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예요, 여기가? 「광주입니다」 광주. 광주 또 어디예요?「지구본부입니다」 지구본부. 또 그다음에는? 「동명동」 동명동의 어디? 「254번지」 254번지. 여기는 넓게는 광주도 되겠고, 그다음에는 동명동 254번지도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지구본부도 될 것입니다. 그럴 거다 이 말이예요.
그러나 오늘 여러분이 모인 이 자리는 지구본부라 해도 좋고 동명동 몇 가 몇 번지라 해도 좋지만, 여기는 어디냐 하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그렇지요? 「예」 이 자리는 통일교회요, 참석한 여러분들은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의 무엇이예요? 「식구입니다」 통일교회의 뭐예요? 「식구입니다」 대답해요. 통일교회의 뭐예요? 「식구입니다」 거꾸로 하면 구식이네요? (웃음) 구식이 아니고 식구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나 자신은 틀림없이 통일교회 식구입니다'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내리라구요.
여기에 오신 분 가운데에는 이번에 선생님이 온다니까 새로 오신 분이 많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사들이, 혹은 전도대원들이 `본부에 계시는 우리 선생님이 이번에 오시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온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온다니까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알아보자고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래저래 관계된 인연으로 인해 온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여하튼, 사정과 인연이 어떻든간에 일단 여기 들어왔으니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을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입장에 세워 놓고 얘기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에게 대답하기를 `우리는 통일교회 교인이다. 나는 통일교회 식구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통일교회라는 교회가 생겨날 때까지, 또 식구가 생겨날 때까지의 그 기간은 짧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처음으로 선생님을 면접하는 이런 입장에 있지만 그 역사를 더듬으면 한참만이 아니예요. 그것은 길고 길다 그 말이에요. 통일교회가 어떠한 동기로부터 연륜을 밟아 가지고 오늘의 이러한 상태로써 이러한 상황에 이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기나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나긴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 여기에 와 앉아 있는 여러분 자신에게 각 개개인의 역사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식구로서의 역사가 있는 것이라구요. 통일교회 식구들의 그 긴 역사가, 곡절의 역사가 많으리라고 본다 이거예요.
여기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슬펐던 사정, 기뻤던 사정, 얘기하고 싶은 여러 가지 사정이 많을 것입니다. 본부에서 선생님이 오셨는데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싶은 내용도 많을 거예요. 그런 사정이 많은 줄 알고 있지만, 시간이 넉넉하다면 터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세워서 그런 소감도 들어 보고, 사정도 들어 봐 가지고 슬픈 일이면 같이 슬퍼하고, 기쁜 일이면 같이 기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 제쳐놓고….
단 하나 이제 과거의 역사와 오늘날 현실의 나를 중심삼고 `나'라는 존재가 지금까지의 남겨 놓은 역사와 오늘날 내 자신이 처하고 있는 순간과 이제 결심하여 나가는 미래의 자아의 위치를 비교해 보게 될 때, 뒤를 돌아다보면 슬픈 역사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또, 앞을 바라보게 될 때에 슬픈 역사가 있어야 되는지 혹은 기쁜 역사가 있어야 되는지 그건 난 모르겠어요. 하여튼 뒤를 돌아보게 될 때에 슬픈 역사로 시작했느냐? 뒤를 돌아볼 때에 내가 낙망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이거 생각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뜻을 대한 자기 자신의 개체를 세워 놓고 보게 될 때에, 역사는 엄숙한 이런 생활법도를 따라서 오늘 나 한 자체를 만큼 이끌어 주었습니다. 현실에 처해 있는 내 한 존재를 두고 재 보고 해부해 보게 될 때, 내 한 개체는 슬픔으로 시작했던가, 혹은 기쁨으로 지금까지 싸워 나왔던가. 곡절이 많은 거예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이제 여러분이 모인 이상…. 물론 지금까지 슬픈 역사도 있었을 것이고 곡절 많은 과거도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제 여기에 왔으니 슬프고, 곡절 많았고, 혹은 낙망할 수 있는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여기에서 낙망할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 주저할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하지 못했으면, 오늘에 하지 못했으면 이제부터 더 낫기 위해서 내 자신은 미래를 두고 좀더 힘차고, 좀더 씩씩하고, 좀더 의의있고, 좀더 기쁠 수 있는 자아를 다시 한 번 재창조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하기에 우리는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전남지구에 있는 모든 식구들이 오늘 여기 동명동 지역에 발을 들여 놓게 될 때에 여러분들에게는 가지가지의 사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선생님을 만나 보고 돌아서서 자기의 본거지, 혹은 자기의 맡은 바의 책임 지역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품고 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정은 천태만태 다를지라도 그 마음에 한 가지 지녀야 할 것은, 과거를 청산하고 가야 할 내 현실에 있어서 미래를 새로이 창조하겠다는 그 신념 하나는 가지고 가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이것만은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잠자고 있고, 정지 상태에 머물러는 있더라도 역사와 세계적인 모든 정세는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변천하고, 일보일보 전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거예요. 이러한 전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가운데에서 내 한 개개인이 한 분자였지만 내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역사와 더불어, 역사의 전부를 대신하여 거기에 비판하고 싶고, 그 역사 앞에 있어서 내가이 역사적인 전망의 세계 앞에 무엇을 보태 주고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를 믿는 사람이나 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유ㆍ무신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고 있습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자기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러한 책임적인 입장에 서면 설수록 존재하는 이 세계 앞에, 발전해 가는 역사 앞에, 자기의 하나의 존재의 거동이 전체 앞에 좋은 것으로써 영향이 미쳐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전부 다 그렇게 바라고, 어느 누구나 그렇게 요구하며 그러한 소망을 대하여 맹세와 결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 혹은 그러한 미래의 세계 앞에 공헌하지 못하고, 봉헌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시간 시간 찾아오는 생활과정을 두고, 시간 시간 찾아오는 미래의 생애노정을 두고 거기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확고히 세우지 못하고, 갈 바의 방향을 올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후퇴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좌로 가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우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진정한 뜻을 품고 결의를 하는 그러한 사나이나 아낙네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냥 안 됩니다. 최후에 어떠한 변태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자기의 신념만은 굽히지 않고 `나는 진보의 일로에서 살아야 되겠다. 환경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복잡한 환경을 거부한다'라고 더 강하게 용솟음칠 수 있는, 더 강하게 자아 중심에서 발동해 주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는 한 이는 환경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표를 향해 나가는 사람은 시간 시간 그 내적인 충격의 자극을 뚜렷이 갖고 가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1년 가고 2년 가고 해가 거듭해 감에 따라 그의 생활적인 배후에, 역사적인 인연의 세계 앞에 기필코 그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무엇을 오늘의 이 천주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정해 출발한 후에 그것을 향해 갈 때는, 내가 결심한 다음에는 옆 사람하고 타협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진실된 목적지를 향해 갈 때는 내 생명을 걸고 각오하고, 내 생애를 걸고 각오했으므로 내 생명이 진(盡)하고, 내 생애가 그치기 전에는 타협하지 말고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념과 더불어 그 방향을 따라 전진하는 그러한 용맹심, 그러한 자극적인 충동의 힘이 자기의 속 마음에서부터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기필코 1년, 2년, 십년이 멀다 하지 않고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갈 것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시련의 바람결이 제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혹은 가는 길이 아무리 험산준령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구요. 그 결의와 그 충격적인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시련을 쳐부수고 목적지를 향하여 행군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혀를 깨물고 맹세하고 결의하지만…. 하루 이틀은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은 할 수 있다구요. 그러나 일 년, 십 년 일생을 걸어 두고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 되었던가! 사내라면 사내로서 한번 결의한 결의를 가지고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여 그 영광을 차지하지 못하고 후퇴, 혹은 좌우로 회전하여 원치 않는 방향에서 자기 자신을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상태에서 탄식하는 자신을 보게 될 때에, 거기에서 낙망하고 절망하면서 자기의 야망을 갈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태반이 그렇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대개가 그렇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보다 현재를 통한 미래에 있어서 내가 더 나을 수 있는 그러한 가치적인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지는 것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오늘의 결심을 해야 됩니다. 또, 그러한 때와 발전해 나가는 범위가 개인적인 입장에서 결심하는 때와 달리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정ㆍ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의 무대까지 나가는 데에 있어서, 맨 처음에 결심할 때에는 자기 자체에서 결심했지만 결심한 그 상대적인 위치가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어 자기가 결심하던 것보다 범위가 더 커지게 될 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을 자인하고서 후퇴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결심을 할 때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결심을 하지 말고, 세계적인 결심을 하고 천주적인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럴진대는 거기에 대응되는 시련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새로운 각오를 하고 발전의 진로를 향해 자아의 가치의 기준을 높이고자 할진대는 결실될 것이 크고, 욕망이 크고, 목적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그 반대의 현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차를 타고 떡 앉아 보면 말이지요, 가만 가만히 가면 쉽습니다. 그런데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유동성이 불어갑니다. 까딱 잘못하면 볼장 다보는 거예요. 여유가 없어요. 크고 빠르고, 크고 높은 것을 구상해 나가게 될 때에는 까딱 잘못하면 볼장 다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야 사방팔방 돌아다니면 되지만 말이예요. 그러나 최고 속도로 달려 목표를 향하여 간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거기에 반대적으로 저항해 오는 모든 악조건이 사방에 벌여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한 곳을 향하려면 사방에서 날 잡아내는 거예요. 이걸 각오해야 됩니다. 그걸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조는 처녀들이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 안 들으면…. 너! 이름이 뭔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비되는 저항이 크고 반대가 크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이치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통일교회의 식구입니다. 알겠지요? 「예」 통일교회의 식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 통일교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여러분 자신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에, 이 길이 과연 내가 필시 가야 할 길이냐? 그런 생각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필시 이 길을 가야 하느냐? 내가 가는 이 길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길은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길이며, 우리 과거의 선조로부터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의 민족이면 민족, 세계 인류면 인류가 다시 이 길을 가야 할 길이냐? 또, 학생에게 물어 보게 될 때에 그의 동무들도 가야 할 길이냐? 어느누구에게나 물어도 가야 할 길로서 내 자신이 확신하고 있고 가기를 결의한다 할 때에는, 가야 할 이 길이 얼마나 큰 길이냐 하는 걸 알고,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자기에게 부딪쳐 오는 반대적인 환경이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처하기를 '이 문명세계에 있어서, 혹은 주의와 사상세계에 있어서, 좌우가 대립하여 투쟁하는 이러한 현 세계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기필코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외로 돌든 바로 돌든 그건 난 모릅니다. 우린 몰라요. 세계가 바로 돌겠으면 돌고 외로 돌겠으면 돌라 이거예요. 깨지겠으면 깨지고 말겠으면 말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나와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이겁니다. 나와 우리는 그럴 수 없어요. 이것이 외로 돌고 바로 돌더라도 나는 한발짝 전진하여 새로운 목적을 향하여, 반석과 같은 자리에 서서 미래의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진일보를 가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가는 데에 있어서는 내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종족적인 성공, 국가적인 성공, 세계적인 성공, 천주적인 성공을 목표로 하고, 민족이 맹세하는 전체적인 맹세의 길을 내 스스로 가야 되겠고, 전인류가 맹세하는 결의를 가지고 내 몸에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그렇지 못하게 되면 전인류를 움직일 수 없고 전세계를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천주의 이념을 갖고 나갈 수 없습니다. 하늘땅 천주가 통틀어 일시에 맹세하는 그 맹세 이상의 맹세를 해야만 그 이념 자체를 대신하여 내가 주관하든가 내가 간섭하든가 이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느 한때에 개인적인 시대에 있어서 승리해도 가정적 시대에 나서지 못합니다. 행군을 계속한다고 해서 성공자가 아니예요. 가정적인 시대로부터 종족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로부터 민족시대를 거쳐 나가는 이런 역사의 도상에 있어서, 민족적인 시대에 자기가 결심하여 승리하였다 해도 그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민족을 지나 국가를 지나 세계와 천주의 소원을 이루는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사명이 개재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자기가 승리자가 되어 대우주에 있어서의 존재세계 앞에 승리의 존재로서, 천주의 칭송을 받아 영원한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하늘 앞에 나서고자 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 대비한 시련을 각오하고 그들이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고난과 환란은 내가 다 가지고, 어려움과 원수들의 모든 간교한 계략은 내가 책임지고 쳐부수겠다는 이런 신념을 갖고, 기울어지는 역사를 탄식하는 세계의 현상보다 내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의 결심한 그 각오의 힘이 이를 때려부수고도 남음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목적을 결의해서 마음을 같이하여 손에 손을 붙들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쌍수를 들고 온 천하 앞에 맹세하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들을 지도할 하늘이라든가 혹은 스승이 있다고 하면 그 스승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앞으로 다가올 시련과 앞으로 다가올 환란세계 앞에 있어서 그 환란과 시련의 패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시련의 환경이 휘몰아 쳐옴이 필시 있을 것을 알아 각오하고 그 이상의 수련과 훈련을 시켜야 하고, 또 하여야 할 책임과 사명을 가지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로는 못 가는 겁니다. 자기 혼자서는 안 돼요. 나에게 누가 코를 꿰어서 끌어 주든가 내 뒤에서 몽둥이로 밀어 주든가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내뒤에서 나를 밀어 줄 수 있는 소망의 제2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생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앞에 이런 참다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승리의 목적지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스승이 없는가? 그런 스승이 있으면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의 시련과,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의 곡절의 모든 조건들을 제거시킬 수 있는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그러한 것에 부딪치게 될 때 그 환경 앞에 패하는 자가 되지 않고 환경을 수습하여 환경이 내 앞에 패자가 되게 할 수 있는 이러한 인격자고, 자격자로 누가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뒤에서 누가 밀어 주었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바라는 소원인 연고로 오늘날 이러한 크나큰 목적과 사명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사명을 짊어지고 간다 할진대, 통일교회에는 반드시 지도하는 스승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나가는 그 주위에서 여러분에게 사방에서 부딪쳐 오는 모든 시련을 이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써 몰아낼 수 있는 배후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유명한 스승으로서 지도하는 것이 물론 필요하겠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여러분을 밀어 주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내 본심에 울리는 심정을 가지고 정적인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로서의 지도자가 되고, 환경의 보호자가 되고, 뜻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고 협조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음은 훌륭한 어떠한 스승이 있으면 그 스승을 대해 `아, 우리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예」 스승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 나를 밀어 줄 수 있는 그러한 동지가 내 누나가 되고, 내 오빠가 되고, 내 형님이 되고, 내 동생이 되고, 내 어머니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대우주의 성공을 완결하게 될 때에 기뻐할 수 있는 존재는 물론 자신 이겠지만, 자신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스승을 찾아보니 그 스승으로 세울 수 있는 분이, 스승보다 더 귀한 자리에서 기뻐할 수 있는 분이 어머니 아버지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내 성공을 대해서는 친구보다 혈육을 같이한 형제는 더욱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로 보게 된다면 말이지요, 통일교회는 지금 말하고 있는 부모 아닌 부모의 명사를 앞에 세워 놓고 형제 아닌 형제의 명사로 진을 쳐 놓고 행군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시련의 세계에, 탄식의 세계에, 절망의 세계에, 비애의 세계에, 사망의 물결이 교차하는 그 교차로에 서서 늠름히 행군을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현재의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식구로서 무엇이 필요하냐? 내 형을 형으로 알고, 동생을 동생으로 알고, 누나를 누나로 알고, 상하 전후 좌우의 관계를 알아 자기의 위치의 환경을 확고히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싸워 나가는 시련과 이들이 부딪치고 있는 모든 시련은, 식구의 명사를 갖게 될 때에 형님이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부모가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주위의 형제들이 당하는 모든 시련도 내 시련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다'는 심정으로 그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 부딪쳐 오는 반대적인 현상으로 내 몸에 반대적인 슬픔의 조건이 불어가면 불어갈수록 우리의 형제들의 고통이 불어가고, 우리의 전후 관계의 부모면 부모들의 고통이 불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원수를 대해 싸운다는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는 형제 중의 형제가 될 수 있고, 자녀 중의 자녀로서 그 가는 동료들 가운데에서 보호를 받고 지킴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천지이치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지요? 시련과 연단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시련과 연단이 심한 동시에 절망과 낙망이 교차되는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출발했습니다. 현세의 환경에 있어서 시련과 낙망과 절망을 박차고, 시련을 주관하고, 절망을 주관하고, 비애를 주관하여 한국적인 모든 시련의 요소는 물론이려니와 세계에 남아 있는 시련과 절망과 낙망과 비애의 요건까지 원수로 알고 대결하기 위하여 출발한 무리가 통일의 무리인 것입니다.
식구로서의 명분을 같이하여 행군하는 우리의 행로에 있어서는 우리가 가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한 때는 개인적인 시대를 거쳐왔고, 한 때는 가정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한 때는 종족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은 민족을 거쳐 국가적인 투쟁시대를 향하여 세계적인 투쟁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는 시대에 당도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것은 자기 일신이 가는 것 같지만 그 일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인연의 관계를 가지고 우리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우리가 한국에서 싸우는 그 정상은 세계를 대표한 싸움인 연고로 세계적인 모든 인류, 혹은 세계적인 수많은 종족들이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행군 명령에 보조를 맞추기에 급급할 수 있는 현상이 벌어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식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3년 동안 움직여 나온 그 3년 동안의 행군의 노정은 한국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무리가 여기에서 행군하는 그 파동은 일본을 거쳐 미국을 거쳐 독일에까지, 전세계에 널려있는 통일용사들이 가는 행군의 보조로서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사실을 볼 때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우리의 식구라는 이 명분은 앞으로는 부모를 위함이요, 좌우로는 형제를 위함이요, 소망의 선의 나라, 선의 주권과 선의 인류, 선의 백성과 선한 지구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모진 투쟁의 물결과 풍랑이 있어야 할 것을 알고, 내가 들어가느냐 내가 나가느냐 하는 싸움에서 진을 치고 있고, 또 나가고 있는 자들이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의 신도들인 것입니다. 통일의 식구들인 거예요.
부모가 슬퍼하면 형제도 물론 슬퍼하는 것이요, 형제가 슬퍼하면 부모가 슬퍼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일가는 한살로 묶어져 있고, 한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고동소리에 세포가 생동하고 있는 연고로 거기에 부딪치는 시련은 그 자체로서 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시련으로 대할 줄 아는 감정과 그런 생활적인 자극이 예민하면 할수록 이는 정상적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주위에 몰아치는 식구들의 어려움이 무엇이고, 식구들의 현재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이들이 가는 도상에 있어서 시련을 받고 있는 여기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은 어차피 찬 바람이 불어오면 가을날을 맞이한 나뭇잎과 같이 자연적으로 낙엽으로 화할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 무리, 이 하나의 지체가 그냥 처참하게 쓰러거나 원수들 앞에 농락을 받아 분한 일이 있다면 그 분함은 전체의 분함입니다. 일본 사람이 그러하면 한국 사람이 분하고, 한국 사람이 그러하면 미국 사람이 분하다는 거예요. 종족과 민족과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을 달리한 그러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심정을 걸어 놓고 한 인류의 혈육을 통하여 인연돼 있는 그 무리에게 부모의 슬픔이 전체의 슬픔이요, 자녀의 슬픔이 전식구의 슬픔입니다. 그것을 친히 체감하고, 친히 기뻐할 수 있는 생활적인 자극과 생활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통일교회 식구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무리가 하나에서 열, 열에서 수십, 이것이 십진 배수로서 천 번을 가하여 3천만이 화하여 하나의 지체와 같이 되어 이 길을 가는 도상에 있어서, 이 엄숙한 도상에 있어서 침해를 받게 될 때에는 전체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우주의 이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이름으로 결심한 그 결의 밑에서 제지하려고 해도 제지할 수 없고, 용서하려고 해야 용서할 수 없는 공분의 심정이 자기의 배 밑창에서부터 폭발되어 올라오는 분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선발대로서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병, 따라가는 병사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더듬어 보게 될 때에 마음은 언제나 앞에 서고, 마음은 남보다 더 하고, 좋은 일을 하고 하고 또 해도 이 마음은 `또 해라, 또 해라, 또 해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요놈의 마음이 어떻게 돼 있는지 좋은 일을 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어떠한 제물적인 생활을 했더라도 또 하라고 합니다, 또,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마음이? 좋은 일을 하고 나도 또 하라고 하지요? 하고 나도 쉴 줄 모르게 재촉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왜 그런고? 그걸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런고? 마음의 소망은 높고 큰 것입니다. 높고 큰 거예요. 하나님을 몽땅 갖다 놓고 하나님을 품고 앉으면 다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을 품고 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이놈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춤을 추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 가지고 목을 붙안고 키스를 하고 뒤넘이쳐도 편안치 않다는 거예요. 마음은 그래요. 하나님도 내것 만들고 마음대로 기뻐할 수 있는 내편으로 세우고, 이 천하 만민도 환경 만물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편에 세우고, 그뿐만 아니라 온 천상세계, 현재의 인간,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까지 내편으로 만들어 놓고야 비로소 기뻐하겠다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의 욕망은 그 한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성적이 좋아서 그 학교의 우등생이 되었다, 혹은 거기에서 뭐가 되었다 하면 좋을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나도 부족하고, 하고 나도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잠깐 좋을지 모르지만 또 그렇게 하라, 또 하라, 또 하라는 거예요. 욕심은 개인에서 가정을 넘고,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를 훌훌 넘어갑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 욕심이 그 양심이 재촉하는 한계는 이제 말한 거와 같이 존재하는 만유의 것을 내것으로 삼아 내가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내가 기쁘지 않을 때 그들을 통하여 기쁨의 요소를 얻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의 욕망이요,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목적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바쁜 거예요, 바쁜 거예요. 죽을 놀음을 해서 무얼 하나 만들어 놓았으면 그냥 좀 쉬라고 하고 말이예요, 이젠 `너는 그만큼 했으니 한 3년이고 10년이고 쉬어라!' 그러면 좋겠는데, 이놈의 마음은 `달려라, 또 달려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재촉하는 걸 볼 때에 필시 마음의 인연의 세계는 역사를 창조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크나큰 대우주의 목적을 성공리에 이루었다고 하늘과 땅이 전부 다 찬양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고통을 받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눈을 뜨라구, 저 아가씨. 한 대 패 주라구. (졸고 있는 아가씨를 가리키시면서) 목이 쉰 데다 일어서서 얘기하니까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그래, 조금 얘기해야 되겠어요. 왜 이렇게 조나? 너, 걸어왔나? 어디서 걸어왔나? 너, 너. 거 조그만 애 뒤에. 조그만 애 뒤 말이야. 너 어디 애야? 어디서 왔니? 어디서 와? (녹음이 잠시 끊겼음)
우리는 한몸입니다. 그렇지요? 한몸으로서 한국 사람이요, 미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입니다. 그 한국이라는 명사를 떼 버리고, 미국이라는 명사를 떼 버리고, 일본이라는 명사를 떼게 되면 뭐예요? 뭐예요? 뭐냐구요? 한국 사람, 일본 사람, 미국 사람이라는 말의 대가리를 따버리면 뭐냐 말이예요? 「사람」 사람 아니냐 말이예요. 사람입니다.
사람이 전부 다 노랗고 하얗고…. 요즘에는 뭐 흑백 문제니 해서 싸워서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검둥이니 황인종이니 청인종이니 난 그건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붙인 명사는 편의상 붙인 것입니다, 편의상. 사람 그 자체에는 차이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어떠한 주권의 평등을 논의하기 전에 인권의 평등을 논해야 되고, 어떠한 민족의 평등을 논하기 전에 종족의 평등을 논해야 되고, 종족의 평등을 논하기 전에 가정의 평등을 논해야 되고, 가정의 평등을 논하기 전에 개인의 평등을 논의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예」
사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떠한 주의자냐? 우주주의자입니다, 우주주의자. 그 주의는 뭐냐? 인간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주의예요, 하나님주의. 하나님주의인 동시에 내 주의입니다. 나와 하나님이 합한 주의가 우주주의예요.
민주주의도 하나님하고 백성, 혹은 인민과 합한 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본래는 그것이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도 하나님 플러스 민주주의가 되지 못했습니다. 본래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민주주의가 출발했으므로 하나님을 위주로 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주로 한, 인간을 합한 민주주의가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과 예수를 떼 버린 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에 가서는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물질 플러스 사람, 그런 주의예요. 이런 것은 천하에 없는 것입니다. 자멸해 버려야 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만나 가지고 깨져 나간다 이거예요.
천주주의는 뭐냐? 하나님주의와 내 주의가 합한 것입니다. 이 둘이 합한 거예요. 누가 주(主)냐? 사람이 주가 아닙니다. 하늘이 주예요. 정신이 주냐 몸뚱이가 주냐 할 때, 정신이 주예요. 지천(地天)이 아니고 천지(天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모부(母父)가 아니라 부모(父母)입니다. 부모는 뭐냐? 아버지는 하늘을 상징하고, 어머니는 땅을 상징해요. 그래 모부가 아니고 부모라구요. 거 이상하지요? 그런 연고로 우리의 주의는, 우리의 이념은 무엇이냐?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이냐?하나님주의와 내 이상주의가 합한 것입니다. 내 이상주의는 무엇이냐? 이 세계를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의 주권의 세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권이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예요, 하나.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돌고 돌아 목적지를 향하여, 목적의 결실점을 향하여 점점 부딪쳐 가고 진전해 가나니, 그 목적점은 정지해 있으나 목적을 향하여 가는 역사는 진전해 가니, 진전해 가는 이 사조적인 운명이 목적적인 그러한 기준과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적기준은 무엇이 되겠느냐? 이 목적기준을 수습하여서 여기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되겠느냐?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주인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그 주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의 기준이 변치 않아 하나의 목적의 때가, 환경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때와 환경이 구비되면 지도자를 보낸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환경의 때가 되어 한 시기를 맞이하면 그 시기와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지도자를 보내마 하는 약속이 오늘날 도의 세계에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메시아 사상이예요.
그 메시아라는 분은 어떤 분이냐? 자기를 세계와 같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를 하늘땅과 같이 사랑하는 그런 주의자가 아니예요. 먼저 누구를 자기 이상으로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자기 이상으로 사랑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세계 인류로부터 추천받은 자기라는 것을 알고, 세계 인류를 배후에 놓고 책임을 짊어지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같은 승리의 결과를 획득하였을 때에, 같은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겠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진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메시아예요. 그러한 분이라야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메시아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천주주의예요. 천주주의니 그 주의는 하나님과 나의 주의입니다. 부족한 고로 그 사유를 알지 못하고, 하늘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고, 생의 종말시대에 있어서의 환경을 어떻게 수습하고, 그때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오고 환경이 이루어지는 때에 하늘이 수습할 수 있는 분으로서 보내신 분이 누구냐 하면 메시아란 분인 것입니다. 메시아란 분이예요. 구세주예요.
구세주인데 그 구세주는 뭐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구세주가 남이 아니야! 어떠한 역사적인, 혹은 세계적인 위대한 스승이 아니예요. 그 구세주는 누구냐? 아버지예요. 아버지인데 무슨 아버지냐?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요, 오시는 구세주는 외적인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에 그런 논리적인 구상을 해 가지고 세계적인 이념으로써 모든 사리에 맞는 체계적인 논리를 세웠다고 하면 그 논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빼놓고 세계의 모든 만민을 한번…. 그래도 멋지거든요. 사실이 그래요.
하나님은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입니다. `사람' 하면 말이예요,`나'라고 하면 나에게는 속사람이 있고 겉사람이 있지요? 「예」 속사람은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여러분들 속사람의 크기를 봤어요? 속사람이 얼마나 크냐? 그놈의 속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하냐 하고 묻게 될 때에는 `네가 물을 것 다 물어 봐라. 밤새껏 물어 봐도 네가 묻는 것은 미급하다' 할 거예요. 그 마음, 내 속사람은 누구하고 친구하려고 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하고 친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친구라고해요. 내 속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러지 하나님의 동생이 되려고 하고, 하나님하고 한 형제가 되려고 한다 그 말이예요.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마음은 세계를 전부 다 내 세계로 만들고 싶어하지요? 요전에 대통령 선거했지요? 한번 삼천만에 호령하면 그저 좌우로 가라고 하면 가고,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는 걸 사람은…. 그래, 사람의 탐욕이 뭐예요? 한번 이 세계를 내 것 만들고, 한번 쥐었다가 흔들고, 그다음에는 머리가 좋아서 이것을 잘 요리하고 싶은 거예요. 이게 인간의 3대 욕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겁니다. 돈 욕심, 권세욕, 지식욕이 있다구요. 인간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에 있는 친구는 어떠한 인격자냐? 네 친구는 어떠한 것이냐?' 하고 마음에게 물어 보면 이 마음은 `쩨쩨한 사람하고는 친구 안 한다'고 합니다. 그 인격이 한번 이 천하 앞에, 온 우주 앞에 온전히 자리를 잡고 나서게 되면 그 마음을 집 삼아서 하나님이 옷과 같이 입고 행차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거룩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음이 그렇게 위대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의 아들이다'하는 것을 가르쳐 줍지다. 기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구요. 아들은 무엇이냐? 아버지와 일체예요, 일체. 오늘날 인간이 이러한 대우주의 창조주와 내 마음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그 아버지가 움직이면 내 마음도 움직이려고 하는데 못 움직이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몸뚱이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마음이 움직이고 싶은데 못 움직이는 건 무엇 때문이라구요? 「몸뚱이 때문입니다」 몸뚱이 때문이라구요.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투쟁역사입니다. 전쟁사지요? 전쟁사인데 이 전쟁사는 무슨 전쟁사냐? 내 몸과 마음의 전쟁사입니다. 마음과 몸의 전쟁이 외적으로 민족 대 민족의 환경으로 확대 전개되어 범위가 넓게 벌어진 것이 전쟁사라는 겁니다.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입은 놀아 대고 ,입이 말하고 나서는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연고로, 결과적으로 마음이 `너를 죽인다' 했으면 죽여야 돼요. 안 죽이면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심판받아요. 악에서 맹세했어도 맹세한 대로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맹세하지 말라고 그랬지요.
이래서 이 몸과 마음이, 이 몸집과 마음집이 서로…. 마음집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려면 여기에서 몸뚱이는 반대하고, 마음이 가자고 하니 싸움은 그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확대시켜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전쟁사는 무엇이냐? 하늘과 땅이 싸우는 것입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지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본받아 태어났습니다. 마음은 하늘 대신이요, 몸은 땅 대신입니다. 예수는 신랑인데 하늘 대신자요 남자이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왔다가 하늘로 올라가고, 또 성신은 어머니 대신자기 때문에 땅을 상징하므로 땅으로 내려옵니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게 될 때, 마음은 하늘로부터 받고 몸은 땅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 부모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라는 이 두 존재는 하늘과 땅의 축소체입니다. 그 두 사이에서 하나의 결실로 맺어진 나라는 것은 하늘과 땅을 총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목적은 어디를 중심삼고 잘 운전하는 것이냐? 자동차가 있다고 할 때, 자동차의 마음과 같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운전수입니다. 그렇지요? 「예」 이렇게 하면 이렇게 가야 되는 거예요. 핸들을 이렇게 돌렸는데 이놈이 이렇게 가면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른쪽' 하면 `예' 하고, `왼쪽'하면 `예' 하고, `똑바로' 하면 똑바로 가는 거예요. 돌려 주는 각도에 따라 40도, 몇 도, 좌우 해서 꼬불꼬불 꼬불꼬불 잘 돌아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창조원리 배웠지요? 「예」 모든 존재물은 이중 구조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구조형. 그렇지요? 「예」 그것이 둘이 하나되어 조화가 벌어지는 가운데에 천지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묘미의 관계가 입체적인 관계로서 심정적인 세계에 부딪쳐 들어오게 될 때 거기에서 아주 자극적인 충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들은 얼마나 크냐? 마음은 누구의 지체냐 하면 하나님의 지체입니다. 몸은 누구의 지체냐 하면 부모의 지체입니다, 몸뚱이는. 그렇지요? 「예」 마음은 변하는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과 여러분들의 마음의 본성은 혁명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예」 진리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과 나중이 통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과정에 있어서 이상이 벌어지더라도 끝에 가서는 이것이 상대적 기준에서 수습됩니다. 상대적 기준만 되면 과정이 복잡하던 것이 수습되어서 자기들이 생활할 수 있고, 자기들이 영존할 수 있는 하나의 자동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의 존재물의 이치일진대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세계에 있어서는 혁명이 없습니다. 더우기나 마음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에서는 진짜 혁명이 없어요. 마음의 세계에서는 방향적인 이동이 있습니다. 방향적인 이동은 있지만서도 심정의 세계에서는 맨 중심이기 때문에 돌고 돌더라도 그 자리에서 돌지 방향도 바꿔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부부끼리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 형제끼리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하늘이 정한 변치 않는 하나의 기준인 것입니다. 혁명이 없어요. 혁명이 있어요? 없지요? 「예」
그것이 남아 있는 연고로 사람들이 심정을 중심삼고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하면, 하나님과 친구될 수 있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떨어졌다는 겁니다. 마음의 본래의 자리는 하나님의 동생과 하나님의 친구될 수 있는 이러한 자리인데, 이것이 어찌어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뒤넘이쳐져 가지고 반대의 자리에 떨어졌다 이거예요. 반대의 자리에 떨어졌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떨어져 있느냐? 이 고깃덩이를 중심삼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본래의 자리에 올라오기 위해서는 고깃덩이를 죽여서 이 사체를 구해 가지고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도상에서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희생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떨어져 있는 연고로 여러분들이 그 마음의 목적과 방향을 어디에 맞추느냐? 너하고 나하고 내 마음의 목적이 한 형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목적의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예요. 개인을 버리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를 넘고, 국가를 넘고, 주의 사상을 넘어 최고의 마음의 기준인 하늘과 더불어 그 위치를 같이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동고동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타락이라는 이 슬픈 법도에 얽메여 있는 연고로 이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자체가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한 자체를 희생시켜서, 자기의 외적인 모든 몸뚱이를 희생시켜서 내적인 마음이 원하는 가정 앞에 나아가고, 또 가정 제일주의를 생각하고 있는 몸을 쳐 끌어올려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통해서 점점 높이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인간은 바라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였으니 최후에는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가는 걸 바란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사람의 마음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내 세계, 이 천하는 내 천하, 이 인류는 내 형제, 하나님은 내 아버지로 다 끌어들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마음이 지금 자기 울타리에서 안주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가정보다도 종족을 위해서 출발해야 됩니다. 가정을 희생시켜서 자기 종족을 구할 수 있고, 종족이 선할 수 있으면 자기 가정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한 국가가 살아나게 하고, 그 국가의 선한 터전을 닦기 위해서는 그 종족도 희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흥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된다구요. 국가가 하나의 선한 자리에 섰더라도 세계를 선한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도 희생시켜야 합니다. 희생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큰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우리 인간에 대해서 말이예요. 또 세계보다 하늘땅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현세계의 어떠한 주의 사상도 떼려 잡아라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한 세계에 대비될 수 있는 인간이 거기에 화합이 될 수 있는 세계, 그러한 세계가 천주주의 세계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우리의 이념은 무엇이냐? 인간을 위주로 하여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적인 주의가 아닙니다. 종교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하나의 주의 세계를 모방하고, 이 모방한 하나의 주의 세계권 내에 인간이 모방해 놓은 선의 세계가 모순 없이 들어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지가 합하는 거예요. 하늘은 마음이요, 인간은 몸과 같기 때문에, 몸과 같은 이 세계가 하나로 수습되어 인간 중심한 선의 세계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한 마음적인 선의 주체가 선의 세계라고 인정할 수 있는 전체적이며 내적인 세계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모순, 상충 없이 하나의 주의로서 완결되게 될 때에 천지는 거기에서 비로소 평화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세계를 만들 때에 어떠한 세계를 만들 것이냐?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서 어떠한 세계를 만들 것이냐? 통일교회라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간판 떼버려야 돼요. 통일가예요, 통일가. 알겠어요? 응? 「예」 뭐라구요? 「통일가입니다」 통일가라구요. 통일가 가운데에는 공산당도 들어가고, 민주주의도 들어가고, 검둥이도 들어가고, 회회교도 들어가고, 불교도 들어가고, 기독교도 들어가고, 잡탕 전부 다 들어가서 하나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모토(motto;표어)로 하느냐? `천주주의 이념을 지상에서 실현하자'입니다. 우리가 적절한 명사를 대치해 보니 그것이지 지상천국을 완비하여 하나님을 모신 선의 주권의 세계를 만들고, 선의 지구성을 만들고, 선의 인류를 만들어 하나님을 중심삼은 일가를 만들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중심삼은 일가가 아닙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일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각 개개인을 대해 어떠한 조직망을 갖고 있느냐? 그 하나님은 조직망을 만민 앞에 갖고 있나니 그 조직망의 명령의 초소는 뭐냐 하면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알겠어요? 「예」
양심은 여러분에게 있어서의 참모부요, 몸뚱이는 여러분에게 있어서의 명령을 받아 행동할 수 있는 행동부대입니다. 포병이나 뭐 그런 것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것을 무엇으로 그렇게 얽어메 주느냐?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딸이요 아들입니다. 전부 다 평등해요. 거기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심정적인 하늘을 중심삼고 상하가 없고 평등의 평등으로서 대우주 이름권 내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위주로 한 사상세계, 그것이 나와 관련이 먼 하나의 남의 집 살림살이가 아니라 내 집 살림살이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살림살이예요. 우리 아버지의 살림살이니 아버지 앞에 효도하고 충성하여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아들이니….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고 하지요? 「예」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있나요? 있나요, 없나요? 없나요? 부자일신이란 말 없나요? 「있습니다.」 어디에 있어요? (웃음) 없으면 여기서 내가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 말이 없다면 이 시간에 내가 창조하니 이제부터 생각하는 거예요. 부자일신, 그다음에는? 뭐 여자부터 하면 좋아하니까…. 부부니까 거꾸로 해도 부부(婦夫)고 바로 해도 부부(夫婦)구만요? (웃음) 부부일신(夫婦一身). 그다음엔 형제도 일신이예요, 형제도. 우리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요즘에는 대개 부부일신밖에 모르지요? 타락한 세계에서는 그게 제일의 목적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부부일신밖에 모르는 거예요. 오늘날 부부일신이 되기 전에 부자일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은 본격적으로 안 나왔다구요. 부부일신이요, 부자일신이요, 그다음엔 뭐예요? 「형제일신」 형제일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내가 죽어요. 그런 일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기의 팔을 잘라서 동생이 살 수 있으면 자르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그랬어요. 자기 아들이 말이예요, 눈병신입니다. 소경이예요. 그래 유명한 안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내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뭐요?', `내 눈이 둘 아니요.' '그래요' 내 눈이 참 좋은데 이 눈을 하나 빼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왜 빼요?', `줄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에게 주려고 해요?', `우리 아들 눈하고 내눈하고 바꿔 주소' 그랬다는 겁니다. 그거 보면 틀림없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구요. 그게 부자일신이예요.
