었다 하고 인정해야지. (웃음) 여러분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 나가는지 그걸 알아야 돼요. 선생이 그저 얘기 하는 거기에만 다 취해 가지고서…. 동으로 뻗은 가지 얘기했는지, 서로 뻗은 가지 얘기했는지 그걸 알아야 돼요.

문화세계의 정신적 원천이 되자

우리 교회가 지금 이 나라에서 얼마만큼 올라왔느냐? 내 생각에는 8부 능선쯤 됐다고 봐요. 8부 능선 알지요? 군대 갔던 사람들은 대개 알 것입니다. 좋은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조금만 더 박차를 가하자구요. 알겠어요?

이제 복귀의 길이라는 것은 말이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아요, 선생님은 가끔 그런 생각해요. 이거 기관차가 있는데 기관차가 레일 위로 달려야 할 텐데 이건 산으로 달리는 기관차예요. 이게 무거우니까 배기는데…. 올라간다 이거예요. 얼마나 올라갔어요? 에베레스트산은 낮아요. 그보다 더 높은 상상봉을 향해서 올라가는데 지금 어디냐 하면, 맨 상상봉에…. 요것이 분수령이지요. 비가 떨어지면 하나는 서로 하나는 동으로 갈라지는데, 그런 맨 꼭대기가 있다 이거예요. 만일에 우리 통일교회가 이 꼭대기까지 다 올라가 가지고 '아이쿠, 됐다!' 하면서 발을 내디디려고 들었다가 미끌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미끄러져서 뒤로 후퇴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음이…」 죽는데 어떻게 되느냐 하면 통일교회의 이념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이념이 됐다고 해서 찾아든 수많은 사람은 옥살박살 전부 다 벼랑으로 떨어져요.

과거의 도의 길을 가던 사람들이 도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그 지도할 책임을 졌던 도주면 도주들이 길을 올라가다가 전부 다 옳다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차마 넘어가지 못하고 후퇴하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문화 세계 창조에 막대한 장벽이, 고충의 터전이 된다는 걸 알아야 되겠어요. 내가 그래서 이번에 쭉― 세계를 일주하면서 본 것이 무엇이냐? 전부 다 회회교면 회회교, 기독교면 기독교, 혹은 불교면 불교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과거의 역사적인 시대에 있어서는 문화의 원천으로서 그 시대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사상적인 원천이 되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시대에 공헌했지만, 오늘날 20세기인 이 시대에 와서는, 그러한 문화의 형태가 새로운 형태로 넘어가야 할 새 단계의 문화를 요구하는 이때에 있어서는 도리어 과거의 문화의 원천이 되었던 것들이 원수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더라 이겁니다. 크면 클수록….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큰 죄를 범하는 자리에 서 있다 이거예요.

내가 그래서 협회장한테 편지를 했어요. '오늘날 20세기 이후의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통일교회는, 우리의 이념은 앞으로 20세기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문화세계를 향하여서 발전해 나가는데 그 발전된 문화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고질적인 문화의 틀 가운데에 사로잡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수백 세기 이후의 문화세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혁신과 새로운 정신적인 원천이 내재해 있을 수 있는 교리와 사상적인 기틀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는 편지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이라는 것은 없어요, 식이라는 것. 알겠어요? 식이 있다면, 고생하는 식은 그거 통일교회식이예요. 고생해서 남 잘살게 만들고 고생해서 세계 잘 먹이겠다는 그건 통일교식이예요. 천지가 변할지언정, 앞으로 세계가 아무리 고차적인 문화의 세계가 되더라도 이 식을 부정하는 문화의 세계는 절대 없다! 알겠어요? 「예」 '아하! 이 식만 우리 통일교회의 아주 전통적인 사상으로 몰아넣게 되면 이건 어느 시대에도 환영받겠구나!' 나는 그런 생각 했어요. 그렇잖아요?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말이예요, 남을 위해서 내 스스로 양보하고 가겠다는 그것을 역사시대의 어느 누가 심판할 수 있어요? 다 환영해 주는 거예요. 그렇게 가면 갈수록 끌어올리는 거예요. 끌어올리지요?

통일교인들이 남겨야 할 전통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고생만 죽도록 해 가지고 지금 형편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은…. 보라구요. 산골에 들어가게 되면 '이런 강원도 산골, 아이쿠!', '이런 경상도 산골 깊은 가운데 내가 와서는 뭐 통일교회 전도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줘, 누가? 본부의 선생님이 알 게 뭐야! 알 게 뭐야! 괜히 나 혼자 이렇게 다니며 고생하지' 이렇게 한을 품고 일할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더라 이거예요. 왜 그러냐? 아, 통일교회의 청년 남녀들이 와 가지고는 두메산골 골짜기에 들어가 가지고 피땀을 흘리며 봉사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맨 처음에는 '뭐야! 통일교회 아가씨들이 전도왔어? 저따위들이 무슨 전도를 하나, 저거!' 하고 할아버지에서부터 그 동네의 어린애까지, 소학교에 다니는 소학생들까지도 전부 다 비웃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아하, 저거 그저 며칠 있다가 가겠지!' 한다구요. 자기들깐에는 말이야, 자기가 옛날에 자랄 때의 그 청소년 시대와 자기 아들딸을 중심삼고 비교해 보게 될 때 '저거 다 같은 사람이니 불원한 장래에, 몇 주일도 못 가서 전부 다 보따리 싸 가지고 돌아간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쿠…. 한 달이 지나도 여전하다 이거예요. 아, 1년이 지나도 여전하거든요. 다시 1년만 지내고 나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쑥덕쑥덕한다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그저 보기 싫어서 쑥덕쑥덕하다가 1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쑥덕쑥덕해요. 그저 집에 들어가 가지고는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야단하게 되면 그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야, 이 자식들아! 너, 통일교회 아가씨들을 봐라. 너만한, 너보다도 나이 어린 아가씨가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동네 방네에 전부 다 이런 일을 하지, 남을 위해서 어떻게든지 동네에서 본이 되기 위해서 아예 밤잠을 자지 않고 자기 일신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움직이지 않느냐?' 하는 거예요. 그런 걸 마음에라도 생각한다는 거예요, 나중에. 조금 더 생각하는 사람은 '야! 너, 통일교회 저 아가씨 본받아라' 하고 자기 딸을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벌써 승리는…. 우리의 뜻은 벌써 여기서 승산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만일에 피땀 흘리고 움직였던 그 사실이 실적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그 동네에 있는 모든 유지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가운데에는 '저 아가씨가 하는 일은 옳다. 배워야 되겠다' 혹은 오빠가 그걸 보고 동생한테 '너도 저렇게 되어야 돼. 그런데 뭐야, 이 간나야' 한다는 거예요. 모두 다 그런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보고 '야 야 야! 너, 저 처녀를 본받아야 돼'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만일에 그 처녀가 하는 일이 옳다는 인정을 하는 뜻을 품은 어떤 부모가 있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자식들이 그의 임종 시간에 아버지라고 혹은 어머니라고 찾아왔을 때 유언하며 부탁하는 말이 '야, 이 동네 아무 아가씨와 같은 그런 사상을 갖고 그런 참다운 인간이 되어 주려무나' 하는 것이었다면 그 자식은 거기서부터 가슴에 새로운 다짐의 못을 박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거기서부터…. 선생님이 목적하는 것은 바로 그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사람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아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3년 동안 종의 신세가 되고 몰려서 만일에 길에서 죽어 거기에 무덤을 남기게 되더라도 여러분들은 패자가 절대로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런 사실을 거기서 남겼다면 그 무덤이 그 동네방네에…. 혹은 백 호 이상의 호수가 있어서 전부가 반대하다가 그런 무덤을 남겼다 하게 되면, 해가 지나서 통일의 운세는 이 나라를 전부 휩쓸 것이며 두메 산골 그 마을까지도 찾아들 날이 있을 것이어늘 그때에는 남녀노유 모두가 찾아가서 그 무덤가에서 손을 들고 통곡하면서, 백배 절하면서 자기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통곡할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그 자리로 인하여 전체의 부락을 완전히 점령하고도 남아요. 자기의 후손들 앞에 그 어버이들은 유언으로 그 무덤을 바라보라고 교훈의 표석을 남겨 놓을 것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그 마을에서부터 세계의 천국은 건설되어 나온다 이거예요. 이것을 바랐던 거예요, 이거. 걱정하지 말아요.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본심적인 아름다움에는 천하가 머리 숙이게 돼 있어

보라구요. 지금까지 그렇게 통일교인들이 고생하게 되어 있더라도 고생이 뭐뭐뭐…. 하긴 뭐 일하라면 얼마나 하겠어요. 고생할 게 있나? 동네에 가서 동네 개나 짖게 하고 부산스럽게 그저…. 그랬지 뭐 하기는 뭘했겠나?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들이 지닌 바의 본심적인 아름다움 앞에는 천하가 머리 숙여야 되는 것이 천리의 공의요, 천법이요, 천칙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이장이 '야야, 제발 돌아가라' 이거예요. 별의별 권고를 다 해도 '아니야! 아낙네의 품은 결의는 일시에 변할 수 없다' 이거예요. 혹은 '사나이의 가슴에 품은 결심을 변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면서 그저 머슴살이를 하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다 이거예요, 응? 그 동네에 가서 이장이 있으면 이장일수록 그 생각을 먼저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장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 면, 면이면 면장을 중심삼고 그 면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될 때 이장을 모아서 하려고 할 거예요, 그때 떡― 가 가지고는 공석에 모여 가지고 얘기하는데 '아, 누구의 동네에 특이한 사항이 없느냐?'고…. 그러면 토론이 벌어질 거예요. '아, 거 이상한테! 우리 동네에는 통일교회의 아가씨가 와 가지고 이런 고생을 하면서…. 아, 그런데 그것을 보게 되니 참, 무섭다면 무섭고 지독하다면 지독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화제거리가 된다구요. 그러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면에 열 개 리가 있으면 열 개 리에 통일교회 선전이 되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발전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실을 가만히 보게 되니까 나쁜 일이 아니고 좋다' 하게 되면 한 사람이 또 '아, 우리 동네에도 그래!' 이것이 세 사람 네 사람…. 이렇게 되는 날에는 면이…. 이래 가지고 면장이 '그러면 그거 좋은 일이구만! 아, 좋고 말고. 이런 청년들이 있으면 이것은 면에서 밀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면에서 장려하고 받들어 줘야 할 일이다'라고 해서 면장을 중심삼고 논의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논의가 되었다고 하면, 이 면장이 어디로 가요? 군 회의 때 찾아들어가지요? 어디로 올라가요? 군수의 가슴에 갖다 풀어 놓아요. 안 그래요? '야 야, 너의 면에 무슨 특이한 일이 없느냐?' 서로 면장들이면 자기 면내에 무슨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군수에게 가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 면장의 배포인데 '하! 우리 면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하고 나오지 않겠어요? '뭐야?', '하, 통일교회 아가씨…' 하고 또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아, 그러면 전체 면에 그럴 수 있는 청년 남녀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아, 좋고 말고요. 이것을 우리가 환영할 일이고, 협조할 일입니다' 이러면 또 그 군수가 '그거 그렇구만!' 이런다는 거예요. 그 군수의 가슴에 불이 붙어요.

그다음에 어디로 가느냐? 군수가 어디로 가는 거예요? 도 회의 때 불려 들어가 가지고 '너희 군에, 너희 군의 특이한 일이 무엇이냐? 딴 군에 없는 특이한 일이 뭐야?', '아이구, 통일교…' 뭐 어떻고 하면서 또 나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 도지사에게 불을 지르는 겁니다. 그래, 도지사는 어디에 가는 거예요? 어디에 가는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중앙으로」 중앙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래서 불은 자꾸 붙어 올라간다. 틀림없이 선생님이 계획을 한 대로 잘 들어맞아 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어떻게 불을 붙여 가지고 대한민국 최고봉에 올라가 가지고 내려올 때까지 계속하면 우리는 완전히 승리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피땀 흘린 공적은 대한민국 역사에 없는 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이 민족 앞에 드러내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그런 연령권 내에 있고 그런 연령층 이상에 있는 젊은 청년들의 가슴에까지 불을 당길 수 있는 횃불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거예요. 이것이 비례해서 천 사람을 희생시켜 삼천만을 구할 수 있거든 얼마든지 희생시켜야 되고, 만 명을 희생시켜서 억천만세의 수많은 인류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희생시켜야 된다구요.

이래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그다음에 이것이 어떻게 돼요? 국가를 넘어 국가 관리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하게 되면 외교관들이니까 '당신네 나라에 특이한 일이 뭐 있소?' 하고, 그다음에는 뭐 '여보소, 말이 많소! 우리 나라에서 동기가 된 것이 당신네 나라에 들어가 가지고 통일의 깃발을 갖고 일본의 북해도 부터 한 80여 대학에 원리연구회를 두어 가지고 일본 전지역에 봉화불을 켜 주어 가지고 공산당과 싸우는 실적을 갖고 있는 통일교회를 알우?' 하면, '어허!'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뭐요? 이렇게 날아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되는 거예요. 세계로 펴져 나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돌고 돌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

이래서 지금 바쁜 겁니다, 내가. 바쁜 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나쁜 게 아닙니다」 그래, 여러분들! 바쁜 데 협조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협조해요」 그래, 낯선 나라 어디에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인도에 보내면 인도로 가고 저 아프리카에 보내면 아프리카로 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예」 그래, 갈 사람 손들어 봐요. 다 가라구요, 가라구요. 내가 후원 절대 안 한다구요. 가라구요.

내가 얘기할 게 또 있어요. 자유당 때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게 다 감옥으로 몰려들고,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기 직전이예요. '일본에 말뚝을 꽂아야 되겠다' 이거였어요. '대한민국에 이 악질 분자들만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지간이니 이놈들을 포위작전을 해 가지고 내가 복수를 해야 되겠다' 한 거예요. 총칼 가지고 복수하는 게 아니예요. '너희들이 머리를 숙이나 안 숙이나 보자!' 이래 가지고 '일본에 가라' 한 거예요. '아무개야! 너, 일본 가야 되겠다. 가겠어, 안 가겠어?' '네, 가겠습니다', 그럼 '밀선을 타라!' 해 가지고 밀선으로 보냈어요.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하여 3천만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던 나는 '밀선으로 가라'고 한 거예요. 자유당 시대에 '법에 걸리면 내가 책임진다'고 하면서 밀선을 태워서 선교를 보냈다 이거예요. 그때에 있어서는 죄예요, 죄가 아니예요? 「죄가 아닙니다」 그때야 죄지! 「예」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니까 죄가 아니예요, 죄예요? 「아닙니다」

요즘에는 일본에 있는 대사관이 통일교회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어요. 차가 없으면, 우리 동경교회의 차가 아주 좋은 승용차가 두 대 있으니까, 손님이 오면 '태워다 줘라' 내가 그랬어요. 그러고 보면 기분이 좋거든, 무슨 문제라도 통일교회를 앞에 세우면 통일교회 식구들이 고관도 다 통하기 때문에 무엇이 있게 되면 삼각작전하는 거예요. 이거 하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미국도 그렇잖아요? 이번에 내가 인도를 갔더니 말이요, 인도에 가서 인도주재 대사를 만나 가지고 '너는 잤지만 통일교회는 일했어'라고 했어요.

자유당 때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어요. 그저 통일교회를 다 없애려고…. 박마리아, 이박사 부인, 그거 누군가? 뭐 무슨 카? 「프란체스카」 합작이 돼 가지고 통일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네 장관을 내세워 가지고 별의별 노름을 다 했지만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았어요. 나와 가지고 그 반대하던 장관들 내세워 가지고 여권 내와 미국 선교사를 보냈다구요. 그랬으면 됐지요. 그래서 현재…. 선생님이 그런 놀음 잘한다구요.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오는지 모르지요. 지금도 그런 놀음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점을 잘 치고 있다구요.

지금 대한민국의 행정요원 가운데에는 말이예요,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걸 수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수습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말들을 내가 보고 받고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것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지요.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통해서….

자, 그런 얘기는 그만두고…. 아프리카 가겠다고, 인도 가겠다고 다 약속했지요? 손들었지요? 「예」 그 놈의 손이 네 손이야, 내 손이야? (웃음) 누구의 손이요? 「선생님 손입니다」 내 손일 게 뭐야! (웃음) 누구 손이요? 「제 손입니다」 네 손이지 뭐…. 여러분이 책임질 손이예요. 그러면 인도에 갈래요? 아프리카에 갈래요? 갈래요? 「예」 어떻게 갈래요? 돈이 있어요, 없어요? 여권을 내려면, 여러분들이 내게 되면 3년 걸릴지 모른다 이거예요. 대한민국이 참, 이거…. 미국 사람들은 오늘 가서 여권 내면 그 시간에 해 가지고 오늘 저녁에…. 저녁에 다섯 시에 사무가 끝난다고 하면 세 시쯤에 가게 되면 한 30분이면 가서 전부 다 여권 신청해 가지고 내일 아침에는 보따리 싸 가지고 세계 어느 나라에든지 가는 거예요. 좋지요?

이런 일등 국민이 못 된 게 한이 되더라구요. 내가 이번에 여행하면서 '내가 왜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났지?' 그러니까 하늘의 위신도 안됐더라구요. 아, 이거 참! 내, 기분이 나빠서 '보자!' 요 몇 개국은 내가 지금도 언제 한번 가 가지고 그 수상을 한번 만나려고 그래요. 한번 들이대고 '너희들은 내가…. 종교인으로 안 만나 주게 되면 내가 세계에 너희들이 깜짝 놀라 자빠질 그런 세계 정부 요원증을 해 가지고 내가 갈 것이다' 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한번 만나 가지고 친구로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생각도 못 하게 해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되면 그 일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나는 보내고 싶어요. 여러분들, 가고 싶지요? 「예」 여러분들이 가고 싶고 내가 보내고 싶으면 되는 거예요. 보따리 싸라구요. 지금부터 보따리 싸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앞으로 3개국 이상의 나라에 가 가지고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앞으로 통일교회의 천하를 위한 이념무대에 있어서의 책임자가 못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쓸 만한 사람들은 외국에 전부 다 유학을 시키려고 그래요. 좋은가요? 「예」 공부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다 들라구요, 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쓸 만한 사람만 들어 봐요. (웃음) 쓸 만한 사람! 쓸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구만, 나 보기에는. 내리라구요.

그때에는 공부 안 하면…. 4년제 대학 과정을 3분의 1 기간에 해 치우는 거예요. 그런 머리 되지 못 하거든 후퇴하라구요. 1년, 1년 반이면 해치우는 거예요. 그때는 아예 철문을 해 박고 감옥소마냥 변소 출입도 못 하게 해 가지고 똥통을 갖다 줘서 그 방에서 똥을 누면서 하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1년 반도 뭐 길지요. 또 그때에는 밥을 다섯 그릇 안 먹으면 안 돼요, 이만한 공기로. 안 먹으면 입을 벌리고서 그저 그 옆의 사람이 퍼 넣어 주어야 돼요. (웃음) 그러면 또, 그렇게 해 놓으면 '아이구, 좋아라! 좋아라', '뭣이 좋아?', '아이구, 10년 전에 아무 두메 산골에 가서 욕을 먹고 일하던 때가 참 좋았구나!' (웃음)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꿔치면 돌려치고 싶고 돌려치면 바꿔치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돌아가는 겁니다. 돌아가는 것은 높아지면 낮은 고비를 당해야 되고 낮아지면 높은 고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높다고 자랑 말고 낮다고 한하지 말라구요.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오늘 높아졌다가 오늘 낮아지면 그 낮아지는 것을 보고 있지만, 이 천운은 10년 단위로 높아지고 10년 단위로 내려오고, 더 큰 사람일수록, 더 큰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나라일수록 백 년 고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더 큰 섭리일수록 몇백 년 고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더 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선민이 될 나라일수록 몇천 년의 고비를 두고 오르락내리락하더라 이거예요.

지구성 해방이 오면 통일의 운세는 세계의 왕좌에 올라가

그럼, 여러분들! 바퀴 중에서 이 바퀴 될래요, 몇천 년 동안 다 구르더라도 구를 수 없는 바퀴 될래요? 어느 바퀴 될래요? 욕심들 많은 여러분들, 대답해 봐요. (웃음) 어느 바퀴 될래요? 「큰 바퀴 되겠습니다」 에헤―, 큰 바퀴 될래요? 그러면 여러분은 뭐 좋은 날 한번 못 보겠구만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봐요. 천지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고맙고 감사합니다' 해야 된다구요. 내 허리띠야, 좀 올라가라! 자꾸 내려간다, 그럴 때는 이렇게 잡아올려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모르거든요. 말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구요. (웃음) 선생님의 얼굴만 보기 때문에 선생님이 뭘했는지 몰라요. (웃음) 뭘했는지 알았어요? 「예」 허리끈이 자꾸 내려가서 올렸는데, 설명을 해주어도 모르더라 이거예요. (웃음) 그러면 여러분들이 말을 잘 듣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요.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의 역사를 들춰 보게 될 때 어느 한 시대에 동양에 있어서의 어느 국가를 지배한 예가 없어요. 전부 다 종속국가예요, 종속국가. 역사를 배워 보라구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우하사,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반만 년의 역사를 거듭하여 한분을 맞이할 수 있는 운세가 여기까지 찾아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5천 년 고비를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구요. 이거! 그러면 그 둘레가 얼마나 크겠나 생각해 봐요. 이 둘레의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미국도 몇백 년 후손이요, 몇천 년 후손이고 영국도 몇천 년 후손이고 소련도 몇천 년 후손이고…. 다 후손이예요. 중국도 우리 후손이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에 우리의 어떤 사람이 가 가지고 그 조상이 되었는지 알아요? 그거 모르는 거예요. 모르기 때문에 내가 인정하면 또 그렇게 될는지 모르지요. (웃음)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태초부터 하나님이 복을 한 번도 못 주었다 이거예요. 나라라는 나라를 대해서 영원을 걸고 한 번도 복을 주지 못한 그 하나님이 역사 이래에 비로소 복을 주고 싶어서 찾아온 곳이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통일교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는 말이예요. 그것이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아, 이거! 나, 저기 가서 좀 쉬자. 쉬어도 좋아요? 「예」 그건 싫지요? (웃음) 쉬어도 좋아요? 「아니예요」 그건 싫지요?

