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그간 비좁은 가운데서 긴 40일 기간을 지냈습니다. 목이 쉬어서 듣기 거북하더라도 들어 주길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자기라는 존재를 가만두고 생각하면 큰 짐, 혹은 어떠한 압력에 큰 자기가 압박되는 감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뜻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뜻이 크고 엄청나기에 이 큰 뜻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무한한 능력이 필요하고, 이 큰 압력을 타파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비장한 투쟁이라든가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이 뜻은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나'입니다.
더우기나 우리 나라의 실정을 두고 보면, 이 나라의 젊은이로서 이 험한 국가적인 운세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이 운세를 가만두고 볼 때에, 이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뜻을 찾아 이것을 책임지고 나가고자 한다면 현재 민족이 당하고 있고 세계가 당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없어 가지고는 도저히 새로운 세계에로 이끌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든가 뜻이 죄악세계에서 개인을 구하고, 가정을 구하고, 민족과 세계와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구한다는 엄청난 사명을 띠고 있다 할진대는 수많은 개인 앞에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요, 수많은 가정들 앞에, 혹은 민족·국가·세계·천지간의 어떠한 힘보다도 더 큰 능력을 스스로 내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힘을 발동시켜 발전해 나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전체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으로서, 혹은 가정을 두고 보면 가정으로서,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 그 범위가 큼에 비례해서 자기가 대처해야 할 내적 결의와 마련되어야 할 능력이, 힘이나 여건들이 거기에 비례되는 이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한 역사적인 임무를 앞에 놓고 더우기나 천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여기에는 하나님만이 계셔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척하는 무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거절하려 하는 반대의 입장에서 파괴를 도모할 것이요, 또 악이 성(盛)하면 하나님이 악을 배제하여 청산하기 위한 소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모하든가 저기에서 소모하든가 선한 편에서 소모하든가 악한 편에서 소모하든가 이와 같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역사노정을 거쳐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큰 사명과 큰 은사를 앞에 놓은 내 자신을 보게 될 때, 책임을 지고 나서고 사명감에 불타는 입장에 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크나큰 압박감에 눌리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기 자체가 천지로부터 세계·국가·민족을 거쳐 가정을 배경으로 해서 여기에 나타났다 이겁니다. 이제 여러분 개체가 선한 세계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개체로 섰느냐 할 때에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가정, 선한 민족, 선한 국가, 선한 세계를 대신하여 보장받을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갖추고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 이겁니다. 도리어 이것보다 악한 세계, 악한 국가, 악한 민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을 중심삼아 인연되어진 배후적인 기반이 크면 컸지, 선한 편에서 여러분 자신을 세워서 입증해 주고 보장해 줄 수 있는 내적 기반은 희박하다 이겁니다.
이런 찰나에 선 자기 자신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결의를 해야 될 것이냐? 지금까지의 생활태도, 강당에서 스스로 수련받았던 태도, 그것으로서 내가 이와 같은 엄청난 개인으로부터 가정·국가·세계·천주까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심정세계에까지 도달하여 공인받아야 할 자신이라는 것을 악한 세상 앞에 뚜렷이 명시하기 위해서는 악한 세상의 개인 앞에 승리해야 되고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 앞에 혹은 어떠한 주의나 사상 앞에 여러분은 이것을 박차고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냉정히 비판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엄청난 위치에 섰는가 하는 것을 더더욱 깊이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조종해 나가든가, 선한 개인으로부터 선한 가정·종족·민족·국가를 거쳐 선한 세계무대로 나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지도자가 있어 가지고 내가 그의 치리를 받아 그 길을 가든가, 혹은 믿는 절대자가 있어 가지고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도록 코를 꿰어서 그 길로 끌어가든가 하는 비상한 방편이 없는 한 여러분 자유 의사로 이 길을 가라 하게 될 때는 열이면 열 번, 백이면 백 번 다….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이 선을 위해 가다가 전부 다 배반자가 되었던 것을 우리들은 비판하고 배워 왔습니다. '과거의 선조들도 이러했고 오늘 현세에 뜻을 대한 사람들도 이러했으니' 하고 지금은 비판하고 있지만 여러분 각자들이 비판받는 무리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과거보다도 더 결의를 해야 되고 지금까지 뜻을 대신해서 맹세한 것보다도 더 결의를 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이 길을 가는 데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여러분의 심정 가운데 그러한 불타는 각오와 투지력과 결의를 가지고 새삼 여러분을 걸어 놓고 하늘땅 앞에 혹은 이 원수 앞에 선포하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청소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여러분과 같은 연령 시대에 있어서 어차피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번 뒤넘이쳐 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모든 고통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비애의 곡절을 피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환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환난이 기필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가 선의 세계가 아니고 악으로 시작하여 악의 목적 세계를 영위해 나가는 역사 발전 도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종국적인 결말은 기필코 선한 사람을 환영하는 미래로서 나타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종결짓기 위하여 최후의 단판을 결정짓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역사적인 슬픔과 역사적인 비애와 더불어 이것을 판가리하고 스스로 승리적인 자세를 갖추어 천지 앞에 새로운 용기와 새로운 자세와 새로운 심정을 갖고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지 않는 한 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 가슴 한 가운데 소망과 포부를 지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내 것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은 다 갖고 있습니다. 새롭고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는 남이 하지 못하는 더 좋은 면의 것에 반대되는 여건들을 타파해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이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혹은 현실적인 생활 시점으로 보아 우리가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출발의 길에 서 있는 여러분 자신을 세워 놓고 다시 한 번 다짐하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나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갈 것이냐? 이런 문제를 걸어 놓고 생각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 도상에 있어서 두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 할 때 반드시 반대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래의 선을 세우기 위한 사회가 아니요, 선을 반대하던 역사적인 사회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은 하기가 어렵지만 악한 일은 하기가 쉽습니다. 열 가지의 악보다도 한 가지의 선을 행하기가 더 힘든 사회적인 실정 가운데 내 몸이 잠겨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악이 기반을 닦고, 악의 사조가 다시 역사적인 배경으로부터 현실적인 무대를 거쳐 미래에 우리가 추구해 나갈 세계를 정복하려는 사회적인 사조를 앞에 놓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것을 관망하는 입장이나 도피하는 입장에 서면 선한 나라를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선한 개체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요, 선한 개체를 완성할 수 없다면 선한 가정을 완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요, 선한 가정이 없으면 선한 국가, 선한 세계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섭리, 하나님이 뜻을 세워서 오늘 이 땅 위에 구원섭리를 하시는 전체적인 소망이 이 지상에서 성취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기로에 있어서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박차고 나가야 할 자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출발하는 시점에서부터 내가 어디까지 달려가야 될 것인가를 측정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역사도상에서 복귀섭리를 해 나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인 한 개인을 찾기 위해서 역사적인 투쟁을 해왔습니다. 역사적인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또 역사적인 투쟁을 해왔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어느 가정이나 어느 사회나 어느 국가나 어느 세계 어느 주의를 막론하고, 그 주의가 평면적으로 나타났고 시대적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인연과 동기에 있어서는 역사성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하나님이 노아 같은 양반 한 분을 세워서 '120년 후에 내가 천지를 심판하겠다'고 약속하게 될 때는 그 개인을 부른 것이로되 역사적인 시련과 역사적인 고통과 역사적인 환란 도상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120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하면, 세계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고 혹은 죽음길을 가는 도상에서, 선을 따라 나가는 데 있어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배반하기 쉬운 자리에서 120년 동안 하나님이 노아에 대해서 명령한 것을 노아가 행동하여 지켜 나온 시기였습니다.
만일 노아가 80년 동안만 수고했더라면 이 뜻은 미성사(未成事)입니다. 100년 동안만 수고했다 하더라도 미성사입니다. 119년 성사하고 '아, 하나님이고 뭣이고 나는 모르겠다' 하고 후퇴했다면 미성사로 끝날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년 동안 꾸준히…. 그는 벌써 하나님이 작정한 120년이라는 기간에 있어서 길이가 길면 길수록 거기에 대동하고 포함되어 있는 시련과 고통과 역경이 얼마나 큰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그 마음 가운데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온 세계 만민은 악한 시련 도상에서 다 포로가 되었지만 나는 악한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가는 길을 가로막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포로가 되는 패자가 되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신념의 기반 위에서 스스로 실체적인 행동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는 데 있어서 그것이 하루의 생활로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120년 이후에 남아질 수 있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결의가 노아에게 없었으면 그는 가다가 망했을 것입니다. 만일에 노아 자신이 이것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면…. 누가 재촉하여 '어찌하여 당신이 약속된 기간을 방심하느냐'고 충고해 줄 수 있는 부인이라든가 자식이 있었으면 노아는 행복한 아버지요 남편이 됐을 것입니다. 120년 동안 남이 알지 못하는 천적인 명을 받아 가지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노아의 처나 자식들은 협조를 못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노아는 환경의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외적인 고충이 크면 클수록, 안팎의 시련이 크면 클수록 붙들고 늘어졌던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노아는 언제나 '내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놀음을 하지만 내 개인으로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려고 할 때는 열 번 백 번 천만 번 낙심할 수 있는 자리요, 도리어 지긋지긋한 생활 터전인 것을 느끼는 노아는 자신이 홀로 이 일을 해 나간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생각을 가졌느냐? '나는 혼자 하되,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하는 것이요, 혼자 하되 1600년 동안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선한 사람을 불러 나온 과정에서 협조한 선한 선조들과 같이 동반해 싸운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역사적인 과제를 여기서 만들고, 역사적인 인연을 여기서 만들고, 천적인 인연이 자기로 말미암아 빚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외적인 시련에 부딪치는 그것보다도, 외적으로 나타나는 그 가치보다도 내적으로 인연된 가치를 더 철저히 생각하기 때문에, 이 둘을 비교해 볼 때 내적 인연이 크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비교하는 능력을 가지고 비교해 보니 이것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노아는 120년 동안 싸워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생활도 그렇고, 가정의 생활도….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에 야곱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겁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21년 동안 하란 땅에 가서 라반의 수하(手下)에 있으면서 모진 압제를 받고 모진 수모를 받아 가면서 하나님이 축복한 축복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과 내가 당하는 시련과 바꿀소냐! 이 길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같이 가신다. 내가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것을 받드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나와 같이하신다' 하는 신념이 환경에 머물러 있는 모든 핍박과 시련보다 더욱 가치가 크다는 것을 야곱이 느꼈기 때문에 하란 땅에 들어가 21년 동안의 수난의 길을 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축복을 받아 가지고 돌아온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가서 4백 년간 고역을 당하게 될 때에 그 4백 년간의 고역보다도 가나안 복지, 하늘이 축복한 땅, 아브라함ㆍ이삭ㆍ야곱을 통하여 약속한 철두철미한 이스라엘 선민권을 이 천지간에 빼앗아 갈 자가 없다, 아무리 시련이 크더라도 이 축복을 생각하고, 이 축복의 뜻을 이루려는 하나님이 있다 하는 것을 아는 그 마음이 시련보다 더 컸고, 더 무서운 힘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어마어마한 사지(死地) 가운데서 새로이 단결하여 나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을 두고도 그러했고, 가정을 두고도 그러했고, 민족을 두고도 그러했고, 오늘날 세계적인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혹은 민주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개인을 선별해서 축복하기 위해서는 아무 덕도 없는 사람, 공로도 없는 사람을 끌어다가 개인적으로 축복해 주는 법이 없습니다. 개인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만 닦아서는 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기반을 닦아 가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됩니다. 자기의 책임에다가 플러스해서 가정을 구할 수 있는 책임을 한 사람이라야 개인적인 축복을 해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개인적으로 축복을 받으면 못 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축복받게 될 때, 그가 축복받고자 하는 그 욕망보다도 가정을 축복받게 하기 위한 욕망이 더 불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은 개인적인 축복을 해줬습니다.
또, 가정적인 축복은 민족적인 축복의 기반을 닦아 놓고 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적인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가나안 7족을 멸하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또, 세계적인 발판을 닦기 위해서는 그 원수들을 대비하여 싸워 나갈 수 있는 국가적인 기반의 터전을 마련해 놓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국가적인 터전을 마련해 놓고 민족적인 해방의 문을 열어 놓을 줄을 몰랐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 애급 땅에서 나오면 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아니예요. 애급 땅에서 나와 가지고 이스라엘 건국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몰랐기 때문에 망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예수 이름으로써 일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2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해서 천국이 되는 게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하늘땅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만 전세계적인 기독교인의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축복을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점점 발전시켜 나가서 고차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니 더 고차적인 욕망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개인적인 축복, 가정ㆍ국가ㆍ세계적인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역사를 미루어 봐서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이러한 두 갈래 길 가운데서 어디로 갈 것이냐? 지금까지 사망의 세계에서 포로가 되어 살면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이고 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무가치하게 살아온 과거를 후회하고 그러한 나를 청산짓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참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들 앞에 이러한 축복의 내용을 갖고 와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평면 도상에 불러 놓고, 삼천만 민족 혹은 30억 인류를 지상에 세워 놓고 하나님은 공통적인 축복의 말씀을 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신부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신부는 개인적인 위치의 신부라고 알았습니까, 가정적인 입장에서의 신부라고 알았습니까? 신부는, 개인적 입장의 신부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 입장의 신부도 있을 것이요, 민족을 대표한 지도자의 아내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신부도 있을 것이요, 세계와 하늘땅을 총합한 신랑 되신 주님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황태자인 그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지를 호령하기에 결함이 없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어, 예수 믿으면 천당 가지. 신랑 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오겠지' 하고 있지만 그건 종의 부인의 입장도 못 되는 것입니다. 종의 부인의 입장도 못 되어 가지고 '오, 하나님의 아들 되신 구세주가 내 남편이다' 그러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개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련도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지니고 있는 사명과 가치는 민족적이냐 세계적이냐 혹은 개인적이냐에 따라 차이가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천적인 우리의 소망을 두고 볼 때도, 주님이 오늘날 신랑으로 오시는데 그 주님은 어떠한 신랑으로 오시기를 바라느냐? 나 하나를 대신하여 개인적인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으로 믿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망해! 그렇다면 개인적인 구원섭리를 노아 같은 양반을 통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을 구하고, 가정을 구하고…. 이렇게 점점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개인을 하나 빼 가지고는 수많은 시련을 주고 단련을 시켜서 한 고비를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이 개인적인 부름을 받던 그 지긋지긋한 길을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는 꿈에라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고난길, 사탄이 그를 따라와서 다시는 시험할 수 없을이만큼 지긋지긋한 자리를 거쳐야 개인들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석같은 개인적인 기반 위에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가정 기반 위에 민족을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민족 기반 위에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국가 기반 위에 세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세계 기반 위에 하늘땅을 놓고 비로소 아버지가 거기에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 신랑 되신 주님이 전부 다 나를 위해…'라고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이 재림하게 되면 천지를 수습하고, 공의의 법도를 따라 심판해 버리고, 그 천적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신 열녀, 효자 효녀를 거느리고 새로운 개인을 수습하여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고,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여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를 편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시는 분이 주님인 것입니다. 이건 그저 주먹구구로 구름 타고 와서 다….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이 놀음을 하지를 않는다구요.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신앙 관점에서 우리의 욕망과 소망이 무엇이냐? 대다수의 사람을 보면 뭐 천지를 지배하는…. 요즘 신문에 보면 케네디가 유명한데 '케네디 대통령보다 더…' 그러는데,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데는 날아가듯이 갈 수 있어요? 아니예요. 지상에 기반을…. 맨 처음에는 벽돌 하나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콘크리트로 기초를 쌓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하늘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민족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이 어디 있느냐? 이건 오랜 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기반을 쌓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 일대에서 얻어진 이름이로되 그 일대에서 얻어진 명사는 가정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민족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그다음엔 국가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세계적인 이스라엘로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사를 가졌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망해 버렸습니다.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다 망했습니다. 예수를 잡아죽임으로 말미암아 다 망해 버렸단 말입니다. 유대 백성을 보게 될 때, 본래의 민족과 국가를 세우려 하던 세계사적인 이스라엘, 세계 국가적인 이스라엘, 국가 주권을 중심삼은 승리적 이스라엘을 건국하려 한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스라엘 역사, 가정적인 이스라엘 역사는 닦았지만 국가적, 세계적 이스라엘 기반을 닦아야 할 주권적인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깨깨 못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그 나라를 치는 사람은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왔다 간 후의 2천 년간은 왜 지지리 못난 입장에서 나그네가 되어 가지고 가는 곳곳마다 학대를 받고 가는 곳곳마다 몰리게 되었느냐? 그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간단히 안 돼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사적인 환난을 극복하라 이겁니다. 이 환난이 십년 가면 십년 이상 품을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어야 되고, 백년 가면 백년 이상 참아낼 수 있는 내 자체와 내 가정과 내 주의, 혹은 교파, 새로운 이스라엘 이념을 가진 주권국가를 만들어 놓아야 영원히 남아지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제아무리 개인적으로 승리하고, 가정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세계사적인 이스라엘 권한을 갖고 나온다고 말하지 말라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첫 발걸음을 내딛는 문 앞에서부터 여러분을 환영할 수 있는 사회의 환경과 사정이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는 친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여러분의 가정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인연돼 있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것이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여러분이 세상 것이요 악 그대로의 것이라면 그런 일이 없으되, 새로운 인연을 택해 가지고 선으로 향하려 할 때는 이 기반 닦아진 모든 악의 운세는…. 새로운 승리의 행로를 개척하는 여러분 앞에 있어서 친구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개인적인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것 알았지요?「예」선악의 중간 위치에서 여기에 결정적인 승리권을 여러분들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옛날 그 자리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악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잘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붙들고 나와야 돼요. 그러니 과거에 여러분이 생활하던 것보다도 몇십 배 이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것을 바라느냐? 투쟁의 역사노정이 오늘날 인류사 배후에 남아져 있는 연고로 인간들은 `하늘이 있으면 절대자를 내가 믿을 것이다. 절대자의 뜻을 따라 이러한 세계사적인 승자의 기반을 세우게 해줄 수 있는 어떠한 주의가 없느냐? 선한 어떠한 지도자가 없느냐?' 하고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믿든가 그런 절대적인 능력의 배후에서 보내신 메시아를…. 지금부터 2천 년 전의 메시아 같은 양반은 하늘의 힘과 더불어 이 땅 위에 있어서 최고의 지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는 가정, 민족을 지나 국가 기반을 갖추어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야 할 텐데, 다시 말하면 국가 기반 위에 세계적인 시련을 방어해서 이것을 닦아 놓고 국가를 인도해야 할 텐데 그 책임 노상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 나라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 지상세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붙들고 요리해야 됩니다. 요리를 해야 된다구요. 사탄세계의 개인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끈기 있게 십년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됩니다. 일생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결심 했어요? 「예」 정말 결심했어요? 「예」 여러분들 잡아다가 거꾸로 꽂아서 한번 엎어놓고 '이 자식아, 너 통일교회 계속 갈래?' 하면 어쩔 거예요?
선생님은 과거에 그런 놀음도 해봤어요. 별의별 놀음을 다 하면서….‘내 피와 살, 내 세포에서는, 내가 각오하고 나가는 이 길에 있어서 양보하지 않고 투쟁한다’하면서 나왔어요. 세상 사람들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해 가지고 지도자가 된 사람이라든가, 어느 사람의 안수를 받아 가지고 목사가 된 사람들과는 달라요.
뼈가 있어야 됩니다. 중심을 지배할 수 있는 뼈가 있어야 됩니다. 온 천지, 전우주를 움직일 수 있다 하더라도 나한테 항복해야 됩니다. 왜? 만우주는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예요. 내가 치고, 내가 지배하고, 내가 하고자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이겁니다. `네 자체의 실력이 어떠한 기준에 있느냐? 내 일대에 와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개인을 농락하던 사탄아, 내 앞에 와라. 가정을 농락하던 사탄아, 내 앞에 와라. 국가 민족을 대해서 농락했던 사탄아, 내 앞에 와라’해 가지고 영적으로 이것을 굴복시키고, 실체로 나타나게 될 때 대결하여 생사의 판가리를 짓겠다는 과정에서 승리라는 두 글자를 남기고 죽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유스러운 입장입니다. 지금때는 자유스러운 때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를 대하는 여러분들이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들어왔으니 진리의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시대적인 혜택 기반을 닦고, 어떠한 승리적 기반 위에 서 있느냐 하는 것도 모르면 안 되겠어요.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거든요. 통일교인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선생님이 지도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행로에 있어서 내가 어떠한 승리적인 기반을 닦고, 어떠한 투쟁적인 도상에 서 있는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혜택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가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가정적이냐, 종족적이냐, 민족적이냐, 국가적이냐, 세계적이냐?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투쟁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돼요. 충신 열녀가 되기를 원하고 효자 효녀가 되기를 원하거든 하나님이 요구하는 목적을 향하여 험한 시련, 어려운 환난이 부딪쳐 오는 그 물결을 책임지고 하나님이 주인이라면 주인 대신,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아버지 대신, 하나님이 군왕이라면 군왕 대신이 되어 환난과 핍박과 고통을 자기가 짊어지고 부딪쳐 생사 결단하여 승리의 조건을 남길 수 있어야 되고, 그 승리의 조건은 그때의 시대만이 아니고 과거를 수습하고 현세를 수습하고 미래에 새로운 터전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신 효자 열녀의 명사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세상적인 도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시기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삥삥 돌 수 있고, 여기 들어오나마나 한, 있으나 없으나 한 패도 될 수 있습니다. 나가는 두 갈래 길 앞에 정도를 향하여 반드시 오른쪽을 기준 하고 나는 한편에서 언제까지 악한 것을 심판한다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이 두 갈래 길 가운데 섰으니 나는 참다운 개인을 붙들고 거짓된 개인을 정복하고, 참다운 가정을 붙들고 그릇된 가정을 심판하고,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적인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적인 악을 심판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내 왼쪽에서 침범해 들어오는 모든 것을 끊고 오른쪽을 침범하지 않게끔 절대 보호하며 절대 투쟁하여 승리적인 장벽을 만들어 놓고 간다는 신념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앉아 가지고 바라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절대 강도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누가 싸워 줄 거예요? 누가 이것을 이루어 드릴 거예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남이 활동하면 들어와 가지고 그때 가서야 슬쩍 끼어들 거예요? 책임분담에 있어서 95퍼센트는 하나님이 하게 되어 있고 5퍼센트는 인간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95퍼센트부터 100퍼센트권 내에서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이것은 놀다 남은 그런 시간에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총력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런 투쟁 역사가….
개인적으로 침범한 세계적인 사탄이가 있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세계에 나가 투쟁해서 승리해야 할 가정적인 사탄권이 있는 것이요, 국가, 혹은 세계적인 사탄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복할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신 있어요? 「예」말은 자신 있지. 자신 있습니까?「예」6천 년 동안 하나님을 멋지게 배반해 나오고,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을 유린해 나오던 사탄의 지혜를 당할소냐? 자신 있어요? 「예」 뭘로 당할 거예요?
오늘날 자연과학 문명이 발달함으로 말미암아 전쟁도 과거의 전쟁과는 다릅니다. 이제는 적의 비행기가 어디서 날고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편리해진 거예요. 레이다가 있어 가지고 말입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거기에 동반된 무기를 겸하여서, 활용해서 싸우면 싸움에서 고생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과 대결해 나가는 역사 도상에 있어서도, 사탄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세계사적 사탄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의 기준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원수세계에 없었던 그런 무기를 지녀야 됩니다. 가정을 정복하고, 국가·민족·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에 없는 새로운 무기를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죽으면 죽었지 우리는 안 죽는다. 세계가 망하면 망했지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왜?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맹목적이 아닙니다.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맨 처음 들어올 때는 옛날 노아를 부를 때나 마찬가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요. 오늘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을 걸고 말하면 개인적인 투쟁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모진 풍상 가운데 내 개인적으로 백번 천번 처참하게 쓰러질 상황이 많았고, 가정적인 시련 도상에 있어서 별의별 일이 많았지만 내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민족 국가가 통째로 반대했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세계가 반대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이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은 선생님 말씀 듣겠나요, 안 듣겠나요? 「듣겠습니다」 강압적이요, 강제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마음이 그렇게 돼 있어요? 「예」
우리는 족속이 달라야 됩니다. 족속이 달라야 돼요. 본질적인 바탕이 달라야 됩니다. 지금까지 악한 세상에서 습관적인 생활에 젖어 있었고, 환경과 배경적인 그러한 무대에서 자라난 내 개체인 연고로 인습적이고 주관적인 관념이 전부 다 악에 접하기에 쉬운 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잘라 내야 됩니다. 나면서부터 따라다니는 지긋지긋한 이것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돼요. 옛날에 뭐 어디 가서 붙은 것도 전부 다 잘라 버려야 돼요. 동기에서부터 잘라야 됩니다.
나는 어디서 왔느냐? 악으로서 출발하여 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나서 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으로 와서 선을 입증하여 악을 치고 돌아가야 합니다. 악에서 구원받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본래 선에서 났으니 악과 원수의 입장에 선 선이기 때문에 악을 치고 내 사명을 완수하고 간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구원받아 가지고…' 구원받아 가지고 어떻게 원수를 갚아요? 그런 사상을 가져서는 안 돼요. 나는 출처가 다르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해왔지만 섭리를 하는 데는 심정적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해 나왔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심정적인 종적 기반을 통하여 출발해야지, 말씀적인 기반을 통하여서는 절대 아버지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핏줄로부터 타락을 하지 않은…. 본래 바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인연되는 것은 내가 보고는 참지 못해요. 세포가 요동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본래부터 출처가 다르다. 본래부터 나는 너와 달라. 사탄을 청산하고 심판해야 되겠다. 악의 생활무대를 일소해 버리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여리고 성이 일시에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세상 무대를 중심삼았던 여리고 성을 일시에 무너뜨려 가지고 그런 기반 위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손이 가는 곳에는 개인적인 재창조가 벌어지고, 그 개인적인 재창조의 완결을 통하여 가정적인 재창조가 벌어지고, 민족ㆍ국가ㆍ세계를 중심삼아 재창조의 역사는 확장됩니다. 여러분의 계획이 크고, 맡은 바의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거기에 대비되는 시련과 고통이 동반해 오나니, 이 시련과 고통 앞에 패자가 되지 말고 시련과 고통을 받아 나를 거기서 연마하고 다짐하여 그것을 맡기고 물려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요 조건으로서 소화시켜야 되겠다, 이런 배포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나가고자 하는 결의보다도 사회에 엉클어진 악습, 사회적인 모든 악의 흐름이 여러분을 포위해 한 곳으로 끌고 가게 될 때 여러분들이 거기에 대비해 가지고 주관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그렇게 못 되어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돼요. 실지 자기를 살피고, 자기를 분별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 가지고 끊임없는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때, 밤이 될는지 아침이 될는지 저녁이 될는지 모르지만 어느때에 사탄의 공세는 있을 것이거늘 이 공세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 돼요.
젊은 사람들이 먹기를 탐하면 밥덩어리가 날아온다 이거예요. '이놈아, 네가 배가 고프지? 이 불고기 백반을 먹어 봐' 한다구요. 또, 놀기를 좋아하면 '야 얘야, 너 과거에 이런 일 좋아하지 않았어? 그 이상 것을 주마' 한다구요.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 '야 야 야, 뭐 배고프게 그럴 거 있니? 잘먹고 잘살아라. 언제 소원의 세계를 이루어 가지고…. 개인도 복귀 못 했고, 가정도 복귀 못 했는데 국가와 세계와 천주적인 선의 동산에서 언제 살겠니?' 한다구요. 생각하면 창창하거든요. '언제 살겠니? 당장에 뛰쳐 나가면 먹을 것이 있고, 춤출 곳이 있고, 활동할 수 있고, 네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태산같이 있는데 그럴 게 뭐 있니?' 하고 여러분이 외적인 오관으로서 느껴지는 감각적인 모든 여건들이 여러분을 얽어맨다 이겁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아, 피곤한데 자야지' 하는 것이 얽어맵니다.
그다음에는 정욕입니다. '아, 누가 보고 싶다. 집에 있을 때는 내가 배고프다 하면 떡도 해주고 뭣도 해주고, 내가 춥다고 하면 어떻게 어떻게 해줬다. 부모의 사랑이 그립고 누나가 그립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적인 모든 문이 열려 가지고 침투한다 이겁니다.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친구….
그다음에는 옛날 세상과 비교해 보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오기 전에는 이렇게 살았는데 통일교회 오고 나서는 이렇게 됐다. 개인적으로 볼 때도 형편이 없고, 가정적으로 볼 때 추방자요, 민족·국가적으로도 몰리는 입장이다' 하고 비교한다구요.
선생님이 왜 그러겠습니까? 여러분보다 못해서 그런 놀음 하는 줄 알아요? 내게는 친구도 없어요. 내게는 부모도 없어요. 가정도 없습니다. 민족도 없습니다. 나라인 대한민국이 있어도 대한민국은 나에게 친구가 못 됩니다. 환영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몰아대고 뭐…. 오늘날 전세계 30억 인류가 내 당대에 친구가 못 되는 입장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 반기를 들어 들이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싸움 시대가 지나갔지만 개인적인 싸움하던 이상의 결의를 가지고 있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 시대가 있어 왔지만 가정적인 싸움 무대를 대해 싸웠던 이상 결의를 가지고 있어야 되고, 종족·민족적인 싸움은 이미 지나갔으되 그 이상의 신념과 그 이상의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왜? 세계적 싸움이 남아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개인을 불러 세워 놓고, 야곱이면 야곱을 불러 놓고 '야곱아, 네가 세계를 대하여 나 대신 싸워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부탁은 했지만 하나님은 믿지 못했습니다. 모세를 세워 놓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들어가라는 명령을 하였지만 명령하는 하나님은 모세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도 망했던 것입니다.
천년 만년 보장된 입장에 있어서 개인적인 승리요, 가정적인 승리요, 민족ㆍ국가ㆍ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 준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지배하고 민족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련 속에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궁중에서의 내적인 시련과 미디안 광야에서의 험한 외적인 시련 도상에서 연단을 해 가지고 민족적인 연단 과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 될 때 그를 절대적인 민족적 책임자로서 세웠던 것입니다.
오늘 이 국가도 그렇잖아요?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젊은이들을 가만 보면 잘못돼 가지고 공을 안 들이고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공 안 들이고 성공하면 망한다 이겁니다. 오래 못 간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천년 수고하더라도 천년 개인의 승리적 기반을 닦고 기뻐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고, 내가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 천년 만년 수고하더라도 이 천년 만년 수고한 기반 위에 세워진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이 억천만세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갖고 싶다' 이래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의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일생이 문제가 아니요, 몇 십 대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기간에 엄청난 수고를 했더라도 억천만세까지 민족적인 주권과 기반이 무너지지 않거든 그것을 보고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조갈증이 나 가지고 혀를 내뽑아 가지고 쑥덕 공론하면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성경을 보고는 알 수 없단 말입니다. 상징과 비유로 나타난 부분이 많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고 6천 년 동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냐 말이예요. 하나님이 사람 같으면 벌써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자랑했겠나 말이예요. 무엇 하나 자랑하지 않는 게 없을 것입니다. 내 속에 있어서는 어떻고 어떻고, 내 귀는 어떻고…. 사람 같으면 전부 다 자랑해 가지고 하나님 판도를 다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계시기는 계시는데 어찌하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시냐? 만년대계(萬年大計) 바라보는…. 억천만세의 영원무궁한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나님은 꾸준히 내적인 기반과 인내와 작전을 세우시면서 심각하게 포위작전을 하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쓰러져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둘이 싸우고 소리가 나니…. 이래 가지고 나간다 이겁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하루의 성공을 바라지 말라 이겁니다. 옛 속담에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큰 집을 지으려면 큰 터가 필요한 것이요, 큰 터 위에 큰 기초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초가 크면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요, 거기에 대한 수고와 부역할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모든 물자가 더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가 큰 사업을 한다 할진대는….
주인이 창고를 백 개 가졌는지 천 개 가졌는지 알 게 뭐냐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세계적인 복귀섭리가…. 세계상에 없었던 최대의 행복과 최대의 축복을 주기 위한 하늘 창고에 보화가 얼마나 있는지 아느냐 말입니다. 내가 지금 이층에 살고 있지만 하이어 카(hire car;전세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배통을 내미는 녀석들 우습게 안단 말입니다. 그건 다 꺾여 나가는 거예요. 비록 가진 것은 단벌 옷이요, 누운 곳은 판자집일망정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승리적인 준비와 결의를 해 가지고 세계사적인 이념을 지니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야 하는데 더 들어가 가지고 조금만 힘들면 어렵다고 뭐 어떻고 어떻고….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세계, 혹은 민족ㆍ종족 앞에 있어서, 가정적으로 승리자가 못 되겠거들랑 개인적으로라도 완전 승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자기가 자기를 알 겁니다. 내 실력을 볼 때 이만큼밖에 책임질 수 없다 하고 생각하거든 그 한계를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100퍼센트 120퍼센트 성공하겠다' 해야 됩니다. 개인적인 승리 기반을 120퍼센트만 닦아 놓으면 가정적인 시대는 곧바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또 수고하면 더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턱없는 욕망만 커 가지고, 개인적인 승리 기반을 닦은 내적인 모든 여건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욕심은 커 가지고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이루기 위한 입장에서 출발하는 도상에 있으니 결의하고 각오와 신념을…. 이런 것을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여건이 많다 이겁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하거든 머리를 싸매고 공부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싸움을, 이러한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시련과 핍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거늘 그 환란과 핍박에 부딪칠 것이 틀림없으니 편안할 때부터 미리 연단과 수련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바쁠 때는 한 사람이 두 사람하고 주먹받기도 해야 할 때가 있으니 그것도 대비해야 되고, 세상만사 천태만상의 그런 환경을 거쳐 나가서 수습하기 위한 선생이니 몸뚱이도 누구한테 지지 않아야 된단 말입니다. 또, 머리도 그렇고, 배짱도 그렇고,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기의 결점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결점이 많은 분야를 찾아 들어가서 더 주력해야 됩니다. 싫다 하는 것을 반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고생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스승이 되고 여러분이 법관이 돼 가지고 명령하여 이런 싸움을 해야 됩니다. 스스로 싸워 가지고, 스스로 채찍질해 가지고, 스스로 심판해 가지고 거기에서 해방을 받고 승리적인 터전 위에 섰다 할 수 있는 자기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기준을 갖지 않는 자는 개인적인 싸움 앞에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싸움터 앞에 그런 내용을 갖지 않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 훌륭하게 되고 싶어요? 「예」얼마나? 그런 욕심은 귀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대번에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에게 있어서 개인ㆍ가정ㆍ민족ㆍ국가 세계까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느냐? 여기에 있단 말입니다. 개인 도상은 편해요. 가정으로 가면 편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의 것이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누구의 것이냐?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것이냐 하면 민족만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요, 세계만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늘땅―세계는 여기에 다 들어가는 거예요―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의 최고 이념은 세상만사 다 버리고, 과거·현재, 현실을 다 무시해 버리고 하늘만을 위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거 멋진 표어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주로 하고, 천지를 위주로 하고, 세계 30억 인류를 위주로 하는 겁니다. 30억 인류도 작다구요. 우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구요. 그렇지요? 내가 30억 인류 위에 앉아서 1억 달러씩 나눠 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밤잠도 안 자고 아깝다는 생각도 안 하고 멋지게 나눠 주고 또 주고 싶을 수 있는 그 배포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하나님이 그럴 거예요. 하나님이 만약에 30억 인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으면 축복을 해줘야 될 텐데, 30억 인류가 갖지 못한 축복을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텐데 주면 얼마만큼 주시겠어요? 내가 옛날에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떤 축복을 해주실 겁니까? 30억 인류가 먹는데 모자라게 축복해 주실 겁니까?' 이런 기도를 했다구요. 30억 인류에게 나눠 주고 모자라는 게 아닙니다. 그건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나눠 주고도 또 나눠 주고 과거ㆍ현재ㆍ미래에도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게 뭐냐 이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놈의 사랑은 말이예요, 늙은이도 좋아하고, 병신도 좋아하고, 다 좋아하지요? 「예」 굶주린 사람도 밥보다도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래요? 지금 여러분들 가면 어렵게 살지요? 이제 가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 오늘 저녁 내가 일전짜리 빵 한 개 먹었습니다. 이거 되겠습니까?' 이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절대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런 기도는 대단히 잘못된 거라구요.
요즘에 저 기성교회 정통파―그들이 정통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우리 장로교회에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장로교회 하나님입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기도 하지 말라구요. 성결교회도 가만 보면 성결교회 떼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복이든 감리교 복이든 세계의 모든 복을 하나님이 그저 벼락을 쳐서 빼앗아 주면 허허허…. 이런 기도는 암만 해야 이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눈에는 장로교인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결교인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복받은 부모라면 아들딸 천 명 만 명 먹일 만큼 재산이 넉넉한 거예요. 또 그 아들딸이 틀림없이 효자 효녀가 된다면 아들이 몇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딸은 몇 사람이나 되면 좋겠어요? 효원이, 하나만 원해? 거 솔직히 이야기해 보라구. 하나인가, 어떤가? 뭐 무한정일 거예요. 우리 아들딸이 세계 어디 가든지 만민이 전부 다 우러러보고 다 존경할 수 있는 멋진 아들딸이 된다면 세계 30억 인류를 전부 다 자기 아들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할 거예요. 그런 마음이 있잖아요, 사람이라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있지요? 「예」
그러면 하나님은 얼마나 욕심이 많겠어요? 아들딸 쑥쑥 낳아 가지고 어디 가든지 하나님 아들딸이라고 하면…. 하나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참은 많은 것이 좋은 거라구요. 무한까지 인연맺고자 원하는 것이 참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양심이 참이예요? 양심은 좀 참에 가깝지요. 그래서 무한정까지 인연맺으려고 그러지요? 참의 인연권 내에 그 바탕을 두고 싶어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은 무한까지 주고 싶은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이 뜻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참아들딸들이…. 나도 그래요. 내가 우리 아이들 대해서 기도를 안 하는 겁니다. '우리 아들딸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안 한다구요. 기도하려면 '2천 년 전 예수 당시에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아들이 있습니까? 예수가 오기 전 4천 년 역사 가운데에 있어서 이 시대 사람들보다도 더 하나님 앞에 충성하던 아들딸들이 있거든 그들을 축복하소서. 만일에 이 시대에 있어서 더 큰 축복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 사람이 축복을 이루어서 나는 그 축복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소서' 이런 기도를 한다구요. 이러면 망하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이 그런 거라구요. 한 사람의 참사람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접붙이려고 그럽니다. 가지를 잘라 버리고 전부 접붙이려 한단 말입니다. 그게 복귀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저 자기 아들딸을 위해 남의 복을 전부 다 빼앗아다가라도 복 달라고 해 놓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니 예수가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웃음) 그거 생각해 봤어요?
나는 그런 기도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만민의 구세주요, 만복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주인공이 기도를 그렇게 하는데 '아무개야, 기도해라. 해라' 이렇게 한다면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거예요. '내가 구도의 도리를 펴서 하나님을 안다는 무리를 저렇게 만들었구나' 하면서 당장에 '이 자식' 하고 발길로 들이 찬다 이겁니다. (웃음) 여러분,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찾고 있던 아들딸이 어디 있습니까? 과거에 있었습니까, 현재에 있습니까? 현재에 없거들랑 우리 민족 가운데 앞으로 보낼 사람이 있다면 내 앞에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그런 사람이 없거들랑 '왜 없습니까? 뜻을 위한 충절이 부족했습니까? 뜻을 위한 민족적인 책임이 부족했습니까? 간곡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몰랐습니까? 내적인 그 모든 사연을 기필코 이 땅 위의 인간 앞에 통고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 마음일진대 그러한 마음을 통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없습니까? 만일에 나를 세워서 그런 사람을 이끌 수 있으면 나를 세워서 말씀을 전하여 그런 사람을 이끌게 해주시옵소서. 만일에 그것이 불가능하거든 나는 부족하오나 우리 민족을 통하여서 몇십 년 후에 몇백 년 후에라도 그런 사람이 있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부족하거든 그런 소망이 있거든 나를 통하여서라도, 나는 그런 사람의 종이라도 좋습니다. 죽을 고생을 다 해도 감사하겠으니 그런 사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그러한데 그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없거들랑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게끔 기도를 해야 된다구요. 그렇잖아요? 예를 들면 대통령을 만나려는 사람이 그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고 합시다. 가 가지고 배통을 내밀고 '내가 이렇고 이러니 이래라' 한다면 되겠어요? 먼저 자기의 사연을 통하기 위해서는 모든 입장을 전부 다 이해시키고 비로소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즉 그 입장에 있어서 정당화할 수 있는 내용을 주고받은 후에 자기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 사회의 룰입니다.
그런데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황태자 앞에, 하나님 앞에 다 달려간다 이거예요. 이건 그저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벼락맞아 죽을 패들이 축복받겠다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어요? 삼팔선 갈라졌을 때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안 된다구요. 한국을 구해 달라고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어요? 그렇지만 왜 안 되느냐 이겁니다. 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터를 닦아야 행차하시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지만 그 반석의 터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이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이 무너졌다 이거예요. 대한민국이 세계사 앞에 비참한 민족이 된 것이 아니라 이 민족에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터전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통일교회의 무리들이 세계적인 복의 터전을 바라거든 이들을 몰아서 이들이 나갈 수 있는 세계적인 반석 기반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풍이 불고,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치더라도 깨뜨릴 수 없는 반석 기반을 어떻게 닦아 놓을 것이냐? 그래서 젊은이들이 오게 되면 교회에 들어올 때까지는 말씀을 가르쳐 주지만 들어온 후에는 무자비하다는 겁니다. 이 코스를 걸어야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남이 자는 동안에 우리는 일해야 되고, 남이 방관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세계는 수라장이 돼 있는 판국에 우리는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됩니다. 그러려니 얼마나 바빠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에 의해 망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바람에 우리는 자랐습니다. 민족이 혼란된 환경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세계가 혼란된 와중에서 새로이 하늘땅을 통할 수 있는 축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바빠요? 이제 우리는 밤이 없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래서 4월만 되면 내가 몇 가지 행사를 할 겁니다. 지방으로 젊은 놈들을 다 배치할 거예요.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처리할 거예요. 내가 잘라 버릴 것입니다.
보라구요. 가만있어 가지고 선이 이루어져요? 가만히 있어 가지고 선이 이루어지느냐 말이예요.「안 이루어집니다」악은 선을 대비하여 무자비한 투쟁을 각오하고 나오지만 선은 무자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자비했습니까? 선이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오기 때문에. 악은 앞에서 침범하고 또다시 후퇴했다가 또다시 침범할 수 있으되, 선은 침범했다가 후퇴했다 또다시 침범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번 침범하고 나서 또다시 침범하기 위해서는 오랜 탕감적인 기간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됐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가 증거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분명한 거예요? 시작하는 마당에는 깨끗이 청산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후퇴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성장ㆍ발전하는 역사적인 인연을 세워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은 스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이 지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적인 때를 지내면 지낼수록, 뜻은 이루어진다고 알면 알수록 그 이루어지는 배후에는 발전이요, 성장이요, 거기에 있어서 뜻을 위한 행로를 개척해야 할 투쟁적인 책임을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을 두고 볼 때 자기 개인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때가 그런 게 아니예요. 그래서 금년 4월부터 새로이 1차 수습을 해야겠다 이거예요. 1차 정비를 해 가지고 나갈 준비를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이번 이 수련 받고 나가는 여러분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선을 위해서 플러스되는 방향성을 취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가정적인 사조가 흘러오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내가 승리했다고 해서 가정적인 사조를 배반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협조해야 돼요. 오늘날 국가적인 사조가 우리 앞에 다가왔으면 그 사조 앞에는 비록 개인적·가정적·종족적인 기반의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협조해야 됩니다. 뒷받침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연을 맺지 않고, 여기 자라는 데 있어서 자라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끼리 싸움하고, 가정은 가정끼리 투쟁해 가지고 점점 나가느니만큼 여러분들은 이 세계사적인 무대를 앞에 놓은 입장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어디에 설 것이냐 이거예요.
내 생활에 있어서 플러스적인 내 개체와 더불어 뜻 앞에 보탬이 돼야 됩니다. 여기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구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일선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갈래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될래요?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앉아 가지고 쉬는 사람 될래요? 구경하는 사람이 될래요? 어떤 사람이 돼야 되겠어요? 우리는 최후의 결전장으로 가서 생사의 판결을 짓는, 최후의 결판적 입장에 나가는 용사들이 돼야 됩니다. 어때, 용기가 있어요? 「예」'내 아들딸이 지금 배가 아픈데 아이구 약 사다 주겠다' 하는 생각 하겠어요? 그런 때를 봐서 언제 가더라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단계로 볼 때에 배후에 떨어진 사람은 편할 것 같지만 역사와 더불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가는 사람은 비참한 것 같지만 그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니만큼 이왕 전장에 나가서 싸우려면 세계적인 전쟁무대에 나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는데 어디로 갈 것이냐? 환경을 수습하여 복귀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플러스적인 입장에 여러분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얼마만큼 결의와 신념을 갖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원동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동지가 없게 될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지라는 거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니 그런 아들딸을 보호하는 겁니다. 일선에 나가 가지고 전쟁을 해본 사람이라야 전쟁터에 나가서 자기의 몸을 가눌 줄 압니다. 이건 지금 뭐 그것도 못 해 가지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최일선에 전부 다 내쫓아 가지고 고생 좀 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 생각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거예요, 흥하는 거예요? 「흥하는 겁니다」그렇게 하라우, 말라우?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라우? 「예」 그러니까 내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라구요. 여러분들이 나 대신 날 넘고…. 내가 실체기반을 닦아 놨다구요. 옛날에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삼천리 반도를 갖다 놓고 '이놈의 사탄들 물러가라' 하는 그런 싸움도 해봤습니다. 나타나면 그저 뼈다귀까지 건지지 못하게끔 그냥….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 거기서 사탄이 '아, 무섭다' 그런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어야지요. 신념적으로 제패하지 않으면 승리가 와도 역사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못 됩니다. 흘러가는 거예요. 승리를 남에게 안겨 주고 자기는 종밖에 못 됩니다. 그런 기백과 신념으로 어떤 주의, 사상, 이 사회의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일념과 우리들이 나아가는 만반의 결의 앞에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묵묵히 응시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해도 통할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지방 내려가서 패잔병이 되지 말고, 부디 낙오자가 되지 말고, 지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싸움 터전 위에서 이제 선생님과 더불어 만나 가지고 옛날을 회고하고, 역사적인 우리 통일의 용사들과 더불어 세계 인류와 더불어 의논하고, 다가올 그날을 찬양하면서 그 모습을 높이면서 하늘 앞에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가는 도상에, 싸움길 앞에 혼자 이것을 방비해 놓고 하늘편이 돼서 여러분들이 이런 뜻 앞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심판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끝까지 승리자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든가 그 무엇도…. 그러한 하늘의 책임을 맡아 하게 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한 많은 복귀의 길이 저희의 역사 도상에 비춰진 것을 저희들은 알았나이다. 이 복귀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은 눈물과 피와 땀으로 제단을 연결해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역력히 배웠습니다.
아벨 제단으로부터 노아의 가정을 거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를 거치고 4천 년 역사적인 모든 전부를 규합하기 위해 왔던 메시아와, 그 외에 12사도, 70문도를 위주로 하여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피의 제단의 상속자가 누가 되겠느냐고 서로가 다투어 오늘 현재까지 끌어온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세계적 대운세를 앞에 놓고 좌우에 판가름을 지어야 할 사람들은 아버님보다도 이 땅 위의 사람들이 아버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임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심판의 주인공은 아버님이 아니고, 심판의 여건을 제시한 것이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원수를, 깨끗이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런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탄을 완전 굴복시킨 사람이 아니고는 아버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 앞에 국가적인 기반을 세워야 한다는 승리의 결정을 갖지 않고는 하늘의 충신 열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오늘날 보기에 초초하고 갖춘 내용이 빈약하되 이 모습을 들어 충효의 반열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거룩한 축복의 기반을 저희들에게 연하여 있으니 황공하옵니다. 오랜 역사의 환난 가운데서 피의 제단과 더불어 아버지의 보호 가운데서 피를 뿌리고 간 수많은 열사들, 혹은 순교 선열들의 반열이 저희 시대에 저희와 더불어 아버지 앞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최대의 충성의 도리가 개방돼 있다는 걸 생각할 때에 황공하옵니다.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미래와 더불어 하늘의 공의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거룩한 공의 앞에 승리의 방패를 들고 악을 대치하며 선을 옹호할 수 있는 천적인 변호의 입장을 세울 수 있다는 놀라운 역사적인 선물임을 저희들은 역력히 알았사오니, 그런 것을 목전에 놓고 저희들은 순종굴복, 절대 신임하면서 절대 강하고 담대하여 원수를 굴복시키고 남겠다는 기백이 충천하여 온 천하를 제압하고 남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아직까지 지구성을 유린하고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 사탄을 이 지구성의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추방해 버리고, 아버지를 친히 모셔 놓고 `아버지의 소원성사하는 것이 이것이었고 아버지의 바라시는 승리의 발등상이 지구성이오니, 여기에 아버지 친히 좌정(座定)하실 수 있는 보좌의 이념을 펼치사 만민을 당신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제단을 대하시옵소서. 그것을 위하여 저희들은 종의 신세가 돼도 좋사옵고, 이것을 위하여서는 양자의 몸으로 팔려가 제물되는 일이 있더라도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하여 충성의 도리를 세우고 충신 열녀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감사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만민을 위해 싸우는 시련 도상에서 저희들은 낙망하여 하늘의 위신을 상실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이 저희들을 바라보는 도상에서 천적인 위신과 천적인 체면을 세우기 위해,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면서라도 그것을 위해서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비굴하지 않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40일수련 기간을 끝내고 이제 험한 파도가 몰려오는 시련 도상을 자기의 활동무대로 삼고 아버지의 아들딸들로 치리받을 결의와 그 자세가 어떻다 하는 것을 이제 과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시련의 도상이 이들이 내일부터 움직이는 발걸음 앞에, 나타나는 그 환경 앞에 벌어진 것을 알고 있사옵고 그런 때와 그런 환경은 이미 아버지가 당하여 간 것이요, 스승이 이미 개척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해 간 길이오니 하늘의 동반자, 스승의 동반자라는 그 역사적인 인연에 내가 동참할 수 있다는 거룩한 사실을 마음으로 찬양하며, 실제적인 자체는 존엄한 역사를 대신하여 승리적인 혈통과 승리적인 전통을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선의 재료로서 아버지 앞에 보여 드리고, 엄숙한 자체로서 살아 드릴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피어린 투쟁의 역사노정 위에서 고이고이 길러 주신 통일의 정신, 통일의 넋을 이들은 절대로 유린하지 말고 고이 세워서 만세에 자랑할 수 있고, 만민이 머리 숙여 찬양할 때 찬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소서. 그런 시련 도상에서, 아버지, 끝까지 지켜 주시옵시고, 싸움의 동역자가 되시어서 최후의 일전을 결하여 원수를 굴복시키어 승리의 개선가와 승리의 영광을 갖추고 이 민족과 인류 앞에 나타날 수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민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만세를 염려하여 수고하고 있는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 위에도, 아버지, 복의 인연을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후의 생애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고, 약할 때 같이하여 주옵시고, 쓰러질 때 아버지께서 붙드시어서 남아진 역사 도상에 있어서 끝까지 가고 또 가고 싶어 아버지 앞에 명령을 받기를 고대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 모인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교인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온 세계 사람들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넘어 통일된 이념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참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주인공을 모시고 천지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다 같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역사적인 노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던 것이고, 현실의 우리들에게도 간절한 소망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는 것이 통일인데,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 마을을 지배하는 데에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주먹만 세면 그 마을을 지배할 수 있었어요. 그런 시대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돈이 지배를 했어요. 돈이 있으면 돈을 가지고 세도를 부리면서 그 마을을 움직여 왔어요. 요즘에 와서는 권세를 가지면 어느 지역을 움직인다든가, 혹은 국가를 움직인다든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움직이는 방편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해 왔습니다.
더우기나 이때에 와서는 주의와 사상, 무슨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주의와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 주의가 좋으니 다 그리로 들어가야 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주의가 이제는 민주와 공산이라는 두 주의로 남아진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 온 세계 인류는 끼여 있는 거예요. 인간들이 바라는 주의나 이념은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무슨 주의니 하면서 서로서로 적대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통일된 세계가 되지 않아요.
오늘날 전세계 인류는 공산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민주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너나할 것 없이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의보다도 더 좋고 더 멋지고, 인류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게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 수 있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현실의 주의보다도 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주의를 버리고, 현실의 주의를 버리고 그 높은 이념의 주의를 따라갈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천지를 통틀어 보게 될 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간들이 이 세계를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 역사노정에는 성인현철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종교를 지도하던 대표자도 있었습니다.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회회교라든가, 기독교라든가 그 모든 정신적인 분야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도하던 분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정신적인 이념을 가진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서도 세계를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잘났다 하는 사람이 나와서 하나의 세계를 꿈꾸고 만민을 선의 이념세계로 인도하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가능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 편에서 우리 인간들이 어떠한 구상과 어떠한 계획과 어떠한 사상 체계를 세운 이념을 세워 가지고 이 세계 만민을 규합할 수 있겠느냐?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사람의 머리를 통하여 짜낸, 지식을 통한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이 세계 만민과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주인공이 계셔서, 이 주인공이 과거·현재·미래의 수많은 인류 앞에 '이것이야말로 과거에도 원했고, 현재도 원하고, 미래에도 원하는 하나의 주의와 하나의 이념이다'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상이라든가 주의를 내세운다면 모르거니와 현하의 인간들로서 꾸며진 어떤 주의 사상을 가지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만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 하면 그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인간 세상을 그냥 그대로 이렇게, 될 대로 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 보기만 하는 입장에서 나왔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당신이 구상하시는 선한 목적의 세계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 인간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 인간의 마음을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권 내로 몰아넣기 위한 섭리를, 혹은 역사를 하고 계시느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하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종교를 믿는 우리들은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사를 해온 분은 절대적인 분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던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난문제인 것입니다. 천지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역사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절대자인 그분이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왜 세계인류를 통일하지 못하였느냐? 기필코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통일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이나 그렇게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통일시키기를 바랐지만 통일시킬 수 없는 곡절의 그 무엇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곡절이 무엇이냐?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들의 사명이요, 이 곡절을 해결하는 것이 종교인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종교인, 혹은 수많은 철학자 등 누구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자기 멋대로 제각기의 주장을 하면서 현하(現下)의 세계까지 끌고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시키지 못하는 곡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서 해결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하나님편에서 보는 인간세계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하나님편에서 볼 때 이 세계가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되어 나오고, 이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한 것은 이러한 곡절이 있다 하는, 하나님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왜 하지 못하느냐?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든가, 혹은 할 수 없는 반대적인 요건이 있다든가 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고자 섭리하더라도 할 수 없게 하는 반대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목적이 달라서는 안 돼요. 하나님은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인간은 저렇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요, 인류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공동 목적기준이 무엇이냐? 이러한 문제를 아는 것이 통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면….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 세계를 통일하지 못하신 것을 바라볼 때 여기에는 어떠한 곡절의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모르는 한 이 세계를 통일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무엇이며,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가 바라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이 달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이 내가 바라는 목적이요, 인류가 바라는 목적이어야 됩니다. 그 목적이 일치되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땅 위의 인간들은 막연하게나마 선을 모방하고, 참 것을 모방하고, 옳은 것을 모방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심을 가진 사람은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악한 것을 다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비록 악한 자리에 처해 있어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본심에 들어가서는 악을 싫어한다는 거예요. 환경에 몰려서 그런 행동은 했을망정 그 진실된 본심에서는 악은 누구나 싫어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한 사람은 몰론이고 악한 사람도 역시 선을 바라고 옳은 것을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선한 세상을 빨리 이루지 못하고, 악한 것을 빨리 제거하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나와 가지고 선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선을 높이고 악은 때려눕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종교의 사명이 이것이예요. 악한 인연 가운데서 악이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선을 높은 기준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물론 종교의 사명도 그러하지만,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그런 행동과 생활의 틀을 세워 가지고 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온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끊김)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 편에서 이 세계를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실들을 우리들은 순식간에 알 수 있습니다. 평면적으로 이 세계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는 이 평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시대적인 종말이 가까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이 끝날에 있어서 이 세계를 기필코 하나의 세계로 만드시려 할 텐데, 어떠한 이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드실 것이냐?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불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혹은 이 땅에 정착해 있는 수많은 종파의 어떤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그런 걸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를 막론하고 현하에 있는 종파의 이념을 가지고는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합니다. 통일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다는 것입니다. 못 한다는 거예요. 더더욱 고차적인 것, 이념적으로 더더욱 고차적인 이념이 필요한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 이념이 어디로부터 와야 하느냐?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되고, 그 이념은 영원불변 길이길이 양심을 가진 선한 사람일수록 그 이념을 내 이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념이어야 됩니다. 양심을 지향하여 따라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그 이념에 접하게 될 때 그 이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기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도 더 두려워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이어야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지고 선한 사람을 만들고, 선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선한 가정을 만들고, 선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선한 사회를 만들고, 선한 사회를 만들어서는 선한 국가, 선한 세계, 선한 하늘땅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올라가더라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오늘날 세계적인 4대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그런 종교의 지도자들도 맨 처음에 출발할 때는 혼자였어요. 당시를 대표하여 진리에 입각한 선의 주체로 나타나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 '나를 따라오라' 한 자체를 중심삼고 개인을 선화시키는 운동을 하였고, 가정을 선화(善化)시키는 운동을 하였고,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발판을 형성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의 기준을 절대적인 선의 주체로 알아야 될 것이냐, 아니면 시대성을 띤, 즉 상대적으로 선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알아야 될 것이냐? 절대적인 주체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크나큰 선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먼 거리를 두고 구원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로 끌어가려니, 구원섭리를 하려니 모든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겁니다. 몇천 년 혹은 몇백 년의 세기를 거쳐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악한 인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를 세워 가지고 몇천 년 혹은 몇백 년 섭리하기 위한 몇천 년, 혹은 몇백 년 한계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 나라면 나라, 지역이면 지역, 그 분야면 분야에 속할 수 있게끔 해서 도라든가 선한 후예를 세워 주창하게 해서 환경권에 있는 사람들을 규합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규합되면 여기서 더 높은 선한 이념을 세워서 끌어올려 가지고 점차적인 발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수많은 국가를 중심삼고 주의 사상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종말시대에 왔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는 자기의 종교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만 주장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어느 시대에서부터 어느 시대까지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악한 인생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합하게 하기 위하여, 선에 속하게 하기 위하여 세웠던 종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주의면 주의 사상이면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이면 공산주의, 민주주의이면 민주주의라는 이 주의도 정치적인 발전노정에 있어서 어느 한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종교라고 하면 무턱대고 다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종교에도 급이 있어요. 1급, 2급, 3급, 급이 있는 거예요. 몇천 년 전까지의 사명을 띠고 나왔던 종교로서 그 사명이 끝났는데도 그 종교를 붙들고 나오는 구성체가 세계에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유대교 같은 것은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의 사명은 일단락 완결된 거예요. 완료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종교의 틀거리는 남아 있다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이 이 땅 위에 선한 지도자를 세울 때 몇 세대, 혹은 몇백 년, 몇천 년 그런 천운을 짊어지워 가지고 보냈다는 거예요. 그런 지도자를 보냈으면 그 지도자가 어느때까지 자기의 사명이 끝나느냐 하는 것을 그를 믿는 종교인들,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모르더라 이겁니다. 그러나 천상에서 도(道)를 내보내게 될 때 어느때까지 그것의 사명이 끝난다 하는 것을, 책임을 짊어지고 이 땅 위에 보내신 그 주인공만은 압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예수면 예수가 이 땅에 올 때 자기 마음대로 왔다면 그 마음대로 온 그분이 주장하는 이념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였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선한 하늘의 어떠한 인연을 갖추고 왔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춘 비례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는 발전하기 때문에 그 발전하는 역사권 내에 있는 인간들은 그 종교에 들어가 가지고 신봉하게 되어 있지, 그것이 끝나게 되면 그다음에는 부패하는 거예요.
오늘날 철학도 장담할 수 없어요. 유심 철학, 유물 철학,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실존 철학, 인간을 재검토하는 실존 철학, 이러한 철학을 중심삼고 부딪쳐 가지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또, 주의 사상도 이제 막바지에 왔어요. 민주주의만 가지고는 안 돼요. 돈을 가지고 마음대로 자기의 모든 욕망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의 가지고는 안 돼요. 그건 인간의 양심으로 요구하는 그런 동기에 이탈된 노선이라는 거예요. 공산주의 가지고도 안 돼요.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는 공산주의, 그들은 국제 공산당을 중심삼아 가지고 프롤레타리아, 즉 말하자면 노동자 농민을 위주로 한 주권을 세워 하나의 평화세계를 건설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의들도 갈라져 가지고…. 멀지 않아 갈라져 가지고 총칼을 들고 싸우는 날에는 세계는 마지막이 된다고 나는 보는 거예요. 불원간 싸우게 될 거예요.
오늘날 철학도 그러하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불교, 유교, 기독교 이것들이 묘하게도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일시에 문제가 되었어요. 그거 참 이상하지요? 이것들이 한꺼번에 문제되고 있습니다, 대처승이니 비구승이니, 장로니 목사니 해 가지고 말입니다. 세계적인 대종교가 이 나라 이 강토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 이때에 비참한 파괴상을 전개시키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천륜의 그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배후에서 역사적인 공헌을 해 나오던 종교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러한 주의 사상에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고 있어요. 철학이면 철학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고 있고, 종교면 종교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고 있어요. 거기에 그냥 붙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인간 편에서 보게 되면 그게 다 부패해 가지고 망하기 위해서 맨 말단에 처해서 할 수없이 전부 다 후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류 역사를 지배하는 어떠한 절대자가 계시면 그 절대자의 경륜이 있어서 그런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불교만 가지고 안 돼요. 유교만 가지고도 안 돼요. 인간을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조종해 나오는 어떤 주의 사상 가지고는, 어떤 종교 이념 가지고는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수 없어요. 이렇게 전부가 다 길이 막혀 있으니 참된 불교인이 고대하고, 참된 기독교인도 고대하고, 참된 철학인도 고대하고, 참된 주의 사상가들도 고대하는 하나의 이념, 사회, 국가, 세계,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이 나와야 된다 그 말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하나님이라 해도 그럴 것 같아요. 하나님이 틀림없이 계시다면 그런 구상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본래 좀 좋은 길이다 하게 되면 끝까지 가서야 돌아서지 그냥은 안 돌아서요. 그렇기 때문에 좋다는 노정을 통하여 나오는 길은 끝에 가서야 해결이 나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 도를 중심삼고 볼 때 불교, 유교, 극동 종교, 기독교, 이러한 세계의 4대 종교는 양심을 중심삼고,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길을 개척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게 기뻐 가지고 좋은 일면을 따라 나왔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끝에 가서 해결되기 때문에 자기 조상들이 받들어 나오던 종교를 그 후손들이 순종하면서 역사의 뜻과 더불어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적인 산물이 지금의 세계 정치노선이기 때문에, 아무리 둘러봐야 갈 수 없는 최종단에 와 가지고 딱 부딪치게 될 때 거기서 새로운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서양사를 보면 16세기 초기에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하는 데 공로를 세웠을지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는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전세계의 인간들이 세계적인 지도자를 만나 그 지도자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 다니는 때입니다.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참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면 간절한 사람일수록, 세계에 잘났다는 사람일수록 인류가 바라는 공동적인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고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는 그와 관계맺으려고 하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주의적인 시대는 지나갔어요. 종파주의적인 시대도 지나갔어요. 불교니 유교니 뭐 어떠한 자기 종교를 주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만일 그렇게 주장하다가는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조금만 더 발판이 닦아진다면 그야말로 국제종교연합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는 종파주의에 처해 있는 것은 자동적으로 전부 다…. 이런 운동은 할 수 있다구요. 그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상하지요? '내가 좋다' 하면, 내가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기에 못 들어옵니다. 큰일납니다' 그래요? 여러분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좋은 데는 참석하지 못한다' 그래요? 진정 좋은 것은 만민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참된 선이라는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역사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란 것은, 진정 좋은 것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예요? 어떤 사람은 '우리 부모다'라고 할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제일 좋은 것이 뭐예요? 남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인 부인이고, 여자에게는 남편이고, 부모에게는 자식이다 이거예요. 물론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고, 처도 좋고 다 좋되 우리들이 진정 좋은 것은 그들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예요. 아버지면 아버지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요, 부부면 부부, 자식이면 자식 그 자체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예요. 무엇 때문이냐? 부모면 부모, 처자면 처자와의 엉클어진 사랑, 그 사랑이 참이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랑이 여러분의 것이예요?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은, '아, 우리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은 나만 사랑하는 사랑이야. 만민이 끼어서는 안 돼' 하는 레테르가 붙었어요? '내가 처자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내 사랑이니 다른 사람이 끼어선 안 돼' 그래요?
인간에게 제일 필요한 참된 기준으로 나타난 사랑은 참이기 때문에 참일수록 공적인 것이예요. 역사의 흐름이 이것을 침범하지 못해요. 역사적인 어떠한 악도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이예요. 역사적인 살인강도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침범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영원불변한 공동 소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떤 사람을 보면 '나는 부모가 없어서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으니 슬픈 존재다' 합니다. 왜 슬퍼요? 왜 슬프냐 이거예요. 그것은 공적인 이념세계와 참의 인연을 맺어야 할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된 우주세계에서 참의 인연을 맺어야 자기 가치가 참된 우주세계에서 존재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요, 그것이 천리의 원칙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 슬프다는 거예요. 자기는 천리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여 살아야 할 인생인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건들이 전부 다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천운이 움직이는 참된 표본에 부합되는 요소를 결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우주 대존재권 내에 존재하기에 결함이 있는 위치에 서 있는 연고로 슬픔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역사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투쟁과정을 거쳐 가지고 발전해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문제를 걸어 놓고 혁명을 일으킨 왕조가 어디 있었으며, 역사상에 영웅열사가 있었느냐? '나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부정의 팻말을 박고 낙인을 찍어도 그것이 인정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아버지가 공인하고 자식도 '그렇다' 하는 여기에는 침범을 받지 않는 것이요, 침범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혁명의 운세나 혁명의 사조와는 무관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참된 것이요, 공동 소유의 물건이예요.
그러면 공동 소유라 했으니 인간들만 소유할 수 있는 공동권 내의 소유물이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도 역시 필요로 하는 것이라야 된다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참의 주인공이 누구냐? 참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예요. 참 자체의 주인공이 누구여야 되겠느냐? 그보다 더 높은 참의 존재가 아니고는 주인공이 되지 못해요.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한 사람은 종이고 한 사람은 주인이라고 합시다. 주인과 종은 무엇이 다르냐? 그건 과거도 다르고 현재도 다르다는 거예요. 출발점이 달라요. 그리고 지니고 있는 속성이 달라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주종관계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더 높을 수 있는, 즉 가치적인 모든, 외적이라든가 내적이라든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할 수 있는 내정에 있어서 그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주종관계를 세울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도 역시 참의 주인공이고, 오늘날 인생이 바라고 있는 그 참이 지배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있다 할진대는 그 참의 주인공의 참보다 더 높은 참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 참의 주인공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여야 할 것이냐? 하나님이라든가, 갓(God)이라든가, 가미사마(かみさま)라든가 하는 명사를 붙였는데, 그 명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이 제일 찾고 있는 최고의 참, 만민이 고대하는 최고의 참이 무엇이예요? 떡이예요? 돈 보따리예요? 아니예요. 권세예요? 아니예요. 지식이예요? 아니예요. 전부 다 아니예요. 이 땅 위의 인간들이 흔히 '지식이면 된다. 권세면 된다. 돈이면 된다'라고 하지요?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3대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돈은 돈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지식은 지식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권세는 권세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영원한 공동적인 참의 실체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계적인 권내의 일방향성을 갖고 있는 그 한계 내에서만 인정이 되지, 사방성을 넘고 입체성을 넘어 가지고는 적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양심세계를 관찰해 볼 때, 돈 가지고는 참다운 사람을 찾을 수도 없으며, 참다운 사람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권세 가지고도 그렇다구요. 지식 가지고도 안 돼요.
그러면 인생이 바라는 최고의 참의 중심은 어디냐? 인간에게 외적인 것을 제거해 놓고 보면 내적인 양심이 있어요. 그 양심을 해부해 보면 지(知)·정(情)·의(意)가 있어요. 그래 마음의 소성을 그 지·정·의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심이 지식일 것이냐? 지식일 게 뭐예요? 지식 가지고 행복해요? 지식을 통해서 역사 발전과 사회 발전을 꾀하여 왔습니다. 또, 지식을 통하여 이념세계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통해서 인간의 행복를 소개해 주지 못했고, 이념이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심정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심정이라는 것은 과거역사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이요, 현재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이요, 미래를 살펴봐도 역시 통하는 것입니다. 출발과 더불어 처음과 나중이 거침없이 통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심정밖에 없습니다.
참이란 것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 됩니다. 오늘날 무슨 불교니 기독교니 뭣이니 뭣이니 하는 이런 건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이예요. 이러한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평화도 심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나타날 때 대우주는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천하를 대하여 나타나게 될 때는 천하는 내 마음속에서 놀아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생이 찾아야 할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어떠한 주의 사상도 아니예요. 그런 건 다 지나가는 거예요. 하늘이 바라고 있고, 땅 위의 인간들이 바라는 통일의 국가, 세계를 무엇으로 이룰 것이냐? 인간들의 지식을 통해 가지고 될 것이냐? 안 돼요. 무슨 주의와 사상으로 될 것이냐? 안 됩니다. 단지 심정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주권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고 하면 그 주권자는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을 대하기를 자기 아들딸보다 더 값지고 가치있는 자로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주권자, 그런 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 지도자는 세계 만민을 국경을 초월하여 차별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무수한 국가들에 대하여 역사적인 전통이니, 현실적인 사회제도니 하는 것 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구성의 수많은 인류를 한 가정에서 기르고 있는 자식들보다도, 현재 이 악한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보고 있는 그 자식들보다도 더 귀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념세계가 오면 그 세계의 지도자는 현하의 우리 인간들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고, 지금 인간들이 귀하게 보는 것보다 더 귀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주의만 나오면 천하는 통일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오늘날은 어떠하냐? 서로가 중상 모략하고, 남의 등을 찌르고, 코를 까고서라도 타고 앉아서 자기가 지배하겠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세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인간들의 모양은 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과정에 머물러 있지만 혼자서 부딪치기에는 너무나 지긋지긋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기말적인 시대가 기필코 지나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인간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으며, 하나님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아까 말했습니다. 통일된 세계를 바라는 목적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물론 사랑으로 합니다. 사랑으로 할 것이어늘 6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느냐? 하나님도 사랑하고 싶은 분이요 인간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인데, 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왜 사랑을 못 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못 했느냐? 그 이유는 인간 앞에도 원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도 원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할 것이고, 인간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될 것은 아는데 왜 못 했느냐? 사랑할래야 할 수 없는 원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이 원수란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곡절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을 하려면 원수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고,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곡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러한 곡절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려면 걸리고 오려면 멈추게 하는 원수의 주권이 있다는 거예요. 신령한 기도를 한 사람은 잘 알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이라든가, 불교에서 말하는 마귀라든가 하는 그 무엇이 있단 말이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예요.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야 통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심정의 도수보다도 3배만 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만민을 상대해 봐요. 현세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갖는 사랑의 심정 기준만 갖는다고 해도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거늘 만약에 그 부모들 앞에 하늘이 3배 이상의 사랑을 부어 준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당장에 불벼락을 내려 형태도 없어지게끔 옥살박살내도 시원치 않은 악한 무리들이 언제 선하게 되느냐 말이예요. 이것이 문제라구요. 형무소에 가 보면 살인 강도가 많아요. 여러분 살인 강도가 뭐예요? 세상에서는 악에 대해 말할 때 그런 명사를 갖다 붙이는 거예요.
오늘날 아무리 악한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그 악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여러분들 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겠지만 말씀을 들어 두면 나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해도 악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선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서 살인 강도와 끼여서 살아도 보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백지장 하나 차이도 안 납니다. 그들에게 심정을 찔러 얘기하면 그들도 눈물을 흘려요. 조그만 감방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사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이 자식아!' 하고 팰 때가 있거든요. 그걸 볼 때는 살인 강도를 한 사람도 '아, 시원하다'라고 하거든요.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선을 위주로 해서 선을 세울 줄 아는 의리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걸 보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양심 작용의 십 배 정도 펌푸질하면 얼마나 선해지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런 놀음 하지, 안 하겠어요?
여러분,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현재 선을 주장하는 충족된 본심의 작용력보다 2배, 3배, 4배, 5배의 가중적인 선을 보충시킬 수 있는 인간의 원천이 없다면 모르되 있다면 왜 못 하겠어요?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모르되 계시다면 왜 못 해요? 왜 못 하느냐? 못 하는 곡절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하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해야 돼요. 알겠어요?
하나님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가야 되고, 인간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하늘 앞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 닦는 사람들이 산중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면 반드시 원치 않는 자가 나타나서 '이놈아, 네가 무슨 도를 닦아?' 하면서 시험을 합니다. 도 닦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와서 '이리 나와' 하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원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 만들 수 없어요. 원수권 내를 지나가지 않고는 하나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을 내세우든가, 혹은 그것을 가지고 가든가 하면 원수들이 그걸 빼앗으려고 합니다. 원수들이 그걸 침범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어려운 때에 통일을 다 바라는데 통일하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느냐? 천정(天情)으로만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오면 아가씨들에게 언제나 하는 말이…. 욕하지 마소, 내 욕 한번 할께요. 괜찮아요? 「예」 '이 자식! 너 저 아프리카 껌둥이한테 시집가라면 갈래?' 한다구요. (웃음)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통과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를 통하여 천하가 공히 통일될 수 있는 그러한 지구 위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할 때는, 민족적인 한계선을 넘어서라,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한계선을 넘어서라, 지식이 많다고 하는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라! 빈부, 귀천의 한계를 넘어서라, 잘나고 못났다는 그 한계선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인간들이 좋다고 만들어 놓은 것을 전부 다 부정해라 이거예요. 왜? 여러분이 기가 막히다 이 말이예요.
옛날에 말이예요, 어떤 녀석이 있었는데…. 이게 은덩이라고 합시다. 처음에는 쇠짜박지밖에 모르던 녀석이 은을 봤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기분이 좋아 가지고 입을 벌리고 '하! 하나님께서…' 이러면서 집어 넣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그렇지 않소? 안 그래요? 그거 그런 거예요. 늙은이나 젊은이나 아기나 마찬가지예요.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은 다 마찬가지예요. 학자도 마찬가지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이 오늘 대구에 찾아와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근사하고 훌륭한 것 같지만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도 마찬가지란 말이예요. 젊은 아가씨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아이구, 더 더 더…' 하는 것이 죄예요? 그게 왜 죄예요? 지금까지 죄로 보였으니 죄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이상하잖아요? 내 본심이 그런데 현재는 왜 그걸 죄로 취급하느냐? 그런 곡절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만민이 서로서로가 받으려고 하는데 받겠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구요. 원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 큰 참, 천하보다 더 큰 참을 받기 위해서는 천하보다 더 큰 그릇을 마련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참은 천하에 꽉 충만해 있어요.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참은 천지에 꽉 들어차 있나니 그 참을 받으려면 참된 그릇을 크게 마련하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인간들이 출세하려 하는데 있어서 목적하는 것에 대한 사용법이 틀려져 가지고,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지금 쓰고 있는 마음으로서의 욕망이니 야망이니 하는 것은 나쁜 거예요. 그릇은 요만한테 이 많은 것을 넣겠다고 한다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요만큼도 못 가질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별의별 모략 중상으로 남을 잡아먹기 위해서 야단하던 녀석들 몇 해 동안 대통령 하다가 어떻게 돼요? 다리가 들려서 꺼꾸로 처박혀 가지고 모가지가 땅으로 떨어지지요? 그릇에 담을 수 있어요? 치여 죽어요!
돈은 왜 생겼느냐? 인간은 만민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어요. 만세주의요, 만민주의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만민주의요, 만세주의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한계선을 넘어서 심정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기를 키우는 부모가 됐거들랑 그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로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세계적인 아들딸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있거든 그 형제도 세계적인 형제로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형제라고 해서 얼굴이 전부 다 똑같아요? 같지 않지요? 어떤 사람은 코가 높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여기가 나온 사람이 있고, 별의별 놈이 다 있다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지금 점심때인데 점심 줄래요, 안 줄래요? 기차 타고 손님으로 이렇게 왔는데 점심 줄래요, 안 줄래요? (웃음) 난 손님이예요. 주인 양반들 줄래요, 안 줄래요? 점심 줄래요, 안 줄래요? 「드리겠습니다」 주겠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빵 한 조각을 주어도 주는 건 주는 것이지요, 잘 주건 못 주건 주는 것이니까. 주긴 주겠구만요. (웃음) 보라구요. 조금만 스톱하게 되면 점심 먹어야지요. 점심은 한 10분이면 먹을까요? 「5분이면 먹습니다」 5분이면 먹어요? (웃음) 5분은 무슨 5분이예요. 1분에라도 먹으려면 먹지요. (웃음) 통일교회 교인들은 빨리 먹고 전도하는 패들입니다. 바쁜데 언제 앉아 가지고 뭐가 뭍는다고 혓바닥 내밀고 도사려 가면서 먹겠어요, 시대가 바쁜데?
나도 바쁘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바쁜 양반이니 빨리 바쁘게 처리하고 바쁘게 행동을 하고 싶단 말이예요. 빨리빨리 하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알아듣기만 하면 한숨에 백 마디씩 하고 싶어요. 동서남북으로부터 전부 다 한 10분 동안 모두 얘기해 버리면 좋겠단 말이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되어 있지 않거든요? 여러분의 귀가 그렇게 많이 들을 수 없게 되어 있고, 선생님의 귀도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요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지루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지루하지만 여러분이 찾아왔으니 말씀해 주고, 또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괜찮아요?「예」노인네들 괜찮습니까?「예」
말 꼬리를 잃어버렸어요. 무슨 말을 했었나요? 「참을 꽉채워서…」 그래요. 그럼 참이 꽉차 있는 거 보여요? (웃음) 참은 꽉차 있어요. 밤에도 차 있고 낮에도 차 있고, 어제·오늘·내일, 과거·현재·미래에도 꽉차 있다는 거예요. 꽉차 있는 그것을 전부 다 여러분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선생님이 하나님하고 인사를 해 가지고 여러분이 참을 가질 수 있도록 사인을 해주면 좋겠어요. 30억 인류에게 사인을 해주면 좋겠다구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게 누구거예요? 만일에 선생님 것을 내가 하나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인해 주고 '하나님은 관두소. 30억 인류에게 줍니다' 이러고 나서면 무슨 법에 걸릴까요? 사기일까요, 무엇일까요? (웃음)
그렇지만 어느 누가 사인을 해주어 가지고 이 우주에 꽉차 있는 참을 30억 인류가 빨리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시는 거룩한 분이 계시니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골방에 들어가 앉아 있더라도, 양심은 '이놈아, 너 악해라' 그래요? '선해라' 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변소간에 가 앉아 있어도 양심은 '선해라' 하는 거예요. 세상에 선과 악의 무대, 나쁘고 좋은 환경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언제나 선하라고 하는 겁니다.
선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천하의 참된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릇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좋은 것을 자기 뱃속에 몰아넣고도 좋다는 거예요. 꼭대기에 넣겠으면 꼭대기에 넣고, 밑에 넣겠으면 밑에 넣고, 중간에 넣겠으면 중간에 넣고, 장소를 개의치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데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뭘할 것이냐? 그 참을 가진 사람의 병이 무엇이냐? 그것을 보관하지 못하는 것이 병이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이 병이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 꽉차 있는 참을 누가 가져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은 자동적으로 나온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교훈하게 될 때에 자식에게 악하라고 교훈하느냐? 부모는 마음을 갖추지 못해서 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선은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것이예요.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주고 싶고 거기에 이자의 이자, 변리의 변리를 전부 더해서 주고 싶은 것이예요.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지에 참이 꽉차 있다 할진대 그 참의 주인이 누구이뇨? 그 주인은 참을 알고, 참의 맛을 느끼고, 참과 더불어 행할 수 있고, 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은 개인의 것이 아니예요. 누구의 것이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뭐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공동지물(共同之物)인 것입니다.
복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 받아라'고 하면 그저 좋다고 하지요? 자기 맘대로 살면서도 '어허! 복이 좋구나' 하는 자들은 강도들이예요. 모두 강도들이예요. 복은 공동의 물건인데 사적으로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자기의 종족도 꺾임을 당하고, 자기 일생도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이 좋기는 좋지만 복은 지극히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요, 공동 권한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권과 공간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걸 지배할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이 땅 위에는 없어요. 지배하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선을 지배할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정 모르겠다고 하면 어슴프레하게라도 알고 있으라구요.