보라구요. 여러분들 찬 방에서 누워 자면 배가 먼저 얼어 들어와 아프지요? 배가 먼저 얼어 들어오지요? 「예」 그러면, 이불로 어디를 먼저 덮어 주나요? 어디를 덮어 줘요? 「배를 먼저 덮어 줍니다」 배를 먼저 덮어 준다는 말이예요. 또 발끝이 얼어 오면 배에 덮은 포자기나 이불이라도 발끝에 덮어 주는 그게 일신이예요. 자기의 한 지체 가운데에 조그마한 결함된 기준이 있으면 내 한 부분을 희생시켜서 그것을 보호해 주고, 그것을 본래 상태로 세워 놓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일신입니다.
마찬가지예요. 부부일신입니다.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 몇 가정이예요? 38가정이 전라남도에 와 있지요? 생각해 봐요. 축복받은 가정들! 「예」 그래 임자네들은 부부일신이예요? 일신 되었어요, 되려고 해요? 대답이 왜 없어요?
부부일신이 되기 전에는 하늘 아버지 앞에 부자일신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부자일신이 안 돼 가지고는 부부일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예요. 하나만 완전히 일신되면, 부부가 완전히 일신되면 부자일신은…. 땅을 대해 움직이는 하늘이기 때문에, 완전한 선한 부부가 하늘 앞에 백 퍼센트 일체가 되면 하늘은 일신당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부부들은 천정(天情)을 받는 것입니다. 선한 부부의 자식들은 천정을 받아 이 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을 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일신이라든가 부부일신이 되면…. 부자일신은 남자만이 아니라 부녀일신도 되는 거예요. 요전에 내가 일본 식구들한테 한번 공박을 받았어요. `선생님은 남자니까 여성들을 그렇게 보류하시는군요' 하고, `원칙을 보게 되면 아담을 먼저 짓고 해와를 나중에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가 되더라도 해와는 아담한테 절대 복종하고 절대 존경해야 되는 그런 원칙이 어디있습니까?' 하길래 그걸 설명해 주느라고 아주 내가 혼났다구요. (웃으심) 부자일신만이 아니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부인들은 그만큼 아량이 있기 때문에 `부자일신' 하면 `부녀일신' 하고 마음으로 대답하지요? 「예」 그럴 줄 안다 이거예요. 그러니 `부자일신'이란 말 한마디만 하더라도…. 바쁜데 뭐 두 마디 해요? 그러니 `부자일신' 하면 여자들은 뭐라구요? 「부녀일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구요.
남편을 칭찬해 주면 부인은 그저 입이 해슥해지고, 부인을 칭찬해 주면 남편은 밥을 안 먹어도 좋아서 그저 터진 바가지처럼 헤헤 한다는 겁니다. 자식을 칭찬할 때 동네에서 `거 아무개 자식, 젊은 자식 그자식, 거 쓸 만한데?' 하고 말해봐요 `자식'은 욕이고 `쓸 만한데' 는 칭찬이거든요. (웃음) 그런데 사람들은 `자식, 거 쓸 만한데?' 하면 `자식' 이란 말은 잊어버리고 `쓸만한데' 란 말만 딱 기억하는 거예요. 사실은 먼저 `자식'이라고 욕을 했는데 말이예요.
그걸 보면 말이예요, 그건 일신입니다. 그 아버지를, 부모를 잡으려면 말이예요…. 또 뭐 잡는다고 해서 소 잡듯이 골통을 까는 게 아니예요. 부모와 가까와지려면…. 그 아기를 가만히 보면 눈이 찌그러지고 한옥 기왓골에 올린 바가지 통처럼 생겼는데, 울퉁불퉁 자기 생각대로 그저 배나무처럼 생겼는데 그 아기를 업고 다니면서 부모가 흥흥 할 때 그걸 절대 흉보지 말라구요. `아이고, 우리 사촌 동생 애기가 있는데 동네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칭찬하기를 잘났다고 칭찬하는데, 아, 이 아기를 보니 그 아기보다 낫네?' (웃음) 이래 주면 부모는 으쓱 올라가는 거예요. 소리 없이 올라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입이 터지는 거예요. (웃음)
어머니들은 알 것입니다. 가정의 식구들을 보면 어떤 아이들은 아주 곱상해요. 코도 도독하고 입술도 아주 이쁘고 눈도 또롱또롱해요. 어떤 아기는 아주 격이 갖추어져서 팔방으로 다 방수를 맞춰 가지고 대비할 수 있는 규격을 떡 타고났는데 말이예요, 어떤 아기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만 `아, 이놈 아주….' 하고 한마디 떡 해 놓으면 어디서부터 웃어대느냐 하면 말이지요, 입부터 웃어야 되는 게 아니예요? 이마부터 웃어요. 이마부터 웃어 내려가요, 이마부터. 눈부터 웃어 내려가요, 눈부터. 눈부터 웃는 것은 참 기뻐한다는 표시라구요. 그다음에는 웃다 말고 이렇게…. 그래 가지고는 웃다가 줄어 들어가지 못해요. 줄어 들어가야 정상인데 너무 좋아서 스톱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낚는 데에 있어서 무엇을 가지고 낚느냐? 구원하려고 하는 것이 낚시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타락한 인간들을 낚시질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하겠다는 것은…. '내가 낚시질을 좀 해 봤다구요. 낚시질을 하려면 밑감을 써야 합니다. 밑감을 넣을 때는 무슨 밑감을 넣어야 되느냐? 쓰고 그저…. 이 전라도 감은 더 떫지요, 아마? (웃음) 경기도 감보다 더 떫을 거예요. 더 떫지요? 「떫은 감도 있지만….」 아, 전라도 감은 더 떫다! (웃음) 떫을 거라구요.
내가 어릴 때, 중학교 때 서울에 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 고향에는 감나무가 없어요. 그래 감 열매는 봤었지만 어미는 생전 보지 못했습니다. 감 어미가 뭐예요? 나무 아니예요? 물론 어미는 맨 처음에 씨 가지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말이예요. 옛날에 거 감, 홍시가 참…. 선생님이 먹게 되면 하나도 안 먹거든요. 그게 집에 있으면 뭐 바닥 나도록…. (웃음) 먹는 게 취미예요. 내가 아주 참 잘 먹는다구요. 내가 감 동산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내가 이웃 동네 총각들에게 전부 다 나눠 줘서 그저 입에 넣으면…. 바쁘다 바빠 하면서 콧구멍에 들어가는지 모르고 터질 대로 먹는다구요.
그래,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걸 생각했다구요. 서울에 떡 올라오니 감나무가 있더라구요. 척 보니까 밑이 따닥따닥하고 참 잘생겼거든요? 그놈의 나무를 만져 보니까 아주 단단해 보이더라구요. 감나무 단단해 보이지요? 그런데 크지는 않아요. 나는 감나무가 큰 줄 알았더니 요만하더구만요. 저 자하문 밖에 있었다 말이예요, 자하문 밖에. 거 동무 녀석이 있어 갔는데 감이 아주 노랗게 되었더라구요. 노랗게 돼 가지고 참 먹음직해요. 그래서 그 녀석하고 몰래 거기에 들어갔어요. `야, 이거 맛있겠다' 해서 따 가지고…. 그 녀석은 따니까 그저…. (웃음) 그래, 그는 잘 알거든요? 입으로 우물우물 씹으면서 이렇게 내다 보면서 먹는 거예요. 거 맛있겠구만. 이거 알게 뭐야? 아, 맛있겠다' 해 가지고 사정없이 들입다 씹었더니 혓바닥이 그저 이만큼 (웃음) 감이 그래요. 그렇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총각 녀석들은 그런 경험 다 했을 거라. 자기네 감은 안 따먹고 남의 담 너머에 있는 감을 따먹고 그랬을 거라구요. (웃음)
여기 전라도 감은 나 못 먹어 봤어요. 더 떫을 거예요. 그렇지요? 어제 서울서 왔어요. 난 서울 사람이예요. 여러분들은 전라도 사람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에게, 서울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와이 사람이라 한다구요. (웃음) 하와이 설명하면 여러분들이 눈을 이렇게 뜹니다. `허허허. 아이구 고마와라. 우리 선생님은 저렇게….' 할거예요. 가능하면 내가 그렇게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건 그만 두고, 하여튼 나쁜 의미의 하와이가 아니예요.
또 전라도라는 것은 뭐냐 하면 말이지요, 살림살이를 크게 차린 곳입니다. 그런 곳이 전라도예요. `전' 자는 무슨 `전' 자예요? `전' 자는 무슨 `전' 자라구요? 「'온전 전'(全) 자요」 `찌그러질 전' 자예요? 무슨 `전' 자예요, 똑똑히 얘기해 봐요. 「'온전 전' 자입니다」 그래요, '온전 전자'라고 합시다. `라' 자는 무슨 `라' 자예요? 「'비단 라(羅)'요」 비단 라가 뭐예요? 「벌릴 라」 뭐 `버릴 라'가 뭐예요? 냅다 버린다는 말이예요? 쳐 버린다는 말이예요? `버릴 라'가 뭐예요, `버릴 라'가? 「벌릴 라요」 `벌릴 라'가 뭐예요? 날아가는 벌이예요? 그게 뭐예요, 벌일 라가? 그건 뭐냐 하면 말이지요, 채신머리없는 여자가 시집올 때부터 아기 기저귀 해온 것을 널어 놓고 있는 여자와 같은 걸 `벌일 라'라고 하면 맞는 거예요. 벌여 놓는 거라구요. 나는 이 전라도를 `온전 전' 자를 딱 따 버리고`라도'라 하면 어떻겠느냐 생각한다구요, `라도'. `라북도' `라남도'라고 말이예요. (웃음) 왜 전라도가 욕을 먹느냐? 이렇게 떠억 대가리에 온전 전 자를 붙여 놓았으니 참 곤란하거든요.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그거 명사는 좋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쁘다고 본다구요. 나쁘지요? 나빠요, 좋아요? 「안 나쁩니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은 말이지요,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어디 가도 싹싹 잘 돌아다닙니다. `벌일 라' 자를 뒤집어 썼으니까 잘 돌아다닌다는 말이예요. (웃음) 사실 그래요.
엊그제 내가 경상도 대구에 갔었는데, 대구 사람들이 평하여 말하기를 좌측 황해 가까이에 라도가 있는데 전라도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첫 맛은 백 퍼센트라는 거예요, 첫 맛은. 먹게 되면 꼭지까지 삼키더라도 또 먹고 싶다는 거예요. 꼭지가 쓴데 얼마나 달면 꼭지까지 삼켜도 또 먹고 싶겠느냐 이거예요. 첫 맛은 그렇게 근사하고 멋진데 후의 맛은 배가 아프다 이거예요. (웃음) 그런 차라리 먹지 않음만 못하다 이거예요. (웃음) 그 얘기까지는 안 했어요. 배가 아프다는 것은 선생님이 말을 지어내서 한 말이예요. (웃음)
하여튼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은…. 열 주면 전라도 사람은…. 처음에는 경상도 사람 열과 전라도 사람 한 사람하고 안 바꾸겠지만, 조금 지나면 전라도 사람 열 주고 경상도 사람 하나와 안 바꾼다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그거 무엇에 쓰겠어요? 부산에서 내가 `이제 부산을 거쳐 전라도로 행차를 할 텐데 전라도로 가게 되면….' 하면서 얘기하니깐…. 전라도라는 명사도 좋거니와 선생님이 가는 날이 오늘이 18일인가요, 17일인가요? 오늘이 며칠인가요? 「18일입니다」 18일이라서. 18일은 재출발 수 8수라서 좋고 `라도'도 좋고, 또 거기에 `주'도 좋은데 `광주'라고 했습니다. (웃음) `광주(光州)'의 `광'자는 무슨 `광' 자예요? 「빛 광(光)」 빛 광. 어두울 광 자지요? (웃음) `놀랄 광' 자예요, 놀랄 광 자. (웃음) 어두워서 놀라 자빠지는 `광' 자라구요. 무슨 광 자라구요? 「'빛 광' 자요」 하하 이거 광주(光州)라는 말은 자유 동산에서 춤추고 놀 수 있는 고지란 말이예요. 명사는 아주 그만이예요.
그래서 큰 기대를 갖고 왔습니다. 아, 통일교회 우리 아가씨, 우리 신랑분들이야 뭐 전라도 주인임에 틀림없다구요. 그래, 많은 기대를 가지고 와서 척 보니…. 여기 올 때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해 가지고 네 시간 걸리는 걸 그저 두 시간에 왔다구요. 두 시 반에 떠나 몰아 가지고 와 보니까…. 내가 이 집 찾느라고 저 도청 앞에 가 가지고…. 그 앞에 무슨 경찰국인가요? 이러고서, 전라도에 와서 내가 얻어먹는 골목대장 노릇 한번 해봤다구요, 차를 타고서. 그렇게 되었어요.
이 사람들은 아주 타산주의자예요. 비교의 지능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손해나는 건 한푼, 일 초도 아끼는 사람들이예요.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대해서는 안 되게 생겼다는 말이예요. 그래요? 그런데 말이예요, 그런 건 작전시대에는 필요하지만 말이예요, 평화시대에 그러다가는….
그래서 이렇게 죽 해 가지고 타고 왔다구요. 그런데 이번 코스가, 짚차 타고 달리는 코스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짚차 타기가 힘든 걸 알아야 돼요. 진짜 타 보라구요. 뭐 오만가지, 뭐 사지백체 세포까지 춤을 추고 그런다구요. 좋아서 춤을 추는지 모르지요. 따다다다다…. 아주 거 박자를 잘 맞춰요. 내가 그걸 볼 때, 내가 고무 다리 위에 타고 앉아 있으니 할 수 있어요? 이놈의 궁둥이가 어찌나 박자를 잘 맞춰주는지…. (웃음) `이건 뭐 하나님이 그렇게 놀아나는 박자에 인간들이 그렇게 맞추면 백 퍼센트 성공은 문제없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 왔다구요. (웃으심)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왔다구요.
그래 가지고 왔는데 온 첫맛이 아주 전라도 감 먹던 맛이예요, 전라도 감. 그래서 아주 떨떨 해 가지고…. 손님이 오자마자 자란 법이 어디 있느냐 말이예요. 그렇게 손님 대접하는 법이 어딨어요?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고 말이지요, `들어와서 주무십시요, 주무십시요' 하더라구요. (웃음) 자면 뭐 잡아먹을지 어떻게 내가 알아요? (웃음) 처음 가서 누가 거 자겠어요? 몽둥이를 그저 준비해 놓고 문에 지켜 서 있지요. 그리고 내가 뭐 자러 왔나 이거예요. 잘 것 같으면 어젯밤에 잤지요. 자라고 이불을 펴 놨으니까 억지로 가서 들이 자는 거예요. 그저 한 여남은 시간 자라는 거예요. `아버님, 열 시간만 자게 해주소. 누가 깨우면 그 녀석의 다리가 떡 붙게 해서 못 깨우게 하소' 그런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내가 자다 깨 그럭저럭 나와서 좀 얘기할 팔자가 되긴됐지만서도…. 지구장을 사정없이 기합을 주려고 하는데, 기합을 줄까요? 잘못했으니까 줄까요, 주지 말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에서 공문 낼 때 전라도 여기까지 와 봤어요? 와 봤나 말이예요. 거리를 보고 대개 시간을 넉넉히 잡아요, 넉넉히. 그다음에 전라도 이 광주에 있는 패들은 말이예요, 여기에 뭐 버스 영업소가 있을 것 아니예요? 있지요? 「예」 가 가지고 한마디면 된다구요, 전화로 한마디. 부산서부터 광주까지 버스로 달리면, 직행 버스로 달리면 몇 시간 걸릴까요? 또 트럭으로 한번 달리면 대개 몇 시간 걸릴까요? 그러면 짚차로 달리면 몇 시간 걸리는지 대번에 나오는 거예요, 대번에. 그럴 거 아니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이 녀석들 그렇게 안 하게 되면 그냥 줄을 세워 가지고 멋지게 기합을 주려고 해요. 기합 줄까요? 기합 줘요? 줄까요, 말까요? 요것 보라구요, 손해가 나겠으니까 가만 있구만요. (웃음) 조금만 이익이 나 보라구요. 조금만 이익이 날 것 같으면…. 주지 말까요, 어떻게 할까요? 줄까요? 주지 말까요? 지금 내가 얘기하는데 대답을 못 해요. 여기까지 대답이 나오는데 체면상 대답을 못 해요.
이번 코스에는 광주가 아주 '놀랄 광' 자예요, '놀랄 광' 자. 아 이건 지구본부에 선생님이 오면 먼저 쓱 와서 인사하고 다 그래야 될 텐데, 이건 떡 내가 찾아와 가지고 `주인 계십니까' 해야 되니…. 주인 놀음 못 한 거라구요, 전부 다 주인 노릇 못 했다는 겁니다. 오는 손님한테 망신당했으니 깨깨 오늘 그저 욕을 하고, 그래도 시원찮으면 그저 몽둥이를 갖다 마구 후려대고 싶다구요. 그렇다고 빗대서 그러라는 게 아닙니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내 다 잊어버릴거예요. 말하고 잊어 버릴께요? 「예」
이제 전라북도에 가서 전주 가서 그런 얘기 할까요? 난 잊어버렸는데 여러분들은 어때요? 해요, 말아요? 약속을 하자구요. 대전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할까요, 말까요? 서울 가서 그런 얘기를 할까요, 말까요? 대답을 해요. 할까요, 말까요? 「하지 마십시오」(웃음) 그렇게 하자구요? 「예」 나하고 여러분하고 약속하는데 협회장이 얘기하면 난 모르겠다. (웃음) 얘기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협회장보고도 얘기하지 말라고 그래요? 선생님이 명령할까요? 「예」 그거 얼마나 거북하겠어요? (웃음) 명령할 것이 많은데 그런 명령까지 해야 하니 이거 얼마나 신세가 딱하냐 말이예요. 그쯤하면 됐다 말이예요, 이제.
자, 얘기 한참 하다가 떫은 전라도 감이 말을 물어 가기를…. 여기에서 무슨 산이 제일 높은가? 「무등산」 무등산 꼭대기에 갖다 놨어요, 지금. 거기까지 왔으니 이제 돌아가자구요.
그래, 최후에 남을 주의는 천주주의입니다. 통일의 무리는 그런 사명과, 그런 책임에 불타 가지고 양손에 통일의 큰 깃발을 들고 행군을 시작하는 거예요. 이 행군의 대열 앞에 있어서는 아까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행군 목표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행로에는 그 목적에 대비되는 그런 시련과 그런 환경이 겹겹이 싸여 올 것입니다. 이 일을 백 년에 성사하려면 백 년에 비등한 시련이 필요할 것이요, 백 년에 성사할 것이 기반의 한계라 할 때 백 년 한계의 이 연한을 만일에 어떠한 최고 사령관이, 명사령관이 있어서 십 년으로 단축시키겠다 하는 결의를 하고, 맹세를 하고 나섰다 할진대는 그 환경에 부딪치는 시련은 십 배로 가중해 부딪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지요? 「예」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인류를 가만히 바라보게 될 때, 인간들이 지금 조급하게 고대하는 것은 이상의 세계, 하나의 세계, 자유의 세계, 평화가 깃들어 행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의 동산입니다. 어느누구나 마음으로 하루에 한 번 이상 그러한 세계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뜻을 품고 생각하고 다닌 사람으로서 어느 선한 이념을 생각하면서 일념을 세워 세계에 공헌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사람은 시간을 다투어 분을 다투어 그러한 날, 그러한 세계, 그러한 자유의 천지를 마음 모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지요? 「예」
그러니 전인류가 조급하게 고대하는 그 목적은 하나입니다. 수많은 도의 세계에 있어서 지금까지 고통을 받아 지치고 허덕이는 찰라에 있어서 `아이 자리에 어서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한 발짝 가기에도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서 주저하면서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그러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왜 10년 전에 그러한 자유의 천지가 못 왔던고?' 라고 생각할 거예요. 10년 전에 자유의 천지가 왔다면 그 사람들은 낙담과 낙망을 하지 않고, 승리의 자유동산에서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면서 천하에 부럽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자유의 천지가 오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절망 가운데 비련의 심정으로 탄식하다 말국에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당장에 그래요. 오늘날의 한국 정세를 보든가 세계의 실정을 바라볼 때, 세계는 모두 환란의 와중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고 자유의 그날, 자유의 천지, 자유의 한 세계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나할것없이 누구나의 공통적인 욕구로 돼 있으니 `그날이 빨리 와라! 내 아들딸 하나쯤 희생시켜서라도 빨리 오게 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 같은 나라에서 나라를 마다하고, 이 나라의 이념을 위하여 전진하는,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어떠한 무리가 있다 할진대는 그들은 모두 희생을 무릅쓰고 투쟁하는 거예요. 국가나 개인이나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 자신들을 가만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 모인 무리는 불과 몇백 명밖에 안 되는 소수의 무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장하고 나서는 그 이념과 그 목적은 천주적인 이념이요, 천주적인 목적입니다. 오늘날 그 목적을 잡아 끌어 가지고 감아 세워서 `과거의 한을 풀었노라. 맹세와 결의로써 사모하던 승리의 한 날을 차지했노라! 천상천하에 내 이 승리의 영광을 들어 모든 만민에게 찬양거리로 돌려 주고 싶고, 만천주에 혹은 하늘에 영광으로 돌려 주고 싶고, 천주 만대의 후손 앞에 돌려주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승리의 시간을 얼마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바랐나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 바랐어요, 안 바랐어요? 「바랐습니다」
옛날에는 자전거만 타고 가도, 지금부터 한 이십 년 전만 해도 자전거를 근사하게 타고 가게 되면 사람 대해서 괜히 으시댔다구요, 조금 빠르다고 말이예요. 그다음엔 자동차, 자동차가 나오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형편없거든요? `빵빵' 하면 저 돌짝 옆에 가 가지고 발도 못 굴러대요. 스톱이예요. `빵빵' 하고 그저 `옆으로 가' 하면 `예' 하고, `발 돌리지 마. 잘못 돌리다가 비틀어지면….' 그랬다구요. 대개 차를 타고 `빵빵' 해보라구요. 옆으로 후다닥 가게 되면 발도 못 구르고 스톱 해 가지고 `제발 잘 지나가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없나…. (웃음) 기도 안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웃으심)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더구나 좁은 곳 같은 데야 형편없지요. 전부 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지요. 자전거가 조금밖에 없을 때에는 자전거 하나 가지고 뽐내고 들썩거리고 가더니 말이예요, 이젠 자전거 시대는 지나갔어요. 그렇지요? 그러니 빨리 자전거 시대는 들어가라 이거예요. 요즘에는 짚차…. 나도 물론 짚차로 왔지만 짚차가 휘─잉 나는 제트기 옆에 가 설 수 있겠어요? 이젠 자동차 시대는 지나갔다구요. 이젠 인공위성, 유도탄 시대입니다. 오늘날 제트기가 인공위성을 따르겠어요?
나는 생각하기를, 마음의 인공위성을 타고 한번 대천주 여행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트기와 인공위성보다 더 빠른 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인공위성입니다. 이제 마음의 인공위성 시대가 온다구요. 그런 시대니 얼마나 빠르겠어요. `빨리 와라, 빨리 빨리. 야, 달려간다. 빨리 가자' 이거예요. 그거 왜 그래요? 그렇게 빨리 와서 뭘할 것이냐? 한 번 가서 안 되면 두 번 가고, 두 번 가서 안 되면 세 번 가고, 세 번 가서 안 되면 네 번 가고…. 옛날에는 한 달 걸려야 갔던 것이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 갔다 와도 넉넉하다구요.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도 안 되던 것이, 하루에 한 번씩 왔다갔다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 달에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게 뭐냐? `평화 평화, 자유 자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세계' 하면서 이 나라 저 나라, 전부 왔다갔다 왔다갔다 자꾸자꾸 하면, 한 번 왔다 가고 두 번 왔다 가고, 시간을 단축해서 왕래가 빈번하면 문화교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적인 감정이 통할 수 있는 평면적인 토대를, 집을 짓는 토대를 다 닦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보라구요. 요즘에 그 춤을 무슨 춤이라고 그러던가요? 엿가락 춤이라는 춤이 있지요, 엿가락 춤? 엿가락인데 그것이 겨울에 얼은 엿가락이 아닙니다. 따뜻한 구들방에서 비벼 놓은 엿가락이예요.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그런 춤을 추는 걸 뭐라고 그러던가요? 그게 뭐예요, 이름이? 뭐라고 그래요? 20세기의 문명의 춤이지요, 그게? 그 춤도 춤인가요? 그 춤은 어느 춤이예요? 요 젊은 녀석들, 아 뭐 이건 안 돌아가는 게 없대, 좌우간. (웃음) 그걸 내가 볼 때, `야, 세상에 춤을 추는데 사지백체가 동서남북으로 놀아나는 입체적인 춤을 추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구요. 그건 뭐 마음대로 추더라구요. 손가락을 머리에 올리고 그저 대가리를 밟고 추면 그냥 춤이예요. 그건 오구육구탕 춤이다 그거예요. (웃음)
집터를 닦으려면 왜말로는 지나라시(じならし;땅고르기)라고 하지요? 그걸 전부 다 섞어 가지고 그저 위가 아래고, 아래가 위가 되게 다 메워가지고…. (웃음)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전세계의 청년, 청소년들은 전부 다 일어나라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오늘날 지금까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민주주의 문화야 간 곳 없고, 공산주의 문화야 간 곳 없다구요. 부딪치면 꼼짝 못 하는 거예요. 10대 소년들 앞에 지금 대한민국도 손들고, 미국도 손들고, 블란서도 손들고, 공산당도 손들어 온다구요. 그걸 알아요? 그걸 알아요, 여러분들? 그거 뭐 언제나 지나가서 그렇지요. 그거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그게 집터 나는 거와 같아요. (웃으심) 집터 날 때 동네 늙은이들 젊은이들이 모여 얼마나 요동해요? 그때가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트위스트 춤은 무슨 춤으로 변하느냐? 무슨 춤으로 변하느냐 하면 천지 춤으로 화한다는 것입니다, 천지 춤, 하늘땅 춤. 청년들만 추면 되겠느냐구요. 청년들이 그렇게 추면 늙은이도 추고 하늘도 추고 땅도 추고 그러면 됐지요, 뭐. 그럴 수 있는 천지 춤을…. 내가 이제 아마 그런 명사를 하나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내가 그런 춤을 하나 만들어서 한번 멋지게 바람을 일으켜야 되겠다구요.
통일교회에서는 벌거벗고 춤춘다는 소문났지요? 벌거벗고 한번 춤춰봤으면 좋겠다구요. 얼마나 멋지겠나요? (웃음) 그게 아마 유행될지 모르겠다구요, 춤이라면. 여기에 수만 명이 와 가지고 구경하고는 눈이 빠지도록, 혓바닥이 빠지도록 홀딱 빠져서 `밥을 안 먹어도 좋다. 뭐 어때도 좋습니다. 죽어도 좋다. 아이고, 좋다 좋다' 이럴 수 있게끔 벌거벗고 춤추게 하면 그거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그만하면 세계에 바람이 불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올지 모른다구요. 그런데 춤을 내가 한번 못 춰 봤어요. 선생님이 벌거벗고 추면 얼마나 고상하겠어요? (웃음)
요전에 본부교회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간증을 하는데 말이예요, 춤춘다고 해서 주목해 보기 위해 들어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춘다는데….' 그래 가지고 그 아주머니가 쓰윽 와서 감상을 했다구요. `허, 협회장 다리가 저렇고 눈이 움푹한데 거 한국산 외국놈 같다' 하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떡 와 가지고서 `저 다리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저 몸뚱이로 춤을 추면 그 얼마나 멋지고 볼 게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거예요. (웃음) 하여튼 통일교회는 뭐 다 있다는 말이예요. 별 소문이 다 있어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말이예요, 저기 이러던 아가씨가 하하하 하는것 같다구요. (웃음) 부활하라구요, 부활,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그저 귀가 쫑긋해 가지고 못 듣는 것 다 듣겠다고 모가지를 빼고 이러고 있는데 그러라고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한 시간 지나면 피곤하지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맛있는 반찬을 만들려면 양념이 짠 것, 신 것 다 들어가야 됩니다. 그건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서…. `뭐, 선생님이 얘기하는데 트위스트 춤 설명하고 뭐 못 된 것 설명하는데, 이거 와서 뭐람?'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딴 사람은 다 듣고 좋아서 웃었는데….
자, 그러니까 제트기 시대를 지나 가지고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바쁘다 못 해 타고 갈 게 없어서 발로 뛰어간다구요. (웃음) 차 타는 시간이 아깝다는 거예요. 차 타러 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야, 이 사람들, 차 타러 나가는 시간이 바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뛰어서 가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저 충주에서 서울까지가 320리인데 하루에 달려갔어요. 그만하면 됐지요, 뭐. 그런 사람이 몇 명인가? 상당히 많지요? 그저 한 320리를 후다닥….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루 2백 리는 보통입니다. 여러분 전라도에는 그런 사람 없지요? (웃음) 따라갈 수 있어요? 고생을 많이 하는데 고생을 할 게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게 뭐예요, 이게? 입이 늘어져 가지고…. (웃음) 선생님은 그러면서 욕을 해도 괜찮지만 여러분들은 욕하면 안 돼요. 선생님은 욕해도 된다는 말이예요. 욕해도 되게 돼 있지요? 「예」 그런 조약이 다 돼 있어요. (웃음) '에이, 선생님도 뭐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런 내가 욕을 할 거라구요.
바쁜 생활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본부에 척 있어 가지고 명령하기를…. 선생님도 여기 전라도에도 그저 하루에 몇 번 왔다갔다하고, 여러분들 집집을 돌아다니고 싶고 다 그런 거라구요. 가서 빵도 얻어먹고 싶고, 조밥도 얻어 먹고 싶고, 보리밥도 얻어먹고 싶고, 강냉이도 얻어먹고 싶고, 보리죽도 얻어먹고 싶다구요. 별 게 다 있을거라구요. 뭐 팥죽도 얻어 먹고, 단 것을 그저 한 천 개라도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고, 이래 가지고 그저 다니고, 또 다니고 다니고, 또 다니고 싶다구요. 그렇지만 몸뚱이가 한 개밖에 없다구요. 마음이 그래요, 마음이. 바쁘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 할 이념적인 무대는 선생님이 닦아야지요? 이념적인 무대를 선생님이 닦아야지요? 이 무대의 터를 선생님이 다 닦아야지요? 「예」 여러분들은 앉아서 구경하구요? (웃음) 어떻게 해야 돼요? 어지간히 이젠 닦여졌다구요.
그러니 오늘 여러분이나 나나 얼마나 바빠요? 바쁘지요? 바쁘지요, 마음이? 바쁜가요, 안 바쁜가요? 「바쁩니다」 바쁜데 왜 가만 앉아 있어요. 서서 야단해야지요. 나는 바빠서 서서 야단하잖아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야단 안 하면 안 될이만큼 바쁘다는 말이예요. 한시간에 말을 그저 한 몇 억 마디 퍼부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어디 혓바닥이 그렇게 놀아 줘야지요. 여러분들에게 암만 빨리 떠들어도 알아들어야지요? 나는 말했는데 못 알아듣거든요? 할 수 없으니까 얼마나 바빠요? 바쁘단 말이예요, 바빠. (웃음) 말도 바쁘고, 행동도 바쁘고, 밥 먹기도 바쁘고, 자기도 바쁘고, 변소 가기도 바빠요. 지금 때가 그런 때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서울 가면, 내려가면 그저 편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거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여러분도 그런 걸 느껴 보지 못했을 거라구요. 참 바쁘다구요.
선생님의 눈에는 대한민국은 안 보입니다, 대한민국.`공산당하고 민주주의하고 케네디하고 흐루시초프, 어디 가니 이놈들, 어디 가니? 너 어디 갈 거야? 응,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구나. 이리 나와' 이걸 생각한다구요. 한번 내가 그물을 치고 멋있게 막 때려서 몰아대면 어디로 도망갈까요? 여러분들 그런 생각들 해봤어요? 그물을 치고 그저 벼락같이 몰아대면 어디로 도망갈까요? 대항할까요, 도망갈까요? 선생님은 그런 공상도 합니다. 공상이 아니라 실상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도 많이 합니다. `요놈의 통일교회를 꽁무니에 달고 어디로 빠져 나갈까, 어디로 빠져 나갈까?' 이런 생각 하는 선생님이니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할 거 아니예요? 그저 꽁무니에 달아매고 부딪쳐서….
잘 타 가지고 평야를 뭐 밤이든 낮이든 달리는, 태극호든가? 이름이 좋아요. 여기 태극호는 난 못 타겠더라구요. 털커덕 털거덕…. 나 그런 생각 안해요. 뭐 도랑이가 있든 말든, 나무가 있든 말든, 바람벽이 있든 말든, 집이야 있든 말든, 도둑놈이야 있든 말든, 한바탕 냅다 뽑아 봤으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러다가 넓은 곳을 달릴 때야 `아이구, 좋아라!' 하고 탄 녀석들은 다 그럴 거예요, 통일교회에 탄 녀석들도 그와 같다구요. 그렇지만 들어간다구요. 들어가는데, 굴로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여유가 없어요. 굴이 좁아서 말이예요, 살가죽이 떨어진다구요. 그래도 달리는 거예요. `아이고, 저고리가 떨어졌구나' 그래도 가는 거예요. 그렇게 바쁜 사람이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이렇게 바쁜 사정과 바쁜 신세에서 춤을 추고 허덕이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그 이념이 천주주의 이념에 들어간다 이거예요. 또, 그날과 그때가 오기를 수많은 인류와 천상천하의 만유의 존재가 바라고 있다구요. 그러니 안 바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피곤해서 목이 터져서 피가 나왔으면 나오고 그저 이 놀음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바쁘지요? 상당히 바쁘지요? 상당히 바쁘지요?