내가 왜 이렇게 얘기하느냐 하면, 여러분의 지루한 시간을 끌고 나가려면…. 안 그래 가지고는 여러분을 지도를 못 해요. 그러다가는…. (흉내 내심. 웃음) 그럴 거라구요. 처음 온 사람들, 우스울 겁니다. '아이구, 너희 선생님이 아주 뭐…. 어떻게 보면 유명하게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아주 뭐 희극 배우가 되고 비극 배우도 되고…' 뭐 비극 배우도 되고 희극 배우도 되고, 두루뭉수리 아주 통통 배우도 된다 이거예요. (웃음) 그래서 통일교회 선생이 됐어요. 사람은 웃으면서 사는 게 좋은 거예요. 강의를 들어도 웃으면서 듣는 게 좋은 거예요. 그렇게 듣지만 여러분이 웃음결에 넘겨 버릴 수 없는 말입니다.

그래, 통일교회를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을 보호하사 6천 년 고비로써 찾아드는 한때를 맞이해서 이때에 있어서의 책임을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에 승리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 하는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책임하자고 몸부림치는 운명에 걸려 있는 거예요. 오늘도 몸부림치고 내일도 몸부림치고…. 이 민족이 전부 다 몸부림치면 세계는 부활될 것이예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세계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운명이기 때문에 세계의 복귀가 완결될 때까지 삼천만 민족이 몸부림치고 삼천만 민족이 몸부림치는 그 태풍의 역사로 말미암아 아시아가 몸부림치고 아시아가 몸부림침으로 말미암아 서구 국가가 몸부림치고 세계가 몸부림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지구성의 해방이 오는 날 통일의 운세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왕좌에 올라간다 이거예요. 말은 간단하지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가 나온 거예요. '아 이거, 생각하기에 엄청나구만!' 하겠지요? 엄청나고 자빠질 정도예요. 그래도 나는 자빠지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본심을 통하면 자기 살길을 알게 되어 있다

그럼 통일교회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땅을 주고 바꿀쏘냐? 「안 바꿉니다」 하늘을 주고 바꿀쏘냐? 「안 바꿉니다」 자기의 부모를 주고 바꿀쏘냐? 「안 바꿉니다」 자기 누이동생을 주고 바꿀쏘냐? 안 바꿉니다 자기의 생명을 주고 바꿀쏘냐? 대한민국 하나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귀한 것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본심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요.

봄 동산이 찾아오게 되면 얼음이 땅에 쌓여 있어도 눈 속에서 잠자고 있는 하나의 풀포기는 봄이 왔다고 누가 예고하지 않아도 봄을 맞을 줄 알더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 하나의 미물, 동물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아침 동녘에 밝은 햇빛이 비쳐 오면 깊은 땅굴에 들어갔던 벌레도 햇빛을 맞아 그 구멍에서 나올 줄 알더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 하늘로부터 본성의 바탕을 이어받은 우리의 본심이 자기가 살길을 모를 수 있게 안 되어 있다 이거예요. 알게 되어 있는 것이 천리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마음이 자꾸 명령하는 것을 알 수 있더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 뭐 선생님이 따라다니면서 채찍질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알고 채찍질을 했어요. 욕을 먹는 자리에서도 이 놀음 해야 마음이 편하니 그거 웬일이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헤치고 찾아보니까, 헤치고 비교해 보니까 천상천하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의 것이 나만에 상관되고 내 것이 될 수 있는 이런 인연이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이런 연고로 여러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희생하더라도 이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 깊이에서 넘쳐난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어디, 그런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자구요. 내려요. 이러한 것을 해부해서 이해하기 전에는 세상 사람은 암만 봐도 통일교회를 알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불행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합니다」 행복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불행의 요건을 들고 나와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극의 팻말로써 이용할 수 있는 동기와 기원이 통일교회의 깃발 아래에 있더라!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통하던 그 비참이, 치열하던 그 전투가 승리의 장군 앞에 있어서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요, 승리의 월계관을 맞을 수 있는 최고의 목표였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극적인 원천이 되는 것이요, 오늘의 억울하고 분하였던 것이 미래의 행복을 들어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의 터전이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슬픔이 거기에 가담했으면 하늘이 나를 들어, 만인 앞에 나를 세워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요, 하늘의 충신 열녀다'라고 자랑하고 싶다는 거예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인연된 모든 만물은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본심으로 그를 환영하고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가치의 자리가 통일의 울타리에서 벌어진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길을 오기 위해서 수많은 옥중을 거쳐 나왔고 수많은 고생과 피어린 투쟁의 노정에서도 지칠래야 지칠 수 없었어요. 오늘의 슬픔보다도 내일의 소망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더 강하거늘, 오늘에 억울한 것보다도 내일의 희망이 벅차 오르는 그 가슴이 더 크거늘…. 아무리 포악한 원수가 내 손에 쇠고랑을 채우더라도 그 쇠고랑을 차고 사랑하는 교회와 사랑하는 식구들을 대하여 '잘 있거라' 하던 그 말씀 가운데는 역사를 대하여 심판할 수 있는 팻말이 박혀지는 순간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그걸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더라 이거예요. 사나이로서 한번 더 닦아야 할 그 길을 의기당당하게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본연의 가치로써 그런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가는 그 사나이 앞에 옥중이 무슨 문제뇨, 죽음길이 무슨 문제냐는 거예요.

가다 보니 망하는 줄 알았고 가다 보니 다 죽는 줄 알았고 없어지는 줄 알았지만 가면 갈수록 거기에는 콘크리트가 재여지고 거기에는 철주가 박혀서 어느 누가 다질래야 다질 수 없으리만큼 강하게 다져져 있고 어느 누가 뽑을래야 뽑을 수 없으리만큼 철주가 박혔으니 그 다져진 터전 위와 그 박힌 철주 위에 하늘이 영원무궁토록 쓰러지지 않는 고층 건물을 지을 날이 불원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하라! 몰려라! 쫓겨라! 오색가지 잡탕것을 다 퍼부어라!' 그럴수록 엮어지고 엉켜져 완전한 터전은 거기서 다져진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몰려가던 그 자리에 소망이 깃들고 쫓기던 발걸음 앞에 새로이 결의를 다짐하고 맹세를 할 수 있는 그런 역경의 노정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런 자리가 나로 하여금 인격을 조성케 하고 나로 하여금 하늘과 땅을 주고서도 바꿀 수 없는 하늘의 보화를 가질 수 있게 해준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는 걸 생각할 때….

생명을 주고라도 세워야 할 전통을 세우자

만일에 그런 일이 없었으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암만 말해도 무슨 감동을 받고, 통일교회 선생님이 여러분을 죽을 길로 내몰게 되면 갈 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이거예요. 내가 어디를 보나 여러분들보다 더 고생하고 억울한 자리를 다 거쳤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우리 선생님…' 하면서 통곡해야 된단 말이예요.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보다 더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갈 적마다 '하나님, 당신의 억울함을 내가 해원하겠습니다' 하고 '이 몸이 여위고 이 몸이 사라지고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분을 풀어 주겠습니다' 하던 그 호소의 기도라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보다 더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만일에 그렇지 않았던들 하늘을 배반했을 겁니다. 그러한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비참히 끊어졌던 혈통을 연결시킬 수 없어요.

우리는 타락한 인간으로서 하늘과 핏줄을 다시 연결시켜 다시 상봉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지긋지긋 고생하고, 지긋지긋 원통하고, 지긋지긋 분한 하나님의 그러한 인연이 우리와 더불어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지긋지긋한 자리에서 아버지라고 붙들어 지긋지긋한 사탄이가 뗄 수 없게 될 때, 거기에서 나와 하늘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없는 자 같지만 있는 자요, 우리는 망한 자 같지만 승리자예요. 우리의 뜻을 놓고 볼 때 이미 승리의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처리 방법 여하가 시기를 잡아먹을 뿐이지 천리의 대도를 놓고는 이미 승리는 결정적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친구도 없었어요. 나에게는 부모도 없었어요. 부모가 있었지만 내가 부모 앞에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나에게 형제가 많았어도 형제들 앞에….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귀한 말씀을 우리 부모를 붙들고, 우리 형제를 붙들고 먼저 얘기하지 않았어요. 천도는 그렇지를 않아요. 자기 집 외의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 하늘의 구원섭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집 위주가 아니예요. 밖으로부터 세워 가지고 그 사람들이 자기 집을 세워 줘야 하는 것이 천도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형님이 있었지만 하늘의 말씀을 한마디 안 했고 사랑하는 누님들이 있었고 동생들이 있었지만 하늘의 말씀 한마디 안 했어요.

나를 극진하게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고 아버지가 계셨어도 그 부모님 앞에 내가 무슨 사명을 가졌다고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반대하는 후계자가 될 통일의 역군, 나를 만나러 찾아온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성을 다하여, 피눈물을 다하여 수난을 개의치 아니하고 어려움을 개의치 아니하고 가르쳐 주었어요. 그런데 그들 중에는 박차고 나가고 배척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더라 이거예요. 만일에 우리 부모 앞에, 우리의 형제와 우리 친척들 앞에, 우리의 종족 앞에 이런 말을 했더라면 그러한 비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하여 복귀의 곡절이 이렇게 되었던고! 거꾸로 해 나가는 길이라는 거예요.

부모를 사랑하기 전에 원수의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면 자기의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 거예요.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기 전에 원수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의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천리의 법도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 가지고 자기의 아들을 죽이리만큼 원수의 자식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나를 사랑하던 부모 이상의 사랑을 나한테서 받은 사람들이예요. 나를 위하여 죽음길을 대신해 가겠다고 하면서 나를 위해 희생된 누이동생도 있습니다. '부디, 오빠가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길에서의 나는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감사합니다'고 하면서 오빠의 가는 길을 축원하면서 죽음길을 간 누이동생이 있지만, 그 누이동생보다도 더 사랑하는 심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가르쳐 나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라는 명사를 나는 당당코 쓸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옥중에 가 있을 때 부모가 찾아와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이라고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붙들려고 하는데 내가 손을 뿌리치고 '어머니 이 손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를, 하늘이 귀여워하는 그 자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지 못했소. 어머니가 내 손을 붙들면 나는 통곡하게 생겼으니, 나가시오' 하면서 찾아오는 어머니를 찾아오지 말라고 하던 자식의 심정을 하늘이…. 그걸 볼 때 하늘은 이렇게 인간들을 사랑해서 찾아왔는데도 인간들은 그걸 몰랐어요.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런 심정을 가지고 대한의 아들딸로 태어났고, 대한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짊어지고 통일교회의 기치 아래 들어온 우리들은 이런 엄숙한 사명과 이러한 전통적인 사상을 위업으로 받아 가지고 생애의 목적과 생명을 대신해서 바꿔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전통만은 세우고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생명이 태어난 보람이요, 목적인 것을 확실히 알고…. 이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통일교회가 아니다

자, 그렇게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는 이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복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될 때 반대하던 사람들은, 어느 기간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후손들, 그들의 제2세는 통일교회 편이 돼요. 여러분들 중에도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던 족속의 아들딸이 여기 들어와 있어요. 한 시대는 흘러가지만 한 시대는 찾아오는 것이 천리이기 때문에 나이 많은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할 때, '앞으로 그대들이 사랑하던 아들딸이, 원수라고 배척하던 그 무리 앞에 무릎을 꿇고 종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을 내가 알았다는 거예요. 이랬기 때문에 예수는 그 원수의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마음! 원수의 자식이 하늘편으로 올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야 돼요. 원수의 복을 빌어야 그 아들딸이 빨리 온다는 거요. 요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통일교회는 좋은 곳! 좋다고 하는 그 도수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달라요. 그래, 통일교회가 얼마나 좋아요? 얼마나 좋아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믿고 다니고 지금 그저 어저께 자다가 오늘 나와서 통일교회에 나왔다고 그 자리에서 좋아하는 그런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역사는 멀어요. 멀고 멀어. 그 한 많은 역사의 역경을 더듬어 보면 역사시대를 넘어가는 거예요. 창세전의 시대를 넘어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는 것과 같은 그러한 통일교회가 아니예요. 통일교회는 귀하고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이 이념은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어요. 이 뜻을 앎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의 가치를 알고, 이 뜻에 속함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인생의 대열에 서 가지고 만민과 더불어 만우주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엄숙한 자리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건 그저 자기 멋대로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나, 통일교회 교인이야' 하고 있어요. 통일교회 교인 되기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예요. 그러한 기준으로서 앞으로 하늘은 다시 정비하고 정리할 날이 올 거예요.

여러분들, 나도 하나의 사람이예요, 하나의 사람. 아, 여기 통일교회의 선생이라고 해 가지고 다른 것이 있어요? 눈도 둘이요, 별 거 없는 것은 딱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뭣이 다르냐 이거예요? 돈이 있나…? 아무것도 없어요. 통일교회 믿고 통일교회의 진리를 통하여 알고 자기 생명과 재산을 전부 다 선생님한테 맡기겠다고 맡겨 오더라도 나는 그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남의 하나의 생명을 맡는 것도 극히 두려운 일이예요. 장사거리로 되는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생명 대 생명이 아니고는 안 돼요. 심정 대 심정이 아니고는 안 돼요. 여기에는 에누리가 없어요. 여기에는 여유가 없어요. 천 사람, 만 사람이라도 최후의 결정은 일대일로서 해결지어야 할 문제가 개재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그렇게 심각하듯이 여러분이 그렇게 심각해야 돼요. 내가 뜻을 위해서 사무치듯이 여러분이 거기에 사무쳐야 돼요. 내가 하늘을 사랑하는 대신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해야 돼요. 이게 천리더라 이거예요. 내가 사랑하라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은 그럴 따라가야 된다는 겁니다. 선의 길이 닦아졌으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행하는 놀음이기에 그 길을 닦은 다 한 사람의 수고를 잊어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뜻 있는 사람이라면 원래 그 길을 닦을 때 희생하고 수고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 길을 닦은 본연의 목적을 그냥 답습을 하고 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다 그래야 돼요.

통일교회가 이 자리까지 나오기에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그저 편안히 와서 앉을 수 있는 자리예요? 오늘날 이와 같이 앉기 위해서, 이와 같은 자유스러운 예배를 보기 위해서는 몇 번 쫓겨다니다가 소나무 밑에 혹은 모래사장에 혹은 바위 뒤에서 혹은 산고개에 가 가지고 예배 보던 놀음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요즘에 들어온 것들은, 이건 전부 다 건달패들이 많단 말이예요. 여기가 껄렁껄렁한 곳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여기는 전라북도예요. 오늘 선생님이 오기를 바랐지요?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이제 때와 시대는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수많은 곳에서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을 부를 텐데 어떡할 것이냐? 문제가 크다 이거예요. 누구를 보낼 것이냐? 생각해 봐요.

여러분들 자신이 지금 무슨 전도대원이 됐고 혹은 구역장, 지역장이 되었지만 '아버지 앞에 이런 군과 이런 도를 맡고 이런 면을 맡아 가지고 다시 하늘이 바라보는 앞에 있어서의 책임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 없이는 하늘 앞에 대할 수 없는 심정이거늘 천만 번 죽고 또 죽어도 부족한 내 몸을, 이와 같은 자들을 세워서 하늘의 복귀섭리를 하겠다는 아버지가 얼마나 처량한가?' 자기 신세를 걸어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랬어요? 그랬어요, 여러분들? '뭐 지역장이 나를 이해 못 해줘. 아이구, 지구장이 내 사정을 그렇게 몰라주노? 아이구, 분해라! 억울해라!' 이따위 수작하는 녀석들! 천하를 다 망칠 녀석들이예요.

자기의 신세를 아버지 앞에…. 병신이면 병신, 상처난 모습을 부모 앞에 보이기가 부끄러워 그걸 감싸면서 다리가 병신이거든 그 다리로 무릎을 꿇고 경배하지 않은 것을 자기 스스로 부끄러움으로 느낄 줄 아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고 돼먹지 않은 패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혹시나 여러분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거들랑 오늘 저녁에 돌아가서 회개하라구요.

여기에 선 선생님도 이 엄청난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이 시간도 그렇다는 거예요. 삼천만의 운명을 책임져야 되고 세계의 운명을 개방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예요. 이것은 수단 방법으로 되지 않는 거예요. 정성을 다 기울여도 부족함을 느끼고 무릎을 꿇고도 자기의 쌍수를 합장하여 고개까지 숙이고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리를 계승하지 않고는 여러분의 생명 재산을 끌고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기성교회 목사와는 달라요. 어느 누가 내 가슴에 사무친 그 심정을 한마디라도 찔러서 말하면 나는 통곡, 통곡…. 10년을 울어도 끊이지 않을 그런 서러움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가는 길이 바쁜 것을 알고 역사적인 운명이 우리의 손길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를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이 얼마나 처량하냐? 내 모습을 환영하겠다고 바라보고 있는 그 식구들이 얼마나 처량하냐? 생각해 봤어요? 내가 무엇을 줄 것이냐? 내가 줄 것이 없어요. 눈물에 어린, 아버지를 동정하여 눈물로 울먹이고 기도해 주지 못하는 심정이 얼마나…. 밤잠을 자지 못하고 뒤넘이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 보라구요. 밥을 굶는지, 쫓겨나는지, 조롱을 받는지…. 할 짓들은 못 해 가지고 고생스럽다고 보따리 싸는 것은 전부 망종들이예요, 망종들.

심정적으로 절대 빚지는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두 세계의 것을 다 가져야 되겠어요. 슬픈 자리에서 슬픈 것을 좋은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나, 기쁜 자리에서 기쁜 것을 슬픔으로 대신하여 뭇 백성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나, 이런 자리에 있어서 만민의 복을 추구하고 불행한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내가 길잡이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다가 죽을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무덤에는 꽃이 피는 날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살자는 것이 통일의 이념이예요. 알겠어, 젊은 녀석들? 응? 「예」 너희들이 지금 생각하기에는 '뭐 통일교회에 들어가서 몇 해 다니게 되면 축복이나 받고 그것으로 끝나겠지…' 그런 생각 하지 말라구. 너무 엄청난 과제를 맡고 있어요.

내가 그래서 지방에서 온 식구들이 정성들여 가지고 무슨 사과 같은 걸 하나 갖다 놓아도 내 손으로 선뜻 집어먹지를 않아요. 무서운 거예요. 대한민국에 있어서 국민의 세를 받아 먹고 관직에 있어 가지고 녹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무서운 거예요. 그 백성이 하늘땅을 부여안고 정성들여서 세금을 바쳤다고 할진대는 그것을 함부로 먹는 그 관원은 벌을 받아야 돼요. 그 자식대에 가서 벌을 받아요. 우리 통일교회 책임자들, 그걸 알아야 돼요. 심정적으로 빚져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선생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심정적으로 절대 빚 안 진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나가 고생할 때, 그 고생을 생각하게 될 때…. 아무리 고생한다고 해도 선생님이 고생한 걸 못 당할 겁니다. 내 고생은 하늘이 통곡할 수 있는 고생의 장면이 많았었지만, 그걸 생각하면서 '아버지여, 그들이 작은 고생을 하거든 나는 더한 심정을 기울여 과거에 나를 사랑하고 그와 같은 자리에서 나를 동정하던 그 심정을 대신하여 외로운 그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이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 마음이 남아 있는 한 여러분이 선생님을 배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는 선생님을 부르게 되고…. 그런 거예요.

좋은 것이 생겨도 먹지 못하고 눈물이 핑 돌고, '하나님은 이런 것을 잡수시지 못했는데' 하는 것이 있어야 돼요. 좋은 옷이 있어도 내가 입을 수 없는 거예요. '아버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이것을 입지 못했으니…' 그럴 수 있어야 돼. 그래서 세계를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어려 하늘 식구의 인연을 거기서 지니고 나설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다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의지로 살아야 돼요. 통일교회는 지극히 좋은 거예요. 영계에 가 봐도…. 여기서도 그런 거 알겠구만! 죽어보면 아는 거예요, 죽어 보면 죽어 보면 통일교회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거예요. 한번 죽어 보면 좋겠지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런 일들이 많지요? 어떤 선조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죽어 가지고 후손한테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제발 내가 반대한 것을 용서해 주마 하는 한마디의 말씀이라도 네가 받아와 다오'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받으면 해방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해 주는 거 아니예요. 개인적인 내가 아닙니다. 공적인 책임을 지고 법을 갖고 치리해야 돼요. 그런 일들이 많지요?