그러면, 역사적 선한 사람, 역사적인 의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주고 싶어서 우는 사람,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위임받더라도 세계 만민 앞에 주고 싶어하는 그런 분,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요,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심지와 그러한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나타나는 때가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는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신 복의 중심 존재이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없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이예요. 알았어요? 여러분의 아버지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어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며 울고불고하던 그 자식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생으로서 최고로 승리했다고 하는 자, 이 세상 어디에서 보아도 최고로 성공했다고 하는 자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결론이 나온다구요.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 그 하나님은 천하에 없는 참된 복을 무한히 갖고 있는데, 그 무한히 갖고 있는 참복을 오늘날 인간 앞에 만세를 통하여 주고 싶어서…. 때로는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다시 와서, 혹은 목베임을 당하더라도 그 피를 통하여 제물을 드리면서라도 주고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자기를 위하여 지극히 정성들이는 아들딸들을 어찌하여 죽음의 길에, 형장에서 목이 잘라지고 허리가 끊어지는 처참한 형극을 당하도록 해 나왔느냐? 그것은 참다운 하늘이 세상에 참된 것을 주려고 하는데 악한 사람은 그와 같이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을 때려죽이는 그런 원수의 자식들을 용서해 주고, 무한히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원수가 자기 아들 하나 땅에 떨어뜨리는 것 가지고는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예수였기에 그는 십자가 도상에서도 원수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역사 환경에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역사를 지도해 나온 사람들은 몰아내던 사람들이냐? 아니었습니다.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던 무리들이 세계를 지배해 나오더라 이겁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예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런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느냐? 하늘의 본질은 눈물과 더불어 주고싶고, 죽으면서도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렇지요? 첫째는 무엇이냐? 온유겸손이니,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니…. 도는 그거예요. 그 도의 속성의 일면을, 교리의 대표를 세워서 가르쳐 나온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땅 위에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 국가, 백성이 있거든 일어나라 이겁니다. 만민 대하여 주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교훈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와서 하는 얘기예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국가의 주권자들이여! 만세를 통치하고, 만세에 주인공이 되고, 만 우주에 복을 주기를 바라거든 주고 싶어서 우는 주권자가 되라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면 죽어서라도 주고파할 수 있는 사상과 사랑의 심정을 지닐 수 있는 국가 민족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그 당대에는 망함을 당하더라도 양심을 가진 후세의 인간들이 다시 찾아 나옴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부모라면 자식이 선의 길을 가면서 고통을 당하더라도 울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딸을 세계 만민 앞에 주지 못해 눈물 흘리고, 주지 못해 땀을 흘리며, 자기 피를 팔아서라도 주겠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당대에 뜻을 이룬 환경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정성들인 그 터전은 영원 세세토록 망하지 않고 남아집니다. 그 자리는 멸망의 도성이 되는 것이 아니요, 멸망의 무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원천지가 되는 것이요, 광명의 터전이 된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갈릴리 해변에서 애쓰다가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서 처참하게 사라진 예수 그리스도, 그는 민족 반역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질서를 붕괴시키는 자요, 당시의 교파주의적인 모든 제도와 형식을 파탄시키는 대표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주권자보다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자요, 유대교인보다도, 유대교 제사장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주고 싶어서, 참을 주고 싶어서 밤잠을 자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참을 주고 싶어서 허덕이며 방랑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라고 한 말은 무슨 말이냐? 자기 일신의 행락을 자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참다운 생명을 갖고 참다운 진리를 알았기에, 그것을 만민 앞에 주기 위해 귀한 눈물을 흘린 자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가 죽어간 자이기 때문에 인간이 매장하였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전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문명권을 이루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 사상은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라는 사상이요, 만민을 위해서 수고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라는 사상인데, 이 사상을 중심삼고 뿌렸으니 이제 이 사상을 중심삼고 거두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면 거둘 수 있는, 이 세계를 위하여 주고도 더 주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오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같은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가들이 앞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걸 나는 당당코 말하고 싶어요. 하늘이 찾아오신 2천 년 역사가 그러했기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눈물과 피와 땀으로 갖다 주셨으니 이러한 주의를 중심삼고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받았으므로 참은 주어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주지 못하고 있으니 배탈이 나는 것입니다. 이게 안 터지게 되면 창으로 찔러서 긁어내는 것입니다. 원조 안 해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 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책임을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노동자 농민의…. 이래 가지고 자극제로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불교 믿는 양반들도 유명한 스님들 찾아가서 지금 때가 산중에서 수도하는 때냐고 물어 보시라구요.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지금 때는 산에 있을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또, 적선을 구해야 할 때가 아니예요. 주어야 할 때예요.
기독교 사상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주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 종교를 대표해서 이 세계 앞에 지금까지의 역사관 이상의 견해에서 비판하게 될 때 내가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는 것을 느낀다면, 이 세계 인간들은 어떤 주의를 찾아야 될 것이냐? 주고 싶어서 굶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고 싶어서 헐벗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차를 한번 타고 싶지만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걸어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주의와 그런 이념이 생겨나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과 내가 바라는 소원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이어야 됩니다. 그 사랑이 거짓이 없는 참된 사랑이거늘, 이 사랑을 다하여서 이루어진 개체와 인격과 그 말씀을 깨끗이 주어 가지고 '이젠 다 받았습니다' 할 때까지 주었다가, 인간들 앞에 무한한 복을 주었다가 그들이 돌려드리는 것을 '오냐, 또 받아 보자' 하는 그게 영광인 것입니다.
자식을 정성들여 공부시키는 부모는 그 자식이 '아버지 어머니 제가 출세하도록 해주신 은덕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는 걸 원한다구요.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정성과 그 정성의 표식인 물질을 가하여 부모 앞에 돌리게 될 때 둘 다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 앞에 하늘이 복을 주기를 원하지만 복을 완전히 잘 받는 사람들도 없거니와 받아 가지고 잘 넘겨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이 천하에 참다운 것을 넘겨 주기 위해서 사랑을 가지고 무한히 애써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란 명사는 왜 나왔느냐? 통일교회가 대관절 뭐예요? 오늘날 한국 백성들이 뭐예요? 통일교회가 뭐예요? 여기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대구 간다 하면 치안국에서 대구경찰서에 '찌르릉' 하고 연락을 하더구만요. 내가 이 민족 앞에 무엇을 바랄 게 있느냐 말이예요.
그러한 천리의 원칙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앞으로 오는 세계는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식과 물질문명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걸 그저 맹목적인 견해에서 단정을 내린 것이 아니예요. 심연적인 견해 아래에서 단정하고 출발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이 관념적인 종교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예요. 본래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예요.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 만민이 바라는 통일이라는 이 명사는 지극히 고귀한 명사인데 통일이란 명사 그대는…. 어떤 때는 나 혼자서 그러는 되는 거예요. '통일이라는 명사, 그대는 지극히 고귀하지만 그 명사를 끌고 가야 할 나라는 존재는 지극히 비참하고 지극히 처참하구나' 이게 문제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 삼천리 반도의 3천만 민중을 지도하는 사람은 지쳐서 나가자빠졌을지 모르지만 난 안 지쳤어요. 우리 통일교회를 못살게 군 사람들은 다 지나가 버렸지만 우리는 전진이예요.
누구 등을 쳐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모략중상하고 누구를 농락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내 것을 다 주자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주기를 바라고, 받기를 원하거든 누구든 주자는 것입니다. 눈물로써 안 되거든 피로써 주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만민 앞에 주자! 주자! 무엇을 줄 것이냐? 참다운 사랑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돼요. 그 사랑은 부부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돼요. 그 사랑은 자녀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돼요. 그런 사랑을 주기 위해 나선 우리 앞에 부모가 반대하면 부모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내가 욕을 먹는 거예요. 부인이 그 뜻을 위해 가려는데 남편이 못 가게 하니 남편이 죽는 거예요. 남편이 말을 안 들으니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가는 길을 그 부모가 반대하면 그 부모가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을 이 민족 앞에 주고, 만민 앞에 주고, 이래 가지고 만민이 주고 싶어서 자기 가정을 초월하고, 자기 민족을 넘어서서 허덕이는 무리가 있거들랑 그런 무리로 말미암아…. 두고 보라구요. 세계는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통일의 이념을, 혹은 교회를 통일하겠다는 주의 주장을 많이 가지고 나왔지만 통일을 못 했어요. 못한 것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예요. 안다 이거예요. 알면서 왜 이렇게 나오느냐?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실패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예요.
따라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해야 되고, 하나님 편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이 인간세계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 어찌하여 6천 년 동안 이 세계를 하나 못 만드셨느냐 하는 곡절을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인간의 목적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인간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앞에 하나님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상치(相馳)되는 것이 아니라 상합(相合)한다, 일치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만 되면 인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찾는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예요. 그다음에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편에서 보는 과거의 역사, 하나님편에서 보는 현세, 하나님편에서 보는 미래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하나님편에서 바라보는 세계관, 우주관을 가르쳐 줍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또, 통일교회란 뭘하는 곳이냐? 아무리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 해도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다운 심정의 기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심정의 기반을 어떻게 하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이것만 가르쳐 줄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뭘할 수 있느냐? 원수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됩니다. 마귀면 마귀, 악이면 악의 주인공을 맘대로 이끌어 가지고 만민 앞에 굴복시켜 주기 위해서 '꿇어!' 하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그를 통하여 왔는데 그것을 처단해 버리고 밟아 치움으로 말미암아 인간적인 악의 활동을 제거시켜 버리고, 직접적인 상대기준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직접적인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권내로 세워 놓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민이 그 법률을 통하여 행동을 개시해 가지고, 실질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실험을 해보면 틀림없다 할 수 있는 결과가 만민 공통적인 공식과 같은 내용으로 나와야만 통일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어떻게 알고 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슨 뭐 벌거벗고 춤추는 교주인 줄 알고 있지요? '어허,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추는 곳!' 이러고 있는데, 좋다 이 녀석들아, 내가 지금까지 사십 평생 벌거벗고 춤 한번 못 춰 봤다 이거예요. (웃음) 뭐 어떻다구요? 그래 잠꼬대 잘한다 이거예요. 어서 잠꼬대 해라 이겁니다. 나는 달려야 되겠다 하고 나온 거예요.
요즘에 세계적인 뭐 어떻고 어떻게 된다고 하니 통일교회가 협박공갈한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어요. 공갈협박인가 두고 보라구요. 또, 뭐 통일교회 돈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갑에 금덩이들 두둑하게 들어가 있지요? 있기야 있지요. 그게 뭔지 모르지만 돈 같지 않은 돈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에 온 안토니 부르크씨도 그래요. 방송국에서 사람이 와 가지고, 온 몬적이 뭐냐고 물어 보니 통일교회 얘기 안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기성교회에서 하는 말이 '거 통일교회에서는 돈을 얼마나 집어줬으면 저러겠노!' 하겠지만, (웃음) 하여간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내세울 능력이 있어 끌고 왔으면 됐지요 뭐. 그것 참 재미있단 말이예요.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이 나를 욕먹게 하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좌우지간 우리 하나님! 통일교회가 욕을 먹는 가운데 발전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아요. 욕을 먹고 쫓김받는 자리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아요. 벌거벗고 굶는 자리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먹고 입는 데 대해서는 문제없고, 망하지 않아요. 그렇지요? 「예」 틀림없어요? 「예」
세상 사람들이 알기를 '뭐 통일교회 문교주, 한자리 더 떠서 문예수?'라고 하는데 그거 자기들이 붙였지 내가 붙였나요? 예수가 뭐가 좋아요? 자칫 잘못하면 십자가 지고 희생해야 될 텐데요.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는 예수가 뭐가 좋아 선전했겠어요? 자기들이 욕하려다가 소문이 그렇게 났지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내가 통일교회 교주다' 하는 얘기 해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을 전부 다 팬티 하나만 입혀 가지고도 구라파 천지를 호령한 나폴레옹 이상 가는 사나이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군대 하나 없더라도 호령을 하게 되면…. 그런 야망과 욕망을 가진 사나이로 만들고 싶단 말입니다.
여기 걸어다니는 사람 많지요? 어디 걸어다녀 본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손들어 봐요. 대부분 걸어다니지요? 또, 일주일 금식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전부 다 했지요? 내려요. 우리는 다 그래요. 이제 본부에 올라가서 보면 통일교회 패들 허리띠가 달라질 것 아니예요? 옛날에는 선생님 허리띠를 이만큼에다 맸어요. 여기 보이지요? 요즘엔 좀 나왔어요. (웃음)
여기의 촌 양반들은 '선생님은 요즈음에 얼굴이 뿌예 가지고 근력이 좋으니까 이렇게 기분좋게 큰소리하는 것이지 배고파 봐. 별수 있나'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웃음)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배도 많이 고파 봤습니다. 꽉 졸라매라 이 자식아!
그래 세상 사람들은 알기를 통일교회 문선생 하면 수염이 이렇게 나 가지고 높은 자리에서 '여봐라!' 하면 '예이―' 하고 그러고 있는 줄 알고 있거든요. (웃음) 그런 소리 들어 봤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180도 판이하게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작전상, 선전상…. 그렇게만 선전한다면 작전에는 필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런 가운데 우리는 3년 동안 삼천리 반도에 자리잡았어요. 3주권이, 3정권이 우리를 탄압하고 우리를 없애 버리려고 했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세계가…. 미국의 중앙 정부에 우리 통일교회의 종교 등록이 났다구요. 이제는 미국 천지에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요. 여러분이 진짜 벌거벗고 춤을 춰도 뭐라고 안 해요. (웃음) 교리가 그렇다면 미국 사회에서는 통한단 말이예요. (웃음) 그렇다고 또 나 믿고 가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제는 한국은 물론 세계가 우리 편에…. 내가 젊었을 때는 꿈이 많았어요. 이 조그마한, 미국의 한 주의 몇분의 일밖에 안 되는 삼천리 반도에 딱 감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여기에다 큰 기지를 잡아서 한번 날아 보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예언했던 것들이 지금 다 들어맞는단 말이예요. 이제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 말을 좀 믿을 만큼 됐어요. 믿을 만큼 돼 있지요? 「예」 이제는 통일교회에서 추방할까봐 걱정이예요. 그래야 일이 되는 거예요. 과거에 반대할 때는 들어오면 이거 또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내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이거 따라오면 어떡할까 걱정이예요. 따라오는 게 걱정이라구요.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 만나겠다고 야단이예요. (웃음) 천 사람 만 사람 어떻게 다 만나겠어요, 선생님 일도 많은데? 그렇다고 안 만나주면 입이 이렇게 나와 가지고 말이예요, 선생님은 뭐….(웃음) 여기에 온 양반도 선생님을 찾아왔지만, 앞으로는 내가 아주 문전에서 내쫓을지 모르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웃음)
나 물 좀 줘요. 선생님이 왜 이런 우스운 얘기를 하느냐? 방은 좁은데 앉아 있으려니 오금이고 어디고 안 아픈 데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웃음으로써…. 또, 졸음이 올 때는 이러잖아요? (몸짓하심. 웃음) 그러니 부작용이 있잖아요. 그러니 웃는 바람에 그걸 잊어버리자는 거예요. 내 할 도리를 하는 거예요. 점잖게 얘기하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렇지만 할 수 없어요. 이렇게 해야 청중을 이끌어 나가니 할 수 없는 거라구요.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선생님은 거룩하게 얘기할 줄 알았겠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다 졸 거라구요. 나 물 좀 주소. 점심도 안 주려고 하면서 물도 안 줄래요? (웃음)
여기 미국의 김영운 선교사가 왔구만. 김영운이가 왔지만, 김선생이라고 못 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좋아하거든요. 미국 사람도 교수라고 하고 어머니라고 하고 뭐 이러지만, 내가 반말해도 좋아한다 이 말이예요. 내가 '하, 오십니까?' 하면 그저 눈을 내리 깔고 이런다 이거예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3년노정을 걸었지요? 3년노정 걸을 때, 내가 저 양반한테 미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전도하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한마디도 안 했다구요. 일본에 있는 패들한테 전도하라는 말 한마디도 안 했다구요. 우리들을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보자 하고 두고봤다구요.
보리밥을 먹고, 걸어다니고, 하루에 한 끼 먹고 두 끼 먹으니 미국놈들도 별수 있어요? (웃음) 알고 보니 큰일났거든요. 잘못 걸렸단 말이예요. 코를 꿰었어요. 코가 걸렸으니 끌면 끌려가지 별수 없다 이 말이예요. 코 잘못 걸렸다고 그러지요? 한국 말이 재미있다구요. 그 코가 잘못 걸렸다 그 말이예요. (웃음) 이것이 맨 처음 간 사람이 끌고 가는 줄을 딱 만들어 놓았으니 끌려오는 사람들은 끌려오지 별수 있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금식을 시작하는 데 말이예요, 일주일에 사흘씩 금식하는 것을 일주일에 한 끼 먹고 두 끼 먹고 이래 가지고 사흘 금식했다는 조건을 세우면서 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절대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차 아니면 다니는 것을 모르던 녀석들이 터벅터벅 걷고 말이예요, 독일 녀석도 그렇고, 미국 녀석도 그래요. 이 양반도 한번 걸어야 돼요. (웃음)
선생님은 참 잘 보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전부 다 솔솔이 패거든요. 눈을 보면 반짝반짝하고 말이예요. 나이 많은 양반들 미안합니다. 왜 미안하냐 하면, 인사는 고맙게 해놓고 나이 많은 사람들 듣기에 섭섭한 얘기를 하면 '저 녀석 저거 어른도 몰라본다' 하고 욕하면 안 되거든요. 나이 많은 사람들 미안합니다. 솔솔이 패가 필요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괜찮아요? (웃음) 이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젊은이들이예요.
내가 지금 통일교회 지도자로서 생각하는 것은 '40대 이상인 사람은 필요치 않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더러 나가라는 게 아니예요.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오기도 힘들었는데 나가기는 더 힘든 것 아니예요? (웃음) 오늘날 한국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 혹은 뭐 목사, 장로, 집사 중에 40대 이상 되는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합니다. '통일교회 이단이야, 최고 이단' 하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암만 큰소리 해봐라. 당신들은 필요치 않지만 너희 아들딸은 내가 필요하다. 나이 많은 당신들은 큰소리하지만 당신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먼저 죽을 것이다. 당신들의 아들딸들을 내가 수습할 것이다' 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죽을 걱정은 하지 말라구요. 그들은, 일세들은 배반자요 반대자요, 혹은 원수의 입장에 있었지만 이세만은 틀림없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런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내가 계산을 잡아 보니 놀랍게도 통일교회 교인 전체 평균 나이가 23세 미만이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기성교인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니 47세 이상이예요. 그러니까 암만 욕을 해봐라 이거예요. 욕하다가 배고파 밥먹으러 들어갈 때는 우리 시간이다! (웃음) 우리는 밤잠을 안 자고 있다가 그들이 새벽녘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우리 시간이라는 겁니다. (웃음) 우리는 그런 패들이예요. 그런 패인가요, 아닌가요? 「그런 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을 잘 듣거든요, 무슨 약을 먹였는지 모르지만. 약은 무슨 약이예요? 또, 무슨 요술을 해서 그러는지 몰라요. 하여튼 요술은 요술이지요. 인간 요술이 아니라 하늘 요술이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걸리면 잘못 걸렸다고 하겠지만 알고 보면….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뭐 여기 있는 문선생이 수단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예요. 그 내용이 진리이기 때문이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약을 먹여 가지고 돈을 벌게 했지요? (웃음) 이 양복이 지금 몇 년 됐느냐 하면 7년 됐어요. 그때 양복이 이렇게 생겼지요? '문선생은 어저께 해 입은 양복이냐' 할지 모르지만 7년째 입는다 이 말이예요. 깨끗이 입었지요? 내가 양복을 갈아입지를 않아요. 양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있지만 안 갈아입어요. 이 사람은 이 옷을 벗어 버리고 딱 적당한 때에 적당한 옷을 입고…. 옷을 잘 입을 줄도 알아요. 그렇지만 차양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잠바를 입고 시장거리에 나서게 되면 넝마 장수 이상 간다구요. 때에 따라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다'라고 하는 것이예요. 나 이번에 차타고 가면서는 절대 그런 패들 보고 싶지 않아요. 차타고 가는데 뭐 통일교회 패들 수십 명이 나와 가지고 선생님 오신다고…. 여러분은 이제 선생님이 여기 올 때 대구역에도 나오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웃음) 내가 옛날 학창 시절에 일본에 있다가 집에 올 때는 집에 전보도 한장 안 띄우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온다고 하면 집에서 역까지 한 20리가 되는데 버선발로 혼자 나온다구요. 그게 멋진 거예요. 고향집을 찾아오는데 가족과 더불어? 그게 아니예요. 그게 참 귀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마중 안 나와도 괜찮아요. 그런다고 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있는 이 사람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예요. 또 어디든지 가면, 할아버지들 있는 곳에 가면 할아버지와 어울릴 줄도 알아요. '한국 노래 중에는 무슨 노래가 제일 좋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 그거야 아리랑이 제일 좋지' 하면서…. (이후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
그만큼 얘기했으면 대개 알 거예요. 좀더 얘기해 주고 싶은데, 지금 몇 시예요? 「아홉 시입니다」 아홉 시. 저녁 좀 먹고 갈까요? 강원도 저녁 좀 줄래요? 저녁 좀 주겠느냐 말이예요.「예」 나는 팔려 온 사람이예요. (웃음) 틀림없이 오늘 밤은 여러분이 하자는 대로 할 거예요. 오늘 밤은 그렇지만 다음에 선생님이 필요할 때는 여러분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밥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고 하면 안 먹을 거예요. (잠시 녹음이 끊김)
노래 한 곡 합시다. 노래하는 데는 뜻을 생각하면서 하라구요. 제목이 무엇이지요? 하늘의 용사예요. 응? 「예」 어찌하여 하늘의 용사인고? 여기 삼팔선 가까이 오니까 용사들이 많더구만요. 그들은 무슨 용사예요? 그들은 대한의 용사라구요. 우리는 무슨 용사예요? 「하늘의 용사입니다」
여러분들 철갑 모자 있어요? 「없습니다」 군복이 있어요? 「없습니다」 총 있어요?「없습니다」 수류탄 있어요? 「없습니다」 엠원(M1)이니 칼빈이니 하는 총이 있어요? 「없습니다」 대포도 없어요. 뭐가 하늘의 용사예요? 「새말씀의 용사입니다」
하늘의 무기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 인격이 한번 호령하면 억천만이 머리 숙여 눈물 흘릴 수 있고, 그 말씀이 한번 내려지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머리 숙일 수 있고, 그 심정에 한번 녹아나게 될 때 수많은 군중이 눈물 바다를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이 무기입니다. 무엇을 잡는 무기예요? 사탄을 다루는 무기예요. 그 무기를 던지는 곳곳마다 사탄이는 자멸이예요.
자, 그러면 통일 용사의 노래, 제목이 뭐라구요? 「하늘의 용사입니다」 통일의 용사예요, 하늘의 용사예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입을 열고 부르기는 불러도 뜻은 몰라요. 선생님이 그 가사를 지었는데 가사를 지은 사람의 해설을 들어야 내용을 알 거 아니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예」 뜻을 알아요, 몰라요? 뜻이 깊어요.
선생님이 1절을 해설해 볼께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죽고? 「살고」 세계는 살고, 하나로 안 묶어진? 「묶어진」 타락의 인연? 「본성의 인연」 알긴 아는구만.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본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가지고 어렵게 찾아갈 길이 아니예요.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이었던 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곡절의 길을 가게 되어 본성의 사랑의 인연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사는데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인 하나님의 사랑에 접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그런 자리에 나가야 영원토록 주고받을 수 있는 우리의 본향 땅이 있는 거예요. 본향이 뭐예요? 본향에 가면 뭐가 있노?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처자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안식을 할 수 있는 곳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우리 본향 땅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안식의 터전 위에서 길이 살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찾아가야만 그 고향 땅에 가 가지고 비로소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의 조상을 찾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수많은 인류가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이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그런 곳이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 타락한 후손들 앞에 통일의 이론이 나와 가지고 이런 심정의 세계를 소개해 줄 수 있는 길이 생겼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이라'예요. 왜 자랑이예요? 누구나 다 갖고 있다면 자랑이 아니예요. 우리만이 갖고 있으니 자랑이예요. 그다음에 뭐? '통일의 용사!' 통일의 용사는 이런 생명의 인연을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의 원수를 갚고 홀로 쌍수를 들어 승리한 아들로서 아버지 앞에 왔사오니 당신의 한을 해원성사하시어 천하를 거느려 영광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가려니 통일의 용사가 어떻게 한다구요?
힘차게 정을 모아 핍박의 심정 위에 단결되어, 어떻게 하느냐? 용진하리라. 어디를 향하여?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이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늘의 용사가 된다는 거예요. 1절이 그래요. 그런 심정의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심정이 제일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다음 2절,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본연의 동산에서, 참본향에서 살 수 있으며, 영원히 행복의 터전 위에서 길이길이 사는 사람은 무한한 인격자예요.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일시가 아니예요. 한번 드러나면 여러분이 일생 동안만 깜박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몸은 죽어도 그 사랑은 천년 만년, 억천만세까지 연결되는 거예요.
무한한 인격자의 가치를 갖추면 그것이 빛을 돋구는데, 그 빛은 어떠한 빛이냐? 바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날 지음받은 모든 만물들이 바라는 소망의 등대인 것입니다. 그런 자는 만물들이 바라던 소망의 등대요, 영광의 등대입니다. 등대와 같은 인격자라 이거예요.
등대와 같은 인격! 빛만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만물의 소망의 중심이 되어 바라는 만물 앞에 말없이 자동적으로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이 되고, 자동적으로 생명의 힘이 뻗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늠름하게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춘 생명의 힘이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솟구쳐 나가는 본연의 모습, 그 모습은 가장된 모습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이 짓고자 하셨던 본연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본연의 모습을, 그다음에 뭐예요? `소망의 가치로서 꽃피우리라' 그렇지요? 예 생명을 갖춘 모든 만물의 등대가 되는 그런 인격은 피조만물의 창조 이념으로 바라던 무한한 소망의 가치예요. 가치문제가 나온단 말입니다.
가치라는 것은 네가 필요하면 나도 필요하고, 내가 필요하면 한국 사람만이 아니고 이 세계 사람 전부 다 필요하고, 하늘도 필요하고 땅도 필요하고, 모든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소망의 가치로서 꽃피우리라' 그런 인격은 하늘땅이 필요로 하고, 인류가 필요로 하는 가치로서 길이길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섭리의 목적은 무엇이뇨? 하나님의 최고의 섭리의 목적은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지만,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한 것. 그렇기 때문에 `소망의 가치로서 꽃피우리라' 그게 2절이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자는 우리밖에 없어요.
`우리는 자랑이라' 그다음에 뭐예요? 「통일의 용사」 통일의 용사. 힘차게 뭐? 「뜻을 세워」 사람이라면 뜻이 있어야 돼요. 뜻을 세워야 돼요. 그러면 뜻을 세워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뜻을 세워? 「용진하리라」 용진하리라! 어디를 향하여? 「사탄세계를 향하여」 원수를 갚기 위하여. 그래야만 통일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3절, 2절이 인격문제라면 3절은 진리문제예요.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그다음엔? 「영원을 약속하는…」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오늘날 우리 통일 신도들은 무엇을 할 것이뇨? 여러분들은 진리를 붙들고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는 자들이예요. 여러분들이 지방 방방곡곡에 나가 가지고 활동하는 모든 것은 천국 조직, 천국 질서의 기반을 닦는 것인데 거기에 옮겨 놓은 돌 한 자박지나 모래 한 자박지도 참것으로서 남아지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질서의 기틀 위에 여러분들이 참을 세운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것이 앞으로 참의 표본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의 기틀 위에 우리들은 참을 세워 가지고, 그 참이란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영원한 가치의 인연인 것입니다. 내가 땀 흘린 것은 일시가 아니예요. 영원한 하나님을 찾기 위한 불변의 가치의 땀이요, 눈물이요, 피인 것입니다. 이러한 질서의 기틀 위에 여러분들은 참을 세워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진리의 실체는 누구?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중심은 누구? 「하나님이요」 하나님입니다. 또, 하나님의 중심은 무엇? 심정입니다, 심정.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실체,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혈통,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돼요. 이런 말씀 처음 들으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그다음 4절은 진리의 심판이예요. 끝날의 심판은 진리 심판, 인격 심판, 심정 심판입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여러분들에게는 선생님이 무조건 진리의 말씀을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진리 말씀만 갖고 가면 수십 년 동안 도를 닦았던 사람도 문답하면 꼼짝못하는 거예요. '이놈, 내가 누군지 기도해 봐라' 하면 '예―'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런 것 못 봤어요? 그런 사람을 못 만났어요? 영계는 통일교회의 부하예요. 문선생님의 부하예요. 영통하는 사람들은 오면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거든요. 세 마디 안팎으로 굴복해 버려요. 그런 법도를 여러분들에게 주려고 하는 거예요.
진리 심판, 인격 심판, 심정 심판!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가르친 말씀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따라가야 되고, 선생님이 지도하는 길을 고스란히 따라가야 돼요. 인격을 상속받아야 되고, 그다음에 뭐요? 심정!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그 심정을 상속받아 나가면 여러분들도 사탄세계에 가 가지고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용사가 되는 거예요. 심판의 기준이 그래요. 그래야 4절에 가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거기에서 뭐가 되는 거예요? 동방에 보잘것없는 한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찬란한 문화운동이 벌어지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 줄 알아요? 문화운동이예요. '동방에 밝아 오는 새로운 문화', 그다음에 뭐예요? 「온 누리…」 온 누리가 그 문화의 빛 가운데 무엇이 돼요? 「형제가 됩니다」 찬란한 문화로서 빛낼 수 있는 소원은 무엇이며 목적은 무엇이냐? 온 천지의 모든 것들을 그 빛 가운데 모아 형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나오기 전에 무엇이 나와야 돼요? 형제가 나와야 돼요. 형제가 나와야 부모가 나오는 것입니다. 온 누리 그 문화의 빛 가운데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 선의 부모가 나와야 선의 아들딸이 나올 것 아니예요?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 그다음에 뭐?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잃어버렸던 우주의 인간들의 참부모가 비로소 나와서 참부모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참생명을 거치고 참자녀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참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나의 가족으로 지상천국을 통합할 수 있는, 하늘과 땅이 합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과 몸이 합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통합한 기준에 서면 하나님이 직계 아버지가 되어서….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이 아버지예요, 아버지. 진짜 아버지예요! 그 아버지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짜 아버지란 말이예요. 우리의 혈통적인 아버지가 되어 그 혈통을 누가 침범해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불변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계는 한 부모를 중심삼은 참형제의 세계로서 하나의 세계가 정녕코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녕코 이루리라' 뭐? 「하나의 세계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라! 통일교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예요. 선생님의 말을 잘 듣거든. 또, 자기들끼리도 좋아하고. 세상의 형제간보다도…. 부모 아닌 부모, 형제 아닌 형제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세상이 야단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이라' 뭐? 「통일의 용사」 통일의 용사! 우리 부터예요. 세계가 넓고, 천지가 넓고, 수많은 인류가 산다 할지라도 여기서부터….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그다음에 힘차게 뭐예요? 「용진하리라」무슨 세계로? 하나의 세계로. 바라시는 선의 세계, 하나의 세계로. 적을 심판해 버리고 멋지게 행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쭉 설명 들어 보니 근사하지요? 「예」
내가 가사 한번 쭉 읽어 볼께요.
1.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정을 모아 용진하리라.
2.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소망의 가치로서 꽃피우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뜻을 세워 용진하리라.
3.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외치면서 용진하리라.
4.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그 세계로 용진하리라.
이것이 말하자면 복귀역사예요. 그러면 한번 해보자구요. 하고 싶을 거라. 하고 싶지요? 「예」 내가 목이 쉬고 힘들지만, 여러분들이 힘있게 부르도록 하려면 내가 한번 불러야겠어요. 1절만 부를께요. 들어 봐요. 「예」 목이 꽉 쉬었지만 얘기할 때는 또 악을 써서 하면 하거든요.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잘 들어 보라구요. 구경만 하지 말구요.
힘차게 정을 모아 용진하리라.
알겠어요? 「예」선생님이 이렇게 힘들여 불렀으니 여러분들은 상대적인 반응체가 되어 힘있게 한번 해보자구요. 알겠지요? 「예」
이 손은 바른손, 이 손은 왼손인데, 이 손은 누구를 상징해요? (왼손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사탄」 사탄을 상징해요. 그리고 이 손은 누구를 상징해요? (오른손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하나님요」 오른손은 하나님을 상징해요. 이 세상에 두 주권이 생겼나니 하나는 우익이고 하나는 좌익이예요. 사탄은 끝날에는 직고하게 되어 있으니 빨갱이들은 좌익이라고 합니다. 근사하지요? 「예」 사실이 그래요, 사실이. 흑백이니, 음양이니 하는 말들이 다 거꾸로 되어 있어요. 그래 동양의 말이 참 계시적인 말이예요.
그러나 부모란 말은 거꾸로 되어 있지 않아요. 부모는 암만 악한 강도라 해도 자식 대해서 옳은 것을 가르쳐 줘요. 그 밖의 말들은 다 거꾸로 되어 있어요. 흑백, 음양, 적백, 다 거꾸로 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렇지요? 거 이상하지요?
양심을 가진 사람은 직고해야 돼요. 왜 빨갱이들이 좌익이라고 했느냐 하면 누가 가르쳐 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직고예요. 민주 진영에게 우익이라고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직고예요. 끝날에는 직고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싸움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어린애들은 직고의 표본이기 때문에 어린애들이 노는 것을 보면 미래의 세계를 알 수 있단 말이예요. 사람의 양심은 천심을 그린 거예요. 민심이 천심이라 하였기 때문에 망한다 망한다 하면 망하는 거예요. 무엇이 된다 된다 하면 되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 「사탄」 이건 뭐? 「하늘」 사탕? (웃음) 저게 사탄이예요.(칠판에 글씨를 쓰심) 사탄이 뭐냐? '사' 자가 무슨 '사' 자냐 하면 말이예요, '사사로울 사(私)' 자예요. 사적인 할 때의‘사’자 사탄이예요. '탄' 자는 무슨 '탄' 자예요? 「탄알 탄」 탄(彈)자. 공적인 폭탄이 되지 못하고 사사로운 폭탄이 된 것이 사탄이예요. (웃음) 무슨 말이냐 하면 사탄은 자기 위주해 가지고 다…. 그렇다고 '사탄'을 쓸 때 이렇게 쓰지 말라구요, 편지 쓸 때. 말이 비슷하단 말이예요.
자, 이것은 여자를 상징하고, 이것은 뭐? 「아담」「남자」남자를 상징해요. 어느 것이 좋아요? 「오른쪽입니다」여자들, 어떤 것이 좋아요? 「오른쪽이요」이렇게 하면 어떤 것이 좋아요? (왼쪽 오른쪽을 바꾸는 시늉을 하시며 말씀하심) 「왼쪽이 좋습니다」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어떻게 했나요? 성경이 참 계시적이지요. 우리 원리를 모르면 수수께끼예요. 그래서 우리 원리가 위대한 거예요.
앞으로 세계 기독교는 몽땅 통일교회의 주머니에 들어온다구요. 암만 큰소리해 보라구요. 시일이 문제예요. 기성교회 목사들 통일교회를 암만 두들겨 패 보라지. 어떻게 되나? 지금 통일교회 선생님이 욕을 먹고 있지만 그런 배포를 갖고 있는 거예요. 천주교? 뭐 요한 몇 세? 뭐 어때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념적으로 그거 다 전부….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구요. 그러니까 실력이 문제예요, 실력. 최후에는 실력을 갖추고 싸워야 돼요. 행동적으로, 이념적으로, 이론적으로 해보자 이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 기독교를 문제시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그런 사람이 나왔다고 하면 욕하지 않고 환영할 만도 하지요, 사실은. 서울운동장에 시민대회를 열어 수십만을 모아 놔 가지고 사흘만 지나게 되면 부인할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천대를 받고 다닌단 말이예요. 그렇지만 한때예요. 요즘에 김삿갓 시인을 찾고 야단하지만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면 하나는 사탄이요, 하나는 하늘인데,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라. 응? 「예」 갈라놓으면 하늘땅이지만 '엇!' 하면 뭐예요? (합하는 시늉을 하심) 사탄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예요. 그럼 누구예요? 우리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남녀 우리는 통일교회 사람 되어 가지고 하나되어 가지고 노래부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노래부르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고 사탄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한번 같이 부릅시다. 노래부를 때는 말이예요. 영계의 영들이 춤추는 줄 알아야 돼요. 사실 그렇게 불러야 되는 거예요. 하늘땅, 천지를 발판삼아 가지고 그 무대에서 춤추면서 노래부르는 것이니까 신나게 불러야지요. 이건 그저 죽어가는 개미새끼같이 불러서는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바른손이 올라가면 남자가 부르고, 왼손이 올라가면 여자가 부르고, 두 손이 올라가면 남자와 여자가 부르고, 손이 내려가면 모두 부르지 말아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바른손이 올라가면 남자만 입을 벌리고, 바른손이 내려오면 남자는 입을 다물어요. 왼손이 올라가면 여자가 입을 벌리고, 두 손 다 내리면 딱 스톱해야 돼요. 어디 어느만큼 통일되어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자구요. 알겠어요? 「예」 자, 같이 해봅시다. 시이― (웃음) '작' 하기 전에 얼마나 '작' 해봤어요? 몇 번 해봤어요? 사람이 그래야 돼요. 그저 눈이….
여러분, 백 미터 달리기할 때, 선생님이 '요이― 땅' 하려고 할 때 꽁무니가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구요. 뛰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릅니다, 얼마나 간간한지. (웃음) '땅!' 하게 되면 두 발짝이 나가야 되거든요. 그래야 결판이 벌어지지요. 마찬가지예요.
이왕지사 노래를 부르려면 남보다도 몇만분의, 몇백억만분의 일이라도 먼저 했다고 하는 기분으로 하는 거예요. '심' 하게 되면 왜 떨어져요? 같이 해야지 왜 떨어지느냐 말이예요. 전부 같이는 못 한단 말이예요. 몇만분의 1초 몇만분의 2초 하면서 이렇게 한꺼번에 해도 앞서 가는 녀석이 있거든요. 그저 한 손으로 '얏!' 하지만 최대한으로…. 사람이 그런 사상을 가져야 돼요. 선생님하고같이 부르는데 '심정의―' 할 때 '심'이란 소리는 다 했지만 내가 먼저 나왔다, 이런 맘을 가지고 불러야 된단 말이예요. 그러고 싶어요? 그래 가지고 불러야 돼요. 그런 뭐가 있어야 되지, '심' 할 때, (표정을 지으심) 이러는 이따위들은 그저 독수리밥이나…. 그래서는 안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시작! ('하늘의 용사' 다같이 힘차게 부름)
자, 이젠 그만하고 잠깐 기도합시다.
여기의 저희들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자체로서 당신의 성상을 닮기 위해 천만 번이라도 주저하지 않으면 안 되옵고, 그리운 당신의 그 음성 앞에 불리워도 저희들은 대답할 수 없는, 원수의 종새끼도 못 된 자신인 것을 알았나이다.
거룩한 복귀의 길이 되어 있지 못하고 탄식과 원한과 절망의 복귀의 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날까지 인류는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오늘 그 심정을 부여안고 홀로 한숨지으시는 나의 아버지께서 참의 사실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곡절의 내용을 몰랐었사옵니다. 저희 선조들이 그러한 곡절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지 못한 모든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지금까지의 생애노정에서 그와 같은 우여곡절이 천상세계에 사무쳐 있고 천지를 창조한 우리 아버지께 그런 원한이 있었던 것을 몰랐음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뜻하신 섭리의 사랑은 한반도의 한민족을 찾아왔사옵니다.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탄식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이 배달민족 위에 사랑의 혈족을 남기기 위한 당신의 깊은 심정의 배려가 있음을 알게 될 때, 몸 굽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무한한 그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고, 이 몸과 마음을 다 드려 당신이 소원하신 뜻 앞에 산 제물로서 이끌려 온 몸들이오니 당신의 소원대로 쓰시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어려움도 개의치 않겠다고 다짐하고 왔사옵니다.
이제 이 몸은 당신의 하나의 지체로서 살아지길 원하옵고, 저희 개체는 영원한 아버지의 심정적인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보여 주시는 대신 실체로 살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사망의 흔적을 제거시켜 주옵시고 생명의 인연으로 인을 치시옵소서. 영원한 생명의 봉화불을 높이 들고 가게 해주옵소서. 그리하여 생명의 폭탄을 던지기를 원하오니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강원도 일대의 외로운 자리에서, 낙망의 자리에서 이를 물고 싸워 나오는 어린 소자들이 여기 모였사오니 이들이 지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는 저희를 찾아오고 있사오나 저희는 아버지를 부정하였고, 아버지를 배반하였고, 아버지를 원망하기에 모든 정력을 기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금번 순회노정에 있어서 이 강원도 일대에서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재차 결의하여 하늘의 영광의 개선문을 향하여 나가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까지 오랜 기간 동안 당신이 이끌어 주시고 친히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는 이 시간에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우리 통일의 신도들 중에는 스승을 모시고 하늘의 전체 인연이 있을 것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많은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외로운 신세를 염려하여 남 모르는 가운데 이 무리들을 위하여 눈물 뿌리는 식구들이 있음을 고맙고 황공하게 생각하옵니다.
이 뜻을 세우기 위해 싸워 마온 천상의 천천만 성도들과 이 뜻을 따라나오는 자녀들이 부디부디 하나가 되고 부디부디 화하여서 아버지의 거룩하신 존전에 감히 탕감의 실체의 제물로서 만민 앞에 내주어 축복의 영광스러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의 절차를 맡으시옵소서. 이 강원도 일대는 아버지 당신의 장중에 쥐여져 있사오니 원수를 갚아 아버지 앞에 영광 돌릴 때까지 낙오되는 자가 없이 아버지의 자랑과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황소굴레 풍경소리…' 그런 노래가 나오면 선생님 대신 불러 준 노래로 알고 신비스럽고 고맙고 놀랍고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많아야 돼요. 그래서 그 노래를 불러 주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농사짓기 싫으면 그저 '이놈의 소새끼 논바닥에 자빠져 죽어라' 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놈의 논고랑이고 뭣이고 일하기 싫으면 '이놈의 땅덩어리 언제 없어지겠노?'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래서는 안 돼요.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원칙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거 무시 못 하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노고지리 한번 해볼께요. 목이 쉬어서 하기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줘야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선생님이 노래부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농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농촌에 가 가지고 멋진 농사꾼이 돼 가지고 농사꾼도 되고 통일교회의 용사도 되는 거예요. 산에 가면 산지니요, 물에 가면 수지니가 돼 가지고 좌우잽이 겹재비…. 이렇게 안팎으로 다 우려먹어야 돼요.
해가 지는….
틀렸어요. 다시 할께요. 틀렸다구요. (웃음) 그러니 어떡하겠나? 다시 해야지. 목소리가 안 나와서 크게 소리지르다가 곡조를 잊어버렸어요. (웃음) 할 줄 모르는 게 아니고 목소리에 신경쓰다 보니 곡조를 잊어버렸어요. '황소굴레 풍경소리' 해야 할 것을 다르게 했어요. 다시 할까? 다시 하면 맛이 안 나지요. 재산이 이것밖에 없다구요. (웃음)
딴 거 하자우? 「예」 뭐? 「낙동강요」 낙동강은 아주 남자답게 하려면 뱃심이 있어야 되는데 목이 쉬어서 안 되겠어요. 「그럼 쉬운 걸로 하나 하십시오」 뭐? 「마음의 자유천지요」 마음의 자유천지는 내가 듣기만 하고 한동안 하지 않아서 잊어버렸어요. 처음에 어떻게 하지요? 「백금에 보석 놓은」 그거 한번 해보자구요.
내가 이렇게 순회할 때나 한번 노래하지, 집에 가면 노래하지를 않아요. 노래 들을 줄이나 알지요. 좋은 노래가 있으면 듣기는 하지만 노래는 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노래하는 게 아니거든. 그렇지만 지금은 같은 입장으로 끌어올리고 화합해야 하니까 할수 없이 노래하는 거예요. 한번 해볼께요. 이 노래는 음이 높아서 필시 하다가 중단될 거라. 맨처음에 어떻게 하든가? 「백금에 보석 놓은…」 음….
내 노래 곡조 따라 산새도 운다.
내 노래 곡조 따라 세월도 간다.
됐지요, 이젠? 「예」 이제는 돌아갈싸? 하나 더 할싸? 「낙동강」 그래, 낙동강 어디 한번 해보자구. 이 노래는 통일의 용사들이 불러야 멋있는 노래예요. 용사들이 부르는 노래예요. 씩씩하고 힘있게 불러야 하는데 소리가 나와야지요. 딱 막히면 할 수없이 …. 그땐 여러분이 좀 밀어줘요.
낙동강 노래! 국군 용사들이 낙동강 전투에서 적군을 무찌를 때 피를 넘실넘실 흐르는 낙동강에 흘리면서 싸워서 승리했는데, 그 승리의 쾌감에 잠겨 가지고 부르는 용사의 노래라구요.
됐어요? (박수) 선생님이 목이 쉬었지만 악을 쓰면서 불렀어요. 이다음에 목이 쉬지 않았을 때 잘 불러 볼께요. '너─어─어─어─어─엄─실─흐르는…' (가사를 끊어 가시며 노래하심) 사실 그렇게 물이 흘러가는 거예요. 승리의 낙동강, 전통의 낙동강! 여러분들이 이제 그래야 돼요. 여러분들이 흘러나갈 때 그렇게 흘러야 돼요. 하늘의 용사! (웃음) 누가 그렇게 웃어? (웃음) 또 가서 흉볼라. 선생님이 노래를 이상하게 부르더라고. 그래야 인상에 남겠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선생님이 강원도 밥 한술 먹고, 그다음엔 어떻게 보면 작별이지만 어떻게 보면 또 나타나고…. 작별이지요? 또 오면 좋겠어요? 「예」 오늘 찝차를 몇 시간 탔나요? 「여덟 시간」 아주 진땀 뺐어요.
예수의 상대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예수는 남자로서 아들의 사명은 했지만서도 예수를 위주로 한 아들딸을 세우지 못했어요. 아버지 앞에 아들딸이란 이름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예수는 아들의 입장에서 사탄세계에 해와를 빼앗겼습니다.
원수가 하나님에게서 해와를 빼앗아 갔으니, 하나님의 아들된 아담이 부인을 잃어버렸으니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와야 돼요. 탕감복귀해야 돼요. 빼앗아다가 그를 가르쳐 가지고, 원수의 새끼를 가르쳐 가지고, 원수의 종도 못 되는 것을 잡아다가 길러 양딸로 세워 딸의 이름을 붙여 가지고 그다음에 부인의 이름을 붙여 부인의 자리에 올라가게 한다 이거예요.
이 부인 하나가 올라간 그 길이 트임으로 말미암아 후대의 인간들이 하늘 가정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여자가 이 땅 위의 인간을 사탄세계로 끌어 갔으니….
사탄세계의 원수의 종도 못 되는 것을 끌어다가 종의 딸로 취급하고, 그다음에는 양딸로 취급하고, 그다음에는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직계 의 형제의 자리에 세워 뜻을 맞게끔 해 가지고 서로서로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소원이 통하는 3대 요건이 통해야 됩니다.
첫째, 소원이 통해야 되고, 그다음 둘째는 사정이 통해야 되고, 세째는 심정이 통해야 돼요. 이 딸이 '오! 우리 남편이 될 수 있는 분은 어떠한 분이냐?' 하고 소원이 통해야 돼요. 그다음에는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통해야 돼요. 예수가 보고 싶어하면 그도 보고 싶어하고, 예수가 울 때는 그도 울고, 예수가 기뻐하면 그도 기뻐해야 돼요. 이런 관계가 되었더라면, 이 땅 위에, 이 사탄세계에 그런 딸을 하나 예수 편에 보내 주었더라면…. (녹음이 잠시 끊김)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구요. 이 부처끼리 서로….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어- 통일교회에서는 예수가 장가들어야 한다고 한다’하는데 예수가 장가 들어야 돼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단!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놈들, 너희 틀거리가 얼마나 가나 보자! 어느 것이 이치에 맞아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믿고 있느냐 하면, 예수는 모든 인간들 앞에 신랑이라고 해요. 남자 앞에도 신랑이예요? 남자는 종이예요, 종. 타락한 후에 복귀과정에 있어서, 예수가 찾아갈 수 있는 신부 앞에 있어서 세계의 남자들은 종이예요, 종. 종의 단계에서부터 올라가는 거예요. 남자는 한 단계 떨어져서 복귀해 나가야 해요. 여자가 딸의 자리에 올라가야 비로소 남자가 양아들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여자보다 한 단계 떨어져서 가는 거예요. 타락할 때 누가 먼저 타락했어요? 해와가 먼저예요. 그러니 복귀해 올라가는 것도 해와가 먼저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찾는 것은 아들딸이 아니예요. 신부를 찾는 거예요.
이거 세상에 허황된…. 그놈들이 이단이예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니 이단 아니예요? 그놈들이 세상에 나와 오늘날 사탄세계에 자리잡아 가지고 하나님이 몰린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원통하고 분하게 몰린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보자기를 썼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후아담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그렇다면 후해와는 어디 있나요? 첫해와를 사탄이 빼앗아 갔으니 사탄세계에서 후해와를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족속권 내에서 해와를 녹여 가지고 빼앗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빼앗아 와서 종 새끼의 딸로 취급해 가지고 복귀시키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 일대의 사명이예요.
그래 가지고 예수는 장가를 들어야 했어요. 저기 대희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말 처음 듣지요? 장가를 들어야 돼요, 장가.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결혼을 하게 될 때 예수 직계의 아들딸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은 천당 가겠어요, 지옥 가겠어요? 예수의 직계의 아들딸이 나왔다면 얼마나…. 그 아들딸이 있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고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뭐 세계의 어디에 가 있든지 벌써 찾아가서 모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상대될 사람은 예수와 소원일치, 사정일치, 심정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사람이 하나되려면 뜻이 같아야 돼요. 그렇지요? 또, 생활하려면 사정이 통해야 돼요. 그다음에는 심정이 통해야 돼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 '너와 떨어지면 못산다. 떨어지면 안 된다. 가지 마라!' 하고 영원히 놓을 수 없는 그런 인연이 되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소원일치, 사정일치, 심정일치!
그래 통일교회 교인들, 우리 식구라 하면 사정이 같아요. 소원이 같아요. 심정에서는 형제요, 한 부모의 아들딸이예요. 이 세 가지가 일치되어야 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신부를 모셔 가지고….
최순덕! 고마운 얘기 해서 기도하나? '선생님, 참진리의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거야? 기도하는 것은 괜찮지만 기도하는 종류가 좀 다를 텐데? 잘 들어 두라구요. 어디에 가도 이런 이야기는 안 가르쳐 줘요. 선생님이 휙― 가게 되면 여러분들 언제 또 만날지 알아요? 형편이 없는 이 인간들. 오늘날 타락한 여러분들은 원수 종새끼로 취급받고 있어요. 그런데 하늘이 있어서 그런 여러분을 살려줄 수 있는 말씀을 해주시니 고맙다는 거예요. 종의 이름이 붙어 있는 여러분에게서 원수의 철망을 벗겨 주는 사람이 있다면 천년 만년이 지나도 그 은덕을 못 잊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옛날에 감옥에서 사형수하고도 함께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팔을 베고 잠도 자고 그랬어요. 선생님이 그때 '이 사람아, 자네는 무엇을 해먹다가 여기 들어와 가지고 이따위 놀음을 하다가 죽을 날을 기다리는가?'라고 물으면서 테스트를 많이 해봤어요. 그들은 밤에 자다가도 두 시, 세 시면 그저 공상을 하다가 '후유―' 하고 한숨을 쉬는 거예요. 생명의 애착, 생애의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요. 옛날 죄를 짓기 전에는 생명이 그렇게 귀한 줄 몰랐지요. 죽음의 경각에 임하게 되니 '아이쿠머니야! 생명이 이렇게 귀하구나'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죽을 시간이 되면 '아이쿠! 내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거예요. 그때 가서야 비로소 생명의 가치를 아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욱한 녀석들도 그저 일어서지 못하고 죽을 고비를 왔다갔다하는 병을 한 서너 번만 앓아 보면 도의 길을 안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병도 가만히 보면 하늘이 구원섭리를 위하여 인간에게 선물로 준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그렇다구요. (웃음)
병자는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거예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거예요. 병자는 자연을 대하더라도 동정을 받고 싶고, 하늘땅을 보아도 동정받고 싶어하는 거예요.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봤으면 하고 기대하는 거예요. '내가 건강해져서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하고 말이예요. 건강한 사람을 봐도 동정받고 싶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 동정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병자는 악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게 수양이예요. 한번 앓아 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기 때문에 병이 나쁜 게 아니예요. 그 사람이 죽을 자리를 거쳤지만 본연의 사람을 찾아오면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앓으라는 건 아니예요. 앓지 말고 다 복받을 수 있는 길을 찾자구요.
그러니까 오늘날 여지없이 불쌍한 우리 인간들 앞에 하나님이 살려주겠다는 말만 해줘도 고마울 텐데 아까도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형수들 앞에….
내가 그 사형수에게 한번은 '이 사람아 내가 살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줄 테니 내 말 들을 건가?' 해봤어요. 그랬더니 '아, 해봐요' 하더라구요. 무슨 짓이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술잔에 술을 가득히 부으면, 찰랑찰랑 넘칠 듯 부으면 이것이 부착력이 있어서 잔 높이보다 조금 더 올라온다구요, 넘지 않고. '그렇게 가득히 부어 가지고 네 손바닥에 탁 올려놓고 서울 시내를 일주하는 데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돌아오면 살려준다 하면 할래?' 그랬더니 '하고 말고!' 하고 서슴지 않고 대답하는 거예요. 그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사는 것이 그리울까?' 하고 생각했어요. 난 그거 모르겠어요. '얼마나 간절할까?' 그 경지는 모르겠다구요.
이건 뭐냐 하면, 인간이 제정한 형법 조건에 걸려 가지고 죽음의 날을 피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인간 스스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자연 형법 조건에 걸려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는 거예요. 자연 형법이 뭐예요? 자연 형법에 의하여 사형선고 받은 날짜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죽을 날 기다려 봤어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이 자연 형법에 의하여 사형언도를 받은 죽음의 길을 돌파하기 위해서 생의 애착감을 가진 사람은…. 자연 형법에 의해서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거기에 대한 생의 애착감을 느끼면서 다시 살길이 없겠느냐고 찾아 나서야 할 길이 하늘이 주장하는…. 그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지 더 말할 게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요? 「예」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떻다구요? 원수의 종새끼도 못 되는 위치에서 원수의 입장으로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요? 지옥에다가 쳐넣는다는 거예요, ‘이 자식아!’하면서.
그러면 하늘은 지금까지 이런 인간들을 놓고 구원섭리를 하기 위해서 편안한 길을 걸어왔느냐? 아니예요.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종도 못 되는 불쌍한 자리에 있는 인간들과 본연의 천품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자의 인연을 맺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본래 부자의 관계였는데 어찌하여 이러한 관계가 되었느냐?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네 선조가 잘못하고, 네 선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이 원수가…' (녹음이 잠시 끊김)
무지몽매하고 불쌍한 이 악당, 이 지골떼기, 지골과 같은 이것들을 긍휼히 보시고 '내가 너희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너희들이 수고하고 어려운 쇠사슬도 끊어 주고 너희들을 해방시켜 주러 왔다'라고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께서 살길을 열어 주기 시작한 것이 구원섭리예요, 구원섭리. 이 땅 위에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구원하겠다고 하는 그 말이 얼마나 복된 말인지 몰라요.
형무소에 들어가 영어의 몸이 되면 파리가 부러워요, 파리. 철창문을 휙― 날아서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파리가 부러워요. 알겠어요? 그것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선생님은 그런 세계를 잘 알아요. '하나님이 왜 나에게 그런 길을 걷게 할까? 아! 나에게 그런 사람의 사정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 그러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다시 헤어날 수 없는 원수의 칼에 내 생명이 끊어지는 이런 순간에 있어서 구원해 주기 위해 하나님은 어떠한 행동을 하실 것이냐? '야, 이놈들아! 해방시켜 줘라'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이상의 죽음의 고비를 지내 가지고 이 사람들을 끌어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끌어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탄을 대하여 맹목적인 투쟁을 하지 않았어요. 심정적인 동기를 세워 가지고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세우는 거예요. 그걸 조건삼아 변호해 가지고 이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한 역사를 하는 것이 구원섭리예요. 그래서 사람은 양심의 호소와 더불어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향해서 정성을 들이고 싶은 거예요. 그 정성의 조건은 생활적인 무대 앞에서 사탄이 하지 못한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지 못한 놀음을 해야 하나님이 '이것은 내 것이다' 한다는 거예요.
사탄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부를 줄 몰라요. 원수라고 해요. 천지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내 원수 이놈!' 이렇게 불러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탄이라는 거예요. 인간이 사탄이 부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요. 그 하나님을 '하, 우리의 구세주요, 과연 구해 줄 분은 당신밖에 없다'라고 구세주로, 구원해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입으로 속으로 부른다는 거예요. 사탄이 그런 놀음을 해요? 사탄이 하지 못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믿고, '사탄은 내 원수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하나님이 찾아와서 마음에서 소곤소곤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기를 지금까지….
그래 가지고 이런 세상에서 종새끼도 못 되는 인종을 종새끼와 같은 인종으로 세우기 위해서 한 사람을 찾아 세운 것이 우리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아브라함이예요, 아브라함. 알겠어요? 그래서 종의 새끼들을 크게 해 가지고, 즉 이스라엘 민족을 크게 해 가지고…. 종의 새끼들을 택해 가지고 여기서 뭐 하느냐 하면 민족을 번성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을 보내는 거예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은 하나님의 천사(天使)의 모든 상속을 받고 이 땅에 와 가지고 종새끼를 끌어내어 양자로 끌어올리는 거예요. 요것이 기독교의 역사, 신약의 역사입니다. 양자로 끌어올려서 그들이 예수의 상속을 받으면 예수의 직계 자녀가 돼요.
그런데 예수가 이 땅에 와 가지고 종의 새끼들을 모아 양자의 도리를 세워 직계 아들까지 끌어올려야 하는데, 예수가 유대 백성을 찾아왔지만서도 종의 새끼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예요. 전부 다 예수를 배반했어요.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뭘했느냐? 종의 멍에를 다시 멘 것입니다, 인간을 살려주기 위해서. 어찌하여 하늘의 황태자가 종의 멍에를 메어야 되느냐? 예수 자신이 잃어버린 종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서 종의 멍에를 메고, 종 중의 종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가 종 중의 종이 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종 앞에 상속되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유업을 전부 거두어 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배반하는 종들이 축복해 준 복의 터전을 전부 다 잃어버렸으니 예수가 하늘 앞에 종의 종이 되어서 축복해 준 모든 선민권,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허락해 준 종의 인연을, 예수가 죽음으로 반대하던 것이 전부 다…. 그것도 예수가 갖는 거예요.
하나님은 주었던 것을 빼앗는 법이 없어요. 종으로 예수님을 축복했다가 잃어버리면 그것을 거두어 가지고 다시 한 사람을 세워 이루어 나온다는 거예요. 복을 주었다가 화를 줄 수 없어요. 복을 준 하나님이 그것을 빼앗을 수 없는데 그 복을 거두는 역사를 하려니 예수가 종의 종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사랑하는 그의 제자들을 중심삼고 '너는 내 종이 되어라' 이러지 않고, 예수가 종이 된 것입니다. 종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주어 가지고 '네가 내 대신 종의 입장에 서면 나는 양자의 자리로 올라간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과 만물을 대신해서 외적인 상속을 받음으로써, 세상을 대신하여 비로소 하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양자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양자의 사명을 해서 그 종들에게 양자의 법도를 가르쳐 주어 가지고 그것이 진행되면 그때에 비로소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늘을 섬기는 법도를 가르쳐 주어 가지고, 아들의 자리를 상속해 주어 가지고, 그것을 상속한 후에 비로소 신랑 신부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서 이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그러나 신랑 신부의 자리에서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배반한 무리 때문에, 제자들까지 전부 배반했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종의 발판을 만들려고 했는데 종의 발판도 없어졌고, 양자의 발판도 없어졌고, 다 없어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종을 찾으려고 했고 양자를 세우려고 했는데 하늘 앞에 세워진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종의 사명과 양자의 사명과 아들의 사명을 몽땅 걸머지고 죽은 거예요. 알겠어요? 몽땅 걸머지고…. (녹음이 잠시 끊김)
영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실체로 나온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실체의 종들 시대예요. 실체로 종 되는 무리가 나와야 됩니다. 실체로 양자 되는 것을 싫어해요, 영적으로는 되려고 하지만. 실체로 양자 되려고는 안 해요. 알겠어요?「예」
양자가 실체로 생겨 가지고 그 몸뚱이가 직계의 아들딸 기준까지 올라가게 되면 재림주님이 와 가지고 신랑 신부의 이름을 가지고 비로소 어린양잔치를 하여 거기에서 신랑 신부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비로소 가정적 기반 위에…. 거기에서 아들딸을 낳거든 양자를 아들딸의 자리에 세우고, 신랑 신부는 부모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아들딸의 자리에 선 양자들을 신랑 신부의 자리에 세우는 겁니다. 내 자신이 이 천적인 가정을 완결시킨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이것을 상속시키기 위한 이 엄청난 위업을….
이 원수의 족속들 앞에 이것을 무조건, 무일푼, 무보수로 허락해 주면서 하나님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 여러분들은 축복이라는 말과 참부부, 참부모, 참자식이라는 말은 잊을 수 없는 거예요.
본래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는 참부부요, 참부모요, 참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참자식이요, 참형제 아니예요? 아담 해와는 형제지요? 「예」 하나님 앞에는 참자식인 동시에 참형제예요. 참형제, 참자식이 돼 있는 것입니다. 참자식에서 참형제를 맺어 가지고 자랄 때는 뭐가 되느냐? 오누이가 된다구요. 오누이가 돼 가지고 그다음에는 부처가 되는 거예요. 부처가 돼 가지고 뭐가 되느냐? 사랑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아들딸 낳으니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이루었어야 되는 것인데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역사를 왕래하면서 복귀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가 누구하고 붙었느냐 하면 종새끼하고 붙었어요, 종새끼. 해와가 자기 집에서 막살이하는 종새끼하고 붙었다구요. 하늘나라에서 천사장이 뭐냐 하면 막살이하는 종이예요. 종하고 붙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천사장이 뭔지 알겠어요? 「예」 사탄이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종이예요. 종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종이 하나님의 딸을….
세상에도 그런 일이 있지요? 부자집 종이 그 딸을 농락하는 경우가 있다구요. 해와가 기뻐서 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겁탈당한 거예요. 그게 타락이예요. 그런 원통한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할 수 있는 거예요. 해와가 기뻐서 갔으면 복귀역사를 못 하는 거예요. 해와가 기뻐서 '아이구, 천사장님 이제 나하고 사랑하자!' 하고 입을 벌려서 먼저 바람을 피우고 그랬으면 복귀역사는 못 하는 거예요, 구원역사는 못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겁탈당했기 때문에….
왜 간섭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원리에서 배웠지요? 「예」 그런 복잡한 사연이 많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또…. (녹음이 잠시 끊김)
공의의 판결을 내려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 신도들에게 있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 오늘날 복귀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종 노릇을 했고, 양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원통한 길을 갔겠습니까? 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아들이 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말이예요. 아들을 죽음의 자리에 내세우는 하나님은 그 이상의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던 거예요.
아들을 죽여서라도 이 우주의 해원을 풀어야 할 아버지의 소원과 그 사정과 그 심정에는 예수를 죽이는 이상, 죽어가는 예수 이상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죽여서라도 이 고통을 풀려고 했다는 거예요. 누구 때문에 그런 고통이 생겼느냐? 예수 때문이 아니라 이 만민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이러한 구원의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위하여…. 여러분은 생각지 않고, 우리 선조들은 꿈도 안 꾸었다구요. 여러분을 찾아온 여러분의 선조들이 얼마나 배반했느냐? 하나님이 불러 세우면 배반하고 또 배반하고 또 배반하고 또 배반하고, 천번 만번 억천만번 이런 배반의 길을 걸어왔어요. 그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쓴 십자가의 고통을 꾹 참고 끝날의 승리의 한날을 바라보면서, 최후의 해방된 하늘나라의 참아들딸의 한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수고를 아는 사람이 되면 이는 원수의 족속이 될래야 될 수 없어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우리 통일교회 무리는 이런 원수가 무엇인지를 알아 가지고 원수의 세계에서 배반한 선조의 죄를 회개해야 된다구요. 오늘날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데 있어서 내 죄만을 회개할 것이 아니예요. 우리 선조인 아담이 지은 죄로 쭉― 회개를 해야 된다구요. 이렇게 회개하는 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복귀원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담가정을 배우게 될 때에는 아담 해와의 대신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여자들은 해와요, 남자들은 아담이 돼 가지고 '아버지여, 당신은 이러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조상 아담 해와가 이런 역사적인 죄를 범했으니, 그런 자리에서 이런 음란의 죄로 천지를 망쳤으니 천도 앞에 설 수 없는 이런 부정의 행위를 오늘날 우리 후손들이 탕감하게 해주시옵소서. 당신의 분하고 원통한 것을 내 일신에서 탕감해 주시옵고 그 분함을 푸시옵소서' 하고 통회하면서 나를 죽여 달라고 대신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옛날에 아담 해와를 잃어버릴 때의 분한 마음을 풀어서 아담 해와를 사랑해 주고 싶었던 심정적인 위업을 받는 거예요.
이리하여 노아 시대면 노아 할아버지를 대신하고, 아브라함 역사를 배울 때는 아브라함 대신하고, 모세 역사를 대하게 될 때에는 모세를 대신하고, 예수 역사를 대할 때면 예수를 대신하는 존재가 돼 가지고 '이와 같이 역사적인 선조들이 실천해서 승리하지 못한,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이 모든 실수를 내가 책임짐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해원을 하시옵소서' 해야 된다구요.
나는 나 하나로되 6천 년 전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의 모양으로 돌아가 가지고 그때서부터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타락한 이 땅의 인간들을 놓고 섭리하는 데 있어서 어느 시대, 어느때를 막론하고 나는 의논의 상대가 되었고, 내가 선조들을 대표하여 회개하는 자가 되었다 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즉, 6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수많은 선조들이 죽어갔지만 심정을 기반으로 해서는 나는 6천 년 전부터 있었다 하는 입장에 선 여러분들이 되어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심정에 있어서는 6천 년 전 아담보다 낫고, 4천 4백 년 전 노아보다 낫고, 3천 6백 년 전 모세보다 낫다. 그리고 2천 년 전 예수가 하지 못한 말을 나는 이 땅에서 할 수 있다. 육신을 가지고 예수가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예수보다 낫다' 하는 기준을 가져야만 살아 남을 아담 해와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들이 죽기는 죽었지만 오늘날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심정 기준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복귀섭리하기 전부터 인연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해원의 뜻, 곡절의 모든 것을 다 청산해 버리고, 그것을 다 해원해 주고 비로소 기쁨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었다 하는 여러분 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죽기는 수천 년 전에 죽었지만 수천만 년 전부터 섭리를 해 나오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선조들이 배반했던 심정을 전부 다 일깨워 가지고 역사적인 선조들이 못한 것을 내가 대신 회개해 가지고 승리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연면히 6천 년 계속해 온 역사적인 산 실체로서 남아졌다는 이런 심정의 실체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존재는 6천 년 인류의 열매예요.
끝날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열매를 맺는 가을절기예요. 열매에는, 벼라면 그 벼 열매에는 벼가 일생 동안 산 모든 요소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왔다 갔던 아브라함이니 과거에 왔다 갔던 모세 등은….
아브라함은 가정적인 아담 새끼예요. 모세는 민족적인 아담 새끼예요. 예수는 세계적인 아담이예요. 그러나 실패했으니 다시 오는 거예요. 그때에 있어서, 오늘날 만민들이 아담 새끼로부터 아담으로 등장할 수 있는 역사를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게 복귀역사입니다. 알겠어요? 아담 새끼로 역사합니다. 아담 새끼로서 하나님과 동역해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싸워 나와 살아 남은 아담, 몇 살 안 됐지만 통일교회 원리만 대하면, 원리만 듣고 나면 심정적인 세계에 있어서 부활된 아담으로 즉각 올라가는 거예요.
살아 남은 아담, 하나님이 원수를 대해서 싸워 나오던 편에 서서 싸우는 거예요. 원수 편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던 내가 아니예요. 그 원수 편에서 원수를 원수시해 가지고 원수를 갚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행해서 싸워 가지고 승리한 그런 역사적인 대표의 유업을, 심정적인 유업을 상속받은 나라는 확인을 받고 나서야 하나님은 비로소 '너는 대천주의 존재다'라고 손을 들어서 축복해 주신다는 거예요.
그런 일을, 그런 6천 년의 종적 역사를 오늘날 횡적인 여러분의 생애에 당겨 가지고 몇 해 동안에 하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움직이는 목적이예요. 알겠어요? 「예」
무슨 복이예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내가 분하고 원통해요. 왜? 내가 그렇게 힘들게 찾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언제 선생님을 보기나 했어요? 이것들에게 그저 무조건 나누어 주어야 된다구요. 원수의 종새끼보다 못한 것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최고의 왕궁의 왕자 왕녀가 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복을 값도 없이, 인사도 없이 나누어 줘야 되니…. 생각해 보라구요, 값이 어떻게 되는지. 갚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부모의 심정을, 부모의 유업을 맡겨 주었으니 여러분들도 그러한…. 여러분들도 역시 그렇게 받았으니 그렇게 만민 앞에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이 세계 인류가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된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예」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나가서 나눠 주어야 됩니다. 나눠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런 하늘의 복을 주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어요? 아버지의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자기들이 가야 할 남아진 이 고개를 멋지게 넘어 가지고 승리의 축복을 받아 해방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알겠어요? 「예」 찾아가야 돼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고 하지요? 「예」 식구가 뭐야? 식구는 같이 사는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식구예요. 그래 여러분들이 나가 전도하게 되면 자기 집의 형제들이 가까이 찾아와도 찾아가기 싫지만 통일교회 어느 식구가 어디에 있다 하면 10리 길, 30리 길, 50리 길, 100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갑니다. 그렇지요? 「예」 만나면 서로 손을 붙들고 '너 얼마나 수고하느냐?'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회와 통일교회가 다른 점이예요. 형제 아닌 형제가 모여서 형제가 되고,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로 모셔 가지고 천도를 밝히는 이러한 곳이 통일의 왕궁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이 사는 동네, 여러분의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거나 다 집어먹어요. 그리고, 또 여러분이 선생님이 있는데 와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집어먹으라는 말이예요. 물질이란 문제를 중심삼고 선생님의 지갑에 돈이 있으면 통일교회 식구들인 여러분들이 돈을 갖다 쓰려면 쓰라구요. 선생님이 쓰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갖다 써라 이거예요. 공적인 물건은 더 공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에게 앞으로의 이상세계를 얘기해 주는데, 그 얘기를 다하면 돌아요, 돌아. 돌기 때문에 일을 못 해요. 그러니까 이 정도만 알고…. 여러분들이 살 길,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을 가기 바라요. 이 길을 안 가면 죽어요. 안 가면 죽어서 앞으로 억천만 년 이 땅을 바라보면서 고대해도 복귀역사가 없어요.
누가 지상에서 영계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갔어요? 지상에서 영계의 협조를 백 퍼센트 받아 가지고 말이예요. 양자의 자리는 이런데 뭐 종교가…. 그렇기 때문에 '나 이거 싫다'고 하고 영계의 협조를 안 받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는 요 때를 봅니다. 어느 기간. 영계에서는 그저 대가리가 깨지게끔 이 땅에 내려와 가지고 협조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은 '좀 기다려라' 하고 딱 문을 잠그고 안 열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앞으로 말을 함부로…. 영계의 문이 열리면 꿈으로, 몽시로 통일교회 가라 이런다 이거예요. 안 가면 들이 차거든요. 그래서 한다 말이예요. 과거에도 그렇게 역사했거든요. 그건 원수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역사했어요. 지금 그렇게 하면 사람은…. 만약에 그렇게 영계에서 협조하면 사탄도 일대일로 영적으로 싸움을 하기 때문에 핍박이 많아요.
그렇지만, 사람이 말로…. 쏙닥쏙닥 말로 타락했어요. 그러니 이치로 해명해 가지고 '이것은 거짓이고 이것은 참이다' 하는 것을 말로만 쏙닥쏙닥하면 사탄이 와서 '야, 이 녀석들아 무슨 얘기를 해? 왜 빼앗아?' 하고 얘기를 못 해요. 복귀역사니 그냥 그대로 탕감하는 거예요. 말로, 입으로 타락했으니 말로부터 복귀하면 누가 참소하느냐 이거예요. 핍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진리로서 통과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강원도 일대는 이제 여러분들이 책임지고 여러분들의 종족을 구해야 된다구요.
성신을 믿어야 된다는 것을 알지요? 「예」 성신을 받지 않으면 구원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성신은 해와의 신인데 해와의 신은 신랑 되는 예수 앞에 어떻게 어떻게 되느냐? 원수의 족속권 내에 있어서 찾아온 혈통적인…. 종의 새끼도 못 되는 데서부터 종새끼로부터 양딸 그다음에 무슨 딸? 직계의 딸로부터 그다음에 신랑 신부인 예수 상대기준까지 성신이 와야 된다구요. 성신은 어머니 신, 딸의 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타락한 이 인간은 예수를 붙드는 것과 같이 누구를 붙들어야 돼? 「성신」 성신이 닦아 준 그 길, 그 혜택권을 받았기 때문에 성신이 이 땅 위에 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영적 성신 말고 실체를 쓴 하나의 딸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다가 이렇게 닦아 가지고, 종새끼도 못 되는 것을 종으로부터 양자, 직계의 딸의 자리까지 가게 해 가지고 신부로 세워서 어린양잔치를 하는 날에는 그 딸이 거쳐간 그 길로 말미암아….
그래서 성경 요한 계시록의 맨 나중에 '성신과 신부의 말씀이 오라 하는도다' 하는 말이 나오지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생명수를 원하는 자에게는 값없이 나누어 주겠다' 하는 말이 나온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 딸이 다시 신부로서의 길을…. 종새끼의 세계에서 해와를 빼앗아 갔으니 원수의 품에서 해와를 복귀시키는 과정적인 노정이라는 거예요. 종새끼도 못 되고 원수의 딸도 못 되는 입장에서 종의 딸로서, 양녀로서, 참딸로서…. 그렇게 하여 형제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신부의 자리까지 등장하는 이런 길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어머니 역사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래야 성경이 다….
성경의 맨 나중에 가면, 성신은 어머니 신인데 '성신과 신부의 말씀이 오라 하는도다' 하고 또다시 구원역사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모르거든요. 성경의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분이 등장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인간들은 양아들딸로서, 직계의 아들딸로서, 형제로서, 신랑 신부로서 축복의 자리에 나간다구요.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그러한 역사를 지금 하늘 앞에 의논하면서 해 나가려고 한다구요. 얼마만큼 했는지 여러분들도 알 거라구요. 황서방 알아? 몰라,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
앞으로 이 땅 위에는…. 지금 유교 패들은 '천지 부모가 나온다' 이런다구요, 천지 부모. 영계에서 '천지 부모 찾아야 산다' 하는 그 말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예요. 참부모 찾기가 그렇게 두루뭉수리로 간단하지 않아요. 찾기가 이렇게 복잡하다구요. 천지에 엉클어진 모든 이 실두루마리를 다 풀어야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거예요. 떡 앉아 가지고, 영계에서 가르쳐 준다고 뭐 기도나 해 가지고…. 자기가 뭐 만승천자가 된 것같이…. 수덕을 다해서 닦아 나가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 땅 위에는 참아버지가 나와서 사탄세계에서 참어머니 찾아 주는 복귀노정이 벌어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어머니 길을 닦아 줌으로 말미암아 그 땅 위의 만민들은 부활의 과정을 거쳐 축복의 아들딸로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종교의 이념은 이념인데 이게 전부 다 과학적이요 논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모순 상충이 없는 거예요. 그래야 믿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믿겠어요? 허무맹랑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제 구원섭리의 뜻을 알았으니 이제 이 문제…. 그러한 것을 알았으니, 여러분들은 원리를 알고 있으니 원리노정에 있어서 조금만 버티어 나가면 그런 무한한 혜택을 전부 다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싸워 나와 가지고 뭘해야 되느냐? 부모가 나오기 전까지 복귀역사에 탕감조건을 걸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믿음의 아들딸, 양자를 세워야 된다구요. 양자를 세워야 직계가 있지요? 응? 「예」 여러분들도 양자를 찾아야 돼. 양자, 양자! 양자를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돼. 그래서 양자를 찾아야 됩니다. 양자를 찾아 나가는 길이 통일교회에서는 전도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종이 되었으면, 여러분들이 양자가 되었으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양자의 혜택은 벌써 받고 들어가는 거예요. 양자만 되었으니 가서 종새끼들을 구해야 된다구요. 종새끼들을 구하려면 옛날에 하나님이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던 것을 대신, 아버지가 하던 것을 몰라준 것이 원한으로 맺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아버지가 하던 것을 대신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해원해 드려야 된다 이거예요.
아버지께서 종새끼를 구하기 위해서 종 노릇 하셨으니 나도 종 노릇 해야 되겠다, 양자를 구하기 위해서 양자 노릇을 하셨으니 나도 양자 노릇을 해야 되겠다, 아들을 잃어버리고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부활의 아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수고하셨으니 나도 부활의 아들이 되기 위해 수고하겠다 해야 되는 거예요. 이 과정을 비로소 짧은 기간에 종새끼 기간, 양자의 기간, 이것을 부활시키기 위한 아들의 기간, 형제의 자리를 인연맺어 가지고 신랑 신부를 내세우겠다는 이런 엄청난 복이 여러분에게 넝쿨째로 떨어진 거예요. 가고 싶어요? 「예」
안 가 보라구요, 여기서 말한 선생님의 말이 거짓말인가. 이제는 선생님이 그 말을 안 했다고 여러분의 입으로는 말 못 해요. 죽어서 ‘아, 선생님이 그런 내용을 다 알면서 왜 못 가르쳐 주었습니까?’하고 지옥 가더라도 항의를 못 하는 거예요. 다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찾아가야 돼? 「양자」「종」 여러분들이 양자라면 종새끼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들딸이라면 무엇을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양자」 여러분들이 신랑 신부가 되려면 무엇을 찾아가야 돼? 「아들딸」 축복받으려면 아들딸을 세워 놓고야 축복받을 수 있다구요. 그렇게 돼 있지요? 「예」 선생님도 아들딸을 세워 놓고야 축복받았어요. 그래 가지고 한 계단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야만 축복이 벌어진다구요. 그만하면 알겠지요? 「예」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역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다구요. 우리 원리를 배운 사람은, 똑똑하고 아는 사람일수록 대번에 걸려 넘어 들어온다구요. 모르는 사람들, 멍청이들이 가만히 있다구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야, 삼촌이 가니까 나도 다리가 찢어져도 가겠다. 비행기를 타면 나도 비행기를 타겠다. 자동차를 타면 나도 타겠다' 해야 되는 거예요. 가긴 가는데, 삼촌의 말을 잘들으며 따라가면, 악착같이 따라가면 미국도 가고 영국도 간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천국 가기는 가는데 어떻게 가는지 모르지만 가는 뒤꽁무니를 붙들고, 비행기를 타는지 뭘 타는지 꼭 붙들고 눈을 감고…. 소경이 되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옷자락 붙들고 안 놓겠다 하면 가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꼭 붙들고 가면 나쁜 데 안 갈 거예요. 가 볼래요? 「예」
그러면 한 때에는 '이 간나야! 이놈아!' 하고 들이 칠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팔이 부러지면 '뼈다귀는 부러져도 가죽은 남아 있다! 가죽은 못 끊어 갔다!' (웃음) 이래 가지고도 붙들고 늘어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렇게 싸워 왔어요. 하나님이 있는 걸 알면 하나님을 꼼짝못하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분주해서 못 견디게 만들거든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이런 이런 하나님이 되셔야 하지 않느냐?' 하니까 그렇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그런 하나님을 만들어 주겠다는 데 왜 싫다고 하십니까?' 하는 항의를 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그저, 하늘나라가 복잡하리만큼 일을 해오면 축복 안 해주시겠어요?
야곱이 천사장과 싸웠지요? 환도뼈가 부러지는 가운데서도 축복해 달라고 했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들이 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나는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병신이 되겠으면 되고 눈이야 빠지겠으면 빠지고 축복 받겠다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러지요? 내가 죽겠으면 죽고,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 통일 용사들은 그러한 사상을 가져 가지고 이 세계의 복을 전부 다…. 이 세계에 지금 널려 있는 양자들, 종새끼들에게 준 복을 우리 말을 안 듣게 되면 우리가 걷어 오는 거예요, 빼앗아 오는 거예요. 그들의 복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미워하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왜 반대하는 줄 알아요? 부락에 들어가면 부락에 있는 사람에게 '통일교회 믿으소' 해 가지고 안 믿게 되면 자기네 복을 빼앗아 오는 거예요. 수천 년 동안 선조들이 공들인 것을 빼앗아 가지고 난데없이 지나가던 사람에게 주거든요. 그래 잘못하면 복을 빼앗기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제일 미워하는 거예요.
통일교인이 와 가지고 말씀하는데 한마디만 반대하면 자기 선조들이 쌓은 공적이 몽땅 거두어지는 거예요. 추수기예요, 추수기. 무슨 추수기? 복 추수기예요. 인류역사 종말시대는 추수기예요. 수확기인데 무슨 수확기냐? 하나님이 주었던 모든 공덕의 진액이 하나의 결실을 봐 가지고 창고에 들여놓는 수확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손길로 그 진액을 거두어서 우리 열매를 맺어 가지고 창고에 들여놓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복을 빼앗으려고 다니는 패들이예요. 그러니까 욕 좀 먹어도 괜찮아요. (웃음) 그리고 매 좀 맞아도 괜찮아요. 그러려면 욕먹고 매맞게 돼 있는 거예요. 하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하늘 작전법은 때리고 빼앗아 나오는 것이 아니예요.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지금까지 매맞아 죽었어요. 죽고 빼앗아 나왔지요. 하늘의 작전법은 그래요. 그런 작전의 비법을 알았으니 여러분들도 그래야 된다구요.
