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들도 한 분자로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너나할것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스러운 것을 바랍니다. 영원한 자유와 평화가 깃들 수 있는 안식의 동산을 언제나 그 마음이 추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 목표를 향하여 마음은 달리고 있고 마음이 나아가는데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곳을 따라나가는 내 마음과 몸이 사정이 다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내 몸 가운데서는 말할 수 없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본향땅을 찾기 위해 연속되는 싸움을 그치지 못하는 우리들

그러면 내 마음 가운데 이러한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즉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내 마음에서 원하는, 소원하는 그 소원을 향해 내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움직여 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러하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러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중심삼은 그러한 소망 가운데 전체가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바라는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여건들인 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는 크나큰 고통으로서 혹은 멍에로서, 싸움의 조건으로서 계속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자기의 본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이 바라는 소망의 곳, 본연의 곳을 중심삼고 살기를 동경하여 무한히 애썼지만 아직까지 그런 세계와 그런 천지를 못 본 채 다 왔다 갔습니다.

오늘날 그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고, 그와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여실히 옛날 성현들이 간 그 걸음을, 그 길을 탄식과 더불어, 슬픔과 더불어 따라가고 있는 자체들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 세상을 보고 더러 말하기를 이 땅은 죄악의 세계요, 이 땅은 우리가 소망할 수 없는 거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보다 더 선하고, 이보다 더 행복스러운 어떠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본향땅은 없을 것인가 하고 수많은 철학자, 수많은 종교인들이 이와 같은 목표를 동경하면서 연속되는 싸움을 그치지 못한 채 현세에도 이어 나오고 있는 실정인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

그러면 인간 자신들이 자기도 모르는 이런 조국, 자기도 모르는 본향땅을 그저 마음으로 그려 가면서 그렇게, 내용도 없고 사실도 없는 것을 그리면서 가는 인간이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바라는 것이 과연 소망의 일념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으로써 동경하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이 만약에 우리 마음에서 동경해서는 안 될 문제라면 그걸 포기해 버리고 그런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동경하고 또 하고 또 해서 수천 년 역사가 지나가도 아직까지 그러한 생각을 제거시키지 못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어차피 그런 한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 곳이 나타나야 된다는 것이요, 그런 하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은 평화니 행복이니 해방이니 자유니 하는 그 자체로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인정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뿐만이 아니고, 만일에 이 천지를 지었고 인간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어떠할 것이냐? 인간도 이러한 소망을 품고 나가느니만큼, 동기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역시 이 인간과 더불어 하나님 자신이 소원하는, 인류가 머물 수 있는 참된 조국과 인류가 머물 수 있는 참된 본향땅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인간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이 그 생각을 만들어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스스로 우러나와서 생각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런 느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감응적인 느낌을 통하여 느끼고 있다는 걸 바라보게 될 때,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가 있어서 인류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목적으로 끌어내는, 혹은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의 마음도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진대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수고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의 방향을 이끌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있기 전에 하늘땅이 있었고, 하늘땅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의 본체 되는 중심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힘의 본체 되는 중심이 있어서 천지만물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짓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짓게 될 때는 반드시 목적을 두고 지었나니 그 목적이 무엇일 것이뇨?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일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이 전체 이 피조세계를 지은 목적이 있나니 그 목적은 무슨 목적이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 입니다.

그러면 그 창조의 목적은 어떤 것이냐? 그 창조의 목적이 만약에 이루어졌다면 인간세상이나 혹은 만물세계나 두말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그 세계에 존재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고, 그야말로 영광 가운데 잠겨 온 천지가 전부 다 그들과 더불어 동등한 이념권 내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이념이 남아 있기에 오늘날 인간세상은 타락했지만 그 이념은 본심의 반영과 더불어, 오늘날 하나님이 존재하는 한 본심의 반영을 일으켜 가지고 다시 그 이념의 세계로 이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간들은 악한 죄악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마음은 본연의 이상세계, 본연의 이상의 조국, 본연의 이상 본향동산을 그리워하면서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혹은 자기 생애노정에서 가야 할 어떤 목적지, 목적하는 바의 세계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본연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분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중심이 지으신 어떠한 물건도 그 하나의 중심존재의 목적을 중심삼고 지었기 때문에 둘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악한 목적이 아니고 선한 목적이기 때문에 선한 세계가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의 이념권 내에서 살아야 할 인간도 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념세계인 하나의 조국이 나타나야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선한 하나님의 목적의 세계에서 영광 가운데, 혹은 행복 가운데,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에서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하나님을 하나의 중심존재로 삼아 가지고, 온 천하가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의 본향땅을 이루어 가지고, 그야말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룬 땅이요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진 인간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이 살게 되었더라면 우리들은 불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소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 전세계 인류가 아직까지 소망을 가지고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인류가 아직까지 그 무엇에 미달하였다는 것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 선 인류는 자고로 지금까지 개인을 중심삼고 이 마음의 방향을 찾기 위하여 싸움을 해 나왔고,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을 규합시키고,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국가·세계까지 한 방향으로 인류를 몰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 발전 역사로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인류역사라는 것은 자기 개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늘이 그 배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이상의 목적을 이루려던 것을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이상을 재차 실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과 합동작전을 하셔서 역사적인 도상에 이것이 반영되어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이 역사적인 섭리권 내에 있어서 하나님이 이끄심을 따라 가지고 개인적인 투쟁시대, 가정적인 투쟁시대, 종족적인 투쟁시대, 민족적인 투쟁시대, 국가·세계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서 참다운 인간의 마음의 본향땅을 찾아 나오고 있는 과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참다운 본향땅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그 본향땅을 세운 후에는 참다운 인생의 조국, 하늘이 바라고 땅이 바라는, 흑은 수많은 인류가 바라는, 온 만유의 존재가 바라는 한 나라, 본향의 나라를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달리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그 역사적인 과정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이라는 것은 기필코…. 하나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하나의 목적에 속해 있는 연고로,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으되 그 수많은 인류는 최후에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입장이 다른 역사적인 사람들이, 시대면 시대적인 사람들이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있지만서도 바라는 소망은 전부 다 공동목표인 하나의 세계, 완전한 세계, 행복의 세계, 행복의 본향, 행복의 조국을 향하여 달리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타락한 인간들을 몰아서 저 끝날에 가서는 기필코 무엇을 이 인류 앞에 소개해 주느냐? 참다운 본향땅, 참다운 조국을 우리에게 맡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조국이 회복되는 날, 그야말로 하늘땅이 환영할 수 있는 조국광복의 날을 맞이한 그날부터는 이 땅에는 새로운 싸움, 새로운 고통, 새로운 탄식과 한이 생겨나지 않는 거예요. 그날이 옴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한, 지금까지의 고통, 지금까지의 전쟁, 지금까지의 악한 사회제도는 여기에서 종결을 맺고 하나의 완전한 조국광복의 날을 온 인류 앞에 약속하고 하나님이 인류를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수많은 종족으로 발전했던 것이 점점 번식하여 수많은 국가를 만들고, 수많은 국가가 지금 현세에 와서는 좌우 둘이 부딪칠 수 있는 단계에 왔기 때문에, 이 고개를 넘어서 앞으로 와야 할 것은 하나의 이념세계인 동시에 하나의 조국입니다. 하나의 조국이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국과 본향땅은 어차피 한번 나타나야 돼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을 볼 때, 이 대한민국 자체가 우리의 조국이지만 하나님이 여기에 임재해서 치리할 수 있는 나라가 못 되었어요.

여기 전라북도가 여러분의 고향땅이 되어 있지만 이 고향땅이 하나님이 임재해서 영생할 수 있는 본향땅이 못 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완전한 조국이 아니라, 완전한 본향땅이 아니라 거쳐가야 할 조국이요 거쳐가야 할 본향땅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 혹은 참의 길, 소망과 이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뜻을 품고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할때 반드시 무엇을 버리느냐?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버리는 거예요. 고향을 버린 다음에는 부모 처자를 버리는 거요, 형제를 버리는 거요, 자기 종족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린 후에는 조국까지 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까지 도의 세계에서 걸어 나온 걸음입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상태에서 출발하여 자기 생활까지 부정하고, 자기욕망까지 부정해 놓고 새로운 욕망, 새로운 소망, 새로운 목표, 목적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욕망, 새로운 목적이 무엇이냐?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이 나라가 내 나라가 아니요, 이 고향이 내 고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조국과 영원히 머물 수 있는 본향이라는 것은 역사말에 와 가지고 수많은 인류가 동경하는 세계인데, 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 끝날에 와서 참된 인류의 본향땅이 나타나는 것이요, 참된 인류의 조국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악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본래 가져야 할 조국을 가졌을 것이요, 본래의 본향땅을 가져서 그곳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선한 주권, 선한 나라에서 선한 백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선주권 내에서 치리받고 보호받고 선의 행복, 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내용, 즉 자유 평등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즐기면서 살아야 할 것이었는 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이상적인 여건을 전부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자유와 평등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행복과, 그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복지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결국은 타락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를 통해 수많은 투쟁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 가지고 돌고 돌고 돌고 돌아서 최후의 한 고빗길을 다 돈 때가 지금의 때입니다. 좌우가 붙은 입장에서 어차피 한 고비를 넘어가 가지고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야 할 그런 세계적인 시대가 찾아와 있는 것이 현세입니다.

그러면,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나라의 백성들이…. 이제 일개국가, 자기 조국을 중심삼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사상적인 시대입니다. 사상만 일치되면….

소련 사람은 소련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조국이라고 합니다. 공산당들은 소련 나라를 조국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세계를 보게되면 이 조국이라는 명사가 희미해요. 조국의 명사가 희미하다구요. 미국을 위주로 하여 전세계가 민주주의를 벌였지만 조국이라는 데 대해서는 희미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이 현실에 부딪칠 수 있는 현장에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류가 추구할 것은 무엇이냐? 전세계의 사조는 하나의 세계를 스스로 내적인 것으로써 요구하고 있는 연고로 오늘날 현세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어차피 하나의 세계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하나의 세계를 동경하는 데 하나의 세계 가운데 있을 수 있는 하나의 본향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 조국과 본향땅이라는 것은 어차피 한번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요구하는 그것이 내 스스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요, 하늘이 '가자'할 수 있는 입장에서 요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런 세계를 이끌어 나오는 한 하늘은 반드시 종단을 우리 앞에 세워놓고 목적의 때를 맞이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바라던 본향의 조국, 마음이 바라던 본향, 본향땅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가, 역사가 점점점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가까와 오지 멀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전세계 사조로 볼 때 무엇이든지 하나로 묶자 하는 거예요, 하나로. 종교를 통일해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민주와 공산이 서로 세계를 제패하고자 한다는 거예요. 전부가 세계성을 띠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기때문에 이런 현상을 보는 우리는 불원한 장래에 우리 앞에 하나의 인류의 조국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이요, 인류의 본향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조국을 치리할 분이 누구냐? 인간이 아니예요, 인간이. 그 본향땅을 건설할 분이 누구냐? 인류가 아닙니다. 인류가 아니예요. 그러면 오늘날 세계 인류 앞에 그러한 조국을 창건하고, 본향땅을 창건할 수 있는 분은 누구냐? 하늘의 대명을 받고 오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이 메시아 사상은 기독교는 물론이요, 불교에도 있는 것이요, 유교에도 있습니다. 좀 고차적인 종교라는 것은 반드시 참된 사람을 고대하고 있는 거예요, 참된 사람.

우리와 더불어 악한 세상을 청산해야 할 메시아

참된 사람 하게 되면 역사적인 인간들이 소망하던 그 사람이요, 오늘날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그 사람이요, 앞으로 올 후손들이 믿고 바랄 수 있는 그 사람이요, 또 인간 전체가 바랄 수 있는 참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 바랄 수 있는 참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이 타락한 악한 세상의 종말에 반드시 하늘이 동기가 되어서 보낸다는 거예요. 하늘이 보낸다는 이분이 누구냐 하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 이분은 구세주,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주인, 그야말로 역사상에 처음 나타난 참사람입니다. 이런 사상은 고차적인 종교라면 어떠한 종교든지 다 있다는 겁니다.

만일에 그분이 이 땅 위에 오게 되면, 그분은 과거 현재 미래 할것없이 인류의 소망을 대표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하나되게 될 때는 우리의 마음의 욕망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분과 하나되게 될 때는 전세계가 하나로 화할 수 있는 것이요, 그분과 하나될 수 있다면 하늘도 그분과 하나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분이 앞으로 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예수가 재림한다는 거예요. 불교로 말하면 미륵불, 혹은 유교로 말하면 진인이 온다는 것입니다. 교파가 다르기 때문에 명사를 달리하고 있지만 결국은 한 분이예요, 한 분.

그분이 오는 목적이 무엇이냐? 인류의 본향땅을 찾기 위해서 오는 것이요, 인류의 본향땅을 찾아 가지고 인류의 조국을 창건하기 위해 온다는 거예요. 오늘날, 지금까지 살고 있는 우리들은 본향땅이 없는 사람이요, 나라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 나라는 하나님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예요. 선한 하나님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악한 마귀 사탄이 지배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보다도 악한 사람이 잘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 마음이 요구하듯이 참을 요구하고 소망의 때를 바라보고 나오던 양심적인 사람은 숱한 싸움으로 말미암아, 이 악과 대항하여 싸우다가 희생되어 나왔다는 거예요.

이렇게 싸워 가지고 개인의 선, 가정의 선, 종족의 선, 민족의 선, 이러한 선의 터전을 합해서 세계적인 사조에 합류시켜 세계적인 기반을 닦은 것이 오늘날 서구문명의 정신적인 됫받침이 된 기독교 사상이라는 거예요.

오늘날 종말의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본향땅을 찾을 수 없고, 우리 스스로 그 조국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 종말시대에 보내겠다고 하신 한 분이 있나니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구세주예요. 그 구세주는 물론 본향땅을 세울 수 있는 분이예요.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향땅, 본향의 나라의 전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가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과 하나되면…. 그분 가운데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이 있는 것이요, 인간이 소망하는 평화가 있는 것이요, 행복이 있는 것이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여건을 갖고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본향땅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요, 본향의 조국을 건설하는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런데 본향을 찾고 조국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와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이냐? 악한 세상을 심판해야 된다는 거예요, 심판. 악한 세상을 청산해야 된다는 거예요.

조국창건을 위해 오시는 구세주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현세에 있어서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그런 분이 이 땅 위에 올 것이 틀림없는데 그분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악한 세상과 싸워서 심판해야 된다는 거예요. 심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을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놓고, 그 터전을 닦은 후에 그분을 모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나가서 싸우는 것이 무엇이냐? 악과 싸워가지고 내가 선한 입장에서 악 앞에 삼켜 버림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악을 삼키자는 것입니다. 이런 투쟁을 하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이 여기 찾아온 것도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여기에 찾아온 목적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악한 자리에 있으니 여기에 이기기 위해서, 혹은 지금까지 싸워 나온 싸움에 있어서 힘이 부족하니 와서 말씀을 듣고 하늘로부터 힘을 보급받기 위해서, 내가 머무른 그 환경에서 악과 대결해 싸우는 데 있어서 선한 입장에서 악을 삼켜 버릴 수 있는 힘을 보급받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느니 혹은 정성을 들이느니 하는 모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선한 입장에서 악한테 삼킴을 당하지 않고 악을 삼켜 버리자는 거예요. 악을 이겨 낼 수 있는 중심 위치를 결정짓기 위해서 도의 길을 가고 정성을 들이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결실되는 끝날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인류가 소망하던 조국과 인류가 소망하던 본향땅을, 우리 인간들이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소망하던 것을 기필코 이루어 주시는 때가 바로 그때라는 거예요. 그때에는 반드시 이 모든 소원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전체적인 중심존재로 나타나는 구세주가 온다는 거예요. 이 구세주와 상봉하기 위해서는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오늘날 이 세상의 무슨 악이든지 악을 해결하여 정리할 수 있는 중심적인 위치를 결정지은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 복잡한 사연이 번식되어 있는 이 천지간에 혼자 나타나 가지고 이 악과 대결해 싸우는 거예요. 가정으로 돌아가면 가정 전부가, 지금까지 사랑하던 부모 처자들이 통일교회에 나간다고 반대했습니다. 친척들이 극심하게 반대했습니다. 환경적으로 혹은 자기의 친구들도 전부 다 배반해 가지고 반대했습니다. 전부가 일시에 공격하는 그런 고립된 입장에 서더라도 자기 위치를 양보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거예요. 개인아 와라, 가정아 와라, 종족아 와라, 민족도 와라, 국가도 와라 이거예요. 이 기준까지 넘어가야 돼요. 조국이라는 명사를 지상에서 갖고 있는 한 국가기준까지 반드시 개인이 선한 입장에서 악과 부딪쳐 가지고 악을 심판하고 남아질 수 있는 권한을 갖춘자가 되어야만 되는 거예요. 개인에서 가정·종족·민족·국가 기준까지 넘어가야만 앞으로 오시는 ….

이 땅 위에 구세주는 무엇하러 오느냐? 조국창건을 위해 오는 것이요, 본향땅을 다시 세우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한 나라를 위주로 하고 오기 때문에 그 나라가 나타나서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 세상나라의 권세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선한 입장에 서야만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너나할것없이 그 마음에 간절히 바라는 것은 뭐냐? 잃어버린 본향땅,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궐기하는 거예요. 이러한 결의를 갖고 나타났기 때문에 내 가는 길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십자가가 문제가 아니예요. 개인적인 악이 문제가 아니요, 가정적인 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종족·민족·국가적인 이런 전부가 여기에 있어서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넘어갈 수 있는 신념과 선에 입각한 결심을 갖춘 자가 되어야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 소망의 백성으로서 갖출 바의 위신과 소망의 나라의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새로운 나라의 국민성을 갖추고 새로운 나라에 있어서 지녀야 할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이 세상 나라의 인격과 세상 나라의 백성과 다른 입장에 서 가지고 지녀야 할 권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끝날 성도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6천 년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6천 년이 걸렸다는 거예요. 개인 탕감복귀역사, 가정 탕감복귀역사, 종족·민족ㆍ국가·세계적인 탕감복귀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가인과 아벨 같은 공산과 민주가 부딪쳐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시대까지 이마를 맞대어 가지고 부딪칠 수 있는 시대까지 오는 데에 6천 년이 걸렸다는 거예요. 6천 년에 걸쳐 사탄과 대결해서 싸워 나오는 이 과정에서 이 지상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러한 희생을 치러 온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아 가지고 6천 년 동안 사탄이 참소하던 모든 여건들을….

우리 선조들은 개인적인 골고다 길에서 쓰러졌고 거기에서 실수했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개인적인 골고다 노정에서 승리해야 된다 이거예요. 가정적인 골고다 길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골고다 길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골고다 길에서, 오늘 우리가 맞부딪치는 그런 싸움 도상에서 여러분이 패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하고 나야만 세계적인 새로운 본향땅, 새로운 조국광복의 그날을 향하여 여러분들이 참소를 받지 않고 누가 방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 행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미비한 조건만 남아 있으면 못 갑니다.

하나님은 싸워서 남아진 무리를 먼저 내세워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1960년대부터 7년노정을 정해 나오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시련시대, 가정적인 시련시대, 종족·민족·국가적인 시련시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시련시대를 향하여 넘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시련시대는 지나갔어요. 그렇지만 이 내적인 시련시대에 내가 제물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제물로 택정받기 전에는 마음대로 뛰고 놀고 해도 상관없어요. 마음대로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며 산에 가서 무엇을 뜯어먹든지 하등의 관계없어요. 그렇지만 제물로 택정받고 난 후에는 몇 개월 동안 성별 기간을 두어 가지고 그 제상에 올려지기까지는 거룩한 땅에서만 자라야 돼요. 택한권내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거예요, 본래 제물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마음대로 뛰놀고 했었지만 들어와 가지고는, 여러분이 제물로서 택정받은 후에는 내적인 제한된 환경에서 시련받아 가지고 제사장이면 제사장이 원하는 욕구의 모든 조건에 있어서 보다 나아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그 제물의 실체가 이 땅 위의 어떠한 것보다도 아름다워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인들도 이런 외적인 모든 시련과정을 거쳐 나오는 제물로 택정받은 사람과 같은 입장에 있다면 이들이 그렇게 제물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어느 도(道) 어느 백성, 어느 종족의 누구보다도 훌륭해야 돼요.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또, 사탄세계에 있어서, 가인세계에 있어서 그야말로 이 사람이 제물 되기에 합당하다, 제물 될만하다 할 수 있는 인정을 받아야 돼요.

통일교회가 지금 가는 길이 어떤 길이냐? 개인·가정·종족·민족을 지나 국가적인 시대로 지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삼천만 민족 앞에 있어서 과연 제물적인 노정을 걸어가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공인받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 세상 사람 같으면 열이면 열이 낙망하고, 전부 다 자포자기해 버리고 전부 다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하는 이런 환경에 들어가더라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건설하고, 그 자리에서 명령하고, 그 자리에서 소망을 붙들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됩니다. 사탄세계 사람들은 전부 다 도망갈 수 있는 입장에 서더라도 우리는 그런 입장에서 소망을 가지고, 그런 입장에서 천국이념을 노래할 수 있는, 하늘 것으로서 살아서 소망을 품을 수 있는 늠름한 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평탄한 자리에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과정에서 시련을 거쳐 나와 가지고 꺾이지 않아야 돼요. 그 꺾이지 않았다는 기준이 뭐냐 하면 이 악한 사회에 부딪쳐 가지고 남아진 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공인받고 국가적으로 공인 안 할 수 없는 입장에 선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 국가 운세가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즉 조국광복에 필요할 수 있는 국가가 되게 될 때는 하늘은 누구를 먼저 내세울 것이냐? 싸워서 남아진 무리를 내세운다는 거예요.

메시아가 오는 곳이 세계적인 조국

오늘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잃어버린 역사적인 내 조국 해방을 위해서, 조국광복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본향땅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날을 맞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인 모든 사람의 소원이기 때문에, 문화의 최고의 목적이요 인류의 소망 중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날은 필시 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와야 해요.

또, 우리의 마음이 그런 걸 볼 때 이 욕구는 전부 다…. 이런 날이 오지 않으면 인간은 지금까지 헛수고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돈이니 무엇이니 윤리도덕이니 하는 것은 다 무효가 되는 거예요. 무효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기를 모든 것이 바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되게끔 만든 힘의 어떤 목적적인 기준이 있고, 동기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동기가 있어 가지고 목적을 추구하는 힘의 작용권 내에 내가 들어와서 감촉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이 그렇게 작용하는 거예요.

구세주가 오면 심판을 해야 합니다. 심판은 무엇을 갖고 하느냐? 제물을 갖고 하는 거예요, 제물. 심판은 무엇을 갖고 하느냐? 무슨 쇠뭉치, 벼락으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제물로 하는 거예요. 제물은 거룩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동물을 갖고 했지만 선한 사람도 제물 되어야 되는 거예요. 선한 사람, 지극히 깨끗한 선한 사람을 그 지방을 대표해서 하나님이 내세우고, 사탄도 그를 내세우고, 인간도 내세운, 이런 제물적인 입장에 선 이 한 사람이 하늘편에서 끝까지 싸우는 데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이 들이 맞는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은 무엇으로 하느냐? 제물적인 자리를 통해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선한 자를 들어서 심판합니다. 그러면 심판할 수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이냐? 모든 악과 싸워서 남아지는 자라야만 심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세상 이치가 그렇잖아요? 오늘날 우리들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나가는 무리이기 때문에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거예요.

심판은 누구를 통해서 하느냐? 제물적인 입장에 서서 남아진 무리를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틀림없이 거쳐오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삼천리 반도 혹은 삼천만 민중 앞에 있어서 제물이 되라는 거예요. 어떠한 시련도상에 있어서도 절대로 삼킴을 당하지 말라는 겁니다. 악이 제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갖춘 바의 이념과 심정을 꺾을소냐? 아무리 나가더라도 우리가 갖춘 절개를 더럽힐소냐 하는 그거예요.

오늘 선생님이 전라북도면 전라북도를 찾아와 여러분한테 이야기하는 목적도 어디 있느냐? 최후의 목적은, 그런 악한 세상에 있어서 아무리 악하더라도 그 악한 환경을 떼내어 가지고 깨쳐 버리는 이런 자가 되어야지, 악에 밀려나 깨지는 무리가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도 그렇다구요. 오늘날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까지 이 3주권이 연합해서 때려 없애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난 맞았어도 깨지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지방이면 지방, 혹은 전라북도면 전라북도에 있어서 오늘날이 민족의 악한 혼란상을 바라볼 때, 거기에서 절대 소화되는 인간이 되지 말라 이겁니다. 소화시키는 인간이 되라 이거예요. 이래서 우리교회가 세운 민족적인 운명, 국가적인 운명의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우리가 심판의 한 기반을 개척해 나와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남아지는 무리를 하늘은 필시 요구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무리의 대열을 만들기 위해서,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할 것이냐? 본향땅을 찾아가야 됩니다. 본향땅을 찾는 모든 백성, 본향땅에 간 모든 족속이라면 그 족속들이 모여서 뭘할 것이냐? 조국창건을 해야 돼요. 본향땅을 찾아야 할 것이요, 조국을 찾아야 됩니다. 우리의 본향땅은 이 땅 위의 어느 나라이며, 어느 땅이며, 우리의 조국은 어디냐? 인류가 바라는 본향의 곳, 본향땅은 어디며 인류가 바라는 조국은 어디냐 할 때, 인류가 바라는 본향땅이 어디라구요? 「한국입니다」 한국? 인류가 바라는 본향과 인류가 바라는 조국은 어느곳이 될 것이냐? 메시아가 오는 곳, 구세주가 오는 곳이 된다 이거예요. 미국에 오면 미국땅이 세계적인 조국이 될 것이요, 세계적인 본향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은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조국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예요. 본향땅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 본향에는 누가 있느뇨?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 고향에 누가 있어요? 「부모가 있습니다」 본향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부모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옹호해 가지고 '천세 만세 영원히 행복을 노래하고 살지어다' 하고 쌍수를 들어 축복하여 자기가 창조한 천주의 위업을 상속해 주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본연의 양심의 작용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본향땅을 잃어버렸느뇨? 본성의 인간이 소망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본향땅을 잃어버렸는데 어찌하여 본향땅을 잃어버렸느뇨? 우리는 타락한 부모는 갖고 있지만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는 못 가졌습니다. 선한 부모를 가져야 할 인간인 우리는 악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본향땅을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오늘날 이 악한 부모와 모든 혈육들을 전부 다 청산해 버리고 본연의 본향의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본향땅을 찾아 가지고, 본향땅을 찾아 나와서 본연의 부모를 회복하고, 본연의 부모를 회복해 놓고는 본연의 형제를 회복해야 돼요. 그렇지요? 「예」 형제가 있는 동시에 본향땅에는 누가 있느냐? 친척이 있지요? 「예」 사돈의 팔촌이 있어요.

그래 가지고 하나의 종족,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의 종중(宗中)이 있어요. 그 종중이 커 나감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부족을 이루어서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이 되어 가지고 국가를 편성하게 될 때 비로소 조국이 형성돼요.

본래 우리 인간은 본향에서 태어나 가지고 조국을 창건해야 할 창조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그걸 바라서 인간을 지었고, 인간도 그걸 바라서 지음을 받아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망도 다 깨져 버리고 인간의 소망도 미완성되었습니다.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경륜하였던 것을 기필코 이루지 않을 수 없기에 오늘날 인류를 향해서, 전부 다 죄악된 세상에서, 악의 지배권 내에서 살고 나가지만 하늘은 그 소망을 가슴에 품고 목표로 세워 놓고, 마음에 생각하던 것을 목표로 세워 놓고 역사를 거쳐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수를 불려 가지고 선한 권을 만들어 선한 민족과 선한 세계를 갈라 나온다는 거예요. 이것을 책임지기 위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난 것이 종교예요, 종교.

지금 전세계적으로 볼 때 종교권 내에 들어가 있는 수가 얼마냐? 한 20억 넘는다는 거예요. 많지요? 「예」 공산당이 큰소리 했댔자 그거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 인류를 종교 울타리권 내로 몰아넣어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본향의 나라에는 하나님이 직접 지배할 수 있는 직계 아들딸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다음에는 친척들도 있을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마찬가지로 도의 세계에도 하나의 중심도를 중심삼고 방계적인 도가 있을 것입니다. 도중에는 하나님이 직접 사랑할 수 있는 아내와 같은, 아들딸과 같은 도가 있고, 하나님이 심부름시킬 수 있는 종과 같은 도가 있고, 종의 심부름을 받을 수 있는 종의 종과 같은 도가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도가 이 세계에 가지각색으로 널려져 있다는 거예요. 이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끔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향땅을 잃어버린 인간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본향땅을 찾았어요? 「못 찾았습니다」 못 찾았어요. 본향땅을 못 찾았으니 본향의 조국을 잃어버렸어요. 그 조국이 무엇이냐 하면 지상천국이예요, 지상천국. 그 조국이 무엇이냐? 그 조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냐? 이 지구성이 천국이 되는 거예요. 그 조국이 뭐냐? 지상의 천국이 되는 동시에 천상의 천국이 되는 거예요.

천국 하게 되면…. 나라 하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3대 요소가 필요해요. 첫째는 주권이 있어야 돼요. 그다음에는 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이 나라를, 세계 나라를, 이 인간세계 나라를 차지해서 주관하는 주권이 있어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땅이 되어 있어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인류가 되어 있어요? 「없습니다」 없어요, 없어. 없으니 조국이 없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이게 본래 인간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로하고 조국광복을 바라는 전인류의 소망은 그칠 사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더 좋은 곳으로 가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좋은 일을 했으면, 내가 거리에 나가서 좋은 일을 한번 하고 나면 다 됐느냐? 아니예요. 하고 나면 또하라 이거예요. 또 해도 또 해라, 또 해라…. 하루에 백번 천번 해도 또 하라는 거예요. 마음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놈의 마음, 무슨 바보 천치같이 뭘하려고 자꾸 그래? 그것은 빨리빨리 좋은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요만한 소원이 요만큼 크고 요만큼 크고 자꾸 커 가지고, 이 세계를 몽땅 품어서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선까지 인연맺고 나가야 할 선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놈의 선이 가만있겠느냐 말이예요. 때려 모는 거예요. 하루에 천번 만번, 세계 30억 인류에게 다 주고도 또 줘야 돼요, 줄 데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바다를 위해 주고, 산을 위해 주고, 하늘땅을 위해 주는 거예요. 마음은 그렇게 주려고 하는 거예요. 왜? 오랜 역사를 통하여 마음이 소망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생활이라는 것은 7, 80년밖에 없어요. 7, 80년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엉클어진 모든 선의 권을 전부 다 수습하려면 억천만 년 걸려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은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짧은 7, 80년 이 기간에 있어서 선한 권을 인연맺어야 할 것이 그렇게 방대하다는 것을 아는 이 마음, 양심은 얼마나 재촉하겠나 말이예요.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죽으면 못 하는 거예요.

살아 있는 동안 인연맺고 땅 위에서 조국광복을 해야, 본향땅을 찾아 가지고 조국광복을 해야, 하늘 주권자를 모시고 그의 백성과 그 나라에서 살다 가야만 천상천국에 갈 텐데 그 세계를 가지 못하고 그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 이 마음이 얼마나 바쁘겠느냐 말이예요.

마음은 넘고 넘고 또 넘어서 순식간에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거예요. 그런 마음은, 본연의 양심의 작용은 변함이 없다는 거예요, 변함이. 그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마음은 살려고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니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전부 세계를 내 것 만들자 이거예요. 우리도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세계를 주름잡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나쁜 생각이 아니예요.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이 그러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지금의 세계는 어차피 선한 세계가 아니에요. 선한 세계가 아니지요? 「예」 악이 선을 잡아먹는 세계예요. 여러분 양심을 가만두고 볼 때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없습니다」

선을 입증하고 선을 보장하기 위해서 태어난 천지만물

그렇기 때문에 열 사람을 중심삼고 보면 열 사람 중에서 양심적인 선한 한 사람은…. 만약 스물 네 사람을 두고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양심적인 사람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 이거예요. 10분의 1이면 얼마예요? 두 사람, 서너 사람 못 되는 구만. 그렇지만 수가 많기 때문에 24명, 240명 혹은 2,400, 2억 이렇게 수가 많기 때문에 이런 권내의 2퍼센트, 2할밖에 안 되지만 이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의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개인적인 선을 위하여 노력을 하고, 가정적인 선을 위하여 노력을 하고 혹은 종족적인 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그 시간이 한 30분 혹은 한 시간씩 된다는 거예요. 수백 수천 사람의 이러한 시간을 연결해 가지고 24시간을 세워 나가는 이 모양으로 지금까지 세계를 인도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한 사람이 수고를 해 가지고 선을 지켜 나가야 할 텐데, 선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을 세워 가지고 그 전부가 한 사람이 선하게 사는 형으로서, 수백 사람이 동원되어 가지고 한 사람이 선을 마쳤다는 조건에서 이 땅을 끌고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선하라 이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못살기는 대체로 못살지만 어느 한 때, 한 1분이라도 그 전체의 선을 이루는 데 있어서 내가 필요로 하는 한 재료로서, 그 한 사람을 완성하는 데 필요로 했던 한 요소, 세포와 같은 작용을 해 가지고 그 선을 심을 수 있는 생활을 해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역사적인 중첩되는 사회상을 이루는 거예요. 거기에는 한 개인이 동원되고, 가정이 동원되고, 수많은 김씨, 박씨, 문씨 할것없이 전부 다 동원됩니다. 종족이 동원되고, 민족이 동원되고, 지금 현재에 있어서 수많은 국가가 다 동원돼요. 일 국가면 국가가, 어느 한 지방이면 지방이 여기에 전부 다 동원되어 가지고 그 백성들의 몇 분의 1이 합해 가지고 30분이면 30분이라도 선의 위치를 세워 나왔다는 조건을 세우면서 선한 세계로 끌고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번식이 되지 이것이 뚝 잘라지면 다 끊어진다는 거예요. 딱 잘라지면 그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느냐? 딱 잘라져서 이을 수 없게 되면 그 대가로 사탄세계를 치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은 망하는 거예요. 망하면 사탄세계를 끌어내 가지고 거기에서 무너뜨리고 이것을 또 잇는 거예요. 거기에서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새 출발하는 이런 무리를 내세워서 다시 재기의 불길을 붙여 가지고 또 나간다는 거예요. 역사가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이러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요.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는 말이예요. 그래도 양심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양심적으로 안 살면 괴로와요. 괴로운 것은 왜 괴로우냐? 천지 운세가 선을 보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지만물은 선을 입증하고 선을 보장하기 위해서 본래부터 태어났지 악을 동반하고 악을 보장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악을 보장할 수 없고 선을 보장하게 되어 있고, 악을 동반할 수 없고 선을 동반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양심의 고충을 받는 것은 이 천리원칙의 세계인 선과, 혹은 선을 동반하고 선을 세우기 위해서 지으신 천리의 힘이 악을 대하여 내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책을 받는 거예요.

가책이 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파괴된다는 겁니다. 가책이 심하게 되면 죽어 버리는 거예요. 깨져 나간다는 거예요. 원리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니, 거기에 반대되는 작용으로 나가니, 양심, 원리원칙에 반발하는 힘이 크니 그만큼 반대 입장에서 빨리 망한다 이거예요.

여러분의 양심이 좋다 하는 데 좋다는 것은 왜 좋으냐 이거예요. 좋다는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무엇이 좋은 거예요, 이 좋다는 것이? 오늘날 철학하는 사람들도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모른다 이거예요. 좋은 게 뭐예요, 좋은 게? 무엇이 좋은 거예요? 내가 지금 좋다는 것이, 옛날 과거에는 나쁘던 것이 지금 좋다 하고, 지금 좋다는 것이 과거에는 나빴으니 뭐가 좋은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 좋다는 것은 뭐냐? 내가 좋다는 것은 뭐냐? 천리원칙에 있어서, 그 원리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바탕의 요소가 많을 때는 거기에 내가 화합하는 요소가 많이 접붙여지니 좋은 것이요, 그 화합하는 요소가 지금보다도 적게 되면 슬프다는 거예요. 나쁘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열만큼 있는 데 이 열만한 요소가 백만한 힘에 천리원칙으로서 부합될 수 있으면 백만큼 좋고, 지금 열만큼의 입장에 있어서 다섯만한 상대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내 다섯은 마이너스되니 슬프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힘의 작용과 마찬가지예요. 플러스 마이너스는 좋으니까 서로 당기는 거예요. 반대가 되면 반발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서로서로가 두 힘이 합해서 주고받아야 됩니다. 더 가중된 힘이 나에게 머물러야 지금보다도 좋은 것이요, 지금보다 내가 갖고 있는 힘을 빼앗기니까 슬픈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진 인격기준은 변할 수 없어

오늘날 이 세상을 두고 볼 때 선한 세계가 아니예요. 선한 세계를 추구하여 양심은 재촉하고 있는데 재촉하는 양심과 더불어 모진 싸움을 하는 피의 함성이 오늘 이 천지간에 맺혀 있습니다. 이 피의 함성을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박차 버리기 위해서 하늘도 준비하고, 우리의 선한 양심도 준비하고, 수많은 도인들도 협력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내 양심을 잡아 틀고, 또 도인들이 현세에서 잡아 틀고, 이래 가지고 이 악한 것을 가운데다 드러내 가지고 양면을 들이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종교가 이 놀음을 못 했어요. 그 놀음 못 하면 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오늘날 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힘과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양심적인 힘을 가지고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지금 몸과 마음이 어때요? 이 세상에서 몸이 더 강하지요? 내가 바라는 것, 마음이 하자 하게 되면 몸뚱이가 막아 치우지요? 대다수가 마음대로 못 하게 하잖아요? 여기에서 마음대로 못 하게 하는 육이 강하기 때문에, 육이 열이라 하고 마음이 다섯과 같은 입장에서는 마음이 작용을 못 하니 여기에서 마음의 결의가 서는 날에는 힘을 가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다섯만한 마음에다, 다섯만한 양심에 열만한 힘을 가하면 열 다섯이니 열 다섯만한 힘을 갖추면 열만한 육은 문제없이 때려치우고 나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가 하자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마음에 펌프질을 해서 힘을 가해주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 기도는 왜 하는 거예요? 악의 힘보다도, 현실의 육의 힘보다 강한 힘을 보충받기 위해서입니다. 개인도 그러하고 가정도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념이 있어야 돼요, 이념이. 어떠한 중심과 내가 하나된 그런 확고한 신념 기반이 서 있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는 사상을 강조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사상을.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사상을 강조할 때예요. 사상을 강조하는 시대가 지나간 후에는 무엇을 강조하느냐? 사람을 강조해야 돼요, 사람은 무엇이냐? 언행심사예요. 말과 행실과 마음이예요. 즉, 사람을 중심삼고는 마음과 몸과 행동이 일치해야 됩니다.

오늘날 사상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공산주의라는 것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선전을 거꾸로 하는 거예요. 거꾸로 해서 속여 가지고 이거 다…. 오늘날 이 정계에서 벌어지는 것, 혹은 국제적인 외교관들이 어떠냐 하면 말과 행실과 마음이 일치 안 돼 있어요. 그것은 망해 버리는 거예요, 어차피. 이건 전부 다…. 나중에 나온 이 사상이 인류의 보금자리요, 하늘의 보금자리의 터전이 되려면 마음과 몸과 행실이 일치될 수 있는 우주 중심의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사상을 지니고 주의를 지니고…. 주의라는 것은 지팡이예요. 상대적 관념이 그냥 벌어진게 아니예요. 좀 어려운 말이지요? 진리의 본향을 찾아나가는 데 지팡이입니다. 지팡이와 마찬가지예요. 소경한테 길잡이와 마찬가지예요, 길잡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그것 가지고 가는 게 아닙니다. 맨 나중에는 참된 마음, 참된 인격, 참된 행실입니다. 뭐 말씀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인격, 이념 자체가 마지막이예요. 심정과 인격과 행동이 일치하는 거예요. 이것이 일치 안 되면 그건 거짓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그 심성에 있어서는 억천만세가 흘러가더라도 변할 수 없어요. 하늘이 가진 바의 인격이라는 것도 변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말했으면 실천하는 거예요. 실천은 영원 불변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르익고 있는 주의 사상도 이 세 가지 앞에 일치되지 않은 이 환경에서 그런 인격을 갖추어 세계적인 이념권 내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실제 생활권 내에 모셔 가지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세계가 우리의 본향세계입니다. 그 말이 어려운 이야기지요? 하여튼 외워 두라구요. 알아두라구요. 들어 두라구요. 그거 모르겠으면 녹음한 것 베껴 가지고 연구하든가 하라구요. 녹음하나? 「예」

끝날이 왔다는 것은 본향땅을 찾을 수 있는 때가 가까왔다는 뜻

땅 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이 인류가 지금 한하는 것이 무엇이냐? 돈이 없어 한하는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무슨 주권이 없어서 한하는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백성과 그 나라의 국토가 없어서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한하느냐? 마음대로 되는 , 마음대로 기뻐할 수 있고,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된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좋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 땅이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땅이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 땅이.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땅과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사회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사회와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땅이 되어 있으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은 그렇지 않은 이 세상을 대해서 그렇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세계에 대한 구도입니다. 이런 것을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靈)으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실체 대상자로 보낸 것이 과거의 도주들입니다, 도주. 도 중에도 1세기 도가 있어요, 1세기 도. '너희를 이 땅 위에 억조창생을 구하기 위해서 보내나니 너는 1세기 동안에서만 네가 가진 종교의 이념을 가지고 치리해라' 하는 거예요. 그것이 끝나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수한 문화는 열세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 우수한 사람은 열세한 사람을 지배하는 것, 강한 힘은 약한 힘을 삼키는 것, 이것은 천리이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 중에도 몇 세기 종교가 있는 거예요. 몇천 년 종교가 있는 거예요. 기독교가 로마 압제시대에 있어서는 삼키우는 것이 되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문화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신적인 뒷받침이 되어 서구 문명을 창출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몇 세기, 수십 세기의 인연을 갖고 나오는 도였기 때문에 남아진 것입니다. 어느 부자가 망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어느 누가 나라를 가졌다가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인간들은 모르지만 대우주의 힘의 원동력이 작용하는 그 원칙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깨지는 거요, 부합될 때는 세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자고로 하늘이라는 것을, 추상명사 같지만 막연하게 받들어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의 이 30억 인류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오늘날 이 세상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본향땅이 아니예요. 여기가 평등 평화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세계, 해방의 깃발이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마음과 몸에서 휘날릴 수 있는 이런 세계가 아니다 이거예요. 이거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이렇게 안 되었을 것인데, 하나님이 있으면 양심세계에 힘을 강하게 불어넣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왜 그렇게 됐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미완성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미완성 단계에서 타락했으니 고장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향땅을 잃어버렸고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죽더라도 본향땅에 묻히고 싶은 거예요. 본래 타락하지 않고 내가 태어났으면 먹고 살다가 죽으면 어디서 죽어요? 「본향땅입니다」 살면 어디서 살아요? 「본향땅입니다」 본향땅에서 살 것인데 나고 보니 원수의 땅이요, 나고 보니 슬픈 땅이예요. 이러니 이 땅을 내가 원치 않아요. 그래서 어서 망해라, 어서 망해라 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그렇지요? 「예」 어서 망해라 !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 같은 나라를 가만 보면 말이지요, 이건 나라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가정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농사지으면서도 땅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생활하는 사람은 생활에 대한 애착심을 다 잃어버렸어요. 그다음에는 탄식밖에 없는 거예요. 될 대로 되라하는 거예요. 이제 조금 지나면 '어서 망해라' 할 것입니다.

좌우의 사조에 부딪쳐 시달려 오던 약소 민족은 어느누구든 어서 망해라, 이럴 수 있는 세계가 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은 무얼 할것이냐? 망해야지. 빨리빨리 망해야지 빨리빨리 망하지 않으면, 전부가 없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때문에 뭘 남겨 줄 것이 있을 거예요. 그런 입장에 남겨 줄 수 있는 제일 가까운 방법, 해결책을 강구하니 망하는 가운데, 탄식하는 가운데 자연히 부식되는 거예요. 그거 망해야지요.

여기가 우리가 본거지로 삼아서 행복의 터전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땅이냐?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나가야 돼요, 지나가야 돼. 가정아 지나가라, 사회야 지나가라, 나라야 지나가라, 세계주류야 지나가라, 공산주의도 지나가고 민주주의도 지나가라! 내가 바라는 것은 본향땅 사랑주의, 부모의 사랑을 나눈, 피살을 같이 나눈 형제주의다 이겁니다. 예수 같은 양반은 막연히 그런 것을 부르짖었지만 구체적이예요, 지금은.

끝날이 왔다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 인간 앞에 본향을, 본향땅을 찾을 수 있는 때가 가까왔다는 말이예요. 본향땅에서 살 수 있는 인류가 역사적인 조국을 창건할 수 있는 시대가 가까와 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창건 이념을 갖고 오시는 예수 같은 양반에게 만왕의 왕이라는 레테르를 붙여 놓았다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왜 그런 것을 붙여 놓았어요? 그러나 그건 거짓이 아니고 사실이예요. 동기가 없어 가지고는 결과가 나올 수 없어요. 그 결과의 내용을 추궁해 보면 반드시 동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기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동기예요. 다 하나님이 움직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필시 이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오늘날, 통일교회인들은 지금까지 뭘했느냐? 사회의 모든 압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넘어가자 이거예요. 넘어가는 데는 전부 다 나만 발을 들여놓고 넘어가지 말자는 거예요. 우리 가족을 끌고 넘어가자, 우리종족, 민족, 삼천만 민족을 끌고 넘어가자, 이게 통일교회주의예요. 알겠어요? 「예」 우리는 그래서 삼천만이 싫다는 것을 움직여 가지고 좋다고 하고, 삼천만이 도망가는 데 가 가지고 주인 노릇 하자 이거예요. 남들은 전부 다 사바사바해 가지고…. '이놈들아! 우리들 5천 명만있으면 누구도 못 당한다! ' 이거예요. 전부 다 반대예요. '너희들은 먹고 즐기지만 우리는 굶고 앉아서 즐거워한다, 너희들은 비행기 타고 좋다 하지만 우리는 걸어다니면서도 좋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그렇게 나왔지요? 「예」 그렇게 나가다가 1년 가서 쓰러지지 말라 이겁니다. 이 나라가 끝나고 이 움직임이 끝날 것이어늘, 반드시 해결지을 날이 올 것이어늘 해결지을 그때까지 가 보자는 거예요. 참것은 남아진다, 강한 것은 남아진다, 이것은 천칙입니다.

또 하늘이 있다면 하늘은 자기편 것을 남기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위주하여 그 편에 입적한 자리에서 나가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길을 가려 할 때 가정이 반대하면 가정을 타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회가 반대하면 사회를 타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회가 나를 지배하는 데는 내 몸뚱이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이요, 내 마음과 심정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본향은 만민이 가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곳

그러면 거기서 기필코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냐? 본향땅이예요. 아담 해와가 부모를 잃어버렸으니 무엇을 잃어버렸어요? 본향땅에 누가 있다구요? 「부모」 부모가 있어야 본향땅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본향땅에서 이 억조창생의 본연의 참부모 되는 그 부모를 소개해 주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만인류는 참부모의 후손이 못되고 악한 부모의 후손이 됐으니 다시 하나님이 보장하는 참부모의 인연을 맺어라 이거예요. 이것을 유불선에서는 천지 부모라고 하지요. 그거 말을 잘했다는 거예요, 보면. 참부모의 인연을 받아라, 참부모가 세운 도의 문을 통해라, 그렇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참다운 형제가 되어라, 만민이.

그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그 부모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이 일치된 자리를 통하여 가지고는 형제가 되는 거예요. 그 형제의 이념을 붙들고 나오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 세상, 망할 세상의 혈육끼리 아무리 다정하고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하늘의 참부모의 혈육의 인연을 갖다 물려놓으면 대번에 탁 풀려 나온다는 거예요. 그 부모를, 참부모를 만나게 될 때는 세상 부모가 문제가 아니예요. 세상 부모도 그 부모를 찾아가야 된다는 말이예요. 안 찾아가면 망해요. 내 양심은 살길을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코가 냄새를 맡게 될 때는 말이예요, 향기로운 것은 좋아요, 나빠요? 「좋아요」 그거 왜 그래요? 그렇게 생긴 거예요. 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나는 건 냄새나는 거예요. 내 마음이 좋다는 것은 벌써 그 향기를 맡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괜히 좋거든 선전이 필요 없어요. 가기만 해도 좋고,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 탄식권 내에서 하소연하는 말이 '아이구, 가고 싶구나' 하는 거예요. 가고 싶은 거예요, 나도 모르게. 뭣인지 모르게 가고 싶은 거예요. 마음은 가고 싶은 거예요. 그 가고 싶은 곳이 무엇이냐? 본향땅이예요, 본향땅. 왜 가고 싶으냐? 어머니 아버지가 있으니, 형제 친척이 있으니, 내 나라가 있으니 가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 복지요, 내 안식처가 있으니 가고 싶은 것입니다. 양심으로 호소하고 역사를 거쳐오면서, 뒤넘이치면서 탄식권 내에서 악한테 밟혀 온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가고 싶은 곳을 밤을 새워 가면서 동경했지만 확실히 몰랐어요. 가고 싶은 곳을 사방 편답했지만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저 막연히 어떤 추상적인 관념으로써 마음이 지향하는 그곳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 가고 싶은 날들을 품고, 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가고 싶어하는 날들을 보내면서 처량히 지낸 것을 우리는 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오늘날 이 30억 인류가 하는 말이 '나도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거예요. 그곳은 오늘날 공산주의 세계도 아니요, 민주주의 세계도 아니예요. 그야말로 유토피아 같은 이런 하나의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이라는 거예요. 거기에 가면 자유 평등 행복, 모든 우리 이념의 여건들이 환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동적으로 보급되고, 자동적으로 환경이 이루어진 그 세계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가고 싶은 곳에 가서는 뭘할 것이냐? 가는데 왜 가느냐? 보고 싶기 때문이예요. 보고 싶은 것을 가서 봐야 돼요. 가서 만나 보고는 뭘할 것이냐? 가서 만나 보고 살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마음 깊이, 양심이 머리를 들고 호소하는, 그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보면 '아이구, 가고 싶구나' 하는 거예요. 그런 소리 들어 봤어요? 아이구, 가고 싶구나! 대한민국을 지나서, 미국을 지나서 가고 싶구나! 가서는 뭘할 것이냐? 가서는 보고 싶구나! 보자! 봐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살자, 영원토록 살자! 그런 세계를 동경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만약에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는 그분은 만민이 보고 싶은 분입니다. 그분이 계시는 곳은 만민이 가고 싶은 곳, 만민이 같이 살고 싶은 곳일 거예요. 행복의 곳, 이상의 본향은 어떤 곳이냐? 가고 싶은 곳입니다. 여러분 고향땅에 가고 싶지요? 거기에는 보고 싶은 부모가 있으며 형제가 있으며…. 그러니 가 가지고 보고 영원무궁토록 떠나지 않고 같이 행복을 노래하며 살고 싶다 이거예요.

그런 본향땅을 잃어버린 우리 이 30억 역사적인 인간들은 어차피 그걸 찾아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 말이예요? 「예」 타락했으니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예요. 선한 세상이 아니예요. 여러분 양심을 중심삼고 선한 세상이라고 그걸 입증할 것이 없단 말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종교라는 울타리를 떡 만들어 놓고 끝날이 오면 심판한다는 거예요. 말씀 잘했어요.

선한 본향세계를 찾는 족속들이 만방에 널려 있어야

내가 목이 쉬어서…. 하도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뭐 할 수 없어요. 듣기 싫어도 여러분 들으라구요? 「예」 늘 이야기하다 보니까 보통으로 이야기하면 목이 울리는 것 같아서 말이 안 나와요. 듣기 거북하더라도 들어 주십시오.

오늘날 우리들은 부모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만민은 고아라고 했어요. 부모를 잃어버리고, 우리는 핏줄기를 잘못 타고 났습니다. 조상이 달라졌다는 말이예요. 조상이 달라졌어요. 환영과 보호와 사랑과 심성과 깊은 의논 가운데서 살아야 할 인간이 제재와 압제와 박탈과 억울함에 사는 인간이 돼 버렸다 이겁니다. 핏줄을 잘못타고났어요, 고장이 났으니까. 원수한테 끌려갔다는 거예요, 원수한테. 이놈의 원수가 악귀와 마귀와 사탄이예요. 청산되어야 할 세계가 남아있는 연고로 수많은 도는 메시아 사상을 남겨 놓은 거예요. 하늘은 최후의 결론으로서 심판받아야 할 세상으로 딱 결론을 지어 놓은 걸 볼때, 그거 하나만 봐도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없다고 말 못 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섭섭하겠지만 거짓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거짓이지 참이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형제를 갖고 있으되 이 천지의 대주재요 본향의 양심이 그리워할 수 있는 형제가 아니예요. 양심에 반하는 형제들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것들이 모인 종족이 되었고, 그것들이 모인 민족이 되었고, 그것들이 모인 나라가 되었으니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하늘은 여기에 종교를 내세워 가지고 이것을 때려부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종교들이 맞아 나왔지만 끝날에 가서는 종교들이 들이치는 거예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합니다. 다 심판하고 나중에 들이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맞는 종교였어요. 예수가 말하기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돌려 대라' 했어요, 지금까지 종교가. 사탄세계에서, 악한 세계에서 발판을 닦으려니까 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종교인들이 '아, 사랑의 하나님이니 맨 나중에는 기독교의 심판 명사도 취소해라'고 할 겁니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 말이예요.

지금까지는 이 소생권 내에 있어서 악한 사람들한테 선한 사람이 밟히면서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어느 기준이 딱 되어 끝날이 되어 가지고 주님이 올 때에는 이 선한 사람을 통해서 악한 사람을 심판한다 이겁니다. 여지없이 심판해 버린다 이거예요.

지금까지는 악당들이 선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악한 놈들이 몽등이를 들어서 선한 사람을 악한 놈 만들기 위해서 이용해 나왔고 활동해 나왔지만, 앞으로 선한 세계가 되게 될 때는 선한 사람들이 악한 녀석들을 데려다가 들이 패서 뼈다귀를 부러지게 만들어 가지고라도 선한 사람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라도 선한 사람을 만들면 그것이 선이예요.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종교에서 말하는 온유겸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지극한, 영원한 선을 세우는 데 있어서 방패가 되는 것이 온유겸손입니다. 지금까지 온유겸손으로 말미암아 선을 세우는 데 보호의 방패가 되었기 때문에 선을 세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보호의 방패를 심판의 방패로 세울 날이 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인들? 「예」

우리는 지금까지 민족 앞에 맞자, 원망을 듣자, 불평을 듣자, 계속해봐라 하고 다 감투를 쓰고 앉았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장성한다구요. 알겠어요? 「예」 이 민족과 이 나라는 살아남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죽으면 힘이 빠져 나갑니다. 산 자와 죽은자를 심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죽었어요? 「살았습니다」 살았어요? 「예」 한번 탁 차면 번뜻하겠어요? 진짜 살았어요? 「예」

천신만고 어떤 노고의 길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울부짖으면서라도 내 본향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본향땅을 찾았으면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의 종족이 악한 세상의 침범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하늘이 입증해 줄 수 있는 우리의 선한 본향땅, 선한 본향지를 찾은 족속들이, 만방에 널려서 그런 도의 기준에 화한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 세상주의를 초월하여, 세상 국경을 초월하여 한데 모일 때가 오나니 이것을 두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모이는 줄로 알고 있거든요. 전세계의 제3 이스라엘 민족들이 모이는 거예요. 모여 가지고 뭘할 것이냐? 조국 광복의 한날을 위하여 준비할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반대되는 전부는 심판의 횃불 앞에 사라져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향땅의 혈육을 받고 태어난, 본향의 인연을 부르짖고 나선, 그 기치 아래 머무는, 하늘이 택한 백성들은 강하고 담대할지어다! 30억 인류 앞에 몰려 나가는 무리가 안 된다는 거예요. 30억 인류가 악한 데에 있으면 몰아냈다가 다시 끌어내서 살려주는 책임을 해야 됩니다. 죽여 버린다는 게 아니예요. 이런 엄청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이, 종교가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모른다 이거예요.

통일교회의 3세는 새로운 본향땅을 창건하기 위한 무리

그런 걸 생각하면 내가 통일교회의 교회라는 명사를 좋지 않게 생각한다구요, 교회. 우리는 도장입니다. 거기서는 뭘할 것이냐? 그곳은 앞으로의 본향의 땅, 하늘땅이 소원하던 본연의 땅을 창건할 수 있는 용사를 배양하는 곳입니다. 이 본향의 부모를 찾아 나가는 데 반대되는 어떠한 억센 원수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 원수의 꼭대기를 밟고 넘어갈 수 있는 끈기 있고 강하고 담대하고 강인성이 있는 이런 사나이와 아낙네를 만들기 위한 도장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미안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저기 눈을 감고 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정신 들어서 '알겠습니다' 할 때까지…. 알겠어요? 「예」 어, 이제 미안해서 일어났구만. (웃음) 뭐하러 여기 와 앉아 있어요, 뭐하러? 거 집에서 잠이나 자지. 자기 보고 얘기하는 줄 모르고 딴 사람 보고 얘기하는 줄 알고 이러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여기 통일교회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하나님의 큰 사명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날뛰는 1세들은 필요 없습니다, 1세들. 즉, 그 말은 무엇이냐? 40대이상 되는 사람들은 들어와야 별 효과를 못 봅니다. (웃음) 그렇다고 들어오지 말라는 말은 아니예요. 아무리 목사가 반대하더라도 목사의 아들딸은 문선생 주먹 안에 들어온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가는 거예요. 두고 보라구요. 앞으로 그런 무리가 통일교회의 사실을 알게 될 때는, 그들의 아버지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다 죽었으면 그 아버지의 무덤을 파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심한 말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가는 거예요. 제2세는 우리 편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2세들이 모여서 새로운 본향땅을 창건하기 위한 무리입니다.

오늘날 사회악의 제일선에 선 창소년들이 사회악을 불살라 가지고 악한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재료가 되고 비료가 되어 있거늘, 그와같은 연배의 선한 무리를 만들어서 이 악한 사회악의 청소년을 삼켜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바라는 소망이요, 또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나라보다 자기 처자를 더 사랑해서는 나라를 못 구해

여러분은 청소년이지요? 「예」 통일교인의 연령은 22세라고 봐요, 전국에 있는 통일교인의 평균 연령이.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하여튼 문제의 모임이다 이거예요.

내가 여러분들 같은 연령일 때에는 이 강토를 붙들고 '수많은 사람은 깊은 잠을 자더라도 나는 깨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지킨다'고 했어요. 내가 일본에 갈 때 기차 타고 가면서 '이 삼천리 반도 핍박받는 삼천만 민족아, 내가 원수의 나라에 가니 원수의 나라에 가더라도 내 절개를 더럽히지 않으리, 너를 위하는 마음 더럽히지 않으리, 돌아올 때까지 잘 있거라' 하고 서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내려, 다시 일본하관에 내릴 때까지 통곡하면서 간 거예요. 내가 떠나게 될 때 이 나라를 내가 진정 사랑했고 이 민족을 진정 사랑했어요. '이 나라의 운명을 하늘과 담판짓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내가 떠난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내가 지닌 바의 절개와 내가 너하고 맹세한 것을 잊지 않고 돌아올 그날이 있을 것이어늘, 돌아올 그날, 광복의 기쁜 날이 올 것을 나는 안다' 이런 말을 남기고 갔어요, 여러분들 같은 연령에.

어디 가서 누가 좋은 것을 주면 선뜻 받아 먹지 못했어요. 이 좋은 것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삼천만 민중이 이것을 먹지 못하고, 불쌍한 세계 인류와 선한 사람들이, 원수들의 마수에 걸려 신음의 고개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런 접경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복을 빌고 나서 먹은 것입니다. 내가 30이 되도록 내 손으로 옷 하나 못 사 입은 사람입니다. 새 옷을 못 사 입어 봤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에겐 참 세상이….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니예요.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이런 환경에 태어난 가정의 배후도 있는 거예요. 부모가 돈 주는 것 가지고 내가 호의호식할 수 있는 이런 무엇이 있었다구요. 그렇지만 그걸 다 쓸 줄 아는 사람이라구요. 이러면서 일편단심 민족의 한을 풀고, 이 나라 이 민족의 불쌍한 처지, 왜정 40년간의 이 고개를 어떻게 새로운 고비로 넘어 가지고 복귀섭리의 한 기간으로서 종결짓느냐 하며 싸우는 노정을 거쳐 나가는 거예요. 동으로 서로 다니는 발걸음은 이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데 있고 세계의 앞날의 운명을 염려하는 데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것 있어요? 뻔뻔해 가지고 뭐 좋은 것만 있으면 나, 나, 나….

선생님은 그때, 일본 압제 때에 거기 가 가지고 북경 혹은 상해 임시정부와 더불어 연락했어요. 밀사로 식구들을 투입시키는 비밀공작도 했단 말이예요. 왜? 하늘을 입증시킬 수 있는 이 나라가 주권을 잃어버린채 지금까지 신음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나라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내 일신을 아낄소냐! 그런 가운데서 모험도 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 때부터 일본에서 한국으로 나오면 벌써 한국에 또르르 연락이 오는 거예요, 아무개 고국에 돌아간다고. 꽁무니에 친절하게 보고하는 녀석이 많이 따라다녔지요. 또 이 길에 들어온 다음에는 자유당 때부터 내가 떡 부산만 가게 되면 치안부에서 '문 아무개 부산 갑니다' 하는 거예요. 친절도 하지. 좋다 이거예요, 좋다. 누가더 나라를 사랑하고 누가 더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선한 입장에 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악과 선이 부딪치는 거예요. 부딪쳐 가지고 누가 남아지느냐? 너희들이 나를 삼키려다가 삼키지 못하지만 나는 기어코 너희들을 삼켜 버린다 이거예요. 오늘날 세계 인류를 놓고도 그래요.

오늘날 민주와 공산세계가 통일교회를 삼켜 버리기 위해 아무리 공작을 해도 못 삼켜 버린다 이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를 삼켜버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들어왔다구요. 미국에서도 그래요. 한국에서는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허락지 않으니까 못 들어오는 거예요.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필코 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본향땅을 맞이해 놓고 조국창건의 이념을 만세에 자랑하고 죽을 수 있는 그 한날이 우리의 소원하는 날이요, 우리들의 생애에 맺혀진 그 한을 풀 수 있는 해원성사의 날입니다. 그날을 위해서는 뭐 아까울 게 없다 그 말이예요. 그 길을 나서는 데 있어서 가정이 반대한다면 가정이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뭐가 필요한 것이 없어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가 와서 눈물지으면 도리어 '나는 당신이 눈물 흘려서 동정받을 수 있는 그런 시시한 사나이가 아니다. 어머니면 어머니답게 나타나라' 한거예요. 오히려 쫓아 버린 사람이예요. 왜? 지극히 사랑하니까.

우리 형님은 독실한 기독신자입니다. 왜정 때 일본이 망한다는 것을 벌써 계시받아 다 알았어요. 일본이 언제 망한다는 것을 다 알았어요. 선생님과는 통했다는 말이예요. 형제끼리 참 박자가 맞았어요. 또, 그분은 나를 알기를 '우리 동생은 세계를 줘도 바꾸지 않는다' 그랬어요. 왜 그러냐? 하나님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것은 알아요. 그래서 동생이 무슨 말을 해도, 집을 한꺼번에 다 팔아 가지고 돈을 부치라고 해도 부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믿던 형님을 대해서도 내가 원리 말씀 한마디 못 했다 말이예요. 자기 가정을 더 사랑해 가지고는 나라를 구하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 처자를 더 사랑해서는 나라를 못 구하는 거예요. 천리원칙이 그래요. 만일에 하나님이 자기 아들딸을 사랑했으면 여러분들 구원 받아요? 예수가 왜 죽어요, 왜 죽어? 제일 좋은 것을 주기 때문에 사탄도 머리를 숙이는 거예요. 사탄이 그것을 받으면 사탄이 망하기 때문에 그것을 못 받고 하늘을 하늘로 모셔 나오는 거예요.

세계적 악당들을 무찌를 수 있는 비밀을 갖고 오시는 구세주

오늘날 나는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찾아오기 위해서, 통일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통일교인을 가르치는 데는 제일 좋은 것을…. 자고 싶은 잠도 못 자고, 입을 것도 못 입고, 먹을 것도 다 못 먹고 여러분들을 길러 온 것입니다. 그거 알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먹다 남은 것 가지고 나라 살릴 수 없어요. 내가 처자를 내버리고 이 길을 떠났어요. 이 길을 떠난 거예요. 학교 갈 때 공책 하나…. 어느 기준이 돼 가지고 여러분 통일교회 패들이 그 뜻을 알아서 선생님이 염려해 주지 않아도 되는 그 자리에 올라갈 때까지 자식이 학교에 가도 내가 공책 하나 안 사 줬어요. 그 자식을 대해서 어렸을 적에 내가 손목을 쥐고 뽀뽀 한번 못 해줬단 말이예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요. 1960년도가 되기까지는 남의 집살이를 했어요, 남의 집살이를 . 여러분들은 집에 데려다가 별의별 것 다 해 먹이고 별의별 시중을 해주면 서도 남의 집살이를 했어요. 이게 천리원칙이예요.

하나님은 본향땅을 찾고 조국창건을 위해 인간을 통하여 찾아 나오는 역사적 섭리를 하게 될 때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종 중의 종을 보냈고 아들 중의 아들을 보냈다는 거예요. 최후에는 하나님의 황태자인 예수까지 보내 가지고 죽였지요. 그게 섭리다 이겁니다.

자기 집안 사람이라고 뭐 나라를…. 요즘 뭐 관리들 말이예요, 자기 새끼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나라를 다 팔아먹어요. 그거 망하지요. 그 나라가 망하는 동시에 그 집안, 그 새끼들도 망해요.

지극히 좋은 것을 누구를 위해 주어야 할 것이냐? 세계 인류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인류가 공히 찾아야 할 것은 잃어버린 본향땅입니다. 공동작전을 하여 전체가 단결하여서 이 원수의 세계를 전부 다 밀어 치우고 본향의 세계를 만들고 살아야 됩니다. 하늘이 소망하시던 본향의 나라와 본향땅을 찾아 가지고 참부모와 참형제와 참종족과 참민족과 참국가와 참세계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것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의 인생의 최고의 소망이요, 희망입니다. 무슨 학ㆍ박사가 문제가 아니예요. 여러분, 나라의 충신 열녀들 중에 학·박사가 있어요? 「없습니다」 박사들 중에 이렇게 충신된 녀석이 있어요? 「없습니다」 이건 언제나…. 문화인들은 시대의 간신들이예요. 편리하면 살짝 빠지고, 살짝 빠지고 말이예요. 유관순이가 무슨 박사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들 가슴에 정의의 불을 붙여 가지고 하나의 광명한 빛 자체가 되어서 본연의 본향땅을 바라보고, 본연의 나라를 그리워할 수 있는 밝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들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렇게 되고 싶어요? 「예」 되고싶어요? 「예」

우리가 지금 찾아 나가는 본향길에 있어서 어느 정도 왔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본향땅을 찾아가는데, 지금 세계적인 이 말단 시대에 처하여 있는 한국의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는 입장이 어떤 입장이냐? 그건 여러분이 알거라구요. 본향땅을 찾아가는 데 내가 힘이 없다 이거예요. 본향땅을 찾아가는데 힘이 없어요. 내가 언제 개인적인 싸움, 개인적인 원수를 쳐부수고 개인적인 승리의 본향땅을 찾을 수 있으며, 가정적인 원수를 쳐부수고 언제 가정적인 본향땅을 건설해 나갈 수 있으며, 종족·민족·국가ㆍ세계적인 원수를 쳐부숴 가지고 언제 세계적인 본향땅을 찾아갈 수 있겠느냐? 그런 실력 있어요? 그런 실력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메시아가 오는 거예요. 구세주가 와야 돼요, 구세주가.

구세주는 어떤 분이냐? 세계적인 악당들을 전부 다 무찌를 수 있는 비법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비법이 뭐냐?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메시아는 사탄 마귀가 인류에 대해서 죄를 지은 그 비밀을 샅샅이 알고 오는 거예요. 세상에 아무리 큰소리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살인강도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될 때는 그 부락이면 부락, 자기의 갖춘 환경에서 큰소리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샅샅이 알고 '네가 어느날 뭐 갖고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어느 부락에서 살인하지 않았느냐, 이 죄인아' 하게 되면 거기서 머리 숙이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사탄 마귀의 죄악 역사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은 공의의 재판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는 인류의 죄악 역사의 모든 내용을 알고 이 원수 된 사탄 마귀를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이러한 죄악의 괴수를 심판하시옵소서'라고 참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그 메시아는 세계의 악을 송두리째, 그 뿌리로부터 동기, 내용, 결과를 전부 다 아는 분입니다. 알기 때문에 이걸 몽땅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천지의 원칙을 치리하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법도, 천주 가운데 있을 수 없습니다. 심판해 주소' 하면 심판당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과 땅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피땀흘리는 자리를 지성소보다도 거룩하게 아는 사람이 되라

우리 개인으로서는 그런 본향의 땅을 향해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민족·국가·세계를 거쳐 가지고 이 악한 권세의 울타리를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오시는 구세주는 이 악의 모든 세력권의 근본을 알아 가지고 정의의 하늘 앞에 참소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참소하는 날에는 악마들도 보따리 싸 가지고 지구성에서 추방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와서는 뭘할 것이냐?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가르쳐 주는 그분에게 접붙여 가지고 하나만 되면, 그분의 이상과 이념만 받들고 나가서 하나되면, 내가 힘은 없지만 그분의 사상을 본받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악의 주체인, 악의 세력인 사탄 마귀가 추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면 반드시 자기도 모르는 힘이 온다는 거예요, 힘이.

만민이 공동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메시아예요. 그 메시아가 누구냐? 본향땅을 창건할 자인데, 창건하는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은 종의 입장에서 창건하기 위한 주인공이냐? 아니면 형님의 입장에서 창건하기 위한 주인공이냐? 어떤 입장의 주인공이냐? 오늘날 인류앞에 있어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대신한 입장입니다.

참부모의 내용과 인격을 갖추어서 오시는 분이 누구? 「메시아」 메시아. 그분이 누구냐? 우리 아버지예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라는 거예요. 아버지의 인연을 가져 가지고 '너희들은 자식이다' 하는 거예요. 자식들이 지금까지 원수 앞에 사로잡혀 포로되었던 그 모든 걸 전부 다 풀어 줄 수 있는 입장에서 공판해 가지고 사탄을 쳐부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온다 이거예요, 와 가지고는 아버지의 교훈, 아버지의 상속…. 아버지의 상속은 무엇이냐?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상속이예요. 아버지의 교훈은 무엇이냐? 원수를 때려부술 수 있는 교훈입니다. 그의 모든 조직과 체계는 무엇이냐? 사탄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조직과 체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오늘날 이 세계는 어차피 메시아 사상을…. 한국 정감록의 정도령이라는 것은 국가적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메시아는 우리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나오면 본향이 찾아온다, 잃어버린 본연의 고향땅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 부모를 맞이해 가지고 그 부모의 품에 안겨 '아버지여, 어머니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때가 오게 될 때에 비로소 내가 자식이 되니, 자식의 입장이 되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니 그 가정에서 비로소 본향땅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향땅이 시작되는 곳이 지형적으로 보게 되면 세계에 한꺼번에 벌어지는 한 기점이 될 것입니다. 그 기점은 현재 타락한 세계의 민족이나 혹은 국가권 내에 나타날 것인데 그 권과 그 민족이 어디일 것이냐? 나는 알기를 한국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좋지요? 「예」 이런 말을 한다고 옛날에 치안국에서도 알고 '이럴 수 있느냐?'고 야단해서 한바탕 역사를 들어 증명해 가지고 이래도 그럴 수 없느냐고 했더니 '아, 그거 모르겠는데…'그러더라구요. 나는 당당코 주장하는 거예요.

만일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세계 어느 종교보다도 통일교회가 정성을 백 퍼센트 이상, 수백 배 이상 들이게 되면 하나님도 와야 돼요. 참부모도 와야 돼요. 안 오면 하나님은 거짓입니다. 알겠어요? 「예」 만일에 안 오더라도 그런 기척만 있으면 오게 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건 오는 것이 원칙이면 더욱 좋고, 안 오는 것이 원칙이 되었더라도 그 원칙으로써 오게 할 수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럼 여러분들 나하고 배짱을 맞추어 가지고 한번 해보자 말이예요? 「예」 그럼 됐지 뭐.