하나님이 있고 영계가 있다는 것을 통일교인들이 부인 못 할 겁니다. 그건 부인 못 하지요? 「예」 여러분들, 생각해 봐요. 오래지 않아서 다 죽는 거예요. 천년 만년 살 줄 알아요? 젊은 놈들 뻔뻔스럽게, 다 느긋하게 다니지만 오늘 나가다가 차에 치여서 죽을지 알아요? 그때는 어떡할 테야? 죽으면, 어떻게 할 테야? 갈 길이 바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더 버텨 가면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책임이 탕감복귀의 노정을….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옛날 젊은 여러분들 같은 때에는 뭐 땅만 보고 다녔어요. 옆의 놈이 싸움을 하든지 누가 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다녔어요. 왜 그런지 여자들이 선생님만 보게 되면 선생님을 자꾸 따라다니려고 그래요. 옷을 아주 뭐 알록달록한 그저 노동자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머리는 더벅머리 총각으로 다닌 겁니다. 왜?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자기의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한 사나이가 뭐 누구에 대해서 사정을 돌봐 주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자기의 갈 길이 바쁘다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지금도 그래요. 내가 바쁜 겁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오늘날 대한민국의 환경을 보면 불행한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대한민국에 사는 여러분은 더더욱 불행한 자리에, 행복하지 못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세계가 이렇게 돼 있어요.

이 세상은 하나님도 인간도 원하지 않던 타락한 세상

그러면 어찌하여 이렇게 됐느뇨?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원해서, 이렇게 만들기를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냐, 원치 않았는데도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냐? 우리 조상들 중에는 꿈에라도 이런 세계를 만들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더더욱 끝날에 있어서, 지금 이때에 있어서는 수많은 인류가 행복되게 살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대 시대에서나 종교를 갖고 지도해 나온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거나 나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거쳐 미래까지 연결시켜서 이런 불행한 사회의 연결체를 만들어 가지고 신음하는 인간상을 보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왜 이렇게 됐느냐? 만일 하나님이 계시고 오늘날 우리 인류가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혹은 우리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 인간들은 자녀라 할진대, 그 아버지와 이 자리에서 공통된 기쁨을 취할 수 있는 환경도 못 돼 있는 이런 환경에서 살게 만든 그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뭐 어떻고 어떻고, 사랑이니 무엇이니 하는 말이 돼먹지 않았다구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진정 인류를 사랑하는지는 모르지만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놓고 뭐예요? 불행한 자리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 구원이니 무엇이니 하는 건 다 귀찮은 놀음이라는 겁니다. 안 그래요? 거 하나님은 어찌해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만일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건 별문제지만 있다 하게 되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이렇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지극히 고충을 느낄 것이고 인간도 지극히 고충을 느낄 것인데, 서로가 어떻게 타협할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여기에는 크나큰 곡절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긍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종교는 말하기를 '인류는 타락했다'고 합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시대 시대에 도를 선포하고 나선 종교는 그 시대 환경을 대해서도 그렇고, 혹은 지난날의 역사를 대신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래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전부가 선한 단계에 처해 있지 못하고 악한 단계에 처해 있음으로 말미암아 타락된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되었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무엇이 됐다구요? 「타락되었다고요」 타락.

종교는 악한 세계를 선한 세계로 돌이키기 위해서 나왔다

타락이란 명사가 어디 구수해요, 나빠요? 「나쁩니다」 우리 인간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타락했노? 오늘날 기독교에서 믿듯이, 우리도 기독교의 일파지만 말이예요, 기독교에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아주 간단해요. 그런 간단한 내용에 걸려 가지고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연락할 수 없고, 도울래야 도울 수 없고, 도움받을래야 도움받을 수 없는 처량한 자리에 떨어졌다면 거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거예요. 타락한 것은 틀림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지상에 살고 있는 이 수많은 인류, 30억 인류 자체는 선한 권에 있지 못하고 악한 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의 보응이요, 타락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결과가 좋게 된 것이냐, 나쁘게 된 것이냐? 대답해 보라구요. 「나쁘게 된 것입니다」 나쁘게 된 것이예요. 그러면 본래부터 인간이 나쁘게 되도록 되어 있느냐 할 때, 난 그렇다고 생각 안 해요. 하나님이 그렇게 나쁘게 만들었느냐?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하나님은 지극한 선이시기 때문에 그 선을 중심삼고 대상을 상대적으로 구해 가지고 완전히 주고받으면 여기에는 평화의 경지가 벌어지는 거예요. 완전한 선 앞에 서야 할 대상이 거기에 서지 못하게 된 그 환경은 그 선 이상의 힘을 가진 분이 오면 작용시킬 수 있으되 절대적인 선 이하의 기준 가지고는 이것을 침범할 도리가 없어요.

인간은 타락됐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짓기는 지었는데 그 인간이 타락되어 하나님을 저버리고 절망의 세계, 망할 세계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하늘은 사랑이요 지극한 선이기 때문에 그 분이 지은 이 만물은 선한 만물이요, 이 지구성 또한 선한 지구성이라는 거예요. 선한 천지로 지었기 때문에 그 권내에 악이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데, 행복이 깃들어야 할 이 세계는 악한 인간이 살아 행복이 깃들지 못하는 악의 세계가 됐으니 하나님은 본연의 심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창조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청산해 가지고 선의 세계로 돌이키자 하는 거예요. 이것이 왈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복귀섭리입니다.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거예요. 아시겠지요? 「예」

그 타락은 우리 인류 중간 시조가 한 게 아니예요. 맨 조상이 한 거예요. 얼마나 올라가요? 맨 종지조상 그분이 타락을 했기 때문에 그 타락한 할아버지 할머니로 말미암아 오늘날 인류는 망치게 되었어요. 전부 다 가지 될 수 있고 이파리가 될 수 있는 것이….

하늘이 세웠던 본연의 우리 인류조상이 하나님을 박차고, 하나님의 선의 세계와 관계를 끊고 고난의 도랑으로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고해라고 그러지요? 고통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되니, 거기에 전부 다 쓸려 들어가 가지고 허우적허우적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허우적거리는 판국에 있습니다. 아주 꽃다운 아가씨들, 아저씨들,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늠름하고 씩씩한 우리 총각님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허우적거리는 고해권 내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 할아버지들은 '인생은 고해라?' 할 거예요. 고해가 아니예요? '달 감(甘)' 자 감해(甘海)라는 말은 못 들어 봤지요? (웃으심) 고해권 내에 살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이 고해를 청산하고, 여기에 새로운 배를 만들어 가지고 힘을 내서 배를 저어 가자 이거예요. 배를 저어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겁니다. 인류는 가야 할 운명이 처해 있고, 이 역사적인 배경을 잘못 가진 이 시대도 역시 전부 다 옮겨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가야 할 곳이 어디냐? 아까 제목이 뭐라구요?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 그게 인류의 소원입니다. 우리 본성으로 그립고 또 그립고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본향, 조국을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인류의 운명이 됐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비참한 인류를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종교라는 테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규합해 나오는 것입니다. 동서의 문화가 다르고 혹은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면 그 민족 문화와 역사적 배경과 전통에 따라 그 환경에 적합한 종교 형태를 만들어 가지고, 오랜 역사 발전과 더불어 규합해서 하나의 세계로 수습해서, 맨 나중에는 종교적인 문화, 종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한 문화권 세계를 형성하여 최후의 세계까지, 통일된 세계로 몰아내자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많은 종교가 나온 거예요.

타락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불행한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이 불행한 세계를 박차고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저녁 밥 먹고 산보하듯이 그렇게 가야 되느냐? 여러분, 조수가 들어오는 바닷가에 가 본 사람 많을 거예요. 여기에서 바다가 가깝지요? 가깝나요, 여기에서? 「예」 거 사리 같은 때 물 들어오게 되면 말이지요, 바닷가에 가 보면 참 무섭습니다. 혹은 갯벌에 나가 보면…. 이번에 이북 간첩들한테 120명이 붙들려 갔다고 신문에 났더구만요. 물이 왈칵 들어오게 되면 암만 해도, 먼 갯벌까지 나갔다가는 빠져 죽어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는데 뭘하느냐? 배를 갖다 대든가 육지를 메워 나가든가, 그 두 방법을 통해서 고해에서 허덕이는 여러분들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해안선을 찾아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물때를 봐 가지고 물이 나갔으면 갯벌 찾아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고요한 마음을 중심삼고 명상을 하든가 정성들인다 할 때는 사망의 물결이 자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에 여러분들과 연결돼 가지고 한 사람 두 사람 빼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계의 배후의 모든 사정을 알고 보면 영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외국에 가려면 수속을 밟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영계에서는 수속 밟아 가지고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참 복잡하다구요. 하늘의 섭리를 이 땅 위에 펴기 위해서, 참다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천신만고 하는지 모른다구요.

자, 이렇게 수고해서 오늘날 이 수많은 인류를 복귀하자, 다시 돌이키자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뭐예요? 복귀요? 「예」 복귀는 돌아가는 거예요. 말을 잘 듣는 귀는 복귀예요. (웃음) 복귀를 찾아야 되고 복귀를 가져야 됩니다. 왜 그런 말 하느냐 하면, 복귀라는 것을 인식시키려니, 말 잘 듣는 귀를 복귀라고 해야 새로운 사실이 되니 잊혀지지 않거든요. 복귀! 한번 얘기해 보자구요. 복귀! 「복귀」 여러분, 그 말을 할 때는 잊어버리지 말고 귀에다 손을 대고 '복귀되라, 복귀되라' 하라구요. 하나님 말씀을 다시 들으니 복귀예요. 말씀 듣는 귀는 복귀예요. 그렇다고 이 귀가 아니예요. 돌아가는 것이예요.

악한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선민권을 만들어 나오신 하나님

자, 여러분은 타락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양심을 봐도 부정하지 못해요. 타락하고 보니 그 가져온 결과가 이렇게 죄악권 내의 사망의 물결 앞에 휩쓸려 가는 처참한 모습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더불어 살 수 없습니다. 죄를 탕감시켜 놓고 대하게 돼 있지 그냥 그대로 대하겠어요? 여러분, 탕감법 배웠지요? 용서해 준다는 이러한 공인을 세워 놓고야, 사탄이 '이제는 하나님이 용서해 준다는 걸 내가 인정 안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야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복귀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문제라는 거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내 자체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본성의, 본연의 인격기준을 잃어버렸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자체들이 진짜 여러분 자체가 아니예요. 타락하지 않고 태어난 본연의 내 자신이 아니예요. 거짓, 죄악의 뿌리와 더불어 인연을 가진 가짜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의 후손이예요. 아무리 봐도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내 자체에 있어서 본성의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성의 나. 알겠어요?

그다음에…. 내가 태어나려면 무엇이 있어야 돼요?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나를 잃어버렸고, 그다음에는 참다운 형제를 잃어버렸고, 그다음에는 참다운 종족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민족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 참다운 천주, 참다운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하늘땅이 공히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는, 온 만유의 존재들이 그 품에 품기고 그 이름을 찬양할 수 있는 본래 인류의 참다운 시조 입장에 선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참부모를 잃어버렸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 한댔자 여러분 자신들은 타락한, 하늘 천도를 배반한 우리 인류시조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법도를 완전히 지켜서 그 이상을 내 이상으로 상속받고, 그의 생활감정을 내 생활감정으로 상속받아 그 생활감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천년 만년 보아도 싫지 않은 인류의 참다운 부모 품에서, 참부모의 젖을 먹고 자라 봤어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뭘해 주려고 했느냐? 하나님 자신이 축복해 줘 가지고 결혼식을 해줘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게 해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을 편성하여, 이것을 번식시켜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편성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더 넓혀지면 뭐가 돼요? 「세계요」 그 세계는 무슨 주의 세계예요? 하나님주의 세계인 동시에 아담주의 세계예요. 그 세계에 이념이 있다면 이는 아담주의 이념이요, 거기에 우주관이 있다면 아담주의 우주관이요, 혹은 천주관이 있다면 아담주의 천주관이요, 생활관이 있다면 아담주의 생활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색인종이 알록달록하고 그런 것은 괜찮다는 거예요. 그건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 것이니 수많은 민족 피부 색깔이 다른 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수많은 민족의 언어가 달라졌던고?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분립시켰다 이거예요.

왜 분립시겼느냐? 그냥 테두리 안에 놔 놓아 가지고는 복귀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역사노정에서 그것을 분립시켜 가지고, 거기에서 새로운 선한 입장으로 갈라 세워 하늘이 키워 나가는 거예요. 이 역사노정의 선의 조상이 출발하는 것도 거기서부터라는 것입니다. 말이 통하면 전부 다 사탄세계로 변해 버린다 이거예요. 그것을 막기 위해 때리니 언어가 분립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뭘하느냐? 그래 가지고 하늘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전부 다 몰아 가지고 어디로 내모느냐? 이 떼거리 많은 세계에 그냥 두고 보자는 게 아니예요. 몰아내 가지고 전부 다 훈련을 시켜서 이 떼거리가 천만이 있으면 이 천만 떼거리를 대해서 지신을 가질 수 있는 신념의 하나님의 아들딸을 딱 만들어 놓고는 필시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할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명령해 놓고는 세상에서 조롱받게 했습니다. 세상에서 뛰쳐 나가는 놀음을 시킨 거예요. 노아에게 방주를 120년 동안 지으라고 할 때…. 거 미쳤지요. 노아 할아버지가 미치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아, 배를 지으려면 강가의 모래밭에 짓든가 혹은 바닷가의 갯벌에 짓든가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꼭대기에 배를 지으라고 했어요. 거 하나님이 머리가 부족한 거예요?

이 세상에서 누가 봐도 기뻐할 수 있고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하늘의 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분별시켜 가지고 하늘편의 대표자를 세워 놓고 사탄편의 대표자와 제물을 걸어 놓고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자동적으로 배척받게 내모는 거예요. 사람이라는 종자는 노아 편이 아니고 전부 다…. 완전히 분리시킨 거예요.

보라구요. 노아도 그렇게 했지요, 아브라함도 그랬어요. 어머니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던 가정을 다 버리고 갈대아우르를 떠나 내가 가라고 한 곳으로 가라 이거예요. 갈대아우르는 현재의 이라크예요. 그렇게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국경을 넘어 애급까지 갔다 왔지요? 이건 집시 무리예요. 지금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훌륭한 줄 알지만 유랑민이예요, 유랑민. 집시의 무리예요. 그래, 환경에서 몰아낸 거예요. 환경에서 몰아내 가지고 여기에서 훈련을 단단히 시켜 가지고…. 이제는 훈련이 딱 됐으니 하늘 뜻 앞에 죽든지 살든지 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 데가 있나요? 모든 걸 포기하고 나왔으니 들어갈 수가 있어요?

이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여기서 하늘은 새로운 약속을 했습니다. 무슨 약속을 했느냐? 옛날에 아담에게 약속했던 거와 같이,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약속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소망하던 나라.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 너는 인류의 아버지가 되리라' 하고 하늘은 가르쳐 줬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뭘하느냐? 그렇게 분별시켜 가지고 선민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있어서 선민권을 만들자는 겁니다. 만들게 될 때는 여기의 법도를 따라서, 여기의 규례를 따라서, 여기의 법도에 순응해서 굴복해 들어오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되어 기독교 문화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발전시켜 만든 것이 민주세계예요. 세계 절반을 떡 만들어 놓았다구요. 그러면 공산세계는 뭐냐? 사탄세계를 그냥 물려받은 거예요.

무한히 큰 선한 욕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참부모를 잃어버렸고, 그다음에는 자기의 모습, 참자녀의 입장에 선 자기의 본성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형제를 잃어버렸고, 참다운 친척, 씨족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민족을 잃어버렸고,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와 참다운 하늘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늘땅도 지금은 완성이 안 돼 있어요.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몇 가지 잃어버렸어요? 8단계를 잃어버렸다 이겁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최고가 어디예요? 최고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종교를 믿는 것은 어디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냐 하면, 물론 세계로 돌아가는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 하나님에게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최고는 그거예요. 하나님에게 돌아가면 뭘할 것이냐 이거예요.

여러분,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사람이 양심에 욕심이 많아요, 욕심이 없어요? 「있습니다」 정말? 「예」 정말 있어요? 「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에겐 욕심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사람 하면 몸뚱이하고 마음 다예요. 그러니 사람 하면 욕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양심에 욕심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양심에 있어요. 욕심이 있기는 있는데 악한 욕심이 아니고 선한 욕심이다 이거예요. 응? 「예」 (웃음)

그렇지만 사람 하면 악한 욕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거예요, 악질분자. 그렇다고 여러분 대해서 얘기하는 건 아니예요.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이니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사람에겐 선의 욕심이 지독히 많아요. 가만 보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그거 내가 한번 재 봤으면 좋겠다구요. 한번 재 볼까요, 얼마나 큰가?

마음이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입니다」 안 보이지만 꺼불덕 꺼불덕 작용은 하지요? 「예」 마음의 세계는 완전 통일됐어요, 안 됐어요? 「통일됐습니다」 조직망이 백 퍼센트 완성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돼 있습니다」 한번 딸까닥 나쁜 일 한다 할 때는 마음 천지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완전히 아는 거예요. 모르지요, 여러분의 마음은? 「알아요」 여러분 마음이 크다면 한정이 없는데 한정 없는 그 마음속에서 조금 잘못하려면 벌써 마음세계는 '제발 하지마' 하는 겁니다. 훤히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마음이 못 하게 하는 거예요. 마음은 못 하게 방해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밟아 놓고, 마음을 점령해 놓고 나쁜 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쁜 일은 어떻게 하느냐? 마음을 점령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대결하면서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대결해 가지고 완전히 처치해 버릴 수 있느냐? 처치 못 해요. 이놈은 그저 딱 달라붙어 가지고 나쁜 일 하게 되면 언제든지 추궁을 하는 거예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를 추궁해 온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서 이 마음은 나에게 명령하는 거예요. 보라구요, 마음이 얼마나 넓은가. 오늘 내가 전주 나가 가지고 불쌍한 사람을 보고 지갑에 돈 만 원이 있는데 그냥 지나쳐 가면 나중에 들어와서는 마음이 '아, 오늘 좋구나!' 하고 춤추지 않아요. 지갑에 뻔히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전부가 25만 명인데, 전부 다 만 원씩 줘서 하늘 앞에 복귀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하겠다는 거예요, 마음은. 정성을 다해서 오늘 선한 일을 하나 했다면, '어제 했으니까, 그 혜택이 있으니까 오늘은 어제의 절반만큼만 해라' 안 그래요. 그럽디까, 마음이? 「안 그렇습니다」 이놈의 마음 보따리는 욕심도 많지요. 어저께 셋만큼 했으면 오늘은 열까지 해라 이거예요. 오늘 열만큼 했으면 그다음날은 백까지 해라 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바란다는 거예요. 이어 나간다는 거예요. 거 참 이상하다구요. 세계를 위하여 전부 다 줘라 하는 거예요. 그 마음은 무한히….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고야 안식해

그러면 마음의 목적이 뭐예요? 나를 지긋지긋하게 고생시키고 나 하나 망하게 하기 위해서 딱 말뚝을 박아 놓은 주인공이예요, 이게. 이상하지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음이 그러느냐? 우리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어차피 돌아가야 할 운명임을 마음은 안다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가 학교의 스승과 같이 가르쳐 주지는 못하지만 돌아갈 자리, 그 본향을 향해서 백 퍼센트 직행하도록 하는 거예요. 직행해라! 모험을 해서라도 직행시키려고 한다는 겁니다.

돌아가는 데는 나쁜 일을 해서는 절대 못 돌아간다는 거거든요. 선한 일을 해 가지고 돌아가야 되는데 몇 단계를 넘어가야 되느냐? 8단계를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체가 우주적인 완성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갖추려면 우주사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세계는 날마다 하나님 아들딸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완전히 점령할 때까지 쉬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이 지구성을 위해서 하는 일까지 내가 전부 다 책임지겠습니다. 하나님, 할 수 없습니다. 그만두소' 한다구요. 그런 길까지도 마음은 나를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뭐 하나님이 할 걸 내가 다 해 버리면 하나님이 벌 주나요?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됩니다.

떨어져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할 복귀의 길이 천태만상의 이런 먼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일생 가지고는 너무나 짧아요. 수천 년 걸어온 곡절의 노정을 청산짓기 위한 기간을 오늘날 이 육신 쓴, 혈기 당당하게 뜻을 생각할 수 있는 청년시대로부터 장년시대까지 40년 잡았다는 거예요. 어떻든 이 기간에 복귀해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다는 겁니다. 하도 머니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가 뿌리고 또 뿌리고 또 뿌리고 또 뿌려서 이 세계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내 혜택을 받게끔 해줘도 그 길을 갈지 말지하다는 걸 안다구요, 내가.