그들이 '퍽' 하고 때리면 '흥 한 대 때려라!' 하고 잘 맞고, 또 때리면 '아이고 복이야!' 하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래저래 복받는 거예요. 욕을 먹어도 복받고 좋을 수 있는 것은….
나는 그래요. 통일교회 그만큼 욕 좀 먹고야 뭐. 더 해라 이거예요. 세계 사람이 어서 빨리 욕해라 합니다. 그러면 한곳으로는 복을 자꾸 운반해 오거든요. 운반해다가 어떻게? 마음대로 준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이 싫다면 영국 사람에게 주고, 영국 사람이 싫다면 다른 나라 사람에게 준다구요. 지금 저 흑인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있는데 나중에 복이 그리우면 가서 무릎을 꿇고 '살려주소' 할 때가 온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 힘차게 멋지게 여러분들이 양자 찾으려고, 종을 찾으려고, 뭐야 또? 아들딸 찾으려고 전국을…. 그러니까 그런 때를 맞이해서…. 이 3년 기간을 걸어놓고 그것을 찾아야 된다구요. 3년 기간이면 종도 찾을 수 있고, 양자도 찾을 수 있고, 아들딸도 찾을 수 있고, 신랑 신부의 자리에까지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6천 년의 한의 역사가 3년으로 탕감을 받아요. 그런데 이 3년 기간도 못 가겠어요? 못 가면 벼락을 맞아서 옥살박살나서 죽으라구요. 그런 녀석들은 내가 발길로 들이 차 가지고 저 불구덩이에다가 쓸어 넣을 거라구요. 그런 것들은 전부 심판 제1호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 전도하러 가는 게 아니라 자기 아들딸 찾으려고 가는 사람에게 누가 동정해 주느냐 말이예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내가 내 아들딸 찾는 데 있어서 누가 동정해 주지 않았어요. 나 홀로, 아들을 사랑하느니만큼 혼자…. 비바람이야 치겠으면 치고, 가시밭길이야 있겠으면 있고 '잃어버린 자식이 어디에 있느냐' 하며 목메어 통곡하면서, 울부짖으면서 자식을 찾고 싶어한 그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자식 찾기 위해서 6천 년 역사를 두고 가시밭길을 걸었어요.
그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생은 뭐냐? 3년 이내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니, 그게 얼마나 고마워요? 그렇기 때문에 눈물과 피땀을 다해 우리가 뿌려 가지고 아들딸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찾을 때의 기쁨을 하나님 앞에 보고하는 그 시간이 축복받을 수 있는 인연의 시간이예요. 알겠어요? 「예」
아이구, 열 시가 넘었구나! 조금 더하지요, 얘기를 꺼낸 김에. 응? 「예」 지금 열 시니까, 여기서 한 시 넘어서 갈 거니까 더 얘기하자구. 이놈의 강원도 녀석들은 그런 뜻도 모르고…. 그렇지만 한때는 이런 발판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이걸 놓치면 옮겨진다구요. 그러니 고생 많이 해야 됩니다. 강원도에 와서 부탁하고 싶은 말은 고생 많이 하라는 거예요. 한국에 있어서 이 전체, 통일교회 신자들 앞에서 제일 고생 많이 하면 강원도가 복받는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 잘 걸어다녀야 되겠다구요. 잘 뛰어다니라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말도 신나게 해야 될 텐데, 신나게 아주 때리고 바삐 뛰어야 할 텐데 바쁘면 또 말이 막히네. 그럴 수 있다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마음만은 참 좋은 사람이예요.
그리고 여러분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학식으로보나 모든 면을 갖추고 있어요. 이 사나이가 실력이 있어요, 실력. 세상적인 실력이 있다는 말이예요. 어느누구한테 지지 않을 수 있는 실력도 있고 심정도 있고 그래서 모든 면에 있어서…. 그래서 지구장쯤은 하리라고 보고 있어요. 할 수 있어? 「예」 여기 지역장들은 선생님 대신 지구장을 받들어 가지고 일심단결, 또 지구장을 중심삼은 구역장들은 일심단결, 구역장을 중심삼은 전도사들은 일심단결, 전도사를 중심삼은 식구들이 일심단결해야 돼요. 그들은 다 선생님을 대신한 사람들이예요. 그러니만큼 그릇된 것이 있으면 그걸 덮어 주고 키워야 된다구요. 자기 집안의 흠이니까요.
자기 아버지에게 흠이 있으면 '야, 우리 아버지가 어저께 남의 집에 가서 도둑질했다' 하고 자식이 공포하겠어요?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이예요. 흠이 있다 할 때 자식이라면, 식구라면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을 좋은 면으로 뻗게 해 주어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서로서로 키워 줄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여러분들이 자라난다구요. 여러분들이 자라나야 앞으로 그들이 가는 길, 또 키움받는 길을 걸어갈 수 있고, 그래야 한 사람이 될 게 아니예요?
교회 돌아가게 되면 절대 우리 지역장은 뭐 어떻고 하고 불평하지 말아요.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되겠어요. 그런 사람은 뭐야? 원수의 족속이예요. 가인이요, 사탄이예요. 불평하는 사람들을 우리 식구들은 대하지 말라구요. 그 사람을 대하면 손해가 난다구요. 불평이 있더라도 자기 혼자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돼서 나가야만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오늘 강원도를 내가 여러분들에게 다 맡기고 가쁜한 기분으로 떠나려고 한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자우? 그러자우? 「예」 자신 있어? 「예」 그러면 선생님이 강원도에 안 와도 괜찮다구요. 그렇잖아요? 안 와도 된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없어도 된다 이거예요. 선생님은 세계무대에 내노라하는 녀석들을 때려잡아야 할 때가 온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언제까지 강원도에 차를 끌고 다녀야 되겠느냐 말이예요.
선생님은 이제 제2작전을 해 가지고…. 제1작전은 국내에 대한 것이고, 제2작전은 국외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앞으로 이렇게 순회할 기간이 없을 것 같다구요. 거기에 대한 준비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러니만큼 앞으로 선생님이 오지 않는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오라고 편지하지 말라구요. 편지해도 못 올지 모른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을 버려두는 게 아니예요. 마음은 언제나 같이해요. 여러분들이 슬퍼하는 자리에 있으면 선생님이 직접 가르쳐 준다구요. 선생님이 나타나서 가르쳐 준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그렇게 알고 여기 강원도를 멋지게 책임지라구요. 책임지지요? 「예」
그러면 열심히 하는 여러분으로 믿고 강원도를 여러분에게 맡기고 가니 부디 잘 싸워서, 지구장을 중심삼고 잘 싸워 가지고 어느 도에도 지지 않을 성과를 거두기 바랍니다. 강원도는 불쌍하니까, 하나님은 불쌍한 사람부터 먼저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취지가 있는 것을 알고 남은 기간 여러분들이 싸워서 여러분 각자가 가야 할 기간을 잘 지켜서 승리의 축복 받은 그런 아들딸이 될 것을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약속했어요? 「예」 그것을 실천하기를 맹세하자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맹세하겠지요? 「예!」 손들어서 맹세하자구요. 그럼 내가 기도 한번 해주고 갈께요.
아버님! 아버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거룩한 명사 앞에 저희들은 피눈물을 갖지 않고는 부를 수 없는 아버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생하신 아버지의 손길을 생각지도 못했던 저희들이 고생하시는 내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그런 나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긋지긋한 원수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품에 품기어 당신의 위로의 한마디를 바라 가지고…. 만우주를 유업으로 받아 하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의 약속과 새로운 소식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맡겨진 이 거룩한 사명과 책임을 함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있는 충성을 다하여 하늘이 바라는 본분을 감당하고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강원도 지역의 외로운 식구들, 핍박받은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눈물과 피땀을 개의치 아니하고 정하신 목적의 곳을 향하여 충성하기 위한 아들딸이 모였습니다. 하오나 이들을 또 외로운 자리에 남겨 두고 가야 되겠으니,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어떠한 어려움도 같이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싸워 나올 때, 외로울 때 당신이 같이하였기에 이들이 외로운 자리에 설 때 외로운 자리에 같이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깨워 주시는 아버지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들이 쓰러질 때 아버지께서 일깨워 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남의 한 시간을 기뻐하는 반면에 헤어지는 이 순간을 슬퍼하는 이 마음도 감히 짐작할 수 있사오니, 아버지, 그 마음의 모든 것을 맡으시옵소서. 기쁨으로 만났다 기쁨으로 헤어져 아버지의 영광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이날, 이 시간부터 경기도 지역에 있는 식구들이 고대하고 있사오니 그곳을 향하여 가는 도상에도 같이하여 주옵고, 거기에 모여든 식구들의 심정도 수습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이와 같이 기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소망의 일념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그 마음에서만은 차이가 없게끔 같은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이 순회노정에 대하여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우리 식구들은 피어린 눈물의 기도를 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이번 기회에 아버지 뜻 앞에 한 단계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특별한 은사의 혜택을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것을 맡기겠사옵니다. 하늘은 이들을 맡으시옵고 이들은 하늘이 약속한 것을 맡았사오니, 책임을 감당하는 데 주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강하고 담대하여 원수세계에서 당신의 아들 노릇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의 뜻을 중심삼은 움직임의 노정 위에 길이길이 아버지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세상에서는 우리들을 통일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를 통일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이라는 이 명사를 두고 볼 때, 통일이라는 명사 가운데는 기나긴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어디 있느냐? 통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창조의 위업을 성사하였다는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그 창조의 위업은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통일되는 데 있어서 목적완성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이러한 통일의 이념, 즉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고 일체적인 이상을 거쳐 가지고 전체가 통일된 그런 세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요, 만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런 소원성취의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주하여 같은 사정에서 살아야 할 하늘땅이요, 만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인간은 물론이요 지으신 피조만물까지 심정을 중심삼고 일체적인, 즉 통일된 자리에서 행복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본연의 목적이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기에 사람만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요, 하나님만 있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람과 하나님과 또 만물이 있어 가지고, 이 셋이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자리에 서야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늘이 있어야 되고, 인간이 있어야 되고, 만물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통일의 무리, 더 나아가서는 통일교회,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들은 통일이라는 명사를 지니고 있으니만큼 우리 배후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동시에 시대적인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적 사명이 있는 동시에, 이것을 타개하여 승리적인 통일의 결정권을 세워 가지고 하늘과 땅과 만물이 탄식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해원성사해 주어야 할 미래의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의 제일 원칙이 되는 분이 누구시냐 하면 물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물과 인간과 관계를 맺게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소원, 혹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그 뜻에 통할 수 있고, 그 소원에 통할 수 있고, 그 사정에 통할 수 있고, 그 심정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주로 하여 하나의 가정,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교회면 교회,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 국가, 세계까지 그 소원이 연결되어 있고, 그 사정도 연결되어 있고, 그 심정도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개체를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 개체는 여러분 한 사람의 개체로되 그 개체에 인연되어 있는 통일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전체적인 뜻과 전체적인 사정과 전체적인 심정을 내포해 가지고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하였다는 것은 무엇이냐? 통일의 기반이 무너진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갈라졌고,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졌고, 인간과 만물이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갈라진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 참 것과 거짓 것을 분별하여서 역사를 엮어 오고 있는데,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늘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민족으로서 하늘편에 세워 나왔지만 이 하늘편에 세워진 민족이나 국가가 과연 하늘 앞에 통일적인 목적성사를 할 수 있는 민족과 국가가 되었느냐 하면 지금까지 그러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직까지 소망의 일치점을 보지 못하였고, 하늘이….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늘이 이 터전을 닦기 위해서 수고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통일의 세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필코 통일된 하나님과 통일된 참다운 사람과 통일된 만물이 소원 일치요, 사정 일치요, 심정이 일치되는 그 기점을 하늘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해서 인간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6천 년이라는 기나긴 복귀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6천 년의 소망의 기준이 누구로 표상되어 있느냐 하면 메시아로 표상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 년 동안 고대하던 재림주님이 차지해야 할 자리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분이 이 땅 위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인간 세상 혹은 피조세계, 천상세계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과 지은 만물과 소원 일치의 기준이 연결되는 것이요, 사정 일치의 기준이 시작되는 것이요, 심정 일치의 기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하늘이 바라던 통일이라는 명사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통일의 기준에 있어서 그분이 모든 소원의 총합 실체요, 모든 사정의 총합 실체요, 모든 심정의 총합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통일의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따라서 통일하는 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살아 나가는 데는, 생애노정을 세워 나가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활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생활노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그 목적과 현실의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정이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정이 연결되어서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방향에 있어서 내가 소망을, 사정을 통하면 통할수록 나에게 힘이 되고, 나에게 기쁨이 되고, 나에게 모든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적인 터전이 없다 할진대는 그 소망을 성취해 낼 수 없는 것이요, 그런 입장에서 소망을 성취하지 않는 한 그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하늘과 부합시킬 수 없는 것이요, 인류역사가 소망하던 역사적인 소원의 목적과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도 역시, 인간도 역시, 지금까지의 역사도 역시 소원의 일치점을 바라는 것이요, 사정과 심정의 일치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우리 개인들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본다면 여러분 자신들은 통일의 한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섭리한 섭리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통일된 하나의 사람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6천 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를 찾기 위해서 숱한 피눈물 나는 역사의 노정을 거쳐왔고, 말할 수 없이 비통하고 비참한 역사의 노정을, 선을 지향해 나오는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과 더불어, 혹은 선지들과 더불어 엮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통일된 하나의 존재가 나오면 그 하나로 말미암아, 하늘의 비참한 역사적인 조건을 제시한 원수가 있으니 이 원수를 대해 세계사적인 분을 탕감하고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러 세워져 찾아오시는 그분이 앞으로 오실 주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분이 나오면 그분은 지금까지 지속돼 오던 하나님의 슬픔을 해소시켜 드리고, 하나님의 원수를 제거시킴과 동시에 통일된 세계를 세워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먼 소망의 세계로 여기던 창조목적의 세계를 오늘날 실제 생활무대에 전개시켜서,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생활적인 기준이 비로소 나타나는 소망의 실체 기반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그런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하나님의 소원의 실체요, 이 시대적인 소원의 실체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역사적인 사정의 실체요, 더 나아가서는 시대적인 사정의 실체요, 더 나아가서는 내 소망의 천국세계에 있어서의 생활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정의 실체인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역사적인 심정의 실체요,시대와 미래적인 심정의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분 하나로 말미암아 실체적인 부활을 완성하는 그 기준이 이루어짐으로써 개인이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소원의 부활 기준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역사적인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생활적인 기준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과 인간과 지금까지 심정적인 인연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 여기에서 이 한 기점으로 말미암아 연결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있기 전에 먼저 타락한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창조이상을 바라보던 하나님의 소망 앞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6천 년의 기나긴 슬픈 역사세계가 있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지금 이 시대까지도 심판하여야 할 이런 세계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총책임지고 전체를 탕감해야 할 중심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역사적인 눈물에 동참하고, 시대적인 눈물과 미래적인 눈물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선,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동참 동반할 수 있는 기준에 서 가지고 비로소 하늘의 슬픔을 땅 위에, 하늘의 모든 십자가의 고통의 길을 땅 위의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땅 위에 있어서 하늘 전체적인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요, 하늘의 모든 소망을 땅에서 비로소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요, 하늘의 사정을 비로소 땅에서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요, 하늘의 심정을 비로소 땅에서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이러한 한 분을 세우신 것은 통일된 한 분으로 말미암아 통일된 가정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된 한 분을 세우기 위해서 6천 년 동안 걸어 나온 하늘은 그 한 분만으로써 모든 것이 완결된 성상을 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 한 분을 세워 놓으면 그 한 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할 것이어늘 그 가정을 수습하여 통일된 가정으로, 통일된 가정을 수습하여 통일된 종족과 민족으로, 통일된 민족을 수습하여 통일된 나라로, 통일된 나라를 수습하여 통일된 세계로, 그 세계를 수습하여 통일된 천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개인으로서 통일교회의 교인이 되었다고 자처하고 나서게 될 때에, 자기가 지금까지 습관적인 생활로 살고 있는 개체보다도 역사성을 띤 개체임을 명심해야 됩니다. 하늘이 세우신 한 분을 위주로 하여 그분을 6천 년 소원의 실체로서 찾아온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소원 일치, 사정 일치, 심정 일치를 여러분 자체에서 세워 가지고 그분의 소원, 그분의 사정, 그분의 심정이 여러분의 소원, 사정, 심정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 바라보게 될 때에, 6천 년 하늘이 소원하시던 소원의 실체요,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실체요,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기준에 선 개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개인이 되기 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개인을 세우신 목적은 또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을 위주로 하여 통일된 가정을 바라서 세운 것입니다. 통일된 가정을 하늘이 축복해 준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들을 위주로 하여 종족과 민족과 여러분 자체가 오시는 주가 맡은 바의 입장을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책임을 하게 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복귀의 길은 어떤 길이냐? 이것은 십지가의 길입니다. 탕감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십자가의 고개길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한 분을 세우기 위해 6천 년 길을 걸어왔으니 6천 년 걸어온 그 길의 터전 위에 하나의 가정을 세워야 할 것이요, 그 가정 기반 위에 하나의 종족, 민족, 국가까지 세워야 할 창창한 길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을 세우기 위한 6천 년의 수고의 노정으로서 역사적인 전체가 탕감될 수 있었느냐 할 때에, 조건과 기반의 터전은 되지만 전체적인 승리의 터전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연고로 전체적인 승리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결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는데, 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비로소 통일의 교인들이 필요한 것이요, 통일의 식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지금까지 우리를 찾아온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지금 하늘이 소망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현실에 있어서 하늘 앞에 불리운 자기 자체가 틀림없는 통일의 교인이요, 내 한 자체를 그렇게 세울 수 있다 하게 될 때에, 하늘의 소원을 가지고 다시 나를 부르고 있는 그런 입장에 선 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늘이 나를 다시 불러 더 큰 사정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늘이 나를 불러 더 큰 심정의 터전 위에서 같은 행복을 노래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류가 있고, 수많은 국가, 수많은 종족,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이 있지만 이 천지 가운데에 하늘이 소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인, 하늘이 바라는 사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인, 하늘의 심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개인으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이분은 하늘편에서 볼 때 6천 년 소원의 중심이요, 앞으로 타락한 이 세상이 거쳐 나가야 할 역사적인 시대가 남아 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갈 입장에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 앞에는 소망의 실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미래에 있어서는 새로운 터전의 출발을 가져와야 할 그런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책임을 갖고 오시는 주님을 모셔야 할 통일의 무리, 혹은 통일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여러분 자신을 세워 '하나님이여, 당신이 나를 소원하시어서 찾아온 것을 내가 압니다. 하나님이여, 나와 더불어 사정을 통하기 위해서 섭리해 오심을 압니다. 나와 더불어 심정을 나누기 위해서 찾아온 것을 내가 압니다. 나를 위주로 해서 내 가정이 그러한 것을 알았고, 가정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이 세계 인류 앞에 그러한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을 압니다'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념과 이와 같은 생활적인 감정을, 여러분의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느낌 가운데서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땅 위에 발판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와 가지고 모든 탕감할 기반을 닦아 가지고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게 될 때 그 이념을,즉 통일의 이념을 완결시키기 위해서는 그 통일의 이념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하나로서 묶기 위한 기준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닦을 수 있는 수많은 무리가 준비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는 한 통일된 가정, 통일된 교회, 통일된 민족, 통일된 국가, 통일된 세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오시는 주님을 찾기 위해 하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6천 년 길을 찾아오던 거와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은 다시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개인을 찾았으니 가정을 찾아 넘어야 되고, 가정을 찾았으면 가정의 십자가를 지고 종족을 찾아 나가야 되고, 종족의 십자가를 지고 민족을 개척해 나가야 되고, 민족적인 십자가를 지고 국가를 개척해 나가야 되고, 국가의 십자가를 지고 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국가적인 시대를 향하여서 총진군해야 할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짊어지고 책임을 하고 있는 그 처지에서 과연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던 소망의 기준에서 비판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사정의 기준에서 비판해 봐야 되겠고, 심정의 기준에서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너는 과연 하나님의 소원에, 하나님의 사정에, 하나님의 심정에 일치된 자리에 있노라' 하는 입증을 받고, 입증받은 그 자체를 가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입증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우리가 회고해 보게 될 때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이 택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민족국가를 대하여 하늘은 4천 년의 기나긴 역사적인 소망을 두고 대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적인 소망의 기준을 대해 오면서, 하늘이 수고하는 십자가의 고난길에 동참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십자가의 고난길에 동참해 나왔지만, 처량하고 비참하고 애달픈 심정의 동참자가 돼 왔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이 찾아오는 기쁨의 소망의 한 날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기쁨의 사정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과 영원히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의 심정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슬픔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까지나 탕감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에서 소망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정은 십자가의 사정에 동참해 나왔다는 겁니다. 그들의 심정은 슬픈 심정에 동참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기쁜 소원, 기쁜 사정, 기쁜 심정을 하늘과 더불어 나누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슬픔이요 원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끝날 된, 재림시대가 오는 그때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역사적인 슬픔의 소원과 슬픔의 사정을 이스라엘 민족이 해결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2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소망의 것으로써, 세계적인 사정의 것으로써, 세계적인 심정의 것으로써 지금까지 2천 년 역사를 연장해 나왔으니 이 비참한 소원에 동참하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비참한 사정과 비참한 심정에서 울부짖는 기독교는 되었지만 진정으로 하늘이 바라던, 진정으로 기독교인들이 바라던 소망의 기쁨과 소망의 사정과 소망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입장에 선 역사적인 동반자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찾고 있습니다. 고대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 한 분을. 이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다시 찾아질 수 있느냐? 메시아의 재현으로 말미암아 옛날의 슬픈 역사가 청산되고 기쁜 역사가 인류 종말 시대에 연결되므로 그날을 고대하는 것이요, 기쁜 사정이 연결될 수 있으므로 그분을 고대하는 것이요, 기쁜 심정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를 위주로 하여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연결되겠기에 오시는 그분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게 될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슬픈 역사를 청산해 버리고 십자가의 고난의 역사를 청산해 버리고 기쁨의 역사를 준비하였더라면 오시는 주님 앞에는 슬픈 역사가 관계없을 것이로되, 슬픈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기준을 이루지 못하게 될 때는 오시는 주 앞에도 역시 슬픈 역사가 남아지는 연고로, 슬픈 역사와 더불어 뒤넘이쳐 이 슬픈 역사를 청산하고 나와야만 기쁜 역사의 출발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주가 이 땅에 오면 그날부터 자기의 소원이 성사되고, 자기의 사정이 이루어지고, 자기의 심정의 목적이 달성될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된 교단이 필요한 것이요, 교단을 이루지 못하였거든 통일된 종족이라도 만들어야 되고, 종족이 되지 못하였거든 통일된 가정이라도 이루어야 되고, 가정이 되지 못하였거든 통일된 개체라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십자가의 길을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도인들을 찾아보게 될 때에, 과연 하늘이 소망하시던 사정과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통일된 개인과 가정과 종족이 있느냐, 혹은 교단이 있느냐 할 때에 지극히 의문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오시는 주 앞에 필시 영광의 터전이 되어야 할 기독교가 도리어 슬픔의 터전이 되고, 행복과 기쁨의 노정이 십자가의 고통의 노정으로 바뀌어질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쉬운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런 역사적인 실정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 창립 1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늘은 오늘날 이 땅 위의 우리 교회면 교회를 두고 바라시는 그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통일의 무리들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실 것이며, 당신의 가정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실 것이며, 당신의 심정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시겠느냐 이겁니다. 10년이 지나갔으면 10년 세월 어느 한 날이라도 연결되지 않은 시간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은 소원이 일치된 자리에 선 통일의 사람을 불렀을 것이요, 사정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요, 심정이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어늘, 하늘이 '내 소원의 실체요, 내 사정의 실체요, 내 심정의 실체다. 10년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잃어버릴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을 통일교회 신자 가운데서 불러 세울 수 있을 것인가가 지극히 의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어느 한 날, 자나깨나 좋고 나쁜 일을 통하여서 과연 아버지의 뜻을 여러분 뜻으로 얼마나 하늘 앞에 세워 나갔으며, 이 죄악된 세상을 대하는 6천 년 원수를 앞에 놓고 싸워 나가야 할 하늘의 사정 앞에 있어서 얼마나 절박한 사정에 처해 봤으며, 잃어버린 자녀들이 유린당하는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과거를 미루어 보면서 현실의 비참상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종결짓겠다는 간곡한 하늘의 심정에 뒷받침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 나왔느냐? 이런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우리는 하늘과 거리가 먼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으로서의 지금까지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세상 만민은 하나님의 소원을 모르더라도 나만은 알아주어야 되겠다, 만민이 사정을 몰라주고 만국의 수많은 도인들이 몰라주더라도 나만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되겠다, 나만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주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이 선생이면 선생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때가 점점 다가오고 시대가 촉박해 오면 올수록 하늘의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재촉하는 하늘의 심정을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이 불쌍한 민족의 처참상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을 보면 볼수록 하늘의 사정과 심정이 얼마나 애달픈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애달픔이 하늘의 애달픔이어늘 그 애달픔을 붙들고 하늘 앞에 나를 통하여 어떠한 위로를 드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없겠느냐고 몸부림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통일의 무리요, 이러한 자라야만 시대는 용납하지 못하더라도 하늘은 반드시 통일적인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의 누룩이 된 통일적인 개체로서 통일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수많은 종족을 대표한 가운데서 먼저 부름받은 통일교인이라 할진대, 여러분들이 종족을 대신하여 '오늘날 내가 부름받았으니 내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가 나니 하늘이여, 나를 세워서 종족을 명령하시옵서. 나를 세워서 당신의 사정을 이 종족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하시고, 나를 세워서 당신의 심정을 종족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이 간곡하고, 그 사정이 처절함을 느끼고, 그 하나님의 소원을 여러분의 소원으로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이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초조하고, 얼마나 조급한가를 생각해야만 되는 겁니다. 이걸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10년 세월을 슬픔으로 지내 버린 것을, 혹은 고통길로 걸어온 것을 우리들이 회고하면서 생각하게 될 때, 과거의 슬픔이 도리어 실패를 가져왔고, 과거의 고통이 도리어 낙망을 가져오고, 과거의 비참함이 오늘에 불행을 초래했기에, 우리에게는 기념할 아무런 무엇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성공을 가져오고, 그 비참함과 억울함이 하늘의 분함과 억울함을 탕감할 수 있는 승리적인 억울함으로서 하늘 앞에 세워져야만 수고로웠던 고난의 길, 수고로웠던 고통의 길도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지, 그렇지 못하게 되면 기념이 아니라 화(禍)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10년노정을 걸어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비탈길을 걸어왔습니다. 험한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나오면서 낙망의 때도 있었고, 고통의 때도 있었고, 비참한 때도 있었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 하늘이 바라던 소망과 하늘이 바라던 사정과 하늘이 바라던 심정기준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어느 정도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에 기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런 날을 맞이할 적마다 하늘 앞에 속죄의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과거 10년은 그렇다 하고, 10년을 한 묶음으로 보내고 내일부터 새로운 10년의 출발을 해야 할 이 마당에 우리는 서 있는 겁니다. 과거에 여러분이 하늘 앞에 충성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하늘의 소원 앞에 일치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하늘의 사정과 심정 앞에 좀더 간절하고 좀더 하나되었던들 나는 하늘 앞에 내 자신을 세워서 면목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움과 면목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하십니까? 과거에 미급했던 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11년을 출발하는 이 마당에서 여러분이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남겼으면 가정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며, 혹은 자기의 사정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슬픔을 남겼으면 이 사정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며, 혹은 자기 개인으로 말미암아 그런 입장에 섰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 하늘은 오늘날 우리들을 세워 놓고 하나의 교단으로서 민족적인 책임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세우신 것은 통일의 민족을 바라서였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 민족적인 통일을 완결짓지 않고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완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2천 년 전 유대교의 사명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메시아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를 맞는 목적은 무엇이냐?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승리적인 이스라엘 주권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후에는 유대교의 사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교회로서 존속하는 데 있어서의 책임적인 사명은 이 민족을 하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하늘 앞에 복귀해 드릴 때까지 개척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도맡기 위한 통일교회이지 이 싸움을 피하기 위한 통일교회가 아니다 이겁니다.
만일에 통일된 나라가 있다 할진대 통일된 나라가 나라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세계를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관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사는 것은, 내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은 통일교회의 생활을 개척하기 위해서인 것이요, 통일교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은 통일의 나라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요, 통일의 나라가 있는 것은 통일의 세계를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언제나 이것이 내 소원이요,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내 사정이요, 이것을 내가 붙들고 싸워 승리해서 기쁨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세우기 위한 심정인 것을 알고 그것을 향해서 우리는 일편단심으로 나가야 됩니다. 딴것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거예요. 의(義)가 뭐예요?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예요? 통일된 나라입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그 나라와 더불어 끝을 볼 수 있는 나라요, 아버지의 사정이 그 나라와 더불어 백 퍼센트 통할 수 있는 나라요, 아버지의 심정이 그 나라와 더불어 거침없이 하나에서 전체까지 미쳐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바라는 뜻의 나라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면 지상천국이요, 천상에서 이루어지면 천상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원을 갖고 사는 나라요, 소원의 실체가 되어서 사는 나라, 그것이 곧 천국이라는 겁니다. 소망적인 사정을 내 사정으로 소원성취한 그 자리에서 사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소망적인 심정이 비로소 다 이루어진 나라이니, 그것이 곧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 천국이 아버지께서 바라던 천국이요, 그 천국이 인류가 바라던 천국입니다. 그 천국이 모든 만물이 바라던 천국이기 때문에, 그 천국권 내에 들어가면 그 자체가 소원성취한 그 자체로 서는 것이요, 그 자체가 사정 일체로 이루어진 실체로서 서는 것이요, 그 자체가 심정을 완성한 실체로서 만우주를 대신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는 생활이 천국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 현실의 생활 가운데 있어서 과연 자기 몸과 마음을 통한 자리에서 천국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은 나 하나를 중심심아 가지고 온 천하와, 죄악된 천하와 바꿀 수 없습니다. 하늘이 나와 더불어 사정을 통하는 이 시간은 타락된 만민과 더불어 사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시간보다도 더 귀한 시간입니다. 내가 기뻐하고 나를 대해서 즐기는 이 심정은 만민과 더불어 타락한 세상의 탕감조건의 심정을 나누어야 할 그 심정과는 바꿀 수 없는 심정입니다. 갈 수 있는 기점에 선, 그런 자체가 생활할 수 있는 자연적인 무대를 전체형으로 전개시켜 놓은 것이 천국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세상이 되지 못한 연고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개척해 나가야 됩니다. 개척해 나가는 데는 개인적인 소원의 길을 개척하고, 개인적인 사정의 길을 개척하고, 개인적인 심정의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의 길, 종족의 길, 민족의 길을…. 그래야 오시는 주님이 한 단계 앞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앞서 나가면 그 뒷받침이 되기 위해서 민족적인 시대를 맞이했으면 자기 종족적인 책임을 완결하여 하늘의 소망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체화될 수 있는 통일된 위치에 서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비로소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자고 깨고, 오고 가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만사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시작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끝을 볼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늘이 고난의 길을 가더라도 고난의 길 가운데에 동참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기에 동반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때에 자기 자신이 개별적인 입장에 떨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소망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고, 그 사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고, 심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더라도, 직장에 가더라도 생활적으로 연결한 소망과 사정과 심정을 연결시켜 가지고 갈 뿐이지 이것을 잃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돌아와서 자기 나라를 수습하는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해 나가야 이 어려운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나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때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떨어질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향하여 나가는 입장에 서 있는 연고로, 내 개체를 위주로 한 소망은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개체를 위주로 한 사정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개체를 위주로 한 심정과 기쁨과 만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하늘이 아직까지 그런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겁니다. 하늘은 전세계를 그런 자리에 잡아 세워 놓고야 비로소 그런 자리를 만민과 더불어, 천주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이 원칙인 연고로, 그 기준이 완결되기 전까지는 여러분의 사적 생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기쁜 일이 있어 웃다가도 혀를 깨물어야 할….
자기가 소망에 넘쳐 가지고 '나는 행복하다. 나는 성공했다. 아! 오늘의 기쁨을 하늘의 영광으로 받으시옵소서' 하는 그 정도의 승리, 영광의 조건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대의 영광의 기준에 통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건 부분적입니다. 오늘 10년 역사노정을 지내 온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는 데 있어서 어느 단계까지, 어느 소망의 기준까지는 나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가지고 하늘의 영광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가야 할 길은 교단적인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교단적인 십자가의 길은 하늘이 동역동사(同役同事) 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아담 해와한테 축복하기를 만민을 주관하라고 그랬습니다. 만세의 주도적인 권한을 갖고 나타나야 할 것이 아담의 권한입니다. 아담 권한 가운데 가정이 움직여야 되고, 아담의 권한 밑에 아담의 족속, 국가가 움직여야 되고, 아담을 위주로 한 세계가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간섭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복귀도상에 있어서 하늘이 책임져 주어야 할 제1책임분담, 제2 책임분담 노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3 책임분담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영적 접선을 할 수 있으되, 앞으로 교단적인 기준에서 민족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이 땅 위에 하나의 승리적인 터전을 세워 가지고 민족을 복귀해 나가야 할 입장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협조 없이 이 교회가 내적인 영계가 되어 가지고 외적인 땅을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칙은 하늘의 협조 없이 이 일을 이루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쉰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외적인 형이 천사세계요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대해서는 내적이니, 주님을 중심삼고는 외적인 형이 이 땅입니다. 그 천사세계와 마찬가지가 타락한 세상이므로 천사들은 땅 위에 협조할 수 있으되 삼위신은 협조할 수 없다 이겁니다. 원칙이 그렇다구요. 그 대신 오시는 주님은 삼위신을 대신하여 지금까지 영계를 동원하여서 땅에서부터 명령을 하여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늘이 천주에 서 가지고 움직여 주는 것이 원칙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셔야 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일치단결하여, 그 주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니 그 소원을 하루 빨리 해결짓기 위해서 원수면 원수를 대해 무자비하게 심판하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무리가 끝날에 있어서 세계사적인 세례 요한과 같은 무리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 민족을 우리 손으로 복귀시켜야 됩니다. 하늘의 협조가 없더라도 우리들은 하나님을 쉬게 하고, 사탄의 세력이 오늘날 지상에, 이 타락한 세계에 난무하니 영계를 동원하여 이것을 조종하여 하나는 영적인 가인, 하나는 지상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돼요. 영적 충신을 세워 가지고 육적 원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만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 앞에, 지금까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은 이 명령 앞에 순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기준 앞에 통일을 갖추어 가지고 이 지상기반을 협조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였으니, 만물을 주관하는 데는 동쪽만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방, 에덴동산 어디 가든지 거침없이 주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리 길, 천리 길, 만리 길 어디 가든지 주관할 수 있는 터전을 가지는 것이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아담의 권한이었는데…. 오시는 주님이 갖추어야 할 권한이 무엇이냐 하면 이는 지상주관권입니다. 그 권한을 완결짓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하나의 교단이면 그 교단에는 절대적 권한입니다. 수많은 교인이 있으면 맨 말단 교인까지도 백 퍼센트 주관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그 교인이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가정도 백 퍼센트 그 주관 밑에 좌우되지 않으면 주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 전체가 오시는 주 앞에 백 퍼센트 주관받지 않으면 그 교회도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누가 참소하고, 거기에 제재를 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본연의 주관권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교단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여 최소 단위의 한 나라를 위주로 했으면, 이스라엘 나라, 승리한 나라, 제사장 국가를 만들게 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가 바라던 지상의 소망의 기준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민족 앞에 통일교회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복귀시켜야 됩니다.
다른 손을 거치지 않고, 어느 외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책임을 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 무슨 권력의 뒷받침을, 어떠한 경제적인 뒷받침을 안 받아야 됩니다. 침범받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여기서 출발하는 거예요. 여기서 전개되는 겁니다. 여기서 사람도 만물도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운명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이 뜻을 대하여 '하늘의 소원이 내 소원이요, 하늘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하늘의 사정이 내 사정이다. 이 사정은 역사적인 사정이요, 인류의 사정이요, 우리 후손들의 사정일 것이어늘 이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통하여 이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간다' 하는 결의 밑에서, '이 나라 이 민족은 기필코 이러한 나라가 되어야 되겠다. 하나님의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되겠다. 이런 나라의 사정이 되어야 되겠다. 이런 나라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백성이 되어야 되겠다. 틀림없이 절대적인 기준이 이렇게 되어야 된다' 하는 그 기준 밑에서 세상을 비판해야 됩니다. 그 기준 밑에서 오늘날의 사회생활을 비판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나가는 사람이라야 하늘의 가정을 대변하는, 하늘 가정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섞여 들어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기준, 아버지의 소원의 나라가 이렇고, 그 나라의 사정이 이러하고, 그 나라의 심정은 이러하다 하는 절대적 기준을 세워 가지고 여기에 외적인 무엇을 개재시켜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종적인 6천 년 역사가 횡적으로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가지고 나오던 종적 역사를 오시는 주님이 횡적 중심이 되어 가지고 횡적으로 세워 탕감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횡적인 기준에 있어서 유대교를 중심삼은 종적인 이스라엘 역사가 횡적인 이스라엘 역사와 통일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무리는 종적인 이스라엘의 무리를 대신했기 때문에, 횡적인 기준에 있어서 승리한 통일의 용사들, 통일의 정병들은 비록 개인이로되 그 개인이 나오기 위해서 6천 년 역사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 역사노정 위의 종적인 인연의 이스라엘 역사와는 관계가 없지만서도 여기에 열매맺힌 것이 이스라엘 역사를 연결시킨 횡적 기대의 결실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결실은 영적인 상대적 천사세계의 협조와 더불어 된 기준에 서 있는 연고로, 이 기준의 입장에 선 실체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자기 직계 선조들이 이스라엘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아브라함의 후원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옛날 모세의 후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적 이스라엘 역사를 세워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하는 수많은 영계의 협조보다도 자기 직계의 선조를 위주로 하는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겁니다. 민족 부활이 벌어지게 될 때 민족의 부활로 말미암아 조상의 부활권을 이룰 수 있게 되어야만 영계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개체로 움직이지만 개체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배후에서는 수많은 선조들이 재림 부활의 한을 풀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한 분 죽으심은 아벨이 죽은 거와 마찬가지요,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이스라엘 전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의 4천 년 역사가 죽은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한 분 사신 것은 이스라엘 4천 년 역사의 부활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연고로 오늘날, 더우기나 이 7년기간이라는 것은 엄청난 기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주먹을 쥐고 자기 몸둘 바를 알지 못하면서 여러분의 앞길을 위하여 염려하고, 내 몇 대 후손이 부디 충성하여 하늘 앞에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바라는 그런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하나님의 소원도 소원이지만 조상들의 소원의 실체로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선조들의 소원은 무엇이냐? 여러분 개인이 가정에서 썩어지기를 바라겠느냐 이겁니다. 개인이 가정에서 썩어져 가지고 그런 가정기준에서 하늘을 대하는 자리를 요구하겠나 말입니다. 아닙니다. 가정을 넘어 김씨 가문이면 그 김씨 가문을 대표하여 '야 아무개야, 너 어서 빨리 네 종중을 움직일 수 있는 대표자가 되라'고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대해서 종족복귀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종족복귀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땅 위에 종족적인 기반이 닦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민족적인 기준이 벌어져 가지고 하늘이 소망하시던 세계사적인 하나의 나라를 세우게 될 때는 그 나라로 말미암아 국가복귀가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국가복귀가 벌어지면 앞으로 충신 혹은 군왕들이 전부 다 지상에서 협조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발전함에 따라 가지고 오늘날 지상에서 우리의 뜻을 세워 나가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무대에 비례하여 수많은 영인들이 우리의 뜻을 협조해서 지상에 남아 있는 이 원수 사탄이를 몰아낸다는 겁니다. 몰아내는 겁니다.
여러분이 축복받기 전까지는 땅 위에 살아 있는 천사장격입니다. 땅 위의 중심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낙원 이하의 모든 선령들은 천사의 자격으로 하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앞에 천사세계가 지배를 받아야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 지배받아야 할 것이 원칙인 연고로, 천사는 아담 입장에 있는 사람 앞에 협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명령하면 명령에 따라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제부터 기도할 때 '하나님, 나에게 복을 주시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저는 복받은 자입니다'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소원하는 것을 하늘이 다 줬습니다. 다 주었다는 거예요. 뭘 더 달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뭘 더 받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노력하면 노력한 대로 여러분 것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다이아몬드 광이 있다고 합시다.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이겁니다. 발견했으면 됐지 파서까지 달라고?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는 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주었다 이겁니다. 다 주었다구요.
내가 움직이고 있는 살아생전에 하늘의 가정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살아생전에 하늘의 종족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살아생전에 나라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살아생전에 세계도 찾을 수 있다 이겁니다. 옛날에 그랬어요? 아무리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소망해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개인 복귀과정을 넘기 전에는 제아무리 충성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복귀 사명을 완결하고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가정복귀를 출발한다고 하는 그 기준을 세워 놓고야 가정기준을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언제나 싸움해 가지고 한 고개 넘고 또 싸움하여 한 고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한 고개,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까지 전부가 올라갈 적마다, 넘어갈 적마다 싸우고 십자가에 부딪쳐 가지고 내가 깨지느냐 네가 깨지느냐, 사탄이가 옥살박살하느냐 내가 옥살박살하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름을 지어 가지고 남아져 가지고야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 평면도상에서 마음대로 일시에 충성을 하면 일대에 있어서 개인·가정·국가·세계까지 넘어갈 수 있는 때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복을 줘요?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돈 한푼 없어 가지고 굶어도, 그저 배밀이하더라도 행복하다는 겁니다. 뭘 더 주느냐 말이예요. 다 줬다구요.
여러분이 충성을 하면 여러분이 걸어가는 발걸음 앞에 여러분의 나라를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여러분의 세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천주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주로 하여 통일천하를 물려받을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이 뜻을 위하여 지금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지상에 혹은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면 삼천리 반도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사탄들이 지금까지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역마다 전부 다 책임자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도하게 될 때는 '나 복 주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영계의 영인들이 복받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아 아무개야, 복 좀 주려므나' 하고 영인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영인들이 복받으려고 기도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땅 위에서 '이제 하늘 앞에 충성하는 충신 열녀가 있으니 수많은 역대의 우리 선조들은 다 내려와라' 이럴 수 있어야 됩니다. 뜻적으로 볼 때 누가 더 선조냐 하면 여기 들어온 패들입니다. '내려와라' 하고 불러 주지 않아서 못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협조할 터인데 어떻게 하느냐? 종이 먼저 개척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 뒤를 따라가 가지고 보호하게 되어 있지, 종이 주인 길을 전부 다 책임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가는 거예요. 영계는 선두에 못 섭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늘도 지금까지 선두에 못 섰습니다. 내가 선두에 서야 하늘이 그때….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죽음길에서 나를 건져 주는 것입니다. 하늘은 선두에 못 선다구요. 물론 95퍼센트까지는 선두에서 나가는 것 같지만 최후에 가서 5퍼센트 과제를 남겨 놓고는 절대 선두에 못 섭니다. 나를 앞에 세우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구할 수 있어요? 나는 기도할 게 없었습니다. '나 복 주소. 나 천당 가게 해주소' 하지 않았다구요. 소원이 있다면 딴 게 아닙니다. 이 나라 삼천리 반도에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사탄들이 준동하여 하늘의 원수가 되어 나왔으니, 이 사탄을 몰아낼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과거에 우리가 핍박받을 때, 수많은 악령들이 동원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가지고 우리들을 핍박하게 될 때는 공포의 압력이 수없이 들어왔었습니다. 치열했습니다. 결사적인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때는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반대로 힘을 줘 가지고 투쟁하면 거기서 그들이 계시를 받습니다. 그들이 계시를 받는 것은 급해서 받는 계시예요. 밤이 되면 역사가 벌어집니다. 심판이 벌어집니다. 그다음에 공포가 벌어집니다. 옛날의 우리와 똑같아요. 옛날과 똑같이 반대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집회 때에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찾아가면 목사들 자신의 입으로 불벼락 맞아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기만 하면 철렁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이 뜻을 세워 나올 때, 초창기에 한 사람이 반대를 하는 것은 그 한 사람의 반대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탄을 대신하여 나왔기 때문에 격투가 벌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될 것이냐? 옛날에 통일교회를 지긋지긋하게 반대했던 것의 3배 이상 가해야 돼요. 아직까지는 때가 조금 덜 되어서 가만있는 겁니다. 3배를 가해야 됩니다. 왜? 아담을 기만했고, 예수를 기만했고, 삼위신을 기만한 사탄이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3배 이상 가해야 됩니다. 그리고 7천 년 역사를 유린한 것이니 3배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비참한 6천년사, 지금까지 복귀역사 6천년사, 통일교회의 발전과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그 모든 역사노정에 있어서 비참한 그 일을 일시에 몽땅 들이부어도…. 이런 배포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매를 때리면 네가 맞는다. 네가 아무리 참소를 하더라도 안 걸린다' 이런 결의 밑에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나간다고 얼마나 핍박받았어요? 요즘에는 핍박 안 받는다고 눈이 게슴츠레해 가지고 있어요. 그게 좋아요? 하늘이 돌보아 주던 손이 그리워요? 반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핍박받던 이상 하라구요. 핍박을 하던 그 사람들이 밤잠을 잤습니까? 여러분을 반대하던 어머니 아버지가 밤잠을 잤습니까? 밤을 새워 가면서 핍박을 하고 밤을 새워 가면서 반대를 했으니, 오늘날 우리도 밤을 새워 가면서 '못 잔다. 통일교회 갈래, 안 갈래?' 하고…. (이하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갑자기 한 20년 전의 옛날 얘기를 하려니까 얘기가 잘 안 나올 거야. 저 사람은 뭐 선장 노릇 하면서 배나 끌고 다니고 다 그랬기 때문에 말을 해도….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 한 가지 못 해본 것이 뭐냐 하면, 군대 가서 싸워 보지 못한 거예요.
감옥에 있을 때 6·25사변이 일어났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전부 삼팔선에, 최일선에 내세워 가지고 전부 다 죽일 계획을 했다는 거예요. 사태가 점점 급박해 오니까 거기에 있는 모든 죄수들 가운데서 형기가 긴 사람들은 전부 다 다른 데로 더 먼 데로 뒤로 후퇴시켜 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3분의 2 가량은 전부 다 일선에 내보내는 겁니다. 좋든 나쁘든 전부 다 끌고 나가는 거예요. 끌고 나가 가지고는, 한 사람 앞에 몇 사람씩 따라가게 해 가지고는…. 그건 인해전술하기 위해서예요. 이래 가지고는 몇 사람씩 책임져 가지고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전부 다 쏴 버리려는 이런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거 전부 다 죽이기 위해서 몰고 나갔다구요.
그때 한 8백여 명을 흥남에서부터 원산까지, 정평까지…. 원래 기차가 다녔는데 그때는 폭격을 당해서 철로가 끊어졌기 때문에 한 120리 가량을 걸어가야 됐어요. 그래 가지고 중앙과 연락되면 기차를 탈 텐데도…. 그때 전체 중에 남아진 재소자들은 얼마 안 됐어요. 한 7,80명밖에 안 남기고 전부 다 데려간 거예요.
그때 선생님도 끌려갔단 말이예요. 새벽 네 시까지 집합해 가지고 그저 밤새껏…. 저녁 여덟 시로구만. 저녁 여덟 시부터 출발해 가지고 밤새껏 가 가지고 새벽을 지나 한 60리, 80리 가량 갔어요. 낮에는 폭격 때문에 걷지를 못한다 말이예요. 이래 가지고 기차도 역시 밤 시간을 이용해 가지고 연락하기 위해서 네 시 전에 도착하게끔 이렇게 해 놓았어요. 하루에 못 가니 이틀에 갈 계획으로 첫날밤 밤새껏 걸어가 가지고 새벽에 가서 머무르게 되었다 이 말이예요.
그런데 그 차가, 중앙에서 내려오던 차가 중간에 사고가 생겼어요. 그러니 할 수 없이 며칠 거기에 정차해 놓고 머무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상당히 지장이 많단 말이예요. 이 죄수들을 데리고 가다가 만일에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문제가 벌어지겠거든요. 자기들은 불과 몇 명밖에 안 되고 죄수들은 많고 이러니 문제가 생길까봐 되돌아왔단 말이예요. 되돌아왔다구요. 되돌아와 가지고 사흘 만에 다시 갔는데, 그 8백여 명의 죄수들을 전부 다 데리고 갔는데 나 하나 빼놓고 갔다는 거예요. 하나는 빼 가지고, 떨어져 가지고, 거기에 남아 있어 가지고 쭉 나온 거예요.
마, 그건 일례이고…. 우리가 탕감복귀의 원리를 알고 있는데 그걸 세워야 할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거기에서 절대 사탄세계 앞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일이라는 문제를 걸어 놓고 부딪치게 될 때도 사탄세계의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실적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실적을 가져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보통사람은 백 가마니가 책임량이지만 우수한 사람들로 편성만 돼 있으면…. 원래는 여덟 시간 노동이지만 말이예요, 아홉 시부터 해 가지고 다섯 시면 끝나는데, 점심시간 빼고 또 쉬는 시간 빼 가지고 여덟 시간 일하면 다섯 시에 끝나요. 다섯 시에 끝나는데 책임량이 백 개씩이라면 열 사람이 한 반이 되어 있으니 천 개만 하면 끝나는데, 1,300개만 초과달성하면 세 시에도 끝날 수 있고 한 시에도 끝날 수 있다는 거예요.
거기서 재소자들이 제일 신나는 일이 무엇이냐? 감옥에서도 한번 실컷 쉬어 봤으면, 일하는 그런 시간에도 한번 쉬어 봤으면 하는 것이 참 간절한 소망이예요. 그렇게 되면 이 반을 편성할 때 우수한 사람끼리 짜 가지고, 반을 편성해 가지고는 서로가 초과달성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반을 편성하게 되었어요. 일하면 우리가 누구한테 지지 않거든요. 무엇이든지 한단 말이예요. 뭐 비료 포대를 어떻게 하나, 무엇이든지 하게 되면 누구한테 지지 않아요, 무엇이든지. 그러니까 전부 다 가만히 있어도 나한테만 와서 합해 가지고 하면, 나하고 조만 편성되게 되면 내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빨리 완성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게 보통 한 시 반이예요. 보통 두 시 되면 끝나 버리거든요. 그건 뭐 사회 사람들 그 누구도 못 따를 거예요.
이래 가지고 130가마, 한 사람 앞에 평균 130가마니까 열 명이면 1,300 가마예요. 1,300가마를 완성만 하면 이건 뭐 특별대우예요. 암만 놀아도 그건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한 초과달성이라는 것이 거기에서는 힘드니까….
이렇게 그런 노동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거 그렇게 계속 못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딴 힘을 갖고 있어요, 딴 힘을. 남들은 일할 때, '요것 하고 밥 먹어야 된다' 한다 이거예요. '몇 가마니 했으니 이제 몇 가마니만 묶으면 밥 먹는다' 이런 생각 하거든요. 만약에 이제 점심때가 되면 한 오십 가마 정도를 맬 거란 말이예요. 그러면 '아, 이제 서른 가마 했으니 이제 이십 가마만 하면 다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밥 생각을 하다가는…. 밥이 사람을 잡아먹는 거예요. 밥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일을 하면 그 일하는 데 있어서 취미를 가지고 내가 오늘은 점심때 한 가마니라도 더 묶고 남보다도 더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한 가마니 더 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일하면 피곤한 줄 모르는 거라구요. 그것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몇 가마니 하고 나서 밥 먹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래 못 가는 거라구요.
이렇게 이런 일을 하면서 감옥에 있으면서도 2년 10개월간, 근 3년 가까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뭐 앓거나…. 뭐 학질, 말라리아는 한 번 앓아 봤지만 말이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절대 놀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는 대개 몸이 약해 가지고 허약해지면 이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거예요. 먹지를 못하고 중노동하니 다리에 힘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아침밥 먹고 나가는데도 그 공장이 3킬로미터 내지 한 4킬로미터 가까운 거리, 한 십리 가까이 되는데 말이예요, 그 공장까지 나가려면 나가다가는 헛다리 짚어 엎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금식할 때 헛다리 짚지요? 이런 적이 몇 번씩 있어요. 그러니 그런 다리를 끌고 나가 가지고 여덟 시간 노동하고 천삼백 혹은 천 개의 책임량을 완수한다는 것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러한 고된 환경에 있었지만 선생님은…. 만일에 힘든 일을 피하겠다고 하면 그건 못 견디는 거예요.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있더라도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제일 힘든 일을 붙들고 이것을 6개월 이상, 1년 이상 지탱해야 자기가 살아 남을 수 있지 그걸 피해 나가던 사람들은 다…. 편한 일 찾아다니던 사람들은 다 죽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학질 같은 것을 앓으면서도 절대…. 그럴 때는 절대 기도도 안 하거니와 그럴 때는 금식해야 된다구요. 이놈 해보자 하면서 약 같은 것도, 물론 외부에서 들어온 것도 안 먹고 이래 가지고 열두 죽 (24일) 을 앓으면서 쭉 책임량을 완수해 나가는 거예요.
이렇게 아침에 출역하게 되면 그 감방에서 전부 나오는 거예요. 마당에 나와 가지고 전부 다 여기에 불법 소지품이 있지 않나 해 가지고 점검하는 거예요. 검신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 걸린단 말이예요. 이래 가지고 아홉 시에 작업이 시작된다면 십리길 가는데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20분이 걸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고 하면 두 시간 이상 걸립니다. 그러니 출역하게 되면 보통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가지고 아홉 시 작업에 닿게끔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제 나가서 척 앉으면 말이예요, 아주 머리가 빙빙 도는 거라. 머리가 빙빙 돌고 일어서려면 일어설 수가 없는 거예요. 옆의 사람 어깨를 짚고 이렇게 일어서 가지고도 일단 나가기만 하면 자기 힘이 아니라구요.
또, 책임 맡고 일하는 데 있어서는 사탄세계에 져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감옥에 있어서도 내가 입을 열지 않더라도 반드시 동지자가 생겨나게 돼요. 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제자들을 찾아야 된다 이거예요. 천적 법이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을 열두 제자가 팔아먹어서 죽음길로 몰아넣었다구요. 죽음길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죽음길에서, 다시 말하자면 감옥, 지옥에서 편 될 수 있는 열두 사람 이상의 제자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거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말하지 않았지만 선한 선조의 후손들은 전부 다 자기 선조들이 동원해 가지고 가르쳐 줬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감옥에 있으면서 미싯가루도 많이 얻어먹었어요. 그들이 어떻게 선생님을 알게 되었느냐 하면 영계에서 가르쳐 주거든요. '아무 감방의 몇 번인 그분은 어떤 분이니 가서 네가 받은 미싯가루를 절대 먼저 먹지 말고 준비해 가지고 가라' 이래 가지고 미싯가루를 많이 얻어먹었어요. 이렇게 모인 젊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구요.
또 그런 사람 가운데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감옥에서의 굶주림은 말할 수 없는 거예요. 배고픔은 말할 수 없는데 그 감옥 가운데서 그런 청년들이 말이지요, 선생님을 따르는데 내적으로 따르는 거라구요. 따르는 이런 청년들이 자기 감방에서, 그 감방 가운데서 누가 미싯가루를 가진 사람이 있어서 조금 주게 된다면…. 그게 얼마나 먹고 싶겠느냐 말이예요. 세상에 그 이상 그리운 것이 없고, 그 이상 먹고 싶은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조금 얻은 그 미싯가루를 물에다 개어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신문지에 싸 가지고 허리춤에 매 가지고 아침에 넣고 나오는 거예요.
나와 가지고는 점심때가 되면 그때는 소변을 보러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단 말이예요, 전체가. 변소가 두 곳이기 때문에, 장소가 두 개로 돼 있지만 동쪽 편에 있더라도 그때는, 쉬는 시간에는 전부 다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시간에 만나는 거예요. 만나게 되면 허리춤에 있는 미싯가루 떡을 전부 다 선생님에게 주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참, 눈물 어린 그런 자리에서 미싯가루 떡을 나눠 먹던 그 인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세상에서 보면 그거 아무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엉클어진 정기, 거기에 스며 있는 그 힘이라는 것은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거예요. 그러한 젊은 청년들이…. 나와 떨어졌기 때문에 전부 다 이제 삼지사방에 흩어져 가지고, 선생님을 마음으로 찾고 있으면서도 못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많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감옥에 가서라도 그러한 복귀적인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는 거예요. 또, 거기에 가서 탕감기간을 안 이상은 절대 자기가 하늘에 의지하면 안 돼요. 절대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자력으로, 자력으로 탕감하는 거예요. 어느 누가 후원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으로 나가야 돼요.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옷 같은 것을 갖다 주더라도 선생님은 안 입었다 이 말이예요. 안 입고 그걸 전부 다 남에게 줬어요. 끝까지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줘야 된다구요. 내가 거기서 어떠한 일까지 했느냐 하면 말이예요, 내가 정성들여 가지고 내 손으로….
여러분, 천막기지가 있거든요. 천막기지를 요만큼씩 떼 가지고…. 비료를 묶게 되면, 그게 유황, 암모니아이기 때문에 여기 살이 까지게 되면…. 이건 산(酸)이기 때문에 녹아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천막을 찢어서 손가락에 끼우는 골무를 만들게끔…. 이런 것을 선생님은 수십 개 수백 개를 전부 모아 가지고 잇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실을 만들어 가지고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맨 먼저 들어오게 된 사람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면회도 올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내가 손수 그런 것을 주고 이러던 생각이 지금도 가끔 나요. 그런 사람들은 선생님을 잊지 못할 거예요. 이렇게 나오면서 쭉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최후에 가서는 어떻게 될 것이냐? 반드시 옥문이 열려 있다 이거예요. 옥문이 열려 나가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옥문이 열려 가지고 나가야 된다 이겁니다.
국군이 원산을 제일 먼저 탈환했어요. 평양에는 1950년 10월 19일에 입성했어요. 그런데 원산은 언제 했느냐 하면 말이지요, 10월 15일 새벽이예요. 그러니 날 수로 하면 10월 16일이 되지요. 15일 새벽 12시가 지났기 때문에 16일이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출옥한 기념일이 10월 며칠인가? 14일이거든요. 이래 가지고 바빠 가지고 말이예요…. 여기 흥남을 제일 먼저, 북한 지역 가운데서 제일 먼저 탈환했어요. 이랬기 때문에, 그들이 도망가고 다 그랬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온 거라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 자리에서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보여선 안 된다는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보여선 안 된다는 거예요. 사탄세계 앞에 참소를 받든가 조롱을 받는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요, 자기의 속살도 보여선 안 되는 거라구요.
그래, 선생님이 그 감옥에 있으면서도, 암만 삼복 중이라도 이 종아리를 내보이지 않았다구요. 그러면서 암모니아 비료공장에서 일하느니만큼 그 공기가 전부 다 유산 암모니아 가스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살도 짜면 말이지요, 유산이 세포에 녹아 들어가 가지고 전부 다 물이 나는 거예요. 어디를 짜더라도 물이 나는 거예요. 세포가 다 절반은 죽은 셈이지요.
그러한 환경에서 정신력 안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는 보통사람들도, 아무리 잘먹고 한 이런 사람들도 3년만 일하게 되면 폐병이 나요. 안 난다면 거짓이거든요. 그런 유산 암모니아, 암모니아 가루 공기가…. 그렇기 때문에 한 6개월만 지나서 기침하면 전부 다 담에 피가 섞여 나오는 거예요. 그건 공식적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런 기간을 한 6개월 지나 가지고 거기에서 그런 고된 일에 지치지 않고, 거기에서 자기의 정성적인 기반을 닦고, 거기에서 소생된 몸을 가져야 지탱할 것인데 보통 젊은이들은 그걸 모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경험을 통해서 그걸 쭉 지도해 가지고…. 그건 틀림없거든요. 이래 가지고 거기서 이 기간을 쭉 나왔어요.
탕감노정에 있어서는 절대 남의 신세를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만일에 거기에서 선생님이 남의 신세를 지게 된다면, 자기의 책임량을 못 하고 남에게 신세지게 되면 이게 조건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착같이 죽느냐 사느냐, 아무리 앓든 뭐 어떻든 그 자리에서 자기의 책임량을 완수해야 돼요.
또 그런 자리에 당도하게 될 때, 우리가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걸어가느니만큼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세워 나오던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 가운데는 뜻을 대하여 최후의 길을 가는 그런 경각에 처해 있더라도 있는 정성을 다하면서 하늘 뜻 앞에 최후의 승리를 선포하면서 죽어간 영들이 많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그런 과거를 생각하게 될 때 자기도 그들한테 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편단심, 모든 생각, 모든 정신력을 한 점에 집중시켜야 돼요. 나는 절대 굴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런 각오 밑에서 나와야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거기에 있으면서도 들어가는 그날부터 선생님은 새벽이면 냉수로 몸을 닦는 거예요. 일하고 들어오게 되면 이 몸에 전부 비료가 올라 가지고 끈끈하기가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옥에 있으면서도 손수건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서…. 물도 많이 주는 것이 아니예요. 저녁에 먹을 물을 주면 물을 안 먹고 이것을 반드시 수건에 축여 두었다가 새벽에 닦는 거예요.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이예요, 들키는 날에는 기합이라는 거예요. 딱 시간에 맞춰 생활하기 때문에 네 시 반이면 네 시 반에 딱 출발 명령만 나게 된다면 이건 안 나가면 안 된단 말이예요. 또, 자는 시간을 딱 작정해 놓으면 암만 일어나고 싶어서 눈을 뜨고 있더라도 일어나 앉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감방에 있어서 한 십 분 내지 십오 분 전에 혼자 일어나서 냉수욕을 하는 거예요. 또 운동을 해야 돼요, 운동. 자기의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돼요. 그래, 선생님이 고안한 운동법이 있어요. 상당히 효과가 나는 거예요. 효과가 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러한 것을 쭉 계속했기 때문에 내가 먹는 것은 조금 먹지만 정신력으로 보충하고, 이러면서 몸을 연단시켜 나왔어요. 보면 지금과 별반 차이 없었어요. 조금 핼쓱했었지요. 그때도 한 19관 300은 나갔으니까요, 감옥에 있으면서도. 남들은 그저 뼈다귀가 전부 다 나와 가지고 등이 이렇게 돼 가지고 그저 옆 사람이 송장 같은 느낌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구요.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은 이 주일날은 쉬거든요. 그 고된 중노동을 하다가 주일날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야말로 안식일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주일날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이래 가지고 그저 악에 바쳐서 토요일날 저녁까지는 어떻게 자기도 모르게 일한다는 거예요. 자기 정신이 아니지요. 이래 가지고 나가서 일을 해 가지고 돌아 들어온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막 그저….
뼈가 녹아나는 거예요. 그저 늘어지는 거라구요. 밥만 먹고 나면 그다음에는 쓰러져 가지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거예요.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은 그래도 자유를 주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먹고 자는 거예요. 그런데 자는 게 화근이예요. 선생님은 3년 가까이 있었지만 낮잠 한번 자지 않았어요. 절대 낮잠을 안 자는 거예요. 소기의 작정한 시간대로…. 작정한 잠, 또 작정한 음식 외에는 탐내지 않았어요.
또 먹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먹는 것에 욕심 내다가는 죽는 거예요. 그저 죽는 거예요. 보급할 길이 끊어지고 어디서 보충할 길이 없어 영양이 부족되는 입장에서 전부 다 이것을 보충받기를 바라는 그런 입장에 서면 그건 죽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음식 가지고도 넉넉히 산다, 이 음식 절반 가지고도 산다, 선생님은 그러한 각오로…. 그래서 한 보름 내지 20일 동안 그 절반의 밥을 전부 다 남에게 나눠 줘 먹였어요. 자신 있다 이거예요.
이런 훈련을 딱 하고 그다음부터는 뭐 차입 같은 걸 들여주더라도 그걸 먹지 않는다 말이예요. 미싯가루 같은 걸 들여주게 되면 그거 궁하고 굶주렸으니 얼마나 먹고 싶겠나요? 그러나 그것을 탐해서는 안 된단 말이예요.
보통 보면, 미싯가루 같은 것이 들어오게 되면 말이예요, 자기 밥, 거기에서 주는 밥은 다 남 주고 자기는 맛있는 것을 그저 막 먹으려고 한다구요. 그랬다간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그걸 바라볼 필요 없어요. 바라볼 필요 없다구요. 그랬다가는 죽는 거예요, 죽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걸 먹지 않고 딱 소정의 작정한 그 규율권 내에서 자기가 지탱할, 자기가 살 길을 개척해 나가야 되는 거예요.
또한 일은 중노동이니 일에 밀리면 그건 또 죽는 거예요. 일에 밀리면 죽는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만일에 여기에서 이감해 가지고 더 힘든 곳에 가게 되면 쓰러진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일에 밀리면 지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제일 힘든 일, 제일 안 하겠다는 일을….
뭐가 제일 힘드냐 하면 말이예요, 삽질하는 것인데 비료를 여덟 시간에 1,300가마를 집어 넣어야 하니 이건 뭐 쉴 새가 없는 거라구요. 쉴 새가 없는 거예요. 몇 초 동안에 퍼 넣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것을 여덟 시간이나 계속해서 퍼 넣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말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삽질이라면 이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거와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부 다 또 싫어하는 거예요.
또, 오뉴월 복중이 되게 되면 말이예요, 비료에서 나오는, 비료가 떨어지면 거기에서…. 그것이 가마에서 끓여져 가지고 제련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이것이 떨어지게 되면 열이 아주 뭐…. 겨울철 동삼에도 빤스 바람으로 일해야 된다는 거야. 여름에는 아주 뭐 가슴이, 기가 탁탁 막히거든요. 이건 뭐 제일 싫어하는 거라구요. 나는 그런 걸 하래도 잘한다구요.
또 그다음에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비료 한 포대가 40킬로그램인가요, 60킬로그램인가요? 40킬로그램인데 그 킬로그램수는 45킬로그램이지요. 뭐 비료 가마니를 재고 새끼도 재야 되니까 말이예요. 그러면 이 1,300개의 가마니를 저울에 올려놓아야 된단 말이예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무거워요, 이게? 이건 모든 힘을 써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 이게 다리도 질질 끌고 다니던 녀석들이 언제 뭐 그거 올려놓을 근력이 있나요? 이걸 전부 다 안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하마, 이래 가지고 하루에도 1,300가마를 그저 문제없이 집어 던지고도 끄떡없었다구요.
또 그것도 뭐 여기에서 여기로 던지는 게 아니예요. 비료 산이 이렇게 있고 앉은뱅이 저울이 여기 있으면 가마니를 여기에다 퍼 넣으면 말이지요, 올려놓는단 말이예요. 한 백 가마니 하게 되면 비료 산을 먹어 들어가거든요. 먹어 들어가면 이 저울과 가마니에 비료를 담는 곳과는 3,4미터의 차이가 벌어진다구요.
그러니 저울을 자주 옮겨야 되는데 앉은뱅이 저울의 수평을 잡으려면 말이지요, 3분 내지 5분 걸린단 말이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그러니 이건 뭐 한 50가마니 하고도 이 놀음 하려니 뭐 책임량은 어림도 없는 거라구요. 그러니 될 수 있으면 한 곳에 딱 세워 놓고 하는 거예요. 비료산 가운데를 떡 파 가지고 구멍을 뚫어 놓고는 말이지요, 이 좌우편을 떡 이렇게, 산을 그냥 남겨 놓고 이렇게 파서, 여기에 저울을 그냥 놓고 구멍을 파 가지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먹어 들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행동으로 해 보이심)
먹어 들어가 가지고 정 거리가 멀면 그다음에 옆으로 나와 가지고 같은 거리로 파야 된다 이거예요. 작전을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 거리가 맨 처음에는 가깝지만 3미터, 4미터 떨어진 여기에서 비료 가마니에 집어 넣어야 돼요. 그러면 이것은 집어 던져야 되는 거예요. 던지는데 그것이 딱 거기에 떨어진다 말이예요. 그게 기술문제라 이거예요. 그러니 그거….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 여자들 같은 사람에게 밥을 백 그릇 갖다 먹여 놓고 여기 묶어 놓은 비료 가마니를 여기서 저만큼, 몇십 미터 옮겨 놓으라고 하면 못 할 거예요. 그것을 비료 가마니를 져다가 다시 줄을 매어 가지고 앉은뱅이 저울에 달아 가지고 그다음에는 끌어다가 묶어 가지고 그냥 내버리는 것이 아니예요. 묶어 가지고 그냥 두었다가는 자꾸 이게…. 장소를 멀게 잡으면 끌고 나가는 데 이게 참…. 끌게 되면 말이예요, 여기에 여름에 버선 신고 뭐,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이걸 신고 하게 되면 이 고무신이 며칠 못 가는 거예요. 사흘이면 구멍이 뻥 뚫어져요. 그럴 거 아니예요, 이거? 시멘트 바닥을 그저 끌고 나가니 말이지요. 그러니까 신발을 신어도 신발에 이게 묻어 버리면 녹아나는 거예요. 또 비료니만큼 운동화 같은 것, 천 같은 것은 뭐 하루에 다 녹아나는 거예요. 이러니 고무신 같은 것도 이렇게….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신 안 신을 수 있는 여름 같은 때는 반드시 맨발로 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맨발로 하면 말이지요, 이 시멘트 바닥에 끄니까 발가락에 힘이 주어진단 말이예요. 그러니 여기에서 하루만 끌면 지문이 다 닳아지는 거예요. 며칠 계속하면 구멍이 뻥 뚫어지거든요.
그런데 참 이 사람의 몸이 얼마나 멋지게 돼 있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그렇게 고된 일을 하고 그렇게 지탱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거기에 대비되어 가지고 하룻밤만 자면 그놈의 살이 또 생겨난다 이거예요. (웃음) 거 사람이라는 것이 참 신비로운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거리를 가까이 하면 1,300가마니가 쌓이기 때문에 어디 일할 자리가 없어진다 이 말이예요.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먼 데로 끌어내야 하는데, 끌 때는 천천히 끌어가서는 안 돼요. 그 뒤에서 몇 초 만에 나오는 비료 가마니가 나오기 때문에 빨리 끌어내야 한다구요. 끌어 낸 것을 갖다가 전부 다 쌓아 놓으면 앞에서 일할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끄는 것도 부리나케 끌어가야 되는 동시에 묶는 것도 부리나케 묶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러니 일할 때는 그거 힘든지 모르는 거라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일할 때 생각이 달라요. 생각이 달라요. 내가 뭘 먹고 점심 시간이 뭐가 어떻게 되고 1,300가마니의 몇 프로를 했구나, 이거 하면 어떻게 되고 뭐 어떻고…. 복잡하거든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공식적인 생활을 했어요. 틀림없다 이거예요. 공식적인 생활을 하는 거예요. 1분도 1초도 틀림없는 공식적인 생활을 하는 거예요.
어느 정도의 속도로 하면 천 가마니요, 요만큼 하면 천 백 가마니요, 또…. 세어 보면 틀림없거든요. 몇 가마니 차이 나느냐 하면 차이가 있더라도 세 가마니 두 가마니 한 가마니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보통 80퍼센트는 들어맞아요. 그거 보면 참…. 영계에서 가르쳐 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벌써 알아요. 해보면 아는 거예요, 이게. 내가 이만한 힘만 소모해 가지고 지금부터 일을, 여덟 시간 작업이니까 지금부터 시작해 가지고 요 정도로 나가면 틀림없이 천 백 가마니 한다 하면 천 백 가마니 되는 거예요.
만일에 거기서 내가 천 가마니 한다 하는 이런 각오 밑에서, 천 가마니 해야 할 입장에서 노력하기를 천 백 가마니 하는 수고를 했다 하게 된다면 백 가마니 소모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천 백 가마니 하려면 천 백 가마니 해야 할 여분의 정신적인 보충을 해줘야 된다는 말이예요. 어디 뭐 물질적인, 외적인 보충은 못 해도 정신적인 보충이라도 해야 될 것 아니예요? 반드시 힘을 쓰면 에너지 소모는 벌어지는 거예요. 열 가마니 했으면 열 가마니에 해당하는 힘이 마이너스되는 거예요. 무엇으로 보충하느냐 이거예요.
거 어디 보급할 데가 없는 거예요. 딱 저울에 달아 놓고 하는 생활인 거예요. 이렇게 하기 때문에 딱 알지요. 가마니를 묶게 된다면, 이 정도로 묶으면 되는 거야, 그거 뭐 눈으로 안 보고도 다 한단 말이예요. 딱 3년만 각오하고 묶어 나오면 누구한테 지지 않아요. 무엇이든지 누구한테 지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래요. 뭐 노동판에 가나 어디에 가나 선생님이 누구한테 져 본 일이 없어요.
내가 언제도 얘기했지만 씨름을 해서 한 번 져 가지고 6개월 동안 소나무를 붙들고 훈련해 가지고 그놈을 잡아 놓고야 말았어요. (웃음) 그렇잖아요? 나를 이긴 사람 얼굴을 어떻게 보고 사느냐 이거예요. 나를 이긴 사람이 그 동네에 있으면 그 사람의 집 앞에도 안 가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보고 사느냐 말이예요. 차라리 죽는 게 낫지요.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한번 손을 대는 날에는 그가 망하든가 내가 흥하든가….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붙드는 날에는 판결짓는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해 가지고는 손대지 않아요. 그 대신 내가 한다 할 때는 반드시 최고 기록을 내고야 마는 거예요. 우리 복귀역사 가운데는 선생님 혼자가 아니거든요. 배후에 동정자가 많고 환희와 소망을 걸고 바라보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위신과 체면이 있는 거예요. 그럴 때에는 이 책임이 큰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생활을 5년, 6년 가까운 감옥생활을 했단 말이예요, 지금까지. 그건 무엇 때문에? 먹을 밥이 없어서 그랬겠어요? 여러분, 3년노정이 힘들어요? 7년노정까지 했는데 못 가겠어요? 들이 패라는 거예요, 이 자식들. 나는 내 갈 길 닦아 놓고 여러분의 갈 길을 탕감해 주기 위해서 그 길을 닦았다 이거예요. 닦아 놨는데 그 길 앞에 여러분들이 짐지고 가야 할 이 거리를 못 가겠어요? 못 가면 망해야지, 망해야지. 그거 이의 있어요?
그걸 볼 때,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도 참 고마우신 분이고 수완이 됐다는 거예요. '나'라는 한 사람을 그렇게 고생시키고 그런 조건에 떡 걸어 놓고 말이예요, 요걸 미끼로 해 가지고 천 사람, 만 사람 전부 다 낚아 가지고…. 낚는 데는 뭐 코를 꿰든 눈을 꿰든 귀를 꿰든 대가리를 꿰든 무엇을 꿰어 잡아당기더라도 '옳습니다'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작전을 해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녀석들은 모르지만, 여기 처음 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미안하지만 여기에 들어와 걸려드는 날에는 공식적인 법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원리라는 말에는 용서가 없는 거예요. 용서가 없는 것이고, 시대의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역사적인 한정권 내에서 제한받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역사를 넘어서 시간과 공간과 거리를 초월하여서 그 자체는 자체로서 나가야 할 것이 원리라는 거예요.
그러니 그러한 법도를 세워야 할 선생님도 별수 있어요? 원리 앞에는 꼼짝못하고 종살이해야지요. 그럴 것 아니예요? 거기에는 이의가 없는 거예요. 뭐 제의도 없는 것이요, 불평도 없는 것입니다. 제의가 없으니 불평이 있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또 복종한다는 의식을 가져서도 안 돼요. 복종한다는 의식을 가지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내가 복종하니 그 대가를 생각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합니다' 하면서 하는데, 하는 데는 왜 하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된다면 반드시 '내가 뭐 좋게 되기 위해서 한다' 이런 관점으로 하게 돼요. 하는 것은, 내가 복종하는 것은 취미와 재미로 한다, 이런 놀음 하면 아주 신난다 이거예요. 뭐 당장에 딴것이 거두어지는 것보다도 비참하지만 다…. 이렇게 모든 사방에 딱 틀이 잡힌 그런 궤도 권내에서 딱 한번 가서 들이치면서 승리라는 것을 결정지어 내면 핑 돌아간다 이거예요. 핑 돌아간다는 말 알겠어요? 여러분들 정신이 핑 돌아간다는 것보다 하늘땅이 핑 돌아간다는 말이예요.
거기에서 한 번만 잘되면 이 복귀 역사 가운데 천년 공사가 타고 넘어간다 이거예요. 몇백 년이 날아간다 이거예요. 그러니 그런 찬스와 그런 환경만 벌어지면 아주 심각해지는 거라구요. 뭐 밥이 뭐고 잠이 뭐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뭐….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야, 복귀의 길을 가되 그 간 것이 여러분 자체의 탕감이 되고, 그 자체의 탕감으로 말미암아 동기와 원천을 대해서 제삼자들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거예요.
무릎을 꿇고 그저 '아이고, 못 가겠습니다', '내가 이래야 축복을 해주지', '아! 나 통일교회에서 몰라준다' 하면서 암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 가지고는 이 공적인 천주사 앞에 재료로나 혹은 역사적으로 남겨질 물건으로 등장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죄없이 매를 맞아 가지고….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이런 런닝이 다 구멍 뚫어진 런닝밖에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등을 벗으면 말이예요, 전부 다 피가 여기서부터 쭉 올라 있어요, 죽은 피가. 째 보면 피가 사발로 나온다 말이예요. 그러한 매를 맞고도 절대 원망하지 않아요.
이놈의 자식들! 나는 부활해야 할 과정을 거쳐야 된다 이거예요. 뱀이 허물을 벗어야 할 때는 바위틈을 빠져 나가야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역사적인 부활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돼요. 해라 이거예요. 너는 내 종이다 이거예요. 종이라는 거예요. 매맞아 가지고 토하는 그런 피를 손으로 훑어가지고 '아버지! 내가 이 피를 보고 나갑니다. 염려 마소. 내가 가야 할 길을 응당히 갑니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면 말이지요, 하나님도 수단도 좋고 참 능란하시고 모든 필요로 한 그 소질을 안다고 나는 생각해요. 통일교회 선생님 같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작전상 필요한 그런 요건이 된다고 본다 이 말이예요.
여러분들 지금 젊은 놈들 가만히 보면 말이지요, 아주 욕심들은 또 대단하지요. 눈들은 전부 다 찌그러져 가지고 그저 딴 구멍을 많이 바라보지요. 딴 구멍을 바라보되 옳은 구멍을 볼 줄 알고 딴 구멍을 바라보라는 거예요. 이것은 옳은 구멍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삐뚤어진 구멍만 전부 다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옳은 구멍, 그것이…. 그렇잖아요? 미터를 만들고 도량형을 만들려면 그 원기가 있어야 돼요. 그 똑바른 원칙적인 기준을 만들어 놓고 딴 구멍을 바라보고 딴 데 맞춰 봐야 크고 작고 그런 걸 다 알지, 이건 전부 다 찌그러진 구멍을 바라봐 가지고…. 그거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거예요. 암만 태산 같은 무엇을 만들어 놨더라도 무효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구멍, 올바른 원칙을 딱 쥐고 그것을 잼대로 해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원리라는 거예요. 원리라는 것은 뭐냐 하면, 서양에서는 이것이 적용되고 동양에서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의 조건이 전체의 기반을 통할 수 있는 조건으로 서야만 원리다 이거예요. 공식과 단위가 그렇다는 거예요.
단위는 뭐냐? 조그만 부분의 그 사실을, 조건을 세워서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그런 원칙적인 내용을 갖추어야만 공식과 단위가 되는 거예요. 그거 원리도 마찬가지예요. 원리는 변할 수 없는 거라구요.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원칙적인 법도를 세워 나오는 이 탕감노정에서 선생님은 심각했어요. 심각했단 말이예요. 어떤 때는, 밤에 척 문 밖에 나갈 때는 어떤 기분이 나느냐 하면 말이예요, '이렇게 싸우다가 한날에는 전부 다 이놈들, 높은 놈 낮은 놈 할것없이 전부 말없이 굴복할 수 있는 날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이렇게 하면….
그러려면, 사탄을 굴복시키고, 인간을 굴복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원칙적인 발판을 닦아 놓아야 돼요. 절대 주먹구구로 안 된단 말이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요즘 어떤가 하면 말이예요, 아주 뭐…. 얼굴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지요, 전부 어깨가 축 처져 있어요. 가만히 내가 보면 '이녀석, 밥을 좀 굶었구나. 생활이 좀 곤란했구나. 어느때는 네가 요렇더니 여기에 배치받아 가지고 지금 그렇게 됐구나' 이렇게 생각돼요.