그래서 통일교인들은 곡괭이를 들고 피땀을 흘리는 그 자리를 '하나님이여,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 지성소보다도 거룩하게 아는 사람이 되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피땀을 흘리는 그 자리에 있어서 내가 돈을 버는 것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이 자리가 거룩한 지성소보다 더 귀한 자리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망하겠어요?

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도, '내가 공부하는 것은, 한 장의 책장을 넘기는 이건 십만 원을 줘도 결코 못 사는 것이다. 이 한 장 가운데서 민족을 살리고 인류를 살릴 수 있는 비결을 찾게 될지 몰라' 이렇게 생각하면서 해야 됩니다. 옛날에 난 공부할 때 3백 페이지 책을 읽으면 한 페이지에 일본 돈으로 1엔씩 쳤어요. 1엔씩 하면 3백 엔이지요. 3백 페이지면 하루 한나절이면 읽거든요. 다 읽고는 '오늘은 300엔 벌었다, 280엔 벌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은 거예요, 책을 읽어도. 책을 돈 주고 사 오는 것인데 돈을 버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렇게 책을 읽어보나요? 이것은 뭣이냐 하면, 이걸 사 가지고 이다음에 민족을 위해 쓰고 세계를 위해 쓴다 이거예요.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태평양을 가로막는 공사를 하자

이거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벌써 열 시가 됐어요, 두 시간이 넘었는데 이제 그만둘까요? 「해요」 그만둘까요? 「해요」 여기 그만둬요? 「해요」 난 힘들어요, 힘들어. 임자네들은 좋아요? 「예」 좋을 게 뭐예요.

그만두자구요. 「안 됩니다」 그만두자면 뭐 딱 세 마디면 결론 낼 수 있다구요. 관두자우? 「더 합시다」 그럼 조는 사람 없겠지요? 「예」 지금 조는 사람이 없으니 만약에 조는 사람이 있으면 말이예요, 주먹을 쥐고 다리를 들었다가 옆구리를 총알같이 찌른다구요. (웃음) 거 약속해요? 「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대중을 거느려서 인도해 오지만 조는 사람을 들여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전주는 거룩한, 온전한 고을이니까 온전한 고을에 사는 분들이야 대개 다 완성급을 넘어서 가지고…. (웃음) 술을 한잔 마시고 쓱 배를 두드릴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겠지요. 전주 사람 믿어 줄께요? 「예」 조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예」 여기 아가씨들? 「예」 (웃음) 잘 들어 보라우. 시집 못 가서 걱정하는 나이 많은 노처녀가 있거든 선생님 말씀이 끝난 다음에 장가 올 수 있는 사나이를 맞게 해줄지 모른다 이거예요. (웃음) 장가 못 가서 고민하는 그런 노총각이 있거든 말씀 듣고 난후에 어쩌면 그 품에 품길 수 있는 아가씨가 있을는지 몰라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뭐. (웃음) 그거 모르는 거예요. 두고 봐야 알 거예요. 그래, 하고픈 대로 하고….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어디로 가자구요? 「본향땅으로요」 어디로가요? 「본향땅」 전라북도 정제로 가자, 그거예요? 아니예요. 본향땅. 만민이 그리워서 찾아올 수 있는 본향땅은 어디일 것이뇨? 그 본향땅이 한번 시작되면 억조 만세에 걸쳐 옮겨 올 수 있는 본향 기점이 될것이어늘 한국이 그런 본향땅만 되면 우리 한국은 전부 다 농사 안 짓고 뭐 일 안 해도 될 거예요. 세계 30억 인류가 벌떡 벌떡 찾아오게 된다면 전부 다 여관 만들어 가지고 세 받아 먹고도 살 거라구요. (웃음) 선생님은 그런 꿈을 꾸고 사는 사람이예요.

만일에 여기에서 우리가 얘기한 것이 틀림없고 앞으로 그러한 이념이 이 땅 위에 나타난다 할진대는, 선생님이 그런 길을 소개할 수 있는 어떤 책임을 짊어졌다 하면 앞으로 세계 사람들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들을 거예요.

태평양 바다를 건너막아야겠다! 태평양 바다를 건너막아야 되겠다! 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네. 태평양 바다를 건너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계획은 몇 년, 몇 년이예요? 계획은 몇천 년, 몇천 년이예요. 여러분들, 바티칸 궁전 같은 것 하나 만들기 위해서도 4백여 년 걸렸단 말이예요. 그 사람들 스케일이 큰 편이예요. 오늘날 이 로마가 바티칸 궁전에 관광객이 들어옴으로써 떨어지는 이익금, 즉 국가 공금으로 들어가는 그 이익금이 얼마냐 하면 8억 불 이상이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한국에 있어서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 주장하는 이것이 세계적인 이념이 되어, 앞으로 누구나 다 따라갈 수 있는 주의 사상이 되어 가지고, 만민이 코가 늘어지고 눈이 빠지더라도 서로 들어가겠다고 춤추고 야단할 수 있게만 된다면 선생님이 한번, '야, 우리가 태평양을가로막는 시공식을 하자. 죽더라도, 이것은 몇천 년 후에도 전부 다 해야 된다. 이거 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 미국놈도 여기 와서 피땀을 흘리면서 정성을 들여 역사를 남겨 놓고, 일본 놈도, 각 나라의…. 이래 가지고 후대의 우리 후손들은 전부 다 우리의 뜻을 받들어서 기필코 태평양을 넘어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방을 건너막아야겠다' 하는 유언을 하고 나오면 틀림없이 통일교회는 태평양이 건너막히는 그날까지 망하지 않고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것이 2천 년 걸리면 2천 년 동안 발전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는 다 넘어갈 거라구요.

그래서 2천 년 걸려서 2천 백 년쯤부터 는 어떻게 되느냐? 태평양을 건너갈 때…. 지금 때는 뭐 요즘 자동차를 보면 몇 마일? 시속 7, 80마일, 100마일 이러지만 그때는 아마 제트기 이상 달릴 거예요, 요즘에도 한 500마일 나가는 자동차도 나오잖아요? 영화에서 봤어요? 모래사장을 달리는 데 시속 500마일 달리는 제트기 같은 자동차 봤지요? 「예」 이렇게 멋지게 자동차들이 왕래할 수 있게 하고, 중간쯤에 가다가 공원을 만들어 놓고, 태평양 파도가 얼마나 위엄 있나를 감상할 수 있는,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여관도 만들어 여행의 제일 코스로 떡 만들어 놓으면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왕래하려고 그럴 거라구요. 그때, 그 시대에 그 길을 한번 못 간 사람은 전부 다 죽어서 한이 되게끔 만들어 보란 말이예요. 그리고 거기 왕래하는 사람에게는 세를 받는 데 비싸게 딱 받거든요. (웃음)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회 이념을 위해 충성을 한 사람들은 전부 다 그 세금 받으면 먹고 살고도 남는 다 이거예요. 몇천 년 후에 가 가지고, 그만하면 됐지요. (웃음) 몇천 년 걸리면 좋겠어요, 몇천 년? 앞으로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다 말이예요.

그래서 내년쯤에는 서울에서 김포를 지나 가지고 강화도를 지나 그 앞바다에서부터 인천까지 건너막는 제방을 건설하려고 해요. 한 백 리 가까이 될 거예요. 거기에는 큰 자동차가 한 대여섯 대 왕래할 수 있는 이런 제방을 막아 놓는 거예요. 정 바쁠 때는 양쪽을 딱 막아 놓고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우리 비행장 없잖아요? 없지요? 「예」 잘 닦아 놓고 아스팔트 깔아 놓고 앞 뒤를 떡 막아 놓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면 말이예요, 비행장 되지 별수 있어요? 틀림없이 할 거예요. 하자요, 말자요? 「합시다」 여러분들 구석 구석에 땀이 흐르게 할 텐데? 「예」 40일씩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복귀 도상 동원되어서 전도하는 그런 훈련들을 잘해 놓았지요? 「예」

통일교회 청년들은 팔방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때는 40일 노동해서 먹고 남을 수 있는 쌀을 가져올 것, 입을 옷 가져올 것, 팔 삽을 가져올 것! (웃음) 그것이 몇십 년 동안 동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졌느냐가 문제이지, 여러분, 한 10년 동안 매해한 두어 번 출동할래요? 「예」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 믿지 못해서 물어 본 거예요. 그만큼 잘 믿어 줄께요. 응? 「예」 선생님이 믿어 준다면 좋아하지요, 여러분들? (웃음)

내가 이런 우스운 얘기를 왜 하느냐? 여러분이 앉았으니 대부분 힘들지요? 「안 힘들어요」 힘 안 든 사람도 있지만 힘든 사람도 있단 말이예요. (웃음) 듣다 보니 그저 자기도 모르게 한 시간이 넘어가고, 두시간이 넘어가고, 세 시간, 네 시간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요. 그게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농담도 가끔 하는 거예요. 이해하시라구요. 「예」 이런 시간이 지극히 엄숙한 거예요. 엄숙은 무슨 엄숙이예요? 내 몸이 뛰놀고, 마음이 뛰놀고, 그저 있는 감사를 다 드리면서 '아이구, 좋아 죽겠다' 그러면 최고의 엄숙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한국으로 와야 한다! 뭣이? 「메시아」 그거 알긴 아는 구만. (웃음) 한국으로 오게 해야 된다! 누가? 「메시아」 우리가 (웃음) 지성이면 감천이란 세상 말도 있는데 정성의 도수가 차고 차면 하나님도 감투 끈을 풀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용사들을 거느리고 나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계획한 프로가 적중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지금 테스트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그저 복(伏)지경일 때면 내몰고, 겨울 때면 내몰지요? 「예」 힘들지요? 「안 듭니다」 힘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듭니다」 아이구, 배고파! (웃음) 아이구, 추워! 선생님도 추운 데서 참 많이 잤어요. 추울 때는 신문지 한장이 하나님 품보다 더 그리울 때가 있어요. 바람이 어떻게 그렇게 들어오는지…. 이렇게 다리 한짝 들고 있으면 발바닥 여기가 시려 들어오거든요. 거기에 신문지 한 장만 있으면 그거 얼마나 좋아요? 그저 오그리고 잘 때, 그 맛이 아주 복잡한 맛이예요. 복잡한 맛이예요, 이게. 또 배가 고파서 그저 밥을 그리워하는 맛이 복잡한 맛이예요. 가기는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가다가 배는 고프지, 잘 데는 없지,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지, 갈 데 없고 배고픈 마음이 얼마나 쓸쓸한가? 다 지내 봤어요? 그건 아주 간절한 마음이예요, 간절한 마음.

그럴 때는 '아이구, 옛날에 우리 엄마 아빠가 있을 때는 밥도 잘해줬는데 신세가 이게 무슨 꼴이야. 아이구, 겨울이 되면 겹바지 저고리입었는데 아이고, 홑잠방이가 웬말이냐. 아이구, 42도 넘지 않는 온돌방에서는 내가 잘 줄을 몰랐는데 영하 몇 도에서 자니 이게 웬말이야. 보리밥은 평생 인사도 못 해봤는데 아이구, 꽁보리밥이 웬말이야. 아이구, 이 발은 십 리, 몇십 리 길이라는 것은 생전 걸어 보지도 못했는데 몇백 리 길이 웬말이야' 이러지요? 자꾸 하자요? (웃음) '동네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개 집 아들이 온다고 환영하는 것이 일쑤였는데 동네 들어가면 통일교회 패 온다고 침을 퉤퉤… (웃음) 그거 요지경 속이 참 많거든요. 나도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해봤어요.

선생님은 때로는 어떤 집에 찾아들어갈 때, 그 집의 아들을 가만히 보니까 뜻 앞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저 사람을 세우면 우리 뜻 앞에 있어서 하늘이 요구하는 크나큰 사람이 된다 하는 걸 알고 난후에는 가서 전도를 하는 거예요. 전도하다가 가만두면 안 되겠어요. 그러다가는 전도 못하겠거든요. 그래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집에 떡 들어가 가지고 버티고 앉아서 얻어먹기를 21개월…. 비위가 좋지요? 그러니 그 집의 친척들까지 아웅다웅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때려죽일 수 있어요? 죽이지 않으면 너희들이 어떻게 되든지, 내 목적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거예요. 선생님은 그만큼 비위가 좋아요.

지금도 여러분이 저녁 밥을 안 주게 되면 저기 가서 한 시간 이내에 먹을 것을 잔뜩 먹고 에헴 하고 들어와요. (웃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잣집에 가면 세 시간 이내에 밥을 어떻게든지 얻어먹고 오는 거예요, 갔다가 주인이 '밥 없어' 하고 박대하더라도. 뭐 셰퍼드가 있다고? 셰퍼드가 사람 알아보지요. 주인보다도 더 충실한 사람이 오면 셰퍼드가 환영하는 거예요, 어서 들어오소 하고. (웃음)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리 뒷거리의 요사 패들이 노는 곳에 가더라도 인사하고 이야기하게 되면 다 통하게 되는 거예요. 사람이 그거 다 배워 둬야 돼요.

그래서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을 팔방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라가 급하게 될 때는 어느 분야를 갖다 맡기더라도 한번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농사나 짓고, 땅만 파고 이러면 아예 죽어 버리지 그거 뭘하노? 땅을 팔망정 슬쩍 한번 갔다 오게 될 때는 동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일을 해 놓고 오는 거예요. 그것을 한 10년 후든가 20년 후에 알 때가 올 거예요. 우리는 그래요. 엉뚱한 일을 해 가지고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가끔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알겠지요? 「예」

고향창건을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우리가 타고난 생애의 목적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본향땅으로」 본향땅으로 어서 가자. 하자 하자 어서 하자? 「전도를 」 있는 힘 다해 싸움을 다 싸우자. 하자 하자 어서 하자, 그거 많을 거예요. 합심하여 무엇을 하자? 참뜻을 세우자.

우리의 일편단심은 무엇이냐? 잃어버린 본향땅을 찾아야 되겠고, 본향 조국을 창건하자! 오늘날 재건이라는 얘기를 하지요? 「예」 재건은 말이예요, 있는 것을 뜯어 가지고 다시 하는 것이 재건입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재건이 아니라 창건하자 이거예요. 이건 재료도 없고 주먹밖에 없어요. 알겠어요? 주먹밖에 없단 말이예요, 본향땅이 있어요? 「없습니다」 본향 나라가 있어요? 「없습니다」 없으니 창건이예요. 창건는데 무얼 재료로 하느냐? 여러분 주먹이 재료고, 여러분 몸뚱이가 재료고, 여러분 뼈다귀가 재료예요. 이 몸뚱이를 움직이고 이 뼈다귀를 갈고 이 모든 피살을 뿌리게 될 때는 세계의 금은보화가 날아 들어옵니다. 그래서 재료를 구입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더구나 한국실정에 있어서는 돈 가지고 뭘 구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남아 나온 거예요.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도 이 길을 오기 위해서 모듬매를 왜 안 맞아 봤겠어요? 모듬매도 맞아 봤어요. 감옥에는 왜 안 들어 갔겠어요? 감옥에도 여러 번 들어갔어요. 내가 감옥생활을 한 것을 세게 되면 몇 해나 될 것 같아요? 감옥에 왜 안 들어가 봤을 것이며, 매를 맞아 피를 왜 안 토해 봤을 것이며, 설움과 핍박 가운데서 별의별 부끄러움과 뭐라 할까, 참상을 왜 안 당해 봤겠느냐? 부모의 한도, 혹은 친척의 한도, 나라의 한도, 민족의 한도, 수많은 종교의 한도 왜 안 받았겠느냐? 그렇지만 가야 할 길이 그보다도 더 크고 그보다 더 귀한 줄 알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 오늘 왔으니 내일 또 가야 되고, 내일 가면 모레 가야 되겠고, 금년 갔으면 명년도 가야 되겠고, 10년 걸어왔으면 20년, 40평생을 걸어왔으면 생애 끝날 때까지 가야 할 본향땅이 남아 있다 이거예요. 그 본향땅은 어떤 곳이냐? 가고 싶은 곳, 가서 만나고 싶은 곳, 만나서 살고 싶은 곳입니다. 그 길은 오늘 세상만사와 내 주위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걸 알고 그 무엇보다도 간절하기 때문에 이것을 다 버리고 가야할 운명이 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는 통일의 길이요, 스승이 걸어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단 말이예요. 그 길을 가 볼래요? 「예」 어느때까지? 「생애 끝까지」 생애 끝까지. 아니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아니 가면.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골고다를 넘고, 가정적인 골고다, 종족·민족·국가적인 골고다를 넘어 세계적인 골고다를 향하여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앞에 세우고 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앞에 서서 지금까지 우리의 갈 길을 개척해 놓고 우리를 오라 하는 거예요. 이러한 길을 가지 못하면 망해요, 망해. 망해야 돼요. 천 번 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오늘날 한국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아 이런 본향이 창건되는 날에는 세계 사람은 우리를 조국의 백성으로 모실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하늘이 소원하시던 그 동산을 향하여 우리는 오늘도 가고 있고, 그 동산을 향하여 내일도 갈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힘과 정성을 다 바쳐 세상 무엇보다도 귀히 여기면서 이 길을 가야할 것이 우리가 타고난 생애의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통일신도들이 지닐 바의 사명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모였고, 그 일을 위해서 스승을 만났고, 그 일을 위해서 스승과 갈라지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싸우고, 싸움 가운데 서로서로가 힘에 힘을 다하여 협력하고, 마음에 마음을 합하여 하나되어 통일의 깃발을 방방곡곡에 휘날리는 것입니다. 흑암 가운데 있는 이 민족을 해방시키겠다는 소원을 품고 힘차고 강하게 나가자는 것이 우리 통일신도들이 지닐 바의 사명이라는 거예요.

만일 이 소원이 성취되면 세계 만방은 우리를 숭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혹은 미국, 세계 수많은 나라가 그러한 세계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전부가 바라는 소원이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전부가 가야 할 길인 연고로 거기에 먼저 가서 터를 닦고 하늘 앞에 승리의 제단을 쌓고 기다리는 날에는 세계는 자연히 그 품으로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세계에 널려있는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그 배후에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찾아올 수 있는 날, 오늘날 이 복된 소식이 전해지는 그런 시간을 바라고 있는 무리가 이 지구성에 많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신도가 지금 지구상에 얼마나 되어 있느냐? 내가 알기로는 몇 년 이내에 팔천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팔천만.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올바로 줄만 달면 팔천만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오늘날 영계를 통해 가지고 하늘의 비밀이 어떻고, 하늘의 뜻이 어떻게 되어 나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다 이거예요. 미국에 있어서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사람 가운데는 수많은, 몇만의 부하, 몇십만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그런 사람이 세계에 널려 있다는 거예요. 이런 무리들을 오늘날 우리들은 규합해야 돼요. 영통하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손아귀에 전부 다 쥐어져 있다는 거예요. 문선생에게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그거 믿어져요? 믿어 지나요? 「예」

여러분들 지방에 가서 가끔 그런 여자를 보지요?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전도를 받았는데, 몇 년 전에 전도를 받아 가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와 보니 전도하던 그분이 통일교회 선생님이더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 더러 만나 봤어요?

오늘날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몸뚱이는 하나지만 영적인 활동무대는 전세계로 삼고 있다는 거예요. 아마 타임 잡지 같은 데에 선생님 사진만 내놓고 이 사람을 본 사람은 집합하라 하면 상당한 수의 사람이 집합할 것입니다. 그거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지요? 그럴 날이 올 거예요. 어떤 귀족, 양심이 맑은 귀족이나 혹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그러한 모든 배후조직이 전세계적으로 널려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규합하느냐? 이것을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잡도를 통하는 사람들에게 통일교회 대해서 물어 보면 대번에 알지요? 「예」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요?' 하면 '아, 말도 마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멋지고, 신나고, 또 그다음엔 통쾌한 통일교회다! (웃음)

우리가 맡은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이런 의미에서 천하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예수와 성신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선조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피땀 흘리고 죽어갔습니다. 또, 모든 성인 현철들이 도의 길을 닦고, 도주들이 도의 모든 경서를 남겨 가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도인들을 편성해 놓은 것은 결국 인류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행복이라는 두 글자는 결론에 가서는 나를 위해서…. 미안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세계 최대 행복이라는, '행복' 두 글자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 생겨났다, 그런 자신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문선생을 빼고 나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런 뭐라 할까, 독선이지요, 독선. 당당하지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거든 기도해 보라구요. 대가리를 아주 상투끈으로 해 가지고 소나무 꼭대기에다 매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고 기도해 보라구요, 거짓말 하나. 기도해 보면 내가 거짓말 했다가는 딱 표날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예」 우리가 독선파라면 최고의 독선파예요. 독선파인데 가식이 없는 독선파다 이거예요. 진실에 이탈된 독선파가 아니고 진실에 부합된 독선파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세계에서 말하는 자유 평등 행복 전부는 누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참부모를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참부모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로 모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없어도 있는 사람이예요. 불행한 것 같지만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그렇게 알고 오늘은 내일을 자랑하기 위해서 있는거요, 내일은 모레를 자랑하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내일을 자랑하기 위해서 있다 이거예요. 내일은 오늘을 자랑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예요. 오늘은 내일을 자랑하기 위해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 오늘의 승리가 없으면 내일의 승리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역사는 작은 것을 찾지만 큰 것을 찾지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복귀해 나가는 데도 개인복귀가 먼저이지요? 「예」 그다음엔 가정복귀가 먼저지요? 「예」 오늘은 작은 것인데 내일은 큰 것을 요구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내일을 위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생활무대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하루의 생활, 호흡하고 사는 그 모든 생활 혹은 행동하는 전체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것이 내일을 창건할 수 있는 제일 원천이요 제일 기반이라는 것을 알고, 그 가운데서 승리적인 방패가 되고 승리적인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스스로 하늘 앞에 자신 있게 섰다하는 그 생활의 태도를 갖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지 않으면 내일을 창건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맡은 바의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세상 사람은 내일의 꿈 가운데서 오늘을 무시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내일의 꿈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을 중요시하는 이런 생활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복귀노정이 개인복귀·가정복귀·종족복귀, 시일이 가면 갈수록 큰 복귀노정을 걸어가는 데 개인적인 기준에 있어서, 오늘에 있어서는 작은 것 같지만 작은 터전을 벗어나서는 큰 것이 연결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오늘을 세워서 내일을 빛내기 위해 사는 것이 생활상으로 나타나야 돼요. 이런 생활을 해야 돼요.

내가 곡괭이를 쥐고 땅을 파도 내일을 빛내기 위해서, 금년을 빛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생활 관념에 있어서, 오늘날 조국창건의 용사로서, 본향땅을 회복하는 하늘의 용사로서 오늘을 입증하고 내일을 빛낼 수 있는 생활 태도에 있어서, 여러분이 처한 입장에서 빛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다 이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흘린 피땀과 여러분의 수고 혹은 노고의 터전은 삼천만 민중이 제아무리 요동해도 삼켜 버리지 못해요. 이건 필시 하늘 것으로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군(郡)에서 저 군 혹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서로 연락되는 그 모든 함성과 충성의 움직임이 그 환경을 움켜 쥐어 가지고 높이 드는 날 새로운 민족 정기가 거기서부터 싹틀 것이요, 새로운 소망의 터전은 이 나라에 있어서 비로소 그곳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의 생활을 충성을 다하여서 살고, 하루의 생활을 미래를 대신하여 책임을 진 입장에서 지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오늘의 조국 혹은 본향땅을 찾을 수 있는 터전을 지니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살기를 각오했겠지요? 「예」 여러분이 그렇게 산다고 대답했어요.

최후의 승리를 하늘 앞에 돌릴 때까지 나가자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어느 곳에 가 머물든지 그곳에 가 머물 때는 반드시 전후 좌우 상하를 관찰할 줄 알아야 돼요. 내가 지금 이런 뜻을 품고 나가는 데 있어서 앞에 있는 것이 거기에 부합될 것이냐, 뒤에 있는 것이 부합될 것이냐? 사방에서 부합되는 것이면 먼저 개척해 놓고 거기에서 몇 해만 되면 나로 말미암아 움직여 나온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거기에 가 가지고 반드시 내가 누룩이 되어 가지고 그 전체를 내 뜻 앞에 삭혀 버릴 수 있는 이런 신념을 품은 사나이들이 되지 않고는 이 전체 삼천만 민족, 삼천리 반도를 하늘 앞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 만들어 놓으면 개인적인 혹은 가정적인 본향땅은 만들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삼천리 반도 이 삼천만 민족이 살수 있는 국가적인 본향땅은 못 만들 거예요. 알겠어요? 「예」

국가적인 본향땅을 만들어야 비로소 조국이라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중심삼은 하나의 선의 주권을 위주하고, 주권을 위주하여서 하나의 국토가 나오고, 국토를 위주로 한 하나의 백성이 이 우주 만 존재세계 앞에 비로소 나온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온 우주의 조국강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복지건설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복지건설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복지건설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복지건설을 위하여!」 복지건설을 위하여 우리들은 호미면 호미, 괭이면 괭이를 들고 혹은 자기의 처한 직장이면 직장, 자기가 처한 공공단체면 단체 거기에 있어서 우리가 결의한 방패를 들고 팻말을 박으면서 나가는 용사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또 그렇게 살기를 각오하겠지요? 「예」

그렇게만 되면 오늘날 전라북도에 이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건 너무 많아요. 사람이 너무 많단 말이예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모였다면…. 이 전라북도에는 몇 명이던가? 「153명….」 아, 이 손바닥만한데 사나이들이 이렇게 많아 가지고, 아가씨들이 이렇게 많아 가지고…. 예수와 성신은 2천 년 동안 움직여 가지고 세계를 정복했거늘, 오늘날 우리들은 그와 같은 신념과 그와 같은 성심을 가지고 나가게 된다면 전라북도 하나 그까짓 것 뭐…. 알겠어요? 「예」 전라북도는 여러분들이 책임 질래요? 「예」 선생님이 걱정 안 해도 되겠지요? 「예」 그러기 위해서 나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조국광복을 위하여, 본향땅을 위하여 창건의 용사로서 깃발을 들고 나서는 그 기치가 작은 기에서부터 큰 기로, 민족적인 기로, 세계적인 기로, 하늘 앞의 기로 될 때까지, 우리는 용진에 용진을 가하여 최후의 승리를 하늘 앞에 돌릴 때까지 나아가야 할 책임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것을 결의하고, 그 결의한 가운데 맹세하고, 맹세한 가운데 책임을 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한다 이 말이예요. 그렇게 되겠지요? 「예」 그렇게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내려요.

무지에서는 완성을 볼 수 없어

자, 이제 시간도 많이 갔습니다. 오늘 얘기한 내용이 뭐예요? 「본향땅…」 '본향땅과 조국광복을 위하여'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하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러해야 돼요. 이런 말 하면 여기 처음 온 사람은 그럴 거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참 대단한데, 아, 그러다가는 대한민국을 전부 다 어떻게 해 가지고 대통령 되려고 그런 꿈 꾼다' 할 것입니다. 대통령? 나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세계를 요리하겠다는 거예요, 세계를. 흐루시초프니 존슨이니…, 요전에 케네디 대통령이 죽기 전에 말이예요, 1962년 12월 28일 그때에 카리브 해안에 문제가 벌어져 가지고 소련 수송선을 막느냐 마느냐 하는 이 문제를 중심삼고 야단쳤어요. 선생님의 그때 기도가 '때려라, 때려라, 들이쳐라, 안 치면 역사가 뒤넘이친다'하는 담판기도였어요. 그때 안 하면 이 정세가 더 복잡해져요. 들이쳐라! 중공하고 흐루시초프 갈라져라! 이런 문제를 놓고 벌써 1960년도부터 선생님이 기도해 나온 거예요. 안 갈려지는 가 보자, 안 싸우나 보자 이거예요. 남 모르는 이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문제가…. 세상에 요런 문제는 문제도 아니예요. 통일교회가 이만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지금 한국정부 이상 활동한 그런 길을 거쳐왔어요.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예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서 세계주의, 천주주의, 하나님주의예요. 그렇다고 누가 뭐라 할 거예요? 종교인은 그래야 돼요. 그것이 우리 이념이예요, 우리의 이념. 문공부에 등록할 때 제1조로 그걸 쓴 거예요. 알겠어요? 「예」 힘차고 강하고 담대하라는 거예요. 이 목적을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그렇기 때문에 예수 같은 양반도 그런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 위에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 위에 그런 사명을 짊어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자기 소신을 한번 피력해 보지 못하였고, 조국광복을 외쳐 보지 못하였고, 혹은 본향땅을 찾자고 외쳐 보지 못했어요. 이를 위해서, 4천 년 동안 개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혹은 가정 이스라엘, 종족·민족·국가 이스라엘을 세워서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 준비했던 이 모든 무리들은 전부 다 깨져 나간 거예요.

민족·국가적인 기반을 타고 왔던 예수가 나라에서 몰리고, 교회에서 몰리고, 사회에서 몰리고, 가정에서 몰리고, 세계에서 몰리니 죽을 수밖에 더 있어요? 몰려서 할 수 없이 십자가에 돌아갔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십자가 구원이다' 하지만…. 구원은 구원이지요, 영적인 구원. 내용을 잘 모른다구요. 맹목적인 신앙이라구요. 기독교 완성이라는 것은…. 무지에서는 완성을 이루지 못해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무지에서는 완성을 볼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얼마나 치밀한지.

그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가 해원하고 싶었던 혹은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서 4천 년 동안 민족적인 해원과 민족적인 뜻을 세우려 하던 것을 소원성취하자는 거예요. 2천 년 이후인 오늘날 한국강토 통일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번 해원해 보자 이거예요. 해원해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주고, 예수와 성신의 한을 해원해 주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 연결된 것이 아직까지 해원성사를 못 했기 때문에 제3 이스라엘기치를 드높이고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중을 아버지 뜻 앞에 세워 가지고 이 천주사적인 해원성사를 하여 해방의 한날을 맞게 하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념 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조국,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본향땅을 창건해야 할 이 엄청난 사명이 보잘것없는 우리의 두 어깨에, 30억 인류를 넘어서 전반적인 역사 전체가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자기의 생활의 취미로 알고 가지 않으면 이 길을 못 간다는 거예요. 취미로 알고 가야 돼요. 이것을 어렵다고하고 역경으로 알면 절대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걸 타고난 팔자로 알고…. (이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

선과 악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 있는 나

나를 중심삼고 보면 여기에는 가정이 있고 사회가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라는 것, 이것은 연결되어 있지만 하나가 되기 힘든 것입니다. 또, 더 크게 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는 대한민국과 수많은 세계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여러분입니다. 또,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거기에는 지금까지 이 뜻 앞에 있어서 반대되는 사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 앞에 반대되는 악이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그러한 두 상대를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자체가 누구냐 하면 '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중심삼고 오른편으로 가면 선이 될 수 있고, 왼편으로 가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소망을 품고 가면 선이 될 수 있고, 절망을 품고 가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사화복의 모든 원인이 나를 중심삼고 나와 관계를 갖고 주위에 나타나 있는 것을 우리는 현세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삼각점, 이러한 삼각적인 기점을 내 한 자체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우로 향하느냐, 혹은 좌로 향하느냐 하는 데 있어서 그 삼각관계의 각도는 크고 작은 차이로 점점 벌어지는 거예요. 이런 견지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과 사탄이 오늘날까지 인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인류의 축소판인 내 한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싸움을 전개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 싸움터에서 벌어지는 비참은 시간이 흘러가도 지나갈 줄 모르고 역사와 더불어 연면히 그 인연을 맺고 나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인연은 역사적인 인연인 동시에 여러분들이 생활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인연입니다. 오늘날 현실의 내 한 자체 가운데 있어서도, 마음과 몸을 중심삼은 가운데 참된 나를 중심삼고 소망할 수 있는 그런 기준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싸움은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섭다면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요, 어렵다면 엄청나게 어려운 기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누구냐 하면 현실의 '나'라는 거예요. 이 '나'가 어떠한 행동을 해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 나는 주체의 입장에서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요, 그런 나를 주체적인 입장에 선 분이 또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거라구요.

하나는 이리 가고자 할 때 하나는 이리 가라고 하는 것이요, 하나는 저리로 가게 될 때 하나는 거기로 못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길에서 방향을 가려 가지고 인생행로를 올바르게 개척하여 본연의 목적지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난 사명을 앞에 놓고 있는 나 자신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삼각점상에 서 있는 '나'라는 것을 지적해 놓고, 그 '나'는 누구의 것이냐? 그 '나'가 누구의 것이냐?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 이 '나'가 누구의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나'라는 것은 지극히 귀합니다. 내가 남한테 한마디의 섭섭한 말을 듣는 것도 나는 원치 않아요. 혹은 괴로운 일을 당하기를 나는 원치 않아요. 나는 좋은 것, 즐거운 것, 행복한 것,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바랍니다.

참다운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는 데 바라는 것이 참다운 내 한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못하니,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한 환경을 내가 수습하든가, 이것을 잡아치우든가, 혹은 이것을 청산해 버리든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청산해 버렸어도 그것이 안 되거들랑 기쁨과 혹은 행복과 만족이라는 어떠한 그 무엇을 내가 만들어 놓든가 하는 이런 책임적인 사명을 해야 돼요. 이러한 사명을 하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오늘날 여러분들입니다.

사방을 돌이켜 보면 돌이켜 볼수록 이것이 자유스러운 환경이 아니예요. 무엇인지 모르게 부자유스러워요. 이리 가도 편안치 않고, 저리가도 편안치 않아요. 그러면 나는 내가 말할 수 없이 귀한 것을 자인하면서 귀한 내 자체가 원하는, 좋아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성사시킬 수 없는 내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것이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일생을 걸어 놓고 해결지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은 사탄과 인연되어 있어

그러면 이런 기로에 선 내가 왜 이렇게 됐느냐? 여러분 자신도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더듬어서 '너는 누구의 것이며, 너는 누구냐? ' 하는 견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외국 같은 데 가서' 네가 누구냐? ' 하게 되면 반드시 그땐 뭐 고향도 물어 보는 거예요. '네 본적이 어디냐? 네 국적이 어더냐? ' 이렇게 물을 거예요.

그러면 네 자신이 누구냐? 어느누구의 것이 되기 전에 네 자신이 누구냐 하는 이런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나'라는 자신을 여러분은 두고 생각해야 돼요. '너는 누구냐?' 하면 '아, 나는 아무개 집 아들이다'그렇게 나올 거예요. 또 조금 더 나아가서는 '아, 우리 본적지는 전라도다' 하고, 혹은 '강원도다' 하고, 혹은 '경상도다'라고 하는 거예요. '주소는?' 하면 본적지는 아무데에 있지만 주소는 현재 뭐 서울이라든가 그러는 거라구요. 또, 좀 더 들어가서 '너는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느냐?' 할 때는 대한민국 무슨 뭐….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의 본적지와 여러분의 주소와 여러분의 부모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 기반, 생활의 기반이 되어 있는 제반 존재세계와 사회의 터전이 과연 '나'라는 귀한 존재를 보장할 수 있는, 기쁨의 여건을 제시해 주는 자유스러운 입장에 선 존재들이 되어있느냐 하면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조국은 과연 내가 원하는 조국이냐? 안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태어난 본적은 내가 본래 원했던 본적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주소는 과연 내가 영원히 살고 싶었던 그런 주소가 되느냐? 안 그렇다는 거예요. 지금의 내 부모는 영원히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부모가 되겠느냐? 안 그렇다는 거예요.

현재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하고, 이 세계가 그러하니 그러한 세계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인 너는 누구냐? 더 나아가서는 '누구의 입장을 지녀 가지고 너는 누구의 것이냐?' 하게 될 때, 보편적으로 이것의 결론은 '나는 선한 세계의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의 것이다' 이거예요. 악한 세계의 것!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찾아나가는 데 있어서 철두철미한 이런 관점에서 너는 누구의 것이었느냐 할 때, 나는 전체를 대표해서, 혹은 이 세계를 대하나 역사를 대하나 현세를 대하나 앞으로의 미래를 대하나, 혹은 고향을, 혹은 뭐 전체를 대표해서 나는 누구의 것이냐 하면,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고 있는 이 두 세계권 내에 있어서 내가 본심으로 요구하는, 본심으로 찾고 있는 모든 소원과 찾고 있는 모든 내 희망을 달성시킬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외에 처해 있으니 이건 두말할 것 없이 악한 세계의 것이다 이거예요, 악한 세계의 것.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후손들은 두말할 것 없이 사탄의 것이다 이거예요, 사탄의 후손.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탄의 세계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도 사탄의 나라요, 내가 태어난 본향 땅도 사탄의 본향이요, 나를 낳아 준 부모도 사탄세계의 부모요, 나와 같이 살고 있는 형제도 사탄세계의 형제요, 나와 같이 배움의 자리에서 같이 배우는 친구들도 사탄세계의 친구예요. 내가 이 땅 위에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일도 역시 나의 것은 없어요. 사탄세계와 인연이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이런 견지에서 너는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이냐? 이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개재시켜 악을 타파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목표

내가 이런 자리에 설 때까지는, 오늘 이런 현실의 입장에 선 내가 이와 같은 자리에 설 때까지는 역사적인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이와 같은 자리에서 눈물을 짓고, 이와 같은 현실의 무대를 타개하고 개인적인 선의 터전을 마련하고, 개인적인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싸워왔지만 진정한 개인적인 선과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내 한 가치를 중심삼고 볼 때, 귀중한 내 한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내가 고대하는 참다운 개인의 가치, 참다운 개인의 귀한 것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을 찾지 못하였으니 가정을 찾을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을 찾지 못하였으니 민족, 국가를 찾을 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개인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까지 아직 찾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참다운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다운 나를 찾고 있는 참다운 하나님도….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든지 느껴야만 된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젊은 이 청춘시대에 있어서는 까딱 잘못하면 자기 일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연한 이 두 갈래 길 가운데 있어서 내가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이러한 배후의 종교를 갖고 있으니 십중팔구 어디에 가까우냐? 이 세계에 가깝다는 거예요.

먹고 자고 깨서 느끼는 모든 감각, 모든 의식은 전부 다 이 권내에서 작용하여 나에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용하는 모든 인식권을 타파하고 이것을 정복하고 나선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그러한 입장에 선 나, 그렇다고 해서 내 일생에 있어서 이 세상에 있어서 나 자신이 무력하다고 만일에 후퇴라든가 포기를 하면 그건 절망이예요. 그것으로써 내 일생은 청산짓게 된다는 거예요. 도저히 이 세계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이 경계선을 타파해야 돼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국가ㆍ세계적으로 이것을 타파하여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양심을 중심삼고 고대하면서 거기에 하늘이라는 것을 개재시켜서 생활의 무대를 더듬어 나오는 것이 종교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하나님을 개재시켜 가지고 내 참다운 양심을 여기에 밑받침하여서, 하늘과 내 양심의 호소에 응할 수 있는 하나의 충격과 자극을 통하여서 현실적인 모든 악의 여건들을 타파하고 이 경계선을 돌파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주장하고 나서는 최고의 목표인 거예요.

거기에는 개인이 개재하여 들어가는 것이요, 가정이 들어가는 것이요, 종족·민족·국가·세계, 온 천주가 들어가는 거예요. 이러한 기준에서의 싸움 무대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들은 지금까지 살아 나온 이 세계의 것이 되지 않고 새로운 주인, 새로운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원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참다운 영원무궁한 세계, 그야말로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 평화의 세계, 영원무궁한 그 세계를 여러분의 본심이 그리워하니 그 그리워하는 세계를 우리에게 세워 주기 위해 하나님도 수고하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수고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젊은 여러분들이 결의하고 가슴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좋은 것은 이 땅 위에 하나도 없다, 세상에는 참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거예요. 나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물론 나예요, 나. 그런 나 자신도 진정 좋아할 수 있는 내가 못 돼 있다 이거예요. 내가 그러니 우리 가정도 좋은 가정이 못 되어있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이 세계가 모두 다 좋지 않은 세계가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단결해서 나선 것이 무엇이냐? 참다운 것은 이 땅 위에 없다 이거예요. 어디에 있느냐?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것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참다운 것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단결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입장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참다운 것은 없다 이거예요.

내가 공부를 하고, 내가 자라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지금까지 참다운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했댔자 이 경계선을 넘지 못하였으니 어차피 사탄세계의 봉헌물이 되고 만다는 거예요. 제아무리 좋고 제아무리 기쁘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기쁘되 사탄세계에서의 뒤넘이치는 기쁨으로서 사라지고 만다는 거예요. 본래 우리 인간이 소원하고 찾아나가는 본래의 기쁨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신념을 가져야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나는 누구의 것이냐 하는 신념 밑에서 나는 하나님의 것이 돼야 되겠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런 결정적인 입장을 여러분이 취하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참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의 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의 것은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것인 내가 나타나는 곳에는 참되지 않은 게 없다, 좋지 않은 것,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악과 타락이 없다, 참과 거짓이 한 자리에 설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한 나라는 거예요.

그런데 과연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느냐? 참된 자신을 이미 알아 가지고 그 참의 가치와 내용을 길이길이 지닐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참이라는 것은 한때 시작했다가 쓰러지는 것이 아니예요. 한때 힘있게 출발하였으면 그 힘은 영원을 향하여 뻗어 나가야 돼요. 한때 늠름했으면 그 늠름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더라도 유지해야 돼요. 아무리 악을 대하더라도 늠름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찾아 나가는 것은 현실에 있어서 사탄세계권 내의 소유물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망의 주체인 하나님 앞에 있어서 결정적인 소유물이 되기 위해서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런 신념을 갖고….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과 다르다 이거예요. 너희들은 이렇게 이렇게 가다가 이렇게 되는 것이요, 나는 이렇게 가다가 이렇게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고 스스로 결론을 지은 입장에서 비교하면서, 비판하면서 가서 부딪쳐 가지고, 악과 부딪칠 적마다 선이 승리할 수 있는 그 불변의 모습과 자세를 갖출 수 있는 나, 이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이런 신념과 이런 이념을 품은 우리 통일의 젊은 학도라 할진댄, 그 학도의 자세야말로 어디 가든지 그 주인이 바라고 지향하는 본향을 향해 달리는 데 있어서 어느 누가 다시 여기에 개재해 가지고 좌우할 수 없다 이거예요. 이야말로 절대적이다 이거예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극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이 필요하고, 혹은 부모가 있다면 그것이 필요하고, 혹은 사회가 있다면 그것이 필요하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다면 그것이 필요할 뿐이지 그외의 것은 필요치 않다 이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를 세상에서 지도하는 스승이 있걸랑 그 스승이 이와 같은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는 스승이냐?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이런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필요한 친구냐? 혹은 형제면 형제로서 얼마나 필요한 형제냐? 부모면 부모로서 얼마만큼 필요한 부모냐? 이 사회면 사회가 얼마나 필요한 사회냐? 혹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 필요한 나라냐 이거예요.

만일에 개인이 그러하지 못하거든 이 개인을 뜯어고쳐서 내가 필요한 개인을 대신하겠다, 가정이 그러하지 못하거든 가정을 뜯어고쳐 가지고 내가 그 가정을 대신하겠다, 사회가 그러하지 못하거든 이 사회를 개조하여 그런 사회를 내가 대신하겠다, 나라가 그러하지 못하거든 내가 대신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그런 나라의 사명을, 책임을 내가 지겠다 할 수 있는 , 신념에 사무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 수는 무수하다 이거예요. 개인으로부터 세계·천주까지 꽉차 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이 세계로 가려 하는 나 자신은 언제나 외롭다 이거예요. 외롭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 외로운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내가 사랑하고 내가 필시 가야 할 참의 그 여건을 내 마음에 지니고 내 생활에서 이것을 투쟁의 여건으로 하여 마음적으로 그리워하는 그 개인과 마음적으로 그리워하는 가정과 마음적으로 그리워하는 사회·종족·민족·국가를 거쳐서 전세계, 하나님의 크나큰 이 우주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적으로 동해 가는 그 마음이, 흠모의 마음, 혹은 흠모의 심정이 현실 실체 세계에 나타난 이 악의 세계의 모든 여건보다도 더 강하게 서 있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이거예요. 어느 한때에는 꺾여진다는 거예요. 내가 마음으로써 그리고, 마음으로써 위하고 나가는 것은, 그 마음으로 스며드는 그 기쁨을, 혹은 선하심을, 혹은 행복감을 느끼는 그 느낌은 세상 그 무엇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이거예요. 절대적인 권위에 입각해서 여러분들이 바라보고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전에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에 휩쓸려 들어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지도받는 입장을 결정짓는 것

그러면 이러한 대세계에, 이 선상에 서 있는 대우주 전체와 나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와 역사적인 수많은 인류, 혹은 악한 세계의 수많은 인류와의 대결에서 참이라는 입장에 입각해 보게 될 때 '하늘이 과연 붙들 수 있는 입장에 선 나다'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이 나라와 부딪치게 될 때 '내가 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희들보다 강하고, 참을 위하는 입장, 참을 위해 선 자리가 너희들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강한 것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수많은 죄인은 나타나라. 내가 주장하고 내가 행함에 있어서 너희들은 굴복당한다' 그런 신념이 있어야 된다구요.

내가 살고 있는 가정은 이러한 가정이니 이 가정적인 권을 중심삼아서 인연맺어진 형제가 있으면 단결된 형제가 사탄세계의 수많은 역사성을 띤 가정을 전체 앞에서 비웃을 수 있는 입장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보게 된다면 가정을 지나면 종족적인 이 권내를 지나서 민족적인 책임을 해야 할 하나의 교단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교단은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휩쓸려 나오던 그러한 종교와는 다르다 이거예요. 다르다 이거예요. 부딪치면 깨져 나간다 이거예요. 치면 깨져 나가요. '우리가 너희들 앞에 들어가면 너희들이 우리들을 삼켜 버리지 못하지만 너희들이 우리 앞에 들어오면 삼켜 버린다' 그런 자신을 가져야 된다구요. 참과 악이 대결하면 악이 패하는 거예요. 이런 판국이예요.

때로는 외로울 때가 있다 이거예요. 외로울 때가 있어요. 동지가 없어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요, 혹은 식구가 없어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요, 혹은 부모가 자기의 입장을 옹호해 주지 못하니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요, 학창생활에 있어서 자신을 옹호해 주지 못하니 외로울 때도 있을 것이예요. 혹은 이 나라 이 민족, 세계무대를 향하여 나서게 될 때 환영받지 못하면 거기에 외로움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나를 정복하지 못한다 이거예요. 그 외로움을 내가 정복한다, 내가 거기에 정복당하지 않는 다, 그 어떠한 외로운 입장에 당면하면 고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있더라도 그 고통이 나를 정복하지 못한다, 내가 그 고통을 정복한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갈래의 기로에 선, 이 삼각초점에 서 있는 나 자신은 언제나 누구의 것이냐 할 때 남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결정을 지은 자리에서 확신을 갖고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한 세계에 있어서 분별된 내 개체를 중심삼고 볼때 이 크나큰 수고 앞에 비록 외로운 개체지만 이 개체적인 입장에 있어서 이것과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걸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싸움을 해야 돼요. 그냥은 굴복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걸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가 위에 가든가 하나가 아래에 가 깔리든가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라는 것은 승패가 관건인데, 승패라는 것은 좌우에 서 가지고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위에, 하나는 아래에 있어 가지고야 결정되는 거예요. 위로 가는 것은 하늘의 지도를 받아야 돼요. 지도받는 입장을 결정짓는 거예요. 싸움은 주권을 결정짓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평면적인 입장에 선 싸움터 위에서 내가 하나의 삼각점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디로 가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자신들이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사탄세계에서 사탄 것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결정짓고,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어디로 갈 것이냐? 그건 두말할 것 없다구요. 결정지었으면 거기에서 '아, 됐다. 잘 있거라 세상아. 나는 간다'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게 아니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싸움이 지상에 남아 있으니 남아 있는 이 지상을 책임지고 이것을 청산짓기 전에는 갈 수 없다 이거예요. 내가 그런 입장인 동시에 하나님도 역시 그런 입장이니, 그분이 그런 입장이니 그 분 것인 나 자신도 그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 것으로 결정지어지면 사탄세계에 들어가야

어디로 갈 것이냐? 그러한 내가 어디로 가느냐? 그러한 예수님이 어디로 갔느냐? 어디로 가는 거예요? 자기 집에 가서 '아, 이젠 나는 됐다.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를 모셔 놓고 살림살이 잘해 보자' 하지만 안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이놈들아, 덤벼라! '하고 개인들이 뭉쳐 있으면 헤쳐 버려야 돼요. 가정이 있으면 헤쳐 버려야 돼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이놈들이 단결해 있으면 안 된다 이거 예요.

그래서 역사는 뒤넘이치면서, 하나님도 역사하시는 거예요. 수많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나님은 그 놀음을 해 나오시는 거예요. 가정에 있는 전통이라든가 사상이라든가 하는 걸 전부 다 헝클어 놔 가지고, 나중에 저 맨 끝날에 가서는 전부 다 개인주의 사상이 결실할 수 있는 시대로 찾아간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좋고 이익될 수 있으면 따라간다 이거예요. 사람은 그래요. 좋고 손해 안 보면 따라가는 거예요. 그런 한때를 마련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여기에 들어가 가지고 이 생활적인 기반을 혼란시켜 가지고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거예요. 그리로 가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이리 가라 이거예요. 한꺼번에 180도 돌려놓을 수 없으니 한사람을 보내 가지고, 이것이 북쪽에 있던 것을 동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이래서 이걸 동으로 돌리고, 또 동으로 돌리고 해서 결국 남으로 돌려야 된다 이거예요.

역사는 이러한 전환의 방향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구라는 것을 결정지은 입장에서 그다음에는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사탄세계에 들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복귀도상에 있어서 야곱이 야곱으로서의 하나의 소유권을 결정하고 난 후에 어디로 갔느냐? 사탄세계에 들어갔다 이거예요. 축복을 받고는 어디로 갔느냐? 라반을 찾아갔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축복의 기반을 닦고 나와서는 어디로 갔느냐? 애급을 찾아갔다 이거예요. 기독교 신자들이 축복의 기반을, 재차 축복적인 인연을 세워 가지고는, 우리는 하늘 것이라는 결정을 지어 놓고는 어디로 갔느냐? 로마로 찾아들어갔다 이거예요.

그러면 찾아들어가게 될 때 그 나라의 권한과 그 나라의 위신과 그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의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그 나라의 물건에 대해서는 애착심을 갖지 말라 이거예요. 물건에 대해서는 애착심을 갖지 말라 이거예요. 무엇을 대하여 애착심을 가져야 되느냐? 그 나라에 있어서의 아벨적인 사람 앞에 애착심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 나라에 있어서의 아벨적인 사람, 그 나라의 양심적이요 그 나라의 선한 사람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져야 돼요.

그러면 그런 악한 세계에 있어서의 양심적이요 선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몰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을 옹호하고, 선한 사람을 옹호하고, 비참한 사람을 옹호하고, 불의에 지배받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그런 의분심에 불탈 수 있는, 공분의 마음에 사무친 사나이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가 피해를 받게 될 때는 내가 대신 슬퍼진다는 거예요.

오늘날 하늘은 이러한 심판을 해주되 무엇으로 심판하느냐? 이 세계의 법도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예요. 심판해 주기는 심판해 주는데 악한세계에 있어서의 그 모든 법도를 중심삼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세계의 법도를 가지고 심판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심판의 결과는 공의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의 결실은 공의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공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도…. 나라의 헌법을 세우기 위해서는 일개 국민을 희생하더라도 세워야 돼요. 마찬가지라구요. 천적인 헌법을 악한 세상에 적용하여서 이것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가 쓰러져 가더라도 그 헌법을 사랑하고, 그 헌법을 존중하고, 그 헌법의 판결을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야 돼요. 판결을 내린 그 사실에 대해서는 원망을 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해야되는 거라구요. 그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니 그 결과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죽더라도 고맙게 생각해야 돼요.

전세계를 대표하여 전체의 가치를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

그러면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작용과 활동을 개인적으로 적용하여 삼천만 수많은 민중 가운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개인이 그런 활동을 적용하게 될 때 삼천만 민중이 전부 다 움직이면 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개인의 움직임이 세계로 움직여 가지고 하늘 앞에 전부 다 동원될 수 있게끔 만드는 그런 한때를 마련하는 거예요.

이것이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의 때를 한꺼번에 뭉쳐가지고 한꺼번에 한 초점상에 이것을 전부 다 뭉쳐 가지고 나타내어 판결을 지어야 하는 거예요. 끝날의 판결의 주인공으로 오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분은 무엇을 갖고 오시느냐? 하나님을 모시고 오는 것이요, 하늘나라를 모시고 오시는 것이요, 천주의 대이념을 품고 오시는 것이요, 만민이 소원하는 소원을 갖고 오시는 것이요, 만권한 중의 권한을 갖고 오시는 것이요, 악을 대한 최대의 승리를 갖고 오시는 거예요. 전부 다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상에 나타난 전체의 소원을 가지고, 악한 이 세계에 와서 참다운 공의의 법관이 될 수 있는 법관들을 세워 가지고, 이것을 심판해서 심판한 그 나라를 중심삼고 천국을 이루어야 된다는 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예수가 그런 것을 갖고 온 그 나라에서 그러한 일을 이루면 그것은 천국이 되는 거예요. 심판한 그 나라에 와서, 심판받아야 할 원수의 나라를 중심삼고 이 크나큰 선의 이념세계를 이루어 나가는 그런 사명을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다 이거예요. 그러려니 심판이라는 명사가 안 나올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금후의 이 메시아는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수천 년 동안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개인 하나가 나타났다 할 때 '네 본심이 원하는 개인이 너냐?' 하면 '아니다'라고 합니다. '네 본심이 원하는 개인이 역사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영원히 바라던, 그 본심이 원하던 그 개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이냐?' 하면 '아니다'라고 한다 이거예요. '그 역사적인 너를 대신할 수 있는, 그 너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나다' 그런 입장에 선 분이 메시아예요.

역사적인 가정을 대신해서 나타내게 될 때 그 가정들 앞에 있어서 가정을 지도할 수 있는, 혹은 가정의 주인 될 수 있는─가정은 부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뜻합니다─역사적인 가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 오시는 메시아는 누구냐? 수많은 역사적인 가정의 주인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마음에 고대하고 있던 참다운 본연의 그 가정의 주인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냐? '참다운 가정의 본연의 주인이 나다' 하는 분이 메시아예요.

수많은 족장이 있으면 그 족장들이 원하는 그 본연의 족장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나다' 하는 분이 메시아예요. 수많은 나라의 대표자들이 본심으로 원하는 그러한 대표자냐? 아니라는 거예요. '나다' 하는 분이 메시아예요. 개인으로부터 전세계를 대표하여 전체의 대표의 가치를 가지고 오시는 분,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예요, 메시아.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내가 그릇이 커서 세계적인 영향을 받고 그 세계성을 붙들고 하나된 경우에는 세계적인 인물도 될 수 있는 것이요, 그릇이 작아서 종족적인 지도자의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그릇을 가져 가지고 그것을 합하면 그런 입장의 대표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완전을 표준한 그런 기대에서 그와 하나되면 개인적인 표준대가 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적인 전체의 소망의 여건을 가지고 오는, 악한 세상에 있어서 수많은 인류들의 소망이나 생활이나 행동 등 모든것을 총합한 모체, 즉 누룩과 같은 그 자체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다 이거예요.

메시아 한 분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어떻게 이 땅 위에 올 것이냐? 이 땅에 와 싸움을 시키는 거예요. 싸움을 시키는 거예요. 싸움을 시키는 데는 무슨 싸움? 세계적인 싸움을 시키는 거예요. 거꾸로 되는 거예요, 거꾸로.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들이 대신 싸웠어요. 하나님이 지상에 내려와 사탄과 싸움이 벌어져 가지고 하늘 대 사탄이 싸웠으니 이제는 메시아가 지상에 하나님 대신으로 와 가지고 사탄을 대해 가지고 싸워라 이거예요. 누가 참인지, 참과 거짓을 대 봐라 이거예요.

무엇으로 대 보느냐? 생활로 대 봐라 이거예요. 행동으로 대 봐라, 말씀으로 대 봐라, 이념으로 대 봐라, 혹은 그 가정제도로 대 봐라, 사회로 대 봐라, 국가로 대 봐라 이거예요. 다 못 당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선 참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이런 참다운 종교인들이 규합돼야 된다는 거예요.

종교인들을 규합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목적이 같아야 돼요. 그렇지요? 「예」 목적이 같아야 돼요. 목적은 같은데 어떻게 됐느냐? 방향이 다르면 안 된다 이거예요. 남산을 가는 데 저기 뭐 미국에 갔다가 와 가지고 올라갈 거예요? 목적이 같아야 되고 방향이 같아야 됩니다. 이런 세계가 오기 때문에 하나의 목적을 향한 하나의 방향이 필요하니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방향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이 필요하다, 하나의 사람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거예요. 그러한 입장이예요.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방향을 완전히 전인류가, 과거인도 물론이요 현재인도 물론이요 미래인도 '옳소이다' 할 수 있는 그런 자체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다 이거예요. 그 자체에는 개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는 개인의 대표요, 가정의 대표요, 종족의 대표요, 민족의 대표요, 국가·세계, 혹은 하나님의 전체성을 대표해서 대신할 수 있는 대표자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가 가는 목적지는 틀림없는 것이요, 그가 가는 방향도 틀림없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욕심이 뭐예요? 세계 인류를 정복하고 싶지요? 「예」 서양사람은 그럴 거예요. 아, 인류를 내 수중에 넣고 마음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만한 욕심이 있어요? 더 큰 욕심을 가졌지요. '아, 하나님도 구하고 인류도 구해야지' 그런 욕심도 있는 거예요.

그러면 메시아 하나만 딱 쥐어 놓으면 30억 인류는…. 메시아 하나만 딱 쥐어 놓으면 그 심정에는 하나님이 몽땅 달린다 이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하나님이 몽땅 달리다니요? 달렸다는 거예요. 아무리 부모가 돼서 뭐라 해도 자식한테는, 자식의 심정 앞에는 몽땅 달렸어요. 달렸어요, 안 달렸어요? 칼을 대고 '엄마, 나 죽소!' 해보라구요. '아이고!' 하지요. 자식 울기 전에 항복하는 거예요, 죽기 전에.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달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메시아에 달린다는 거예요. 오늘날 그러한 메시아를 맞기 위한 과정에 있어서, 이 과도기에 있어서 하나의 목적을,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라 이거예요. 갖추려니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주의가 나오는 거예요. 주의는 방향성을 말하는 거예요. 주의, 주의라는 것은 수평이라구요.

진리로써 찾아 나가는 그런 입장에서 진리가 필요한 것이지 자체를 누리기 위해서는 ….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찾아 나가자는 거예요. 목적점은 다 비슷해요. '아, 세계는 하나의 영토다. 아, 이 땅에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져야 된다. 선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된다 하는 목적은 같은데 방향이 다르다 이거예요. 그래서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방향이 달라진 것이 선악의 행적이었다 이겁니다. 그렇지요? 「예」 그 사랑을 중심삼은 개인이 있었고,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이 있었고, 사랑을 중심삼은 종족·민족·국가·세계가 있었고,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있었다 이거예요. 여기서부터 방향이 달라졌다 이거예요.

그러면 사탄세계도 목적이 다 같겠느냐 이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의 세계의 목표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 하나의 세계를 대하는 역사적인 방향은 필시 그런 방향으로 거쳐가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가 나타나기 전에 지금 분립된 두 방향성이 나타났으니 하나만 정비되면 하나의 방향성이 그걸 결정지어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가 지금 이때예요.

그러한 와중에 여러분이 서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서 오늘날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나는 누구의 것이냐 하는 것을 완전히 결정지어야 할 것입니다. 결정 지었으면 너는 어디로 갈 것이냐? 갈 곳은 당연하다는 거예요. 네 원수를 잡아치우러 가야 되는 거예요. 오시는 메시아의 뜻을 세우는 책임을 짊어져야 돼요. 그곳을 가야 돼요. 그곳이 교회 아니냐 할 때에 교회 아니예요. 어디냐? 원수의 도성이로구나!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젊은 가슴에 각오해야 할 것은 나는 또 저 도성을 향하여 가는 데는 맨 중앙의 사령관권에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동작하는 것을 살펴라, 그가 행동하는 것을 감시하라, 그가 나쁘고 선하고 흑은 옳지 못한 것을 분별하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를 대해서 주시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를 대해서 주시할 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이게 젊은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생활태도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너를 심판할 수 있는 한날을 가지려면 적을 수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있어서 악당은 누구냐? 혹은 선한 사람은 누구냐? 선질은 무엇이며 중질은 무엇이며 악질은 무엇이냐? 분별하라는 거예요. 이것은 여기로 갈 것이고 이것은 여기로 갈 것이 아니냐, 이건 재생할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니 준비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다 준비하라는 거 예요.

내가 위정자를 위해서 그걸 생각하고 이 세계의 위정자가 참의 것이냐 악의 것이냐를 살펴라 이거예요. 살펴서 옳지 못하거든 제거시키고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이념을 지상에 성취하여 하늘의 철천지 원수인 사탄을 이 지구성에서 추방하고 우리의 선조와 그 한 혈족들을 지금까지 유린하던 이 원수의 피를 피로써 탕감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갈 줄 알아야만 된다는 거예요.

생명이 있는 존재는 자기 몸을 가꿀 줄 알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수많은 나라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존재 중에서 지극히 미미한 존재같지만 우리는 죽지 않았다는 거예요. 죽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무리 큰 나무더라도 죽은 나무는 동삼삭이 찾아오면 전부 다 그 자체가 꽁꽁 얼어서 바람이 불면, 태풍이 불어오면 그 가지는 동풍에 꺾여 나가는 것이요, 서풍에 꺾여 나가는 거예요.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부 다 꺾여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모습은 죽은 것 같지만 그 가운데 생명력을 가진 나무는 동으로 바람이 불면 서쪽으로 거두어 진다 이거예요. 아무리 설한풍이 불더라도 거기에 있어서의 자기 생명력과 자기가 지닐 수 있는 몸을 가꿀 줄 아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극히 미미하고 지극히 가련한 모습으로 서 있지만, 동삼삭의 눈속에 묻혀 있는, 산골에 있는 풀과 같이 화창한 봄날을 맞이하게 될 때는 천하에 자기 자태를 자랑하며 '내 가진 가치와 자태가 이러하다'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만천하 앞에 움직여 나타낼 수 있는 그날을 준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산골에 있는 풀이 그날을 준비하는 때와 시기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젊은 그 가슴에 지금 자기 스스로 당하고 있는 자체를 탄식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들이 미미하더라도 미미한 자체를 탓하지 말고 이 가운데 있어서 앞으로 미미한 환경을 뚫고 한때를 맞이하여 세계적으로 빛낼 수 있는 그 자체를 그리워해야 돼요.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 신념 밑에서 그런 능력과 그런 자신과 그런 기백을 세워 놓고 '내가 그 일을 대해서는 굽히지 않는다. 밀면 네가 넘어갔지 내가 안 넘어간다' 하는 관이 필요한 거예요. 넘어져도 나가야 돼요. 그게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많이 했어요. 어제도 잠깐 얘기했지만 절대 지나갈 수 없었다 이거예요. 그러니 낑낑거려야 돼요. 나가자! 지는 것 같지만 나가자! 그런 기백을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사탄세계를 뚫고 지나가게 될 때 그 가정이 뺑 갈라진다 이거예요. 한번 갈라놓으면 붙지 못해요. 깨져 나갑니다. '아, 통일교회는 가정을 파괴한다'라고 하는데, 내가 파괴했나요? 한 번 쓱 지나갔다 오게 되면 자기들이 붙어 다녀요. 그래 가지고 안 되거든요. 통일교회에 한번 들어왔다 나가 보라구요. 나가서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세상의 누가 보아도 못 하거든요, 그걸.

그런 가운데 오로지 우리가 크고 커서 수많은 종교를 향해 가지고 한번 갔다 오게 될 때 종교들은 자기들이 합하지 못한다구요. 우리는 누룩으로 합하면 합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한 번 거치고 나면 우리는 합하려고 하지 않아도 합해져 버린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신념을 갖고 해요.

내가 오늘날 미국에 가고 일본에 가서도 그래요. 일본에 가 가지고 아무리 일본 제국주의 뭐 어떻고 어떻고 하더라도, 우리 통일이념만 한번 쑥─그 나라의 궁전까지, 1억 되는 이 일본 국민들의 사상권 내를 한번 뚫고 갔다가 나오기만 해도 우리를 떼어 놓고서는 절대 합하지 못한다구요. 민주세계라는 이 사상 체제권 내에 우리가 한번 우─들어갔다 나오는 날에는 우리를 중간 매개체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꿰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 두 사상 사이를 우리가 한번 지나갔다 오는 날에는 우리를 갖다가 매개체로 하기전에는 꿰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

그러면 악의 자리를 꿰매고는 '이것은 터지기 전까지 안 찢어진다. 이것은 안 찢어지고 네가 찢어지니, 네가 찢어진 이 다리를 붙들고 갈라지게 되었으니 찢어져 나가는 다리를 붙들고 사탄아 떨어져 나가라' 해야 되는 거예요. 여기 그런 사람 있어요? 단단히 붙들었어요? 「예」 단단히 붙들었어요? 「예!」 손을 한번 내 보라구. 손을 한번 내 봐!내가 가서 '얏!' 하면 뽑혀 나갔지 안 뽑혀? 「예」 '얏!' 하면 뽑혀 나간다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이 옛날에 이런 기도를 했어요. '아 오늘은 삼천만 가운데 수많은 종교인이 있고, 수많은 기도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 시간에는 나한테 뽑힌다' 그랬어요. 줄을 갖다가 걸어 놓고 '으으응! 너희들 졌지?' 이런 기도 많이 했어요. 저기서 발이 끌려오지 안 끌려와요? 여러분은 그런 실력을 닦아야 돼요, 더우기나 젊은 사람들은.

남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돼야

우리 원리가 얼마나 방대한 내용을 갖고 있느냐? 어떠한 한 분단적인 지식을 가지고는 생각하기 곤란해요. 방대하고 엄청나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내가 살이 찌고 싶은데, 내가 살이 좀 찌고 싶어요. 살이 찌면 좋겠어요? 살이 찌면 좋겠나, 나쁘겠나? 「좋습니다」똑똑히 대답하라구요, 살이 찌면 좋지요? 「예」 얼마만큼 살이 찌면 좋겠어요? 살이 너무 쪄서 도사가 되면 어떡해요, 너무 쪄서? (웃음)

살이 찌려면 뭘 먹고 살이 쪄야 돼요, 뭘 먹고? 뭘 먹고 살이 쪄야 돼요? 여러분들 잡아먹지 않으면 사탄을 잡아먹어야 돼요. 둘 중의 하나는 잡아먹어야 돼요. (웃음)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누구 하나가 희생되어야 돼요. 희생되어야 된단 말이예요. 원칙은 간단한 거예요.

하나님이 살이 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를 잡아먹든가 사탄을 잡아먹든가 둘 중의 하나는 잡아먹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살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둘 중의 하나는 잡아먹어야 돼요. 외국 국민을 잡아먹든가 이 나라 이 백성을 잡아먹든가 둘 중의 하나를 잡아먹어야 된다구요. 그거 철칙이지요? 「예」

그러면 하나님은 사탄을 잡아먹는 하나님이예요? (웃음) 사탄을 잡아먹는 하나님이예요? (웃음) 사탄을 잡아먹는 하나님이라면 벌써 6천년 전에 심판 다 해 버렸을 거예요. 하나님은 누구를 잡아먹느냐? 자기 아들딸의 피를 뽑아 먹는 거예요. 세상에 둘도 없는 자기 아들딸을 희생시켜 가지고 살쪄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 알겠어요? 「예」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이, 통일교회 선생님이 살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 잡아먹고 살쪄야지요? 「예」 (웃음) 여러분들 잡아먹고 살찌면 좋아요? 「예」 이녀석들 정신없이 '예' 하는 것 봐. (웃음) 그거 천리가 그렇다구요. 웃을 말이 아니예요. 웃을 말이 아니라구요. 큰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를 잘해야 된다구요. 자기 개성에 맞는 계획을 전부 다 세워야 돼요. 가루가 되라, 모래알이 있으면 모래알이라도 파고 들어가라 이거예요. 안 그래요?

선생님은 그러한 길을 가야 돼요. 내가 복귀의 길을 개척하는 선봉자로서 지금까지 인류를 대신해서 '하나님 나를 잡수시오!' 이랬어요. 잘 다짐 받았어요. 난 불평할 줄 몰라요, 지금까지 이 길에서 불평할 줄 몰랐어요. 가면 갈수록 다짐 받았어요. 하나님은 자식을 잡아먹고 기뻐하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자기의 전체를 주기 위해서예요.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아야 할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내가 여러분 같은 연령 시대에 있어서 하늘로부터 사명을 분부받고 말을 하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몸도 튼튼하고 활동적인 그런 지도력을 갖고 있는 선생님이라구요. 그렇지만 마음대로 안 했어요. '이 세계는 하늘 앞에 원수다. 내가 혼자 한번 찾아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못 간다' 하면서 분별된 모습으로 자기 스스로 자중한 때가 있었어요. 왜?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이 돼서 하나님이 소유한 다음에 몽둥이가 되든가, 뭐 방망이가 되든가, 뭐 창끝이 되어서 마음대로 휘젓게끔 돼야지, 그렇게 되지 못하고 하나는 창끝이고 하나는 나무판자가 되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쇠가 되면 어디까지나 쇠가 돼야 돼요. 하나님이 필요한 창을 만들기 위해서는 달구고 또…. (녹음이 잠시 끊김)

'영남 3도에서 다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밥을 잘못했으니 미안합니다. 찬 방에서 자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오신 손님들 대해서 문안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그런 놀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됩니다」 미안하네요, 미안해. (웃음) 내가 미안하다면 지금까지 대우 못 한 게 미안한 게 아니라 다음부터 말을 하려니 미안해요. '우리 집에 왔으니 손님은 거룩하신 분이요' 그래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것보다도 '이 자식' 하는 게 얼마나 자유스럽냐 말이야.

아, 10년, 20년 보지도 못한 그런, 전세계에서 처음…. 여기 선생님 처음 보는 사람 많은데 말이예요, 아 그런데 뭐 처음 나타나면서 떡 와가지고, 뭐 나이가 우리 형님보다도 많지 않고, 우리 아버지보다도 많지 않은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이 자식아' 그러니 그거 기분 좋겠나요? (웃음) 여기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게 뭐야?' 그럴 거예요. (웃음) 전부 다 그럴 거예요. 통일교회 이념은 좋은데 저 사람이 틀렸다고 할 거예요.

사실은 그런 것을 참 멋지게 생각할 줄 아는 사나이가 되어야 돼요. 처음 보고 '야!'그렇게 욕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가까울 거예요?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참뜻이 포함되어 있다구요. 보라구요. '이 자식아! 할 때까지는 얼마만큼 그리워서…. 벌써 오기를 바랐는데 지금 왔으니'이 자식!' 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어떤 내용을 중심삼고 '이 자식' 했는지 알아요? 「예」 모르는 거 아니에요? 「압니다」 알긴 뭘 알아. 젊은 녀석들은 모른단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녀석은 꿀먹은 벙어리…. (웃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거예요. 그래서 믿고 가는 거예요, 미욱한 녀석들은. 그저 '죽어도 천당 살아도 천당' 그게 통한단 말이예요. 요러고 저러고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구요. 여러분들이 어디 가는지 어디로 오는 지도 모르고 왔단 말이예요. 여기 와서 섰단 말이예요. 왔으면, 대접받으러 왔어요? 대접하는 곳이 아니예요. 지극히 박대하는 곳이예요. 나중에는 잡아먹어야 돼요. 잡아먹어야 돼요. 잡아먹히고도 '고맙습니다. 나를 잡아먹고 이 나라가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가정이 잘되려면 우리 가정을 위해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는 사람이 돼야 돼요. 그렇지요? 그게 철칙이지요? 「예」

더우기나 여러분들이 황폐한 이 삼천리 반도와 이 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앞으로 장래의 운명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내가 그 터를 닦아서 망해 가는 국가의 운명을 바로잡아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사람이 나타나야 되느냐? '내가 잘살아 가지고 배를 늘려 가지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땅을 바라보면서 죽자' 그 운동이 벌어져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선생님과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어라 이거예요. 죽는 첫단계는 고생해라 이거예요. 눈물을 흘려야 죽는 거예요. 피땀을 흘리고야 죽는 거예요. 고생을 하고야 죽는 거예요. 그러니 그 길까지 가자 이거예요, 죽음의 저편까지. '개인을 위한 죽음의 최후의 일선 경계까지 가자! 가정을 끌고 가정을 중심삼은 최후의 일선 죽음길로 가자! 교회를 끌고 최후의 일선 죽음 경지까지 가자! 민족을 끌고 거기에 가자! ' 할 때 삼천만이면 삼천만이 '예, 갑시다! ' 하면 이 나라는 사는 거예요. 그가 바라는 포부와 이념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이념이면 하늘은 세계를 그들 앞에 갖다 주는 거예요.