누가 그렇게 바쁜가요? 선생님이 그렇게 바쁘지요? 대답들 해봐요. 안 바빠요, 바빠요? 바쁘지요? 「예」 바빠요, 안 바빠요? 「바쁩니다」 바쁘지요? 「예」 선생님만 바쁘면 되나요? 「저희들도 바쁩니다」 여러분들도 바빠요? 「예」 그렇게 바쁜가요? 바쁜 사람이 이렇게 앉아서 가만히 있어요? (웃음) 주먹을 이래야지요. 발을 이래야 돼요. 상대적으로 바빠야지요. 할머니! 할머니도 바쁘고 그래야 돼요. (웃음) 아, 물 먹기도 바쁘다구요.
지도자의 입장은 어떠하냐? 남보다 더 잘 먹이고 싶고…. 뭘 어떻게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고 싶다구요? 지금 무슨 말을 했어요? 선생님이 지금 무슨 말을 했어요? 「저 말입니까?」 아, 이 청년 말이야, 넥타이맨 청년. 「저요?」 「남보다 잘 먹이고 싶고….」 아니 너 말이야, 그뒤에. 저 사람 말이야. (웃음) 못 들었거든.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들었습니다」 그럼 왜 대답 안 해, 왜?
지도자의 입장은 어떤가 하면 말이지요, 따르는 사람을 남보다도 더 잘 먹이고 싶고,더 편하게 해주고 싶고, 남보다 더 좋게 만들어 주고 싶은 겁니다. 그것이 지도자입니다. 그렇지요? 자기는 고생을 모른다구요.
그런데 그런 말들은 평화 시대에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 시대에 필요한 거라구요. 만약에 그 자리에 가만 두었다면, 지금 당장에는 그곳이 피난처일지 모르지만 몇 달 후에나 몇 년 후에 그 자리에 있다가는 벼락을 맞습니다. 그것을 아는 지도자라면 그 자리에 있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도망을 치게 해야지요? 그렇지요? 「예」 그게 사랑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은 모르지만 지도자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운명이나 그 사람의 앞길에 있어서의 위험이 있을 때,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위험한 지대에 있게 될 때에는 필요한 가치에 대등한 기합을 줘서라도 그 자리를 모면하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예를 들어 모세가 바로 궁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빼낼 때 그 무지무지한 10재앙과 대결을 한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생명을 각오하고 바로 궁중에 나타나 당당히 하늘을 위하여 변호하고, 민족 편에서 민족의 고난과 수난을 염려하면서 투쟁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로의 수중에서 끌어내 광야에 나아가게 될 때 모세는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 지금까지 고생한 이 민족을 고생시키는 모세 마음이 아팠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400년 동안 수많은 고역 가운데에 있으면서 피폐한 신세에서 허덕이는 그 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에, 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고, 안식의 한 날을 맞이하여 편안한 자리에서 남과 같이 생수를 마시게 하고, 남과 같이 먹고 싶은 모든 진수성찬을 먹도록 베풀어 대접하고 싶고, 편안히 안식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지도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가야 할 사명적인 책임과 당면한 광야를 놓고, 생사의 기로에서 생과 사의 결단을 지어야 할 이러한 비장한 마당에 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는 모세에게 있어서는, 그들에게 먹으라고 권고하지 못하고 먹는 것까지 빼앗아 집어던져야 되었고, 입은 옷까지도 방해가 되니 벗겨 버려야 되었고, 짊어진 지금까지의 군량, 이 모든 것도 집어 던져야 했습니다.
이러한 처참한 명령을 해야 할 입장에 선 모세는 인정(人情)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도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할 수 없는 일이예요. 그렇지만 마음의 그 심한 고통이 자기의 마음을 점령해 들어오고 아프게 조여 들어오더라도, 불쌍한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60만대군이 전멸할 것을 아는 모세라 할진대는 자기의 팔을 자르고라도, 자기의 가슴에 칼을 꽂고라도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는 권고의 말씀으로 '네 자리에서 기동을 하여 전진하라!' 하는 명령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던 모세였던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 이 말이예요.
지도자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사태가 급박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400년 동안 수고하던 바로 궁중보다야 아무래도 낫겠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지도자의 서릿발 같은 최후 통첩의 명령이 내릴 때, 진군하라는 명령이 나오게 될 때, 그 명령 앞에 일치단결하여 그 자리에서 기동을 하기 시작했던들 그들은 순식간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복귀해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쳐서 다리 아픈 것을 못 참고 입을 벌려 하는 말이 `모세는 무심하지. 동정도 없지' 이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 목석 같은 사람' 그런 말을 하다가 그 환경이 점점 심해가니 `저 목석 같은 무지한 자식' 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오죽 안타까우면 바로 궁중에서 400년 동안 죽어가는 60만 대군을 끌고 나와서 광야에 갖다 놓고 시내산에 40일 동안 무얼하러 올라갔던고? 편하려고 올라간 줄 알아요? 무엇 때문에 40일 금식을 했던고? 최후의 각오와 최후의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 앞에 불복종하니 망할 것을 아는 모세는 `이들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더라도 망할 길을 피해 가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간곡하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신세를 안 이스라엘 민족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라는 것은 고독하다는 거예요. 남 모르는 가운데에 그 민족 앞에 다가오는 시련과 폭풍우 앞에 시달리면서 그 모든 거센 환경의 원수를 대하여 홀몸으로 가려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는 자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쌍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못나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지도받는 이스라엘 사람 때문에 불쌍한 것입니다. 따르고 있는 민족이, 알아 주어야 할 이 민족이 알아줘야 할 정경을 몰라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하늘은 `이놈들아!'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동정하여 모세를 보내 권고함에도 불구하고, 천신만고 수고한 심정에 사무쳐 최후의 선언과 같이 절규하는 그 모세의 부르짖음 앞에 민족이 반항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하늘인들 그 민족을 앞에 내세워서 끌고 갈 수 없는 입장에 서는 거예요. 모세를 내세워 권고하는 하나님의 마음, 모세가 간곡히 외치던 마음, 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외치던 간곡한 모세의 심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사무치게 될 때에, 모세의 외침이 복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로 변해 전부 때려부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명령하기를 가나안 복지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이고이 뽑아서 내보낸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 60만 대중이 광야의 독수리 밥이 된 처참한 정경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재촉하고 싶었을까요? 모세를 조종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그저 지금과 같이 입을 다물어야 되겠나요, 입을 벌려야 되겠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입을 다물어야 돼요, 벌려야 돼요? 「벌려야 됩니다」 틀림없이 벌려야 돼요.
아버지께서 6천 년 동안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신 그 비참한 정경을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어도 모를 것입니다. 4천 년 복귀의 한스러운 노정을 거치고 거쳐 선민 이스라엘을 품고 부대끼던 아버지입니다.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야곱, 모세 시대를 거쳐 4천 년 역사를 붙안고 부대끼던 아버지예요. 이스라엘이 슬픈 날을 맞이하면 그날은 아버지의 슬픈 날이었습니다. 슬픈 민족의 사정은 아버지의 민족적인 사정이 되었고, 그 민족의 처참한 광경은 전체가 아버지의 처참한 광경으로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책임진 그런 하나님이 되었던들 무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하나님이 된 것이 원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내적인 원수들은 손을 대고 하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외부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원수들은 조롱하나니 그 조롱의 아픈 상처를 더듬어서 쓰러져 가는 이 민족을 수습하기 위해 애달파하며 바로 궁중에서 몇억천만 번 눈물 흘리는 사정에 처했던 모세를 누가 알아주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외로우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몰라줘도 몰라주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당해야 할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배반을 해도 배반을 그대로 받으면서 그들을 위해 또 눈물지어야 할 하나님입니다. 이런 사정을 누가 알아주었느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민족들을 거치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거쳐 그래도 울타리를 치고, 그들을 맞기 전에 선지자를 대신 탕감의 제물로 하여 한 세기 세기, 한 시대시대 넘어갈 적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당장에 원수의 조롱 앞에 사라져 멸망해야 할 때마다 하늘은…. 그들이 매맞는 대신 하나님은 택한 자를 세워서 맞게 하는데 그 매는 하나님이 맞는 거예요.
그리하여 수많은 역사노정 위에 선지선열을 보내 민족의 울타리로 삼기 위하여 제물삼아 사라져 간 수많은 역대의 우리 조상들이 있음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물을 지을 적마다 하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슬픈 것이요, 그들이 고통을 당할 적마다 이 민족에 대한 저주의 한이 마음에 사무치지만, 복수하여야 할 원수임에도 억제하여 이들을 찾아와야 할 하늘의 사정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의 신도들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불쌍하신 하나님이예요. 또한 하늘의 천국이념을 바라보고 지도하는 하늘의 지도자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그렇다고 오늘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 앞에 어떠한 지도적인 책임을 짊어졌다고 동정받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구요. 좋은 자리에 있으면 선생님이라고 할 줄 알아요. 만민이 따르고, 만민이 추앙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섬길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줄 알아요.
예수님 당시의 예수님의 일신을 두고 보더라도 그 시대적인 정상으로 보면, 모든 환경이 유리하게 되었으면 예수의 제자가 안 될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살인 강도까지 예수를 환영하겠다고까지 했고, 세리와 창녀까지도, 어느 누구나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불리해 들어가고 하나 둘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무리가 생겨 예수를 배반하는 무리가 많아지게 될 때, 그 무리 앞에 예수를 뒤로 두고 가는 무리를 붙드는 무리가 얼마나 많았던고! 벳새다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 여 무리를 먹이던 그때에 진탕 먹고 좋다고 찬양하면서 당신이 메시아라고 신봉하던 그런 무리들은 다 어디 갔어요?
오늘 여기 전라남도에서 온 여러분에게 말이예요, 식구라는 명사를 가진 여러분들에게 내가 여기에 좋은 말 하러 오지 않았어요. 좋은 말 하러 오지 않았다구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 문선생 일신의 어떠한 한을 풀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것은 민족적인 한이요, 인류적인 한이요, 천주적인 한입니다. 이 한을 누가 대신 호소해 줄 것이냐? 피어린 분함과 원통함의 이 한은 역사적인 한이요, 시대적인 한이요, 미래에 사무치는 무한한 한인데 누가 이것을 호소해 줄 것이냐?
무수한 무리들을 모아 놓고 비통하고 절통(切痛)스러운 호소의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내 자신을 놓고 볼 때, 한을 대변해 선 내 자신을 놓고 볼 때, 이 놀음은 세상 사람들이 어떤 돈 받고 하라고 해도 못 할 놀음입니다. 값을 쳐서 어떠한 조건을 따라 움직이는 그러한 자리에서는 못 할 놀음이예요. 생명으로 부딪치고 심정으로 부딪쳐 내가 아니면 망하는, 내가 아니면 둘 다 망하는 입장에 설 것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고, 살아야 할 운명의 길을 우리 앞에 놓고 하늘이 축복하고, 민족이 축복하고, 인류가 축복하는 자리에 선 연고로,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이러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을 알아 합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여러분의 스승도 지금에 와서 스승이라고 모셔 주는 여러분이 있는 건 고맙지만 옛날에 나는 스승이 못 되었었습니다. 옛날에 나는 하나의 죄수였었습니다. 살인 강도와 쇠고랑을 같이 차고 형무소의 문을 찾아 들어갈 때마다 비장한 눈물과 더불어 하늘 앞에 맹세하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기억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물 가운데에서 나는 모세가 눈물 흘린 것을 중심삼고, 예수가 눈물 흘린 것을 중심삼고 천지가 그 눈물 앞에 어리었던 그것을 나는 잊지 않아요. 그때 맹세한 신념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내가 비참한 자리에서 이슬같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철석같은 내 신념과 내 뜻은 하늘의 심정을 통했으니 그 심정을 빼앗아 갈 역사적인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가고 가다 보니, 죽음을 각오하고 가다 보니 결국은 행복이 남아진 오늘날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인간 중의 맨 말단의 행로에도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어요. 여기에는 농민의 아들들도 왔을것이고, 노동자의 아들들도 왔을 것이고, 혹은 과부의 아들이던 그러한 분도 왔을 것이고, 지금 당장에 자기 자신이 어떠한 지역에 있어서 자기의 명망을 세우기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그런 무리의 자식들도 왔을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의 친구 되기를 원하였던고! 이론적으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싶었고, 하나님은 불쌍한 자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불쌍한 자의 어머니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연고로 우는 자의 친구가 되고 싶었고, 탄식하는 자의 탄식 자리에 찾아들어가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놀음 해왔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 땅 위에 있어서 유린하여 민족의 피를 팔아먹는 그런 무리들에게는 이를 악물고 원수를 갚아야 하지만 참는 거예요. 내가 40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젊은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 이것을 하늘땅의 철창으로 치더라도 나는 간다 이거예요. 피 흘리며 승리의 날을 고대하면서 역사는 선을 보전하는 것이 천리이고, 하늘은 선한 자녀들이 갈 길을 인도하는 것이 천륜인 것으로 알고….
이러한 과제 앞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구를 위해 살아갈 것이뇨? 누구를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될 것이뇨? 현세의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우리의 선조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우리의 천추만대의 후손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원치 않는 자리에서 피땀을 흘리고 기름땀을 흘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참고 참는 노정에 있어서 내 아버지를 찾아 내 아버지의 심정 앞에서 편히 모시기 위하여 애달파 하면서 허덕이는 초췌한 모습이 있다면 그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망하지 않으니 그것을 따르는 사람도 망하지 않고, 그의 후손도 망하지 않는 것을 나는 알아요.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적마다 하늘은 살 길을 마련해 두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3천만 민중을 구원해야 할 사명과 민족적인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에, 이 민족을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세계의 문화 사상에 있어서 우방 국가 앞에 출중한 민족이 될 수 있겠느냐? 이 세계를 위하여 정성을 많이 들이고, 이 세계를 위하여 눈물과 피땀을 많이 흘려라 이거예요. 이게 철칙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이념은 최후의 천주주의의 이념을 품고, 생활은 부모의 심정으로 하고, 행동은 종의 몸뚱이로서 눈물과 피땀으로서 이 땅을 붙안고 인류를 붙안고 하늘땅을 붙안고 가야 합니다.
채찍을 맞더라도 그 매는 나 한 사람이 맞는 매가 아닙니다. 3천만을 대신하고, 30억 인류를 대신한 거예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하여서는 수천억의 인류를 대신한 것입니다. 얼마나 거룩하냐 이거예요. 골고다 산정에 있어서,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고고한 예수의 한 몸이, 무릎을 꿇어 눈물을 흘리고 세 번씩이나 피땀을 흘려 기도한 그 기도가 오늘날 수많은 민족 앞에 불을 던지고 폭탄을 던질 줄을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예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눈물짓는 기도, 갈보리 산상에서의 눈물짓는 기도, 피 흘리는 놀음,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의 죽음의 놀음이 없었던들 기독교는 벌써 로마제국의 400년 박해시대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예수는 자기의 몸을 가꾸기에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가꾸기에 노래하지 않았어요. 체면이야 위신이야 어떻게 되든, 남자의 위신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일신은 가나니, 거룩한 땅 거룩한 곳에서 죽나니,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권한이 역사와 더불어 같이 생동하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 마음을 느끼면서 그는 엄숙히 자기 몸을 가꾸어 하늘 앞에 맡기고 왔다는 것을 알고 그랬기에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눈물 흘림이 없었던들, 그의 참다운 피흘림이 없었던들 부활이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교파적인 싸움 시대는 지나갔나니, 민족이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이 판국에 오늘날 민족적인 운명을 앞에 놓고 있는, 이 난국에 처한 오늘날의 통일교회 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부활의 한 날을 이루기 위하여 새로운 여명의 출전명령을 받고 암담한 곳을 향하여 우리는 행군을 시작하였나니, 가는 데는 지장도 많습니다. 원수의 철망도 많아요. 원수는 방어의 체제를 갖추고 있어요. 그렇지만 사체에 사체를 넘어서 달려야 합니다. 가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의 눈물과 더불어, 쓰러지더라도 예수의 피흘림과 같이 내 생명을 맡기고 `내 뜻대로 아니오니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뜻이라고 하는 것은, `천추만대 이 땅 위에 역사적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될 이러한 악당이 남아 있으니, 그들의 죄를 전부 다 벌하십시오!' 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예요.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가는 그런 숭고한 예수의 희생 앞에 하늘과 땅은 머리 숙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마저 거기에는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굴복하는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안다 할진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지금 이와 같은 마당에 있어서 가야 할 길이 바쁘고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 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을 이제 만났으니 무슨 말을 해야 될 것이냐? 죽어라, 죽어라 이거예요. 누굴 위해 죽느냐? 민족을 위해 죽고, 세계를 위해 죽고, 하늘땅을 위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죽어라 이거예요. 왜 그러냐? 바쁘기 때문이예요. 바빠요, 바빠. 바쁘고 바쁜 일을 다하지 못하겠으니, 하고 싶어도 못 다하겠으니, 죽음을 각오하고도 못 다하겠으니 죽음으로 끝마치자 이거예요. 끝마치고 돌아보게 될 때에 `내가 여기에서 내 있는 정성을 다 했노라! 하나님,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하늘이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나라에 공을 세운 그러한 전사들일지라도 싸우는 자리에서 훈장을 주는 법이 있어요? 전쟁이 끝나고 승리하고 난 후에 훈장을 주는 법이요, 그다음에 승리하고 난 후에 동참하지 못하고 죽은 자에게 훈장을 주는 법입니다. 그러게 돼 있지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상은, 여러분들의 사상은 승리하고 난 후의 영광입니다. 죽고 난 후의 영광이예요. 이런 각오하에서 철석같이 뭉쳐야 됩니다. 그러므로 가야 할 길이 바빠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개인을 무시했고, 가정을 무시했고, 종족을 무시했습니다. 외톨이가 되었다구요. 그렇지요? 외톨이지요? 선생님에게 친구가 있어요? 친구가 있나요? 외톨이라구요.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전부 다 반대하던 구신도의 족속들이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투쟁을 하고, 가정적으로 투쟁을 해 가지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는…. 몇 시예요? 얘기를 그만하면 좋겠어요, 더 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바쁜 뜻을 앞에 놓았으니 오늘날 여기 전라남도의 이 젊은놈들, 여러분들은 가다가 기운이 빠지거든 맥박을 짚어보라구요. 가슴을 짚어보라구요. 여러분들은 맹세할 때 언제나 가슴을 짚고 맹세하라구요. `이 맥박이 끊어짐과 더불어 청사가, 역사가 뒤넘이쳐지지 않는 한 내 맹세는 변할 수 없다' 이런 맹세를 하라구요. 맥이 빠졌더라도 가야 됩니다. 쉴 사이가 없는 거예요. 이 고동은 밤이 없어요. 밤이 있나요? 밤이 있어요? 「없습니다」 밤이 없어요. 낮이 있나요? 밤낮이 없어요. 쉴새없이 가야 된다구요.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리의 인생의 행로를 싣고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그러니 불쌍하지 않아요? 거 얼마나 불쌍해요?
이놈의 가슴이 놀라 죽을 것이냐, 기뻐 죽을 것이냐? 사고가 나서 원수의 칼에 맞아 죽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에 춤출 수 있는 가슴이 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불쌍해요? 여러분들, 하루라도 일분에 내 맥박이 칠십 몇 번 뛴다 하는 걸 느껴 봤어요? 느껴 봤나요? 하루 종일 수십 번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고생시켜 놓고도 인사도 한 번 안 하지요? 인사 해봤어요? 그러면 누구,누구, 누구를 위해서 가느냐? 「아닙니다」 크나큰 목적을 위해 가는 거예요. 이것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가야 됩니다. 그 길을 가야 된다구요.
자, 이제는 결론을 내리자구요. 얘기하려면 한이 없으니 수습해서 결론을 내리자구요. 가야 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고, 거기에다 편안하면 좋겠는데 싸워야 할 원수까지 등장하는 거예요. 하라고 가만히 놓아 두고, 가라고 가만 놓아 두지 않아요. `이 자식, 네가 갈래?' 하는 원수까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 발짝 가려면 열 발짝에 대등하는 원수가 칼을 들고 모진 흉악한 태세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큰일이라구요.
오늘날 우리들은 6천 년 역사를 좁혀 들어가니 6천 년 종적 역사를 내 일생에 현실적으로, 횡적으로 전개하여 여러분의 내적 생활면이나 외적 생활면에 있어서 그러한 투쟁 역사를 순식간에 뒤넘이쳐 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은 갈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필요한가요? 필요한가요, 안 필요한가요? 「필요합니다」 얼마만큼 필요해요? 요만큼 필요해요, 요만큼?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로. 그건 내 말이 아니라구요. 절대로 필요하다구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달리는 방향으로 내가 가야 됩니다. 가야 되지요? 가야 되지요? 「예」 가는데, 지금까지 선생님이 얼마만큼 싸워 왔나 보라구요. 개인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가정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종족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민족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그래서 그걸 다 제껴 놓고 개인적인 통일교회를 만들고, 가정적인 통일교회를 만들고, 종족적인 통일교회를 만들고,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통일교회를 만들었습니다.
통일교회가 통일하기 위해서는 영계부터 통일해야 됩니다, 영계부터. 여러분들 영계 알아요, 영계? 「압니다」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영계를 알아야 돼요. 영계를 통일해야 됩니다. 영계를 통일해야 돼요. 영계를 통일 하는 게 뭐 쉬울 거 같아요? 영계의 통일 없이는 지상의 통일이 없는 거예요. 오늘날 이 지상의 싸움이 참 힘들지요? 힘들지요? 그렇지요? 「예」 지상의 싸움이 힘들다구요. 그러면 영계의 싸움은 지상의 싸움보다 쉬운가요? 쉽겠나 말이예요? 쉽겠어요? 「어렵습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힘들다는 명사를 입을 열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고 있는데….
지금은 선생님의 제1차 작전을 하는 때입니다. 제1차 작전 계획에 있어서 40평생을 걸어 놓고 지금까지 싸우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 예수 당시에 있어서의 로마제국의 속국에 처해 있는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이 만약에 메시아를 모셔 가지고 일치가 되었더라면, 반드시 여기에서는 로마제국을 중심 기반으로 하여 기독교가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구요. 그런데 택한 선민이 예수를 추방했지요? 택한 이스라엘의 유대교가 예수를 추방했지요? 그렇지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추방하고 민족이 추방하니 어떻게 되었느냐? 로마제국 앞에 추방당해서 민족 반역자로 몰려서 죽어 버렸습니다.
메시아가 온 목적은 무엇이냐?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고, 메시아로서 온 자신의 목적은 무엇이냐? 메시아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지상천국을 완결하여 천상천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이념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늘 앞에 들어가지 못해요.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연고로 분립되어 있는 이것을 합성일체화하기 전에는 완전한 대상의 실체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 천리의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나라에는 남자만으로 못 들어가고 여자만으로 못 들어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예수가 왔다 간 후 2천 년이 되었지만 신랑 신부의 이름을 남겨 놓고 하늘과 땅이 합할 수 있는 실체적인 대신 존재로서 현현하기를 바라는 것이 재림이상입니다. 그래야 예수는 신랑이요 땅 위에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신부로서 비로소 어린 양 잔치를 거쳐 상대적인 이념을 결정지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본래 부모ㆍ처자ㆍ가정을 끌고 들어가야 할 이상세계예요. 그렇지요? 천국이 그렇다는 말이예요. 오늘날 기성교인들, 예수믿고 천당가자고 하는데 가 보라는 거예요, 어디에 가나.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다시 와서 이 땅 위에서 개인복귀완성의 기준을 터로 하여 복귀도상을 거쳐 나가려면 반드시 역사적인 해원을 해야합니다. 제1, 제2 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구약성경을 믿고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선조들과, 지상에 남아 있는 그 시대적인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한 후에 그 기반 위에서 승리라는 두 글자를 세워 가지고, 사탄 등에 거꾸로 붙여 놓아 가지고 비로소 예수 중심한 새로운 혈족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의 아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제1 이스라엘, 제2 이스라엘, 제3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등극하여 만유 세계 앞에 비로소 어버이로서의 위치를 찾아야 했던 것을…. 열두 제자는 열두 아들입니다. 그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확실히. 그거 다 들어두라구요. 모르겠으면 지구장한테 물어 보라구요.
열두 아들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적인 기반의 해원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열두 아들이 배반한 것입니다. 민족적인 대표인 열두 아들을 세우려면 이스라엘 민족을 예수의 장중에 두고, 유대교를 예수의 품에 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야 열두 아들을 효자 효녀들 앞에 왕자 왕녀로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민족이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여, 환경이 불리하니 열두 제자들이 전부 다 야반도주해 버렸습니다, 이놈의 자식들이. 그래도 그 가운데에 세 제자라도 남았어야 했습니다, 세 제자라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믿고 3년 동안 천신만고하여 그들의 종살이를 해 가지고 그들을 길렀습니다. 그들이 울 때 눈물을 씻어 주고, 굶주릴 때 먹여 주고, 헐벗을 때엔 입혀 주었단 말이예요. 나그네 되어 다닐 때 친구가 돼 주고, 모든 편의를 봐 줘 가지고 제물과 같은 생활을 하여 길러 놓았던 열두 제자가 심정을 배반하니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세 제자를 수습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게 될 때 이들은 전부 다 예수를 배반하는 자리에 있어서 자기 몸을 가꾸기에 급급했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는 누구예요? 인류의 참부모지요? 「예」 예수는 우리의 누구예요? 우리의 누구예요? 참아버지지요? 「예」 아버지 아니예요? 아버지지요? 「예」 그렇다구요. 아버지께서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을 당해야 아들입니다, 먼저. 자식의 죄값으로 팔려 죽음길, 십자가의 길로 향해 나가는 그 길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몽매한 자식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팔려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이 아들딸들은 `야! 내 아버지 잘 팔렸다' 그래 버렸어요.
그렇게 자식들은 몰랐습니다. 자식들은 몰랐지만 십자가에 달린 오른편 강도는 예수의 사정에 편들었습니다. `나는 응당히 죽어야 할 죄로 말미암아 이런 극형에 죽지만 당신은 죄가 합당치 않은 것을 내가 아옵나이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돌보소서' 하는 한마디를 들은 예수는 `오냐, 내가 오늘 너와 더불어 낙원에 같이 이르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역사 이후에 낙원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는 존재는 33년 생애의 공들인 터전 위에서 생겨나야 할 것인데, 살인강도 민족 반역자로 몰린 오른편 강도가 예수가 낙원갈 때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실이 남아져 있는 연고로, 강도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후대의 인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다시 부활해서 베드로를 찾아와 가지고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구원 역사상, 낙원이 열린 역사상에 낙원에 맨 처음 간 사람이 누구냐? 예수를 따라간 살인 강도였다 이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인간이 배반하는 세상 위에 있어서의, 십자가 도상에서, 눈물짓고 피흘리는 그런 자리에서 같이 눈물흘리며 예수를 예수로 모시는 그러한 존재가 살인 강도의 몸과 입을 통하여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인간 대표한 역사의 터전 위에 낙원 점을 세워 놓을 수 있었고, 또 예수가 다시 와서 제자들을 끌어다가 낙원 가게 할 수 있는 길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실은 열두 사도들보다 이 살인 강도를 더…. 이게 됐냐 말이예요.
여기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다 알지요? 알지요? 여러분들 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요, 알지요? 내가 누구란 걸 알지요? 「예」 자기 자신을 알지요?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원리를 대해 보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죄인이예요? 여러분들은 어떠한 죄인이예요? 급살맞아 죽을, 천지 가운데에 용서할 수 없는 살인 강도 할아비들이예요. 왜 그러냐? 여러분들은 참아버지를 잡아죽였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어디, 여기 이익 가리는 녀석들 대답하라구요.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간나 이 자식들이예요. 살인 강도는 용서를 받을 수 있고 특사를 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를 잡아죽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천리가 용서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헌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아버지 잡아죽인 그러한 죄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살인 강도를 낙원에 들인 예수의 심정은 살인 강도가 아들딸보다 더 억울하고…. 자기와 같은 관계에 있는 아버지를 잡아죽인 것이 아니요, 종의 종을 잡아죽이고 사탄 새끼를 잡아죽였기 때문에 그건 죄인이라도 죄가 돌아설 수 있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 강도를 용서해 줌으로 말미암아 나를 침범해 오고, 나를 죽인 우리 아들딸도 용서하는 법도를 세울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에 다시 찾아와 베드로와 야고보를 수습한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아버지 죽인 살인 강도와 같은 여러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는 어느 정도로 해야 되느냐?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 무엇을 하여 용서받겠느뇨? 천지가 용서할 수 없는 이런 죄인인 연고로 목을 잘라도 갚을 도리 없고, 배를 찢어도 갚을 길 없고, 불에 살라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죄인이예요. 억천만번 화형을 당해서 찢어 볶이고, 칼로 찢기어 그저 바위 위에 휘둘려져 천지에 뿌려져도 갚을 수 없는 살인 강도입니다. 아비를 죽인 죄인이예요. 아비를 죽였어요. 돈 받아 먹고 팔아먹었습니다. 로마 병정한테 팔아먹었어요.
선조들이 지은 죄가 후손들에게 머물러 있는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죄의 보응을 받은 그러한 후신자들이 돼 있는 것을 아는데 어느 정도까지 회개해야 하느냐? `하나님이여, 내가 이러한 죄인임을 알았사오니 이 죄를 용납받기 위해서 그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요구하였던 심정을 알았고, 천지에 아득하였던 이 사정을 알았는데 하늘을 향한 무리에게 복된 지상을 열어 주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죽음의 길인들 마다하겠습니까! 고통의 길인들 마다하겠습니까! 가도 가도 그 한을 풀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인 이 몸을 하늘 앞에 세울 수 있는 특사의 길이 있고, 속죄할 수 있는 영광의 터전이 있다니 이게 웬 말인가!' 하고 황공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느껴야 할 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이러한 무리인 연고로 때려잡아라, 고생을 시켜라 이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40평생을 두고, 하나님이 2천 년 수고하여, 예수와 성신이 2천 년 수고하여, 이러한 고생길을 걸어가야 했던 고난의 곡절을 알았기에 이걸 풀기 위해 내가 고생을 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죄중의 죄를 지은 이 무리들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내가 세운 하늘의 용서의 법도를 적용하여 이들 앞에 지긋지긋 고생을 시켜야겠다 이겁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고, 굶주림에 죽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얼어 죽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십자가에 죽는 게 아니라 오착(五鑿; 이(耳), 목(目), 구(口), 비(鼻), 심(心) 의 다섯구명)이 몽둥이 찜질을 당하여 찢겨 죽어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의 한을 내 일신으로 풀게 하시옵소서'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여야 맞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습니다. 내 뜻 대해서는 `노' 했사오니, 죽고 망하는 것을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한 말씀은 구원시키기 위한 말씀이지만,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이 중보자이오니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몸을 제물삼아 `아버지여, 아버지를 죽인 한을 이러한 천추의 역사적인 인간들이 전부 다 짊어지고 있사오니, 내 고생을 덜어 그저 거룩한 예수의 십자가의 조건과 같은 자리에 설 수는 없을지라도 눈물의 수고의 흔적을 대신하여 제 죽음의 피를 받아 주시옵소서' 할 줄 아는 이러한 사람이 돼도 구원 받을지 말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대가리를 젓고 그저 `아이고, 힘들어 힘든 일을 하지 말자, 가지 말자' 이러고 있다구요. 이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회개를 해야 돼요. 알겠나요? 알겠어요? 「예」
그런 십자가에 가신 아버님의 죽음길을 찾아, 그 동산에 찾아가 가지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던 그 땅을 붙들고 통곡해야 되겠고, 피흘린 십자가의 틀을 붙안고 몸부림치면서 그의 죽음의 원한을 해원하겠다, 역사를 들어 2천 년 연한이 짧다, 한 많은 심정으로 눈물 적시어 그가 용서해 주는 특권을 받고야 말겠다는 이러한 간곡한 마음을 갖고 가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도 안 가고 천국 가요? 예수믿으면 구원받아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지 않아요. 엉터리 중에 그런 엉터리들이 세상에 꽉 차 있다구요. 이러한 불신의 무리들을 향하여 나는 분발하여 생애를 바쳐 투쟁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피를 받고 태어난, 통일의 피의 인연에 젖어 인연맺고 찾아온 여러분들은 죽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동지섣달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그러한 도상에 있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그 몸뚱이가 피땀에 젖어 눈덩이를 녹일 수 있는 이상의 회개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등골에서 땀이 흐르고 무릎의 가죽이 벗겨지도록, 매를 맞고 몰림받는 자리에서도 회개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가야 할 것이 아버지 죽인 죄인의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복귀의 길을 따라 나서는 우리 통일교회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 몸으로는 갈 수 없으니 무엇으로 탕감할 것인가? 예수님의 심정을 내가 붙들어야 됩니다. 심정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아담 해와의 심정을 붙들고, 역사적인 심정을 붙들고, 예수의 심정을 붙들고, `당신이 울고 싶었던 그 마음 자리에서 나는 울어 주겠습니다' 해야 되는 겁니다. 이거예요! 왜 심정을 가르쳐 주느냐 이거예요.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쫓겨 나와 감람산 뒷골목을 홀로 허덕이면서 소나무를 대해서 말했을 것이며, 풀을 붙들고 말했을 것입니다. `너는 내 사정을 알 것이나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과 잠들어 있는 예루살렘은 내 사정을 모른다'고 눈물지어 풀뿌리를 붙들고 우시던 예수의 사정 앞에, `그때의 마음세계 앞에 나는 동지가 되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여야 그 심정을 배우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논하는 심정의 문제가 어디에 비교 되느냐? 예수의 몸을 붙들고, `나는 예수가 눈물을 흘리기 전에 내 눈에서 먼저 눈물이 흘러 예수의 손을 적실 수 있는 심정의 동반자가 되겠다. 죽은 후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죽기 전에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가 십자가에 돌아가는 이런 고통 자리에 동참하여 죽음 후에 슬퍼하던 선조에 선행하는 슬픔의 자리에서 그 심정을 놓고 회개하고 나가겠다'는 그런 마음 바탕을 소유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하는 기도는 예수의 기도가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기도가 아니예요. 그걸 생각하면 통곡이 벌어져요. 통곡이 벌어진다구요. `울고 울어도 한이 없어서 원통합니다. 아버님, 우리 선조들이, 4천 년 수고하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어찌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던고! 4천 년 동안 닦아 놓았던 유대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던고!' 하고 천년 만년 울어도 그칠 수 없는 원통한 한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책임지고 이 길을 닦아 나올 때, `저들은 예수를 위해 철야기도하는 그 친구의 자리에 못 섰고, 제자의 자리에 못 섰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역사적인 길을 선행하여 투쟁해 나오며 길을 닦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태어난 탄생의 기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의 각오, 민족의 죄상을 염려하던 그 벅찬 심정의 고통, 미래에 이스라엘 민족이 환란 도상과 처참한 제물의 과정 하에서 탄식하면서 유리고객하여 예수를 죽인 죄로 처참한 학살의 무대를 향하여 무덤을 메워야 할 그 처참한 사정,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 예수 자신의 고통도 컸지만 역사적인 책임적인 고통이 더 했고 그 고통적인 사명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책임자는 예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를 부활시킨 것입니다. 다 마찬가지라구요.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피흘리는 역사적인 깊은 자리에 들어와 어디에서 만난 식구냐?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만난 식구냐? 통일교회의 스승은 어디에서 만난 스승이냐?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나니, 여러분들을 편한 자리에서 만난 식구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최고의 십자가의 혈전장에서, 못이 박히는 자리에서 '아무개야, 내 손길 네 손길 붙잡고 죽고 싶구나' 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의 못 박히기를 각오하고, 못박히는 그 도상에서 하늘의 특권적인 혜택을 얻어 해방을 받은 그 자리에서 만난 우리 식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의 `우리들' 이라는 것은, `식구'라는 그 명사는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십자가의 전통에서부터, 피가 흐르고 피눈물이 엮어지는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 주고도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고, 무엇 주고도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인연인 것입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부모의 인연을 끊고라도 이 길을 가야 되고,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의 인연을 끊고라도 가야 되고, 천지가 반대하면 천지의 인연을 끊고라도 가야 됩니다. 죽어도 이 길 을 붙들고 죽어야 되고, 살아도 이것을 붙들고 살아야 하고, 이 한이 세계적인 한으로 맺혀 있으니 세계적인 한을 풀 때 이것을 붙들고 눈물을 짓고 가야 할 그런 걸음이 통일교회의 걸음이요, 통일교회의 스승이 가는 걸음인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이 길을 나오는 데에 있어서 스승은 친구가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통곡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지만 이 땅 위에 그런 입장에서의 누굴 붙들고 통곡해 본 친구와 동지는 없어요. 내가 목을 내어서 울고 싶은 때에 어느 누가 그런 사정을 한마디만 말하면 당장에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렇게 슬픔에 잠기어 태산 같은 고통을 품고 가는 스승임을 여러분들 잊지 말라구요.