정신훈련을 받아야 돼요, 뜻을 중심삼고. 아, 이 자유천지에서 왜 굶고 앉아 있어요? 그러나 도둑질하라는 건 아니예요. 팔이 죽었어요, 다리가 죽었어요, 눈이 썩어졌어요, 입이 없어요? 산더미 같은 몸뚱이 가지고 뭘 못 하나요, 뭘? 땅도 파고 바윗돌도 굴리고 무슨 짓이든 다 할 텐데 말이예요. 그게 뭐예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 하기에 미안하기는 미안하지만 말이예요, 그러나 내 사상은 그렇다구요.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내 배통 채우자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 잘살게 해주자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일에 나서면 심각해야 돼요, 심각해야 돼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 지금 부패니 무엇이니 이런 복잡한 사정을 일으켜 가지고 뭐 야단하고 있지만, 거 생각할 때 척 지방에 가게 되면 벌써 어느 공무원이…. 선생님은 그래 본단 말이예요. 농민 누구누구가 어떻다는 걸 쭉―…. 내가 필요에 따라서는 밥도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작전상 필요할 때는 가 가지고 '여보!' 하면서…. 가서 그러는 거예요. 가면 식모부터 한 십 분 이내에 캐치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전국에서 불러 놓고 구체적으로 설명 못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 자세와 내 사상적 결의의 표준은 서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나가 가지고 천대받고 그렇게 되길 원치 않는 거예요. 샅샅이 알아야 돼요.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선질 중질 악질 다 알아두어야 돼요. 그러면서 선한 사람을 위해서,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 몸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딪치는 거예요.
보라구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선생님과 같이 이 통일교회를 건설해 가지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람 뭐 통일교회 문선생 욕하지 않은 사람 있어요? 여기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있을는지 모른다구요. 이거 뭐 거의 다 욕했지요. 누구만큼 뭐 생각을 할 줄 몰라서? 누구만큼 뭐 잘먹고 사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란 말이예요. 비판할 줄 몰라서? 할 능력이 없어서? 여기에서 바라보는 선생님이 여러분들 우려먹고 사는 사람이예요? 무엇이든지 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요.
어디에 가 가지고 변론을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 힘내기를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 무슨 권모술수를 해서 누구를 통째로 잡아 넣는 일을 하더라도 자신 있다는 거예요. 생각조차 못 하는, 사탄을 녹여 먹던 그 기술 맛을 알면 겨뤄 낼 자가 없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선한 제자들과 선한 아들딸을 가르치는 데는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자식을, 혹은 참다운 제자를 기르려는 이런 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는 원수를 잡고, 원수를 처치하던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최후에 불리하게 될 때는 두고 보자는 거예요.
그렇다고 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공적인 존재예요. 나는 하늘이 보장하고 땅이 보장하고 내가 죽으면, 내가 죽어 쓰러지면 내 쓰러진 이 몸의 모든 원소가 하늘에 호소한다는 거예요. 아벨의 피가 어땠다구요? 아벨의 피만 호소하느냐 이거예요.
내 땀이 호소하고 내 피가 호소하고 내 살, 세포 전부가, 내 걸으며 밟았던 모든 흙까지도 호소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신념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일단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게 될 때는 용서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그러한 탕감노정을 지금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들, 보라구요. 3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여러분들 공적이 얼마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아버지여, 내가 이 3년노정을 걸어왔지만 내가 수고한 이 모든 공적의 여건을 세워 가지고 이 천주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뒷받침되었을 것인고…' 하고 내 마음에서부터 자기 행동과 생활 전체를 총합해 가지고 비판해 보라구요. 과연 내가 움직이는 그런 생활적인 방법이 6천 년 동안 하나님이 찾아오던 그 탕감의 내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할 것이, 또 세워 놓을 것이 있었느냐 이거예요.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만히 생각하면 말이예요, 이 탕감을 왜 해야 되느냐 말이예요.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이느냐 이거예요. 내가 왜 이런 길을 가야 되느냐, 내가 왜 이렇게 굶고 앉아 있어야 되느냐, 내가 왜 욕을 먹어야 되느냐, 내가 왜 이런 비참한 행로를 걸어가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가야 되느냐 이거예요.
가는 데는 악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선을 위해서, 그것보다도 내가 한번 욕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후대의 수천만, 천천만 혹은 이 억조창생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지니 얼마나 숭고하냐 말이예요. 얼마나 숭고하냐?
하루 일해 가지고 뭐 백 원이면 백 원, 하루 일해 가지고 백 원 받는 것보다도 하루 종일 일전도 안 받고 돌아서면서 '이 백 원을 삼천만 민중 앞에 나는 저금해서 줍니다' 하고 돌아서는 그 기분이 더 멋진 거라구요.
선생님이 만약에 돈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에게 월급을 안 주는 거예요. 절대 선생님을 믿지 말라구요. 물론 사상적, 이념적인 면에서는 믿되 자기 사정적인 면에서는 믿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 사정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이념적인 사정 앞에 자기의 사정을 굴복시켜 가지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도 찬동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노정을 가는 이 길에 있어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거예요. 만일에 여러분이 7년노정을 걸어가는데, 하늘이 작정한 7년 기간에 표준하는 어떠한 가치의 기준이 있을 거라구요. 그 기준 앞에 여러분들이 어떻게 맞추어 놓을래요, 이거? 이러한 동그라미가 있다면 그 동그라미 앞에 금을 그어 놓을 거예요, 뭘할 거예요?
하늘은 이러한 어떤 원칙적인 기준 앞에 여러분이 동으로 서로 금긋는 걸 원치 않아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물의를 일으켜 가지고 통일교회 뭐 어떻다는 소리 듣는 걸 원치 않아요. 이 원형 앞에 모양은 작지만 동그라미를 그려 놓아라 이거예요. 때는 되었는데 수습할 수 없는 환경을 누가 만들어 놓았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만들어 놓았지요. 난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예요.
내가 기도하는 시간에도 그런 것을 나 스스로 다짐합니다. '내가 책임을 못 했습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이 무리들이 못 했습니다' 하면서…. 무리들이 못 했다 이거예요. 그러니 이거 내가 또 손을 대야 돼요, 내가. 내가 손을 대 가지고 다시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니 이 놀음을 해야 하는 거예요.
요전에도 뭐 상을 주고 했지만 말이예요, 상 주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되겠으니 할 수 없이 준 거라구요.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나는 뭐 누구보다도 이렇게 했는데 뭐야? 나는 상을 안 주고 뭐…' 그런 생각 하는 것은 강도 할아버지, 사탄 조상이예요, 사탄.
또, 상을 받고는 으쓱해 가지고 '흐흐, 내가 이만했으면 됐지. 우리 선생님은 사람을 잘 본 거야…' 이런 사람은 사기꾼이라구요. 내용은 그렇지 못한데 그런 척하니 사기꾼이지 별수 있어요? 나는 지금 통일교회 선생님이지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아니예요. 지금 하늘은 이 문선생을 사랑한단 말이예요. 기도해 보라구요, 내 말이 거짓말인가. 목을 매 놓고 한 40일 동안 기도해 보라구요. '대주지 않으면 나 죽소. 하나님, 나 대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가르쳐 주지 않으면 죽소' 하고 기도해 보라구요.
가르쳐 주는 데는 그 녀석을 살려줘 가지고 더 필요로 하게 될 때는 가르쳐 주지만, 가르쳐 줘 가지고 도리어 손해나게 될 때는 그 녀석이 죽더라도 안 가르쳐 준다 이거예요. 하늘은 전부 다 원칙적인 뭐…. 뜻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이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아, 내가 복받기 위해서…' 이게 다 틀려 먹은 거예요. '은혜를 주소' 하지요? 은혜를 줘? 이 도둑놈의 심보들아! 은혜받아 가지고 뭘할 거야? '아, 내가 복받고 우리 아들딸 복받기 위해서…' 이게 다 틀려 먹은 거예요. 동기가 틀려 먹은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었다가는, 삼천만 민족을 전부 다 종새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은혜를 주는 것은 뭐냐? 은혜를 받아서는 뭘할 것이냐? 네 새끼, 네 아들딸 전부 다 심부름시켜서 나눠 주기 위해서 은혜를 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은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아들딸을, 자기 종새끼, 충신 전부 다 동원해 가지고 나눠 주기 위해서 전부 다 죽여 버렸다는 거예요. 이게 천리원칙이예요. '위해 주소! 우리로부터, 나로부터 전부 다. 우리 가족…'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예요. 좋은 것은 여러분들이 가져라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이거예요. 이게 원리관이예요. 원칙적인 생활을 하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탕감노정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여러분 대해서 당당코 뺨을 갈길 자신이 있는 거예요. '이 자식아! 못 가겠어? 못 하겠어?' 하며 내가 그렇게 책망을 하고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아요. 왜, 왜 그럴까요? 여러분들이 갈 길을 다 가면 여러분들보다도 할 일이 많다 이거예요.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뺨을 갈기면서 내모는 사람이예요. 안 가면 망하는 거예요. 지금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귀노정에서는 절대 신세질 생각 하지 말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지금 돈도 많이 필요하다구요. 내가 지금까지 누구한테…. 정 돈이 필요하면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거예요. '선생님 돈 없다, 갖다 줘라' 이거예요. 안 갖다 줄 수 있어요? 우리 식구들이 기도하게 된다면 말이예요, 명령하는 거예요. 이만한 돈이 당장에 필요하니 선생님 갖다 드려라 이거예요. '네 농에 무슨 보물이 있지, 뭐 있지? 전부 다 팔아라' 하는 거예요. 안 팔 수 있어요? 감쪽같이, 남 모르게 선생님 갖다 드려라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도 한국 통일교회의 불쌍한 사람들을 동원해 가지고 이 놀음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미국놈들, 세계의 국제적인 거부들을 내가 앞에 내놓고 이 작전만 딱 해 가지고 갖다 물려 놓으면 여러분들 택시 한 대씩은 뭐 문제없을 거라구요.
이번에도 그래요, 이번에도. 지갑에 돈은 한푼도 없는데 서울 떠난 이래 지금 돈 7,80만 원이 당장에 필요하다 이거예요. 돈은 한푼도 없다 이거예요. 하늘이 필요하고 내가 필요한 거예요. 바람이 불어라 이거예요. 날아오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그러한 뭐가 있기 때문에 큰소리하는 거예요, 큰소리. 내가 주머니에 돈이 없고 지금 현재 가진 것은 없지만 나는 천하에 뭐 부러운 게 없다 이거예요.
걸어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천하에 부러운 게 없어요. 여기 택시니 집이니 세상의 무슨 궁전, 베르사이유 궁전이니, 무슨 궁전이니 하지만 부러운 게 없어요. 세상의 무슨 문화재니 뭐 부러운 게 없다 이거예요. 부러운 게 없어요. 나로 말하면 천하를 다 주고 하늘땅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가는 이 생활과 바꾸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재미나요. 이 이상 진리가 없거든요. 때로는 욕을 먹고 때로는 그저 뭐…. 여러분이 그래요, 망명자의 신세를 한번 알아보라구요. 패자의 그런 환경에서 한번 처량하게 비오는 저녁 거리를 걸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한걸음 한걸음 사색하면서, 깊은 사색을 하면서 하늘을 부여안고, 땅을 부여안고, 이념을 부여안고 뒤넘이치는 그 자리가 얼마나 멋진 줄 알아요, 여러분들?
야곱 같은 양반들이 자기가 축복을 받아 가지고 이 뜻을 이뤄야 되겠는데 형님이 무서워서 하란 땅으로 도망가게 될 때 그 하란 광야에 엎드려 잠을 자는 그런 환경에 있었으니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하늘땅을 부여안고 소망의 이스라엘과 축복의 아브라함의 손길을 찬양하는 그 마음이 간절했다는 겁니다. 천지는 전부 다 고요한 밤중에 잠들어 있지만 나는 하늘땅에 새로운 호흡권 내의 동맥을 창조한다는 이런 신념이 불탔기 때문에 하늘은 그와 동반자가 되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내 몸뚱이는 하나예요. 그렇지만 이 사상은 세계를 제패한다 이거예요. 틀림없어요. 만일에 내가 살아생전 이것을 못 하면 죽어서 다시, 죽어서라도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될 기반을 닦고 있다구요, 지금.
예수님은 그런 생각 안 해봤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자리에 서야 되겠다 이거예요. 나서야 되겠다 이거예요. 죽더라도, 죽더라도 지상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닦아 놓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만약에 죽어 가지고 생전에 계획한 일을 못 다 이루면 영계를 통해서라도 이룬다 이거예요. 그때는 반대하던 사람들이 내 손아귀에 놀아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는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지요, 그런 뭣이 없다는 거예요. 한번 그저 딱 들여다보면 딱 막혀 버려서 그저 숨쉬는 게 답답해요. 어떠한 사람은 척 대하면 말이지요, 앞에 있는 내가 답답하다 말이예요, 내가. 지금 그런 걸 참고 나가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센스가 빠른 거예요.
수많은 영계를 통해서 악신과 선신을 분별하는 그러한 역사를 가진 선생님이 그거 모르겠나요? 척 보면 벌써 저건 몇 퍼센트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렇지만 표시를 안 해요. 왜?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예요. 그렇잖아요? 더 필요하단 말이예요, 저런 사람보다도. 그렇기 때문에 그런 표시를 안 해요.
그렇기 때문에 알고도 잘 속아 주는 거예요. 심부름도 잘해 주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러니 그 고충을 여러분들은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 게 뭐예요? 여러분들은 그저, 아이구…. 요전에 축복받은 가정들이 애기들이 커 가니까 살림살이 생각 안 할 수 있나요? 해보라구요, 해보라구. 어떻게 되나? 한 고개를 넘어야 돼요, 한 고개를. 선생님이 가던 길을 넘어야 돼요.
선생님이 처자를 전부 다 버리고 행랑 보따리를 지고 북한 땅을 향해서 출발하던 그런 사정을 알아야 된단 말이예요. 자식을 누구만큼 사랑 못 해서? 하나님이 누구만큼 사랑 못 한 그런 예수였기 때문에 예수를 죽였느냐? 천지에 없는 독생자요 천지에 없는 심정의 대표자였지만,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는 이 만민에게 자비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닦아 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을 대신 희생하는 그 자리를 택한 거예요. 부모도, 자식이 이다음에 성공하는 날에는 부모도 그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자식을 축수해 주고 찬양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구요.
여러분들도 그래요, 여러분들도. 요전에는, 3년 전만 해도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가지고 내가 하늘 앞에 어떠한 참소의 조건도 세워 주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아주 점점….
그래, 선생님은 아버지의 은혜를 빼앗기 위해서, 하늘나라의 비밀창고를 도적질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땡깡부리는 것이 아니예요. 원리원칙을 따져 가지고, 하늘은 준다고 했으니 받는 방법을 거쳐 가지고 이것을 전부 다 찾아내기에 무한히 애쓴 사람이라구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고 얼마나 해봤겠느냐 이거예요. 복귀원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이 단순한 게 아니예요. 전부 다 싸움을 해야 돼요, 싸움을. 한 고개가 아니예요. 몇 고개예요? 뭐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고개라고 하는데 열 두 고개는 끝이나 있지요. 그 놀음 해 나가는 걸 여러분이 알고…. 내가 젊었을 때, 40이 넘어 가지고 보면, 한 30대에는 산에 올라갈 때 그저 단숨에 올라가도 까딱없었는데 40이 척 넘어 가지고 이번에 강원도의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옛날과는 몸뚱이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라고 뭐 무쇠가 아니예요. 밥 안 먹으면 배고프단 말이예요. 물 안 먹으면 물 먹고 싶은 거예요. 땀도 흘리는 거예요.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피로가 더 빠르다구요. 여러분들은 단순하지만 선생님은 복잡하다 이 말이예요.
보이지 않는 이런 내적인 생각세계에서는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여러분들보다 더 피로할 거라구요. 이걸 볼 때, 그런 생각을 할 때에는 다 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전부 다 호령해 가지고 사탄세계, 이 지구성에 있는 악당들을 대해서 한꺼번에 그저…. 총은 무슨 총? 소리만 들어도 그저 뒤로 쫓겨 가는 거예요. 아시아의 극동으로 쫓겨 가는 거예요. 전부 다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로 올라가다가 얼어죽든가 그렇지 않으면 평지에서 쫓겨 가지고 해안에 와서 태평양에 빠져 죽든가, 손 안 대고 잡을 수 있는 이런 경사는 없겠느냐, 그런 생각 한다 이 말이예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 하는 거예요.
칼은 무슨 칼? 권위와 선의 가치를 가지고 악의 가치를 심판할 때, 응당히 심판받기를 바라고, 심판받아 가지고 악이 자기 스스로 처할 수 있는 곳으로 자유로이 찾아가게끔 만들 수 있는 그런 길은 없겠느냐, 스스로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가만히 보면 욕심들은 많지요? 내가 여러분 같으면 밤낮 자지 않는다구요. 내가 이 길을 찾기 위해서 눈이 물크러지도록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이예요. 선생님이 눈이 조그맣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지 협회장처럼 눈이 컸으면 눈이 빠졌을 거라구요. (웃음)
여러분들, 눈물을 많이 흘려 보라구요. 밀실에 들어가면 방안의 그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눈을 못 뜨는 거예요. 그런 걸 여러분들이 지내 봤어요? 얼마나 애달프고…. 죽는 것은 간단하지요. 선생님이 고문 같은 걸 받을 때는 죽을, 사지의 경지를 수십 번 거쳤어요. 죽는 건 문제가 아니예요, 죽는 건. 그래, 기절을 하면, 몇 번씩, 수십 번씩 나가자빠지면 다시 세워 놓고 그랬지만 그놈들한테 내가 이용의 도구는 절대 안 됐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왜정 때에도 지하공작을 했어요, 왜놈들에 대해서. 왜? 원수이기 때문이예요. 여기 한국에서 내가 일본에 갈 때, 여기 서울에서부터 부산항구, 시모노세끼까지 가면서 내 이 강산을 떠나는데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구요. 내가 원수의 나라에 가서 발딛는 그 시간부터 내 눈물까지 거둔다 이거예요. 거기서부터 내가 갈 길을 정해요.
이래 가지고 일본에 가 있으면서도 호화찬란한 그런 판국이 벌어지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어요. 별의별 유혹도 많았지요. 돈 많은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전부 다…. 또, 선생님이 친구들을 떡 사귀려면 말이지요, 필요하면 대번에 사귀는 거예요. 또, 어디 가면 잘 논단 말이예요. 잘 놀거든요. 노래하라면 노래도 하고 말이지요, 춤추라면 춤도 추고 장단 맞추라면 맞출 줄도 알고 다 한다 이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뭐 팔방미인이라구요.
자기들은 누군지 모르지요. 그다음에 내가 필요하거든요. 그래, 말을 많이 안 하지만 필요할 때는 염통을 찍어 가지고 잡아넣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자기들의 비밀창고, 나를 대해 가지고는 자기 가슴에 있는 비밀을 직고 안 하면 안 돼요. 폭로하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도 그렇지요?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말이예요, 여기 남자들도 그래요. 요즘에는 안 그렇지만 옛날에는 은혜만 통하면 전부 다 자기 죄를 직고하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내가 듣기 싫다고 해도 말이예요. 이건 그저 '선생님 좀 봅시다' 하면 '너희 서방한테 가' 하는 거예요. 귀찮거든요. '좀 봅시다' 해 가지고 보면 틀림없거든요. 자기가 옛날에 뭘 해먹고 뭘 해먹던 누더기…. 그걸 뭐 누가 듣기 좋다고 와서 보고해요. 보고해야 자기는 또 편안하거든요, 이게. 그거 이상한 거예요. 그런 재주가 있어요. 재주라기보다도 그런 뭐가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 녀석들도, 친구란 녀석들도 자기도 모르게 하여튼 좋다 이거예요. 저녁 때가 되어도 한번 왔다 가야 잠이 온다는 거예요. 말은 안 하지만 말이예요. 내가 그때 원리를 선포해서는 안 돼요. 원리는 하늘이 제일 찾는 사람에게 먼저…. 원칙이 그렇다구요. 이 원리는 누구를 위해서 이 땅 위에 세웠고, 내가 이런 원리를 찾아 세운 것은, 하늘 대신 이런 뜻을 세워 나온 것은 누구를 위해 세웠느냐? 그 주인이 있기 때문에 주인을 만나기 전에는 입을 열 수 없다 이거예요.
입을 열면 머리는 이렇고 배꼽은 요렇고 발바닥은 요렇다 하는 정도예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못 해요. 그렇기 때문에 얘기는 안 하지만 자기들은 그런 이상을 바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떡 이렇게 가면 그저 흥겨워지고 판국이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여러분들도 그렇죠? 흥겨워져 가지고 선생님이 거기에 환영해 가지고 하늘땅 딱 사방 맞춰 가지고 춤을 추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감돌아 들어간다 이거예요.
이런 놀음 하면서도 내가 일본의 명승지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어요. 나라 없는 백성이 그런 간판 붙은 데는 안 간다 이거예요. 내가 일본에 가 있을 때 집에서 돈을 안 보내 줘서 돈이 없는 것도 아니예요. 일본 사람들이 보고 있는 데서, 그런 원수들 앞에 자기 위신과 체면을 세우려고 안 하는 거예요. 또 나타나려고 안 했다는 거예요. 그냥 샅샅이, 일본이 어떻다는 걸 샅샅이 알려고 노력했다는 거예요.
학자들은 어떻고 노동자들은 어떻고 전부 다…. 이 나라는 언제까지 가면 망한다 이거예요. 실제 조사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뒷골목 거리를 많이 다녔다구요. 전부 다 밀사를 보내고, 다녀왔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범죄를 하는 게 아니예요. 이 나라는 언제까지 망해야 돼, 하늘의 복귀섭리의 프로에 있어서 이런 때가 오거늘 그때에 해당할 수 있는 기간이 되면 망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 동경 역전에 내릴 적부터 싸워 온 거라구요. 말은 하지 않지만 다니는 길가야, 넌 알 것이다, 한민족이 가는 길을. 나는 애국자 원치 않아요. 길을 건너가나 오나, 나무를 바라보나 '이 만물, 원수의 땅에 있는 만물 너는 하늘에 속할 것이어늘 나를 알 것이다' 이러고 다닌 거예요. 그래 가지고 쭉…. 그거 지금도 생생해요.
그러한 복잡다단하고 심각한 산 역사를 선생님은 많이 체험한 거예요. 지금 감옥살이에 대해 얘기하지만 말이예요, 선생님이 심각한 얘기 하면 여러분들은 다 통곡할 거예요. 혀를 깨물고 통곡할 사람이 많을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얘기하려고 안 그래요. 그 고생한 걸 뭐하려고 얘기해요? 여러분들이 심각해지거든요. 그러니까 다 덮어놓고 좋은 것만 보여 가지고 여러분들 깊은 세상에 있어서의 그 곡절에 부딪쳐 가지고 고통을 받지 않게끔 해 가지고 복귀의 길을 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느냐 말이예요.
이 원리도 그래요. 원리도 간단명료하게 선생님이 그거 딱, 전체가 그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만 딱 세워 놓고 하고 싶었는데, 이 악한 세상에 적이라는 녀석들이 있으니 그저 논거를 세워 가지고 딱딱 맞춰 놓아야지, 시시하게 뭐 복잡하게 벌어져 가지고…. 그거 간단한 거예요.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은 지금 이 탕감역사를 거쳐 나와야 돼요. 3년 노정이라는 것은 뭐냐?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거쳐 나와 가지고 최고 탕감노정의 길을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부락 같은 데 가서는 절대 신세 안 지더라도 그 기간에 반드시 여러분들을 동정하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왜? 선생님이 간 길이 그랬기 때문이예요.
선생님은 지상지옥 최고의, 극대의 자리에 가 가지고 그러한 동기의 기준을 닦아 나왔으니 여러분들은 지상천지, 자유스런 환경의 지역권 내에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져야 된다 이거예요. 원칙이 딱 돼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심정이 좋을 때는 못 가요. 하늘을 위한 충성심을 갖고 나가더라도 도와줬다가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아이고, 이렇게 도와주는 하나님이니까 오늘도 도와줬으니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도와주소' 하게 돼요. 그러다가는 망해요, 망해.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망하니까 차라리 안 도와주는 거예요. 지지리 고생해라 이거예요. 그가 가야 할 힘든 길이 남아 있는데 지금부터 도와주면 병에 걸리게 돼요. 그 법으로써 전부 다 하늘을 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법 가지고는 그 길을 못 갈 것을 아는 하나님은 도와주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러니 애당초 손 안 댄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남한에 있는 통일교회는 전부 다 도와주지 마소' 하는 거예요. 그런 때예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여기에 지치는 놈들은 지쳐라 이거예요. 지치지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아요. 통일교회 선생님은 지치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지쳐 쓰러지더라도 쓰러진 그 터전 위에 앞으로는 여러분들을 비판하여 '아무개 아무개는 하늘을 팔아 가지고 이렇게 움직였고, 너는 이러한 행동을 했으니 천지의 역적이라고 간판을 붙이고, 너를 도리어 제2의 병사를 모집하는 데 방편으로 두겠다'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예요, 안됐지만.
나를 그저 하늘이 쓰려는 거예요. 이거 심각하다 말이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안 하지요? 그러니만큼 고생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되겠습니다」 그저 그냥 눈을 부릅뜨고 하는 거예요. 고생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 그럴 때는 '해야 됩니다!' 이래야 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고생하는 거야, 그게? 고생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가르쳐 준 거 누가 못 하겠나? (웃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욕먹는 걸 산을 놓고 계산한다면, 좁쌀로서 산을 쌓았다면 아마…. 여기 무슨 산이 제일 높은가? 팔공산, 팔공산만할 거라구. 아, 이건 뭐 눈뜬 날부터 감시예요. 참 이상하거든요. 어디 가든지 요주의 인물이 된단 말이지요. 나타나지 않으려고 아주 누더기 옷을 두루고 다녀도….
선생님은 30평생에 옷을 하나도 안 사 입었어요. 전부 다 새 옷을 안 사 입었어요. 왜? 은신해야 돼요, 은신.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때가 있는데 나타나면 되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저 뒷골목의 고물상에서 제일 나쁜 옷을 사 입으려고 했고, 갖고 다니는 모자도 한 곳 두 곳 찢어진 것을 쓰고 다녔어요. 선생님이 옛날에는 더벅머리 총각이었어요, 이렇게 해 가지고. 선생님이 그렇게 밉지는 않았어요. 선생님이 아마 여자들한테 밉지 않은 모양이예요. 아, 이 간나들이 뭐 편지를 하지 않나…. 그거 나하고 원수예요. 어떤 간나들은 뭐….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그랬다는 게 아니예요. (웃음) 내가 뭐 눈 하나 깜짝이기나 했나, 뭐 세상에서는 뭐라고 하는 거예요? 뭐 어떻게 해 보기를 했나, 뭐 어떻게 했나? 그냥 옆으로…. 내가 볼 때 여자처럼 무서운 것이 세상에 없다고 봐요. 에덴동산에서 타락할 수 있는 요소가 백 퍼센트 있었다 이거예요. (웃음)
내가 생각할 때 천사장이 껍죽거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천사장, 그 종 녀석한테 해와가 틀림없이 '아이고, 등을 굽혀라, 등을 꼬부려라' 하며 뒷발로 그저 올라가려고 이랬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소질이 많거든요. 별의별 유혹을 다 했을 거예요. 별의별 일이 다 있었을 거예요.
여자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여자들 때문에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어요? 이 간나들도 그렇다는 거지요. 오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쓱 어디를 가겠다면 벌써, 저기 앞골목 몇 골목만 가면 척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 나도 따라갑시다. 따라가야 되겠소' 이래요. 이걸 길거리에서 오지 말라고 주먹질하겠나, 어떻게 하겠나? (웃음) 참 곤란하다는 거예요.
남자 녀석들은 암만 해도 괜찮아요. 이건 그저 새벽부터 와서 대문 열기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네. 여러분은 다들 역사가 있을 거예요. 여자들은 자기 공명판이 다 있을 거예요. 알거예요, 그건. 이상하다는 말이예요.
내가 지금 제일 궁금한 것이…. 일본을 거쳐 가지고 미국을 거쳐오게 되어 있는데, 선생님이 또 바람을 넣어 일으키게 하면, 발동을 걸어 가지고 가면 또 사고가 벌어진다 말이예요. 또 사고가 벌어져요. 남자든 여자든, 남자가 선생님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게 되니까 말이예요. 여기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얘기예요. 그런 법이 있나 하겠지만 그런 법이 있다 이거예요, 통일교회에는. 남자가 눈물을 흘려야 돼요. 남자가 남자를 그리워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어야 천국나라에 들어가서 남자로서 사랑하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이게 원칙이예요. 남자가 남자를 보고 싶어서 우니까 여자가 남자 보고 싶어서 우는 것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이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전부 다 여자들을 호려 가지고…' 이런 말을…. 호리기야 호렸지. 그러나 내가 호린 것이 아니예요. 무슨 요술을 뭐 해 가지고…. 요술은 요술이예요. 무슨 요술? 천술이예요, 천술. (웃음) 별스럽거든요. 한번 떡 와서 스위치만 넣어 가지고 접촉만 되면 이건 안 갈 수 없는 거예요. 사랑하지 말라고 암만 해도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보고 싶어하지 말라고 암만 해도 눈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발을 이렇게 하고 교회 안 가겠다고 해도 껑충 해서 가거든요. (웃음)
바람은 참 멋진 바람이라구요. 선생님이 사기성이 있어 가지고 만약에 이용해 먹었으면 한국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선생님 앞에는 일등부자, 혹은 한다하는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걸려들어 가지고 전부 다 움직일 수 있는 이런 때도 있었던 거라구요.
그 사람들이 '아, 선생님, 이 통일교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습니까?' 하면 '그래, 돈…' 이랬어요. 돈, 내가 그런 돈이 없지만 심통을 보고 원치를 않아요. 그걸 받았다가는 내게 몇십 배를 바랄 수 있는 욕심…. 선생님이 그러니 통일교회는 커 나가는 거예요.
이러한 복귀역사를 지금 운행해 나간다 말이예요. 그래, 욕을 먹었어도 여러분들 못지않은 욕을 먹었어요. 선생님이 본래…. 여러분들 기도해 보라구요. 몸도 참 잘 타고났어요. 이 몸 골격이 참 멋지게 타고났다구요. 보기에는 뚱뚱하지만 말이예요, 날쌔기도 하거든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뛰기내기 해서는 져 본 적이 없고, 뛰어 가지고는 상을 못 타 본 적이 없어요. 3등에라도 들어야지 못 들면 이건 뭐 우리 가문의 망신이예요. (웃음) 망신이예요, 망신.
또, 몸이 튼튼하다는 거예요. 무리를 해도 견딜 만한 몸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무리를 얼마나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여지껏 버텨 나가고 있는 겁니다.
자, 그러한 분하고 원통한…. 눈물이 많다면 또…. 여러분들이 여기 있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말하지 않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 마음을 알아 가지고 '아, 선생님은 이러한 안타까움과 이러한 슬픔을 품고 있다'고 한마디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에 통곡하는 거예요, 당장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심각한 기도를 못 하는 사람이예요. 기도하기가 민망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기가 민망해서. 코가 메이고 목이 메인다 이거예요. 기도를 못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예요, 지금도. 여러분들이 그러한 분하고 원통한, 분통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런 분한 이 앞에 나타나는 원수라 할 때는 용서없이 날려 버리고 싶다, 가루같이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돼요. 지금도 그래요.
세상적으로 보면 한국민족이 꿈에라도 생각하겠느냐 말이예요. 자유당 때, 민주당 때 혁명정부가 선생님 잡아죽이려고 얼마나 그랬나요? 할 수 없으니 지금 협조하는 거예요. 선생님 욕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낙망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노장은 뭐 어떻다구요? 노병은 뭐라구요? 「죽지 않는다」 죽었는데? 맥아더는 죽었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내가 그 노병이예요? 노병이 아니지요. 죽지 않는다구요.
여러분들을 대해 가지고, 선생님이 지금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 책임이 많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을 직접 사상훈련, 정신훈련 못 시키는 것을 한할 뿐이예요. 지금도 그래요. 예를 들어 가지고 강원도면 강원도 저 멧돼지 할아버지가 사는 뒷골목에 가서 한 몇천 평 구멍을 뚫어 가지고 거기에 훈련 장소를 만들어 가지고…. 밥은 무슨 밥? 먹을 것은 산에 있는 거예요. 땔 것도 산에 있는 것이요, 잠자리도 산에 있는 것이요, 마실 것 뭐 다 해결이예요. 만사해결이예요.
이렇게 그저 한 3년씩 훈련해 가지고…. 내 생각은 그래요. 한 3년씩 이래 가지고, 이 세계를 향해서 정예부대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에 없는 이런 하늘의 정병을 만들어서…. 한 3년쯤은 무일푼 후원 없이 이래 놓고는, 여기서 3년 동안 훈련을 밤낮없이 시켜 가지고 살아 남은 사람들이라야 그래도 끌어내다가 세계적인 무대 앞에 한 지도자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런 훈련 거쳤나요, 안 거쳤나요? 「안 거쳤습니다」 안 거쳤어요? 그 훈련 준비예요, 지금. 훈련 준비예요. 첫째는 배고픈 훈련, 그다음 둘째는 잠 안 자는 걸 훈련해야 돼요. 알겠어요? 그다음에는 보고 싶은 것 참는 훈련 해야 되겠다구요. '아이구, 먹고 싶다' 싶다는 것을 참는 훈련해야 돼요. 잠자고 배고픈 것, 그다음에는 정적인 관계. '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아, 누구누구가…' 그런 걸 훈련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는 뭘해야 되느냐? 그렇게 단련된 이 몸뚱이로서 당장에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선봉 장군으로 설 수 있는, 이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돼요.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30평생 왜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구요, 안 먹었어요. 집에서 돈 보내 주면 고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공부할 돈이 없으면 내가 대주는 거예요. 노동판에 가 가지고 학비를 벌어 가지고 내가 협조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학교에 다닐 때 회사 생활도 해보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어요. 글 써서 돈벌이도 해봤고, 노동판은 물론이요, 별의별 놀음을 다 해봤다 이거예요. 동냥도 해봤어요. 어떤 때는 쓱 가 가지고…. 일본의 아가씨가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천품도 좋고 선조도 선하고 그 마음씨가 나쁘질 않아요. 그래서 떡 가 가지고 테스트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일본 말을 잘하는 거예요. '나는 한국 사람인데 지금 한국 나가야 될 텐데 차비가 없소. 나는 당신이 보다시피 무슨 사기를 하거나 남을 속여먹을 그런 사람이 아니오. 한국의 명예를 걸어 가지고 남을 속일 사람이 아니니 지금 당신의 돈이 얼마 있을 텐데…'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면 두말 하지 않고 빌려주는 거예요. 지금도 그 이름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처음엔 이름을 잊어버렸다구요. 그래 가지고 주소를 적어 달라고 해서 그다음에 와 가지고 3배 이상을 붙여 줬다구요. 그다음에는 알고 보니까 그 여자가 나를 찾으려고 상당히 노력했다는 거예요. 그 여자가 누구냐 하면 어떤 고관의 외딸이예요. 그럴 것 같으면 아주 쓸만하거든요. 필요할 때는 그런 놀음도 하는 거예요. 전부 다 이거….
선생님은 그런 수완도 있다 말이예요. 필요로 하게 되면, 변장을 해야 할 때는 대번에 변장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애기들을 봐도, 지금도 난지 3개월 적부터, 뭐 20일 이후부터 울 때 음악만 척 틀어 놓으면 음악을 듣는 거예요. 벌써 6개월 지나니까 음악소리를 듣고 곡조에 박자를 맞춘단 말이예요. 그거 소질이 있어요. 아마 세계적인 지휘자로서의 소질이 있어요. (웃음)
예술적인 소질이 많아요. 내가 애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 예진애기를 가만히 보게 되면 노래를 하다가 떡 막히게 되면…. 어떤 아이는 처음 배운 노래를 하다가 딱 막혀 버리면 이러지요? (행동으로 해 보이심) 그런데 노래하다가 막히게 되면 쓱 갖다 집어 넣거든요. 그걸 볼 때 '야, 됐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도 그렇잖아요, 여러분들도? 노래하다가 가사 틀리게 되면 망신을 깨깨 당한다 이거예요. 그것도 슬쩍 무슨 말이라도 한번 집어 넣어 가지고 도리어 그것으로써 관중의 관심을 끌을 줄도 알아야 된다 이 말이예요. 아주 소질이 있거든요.
천성적으로 아마 그런 소질이 선생님은 있는지 모르지요. 내가 그래요. 저 사람을 전도해야 되겠다고 할 때는 선생님이 1년 6개월 동안 밥을 얻어먹고 완전 점령하고야 후퇴했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지리 밥 먹는 걸 미워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내가 먹을 밥 주소' 하는 거예요. 점잖게 앉아 가지고 '반찬 거기 있지 않소? 가져오소' 하는 거예요. 안 가져올 수 있어요? 먹고는 쓱 '물도 주소. 거 사이다도 있지 않소?' 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다고 미워할 수 없는 거예요. 미워했다가는 미워한 것 이상의 손해를 본다 이거예요.
옛날에는 그런 작전을 많이 했어요. 여기 척 문전에만 들어오면 '이 자식아, 너는 뭘해 먹던 자식이군' 한마디 때려 놓는다 이거예요. 그때는 또 그래야 해먹을 때거든요. '이 자식, 뭘하러 오는 거야' 하고 한 마디 하면….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지으신 아버지의 본향의 동산에는 자유와 평화와 행복과 영광만이 가득 차 있어야 할 곳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무한한 소망을 노래하면서 저희들의 생활의 영광을 스스로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 아버지가 소원하셨던 본연의 인간이었음을 저희들은 느끼옵니다.
그러한 소망과 그러한 이념은 우리 인류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파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과 아버지의 고통과 아버지의 비참함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이 인류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뜻을 따라 나온 우리의 조상들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가 당하여서는 안 될 것을 당한 억울함을 오늘날 저희들은 깨달았사오므로, 이 슬픔과 고통과 비참함을 오늘날 저희 시대에서 가로막고 본연의 소망이었던 아버지의 자유와 평화와 행복과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이 천지를 저희들은 다시 바라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내맡기고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나선 발걸음이었사오니, 이제 저희의 자세와 갖춘 모습을 하늘은 주시하고 있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적진을 향하여 최후의 판가리의 싸움을 겨루기 위한 준비의 시선으로서 자기 자세를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사옵니다. 최후의 승패를 결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온 천지간에 세워야 할 사명과 책임이 끝날의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정성이 필요할진댄, 정성을 기울이기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성의 도리를 세우는 싸움의 노정에 있어서 아버지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나서라 하게 될 때는 그와 같은 명령과 그와 같은 뜻 앞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나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과거에 뜻을 대신한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은 시대적인 환경을 넘지 못하여서 아버지를 슬프게 한 사실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노아 때에도 노아의 가정이 그러하였고, 야곱 때에도 야곱의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이 그러하였고, 모세 때에도 그러하였고,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하였고, 현세도 그러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사망의 근원을 동기로 삼고 엉클어져 있는 모든 사회적인 환경을 저희들이 바라보게 될 때에, 스스로 아버지 앞에 맹세한 자체를 찾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옵고, 스스로 아버지 앞에 장비를 갖추어 최후에 일격을 가하기 위한 하나의 영광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인 최후의 때가 저희들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이 세계사적인 책임을 앞에 놓고 이와 같은 크나큰 싸움과 크나큰 사명을 책임지고 이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하는 자는 끝날에 아버지가 불러 명령하시는 최후의 싸움터에서 쓰러지고, 그렇지 않으면 낙오되는 결과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스스로 깨달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젠 자기 마음을 일깨우고 몸을 스스로 충고하여 아버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모든 내적 자세와 외적 자세를 솔직히 고백하여 아버님이 새로이 분부하는 명령 앞에 복종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모색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지금까지 죄악에 얽매였던 과거의 환경적인 인연의 조건들을 스스로 몸 마음에서 청산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고, 그런 현실에 당하고 있사오니, 이와 같은 시대에 처한 자기 자신이 당신을 대신하여 이미 나섰사오니, 이미 아버지 앞에 맹세를 하고 모든 것을 저버리고 나선 걸음이었사오니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경륜하는 곳을 향하여 진격하여, 용진하여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고 싸워 나갈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극히 필요한 때가 되었사옵기에, 아버지, 이 민족의 혼란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세계적인 모든 불쌍한 참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하늘의 정병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옵니다.
하늘의 정의의 칼을 뽑아, 하늘의 정의의 심정과 외적인 무장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기를, 오늘날 저희 자체를 통하여 아버지는 통고하시고, 저희 자신을 통하여 아버지는 울부짖고 가라고 명령하시고 그곳을 향하여 가야 할 책임적 사명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통일의 용사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마음이 완전히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게 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원수를 미워할 수 있는 마음으로 불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사탄을 분별하는 분별적인 생활, 즉 심판을 대행할 줄 아는 아버지의 참다운 아들딸이 돼야만 되겠습니다. 이것이 개인을 대신하고, 이것이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민족·국가·세계를 대신하고, 온 천주를 대신하여 아버지 편에 있어서 입증을 받고 또, 이것을 입증시킬 수 있는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엄숙한 책임과 과제가 저희 생활무대에 전개돼 있사오니, 이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걸음 걸음에 있어서의 저희들은 모든 것을 다 드려,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아낌없이 스스로 바치면서, 스스로 죽음길을 찾아가면서 감사할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년노정은 이미 지났사옵고 4년노정의 1년이 더 지나갔사옵니다. 이제 여름 기간을 통하여, 한 기간을 작정하여 아버지가 명령하신 새로운 싸움터를 향하여 나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이 시간 저희들이 느끼고 모였사오니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한 형제이옵니다. 같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있사옵고, 같은 심정을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이었사옵고, 얼굴과 그 모든 모습과 그 모든 자체는 다를지라도 아버지의 이념 가운데서는 하나이옵고 아버지의 목적하신 그 권내에서는 동지요, 한 지체이옵고, 한 몸이옵니다. 전체가 합하여서 아버지의 승리를, 혹은 개인을 통하여, 가정을 통하여, 종족·민족을 통하여, 국가·세계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것이 아버지의 복귀의 사명임을 저희들이 잘 알았습니다. 알았으면 이것을 실천해야 되겠고, 실천하는 데는 반드시 사탄을 굴복시켜 아버지 앞에 영원히 매장해야 할, 영원히 심판해 버려야 할 책임이 저희 앞에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돼야 되겠습니다. 더우기 비참한 이 민족의 환경을 책임지고 하늘을 향하여 저희들이 끌고 갈 수 있는 하늘의 선각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3천만의 힘과 저희의 힘을 비교하게 될 때 저희가 아버지 앞에 서 가지고 끄는 힘이 더 강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야만 이 민족을, 아버지, 새로운 방향으로 돌이키고 새로운 목적지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스스로 알고….
아버지, 저희의 염원하는 손길이 3천만 민중의 손길을 대신하고 저희의 몸을 일깨워서 아버지 앞에 나서서 맹세하게 될 때는 3천만 민족의 맹세를 대신하여 나설 줄 알며 세계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였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전체를 아버지 뜻 앞에서 시작하였사오니 뜻 앞에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영광이 아버지 뜻과 더불어 길이길이 함께하셔서 저희의 생활무대에 있어서, 저희의 실천무대에 있어서 소망하시는 그곳까지 가는 데 낙오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끝까지 아버지의 영광 앞에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면서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기었사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성호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섭리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우리의 선조들은 번번이 뜻을 위한다고 하는 노정에서 받들고 나오고 따라 나왔지만 최후에 가서는 실수하였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가정에서부터 노아가정, 혹은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역사과정에 나타나 있고,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나타나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이때를 이구동성으로 말세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세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역시 이 끝날에 심판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 이 지상에 이루어지기 전에 반드시 하늘이 어떤 무리를 택해 세울 것이 틀림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택해 세우는 그 무리를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를 하늘은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 책임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명을 맡기게 될 때에, 그 사명을 잘못하면 역시 선조들과 같은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는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상에 왔다 간 우리 선조들의 모든 실수를 알면 알수록 오늘날 현실적인 우리 자신의 입장을 대치해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더욱 느껴야 할 때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한국 교계 앞에 통일교회라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또, 이 민족 앞에 통일의 이념이 앞으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기필코 하늘이 원하는 사명, 즉 이 땅을 책임지기 위해서 우리가 나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는 한…. 이 책임이라는 것은 여러분 개체에게 있는 동시에 우리 교회 전체에도 있다는 겁니다. 이 개체의 책임과 이 교회 전체의 책임을 합해서 이 민족적인 책임으로 대치시켜야 할 사명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지워진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 민족을 구하는 이 사명이 30억 인류를 대신하여 하늘이 내세운 시대적인 사명이라고 할진댄, 30억 인류 앞에서 책임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개인으로부터 교회 전체, 혹은 국가, 세계무대까지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여기에는 순수한, 순탄한 노정을 거쳐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을 세워 역사하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도 역시, 개인 하나 승리하기 위해서도 역시 거기에는 탕감의 역사가 있습니다. 범위가 작으면 작은 것에 비례해서 탕감도 작지만 범위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탕감의 조건도 커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역사적인 이 종말, 이 끝날에 있어서 하늘이 책임지워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이 사명이 크고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탕감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의무가 오늘날 여러분 개체와 우리 통일교단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절절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을 요구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요, 교회를 요구하는 것은 민족을 세우기 위함이요, 민족을 요구하는 것은 세계를 세우기 위함이요, 세계를 필요로 하는 것은 하늘땅을 세우기 위함이예요. 이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작은 것을 희생시켜 더 큰 것을 세우기 위한 것이 이 복귀역사의 전반적인 개관인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뜻이라는 것은 어떠한 뜻이냐? 개인적인 기준에 있어서의 전체 탕감의 조건을 완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정, 종족, 혹은 교회, 민족, 국가적인 인연,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인연에 있어서의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사탄과 대결하여 승패를 결하고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앞에 있어서, 오늘날 세계적인 이 무대 앞에 있어서 우리가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사탄이 다시는 우리 앞에 제시할 조건이 없다 하는 최후의 탕감조건을 완결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통일 용사들에게 이런 책임과 사명이 겸하여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30억 인류 앞에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 들고 새로운 역사의 행군을 명령해야 됩니다. 그런 소명을 갖고 나타난 모습들은 초초하지만 배후에는 현실적인 무대에 나타난 그 조건만이 아니라 과거를 통하여서 타락 전 이상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까지 인연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기에 나타난, 어떠한 범위에 제한된 환경에 나타난 그것만이 아니라 환경을 넘은 전세계사적인 인연이 우리 앞에, 우리 두 어깨 위에 짊어져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과연 승리를 하겠느냐? 우리 교회가 과연 승리를 하겠는가? 이 민족이 세계 인류 앞에 새로운 이념을 대신하여 승리할 수 있는 개체가 됐느냐?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거기에 부여되는 희생과 거기에 부여되는 탕감의 내용과 조건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불러서, 통일교회의 한 식구를 세워서 '너는 개체 탕감을 완수했으니 이제 어떠한 특정한 가정을 대표하여 탕감의 제물이 되라'는 명령을 하실지도 모르는 겁니다. 또, 어떠한 개인을 보고 '너는 어떠한 종족을 대표하여,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의 그 종족 전체를 대표하여, 종족을 대표하여 탕감의 제물로 나타나 가지고 내가 요구하는 승리의 조건을 제시하라'고 할지도 모르는 겁니다. 개인을 대해서도 그렇지만 어떤 가정을 딱 불러 하늘이 명령하기를 '너희 가정은 하늘 앞에, 혹은 삼천만 민족의 전체 가정을 대표하여 탕감의 제물의 자리에 나서라' 할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또, 어떤 종족을 세워 이 나라, 이 민족,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살 수 있는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 탕감의 제물 자리에 나가라 하게 될 때에 '하늘이 명하신 뜻이오니 가겠습니다'고 할 수 있는 종족, 더 나아가서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한민족이면 한민족이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땅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 탕감을 시키기 위한 책임을 하늘이 알고 '이 민족이 대신하여 제물적인 자리에 나가라' 하게 될 때에 민족 전부가 나가겠다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만 됩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하나의 나라까지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이 복귀의 역사는 세계사적인 승리의 노정으로서 종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을 안 들이고 어떤 영광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 승리의 실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리 승리의 실적을 갖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세상에서는 공인해 줄지 몰라도 하늘땅은 공인할 수 없어요. 왜? 탕감조건, 탕감복귀 원칙을 통하여 섭리하는 하늘의 공식적인 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헤아려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이 세계사적인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기독교 신도들 가운데 어떤 민족을 대표해서 세계사적인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가겠다고 한 교단이 있었느냐? 그러한 교단이 나타났으면, 그것이 통일교회면 그 교회의 이념은 통일교회만의 이념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이념이요, 한민족을 넘어 하늘땅을 위한 이념이예요.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입장에서 스스로를 하늘 앞에 맹세의 실체로 세워 사탄과 대치되어 가지고 거기에 하늘이 원하는 입장에서 세계를 움직이게 될 때, 사탄까지도 공인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과연 그 자는 하늘땅 앞에, 하늘이 요구하는 조건을 실체의 제물로써 같이 바쳐 드렸다고 사탄이 공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있어야만 사탄이 굴복하는 거예요. 이게 탕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개인으로, 가정으로, 종족·민족·국가·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타락 이후 2천 년간 수고하여 아브라함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을 세워 가지고,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이 땅에 세워 가지고 비로소 승리의 민족이라는 기반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민족은 야곱 일대의 승리인 동시에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사탄세계에서 승리했다는 거예요. 승리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적으로 사탄세계에 들어가서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세계를 대표한 라반가정에 있어서 야곱은 열 번이나 속임을 당했습니다. 열 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묵묵히 하늘 앞에 설 때까지 기다리고 나갔습니다.
물론 야곱도 그랬지만 노아 할아버지도 그래요. 노아 할아버지를 두고 볼 때에도 120년 동안…. 노아는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통고를 받았던 거예요. 하나님은 심판할 것을 통고해 가지고 그 높은 산 아라랏산에다 배를 짓게 한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러한 명령을 했느냐? 이것은 정상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배를 짓는 데는 강가에서나 바닷가에서 만들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산에, 반대되는 자리에 배를 만들라고 명령한 것이냐? 이것은 노아를 그 시대의 수많은 백성, 만민 전체가 반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노아 할아버지를 어느누구도 말로라도 심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구요. 그런 자리에 세운 거예요. 남녀노유를 막논하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그 노아 할아버지보고, 저 미친 녀석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비소했던 거예요. 어떤 녀석들은 발길로 차고 별의별 짓을 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하고픈 놀음을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기 위해 노아에게 거기에다가 방주를 짓게 했던 거예요. 하늘이 사랑하고 하늘이 세운 사람을 먼저 때리는 거예요. 누가? 사탄세계가. 때렸으니 칠 수가 있는 거예요. 심판을 이렇게 하는 거예요. 먼저 하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맞게 해 가지고 찾아 나오는 거예요.
노아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던 거예요. 이스라엘에 성전의 터전을 마련한 야곱도 역시 라반의 집에 가 가지고 맞고 빼앗아 온 거예요. 모세도 마찬가지예요. 모세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올 때에 물론 메시아로 왔지만,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을 심판해야 돼요. 심판 행사를 하지 못하면 메시아가 못 됩니다. 왜? 이 땅은 사탄주권 세상이니 사탄주권 세상이 예수에게 만왕의 왕의 권한을 인도해 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로서 이 땅에 와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심판해야 돼요. 심판을 하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사탄세계 앞에 침을 받아야 돼요. 그런 과정을 거쳐가야 돼요. 아무리 몰리고 아무리 쫓기더라도, 예수님이 이 민족과 더불어 몰렸던들 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민족과 더불어 쫓기고, 민족과 더불어 몰렸다면 망하지 않았을 것인데 예수만 몰렸기 때문에 망한 거예요. 그래서 죽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민족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사탄세계 앞에 몰리는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 역사가 끊어져 나간 연고로 예수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는 역사 도상에서 몰리는 무리가 되어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몰리는 무리가 되어야 돼요. 끝날이 될 때까지, 예수가 이 땅 위에 올 때까지, 재림시대까지 이 기독교는 제2이스라엘적인 권한을 가지고 예수를 몰아낸 죄를 탕감해야 돼요. 재차 죄짓는 노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맞아야 한다 이거예요. 개인으로 맞고, 가정으로 맞고, 종족으로 맞고,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맞아야 됩니다. 이런 시대 과정을 지금 거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사탄편에서 치는 대로 복귀하는 거예요, 치는 대로. 사탄이 얼마만큼 쳤으니 하늘도 얼마만큼 친다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러한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새로운 이념을 부르짖고 나왔습니다. 이 무리가 하늘의 복귀역사노정을 대신해 나왔다 할진대는, 하나의 작전 계획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다 할진대는 맞아야 된다 이거예요. 몰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갖은 핍박과 고통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적인 주의 사상, 어떤 전통적인 국가 기준의 주권만이 아니예요. 오늘날은 사상 주의와 사상 시대이니만큼 사상과 주의권 내, 혹은 지방권 내에 있어서 몰림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 환경 앞에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길을 가는 통일교회의 교인들의 생활 이면을 전부 다 다시 한 번 들쳐보게 된다면 역사적인 비참상,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몰리던 모든 참상이 현실적으로 우리 통일교회 무리들 가운데 전부 재현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재현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그러하고, 가정적으로 그러하고, 종족·민족·국가적으로 그러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무대 앞에 다시 한 번 몰리는 기준에서 자리를 잡아야 돼요. 그렇게 나서게 될 때에 비로소 세계사적인 심판의 기준을 넘는 거예요. 이게 복귀역사예요, 복귀역사.
오늘날 우리들은 개인적인 시대를 지나고 가정·종족·민족·국가를 향하여 넘어갈 수 있는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지금 때가 어떤 때냐 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맞이했던 시대의 환경과 똑같아요. 배경도 똑같아요. 한국의 실정이 그때의 배경과 똑같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늘을 핍박하고, 하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모인 그 민족도 어떻게 되느냐?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몰아내던 사람들이 맨 처음에는 기개가 당당하고 늠름하고, 천하가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고 행복하게 나왔지만, 가다 보니 나중에는 하늘 백성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에 선다는 거예요, 더 비참한 자리. 그러거들랑 때가 온 것을 알라는 거예요. 그러거들랑 때가 온 것을 알라구요.
여러분이 지금 한국의 현세를 바라보게 될 때에 어디로 가고 있어요? 이는 탕감역사로서 하늘은 하나의 기준을 세워 준비해 온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그 걸음을 따라오고 있는 거예요. 만일에 대한민국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떨어져서라도 이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넘어가야 하는 시대적인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더더욱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지금이 그래요.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음력 8월까지. 다 넘어가야 돼요. 잘 넘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금년에 못 넘으면 명년에? 그거 안 된다구요. 문제가 심각한 때입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겠어요.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날 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책임과 사명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지대한, 엄청난 천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은 승리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기필코 승리―이스라엘은 승리예요, 승리―의 민족을 개척해 나가는 거예요. 개인적인 승리자, 가정적인 승리자, 종족적인 승리자, 민족적인 승리자, 국가적인 승리자, 세계적인 승리자, 그다음에는 천주적인 승리자로서 7단계를 넘어가야 돼요, 7단계.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운명에 처해 있느냐?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 이게 제일 문제예요. 하늘은 오늘날 지상을 대해서 부르고 있나니 최후의 무대는 어떤 무대냐? 하늘땅을 대신하여 싸움터를 마련하고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종족을 어떻게 길러 나가느냐? 이것이 하늘이 바라는 최후의 목적점이예요. 민족, 국가가 문제가 아니예요.
개인적인 싸움에 지치지 않고 가정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종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종족적인 싸움에 지치지 않고 민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또 민족적인 싸움에 지치지 않고 국가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국가적인 싸움에 지치지 않고 세계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이예요, 복귀의 노정.
그럼 이 싸우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하냐? 싸우는 데에는 군대가 필요해요. 군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병이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무엇이 필요하냐? 정병이 필요하다, 정병이. 하늘은 어떤 정병을 원하느냐? 이 정병을 세워 가지고 일시에 '개인적인 승리를 결정지었다. 가정적인 승리를 결정지었다. 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적인 승리를 결정지었다'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최후의 전쟁이예요, 최후의 전쟁. 이것이 주님이 와서 하는 전쟁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이 오기 전에 이 땅 위에 있던 선조들은 어떻게 됐느냐?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 위에 서 있지 못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적인 전쟁을 해서 원수들을 무찌르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하늘편의 백성들을 세워서 새로운 천국을 완성해야 되는 거예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 위의 모든 성도들은 하나의 나라를 세워야 돼요. 그래서 하늘이 어느때든지 명령할 수 있는, 세계적인 사탄세계를 향하여 진군을 명령할 수 있는 정병으로서 되어 있는 하나의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의 자리예요.
기독교인, 하늘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있으면, 그 국가의 민족이 이런 정병으로서 승리를 갖추어, 하늘이 택해서 명령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의 기준이 되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되어 있어야지요. 그런 믿음을 세우고서야 비로소 하늘이 직접적인 명령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기준을 세운 후에 하늘은 주님을 보내 가지고 세계적인 심판을 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그때까지는, 국가적인 기준을 닦을 때까지의 기독교 역사과정은 비참뿐이예요, 비참. 찢기고 뭐 기름가마에 튀기고 목 베이고…. 세상의 천가지 만가지의 비참한 역사가 여기에 다 들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개인도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해서 역사적인 비참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그런 역사적인 전통의 터 위에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본래 옛날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주권을 대신한, 국가를 대신한 하늘의 정병 부대를 예수 앞에 고스란히 상속했더라면 예수는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스라엘이 이렇게 안 나눠지지요. 그때 다 복귀됐을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국가적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면 그런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의 형을 통해서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은 이 국가 전체의 정병의 이념을 완결시켜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 이것이 안 되어 있을 때는 이 민족은 망하는 겁니다. 재차 망하는 거예요.
역사적인 이 국가기준에 있어서 하늘이 세워서 역사할 수 있는 정병의 기대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오시는 재림주님을 맞을 수 있는 어떤 한 특정한 국가가 국가로서 이 기준이 되어 있지 않게 될 때는, 이 국가 이 민족을 쳐서 재차 탕감하는 역사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민족은 비참한 민족이예요. 될 것 같지만 안 되게 돼 있어요. 정권이 교차되면 교차될수록 자꾸 땅에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국가적인 기준을 대표한 하늘의 참다운 성도들은 죽도록 고통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보라구요. 복귀역사가 그렇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실체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실체를 아버지 앞에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예요. 복귀역사가 그렇습니다. 제물을 드릴 수 있는 때가 지나가게 되면 실체를 세워야 할 때요, 실체시대가 지나간 후에 비로소 하늘이 강림하는 거예요. 복귀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때는 어떤 때냐?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만물을 원하는 때가 아니예요. 물질을 원하는 때가 아니예요. 지금 때는 자녀를 원하는 때요, 백성을 원하는 때입니다. 사람을 원하는 때예요. 사람을 원하는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물질을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물질보다도 사람을 중요시해야 할 때라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미국 같은 나라가 그래요, 돈으로 앞서려고 하다가는 망한다는 거예요. 지금 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돈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거예요. 무엇 갖고?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세계를 위해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만민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주었습니다. 아들을 완전히 버린 사람은 세계를 완전히 받은 사람이예요. 이는 땅을 받은 사람이요, 하늘을 받은 사람이요, 자기 자신을 찾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지금은 끝날이 가까워 온 연고로 물질을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때는 지나간다는 거예요. 요거 지나간 다음에 사람을 중심삼고 논의하는 때도 지나가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이념을 가지고…. 이념의 중심은 하늘, 하나님! 문제가 거기까지 올라간다구요.
이러한 복귀역사를 거쳐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또 대표적인 국가의 입장에 선 이 나라 이 민족은 어떻게 되느냐? 전부 들이 맞아야 돼요. 종교적으로 파탄을 당해야 되고, 여러분의 인권의 기준이 달라야 돼요. 전통이고 무엇이고 다 깨져 나가는 거예요. 전부가 들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인되면 비참한 것은 지나가고…. 이것이 국가적인 기준에서 평면적으로 볼 때에는 비참한 것이지만, 내적인 인연으로 볼 때에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맞는 데는 어디에서 맞고, 비참한 자리에 서는 데는 어느 자리에 서느냐? 인간세상에 서지 말라는 거예요. 하늘편에 자리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도상에 있어서 연결된 이 승리의 기반 위에 그 민족을 통하여 민족적인 정병의 기반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재차 그런 활동을 거쳐서 탕감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국가, 그러한 민족 앞에 앞으로 오실 주의 뜻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 성도는 더 비참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 사탄세계에 있어서 끝까지 맞고 그것을 벗어나 가지고야 치게 돼 있는 거예요. 그게 철칙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 민족 앞에, 수많은 교단 앞에 핍박을 받았어요. 깨깨 받아 나왔어요. 아는 사람으로서 통일교회 욕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그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늘이 치기 전에 먼저 저버려야 돼요. 물질을 저버려야 되고, 일족을 치기 전에 먼저 저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제물입니다. 제물이 뭐냐 하면 치기 전에 먼저 드리는 거예요. 요구하기 전에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도상을 거쳐 나가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런 환경을 당하여서 지금까지 전진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느때나 말하기를 깨깨 당하라고 했습니다. 백 퍼센트 당해라 이거예요. 불평없이 당해라 이거예요. 요것이 반대로 적용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공격할 때 내가 불평을 안 했으니, 너희들도 그런 때를 당해서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런 대우주 심판의 권한을 세울 수 있는 하늘의 내적인 실체의 요건들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아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앞으로….
선생님이 벌써 얘기하지 않았어요? 두고 보라구요. 이 나라 이 민족이 얼마나 먹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벽돌담 쌓고 뭐 잘살 것 같아요?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날이 오나, 안 오나? 그래 가지고야 무슨 판도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때가 오기 전에 그 놀음 하라는 거예요.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요, 지금? 이 한국 실정을 가만 봐요.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와요, 안 따라와요? 「따라옵니다」 틀림없이 따라오거든. 따라온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들이 여기에서 느껴야 할 것은, 우리들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을 포섭하자는 것입니다. 이 길이 다른 겁니다,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을 포섭하자. 과거에는 아벨적 입장에서 가인한테 쫓기고 몰림을 받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을 포섭하자는 거예요. 맞고 죽어지는 아벨이 되지 말고, 맞고 나서 때린 사람을 자연굴복시켜 하늘 앞에 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기성교회를 찾아가는 거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말하기를 '통일교회가 3년 동안 가만히 있더니 왜 기성교회를 찾아오는 거냐?' 한다구요. 무엇 때문에 기성교회 무리들을 찾아가는 거예요? 반대를 하더라도 찾아가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명령권 아래, 이 3년노정이 끝날 때까지 부딪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놀음을 하는 겁니다. 앉아서 욕을 먹고, 앉아서 핍박을 받았다구요. 우리는 울타리 안에서 욕을 먹었어요. 이제는 정면적으로 부딪친다는 겁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욕을 해라 이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기성교회와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원수시하면 안 되겠단 말이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대해 가지고 원수시해요. 사실 무섭단 말이예요.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움직임 앞에 흡수됩니다. 이걸 자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 대통령도 우리의 이념권 내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하고 있는 거예요. 일본은 어때요, 일본? 일본의 수상도 우리의 이념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자신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탕감복귀역사니 온다 이겁니다. 지금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기성교회 목사가 이곳에 와서 십 년을 몽땅 바쳐 가지고…. 세뇌해 보라는 겁니다. 와서 무슨 웅변을 하든, 어떤 부흥강사가 와 가지고 통일교회 신자들의 사상을 마음대로 요리해 보라는 거예요. 십 년을 해도 못할 겁니다. 통일교회 선생님한테 와 가지고 3주일 동안만 맡겨 보라는 것입니다. 3주일 동안만. 뭐 많이도 필요 없어요. 3주일 동안만 맡겨 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서운 거예요. 이거 통합하자는데 왜 막아요? 하늘은 동서남북으로 뚫고 들어가야 돼요. 막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두고 보라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도 그렇잖아요. 우리 통일교회가 출발해 가지고 자유당 때 얼마나, 민주당 때 얼마나…. 국민들이 우리 고와서 지금까지 이렇게 둔 거예요? 이젠 떼거리가 생겼다구요. 우리는 한국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과 서구라파에서는 독일이 문제예요. 사탄괴수들 아니예요? 하늘편적 아담형, 사탄편적 아담형이라구요. 지금 선생님은 4개 국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일본하고 독일하고 미국하고 그다음에 영국하고,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갈라진 남북한, 많이 필요 없어요. 많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요 네 개 나라만 중심삼고…. 요건 남성 국가, 요건 여성 국가이지요? 그런 원리 배웠지요? 일본은 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天照大御神)라는 여자 신을 섬긴단 말이예요. 미국은 천사장 국가이지요? 그렇잖아요? 영국에서 나왔거든요. 천사장이 해와에게서 나왔다 말이예요. 이게 소생, 장성, 이게 완성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한국에 있어서는 공산정부, 남북한을 어떻게 통일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정가(政街)에서도 문제시하지만 통일교회에서는 더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 여러분들 지금 움직이는 것은 그때 써먹으려고 하는 거예요. 기도 빨리 해야 돼요. 가만 보면 참 재미있거든요. 우리의 뜻이 여기에 지금 뿌리 박고 있는 거예요. 잘 벌어질 것이다, 이놈 잘 벌어질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싸움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모택동? 흐루시초프? 두고 보라는 거예요. 제일 문제가 남북통일을 어떻게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나라 위정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지금 정계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아요? 때가 지금 그러한 때예요.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사람들이 한국에 있어서 핍박을 받는 통일교회 교인들인 것입니다. 제일 괴로운 무리입니다. 옛날에는 말이예요, 옛날에는 어디 가 가지고 통일교회 얘기 못 했어요. 전도 나가서 통일교회 얘기했어요? `당신 어느 교회에 있소?' 하면 우물우물우물…. 통일교회 교인들 그런 지나간 얘기 들으면 가슴에, 뼈에 사무치지 않아요? 뼈에 사무치지 않느냐 말이예요? 여러분 그거 생각해야 돼요. 욕을 먹고 쫓김을 받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편안하게 잠을 자요? 잠을 자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복수 노정이예요. 여학생도 정병으로 나서야 돼요. 우리는 그런 하늘의 정병입니다, 정병.
여러분, 지금 한국 국군이 60만 명이라고 하지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귀할 때 몇십만이 했어요? 「60만」 나는 실감적으로 느껴요, 실감적으로. 여러분에게 어떻게 불을 달아 놓겠느냐? 그러면 이북은 문제없다는 겁니다. 엄청난 문제가 지금 국가기준에서…. 두고 보라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사명이 통일교회만…. 통일교회 선생님으로 말하면 종교가 같지요. 종교가라는 말을 어떤 의미에서는 제일 싫어합니다. 어디 가서 구경을 해도 모가지를 쳐 버리고 배통을 찔러 당겨야 시원하다는 말이예요, 옳지 않은 녀석들은. 그렇지만 참고 나가는 거예요. 끝까지 참고 나가는 거예요. 동녘에 태양빛이 솟아올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궤도를 따라가라는 거예요. 북방시대를 지나서, 신문명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북방시대를 지나서 남방시대를 거쳐서 동방으로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한 결과의 때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 이때가, 이 환경이 점점 무르익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더욱 내적으로 결의하고 외적으로 결의해야 됩니다. 밤잠 잘 수 없는 거예요. 선생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마음이.
그래서 하늘은 정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정병은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정병이 아니예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이 지구성을 살리기 위한 정병입니다. 하늘은 역사 이래에 최고의 정병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행군나팔을 불며 전진하는 그 행군 앞에는 무적이예요. 승리 아닌 전진이라는 것은 없어요. 이스라엘 민족 앞에 가나안 7족이 당해 냈어요?
여러분, 가만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언제 이 지구성 전체를 때려부수고 행군 나팔을 불어 봤어요? 이 악한 세상을 심판해 봤어요? 개인적으로도 못 해봤어요. 지금까지 지지리 패잔병이예요. 유격전밖에 못 했단 말이요, 유격전. 몰려다니고, 지지리 못나게. 여러분은 그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젊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젊은 사람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의 평균 연령이 20, 30이예요. 이거 왜 이러냐?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따라가기가 힘들거든요. 따라가기가 힘들다구요. 이것을 알고 나서는 안 믿고, 안 갈 수 없는 거예요. 마음이 그래요. 그냥 있으면 밥을 한 번 못 먹어요. 이상하다는 거예요. 딴 병이 걸렸어요. 남들같이 움직이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정상입니다. 움직여야 편하지, 욕이라도 한번 먹고, 어디 가서 쫓겨나 가지고 엎드려서 눈물이라도 짜고 들어와 앉아 있어야 편하게 되어 있거든요. 선생님 자신도 그런 거라. 오늘 내일 그저 그냥 그 모양으로 넘어가게 되면 클클해서 못 견디겠거든요. 바윗돌에라도 가서 들이 박히고 꺼풀이 벗겨지든가 하는 놀음을 해야 되게 돼 있어요. 통일교회 섭리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때는 어떤 때냐? 민족적인 경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매를 맞고, 핍박을 받고, 조롱받던 모든 것을 사탄세계를 대해 일시에 복수 탕감할 수 있는 시대적인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시대에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들이 이번 하계 기간에 뭐하러 나가는 거예요? 「전도」 전도, 여러분이 전도하기 위해서는 별의별 역사가 다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통일교회 선생님이…. 탕감기준, 여러분 중에는 탕감기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 때는 통일교회 교인으로서는 제일 위기예요. 제일 위기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있어서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그때가 제일 위기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이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위기요, 기독교, 기성교회에 있어서의 위기요, 이 나라에 있어서의 위기요, 세계적인 위기의 때라는 거예요, 지금 때가. 한꺼번에 전부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러한 문제를 책임지고,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탕감복귀 역사라 했으니,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해서 고스란히 제물 될 수 있는 무리가 이스라엘 무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승리를 닦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제물시대, 가정적인 승리를 닦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제물시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개인적인 승리를 해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개인적인 승리를 찾아 가지고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개인이 승리를 하게 한 것은 놀고 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개인을 하늘편에서 승리시켜 놓고는 뭘할 것이냐? 개인으로서 가정의 싸움을 책임지게 하기 위한 거예요.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하늘이 나를 불러 세워서 개인적인 승리를 하게끔 만들어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쉬게 하고, 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복을 못 받았습니다. 주님이 와야 무슨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면류관 받을 생각을 하고 있지요, 끝날이 오면? 상금, 지금까지 상금을 못 받았어요. 지금까지 전부 다 보류예요, 보류. 왜? 아직까지 끝이 안 났거든요. 세계적인 승리자가 누가 될 것이냐? 아직까지 승리자가 안 나왔거든요. 그 승리자는 그 민족을 대표하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그 국가가 나올 때까지는 보류예요, 보류.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우려고 했는데, 이걸 모르고 전부 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망쳐 버렸어요. 그래서 개인 승리한 야곱도 깨져 나갔고, 가정도 깨져 나갔고 모세가 터닦은 것도 전부 다 깨져 나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가 인계받아 개인적인 탕감, 가정적인 탕감을 재차 해 나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해 나올 것을 이스라엘 민족, 한 종교, 한 방향으로 해야 할 것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탕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적으로 유리고객하는 거예요, 천대받아야 돼요. 천대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유대민족' 하면 좋아해요? 그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면 개인이 승리해서 뭘할 것이냐? 가정의 시련을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승리를 해서는 뭘할 것이냐? 종족적인 싸움터에 나가서 승리하라는 거예요. 종족적인 승리자가 되어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민족적인 터전에 나가 싸워라! 민족적인 승리 터전을 닦은 다음에는 국가적인 기준 앞에 나가 싸워라! 그걸 알아야 돼요.
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요. 예수 믿고 복받고 천당 가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사람들이 믿는 대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복잡합니다. 내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스무 고개예요. 복잡하거든. 한 고개가 마지막 고개인 줄 알고 갔는데 캄캄하다 이거예요. 그래, 몇 고개냐? 열두 고개예요, 열두 고개. 뭐 한국 민요에 아리랑 고개가 열두 고개라고 하지요? 왜 열두 고개예요? 주님이 찾아오실 고개를 가기 위해서입니다. 참, 이런 노래를 부르는 민족, 그 실감이 난다는 거예요. 춘하추동도 열두 달이고,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거느렸습니다. 열두 사람을 거느리던 열두 고개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저 믿고 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의 역사는 세계적인 복귀역사예요. 하늘땅 전체가 승리의 복귀의 한날을 계획하고 나온 연고로 그날까지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을 찾아야 되겠고, 수많은 교단을 잘라 버리고 파괴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목적을 위하여 나가는 무리를 일깨워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입장이냐? 민족적인 시대에서 국가적인 시대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 역사를 하는데 과거에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종족, 종족으로부터 민족, 민족으로부터 국가, 국가로부터…. 이렇게 오랜 기간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던 것을 국가가 참다운 무리를 대신하여, 이것이 종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횡적으로 벌어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딱 나오는 거라구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심) 탕감복귀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탕감복귀가.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을 찾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가정적인 승리의 한날을, 가정적인 승리의 한날을 찾았으면 종족적인 승리의 한날을, 종족에서 민족 국가까지…. 통일교회면,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는 것은 개인적인 출발로부터 가정적인 기준을 거쳐 종족, 민족을 대결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들이 맞아라, 맞아라! 사탄세계에 있어서 6천 년 역사적인 모든 것, 비참한 것 다 벌어져라, 벌어져라! 그래도 꺾이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 거예요. 얼마나 비참해요?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40년 이상을 지내왔지만 아직까지 타향길을 가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이때에 있어서 당당히 앞에 나가 가지고 이제는 터놓고 '통일교회 교인처럼 나가지 않으면 이 나라가 살 길이 없다'고 말할 때가 왔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고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신문에 보도하고 선포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무슨 뭐 재건운동이니, 무엇이니, 인간적이니…. 해봐라 이거예요. 통일교회 청사진은 통일교회 이론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사실 그렇다구요. 안 된다 이거예요. 이제는 공공연히 전부 다 문제시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일으키고,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까지 커 나옴에 따라 하나의 직계 단계의 개인으로부터 민족적인 사명의 짐을 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런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 자가 나오면 종족ㆍ민족.국가를 대표해 가지고 전부 다 여기에 끌어들이는 거예요. 알겠어요? 개인을 여기에 전부 다 끌어들이고, 가정을 여기에 전부 다 끌어들이고, 종족을 여기에 전부 다 끌어 들이고, 민족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이게 탕감역사입니다.
그러려니 여러분들이 고통을…. 제물은 뭘하는 거예요? 비참해요. 털이 길면, 묵은 털이 있으면 다 뽑아 버리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가르는 거예요. 피를 흘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비참한 거예요. 최고의 비참한 자리로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이 알다시피 축복가정들…. 여러분 그래요. 이 축복가정, 여러분들 가만 생각해 봐요. 보라구요. 축복해 주면 어떻게 되느냐? 아담 해와 타락 직전의 단계에 복귀되는 거예요. 그다음엔 여기까지 완성 단계는 남아 있어요.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뭘할 것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깨우쳐 가는 거예요, 이 과정은. 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한 모든 내적 정을 전부 다 여기에서 체득해야 돼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땅 위에 보내 가지고 복귀역사를 책임지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축복받은 가정도 사탄세상에 가 가지고 독생자들을 제물로 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을 업고 다니면서, 요셉이 마리아하고 애급에서 피난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생활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그래서는 안 될 아들딸들이 굶는 것을 볼 때에 '아버지여, 인류를 위해서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니, 이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여, 이를 통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녹음이 잠시 끊김)
실체로서 자기들은 예수와 성신형이고, 이 아들딸은 오시는 주님과 같은 입장에 세워 가지고 이 완성고개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 말이예요. 그런데 '어, 축복받았으니…' 그래서는 안 돼요. 미완성에서 대결을 하겠다고? 꺾여 나가는 거예요. 꺾여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사람은 제일 희생하라! 고생해라! 이게 선생님주의예요. 선생님주의이자 하나님주의예요. 고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을 이런 시대에 제일 비참한 자리로 내모는 원칙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느냐? 참고 나가 봐라 이거예요. 몇 해만 지나 보라구요, 몇 해만. 여기서 지도하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기해 먹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을 농락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안 하다가는 후회한다 이거예요. 안 하고 이 7년노정, 7년 기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7년노정 못 가게 될 때는…. 보라구요. 왜 21년인지 알아요? 7년노정 못 가게 되면 내려가지요, 7년 동안? 올라가요? 내려가지요? 내려가니 21년 안 걸릴 수 없는 거예요.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다음 7년 기간이 생사의 결판을 짓는 기간이라는 거예요. 둘째 번인 이런 입장에 서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선생님도 이 길을 나올 때 7년 계획이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21년 가는 거예요. 4년 노정이 끝나면 만 21년이예요. 하늘은 전부 다 공식적인 섭리를 하는 거예요. 14년 종결이 1960년입니다. 여러분 야곱노정 배웠지요? 뭘해야 되느냐? 그걸 지나고 난 후에 여러분들이 축복기준을 세워 가지고 만물복귀기준을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아들딸 찾아지는 거기에는 모든 만물은 자연히…. 그렇기 때문에 사업대원이니 이런게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21년이 왜 걸려야 되는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7년 기간에 안 되면 여러분은 돌고비길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이제 여러분 7년 기간이 끝난 후에는 뭘할 것이냐? 선생님이 명령을 안 합니다, 그때는. 전도 나가라는 얘기 절대 안 해요.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고…. 이제는 뭘할 것이냐? 원리를 깨우치는 겁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복귀의 책임을 지고 어떻게 걸어왔으며, 이 땅 위에 탕감역사를 세우기 위해서 어떤 책임을 해 나왔다는 것을 세밀하게…. 실체 복귀 탕감하는 실체적인 노정이 안 나와 있어요. 나와 있어요? 나와 있느냐 말이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에게 어떤 사명적인 책임이 있다면 선생님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역사적인 탕감역사를 했는지 아느냐구요? 다 모르거든요. 이것을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가르침을 받고 나면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가라 마라 할 것도 없어요. 거기에는 몇 개월은 뭐 하고, 몇 개월은 뭐 해야 된다는 것이 딱 단계적으로 나와 있어요.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안 가게 되면 세계 사람들이 가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접 명령을 받고 있는 그 자리에서 같이 보조를 맞추어 하늘의 거룩한 성전을 쌓으라는 거예요. 거룩한 성전이예요. 거룩한 성전 건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성전이예요. 그래서 바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놈들을 내가 보면 말이예요. 내가 보게 되면 참, 연구 대상이예요. 세월이 오는지 가는지….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보라구요. 오늘날 우리 이념이라는 것이…. 여러분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각해도 괜찮아요.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 복귀역사라는 것이 6천 년이 지났어요. 이 기나긴 역사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의 일대라는 것은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한강다리 건너갈 적마다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역사적인 이 복귀, 말하자면 타락한 일생을 복귀해 주려는 흐름 가운데, 하나님 복귀의 이 운세 가운데 선생님의 일생이라는 것은 요만한 축대로서 흐르는 한강물을 발벗고 건너가는 순간과 맞먹는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게 느껴진단 말이예요.
그런 찬스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만일 옛날에 알았더라면 수많은 우리 선조들은 그 길목에서 백골이 되어 태산과 같이 되었을 것이 아니냐?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태산이 되었을 것이 아니냐? 그 한때를 맞이하여, 그런 기간에 있어서 복귀세계에 대하여 탕감의 제물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수천억의 영계에…. 오늘날 이 거룩한 뜻을 위해서 수천 년 동안 얼마나 희생되어 갔나요? 그 사람들이 영계에서 부러워하지만 할 수 없는 놀음이예요.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나는 여러분과 같이 그렇게 있지 않는다'고 하는 영인들이 많다구요.
여러분, 영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요? 영계가 얼마나 땅을 대해서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머리들이 전부 다 돌머리가 되고 눈들이 전부 다 봉사가 되어서 알아야 말이지요. 영계를 통해 보라구요. 통해 보라구요. 측량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 선생님과 비교해 보면 마찬가지예요. 무엇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은 앞으로 세계적인 문제의 인물이 되는 거예요. 문제 안 되면 내가 문제를 일으킨단 말이예요.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 되게 되어 있어요. 지금 가만히 있으니까 그렇지 왜, 왜 문제가 되느냐? 10년 전에 말을 했으면 10년 후에 언제든지 그 말대로 되는 거예요. 그 말대로 된다는 겁니다. 자신 있는 말을 했다구요, 지금까지.
이 통일교회 패들 이렇게 뭐 누구의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아니예요. 얼마나 깍정이 패들이예요. 눈들 보면 전부 다 모밀눈이야, 새우눈이 돼 가지고 누구 말 듣게 안 되어 있거든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잘 따라가지요? 안 따라가게 안 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거 연구해야 돼요. 연구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연구 안 하면 다른 민족이 와서 연구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내가 오늘도 어디를 갔다 와서 그런 이야기를 좀 했어요. 여러분이 지금 이런 평면적인 환경에서 말씀을 듣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고 이러면서도 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을 때가 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저런 사람들을 대해서 일을 하라고 명령을 해야 되나! 저런 것들을 대해서 명령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해요. 속으로 요즘에는 '보자, 보자!' 이런 마음을 가집니다. 그거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만들어 놨단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목을 매고 기도 해봐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거짓말 하나. 생명을 걸어 놓고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거짓말을 하나. 만약에 내가 사탄편에 있으면서 그런 말 했다가 기도해 봐 가지고 들통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거 되겠어요? 자신 있게 말하는 겁니다.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이런 사명적인 시대를 향해서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 환난시대는 다 지나갔어요. 이제는 지났어요. 약간의 무엇이 있을는지는 몰라도…. 시대적인 이런 일을 하는 데 여러분들이 자유 천지에서 옛날에 한 많았던 복귀의 길에 슬픈 눈물이 가슴에 잠겨 있으니, 억울했던 분이 가슴에 맺혀 있으니 어디 가서 풀 거예요, 어디 가서 풀 거예요? 오늘날 한스러운 길을 걸어온 것은 왜 걸어왔느냐?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세우기 위한 것이요, 당신이 사랑하는 수많은 아들딸을 아버지 앞에 세우기 위해서 나섰던 걸음입니다. 그런 걸음으로서 출발하였으니 끝이 날 때까지 그 목적을 달성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죽어야 결심한 길을 가는 사나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때가 이런 때인 줄 알고 총탕감적인 사명을 하여야 할 이런 시대에 들어오느니만큼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을 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나가면서 싸워야 되는 거예요. 이제 몇 고개 안 남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겠지만 이제 설명해 줄 때가 와요. 전부 다 설명해 줄 때가 옵니다. 아직까지는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을 못 해요.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공식노정이 딱…. 이 세계정세면 세계정세가 어떻게 될 것이냐? 그것은 빤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원리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에는 흑백문제가 문제 되지요? 미국은 들이 맞아야 돼요. 두고 보라는 거예요, 어디 수습하나. 검둥이가 누구의 후손이예요? 함의 후손이지요? 종의 종이 된 거예요. 종의 종이 된 것은 한때를 지나갔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책임 못 하게 되면 그렇게 돼 들어간다는 거예요. 시대가 참, 재미있지.