나는 누구의 것?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나는 누구의 것이 될 것이냐? 지금까지는 사탄 것이 되어 왔다, 원수와 더불어 살아왔다 이거예요. 우리 온 인류의 원수요, 우리가 지금까지 참이념적인 전체의 세계를, 하늘을 위주하여 이루려던 그 세계를 이루는데 있어서의 천주의 대원수요, 우리의 참부모의 대원수요,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과 가정 전체에 대한 대원수, 이 원수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 원수의 품에서 살고 있으니, 이 첩첩이 가로놓인 철옹성 같은 사탄의 철망을 막아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니 남이 먹을 때 먹어 가지고 되겠어요? 남이 잘 때 자 가지고 되겠어요? 남이 춤출 때 나는 심각한 거예요. 남이 잠잘 때 우리는 총칼을 여미는 거예요. 그래서 이 철망을 뚫고 해방의 한날을 온 세계에 외칠 수 있는 그때를 위하여 우리는 싸우는 거예요.

그러한 소원의 뜻을 품고 그 소원을 해원하기 위한 명령을 하늘로부터 받아 가지고 행군의 대열을 갖추기 위하여 모집 운동을 하는 것이, 모병운동하는 것이 현재의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그 모병 가운데 일원으로서 호출받아 나온 것이 오늘 수련도장에 참석한 여러분인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내가 훈련을 받고는 어디로 갈 것이냐? 사명받은 작전지시로 사탄도성을 헤쳐 버리고 거기에 우리가 하나의 승리의 깃발을 꽂을 때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돼요. 나는 하늘의 것! 나는 어디로 가느냐? 사탄세계로 가야 되겠다. 가는 데 있어서 대비할 무기와 연습과 훈련과 시련과 각오와 결의를 죽음의 고비에 기댈 수 있는 그러한 역사적인 비참한 자리에서도 또 참고 또 참으면서 밟고 또 넘어갈 수 있는 비참한 과정을 지내야 할 운명의 개척자인 것을 여러분들이 믿어야 되겠습니다.

이번 수련회로 오늘날 통일의 전체 성화학생한테 미쳐지는 영향이 지대하리라고 봅니다. 이들이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과 앞으로 후대에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 앞에 새로운 횃불을 드높이 들 수 있는 날이 기필코 올 것을 선생님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알겠지요? 「예」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로 갈 것이냐? 이것이 여러분 현재에 있어서 얼마나 지중하고 중대한 문제인가를 명심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나요? 「예」 그럼, 그렇게 한번 살아 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모두 손듬)

기 도

미국에 있는 대통령을 하늘이 불러'너는 누구냐?'고 묻게 될 때, 하나님의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리에 못 섰습니다. 공산세계, 공산국가의 대표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세계 앞에 하늘은 지금까지 찾아 나왔습니다. 너는 누구냐 할 때 나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대하여'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할 때, 베드로는 담대히 대답을 하였습니다. 또 묻고 또 물었으나 대답하였습니다.'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사람들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아신다'고 강조하던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있어서, 하늘 앞에 있어서'너는 누구냐?' 하는 그런 입장에 설 때에, 하늘이 그런 입장에서 부르는 그 자리에서'나는 당신 것이옵니다. 나는 개인으로 당신 것이요, 가정을 대표해서 당신 것이요,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대표해서 당신 것이옵니다. 하늘 전체를 대신해 당신의 것이오니 악의 세계를 대하여 나에게 명령을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있고 수많은 종파가 있고 수많은 종교가 있사오나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하늘이 바라고 하늘이 찾고 있는 참다운 무엇을 놓고'너는 누구냐?' 하고 묻게 될 때 그 개인이 '나는 하나님 것이오' 할 수 있고, 그 가정을 보고'너의 가정은 누구 것이냐?' 하고 묻게 될 때 '이 가정은 영원히 아버지 당신의 것이오' 할 수 있고, 그 종교를 찾아가 '이 종교는 누구 것이냐?' 하고 하나님이 묻게 될 때 '이 종교는 하늘 것이옵니다' 할 수 있고, 나라를 찾아가서 '이 나라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게 될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교와 나라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런 원통하고 분한 역사적인 흐름 가운데 오늘날 저희들은 하늘 앞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연약한 이 손길을 모아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었사오니, 저희의 갖춘 바의 자세는 미미하고 연약한 모습이오나 이들이 마음과 정성을 들이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에 있어서는 천주를 깨뜨려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강함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의 운명을 좌우시킬 수 있는 이런 놀라운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사망의 물결과 생명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이런 와중에서 생명력을 가진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자체의 본질로서 화합시킬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날을 저희들 앞에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삼천리 반도의 처처에서 저희들은 이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스승을 부르고 스승의 뜻을 따라서 이날을 약속하고 이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사오니, 모인 자체가 하늘이 보시기에 기억할 만하게 하시옵고, 지금까지 소망하시었고 찾아 나오시던 당신의 뜻 앞에 있어서 이들은 내 젊은이요, 이들은 내 청춘이요, 내 학도들이라고 사탄세계의 수많은 학도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내 것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젊은 그 가슴에 하늘의 생명의 약속이 깨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능력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이들에게 임하게 하시어서 내 혈관, 동맥과 정맥을 동원하여 승리의 역사를 일으켜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결정적인 그 존재 위치를 결부지어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할 때, 하늘의 명령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사탄세계에 가 가지고 금후의 가치의 실효를 거두어 들일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악을 대해 스스로 비굴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공의를 대표해서는 공명심에 불타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그 마음에 불을 지르시어 마음에 용기의 힘을 주입시키옵소서. 남아진 원수와 대결해야 할 싸움의 날이 가까이 오고, 세계를 향하여 기필코 주님 앞에 생사의 결판을 지을 날이 가까이 오고 있사오니, 그때에 필요한 중요한 기계로서 쓰여지기 위해서 오늘날 삼천리 반도에서 연습할 수 있는 무리들로서, 책임과 사명을 완수한다는 신념과 각성을 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부터 3일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약속하고 허락받은 그 시간을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모든 예물로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먼저 저희들이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행동하는 데 있어서, 말씀을 하는 데 있어서 본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들의 어린 가슴 위에 이제 새로운 소망길을 더듬어 가는 데 있어서 그 뜻이 크니 어찌 그 몸에 미치는 고통이 크지 않겠습니까? 어린 몸들의 두 어깨에 크나큰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더듬어 가는 길이기에 학생의 몸일지라도 저희들은 남들과 같이 지금까지 살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이 불쌍하옵니다. 남과 같이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없는, 제재를 받아야할 입장에 선 것이 불쌍하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여기에서 낙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쁨으로, 자부하고 있사오며,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한 날의 숙원을 달성하기 위한 준비의 노정이요, 연단의 노정이요, 훈련이라는 것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린 마음 위에 아버지의 등불을 켜시옵소서. 광명한 새 세계 앞에 길이 영원한 세계로 빛낼 수 있는 당신의 역군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개의치 아니하고 하늘 용사의 책임과 그 거룩한 위신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서는 데 있어서,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여기에 있어서 통일의 장래는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창창한 아버지의 이념과 더불어 박자를 맞추어 승리의 한날을 가져올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그날을 준비하고 그날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역군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약한 팔과 연약한 발걸음을, 아버지, 엮으시옵고 이들이 다리를 놓아 사망세계에서 생명세계로 건너간 것이 지름길 다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리 태풍이 불어오고 아무리 홍수가 나더라도 이들이 연결된 다리는 끊을 자가 없고, 무너뜨릴 자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사상의 단결이 필요하옵니다. 생활의 단결이 필요하옵니다. 소망과 생활과 심정과 그 모든 언어와 행동의 단결이 필요하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생활통일을 세워야 할 것을 저희들은 배웠사옵고, 행동통일을 세워야 할 것을 배웠사옵고, 말씀의 통일과 심정의 통일과 이념의 통일을 세워야 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은 단 하나 저희들이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살찌우기 위한 것이요, 이 세계를 살찌우기 위한 것이옵니다. 이 천지가 살찜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살찌울 수 있는 그날을 위한 것임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흡수된, 아버지의 맛들여진 그러한 영양소로 말미암아 천지를 호령할 수 있는 아버지의 영광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감사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부터 전체 위에 아버지의 거룩한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영광의 터전 위에 저희들이 낙망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부디 지치게 말게 하여 주시옵고, 부디 사탄세계에 떨어져 쓰러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죽더라도 하늘의 경계선을 넘어 죽을 수 있는 당신의 하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배움의 길에서 충성을 다하고 하늘이 키우기 위한 양육의 길에서 저희들이 몸 마음, 심신의 단련을 받아 장래에 필요한, 당신의 거룩한 세계의 창건 도상에 있어서 필요한 동량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뜻하심이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그러니까 이렇게 다 오신 것이 누구 때문에 오셨어요? 「선생님 때문에요」 (웃음) 여기 남자분들도 그래요? 「예」 뭐 '예'예요? 오는 데는 누구 때문에 왔든지간에 오신 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셨으니까 손님이거든요. 여기 본부에 왔으면 본부가 주인이고 여러분들이 손님이란 말이예요.

​말보다 실천이 어려워

​오는 사람이나 혹은 나그네 노릇을 하게 되면 그집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거라구요. 그저 옷가지 하나 걸린 것 봐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이상스러운 무엇이 없나, 환경이 조금 달라지면 그 환경을 전부 다 내 환경과 같이 살피는 것이 대개의 손님들의 습관이라구요. 그러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이 시간만은 그래서는 안 되겠어요. 오신 데 대해서는, 수고스럽게 오신 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해요. 그리고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점심을 못 대접해서 주인측에서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예」 (웃으심) 그 대신 또 이제 저녁도….

지금 네 시가 됐는 데 이제 선생님이 얘기하면 30분 얘기할까요, 한시간 얘기할까요, 다섯 시간 얘기할까요? 「다섯 시간」 욕심들은 많지. 밥은 안 먹고? 「예」 오늘 저녁에는 공중에 날아올라가도 괜찮아요?

선생님이 지금 지방 순회하면서 서서 얘기한 기록이 얼마냐 하면 열한 시간 40분, 열한 시간 40분 동안 얘기한 기록이 있어요. 만일에 오늘…. 선생님이 또 어디 가야 돼요. 여러분들 보내야 되겠어요. 그러면 거기에 보태서 또 요구하는 것이 있거든. 아주 사람이 간사한 거야. 언제나 그러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 서 있으면 그런 맘 안 갖지만 그래서는 안 될 환경에서는 말이예요, 너무한 거예요. 확실히 다정한, 여기 일찍 나오는데 할머니가 '아이구─'해요. 그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그런 실례가? 나이 많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데 색시들이 그랬다면 얼마나 뭐하겠나 말이예요. 아주 뭐 대호령을 했을 겁니다.

그게 다 문제라구요. 선생님이 어디에 간다 하니까 갑자기 무슨 뭐 가까운 무슨 뭐….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이런 때가 오더라도 대범해 가지고, 선생님이 갈 때 손도 흔들지 말란 말이예요. 그러라구요. 「예」

내일 또 뭐하러 다 나가겠노. 내가 여기서부터는 이제 조용히 앉아서, 서면 다 안 보이니까 앉아서…. 내가 비행기 타고 갈 테니까 여러분들은 '땅 땅 땅' 세 번 하면 '출발' 그거예요. 여기에서 하늘 보면 좋겠는데 뭐 그렇게 부사스럽게…. 나 이거 큰일났어요. 내일 만일에 비행장에 나가는데 전체 이 떼거리가 모여들어 가지고…. 그리고 전부 다 보면 젊은 놈들이예요, 대부분. 옆으로 봐도 젊은 사람이요, 앞으로 봐도 젊은 사람이요, 사방이 전부 다 젊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다들 전부 다 젊은 사람이니 한 천 명 이상 이 김포 비행장에 모여들면 말이예요, 이건 뭐 또 무슨 데모하는 녀석들이 몰려왔나 해 가지고 또 이제 백차가 사이렌 불고 달려오면 어떻게 하겠나요? 그거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우려성도 있고, 그러한 모든 환경도 염려되기 때문에, 내일 갈 때는 아주 떡 가게 되면 웅성웅성하면 안 되겠어요. 입을 딱 다물고 행렬을 지어 가지고 솔솔, 아주 뭐 양떼를 몰아 우리로 들여보내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라고 손짓만 하면 하고, 그대로 해야 되겠어요. 그래야 내가 큰 망신 안 당하겠어요.

그 사람 떼거리를 보면 많이 모인 것 같은데 그 사람 집들을 보면 보통집이 아니다 이거예요. 보통집이 아니면 그건 제일 나쁠 수도 있고 제일 좋을 수도 있어요. 보통집이 아니면 보통 기준 위가 될 거예요, 아래가 될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위요」 말은 쉬워요, 말은 쉬워요. (웃음) 그렇지만 실제에 가 가지고는 이게 어렵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우기나 이번에 선생님이 특별히 여기에 올라오라고 한 사람들은 이 3년노정에 있어서, 혹은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선봉에 서 가지고 남 모르는 피눈물을 많이 흘리고, 그네들의 심정을 하늘이 기억할 수 있는 생활을 한 사람들을 올라오라고 했는데, 가만히 내가 보니까 얼굴들은 번번하지만 내막적으로는 다 그렇지 못한것 같아요. 자기 스스로 '나는 그렇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어 봐요. 하나도 없군. 그러니만큼 안심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저녁 여기서부터 훈련이예요. 훈련이예요. 내일 만약에 비행장에 나가 가지고 웃사람들 앞에 본이 못 될 그런 요소가 충분하니만큼 여기서부터 훈련해야 되겠다구요. 훈련하느니 만큼 일어서라 하면 '예!' 하고, 앉아라 하면 '예!' 하고, 쪼그려 앉아라 하면 '예!' 이래야 되겠다구요. 그렇게 알고 어렵더라도 좀 참아 주기를 부탁해요. 아시겠어요? 「예」

이제 저기 아주머니들, 저 아가씨들이 서 있으니 웅성대 가지고 넘어져도 찍소리 하면 안 된단 말이예요. 넘어져도 아무 탈이 없으니 그냥 넘어지고, 일어서더라도 소리없이 일어서고 그래야 되겠단 말이예요. 필경 넘어질 거라구요. 그러니까 사람이 많으니만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좀 참고 지내 보자구요.

통일교회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모진 투쟁이 있었다

그럼 선생님이 이제 말씀 좀 시작할까요? 「예」 한 30분? 「예」 (웃음) 무슨 말씀을 해야 될까요? 응? 기쁜 얘기 할까요, 슬픈 얘기 할까요? 어떤 종류? 기쁜 얘기 할까요, 슬픈 얘기 할까요? 「둘 다 좋습니다」 둘중에 하나 해야지 한꺼번에 그거 둘 다 할 수 있나. 하나씩 해야지요. 슬픈 얘기 해요, 기쁜 얘기 해요? 무슨 얘기? 뭐 할까요? 「기쁠수록 감격이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얘기 좀 하려고 그래요. 옛날로 좀 돌아가서…. 오늘은 말이예요, 선생님이 기분나는 대로 얘기할래요. 아시겠어요? 「예」 기분대로. 기분이 좀 좋지 않으면 욕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칭찬도 하고 말이예요, 기분나는 대로 얘기할 테니 그렇게 알라구요.

선생님이 뭐 어디에 간다는 소문이 언제부터 났어요? 횟수로는 5년째예요. 1961년. 원래는 1960년 12월 4일, 12월 4일이지요? 「1959년입니다」 1959년인가? 「예」 그때는 자유당의 이박사 치하에서 여권 만들어 가지고, 상당히 어려운 시련을 받으며 여권을 내 가지고, 그때 전부 다 출국허가까지, 날짜까지 딱 돼 가지고 일주일 남겨 놓고 계산해 나가던 것이 오늘이 되었어요.

우리 합동결혼식도 그래요. 합동결혼식이 10월 5일 그냥 했더라면 선생님이 미국에 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부 다 여의치 않아서 한 2주일 연장하는 바람에 모든 게 또 틀어져 나갔어요. 이래 가지고 뭐 혁명을 거쳐 가지고 이렇게 하다 보니 5년 이상이 지나갔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외국 식구들 앞에는 참 면목이 없어요, 본부 식구들도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 생각해 봐요. 그들이 모든 정성을 들여서, 자기 생명을 바쳐서 이 길을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 마음, 그들이 정성들이는 도수가 크면 클수록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이예요.

그렇게 간다 간다 하기를 벌써 5년, 5년 동안 기다렸으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내적으로 지쳤겠느냐 말이예요. 응? 그걸 생각하면, 선생님이고 뭣이고 뭐 불신할 정도예요, 불신. 앞으로 하네다 비행장에 척 내리게 되면 일본 식구들이 '아, 그렇게 온다 온다 하더니 이제 지쳐 나가자빠지니까 오니 우리는 모르겠소' 하면 내가 뭐라고 할 거예요? 내가 뭐라고 할 거예요? 또 미국 식구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구요. 오신다 오신다 하던 오신다는 그날이 5년여 세월이 지나갔으니 뭐 의리 없고, 뭐 별의별 말을 다 한다 해도 내가 할말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동안 선생님이 기분이 좋아서 못 간 게 아니예요. 그동안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모진 풍파 가운데서 투쟁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이만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적인 투쟁의 과정을 거쳤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더우기나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식구들로서는 우리 통일교회의 내막적인 역사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건 선생님하고 협회장밖에 몰라요. 모른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참 우리는 환난권 시대를 거쳐오면서, 모진 핍박 가운데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와서 오늘날 세계적인 발판을 다 닦아 이런 기반을 만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지방에 나가서 활동한 실적이 교회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물론 여러분 가운데 지방에 나가 가지고 남 모르는 가운데서 승리를 거두고 온 사람도 있을 거예요. 선생님 명령이라 해 가지고 지방에 나가서 책임져 가지고 활동한 실적, 혹은 계몽을 하거나 전도를 한 이와 같은 실적들이 오늘날 우리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됐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번 선생님이 여기 한국을 떠나 가지고 어느 기간까지 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때 제일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하면 말이지요…. 뭐 여기 협회장 생각 안 할 거라구요. 뭐 지구장들도 생각안 할 거라구요. 이 부흥단도 생각 안 할 거예요, 부흥단. 내가 사실은 오늘 부흥단을 여기에 있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이럭저럭하다가 시간이 없어 가지고 지금 나왔으니 모두 관리를 못 했단 말이예요. 그 부흥단도 선생님이 생각 안 할 거란 말이예요.

제일 생각나는 것은 저 지방에 있어 가지고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마을에 들어가 가지고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으면서 이 뜻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 혹은 여자들은 치마를 가누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 정성어린 그러한 식구들을 위해서 상당히 선생님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내가 본국을 떠나면서 그런 식구들을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 이번에 지역장들 절대 오지 못하게 했어요. 본부에 쭉 오게 되면, 무슨 행사가 있다면 전부 다 뭐 지구장이니 지역장이니 이것들이 왔단 말이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뭐 축복받은 가정들, 이것들이 왔단 말이예요. 그렇지요? 지금까지 그랬지요? 「예」

자, 만일에 우리 교회에 있어서 와야 할 날이라면 이때가 와야 할 날일 거예요. 그렇지만 지구장이니 지역장이니 뭐 축복가정이니 전부 다 제껴 놓고 여러분들, 세상에 대해서 수고하신 분네들을 한번 이제 모셔가지고…. 이래서 여기에 초청한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고맙게 생각해요? 「예」

그러니만큼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교회 행사 하는 데 있어서 말이예요, 누차의 행사, 매년 뭐 자녀의 날이니 부모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이런 날들을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그리면서 본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다 알아요. 그렇지만 집회소 관계로, 또 여러 가지 자기 집안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 곳에 모여 가지고 같이 즐길 수 있고, 하늘을 축하할 수 있는 그런 날들을 갖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요.

그럴 때는 지구장이니 지역장이니 뭐 축복가정이니 떡 이래 가지고 전부 다 모여 왔지만…. 원래는 이번 이날은 그런 사람들을 다 제껴 놓고 지방에서 수고한 여러분들을 이렇게 찾아오라고 한 데 대해서는, 그러나 일면 미안하게 상각해요. 왜 그러냐?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 있으니만큼 여기에 오는 데도 여비가 없으니 꿔 가지고 온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또 여기에 오는 데 입을 것이 없어서 못 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단 말이예요. 그래, 부득이 오지 못한 그러한, 여기에 참여 못 한 식구들 앞에는 마음으로 섭섭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여러분들은 일단 왔으니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을 기억하는 일면을 더욱 빛낼 수 그런 모임이 이제부터 되기를 부탁해요. 아시겠어요? 「예」

그러니만큼 통일교회 전체의 그 운명은 여러분들이 터를 닦는 데 있어서…. 공적을 쌓은 여러분들로서 하늘이 믿어 줄 수 있는 이런 자녀들이 되어 가지고 오늘 내일 잘 지내 주기를 바래요. 그래 가지고 내일 저녁쯤이면 다 돌아가야 되겠지요? 그렇지요? 「예」 이제 여러분이 돌아갈 때는 선생님은 한 시간 반이면 될 것 같으니까 일본의 하네다에 도착할 거예요.

남다른 길을 가려면 시련과 고충이 많다

여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왔는데요, 여러분들이 남다른 일을, 혹은 남이 생각지도 않고, 남이 계획하지도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계획하고 생각하고 행하려 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서는 남이 당하지 못하는 고충이 많은 것이다 이거예요. 그건 세상만사가 다 그래요. 보통사는 사람은 눈물이 없는 거예요. 눈물이 없는 거예요. 보통 사는 사람은 그렇게 뼈에 사무치는 이런 서글픔이 없는 거예요. 그저 평범하지요. 즐거워도 그저 그렇고, 슬퍼도 그저 그렇단 말이예요.

그렇지만 남다른 길을 가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된다면 거기에는 남이 당하지 못하는 슬픔의 곡절도 많은 거예요. 고통의 곡절도 많고, 부대끼는 일이 많은 거예요. 상상 외의 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련과 부대끼는 그 환경에 있어서 자기가 남다른 길을 결심한 그 신념을 더 두터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부대끼는데 그것은 반드시 투쟁이예요. 내적인 투쟁이예요. 신념으로써 부대끼는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자신을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남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꺾여 나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하늘이 지금 복귀의 노정을 걸어오는 데는 지금까지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참 남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하늘의 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도 역시, 시대 시대마다 하늘의 사명을 받고 왔던 사람들도 그 시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남다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에 비해서, 그 사람의 책임은 천적인 사명에 비해서 거기에는 부대끼는 양과 부대끼는 그 모든 면이 컸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의 사실로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실정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금후에나 마찬가지로 이것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천적인 인연이, 혹은 역사적인 실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 연고로 역사적인 한때에 태어났고 그러한 환경을 갖고 이 새로운, 남이 알지 못하고 남이 경영하지 않고 남이 생각지 않고 남이 실천하지 않은 이런 새로운 역사를, 혹은 새로운 이런 뜻을, 포부를 실천하려 할 때는 이건 반드시 거기에 대비되는 시련과 고통은 각오하고 나서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열만한 그런 길, 남다른 길을 가려고 할 때는 열만한 시련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 3배 이상, 나아가서는 7배 이상, 더 나아가서는 몇십 배 이상의 가중되는 시련과 허락되지 않는 환경이 부딪쳐 오더라도 이것을 안고 넘어가겠다고 하는 철두철미한 사상과 신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시간마다, 부대끼는 일마다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결의하고 다시 한 번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고 자기 스스로 거기에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런 생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크나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다 좋은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천태만상의 곡절이 거기에 사무쳐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자기의 고통보다 더 큰 하늘의 슬픔을 알 때 환경을 극복해

선생님의 일대를 두고 봐도 그러하지만 오늘날 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도 이런 걸 볼 때 나타난 그 면은 지극히 작다는 거예요. 나타난 분야, 인간들이 접할 수 있는 그러한 분야는 지극히 작고, 인간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의 그 배후의 인연이라는 것은 막대하게 크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하늘을 모시는 생활을 하고 하늘과 더불어 새로운 일을 하려 할 때 제일 생각해야 할 것은, 나타난 결과에 있어서 나를 대해 주는 하늘보다도 나타날 그때까지 하늘이 인연되어 있고 하늘이 수고한 공적의 그 심정을 두터이 알지 않으면 나타난 환경에서 절대 승리해 나가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대끼는 환경을 붙들고, 거기에 있어서 혹은 낙심할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 이 부대끼는 환경이, 나타난 것이 비록 작은 환경이지만 이 작은 환경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하늘이 부대껴 나온 막대한 심정적인 인연, 사정적인 인연, 애절한 그런 천적인 인연이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작은 환경에 부대끼더라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현실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런 심정적인 기준을 하늘과 더불어 수습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타난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남이 가지 않는 뜻의 길을 이미 찾아왔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이미 가기 위하여 맹세하고, 자기 생활을 여기에서 청산하고, 생애의 목적을 이쪽으로 돌려놓고 일단 나선 후에는, 가는 길에 있어서는 고생길이 많은 거예요. 슬픈 일이 많은 거예요. 흑은 내가 민족을 위하여 나서자 할 때는 민족 전체가 환영하는 것이 아니예요. 민족 전부가 반대할 수 있는 거예요. 민족을 위해서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위하여 나가는 그런 개인 무대 앞에 있어서는 나를 만나는 친구가 환영한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부모도 역시 환영한다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지극히 믿고 지극히 통할 수 있는 어떠한 스승이 있다 해도 그 스승이 그 길을 옹호해 주고 그 앞에 있어서 자기 갈 길을 도와준다고도 볼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세상일이요, 있을 수 있는 일이요, 누구나 다 긍정할 수 있는 이런 내용의 일이요, 공인받을 수 있는 이런 일이라면 물론 그럴 수 있으되, 하늘의 일은 이루어 놓고 공인시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이루어 놓고 공인시키는 거예요. 공인해 놓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놓고 공인시키는 거예요.

이 결과주관권 내에 세우는 것은 오늘날 역사과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연고로, 하늘은 번번이 매를 맞고 사정을 통고하였고, 뜻을 세워놓고 거기에 해명하여 역사를 밝혀 나온 것이 복귀섭리의 노정이기 때문에, 안팎으로 볼 때 혹은 역사적인 과거로 보나 현실로 보나 하늘은 곡절을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입장에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돼요.

이것만 알게 되면, 하늘은 지금도 부대끼고 앞으로도 부대낄 수 있는 이런 심정적인 인연을 거쳐 가지고 오늘까지 나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수고한 그 인연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그런 현실에서, 자기 현장에서 부대끼는 고통보다도 더 큰 애절하고 처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슬픔이 개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환경을 무난히 넘을 수 있어요.

선생님의 고생이 어려운 환경을 넘게 해주는 조건이 되고 있다

지금 여기에 나온 여러분들은 지방에 나가서 수고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남 모르는 가운데서 눈물도 흘렸을 거예요. 혹은 남 모르는 가운데서 하늘 앞에 호소도 했을 거예요. 남 모르는 가운데 굶주림도 느꼈고, 남 모르는 가운데서 추운 골방에서 새우잠도 자 봤을 거예요. 이와같이 여러가지 모양의 사정에 다 부대껴왔으나,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 여러분들이 이 길을 참아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하늘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직접적인 애절한 심정은 통고하지 않았을망정 오늘날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이라는 분이 여러분들보다 그런 무대에 있어서 더 고생했다는 그 하나의 여건이 여러분을 그 환경에서 넘어가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돼 주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에게 그런 도움이라도 없다면 여러분이 하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런 동기라도 가져야 되는 거예요. 타락한 인간은 하늘과 멀고 하늘과 접할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지 않은 연고로, 여러분이 다 가기 어려운 이런 과정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알고,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왔다는 그것 하나를 믿고, 그것 하나를 알고 또 실제 사실이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하여서 하늘을 위해 뜻을 대신한 그분이 우리들보다도 선두에 있고, 이 이상의 수고를 지금도 하고 있다는 그 마음 하나 가지고 오늘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 길을 참아 나왔고 싸워 나왔다고 보고 있어요.

여기에 내가 떠나는 마당에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선생님도 역시 여러분과 같이 이런 큰 책임을 짊어지고, 남이 못 하는 이 개척자의 책임을 하게 될 때는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범위가 다를 뿐이지 사정과 내용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을 보고 그러한 어려움이 있게 될 때 이 길을 수습해 갈 수 있었느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를 부르기 위해서 얼마만큼 수고했다는 깊은 내정을 헤아릴 수 있는 감도가, 느끼는 자극적인 감성이 여러분들보다도 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길을 참고 개척자의 사명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미래는 어때야 되느냐 하면 앞으로 우리의 나가는 길에 있어서, 통일의 길이 가야 할 이 운명노정에 있어서, 오늘날 현세에 있어서 한국 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이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넓혀서는 혹은 미국 대륙을, 아시아 대륙, 혹은 육대주를 중심삼아 가지고 무대를 삼아 나가야 할 이런 무대가 남아 있을 것이어늘, 오늘날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 소망의 천지를 향하여서 다시 제일보를 내디디려 할 때에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가는 것보다도 하늘은 몇천만 번 먼저 가서 길을 닦았고, 몇천만 번 수고의 노정을 거쳐서 이 길을 우리에게 인계해 줬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가는 거기에 있어서 하늘이 우리와 더불어 지금까지 가는 것은 틀림없고, 지금까지 와 온 것도 틀림없고, 앞으로도 그러하다는 심정, 내가 그분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살아야 되겠고, 그 세계에서 그분을 모시고 살아야 할 부자의 인연으로서 내가 불변의 철칙을 세워야 할 책임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그분이 가야할 길이 아직까지, 민족을 넘어 세계를 넘어 천주 복귀의 대사업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남아진 이 사명적인 전체의 무대를 넘어 바라보게 될 때, 오늘 선생님보다도 하늘이 먼저 고생한 수고의 터전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재차 더 큰 모험을 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할 때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대해서는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들과 하늘과 혹은 선생님과 여러분들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을 의지하고 선생님을 절대 필요로 해 가지고 자기의 생애 문제까지도 맡기고 가고 싶은 거예요. 그거 거룩한 마음이예요. 그거 거룩해요. 그러나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여러분을 전적으로 믿으니만큼 전적으로 환영해 주고 전적으로 대해 주고 전적으로 친구가 되고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져 가지고 이것을 해결해 주어야 할 이런 입장에 서 있지만, 탕감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과 선생님과는 거리가 있는 거예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또 선생님과 하나님과는 지금 이 현재의 무대에서는 하나님이 같이 대해 주고 같이 여기에서 의논하고 혹은 자극을 느끼며 크나큰 목적지로 몰아내고 있지만 하나님과 선생님과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분야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큰 거리가 남아있는 것이요,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거기에는 큰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복귀의 전체 목적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나를 세워 놓은, 나를 부르고 있는 목적점과 현재의 이 기준점을 놓고 이 과정에 넘어가야 할 거리를 응시하면서 하늘은 우리에게 이 거리를 넘어가라고 재촉하는 거예요. 만일에 못 넘어가겠다면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넘겨 버리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우리 통일의 이념을 끌고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마찬가지의 원칙으로서 스승과 여러분 사이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돼요. 여러분들이 보는 견해와 여러분이 알고 있고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무대가 하늘적으로 볼 때는, 이때의 운세로 보게 될 때에는, 민족적인 운세를 넘어 세계적인 운세를 넘어가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머물러 있는 환경을 보게 될 때, 개인적인 시대에서 가정적인 시대로 넘어갈 단계에도 서 있지 않다 할 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도 내버리고 개인적인 모든 여건도 제거해 버리고 이것을 민족적 무대에 몰아넣어야 할 책임을 하늘은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걸 바라볼 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선생님이 슬픔의 무대를 향하여 나서고 더 크나큰 무대를 향해서 나가게 될 때, 여기서 그런 관점을 가지고 비교해 보게 될 때 우리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가는 것은 좋지만 가는 배후에 있어서는 책임이 가중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에 있을 때 여러분들과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평면적인 환경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고 서로서로 격려하고 명령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것으로서 순종하면 되고 여기에서 복종만 하면 되지만 더 큰 무대를 안고 한 단계 앞서 나가는 그럴 때에 있어서는, 흑은 스승이 앞서 나가는 그럴 때에 있어서는 여러분은 재차 모험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지금보다도 더 큰 모험을 하겠다는 결의와 신념을 가져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입장에 있는 여러분들을 지극히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들에게 '편안히 쉬어라. 이제는 다 때가 되고 너희들이 모든 책임을 다 했으니 이제는 지방에 다 돌아가 가지고 편안히 쉬어라' 선생님의 마음은 그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적인 사명이 아직까지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필시 인생에 있어서 가야 할 운명이고, 이것은 민족적인 운명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운명이요, 어차피 내가 안 가면 공동적인 책임을 같이하고 있는 인류가 가야 할 책임인 연고로 이 시대에 안 가면 내 자손시대에도….

내 자손시대에도, 이 민족을 통해서도 못 가게 되면 다른 민족과 다른 종족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되어져야 할 책임이 하늘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기에서 우리들이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일단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각오 밑에서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재차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시점에 처해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정성을 다해 민족을 책임지려는 용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면 내가 이제 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는 생각이 많습니다. 최고를 뚫고 올라가느냐, 최하를 뚫고 올라가느냐? 생각이 많은 거예요.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 때 통일의 신도들은 뭐라고 할 것이냐? 이 민족을 위하여, 하늘을 대신하여 선생님이 정성을 들이고, 하늘 대해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이 민족의 운명을 내적으로 붙안고 몸부림치는 그러한 터전이 여러분 앞에 남아지게 될 때는, 어느누구라도 이런 책임을 대신 상속받아 가지고 하늘을 대신하여 한국적인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이면 서울, 팔도강산 150개 이상의 수많은 지역이면 그 지역의 지역장들이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하늘을 대표하여 끌어오시던 직접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하늘의 인연을 여기에 맺어 가지고 끌고 나가던 그런 정신적인 입장에 서 있다가 이것을 남겨 놓고 가게 될 때, 과연 어느 누가 앞으로 세계적인 운세와 더불어 접할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겠는가? 하늘 앞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민족적인 생사의 결정을 자기의 손아귀에 짊어지고 한걸음 한걸음 심각한 걸음을 걸어줄 수 있는 용사들이, 그런 통일의 용사들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내가 바라보는 삼천리 반도를 여러분들이 내 대신, 내 대신의 심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느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정성의 감도만큼 그 이상, 그 이상 어느만큼 정성을 들일 것인가? 정성은 깊고 높고 더 크더라도 그것은 하늘이 기뻐할 것이요 만민이 추앙할 것이어늘, 그것을 아는 스승이 없고 그것을 다짐하려는 부모가 없다는 거예요. 내 욕심 같아서는 내가 하지 못한 일, 내가 정성들이 지 못한 일, 내가 방방곡곡 다니면서 피땀을 흘려 가지고 권고하지 못하고 민족을 붙들고 통곡하지 못한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는 통일의 젊은이들이 되기를 ….

여러분들이 지방의 성지를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이 돌아가서 성지에 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성지를 지킬 줄 아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어요. 하늘의 축복, 하늘의 약속 밑에서 천명을 받들어 역사에 없던 새로운 성지를 마련해 놓았는데 그 성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환난과 핍박이 심하다고 하여 수많은 동지들이 각오로 결의했고 맹세했지만 그 맹세를 다 잊어버린 우리 앞에….

열 사람이 결의했는데 아홉 사람이 떨어지면, 아홉 사람의 결의를 대신 보충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하여 열 사람의 결의를 대신하여 성지를 지켜 줄 수 있는 이런 사람을 하늘은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사람을 이 민족 앞에 내세워 만민을 사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스승이 닦아온 역사적인 인연이었고, 또 여러분을 남겨 놓고 갈 때, 그러한 인연으로 하여금 앞으로 새로운 운세가 이 한민족을 통하여 다가오는 때에 있으니 이것을 여러분이 발 밑에 깔고 슬쩍 넘어설 수 있는 책임과 사명을 다하여 가지고 하늘땅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서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선생님은 바라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명심해 주길 바래요.

내가 서울에 있지만서도 마음은 언제나 지방에 가고 싶어요. 추운 날에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더라도 마음은 아픈 거예요. 여러분이 황폐한 삼천리 반도와 피폐한 이 민족의 운명을…. 내가 바라건대 여러분들이 편한 날을…. 내가 돌아올 때까지 편한 날이 없을 거예요. 찬 방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자기의 무릎을 적시면서 하늘 앞에 엎드려 호소하며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와 주길 바래요.

선생님이 있을 때는 기도 안 해도 괜찮아요. 명령을 직접 순종하고 움직일 수 있으면 되지만 이제 없게 될 때는 내적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이 져야 된다는 거예요. 내적 책임과 외적 책임을 겸해 가지고 져야 되겠어요.

내가 한국을 떠나 가지고 일본에, 혹은 외국에 가게 될 때 그 땅에 내려 가지고 나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 식구들을 본받으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너희들을 찾아왔으니 너희들의 애절한 심정을… '이땅을 위해서 너희들이 흐느끼는 것보다 더 눈물을 흘리고 싶고, 너희들이 이 땅을 위해서 정성들여 하늘 앞에 터를 닦지 못한 그 터를 내가 닦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거예요. 일단 떠나면 고국에 있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고 여러분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되 뜻으로 볼 때는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대하던 심정을 또다시 넘어서 그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대해 줘서는 안되는 거예요. 때가 쉬운 때가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여러분들보다 더 큰 입장에서 대해 줘야 할 이런 책임감을 느끼니만큼 여러분은 앞으로 한국에 있는 전체 분야의 책임을, 내적인 책임과 외적인 책임을 져 줘야 되겠다구요. 아시겠어요? 「예」

그러니만큼 지금까지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의 명령을 따라 가지고, 어려운 길도 각오하고 슬픈 길 비참한 길도 각오하고 지나온 과거를 존중시하는 의미에서, 현시대의 새로운 각오 밑에서, 삼청공원 성지면 성지꼭대기 가 가지고 이 삼천리 반도의 운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이 성지면 성지에서 전체의 이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면서 새로운 결의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음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남아진 복귀의 민족적인 책임은 우리가 하늘이 원하는 그 목표까지 있는 정성을 다해서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책임을 다하고 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부디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 참석했던 우리 식구들 가운데서 낙오자가 없기를 바래요.

하나님의 복귀섭리사에 있어서 내정적인 발전원칙

또 여러분이 지금까지 움직여 온 전통을 오늘 이 자리에서 흘려 버려서는 안 되겠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주일날 여기 전 식구들 앞에 협회장을 소개했어요. 과거의 모든 일은 다 잊어버려라. 그러나 과거의 말보다도, 과거의 슬픔보다도 만일에 이 고개를 잘못 넘으면 앞으로 올 슬픔이 더 큰 것이요, 앞으로 다가올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피하려니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야 된다 이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식구들을 격려하면서 협회장을 대신 세워 놓는다는 이런 약속을 했다구요.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선생님이 떠나면 이제 협회장이 책임질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들끼리…. 도리어 내가 얘기하는 것은 선생님의 명령보다도 협회장의 명령을 더 잘 들으라는 거예요. 그가 만일에 틀렸더라도 당부한 말씀이 그러니 그 결말이 나서, 책임적으로 이것이 판결이 나서 해결될 때까지는 묵묵히 참고 우선….

책임진 그가 어떠한 개인적인 감정이 있든가, 혹은 교회를 중심삼고 어떤 사감이 엉클어졌든간에 자기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맺힌 그를 바라보게 될 때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있거들랑 자기보다도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그가 됐을 때는 민족을 보아 가지고 용서해 주어야 된다는 것을 알라구요.

만일에 그가 민족적인 원수가 돼서 풀 수 없는 입장에 섰더라도, 나는 세계적인 입장에서 눈물을 짓지 못하는데 원수의 입장에 있는 그가 세계적인 입장의 문제를 가져 가지고 하늘 앞에 눈물을 짓걸랑, 세계적인 입장에서 눈물을 짓는 그 자체를 봐 가지고 용서해 주는 거예요. 이건 천리의 원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실수했다고 그 실수를 공격하는 것보다도, 그 실수한 일보다도 더 큰 일 때문에 정성을 들이고 더 큰 일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 더 큰 의미의 정성들인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걸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외의 현실적인 모든 사감이라든가 실수를 용서해 줘야 하는 것이 하늘이 찾아오는 길입니다.

만일에 그것이 없다 할진대는 오늘날 복귀섭리는 다 깨지고 마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늘은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거예요. 죄인을 용서해 주는 것은 그 죄 자체를 두고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날 너를 세워 가지고 이 죄보다도 더 큰 일을 하기 위하여 하늘은 눈물짓고 참기 때문에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일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 더 큰 일을 위하여 책임을 지고 더 큰 일을 위하여 눈물짓고 더 큰 일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책임자에 대해서 자기의 사적 문제를 짊어 지우고 고통을 받게 하면 그의 말로가, 갈 길이 막혀 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온 내정적인 심정의 역사적인 발전 원칙이라는 거예요.

핍박한다고 원망하지 말라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오늘을 기하여…. 귀향하여 수고한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수고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맺힌 곡절도 많을 거예요. 이 민족을 대해 가지고 내가 지금까지 수고하고, 뜻을 대해서 공적인 입장에서 수고하게 될 때 나에 대해서, 혹은 고통의 일선에서 고통을 주었고 핍박을 하였고, 혹은 저주하는 그들 앞에서 '용서할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어요. 그래서는 안 되겠다구요.

내가 그 부락에서 욕을 먹고 구박을 받았지만 나를 욕먹게 한 것은 그 부락에서 책임을 다할 건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부락을 넘고 면을 지나서 더 큰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 더 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목표 밑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위해서 눈물짓고 그 책임을 위해서 참고 나가는 사람은 기필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만일에 한국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다가 한국 백성에게 반대받는다고 해서 한국 백성을 저주하지 말고 한국 백성이 앞으로 나아갈 더 큰 세계적인 책임과 사명을 중심삼고 그 민족이 반대하는 자리에서 눈물짓걸랑 반대하는 무리들이 꺾여나간다 이거예요, 전부 다.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를 주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혹은 천주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정성들여 나타나게 될 때는 거기에 대비되는 핍박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그 시련무대에 있어서 그 시련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고, 그보다 더 큰 시련의 고개를 넘기 위하여 세계 혹은 천주적인 크나큰 사명을 안고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런 자리에서 맞고 그런 자리에서 시련받으면, 시련을 준 사람은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꺾여 나간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최고의 목적은 천주, 피조세계 전체보다도 천주를 창조한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들여라 이거예요.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여기에 있어서는 개인이 아무리 핍박하더라도 그 개인이 깨져 나가는 거요, 가정이 핍박하더라도 가정이 깨져 나가는 거요, 종족·민족·국가 세계가 아무리 반대해도 그 앞에는 다 꺾여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드리는 사람은 기필코….

개인적인 핍박 노정에 있어서 개인이 꺾여 나가게 될 때는 충성드리는 그 이면의 사람들, 그에게 아들딸이 있으면 그 후손을 세워서 충성드릴 때 반대하던 인연의 터전을 맡기는 거예요. 혹은 가정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의 인연의 터전을 그 측근, 즉 그와 인연을 가진 사람을 세워서 빼앗아 오는 역사를 하는 것이 하늘의 길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혹은 지금 현재까지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어느 부락을 내가 전도하고, 어느 곳에 내가 가 가지고 뜻을 선포하는 가운데 내 가슴에 사무치고 맺힌 감정을 풀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것을 넘지 못하고 하늘 앞에 기도하고, 이 원수를 갚아주기 전에는 나는 하늘을 위해 충성을 못 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보다도 거기에서 충성한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부락을 위하여 내가 억울함을 당했으면 그보다 더 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감사하겠다는 이런 사람이 돼야 되겠어요. 정성을 들이거들랑 부락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면 열매가 면·군 단위에서 맺히게 되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오늘 모인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방에 나가서 많이 수고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이 이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일했는데 이들을 원수로 보게 되면 그거 원수예요. 수많은 교계가 원수라면 원수예요. 어느누구 하나 친구되는 사람이 없고 어느누구 하나 편될 수 없는 이런 환경에서, 지금까지 반대하면서 우리 가는 길에 이렇듯 시련의 노정을 갖다 쌓아 나온 이 전체 무리가 원수로되 나는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현장의 그것이 문제로되 그걸 넘어 앞으로 후손이 당해야 할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고, 앞으로 세계가 당해야 할 그 운명을 염려하고, 그런 핍박과 그런 시련을 넘어서 하늘을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세계 운명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심적 기준을 어떻게 세워 나가느냐? 이것만 붙들고 나가면 아무리 핍박을 하던 그 핍박도 기필코 그날이 오거들랑 함락되고야 만다는 거예요. 이런 신념을 가졌기에 지금까지 싸워 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 앞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섭섭한 것, 혹은 막힌 것이 있거들랑 다 풀어 놓으라는 거예요. 또 핍박을 하고 벌어진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그 책임진 자를 전적으로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 주기를 하늘도 요구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자기의 심정기준과 생활태도를 반성하라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시련노정에 있어서 하늘이 반겨 주시는 것 같지만 그 반면 여기에는 원수들을 통하여서 사방에 담이 생겼다 이거예요. 다 지나간 것 같지만 그 원수들 앞에…. 원수가 원수시할 때 우리는 더 큰 무대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가야 되는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1950년대─지금부터 10년전이예요─그 당시에 말할 수 없는 시련도상에 있었지만 시련도상에 있는 그 자체보다도 내가 여유를 가지고 앞으로 이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고 세계적인 운명을 염려하여 시련도상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척자의 길을 개방해 나오고 새로운 개척자의 길을 개척해 나오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는 선생님의 신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미국에 가 있는 선교사들이나 일본에 가 있는 선교사들이 그때는 알지 못하는 거예요. 정부가 이걸 허락하지 않았어요. 오늘에 와서 이런 것을…. 통일교회를 막으려 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모험을 해서, 모험을 해 가지고…. 민족적인 것만이 아니예요. 세계를 위하여 더 큰 무대에 있어서 정성을 들이고…. 내가 어느때 핍박을 받는 것은, 여러분이 핍박받는 것은 여기에서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 목적을 위하여 해야 할 충성은 남아 있으니 가야 할 충성의 길을 따라서 시련과 핍박 도중에도 그 길을 세워 따라가고자 하여 그러한 선교를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해외를 중심삼고 한국에 새로운 보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져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이걸 생각할 때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시련을 받아 왔고 고통을 받아 온 여러분 자신들이 이러한 각도에서 이 대섭리적인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에, 내가 지금까지 책임진 분야의 이 시련과정에 있어서 책임진 것보다도 더 큰 무대에서 줄 수 있고 정성들일 수 있는 생활을 가졌느냐 이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반성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라구요. 내가 어떠한 환경을 피하기에 급급했고, 그 환경을 모면하기 위해 나는 정성을 들였고, 이 환경을 막아내기 위해 나는 하늘 앞에 호소했지만, 이 환경보다도 더 큰 시련의 환경이, 우리 통일의 식구들이 가는 길에 남아 있고, 스승이 가는 길에 남아 있고, 하늘이 가는 길에 남아 있나니 그 길을 위해서 내가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아직까지 그 분야의 시련을 내가 일부분이라도 막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며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낙망을 하고 지칠래야 지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과거를 회상해 보고, 지금까지의 자아의 심정기준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비판해 보고, 크나큰 대우주의 이념을 짊어진 나로서 지난날의 내 생활태도와 연결된 인연의 역사를 얼마만큼 존중시 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거들랑 과거의 모든…. 자기로 말미암아 원수가 돼 있고 자기로 말미암아 타격을 준 그가 있거들랑 그를 서슴지않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라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터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은 새로운 정기를 통하여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실적은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행동적인 태도의 여하에 따라 가려지는 것이니, 오늘날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이 없게 될 때 여기 팔도강산 촌촌면면 부락부락에 우리의 정성에, 하늘 앞에 거룩한 제단을 꾸며 놓고, 과거에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모든 부족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뉘우치면서 더 큰 인연을 나로 말미암아 세워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이 되거들랑 앞으로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만일에 한민족이 없는 가운데도 세계를 위하여 주고 싶어하는, 비장한 가운데서 세계를 위하여 염려하면서 자기의 꿔매 입은 누더기옷이라도 수많은 민족 앞에 주고 싶어하는 이런 민족이 되었걸랑…. 돈이 없다고 나는 낙심하지 않아요. 끼니를 굶고 있다고 낙심하지 않아요. 그의 갈 길과 그 나라의 운명은 앞으로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이 천지가 그래요.

자기의 책임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맺어져 있음을 알아야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이러한 천적인 인연을 알았으니 오늘 내가 지은 바의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한 번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체를 세워 놓아야 되겠어요. 하늘의 중차대한 책임을 이 시대 앞에 나를 세우시어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신중한 자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민족을 위해서 하나의 마음으로 정성을 쏟은 내 자신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돼요. 흔히 보게 되면 '어느누구 때문에 나는 통일교회에 못 가고 뜻을 버린다' 이런 사람을 봤어요. 자기 자체라는 건 자기 개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예요. 비록 아무개 라는 이름을 가지고, 혹은 성씨를 따라 박이면 박 김이면 김이라는 개체의 이름을 갖고 개체의 모습을 가졌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서 있고 디디고 있는 이 자리에서의 책임적인 사명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뜻을 대신하여 그 슬픔을 걸고 배반할 수 없는 거예요. 왜? 이유는 한의 곡절을 거쳐와 한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서 개척해 놓은 아버지의 6천 년 곡절의 역사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예요. 내가 이것을 저버릴 적에는 하늘을 대신하여 심정적인 배반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6천 년 서러움의 심정 앞에 전체적인 심판을 홀로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그 자리를 피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자기 혼자 마음대로…. 보면 그래요. 자기 혼자 마음대로예요. 법이 뭐예요, 법이. 자기 마음대로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책임진 입장에서는 화도 자기 마음대로 못 낸다는 거예요. 화도 마음대로 못 내는 것이요, 기뻐도 자기 혼자 기뻐할 수 없는 것이요, 슬퍼도 자기 혼자 슬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적인 기점에 서 있는 내가 내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깨져 나간다구요.

그걸 생각하게 될 때 자기가 짊어진 이 사명이 얼마나 중하다는 것, 이는 하늘로부터 6천 년 전에 인간을 찾아와서 여러분에게 인계해 준 책임인 것을 알고, 수많은 선의 선조들의 공로의 터전을 통하여서, 눈물과 피땀의 제단을 연결시켜서 오늘날 나의 한 개체를 세워 그 해원성사를 통고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하늘로 보나 선조의 생애의 피의 근원으로 보나, 혹은 이 사회적인 혼란 가운데 하늘이 나를 찾아온 그런 시대적인 수고의 곡절을 두고 보더라도 자신들이 속단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된다구요.

자기 주변의 시시한 것들은 전부 다 짤라 버리고 관계를 짓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나라는 자체는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내 심정의 고동소리, 동맥의 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이 피는 삼천만의 운명의 맥박을 끌고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래요.

그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시대적인 사명을 찾아오신 하늘 앞에 있어서 이 민족을 통하여 세계사적인 크나큰,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인류를 책임지기 위한 이러한 동적인 것 중의 동적이요, 중심중의 핵심을 만들려 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여러분이 개인적인 사관을 갖고 개인적인 결단을 내려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책임진 사람은 환경을 봐야 되고,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를 봐야 되고, 자기의 욕망을 미루어 봐 가지고 지기 힘이 부족하거들랑 사방의 비교 기준을 거쳐 가지고 그 큰 책임과 사명이 귀중한 것을 알고 행여나 그 귀중한 자체가 피해를 입을까봐 염려가 앞설 줄 아는 사람이 되거들랑, 그는 입을 열어 남에게 욕도 못하는 거예요. 슬프다고 저주를 못 한다는 거예요.

개척해야 할 더 큰 시련무대가 남아 있는 데 불평할 수 있는가

내가 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내가 당하는 슬픔 이상의 슬픔이 남아 있는 것이요, 내가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가야 할 그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야 할 하늘이 있고, 그 길을 가야 할 스승들이 있고, 그 길을 가야 할 책임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걸 바라보고 그 길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좌우로 뭐 이렇게 시시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과거의 모든 전체를 청산해 버리고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나를 다시 한 번 회고하여 새로운 인연을 붙안고 새로운 사명에 입각하여 자기의 적나라한 자세를 하늘 앞에, 이 민족 앞에, 과거 현재 미래 앞에 내세울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고, 여러분이 중심을 다시 한 번 세울 줄 아는 이 시간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이래 가지고 오늘의 이 시련의 고개보다도 내일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하고, 내일의 시련의 고개보다도 그 다음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하고, 가정의 시련의 고개를 넘어서 종족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하고, 종족의 시련의 고개를 넘어서 민족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의 시련의 고개를 넘어서 세계의 시련의 고개를 넘자 하고, 세계의 시련의 고개를 넘으면서 천주의 시련의 고개를 넘자, 넘자, 넘고 넘고 또 넘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가고 가면 갈수록 보다시피 내 발걸음이 어길 수 없이 바쁜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언제 뭐 이러고 저러고, 뭐 옆의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는 다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요, 한 민족과 한 종족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요, 이 세계적인 대운세가 오늘날 이 나라를 찾아와도 그런 사람들은 대세계적인 운세 앞에는 상관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오늘날 우리의 통일이념은 민족적인 운명을 책임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천주사적인 운명을 책임지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의 해방운동까지도 제창하여 나오는 이념이니만큼 아버지의 심정세계에는 아직까지 검은 구름이 남아 있고, 아직까지도 슬픈 곡절의 피가 맺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저버리고 그 심정을 붙들고 이 피를 걷어치울 때까지는 쉴 수 없는 고달픈 운명에 처해 있는 슬픈 타락의 후손들인 것을 살면서, 생활에서 느끼며 자기 자체를 다짐하면서 달려가기에 보다 기쁜 마음을 지니고 나가는 사람이 돼야 되겠어요.

이 사람은 시대가 바뀌면 바뀔수록 성공하는 거예요. 사회가 복잡하고 뒤넘이치면 칠수록 뭐 하나가 깨져 나간다는 거예요. 가정이 깨져나가든가 종족이 깨져 나가든가 뭐 하나 깨져 나가는 거예요, 복잡한, 교차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사람은 빨리빨리 발전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의 운명이, 이 통일교회가 세계 무대를 향하여 나가는 데 있어서는 교차의 연결이 빨리 벌어져라 이거예요. 한 나라의 주권자도 역시 빨리 교차되라, 한 나라의 문화도 빨리 교차되라, 한 나라의 모든 유행하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빨리 교차되라 이거예요. 교차하면 할수록 천적 분위기를 붙들고 충성의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어서 이것이 성공의 날을 촉구하는 재료로 연결 안 되면 망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국가의 과정에 있어서의 시련무대를 내가 친히 거쳐왔고, 한 주권을 거쳐오면서 민족 앞에 시련당하고, 교체되고, 변화되는 환경에 부딪칠 때마다 염려한 것은, 넘어가야 할 내 길, 그 시련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그 시련에 이어 다가올 하늘의 제2 시련을 대비하여 하늘 앞에 배척받지 않을 수 있는 하늘의 충효의 도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였다 이거예요.

책임을 다했다고 공인받을 때까지는 심정적인 빚을 지지 말라

선생님이 어디에 간다고 해 가지고 여러분이 와서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그것보다도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여러분 각자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다짐해야 할 것은 더 큰 이념적인 시련무대를 향해 가야 할 그 길에 대하여 다시금 각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에서 책임을 다짐하는 동시에 앞으로 세계사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한 천적인 슬픔을 다짐하면서 오늘의 내 시련이 부족하오니 내일에 찾아오는 시련무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내 내적인 인격과 외적인 인격을 여기에서 갖추어야 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절개와 충효의 도리를 세우기 위해 애달픈 심정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 뭐지치고 어쩌고 할 때가 있느냐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가고 가고 가면 갈수록 하늘의 애절함이 더 큰 것을 알고, 하늘에 다짐하고 가면 갈수록, 자기의 무대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넓어진 무대를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런 시련과정에서 어떤 기반을 닦았다고 해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나이가 40이 푹 넘어서보면, 천적인 인연을 볼 때, 젊었을 때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섰던 결의는 40까지 복귀의 운세와 천지의 이 말세적인 운세를 종결짓고 하늘의 새로운 천지의 운세를 바라보겠다는 것으로서, 그런 기준이 나를 세워서 내몰아 준 본래의 목적이었는데, 오늘 내가 이 아침 연령에서 이와 같은 무리를 대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하늘 앞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뭐 기쁨도 없어요. 앞으로 외국 식구들이 환영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예요. 도리어 환영하면 괴롭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시련도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거기에 있어서 천운이라는 그런 것, 평화 혹은 행복의 여건이란 무엇인가? 이 한날 한때에 있어서, 그 과정에 있어서는 좋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크나큰 시련도상을 넘어가야 할 그런 행로 앞에는 도리어 걸림돌이 되고 가시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을 염려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을 내가 제일 무서워한다구요. 혹은 이 원수들이 정성을 다하여…. 그게 무서운 거예요. 내일이 탕감되고 내 일이 전부 다 하늘에 공인받을 때까지는,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는 기준을 전부 다 공인받을 때까지는 빚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길이,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두길 바래요. 아시겠어요? 「예」

오늘 여러분들이 한국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예요. 한국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하여 이 한국 젊은 청년 남녀들로 하여금 세계무대에서 먼저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릴 수 있게 만드느냐? 내가 이번에 가게 되면 일본도 일주할지 모릅니다. 미국은 50개 주를 일주하게 될 때에 무엇 때문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요. 나는 거기에서 누구보다도 하늘을 대신해서 눈물을 흘려 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내가 이 땅을 사랑하자! 역사적인 미국의 어떠한 선조나 미국을 사랑한 애국자보다도 사랑하자! 그 땅을 붙들고 그 땅을 밟고, 하늘이 여기에서 동감하여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안식의 보금자리인 땅이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주인을 마련해 주는 거예요. 이런 걸 생각할 때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국 식구, 외국 식구를 만나는 것도 일이겠지만 그건 2차적인것 이예요.

목적이 클수록 전체가 협동해야 이뤄져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 책임지고 있으면 지방에 나가 책임진 그것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마음과 몸의 이중으로 되어 있으니만큼 우리는 이중의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구요. 생활적으로 하늘을 위로하고 마음, 심정적인 생활에 있어서 하늘을 위로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면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은 마음은 딴 데 두고 생활은 달리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혹은 어려운 자리에, 혹은 수난의 자리에, 혹은 몸부림치는 환경에 있거들랑 마음도 역시 그런 입장에서 내가 이런 곡절, 이런 것을 이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내일의 준비된 이런 입장에서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효성의 예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오늘날 통일신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현실의 생활무대에 있어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 주기를 바래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 자신들은 통일교회의 인연을, 원리를 중심삼은 인연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식구라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혼자 일할 수 없는 거예요. 바라는 소망이 크고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 목적은 나 혼자 이룰 수 없다 이거예요. 그것은 전체가 협동해야 돼요. 내가 사는 데는 손은 손대로 눈은 눈대로 해서는 안 된다구요. 전체가 하나의 목적이어야 돼요.

마음은 어떠한 목적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모든 사지백체를 동원하여 통일적인 관념 밑에서 하나의 소원을 바라보고 하나의 행동적인 기준이 벌어지고 통일적인 목적을 지향해서 움직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큰 뜻을 품고 큰 시련을 당하는 입장에 있걸랑 여러분들이 혼자 가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진심으로 연락할 수 있는, 자기를 중심삼고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동서남북이 있어야 돼요. 내가 있으면 동서남북이 있어야 돼요. 상하가 있어야 되고 전후좌우가 있어야 돼요. 천주도 역시 존재의 위치를 결정지을 때는 그러하거늘,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는 천주의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책임이 있는 연고로, 그런 입장에 설 때는 반드시 사방의 기준을 연결지어 가지고 가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식구가 필요해요. 괴로울 때는 식구를 붙들고…. 자기 혼자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도 괴로울 때 그 식구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 이것이 빨리 풀린단 말이예요. 빨리 풀린다. 풀뿌리를 붙들고 기도하고 호소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보다는 식구를 붙들고 격한 가슴을 터놓고 가야 할 운명의 길을 염려하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그 자리에서, 도리어 그 사람을 격려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지금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한 거예요. 동지가 없다면 여러분은 동지를 만들어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메시아, 예수도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자기의 신앙길을 닦는 데 동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제자들을 모아 가지고 거기에다 정성을 들여 인연을 두터이 해 가지고, 그 인연을 기준으로 하여 여기에 몰아치는 모든 사망의 골짜기라도 헤쳐 넘어갈 수 있는 쇠고랑을 짊어지워 주려고 했다는 거예요.

이 쇠고랑을 끊지 않고 원수의 혀를 자르고 갈 수 있는 연결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 예수의 사명이지만, 시대적인 세풍에 찌들고 사회환경과 여러 생활분야에 있어서 습관화된 이들은 예수를 도리어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전체가 깨져 나갔다구요.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에 연결된 연결체를 이 땅에 많이 빨리 만들어 놓은 사람일수록 환난과 시련의 폭풍이 몰아쳐도, 태풍의 노도가 몰아쳐 온다 하더라도 이것은 사방에 닻을 내린 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안전한 입장에서 자기 위치를 취해 가지고 다시 정복할 수 있는, 닻을 취할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는 거예요.

남을 위하는 것이 내가 살기 위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 여러분들이 필요한 거예요. 전라도에 가면 전라도 사람이 필요한 것이요, 전라도의 저 맨 산골에 있는 사람들까지 필요하다구요. 하늘이 가야 할…. 살이 남아 있으면 세포가, 세포가 남아 있으면 피가 가야 돼요. 신경이 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중심삼고 팔이 있걸랑 안팎으로 흘러나가는 모든 세포 분야의 배후에서 작용해 주고 같이 응할 수 있는 신경기관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연결적인 관계를 어떻게 치밀히 여러분을 통해서 맺느냐 이거예요.

자신의 전후좌우를 지켜 줄 수 있는 발판이 절대 필요해

슬프거들랑 슬픈 사실로서 하나예요. 기쁘거들랑 기쁜 사실로서 하나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생활통일을 이루어야 돼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환경을 뿌리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동지가 필요하다 이거에요, 동지가. 절대 필요하다는 거예요. 자기 혼자서는 절대 못 가는 거예요.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이런 원칙을 따라서, 그것이 천도의 원칙인 연고로 그 인연을 세우지 않고는 존재의 기반을 닦을 수 없습니다. 하늘도 사위기대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의 운명의 고개를 지금까지 넘어온 것을 잘 알고 여러분들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얼마만큼 연결하기에 급급했나 하는 것을 반성하라구요.

보라구요. 당년에 씨에서 생겨난 하나의 나무면 나무가 말이지요, 그 심은 당해에는 바람이 불어도 시련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해가 지나고 그 줄기가 커서 그것이 점점점 여러 인간들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과목이 되기 위해서는 가지가 많아야 돼요. 뿌리가 깊어야돼요. 그러니 그것은 복잡한 것이요, 거기에는 시련이 많은 거예요.

백 개의 가지를 갖고 있으면 열 개의 가지를 갖고 있는 것보다 열 배의 시련이 있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로 하여금 열 배로 움직일 수 있는 활력을 갖추어야 돼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고 하늘 앞에 인정을 받길 바라는 마음을 갖기 전에 먼저 인정을 받고 남을 수 있는, 인정을 받고 인정의 결과를 지닐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은 남을 이용할 사이가 없다구요. 나를 중심삼아 몇년 동안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 되는 밭을 팔도강산에, 삼천리 반도에 만들어 놓고 그러한 연결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그가 움직이는 것은….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서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도 이런 시련도상에 있어서 개인적인 시련과 가정적인 시련과 종족·민족·국가의 시련과 세계적인 시련의 고개를 넘어갈 적마다 바라는 것은 혼자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세계를 이끌고….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해 달라고 최후의 기도를 올리던 그때에 있어서 예수님도 세 제자를 동반했어요. 그렇지요? 만일에 이걸 연결시키지 못하는 날에는 하늘은 하늘대로 갈라지고 땅은 땅으로 갈라진다 이거예요. 고개를 넘어가더라도 다시는 넘어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런 애절한 인연이 복귀라는 한의 노정으로 남아 있는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내가 없으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 뒤와 내 전후를 지켜 줄 수 있는 제2의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도 지금까지 개인의 세계에서 개인을 뽑아 오는 데 있어서 그 개인의 수고를 대신 짊어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 줘서 기쁘게 해 가지고, 자기를 알고 비로소 당신이 앞에 맡고 있는 그 괴로움을 나에게 상속해 주소 할 때까지는 하늘이 책임지고 이끌어 준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이 길을 닦아 주고 하늘이 길러 줘 가지고 축복을 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깨달을 때까지 여러분을 연결시키기 위해 수고하신 것을 알고, 언제든지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이 공적인 힘을 미쳐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지방에 돌아가게 되면 그렇게 해 가지고 '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야…. 세상을 다 움직일 수 있는 그걸 만들어 놓아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암만 하나님의 아들이면 뭘하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인 줄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암만 하나님의 아들이면 뭘해요? 뭘하느냐 말이예요. 발판이 있어야 돼요. 누가 공인했나요? 공인할 수 없으니 사탄이 잡고 '뭐야 이 자식아!' 하는 거예요.

책임진 분야에서는 가능한 한 많이 주고받아라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완수해야 할 것은 책임분담이예요, 책임분담. 오늘날 전국에 널려 있는 모든 지역, 지구장들은 혹은 거기에 충성을 한 여러분들은 지방에 돌아가 가지고 그 분야에 있어서 자기 혼자 개별적인 활동을 못 한다구요. 이젠 연결적인 환경에서 이 움직임을 통하여 전체의 반응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겠어요. 하늘이 그러하듯이 다 그래야 돼요.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동기가 되어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사람을 접붙이는 데는 딴 사람을 접붙이지 말라 이거예요. 이 줄기가 있으면 곁가지가 있어야지요. 그 나무에 줄기가 있다면 줄기에서 뻗어 나가는 그 대가지가 있고 대가지에 달린 작은 가지가 있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에 있어서 우선 당당히 뿌리박혀 가지고 내가 아니 할 수 없는…. 순으로 태어나는 하나의 잎사귀 같지만 여기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뿌리와, 원줄기와 단절되지 않고 전체의 기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에서 생명을 가졌으면 이건 뻗어 나간다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 앞에서, 6천 년 섭리상에서 선생님은 40평생에 이러한 터전을 닦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혹은 팔도강산에 우리의 조직을 세워 가지고 이것이 한 나무의 가지와 같이 뻗어 나가는 데 있어서, 혹은 군이면 군, 면이면 면 단위에 접붙일 수 있는 그 개체는 누구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내가 전체 앞에서 뻗어 나가는 중심가지가 되겠다고 하거들랑 여러분이 줄기 앞에 당당히…. 언제나 살아 있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그 가지로 말미암아…. 자기 하나로서 연결되어 여기서부터 뻗어나가 가지고 연결적인, 접붙이는 가지를 만들고, 접붙일 수 있는 가지에서 또 가지를 만들게 할 수 있는 이런 역할을 하게 된다면….

만일에 이 나무의 모든 가지가 다 움직이지 못하거들랑, 종대까지 꺾어지더라도 이 가지는 이 길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된다 이거예요, 종대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깨져 나가게 될 때에 이방 사람들이 충성을 다해 하늘 가지 앞에, 줄기 앞에 접붙여 가지고 나왔어요. 이것이 제2의 이스라엘이예요. 하늘이 뚝 잘라 버리고 다시 키우겠다는 것이 제2 이스라엘 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많이 주고 많이 받아라 이거예요. 많이 관계해라 이거예요. 이게 사는 원칙이예요. 발전하는 원칙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 나뭇 가지가 크면 클수록, 천만 가지가 있더라도 여기에 천만 가지가 살 수 있는 진액을 흡수해 가지고 왕래시켜야 된다 이 말이예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제 책임진 분야에 있어서 얼마만큼 사방으로 왕래시킬 수 있는 개체가 되느냐 이거예요. 앞으로 한국에서는 협회장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내가 안단 말이예요. 그렇게 협회장의 책임이 귀중하고 여러분 지역장, 지구장의 책임이 귀중하고, 그다음에는 지방에 나가 가지고 일선에 있는 우리 책임자들의 책임이 귀중하다는 거예요. 만일에 협회장이 책임 못 하고 지구장, 지역장들이 책임 못 하거들랑 일선의 세포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만 살아 있으면 되는 거예요. 아무리 노송나무라도, 다 끝나 가더라도 맨 끄트머리의 세 잎사귀만 살아 있으면 이 나무는 사는 거예요. 이만한 가지가 하나 남아 있고, 다 썩은 뿌리지만 그 끄트머리에 세 잎사귀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는 살았다 이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은 다 없어지더라도 저 맑은 날씨에 하늘을 보게 될 때 뿌리는 안 보이고 줄기는 안 보이더라도 끄트머리에 있는, 살아 있는 세 잎과 같은 일을 해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 세 잎사귀는 불원한 장래에 제2 통일교회 노릇을 한다는 겁니다.

그 자체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그 내부에 큰 나무가 죽어지는 파란곡절을 다 겪어야 돼요. 이게 천리라구요. 오늘날 복귀섭리 노정에서는 크나큰 노송이 살아나가는 것과 같은 최후의 첨단에 통일교회가 섰다 할 때는 '6천 년 시련 곡절을 거쳐라!'이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생명을 가져야만 살았다 할 수 있어요.

이런 걸 생각할 때 우리의 신념은 부족하고, 우리의 책임적인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다 쓰러질 때 말초신경이 통하는 세포의 한 분야로 살아 가지고 이것을 동기로 하여 재생되어 번식의 동기를 가져올 수 있는 이러한 자신이 되어 보겠다고 몸부림치거든 그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 것은 자신의 마음

누가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알아주지 못하면 내가 기쁜 마음으로…. 내가 내 마음을 중심삼고 책임분담 했으면 마음이 기뻐야지요. 고통이 있어 가지고는 죽는 거예요. 아무런 시련 풍파 곡절이 부딪쳐 와도 나는 살아 있다 이거예요. 살아 있으면 반드시 발전하는 거예요. 살아 있으면 반드시 장성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죽어 있으면 퇴화하는 거예요. 죽어 있으면 자꾸 떨어져 나가지만 살아 있으면 자꾸 붙는 다 이거예요. 붙으니만큼 거기에 투쟁이 있는 거예요, 투쟁이. 생명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는 것이요, 생명이 있는 곳에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만큼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임진 분야에서…. 뭐 협회장이고 지구장이고 뭐 어떻고…. 우선 여러분들이 살아 있으면 고통이 없어요.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이거예요. 남을 대해서 입을 벌려서 뭐 이러고 저러고 말을 하기 전에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 놓아야 돼요.

그 사람을 대하면 내가 괴로우냐, 안 괴로우냐? 괴로운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이요, 괴롭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는 거예요.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괴로울 거 없어요. 나는 아무런 뭐가 없어요. 그렇지만 나를 대하면 선과 악은 갈라지는 거예요. 고통에는 하나님이 개재하지 않는 것이요, 안식과 행복에 하나님이 개재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두 원수가 있을 때 누가 승리하느냐? 그 마음에 원수를 대하여 아무 나쁜 마음이 없는 사람이 오래 가느냐, 그저 죽겠다고 다다다하는 사람이 오래 가느냐? 누가 남아지느냐? 동동 굴리는 그런 사람은 꺾여 나가는 것이요, 무사태평한 사람이 남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시련을 많이 받아야 돼요. 특히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통일교회는 시련을 당하자 이거예요. 제일 무서운 것이…. 사탄의 화살을 맞고 있느냐 안 맞느냐, 무엇을 지금 하는 것이냐 하며 괴로워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럴 때는 뿌리쳐 버리고 빨리 그 입장을 회복해야 돼요. 여러분이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을 수 있는 방편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있다구요. 여러분은 절대 괴로움당하지 말라구요. 고통받지 말라구요.