그래, 마음이 재촉하는 것은 왜냐? 결국은 인간이 돌아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마음은 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우주적인 선을 행하라고 마음은 명령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마음이 왜 그런지 알겠어요? 「예」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예요. 나중에는 마음이 뭘하려고 하느냐? 선한 욕심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히 선한 입장에서 만민 앞에 주면, 나중에는 하나님도 나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때는 하나님이 할 것까지 전부 다 내가 책임지고 해도 하나님이 '왜, 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소망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사정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심정만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마음도 쉬는 거예요. 마음의 안식의 본궁이 어디냐? 하나님을 내 하나님 만들고도 마음은 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 '오냐, 오냐' 하는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꼭 붙들고 하나님의 그 심정 가운데 사무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 가지고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안식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마음의 안식의 본향을 알겠어요? 「예」 하나님을 점령해야 돼요. 하나님을 점령하여 내 하나님으로 만드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을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야 그 마음이 비로소 안식한다는 거예요. 그게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겁니다」

인간들이 이걸 모르고 있다 이거예요. '아, 천지를 창조한 그 하나님이 나를 믿고 가는구나' 하는 것을…. 무슨 힘으로 포위하는 것이 아니예요. 충성과 정성으로써 하나님이 복귀섭리, 구원의 도리를 세운 그 법도를 따라 가지고 만민이 살 수 있는 길을 거치고 거치면 하늘이 공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인하는 하늘을 대면하여 하나님의 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게 되면 벌써 심정적인 인연이 연결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고야 안식하겠다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것을 완전히 점령할 때까지는 여러분의 마음은 아무리 낙원에 가도 또 재촉합니다. '이녀석아!' 그런다구요.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으니 이녀석이지 이분이 아니예요. '가라!' 한다구요.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 하나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그분의 사랑을 백 퍼센트 점령할 수 있는 그곳으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마음은 그렇게 재촉하는데 몸뚱이는 '날 좀 내버려두시오' 하는 거예요. 그저 몽뚱이는 갈 길이 천리 만리 무한한 원정의 노정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싫다고 한다구요. 마음은 넘고 또 넘어라, 넘고 또 넘어라, 가고 또 가라, 하고 또 하라고 울부짖으면서 여러분 앞에 재촉하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마음은 무엇을 점령하고야 안식을 한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요」 마음의 안식의 본향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와서 뭘하려고 하셨느냐? '만민은 혜택을 받아야 된다'이거예요. '만민을 위해서 난 다 주고 싶다. 내 피와 살과 정성을 너희들을 위해 주겠다'고 한 거예요. 그 주는 것은 누구 때문에? 하늘이 나를 통해서 줌으로 말미암아 내가 다 주고 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때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줘야 돼요. 내가 다 주고 났으니. 자기 것을 완전히 준다면 하늘은 그것을 대신 보충해 줘야 된다 이거예요.

공기로 보게 되면, 여기 저기압이 있으면 고기압이 와 가지고…. 최대의 진공 상태를 만들어 놓으면 사방에서 태풍이 불어와서 메워 주는 거예요. 완전히 다 주는 날에는 내 심정세계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하여 최대의 저기압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 최대의 저기압권을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뭘하려는 것이냐? 하나님의 고기압권 사랑이 찾아와 가지고 무한히 주는 것입니다. 그런 힘을 생활 기준에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하늘을 대해 복귀과정에 서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방향에 따라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자신을 갖고 나가야

자, 이젠 마음의 본향이 어딘가 알았습니다. 자, 그거 하나 알았으면 됐지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도생활도 많이 하고 해서 영적인 것을 좀 알고 있어요. 여러분, 마음은 '이리로 가라'고 한다구요. 밤낮 눈만 뜨면 그 마음은 그런다 이겁니다. 그게 뭔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 스승인지 모른다구요. 예수님보고 그때 사람들이 '선생님!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할 때, 천국이 뒷골방에 있다고 했어요? (웃음) 어디 있다고 했어요? 「네 마음속에…」 네 마음속에 있다고 했어요. 마음은 천국의 전령이예요. 그래서 안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제일 가까운 스승과 제일 가까운 하나님이 누구냐? 양심입니다. 알았지요? 「예」

누가 그렇게 사진을 찍나요? (웃음) 거 신문기자 아닌가? 여기 기성교회 교인이면서 신문기자 하는 사람 없나요? 왜 거 내가 뒷짐질 때 딱 사진을 찍나요? 자, 왜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느냐? 따다다다 얘기만 마치고 가 버려도 되지만, 여러분들 왔는데 그냥 가면 되겠어요? 그래서 친하고 싶어서예요. 사람이 웃는 데는 말이지요, 웃는 데는 팔자 털어 놓고 웃어야 돼요. (웃음) 아들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하하 웃을 땐 팔자 턴 거예요. 무불능통이예요. 다 통한다 이거예요. 그래, 입을 헤― 해 가지고 눈을 요렇게 뜨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 이렇기 때문에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눈이 이러고, 뭐 갖출 것을 딱딱 다 갖추고, 머리에도 기름을 발라서 딱 빗어 넘기고 이렇게 다 갖춘 사람이 아니예요. 어수룩하고 그런 사람들이라구요. 시대에서 몰리고 쫓김받는 무리들이 역사를 창조한다구요. 시대에서 환영받는 무리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느냐, 쫓김받는 무리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느냐? 쫓김받는 무리들이 역사를 창조해 나와요.

저 통일교회 교인들이 쫓김받는 무리요, 환영받는 무리요? 「쫓김받는 무리입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환영받는 무리예요. 환영받는 무리예요. 선생님한테 환영받잖아요? (웃음) 하나님한테도 환영받지 않나 말이예요. 쫓김받기는 뭘 쫓김받아요? 옛날에는 그랬어요. 자, 여러분 생각도 일리가 있을지 모르지요. 뭐 그렇다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자, 그러면 하나님이 욕심이 많으냐, 욕심이 없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욕심이 많나요, 욕심이 없나요? 「많습니다」 하나님이 욕심 가질 게 뭐예요, 전부 다 자기 것인데? (웃음) 욕심낼 걸 만들어야지요. 하나님이 만들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욕심이 있다면 이 명사는 어디에 적용되느냐? 타락한 인간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욕심을 품고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욕심이냐? 복귀역사의 욕심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우리 복귀의 욕심을 하나님이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닮은 것이 사람이지요? 「예」 그래, 사람 마음도 하나님 닮아 있기 때문에 이놈의 욕심 보따리가 여간 크지 않아요. 알겠어요? 「예」 그런데 하나님은 무슨 욕심을 갖고 있느냐 하면 남을 점령해 가지고 전부 다 품에 넣겠다는 게 아닙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세상 사람들은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수단껏 그저 독수리가 뱀 채가듯이 한다구요. 그런 식으로 욕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예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은 어떤 걸 제일 좋아하느냐? 후다닥 다니면서 하나님은 '나 죽는다' 이런 사람을 찾는다구요. 반대지요? (웃음) 그러한 인간, 그러한 인생을 하늘은 찾고 다녀요.

그러면 그런 인생이 될 수 있는 본바탕의 지주, 기둥이 무엇이냐? 마음이예요. 하나도 안 남기고 그저 몽땅 잡아 가지고 부숴 가지고 그 사람을 내 것 만들겠다고 하는 거예요. 마음은 그러기를 원해요.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발길로 차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사람을 찾는다구요. 그래야 참사랑을 송두리째 점령해 가지고 내가 전부 다…. 코를 골게 되면 삼천리 강산이 왔다갔다하고 지구성이 흔들흔들하고, 그것을 품기 위해 달음질치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이 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것은 백 퍼센트, 360도…. 이렇게 되면 360도 되지요? 360도를 열어 놓고 있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하여튼 뭐 활짝, 안팎으로 다 열어 놨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내 마음이나 네 마음이나 동서양의 모든 인종들, 노랑이나 깜둥이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그 마음은 다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타락한 세상에서 무슨 경주를 하고 있느냐? 마음이 지금 그 몸뚱이를 끌고 나가기 위해 경주하고 있어요. 최후에는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으로서 그 단계에 나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또, 하나님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마음이 더 잘 알고 있어요. 나중에는 하나예요. 발전하거든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나를 잃고, 부모를 잃고, 종족·민족·국가·세계·하나님까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돌아가려면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절대 복종하라

그러면 먼저 여러분 마음이 확실히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간다 하는 이 기점을 철처히 잡아야 됩니다. 이 마음이 가는 데는, 이 마음이 명령하는 데는 틀림없다, 하나님과 철석같이 내 마음이 접붙여 있고, 어디를 가도, 뭐 어떠한 환경에 가도 마음의 방향 앞에 나는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는 그 방향과 완전히 일치되어 있다고 하는 그런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 자신을 못 가지면 안 돼요.

그래서 여러분, 마음이 내 자신에게 명령할 때, '야, 해라!' 할 때는 도피자가 되지 말라구요. 어떤 때 길을 척 가게 되면 전신주가 있습니다. 전신주에 시꺼먼 콜타르가 묻었건 뭐가 묻었건 척 가다가 전신주를 붙들고, 마음이 어쩐지 기도하고 싶다면 이놈을 척 붙들고는 기도하는 거예요. 남이야 웃겠으면 웃고 말겠으면 말고 딱 붙안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럼 되는 거예요.

마음은 둥근데 이것은 심문(心門)이 있어요. 여러분이 기도하게 되면 줄줄줄줄 언제나 잘되더든가? 안 그렇거든요. 거기에도 춘하추동과 마찬가지의 자기 성품에 따른 형이 있어요. 하늘과 더불어 이렇게 마음 방향이 딱 맞춰질 때가 있어요. 이때는 세상만사를 다…. 그때를 놓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벌써 안다는 거예요, 벌써. 여러분이 기도생활하면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때를 위해 단단히 준비해야 됩니다. 그때 가 가지고는 백사(百事)를 대비해 놓고 이 마음문을 활짝 열고 거기에 파고들어가면 여러분이 크나큰 힘과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하게 되면 어느 시간에는 기도가 잘 된다 하는 걸 알아요. 그것이 춘하추동과 같이 달라져요.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해야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대낮에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구요.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게 되면 다 푸른빛이 나지요? 잎만 보는 사람이 있으면 '다 마찬가지지 뭐. 다르긴 뭐가 달라?' 할 거예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소나무면 소나무, 무슨 나무 무슨 나무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그 과(科)가 전부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질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다는 거예요. 그 다른 것은 모든 작용 현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작용하는 것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지만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자기의 씨를 남기는 것은 전부 다 공통이예요. 소나무는 소나무의 씨를 맺어야 돼요. 열매를 맺어야 돼요. 무슨 나무는 무슨 나무 열매를 맺어야 된다는 것은 공통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듯 양심은 우리를 재촉하여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지향해 가느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곳으로 몰아내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들판에 떡 나가게 되면 오만가지 풀이 있지요? 씀바귀 같은 것, 혹은 별의별 아주 뭐…. 아이들까지 싫어하는 그런 풀이라도 가만 보게 되면 꽃이 안 피는 것이 없어요. 그렇지요? 「예」 가을이 되게 되면 열매맺지 않는 것이 없어요. 마찬가지예요. 생물로 태어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물건은, 번식하는 모든 것은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인간을 중심삼은 마음도 역시 열매를 맺어야 할 그런 목적을 향하는 과정에 처해서 우리가 거기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예」 무엇을 맺어야 돼요? 「열매」열매를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로부터 땅 위에 왔던 수많은 우리 성현현철들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인류의 행복 실현을 위해 애쓴 동기는 어디에 있느냐?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가 보자 이거예요. 그랬지만 지금까지 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가야 된다는 거예요. 가는 데는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에게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때까지 가야 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때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지옥까지 가자' 하면 어떨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아야 돼요.

그런 관점에서 이 천지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이 있느냐 할 때,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이거 큰일났구만.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헛했지요. 그래서 그런 기준을 가져야 되겠고, 그런 기준을 개척해야 되겠으니 수많은 사람이 역사노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직접 지도하지 못하고 종을 세워서 지도해 나온 거예요. 수많은 종을 보내 가지고 종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끌어올리는 데 천 명 만 명이 동원되어 희생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역사의 줄거리를 가려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큰 강…. 여기에서 무슨 강이 제일 큰가요? 「섬진강」 저 서울 한강을 두고 보면 한강이라는 그렇게 큰 강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저 산골짜기에서 복잡한 지류가 흐르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지류를 보게 되면 한강이 흐르는 것처럼 이렇게 흘러야 할 텐데 이건 꺼꿀잡이예요. 지류에서는 꺼꿀잡이로 올라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않고 그것만 들여다보면 '어, 저거 반대로 가네. 저거 이단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흐르는 물은 전부 다 자기 길을 찾아갈 줄 안다는 것입니다. 물이 자기 갈 길을 못 찾아가던가요? 자기 길을 찾아간다 이겁니다. 그래, 반대로 꼬불꼬불 꼬불꼬불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느냐 하면 큰 강을 이뤄 가지고 대해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사람의 양심이 물만 못하냐? 아니예요. 사람의 양심은 지극히 거룩해요. 더우기나 시대에 접해 사는 사회 혹은 세계적인 사조에 에워싸여 나가는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이 세계적 사조를 천운이 감싸 가지고 환경이 하나를 이룬 여기서 감싸 나가기 때문에 그 권내에 처해서 작용을 하는 그 양심도 갈 길을 안다는 거예요. 갈 길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이 갈 길이 틀림없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가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 명령하는 명령에 절대 복종하라구요. 아시겠지요? 「예」 뭘하라구요? 「명령에 복종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됩니다.

하나님 심정의 상대적 기준으로 오신 예수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데 그런 아들이 왔느냐? 안 왔습니다. 안 왔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다리를 놓으려니…. 어떤 사람은 다리를 놓는데 이렇게 놓는 사람이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놓는 사람도 있어요. 이렇게 해 가지고 되겠나요?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어떻게 놓아야 돼요? 인간이 여기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점점 각도를 돌이켜야 돼요. 이렇게 큰 다리를 건너가는 데 있어서는 90도 각도로 건너가야 됩니다. 마음이 가는 데는 전부 다 이렇게…. (녹음이 잠시 끊김)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보따리를 싸라는 것이 아니예요. 나눠 주고 싶다는 그 기준 중심삼아 가지고 맨 노동자면 노동자 대표 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그런 노동자 권내에 전부 다 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딴 그룹의 대표자가 있으면 그 대표자 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그러면 전체를 대신해 주었다는 조건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탕감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조건이라는 것으로 다리를 놓아 가지고 뽕 뽕 뽕 뽕, 누에 뽕이 아니예요, (웃음) 타고 넘어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어디를 가느냐 하면 이 한 다리를 건너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 위의 인간 앞에 와서 공헌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몇 세기 동안….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다 떨어졌으니 사방으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문화배경이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전통이 다른 이런 입장에서 전부 다 다리를 놓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맨 나중에는 점점 들어오니 다리 다리끼리 합쳐지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점점 다리 다리가 합쳐지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 가지고, 이게 도(道)라 하게 되면…. 나중에 남는 건 뭐예요? 도예요, 도. 지금까지는 종교가 문제 안 됐지만 금후의 세계에서는 종교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통일교회가 나와서 가장 문제거리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나중에는 이것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이것이 합할 때는 하나님이 위에 가든가 아래로 가든가 한다구요. 알겠어요? 나중에는 합해야 된다 이겁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님이 복귀해 들어오는 데 자기 앞에 전부 다 몰아 가지고 복귀시켜 나온다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대개 다 아는 거예요. 이 중앙이 중심이기 때문에 동서남북 권내에 있기 때문에, 이 중앙을 향해서 전부 다 같은 방향 권내에 처해 있기 때문에 영계를 통하면 벌써 지금 때가 어떤 때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아는데 자기가 하나님 대신이 된다는 거예요, 전부 다.

그래, 도(道)가 전부 다 깨지게 되면 통일교회가 통합하는 것입니다. 통합 안 되게 되면 통일교회 사람들로 전부 다 배치할지 몰라요. 그래서 이 세계의 통일권을 향해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문제가 뭐냐? 다리는 사방으로 놓아 왔지만 맨 마지막에 전부 다 합쳐 가지고 맨 심보우 (しんぼう;축) 가 될 수 있는…. 시계를 보면 거 뭐라고 그러나요? 태엽, 뭐라 그러던가? 심보우가 딱 수직 각도로 돼 가지고 있어야 돌게 돼 있지요. 맨 나중에 요것이 요렇게 돼 가지고 가운데 딱 중심이 될 게 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했다고 해서 하늘나라, 영계에 가 가지고 하나님을 타고 앉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의 심정 복판이 여기 있으면 여기와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얘기하는 거예요. 하늘땅이 여기에 연결되어 가지고 전체가 하나되면 수많은 인류는 그 작용하는 권내에 있어서 하나의 동작권 내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의 상대적 기준에 섰다 하는 존재가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누구냐 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독생자 예수입니다. 누구요? 「독생자 예수」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위해 수고하신 결과 찾아진 분이 누구냐? 수많은 인류 가운데 남성을 대표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나온 사람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 분밖에. 이분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심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정을,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 위의 만민 앞에 연결시켜 주려고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걸 연결시켜 가지고 이 떨어진 기반을 중심삼고 까꿀잡이로….

창조의 최후의 걸작품은 여자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됐다구요? 무엇을 잃어버렸다구요? 「참부모요」 꺼꿀잡이로 이 기반을 이동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이 우주간에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소망하셨던 남성을 세워 가지고…. 남성을 짓고 난 후에 무엇을 지었어요? 「여자」 아담을 짓고는 무엇을 지었어요? 「해와요」 해와는 남자요, 여자요? 「여자」 여자가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습니다」 그래, 못했기 때문에 잘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아담보다도 해와를 후에 지었기 때문에 창조의 최후의 걸작품이 여자예요. 좋단다, 지금. (웃음) 제일 마지막에 지었어요. 그래서 수염이 하나도 없지요. (웃음) 없는 게 걸작품이예요, 있는 게 걸작품이예요? 하여튼 창조의 마감은 여자예요.

아담을 지어 놓고 아담의 무얼 빼서 만들었다구요? 「갈비뼈」 그래, 갈비뼈예요? 기성교회는 그거 참 잘 믿어요.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까 그저 가슴만 보고…. 난 그런 거 못 믿어요. 갈빗대는 무슨 갈빗대예요? 아담의 갈빗대는 뭐 해와보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자보다 갈빗대가 하나 없어야 되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뭐 어떻게 했나? 잘라내고 또 메웠나요? 잘라내서 메우는 게 힘들어요, 만드는 게 힘들어요? 메우는 게 더 힘들지요, 뭐.

그렇다면 해와를 왜 그 갈빗대로 만들었을까요? 갈비대를 뽑은 게 아니예요. 본떠서 지었다는 거예요, 본떠서. 여러분, 도서관에 가서 저 무슨 책을 보고 무엇을 빼내라 그러지요? 그건 골자를 빼내라는 것입니다. 줄거리를 빼내라는 겁니다. 그 책의 뿌리로부터 줄거리로부터…. 고것만 빼내면 잎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잎은 떨어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줄거리는 남아 있거든요. 그래, 본떠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또, 기성교회 믿는 사람들은 뭐 타락했기 때문에 해산을 한다고? 소새끼도 타락했기 때문에 새끼 났는구만. (웃음) 본래 다 낳게 돼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우리를 대해 말하기를 '허위 날조적인 허황된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들이 이단자요 허무맹랑하다는 겁니다. 조금 더 가다가는 자기들 입이 다 말려 들어가 가지고 얼굴을 못 들 거예요. 뭐 구름 타고 주님이 와요?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나야 아나요, 성경이 그렇다는데? 나야 압니까, 목사님이 그렇다니까 뭐…' 그러고 있다는 겁니다. 목사는 '눈 목(目)'자 '죽을 사(死)'자 목사예요. (웃음) 그렇다고 목사님한테 그러면 실례입니다. 한번 말을 해봤어요. (웃음)

나 이제부터 하나 묻자구요. 여러분, 한국 사람이 잘났다고 생각하오, 못났다고 생각하오?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야 이녀석아, 뭐가 잘나? 아, 하여튼 됐다구요. (웃음) 전부 들었지요? 「예」 못났더라도 말이라도 한번 그렇게 하고, 망하더라도 '마음으로 이겼다. 사실은 이겼지만 할 수 없이 이번엔 양보한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웃음 ) 잘났어요? 그렇지요? 「예」

그래서 내가 이번에 쭉 동남아를…. 서양 사람들은 우리와 비교 기준이 안 돼요. 눈이 새파랗고 코가 멋들어지고 덩치가 크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안 돼요. 동으로 쭉 돌아보니까…. 일본에 우리 젊은 청년들이 참 많아요. 그 사람들과 쭉 비교해 봤어요. 난 보고 왔기 때문에 알지만 여러분들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몰라요. 어디가 달랐을 것 같아요? 「마음이 달라요」 아니, 마음은 놔두고, 사람이 다르다 할 때 어디가 달랐을 거 같아요? 척 보면 선생님은 많은 대중을 대하고 해서 다 알아요. 또, 사람을 볼 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관상쟁이가 아니예요. (웃음) 대체로 봐 가지고 한국 사람이 착하다 이겁니다. 나 거 기분 나쁘지 않대. (웃음)

한국 사람은 다 좋은데 영웅주의자인 것이 탈

일본에 우리 식구들이 참 많아요. 그들의 눈을 가만 보면 눈이 참 야해요. 야하다는 게 뭔지 알아요? 깜짝 놀라게 소리치는 '야'가 아니예요. 여러분들 가만 보면 참 얼굴도 좋아요. 그런데 탈이 있어요. 무슨 탈이 있느냐? 이건 뭐, 약이나 몇 봉지 먹어서 고칠 탈이면 얼마나 좋겠노? 이건 모가지를 자르든가 고리를 꿰든가 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탈이라는 거예요. 무슨 탈이냐 하면, 독자 영웅주의 탈이예요. 무슨 말이냐? 독자, 스스로 영웅주의자라는 거예요. 이건 그저 소금기에 찌들어져서 일생 동안 농사를 짓던 녀석도 옆에서 이러고저러고해도 한번 척 보고야, 그다음에 남들이 다 따라가게 되면 되돌아보고야 이렇게 넘겨다본다는 거예요. 이게 틀려 먹었다는 겁니다. 전부 다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외국 사람은 그렇지 않다구요.