선생님이 그런 거 저런 거 다 생각하고, 모르긴 하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은 몸뚱이는 하나이지만서도 큰 책임을 졌다면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뭐 미국 사람들이 원조해 준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전부 다 가져가는 그런 놀음 해보라는 거예요. 점점점 살길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너희들은 돈 가지고 싸워라. 나는 미국 사람을 빼앗아 온다' 하는 거예요. 이게 지금 선생님의 작전입니다. 일본도 지금 뭐 돈 때문에, 뭐 경제니 무엇이니 전부 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을 점령하자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작전이예요. 선생님은 그런 입장에서 심각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할 때에 이런 기도를 해요. 세계적인 누구, 대표가 있으면 싸움 기도를 하는 거예요. 이런 발판을 떡 세워 놓고…. 이런 기도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늘이 원치 않는 이 세계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싸움을 해야 돼요. 영적으로 싸워서 때려눕히고 실체로 공격하는 거예요. 그게 지금 통일교회 작전입니다. 이렇게 하면 영적으로는 벌써 팻말 꽂은 거거든요. 쳐라! 이것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담대하게 실제로 해보라는 거예요. 그래 통일교회는 실제로 치는 것입니다.
이번 합동결혼식도 선생님 말대로 전부 다 했으면 선생님이 고생 안 합니다. 선생님 말 들었으면 벌써 미국 갔지요. 말들을 안 듣고 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상당히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저 뭘할 때는 벼락같이 해 버리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느냐? 벌써 복귀 과정에서 영적으로 팻말을 꽂아 놓은 거예요. 냅다 밀어서 한 놈이라도 그저 가겠다는 결심만 하면 가는 거예요.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신령한…. 책임 안 진 사람들은 몰라요. 여러분이 사탄을 이렇게 수습하고 하늘 앞에 제물을 제물 드리는 싸움을 하게 될 때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는 몇백 년 걸려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영적 승리의 기반을 그저 숨도 안 쉬고 척…. 여러분 다이빙을 하는 것을 볼 때, 그저 죽겠으면 죽고 터지겠으면 터져라 하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건 요런 단계예요. 그래 가지고 들이 맞추는 날에는 천 년, 몇백 년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영계에서 얼마나 환영하는지 알아요? 사실은 그런 맛을 알고 신앙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모험길이예요, 모험길.
그래, 통일교회 선생님은 지금까지 영적인 기준에서 모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체 기준에서는 아직까지 모험을 그렇게 많이 못 했어요. 앞으로는 그럴 때가 올는지 모르지요. 그렇게 알고…. 민족적인 사명을 하여야 할 개인적인 한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깃발을 들고 행군 나팔을 불어야겠습니다. 세계적인 이 복귀의 길을 거쳐 환영할 때까지 우리의 나팔소리와 우리의 행보 소리를 그치지 않고 사탄 도성을 섬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가 국가적인 기준에서 훈련을 하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무대에 당당히 나서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제2세를 필요로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2세? 이 민족 가지고 안 되게 될 때에는 삼각작전을 해야 됩니다. 이제는 외적인 발판을 이용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예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이번 전도 기간에 있어서는, 개척 나가서는….
이번이 몇 회째예요? 회수로 몇 회째예요? 「8회째입니다」 8회째지요? 「예」 전부 다 하면 몇 회나 될 것 같아요? 전부 다 헤어 봤어요? 몇 회나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알고, 때를 놓치지 말고 여러분들이 이번 한 번에…. 여러분이 책임지는 때가 왔으니 맡겨진 하늘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알겠어요? 「예」
원래는 선생님이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는 말이예요, 이 삼천리 반도를 전부 다 총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요. 지금 때가 그런 때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3년노정 나오더니 전부 다 지쳤거든요. 이런 대중 부흥회 해 가지고 지역장들이 전부 길들여 놓았어요. 그래서 이번 전도 기간을 통해 명년 일년 기간에 싸울 수 있는 준비를 어떻게 다시 만들어 놓느냐 하는 입장에서 요즘 선생님이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여기 본부가 참 무서운 곳입니다. 여기가 통일교회 본부지요? 「예」 통일교회 본부지요? 「예」 물론 통일교회 사람들이 바라보는 본부는 여기인데 역사적인 본부는 어디냐? 영계의 인연으로부터 역사적인 인연으로부터 인연되어 있는 곳입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이 시대적인 원리가 아니예요. 인연이 길어야 몇 년이지요. 통일교회가 내가 온 다음에 나온 것 같지만, 이 통일교회 역사가 6천 년 이상이예요. 이상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나는 생각해요. 세계의 어느 역사가 제일 기냐? 통일교회 역사가 제일 길다구요.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또, 어느 역사가 제일 가치 있느냐? 무슨 문화재, 무슨 문화성 뭐 어떻고 해도 통일교회 문화재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거예요. 또, 사람을 믿어 보니, 사람 가운데 통일교회 사람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왜 그러냐? 세계에 없는 제일 귀한 역사적인 문화재를 갖고 있는 주인들이예요. 또, 세계에 어느 민족이 갖지 못하는 최고의, 어느 국민이 갖고 있는 사상보다 최고의 천민사상을 주장하고 나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보기에는 안됐지만 제일 귀해요. 제일 귀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다들 생각이 그래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렇기를 바라지요? 「예」 죽더라도 그렇다고 하고 죽어야 됩니다. 숨 넘어가기 전에 '나는 그렇다' 하고 죽어야 됩니다. 그런 자신이 되도록 지금부터 훈련해 나가야 됩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을 죽 생각하고, 앞으로 나갈 것을 가만 생각하게 되면 말이예요, 이미 기울었어요. 이미 기울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앞으로 이제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세계 30억 인류를 전부 다 하늘 앞에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단시일 내에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여러분이 이렇게 해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움직인 그 역사적인 재료, 여러분이 생활해 온 그 모든 행동, 여러분이 뜻을 모아 나온 그 모든 재료를 펴 가지고 설명하게 될 때는 학박사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게 되고, 일국의 대통령도 그 말을 듣게 될 때는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런 재료만 갖추라는 거예요.
여러분을 내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이 뜻을 이루자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새로운 사명적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거예요. 들어오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수습하느냐? 우리의 움직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의 역사를 말하게 될 때에 그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나는 뭘했느냐?'고 자탄하면서 자기 과거를 돌아다보며 후회하고 이제라도 내가 못 가거든 우리 아들딸이라도 갈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할 수 있는 충격을 줘야 돼요. 그런 재료를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필요 없어요, 지금 현재는. 왜? 지금은 탕감시대를 가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수가 적어야 돼요. 많으면 많은 사람이 고생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우리가 움직이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보게 되면 별다른 성과가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움직이는 그 실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뜻 앞에 있어서 그렇게 움직였다는 그 사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많이…. 지금은 평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힘을 다해서 이번 기간에 여러분은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대학생들도 계몽 나가 있지요? 「예」 우리 교회하고 비교하는 거예요. 세상의 대학생들하고 통일교회의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 아주머니하고 비교하는 거예요. 어느 것이 이익 되느냐?
여러분, 아이들 보게 되면, 들에 나가 가지고 무슨 강아지풀 따 가지고 끊기 내기하는 것 봤어요? 질기고 가늘지만 뺑돌아 훑어 가지고 그물을 다 짜요. 안의 것 다 훑어버리고 꺼풀만 남게 해 가지고, 이리 꺾어 보고 저리 꺾어 보고 쫙 손톱으로 훑어가지고 딱 해 가지고, 이놈을 갖다가는 아무리 굵은 것을 갖다 대도 잡아 채면 말이예요, 어떻게 되느냐 하면 굵고 시퍼런 것이 꺾여 나가거든요.
통일교회는 어때요? 기름에 절고 바람에 절고 땀에 절고 절어 아주 힘줄이 되었어요, 힘줄이. 끈기가 있거든요. 1주일을 금식해도 까딱없어요. 이제 조금 더 나가게 되면 또다시 한 번 금식기간이 옵니다. '통일교인들 금식 하자!' 하고 선생님부터 하는 것입니다. 밥 숟가락을 갖다가 거꾸로 꽂는 거예요. 해야지 별수 있어요? 어디, '선생님이 하면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됐어요. '죽자!' 하면 통일교인들은 해야 된단 말이예요. 이제 앞으로는 3년 동안 꽁보리밥 먹자! 협회장은 큰일날 거예요. '죽었구나!' 할 거예요. (웃음) 할 수 없어요. 그러면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 돈 모아 놓은 것은 없지만,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알아요? 이번에도 한 2천 명 이상 동원할 계획입니다. 동원하는데 일전 한푼 월급 없습니다. 월급 없어요. 도리어 돈을 내고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내고 나가는 거예요. 탕감기금이니 무엇이니 내고 나가야 된단 말이예요. 그것 참 별스럽지요? 별스럽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전도를 나가더라도 돈을 내고 나가야 돼요. 그 돈을 가지고 뭘할 것이냐? 이 민족을 살리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왜 해요? 그런 놀음을 몇 해만 하면 되겠느냐? 삼천만 민중이 통일교회 가자는 바람이 불어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해서 7년만 단결해 넘어가게 되면 자리잡는 거예요. 그렇게 안 되면, 21년만 하게 되면 세계문화국을 만들고도 남는 거예요. 내가 자신한다구요. 자신 있는 거예요.
만일에 한국이 힘이 없으면 미국 사람들, 세계 영통인들, 통하는 사람들…. 선생님은 제자가 많습니다, 세계에. 보지 못하고 만나 보지도 않은 제자가 많습니다. 그거 무슨 제자냐? 영적 줄에 달린 제자가 많거든요. 여러분, 그거 믿어져요? 믿어져요, 이게? 「예」 제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의 모든 귀한 것들은 전부 다 하늘의 계획권 내에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하늘이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벼락 같은 돈을 주고 싶은데 왜 안 주느냐? 깨끗이 소제해라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쓰레기통들을 다 치워 버려라 이거예요. 여러분들 살림살이하던 하꼬방집 다 치워 버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 농짜박지, 빈대집 다 치워 버리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깨진 유리조각 다 집어치워라, 숟가락까지 다 집어치워라 이거예요. 완전히 집어치우는 날에는 하나님이 큰일난다는 거예요. 주기는 줘야 할 텐데, 세계적인 그 복을 주긴 줘야 할 텐데 그 그릇에다 갖다 주면 어떻게 되겠느냐? 집안 망신이예요, 집안 망신.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돈이 없나, 사람이 없나? 다 있어요. 여러분들이 문제예요. 한국이 돈이 없어 걱정해요? 돈은 많습니다, 지금. 여기 어떠한 한 일개 부처의 재정 예산을 통일교회한테 맡겨 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얼마만큼 발전하나. 우리는 없는 데서 잘 해요. 없는 데서 발전하는 통일교회 패, 없는 데서 뿌리 박는 통일교회 패, 남은 죽어 자빠지는데 살아서 행진하는 통일교회 패, 이러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이상 망할 권이 없는 거예요. 다 망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 이상 내려갈 데가 없습니다. 그대신 여러분의 마음을 닦고 모든 정성을 한데 모아 가지고 나가야 돼요. 이렇게 1년, 2년, 3년, 4년, 5년 후에는…. 이 나라, 세상이 10년에 망한다면 나는 11년 동안 참아 나오는 거예요. 세계가 망하는데 20년 걸린다면 나는 21년 동안 참아 나오는 거예요. 얼마나 비참할 것 같아요? 여러분들, 그거 생각할 수 있어요? 그거 점칠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큰 싸움을 준비하는 하늘의 정병인 줄 알고 국가적인 무대에서 큰 시련을 받아 가지고, 훈련을 쌓아 가지고 앞으로 세계적인 무대에 나서겠다는 결의 밑에서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하고, 싸우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렇게 3년쯤 정성들여 움직이는 패들은 공부를 못 했더라도 배짱으로 밀고 나가는 거예요. 또, 우리의 이념이, 우리의 원리 말씀이 참 고차적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통일교회 사상을 딱 집어 넣어 가지고 자기가 실제 행동으로 훈련해 놓으면 자리가 잡히는 거예요.
여기, 김권사 어디 있어요? 김권사! 「예」 국민학교 3학년밖에 안 다닌 김권사가 파고다공원에 나가서 소리치면 대학교수들이 와 가지고 이러거든요. (흉내 내시며 말씀하심) 국민학교 3학년 다닌 아주머니가 거기서는 왕이예요, 왕. 말하는 데 있어서 왕초가 됐다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쉴 때에 쉬지 않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여러분의 재산이 되고 여러분의 방파제가 된다는 거예요. 바람이 불어올 때 여러분을 보호해 주는 방파제가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한 기반 밑에 하늘은 안식처를 지닌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의 갈 길을 여러분이 노력해서 닦아 주기를 부탁합니다. 오늘날 뜻 앞에 있어서의 전체 민족복귀 사명 기준의 책임을 세우는 데 있어서 이 내적 책임은 선생님이 하는 것이고 외적 책임은 여러분이 하는 거예요. 잘 모르더라도 행동으로 해 달란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이거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그만둡시다. (판서하심) 통일교회가 이미 출발했지요? 출발했습니다. 이 가운데 10년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많을 거예요. 10년 전의 여러분의 심령 상태와 10년 후의 여러분의 심령 상태가 어때요? 어때요? 10년 전이 나아요, 10년 후가 나아요? 누가 얘기해 봐요. 언제가 나아요? 가만 생각해 보면, 10년 전이 낫다고 다 그럴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10년 동안 선생님이 가만히 있었느냐? 10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발전해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발전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시키려고 하느냐? 여러분에게 왜 나가라고 하느냐? 실적이야 있든 없든…. 여러분, 만약에 어떤 산 임자가 저 산 꼭대기에 가서 소나무 하나를 찍어 가지고 그것을 메고 왕궁에 들어갔다 하자구요. 그런데 그 소나무 끄트머리에 개미 새끼가 붙어 있으면 그것도 왕궁에 같이 끌려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끌려 들어갑니다」 끌려 들어가겠지요? 「예」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활동하는 시대가 있는 거예요. 시대적으로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10년이 되어 들어올 때는 발전하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기는 못 갔지만, 여기에 있더라도 발전해 나온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기는 못 올라갔지만 이 자리로라도 끌고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여기에 가담되어 있지 않은 여러분에게 이 길이나마 없게 된다면 여러분이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이렇게 가 가지고 이렇게 가야 된다는 거예요. (칠판에 그림을 그리시며 말씀하심) 갈 수 있겠어요? 통일교회 교인 같지만 이미 통일교회 문 밖에 있는 사람이 되어졌다는 거예요.
2차대전 때에 말이지요, 어떤 미국 사람이 출정했어요. 국방성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해군이라면 배를 타고 나갔을 거예요. 지중해라든가 남태평양을 가는데, 싸움은 한 번도 못 하고 가던 도중에 독일, 혹은 일본이 전부 항복을 해 가지고 승전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가던 사람들은 참전병이예요, 무슨 병이예요? 「참전병」 승리한 후에는 기쁜 날을 맞이했으니 참전병이 아니더라도 불러다가 그 나라에서 기쁨의 상을 줘야 할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가던 사람들도 참전병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이 7년노정에, 제일 귀한 이때에 무슨 작전을 하든지 동원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하늘은 동원시키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 동원 나가 가지고 통일교회 위신을 납작하게 만드는 패들이 많아요. 전도한다고 하면서 잡아먹는 놈이 많아요. 살리기는 뭘 살려요. 오히려 식구보고 틀렸다고, 아주 전부 다…. 이런 일이 많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서운하지만 승리의 한 날에 있어서는…. 그 총을 쏘기는 쐈는데, 그런 비판이 자기의 장중을 사로잡지만 승리하면 참전병이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단 말이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동원을 시키는 거예요, 될 수 있는 대로. 알겠어요? 이 기간을 놓치게 된다면 여러분이 어렵다는 거예요.
여러분 보라구요. 여러분이 지금 이런 입장에, 선생님이 이런 입장에서…. 기도도 이걸 중심삼고 하는 거예요, 이걸 중심삼고.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말하는 개인, 가정, 종족…. 통일교회는 한 종족을 이루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한 문씨면 문씨,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통일교회는 그런 패라구요. 이것은 각각 잡종들이 모였지만 모양이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한 몸이예요. 무슨 일이든지 통일,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도 죽어야 되고, 가자 하면 가야 되는 거예요. 망해도 같이 망하고 흥해도 같이 흥하자는 거예요. 그런 패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종족, 형제 아닌 패들이 형제가 되고, 친척 아닌 패들이 친척을 이루고 있다는 거예요. 별스러운 패다 이거예요.
이렇게 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이 수많은 세상 종족과 비교해서 누가 참인가 보자 이거예요. 누가 참이냐? 참인가 거짓인가를 어디에서 감정하느냐? 순금(純金)과 가금(假金)을 무엇으로 감정하느냐? 무엇으로 감정해요? 용광로에 집어 넣어야지요? 전부 다 녹여 봐야 돼요. 그 본질이 참에서 나왔느냐, 거짓에서 나왔느냐? 피땀을 흘려 봐야 돼요. 거짓 피땀이냐? 그래야만 된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수많은 종족, 삼천만 민족의 수많은 성씨, 무슨 씨 무슨 씨 전부 다 해 가지고 내가 여기에서 통일 종족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거느리자는 것입니다. 통(統) 자가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림을 받을 통 자이지요?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릴 통 자예요. 직책이 있다구요, 직책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대로 가야 민족이 산다, 통일교회를 믿어야 이 나라가 산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저 눈감고 땅이나 들여다보고 파고 가자는 거예요. 가다 보면 알 날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전체가 그러한 싸움터 위에서 이러한 실력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응원을 해야지요. 우리 대표선수가 나가 가지고 마라톤 경주를 한다면 아슬아슬한 판국에 있는데, 이러고 바라보고 있을 수 있어요? (흉내를 내시며 말씀하심) 애국심에 불타고, 참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아도 그 한국놈을 '이 자식아!' 하고 갈겨 버릴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그래도 모른다면 '이걸 왜 몰라, 이 자식아!' 하고 교육시킨다는 거예요. 그런 판국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가 가지고 박수라도 쳐야지요. 「예」 어이싸 어이싸 박자라도 맞춰 가야지요. 거 믿는 교인이 없더라도 어이싸 어이싸 손뼉을 치라는 거예요. '아버지 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은 할머니들도 불러서 역사 잘 하지요? 나팔 불고 손을 휘두르고…. 그런 놀음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선생님의 계획은 그래요. 앞으로 유사시에는 통일교회의 3분의 2를 동원할 겁니다, 3분의 2. 유사시에는 3분의 2를 동원해야 된다구요. 한 나라에 있어서 유사시에 3분의 1 동원하기도 힘든 거예요. 그 60만 상비군은 몇 분의 1이예요? 5분의 1이지요? 「예」 3분의 1을 동원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유사시에 3분의 2를 동원하는 겁니다. 그래야 돼요.
동원하는 데 있어서도 하늘의 목적을 위해서는 여러분은 사탄세계에 없는 전체 동원까지 나가야 돼요. 탕감복귀가 그런 거예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가느니만큼 때를 놓치지 말아야 되겠어요. 10년 동안 허송세월하지 말고….
통일교회에서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주류라구요. 통일교회 여러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지요, 선생님에게 관심이 많아야 됩니다. 왜? 선두에 서서 치리하고 나가고 있느니만큼 여러분들이 여기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따라 나가야 돼요. 이때에서야 10년 동안을 지냈더라도, 같은 모양이더라도 끌고 나가 가지고 참전시켰다는 조건을 세우고 나가야….
이때에 완전하게 승리하게 되면, 이 승리는 민족적인 승리로 삼천만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승리를 하게 되면 통일교회 승리로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승리, 세계적인 승리로 세워 가지고 삼천만이 전부 다 아벨을 통해서 가인에게 복을 베풀어 가지고 가나안 땅에 복귀해 들어가야 돼요. 이러한 것이 하늘의 복귀역사이니만큼 여러분이 참전했다는 이 역사적인 것을 끌고 나가는 입장에서 가담해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번 기간도 될 수 있으면…. 3년노정을 가만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이미 3년 기간이 지나갔습니다. 7수를 나누면 3수는 하늘수요, 4수는 땅수입니다. 3년 기간에는 하늘의 자리를 찾는 기간이요, 4년 기간에는 땅의 기준을 세우는 기간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참, 아는 사람들은 상당히 초조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이라도 이러한 인연의 조건을 지상에서, 여러분 생활환경에서 남길 수 있게끔 움직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리고, 전도 나가게 될 때 돈이 없어서 못 나간다는 얘기 하지 말라구요. 예수님이 돈 갖고 나왔어요?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돈 갖고 했어요? 생명, 생명을 갖고 한 거예요. 피, 피 갖고 한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 역사는 피로 탕감한 역사예요. 피 갖고, 생명을 갖고 한 것입니다. 돈 갖고 한 게 아니예요. 돈을 갖고 살고 죽는 것은 삯꾼이예요. 아들딸은 돈 갖고 키우는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되면 하늘이 기필코 역사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건 왜? 내가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올 때 하늘이 보호해 주었고, 내가 누구한테도 부럽지 않은 오늘날의 입장에 선 것도 역시 하늘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걸어왔기 때문에, 여러분을 지도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하늘이 나를 키워 왔기 때문에 키움받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가라 하게 될 때 하늘은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이 약속되는 거예요.
왜 약속이 되느냐? 하늘은 3점 역사예요. 하나님과 여기에 지으신 존재가 있으면 반드시 3점 역사, 3점 역사를 해서 직선상에 서야 돼요. 이 3점을 맞춰야만 복귀역사가 시작돼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선생님이 이렇게 됐으니 하늘은 이제 이 인연을 따라 나오는 사람들을 반드시 같이 취급한다는 거예요.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못 먹으면 그 부락의 할아버지라든가 아저씨들, 돈많은 영감들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참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하늘땅이 아는 사람, 하늘땅이 보호해 주는 사람을 굶겼다가는 화(禍)를 당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밤잠을 못 잡니다. 밤잠을 못 자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옛날 얘기 중에 까마귀가 뭐 물어다 주었다는 얘기가 있지요? 그래 선생님의 옥중생활에 있어서도 하늘이 전부 다 운반해다 먹인 역사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라. 인생길에 있어서 제일 바쁜 단계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내가 세우는 거예요.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의 국민이 되어서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고 하늘의 의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잘 싸워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주일날 오후에 배치해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주일날 오후에…. 될 수 있으면 이번에 가담해야 돼요. 이번에 본부 식구들은 될 수 있으면 충남 아니면 경북으로 보내려고 그래요, 충남 아니면 경북.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기도 많이 하시고 움직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아버지, 당신이 수천 년 동안 이 민족을 찾아오시는 발걸음이 얼마나 더디었사옵니까? 얼마나 비참한 걸음을 걸어왔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 선조들이 아버님을 그렇게 박대하고 오늘날까지 하늘을 모시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저희들은 죄송한 마음에 몸둘 바를 찾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숱한 시대를 지나가면서도 아버지께서는 이 민족을 사랑하셨고 불쌍한 이 민족을 긍휼히 보시어서 오늘날 배척받는 무리를 길러내시기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는가를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황공하옵니다. 철 모르는 자식을 불러서 연단의 길을 가라 할 때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막막하였겠습니까? 알지 못하는 개척의 노정 위에서 시달릴 적마다 아버님은 세상은 반대할지라도 내가 있다고 권고하시던 그 걸음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무리들이 가는 걸음 앞에 상속되어 있고, 그들의 앞길, 그와 같은 길은 하늘이 동반하는 길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달릴 적마다, 혹은 산고개에서 허덕이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하늘 앞에 부르짖을 적마다, 아버님, 그들을 붙들어 주옵고 지켜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비참한 역사의 인연을 찾아나선 이들은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하늘만이 저희들의 보호자요, 하늘에만 기댈 수 있고, 또 저희들은 하늘만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무리들이옵니다. 저들은 당신의 귀한 안식처가 아니면 쉴 줄 모르는 그러한 입장에 서 있사옵고, 당신을 모시고 당신과 더불어 천지를 붙안고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한 날의 승리의 날을 맞지 않고는 먹을 것을 잊고 입을 것을 잊고 힘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늘 내일을 다투어 나가는 이 무리들인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그러하옵기에 이들도 그 길을 따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고, 또 그렇게 지도받기를 원하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사오니, 부디 맡아 주시옵소서.
돌이켜 보면 눈물 어린 과거 역사이오나 바라는 소망과 책임과 사명이 있기에 눈물 흘리며 이것을 지나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시 눈물을 닦고, 두 손을 부여잡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던 날부터 하늘 앞에 한걸음 더 다가서야 할 우리 자신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갖추지 못한 우리의 모습은 아버지의 존전에 나타나기에 부끄러운 모습이옵고 찾아오신 주님 앞에 소원의 모습이 되지 못할까봐 심히도 떨리는 마음이오니,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완전한 자는 부끄러운 자리를 통하여서 부끄럽게 하겠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과 더불어 오늘날 저희들의 움직임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 앞에 새로운 봉화를 들고 승리하는 제물 위에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이 떠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이 민족의 운명을 위해 통곡하고, 자유세계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더라도 감사하며 나갈 줄 아는 하늘의 참다운 젊은이들이 되게 해주시옵고, 참된 효자 충신 열녀들이 되게 해주시옵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뵙기에 지금도 제가 민망한 것을 느끼게 될 때, 이들도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기에 민망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부끄러운 처신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길에서 하늘을 위하여 충신의 도리를 세워야 하는 것이 제 책임인 것을 알고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다하여,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길 가기를 자처하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 길에서 아버지 앞에 감사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남한 각지에 널려 있사오니 길이길이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쌍한 행로에서 하늘을 부여안고 울음길을 걸어오는, 그 길을 따르는 그들도 불쌍한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요,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당신이 아시오니,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이념을 붙안고 서로 다른 경지에서 하늘을 위하여, 한 곳을 위하여 눈물짓고 기도하는 그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복귀의 싸움터를 지키고, 하늘의 거룩한 충효의 도리를 닦아 만세 만민이 거룩한 승리의 터전이라고, 우리의 탄탄한 성현이 닦아 놓은 승리의 영광의 길이라고 참을 부르고 따라올 수 있는 이길을 살아생전에 닦아 놓고 갈 수 있는 통일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남아진 이 기간 위에 주님이 오실 수 있는 하늘의 역사를 승리의 결과로서 거두어 주시옵시고, 이 민족 앞에 무한히 주고, 무한히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조건으로 남기고 돌아올 수 있는, 아버지의 역사로 시작하며 아버지의 역사로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 남아진 생애 위에 아버지의 영광의 손길이 길이 길이 떠나지 말고 친히 지키시옵고,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친히 권고하시옵고, 친히 싸움의 노정 위에서 친히 붙드시사 승리의 자리에까지 동참하는 무리들로서 남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말씀 요지> 우리가 선민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신앙의 선조들이 뜻을 받들어 나오다가 최후에 가서 번번이 실수했던 사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과 아브라함 가정을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의 전체 역사에 있어 왔고,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도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이때를 말세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세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심판하시고 이 지상에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면 틀림없이 먼저 어떠한 무리를 택해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택해 세운 그 무리를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책임자를 중심삼고 사명을 맡기실 것인데, 그들은 결코 잘못하여 번번이 실수한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들의 실수를 알면 알수록 우리들은 오늘의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계 앞에 통일교회라고 하는 것이 나타나고, 또 수많은 민족 앞에 통일의 이념이라는 새로운 이념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의 일단을 책임지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은 여러분도 스스로 느끼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책임이라는 것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동시에 통일교회 전체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개체의 책임과 전체의 책임을 합하여 이 민족이 하지 못한 책임을 대신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사명이 이 민족을 위하고 30억 인류를 위하여 하늘이 우리에게 제시한 시대적인 사명이라 할진대, 30억 인류 앞에 책임을 다해야 할 중차대한 임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지고 개인으로부터 교회 전체가 하나되어 이 일을 국가와 세계 무대까지 이뤄 나가려면 결코 순탄한 노정만을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의 복귀섭리 프로에는 어떠한 개인이 승리하기 위한 과정에도 반드시 그에 버금가는 탕감조건이 있습니다. 범위가 작으면 작은 것에 비례한 탕감조건이 있고, 범위가 크면 그 큰 것에 비례하여 탕감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이 종말시기에 있어서 우리에게 책임지워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 사명에 비례한 탕감조건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크면 클수록, 그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비례한 탕감조건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과 통일제단이 지고 있는 책임이요, 사명인 것을 우리는 절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을 찾아 세우는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요, 교회를 세우는 목적은 민족을 세우기 위함이요, 민족을 세우는 목적은 세계를 세우기 위함이요, 세계를 복귀하는 목적은 하늘땅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듯 작은 것을 희생시켜서 더 큰 것을 세우려는 것이 복귀역사의 전반적인 개관인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에서 전체의 탕감조건을 완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더 나아가서 세계적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승패를 걸어 놓고 사탄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무대에서 대결하여 사탄이 ‘더 이상 제시할 조건이 없다.’고 할 때까지 최후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이 통일의 용사들이 짊어질 책임과 사명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30억 인류 앞에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 들고 새 역사의 행군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교회의 모습은 비록 초라하지만 배후의 인연은 창세 전의 이상권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통일의 제한된 환경권을 넘어 전세계사적인 인연이 우리들의 두 어깨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승리해야 되겠다. 우리 교회가 승리해야 된다. 우리가 세계 인류 앞에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여 승리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면 할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희생과 탕감의 내용과 조건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 놓고, 즉 통일교회의 어떤 식구를 대하여 ‘너는 네 개체의 책임을 완수했으니 가정을 대표하여 탕감의 제물이 되라’고 명령하실지도 모르고, 어떠한 개인을 불러 ‘너의 종족을 대표하여, 즉 김 씨면 김 씨, 박 씨면 박 씨의 종족 전체를 대신한 탕감의 제물로서 하늘이 요구하는 승리적 조건을 제시하라.’고 명령하실지도 모릅니다. 또 어떠한 가정을 불러 너희는 하늘 앞에나 삼천만 민족의 가정 전체를 대표해서 탕감의 제물로 나서라.’고 명령하실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떠한 종족을 세워 ‘이 민족, 이 나라, 이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한 탕감의 제물이 되라.’고 명령하실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을 대하여 ‘하늘땅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과 탕감의 책임을 지고 제물의 자리로 나가라.’고 분부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한민족에게 그런 분부를 하신다면 이 민족 전부가 분부하신 대로 나가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나라까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이 복귀역사는 세계적인 승리의 노정을 전개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도 안 들이고 영광을 바라고, 힘을 들이지도 않고 승리의 실적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승리의 실적을 갖고 아무리 영광을 차지했다 해도 그것을 인간 세상에서는 인정할지 모르지만 하늘땅은 공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탕감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에 따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공식적인 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원칙적인 입장에서 헤아려 볼 때에,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교회들 가운데 어떠한 교단이 민족을 대표하여 세계적인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가고 있는가? 통일교회가 만일 그러한 교단의 사명을 하기 위해 나타났다 할진대, 우리 통일교회의 인연은 한민족을 대표하여 세계 인류를 넘어 하늘땅까지 연결된 인연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하늘 앞에 스스로 맹세한 후 사탄을 입회시켜 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드릴 때에 사탄까지도 공인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을 갖춘 실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가 있어야만 사탄이 굴복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개인에서 가정을 거쳐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해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아담 타락 이후 2천년을 수고하여 아브라함을 세우셨고,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을 거쳐 야곱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땅에서 세우게 됨에 따라 비로소 승리의 민족을 세운 것입니다. 이 때의 승리는 야곱 일대의 승리인 동시에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가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에 들어가서 맞아야 됩니다. 야곱이 사탄세계를 대표한 라반 가정에 들어가서 열 번이나 속임을 당했다는 것은 열 번을 맞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하늘 뜻 앞에 설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도 120년 동안 참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120년 후에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을 통고하시면서 노아에게 아라랏산 꼭대기에 배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셨겠는가? 이 명령은 상식적으로 볼 때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를 만들려면 강변이나 바닷가에다가 만들어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산에다가 배를 지으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그 시대의 수많은 백성들, 즉 전체가 반대할 수 있는 자리에 노아를 세우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 중에는 노아를 말로써 심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간 방주를 만드는 것을 보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친 녀석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발길로 차고 별의별 짓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으로 하여금 하고 싶은 짓은 상징적으로나 형상적으로나 다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세운 사람은 사탄세계에서 먼저 때리게 합니다. 사탄세계에서 먼저 때리면 사탄세계를 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먼저 맞게 한 다음에 사탄을 치는 것입니다. 노아도 그랬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한 야곱도 라반의 집에서 속은 다음에 빼앗아 왔고, 모세도 마찬가지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올 때에 물론 메시아로 왔지만, 진정 메시아가 되려면 세상을 심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심판 행사를 하지 못하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왜? 이 땅이 사탄 주권하에 있기 때문에 심판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만왕의 왕의 권한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로서 땅에 왔으면 세상을 심판해야 됩니다.
그러면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탄의 공격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과정에서 아무리 몰리고 쫓기더라도 민족의 지도자였으니 민족과 더불어 몰렸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이 몰림을 당했기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민족과 하나되어 사탄세계 앞에 몰리는 입장에 서야 했던 예수님이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 죽어간 연고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나오는 기독교인들은 역사 도상에서 몰림받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끝날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할 때까지 몰림받아야 합니다. 제2이스라엘의 권한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몰아낸 죄를 청산하는 분별노정을 거치면서 맞아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맞고, 가정적으로 맞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맞고 세계적으로 맞아야 합니다. 지금 이때는 세계적으로 맞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이기에 하늘은 맞는 만큼 복귀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친 만큼 하늘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에 통일교회가 새로운 이념을 부르짖고 나왔습니다. 이 모임과 이 무리가 하늘의 복귀역사노정을 대행하기 위해 나왔고, 하늘의 작전 계획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다 할진대는 먼저 맞아야 됩니다. 몰려야 됩니다. 세상의 모든 핍박과 갖은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민족적인 주의 사상이나 전통적인 국가기준을 넘어 지금은 세계적인 시대이니 세계적인 사상과 주의와 세계적인 기준으로부터 몰림을 받아야 됩니다. 한도가 찰 때까지 몰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교인들의 생활은 천추에 한을 남길 역사적인 비참사가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 민족, 국가적으로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하늘이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 무대 앞에 몰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거기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면 비로소 세계적인 심판의 기준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지금 이 때는 개인적인 시대를 지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향하여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렇게들 말하고 있지요?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지금 때는 시대적인 환경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맞이하던 때와 일치합니다. 한국 실정을 보면 딱 맞습니다. 그러면 하늘을 핍박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몰아내는 이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이냐? 결국 같은 입장에 서게 됩니다. 하늘 백성을 몰아내는 사람은 처음에는 기세가 당당하고 늠름하여 천하가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고 횡포를 부리지만, 나중에는 하늘 백성보다 더 비참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거든 때가 온 줄 아십시오.
지금 한국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 어디를 보아도 탕감역사입니다. 하늘은 하나의 기준을 중심삼고 탕감역사를 준비해 나오고 있습니다. 즉 통일교회가 가고 있는 길을 따라 나오고 있다 이것입니다. 높은 자는 떨어져 내려와서라도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와야 됩니다. 이런 역사 과정을 끌고 가야 할 우리는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제일 위기인 음력 8월까지를 잘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금년과 명년, 그 중에서도 특히 명년이 참 중요한 때입니다. 통일교회가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면에 있어서는 엄청난 천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기필코 승리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이스라엘이란 승리라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승리자, 가정적인 승리자, 종족적인 승리자, 민족적인 승리자, 국가적인 승리자, 세계적인 승리자, 천주적인 승리자 이 7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느냐? 이게 제일 문제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지상을 대해 부르짖고 있나니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무대는 어떠한 무대냐? 하늘땅을 대신한 싸움터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병은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이 민족, 이 국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가정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종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종족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민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민족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국가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국가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세계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러면 싸우는 데는 무엇이 필요한가? 군인이 필요합니다. 정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전쟁을 하려고 하시는가? 이 정병을 세워서 일시에 개인적인 승리를 결정짓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승리를 결정지으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전쟁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는 전쟁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전쟁을 하기 전에 이 땅 위에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 위에 서 있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주님은 세계적인 전쟁을 수행하여 원수를 섬멸해 버리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하늘 편의 백성들을 세워서 새로운 천국을 건설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 위의 기독 성도들은 이 세상에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 어느 때라도 하나님께서 사탄세계를 향하여 진군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는 정병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국가를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를 대표하는 국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국가가 있으면, 그 국가의 민족이 그러한 정병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이 택해서 명령할 수 있는 국가기준이 돼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어 있어요? 어디에요?
하나님은 그런 무리들을 세우신 다음에야 직접적인 명령을 하실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기준 위에 주님을 보내시어 세계적인 심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국가적인 기준을 닦을 때까지 기독교의 역사노정은 비참한 것입니다. 찢기고, 기름 가마솥에 들어가고, 목 베이고, 세상의 천 가지 만 가지 비참상이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여 이러한 역사적인 비참상을 제거하며 주님이 오시기 전에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국가적인 정병의 기준을 갖추어 예수님을 위해 싸웠던들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도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에 다 복귀되었을 거예요. 그러한 국가기준을 대표한 주님이 오늘날 인자로 오신다면, 그러한 국가형을 갖춘 민족을 통하여 오실 것입니다. 그 민족은 전체가 정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또 쓰러지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국가가, 하나님이 재림주님을 세워서 역사할 수 있는 특정한 국가로서의 기준을 갖추지 못하고 정병의 기대를 세우지 못했을 때는, 그 국가와 민족을 쳐서 재차 탕감시키는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민족이 비참한 민족이 안 될 수 있어요? 그렇게 안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안 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정권이 교차되면 될수록 자꾸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국가적인 기준을 대표한 하늘의 참다운 성도들은 핍박과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 노정에서 제물을 드리는 것은 실체를 찾기 위함이요, 실체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함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때가 지나면서 실체를 세워야 할 때가 오고 그 실체를 세우는 시대가 지나간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때는 어떤 때인가?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물질을 원하는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를 원하는 때요, 하늘 백성을 원하는 때입니다. 하늘의 사람을 원하는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물질을 버려야 합니다.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보다 사람을 중시해야 될 때입니다. 이제 돈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이 세계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야 할 때입니다. 세계적인 하나님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 자기의 자녀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요,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요, 하늘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요, 자기 자신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 같은 나라는 돈을 앞세워 나가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오늘날 세계는 끝날이 가까워 온 연고로 물질을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이는 때는 지나갑니다. 물질을 중심삼고 논할 때는 지나간다는 거예요. 이제는 이념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이념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문제가 거기까지 진전돼 나오는 것입니다.
복귀역사 노정에서 이러한 국가적 입장에 선 그 나라 그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이냐? 전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파탄을 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전통이고 무엇이고 다 깨져 나가게 됩니다. 전부 얻어 맞는다는 거예요. 이것을 국가적인 기준에서 평면적으로 보면 비참한 것 같지만, 내적인 인연으로 보면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맞는 입장에 설 때에 그 민족은 만민을 위해서 맞고 만민을 위해서 비참한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상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 편의 비참한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 도상에 연결된 이 승리의 기반, 민족적인 정병의 기반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이 민족이 재차 그런 환경을 거쳐서 탕감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국가, 이러한 민족 앞에 오실 주님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더 비참한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탄세계에서 끝까지 맞고 거기서 벗어난 후에야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이 민족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통일교회를 욕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나가려면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하늘이 치기 전에 먼저 버려야 됩니다. 하늘이 물질을 치기 전에 먼저 물질을 버리고, 하늘이 내 인격을 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제물의 도리입니다. 제물은 치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하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나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연고로 통일교회는 이런 환경 가운데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전진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언제나 말하기를 ‘깨깨(충분히 또는 심히) 당해라. 백 퍼센트 불평 없이 당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적용할 때가 올 것입니다.
너희들이 공격할 때에 우리가 불평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공격할 때 너희들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우주적 심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하늘의 실체적 조건을 여러분을 통하여 세워 놓아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여러분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옛날에 말했지요?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먹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벽돌 담 쌓고 가시 철망 쌓고 잘 살 것 같아요? 두고 보자는 거예요. 줄을 지어 다니면서 누가 뭘 좀 먹고 있으면 ‘혼자 먹을 테냐, 이 자식아!’ 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판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언제까지나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 실정을 가만히 보세요. 우리 가는 길을 따라 와요, 안 따라와요? 틀림없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따라오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을 포섭해야 되는 것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 앞에 쫓기고 몰림받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을 포섭하자는 것입니다. 맞고 쓰러져 죽는 아벨이 되지 말고, 맞고 나서 반대로 때린 사람을 자연 굴복시켜서 하늘 앞에 데리고 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기성교회를 찾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가 한동안 가만있더니 무엇 때문에 또 찾아오는 거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반대해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명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3년노정이 끝날 때까지 부딪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앉아서 욕을 먹고 앉아서 핍박을 받았지만 이제는 정면으로 부딪치자는 것입니다. 욕을 할 테면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징적 형상적 실체적 역사를 알지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든지 기성교회를 원수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뭐 통일교회 문 선생이 무섭다고 한다는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무엇으로 보든지 기성교회는 어차피 우리의 움직임 앞에 흡수된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도 우리의 이념권 내에 들어올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일본의 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수상도 우리의 이념을 갖게 된다고 자신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아 보십시오. 탕감 복귀역사이니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온다 이겁니다.
지금 기성교회 목사에게 ‘당신들 여기 와서 통일교회 신도들의 사상을 마음대로 요리해 보소.’ 하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아마 10년 걸려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선생에게 기성교회 신도들을 3주일만 맡겨 보라는 것입니다. 많은 기간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서워합니다. 그러면서 통일하자는데 왜 막는 겁니까? 하늘과 땅 동서남북 어디든지 거쳐 나가야 됩니다. 막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두고 보십시오.
통일교회가 출발한 이래 자유당 때나 민주당 때, 그리고 지금 혁명정부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좋아서 그냥 두는 겁니까? 이제는 떼거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지 못하는 거지요. 우리는 한국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과 구라파의 독일이 문제입니다. 하나님편 국가와 사탄편 국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은 일본과 미국, 독일, 영국, 이 4개국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 4개국을 중심하여 남북한으로 갈라진 이 한국만 있으면 됩니다. 많은 나라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은 아마데라스오미가미라는 여자 신을 섬기는 해와국가요, 미국은 천사장국가입니다.
한국에 공산주의 이념을 두고 어떻게 남북통일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정치가도 문제삼고 있지만, 통일교회 선생님은 더 문제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때를 대비해서입니다. 가만히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뜻이 여기에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다. 잘 뻗어나갈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싸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모택동, 흐루시초프,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제일 문제되는 것이 남북통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위정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정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요?
오늘날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한국에서 핍박받는 통일교인들이 제일 외로운 길에 서 있습니다. 그래요, 옛날에는 어디에 가서 통일교회 얘기도 못 했잖아요. 전도 가서 통일교회 말이라도 꺼낸 적 있어요? 당신 어느 교회 믿느냐고 하면 그냥 우물우물 넘기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가슴에 한이 맺히지 않습니까? 뼈에 사무치지 않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욕을 먹고 쫓김받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편안하다고 잠을 자서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보상을 받아야지요. 이 나라를 좀먹는 패거리들을 전부 제거해야지요. 우리는 그러한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군인이 60만이라고 하지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떠날 때 몇 십만이었습니까? 60만이었지요? 정말 실감납니다. 이 겨레에게 어떻게 불을 지를 것인가? 북한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엄청난 문제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여러분이 말하는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이 사람은 종교가, 종교가라면 제일 싫어합니다. 어디 가서 무슨 구경을 해도 옳지 않은 녀석들의 목을 틀고 배를 차 버리는 것을 보면 속이 시원합니다. 그렇지만 참아 달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아야 됩니다. 끝까지 참아야 돼요. 동녘의 태양이 때가 되면 솟아오르듯이, 정상적인 궤도만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문명은 남방시대를 지나고 북방시대를 거쳐서 동방으로 흘러왔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때에 우리의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환경이 무르익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더욱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단단히 결의해야 됩니다. 잠 잘 새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병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정병이 아니라 민주와 공산세계, 이 지구를 살리기 위한 정병을 요구하십니다. 역사 이래 최고의 정병들이 행군 나팔을 부는 날, 그 앞에는 무적이요, 승리 없는 진군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가나안 7족이 견디어 냈어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 이 지구 전체를 놓고 행군 나팔소리와 함께 이 악한 세상을 심판해 보셨습니까? 각각 개인적으로밖에는 못해 보셨습니다. 싸움밖에는 못 해 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통일교인의 평균 연령은 23세입니다. 왜? 나이가 많은 사람은 미안하지만 따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뜻을 알고 나서 안 가면 마음이 괴로워서 못 견딥니다. 밥을 못 먹었으면 못 먹었지, 가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입니다. 남과 같이 움직이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상이 아닙니다. 통일교인은 움직여야 편안하고 욕이라도 먹어야 편하고, 쫓겨서 눈물이라도 짜고 들어와야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어제 오늘 늘 그냥 그대로 넘어가면 클클해서 못 견디겠어요. 바윗돌에 비벼서 살갗이라도 벗겨지고 하는 놀음을 해야 편하다는 겁니다. 통일교회 생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 때냐? 민족적인 정병의 기반을 닦아서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때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매를 맞고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아 왔지만, 그 조소하던 사탄세계를 대하여 일시에 탕감할 수 있는 때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느껴야 됩니다.
이러한 시대에 지금 우리는 이번 하기 기간을 통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전도입니다. 그런데 이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별의별 역사가 다 있어야 됩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에 탕감기금이란 것이 있어요. 여기 모인 분들 중에도 탕감기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제일 큰 위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때가 위기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때는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위기입니다.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위기입니다. 한꺼번에 전부가 달라질 때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책임지고 여러분들이 탕감복귀해 나가야 합니다.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해서 제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승리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제물이 필요하고, 가정의 승리를 위해서는 가정적인 제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하늘이 개인을 불러 세워서 개인적인 승리를 하게 하는 것은 개인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인류는 복을 받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왔다 갔으니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줄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못 받았습니다. 보류입니다. 아직까지 끝이 안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부 다 보류입니다, 보류! 세계적인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승리자는 개인으로서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개인으로서 종족, 민족,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승리자는 승리한 민족이 나올 때까지는 보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지만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모두 망쳐 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한 야곱도 깨졌고, 그의 가정도 깨졌고, 모세가 닦은 터전도 전부 다 깨져 버린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이것을 인계받아 재차 개인적인 탕감과 가정적인 탕감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한 줄기 한 방향으로 탕감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기독교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탕감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랑하게 된 것입니다. 천대받고 있어요.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유대민족 하면 모두 좋아하지 않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가정의 시조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승리한 후에는 또 종족적인 싸움터에 나가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종족적인 승리자는 민족적인 터전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민족적인 터전 위에 서면 국가적인 기준에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보면 그저 예수 믿고 복 받고 천당 가겠다고 합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들이 믿는 그대로라면 얼마나 간단하고 좋겠냐구요. 그러나 통일교회는 복잡합니다. 마지막 고개인 줄 알고 넘어가면, 또 넘어야 할 고개가 있고 또 있습니다. 이것이 몇 고개인고 하면 열두 고개입니다. 한국 민요의 아리랑 고개가 열두 고개지요? 그것은 주님이 오시는 고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시대에 이런 노래를 들으면 실감이 납니다. 춘하추동도 열두 달이지요? 예수님도 12제자를 거느렸습니다. 12사람을 거느리자니 12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계적인 복귀역사입니다. 하늘땅 전체를 최후로 복귀할 날을 바라보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수많은 민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은 찾아야 됩니다. 수많은 제단을 잘라 버리고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목적을 위하여 나가는 무리를 일깨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개인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의 여러 단계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민족적인 입장에서 국가적인 입장으로 넘어가는 때에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국가를 대표하는 참다운 무리들은 종적으로 벌어질 것이 아니라 횡적으로 벌어져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싸워 나가야 합니다. 탕감복귀노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 위에 섰으면 가정적인 승리의 한 날을 찾아야 하고, 가정적인 승리의 기준을 넘고 나면 종족적인 승리의 한 날을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 국가적인 기준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도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적인 기준을 거쳐 종족, 민족적으로 대결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실컷 맞아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6천년 역사적인 고통, 비참사가 다 벌어져라.’ 해놓고 여기에서 꺾이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지루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40년 이상을 그런 생활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변함없이 나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이제는 ‘통일교회 교인처럼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교회 교인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문에 보도하여 선포할 때가 왔습니다. 국민 운동이니 인간 개조니 뭐니 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통일교회의 이념을 가지지 않고는 안 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을 전부 공공연히 문제시할 때가 옵니다.
수많은 국가, 민족, 종족을 대표해 가지고 전부 끌어넣어야 됩니다. 개인을 끌어들이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전부 끌어들여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역사입니다. 그러려니 우리는 제물로서 고통을 제일 많이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물은 무얼 하느냐? 묵은 털이 있으면 깎아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엔 피를 흘려야만 됩니다. 비참한 거예요. 최고의 비참한 자리에 나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축복가정들, 축복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고?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의 단계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완성해야 할 단계가 남아 있으니 하나님의 심정을 깨쳐 나가야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내적인 사정을 전부 다 체득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시어 복귀역사를 책임지고 나가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축복가정들도 자기의 자녀들을 제물 삼아 사탄세상에 나가야 돼요. 자기 아들딸을 업고 다니면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애급에 가서 피난하던 것과 같은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랑하는 아들딸이 굶는 것을 보고는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은 이 인류를 위한 것이니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실체로 오실 주님과 같은 입장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남아져 책임을 해야 됩니다. ‘나는 축복가정이니 대접해라.’ 하다가는 꺾여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사람은 제일선에 서서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고생해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주의요, 하나님의 주의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을 제일 비참한 자리에 내모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고생만 하다 끝날 것이냐? 참고 나가 보십시오. 몇 해만 지나 보라 이것입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사기치려는 게 아니요, 여러분을 농락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두고 보라 이겁니다. 고생 안 하다간 후회합니다.
이 7년노정을 못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21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왜 21년이 걸리는지 알아요? 7년노정을 못 가는 것은 7년을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다시 올라오려면 7년이 걸리지요. 거기다가 다시 7년을 가야 합니다. 그러니 21년이 안 걸릴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 7년은 생사의 결판을 짓는 기간입니다. 2차 노정에서는 이런 입장에 서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정신 바짝 차려야 됩니다. 선생님도 이 길을 나올 때에 세웠던 7년 계획이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21년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1960년으로 21년노정에서 14년이 종결되었습니다. 앞으로 4년노정(63~67)이 끝나는 해가 만 21년째로, 21년노정이 종결되는 거지요. 하늘은 이렇듯 공식적인 섭리를 합니다.
여러분, 야곱 노정을 배웠지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있었습니까? 혹독한 과정을 거친 후에 축복기준을 세우고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워 끌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딸을 찾아 놓으면 그에 속한 모든 만물은 자연히 축복기준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업대원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왜 21년이 걸렸는지 알겠어요? 7년 기간에만 잘 되면 돌고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7년노정이 끝난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는 선생님이 명령 안 합니다. 절대로 전도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라는 겁니다. 이제는 원리를 깨우쳐 주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복귀의 책임을 지고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탕감역사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책임을 해야 하는가? 실체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체적인 노정이 안 나와 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에게 어떤 사명과 책임이 있다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어떠한 탕감역사를 해 나오는지 압니까? 다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전부 가르쳐 주어야 돼요. 이 가르침을 받고는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라 말라 할 필요가 없지요. 몇 개월은 무엇 하고, 몇 개월은 무엇 한다고 단계적으로 정해 놓고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 가면 세계 사람들이 갑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명령을 받고 나서 직접 보조를 맞춰 가지 않으면 하늘의 거룩한 성전(聖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쁜 것입니다. 그런데 시퍼렇게 젊은 녀석들이 세월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한가하게 노는 것을 보면…. 그들은 선생님의 연구의 대상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우리의 이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처음 온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까요.
6천년이란 기나긴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의 일대라는 것은 뚝딱 하는 순간입니다. 내가 한 걸음 옮길 적마다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복귀역사, 즉 타락한 이 세상을 복귀해 오시는 하나님의 노정 가운데 선생님의 일생이라는 것은, 흐르는 한강을 발벗고 건너가는 순간에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찬스를 옛날의 우리 선조들이 알았더라면 복귀의 길목에 수많은 백골이 쌓여 태산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오늘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그래도 탕감의 제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수만의 사람들이 이 거룩한 뜻을 위해서 희생되어 간 연고입니다. 그 사람들이 영계에서 부러워하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여러분같이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영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요? 영계에서는 땅을 대하여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는지 알아요? 다들 장님에다가 돌대가리들이니 알 수가 있어야지. 영계를 한번 통해 보란 말입니다. 어떻다고 형용할 수가 없어요. 천하에 없는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가는 길이나 이 선생님도 표면적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 통일교회 선생님은 세계적인 문제의 인물이 될 것입니다. 문제가 안 되면 내가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 십년 전에 말한 것이 십년 후에 그 말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신 있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은 어리석은 곰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얼마나 깍쟁이 패들인지 모릅니다. 눈들을 보면 전부 다 모밀눈이에요. 누구의 말 듣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잘 따라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연구해야 됩니다. 계속 연구해야 돼요. 여러분이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민족이 연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오늘 내가 어디 가서도 이런 얘기를 했지만, 여러분을 보면 평면적인 환경에서 말씀도 듣고 직접적인 지도도 받고 하면서도 가만히 있습니다.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오죽 못났으면 하나님이 저런 사람을 데리고 일하라고 명령하겠나.’ 생각하면서 속으로 ‘어디 좀 보자, 보자, 보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 되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생명을 걸어 놓고 기도해 보란 말입니다. 만일 내가 사탄 편에 서서 이런 말을 했다가 기도해서 펑크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자신이 있으니 기도해 보라는 거지요.
오늘 이러한 사명이 있는 시대에 있어서 약간의 무엇이 가해질는지는 모르겠으나 환난의 시기는 다 넘어갔습니다. 때는 이미 다 되었습니다. 그러면 한 많은 복귀의 길에서 흘린 슬픈 눈물이 여러분의 가슴에 어려 있고, 억울함과 분함이 여러분의 가슴에 맺혀 있는데, 이것을 어디 가서 풀 것인가! 우리는 왜 이런 한스러운 길을 걸어왔는가?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세우기 위해서요, 수많은 아들딸을 아버지 앞에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걸음이니, 끝이 날 때까지 걸어서 그 목적을 달성한 뒤 승리의 깃발을 꽂고 죽어야 되겠습니다. 사나이라면 한번 해보겠다고 나설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 때가 총탕감의 사명을 해야 할 시대이니, 여러분이 선두에 서서 민족적인 탕감을 위해 민족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제 남아 봐야 몇 고개 안 남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자세하게 쭈욱 설명해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을 못해 주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노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으로 세계 정세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빤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원리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흑백 인종문제가 심각하지요? 미국은 두들겨 맞아야 됩니다. 어떻게 수습되나 두고 보십시오. 검둥이는 누구의 후손입니까? 함의 후손이지요? 그들은 종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그 종의 종들이 득세하는 것은 한 때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선조가 책임 못해서 그렇게 된 줄 알고 있습니다.
시대가 참 재미있지요? 선생님은 그런 것 저런 것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몸은 하나지만 책임으로 따지자면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원조해 준다고 하면서 전부 다 긁어가지요? 그런 놀음 계속해 보라지요, 어떻게 되는가. 점점 갈 길이 막히게 됩니다. 일본도 경제니 무엇이니 하면서 책임을 기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날 전망이 비칩니다. 이것이 우리의 작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심각합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도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자신이 있으면 담판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 기도의 발판을 딱 세워서 순식간에 잡아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원하지 않는 세계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싸워서 때려 눕히고 실체로 공격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작전입니다. 영적으로는 벌써 팻말이 꽂혀 있으니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단번에,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십시오. 통일교회에서 하는 일은 뭐든 순식간에 해치워 버립니다. 요전에 합동결혼식도 선생님 말대로 했더라면 선생님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혁명(5·16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미국에 갔다 왔을 거예요.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는 벼락같이 해 버려야 됩니다. 왜? 영적으로 팻말이 꽂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냅다 몰아야 합니다.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가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신령한 체험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사탄을 입회시켜 놓고, 하늘 앞에 제물을 드리는 싸움을 해보면 그런 일이 참 많습니다.
몇 백년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을 영적 승리의 기대를 세워 놓으면 그저 숨도 안 쉬고 넘게 됩니다. 여러분, 다이빙하는 것 보면 특히 기분 나지요? 죽으려면 죽고 터지려면 터져라 하고 뛰어내립니다. 신앙 길을 가는 데는 그런 모험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 가지고 들어맞추는 날이면 몇 백년이 순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계에서 얼마나 환영하는지 알아요? 그런 맛을 알고 신앙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 길은 모험의 길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지금까지 영적인 세계에서 모험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실체세계에서는 아직까지 그렇게 많은 모험을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모험할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민족적인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정병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여기에서 깃발을 들고 세계적인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까지 우리의 나팔소리와 행보 소리는 그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사탄도성을 섬멸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승리하고 세계적인 무대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선생님은 제2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2선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 민족으로 안 되면 삼각작전을 한다는 거예요. 이제는 외적인 발판을 이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런 것을 알고 이번 전도기간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전체가 다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이 횟수로 몇 해째예요? 앞으로 몇 회나 더 할 것 같아요? 여러분 헤아려 보았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때를 놓치지 말고 참가하여 수고 많이 하고, 책임진 입장에서 맡겨진 하늘 정병의 목적을 달성해 주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금년에 들어와서 이 삼천리반도를 편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3년노정을 끝내더니 좀 지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구에서 부흥회를 해 가지고 지역장들을 다시 배치해 놓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명년 일년 동안 싸울 수 있는 준비를 다시 할 것인가? 요즈음 선생님은 이 문제 때문에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2천 명 이상을 동원할 것입니다. 봉급은 일전 한푼 없습니다. 도리어 월정금을 내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민족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을 몇 해나 해야 될 것인가? 삼천만 민족에게 통일교회에 가자는 바람이 불어 가지고, 이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7년만 단결하여 일하면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그 것으로 안 되면 21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 문화권을 만들어 놓고도 남을 것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만일 한국이 힘이 없으면 미국이나 세계의 영통하는 사람들까지 동원하겠습니다. 보지 못하고 만나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 통하는 제자들이 많습니다. 이거 여러분, 믿어 주세요. 영적인 제자가 많다는 말입니다. 세계의 모든 귀한 것들은 전부 다 하늘의 계획권 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일교회에 벼락같이 돈을 주고 싶은데 안 주는 이유는 뭐냐? 깨끗이 소제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쓰레기통을 다 없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던 판잣집을 없애고 오두막집 다 치워 버리라는 것입니다. 깨진 유리며 뭐 할 것 없이 다 집어치우라는 겁니다. 주긴 줘야 될 터인데 세계적인 복을 너절한 그릇에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안 망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돈이 없습니까? 사람이 없습니까? 다 있지요. 문제는 여러분입니다. 한국이 돈이 없어서 그래요? 돈 많습니다. 지금 일개 부처의 예산을 통일교회에 맡겨 보라는 거요. 통일교회가 얼마나 발전하는지. 그러나 우리는 없는 데서도 발전하는 무리요, 없는 데서도 뿌리 박는 무리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망할 것이 없습니다. 이 이상 더 내려갈 곳이 없습니다. 여기에 마음을 세우고 모든 정성을 한 점에 모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나라가 10년을 버티면 나는 11년을 참을 것입니다. 세계가 20년 동안 지탱하면 나는 21년을 참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탱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점쳐 봤어요? 여러분은 큰 싸움을 준비하는 하늘의 정병으로서 국가적인 무대에서 큰 시련을 받더라도, 앞으로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나가 활동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렇게 3년쯤 정상적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공부를 못했더라도 배짱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 우리의 원리 말씀, 이거 참 고차원적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통일교회 사상을 집어넣어서 행동으로 몇 년만 실천하게 하면 자리가 잡힙니다. 김 권사를 보세요. 파고다 공원에 서 있으면 대학교수나 문인들이 와서 김 권사의 강의를 듣습니다. 국민학교를 3학년밖에 안 다닌 아주머니가 파고다 공원의 왕입니다. 왕, 말하는 데 왕이에요.
그러니 여러분, 쉬지 말고 노력하십시오. 노력한 그것이 여러분의 재산이 되고 여러분의 방파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노력하는 동안 하나님은 안식처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의 갈 길을 여러분이 노력해서 나가 주기를 부탁합니다.
전체의 뜻 앞에 있어서 민족복귀 사명의 내적 책임은 선생님이 할 것이고, 외적 책임은 여러분의 노력으로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출발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우리 교회가 출발할 때 같이 출발한 사람, 즉 교회에 들어온지 10년 이상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10년 전의 심령 상태와 십년 후인 지금의 심령 상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10년 전이 나았습니까?, 지금이 낫습니까? 10년 전이 나을 겁니다.
그렇다면 큰일났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10년 동안 가만있었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10년 동안 우리는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으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실적이야 있든 없든 될 수 있는 대로 동원시키려 하는 것은 왜냐? 여러분, 어떤 황제가 산에서 나무를 찍어서 둘러메고 궁중으로 들어가는데, 그 나무 끝에 개미가 한 마리 붙어 있었다면 그 개미도 궁중에 따라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겠어요? 딸려 들어가겠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년 2년…10년을 걸어올 때 같이는 못 왔지만 여기서라도 이어 나가자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기서라도 가담하지 못하면 20년 동안 이어온 이 줄마저 연결되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못 가면 이렇게 가 가지고 이렇게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갈 수 있어요? (도표를 그려 놓고 설명하심) 이 길을 가지 못하면 통일교인 같지만 이미 통일교회 문 밖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군인이 전장에 가던 중에 적이 항복해서 승전했다면 그 군인도 승리한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승리의 기쁜 날을 맞이하였으니 그 나라에서는 참전병이 아니더라도 불러다가 참전병처럼 대해 주고 상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전장에 나가다가 전쟁이 끝나도 참전병인 것입니다. 또 전장에서 총을 쏘았는데 잘못 쏘아서 자기편 장병을 살해했다고 할지라도 그 군대가 승리하면 승전병이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여러분들을 이 7년노정에 될 수만 있으면 무슨 작전을 하든지 동원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전도 나가서 통일교회 위신을 납작하게 만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전도한다고 나가서 잡아먹히는 사람도 있어요. 얼굴을 씻는데 시커먼 칠을 해 놓는 수가 많다는 거예요. 자칫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부 동원시키려고 합니다. 이 기간을 놓치면 여러분이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의 기도는 동원을 중심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개인이나 가정은 모두 한 종족입니다. 문 씨면 문 씨, 김 씨면 김 씨, 박 씨면 박 씨, 이렇게 온갖 잡종들이 모였지만 종족으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은 하나입니다. 무슨 이름? 통일입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도 죽고, 아버지가 가면 아들도 같이 가는 겁니다. 망할 때 같이 망하고 흥할 때 같이 흥하자는 것입니다. 형제 아닌 패들이 모여 형제가 되고, 식구가 되는 별스러운 무리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세상의 수많은 종족과 대결하는 것입니다. 누가 참이냐 하는 것을 판결내기 위해서입니다. 참과 거짓을 어떻게 감정하느냐? 순금과 가짜 금을 어떻게 감정하느냐?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녹여 보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질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피땀을 흘려 보아야 아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 가운데에는 무슨 씨, 무슨 씨 하여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통일 종족이 제일이다.’ 해 가지고 그들을 거느리자는 것입니다. 이 통(統)자가 무슨 통자예요? 거느릴 통자지요? 그리니 우리가 가는 대로 가야 이 민족이 삽니다. 통일교인들같이 움직여야 이 민족이 산다는 것입니다. 두고 봅시다. 두고 봐요. 우리는 그저 미욱한 땅꾼처럼 파고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판가름이 날 것입니다.
전체가 돌아가는 이 싸움터에 있어서 실력전으로 하자는 겁니다. 여러분, 응원이라도 해야지요. 우리 대표 선수가 나가서 마라톤 경기를 하는 아슬아슬한 판국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애국심에 불타 마음을 졸이는 그 사람은 그를 대해 ‘이 자식아’ 하며 한 대 갈길 것입니다. 나라도 그러겠어요. 그러면 그 녀석도 정신이 번쩍 들 것입니다. 이런 판국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박수라도 쳐야지요. 기운이 없으면 ‘어여차! 어여차!’라도 해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할머니들, 역사 잘하지요. 나팔 불고 손을 휘젓고…. 그래야 합니다.
선생님의 계획은 앞으로 유사시에 3분의 2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60만 장병이 있는데 이는 전체 국민의 몇 분의 일입니까? 50분의 1입니다. 한 나라의 유사시에도 3분의 1을 동원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유사시에 3분의 2를 동원해야 됩니다. 동원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사탄세계에는 없는 전체 동원까지도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는 그래야 됩니다. 그런 줄 알고 때를 놓치지 말고 10년 동안 여러분, 허송세월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움직이는 데 관심이 많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선두에서 움직이는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서 따라가는 입장에 서야만 10년을 지나도 모양만은 10년 전과 같은 모습이라는 조건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때 완전히 승리하게 되면 민족적인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뜻이 이루어지면 통일교회의 승리로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의 승리, 세계의 승리로 세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천만이 전부 다 아벨이 되어서 가인에게 복을 베풀어 가지고 가나안 땅에 복귀해 들어가자는 것이 하늘의 복귀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인 인연을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지난 3년노정을 가만히 생각하면 후회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3년 기간은 지나갔습니다. 7수를 나누면, 3수는 하늘수요, 4수는 땅수입니다. 3년 기간은 하늘의 자녀를 찾는 기간이요, 4년 기간은 땅의 기준을 세우는 기간입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사람은 상당히 초조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인연의 조건을 이 지상에서, 여러분의 생활환경에서 세울 수 있도록 움직여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전도 나가는 데 있어서 돈이 없어서 못 나간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가 돈 가지고 왔어요? 하나님께서 돈 가지고 복귀역사 해 나오셨어요? 생명으로 하셨습니다. 피로 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피의 역사입니다. 돈 받고 일하는 것은 삯군입니다. 아들딸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하늘이 역사해 주실 것을 나는 믿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길을 걸어올 때에 하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부럽지 않은 입장에 설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하나님이 키워 오셨으니, 여러분이 그러한 키움받는 과정을 거쳐 나갈 때에도 하나님은 늘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분명히 약속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늘은 연결 역사를 합니다. 하나님과 중심존재와 나, 이렇게 3점의 연결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3점을 잘 맞추어야만 복귀역사가 실현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하늘은 당신의 명령을 따라 나오는 사람과 반드시 같이하십니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그 부락에서 할아버지라든가 아저씨라든가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참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하늘땅이 보호해 주는 통일교인들을 굶겼다가는 화를 못 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밤잠을 못 잡니다. 밤잠을 못 자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까마귀가 물어다 먹인다는 말이 있지요. 선생님이 옥중에 있을 때에도 비둘기가 운반해줘서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에서도 제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으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지요? 우리의 인생 길에서 제일 바쁜 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고 하늘의 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이 잘 싸워 주기를 부탁합니다.
이제부터 10월 초하루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이 6개월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길다면 길겠지요. 또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은 여러분들이 정성을 다 들여야 할 기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기간에는 선생님이 여기 있지 않을지 모르겠어요. 또, 여러분들이 공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지고 이 남한 땅, 혹은 이 한국 천지 도처에서 활동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어디에 가더라도 여러분들은 전송을 나오고 싶어도 오지 못할지 몰라요.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지도하고 선생님이 위에 있어 가지고 움직였지만, 이번 기간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없더라도 선생님이 있는 이상, 그야말로 여러분들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어떤 천적인 조건을 세우는 이런 한 기간으로 세워 주시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우기나 지금 여기서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생들은 여러분 자기 개인을 두고 보게 되면 개인이요, 혹은 어떤 가정이면 가정의 아버지도 될 수 있고, 어떤 가정의 아들도 될 수 있고, 어떤 지역이라든가 지구에 속해 있는 책임자의 입장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제한된 환경의 위치와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여기에 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엄숙한 뜻 앞에 내가 부름을 받아 가지고 이 통일이념 세계 앞에, 이와 같은 전환시기에 있어서 크나큰 책임을 짊어지고, 혹은 사명을 짊어지고 원수세계 앞에 행군 나팔을 부는 이런 엄숙한 대열에 있다는 것을 언제든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은 수련받는 이 기간―이 기간은 극히 짧은 한 열흘 기간이지만―에 있어서 과거를 청산하고 현재 통일교회가 처하고 있는 입장을 생각해야 됩니다. 현재 통일교회의 입장과 앞으로 올 세계를 대신하여 나갈 방향을 생각하면서, 과연 어떤 힘과 어떤 능력과 어떤 움직임을 통하여 하늘이 바라시는 본연의 목적점을 성취시켜 놓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여기서 의미심장한 여러분의 내적인 결의와 외적인 결의가 자연적으로 생기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름받은 이들은 물론 개체들은 다르지만 인연과 사정, 이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개체가 개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지역을 거칠 때는 그 지역을 대신하여, 혹은 지구를 거치게 될 때는 그 지구를 대신하여, 오늘날 하늘의 뜻과 하늘의 사명을 대신하여 이념과 행동을 갖추어 가지고, 이것이 최후의 판결을 짓기 위한 행군의 대열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땅을 내가 먼저 걸고 이는 우리의 장중에 있고, 우리가 '좌' 하면 좌 해야 되고, '우' 하면 우 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명령을 책임한다는 이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道)를 지나갈 적마다 한번의 성과를 하늘이 즐거움으로 받아 주고 통일의 식구들이 찬양으로 하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동시에, 그 찬양된 실적이 역사를 빛내고, 시대를 빛내고, 미래를 빛낼 수 있는 것으로 남아질 수 있다면 통일교회의 우리 식구들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새로운 총결실의 청산이 지어지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은 그와 같은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이 수련회를 거쳐야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한 번 정비하는 기간이예요. 다시 한 번 정비하는 기간이예요.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뜻을 대하고 나가게 될 때 자기의 어떠한 개인적인 욕망, 개인적인 사정을 배후에 혹은 전후좌우에 인연지어 놓고 달려갔지만, 이제부터는 공적인 입장에서 출발도 공적이요, 사정도 공적이요, 일체가 공을 선두로 세우고 공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고, 공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서 움직이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입장에서 이것을 해결지을 수 있는 책임을 짊어져야 된다, 여기서 만약에 부당한 것이 있으면 용서할 수 없다, 이런 신념을 가져야 돼요. 한 도(道)를 뚫고 군(郡)을 뚫을 수 있는 각오와 결의를 갖고 나가 주기를 부탁해요. 이번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겠고…. 선생님 자신도 그 길을 다 닦아 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잡으면, 이런 말씀을 하려고 해요. '우리들이, 즉 여러분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 이런 내용이 될 거예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하나님 자신은 예정했습니다. 자라는 아담 해와를 바라보는 그 마음에 있어서는 아담 해와가 머물러야 할 그 위치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위치는 불행의 위치가 아니라 행복의 위치요, 고립된 위치가 아니라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화동의 주체로서 설 수 있는 위치였음을 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동하면 개체의 동함이로되 하늘땅을 대신하여 움직이는 것이요, 그가 정하면 개체의 정함이로되 하늘땅을 좌우시켜서 정하게 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셨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개체의 위치를 두고 볼 때 그 개체의 위치에 서게 된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냐?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서 찾고자 하는 아담,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서 세우고자 하는 가정,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서 이루어 놓기 위한 종족·민족·국가·세계,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상하셨던 전체의 세계를 인간과 더불어 종결짓고, 인간과 더불어 자유와 평화를 노래할 수 있는 행복의 천국을 건설하는 이러한 개체로서 하늘은 바라봤다는 겁니다. 즉, 창조이념 전체를 하나님은 그 일신에다 걸고 그 위치를 제정하였고, 그 위치를 책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아담 하나가 완성 단계까지 자라 올라간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소망의 개체를 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가정을 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적인 하나의 주체로서 전체를 완결지을 수 있는, 전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으로서의 아담 하나에서 전부 다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자라는 그 자체를 대해서 어떠한 소망과 어떠한 희망과 어떠한 사랑과 어떠한 심정을 갖고 대했던가를 타락한 이후의 아담들은 모를 겁니다. 타락 이후의 해와들은 모를 거예요.
아버지께서 창조 전에 마음으로 그리면서 창조하던 그 과정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그 세계를 거쳐 소망의 천국을 바라보며 마음에 그리던 그 내정적인 창조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을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캐치할 수 없고,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아담 해와를 지은 바의 그 위치를 하나님만이 알고 아담 해와는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해 버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개체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개체를 중심삼은 가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의 민족이 어떻게 되어야 된다는 것도 모르고, 그 국가와 세계, 천주가 어떻게 되어야 된다는 것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늘은 복귀역사를 시작하는 그 당초에, 그 시간부터 하늘은 무엇을 세워 왔던고?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늘이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하게 될 때, 그 가인 아벨을 세워 놓고 아벨을 통하여 복귀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사정은 무엇이었던고? 아벨 그 자체보다도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그 위치의 내용은 아벨이 아담의 작은아들로 태어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에 내재된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을 체휼해 가지고 거기에 결부된 밑받침 위에 하늘이 해준 그 기반 위에, 즉 창조 직후의 아담 입장에 서는 겁니다.
이리하여 아벨이 찾아짐으로 말미암아 아벨을 통할 수 있는 가정, 아벨을 통할 수 있는 종족과 아벨을 통할 수 있는 민족, 아벨을 통할 수 있는 세계…. 물론 그 세계는 범위도 좁고 시대적인 환경에 있어서 제한된 환경의 입장에 있었지만서도, 그 아벨적인 환경으로 머물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의 한계성을 내재시켜 놓은 것입니다. 아벨이 그런 입장에 섰다는 것을 아벨 자신도 몰랐고, 아벨을 대하는 부모도 몰랐고, 가인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슬픈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위하여 준비해 놓고, 그것을 위하여 정성의 터전을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벨 자신이 그 정성의 터전이 무엇인지, 정성들인 그 자체가 누군가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 섰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소원이 얼마나 딱하셨나 하는 것을 여러분은 짐작해야 됩니다.
아벨을 불러일으킨 것은 하늘이 개체를 세워 가지고 잃어버린 본연의 아담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있어서 이것이 모든 것을 청산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개인 아담으로부터의 짐을 짊어지고 전체적인 모든 위치를 결정하려고 했던 것이 아벨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연장되어, 역사적인 단계는 여기서 벌어져 가지고 일시에 변하여 수많은 종적인 자리로 연결시켜서 6천 년까지 연결되어 내려온 것을 여러분들은 복귀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 아벨을 찾아오시던 아버지, 부르시던 아버지의 심정, 부르시던 아버지의 소원, 부르시던 아버지의 사정을 아담가정에서 아버지를 대하던 사람도 몰랐다는 겁니다. 찾아와서 보여 주고 의논하고 모든 준비를 해 나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알지 못하니, 하늘은 왔다가 돌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 1,6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닦은 것이 노아까지의 시대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노아가정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본연의 그 기준을, 본연의 그 위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아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노아 자신은 120년 동안 수고하면서도 자기의 세워진 위치와 하늘이 자기를 세워 책임을 지워 준 그 사정도 모르는 입장에서 움직여 나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 혹은 사정과 소원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명령에 의해서 움직여 나오는 그런 노아를 바라보는 하나님은….
그는 물론 하루하루 일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심정의 도리를 세워 나갔지만 심정의 도리를 바라보고 그것을 지키면서 나오는 노아를 바라보는 하늘은 120년 기간이란 것이 무한히 지루했다는 겁니다. 노아가 바라보는 120년의 지루한 기간보다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내정적인 심정의 120년 기간이란 것은 몇 억천만 년의 기나긴 세월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바라고 고대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시간이라는 것은 짧지만 최고로 귀한 것, 가치 있는 것, 지극히 내정적으로 인연될 수 있는 그런 상대적인 존재를 바라는 그 순간은 무한히 긴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비례적인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체험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를 불러일으켜서 찾으려던 그 위치, 그것이 아무도 그 시대적인 사정을 알지 못하여 아브라함으로 연장될 때 하늘은 왔다가 슬픔을 느끼고 다시 돌아가야 할 입장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아브라함을 세워서 또 섭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한때를 세워 가지고 하늘의 사정과 하늘의 심정과 하늘의 소원의 일점을 해결지으려 했지만, 그것도 하늘의 뜻대로 아브라함이 행치 못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또다시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역사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연장되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이 지금까지 우리 인류를 찾아 몇 번, 몇천만 번 왔다 갔느냐? 그리고 그 왔다 간 목적이 어디 있느냐? 오늘날 아담이 지니지 못한 그 위치, 아담이 세웠어야 할 그 위치, 그 위치에서 아담으로서 책임하여야 할 그 자체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 한 자체를 찾게 될 때에, 그것은 그로 말미암은 가정, 그로 말미암은 종족·민족·국가·세계를 통하여 본연의 이상과 여기에 바라던 소원의 일치를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했던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 시대마다, 아벨 때도 그러하였고, 노아 때도 그러하였고, 아브라함 때도 그러하였고, 모세 때도 그러하였고, 예수님 때도 그러했으니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시대인 이 시대에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80퍼센트다 이겁니다. 하늘의 간곡한 심정이 오늘날 우리를 통하여 접붙이고, 우리를 통하여 내적인 기반을 넓히고, 내적인 기반의 위치를 결정함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기반의 위치를 결정지어 안팎을 결정해서 한 자체를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찾아오는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내적인 결정은 어느때에 지으며 외적인 결정은 어느때에 짓느냐? 이것을 오늘날 우리 선조들은 알지 못하였다 이겁니다. 아벨도 몰랐고, 노아도 몰랐고, 아브라함도 몰랐고, 모세도 몰랐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알았다고는 하지만, 내적인 결정은 지을 수 있었으되 외적인 결정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안팎이 일체된 기준을 통하여야 할 복귀의 운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에게 있어서는 억울한 입장에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사정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다 가게 될 때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자기는 지켜 나갔지만 인류 앞에 그 사정을 가르쳐 주고 갔느냐 하면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갔다 이겁니다.
역사 이래 이 땅 위에 한 번 그런 내적 사정과 외적 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왔다 갔지만, 왔다 간 그 자체는 이 땅 위에서 자체의 모든 위치와 자체가 결정지을 수 있는 사정을 남겨 놓지 못하고 감으로 말미암아 재림이라는 명사를 거쳐 가지고….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그와 같은 곡절을 알지 못한 운명에서 죽음 고개를 걸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말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개체는 누구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가정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종족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국가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세계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천국은 어디 있느냐? 그러한 심정적인 권내에서 내적 결정을 지어 인간의 기준을, 초점을 세워 가지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이념의 결정을 지어야 할 그런 투쟁의 역사가 있어야 될 것이며, 외적으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성을 짊어지고 결정지어야 할, 이 투쟁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책임을 결정지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늘을 세우기 위한 이념적인 아담 일치, 이념적인 아담 그 자체를 결정짓자는 겁니다. 그 기준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6천 년 걸렸습니다, 6천 년. 그러니 그 위치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인류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뇨? 아담이 본연의 위치에서 이념 완성한 실체가 되어 하늘땅 앞에 주관자로 나타나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위치라는 것은 사탄세계의 참소를 받는 위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위치는 만사를 초월한 해방된 자리에서 하늘이 기뻐하면 땅도 기뻐할 수 있고, 하늘이 행하면 땅도 행할 수 있고, 하늘이 여기에 세워지면 땅도 만세에 영원무궁토록 세워질 수 있는 불변의 위치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 자리는 아직까지 우리 통일교인 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곳까지 가야 할 실정에 있으니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단계를 거쳐 나간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고 합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까지, 또는 이 외부적인 이념이 아담 가운데에 잠재해 있어야 됩니다. 아담 가운데 이것이 결정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정 못 되었기 때문에 이게 전부 다 깨져 나간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탕감적인 조건으로 이와 같이….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종적으로 아담 자체가 일시에 이와 같은 터전으로 그 이념의 천국의 기원,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그 이념적인 심정과 사정과 소원과 목적이 이루어진 실체의 가치를 지녀 가지고 그때부터 아담 개인이나 그 가정 전체가 목적의 세계적인 기반 위에서, 하늘의 심정과 일치된 그런 자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었는데 이것이 깨졌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노정을 거쳐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거쳐 나오는 데는 어떻게 나오느냐? 투쟁이다 이겁니다. 투쟁하게 될 때는 반드시 여기에 부작용이 따릅니다. 언제나 그래요. 이것이 역사라는 거예요. 개인시대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몇천 년의 역사를 거쳤던 것이 직선상으로 뻗어 나가야 할 것인데, 이것이 대각선을 거쳐 가지고 땅 위에 내려오는 겁니다. 복귀섭리가 그래요.