천주복귀란 말이 얼마나 큰지 아는가

인생이 뭐예요, 인생이? 큰일을 하려면 아까 말한 거와 같이 거기에 비례되는 고통을 엮어 나와야 돼요. 오늘날 세계복귀사명이니 천주복귀사명이니 하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천주라는 말, 한 번 써 보자구요. 천(天) 주(宙), (판서하심) 이렇게 된다 말이예요. 천주가 얼마나 큰 거예요? 요 태양 안에 들어가서 춤추는 거예요? 천주가 얼마나 큰 거예요, 천주가? 여러분 가슴 안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이 천주를 천개 만개 억천만 개 주고도…. 인간들이 '아이구,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안 해주고, 아이고' 그러는데 요것들 죽어라 이거예요.

통일교회는 이거 무슨 이론이예요? 응? 통일교회는 무슨 이론이예요? 「천주복귀이론이요」 천주가 얼마나 커요?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 천주에는 아이고 좋다 하며 춤추는 사람만 있지요? 생각해 보라구요. 천주 안에는 춤추는 사람만 있어요? 울고불고 죽이고 그저,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고 나 죽는다…. 별의별 잡동사니 별의별 요지경이 거기에 다 벌어지고 있단 말이예요.

'천주'라는 것은 좋은 향내가 풍기고, 행복의 보금자리고, '천년 권세가 여기에서 벌어지고 만년이 지나도 끝나지 마소서' 그럴 수 있는 곳 같아요? 이런 천주가 복귀 됐어요? 복귀 됐어요? 엄청난 거예요. 천주복귀사의 그 이념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 가슴을 한번 척 내밀고 천주복귀 주인들…. 주인이예요? 천주복귀 주인이예요?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어 봐요. 말은 주인 같아 보이지요. 그 가슴을 한번 헤쳐 보라구요. 뭐가 있어요? 보게 되면 뭐예요, 그 안에? 뭐예요? 보게 되면 끔찍이 놀랄 것도 있고, 좋아서 세계가 떨어져 나올이만큼 큰소리로 웃고 싶은 그런 별의별….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천주복귀할 사람은 그런 관계를 맺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풍상을 겪지 않을 수 없어요. 먼저 복귀는 탕감복귀…. 무슨 복귀예요? 탕감복귀예요. 탕감복귀라는 것은 갖다 보태는 거예요, 깎아내는 거예요? 뭐까지? 뼈다귀까지 깎아내는 거예요. 탕감복귀, 천주복귀는 그래야 되는 거예요. 탕감복귀예요. 깎아내야 돼요. 깎아내려면 얼마나 복잡하겠느냐 말이예요. 얼마나 복잡해요? 3천만 민족? 30억인류? 안 돼요, 안 돼. 하늘땅에서부터 전부, 태초에서부터 뭐라 할까, 끝날 때까지 전부….

그걸 생각할 때 천주복귀의 용사, 말은 쉽지요. 천주복귀의 용사, 용사는 무슨 용사예요? 생각해 봐요. 얼마나 기가 막혀요. 태양이고, 은하계고, 우주고 그리고도 더 있단 말이예요. '야! 하나님─' 할 때 그 소리가 어디까지 갈 것 같아요, 어디까지? 하나님 부르는 그 인연이 어디까지 갈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 할 때 하나님의 인연이 어디까지 뻗어질 것 같아요? 요즘의 천문학 용어로 말하면 말이지요, 1광년이라는 것은 뭐냐? 빛이 일초에 3억 미터의 속도로 달려서 1년 걸려서 도착하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한다구요. 이게 80억 광년이니 뭐 60억 광년이니 하고 말한다 말이예요. 그런데 별이 있다는 거예요, 아직까지.

60억 년 전에 별이 반짝 해서 그 빛이 지구에 오는 데 60억 년…. 그렇게 빠른 빛이 출발해 가지고 지구성과 한번 상봉하기 위해 지금도 오고 있지, 아직까지 면담도 못 했어요. 얼마나 멀겠어요? 그런 대우주, 아 그러한 천주의 대주재, 하나님!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을 해보란 말이예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해요.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 마음이 후련해요. 신난다 이거예요. 그가 내 아버지예요. 세상에 보면 대통령 팔아먹고, 꺼떡거리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생각해 보란 말이예요. 아, 역사적인 군왕들이 그 앞에 참배를 하는구만. '여봐라' 하면 '예이' 하고, 역사적인 천하의 모든 군왕들이 '여봐라' 하면 '예' 하는 구나. 종은 명함도 못 내미는구나. 아 그런 분이 내 아버지다! 생각을 해보란 말이예요, 그렇게. 얼마나 멋지겠어요?

천주복귀의 주체가 되려면 모든 탕감의 조건을 거쳐야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소개하는 그 아버지가 강도 아버지예요?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주머니를 펼쳐 보이지 못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눈으로 봐도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너무 크기 때문에. 이게 하나님이예요. 아니, 그런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저 눈물을 흘릴까? 여러분은 의심이 안 돼요? 아, 그런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눈물 흘리면 눈물 흘릴까? 눈물을 흘려요? 에이─. 눈물을 흘릴까? 여러분들 그거 테스트해 봤어요? 아, 그 눈물이 나서 진짜 떨어지면, 진짜 그렇게 큰 분이라면 눈 하나가 얼마나 클까요, 눈 하나가? 눈물이 떨어진다면 다 없어질 텐데 눈물을 흘려요? 여러분들은 그 인식이 들어와요? 그렇지만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피눈물이 난다고 그러지요? 피눈물을 봤어요? 눈물은 눈물인데 피눈물이예요. 그 눈물이 안 보여요. 안 보이고 나오는 눈물이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얼마만큼…. '나는 그런 분의 아들이다. 때려라, 이 자식! 얼마나 때리나 보자'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뭐 근사하다구요. 핍박해라 이놈의 자식!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눈물 흘리나 보자! 응? 이 젊은 녀석들은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진짜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뭐 할 게 있어야지요. 간수들이 신바닥 끌고 다니는 게 제일 싫었어요, 딸까닥 딸까닥. 내가 생각하는 데 아주 지장이 많거든요. 눈만 감으면 천하가 다…. 지구성과 별들을 바꿔 놓고, 마음대로 바꿔 놓을 수 있고, 올라가라면 '예' 하고 올라가고, 내려가라면 '예' 하고 내려가는 거예요. 한 번 그 경지에 들어서면 천년 공사가, 억천만 년 공사가 시작해서 완성된다 이거예요. 한 번 '야 지구놈아, 너는 태양을 중심삼은 궤도를 공전할싸' 하면 '예, 예, 예…' 그 대답이 끝나지 않을 거라구요.

생각을 해보라구요. 그 하나님이 진짜 그런 하나님이 통일교회와 같이할까? 여러분들 그거 생각해 봤어요. 아, 통일교회의 그 천주복귀라는 말이 얼마나 엄청나요? 여러분의 꽁무니에 그게 따라다닐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세워진 통일교회요, 그런 관점에서 불러 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가치, 그 아버지와 인연맺은 통일교회 자녀들의 심정적인, 결합된 그 도수의 강도 앞에는 천하의 제아무리 큰것이라도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한테 머리숙인다! 이래야 되는 거라구요.

이런 줄 몰라 가지고 조금만 하면 그저…. 참새 새끼도 말이예요, 뭐 맛있는 걸 보면 주인의 눈치를 봐 가지고, 잡으러 오는지 안 잡으러 오는지 그것도 감지해 가지고, 사람이 지나가면 떡 그걸 주시해서 비교해 가지고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그러는데, 새 새끼도 그러는데, 이 천주복귀하겠다는 녀석들이 가만히 보게 되면 이건 참새 새끼만도 못한 때가 있어요. 그런 시시한 패들이 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예」

천주복귀, 천주복귀를 위해서. '내가 이 한반도에서 천주복귀의 사명을 가지고 왔소'그런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면 '예이─' 그런 느낌이 느껴져요? '아이고, 다리가 뒤로 가려고 한다. 앞으로 가야 할지, 뒤로 가야 할지, 아이고 이게 다 갈 수 있나?' 그러다가 망했지, 그러다가. 다 그러다가 떨어져 나가지 않았어요? 부디 남아 있는 패들은 그러지 말란 말이예요? 「예」

천주복귀의 용사, 이거 얼마나 멋져요. 거기에는 크니만큼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이거예요. 대가리가 깨지는 일이 있고,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있고, 다 있다 이거예요. 다 있으니 탕감복귀를, 나도 한번…. 탕감복귀를 내가 책임지려면, 탕감복귀의 주체가 되려면 탕감복귀의 조건을 나는 거쳐 나가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은 그걸 알고 아무리….

내가 옛날에 그랬어요. 이 길을 가게 될 때 '하나님, 내가 알았습니다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복귀의 길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복귀, 세계복귀까지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연결된 걸 알았습니다. 이왕지사 탕감의 조건이 남아 있으니 들이 죄기고… ' 선생님이 그렇게 나왔어요. 내가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별의별 놀음 하면서도 원망을 안 했어요. 나로 말미암아 하늘의 아들딸과 사탄세계 앞에 결정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을 내가 제시했던 거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비중을 한번 달아 봐라. 그렇다는 거예요.

큰 아버지를 모시고 있고 큰 뜻을 품었으니 생각을 달리 해야

지금도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편안한 길을 찾아다니려고 안 해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갈 길이 남아 있고, 아직까지 복귀의 한계가 남아 있으니 이럴 때일수록 크신 아버지를 모시고 크신 아버지 앞에 바짝….

여러분은 어때요? 길을 가면 나 혼자 가도 좋아요. 길 같은 데를 혼자 가면 참 재미있거든요. 돌을 떡 갖다가 저 앞쯤에 집어 넣은 거예요.

뺀질뺀질한 돌이 있으면 말이지요, 떡 한 20발자국 거리에서 '맞는다'하며 딱 던지는 거예요. 한 가운데 집어 넣는 거예요. 디리 맞는다 이거예요. 탁 집어 넣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는 집어 넣는 자리가 얼마만큼 표가 나나, 몇 발자국 거리, 몇 자 차이가 나느냐 가서 보는 거예요. 어떤 돌이 있으면 '내가 이번에 던지면 다섯 자 이내에 때린다, 이 자식' 그리고 던지는 거예요. 이래 놓고 던져서 다섯 자 이내에 들어가면 참 신나거든요.

혼자라도 그걸 잘하는 거예요. 저 산에 올라갈 때도 쓱 가다가는 쉬고는 몇분에 올라간다 이래 가지고 올라가는 거예요. 땀이 나더라도 쭉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 시간 이내에 올라가면 기분이 좋거든요. 이런 놀음을 많이 했어요.

기도하고 나서도 내가 이런 기도를 해 가지고 하늘이 어떻게 이걸 해결지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기다린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해결이 안 되거든 생명을 걸고 담판한다 이거예요. 그렇게 하는 거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래 가지고 세 시간 이내에, 몇시간 이내에, 몇일 이내에…. 이런 놀음을 많이 해봤단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전국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무엇이 있어야 돼요. 이 3년노정에 통일교회의 역사가 남을 것이니 그 세계사의 노정에 있어서, 하늘법칙 노정에 있어서 어느 부분에 내 이름이…. 그런 걸 생각해 봤어요?

내 눈은 이렇게 생겼다 이거예요. 젊은 녀석이 눈이 아주 잘못 생겼어요. 대가리 크고 보니까 이건 뭐 쓸모가 없다는 거예요. 어디 가서 뭐 학박사 노릇도 못 해먹고 수많은 사람을 지도할 수 없는 무가치한 녀석이예요. 어디 가서 쓰러져 죽어도 동네 개도 뜯어먹지 않을 그런 신세 짜박지가 뻔하게 보이거든요. 보여요. 그런 녀석들이 있단 말이예요. 그럴 때는 한번 멋지게 모가지를 들이 대고 해보라구요. 그런 모험심도 있어야 된다 말이예요. 이건 그저….

복귀도상에서 고생하는 데는 그런 사람들 좋아 안 하거든요. 그럴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대학을 나왔으니 학박사고, 너희들 전부 다 못난이들이어서 일 못 한다…. 천만에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거예요. 사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났어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잃어버리고 찾아들어 가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거예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이 있는 거예요. 천주복귀의 용사가 돼 가지고 큰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 호흡, 숨쉬는 것도 그래요. 후─후─. 전부 다 다르다고 생각하라구요. 큰 포부를 가졌기 때문에 숨쉬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달라요. 옛날에는 젓가락을 상에 놓고 먹었는데 오늘은 쓱…. 무얼 생각하느냐? 이러니까 생활도 자기가 달리 하란 말이예요.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한때는 내가 신발이 있으면 말이예요, 옛날에 고무신 같은 것이 있으면 나는 옛날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놈을 거꾸로 신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이놈의 신발, 언제 탕감복귀노정을 걷겠느냐? 그래서 거꾸로 신고 가 보는 거예요. 그거 그래 보라구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시련에 부딪쳐 남아져야 천주복귀의 용사가 돼

오늘 저녁에 전부 다 비행기표 물러 버리고 내일 내가 안 가 보면 이 녀석들 가운데 몇 녀석이나 떨어지겠나 이거예요. 그 점을 선생님이 많이 생각하는 거지요.

가 가지고 이제 이 이 (웃음) 우리를 피흘리게 한 대원수 일본 족속들, 멸망해야 할 족속들 너희들 뭘하는 것이냐? 우리의 운세 아니예요? 나 한국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래 놓으면…. 사실은 그거 다 통과해 준다구요. 다 통과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 우리 통일교인들이 술을 먹고는 재미있게 잘살고 있는 식구집에 들어가서 '이 자식들아, 너희들이 뭐 어떻다고?' 하며 한바탕 주정을 해도 '하하하' 한다구요. 무엇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에서는 별의별 일을 다 하는 거예요. 어디 용납 못 할 것이 있나요?

내가 이 길을 나서기 전에는 일본의 신앙자들을 만나서 '당신, 이런 이런 하늘의 섭리, 하늘의 구원역사가 무엇이요? 인간의 가치가 어떠한 것이요? ' 하고 몇 마디 물어 보면 벌써 아는 거예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선생님은 다 만나 봤단 말이예요. 무슨 박재봉 목사니 누구누구니 신령한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타락이 어떻게 됐나요? 사탄이 뭐요?' 몇 마디 물어 보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다 출발한 거라구요.

그렇게 출발해서 가는 데는 높은 데로 올라가라는 거예요. 가는 데는 지름길이 어디냐? 이런 높은 산이 있으면 말이예요, 이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이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이건 이 높이가 이것보다 더 길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산을 넘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여기서 빙 돌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이 어렵지만 제일 먼저예요. 조금만 지나가면 제일 편안한 길이예요.

제일 편안한 때가 오기 때문에 그런 곳으로 가라는 것이 천지의 대주재인 하나님의 왕명이예요. 지금까지는 왕명이 아니예요. 명령이예요. 전쟁이 끝나거들랑 우리의 싸움이 끝나 가지고 우리가 보금자리, 안식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하늘 앞에 영광 돌리겠다, 치열한 전쟁과 더불어 하나님의 품으로 직행할 수 있는 그날을 맞아야 된다, 그런 생각해요? '아! 옛날에는 내가 이러이러한 싸움을 했는데, 그때 이러한 곡절이 있을 때, 아, 이런 싸움에도 나는 패자가 되지 않고 승자가 되었다! 내가 맞아 죽는 날에는 그 팻말을 보고 그 비석을 보고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게 인간의 갈 길이예요.

오늘은 좋은 얘기를 못 해서 미안합니다. 뭐 얘기 하다 보면 이런 얘기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선생님이 팔자를 그렇게 태어났고, 사명도 그렇게 타고났으니 할 수 없는 거예요. 팔자도 그렇게 타고났지만, 사명도 그렇게 타고났고, 생각도 그렇게 생각했고, 생활도 그러니 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이 길을 가야지요.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여자들은 너무 느리다구요. 묻기는 같이 물었는데 한 번 더 물어 봐야 대답한다구요.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가는 데 무엇으로 갈래요, 무엇으로? 무엇으로 갈래요? 졸장부로 갈래요, 졸장부로? 무엇으로 갈래요? 여러분들이 구루마를 끌고 갈래요? 가긴 다 간다 이거예요. 가는 데 구루마 끌고 갈래요? 천지복귀의 용사 가운데는 구루마꾼도 있다 이거예요. 노동자도 있다 이거예요. 똥 구루마 끄는 천주복귀용사도 있다 이거예요. 무엇으로 갈래요?

하나님이 행차하시는 그 앞에서 안내할 수 있는 용사도 있다 이거예요. 아니면 제사장 아들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도 있다 이거예요. 천태만상의 길이 있어요. 이 계급 결정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비록 어려움이 많을망정 결정한 그 결의와 결정한 그 내용과 결정한 그 시련무대에 있어서 패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겠다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부딪쳐 가지고 자기가 남아질 수 있어서 그 남아진 모습이 하늘 앞에 필요한 조건으로 갖추게 될 때는, 그를 들어 하늘의 왕자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천주복귀의 올바른, 내가 바라고 있는 ….

여러분,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의 젊은 남녀들, 내가 바라건대 앞으로 수많은 민족, 수많은 후대들이 생겨 가지고 여러분들을 세워 하늘의 제일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 천주복귀의 용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오늘도 그래서 얘기하는 거예요. 이까짓 똥구루마꾼 같은 천주복귀의 용사들에게 얘기는 뭘 얘기해요.

더우기나 지방에 나가 수고한 여러분들은 부디…. 아직까지 수고할 일이 다하지 않았고, 민족의 한과 민족의 수고의 노정이 아직까지 남아있으니만큼, 우리가 이런 개척자의 선두에 나서서 지치지 말고 죽지 말고 남아져 가지고 민족을 다시 한 번 가서 훑어 가지고 끌어갈 수 있는, 다시 가서 붙들고 끌어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옛날 아브라함의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거예요.

고통을 슬픔으로 알지 말라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자기의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끌어내기 위해서 하늘 앞에 했던 거와 마찬가지의 그런 책임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그런 복귀의 노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으니만큼 여러분은 지쳐서는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래 선생님이 내일은 떠나는 거예요. 그러면 본부에 올 맛이 더 있지요? 본부에 올 맛이 더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 부모의 날은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의 용사들이 전부 집합할싸! 내가 일본에 있더라도, 미국에 있더라도 한번 명령을 해보려고 그래요, 몇명이나 모이나 보게. 이렇게 오라고 기별해서 많이 온 것보다도 더 많이 못 왔다가는 전부 다 혼난다구요. 많이 올래요? 「예」 많이 올래요? 「예」

그러면 이제부터는 내가 선전해야 될 거예요. 선전은 어떠한 선전을 하느냐? 가는 데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가야 되겠다! 그래야 부모의 날에 모이고, 자녀의 날에 또 많이 올래요? 「예」 가만히들 보니까, 선생님이 간다고 하니까 다 밀려온 것 같아요. 이다음에 선생님이 온다할 때 올래요? 여러분들이 제일 안 모이는 날이 자녀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일지 몰라요.

이번에도 내일 간다는 소식 누구한테 들었어요? 선생님이 내일 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내일 간다는 얘기 들었어요? 「예」 누가 들었나요? 유효원이, 내가 내 입으로 28일에 간다고 했어? 했어? 「안 하셨습니다」 안 했는데 왜 소문이 이렇게 난 거야? (웃음) 전부 다 모였잖아요. (웃음)

누구 항의할 사람 있어요? 어 선생님 왜 그럽니까? 언제 약속을 했나? (웃음) 약속을 했나? (웃음) 약속을 언제 했어? 뭘하러 왔어요, 뭘하러? 뭘하러 왔어요? 내가 이런 중요한 말을 해주기 위해서 왔는데 이건 뭐…. 아마 복귀역사를 위해 그렇게 머리를 쓰면 천국왕자들이 전부 다 될 거라구요. 아, 27일날 왔으니 28일, 29일, 30일, 아, 2월 초하룻날은 부흥단이 떠나니까, 그 사이에는 보겠구나 하고 점치는 거예요. 점치는 것은 죄가 아니예요. 점쳐 가지고 행동하면 죄지요. 그래, 여러분들은 죄 아니예요. 내가 오라고 했기 때문에 이건 죄 아니예요.

언제 갈지 모르는 거예요. 내일 버스 타고 나갈래요? (웃음) 나혼자 떠나는데 누구보고…. 여권 수속하는 사람한테 얘기했는데 그다음에 나는 얘기 안 했어요. 소문은 누가 냈어요? 누가 냈어요? 누가 냈어요? 누가 냈겠어요? 누가 냈겠느냐 말이예요? 아, 이 사내가 냈으니 그렇지, 이 사내가. (웃음) 이거 우리 뜻 앞에 있어서 이거 배반자예요, 친반자예요? 친반자라는 말은 없지요? (웃음) 그렇잖아요? 그거 사실이라면 모르겠어요. 사실이라면 모르지요. 이건 내가 얘기 안 했는데 자기가 먼저…. 이게 뭐야.

자, 고생하던 여러분들 아직까지…. 이제 내일 내가 떠난다면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되겠어요. 예? 「예」 그런 얘기를 하면 좋겠는데 몇 시인가요? 한두 시간 얘기했나요? 그렇게 알고, 복귀의 노정, 이 천주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큰 분야에 있어서 아까 선생님이 얘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해당하는 핍박이 왜 없겠어요? 슬픔이 왜 없겠어요? 고통이 왜 없겠어요? 그 고통을 슬픔으로 알지 말라구요, 슬픔으로. 슬픔으로 알지 말라구요. 슬픔으로 알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이 팔자에 타고난 길이라 이거예요, 팔자에 타고난 길. 그래야 해먹지 이거 해먹겠나 말이예요.

밥을 얻어먹어도 내가 아주 역사에 없는 희극 배우요, 역사에 없는 아주 걸작 거지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예요, 최고의 걸작거지라는 거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쓱 가 가지고 안될 때는 옷이 거슬리면 그저 시궁창물에 텀벙 들어가고 주먹밥이라도 웃으면서 잘 먹을 줄 알아야 된다 말이예요. 선생님은 그런 거예요. 선생님은 환경에 잘 어울린단 말이예요. 내가 필요로 하게 된다면 아주 홀딱 반하게끔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배우라구요. 천주복귀를 하려면 그런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시련무대를, 고통무대를 자기의 책임과 사명으로 알고, 자기의 팔자에 타고난 운명으로 알고, 그것을 낙으로 삼고 가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 것 같으냐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하늘에 기억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비록 내 있는 모습은 개인이요, 내가 온 지방이면 지방이 작지만 그 지방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이러한…. 안 그래요? 보라구요. 여러분의 궁둥이에 주사 놓으면 어때요? 주사를 꼭 찌르면 어때요? 꼭 찌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돼요? 전부가 거기에 집중이 돼요, 안 돼요? (웃음) 집중되는 거예요. 되지 말래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삼천리 반도라는 한 곳에 호랑이 새끼가 지금 앓고 누워 있으니 주사를 주는 것이다. 나는 주사침이다. 뼈살을 파고 들어가라. 야 이거 핏줄을 뚫고 들어가는구나. 흠 흠 흠 세포가 여기에 있구만, 아 곡절이 이렇게 많구나, 들어가자' 해 가지고는 '들이 저어라. 부대껴라' 그러는 거예요. 침 꽂고는 어떻게 해요? 그다음에, 요즘에는 침 놓을 때 꽂아 가지고 때리더라구. (웃음) 끝난 줄 알았는데 뺄 때까지…. 침 주고 빼는 게 예사인데 침 주고 또 때려요. 그래, 탕감하는 데 있어서 재탕감을 이루었다 이거예요. (웃음)

여러분들 그렇게 알고, 이 한국이라는 걸작품이 병이 났는데 이것을 고쳐야 할 책임을 내가 졌으니 나는 침이 되고 선생님은 침 주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문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항문이 더럽다고 안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디에든지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일 아픈 데를 찌르면 더 아플 거예요. 이녀석은 죽겠다고 야단한다 이거예요. 이 통일교회가 움직이는 것 대해서 죽겠다고 야단하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의 날이 가까와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가 움직이면 죽겠다고 야단해야 하는 거예요. 아이고 못살아서 죽겠구나. 아이고 너무 잘살겠다니 죽겠구나. 자꾸 죽겠다는 일이 벌어져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랬지요? 통일교회 때문에 삼천리 반도가 얼마나 야단했나요. 그렇지만 이제 통일교회 아니면 안 되겠다고, 통일교회라야 살겠다고 야단할 수 있는 이러한 때를 마련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별거없다는 거예요. 침이 돼야 돼요, 침. 전부 다 썩었어요. 전부 다 병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침이 돼야 돼요. 알겠어요? 「예」

침이 되면 무슨 침이 돼야 돼요? 「금침이요」 (웃음) 아주 제일 약효가 나는 침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약효를 발휘하려니 고통받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미국도 잘만 주면 살아나고, 한국도 잘만 주면 살아나고, 공산당도 잘만 주면 살아난다 이거예요.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천지조화탕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남겨진 어느 기간까지, 선생님이 다시 돌아올 텐데 가서 붙들고는 놓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로 말미암아 실험대를 세우고, 자기로 말미암아 연구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거기에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천주복귀 용사가 돼 주면 선생님이 갔다 올 때 여러분에게 좋은 예물도 사다 줄지 모르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예물 사 오면 좋겠어요? 「예」

그렇게 알고 협회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서로서로가 단결하고, 서로서로가 연결해야 돼요. 단결하려면 양보하고 하나되어서 부디 남아진 민족적인 이 노정에 있어서…. 금년이 중요한 거예요. 금년이 참 중요한 해예요. 그러니만큼 그렇게 알고 한국은 여러분들이 책임지고 부디 떠나신 선생님을 생각하는 뭣이 있걸랑 안심하고, 한국에 있어서의 좋은 소식을 많이 들려주기를 부탁해요. 알겠어요? 좋은 소식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고통과 시련과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그것만은 잊지 마시라구요. 아시겠어요? 「예」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일이 크게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이 탕감복귀, 우주복귀의 터전은 점점점점 시일이 갈수록 하늘의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삼천만 민족은 물론이요, 세계 인류에게는 해방의 한날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될 것을 나는 믿고 앞으로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고 재출발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재차 그런 결의와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은 손들자! 「예」 이 손목들은 전부 다 내 것이야? 「예」 내가 잘라 갔다가 다시 붙여 주었다고 생각하란 말이예요. 내리라구요. 그러니까 그놈의 손들은 전부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내가 잘라 갔다가 다시 붙여 주었어요. (웃음) 그 손을 선생님의 손으로 알고, 그 눈과 그 마음을 선생님의 눈과 마음으로 알고, 선생님이 더듬고 쓸고 눈물 흘렸던 그것을 찾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나갈 때까지, 그 손과 그 마음과 그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정성을 들여야 되겠어요. 그러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이 '야 울지 말라' 하는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 하늘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알겠지요?

기 도

아버지, 머나먼 복귀의 길, 그분이 남긴 그 길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한국과 세계를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습니다.슬폈던 내 아버지를 붙들고 위로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그러한 아들딸을 만나 위로받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아버지, 이 삼천만 민족을, 아버지여, 당신이 지켜 주시옵소서. 황폐한 이 삼천리 반도를,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40여 년간 시련무대에서 참고 이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게 해주신 은사를 감사드리옵니다.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이 민족이 지킬 수 있고, 하늘에 넘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하나이다. 이거 다 하늘이 수고한 연고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의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여기에 모인 이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옵니다. 세상에 가진 것도 없고, 세상에 의지할 아무런 무엇도 갖지 않은 자들이 옵니다. 단지 하늘만을 의지하고, 단지 스승만을 바라보고 나온 무리들이오니 바라던 모든 뜻을, 아버지,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는 통일의 운명을 가슴에 안고, 하루하루를 아버지 앞에 눈물과 더불어 싸워 나온 당신의 아들딸들이오니,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들의 앞길을, 아버지, 염려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시고, 이들이 원하는 소원성취의 한날을 약속하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여 우주가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맞게끔, 아버지, 능력을 더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방에 널려 있던 자녀들을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그러나 아버지 이 뜻과 사명을 이들이 다시 책임져야 할 입장에 서 있사온데 가는 길에 슬픈 일이 왜 없겠사오며, 뜻을 대해 가는 길에 어려운 길과 눈물의 길과 고통의 길이 왜 없겠습니까? 하늘이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사옵고, 하늘이 남기신 개척자의 길이 그러한 길로 남아져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늘을 기억하여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옵고, 오늘 새로이 결의한 모든 결의를, 아버지, 주관하시옵소서. 이들의 생활과 이들의 정의를 지키시어서, 아버지, 이 민족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어서 천주복귀 사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늘의 용사들이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모든 경륜하신 뜻을 원하신 뜻대로 이루시옵고, 남아진 날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소서. 당신이 하늘이 기억하여 주셔서 이날을 아버지의 것으로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친히 아버지께서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새로운 책임과 사명을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은 볼일이 점점 끝나 가고 나도 또 갈 시간이 가까와 오는데, 부디 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방에 내려가 가지고 지방에서 여기에 오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위로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이번에 왔다가 돌아가 가지고, 시골에 내려가 가지고 또 뭐 자랑들하지 말고. (웃음) 여러가지 사정으로 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돈이 없어 못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올 입장에 있었지만 옷이 없어 못 온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말이예요, 그런 사람들 앞에 상처받지 않게끔 그런 면을 잘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은 과연 통일의 무리라고 할 수 있겠느냐

될 수 있으면 이번에 왔다 가 가지고 말이지요, 어떤 바람을 일으켜야 되느냐 하면 '우리들이 선두에 서서 다시 옛날과 같이 1960년도 새로 출발할 그 당시의 기분을 가지고 민족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다'고 선발대로서 전식구들 앞에 사기를 돋구어 주는 일을 좀 해야 되겠어요. 아시겠지요? 「예!」 물론 하리라 믿고 있어요.

내 잠깐 동안 이야기 좀 하자구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무슨 교회예요? 「통일교회요」 통일교회지요? 「예」 그럼 통일교회인데 통일이 되었어요? 「안 되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주장하고 나오는 것이 뭐예요? 뭐 이념통일이니 무슨 행동통일이니 심정통일이니, 그다음에 뭔가? 「생활통일」 생활통일. 이런 통일적인 이념을 목표로 하고 나가고 있는데 지금 보게 되면 모든 우리 식구들 자체도 그렇고, 뜻 앞에 있어서 우리 전체를 대해서 보게 될 때, 과연 통일된 무리라고 볼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거 의문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같은 인연과 관계와 소원을 갖고 있는 우리

그러니만큼 통일교회, 즉 통일의 길을 주장하고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먼저 목적이 같다는 거예요. 이 목적이 한 목적이예요. 본래 우리가 태어나기를 각각 태어났지만 그 인연의 줄기에서는 한 목적을 중심삼고 동등하다는 거예요. 같은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인연은 부자(父子)의 인연과 같은 것입니다. 본래 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본연의 기준에서 볼 때 부자의 인연을 갖고 태어나야 할 것이었는데, 그것을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복귀의 은사로 말미암아 회복시킬 수 있는 이런 인연의 기대를 복귀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대신해서 부자의 인연, 또 여러분 자신들 끼리끼리는 형제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런 인연과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소원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없어 가지고는 목적을 중심삼고 통일할 수 없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연이 같다는 거예요. 우리는 형제의 관계에 있습니다. 복귀노정에 들어선 우리에게 있어서는 형제라는, 서로서로가 인연을 통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거예요.

그 인연과 관계 위에서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대신하고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대신해서 같은 소원을 갖고 있으니, 그대의 소원이나 내 소원이나 그대의 관계나 내 관계나 그대의 인연이나 내 인연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피조물로서 존재하는 모든 물건들은 본래 인연을 갖고 태어난 거예요. 하나님이 지을 때…. (녹음 잠시 끊김) 이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하늘을 위주로 하여 가지고 반드시 상대적인 입장에서 이것이 시작된 연고로 하늘을 중심삼은 그 인연은 절대적이예요.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 인연을 따라서 그 목적도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인연을 따라서 관계도 맺어지는 것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이 계획하였던 인연은 절대적이예요. 본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또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피조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건 절대적이예요. 그러므로 이 절대적인 인연과 절대적인 관계에 있어서 이루어질 소원도 역시 절대적이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 그러한 내용을 갖춘 기준에서 이루어질 목적의 세계도 역시 절대적인 세계여야 된다 이거예요.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은 소원을 향해 나아가야

이러한 것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각자의 인연이 전부 다 달라졌다 이거예요. 본래의 혈통적인 인연이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생활적인 면, 역사적인 모든 내용 전부가 달라졌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시 한 번 복귀라는 이 은사의 도리를 따라 가지고 우리는 본연의 이 길을 찾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전부 다 공통적인 인연 가운데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난 그 인연이 옛날에는 달랐지만 이제는 한 목적을 위하는 데 있어서 한 아버지를 중심삼은 인연 가운데 얽혀져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이 인연을 밟아 치울 수 있고, 이 인연을 끊을 수 있느냐? 절대적으로 못 한다는 거예요. 어차피 그 인연에 따라서 살아야 돼요. 그 인연을 중심삼은 형제의 관계, 이런 관계에서 우리들이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인연과 관계를 갖고 사는 생활무대에서는 반드시 소원, 소망을 갖고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소망도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전부 다 같은 일점을 향하여 나가는 이런 입장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인연도 같고, 관계되어 있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요, 소원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예요. 내 노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예요. 내가 원하기 전에 모든 이념을 세운 하늘이 먼저 원했고, 이 이념을 찾아 나오는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이것을 원했고, 우리 선조들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도인들도 이걸 원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만유의 존재가 원하고, 만유의 존재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원하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원하고, 현재의 모든 인류가 원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 인연과 이 관계와 이 소원은 우주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기필코 불가피한 내용의 조건이라는 거예요.

이런 것을 중심삼은 기반 위에서 우리는 살고 나가느니만큼 여러분 자신들이 하늘과의 관계를 맺고 하늘과의 인연되어 있는 것을 지극히 중대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세상의 인연, 지금까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라는 이것은 어차피 한번 청산해야 된다는 거예요. 한번 우리가 관계를 끊어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연도 관계도 원한도 지금까지의 그 기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전부 다 다시 집어치우고 새로운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인연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거기에서, 그 권내에서, 생활무대에서 소원을 갖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뚜렷이 달려가겠다는 무리가 되어야 됩니다. 그 무리가 누구냐 하면 통일의 무리예요. 알겠어요? 「예」

하늘의 부름을 받은 책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아야

여기 협회장이 있다 해도 그 인연을 거부한다면 그 인연은 협회장의 인연에, 명령에, 혹은 그 말에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아무리나 혼자 된다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형제의 관계, 부자의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생활적인 무대에서는 반드시 목적을 중심삼고 목적을 향해 나가기 때문에, 행동을 할 때는 반드시 목적을 중심삼고 나가기 때문에 소원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야 됩니다.

오늘날 하늘은 우리들을 부르고 있다는 거예요. 먼저는 하늘의 인연에 의해서 하늘이 우리를 불렀고, 하늘의 인연을 통하여 이루어질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늘이 우리를 불러 주었다는 거예요. 생활적인 소원을, 전체의 목적을 대하는 이런 행동적인 분야에 있어서 그 가치를 찾아 세우는 데 노력할 수 있는 이런 책임을 짊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는 거예요.

그러니만큼 이 부르심을 받은 책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건 여러분 자신들이 어렵다고 해서, 혹은 자기가 뭐 원치 않는다고 해서 부정했댔자 이것은 절대적으로 부정당하지 않는 다 말이예요. 어떤 일개국이 이것을 부정했댔자 부정당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시대의 운세가 이 모든 내용의 인연·관계ㆍ소원을 거부했댔자 이것은 하늘이 발판되어서 나오는 모든 요건이기 때문에 이것을 막아 놓을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어차피 이 인연 앞에, 어차피 이 관계 앞에, 어차피 이 소원 앞에 처단당하게 되어 있다구요.

이 인연과 이 관계와 이 소원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권 내에서 시작되었던 연고로 그 이념이 남아 있고, 그 이념을 향해서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운영해 나오는 한 기필코 통일의 운세는 세계를 안고 돌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일선에 나가 싸우지 못하면 심정적으로라도 후원해야

오늘날 그러한 절대적인 인연과 절대적인 관계와 절대적인 소원이 하늘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을 인류시조인 아담 해와가 절대적인 기준으로써 땅 위에 발판을 닦아 나와야 할 것이었는데 이것이 못 되었기 때문에 숱한 역사노정을 거쳐서 복귀의 한의 고비고비를 거쳐온 거예요. 그래 가지고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그로 말미암은 참다운 형제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생활적인 기반 위에 새로운 소망을 갖고, 새로운 목적의 세계로 향해 나가는 것이 통일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거 아시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적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이 인연에 섰으니 이 인연은 하늘과 땅이 보장하는 인연이요, 역사가 보장하는 인연이요, 시대가 보장하는 인연이요, 미래를 보장시킬 수 있는 인연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인연을 대하여 배신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식구라는 이 관계, 형제라는 이 관계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도리어 내가 희생되고 내 개체가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인연 앞에 여러분은 승복할 줄 알고, 이 인연을 존중시할 줄 알아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그리워하면서 하루하루 싸워 나가는 이 생활이 통일신도들의 생활이라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행동이 필요하고 여기에 있어서 우리 사상이 필요하고, 여기에 있어서 우리 심정이 필요하고, 여기에 있어서 생활이 필요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인연과 이런 관계를 중심삼은 생활적인 무대에 있어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이 통일적인 요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행동에 있어서, 혹은 뜻을 대신하여 이 인연의 길을 세우기 위해서 혹은 목적의 길을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내가 나서서 책임을 해야 할 것이 본래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형제들이 자기 대신 나가 싸우는 입장에 있거들랑, 자기는 배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입장에 있거들랑, 마음에 가책을 받고 책임을 추궁받으면서 스스로의 앞날에 다시 생활을 정비해 가지고 그러한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됩니다. 만일에 그것이 당장에 되지 못하거든 나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높은 인연과 높은 관계와 높은 소망을 갖고 나가는 그들이 있는 연고로 그들을 대해서 협조하는 마음을 두터이 갖고 그들을 위해서…. 혹은 물심양면으로…. 여러분이 행동적인 면에서 같이하지 못하는 이런 입장에 있다면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라도 같이할 수 있는 이런 생활태도를 취해야 된다는 거예요.

더더우기나 일선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들이 유리한 것이 뭐냐 하면, 이는 가는 곳곳마다 우리 이념을 부르짖게 되는 것이요, 이는 생활을 통해서 벌써 생활적인 기준에 서 있는 것이요, 그다음에 행동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요, 심정적인 기준을 여기에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일선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가 혼자 서 있더라도 이런 내적인, 통일적인 요건들을 갖춘 자리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의 생활적인 무대에서 나가는 데 있어서는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일치 못 되어 있다 이거예요. 행동적인 면에 일치 못 되어 가지고는 이념적인 면에서 일치가 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념적인 면에 일치 못 되니 심정적인 문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생활적인 문제에서도 역시 자기 스스로 양심적인 위축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복귀노정을 나가는, 이런 인연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우기나 이 생활무대에 있어서 행동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강력한 단결성을 갖추어 생활무대에서 사탄을 격퇴해야

오늘날 우리들은 통일의 무리예요. 그 인연 가운데서 형제의 관계를 맺어 우리가 생활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대사회, 대세계를 내 생활과 내 목적권 내에 몰아넣어 가지고 들이치는 거예요. 여기에서 강력한 통일이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이념적인 면에 있어서 강력한 단결성을 갖춰 가지고, 통일성을 갖춰 가지고 내 생활을….

인연과 관계를 맺은 이 기반을 공고히 해놓고 이것이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 하루의 소원을, 우리의 목적을 위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내 자신이 역사적인 대표적인 인연을 책임졌다는 이런 입장에 서 가지고 이 세계를 내 생활적인 무대와 내 목적적인 그 이념권 내에 몰아넣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 목적을 내가 사랑하고 이 목적을 잡으려는 힘과, 이 목적을 향해 가고 싶어하는 욕망과 소망의 힘이 불타는 이런 자신이 되어야만 이 가운데 있어서 사탄세계를 개인적으로 몰아낼 수 있고, 가정적으로 때려치울 수 있고, 혹은 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모든 시련무대를 갖더라도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강력한 생활 기반 위에 하늘이 부여한 인연과 하늘이 부여한 이 엄청난 우리의 관계들을 공고히 하여서 생활적인 소원을 앞에 세워 놓고, 그 목적을 흠모하는 열의와 성의를 가지고 이 세계의 모든 악이라는 하나의 대원수를 퇴치해야 할 절대적인 책임이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걸 어디서 전부 다 격퇴시키느냐? 어디서 격퇴시켜야 되느냐? 생활적인 무대에서 격퇴시켜야 된다 이거예요, 생활적인 무대에서. 생활적인 무대에서 이것을 깨쳐 버려야 된다 이거예요. 이것을 깨쳐 버리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생활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생활관을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행동관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이념,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심정만 가지고도 안 된다 이거예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도저히 처단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의 심정과 새로운 분야의 생활관과 새로운 분야의 행동관과 새로운 분야의 이념관을 가지고야만 이것을 타파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러한 생활적인 기준의 행동을 개시하여 이것을 박멸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것이 통일의 용사입니다. 알겠어요? 「예」

확고불변의 신념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싸워 나가야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사명과 우리의 책임, 우리의 소원하던 그날과 목적의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목적에 대한 흠모의 열의가 강해야 되겠습니다. 생활에 대한 투지가 강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선 자신은 여호수아 갈렙과 같이 가나안 칠족을 물리치기 위한 이런 행로에 있어서 여리고성을 바라보는 그러한 시야에는, 세상적으로 볼 때는 공포가 가로놓일 것이며, 모든 악조건이, 원한의 터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염려하게 될 때 하늘이 여호수아 갈렙을 세워서 하는 말이 '강하고 담대하라'였어요. 무엇에 강하고 담대하라고 했느냐? 먼저 여리고성은 내것이다,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다, 우리 목적의 도성이다 하는 거예요. 내 생활적인 기준에 있어서, 내 하루하루의 생활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하라 이거예요. 철두철미한 생활 기준에 있어서, 하늘이 같이하니 내 행동에는 절대적인 승리를 약속한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돼요.

이런 입장에 있는 여호수아 갈렙을 바라보고 하늘이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고한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민족을 우리의 목적권 내에, 내 생활무대 앞에 놓고, 이걸 몰아넣고 이것을 대하는 여러분 자신 역시 옛날 여호수아 갈렙을 대해서 하늘이 분부하던, 권고하던 그와 같은 입장을 대신해 섰다는 걸 알아야 돼요. 나도 여러분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생활적인 확고한 불변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라!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세계적인 모든 한과 역사적인 원수의 요건들, 생활에 배치되고 행동에 배치되고 심정에 배치되고 이념에 배치된 이 악의 세계를 기필코 내 손아귀를 통해서 정복하고 말겠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을 다짐하는 자체를 하늘 앞에 어엿이 내세워 '나에게 명령하고, 나에게 분부하여 당신이 소원하는 여리고성을 정복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이런 신념을 가진 여러분들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활적인 무대에 있어서 행동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통일적인 요건들을 주장해 나온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행동하는 데 있어서 사탄세계의 누구보다도 앞서야 된다 이거예요. 심정에 있어서, 그 뜻과 사명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서야 된다구요. 앞서야 된다 이거예요. 내가 행동하는 데 있어서나, 내가 갖고 있는 신념에 있어서나, 어느누구나 나를 지배할 수 없고, 나를 갈아치울 수 없고, 어떻게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나를 대해서는 저가 패하든가 저가 순응하든가 이 둘뿐이다,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그런 확고불변한 입장을 여러분이 갖추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의 도상에 있어서 개인적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를 거쳐 앞으로는 천주적인 시대를 향하여 넘어갈 복귀적인 역사의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사가 되려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 통일이라는 하나의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이라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을 세워 놓고 세계 인류, 수많은 인류를 앞으로 내 목적권 내에 다짐해 놓고 여기서 나가게 될 때에는 대한민국 누구한테도, 삼천만 민중 어느누구한테도 떳떳하게 '내 행동을 본받아라. 내 생활을 본받아라. 내 이념을 본받아라. 내 심정을 본받아라. 이래야만 된다! 이래야만 살고 이래야만 이 민족이 다시 본향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럴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어야 돼요.

대한민국 전체 앞에 내 자신이 동기가 되어 그런 배경을 이루어 놓은 후에 이 민족을 앞에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수많은 인류 앞에…. 우리 한민족의 통일적인 이념을 따라서 수많은 민족이 거기에 머리 숙일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할, 제2 단계의 노정이 이제부터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민족을 대한 강한 마음, 그것보다도 세계 인류를 대한 강한 마음, 더 나아가서는 영계의 수많은 천천만 성도, 혹은 영인의 해원까지, 그들을 해방해 줘야 할 이 통일의 이념을 여러분들이 붙들고, 여러분들이 부축하여 목적지까지 모시고 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만 비로소 통일의 용사라는 거예요, 용사.

자기 개인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용사가 아니예요. 개인을 위해서 싸우는 용사가 있어요? 「없습니다」 용사라는 것은 자그마치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거예요, 나라. 자기 가정을 위해 싸우는 것이 용사예요? '아, 우리 가정을 위해서 싸우니 용사로군' 그래요? 여러분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그러나요? 자기 친척을 위해 싸우는 것을 용사라고 하지 않아요.

그 나라의 헌법이면 헌법, 법치국가에 있어서 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의 주권을 위주로 한 그 권내에서 주권을 옹호하기 위해 그 반대적인 모든 원수들을 격퇴시키는 데 있어서 제1 정예부대의 입장에 설 때 용사라 하는 거예요, 용사.

그러면 여러분들은,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들은 무슨 용사라고 해요? 「통일의 용사」 통일의 용사, 또 그다음에는 ? 「하늘의 용사」 하늘의 용사예요. 통일의 용사는 통일의 이념을 모든 심정을 대신하여 세울 수 있는 입장에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의 용사라 할진대는 하늘나라의 선의 주권과 하늘나라의 선의 국토와 하늘나라의 선의 국민을 위한 입장에 있어서 절대적인 보호자로서 원수를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싸워 줄 수 있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용사다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예」 말이야 쉽지요. '그렇습니다' 열 번도 하고 백 번도 하기 쉽지요. 이 내용에 있어서는….

그러니만큼 우리는 통일의 길을 숭배하고, 통일의 길을 모시고…. 내가 다시 태어남도 이 인연 때문이요, 내가 사는 것도 이 인연을 빛내기 위해 사는 것이요, 내가 가는 것도, 내가 생애노정을 거치는 것도 이 목적을 향하여 한 걸음 가까이 하기 위해서 내 생애의 길을 지니고 간다는 이런 신념 밑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야 되겠어요.

남이 한 시간 수고할 때 나는 두 시간 하겠다고 해야

여러분은 '나로 말미암아 그 부락을 끌고 나가야 되겠다. 나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를 끌고 가야 되겠다. 나로 말미암아 도면 도, 군이면군, 면이면 면, 지구면 지구, 지역이면 지역을 끌고 가야 되겠다' 해야 합니다. 지역장이면 지역장, 구역장이면 구역장으로서의 각자에게 맡겨진 분야의 책임을….

그 분야에 있어서 내가 이 길을 가되 나만이 가는 것이 아니예요. 내 지역을 끌고 가되 내 지역 그 자체만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예요. 삼천리 반도의 수많은 지역을 대신해서 내가 끄니 그 전체 지역이 나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아서 끌려간다는 거예요. 지구면 지구 자체가, 그 개별적인 지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삼천리 남한 각지에 있는 수많은 지구 앞에, 8개 지구면 그 지구를 대신하여 움직이게 될 때 그 개별적인 지구로서 움직이되 그 움직임은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지구를 이끌고 가는 데 공헌하게 된다 이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남이 한 시간 수고할 때 나는 두 시간 하겠다 해야 돼요. 비결은 간단한 거예요. 남보다 조금 더 움직여야 돼요, 조금 더. 남은 정성을 열만큼 들이면 나는 열 하나만큼 들이겠다 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이상의 충성의 기준을 자기의 생활무대에 닦기를 노력하는 그 사람은 불원한 장래에, 그 사람이 가고 난 1년, 2년, 3년, 4년 해가 지남에 따라서 그 거리는 맨 처음에는 좁지만 시일이 감에 따라 가지고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사탄세계와 하늘세계는 거기서 갈라져 나간다는 거예요. 이 차이가 나면 사탄세계는 그냥 머물지만 하늘세계는 발전하기 때문에 이 차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여기에는 개인이 안식할 수 있고, 가정이 안식할 수 있고, 종족이 안식할 수 있고, 국가가 안식할 수 있고, 세계가 안식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이 이번에 외국 가게 될 때는 전부 다 이거 이런 기분이 났어요. 그러니만큼 아직까지 가야 할 통일의 운명길, 아직까지 넘어야 할 고개를 남기고 있고, 싸워야 할 싸움터를, 아직까지 지내야 할 운명을 갖고 있으니 여러분은 여기에 있어서, 생활적인 기반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한 인연과 관계를 중심삼고, 절대적인 인연과 절대적인 관계를 중심삼아야 됩니다. 이 인연을 위해서 이 관계에 묶여진 우리들은 하나의 모습으로 행동적인 통일이라는 그 기준 밑에서 사탄세계를 대결하여 사탄이 자랑하고 사탄이 바라보는 그 소망과 그 목적보다도 더 강한 소망과 목적감에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부딪쳐 오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걸 일시에 넘고 나가겠다는 이런 기백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이 하늘의 용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스승이 가는 앞길에서 여러분이 스승을 이끌어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남아진, 가야할 통일의 길이 어떻다는 걸 여러분이 알고 생활적인 문제에 있어서, 행동적인 문제에 있어서,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이념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탄세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이런 절대적인 인연과 절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절대적인 생활적 인연을 가져 가지고 전부 다 그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직행하는 용사라는 신념을 굳건히 가져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재출발을 위해 결의할 때

이제 남한 각지에 나가 가지고 여러분들이…. 혹은 지친 식구들도 있을 거예요. 혹은 여러분과 관련이 없는 동지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동지들과 접촉해 가지고 하늘의 대열에, 반열에 참여하게끔 해서 이 큰 대업을 성취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한단 말이예요. 알겠지요? 「예」 그럴싸, 안 그럴싸? 「그럴싸」 그거 그럴싸한 사람 손들라구요. 내려요.

그게 뭐예요? 아주 근사하지요? 손을 올리는 거야, 이게 뭐야? (손드는 것을 흉내 내심) 그런 사람은 그럴싸예요, 말싸예요? 「말싸요」 (웃음) 말싸도 못 되는 거예요, 말싸도. (웃음)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좋을 뻔했다'는 것은 있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없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없는 거요」 그건 말 대상도 되지 않는 거예요. 차라리 형태도 없었으면 좋을 뻔했다 이거예요. (웃음) 손을 안 들려면 아예 이렇게 하고, 이왕에 들려면 '예!' 해야지. 이게 뭐야, 이게?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뭐 손들고 여행 가는 거예요? 뭐 저거 봐요? 그런 사람이 자기 얘기 하는 줄 모르고….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러분은 다 안 그렇지요? 「예」 그런 사람이 대답을 하면 '예─'(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씀하심) (웃음) 다시 한 번 손들어 보자구요. 「예!」 그러면 손들던 주먹의 힘과 같은 그런 힘을 가지고 원수의 박격포를 무너뜨려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래 가지고 싸워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젠 봄철이 가까와 오지요? 1965년의 봄철이 가까와 온다, 그렇지요? 「예」 1965에서 이쪽(19)을 합하면 얼마예요? 「10」 그다음 요쪽(65)을 합하면? 「11」 다 합하면 21, 삼칠은 이십일(3×7=21), 21수로 알자구요. 그렇게 알고 금년은 승리를 결판내야 할 해라는 걸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이제 지구장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전달될 거예요. 작년 10월부터 우리가 전국에 부흥단을 조직해서 움직인 겁니다. 이 책임이 큰 겁니다. 이 기간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앞길이 트일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아예 기반이 갈리지 않나 보고 있어요. 때가 그런 때예요. 넘어가야 할 때예요. 지금까지는 우리 통일교회가 그저 마음대로 나왔지만 이제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돼요. 이번 기간에 힘을 받아 가지고 해야 되겠다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재출발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나타난 사람은 이제 사명감을 가지고 나머지 길을 갈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힘을 못써요. 때가 그런 때라는 거예요. 시대가 바꿔진다는 거예요.

전체 식구들 앞에 염려되는 마음도 있고 해서…. 이번 기간이 기운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재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늘을 따라 나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보충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가을절기에는 각자가 진액을 전부 다 주고받는 것이 아니예요. 나무 잎사귀 끄트러미에 나간 진액까지 자기 열매에 전부 다 흡수시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지요? 「예」 그러므로 그 나무 줄기와 가지에 뻗어 있는 모든 진액을 빨리 흡수하는 열매는 빨리 익는 거예요.

통일교인은 세상에 나가 참된 모습을 자랑해야

지금까지 하늘은 많은 은사를 통일교회에 줬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책임을 잘못 하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벨적인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상속한다는 거예요. 책임을 전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협회장보고도 이야기했지만 앞으로, 더우기나 학생 청년들은 전부 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책임자로 세우라고 했어요. 앞으로 지구도 마찬가지예요, 지역장들도 그렇고 앞으로…. 세대교체라는 말 있지요? 그거 통일교회에 필요한 말이예요. 때가 그런 때라는 거예요. 그러니만큼 이제 이번 6개월 동안, 부흥단이 끝남과 동시에 뭘할 것이냐? 이제 지구장이 여러분을 인솔할 거예요. 각개 지구 내에서 이런 부흥활동을 할 거예요. 그래서 30개 단을 만들어서 8개 지역, 흑은 서너 지구를 중심삼고 전부 다 6개월간 그런 작전 밑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지구에서는 마이크를 하나 더 사고, 어떤 지구는 둘 더 사고, 이래 가지고 30개 마이크 통을 나발로 삼아 가지고…. 여기에는 매든가, 끌든가, 모시든가 해서 그저 사람이 있는 곳에, 많이 모여 사는 곳에 가 가지고 '야 이놈들아, 들어 봐라!' 하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누구보고 들어 봐라 하느냐 하면 '사탄 새끼들아, 들어라' 이거예요. '너희들이 전부 다 언제나 그 고지를 사수하다가는 멸망한다'고 선전포고를 해야 된다구요, 강력하게. 그렇다고 공갈은 하지 말라구요. (웃음)

그 열의와 그 성의와 그 행동에 있어서 사탄세계가 볼 때 말이예요, '아, 안 되겠는데. 우리 아들딸이 저들한테 지겠구나. 내 시대에 있는 노년들과 청장년들이 지겠구나'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움직이는 것과 되어 가는 형세를 가만 보니 자기들이 틀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후퇴라는 그 마음의 감투를 벗어 가지고 몸뚱이의 감투를 씌울수 있는 때가 온다 해 가지고 스스로 자기 아들딸을 모아 놓고 '통일교회에 가라. 저 청년들과 같은 활동을 해라' 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안 가면 '이 자식아' 하며 몽둥이로 들이 팰 때가 와야 된단 말이예요.

여러분, 통일교회에 간다고 매맞았지요? 「……」 매맞았지요? 「예!」앞으로 통일교회 이념을 주장하는 우리들이 나가서 뭘할 것이냐? 통일교회 교인의 그 열렬함과 그 참됨과 민족을 사랑함과 세계 인류에 공헌하기 위한 참된 모습의 그 자체를 과시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아들딸을 가진 사람은 그 아들딸을 전부 다 통일교회에 모셔다가 상속시키게끔 해야 됩니다. 안 하나 하나 보자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만일에 안 가게 되면 조상이, 어머니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후려 패면서 '이 자식아, 안 갈래?' 할 수 있는 이런 단계까지 만들어 놓아야 할 책임이있다구요. 왜? 우리가 시작을 그렇게 했으니 사탄세계에서 탕감복귀를 해야지요.

남편이 부인 대해서 '아무개 엄마!' 하고 부르면 '왜 그래요?', '아 이젠 통일교회 안 가나?', '아이고, 바쁜데 뭐 당신 때문에 통일교회 못 가겠습니다' 할 때 '에이─'(행동으로 설명하심) 이럴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돼요. 그렇게 만들어 놓아야 된다 이 말이예요. 가정에서 그렇고, 사회에서 그렇고, 학교에서 그렇고, 실천무대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럴 수 있게 어떻게 만들어 놓을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며칠 동안? 움직이는 거예요. 며칠 동안? 「평생 동안요」 내가 한 5백 년쯤 살면 5백 년 동안 움직이고, 아니 한 3천 년쯤 살면 3천 년 동안 한번 움직여 봤으면 얼마나 좋겠나. 여러분은 그런 기백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이게 왜 이래요? 3천년 동안 움직여 나가야 될 텐데. 자기 모습을 그렇게 갖추어 가지고 움직여야 되겠다구요. 노동자는 노동자의 그 환경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입장에 있어서, 앞뒤로 움직이는 게 아니예요. 사방 팔방으로 움직이고 사방으로 왔다갔다하고, 그다음에는 원을 그리면서 들이 훑는 거예요. 뺑뺑 이러면서….

사장이 있고, 뭐 전무가 있고, 뭐 계장이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고 내가 있더라도 사방으로 굴을 뚫어 놓고 말이예요, 전부 다 왕래하게 해 가지고는 그다음에 꼭대기에서 들이 돌아가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말이예요, 몇 해만 지내면 밑창에 있는 노동자들도 친구예요. 어디 가든지 노동자들은 친구예요. '야 이녀석아 내 말 들어. 이거 해라', '예' 이럴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사정을 잘 알아야 돼요. 친구가 돼야 돼요.

그러려면, 통하기 위해서는 몇 해 동안 자기 지갑에 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맛있는 것 먹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좋은 것을 입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어디 가든지 그런 사상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팔방으로 뚫어라!

세상 사람 같으면 자기 집에서 출발하여 회사 자기 책상이 있는 자리까지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갔다가…. 맨 처음에는 신이 나서 그러지요.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갔다가…. 아니예요, 우리는 . 왔다가 갔다가, 또 갔다가 왔다가, 한 단계 더 와야 된단 말이예요. (웃음) 사탄세계를 정복해야 되겠으니, 남을 정복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사람보다 못해 가지고 되겠나 말이예요. 그러니 팔방으로….

여러분, 나는 그래요. 몇 해만 지나게 되면 그 회사에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게 만들어 놓아야 돼요. 우선 그 직장 그 부서에 있어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그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하며 고임돌을 놓는 거예요. 한 발자국씩…. '음, 이제사. 그렇지' 하며 올라가는 거예요. 팔방으로 뚫어 놓고 그다음에는 훑어 대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주의예요. 지금까지는 선생님은 평면주의예요, 평면주의. 평면주의지만 사실은 선동주의예요. 그런 소질이 많단 말이예요.

종교라는 이런 명사가 아주 참 따분할 때가 많아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활동에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시대를 맞이했으니 여러분들이 어디 가든지 몇 해 후에는 내가 움직이는 바람에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 보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시켜 가지고 바람 일으키는 것이 어디까지 갈 것 같아요? 한 바퀴 돌았어요, 한 바퀴. 한 바퀴 삥 돌았어요. 여러분 회오리바람 알지요? 「예」 벌써 한 바퀴에서 두 바퀴 세 바퀴만돌면 올라가는 거예요. 갈래야 갈 곳이 없거든요. 한 바퀴 두 바퀴 세바퀴만 돌면 올라간다구요.

참다운 생의 가치를 남겨 놓겠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야 할 우리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지금 계몽을 하느니 봉사를 하느니, 나라를 위하여 열렬히 싸우는…. 뭐 통일교회 사람들은 지, 지, 지─그 아래 글자가 뭐예요? 아, 독하다, 독하다는 거예요. (웃음) 세상 사람들은 지독하게 되면 가지가 없어요. 우리는 지, 지, 지, 지─. 가지가 많다 이 말이예요. 독하다! 그렇기 때문에 갖다 들이 대면…. 손이 떨어져 나가든, 발이 떨어져 나가든, 심장이 깨져 나가든, 뭐 어떻게 되든 그저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는 구멍이 뻥 뚫려 가지고 세계가 들려 나오는 거예요. 통일교인들은 뭐예요? 지? 「독」 지? 「독」 지? 「독」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말이예요, 여기 40대 이상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20대 이 녀석들은 산에 올라가도 후다닥 올라가서 또 쉬고 그래요. 그렇지만 그럴 때는 작전을 달리하는 거예요. 꾸준히 가는 거예요. 가 가지고는 먼저…. 꼭대기에, 맨 상봉에 올라갈 때 남이 먼저 올라가면 분해요. 그게 선생님이예요. (웃음) 이 자식아, 나는 너보다 마음으로 먼저 올라갔다! (웃음) 그런 조건을 세워 놓고 '너는 내 마음이 정한 다음에 그 옆에 앉아라' 이래 가지고 올라가야 마음이 편하지 그렇지 않고 앞에서 걱석거리는 것이 아주 기분이 나빠요. (웃음) 그거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거예요.

그래 가지고 먼저 올라간 사람이 있으면 말이예요, 심술이 나게 되면 꼭대기를 한번 들이차는 거예요. 이 자식아…. (행동으로 설명하심) 이렇기 때문에 흙을 들이 차든지 뭐 나뭇가지를 들이 차든지 무엇을 찼지만…. (행동으로 설명하심) (웃음) 마음이 그래야 좋거든요.

그 사람은 아무 까닭도 없고…. 거기에 올라간다는 그 가치를 얼마만큼 생각하느냐 이거예요. 먼저 올라간 사람은 '야, 천하가 내려다보이고, 야 거기에 신선한 동남풍이 휘몰아치는 그 공기를 한숨에 들이쉬겠구나. 하늘땅이 전부 다 내가 올라온 것을 얼마나 찬양하겠노. 천지가 다 내 모양과 내 행동을 올려다보고 내 한마디의 축복을 고대하겠다'는 이런 자격자로 가야 돼요. 그런데 그런 생각도 없이 저 올라간 사람이 '내가 먼저 올라갔다'고 암만 그랬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런 자격자가 되려면 마음으로 '하늘과 땅과 이 산상봉과 모든 보일 수 있는 존재물들은 이런 것을 바랄 것이다. 시대의 소망과이 땅 위의 평화를 바랄 것이다. 천지가 움직여 가지고 하늘이 환희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을 소망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지만 내가 산상봉에 찾아가는 것은 네가 제일 소원하는 최고의 가치의 모습으로 가기를 원한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리고 먼저 간 사람들은 전부 다 가짜들이다, 이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그게 통하지 그렇지 못하고 자기가 가짜인데 진짜에 대해서 암만 그랬댔자 쓸데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통일교회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혹은 목적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생활적인 환경에서 '야, 나는 이런 목적을 위해 사니 이 목적을 위해서 오늘날 현실무대를 개척하고 현실적인 그 기반 위에, 내 생애의 생활적인 기반 위에, 내가 걸어간 생활적인 배후에 그 목적의 가치를 남겨 놓고 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야 남아지지, 이건 그저 임시로….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 생각한 것이 역사적으로 보나, 시대적으로 보나, 미래적으로 보나 뿌리가 깊어서 누구 하나 들어도 끄트머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못 드는 거예요. 그래서 사탄도 할 수 없이 놓는 거예요. 이걸 들었다가는 하나님까지 벌떡 일어난다 이거예요, 하나님까지. '이 자식아, 너 사탄이지? ' 이러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못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끈기가 있어야 돼요, 끈기가. 돌격전에 있어서 일등이요, 장기전에도 일등이다, 이러면 백전백승한다 이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쁠 때는, 선생님은 큰일할 때는 후다닥 해치워요. 그런 것 알아요? 뭐 교회에 준비하게 될 때는 후다닥 해치워요. 돌격전이예요. 그리고 또 깔고 뭉갤 때는 장기전이다 이거예요. '10년 싸울래? 20년 나가자. 20년 기다린다. 너는 생각없이 왔다가 20년 기다리려면 죽을 지경일 것이다' 이거예요. 왜 죽을 지경이냐 이거예요. 그가 보는 것은 그것밖에 못 보거든요. 그렇지만 내가 보는 것은 그것이 아니예요. 넘고 또 넘고 그 몇 대조 조상까지 전부 다…. 그러니 20년 동안 앉아 배기려 해도 죽을 지경일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구요. 20년 아니라 30년이라도 가자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단기전에 사태가 나한테 불리할 때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런 신념과 내적인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참는 사람이 돼야 돼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1957년까지 몇 해 동안 허송 세월 많이 했지요? 이거 뭐 전도도 안 하고 몇 개 교회를 딱 만들어 놓고 언제 뜻이 이루어지나, 이념은 좋은 것 같고,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 보니 뭐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이거 암담하거든요.

그래서 1960년부터 냅다 모는 거예요. 냅다 모는데 지금 부상병들이 많아요, 부상병들. 여기는 부상병 없나요? 「없습니다」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있어? 「없습니다!」 있어! 「없습니다! 」 그러면 쑥 들어가는 거예요.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있어, 없어? 「없습니다」(웃음) 그런 뭣이 있어야 돼요.

예수님이 떡 부활해 가지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했을 때 '예, 그러하오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걸 주께서 아시나이다' 했어요. '야, 이 녀석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했을 때 생각이 많았다 말이예요. 아이구 그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가 세 번씩이나…. 생각이 난 거예요. 생각이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두 번째 묻게 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는 데 그 양심이…. 그렇지만 그 베드로는 참되었다는 거예요. '예!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가슴을 찔러 댔거든요. 그 다음에 또 한 번 '이놈 봐라!' 그래 가지고….

난 그렇게 생각해요. 친구의 입장에서 한 번 물어 보고, 주님의 입장에서 한 번 물어 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 번 물어 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세번째는 그러지 않았겠지만 말이예요, '시몬아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해?' 하면서 도끼를 이마에 갖다 대고 이랬다면….'예!내가 이 사람들보다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또 대답하면 그저…. 내가 선지자라면 나는 그렇게 했을 거예요. 예수님이 사내답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예수님을 깔보는 게 아니예요. (웃음)

하늘의 용사 중의 용사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시간하고 나하고 관계가 있던가? (웃음) 아무리 큰소리해도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할싸, 그렇지요? 「예」 약속을 했으면, 내가 약속을 했던가? 「예」 내가 약속을 안 했어요, 자기들이 약속했지. (웃음) 나는 답변 안 했어요. 그러니까 이 시간을 넘어서 1분이라도 침해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약속을 안 했기 때문에. 알겠어요? 「예」 패잔병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없습니다!」 응? 「없습니다! J (웃음) 그러면 뭐예요? 「훈련병이요」 전술장병이예요? 패잔병도 못 된 사람이 있단 말이예요. 싸움터에도 못 나가 봤으니까. (웃음) 패잔병 명패도 못 가진 사람이 있단 말이예요, 여기. 싸움터에도 못 가 봤으니 패잔병이 되겠나요? 싸움터에 나가야 패잔병이 생겨나든가 부상병이 생겨나지요. 우리는 부상병이 되고 패잔병이 되어서는 안되겠어요. 그리고 싸움터에도 못 나가 본 그런 지지리 못난 곰배팔이 병정 병정…. (웃음) 통일교회에는 그런 병정이 많아요, 더우기 세상에는 감투 쓴…. 이런 바탕을 가진 병정이 많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나는 학자니…. 그게 병신이예요. 여러분, 병신이예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갑종이예요, 을종이예요? 「갑종입니다」 갑종의 용사로서 어디 한번 과시하라구요. 자신 있어요? 「예」 어디서, 여기서 할래요? (웃음) 여기서 할래요? 「싸움터에서요」 어디서 할래요? 「싸움터에서요」갑종이라는 것은 어디에 필요해서 갑종이 붙은 거예요? 「전쟁터에서요」원수 앞에 가 가지고 이를 소화하는 갑종이다! 알겠어요?

그러면 통일교회 갑종 장군들은 어떠해야 되느냐? 말씀에 능숙해야돼요. 인격 수양에 있어서는 당할 사람이 없어야 돼요. 심정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갑종이예요? 「예」 몇 녀석은 대답 못 해요. 나 보기에는 그거 생각할 때 갑종이 못돼요. 갑종은 갑종인데 말이예요, 거꾸로 되었어요. 갑종은 갑종인데 훈련갑종이예요. 여러분은 훈련도상에 있다 이거예요. 내 생각에는 아직까지 전쟁을 완전히 책임지고 한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있어요? 「있습니다」 (웃음)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뭐…. (웃음) 없어요. 「있습니다!」없단 말이예요. 「있어요」 진짜 갑종이야? 갑종인 사람은 선두에 서 가지고 맨 참모, 맨 꼭대기, 사령관의 꼭대기를 짚고 갈 수 있는, 생사를 개의치 않고 달려갈 수 있는 용사가 돼야 할 텐데, 있어요? 다 병종, 병종 고개는 넘었을는지 모르지요. 그래, 이름은 내가 갑종이라고 다 해준다구요, 이름은. 땅에서 보게 될 때 갑종이라 할진대 하늘에서 보게 될 때도 갑종이예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거꾸로 됐어요, 거꾸로.

'야 이거 선생님한테 기분 나쁜 말 들어서 나 이거 참 소화가 안 되네, 소화가…' (웃음) 그런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실례의 말이지만 내가 아주 찬성하는 말이다 이거예요. '그거 선생님이 잘못 알았는데. 이거 소화가 안 돼' 그런 기분, 그런 것만이 서운한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욕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 내가 장려해 주려고 해요. 그런 말 들으면 기분 나빠야 되거든요. 기분이 나빠야 돼요. 이건 갑종 후보자도 못 되고, 갑종이 뒤집어졌다구요. 이건 사람축에도 못 들고…. 그거 뒤집어졌으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이예요.

갑종 녀석이 전사한 거나 병종 녀석이 전사한 거나 뭐가 달라요. 죽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뭐가 다르냐 말이예요. 다른 것이 있다는 거예요. 갑종은 죽었어도 적진권에 넘어가서 죽었다 이거예요. 을종 병종은 아직까지 저기에서 싸움판에 도 못 와서 죽었다 이거예요. 그게 다르다는 거예요. 차이가 있는 거예요. 죽기는 죽었는데 하나는 적진 가운데 가 죽었고 하나는 적진 밖에, 천리 밖에 떨어져 죽었다는 거예요. 죽은 것은 마찬가지예요. 그렇지만 가치문제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느냐? 하나는 적진 가운데 쓰러졌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을 말이예요, 더우기나 젊은 녀석들은.

그렇게 알고 갑종 중의 갑종이 되는 것을 내 소망으로 품고 가려고 그래요. 아시겠어요? 「예」 '선생님, 염려하지 말고 가소. 가소. 아 이 지역은 다시는 선생님이 와서 빼앗지 마소. 아이구 선생님이 또 와서 우리를 지배하면 어떻게 하나. 아이구 나는 싫은데. 에이구, 선생님이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했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럴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이 세계를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언제나 선생님이 없으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없어도 나는 한다! 이런 신념을 가져야 돼요. 젊은 놈들이, 이만한 떼거리가 삼천리 반도에 흩어져 가지고 줄에 줄을 달고, 끈에 끈을 매고, 고리에 고리를 매고, 사지백체를 엮어 삼천리 반도를 싸 가지고 '하늘이여 줄만 잡아 채소' 할 때 이 줄이 끊어지지 않고, 단결된 것이 이 채는 힘보다 더 강하게 되면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중은 넘어간다 이거예요. 여러분 기도할 때 이런 기도 해요? 정 내가 못 견디게되면 가죽은 벗겨 지더라도 뼈다귀는 안 부러져야 돼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이건 뭐 오는지 가는지, 서 있는지 자는지 모르는 패들이 많단 말이예요. 인간에게는 독자성이 있는 거예요. 자주성이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융합성이 있는 거예요. 통일성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자기 인격을 존중하지요. 그다음에는 선에 대해서 융합하려고 한단 말이예요. 통합하려고 한다 이 말이예요. 인간의 속성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절대적인 선이요, 절대적인 융합의 주체요, 절대적인 통일의 주체인 하늘 앞에 있어서 언제든지 그 가치에 대비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갖고, 융합성을 갖고, 통일성을 갖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하늘의 소원이니만큼 그러한 하늘의 용사들이 되기를 부탁해요. 아시겠어요?