일본에 지금 선교사로 가 있는 선교사 부인 신미식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기를 일본 사람은 참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말하기가 무섭다는 거예요. 한마디 떡 하면 벌써 그 이튿날 행동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일본 민족성입니다. 옛날에 대권을 움직이던 그 단결력을 내가 이제 알았다고 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선생님이 명령만 하는 날에는 일본은 몽땅 넘어갈 거라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느 사회생활에 있어서 문화기준을 갖추고 사는 백성이니만큼 벌써 몇 사람만 모이면 조직활동 할 줄 알아요.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도 동경에서 이번에 왔다 갔는데, 저 하관 (시모노세끼) 까지 간다 할 때, 한 24시간 걸리지요? 그러면 기차간에서 그냥 앉아 있지 않고 다섯 사람이 가게 되면 두 사람은 전도하려고 삐라를 준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삐라를 받은 사람에게 관심 없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 말을 붙여 올 것 아니예요? 대화가 이루어지면 아주 진지한 말들을 하거든요. 맨 처음에는 그렇게 환경이 안 돼서 큰 소리로 말하면 방해가 되지만 환경이 되면 전부가 고개를 이러고 '더 크게 하소!' 뒤에서 그런다구요. 그러면 앞줄에 탁 서서 이야기 한다는 거예요. 전도를 그저 24시간 그렇게….

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상하지요. 옛날에 선생님이 그랬어요. 내가 산에 가게 되면 제일 높은 산에 갔습니다. 여기서 제일 높은 산이 무슨 산? 「지리산」 지리산이 전라도 산일 게 뭐예요? 「전라북도 산입니다」 전라도 쪽으로 보면 전라도에 있고 경상도 쪽으로 보면 경상도에 있고…. 「지리산 하면 전라북도입니다」 전라남도에 가서 지리산이 어디 산이냐고 하면 '우리 산' 한다구요. 하나님도 '누구 하나님이요?' 하면 '우리 하나님' 이럽니다.

하여튼 옛날에 선생님은 산에 올라갈 때는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남산이면 남산에 갔다 할 때는 우리 식구들이 찾아오면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갑니다. 지금은 안 그래요. 거기에 가서 기도하고 그랬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지금 일본에서 그 바람이 불었어요. 만일 올라간다면 제일 높고 뾰족한 봉우리에 올라간다구요. 그다음엔 더 올라갈 도리가 없으면 '아이고, 제일 높은 곳이 저건데 올라가지 못하면 큰일나지. 올라가야 할 텐데…' 그런다는 거예요. 그리고 올라갈 수 없으면 올라갔다는 탕감조건이라도 세운다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번에 지금 우리 통일교회 미국 여자 청년이 둘 왔어요. 우리 통일교회 종자는 무슨 종자라구요? 「같은 종자」 같은 종자가 아니고 통일 종자예요, 통일 종자. (웃음) 통일교회 약이 좋은 약이예요. 그 화제(和劑)가 있어요. 그 화제를 통해서 지어 놓으면, 그 약만 먹여 놓으면 천지 조화탕인지 무슨 탕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전부 다…. 미국 사람에게 먹여 놓으면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 되고, 일본 사람에게 먹여 놓으면 일본형 한국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좋지요? 「예」 그것은 여담으로 하고 넘어가자구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축복을 받고 타락세계를 탕감복귀해야

자, 누구를 보냈다구요? 「예수님을…」 아담을 보냈다구요. 아담을 보내서 뭘하겠다구요? 복귀하기 위해서 보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귀해야 되느냐? 아담을 4천 년만에 보내 가지고 뭘하려고 했느냐? 에덴동산에서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첫번 아담을 만들었는데 이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실수를 했기 때문에 알이라면 죽은 알을 낳은 거와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다시 낳아 놓은 것이, 다시 길러 놓은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예요. 이렇기 때문에 예수는 그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아담 대신의 사명을 갖고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뭘해야 되느냐? 남자로서 인류의 대표자요,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지니고 온 분이요, 하나님을 대신한 독생자라는 겁니다. 알지요? 「예」 그 독생자가 와서는 뭘할 것이냐 하면, 해와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본떠서 해와를 만든 거와 마찬가지로 아담이 주관권을 행사해서 해와를 주관했더라면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을 것인데 해와한테 꺼꾸로 주관을 당해 타락했다는 거예요. 아담이 해와를 이 땅 위에서 주관해 가지고 하나의 어머니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인류는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가 이 땅 위에 하늘의 사명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 하늘의 사명의 목적이 무엇이냐? 한 남성을 세운 후에 한 여성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생의 사명으로서 해야 할 제1차적인 사명이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해와와 같은, 자기 신부와 같은 기준을 결정지어 놓고 신부를 복귀시켜 가지고,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축복을 받아 인류의 최초의 선의 부모의 인연을 갖추지 못한 것을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아담 해와 대신, 복귀된 아담 해와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완성한 아담 해와 대신 예수는 이 땅 위에서 신랑이 되고 그의 상대는 신부가 되어서 비로소 아담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성례식을 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 부모의 혈족을 그냥 번식시켜 가지고는 언제 세계를 정복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선민으로 만든 것입니다. 가운데 방향으로 요걸 딱 만들어 놓고 여기에 부모가 온 다음에 사방으로 들이맞춰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가인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들어 가지고 여기에 예수의 직계 아들이 나오면 아벨적 기준으로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 타락한 인간이 어느 정도로 떨어졌느냐?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훌륭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기준에 있다 하더라도 그런 역사적인 배경은 전부 다 사탄 혈통을 통해서 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간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 배경을 갖고 태어난 사탄의 아들딸이라는 거예요. 이것을 전부 다 그냥 그대로 하나님이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잘라 버려야 돼요. 목을 자르든 무엇을 자르든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참다운 하나님이 뿌리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줄기가 돋아나야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가지가 나야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잎이 무성한 새로운 나무의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이 돌감람나무군(群)인 인류 패들을 전부 다 훌떡 잘라 버리고 여기에다 새로이 태어난 참감람나무의 순을 갖다가 접붙이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세상이 이렇게 고장이 났다는 거예요. 접붙이는 데는 단번에 붙일 수 없어요. 준비해 가지고 붙여야 됩니다. 옛날에는 인류가 사탄의 종새끼도 못 됐어요. 사탄의 혈연적인 인연을 통하여 태어났지만 사람에게 본심이 있는 연고로, 본심을 중심삼고 이 방향을 언제든지 따라가고자 하는 본심 작용이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말하면, 태양이 아침에 솟아 나오면 모든 만물이 그곳을 향하여 먼저 인사하고 그 방향을 따라 가지고 움직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늘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본심은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그 본심은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요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자기와 혈연적 인연을 가졌다고 인류를 자기 것이라고 취급하지만, 인류는 전부 다 사탄편에서 하나님편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돌아가지 못하게 강제로 유린해 나온 것이 인류역사라는 거예요. 사탄은 우리 갈 길을 못 가게 강제로 협박 공갈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우주적인 원수가, 천륜을 망친 원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한 관계를 청산짓지 않고는 인류는 평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초소요, 여러분의 몸뚱이는 사탄의 일선입니다. 이것이 뭐냐? 민주와 공산이 대결하는 판문점이 있듯이 여러분의 마음세계에도 경계선인 판문점이 있다는 것을 알라구요. 사람의 마음세계의 판문점이 세계적 판문점으로 되어 나온 것이 지금 뭐냐 하면, 삼팔선상에 있는 판문점이예요. 그건 세계에 하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그런 입장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린 유린, 역사노정에서 유린되어 왔습니다. 행복을 추구했지만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었고, 본연의 세계를 바라고 있지만 그 본연의 세계에 갈래야 갈 수 없는 엉망진창의 환경에 서 있고, 내 모든 사지백체는 쇠사슬에 묶여서 영어의 몸과 같이 지상지옥권 내에 살고 있는 인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종의 자리를 닦은 터 위에 종의 대표자를 보내 가지고 종새끼를 만들기 위해 수고했고, 그다음엔 양자를 보내 가지고 양자의 사명을 시킨 거예요. 양자가 나오려면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양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가 왔다 간 이후 그 복음을 따라가는 모든 기독 성도들은 양자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 양자라는 명사가 뭐예요? 혈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혈통이.

선민을 중심삼고 타락세계를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축복할 때 누구를 축복할 것이냐? 하나님이 축복하려면 제일 사랑하는 아들한테 축복해야 돼요. 제일 사랑하는 아들한테 축복해 줘야 돼요. 그러므로 제일 사랑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와야 되는데, 그가 누구냐? 만민의 구세주인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가르친 진리는 간단해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다. 나는 그의 아들이다. 너희들은 나를 믿으면 그의 아들이 될 수 있다. 내 아버지인 동시에 너희들의 아버지다'라고 했다구요. 그다음에는 뭐냐 하면, 우리에게 자녀의 도리를 가르쳐 준 동시에 자기 아버지를 가르쳐 줬습니다. 그다음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했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는 데 필요한 요건을 예수가 와서 비로소 외쳤다는 거예요. 성경이 그래요. 딴것은 필요 없습니다. 딴건 필요 없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 골수에 흐를 수 있는 최고의 첫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독생자와 자녀와 아버지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가정을 편성하자는 거예요. 기독교의 중심은 뭐냐? 성경이예요. 기독교는 성경을 중심삼고 돼 있는데, 성경의 중심은 뭐냐? 예수예요. 예수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이요, 사랑의 중심은 무엇이냐? 신랑 신부요, 신랑 신부의 중심은 무엇이냐? 어린양잔치요, 어린양잔치의 의의는 무엇이냐? 6천 년 전에 잃어버렸던 참부모의 혈연을 찾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못 받았어요. 그리하여 사망의 후손을 번식시킨 거예요. 이것을 끌어내어 참부모를 모셔 가지고 양자의 입장에서 꺼꿀잡이로 직계 아들로 탕감복귀시켜야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임으로 말미암아 세상만사가 이렇게 됐다 이거예요. 여기서 다시금 아벨적인 아들을 모셔 꺼꿀잡이로 뒤넘이쳐 가지고 부모의 인연을 다시 거쳤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탕감해서 가인적인 세상을 복귀해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를 할 때 '우주의 중심이 무엇이요?' 하면, 답은 간단해요.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래요. 세상 사람은 그런 내용을 모르지요. '아버지와 아들이 뭐야?' 이런다구요. 나를 낳아 준 김씨면 김씨, 김 아무개가 아버지고 나는 그의 아들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본연의 아담 해와를 두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자손들은 그들을 대신해서 내 아들딸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늘이 바라는 조국이 어디 있으며, 하늘이 바라는 본향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 천지가 넓고, 지금까지 이 우주에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지만 아직까지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집이 없고 땅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어찌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신음하면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고? 이것은 하나님이 잘못한 게 아니고 우리 인류시조가 잘못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역사를 망칠 수 있는 터전 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하늘은 이것을 끝까지 찾아내어 가지고 소망을 바라보면서 억천만세의 한을 품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야야 됩니다.

그 역사의 한이 시대를 감돌고 있고,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광명의 천지를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무리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명사가 이 역사노정에 나타났다는 걸 볼 때, 하나님이 구원의 도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접촉할 수 없는 최일선에 있어서 분별시켜 가지고 이것을 품고 길러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환영하고 그를 참아들로 보게 될 때, 여기에 있어서 참아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양자의 권한을 인정해 주는 거예요. 그리하여 비로소 복귀될 수 있는 하나의 예수 중심한 가정을 만들고, 그 가정을 중심해 가지고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권이 예수 중심한 국가권이 됐던들 오늘날 세계는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안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 있던, 하나님이 소망하고 있던 본연의 땅, 본향 땅이 어디냐? 이 인류가 찾아가야 할 본향이 어디냐? 본향을 차 버리고 타락한 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극히 비참한 현실입니다. 역사상에 지극히 비참한 일이 무슨 제2차대전이 벌어져 가지고, 무슨 원자전쟁이 벌어져 가지고 세계가 망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창조의 이념을 파탄시킨 아담 해와의 타락이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비참사라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혈통적으로 우리가 악의 씨를 받았기 때문에 이 혈통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낳아 놓은 어머니 아버지를 대해 설교해서 내 아버지가 아니고 내 어머니가 아니라고 부정시킬 수 있는 무슨 교훈법이 있어요? 심정적으로 연결돼 있고 핏줄로 연결돼 있는 그 자식의 도리를 자식이….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핏줄이 하나님의 핏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악한 마귀의 핏줄을 통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섭섭하지만.

잘못된 사랑으로 엉클어진 천지를 참사랑의 법도로 수습해야

만일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예수가 아들로 이 땅 위에 와서 말하기를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내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일체다 이거예요, 일체.

본래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우리가 복귀의 운명을 거쳐 뜻 앞에 서 가지고 구원을 받게 될 때 '네 몸이 성전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뚱이까지도, 타락한 형태에서 복귀의 운세를 더듬어 온 우리도 성전이라는 명사를 생각하는데, 타락하지 않은 본연 아담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그 몸뚱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됐겠어요, 못 됐겠어요? 「됩니다」 백번 천번 되는 거예요.

그랬다면 어떻게 되느냐? 아담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은 무엇이 되느냐? 실체를 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만민을 주관하려면 그것을 어떻게 지었고 그 내용을, 어떤 목표를 통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주관하지요. 알지 못하고 주관해요?

여러분, 정밀기계를 하나 완전히 운전하기 위해서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제일 잘 압니다. 우주를 완전히 주관하라고, 정복하라고 하나님이 축복해 줬는데 아담 그 고깃덩어리가 주관하는 게 아니예요.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서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느냐? 아담 해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가지고 부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 처음 들어 보지요? 아담 해와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온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들어와서 부부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태어난 아들은 뭐냐? 직계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직계 아들.

그런데 아담과 해와의 마음에 사탄이가 들어가 가지고 하나됐으니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거예요. 창조이념을 두고 볼 때, 사탄은 무엇이냐?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 왜 사탄을 용서 못 하느냐 이거예요. 살인강도도 용서하고 전부 다 용서한다고 했는데, 예수를 믿으면 용서받는다고 했는데…. 사탄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길만 있다면 백번 천번 믿겠다 이거예요. 사탄을 용서해 줄 수 없는 까닭이 뭐냐 하면, 인류의 핏줄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사탄이는 간부(姦夫)예요, 간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몰라도 돼요. 나이 많은 이들은 알 거예요.

이 사탄이가 왜 지긋지긋하게 지금까지 인류역사에서 도의 길을 가려 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와 가지고 목을 누르고 등을 타고 희생시키려는 놀음을 했겠습니까? 그놈의 사탄이 뭣이냐 하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가족을 빼앗아 간, 겁탈해 간 간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우리 어머니가 본래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평화의 왕국을 이루고 평화의 천지를 이루어야 할 것인데, 아버지와 우리를 몰아냈다는 거예요. 사탄이가 들어와 타 가지고 오늘날 인간을 이꼴로 만들어 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6천 년 동안…. 무슨 딴 죄를 지은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법도로 엉클어진 천지를 수습해야 돼요. 이 땅 위에 와서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류를 교훈하는 신랑 신부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신랑 신부의 입장에서 천지를 망쳤기 때문에 신랑 신부의 입장에서 구원의 도리를 성사하여 무엇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해와를 찾아야 되는데 해와를 못 찾았다는 거예요. 아담 앞에 나와서 백 퍼센트 순응할 수 있는 해와의 기준을 탕감복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어 가면서 '내가 너희들한테 할말은 많지만 너희가 감당치 못한다'고 한 거예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신부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워 가지고 하늘의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여 4천 년 만에 비로소 본향의 조국 땅을 창건할 수 있는 출발 기준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않고, 유대교단이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당대에 이루려 했던 모든 것을 남겨 놓고 천추의 한을 품고 갔던 것입니다. 그 당대에 이루려 했던 소망을 한 기점 위에 남겨 놓고 한 말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 하면, 그 기준을 다시 찾겠다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가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이유

그래서 끝날에 와 가지고 다시 그것을 재편성해서 하나님의 한을 풀고, 천륜의 한을 푸는 동시에 인류의 한을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이걸 몰라 가지고 뭐 선악과를 따먹고….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말이 틀리거든 목을 매어 가지고 한 40일 동안 기도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거짓말 했나. 여러분은 정상적인 핏줄을 타고 나온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강조한 거예요. 자식을 번식해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도의 생활에서는.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생활 해라 이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이거예요. 천도로 보게 될 때에 인류의 조상의 자리가 아직까지 비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류의 조상 될 수 있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조상의 자리가 비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고차적인 종교는. 불교 같은 것도 고차적인 종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인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꺼꿀잽이가 됐다는 거예요. 여러분 다 태어났지요? 지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타락권 내에서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예요. 하나님이 결혼식을 시키고, 하나님 손으로 축복을 해줘서 만세에 행복하게 복지의 권내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준 부모가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사는 만민은 고아다'라고 한 것입니다. 고아는 어머니가 없다 이거예요. 형제가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찾고 하나님이 세우려는 본향의 가족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 세우려던 참다운 인류의 부모가 어디 있느냐? 인류의 부모가 나오지 않았는데 참다운 형제가 어떻게 나오느냐? 참다운 형제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이건 전부 다 가인적인 형제들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일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첫번 아들을 통해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차자를 통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전인류를 보면 먼저 난 아이는 거짓 사탄편에 선 자예요. 다음에 오는 예수를 중심삼은 무리가 둘째 번이예요. 이 둘째 번 권내를 중심삼고 장자의 이름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 같은 양반은 간교한 것 같지만 간교한 것이 아닙니다. 천륜의 뜻에 부합되는 천적인 공법을 제정하는 데 공헌을 했기 때문에 책임 다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놈의 핏줄이….

그래,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저렇게 많은 집 가운데 하나님이 '이거 내 집이다' 할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과 이 우주에. 그렇기 때문에 세상 권세를 잡은 자는 이 나라의 신이라고 했어요. 그게 사탄입니다. 그런데 본래 이 천지는 인간 앞에 축복을 해 주었기 때문에 어떻게 빼앗을 수가 없어요. 누가 인간의 꼭대기를 눌러 가졌느냐? 사탄이 가졌기 때문에 사탄에게 끌려가고 더불어 이 축복도 끌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랬다저랬다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 회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누구뇨? 이는 재림 예수로 오시는데, 그분이 누구냐? 이 땅 위에서 인류의 부모를 찾아 가지고, 천도에 부합된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수많은 자녀들을 찾아 여기에 새로운 역사적인 조건을 세워 나가면서 새로운 천국을 창건하기 위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제2 이스라엘권을 세계적으로 만들게 된 거예요. 다 만들어 놓았으니 여기에 와서 뭘할 것이냐?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시켜 빨리 세계를 통일적인 세계로 전개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 만해요? 「예」 여러분은 마음으로 그래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무엇을 품어 왔느냐?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나라,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예요, 이게? 하나님의 독생자로 왔던 예수가 원한 나라는 뭐예요? 이게 예수가 원한 나라예요? 삼위신이 이 땅 위에서 피눈물을 흘린 투쟁의 역사를 엮어 오면서 염원했던 나라가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의 나라예요? 오늘날 기성교단이 하나님이 원하는 교단이예요? 아니예요. 큰소리를 하고 있지만 다 죽어 보라는 거예요, 어디 가나. 다 천당간다고 하지요? 본래 천국이라는 곳은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념 가운데서는 어머니 아버지, 처자와 같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천국의 이념이 그렇다는 거예요.

오늘날 간다는 곳이 어디냐? 낙원밖에 못 가는 거예요. 낙원은 뭐냐 하면, 기차 정거장의 대합실이예요, 대합실. 천국이라는 곳은 자기 부모 처자 자식을 데리고 가야 되는 곳이요, 천천만대 후손까지 만나 가지고 어화둥둥 하늘 앞에 송영을 드려야 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성교인들은 아버지는 지옥 가고 엄마는 천국 가고, 그 천국 편안하겠구만요. 아들은 지옥 가서 '아, 엄마 나 죽소! 왜 낳아 주었소, 나를 안 낳아 줬으면 여기 와서 이런 고생 하지 않을 터인데? 엄마는 좋은 데 가고 나는 왜 이렇게 됐소? 당신이 낳았기 때문에 요렇게 됐소!' 그럴 거 아니예요? 그게 천국이예요? 원래 천국이념은 엄마 아빠, 처자 다 같이 가는 곳입니다. 여기 기성교회에서 처음 온 사람 있으면 똑똑히 알아보라구요. 천국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왜 예수는 천국에는 시집 장가간 사람은 갈 수 없다고 했을까요? 때가 안 됐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때가 안 됐기 때문에. 그럼 남자 여자는 왜 만들었어요? 뭘하려고 만들었어요? 다 남자 만들어 놓지요. 이 사람들이 땅 위에서 천국생활 하다가 그냥 그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천국가려면 누가 먼저 들어가야 되느냐? 본래 맨 인류의 조종 되시는 부모가 누구냐? 아담 해와가 먼저 천국 가야 돼요. 아담 해와 천국 갔나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요? 간판을 거꾸로 붙였어요.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할 그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인류의 맨 꼴래미가 됐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다가 돌아서면 꺼꿀잡이가 되는 거와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출발은 했는데 틀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돌아와서 여기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안내자가 이끌어야 돼요.