여러분들을 남한 각지에 보내 놓았는데, 굶주리는 자리에 가라고 하는 스승이 어디 있으며, 자기 아들딸을 고난에 몰아넣을 그런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 민족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 인류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 지구장이 몰려올 적마다 `야, 이 자식들아! 너 지방에 돌아가면 식구들을 그저 고생을 시키고 죽을 자리로 내몰아라' 하는 거에요. 스승이라는 사람이 번번히 그래. 영원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그 누가 부정하여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로 갈라졌으니 십자가로 만나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로서 눈물을 지으면서, 가슴으로 눈물지으며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고생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먼 것이 아니예요. 3년 고비, 7년 과정을 넘어가야 돼요. 예수가 40당대에 세계적인 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40 고개를 넘기려고 했는데 33세에 죽어 성사를 못 하고 갔으니, 7년 공생애를 남기고 갔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환경에서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전세계 기독교요, 제2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 그때의 선민과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이 민주주의라는 겁니다. 민주주의와 유대교 주의를 축소시킨 그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이예요. 여기는 좌우가, 세계적인 정세가 부딪힌 곳이요, 온 세계의 문화가 결실하는 곳이요, 온 세계의 문명 기구가 전시된 전시장이예요. 그리고 종교도 불교로부터 유교, 기독교까지 전부 다 꽃피웠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무엇이냐?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나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리드하고 있는, 선진국가라고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식민지입니다, 식민지. 식민지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어요. 유대 나라 때에 로마를 위주로 할 것이 세계적인 기반이 되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전세계를 중심하고 세계적인 기반 위에 있어서만 무르익은 자유의 환경이 다 끝을 바라보는 마당에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었던 한을 탕감복귀해야 하겠으니 시대상도 그와 같이 딱 들어맞아야 됩니다.
예수는 그때 민족 앞에 몰리고, 법 앞에 몰리고, 가정 앞에 몰려 할 수 없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시대적인 모든 것을 탕감하여야 할 운명에 서 있는 연고로 민족 앞에 몰려나고, 세계적인 유대교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교파한테 몰려나는 것입니다. 민족 앞에 몰리고 교파한테 몰려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갈보리산상에서 피흘리고 죽어갔지만 통일교회는 죽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것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나와 언론ㆍ출판ㆍ결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누구를 뭐로 믿는다고 목아지를 자르지 못한다구요.
예수의 한은 무엇이냐? 유대교를 자기의 장중(掌中)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 장중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요, 세계를 장중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요, 천지를 장중에 넣어 가지고 천지복귀 완성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결짓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복귀시대에 있어서 천주적인 이념을 품고, 새로운 뜻을 이 동상 위에 건설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진 무리가 통일교회의 무리인 것입니다. 이념은 천주복귀요, 출발은 십자가의 절정에서 출발하나니, 예수는 쫓김받는 사회적인 배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의 시련무대를 거쳐오면서 죽음의 자리에 나왔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2 이스라엘적인 모든 민족이 배반하고, 제2 이스라엘교,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있어서 유대교와 같은 기성교회들이 반대할지라도, 수많은 교파가 반대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이걸 제거해 버리고 다 오는 것입니다. 살아서 새로운 복음을 중심삼은 신약교회를 세운 거와 마찬가지의 역사와 기준을 오늘날 살아서 닦아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국가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로마와 같은 미국 연합정부에 통일교회라는 명칭을 가지고 승리의 팻말을 박아 놓았습니다. 그렇지요? 「예」
전세계 기독교가 예수 당시의 유대교적인 사명을 하여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사명을 전세계 기독교가 못 하더라도 종교라는 그 명사를 가진 종교가…. 종교는 무엇이냐? 효자ㆍ효녀의 도리를 가르치는 곳 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이냐? 충신 되는 도리를 해야 돼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예수가 참부모로 올 때 효자의 도리를 하여야 할 사명을 가르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사명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게 될 때에 그 백성들에게 충신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명입니다. 알겠나요? 「예」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효자, 효녀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유대교의 사명을 상속한 것입니다. 한민족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의 책임을 못 했고 충신이 못 되었으니 충신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삼천만 민족을 통일교회 교인들이 수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교의 사상적인 기준에서 지배해 가지고 통치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기준을 중심삼아 이념적인 사상을 통하여 하늘 앞에 충신ㆍ열녀들을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세우고자 원하는 주권과,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선한 백성과,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선한 복지를 회복하여 비로소 이스라엘 건국 이념을 완결한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진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아들을 자는 알아듣고 모르는 자는 몰라도 괜찮아요. 머리가 부족해서 못 듣는거예요. 응큼한 것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겠다구요.
그러면 오늘날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예수는 개인적으로 몰리고,가정적으로 몰리고, 종족적으로 몰리고, 민족적으로 몰리고, 국가적으로 몰리고, 전영계적으로 몰려 죽었지만 오늘날 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개인적인 기준, 가정적인 기준, 종족적인 기준, 민족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의 결판을 지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적 권내로 들어왔다는 걸 알아야겠습니다.
예수의 한이 무엇이냐? 민족을 수습해 놓고, 교회를 수습해 놓고 거기에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데 그걸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다운 종이 있어야 되고, 참다운 양자가 있어야 되고, 참다운 직계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뭐냐?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 양자의역사, 참 아들딸의 역사로 올라가 그 기반을 닦아 놓고 종적인 역사로서 4천 년 동안 역사한 것을 당시에 있어서 4천 년 역사의 결실형인 종 중의 종이요, 종이요, 양자요, 아들딸이요, 충신으로 전부다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하나의 본연의 자리를 잡아 가지고 예수를 중심삼은 참부모의 자리에 등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의 종이 없고, 종이 없고 양자가 없고 아들딸이 없으니 별 수 있어요?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패망해서 충신이 없고 아들딸이 없으면 전부 다 원수들이 마음대로 모가지 잘라가지요? 그렇지요? 「예」 할 수 없어요. 안 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뭘하느냐? 창조의 목적은 뭐냐 하면 4위기대를 이루는 겁니다. 그렇지요? 4위기대 복귀지요? 「예」 하늘이 공인한 4위기대 복귀인데, 4위기대 복귀는 천상천하에 천천만 성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화해하는 자리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는 자리에 섰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어떻게 했느냐? 종이 있어야 됩니다, 종이. 우리 통일교회의 시대로 보게 되면, 노년시대로부터 장년시대로부터 청소년시대로 내려오지요? 「예」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도 어떠한 아들딸을 찾느냐 하면, 맨 새끼 아들딸까지 찾는 것입니다, 새끼 아들딸까지. 하나님이 아들딸 찾는데, 큰 아들딸 그런 종새끼같은 아들딸 아니예요. 갓난아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 있는 아기를 중심삼은 아들딸까지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걸 설명하려면 또 한정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야 되겠어요. 이것은 원리에 없는데 선생님이 지금까지 풀어 맞춰 놓은 새로운 원리 분야의 것을 얘기했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고 덮어 놓고 하는 건 아니예요. 맹목적은 아니예요.
선생님은 그걸 알려고 어떻게 했느냐? 하늘을 사랑하고,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는 자기 엄마 동생을 떠났습니다. 선생님이 예수가 가던 길을 재차 탕감복귀해야 되겠으니 자기 부모를 떠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 놀음을 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기준, 개인적인 가정을 일으켜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이 벌어지는 이 가운데에는 종새끼도 있고, 종도 있고, 양자도 있고, 아들딸이 있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인 형으로 전개시켜 가지고 여기에서 택해 가지고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리하여 오늘날 우리의 3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3년 기간은, 3수이므로 사탄 분별 기간인데 뭘하는 사탄 분별 기간이냐? 아들딸을 찾기 위한 사탄 분별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예」 3수를 여기 지역장들 알아야 돼요. 4수는 무엇이냐 하면 만물을 복귀하고, 이 땅을 복귀하기 위한 사탄 분별 수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3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3년 동안 뭘하자는 것이냐? 말하자면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는 놀음입니다. 역사적인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직계 아들딸을 갖다 심어 놓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제2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제3 이스라엘의 조상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명이 그래요. 여러분들은 제2, 제3 이스라엘을 중심한 조상이 돼야 합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전도 안 하면 안 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잃어버린 세 아들딸을 찾지 않으면 가정을 못 가져요. 가정을 못 가진다는 말이예요. 그건 철칙입니다. 예수님도 그것 때문에 죽었고, 선생님도 그것 때문에 40평생을 뜬 구름 생활을 했단 말이예요.
이리하여 오늘날 우리들을 중심삼고 제1차, 제2차, 제3차, 제4차에 거듭하는 이러한 성혼식을 중심삼고 이제는 세계적인 운세를 딱 몰아놓았습니다. 원수의 세계는 하늘이 자리잡으면 깨져 나갑니다.그렇지요? 깨져 나가지요? 선생님 1대에서는 세 가지 주의 국가 앞에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 한테, 공산주의 한테, 민주주의 한테 투쟁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3정권이 이동해 나옵니다. 자유당시대, 민주당 시대, 혁명 정부 시대…. 그거 다 설명하면 참 재미있는 일이 많다구요. 그걸 설명하면 여러분들에게는 쓸데없는 말이니까 그만두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모든 것이 이젠 박자가 맞아야 된단 말입니다. 종교적인 기준에 있어서 예수가 유대교를 수습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문제없이 수습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자리를 잡고 나오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시대착오가 나타납니다. 정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그건 전부 다 광야에서 죽을 뻔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제 2세, 그 아들딸들은 움직여 온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솔솔이 패지요? 이것 보면 원리가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거짓말이 아니예요. 사실이예요, 이게.
내가 여러분들, 나이 어린 사람들을 보면 신이 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10대 청소년들이 세계의 사조를 망치고,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든 국가들과 모든 위정자들은 손을 들고, 큰일났다고 합니다. 막을 도리가 없어요. 인간 개조를 부르짖지만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 방법을 모릅니다. 오늘날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세계를 망하는 함정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데에 청소년이 선봉에 섭니다. 이것에 대비하여 하늘의 청소년들은 그들보다도 더 강하고, 이념적인 기준과 논리적인 대화로 심정을 품고 성벽을 쌓고 밀어대며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성벽입니다. 알겠어요? 「예」 사탄세계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뜻을 품은 이 하늘 청소년들이 총칼을 들고 진군 하게 될 때에는 난데없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 전국의 깡패를 선생님이 소탕하려고 한다구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전부 다…. 그래서 전부 다 무장해 가지고 사탄세계를 무찌르는 데 있어서의 병사가 돼야 됩니다.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실력으로써….
보라구요.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하고 국민학교 안 다니는 아이들하고 싸우면 누가 승리하나요?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이예요」 아는 자가, 실력 있는 사람이 지배하는 것이 천칙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개인적으로 볼 때, 여러분도 대학 나온 사람하고 고등학교 나온 사람하고 누가 지배하나요? 누가 지배해요? 「대학교 나온 사람입니다」 그거 그런가요? 그래요? 「예」 정말이예요? 「예」 거기에 불평 없지요? 「예」 개인으로 보면 그렇다구요.
또, 가정 가정끼리에 있어서 실력 있는 가정과 실력이 없는 가정을 놓고 볼 때 누가 지배하나요? 실력이 없는 가정이 지배당하는 거예요. 억울해도 할 수 없어요. 억울해도 할 수 없단 말이예요. 또 민족 민족끼리 볼 때, 우세한 민족과 열세한 민족중에서 어느 민족이 지배하나요? 실력 있는 민족이 지배하지요? 「예」 대한민국하고 미국하고 놓고 볼 때 누가 지배하나요? 실력 있는 나라가 지배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 오늘날 세계를 보라구요. 세계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무슨 돈이 있어요, 권세가 있어요, 지식이 있어요, 자랑할 문화가 있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자랑할 것이 있나니,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의 최고의 지식을 가져 하나님의 심정과 인류의 심정을 수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을 가질 때에 그 지식이 필요할 수 있는 문화세계가 오면 그 사람들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30억 인류 가운데에 그 사람만 실력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으면 그 분야에 있어서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의 주권을 논하는 것입니다. 심정의 주권을 논하는 입장에 있어서의 그 권세는 최고의 권세입니다. 심정을 통한 주권을 논하고, 심정을 통한 지식을 논하고, 심정을 통한 경제를 논의하는 사람이 최고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돈이 없다고 낙망하지 말라구요. 최고의 실력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나니, 새로운 시대에 신문화를 창조하는 데에 필요한 절대적인 요소를 움직이고, 이것을 배양할 수 있는 여건들을 우리 한민족은 전부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으로 보게 될 때에 누가 제일 실력이 있어요? 누가 제일 실력 있나요?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심정적인 교육을 빨리 받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적인 인격을 빨리빨리 만들어야 되겠다구요. 인격이 갖춰져야 출발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말씀으로 빨리빨리 무장하는 것, 이게 급선무라구요. 지금 지방을 보니까 사람이 없어 큰일났지요? 껍데기 쓴 사람도 많지요? 실력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실력이 없는 사람이 엄청나다구요. 그러니까 들이패서라도 실력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천륜을 받들 줄 알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자 이거예요.
한국의 문화를 자랑할 것이 없고, 한국의 경제권을 자랑할 것이 없고, 한국의 주권을 자랑할 것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구요. 역사와 문화를 팔아먹고,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세계에 절대 필요하고, 최후에 남을 수 있는 문화와, 새로운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주권과, 새로운 문화 세계에 남을 수 있는 민족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졌다 할진대는, 지금 현재의 국가 민족을 다 무시해 버려도 그 사람들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결론지읍시다. 나라가 망한들 민족이 망한들, 걱정하지 말라구요. 세상이 다 깨져 나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구요. 20세기 30세기에 필요할 수 있는 문화재의 여건을 구비한 민족이 되거든 그 민족은 한때에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결론이 나와요.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그걸 압니다.
통일의 이념은 지금 이때에 벌어지면…. 이는 필시 외적인 문화세계만이 아닙니다. 심정문화세계와 심정역사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화의 요건, 문화재로서 필수불가결한 이런 요건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역사의 운명은 그 과정을 거쳐 어느 한 때 상봉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거늘, 그날에 있어서는 민족의 국경을 철폐해 버리고 주권을 망각해 가지고 민족성을 초월하여 그 문화재 앞에, 그 문화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엄숙히 자기를 지배해 달라고 꿇어 엎드릴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불원간에 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 고생해라 이겁니다. 여러분들 원리 모르기 전에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걸 한했지요? 「예」 `아이구,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게 아닌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왜 여기 대한민국에 태어났어? 아이구, 배달의 민족?' 그랬지만 원리를 알고부터는 `한국이 좋구나'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한국이 좋아요? 「예」 누구 때문에? 첫째는 하나님이예요. 통일교회 교인이…. 입장에서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은 잘리고 잘려도 뼈다귀도 뛰어야 됩니다. 잘리고 잘려도 뼈다귀가 통통통 하고 뛰어야 돼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된다구요.
선생님도 옛날에 거지 같은 옷 입고 밥도 얻어 먹어 봤습니다. 여러분들은 복귀의 길을 가니까 선생님이 한대로 다 해야 됩니다. 기간이 너무 짧아요. 선생님은 40평생 하는데 여러분들은 이제 3년 하면 7년만 하면 됩니다. 그건 공식이예요. 6천 년 탕감복귀를 최소로 축소한 기간이 7년이예요. 이건 안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6천 년 수고했고, 예수와 성신은 4천 년 수고했고, 선생님은 40년 수고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40년 위에 7년 고비를 닦아 나가는 거예요. 이것을 청산해 넘어가자 이겁니다.
지금의 이 7년 기간은 선생님이 가는 7년 기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복이지요. 그 기간은 한 번밖에 없다구요. 알겠어요, 왜 복이 있다는 걸? 「예」 선생님하고 같이 갈 때는 울기도 같이 울었으니 식구예요. 알겠어요? 「예」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고비를 지나고 다음 번에 들어오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전부 다 수습해서 이제 3년 길 또 가는 거예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갈 때는 그저 표주박 같은 물 바가지 하나 차게 해 가지고…. 여름에는 솜옷 입혀 쫓아내야 됩니다. 탕감복귀예요. 그래야 최고의 더움을 느낄 것 아녜요. 이게 역사적인 탕감이 되는 거예요. 또, 겨울에는 베옷을 입혀 쫓아내야 돼요. 그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고생을 빨리 해야 탕감이 되는 것이 역사예요. 하나 고생하는 것보다 열 고생을 하면 열 분야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들이죄기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는 갈 때마다 다들 급살맞아 죽지요, 다들. 죽고 살길이 없잖아요? 그렇지요? 천리법도가 그래요.
그때는 암만 수고해도 그까짓껏 선생님이 순회 다닐 필요 없습니다.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말이예요. 그럴 때가 불원간에 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래요. 이거 또 지쳐서, 3년 고비 끝났으니까 지금 허리띠를 풀어놓고 `아이구, 3년 다 되었으니….' 이러겠지만, 3년은 여러분들이 3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3년 동안에 아들딸이 종적인 선조들의 한을 풀고 지금까지의 시대적인 복귀의 천적 조건을 완결짓는 기간이예요. 4년 기간은 뭐냐? 이 민족을 중심삼아 민족 복귀의 사명을 하는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간 아들딸을 가르쳐 주는 통일교회가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가 닦아야 할 세계적인 발판을 기준을 이 시대적인 동시성 기반 위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닦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기성교회가 없어도 괜찮아요. 알겠나요? 「예」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돼요? 민족적인 사명을 해야지요? 민족적인 사명을 하는데 보라구요. 종적인, 역사적인 세계의 모든 것이 시대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한민족은 어떠한 민족이냐? 어떠한 민족이예요? 영적으로 보면 제1, 제2 이스라엘 민족의 혜택권내다 이거예요. 그냥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 유대교가 승리의 발판을 닦아 나오면 그 민족은 이스라엘권 내에 자동적으로 들어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외국의 잘 믿는 사람이나 한국의 안 믿는 사람이나 시대적으로 혜택을 같이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니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때에 있어서 우리는 유대교에게 쫓김받던 예수의 한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기준의 모든 것을 전부 다 탕감복귀하여 한을 벗어 버리고 이제는 민족 복귀의 투쟁 시기로 넘어갑니다. 알겠나요? 「예」 그래서 하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여기에 참석하면 충신이 될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알 자는 알고 말 자는 말고, 귀가 있는 자는 듣고, 눈이 있는 자는 보고, 마음이 있는 자는 깨달으려면 깨달으라구요.
종교를 세워서 투쟁하던 예수의 해원의 모든 조건을 제거해 버리고 민족적인 투쟁기반을 향하여 넘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이 세계, 이 주권시대와 점점점 어깨를 겨누게 될 때가 왔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또, 이제 조금만 나가면 이 민족은 이념이 없으면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을 거라구요. 이념이 없으면 안 된다구요. 무슨 민주당이니 공화당 가지고 안 됩니다. 이념이 없으면 안 된다구요.
인간 개조의 방법이 뭐냐? 이념입니다. 이념의 시대가 틀림없이 온단 말이예요. 그때에 필요불가결할 입장에 서려니 국가적인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사람들을 전부 다 뽑아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 천국 주권을 향해 나서게 될 때에는 애급 땅에서 대이동이 벌어졌지요? 「예」 야곱도 라반의 집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대이동이 벌어졌지요? 「예」 예수도 복음을 중심삼고 70문도를 중심삼을 때 세계적인 대이동이 벌어졌지요? 「예」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도 대이동이 벌어집니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 하게 되면 이동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 국내에서 함경도에서 강원도로,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동했지만 앞으로는 동반구에서 서반구로 이동합니다. 이래 가지고 사탄세계의 문화의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혈통적인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근본적으로 전부 다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뭘 모르고 그러지만 안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령 받아 가지고 다 여기에 왔지요? 어젯밤에 왔지요? 「예」 추첨해 가지고 미국 사람이 한국에 오고,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고 전부 다…. 이래놓고 몇 개국의 기반을 딱 만들어 놓고, 지파 편성을 해서 세계복귀운동을 중심삼고 벌커덕 뒤집어서 다 꿰매 가지고 자루를 만들어 나가면 절반만 되면 다 넘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복귀역사를 해 나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통일교회의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교회를 위해서 집에서 그저 가지 말라고 때리고 그래도 교회에 밤에도 기어 왔지요? 도둑놈처럼 담도 타고 넘고 그렇게 나왔다구요. 교회 아니면 안 된다고 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죽어도 교회에 대가리를 파묻고 죽어야지요? 이제는 지나갔다구요. 이제는 발은 교회에 딛고 머리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나가야 합니다. 안 나가면 안 됩니다, 안 나가면. 생명을 각오하고 이제는 출동하는 거예요. `이 나라 이 민족이 이렇게 살아야만 민족을 구할 수 있다'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행동적인 모범을 보이고 실천적인 사실을 보여,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이 민족을 전부 다 아버지 앞에 몰아넣어야 됩니다. 그래 놓으면 이 민족도 살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제1차 작전계획에 승리했으면 이제 제2차 투쟁이 있나니 이 투쟁은 민족을 위한 투쟁입니다. 민족을 위한 이 투쟁 가운데에서 승리하면 세계적인 투쟁 무대를 향해서 제1차 작전 계획, 제2차 작전 계획, 제3차 작전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여기에서 하늘을 중심삼아 새로운 천주의 횃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예」
그렇게 하여야 할 우리의 책임과 우리의 사명을 촉구하고 있는 하늘의 천적인 운세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였기 때문에…. 하늘은 바쁩니다. 내가 이 삼천리 반도를 빨리 돌아야 돼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에 순회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석유불을 피우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이제는 석유불을….
제2 작전 승리자가 못 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의 민족적인 심판을 받아 하나의 그 민족적인 전통 앞에 있어서의 배반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당장 그렇게 심판받는다구요. 그렇지요? 그랬나요, 안 그랬나요? 「그렇습니다」 금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대한민국 주권을 중심삼아 정책을 세워 가지고 이 민주주의라는 우방국가에 있어서, 세계 사조의 민주주의 노선에 있어서 공헌을 하여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도움이 되어야지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한 책임이 있는 연고로 이 정책적인 이념을 우방국가가 `아, 그 이념! 거룩하고 숭고한 이념이니 그 이념을 가지고 있는 그 민족을 따라가고 싶고 접붙어서 합하고 싶다'고 해서 만민이 서로서로 머리를 숙여 들어올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1차, 2차, 3차의 고개를 넘어가야 비로소 이 사람은 역대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세계사 앞에, 앞으로 남아지는 새로운 운세 앞에 그 이름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운세에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지요? 새 고개를 넘어서야 돼요. 알겠나요? 「예」
우리 통일교회는 뭐냐? 지금 전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투쟁에 있어서의 승리의 기반을 놓고 전부 다 우리를 때려 죽이려고 그랬지요? 그렇지만 안 죽어요. 승리의 기반을 닦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적인 투쟁 시기의 제2차 작전 무대를 향하여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과거보다 더 힘드니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다는 사람 손들라구요. 내리라구요. 허리띠를 졸라매야 된다구요.
3년 기간에 내가 굶주렸으면 이제 4년 기간에는…. 내가 3년 기간 지나온 것이 한스러웠고 원망스러운 일이 많아요. 내가 어찌하여 남과 같이 충성을 못했고, 어찌하여 남 가는데 가지 못했으며, 어찌하여 남은 싸우는데 싸우지 못했던고! 내가 굶지 못한 것이 한이요, 내가 고생 못 한 것이 한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되었단 말입니다. 틀림없어요. 그 한을 남기면 안 되는 거예요.
이젠 민족적인 계획에 승리하는 무대에 있어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면 제1차 승리의 터전을 보충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는 제3차 작전을 하여 제3차 투쟁 무대로 넘어가야 됩니다. 전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의 통일의 이념이 세계적인 문화 세계에 공헌한다면 만민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기반을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세계적인 작전 계획에 있어서의 제 3차 승리를 거둬 나갈 수 있습니다. 알겠나요? 「예」
여기에서 통일의 무리들이 승리의 개가를 하늘 앞에 부르고, 비로소 천상천하의 승리의 영광을 전부 가지고 만민과 더불어 전부 아버지 앞에 드려야 됩니다. 잃어버렸던 걸 찾아서 전부 다 드려야 돼요. 다 드려야 돼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것이 아닙니다. 문선생 것이 아니예요. 전부 다 아버지 것으로 다 드려 가지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겠으면 주고 말겠으면 말고, 딴 사람에게 주겠으면 주고, 첫째 아들에게 주겠으면 주고, 네째 아들에게 주겠으면 주고, 딴 나라 사람에게 주겠으면 주고 당신 마음대로 하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해 놓고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려주는 것은 만방에 돌려 줘도 그건 내 것이요, 미국에 돌려 줘도 내 것이요, 일본에 돌려 줘도 내 것이예요. 국가 관념을 초월하고 하나님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이 좋아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주는 것을 다시 받아 가지고 드려서 영생무궁토록 통일의 천국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나요? 「예!」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예!」 해보겠다는 사람, 손을 번쩍 들자구요. 이건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내리라구요.
이러한 사명과 책임이 있는 연고로 오신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해야 할것이냐? `채찍을 들고 들이팰 거다! 가다가 후퇴하는 녀석이 있으면 모가지를 자를 거다!' 하는 겁니다. 그놈 때문에 물들어 가지고 천 사람 만 사람 희생당하겠으니 그저 무자비하게 심판을 가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거 목을 자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정없이 때려 모는 거예요. 여러분들 앞에 사정없이 복을 주면 한꺼번에 복을 주고 싶다구요. 주는 데는 눈물 흘리며 주고 싶고, 정성을 다해서 피땀을 흘리면서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얘기도 이렇게 하는 거예요, 빨리 주고 싶어서. 망하라는 의미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망하라는 거예요? 「아닙니다」 이것들 지금 3년째 와 가지고 지쳐 나자빠져 있는데, 이 지역장들 가만 보니까 다들 갈아치워야 되겠어요. 허리띠를 잡아매라구요. 선생님은 죽지 않았어요. 알겠나요? 「예」 선생님은 죽지 않았다구요.
미국에 있는 박중령(박보희)도 선생님이 전부 다 지휘해 가지고 행정부와 사회 단체에 구멍을 뚫어 가지고…. 여러분들은 움직이기만 하란 말이예요. 움직이면 내가 뭐 여러분들 죽이려고 명령하겠어요? 알겠어요? 「예」 또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십 년 동안 사탄 대해서 모진 싸움 해 가지고 꼼짝하지 못하게끔 전부 다…. 영계를 딱 선생님이 주먹 안에 넣고 지상에 와 가지고 통일하자는 거예요. 세계 기독교를 통일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영통하는 패들은 전부 다 선생님 부하입니다. 영계의 수백 수천억의 영인들은 문선생의 부하들이예요. 여기에 오게 되면, 여기 광주에 오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몰라보지만, 가기만 하면 전부 다 몰려옵니다. 문선생님 하면 다 알거든요? 지상에서는 욕먹고 돌아 다니지만 그런 날이 오는 거예요. 안 오면 내 손으로 만드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만 보면 쩔쩔매지요? 「예」 내가 쩔쩔매라고 언제 공갈 했어요? 공갈을 했어요?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그렇다구요. 나도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거예요. 내가 아버지 앞에 그런 것같이 여러분들도 선생님 앞에서 그래야 된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무한히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진짜 해가지고…. 보라구요. 어려운 자리에서 사랑을 했다는 인연을 맺어 놓아야 꼬불꼬불 꼬불꼬불 꼬불꼬불 몇천 년째 꼬불꼬불 꼬불꼬불 꼬불꼬불…. 네 맘에도 내 맘에도 전부 다 꼬불꼬불이예요? 꼬불꼬불하게 고생길을 체휼해 가지고는 사람들도 못 따라가게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 사탄이 못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어도 좋다 하는 자리, 하늘이 버린 자리, 피눈물을 흘리는 자리에, 자기의 위신과 채신을 깨부수는 자리에 가야 됩니다. 사탄이 그 자리에 그 사람과 동등한 자리에 내려가게 되면 사탄 세계는 뻥 깨져요. 사탄이 영영 침해하지 못할 데에 가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고 죽는 자리에서 승리해서 거기에서 인을 맞고 하늘이 세워 주는 날에는 사탄이가 그 자리에 와서 침해를 못 합니다. 다시는 빼앗아 가지 못해요.
이렇게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승리의 왕자들을 만들려니 내가 고생길로 내모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게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해 가지고 얻은 결론입니다. 문선생이 지금 가지고 있는 특권이라는 것은 영통하는 사람들 누구도 천지는 다 주름잡는 사람이라도 못 따라옵니다. 사탄도 못 따라와요. 그거라구요. 그저 무지하게 그저 무정하게 해 가지고 가 가지고 알고 보니 결론이 그거예요. 누구다 못 빼앗아 갈 완전무결한 승리의 결정권을 영원토록 주기 위해서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고생시키는 겁니다. 그런 인연의 때를 맞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 그저 눈물 흘리면서…. 죽지는 말라구요. 죽지 말라구요. 그러니 30살 이내의 사람들은 통일교회에는 전부 다 30이내의 사람들이 들어와요. 30이내는 그저 석 달 넉 달 굶어도 그저 두 주일만 꼴까닥 꼴까닥 곰탕, 무슨 탕, 천지 쌍화탕 뭐 이런 거 먹어대면 훌떡 그대로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지는 말라구요. 그 대신 위신과 체면을 세워 가지고 밤이고 낮이고 활동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시간이 있으면 배우고….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무슨 일을 하는 종교냐? 배우는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뭘하는 종교냐?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뭘하는 종교냐? 세계 만민의 복지를 건설하는 종교입니다.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종교적인 승리의 기반,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규합해 가지고 선생님이 지쳐 나가 자빠지기 전까지는 따라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오는, 남아있는 여러분들은 복종해 가지고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듣고 움직여야 할 책임이 있으니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 너는 이제부터 전라남도 사람들을 사정없이 내몰라구. 「예」 이래 가지고 4년 더 눈 꼭 감고 가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3년 가라고 하더니 알고 보니 그랬구나. 영적으로 그렇게 승리했구나. 그다음에는 이 4년을 가라고 했으니….' 하면서 가야 된다구요. 보라구요. 이제는 우리가 조금더 가면 공산당하고 싸워야 됩니다. 공산당하고 싸워야 돼요. 박정희 장군에게도 한번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할 거라구요. 하늘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실정을 수습하는 것보다도 유엔 총회로부터의 남북 협상을 하여서 남북자유선거 때가 오게 될 때 `너 어떻게 할 테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걸 대비하자는 거예요. 목적이 그거예요.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저 대전 형무소에 빨갱이들이 많은데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 가지고 공산당 주모자들을 전부 녹여 가지고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이제 통일교회 대 공산당과 문화교류를 하자 이거예요. 공산당들은 통일교회 교인들한테 와서 공산당원 만드는 교육시키고…. 여러분들 공산당원 될래요? (웃음) 그들은 여러분들을 공산당원으로 만들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공산당원을 통일교회 교인으로 만드는 내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좋다고 입을 벌리고 `그러자'할 것입니다. (웃음) 1차 하고, 2차 하고, 3차 해서 `아이구, 안 하겠소' 하여 후퇴하는 날에는 민주진영의, 민주주의의 상투끝은 내가 잡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사상의 결핍과 이념의 결핍에 허덕이는 민주주의예요. `볼 것이 없어요. 공산주의는 우리에게 졌다. 두 손 들었다' 이렇게 선전해 가지고 우려 먹는 거예요. 그리고 `너희들은 노동자, 농민을 위해서 얼마나 피땀 흘렸느냐? 너희들은 노동자 농민을 부려먹기 일수이고, 착취하기 일쑤고, 죽이기 일쑤였는데….' 하는 겁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교인들은 피를 팔아서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먹여야 된다 이거예요, 죽음이 여러분들을 위협하더라도. 그래 배우지 못한 사람은 울면서라도 재료를 수집해야 돼요. 선전 재료가 있어야지요? 그렇지요? 「예」
통일교회 가정은 대학을 나온 학사님이나 대학원 나온 석사님이나 전부 다 냉방에서 자기 일쑤요, 밥 굶기 일쑤요, 일주일쯤은 문제가 없게끔 왕래하기 일쑤예요. 정 여러분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선생님이 일주일 금식 명령을 하려고 해요. 못 하는 녀석들은 전부 다 제2차로 수습해 가지고 다시 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 하고 있다구요. 먹는 것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아요. 없는 가운데에서 우리의 피를 팔아 가지고 우리가 발전했지요? 이제는 피를 팔다 못해 뼈다귀를 팔아서라도 우리는 할 일을 해야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선전을 하는 거예요. 그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거 알아요?
축복받은 가정들은 선생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 교인들, 연보 많이 해서 줘라, 줘라! 이러지 않아요. '선두에 나서서 죽어라, 죽어라!' 이러는 거예요. 누굴 위해서냐? 그들보다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래 지금 일선에 내세워 놓았으니 고생을 잘 할 거라구요. 밥 굶기가 일쑤입니다.
보라구요. 20세기 30세기의 제일의 고등 요리가 무엇이냐? 냉차예요, 냉차. 냉차가 무슨 냉차인 줄 알아요? 거기에는 뭐 가짜가 없는 순냉차예요, 순냉차. 그게 뭔지 알아요? 오뉴월에 아주 제일 저렴한 돈으로 벌커덕 벌커덕 마시는 냉차예요. 물 한 그릇만 있으면 잔치도 하고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거든요?
내가 이 축복받은 가정들을 위해서 얘기 한마디 하겠어요. 오늘 시간 있으면 여러분들을 만나 가지고 그저 움직이지 않는 간나들 있으면 말이예요, 기합을 주고 두드려 패고 가려고 했는데 그런 시간이 어디 있어야지요. 밥 먹기도 바쁘다구요.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제 가면 별수 있나요? 가면 뭐 어디 조그마한 냉방에서 자는 사람도 있을 거고 별의별 사람 다 있을 것입니다. 처량하지. '아이고─ 저랬다가는….' 하며, 축복 받기 전에 열두 번도 더 도망 뺄 수 있는 정상이라구요
그렇다고 여러분들 낙심하지 말라구요. 지금까지 사탄세계까지 녹여 먹는 선생님이니 어느 분야 같은 걸 들썩이려면 잘 해요. 선생님이 그런 놀음 하려고 마음 먹고 수많은 통일교인 가운데에 선생님이 특별히 명령하면 무슨 짓이든 해 가지고 돈을 벌어 오게 할 수 있어요. 뭐 선생님이 필요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재간이 있다구요. 그렇지만 돈에 팔려서야….