남아진 이 기간을 힘차게…. 여러분들이 지방에 돌아가 가지고 잠자고 있는 식구들이 있거들랑 여러분이 선동해서라도…. 만약에 지구장이, 지역장이 책임 못 하거든 가 쑤셔대야 돼요. '지역장, 내 움직이는 데 있어서 상관할 것이 없습니까?', '없다.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머리숙인다' 그럴 수 있는 생활태도를 갖고 나가게 되면 그 지구장도 역시 인격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완성돼 간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스승을 모셔 가지고 살겠다는 것보다도 스승을 이런 가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제자의 입장, 그런 생활적인 요원이 되면 삼천리 반도는 거기서부터 살아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책임을 해야 비로소 통일의 용사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럼 나는 그렇게 알고 다녀오려고 그래요. 알지요? 「예」 이제 그만둬요? 「예」

세계의 중요한 곳에 성지를 책정할 것이다

이번에 선생님이 가는 것은 첫째는 뭘하려고 가느냐? 일본 식구 만나러 가고, 미국 식구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예요. 이번에 가게 되면….여기 삼천리 반도에 성지를 책정했지요? 「예」 성지를 책정하는데 선생님이 다니면서 했어요, 지구장들이 했어요? 「지역장들이요」 지역장들이 했지요? 「예」 한국의 성지는 슬퍼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안 했거든요, 선생님이 명령은 했지만. 그렇지만 이번에 미국이니 일본에 가면 내가 중요한 곳에 성지를 책정해 주려고 그래요. 왜? 그래야 한국과 같은 기준을 맞출 수 있다 이거예요. 몇 해 동안 성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정성들인 그 기준을 맞출 수 있다 이거예요. 미국도 그렇고, 구라파에 가게 되면 한 열두 나라 정도 들러 올지 모르겠어요.

거기에 가서 전부 다 빼 올 거라구요. 빼 와 가지고 이제는 우리 교회 지어야지요. 기둥부터 박아놓고…. 천주를 압축한, 그런 정수를 뽑아다가 전부 다 교회도 짓고 그래야 되겠다구요. 우리 본부교회 지으면 좋겠어요? 「예」 이렇게 넓은데 왜? 「좁아요」 이렇게 넓은데 왜? 아, 궁둥이가 편안한데. 지금 절약해야 할 시대 아니예요? 이거 살도 땅에 많이 대게 되면 기분 나쁘잖아요? 좀 쉬기 위해서 조금만, 면적을 조금만…. 얼마나 편리해요. (웃음) 교회 필요 없다구요, 이렇게 넓은데 무슨 교회예요? 더 필요해요? 「예」 더 필요해요? 「예」 내가 돈이 많더라도, 앞으로 교회 짓고 남을 수 있는 돈이 있더라도 교회를 짓겠다고 절대 선두에 안 나선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협회장, 기억하지 말라구. (웃음) 여러분들도 기억하지 말라구. 선생님 언제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구본부를 짓는 데 주장하는 제1호가 내가 되고, 통일교회 중앙본부를 짓는 데 주장하는 제1호가 내가 되겠다. 그 정초석을 내가 놓아야 되겠다, 이런 사람이 나올까봐 내가 제일 무서워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교회를 짓자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본부교회를 지으려면 세계적으로 지어야

여러분들은 교회를 짓는다면 얼마만한 교회를 짓기를 바라느냐 말이예요. 교회를 짓자고 하면 '오냐. 짓자' 대답은 하는 거예요. 그거 좋은 일인데 왜 싫다고 그러겠나? '오냐 짓자. 그럼 얼마만큼 크기로 짓겠느냐? ' 하면 다 이야기할 거라구요. '그래, 그래, 다 좋다. 얼마나 좋겠노?' 하다가 말이예요, '이녀석, 그거 가지고 안 돼' 하고 한마디하게 되면 짓자고 한 녀석이 꽝 하는 거예요. 몇 층을 지을 것이고, 얼마나 넓게 짓고, 어떠한 설계로 지을 것이냐를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은 생각이 많아요.

한번 세계를 밟고 그러려면 불교 통일파도 들어와서 우선 석가모니를 모시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경을 낭독하는 식으로) 그것도 만들어 놓아야 된단 말이예요. (웃음) 통일하려면 그것도 해야 될거 아니에요? (웃음) 그것이 방해되거든 한 몇십 리 밖에라도 뭐 땅의 진액을 끌어다 놓고 그렇게 해 가지고 집이라도 만들어 놔야 돼요. 공자, 향교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아야 돼요.

그렇게 하는데 '아 이거 필요 없습니다. 이거 본관에 들어가겠습니다' 하면, '아니야. 너희들 그거 제일 바라던 소원 그거 아니야? 거기서 돌다가 승천해야지' 하면 '아이고 싫습니다' 그럴 거예요. '그러면 네 손으로 불싸질러 놓을 수 있니?' 할 때 그 책임자가 '아, 있구말구요' 해야 합니다. (웃음) 그러면 자신 있거든 해봐라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자기들끼리 불싸질러 놓고 들어와서 통일해야 돼요. 그러지 않고는 너저분한 게 남아요, 남아. 그거 뭐 시시한 게 남는단 말이예요.

유대교 짜박지가 지금까지 남아서 이스라엘 민족을 못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예요. 선생님 생각 틀렸어요?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 얼마나 크게 지어야 되겠나 말이예요. 얼마나 크게 지어야 돼요? 내가 삼천리 반도를 전부 다 돌아다녀 봤지만 통일교회가 자리잡을 곳이? 「없습니다」 뭐예요? 자리잡을 곳이? 「있습니다」 대다수는 마음으로는 '없소' 하고 대답하고, 몇녀석만 할 수 없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 거예요.

그만하면 이번에 선생님이 외국 가게 되면 틀림없이 거기에다 통일교회 기반 닦으려고 하니까 이제는 틀렸구나 하고…. 그러니 마음으로는 대답하지 말라 하지만, 대답은 다 해 놓고 속으로는 떡…. (몸짓으로 설명하심) (웃음) 그렇지 않나요? 자리잡을 곳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허허─. 정말 그렇겠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없어요. 내가 팔도강산을 다 돌아다녀 봤다구요.

우선 우리 교회 옆에는 비행장, 제트 여객기가 한 3백 명, 몇백 명을 태우고 날을 수 있는 그런 비행장을 안마당에 놓고 살아야 된단 말이예요. (웃음) 아이구, 실컷 웃어라! 아이구 좋다! (웃음) 그거 말이라도, 말부터 좋아야 사실이 좋아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좋아요? 「예」 실컷 웃어요. 그렇게 말했다고 죄예요? (웃음) 그런 생각을 했다고 죄예요, 그게? 「아닙니다」 앞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세계를 통일하겠다는 그만한 배포와 그런 뭐 구상을 갖고 움직여야 돼요. 그건 정한 이치예요. 그러니 한국에 그런 곳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이 녀석아, 있어, 없어?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일본에 가게 되면…. 옛날에 일본에 가 있었지만 절대 구경 안 다녔어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명승지를 답사 못 한 내가 일본에 와서, 남의 나라에 와 가지고, 압제하는 원수의 나라에 와서 뭘 구경해? 안 다녔어요. 내가 높은 빌딩을 쳐다볼 때 몇 층으로 올라가는 가 세었단 말이예요. 이번에 거기 가게 되면 아주 주름 잡는다 이거예요. 달려라! 동북지구, 무슨 지구, 무슨 지구 해서 8개 지구에 통일교회간판이 붙어 있고 지구본부 명찰이 붙어 있으니 달려라! 이제는 거기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좀 조사를 해야 되겠다, 그럴 거예요. 그러지 말라우? 「……」 그러지 말라우, 그러라우?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하지 말래도 한다 말이예요. (웃음) 그러고도 남지 뭐.

또 미국에 가서 50개 주를 어떻게 달리느냐? 구라파면 구라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몇 개 국 나라를 달리느냐? 이걸 생각할 때 선생님이 할 일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만큼 여러분들도 우리 선생님이 그러기 위해서 가니 우리도 그러기 위해서, 삼천리 반도, 판도는 작지만서도 내가 담당한 그 지역과 명승지, 귀한 것은 내가 먼저 밟고 내가 정성들여 가지고 내 손과 내 피땀으로…. 내가 여기에서 하루라도 빨리 앉아서 밤 동무가 돼 주겠다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맡은 바의 책임 분야에 있어서, 혹은 그 무대에 있어서 충성을 다해 주기를 부탁한다 이 말이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겠지요? 「예」 나는 믿어 주기를 잘하는 선생님이예요. 믿고 가겠어요, 알지요? 「예」

그러면 선생님이 다시 올 때 여러분들이…. 다시 올 때 또 내가 언제온다 연락하고 올까요? 「예」 그냥 살짝 올까요? 「아니요」 그러면 다음에 올 때는 여러분, 여기에 왔던 사람 올래요, 안 올래요? 「옵니다」 왔던 사람은 안 와야 되지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은데. 지금 여러분만 왔으니 미안하잖아요? 그럼 여러분들은 안 오기로 약속하고 온다는 통첩을 해주는 거예요. 괜찮지요? (웃음)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면 좋겠어요? 「예」 그러면 나쁜 마음인지 좋은 마음인지 모르지만 그래요. 그거 약속한다구요. 오라요. 「예」 그때는 눈을 빼 버리지 말고 오시라요. (웃음) 귀를 막지 말고 오시라요. 입을 막지 말고 오시라요. 사지백체 전부 다 아주 백 퍼센트 귀한 것 가지고 여기 참석해 주기를 바라요. 오는 데는 혼자 오지 말라구요.

여기에 온 사람들은 지금 내가 일선장병으로서 공로 있는 사람으로 믿어 주는데 여러분이 이번에 떠나가 가지고 다음에 올 때는 가지를 쳐 가지고 와야 돼요. 알겠어요? 「예!」 한 사람이라도 전도 못 한 사람은 못 온다 이거예요. 그렇게 약속해요. 오긴 오는데, 그래요? 「예」 약속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럼 협회장도 그거 하겠지? 「예」

그러면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그런 약속을 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 「합니다!」 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 「합니다!」 나 그거 할 것 같은 것처럼 믿어 준단 말이예요. 그건 여러분의 책임이예요.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여러분은 믿었고, 여러분이 대신 대답했다고 내가 믿어 주었으니 만큼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한 사람 이상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나기를 권고해 주고, 여러분이 자청해서 바람을 일으켜 놓아야 되겠다 말이예요. 알겠지요? 「예!」

다음에 올 때는 김포 비행장에 한 10만쯤 군중─미국 놈이든, 독일놈이든, 영국 놈이든 할 것 없이─이 모여 가지고 길이 꽉차서 못 간다 해 가지고 경찰국에서 특별 명령을 해도 '아이고, 길을 개방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길을 개방하다가는 길가에 죽어 나가자빠지는 분이 10만중에 한 1만은 됩니다' 이렇게 말하란 말이예요. (웃음) 얼마나 악착스럽고 얼마나…. 그렇다고 남은 전송 나가는데, 국가 권력으로써 비행장 전송나가는 것 죄다, 헌법상 위법이라고 해서 그거 다 벌을 줄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다음에 비행장에 나오는 데 있어서는 우리 통일교회 성도들이 말이예요, 아마 상당한 수효가 모여 가지고 여기 서울서부터 꼬리를 물고 김포 비행장까지, 딴 사람들이 하나도 못 지나가게 꽉 박혀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요? (웃음) 그런 생각 안 해봐요? 그러니까 다음번에는 말이예요, 통첩하고 올께요? 「예」

그러면 내 가는 곳곳마다 며칠날 갈 것이다, 연락해 달라요? 「예」 일본에 가서도 며칠날 갈 것이다…. (웃음) 올 때 그러고 올께요. 「예」 그러면 협회장은 그거 연락해 가지고 전국에 통첩하는 거예요. 하는 거야. 「예」 그리고 그 대신 그때는 전도 못 한 사람은 절대 못 오는 거예요. 알지요? 「예」

그럼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라구요. 그런 기백과 자신만 있으면 되겠다구요. 그렇게 알고, 뭐 할말이 많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할말이 많아요. 「갔다 오셔서 하시지요」 (웃음) 그러면 오늘은 내가 기도도 해주고 싶어요, 기도. 복을 내려 줘야 되겠으니 기도를 해야 되는데 기도할 시간도 없어요. 기도도 필요 없지요? 「하셔야 돼요」 협회장한테 물어보라구요. 기도도 필요 없지? 「1분만 하시지요」 「갔다 오셔서 하시지요」 갔다 오셔서 해? (웃음) 그래 여기서 기도하려는 것을 일본 사람한테 가서 해주고, 미국 사람한테 가서 해주고? 자, 한번 기도하자구요.

기 도

하늘을 향한 일편단심, 그 누구를 위함이었습니까? 오로지 당신을 위함이었사오니 그 진실됨과 참됨과 성실함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것, 오는 것은 당신을 일편단심 모시기 위함이요, 충효를 이 천지 가운데 남기기 위함이었사오니 이 지성된 성의를, 아버지, 받아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날 이들은 숱한 고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슬픈 원한의 노정 위에서 더듬길을 걸어왔습니다. 염려하는 자리에서 참고 왔습니다. 1년의 생활을 지내 나오는 데 있어서 고통길을 거쳐왔사옵니다. 남겨진 복귀의 한의 심정을 더듬어서 오늘까지 온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옵고, 이 백성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이 나라를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비참한 역사노정을 거쳐서 슬픈 길을 참고 찾아온 곳은 대한민국이었사옵고, 이 배달의 민족이었사옵고, 더 나아가서는 이 민족을 대신한 통일교회였사옵니다. 통일교회를 대신한 부족한 저희 자신들 개체인 것을 알았사오니, 오늘 저희는 개인으로서 아버지를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만일 외적으로 내적으로 갖춘 바가 없거든 눈물을 앞세워 아버지를 부르며, 그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자기 자신을 민망스럽게 남길 줄 아는 그런 자가 되면 하늘은 버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스스로 하늘 앞에 교만하지 말고 스스로 머리 숙여 아버지의 남기신 섭리의 은사를, 남기신 긍휼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년노정, 4년노정에 이제 제2년째를 찾아들고 있사오니, 하늘이여, 남긴 복귀의 슬픔의 길을 저희들이 힘을 다하여 다 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힘이 부족하거든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신들의 결의가 부족하거든 결의를 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슬프고 슬펐던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한, 하늘 대한 맹세를 한 무리들을 강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이 마음과 이 몸이 담대하여 하늘 앞에 효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삼천만 민중 가운데 처처에 널려 있는 것도 하늘의 은사입니다. 하늘의 생명의 은사를 여기에서 재기시킬 수 있는 폭탄적인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진정한 눈물을 흘리는 자, 진정한 땀을 흘리는 자, 각오하고 맹세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염려스러운 민족적인 운명을 이들이 맡게 하여 주옵고, 하늘과 약속한 것이 있으면 이들과 더불어 같이하여 주옵고, 아버지, 나를 외로운 자리에 서지 않게 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들을 외로운 자리에 두지 마시옵고, 외로울 때는 나를 위로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위로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과,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그 가운데 눈물을 뿌리면서 스승의 가는 길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올진대,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품에 품어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을 키워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도 준비에 바쁜 일본에 있는 어린 식구들에게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인연과 관계로써 하늘이 묶어 준 크나큰 통일의 목적을 위하여 오늘날 강한 행동적인 기준에 있어서 신념의 생활을 해야할 그들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하늘의 깃발을 드높이 드시사 만우주적인 크나큰 뜻을 그들을 통하여 이 약속한 민족 민족 위에, 혹은 이 아시아에 하나의 생명의 말씀을 대신 증거하는, 아버지, 천사장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민족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앞으로 저희들이 맞이할 이 대열 위에도, 아버지, 은사의 길을 같이하여 주옵고, 바라는 그들의 마음 마음 위에 친히 안위의 터전을 허락하여 주옵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아버지의 인격을 닮을 수 있는 거룩한 기간이 될 수 있게끔, 아버지, 가는 길과 나타난 환경 환경을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허락하신 뜻과 남기신 복귀의 노정이 당신의 소원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저희는 가고 가고 갈 것을 맹세하는 이 시간이오니 이 모든 결의와 이 맹세를, 아버지, 친히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참다운 도의 세계, 수많은 인류 인류 위에, 아버지,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타락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세계가 되지 못한 이 세계

통일교회 들어온 지 6개월 미만 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거 다 오래됐구만. 내려요.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각각 나라를 갖고 있어요. 또 이 세계 전체를 쪼개서 말하면, 동양과 서양으로 갈라서 말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이 지구상에는 현재 많은 나라가 있고 많은 민족과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들은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고 한국 사람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또 그중에서도 강원도 사람입니다. 강원도 사람 가운데서도 오늘 이와 같이 모인 통일교회 사람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역사노정이 단지 무엇을 표준하고 살고 있으며 움직이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반드시 목적을 바라보고 그 목적의 때를 기다리면서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에 수많은 인류가 어떠한 행복한 새 세계를 이루어서 그 목적의 세계에서 산다면 이 땅이 평화로운 땅이 안 될 수 없으며 행복스런 세계가 안 될 수 없을 것인데, 현하의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아직까지 행복의 세계요, 행복의 땅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계가 그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하고 내가 살고 있는 가정이 그러합니다. 내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내 마음과 몸도 역시 불안한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초조한 기로의 경계선에 서서 내일의 소망을 향하여 허덕이는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는 그 무엇인지 모르게 선을 향하여 시시각각으로 재촉하고 있으되 여러분 자신이 생활환경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선을 지향해 나갈 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이 무대를 선한 세계라 하고, 올바른 세계라고 하고, 우리들이 기뻐 살 수 있는 세계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요, 대한민국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요, 세계 어느 나라 민족, 어느 나라 백성을 막론하고 그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이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혹은 이 땅이 선한 데서부터 출발하였더라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텐데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근원이 잘못돼 가지고 원치 아니하는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들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말하기를 타락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알겠어요? 타락한 세상. 타락됐기 때문에,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아 이 세계는 이와 같은 결과의 세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세계를 박차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목적을 찾아서 헤매지 않으면 안 되고, 내일을 소망삼고 혹은 미래를 소망삼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운명권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복지가 아니라 어차피 지나가야 할 과정적인 세계요, 나그네와 같은 행로에 머문 세계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생은 고해'라고 한 것도 우리들이 슬픈 세상을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권에 처해 있는 사실을 여실히 증거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은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되었으니 이것을 박차고 새로운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만일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찌하여 인류세계가 이와 같은 타락의 세계, 이와 같은 슬픈 세상이 됐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구상한 창조목적이 있어서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이 세계를 선의 세계, 혹은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로 만들려고 계획했을 것은 틀림없는데 그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찌하여 이와 같은 악한 세상이 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슬픔의 세상에서 살지않으면 안 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느냐? 이것이 지금까지 문제입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려 하시는 하나님

어쨌든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 인간의 시조, 오늘날 우리 기독교에서는 인간조상을 아담 해와라고 합니다. 그 아담 해와가 타락을 했다고 성경은 막연하게 명제를 내걸고 있다는 거예요. '타락했다. 타락은 선악과를 따먹고 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으면 왜 타락하느냐? 선악과가 무엇이냐? 이에 대한 전반적인 해명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것이었느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완성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그런 우리 인류시조가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오늘 이와 같은 결과의 세계는 되지 않고 딴 방향의 어떠한 결과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건 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딴 방향의 목적의 세계를 원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원치 아니하는 오늘날의 이와 같은 결과의 세계를 만들어 놨으니 하늘도 이것을 박차고, 오늘날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는 인류도 이 환경을 박차고 새로운 길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인간들이 불쌍하게 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연고로 이 인간들을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목적하였던 창조이상세계로 옮겨 놓기 위해서 구원역사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세한 내용은 그만두고….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무엇이냐? 옛날에 하나님이 인간을 중심삼고 축복하였던 본연의 기준을 다시 찾아들어가는, 복귀노정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고장났으니 고장나지 않은 본연의 위치를 우리는 다시 한 번 회복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류의 시조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그 시조의 실수를 오늘날 우리가 상속받아 가지고 수천만 대 수많은 인류가 그와같은 실수의 권내에서 그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본래 바라던 참다운 아담을 이루지 못했고, 참다운 아담을 중심삼고 참다운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참다운 가정을 중심삼고 참다운 종족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다운 민족을 편성하고, 이 민족이 단결되어 하나의 국가를 편성하고, 그 국가를 중심삼고 비로소 처음 지구상에 시작되는 아담을 위주한 아담 족속들이, 수많은 씨족들이 번창하여서 이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그 나라는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나라는 아담 가정으로부터 아담 종족, 아담 민족, 아담 국가, 아담세계 즉 아담 주의적인 세계가 될 것이었는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까지 나갈 수 있는 역사적 거리를 남겨 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남겨 놓은 채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목적하였던 참다운 아담의 가치를 완성한 참다운 사람을 잃어버렸고, 그 사람을 위주한 참다운 가정을 잃어버렸고, 그 가정이 다리가 되어 이루어져야 할 종족을 잃어버렸고, 민족·국가·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민족·국가·세계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누구까지 잃어 버렸느냐 하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까지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여러분 개인 개인이 지금까지 몰랐지만 이와 같은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잃어버린 모든 소망의 목적의 전체가…. 이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이로되 역사노정을 두고 아담 후손으로 태어난 수많은 인류가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 하나를 잃어버리게 될 때, 아담 가운데는…. 이것이 퍼지면 세계가 되는 거예요. 아담을 중심삼고 수많은 아담 족속들이 퍼지면 세계가 되는 것이요, 국가가 되는 것이요, 민족을 이루는 것이요, 종족과 가정과 개인 완성을 이루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하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개인으로 말미암아 전체를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그런데 하늘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인류를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구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려면 메시아와 선민이 필요해

구원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여기에는 반드시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됐으니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 되겠다 이거예요, 사랑의 하나님은 창조적인 원칙을 중심삼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연고로 타락한 인류를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늘은 아버지고 우리는 자녀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딸이 원수의 손아귀에 이끌려 가 가지고 신음하고 있는 연고로 싸워서 이것을 다시 빼앗아 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니 싸움이 전개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부터 인류역사는 인류의 발전과 더불어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이 명사를 떠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주를 보냈는데 어떠한 구주를 보냈느냐? 하늘을 향하여 충성을 다하는 종과 같은 사명자로서 이 땅 위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무대를 중심삼고 승리해야 할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과 자기 환경에, 풍습에 알맞는 수많은 도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을 세워 가지고, 그 시대에 적당한, 적응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대표자를 보내서 점점점 수습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종을 시켜서 역사하는 시대, 그다음엔 양자와 같은 사명을 짊어지우고 역사하는 시대, 그다음엔 아들을 보내서 역사하는 시대, 그다음엔 인류의 조상을 보내서 역사하는 시대, 이래 가지고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면 하나님과 합하여 하나되어서 이 지구성에 있는 악의 세력을 제거해 놓고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목적하였던 선의 역사, 선의 세계, 선의 생활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한꺼번에 이 세계 전체를 복귀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외적으로는 이 울타리를 쳐 나오면서, 앞으로 섭리하는 뜻 앞에 순응할 수 있는 외곽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부를 결정지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지 만물을 지어 놓고 중심인 아담해와를 지은 거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구원섭리의 터전을 넓혀 가지고 거기에 하나의 중심을 세워서 이것을 한 마디로 맺어 가지고 한 단계 한 단계 높여 올라가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이런 섭리를 하나님이 하신다면 섭리하시는 그 터전 앞에 반드시 하늘을 위하여 선택받은 백성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무 민족이나 전부 다 동서남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역사를 둬 가지고 역사적인 배경이 하늘과 더불어 인연을 맺어 가지고 오늘날 이 세상까지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왔지만 일관된 섭리의 계통을 통해서 하늘은 섭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에서 하늘 앞에 배반되는 사탄,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적인 하나님의 섭리권 내에 있는 수많은 민족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런 섭리를 하신다면 이 지상은 끝날에 어떻게 될 것이냐? 선은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

맨 처음에는 크게 출발하지만 시일이 감에 따라 가지고 점점점 작아지는 것이 악의 방향이요, 처음에는 작게 출발하지만 점점점 발전하는 것이 선의 방향이라는 거예요. 살아 있는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발전하는 것이요, 죽은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시들어 말라진다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이 한번 부딪쳐 가지고 거짓이 꺾이게 될 때는, 그 거짓은 그 자리에서부터 죽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점점점 퇴폐해 나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선은 거기서 점점점 발전해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선이 먼저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악이 먼저 출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의 판도의 기준이 선의 판도의 기준과 대등할 수 있는, 비슷한 단계에 머물게 될 때는 반드시 부딪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 있어서 옛날에는 개인적인 투쟁시대였습니다. 그다음에는 가정과 가정끼리 싸운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것이 종족·민족·국가, 나중에는 세계적인 투쟁권 내로 몰아넣어 간다는 거예요. 이래서 오늘 현하에 이와 같은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지구상에 양대 진영이 대결 투쟁하는 권내를 필시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다 이겁니다.

외적인 민주세계는 뭐냐? 하나님 편에 충성할 수 있는 천사장 국가와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껏 모실 수 있는 종, 충신과 맞먹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공산세계는 하나님이 없다 이거예요. 이건 무엇이냐 하면 사탄세계와 맞먹는 거예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탄세계와 맞먹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의 천사장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할 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을 처단하는 데는 하늘을 위하여 충성을 다짐하고, 하늘을 위하여 충성의 권위를 갖고 나타나는 종으로서 심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위가 선다는 거예요. 그와같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날 세계가 두 갈래로 나뉘어 투쟁하는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적으로 그와 같은 입장의 인연을 지어 놓고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느냐? 내적으로 이것을 전체 수습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아벨을 대하여 반대하는 가인적인 입장이 아니라 아벨을 대하여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가인적인 입장에 놓았다는 거예요. 이와 같은 입장에 세워 놓아 가지고 이제 아벨이 옴으로 말미암아 전세계 민주권을 아벨 앞에 굴복하게 해서 새로운 장자복귀를 하자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가인이 먼저 나왔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는 장자를…. 하늘을 중심삼은 장자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탄을 중심삼고 장자가 태어났기 때문에 하늘은 지금까지 차자의 입장에서 장자의 권을 빼앗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 시대에 있어서도 아벨을 통해서 가인의 축복을 빼앗아야 된다는 거예요. 복귀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누구냐? 사탄편이다 이거예요. 이 둘이 부딪쳐 나온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선을 먼저 침범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선이 악을 치는 것이, 선을 악을 심판하는 것이 원칙인데 지금까지는 악이 선이 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모든 선을 대변하여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은 전부 다 역사적인 희생의 길을 걸어가 가지고 나중에 가서 들리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들리움을 받느냐? 그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악한테 맞는 자리에 섰지만…. 하늘에는 선한 기준을 세워야 할 천적인 운세가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오기 때문에 먼저 나타난 그 사람보다도 그 사람이 싸워 가지고 승리한 터전 위에 선한 때가 연결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선한 사람이 와 가지고 희생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걷고 난 후에, 거기서 싸워 승리한 선의 기준이 결정된 후에 그 기준을 하늘이 받들어 세울 수 있게끔 섭리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하늘은 어떤 작전을 해 나오느냐 하면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악은 때리고 빼앗아 오는 거예요. 그것이 악의 작전입니다. 하늘은 사랑을 모방하고 복귀섭리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악한 사탄이라도 먼저 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칠 수 있다면 벌써 이 악한 사탄세계를 전부 다 심판해 버렸을 거예요.

그렇지만 하늘의 작전은, 아벨을 통해서 가인적인 장자의 축복을 복귀해야 할 천적인 인연이 있는 연고로, 즉 다시 말하면 악한 세상을 대해 탕감조건을 세운 다음에 아벨적인 입장의 시대적인 구세주, 혹은 시대적인 도를 대표한 사명자들이 인계받게끔 되어 있는 연고로 그들은 반드시 이 땅 위에 와서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된다는 거예요. 고난의 길에서도 자기가 맡은 바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정적인 책임만 완수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떠한 가정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완전히 탕감해서 그 가정권 내에 승리의 기반을 닦는 동시에 종족적인 십자가까지 짊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단계 앞선 십자가까지 짊어지고 싸워 승리해야

가정이 서려면 반드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종족이 없어 가지고는 가정이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예요. 개인이 하늘 앞에 세움받으려면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올 때에 개인구원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가정구원을 목표로 했습니다. 가정구원을 목표로 해 가지고 가정을 내세워서 민족적인 기준을 탕감시켜가지고 그 탕감조건을 넘어선 후에 민족을 복귀해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가정을 책임진 사람은 반드시 종족적인 십자가를 겸해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축복을 받고 하늘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어느 시대든지 와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방적이냐 사방적이냐 전체적이냐 하는, 그 분야에 해당하는 비례의 고난의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싸움을 하면서 종족을 세워 이 종족이 축복받을 수 있는 기준에 섰더라도 축복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족이 축복받으려면 종족보다도 민족권….

그러면 왜 종족을 세웠느냐? 민족적인, 외적인 십자가와 투쟁할 수 있는, 싸워 이길 수 있는 기반을 닦게 하기 위해서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적인 기반을 완전히 승리의 터전 위에 세운 후에야 종족이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 민족이면 민족이 하나님을 몰라서 안식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어서 안식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민족이 안식하려면 이스라엘 나라면 이스라엘 나라 한 국가를 창건해 놓고야 그 민족이 안식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한 단계 더 앞선 십자가를 겸해서 두 십자가를 짊어지고 싸워서 승리의 기반을 결정지어 놓아야 안식의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천지법도가 이와 같은 싸움의 노정을 거쳐온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의 뜻을 이루었다고 개인 중심삼고 안식할 수 없다는 거예요. 개인이 안식하려면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 놓아야 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승리했다고 가정을 중심삼고 안식할 수 없다 이거예요.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을, 종족이 안식하려면 민족을, 민족이 안식하려면 국가를, 국가가 안식하려면 세계를, 세계가 안식하려면 하늘땅을 전부 복귀시켜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아직까지 안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해야

하나님이 아직까지 안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뭣이냐? 아직까지 타락선을 넘어선 소망의 자리, 창조목적을 이룬 기준에 서지 못했다는 결론입니다. 이래서 하늘은 지금까지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발전노정에서 투쟁의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끼리 서로 둘이 싸운다고 할 때 나쁘기는 다 같이 나쁘지만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선한 사람이 이긴다 이겁니다.

반드시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된다는 거예요. 더 큰 데로 나가려면 투쟁이 없어서는 안 돼요. 고개를 넘으려면 피땀을 흘려야 됩니다. 노력을 해야 돼요. 거기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전진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반드시 발전해 나오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개인적인 투쟁시기, 가정적인 투쟁시기, 종족·민족·국가ㆍ세계적인 투쟁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인 투쟁시기권까지 나와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나오는 데는 반드시 둘이…. 하나님이 보기에는 둘 다 나쁜거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둘 다 나쁜 것이다 이거예요. 타락한 족속들이 싸우니까 둘 다 망할 무리예요. 그렇지만 그 가운데 어느 쪽이 가인이고, 어느 쪽이 아벨이냐? 어느 쪽이 조금 더 나쁘고, 어느 쪽이 조금 나으냐 이거예요.

가인형과 아벨형과 같은 역사적인 기준에서 하늘은 기필코 아벨적인 기준이, 선한 편이 승리하게끔 섭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먼저 치는 녀석이 가인이고 맞는 사람이 아벨이라는 거예요. 먼저 치면 불리하다는 거라. 지금까지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싸움의 노정에 있어서 사탄이 악을 대표해 서 있기 때문에 언제나 선을 먼저 쳤다는 거예요. 1차대전 때도 먼저 친 녀석이 졌고, 2차대전 때도 먼저 친 녀석이 졌다는 거예요. 3차대전을 중심삼은 현하 이 시대권 내에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쳐서 그가 거꾸러지지 않으면 자기의 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에 있어서의 법도가 되어 있습니다. 먼저 어떤 사람을 칠 때 그 자리에서 맞는 사람이 망하지 않고, 벌받지 않는 날에는 친 녀석이 그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이러한 원칙이있기 때문에 오늘날 도의 세계에서는 양심을 주장해 나온 거예요. 참고 양심을 주장하며 서러움이 있을 때는 하늘 앞에 호소했습니다. '하늘은 안다' 이러면서…. 오늘날까지 인류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우리의 양심의 방향을 더듬으면서 허덕여 나왔습니다.

한 개인이 그러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종족 대 종족의 전쟁시기에 있어서도 어떤 악한, 가인과 아벨적 기준에 조금 악한 녀석들이 먼저 선한 자를 쳤으면 맞은 패는 맞아서 완전히 점령당하지 않고 완전히 깨지지 않는 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 편의 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천리원칙이 있는 연고로 하늘은 지금까지 맞고 빼앗아…. (녹음이 잠시 끊김)

주위 환경의 모든 선한 운세가 그 사람을 향하여 전부 옹호하고 그 사람 권내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적인 원칙이 있는 연고로 하늘은 지금까지 도의 세계를 지도하는 데 있어서 양심적인 생활을 하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 봉사해라 이거예요. 참아라 이거예요.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복을 빌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려 버리지 마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게 참 무서운 말이라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저들의 모든 전체의 복, 선한 기준에 속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늘편에 완전히 복귀하겠습니다'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전체를 복귀해야 됩니다'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싸움을 전개시키면서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역경의 길을 걸었다

이런 역사적인 섭리를 하늘은 해야 되겠기 때문에 맨 처음 그 섭리의 주인으로서 혹은 첫 사람으로서 부름받은 사람이 누구냐? 그건 노아 할아버지입니다. 이 사람이 부름받을 때 하나님이 '야 야, 노아야! 네가 내 말대로 하면 천지가 네 것이 된다'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못 할 것을 시키는 거예요, 못 할 것을. 사탄세계의 백만한 것을 노아를 세워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늘은 이 백만한 것에 해당하는, 하지 못할 반대의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거 해라!' 하고 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탄은 반드시 와서 공격한다는 거예요. 하늘 일을 방해한다는 것이거든요? 노아 할아버지의 일을 방해 한다기 보다도 하늘 일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권 내에 있는 백만한 복이 연결돼 가지고 여기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는 충신과 선을 위주하여 싸워 나가는 터전은 절대 악이 점령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건 천도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명령을 받은 노아는 120년 동안…. 배를 지으려면 강변에다 짓지 산꼭대기에다가 짓느냐 말이예요. 이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극반대 현상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백만한 사탄세계의 기준을 하늘세계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백만한 반대적인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명령하는 거예요. 그 명령을 순종하는 자체가 이 백의 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의 터를 마련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 120년 동안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지어 나오는 가운데 있어서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노아의 부인과 아들딸들은 전부 다 협조했을 것 같지요? 아니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 자기 아버지가 120년 동안 산꼭대기에 올라가 배를 짓는 다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 아니냐 말이예요.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동네 사람은 물론이요, 그 지방 사람은 물론이요,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전부 다 미쳤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그러니 아들딸, 처자까지도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반대했지만 하늘의 말씀을 믿고 하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박차고 노아는 끝끝내 120년이라는 기간을 채움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적인 복귀의 전체에 비례될 수 있는, 이 기준을 대신할 수 있는 조건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은 이 인류와의 믿음과….

노아를 중심삼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방해하려고 애쓴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못사는 사람, 잘사는 사람, 혹은 노동자, 농사꾼, 별의별 계급의 사람들이 전부 다 노아 할아버지를 때려잡으려 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꺾여 나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최후에 가서는 하늘이 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조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노아 할아버지를 그와 같은 대표적인 입장에 세워서 사탄세계의 모든 사람한테 백 퍼센트 들이 맞게 하고, 그 다음엔 하늘이 선과 악을 갈라놓았으니 선한 것은 세워 줘야 되고 악한 것은 쳐야 된다는 거예요. 탕감복귀예요. 노아의 120년 동안 굳건한 신앙을 중심삼고 하늘의 명령을 따라 세운 그 절개의 터전이 수많은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이 될 수 있었다 이겁니다.

이와 같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한 사람을 반드시 어디로 보내느냐?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반드시 어디로 데려가느냐 하면, 제일 나쁜 곳으로 데려간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예요. 사탄세계의 한 사람도 가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불러내게 될 때, '너 갈데아 우르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가정과 친척을 중심삼고 재미있게 살던 그 환경을 박차고 이방으로 가라 이거예요. 갈데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입니다. 여기서 저 가나안 복지, 국경을 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집시의 무리가 되어 가지고 국경을 넘고 넘어 소망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는 황망한 그 길을, 광야노정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아브라함에게는 소망이 넘쳐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이거예요. 누구든지 거기에 가라면 싫다고 할 수 있는 이런 길로 내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천명을 따라 가고 가고 또 가 가지고 애급까지 거쳐갔다 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기필코 어느 기간을 지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늘이 명령하게 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가지 못하는 그런 환경의 터전 위에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그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축복을 할 수 있었다 이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궁중에 들어가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세 자신이 반드시 역경에 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원치 않는 목자의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 자기 혼자자 광야에 나와 있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양떼와 같이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오는, 그와 같은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하늘 앞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모세의 생활은 수많은 애급에 사는 사람까지도 동경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로운 자리요, 누구든지 그 사막에 나와서 모세의 편이 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하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을 누구보다도 더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신념과 더불어 실제 생활에서 그것이 표시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그를 세워서 '네가 그럼 이스라엘 민족을 빼앗아 나와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빼앗아 나와라 이거예요. 누구든지 갈 수 없는 곳으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뜻을 따라, 명령에 따라 이 일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반드시 복귀의 길을 열어 줬습니다.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일이 끝났을 때 제2의 십자가가 남아 있음을 알아야

이리하여 모세를 따라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지로 향하여야 할 텐데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를 향해서 하늘이 약속한 제사장 국가를 창건해야 되고, 새로운 지상천국 이념을, 가나안 복지를 완성해야 할 그런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나가면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복받아 가지고 행복이 대번에 자기들 눈앞에 올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빼낸 것은, 60만 대군을 빼낸 것은 이스라엘 국가를 창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민족적인 탕감의 기준은 넘어섰지만 국가가 당해야 할 탕감의 노정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이 국가적인 시련 무대를 향해서 행군을 명령하였다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쓰라림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피폐한 국가를 다시금 재창건해야할 어려움이 광야와 애급의 고통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것을 알고, 이스라엘 민족이 그와 같은 목적을 알고 단결하여서 광야노정을 순식간에 걸어갔다면 이스라엘 건국이상은 모세 시대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모세를 위주한 성전이념이 나와가지고 메시아가 올 때까지 사탄세계의 더럽힘을 당하지 않고 순수한 성전으로 바친 바 되었더라면 예수가 와서 죽을 리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한국 교계를 두고 볼 때, 해방 전까지 왜정의 압제하에서 말할 수 없는 탄압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의 한날이 와 달라고 그들은 간곡히 기도했던 거예요, 그러나 그 해방의 한날은 왔지만 그날이 왔다고 해서 기뻐 춤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독교를 중심삼은 새로운 시련의 무대가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오늘날 교단이 다 부패했다는 거예요. 하늘을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구원의 터전을 완결지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구원이 완성되려면 종족의 터전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거예요. 민족의 터전은 국가의 터전을 마련해 놓고야…. 민족이 하늘 앞에 해방을 받고 하늘 앞에 축복을 받아 고맙다고 거기에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민족이 축복받은 그날서부터는 고난입니다. 국가적인 시련의 고비를 뚫고 나가야 그 나라를 건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섭리의 노정이 역사를 연이어 나오면서 이 세기말 시대까지 왔다 이거예요.

그렇게 해서 뭘할 것이냐? 타락선을 넘자 이거예요. 아담이 타락한 것은, 개인이 타락 했을망정 그건 전체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씨가 되어서 그 씨가 완성을 했더라면, 그 씨로 말미암아 수많은 씨가 세계상에 벌어져 가지고 하나의 가정적인 천국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가 썩어버렸으니 종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사람의 종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민주와 공산이 대결하는 이때에 있어서 앞으로 민주세계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섭리관을 안다 할진대 이 민주세계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세계 창건을 위한 제3의 십자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모르면 망한다구요.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한 것도 그러한 분야의 뜻을 알고 그런 분야의 노정이 어떤 곳에서 전개되느냐 하는 것을 탐지하고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미국 혼자 잘살지 못한다 이거예요. 미국은 '태평양 가운데 어느 누가 침범할 수 없는…. 우리 나라를 위주하고 기쁨만 누릴 수 있으면 잘살 수 있다' 이러지만 이 세계가 하나님의 복귀섭리 과정에 있어서 타락선을 향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 세계로 넘어가야 될 운명에 놓여 있는 연고로, 오늘날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은 자기 혼자 잘살 수 없다 이거예요. 미국이 앞으로 해야 할 것은 세계 민주진영을 이끌어 가지고 새로운 세계의 창건이념을 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복귀 천국이념을 향해서 져야 할 하늘땅의 십자가가 남아 있는 것을 망각했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점점 떨어져 내려간다 이거예요. 주고 욕먹는다는 것입니다. 주면 줄수록 친구를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런 관점에서 세계를 주목해야 됩니다.

통일신도들의 책임

그러면 오늘날 한국 실정을 바라볼 때, 한국은 세계와 보조를 맞춰 타락선을 넘어야 할 국가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이 세계사적인 터전 위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이념적인 뒷받침을 가져 가지고 이 땅 위에 탄생했다 할진대는 통일교로서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 올때 '선생님 만나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기쁜 마음으로 오셨는지 모르지만 이 오는 걸음이 복된 것보다도 이제 왔다 가는 걸음이 복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될 수 있는 기준을 여기에서 붙들고 복을 안고가 가지고 복을 심을 수 있는 자가 못 되면 복은 복대로 달아나 버리고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에 기쁜 일이 있거든 이것은 내일에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로서 주는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오늘 한국에 있어서 한국 백성들이 슬픔 가운데, 그 도탄 가운데 신음한다 할진대 이것이 하늘 명령을 따라서 이와 같이 신음하는 것이라면 복받을 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의 뜻을 배반하여서 돌아서 가지고 슬픈 자리에 있으면 쓰러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로에 선 국가적인 운명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통일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우리가 한 교단적인 책임자로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이념이 세계적인 이념이요, 우리가 천주를 복귀해야 할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타락선을 넘어야 할 사명을 짊어졌다 할진대 우리의 책임은 지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체를 개체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소원했던 것을 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신자요, 혹은 노아, 더 나아가서는 아담, 내려와서는 모세·예수, 지금의 숱한 인류가 바라던 소원을 불러일으켜야 될 책임을 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오늘의 각오와 내일의 시련무대를 향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다시 하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복귀노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 취해야 할 생활태도

하늘을 따라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집을 짓고 사는 법이 없다는 거예요. 자기 집을 짓고 사는 녀석은 전부 다 가짜다 이거예요. 누가 자기 집을 지어 줘야 되느냐? 레위 족속은 집이 없는 거예요, 집이. 그렇지만 그 집을 누가 지어 줬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지어 줬다는 거예요. 정성을 다하여 지어 준 민족의 하늘의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들어가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자기가 책임을 짊어졌으면 책임을 짊어진 그 환경에 있는 그들을 구원해 줘 가지고 그들이 기뻐할 때에 자기가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만 기뻐하고 '너희들 만물은 기뻐하겠으면 기뻐하고 말겠으면 말라' 이런 원칙이라면 하나님도 지금까지 혼자 기뻐하지 구원역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 자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구원섭리하는 데 있어서 '너희들을 기쁘게 해방시켜 놓고 아버지가 기뻐하겠다' 하는 것이 하늘의 신념이기 때문에 오늘날 지도급에 있는, 혹은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태도를 가져야 되느냐? 아들딸을 편안히 해 놓고 아들딸들이 자기 어버이가 지어 준 그 집에 들어가 원치 않아도 모셔 들여 안식하게끔 해 놓아야 정상적인 복귀의 터전으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그렇고, 가정으로서 그렇고, 민족·국가·세계가 그렇게 돼 나간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하늘의 왕자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하늘의 왕자로 와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자기의 공생애노정을 가게 될 때 '야, 나를 모셔 다오'라고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구원섭리로 볼 때, 4천 년 동안 하나님이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이요, 유대교단이었지만 그 교단 앞에 하늘의 왕자로 태어났던 메시아 예수는 그들 앞에 나가 가지고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자유롭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을 너희가 닦아 다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왔으면 민족의 선두에 서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해 놓고야 비로소 나라 위주한 안식의 터전을 잡는 거예요.

하나님의 섭리는 한 이스라엘 나라를 위주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한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놓고는 뭘할 것이냐? 세계적인 투쟁 노정을 거쳐서 세계적인 탕감의 기준을 만들어 놔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은 후에야, 만민이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모실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자리잡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면 이러한 원칙을 볼 때, 오늘날 지도자들은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뻔하다는 거예요.

타락선을 넘는 비결은 주체에게 복종하는 것

복귀의 고개, 타락선을 넘어가야 되겠다 이겁니다. 넘는 데는 막 넘는 게 아니예요. 넘는 비결은 마찬가지예요. 공식이 있다 이거예요. 개인이 넘어가는 데도 요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개인이 넘어가는 데도 그렇다는 거예요.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무조건 마음이 몸 앞에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몸이 마음 앞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종할 수 있는 아량의 터전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은 뭘하느냐? 마음은 몸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거예요. 몸이 완전히 창조되기 전에는 마음이 기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까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역사노정은 숱한 역사노정을 거치지만 아직까지 여러분의 몸둥이가 창조된 그 기준에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공식적인 원칙입니다.

그러면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남편이면 남편, 혹은 부인이면 부인 이 둘도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주체 되는 그 주체는 반드시 상대를 창조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주체의 목적권을 대신하여 여기에 화합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돼야 됩니다. 이 주체가 동기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거기에 상대가 비로소 하나돼 가지고야, 완전히 하나되고 난 후에야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원리라는 거예요.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이 원칙인데 하나 못 돼 가지고 지배하려고 하니 복잡한 문제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이러한 복귀섭리의 단계로서의 타락선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선을 넘어가는 데는 개인적인 타락선을 넘어야 되고, 가정적인 타락선을 넘어야 되고, 종족적인 타락선을 넘어야 되고, 국가·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넘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구해 주려고 이랬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돌아서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돌아서든가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모셔 오든가 방법을 달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보응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종교인들은 뭘해야 될 것이냐? 한국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기 교회를 중심삼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교회를 기반으로 하여 민족적인 제단을 꾸며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단을 꾸미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되어야 됩니다. 제사장이 없이 제단을 꾸몄다가는 헛수고예요. 참된 제사장이 돼 가지고 제단을 꾸며야 돼요. 그래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그다음에는 모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되는데, 제사드리기 위해서는 전부가 우러러봐야 됩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내 생명을 대신해서 속죄해 줄 수 있는 제사장의 자격이 있습니다. 천지가 공인합니다'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타나야 됩니다. 그런 권한을 갖고 나타나는 종교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타락선을 넘으려면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민주세계면 민주세계를 대신하여 제사장 책임을 할 수 있는 종교가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이라는 명사를 갖춰 가지고…. 세계적인 시대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도 통일주의적인 새 세계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언제나 나라 중심삼은, 교파 중심삼은 하나님이 되면 불쌍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안고 소화할 수 있는 종교가 되어 가지고 그종교가 '세계를 이루어라!' 하면 '예, 예'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이 몸에게 이리 가라 하면 순응하는 거예요. 싫어하면서도 순응한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와 같이 오늘날 이 지구성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본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 못 한다는 거예요. 불교가 못 한다는 거예요. 회교가 못 한다는 거예요. 다 못 한다는 거예요. 못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결해야 됩니다. 통일해야 됩니다. 통일해서는 뭘할 것이냐? 통일해 가지고는 세계를 위하여….

그 세계적인 종교가 출발할 때는 한 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할 것입니다. 한국이면 한국에서 한 개인을 중심삼고 출발한다 이거예요, 그 개인을 중심삼고 출발하는 것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이는 가정적 목적만이 아니예요. 민족적 목적만이 아니예요.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목적을 겸할 수 있는 이런 내용으로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이 민족을 움직이고 혹은 세계를 움직이게 될때는 뭘할 것이냐? 세계의 선두에 서서 복지화 운동을 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완전히 구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삼천만 전부가 세계 앞에 하늘 뜻을 대신하여 봉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민이 '옳소이다. 저 한민족은, 삼천만 저 민족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요, 우리가 저 민족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저 민족으로 인해 속죄의 은사를 받았으니 그 민족 앞에 속죄의 은사를 보답해야 됩니다'할 수 있게 되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줬다가 받는 거예요. 주는 것은 희생이예요.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들딸과 같은 입장에서 줄래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려고 하면 사탄이가 품고 있다는 거예요. 처버린다 이거예요.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사탄이를 쳐부수고 세계를 향하여 줄 수 있는 기반에서 만민이 '옳소이다' 할 수 있는 환영의 한날을 맞아 가지고야 비로소 한민족이 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민족적인 타락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민족적인 타락권을 넘을 수 없고, 세계적인 타락권을 향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타락권을 넘기 위해서는 영계를 해방해야

그러면 세계적인 타락권을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계의 해방운동을 해야 됩니다. 이거 처음 온 사람은 이해 못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있어서 앞으로…. 지금까지는 경제를 중심삼고 싸웠습니다. 돈을 빼앗았어요. 경제기준을 위주한 싸움시대, 그다음에 주의 사상 시대에 들어와 가지고 사람 빼앗기 위한 싸움 시대, 그다음엔 뭐? 그다음엔 뭐예요? 하나님 빼앗기 위한 싸움 시대 입니다.

그런 때가 되어 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는 어떻게 되느냐? 물질적으로 투쟁을 시키고, 사람을 중심삼고 투쟁시키고, 그다음엔 종교를 중심삼고 싸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자기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과 동시에 이 지상에 영계의 혼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혼란한 영계는 지상을 습격해 온다는 거예요. 지상을 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노이로제 현상, 반 정신병자요, 반 미치광이가 된 사람이 많아요. 중얼중얼하는 사람들 말이예요.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수억천만의 영인이 있는 영계가 이 지구성을 내습해 온다 이거예요. 왜 내습해 오느냐? 종교가 자기 위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자기 자리를 못 잡고, 사람들이 수평선이 돼 가지고 하늘을 위주해 가지고 수직으로 서 있게 돼 있는 데 전부 다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계가 이 지구성을 향해서 내습해 온다는 거예요. 뭘하러요? 여러분, 미치광이한테 귀신 들렸다고 하지요? 귀신이 뭐하러 사람한테 들어오는 거예요? 이용해 먹자는 겁니다.

양심적인 사람들, 더우기나 문인이나 예술 계통의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센스가 빠릅니다. 안테나가 높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사람들이 그것에 먼저 접해 가지고 노이로제 현상, 세계적인 끝날의 현상….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저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영계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영계는 하나님을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영계에서 직접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땅위의 사람을 밟아 가지고 자리를 높여 들어가게 돼 있다 이거예요. 왜그러냐 하면, 영계는 천사세계와 맞먹고 땅은 창조 당시의 아담 해와와 맞먹기 때문에 복귀해 들어갈 때에는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의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짓밟은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복귀시대에도 역시 가인 아벨의 싸움과 같은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의 장자권을 빼앗을 수 있는 운세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영계의 사탄세계도 지상에서 책임을 못 하면 빼앗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이 우리의 지구성을 향하여…. 그것이 점점점 내려와 가지고, 그럴수록 높은 영계가 점점점 내려온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언을 많이 하고, 이상한, 신령한 역사가 많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도를 통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영통합니다. '오, 세계가 통일되는구나. 어떻게 어떻게 움직이는구나' 하고 벌써 안다는 거예요. 지금 세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권내에….

그래 가지고는 어떻게 되느냐? 맨 나중에 하나님을 누가 더 잘 모시느냐 하는, 하나님을 잘 모시는 효자 선출 싸움이예요, 효자 효녀. 수많은 도들이 있지만 전부 다 자기들이 제일이라고 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뭣이냐 하면, 참다운 부모가 이 땅 위에 올 때가 가까워 옴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형제지국가 시대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3차대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전부 다 형제지국가권 내로 들어가기 때문에 독립해 줘야 됩니다. 전승국가가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예요. 1차대전과 2차대전은 질이 다릅니다. 싸워 이긴 사람들이 전부 다 독립시켜 주고 대줘야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형제지국가권 내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형제 대신 가인 아벨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가인 아벨이 싸우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종적으로 보면 땅이 아벨이요, 영계가 가인이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벨이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충성을 다하는 가인이 상속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양자형 이요, 이것은 직계의 아들이지만 직계 아들이 죽고 책임 못 하고 병신일 때는 양자를 세워서 복귀섭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기준이 남아 있는 연고로 지금 도의 세계가 말할 수 없는 혼란 시기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한국에 이와 같은 전체적인 섭리를 탕감할 수 있는 어떠한 종교가 나와 가지고 전체의 섭리를 대신해 나가는 종교가 있다 할진대 그 종교는 무엇까지도 전부 다 해원성사, 탕감해 줘야 되느냐? 타락선을 넘게 해줘야 되느냐? 영계까지도 해줘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있는 인류, 세계문제만이 아니예요. 영계문제까지도 해결해 줘야 세계에 평화의 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영계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엔 하나님까지도 모셔다 자리에 앉혀 드려야 영원무궁토록 지상 천상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8단계,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하나님까지. 그렇기 때문에 8수는 원형인데, 그래서 예수님도 8일 만에 할례받고 다 그랬지요?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다시 원형을 찾아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몸 마음의 싸움에서 이겨 타락선을 넘어야

어차피 이 타락한 인간이 타락선을 넘어야 할 텐데 개인적인 타락선의 싸움에 여러분이 시달려서 쓰러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 싸움이 6천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여러분의 마음과 몸은 싸웠습니다. 6천 년간 그랬지요? '아이구, 이놈의 마음이 왜 이래? 이놈의 몸뚱이는 왜 이래?' 한다구요. 말을 안 듣거든요. 마음과 몸이 싸우는 데 있어서, 여러분, 지쳐 떨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이놈의 몸뚱이야, 영원 영원불변해라!' 자기를 때려잡을 수 있는 심판의 권한을 복귀하지 못하면 가정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향하여 내가 가정을 찾겠다고 생각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보리산정에서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잖아요? 내 뜻과 당신의 뜻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 뜻은 여기에서 죽기 싫은데 하나님의 뜻은 그래야만 되기 때문에 전체의 뜻을 받들고….

우리 양심이라는 것은 개인 몸뚱이의 뜻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인생 전체의 목적을 중심삼은 뜻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찰한다 이거예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움직이면 편안하지만 몸이 하자는 대로 움직이면 고통이 온다 이거예요. 고통은 벌써 비정상권 내에서 있기 때문에 너는 소모되어 제거당한다는 예고입니다.

이 복귀의 운명권 내에 있는 오늘날 인류는, 여러분들은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싸움을 해서 타락선을 넘어가야 되는데, 개인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투쟁해서 지쳐 떨어져야 되겠어요? 내 얼마나 마음의 명령 앞에 몸이 정복을 당했던고?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너 양심적으로 살라, 살라, 살라!'고 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심적으로 살았어요? (녹음이 중단되어 이후 말씀은 수록하지 못함)

오늘 또 젊은 사람들을 상대해서 얘기해야 되겠구만요. 나이 많은 양반들은 조금 이해해 주시라구요.

젊은 사람들을 대해서 얘기하려면 내가 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과 얘기하려면 당기고 밀치고 때로는 짓누르고 이래야 박자가 맞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양반들을 대해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존경어를 쓰고 대접하면서 말을 해야 되겠지만, 젊은 사람들을 대해서 얘기하다 보면 반말도 나오고 그럴 것입니다. 그런 걸 여기 나이 많은 양반들 이해해 주세요? 「예」 아시겠어요? 「예」

보고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한 시간쯤 할 줄 알았는데 두 시간 이상 넘어갔어요? 이제 내가 말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습니다. 한 시간밖에 없지요? 왜 그러냐 하면 일곱 시쯤 여기에 무슨 영화관에 가 가지고 배선을 하여 준비해 가지고 여러분들을 구경시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한 시간쯤 이야기해 보자구요. 응? 「예」 한 시간쯤? 「예」 오늘 여기 처음 온 사람 가운데는 '아, 본부에서 선생님이 내려오셨다니까 한번 가 보자' 혹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온 사람도 있을 겁니다. 궁금해서 오래되지 않은 사람도 왔지요? 「예」 아마 여러 사람 왔을 거예요.

그러면 좋아요, 나를 눈이 뚫어지도록 보라구요. (웃음)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지만 여기에 사람들 꽉찼기 때문에 주위환경이 조용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며칠 동안 얘기를 하고 이러다 보니까 목이 아프고 눈이 감아지고 말이지요, 정신이 희미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정신이 통일되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선생님이 말씀하는 것과 호흡만 맞으면 선생님의 머리도 아주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얘기하면 한 시간 얘기할 것 두 시간 얘기할지도 몰라요. 그러면 영화구경 못 해도 괜찮지요? 「예」 그렇지만 영화구경 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다구요.

오늘 무슨 얘기를 할까요? 대구에서는 대구 이야기를 해야 좋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또,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야 좋을 것입니다. 또, 아주머니들은 아주머니에 대한 얘기를 해야 좋을것이고, 학생들은 학생들에 대한 얘기를 해야 좋을 거라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간단히 오늘은 내가 마음대로 정해 가지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괜찮지요? 「예」

그러면 제목이라고 할 것 없이 그저 얘기 해보자구요. 제목이라고 할 것 없이 얘기해 보자구요. 마, 제목이라면 무슨 제목이 좋을까요. 제목을 이야기한다면 '조국'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조국 알아요? '조국', 조국이 뭐예요? 조국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얘기해 보자구요. 요즘에는 조국이라고 하면 조국을 중심삼고 조국창건이니 조국광복이니 조국건설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여튼 조국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이상하는 세계가 아니다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는 여러분이 이상하는 사회와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봐도 마음과 몸이 매일같이 사사건건 통일되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서 반발하며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은 생활을 통해서 잘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한국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도 그렇고, 서양 사람도 그렇고, 자고로 왔다 갔던 우리의 선조들도 그렇고, 현세를 살고 있는 30억 인류도 그렇고, 앞으로 올 미래의 수많은 우리 후손들도 그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자, 그러면 그 가운데서 살고 있는 우리의 자신 자신들이 행복하냐 할 때에,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거리가 크고 상충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불행의 요건이 비례해서 커 간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생활권 내에서 여실히 체험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왜 그렇게 됐느냐? 그것은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한 세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을 중심삼고 내 몸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완전한 개체를 중심삼고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한 종족을 편성하고, 종족이 연결되어 민족, 민족이 국가로부터 세계까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가 평화스럽고 통일된 이념권내에 살고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합니다. 이건 왜 그러냐? 전체가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우리들이 원하는 세계냐 할 때, 너도 나도 원치 않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세계를 박차고 새로운 그 무엇을 찾아 나가야 할 운명권 내에서 하루하루 싸움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것이요, 연한을 거쳐가면서 민족·국가·세계가 이 싸움의 노정을 아직까지 넘지 못한 채로 역사를 끌고 오면서 발전시켜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세계 전부를 그냥 남아지게 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어느 한 때 청산지어 가지고 제거해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그 개체가 가정과 하나되고, 그 가정과 국가와 전체 세계와 하나되어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고, 평화를 노래할 수 있고, 자유를 찬양할 수 있는 그 세계를 맞이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바랄 것이냐? 오늘날 인류가 이렇게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할 것이냐 할 때, 하나님도 역시 그걸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원치 않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가 그런 환경을 원치 않고 어떤 나라와 주권이 그것을 원치 않는 한, 하나님도 역시 그런 환경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까지도 원치 않는다 이거예요. 원치 않는 세계에서 오늘날 우리들은 살고 있다 이겁니다. 그것은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기준 이하에 묻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자리에 둬둘 수 없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평화를 노래할 수 있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가정,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종족,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민족,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이 우주를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로 다시 돌이켜 놓기 위해서 이 땅을 대해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예」

잘못된 이 세계를 청산짓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

하나님께서 본래 구상하시던 그 나라는 어디뇨? 하나님께서 본래 구상하시던 그 세계가 어디냐 하면, 오늘날 현실적으로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땅입니다. 땅은 땅이로되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그냥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출발된 것입니다. 타락의 인연으로 출발되어 타락의 과정과 결과를 향해서 발전해 나갔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지향하는 어떤 목적과 새로운 이념을 향해서 이것이 지향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이 세계를 그냥 연결시켜서 발전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한번 청산해야 됩니다. 청산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사노정 가운데 노아 할아버지를 세워서 대심판을 하여, 하나님만이 취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를 편성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루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간시조들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하나님이 뜻하시고 계획하신 것을 청산하지 못하고 연장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내려왔는데 이것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이 세계가 그 권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개인,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가정,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종족,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민족,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국가,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세계,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천주는 아직까지 이 지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모여 있고, 이 지상에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권내에 처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심판받고 저주받아야 할 권내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 사망의 세계, 예를 들어 보면 사탄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끌어다가 여기에서 때리든가 벌을 줘 가지고 넘기자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끌어다 두면 마찬가지 세계가 되니까 하나님은 여기에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사탄세계의 양심적으로 사람을 끌어다가 이 경계선을 넘을 때는 사탄과 지금까지 관계 맺었던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해 놓고 사탄과 관계 없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야 이 고개를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세계에 하나님의 섭리가 필시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택한 선민이 나와야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사를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 선민사상이 오늘날 이 역사상에 있었던 것은, 안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가정을 취해 가지고 새로운 족속을 편성해서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복귀해 가지고 다시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민을 하나님이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뺏는 것이다 이거예요. 이것을 빼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그날부터 그러한 역사를 시작하여, 오늘 이 끝날까지 그러한 섭리의 발판을 닦으면서 하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편에 선 개인이 몽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면 종족·민족·국가를 이루어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께서 국가적인 치리의 대표자를 보내 가지고 사탄세계를 쳐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한 사람의 왕으로서 악한 세계의 수많은 왕들을 쳐부숴 가지고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왕권의 대표자로서 이 땅 위에 보내신 그분이 누구냐 하면, 만왕의 왕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오늘날 타락권 내에 있는 수많은 인류들은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진정으로 하나님이 소망하셨던 참다운 개인과 참다운 가정과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과 참다운 국가가 나와야 됩니다. 그 남자가 반드시 이 국가를 만들어 놓아야 된다구요.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사탄세계는 이미 국가를 편성하여 하나님을 대항하여 참소하고, 악이 번성하여 선의 길을 파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반드시 국가적 기준을 만들어 가지고 국가적 기준 밑에 탕감시켜서, 그것을 악한 세계에서 빼앗아 넘겨 줘야 할 총책임을 짊어진 하나의 주인공을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메시아입니다.

하늘의 책임을 진 자는 주위환경 전체가 반대해

그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올 때 무슨 권한을 갖고 오느냐? 먼저 국가를 악한 세상에서 구해 가지고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새로운 국권을 창건하기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국권을 창건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느냐? 국권을 창건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민족이 있는 동시에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나라가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땅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브라함 때부터 12지파….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의 중동 전지역을 하나님이 약속한 미래의 이스라엘을 창건할 수 있는 영토로서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장악해 가지고 이 영토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해야 됩니다. 메시아를 군왕으로 세워서 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나라를 점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뭘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찾으시려는, 악한 세상에서 선한 나라를…. (녹음이 잠시 끊김) 선한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선한 민족을 넘어 선한 종족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야곱가정 열두 아들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시련과 고통의 노정을 거쳐가면서 악한 세상을 대비하여, 능력이 많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통하여…. (녹음이 잠시 끊김) 하늘은 어떤 작전을 했느냐 하면 자기 아들딸을 고생시켜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맞고 빼앗아 오게 하는 것입니다. 맞게 해 가지고 빼앗아 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일 하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내세워 가지고, 그 사람에게 지역적인 책임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전 지역으로부터 반대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또 민족적인 책임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전민족이 반대하게 하고, 국가적인 책임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사탄편의 전체 국가가 반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든지 그 사탄이 기뻐하는 자리에서는 하늘이 세운 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편 전체가 그를 미워하는 자리에 세워 가지고 맨 위에서부터 끝까지 그를 전부 다 미워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노아 할아버지 같은 사람도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저놈의 늙은이, 저놈의 영감쟁이 정신나갔지, 아 배를 만드려면 바닷가에서 만들지 산에다 만들게 뭐야? 거 본래 미친 녀석이야, 미친 녀석!' 이렇게 인간 세상에서는 백 퍼센트 반대받는 환경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느누구든지 노아를 배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만이 아니었습니다. 120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어떤 사람이나 반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노아 할아버지를 전부 다 때렸다 이거예요. 때렸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런 사람들은 한꺼번에 갖다 죽여 버려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에 대하여 반박하고 선에 대하여 원수의 입장에 선 그 사람들은 때를 맞이하여 한꺼번에 복귀하게 될 때는 전체를 때려죽여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심판해 버려도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반대받은 우리의 선조들을 그냥 두신 이유

이런 조건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랜 기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받게 노아를 그냥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일편단심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연환경은 변해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자녀들이 변하더라도 그의 결심은 일편단심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강해졌다는 거예요. 그 심정기반은 그 시대에 전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전부 다 맞았다 이거예요. 자고로 우리 선조들이 걸어 나온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을 따라 나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부를 때,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른 그날까지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를 다 버리고 떠나라!'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지금의 이라크예요, 이라크. 가나안 땅이라는 곳은 지금의 이스라엘나라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려면 수많은 거리의 국경을 넘어가야 됩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들은 집시의 무리가 되고 유랑의 무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지향하는 곳을 향해 방향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면서 그 명령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 길은 낙망의 길이라면 낙망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라면 절망의 길이요, 외로운 자리라면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박차고 나간 것입니다. 그것을 안 사람들은 전부 다 비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역경을 거쳐 나가더라도 반드시 그 뜻을 따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행동한 것입니다. 그런 결과 애급에 가 가지고 자기의 처자를 빼앗길 수 있는 위험한 지경까지 가더라도 하늘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아브라함이었으므로 하나님은 필시 그를 세워가지고 약속한 축복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렇지만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바로 궁중에서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그와 같은 신음과 도탄 중에 빠져 환난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그는 하늘 앞에 항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민족을 구해 주마' 하고 결심했고, 약속하신 하늘은 기필코 버리지 않을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마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궁중에 있던 반대자들을 때려죽였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미디안광야에서 40년 동안 지극히 외로운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연을 상대로 하여 수많은 양떼들을 이스라엘 민족 대신 생각하고 하늘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흩어진 양떼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늘은 기억하시사, 당신이 본래 약속하신 이스라엘 천국을 건설하시옵소서!'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갈급한 마음이 얼마나 강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려운 환경을 뚫고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나서는 데 있어서는 어려운 길도 개의치 않고 당당코 바로 궁중을 향하여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이 가는 길에는 언제나 반드시 그 시대에 있어서 배척을 받고 몰림을 받고 외로운 자리에서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기반을 통해서 하늘은 새로운 섭리를 출발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게 될 때 하늘이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준비했던 민족적인 기반과 교단적인 기반이 일치가 되어 예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가 당할 시련과 고통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책임져야 합니다. 예수가 고통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이것을 책임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국가한테 몰리고, 교단한테 몰리고, 자기의 친척한테 몰리고, 제자들에게까지도 다 몰려 가지고 갈데가 없으니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가 일편단심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하나님을 위해 효성을 다한 마음이 불변적 기반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시작하여 거기부터 제2이스라엘을 편성하는 역사를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늘이 역사를 하기 위해서는, 악한 세상에 선한 사람을 보내 가지고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사람은 반드시 악한 세상에서 공박을 받고 반대를 받는 자리에서도 굴하지 않고 뛰쳐나갈 수 있는 여력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세워 약속하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역사적인 결론입니다.

복귀섭리는 완전한 개인을 찾아 나오는 것

그러면 이 천지간에 과연 예수가 바랐던 조국이 어디냐? 여러분 생각해 봐요. 아브라함이 찾아 나섰던 본향땅이 어디며, 아브라함이 소망하였던 그 조국이 어디뇨? 또 모세가 찾아 나섰던 가나안 복지가 어디며, 모세가 찾아 나섰던 이스라엘 나라는 어디냐? 더 나아가서는 예수가 찾아 나오고 희망하던 조국이 어디뇨?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바라고 있는 조국이 어디냐?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슬퍼하신 것은, 자기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요, 자기 백성이 없었기 때문이요,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중심삼고 자기가 치리할 수 있는 주권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주권을 가졌다면 세계를 일시에 통일할 수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만이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지배할 수 있는 영토와 백성과 하나님의 주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전부 다 사탄세계의 주권이요, 사탄세계의 백성이요, 사탄세계의 국토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쳐부수고 싸워 나가야 됩니다. 4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해 예수가 이스라엘 창건 이념을 세워 만국의 영광을 차지하여 만왕의 왕의 권한을 가지고 세계를 통치해야 하는데, 그 사명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끝날에 기독교문화를 발전시켜 가지고 오늘날 전세계가 기독교문화권 세계로 움직여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조국이 아닙니다. 예수가 찾아오던 조국이 아닙니다. 그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그 나라 땅이 하나님의 땅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그 나라의 조국과 그 땅과 그 백성이 결정되지 않았다 이거예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모아서 뭘하느냐? 미래에 제3이스라엘 창국시대를 맞이하여 거기에 새로운 민족이 되고, 새로운 국가를 이루어 새로운 세계 인류를 편성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는 것이지, 그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국가를 형성하여 이 지구성이 하나님이 지배하고 주관할 수 있는 땅이 되는 것도 아니요, 30억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어느 한때 이것을 청산지어 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짓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가 나오기 전에 민족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민족이 나오기 전에 종족이 나와야 되고, 종족이 나오기 전에 한 가정이 나와야 되고, 가정이 나오기 전에 한 개인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완전한 개인을 찾아오는 것이다 이겁니다. 세계를 찾기 전에 국가, 국가를 찾기 전에 민족,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 가정을 찾기 전에 완전한 개인을 찾아나온다 이거예요.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날부터 아담 개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소망적인 아담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소망적인 아담 종족을 잃어버렸고, 소망적인 아담 민족을 잃어버렸고, 소망적인 아담 국가를 잃어버렸고, 소망적인 아담 세계를 잃어버렸고, 소망적인 아담 천국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예수가 와서 제일 먼저 찾아야 될 것이 무엇이냐? 최후의 소망은 하나님과 온 천주와 세계를 목적으로 하되, 첫 출발은 개인을 찾아 세워야 됩니다. 이 개인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4000년 동안 편성해 놓고 그 대표자로서 세례 요한을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세워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다 깨져 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시인할 수 있는 개인, 하늘이 시인할 수 있는 가정, 하늘이 시인할 수 있는 종족, 하늘이 시인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사탄권 내에 들어가 버렸다 이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여기서 환경적인 터전을 맞이하여 그때를 맞춰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갖춰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갖추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가서 다시 이 일을 역사적인 노정을 두고 연단시켜 소망의 날들을 찾아온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가 이 땅 위에 올 때는 끝날이다 이겁니다. 그러나 예수가 오던 그때는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의 형태가 국가적인 기준이었지만, 끝날에는 세계적인 기준 위에 옵니다. 그러한 차이밖에 없어요. 세계적 기준으로 발전하는 그 차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 가정적인 소망, 종족적인 소망, 민족적인 소망, 국가적인 소망, 세계적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남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잔치의 의의

오늘날 기독교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여 오시옵소서!' 합니다. 그게 뭐예요? 하늘땅이 완전히 공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인격을 대표해서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재현할 수 있는 주체적인 남성, 그 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소망하신 최고의 이상적인 개인으로서 모범적인 존재, 표본적인 존재로서 혼인식을 올릴 그분이 누구냐? 다시 오실 재림주님입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오시느냐? 개인이 완결된 기준을 지니고 올 때는 가정을 편성해야 된다는 거예요, 가정. 가정 편성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 이 땅 위에 오면 그는 남성을 대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 되는 여성을 대표하여 비로소 개인복귀 완결과 더불어 가정적인 완결의 터전을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이 안 나온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6천 년 역사는 무엇이냐? 잃어버린 본연의 아담한 사람을 완결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해와를 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이 이 땅 위에 아담 완성의 목적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을 저버리던 아담이 아니고 하나님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완성된 아담의 위치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완성된 해와를 다시 빚어 가지고 가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안 나오면 종족이 나을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 신앙자들이 막연하게 믿기를 '어린양잔치가 뭐냐, 어린양잔치가 뭐냐?' 하면 '신랑 신부가 모여서 천 년 잔치하는 거지, 뭐긴 뭐가 뭐야? 그게 어린양잔치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양잔치가 뭐냐? 천지창조의 원칙은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상적인 전체를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으로 인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완전히 복귀하기 위한 대표적 중심존재가 와야 합니다. 그 중심존재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 주님은 완성한 아담 실체로 오기 때문에 완성한 아담을 통해서 완성한 해와를 찾으면 가정 편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잔치입니다.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불러 놓고 결혼식을 해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 년 동안 번식된 것을 거꾸로 조여 가지고 이 반대적인 부모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다시 낳는 해산의 수고를 통해야만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예수와 기독성도들은 무엇을 목표로 싸워 왔는가

여러분들은 어떤 권내에 있느냐? 비법적인, 하나님이 허락하는 부모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부모의 혈육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세계 인류라는 거예요. 섭섭하더라도 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증명을 받을 수 있는 사랑권 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증명할 수 없는 거짓된 사탄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하나의 표본 남성을 통해서 오늘날 이 지구성에 있는 수많은 인류의 모가지를 선뜻 다 잘라 버려야 됩니다. 모가지를 자른다는 것은 죽인다는 말이 아니예요. 예수는 참감람나무요,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인류는 돌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는 참감람나무가 될 수 없다구요. 그러므로 돌 감람나무의 줄기를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의 순을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표본이 아니라구요. 가짜라는 거예요, 가짜.