인류의 참부모가 오시는 곳이 인류의 본향 땅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것은 뭐냐? 끝날은 어떻게 되느냐? 천지가 뒤집어진다는 거예요. 천도가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천도가 바뀌어진다는 것이 뭐 하늘이 시퍼래지고 갈라지는 거예요? 둥그렇던 땅이 편편해지는 거예요? 천도가 바뀐다는 게 뭔지 알아요? 뜻적으로 볼 때 나중에 나오는 사람이 조상이요, 먼저 나온 사람이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아, 인류의 시조가 6천 년 만에 오니까 그 부모의 혈육을 받아야, 본래의 정상적인 궤도가 되는 것입니다. 꺼꿀잡이가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나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예수는 부모로 왔는데 부모는 둘이 있을 수 없어요. 하나예요, 하나. 인류의 조상은 둘이 있을 수 없어요. 조상격, 인류의 참부모격으로 왔기 때문에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편에서 보면 아브라함보다도 먼저라는 거예요. 처음 나왔으니 먼저지요. 그다음에 나온 것은 전부 다 하늘의 프로권 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말 들으니 섭섭하지요? 섭섭하지요? 「좋아요」 그래, 그래. 좋아 죽으라구. (웃음) 섭섭함을 느껴야 돼요, 섭섭하니까. 섭섭한 이 한을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돌아가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가정을 찾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천 년 동안 수고하여 뭘해 나왔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가정…. 신랑 신부로 와 가지고 그다음에 부모의 기준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 가지고 형제가 있어야 되고…. 여러분, 그래서 형제가 생겨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예수와 성신이 사랑할 수 있는 형제가 아직까지….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한다'고 했지요? 형제라는 말은 안 나왔지요? 자식이라는 말도 안 나왔지요? 그렇게 복귀해 올라가는 거예요. 종의 자리에서 친구의 자리에 섰지만…. 친구하고 형제하고는 다르지요? 「예」 형제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가 와야 됩니다. 인류의 부모를 복귀하여 운명권 내의 이념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맞이해서 형제를 맺고….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이러한 이념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식구라고 하는 거예요. 식구라는 명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형제의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형제가 됐어요? 그래요?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 당시에 있어서 하늘 앞에 예수가 해와를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나오려면 지금까지 4천 년 역사에 잘못한 것을 전부 사탄 앞에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청산 안 됐기 때문에 죽어간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다 가면서 한 말이 '내가 너희들한테 이를 것이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했어요. 그 안타까운 사정, 사연이 어느때에 풀릴 것이냐? 6천 년 끝날 이때에 와서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선생 같은 사람이 그런 내용을 전부 다 들춰내 가지고 위로해 주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러분은 뭐 '예수님이 훌륭하기 때문에,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다' 할지 모르지만….

아, 두 시간이 되어 오는구만요. 한 30분 이내에 끝마칩시다. 자, 그러면, 여러분에게 딴 이야기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빨리 끝냅시다. 아까 제목이 뭐라고 했던가요?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원하지요? 「예」 하나님이 원하지요? 「안 원합니다」 그럼 미국을 하나님이 원해요? 「안 원합니다」 미국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안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한국이 하나님의 안중에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는 딴 계통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라구요.

오늘날 제2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려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제2 이스라엘을 준비해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이 제2 이스라엘 민주세계권이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제2 이스라엘이 잘못하면 이걸 포기해 버리고 제3 이스라엘을 찾아서 새로운 본향 땅, 새로운 조국창건의 기초를 세워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 한국을 인류가 바라고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로 만들자

그러면 조국이 어디냐?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 즉, 조국이 어디냐? 인류의 조국이 어디냐? 인류의 참부모가 오는 그 나라가 조국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이치가? 조국이 어디라구요? 「인류의 참부모가 오는 나라요」 인류의 본향 땅이 어디냐? 아프리카고 뭐고 수많은 나라가 많지만 인류의 본향 땅이 어디냐? 인류의 참부모로 오신 그분이 태어난 고향이 우주와 이 역사적인 세계의 본향 땅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인류의 참조상이 왔다면 참조상의 사상, 참조상의 전통을 받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전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의붓자식이예요. 자식 중에는 여러 자식이 있어요. 의붓자식, 양자, 진짜 자식이 있어요. 그렇지요? 양자하고 의붓자식하고 다르지요? 「예」 의붓자식은 뭐라고 그러던가? 어머니가 다르든가 그렇다구요. 아들 가운데도 다르다구요.

그러면 오늘 끝날이 되었는데 어느 나라에서 이걸 창건해야 될까요? 오늘날 미국서 하면 좋겠지요?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 하면 좋겠어요? 「우리 나라에서 하면 좋겠어요」 한국서 하면 좋겠지요? 「예」 또 어느 곳에서 하면 좋겠어요? 「전주에서…」 전주 중에서도 어디에서 하면 좋겠어요? 「전주교회 에서요」 요거 요것! (웃음) 좋아요. 좋다 말이예요. 어디서 하면 좋겠느냐 할 때, 나로 말하면 '아이고, 우리 집에서 하면 좋겠다' 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다고 그게 욕심이 아니예요. 어디서든 하긴 할 거예요. 30억 인류 가운데서, 6억 세대 가운데서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경사예요, 애사(哀事)예요? 「경사요」 경사 중의 경사로구나! 춤출까요, 안 출까요? 「춥니다」 콧물이 떨어지고 눈물이 떨어지고 혓바닥이 나와 가지고 요지경이 벌어져서 춤출 거라구요. (웃음) 내가 지금까지 그런 곳이 있나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돌아봐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찾아왔는지도 모르지요. 여러분 보고 싶어서 왔을지 몰라요.

그 나라가 한국이라면 좋겠지요? 「예」 나는 살아오기를, 나는 세계를 다니며 큰소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한국에서 제일 가는 목사라고 사랑한다면 나는 하나님 싫다고 포기할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30억 인류는 내가 정성들인 깊은 심정의 세계를 다 못 따라온다'고 할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효자 되는 데는 일등 효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투쟁해 나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내가 발견하여 점령하지 않고는 죽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 그 사랑만 내 주머니에 넣게 되면 하나님이야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웃음)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따라온다는 거예요, 바빠서. (웃음)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세계 천지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내가 하나님 모셔 올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가 됩니다」 그거 생각해 보자구요. 지금 기성교인들은 '아,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이단 괴수다. 폭탄 중에도 원자폭탄 같은 폭탄을 맞고 죽어야 된다' 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나 죽으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기도하는 사람이 죽나 내가 죽나 보자는 거예요. 쏘긴 쐈는데 그것이 한바퀴 돌아가 가지고 자기 뒷꼭지를…. (웃음)

내가 고생했다면 누가 고생시킨 것이냐? 이 기성교회 목사들이 고생시킨 거예요. 결론은 그거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복수를 해도 무자비하게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알고 천도가 어떻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도, 그저 별의별 난장판이 벌어졌을 때 나는 그들이 굶으면 먹을 것을 갖다 주고, 헐벗었으면 입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내 양심은, 이 천지가 전부 뒤집어지고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도 마음은 무사태평이예요.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말이 당장 있다 이거예요. 이 땅 위에 살 여러분의 후손 천주 만대를 걸어 놓고도 할말이 있다 이겁니다. 젊은 녀석들 알겠어요? 「예」 늙은 사람들은 알지요, 다? (웃음)

통일교회 사상을 지녀야 돼요. 통일교회 사상은 선생님으로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은 생애를 바쳐 이 노정에서 투쟁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그 투쟁이 끝나지 않았어요. 세계를 향해서 진출하고 역사적인 안팎을 전부 다 뒤집어 놓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일평생 소원이 뭣이냐 하면, 한국을 하나님의 조국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한국 백성은 선민이 되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제3 이스라엘 선민을 만들자 이거예요. 안 되더라도 내가 만들겠다는 거예요. 안 되더라도 만들 자신이 있다 이겁니다. 괜찮아요? 「예」 진짜 괜찮아요? 「예」 선민이고 뭣이고 다 죽으면 어떻게 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만일 한국이 하나님이 바라는 이 세계의 본향 땅이요, 우주 만민의 조국이 된다 할진대 그 나라의 새로운 문명은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그 나라의 언어는 세계어가 될 것이고, 그 나라의 남녀는 세계적인 남녀가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아가씨들은 이다음에 왕자 아니면 시집 안 간다 하는 말이 나온다 이거예요. 또, 우리 총각님들은 세계적인 공주가 아니면 장가 못 가겠다 하는 말이 나오게끔 한번 만들어 보자 이겁니다. 그게 나빠요? 나빠요? 「안 나빠요」 좋은 건 알긴 아는구만. (웃음)

오늘날 모든 언어는 갈래갈래 갈라졌기 때문에 참부모를 통해서…. 본래의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났다면 언어는 하나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래서 앞으로 한국이 만약 조국 땅이 되고, 본향 땅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가 되면 한국은 들릴 것입니다. 얼마만큼 들릴까요? 「하늘 끝까지…」 하나님이 춤추게 되면 한국을 들고 춤춘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춤춰 본 날이 없었고, 웃어 본 날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인간들은 한을 품은 원통하고 불쌍한 하나님인 것을 하나도 생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세계 만민이 자기 아들딸로 돼 있던 것이 원수의 철책망에 걸려 가지고 '나 죽는다' 하는 이런 원성이 천지에 사무쳐 있는데 하나님이 '아이고, 너희들이 무슨 큰소리냐. 난 잠이나 자겠다' 하고 배를 쓸고 잠자는 하나님이겠느냐 말이예요.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이 땅을 복귀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지금은 고생하지만 삼천만이 우리를 품고 통곡할 때가 온다

앞으로 한국을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나라, 하나님이 원하는 소망의 나라로 반드시 만들어야 할 사명을 우리들은 느낀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 그러면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충성을 하는 데도 제일이 되어야 되고, 정성을 들이는 데도 제일이 되어야 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도 제일이 되어야 되고, 한국 백성을 위하여 희생하는 데도, 제물 되는 데도 제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이 피폐한 한국 실정과 그 누가 주도적인 책임을 지더라도 구할 수 없는 이런 사회환경을 천국으로 복귀하지 못 합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가 선두에 서서 피땀을 흘려야 되겠느냐? 통일교회 역군들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좋긴 좋지만 그 내용이 좋을 때까지는, 이것이 표면화 될 때까지는 실천해야 됩니다. 실천하기 위해서는 앉아 가지고 좋은 밥 먹고 꼬인 다리를 해 가지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는 안 됩니다.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 가지고 역사적인 선조들이 희생하던 그 이상의 희생을 하고 오늘날 이 시대의 누구보다도 비참한 자리에서 민족을 위하여 눈물지으면서도 나는 열흘을 굶고라도 그들을 위하여 또 줄 수 있다는 여유의 마음을 갖고 이 민족을 붙안고 여러분이 눈물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움직여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나이 어린 청년들 혹은 수많은 젊은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내가 그 부모들한테 면목 없음을 느낄 때가 많아요. 이 광야시대에 있어서 앞으로 한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을 가로막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피흘리고 수고하면서도 참고, 어려운 길에서 지탱할 수 있는 기력을 가진 청춘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을 몰아 가지고 지금까지 다년간 타향살이를 시켰고, 혹은 길가에서 몰리게도 했고, 혹은 산중에 가 가지고 잘 곳이 없어 야숙을 하게도 했고, 혹은 들판의 외로운 길을 걷게도 했습니다. 그 모든 장본인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을 받으면 내가 큰 벌을 받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을 다 당장에는 모르지만 어느 한 때에 가 가지고는 밝힐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나와 가지고 우리는 상당한 기준에 올라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지방에 가 가지고 고생합니다. 선생님이 제1차 40일수련 노정에 있어서 수천 명을 배치해 놓은 지방을 순회하고 뒷전에 그들을 남겨 놓고 올 때 마음으로 눈물을 짓던 생각이 나요. 지금도 잊지 않아요. 그래, 이번 순회할 때 보니까 그때의 그 어린 것들이 지금은 다 자라 가지고 지방에 나가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더라구요.

지나가는 손님이 아버지같이 생각되어 기다려지고, 찾아오는 아낙네의 소리에도 혹은 들려오는 부인의 소리에도 어머니가 오시는 것같아 뛰쳐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정경을 여러분은 알았을 겁니다. 그것이 참다운 인생의 깊은 심정의 골짜기를 더듬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선생님이 7일금식 하라고 할 때에 선생님도 금식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청춘시대 30세까지는 배고파 보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왜?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니예요. 얼마든지 돈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땅 앞에 맡은 바의 책임을 못 한 작자로서 꿀꿀 대고 밥 먹을 수 있어요?

아무리 대한민국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몰아내더라도 문선생이 주장하는 사상과 전통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으로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단이 15년 이상, 수백만의 교인들이 통일교회를 원수삼아 가지고 가는 길을 막았지만 그들이 이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리하여 최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고생하고 눈물지은 눈물고개가 앞으로 그 부락이면 부락의 3천만 민중이 전부 다 가슴을 부여안고 땅을 치고 통곡할 수 있는 울분의…. (이후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

하나님과 오시는 주님의 관계나 오시는 주님과 세계인의 관계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 앞에 완결시켜서 전역사시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타락을 했더라도 타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되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종지조상이 되는 통일교인

사랑은 아직까지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직까지 사랑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첫번 사랑이예요. 사람을 중심삼고 보면 두번째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첫번이예요. 첫번 사랑을 하여야 할 것이 하나님의 창조법도이기 때문에, 그 원칙에 입각해서 첫번 사랑을 대신 자리에 세워 가지고 첫번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천지의 출발을 보게 된다 이거예요.

이러한 결정적인 기준이 통일교회에서 나왔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는 세계 인류의 종지조상이 되는 거예요. 종족의 조상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살고, 그 사랑의 인연으로 생명의 인연이 생겨나야 하는 것이 본래의 인류 세상이었는데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결정짓고 나면 세계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시일이 문제이지 자연적으로 통일이 된다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걸어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거기에 있어서 선생님이 하나님을 모시던 기준과 마찬가지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과 선생님과의 관계도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한국의 정세를 섭리와 연결지어야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현실의 평면세상에 있어서 6천 년 복귀역사를 재차 명령하는 자리에 서 있게 되는 거예요. '아담이 되라. 아벨이 되라. 아브라함이 되라. 모세가 되라. 이런 사명적인 분야를 몽땅 나눠 짊어져라'라고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 중의 어느 기준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책임지고 나가게 될 때는 아브라함적 기준의 중심이 될 수 있고, 모세적 기준의 중심도 될 수 있습니다. 가정적이냐, 종족적이냐, 민족적이냐 국가적이냐에 따라 역사적인 모든 분야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어린 나무가 장성할 때까지 그 나무의 잎은 그 나무와 인연을 같이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목적의 기준이 끝날 때까지 생사를 같이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떤 작은 잎의 입장이더라도 한 나무의 잎사귀이기 때문에 그 나무의 목적과 운명에 합일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무리 작은 분야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이 그 분야를 중심삼고, 어떤 면에 나가면 면을 중심삼고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목적은 이 면을 품고 넘어가는 것을 통해서 하늘땅을 품고 간다 하는 데 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연결시키느냐? 심정을 통해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까 말한 심정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있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하나 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 전부를 부활체로 인정했기 때문에 통일교회 전부가 수십만, 수백만이 되더라도 이 전체가 합하여서 중심의 상대만 되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아벨적인 책임을 못 하더라도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모든 선조들이 실패했던 전부를 오시는 주님이 결정지어서 승리의 기준을 세워 탕감하면, 그것을 통해 여러분은 그 기준 앞에 30억 인류라도 그 전체가 합하여 가지고 하나의 역사적인 탕감의 기준을 지내 왔다 하는 인연만 세우면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 기준에 연결시켜서 아담 가정의 아벨로부터의 역사적인 모든 탕감의 인연을 놓고 사명 다했다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러한 직접적인 사명을 명령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역사를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한 내적인 승리의 기준을 상속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평면노정에서 한국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복귀의 중심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기준에서는 세계적인 복귀의 준비를 해 나오고 있는 것까지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시켜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없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 해 나가느냐?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선생님은 무얼 해 나오느냐? 세계적인 이념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기준에 보조를 맞추면서 여러분을 앞에 내세워 끌고 나오면서 한 코스로 거쳐 나오기 때문에 어떤 한 점에 가 가지고 한국의 운세와 세계적 운세를 한 점에 맞출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책임을 못 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어 있느냐? 지금까지 여러분 중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과 같은 놀음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거예요. 꺼꾸로 매달려 못을 박고 죽는 사람이 없나, 목을 매고 죽는 사람이 없나, 다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탕감해 나오는 거예요. 탕감시킬 수 있는 그 분야에서 해방의 조건으로 전부 다 연결짓고 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출발하기 전에는 그러한 때가 있었다는 거예요. 수많은 도인들도 만나고, 수많은 신령한 사람들에게 붙어 가지고 전부 다 빼앗아 오는 거예요. 그것을 빼앗아 오는 조건을 세워서 세계적으로 재편성을 해 가지고 여러분에게 나눠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나눠 주는 데는 내가 직접 나눠 주는 것이 아니고, 빼앗아 온 것을 나눠 주기 때문에 여러분이 실수하더라도 나는 침범받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심판받고 나가야 돼요. 따라서 여러분이 책임 못 하더라도 다시 재출발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너는 누구냐?' 하면 '나는 역사적인 열매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건 알 겁니다. 그러나 무슨 역사적인 열매예요? 역사적인 열매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그분을 표본으로 해서 그 자리에 대신 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적 기준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 기준이 희박하게 될 때는 여러분들이 모든 것을 제거시키고, 희박해지는 기준을 다시 한 번 회생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일해도 효과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7년노정에서 여러분에게 많은 지시를 했어요. 여러분이 그 지시에 움직이지 않더라도 영계에 인연되어 있는 외적인 사람들, 즉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먼저 알고 앞놓아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해를 못 해도 이것을 맞춰 나가면 여러분들은 달려서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끝날에 가 가지고 한꺼번에 여러분을 앞에 세워 놓고 맞춰 넣기 위한 것이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세는 섭리와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한국 정세는 세계 정세와 비등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선생님은 한국의 사명을 연결시키는 동시에 세계의 사명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한국의 운세와 세계적인 운세를 연결시켜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적인 성지 택정이라든가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중심삼고 대립이 있게 되고, 죽게 되면 먼저 죽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우리의 사명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최후에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일을 하나님을 제쳐놓고, 하나님을 제쳐놓는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놔두고 우리끼리 일을 결정해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준을 세웠지만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우리끼리 결정지어 승리해야 한다는 거예요. 개인적인 승리도 우리끼리, 가정적인 승리도 우리끼리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우리 식구들에 대해서 영통하는 것을 규제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영계에서 역사하는 것을 막는 거예요. 왜? 우리끼리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민족적 기준만 넘어가면 예수님이 오셨던 이스라엘의 사명을 넘어서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기준만 넘어서면 신령한 역사를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조상들이 와 가지고 마음대로 역사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기독교, 불교 같은 것 다 붙잡아서 기합을 주는 거야. '네 족속들을 왜 등쳐먹는 거야?' 하고 말이예요. 그러면 몽땅 무너져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새로운 하늘 국가를 편성해야 할 통일교회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야단을 하느냐? 우리끼리 승리를 결정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결정을 짓는 데는 개인적이 아니라 세계적인 무대를 기점으로 하여 결정지어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적인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에 나타나야 된다. 이를 기준해 가지고 출발하자는 것이 섭리의 내적 관이예요. 복잡하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사람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간에 우리는 외적인 것을 사탄세계에 넘겨 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물질을 필요로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거예요. 알겠어요? 세상의 최하의 자리에서 탕감복귀노정을 중심삼고 그것을 상속받아 가지고 빼앗는 자리에서 걸어 나오려니 7년이란 고난의 노정을 걸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우리의 영육을 중심삼고 선생님께서 가르쳐 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현실적인 무대에서 우리끼리 승리의 결정을 지어 사탄을 굴복시켜서, 하늘 앞에 비로소 탕감이라는 조건 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국가기준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출발을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선생님은 바쁘다는 거예요. 4단계 배가운동도 그런 목적을 위해 출발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건 통일교회의 무슨 교인을 만드는 게 아니예요. 우리는 역사를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늘의 국가를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무엇부터 해야 되느냐? 국민이 있고 공무원이 있어야 되지요? 뜻으로 보면 통일교회 교인은 공무원이 되고, 입회원서를 내는 사람들은 국민이 됩니다. (웃으심) 사명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꺼꾸로 올라오는 거예요. 그럼 왜 이런 놀음을 7년 넘어서면서 해야 되느냐? 7년을 넘어서면서 그런 일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제 여러분들이 아까 말한 것과 같이 '너를 아느냐?', '나를 아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자신들이 지상에서 이 일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일은 역사 이래 단 한 번밖에 없다는 거예요. 야곱도 그러지 못했고, 노아도 그러지 못했고, 전부 다 그렇게 못 했다는 겁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우리만이 영육을 중심삼고 땅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 처리할 수 있는 승리의 발판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 이 하나의 기준의 자리에 섰다는 것, 이 하나의 기준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인식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자리는 메시아의 출현과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출현하신 것과 마찬가지의 자격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보다 낫다는 거예요. 이제 내가 죽어도 통일교회의 뜻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장이 없어요. 예수님이 출발하실 때는 지장이 있었으나 이제는 지장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7년노정의 단계를 넘는 것은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환난의 고비를 넘어선 자리와 마찬가지의 자리예요. 그런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나는 아벨의 부활의 결실체요, 노아의 부활의 결실체요, 아브라함의 부활의 결실체요…. 전부 다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 전부를 합쳐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게 되는 나하고는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가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인연을 갖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지금까지 천사장의 사명을 대신해서 나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이제부터 이 지상에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평화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선두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탕감복귀하는 과정에서 노력했지만, 이제는 직접 탕감해 놓고 모실 수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시려니 나라가 필요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제 여러분은 하늘나라 공무원과 같은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법도를 가르쳐 주어야 되고, 하늘의 질서를 보여 주어야 되고, 하늘의 전통을 교육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기 도

아버지, 저를 부르신 아버지의 사랑이 크심에 대하여 감사드리옵니다.