그러면 여기에서 투쟁이 벌어져 이 투쟁이 연장되어 나가다가 여기에서 승리의 결정이 벌어지면, 여기에서 승리가 결정되면 탕감적인 역사는…. 그 탕감된 기준이 반드시 역사적인 소망의 터전으로서 개인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다음에는 여기에서 승리를 더 하여서 가정, 종족, (판서하심) 이래 가지고 쭉 내려옵니다. 횡적인 인연으로 종적으로 전개돼 나온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싸움을 전개하여 승리한 그 터전 위에, 개인 대 개인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늘의 개인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정 대 가정이 싸워서 가정적인 기준을, 종족 대 종족이 싸워서 종족적인 기준을, 민족 대 민족이 싸워서 민족적 기준을, 세계 대 세계가 싸워서 세계적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투쟁해 나오는 겁니다. 여기에서 어떠한 승리의 조건을 세워 놓는 사명적인 기준이 있어야 역사는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느때에 이 땅 위에 왔느냐? 6천 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걸어 놓고 사탄과 투쟁하는 기준을 예수가…. 개인으로부터 가정ㆍ종족ㆍ국가ㆍ세계까지 예수 자신이 연결시켜야 됩니다.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싸움, 가정적인 싸움, 종족적인 싸움, 민족적인 싸움, 국가적인 싸움, 세계적인 싸움으로 전개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종적인, 탕감된 기준에서 이루어졌다는 조건을 상속받아 가지고 이 지상에서 재차 전개시켜 가지고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역사적인 아벨을 불러야 될 것이요, 역사적인 노아를 불러야 될 것이요, 역사적인 아브라함을 불러야 될 것이요, 역사적인 모세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세를 부르는 동시에 역사적인 선지선열을 불러 가지고 역사적인 이스라엘 민족과 전체를 규합해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로 출발해야 할 사명을 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을 규합하여야 할 탕감조건을 승리의 터전으로 남겨 놓은 아브라함과 역대의 모든 선조들의 인연을 계승할 수 있는 내적인 결정과 외적인 결정을 여기에서 완전히 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무엇이냐? 이 기준이 벌어져야만 여기서부터 예수님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그러나 예수가 와 가지고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적으로만, 이것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영적 기준 중심삼아 가지고 재탕감하는 겁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거쳐 가지고 영적으로, 땅 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기준을 먼저 결정지어 가지고 이 기준을 다시 육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내용을 수습하는 것이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스라엘의 4천 년 역사에서 국가적인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2천 년간 역사해 가지고 세계적 기준까지 끌고 나오는 데는 예수 자신이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적인 사명인 내적 인연을 다시 전개시키기 위한 싸움을 했으니 그것이 예수와 성신, 삼위일체를 중심삼은 싸움의 노정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구원이기 때문에 영적 구원의 역사를 실체적인 기준에서 다시 탕감해야 됩니다. 이것이 오시는 주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도 역시 여기에서 외적 기준을 결정짓고 내적 기준을 결정지어, 영육을 합한 여기에 가인과 아벨을 세워 가지고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의 기준을 합한 통일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 기준을 세우고 나서 이와 같은 싸움을 비로소 그 무대에 다시 재현시켜 가지고, 싸워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는 악한 나라 선한 나라가 있어야 되고,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야곱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라반의 집에 가서 고생을 왜 해요? 대립적인 이 목표에 있어서 축복적인 상대기준을 갖고…. 야곱을 하늘편이라 하게 된다면 라반과 그의 재물을 놓고 야곱이 싸우게 됩니다. 여기서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하면 개체를 찾아야 돼요. 그다음에는 가정을 찾아야 돼요. 그다음에는 자녀를 찾아야 돼요. 종족의 기틀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나오게 될 때 순탄하게 나오지 못해요. 개인을 굴복시키고 그 가정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개인과 가정을 굴복시킨 후에 천사하고 싸우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개인과 가정 입장을 속여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 노정에 있어서 개인과 가정이 천사장을 속여 가지고…. 천사장이 아담 개인과 가정을 파괴했기 때문에 야곱도 그 기간에 있어서 라반을 속여 가지고 나와서 비로소, 하늘편적 복귀된 가정의 위치니 하늘편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천사와 씨름해 가지고 가정을 대표한 승리의 기반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그것은 야곱 개체를 중심삼은 승리보다도 가정 이스라엘의 기준을 닦은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기준 앞에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체적인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굴복시켜 나와 내적 외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승리하여 이스라엘 나라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 본향땅에 들어가 가지고 안팎의 결정을 모두 지어 가지고 축복의 계대를 거기서 상속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을 중심삼고 아들딸들이 일체가 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애급 나라에 가는 거예요. 야곱 대신 요셉이 가 가지고 그와 같은 싸움을 또 하는 겁니다. 연결시켜 가지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라가 있어야 되는데 그 나라는 개인과 같이 복귀해야 돼요. 그런 역사라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이냐? 이스라엘 민족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가 하늘 앞에 승리한 개체로서 찾아지는 그날, 이것을 제일…. 그렇지만 예수는 개체로서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가정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적 기반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적 기반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서기 위해서는 국가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한 단계 높은 것이 있어야만…. 그것을 넘어가는 것이 탕감복귀역사입니다.
오늘날 본연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가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민족복귀의 책임, 혹은 세계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우리들이 싸워 나가는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그런 전체의 기반인 통일 종족으로 설 수 있는 결정을 짓기 위해서는 통일 민족적인 사명의 기반을 가지고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민족적인 사조를 정복하고 굴복시킬 수 있는 이런 철옹성 같은 기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통일 종족이 안식할 수 있는, 통일 종족이 결정될 수 있는 그런 위치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통일의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된다면 통일의 민족이 설 수 있는 기반을 짓기 위해서는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춰서 세계적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전에는 민족적인 승리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민족이 승리의 위치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세계무대에 있어서 어떠한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공고한 승리의 위치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한 단계 큰 터전을 수습할 수 있는, 주체로서 그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원인과 내용과 실체가 투입되기 전에는 한 단계 낮은 위치가 결정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런 원칙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예수 앞에는 민족적인 세계가, 4천년 역사를 통해서 하늘이 수고하여 준비했던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영육을 합하여 투쟁해서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이 여기에서 예수와 일치되었더라면, 예수 개인과 예수의 가정과 예수의 종족은 여기에 대치할 수 있는 기준에 서 가지고 외적 예수의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가인적인 입장의 민족과 아벨적인 입장의 자녀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만 심게 되면 여기에 있어서 복귀천국, 한 나라의 기준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성립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내정적인 심정의 인연을, 하늘을 중심삼은 내정적인 이상을 중심삼고 인류를 찾아왔으나 이것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인간을 찾기 위해 내정적인 소원을 품은 거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내정적인 소원과 심정을 품고 이 땅 위에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정적인 사정을 이 땅 위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를 못 잡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도 이 땅 위에 내정적인 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상대자를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2천 년 동안 하나님이 가는 걸음을 따라 가지고 이 길을 더듬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리하여 내적인 개체, 내적인 가정, 내적인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오늘날 세계적인 무대로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또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내적인 면에 있어서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세상 끝날까지 내정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해결지어야 합니다. 예수가 그런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적 결정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 세계를 이끌어 나오고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내적인 결정을 누가 짓느냐? 남아진 내적 기준을 탕감해 가지고 외적 기준을 다시 수습해 놓지 않으면 안팎이 일치가 안 된다는 겁니다. 내적인 것은 아벨이요, 외적인 것은 가인입니다. 그러므로 외적 내적 기준을 전부 다…. 아벨이 내적으로 승리한 기준은 반드시 노아면 노아가 상속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승리했으면 모세가 상속받아야 합니다. 상속받아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이런 역사적인 모든 내적 결정적인 위치를 상속시켜야 됩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끊어졌지만 이스라엘 민족…. (녹음이 잠시 끊김) 이것을 재현시켜 가지고 민족적인 사명과 세계적인 사명으로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ㆍ종족ㆍ민족ㆍ국가로 다시 제2 이스라엘의 사명을 거기에 엮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음을 중심삼은 신약 구원섭리라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됩니다.
그러면 여기에 제2 이스라엘의 실체적인 민족, 제2 이스라엘의 실체적인 종족, 혹은 가정, 개인이 있어야 될 터인데 그 개인이 있느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텐데 못 하고 있으니 누가 해야 되느냐? 예수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겁니다. 죽지 않은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재차 해야 되는 겁니다. 오시는 주님이 그와 같은 면에서 개인적인 이스라엘, 가정적인 이스라엘, 종족적인 이스라엘, 민족적인 이스라엘, 국가적인 이스라엘을, 실체적인 이스라엘을 재차 창건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복귀역사의 탕감노정을 거쳐 나오는 이 싸움에 있어서,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을 대표할 수 있는 주님이 이 땅 위에 와서 개인적인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면 같이 개인적인 서러움을 당해야 할 것이고, 가정적인 서러움을 당하면 같이 당해야 할 것이요, 종족·민족·국가적인 서러움을 당하면 같이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당하지 못하는 입장에 섰으니….
우리의 생활은 이런 사명을 하면서…. 보라구요.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은 잃었을 망정 거기에서 내적으로 개인과 가정이 외적인 세계무대를 향해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개인으로 가정으로 이렇게 발전을 못 했습니다. 왜 못 했느냐? 지상에서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이 내적인 결정을 지어 가지고 이 땅 위에 이것을 맞추어 가지고 외적인 가정기준을 잃은 것을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예수님의 시대를 통하여 제2의 이스라엘 상속자를 만들려고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람들을 세워 제2, 제3 이스라엘의 상속적인 개인·가정·국가·민족·세계를 창건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예수의 한. 예수의 한은 아담의 한인데 아담의 한을, 아담가정의 한을 여기에서 풀게 됨으로 말미암아…. 탕감한다는 것은 전세계의 한이 아담가정에서 비롯되었으니 여기에서 한을 풀면 전세계의 한이 풀린다는 거예요. 이러한 걸 볼 때, 예수는 아담이 본래 세워야 할 천국이념을 되찾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이것을 재현시키는 입장에서 나와 가지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냐? 재림주라는 것은 6천 년 심정사를, 6천 년 실패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해야 된다는 겁니다. 탕감하는 데 있어서는, 이 권내에서는 누가 해야 되느냐? 아담가정에는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부모의 입장에 나가지 못하고 가인 아벨의 입장을 개척해야 됩니다. 가인 아벨의 입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 아벨이 원수세계에, 사탄세계에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니 사탄세계에 가서 빼앗아 와야 됩니다. 빼앗아 오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종의 종의 신세를 거쳐 가지고 종의 새끼를 끌어다가 양자의 몸으로 재교육시키는 이런 놀음을 해 가지고 이와 같은 세계를 다시 창건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물론 개인이 요구되고, 가정이 요구되고, 종족과 민족, 국가가 요구됩니다. 그것은 예수가 하늘의 보냄을 받은 그 입장과 마찬가지요, 그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구하던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이예요. 하늘이 요구하는 입장과 예수가 요구하는 입장이 동일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이 보내 준 입장과 오시는 주님이 요구하는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
그러면 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한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담이 이루어야 할 천국이상을 타락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그 마음 바탕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 가정, 그 종족, 그 민족, 그 국가, 그 세계에 해당되는 자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6천 년 전에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계획하던 아담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여기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모든 결산의 내용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권국가를 중심삼고 총탕감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안팎으로 결정되는 날에는 이 세계와 이 세계…. 이것은 가인세계요, 이것은 아벨세계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역사적으로 볼 때 이 6천 년 역사는 가인세계요, 앞으로 올 세계는 아벨세계니 이 세계가 지상에 나타나는 것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개척하느냐?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합니다. 이 탕감역사를 두고 볼 때, 옛날에 개인을 세우게 될 때에 하늘의 고통의 역사는 여기에서 이렇게 돼서 이렇게 되었고, 구원의 역사는 요만큼 왔어요. 악은 이만큼 되었고, 선의 세력은 이렇게 됐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이 점점 내려올수록 이것은 점점 커 오는 겁니다. 핍박도 거기에 따라 적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상대적인 관계가 될 때가 예수님이 오는 때입니다. 이것이 연장되어 2천 년 역사를 통해 여기에 와서, 이 기준이 여기에 와서… 여기에 옴으로 말미암아 고통은 점점 작아지는 겁니다.
그러니 이 기간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걸어오는 걸음에 있어서 출발 당시에는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핍박의 과정도 있지만 민족적인 핍박, 국가적인 핍박, 세계적인 핍박이 한꺼번에 몰아친다는 겁니다. 반대라는 거예요. 개인들이 지닐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이념의 내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싸움을 전개시켜 가지고 승리해야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자리 잡을 때까지 이 기준을 세우는 데는 말할 수 없는 역사적인 총탕감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개인이 세워 놓은 것이 무엇이냐? 내적 심정세계에 있어서 개체가 승리한 그 개체의 승리는 반드시 이 내정적인 승리 기반을 동반한 터전 위에서 나타나게 되니, 그 내정적인 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싸움의 무대가 전체성을 대신해 있기 때문에 핍박이 강합니다. 개인·가정·종족 전부가 핍박한다는 거지요.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여기 이 사람이 1960년부터 7년 과정을 넘어서 이 놀음을 하는 겁니다.
그럼 어느때에 평형이 되느냐? 어느때에 이스라엘 민족과 사탄세계,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평형이 되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승리했으면, 예수와 하나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과 사탄세계가 예수를 의지하고 단결해서 민족만 찾게 될 때는 로마제국과 동등해진다 이겁니다. 동등한 자리에 선다는 겁니다.
마찬가지 입장에서 지금 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을 중심삼고도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한국 백성을 중심삼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볼 때, 단체적으로 볼 때는 이 민족 앞에 통일교회가 아벨이요, 이 세상은 가인입니다. 우리 교회적으로 볼 때, 여러분과 선생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인 아벨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소생이 소생으로서 완성되려면, 소생이 소생으로서 승리적 위치를 결정하려면 완성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요, 장성이 장성으로서 승리적 위치를 결정하려면 완성을 결정지을 인연을 개재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문제란 것은 하늘을 지향하는 이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아야만 수습되는 겁니다. 수많은 종교가 갈라지고, 수많은 인류가 파괴되는 것을 누가 수습할 것이냐? 이 이념세계에 있어서 지금 좌우로 분열된 이런 투쟁의 환경을 누가 타파해 버릴 것이냐?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떠난 후에는, 예수가 갔으니 제자들은 다 그만두자고 보따리 싸 가지고 다 갔지만, 예수가 나타난 후에 예수의 뜻을 다시 받들기 위해서 생명을 각오하고 다시 모였습니다. 마찬가지예요.
종적인 것만 벌어지던 것이 이제 횡적인 것도 이루어집니다. 지금 선생님이 외국에 가겠다는 그런 환경이 돼야…. 선생님은 지금 1957년을 중심삼고 만 7년이 되기 때문에 우연이지만 외국에 갔다 돌아오게 돼 있는 것입니다. 왜? 재차 수습해 나와야 되기 때문에. 과거를 탕감해야 할 인류의 사명을 하려 했지만 심정적인 기준에 있어서 이것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재차 수습해야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적인 이념으로 무장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민족적이었습니다. 그저 한국만 요리하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을 사랑하듯 세계를 사랑하고, 통일교회 교인들을 사랑하듯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종적 세계의 인연으로서 여기에 집착하여 벌어진 것을 어차피 가인 아벨…. 영적 기준에 있어서 지상에서 청산할 수 있는 고개를 거쳐 가지고 탕감해서, 여기에서 국가적인 승리를 예수의 한 몸을 중심삼고 해 가지고 비로소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편안한 자리에 동할 수 있는 예수가 되었더라면, 유대 나라 어디에 가든지 그를 지지하고, 그를 모실 수 있고, 그가 어디 가든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환영할 수 있는 그런 천지의 예수가 되었더라면…. 예수의 몸과 마음이, 예수의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이 상충됐다 이거예요.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았으니 여기에 그 싸움이 남아져 있는 겁니다. 이 싸움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적인 싸움터가 다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면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을 위하고, 땅의 실체를 중심삼고 하나의 이념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이념을 총합한 실체에 있어서 내적 사정과 외적 사정이 일치되어서 마음대로, 동서사방 어디든지 움직여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끔, 움직여 가지고 전체적인 목적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게 되면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점점점점 커지는 핍박의 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주권, 두 주권, 세 주권을 거치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핍박이 크고, 어려움이 큰 거기에서 점점점….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민족적인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기준을 세울 것이냐? 이 땅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는 지금은 예수가 봉착하던 그 시대의 사명이 이루어진 그런 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적인 입장이고 아벨적인 입장이니, 아벨적인 입장과 가인적인 입장이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일체가 되어야 돼요, 일체가. 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 인연을 동반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대책을 취해 왔기 때문에 금후의 중요한 문제, 하늘이 찾고 있는 개인, 하늘이 찾고 있는 가정, 하늘이 찾고 있는 종족ㆍ민족ㆍ국가….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하늘이 6천 년 동안 찾아오던 그 개인이 누구며, 그 가정이 누구며, 그 종족이 누구며, 그 민족, 국가, 그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것을 좌우하는 책임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선 오늘 통일교회의 운명,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의 운명이 아니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러분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투쟁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은 어느때에 했느냐? 못 했습니다. 못 했으니 대표적으로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이 사명을 해 나가는, 이 사명적인 터전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 가지고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그런 터전에 임해야 할 것이…. (녹음이 잠시 끊김) 개인적인 사명을 할 때는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가정적인 사명을 할 때는 가정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종족적인 사명을 할 때는 종족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국가적인 사명을 할 때는 국가적인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교회 행사를 중심삼고, 1960년부터 1963년까지 우리가 행사한 것이 그 순서가 어떠한 특정한 개인을 중심삼은, 개인을 대표한, 개인 그 자체를 중심삼은 행사가 아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을 일깨우고, 수많은 종족을 대표할 종족을 일깨우고, 수많은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를 일깨울 수 있는 국가적인 대표들을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내적인 인연의 중심과 기리까에(きりかえ;바꿔치다)해서 연결시켜 나오는 거룩한 싸움이요, 그런 거룩한 의식이었다는 것을 진정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이겁니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던 소원의 기준이 무엇이냐?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먹고 살고, 메시아를 통하여 생활하고, 메시아를 통하여 나고 살고 죽겠다는 것이 전체적인 목적 기준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이 가는 길도 여러분 개체로서는 절대 갈 수 없습니다. 복귀의 기준, 복귀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혼자 가는 거예요, 혼자. 혼자 가 가지고, 이 지상에서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이 공중 권세를 뚫고 올라가 가지고 영계에 들어가서 내정적인 이 전체를 상속받아 가지고 다시 오는 겁니다. 와 가지고 전체가 가는 기준, 개인과 가정, 종족으로 이걸 전개시키는 싸움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한 말이 그거예요.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라, 네 가정보다도, 이 나라보다도. 어차피 청산되어야 할 이 나라, 어차피 청산되어야 할 이 민족, 어차피 청산되어야 할 이 가정, 청산되어야 할 내 자신, 청산되어야 할 이 세계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이런 자리에서 독립해 나서 가지고 거기에 내적으로 인연된 하늘의 심정적인 사정을 딱 꿰어 들고 '나는 하나님의 내적 사정과 소망의 창조이상을 받들고 여기에 서 있고, 내 실체는 세계를 대표한 승리적인 자체로 서 있나니, 내게 있어서는 개체지만 하늘이 찾아오던 개인을 대표했고, 가정·종족·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이런 신념을 여러분들이 갖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이 시대에 있어서 제일 소원하는 것은 어느때에 가정적인 시대가 올 것이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소원하던 것이 무엇이냐? 이 땅 위에 개인적으로 하늘의 사명을 갖고 왔지만 그가 소원하던 것은, 세계적인 소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소원하던 것이 뭐냐 하면 개인 시대에 있어서는 가정이 소원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정이 소원입니다. 그러면 소원하는 그 가정을 닦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인 이 모든 전체를 중심삼고, 가정을 찾기 위한 싸움에 있어서 역사적인 심정의 터전을 닦지 않고는, 역사를 대표하여 승리의 터전을 세울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러면 가정을 가진다면, 가정을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종족 때문에. 종족을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민족 때문에. 민족을 세우는 것은 국가 때문에. 국가를 세우는 것은 세계 때문에. '때문에' 고개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이 책임지역에 들어가 가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 이것이라는 겁니다. '내 가정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종족을 구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우리 가정이 고생할지라도 앞으로 축복받는 가정들을 안식을 시켜야 돼. 우리 민족이 수고하더라도 세계를 안식시켜야 돼' 하는 이런 사상적인 이념이 전생애의 배후가 되어 가지고 자기 위치를 승리적인 자리에서 결정지어 가지고 승리적인 자체로서 생활을 영위하고 환경을 개척하는 가정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스라엘권 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산다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1957년도에 여러분들이 전도활동 나갔을 때는 통일교회란 말을 못 했어요. 벅찬 가슴을 누르고, 한 많은 사연을 가지고, 길을 가나 어디를 가나 분함의 마음에 사무쳐 왔지만 이것이 풀려 이제는 동등한 입장에 섰습니다. 우리가 치면 부딪쳐서 누가 깨져 나가느냐 할 수 있는 대등한 입장에 설 수 있는 때가 왔다 이겁니다, 대등할 수 있는. 민족이 없는 가운데서 우리는 이 민족을 창건했고, 종족이 없는 가운데서 종족을 창건했다 이겁니다. 그것은 이 사탄세계에서 민족이 해야 할 사명이었다 이겁니다. 하늘 앞에 불리운 이 나라가, 이 민족이 하지 못하게 될 때는 하늘적인 입장에 선 우리들은 하늘세계를 대표해서 민족적인 사명을 완결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이냐? 민족적인 제단 과정을 걸어가자 이겁니다. 이것이 지금 통일의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민족적이 제단 과정을 걸어가자! 이리하여 국가적인 제단 과정을 가자! 그리하여 민족운동을 해서 세계적인 제단 과정을 거쳐서 걸어가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엉키고 엉켰던 실체적인 이 복귀도상의 이 전체 이념을, 천지를 기준으로 하는 소망의 전체 목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실체적인 기준에서의 투쟁을 해서…. 민족 기반이 아니라 국가적이 기준과 세계적인 기반을 동반시키면서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 천지간에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본래 타락이 없었으면 이 세계는 하나님이 직접주관하는 세계가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세계에서 아담 해와의 주변에 천사장이 들어와 가지고 그 천사장이 하나님 앞에 참소의 조건이 있어서 참소를 한다 해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 하느냐? 그게 아니예요. 천사장은 언제나 하늘이 임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선 자입니다. 참소도 없고 부자유도 없고 하나님이 자유자재로 응하고 대할 수 있는 그런 세계적 자리에 세워 놓고야 비로소 천국이상이 완결될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의 이념을 세워 놓고 이 민족 앞에 얼마만큼 그러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겠느냐? 여러분이 이 시대에 있어서 책임진 것이 무엇이냐? 이걸 생각할 때, 지금 우리들이 가는 길 앞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거예요. 이걸 망각해서는 안 돼요. 민족적 기준에서 보면 여러분은 민족 기준에 걸리는 것이 없으니 세계기준을 향하여 달려가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갈 길을 달려가야 돼요. 선생님이 가는 데, 선생님이 가면 따라가고 오면 따라오고. 생활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거 없어요, 다른 거. 통일교회는 하늘이 이 시대를 향하여 가는 그 걸음을 향해서 어디든지 가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점점 가까와 오는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나오는 것을….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하늘이 얼마나 개인을 흠모하였고, 가정을 흠모하였고, 종족을 흠모하였고, 민족ㆍ국가를 얼마나 고대하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인류의 수많은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고대해 나왔고, 이 땅 위에 메시아 예수가 와 가지고 소망하던 그런 실천적인 무대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그때를 얼마나 기다렸느냐? 한 많은 2천 년 역사 동안 영적 복귀의 기대를 개척해 나오면서 지상에 실체의 기대를 전개하여 이 세계가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고 외적인 기준과 이걸 움직일 수 있는 이러한 세계적 기준까지 남겨 주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던가 하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한 많았던 이 수고의 역사, 역사적인 종말에 처한 오늘날 여기에 있는 개체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개체 가운데는 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자,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자,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자,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가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있어서, 상대적인 기준에서 현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개체를 대신할 수 있는, 선생님이 지내 나오던 역사적인 그러한 노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 민족,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대표자는 누구일 것이냐? 이게 이 가운데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세계에 있어서 그런 대표자가 있어야 돼요.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그런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전체가 못 되어도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인들 가운데 젊은이로부터 혹은 나이 많은 사람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생님이 지금까지 뜻을 대해 나오던 정성어린 그 이념과 그 사상에 사무친 심정적인….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오늘날 40평생에 남아 있던 거와 마찬가지로 6천 년 역사의 종말을 맞는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찾아 나오는 전체의 그 기준 가운데서 잘못 지내온 것을, 일대에 움직여 나오던 피어린 그 흔적을, 여기에서 세계적인 실체가 있어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국가 기준에 있어서 시대적인 탕감복귀를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걸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신세를 지는 입장에 서 있느냐, 신세를 끼치는 입장에 서 있느냐? 또, 하늘을 대표해서 나서는 내 개체를 두고 볼 때 나는 어떠한 개체냐? 개인을 대표해서 이 전체 앞에 하늘이 찾아올 수 있는 개인적인 사명을 완결할 수 있는 책임을 해보겠다고, 길이 막혀 있는 거기에서 투쟁하여 하늘편이 여기 있다고, 그 실적을 갖고 하늘 앞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하지 못하면 가정을 위한…. 가정에 있어서 그런 결의를 하고 민족적인 길을 개척하여 민족 앞에 있어서 하늘이 대신 세울 수 있는 가정의 대표자가 되겠다 해야 돼요. 민족적인 기준 앞에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가져야 돼요. 그런 법칙이 있는 거예요. 발전적인 기대를 전개하여 세계 천주적인 이념을 세우고 나가는 데 있어서 전체는 못 하더라도 항상 시대를 대표할 수 있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뜻을 대하여 나온다고 했지만 뜻을 대하는 내 자체를 두고 볼 때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 가인이냐, 아벨이냐? 가인이면 아벨을 위할 수 있는 가인이냐, 아벨의 갈 길을 막는 가인이냐? 그 가인이 개인적인 가인, 가정적인 가인, 종족·민족·국가적인 가인으로서 따라 나온다고 하지만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는 환경과 그런 위치에 자기 자체가 놓여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쉬운 오늘날 우리 식구라는 것을 선생님은 절감하는 겁니다.
이러한 여러분을 통하여, 민족적인 대표자로서 이런 이념을 대표하여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고, 선생님이 기억할 수 있고, 혹은 전통일의 용사들이 그를 기억해 줄 수 있는 그런 유대를 가져야 하는데 과연 여러분들이 어느때에 그런 위치에 설 수 있느냐? 하늘땅을 걸고 뒤넘이치고, 아브라함이 뜻을 대하던 심각한 자리에서 심각한 마음을 갖지 못했던 그 한 많았던 것을 탕감하고, 노아, 함이 심각한 입장에서 해결지어야 할 사명을 하지 못한 것을 탕감하고, 혹은 모세가 심각한 자리에서 민족을 걸고 해야 할 그 사명을 하지 못한 것을 탕감하고, 예수 대신 제자들이 심각한 입장에서 해야 할 책임을 못 한 것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 어느때에 서 봤느냐? 이것이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 앞에 바라는 하늘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집에서는 안 돼요. 그래서 전체 동원이다 이겁니다. 전체 동원이예요.
개인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가정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종족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민족적인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이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올수록 그 책임을 개인적으로 안 됐으니 가정무대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해야 되고, 가정무대에서 안 됐으니 종족시대에 탕감해야 되고, 종족시대에서 안 되었으니 민족시대에 탕감해야 되고, 민족시대에서 안 되었으니 세계무대에서 책임해야 됩니다. 개인으로서 전체를 대표하여 개인과 가정ㆍ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를 대표할 수 있고 천주를 대표할 수 있는 상대적인 기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여러분 가정의 고생의 노정을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입장에 선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개인이 결정되지 못한, 가정이면 가정적으로 결정되지 못한, 혹은 종족ㆍ민족적으로 결정되지 못한 내 자신이 오늘날 국가적인 시대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면 꺾이고 마는 겁니다. 여지없이 꺾여 나가요. 그는 개인을 배반한 자요, 가정을 배반한 자요, 종족과 민족을 배반한 자입니다. 차라리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피땀을 흘리고, 하늘이 6천 년 동안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 그 거룩한 제단을 위임받는다는 거예요. 이러한 역사적인 초점상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초점상에. (판서하심)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아벨이 역사적인 초점상에 선 것을 자기 자신은 몰랐습니다. 노아가 역사적인 초점상에 선 것을 몰랐습니다. 그가 깨지는 것은 세계적인 인연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요, 노아도 마찬가지요, 예수님 생존 당시에 예수를 모시던 제자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역사적인 초점상에서 좌 하느냐, 우 하느냐? 그 한 개체가 좌 하는 것은 문제가 없더라도 그 한 개체로 말미암아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민족과 우리의 종족과 우리의 가정이 끌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일단 선생님이 지금까지는 민족적인 책임을 하는 겁니다. 민족적인 사명 앞에 있어서 지금까지 책임을 다해 나왔습니다. 이 민족 앞에서는 선생님이 하늘을 대해서나 땅에서나 책임을 다했습니다. 어떠한 애국자가 있고, 어떠한 충신 열녀가 있다 하더라도 그거 못 해요.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려야 됩니다. 그거 못 하면 하늘땅과 이 백성이 곤란해요. 하늘땅이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때가, 세계적인 무대와 인연을 거쳐야 할 이런 때가 돼 옴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어느 기간까지 여기에서….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이와 같은 내용과, 이와 같은 싸움을 도맡아 가지고 나오던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질 것이냐? 내가 사랑하고 내가 위하던, 내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내가 축복가정을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오늘날 통일의 무리를 사랑하고 이 민족을 위하던 그 심정적인 터전을 누가 맡을 것이냐? 이것을 누가 맡을 것이냐? 역사적인 한 많았던 하나님의 한이 머물러 있는, 하늘땅이 찾는 개인과 하늘땅이 찾는 가정과 하늘땅이 찾는 종족과 하늘땅이 찾는 민족은 어디 갔느냐? 이 자리를 통하여 민족을 부르고 있고, 이 자리를 통하여 종족과 가정을 부르고 있고, 이 자리를 통하여 개인을 부르고 있나니, 대표할 수 있는 책임자가 떠나게 된다면 누가 지켜 주겠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를 남기고 가는 겁니다. 자식들을 남기고 간다 이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전체가 합해서 선생님의 책임을 대신하고, 이 가정을 보호하고, 이 민족, 국가를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심정적으로 품고, 이념적으로 그 위치를 세워 나가던 그것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책임하고, 하늘을 대하던 그 기준을 여러분을 움직여 가지고 그걸 연장시키고 지속시키려니 여러분 앞에 전체 동원할 것을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번 기간이 여러분 앞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세울 수 있는, 하늘 앞에 지금까지 민족적인 사명을 못 했던 것을 어떠한 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한 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도 얘기했지만, 사실은 나는 이 삼천리 강토, 혹은 수많은 도주를 찾아 가지고 군중 앞에서 외치고 싶고, 수많은 군중을 교육하여 삼천리 반도를 움직이고, 삼천만 민족의 운명을 해결짓고 싶은 이런 마음이 강하지만 몸뚱이가 하나니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의 40연령을 대표한 대표자로서 여기서부터 외치고 싶은 하늘의 사명을 짊어지지 못한 한을 여러분이 풀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이번 6개월이란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 놓고 지성을 다하는 그런 생활을 해야 됩니다, 6개월 중심삼고.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이 자리에 동참했지만 당연히 참석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는 시시하고, 여기에는 바람이 들어오고 다 허물어진 집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천지의 공사를 움직여 나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자리는 눈물과 피땀을 흘리고도 살 수 없는 자리라는 겁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이 꽁보리밥을 먹고 처량한 자리에 누웠더라도 여기에는…. 시시한 곳이 아니예요. 핍박을 받고 서 있지만 여기에서 천주사를…. 그러기 위해서 투쟁을 한다 이겁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예요. 제물 중의 제물이 올라와야 할 이런 자리에, 내 부족한 자체가 여기에 머물러 하늘을 찬양하고, 여기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황공하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통일의 울타리에 들어와 가지고 그 울타리 안에서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그 자체는 뭐냐? 하나님 앞에 짊어진 빚과 이 땅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의 노고의 그 빚과 오늘날 뜻을 대하여 투쟁의 공적을 세우기 위한, 하늘의 심정을 대신한 땅의 책임을 짊어진 스승의 빚을 갚아야 됩니다. 만약에 이 사명에 대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책임 못 하는 통일교인들은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세계적인 제단에 서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그런 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 내가 뭐 편안한 자리에서, 내가 뭐 남이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가인적인 세계를 청산하여 아벨적인 천국을 이루어 여기서부터 영광된 천국을 이루어 가지고, 민족 기반을 중심삼고 이 민족의 한을 탕감할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보고 나가는 겁니다. 오늘도 싸움이요, 내일도 싸움이요, 어느 한 날 그 마음에….
예수님이 기도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신 아버지의 뜻, 그 아버지의 뜻, 영적인 아버지의 뜻, 그 영계의 아버지의 뜻을 완결지어, 실체의 아버지가 계시니 실체의 아버지의 뜻….
그리하여 여러분은 역사적인 시점상에서 말씀을 통하여 나온 겁니다, 말씀을 통하여. 그다음에는 인격을 통하여, 그다음에는 혈통을 통하여.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아담의 타락이 무엇이냐? 하늘이 세우려 했던 이념천국의 그 이상(理想)과 더불어 세웠던 말씀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우주의 축소형의 실체 존재로 세웠는데 그 인격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선의 혈통이 깨졌다는 겁니다. 선의 혈통을 깨뜨려 버렸으니 사탄이 들어선 겁니다. 그럼으로써 하늘의 심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찾아야 돼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개인에 있어서의 말씀을, 개인에 있어서의 인격을, 개인에 있어서의 하늘의 심정적인 혈통을 세워야 돼요. '나는 누구냐?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이와 같이 개인에 있어서, 가정에 있어서, 종족 민족에 있어서의 그 기준을 찾아 나오는 겁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말씀은 어떠한 말씀이냐? 어떠한 개인과 가정과 종족권 내에서 머물 수 있는 말씀이 아니예요. 이것은 이념천국을 이룰 수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절대적으로, 원리적인 이 말씀과 일체화될 수 있어야 됩니다. 사탄이 거짓 입장에 있으니 이 말씀을 중심삼고 뭘해야 되느냐? 사탄을 제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말씀과 일체가 돼야 돼요.
여러분, 축복받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아요? 상속입니다. 혈통적인 상속의 인연을 맺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돼요? 이걸 다 거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예요. 맨 나중에 남는 것은 하늘의 혈통입니다. 하늘의 그 혈통이 여러분 개인과 가정·종족·민족을 중심삼고 직접 통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여러분들은 핏줄이 달라요. 핏줄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달라요.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구요. 동기가 달라요. 마음이 달라요. 자기밖에 몰라요. 전체를 무시해 버리고, 전체가 나를 위하여…. 하늘이고 선이고 무엇이고간에 나를 위하라고…. 전체를 위해서, '나'라는 것은 전체를 위해서 흡수되어야 해요. 방향이 다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어디까지 가느냐? 세계까지 가자,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하자, 만민이 형제니 이들을 위해서 나가자 이겁니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소망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어느 과정에 있는가를 알고, 지금 이때에 있어서 민족적인 책임, 국가적인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이런 사명적인 노정에 처해 있으니만큼, 이것을 해원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이 세계적인 섭리시대를 맞아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공세를 취해야 될 때가 여기서부터 전개돼 나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처해 있는 위치, 그 위치에서 하늘이 요구하는 실체, 그 실체는 어떠한 것이냐? 이런 역사적인 말씀과 인격과 혈통과 심정을 대표해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늘 앞에 사명을 다하고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아시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어요?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어요? 소망의 개인을 위해 살고 있고, 소망의 가정을 위해 살고 있고, 소망의 종족을 위해 살고 있고, 소망의 민족을 위해, 소망의 국가, 소망의 세계, 소망의 천주를 위해 살고 있어요. 7단계에 걸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소망의 개인을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어요? 소망의 가정을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어요? 소망의 종족, 소망의 민족, 소망의 국가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어요? 이건 자기 집안이니 무엇이니 해 가지고… 이건 원리가 그래요. 내 말이 아니예요. 원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원리가.
여러분이 가는 길은 다시 안 옵니다. 다시 안 와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따라오면서 선생님 명령대로 한 것이 있어요? 한 것이 있어요? 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전체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겁니다. 그게 7년노정입니다. 전체가 고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도 나가는 전도 대원들, 혹은 여러분들은 마음대로 살았지요, 마음대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음대로 살지 않았어요, 마음대로?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자식을 품고 귀여워하고 싶으면 귀여워했고…. 먼저는 하늘 개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먼저는 하늘 가정을 사랑해야 됩니다. 먼저는 하늘 종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늘 민족, 하늘 국가, 하늘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거 틀림없이 사랑했다. 사랑했으니, 하늘을 사랑했으니 땅을 사랑해라'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 시대에 있어서 개인을 찾기 전에 자식이 있을 수 있어요? 있을 수 있어요? 없지요? 가정을 찾기 전에 자식이 있을 수 있어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길을 걸어오는 겁니다.
개인을 찾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가정이 있으면 가정을 내버리고 개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종족이 반대하면 종족을 버리고,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을 버리고 나서는 겁니다.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를 버리더라도 이걸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신앙길입니다. 내가 아는 신앙길은 그래요. 여러분은 어떤지 나는 모르지만 그런 경지에서, 원리관적인 경지에서 여러분의 생활적인 모든 것을 비판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시정해야 될 게 참 많아요.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하루를 살 때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 앞에 기쁨을 줄 수 있는…' 하는 기도를 해야 돼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또 잘 때는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이런 것을 해 나왔다' 하는 이런 기도를 해야 돼요. 청산지어 나와야 됩니다. 그 싸움이예요. 여러분 생활이 그래요? 자기가 청산해야 할, 내가 가야 할 이 길을 가야 돼요. 여러분이 머무는 환경에서 청산지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책임지고 나가 전도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때가 민족적인 자립을 해야 할 때이니만큼,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책임, 모세와 아론과 혹은 미리암과 같은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때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남자는 아론의 책임을 하고 여자는 미리암의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게 하나 안 되는 날에는 벌받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았으니 거기에는 불만이 있을 수 없고, 불평이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일체예요. 여러분들은 이 전체 노정 앞에 있어서는 실체를 대표하는, 종적인 인연의 실체를 대표해 가지고 이런 심정을 가지고 승리적인 기준에 이끌려 들어가자는 겁니다. 이런 기준 앞에 전부가 일체되어 신념을 가지고 일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책임을 다할 것을 부탁해요. 알겠어요? 「예」 그럼 여기 책임자들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내려요. 거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3대를 넘어가야 해요. 전통이 그래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내보내는 겁니다. 책임자는 모세를…. 여호수아의 승리는 모세의 승리요, 민족의 승리였습니다. 모세는 민족보다, 여호수아보다 더 내적인 심정세계에서 이념을 붙안고 뒤넘이쳤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그 민족도 그와 같은 기준에 있었으면, 그런 민족이 되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나가 싸우는 그 기간에 심정일체가 됐느냐? 그들이 좋아하고, 그들이 기뻐하고, 그들이 편할 수 있고, 그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 무엇을 아끼지 않는다는 이런 각오 밑에서 여러분이 개척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민족은 망하지 않아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만큼 이번 기간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조심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와 같은 싸움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 행주치마 알지요, 여자들? 민족의 원수를 막기 위해서도 행주치마를 걸치고 전부 다 별의별 짓을 했는데, 여러분은 지게를 지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것도 각오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번 기간에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자원해서 우리 지역을 반드시…. 두 달이면 한바퀴 도는 거예요. 1년에 6개월을 돌아다녀야 돼요. 두 달에 한번씩은 자기 지역을 갔다 와야 돼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총궐기해야 돼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처한 이 입장은 선생님이 아까 말씀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처해 있는 위치, 그 위치, 우리들이 처해 있는 그 위치가 얼마나 역사적인가를 알아야 돼요. 여기에 참이 될 수 있는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인 어떠한 일면을 반드시 탕감하여 어느 분야에서든지, 가정적인 참전권 내에서 승리를 하든가, 개인적인 참전권 내에서 승리를 하든가, 어느 한 분야에서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싸움에 참전하고, 종족적인 싸움에 참전해 가지고 넘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선생님이 명령하는 대로 언제나 일치단결해서 움직여라 이겁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이런 싸움터에서 개인적으로 승리한 게 뭐 있어요? 전부 다 지지부진해 가지고 끌고 나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전체를 책임진 입장에서 탕감하는 권내에서 뒤넘이쳐 가지고 이것을 해결짓고 넘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 선생님이 하는 이 일에 반응되어서 세계는 돌아가는 겁니다. 돌아가야 돼요, 돌아가야 돼.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은…. 앞으로는 그래요, 앞으로는. 선생님 대해서 너무 관심 갖지 말고…. 예수님이 승천한 이후에는 제자들이 다 했지요? 그렇잖아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이제 마음대로, 천하에 어디 가도,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을 만큼 여러분들이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자율적으로 되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명을 각오하고 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선생님이 없어도 죽음을 버릴 각오해 가지고 천국을 복귀하기 위한 싸움터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예」 어디 그렇게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거 말들은 고맙습니다, 사실은 접어 놓고. 여러분들이‘제발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게 요 4년 노정에….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마 자기 자식이 죽을 자리에 있으면, 땅이 뒤집혀지는 그런, 외아들, 독자가 죽어가는 입장, 급살을 맞아 죽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으면 내가…. 복귀역사가 그렇다는 겁니다. 복귀역사가 그래요. 하늘이 지금까지 이걸 판가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왔던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처량한 입장인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얼마나 슬펐던가를 잘 알아야 되는 겁니다. 하늘이 얼마나 슬펐던가를 잘 알아야 된다구요.
또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과연, 어제도 내가 얘기했지만, 6천 년 동안 찾아 나오던 교회라는 것이 사실이냐 이거예요. 과연 이 이론이 하늘땅의 사탄세계를 제거하고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이론이냐 이겁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냐? 얼마나 생각해 봤어요? 교회에 나간다고 교회 나가는 것이 아니예요. 이걸 내가 가지고, 행동을 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여기에 잘 드나들면 세계도 왔다갔다하고 천국도 왔다갔다하지만 못 드나들면 울타리밖에 못 넘어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것은 틀림없이 억천만년을 중심삼고 한 번 밖에 없는 겁니다. 무한한 역사도상에서의 한점과 같은 이런, 한점과 같은 그 권내에서 전체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그 가치 내용이 나로 말미암아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 그거 얼마나 심각해요? 그거 생각하면 뭐, 지치고 뭐….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싸웠어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내가 어머니보고도 계속 이런 얘기 합니다, 나를 더 사랑하지 말라고. 그건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환경에 나를 얽매지 말라 이겁니다.
하늘이 바라던 소망의 가정, 하늘이 소망하던 가정이 이 가정인데 하늘이 바라던 종족의 중심, 종족을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이 이것이냐? 민족과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이 과연 이것이 될 것이냐? 과연 그러한 내적인 심정의 터전을 붙안고 나가고 있느냐? 선생님은 그러한 경지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 자신만은 그 법도에 어긋나서는 안 되겠다, 지금도 그렇게 나와요, 지금도. 지금도 선생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지 않고는 탕감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어림도 없는 말이예요. (녹음 상태 불량으로 약간의 분량을 수록하지 못함)
내가 나오는 길에서는 그러한 명령을 배우지 못했어요.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꿈에도 생각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 집 때문에…' 하지만, 그 집이 하늘의 전체 이념을 대표할 수 있는, 정진할 수 있는 집이예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걸 전부 다 깨뜨려 버리라는 게 아니예요. 선이 문제가 돼요. 어떤 게 가인이고 어떤 게 아벨이냐?
하늘의 사람들은 가인 아벨 노정을 어떻게 찾아가느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가정에서 조정해야 됩니다. 어떻게 조정하느냐? 작전을 해야 돼요. 싸움을 하고 정복을 해야 돼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과연 이때 앞에서 소망의 천국을 지향해 들어가는 이 관문에 선 여러분이 얼마나 엄숙한 입장에 섰는가를 여러분 자체가 느끼고…. 여러분 자체가 어떠한 한 분야의 조건이든 결정을 지어 놓은 그 세계가 승리의 세계가 될 때, 개인이라든가 가정환경이라든가 종족적인 어떠한 입장에 설 수 있지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국가적인 승리에 필요한 만큼 기준만 벌어지게 되면 여러분이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겠어요? 그럴 만한 자격들이 돼요? 지금 때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때밖에. 이 4년노정이 얼마나 귀해요? 그래, 세계적인 무대에 나설 자격을 갖추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잘났든 못났든 민족적인 무대에는 다 동참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한 때가 왔어요. 그러한 사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이제부터의 우리가 계획하는 이 책임 시기를 여러분은 엄숙한 입장에서 지켜서 수행하는 데 동참해 주기를 부탁해요. 알겠지요? 「예」
죄악의 세상은 그칠 줄 모르고, 이 인류의 최후의 운명을 역사적으로 결정지으려 하는 이 엄숙한 순간에 놓인 것을 저희들은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사망의 물결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자기의 정체를 수습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홍수 물결에 잠겨 들어가는 이 세상인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흘러가는 이 역사적인 죄악사를 가로막고 이것을 한 방향으로 돌이켜 부디 인류가 침해를 받지 않게 흘러가도록 갈라놓아야 할 이 책임과 사명을 해야 할 이런 사람들이 엎드려 있사옵니다.
이 인류는 사망의 세계, 사망의 도가니에서 천추의 한과 더불어 매장 되어 있는, 이런 엄청난 시대적인 전환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이와 같은 출정을 앞에 놓고 바라보는 이 민족의 사정, 이와 같은 세계의 사정, 이와 같은 하늘땅의 사정을 앞에 놓고서 저희들이 하늘을 대신해 섰다는 입장에서 볼 때, 과연 그 누가 이런 책임을 하겠읍니까? 아버지, 저희들이 책임지겠다고 이미 맹세한 바가 있습니다. 험한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는 이걸 해결할 수 없는 것이요, 흘러가는 홍수의 물결보다 더 위세를 가진 그런 결의와 그런 용맹심을 갖지 않고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전후의 이 자리를, 이 위치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의 힘이 부족하거든 믿음의 마음이 강하게 하여 주옵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죽음보다 더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 전체의 그 무엇보다도, 가정보다도 더 강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마음에서 내가 일어나고, 그 마음에서 말하고, 그 마음에서 살고, 그 마음에서 죽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거룩한 하늘의 용사들이 저희들이옵니다.
용사의 그 제물은 죽음과 싸워 이기는 표적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통일의 용사는 하늘의 사랑의 정의의 깃발을 들고 그와 더불어 싸우고 그와 더불어 죽어가야 된다는 이런 엄숙한 과제를 등에 짊어지고 오늘도 내일도, 일 년 이 년, 생애를 걸고 가야 할 이와 같은 자체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세상에서 불쌍하다면 가장 불쌍한 것들이옵니다. 그 슬펐던 아버지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내 슬픔은 아버지의 슬픔에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았사옵고, 아버지의 딱한 사정이 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내 아버지인 것을 모르고 천번 만번 배반하던 내 자신이 아버지의 그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에 몰랐던 과거를 고하면서 내 사정을 잃어버려야 할 우리의 길임을 생각하게 되옵고, 아버지의 처참함에 비하게 될 때 우리의 처참함은 억천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내 비참함을 잃어버리고 도리어 하늘의 비참함을 동정하여야 할 우리의 사정, 이것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하고, 그 누구도 맛보지 못하고, 그 누구도 처할 수 없는,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이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내가 이 자리에서 감사하고, 슬플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비참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도록 나를 불러 주셨고 나를 세워 주신 것을 하늘 앞에 감사하고 땅을 대해서 감사합니다. 저희의 마음이 가고 가더라도 이 감사의 마음을 뺄 수 없고 행하고 행하더라도 이 감사의 심정을 넘어설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느낄 줄 아는 통일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많았던 복귀의 길을 아버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6천 년 동안 수고하며 참아 왔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참을 줄 모르는 경솔한 아들딸이옵니다. 저희들은 끈기 있게, 강인성 있게, 인내성 있게, 아버지의 전통을 본받아야 할, 그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책임져야 할 것이었으나 저희들은 너무나 경망하였습니다. 과거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한 하늘을 원망했고 땅을 저주했던 저희인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통일의 이념을, 아버님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이 이념을 이끌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였습니다. 여기의 당신의 아들딸들이 수고하였습니다. 수고의 공적을 가진 그 터전 위에서 그 수고를 바라보며 하늘 앞에 과거를 노래하고 오늘을 다시 건설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사오니, 또 가야 할 시련을 두고 있는 저희들이 지칠 줄 모르고 내일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몸과 마음을 통하여 하늘 앞에 감사하는, 하늘 앞에 진정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생활에서 뗄 수 없고 반대하는 그 무엇이 없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이어갈 수 있는 섭리의 모든 뜻을 우리들로 말미암아 판가름 지으시옵고,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하늘이 원하시는 전체 해원성사를 저희들이 수고한 눈물과 피땀을 통하여 이루어서 받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시던 아버지 앞에 스스로 미안함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민족을 택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발길 앞에 너무나 불충스러운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이 부르신 그 길을 따라오는 이 아들을 보시어서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기에 눈물을 뿌리고 이 종족을 아버지 앞에 접붙이기 위하여 수고하였던 공적의 터전을 당신은 기억하시오니 그러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보시어서 이들의 흠을 덮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의 사명과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여 하늘 앞에 고이 제물된 입장에서 엄숙히 스스로 책임을 지고 분향할 수 있는 본연적인 책임을 이번 당신의 아들딸들을 통하여 이루어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펐던 사정을 푸시옵고, 핍박받고 조롱받던, 억울하였던 저희의 모습들이 과연 살아 계신 하늘의 그러한 인연 가운데 드러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뭇 무리 가운데 생명의 빛을 비추시어서 어두운 세계를 자동적으로 굴복시키고 자연적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여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으로 높일 수 있는 금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0여 평생을 아버지,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이 나라 이 민족을 망하지 않는 자리에 세워 놓고 통일의 이념으로 지금까지 이끌어 주시어서 저희들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이런 선서와 더불어 맹세를 할 수 있도록 오늘 이날까지 남겨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이 가운데는 사탄의 방해도 많았사옵고 사탄의 참소도 많았사오나, 하늘이 여기에서 저희들의 토성이 되었사옵고 저희들에게 분부를 내리시어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어서 아버지의 뜻 가운데, 아버지의 품 가운데서 도피소를 마련했고, 그 품에서 저희들이 안식의 터전을 찾을 수 있도록 오늘까지 이끌어 주신 은사를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들이 가는 길,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영광과 사랑이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행동하는 생활무대에 길이길이 얼크러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 수고하여 지은 개체였고, 하늘이 수고하여 세운 가정이었고, 하늘이 수고하여 세운 종족, 하늘이 수고하여 만들어진 통일의 무리들이니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참부모의 혈통적인 인연을 연결시키어 아버지가 찾아 세우기 위한 세계적인 심정의 터전을 그 무대에 잡아 놓고, 마음과 몸이 안식할 수 있는 행복된 하늘의 승리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년노정의 표어로 '승리적 주관자가 되라'고 하였사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문제였사옵니까? 저희 스스로의 개체로서는 그와 같은 승리자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연고로 이것을 위하여 역사가 동원되어 있고, 하늘에 아버지께서 동원되어 있고, 땅 위에 하늘을 대신하여 오신 참부모가 동원되어 있사오니, 이 인연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그 과정에는 승리의 일로가 그들 앞에 동반될 것을 바라옵고 하늘은 약속하였사옵고 이미 허락하였사오니, 그 모든 사실을 스스로 자기들이 상속받을 수 있는 실체적인 승리의 터전을 금번 기간을 통하여 민족 앞에 결정짓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져 있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우리의 통일의 아들딸들이 해외에도 널려 있사오니, 그들이 바라보고 소망하는 한날을 위해서 준비하는 만사 위에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앞으로 6개월은 우리가 정성을 들여야 할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선생님은 여기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스스로 천적인 책임을 갖고 기반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정한 시기에 불리움 받아 크나큰 사명을 지고 원수 앞에 서 있는 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창조이상의 목적을 두고 생각할 때에 정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열을 갖추어 행군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찬양을 돌려드려야 됩니다. 이것이 역사를 빛내는 엄청난 일이니만큼 신념을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출발도 공적이요 과정도 공적이니, 공을 세우는 입장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입니다.
아담 해와가 자라던 그 위치는 행복한 위치였으며, 하늘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이념 전체를 아담 해와에게 걸고 그것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되는 것은 개체의 완성, 가정의 완성, 세계의 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의 위치를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체를 중심하고 이루어야 할 가정과 세계가 어떠하여야 할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벨을 세우셨으나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아벨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원과 그 사정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오늘날까지 인류의 비참한 역사의 연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 1,600년만에 세워진 노아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은 하였으나, 하나님이 노아를 두고 바라신 그 내적인 심정을 몰랐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던 120년, 이 120년 기간이 하나님에게는 당신의 심정과 사정을 모르는 노아를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입장에서는 몇 억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세워 섭리하셨으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일치점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내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탕감복귀할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심정적 주체이십니다.
우리는 복귀도상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담 하나가 이루어야 할 기준을 못 이루었으니 다시 가정적 아담, 종족적 아담, 민족적 아담, 국가적 아담, 세계적 아담이 나와서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적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싸움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과거에 왔다 간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역사상의 모든 선지선열들이 못다 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에 다시 와서 영육 아우른 구원의 기준을 세워 실제적으로 전개시켜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축복과 대립되는 노정이 있으니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야곱도 가나안 복귀도상에 있어서 라반과 싸워 이기고, 천사와 싸워 이겨 가정적 이스라엘 기준을 닦았습니다. 내적 사탄 입장에 선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예수의 개체가 서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이 있어야 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있어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입니다.
오늘날 통일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적 기반을 공고히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에서 볼 때, 외적인 이스라엘과 내적인 예수님의 개체와 그 가정이 일체가 되었으면 그때에 세계를 수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왔던 사명을 완수했을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외적인 세계를 실체적으로 복귀하지 못했으나 내적인 메시아의 위치를 상속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약의 구원섭리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신도들이 이를 상속받아 내적 섭리의 사명을 다해야 했지만,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개인적인 이스라엘, 가정적인 이스라엘, 종족적인 이스라엘, 민족적인 이스라엘, 국가적인 이스라엘,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세워 나가야합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입장을,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의 입장을 재현시켜 그 범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원수에게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기 위해서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 직계의 자리를 세워 나오셨습니다.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민족이 한민족이라면, 이곳으로 오시는 주님은 세계의 모든 주권국가를 다 하늘 편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내적으로 개인을 승리적인 입장에 세움은 내적인 승리의 세계를 동반함을 뜻합니다. 통일교회가 출발할 때부터 말할 수 없는 역사적인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대각선을 이루어 나온 선과 악은 이제 서로 교차하여 악은 내려가고 선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하나님과 인연을 가진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1957년 이래 금년이 7년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적인 이념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가정적인 투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민족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여야 하겠거늘, 여러분이 언제 이러한 싸움을 책임지고 해봤습니까? 그러지 못했으니 이 스승을 앞장 세워서 투쟁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투쟁을 넘어선 사람이 가장 바라는 소원은 어느 때 가정적인 승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가정의 곡절을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축복가정들은 고생을 하더라도 이 나라의 가정들을 화목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민족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제물의 과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제물의 과정을 걸어가십시오.
여러분은 이념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민족적인 기준에 부합되어 있으며 또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되어 있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중한 것은 통일교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참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그리워하며 수고해 오셨던가?
뜻을 대하고 나온 식구들의 입장은 아벨을 죽인 가인이냐, 아벨에게 순종한 가인이냐? 이것을 여러분에게 질문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개인이 탕감해야 할 책임을 못하면 가정적으로 탕감해 나와야 했고, 가정이 탕감해야 할 책임을 다 못하면 종족이 그 책임을 탕감해 나와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40평생 이렇게 수고하여 닦아 놓은 기준을 책임질 수 있는 대표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충신 이상으로 땅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린 선생님이라는 것은 하늘땅이 공인합니다. 선생님이 없으면 이 민족과 하늘땅을 위하여 눈물 흘리던 그 기준을 누가 책임지고 대신해 줄 것인가? 그러기에 어머니를 두고 가며 애기들을 두고 갑니다. 이 책임을 세우게 하기 위하여 전체를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6개월이란 기간을 세워 놓고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가기 바랍니다. 6개월도 못하겠다는 사람 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고 울타리가 없다 해도 이 자리는 귀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억천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있으니 얼마나 귀한 곳입니까! 이 4년 기간 내에 책임을 못하면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자리에 여러분을 내보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던 예수님과 같이 영윈한 아버지의 심정을 통한 실체가 되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은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인격은 말씀을 통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는 인격이라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을 통하여 같은 혈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4년노정에 있어 국가적인 책임을 다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소망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임지를 나가는 3인 중 한 사람은 모세와 같은 책임, 나머지 둘은 아론과 미리암과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맡은 바 책임을 잘 이행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를 가 있든지, 여러분 스스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이념이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얼마만큼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 엄숙한 사명 앞에 동참하여 책임 다해 주길 바랍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의 그 무엇보다 강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의 그 무엇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
처음 오신 분네들은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복귀'라는 그 말을 모를 거예요. '복귀'라는 말은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 악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선한 세계를 향하여,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본연의 세계를 향하여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타락 전 세계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 복귀의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이해하면 아실 거예요.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지으셨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은 어떤 것보다도 사람 하나를 위주로 하여서 그의 영광과 그의 소망과 그의 돈독한 심정을 중심삼고 지으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그 인간 하나가 성장하여 소망을 성취함으로써 행복을 노래하고,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있기를 하나님은 얼마나 바라셨던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만들어 놓고 기뻐하시던 하나님, 아담 해와가 자랄 적마다 하나님은 애절한 심정을 가지고,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하나의 소망의 승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그때를 얼마나 그 간곡한 마음에서 고대하였던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라는 아담 해와를 앞에 놓고 지으신 창조세계를 바라볼 적마다 '너를 위해 지은 만물도 좋거니와 만물을 차지할 너를 바라보는 것이 더 좋구나' 하시는 아버지의 심정, 아버지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됩니다.
그러했던 아담 해와, 소망에 어리던 아담 해와,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 또 모든 만물세계에 있어서 그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될 중심존재인 아담 해와, 어느 한날 타락이라는 날이 있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고, 슬픔의 한날이 있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담 해와가 한 날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명사가 초래됐고, 슬픔이라는 명사가 초래됐고, 하나님의 소망세계에 흑암의 권세가 침범하였다는 사실은 원통하고 분통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시조의 슬픔은 마땅한 것이지만, 인류시조를 바라보고 소망을 갖던 하나님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당하였다는 사실, 인간이 슬퍼하는 입장에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이 불쌍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됐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는 이 땅 위에, 혹은 천지간에 있어서는 안 될, 혹은 이러한 생각이라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며, 이것이 왈 '인간 타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모든 심정의 내용이라든가, 하나님의 창세위업을 대신하여 소망하였던 그 전체를 아는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몰랐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완비되고, 모든 것이 완성된 그런 자리에서 전부 다 알고 깨친 자리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면 하나님의 창조 이념, 창조 위업은 어느 한날 완성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전체의 내용을 다 알고, 그 전체의 내용을 다 맡은 가치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자라고 있는 성장과정에서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완성, 오늘날 일반 기성교회에서는 믿기를 아담 해와는 다 성인이 돼서 모든 천지이치를 다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이나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능히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춘 한 남성 여성으로서 타락한 줄로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건 오해예요.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완성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을 공인하게 되면,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천국 가서도, 완성의 세계에 가서 그 세계에서도 타락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미완성 단계에서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위업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 마음속으로 서로 동경하는 하나의 아담 해와로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일념을 접할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하고 타락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서 생긴 것이 지금까지의 타락한 후손이 살고 있는 세계요, 타락한 세계가 벌여 놓은 이 악한 현실 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바라던 소망은 지금까지 소망대로 남아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소망은 소망대로 남아지고,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잃어버렸으니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슬픔도 많아졌고, 그 소망이 지극하면 지극한 그 비례에 따라서 하나님의 내적 고통을 초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성도들은 그 하나님이 슬픈 하나님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 지으심을 탄식한 하나님임을 절대 모르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인간의 한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슬픔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사탄의 권세권 내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사탄 권세는 천국문까지 밀어제끼고 하나님의 보좌 밑까지 휩쓸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소망했느냐?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인간세계를 대해 소망하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본연의 소망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 하는 거예요. 복귀의 한날을 바라 나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이냐? 구원이라는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을 물에 빠지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병난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뭐냐? 병나기 전 사람으로 복귀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가 와서 뭘할 것이냐? 구주가 될 것입니다. 구주가 된 후에는 무엇이 될 것이냐 할 때는 형님도 될 수 있고, 오빠도 될 수 있고 다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인간이 지금 알아야 할 것은 '구주로서의 예수는 필요 없다' 하는 그 자리를 넘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구주로서의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직까지 죄악세계의 물에 빠져 가지고 신음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주가 필요한 거예요. 구주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이요, 다시 오는 주님을 맞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아서 이루고자 하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냐 하면 타락 전 본연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서 추구하고 그리던 그 세계, 타락하지 않고 완성의 뜻을 이루어 천하를 그 품에 품어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그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황태자와 공주로 태어났던 아담 해와가 깨져 나갔으니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해 애써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구원섭리요, 기독교 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복귀의 세계를 향하여, 즉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는 이 역사적 노정을 통하여 나오면서 소원하였던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소망의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나왔습니다. 소망의 천국, 그 천국이 하늘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땅 위에서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일체된 이념을 갖출 수 있는 그 자리, 지상에서 천국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천국에서 살던 사람이 영원한 세계에 가면 그 세계가 영적 천국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두 세계의 천국의 주인공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 세계는 본래의 선의 에덴일 것이며 그 선의 에덴은 하나님이 본래 소원하였던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지상천국이 돼야 됩니다.
지상천국을 바랐던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이제 복귀의 역사를 육천 년 동안 거쳐 가지고 끝날에 오시는 주님을 세워 가지고 뭘할 것이냐? 복귀 천국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의 목적이예요. 복귀 천국을 이룩하자, 복귀 천국. 본연의 천국을 상실하였으니 다시 찾자 이거예요. 예수가 온 목적은 천국 회복운동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믿고 있는 전세계의 신앙자들이 구주로서의 구세주가 필요 없고 복귀 천국에 있어서의 주인으로, 오빠로, 형님으로 모실 수 있는 구세주가 필요한 거라구요. 이게 필요한 걸 알아야 돼요. 기도로써 필요한 것을 구하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런 자리말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을 같이 대할 수 있는 자유스런 환경을…. 천국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찾아 나가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 왕국이다 이거예요. 하여튼 고장났다 말이예요. 인간이 고장났으니 종교가 필요한 거예요.
만일에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 없어요. 종교가 필요 없어요, 종교가. 이스라엘의 선민이 필요 없어요. 벌써 선민으로 타고난 거예요. 세계가, 하늘땅이 전부 다 내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 인간은 누구라도 욕망이 있나니 그 욕망은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망입니다. 그것은 본연의 욕망이예요. 그거 얼마나 근사해요.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아버지예요. 하나님을 믿으라는 그 성경이 필요 없어요. 벌써 나면서부터 아는 거예요. 복지 천국, 소망의 천국을 향해서…. 천국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오늘날 인류 앞에 소망의 천국을 찾아 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이요, 천국을 잃어버린 인류는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소망의 천국을 찾아 나가고 있는 길입니다. 그건 누구나 같은 거예요.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심중에 사모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뇨?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데 소망 가운데 하나님이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한 이 땅 위의 모든 인간은 죽은 자식이 되어 버렸으니 이 죄악된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혈족이 없어요, 혈족이. 하나님의 직계가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를 복귀시키려 하는데 어느 자리까지 복귀시켜야 되느냐? 직계 아들딸의 자리까지 복귀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종의 종 새끼도 못 되는 인간이 되었다는 거예요. 종의 종 새끼도 못 된다는 말입니다. 종의 종은 무엇이냐? 종의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없는 거예요.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있으되 종의 종은 주인이 없는 거예요. 종의 심부름을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입장에 선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날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오는 거예요. 사탄의 종새끼를 빼앗아다가 종의 종 새끼를 만들어 가지고 하늘 앞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너는 하늘편의 종의 종 새끼 돼라' 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것을 복귀시키는 거예요.
구약시대는 무엇이냐? 구약시대의 전반에 걸친 사명이 무엇이냐? 종의 종 새끼를 빼앗아다가 종적인 사명을 시키는 시대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들이 아니예요. 종이예요. 아들이 못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종의 종 중에서 종을 세워 가지고, 충성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역사적인 이 세계 인류를 끌어 여기에 규합시켜서 세계적인 악한 무대의 한 모퉁이를 점령하면서 하늘의 판도를 넓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이 승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어서 종으로 승리한 거예요. 이래서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하고 종의 위치로부터…. 지금까지 신약시대는 양자로 복귀하는 거예요, 양자.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했어요.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되기를 고대한다고 했어요. 신약시대에 아무리 잘 모시고 잘 믿던 신앙자들도, 목사 장로 학박사를 물론하고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양자 새끼예요, 양자 새끼. 솔직한 얘기예요, 솔직한 얘기. 양자가 되자 그거예요, 양자.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혈통이 다른 거예요.
이와 같이 양자된 인간 계통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와서 가지고 돌감람나무를 만들어 가지고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여서 양자의 인연을 해원시켜 놓고, 양자의 인연을 해방시켜 놓고 직계의 자녀의 인연을 맺어 놓고자 하는 것이 예수가 와서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이거예요.
종으로 복귀하고 양자로 복귀했으면 아들딸로 복귀해야 됩니다. 아들딸로 복귀하려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동시에 천상천국을 완성해 가지고 이 땅 위에서 하늘의 심정적인 발판을 지상에서 천상까지 닦아 나가야만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땅 위에서 지상천국의 이념과 천상천국의 이념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만 했기 때문에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독생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기도하는 독생자. 기도하는 예수님도 뜻을 못다 이루었잖아요?
예수와 성신은 2천 년 동안 뭘했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소원의 한 날을 찾아온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상으로 통할 수 있는 지상의 행로를 찾아가기 위해서…. 예수는 죽어서 어디에 갔느냐? 낙원에 갔어요. 천국이 아니라 낙원에 갔어요, 낙원. 낙원은 뭐냐? 천국 들어가는 대합실이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하나님 독생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기도를 하는 것은 아직 책임 완성을 못 했기 때문에,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는 만민의 참부모로 와야 된다는 거예요. 땅 위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상 재림을 해야 돼요. 천상 재림이 아니라 지상 재림을 해야 돼요.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입장에 세워 가지고, 양자의 자리에 세우고, 직계의 자리에 세워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와 하나된 후에 이스라엘을 택한 예수의 족속들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축복을 받아 가지고 '이제 너희 아들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던 너희들이 낳은 그 아들딸들은 타락한 세계의 죄악과는 상관없는 아들딸을 낳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못 하고 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나오는 하나님의 소망의 안중에는 무엇이 있느냐? 잃어버리지 않았던 본연의 아담 해와,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모든 소원을 걸고 지었던 아담 해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해 버렸으니 이 본연의 아담 해와 대신의 존재, 복귀 아담으로 오는 것이 후아담이 돼요. 후아담도 복귀 아담으로 오는 거라. 타락과는 상관없는 복귀 아담으로 온다는 거예요, 복귀 아담. 예수는 후아담이요,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는 뭐냐? 3차 아담으로 오는 자입니다. 3차 아담이 와서 할 것이 무엇이뇨? 소망 천국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복귀해야 돼요. 그래야 천상세계 천국이 복귀돼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의 전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먼저 하나님이 또다시 가야 할 복귀도상에서 무엇을 찾아오는고? 타락 전 아담 해와 같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어디 있느냐? 타락을 하여 사탄의 혈통을 받아 악한 피가 흐르고 있으니 할례의 피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악한 존재가 됐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타락 이전, 하나님이 그래도 소망 가운데서 바라보면서 내일을 희망 삼고 나가는 그때에 아담 해와 같은 인간들이…. 오늘날 예수를 믿고 그런 자리에 올라와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 믿고 타락 전 아담 해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얼마나 돼요. 한 사람도 없다구요.
그래서 복귀 아담이 어디 갔느뇨? 4천 년 수고하여 비로소 하나님이 소망하던, 잃어버린 아담의 모습을 다시 세워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복귀 아담형으로 온 것이 예수입니다. 예수는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복귀 아담이 필요 없는….
본래 아담이 하나님의 뜻 앞에 완성됐더라면 이 완성된 아담 해와는 뭐냐 하면 인류의 참조상입니다, 참조상. 인류의 참된 조상이예요. 참된 조상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세계 앞에는 하나님이 경륜하고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했던 참조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류의 참조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호강하는 사람, 천하를 다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너나할것없이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이게 제일 원통한 일입니다. 타락한 시조를 가진 이 인류는 사탄 지옥을 향하여서 맹진하고 있나니 이걸 가로막고 참조상으로 와 가지고 참자녀로 품어 줄 수 있는 본연의 주인, 본연의 부모를 찾아 헤매어 나오는 것이 인류역사예요, 인류역사.
그렇기 때문에 4천 년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복귀의 도상을 가고 또 가서 찾아온 그 길이 무엇이냐? 타락 전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 입장의 자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분은 뭐냐? 메시아는 무엇에서부터 구주가 돼야 되느냐?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으니, 타락했으니 참부모를 복귀해야 되는 겁니다.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가지고 '너는 선남선녀, 천지의 대주재의 직계 아들딸이요, 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핏줄과 이상이 생겨난다. 너는 하늘의 대 위업 전체를 상속하기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성혼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전권을 대행해 나타날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여야 될 텐데 이들이 타락을 해서 전부 다 깨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6천 년 전에 이 소망 천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산산조각으로 다 깨졌습니다. 그래서 종의 종 새끼에서부터 종, 종에서 양자, 양자에서 직계 아들딸에 이르기까지 접붙여 가지고 하늘이 사탄을 굴복시켜야 돼요.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승리의 왕자가 된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성혼의 축복을 이루어 가는 거예요. 그것이 어린양잔치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내용을 알지도 못하지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했음)
인류의 참부모가 타락하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으니 인류의 참부모를 구원 완성하여 복귀시키는 것이 어린양잔치예요. 이것이 있어야 만사가 해결돼요. 부모가 태어나야만 자식이 태어나는 거예요. 올바른 선한 부모에게서 선한 자식이 태어나야 올바른 가정이 되는 거요, 올바른 가정이 생겨나야 올바른 종족, 올바른 민족, 올바른 국가, 올바른 세계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 전 본래 소망하던 하나님의 안중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타락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본연의 부모, 본연의 참부모, 본연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혈족, 참혈족을 중심삼은 형제, 형제를 중심삼은 종족,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세계로 이것이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이리하여 선한 천국세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인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깨지니 그 자식들은 전부 다…. 이렇게 돼서 오늘날 이 꼬락서니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무엇으로 오느냐?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는 거예요. 오시는 주님은 무엇으로 오느냐? 1차 아담은 타락하였고, 2차 아담은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3차 아담으로 오십니다. 그 아담은 무엇이냐? 세상에는 30억 인류가 있지만, 저나라에 간 영인들은 물론 전체 사람이라는 종자는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쳐서 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주님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6천 년 역사는 뭘하는 역사냐? 잃어버린 참부모, 아담 해와가 완성한 그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복귀된 후에는 뭘할 것이냐? 구주로서의 명사는 필요 없어요. 구주로서의 명사는 필요 없고 형제로서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주님을 모실 줄 알아야만 천국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의 도상이예요. 그래야 그거 이치에 맞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아까 오늘 말씀의 제목이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왜 또 가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이 없으면 한 번 가면 그만이예요.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3시대를 거쳐가야 돼요. 구약시대는 소생이요, 신약시대는 장성이요, 앞으로 새로 오는 시대는 완성시대입니다. 한 사람이 이 3시대를 거쳐 일대에 완성을 표준하고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 하나를 빚어 만드는 것이 재창조역사입니다. 아담 하나를 재창조하는 역사로 지금까지 거쳐온다는 거예요.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아담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하고자 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아벨이 책임 다하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 다시 밀려나 노아시대로 나온 거예요. 노아시대로부터 아브라함시대, 아브라함시대로부터 모세시대로, 모세시대로부터 예수시대로까지 왔으나 예수가 그 한을 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2천 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지금 시대까지 왔습니다. 이 온 역사적인 흐름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프로에 의해서 복귀돼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을 하나님은 더듬어 왔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복귀의 기준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1600년을 일기로 하여서 하나님은 아담 대신 노아를 불러 세웠습니다. 노아를 불러 세워서 '이제부터 120년 후에 홍수심판을 한다'고 예고하게 될 때 노아 자신은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들려오는 것은 명령뿐이라는 거예요. 이제부터 120년 동안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나간 후에는 기필코 이 천하를 심판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대해 나오던 하나님이 어떤 내정적인 슬픔과 비장한 각오와 한을 풀기 위해서 노아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했지만 노아는 묵묵히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일편단심 그 신념 가운데서 어느 한 촌시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120년 동안 이 노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세계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제2의 인간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악한 세계에 있어서 모진 바람과 모진 시련과 모진 환경에 부딪쳐야 됩니다. 노아는 부딪치는 그 환경에 있어서 아담과 같이 천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리에 서지 않는 그러한 확고한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120년 동안 아라랏산에서 배를 만드는 그 기간은 행복한 기간이 아닙니다. 덧없는 세월이 흘러갈 적마다 그 환경에 처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노아 할아버지를 미친놈으로 취급했다는 거예요. '뭐 120년 동안…. 뭐 심판을 해?' 이렇게 조롱과 비소, 억울함과 분함이 휘몰아치는 그 환경 가운데서 시달림을 받지만서도 하나님과 약속한, 정녕 약속한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 일념의 신앙심만을 갖고 그 환경을 격파해 나갔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 자기 아내와 자기 자식들까지도 노아를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120년 동안 그 짓 하고 있으니 여러분이 아내가 되고, 여러분이 형제가 돼 보라구요. 비웃었겠나요, 안 비웃었겠나요?
사랑하는 아내도 노아를 저주했고, 사랑하는 자식들도 노아 할아버지를 저주했습니다. 믿어 주기를 바라서 그 가정을 세웠고, 믿어 주기를 바라서 자녀를 준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었습니다. 그를 위해서 일치 단결하여 그 가정이 노아의 뜻을 받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세워지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아의 가정이 믿지 못했습니다. 반기를 들고 배반하는 그 자리에서도 노아는 이 가정을 끌고 최후의 한날을 약속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노아 자신은 하나님이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억울했고, 얼마나 분했던가 하는 그 내정적인 심정은 모르면서 이렇게 믿고 나왔다는 거예요. '나보다도 더 딱한 자리에 선 분이 하나님이 아니냐?'라고….
그런 환경에서 몰아침을 받고, 그런 환경에서 시달림을 받는 노아를 바라볼 적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함에 사무쳤지만 노아 앞에 그런 사정을 통고할 수 없는 종의 입장에서 대해 나왔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노아는 40일 홍수심판 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지만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를 중심한 섭리는 깨진 거예요. 깨져 나갔어요. 하나님은 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남겨진 노아가정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길이 있으니 그 가정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분함과 원통함이 얼마나 사무쳤겠어요? 그렇지만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오는 하나님이었다는 걸 몰랐다는 거예요.
노아가정에 섭리한 뜻이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4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일구월심 한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노아 대신 아브라함을 세워서 다시 복귀의 길을 더듬어서 오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걸 오늘날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누구도.
이리하여 아브라함을 세워서 뜻을 완결지으려 했으나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의 연장이라는 슬픈 명사가 생겨난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대하는 본래의 그 마음과 결과적으로 벌어진 슬픈 사정을 바라볼 때 얼마나 비통했겠느냐? 당장에 그 아브라함 일족을 전부 다 때려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또다시 남아진 복귀의 길,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심정이 더 크기 때문에 또 참고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야곱까지 3대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에서와 야곱이 싸워서 야곱이 승리의 이름을 갖추고…. 야곱이 하란 땅 라반의 집에 가 가지고 21년 동안 종의 도리를 거쳐오게 될 때 야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억울하고 분한 사정에 몰리더라도 또 가야 할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입니다. 천대를 받고, 밟힘을 당하고, 몰림을 받고, 원수시함을 받더라도 또 복귀의 노정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큰 것을 알고 약속하신 뜻, 하나님이 약속한 그 뜻을 믿는 신앙심을 가져 가지고 라반의 가정환경에서 모든 것을 복귀시키는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에서와 대결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 가지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이 비로소 발붙일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발붙일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했다는 뜻이예요.
그리하여 이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애급 4백 년 고역 기간을 거쳐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 천국, 지상천국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애급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 1세들이 광야에서 다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제2세를 수습하여 가나안 7족을 대결하게 해 가지고 비로소 이스라엘에 천국이념을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흐지부지하여 비참한 역사노정을 거쳐서 예수시대까지 끌고 넘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때는 개인적인 복귀시대, 가정적인 복귀시대, 종족적인 복귀시대, 민족적인 복귀시대…. 이런 것을 한꺼번에 다 하면 좋겠지만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귀의 책임, 가정적인 복귀의 책임을 야곱이면 야곱이 하도록 했습니다. 모세는 민족적인 복귀의 책임을 하는 거예요. 예수는 국가적인 복귀의 책임과 세계적인 복귀의 책임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책임을 하기 위해 예수를 보낸 것이 전체적인 그 인연의 역사의 노정이었으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로마를 삼켜 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기독교한테 로마가 삼켜 버려진 것과 같이 예수 당시에 로마를 삼켜 버렸어야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귀 천국을 바라던 그 천국의 이념은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와 국왕과 제사장이 일체가 되어서 예수가 온 본연의 목적과 일치돼 가지고 로마와 대결하여 신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언제 한번 그런 것을 말해 봤어요?
제사장, 서기관, 교법사들이 뭐예요? 메시아를 누구보다도 증거해야 할 사람이요, 메시아를 누구보다도 지켜야 할 사람이었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처량한 역사적인 노정을 거쳐 가지고 왔던고? 메시아를 맞아들여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갔던고? 세상에 예수가 탄생하게 될 때 이방의 점성사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왔어요. 그거 다 점쟁이들이예요, 점쟁이들.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시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태어날 줄 알았다면…. 어느 누가, 어느 교법사, 서기관들이 버선 한 켤레 준비해 가지고 기다린 사람이 있었어요? 예수가 태어났는데 옷 한 가지 해 가지고 기다린 사람 있었어요? '베들레헴의 제일 불쌍한 자리에 오시면 안 되겠다고, 이스라엘의 위신과 이스라엘의 명망을 내가 찾겠다'고 하며 베들레헴 땅을 찾아서 움막 대신 거룩한 자리를 만들어 가지고 모실 준비라도 한 녀석이 있었느냐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하늘의 때는 지나가지만 인간은 모르는 거예요. 이방 사람이 어찌하여 오시는 메시아를…. 4천 년 동안 역사를 거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선민이 애절한 한을 풀기 위해서 바라던 메시아, 하나님이 4천 년 만에 약속의 주인공으로 보냈던 메시아가 올 때 어떻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한 사람도 몰랐던고? 생각해 봤어요? 이스라엘 사람은 왜 몰랐느냐 말이예요. 제사장, 서기관, 교법사는 어디 갔는고? 그런 선민권을 자랑하고 그들을 세운 것은 오시는 메시아를 환영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본연의 책임이요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입을 벌려 반대해요? 뭐 예수가 바알세불의 괴수야? 전부 다 처량한 역사적 비운이….
이래 가지고 빌라도 법정에서 '아, 나사렛 예수 뭐 바라바와 바꿔 죽여 주소' 한 거예요. 잘 해먹었어요, 잘 해먹었어. 예수가 자진해 죽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죽였지. 예수는 피살된 거예요, 피살된 거. 목사 장로들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 잡아죽였다는 거예요.
오죽하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가지고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겠어요. '지상에 평안한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세계를 아버지의 천국으로 복귀하기 위해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믿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지금 죽음길을 가니, 당신이 나를 보낸 본연의 목적은 천국을 완성하는 것인데 이 천국이념을 누가 책임집니까?' 하는 의미에서 기도한 거예요.