가짜가 되었기 때문에 가짜의 세계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가짜의 대왕이 사탄이다 이거예요. 진짜 대왕은 하나님이구요. 진짜 대왕이신 하나님이 가짜로서 열매맺힌 자들을 주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접붙이는 과정을 거쳐 가지고 진짜 가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진짜 열매를 소망하고 나간다는 거예요.

천국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천국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알기를 전부 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고, 오늘날 무슨 도는 극락세계라든가 여러가지 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곳을 소망의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것은 자기 부모는 지옥 가고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뭐냐? 천국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자기의 아내와 아들딸이 다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이라는 거예요.

천국에 가려면 천국이라고 했기 때문에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조국을 가져야 돼요.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아직까지 조국광복의 한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조국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타락한 권내에서, 극동을 중심삼은 분파적인 권내에서 민족을 중심삼은 조국은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은 조국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섭리의 목표를 정해 나온 것은 무엇이냐? 조국광복의 날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일편단심 소원하던 그 목적은 무엇이냐? 조국창건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피흘려 나오면서 싸움을 해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조국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국건설을 내세운 것입니다.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완전한 참다운 남성이 이 땅 위에 나와야 됩니다. 그 남성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가 어린양잔치, 혼인잔치를 함으로써 하늘이 찾고자 하였던 가정을 비로소 이 땅 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개인을 찾으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으면 거기에 종족이 벌어져 나가고 친척이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친척이 벌어지면 계속 낳고 낳고 해 가지고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해 가지고 국가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가인과 아벨 과정을 거쳐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과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을 탕감복귀해 가지고 접붙여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양자의 입장에서 상속받을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 민족 편성을 평면 도상으로 세계적인 평면 기준을 갖춰 가지고 일시에 이것을 맞춰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온 천주가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백성이 되고, 온 지구성이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땅이 되어 하나의 조국을 창건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식구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왔다 갔던 우리 선지선열들은 무엇을 소망하였느뇨? 그들은 소망의 가정을 그리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소망의 종족을 그리워했습니다. 소망의 종족을 그리워한 동시에 소망의 민족을 그리워했고, 소망의 민족을 그리워한 동시에 소망의 국가를 그리워했고, 소망의 국가를 그리워한 동시에 소망의 세계를 그리워했고 소망의 세계를 넘어서 소망의 하늘땅,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그리워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가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차피 이것을 지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박차고 버리고 가든지 이것을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가는 것이 아니예요. 전부 다 부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종교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세상과 타헙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박차고 가야 된다 이거예요. 세상이 왼쪽으로 가면 하늘은 오른쪽으로 가고, 세상이 동쪽으로 가면 하늘은 서쪽으로 가야 됩니다. 전부 반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본래 자기의 권위를 자랑하고 싶고, 자기 자체를 높이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권 내에서도 그런 입장에 있으니 그 반대의 행로를 가야 하는 것이 하늘을 찾아가는 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희생하고 봉사하고 온유겸손해라!' 하면서 다 그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전부 거꾸로 되어 있는 거예요. 남들은 잘먹고 잘사는 세상에서 못 먹고 금식하고 굶주리는 생활을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전부가 반대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반대의 길을 간 거라구요.

이렇게 해서 개인을 떠나고, 가정을 떠나고, 종족을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세계기준에 있어서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 끝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때에, 그 수준이 맞먹는 때에 왔다 이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이제 뭘할 것이냐?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세계를 동원하여 제2 이스라엘을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의 수많은 교단을 통합하여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편성해야 된다는 거예요. 새로운 이스라엘을 편성해서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해야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해서 새로운 지구성을 하나님의 품에 품겨 드릴 수 있도록 탕감복귀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종교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구원만 바라고 있어요, 자기 구원만. '아하, 내가 예수 믿고 천당 가면 된다' 하고 있다구요. 그래서 되겠어요. 하나님은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아 조국광복을 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 하나만 천당가겠소' 하면 되겠어요? 사상적인 방향과 사상적인 관념이 틀려 먹었다는 거예요.

우리들이 천국 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이 국가를 어떻게 내가 찾느냐? 그 나라의 백성이 되지 않으면 그 나라의 주권 앞에 치리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외곽적으로 준비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전세계입니다. 그러면 이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종교권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찾기 위한 참다운 가정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그게 있을 것입니다. '참다운 가정이 어디 있느냐? 참다운 신부가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면 그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다운 가정기반을 만들고, 참다운 친척을 만들고, 참다운 선민권, 새로운 선민권 이스라엘을 창건하여 새로이 출발을 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모인 것이 무엇이냐? 우리들은 말하기를 식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지요? 「예」 식구가 뭐냐, 식구가. 밥먹는 입이라는 식구가 아니예요. 식구라는 것은 뭐냐? 형제의 인연을 갖춰야 되고, 부모의 심정을 같이 물고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를 갖고, 형제의 인연을 같이 가져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부모의 생활과 습관과 전통을 그냥 그대로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형태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이뤄진다는 거예요.

이 천지간에,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민족들 앞에 진정한 하나님의 식구가 있었느냐? 지금까지 나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왔다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따라가고 예수를 신봉하는 제자는 될 수 있었으나 식구의 자리에는 나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신앙자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식구의 사상을 연결시켜서, 야곱의 열두 아들이 싸우던 것을 무너뜨리고 전부 하나되어야 됩니다. 부모에게 열두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필요치 않는 자가 없어요. 나에게는 맞지 않아서 그 형제가 필요하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부모에게 있어서는 열두 아들이 한 아이라도 필요하지 않는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뜻과 더불어 부모의 심정과 일치하여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녀에게는, 그 열두 아들이면 열두 아들 전부가 필요한 형제라고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현하의 교계 자체가 하나님권 내에서 하나님 가정의 식구로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하면, 자격이 없다 이겁니다. 식구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는 그의 친척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두 형제가 아들딸을 낳으면 70형제요, 70형제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70종족이 이루어지고 친척이 이뤄지는 거예요.

그러면 친척이 번식됨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이 편성됨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나를 찾아서 구원하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나를 찾기 위한 것이 최고의 목적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나를 찾아 세운 목적

나를 찾아 세운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조국광복을 위함이요,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소망하였던 당신의 조국을 창건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조국창건권 내에 들어가서 하나의 하나님의 뜻 앞에 봉헌할 수 있는 민족이 되고, 그 민족권 내에 들어가서 그 민족을 협조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종족이 되고, 종족권내에 들어가서 종족을 편성하는 데 핵심적인 단위가 될 수 있는 가정이 되고, 가정기준권 내에 들어가서 주인이 될 수 있는 남자가 되어 비로소 그 전체를 탕감복귀해 가지고 나서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타락권 내에 살다가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치리하는 나라에서 살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리하는 나라에서 살다가는 것이요, 하나님이 치리하는 민족권 내에서 살다가는 것이요, 하나님이 치리하는 종족권 내에서 살다 가는 것이요, 하나님이 치리하는 가정권 내에서 살다가는 것이요, 하나님이 치리하는 개인권 내에서 살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하여 이런 자리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이 세상을 박차고 그런 자리에 찾아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 개인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오늘날 현재에 처해 있는 여러분 개인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생각해 봐요. 어떤 자리에 있느냐? 내마음 깊은 가운데 조국광복이라는 것을 결의한 신념이 있느냐? 천지를 전부 하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할 엄청난 하나님의 소망의 목적이 여러분의 가슴 가운데 자리잡고 있느냐? 나라가 있어야 민족이 성립되는 것이요, 민족이 있어야 종족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역사 과정에서 개인을 찾아 나오는 하나님은 개인을 찾아, 그 개인으로 하여금 탕감조건을 세우게 할 때는 개인만의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십자가의 기준을 거치게 하여 돌아와 가지고서야 안식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세움을 받으려면 가정적인 십자가를 다 탕감하고 종족적인 십자가까지 다 해결해 놓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적인 안식의 터전을 갖는 것입니다. 또, 종족적으로 안식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토대 위에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탄이 침범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 놓고서야 종족적인 안식의 터전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나 하나를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나를 세우신 것은 내 가정을 위하여 제물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내 가정을 세운 것은 자기의 친척을 위하여 제물 되게 하기 위한 것이요, 종족을 세운 것은 민족을 위하여 제물 되게 하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세운 것은 국가를 위하여 제물 되게 하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세운 것은 세계를 위하여 제물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된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예수가 고생할 필요도 없었고, 우리 선조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구요. 안식이라는 것은 반드시 평화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안식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안식하려면 가정적인 울타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또,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적인 성소와 같은 기반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에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까지 신앙하는 관념이 '내가 하늘을 믿고 천국 가겠다. 천국 가겠다' 하는 것인데, 천국 가기전에 뭘해야 되는지 알아요? 내 자신이 몸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로 통일돼야 됩니다. 그런 싸움을 해야 된다구요. 자기를 통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 못 가는 거라구요. 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못하면 천국에 못 간다 이겁니다. 내가 친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한 곳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런 연결적인 책임을 짊어져 가지고 나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개척의 기반을 연결시켜 종족과 민족과 국가적인 개척기반이 닦아지면, 그로 말미암아 뭇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라도 이러한 기반을 닦지 않고는 천국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천국 들어가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 자신이 천국 백성으로서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 백성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나만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 가정이 어떻게 하늘의 가정이 되느냐? 자기의 친척이면 친척, 종족이면 종족이 어떻게 하늘 친척, 혹은 종족이 되느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종결하기 위해서 모세는 광야의 40년노정 위에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못 됐기 때문에 가나안 복지에 못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가 안 돼 가지고는 가나안 창국을 허락할 수 없어요. 나라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백성과 나라의 주권과 나라의 땅 전체가 하나되기 전에는 세계적인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발전적인 단계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하에 신앙노정을 가고 있는 여러분 개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처해 있느냐? 나는 나 제일주의적 입장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아무리 그랬댔자 갈 길을 못 갑니다. 내가 나 제일주의를 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조국을 제일 큰것으로 세워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민족, 하나님의 종족, 하나님의 가정을 세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가정 가운데 들어간 다음에 나를 세워야 돼요.

예수님이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수고한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가정을 표준으로 한 신랑 신부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그 가운데 넣고 싸워 가지고, 여기에서 가정적인 이념을 따라올 수 있는 수많은 기독교 신자를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가정이 완결될때 자녀를 재편성하여 예수를 중심삼은 제3이스라엘 민족을 창건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 국가와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한 것이 오시는 주님의 목적이다 이거예요. 예수도 이 땅 위에 와서 사명을 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상대적 가정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 가정기준을 찾아오기 위한 것이 2천 년 역사입니다.

그러면 가정 기준이 벌어진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접붙이든가 심정의 인연을 맺게 해 가지고 양자로 세우든가 직계의 아들을 세워서 제2이스라엘 편성을 하여 예수 중심한 종족과 예수 중심한 민족과 예수 중심한 국가를 편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했다면 예수가 절대 안 죽는 다는 거예요. 예수를 위주한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를 위주한 유단교단이었더라면 그때 그 국가와 그 교단을 단결시켜 가지고 로마제국을 대항해서 싸우면 40년 이내에 정복한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못하고 모든 이스라엘 교단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무너졌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의 고개 죽음길을 가 가지고, 소망의 천국과 소망의 조국을 앞에 놓고, 다시 미래의 역사적인 연장 과정을 거쳐오면서 재편성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 끝날에 있어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 하나되어야 한다구요. 장로교니 무슨 감리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전부 다 하나되어서 예수가 올 때에 새로운 종족을 편성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갈 각자의 준비를 완료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 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부가 제멋대로입니다. 그건 다 망한다구요. 다 망한다 이거예요.

조국 땅이 어디냐

우리 통일교회가 통일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온 것이 무엇 때문이냐? 내 개체의 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일편단심의 소원이 무엇이냐? 조국광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던 조국,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하던 조국, 성신이 소망하던 조국, 역사적인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소망하던 조국, 그 조국이 내 중심에 자리를 잡게하고, 그 조국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닦아 나온 길을 위해 충성을 하고, 효성을 할 수 있는 개인과 효성을 할 수 있는 가정과 효성을 할 수 있는 종족과 효성을 할 수 있는 민족을 어떻게 세워 놓느냐? 이것이 현하의 통일교회 사명입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우리들은 지금 다년간 이런 복귀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이 한국 백성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면서 고생을 하고 수고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고생을 하는 것은 나만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기전에 우리의 이념적인 가정이 구원받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가정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종족을 구원받게하기 위해 움직여야 되고, 우리의 종족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민족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단계 앞의 목적을 중심삼고 현실권 내에서 충성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이것을 수습하고 연결하여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 전부 다 '아이고, 내가 신앙하는 것도 내가 복받기 위해서 그런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은 복받았지만 하나님이 슬퍼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조국광복의 한날을 맞이하여 만세에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 전에는 여러분들에게는 행복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독생자로 왔던 예수님도 그날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는 날에는 언제나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이제 무엇을 생각해야 되겠느냐? 조국, 조국 땅이 어디냐?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조국 땅이 어디예요? 하나님의 조국 땅이 어디냐? 한국 땅, 동방에 있는 우리 한민족이 조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온 조국 땅이 어디냐? 이스라엘 나라도 아니요, 미국도 아니요, 어느 수많은 민족도 아니요, 수많은 국가도 아닙니다.

어떠한 곳에 하나의 조국의 형태를 갖추고 나와야 되겠다. 그 조국이 편성되기까지는 어떠한 한 곳에 충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야 되겠다. 그 아들을 중심삼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인 출발을 보여야 되겠구나. 가정적인 출발을 보고 그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적인 편성이 출발돼야 되겠구나. 종족적인 편성을 갖춰 가지고 민족적인 편성을 갖춰 국가를 대해서 개척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다구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하나님은 수많은 국가들을 발로 밟으면서 '혹시나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하늘을 위한 충성의 도리를 다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의 기준을 닦아 나오는 어떤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있느냐?' 하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편성과 민족편성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야 돼요.

여러분이 그런 곳을 찾아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기 가 가지고 그런 자리를 찾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곳에 책임을 짊어진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딸이 갈 길은 자기 구원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망하는 조국광복의 해방의 날을 완결시키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구요.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져야 할 날

자기 가정에서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르는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들은 하나님의 조국광복의 한날을 위하여 준비시킬 수 있는 하늘의 정병으로서 가르쳐야 됩니다. 그렇게 내려가야 돼요. 그런 가정이 있어요? '예수 믿고 천당 가자. 아, 주님이여! 어려운 일은 다 당신이 가지시고 기쁜 일은 나에게 주소' 도둑놈 심보들! (웃음) 죄는 전부 다 당신이 갖고 복은 전부 다 나에게 주소…. 도둑놈들이라구요. 이게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조국을 창건해야 할 사명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소망인데도 불구하고 그 소망이라는 관점은 잊어버리고 나 하나 천국가면 된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금후에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최고의 소망의 중심은 조국광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의 날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자녀의 날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만물의 날을 가졌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최후에 남은 날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이 땅 위에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날을 못 찾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만유의 주요, 만군의 여호와로서 온 천하를 품에 품고 자유자재로 이 땅, 지구성 전체와 수많은 인류를 마음대로 동으로 서로 명령하여 움직일 수 있는 세계 형태가 못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심판받아야 할 운명권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가슴속에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늘이 사랑하사 희망하는 조국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간 이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소망을 가지고 싸워 나오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가정을 소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과 민족과 국가, 최후의 목적은 조국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나라 없는 백성이 제일 불쌍한 거라구요, 나라 없는 백성이. 나라가 없걸랑,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와 친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딴 원수의 나라가 와서 덮치면 그들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들은 세계를 무대로 삼아 유리고객하면서 방랑하는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어떤 연유였던고! 그것은 아직까지 지상에 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리를 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황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기필코 여기에서 자리를 잡아 최후의 심판을 내려 가지고 사망의 세계를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청산지어 개인을 심판하려면 개인의 절대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춰야 된다는 거예요. 개인의 절대적인 승리를 갖추려면 수많은 개인들 앞에 시련이 와서 부딪치고 하더라도 깨지지 않는 영원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이 수많은 가정들한테 몰리고 쫓기고 해도 하늘 것으로 남아질 수 있는 영원성을 갖춰야 된다는 거예요. 종족을 중심삼고 심판하려면 그 종족이 아무리 핍박과 시련과정이 있더라도 그 절개와 전통을 유린하지 않는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심판한다 이겁니다.

또, 민족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택한 민족권 내에 하늘이 세운 법도와 하늘이 세운 사명적인 책임을 다하는 데 있어서 사탄세계가 참소할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민족을 심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마찬가지요, 세계면 세계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므로 최고의 일념은 무엇이냐? 조국이라는 말입니다. 조국 가운데에는 민족이 들어가 있고, 종족이 들어가 있고, 가정이 들어가 있고, 개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은 무엇인가

그러면 한국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의 조국이 되었어요? 돼 있느냐구요? 하나님의 조국이예요, 이게. 이걸 생각할 때,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악한 분야가 너무나 많아요. 악한 분야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걸 청산해야 되겠느냐? 이걸 우리가 일편단심 조국창건을 바라보는 소망의 일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청산해야 된다구요. 밤이든 낮이든 쉬지 않고….

하나님도 그런 방향으로 나오고, 예수도 그런 소망의 일념을 갖고 나오니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서 일치화된 생활권 내를 갖춰 가지고 생애의 목표로 세우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투쟁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조국창건의 한날을 맞이하여 그 나라의 충신이요, 그 나라의 우수자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음대로 살면, 그건 전부 다 자기 위주한 거예요. 하나님 팔아 가지고 전부 다 자기 생활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경북에 모여 있는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바는, 오늘날 경북 천지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경북 땅이 되었느냐? 돼 있어요? 통일교회 수는 너무나 적어요. 여기 한 4백만 되나요? 「430만입니다」 430만 인구라면 통일교회 인이 너무나 적잖아요, 이게.

이런 환경을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자나깨나 전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조국의 한 도로써 하늘 앞에 이것을 어떻게 편성하여 하나의 복지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냐? 일편단심 그렇게 살아야 된다구요.

선은 무엇이냐?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보다 가정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보다 종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더 큰 선입니다. 종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보다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더 큰 선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더 큰 선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의 발전적인 사실을 볼 때,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위해 충성하는 것을 본으로 한다 이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희생해라 이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냐? 조국광복입니다. 조국은 최고로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빨리 이루기 위해서는 큰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큰 것을 따라가서 세우기 위해서는 큰 희생의 본을 세워야 되겠기 때문에 큰 기준을 적은 기준보다도 선으로 취급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자기 위주하고 사는 사람은 욕먹는 거라구요. 그런데 자기보다 친구를 염려하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친구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사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귀의 운명의 고개를 넘지 못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들이 최후의 길을 개척할 때, 만일 자기 가정의 기반을 못 닦았다 하더라도 가정의 기반을 저버리고 민족적인 시대에서 국가적인 시대로 국가적인 기반을 완결지어 놓으면 가정기준은 완성했다는 인정을 받고 들어갑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만약 세계적 기준 앞에 내가 충성을 다한다면, 국가적 기준은 완성 못 했지만 세계적 기준 앞에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게 된다면, 개인·가정·국가 기준까지 승리했다는 공인을 받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처한 위치

하나님은 도를 중심삼고 찾아오는데 어떻게 찾아오느냐? '나를 위하여 충성을 해라!' 이렇게 나온다구요. 그 나라보다 맨꼭대기에 자기가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서 절대 충성해야 됩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절대 충성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절대 충성해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절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 가운데 나라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전부 지배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알고, 그 하나님을 위해 충성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건 그저 그것도 몰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한다'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의 기준은 하늘을 위하여 절대 봉사하고, 하늘을 위하여 절대 충성하라, 그러면 그것을 통해서 이것이 완전히 완결되는 날에는 개인완성을 인정받게 되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의 완성 기준을 인정받고 넘어간다 이거예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건 좋은데, 그 주님이 나를 찾아올 때는 어떠한 목적을 연결시키기 위해 찾아오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개인의 사명을 연결시키고, 가정의 사명을 연결시키고, 종족의 사명을 연결시키고, 민족의 사명을 연결시키고, 국가의 사명을 연결시키고, 세계적인 사명의 인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나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지 공중으로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를 해도 그런 관점에서 기도하고, 충성해도 그런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공인받으면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다 이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떤 단계에 있느냐?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했습니다. 내 뜻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을 살피는 뜻이라구요. 내 뜻은 지금 당장 가정을 중심삼고 일해야 할 뜻이요, 하늘 뜻은 조국을 위하여 염려하는 뜻으로 되어 있다 이겁니다.

조국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나 자체를 찾고 있는데, 나는 가정이라든가 제자리를 중심삼은 환경적인 종족권 내에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걸 부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더 큰 것을 붙들어야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신앙을 목표로 하고 나가는 이 기독교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소망하는 조국과 예수가 소망하던 그 조국이 여러분과 어떤 관계를 가졌느냐?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 놓았느냐? 나라를 위하여 충신이 되고자 할 때는 충신된 도리와 충신된 실적을 갖고 나타나야 됩니다.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효자된 도리와 효자로서 가져야 할 실적을 갖고 나타나는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들이 크나큰 대우주의 목적을 향해 오시는 하나님이나 주님 앞에, 여러분이 거기에 상대적 가치를 갖고 나타나려면 거기에 적응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어디에 처해 있느냐? 어디에 처해 있느냐? 복귀역사라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안 되는 거예요.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를 넘어가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적인 투쟁시대는 지나간다. 가정적인 투쟁시대는 지나간다. 종족적인 투쟁시대는 지나간다. 혹은, 민족적인 투쟁시대에서 국가적인 투쟁시대로 넘어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여러분들이 민족적인 투쟁시대에서 국가적인 투쟁시대로 넘어간다고 할 때는, 여기에 일념, 일편단심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세계적인 투쟁을 책임지지 않으면 민족적인 안식의 터전을 가질 수 없다는 투철한 신념입니다. 그것이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돌아와서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이 지금서 있는 자리에서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구요. 갈 길이 아직까지 막막하고 갈 길이 아직까지 멀다는 것입니다. 달리고 달려도 바쁜 일선의 행로를 남기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주저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느냐? 예수가 누구만큼 못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지고 담판기도를 했느냐? 누구만큼 못나서 수많은 사람들한테 몰려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골고다 산정으로 향했던가? 누구만큼 영광의 권위가 없어서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만민을 위하며 속죄의 제단을 쌓고 기도를 해주는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나오느냐? 그건 뭐냐? 자기 맡은 바의 책임분야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명을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 지도자가 있다고 하면, 그 지도자는 반드시 오늘의 작전 계획이 민족적인 투쟁이라고 한다면, 민족적인 투쟁을 목표로 하고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투쟁의 기준을 닦아 나가면서 민족적인 투쟁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지도자는 한 단계 앞서 나가야 돼요. 지도자는 언제나 한 단계 앞서 나가야 된다구요.

예수와 성신은 이 땅 위에 와서 뭇생명을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창건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의 고개를 넘기 위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일해 나온다 이겁니다.

우리의 목적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느 단계에 머물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내 개인의 가치와 하늘이 찾아 나오던 진정한 가정의 가치와 진정한 종족의 가치와 진정한 민족의 가치와 진정한 국가의 가치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청산하고 어느 한때 그 나라를 이루어 놓을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몸둘 바를 몰라 가지고 뒤넘이치는 심정의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런 심정의 기반이 없다 할진대는 전부 다 삯군들입니다. 내가 여기서 어떤 기쁨을 느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을 느끼면 내일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돼요.

여러분들이 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조국광복의 한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백성에게는 8·15를 광복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해방의 날로 지키고 있다 이거예요. 2차대전 이후 수많은 약소 민족들이 자기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광복과 해방과 독립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천지의 광복의 날과 독립을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언제 올 것이냐? 생각해 봤어요? 그날이 와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 수 있는 조국은 아직까지 영원한 곳에 있고, 우리가 가야 할 목적기준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어떻게 가야 되느냐? 탕감이라는 희생의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민족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시련보다도 더 큰 시련을 먼저 자진해서 받아야만 민족적인 고개를 넘어서 새로운 국가적인 기준으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가나안 복지 창국을 위해서는 광야에서 시련받던 이상의 시련이 있다는 각오와 그 이상의 희생을 하겠다는 결의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를 보았습니다. 뒤를 보다가는 다 망해요. 뒤를 보다가 망하게 되면 그 땅을 하나님이 다시 간섭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금까지 말단에서부터 추어 올라와서 어느 기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만큼 올라온 여기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여기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하여 전진해야 됩니다. 이제 우리가 불러야 할 것은,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가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입니다. 또, 한국에 있는 이 나라를 부르는 것보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나라를 불러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소망하는 전체의 나라와 전체의 주권과 전체의 땅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그 나라를 위해 온갖 희생과 온갖 각오와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것을 안 하면 안 된다구요.

그것을 안 하면 여러분들은 저나라에 가서 걸리는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서 하늘나라를 구경하지도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지도 못 한다는 거예요. 보류가 되어 가지고 그 나라가 창건될 때까지 몇천 년 몇만 년 또 기다려야 된다 이거예요. 밥을 먹어도 조국이요, 잠을 자도 조국입니다. 오늘 이 거리가 어느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서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몸부림치며 내일의 싸움을 다하겠다고 하는 희생적인 조건으로서 탕감해 버리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의 생활환경을 타개해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한 여러분은 가다가 예수를 따르던 제자와 같이 되고,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되는 거예요. 안 그렇다고 누가 보장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일념은 무엇이어야 하느냐 하면 조국광복입니다, 조국광복.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온 천상천하에 지은 모든 만물과 온 천주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심과 더불어 그를 찬양하고, 만민은 그 자녀의 명분으로 품겨 하나님 앞에 자유·평등·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우리의 복지 천국이 되었다고 풍악을 잡혀 가지고 춤출 수 있는 그 한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었어요? 안 되었습니다. 안 되었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렵다고 그만둘 것이냐? 어렵다고 그만둘 것이냐 이거예요. 아닙니다. 어렵더라도 가야 된다구요. 어렵더라도 가야 돼요. 알았으면 가야 됩니다. 안 가면 안 돼요.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각하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것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예요, 예수가 이것을 걸어 놓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 왔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자기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혹은 목베임을 당하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고, 톱에 키여 죽고, 별의별 참사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은 애석했지만 그 죽음을 가지고 하늘의 조국건설을 망각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 자극이 있으면 그것을 더 자극시켜 가지고 그 목적과 위업을 촉구시킬 수 있는 자극으로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뒤를 밀어 주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꾸만 힘들면 그걸 중심삼고 점점 더…. 자기가 그런 자리에 있으면 자기의 한 개체만이 아니라 환경까지 그런 자리로 끌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벌받는 겁니다. 남아진 조국 건국을 향하여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충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지금은 민족적 기준에서 국가적 기준으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금번 세계일주의 의의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고생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생이 끝나지 않았어요. 만일에 삼천만 민중이 '통일교회 이념을 중심삼고 가지 않으면 이 민족이 살 수 없다'고 우리를 앞에 내세운다 하더라도 3년 반 이상 우리는 이 생활을 계속해야 된다는 길입니다.

왜 그러냐?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이 생활하는 전통적인 정신을 상속받아 가지고 그들이 대신하여 우리의 싸움을 맡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굶주리고 피땀 흘리면서 가야 된다는 거예요. '아이코, 이젠 다 됐구나, 아이코, 이젠 다 됐구나! 이제는 뭐 기도뭣이고 필요 없어. 이제는 뭐 우리들이 고생했기 때문에 좀 쉬지' 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렇게 연결된 싸움의 노정이, 그렇게 연결된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고 여러분이 그런 관점에서 이 경북이면 경북을 책임져 줘야 되겠다구요. 아시겠어요? 「예」 그걸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망한다는 거라구요.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일주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세계일주해 가지고 잘먹기를 원치 않았어요. 누구한테 대접받기를 원치 않았다 이거예요, 그건 제물이예요. 제물적인 입장이라구요. 어디 가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다녀야 되고, 어디 가든지 자기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피곤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잘 수 없는 거예요. 또, 먹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길이 남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조국이라는 일념, 내일도 조국, 10년 20년, 가고 가는 그 날들 속에서도 점점 강한 심도를 가해서 하나님의 조국과 예수의 조국과 성신의 조국을…. 지금까지 희생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저나라에서 영원을 두고 '하늘이여! 우리의 원수를 해원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하는 그 모든 해원의 요구를 완결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청산이 되는 거예요.

이것을 청산하지 못하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나라에 가 가지고 수많은 선조들을 볼 수 있는 면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빚진 자들입니다. 빚진 자들이라구요. 아직까지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나예요. 쉴 새가 없다구요. 정성을 다하다가 쓰러지는 거기에서 '내가 이 이상 더 충성을 할 수 없고 이 이상 더 노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 당신이 아시옵니다' 할 수 있는 그 말을 남기고 가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돼 있어요?

선생님이 이 길을 개척해 나올 때 부모니 무슨 처자니 무엇이니 없어요. 요것밖에 모른다구요. 지금까지 뜻을 위해 미쳐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조국과 예수의 조국과 인류의 조국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조국광복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데에 내가 선두에 서고, 거기에서 참다운 진리의 법도를 세워 가지고 뭇사람들이 사탄의 참소에 걸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느냐? 그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 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여기 통일교회에 와서 좋은 것이 좋은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예요. '아, 이건 세상이 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저 교회나 왔다갔다하자' 이게 아니라구요. 오늘의 좋음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좋은 것을 절약하여 내일을 개척할 수 있는 작용의 힘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이 길을 가기 힘듭니다. 알겠지요? 「예」 그래야만 이 한민족, 삼천만 민족이 하늘 앞에 이 시대와 환경을 놓치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 본부의 명예와 체면을 세울 수 있겠는가

여러분 보라구요. 선생님이 이번에 쭉 순회하면서 외국에 있는 식구들을 많이 배치했습니다. 미국이면 미국에 가서 외국 식구들을 수많은 나라에 배치했고, 독일이면 독일에 가서 외국 식구들을 수많은 나라에 배치했으며, 일본이면 일본에 가 가지고 외국 식구들을 수많은 나라에 배치한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모든 선교사들이 한국 사람들이예요? 외국 사람들이예요. 외국 사람이지요? 응? 「예」 그러면 한국은 뭘할 거예요? 여기 앉아서 구경하지요, 뭐. 본국의 사람이니까. 응? 그러면 될 거 아니예요. 여러분의 입지조건이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은 외국에 가려고 하면 반드시 사흘 이내에 비자를 내 가지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 계획하면 내일 모레쯤은 떠날 수 있다구요.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 안 돼 있어요. 돈이 있나요. 비자 내려면 한국에는 지금 외환 보유고가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 왕복비행기 표가 오고 거기서 재정 보증을 해준다는 서약서가 와야 여권을 내주니 가기가 힘들어서 그럴 수 있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어떻게 해서 본부라는 명예와 체면을 세울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제일 골치입니다. 단 한 가지 무엇도 없다는 거예요.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 제단을 꾸미기 전에 아벨 제단을 먼저 꾸며야 됩니다. 아벨 제단을 꾸미기 위해서는 국가적 제단을 먼저 꾸며야 된다는 거예요.

모세가 소원했던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이스라엘 제단을 세워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적인 제단을 편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복귀를 소원했던 것은 무엇이냐? 국가적인 제단을 편성해 가지고 이스라엘 복지를 건국하기 위한 것이 그들이 소망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가인 제단을 편성하기 전에 국가적인 입장에서 아벨 제단을 편성하여 하늘 앞에 먼저 바쳐 드려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아벨 제단을 하늘이 먼저 받은 후에…. 과거에 가인은 반대하며 아벨을 때려 죽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때에는 먼저 바친 아벨의 제단이 받아들여질 때, 외국에서 가인 제단을 쌓고 있는 그들이 기쁨으로 여러분을 따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게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것이 안팎으로 완결되면 그 후엔 비로소 그들도 살고 여러분도 산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민족적 기반을 쌓아야 됩니다. 그들은 개인적이며 종족적인 기반을 쌓지만 여러분은 그들보다 한단계 앞서 민족적인 기반을 쌓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이걸 못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빼앗겨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에 올 때에 '한국은 지금까지 외적인 분야에서 모든 것을 외국 사람한테 당할 수 없다. 그러나 고생하며 민족적인 제단을 쌓는 데 있어서는 어느 민족과 어느 국가가 당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깊은 심정을 갖고 싸워 나가자. 민족적인 기준을 대표하여 아벨적인 제단을 쌓고, 아벨적인 제물을 먼저 하나님 앞에 바쳐 놓자'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면 된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아벨 제단을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리면 가인은 거기에 순응해야 탕감복귀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그들을 전부 다 주관해야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지긋지긋하게 고생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와요. 알겠어요? 지긋지긋하게 고생시켜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여러분들이 국가를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하며 싸우면 그것이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 앞에 전통이 되어, 외국 식구들이 오늘날 여러분들이 싸워 나온 모든 실적을 그냥 그대로 적지적소(適尨適所)에서 대행하여 그곳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불변원칙의 기준을 여기에서 조성해 놓으면, 여러분들은 앉아서도 요리할 수 있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그 생각을 하나 생각하면서 위로받고 지금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경상도내기들, 경상도내기들 말이예요. 경상도에서는 고집이 센 사람을 목곧이라고 하나? 경상도 사람은 목곧이지요, 목곧이. 황소 고집이라 누구 말 안 듣거든요. 거 좋다는 거예요. 한번 출발하여 뛰기 시작하면 끝을 보든지, 죽든지 살든지 무슨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선생님이 경북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신앙의 중심 도시로 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선두에 서 가지고 그저 미욱하게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지방, 무엇이라고 할까요? 지방성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가라구요.

오늘날 전한국의 통일교회를 대표해서 경상도가 꼴찌 될래요? 꼴찌될래요? 「일등하겠습니다」 일등하려면 거기에 비례되는 수고와 희생을 해야 됩니다. 이 경상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여, 하늘이 찾아오던 선의의 목적을 여기서부터 이루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여기에 찾아와서 뜻을 세워 결정을 지어 가지고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이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자기를 중심삼은 나, 내가 구원받겠다고 나 하나가 뭐 어떻게 되겠다는 것, 그것은 지극히 천한 것입니다. 지극히 천한 거라구요.

하나님의 조국광복을 위하여 숭고한 사상을 목표로 삼고 일념과 일심을 다해 그것을 위해 정성들여 나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 민족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이 민족으로 말미암아 만방에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그만 하자구요.

기 도

아버님,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한이 이렇게 엄청난 역사적 배후의 곡절을 맺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날 통일의 용사로 불리움받은 저희들은 당신이 남기신 슬픔의 길을 오늘도 내일도 일 년도 십 년도 생애를 바쳐 개척해 갈 길이 남아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의 힘이 부족하고 저희 자체가 부족한 때가 많사옵니다. 하오나 당신의 자비로움과 당신의 사랑이 저희들을 품으시어, 최후에 남길 수 있는 영광의 그날을 위하여 내 마음과 몸을 이끌어 당신의 안식의 보금자리로 채워 주고 지켜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기해 경북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곳을 찾아왔사오니,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날 하늘의 조국과 예수의 조국과 우리의 조국은 엄청난 역사과정을 거쳐 창건해야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늘의 가정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종족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민족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국가를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세계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소원으로 삼아 오늘도 그 고개를 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내일도 생애를 바쳐 그 고개를 넘기 위하여 싸워야 되겠사오니, 지치지 말고 죽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사모하는 가운데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금후에 저희들을 중심삼고 섭리하신 뜻 앞에 있어서, 오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맹세와 새로운 선서를 하여 당신의 심정세계에 품길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이 6천 년 동안 길러 나오신 당신의 조국과, 당신의 아들이 지금까지 3천 년 동안 싸워 나오던 그 나라의 조국광복을 위해서 저희들이 있는 지성을 다해 나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탕감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희생함도 이것을 위함이요, 핍박받음도 이것을 위함이었사옵니다. 저희들의 힘과 저희들의 정열과 저희들의 정성이 이 탕감적인 전체 운세 앞에 보탬이 되어 당신의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고, 영광의 한 시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어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그 기준이 되면, 저희로서는 이 이상 소원이 없고 이 이상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용사들이 이 시간 이곳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 줄 아옵니다.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이 이곳을 향하여 흠모의 대상을 당신을 중심삼고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들 앞에 약속하고 그들 앞에 소원하신 모든 것을 모른 체하지 마시옵고, 속히 이루시어서 만민 앞에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의 권위를 드러내고, 만세 앞에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녀의 영광들을 여실히 드러내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전체를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개체를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의 방향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도 못하고, 반발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과거가 그러했고, 현재가 그렇고, 또한 미래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가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모순 상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 인류도 하나의 이념권 내에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이 세계를 맞이해 나가 싸우면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그런 대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은 우리가 원치 않는 세상이요 죄악의 세상이니, 어느 한때 이것을 청산짓고, 개체와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평화와 자유와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타락한 이 세상은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우주를 하나님 중심한 세계로 돌이켜 놓기 위해 구원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구원의 대상이 되는 세계가 어디인가? 이 땅입니다. 이 땅은 죄악의 땅이므로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이념과 목적과 방향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 청산해야 되고 대심판을 거쳐야 됩니다. 그래서 노아 때에 대심판을 단행하셨다. 그러나 함의 실수로 인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였지만 해결짓지 못한 채 아직까지 사망권 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다운 개인, 가정, 국가, 세계, 천주는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비원리권인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권내에 처해 있으므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사탄 세계에서 양심적인 사람을 빼앗아 사탄과 관계없다는 조건을 세워서, 국경을 넘게 하여 선민으로 세워 나오십니다.

끝날의 심판까지 역사의 배후에서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役事)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사명

타락한 세계를 청산짓기 위하여 심판주, 주권의 대표자,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타락한 개인을 복귀시켜 참다운 개인, 가정, 국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국가적인 기준을 갖고 하늘에 대항하므로 그분도 하늘 주권을 찾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늘 편인 참다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서 이스라엘 영토의 창건을 약속하셨고, 메시아인 예수를 군왕으로 삼아 수많은 국가를 점령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선의 나라,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본보기노정을 걸었던 야곱처럼 시련과 고생을 시켜 먼저 맞게 해 가지고 이루어 나와야 합니다. 즉 전체가 다 반대하고 전민족 전국가가 미워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백 퍼센트 반대받는 입장에 세워 가지고 거기에서 순종의 노아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한꺼번에 심판해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노아는 핍박의 자리에서도 일편단심 불변의 믿음을 세워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 있는 기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믿음을 기준으로 하여 일시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한 인류를 일시에 심판하셔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여러분의 선조들은 즉석에서 축복받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친족을 버리고 떠나게 될 때 그 길이 절망의 길이라면 절망의 길이요, 낙망의 길이라면 낙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던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의 비참함과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로 왕의 병정들을 때려죽이고 바로 궁중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외롭고 황막한 광야생활 가운데에서 양떼들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생각하고 그 양들을 사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선조들은 그러한 시대에 그처럼 고통을 받고 배척을 받는 자리에서 새로운 섭리를 출발한 기대를 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족과 교단 전부가 반대하는 자리에서 천적인 책임을 지고 고생을 하면서, 일편단심 불변의 신앙 기준을 세워 제2의 이스라엘을 편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악한 세계에서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먼저 맞고 빼앗아 온다.’ 이것이 하늘의 전법입니다. 선조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조국, 모세의 조국, 야곱의 조국, 아브라함의 조국, 그 조국이 어디인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조국이 어디인가? 하나님은 백성과 그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주권이 없음을 한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면 세계의 통일은 일시에 이루어집니다.

6천년의 긴 역사는 천적 주권(天的主權)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는 예수님 이후 기독교문화권을 중심하고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목적하는 그 나라가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은 준비단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미국도 청산지어야 합니다. 중심이 될 나라가 나오기 전에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이 먼저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먼저 개인을 찾아오십니다.

아담이 타락해서 그때의 소망적인 아담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하나님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찾기 위하여 4천년간 준비하여 나온 제단 위에 오셨으나, 예수님은 그 제단과 나라와 민족이 반대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그 기준을 이루려고 찾아오는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그분이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소망을 갖고 오십니다. 그러기에 신랑이여 오소서! 하며 기독교인들은 주의 지상재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창세 이후의 참다운 개인, 남성의 표본적 존재가 바로 다시 찾아오시는 재림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는 조국

이분의 사명은 개인적인 기준을 이룬 후에 해와를 찾아 가정적인 터전을 조성하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편성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어린양 잔치를 소망하고 있지만, 이 어린양 잔치는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하는 잔치가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가정적 기준을 잃어 버렸으니, 이제 대표적으로 완성한 아담이 완성한 해와를 찾아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서 구원이 열립니다. 타락한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낳았으니, 돌감람나무를 잘라 참감람나무로 접붙여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참열매를 맺게 해야 합니다.

천국이란 무엇인가? 극락 또는 천당 간다고 하지만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 부모와 형제가 다같이 가야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을 이루려면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즉 조국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국광복의 날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조국을 창건하기 위해서 오셨고, 선지선열들도 그 조국건설의 역군들이었습니다. 천국을 창건하기 위하여 완성된 남성이 와야 합니다. 하늘땅이 공인하는 남성이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번식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을 기준으로 탕감하고 접붙여서 이 세계를 하나님 주관의 조국으로 창건해야 합니다. 선지선열들이 이것을 바라고 나왔지만, 소망하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이어지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가던 길을 버리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이 부정하는 길을 가야 하고, 세상과는 반대로 희생과 봉사를 하면서 가야 됩니다. 그리고 금식해야 됩니다. 지금은 기독교문화권을 중심한 끝날의 때가 되었으니,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자기 구원만 바라고 있으니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바라보고 나오시므로 종교권을 동원하여서 천국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이자 목적입니다.

참다운 가정은 어디인가? 참다운 부부, 참다운 자녀가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민권 이스라엘을 창건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식구란 무엇인가? 형제지인연을 갖춘 후 부모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그러한 하나님의 식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는 있었으나 식구는 없었습니다.

야곱의 12아들이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서로 사랑하였듯이, 우리들도 한 부모를 모시고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72종족과 친적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서 구원하신 것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보다 더 큰 조국창건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정, 종족, 민족의 편성의 핵심적인 단위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살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으니, 세상을 박차고 하나님의 품으로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 가슴속에는 조국광복을 위한 마음이 갖추어져 있습니까?

개인이 안식하려면 가정적인 터전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적인 십자가를 탕감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종족을 울타리 삼아 그 터전 위에 평화의 자리를 잡고 나서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큰 환경을 수습하여야 하고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되게 하고, 가정을 통하여 주님을 위한 제물이 되고,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개척자적인 기반을 닦아야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가정과 종족이 천국의 백성이 되어야만 비로소 불변의 하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민족과 하나되어야 할 텐데 하나되지 못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 입성을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생각하기 전에 민족과 국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종족, 가정, 개인은 다 민족과 국가 속에 있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만 찾아 세우면 다한 것이 됩니다. 신부를 맞아 가정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조국창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종의 종된 자리에서 종으로, 종의 자리에서 양자로,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의 자녀로 승격되어 예수님을 중심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편성해 나갔더라면 40년 이내에 로마를 정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예수님은 영계에서 소망의 기준을 놓고 이스라엘을 재편성하여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화합의 신앙으로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데 각자로 분열되니 다 망합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내 조국을 내 마음에 새기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 조국을 어떻게 편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3년간 한민족을 위하여 싸워 나왔습니다. 내 개인만이 아니라, 한 단계 앞서 조국이 복받을 수 있도록 고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날을 맞기 전에는 예수님도 영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조국이 어디인가? 미국도 한국도 아닙니다. 어떠한 곳이든 가정의 편성, 종족의 편성, 민족의 편성이 이루어진 조국 땅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수많은 국가를 밟아 오시면서 이 땅에 이루어질 하늘나라를 소망하시며 찾아 나오셨습니다. 하늘의 충신 열녀가 어디 있는가 하고 찾아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하늘을 중심한 국가와 민족, 가정을 재편성하여야 합니다. 조국광복의 해방의 날을 위하여 부름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조국창건이 종교인의 사명인데도 나 하나 구원받고자 하는 못된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자랑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움직이실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나라를 세우려고 오셨었습니다. 조국이 없으면 불쌍합니다. 조국이 없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비참했습니다. 심판하려면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불변의 기준에 서야 그 기준을 터로 해서 심판합니다. 조국은 최후의 소망입니다. 조국 안에는 민족도, 종족도, 가정도, 개인도 다 포함됩니다.

이 삼천리가 조국이 되었는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바라시는 조국을 창건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일편단심 수고해야 합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가정을 위하여 개인이 희생하고, 종족을 위하여 가정을 희생하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종족이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조국광복을 위해 모두가 희생하여 조국광복이 이루어지면 모두가 애국충신이 됩니다. 국가적 기준 앞에 충성하여 국가 기준을 세우면 가정, 종족의 기반을 닦았다는 공인을 받게 됩니다. 도(道)의 기준은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의 모든 것은 인정받습니다.

통일교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뜻은 세상의 뜻이고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통일교인인 여러분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충신의 도리를 세우고, 또 그 실적을 가지고 나왔습니까? 효자의 도리를 다하고, 그 실적을 가지고 나와서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적인 투쟁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물의 사명을 갖고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투쟁을 해 가면서 민족적인 터전을 닦아 나아가야 합니다. 메시아와 상대적인 가치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세계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지도를 받는 여러분은 민족적인 길을 닦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복의 길을 바라면서 죽어 갔습니다. 언제 되어도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죽어 갔습니다.

통일교인은 개인에서 민족, 국가 기준에까지 닦아 나왔습니다. 이제는 전세계 인류와 모든 국가를 동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광복, 자유, 평등, 행복의 날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어렵더라도 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바라보는 관이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준을 바라보고 가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조국광복의 과정에 있어서 고생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땅의 인류는 통일교인을 앞세우고 가야 합니다. 통일교인이 아니면 아니 된다 할 때가 와도 3년은 수고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것을 상속 받을 때까지 전통을 세우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탕감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는 조국창건이라는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예수님의 조국, 성신의 조국, 선지선열의 조국, 하나님의 조국, 그 조국을 이루지 못한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면목이 서지 않습니다.

오늘의 좋은 것과 기쁨은 내일을 위한 힘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뜻을 위하여 선생님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뜻만을 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이 아시오니… 이렇게 여러분은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아벨 제단을 편성하기 위하여 국가적인 제단을 건설해야 합니다. 가인의 제단도 인정해야 합니다. 옛날의 가인은 아벨을 죽였지만 끝날에는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벨적인 민족적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제단을 쌓으면서 불변의 원칙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경북은 신앙의 중심 도(道)입니다. 이 경북을 중심으로 하여 지대한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민족을 중심하여 세계는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와 같은 자리에 있으니 이것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슬픈 자리에 가서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그 아버지입니다. 누구보다도 고생하는 자리에서 싸워 나가는 분이, 누구보다도 사정을 통할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선 분이 우리 아버지예요.

하나님의 외로움을 풀어 드리려면

그 아버지의 외로움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는 내가 외로운 자리에서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그 외로움을 풀 수 없어요. 또, 고통을 당하는 그 아버지 앞에 내가 고통받는 자리에 스스로 들어가 가지고 그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아버지는 비참한 아버지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내가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구요.

그 아버지는 이러한 자리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나는 편안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슬픔을 내가 위로하오니 슬픔을 푸시옵소서, 아버지!'하면 안 됩니다. 그 아버지가 외롭고, 그 아버지가 고통스럽고, 그 아버지가 비참한 자리에 계시니 나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그 아버지를 위로하면, 그 아버지는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그 아버지는 인류를 대신하여 더더욱 부모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자기보다 하나님이 더 외로운 줄 알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안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외롭고 자기도 고통스러운 자리에 들어갈 것을 안 자리에서, 내 고통과 내 어려움보다도 당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놓고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간구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늘을 위로했다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셔야 할 아버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역사노정에서 탕감복귀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섰던 자리에서, 아버지가 고통받던 자리에서 내가 고통받으면서도 그를 믿고, 그를 위하여 '아버지여, 내가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하늘의 고통을 내가 책임질 테니 염려 마십시오'라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내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거예요. 내 고통은 고통으로 알고, 하나님의 고통은 고통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하나님은 이 세계를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해 나옵니다. 한국만이 아니예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수많은 인류들을 놓고 하나님은 구원섭리해 나온다 이거예요 한국 백성보다도 수많은 백성들과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해 나온다 이거예요.

한국을 구원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그 이상의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를 해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를 우리들이 책임을 지고 그 한 나라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수고한다고 하면, 우리가 이 나라를 책임지는 수고만으로서 통하느냐? 안 됩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를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를 넘어서 또 다른 나라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수고를 책임지는 동시에,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나라의 수고까지도 내가 책임지고 세계를 위하여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내 스스로 자신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마음으로도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 한, 그런 사람이 한국을 위한 입장에서는 효자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늘땅을 위한 입장에서 하늘 앞에는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효자가 될 수 없어요.

하늘 앞에 완전히 서려면 한 나라에만 충성해서는 안 돼

여러분들이 경북이면 경북 그 지방권내에서 일할 때는 언제나 자기 중심삼고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일한 것은 하나의 훈련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성과를 거두어 하늘 앞에 바쳐 드린 후에는 내가 더 큰 자리에 가서 일하겠다는 욕망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한국 나라에서 책임을 다했다면 수많은 국가를 대표하여 내가 일하겠다는 욕망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오늘 일하는 것은 내가 내일의 싸움터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마음에 다짐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늘이 나를 위하여 칭찬할 것이 있걸랑 그러한 마음을 더욱 크게 가져야 된다구요.

내가 아직까지 갈 길이 남아 있으니 오늘은 승리했지만 내일의 노정에 있어서 내가 하늘 앞에 슬픔을 돌리는 날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충성보다도 맨 끝날에 충성하기를 바라고, 그때의 칭찬을 바라고 하늘 앞에 나서겠다고 다짐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세계를 품고 계시는 하늘 앞에 우리가 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없고, 그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 땅을 위한 아들딸보다 하늘땅을 위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니요, 혹은 이스라엘의 유대교단만을 위하여 기도한 것도 아니요, 혹은 자기의 목적과 자기가 바라는 소망만을 중심삼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과 인류가 바라는 인류의 목적을 걸어 놓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일 죽더라도, 내가 죽는 것은 나 한 개체가 죽는 것이지만 그 인연은 하늘땅의 인연을 갖고 죽는 것이다. 내 죽음을 대신하여 하늘이 슬퍼한다면 내가 지엽적인 한계 내에서 죽는 그 자체를 슬퍼하는 것보다도 세계적인 인연을 갖고 죽어가는 것을 슬퍼하기를 바란다'는 관점에서 예수는 하늘을 붙들고, 혹은 하늘땅을 붙들고 하나님앞에 십자가를 지고 간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인연을 이루어 놓았다 이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을 대신한 효자 효녀들이 되겠다고 여러 번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오, 효자 효녀의 생활이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냐 이거예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거리가 멀어요. 그 거리가 멀다구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하늘땅을 대표하고 전체를 대표한 직접적인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느냐?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아버지는 오늘날 나를 대하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나를 대하듯 전체를 대하는 아버지라는 거예요. 내 사정을 위하여 기도하면 내 사정만 대할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전체의 사정을 대하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간곡한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해도 이루어 줄 수 없는 사정, 내 개체를 중심삼고 기도하면 이루어 줄 수 없는 하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나라는 자체는 그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주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본래는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완전히 서기 위해서는 한국이면 한국 한 나라에 충성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하늘 앞에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어요. 사도 바울 같은 양반은 그런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은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어요. 자기 민족은 누구나 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방의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왜? 하나님은 우리 나라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전체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역경에 부딪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하나의 나라를 찾아가 가지고 우리가 인연을 맺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원리적으로 볼 때도 3개 국을 거칠 수 있는 충성의 도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한국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하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거기에서 충성하는 그 충성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먼저 민족을 위하고, 먼저 세계를 위하고, 먼저 하늘땅을 위해서 이것을 드리고 이것을 남기오니 하늘 것으로서 받아 주시옵소서. 하늘 것으로서, 땅 것으로서 남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내가 죽더라도 기필코 하늘 것으로 남을 것이요, 땅의 것으로서 인류가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홀로 골고다 산정에서 십자가에 돌아갔지만, 그가 죽는 사실은 만민을 구하기 위한 하늘 것으로서, 혹은 땅의 것으로서 남겨질 것으로 믿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승리했고, 과거·현재·미래, 역사의 운세가 그를 승리자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죽은 그날부터 그 인연은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간 거라구요. 그가 개인을 위해 죽고, 개인적인 어떤 목적을 위해 죽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의 생활태도

여러분들이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위해서 파려고 하면 안 돼요. 내가 땅을 팔 때는 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해 파야 됩니다. 내가 땀을 흘릴 때도 나를 위해 흘릴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수고의 길을 덜기 위해서 흘린다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시요 우리는 그의 자녀라 할진대, 그의 자녀라면 천주적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그 자체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교회에 오면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서 전체가 그를 위해 줄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축복받을 수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그래 가지고 그가 대구면 대구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혹은 대구 외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그가 아니고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그를 추천할 수 있는 자리를 갖추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 이념이 한 지역을 중심삼고 한 도…. (녹음이 잠시 끊김)

자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리고 남과 같이 먹고, 남과 같이 입고, 남과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예수의 생활은 그런 모험적인 생활을 했다 이거예요. 그는 사랑하는 가정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자기 부모 친척은 물론, 자기 형제들까지도 그의 뜻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박차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받들지 못할 때 그 환경을 박차고 나와서 모험적인 생활을 했다 이거예요. 거기에 물들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존재로 불변의 중심 위치를 결정지어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이런 각오 밑에서 혹은 1년, 2년, 3년, 7년이 문제가 아니예요. 10년, 20년, 일생을 걸어 놓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몇십 년은 반대할 기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몇십 년을 지나고 난 후, 그가 자기를 위하지 않고 전체를 위한다는 기준이 드러나게 될 때에는, 몇십 년 동안 반대한 수많은 무리들이 그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의 생활태도였습니다. 옛날 모세도 그랬고, 아브라함도 그랬고, 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혹은 세례 요한 같은 양반도 그랬다는 거예요. 광야에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게 될 때 그게 전부 고생이라구요. 그렇지만 그가 끝까지 그 생활을 할 때, 그는 자기를 위하지 않고 어떤 공적인 뜻을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들이 전체 환경에 드러나게 될 때, 그 시대에 있어서 전체 환경과 전체 사람들이 그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부터 성공이라는 것을 바라지 말라는 거예요. 더우기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이 되기 위해서는 맨 처음부터 성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늦어도 끝까지 참고 나가고, 끝까지 어려운 벽을 인내로서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역사적인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원리적인 숫자로서 7년노정입니다. 더우기 이 7년노정을 지나 21년 기간만큼 가더라도 변함없이 달음질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조그만 무엇 하나 해보기 위해서도 10년 안 걸려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몇해 동안 이런 놀음 못 하겠느냐, 몇 해 동안?

내가 지금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의 딸이 되고, 그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믿고 나가고 있는데, 나를 진정 하나님이 볼 때,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사랑하는 딸이다'라고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을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생활과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 올 미래를 중심삼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로 거쳐 나가느냐? 어디로 거쳐 나가느냐 이거예요. 혹은,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교회를 중심삼고 생각해 본다면 자기가 지금 신앙생활해 나가는 그 모든 방향이 어디를 향하여 치우쳐 있느냐? 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까지나 하늘이 바라는 하나의 공적 기준에서 치우치면 그는 반드시 하늘 앞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서 멀어지면 하늘이 소망하는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공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가야 된다는 신념이 여러분 앞에 철두철미하게 돼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경북이면 경북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각자는 전부 다 지금 경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련생이 있으면 수련생 전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거예요. 경쟁하고 있다는 거예요. 다 아들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거라구요. 아들딸들이 되려면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중에 사탄을 자연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사탄을 자연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졌느냐 이거예요. 못 가졌다구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기 위해서는 남아진 모든 탕감의 조건들을 전부 다 수습해 놓아야 돼요. 복잡하다는 겁니다. 그걸 다 여러분이 거쳐갔느냐? 못 거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을 해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효성을 해도 부족한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런 것이 문제라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게 되면 뭐 지역장이 사정을 몰라준다느니 지구장이 사정을 몰라준다느니 불평이 많더구만. 응? 조금만 부족해도 뭐 어떻고 어떻고 말이 많아요. 여러분, 그럴 수 있어요? 만일에 하나님이 여러분들 앞에 불평한다면 여러분 견뎌 낼 것 같아요? 여러분과 같은 마음을 가진 하나님이라면 여러분이 배겨 낼 것 같아요? 배겨 내지 못한다는 거라구요.

여러분보다 몇천만 배의 사연이 많고,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숱한 곡절의 사정이 얽혀 있지만 그것을 홀로 가슴에 품고, 복귀라는 일념을 향하여 참고 용서해 주며 나가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자기의 사연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연이 많아요. 그래 가지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말할 수 없다구요.

예수는 자기의 사연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이러고 저러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30여 평생 요셉 앞에 목수의 조수 노릇을 하면서도 묵묵히 자기 스스로 미래의 한날을 준비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 투입했다는 거예요.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제자들이 그렇게 마사를 피우고, 예수 앞에 닦달하는 입장에 섰더라도 그는 참고,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는 자리에 서서 그들의 갈 길을 다시 묶어 주는 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자기 중심삼고 불평하려고 안 했다는 거예요.

그걸 생각해 볼 때,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사연을 말한다면 그것은 죄지은 사연밖에 말할 것이 없습니다, 죄지은 사연밖에, 내가 나쁘다는 것밖에 말할 것이 없다구요. 오늘날 우리는 수천만 대의 역사적인 죄를 인계받은 죄의 왕자로 나타났다 이거예요. 완전히 하늘 앞에 사죄함을 받고, 완전히 세우심을 받지 못한 자리에서 불평을 하고 뭐 이러고 저러고 하면…. 그런 자리에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정과 아버지의 사정과 우리의 사정이 다르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사정은 타락권 내에서 복귀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찾아가는 사정입니다. 아버지의 사정은 우리를 복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적인 죄까지 용서해 주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사정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사정을 고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여러분 앞에 사정을 고해야 할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거꿀잡이가 되었다 이거 예요.

하늘의 사정을 알면 알수록 여러분들은 머리를 안 숙일래야 안 숙일 수 없고, 입을 안 다물래야 안 다물 수 없고, 자기 스스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너무나 도도하고, 너무나 권위를 가지고 너무나 뻣뻣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첫 번, 두 번, 세 번 다 졸았지만 졸고 나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죄를 짓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구요. 그러니 무슨 하늘의 효자 효녀가 될 수 있겠어요? 될 수 없습니다.

일체를 하늘을 대신하여 내가 속죄의 은사를 받고, 그의 수고의 공로로 말미암아 내가 구속함을 받아야 할 빚, 신세를 져야 할 빚을 진 나니 그가 탕감해 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은 언제나 겸손해야 됩니다. 언제나 겸손해야 된다구요. 내가 어떤 친구들이나 식구들 앞에 반대를 받고, 또 어떤 억울함이 있더라도 그 억울함이 얼마나 크냐 이겁니다.

하늘의 자녀들이 지금까지 하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추방시킨 후, 하나님이 있다 없다 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무한한 조롱을 하더라도 참으시면서 그들을 용납해 주고, 그들을 다시 구해 주기 위한 하늘의 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 우리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조금 안 것 가지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슬픈 아버지의 심정을 여러분들은 더듬어야 됩니다.

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도리

오래 참고 오래 싸우면서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면 하늘이 자연히 세워 주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가 이렇게 섰다고 자랑해도 안 돼요. 자기가 세워 놓았댔자 넘어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세워 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세워주면 반드시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지도자라도 지도자 그 자체가 자기를 세우는 그런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자기를 그 자리에 세우지 않더라도 그 환경이 세워 줄 수 있는 날을 맞이하여, 환경 전체가 그를 세워 줘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됩니다. 그럴 때 거기에 서야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주장해 가지고는 안 돼요. 자기 주장해 가지고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딸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면서 어느 한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주장해 봤느냐 이겁니다. 자기를 주장해 봤어요, 언제? 하나님이 자기를 주장한 아들딸도 없었거니와 주장해 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심정과 그 사연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없었습니다. 없었다구요. 그런 아들딸이 없음과 동시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사연을 주장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 사연을 하나님이 만약에 주장한다면 인류의 모든 사정을 다 접수해 놓고, 다 풀어 놓고, 만민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서야 맨 나중에 그 사연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예요.

그런데 우리들은 나만 알아요. 나만 안다구요. 자기 사연과 자기 사정에 못박혀 있다 이거예요. 내가 어려우면 어려운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만 기쁜 일이 있으면 그 기쁨을 전체의 기쁨인 듯이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뻐도 하늘이 나와 더불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고, 슬퍼도 하늘이 나와 더불어 슬퍼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길이길이 참으면서 내 갈 길이 바쁘므로 오늘을 내일을 개척하는 시간으로 준비하기 위해서 노력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망하지 않아요. 그렇게 싸워 간 사람이 만일 땅 위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그가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칭찬받는 거라구요.

예수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몰렸고, 유대교단 앞에 몰렸고, 수많은 제자들한테도 배척을 받아 갈 곳 없어 십자가에 돌아갔지만,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 마음을 품고 그냥 갔다는 거예요. 내가 말할 것이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하지 못한다 이거예요. 토로할 사연이 천천만만이라도 있었지만 하늘이 알아주어서 하늘이 '예수의 사연이 이랬다'고 변명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참고 나갔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의 소원을 몰라준다고 그것으로 낙망하고 섭섭해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사연을 알아줘 가지고, 그 사연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하나님이 '예수의 사연이 이랬다'고 통고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사연을 품고 다닌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예수의 사연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사연을 풀고, 예수의 소원을 풀기 위해서, 역사적 배후에서 하늘은 예수의 뜻을 세워 나가는 길에서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중의 친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말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나의 친구가 되고, 말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천운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거쳐 나간 것입니다. 이런 생활태도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묵묵히 우리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책임을 다했더라도 부족함을 느끼고, 좋으면 좋은 것으로서 하늘이 좋아하기 전에 내가 좋아할 수 없고, 나쁘면 나쁜 것으로서 내가 나쁘기 전에 하늘이 나쁠까봐 염려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전체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실적 기준을 갖고 나가야 된다구요 그래야만 그것이 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의 나를 재창조해 달라는 심정적인 태도가 필요해

그리고, 여러분이 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종에서부터 양자의 자리로, 또 양자의 자리를 거쳐 가지고 직계의 자녀의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직계의 자녀의 자리에서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하여 선한 부모가 못 되었으므로 선의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종으로부터 양자, 양자로부터 직계의 자녀, 직계의 자녀의 자리로부터 선한 조상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여기에는 복잡한 복귀의 과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 자신이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자기를 알아준다고 해서, 알아달라고 해서, 알아줌으로 해서 그런 길을 갈 수 있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아주면 절대 안 되게 돼 있어요.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알아주면 못 가게 돼 있다구요.

하나님의 역사는 재창조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러분 자체 모양으로 돌이면 돌, 즉 모난 돌이면 모난 돌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다시 뭘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밀가루를 이기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빚으면 마음대로 빚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흙을 이기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빚으면 마음대로 빚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자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이래 가지고 나에게 있어서 하늘이 소원하는 제2의 나를 조성하기 위해서, 제2의 나를 재창조해 달라고 하늘 앞에 간곡히 부탁하는 심정적인 태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말이지요, 대개 보면 말이지요, 어느 지역이면 지역에 있던 사람이 혹 어느 지역장이 갈려 가게 되면 '아, 나는 저 지역장을 중심삼고 수련받았기 때문에, 딴 지역장은 내 사정을 몰라줘' 이러면서 흔들고 다닙니다. 그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어요?

예수는 못나도 지지리 못난 열두 제자들을 하나님을 두고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발을 씻어 주는 놀음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방에 내려가라고 인사이동을 한번 해놓으면 말이지요.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요. 자기라는 존재는 어떤 지역장에게 속한 것이 아니예요. 그런 관념을 빼 버리라는 거예요. 지역장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지구장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역시 대구면 대구교회, 곽정환이면 곽정환이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나는 하나님 앞에 속한 사람입니다. 곽정환이라는 지팡이를 의지하여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 내가 그를 쓰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그 목적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내가 그를 쓰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지도자를 교체해야 됩니다. 종된 지도자를 교체하고, 그다음에는 양자된 지도자를 교체하고, 그다음에는 아들된 지도자를 교체하면서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지도자가 내 앞에 오더라도 그를 환영하고, 그 앞에 내가 절대 순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춘하추동이 열두 달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예수가 열두 제자를 뭘하려고? 예수가 열두 제자를 모아 놓고 자기 명령에 복종할 수 있는 제자들로 만든 것이 아니예요. 예수가 인간세계에 와서 인간들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열두 대표형 앞에, 열두 형의 사람들의 마음을 맞춰 줘야 합니다. 마음을 맞춰 주면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연 굴복시켜 가지고 그들을 재차 빚어 자기대신 상속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던 3년공생애 기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늘길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많아야 좋다는 것이 아니예요, 열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혹은 백 사람을 만나 섬겨 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의 장점이 전부 다 내 것이 됩니다. 또, 외국 사람도 섬겨 봐라 이거예요. 외국 사람의 장점을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을 내가 접하게 될 때, 내가 고립된 입장에서 그들을 비판하고, 나는 나대로 딱 틀을 잡아 가지고 그들을 평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그런 형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에서 그들을 대신 흡수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춰 놓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을 대하든지 그 민족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돼요. 이래서 자꾸 자꾸 큰 사람, 큰 모형, 큰 형태를 갖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에 대해서 핍박하는 사람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핍박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를 못살게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를 좋게 대하는 사람도 있고, 형형색색의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로부터 장점만 취해서 자기가 빨리빨리 발전할 수 있는 재료로 삼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는 원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없다구요. 원수도 나에 대해서는 좋다는 거예요. 예수는 그런 인격관을 가지고 살아 나갔다 이겁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어느누구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닳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병은 병대로 정은 정대로 각양색색의 인간은 하나님의 성상을 닮아 났습니다. 그러므로 그 형상의 아름다운 본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귀하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귀한 것을 친구 삼아 가지고 그 상대적인 주체성을 갖춰 가지고 그 상대적인 요건을 빨리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전세계 인류를 친구와 형제로 삼고 가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이 세계 인류를 품기 위해서 오시는 아버지입니다. 세계를 대신하여 전세계 인류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전세계 인류를 아들 삼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구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전세계 인류를 친구로 삼고, 그들을 형제로 삼고, 그들을 위해 내가 주고, 그들을 위해 내가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내가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디 가더라도 자기로부터 맞추어질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을 언제든지 생각해야 된다구요.

하늘은 무엇이냐? 수많은 인류 앞에 자기로부터 주어질 수 있는 길을 지금까지 취해 나온 것이 하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어디 가든지 나로부터 심어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가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면에 좋은 것을 세워 놓고, 더러운 면에는 깨끗한 면을 세워 놓아야 된다구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부분을 제거해 놓고 좋은 부분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가정적으로 거쳐 나가는 환경과 환경이 하늘의 아들된 사실로서 증거될 수 있는 내용으로 자연히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한꺼번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게 아니라구요. '하나님 내가 당신 앞에 회개하오니 오늘 저녁 당신의 아들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안 돼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야

어려운 기간을 통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격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언제나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품어 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하나님의 품에 품겨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품어서 언제나 동정해 줘야 된다구요, 언제나. 밤이나 낮이나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려움에 부딪치면 나와서 염려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염려의 품안에서 내가 언제나 살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내가 동으로 가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가지고 심정적으로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같이해야 돼요. 동으로 가면 동으로가도 역시 그 마음에 언제나 하늘이 같이하고, 자나깨나 어디 가든지 하늘이 나에게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여러분들이 지녀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은 뭐냐? 자기 위주해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 이거예요.

예수는 30여 생애노정을 거쳐갔습니다. 그러나 그 생애노정에서는 언제든지 하나님이 그 환경을 지켜 줬고, 그를 동정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슬퍼하면 하늘이 슬퍼했고, 그가 기뻐하면 하늘도 기뻐했고,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는 '오, 네가 또 어려움을 당해야 되느냐? 또 가야 되느냐?' 하고 하나님이 마음 졸이면서 가는 길을 염려해 줬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위주하는 사람이 되어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구요.

하늘 앞에 충성하는 사람을 연구하고 그의 본을 받아야

자,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나오던 지금까지의 걸음걸이와 지금까지의 행로를 다시 한 번 재분석하여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 '고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지구장에게 속한 것도 아니요, 어느 지역장에게 속한 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속했다구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가야 되고, 하나님을 위해야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생활은 어떤 것이냐? 자기 위주한 생활이 아닙니다. 자기 위주한 생활이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방안에다 지구의나 세계 지도를 하나 떡 걸어 놓고 언제나 생각하라 이거예요. '하나님이 오늘 어디로 갈 것이냐? 내가 내 마음을 이렇게 갖고 있는 데 천지를 창조한 그 하나님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까? 어디로 갈 것인가?' 그걸 생각해야 돼요. 어디로 갈 것이냐?

이 온 천지간에 나보다 더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을거늘, 그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혹은 동쪽이냐, 흑은 서쪽이냐? 어느 곳에 있을 것이냐? 이것이 궁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충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궁금해야 된다구요. 어떻게 충성하는 사람일 것이냐?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냐? 그런 것이 궁금해야 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이 한국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 때, 여러분은 '아,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이요, 아들이다. 그러면 그 아들과 딸을 어째서 하나님이 사랑할까? 그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어떠한 생활을 할 것인가? 그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일까? 그가 지금 현재 활동하는 활동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렇게 궁금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수많은 민족들을 대신하여 언제든지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고 관심을 가지고 궁금하게 여겨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좋은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가만히 보면, 우리 본부의 성화지에 어떤 인물이 척 평이 나 있는 것을 지방에 있는 여러분들이 떡 보게 되면 '그 아무개, 그 아무개 그렇고 그렇구만' 하는 그것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름난 그 사람이 우리 통일신도들 앞에 자랑이 될 수 있었다면 그걸 분석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아, 이 사람은 이런 환경에 부딪칠 때 이것을 어떻게 타개했구나. 그가 걸어 나온 것이 기쁜 걸음이 아니었구나. 역경과 모든 반대의 환경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렇게 투쟁해 나왔구나' 이렇게 전부 다 분석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본을 받아야 돼요.

그래 가지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아벨로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혼자 한번 가서 만나 보고 싶구나. 내가 그에게 점심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 되겠구나. 저녁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 되겠구나. 내가 못 먹더라도 단 10원이지만 그에게 한 번 사서 주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된다구요.

지방이나 온 전국이 알 만한 사람이 수고하고 있다 할 때는, 전국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그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없는 돈이라도 그에게 한푼이라도 보내 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 일을 하늘이 협조해서 이뤘기 때문에, 하늘이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협조해야 할 책임이 있는 나는 그를 협조해 주는 것이 하나님을 협조하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는 제로거든요, 제로. 빵점이란 말이예요,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기쁜 일이 있으면 식구와 같이 기뻐하려고 해야

오늘날 우리 교회면 교회, 대구교회면 대구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시내에 간다, 어디에 놀러 간다고 합시다. 놀러 가더라도 자기 혼자 놀러 가고, 자기 혼자 기뻐하는 사람은 교인도 아니거니와 하나님의 아들딸도 아니예요. 자기가 좋은 곳에 가게 되면 '누굴 못 데려가는 게 한이구나. 누굴 못 데려가는 게 한이구나' 두고두고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부모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먹으면 자식을 생각하는 거라구요.