여러분들을 알차게 만들어 가지고 돈이 얼마니 필요한가 하는 그 가치를 알게끔 만들어 가지고 돈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 부처끼리 지방에 나갔으니 떡 집안에 들어오면, 남편도 어디 나갔다가 여자도 어디 나갔다가, 며칠 있다가 집에 들어와 보니 먹을 게 있나요? 혼자 들어와 가지고 먹을 게 있나 이거예요. 여편네가 있다면 밥이라도 달라고 할 수 있지만 여편네도 나갔으니 찬 방에서 침이나 삼키지요. 별거 있어요? 애들이라면 손가락이라도 빨 수 있지만 체면이 있으니 손가락을 빨 수 있나요? 할 수 없으니까…. 거 잘 한다 말이예요. 그럴 때 멋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놀음을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모시고 한번 해보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오시는 참부모 앞에서 이런 일을 하면 얼마나 복이 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리고 여편네끼리 떡 어떤 때는 함께 만날거예요. 요 여자들은 앵앵앵앵 땅강아지 같은 성격이 많아요, 여자들은. 앵앵앵앵앵앵, 남편만 얻으면 그저 풍습적인, 습관적인 관념이 고착 돼 가지고 `남편은 벌어 먹여야 되는 것. 나는 그저 사랑만 받고 있어야 되는 것'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런 것들은 간나예요. 그렇다고 전부를 얘기하는 건 아니예요. 처음 온 사람은 오해하지 말라구요.
우리 아가씨들, 우리 색씨님들은 말이예요, 좀 다정스럽게 말 좀하자구요. 임자네들을 내가 축복해 주기 위해 수고했지요? 내가 가면 말이예요, 여러분들 닭은 한 마리씩 잡아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닭 한 마리씩 잡아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남자는 누구의 분신이라고 그랬나요? 아버지의 분신이요 선생님의 분신이라고 했으니 남자를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아, 우리 선생님이 남자인데 나를 약혼시켜 주고 결혼시켜 주셨으니 오늘 저녁에 찾아오시면 닭을 한 마리 대접해야 할 텐데, 아 선생님의 동생 같은 분이 찾아왔으니 닭을 한 마리 대접해야겠구나' 해서 말이지요, 닭이 없으면 닭발이라도 하나 사다가 대접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없거든 뭘 할것이냐? 정성으로서 사 온 닭, 그걸 생각하는 거예요.
떡 남편이 들어오게 되면 먹을 게 없지요, 아내가 없지요, 그러니 신세가 될 대로 다 된 거라구요. 거기서 짜증을 내고 원망하려면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하나는 동으로 하나는 서로 갈라져요.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녁 때 남편이 들어오면 굶주려 가지고 `저녁을 했나?'. `먹을 것 있나 없나' 물론 물어 볼 것입니다. 그럴 때 `다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고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가 돌아다니면 일하다 보면 가슴 아픈 일도 있고 분한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어 가지고 뚱해 가지고 들어오는 남편에 대해서 또 뚱 해서 같이 그러면 망하지, 별수 있어요? 못 가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구요.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아, 오늘은 기분이 나쁜 모양이구나' 해서 척 그때는 앞치마를 슬쩍 두루고 쓱….
뭐 일주일씩 금식 기도 하지 않았어요? 일주일씩 금식하면서 다녔지요? 다 그런 놀음시키려고 선생님이 훈련시킨 것입니다. 달리 한 게 아니란 말이예요. 다 써 먹을 그런 때가 있기 때문에 그거 다 그렇게 훈련시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법을 적용해 가지고 치마를 척 올리고 촌색씨처럼 해 가지고 싹…. 아주 상도 닦게 될 때에는 하얀 행주로 빡빡 문질러 구미가 바짝 돌게 해 놓아 가지고 신문지라도 한 장 놓고 떡 밥그릇을 놓는 거예요. 거기에 술술 흘러 넘어가는 냉차를 한 두어 그릇 딱 차리는 거예요. 공손히 쓰윽 해 가지고 속으로는 웃으면서 반웃음을 하면서 갖다 주는 거예요. `자, 드십시다' 하면서 갖다 놓으라구요.
그러면 남편이 `오늘은 이거 뭣이 있을꼬?' 해 가지고 앉아 가지고 `틀림없이 이 밥에다 소고기 반찬을 잘 해줄 거라, 정성껏' 이렇게 생각하고 쓰윽 재껴 볼 것입니다. 그때 `이게 뭐야?' 하는 그런 남자라면 말이예요,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그런 남자하고는 살지 말라구요. 절대 살지 말라구요, 그런 남편하고는. 내가 그 남자보다 더 훌륭한 남자를 얻어 줄께요. 그렇다고 남자들 화내지 말라구요. 그런 남자 있으면 또 가슴 철렁해 가지고…. (웃음)
여자가 그만한 배짱이 있으면 `야! 그야말로 이상 상대로구나. 굶는 자리에서 물 한 컵 놓고 위로해 주고 그 마음을 살 수 있는 그런 아낙네로구나! '그렇지. 더 사랑스럽구나' 하면서 쳐다보고 물 한 그릇도 감사하다고 할 거라구요. `거룩한 아버지께서 보면 순진순진해도 이게 얼마나 순진하겠소? 설탕도 안 넣은 순수한 것인데, 우리 한 그릇 먹읍시다' 하고 손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아버지의 사정이구나, 이렇게 알고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비참한 자리에서 죽어간 수많은 인류가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이것도 고맙고 감사합니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일 예수님 앞에 십자가를 지기 전날 그러한 신부가 있었던들, 가시는 주님 앞에 그런 정성으로서 고이 가 달라고 하면서 낙망하지 말고 굳세게 가 달라는 말을 해준 아낙네가 있었다면 예수는 불행한 예수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이, 그런 아낙네들이 돼 있어야 된다구요. 눈물흘리면서 그 가운데서 결합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돼 가지고 `자, 갑시다! 이와 같이 살고, 이와 같이 배척받고, 이와 같이 분하게 하늘의 축복받은 무리들이 천대받는 것은 이 한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승리의 한날을 위함이니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되겠고, 승리적 결정점까지 우리는 갑시다' 하면서 서로가 권고해 가지고 다시 분발할 수 있는 이런 재료로 사용하여 가지고 살림할 수 있는 이런 가정이 부부가 바로, 이상상대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축복받은 사람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 알겠어요? 「예」
배고픈 것, 배고픔은 내가 잘 압니다. 선생님은 배고파 본 경험을 얼마든지 갖고 있어요. 30평생 배고프지 않아 본 날이 없고 울어 보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집에 밥이 없어서요? 전도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올 수 있는데, 뭐. 그런 돈도 있단 말이예요. 책임을 못 한다 할 때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면 밥이 참소합니다. `네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이런 큰 사명을 해야 될 텐데…. 나는 그런 사명을 하는 사람에게 들어가고 싶어' 하고 밥이 호소한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울면서 `먹고 또 나가 일해야 되겠으니 어떡 하겠노?' 하면서 빌고 먹는 거예요, 빌고 먹는 거라구요. 그래야 된다구요. 밥이 무서운 거예요, 밥이 무서운 거라구요. 책임 못 해 가지고는 밥 먹기도 무서워요. 여러분을 지금 다 내보내서 삼천리 반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리고 고생한다는 걸 생각할 때 내가…. 본부의 선생님은 그래요. 내가 침대에서 잔다고 하지만 침대를 내가 원치 않아요. 어제는 이밥 말고 보리밥 해 달라고 야단했다구요. 거 자기들이 알겠지만, 그런 것은 참소받는다고 자꾸 그러지요. 해주는 것도 나는 부끄럽게 안다구요. 그걸 원치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여러분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절대 빚지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 적마다 내가 감옥살이 할 때에 보리밥을 먹고, 밀밥을 먹고, 모밀밥을 먹었던 것을…. 여러분들 모밀밥 먹어 봤어요, 모밀밥? 모밀 껍데기 3분의 1되는 이런 밥을 먹던 그때를 생각한다구요. 그때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하소연하던 소원의 목적지가 지금 이 아침에 상 받아 먹는 이 자리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지금까지 지내왔어요. 그러면서 기도하고….
여러분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 고생을 해 가지고 원망을 하는 것은 잘못 됐어요. 원망을 못 하게 돼 있어요. 암만 고생을 해도 원망을 못 하게 돼 있다구요. 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위하고 여러분들 후손들에게까지 복을 빌어 주기 위해서 지금도 애쓰고 있기 때문에, 천심을 따라가는 양심이 원망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그건 벌 받아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그런 부처들이 돼서 나가야겠습니다. 알겠나요? 「예」
선생님은 그런 것을 원합니다, 선생님은. 김삿갓처럼 부처끼리 떡 지팡이 들고 왜 못 다녀요? 그런 것이 필요하다구요. 그게 오래가는 것이 아니란 말이예요. 남은 기간을 여러분에게 맡기니 조금만 참고 멋지게, 힘차게, 굳세게 잘 싸워서 승리자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아까 맨 처음부터 얘기한 것이 뭐냐? 이렇게 쭈─욱 얘기한 것이 뭐냐? 하나의 우리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오던 그 길에 있어서, 전후 좌우 지금까지의 과거보다 현실에 있어서, 이념적인 크나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갈 수 있으면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일이 바쁘고 이러니까 선생님이 할 수 없이 여러분들에게 지긋지긋한 명령을 해서고 생시켜 가지고 승리의 월계관을 맡기는 것입니다. 영원히 승리를 하는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알겠나요? 「예!」 그런 사람이 돼 달라는 말이예요. 「예!」
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었어요. 일본 식구들이 와 가지고 그저 선생님을 데려가려고 합니다. 미국 식구들이 또 선생님 오라고 야단이예요. 선생님이 뭐 필요해요, 선생님이? 자기네들보다 뭐 밥을 더 먹나요, 뭐 내가 코가 하나 더 있나요? 뭐, 뭐, 뭐가 필요해요? 딴 거 아니예요. 마음 세계에 있어서의 빚을 지고 있고, 마음 세계에서 그 물가에 가서 자기가 목욕도 하고 싶고, 그 물가에서 때도 씻고 싶으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이놈들! 너희들 좋으라고 그러지, 날 좋으라고 해?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럴 때가 틀림없이 올 테니까 그렇게 알고 4년간 싸워야 되겠습니다. 「예」 너도! 「예」 싸울래? 싸울래, 안 싸울래? 금년, 명년, 1년에는 여기에 몇 만 명 늘어나야 돼요. 명년까지는 선생님에게 계획이 있어요. 여기 아마 명년까지는 그저 냅다 몰아서 3만 명 이상 해야 될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무슨 노력을 해서라도 총 전도하러 나가야 된다구요, 밤잠을 자지 말고.
그다음에 내 소원이 말이예요, 통행금지 철폐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이지요, 통일교회 선생님이나 지부장이나 지역장들은 말이지요, 통행금지라도 무사통과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겠어요?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이 전라도에 와서 좀 살아야겠어요, 전라남도에서. 전라남도에 와서 살까요? 눈깔이 둥그래지는구만. `아이구, 선생님이 와 살면 살림을 누가 다 해주고?' 할 지 모르지만 여러분 신세 안 질께요. (웃음) 이제 물어보면 그저 `예!' 할 거라. 와서 살까요? 「예」 (웃음) 와서 살긴 살라는데 살자고 하면 큰일날까봐 그렇게 못 한다구요. 여기에 와서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또,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면 말이예요, 내가 걱정이 안된다구요. 지금도 통일교회 문선생 온다고 삐라 붙이면 기성교회 교인들은 구경삼아 `왔나 보자' 하고 올 것입니다. 한판 들이죄기면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그저 넋 놓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많은 사람이 동원될 걸 알고 있단 말이예요. 거 그 사람들을 때려 잡으려면 뭐, 물어 볼 거 없어요. 그런 건 선생님에게 수완이 있어요. 어디 할 능력이 있을 것 같아 보여요? 「예」 어디 능력이 있어 보여요? 「예」 삶으면 된다 말이예요.
이젠 본부에서 선생님이 계획하고 있어요. 라디오 방송도 하고 전부 울타리를…. 이젠 그거 문제 없다구요. 선생님은 어려운 가운데에 그걸 만들 거예요. 피땀을 흘리면서 하는 그게 필요한 거예요. 이래 놓고 선전은 나중에 퍼뜨려요. 사탄세계는 하기 전에 선전하지요? 우린 열만큼 해 놓고 다섯, 여섯만큼 선전하는 거예요. 그거 잘 모르지요? 우린 뭐 국제적인,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이제…. 지금은 미국에서 기반을 닦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아주 포위하려고 하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힘차게 가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그러면 갈거예요? 「예」 같이 해보자구요. 가―자.
그러면 이젠 내가 없어도 가는 거예요? 「예!」 선생님이 있건 없건 여러분들은 가는 거예요? 「예!」 가서 승리하는 거예요? 「예!」 참 다들 용합니다. 부탁합니다. 「예」 윤보선, 박정희도 선거유세 때 얘기 다 하고는 `부탁합니다' 했지요? 「예」 (웃음) 선생님은 다르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잘되기를 부탁하는 거예요. 나 표 찍어 주고 말 조금 잘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 아니예요. 여러분 잘되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오해할까봐 이런 말 하니 이해하라구요.
그럼 이제 선생님 들어갈까요? 「예」 그럼 아무거나 노래 하나 하자구요.「예」 (전체 애향가 부름)
힘이 나요? 힘이 나요? 「예」 그와 같은 힘으로 앞으로는 뛰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달려 나가야 되겠다구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 전라남도에서는 날 해방시켜 달라구요. 해방시켜 주겠어요? 「예」 해방시켜 줄래요? 「예」 이젠 다시는 안 와도 돼요, 전라도에. 안 와도 된단 말이예요. 해방시켜 줬는데 뭘 또 오라고 그래요. (웃음) 다시는 안 와도 되지요? 다시는 안 와도 된단 말이예요. 이제는 마지막이예요. 이제는 날아가야 될 것 같아요. 날라가야 될 것 같아요. 지금 그럴 때가 왔다구요. 해방시켜 줬으니 뭐 다시는 안 와도 되지요? 그럼 또 오라구요? 「예」 또, 도망가겠다는 거구만요. 내가 안 와도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책임은 지는데 나는 구경하러 올께요. 「예」 여러분들에게 맡겨요? 「예」
선생님이 한마디만 할께요. 내가 맨 처음에 부산에 내려올 때 피난민으로서 피난 보따리를 지고, 괴나리봇짐을 지고 평양서부터 걸어 나왔습니다. 함흥서부터 걸어 나오는 데에 한 오십 칠 일이 걸렸어요. 이래 가지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면서 다니는데 말이지요, 재미있는 것이 하늘은 참 잘 알더라구요. 배가 고프고 정 지치게 된다면 쓰윽 벌써 알거든요? `아무날, 내일 모레쯤 닭이 생길 것이다' 생각하게 되면 어느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오셨습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래 `누구세요? 난 모르는데요' 하면 `아닌 게 아니라 간밤에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닭 잡고 떡 해 놓으라고 해서 떡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물으니 `보기에 초라한 행인으로 온다 했는데 보니까 선생님의 얼굴과 흡사하다'하는 거예요. 그거 믿어져요? 믿어져요, 여러분들? 「예」 그래 가지고 떡도 얻어먹고, 닭도 얻어먹고 그런 일이 많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선생님인데 피난 나와 가지고는 말이예요…. 여러분들 지금 당장에 전도 나가는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복귀역사니 할 수 없어요. 선생님이 피난 가는데, 아, 부산에 오니까 사람 사태가 났거든요. 어디가서 은신할 데가 없었어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할 때 사관(舍館)이 있을 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마구간에서 탄생한 거와 마찬가지로, 할 수 없이 마구간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탄생한 거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들어갈 곳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선생님도 뭐 밤에는 부둣가에서 자고 산속에서도 잤어요. 재미있어요. 한국 군인 오바를 척 깔고 잘 때는 말이예요, 그때는 2월 초라서 추웠거든요? 추웠기 때문에, 할 수 있어요? 밤에는 나가서 돈벌이하고 낮에는 열 시부터 두 시까지 자는 거예요. 그때는 양지쪽에 가서 가만히 앉아 가지고 꿩새끼처럼 딱 자리잡고 들어가 자면 좋아요. 떡 자고 일어나서 옷을 척 입었을 때에는 김삿갓 노래가 생각나는 거예요. `석양 지는 산마루 위에 잠을 자는 문서방' 이렇게 (노래를 부르심) 한때지만 입맞추어 가지고 부르는 것도 좋아요.
그래 가지고 떡 돈이 생겨, 죽을 먹고 싶으면 나갑니다. 부둣가의 아주머니들이 말이예요, 식을세라 보자기를 덮어 가지고 그저 자기 귀동자 외아들 품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하게 한다구요. 쓰윽 앉아 가지고…. 또, 그때엔 그 사람들이 친구예요. 아주머니들이 죽을 쑤어 오면 얘기를 들어 보는 거예요. `어디서 왔어요?' 하면 `피난민들 사정들 다 같은 사정들인데요, 뭐. 어디서 오나 뭐 말씨 들어 보면 어디서 왔는지 아실 텐데요, 뭐' 이러고, '영감님 계세요?' 하면…. (녹음이 잠시 끊김)
그리고 이제는 세계의 발판을 닦았기 때문에 큰소리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이 꿈같은 얘기를 하던 것이 이젠 현실적으로 다 들어맞게 돼 있고, 세계 복귀의 탕감조건이라는 명사도 지금 다 현실적으로 여러분들이 알 수 있으리만큼, 머리 가진 사람은 알 수 있을이만큼 돼 있단 말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만큼 만들어 놓은것을 보고 못 믿겠다는 것들은 벼락을 맞아 즉살 박살 그저 망해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들은 다 와야 걱정이예요. 내가 뒷처리하기 바쁘다구요.
그러니까 그런 신세를 안 지고 자기 혼자 자립적인 일을 해야 돼요. 자립 자득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내들만…. 옛날에는, 아무리 남 보기에 무섭더라도 한 방에 앉아 가지고 얘기하게 되면 전부 다 자신을 가져 가지고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이 나왔다구요. 부두 노동을 하고 구루마를 끄는 한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예」
대산이라도 치면 깨진다 이겁니다. 하늘 공중의 명의 잡아채면 그 별이라도 떨어진다는 기백을 가지고 쓸어대고 밀어대고 한다면 별수 있나 말이예요. 이제 몇 해만 두고 보라구요.
이북 사람들이 피난 온 지 지금 한 몇 해 되었나요? 한 십 년 되었나요? 십 년 조금 넘지요? 전부 다 피난 올 땐 괴나리봇짐 지고 왔던 사람들이 한 십 년 되니까 경제권을 전부 다 쥐어서 보따리가 바꿔졌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이 전라도가 그래요? 이놈들, 전라도 놈들 왜 그렇게 되었어? 우리는 이렇게 된다구요. 몇해만 보자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다 자신 있어요? 「예」
돈버는 일에 선생님이 지향하게 되면 돈은 문제없습니다. 지금 때는 돈이 필요 없어요, 돈이. 돈이 필요 없단 말이예요. 왜? 참사람, 진짜 사람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예요. 돈 놓고 하면 도둑놈들이 많이 온다구요. 그렇지요? 사기꾼들이 많다구요. 그러니 여러분의 피를 빼라! 땀을 흘려라! 눈물을 짜라 이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사람을,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모아야 돼요. 내가 여러분들을 이제 건달꾼들을 잡아다가 기합 주는 스승들을 다 만들어야겠다구요. 그러니까 잘 훈련받고 잘 싸워 가지고 그 제자들이 자꾸 나타나야 된다구요. 그렇잖아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욕을 해도…. 그저 무슨 욕을 해도 눈이 없나요, 입이 없나요? 왜 가만히 있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온 실적이 다 누구를 위한 거예요? 자기만이 아니라 전부를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어떻게 터치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뭐 강제가 아니예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자기가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 자리에서 책임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않는 자리에서 권고하게 될 때에는 누가 참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다 하고 하지요. 전부 다 내가 하고 하지요. 지금부터 하라는 것도 뭐 여러분들만 해요? 내가 다 하고…. 내가 다 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지금 처량하라고 해서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나가야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오래지 않은 기간 내에 이런 기반을 닦은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자유천지가 되는 거예요. 급속한 시일내에 삼천만에, 살고 있는 삼천리 동산이, 여러분이 큰 장대를 휘둘러도 거침이 없을 활동무대가 될 것이 뻔한 겁니다. 그러니 단단히 결심하고 자숙하기를 부탁합니다. 「예」 축복받은 여러분들….
아홉 시까지 얘기했기 때문에 이제는 전라도에 와서 얘기할 것은 더 할 수…. 있긴 있지만 더 안 해도 괜찮지요? 또, 들어갔다가 나와요? 「예」 뭘 주려고 나오라고 해요. 이젠 나 좀 줘야지요. 뭘 줄래요? 뭘 주겠느냐 말이예요. 「정성을 들이겠습니다」 *
<말씀 요지> 지금까지 통일교회 역사를 회고해 보면 수많은 곡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좀더 의의 있는 자아를 찾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역사의 한 분자로서 인간은 누구나 그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쳐 주고 싶은 마음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귀하게 생각할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는 것은 내적인 충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극적인 충격의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때는 주위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각오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심이나 각오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시련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길이 과연 가야 할 길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같이 지닌 가치가 크면 클수록 그에 대한 반응이 큰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이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의 역사적인 모든 환난을 내 한 몸으로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맹세한 무리를 지도하는 분은 그들이 그 길을 잘 갈 수 있고 시련을 이길 수 있게 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혼자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뒤에서 누가 밀어 주었으면 하고 원합니다. 누구나 그러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고, 또 그런 지도자가 자기의 부모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위치를 알고 부모 형제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심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대한민국의 시련과 절망을 주관할 수 있고, 세계의 시련과 절망을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의 감성이 자기의 것으로 느껴져야 비로소 식구가 됩니다.
마음은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 많이 행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하나님을 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피조세계 전체를 자기 것으로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바쁩니다.
주권보다 인권의 평등을 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주의는 천주주의(天宙主義)요 하나님주의입니다. 나와 하나님이 합한 주의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하나님을 떼어버린 주의이며, 공산주의는 물질과 인간만을 위주한 주의입니다. 그러나 천주주의는 인간과 하나님을 합한 주의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하나님을 위주한 주권의 세계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늘을 가장 사랑하고, 세계 인류가 추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마음과 몸을 완성하면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자신의 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몸 때문에 못 움직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지체요 몸은 참부모의 지체입니다. 전쟁은 마음과 몸의 싸움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천지의 싸움입니다.
부모, 부부, 자녀의 사랑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위하여는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희생해야 하며, 세계를 위하여는 국가도 희생해야 합니다. 인간을 중심한 세계와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가 부딪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중심한 싸움이 한번 일어나야 합니다.
부자일신(夫子一身)이 되어야 부부일신(夫婦一身)이 되고 부부일신이 되어야 부자일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주의를 품고 나가는데, 10년에 이룰 것을 1년에 이루려면 10배의 시련이 있게 됩니다.
지도자는 부하를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혀 주고 싶어해야 하지만 만일 그가 위급할 때는 비참한 길로 몰아서라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민족을 떠나 40일 기도를 했을 것인가! 모세는 그들 앞에 폭풍우가 불어 닥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걸어오는 식구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을 내몰아서라도 하루바삐 천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옛날에 죄인으로 형무소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철창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호소하던 선조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망할 것입니다.
승리는 눈물과 피땀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효자 못지않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은 선을 지향하는 사람의 보호자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할 때마다 하늘은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 민족이 세계를 위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야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로이 기도하던 예수님의 그 기도가 역사를 두고 이루어져 나올 것을 누가 알았던가! 그의 눈물과 피가 없었더라면 인류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 앞에 하늘땅이 굴복할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하고 가는 사람은 하늘이 그 목적지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훈장을 싸움 도중에 주는 법은 없습니다. 싸움이 다 끝난 후에 주는 것입니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 원수마저 등장하고….
영계를 먼저 통일해야 지상이 통일됩니다. 영계의 통일은 지상의 통일보다 더 힘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가 추방하고 민족이 배척하니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분립된 것을 합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신랑 신부에 대한 이념을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선조와 지상의 인간을 수습한 후에 예수를 중심하고 새로운 혈족을 세워야 합니다.
12제자는 12아들입니다. 12자식을 효자로 세워 왕자가 되게 하여 유대교를 중심한 민족과 하나되어야 했는데, 12제자도 배반하고 3제자도 배반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야 했었습니다. 자기 죄로 말미암아 팔려가는 부모를 보면서도 오히려 한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공을 들여서도 세우지 못했으나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증거한 오른편 강도로 인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베드로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강도가 제일 먼저 낙원에 들어갈 줄이야!
여러분들은 참부모를 잡아죽인 살인강도인 것입니다. 이 죄는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이 사함을 받기 위하여는 무슨 일인들 못할 것인가! 여러분은 이러한 무리인 연고로 때려서라도 내몰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몸이 찢기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잠든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풀뿌리를 붙들고 울던 예수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편안한 자리에서 만난 식구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붙들면 가정을 끊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자는 있어도 이 땅을 책임지고 눈물 흘리는 자가 없습니다.
지구장들이 올 때마다 식구들을 더 고생시키라고 하고 싶습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은 7년노정을 걸어야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축소한 것이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종교의 전시장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경제면, 사상면에서 미국의 식민지입니다. 미국은 로마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이 몰렸듯이 통일교회도 몰릴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천주주의 이념을 품고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기독교는 십자가 하나로 말미암아 부흥했듯이 우리도 수많은 교파를 하나로 묶고 국가적 기반을 닦아 로마와 같은 입장에 있는 미국을 복귀해야 합니다.
유대교는 효자 효녀의 도를, 이스라엘은 충신의 도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유대교의 사명을 하기 위하여 효자 효녀의 도를 가르치고 충신 열녀를 만들어서 이스라엘 건국 이념을 완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들딸을 세워 참부모의 자리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되려면 참종, 참양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이루려 해도 충신이 없고, 종이 없으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던 길을 탕감복귀하려면 아들딸을 찾기 위한 3년간의 사탄 분별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간은 역사적인 아들딸과 직계의 자녀를 찾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은 역사적인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의 세계에 자리잡으면 원수는 깨어집니다. 선생님은 3정권시대를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유대교를 수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해야 했던 것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10대의 소년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으니 이들을 하나님 앞에 찾아 세워야 합니다.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념, 인격, 심정적인 면에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문화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민족이 되면 세계는 자기들을 지배해 달라고 꿇어 엎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려서라도 실력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7년 기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인데 여러분들도 같이 눈물을 흘리며 갔으니 복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복귀의 시대에로 들어왔습니다. 이념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는 때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고향 땅에 들어갈 때는 대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도 대이동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석유를 뿌리고 불살랐지만 이제부터는 휘발유를 뿌리고 불살라야 합니다.
박 정권과의 제2의 투쟁이 남아 있습니다. 또 삼천만을 인도하는 투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민주 우방국가가 머리숙이고 따르는 데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운세로부터 심판을 받습니다. 3차 전쟁에 이겨야 합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제2차 투쟁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40일간을 지내고 이제 돌아가야 할 이 시간에 있어서 생각해 보면 처음 올라왔을 때와 지금이 얼마만한 차이가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럼 이제 오늘 저녁을 마지막으로 하고 돌아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될 때, 과거의 나와 지금 이 시간의 나와 내일의 나가 어떻게 다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뜻을 모르던 과거의 나는 이러이러했었지만, 이제 원리 말씀을 통하여 뜻을 알고 난 오늘의 내 심정은 이러하다. 그러니 내일의 나는 이러할 것이다' 하는, 이런 나의 한 입장에서 이러이러해야 할 자기 자신을 모색하는 그 결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이러한 나에서, 이러이러해야 할 나의 그 과정에 비장한 재차의 결의를 각자의 마음에 끓어오르는 맹세와 더불어 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가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것도 역사 그 자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사람 자체가 역사에 있어서 어떠한 획기적인 한 초석을 남기는 것도 그 결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 범주는 한 개체의 마음 가운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이랬고, 오늘의 나는 이렇고, 내일의 나는 이러해야 할 것을 깨닫는 그러한 순간적인 경지에 놓여지게 될 때에, 거기에 미래에 대한 소망의 마음이 크든가, 혹은 미래에 대한 자기의 마음 앞에 용서할 수 없는 비참한 정경이 크든가 해서 이에 대한 반발적인 마음이거나 동경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갈래 길에서 결심한 그 결심을 가지고, 어떠한 치열한 투쟁이나, 고난이 나에게 닥쳐오더라도 이것을 다 무찌르고, 내가 환경에 굴복하는 자가 되지 않고 환경을 굴복시키겠다는 각오와 신념 밑에서 투쟁의 과정을 거친 승리자가 반드시 역사적인 한 전환점을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따라 한 인연을 갖고 나간다 할진대는, 통일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과 사명도 물론 있겠지만 자기라는 귀한 생명체를 두고 볼 때, 과거보다도 지금의 좀더 가치 있는 자기 모습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앞으로 오는 미래의 노정에 있어서 더 빛날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지니고 싶은 것입니다. 그건 인간이면 어느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순간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이제부터 가야 할 내 일생행로의 운명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 가운데 결심한 그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험한 사회악이 나를 주위에서 포위해 가지고 사로잡으려고 한다 할지라도 나는 거기에 포로가 될망정 항복은 하지 않겠다, 포로가 되어서 고통을 받는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내 절개와 내가 지켜 나가야 할 그 전통적인 신념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여러분들이 끝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 선 내 자신을….
이제 이날이 지나고 나면 여기에 있는 선생들이 직접 가 가지고 환경을 수습해 주고, 직접 생활의 지도자가 되어 주고, 여러분의 전후를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떠나면 지금까지 결심하였던 그런 환경보다도 더 비참하고, 내일의 환경은 더 외로울 것입니다.
또, 이 자리에서는 원수를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수련기간에 있어서 수련생끼리 혹은 식구끼리 좋지 못한 사연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차피 이 기간에 ㅁ수습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찾아가는 환경을 여러분들이 용서해 주고 여러분들이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수습되는 환경이 되지 못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도 여러분이 꿋꿋이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고 자기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약화되는 상태에 이르게 될 때 스스로 이것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내 힘이 아닌 딴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엎드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 스스로 무력한 상태에 빠지게 될 때는 기도보다도 이것을 빨리 보충할 수 있는 동지를 찾아 가지고 서로서로 협조하면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각자의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새롭게 다짐한 그 결심을, 어떠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신념을 이 시간을 지내고 떠나게 되는 환경에서 세우기를 부탁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 앞에 말씀하려는 제목은 뭐냐 하면 `나는 어찌하나'입니다. 그러한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한테 권고 말씀 하나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가고 나서도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에 혹은 추억에 남을 수 있는 말씀이 될까 해서 그런 내용으로 말씀해 보겠습니다.
`나는 어찌하나' 하는 그 입장은 어떤 면으로 보게 된다면 힘든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낙망된 자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 보게 된다면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소망을 대해 가지고 새로이 분발심을 가지고 자기의 용자(勇姿)를 전체 앞에 보여 줘서 수습하기 위한 그런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찌하나'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하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슬픈 일과 기쁜 일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또, 선한 일과 악한 일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도 있고 믿어 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내가 믿을 일이 있고 믿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상반된 환경에서 여러분을 끌고 있고 또 끌지 않으면 여러분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운명에 서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올시다.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에도 이렇게 왔고 이제 또 이렇게 가야 할, 또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언제나 고정된 환경에서 자기 생애를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이런 사회환경이 아니요, 우리 생활무대가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전체 사회인이요, 전체 인류요, 작게 보면 내 개인인 것입니다.
이 개인을 두고 볼 때,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좌우 전후 상하가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전체를 다 제껴 놓고 `나'라는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것은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을 것이어늘, 내 일생을 중심삼고 본다면 내가 이 땅 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낳아준 선조가 있고, 내가 지금의 나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나를 직접 낳아 준 부모가 있고, 또 미래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낳아줘야 할 후손이 있어야 하는, 즉 내가 부모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좀더 크게 보아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할진대는 이 하늘과 땅은 반드시 `나'라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엮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 피조물과 창조주, 창조주와 피조물을 생각할때, 그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도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개재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가 언뜻 보면 다른 개체로서 대롱대롱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인연의 세계, 관계의 세계에 놔두고 볼 때는 나를 빼놓고는 완전한 전체적인 가치, 혹은 절대적인 가치의 내용을 완결지을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소망에 불타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와 행복과 평화의 세계에서 참된 나로서 있느냐 할 때에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행과 고통과 증오 가운데 살면서 내 자신이 낙망과 절망의 길에 가까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좋을 수 있는 환경에서 출발하여 좋을 수 있는 내 자신의 생활을 세울 수 있다면 별문제로되, 좋을 수 없는 환경에서 출발하였고 좋을 수 없는 문제를 직접 대하여 처리해야 할 입장에 선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는 고통이 개재되고 슬픔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면 기쁨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못 되어 있고 슬픔이 내 생활을 감도는 세상인 것을 알게 될 때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나 자신도 슬픈 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어찌하느냐,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말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돌아가서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계셔서 천지를 창조했는데, 천지를 창조해 가지고는 반드시 여기에 대우주의 목적을 앞에 놓고 내가 생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나'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전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천지를 잃어버린 우리 인생이 된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도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섰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의 후손인 지금까지 역대의 우리 선조들을 중심삼고 볼 때, 오랜 역사노정을 섭리의 뜻을 대하는 일면에 서 가지고 따라 나오는 그런 시대 시대마다의 그 선조들도 역시 `우리는 어찌하나. 나는 어찌하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인연을 지니고 태어난 오늘날 나 자신도 역시 그런 운명의 권내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선조들이 `우리는 어찌하나. 나는 어찌하나' 하던 역사적인 비운의 유업을 남긴 그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때문에 오늘날 그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들도 역시 역사적인 보응으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역사적인 선조들이 슬퍼하던 그 운명을 지니고 내가 다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고 나와 같은 인연 가운데 살고 있는 오늘날 3천만 민중이면 3천만 민중, 세계 인류면 인류도 역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심각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어찌하나. 나는 어찌하나' 하는 고민 가운데서 신음하고, 그런 고민 가운데서 낙망하고, 그런 고민 가운데서 자포자기하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의 내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그와 같은 일이 또 나로부터 되풀이 된다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후대에 연결될 수 있는 세계,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돼야 할 미래의 자아의 생애 무대라는 것은 비참 그대로의 연속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기에 뜻을 품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는, 과거와 현재의 환경을 놓고 다시 한 번 뉘우치면서 이념의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느끼어서 그것을 찾기에 허덕이는 많은 무리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을 갖고 나선 우리들은 어떠한 무리냐? 과거 우리 선조들이 `우리는 어찌하나' 하며 고민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며 고민하고 있는 이 사회악과 대결하여 척결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한 획기적인 기점하여, 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절망과 도탄 중에 살아왔던 이 모든 과거 역사, 현재 시대를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이념 무대를 세워, 이제 우리들은 탄식적인 한에 잠기는,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 소망과 책임과 새로운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명감에 불타서 `나는 이 사명을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이런 제2 자아의 의식을 강화하는 자리에서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를 중심삼고, 나를 획점(劃点)으로 세워 놓고 보게 될 때 지금까지의 과거와 이제부터의 남아진 생의 노정을 지내는 여러분의 역사와 그 역사가 끝난 후 여러분의 후손을 중심삼고 되어질 역사가 차이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도리어 더 불쌍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의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어쩌나', 혹은 이 시대에 있어서`우리들은 어쩌나' 하며 도탄 중에 살고 있던 이 무리들이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무엇을 알아서 새로운 사명에 불타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 이러이러한 입장에 서서 내가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중 삼중으로 결의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에서 가야 할 나, 격동되는 마음의 자극과 내가 다진 모든 신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입장에서 원수를 대하여 공분의 마음을 품고 내일부터 달려가고자 하는 나는 어떠냐 하는, 소망적인 한 면을 중심삼고 `나는 어쩌나' 하는 이런 입장에 섰다가, 과거와 현재와의 현격한 차이를 여러분 자신들이 맺어 놓지 못한다 할진대는, 새로운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어쩌나' 해 가지고 결의한 입장에 선 사람이 새로운 면의 책임자로서의 무엇을 남겨 놓지 못한다 할진대는, 도리어 앞으로 후진들 앞에 여러분이 전통을 물려줄 수 없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크나큰 소망과 크나큰 이념의 세계에 보답할 수 있는 사명을 하는 것을 제지하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것 역시 우리들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과 땅의 일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한을 품고 `나는 어찌하나' 하는 그런 탄식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아담해와에서만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도 역시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어쩌나'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이념적인 하나의 창조세계, 창조이상세계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아들딸인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소망의 일념으로 바라보던 하나님의 그 마음 앞에 타락한 아담이 `나는 어쩌나'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도 역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탄식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돼 있으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모든 피조만물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만물도 역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지내 왔고, 하늘이 이렇게 슬퍼하고, 하나님이 곤궁에 빠져 있으니 만물도 역시 같은 입장에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서 지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영계는 말할 것도 없고, 지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도 그러려니와 땅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인간은 자리 자신이 저끄러뜨렸으니 그 죄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응당히 받아야 할 입장에 있겠지만 하나님까지도 '나는 어쩌나. 나는 어찌하나' 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뿐이 아닙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지내 오면서 인간들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같이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본래의 창조이상으로 보게 될 때에, 하늘을 중심삼고 보면 인간은 충신이 되어야 되고, 생활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것인데, 충신이 못 되고 효자 효녀가 못 됐습니다. 그러니 그런 효자 효녀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효자를 세우고 혹은 충신 열녀를 세우기 위한 그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내적인 하나님의 고충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도들도 이러한 한(恨)의 역사를 박차 버리고, 한의 시대를 전부 다 말아 치워 버리고, 이 땅 위에 하늘이 소망하는 충신열녀를 사보하고 하늘이 사모하는 효자 효녀를 소망하면서 그걸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전통은 반드시 충신을 찾고있고, 혹은 시대적인 환경에 있어서 부모에 대한 효자 효녀를 찾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바라보는 그런 내용은 남아 있으나 실체로서 하늘 앞에 찾아지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늘은 아직까지 말하고 나서 대답하는 자식을 찾지 못한 것이요, 심부름을 시키고 나서 심부름 간 자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것과 같은 답장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우리의 선조들을 대해 나오는 하늘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은 기나긴 역사노정에 있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또 그 마음 가운데는 `이 땅 위에 충신을 세워 놓지 못하면 어찌하나? 이 땅 위에 참다운 효자 효녀를 세워 놓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마음을 갖고 나오신 것입니다.