그러나 사태는 기울었어요. 그가 산상에 올라갈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때에 작정한 거예요. 이미 사태는 틀렸어요. 이미 죽을 것이 결정된 때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거예요. 예수가 죽으러 왔어요? 기도해 보라구요, 그런가. 내가 영계를 통하고 영계와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 해 가지고 알아봐도 그렇지 않더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전세계 교회 앞에 폭탄선언을 하는 거예요. 교회 교회마다 십자가를 달고 있는 것을 볼 때 내가 불이 나는 거예요. 십자가는 원통한 십자가예요, 원통한 십자가.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죄를 사할 수 있다면, 죽지 않고 살았다면 예수가 구주가 못 됐나 말이예요. 하나님은 어찌하여 비참하게 죽여 가지고 구주를 만들어요? 살려 가지고 군왕으로 만들려고 했다구요, 군왕으로. 구주 과정을 이루고 다 지내 가지고 군왕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나라의 왕을 만들려고 한 거예요, 만왕의 왕을.
오늘날 우리 세계에 널려 있는 성도들은 구주가 필요 없어요. 군왕이 필요해요. 만왕의 왕이라 했지요? 그분이 필요하다는 말이예요, 그분이. 그러므로 그 왕권 밑에 사는 백성들은 그 나라의 치리를 받으니, 그 나라의 치리를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니 그 사람들은 사망세계와 관계없는 거예요.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여기서 말한 예수님도 뭘 생각했느냐 하면 군왕을 생각한 거예요. 열두 사도가 뭘했던고? 베드로 야고보가 뭘했던고? 예수가 최후에 운명할 시간에 오른편 강도가 웬말이냐, 왼편 강도가 웬말이냐? 어찌하여 집어치우고, 사도들이 오른편 강도를 몰아내고 십자가에 못 달렸고, 왼편 강도의 자리에 못 달렸느냐? 원통한 일입니다. 원통한 일이예요. 너와 나와 낙원에 들어가는 데 선봉장을 할 자가 누구냐? 강도, 오른편 강도예요. 사도들도 이것을 못 했어요. 뭐 사도들이라면 무서울 게 뭐 있어요? 내가 영계에 들어가서 베드로부터 만나 가지고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꼼짝달싹 못 하더라구요.
만민의 구세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요, 만인류의 조상으로 오신 그 조상을 죽음의 자리에 그렇게 홀로 보내다니, 같이 죽지. 그랬다면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제자들도 부활 안 했겠어요? 사도들이 부활하고 제자들이 부활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피 흘리는 종교가 안 됐다 이거예요. 처량하게 뭐…. 그렇다고 십자가의 공로를 부인하는 게 아니예요. 그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이 이루어진 거예요, 영적 구원이. 본연의 사명을 완결 못 지었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온다는 재림이라는 명사는 억울하고 분한 명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천국은 어디 있느냐? 말세가 다가옴에 따라 가지고 이 천국이념을 품고 오는 하나님, 복귀의 길,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본연의 천국을 이루어야지요. 이 지상 끝날이 찾아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찾아오던 그 소원이 무엇이냐? 복귀 천국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아온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복귀 천국을 할 것이냐?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에 그렇게도 지지리 고생하고 밟히고 한 거기에 예수님이 안 와요. 나는 그렇게 봐요. 뭐 이스라엘 나라에 주님이 와? 절대 안 와요, 절대 안 와!
이스라엘을 보라구요. 예수 오기 전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민족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대번에 망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예수 죽은 이후 2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의 노정에 시달리고 온 민족 앞에 쫓김을 받는 민족, 이 이스라엘 민족이 처량한 거예요. 그것은 예수를 죽인 결과예요, 예수를 죽인 죄.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목을 달아 매고 기도해 보란 말이예요. 왜? 오늘날 인류의 참조상으로 온 분을 잡아죽였으니 누구든 다 회개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예수는 누구냐? 우리의 참부모로 오신 인류의 참조상이예요.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예수를 잡아죽인 것은 전인류가 잡아죽인 거예요. 자기 부모를 잡아죽였다는 말이예요, 부모. 죄악된 부모를 잡아죽여도 세상에서는 모가지 잘려야 되는 것인데 천륜을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의 소망을 대표하여 왔던 그 참부모를 잡아죽였으니 그 법도에 안 걸릴 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에 대해 소망 천국을 바라서 예수의 뜻이 연장된 2천 년간 영적 구원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이 소망 천국은 말세의 한때를 예비해서 나오고 있나니 오늘 이때에 있어서 세계의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날이 되면 무엇이 올 것이냐? 예수도 말했고 세례 요한도 말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어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느니라' 했는데 마음 천국만 가지고 되겠어요? 아니 천국 하면 나라인데, 나라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영토가 있어야지요. 뭐예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는 거예요. 네 마음부터 소망 천국을 다시 품으라는 거예요. 소망 천국을 네가 가지고, 소망 천국의 내용을 네가 품고, 실체 천국을 이루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거예요. 네 마음에 있어야지요.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소망의 마음 가운데 천국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던 죄수들도 소망 천국을 품고, 하나님이 소망 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치리할 수 있는 대표자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실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과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마음 천국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준비한 터전 위에 하나님의 해원성사의 한날을 세워서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냈으나…. 복귀의 역사를 다 치워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전부 다 불살라 버려도 시원치 않을 이런 민족을 또다시 세워 놓고 예수가 기도한 조건을 세웠으니 '아바 아버지여,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여 그러니 용서하시옵소서' 하는 애절하고 간곡한 기도를 했습니다. 왜 그런 기도를 했느냐 하면 4천 년 동안 예수를 보내 가지고 뜻을 이루려던 지상천국 이념이 남아 있으니 예수가 죽더라도 그것을 뭉그러 버리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소원하며 정성들여 온 4천 년 역사의 공적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예수는 역사적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기도한 것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또다시 복귀의 길을 개척하기를, 예수가 죽고 난 후에 대의를 수습하고, 가정을 만들고,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국가를 다 같이 만들어야 돼요. 이게 비참한 시대권이예요. 4천 년 역사 가운데 제1 이스라엘이 예수를 믿었으면 그냥 그대로 한 국가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복귀의 천국을 이룰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제2차적으로 방향을 달리하여 세계적인 방향을 갖춰 나가면서 개인적인 기독교, 가정적인 기독교,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만들어 놔 가지고 지금까지 복귀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역사를, 오늘날 이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 가지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그 마음에 복귀 천국을 치리하기 위해서 오시는 메시아를 고대해야 된다는 거예요. 주님이 오면 전부 다 천국 들어갈 텐데….
그렇기 때문에 복귀 천국이념을 향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은 천번 만번 저버릴 수 있는 우리의 선조들이요, 우리의 조상들이었지만 한 개인 개인을 찾아오는 거예요. 각자에 대해서 찾아 나오는 거예요. 개인을 정성껏 오랜 시간을 통하여 기다리고 소망의 한날, 개인이 승리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려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가정을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종족을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오늘날 수많은 국가를 찾아가던 하나님입니다. 그리하여 로마에서 또다시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배척받으면서 피흘려 가지고 다시 찾아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 2천 년입니다.
이리하여 한 유대교를, 일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국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갖추어 가지고 오늘의 전세계, 전민주세계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인 기독교권을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기독교권이 이제부터의 방향과 행동을 알지 못하는 최후의 때를 맞은 거예요.
이제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복귀 천국을 향하여서 오직 예수의 한을 풀어 줘야 돼요, 예수의 한을. 신랑 신부를 택하되 한을 풀기 전에는 택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 땅 위에서 피흘린 한이 남아 있어요. 예수가 찾고자 하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고자 하는 개인을 못 찾았고, 가정을 못 세웠고, 종족, 민족, 국가를 못 세웠으니 그것이 한이라는 거예요. 개인을 찾지 못한 한, 가정을 찾지 못한 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나님의 상속자가 그런 표현을 했어요. 하나님이 예수를 세워서 찾고자 하는 진짜 참다운 개인은 어디 있느냐? 개인이 없어요. 참다운 가정은 어디 있느냐? 가정 같은 것은 많아요. 참다운 종족, 진짜 이스라엘 종족이 어디 있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어디 있고, 이스라엘 나라가 어디 있어요? 한을 품고 역사를 바라볼 때 한탄하던 그 마음 가운데 너를 찾기 위해 참다운 사연을 가졌다 할진대는…. 이거 생각 한번 해봐요.
하늘땅을 치리하고 천지를 주관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의 제자들이 어찌 어부짜박지들이겠어요? 이스라엘에서 어부들은 상놈이예요, 상놈. 메시아 앞에 웬말이뇨? 메시아 앞에 베드로가 수제자라니 웬말이뇨?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교법사 서기장은 어디 있고 제사장은 어디 갔느뇨? 그렇게 기도 가운데 한 놈도…. 열두 제자 가운데, 사도 가운데 한 놈이 어디 있어요, 한 놈이? 사도들은 그래도 낙원에 가지만 예수를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은 죽으면 모두 일등 지옥에 가는 거예요.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여러분이 믿고 있던 그 주님이 신랑이예요? 진짜 신랑이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2천 년 동안 한을 풀려고 왔던 예수가 한을 풀어야 이 땅 위에 와서 살 것입니다. 한 풀려고 오는 데는 한을 풀 수 있는 이 터전이 닦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이스라엘을 찾아온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서기관 제사장이 예수의 사도 입장을 대표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널린 대학자들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먼저 맞아야 됩니다. 주님을 먼저 맞는데 '오, 주여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입장을…. 역사는 재현하여 그냥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역사적인…. 교법사 제사장들이 자기의 위치와 자기의 책임을 행사하던 그런 입장에서 오시는 주님이 구름타고 왔다면 얼마나 잘 믿었겠어요? 예수님이 옛날에 그렇게 왔어요? 목수의 아들로 왔어요. 목수가 뭐예요, 목수가? 예수가 목수 되어서 오다니? 목수라는 말만 들으면 밸이 틀려요.
이스라엘 백성은 책임 못 한 거예요. 소망의 일념을 바라보며 4천 년 역사를 지고 업고 가야 할 한 많은 예수 앞에 자기 어머니도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어머니에 대해서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런 말을 했다는 거예요. 예수가 설교하는데 그의 모친과 동생이 찾아와 만나려 할 때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한 것입니다. 사무치고 사무쳤던…. 예수가 몇 살 때 집을 나갔는지 알아요, 몇 살 때? 그는 이 땅 위에 태어나 요셉가정에서 요셉을 의붓아비로 모셔 나가면서 그의 직계 아들 따라서…. 이는 의붓자식입니다. 명절 때가 되어 옷을 해 입혀도 예수는 안 해 입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그를 데려와 기르고 있지만 핏줄이 달라요, 핏줄이. 요셉이 낳은 자식들도 있었으나 예수는 의붓자식이예요, 의붓자식. 남은 명절이 되면 마음을 놓고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하늘을 노래할 수 있지만 예수는 그런 심정의 자리를 갖지 못한 서글픔이 있어요. 오죽하면 열두 살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켜야 할 것이 자기의 책임과 본국의 책임인 것을 알고 그래도 제사장이 머무를 수 있는 성전 가까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에미 애비는 찾아 다녔다는 거예요. 한 많았던 예수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독생자로 와서 이렇게 고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몰랐다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나가면서 내가 오늘까지 핍박의 길에서 감옥에 들어가고 핍박을 당하고 이 민족 앞에 제재를 받지만 내가 이 한을 풀기 전에는 죽지 못해요. 오늘 우리 통일교인은 예수의 옷자락을 붙들고 통곡해야 해요. 십자가가 웬말이냐? 하나님의 황태자요, 독생자로서 이 땅 위에 만민의 구세주로 왔던 그분이 어찌하여…. 십자가가 웬말이냐? 예수가 살아서 구주가 못 돼요?
내가 대구에 들를 적마다 분하고 원통해요.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밟고 천대해 봐라 이거예요. 뿌리는 자란다. 뿌리는 뻗어 나간다 이겁니다. 누가 삼켜 버리나 보자 이거예요. 누가 참인가 보자는 거예요.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보자 이겁니다. 내가 피어린 눈물의 기도를 하면 어느 목사 이상 기도했다 이거예요. 하루를 기도해 눈이 붓도록 기도했다 이거예요. 갖은 욕설을 퍼붓고 이 민족이 나를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신 예수의 뜻을 알았고, 또 가야 할 하나님의 서글픈 복귀의 노정을 알았으니 나도 참고 또 가는 거예요. 나를 죽으라고 감옥에 몰아넣은 그 녀석들은 죽고 죽으라는 사람은 안 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나니 스승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태어나 가지고…. 내가 만약에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고생 안 했어요. 지긋지긋한….
그렇지만 하나님은 불쌍한 사람, 외로운 사람, 몰리는 사람의 친구요, 매맞고 심판받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을 먼저 구원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불쌍한 민족, 갈 바를 모르고 엉망진창이 돼 있는 이 대한민국, 민족이 지고 있는 짐을 내가 다 짊어지마' 하고 나온 겁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단자의 괴수라고 몰아 가지고 나보다 잘되나 보자구요. 잘되려고 하던, 잘되기를 바라고, 잘되겠다고 하던 사람이 잘못됐더라 이거예요.
그러한 한을 품고 나오던 복귀의 노정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노아 시대의 하나님의 한을 풀고, 아브라함시대의 한을 풀고, 모세시대의 민족적 한을 풀고, 예수시대의 세계적 한을 풀려던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 사정이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억울하신 줄을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구세주의 이름을 가지고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찾아왔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박대했어요. 어느 누가 밥 한그릇 주었어요, 어느 누가 옷을 주었어요? 예루살렘 제단 위에 올라가 가지고 질책하고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고 저주하던 예수의 사정을 누가 알았나 말이예요. 그런 생의 노정을 마치고 간 예수의 사정을 알아야만 제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를 믿으면 뭘할 것이예요? 제자 중의 참된 제자, 제자 가운데 제자가 될 수 있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대하여, 수많은 종교를 대하여 새로운 기치를 드높이 들고 어젯날 한 많았던 예수의 한을 풀고, 하나님의 복귀 천국의 한을 풀어야 돼요, 복귀 천국의 한을.
그렇기 때문에 이 천국 가운데는 참다운 백성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참다운 백성이. 그다음에는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되고, 참다운 족속을 만들어야 되겠다, 참다운 민족을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나가는 거예요.
오늘날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개인을 찾아갔다가는 또다시 개인 앞에 찾아가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갔다가 핍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쫓겨났다는 거예요. 밟혔다는 거예요. 내 아버지를 쫓았으니, 우리 아버지가 세계를 향하여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으니 나도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길이 험준타고 내가 마다할 거냐, 그 길에 죽음이 어려 있다고 내가 마다할 거냐, 슬픈 곡절이 처해 있다고 내가 마다할 거냐, 내 아버지가 가신 길을 내가 가야 되겠으니 그가 어려우면 나도 어렵기를 바랬고, 그가 슬프면 내가 슬프기를 바랬고, 그것이 통일가가 가야 할….
이리하여 오늘날 한국, 조그만 삼천리 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삼천만 민족 앞에 이색적인 움직임을 움직여 가지고 세계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민주와 공산을 우리가 나가는 방향과 우리의 이념권 내에 삼켜 버리자 이겁니다.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서는 거예요. 이와 같은 엄청난 뜻이 아버지께서 세우신 뜻인 것을 알게 될 때….
이런 사정과 형편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와 같은 사정이 아무리 비참하더라 해도 이것이 내 아버지의 사정이기 때문에 내가 그 아버지의 형편과 그 아버지의 역사와 그 아버지의 심정과 접붙이려니 그 아버지의 고통까지 내가 받아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기독교인들은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겁니다. 쉬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안식의 한 날을 노래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실질적인 인연을 갖고 가는 겁니다. 가는 데는 어디서부터? 개인에서부터 가는 겁니다. 예수가 죽은 후에 고난의 자리에서 지옥 가운데 천당을 만든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이 땅 위에 사망의 무더기가 휩쓰는 이 천지 가운데, 지옥 가운데 천당을 세워야 돼요. 제일 불쌍한 자리에 가는 겁니다.
우리의 눈물과 피땀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수고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자기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수고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6천 년 한을 풀기 위한 복귀의 노정을, 재창조를 거쳐서 한 많은 복귀의 노정을 가고 또 가고 또 복귀의 노정을 거쳐간다고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이 가야 할 것은….
오늘날 여러분들이 여기 모여서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위한다는 것은 좋습니다. 선생님이 좋다는 게 아니예요. 고맙다는 거예요. 내가 여러분 앞에 바라는 것은 나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원치 않아요. 이 민족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선생님을 사랑하는 만큼 민족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 나라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선생님에게 떡을 해주고 싶거들랑 그 떡을 가지고 불쌍한 민족에게 주지 못해서 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라는 거라구요. 비참한 경지에서, 죽음의 경지에서 생명을 구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처지의 민족이 많은 것을 볼 때 그런 민족을 붙들고 통곡하는 민족이 있으면 도리어 선생님이 받은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나에게 꽁보리밥 한 그릇을 안 갖다 줘도 좋다는 거예요. 그 대신 그런 정성이 있으면 삼천만 민족, 온 인류를 위하여, 하늘땅의 백성을 위하여 나눠 주라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들 앞에 당당코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자신 있다는 거예요. 굶는 데는 어느누구보다도 굶었고, 욕을 먹는 데도 누구보다도 더 먹었고, 매맞는 데도 누구보다도 더 맞았다는 거예요. 누구한테 신세를 지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옷 벗고 나가면 일등 노동자예요. 오늘날 한국 사람은 몰라요. 에헴 하고 좋은 자리에서 뭐 이래 가지고 잘살지? 천만에요. 잘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실제적인 환경에 있어서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까지 피어린 전통으로 남겨 놓은 통일의 역사임을 여러분이 알았다면 이 역사를 빛내야 돼요. 이 역사를 타고 앉아 가지고 소모시키는 사람은 하늘의 역적이요, 이 역사를 빛내는 사람은 하늘의 충신입니다.
우리 뜻을 알고 난 후에는 복귀의 천국을 바라는 아버지의 천국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부모의 날이 세워졌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날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이거예요. 복귀 천국의 해방의 웃음소리가 삼천리 반도와 온 지구성에 드높이 울려 퍼질 수 있는 그날을 향하여 우리는 행진하고 또 실행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섰는데 언제 쉴 새가 있느냐 말이예요. 쉴 새가 없어요. 열두 시가 지나 자다가도 눈만 뜨면 깜짝 놀라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신도들이예요. 밥을 먹다가도, 밥을 넘기면서도 통곡하는 통일교회 신도들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복귀 천국을 완결해야 되겠고, 예수와 성신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복귀 천국을 완성해야 되겠고, 오늘날 지금까지 저나라의 수많은 영인들, 목 베임을 당하고 희생했던 제물의 노정을 거쳐간 모든 천천만 성도들도 역시 이 지상천국 복귀의 한을 풀어야만 그들이 해원성사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내용을 알고, 엄청난 사명을 짊어진 우리에게 있어서 쉴 새가 없다는 겁니다. 다리가 부러지든 살이 터지든 가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전진을 하는 일념으로 가고 가고 또 따라가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에게 있어서 3년노정을 가라고 내가 친히 여러분 앞에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가는 데 있어서는 피를 팔아서라도 전도 나가야 되겠고…. 별의별 사연이 많아요. 피를 팔아서라도 전도 나가야 되겠고, 갈 여비가 없으면 천리길도 멀다 말고 걸어가야 되겠고, 나이 어린 처녀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치욕을 당하면서라도 자기의 일편단심 정한 뜻을 향하여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며 모험을 무릅쓰고 가야 할 이런 사정을 전개시킨 그분의 책임이 없겠느냐?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 쓰러져도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 쓰러지고 희생되더라도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천국건국의 횃불을 들고 나선 용사이거늘 어찌 화살이 없겠으며, 어찌 적이 나를 포위하지 않는다고 보느냐?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있지만서도 스승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그 마음은 나를 위함이 아니요, 민족을 위함이요, 세계를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을 대해 걸어가는 길은 죽음길도 즐거이 찾아가야 할 길이요, 통일용사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들은 대구면 대구 도성을 넘고 경북 경계선을 넘고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나가야 돼요. 삼천만 민중 앞에, 내 민족 앞에…. 여러분 보라구요. 현재 한국 식구들을 보면 이게 뭐예요? 길거리에 팻말을 박아 가지고 '이 자식아, 일어나라' 하고 자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됩니다. 배통을 찌르고 야단을 해야 돼요. 그래서라도 갈 수 있게 하는 일을 해야 돼요. 그러지 않고는 망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저 말단에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뿌려라! 땀은 땅을 위하여 뿌려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 땀이 알아줄 것입니다. 네 피살은 하늘을 위하여 뿌려라, 이것은 고이 가는 제물이어늘…. 하나님은 제물의 연속, 제물의 발판을 찾아왔습니다. 개인적인 제물시대, 가정적인 제물시대, 종족적인 제물시대, 민족적인 제물시대, 국가적인 제물시대, 혹은 세계적인 제물시대로 뻗어 나가는 거예요. 오늘 이 통일의 식구들을 바라보던 개인적인 제물시대는 지나가고 민족적인 제물의 책임을 다하여….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될 수 있으면 제일 말단에 가서, 남들은 오뉴월 삼복 더위에 피서를 가고 해도 고생을 해야 돼요. 다른 학생들은 전부 다 놀러 가고 고향에 가도 우리 학생들은 고생을 해야 돼요. 여름방학 때 우리는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농촌에 가서 농사꾼이 돼야 돼요. 혹은 도성에 가 가지고 구루마꾼이 돼야 돼요. 이래 가지고 이 민족의 친구가 되고 이 민족의 의지자가 되어야 돼요.
이리하여 우리는 점진적인 발전의 노정을 거쳐야 돼요. 3년노정 위에 한이 많지만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을 믿을 거예요. 3년 전에 여러분에게 '3년노정이 지나면 세계는 이렇게 된다' 했는데 그렇게 됐다 이거예요. 된 거예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이런 내용이 있지만…. 세계가 이젠 우리 손아귀에서 결정될 수 있는 때가 왔다 이거예요. 그러나 3년 고비를 가다가 지치는 식구들도 있다는 거예요. 지치는 것을 바라보고 지치면 지칠까봐 위로해 주고….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망하느냐, 사탄이 흥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가지고 충효의 도리를 받드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지칠 수가 없어요. 기다릴 수가 없어요. 사람은 포탄과 마찬가지예요.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 자체는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지는 거예요. 결과는 난 몰라요. 터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가야 돼요.
이제부터 3년노정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어서 3년 남은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나가야 돼요. 깨끗이 가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10월 초하룻날을 기준해서 남한 각지의 여러분 책임자들, 지구장이면 지구장을 빼라구요. 이래서 다시 가야 돼요. 지금까지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명령은 할 줄 알았지만 사정을 몰랐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선에 나가서, 일선에 서서 통치하라구요. 그런 입장에 선 여러분들이 지구장을 생각하고, 지구장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무엇이 있거든 지구장이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남아진 복귀의 날을 위하여, 복귀의 세계를 향하여 그렇게 가는 것이니 여러분들도 따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따라갈래요, 안 갈래요? 「갑니다」 가겠어요? 「예」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안 갈 수 없는 비참한 사정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을 누가 지켜 주느냐? 여러분을 지켜 주는 사람은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요, 이 나라의 관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지켜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죽어가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지켜 줘요.
여러분이 지방에 가거든, 혹은 그 부락에 들어서면 누가 선한 사람이냐를 알아야 돼요. 선한 사람이 불쌍하고 억울한 자리에 있거든 목숨을 걸고 싸워야 돼요. 뼈를 가진 사내들이 돼야지 무골충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시시하고 추악한 무리들이 돼서는 안 되겠다구요. 우리는 자신과 신념을 가지고 내가 전도하는, 내가 살고 있는 활동무대를 끌어서라도 가자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 후손에게 어떤 위업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 뜻이 그래요, 하나님 뜻이. 이것을 우리가 못 하면 우리의 조상, 우리의 후손이 참소해요, 참소해.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수천만 대의 후손들이 아담에게 '그 간나 녀석!'이라고 욕을 한다구요. 분하고 원통하다구요. 천륜의 법도를, 우리 인생의 노정 전체를 유린한 아담 해와 천사장 사탄…. 역사적인 원수를 갚아 가지고 하늘의 한을 해원성사해서 승리의 한날을 닦고 말겠다는 신념이 날이 가면 갈수록, 시기와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우리는 강해야 돼요.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의 노정을 가기 위해 나선 용사들입니다. 북한에 있어서 공산당이 웬말이예요? 우리 통일이념만 가지면 다 됩니다. 60만 대군이 이 정신으로 무장만 하면 순식간에….
오늘날 우리들이 짊어진 사명과,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책임적인 노정이 얼마나 엄숙하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역사는 흘러가도 우리의 책임은 흘러갈 수 없다 이거예요. 역사는 지나가도 우리의 책임은 지나 버릴 수 없다 이거예요. 수많은 사람은 안식해도 우리는 안식할 수 없다 이거예요. 필승의 한날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이 천지간에 세우고 가지 않으면 후손한테 참소받는다는 이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몸부림치는 우리들이 돼야 됩니다.
여러분이 활동하는 데 힘이 부족하거든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하여 민족을 걸어 놓고, 세계를 걸어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앞에 놓고…. 복귀의 길은 여러분이 가기 전에 그 앞 단계의 길을 가게 닦아 놓고야 여러분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은 필연적인 법도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죽을 거예요? 어디서 죽느냐? 최후에 하나님을 빛내고 그 민족과 그 세계가 내 뒤를 따라오다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고 죽었다면 성공이예요.
여기 대구에 모인 통일교회 젊은 청년 남녀들은 하늘이 불을 질러 가지고 제일 꺼지지 않는 불이 돼야 돼요. 자기의 행동을 자기가 믿고, 자기가 전하는 말씀을 자기가 믿고,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믿고 세우기 위한 선각자라는 것을 알고 늠름하고 씩씩하고 담대하게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 민족을 넘어, 세계 수십 국가는 우리를 부르고 있나니, 이 세계를 넘어 수많은 애혼들, 영인들은 우리를 부르고 있나니…. (녹음이 잠시 끊김)
지구장 혹은 지역장들은 식구들이 나가 싸우는 것을 자신을 대신해 싸우는 것으로 알고 6개월 동안 참전하는 이 도상에 서 있으니 여러분들도 참전하는 거예요. 같은 마음 같은 위치에 섰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는 자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염려하기 전에는 먹지 못하고, 그들을 위하여 생각하기 전에는 행동을 못 하는 그런 마음 가짐을 가져야 돼요.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경북에 있는 전체 식구들은 '내가 이번 기간에는…' 문제는 그거예요. 할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더라도, 부디 이번 기간에는 전국에 있는 통일 신도들이 전체 동원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기 실체가 움직일 수 있는 마음적인 준비라도 단장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외적인 부흥보다도 우리의 식구가 단합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하나되느냐가 문제예요, 정성을 다해야 되고 노력을 다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홀로 있더라도 정성을 다 들여야 돼요. 지금 뜻을 위해 나선 이 용사들을 위해서도 정성을 들여야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밥을 먹고 배부를 적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돼요. '이 뜻을 위하여 외치는 우리 지구장은 밥을 먹었는가? 우리가 편안한 잠을 자게 될 때, 열두 시가 지났는데 잠을 잘까? 어떠한 잠을 잘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야 돼요.
이런 생활과 이런 입장과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왜냐?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민족을 누가 끌어 복귀의 고개를 넘을 것이냐? 이 세계 인류를 누가 끌어 복귀의 고개를 넘을 것이냐? 민족적인 골고다가 남아 있고 세계적인 골고다가 남아 있나니, 민족적인 골고다 도상에 있어서 승리한 자가 아니고는 세계적인 골고다 도상을 향해서 행군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골고다를 향해서 떠나가야 되고, 천주적인 골고다를 향하여 행군하여야 할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연고로, 하나님의 소원의 천국인 복귀의 천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연고로 오늘도 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부모가 반대해도 가야 되겠고, 형제가 반대해도 가야 되겠고, 동지가 배반해도 가야 되겠고, 나의 가정이 반대해도 가야 되겠습니다.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는 살아서 안 가면 죽어서라도 억천만세를 통하여서 가야 할, 내 일대에 안 가면 우리 후손 수천만 대를 통하여서라도 기필코 가야 할 이 엄청난 과제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것을 내 일대에 어떻게 돌려 맞추느냐 하는 책임감에 불타서 다른 사람이야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고, 불평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내 갈 길이 남아 있나니 내 갈 길을 달려가겠다는 이런 충효의 심정을 가지고 여러분은 꾸준히 달려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가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오늘날 고마운 것은 이런 복귀 천국을 바라보는 이때에 있어서, 요 시대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밟는 흙아 너는 복이 있고, 내가 자라는 마을아 너는 복이 있고, 내가 외치게 될 때 내 말을 듣게 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복이 있구나, 내가 마시는 물에 복이 있구나, 내가 잠자는 땅에 복이 있구나, 아무리 바윗돌이라도 복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나는 복을 전해 주기에 바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더구나 불쌍한 이 민족 삼천만을 위해서 통곡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이 민족을 위해서 절대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가시니 여러분도 또 가겠어요? 「예」 갈 자신이 있어요? 「예」가는 길이 어렵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우리 부모가 찾아올 때도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그런 자리예요. 형제가 와서 '야 동생아, 오빠' 하고 부르더라도…. 처자가 와서 애절히 사정해도 눈을 감고 기도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친구가 와서 자기의 사정을 말하게 될 때 아는 척, 모르는 척해야 될 때도 있었어요. 인간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비참하고 처절한 그런 사정이 많았어요. 하늘같이 믿던 사람 앞에 자기의 소신을 말하게 될 때 배척하는 그런 억울한 자리에도 있었어요. 하늘이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고자 할 때, 내 정성 백 배 더해 주기를 바라서 기도한 후에 눈물 흘리며 발길로, 왼발로 차 버린 때도 있었어요. 처량하다면 인간사에 없는 처량한 것이요, 힘들다면 힘든 길이었어요.
가정에서 안 되니 광야에서 그 놀음 해야 되고, 광야에서 그 놀음이 안 되면 산꼭대기에서 그 놀음해야 되겠고, 산꼭대기에서 안 되면 이방을 찾아가야 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이스라엘 천국을 바라보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예수를 죽이고 난 후에 이스라엘 선민권이 이방으로 옮길 줄을 누가 알았어요?
한많은 복귀의 길 이게 우리 아버지의 남기신 길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아들딸이라는 혈족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아버지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되고, 그 아버지가 머물 때 나도 머물러야 할 운명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 광야에서 모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을 바라보고 따라가듯이, 모세 실체는 못 보더라도 모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을 보고라도 따라가야 된다는 말이예요. 안 따라가면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는 거예요. 독수리밥이 돼요.
여러분 앞에 선두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도한 내 자신이 벅차요. 힘에 벅찰 때가 많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안 갈 수 없는 길이예요. 여러분이 말을 듣고, 여러분이 순종하고, 여러분이 고분고분 따라오는 여기에는 갖은 화살이 많아요. 사탄의 갖은 화살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도 가야 할 운명입니다. 내가 부상을 입었어도 가야 할 것이요, 허리가 부러졌어도 동지의 손아귀를 붙들고 나를 밀어 줄 수 있고, 나를 끌어 줄 수 있는 친구라도 만들어 놓고 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생전에 정성을 들인 식구를 만들든가, 내가 피살을 다 팔아서 믿음의 아들딸을 만들어 놓든가 해야 되는 거예요. 어느때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아요? 비참한 것은 나에게 적용 안 되고 이방 사람, 혹은 기성교회 사람에게 적용된다,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예요. 비참한 그 일이 나에게 부딪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승은 생애를 바쳐 가지고 나갈 테니 가자 이겁니다. 다 나를 의심하고 있어요. 다 원수예요. 세상을 바라볼 때, 만약 안 될 때가 있으면 흘러가는 바람소리가 친구예요. 하나님의 사정을 반짝이는 하나의 별을 바라보고 하소연도 하고, 흘러가는 물결을 보고도 하소연을 해야 돼요. '나는 너를 아나니 너는 내 사정을 알아 다오' 하는 때가 있는 거예요.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 자기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할 때도 있는 거예요. 혹은 어떠한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애무하고 사랑하는 것을 볼 때 나에게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건만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서 효도를 못 해본 불효자예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그런 불효가 없어요. 인간 비애의 곡절이 내 가슴을 거치고, 역사적인 비애의 모든 초점이 내 가슴을 때리고 갈 적마다 낙망을 해서는 못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날마다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여, 내가 이 자리에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 안 했어요. 절대 기도 안 해요. 몸부림친다는 거예요. 내가 감옥에서 매를 맞고 피를 토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나요? 통곡하고 싶은 가슴을 가지고 억제할 수 없는 그런 사정인데 내가 아버지에게 '이 원수를 갚아 주소' 할 수 있어요? 원수에게 벼락을 쳤다면 이 민족이 다 망했다는 거예요. 세상으로 볼 때는 억울하고 분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느 누가 '문선생, 당신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한마디 하면 천하가 녹아날 듯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 모르는 생각과 남 모르는 사정을 안고 있는 시대적인 개척자는 심각한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왔다 간 예수는 불쌍한 분이예요. 예수를 보낸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예요. 그 하나님편이 돼 가지고 옹호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 그를 위해 싸우는 용사가 된다면 천국은 틀림없이 가능한 거예요. 이런 무리라는 걸 오늘날 우리는 모르면 안 돼요. 오늘날 수많은 배척자들처럼 사라질 수 있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배척하는 무리는 사라지더라도 뜻을 대하는 무리는 남아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또 가야 할 길, 아버님께서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으니… (흐느끼시면서 말씀하심)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구 도성은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극단의 원수입니다. 내가 자기 문전에 가서 밥을 달래요? 왜 그렇게 야단이예요, 왜 그렇게?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만 하나님은 알아요,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의 부끄러운 그 심정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그 마음이, 내 입으로 맹세했고 내 마음에 결의했던 마음이 사라질까봐 고이고이 지키라 이거예요. 고이고이 지켜 가지고 '세상은 무너지고 나라는 무너지고, 세상의 악당들은 흘러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마음은 일편단심 선한 심정이어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라는 겁니다. 남아진 복귀의 길을 또 가야 돼요. 세계적인 이 사조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쌍수를 드높이 들고 내 심정에 폭발되는 하늘의 심정을 갖고 이 민족을 불사르고, 세계를 불사를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겠다고 재차 결의하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다구요. 그 결의 가운데서 실천하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다는 것을 부탁해요. 그럴 수 있어요?「예」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미안합니다. 쉽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바윗돌을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습니다. 나뭇가지를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으며, 길가의 풀 한포기를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습니다. 발길에 차이는 이런 조약돌을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습니다. 하나님의 서글픔은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많은 사람이예요. 맹목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아니예요. 맹목적이 아니예요. 확정적인 입장에서 싸워 온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가는 앞길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을 알고 그 마음과 몸을 다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갑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못 갑니다.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그 길이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인 연고로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가야 되겠어요. 이런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식구들, 이제 우리 손에 손을 붙들고…. 지금까지는 장송곡을 부르면서 비애의 울음소리로, 처량한 울음소리로 우리는 통일의 노정을 개척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의 소망을 갖고 늠름하고 씩씩하게 기쁨과 승리의 외침이 울리는 노랫소리와 더불어 이 삼천만 민족을 향해 행진할 수 있는 입장에 나섰기 때문에 서슴지 말고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재차 천명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이 이번에 나가는 길에 '또 가야 할 복귀의 길! 또 가야 할 복귀의 길! 또 가야 할 복귀의 길!' 이것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번에 여러분과 한번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외국을 다녀와야 돼요. 미국 식구라든가 독일 식구라든가 혹은 일본 식구들이 내가 와 주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몰라요. 그들이 얼마나 기다린다 하는 편지를 받아 보게 될 때 내가 얼굴을 못 들어요. 이 한국이 욕을 하고, 한국이 배척하는 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귀하다는 거예요. 눈물어린 편지를 받아 볼 때 내가 이 민족 삼천만을 대해서 통곡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 민족은 반대하는데 이색 민족이 나를 부르고, 이색 민족이 나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이게 웬말이뇨….
심정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에 있는 그들 앞에 있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내가 응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이런 긴박한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올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동안 전부 다 배치해라 이거예요. 내가 떠나게 될 때, 어디 가게 된다면 찾아오는 게 제일 싫어요. 섭섭해하지 말고….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그러니까 섭섭해하지 말고 선생님이 남기고 간 한국 땅을 여러분이 복귀하기 위해 힘껏 자기의 책임과 소신을 세워 가지고 소기의 승리를 가져오게끔 충심을 다하여 싸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마련해 주기를 신신당부하는 바예요. 알겠지요? 「예」
아버지, 오늘은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심정의 일면을 토로했나이다. 이것을 지나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사오니, 심정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새로이 맹세하고, 새로이 아버지 앞에 결의한 마음이 더더욱 아버님이 보시기에 늠름하고, 아버님 보시기에 하늘 용사로서 자세를 갖추고 하늘땅 앞에 치리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죽더라도 사탄세계에 신세를 지지 않고 죽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사는 동안 남을 위해 주고, 남을 위하여 무엇을 남기고 가겠다는 신념을 가진 것이 통일의 자녀들이었사오니, 이 붉은 심정에 타오르는 이 정열을, 아버지, 더욱 불붙이시옵소서. 이리하여 삼천만 모든 젊은 가슴 가슴에 새생명의 불길을 전하러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과 남아진 기간을, 아버지, 친히 맡아 주시옵소서. 만나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사랑이 길이길이 저들과 같이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만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도 이날 이 기간을 위해서 염려하고 있사오니 친히 아버지께서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내가 목이 많이 쉬었기 때문에 저 뒷분네들은 말씀이 안 들릴지 모르니까 조용히 해요. 한 시간이나 시간 반쯤…. 점심 안 먹었지요? 어디 갔어, 전부 다? 전화를 안 했지? 한 시간쯤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한 시간? 「선생님이 편리하신 대로 하십시오」 편리한 대로? 편리한 대로면 안 하는 게 제일 편리하지 뭐. (웃음) 오래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말하는 데도 지쳤어요.
여러분들도 먼 곳에서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수고스럽게 오셨을 거예요. 여기가 전라남도지요? 전라남도 사방에서 모여 왔다고 보고 있는데요. 여기 혹 걸어온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리고 대다수 집합한 군중을 보면 나이 많은 분은 몇 분 안 계세요.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이란 말이예요. 눈들을 보면 반짝반짝하고 얼굴은 아주 뭐 홍안이고, 뭐라고 그럴까, 소년 소녀와 같은 이런…. 대다수가 그렇게 보이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도 젊은 사람이 되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나이가 많아요. 얼마나 많아 보여요? 한 50 넘어 보이죠? 어때요? 나이는 많지만 뭐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대다수의 여러분보다 나이는 많지만 이렇게 여러분이 젊은 만큼 나도 젊은 사람이 되기 쉽단 말입니다. 그렇게 알기를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을 대해 이야기하려면, 때로는 젊은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아주 강한 말도 필요하단 말이예요. '아, 어서 오십시오' 이게 아니라 '너희들! 어서 와!' 이렇게 강한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구요. 젊은 사람의 기질이 필요하단 말이예요. 청중 대다수가 젊은 청년 남녀들로 모였기 때문에 저도 젊은 사람이 되어서 여러분과 같이 얘기를 좀 하려고 그래요.
그 대신 이야기하다 보면, 젊은 사람을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뭐 들이 패야 될 때는 패고, 아주 밀어제껴야 할 때는 밀어제끼고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존경하는 말이 안 나갈 때도 있단 말이예요. 물론 대중을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존경어를 써 해야 되겠지만서도 말하다 보면 젊은 사람들 기질에 맞게 하려고 하다 보면 존경어를 쓰지 않을 그런 때도 있을 텐데, 나이 많은 분네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들어주세요. 아시겠어요? 약속합시다, 여기 몇 분들 계시는데.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여러분들은 한마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한마음이. 여기 뭐 옷도 알록달록하게 입고 있고, 얼굴도 보면 긴 사람도 있고, 둥근 사람도 있고, 머리도 보면 짧은 사람이 있고 넘긴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모양입니다. 그리고 또 가만 보면 바라보는 이 표정들도 천태만상이예요. 어떤 사람은 똑바로 보는 사람이 있나 하면 아주 옆을…. 참, 아주, 여기서 보면 만물상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하나 안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말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나되느냐? 그게 문제일 거예요.
여기에는 먼 거리에서 오신 분들도 계실 텐데, 오늘 왔던 이 청중의 집합이 헛되이 되지 않게끔 우선 말하는 사람을 좀 동정해 줘야 되겠어요. 이거 참, 말하기가 힘듭니다. 대중을 대해 가지고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말하게 된다면…. 본부에서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여기 찾아올 때는…. 여기 처음 오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오신다니까 구경 삼아 오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아,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소문이 많으니까 어떤가 가 보자' 해서 오신 분네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분네들! 오늘은 그런 높은 척도를 갖고 재지 말라구요. 친구와 같이, 옛날에 만났던 친구와 마찬가지로, 한 동네에서 자라다가 이웃 동네로 멀리 떠났다가 찾아온 동네 사람과 같은 기분을 갖고 오늘은 지내 보자구요. 약속하시겠지요? 「예」약속하시겠지요? 「예 」힘차게 한번 대답해 봅시다. 약속하시겠지요? 「예!」 젊은 사람들은 힘차게 대답해야 된다구요.
여기는 전라 무슨 도예요? 전라? 「남도입니다」 남도입니다. 여러분, 내가 물어 본다고 또 이상하게 생각해서 '저 양반이 뭐 우리를 국민학생으로 아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건 왜 그러는가 하면 한번 숨을 내쉬면 한번은 숨을 들이쉬어야 되는 겁니다. 천지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쓱 물어 보고 한번 대답도 해보는 거라구요. 그렇게 주고받는 데 모든 천지 조화가 어울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가를 지나가다가 암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더라도 '여보!' 하는데 '우―' 하면 그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도의상으로도 안 되는 겁니다. 예법으로 봐도 안 되는 거예요. 한번 '여보세요' 하면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무슨 사정이예요?' 하며 대답하는 동시에 거기다 다시 물어 주는 무엇이 있어 대답을 고대하는 것이 인사입니다. 쓱 물어 보면서 '그렇지요?' 하면 '예' 하는 거예요. 그래 놓고 시작해야지 원리적이예요. 아시겠지요? 자, 그러니 물어 보면 섭섭히 생각하시지 말아요.
여기는 전라남도입니다. 여기는 또 지형으로 말하면 중심 도시지요? 「예」 아니예요? 「맞습니다」 중심 아니예요? 「중심입니다」 여기 전라남도 사람이 모이지 않고 다른 도 사람이 모인 모양이군 그래. '아니요'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나는 그렇게 알고 왔는데. 여기 틀림없이 전라남도 중심이지요? 「예」 중심인데, 이 전라도 하게 되면 내가 제일 좋게 생각하는 곳은 광주예요, 광주. '광주' 하게 되면 이게 무슨 '광' 자예요? 「빛 광(光) 자입니다」 무슨 '주' 자예요? 「고을 주(州)입니다」 야, 빛나는 고을! 글자만 가지고도 아주 근사하단 말이예요. 그러면 '글자만 근사하고 다른 것은 근사하지 않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지 말란 말입니다.
글자가 근사한 데에 살면 사람도 근사하게 될 거예요. 원리원칙은 그럴 거예요. 그렇지만 대개 보게 된다면 이 전라도 분네들을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스스로 이해하시지요? 예? 그렇다고 내가 여기 와서 '아, 나는 전라도 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다고 할 때는 여러분이 공격할 거예요. 그러면 어쩔 수 없거든요. 이왕 손님으로 왔으면 주인 양반들을 칭찬해 주는 게 예의일지 몰라요. 나는 전라도 분네들을 좋아합니다. 전라도 분네들을 좋아하는데 어느 도를 제일 좋아하느냐면 전라남도 분네들을 좋아해요. 남도 분네들을 좋아하는 동시에 전라남도에서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을 지극히 좋아합니다. 아시겠지요? 「예」
좋은 곳, 이 전라도를 쭉― 이게 무슨 선인가? 호남선, 호남선을 쭉 타고 오면 이거 아주 뭐…. 요즘에는 절기가 참 좋을 때지요? 기차가 아주 힘차게 달리는데 좌우편에 평야가 있어 가지고 말이지요, 황금창, 황금 빛을 돋우어 가지고 아주 뭐…. 그 무르익은 곡식을 바라보게 될 때 아주 뭐, 기분이 참 좋았어요. 이 곡식들을 전라남도 혹은 전라북도 사람들이 전부 다 먹느냐 이겁니다. 보고 '전라도 사람들만 먹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대개 여기 전라도 쌀들이 서울에 많이 가지요? 예 그러니 지형적으로도 인심을 많이 쓰며 사시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전라도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 되겠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 온 선생님은 전라도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는 입장에 서는 겁니다. 선다는 것보다도 사실이 그런 것으로 알고 한마음이 돼 가지고 시간을 지내 보자구요. 아시겠지요? 「예」
자, 그러면 우리 노래 하나 합시다, 노래. 여러분들하고 처음 만났으니 다 뻑뻑하고, 모든 것을 어울리게 하는 데는 노래가 참 좋아요. 나이 많은 사람이 노래할 때는 어떤 마음 가지고 노래해야 되느냐 하면 아이들 같은 마음 가지고 노래해야 돼요. 대개 노래를 부를 때 제일 귀염둥이로 느끼고 재롱동이로 느끼는 것은 아이들이 노래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이번에 우리 애기들을 데리고 오는데, 기차 안에서 좋은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데 말이예요. 요즘 아이들은 음악 소리를 들으면 아주 춤추며 뭐, 노래보다도 춤, 표정을 아주 이상하게 해 가지고 박자를 맞추면서 자기 곡조에 맞춰 가지고 춤을 춰요. 그런 표정을 하는 걸 볼 때 '아, 노래하며 춤을 즐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노래할 때는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뭐 무슨 옛날에 무엇이었고, 무엇이었고…. 나도 그래요, 나도. 노래할 때는 어린애와 같이 좋으면 뛰고, 기쁘면 그저 귀 밑까지 돌아가도록 웃고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래할 때는 무슨 생각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옆의 사람이 빨간 옷을 입었는데 뭐 그렇군 그래. 옆에 있는 사람이 농사짓다 왔는데 그 등에서 아주 땀내가 나는구나. 입을 벌리기가 곤란해' 그거 다 잊어버려야 돼요. 주위에 어떤 사람이 어떻고, 앞에 또 뭐 어떻고….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선생님이 어떻든간에 우선 한마음이 돼 가지고 노래를 불러야 되겠습니다. 그 노래의 곡조와 가사에 푹 들어가 가지고 '이거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오늘은 내가 부르니 내 노래다. 이 곡조는 내가 깊은 명상 가운데서 지은 곡조로구나. 내가 지은 곡조, 내가 지은 가사에 멋들어지게 내가 좋아 부르는데 이 옆의 분네들은 괜히 좋아서 부르는구나' 하는 이런 기분 가지고 불러 봐요. 사실 노래는 그렇게 불러야 됩니다.
또 노래의 뜻은 나쁜 것이 없어야 돼요. 더우기나 우리 교회 계통에서 부르는 노래 중에는 참 좋은 노래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뜻을 생각하면서 불러 보자구요.
여러분들, 무슨 노래를 제일 좋아해요? 무슨 노래?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노래 하나 부르자구요. 「동산의 노래 좋아합니다」 응? 「동산의 노래…」 동산의 노래. 또 그다음에? 동산의 노래, 그다음에는? 「심정의 인연으로」 심정의 인연으로. 또 건설가. 「맹세입니다」 맹세. 또 그다음에? 「빛나는 대한」 빛나는 대한. 오늘은 무슨 노래를 한번 부를까요? 이게 다 이렇게 벌어져 있기 때문에 이거 찬송을 불러도 안 되겠고, 무슨 노래가 좋겠나? 우리 '애향가' 한번 불러 볼까요? 「예」
물론 찬송가를 불러야 되겠지만 우선 고향에 돌아온 줄 알고 애향가를 한번 불러 보자구요. 그러면 1절부터 세 번, 세 번 불러요, 세 번. 시작!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이 고향 땅을 위해서 모든 선열들은, 우리 조상들은 피와 혹은 죽음과 더불어 이것을 개척해 나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걸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 전통과 그 이념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기필코 이루기 위한 하나의 용사이며, 더 나아가서는 투사로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를, 하나의 지구성을 하나의 본향 땅으로 만들기 위한 무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한번 더 불러 보자구요. 아시겠어요? 내가 목이 쉬어서 안 됐어요. 다시 한번 해보자구요. 뜻을 생각하면서. 시―작!
새 역사의 깃발도 우릴 부른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와 정든 고향아.
하나님이 가려 주신 만세의 낙토.
지으신 본연의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만민의 거룩함을 찬양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었으되, 한의 한 날을 맞이한 우리 선조의 슬픈 날이 역사를 이렇게 더럽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고, 땅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고, 온 역사노정 위에 체면을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우리 선조들은 슬픈 세상에서 하늘의 뜻을 찾기 위해 수많은 노고의 노정을 걸어왔사옵고 원한 많은 생과 더불어 피어린 투쟁의 마당에서 쓰러져 간 것을 저희들은 회고하옵니다. 그들은 일편단심 하늘이 소원하시던 그날을 고대하였사옵나이다. 선한 무리들이 영원한 승리의 날을 고대한 것이 몇 번이었던가를 저희들은 회상하게 되옵니다.
피흘린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하신 노고의 터전은 남아 있사오되,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인류는 그 노고를 지성으로 받들지 못하였사옵고, 성심껏 그 터전을 세우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 못 한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렇듯 연이어 나온 역사의 슬픔은 오늘날 시대상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 인연 가운데서 태어난 저희들은 현실의 생을 영위하기 위한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해방의 날이 어디 있으며, 아버지께서 기뻐할 수 있는 해방의 날이 어디에 있으며, 아버지께서 기뻐하고 인류가 기뻐할 해방의 날이 어디 있는가를 역사와 더불어 찾아왔고 오늘날 시대와 더불어 싸우면서, 혹은 정성의 길을, 혹은 도의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무리가 이 땅 위에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해방의 날은 오지 아니했고,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해방의 날을 갖지 아니하였사옵고,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미래를 세울 수 있는 참된 해방의 날을 갖지 못한 우리 인류였음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이상의 슬픔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고, 만민이 기뻐하고, 아버지께서 '내 날이 왔다'고 찬양할 수 있는 그러한 날이 언제 오겠는가 하고 저희들은 마음으로 고대하며, 생활을 통하여 생의 노정을 걸어 나오기를 각오하고 맹세한 무리들이 여기에 모여 있사옵니다. 보기에는 초라하고, 보기에는 갖춘 바 없사오나 저희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아버지께서 아시사 일편단심 당신을 위하여 살고 당신을 위하여 죽고 당신을 위하여 가고, 그 무엇을 남기기 위하여 오늘까지 하늘을 우러러보며 당신이 분부하신 명령을 따라 나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일면 측은히 여기시옵소서.
남아진 역사노정에 슬픔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혹은 세계에서 해방의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이것을 누가 책임지며, 누가 이 노정 전체를 책임지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뜻으로 세울까 하고 생각하게 될 때에, 사람은 많사오나 참된 하늘의 용사들은 적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세우시어서 개개인 전체를 불러일으키사, 아버지여, 분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가 수고한 것은 너를 위함이었고, 내가 찾아온 것도 너를 위함이었다' 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마음과 뜻을 다하는 그 상대적인 존재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세우시어서 소원하시던 해방의 날을 위하여 달려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고 이 일을 위해서 살아가기를 맹세한지 이미 오래였사옵니다. 억센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하늘을 향하여 정열에 불타는 일편단심 이 일념을 아버지 앞에 바치기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염려해 나오는 투쟁의 노정을 지금까지 참고 싸워 왔사오니, 이제 저희들은 다시 이번 기회를 통하여 마음과 마음을 합하고 몸과 몸을 합하여 하나의 심정 위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아버지가 소망하시는, 원수의 세계 앞에서 하나의 포탄으로서, 하늘이 원하고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의 폭탄으로서 전체를 폭발시키고, 전체를 아버지 뜻 앞에 복귀해 드릴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모임을 갖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하옵나이다. 이 민족이 처참한 환경에 있어 오늘 저희들이 움직이는 것이 이색적인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으되 기필코 이 무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원하는 뜻을 위하여 아버지의 소원성취의 한 날을 기필코 세우기를 저희들 결의하였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분부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늘은 저희를 밀어 주고 저희는 하늘을 믿고 실천할 때 승리가 있을 것으로 아옵니다.
더더욱 오늘은 한 날의 기쁨과 더불어 한 날의 맹세를 측정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전지역에, 아버지, 책임지고 나가 뭇 생명을 어두운 세계 가운데서 해방시킬 수 있는 해방의 용사들이 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오늘 처음부터 전체의 시간을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망하시던, 아버지, 당신의 나라, 소망하시던 당신의 세계를 아버지께서 바라보시듯이 저희들도 바라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에게는 참부모의 날이 없었사옵고, 참자녀의 날이 없었사옵고, 참가정을 세울 수 있는 기쁜 날을 갖지 못하였고, 참사회와 참국가와 참세계가 없었사옵니다.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에 품기시어서 영원무궁토록 찬양을 하며 사랑 가운데에서 행복과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지 못한 것이 한이었사오니, 이 원한을 풀기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가기를 저희들 다짐하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이 분한 마음을 갖고 원수를 격퇴시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전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사명과 남아진 복귀의 노정이 저희 앞에 얼마나 크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대비하여 이 이상 넘어갈 수 있는 결의와 각오를 스스로 갖추어 가지고 이제 출발한 걸음 앞에 힘을 가하시옵고 모든 전체를 합하여서 적진의 중심부를 뚫고 주시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기신 기쁜 그날을 위하여 저희들은 참고 가기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에서부터 전체를 아버지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온전히 아버님만이 기뻐할 수 있는 은사의 분위기, 은사의 시간으로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만만세의 영광이 이들과 더불어 이 민족과 수많은 인류 앞에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제목을 세워서 말을 하자면 '한 많은 하늘땅'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붙여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 많은 하늘땅', 문제가 큽니다. 하늘땅 하면 전부 들어가는 거예요. 여기에는 하나님도 들어가고 인간도 들어갑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 한번 해보자구요.
우리 인간은 반드시 동기와 근원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 개체를 두고 볼 때도, 여러분 개체 가운데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거예요.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내 개체를 볼 때, 더더욱 크나큰 소망을 품고, 더더욱 크나큰 욕망을 품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러한 내 개체는 필시 내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동기가 되고 모체가 되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나를 있게 한 그 모체와 동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적인 동기와 몸적인 동기를 상징적으로 보게 되면, 마음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고 몸은 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늘땅에 존재하는 모든….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면 그 가운데는 자동적으로, 천지가 있으면 천지를 대표한 사람이 들어가는 겁니다. 자고로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 하나가 완전한 입장에 서면 완전한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요, 완전한 땅을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 하나의 욕망이 완전한 욕망과 완전한 소망을 품게 될 때에 그 소망은 사람 하나만의 소망이 아니라 완전한 하늘의 소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완전한 땅의 소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 자체도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게 한 동기와 근원을 통하여서, 어떠한 힘의 원천에 입각하여 생겨났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서도 더 한층 올라가 반드시 중심적인 주체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땅을 움직이든가, 혹은 여기에 창조를 하든가 하는 힘의 작용체, 근본의 작용체가 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뭐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다르게 표현하는 그 명사가 문제가 아니예요. 어차피 이 우주의 중심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중심은 전체 이 존재세계 앞에 있어서, 존재가 작용하고 이동하더라도 그 이동하는 데에 따라 가지고 이동하지 않고, 이 움직이는 상대적인 세계의 중심에 있어 가지고 억천만년 움직이지 아니하는 중심적인 본체가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 여러분 한 개체를 두고 볼 때에, 손이 있으면 손은 반드시 목적적인 방향을 갖추어서 작용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작용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내 눈이 있으면 눈으로 필요한 이 자연계의 모든 현상세계를 바라보고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내 일신의 목적을 돕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지백체가 전부가 그렇듯이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자연계, 혹은 이 온 우주, 더 큰 말로 하면 이 천주가 존재하여서 작용하고 현상적인 미를 갖추어 나타나는 이 만유의 존재라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기필코 있게 하는 어떠한 작용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때는 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목적을 바라보고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동으로 움직이고 서로 움직이고 남북 혹은 상하로 움직이는 만유의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그 크나큰 목적권 내에 있어서…. 여러분이 세포를 보든가 혹은 혈관을 보더라도, 혈관이 이렇게 가는 놈도 있고 건너가는 놈도 있고 올라가는 놈도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한 개체권 내를 볼 때는 상반적인 작용을 하고 있지만 전체의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는 한 목적의 방향을 갖추어서 나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용하는 이 모든 현상도 어떤 목적을 위해 벌어진다고 볼 때에 이 대우주가 움직이는 것은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목적의 어떠한 목표를 향하여, 중심과 상대될 수 있는 그 종말점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헤아려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도 욕망이 있단 말이예요. 이 욕망은 무엇 때문에? 자기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듯이 가정도 그러하고, 종족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국가도 그러합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이런 최후의 급박한 상태를 이룬 이 두 역사적인 사조, 자유와 공산 두 진영이 대비되는 이 흐름도 결국은 하나의 목적세계를 촉구하는 최종 단계의 관문에 부딪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는 반드시 하나의 목적을 정해 나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해서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지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작용과 방향을 갖추어 주는 어떠한 힘이, 내재적인 힘이 뒷받침 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상대적인 이 세계는 역사 변천과 더불어 거기에 부합시켜 나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땅 위에 어떠한 훌륭한 인간이 있어서, 어떠한 위대한 정치가가 있어서 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하나 만들 수 있느냐? 안 된다는 거예요. 어느 일개국의 주권자가 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어느 한 가정의 주인 중에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자고로 천만인 혹은 역사적으로 왔다 간 수많은 영들을 붙들고 물어 보게 될 때도 망하고 싶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망해 갔다 이겁니다. 어느 누가 '내가 세계적인 책임을 진다'고 태어나면서부터 간판을 붙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럭그럭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인간은 우연한 사정, 혹은 필연적인 사정에 의해 존재하는 것 같지만서도 그것은 대운수의 추이가 어떠한 방향을 갖춰 가지고, 하나의 목적 세계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어떠한 동기의 힘이 배열돼 있기 때문에 그 배열된 힘에 의해서 상대적인 작용체로서 작용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겁니다. 역사적인 목적의 세계가 반드시 와야 되겠는데, 그 목적의 세계가 반드시 와야 될 것이거늘 그 목적의 세계가 온다면 반드시 하나의 중심으로 계신 어떠한 이 대우주의 중심체가 있다면 중심이 둘이 아닌 이상 목적의 세계는 하나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참이 무엇이냐? 참된 것이 무엇이냐? 동으로 가도 하나요, 서로 가도 하나요, 남으로 가도 하나요, 북으로 가도 하나요, 하늘에 가도 하나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 그렇다구요. 사람은 많은데 이건 하나밖에 없어요. 그 기준에 있어서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세상에서 귀한 것이라는 것은, 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동시에 하나밖에 없다 이겁니다. 그건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본심을 해부해 보게 될 때, 우리의 본심은 무엇을 요구하느냐? 오늘 어렵게 살고, 혹은 지게를 지고 구르마를 끌고 처참한 자리에서 하루의 생활을 하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여 피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돌아올 때에 돈 한푼도 못 받고, 한푼도 벌지 못하고 맨손으로 돌아오는 그런 처량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길가에 쓰러진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동정하고 싶은 것이 인정(人情)이라구요. 내 자체가 동정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있지만 불쌍한 사람이 있게 될 때는 동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종자는 다 마찬가지예요. 또 아무리 불쌍한 사람,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기가 선한 일을 하고 나서는 '아! 분하다' 그러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한 일을 하고는 좋아한다구요. 또 선한 일을 하는 데는 끝이 있는 것이냐? '아! 내가 선한 일을 요만큼 했으니 이제 나는 선한 일 하는 데는 졸업했다' 할 수 있는 끝이 있느냐? 끝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 선한 일을 했으면 한 가정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고 싶고, 한 가정을 위해서 했으면 한 종족,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자기 문중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고 싶고, 거기서 선한 일을 했으면 그다음에는 자기 민족이라든가 자기 국가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한 나라를 위해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선한 일을 했으면 세계를 위해 하고 싶고, 이 세계를 위해서 선한 일을 했으면 그다음에는 하늘땅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제일 꼭대기에 하늘땅보다 더 큰 것이 있으면 그 더 큰 것을 위해 선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러면 이런 욕망이 왜 나오느냐? 작용이라는 것은 반드시 힘의 기반, 힘의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그 작용은 벌어지지 않는 겁니다. 우리의 양심적인 욕구와 작용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없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예요. 있는 데서 나온다는 겁니다. 본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돼서 그렇게 됐느냐? 내가 보기에 사람이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보며는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본래 이 존재가 지닌 가치가 얼마나 컸었는가 하면, 오늘날 이 지구성이라는 걸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겁니다. 하늘이 제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사람 하나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땅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하늘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존재의 가치성, 오늘 만유세계에서 상대적인 가치성이라도 지니기 위해서는 만물, 혹은 물질, 혹은 어떠한 물건보다도 사람을 중간 매개체로 세워 놓지 않고는 그 가치를 스스로 표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사람에게는 희노애락이 있습니다. 기쁘면 좋고, 혹은 행복을 요구하고, 자유를 요구하고, 그다음에는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요구하고, 무한한 세계에 있어서 영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요건들이 다 좋은 요소라는 것은 본래 하늘로부터 인간이 관계를 맺어 가지고 지니고 살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고가 생겨서 차단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인간이 하나의 주체와 하나의 상대적인 관계가 돼 가지고 완전히 주고받으면 일체가 됩니다. 둘이 주고받으면 하나가 되는 겁니다. 일체가 되는 거예요. 천리가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주체요, 나는 상대이지만 둘이 주고받아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만 되면 좌가 우로 돌아가고 우가 좌로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내가 너요, 네가 나라는 거예요. 하나님도 홀로 있기를 원치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은 마음과 같은 존재요, 사람은 몸과 같은 존재가 돼 가지고 둘이 하나로 존재하면서 무엇을 느끼겠느냐? 둘이 있음으로 해서 자극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천지창조를 했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오늘날 사람의 본성의 모든 작용이라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그렇게 하느냐?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역사가 변천해도 선을 추구하려는 그 마음과 혹은 좋은 것을 좋아하는 마음, 더 큰 것과 자기가 관계를 맺겠다는 마음, 더 나아가서는 이 세계를 전부 다 내가 내 손아귀에 넣고 흔들어 보겠다는 마음을 다 갖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어디서 나오느냐? 본래의 사람이 그렇다는 겁니다, 본래가. 어느 누가 갖다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기를 본래 그렇게 태어난 거라구요.
오늘날 세계에 있어서 역사를 가만 보면 어떻게 되었느냐? 개인주의, 종족, 민족, 국가 이렇게 역사는 발전해 나온 겁니다. 역사는 씨족주의에서 부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해 나온 겁니다. 문화 발전과 더불어 이렇게 발전해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발전해 나와 가지고 오늘날 민족주의 시대를 지나서 세계주의 시대권 내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 하나의 정부 이념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모방해 나가는 이런 현실적인 세계에까지 왔습니다.
오랜 역사를 거쳐 가지고, 수고와 공적의 터전을 통하여서 그러한 문화의 세계를 쌓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시대까지 나오기에는 수많은 역사과정의 단계를 거쳐왔다는 겁니다. 본래 타락이 없었으면 오늘날 20세기 문명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이 영위 못 한 모든 문화의 세계가 이런 종적인 과정을 쌓아 가지고 될 것이 아니라 횡적으로 그날부터 벌어진다 이겁니다. 그날부터 만민은 세계의 기둥이예요.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러면 오늘날 국경이 필요 없는 거예요, 국경이. 바람이 불어 갈 때, 여기에서 삼팔선을 넘어갈 때에 '삼팔선아, 나 통과시켜 다오' 그래요? 나비가 날아갈 때에 '삼팔선아, 야! 보초병아! 나 건너간다' 하고 건너가요? 동물들도, 호랑이도 산돼지도 그저 마음대로 왕래해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람만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느냐 이겁니다.
우리의 마음은 한국 사람이래도 미국에도 가 살고 싶고, 혹은 세계 어느 곳이든지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자기의 소신과 더불어 자기의 희망과 더불어 그 자연과 이 세계를 품고 즐기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래의 성품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 자리에 못 나갔느냐 하면 그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필시 그런 때가 와야 됩니다. 왜 그런 세계가 와야 되느냐? 하나님이 그런 분이예요, 하나님이. 만민을 중심삼고 경계선을 그어 가지고 '여기는 빨강이만 살고 저기는 노랑이만 살고, 저기는 흰둥이만 살고, 저기는 검둥이만 살아라' 한다면 기가 막힌다 이겁니다.
여러분! 보란 말이예요. 저기압권이 생기면 저 남방에 가서는 고기압권이 생기는데 그것들은 인사도 안 하고 전부 다 거친단 말이요. 누구 안내자가 있어요? '아, 이리 오소, 이리' 해주는 안내자가 있어요? 안내는 억천만년 전에 다 해준다 이겁니다. 자연적으로 모든 것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아질 새로운 세계의 문화는, 신세계 문화, 신세계의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이냐? 국경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만민이 하나의 심정으로 마음이 같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같으니….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타락했을망정 변했어요? 자식들이 부모를 그리워하고 형제 형제끼리 은은한 가운데 서로 생각하는 이것이, 물론 타락 때문에 이것이 뭐라고 할까, 응, 아주 뭐 뭘 뒤집어씌워서 작용을 못할망정 본심에 가서는 여전히 하나하나 더 빛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까,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인간을 두고 보면 전체적인 이념, 그러면서 만민이 좋을 수 있는 이념은 전체가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게 필요 없다는 겁니다.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왜 그러냐? 천주의 중심존재, 하늘땅의 중심존재는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 분의 피살과 한 분의 내용을 거쳐서 난 존재는 동서의 위치가 다를지라도 그 본성의 요소의 바탕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그 본성으로, 그 본질로 계시면서 만물과 인연지어서 지었기 때문에 이 본성의 관계를 벗어나서 지어진 물건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작용하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걸 볼 때 기필코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될 것이며, 그런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가는 걸 볼 때 반드시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이루려고 하는 인간들의 행동은 달리하지만 마음의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나가게 하는 이러한 힘의 작용은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의 본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 이겁니다. 없었더라면 못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 작용….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지식 혹은 사상혁명보다도, 공산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사상혁명보다도 의식혁명입니다. 의식혁명이 어려운 것입니다. 의식혁명을 넘어가 가지고 그다음에는 양심혁명을 부르짖어야 됩니다. 양심 가운데는 심정이 있어야 돼요. 심정이 있다 이겁니다. 심정이라는 것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을 불쌍하게 느끼는 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양심 바탕 위에 참된 심정의 기반을 닦아 놓은 이런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찾지 못하면,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런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곳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의 세계는 안 된다 이겁니다. 가정이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것도 돈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라가 흥하는 것도 애국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떠한 주의나 사상이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사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거기에서 세계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의 위치를 갖게 된 것도 역시 기독교가 앞서서 그리스도가 추종한 이념을 자기 생명을 넘어서서 바랄 수 있는 길을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연이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좀더 강하고 좀더 체계적이고 좀더 이념적이고 실천적인 조직 계통을 통했더라면 벌써 세계를 정복한 지가 오래였을 겁니다. 막연한 관념, 혹은 막연한 소망 가운데서 믿음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래도 오늘날 현실 생활을 초월하고 자기 생명을 초월해 나오는 이런 내재적인 힘이 거기에 뒷받침 돼 있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거쳐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왔다는 겁니다.
만일에 여기서 기독교가 '세계는 이렇게 된다. 하나의 개인은 이렇게 되고 하나의 가정은 이렇게 되고 하나의 사회는 이렇게 되고 하나의 세계는 이렇게 돼서 이 세계가 이렇게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이 하나의 통일세계를 만든다' 하는 조직을 만들어 가지고 논리와 체계에 부합될 수 있게만 만들었으면 벌써 세계를 정복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4백 년 이후에 삼켜 수중에 넣었으면 그때 천하를 통일했을 겁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맹목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조직과 질서가 있어야 됩니다. 조직과 질서라는 것은 뭐냐 하면 반드시 원인에 대해서 상대적인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내용, 이것이 적용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 수많은 국가 형태가 있지만 그 국가 형태가 그 원인과 상대적인 위치의 중간 과정에 있어서 원인에 부합될 수 있는 상대적인 가치, 혹은 내용을 지닌 조직적인 기반이 안 되어 있으면, 이 원인의 힘이 점점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뻗어감에 따라 가지고 가정을 위주해서 머물던 것이 그 원인에 부합될 수 있는 힘과 동반되지 못하면 가정시대를 지나 가지고 종족시대로 하늘이 움직여 나갈 때는 깨져 나가는 겁니다. 다음에 국가시대를 거쳐야 되는데 국가시대에 있어서 하늘이 원인과 국가적인 기준에 부합될 수 있는 기준을 요구하는 때에 있어서 그 국가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 원인에 부합될 수 있는, 그러한 기준에 부합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직과 그 내용에 응할 수 있는 기반이 돼 있지 않으면 그 나라도 깨져 나간다 이겁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여기에 조금만 부합되지 않으면 긁어 버리지요? 하나의 몸과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이 모든 사조가 기필코 하나의 세계를 목적으로 하여 나가는 동시에 그 내용과 방향이 일치가 돼야 됩니다. 내용의 일치, 방향의 일치, 목적관 일치. 이래 가지고 그 주체적인, 즉 본래의 중심인 그 동기 앞에 상대적인 위치를 결정할 수 있어야 그것이 존재하지, 그렇지 않으면 깨져 나간다 이거예요.
그러나 하나의 목적의 기준을 이루어 놓은 것도 인간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역시 본래의 중심, 하나의 중심이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의 중심이 목적을 내재시킨 이러한 자연, 혹은 이 피조물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움직여 나오기 때문에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기필코 하나의 중심 존재가 있으면 하나의 목적의 세계는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가 그렇게 돼 있느냐? 그렇게 못 돼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은 한스러운 거라 이겁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한스러운 역사! 오늘날 인류역사가 이렇게 한스러운 역사과정에 있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움직여 나오는 하늘도 한에 잠겨 있고 이 땅도 한에 잠겨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양반은 '하늘의 탄식이 생겼고, 인간의 탄식이 생겼고, 만물의 탄식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거 아주 잘 본 거라구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사회, 살고 있는 현세,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적인 전체를 뒤돌아가 가지고, 어느 새벽 깊은 잠 가운데 안식의 터전 위에서 이상을 꿈꾸면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세계가 있었느냐? 없었다는 겁니다. 전부 다 그 생활을 박차고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달음질치는 과정에 있지 그런 세계는 없었다는 겁니다.
오늘날 민주세계 혹은 이 세계에서 첨단의 문명을 자랑하고 있는 선진국가를 두고 보더라도 그들이 제아무리 큰소리한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사회 앞에 만족하고 살 수 있겠느냐? 본심의 작용이 예민하고 민활한 그런 사람일수록 이 미국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아직까지 좌우가 투쟁하면서 한 고비를 넘어가야 할 그러한 역사적인 발전 단계를 남긴 사회의 제도권에서는 만인의 행복을 노래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 어차피 거쳐가야 할 곳이란 걸 생각할 때가 왔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런 와중에서, 이런 소용돌이 가운데서 더더우기나 자리를 잡지 못하는 오늘의 이 비참한 한국 민족 앞에 우리들은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이냐? 오늘날 우리들이 또 가야 하고 또 찾아야 할 입장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비참한 일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세가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여기에서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비애의 울음 소리가 우리의 고막을 울리고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편안하다고 활개펴고 살 수 없는 사회인 것을 철저히 느껴야 됩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 현세의 전부가 한스러운 세상이라는 겁니다. 온 세계가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그렇고 땅이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렇고,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틀림없이 하나님도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아무리 지금까지 부자집 주인이며 효자를 가지고 자기의 권위를 자랑하던 주인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에 그 효자가 불효하는 날에는 그냥 다 깨져 넘어가는 겁니다. 그 시간부터 위신이 꺾여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은 이 땅 위의 인간이 필요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필요한데 하나님 앞에 있어서 인간이 한스러운 입장에 서 있으니 하나님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이 있다면 하늘 자체가 한을 풀고, 땅 자체가 한을 풀고, 인류가 한을 풀고, 하나님이 한을 풀 때가 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만 하나의 목적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요, 하나의 참된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요, 하나의 선한 세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 이제 하나님이 계신다 이겁니다. 전부 다 하늘 앞에 얼클어져 가지고…. 사람의 심장을 중심삼고 혈관들이 전부 다 얼클어져 있습니다. 신경도 한 촛점을 중심삼고 전부 연결돼 있습니다. 그 작용과 세포는 전부 다릅니다. 눈의 신경계통이 전부 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연락하는 모든 기관이 다르지만 하나에 붙어 있습니다. 하나에 붙어 있는 이것의 한 요소를 따서 그 세포를 분석하더라도 전부가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전부 다 하나님을 닮아 있다는 거예요. 사람을 닮아 있다는 거예요. 나를 닮아 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예요. 이 우주는 하나님을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범신론과 같은 그런…. 범신론이 아니라 범신상론이예요, 범신상론.
그러면 하나님이 있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있는데 하나님은 한 분이니 그 한 분이 지으신, 주체가 되신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관계돼 있는 모든 존재 세계에 있는 것들은 과정이야 어떻든간에 하나의 목적점에 가서 귀결돼야 됩니다. 이 목적점에 귀결시키고 처리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인간을 대표해서 오는 것이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사상은 불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고차적인 종교에는 전부 다 있습니다. 거 이상하지요? 이 세상의 과정이 다 틀려 있기 때문에 이 틀을 뜯어 고쳐서 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것을 심판하고, 처리해 버리고, 정리해 버리고, 재건하고, 재건보다 다시 창건려니 참사람이 와야 되는 겁니다.
참사람!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 사람을 찾는 날에는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한 사람을 붙드는 날에는 세계를 붙드는 것보다 나은 겁니다. 하늘땅을 붙드는 것보다 나은 거예요. 그 한 사람을 붙드는 날에는 하나님을 붙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진정히 붙들은 사람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붙들 수 있는 겁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만일에 이 땅 위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이어늘 그분을 완전히 붙드는 날에는, 그분의 사정과 일치되고 소원과 일치되고 심정과 일치만 되는 날에는 그분과 같이 되는 겁니다, 같이.
사람들이 어떠한 목적에 대해, 적군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탈환하겠다는 그 목적만 같아도 죽을 고비도 넘어가려고 하는데 목적이 같고 소망이, 소원이 같고 사정이 같고 심정이 같으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건 떼버릴 수 없다는 겁니다. 떼버릴 수 없는 한몸과 마찬가지예요. 다르지만 사정이 같으니 한몸이예요. 부부가 뭐예요, 부부가? 가정을 중심삼고 소망의 일치, 사정의 일치, 심정의 일치이기 때문에 갈라놓으면 파괴되는 겁니다. 부부가 파괴되면 그 하나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파괴되고 가정 단위와 모든 전체 분위기가 한꺼번에 깨져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가 그렇게 못 됐기 때문에 목적 세계의 종말시대에 가 가지고, 끝에 가 가지고 하늘은 이 땅 위에 하나의 중심존재를 보내나니 그 중심존재 그분은 뭘하느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왜? 인간들은 목적을 몰라요, 목적을 몰라.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목적이 어떤 것인지 모른단 말입니다. 방향과 내용과 목적이 어떤 건지 몰라요. 하늘이 움직여 나가는 방향과 하늘이 움직여 나가는 내용과 목적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체적인 하늘의 내용을, 세계사적인 모든 전부를 수습하여 하나로서 종결지을 수 있는 대표자, 참사람이 이 역사의 종말시대에는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참이기 때문에 참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겁니다. 그 사람에게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은 개인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역사 만민이 즐거워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욕망입니다. 과거, 현재의 인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욕망의 중심존재입니다.
그에게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을 만민이 같이 안 나누면, 그 사정에서 빼놓으면 섭섭해 할 그런 사정입니다. 그에게 어떠한 심정이 있으면 전부 다 그 심정의 자리에 동참 안 하면 행복을 노래할 수 없는 그런 심정을 갖고 온단 말입니다. 그의 소망은 어떠한 한 나라, 뭐 한국을 독립하기 위한 소망이 아니예요. 그는 민주국가를 중심삼고 공산당을 퇴보시켜서 세계를 하나 만들고 하늘땅을 하나 만드는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하늘땅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이 하늘땅을 가운데 놓고 하나님과 인간들이 이 우주를 품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런 소망을 갖고 오는 그분의 소망은 누구의 소망이냐? 물론 오시는 그분의 소망도 되겠지만 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소망이요, 그분이 갖고 오는 사정도 물론 그분의 사정이 되겠지만 그 사정은 하나님의 사정이요, 그 심정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소망권 내를 이탈해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사정권 내를 벗어나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 심정 없이는 영원한 생명의 터전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든지 필요한 존재입니다.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동서 뭐 할것없이 전부 다 필요한 그런 존재가 나와야 된다는 겁니다. 그분이 와서 오늘날 공산주의도 훌떡 삼켜 버려야 됩니다. 민주주의도 훌떡….
자기가 지금 세상에서 '아, 나는 우리 가정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인데, 오! 이 나라의 어떠한 힘이 있는 사람이 와서 이 가정의 사정을 끊어 놓으려 해도 끊을 수 없다' 하고 자신하는 사람이라도 그분의 사정을 한번 들어 보면 녹아나는 겁니다. '아! 나는 지금 신혼인데 이 신혼 기간에 재미보는 이 부부의 인연을 누가 끊을 것이뇨?' 하더라도 만약 그분의 심정적인 자리에 한번 갖다 놓으면 신혼의 재미도 뒷발로 차 버린다 이겁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무슨 대통령, 흐루시초프, 뭐 존슨 대통령, 뭐 이런 사람들도 그 자리가 싫다 이겁니다. 그 자리가 우스워 보여요.
왜? 여기는 바라보는 시야의 천지가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적인 만민이 그를 추앙하고 그의 거동하는 목적을 향하여서 전부가 행보, 보조를 맞춰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면 서로 가고, 남으로 가면 남으로 가고, 그 얼마나….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요? 정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뭐 다리가 부러지겠으면 부러지고 몸뚱이가 잘라지겠으면 잘라지고…. 야단이 날 거예요.
만약에 그것이 없다 하면 거짓말이라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가만히 보면 내용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거짓말이 될 수 없단 말이예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있기는 뭐가 있어요. '이놈의 하나님 있기는 뭐 있어?' 그럴 거예요. 세계를 요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전부 다 쓸어 버리고 전부 다 죽여 버리려고 이렇게 만든 거예요? 구해야지요. 뭐 좋은 것을 이뤄야지요. 왜 우리 마음에 욕심이라는 걸 줘 가지고, 욕망을 줘 가지고 서로 싸우고 죽이고 볶고 야단하게 만들어 놓았나 말이예요. 전부 발굽 밑을 파고 들어가게끔 만들었으면 싸움은 없잖아요. 동기는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말이예요.
아무리 욕심이 많아도, 여러분들 욕심이 새끼쳐 가지고 욕심 조상의 몇천 대 조상이 돼도 괜찮은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욕심의 욕심을 품어라! 세계를 삼킬 수 있는 욕심, 욕심의 욕심을 품어라! 하늘을 삼킬 수 있는 욕심, 욕심의 욕심을 품어라! 하나님을 삼킬 수 있는 욕심! 하나님도 그 욕심이 편안한 욕심이요 만민이 좋아할 수 있는 욕심이라면 그 가운데서 낮잠 잘 거라구요. 그렇단 말이예요. 하나님이 '나 그런 자리 원치 않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욕심을 잉태하면 뭘 낳는다고요? 죄를 낳고. 죄를 잉태하면 사망을 낳고…. 그것은 타락한 세상이니까, 타락한 세상. 타락한 세상이니 부딪치는 것들 전부가 죄의 새끼들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욕망을 품다가는 안 되겠으니 보따리 싸 들고 전부 다 끊어 버리든가 뒷발로 차라 이겁니다. 그건 한 과정에서 필요한 거예요. 성경은 그렇게 돼 있단 말이예요. 바울 같은 사람은 얼마나 욕심이 많아요. 베드로 같은 사람하고 상대도 안 하고 남이 닦아 놓은 터전 위에는 세우지 않겠다는 그 욕심, 그런 건달꾼 욕심이 어디 있어요? 사도라는 이름 가지고 기름 부어 가지고 천국문 열쇠까지 줬는데 '네가 사도면 나도 사도다' 이거 이거…. 그거 도적놈 아니예요 도적놈, 그때만 해도. 그렇지만 하늘은 바울을 세워서 베드로보다도…. 이 세계를 선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욕망이 크니만큼 그 욕망을 하늘이 입증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지지리 못나 밀려 다니고 형편없이 아주 뭐 머리를 숙이고 뒤척거리며 다니는 청년 남녀들을 보게 되면 말이예요, 갈 곳을 몰라 꼬리를 젓고 다니고 있어요. 그 가운데서 만약 '야, 흐루시초프야! 아무개야! 나는 너희들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날아가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이놈아, 이놈아! 그거 위험하다' 그러시겠어요?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이 대우주의 목적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내 힘이 필요하고 내 욕망이 필요하니 내 작용이 거기에 가담해 가지고 그걸 완결짓는 데 있어서 필요한 욕망이요' 하고 믿고 나설 때는 하늘도 다 통과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욕심이 많다구요. 욕심이 많아요. 욕심이 많은데 만약 천만 원이 있으면 '아이고! 나부터 먹고 남은 찌꺼기는 너'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천만 원이 있으면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써야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나보다도 나라를 위하여, 공공단체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벌받겠어요? 방향이 달라요, 방향이. 우리 한국 통일교회 교인들은 욕심이 도깨비 욕심보다도 더 많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도깨비가 얼마나 욕심이 많아요. 이건 그저 동내 미치광이까지 자기 종으로 만들어 놓고 부려먹으려고 그런단 말이예요. 뭐 양반은 물론이고. 이건 뭐 아주 혼자서 신세타령하는 과부나, 먹다 남은 뭐라고 할까, 고추 꽁다리 하나까지도 마음대로 못 하게 하려고 그런단 말이예요. 도깨비 욕심이 얼마나 많아요? (녹음이 잠시 끊김)
닥치는 대로 먹어 삼키면 소화하고, 이럴 수 있는…. 그래야 하나의 개인이 가정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한 후에 종족을 수습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수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국가를 수습해 가지고 세계를 요리해서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만들어서 하늘이 준비하여 보내는 분, 이 땅에 만민이 고대하던 오시는 한 중심존재 앞에 '아! 오십니까' 그러면서 '준비한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런 욕심입니다. 그러니 욕심이 얼마나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욕심 바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욕심 있지요? 여러분들, 공부하다가 조금만 져도 싫지요? 나도 그런 사람이예요. 옛날에 나는 누구한테 지면 밤잠을 못 잤어요. '어느때까지 너를 굴복시키고 말겠다' 하게 되면 먹는 것을 안 먹고 하는 거라. 씨름도 어느누구보다 잘했어요. 중학교 때는 이거 하나만 하는 겁니다. 주먹질할 때도 누구한테고 지지 않았단 말이예요. 필요하다 할 때는 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겁니다. 네가 견디나, 내가 견디나. 그렇기 때문에 시시한 건 손도 안 대요.