참다운 효자는, 부모를 모시는 효자는 자기가 좋은 것을 먹든가 입든가 할 때는 그게 목에 걸린다 이겁니다. 뭘 먹든가 입든가 하면 목에 걸리고 어디에 걸린다구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일을 당하게 될 때는 혼자 가 가지고 좋다고 살랑살랑하면 안 된다구요. 전부 같이 가서 기뻐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으면 그 아버지에게 '아버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누구입니까? 그 아들딸을 데리고 내가 기뻐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식구면 식구 전체가 함께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당할 때, 여러분을 대신하여 눈물 흘리면서 그 고통에 동참하는 식구들이 있어요? 그것이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예요. 하늘이 그를 위해 눈물짓고 그를 위해 협조하게 된다면, 어떤 동네에 백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할 때 그 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런 입장에서 하늘 앞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어려운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 한 사람에게 하늘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다면, 벌써 아흔 아홉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는 거예요.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된 도리를 찾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 직계의 자녀의 자리까지 찾아 나가려면 다리를 놓아 나가라 이겁니다. 다리를 놓아 나가라는 거예요. 여러분보다도 조금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가는 곳을 따라가려고 하고, 그가 전도가는 곳에 따라가려 고 하고, 언제든지 같이 가야 됩니다. 밥을 먹어도 같이 먹고, 잠을 자도 같이 자고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응? 마음이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과 아벨적 존재에 대해 관심이 많아야 발전해

만일 여기에 지구장이면 지구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가려 고 하면 그 지구장이 오늘 어디 가느냐 이거예요. 사흘만 어디 가더라도 전 군이면 군, 전 도면 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아, 우리 지구장은 어디에 갔다. 어디에 가 있다. 어디에 갔다' 이래야 돼요. 벌써 하루만 어디 갔다 와도 그곳에 갔다 온 것이 지구장 혼자 갔다 온 것이 아니라 그 지구면 지구 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갔다 왔다 하는 기준에 서면 그 지구는 하늘의 보호권 내에 있는 지구가 됩니다.

그렇게 된 지구는 발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장이 갔는 지 왔는 지 모르고, 거 자기 일이 있으니까 갔겠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아무것도 안 된다 이거예요.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관심을 가져야 된다구요. '지금 지구장이 뭘하느냐? 오늘은 뭘했느냐?' 하고 궁금하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리고 지구장은 '아, 하늘 앞에 더 가까운 무엇이 없느냐? 하늘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었던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 무엇이 있으면, 자기가 지구장으로서 기뻤으면, 하늘 앞에 감사할 일이 있으면 '아, 하늘이 나를 첫 번 사람으로 아시고 나에게 그 말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늘의 좋은 소식을 먼저 알고, 하늘의 슬픈 소식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진정한 효자 효녀는 기쁜 일 슬픈 일을 그 어버이로부터 제일 먼저 듣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응? 효자, 충신, 열녀는 그런 자리에 서는 거라구요. 기뻐도 먼저 듣는 것이요, 슬퍼도 먼저 듣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래요. 지구장이 어디 갔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지구장이 가는지 오는지, 또 지역장이 가는지 오는지 무관심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이 있으면 그 하나님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 전부 다 모아 가지고 뭐하겠어요?

나뭇가지에 잎이 있다면, 그 잎은 뿌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영향력을 같이 받습니다. 한 뿌레기가 썩어 가지고 고통을 받는다면 조그마한 잎의 세포까지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그것이 원칙이예요. 같은 생명력을 지닌 나무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어디 가게 되면 여러분도 그래요. '오늘 선생님 어디 가서 뭘하노. 오늘 대구에 가서 뭘하노. 무슨 얘기 할까?' 하고 관심이 많아야 된단 말이예요. 응? 관심이 많아야 된다구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에게 '하나님, 이 시기에 하나님은 뭘하십니까?' 하고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나는 그랬다구요. 나는 그랬다는 거예요. 하나님이면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야 됩니다 '오늘날 미국을 더 사랑합니까, 한국을 더 사랑합니까? 지금까지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이제부터도 또 한국을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이게 궁금하단 말이예요. 관심이 많았다구요. 아버지가 가기 전에 내가 가겠다 이겁니다. 만일에 한국을 사랑한다면, 한국을 사랑하는 기미가 보이면 그 한국을 내가 먼저 사랑하겠다 이거예요. 그런다고 '야, 이놈아 너는 아버지를 먼저 모셔야지 한국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그런 어거지가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나에게 어떤 책임과 어떤 사명을 추궁하느냐는 것을 생각하고, 나에게 명령하기 전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나에게 인연짓기 전에 인연을 지어 놓고 충성의 도리를 세워서 수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다고 해서 하늘이 벌을 줄 수 없어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구요.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아버지의 아들딸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먼 거리에 있습니다. 먼 거리에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의 주권과 거기에 젖어 있는 모든 것에 딱 관심이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 물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무리 은혜받고 와서 그저 뛰고 춤추다가도 그 이튿날 돌아가면 또 쓱쓱해 가지고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거예요. 이거 진짜 해먹기 힘든다는 거예요.

오늘은 기분 좋아서 해죽해죽하고, 그다음에는 자기 책임 못 해서 눈을 이렇게 뜬다구요. 거 어떻게 해먹겠노? 이렇게 모여서 말씀을 듣게 될 때는 그저 불이 올라 가지고, 맹세를 하고, 호랑이 아가리라도 쨀 용기가 나지만 말이예요. (웃음) 이거 가 버리면 김이 빠져 버리는 거예요. 거 어떻게 해먹어요?

효자는 부모보다 근심이 더 많다

효자를 가진 부모보다도 그 부모 앞에 효자가 근심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효자 효녀가 부모보다 근심을 더 많이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보다 근심을 더 많이 가져야 되고, 효자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부모보다 각 방면으로 염려를 더 많이 해야 됩니다.

충신 열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군왕을 섬기는 충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국정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그 군왕보다 더 염려해야 됩니다. 나라의 문제를 염려하는 동시에 군왕의 문제까지 염려하면서 이중의 염려를 가져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그의 입장은 군왕보다도 더 어려워요. 군왕은 나라를 위해서 염려하지만, 충신은 나라를 염려하고 군왕을 염려해야 돼요. 그러니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 어렵다는 거라구요.

예수 같은 분은 이 땅에 와 가지고 그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사연도 딱하지만 내 기도함을 받고 있는 하나님은 더 딱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런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지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를 따르고 있는 수많은 식구들 앞에 먼저 효성의 도리를 세워야 됩니다. 먼저 효성의 도리를 세워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공적 생활을 해야돼요. 가도 자기 마음대로 못 가고, 먹어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살아도 자기 마음대로 못 사는 거예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가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둬 가지고 자기 자식들을 먹이려고 하고, 자기를 따르고 있는 식구들을 먹이려고 합니다. 마음이 그렇게 돼 있다구요.

세상에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해먹으면, 맛있는 떡이면 떡을 했는데 동네 사람이 오면 슬쩍 감춘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맛있는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주고 싶어서 자기가 남겨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줘야 된다는 겁니다. 언제나 줘야 된다 이거예요.

하늘 앞에 효성을 다해야 할 한국백성이라면 받지 말고 주어야

앞으로 한국 백성을 두고 볼 때, 한국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을 받은, 제2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할진대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앞으로 수많은 민족 앞에 그저 거지처럼 받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늘 앞에 효성을 다할 수 있는 한국 백성이라 할진대는, 한국을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효성을 해야 할 한국이라 할진대는 한국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줘야 됩니다. 여기에서 줘야 된다구요.

이제 한국 백성을 통해서 가야 할 길이 무엇이냐? 받는 정신을 넉넉하게 하고, 받는 정신을 강화하는 운동보다도 주는 정신을 더 많이 가져야 됩니다. 이래야 산다는 거예요. 받기를 바래 가지고 손을 벌렸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받기를 좋아하는 민족은 망해요. 망하게 되어 있다구요.

오늘날 원조받아 가지고 그 나라를 흥하게 한 법이 어디 있어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줘라 이거예요. 줄 수 있는 국민이 되라 이겁니다. 지나치게 주게 되면 하늘이 그에게 갚아 준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줄만큼 주게 되면, 안 갚아 줘도 지나치게 주게 된다면 하늘이 갚아 준다 이거예요.

사람들이 타고난 복은 못 빼앗아 갑니다. 한국 백성이면 한국 백성이 지녀야 할 복의 기준을 지나쳐서 주게 되면 복은 딴 데서 날아온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을 위해 우리가 줘야 할 책임을 지기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그것을 개의치 않는 투쟁의 노정을 걸어가기를 1년, 2년, 10년, 수십 년 하게 된다면, 한 백년, 한 몇백 년 간다고 하면…. 몇백 년 간다고 하면 다 떨어질거라구요, 이게. 제 일대에도 가고, 네 아들 대에도 가고, 네 손자 대에도 가고, 한 7대쯤 이 놀음 해라' 하면 지금부터 보따리 싸는 사람 많을 거라구요. 응? 만일에 7대쯤 가더라도 지치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대를 통하여 하늘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인물을 보내 주신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공평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을 딱 잘라 버리면 말이예요, 한 7, 80년 이 생활권 내에서 딱 잘라 버리면 말이예요, '오,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나? 어떤 사람은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먹고 즐기며 잘살고 있는데, 우리는 양심적이요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했는데 보리밥 세 끼도 못 먹고 사니 이게 웬 일이야, 이거? 전부 다 불공평하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걸 뚝 잘라 가지고 7, 80년 이 한계 내에서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나 세상만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중에 과거에 잘살았던 사람이 있으면 오늘에 와서는 못살아야 돼요. 또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못 살았으면 오늘에 와서는 잘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천 년을 두고 보면 이게 기준이 되어 있다 이거예요. 몇천년 기준의 주파로 두고 보게 된다면 평등이다 이거예요, 평등. 전부 다 평등으로 돼 있다구요.

지금 당장 굶어 죽는 녀석들은 과거에 선조들이 배가 터지도록 먹었기 때문입니다. (웃음) 어떤 녀석들은 지금 습격을 당해서 총에 맞아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그 조상시대에 그런 놀음 했다는 거예요. 당대에는 불공평하지만 역사노정을 두고 몇천 년 주기를 두고 볼때는 전체가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전도할 때 '아무개가 나가서 전도하면 잘되는데 내가 나가면 왜 전도가 안 되나. 가면 갈수록 지지리 고생 바가지만 있단말야' 그러는 사람이 있는데 (웃음) 그건 왜 그러냐 이겁니다. 고생 바가지 뒤집어쓰는 것은 탕감을 많이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날부터 전도하러 나갔지만 전도가 되지 않아요. 전도 나간 날부터 자기 스스로 탕감해야 됩니다.

스스로 탕감해야 할 책임이 자기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거 힘들어서 못 하겠습니다' 하고 후퇴하면 언제나 그 고개를 넘고 뒤넘이치며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맨 나중에는 기진맥진해서 쓰러져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간다 이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사람은 이거 인덕도 없게 생겼는데 가서 말만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왜? 선조로부터 쌓아 둔 공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필시 이 시대에 인화적인 덕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대를 받지 않으면 역사적인 모든 기준이 이때에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이 괜히 따라온다 이거예요. 그래서 선한 자손, 선한 사람의 자손은 굶어 죽는 법이 없습니다.

소수의 무리로 다수를 굴복시키려면 모험을 해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면 아주 불쌍하지요? '통일교회를 왜 내가 믿었노? 통일교회를 왜 내가 믿었노? '그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통일교회 선생을 왜 내가 했던고? ' 나는 그렇게 말해야 하게요? (웃음) 그러면 여러분이 망했지 내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알고 보면 여러분은 망하지만 난 망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내가 무슨 잘못 했다고 뭐 뭐…. 지금도 아주 피곤이 꽉차 있어요. 몸에 꽉차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쭉 세계일주하고 돌아오면서 쉬지 않았다구요. 이래 가지고 다니니까 좀 쉬라고 하는 데 언제 쉬길 했나요? 그저 두 시간 세 시간밖에 안 잤습니다. 여기에 와서는 선생님이 또 순회하느라고 맨날 요렇게 되어 가지고 지쳐 떨어지는 판이라구요. 그런데 그게 뭐 좋다고 그런 놀음 해먹겠느냐 말이예요. 응? 안 그래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통일교회 싫다고…. (웃음) 여러분들보다 선생님이 더 고생 많이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고생 많이 했어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고생이 많다구요. 지금도 그래요. 여러분들이야 뭐 한 귀퉁이만 바라보고 나가면 됩니다. 한 귀퉁이만 바라보고 쭉 나가면 되는 거라구요.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그건. 그래 가지고 어느 과정을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전체를 책임진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이면 한국 전체를 대비해서 앞으로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안팎의 모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작전 계획을 잘 세워야 된단 말이예요. 앞으로 통일교회를 세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현하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공산당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다 알아야 된다 이 말이예요. 힘없는 통일교회지만 앞으로 힘있는 통일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작전계획을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수의 무리를 가지고 다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험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모험을 해야 되지요? 「예」 그러니까 하나님도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세워 가지고 모험을 시킨다 이거예요. 모험을 시키는 목적은 전세계 사람들을 빨리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모험을 시킨다 이거예요.

정상적인 기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 안 먹고 가서는 안 된다' 그러게 되어 있나요? '오늘 뭐 열 시가 넘었으니, 열 시가 되었으니 자야 된다' 그러게 되어 있나요? 밤에라도 가야 된다는 말이예요. 밤에라도 가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말이예요, '난 이제 너희 하나님 안 되겠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긋 지긋 지긋 지긋하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버지라는 이름 자체도 듣기 싫다는 거라구요. (웃음) 보라구. 이놈들, 보라구. 이놈의 맘통이 어떻고 심통이 어떤가? 가만히 그래프판 같은데 여러분 맘을 딱 펼쳐 놓고 한번 그려 보라구요. 마음이 하루에 몇번 올라왔다 내려갔다, 올라왔다 내려갔다…. 도둑놈 무슨 강도 별의별 놈다 있을 거라구요.

하루는 그저 아, 한국에서 제일 가는 일등 부자가 되고, 세계에서 일등 부자가 되겠다, 내가 과학자가 돼 가지고 비행기를 전부 다 내 것 만들고 싶다…. 오구 잡동사니를 생각하는….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그 생각을 총합하는 것하고 아버지 생각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많아요? 어느 것이 많으냐 말이예요. 응? 비례적으로 볼 때 그런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아버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올라가도 아버지요, 내려가도 아버지다'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동기

과거의 역사적인 인물은 어떤 사람들이냐? 국가의 위기 때나 국가의 비상시를 대신하여 국운을 염려하고 백성을 염려하면서 일생을 청산지은 사람들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동기는 어디에 있느냐?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누구보다 염려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망과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하시는 이 땅을 누구보다 염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한 기준이 높았습니다. 염려한 기준이 높았다는 거예요. 정성들인 도수가 깊었다 이거예요. 별거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요. 가고 오고, 좋고 나쁘고, 먹고 자고, 그저 요거예요. 좋고 나쁘고, 가고 오고, 먹고 자고 여기에서 놀아나는 거예요, 이게. 대개 다 그렇다구요. 응? 좋으냐, 나쁘냐?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잘 먹었느냐, 못 먹었느냐? 그다음에는 가느냐, 오느냐? 이게 인생살이입니다. 이걸 극복해야 돼요. 이것은 누굴 위해 하느냐? 자기를 위해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들은 7, 80년 땅 위에 있다 죽어갈 거라구요. 불사르면 몇 시간 내에 다 타 버린다 말이예요. 그런데 뭐 귀하다고…. 어차피 한번 다 죽어가는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지극히 작은 몸이라도 가치 있게 살다 가면 하늘땅이 다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다 기억한다 이거예요. 내가 이번에 인도도 가 봤는데, 거기에 가니까 간디를 화장했던 화장터가 있더라구요. 인도는 화장을 하기 때문에 묘지 같은 것이 없습니다. 간디가 잠들어 있는 거기에 큰 비석을 해놓고, 울타리를 해놓고 인도백성들이 그 앞에서 맨발을 벗고 경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때 인도의 간디가 뭐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뭐예요? 그러나 간디는 그 나라의 미래의 운명을 걸머지고 생애를 바쳐 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존경받는 애국자가 된 거라구요. 마찬가지예요. 오늘 이 천지간에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충신이 진짜 있다면 어느나라 백성 가운데 충신이 많겠느냐? 생각해 봐요.

여기 통일교회 문선생도 역시 어떤 때는 '아,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 충신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구요. 거 벌받을 마음이지요? 응? 벌받을 마음이지요? 벌받을 마음 아니예요? 「아닙니다」 응? 「아닙니다」 '아, 세계 인류가 많긴 많지만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충신이 통일교회에 제일 많으면 좋겠다. 효자 효녀가 제일 많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나님이 벌 주겠어요? 벌 주겠느냐구요? 「아닙니다」

효자 효녀가 되는 첩경은 공적 입장에서 눈물의 생활을 하는 것

그런데 생각만 하고 있고 그 일을 행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쁘다는 거예요. (웃음) 생각만 하면 뭘해요, 생각만 하면? 욕심은 커 가지고…. 진짜 그런 사람은 도둑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일 뜻대로 안 되면 도둑질밖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들을 충신 열녀를 만들고, 효자 효녀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만들어야 되지요? 「예」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효자 효녀는 어떤 패들이냐 이거예요. 어떤 패들이 예요? 내 배를 두둑하게 만드는 사람이예요? 남의 옷 벗겨다가 자기가 입는 사람이예요? 응? 자기 제일주의로 나가는 사람이예요? 전부가 반대예요. 전부가 반대라구요. 자기가 먹을 것까지도 남에게 먹여 줘야 됩니다. 안 먹겠다고 하면 그저 입을 벌려 가지고 먹여 줘야 된다구요. (웃음)

하나님이 구원섭리할 때 이 사탄 새끼들─전부 다 사탄 새끼란 말이예요, 우리들은─한테 와 가지고 구원해 주려고 할 때 '너희들, 와와와!' 이러 겠나요? (웃음) 그렇잖아요? 구원해 주려고 할 때에 '야야 와와와!' 그러겠나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나요? 종살이하는 거예요, 종살이. '야, 네가 뭘 먹고 싶으니? 응 그래. 내가 벌어다 먹여 주마. 뭘하고 싶으니? 내가 해주마' 그러신다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미안하기 때문에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이래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종살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먹겠다면 먹으라고 제 사드린다는 거예요. 안 입겠다면 입으라고 정성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복귀역사를 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아버지를 대신하여 여러분들을 통일교회 충신, 열녀, 효자, 효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갈라놓아야 되는 거예요. 1년 가지고 될 것 같아요, 1년. 충신이라는 것은 물론 나면서부터 타고난다는 말도 있지만, 나면서부터 그런 천성을 갖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 절개가 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변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자기 좋은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3천 만을 위하고, 그 나라 백성을 위하고, 그 나라 주권을 위하고, 그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신상을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래 가지고는 공적인 실적을 위해서는 모험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험을 해야 된다구요. 그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모험도 해야 된다 이거예요.

더우기 하나님이 세계를 제패하려면 어저께 선생님이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조국을 창건해야 돼요. 조국을 창건하려면 한국만 가지고는 안 된단 말입니다. 전세계를 장악해야 됩니다. 적어도 전세계를 공격해야 돼요. 공격을 하는데 총칼을 가지고 공격하는 거예요? 눈물과 피땀으로 담밑을 파 가지고 거기에 물이 고이면 푹 빠지게 해 가지고 허우적허우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 해야 돼요. 반대적인 작전을 해서 이 놀음 해야 된다구요.

자 그렇다면, 통일교회에 충신 열녀가 많기를 바란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도 어떻게 해요? 아가씨들이 곱게 베니나 하고, 루즈나 칠하고, 매니큐어나 바르고, 그저 화장이나 하고, 그저 철따라 좋은 양복에 좋은 뭣을 이래 가지고 술렁술렁하게…. 응? 그런 사람 만들어야 되겠나요? 반대예요, 반대.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벗기는 거예요. 벗기는 거라구요. 그래서 반대로 입혀 가지고 어디로 쫓아 버리느냐? 저 산골짝으로 끌고 가야 됩니다, 산골짝으로. 그렇지 않고는 충신이 될 수 없어요. 충신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모든 조야는 물론, 모든 관직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다 알게 하고, 산중에 있는 백성까지도 다 그를 추앙하게 하기 위해서는 뛰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에 되는 것이 아니예요.

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고생길에서 고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제일 가까운 자리, 최고의 첩경이 그거예요. 충신 열녀가 되고 효자 효녀가 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첩경이 무엇이냐? 공적인 입장에서 눈물짓는 생활뿐입니다. 눈물짓고 수고의 길을 가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지요? 「예」

나갔다 들어올 때는 한아름 안고 들어와야 효자라고 할 수 있어

이 땅 위에 복귀섭리를 대해 나오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진정한 효자라고 명명할 수 있으려면, 아들이라든가 충신이라고 인정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미국에서 제일 가는 갑부? 응? 제일 가는 갑부? 택시가 열 대 아니면 타고 다닐 수 없다는 그런 패들? 응?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삐라를 뿌리며 '야, 예수 믿어라!' 하는 이런 패들? 생각해 봐요. 비행기 타고 삐라를 주욱 뿌려가지고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고' 그런 사람? (웃음) 그런 사람들하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한 장을 주더라도 바들바들 떨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정성을 들이며 주는 그 사람하고 어느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까울 것 같아요?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의 사회적인 환경이라도 현재의 실정이 하나님 앞에 충신 열녀가 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우기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을 알고 나서는 탕감복귀라는 걸 다 알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나갔다 들어와야 돼요. 나갔다 들어와야 된다구요.

옛날에 탕자는 한 날은 자기 재산을 전부 다 팔아 가지고 그것을 붙안고 나갔다가 들어올 때는 빈 껍데기 갖고 들어왔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복귀의 탕자들입니다. 복귀의 탕자는 무엇이냐? 복귀의 탕자는 무엇이냐 하면, 맨손 들고 나갔다가 한아름 안고 들어와야 됩니다. 문선생 욕심 많지요? (웃음)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아버지 앞에 기도할 때 '아버지여, 나는 이러 이러한 것이 필요합니다' 하면 준다고 약속한다는 거예요. 그 준다는 것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끄트머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 거두어들여 와야 된다구요. 약속을 해줬는데 그것은 세계에 널려 있다 이겁니다. 거두어들여라 이거예요. 거두어들일 권한은 언제든지 너에게 부여하마 이거예요. 거두어들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에게 있어서는 과거의 타락권 내의 탕자와는 달리 맨손 들고 나가 가지고 한국이면 한국을 몽땅 가져다가 '아버지 이런 한국 원했지요? 이걸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야 이녀석아, 도둑놈 같으니라구. 너 어떻게 가져왔나, 이녀석아!'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눈물과 피땀을 흘려야 돼요. 그 부락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존경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체 그들을 만민을 굴복시키는 자리에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이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이 쭉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많이 올라왔어요, 이젠. 옛날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다른 교회교인들이 얼마나 밉다고 그랬어요. 옛날에 기성교회서 그랬다구요. 이제는 기성교회가 반대하든 말든 나는 걱정 안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두고 보자 이겁니다. 전부 다 포위작전하려고 합니다. 세계 대가리들이 전부 다 달려들 때가 온다 이거예요. '아이쿠'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한국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많기를 바라거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통일교인들이 고생한다고 하더라도 고생하는 이 기간을 더 연장해야 돼요. 통일교인들의 고생을 연장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천국 가 가지고 누가 '너 뜻을 위해서 몇 년 고생했노?' 하고 물을 때, '아 나 자그마치 7년 고생했다' 하면 '에이, 겨우 7년?' (웃음) 이렇게 될래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일생 동안 충성의 도리에 변함이 없어야

아버지가 '너 땅 위에서 얼마나 고생했나?' 하면 '나는 일생 동안 했습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했습니다' 하는 그 사람하고 '아, 7년했습니다. 7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하는 사람하고…. 7년 가지고 통할것 같아요? (웃음) 방법은 별것 없다구요.

그럼 여러분들만 충신 열녀 되고 삼천만은 충신 열녀 안 되어도 좋단 말이예요? 7년만 고생하겠다고 하면…. 그러면 그걸 누가 다 길러 주는 거예요. 누가 가르쳐 주고. 응? 누가 가르쳐 주느냐 이거예요. 그건 여러분들이 가르쳐 줘야 된다구요, 나는 여러분들을 가르쳐 주면 여러분들은 또 그들을 가르쳐 줘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이게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7년노정이 끝나면 전부 다 이젠 뭐 세상이 다 뒤집어져 가지고 우리가 걸어다닐 때도 흙을 안 묻히고 다리만 너불너불하면 서울에 갈 때가 있다…'(웃음) 응? 그건 망상이예요, 망상. 사람이 밥을 안 먹고 배부르는 수가 있어요? 부자가 되었다고 그저 이렇게 하면 배부른가? (행동을 하심. 웃음) 마찬가지예요. 집어넣어야 돼요. 그 공식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일생 동안 충성의 도리에 변함이 없어야 돼요. 자기의 입장과 환경이 자기를 평하면 평한 것만큼 우리의 무대는 세계로 확대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오늘날 국내 사정을 중심삼고 뒤넘이치지만 환경이 편하면 편할수록 세계를 중심삼고 뒤넘이쳐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래서 세계를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을 모셔 놓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한국에 안식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삼천만 민족이 세계를 위해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세계 만민이 한국으로 말미암아 자기들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다고 충성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맞이하게 될 때, 비로소 한국에는 안식의 터전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은 팔자도 사납지. 이거 뭐 40이 넘도록 이런 놀음 또 해야 되겠구만' 하는데 나는 편안히 살려고 생각 안 합니다. 이제는 세상에 미련이 없다구요. 세상에 미련이 없단 말이예요. 저나라가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책임을 다하고 빨리 죽으면 나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하는 것도 여러분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될 문제가 많다는 거예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의 세계가, 내가 아니면 안 될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그렇지 그것만 없다면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기 한국보다도, 여러분들보다도 저나라에 가게 되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르는 것보다도 저 영계는 여러분 몇백 배이상 좋다는 거예요. 찾아다니면서 가르쳐 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벌써 발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다 안다는 거예요. 영계가 그런거라구요. 마음으로 생각하면 벌써 이해한단 말이예요.

영계가 그래요, 영계가. 영계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입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여 가지고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통하면 그 사람이 뭘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요?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 드러난다구요.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 앞에 효자와 효녀의 면모를 갖춰야 됩니다. 저나라에 가 가지고 효자 효녀를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를 편성해서 이 지상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중한 책임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경상북도면 경상북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팻말을 박아야 되겠습니다. 팻말은 무슨 팻말? 효자의 팻말을 박고 충신의 팻말을 박자 이거예요.

자기의 종족에서 메시아의 사명을 해야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떤 사람들은 말이예요, 10년 이상 15년쯤 되면…. 장여사 몇 해인가요? 「13년입니다」 13년, 13년씩 되었단 말이예요. 13년 동안 가만히 생각하면 '13년 동안 뭘했을까? ' 생각하면 선생님 하나 따라다닌 것밖에 생각이 안 난다구요. 이제는 때가 때니만큼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의 부모와 여러분의 형제들이 여러분을 반대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때가 지나가느니만큼 여러분들의 가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여기에 나온 여러분들은 김씨면 김씨 가문의 메시아와 마찬가지 사명을 해야 됩니다. 김씨 가문이면 김씨 가문, 박씨 가문이면 박씨 가문에 있어서, 하늘나라를 창건하는 데 있어서 이 종족을 대표해서 내가 메시아다라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구주라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김씨가문을 구해 주는 구세주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 김씨 가문을 대신하여 제사장적인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 집에 종이 있으면 종의 책임자로부터 붙들고 파고들어 가야 됩니다. 앞으로 그런 싸움도 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빨리 이 나라를 아버지 앞에 복귀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환경의 때가 우리를 향하여 얼마나 급속한 속도로 찾아들어 올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를 쭉 돈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뜻적으로 보면 이렇게 된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때가 더 빨라요. 중간을 째기만 하면 세계가 터져 나가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세계적인 문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간단한 문제라구요.

그때에 가서 그 시대와 그 환경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딴것 가지고 수습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세운 충성의 도리와 효성의 도리,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내적인 심정의 사연을 가지고 수습하는 것입니다. 불효자가 '아버지!' 하면 그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안 합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효자가 앞에 와서 '아버지!' 하면 피가 흐를 사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물이 골짜기 되어 사무쳐 있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의 비장한 장면 장면이 그 아버지라는 명사와 더불어 거기에 어려 있다 이거예요.

결국, 어느 누가 갖지 못하는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참다운 효자 효녀, 그런 효자 효녀가 한국에 많다면 한국을 중심삼은 섭리는 기필코 그 섭리가 목적한 바대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만일 그런 사연을 가진 효자 효녀가 이방에 많으면 그곳으로 옮겨 간다 이거예요. 한국이 딱 울타리를 쳐 놓고 거기에 하나님을 가둬 놓고 그래도 안 된단 말입니다.

한국 백성들은 전체를 위하는 성격을 길러야

이번에 내가 일본에 들러서 일본에 있는 식구들을 쭈욱 대해서 얘기하는데, 일본 청년들을 보니까 여러분들보다 상당히 수준이 높아요. 전부 다 대학 나온 사람들이예요. 동대로부터 유명한 대학 다니던 사람들이 학교고 뭐고 집어 던지고 전부 다 나와서 전도하러 다니는 거라구요. 그 사람들은…. 이 한국 사람들의 국민성이 제일 틀려 먹었어요. 제일 틀려 먹었다구요. 왜 틀려 먹었느냐 이거예요. 이건 말을 안 들어요. 말을 안 듣는다구요.

왜? 하기야 지금까지 속기도 많이 속았고, 이 민족 저 민족한테 밟혔기 때문에, 눈치 코치 봤기 때문에 귀찮아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본 사람들은 단호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금만 그어 놓으면 전부가 그리 갈 줄 알지 이의가 없다구요. 명령만 하게 된다면 이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참 말하기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만 해 놓으면 벌써 행동부대가 나온다는 거예요. 우스갯소리라도 한마디만 해 놓으면 벌써 그 이튿날 행동부대가 나옵니다. 그러니 무섭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딱 궤도에 세워 놓아 가지고 '어느 수레가 지나가느냐' 하고 한길로 내몰면 일본을 뒤집어박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사실이 그걸 증명해요.

그렇기 때문에 대동아전쟁 때에 일본 사람들이 대동아를 자기 손아귀에 넣어 가지고 한번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욕망을 품을 수 있는 국민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체 개체의 생김새를 가만히 보면 한국 사람만 못하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히히 좋다고 히죽히죽 웃는구만. (웃음) 개체 개체를 보면 여러분보다 잘생기지 못했다구요.

동남 아시아 일대를 쭉 다니다 보니, 선생님이 사람 볼 줄 안단 말이예요. 다녀 보니 평균적인 얼굴 모습은 동양에서 중국 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어떤 나라 사람보다도 한국 사람이 잘났다 이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폐단은 뭐냐? 전부 다 독자적 영웅들입니다. 독자적 영웅심이 다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지게꾼이라도 이건 지게를 질망정 네가 뭐냐 이거예요. (웃음) 간섭받기 싫어하거든요. 자기 처지를 망각하고, 그자리에 상감마마가 와도 네가 뭐냐 이거예요. 이럴 수 있는 배포가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 환경이 그렇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배경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압제받아 나오면서 약소민족으로 살았기 때문에, 배타적인 정신을 붙들고 나온 관념을 지닌 민족성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누구보다 제일 높이 올라가려고 한다구요. 이것이 제일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한민족을 한 군데로 몰아넣어 가지고 통일만 시켜 놓으면 이건 세계 어느 민족이 당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비근한 예를 들어 보면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뉴욕에 있는 우리 식구 가운데 박사 공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뭐냐 하면, 작년에 국무성에서 공보부를 통해서 발표한 내용이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에 와 가지고 대학교수, 강사, 조교수로 있는 사람이 한 150명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무엇이라고 써 있느냐 하면…. 한국 같은 나라는 저개발국가라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미국 같은 선진문화 국가에 와 가지고 그 나라 백성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인재들이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사실이라고 한 거예요.

현재 미국에는 한국 학생들이 한 6천 명 가량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통일되어 하나만 되는 날에는 큰일난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게 하나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보라구요. 지역장이면 지역장 수가 열 사람만 되면 벌써 열 패가 되는 거예요, 열 패. 응? 그런 소질이 많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지역장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패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상을 빼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발전을 할 때가 이때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이 제일 개인적이라구요. 그렇다고 생각 안해요? 그런데 하늘은 왜 한국을 중심삼고 섭리하려고 하시느냐?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충신이 되기 전에는 단체적인 충신이 될 수 없고, 개인적인 효성을 이루기 전에는 단체적인 효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사실이 또 그렇다는 것입니다.

단체활동에 익숙해 있는 일본 식구들

그렇기 때문에 복귀는 교회나 전체 복귀 완성을 하늘이 계획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완성하고 개개인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을 알아 가지고 자기가 완성한 후에는 그다음에는 무엇이냐? 자기 개인 완성할 때는 그런 성격이 필요하지만 전체 완성을 위해서는 나를 잊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를 밟고 올라서야 돼요. 그래서 끝날에 개인복귀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중요한 그 기준은 일개인을 복귀하기 위한 영웅주의적인 정기입니다. 영웅주의적인 정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기준을 넘어선 후에는 '내가 있으면 너희들을 위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 마음만 연결시키면 전체가 빨리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한국 백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벌써 생리가 그렇게 돼 있다 이거예요. 다섯사람만 떡…. 내가 요전에 한번 느낀 것은 뭐냐 하면, 이들에게…. 선생님이 왔으니까 전국에 있는 식구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갈 때에는 한꺼번에 다 가는 것이 아니예요. 어떤 사람은 먼저 가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가고 몇 패로 가는 거예요. 갈 때는 기차 타고 갈 것 아니예요? 기차 타고 가는데 어떤 데는 24시간 30시간 걸립니다. 저 북해도 아오모리 같은 데는 한 이틀 정도 걸립니다.

그곳까지 이틀 걸리니까 '우리가 그냥 갈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자기들이 클럽을 만드는 거예요. 다섯 사람이면 다섯 사람이 같이 모여 가지고 전도를 하면서 간다 이거예요. 다섯이 올라가면 삐라패 두 사람, 그다음에 말씀을 잘하는 사람은, 말씀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은 말씀패, 이렇게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도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맨 처음에는 쭉 기찻간에서 삐라를 주면서 나갑니다. 그 사람이 나가게 되면, 그 삐라를 보게 되면 통일교회니 무엇이니 적혀 있으니 그 뒤에 나오면서 쭉 해 가지고 물어 보는 거예요. '당신 여기에 관심 있느냐' 이러면 말이지요, 뭐 비난조로 나오는 사람도 있고, 뭐 타령조로 나오는 녀석도 있고 별의별 녀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한 패는 삐라를 쭉 나눠 주고 뒤에서는 그것을 보고 관심 있느냐고 물어 보고 나오면 별의별 패들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혹은 비난조로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그 사람하고 대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대화가 벌어지면 열나게 불을 퍼붓는 거예요. 그러면 찻간에서 전부 다 이러고 바라봅니다. (흉내 내심. 웃음) 그렇게 되면 그다음에는 그 사람을 제꺽 전도하는 거예요. 그렇게 전도합니다. 전도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벌써 그런 조직생활의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몇 사람이 뜻을 중심삼고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이틀이면 이틀까지 그냥 소모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기찻간에서도 자기들의 책임을 다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응?

그러면 틀림없이 걸린다는 거예요. 혼자 가서 뭐 이렇게 전도하는 것보다도 삐라를 나눠 주면서 뒤에 서서 '관심 있습니까? 관심 있습니까?' 하고 청년들이 나와서 물어 보게 되면 언제나 말을 걸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꾸를 하지 않아서 문제지 대꾸만 하게 되면 수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본론이 벌어져서 한바탕하게 되면 저 끝에 있는 사람도 그저 고개를 들고 전부 다 쳐다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통일교회 청년들은 거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사나이들인지 어디 가든지 가만있지 않아요.

또, 비근한 예를 들면, 중고등 학생들이 노방전도하라고 하면 전부 다 가는 것입니다. 작전상 그렇다구요. 중고등 학생들은 반드시 몇 시에서부터 몇 시까지 몇 시간 노방전도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예요. 전도하는 데는 네거리를 찾아다녀요. 사람이 제일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언제나 노방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무슨 회사가 있느냐 하면 말이예요, 일본에 수송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를 뭐라고 하나? 어떤 수송회사가 있다구요. 그런데 그 수송회사가 큰 화물들을 운반하는데 기차로도 운반하지만 자동차로 저 북해도서부터 구주까지 밤낮없이 왕래하는 것입니다. 큰거리라는 큰거리는 언제든지 통과해 가곤 하니까 하루에 통일교회 청년 중고등 학생들이 노방전도하는 것을 셋, 넷, 다섯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그들이 당당히 선전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번 여름방학 때 40일 전도 기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을 때는, 그 트럭 운전수들이 전부 다 통일교회 청년들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운전수 패들은 알아주거든요. 와일드하단 말이예요. 이래 가지고 남이 생각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또 멋진 생각들을 가끔 잘하거든요.

우리 청년들이 이 지방에서 저 지방으로 옮겨 가려면 반드시 트럭 운전수한테 손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름에는 다 태워 줍니다. 그때 '당신은 왜 내가 손든다고 태워 주느냐?' 하고 물어 보면 '하, 통일교회 청년들 참 수고한다. 내가 어디를 가나 노방전도하는 걸 보는데 자네들도 노방전도하는 패들이냐?'고 하면 '아,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이래가지고 상당히 지금 문제가 돼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것은 사회적인 환경이 벌써 그러한 클럽 활동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여러분도?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면 시간을 연기해 가지고 대구 전체를 전도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 작전대로 전도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또, 그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기의 맡은 바의 책임을 완수하고 발전시킨…. 또 이번에 선생님이 쭉 순회하면서 외국에 나가 선교사들을 많이 배치했습니다. 그 소문을 떡 듣고는 '불원한 장래에 일본에 있는 청년들이 반드시 외국에 나가야 되겠다. 외국 나가려면 실적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실적을 올려야 된다고 해 가지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다구요.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활동도 하고 있는 일본 식구들

우스운 얘기 하나 하지요. 통일교회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옛날에 그랬어요. 만약에 여기에, 저 산이 무슨 산인가요? 무슨 산? 응? 「팔공산」 팔공산인가? 선생님이 팔공산에 갔다 하면 옛날에는 그 산 맨 꼭대기에 가면 만났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무슨 산에 올라갔다' 할 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맨 꼭대기에 오면 만나게 돼 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가든지 그 지방에 전도가게 되면 제일 높은 산이 어디냐? 제일 높은 곳에 가서 기도를 한번 멋지게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그 청년이 전도 나가는 곳은 무한한 벌판이다 이거예요. 도시가 벌판 위에 있다 이거예요. 거기에 제일 높은 집은 어떤 집이냐? 4층집밖에 없어요. 4층집 꼭대기가 제일 높다 이겁니다. (웃음) 4층집 용마루가 제일 높거든요. 그러니 제일 높은 데 올라가 가지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해야 되기 때문에 올라가긴 올라가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 근처에서 사다리를 얻어 가지고 4층집에 덜렁덜렁 올라간 것입니다. 올라가 가지고는 말이예요. 그 꼭대기에 서 가지고 손을 들어 흔들면서 열을 내어 한바탕 기도를 한 거예요. 그다음에 나의 맹세를 외치고 '통일교회 만세' 를 불렀다구요. (웃음) 이렇게 되니까 그 동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구경거리 나왔다고 얼마나 놀라겠나요. 또 그 집에서는 이거 뭐 이상한 사람이 자기 집에 올라갔다고 (웃음) 전화해 가지고 경찰들을 불러왔네요. (웃음)

이래 가지고 한바탕 그랬지만 이 사람이 들을 게 뭐예요? 나중에 형사들이 쭉 들어 서더라나요. 그 뒤에 내려오니까 '이녀석, 너 이리와!가자!' 이거예요. 그 이튿날 형사대에게 붙들려 갔거든요. 붙들려 가 가지고 다 얘기하는 거예요. '너 왜 그랬느냐?' 그러니 그가 들이까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와서 남의 집 용마루에 올라갔지만, 그 집 기왓장 하나 깨뜨린 것 뭐 있어? 죄라면 그 집에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여기에 있는 시민이 복받고 일본나라가 잘되라고 기도한 것밖에 없다. (폭소) 그런 사람 잡아가란 법 있어?' 그랬다는 거예요.

이렇게 형사들과 청년들을 모아 놓고 하여튼 네 시간 동안 얘기하니까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구요. 경찰서를 여관으로 알고 들어가서 말이예요, 며칠 동안 그 사람들에게서 밥이니 무엇이니 잘 대접받고 거기에서 전도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발한 생각을 가지고 남이 하지 않는 놀음을 한다 이거예요. 그건 왜? 앞으로 외국 나가려면 일본에서 특수한 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녀석은 말이예요, 간판을 여기서…. 이만하다면 한쪽은 새파란 것을 딱 칠해 가지고 간판을 떡 붙여 놓고, 하나는 새까만 것으로 칠해 놓고 눈알만 딱 내놓고 바라보는 거예요. (웃음) 맨 처음 며칠 동안은 미치광이 나왔다고 말이예요, 언제나 아이들이 미치광이 따라다니고 야단해요. (웃음) 그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라고.

그렇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서 한 일주일쯤에 는 그 동네골목에 있는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전부 다 이 사람 모르는 아이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떡 해 놓고는, 그다음에 제일 중요한 거리에 가 가지고 그 아이들을 모아 놓고는 한바탕 다 벗어제끼고 동화로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한 곳, 두 곳, 한 일주일쯤 돌아다니면서 얘기해 놓으면 아이들이 가서 선전하기 참 좋다구요. '야, 엄마 아빠, 엊그제 이렇게 붙이고 다니던 그 사람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더니 오늘은 이런 저런 얘기하더라. 어머니 아버지의 말 잘 듣고 어떻게 지내야 된다고 했어요' 하고 그 어머니 아버지의 귀가 솔깃한 말들을 한바탕 해주는 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그 다음부터 북만 두드리고 가게 되면 아이들이 몰려옵니다. (웃음) 이렇게 되니 자기 어머니 아버지도 관심 있어 가지고 전부 다 그 울타리에 와서 듣는 거예요. 이렇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다보니 한 7, 80명쯤 되는 어머니 아버지까지 와 가지고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남이 흉보겠으면 흉보고 말겠으면 말라 이거예요. 자기의 소기의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별의별 기발한 일을 참 많이 했다 이거예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내가 상당히 통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걸 보면 한국이 일본 사람들한테 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면 이길 수 있는 자신들이 여러분들에게 농후합니까?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는 질 수 있는 소질이 풍부하더라 이거예요. (웃음) 여러분들은 어때요? 지지 않을 자신 있어요?

보라구요. 그 사람들은 지금 당장 외국 나간다고 하면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이 다 되어 있습니다. 작년 1년 동안 우리 통일교회가 수많은 종교계 가운데…. 일본 종교계에서 제일 큰 것이 창가학회입니다. 그다음에는 입정교성회 (立正校成會)입니다. 350만 되는 입정교성회가 있다구요. 그런데 지난해에 활동대원을 위해서 경비 지출을 제일 많이 한 곳이 어디냐 하면, 첫째가 창가학회이고 둘째가 통일교회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상당히 지금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의 지금 실정을 보면 앞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관찰해 볼 때, 통일교회 본부에 있는 여러분이 지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지게 되어 있다구요. 응? 안 질 자신 있어요? 자신이 없으면 졌지 별수 있어요?

선생님이 또 하는 말이 '선생님은 세계적인 선생님이 아닙니까? 세계주의적인 이념을 가지고 그걸 지도하는 책임을 짊어졌지요' 하고 물어 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세계적인 일을 해야 될 거 아니요?' 하면 '그렇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세계적인 일을 못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테요?'하고 물어 보면 아이쿠…. (웃음)

이렇게 간접적으로 쓰윽 물어 보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책임을 일본이 할 때는 선생님이 꼼짝할 수 없다구요. 꼼짝못하고 일본에 안 올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거짓말한 것입니다. 어때요, 선생님이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 되면 좋겠지요? 응? 문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에서 국가적인 제단을 꾸며야

그렇기 때문에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나니 내가 이번에 돌아오면서 생각한 것은…. 지금 우리 교회가 나가 있는 나라가 한 11개국이 됩니다, 현재는. 금년에는 이제 한 16개국쯤 되리라고 보고 있는데, 지금 몇 개 국어로 우리의 원리 말씀이 번역되어 있느냐 하면, 8개 국어입니다. 8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다구요. 여러분들은 그걸 지금 모르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돌아온 후에 40개국은 불원한 장래에 배치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여러분들, 거룩하신 여러분들이 책임 안 져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겁니다. 선생님이 책임 안지 겠다는 사람에게 책임지워 주겠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청년들 가운데 그런 청년들이 있으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왜? 없으니까 다행이지 있으면 곤란합니다. 왜, 곤란하냐?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 왕복 비행기를 타려면 국가에 달러가 없기 때문에, 그 달러를 그런 사람들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려면 반드시 여기서부터 왕복 비행기표와 재정 보증을 해준다는 서약서가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나가지를 못하게 되어 있다구요. 선생님이 금년에 외국에 간 것은 미국에서 전부 다 그걸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 거라구요. 한국단체 같으면 못 나가게 돼 있단 말이예요.

또, 한국에서 외국을 한번 나가려면 수속을 밟는 데 6개월 이상 걸려야 됩니다. 그러려면 매일같이 가서 살아야 돼요. 그런 것을 보면 외국나가는 입지조건이 참 불리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일본 같은 나라나 미국 같은 나라나 그 외의 나라들은 말이지요, 오늘 결정해서 '너 내일 영국 가라' 하면, 미국 사람은 영국 대사관에 가 가지고 '나 영국 가겠습니다' 하게 되면 그날로 비자가 나옵니다. 입국 허가를 낼 수 있다 이거예요. 오늘 결정해서 내일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도 그래요, 일본도. 그 사람들은 돈을 얼마든지, 달러를 몇만 불, 몇천만 불도 가져갈 수 있다는 거예요, 대번에. 그들은 경제적인 뒷받침도, 자력적인 경제적 기반도 되어 있는 동시에, 그 사회적인 권위와 국가의 권위를 온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활동하기 위해 외국을 출입하는 것은 자유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구요.

그래서 이번부터 선생님의 계획이 될 수 있는 대로 외국 사람들을 내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나가고 싶어요? 나가고 싶어요? 이봐요, 여러분의 눈들은 젊은 사람 눈인데 다 죽은 눈들이 되어 있다구요. 응? 여러분들도 가고 싶어요? 「……」 그러면 남들이 벌어 주는 것을 척 앉아서 받아 먹어야겠구만. (웃음)

그러면 무엇을 선생님이 생각하고 왔느냐 이거예요. 이 뜻은 말할 수 없이 귀한 뜻이요, 이 뜻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산다 이거예요. 우리 한민족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자리에 세우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이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의 기준은 그렇게 안 되어 있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의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가인 아벨 복귀역사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인적인 입장에서 나가서 전도해라 이거예요. 그리고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안 내보내더라도 아벨적인 입장에서 아벨 제단을 국가적 기반 위에서 닦아 나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저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그 국가를 구원하기 위함이거늘, 국가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벨적인 기준에 있어서 국가적 제단 기준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국가적 속죄의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외국에 나가서 전도하더라도 국내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아벨적 입장에서 국가적 제단을 꾸며 놓아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국가적이예요, 국가적. 한민족을 대표한 국가적 제단을 꾸며 놓아야 된다구요.

레위 족속과 같은 입장에 있는 한국 통일교회 식구들

제단을 꾸미기 위해서는 제사장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제사장 책임을 다하려면 제사장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제사장이 없어 가지고 제단을 꾸미면 안 된단 말입니다. 제사장이 있어야 돼요. 제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든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축복받은 족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레위 족속이예요, 레위 족속. 알겠어요? 레위 족속.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레위 족속이 아니면 안 된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떤 입장에 세워졌느냐? 레위 족속과 같은 입장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레위 족속은 어떠한 족속이냐? 그는 세상에 있어서 가진 것이 없는 족속입니다. 12지파들이 지파를 편성해가지고 땅을 분배받을 때 레위 족속이 분깃을 받았어요? 「못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못 받았다구요. 몸뚱이밖에는 없었습니다. 몸뚱이밖에 없었던 거예요. 자기의 소유물이란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레위 족속이란 족속은 자기의 소유의 분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유라 하면 어떤 것이냐? 성전이예요, 성전. 그들의 소유는 성전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전 가운데는 제단이 있어요, 제단. 그래서 제단이 있는 동시에 제단 위에 제물이 있어요. 제물을 제사에 바쳐 가지고 속죄적인 혜택을 백성 앞에 주고 난 후에 제물을 자기 분깃으로 취할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 우리 통일교회 자체는 레위 족속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야 됩니다. 가진 것 많아요, 여러분들은? 가진 것 많아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무엇이냐? 그런 입장에 섰다면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되어 가지고 성전을 가져야 돼요. 그리고 성전을 가진 후에는 제단을 가져야 됩니다. 또 제단을 예비해 놓으면 제물을 드려야 돼요. 제물을 드려야 된다 이거예요. 제물을 드리려면,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옛날에는 양과 소를 잡아서 제물을 바치게 했는데, 맨 나중에는 자기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삼아 바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는 것,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라 이거예요. 제일 귀한 제물이 뭐예요? 자기라는 거예요, 자기. 그러니 자기를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만일 제물을 바쳐 가지고 승리했더라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되지 못하고 제물이 되어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대제사장이 되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 제물을 바쳐야 돼요. 제물을 바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피를 흘려야 됩니다. 쪼개야 되고 희생해야 된다구요. 그게 원칙입니다. 희생해야 돼요.

이리하여 우리들이 어느 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이 민족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세움을 받을 수 있게 될 때는, 열두 이스라엘 지파는, 유대 백성은 이 레위 족속이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민족의 흥망이 좌우된다는 거예요. 제사장들이 부패하면 그 나라도 따라서 망하는 것이요, 제사장이 충성을 다하면 그 나라도 흥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가 그랬다구요.

한국 식구들에게는 제물의 자리에서 희생하는 것밖에 없어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들을 제물의 자리로 내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제물의 자리로 내보내야 되겠다 이거예요. 제물의 자리에서 희생시키는 것밖에 없습니다. 희생해야 된다 이거예요.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적 기준이…. 이 민족은 우리의 뜻과 우리의 이념과 같은 실질적인 행동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민족이 살 수 없다는 그런 날이 필시 온다는 것입니다. 오게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때가 되면 민족적인 제단은 자연적으로 이뤄진다 이 겁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민족적인 제단은 누구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느냐?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적 제단을 하나님 앞에 먼저 바쳐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받았다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서야 가인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 아벨에게 제사드리게 한 것은 아담을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깨져 나갔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가인 아벨을 세워 가지고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 말미암아,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음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복귀될 수 있는 기준에 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가인이 아벨을 모셨더라면 아담 가정이 복귀되어 들어갑니다. 그러면 가인이 아담을 모시기 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먼저 아벨적인 제단을 받아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신도로 말미암아 민족적 제단을 편성하여 하나님 앞에 바치게될 때 하나님이 먼저 민족의 기준을 받으시면, 바쳐 드린 그 기준으로 말미암아 가인이 굴복하여 탕감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였지요? 응? 「예」 때려죽였다 이거예요.

그러면 지금 나가 선교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가인적인 제단을 상징합니다. 아벨적 제단이 국가적 기준에서 바쳐짐을 당하게 될 때, 비로소 가인이 거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국가적인 기준에 있어서 하늘이 세운…. 그 기준에서 가인을 복귀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인은 누구로 말미암아 복귀되느냐? 아벨로 말미암아 복귀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복귀된 그때에 있어서 가인 기준을 아벨이 대신 책임지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다 닦아 놓은 기반 위에 여러분들은 이다음에 나가 가지고 전도해야 됩니다. 외국 사람만 가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한국 사람은 반드시 아벨적 기준을 세워야 된다구요.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노정을 거쳐 나가야 탕감복귀해 들어갑니다. 이런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 한국에 있는 여러분이 고생할 수밖에 없다구요.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체면과 위신을 세워 나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오늘 말씀한 제목이 '아버지와 자녀'입니다. 그러니만큼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자녀를 찾아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충성을 다짐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짐하는 그 기준을 완결짓기 위해서는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보다도 희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남보다도 희생을 많이 해야 된다구요. 거기서 비로소…. 그 기간이 얼마나 오래 됐느냐 이거예요. 충성하는 양이 크고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사람은 그 나라에 있어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고, 그것이 세계성을 띠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고생하는 몇십 배 몇억천만 배 더 수고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그를 아버지로 모신 이상 우리는 당연히 그와 같은 책임을 해야 됩니다. 옛날에 예수님도 그와 같은 사명을 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갔거든, 오늘날 우리들이 아무리 희생을 각오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가더라도 죽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이렇게 얼마든지 충성할 수 있고 효도할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가졌으므로 감사하면서 최후의 골고다의 길까지 갈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한국을 중심삼고 전세계에 퍼져 나가리라고 믿는 바입니다. 아시겠지요? 「예」 기도한번 하자구요.

기 도

아버지여, 창조 당시의 이상으로 세워서 바라보시던 인류 조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사랑도 못 하였던 슬펐던 당신의 심정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담 가정이 타락한 직후에 아버지의 슬펐던 마음을 저희들이 깨달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오게 된 것을 감사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아담이 되고 해와가 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슬픈 심정을 위로해 드려야 할 역사적인 죄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와 같은 자리에서 기도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노아를 중심삼고 섭리하시던 애달픈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이 위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를 중심삼고 역대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하면서, 당신 앞에 간곡히 요구하고 소망하던 그 뜻을 위하여 희생하면서 하늘 앞에 원한의 조건을 남기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탕감시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될, 과거 현재 미래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시어서 이들을 통하셔서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싸움터 위에 승리의 방패를 세우시옵고, 영광의 실적을 갖춰 당신이 친히 군림하시옵소서. 만세에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줄 아는 뭇자녀를 거느리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오늘 한반도를 중심삼은 당신의 섭리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사오나 이 민족은 아직까지 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허덕이고 있사오니, 이 민족의 미래를, 아버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갈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충성의 도가 아직까지 부족하였고, 하늘을 위하여 지성을 다하는 성의와 정성이 부족한 것을 다시 한 번 이 시간 회개치 않을 수 없사옵니다.

오랜 기간을 통하여 저희가 하늘의 명령을 들었사옵고, 하늘이 분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오나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함과 동시에 이제 우리들이 다시 한 번 내일의 미래를 대신하여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할 줄 아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경북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였사오니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그 마음에 불붙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남아진 싸움터에서 하늘을 대신하여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위신과 하늘의 체면을 세워 하늘의 천적 기반을 자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아무리 사탄의 권세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저희들은 이 원수들의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원수들의 조롱과 농락을 피해 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최후의 일념을 갖춰 하늘의 승리를 결할 수 있는, 그 싸움터를 내가 책임지고 내가 안고 출 수 있는, 스스로의 인격을 갖출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젊은 시대의 피끓는 이 마음과 몸을 아버지 앞에 바쳐 승리의 영광을 드높이 바쳐 드리는 데 도움이 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로 만들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을 모아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헤어졌던 인연 가운데서 만날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함과 동시에, 또 다시 뜻을 중심삼고 만났다가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후에 갈라져서, 각각 처처에 널려져서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사명을 위해 책임 다하는 그곳에, 아버지, 위로와 권고가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남아진 복귀의 영광의 한날이 저희를 맞이하기 위해서 저희 각 개개인을 부르고 있는 것을, 마음과 몸으로 듣고 그 길을 따라가기에 충성을 다짐하고 효성을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아진 시간을 아버지 앞에 맡기옵고, 남은 여생도 당신을 위하여 이미 각오하고 충성을 맹세한 몸들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최후의 승리의 권한을 차지하여 당신 앞에 영광의 세계를 돌려드릴 때까지,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지치지 말아 아버지의 자랑을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참다운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는 저희들을 자녀라고 부를 수 있는 참다운 아버지의 모습을 갖춰, 당신이 아들을 놓고는 살 수 없고, 당신이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용사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마음 마음에, 아버지, 불을 지르시어서 사망의 물결 가운데 휩쓸려 가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고 이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합니다.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보다도 아버지를 위해 충성하는 자녀가 필요할 때가 왔사옵니다. 그리하여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길을 닦아나갈 수 있는 눈물을 모아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시간이 멀지 아니하므로 헤어져야 할 시간을 맞이하오니 마음과 몸을 친히 주관하여 주옵소서. 내가 수고하고 고생할 때 당신이 보호해 주고 권고하듯이, 이들이 고생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이들을 지켜 주시옵고, 외로울 때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분부하신 명령과 더불어 그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하나의 힘을 가해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저희를 보호해 주고 저희를 지켜 주지 않으면 누구를 믿고 누구를 따라가오리까? 하늘만을 바라보고 하늘만을 위해서 수고해 나온 모든 기준이 저희 생애의 목적이 되고, 생활의 자극이 되고, 저희의 심정의 본산이 되시어서 저희로 말미암아 하늘 전체를 소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이 보내고 하늘이 세우신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남은 복귀의 터전을 따라 어차피 저희들은 생명을 각오하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수고의 길을 걸어온 당신의 아들딸들을 모아 놓고 또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권고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사정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심정을 갖고 저희들이 대하고, 이와 같은 명령을 또다시 결행하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이 초초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여기에 낙망하지 말고 도리어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책임을 짊어지고 하늘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늠름한 모습을 당신이 자랑하시어, 억천만 원수들이 그 앞에 자연굴복할 수 있는 승리의 방패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고 남아진 시간들이 당신의 때를 맞이하기에 급급할 수 있게끔 저희들이 개척자의 사명을 완결짓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겼사오니 남기신 복귀의 터전 위에 당신이 소망하신 뜻을 이루어 영광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가만가만 얘기해도 되겠구만. 들리지요? 「예」 내가 목이 쉬어서 여러분 앞에 말씀하는데 많은 실례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이해해 줘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반년 이상 공석에서 큰소리로 얘기해 보지 않다가 갑자기 이렇게 쭉 순회하면서 얘기를 하게 되니까, 또 방은 좁고 공기는 탁하고 사람은 많고 그런 자리에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자연히 목이 꽉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하는 사람도 거북하고 듣는 사람도 상당히 거북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양해하시고 마음으로 협조 좀 해줘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 협조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말씀하는 사람에 대해서 기운을 돋우어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졸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 가운데는 '통일교회 본부에서 선생님이 오셨다고 하니 한번 가 보자' 하고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사람이 다 모였을 거라구요. 구경삼아 오신 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이웃 동네의 어떤 아저씨가 오늘 한번 가 보자고 해서 모시고 온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오셨든간에….

말씀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중을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만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말씀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호흡이 하나되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호흡을 잘 맞춰 준다면 내가 없는 기운도 날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얘기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정 힘들면 중간에 그만둘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저께 대구에 가서 얘기하는데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얘기는 해야 되겠는 데 목은 꽉 잠겼지, 또 비는 오지, 우중에 대중은 서 있지, 이 한 시간을 위해 모처럼 수백리 길을 찾아온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지, 그래서 할 수 없이 악을 쓰며 얘기를 하다 보니까 목이 그때 더욱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아시고 이해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자, 노래 하나 하고 하자구요. 말씀을 몇 시간 할까요? 「세 시간」 세 시간! 왜? 세 시간 곱절로 여섯 시간쯤 하자구요. (웃음) 젊은 사람이 한 여섯 시간쯤 하자고 그러지, 말일망정 왜 세 시간 하지고 그래요? 청중을 보니 거의 젊은 사람입니다. 연로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얘기할 때 젊은 사람들이 많으면 젊은 사람 기분에 맞게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네들에게 조금 실례되는 말을 해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은 역시 그냥 두면 안 되거든. 한번 윽박지를 수도 있다구요. 처음 온 분네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하겠어요. 그거 이해해 줘야 됩니다. 처음 만나 가지고 얘기하는 데 있어서 젊은 분네들을 다루게 될 때는 새로운 무엇을 명령하고, 새로운 산고개를 넘게 하기 위해서는 소리를 질러 가지고 '안 가겠느냐?' 이럴 수도 있다구요. 그렇더라도 그거 큰 마음 갖고 이해해 주시기 바라요. 그러면 내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다 갖춰 가지고 이야기하려면 참 거북한 게 많다구요. 나이 많은 분들 이해하시라구요.

자, 그러면 노래 한번 불러 보자구요. 무슨 노래를 할까요? 애향가요? 애향가 불러 볼까요? 그럼 내가 한번 불러 보지요, 목이 쉬었을망정. 말씀하기 전에 애향가를 한번 불러 볼께요. 듣기 싫어도 한번 들어보세요.

조상들이 터를 닦은 이 좋은 산수

개척하자 한데 뭉쳐 지와 성으로 (같이 부름)

새역사의 깃발도 우릴 부른다

이 생명에 불을 달려 밝게 타 보자

아름다운 산과 바다야 정든 고향아

하나님이 가려 주신 만세의 낙토 (두 번 더 부름)

그러면 지금부터 말씀을 좀 해보자요. 제목을 말하라면 '소망의 조국의 슬픔'입니다. 그러한 제목으로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소망의 조국의 슬픔.

오늘 말씀 중에 조국이라는 말을 여러분이 듣게 될 때 '조국이 우리에게는 한국인데 한국에 대해서 얘기하려나?'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한국보다 더 큰 의미의 조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조국은 동반구에 있어서 여러 나라 가운데 각 민족이 사는 그 민족을 대표한 입장에서 말하는 조국인데, 오늘 말하는 조국이라는 것은 한국뿐이 아닙니다. 전세계 인류가 소망하는 조국을 말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상세계, 또 종교적인 명사를 빌어 말하면 천국, 그런 말이 되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얘기해 보자구요.

어찌하여 불행한 세상이 되었는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자타를 막론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 사회상 전체가 인생이 즐길 수 있는 사회제도가 되어 있지 못하고, 이 나라 전체가 자손 만대의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복지가 되어 있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 또 내 개체를 두고 볼 때 몸과 마음이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이 나라와, 더 나아가서는 이 지구성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군들, 그리고 그 가운데 살고 있는 개개인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고로 성인 현철들은 이것을 해결짓고 인생의 행복의 터전을 찾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노력을 해 나왔지만 숱한 역사를 지내고 난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중요한 숙제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삼자의 입장을 떠나서 내 개체를 두고 볼 때에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가 결과적으로 빚어진 현실인데 어찌하여 이와같은 결과의 세계가 되었느냐?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냐, 그러므로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존재는 선을 중심삼고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지어진 만유가, 그 가운데는 인간도 들어가지만 인간 전체가 행복하지 못하고 선한 입장에 서 있지 못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하여 이와 같은 결과의 세계를 만들어 놓게 되었느냐 하는 이 문제가 종교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요, 혹은 철학을 통하여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근본문제를 아직까지 파헤쳐 가지고 인생이 어찌하여 이렇게 됐는가 하는 것을 해결짓지 못한 채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단적으로 어찌하여 이렇게 됐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을 것은 틀림없다고 보는 거예요. 만일에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을 우리가 신임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는 장난꾸러기요, 우리 인간을 모독하는 것이요, 인간을 희생시키고 짓밟기 위해서…. 선이니 사랑이니 무엇이니 하는 존재로, 추앙의 대상으로 우리가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이런 결과의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면 필시 여기에는 하나님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곡절의 내용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과의 어떤 새로운 문제가 있어 가지고 하나님이 터치할래야 터치할 수 없는 그런 어떤 사연의 곡절이 여기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결과의 세계가 된 것은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오늘날 수많은 종교는 말하고 있습니다. 타락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의 세계가 되었지 만일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할 때 무목적인 창조물을 지을 수 없다 이거예요. 우리 인간은 지정의의 자체로 되어 있으니만큼 이와 같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역시 지정의의 본체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짓게 될 때 무목적인 존재로 지을 수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지었다면 오늘날 이와 같은 목적의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고 보다 고차적인 목적을 두고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서 부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도 부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느낄 수도 있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감사할 줄도 아는, 심정적인 문제나 사정적인 문제나 소망적인 일념에 있어서, 어느 환경에 처하든지간에 하나님과 전체적인 분야에 있어서 화할 수 있게끔 짓지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게끔 하나님이 짓지 않는다는 거예요.

따라서 창조목적을 중심삼고 인간을 창조했다면 그 창조목적이 어찌하여 오늘날 우리들과는 관계없이 이런 비참한 결과의 입장에 서 있느냐?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성경에서는 아담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했다 이겁니다.

인간 구원의 방법

인간이 이처럼 타락했다는 결과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하늘이 사랑이고, 하늘이 우리 인류를 긍휼히 여긴다는 그런 마음이 있단다면 반드시 이 타락한 인간을 그냥 둬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인간을 다시 어떤 방법을 통해서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병이 나고 고장이 났으니 이것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하늘은 사랑이 아니요, 하늘은 최고의 선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타락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종교라는 이런 테두리를 세워 가지고, 오늘날 수많은 인류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의 선의 목적세계, 하나님이 목표하신 최후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수많은 인류의 배후에서 인간들이 아나 모르나 하늘은 끊임없는 역사적인 동반자가 되어 가지고 섭리해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역사가 자기 멋대로 움직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면 기필코 하나님의 섭리와 어떤 일정한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역사적인 발전을 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결론을 우리가 맺을 수 있다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막연하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서 인류를 구원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구체적인 하나님이요, 실질적인 하나님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실질적인 인간을 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은 모르는 가운데 오랜 세월을 두고 인류를 인도해 온것입니다. 사람 뒤를 따라 나가면서 인간들이 악한 세상에서 지치게 될때 비로소, 그 세상을 버리고 돌아서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인간세상에서 낙오자가 된 그런 사람들을 취해 가지고 새로운 방향을 가르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 그 환경에서 전폭적으로 맞아들여지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도리어 이 세상에서 이탈해 가지고 세상을 비관하고 세상을 박차고 인생의 참모습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무엇을 찾아 헤매는 그런 길에 나서게 될 때, 하늘은 이들을 불러 새로운 방향을 거쳐 가지고 역사적인 섭리를 해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를 수천년 동안 지금까지 해 나왔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왜 하늘은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면, 만일에 악한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을 일시에 추방해 버리고 한꺼번에 쓱싹해 버리면 될 텐데 어찌하여 그렇게 할 수 없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오늘날 우리가 태어나기를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악을 중심삼고, 혈통적으로 악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악의 뿌리에 접붙여져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걸 갑자기 따다가 옮긴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이와 같이 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늘의 새로운 뿌리로부터, 새로운 줄기로부터 새로운 가지를 무성하게 해 놓고, 여기에 참다운 인간의 견본, 참다운 인간의 모형, 그 나무와 같은 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그것을 잘라 버리고 이 가지를 갖다가 접붙이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타락한 세상과 하늘이 찾아서 오는 섭리의 역사의 배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라는 것은 이땅 위에서 종교의 길을 가기 위해 먼저 있던 사회제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자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종교는 없습니다. 부정에서 출발했다는 거예요. 긍정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 부정으로 출발했다는 거예요. 불교는 산중수도를 하고 기독교도 역시 사회생활에서 이탈되는, 물론 사회제도 안에서 살지만 가정을 못 가지는 이런 독신생활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금욕생활을 하는 동시에 그다음에는 모든 혈기를 죽여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좋아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전부 다 부정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그건 뿌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그냥 둬뒀다가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느 한때에 하늘이 기른 새로운 뿌리로부터 새로운 가지, 새로운 잎이 무성한 나무를 만들어 놓고, 이것의 밑을 잘라 버리고 접붙이는 거예요. 접붙이면 어떻게 돼요? 그래서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참감람나무요, 너희는 돌감람나무라고 하셨습니다. 돌감람나무 열매는 까치밥밖에 못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역사의 기원이 어떻게 됐느냐? 하나님이 동기가 되고 하나님이 뿌리가 되어 가지고, 우리 인류세계가 그 직계를 거쳐오면서 그것이 줄기가 되고 30억 인류가 하나님이 심어 놓은 나무와 같이 되었더라면, 오늘날 종교니 무슨 구원이니 기도니 하는 것은 다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 자체 사는 것이 종교예요. 생활적인 종교라구요. 종교라는 명사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무슨 기도가 필요하냐 말이예요. 또, 구원이 뭐가필요해요? 구주가 우리에게 왜 필요해요? 구원이 필요 없는 완전한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이거예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고, 구주가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있습니다. 복은 무슨 복이예요? 세상에 뭐 무슨 밭뙈기나 주고 돈을 주는 것이 복이예요? 인생의 본연의 자기 가치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제일 가치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뿌리가 그릇됐으니 뿌리를 다시 한 번 뽑아서 나를 개조해서 딴 뿌리로 만들어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잘라 버리고 접을 붙여서 나를 새로운 나무로 만들어 주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 그거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실례지만 오늘 처음 온 사람 한번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 손들어 보시라구요. 내려요. 그러니까 이 얘기를 안 할 수 없구만.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된 인간

우리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타락한 것을 부정 못 한다는 거예요. 어느 누가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들춰 가지고 쭉 결론을 내려 주면 꼼짝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했다 이거예요.

그러면 누가 타락했느냐 이거예요. 우리 인류의 맨 종지조부가 타락했다 이겁니다. 그것을 말하기를 박씨라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명사는 아무렇게나 불러도.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나 동양 사람들은 기독교 하면….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하여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라구요. 인류 조상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둘이 있을 수가 있어요? 맨위 할아버지 할머니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그 자리에서 결혼 성례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부부가 돼 가지고 애기를 낳기 시작했습니다. 주인 없는 거와 같다 이거예요. 주인 없는 딸들이 됐고 아들이 됐다는 거예요. 만일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성숙했더라면 하나님이 '야, 아담 해와야, 이제 너희들이 그만큼 컸으니 이제 와라' 이렇게 불러 모아 놓고 쌍수를 들어 축복을….

천지만물은 이 아들딸들을 위해 지은 것이기 때문에 만유는 이 아들딸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당신이 소망의 한날을 바랐던 것은 이 아들딸에게 축복을 해줘 가지고 이 아들딸이 즐겁게 잘사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겁니다. 또, 이 아들딸에게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는 거와 같이 사랑하는 맛을 알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놓기 위해서 아들딸을 낳으라는 거예요. 아들딸을 보게되면 참 곱거든요.

세상의 타락한 부모들도 '너 아들딸들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그건 왜냐 하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 뼛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심정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었던 거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체휼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아담 해와 자신에게도 역시 자녀를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이렇게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자료로 줬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시조가 하나님이 공인하는 자리에서 성례식을 올려 가지고 거기에서 자손을 번식하여 오늘날과 같은 30억 인류가 되었더라면 전부가 천국가정이 됐을 거라구요. 지옥이 왜 생겨나요? 지옥은 쓰레기통이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생긴 쓰레기통이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바라시던 인류의 참다운 조상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던 참다운 조상의 모습을 못 봤기 때문에 하나님이 소망하던 참다운 형제의 모습도 못봤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의 모습을 못 봤으니 씨족을 못 봤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씨족을 못 봤으니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민족을 못 봤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민족을 못 봤으니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이 땅 위에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없으니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인류가 될 수 없고 세계가 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전부 다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심판을 하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지었던 것이니 타락되었을망정 그 원칙 법도만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따라서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을 다시 끌어올려야 됩니다.