참다운 효자 효녀를 세워 놓으면 하늘의 소원은 거기서부터 무한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이 충신의 전통을 세워야 할 것이며, 효자 효녀의 전통을 이 많은 인간 앞에 세워야 할 것인데 그러한 환경도, 그러한 존재도, 그러한 민족도, 그러한 국가도, 그러한 세계도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는 `나는 어찌하나' 하는 애달픈 심정을, 하루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기나긴 세월을 하루와 같이 한을 품고 탄식하며 나왔다는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늘이 그와 같기에 하늘 앞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영계도 물론 그랬다는 것입니다. 역대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배반할 적마다 천상에 가 있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영은 물론이려니와 실수하고 간 모든 선조들까지도 그 시대의 후손들을 대하여 그들이 소원하던 그 뜻을 대신하여 탄식의 고비를 넘어 가지고 승리의 어떠한 흔적을 세우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는 소원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이스라엘 선민의 후손들이 하늘 뜻 앞에 모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에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 역시 `우리는 어찌할꼬?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불러 놓게 될 때는 크나큰 책임을 지워서 반드시 하늘땅을 대신한 충신, 효자 효녀로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 세워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런 선조들이 후손으로 태어났던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 뜻을 대할 수 있는, `나는 어찌하나' 하는 하늘의 일념을 제거시켜 줄 수 있는 이런 실체적인 대상의 존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땅을 대하는 영계의 영인들도 같은 입장에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섰으니 하늘의 뜻을 대해 나오던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요, 하늘과 땅도 마찬가지요, 오늘날 이 인류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인류의 입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늘은 전후를 알고 앞으로 갈 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 있었지만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전후도 모르고 그저 절망 가운데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서 생애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들을 바라보는 하늘은 또다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 후손으로 태어난 여러분 자신들은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하늘을 앞에 놓고 선조를 불러 바라보게 될 때 우리 선조 가운데 하늘이 고대하던 충신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없었다 할진대는 지금 나는 어떠한 존재냐? 혹은 우리 선조 가운데에 역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이 소원하시던 참다운 효자 효녀가 있었느냐 할 때에 없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후손된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입니다.
하늘의 역사는 복귀의 역사로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여 역사적인 발전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에, 오늘날 개인으로부터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까지 하늘을 품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면, 오늘 그 환경에서 개인을 지켜주고, 가정을 지켜주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지켜주고 세계까지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없다 할진대는 하늘은 또 이중 삼중의 짐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없이 역사를 세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입장에 있으니 개인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ㆍ국가ㆍ세계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종적 책임의 역사를 해 나오면서 한 중심을 세워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까지 연결시켜서 승리적인 결과를 일대에 세울 수 있는 세계적인 참다운 조상을 만들었더라면 그를 중심삼고 하늘은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가고 보니 때는 세계적인 때가 되었다 이겁니다.
지금 때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땅을 중심삼고 볼 때에, 복귀섭리로 볼 때에 세계적인 때인데 이 세계적인 때를 맞이하여 승리한 조상이 없게 되니 이 종적인 역사가 땅 위에 설 수 없으며, 종적인 역사가 설 수 없으니 횡적인 이 현실적인 기반도 세울 수 없는 연고로 하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택하여 세웠던 것을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고,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 앞에 책임 못 한 것을 또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어디 한 부분을 가꾸어 수습할 수 없는 이때, 이 사명적인 시대는 세계적 시대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세계적인 책임을 할 수 있는 민족ㆍ국가가 없으니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 이겁니다. 그 책임을 그 누구도 못 지니 하나님 자신이 또 져야 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현세를 바라보시고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그런 입장인 것을 우리가 미루어 보게 될 때 과연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은 섭리해 나왔지만 승리하게 한 것도 역시 하나님이요, 승리한 것도 하나님이요, 오늘날 역사를 이렇게 발전시켜 나온 것도 역시 하나님이요, 발전시켜 가지고 이것을 또 책임져야 할 것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체가 하나님으로서 끝나지 않으니 하늘은 비로소 인간과 동력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 세계적인 복귀의 한계를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이때에 있어서 개인을 대신하고, 그다음에는 가정을 대신하고, 그다음에는 민족을 대신하고, 그다음에는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ㆍ천주ㆍ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기준, `하늘이 바라던 역사적인 충신이 나왔습니다' 할 수 있는 한 기준이 있어야 되겠고, `하늘이 바라던 효자 효녀의 한 기준이 여기 있나이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가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땅 위에 있어야만이 오늘날 그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의 이념이 세계적이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이요, 그의 이념이 천주적이면 천주를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자로서 하늘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계시고, 인간세계의 종적인 역사, 횡적인 역사가 전부 다 실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입장에 있고, 이 인류가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있고 이도 저도 전부 다 '어찌하나' 하고 있는데, 이것을 책임지고 그 `어찌하나'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그가 즉 오시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올 때까지의 역사가 개인적인 무대로부터 세계적인 무대는 준비됐지만, 이 세계적인 도상에 있어서 일직선으로 내려오던 이스라엘 직계 선조들을 개인적으로 세우고 가정적으로 세워서 역사했지만, 완전한 승리의 결정을 세워 가지고 `이는 사탄세계 앞에 있어서 참 중심이요, 참 효자다' 라는 결정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다 심판하겠다 하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구원섭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한때에 와 가지고는 충신이 나와야 되는 것이요, 최후의 한 때에 와서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충신은 누구냐? 국가를 대표하고 설 때는 하늘 앞에 있어서 충신의 입장이요, 참다운 가정을 대표하고 나타나면 효자 효녀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 전통적인 심정의 도리를 상속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의 기준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충성을 다하고 지켜 온 그 절개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지상 위의 실체 기준으로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충신과 하나의 효자 효녀, 하나의 열녀를 세워서 비로소 그들로 말미암아 개인을 심판하고, 가정을 심판하고, 그다음엔 민족ㆍ국가ㆍ세계 전체를 심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게 될 때까지 하나님은 `나는 어찌하나' 하는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한을 풀 수 없기 때문에 보내실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지금까지 땅을 대해서 섭리하는 섭리의 고통보다도 그 섭리의 고통을 넘어서라도 또 다시 고통을 참고 또 해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 결심이 무엇이냐? 타락한 이 땅 위의 인간들을 붙들고 섭리하다가 인간들로부터 배반당하면 하늘은 피해버릴 그런 입장에 있었지만 소망으로 오실 메시아, 소망으로 오실 충신, 효자효녀가 미래에 기필코 올 것을 믿고 그를 위하여 길을 닦으면서 그 한날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내려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어떠한 분이냐? 하늘의 한을 대신한 분이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하늘 앞에 있어서 효자의 도리, 충신의 도리를 세우지 못하고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이러한 탄식권의 세상 앞에 비로소 인간세계의 한을 대신 사람하여 `우리들은 어찌하나' 하는 이 문제까지, 두 세계의 한을 책임지고 이것을 풀어드리기 위해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분은 하늘로 볼 때 하늘이 세운 충신이요, 효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입장에 선 사람 역시 열녀와 효녀인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천지가 아무리 요동하더라도 요동할 수 없는 충신의 칭호를 남겨야 되고, 아무리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효자 효녀의 칭호를 남겨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인류도 물론 공동적인 입장에서 공인해야 되지만 천상세계의 우리의 역사적인 과거의 선조들도 공인해야 되고, 앞으로 올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도 공인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공인되면 공인된 것이 억천만세에 최고의 중심으로 남겨질 수 있는 이런 존재로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게 되면 그분이 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 그분은 내적으로는 하늘을 위로해 드리고 외적으로는 인간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상의 인간들은 낙망과 절망, 탄식, 최후에는 자포자기하여 인생의 모든 가치를 망각해 버리고 생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수라장을 이루고 있으니 이런 전인류를 책임지고 보호해야 된다는 겁니다
보호해 가지고는 무엇을 만들어야 되느냐? 하늘은 충신을 바라는 것이요, 효자를 바라는 것이니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 새로운 교훈을 세워서 가르쳐 줘 가지고 만민을 하늘의 효자, 충신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대신하여 전충신의 왕이 돼야 되고, 효자의 왕의 자리에 서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한 때가 기필코 땅에 왔다 할진대는, 그때를 맞이한 우리 개체들은 어찌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역사를 생각하나 혹은 실체로서 생각하나 우리 선조 가운데서 하늘을 위하여, 충신은 못 됐을망정 충신의 심부름꾼 노릇이라도 하고, 또는 중신이 고통을 받는 데 있어서 어떠한 면을 도와준 조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생각해도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들은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자기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분석하여서 과거의 역사적인 면을 회개하고, 그와 동시에 이 시대적인 면을 회개하고, 즉 과거, 현재의 모든 것을 회개하는 동시에 이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그러한 나를 중심삼아 하늘의 충신의 도리를 이 시대에 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혜택을 부여받고, 효자가 될 수 있는 도리를 부여받았다 할진대는 있는 충성을 다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뜻을 알고 하늘의 심정을 알면 알수록, 그 책임적인 입장에 서면 설수록, 자기가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어찌하나' 할 때에 위로는 선조를 대하여도 변명할 수 없고, 이 시대의 인간을 대하여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단 책임적인 사명을 우리들이 느끼면 느낄수록, 그 선조들이 충신이 못 됐고 효자가 못 된 것을 한하면 한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내 자신에 있어서는 더 큰 충성이 필요하고, 더 큰 효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말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는 역사적인 최후의 시대를 맞이하여 하늘의 충신의 도리를 배워야 되겠고, 하늘의 효자 열녀 효녀의 도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하늘을 대해 나오는 최고의 소망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충신의 도리를 배울래야 배울 수 없었고, 효자 효녀의 도리를 배울래야 배울 수 없었고, 열녀의 도리를 배울래야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민족ㆍ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별적인 주권을 기반으로 하여 하늘을 대하여 충성을 해야 할 것을 국가에게 했고, 하늘을 대하여 효성을 해야 할 것을 자기를 낳은 부모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관계에서만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오시는 주님이 세계적인 충신이요, 역사적인 충신이요, 역사적인 효자 효녀였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충신으로서 하늘을 대할 수 있어야 되겠고 그로 말미암아 내가 하늘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충신이 되어야 됩니다. 우주사적인 충신이 되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도리를 몰랐고 그러한 길을 몰랐으니 그 길을 가르침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충신의 도리와 열녀의 도리, 혹은 효자 효녀의 도리를 세계사적으로 한 분밖에 없는 그분으로부터 배워가지고 그런 시대 환경에 처해서 그런 입장에서 그런 길을 갈 수 있다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는 어찌하느냐? 나는 어찌해야 될 것이냐? 충신이 가는 모든 생활 태도, 효자 효녀들이 가는 생활 태도를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그것은 각자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뜻을 알면 알수록, 아버지의 심정을 알면 알수록, 뜻에 대한 사명을 져야 할 것을 자기가 각오하면 할수록 과거 우리 선조들이 역사에 남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무엇으로 막아낼 것이냐? 현재 우리 민족과 세계 인류의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막을 것이냐?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렇지만 오늘날 하늘이 엄청난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 세우는 데 수고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겁니다. 이건 엄청난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일신을 어떻게 해서 갚을 도리가 없고, 어떻게 해서 세울 수 없는 것이지만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를 잊어버리고, 하늘의 모든 과거의 심정을 다 잊어버리고, 그건 다 그만두고 앞으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와 일체가 되라 이겁니다. 과거의 선조가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실수는 다 그만두고 하늘을 위하여 곡절을 겪었고 하늘을 위하여 눈물지었고 아버지 자신이 `나는 어찌하나' 하시었고, 천상천하가 전부다 그런 한을 품고 지내온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 한을 총 책임지고 오시는 메시아를 대하여 그가 가르쳐 주는 도리를 따라 눈물과 피와 땀의 그 모든 심정을 다하여서 그가 가르치고 명령하는 대로라도 순종하고, 그가 가르치는 그 생활권 내에서 효자의 도리라도 세우기를 바라는 그러한 기준으로써 하늘은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내 자신과 여러분 자신은 이 황공함을 금할 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6천 년동안 하늘과 하늘을 중심삼은 우리 선조들이 한 모든 것을 전부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 오신 그 주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러한 내적 싸움과 외적 싸움에 다 참석 못 하더라도 그가 직접 생활 무대에서 명령하는 명령이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명령을 하면 명령이라도 실행할 줄 아는 입장에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효자, 혹은 충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시겠느냐? 사탄과 하나님과 선조들이 `요만한 정도로 나가는 기준이라도 되어야 최소한도 충신의 명예를 줄 수 있고, 요만한 한계에서 움직여야 최소한도 효자 효녀라 할 수 있다' 하는 최소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세워 만민 앞에 그런 길을 가라고 명령할 때가 올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거든 나는 어찌하나?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과거를 걸어놓고 현재를 걸어 놓고, 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 그런 나로 말미암아 고통당한 것을 생각할 때는 몸둘 바를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다 잊고 어느 한 때에 있어서 충신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고 가라 하고, 효자 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고 가라 하는 제일 낮고 제일 적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명령을 신봉하고 복종하고 책임 완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충신이 못 되거든 충신의 후손으로 만들어 주고 효자 효녀가 못 되거든 효자 효녀의 혈족으로라도 이 만민을 옮겨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오시는 주님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하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깊은 회개와 진한 눈물을 동반하여 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결실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보응으로서 `나 같은 것은 설 수 없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우리에게 이런 시대를 맞이하게 하여 세워 주다니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아야 되고, 감사로 끝날 것이 아니라 여기에 책임감을 갖고 `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과거의 우리 조상과 같이 되지 않고 현재의 우리 부모와 우리 형제와 같이 되지 않겠다'라고 분하게 재결의할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떠나야 할 수련생 여러분은 내일이 되면 가게 되는데, 과거를 보나 현재를 보나 미래를 볼 때에 분하고 한스러운 공분의 마음에 사무쳐 `이것은 누구 때문이냐? 우리 선조인 아담 해와의 모든 실수로 말미암아 된 거다. 아담 해와의 실수는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느냐? 이놈의 사탄때문이다. 이 분함과 이 억울함, 이 의분심과 공분심을 이 원수를 갚는 데 풀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원수의 농간으로 6천 년 동안 효자 충신의 도리를 유린했거늘 내 시대 이때에 결단코 이것을 용허할 수 없다. 단연코 이것을 처치해 버리겠다. 남은 여생을 통하여 하늘이 남겨 준 충신의 도리, 효성의 도리를 최소의 자리에서라도 지키겠다' 하는 각오와 결의를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의 한탄이 `나는 어찌하나'라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에 대한 후회, 지금까지 선조들에 대한 후회, 이 시대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하늘이 세우신 뜻을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온 우리의 선조들을 이 땅이 저주하고 이 땅이 핍박하였으니 거기에 대한 분한 마음을 가지고 이것을 책임져야 되겠어요. 바로 이것은 사탄 때문이니 사탄을 이 지구상에서 박멸하여 오시는 주님이 그가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평탄하게 하고, 그가 세울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준비하고, 그가 민족을 찾는 데 있어서 준비할 수 있게끔 자기 자신이 노력하고, 그가 민족을 합하여 국가를 세우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 대열을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세계를 찾는 데 있어서 그 분야를 넓히고 도움 될 수 있는 면을 넓히기 위하여 자신이 수고해야 된다 이겁니다.
이런 전반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사회ㆍ종족ㆍ국가ㆍ세계에까지 뜻을 중심삼고 개체로서 승리적인 기반을 사탄과 하늘땅 앞에 세우고, 개인으로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그 발판이 되고 판도의 기반을 대신할 수 있는 이러한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있는 충성을 다하여야만 어느 기간 쯤에 가 가지고 비로소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번에 충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신, 효자 효녀의 도리를 유린하는 이 후손들을 어떻게 해서 충신, 효자 효녀의 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겠느냐? 어느 기간 개인과 가정과, 종족 이렇게 쭉─복귀노정의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6천 년 동안 종적인 역사를 거쳐 이 역사를 횡적인 어느 기간을 세워 가지고 요 기간에 있어서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사회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복귀섭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이 `이제는 충신의 도리를 세웠다. 혹은 효자 효녀의 도리를 세계 인류 앞에, 만방 앞에 세웠다. 그 세운 것이 다시는 침범받지 않는다' 하는 절대 안전한 자리까지 여러분들이 참고 같이 나가야만 충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찌해야 하느냐 하면 충신이 되어야 되겠고 효자 효녀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늘의 소원이예요. 이것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바라고 왔던 소원이요, 우리 선조들의 소원이요,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소원이요, 이 시대에 당면한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원대로 되어야 되겠다 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섰으니….
가르쳐 줄 도리가 없었고 가르쳐 줄 길이 없었기에 과거에는 될래야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되려면 될 수 있는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알고 나는 기필코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역사적인 모든 선조와 같이 또 영계에 가서 `나는 어찌하나' 하면서 한을 남기는 무리가 되지 않고, 내 일대에 있어서 이걸 종결지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위치에 설 수 있는 후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단결하고 하나되어 이것을 완결시키어 국가적인 충신의 기반, 국가적인 효자 효녀의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련생 여러분들이 이제 나가려면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남은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신, 효자 효녀가 되어야 되겠다는 이런 입장에서 과거의 슬픔과 현실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고 원수를 갚아야 되겠어요.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요, 천지의 원수요, 우리들의 원수인 이 원수를 대하여, 하늘의 염려를 덜어 주고 하늘의 아들딸의 염려를 덜어 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원수도 역시 `그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라고 공인할 수 있는 이런 승리를 가져와야만 여러분은 충신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제 나가는 수련생들은 단단히 결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몇 식구 안 될 때는 나가기 쉬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직접 지도했고 영계에서 직접지도 했지만 지금은 영계도 지도하지 않고 선생님도 지도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지구장 지역장들이 지도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뜻 앞에 충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되는 도리에 있어서 내용이 달라졌느냐 하면 아니다 이겁니다. 그것은 마찬가지지만 직접적인 간섭을 안 하니만큼 거기에서 충성을 하면 할수록 그 가치는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때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하늘은 받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간섭을 안 하는 자리에서 효자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지시하고 명령하지 않아도 원수 사탄을 대해 복수하고 탕감하기 위해 책임지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복이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 시대와 이 세대를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이런 내 입장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내일을 향하여 `나는 어찌하나'하는 이런 문제에 부딪칠 때 나는 충신이 되었고, 효자 효녀가 되었다 할 때까지 쓰러지지 말고 기필코 나가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기도하자구요.
아버님, 지음받은 모든 만물은 아버지의 손길에 의해 빚음을 받을 때에는 전부가 기쁨으로서 아버지의 영광의 상징의 물체로서 나타났던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이 천지가 탄식권 내에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승리의 날을 성취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때를 고대하며 지금까지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나이다.
하나님이 `나는 어찌할꼬' 하시던 그 한스러웠던 심정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한 영계에 있는 우리 선조들이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더라도, 자기들이 책임 못 하여 후손에게까지 이것을 연장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슬픔이 남게 된 것을 직접 대하고 직접 알 수 있는 입장에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천 번 죽어 백 번 죽어 그런 길을 면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마음으로 하늘 앞에 회개의 눈물을 영계에서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원한을 하늘은 긍휼로써 살펴 주시고 역사적인 후손을 다시 한 번 품어 주시기 위하여 메시아, 부모를 보내셨고, 부모는 그 슬픔을 전부 다 자손에게 나눠 주지 않고 자녀의 슬픔을 다시 맡아 주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고맙습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금의 참다운 현실적인 모든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앞에 충신과 열녀가 되는 길은 이런 길이요, 효자 효녀가 되는 길은 이런 길이다' 하는, 부모가 가는 그 생활적인 법도에 따라서 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충신이 되고 하늘의 효자 효녀가 되는 그 자리를 남겨 주기 위해서 재림이란 날을 세우시어서 6천 년 동안 섭리해 온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뜻과 그런 사명의 내용을 저희들은 심정을 통하여 이제 배웠습니다. 40일 기간을 통하여 남이 모르는 이런 세계적 분야를 알았사옵고, 남이 모르는, 아버지를 중심삼은 관계와 인연이 어떻게 돼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런 자리에 있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게 될 때 이제 단 한 가지 방법은 딴 것이 아니오라, 명령에 순응하고 그 생활과 그 전통과 그 행동의 모든 것을 본받아서 사탄 앞에 굴하지 않고 하늘을 대신해 꿋꿋이 싸워 원수를 자연굴복시킴으로써 승리의 자리에 나가 하늘이 `너는 내가 기억하는 충신이요, 내가 공인하는 효자다' 하는 동시에, 사탄까지도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하늘의 아들이다'라고 할 수 있는 증거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최후의 고비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 고비는 한 순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를 향하여 그런 기간을 중심삼아 넘어가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기간에 저희들이 충성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절대 순응하여 산 제물이 되더라도 부족함을 느끼면서, 원수 앞에 하늘의 위신을 세우고 자기의 비열함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천적 위신을 세워 나가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는 동시에 충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가는 생애의 노정을 부탁하오니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낙망과 낙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아직까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약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아시어서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간섭하시어서, 아버지가 세우신 바 본연의 참다운 충효의 도리의 권내에 있어서 아버지가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여 영광 중에 기쁜 세계를 바라보고 길이길이 영원무궁토록 영광가운데 살 수 있는 자리에 이들도 동참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아버지, 품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염려하고 지방에서 이들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그들과 이들이 만나서 같이 서로서로 뜻을 대신해 나가는 길에 있어서, 서로서로가 힘이 되고 서로서로가 권고하고 서로서로가 빚지지 않고 서로서로가 빚을 지우기 위한 하늘의 선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죽기 전에 충신 효자 효녀의 명패를 들고 아버지 앞에 다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만만사의 영광이 이들과 같이하여 주옵기를 주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은 이 식(제18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을 마치고 돌아갈 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환경에 굴복하지 말고 오히려 환경을 굴복시키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나는 어찌 하나’입니다. 세상에는 기쁨과 슬픔이, 선과 악이, 믿을 수 있는 일과 믿지 못할 일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과거·현재·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조가 있고, 부모가 있고, 또한 자손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인간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이러한 인연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참된 내가 되지 못하고 낙망과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나를 개선해야 됩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 즉 나 하나를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도 하나님도 ‘어찌 하나?’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통일의 무리들은 소망과 책임과 사명에 불타는 제2의 자아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조 중에는 참다운 효자 충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면 그는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위로해야 하고, 외적으로는 인간을 보호해야 하며 자기를 기준으로 효자와 충신을 세워야 합니다.
주님이 ‘효자와 충신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 놓아라.’고 명령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나는 어찌 하나? 충신과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오늘 총회를 끝마치면 각자 자기가 결의한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진대, 이 뜻이 누구로부터 나온 것이냐?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뜻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개인이 그러한 동시에 가정도 역시 뜻을 가져야 되겠고, 한 민족이면 민족도 역시 뜻을 품은 민족이 되어야 되겠고, 한 국가면 국가도 역시 뜻을 품은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세계면 세계도 역시 뜻을 품은 세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라가게 된다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는 그 하나님도 역시 뜻을 품으신 하나님이라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의 유래와 뜻의 전통과 뜻의 원천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중심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중심이 되느냐? 즉, 피조물이 중심이 될 것이냐,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께서 중심이 될 것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면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 인류의 역사적인, 혹은 시대적인, 혹은 미래적인 모든 뜻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그 뜻은 누구를 위한 뜻일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뜻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피조물을 위한 뜻일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뜻은 하나님을 위한 뜻도 되거니와 피조물을 위하는 뜻도 될 것입니다.
이 뜻이라는 것은 개체적인 입장에서 시작하여 그 개체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주체이신 하늘이 계신다 할진대 그 하늘 앞에 반드시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땅, 혹은 인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연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은 하나님을 위한 뜻이 되는 동시에 우리 인류를 위한 뜻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창조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했느냐?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이 피조만상을 지으시고, 혹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친히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고, 인연을 갖고 있는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아버지의 뜻을 우리 앞에 드러내 놓고 바라보게 될 때에 그 뜻은 어떠하냐? 그 뜻 가운데는 큰 세계, 우주도 들어가지만 물론 하나님 자신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기에 등장해야 되고, 그 뜻 앞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이 등장해야 되고, 즉 내가 등장해야 되고, 나를 중심삼은 생활무대, 내가 살 수 있는 생활환경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전체적인 뜻도 뜻이지만 그 뜻 가운데서 내 개체를 중심삼고 나에게 요구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시는데, 내 자체의 생의 목적을 중심삼고 주시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되느냐? 완전한 자신이어야 돼요. 내 자신의 생활은 어떠한 생활이어야 하느냐? 완전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디를 기준해야 하면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야 하고, 창조주를 기반으로 하여야 하고 창조주를 표본으로 하여야 합니다. 그 표본을 중심삼고 이념적인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하늘만이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있고, 완전한 생활적인 표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뜻 앞에 선 완전한 개체로서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거기에는 고통이 개재해서는 안 될 것이요, 희락과 만족, 혹은 행복과 영광의 상징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의 모든 개체를 들고 나선 곳곳마다 그는 영광의 상징이요, 해방의 상징이요, 자유의 상징이요,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됩니다.
또, 그와 같은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무대는 그러한 여건들을 배경으로 하여 그 환경에 또다시 인연을 맺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서는 자기가 제일 원천, 혹은 제일의 동기가 되야 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개체로부터, 그러한 입장에 선 가정, 그러한 입장에 선 사회, 그러한 입장에 선 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을 이루려는 것이 아버님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완전한 개인과, 완전한 가정과, 완전한 사회와, 완전한 국가와, 완전한 세계, 이러한 모든 형태들이 완전한 생활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이것이 아버지의 생활 감정과 일체될 수 있는 그런 세계, 이것이 아버지께서 구상하시던 이상적인 세계요, 이것이 아버지께서 세우시려던 내적인 뜻이었음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볼 때에 아버지 앞에 아버지를 위주로 한 사람이 있었느냐? 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개인이 있었느냐? 그런 개인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으나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 선 인류의 시조는 그러한 입장에서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찾고 있는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사회,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구상하였던 중심의 뜻이었으나 그 뜻을 대할 수 있는 존재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구상하셨을 것인가?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길이길이 자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길이길이 즐길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길이길이 행복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그러한 세계, 그런 천주를 구상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하나님이 `좌' 하면 전체가 `좌' 하고, 하나님이 `우'하면 전체가 `우'하는 그런 세계, 수천 수만이 하나의 모습을 모방하여 되어진 그러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배운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징세계가 있는 것을 알고, 형상세계가 있는 것을 알고, 실체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 자신에게는 마음이라는 존재가 있고, 마음을 위주로 한 내연의 인격적인 개체가 있습니다. 그 개체를 중심삼은 거기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이념을 대동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내 몸뚱이를 중심삼고 보면, 마음이 있는 동시에 몸이 있고, 몸이 있는 동시에 마음이 있어요. 여기에는 반드시 대응적인 하나의 이념을 내포하고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3세계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하나의 목적의 기반을 갖추게끔 되어 있는 고로 사람은 이러한 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고 합시다. 길을 가는 그 사람을 두고 볼 때에 아무개라는 실체가 걸어가는 것 같지만 그 실체가 걸어가는 데는 내적 사람인 정신이 먼저 걷고 있다는 거예요. 정신이 걷고 있는 거기에 실체가 걷는 것이요, 실체가 걷는 거기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걷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이념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은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요, 몸과 마찬가지의 실체를 상징형으로 그림자와 같이 보내 준 것이 이 우주만상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만상을 무엇을 표방하고 지었느냐 하면 하나님 자체를 표방하고 지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형상적이나, 상징적인 위치에 있을 뿐이지 그 근본 주체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온 피조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러한 이념에 있어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냐? 이 지상에 하늘을 위주로 한 형상적인 세계를 구상하고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예수의 뜻이고, 예수를 보내신 하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을 실체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뜻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어떻게 해야 했느냐? 하늘나라를 구성하기 위한 재료,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모든 재료를 수습하는 환경을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재료를 수습하려니 여기에서 종족이 다른 가정, 혹은 혈족, 혹은 자기 선조가 다른 이런 수많은 종족을 규합하여 여기서 하나의 민족을 만들고, 수많은 민족을 규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 수많은 국가를 규합하여 하나의 주권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의 주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목적인 동시에 예수를 보낸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뜻의 목적점은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지상에 최후에 이루어져야 할 목적이 무엇이냐? 선한 사람을 통하여, 혹은 메시아를 중심삼고 수많은 종교를 수습하고 규합하여서 영원히 남아질 세계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냐?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하늘나라를 모방한 나라, 하늘나라를 모방한세계, 하늘나라를 모방한 천주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찾으려는 창조의 목적이요,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세우려는 이념적인 표준인 천국건설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내적인 천국관이 있어서, 그 내적 천국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피조만물세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천국관과 상대적인 외적인 천국관이 일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도를 거쳐 가지고 이 틀어진 모든 외적인 세계를 수습하여 내적인 이념천국의 상대적인 실체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식구로서 생각해야 할 최후의 목표가 무엇이냐?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냐? 대한민국은 한 나라인데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존재하려면 주권이 있어야 하고, 영토가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토는 백성을 키우고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영토가 되어야 되고, 그 백성은 주권을 보호하고 주권을 길이길이 맡을 수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땅은 백성을 키워 줘야 할 책임이 있고, 백성은 주권을 보호하고 주권을 세워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르고 있는 아버지, 창조주 입장에 세워 놓고 부르게 되면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명사를 우리가 부르게 될 때, 그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는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서`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때 그 아버지 자체 가운데는 이 우주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아버지 자체 가운데는 우리 인류가 다 들어가 있는거예요. 그 아버지 자체 가운데는 우리의 이념과,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상대적인 세계에서 요구하는 모든 요구의 조건이 필연적으로 내적인 동기를 가지고 이 땅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발전 발전을 거쳐 나와 하나의 이념세계를 향하여 진전되어 나가는 데에도 역시 과정적인 단계에서는 뜻에 배치되는 일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최후에 궁극적인 목적, 목표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내적인 표준점과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역사적인 종교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섭리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의 내적인 기준과 외적인 상대적인 기준을 갖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이 주장하고 싶었던 천국, 예수가 주장하고 싶었던 천국,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바라고 있는 천국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천국을 위주로 해서 외적인 실체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낸 것입니다. 그 메시아를 표준으로 삼고 메시아와 일체가 된 천국이념을 갖고 사는 세계가 되면, 예수는 하나님을 닮고 우리들은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과 몸과 그림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 내적인 실체가 동하면 외적으로 인연된 전체가 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인 기준은 동하고 있는데 외적인 기준이 동하지 못하게끔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런 연고로 내적인 기준이 응할 수 있는 외적인 환경을 수습하여 내적인 기준과 일체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것이 개인으로부터 온 세계에 이르기까지 완전일체가 되어서 일체적인 인연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피조세계와 창조주는 외적인 어떠한 힘이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영원한 인연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을 가지고 나타나는 그때까지 하나님의 뜻은 남아지는 것이요, 예수의 뜻은 남아지는 것이요, 인류의 뜻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완결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냐? 이것은 심정을 갖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심정을 갖고 해야 할 천륜이 남아 있는 고로 인간을 대해서 하늘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찾아오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대하여 아들의 입장을 찾아 나가는 것이요, 만물은 아버지와 아들의 품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가 복귀의 운명을 되찾아 들어가는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들이 들고 나온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통일 신도들이 들고 나온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부르짖는 뜻, 우리가 찾아 나가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아버지의 뜻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요, 예수가 바라는 뜻의 나라, 예수의 나라요, 오늘날 우리의 뜻의 나라인 동시에 내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체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반영적(反映的)인 실체가 되는 동시에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반영적인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국가, 혹은 이 영토가 하나님을 모방하여서 반영적인 실체가 대상의 실존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냐? 하나님의 주권을 대신한 형상적인 실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실체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이 내적, 외적인 관계에 있어서 심정을 통하여 일체적인 관념을 연속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확정짓는 데서 비로소 뜻의 출발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거예요.
내 개인이 출발하기 위해서도 역시 그와 같은 삼위의 기준을 심정적인 기반 위에 터전을 닦고 거기에서 내 개체를 들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뜻 앞에 선 개체가 될 수 있고, 이 기반을 위주로 하여 가정, 국가, 세계까지 퍼져야만 아버지의 뜻 가운데 설 수 있는 인류가 되고, 이런 인류가 하나의 주권을 위주로 하여 하늘을 모시고 나가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되고 수많은 주권이 아버지 뜻에 합치될 수 있게 되면 이 천지는 비로소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지상천국이 됩니다. 즉 말하자면 이념적인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셔 놓고, 하나님편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념적인 개체로부터 그 개체를 통할 수 있는 세계 만민이요, 이념적인 개체를 통할 수 있는 세계주권이요,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그 개체의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는 복지의 이 지구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것이 되어 있느냐 할 때, 이 지구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가 탄식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주권을 걸어 놓고 탄식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백성을 걸어 놓고 탄식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 모든 지구가 하나되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 되겠지만서도 그보다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두고 보게 될 때에 내 한 개체가 제일 문제시하여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인류를, 백성을 대신해서 세울 수 있는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주권을 대신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실체로서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타난 그 가치가 오늘날 이 천상 천하의 타락한 세상의 인류, 타락한 세상의 어떠한 영토, 타락한 세상의 어떠한 주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개체를 하늘이 찾기 전에는 이 온 천지를 하늘이 구상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나라로서 복귀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이 무엇이냐? 타락한 사탄세계의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혈족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가 없어서 하나님이 탄식한 것이 아니요, 사람이 없어서 탄식한 것이 아니요, 수많은 주권이 없어서 탄식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냐 하면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심정의 아들, 수많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심정의 아들, 수많은 천지의 만상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 없어서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것은 아들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완결짓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로부터 실체를 갖추어서 영인체를 불어 넣어 가지고 그 영인체를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삼위상을 완결지은 이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중심으로 세우려 하였던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뼈와 살이 통하고 모든 정신이 통하여서 하나의 감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움직이면 그 뼈와 살을 통하여서 지음받은 모든 만상세계, 모든 피조세계는 자동적인 원칙에 의해 가지고 움직이게끔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 인간다운 가치의 내용을 어디서 지닐 수 있느냐? 우리의 몸뚱이가 있음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예요. 나를 위주해서 보게 될 때에 사람이라는 것은 이 지음받은 모든 천지만물의 형상을 대신한 실체요,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을 세우고 나오는 상대적인 표본체예요. 안팎을 갈라 놓으면 하나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요, 하나는 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분립시킨 그것을 둘로 합쳐 놓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되면 하나님과 우리는 일대일의 입장에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갈라져 있고, 이것을 반영한 모든 상대적인 세계가 하늘땅이 갈라진 결과와 마찬가지의 것과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것을 외적으로 하나로 규합하고 혹은 인간을 세워 내적으로 하나로 규합하여야 하는데 완전한 규합의 일치점을 찾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예수로서 등장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이 실체, 둘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수습한 인간의 안팎을 완비한 실체를 대신하여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팎의 세계, 내적세계와 외적세계를 수습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상대의 발판을 편성하려는 뜻이 유대교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좌절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체적 세계형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직전 내적인 세계의 상징체와 같은 영계를 기준으로 하여 천사세계의 모양과 같이 세우시고,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신랑 신부의 이념을 표방하여 비로소 아담 해와를 지을 당시에 가지셨던 이념을 중심삼고 제2차 발판을 재현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향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외적인 세계를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수습하기 위해서 내적으로 종교를 세웠고, 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것입니다. 따라서 이걸 끌고 나와 예수를 위주로 한 내적인 이념과 외적인 실체의 이 세계가 일치되게 했더라면, 즉 영적천국과 지상천국 이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이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이 예수를 중심삼고 벌어졌더라면 필시 예수를 위주로 하여 일체가 되어 상대적인 이 지상 위에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위주로 한 그런 사명을 완결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재현할 수 있는 한 날을 소원으로 남기고 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명사를 갖추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 이때는 어떠한 때냐?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의 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를 대신하여 수많은 민족을 기준으로 한 민주주의와 이것을 기준으로 한 기독교의 사명이 지대하다는 거예요. 이러한 세계적인 환경을 외적으로 수습하여서 안팎이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관 위에 하늘이 세우고 싶었던 참다운 부부,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 참다운 천국까지 재현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졌느냐? 이것을 완결시키기 위한 사명을 지닌 거예요.