저를 따르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 다시 한 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남 모르는 길 가운데 저희들이 조직끼리 얼마나 부대꼈으며, 남 모르는 사정 위에 얼마나 눈물지었습니까? 남이 가지 않는 길에서 처량한 모습으로 땅 보기에 부끄럽고, 자연 보기에 부끄럽고, 하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자신을 탄식할 수 있는 그날들을 갖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수많은 민족 가운데 한민족이 불쌍한 민족인 줄 알았더니, 이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크심이 천만다행이옵니다. 불쌍한 이 민족 가운데서도 저희들을 불러 세우시어 남이 모르는 역사적인 비밀과 시대적인 영광의 터전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천만 번 죽을지라도 갚을 길이 없음을 아옵니다. 황송한 마음 다 드려 제물이 되더라도 이것을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이 기간, 지나가면 저희들이 다시 찾을 수 없는 좋은 때에 책임을 지고 아버지 앞에 불리웠습니다. 이 기간에 흘린 눈물과 땀과 피의 얼룩이 있다 할진대 이것은 아버지의 뼛골에 살이 되고, 아버지의 영광된 세계에서 자랑의 보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리하여 이 강토 이 민족은 언제나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표방의 대상의 나라가 되고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때 진실로 감사하옵나이다.

오늘날 저희들이 이와 같은 사명을 중심삼고 책임진 가운데서 면목을 세울 수 없던 과거를 회개하고 부끄러움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자유의 환경을 맞이하여, 저희들이 사방팔방으로 활동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환경적인 운세와 더불어 저희를 맞기 위한 내적인 모든 전체를 준비해 놓기 위해,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였사옵니까? 내적인 준비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 아버지께서 수고하셨지만 스승도 수고해 나오고 있는 것을 이들이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길이 누구를 위한 길이옵니까? 아버지 당신을 위한 길이 아니었사옵고, 스승을 위한 길이 아니었사옵고, 보잘것없는 나 하나를 위한 길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세계정세가 복잡한 것은 어떤 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요 공산주의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를 위한 것이요 내 나라를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세계에 벌어지는 어려운 곡절이 보일 적마다 내 스스로 그것을 무심코 볼 수 없사옵고, 흘러가는 민족적인 한과 모든 운명의 조건들이 나타난 것을 볼 때마다, 혹은 눈길이 스칠 적마다 그 사정을 책임지지 않는 자리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하늘을 대신한 자녀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세계 도처에 슬픔이 있을 때는 아버지의 가슴을 슬프게 하지 않은 것이 없었사옵고, 아버지의 눈물의 인연을 자아내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이 세상에 벌어지는 사실들이 우리의 가슴에 스치지 않고, 저희의 눈물과 괴로움과 더불어 인연맺지 않는다 할진대는 아버지 앞에 진정한 자녀의 이름을 갖추었다 할 수 없사옵니다.

이제 놀랍고 엄청난 뜻 앞에 책임지고 부름받을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가졌다 할진대는 세상만사가 나를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대한민국이 시련받음은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한 것이요, 대한민국 백성들이 굶주림은 내 빛을 나타내기 위함이요, 또 나를 세워 민족적인 가치를 들어내 자랑하고 민족적인 서러움을 세계를 걸어 놓고 탕감하기 위한 당신의 사랑이 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공산주의가 지금까지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배후에 비참한 눈물과 서러움의 역사가 고비치는 것은 우리들을 위하여 역사적인 탕감의 제물조건을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요, 나를 세워 나와 인연된 승리의 조건을 세계사적으로 결정짓기 위한 아버지의 역사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의 한이 나를 위함이요,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한이 나를 위함이었사옵고,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죽음의 고비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하늘 앞에 부름받고 간 것도 나를 위함이었사옵고, 2차대전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 6백만이 학살된 것도 나 하나의 완전한 탕감을 위한 것이었사옵고, 오늘날 민족적인 해방을 모방하여 나온 통일교회 역사도 나 하나의 해방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 통일 식구들이 7년노정을 걸어 놓고 눈물 흘리고 피 흘리는 모든 연고는 그들 개체를 위한 것이 아니옵고, 나 하나를 위하여 완전한 탕감의 모본(模本)을 위해서 일했던 것임을 생각할 때, 역사적인 한을 대신 짊어지고, 역사적인 사명의 분담을 책임지고 속죄의 사명을 대하여서 제사장의 가치를 온 세계를 대신하여 나타내 주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그 누가 하늘 앞에 칭송받을 수 있다 할진대는 그 칭송받는 것은 나를 위함이요, 아버지 앞에 가까운 자리에 섰다는 것은 나를 위함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수는 많고 각각 다를지라도 그것은 전부 다 하나의 나무에 있는 잎과 마찬가지요 세포와 마찬가지이어늘, 나무 전체가 완전하고 좋아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내가 못되더라도, 내가 탕감의 자리에 가더라도 전체가 좋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나무에 속해 있는 이파리의 욕구가 아니겠사옵니까? 저희들이 그런 사명과 욕구를 가지고 통일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천태만상으로 다를지라도 누구를 기준삼아 가지고 스스로 비판하고 자아에 대한 탄식의 조건을 남기는 역사적인 죄를 다시 한 번 짊어지는 자식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의 서러움이 있다면 민족의 화로써 갚아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민족의 서러움은 내 서러움이요, 세계의 서러움은 내 서러움이라고 이 불쌍한 세계의 사망권을 미워하면서, 세계의 심판날을 가로막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날에 대해 미리 준비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 모르는 역경 노정에서 슬픔의 눈물을 자아내는 모든 전부가 기필코 없어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조들의 공적이 우리들의 시대에 있어서도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그 열매의 가치를 들추어 내고 체험시키거든, 오늘날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승리의 노정을 걸어가는 우리의 발자국 끝에는 패자의 한이 남아 있지 않고 승리자의 영광이 남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기 위해 소수의 통일의 역군들이 삼지사방에 흩어져 삼천리 강토에서 눈물짓고, 외로운 달과 외로운 산천을 바라보며 이 강토가 아버지 품에 품기를 호소하였사오나 저희들이 실적을 갖추지 못하였고 책임을 하지 못했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이 눈물 흘린 그때는 참이었기에 이 뿌려진 참의 사실을 결실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끝날이 다가옴에 따라 이것을 미끼로써 국운과 더불어 싹이 터서 생명의 권한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시운을 맞이하게 함도 아버지의 인연을 저희들이 따라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아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헤아리는 죽음의 길에 가도 감사해야 되겠고, 사는 길에 가도 감사해야 되겠고, 망하는 자리에서도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그것이 오늘 복귀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이 절대 지켜야 할 교훈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이들은 그 동안 처처에 널리어 남이 모르는 눈물의 길을 걸어온 자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붙들고 아버지의 영광을 다짐하고, 스스로 그 몸을 걸어 아버지의 제물이 되겠다고 맹세하고,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민족의 한을 가로막겠다고 몸부림친 모든 행로 행로 걸음걸이에 있어서 아버지 마음 앞에 맺혔고 기억될 수 있었던 모든 전부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여기에 연결시키시어, 개체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전체의 것으로 거둘 수 있도록 한 단계 넘어가서 옮겨 놓을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조건과 승리의 조건으로 삼아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지역장들과 저희들을 보내 놓고 지방에 널리어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는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6년 과정에 있어서 여러가지 눈물어린 과거가 많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 앞에 억울함을 당하면서 체면을 무릅쓰고 얻어도 먹어야 했고, 빌리는 자리에서의 거지의 신세, 혹은 불쌍한 몰리는 자의 신세, 혹은 노동자의 신세, 혹은 쫓기는 자의 신세, 혹은 통곡하는 신세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그것은 다 하늘이 간섭한 것으로 기억하고 추억의 한 페이지로 생각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을 가하여 소원을 다짐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할 수 있사옵니다. 하오나 먼저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과 우리 선조들은 그러지 못하였기에 그 모든 전부가 한으로써 출발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은 복된 자리에 있는 것을 아버지 앞에 새삼 감사드려야 할 입장임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 정세와 민족적인 정세가 맞부딪치는 이때 통일의 젊은 역군들을 중심삼고 최후의 곡절을 넘어 달라고 하늘이 다시 부탁하는 간곡한 이 요구 앞에 저희들 충절을 다짐하고 효성을 다짐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친구의 손을 붙들고 맹세할 것이 아니라 왼손 바른손을 붙들고 맹세할 때가 왔사옵니다. 마음이 몸을 붙들고 맹세해야 할 때가 왔사옵고, 내가 내 목을 붙들고, 내 무릎을 움켜쥐고 스스로 맹세해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맹세를 중심삼고 천지의 인연을 차고 나가는 인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스스로 동기의 시초가 되어서 나로 말미암아 천지의 인연을 맺고 나로 말미암아 나누어 줄 수 있는 근본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많이 가졌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줄 수 있는 자유의 권한을 가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희들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을 때는 그런 인격을 흠모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심정이 다시 임하시는 세계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앞길과 뒷길을 개척하고 다짐하는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지나는 발걸음 앞에 새로운 방어선을 치고 새로운 섭리를 가름하고 사탄을 방비하여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안식의 천년도성을 건국하고 에덴의 복지왕국을 건설할 줄 아는 당신의 뭇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외롭게 모였사오나 이 기간 기쁨 가운데서 새로운 말씀의 전부를 나누면서, 하늘을 흠모하는 인연을 감사하면서 새롭게 삼천만 민족을 책임지고 다시 한 번 품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이스라엘을 잃어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간 것과 같은 길을 가는 자들이 되지 말고 이스라엘을 맞이하여 환희의 부활권을 가지고 찾아가는 스승의 모습을 대신할 줄 아는 이번 기회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방에서 맞는 그들은 새로운 영광을 맞이하여 부활의 영광을 찬양하고 하늘의 위로의 가치를 찬양할 줄 아는 특별한 섭리의 한 단계를 다짐할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6년도의 전반기는 지나갔습니다. 후반기를 맞이하여 7월 새로운 달에 들어섰사오니, 저희들이 이달에 해야 할 만사 위에 경륜이 뜻하신 대로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섭리의 방향만이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부를 아버님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우리가 맹세한 것을 다 이루지 못하고 민족에게나 후손에게 넘겨주면, 탕감조건이 그대로 남아지게 되므로 승리의 실적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부터 10월 14일까지 100일을 감옥에서 복역하는 것같이 살라고 한 것은 10월 4일(서대문형무소 출감일)과 10월 14일(흥남감옥 출감일)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이 기간에 부흥회를 하려고 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심정적인 탕감의 가치

선생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횡적인 입장에 서는 것은 이 나라가 횡적으로 인연맺어지는 동기도 되는 것입니다.

이 기간은 7년노정을 넘어가는 막바지의 기간입니다. 즉 7년노정의 문을 닫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기간이 짧은 기간이지만 심정적으로는 6천년을 탕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정적인 탕감이라는 명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최전선 초소에서 사탄과 싸우는 용사들이기 때문에 역사와 더불어 비참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는 역사 이래 왔다 간 모든 선열들에 비하여 기간이나 여러 가지 조건에 있어서는 결코 그 기준에 미칠 수 없으나, 심정적인 면에서는 그들이 우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심정적인 입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심정적인 면으로 하나님과 접하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적인 사명을 위하여 안팎의 인연을 갖추어 나가야 하기에 축복이란 명사를 걸어 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7년노정은 고생하는 기간이므로 축복가정들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흩어 놓았습니다.

1960년대에는 내적 기준을 세우는 동시에 외적인 기준을 세워 연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의 인연이 연결됩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외적인 완성을 거친 후에 내적인 완성, 즉 심정을 세웠을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 반대로 내적 심정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하늘과 땅, 만물 전체가 서러움과 인연되었습니다.

예수는 내적 입장이고 이스라엘은 외적 입장이었는데, 내외가 잘 맞지 않았습니다. 내적 기준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외적 기준도 깨져 나갔습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도 내외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심정적인 상처를 씻기 위해서는 심정의 인연을 복귀해야 합니다. 외적 조건만 구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길을 가는 우리들은 시련과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나를 아느냐’입니다.

구원의 기준

사람은 부모의 인연을 통하여서 이 땅에 태어납니다. 태어난 인연으로 볼 때 아담은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해와, 그 다음에 천사장을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 장성하여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과 복귀된 인간의 외형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심정이 가장 귀합니다.

구주가 누구인가를 알고, 구원섭리를 방해하는 사탄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고 해결 짓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문제를 확실히 알고 나타났으니 심정문제를 걸어 놓고는 최고입니다.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원리로써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아담 해와를 찾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사명 분야에는 세계의 어느 누구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 기준은 절대적이니 여기에 만우주는 통일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쳐서 하나님을 알아야 할 아담 해와의 자리를 인식시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아버지를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지만 인간이 그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여 6천년의 역사가 흘러왔습니다.

인간은 탕감의 준비는 했지만 탕감복귀하는 데는 전부 실패했습니다. 다시 세운 사람도 실패했습니다. ‘아벨아! 아벨아!’ 하고 부르시던 하나님의 심정에는 억만 대 역사적인 한을 풀어 달라는 곡절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책임을 맡은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다음에 그 책임을 인계받은 자는 가정적인 책임까지 더하여 이중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대표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던 후계자까지 모조리 쳐서 탕감조건을 치러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결실체

6천년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나오신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수고의 결실을 못 보셨습니다. 우리 인류가 하나님의 가슴에 박은 못자국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중의 십자가를 지고 세계적인 기준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과 악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심정적인 팻말을 박아 놓아야 합니다.

역사상 실패한 모든 조건들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서 부활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재림부활이란 명사는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아담의 이상이요, 아벨, 노아,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의 이상입니다. 그러한 가치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탕감만으로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적인 인연을 횡적인 인연으로 전개시켜 시대적인 한 중심 앞에 완전히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사랑을 중심한 새로운 출발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발족했습니다.

선생님은 6천년의 복귀섭리역사를 여러분에게 다시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적은 분야를 맡아 일하더라도 전체의 큰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심정으로 연결지어집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탕감조건을 세워 넘어가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책임을 못하게 되면 세계 인류를 모아서라도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오시는 주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자리에 대신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섭리와 인연을 맺어야 하고, 그 인연을 세계적으로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우리끼리 사탄을 굴복시켜 세계적인 승리를 결정지었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적인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기준만 넘어서면 영계의 조상들이 협조합니다. 여러분에게 명령한 것을 여러분들이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영계에서 영통인들을 세워 가지고 그 일을 외적으로 해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그일을 이룬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내적인 사람을 찾아 나왔습니다. 우리도 외적인 물질을 버리고 고생으로써 7년노정을 걸어 나왔습니다.

새로운 하늘의 국가를 재편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승리의 발판을 세우는 영광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결실체입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예수의 결실체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대열의 선두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의 공무원이요, 입회원서를 낸 협회원들은 국민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탕감하고 하나님을 모셔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말씀 요지>

한 국가의 흥망은 그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통일교회에는 특수한 청년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내일의 나를 창조해야 할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서 이같은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샘과 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하고자 합니다.

샘과 순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고, 샘과 순은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향상선(向上線)에 섰던 선조가 있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 이후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나와 후손이 일관된 목적을 갖고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길은 복된 길이라 하겠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올바른 방향을 향할수록 발전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수많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많은 식물들이 햇빛 하나를 향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두고 순(종대)을 세우고, 횡적인 환경을 이루시는 역사를 엮어 나오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순이 될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찾아 나오십니다. 한국은 이런 순의 입장에 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순은 모든 가지가 받는 시련을 일시에 받지만 전진적인 극복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세계적인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포하는 기독교는 이미 종말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꽃과 열매는 종대에 달리는 것이 아니고 가지에 달리기 때문에 순과 같은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통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통일신도는 샘이 되어야 합니다. 샘물은 솟아오릅니다. 폭포와는 반대입니다. 산 중의 짐승도 샘물을 찾아옵니다. 샘이 없는 산은 명산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패한 대한민국을 정결케 할 샘이 되어야 합니다.

샘물은 솟아 정결한 그 자체를 더럽히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려 할 것입니다. 샘물이 인간의 생명과 인연되기 위해서는 그 순수성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순수한 샘물은 반석을 뚫고 나온 샘물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런 물을 마시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무나 샘물을 볼 때마다 이것을 생각하도록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순이 되고 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가복음 2:1―

<말씀 요지>

우리 교회에서는 성탄일을 1월 3일로 지켜왔으나, 금년에는 세속에 따라 이날 성탄을 축하하려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그날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날입니다. 이날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지상에 소망의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역사를 두고 예정해 오신 날이며 이날을 위해 하나님은 모든 준비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환영 받지 못한 성탄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망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심정적인 기준은 하나님의 소망과 합일되지 못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 눕혀지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설움인 것입니다. 만민의 환영 속에 있어야 할 이날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설움인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이스라엘 나라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안 했던 것입니다. 어느 누가 메시아를 위해 방 한 칸을 준비했던가? 마리아와 요셉 역시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구유에 뉘인 사실만 봐도 요셉가정이 책임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기까지의 10개월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했습니다. 마리아 자신도 외적으로 준비한 입장에 서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었습니다.

요셉에게는 예수님이 의붓자식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서 예수님이 성장하면 할수록 요셉은 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천사의 말 때문에 말 못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자기의 자식이 출생한 후에는 더욱 예수님을 대해 그러했었습니다. 또한 동생들까지 ‘형님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어찌하여 유대로 가지 않느냐’며 예수님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3년 공생애 기간에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발붙일 곳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 온 인류와 후대 역사를 책임진 예수님의 생애가 얼마나 괴로웠던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들은 이 날을 예수님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한 날로 맞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기뻐해야 할 것이 예수님의 탄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에게 기쁨의 날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날이 그와 같은 기쁨의 날이 되었던가?

복중에서부터 모심을 받았어야 할 예수님

하나님도 예수님도 이날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2이스라엘을 세워 수고해 오셨으니 그것이 지금까지의 2천년 섭리역사요, 찾는 그날이 바로 재림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이 하나님에게는 기쁨의 날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뜻을 모르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은 황공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로마의 왕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만한 영광 가운데서 탄생하셨을 것인가? 하물며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음에랴.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그를 맞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죽 딱했으면 하나님께서 동방박사를 보내서 예수님을 증거케 했겠는가? 이방인이 찾아와 예수님께 예물을 바쳤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부끄러움이요, 그들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에는 동방박사만한 사람이 없었던가! 예수님은 4천년의 전역사를 총탕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 그가 말구유에 뉘이셨다니….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아를 복중에서부터 모실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가 아무리 병신이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도 이방인의 종교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도 로마로 옮겨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안나는 복중에 있는 메시아를 알았기 때문에 마리아의 종이 되어 복중에 있는 메시아를 섬겨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증거는 했으나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동방박사와 목자들도 증거만 하고는 모두 가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공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부터 환영받지 못했기에 가정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고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 책임자들은 지옥 밑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재림의 그날까지 지상에서 지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독립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용서받는 과정에서 사탄편 상징자인 히틀러는 6백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을 학살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메시아를 모실 준비를 했다가 탄생하면 모셔야 합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가 외롭게 베들레헴에 갔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녀를 옹위하고 모시면서 다닌 사람이 베들레헴에 호적 하러 왔던 사람보다 많았다면 동방박사가 예수님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인가?

반드시 풀어야 할 예수님의 한

역사적인 기원을 밝히지 못하고는 시대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쌌던 강보는 누가 만든 것이었을까? 누가 어떤 곳에 아기 예수를 눕히고 그의 몸을 씻었을 것인가?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을 알아 그 한을 탕감복귀하는 우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실 때 하나님께 설움을 남기신 예수, 나신 후에 하나님께 한을 남기신 예수, 그러나 천적인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이 사정을 말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연을 바라보고 호소하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예수님은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먹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없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이 말을 하려면 목이 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창건한 후에는 개인의 구원이 있어야 했는데, 오직 오른편 강도만이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이 땅을 기억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므로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구원의 명맥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난데없는 강도가 그러한 뜻하지 않은 사명을 했던 것과 같이 끝날에도 난데없는 민족이 나타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강토의 심정의 터전 위에 제자들도 다시 예수님과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는 그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 식구들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길을 대신 갈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탕감기간이었으나 남은 날은 탕감기간이 아닙니다.

2천 년간의 선조들을 대표한 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선조를 대표할 수 있는 수입니다. 그러므로 36가정은 무엇이냐 하면, 역사시대에 지금까지의 인류를 대표한,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중심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36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36가정 앞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면 가인 아벨 형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부모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부모만은 복귀 못 한다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과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적인 기준을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정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탕감하는 것이 아닙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의 수리적 의의와 사명

완성시대에서는 가정적으로 탕감해야 할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 72가정, 즉 36가정의 가인 아벨 형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의 가인 아벨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수를 대표한 기준에서 12수를 대표한 전체수, 복귀섭리에서 예수님이 찾고자 한 120문도를 중심삼은 수를 횡적 기준 위에 결정짓기 위한 것이 124가정입니다.