인간은 종의 자리 이하의 가치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도 못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으쓱하면서 서울 명동 백화점 뭐 사장이니 무슨…. 뭘하는 사람인지 무슨 사장인지 난 모르겠다구요. 배통을 떡내밀고 사장이라고 암만 큰소리해도 전부 다 '네 조상이 누구냐?' 하면 쌍놈이다 이거예요. 쌍놈이 조상이라구요. 미안합니다. 사실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요? 조상을 들춰 보면 전부 다 쌍놈입니다. 쌍놈인데 무슨 쌍놈이냐? 하늘을 배반한 역적패의 아들딸로 태어났다 이거예요. 이렇게 원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만일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직계 아버지예요. 하나님이 직계 아버지가 되는 거라구요. 성경에 보면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들도 믿어 가지고 구원받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하지 않았을 때의 아담 그 자체는 무엇이 되었겠어요? 성전이 됐겠어요, 못 됐겠어요? 대답을 해보세요. 타락한 우리들도 구원받으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여 우리가 성전이 된다고 성경에 말씀했거든, 타락하지 않고 아담이 완성하였더라면 그 몸뚱이가 성전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될 수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려고 하셨느냐 이거예요.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 사실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조금만 연구해 보고 체험해 보면 대번에 안다 이겁니다. 아담은 무엇이냐 이거예요, 아담이 만물을 주관하려면 만물의 모든 사연을 알아야 됩니다. 그걸 몰라 가지고 어떻게 주관하겠어요? 만물의 사연을 아는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입니다. 자기가 창조하고 재단해 가지고 전부 다 설계해 가지고 지은 사람이 운전을 할 줄 알지, 아무것도 모르는 두루뭉수리가 어떻게 운전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마찬가지예요.

따라서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지능과 지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 지능과 지혜는 누가 갖고 있느냐?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은 무엇이 될 것이었느냐?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말이예요. 몸을 쓴 실체 하나님이 되었을 겁니다. 그거 똑똑히 아시라구요.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뚱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이 몸뚱이가 하나님의 몸뚱이라구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임재해 가지고 실체의…. 하나님의 몸뚱이 부부가 무엇이예요? 아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부부예요. 하나님의 부부라는 거예요.

그런 말 처음 듣지요? 처음 듣지만 사실입니다. 나는 남 모르는 이런걸 알아 가지고 얘기하면서 수십 년 동안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타락은 무엇이냐? 아담 해와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려면 아담 해와가 서로서로 성숙해가지고 상대 될 수 있는 시기, 성숙기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부부는 뭘 갖게 되느냐 하면….

오늘 기독교인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무지한 말입니다. 그런 무지한 말이 어디 있느냐 말이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해산하는 거예요? 동물들도 타락했기 때문에 전부 다 해산하는 구만. 그것은 본래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복귀 해산을 두고 말하는 거예요. 죽은 자식을 낳았으니 다시 살릴 수 있는…. 다시 배 안에 들여 놓았다가 낳아야 된다 이겁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중생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나오는 거예요. 왜 두 번씩 낳아야 되느냐 이거예요. 죽은 자식을 낳았으니 다시 한 번 낳아야 된다 이 겁니다.

이러한 입장에 아담이 서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직계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직계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자식이 자기 부모에 대해서 '엄마 아빠' 하고 부를 때 '아이구, 듣기싫어! 나보고 엄마라고 하지 마라, 아빠라고 하지 마라' 한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안 될 수 있어요? 그 자식에게 아무리 욕을 하면서 권세를 가지고 모가지에 칼을 갖다 대고 제 엄마 아빠가 아니다' 하고 훈계한다고 했댔자 그 마음속에 알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정시킬 수 없어요. 그럴 수 있는 무슨 교육법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하물며 타락한 세상의 자식도 그렇거늘 만일에 하나님의 직계 아들로 태어났다 할진대는 그 아들을 누가 부정하느냐 이거예요. 사탄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악신 같은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여러분이 거룩한 존재라구요.

하나님이 뿌리가 되고 아담이 줄기가 되고 여러분이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 가지고 하나의 나무와 같이 새에덴의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가정이 종족이 되고, 종족이 민족이 되고, 민족이 국가가 되고, 국가가 세계가 되어 온천하를 정복할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아직까지 미성년 시대에 있다는 겁니다. 16, 17, 18세 때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 그거 모르겠으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라구요.

혈통적으로 잘못된 것이 타락

끝날이 되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세계악을 조성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이거예요. 뭐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데 선악과가 과일일 게 뭐예요? 자기 아버지가 과일 따먹은 게 손자 수천 만 대의 손자에게 무슨 죄가 되느냐 말입니다. 입으로 들어갔다가 한번 나가면 그만인데 혈통에 무슨 죄가 돼요? 하나님이 임재하실 성전에 사탄이가 들어갔다 이거예요. 천사장이 들어갔다 이겁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를 이루어 번식해 나왔다는 겁니다. 사탄이가 뭔지 알아요? 하나님 앞에 간부(姦夫)입니다. 간부 알아요? 무슨 회사 간부가 아닙니다. 거 장년들은 아실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몰라도 괜찮아요. 정 모르겠으면 사전을 찾아보라구요.

자, 그러니 이 사탄을 하늘이 용서할 수 있어요? 사탄이 어떤 것이냐? 우리가 아버지를 모셔 놓고 영원한 천국을 건설하여, 영원무궁한 행복의 세계를 이루어 가지고 그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품겨 영원 만세토록 살 수 있는 천국 백성으로서, 천국의 아들딸로서 태어나야할 것이었는데 사탄이가 들어와서 겁탈해 가지고 이 모양으로 만들어왔다는 거예요.

혈통적으로 곡절이 맺혔기 때문에 6천 년 걸리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다 복귀한다는 겁니다, 능력이 많은 하나님이. 혈통적으로 이것이 고질이 되었으니 이놈을 한꺼번에 다 뽑으면 죽어 버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6천 년 걸려 나온 거라구요. 뭐 선악과 따먹고 타락했다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들은 핏줄을 잘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너희는 너희 아버지의…. 뭐라고 그랬어요? 너희 아버지의…. 너희는 너희 아버지의 욕심을 행하는도다…. 「마귀에게서 났으니… 」 응. 한번 읽어 보라구요. 요한복음 8장44절 말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가 행하고자 하는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는구나」 그렇습니다. 그 마귀가 우리 아버지라구요. 우리 아버지예요. 섭섭하지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야 할 텐데 마귀가 우리 아버지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직계 자녀의 관계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에 혈통이 다르니 양자의 모양으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라고도 못 부릅니다. 긍휼을 바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니 양자의 자리밖에 못 나간다 이겁니다. 우리는 혈통이 다릅니다. 핏줄이 다르다구요, 핏줄이. 양자는 직접 상속을 받지 못합니다.

상속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래 천리 법도는 장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상속시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누구 새끼를 장자로 낳아 놓았느냐 하면 사탄 새끼를 낳아 놓았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역사를 도면 구원섭리역사는 차자를 중심한 역사였습니다. 차자의 역사입니다, 차자의 역사. 이걸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차자를 세워서 하늘은 찾아 나오는 거예요. 왜? 장자는 사탄의 핏줄을 직계로 받은 자니 하늘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그보다는 밑에 있는 자식들을 빼앗아 오는 거예요. 장자의 기업을 차자를 보내 빼앗는 것입니다. 빼앗는 데는 강제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조건을 세워 가지고 '예, 합니다' 이래 가지고 도장을 찍게 해서….

구원섭리역사는 차자를 중심한 역사

야곱을 보면 간사하지요. 형님 에서가 사냥 갔다 와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어 팥죽을 쑤는 동생한테 가서 '야곱아, 내 사냥 갔다 왔는 데 팥죽 좀 주려마' 했는데, '안 됩니다' 했어요.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나에게 장자의 기업을 주겠습니까, 안 주겠습니까' 이랬어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기업을 팔겠다는 약속을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이겁니다. 이런 멍청이 같은 장자가 그게 귀한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걸,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는 것이 천하의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노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얼마만큼 위대하시고 자기 조상들이 축복받은 것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선조들이 축복받은 그 전통적인 가치가 얼마나 무한한 가치인가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형님쯤은 문제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형님은 가만 보니 축복이라는 조건을 생각지도 않으니까 사냥에서 돌아온 후에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산 것입니다. 그 녀석 거 빼앗길 만하지. 그렇지만 야곱은 심정으로 하늘을 추앙하면서 대하게 되니…. 그렇게 해서 빼앗았는데 하늘은 그것을 축복해 줬습니다. 빼앗았는데 왜 가만두었습니까?

오늘날 4천 년 역사를 두고 보면, 예수 오기 전의 수많은 인류는 전부 다 거짓 자녀들입니다. 양자의 수속을 밟아 가지고야 양자도 될 수 있는 패들입니다. 이 양자가 수속을 밟으려니 수속을 밟을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자식을 아직까지 입적 시키지 않았는데 양자를 입적시킬 수있어요? 천도가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들이 아직까지 하늘나라에 입적되지 않았는데 양자를 입적시킬 법이 있어요?

그래서 하늘은 이 땅 위의 인간을 그냥 전부 다 망하라고 내버려둘 수 없고, 구원해야 하는 것이 본연의…. '본래 내가 지은 아들딸들이 되어야 나와 더불어 일체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내 이념 세계에서 내 사랑을 받고 살 수 있는 자녀가 될 것인데, 어찌 어찌하여 부모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런 곡절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죄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저런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것은 지은 내 책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하여, 구원하시기 위하여 누굴 보냈느냐? 차자의 자리를 거쳐 가지고 상속할 수 있는 길을 닦게 하기 위해서 독생자 한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그는 천국국적의 상속을 처음으로 받아 가지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도가 그렇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여기까지 아시겠어요? 처음 오신 분들 잘 들으시라구요.

옛날에는 내가 이런 얘기를 안 했습니다. 기성교인들이 와서 듣고는 '아이고! 세상에! 우리 목사님이 가르쳐 주는 것하고…. 전부 다 이단이구만' 합니다. 이단이 뭐예요? 누가 참단이예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 입니다. 실험을 다 해보고 들이 맞춰 보고 틀어 보고 밝혀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느냐? 이제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왜? 물어 보자구요. 왜 독생자라는 아들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 위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이거예요. 사랑의 하나님은 왜 독생자라는 명사를 걸고 예수님을 보내야 되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가지고 종에서부터 끌어올리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은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 전부 다 사탄의 종자다 이거예요. 아직까지 하나님이 공인한 올바른, 하나님의 어인(御印)을 찍어 인정한 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잘못 태어났다 이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악한 세상이 되었으니 하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선민을…. 그래서 선민사상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뺄 수 있는 민족을 만들자 이거예요. 구별하자 이거예요. 선민사상이 역사상에 나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있다는 걸 부정 못 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지도 방법

이스라엘 민족이 어찌하여 선민의 기업을 갖고 나왔느뇨? 이런 역사적인 사망의 세상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한 사람을 빼 가지고, 구별시켜 가지고, 이 세상을 부정시켜 가지고 여기에서 이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대의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노아 할아버지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했는데 강가나 해변가에 방주를 짓게 하면 얼마나 멋지겠나 이거예요. 그러면 누구든지 다 공인할 겁니다. '그 할아버지 참 큰 배를 지을 모양이군. 뭘하는 지는 모르지만 말이지' 이럴 거라구요. 그러나 하나님은 억지로 역설적인 방법으로 지도합니다.

저 아라랏산 꼭대기에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고 하면 그거 믿겠어요, 여러분들? 저건 미치광이나 정신 빠진 녀석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반대적인 입장에서 명령하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곡절이 있었느냐? 세상과 백 퍼센트 반대의 길을 길을 가려니…. 사람이라는 종자는, 이 천지지간의 모든 종자는 전부 다 부정할 수 있는 자리를 빨리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빨리 만들어 놓아야 빨리 해결된다는 겁니다. 세상 만사가 경계선을 넘어 가지고 딴 나라, 하나님만이 간섭하실 수 있는 경계선을 만들려니 그 방법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 120년 동안 어떠했겠느냐?

노아의 부인이 어떻게 했겠어요? '아 우리 영감, 저 아라랏산 꼭대기에 배 만들어서 이 다음에 고기잡이를….' 그랬을 것 같아요? '어, 하나님이 며칠 동안 물심판 하실까?' 뭐 부처 (夫妻) 끼리니까 그런 얘기 했을는지 몰라. 그러나 '저놈의 영감이, 저거 집안 망하려니 별의별 놀음 한다'라고 말했을 거예요. 무슨 조롱을 안 했겠어요? 가만 생각해보라구요. 부인들. 여러분 남편이 120년 동안 까뀌를 메고 나무 토막을 메고 아라랏산 꼭대기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올라가서…. 금이 생겨요, 뭐가 생겨요? 120년 동안 그랬다면 밥을 줄 수 있는 부인들 계셔요? 뭐 10년도 못 간다구요. 열두 달도 못 갈 거라구요, 한국 부인들은.

나는 이번에 중동 지역을 돌면서 '야, 여기가 사막 지대로구만. 옛날 노아 할아버지는 불쌍한 자리에서…. 어디에서 나무를 구해다가 배를 만들었노?' 이런 생각 했다구요. 이것은 자연적으로 세상을 부정시키기 위한, 격리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하늘의 작전인 것입니다. 완전히 격리해야 됩니다, 누구 한 사람 편 되는 사람없이. 그래서 자기 부인도 반대했다는 거예요.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말입니다. 저놈의 늙은이가 죽어야 우리 집안이 되겠다는 거예요. 돈이 나올 것 같은 건 다 팔아 가지고 했다는 거예요. 그걸 120년 동안한 거라구요. 수많은 사람들은 전부 다, 눈 갖고 귀 갖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전부 다 반대하지 않는 녀석이 없게끔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완전섭리다,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다 이거예요.

이 노아가 120년 동안 고생만 하고 참소받고 수고했는데, 그 분하고 원통한 것을 복수하려면 이 세계 인류를 열 번 쳐죽여도 사탄세계는 꼼짝못할 그런 조건이 생겼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같이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민권에 이바지해 온 선조들은 전부 다 역설적인 그런 생활환경을 취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겁니다.

아브라함을 보라구요. 우상 장사의 아들로서 잘살고 있었습니다. 뭐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돈을 쓰려면 돈이 없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호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는데 '야 아브라함아,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방의 국경을 몇 개씩 넘어 애급까지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뭘했는지 알아요? 집시의 무리, 유랑민이 된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나라의 백성이었고, 어머니 혹은 자기 가족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들로서 살았지만 홀연히 하늘로부터 명령을 받아 가지고 행랑 보따리를 챙겨 천리만리 방랑길을 자기의 소망의 길로 알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길을 떠났던 겁니다.

그거 어떻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낙망을 하려면 천 번 낙망할 수 있는 것이요, 탄식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을 한다면 하나님도 원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왜 이렇게 사막지대를 거치게 합니까?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뭐 사랑의 하나님이야? 하나님은 미쳤어'라고 하면서 원망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몰랐다는 겁니다. 선조들은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건 완전히 분별하기 위해서였다 이겁니다. 아시겠어요?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 선한 입장에 서야 하늘이 주관하셔

모세도 보라구요. 바로궁중에서 호화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고역에서 신음하는 걸 바라보게 될 때에 민족을 향하여 눈을 부릅뜬 모세는 궁전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호화스러운 생활환경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인데 선민이 어찌 원수들 앞에 능욕을 당하며 이렇게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해야하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분심이 동하게 될 때 그는 당당코 하늘편에 서 가지고 애급인을 쳐 죽였다 이겁니다. 살인 강도지요. 그게 살인 강도 아니예요? 그건 법적 치리를 받아야 할 것인데…. 그 마음 그 태도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도 사랑하니까….

의분심에 불탄 모세는 그렇게 해서 도망간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 도망가 가지고 40년 동안 목자 생활을 한 것입니다. 목자 생활을 40년동안이나 했다 이거예요. 옛날 생각이 나면, 그때 자기가 애급에서 쳐죽이던 그 충절의 마음,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서 애급백성을 쳐죽이고 하늘의 민족을 구하겠다고 불타던 마음, 하늘을 위하여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선민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된다고 심정적으로 결의했던 그 마음은 광야에서 양떼를 끌고 다녀도 이 모세의 마음에는 단하나…. 양떼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끌고 나와 저녁에 우리에 들여놓을 적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길러야 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알았습니다. 그 생활은 진지한 생활이요, 애국자의 생활입니다. 하늘을 위하여 제사장의 생활을 대신했기 때문에 40년 기한이 찼을 때 하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지도할 대표자의 입장에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거라구요.

또, 세례 요한을 보라구요. 세례 요한은 광야에 나가 가지고 메뚜기니 석청이니 하는 걸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살림살이를 했어요? 세례요한 어머니 아버지의 기사가 성경에 나옵디까? 세상에 이거 해괴한…. 좀 취급하기 곤란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이래 가지고 광야에서 30년 생애를 중심삼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다 나와 가지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쳐 댔습니다. 그거 누가 믿어 줘요?

왜 이렇게 했느냐? 격리시키지 않으면 하늘이 이 땅 위에 발판을 닦지 못한다 이겁니다. 만일에 완전 격리하지 않은 사람을 갖다 놓으면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하는 겁니다. 당신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참되게 구별된 선한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고는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고 놀던 그 찌꺼기, 내가 쓰던 그 찌꺼기…. 찌꺼기란 말이 무엇인가? 그거 뭐예요? 찌꺼기가 뭔지 알아요? 뭐 인간 퇴물…. 하늘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나는 이제 손 뗍니다. 나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그 기준을 결정지을 때까지는 하늘은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허락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도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건 나중에 얘기할께요. 이래 가지고 앞으로 급속도로 최고의 유행의 자리까지 종교가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세계 유행은 종교인들이 전부 다 일으킬 수 있는 때가 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그렇게 할지도 모르지요.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도, 사탄의 혈연적인 인연을 통하여서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도 인간의 본심, 참된 선에 속한 본심에게 사탄도 주관 받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세상에서 죄지은 사람도 그 조건에 딱 걸리면 법조문의 조건을 밟을 수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천도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선에 속한 기준이라는 것은 사탄도 밟고 올라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천지의 중심이라는 것을 사탄도 공인한다는 것입니다.

타락인간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복음 중의 복음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했기 때문에 누구의 후손으로 태어났느냐? 사탄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이가 내 아들딸이라고 사랑해 주는 날에는 사람들이 전부 다 본심 작용에 의해서 하늘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자동적으로 말이예요. 알겠어요? 자동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탄이가 혈연적인 인연을 통해서는 인간과 자식과 같은 관계를 갖고 있지만 오늘날 인간을 자식과 같이 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대해 주면….

봄이 되어 가지고 봄볕을 맞이하고, 화창한 기류가 찾아오면 모든 만물은 싹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태양빛이 비쳐 오면 모든 초목은 방향을 돌려 햇빛을 따라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본심에는 하늘을 향하여 따라가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사탄이가 사람을 자기 아들로 취급해 가지고 사랑하게 되면 그냥 다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느냐? 강제로 유혹한다는 겁니다, 강제로. 헙박 공갈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사탄이의 종도 못 된 자리에서 지금까지 유린당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인류 앞에 하늘은 어떻게 찾아오느냐? 하나님의 종의 종의 길을 터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왔다 간 선지선열들은 인류에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종의 법도를 가르쳐 주는 길을 거쳐왔던 것입니다. 역사가 다르고 혹은 동서고금의 문화가 다르니만큼 사회환경과 그 지역적인 환경에 알맞은 종교를 세워서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그런 인연 가운데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지금까지 서서히 움직여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문화사를 공부해 보라구요. 문화사의 배후에는 전부 다 종교가 있었습니다.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문화사가 발전되어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세계에 있어서 사탄의 종도 못 되는 입장에서 유린당하던, 이 원수의 농락 밑에 있던 우리 인류에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 앞에 종이 될 수 있는 길을 허락해 줬다는 것이 복음이라면 얼마나 복음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선민을 세운 목적

그러면 선민은 왜 세웠느냐? 선민을 세운 것은 선민 그것만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재료삼고 비료삼아서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요걸 이스라엘 민족이 몰랐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을 고생시킨 것은 아브라함 하나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랴함의 뜻을 따르는 수많은 민족 앞에, 수많은 인류 앞에 복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우리 선조들은 몰랐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선민을 택한 것은 이스라엘 선민 자체에게만 복 주기 위해서인 줄 알았는데 하늘 뜻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만민을 구속하기 위해서 세웠던 것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길을 열어 놓아야, 선민적인 종의 기준이 먼저 결정돼야만 그다음에 방계적인 기준이 그 뒤를 따라 가지고 종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에서부터 신약시대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 형태를 갖출 수 있는 이런 권내에 올라온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를 국가 형태 기준이 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중심삼고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사탄세계가 한 국가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을 배반하고 있으니 한 국가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국가가 문제니 하늘은 수천 년 동안, 4천 년 동안 수고한 터전 위에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하여 사상적인 지도 이념에 뒷받침돼 있는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메시아를 보내 가지고, 거기서 왕권을 복귀해야 된다 이겁니다, 왕권을. 만왕의 왕이 돼야 된다 이거예요. 만일에 예수가 죽지 않았다면, 죽은 예수가 로마에 들어가 가지고 4백 년 만에 로마를 전부 다 정복했으니 만약 죽지 않고 살았다면 40년이면 천하를 점령한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는 성경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제1 이스라엘을 세워 가지고 그 이스라엘을 세운 가운데…. 본래의 아담은 무엇이 되어야 되느냐? 우리 인류의 조상인 동시에 가장도 되고, 족장도 되고, 민족장도 되고, 그 나라의 왕도 된다 이겁니다. 이 세계는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무슨 주의 국가냐? 무슨 주의세계예요? 아담주의 세계입니다. 그 주의는 뭐냐? 하나님주의입니다. 이렇게 될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갈래갈래 찢겨졌다 이겁니다. 이래서 아담이 파괴시켜 놓은 것을 다시…. 구멍이 뻥뻥 뚫어졌으니 그걸 고쳐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구멍이 뻥 뚫어졌다 이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독생자로 오신 것입니다. 4천 년 동안 수두룩하게, 많은 인류가 번성됐으나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는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뭐냐? 단계로 보면, 외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종의 기준에 있고 유대교단은 양자의 기준에 있다는 겁니다. 그거 가인 아벨 법칙으로 보면 알 거예요, 그래 가지고 요걸 탕감복귀하면 어떻게 되느냐? 예수가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무슨 아버지?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선한 부모로 출발을 할것이었는데…. 4천 년 만에 비로소 예수가 와 가지고 이스라엘을 편성한 그 국가권 위에 아벨로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세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걸 복귀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교단이 합해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서 굴복시켜야 아담을 찾던 거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거기서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직계 아들딸들을 낳아야 돼요. 그랬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예? 예수의 직계 아들딸을 낳았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이런 말 하면 기성교회 목사들은 나가자빠지지요. 나가자빠지든 뭐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사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 잘 들어 보면 여러분들 기독교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겁니다. 처음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그것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얼른 결론을 지을 건데…. 그래서 이 천지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부모로 오셨던 구세주 예수

그러면 구주로 오시는데 어떤 구주로 오시겠어요? 하나님의 종의 구주로?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자구요. 구주로 보내 주신다면 어떤 구주로?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이 사랑이시라면 당신은 어떤 구주로 보내 주겠소'라고 문의해 보라구요.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종 구주로 보내 준다면 나는 싫소. 그럼 양자격으로 보내 주겠소? 나는 싫어. 그럼 뭐? 형제 자격으로서의 구주? 난 싫어. 아들 자격으로서? 그것도 난 싫다는 거예요. 그럼 무엇? 우리의 아버지 자격으로 오시는 구주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인류는 부모 구주를 원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들로 오면 형제밖에 더 돼요? 형제가 부모같이 사랑해 주나요? 구해 줘야 돼요. 그런데 만일 물에 빠진 녀석을 동생이 구해 줬으면, 구해 줘서 살아났으면 '됐다 이젠!' 그러고 말 겁니다. 아버지 구주, 부모 구주, 이걸 보내 주는 게 하나님의 제일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이 땅 위에 보내 가지고 뭘하려고 했느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합해서 받들었다면 예수는 아버지의 자리에, 인류의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본래 아담이 창조된 직후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였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죽어 버렸기 때문에 독생자 그 본래의 기준을 계승하여 가지고 축복받음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 못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앞에 예수는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아들의 사명을 갖고 왔는데, 이 땅 위의 그 판도가, 환경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국가기준만 됐더라면 예수는 뭐가 되느냐? 인류의 참다운 조상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조상의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아들딸들이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가 어떻게 되느냐? 양자가 되려면 아버지가 있어야지요. 부모가 나와야 된다구요. 예수가 형님의 자격 가지고 양자 삼을 수 있나? 이게 그렇게 안 되어 있다 이겁니다. 예수는 아들의 사명을 완결지어 놓고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음으로 말미암아 양자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영계에 가면 베드로도 만나요. 나만 만나면 쩔쩔맨다 말이야, 그런 말 하면 이단 패들이라고…. 이해 안 돼도 들어 두라구요, 거짓말은 아니니까.

자, 우리 젊은 사람들, 알겠어요? 「예」 예수가 누구로 왔느냐 하면 아버지 구주로 왔다 이거예요. 내가 물 가운데 빠져 죽게 됐다면 구해주는 데는 같은 값이면 누가 구해 주면 좋겠어요? 부모가 구해 주는 것이 좋지요. 타락을 누가 시켰어요? 타락을 누가 시켰느냐구요. 부모가 시켰습니다. 부모가 타락시 켰으니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잃어버린 걸 찾으려면 잃어버린 그냥 그대로 가야 됩니다. 부모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모가 찾으러 와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아들의 사명을 완결짓고 어버이의 사명을 완결지어 가지고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이 바라던 소망의 나라를 …. (녹음이 잠시 끊김)

예수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을 알고 믿어야

그러니 전부 다 환경적으로 몰리게 되고, 민족 반역자로 몰리게 됐지요.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가 벌판으로 돌아다닐 때…. 성경을 보게 된다면 부인과 애기들에 대한 말은 제외해 놓고 4천 명, 5천 명 얘기가 나오거든요. 그래, 부인들이 따라다녔겠어요, 안 따라다녔겠어요? 부인이 따라다녔을 거 아니요? 벌판으로 돌아다니니 무슨 일이 없었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먹는 거와 마찬가지로 말이예요. 여편네들이 저녁때가 되었으니 저녁 하러…. 자기 남편이 일터에 갔다가 돌아올 텐데 가서 밥 해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예수가 동으로 가라고 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고 하면 서로…. 이 놀음을 안 했겠느냐 말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시시한 말은 성경에 쓰지 않았다는 거예요.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국가적인 면에서 이거 뭐 어쩌고 저쩌고….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문제가 컸겠나 말이예요. 이거 5천 명을 몰고 문제를 일으키며 와와 밀려다니니 편안했겠나 생각해 보란 말이예요.

사람들은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역사적인 권위를 갖추어서 높아진 예수가 되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다 '거룩 거룩한 예수구만' 이러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초라하게 수많은 군중 앞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할 수 없이 이곳 저곳 다니면서 할 짓 못 하고 다니는 예수를 그따위 것들이 믿을 것 같아요? 교법사,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인들이 요즘 기독교인만 못해서 못 믿은 줄 알아요? 시대적인 예수를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역사적으로 인정한 그 예수는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예수를 믿을 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시대적 예수의 그 심정이 어떠했으며, 그 사정이 어떻고, 그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돼요. 그런 걸 하나도 모릅니다. 그 심정이 무엇이냐? 그저 배고플 때에 이적을 행해서 떡이나 먹여 주고…. 사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몰랐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겁니다. 사랑했던 제자들도 몰랐다는 겁니다. 소망이 무엇이냐? '장래에 그저 나라의 국왕이 되면 우리는 좌정승, 우정승 해먹겠다' 이랬다는 겁니다. 그러니 전부 파멸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예수였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로 왔으나 신부을 맞이하지 못했던 예수

이 땅 위에 하나님만이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아들로 와 가지고 신부를 택해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남기고 간 말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해결점을 잃어버린 예수는 역사를 걸어 놓고 미래에다 이걸 남겨 놓고 수많은 기독교인 앞에 선포한 말씀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도 신부입니까? 남자는 남자지요. 남자가 신부 될 게 뭐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아담을 대신한 사명을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예수는 제2 아담으로 왔다는 겁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에 '첫번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마지막 아담은 둘째 아담이예요. 이게 둘째 아담이예요. 첫번 아담은 실패했으니 성사할 아담으로 온 거라구. 내가 앞으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신학자들 모아 놓고 그저 뿌리부터 한바탕 밝힐 때가 언젠가는 올 거라. 그때가 오면 문제없어요. 재까닥 밀려 들어온다 이겁니다. 언제는 반대하더니 이젠 뭐 손해날 게 없으니 찾아오느냐 말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찾고 있던 아들을 대표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담 대신 사명을 완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인류가 죄의 보따리를 쓰고 사망권 내에 머무르게 되었으니, 부모로서 책임 못 한 우리 조상의 모든 허물을 대신 쓰고 자손들의 모든 죄악을 벗겨 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 위에서 죽음을 걸고라도 이것을 해결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 평생 일대에 해야할 소망의 기준을 이루지 못한 예수는 안 죽을래야 안 죽을 수 없어서 사형대로 몰려 들어갔다 이겁니다. 판국이 틀렸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가정에서 몰렸지, 민족에서 몰렸지, 교회에서 몰렸지, 그다음에는 제자들까지 의심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 팔아먹은 거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니 어디로 가요? 갈 데가 없다는 거예요. 갈 데가 없으니까 죽을 것밖에…. 그런 내용을 모르고 '아, 우리 죄를 사해 주기 위해서 거룩하신 독생자께서 오셔서 피흘려 돌아가셨다' 이러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얼마나 잔인한 하나님이예요? 아 예수를 피 흘리지 않게 하고는 구원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게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는 거예요.

이 땅 위에 와서 뜻을 세우지 못한 예수는, 시대적인 신부의 이름을 세워서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어 가지고, 참다운 자식들을 세워서 이 평면 지상에서 상속권을, 입적권을, 천국의 권한을 가지고 입적시킬 수 있는 권한을 어느 기준은 마련해 놓고 가야 할 건데 그걸 못 하고 간 겁니다. 입적시키는데는 무엇으로? 종으로 입적시키겠어요? 직계 아들이 아니면 양자라는 이름으로라도 입적시켜 놔야 하나님 앞에 상속을 받아요. 상속권 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잔치하면 떡이라도 얻어먹는 거예요. 이런 문제는 모르고 '주님이 구름 타고 오면 나는 이만큼 몇 십년 동안 교회 목사 일에 종사했으니 나를 호출해 가지고 데리고 갈 텐데' 이러고 있다구요. 그렇게 어리석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믿었더라면…. 자기들 믿는 이상 내가 믿었기 때문에 이 놀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와 같이 시대적인 소망을 망각한…. 예수는 소망적인 신랑 신부의 이름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온 부모의 기준을, 6천 년 끝날에 있어서 재림할 그때를 맞이하여 인류의 참부모를 비로소 세워 놓고야 인류가 복지 천국으로 들어간다 이겁니다. 아버지는 천국 가고 어머니는 지옥가는 것이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의 본질적인 내용이 어떻게 돼 있느냐? 아버지 어머니가 같이 들어가고, 아내와 같이, 부부가 같이 들어가고, 자식과 같이 들어가고, 자기 친척 전부 다 들어가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내 아버지는 지옥에 가 있고 내 어머니는 천국 가 있다면 참 편안하겠구만. 참 편안하겠어.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의 천국은 어떠한 것이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들어가는 동시에 우리 조상이 들어가고, 부부가 들어가고, 형제가 들어가고, 수많은 천추만대의 후손 전체가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가 아는 천국은 그렇더라 이거예요.

예수가 아직까지 천국에 못 들어가고 낙원에 있다고 하면 '우─ 예수가 천국에 못 들어가다니…' 라고 할 겁니다. 천국 들어갔나 알아보라구요. 기도를 해보라구요. 목을 걸고 한 40일 금식해 보라구요. 통일교회문 선생이 거짓말을 했나 말이예요. 천국은 부모가 들어가고, 거기 가서 수천만대의 우리 조상들을 맞이하여 같은 권내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그 사랑권 내에서 품고 살 수 있어야 그게 천국이라구요. 지옥과 낙원은 타락의 부산물로 생겨난 겁니다. 이런 걸 철폐해 버려야 됩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오른편 강도를 대해서 네가 오늘 나와 더불어 어디 간다구요? 「낙원에….」 천국 간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어디로 간다고 그랬어요? 「낙원이요」 낙원입니다, 낙원, 어디? 「낙원이요」 낙원이 뭐예요? 우리 학생들, 낙원이 뭐예요? 「천국 가는 대합실이요」 천국 들어가는 대합실! 대합실! 기차 타기 위해서 표 사 가지고 기다리는 대합실입니다. 대합실이라구요.

중생하려면 성신을 받아야

예수는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왔기 때문에─남자는 하늘 상징입니다.─이 땅 위에 신부를 택해 세워 가지고 신부를 기준하여 부모의 인연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가 이걸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를 짐으로 말미암아, 영육을 완성하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이루어 왔기 때문에 예수는 영적 아버지 기준에 있게 되고…. 땅은 어머니 상징입니다. 땅은 어머니를 상징하기 때문에 영적 아버지의 상대성을 갖고 이 땅에 온 것이 성신입니다. 똑똑히 알라구요, 성신을. 그러나 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신을 얘기할 때 기름 같은 성신, 바람 같은 성신, 불 같은 성신….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인간의 체를 입었지만 어머니는 아직까지 소망의 어머니로서 체를 입을 수 있는 기준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의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타락하지 않은 해와가 어머니의 영이 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그 기준을 하나님 품으로 복귀해 거두어 뒀던 것을 재차 이 땅 위에 어머니 신성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어머니 신성, 어머니 신성으로 보낸 것이 성신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삼위신이 뭐라구요? 성부는 아버지이고 성자는 아들이고 성신은 뭐라구요? 성신이 성신이지요. 간단하다구요. 성신이 뭐냐 하면 어머니 신이라는 겁니다. 체를 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명적인 면에 있어서 예수는 하늘 앞에 있어서 남자로서 영적 복귀완성 기준의 사명을 다했지만, 여자로서 아직까지 이 땅 위에서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영적 구원의 섭리적인 일을 상대적으로 예수 앞에 협조하는 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성신, 즉 어머니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 신이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성신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절대, 뭐예요? 「못 받습니다」 절대 못 받습니다. '왜 절대 못 받느냐?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지 않고는…. 어머니 뱃속을 통하지 않고 아들딸이 나와요? 안 그래요?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성신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배반해도 용서함을 받고 예수를 배반해도 용서함을 받지만 성신을 배반하면 성신을 훼방한 자는 용서함을 받지 못합니다. 왜? 보라구요. 아버지 아래는 예수가 받들어 주고, 예수 아래는 성신이 받들어 주고, 성신 아래는 누가 받들어 줘요? 없다는 거예요. 꽈당!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신을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신부의 신이기 때문에 성신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를 그리워하느냐? 누구를 그리워 해요? 신랑 되신 주님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아, 아버지' 하면서 아버지 되신 주님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아, 주여 뼈가 녹아나고 살이 녹아나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예수 믿어 가지고 그런 체험 했어요?

강렬한 하늘의 사랑에 접할 때는…. 개구리가 전기를 통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눈이 튀어 나오는 이상이 됩니다. 그래야 중생하는 거예요. 성신을 받아 가지고 예수를 신랑으로 사모하게 되는 거예요. 어머니 신을 받았으니 아버지를 사모하는 겁니다. 부부의 심정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부모의 혈육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심정적인 출발이 나올 수 없습니다. 중생하기 위해서는 성신을 받아야 된다 이겁니다. 어머니신이기 때문에, 신부의 신이기 때문에 신랑 되신 예수를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되는 사랑의 충동의 힘에 의해서 내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서 받은 사랑의 감도보다도 더 강한 영적인 부모의 사랑의 감도에 통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재생, 중생했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비로소 새출발의 생명을 가진 내가 된다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중생이예요. 뭣도 모르고 그저…. '성신을 왜 맞이하느냐?' 하면 '구원 얻기 위해서' 그런다구요. '구원은 왜 필요하냐?' 하면 '구원을 받으라고 성경에 그랬으니까' 그런다구요. 그런데도 천국에 다 간 줄 알고 편안히 누워 있어요. 그렇게 믿으려면 내가 오늘 이런 놀음 안 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후퇴하느냐, 내가 후퇴하느냐 하는 이런 투쟁을 했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겁니다.

참다운 아들·참다운 가정·참다운 종족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성신이 무엇이고, 예수가 어떤 분이고, 하나님은 어떻게 되느냐 이거예요. 한국에 우리 같은 사람이 와 가지고 이런 걸 발견했으니 고맙지요? 그렇지요? 「예」 고맙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겁니다. 진짜 고맙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거라구요. 이 배후에 복잡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그러니까 세계에 널려있는, 아무리 영통하고 큰 수작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가서는 문선생한테 배워야 된다는 겁니다.

영계를 샅샅이 뒤져 가지고 다 들춰낸 거라구요. 따라서 영통하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라구요. 기분 좋지요? 「예」 코쟁이들도 눈이 시퍼래 가지고 코가 부대자루 같고, 키가 아주 전선대 같은 녀석들도 영통만 하게 되면, 떡 한대 찔러 놓으면…. 내가 그것까지 다 안다구요. 대번에 들이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거기에는 전문이야. 전문이다 이거예요, 그 분야에는. 그래서 이번에도 세계적인 영통인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가니까 말도 못 하고 이러고 있더라구요. (흉내를 내심) 이녀석…. 그런 뭐가 있다구요. 신나지요? 「예」 신만 나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주름잡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젊은 양반들? 「예」 양반이라니 신이 나는 모양이구만, '예!' 하는 걸 보니. 한번 더 해보자구요. 알겠어요? 「예」어이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스운 얘기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지루하고 나도 지루하다구요. 이만큼 하고 그만둘까요? 「아니요」 재미나요? 「예」 내가 손님으로 왔는 데 저녁도 안 주고 뭐…. (웃음) 시간은 짧은데 얘기는 많이 해야 되겠으니까 아주…. 그저 시간이 얼마 안 되거든, 그거야. 욕심도 많지, 그럴 게 뭐 있어? 선생님도 점잖게 '여러분들! 하나님은 묘하신 분입니다'라고 몇 마디만 설교하면 될 텐데 거무슨 팔자가 사나워서 이러고…. (웃음) 가만 보면 밉살스러울 거라구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앉혀 놓고 뭐가 그렇게 좋다고 떠드노?' 그러지 않아요? 「안 그럽니다」 안 그래요? 「예」 그렇지만 필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지금 지방에 나가서 고생하고 있지만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이라구요. 만일에 옛날 내가 이길을 찾아갈 때 나 같은 선생이 있었더라면 나는 집도 부모도 세상 천지 다 버리고 벌써 무슨 놀음을 했을 거라구요. 사랑에 불타서…. 다 잃어버려도 심각하지 않거든. 이제 성신을 알았지요? 그거 이해돼요? 이의 없지요? 갖다 맞춰야 된다는 거예요, 파괴었으니.

자,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오는 것이 무엇이뇨? 참다운 아들과 참다운 가정과 참다운 종족입니다. 참다운 종족이 있기 전에 참다운 가정이 있어야 돼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참다운 가정이 있기 전에 참다운 부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참다운 부부가 있기 전에 참다운 아들이 있어야…. 알겠어요? 예수가 와 가지고 참다운 부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2천 년 후에 세운다, 여기까지 얘기했지요? 이렇게 됐다구요.

타락해서 번식한 것이, 거짓 조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거짓된 자식들, 후손들을 퍼뜨렸다구요. 그래서 전부 다 종교로 때려 몰아 가지고 '야 이녀석들 들어가라. 믿어라' 이러면서 역사를 거꾸로 몰아 오는데 6천 년 걸렸습니다. 이렇게 쭉 해 가지고 여기에 부모를 갖다 놓고 이걸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여기에 다시 접붙여 가지고 새로운…. 그래서 성경은 여러분들을 고아라고 그러지요? 부모 없는 사람.

지금까지 예수가 소망하는 게 뭐예요? 영계에 가서 하나님 우편에 가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고 그랬지요? 뭐예요? 제일 소망이 뭐예요? 신부를 맞이하는 게 제일 소망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이냐? 신부를 맞이해 가지고 이 땅 위에 직계의 아들딸을 세워야 됩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직계의 아들딸을 세우지 않고는 안 됩니다. 양자한테는 상속할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예수가 결혼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하지 말라는 말이예요? 어쩔 도리가 없는 겁니다. 그래, 예수님이 구름 타고 와서 되겠어요? (웃음)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허허─' 하면서 구름 타고 오면 천하가 전부 다 한꺼번에 '꼴까닥' 돌변지사로 다 뒤집어질 줄 알고 있다구요. 그거 잘 믿는 거예요, 못 믿는 거예요? 허무맹랑한 허위 날조 신앙자들이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허무맹랑하고 벌거벗고 춤이나 추고…' 이러지요? 모르거든요. 밤중이라구요. 무슨 할 짓이 없어서 벌거벗고 춤을 추겠어요? 문선생을 잘 몰랐다는 겁니다. 그저 자기들이 농락하면 다, 이렇게 뒤집으면 이렇게 꽝, 저렇게 뒤집으면 저렇게 꽝 되는 줄 알고 있다구요. 10여 년 동안 별의별 모략중상을 다 해왔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어요. 태풍이 불어와서 물결이 몰아쳐도 넘어갈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이겁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을 사랑하지 못한다

앞으로 미국을 요리하려고 그런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굶고 있지요? 배들 고프지요? 고생들 하고 있지요? 단단히 고생하라구요. 그렇지만 걱정 말라구요. 나중에 밥을 하루에 세 그릇씩 줘서 안 먹으면 기합 줄 거예요. (웃음) 그러면 또 큰일날 거예요. 차라리 굶고 앉아서 밥을 그리워하는 맛이 더 낫지, 배가 불러 가지고 이러고…. (행동으로 보이심. 웃음)

내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하지요. 선생님이 30평생 배고파 보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0평생 배고파 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거예요. 그래서 배고픈 그리움을 내가 참 잘 압니다. 왜 그랬냐 이거예요. 하늘 앞에 맹세했고 하늘이 주신 맡은 바의 사명이 있는데,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나이로서 맹세한 그 기준을 어느 기반까지 닦아 놓지 못한 내가, 하늘 앞에 책임 못 한 내가 어디 밥을 먹을 수 있어요? 밥을 보면 밥이 '이놈' 하고 호령을 하는 겁니다. 그런 세계를 알겠어요? 밥이 호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을 만큼…. 그래서 30평생 배고파 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구요. 그리고 옷도 30평생, 30이 넘도록 내 마음대로 내가 내 옷을 못 사 입었어요.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형님은 가인 중에 그런 가인이 없었다구요. 나한테는 에서 중에 그런 에서가 없습니다. 그분은 기도할 적마다 통합니다. 벌써 세계를 주더라도 우리 동생과는 바꾸지 않는 다, 요것만은 알았다구요, 내용은 모르지만. 우리 동생이라는 저 사나이는 세계를 주더라도 바꿀 수 없다, 그건 알았다는 겁니다. 내용은 무엇인지 몰라요,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전보만 하나 치면 집을 전부 다 팔아서 보내 준다구요. 이의가 없는 거예요. 돈이 없어 그러는게 아닙니다. 옷을 입고 다닐 수가 없다구요. 지금은 좋은 옷을 입었지요? 이것도 누가 해줘서 입었어요.

학생 시절에도 될 수 있으면 머리도 길게 하고, 될 수 있으면 얼굴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왜정 때에는 말이예요, 고물상에서 반질반질한 옷을 사 입고는 땅만 들여다보고 다닌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이 나로서는 도를 닦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왜정 때에는 식권이 있었습니다. 쌀이 참 귀했다구요. 그때 선생님은 동경에 있었습니다. 일본 가서도 선생님은 일본 천황을 잡아치우는 운동을 했어요.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남경과 다리를 놓아 가지고. 그런 얘기 하면 참 여러분이…. 참 아슬아슬한 무엇이 많습니다. 마 그건 그만두자구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뭐 하늘을 사랑한다구요? 내 앞으로 이제 전부 다 한번 재심사를 하려고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정 때에는 배가 고팠다구요. 그래서 고학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너희들 배고프지? 우리 집에 와라' 해 가지고 식권이 나오면 한달 먹을 거 전부 다 모아 가지고 '먹어라, 먹어라, 마음껏 먹어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한 3일 되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그다음에는 또 이상한 작전을 합니다. 밥을 얻어먹는데 그저 식당 뒷문으로 들어가 얻어먹는 놀음도 하는 거예요, 다음에 오면 준다고 해가지고. 배가 하도 고플 때에는 한번 실컷 먹어 보자 이거야. 그래서 한꺼번에 식당을 일곱 집까지 들어가 봤습니다. 알겠어요? 일곱 집. 여러분들도 그럴 거예요.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면 여기까지 밥이 차도 목을 요렇게 하고 또 먹고 싶은 겁니다. 감옥생활 해보면 알아요. 영양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소화는 못 시키지만 무진장 들여 보낸다 이겁니다. 그때는 감옥살이는 아니지만 한번 실컷 먹는 거예요.

참은 수고를 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아

더우니까 아주 이게 동조를 해주는 모양입니다. 거 보턴(단추)이 떼어지질 않아요. 미안합니다. 형편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할수없는 거라구요.

밥을 실컷 먹자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올 때는 이렇게 오는 거예요. (행동으로 보이심. 웃음) 이 긴 다리를 이렇게 하지 못하고…. 이렇게 꼬부려야 되겠으니까…. 억지로 방에 들어가 가지고는 일곱 시간을 가만히 누워 있는 거예요. (웃음)

자, 진짜 배부른 것하고 진짜 배고픈 것하고 어떤 게 나으냐 말이예요. 언제 내가 배고픈 이상 아버지를 사랑했나? 아버지께서는 자녀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배고픈 고개라도…. 자녀가 죽을 길이 있으면 배고픔을 잊고 자기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길도 지켜 줄 수 있는 아버지인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배고픈 것을 잊고…. 그런 기준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요. 그건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하를 구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내 자신이 그런 말 할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 내용을 알겠어요? 이렇게 세상에 남 모르는 걸 알아 가지고 지금까지 욕먹고 다니는 겁니다. 왜정 때에는 헌병과 경찰이 따라다녔지, 이북에 가서는 공산당하고 싸웠기 때문에 공산당들이 그랬지, 이남에 와서는 대한민국이 그랬지, 선생님 팔자가 그런 모양이예요. 내가 뭐 자기네들 담을 넘어 노략질을 했나?

누구보다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내가 이 나라를 위해서 흘린 눈물이 한 독 찰 거라구요. 무슨 애국자 애국자 해도 나 부럽지 않아요. 한참 기도할 때는 여기에 가죽까지 굳은살이 다 박혔다구요. 요즘에는 그렇게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다 풀렸지만 말이예요. 정성 안 들이면 안 되는 겁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 거예요. 참이라는 것은 수고를 하지 않고는 얻어지는 법이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젊은 사람들? 「예」

여러분들, 서울에서 선생님이 온다고 하니 걱석걱석해 가지고 그저 백리 길만 걸어도 그저 '아이고, 다리야! 선생님이고 뭣이고…. 왜 온다고 해 가지고 이 고생을 하게 해?' 이럴 거예요. 참 단순하다구요. 그렇게 해서 복귀의 길을 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자, 그건 그렇다는 얘기예요. 여러분들은 아무리 고생을 해도 선생님 앞에서는 조금도 변명을 못 합니다. 몇십 배 몇백 배 고생을 해왔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젊어요, 나이가 많아요? 젊지요? 「예」 여러분과 지금 씨름해도 내가 지지 않을 거라구요. 지금도 골목을 가다가도 유사시에는 두세 사람 날려 버릴 수 있다구요. 필요할 때는 반드시….

그걸 뭐 전부 다 알려니 언제 밥 먹고 언제 쉬고 언제 잠잘 새가 없어요. 남과 같이 먹고 남과 같이 입고 남과 같이 쉬고 뭐 어떻게 해요? 지금도 선생님은 잠자는 시간이 평균 세 시간 미만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구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외국을 순회하고 돌아와 가지고도…. 지금도 들어가 누우면 코를 골고, 아주 뭐 앞면상이 들락들락하게끔 말이지, 뒷산이 그저 우르릉거리고, 옆에서 누가 흉보더라도 말이예요, 누워서 눈만 감으면, 잔다 하면 자는 거예요. 차 안에서도 잔다 하면자는 거예요. 그건 좋긴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책임지고 나서게 될때는 아무리 아프더라도 그걸 잊어버리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통일정신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내가 직접 훈련시키지 못해서 한이 될때가 많다구요. 알겠어요, 젊은 사람들? 「예」 진짜 알겠어요? 「예」 광주 양반들, 무슨 광 자인가요? 「빛 광(光) 자입니다」 '주' 자는? 「고을주(州) 자입니다」 아, 빛나는 고을이구만. 천국 백성이 다 될 수 있네요. 지방 명사와 더불어 여러분의 이름이, 세계에 광주의 사나이 혹은 아낙네의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전라남도지요? 남쪽은 하늘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북쪽은 사탄을 상징하고. 동쪽은 하늘 상징이고, 서쪽은 반대라구요. 좋은 원리라구요. 어때요? 한번 더 웃어 보라구요. (웃음) 웃는 것은 밉지 않아요.

자,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어디로 돌아가느냐? 천지간에…. 지금 돌아가는 거예요. 제목이 뭐지요? 「소망의 조국의 슬픔」 소망의 조국의 슬픔이라! 그 제목까지 가려면 참 멀다구요. 몇 시간 됐지요? 「두시간 되어 옵니다」 두 시간? 두 시간 반이면 끝나지요.

예수의 소원

그러면 세상에 있어서 예수의 제1 소망이 무엇이냐? 「신부를 맞이하는 것」 신부를 맞이하는 거예요. 제2소망이 무엇이냐? 「직계 자녀를 ….」직계 자녀를 맞이해야만 비로소 평면도상에 있어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이…. 기독교인들은 무슨 에덴동산이 공중이나 구름덩이, 혹은 다른 데 있다가 그저 꽝 하고 떨어진 줄 알고 있다구요. 땅이라구요, 땅.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잖아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했어요. 땅 위주라구요. 천국열쇠를 땅에 있는 베드로에게 주고 간 거라구요. 천국 열쇠를 여기 땅에…. 땅에서 열지 않으면 저 영계가 열리지 않는 다 이거예요. 이걸 잘 몰랐다는 거예요. 땅이 이렇게 귀하다는 걸 말이예요. 이 육신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육신이 얼마나 귀한가를.

지금까지 타락한 사탄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으니, 부정적인 한 결정을 판결지어 놓아야 할 운명에 서 있으니 육신을 부정하는 거지,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자녀의 영광을 갖출 때는 먹지 않으면 죄요, 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가지고 먹는 문제를 해결할 거라구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3시간 일하면…. 노동을 뭐 땀 흘리면서 하는 게 아니라구요. 취미적으로 하는 겁니다.이제 그럴 때가 오는 거예요.

따라서 하늘이 예수를 왜 보냈느냐? 본래 에덴동산에서 창조 당시에 바랐던 그 이상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수를 보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참부모의 기준을 예수는 이 땅 위에서 결정지어 놓고, 참부모의 기준은 어떻고, 참자녀로부터 참가정, 참종족의 기준은 어떻다 하는 것을…. 참가정이 되려면 참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참형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다운 씨족을 이루고, 씨족을 거느려 가지고 민족을,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를 편성하면,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동적으로 세계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 세계만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이 세계만을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영계와 육계를 관할하는 겁니다. 영계까지 관할하는 겁니다. 인간은 이 땅의 주관자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지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영계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절대 안 보입니다. 있긴 있다 이거예요. 음성도 다 듣긴 듣지만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그렇지만 누가 하나님 대신 형상적인 실체로 나타나느냐?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나타났어요.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있으면 그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하고 예수는 뭐가 되느냐 하면 맏아들, 아들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이런 말 처음 듣지요? 예수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들이 된다는 거예요.

이 땅 위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부모의 기준은 이루었지만 실체를 쓰고 땅에서 참부모의 인연을 못 가졌기 때문에 하늘이 영계를 중심삼고 섭리하는 것입니다. 땅 중심삼고 섭리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이 모든 뜻을 이루어 가지고 해원성사 해주게 되면 예수님은 아들이 된다는 겁니다. 지금은 무슨 사명 하느냐 이거예요. 그건 그만두고…. 이래 가지고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와서 사명을 완결하게 되면 천상세계에 가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게 성경에 있어?

성신이 어머니 신인 것은 다 알지요? 성경에 나오는 것을 내가 증명해 주겠습니다. (성경을 찾으심)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신이 나옵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하늘은. 성경도 창세기와 묵시록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 아니예요. 선생님은 성경에서 그걸 발견했어요.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분이시기 때문에 선은 영원을 통치해야 된다, 영원을 통치하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연결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요한계시록과 창세기가 반드시 맞아떨어져야 된다 이겁니다.

22장 17절에 보게 되면 '성신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이랬어요. 알겠어요? 성신하고 신부하고 하나되어서 오라는 거예요. 여기서 어머니 법도가 나오는 거예요. 어머니가 나온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성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신부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성경이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 하시더라' 이랬어요. 다시 전도가 나온다구요. 전도가 나온다는 말이예요, 묵시록에. 이게 뭐냐? 부모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묵시록은 완전히 끝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성신이 어머니 신이라는 것을? 「예」 그래서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세계를 이루고, 온 천하가 하나님 품에 복귀된 그 나라가 뭐가 될 것 같아요? 「지상천국」 지상천국이예요.

그러면 예수의 일념은 무엇이냐? 가정을 찾아 가지고는 그다음에는 뭘해야 될 것이냐? 그의 소원은 무엇이냐? 본향에 가자!

선을 위주로 한 평화의 천국을 지상에 이루어 놓아야

본향땅이 어디냐? 본향을 찾아야 됩니다. 본향이 어디냐 이거예요. 예수의 본향이 어디냐? 예수가 죽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의 본향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조국의 출발이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되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사명을 담당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본향땅을 창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향땅이 만민의 본향땅이 되어야 됩니다. 타락한 온 인류 앞에 본향땅이 되기 위해서는, 즉 고향땅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이 찾아 세우는 부모가 등장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본향땅이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데 형제가 나올 수 있어요? 없지요? 「예」

고향에는 누가 있느냐? 친척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형제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부모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엔 그 가정을 중심삼은 소유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고향은? 고향을 왜 그리워하느냐? 심정적인 내 생명의 인연이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명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한 고향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전세계의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는 무엇이 되어야 되느냐 하면 부모가 되고, 사랑하는 열두 제자는 무엇이 되어야 되느냐?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사탄세계에서 찾아온 가인적인 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직계의 아들과 가인적인 아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아담가정에서는 가인과 아벨이 싸움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파탄시켰지만, 여기서는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세상에서 찾아온 양자의 입장에 있지만 아들의 권한을 부여해 가지고 직계의 아들과 같이 살더라도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걸 합하여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이걸 합하여 가지고 민족을 편성하고, 이걸 합하여 가지고 국가를 편성하고, 이걸 합하여 가지고 세계, 예수 중심삼은 세계를 이루어야 될 것인데, 이것을 영적으로 이루어 나온다 이겁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제2 이스라엘권 기독교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예수가 찾던 본향땅이 어디냐? 본향땅을 소원했지만 예수는 본향땅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던 본향땅은 어디냐? 찾지못했다 이겁니다. 본향땅을 갖지 못한 지금까지의 수많은 인류들은 본향땅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본향의 나라를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성에서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께서 끝날에 기필코 재림주님을 이 땅 위에 보내야 합니다. 재림주님이 이 땅에 와야 할 터인데 오는 데는 어떠한 사연을 가지고 오느냐 하면, 반드시 본향땅을 찾기 위해서 올 것입니다. 알겠어요? 본향땅을 찾기 위해서 올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본향땅을 찾아서 뭘할 것이냐? 거기서 본향의 형제를 편성해 가지고 종족·민족에 접붙이는 역사를 해서 민족을 편성하고, 그것으로 국가를 편성해서 나중에는 이 세계를 본향의 조국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본향땅과 본향의 조국은 어디냐? 조국은 어떻게 되느냐, 조국은? 조국은 물론 어떤 특정한 한 국가적인 기준이 되겠지만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인류의 조국은 어디냐 하면 이 지구성이예요. 알겠어요? 이 지구성이라구요. 이 지구가 인류가 소망하는 조국이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는 인류의 조국이다 이거예요. 과거에 수많은 역대의 우리 선조들이 희생의 길을 걸어갔지만 그들이 소망으로서 하늘 앞에 호소하면서 간 것이 무엇이냐? '소망의 조국의 한 때가 어서 오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한 국가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하늘 앞에 원수인 대사탄을 심판해 버리고, 악을 제거해 버리고 선만을 위주로한 평화의 천국을 이 지상에다 이루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예수의 소원이요, 지금까지 섭리노정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한 우리 선조들의 소원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하나님은 6천 년 기나긴 세월 동안 소망의 조국을 생각하셨다

아까 제목이 뭐라구요? 「소망의 조국의 슬픔」 소망의 조국의 슬픔.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노정,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하늘은 그 마음속에 무엇을 생각하였느냐? 소망의 조국을 언제나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 조국은 하늘 보좌만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직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땅 위에 당신의 조국을 만드는 것, 당신의 자녀들이 속하는 조국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역대의 우리 조상들은 부름을 받아 가지고 종의 자리에서, 혹은 양자의 자리에서 자녀의 이름을 소망삼아 가지고 피어린 제단을 연결시켜 나오면서 투쟁의 일로를 개척해 나왔다는 거예요.

기독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느 국가 어느 사회환경에 부딪칠 적마다 희생하지 않고는 터전을 마련할 수 없었던 비참한 역사를 겪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망의 조국을 이루었느냐? 이루지 못한 채 아직까지 보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는 타락한 우리 민족에게는 조국이 되지만, 이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조국이 될 수 없고, 세계의 조국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어차피 거쳐가요. 한 단계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조국의 이름을 향하여 역사는 발전되어 나오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는, 가인 아벨로 출발한 역사의 종말에 있어서 뿌린 대로 거두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현재 세계정세를 이루고 있는 좌우 양대 진영이 여기서 맞부딪쳐 들어간다 이거예요.

예수는 진리의 본체이기 때문에 예수를 중심삼고 뿌려진 대로 끝날에 거두어 지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는 민주세계요, 왼편 강도는 공산세계예요. 왼편 강도가 '네가 뭐 하나님의 아들이야' 하고 아들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해서도 부정하던 것과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좌익이예요. 누가 왼쪽이라고 그랬어요? 민주세계를 왜, 누가 우익이라고 그랬어요? 누가 붙였느냐구요.

사람은 천륜 앞에 있어서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세계는 죄를 짓게 될 때는 모르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이 모릅디까, 여러분들은? 아무리 가리고 가리더라도 그 마음세계에 있어서는 백 퍼센트 안다 이거예요. 직고하는 거예요. 양심은 천륜 앞에 있어서, 선한 본체인 하늘 앞에 있어서 천도를 대하는 양심은 스스로 직고해야 할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양심을 중심삼은 인간인지라 사탄도 사실은 사실대로 응해야 됩니다.

좌익 하면 옳은 것이 아니라 그른 것입니다. 좌익이라는 것은 그릇된 거라구요. 직고해야 됩니다. 끝날에는 직고한다고 그랬습니다. 우익이라는 것은 옳다는 겁니다. 빨갱이라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흰 것은 안전한 거예요. 전부 다 꺼꾸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좌우도 꺼꾸로 되어 있고, 혹백도 꺼꾸로 되어 있고, 음양도 꺼꾸로 되어 있고, 다 꺼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모만은 꺼꾸로 안 돼 있다는 거예요. 요것은 그냥 그대로 되어 있으니 복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사랑은 타락했을 망정 그것은 믿을 만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구요. 따라서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의 세계적인 모든 현상을 보면, 진리의 주체를 중심삼고 뿌려진 그것이 환경적으로 세계성을 이루어 가지고 거둘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런 현 세계다 이거예요.

그러면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 누가 제일 이익을 보았느냐? 바라바입니다. 바라바는 뭐냐 하면 종교적인 명사를 가지고, 예수 이름을 빙자해 나와 가지고 지금 이득을 보는 회회교 국가권입니다. 바라바권 내에 있는게 회교입니다. 재미있지요? 이번에 가 보니까 아브라함을 자기 조상이라고 그래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자기들 조상이라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니고 그들은 자기들 조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회 회교권에서 전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민주와 공산이 싸우는 그 틈에서 이 회회교권이 드러나 춤추는 거예요. 거기에 대비해서 예수주의적인 세계권이 벌어져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뿌린 대로 거두어 가지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 참을 참으로 세우고 악은 악으로서 분립시켜야 됩니다. 하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역사가 수습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가인 아벨적인 분열된 역사노정에 있어서, 이와 같이 둘이 되어 가지고 싸우는 여기에 있어서 투쟁형이 하나는 평면적으로 하나는 입체적으로 맞댈 수 있는 한 기점을 향하여 뒤넘이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둘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나중에는 하나다 이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본향땅을 창건하자

이런 때가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끝날이 됩니다. 끝날이 되면 한국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거 궁금할 거예요. 내가 바라건대 한국이 하나님의 조국이 되고, 하나님의 본향땅이 되면 좋겠다구요. 어때요? 그거 나빠요? 「좋습니다」 여러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싸우는 것은 이것 때문이예요. 한국은 선민국가입니다. 선민사상을 고취시켜야 되겠다 이거예요. 무엇 갖고? 그 재료는 내가 주는 거예요. 그 재료는 내가 줄께요. 백 퍼센트 부정할 수 없는 재료를 내가 줄 거예요. 이렇게 되면 끝이 되는 겁니다. 끝이 이렇게 된다구요.

또, 세계에 수많은 종교인이 있고 믿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들한테 지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미국 가 있으면 내가 끌어올 겁니다. 당당하지요? 왜? 하나님이 지은 사람이 효자라면 효자의 마음 가운데 그 아버지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동으로 가게 되면 그 아버지는 동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서로 가면 그 아버지는 서로 끌려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셔 오는데 수많은 영계를 한국에 모셔 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남북총선거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적인 중요문제

그래서 지금까지 슬펐던 소망의 조국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현실의 조국으로 전개시켜서 행복의 조국, 희망의 조국, 평화의 조국, 복지의 조국으로 창건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나타나는 민족과 종족이 어디 있느냐? 그 국가가 어디 있느냐? 없다 이겁니다. 다 없다구요. 미국 가 봐도 그런 놀음 하는 사람이 없고, 영국 가 봐도 없고, 세계각국을 다 뒤지고 돌아다녀 보아도 없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라는 패가 나와 가지고 한국에서 문제가 되어 가지고 세계적인 파도를 일으켜 이제부터 세계에 내밀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갔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소망의 조국에 대해서 하나님도 슬퍼했고, 예수도 슬퍼했고, 수많은 우리의 선조도 슬퍼했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가 슬퍼하는 이런 환경에 있어서, 모두가 가야 할 조국땅을 못 찾고, 찾아야 할 본향땅을 못 찾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오늘 우리 통일의 무리들은 뭘 하자는 거예요? 하늘이 찾아올 수 있는 본향땅을 창건하자 이겁니다. 조국을 삼천리 반도 이 대한민국 땅 위에 창건하자 이거예요. 그렇게 해서 무엇을 만들자는 거냐? 하나님을 모셔 놓고 행복이 깃든 지상낙원을 여기에 창건하여 비로소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나라를 만들어 보자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요,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그런가요? 「예」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환난과 시련이 한국에 지금 집중하고 있습니다. 삼팔선, 판문점이라는 것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매일같이 참소하고 있습니다. '이녀석 네가 잘못했다'고 하나님과 사탄이가 그런다는 겁니다. 어느 나라 민족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란과 같은 이런 국가적인 동란에 유엔, 세계가 가담해 가지고 책임을 지고 싸워 준 나라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입체적으로 이걸 전부 다 종합해 보면 그걸 부정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역사적인 배경을 보든가 현실적인 실정을 보든가, 이 세계적인 문제를 수습할 수 있는 최고의 초점이 되는 곳은 한국밖에 없습니다.

지금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 이제 우리들이 염려할 것은 금후에 대통령 선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불원한 장래에 이북이 간첩망을 강화해 가지고, 남한을 대해 그들의 조직력을 강화해 가지고 만일에 자기들이 움직이는 계획대로 되어 남한을 능가할 수 있다 할 때는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한 남북총선거를 하자고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래서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뭐냐? 남북총선거를 대비하여 대응작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국가적인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는 벌써부터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한테 사상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 대해서 지금까지 지도하는 것은, 만일에 나 하나 이 계획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이 나라는 망한다, 하늘의 섭리의뜻 앞에 있어서 하늘이 불러 하늘이 찾아왔던 전체적인 섭리의 복지가 파탄을 당해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공산당과 대결할 때 내세울 재료는 민족을 위해 고생한 것

여러분들을 불러 놓고 선생님이 한 거와 마찬가지로 1960년을 기해서 7년 동안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가 옥중생활을 5년 이상 했으니 여러분들은 3년만 참아라 이겁니다. 배가 고플 때 참아라 이거예요. 내가 배고플 때 아버지를 부르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 아버지를 불러 봐라 이겁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억울할 때 그 아버지를 불러 봐라 이거예요. 그 아버지는 위로해 줄 것입니다.

젊으나 젊은 여러분들 데리고, 나는 사랑하는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 아들딸을 모아 가지고 나오다 보니 별의별 모략중상을 다 받았습니다. 좋다 이거예요, 좋다! 내가 욕먹어 가지고 대한민국이 잘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몰리고 몰리면서 이 어린 것들을 붙들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방에 가서, 어떤 때에는 통일교회라는 말도못하던…. 원통하고 분해요. 내가 뭐 한국에서 못 하는 게 뭐가 있나? 하늘이 해야 할 그 길을 가는데, 민족을 위하여 민족 앞에 새로운 뭣을 가르쳐 주고 세계적인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천적인 운세를 내가…. 이게 원수로구만. 원수로구만.

두고 봐라 이거예요. 한국 교회가 깨져 나가나 안 깨져 나가나 내 눈으로 볼 것이다 이겁니다. 교단끼리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을 내가 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떠나고 한국에서는 피폐한 실정이 반드시 부딪쳐 올 것입니다. 우리가 굶는 이상으로 삼천만이 굶주리며 허덕이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가야 경제력 가지고 안 됩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 되고, 세력 가지고도 안 될 것입니다. 할 수 없이 통일교회가 움직이던 그런 운동이 아니고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사람이라는 사람들은 반드시 부르짖고 나올 것이다 이겁니다. 이렇게까지 준비해 나온겁니다.

내가 통일교회 무리들을 모아 놓고 하는 말이 뭐냐? 우리가 공산당과 대결해야 하는 데 선전 재료가 뭐 있느냐 이겁니다. 없다 이겁니다. 그들은 근로자 노동자 농민을 사랑한다고 하고 나오고 있다 이겁니다. 현세의 입장에서 자기들의 선전을 백 퍼센트 적중시킬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들어맞고 있다 이거예요. 이러한 때에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는 공산당 이상의….

공산당의 루트가 어디냐 이거예요. 중류 이하 하류의 소외된 계층을 통해서 얼마든지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이거예요. 우리가 노동자 농민의 아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가르쳐 주자 이거예요. 그들이 농사를 짓거들랑 우리가 앞에서 밭을 갈아 주고 김을 매 주자 이거예요. 생활적인 면을 지도하자 이겁니다. 그다음에 이념적인 기준에서 통일교인 같은 저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의 요점을 남기자 이겁니다. 이런 3대요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지도해 나왔다 이거예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은 과연 고생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공산당보다도 무섭다고 말이예요. 공산당보다도 무서워야지요. 이리하여 만일에 이것이 꼴까닥 뒤집어져 가지고 총선거 할 때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가 여기에 있어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책을 출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상적인 무장을 빨리 해야 되겠습니다. 이 피폐한 대한민국에 있어서 공산주의를 능가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운동이 나온다면, 북한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한국에서 벌어지게 된다면 이걸 미끼로 해서 세계를 낚을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된다 이거예요.

대전 형무소를 중심삼아 가지고 간첩들이 전부 다 갇혀 있는데, 이곳에 뚫고 들어가 가지고 간첩들을 대해서 세뇌공작을 하려는데 이 소장녀석이 말을 들어줘야지요. 별의별 놀음을 다 해도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한이 많아요.

이렇게 나간다고 지금까지 정보부에서는 통일교회가 공산당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참 많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무슨 국제 공산당이니 무슨 이북에서 파송된…. (녹음이 잠시 끊김)

조국강토가 하늘의 본향, 인류의 조국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할아버지로부터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우리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별의별 짓 다 합니다. 어떤 녀석은 대가리가 째지지 않았나 팔이 부러지지 않았나 길거리에서 자지 않나…. 산에서 자는 건 보통입니다. 이런 것을 복수하려면….

내가 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미국 천지에서 이 길을 출발했다면 벌써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살길은 단 한 가지 이 길밖에 없습니다. 삼천만 민족을 모아 놓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고생하면서 외치면 사람들이 한 때에 가 가지고 필시 이 이념이 아니면 안 된다고 세계적으로 조여들어 올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순회하면서 믿지 않고 완고한 이 백성을 포위작전하려니 세계적으로 진을 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 그때 가서도 너희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할 거야? 두고 보자' 이랬어요. 몇 년 후에 보자 이겁니다.

이 나라가 살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삼천만 민중이 대성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데서 돌아서는 겁니다. 통곡하기 전에는 살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통곡시키겠느냐? 통일교회의 젊은 청소년들이. 우리가 땀을 흘리고 싸운 과거 역사가, 그 재료가 통곡시킬 수 있는 겁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때려서 쫓고, 별의별 짓 다 하고, 시켜 먹고 종살이시켰다 이겁니다. 때가 되거들랑 그 사실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이 이 뜻을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열 사람이 어느 부락에 가서 고생했으면 열 사람이 지난날의 사연을 얘기할 거예요. 다 모여 가지고 우리는 이 부락에서 과거에 이랬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이렇게 추방하고, 누가 이렇게 몽둥이 찜질을 했고…. 가서 사실을 보고하게 될 때 그 부락민들이 통곡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부터 회생의 길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수습하자 이겁니다. 고생하는 여러분들을 대해서 또 명령해야 할 입장이니 선생님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아주. 여러분보다 더 불쌍하다구요. 이러지 않고는 …. 한많은 소망의 조국을 바라보면서 하늘이 슬퍼하면서 나왔고 예수가 슬퍼하면서 나왔고 우리 선조들이 피흘리면서 그 나라 그 땅이 어서 오기를 바라던 그 본향땅 조국건설을 누가 해줄 것이냐? 세계 만민은 자기 일신의 행락을 꿈꾸며 살아도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수가 나빴든 혹은 팔자가 사나워서 그랬든 선생님을 만나 이런 사연을 알았으니, 이 30억 인류 앞에 선두에 서 가지고 할말이 있고 보여 줄 것이 있고 남겨 줄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민족의 선두에 서 가지고 지치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끝까지 싸워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이 조국강토가 하늘의 본향이 되게 하고, 온 인류의 조국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이 민족이 복되겠나 말이예요.

그것이 조국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 전남 전체만은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해보고 싶어요? 「예」 해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봅시다.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알아야됩니다. 선생님은 요즘 아주 초조해서 못 견딜 정도라구요. 요즘 뭐 김중령 살해사건 같은 문제가 벌어져 가지고 점점점 복잡해진다 이거예요. 이래서 이번에 서울에 있는 모모 사람을 만나 가지고 이런 운동을 해야되겠다고 내가 지시도 하고 왔지만 말이예요.

기 도

아버님, 말을 하다 보면 가슴이 막히는 심정을 당신은 얼마나 참아 오셨나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불쌍한 한민족을 찾아오셔서 이 민족의 배후에서 남 모르는 눈물을 흘리셨고,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무어라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이 시대에 용납하여 주시옵고, 현세에 있어서 책임 못 하는 부패적인 이 사회제도를 아버지 공출히 여기시옵소서. 우리들이 여기에서 거름이 되고 뒷받침이 되어서 새로운 생명의 원천을,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선봉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바라는 그 무엇, 욕망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걸고 이 민족을 살려 세계에 봉헌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사오니, 이 뜻을 따라오는 당신의 적자들을 품어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와 같이 모아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이들이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이 기쁨의 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아버지 앞에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고, 이 모든 전체가 아버지의 뜻과 경륜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결과를 이루어 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모인 대다수의 사람은 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가슴속에 새로운 하늘의 불을 질러 주시옵소서, 하늘을 위하여 새로운 맹세와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부패되어서 사탄의 절망 가운데서, 사망의 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 많사오나, 공적인 뜻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를 제물삼아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가려는 이들을, 아버지,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키시어서 필시 아버지의 승리의 터전을 세우게 하시어서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 시간 남한 각처에 널려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적자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친히 보호하여 주옵고, 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 개척자의 사명을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는 그들 위에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주옵고, 소망의 새길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새로운 인류의 길도 아버지 열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5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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