현재 통일교회를 믿는 식구의 입장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하늘이 바라던, 이념적인 아버지의 내적 심정으로 바라던 그 천국, 그 나라를 위주로 하고 보게 될 때 그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주권이 있느냐, 백성이 있느냐, 혹은 그 나라의 하늘과 땅이 되어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는 그 땅이 없고, 그 백성이 없고, 그 나라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봉행하여 하나의 국가적인 세계형을 전개시킬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축소시키면 하나님은 국가적인 대표요, 주권적인 대표요, 백성적인 대표가 됩니다. 모든 전부를 대표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념을 대신하여 이것을 내 뜻, 내 이념, 내 소원으로 갖고 나왔다 할진대는, 여러분 개체를 전개시키면 하나의 민족이 되는 것이요, 이것을 더 크게 전개시키면 인류를 대신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더 크게 전개시키면 하나의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백성을 축소시킨 실체요, 수많은 주권자를 축소시킨 실체입니다. 또, 여러분이 서 있는 땅은 이 천지를 축소시킨 땅이니 여러분은 그러한 땅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가침적인 승리의 기준에 선 내 자신이 되어 오늘 이 사탄세계를 영원히 확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을 두고 볼 때, 한국 백성이면 그 백성이 무엇이냐? 그 배후는 반드시 주권을 대신하고, 영토를 대신합니다. 3천만 민족이면, 3천만 민족 중 한 사람을 침해하는 것은 일개인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침해하는 거와 마찬가지요, 그 민족을 침해하는 거와 마찬가지요, 그 국토를 침해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은 언제나 그걸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한 존재는 실체세계의 축소체인 동시에 이념적인 주체세계의 축소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에 있어서는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요, 또 수많은 백성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며, 내가 사는 환경을 중심삼고 이 우주를 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셨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었느냐? 의인은 누가 결정하느냐? 의인은 예수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의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주권 국가가 생기고 나서 생겨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법도를 다 갖추고 나서, 인간을 창조하던 그 목적의 모든 내용을 실체적으로 완비해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의 인연이 하나님이 이상하던 그 법도의 궤도에 들어간 다음에 비로소 의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의 주권이 나오지 않았는데 누가 의인 권한을 결정지을 수 있겠어요? 역사도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물론이지만 예수 자신도 의인이 못 되었다는 거예요. 왜 의인이 못 되었느냐? 천지의 법도를 통하여 창조의 목적을 달성시켜 온 천지에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의 통일된 주권국가를 형성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주권, 즉 국가의 형성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 한의인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사명을 우리 앞에 남긴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제는 지방으로 갈 거예요. 가서 자기의 목적한 사명 분야를 따라서 움직이고자 할 때에 여러분 자체는 어떤 직장이면 직장의 한 분야에 있으면, 그곳에 속한 개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 직장을 하나의 주권국가를 대신한 것으로 알고, 그 위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삼천리 강토를 책임지고, 그 하나의 위치를 중심삼고 3천만 민족을 대신해 나가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한 역사적인 뜻이기 때문에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대신한 이념적인 주권을 대신한 실체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할 수 있는 그 나라의 백성을 대신한 실체요, 그 나라의 백성을 대신한 실체니, 그 땅을 내가 사랑하고, 내가 품고, 그 땅과 더불어 하나되어야 할 그런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이런 이념적인 감정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이념을 가진 국가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이 `아버지시여!' 라고 하며 기도하게 되는데 그 `아버지시여!' 하는 명사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구상하시던 그 구상 가운데는 이런 엄청난, 세계 인류가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어 당신의 품에 품기어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행복 속에서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려드리며 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버지께서 그런 자리를 가졌느냐? 그러한 세계는 제쳐놓고라도 내 개체에 있어서 그런 입장의 선 하나님이 됐느냐?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게 될 때에, 창조하시던 당시에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그들이 소망의 완성실체가 되기를 고대하시던 하나님 앞에 그들이 소망의 실체로서 완비되었다면 기뻐할 수 있고, 그런 심정을 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환경에서 거침없이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체로서 모든 것을 품고 하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내가 섰느냐 하면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할지라도 한 많은 환경에서 원수의 조롱을 받고, 원수의 환경에서 천신만고 투쟁을 하여 환경을 개척하는 자리에 있어서 하늘이 염려하고, 하늘이 슬퍼하고, 하늘이 걱정하는 배후를 가진 입장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슬퍼해야 돼요.
내 개체가 그러하지 못하니 하늘 앞에 세워졌다는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 가정이 과연 하나님이 온 천지에 하나의 천국이념을 완성할 그런 시대에 있어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렇게 될 때까지 하늘을 고통당하게 하고, 하늘 앞에 슬픔을 남겨 줄 수 있는 가정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언제 어느때에 무찌르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개체와 가정의 기반을 구축할 것이냐? 개체와 가정의 기반을 통할 수 있는 동시에 종족, 민족을 통하여 세계의 수많은 주권국가 앞에 내세울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부르는 아버지는 슬픈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나'라는 개체를 소원으로서 통할 수 있도록 승리적인 내가 되어야 되는 동시에 가정을 통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세계를 대신하여 이념적인 주권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내적인 창조이념 세계에 있어서 완결을 지을 수 있는 상대적 실체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갈 길이 얼마나 아득하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끔 이러한 기도를 할 때가 있어요. 지금도 그런 기도를 해요. `아버지여, 당신의 마음 깊이깊이 생각했던 영원불변의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자격을 나는 갖지 못하였습니다' 한다구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두고 볼 때에 하나의 주권을 위주로 그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기쁨은 전체의 기쁨이요, 아버지의 영광은 곧 전체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창조 이념의 깊은 심정 가운데 고이고이 남겨 두었다가 아담이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 가지고 최후의 영광 가운데 잠겨 온 천하의 주권 국가를 대신하여 그 이상의 가치의 자리에 선 아담으로서, 수많은 인류를 대신한 이상의 가치의 조상으로서, 만상세계를 대신한 이상의 가치를 지닌 아담 해와로서 품고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아직까지 못 나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에 굶주려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 가는 내 걸음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데는 어떻게 찾아야 될 것이냐? 그 사랑을 찾는 데는 먼저 국가를 통해서 찾는 것이 아니예요. 어디를 통해야 하느냐? 내 몸과 마음이 통일되는 데에서 찾아야 돼요. 나를 위주로 하여 이념적인 통일이 되는 거예요. 여기에 행동통일, 심정통일, 이념통일의 모든 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데 있어 어디서부터 찾아가야 되느냐? 내 개체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개체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과 같고, 몸은 이 세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실체이니 마음 앞에 고이고이 몸이 정복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몸과 마음의 승리적인 기준을 완전히 가져서 하나님을 부르면 거기에 해당하는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렇게 내 개체를 위주로 하여 참다운 나로 말미암아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 놓기 전에는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저끄렀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참다운 자신을 완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자신을 완결짓는 데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은 참다운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내 개체에서 완결지어 가지고 참다운 가정을 통해야 합니다. 참다운 가정의 사랑은 참다운 내 개체를 통하지 않고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다운 가정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참다운 민족적인 사랑은 나오지 않는 거예요. 참다운 민족적인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참다운 국가적인 사랑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은 자기의 내적인 사랑을 실체로 전개시키기 위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목적도 자기의 내적 사랑을 실체로 전개시키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상대적인 가치의 결정 기준이 성립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것들을 재수습하기 위해 나온 것이 복귀역사인것입니다.
우리 개체는, 내 개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나는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일체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 개체의 관계로 말하면 하나님은 마음이요, 나는 몸이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천지가 합할 수 있는 상대적인 실체의 기준이 내 자체에서 완결되어야 되는 거예요. 완결된 여기에서 비로소 하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일체된 가치가 한국이면 한국의 환경에서만 승리한 가치로서 세워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일체된 가치는 한국 땅에서도 일체요, 미국 땅에서도 일체요, 이 지구성의 어느 지역적인 환경을 초월하여, 어느 민족적인 환경을 초월하여, 어느 주권적인 환경을 초월하여 일체가 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예요. 이것을 찾아야 돼요. 그 기준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이념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실체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이념이 필요하고, 세계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내 마음과 몸이 삼위로서 일체되는 거기에서 비로소 내 개체를 기반으로 하여, 내 개체가 중심되는 거기에서 가정을 찾고 나서게 될 때에 나를 기준으로 하여 가정 앞에 상대되는 그 모든 사람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수습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통하고, 내 몸을 통하여 내 상대의 환경을 거쳐야만 하나님과 일체된 기준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혈족을 기준삼아 가지고 번식된 그 수가 사탄세계를 능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안으면 가정에서부터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쳐서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한 것이 뭐냐? 하나님은 개인을 불러왔고, 가정을 불러왔고,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 왔습니다. 그렇게 불러서 뭘하시려 했느냐? 민족 기반을 닦아 가지고 주권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권은 무슨 주권이냐? 하나님이 거기서 영원히 안식하려는 주권이 아니예요. 가인과 아벨과 마찬가지로 사탄과 싸워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천사장 국가, 아벨적인 천사장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있어서 외적인 사탄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아벨적인 천사장 국가의 승리한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하나의 주권을 재수습하기 위한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세계는 지금까지 그러한 국가 형태를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개체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개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지배받는 개체가 아니예요. 타락한 역사적인 세계를 능가한 개체인 것입니다. 능가한 개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세계의 수많은 국가, 수많은 주의가 많지만 여러분은 '내가 생각하는 주의와 이념은 하나님의 이념이요, 내가 구상하는 이 주권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내가 구상하는 국가 형태는 하나님의 국가 형태다' 하는 이런 철썩 같은 신념에 사무친 여러분 개체로서 어떠한 환경에도 치우침을 받지 않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환경을 제압하여 어느때라도 수습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념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사탄세계의 침범을 받는다는 결론이 벌어집니다.
그러니만큼 오늘날 우리들이 나가는 입장에서 내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 참다운 개체로서 나를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있느냐? 그런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참다운 자기가 참다운 환경을 가져 가지고 참다운 개인으로서 참다운 목표를 향한 심정을 대신해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에 `오냐, 너를 바라보면 소망이 있다'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런 여러분은 이념을 대신했기 때문에. 너를 바라보면 심정이 동한다' 하시는 것입니다. 왜? 아들딸을 대신했기 때문에. '너를 바라보면 축복해 주고 싶다' 하시는 것입니다. 왜? 주권을 대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럴 수 있는 불변의 심정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연장되게 될 때 선한 백성이 되는 것이요, 또 그것을 확대시키게 될 때에 선한 민족이 되는 것이요, 선한 국가, 선한 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를 어느때에 붙들고 내세우게 될 때에 뜻 앞에 화한 핵심적인 실체로서 수많은 주권을 능가하고 수많은 인류를 능가하고 이 천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자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자아를 중심삼고 언제나 결정적인 장소에서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여!' 하고 불러야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보면 그저 전부…. 오늘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사소한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천주적인 이념이 관에 있어서 하늘은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오냐,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내가 처한 환경에서 사탄세계의 어떠한 원수들이 오더라도 침범을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침범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침범을 하더라도 내가 패하는 법이 없다 이거예요. 원수들이 패하지요. 왜?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선은 패하는 법이 없어요. 환경에 치우침을 받더라도 여러분을 침범하면 원수들이 망하지 여러분이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가야 돼요.
그런 개체들이 합해 가정을 이루고, 그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종족을 만들고, 그런 종족으로 하나의 민족을 만들고, 하나의 주권국가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오늘날 통일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든지, 척 가게 되면 모든 천지가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고 여러분을 따라가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에서 내가 동하면 천지도 동하고 있다는 실감을 해야 돼요. 하늘이 나를 따라 움직이니 하나님의 심정 위에 내가 동반자가 되어 하나님의 심정은 온 피조만물의 이상적이요, 혹은 이념적인 생명의 요소인 고로 그 심정이 고동하는 자리에는 모든 피조만상이 자동적으로 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있는 연고로 여러분이 머무는 곳은 한때에 있어서는 상충이 벌어지는 거예요. 거기에 대등하는 원수가 있는 연고로 상충이 벌어질는지 모르지만 그 상충은 일시적인 상충으로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심정에 일치된 환경에 살면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온 피조만물, 온 천지가 여러분의 품안에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에 동하여서 여러분이 생활해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느때든지 침범을 당하게 됩니다.
뜻을 앞세운 생활을 하여야 오늘날 역사적인 원수 사탄 앞에 있어서 침범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침범해 와도 하나님과 내가 일체가 되어있는 연고로 하늘과 일치된 자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기준으로 일체가 되어 있는 여기에는 천지의 중심이 움직이게 되어 있는 연고로 그것을 사탄은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 교인들을 가만 보면, 처음에는 뭐 날뛰고 야단하다가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그 열기가 희박하게 되어요.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건 사탄 새끼가 다 된 거라구요. 오늘 이 심정을 중심삼고 아버지와 나와의 일체적인 감정에 동하여서 내가 하루 살고, 일년을 살고, 해가 거듭함에 따라서 그 환경의 인연이 내 품에 찾아 들어오도록 해야지 여러분이 이걸 삼켜 버리는 생활을 한다면 제2의 타락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여러분들이 이번 수련을 통하여서 각 지방에 다시 나가면 그야말로 실감적으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6천 년 동안 아버지께서 뜻 가운데 찾아 나오던 그 아들은 주권을 움직일 수 있는 아들이요, 만민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요, 천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니 내가 그러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나를 위주로 하여 이 모든 사탄세계를 움직여야지 내가 사탄세계에 의해 움직여져서는 안된다' 하는 신념을 철투철미하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그러한 나를 위주로 하여 주관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로 한 가정, 나를 위주로 한 종족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각자 그런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나를 위주로 한 가정, 그런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으로, 그런 종족을 위주로 하여 이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을 우리의 손아귀에, 우리의 움직임에 우리의 힘에, 우리의 이념권 내에 몰아 처넣게 될 때에는 꼼짝못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항하거나 항거하지 못할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비로소 하나의 주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어디를 척 가게 되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돼요. 움직이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들은 하늘과 사탄세계 앞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주기적으로 인연을 맺고 나가야 돼요. 춘하추동을 연결시켜서 일년을 연결시키고, 일년을 연결시켜서 수억천만 년을 연결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봄절기만 가지고는 일년을 연결시킬 수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반드시 사시장철을 연결시켜서 일년을 연결시키니, 일년이 억천만년을 연결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뜻을 대하는 우리는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연결시킬 수 있는 때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 회개할 때가 있고 은혜받을 때가 있으며, 은혜받고는 나누어 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은혜받은 것을 그냥 갖고 움추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나누어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늘은 나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십자가를 져 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지고 승리한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은혜가 오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제삼자의 입장을 탈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따라 나가지만 선생님을 중심삼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이야 어떻든지 나 홀로 지켜 나가야 할 신앙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은 가까운 사람한테서 체험하지 못하는 깊은 심정세계에서 하늘을 중심삼고 홀로 감사할 수 있는 생활, 홀로 만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늘땅을 바라보면서 `감사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런 것을 못 느끼겠거든 그 반대의 자리에서, 지극히 슬픈 자리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하오니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결의하여 재기하는 스스로의 기간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감사하고 만족함을 느끼는 반면에 회개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느껴 다시 맹세하는 이런 생활을…. 이 둘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사의 생활도, 회개하는 생활도 둘 다 잃어버리는 사람은 망해 버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클클하고. 하늘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면 샅샅이 파고 들어가 일부러 슬픈 자리로, 일부러 고통의 자리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고통의 세계에서 하늘이 나를 찾아 주던 그런 낮은 데를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는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일생 동안 피어린 투쟁을 한 것을 눈만 척 감아도 백 퍼센트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오는 걸음 앞에 있어서 그렇게 투쟁의 때가 있다 할진대는 아무리 슬픈, 아무리 어려운, 아무리 곡절의 환경이 있더라도 그 기준만 생각하고 척 그 느낌만 느껴지면 그 환경이 아무리 사탄의 시험이 강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계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어떤 내용이냐? 십자가 산상에서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그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천 년 동안 하나님 앞에 그 심정을 걸어 놓고 `나는 당신의 뜻을 따라 만민을 위하여 전통적인 정신을 세우기 위해서 죽음길을 갔나니, 이 뜻을 대신해 나오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이 내가 온 전통적인 길을 따라오거들 아버지께서 나를 이 영광의 자리에 보내 주셨듯이 그들도 이 자리에 보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행로에 있어서 뜻을 따라나가는 데 있어서 천상과 사탄세계와 나, 하늘과 사탄과 나라는 3대에 인연된 환경에 있어서 어떠한 역경 가운데서라도 하늘 앞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십자가를 받으면서도 승리한 쾌감, 이런 것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생애에 이러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일생행로를 홀로 가더라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이 꾸준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거예요.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클클하면 기도를 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내가 싸워 나왔던 역사적인 모든 것, 내가 몇 살 때는 이렇게 나왔고, 감옥에서 고생하면서도 이렇게 나왔는데' 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전통을 지고 시대적인 사명감을 갖고 나타나면 반드시 시대적인 승리자로서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러한 사람을 대하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복된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은 6천 년 역사적인 전통의 곡절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고, 6천 년 역사적인 전통의 곡절 앞에 동참할 수 있는 동반자만 되면 시대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 하나님 힘듭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할 때는 아담가정을 알았으니 아담 대신 기도하고, 노아가정을 알았으니 노아 대신 기도하고, 아브라함가정을 알았으니 아브라함 대신 기도하고, 야곱을 배웠으니 야곱대신 기도하고, 모세를 배웠으니 모세 대신 기도하고, 예수의 역사를 배웠으니 예수 대신 기도하고, 오늘의 선생님을 알았으니 선생님 대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 인연을 가지고 하늘을 대신하여 부르짖고 나오면 하늘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그들의 앞길을 개척하기 위해 하늘이 역사적인 과정에 있어서 협조한 기준이 있는 것을 압니다. 나도 그러한 역사적인 실체가 되어 세계사적인 인연 앞에 있어서 현실적인 책임을 지고 사탄 앞에 나가려 하오니, 하나님, 힘을 주옵소서!'라고 하면 힘을 주게 되어 있는 거예요.
기도는 원리적 기도를 하라구요. 선생님도 그런 거예요. 쭈욱 이러한 길을 찾아올 때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게 되면 아무리 클클한 것이 있어도 참을 수 있어요. 그러면 딴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하늘의 뜻이 이렇게 세계적인 발판을 갖추어 나타날 수 있게 된 이런 것을 생각할때 자기의 충성의 부족함에 반비례하여 뜻의 성과가 큰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감사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하늘이 이 역사를 거쳐온 것은 사탄을 대결하여 이 세계사적인 원수를 몰아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상은, 여러분의 정신은 원수를 몰아내려는 일념으로 사무쳐 있어야 돼요. 오늘날 우리들도 그렇잖아요? 뜻을 중심삼고 수많은 주권을 움직여 가지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원통한 사실, 이 민족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원통한 사실, 여러분이 굶주려 가지고 다니는 처량한 사실, 이것이 고마운 게 아니란 말이예요. 분한 사실임을 느꺼야 돼요.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냐?
여러분 개체 개체는 `나는 이 세계를 정복하고 천주를 정복하여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겠다. 그래서 내 손으로 기필코 승리의 깃발을 들고 개선가와 더불어 개선기를 들고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죽겠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여러분들이 일대에 그것을 못 하면 죽을 때에 자기 아들딸을 불러 가지고 유언을 하고 죽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를 거쳐 복귀의 기대를 닦아 나오던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얼마니 애절했더냐? 그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배후에 하늘의 곡절이 이렇게 내포되어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를 중심삼고 일대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든 3대를 거치고, 3대에 안 되면 7대를 거치고, 7대에 안 되면 40대를 거쳐서라도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서 속히 이 세계를 하나의 주권세계로 만들어서 천지만물을 창조한 대주재이신 아버지의 이름 앞에 돌려 드려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 앞에 하나의 주권으로 규합돼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 앞에 만민이 규합되고, 아버지의 이름 앞에 천지가 규합되어 원수들을 항소하여 우리가 전부 처치해 버려야 된다' 하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승리에 만족하는 마음보다도 하나님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분함이 더 강해야 합니다. 뭐 조금 어떻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네다리 펴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적으로 승리한 환경이 있다면 그 환경을 넘어 국가가 있는 것이요, 국가를 넘어 세계가 있는 것이요, 세계를 넘어 천주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교회적인 기반을 닦았다고 여기서 발을 펴고 기뻐하기 보다는 원수를 갚고 싶어하는 마음, 인류의 원수를 대하여 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진격하겠다는 신념에 불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자나깨나 마음으로 생각 해야 할 것은 하나의 주권, 하나의 인류, 하나의 천지, 이 온 천지가 우리의 나라, 우리의 땅, 우리의 형제가 될 때까지 이것을 기필코 성취하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먹고, 이것을 위해 공부하고, 이것을 위해 싸워야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실체는 하나의 주권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이 땅을 대신하여 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연장되어서 그 수가 많아지면 민족이 될 것이요, 나라와 세계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수가 많아지면 그 수한테 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오늘날 그러한 환경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적인 민주사회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기도는 어떤 기도여야 되느냐? 선생님이 다른 기도 하지 않아요. 눈만 감으면 하늘과 땅이예요! 거기에는 내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필요한 거예요. 하늘과 땅과 내가 일체되고 나서 그다음에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 심정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해도 사람을 못 찾으면 그 하늘은 하늘 노릇을 못 해요.그렇지요? 땅도 땅 노릇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하늘과 땅을 규합해야 돼요. 하늘과 땅을 수습해야 내가 있고, 그렇게 수습한 내 앞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어요. 천(天) 지(地) 인(人) 이 3수를 창조의 원칙을 중심삼고 내가 수습한다, 그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더라도 하늘과 땅을 붙들고 기도하면 움직인다는 실감이 나야 된다는 거예요. 한번 치면 태평양 바다가 출렁이는 것 같고 이 우주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실감이 나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럴 때까지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해 나가는 데, 이러한 신념과 이념을 성취하는데 협조하는 것은 내 편이요, 반대하는 것은 원수예요. 아무리 부모라 해도 원수예요. 반대하는 무리는 전부 다 원수예요. 그런 기반을 이제 개척해 나가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찾아 나오던 내 개인을 찾아야 돼요.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부르고 있던 내 개인과,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부르고 있던 내 가정과,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부르고 있던 종족, 민족, 국가, 세계는 어디 갔느냐? 지금 없어요. 지금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 축복가정들도 `아! 이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그 축복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축복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받은 축복은 환경적인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받은 축복이예요. 거기서부터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3차에 걸쳐서 축복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우리가 이제 먹으나 자나깨나 생각해야 할 것은 딴것 없어요. 나는 우주적인 하나의 주권을 총합한 실체상이요, 만민을 대신한 메시아와 마찬가지요, 나는 이 모든 세상을 점령해야 할, 사탄을 토벌해야 할 토벌 대장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싸움에 나서서…. '내가 이것을 붙잡은 것은 반드시…. 내가 이것을 붙잡아 가지고 이것을 내세워 사탄을 때리는 데 있어서 무기다'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끊임없는 투쟁의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그리하여 확대하게 되면 민족이 우리 뜻 앞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우리의 뜻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념적으로 점령해 가지고 온 천하 만민들이….
우리는 그것을 무기로 하는 게 아니예요.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갖추어 가지고 맞고 빼앗아 나와요.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법을 쓰는 거예요. 하늘의 작전법은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칼 들고 싸우라면 못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싸웠으면 벌써 다 해치웠을 거예요. 내가 죽어 가면서라도 벌써 해치웠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안 되어 있는 거예요. 맞고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맞았지요. 맞는 데는 여러분 개체는 가정 단위로도 맞지 않았어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맞는 데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맞았어요. 하늘땅을 위해서 맞았어요. 천주를 걸어 놓고 맞은 것입니다. 그런 천주적인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사탄은 이제 후퇴해야 할 운명에 있으므로 여러분들은 복 중의 복이예요. 그걸 수습해야 돼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사탄은 전부 패잔병과 마찬가지예요.
'나 하나를 완전한 승리의 자리에 세워 놓게 될 때에는 나를 위주로 하여 가정을 전개시키고, 종족, 민족을 이룩하여 하늘의 주권을 만들 수 있고, 하늘의 백성도 만들 수 있고, 내가 가진 땅을 하늘의 영토로 만들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한 치의 땅, 한 사람이라도 빨리빨리…. 사탄이 아담 해와를 꼬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여 늘려야 돼요. 그래 가지고 수를 가해야 돼요. 그리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고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디 가든지 이제부터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 이 심정에 사무쳐야 합니다. 아버지는 창조 이후 아직까지 하늘의 주권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백성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땅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분한 일이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그것을 찾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지를 결정한 거예요. 성지를 택해 놓고 사탄세계의 아들딸들을 전부 빼내어 고생시켜 가지고 새 아들딸…. 그 아들딸은 뭘 상징하느냐하면 만민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성지가 뭐예요? 삼천리반도를 축소시킨 거예요. 세계를 축속시킨 것입니다. 작년에 여러분에게 상을 줬는데 남자 한 명과 여자 세 명에게 줬어요. 왜 그렇게 준 줄 알아요? 전부 다 복귀적인 놀음이예요. 전체를 대표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준 거예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 가지고 넘어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헌공식까지 해 가지고 전부 다….
이렇게 금년에 아들딸을 찾기 위한 내적인 기준을 전부 다 만들고 그다음에 외적인 기준을 마련해 가지고 만물까지 복귀하는 헌공식까지 했기 때문에, 이제 그런 신념을 갖고 나가는 데 하늘이 역사할 수 있는 때가 되어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라에서 싸우고 야단하지만 두고 보라구요.
여러분, 성화 동창회원 여러분이 이 민족 앞에 어떠한 입장에 섰느냐 하면 주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잘못하다가는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이 자기 위치,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아담 해와는 천지의 중심이예요. 여러분들은 아담 해와의 복귀의 이념을 대신하여 나가느니만큼 이 천지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전부 다 여러분것입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에는 하늘의 협조가 필요 없어요. 천사장을 누가 시켜 먹을 거예요? 하나님이 시켜 먹을 거예요? 아담 해와가 시켜 먹어야 되는 거예요.
이 천지 가운데, 우리 앞에 남아진 사탄세계는 문제없다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빨갱이들이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세계적인 발전을 했어요? `하나님 협조는 필요 없다. 우리 인간은 우리 힘 가지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가져 가지고…. 그러니 나는 하늘의 주권을 대신하고, 하늘의 이념을 대신하고, 하늘의 땅을 대신하여 한치의….
우리 전체가 그걸 위해서 전체를 모아 가지고 하나되어 전체가 발가벗고 나가 앉더라도 본부인 교회만은 빨리 키워야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고생하더라도 통일교회를 빨리 세워야 돼요. 환경적으로 개척을 나가서 아버지가 뜻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는 책임과 사명을 완결지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먹으나 굶으나 자나깨나 '뜻!' 그렇게 해 나가야 되겠어요.
선생님을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의 대신자예요. 여러분이 아버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내려온 것입니다. 주님을 대신해 내려온 것입니다. 성신을 대신하여 이곳에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주님의 대신 입장으로 남자가 왔으면 반드시 거기에 상대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완전한 신부가 되어 있으면 또 상대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구체적인 설명은 못 하지만. 하나님과 일체되면, 성부, 성자가 있게 되면 성신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성부와 성신이 있게 되면 성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여러분이 그런 실체가 되어야 돼요.
그러면서 이념은 세계적인 이념을 가지고 만민을 대표했다는 마음, 민족을 대표했다는 마음, 혹은 회사에 가면 회사를 대표했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불의한 것이 있으면 이걸 전부 다 정탐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다니는 것이 무엇 때문인 줄 알아요? 우리가 하늘을 중심삼고 할 살림살이를 유린하고, 이것을 좀먹고 하는 것을 전부 다 알아내야 돼요.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이제 그런 사명을,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을 공격하기 전에 정탐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책임과 사명을 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여기서 어떠한 원수가 나타나더라도 나는 이 주권을 가지고 그 백성을 가지고 우리의 땅을 찾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먹고 자고 깨고 하는 이런 생활을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님! 아버님께옵서는 아담 해와를 품으시고, 영원한 이념 세계와 더불어 사랑하지 못한 것이 억천만세의 한인 것을 저희들은 이제 알았나이다. 이와 같은 한스러운 역사노정을 친히 목도하신 그날부터 아버님께서는 이 원한의 땅, 이 땅을 눈물과 피와 땀의 길을 거쳐오면서 찾아오셨습니다. 원한의 인류를 지금까지 아버님께서는 더듬어 오셨습니다. 하늘은 수많은 주권 앞에 모욕을 당하고 참소를 당하면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분하고 원통스러운 역사적인 원한을 누가 갚아 주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의 뜻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충신 열녀의 무리가 나와야만 이것을 갚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당신 앞에 참다운 효자 효녀가 나와, 당신이 요구하는 한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하나의 주권을 만들지 않으면 이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엄청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2천 년 전에 메시아를 유대 나라에 보냈던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유대교를 위주로 한 이스라엘 민족은 일치 단결하여 죽음보다도 자기 교회를 위주로 하고 죽음보다도 자기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었으나, 그들은 자기의 위신과 자기 개체의 영리를 위하여서 하늘을 잃어버렸고, 민족을 잃어버렸고, 수많은 종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불쌍한 민족이 된 것을 저희가 알았사옵니다.
이 역사적인 한 많은 원한이 수많은 민족의 뒤를 돌고 돌다가 오늘날 불쌍한 한민족을 찾아온 것을 생각할 때에 황공하옵나이다. 무력하고 부족한 이 무리들을 찾아오시기에 당신이 수고하신 것도 면목없사온데 수고한 그런 아버지 앞에 오늘날 저희들이 책임과 충성을 다하지 못하여 오늘도 아버지는 저희들을 불러 놓으시고 그 한을 놓고 다시 원망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다시 한번 재기하여 민족 앞에 책임을 하기 위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이 소수의 통일의 무리를 모아 놓으시고 아버님이 염려하고 계심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며, 저희들은 이 뜻을 대하여 충성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재차 맹세하고 결의하여 아버님이 허락하신 기간 내에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고자 하오니,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수고할 자리가 있으면 저희를 먼저 불러 보내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당할 시련의 무대가 있으면 저희들로 하여금 시련을 당하게 하여 주시옵고 민족이 머리 숙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할진대 저희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민족이 아버님 앞에 제단을 쌓기 싫어하거든 저희들이 제단을 쌓고 제단의 성전을 만드는데 있어서 선봉자가 되어, 민족의 새로운 하늘의 의의 제단을 쌓는 데 있어서 불리움 받은 그 책임을 다하고 아버지 앞에 거룩한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님은 우리를 중심삼아서 참다운 아들을 부르고 있음을 아옵니다. 그 아들은 수많은 인류와 수많은 주권과 수많은 피조만물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를 지닌 아들딸이 되겠다는 이런 신념이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의 마음 몸 위에, 아버지, 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나 깨나, 혹은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이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실질적인 실체로서 살아 아버지 앞에 가겠다는 이런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번 모임을 통하여 여기에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이 새로이 결심을 하고 당신이 허락한 이 민족 앞에 나가는 데 있어서 늠름하고 씩씩하고 담대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고, 아버님이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옵시고, 아버님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참다운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은 사명의 무대를 저희들이 탄식과 절망으로 바라보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소망과 용맹심을 가지고 진리를 위하고 당신을 위하여 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전진 또 전진,투쟁 또 투쟁하여 이 세계가 항복할 때까지 참다운 용사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하늘이 찾아오고 싶었던 개인이 되어야 하겠고, 하늘이 살고 싶었던 가정이 되어야 하겠고, 하늘을 모시고 싶었던 민족이 되어야 하겠고, 더 나아가 아버지를 길이길이 영광으로 모셔야 할 하나의 주권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어떠한 죽음이 앞에 놓일지라도 개의치 않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들이 남한 각지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다시 삼천리반도를 위하여 책임질 수 있는 통일의 용사들로서 아버지 앞에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고 행군의 나팔 소리를 드높이 울리면서 삼천만 민중 앞에, 삼천리 반도에 진동하고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전체를 아버지의 기쁨 가운데서 맡아 주시옵고, 저희들의 마음과 생활을 친히 당신의 영광 가운데서 세워 주시옵소서. 끝까지 굴함이 없이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갖추게끔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어떤 일이든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뜻을 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도 그러하고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리고 그 뜻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두어야 하고, 그 뜻은 하나님과 피조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사는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것은 나라가 없고 국토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도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던 그때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아담을 알았으니 아담을 대신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하고, 노아를 알았으니 노아를 대신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하며, 선생님을 알았으니 선생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담, 모세, 예수님은 실패했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백성과 땅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승리의 만족보다도 분해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더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통일교 교인들은 뭐냐?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 몸뚱이를 쓰고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고, 자녀의 날을 맞이할 수 있고, 만물의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이제 여러분들은 `나는 쥐었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쥐었다 이겁니다. 무엇을 쥐었어요? 「사탄의 목을 쥐었습니다」 사탄의 목을 쥐었어요? 사탄의 목을 쥐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의 목을 쥐어야지요. (웃음) 이게 가능해졌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우리는 이제 부모의 날을 쥐었다. 자녀의 날을 쥐었다. 만물의 날을 쥐었다. 이 쥔 실체를, 이날을 누가 빼앗아 갈 것이냐? 천지간에 어디가든지 내 쥐고 있는 이날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이런 날들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선생님이 기분이 좋아야 가는 것이겠어요? 이 환경에서 틀림없이 복귀되어질 이런 날들이 벌어질 수 있도록 책임져 가지고 부모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우고, 만물의 날을 세워 가지고, 그다음은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무슨 날이예요?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날! (판서하심) 이 하나님의 날까지 선생님은 복귀해 드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지금 심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날을 복귀해 드려야 돼요.