그러면 이 120가정에 어찌하여 4가정이 들어갔느냐? 이 4가정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하면 과거에 결혼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축복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했느냐? 평면적인 기준에 있는, 지금까지 타락한 권내에서 가정을 가졌던 사람들을 다시 축복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 침범하였던 외적 세상에 사위기대의 기준을 대표한 형을 세워 준 것입니다. 이래서 124가정을 맞추어 가지고 1963년까지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역사 이래 찾아 나오던 소망적인 기준을,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을 탕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탕감기준은 무엇을 중심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제1차 이스라엘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이루려 했던 예수를 위주로 한 본연의 부모의 자리와 본연의 가정과 역사시대에 남겨졌던 찾아야 할 복귀적인 선조들, 그다음엔 역사세계에 있어서 탕감 세워야 할 횡적인 기준, 이 가정수를 탕감하려 하던 사명적인 전폭을 완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탕감복귀해 놓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시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1960년도가 선생님에 대해선 몇 해에 맞먹는 것이냐? 14년 완결과 더불어 15년째로 넘어가는 해입니다. 야곱노정에 있어서 7년 7년 7년, 21년노정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14년노정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7년노정은 어떤 때냐? 야곱에게 있어서 14년까지는 가정을 결정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을 결정할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7년 기간을 중심삼고 횡적인 터전이 비로소 벌어지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기준을 탕감복귀하려니 1960년도를 중심삼고, 우리 통일교회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만 40세를 중심삼고 이것을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안팎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서 하나님이 세우려 하는 기준을 세움과 동시에 타락한 세계의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세워 가지고 제1차 이스라엘 시대에 있어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성취하여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내적 외적 기준을 결정짓는 기간을 21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장하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7년 기간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27세부터 33세까지 7년 기간에, 만 33세, 예수의 연령 기준에 해당하는 그 연령까지 마쳐야 할 사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진 36가정이면 36가정은 역사시대의 가정을 대표합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72가정, 72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120가정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아서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는 12제자, 12제자는 역사를 대표한 12제자이기 때문에 상하 관계를 중심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12제자 형을 대표한 가정이 3시대를 거쳐왔기 때문에 아담가정, 노아가정, 야곱가정을 중심삼은 36가정을 중심삼고 탕감복귀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뜻은 세계적인 발판이 닦아져야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등록 문제도 이러한 기준이 결정된 연후에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섭리적인 진행과 더불어, 우리의 발전적인 과정은 역사와 더불어, 지상에 보조 맞춤과 더불어 결정지어서 땅 위에 승리적인 결정권을 쥐고서 지금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노정을 지내고 4년노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위치

3년노정까지의 우리 가정은 어떠한 위치이냐? 통일 족속입니다. 통일 씨족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한 씨족이 돼서 이제는 횡적 기반이 닦아졌기 때문에 축복만 하면 얼마든지 수를 일으킬 수 있는 시대권 내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씨족의 사명은 민족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 우리는 민족복귀 사명을 하기 위한 과정인 이 4년노정에 들어서 가지고 민족을 구하기 위해 나가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것은 개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민족부터 구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민족해방운동을 제시해 나서는 걸음이 4년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들은 어떠한 사명 가운데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출발하느냐 하면 예수와 성신이 죽지 않고 지상에서 평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권 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외적으로 보게 되면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고, 세상 사람이 보게 될 때는 비웃을 입장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둘이 하나만 되어서 나가게 되면 거기서 부활이 벌어집니다. 물론 약간의 외적인 핍박이 있겠지요. 3년 과정은 시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년 과정은 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3년 기간은 그 가정으로써 넘어야 할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금년은 7년 과정을 중심삼고 볼 때 6년노정이 끝나는 때이니만큼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서 고생했던 결과로 말미암아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 서로 맞먹을 때가 된 것입니다. 맞먹을 때가 됐는데 우리의 자체 입장은 어떠한가? 가인적인 입장이냐, 아벨적인 입장이냐? 아벨적인 입장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아벨적인 기준은 무엇으로 결정했느냐? 하나님이 바라보는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또,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이렇게 해서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아벨 기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벨 기준이 우세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 아벨 기준이 옛날 시대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옛날 시대에는 아벨을 통해서 부모 복귀의 기준을 가려 나가던 길이었지만 지금 시대의 우리 기준은 부모를 세워 가지고 아벨을 결정한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벨적 승리의 기반을 닦았으니 가인적인 기준은 투쟁이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복귀노정을 보게 되면 아벨을 세워 가지고 가인이 복귀해 들어갔는데 이제 우리 축복가정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기준을 결정하고 자녀의 기준을 결정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에서 축복가정들은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아벨적 가정 기준인데, 삼천만 전체 가정 앞에 있어서 아벨적 가정 기준인데 옛날 가인 아벨 입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귀시대에 있어서의 가인 아벨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는 아벨을 탕감시켜서 부모를 복귀하는 시대였지만 현재 우리는 부모를 복귀해서 아벨적 기준에 섰기 때문에 침범받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늘의 풍속, 하늘의 전통, 하늘의 가법, 하늘의 생활방법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 생활방법이 무엇이냐? 그 생활방법이 이 시대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온 모든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볼 때 전부 다 탕감시키는 데는 개인 중심삼고 탕감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예수 당시의 시대에서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탕감해 나오는 데는 전부 다 개별적인 탕감을 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가정을 세워서….

예수님의 입장과 성신의 입장은 달라요. 지금까지는 성신이 해산할 애기를 배어 가지고 다시 해산해야 할 사정을 예수님한테 통고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는 해산할 아기를 다시 받아 줘야 할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달라요. 그렇다고 해서 그 해산된 아들딸들이 직접 자기 아들딸이 되느냐?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가인이라는 앞으로의 한 시대적인 옥동자가 나와서 그 옥동자를 통해서 가인적인 기준을 대신하게 해 놓고 그 옥동자 앞에 아벨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인적인 기준을 통해 넘어가야 할 입장에서 자녀를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해서 남한 각지에 내보낸 이유

그러면 지금 시대는 어떠한 때냐? 여러분들이 평면적으로 같은 호흡을 하면서, 같은 생활을 하면서, 같은 처지에서, 평면적인 기준에서 여러분들이 해산의 수고를 담당할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와 성신이 하늘땅에서 갈라져서 서로 사정이 다른 데서 탕감복귀 역사를 해 가지고 탕감이라는 서러운 조건을 제시해야 됐습니다. 그 서러운 조건 가운데 자식이 맞아야 되고 성신이 고통을 받아야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는 그 고비를 넘어가기 때문에 그 고통을 거치지 않고 수고해서 해산만 해 놓으면 하늘 것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축복을 해서 남한 각지에 전부 다 쫓아 내는 겁니다. 그 내쫓은 것은 뭐냐 하면, 천지 운세가 모두 모였다는 것입니다. 축복해 줬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하라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서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받았으면 그 축복받은 것을 주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축복을 받았으면 축복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할 것이냐? 예수와 성신의 사명을 평면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성신이 모든 수고를 해서 하나님 앞에 통고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인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는 부인들이 나가서 고생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고생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간은 어떤 때냐 하면 부인이 나가서 전도하는 때입니다. 그러면서 성신과 뒤넘이쳐야 됩니다. 그러면 남자는 뭘할 것이냐? 남자는 그것을 대신 주관하면 됩니다. 키우긴 여자가 키워야 되고…. 아들딸은 누구 아들딸이냐 하면 남자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전국에 파송해서 수고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배당받은 그 지역이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그 지역은 자기가 바라보는 지역이 아닙니다. 한국 땅은 세계적인 축소판입니다. 중심이란 전체 환경의 여건을 규합해 가지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그 자리가 비록 환경적으로 볼 때는 면이요 혹은 리가 될는지 모르지만, 그 면은 면이 아니요 리는 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정성들이고 충성하는 것은 이 천지운세의 전체적인 보조를 맞춘 운세를 밟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충성하는데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날에는 3년 내지 7년을 못 넘어갑니다. 항복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7년 고비만 넘어가게 되면…. 거기서 지금까지 죽을 각오하고 질기게 남아져 가지고 갖은 치욕을 당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전폭적인…. 절반은 우리에게 넘어왔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배치를 해 놨더니 전부 다 자기 멋대로 오락가락하고, 전부 다 자유더라구요. 그건 가정적인 원칙으로 보게 될 때 하늘의 조건 앞에 걸리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명령을 받아서 어떠한 책임을 짊어지고 간 후에는 그 명령을 중심삼고 생명을 걸고 싸워야 되는 겁니다. 항차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중심삼고 배치받아 가지고 공적인 간판을 들고 나갔다면 마음대로 후퇴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대사관이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받아서 대사가 됐다면 자기 마음대로 후퇴할 수 있겠어요? 그랬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죽어도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뜻 대한 심정적 기준을 본다면 전부 다 불합격자입니다. 이 7년 도상에 있어서 책임은 여러분들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달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생명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이 마음대로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 7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하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탕감해 나오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간에는 여러분이 선생님과 언제나 보조를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쪽으로 가라면 서쪽으로 가고, 동쪽으로 가라면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도 자기 것이 아니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전부 다 선생님의 결재하에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입고 있는 옷 하나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상속을 안 해줬다는 것입니다. 상속받았나요? 여러분들이 상속받으려면 호적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자신도 7년노정에 뭘해 나가느냐 하면 민족복귀의 기준을 세워 나가면서 국가기준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적인 단계를 향해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입니다. 선생님의 내적인 기준도 여기에서 정비해 나가야 합니다. 그걸 여러분한테 얘기하자면 복잡해요. 안팎으로 정비해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7년을 넘어서자마자 야곱이 환고향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1967년을 맞이해서….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정이면 가정, 선생님 가정이 본향 땅에 돌아가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볼 때, 한국이 통일교회를 맞이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우리 가정들이 책임을 다 못 했습니다. 뜻을 위해 사는 것보다도 자기를 위주하고 살았습니다. 더더우기나 이 가운데에는 자의에 의해 가지고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타락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앞으로 하만을 나무에 달아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처단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내가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하겠어요. 하늘이 그렇게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축복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생각해 보란 말이예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즉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참다운 혈육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6천 년 동안 수고해 오면서 수많은 선조를 희생켰습니다. 끝내는 자기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희생시켰습니다. 그런 희생을 시키면서 이 법을 세우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천법을 가려 가지고 자기들을 세워 놓은 이 법도권 내에 있어서 무책임하게 그것을 벗어났다고 해서 법에 걸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용서할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어떻게 못 해요.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을 내가 알아요. 내가 이가 갈립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을 길가에서 보거든 인사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지나가면 규탄해 버리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중심삼고 7대까지 걸린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뜻이 연장되어 가지고 나가면 손자, 증손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런 엄청난…. 얘기를 하면 무시무시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늘의 법이 그래요.

이래서 악한 세계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아 버려야 됩니다. 동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동정이 있으면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고 나왔고, 그런 철두철미한 승리의 터전 위에 오늘날 우리들을 해방하여 자녀로 세워 가지고 만세에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정면으로…. 얻은 게 뭐예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내가 이 뜻을 세우기 위해서 어떻게 나왔읍니까? 내 체면이니 내 위신이니 하는 모든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별의별 짓 다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먹고 입고 하는 환경이 모두 자기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해방과 더불어 하나님이 여러분 앞에 상속을 해주어야 되는데, 아직까지 상속을 못 받았어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일선에 나가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마음으로 가책을 받고 생활적인 환경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기준에 있어서 하늘의 용서를 빌면서 생활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어떨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청산해야 합니다. 정비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지금 현재의 이 상태를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안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번 가려내야 되겠다 이겁니다.

이번에 이 가정을 모으게 된 것은 내가 할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복귀적인 사명 앞에 있어서는 책임을 다 못 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뭘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에게 통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나가지 않으면 점점 애기들이 병이 나든가 불구자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내가 아는 기준의 축복의 가치와 여러분이 아는 그 축복의 가치와는 억만의 차이입니다. 앞으로 내 눈으로 배를 가를 수 있는 사람을 보고 죽을지 몰라요. 내가 하지 않으면 그런 일을 하나님이 시킬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가정들이 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걸 알면 예수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학살의 제물로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통을 세워 놓고 분하고 억울함을 찾아 나온 것은 해원성사의 한 날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다가,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마음대로 여기 들어와 가지고 마음대로 해 가지고…. 그게 무슨 하늘이예요. (잠시 녹음이 끊김)

어떤 여자들은 임신한 다음에 병원에 가서 마음대로 수술을 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땅에 크나큰 지장이 있겠고, 그 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 되겠다는 선생님의 특명이 있으면 괜찮지만 자의로 하나님이 축복한 생명을 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큰 회개를 해야 됩니다. (잠시 녹음이 끊김)

삼위기대와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라

우리 가정 식구들은 자기가 전도를 못하걸랑 세 사람은 먹여야 됩니다.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 세 사람을 협조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 부부들이 굶더라도 도와줘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위신을 세울 수 없습니다. 원리를 가만히 봐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선생님도 내가 서기 위해서 세 가정을 먼저 세운 것입니다. 복귀과정에서 자식이 눈물을 흘리든가, 부모가 눈물을 흘리든가 해야 합니다. 눈물이 아니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안 되게 되어 있어요. '허, 그거 나 혼자…' 하겠지만 안 됩니다.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나가서 전도를 못하걸랑 전도한 사람을 내보내서라도 정성을 다해서 싸우게 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되지 않거든 나는 누구하고 삼위기대가 돼 있으니 삼위기대의 식구들을 대신해서, 그들을 협조하는 의미에서, 의붓자식을 양자삼겠다는 의미에서도 협조해야 합니다. 오늘 그런 사람이 있나요?

또, 여러분들이 이런 걸 알아야 돼요. 내가 이런 얘기를 전부 다 설명하기가 그렇지만, 미욱하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해줄 수 없어요. 원래 가정 식구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선생님이 36가정을 축복해 줄 때는, 여러분들에겐 얘기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아들딸이 먼저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부 다 거꾸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조건을 하나님 앞에 나 스스로 세우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 기간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리잡고 편안한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이 시집 장가를 가서 아들딸 낳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그때까지는 여러분이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을 못 하겠거든 하나님의 직계의 자녀를 대신하여 언제든지 제물적인 입장에 자기 아들딸을 세워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런 것 저런 것 전부 다 얘기하면 여러분 전부 다 얼굴을 못 듭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 저런 것 뻔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바라볼 때, '저게 하늘의 가정이야? 내가 닦아 나온 터전은 이런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요? 하늘 가정은 하늘의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 법도는 부모가 세운 법도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생각하는 법도와는 천태만상의 차이를 가진 생활권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걸 볼 때 '하늘이여,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갖출 수 있는 생활을 하면 절대 배 곯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배를 안 곯는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모든 예를 갖추어 가지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 부부가 잘 못살게 되면 그 동네가 벌받아요. 양심적인 사람들은 선조가 동원해서 먹여 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다 못 하니 깨깨 곯아도 싸다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는 데 있어서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내용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상하 관계를 고려하며 전부 다 인연을 따라서 해 나가야 될 것이 가정 식구입니다. 그런 것 저런 것 다 모르지요? 그러면서 원리를 공부한다고 그래요?

여러분들은 혼자는 절대로 서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평면적인 기준에서 종적인 3시대형을 횡적으로 탕감하는 형입니다. 그래서 삼위기대를 모두 묶는 것입니다. 삼위기대는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생, 장성, 완성이지, 혼자 완성할 수 없습니다. 3가정이 하나이지 한 가정이 하나가 아닙니다. 삼위기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엉터리들입니다. 1년 열두 달 삼위기대를 한 번이라도 만나서 얘기나 해요? 편지나 한 장 합니까? 여러분들 혼자만의 가정은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3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혼자 설 수 있어요?

또, 거기에 있어서 좋은 것이 있으면 '나부터…'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완성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두 시대의 혜택권을 거쳐야 됩니다. 완성되려면 소생, 장성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완성이 돼 있어도 소생, 장성을 고여 가지고 완성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3분의 2 이상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전부 다 합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삼위기대가 합동생활을 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완전히 '틀임없다. 사탄도 참소할 수 없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다음에야 비로소 분립돼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삼위기대가 어디 갔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그건 그 사람 사정이지. 그 사람들이야 어디 가서 거지 노릇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하고 있다구요. 그런 패들이라구요, 전부가. 여러분은 제사장들입니다. 백성 없는 제사장이 있어요? '아이고 나만 살면 되지' 하면 돼요? 백성으로 말미암아 자기 생을 지니고 있는 것이 제사장인데도 불구하고 백성을 망각하는 무리들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가정 식구라는 그런 명분을 가져 가지고…. 전부 다 도적놈들이 돼 있습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하늘의 법이 있다는 겁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이 바뀜에 따라 하늘 앞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해요. 산을 바라보면 산을 통해서, 바다를 보면 바다를 통해서, 도회지를 바라보면 도회지를 통해서 춘하추동 사계절을 따라 가지고 해야 할 책임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내가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일이 무엇이냐 하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정적인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전부 빵점입니다. 배고프면 그저 '내 배, 내 배' 합니다. 안 그래요? 한 7년쯤 되니까 전부 다 보면 전체를 위한 기준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주의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결과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결국 7년, 이 7수는 안식 기준입니다. 그러니 7년이라는 것은 안식년입니다. 7년 기간이라는 것은 6수에 해당하는 완성 기준을 거쳐서…. 아담 해와가 지음받아 가지고 7수 기간을 넘어설 때는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간인데, 여러분들 넘어설 수 있습니까?

오늘은 1967년을 맞는 좋은 날이라서 여러분들을 칭찬해야 할 텐데 칭찬하면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 있지 못합니다. 그저 세워 가지고 후려갈겨 가지고…. (녹음이 잠시 끊김)

기 도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는 모습들이 없습니다. 자기의 주관과 자기의 소견을 중심삼고 아버님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인습적인 인간이 된 것이 탄식할 일이옵니다. 그저 당신의 품을 그리워하며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달려들 수 있는 철모르는 어린애가 그리운 것을 재삼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인류들을 그와 같은 마음의 바탕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남 모르는 숨은 눈물을 품을 수 있는 이 거룩함과 그 고상함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자기 개인을 위하여, 자기 가정을 위하여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많지만 하늘과 땅을 위하여, 이 땅에 왔던 메시아의 거룩한 사상을 위하여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불이 꺼져 가는 등걸불을 새로이 지펴야 할, 다시 불을 소생시켜야 할 사명이 아버지의 사명인 것을 생각할 때, 이 황폐한 민족 앞에 저희들을 몰아넣으시고. 안팎으로 다짐하는 당신의 사연을 통하게 될 때, 또 저희들이 그런 입장에 임하게 될 때 마음으로 하여금, 몸으로 하여금 정성스러이 아버님의 불을 다시 소생시켜야 할 책임을 느끼게 하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이도 저희의 은사가 아니고 당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삼천리 반도를 헤아려 보게 될 때, 이 민족이 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민족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더우기나 스스로 노상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게 될 때 그들이 갈 길을 다짐할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개척해 주어서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책임을 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를 위해서 눈물과 더불어 싸울 것을 맹세하였고, 피를 아버지 앞에 바쳐서 아버지를 위로하여 주기 위해서 각오한 몸들이었사옵니다.

1966년, 한 많은 이 6수의 해를 보내면서 새로운 7년을 맞이할 수 있는 이 7년노정 위에, 아버지, 승리가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고, 저희들이 흘린 피눈물의 모든 사연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해원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세워 나오던 모든 간절한 충성의 인연이 아버지를 해방시키고 아버지를 자유의 천지에 모실 수 있는 승리적인 깃발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자녀들 앞에 복중시대로부터 자라는 생애노정으로 부터 이념시대를 거친 예수의 사연과 하늘과 땅 위에 묻혀진 그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저희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그런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의 과거를 회고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의 위치를 명시시켜 가지고 아버지 앞에 스스로 자기 모든 생활적인 분야, 생애적인 모든 전체를 재검토하여 재건시킬 수 있는 뭇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7년노정이 기울어 가기 전에 남아진 1년 가운데 저희들이 하늘 앞에 진정 잃어버린 모든 사연을 다시 연결시키어 아버지 앞에 공인을 받아야 할 책임을 각자 완수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중심삼고 지방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이 여기의 스승을 바라보고 눈물 흘리고 있사오면, 아버지,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하늘이 염려하시는 그 마음을 따라 하늘 앞에 충성을 다짐하는 그들이 있사오면, 나를 사랑 하시던 아버지여, 그들을 사랑하여 주시옵고, 나를 지켜 주시던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우리들은 핏줄은 다르나 당신의 심정을 통한 핏줄을 연결시켜서 식구 아닌 식구로서, 형제 아닌 형제로서 아버지를 직접 모실 수 있는 하나의 대가족 이념권 내에 세워진 뭇 자녀였사오니 깊이 살피시옵고 깊이 보호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 이 시간 동방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가는 곳, 그들이 머무는 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통일의 기치가 드높이 휘날려 만세에 인간들이 해원성취할 수 있는 승리를 예고할 수 있는 세계적인 표적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날의 모든 전체 위에 생명의 인연을 두터이 하시사 저희들의 모든 사연을 넘어서서 아버지의 사연이 저희의 마음과 생활무대 위에 엉클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자비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5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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