오늘날 이 통일교회를 만든 것도 그런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줄만 알면 녹아난다 이겁니다. 그런 뭐가 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양반들이 하는 말이 '어, 통일교회 아무개가, 대마귀가 강하여서 이단이 한번 출세할 때다'라고 하지만 나는 '이단이 출세해 가지고 망하나 봐라!' 그 말이예요. 이단이 흥한다! 이단이 흥해? 흥해 가지고 세계를 삼켜서 하나님한테 갖다 바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이단 대장 되겠다! (웃음) 뭐가 이단이예요, 이단이기는. 나는 그것을 동네 지나가는 개짖는 소리만큼도 안 듣는다구요. 뭐, 자유당 때, 민주당 때 내가 서울에서 부산만 내려가도 치안국에서 '따르릉! 통일교회 문 아무개 지금 부산 간다' 하고 연락하는 겁니다. 어떤 면으로 생각하면 참, 내가 신세를 지고 다녔다구요. (웃음) 그렇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다릅니다. 잼대가 달라요, 잼대가. 내가 왜정 때 일본에 가 살면서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못 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그런 얘기 하면…. 우리 동지들을 시켜 가지고 저 소만국경까지 연락하고 다녔단 말이예요. 자세한 얘기는 안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데도 누구한테고 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도 누구한테고 지지 않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소위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어떻게 체크하느냐 하는 그런 문제를 갖고 나오는 거라구요. 예수 믿고 천당 가자구요? 예수 믿어 가지고 천당 갈 것 같아요? 내가 영계에 가 보니 훌륭한 목사들이 쭉…. 가까운 데 가서 '어디 다 갔나? 한국에서 순교했던 목사들 다 어디 갔나? 거기 가서는 뭘해?' 하고 물어 보았어요. 내가 섭섭하게 느껴져서 '그들이 전부 다 좋은 데 들어가야 할 텐데…' 했어요. 그런 사람들은 문선생이 이단이기 때문에 못 만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천당 가기 위해서 믿는 것들은 강도예요. 왜 강도냐? 이걸 설명할께요.
왜 강도냐? 잘 들어요. 통일교회 교인들도 '내가 어서 전도를 해야 뭐 어떻고 어떻고…' 이런 것들은 다 강도 새끼예요. 왜 강도 새끼냐?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이 천당 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쿠!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한다' 할지 모르지만 들어 보라구요. 제1조로서 무엇을 원하느냐? '내 뜻이 이러한 뜻이 있나니 이 뜻을 대해서 먼저 죽을 자가 있느냐? 죽지 않고는 이 뜻을 못 이룰 텐데 죽을 자가 있느냐?' 이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조로 하늘이 찾고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충신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되요. 천당이 그게 싸구려인 줄 알아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지 않아요. 나는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요. 이놈들! 뭐 젊은 사람에게 그러니 용서하세요. 이놈들!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니 이놈들이지, 잘 살았으면 왜 이놈들이야? 과거의 이놈들! 그건 다…. 천당 가기 위해서 믿는 게 아니예요.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이 있나니 그 하나님은 멀리 대해서는 만군의 여호와요, 만군의 주이시며, 중심 중의 중심이신 고로 그를 대해서는 충신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의무요, 책임입니다. 가까이 대할 때는 아버지이시니 효자 효녀가 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먼저 해야 할 일이예요. 그래 놓고야 지옥으로 보내겠으면 보내고 천당으로 보내겠으면 보내고 마음대로 하라 이겁니다. 그렇게 살다가 지옥간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내가 천당 가기 위해서 믿는 사람은 나 중심삼고 믿는 사람이니 하나님을 자기에게 개재시켜 가지고 소개자로 이용해 먹는 놈들이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의 그 논법이 틀렸나 기도해 보라구요. 그런 사람들은 다 천국 못 가요. 결론은 누구나 다 마음대로 천국에 못 간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원한을 품은 하나님입니다, 원한을 품은. 한을 품은, 한 많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걸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른다는 겁니다. 내가 믿고 내가 아는 하나님은 한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6장에서와 같이 인간 창조하심을 탄식한 하나님입니다. 사울왕 택하신 것을 탄식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택했던 것을 탄식한 하나님이예요.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바벨론에 70년간 포로되게 했는가? 한에 못 견뎌서 벌을 줘야 되겠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 년 동안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이 지지리 못된 것들이 왜 세계에 유리고객했으며, 2차대전 때는 히틀러에 의해 6백 만이 학살을 당해야 돼요? 잘 죽었다, 이놈들아!
나는 이스라엘과 원수라. 왜 원수라고 하느냐? 예수를 잡아죽였어요. 예수는 피살자예요, 피살자. 누가 잡아죽였느냐? 서기관 교법사 대제사장 이놈들이 전부 다 빌라도하고 짜 가지고 예수를 잡아먹기 위해서 얼마나…. '바라바를 살려주고 자칭 유대 제일의 왕이라고 하는 나사렛 예수, 그 녀석을 죽이자'고 그랬잖아요? 이 악당 패들! 전부 다 죽어 가지고 지옥행 특급 일등실에 탔다는 것입니다. 뭐 이래 놓고 예수 십자가가 구원해? 십자가가 구하긴 구했지, 반 쪼가리라도.
내가 이단이면 세계 이단인 게 사실이예요. 천지에 처음 나온 사람이예요. 2천 년 동안 뿌리 박아 놓은 기독교를 몽땅 뒤집어 놓을 거라구요. 그래서 천국 가 가지고 누가 승리하나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다니면서 십자가만 보면 분한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죽지 않을 예수를 잡아죽인 이스라엘의 죄를….
'이 한민족이 십자가를 떼고 회개할 수 있는 날이 언제 오겠습니까?' 하고 불타고 있다구요. 그러면 이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서서 예수의 한을 풀어 주는 민족이 되는 겁니다. 예수의 한을 풀어 주면 하나님의 한이 풀립니다. 예수가 할 수 없이 죽음을 결정하게 된 것이 언제냐? 변화산상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 때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의논하고 그때 죽을 것을 결정한 겁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니…. 이미 대세는 기울었어요. 외골통에 들어가서 피할래야 피할 길이 없어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죽음길을 택한 겁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뜻을 세워 놓고 나가니 영적으로 부활한 겁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믿는 게 아닙니다. 부활의 도리를 믿는 겁니다. 이 전세계 기독교 보자! 통일교한테…. 어디 누가 밀려 나가나. 하늘이 살아 있다는 겁니다. 전통? 자기들이 알고 있는 전통은 나도 알아요. 자기들이 믿고 있는 대로는 나도 믿을 줄 알아요, 그까짓 거. 그건 10년 동안 잠자다가도 '아! 믿음으로 구원!' 그런 건 다 믿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믿기 어렵습니다.
이런 말 한다고 여기 처음 오신 분들은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믿어지지 않거들랑…. 이제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발전합니다. 당당코 자신 있게, 통일교회는 '그럴 것이다' 가 아닙니다. '그렇다' 이겁니다. 이게 믿어지지 않거든 목을 매달고 한번 기도해 보라구요.
오늘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 내 생명을 내놓고 담판을 걸고 실험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본래 과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논리와 원칙과 공식 법도에 적용이 안 되면 믿지를 않는 사람이예요, 본래부터. 하나님도 논리적인 기준에 있어서 비판해 가지고 실증적인 생활권 내에서 나와 생활무대에서 직접적인 관계가 되는 하나님이 아니면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계를 구하느냐 이겁니다. 이렇게 따지고 나온 사람이예요. 그러니 얼마나 실험을 많이 해봤겠어요?
목사님들? 참 훌륭하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저 무슨 교단을 만들어 놓고 아주 좋은 뭐, 뭐라고 할까, '이놈들아! 여봐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옷을 벗고 나가면 노동판의 노동자예요. 네거리에 나가면 구루마꾼이예요. 짐지는 데 가면 짐꾼이예요. 나는 이 땅 위에 와서, 실전무대에서 단련을 받고 거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시시하게 공상 망상 관념적인 신앙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 통일교회 패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래서 여러분들을 볼 때 분한 마음이 든다는 거예요. 나는 죽지 않아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죽었지요? 예? 「예」 맥아더 죽은 다음에 누구 맥아더 무덤을 파 가지고 '내가 당신의 원수를 갚아 주겠다' 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쓰러지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내가 오늘 전라도에 와서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사실 나 기성교회 얘기는 안 하려고 합니다. '저 사람 복수심이 강해 가지고 불필요한…' 그런 말 듣기 싫어요. 말을 하다 보니 이렇게 얘기가 나왔으니 용서하시라요. 여기 나이 많은 분네들은 교회에 관계돼 있으면 용서하시고 들으세요. 통일교회에서는 그저 이렇게 가르쳐 주는 거라고 이해하시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렇지만 귀넘어 듣지는 말아요.
보라구요, 여러분 이제 누가복음 12장 49절에 예수님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셨다구요. 이것을 기성교회에서는 십자가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하늘의 일등 신부가 될 거예요, 일등 신부가. 성경 66권에 있는 공식을 내가 알고 보니, 기도로 뒤넘이치고 전부 다 알고 보니….
예수는 불쌍한 사람이예요. 여러분,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아! 신랑 되신 주님이 구름 타고 저나라에서 언제 신부를 모시러 오겠노?' 이러고 있습니다. 얼마나 못났으면 신부를 모시러 오겠노? 신랑이 잘났으면 신부들이 달려들어야지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진짜 신부가 됐어요?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세에 추앙을 받을 수 있는 분이요, 선을 대신하여서 제물 된 분이요, 만민의 생명의 이념을 도맡으신 분이요, 모든 남자 중의 대왕 남자요, 하늘의 황태자이십니다. 하늘의 황태자라는 말 처음 듣는 말이지요? 하늘의 황태자예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어 놓고 인간세계를 창조하여 비로소 '독생자 너는 내 황태자다'라고 하며 면류관을 씌울 자라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창조의 유업과 억조창생 앞에서 만국을 통치할 수 있는 군왕의 면류관을 상속해 주겠다'고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황태자예요.
그래, 예수님이 하나님의 황태자가 됐어요. 하나님의 황태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이스라엘 민족 앞에 수백 년 전부터 예언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의 교법사들이 여관집 하나 마련했어요? 버선 한 켤레 만들어 놨어요? 옷 한 벌 만들어 놨어요? (녹음상태 불량―잡음 발생―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오시는 메시아가 기필코 베들레헴에 탄생할 것을 예언하고 갔기 때문에 베들레헴 도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밤에 파수꾼을 시켜 지키면서 이 도성에 어떠한 이상한 일이 있으면…. (녹음상태 불량―약 30분간 잡음 발생―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꽝!' 쳐 놓고는 그 자리에서 한 발로 '훅!' 차 버리거든요. 이러면 '억!' (웃음) 연습을 많이 해야 된다구요. 그럴 때는 연습하기 전에 기도를 합니다.
장로님들 목사님들이 기도하면 얼마나 참, 신비하고 거룩해 보여요. 나도 좀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뭐…. 그건 내 구미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하지를 않아요. 기도할 때는 무슨 기도를 하느냐 하면 에누리 기도를 하는 거예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한다구요. (창하시듯이 말씀하심. 웃음) 무당 푸념도 하고, 별의별 노래도 하는 거예요. 아리랑도 부르고…. 그렇다고 하나님이 '예이 이 녀석아! 이거 뭐 기도하는 자세가…'라고 그러지 않아요. 뒹굴면서 아이고! 그게 어린애예요. 어린애 기도예요. '엄마!' 똥을 쥐고 '엄마! 나 똥' (웃음) 어린애들은 그렇게 해도 통하거든. 똥을 싸서 '나 똥' 할 때 그게 귀여운 겁니다. '히히히히' (흉내내심. 웃음) 그러면서 그 말을 듣고 부모는 좋아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뭐…. 진짜 아버지가 못 됐기 때문에….
여러분,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선생님을 상당히 어려워하는데, 우리 애기들은 '아빠!' 하고 그다음에는 머리를 이렇게 감아 타고 말 타자고 그래요. 그러면 나는 말이 되어서…. (행동으로 해 보이심) 잘합니다, 그거. (웃음) 그렇다고 '야! 너는 뭇사람들이 바라보는 스승을 이렇게 했으니 너는 천법 몇 조에 걸렸다' 그래요? (웃음) 그게 좋다는 거예요. 애들 데리고 놀 때는 아주, 뭐 동네 사람들이 왔다가 구경하고 '야, 우리 남편도 저랬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 한번 저럴까? 야―!' 하며 그저 동네 아주머니라는 아주머니는 전부 다 부러워하리만큼 기뻐하라 이겁니다.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진짜로 놀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게 죄예요? 죄가 아니라는 거예요.
기도할 때도 그래요, 기도할 때도. 선생님은 그런 기도 많이 했어요. 은혜되는 그저…. 자기에게 슬픈 사정이 있을 때는 슬픈 기도보다도 슬픈 노래로 기도한다구요. 청산유수로 내리 엮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또 기도하다가 쓰―윽 눈을 뜨고 감상하는 거예요. '흘러가는 물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나는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가야 할 곡절이 많더라도 나는 더 가겠습니다' 합니다. 그게 다 기도예요, 기도. 기도가 뭐 딱 엎드려서 하는 것만 기도예요? 그렇다고 또 '통일교회 우리 선생님이 얘기했는데…' 하면서 많은 청중 앞에서 그러면 큰일나요. 그건 혼자하는 겁니다. 여러분 혼자일 때는 발가벗고 이불을 쓰고라도 기도를 하란 말이예요.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뭐 기성교회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 다 벌거벗고 춤춘다'고 하는데 진짜로 하나님의 은사에 취해 가지고 이불 쓰고 혼자 벌거벗고 춤추더라도 괜찮아요. (웃음) 그렇게 못 됐으니 걱정이지 뭐. 벌거벗고 마루바닥이 부서지도록 혼자서 하나님 앞에 '아!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합니다. 이 죽을 죄인이 아버지, 구원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면서 음악가면 좋은 음악을 틀어 놓고 춤춘다고 하나님이 벌 주겠어요? 본래 에덴동산에서는 옷을 입지 않고 살았는데 하나님이 그 비밀을 다 모르나요, 뭐.
자, 그러면 조금 더 하자니까 조금 더 하겠어요.「예」 어디까지 얘기했나? 나 이거 다른 얘기하다 보니까 다 잊어버렸네. 자, 신부님네들! 신부님네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신부라는 말을 좀처럼 안 가르쳐 줍니다. 신부가 되려면 힘든 거예요. 신부가 되려면…. 내가 아까 무슨 제목이라 했어요? 하늘의 한, 천지의 한이 많다는 얘기를 했는데, 한이 많다는 겁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서 날 때, 말 구유에서 나고 입은 것은 강보예요. 강보가 뭐예요? 보자기지요, 보자기. 보자기를 입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더냐? 아니예요. 만민이 높이 추앙하고, 만민이 다 머리를 숙이는 그런 보료 위에서, 곡식을 쌓아 놓은 그런 자리에서 탄생했어도 부족할 거예요. 하나님의 황태자! 역사 이래에 처음 나온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참다운 인간의 모체입니다.
그러면 그 한 분의 메시아는 어떠한 존재냐? 잃어버렸던 개인을 완전히 찾을 수 있는 중심존재요, 종족과 민족과 세계와 하늘땅을 완전히 찾을 수 있는 중심존재인데, 그런 분이 태어나는 첫날부터 말 구유에서 지내게 됐다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봐요. 그게…. '어허 저 사람은 모르니까 그렇지,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지'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예요.
요셉가정에서 자라게 될 때도 예수의 동생 야고보랑 다 있었어요. 여러 동생과 같이 자라게 될 때…. 마리아와 요셉이 정혼한 그런 사이에서 잉태된 예수였기 때문에…. 요셉은 하늘의 천사가 꿈 가운데에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라고 해서 그저 데려왔지만 예수를 낳고 보니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단 말이예요. 요셉에게 하늘의 충신과 같이 하나님이 '이가 메시아니 네가 모셔라. 이는 만국에 혹은 만세에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한 번쯤 가르쳐 줬어요?
예수는 태어난 그날부터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으로 자랐어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들과 같이 자라게 될 때 예수는 명절이 되어도 꼬까옷을 못 입었다는 겁니다. 그건 성경에 없지요? '엄마 아빠! 명절이 오는데 나 옷 해줘' 하는 말을 못 했다는 겁니다. 눈치보는 생활을 했어요. 뭘 먹고 싶어도 선뜻 달라고 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는 거예요. 불쌍한 예수예요.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살에 예수살렘 성전에 올라가 가지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 다 잊어버리고…. 갈 곳이, 자기 마음 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살렘 성전에 앉아 가지고 그 놀음 했다는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그 가정이 예수살렘 성전을 대신해 그야말로 예수의 소원성사,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성전, 혹은 지성소의 밑바탕이 되어 가지고 협조하여야 했습니다. 그 이단 요소가 풍부한, 하늘 반역자의 요소가 풍부한 제사장이 이해할 것이냐? 그러니 어머니와 자기 동생들이, 그 가정에서부터 하늘 보좌를 품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 드려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정이 그런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니 철들은 그때부터 예수는 서러운 생활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삼십 평생 뭘했어요? 목수 조수였습니다, 목수 조수. 더벅머리 총각이 돼 가지고 까뀌를 들고 대패질을 하고 톱을 켤 때 죄악세계에 대한 그 마음은 비장했다는 거예요. 말하지 않는 예수, 밤이면 혼자 고요히 나가 가지고 깊은 명상을 하면서 눈물을 지었던 예수였습니다. 성경에 그런 거 있어요? 그러면 문선생은 어떻게 아느냐? 나는 만나 봤기 때문에 아는 거예요. 이렇게 30여 년 동안 억울하고 처량한 생활노정을 지내다가…. 자기의 소신과 자기의 뜻을 펼 수 있는 가정이 못 됐습니다. 동생마저 비웃었습니다.
초막절날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형님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건 꿍꿍이질을 했거든요, 꿍꿍이질을. 이래 가지고 남이 이상한 말을…. 남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알았던 거지요. 그래서 '형님이 나타나기를 바라는데 왜 여기 있어요?' 하는 겁니다. 그런 동생이 있었다구요. 자기의 혈족도 예수의 사정을 몰라주는 이 판국에 예수의 사정을 알아줄 자가 누구냐? 요셉에게 '아빠, 아빠! 내 소원 들어주소' 하면서 눈물로 사정할 수 없는 것이고, '엄마 내 사정 들어주소' 하고 사정할 수 없는 그런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그러니 30여 생애의 노정은 지루했다는 거예요. 남이 모르는 가운데, 아버지의 목수 일을 하는 가운데 눈물도 많이 흘렸다는 겁니다. 불쌍한 예수였어요.
뜻을 품고 나서기 전에 감람산, 혹은 예루살렘 뒷산에 올라가 가지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황혼이 들게 되면 홀로 깊은 심정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몰래 산에 올라가 가지고 기도하고, 통곡하고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는 겁니다. 이거 성경에는 없어요. 할 수 없이 이런 환경에서, 자기의 몸둘 바와 자기의 소원의 일점을 자기 가정에 세울 수 없고 자기 친척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 친척들이 전부 다 바알세불 들려서, 철이 들지 않아서….
나서는 날부터 '내가 메시아다!' 하고 나선 거예요. 얼마나 근사해요. 그런데 소학교를 나왔어요? 국민학교를 나왔어요? 교법사들은 법률 공부를 하고 그 나라의 모든 주권 밑에서 구약을 닦고 전부 다 갖추었는데, 일자무식한 이 촌뜨기가 나와 가지고…. 옷이나 잘 입었나? 한낱 주먹을 내두르며 '오리라던 메시아가 나다. 믿어라' 하니 믿겠어요? 여기 장로들? 믿겠느냐 말이예요. 오늘날 역사적으로 높이 된 예수는 믿을 수 있으되 시대적으로 비참했던 예수는 못 믿는 겁니다. 그건 뭐 틀림없이 십자가에 몰려서….
보라구요. 모세의 5경을 중심삼고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해오면서 메시아를 보냈는데 그 메시아가 그렇게 시시하니…. 이웃 동네에서도 '저 모친은, 저 동생들은 누구누구 아니냐?'고 성경에 나오지요? 마태복음 십 몇 장인가? 왜 그랬겠어요, 왜? 요즘에는 뭐 '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여! 만왕의 왕이신 오! 내 주님!' 합니다. 지금은 그 '주님'이라는 말을 하기를 좋아하지만 예수가 살았을 때 그렇게 주님이라고 불렀다면 틀림없이 천국 갔을 겁니다. 그런 생각 갖고 들어왔어요? 이건 기성교회에 가서는 못 듣는 설교예요. 불쌍한 예수였습니다.
30여 생애를 거쳐가는 예수의 심정을, 그 애달픈 마음을 누가 알았어요? 단지 하늘 아버지밖에 몰랐다는 겁니다, 하늘 아버지밖에. 그렇기 때문에 흘러가는 물결이 친구였고, 밤에 반짝이는 별이 친구였다는 거예요. 깊은 가슴속에 잠겨 있는 한숨과 더불어 하소연과 더불어 자연을 친구 삼아 가지고 '네가 내 부모보다 낫고 내 형제보다 낫고 4천 년 역사를 통하여 세워 놓은 이스라엘 민족보다 낫다'고 한 겁니다. 혹은 감람산 꼭대기에 올라가 가지고 말없는 가운데서 설교도 많이 했다는 거예요. 그는 애달픈 심정을 품고 그 자라나는 숲을 바라보고 기도도 많이 하고 설교도 많이 했습니다. '네가 만일 이스라엘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불쌍한 예수예요, 불쌍한 예수.
그러다가 삼년 공생애노정이라 해 가지고 제1차적인 가정에 있어서 환영을 못 받은 예수는 할 수 없이 집을 나간 겁니다, 할 수 없이. 여러분들이 공생애라는 말을 하지요. 공생애가 있기 위한 비참한 세계가 있었다는 걸 모릅니다.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나가는 곳곳마다 바알신이 들렸다고 하는 바람에 얼마나 쫓겨다녔어요? 예수가 환영받고 다녔어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라고 했습니다. 집이 없어 머리 둘 곳이 없고, 성전이 없어 머리 둘 곳이 없어요? 마음이 안식할 수 있는 곳, 내 이념이 안식할 수 있는 곳, 내 뜻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이….
젊은 서기관 청년이 찾아와 가지고 '선생님이여! 어디든지 나는 따르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벌써 세상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눈이 벌써 틀리다 이겁니다. 얼마나 처량했겠느냐 말입니다. 제자들이 뭐하고 다녔어요? 5천 명에게 떡이나 먹여 주면 좋다고 따라다니는…. 제자들 꼬락서니들을 가만 보니 예수님을 전부 다 세상적으로 바라보는데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판국이 틀려졌다 이거예요. 이렇게 몰리고 몰렸어요. 나라에서 몰리고, 교회의 제사장과 교법사한테 몰리고, 교회 성전에서 몰리고, 민족에게서 몰리고, 가정에서 몰리고,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한테 몰리고, 제자들한테 배척받았으니 죽을 것밖에 더 있어요? 죽을 것밖에 더 있느냐 말이예요. 가룟 유다, 이 녀석 예수를 팔아먹지 않았느냐 말이지요. 그러니 죽을 것밖에 없는 거예요.
나라를 바라봤던 예수는 나라를 잃어버렸고, 교회를 바라봤던 예수는 교회를 잃어버렸고, 자기의 직계 종족, 아담가정으로부터 직계로 세웠던 종족적인 기반을 잃어버렸고, 자기가 천신만고하여 3년노정을 통해서 먹을 것도 먹지 못하면서 길러 놓은 제자들까지 다 잃어버렸으니 죽을 수밖에, 죽을 수밖에. 처량한 예수예요.
어찌하여 만민의 구세주요, 만왕의 왕으로 왔던 메시아가 이러한 처지의 환경과 십자가가 웬 말이냐 이겁니다. 이걸 볼 때 역사적인 비통은…. 하늘이, 천지가 어두워졌다는 것은 하늘의 능력으로 그랬던 것이 아니예요. 하늘이 가슴이 막혀 버렸다는 겁니다, 가슴이. 하나님이 얼굴을 돌이켰다고 했지요? 최후의 고비가 이렇게 될 때 얼마나 한탄했겠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한이 맺힌 예수의 길이요, 예수가 한을 품고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을 풀지 못하고 나오는 기독교이기 때문에 예수를 죽인 죄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를 거쳐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 죽인 죄 때문에 2천 년 동안 유리고객하면서 2차대전 때에는 학살을 당하고 깨져 나간 것입니다. 그게 다 예수 죽인 죄 때문이예요. 옛날에 이스라엘이 애급에 가서 400년 동안 고생하는 걸 하나님이 꺼내 가지고…. (녹음상태 불량―잡음 발생―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사탄이를 심판해 놔야만 하나님의 한이 풀립니다. 사탄이를 무저갱에 가둬 놔야만 한이 풀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가만 보라구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은 무엇이냐? 구원은 물에 빠진 사람을 물에 빠지기 전 사람으로 돌이키는 겁니다. 병난 사람을 병나기 전 사람으로 돌이키는 것이 구원하는 겁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고장이 났기 때문에, 타락이 됐기 때문에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구원의 목적은 뭐냐? 고장나지 않았던 본연의 아담 해와, 죄짓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죄짓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구주로서 예수가 필요 없는 시대로 돌아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구주로서의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구주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하지만 구주 예수라는 명사가 필요한 자리를 넘어서야 신부가 됩니다. 지금은 죄악의 세계에 들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구주 예수 믿지요?
지금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구주 예수를 믿습니다. 성신 믿지요? '성―신―이―여―. 강―림하사' (창하시듯 흉내 내심) 할머니들이 그러는 걸 내가 볼 때 참…. 교역자들이 죄가 많습니다. 죽어 봐요.
예수가 모퉁이에 버려진 돌이라고 그랬지요? 기성교회에서 버린 돌, 통일교회에…. 기도해 보라구요. 내가 예언했어요. 해방한 직후에 '기성교회는 7년이요, 고려신학은 12년이요, 그다음에 그때가 지나가게 되면 목사시대가 지나가고 장로시대로 들어선다. 장로시대가 지나가거든 집사시대로 내려간다. 그다음에는 교회가 텅텅 비고 가정 집회가 불붙을 때가 되거든 주님이 올 날이 가까운 줄 알아라'고 예언했습니다. 벌써 해방 직후에 예언했습니다. 자,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두고 봐요. 다 들어맞았어요.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 말을 잘 믿습니다. 어른들도 잘 믿고 아이들도 잘 믿고 큰 놈도 잘 믿고 작은 놈도 잘 믿는단 말이예요.
오늘날 세계 정세가…. 우리 통일교회가 3년노정에 이르른 요즘에 와서는 우리가 '음―' 하면 세계가 잘 돌아가거든요. 이제는 딱 잡아채면, 와서 부딪치면 하나는 아래로 내려가든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때가 접해 왔어요. 지금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소련과 중공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겁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 상당히 영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싸우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한국에 있으니까 모르지만요.
나장로 박장로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시대는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쫓김받던 우리가 역사를 지배해 나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쫓김받되 잘 쫓김받아라. 산에서 쫓김받고, 들에서 쫓김받고, 나라에서 쫓김받고, 사회에서 쫓김받고, 가정에서 쫓김받고….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함) 역사는 쫓김받던 사람이…. 역사 공부해 보라구요. 역사는 쫓김받는 사람이 지배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의 작전법은 어떤 것이냐? 치고 빼앗아 오는 것이냐, 맞고 빼앗아 오는 것이냐? 하나님의 작전법은 치고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맞고 빼앗아 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제일로 사랑했다는 겁니다. 사랑하지 못해서 한을 품은 하나님이 된 거예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어 가지고는 어떠한 세계를 만들려고 했느냐? 행복의 동산, 사랑의 동산, 평화의 동산, 자유의 동산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세의 해방의 문을 열고 영광 가운데서 만민과 더불어 생활하는 아버지가 되면 가정에 있어서도 아버지요, 김씨 문중에 있어서도 아버지요, 나라에 가서도 아버지요, 세계 어디에 가든지 아버지라 이겁니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으로 살려고 했단 말입니다. 뭐 '존엄한, 거룩한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감정을 갖춘 의미에서의 하나님으로….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관념적으로 믿고 있는 관념적인 하나님 시대는 지나가야 된다 이겁니다. 나도 그거 싫어요. 관념적인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게 뭐예요? 생활적인 하나님, 생활적인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국 가서 믿는 하나님보다도 여기에 있어서 생활적인 하나님입니다. 예수는 말하기를 저 영계에 천국이 있다고 안 했습니다. '천국은 네 마음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네 마음에 있느니라. 마음 천국을 부르짖었습니다. 그 마음 천국을 만들어 가지고 몸 천국을 이룰 것을 몰랐다 이겁니다. 그 무식쟁이 제자들이 말이예요. 몸 천국을 만들어 가지고는 가정천국을 이룰 것을 이 무식쟁이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가정천국을 만들어 가지고는 종족천국, 종족천국 만들어 가지고는 민족, 국가, 세계천국을 이루는 것이 예수의 소망인데도 불구하고…. 맨 첫 출발은 마음 천국을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에 갖고 왔던 소망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도 이루지 못했어요. 그러나 옛날 이스라엘적인 세계, 로마적인 미국을 중심삼고 이것을 다시 만들기 위해 때리고 원수를 갚고 세계적으로 하나 만들기 위해…. 그거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역사는 돌고 돌아가면서 범위가 넓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던 천국은 인간의 타락으로 깨졌습니다. 하나님이 꿈꾸었던 창조이상의 세계가 전부 다 깨짐으로 말미암아 지상의 천국과 천상세계도 다 깨졌습니다. 이건 누가 깨뜨렸느냐? 누가 깨뜨렸어요, 누가? 누가 깨뜨렸어요? 누가 깨뜨렸나? 대답해 보라구요. 누가 깨뜨렸어요? 「인간이요」 인간보다도 사탄 마귀! 장본인은 사탄 마귀예요. 사탄 마귀가 깨뜨렸다 이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원수요, 인류의 대원수요,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의 대원수!
하나님이 지금까지 분한 것이 무엇이고, 한이 무엇이겠느냐? 6천 년의 대원수를 꺾지 못한 게 한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복수했어요? 복수했다가 사탄이 참소하면 꼼짝못하게 돼 있거든요. 복수 못 한 것이 한이요, 사탄과 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탄의 종이 되어 천륜의 뜻을, 개인을 찾아오던 그 길을 망쳐 놓고, 가정을 세우려고 하던 그 길을 망쳐 놓고, 사회,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세우려고 하던 하나님의 섭리를 망쳐 놓은 이 대원수를 중심삼은 악당패들! 악인들을, 이것을 아직까지 처단 못 한 게 한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걸 처단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겁니다.
제1호가 뭐냐? 사탄. 2호는 그의 직속 부하들. 이것이 평면적인 세계로 되어 있으니 갈라놓는 겁니다. 생활로 갈라놓고, 사상으로 갈라놓는 겁니다. 갈라놓는 데는 세계도 둘로 갈라놓고, 교회도 둘로 갈라놓고, 교회 가운데서도 또 둘로 갈라놓고, 둘로 가르고 가르고 또 갈라서 맨 나중에는 한 곳에서 출발하게 합니다. 그 한 곳에서 출발하는 것은 세계로 보면 세계가 한 둥치요, 교회로 보면 교회도 한 둥치요, 교파도 또 한 둥치입니다. 하나는 크고, 좀 작고, 좀 작고, 작고, 작고…. 맨 나중에 남는 것은…. 기독교도 싸워야 되고 불교도 싸워야 되고 유교도 싸워야 됩니다. 다 갈라야 됩니다. 정당도 두 패요, 직장도 두 패, 다 두 패예요. 끝날은 다 두 패예요, 두 패. 큰 놈 작은 놈 할것없이 전부 다, 대가리에서부터 꽁지까지 전부 다 두 갈래라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맨 나중에는 하늘이 제일 사랑하는 누구를 찾아오느냐? 개인입니다. 교회의 교단이 아니예요, 교단이. 교단은 퉤! (침 뱉는 시늉을 하심) 교단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이예요. 제일 하나님편에 있고, 이 세계 시대에 있어서 만국을 구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대신해서 이 세계에 뜻을 이룰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오시는 주님이예요, 오시는 주님. 그분은 한 사람이로되 그분은 뭘하느냐? 가정적인 교회, 종족적인 교회, 민족적인 교회, 국가적인 교회, 세계적인 교회, 세계적인 주의까지 전부 다 삼킬 분이라는 겁니다. 끝날에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두 갈래로 됩니다. 전부 다 두 갈래가 된다구요. 여러분 직장도 두 갈래가 돼요. 그래 가지고 이 세계의 역사적인 발전과 문화적인 발전을…. 더우기나 사상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 철학적인 방향이 전부 다 옛날에는 위로 올라가더니 요즘에는 실존철학이니 하면서 현실을 중심삼고 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전에는 올라가던 것이 되돌아와 가지고 '땅에서 좀 찾아보자' 하니 다 막혔어요. 다 막혀 버렸습니다. 다 갈라졌다는 겁니다.
이렇게 전부 다 갈라놓고 하늘은 제일 사랑하시는 참것,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일치, 사정일치, 심정일치 될 수 있는 그런 기준에 찾아간다는 겁니다. 찾아올 수 있는 그 기준의 아래에 선 사람이 뭐냐 하면 일등 신부입니다. 알겠어요? 주님이 오면 그럴 거 아니예요?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제일….
여러분 천년왕국이 그냥 올 줄 알지만 개인 천년왕국이 오기 전에 국가 천년왕국과 세계 천년왕국은 절대 안 옵니다. 예수는 그 당시에 제자들을 대해서 천국을 말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인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종족 천국을 이룰 수 있고, 나라 천국을 이룰 수 있어요? 욕심들은 떡두꺼비보다 더 많지요? 암만 기도해 보라구요. 개인 천국을 이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예수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 누구냐? 맨 끄트머리, 그 점에서 나오는 사람이 신부예요, 신부.
그는 이 세대에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이 세계의 주의나 사상에 더럽히지 않은 자요, 주의나 사상이 삼킬 수 없는 자요, 그의 절개와 정조, 그가 신부로서 단장하고 갖춘 장비를 이 세상이 더럽힐 수 없고, 교회의 풍습과 예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어떠한 주의자나 목사 장로를 절대 신봉하지 아니하여 어느 가정도 그를 지배 못 하고, 하나님과 주님만이 홀로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곳은 교회가 아니예요. 어느 바위굴이 될는지도 몰라요. 그걸 알 수 있어요? 무슨 뭐 구름 타고 오면…. 여러분, 암만 기다려 보라구요. 구름 타고 오면 내가 벼락을 맞아 죽을 거예요. 구름? 그게 사교예요.
20세기의 문명세계를 만들어 놓은 건 누가 만들어 놨어요? 하나님이 만들어 놨지 인간이 만들어 놨어요? 누가 만들어 놨어요, 이거? 오늘날 세계의 문화를 누가 발전시켜 놨느냐? 인간이 발전시켜 놨어요? 하나님이 지혜를 주었기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건 전부 다 불사르기 위해서? 원자탄 시대에 왔으니…. 자, 보라구요. 안 깨져요, 안 깨져? 어느 하나 깨져도 전부 다 멸망 안 해요? 한 귀퉁이 남아서 거기 있는 사람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부활해서 모일 것 같애요? 거기는 나쁜 놈까지 다 마찬가지로 산다구요.
사교가 뭐냐? 진리라는 것은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수완이 없어서 지금까지 불벼락을 못 내렸어요? 6천년 전에 다 해 버리지 뭐. 그래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겁니다. 세상이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보라구요. 세계를 둘로 갈라놓을 때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어요. 교회를 둘로 갈라놓을 때 고통이 얼마나 컸으며, 수많은 종교를 갈라놓을 때 고통이 얼마나 컸겠어요? 가족이니 종족이니 모든 것을 두 갈래로 갈라놓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느냐? 6천 년이예요, 6천 년. 6천 년 걸린 열매로 끝날에 맺혀진 것이 오늘날 이 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가든지 두 갈래예요. 진짜가 지금 밟히고 있습니다. 가짜가 지배해요. 거 이상하지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전법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실증은 쫓김받는 무리가 지배한다는 겁니다. 그게 이치에 맞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아벨은 그 시대에 있어서 가인 앞에 쫓김을 받았습니다. 맞아 죽었어요. 하나님은 노아를 세워 가지고 '120년 동안 저 아라랏산에 배를 지으라. 120년 후에 심판할 때 만민은 죽지만 너희 식구만 산다'고 예언했습니다. 거기에 순종한 노아 할아버지는 미욱하고 바보 천치예요. 아, 허공중에서 들려오는 말씀을 떡 믿어 가지고는, 120년 후에 심판한다고 해 가지고 아라랏산에다…. 바다에나 평지에 지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거 미친놈 아니예요, 미친놈. 아, 매일 까뀌를 둘러메고 올라가 가지고 나무를 찍어서 배를 지으려고 야단떠니 그 동네에서는 미친놈이라고 얼마나…. 그 고을에서 120년 동안 소문났으니까 그거 얼마나…. '아, 하나님이 심판하는데 그 준비를 하는 것은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겠어요? 자기 민족은 물론이요, 그 사회는 물론이요, 자기의 친척은 물론이요, 나중에는 아내와 아이들한테까지도 들이 맞는 겁니다. 그런 불쌍한 노아가 됐던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 여편네로부터도 조롱받았고 세 아들 며느리한테도…. 찬밥도 잘 안 줬다구요. 생각해 보라구요. 이건 미친 짓이 아니예요? 120년 동안 심판이라고 해서…. '심판하면 그때 가 가지고 배 하나 만들면 될 거 아니요. 심판할 때 뭐 태풍 불고 하늘땅이 뒤집어져요?' 했어요. 불쌍한 노아였습니다, 불쌍한 노아.
아브라함도 보라구요. '야! 너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옥이야 금이야 정성을 다해 가지고 데라의 집에서 아주, 행복을 노래하며 재미있게 살고 있었는데, 아 이건 난데없이 하나님 명령이라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 이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짐을 짊어지고 사라를 데리고 떠났는데, 그때 얼마나 처량했겠어요? 가는 곳은 어디예요? 이방이예요, 이방. 국경을 넘고 생명의 모험을 무릅쓰고 하늘이 분부한 곳, 마음의 신세계로 들어간 겁니다. 또 야곱이를 보라구요. 좋다고 해서 에서의 축복을 빼앗아 온 그 다음날부터 도망다니는 겁니다. 대이동이 벌어지는 거예요. 또 모세를 보라구요. 하늘이 모세를 세운 이후 바로의 궁전에서 나온 그다음부터는 전부 다 싸움뿐이요, 대이동이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의 이동이 벌어진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역사를 할 적마다 전부 다 그 환경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쫓김받는 무리를 놓고 역사했습니다. 그 무리는 들이 맞는 겁니다. 자기 동족으로부터의 위험과 혹은 이방인으로부터의 위험과 자연으로부터의 위험과 환경으로부터의 위험 가운데서 하늘을 중심삼고 쫓겨다녔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 새끼들이 못 따라오게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비밀의 보물을 주려고 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주려고 하는데 사탄이가 따라오는 데서 주게 되면 사탄이가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사탄이가 얼마나 민감하게. 사탄들은 아무리 결심을 하고 아무리 맹세하더라도 따라오지 못하게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불길의 맨 꼬부랑길…. 성경 역사를 보지요? 맨 끝에 가서야 사탄도 '아이고! 난 못 가겠다' 할 때에 하늘은 일을 성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배척받아야 됩니다. 배척받아야 돼요. 배척받는데 교회 사람들한테 배척받는 게 아니예요. 누구한테? 로마 사람한테 배척받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단결해 가지고 로마 나라한테 배척받아야 됩니다, 로마 나라한테. 이래 가지고 옥에 갇히고 죽더라도 이스라엘 나라 때문에 죽어야 돼요. 그런데 이건 쩨쩨하게 도망다니다가 할 수 없으니….만일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해서 로마 병정한테 죽게 되면은 예수의 뜻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이스라엘 녀석들한테 죽었거든요. 로마하고 싸우다가 죽었다면 예수는 역사적인 조상이 되는 겁니다 역사적인 조상. 이스라엘의 조상.
세계를 움직일 수 있었던, 그때에 있어서 지중해를 중심삼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놓은 로마문화권을 중심삼고 대결해서…. 400년 후에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40년 안에 하늘이 해결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해결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족한테 쫓겨갔어요, 민족한테. 이게 설움이예요. 이렇게 민족한테 쫓기니 어디에 찾아오느냐? 찾아올 데가 있어요? 예수는 세계의 방랑자가 되었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어느 나라가 이스라엘의 전통을 상속할 것이냐? 마태복음 21장에 그런 비유가 있지요? 포도원 주인이 있는데 때가 가까와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에게 보내니 심히 때리고 잡아죽이고, 다 죽이고 죽이고 하기 때문에 후에는 자기 아들을 보냈는데 또 잡아죽이니, 상속받을 자를 잡아죽이니, 포도원 주인이 올 때면 이 농부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되면 문제가 있지요? 그놈들을 잡아 징계하라 했지요? 그리고 나중에는 그 농토를 빼앗아서 충성하는 사람한테 넘겨 주고, 나중에 가서는 열매맺는 나라한테 옮겨 준다 하는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 헤매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 미국이 아니예요, 미국이. 지금 믿는 자들은 '어, 유대의 예루살렘 성전!'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은 전부 다 7세기에 회회교한테 짓밟힌 겁니다. 700년 못 간단 말이지요. 예수를 잡아죽인 그 성전이…. 하늘이 다 벌 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은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 다닌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야곱과 같은 세계적인 신앙, 기독 신앙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승리자가 나와야 됩니다. 야곱가정과 같은 세계적인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야곱민족과 같은 세계적인 이스라엘 민족이, 제2의 이스라엘 민족이 나와야 됩니다. 또 야곱과 같은 세계적인 제2의 이스라엘 국가가 나와야 됩니다. 그 국가는 큰 나라가 아닙니다. 큰 나라를 세워 놓으면 복귀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니 조그만 나라예요, 조그만 나라. 박의장(박정희)이 51년도인가, 61년도인가 케네디 대통령을 떡 가서 만날 때 뭐 너나 나나 같이…. 나라가 문제예요, 나라가.
하나님은 아직까지 이름을 가진, 나라의 발판을 하나도 못 가져 봤어요. (행동으로 해 보이심) 본래는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었으되, 그 성전이 하나님이 직접 지배할 수 있는 성전이 못 됐다는 겁니다. 민족이 잘못하면 언제나 사탄이가 뚫고 나갈 수 있는 성전입니다. 불쌍한 하나님이예요. 여러분 집안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방 한 칸 있어요? 이불 뙈기 하나 있어요? 이 세계 어디에 있을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는 그걸 알고, 그걸 준비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아올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뇨? 하나님이 나라를 찾아 나오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뇨? 아담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전에 완성되었더라면, 키가 다 자라 성남 성녀가 되었더라면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남자 여자를 지었지요? 남자 여자를 뭘하려고 지었어요? 이걸 부부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면류관을 쓰고 '이 천지의 대운세를 대신하여 모든 핵을 집중시켜서 인간을 지었기 때문에 이는 내 사랑 중의 사랑이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니 너를 가지면 천지를 갖고 너에게 명령하면 천운에 명령하느니라' 하고, 너와 나와 인연맺으면 억조만세에 끊을 자가 없다는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 입회하에 아담 해와를 성혼, 결혼식을 시켜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거 없지요?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예요. 타락 안 했으면 그랬을 거 아니예요. 그러면 아담 해와가 자기 마음대로 결혼생활을 했겠어요?
하나님의 소원은 아담 해와를 축복해 줘서 아들딸을 낳아 소망의 손자를 봐 가지고 소망의 가정을 이루려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계획하던 가정적인 기반이 다 깨져 버렸습니다. 여기에 누가 침범했느냐? 사탄이가 혈통을 타고, 핏줄을 타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역사가 힘든 겁니다. 구원 역사가 힘든 거예요. 사랑은 일체가 되는 것이 원칙인데, 이것이 제일 골수요 하나님의 무기인데, 이것을 사탄이가 옆길로 가 가지고 옆구리를 찔렀다는 겁니다. 그래서 핏줄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사탄이를 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사탄이를 벌써 추방해 버렸지요. 이놈을 추방하려면 사람과 일체됐으니까 사람도 따라서 추방됩니다. 인간세계를 멸망시키기 전에는 사탄을 추방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귀해 나오느냐?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원수의 피살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건 원수의 자식이라도 되어야 할 텐데 자식도 못 되어 있어요. 만일에 사탄이가 인간을 자기 아들딸같이 사랑해 주면 사람은 본심이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간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사람은 본심을 찾아가는 겁니다. 자연의 모든 이치가 그런 거예요. 해바라기 같은 것도 태양 빛을 따라 전부 다 방향성을 갖추어 움직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데, 만일에 사탄이가 사람을 핏줄로 인연맺고 자식과 같이 사랑하는 날에는 하나님한테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탄이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지만서도 자식으로 대하지 않고 강도 새끼요, 종 중의 종 새끼로 억압하며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의 비법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야 할 아담 해와가 사탄과 혈연적 관계를 맺고 보니 사탄이의 아들딸이 되었는데 사탄이가 아들딸로 사랑만 하게 되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가 강제로 억압하여 종 새끼 중의 종으로 취급하는 인류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이렇게 불쌍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 본연의 원칙이 아니예요.
원래 하나님은 우리의 직계 아버지예요. 하나님의 사랑의 핏줄을 통해서 연결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진짜 아버지라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있잖아요? '너희들의 몸이 성전 된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집이니…. 사람이 본래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서 천지의 이치를 다 통할 수 있게 지능이 발달된 사람이 되었더라면 사람은 하나님의 몸뚱입니다, 하나님의 몸뚱이. 이런 말 처음 듣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몸뚱이예요. 하나님이 성전인 이 인간의 마음에 들어와 있으면 인간이 하나님의 몸뚱이 아니예요?
그렇게 해서 아담 해와는 뭘하느냐? 하나님의 직계 혈통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핏줄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건 성경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아버지가 돼요. 아버지라는 것이 혈통적 관계가 없어 가지고 되나요?
그러나 인간은 종 새끼, 이 사탄의 종 새끼도 못 돼 있다는 겁니다. 사탄이가 주인이라 하거든 심부름을 시켜야지 심부름도 못 시킨다는 겁니다. 가정을 탈취한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의 종 새끼도 못 되는…. 사탄 새끼의 종의 종도 못 된 인간들은 본심의 억압을 받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어하며 마음의 탄식권 내에서 신음하며, 자기는 타락을 했지만 본심의 인연은 살아 있기 때문에 신음하는 그런 자리에서 '종의 종 새끼도 못 된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도 되면 얼마나 고마울꼬' 하는 생각도 못 하고 있습니다. 다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은 사탄세계의 종 새끼도 못 되는 인간을 데려다가 하나님 세계의 종의 종으로 만들자 이겁니다. 그게 구약역사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싸우게 한 것도 그겁니다. 노아도 그거예요. 멀리 다른 나라에 끌어다가, 격리된 자리에다가, 누가 간섭하다 지쳐 떨어진 그 자리에 하늘은 사탄세계의 종의 종 새끼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종으로 만든 겁니다.
종의 종이 뭔지 알아요? 종은 주인을 부를 수 있습니다. 종은 '주인님!' 할 수 있고 주인을 대할 수 있으되 종의 종은 주인도 못 부르고 종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을, 사탄세계의 종의 종 새끼도 못 되는 것을 뽑아다가 하늘세계의 종의 종으로 만든 겁니다. 타락한 인간은 원수세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의 종이 돼도 영광이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종의 종을 거쳐 가지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세워 가지고,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승리했다는 이름을…. 천사장이 뭔지 알아요? 하나님의 종입니다. 천사장은 하나님의 종이예요. 종이, 천사장이 사탄이 된 거예요, 루시엘이라는 천사가.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가 비로소…. 이스라엘이 뭐냐 하면 천사와 씨름해서 이겼다는 겁니다. 그건 뭐냐 하면 옛날 우리 인간 시조가 천사 앞에 굴복당했기 때문에 인간은 필히 천사를 이겨야 됩니다. 하늘의 천사를 이기고 이 사탄을 이겨야 됩니다. 하늘의 천사를 이기지 못해 가지고는 사탄을 못 이겨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탄을 이겨야 됩니다. 야곱은 하늘의 천사를 얍복강에서 이기고, 에서를 중심삼고 사탄이 엿보는 데서 에서를 꺾어 놓음으로 말미암아 지상 사탄과 영계 사탄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겼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다는 뜻인데 무엇을 승리했느냐? 천상에 있는 천사장에 승리하고 사탄 마귀에 승리했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 가지고, 천사에 승리했기 때문에 비로소 천사급적 구원역사가 있게 된 것인데, 이것은 종입니다, 종. 그렇기 때문에 야곱시대, 이스라엘 민족시대부터 종의 역사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2천 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예수가 올 때까지 종의 역사로 복귀하는 겁니다.
그러면 선조들은 뭐냐? 종 중의 종이예요. 그래서 그들은 이 땅에서 천대를 받고 간 겁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니 이 사탄세계가 가만둘 수 있어요? 칼로 찌르고 찔러서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에서 천대를 받으며 싸우면서 하늘의 보호를 받아 하나에서 둘을 구하고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해 가지고 가나안 복귀노정을 거쳐 민족 기준을 중심삼고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앞으로 종으로부터 양자로 올라가는 겁니다. 복귀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양자로 만들자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이 땅 위에 옴으로 말미암아…. 종의 이스라엘을 만들어 가지고, 종의 나라와 종의 민족을 만들어 가지고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비로소 그 아들을 믿음으로,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본래 종 새끼에서 예수를 믿는 것을 통해서, 양자의 인연을 통해서 예수가 한 단계 올라가게 되면 믿는 사람은 아들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가 무엇으로 한 단계 올라가느냐? 이 땅 위에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조상이 없기 때문에 조상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의 자리에서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 앞에 있어서 상속권을 대할 수 있는 아들의 명분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을 보라구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되어 있고,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자밖에 못 되는 겁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양자예요. 양자는 핏줄이 달라요, 핏줄이. 그거 이상하지요? 성경에 그랬지요?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들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고 예수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라고 했으니까 핏줄이, 조상이 마귀가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례가 뭐예요? 양부를 찢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선악과가 무슨 선악과예요?
양자 복귀 과정을 거치려니 천신만고 4천 년 역사 동안…. 비로소 직계 아들이 돼 가지고 양자를 뚝 잘라야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 풍속을 전부 다 뚝 잘라 버리는 겁니다. 예수를 자르는 게 아니예요. 접붙이려면 무엇을 자르노? 돌감람나무를 뚝 자르지요? 그렇지요? 「예」 예수를, 예수를 자르는 게 아니예요. 돌감람나무를 모조리 잘라야 됩니다. 세상의 주권, 사상, 풍습, 세상의 모든 교권, 세상의 모든 문화를 전부 다 뚝 잘라 가지고 예수한테 접붙여 가지고…. 예수 가족, 예수 가족이 있어야 돼요. 예수가 장가가야 됩니다. 예수 가족, 예수의 아들딸, 예수를 중심삼은 족속, 예수를 중심삼은 한 중심…. 그래서 예수가 치리하는 나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소리 한다고 이단이라고 그러지요. 이단이라고 해도 좋다는 거예요. 참말 하다가 이단 소리 듣는데 뭐….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두고 보라는 거예요. 남들 보기에는 두루뭉수리로 보이지요. 그렇잖아요?
오늘날 기독교 역사는 영적 구원역사만을 완결지었기 때문에 땅에서 잃어버린 것을 땅에서….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너희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땅이 위주예요. 땅에서 타락했으니 장본인들이 여기에서 사탄이를 잡아 굴복시켜서 장사(葬事)해야 된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 많은 천지의 대운세는 오늘날 인류 역사의 배후를 중심삼아 가지고 돌고 돌고 돌기를 수천 년 동안 돌았지만 아직까지 한을 풀 수 있는 한날을 못 가졌으니 하늘의 한이요, 땅의 한이요, 하나님의 한이요, 인류의 한입니다. 그건 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의 종말적인 최후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들이 앞으로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이 핏줄의 인연을 전부 다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전부 다 끊는 길입니다. 네 가정을 버려라. 네 사회를 버려라. 네 국가를 버려라. 전부 다…. 종교라는 것은 처음부터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왜 부정을 하느냐? 이 몸뚱이를 중심삼고 사탄세계의 핏줄을 옮겼으니 '금식을 해라, 몸뚱이를 쳐라, 혈기를 내지 마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해서 사탄의 핏줄이 동하게 되어 사탄의 씨를 맺기 때문에 뼈다귀만 붙어 가지고 그저 숨만 쉬고…. 그러니 예수님도 금식을 한 겁니다.
그래서 그냥 둬서는 안 되겠으니 그거 접붙이는 놀음을 한 겁니다. 뚝 잘라라 이거예요. 잘라 가지고 예수의 말씀과 더불어…. 말씀을 중심삼아서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재창조 역사를 제시하여 복음의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상천국을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로 만들기 위해 예수가 온 겁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어 영적 구원밖에 못 했으니 반 쪼가리 될 수밖에 더 있느냐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지상의 일은 생각하지 않지요? 지상천국에서 살지 못하면 천상천국에 못 갑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곡절이 많은, 한 많은 역사적인 인연을 몰랐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오늘 내가 여러분들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하늘땅의 한을 풀지 않으면, 인류의 한을 풀지 않으면, 하나님의 한을 풀지 않으면 평화의 세계는 오지 않습니다. 올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손을 들고 '만세! 승리하였도다. 만민아 나와 더불어 기뻐하라' 하며 희색이 만면하여 온 숨소리에 천하만물이 전부 다 휘감겨 들어가 가지고 그 웃음 파동이 넘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지 못했습니다. 왜 맞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이 소원하는 아들딸을 세워서 혈통적인 내 아들딸을 만들기 위한, 내 직계 가정을 만들기 위한, 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축복의 맨 초점인 신랑 신부를 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돌고 돌아 6천년 역사를 까꿀잽이로 들이 때려 가지고, 훑어가지고 쫄쫄 굶겨 춥게 해서 나중에는 여기에서 신랑 신부를 만들어서 이것을 뚝 잘라 버리고 이 문을 통해서 다시 중생해야 됩니다. 중생의 문을 통해 가지고….
기독교가 왜 중생해야 한다고 하나요? 어머니 아버지를 잘못 가졌기 때문에 참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이런 거 저런 거, 중생이 무엇인지 알았느냐 말이예요. 두루뭉수리로 그저 믿으면 천국 간다고…. 책으로 쓰려면 수십권을 쓸 거예요. 두루뭉수리로 믿고 천국? 그런 엉터리들이 어디 있어요.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들은 깃발을 들고 나섰나니….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 온 것은 뭘하려고 왔느냐?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왔고, 하늘땅의 한을 풀기 위해서 왔고, 인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왔고, 여기 서서 외치는 스승의 한을 풀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온 거라구요.
나는 한이 많은 사람이예요. 그 한을 풀기 전에 나는 죽을 수 없습니다. 내가 길거리에서 화형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뼈가 녹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천세만세 가더라도 이 한을 갚은 뒤에 죽겠다는 이런 심정 때문에 지금까지 싸워 나가는 겁니다.
예수의 사정을 누가 알았으며, 예수의 소원을 누가 알았으며, 예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던가? 신부 되겠다는 10억 가까운 기독교인들, 뭐 저 바티칸 궁전에 앉아서 큰소리하고 있는 천주교의 바오로 6세가 알아요? 요전에 예루살렘 갈 때에 주단을 펴고 골고다 길을 찾아갔다고 신문에 났었지요?
골고다 길이 어떤 길이냐? 천지의 간이 녹아지는 하늘의 애절함과 인류의 비통한 운명이 뒤넘이치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런 길을, 구세주는 이 땅에 와서 그런 비참한 길을 갔는데 주단을 깔고 가? 배밀이로 올라가도 가당치 않다는 겁니다. 그거 다 돼먹지 않은 수작들이예요. 그러니까 분이 많은 거예요. 괜히 남 모르는 걸 알아 가지고 분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라구요. 그거 누가 꿈이나 꿨느냐 말이예요. 그저 믿고 천당 가면 되지 그거 뭐…. 하나님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그저 두루뭉수리로 이렇게 하면 될 게 아니예요. 그러나 그래 가지고는 해결이 안 납니다.
무지에서는 완성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무지에는 완성이 없는 거예요. 기독교가 완성하려면 무지하면 안 되는 겁니다. 창세기 2장에 있는 말 중에서 '선악과가 뭡니까?' 하고 물어 보면 열매나 복숭아라는 사람도 있고 뭐…. 할례는 왜 하느냐 할 때 '그저 그렇고 그렇고…' 그런다구요. 그렇다면 손가락을 자르지 뭐 하러…. 야곱의 환도뼈를 왜 쳐요? 치려면 머리를 치면 되지.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제 보라구요. 내가 어떤 때는 '아, 내가 선진국 같은 데서 태어났으면 지금 연령에 있어서는…' 이렇게 한이 될 때가 있어요. 이거 40년 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걸 볼 때 '아버지! 내 꽃다운 청춘과 혈기가 충천해 가지고 천지의 수많은 원수들을 대해 단번에 그 원수들을 물리칠 수 있는 기백이 불타던 꽃다운 청춘시대는 다 갔습니다' 하며 서러울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때에 아버지 앞에, 혈기 충천하여서 승리의 기백을 가지고 하늘 앞에 개가를 부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다 한국 기독교에게 책임이 있어요, 한국 기독교.
기독교가 통일교회하고 합했으면 대한민국은 절대 이렇게 안 돼요. 이 박사가 내 말 들었으면 절대 그렇게 안 됐다구요. 이기붕이, 박마리아 전부 다 벼락맞아 죽었어요. 그렇게 되게 돼 있는 거예요. 목사 둘이서 반대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거든요. 이다음에 한번 만날 때가 있을 거예요, 그 후손이라도. 슬프고 원통한 일이예요. 그래서 이 민족이 엉망진창이 된 거예요.
만신창이가 된 이 민족을 우리들이 수습하려니 피투성이가 되어야 되겠고, 고름을 핥아 내고 이들을 다시 싸매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비참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 일 때문에…. 우리는 맨 밑으로 내려가자 이겁니다. 천국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이 지옥을 무찌르고야 천국건설을 할 수 있으니 지옥 밑창을 뚫을 용기가 없으면 천국 못 갑니다. 지옥을 피해서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지옥 밑창을 뚫어야 됩니다. 예수가 죽은 것도 지옥 밑창을 뚫기 위해서입니다. 사흘 밤낮을 기도했다고 그랬지요? 지옥 밑창을 정복하기 전에는….
그래서 내가 한국의 암흑가의 괴수들을 서울에서부터 잡아냈습니다. 그건 당국에서도 몰라요. '이놈들! 착착! 잘 와 걸리는구나' (책상 치심) 이걸 중심삼고 남한 각지에 있는 설치기패들을 전부 다 잡아 내어 통일교회 입으로 전부 다 녹여내는 겁니다. 종교라는 것은 사회를 순화시켜야 됩니다. 악을 피해 가는 종교? 그런 종교는 필승을 몰라요. '죽은 사람 앞에 가라! 싸움판에 가라. 거기 가서 그 사람들하고 화해를 붙이고, 거기 가서 참된 모습으로 지도해라' 이게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길을 가기 위해서 별의별 놀음을 다 해봤습니다. 바보라고 욕을 안 먹어 봤나, 나를 싫어하는 집에 가서, 한 20개월 이상 가 가지고, 배짱도 좋지, 싫든 좋든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진다면 나야 껍데기 몇 껍데기 벗겨 버리면 어때요. 문 아무개 천번 만번 망신당하고 하나님의 뜻인 가정적인 천국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그것이 행복이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는 거예요.
수십 성상을 지내오면서 여러분들을 바라볼 때 처량할 때가 많아요. 본래 통일교회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데리고 이야기할 선생님이 아니예요. 세상법말고 영적 세계의 법도를 치리할 수 있는 지능 있는 사람이래야…. 그런 사람 선생님에게 데려다 주면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잘 다루거든요. 세계에 널려 있는 영통하는 사람들 전부 다 문선생님 졸병이예요. 유교를 믿다가 영통한 사람이나 도통한 사람이나, 불교를 믿다가 도통한 사람, 기독교를 믿다가 도통한 사람, 전부 다 문선생님 손아귀에 걸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예요. 그런 거 알아요? 「예」 세계에는 준비된 그런 그룹이 무수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책임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 내 몸뚱이는 하나입니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대한민국의 배달의 민족의 피를 받아 가지고 이 땅 위에 나와서, 악당패, 이 대한민국 사람이 제일 악질입니다. 여기에 나와 가지고 '전세계를 뭐 어쩌고 어쩌고, 기독교를 통일하고 뭐 어쩌고' 하고 있어요. 그럴 자신 없이 이 놀음 하겠어요? 가는 곳곳마다 전부 준비하고, 가는 곳곳마다…. 그런 신념이 없어 가지고 하겠어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감옥에 들어가 배가 고플 때는, 옛날에는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와서 뭘 먹을 걸 날라 줬지만, 나는 하늘이 먹을 걸 날라 줬어요. 전도도 안 하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감옥에 있으면 조상들이 전부 다 명령받고 와서 나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거 참 이상한 역사가 많습니다. 또 나를 시험하러 왔다가 간 수많은 도통하는 사람들이 내 손아귀에서 전부 다 보따리를 풀어 놓고 전부 다 꽁무니를 틀고 나가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런 건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사탄이는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참 무서워해요. 미치광이들이, 우리 원리책을 꼭대기에 갖다 놓으면 벌벌벌 떨지요? 그런 거 봤어요? 여러분들 그런 거 봤어요? 그거 왜 그러느냐?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가만 보면 내가 죽으면 이런 비밀을 누가 알겠느냐 하는 것이 걱정이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원리밖에 몰라요, 원리밖에. 영계의 생활적인 이런 미묘한 법도, 그런 거 다 모르거든요. 복귀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구요. 내가 책을 쓴다면 수십 권의 책을 쓸 거예요. 그걸 다 알아 가지고 결론 얻기가 얼마나 힘들겠느냐 말이예요. 말을 더 할래도 더 할 수 없는 이런 벅찬…. 간단히 간단히, 최고의 지장이 없는 단계까지 만들어 놓고 홀가분해지자 이겁니다. 그러니 나만이 아는 그 세계의 내용, 나만이 가야 할 그런 걸 생각하면 세상에 왔다는 것이 참 섭섭한 놀음이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태어난 걸 한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요즘에 통일교회 믿다가 배반하고 떨어진 사람들 많습니다. 그 사람들 통일교회 문선생을 모르지요. 처음 오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는 문선생을 문예수라고 한다지?' 그러지요? 예수 돼서 뭘해요, 예수 돼서? 실패한 예수 돼서 뭘하나요? 우리는 예수보다도 더 잘나야 돼요. 예수 믿어 가지고 뭘하려고 예수 믿는 거예요? 접붙인 가지에서 본 가지보다 더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그 본 가지가 탓하겠느냐 말이예요. 전부 다 예수가 되어야 됩니다. 예수라는 게 됐든 안 됐든 예수의 이름을 붙일 때는 잘 믿었기 때문에, 자기들보다 낫기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을 붙였을 거라. 그렇지 않아요? 됐든 안 됐든 예수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는 그만 못해서 예수라고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위로받는 거예요. 내가 여러분들 보고 '내가 예수다' 그럽니까? 그거 기성교회 교인들이 다 거룩한 이름을 붙여 줬다구요.
자, 이젠 결론을 내립시다. 그러니 하나님은 아들을 대하여야 할 심정으로 종의 종을, 평화의 가정에서 노래할 하나님께서 종의 종을 찾기 위하여 종의 종보다 못한 신세의 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정을 여러분들이 알았느냐? 아들의 입장에서 종을 거느리고 나오며 만국을 통치하고 천사장 사탄까지도 지배하며,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라고 칭송하면서 섬김을 받아야 할 그런 인간들이 타락이라는 원한의 올무에 걸린 그날부터 이 원수의 종의 종도 못 돼 가지고 종의 사슬에 매여 가지고 허덕이는 걸 바라볼 때…. 이들이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을 알았겠느냐 이겁니다. 아들딸을 잃어버린 부모의 허덕이는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허덕이며 종의 신세를 구하기 위해서 종의 종 이상의 걸음을 걸어오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를 보내기 위해서 4천 년 동안 길을 닦아 가지고, 종의 종 이상의 노력을 해서 예수를 보냈지만 이 땅에서 피 흘리고 돌아오는 그 예수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으며, 이 땅 위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가지고 만왕의 왕으로서 만국을 통치하여야 할 그런 메시아의 사명을 갖고 왔던 예수가 아버지 앞에 올라갈 때 얼굴을 들었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불쌍한 하나님이요, 불쌍한 예수입니다.
그러한 예수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서 단 하나 가진 소망이 무엇이냐? 가신 주님이 오신다고 했으니 오신다는 그것을 믿고 사자의 밥이 되고, 혹은 기름 가마에 튀겨지고, 그러면서 그 죽음의 고비를 넘으면서도 우리 주님 언제 오느냐고 눈물과 더불어 소망하던 예수는 오지 않고 2천 년이 흘러왔으니 불쌍한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불쌍하고 예수와 성신이 불쌍한 동시에 도의 길에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졌던 우리 조상들이 불쌍했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이 불쌍한 한을 누가 책임지고 회개하고, 이 불쌍한 한을 누가 책임지고 해원성사해 드리겠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를 책임진 교역자가 있고 교회를 사랑하는 하늘의 아들딸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자기 일신이 복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 많습니다. 자기 교회가 복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 많습니다. 자기 교역자가, 혹은 목자가 실력 없는 사람이래도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눈물지은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예수와 성신의 한을 풀기 위해 눈물지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역사적인 수많은 애혼들이 품고 간 그 한을 풀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죽음을 각오하며 회개하고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준 사람이 누가 있었느냐? 없었다 이겁니다. 전부가 그저 지나간 역사로 알았지 오늘날 시대와 더불어, 현실적인 나와 이 세계와 더불어 뒤넘이쳐 가지고 다시 그 원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땅에도 하늘에도 우리 아버지의 한이 있고 우리 주님의 한이 있고 우리 선조들의 한이 있으니 그 한을 갚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한을 갚을 장본인이 누구냐?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개인을 대한 하늘의 역적이요, 인간세계에 있어서 반역자요, 가정을 대한 역적이요 반역자요, 사회를 대한 반역자요 원수요, 국가를 대한 원수요 반역자요, 세계를 대한 원수요 반역자예요. 이것을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는 참다운 신앙자는 없느냐 이겁니다. 그런 사람이 신부가 되는 겁니다. 자기의 죄도 보따리에 싸 가지고 회개하지 않는 이것들이 하늘의 뜻을 알 게 뭐예요.
그러니 오늘날 이 현세를 대하는 하늘의 한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늘의 소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한이요, 하늘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한이요, 하늘의 심정을 이 땅 위에 토로할 수 없는 것이 한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녹음상태 불량―약 20분간 잡음 발생―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내가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서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는 그 어머니를 보고 '당신이 우는 것에 사로잡힐 수 있는 그런 아들이 아닙니다. 그 쩨쩨한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한 거예요. 예수님이 골고다 향할 때 자기 모친이 우는 걸 보고, 혹은 여인들이 우는 걸 보고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아들딸들을 위해 울라'고 했어요.
나는 세상으로 볼 때 불효자입니다. 왜? 하늘의 일을 하려니까. 내가 지금까지 어머니 아버지에게 손수건 하나 못 해줬어요. 그것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 민족에게 주기 위해…. 없어서 못 줬습니다. 나는 속옷까지 전부 다 나누어 주고 홑이불 뙈기를 쓰고도 살아 봤어요. 거 왜? 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 앞에 다…. 어머니 아버지를 한번 모셔 보지를 못했고 우리 형제들이 전부 다 나 때문에 많이 희생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형제를 내가 사랑해 보지 못했어요. 내 처자를 대해서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왜? 복귀역사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탄이가 참소하는 걸 받아 주는 것은 뭣 때문이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결론 기준을 침범받지 않기 위해서 사탄이의 참소를 받아 나온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선생님도 내 가야 할 노정에 있어서 어떠한 침범의 조건을 후대의 다른 사람들 앞에 남기지 않으려니 부모, 처자, 일가를….
우리 형님은 참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영계의 깊은 사정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형님은 '우리 동생은 세계를 주고도 안 바꾸겠다'고 자랑하던 형님이예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저 절대 복종한 형님입니다. 내가 밤중에 '형님, 백두산까지 집 팔아 가지고 오소' 하면 올 형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형님을 대해서 원리 이야기를 못 했어요. 원통한 거예요. 왜 그러냐? 내 가족이예요. 내가 뜻 앞에 있어서 성공하는 날에는 혜택을 받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 민족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을 찾아온 겁니다. 이 걸음이 무슨 걸음이냐? 쌀 가지러 가려고 룩색(배낭) 짊어지고 연백에, 서울 가까이에 연백 있지요? 백천. 쌀을 한 트럭 사 놨던 거 가져오려고 가던 걸음이 이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니 다 포기한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명령만 있으면 여러분에게 인사는 무슨 인사,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깜쪽같이 변장이라도 해 가지고 도망가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오늘 이 통일이라는 간판을, 통일이라는 길을 남겨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척 들어서면 '아! 통일교회는 초라하고…' 할 거예요. 내가 여기 들어설 때도 가마니 같은 것이 깔린 것을 볼 때 '가마니 너는 말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여기에는 피눈물이 섞여 있습니다. 본부에서도 그래요. 내가 가서 앉아 있는 거기에는 선생님의 피살이 녹아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누구만큼 뭐….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는 누구보다 그 이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예요. 지하운동을 하는 데도 누구보다도 뭐…. 내가 일본에 가서 구경을 안 다닌 사람이예요. 친구들이 와 가지고 쓱 이리 저리 다니는 걸 좋아한단 말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일본에 들어가 가지고, 원수의 나라에 가 가지고 그 나라의 경치 한번 보지 않았다구요. 왜? 내가 내 나라를 돌아보지 못했고, 내가 서울을 떠나 일본에 갈 때 하관(下關)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간 사람이예요. '내가 올 때까지 잘 있거라. 누가 너를 눈물로 지켜 주고, 누가 하늘 앞에 남 모르는 가운데서 눈물과 더불어 기도해 주겠느냐?' 하며 울었습니다. 어렸을 때 그랬어요, 어렸을 때. 내가 돌아올 때는 멀지 않아 이 나라에 해방이 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 그랬다구요.
때가 가면 참은 남아지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 부디 지치지 말고, 죽지 말고 하늘의 한의 일편이라도 자기 몸에 짊어지고 한 고비, 조그만 고비라도, 가정적인 고비라도 넘어가고, 종족적인 고비라도 넘어가고, 민족적인 고비라도 넘어가자는 겁니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국가적인 고비에서 이 세계를 향하여 넘어가야 할 사명적인 책임이 있고, 힘든 이 모진 길을 가야 할 운명에 있으니 한의 일편을 덜어 주기 위하여 가자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부디 죽지 말고 남아지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자, 그러면 그러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소. 내리세요.
더우기나 이번에는, 이번 10월달부터는 본부에서 출발해 가지고 전국 대부흥회를 하는 거 알지요? 「예」 그래서 40여 명을 선출하여서 경기도부터 서서히 내려올 거예요. 지구장을 빼다가 시킬 겁니다. 세상의 행동조직을 보면 조직적인 운영 방침을 세운 그러한 기관에서 중추신경과 같은 그런 사람을 빼다가 앞장세워서 싸우라고 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연대장을 일선에 세우는 법이 있어요? 사단장을 일선에 세우는 법이 있어요? 대대장을 일선에 세우는 법이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데 통일교회에서는 '에이! 이놈들, 앞에 서라' 이겁니다.
이들을 내세우는 것은 여러분 대신입니다. 6개월 기간 동안 여러분을 대신해서 나갈 때 우리 전체는 6개월 기간 동안 신들메를 하고, 허리띠를 띠고, 투구를 쓰고 무장해 가지고 삼천리 반도를 위하여, 삼천만을 위하여 속죄 겸 구속의 책임을 지고 행군하자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지구장들이 없는 동안 여러분들이 기쁠 때가 있거든 웃음을 멈추고 '아, 우리 지구장님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시라구요. 좋은 것을 먹을 때 '아, 우리 지구장님들은, 부흥회를 위하여 나선 우리 형님들은 오늘 저녁에 뭘 먹고 지낼까?' 생각하고, 여러분이 좋은 자리에 누울 때도 그들을 염려하고 정성을 들이며 여러분들도 일치단결하여 그 노정을 같이 간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부락에 들어가면 부락에서 그런 대표의 용사가 되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겠어요, 진짜? 「예」 기도 많이 하고 정성을 다 해서 이번 기간을 잘 맞이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이제부터는 공세를 취해야 되겠습니다. 1차 2차 3차, 무슨 결단을, 죽든 살든 무슨 결단을 보여야 되겠습니다. 지금 한국의 실정을 봐요. 네거리면 네거리에 가 가지고 몽둥이를 들고 '이 자식아! 너 선한 일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그럴 수 있는 선의 깡패단이라도 나와야 된다 이겁니다, 악의 깡패단 말고. 돼먹지 않은 것들을 갈겨서 '이 자식아! 나라가 망하고 앞으로 너희 후손들이 망하는데 뭐야 이 자식들아!' 하며…. 길가에 가는 사람을 붙들고 '네가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고 판결을 짓는 그런 운동이 벌어져야 무슨 가망이라도 있을 판국이라는 겁니다. 가만 놔 두면 다 망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이 나라에 있어서 우리들이 해야 할, 1차 2차 3차 해야 할 책임과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런 거예요. 이 시대적인 환경이 어떻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니만큼 여러분들도 기도하는 가운데서 이 사명적인 책임시대에 있어서 힘을 다하여 협조해 주고 거기에 친히, 그 반열에서 빠지지 않게끔 노력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러기로 다 약속했지요? 「예!」 약속했지요? 「예!」 그렇지요? 「예!」 나 그러면 믿겠어요.
이 전라남도는 뭐 손만 벌리면 다 닿아요. 차 타고 다녀 보면 전라남도는 평야가 있지만, 이만한 사람만 있으면 뭐 이 전라남도에는 무더기로…. 선생님 같은 신념만 가지고 있으면 전라남도 이까짓 것 뭐 몇 달 동안에 완전히….
그러니만큼 우리는 죽지 않았어요. 알겠어요? 「예」 젊은 병사를 뭐라고 그러나요? 무슨 병사라고 그러나? 그런 말이 없으니까 노병이라는 말이 나왔겠지요?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지요? 「예!」 살아 있는 것은 다리가 움직이는 겁니다. 살아 있으면 피가 뛰는 거예요. 살아 있는 것은 발전을 하는 겁니다. 살아 있는 것은 장성을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살아 있는 것은 자기의 적수를 대해서 받아 넘기는 겁니다. 때려눕히는 거예요. 참사랑이 있으면 거짓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참을 위해서 나가려면 참 아닌 것은 넘어갈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자의 모습을 해 가지고 부디 전라남도를 선생님의 신세를 안 지고 여러분들이 책임져 주기를 부탁합니다. 책임지겠어요, 안 지겠어요? 「지겠습니다」 지겠어요? 「예!」 정말? 「예!」 그러자구요, 예? 「예!」 그러면 우리 전라남도를 위해 만세 한번 해볼까? 「예」 한번 해보자구요. 일어서서. '전라남도 통일 용사' 하면 다 들어가요. 뭐 통일교회 만세보다도 '전라남도 통일 용사' 하면 다 들어간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만세 한번 해보자구요. 목을 준비하고. 만세 가운데 세계 제일로 한번 해보자구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만세를 많이 했지만…. 우리 전라도 사람이 지금까지 전라도는 서울 깍쟁이들이 전라도 개똥쇠니 뭐 하와이니 뭐니 합니다. 그런 말을 많이 듣지요? 기분 나쁘다는 말이예요. 이제 한번 까꾸로 들이쳐서…. 알겠어요? 「예」 신나게…. 만세 한번 합시다. 전라남도 통일 용사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어디까지 미칠 것 같애요? 이것이 돌아와서 머리에…. 그거 느꼈어? 그런 거 느껴야 돼.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이제부터…. 내일은 어제보다….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일주일 금식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일주일 금식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왜? 우리가 몸하고 싸우려니 먹지 않고 싸워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훈련과 연단을 거쳐 가지고 최후의 우리의 격전을 향해서 승리의 내 나라를…. 이 민족을 대표해서 세계 만방에 이르러 하늘땅에 두루 비출 때까지 우리는 전진해야 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앉아요. 아, 그냥 서서 기도하자구요. 기도 한번 하고 좀 쉬자구요.
아버님! 오늘 전라남도 식구들을 대해서 한두 시간을 지냈습니다. 이것이 나의 처량한 일이 아니옵고 아버지의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슬픕니다. 내일도 그러하겠고 이 일이 끝날 때까지 그러할 것을, 아버지, 생각하게 될 때 미안하옵니다.
그러나 지도하는 스승이 있을 때는 힘이 충천되오나 스승이 없고 홀로 남게 될 때는….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내가 그러할 때 당신이 나를 지켜 주신 것을 내가 아옵니다. 내가 눈물지을 때에 은연한 가운데서 '내가 있나니, 민족을 넘어 내가 가노니, 세계를 넘어 내가 갈 것이며, 나와 더불어 같이 가고, 나와 더불어 같이 역사하자'는 아버지의 음성이 새롭소이다.
그 아버님을 따라가야 할 그 길이 어찌 눈물의 길이 아니겠으며, 어찌 슬픔의 길이 남아 있지 않겠읍니까? 가고 또 가 개인적인 복귀의 과정 가정·종족·민족·국가의 과정을 거쳐서 남아진 세계적인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갈 때 오늘 통일의 용사, 전남에 널려 있는 이 용사들이 한 명이라도 낙오자가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형제를 위하고, 약한 자를 붙들어 주고, 마음과 마음으로 염려하며 주위를 살피고 앞을 바라보면서 힘차게 달려갈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3년노정에 있어서 마지막 고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돌고비의 길에 있사오니 여기에 머리 숙인 아들딸 앞에 큰소리를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노정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우리의 섭리 역사적인 모든 경륜과 계획이 뜻 앞에 완성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쌍한, 이 길을 택해 나가는 스승의 길을 따르는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옵니다. 몰림의 길을 따라가는 그 길도 몰림길이요, 혹은 불쌍하게 핍박받는 그 길을 따라가는 그 길도 핍박의 길이오니, 아버지, 동행하시옵고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가 아버지라 하는 그 아버지를 이들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땅을 대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이들 앞에 같이하여서 이들의 생활과 뒤넘이치기를, 내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약속하고 맹세한 것을 절대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땅이 움직이더라도 저희들의 마음과 지조는 변치 않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처음 왔던 식구들 있사옵니까? 그들이 마음에 무엇을 지니고 돌아가게 도와주시옵시고, 왔던 걸음을 헛걸음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내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픈 한을 저희들은 잘 아오니, 그 아버지를 위하여 저희들은 효성을 해야 되겠다고, 그 아버지를 위하여 충신 열녀가 되기를 맹세하였사오니, 그 정열과 그 일편단심의 모든 성심을 다 기울여서 하늘을 위하여 일하고 또 일하면서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로 부디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승리가 아버지 것으로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소망하는 저희의 소망이 아버지의 소망이요, 저희의 사정이 아버지의 사정이요, 저희의 심정이 아버지의 심정이옵니다.
귀일된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하여 만세에 찬양하며 아버지의 품에서 길이 만세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아버지, 보호하여 주옵고 이끌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길까지 참고 남아지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주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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