땅 위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필요로 할 수 있는 날들, 부모의 날을 세웠고, 자녀의 날을 세웠고, 만물의 날을 세웠으니 하나님의 날을 세워야 돼요. 하나님의 날이 벌어지려면 사탄이 전멸되어야 됩니다. 사탄이 없어야 돼요. 사탄까지도 `나는 6천 년 전에 하늘의 뜻을 배반하였던 천사장 누시엘인데 이제는 하늘 앞에 전부…. 억천만 번 죽고 또 죽어도, 어느 누가 무슨 벌을 주어도 달게 받겠습니다' 할 수 있게끔 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항복하여, 개미새끼 한 마리라도 사탄이가 `그것은 내 것이다' 라고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아야 승리의 날인 하나님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주권국가를 통합하고, 수많은 민족을 통합해야 합니다. 이 세계에는 국경이 많지요? 이 국경을 철폐해 버리고 타락 역사의 전통을 깨쳐 버리고 새로운 천지를 만들고, 새로운 형제를 위주로 한 세계 인류가 되어야 합니다. 온 세계 인류와 온 피조만물을 오시는 주님이 수습해서 아버지 앞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아버지 앞에 드리는 그날이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때 가서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날을 빨리 이루어야 됩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그날을 세워 놓고 가야 할 책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환경과 할 수 있는 시대와 할 수 있는 군대와 할 수 있는 물질들을 갖추어 가지고 이 일을 못 한다면 저나라에 가서 영원히 벌을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까지 동에서 불면 서로 가고, 북에서 불면 남으로 가고, 어디 가나 정처없이 세계를 내 무대로 삼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가 조국입니까? 미국이지요? 「아닙니다」 조국어가 어디 말이예요? 「한국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쓰는 말이예요? 「예」 그것 믿어지지 않는데? 난 믿어지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믿어요? 「예」 그럼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고. (웃음) 선생님이 영어로 정하면 영어가 조국어 되지 별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제1 조국어, 제2 조국어, 제3 조국어 할 수 있잖아요? 소생 장성 완성으로…. (웃음)
김영운씨가 미국에 갔잖아요? 그런데 복잡한 일이 많거든요. 전도하려면 복잡한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미국 사람들 틈에 새까만 머리를 가진 동양인 여자가 끼여 가지고 말이예요. 그 미국 녀석들은 호기심을 갖고 볼 것입니다. 아마. 억센 이러한 환경에 가냘픈 여자가 혼자 가 가지고 전도하려니, 자유스러운 이런 환경이 아니라 복잡한 일이 많을 것입니다.
엊그제는 편지가 왔는데 통일교회 원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무슨 원리? 탕감 원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이건 망해도 `탕감이지' 하면 그만이예요. (웃음) 이래서 탕감이 되고, 탕감이 되어서 이렇게 된다고 하면 그저…. 이렇게 붙이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붙이면 저렇게 되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는 겁니다. (웃음) 그걸 볼 때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운 것이 참 고마운 모양이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이 고생을 하면서도 `탕감이다' 하고, 매를 맞고도 `탕감이다!' 하고 목이 부러져도 `탕감이다' 하는 겁니다. (웃음)
그럼 세계를 정복할 자는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탕감백과 사전의 고난을 가진 민족이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탕감이란 명사 가운데서 탕감원리를 배워 가지고 탕감제물 노정을 책임지고 나선 어떤 민족이 있다고 하면 그 민족이 나와 가지고 `우리 민족이 탕감한 이런 것이 너희 민족에겐 없지?' 하면 `어디 보자 이 녀석아' 할 때, 백과사전 기록과 같은 탕감의 내용이 있어서 `이 녀석아, 봐라'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놔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지금 좀 부려 먹자 이거예요. 여러분들한테 미안하긴 미안하지만 말입니다.
밥 먹는 사람들한테 밥 먹지 말라 하고, 눈들을 높이 올려다 보려고 하는데 내려다 보라고 하고 말입니다. 발은 춤추고 노래하는 데 가려고 하는 데 울고불고 하는 데 가라니, 전부 반대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안됐읍니까? 안되긴 안됐지만 선생님이 뭘하려고 그러느냐 하면 탕감백과사전 하나 꾸며 보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수많은 민족 앞에 있어서 한민족, 우리 통일교인들이 전부 불쌍하다면 불쌍한 패들인데, 이들이 지금은 뭐 보잘것없는 따라지 같은 패들이 되었지만 뭘 하나 남이 갖지 못하는 비밀을 하나 갖자는 것입니다. 남이 갖지 못하는 비밀 보장고를 하나 만들어 놓자는 것인데, 이것이 뭐냐 하면 탕감 보장고를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래 놓고 세계 만민, 어떠한 역사적인 사람이 나와서 `이 통일교회에서 과거에 뜻을 대신해서 제물적인 탕감조건을 세웠어?' 하면 `오냐!' 하고 대답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놓으면 무엇이 되는 거예요? 아까 뭘 정복한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선생님이 깨달은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실이 그럴 것 같아요? 「예」 이래 놓아야 권위 있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귀역사에 있어서 한국을 빼놓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렇겠다고 진정으로, 솔직이, 그냥 그대로 생각하는 사람 쌍수를 들어 보라구요. 내려요. 나를 때리려고 덤벼드는 것 같구만. (웃음)
선생님이 지금까지 40평생 이 길을 걸어오면서 `아버지, 내게 고생시킬 다른 무엇이 없습니까? 한꺼번에 전부 다 몰아칠 수 있는 것이 몇가지입니까?. 복귀노정은 몇 가지 조건을 걸어야 됩니까? 이런 싸움을 해 나갈 때 몇 가지 조건을 걸어야 합니까?' 이래 나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탕감노정에서는 선생님 앞에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통일교회에 들어온 목적이 뭐예요? 탕감원리를 배우기 위해서 들어왔지요? 「예」 탕감원리를 배우기 위해 들어왔지요? 「예」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탕감원리를 몰라서는 안 돼요. 탕감원리를 배우러 들어온 것입니다. 난 탕감원리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입니다. 그렇지요? 「예」 선생님은 탕감원리를 가르쳐 가지고 실천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실천하는 여러분은 고생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고생이 고맙고 좋은 것이지요? 「예」 그래 여러분들 밥 굶으면서 고생할 때 `하하하' 하고 웃었어요? (웃음) 감사했어요? 고맙지 않고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 나중에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를 보라구요. 반드시 맞고는 축복을 받았어요. 그렇지요? 「예」 우리가 3년 동안 고생을 했더니 고생을 하고 나서 무엇을 받았어요? 「벌을 받았습니다」 등록을 받았어요? (웃음) 등록받은 입장에서 하늘 가정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하늘 가정이 필요한 게 뭐예요? 하늘 가정이 필요한 것은 하늘 국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3년 기간에 있어서 하늘의 가정을 가졌습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하늘의 가정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한 4년쯤만 나가면, 내가 지금 큰소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 뭐 다른 사람이 와서 이런 말들어도 괜찮습니다. 4년쯤만 우리가 수건을 동이고, 허리띠도 동이고, 발목까지 동이고 나가면….
우리는 다른 것 바라지 않습니다. 요즘에 무슨 선거 한다고 그러든가요? 무슨 선거? 「국회의원 선거」 국회가 무엇인지 알아요? 나 먹는 국하고 소천엽 회예요. (웃음) 지금 그러한 판국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해야 되겠습니다. 요전에 내가 어디를 가니까 누가 국회의원 출마하려고 하는데 어떻겠느냐고 나한테 물어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몸짓을 하심. 웃음) 그래서 `그런 돈 있으면 그 돈 나를 다오' 했어요.
사실 국회의원 후보들 돈을 얼마나 씁니까? 그 돈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 해방촌의 천막집들을 전부 헐어 버리고 벽돌집 지어 주면 얼마나 좋으냐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세계가 돈 가지고 싸우는데 사고 팔고 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지막입니다. 그러니 절대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들 밥 굶고 다니지만 누가 위대한 것입니까? 국회의원 그 사람들이 앞으로 여러분들 앞에 머리 숙이고 그 아들딸, 손자, 증손자 시대에 가서는 여러분들을 하늘같이 모셔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지구에 내려가면 지구장이 됩니다. 여러분들 `지구장을 어떻게 해먹나' 그러지요? `거기에 집이 있나? 식구가 얼마나 되나?'이런 소리 하거든요.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사실은 `식구 없지? 식구있으면 나 안 가려오' 해야 됩니다. 남이 다진 터에 왜 가겠나 말이예요.자칫 잘못하면 가인 아들이 됩니다, 가인 아들. 알겠어요? 「예」 자기 자식들이 안 된다는 말이예요. 처음부터 내가 출발하여 내 살과 피를 엮어 가지고 나로 말미암아 출발한 아들딸을 만들어 놓아야 내가 대접을 받지 그렇지 않으면 다…. `아무개 지역장은 이러이러했는데 지금 이 지역장은 이렇구나' 하고 전부 비교해 가지고 빡빡 금을 그어 놓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만큼 자기를 중심삼고 이러한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 조금만 어려워도 남의 신세 지려고 하는데 절대 남의 신세 지지 말아야 됩니다. 내가 신세를 지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책임지고 길러 놓으면 절대 아무 시대에나…. 시대는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시대, 천주적인 시대의 7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자기 아들딸을 낳아 놓아야 되느냐 하면 개인적인, 가정적인 그러한 시대에 맞먹는 아들딸을 낳아서는 안 됩니다. `너는 우주적인 시대의 아들딸이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야 돼요. 앞으로 책임진 사람이 오게 되면 그를 어느 시대까지든, 10년 아니라 일생까지도 가인적 입장에서 아벨로 모실 수 있게 전통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것을 못 하게 되면 참소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해 놓고 이동해 가고 딴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 앞에 가인적인 입장에서 하나 못되고 움직이다가 떨어져 나가게 되면, 이다음에 영계에 가서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최후에 우주적인 승리의 아들딸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러한 전통을 세워 가지고 진행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누가 와도 가인의 자식이 되지 않고 그를 아벨적인 입장에 세움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복귀의 시대적인 환경을 넘어서 가지고 세계적인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이 고생을 남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화예요, 복이예요? 「복입니다」 화예요, 복이예요? 「복입니다!」 화예요, 복이예요? 「복입니다」 그러나 사탄 앞에서 고생을 하면 그것은 화입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고생을 하면 그것은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올라갈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올라갈 자리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탄이 더 많이 번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는 떨어지면 마지막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는 목을 비틀고 칼로 찌르고 해서라도 올라가려고 합니다. 내려가면 올라갈 수 없는 세상이 사탄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늘세계는 어떠한 입장이냐? 내려가는 사람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꺼꾸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죽이고 밟고 모략 중상을 하고, 돈을 주고 사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해 가지고 몸부림치며 올라가지만 떨어지면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야단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복귀의 하늘 세계에 있어서는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남을 위하면 위할수록 어떻게 된다고요? 「올라갑니다」
자, 통일교회가 지금 민족을 위해서 내려가려고 하지요? 「예」 왜 그런가요? 「탕감노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인을 받을 때까지 민족을 중심삼은 탕감적인 노정인 것입니다. 하늘의 공적인 법도 앞에 있어서 사인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내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알겠어요? 「예」
그래 삼천만 민족을 보게 되면 세계무대 앞에 있으니 이 민족이 세계인류를 위해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미국을 위해 미국 국민을 살리기 위해 선생님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놈들 걸리나 안 걸리나 두고보자. 이놈들 너희들이 지금은 잘먹고 잘살지? 그렇지만 걸리기만 하면 네 배에 보리밥이 안 들어가? 너희들 몸뚱이는 뭐 아주 좋은 고급 양모직 아니고는 안 덮혀져? 가마니때기 덮나 안 덮나 보자' 선생님은 지금 그런 혁명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자신 있겠나요, 없겠나요? 「있겠습니다」 문제가 없다구요.
미국 놈들이 우리 식구 되어 가지고…. 이놈들이 대학원 다니면서 학박사 논문 쓰다가 나와 가지고 지금은 뭐하느냐 하면, 세 끼 먹던 사람들이 두 끼도 못 먹어 한 끼 먹고 눈이 시퍼래 가지고 이러고 있습니다. 그것 이상하잖아요? 그놈들을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전부 다 구워 가지고 세계를 위해 제일 좋은 보물을 싣고 가서 봉사를 해야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살과 피와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 찾아왔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의 모든 민족이 공중해 주고, 하늘땅이 공중해 주고, 사탄이 공중해 주고, 하나님이 공중해 주는 그런 사인서를 받고 나서 세계적으로도 약시키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때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은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들어가는 거예요? 밑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인들 고생이 많이 남아 있어요, 안 남아있어요? 「남아 있습니다」
오늘 날이 좋은 날이예요, 나쁜 날이예요? 「좋은 날입니다」 좋은 날인데 왜 나쁜 말인 고생하라는 말을 할까요? 「좋은 날이니 복받으라구요」 좋은말인가요, 나쁜 말인가요? 「좋은 말입니다」 제일 복받으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지요? 제일 복받으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말하는 사람 아니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 선생님은 여러분들 복받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복 받으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복받으라구요」 뭘함으로? 「죽음으로요」 죽음으로. 죽고 복받으면 뭘하겠어요? (웃음) 여러분들 죽은 다음에 그까짓 것 뭘해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죽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죽고 나서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다」 예수 하나 죽음으로 말미암아 천만 예수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좋은 날, 욕을 먹고 매를 맞고 나가 죽으라고 말을 하는 그게 여러분들에게 실례같지만 그것이 실례예요, 실례가 아니예요? 「아닙니다」 실례예요, 실례 아니예요? 「아닙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모일 적마다 무슨 말을 해야 되겠어요? 「고생해야 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고생하지 말라는 말은 내 일생 동안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고생하지 말라는 얘기는 일생 동안 내 입으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그러한 선생님입니다. 그것은 왜? 여러분들 복받으라고, 최고의 복을.
여러분들이 빨리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세계는 빨리 들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올라가려고 하면 세계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외국은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그저 동삼삭( 冬三朔)에도 팬츠만 입고 한번 살아 보자' 이렇게 되면 세계가 얼마나 올라가겠어요? 사실 그렇지요. 수고한 열매를 세계적으로 전부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남아진 노정을 기쁨과 영광으로 가지 말고 고통과 수고로써 십자가를 지고 가자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갈 자신들 있어요? 「예」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대해 세운 지금 제일 계획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에게 고생을 어떻게 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고생 백과사전을 하나 꾸며 보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 통일교인들은 앞으로 지명해 가지고 고생시킬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아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선생님 계획대로 나가 가지고 한 1년 지나고, 한2년쯤만 지내 보면, 이제부터 한 20개월쯤 지내 보면 어떻게 되느냐? 선생님이 그걸 생각하면 멋이 있다구요. 보라구요. 싸움을 할 때는, 이제 국회의원을 만들어 가지고 또 싸움을 할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는 우리가 국회 앞에 가서 혹은 국회에 들어가서 전도할 길이 생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나라의 기반을 그만큼 닦았으니 앞으로 불원한 장래에 전부 다 전도할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목을 매고라도 할 거라구요.
우리가 제일 끄트머리에서 인정받았지요? 「예」 맨 시골에 가 가지고 고생하는 그런 일을 했지요? 「예」 맨 꼭대기에서 우리가 그 사람들의 종처럼 들어가 가지고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어떻게 무엇으로 출발해서 뒤집어 엎었습니까? 종으로 출발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복귀노정이예요. 종에서부터 양자, 양자에서 아들딸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복귀도상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뚱이를 써 가지고 종의 신세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양자로서 양자에서부터 아들딸의 대등한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여러분은 실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이론적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 세계 민족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지는 것입니다. 또, 이 나라의 주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지는 것입니다. 전부 지는 것입니다. 사상에서 지고 이론에서 지고 심정에서 지면 지지 별수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예」 그렇기 때문에 그것도 할 수 없으니 지금 부모의 심정을 지녀 가지고 종의 몸뚱이를 쓰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종으로부터, 종에서 충신의 절개를 세워 가지고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가리키시며) 야! 너는 뭘했니? 뭘했어? 나와 보라구. 거 몹시 분주하구나. (웃음) 네가 하늘의 뜻을 대해서 사무처리를 그렇게 바쁘게 했으면 얼마나 좋겠나. (웃음) 누구보고 얘기하는지도 모르고 남이 웃으니까 좋다고 웃는구만. 예이, 못난 사람. (웃음)
이제 종의 새끼는 면했습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제 종의 새끼는 면하는구나! 이제 양자의 새끼에 올라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웃음)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 안 하지요? 그렇게들 생각해요? 복귀역사이니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종의 자식보다 더 수고했지요? 종의 자식이 들어오면 `야, 너 어디 갔다가 오느냐?' 하고 물어 보기라도 할 것 아니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가면 `어디 갔다 옵니까? 어서 오십시오' 그래요? 전부 외면하고 들어오면 그저 쫓아내려고 그러지요. 종의 자식만도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진짜로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양자쯤 되었어요. 그래도 좀 필요하거든요.
세상적으로, 즉 사탄세계에서 보게 되면 거기가 아벨이고 우리가 가인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늘 세계로 보면 우리가 아벨이고 거기가 가인입니다. 가인 아벨 빼앗기 내기에서 누가 빼앗았나요? 야곱이 빼앗았지요? 「예」 하늘편에서 양자의 입장에 서 빼앗아 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이 대한민국의 문제에 있어서도 앞으로는 유권자들이 `이건 믿을 수 없어. 이 사람들이 제일이야. 이 사람들이 제일이야' 하고 인정하는 날에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많은 무리가 필요 없어요. 한 곳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져 가지고 그것이 군이면 군에서 문제가 되고, 도에서 문제가 되고, 이 나라가 문제가 되고, 이래 가지고 사회가 문제되고 이렇게 딱딱 내려오다가 `꽝' 하면 사탄세계의 가인은 없어지고 하늘편 아벨만 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때를 알 것입니다. 재미있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디에 가든지 끈기 있게….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벨이 못나서 죽었지요? 내가 아벨이라면 그렇게 안 했을 겁니다. 나 같으면 제단을 하나 더 만드는 것입니다. 가인 앞에 양을 잡아 드리는 그런 제단을 만들어 주고 그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제단을 만드는 겁니다. 내가 만드는 제단이면 백 개든지 천 개든지 더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벨이 떡 양을 잡아 가지고 `형님, 그 곡식만 해서 되겠소? 내가 양을 잡아서 이렇게 했으니 이것까지 겸해서 나보다 한 가지 더 드리는 것이 어떻겠소?' 했더라면 가인이 그 아벨을 쳐 죽였겠읍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벨이라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런 기미가 있으면 그렇게 해 가지고 아벨 제단을 만들어 놓고 사방에 열두 제단을 만들어 놓고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 자식아' 하시겠어요? 그러면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요?' 하는 겁니다. (웃음)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절대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려면 소도 잡아 주고 제단도 만들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아이구! 좋소' 하는 것입니다. 전부 해주면 입을 벌리고 `아! 좋소' 하는 거예요. 그럴 때 포위해서 `어─' 할 때 낚아채는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이 이제 돈만 많으면 케네디 대통령의 허리띠까지 잡아매가지고 여기에서, 한국에서 잡아채면 뒤로 덜렁덜렁할 것입니다. 돈이 제일 필요한 녀석들에게는 돈을 주면 끌려올 것이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제일 필요하냐 이거예요. 하늘이 제일 필요한 심정 문제만 내놓고 전부 빼내 가지고 사탄을 잡는 데 쓰는 것입니다. 사탄을 잡아치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주의는 그런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고생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다 취미적입니다. 고생을 해도 전부 다 자기의 소기 목적이 있어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까닭없이 무조건 가니까 지치지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요만큼 해서 `음, 들어가는구나. 음, 3분의 1들어갔다. 음, 앞에서 뒤로 돌아간다. 이 구멍을 버리고 저기로 간다'고 결정을 하여 딱 막아 놓고 들이 차는 것입니다. `나가 봐라. 나가 봐' 하고 두 번 세 번 차도 나갈 길이 없으면 별 수 없이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이 이 한 세대에서, 이 몇 년 과정에 있어서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직계 자녀의 시대까지 이 민족 앞에 복귀해 올라가게 되면…. 주인이 누구입니까? 가정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아버지입니다」 부모지요, 부모? 「예」 이 나라에도 주인이 있지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 나라의 참다운 아들딸을 거느리고 그 참다운 아들딸을 위주로 해서 이 나라의 아버지가 되어서 참다운 가장으로서 참사랑을 하는 것이 나라의 참다운 정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나라에 참다운 아들딸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종도 없습니다. 우리는 종도 없는 이 천지 가운데서 이 나라의 종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서 종의 역사를 거치고 양자를 거쳐 가지고 아들딸이 된 후 나아가 하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부모의 자리까지 나가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소기의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예」 얼마만큼 왔는지 알겠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들은 고생을 해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중을 대표해서고 생하라는 것입니다. 후손들을 위하고 자기 형제들을 위해 먼저 고생한 사람에게는 부모가 나타나게 되면 반드시 복을 주게 되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것은 뻔한 사실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대답들은 잘 했는데 진짜 가야 되겠어요? 「예」 입으로만 대답했어요, 눈으로만 대답했어요, 마음으로 대답했어요? 어디로 대답했어요? 「마음으로 대답했습니다」 마음과 입과 눈과 모든 사지가 합해 가지고 대답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나가서 지칠래요, 안 지칠래요? 「안 지칩니다」 지치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요, 지금 시대는 자녀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시대의 원수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3시대의 역사적인 원수를 탕감하기 위한 민족적인 기반 위에서 거룩한 제단을 꾸며 나가는 것입니다. 말만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런 것입니다. 이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사적인 모든 것을 탕감해 가지고 기반을 닦아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일했지요? 「예」 할 수 없어 일한 사람이 한 3분의 2쯤 된다고 봅니다. 하라니까 그저 한다고 한 것입니다. 무엇이 어떤지 알지 못하고 했을 거예요. 지내 보니 이젠 정신이 좀 들 때가 왔습니다. 이젠 알겠지요? 「예」
이제 정신이 들었으니 `아, 우리 집이 어디인데' 하며 찾아갈 때가 왔습니다. 양자가 되었으니 `우리 양아버지 양어머니 살던 집이 어디래? 그 살던 곳이 어디래?' 하며 찾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살던 곳이 어디인지 말은 들었다는 것입니다. 가서 살지는 못했지만 어디인 것을 알고 있기에 찾아갈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가 그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찾아가 보니 어머니 아버지는 다 죽고 남은 집이나 다른 무엇을 전부 사탄들이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우리가 주인노릇 해 가지고 수습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사탄들이 그것을 전부 점령할 때에 그 내부의 비밀을 전부 까꿀잡이로 뒤집어 박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해서 우리는 전부 까꿀잡이로 뒤집어 박아야 됩니다. 악한 것은 뒤집어 박고 선한 것을 세워 가지고 주인의 자격을 대신할 아들딸의 위치에 올라가야만 비로소 양자에서 직계의 인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이 원수한테 빼앗겼던 것을 찾고, 부하를 풀어 주고, 부하들을 풀어주는 책임을 다 으로 말미암아 아들로서 직계의 인연의 기반을 잡아 가지고 비로소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4년노정을 확실히 알고 책임분담을 해야 됩니다.
지구장들이 오게 되면 `너희들 지역장들을 움직이게 했니, 못 했니?' 하고 다그칩니다. 많이 고생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하늘 앞에 제일 사랑받을 수 있는 지구장이요, 교인들을 많이 못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하늘의 제일 사랑을 받는 구역장이요, 교회책임자들인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는 책임자들은 전부 원수입니다. 이 고생시키라는 말이 좋은 말이예요, 나쁜 말이예요? 「좋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여러분들이 돌아가 가지고 마음과 힘을 다해서 두손에 꽉 거머쥔 것이 무엇이냐? 천주 복귀의 이념무대 앞에서 부모의 날을 가졌고, 자녀의 날을 가졌고, 만물의 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가는 곳마다 이것을 교육하겠다. 어디에 가게 되든지 나는 만물을 표제로 하여 자녀를 대하고 부모를 대하겠다' 이런 심정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 역사적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를 거쳐 탕감하기를 원하고 거기에 내 자신을 바칠 수 있다. 이것을 내가 완수하지 않으면 나는 죽지 않는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는 무슨 수단과 방법이라도 다하고 무슨 작전이라도 다 한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돌아가서 하늘이 기억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 기억할 수 있는 부모의 날을 세워야 되겠고, 자녀의 날을 세워야 되겠고, 만물의 날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의 날을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각자의 책임을 분담받기 위해서 이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알겠나요? 「예」
그럼 축복이란 무엇이냐? 꿈같은 얘기입니다. 오늘 선생님이 닦아 놓은 이 모든 전부는…. 원수 세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참소받을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다른 것 바라지 않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제 금년부터는 지방의 시골 교회에서도 여러분들이 나아가는데 있어서 하늘이 물질에 대한 축복도 필연코 해줄 것입니다. 이젠 선생님이 기도 안 해도 내용상 축복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이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 하는 여하에 따라서 거기에 비례적인 성과를 반드시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힘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자녀의 날을 세우고, 부모의 날을 세우고, 만물의 날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런 날들을 이 땅을 중심삼고 세우기 위해서 힘을 다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래서 여러분들이 돌아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의 땅을 대신한 성지가 있나니 그 성지를 기반으로 하여…. 그 성지를 사랑하고 거기에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혹은 어떠한 농부가 옥토, 좋은 전답이 있어 가지고 그것에 대해 정성들이는 것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어디에 가든지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대해 사탄세계에 있는 것보다 몇천 배, 몇만 배의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후손들이 자랑할 수 있는 복지를 만들기 위해서 정성들이는 그 어떠한 조상보다도 성지에 대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리고 또 정성들인 성지가 있으면 그다음에는 집이 있어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땅이 있으면 집이 있어야지요? 「예」 성지를 중심삼고 집이 있어야 됩니다. 또, 집이 있으면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식구가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식구를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리고 식구가 있으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지를, 땅을 보호해야 됩니다.
성지를 만들어 놨으면 집을 만들어야지요? 「예」 무슨 집을 만드느냐 하면 여러분들 살 집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인으로서 자기가 나가 전도하는 지역본부보다 더 좋은 집이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현재 사는 것이 본부의 살림살이 이상 잘살면 하늘편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인들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의 날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성지를 지극히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다음은 성전이 있어야지요. 성전이 없지요? 「예」 성전이 있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 있는 조건물을 전부 돈으로 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뭐예요? 무엇을 사랑해야 됩니까? 「식구입니다」 어떤 식구입니까? 축복받은 식구를 사랑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지를 사랑해야 되고, 하늘이 세워 준 성전을 사랑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축복받은 자녀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들은 형님과 누나들인 것입니다. 형님 누나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들을 사랑해야만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인연을 가졌으니 아들딸이 되었지요? 자녀의 인연을 가졌으니 그 인연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방에 있는 성지를 위주하고 교회를 위주로 하고 반드시 축복받은 사람들을 위주로 해서 전부 정성을 들이고 사랑하여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그 길을 다리 놓아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성지에 갈 적마다 성지가, 여러분이 가 있는 그 땅이 여러분이 갖고 있는 밭뙈기보다 작게 될 때에는 여러분이 참소받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지가 있는 곳을 사야 됩니다. 집을 팔아서 사든지 논을 팔아서 사든지 사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머물러 있는 교회보다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더 크면 불살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교회보다 자기 집이 더 크면 폭탄을 맞아서 찌그러지든지 깨져 나가든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지 이상 큰 땅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이요, 성전 이상 좋은 집을 가져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사랑하는 형님 누나 이상 잘살아서도 안 되는것입니다. 그렇찮아요? 형님 누나가 동생보다 나아야 되지 않습니까? 형님 누나 이상 잘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가야 할, 생활화해야 할 방식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만민이 이 법도 위에서 죽어라고 전부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죽어라고 못 먹고 못 살고 하면 외국 사람들도 그 법도에 따라서 오게 되는 거예요. 그것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땅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사랑했다가는 빼앗겨 버린다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만일에 성지를 자기가 점령해 가지고 마음대로 했다가는 벌받습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그 집안도 다 파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결의해 가지고 정성들인 도수가 그 부락 사람들보다 높아야 됩니다. 그 부락에 백 호가 살면 그 백 호 전부가 자기 농지를 위해서, 자기 땅을 위해서 정성들이는 그 이상의 정성을 여러분이 들여야 됩니다. 백 사람의 정성보다도 여러분의 정성의 도수가 높지 못하면 들이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성들여 가지고 여러분이 성지에 갈 적마다 그 성지, 하늘의 땅이 작고 내 땅이 크거들랑 내 땅을 팔아서라도 성지를 사고 그것을 넓혀 가지고 거기다 빨리 성전을 지어야 됩니다. 그런 다음 성지로 산 것은 절대 못 파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집안이 허기져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팔지 못합니다. 성지는 샀다가 못 파는 것입니다. 이것을 팔면 마음이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성지와 성지를 중심삼은 이 나라의 국토와 이 민족이 되어야만 됩니다. 그 땅의 소출 가지고는 성별─여러분들 지금 성별하지요─하지 않고 먹고 입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땅을 빨리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가 이렇게 힘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안 해 보라구요. 그것을 안 하여, 이 땅 위에서 가정을 중심삼은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고 여러분들이 저나라에 가서 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소 단위의 기준 앞에 그런 인연을 자기 스스로 거쳐 가지고 하나의 만물로부터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 심정과 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앞에 갈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김영휘도 알겠어, 무슨 말인지? 「예」 앞으로 자기 책임진 지역에 있어서는 전부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제 저녁에도 그런 얘기했지만, 집을 사려고 그럽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들을 빨리빨리 부자 만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 놓아야 여러분들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교해 가지고 그 조건 앞에 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물복귀가 세계적으로 벌어져 가지고 앞으로는 입적시대가 오게 됩니다. 지금은 신랑 신부의 이념시대지요? 그러니만큼 시집오는 색시들은 자기의 시집부터 먼저 구해야 돼요. 에서를 찾아가는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장자의 기업 하나를 빼앗기 위한 수단 방법으로서 에서가 받을지 말지 모르는데도 자기의 물질 전부를 내놓고, 그다음은 자기의 종을 내놓고, 그다음은 자기의 아들딸을 내놓고, 그다음은 자기의 아내를 내놓고 갔지요?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한 무대에 있어서 서로가 싸워 가지고…. 그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은 3대의 조상까지 끼여 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럴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3대의 조상까지, 그래 가지고 8촌까지 동원되어 협조해 주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서로 싸울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우리 이념이 전개되어 가지고 그것이 본격적인 궤도를 밟아 나가게 되면 목표량을 정해서 하라면 해야지 별수 있습니까? 땅 위의 모든 인류가 한 아버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서로 싸움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먼저 시집온 사람이 맏동서이지요? 「예」 세상에서도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형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태가 날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때가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 처녀들 이동하지요? 그런데 자기 주머니 안에서 그 놀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것은 세계적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 도(道)에서 인정하지요? 한 군(郡)에서 인정하지요? 「예」 이것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가는 것은 세계적인 복귀의 터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 있어서 아나니아 부부와 같은 심보를 가지면 벼락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과 내 모든 심정까지 다 바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 하늘땅도 전부 아버지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이 내 사명이지, 내 것이라고 중심삼아 가지고 치리하는 사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이러한 책임을 감당하여 여러분 자신들이 부모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우고, 만물의 날을 세워서 여러분을 위주로 한 승리적 발판을 닦을 수 있고 그래야만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을 위주로 하여 여러분의 후손들이 살수 있는 복지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오늘 이 자녀의 날이 우리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 자녀의 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오늘 여러분이 모여서 3년째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4년째의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대해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결심을 하여 이와 같은 참된 날을 맞이해가지고 여러분 각자가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의 신세를 지지 않고 여러분 일대를 중심삼고 그런 환경에 있어서 이러한 날을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하나님의 날을 세우는 데 있어서 다만 얼마라도 공헌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공을 남기고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렇게 안 하게 되면 여러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낙오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이러한 목적과 사명을 여러분이 새로운 입장에서 각오하고 맹세하고 나가야 된다고 하는 것을 재차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하겠나요, 안 하겠나요? 「하겠습니다」 여자들도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 손들고 맹세하자구요.
아버님, 저희들은 타락이 없었던 영광의 그 한날을 그리며 마음으로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몸으로 몸부림치며 나아가야 할 입장에 서 있음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지 모르겠나이다. 아버님도 그날을 위하여 수고하셨고 저희 선조들도 그날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날을 저희들이 알았기에 이날을 저희들이 세워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연고로 저희들은 이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웠으니 이 환희의 날들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남아 있사옵니다.
저희가 어떠한 희생을 각오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날을 세우고 저나라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사명이 지상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만일에 저희들이 그런 날들을 세우지 못하고 남기고 갈 때에는 후대의 후손들 앞에, '내가 탕감의 조건을 남기고 가니 영계에 가서 다시 땅을 대신하여 협조할 조건을 네가 약속해 달라는 유언이라도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적 사명이 저희 일대의 노정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런 날들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이 엄청난 시대를 저희의 생전에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황공하옵고 고마운지 말할 수가 없사옵니다. 이날을 대하게 될 때에 먼저 하늘을 대하여 감사하며, 이 날을 대하게 될 때에 선조들을 대하여 감사하며, 이 날을 대하게 될 때에 스승을 대하여 감사하옵니다. 감사의 마음에 사로잡힌 내 한 몸을 하늘을 대신한 실체로서 원수 세계를 향하여서 세워 놓고, 하늘의 분깃을 맡아 가지고 자기를 중심한 기반 위에 서서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소기의 목적의 날을 나를 위주로 하여 세우고 아버지의 날을 복귀해 드리기 위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위하여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사올진대 그들에게 축복하여 주시옵고,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혹은 색다른 이방 민족도 이날을 위하여 추구하는 이 시간인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국경이 다르고, 역사의 전통이 다르고, 시대적인 환경이 다를지라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심정적인 기준에서 일체요, 사정적인 기준에서 일체요, 소원적인 기준에서도 일체이오니 이 모든 심정, 사정, 소원을 중심삼은 것이 제일이므로 이것을 위주로 하여 모든 것을 수습하고, 모든 것을 통일하여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움직이고, 하나의 사정의 세계를 향하여 통하고, 하나의 심정의 세계를 향하여 세우시어서 사탄세계를 심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형제 자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수고하는 것으로 하늘의 수고를 대신하게 하여 주옵고, 그들이 호소하는 것을 만물을 속죄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아들딸의 호소로서 들어 주시옵소서. 그들이 머무는 사회환경, 그들이 머무는 주권 기대를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빨리 복귀해 드릴 수 있는 산 제물로서, 실체적인 제물로서 삼으시옵소서.
아버지, 이 모든 영광의 날들을 그들에게도 빨리 복귀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어서 속히 이날이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들이 살아 생전에 이와 같은 환경에서 역사의 전폭적인 내용의 말씀을 듣고 이러한 가치 있는 내용을 알 수 있는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알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에 시작되는 모든 일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이날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절차 위에도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섭리역사 앞에 승리와 영광이 길이길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오늘은 3년노정 가운데서 마지막 자녀의 날(음력 10월 1일)입니다. 이날 이 후부터는 새로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자녀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본래 하나님의 날로 시작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계를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섭리를 점차적으로 발전시켜 나오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선조가 예수를 죽인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기에 피의 투쟁으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재림의 때를 위하여 일보 일보 전진하여 나왔습니다. 이 노정에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제물되어 나온 것은 예수를 죽인 역사적인 슬픔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의 배후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충신 열사, 효자 효녀가 되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은 가인 아벨의 노정을 걸어가는 것이므로 아벨적 제단을 대신하는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인적인 입장이라면 유대교는 아벨적인 입장이며, 또한 기독교가 아벨적인 입장이라면 민주주의는 가인적인 입장인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 아담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제물은 3대의 인연을 거칩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신의 3대를 거치십니다.
기독교도 예수와 성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가인의 입장인 현 민주세계를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아벨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주세계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을 떠나 과학 문명 쪽으로만 기울고 있습니다. 아벨의 입장에 있는 오늘의 기독교 신도들이 점차적으로 가인의 입장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야곱의 가문을 세우고 하늘을 공경해야 했었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사랑받는 사람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요셉과 베냐민을 중심하고 다른 형제들이 하나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갈라졌습니다. 남북조도 10지파와 2지파로 갈라졌습니다. 종말이 다가옴에 따라 기독교가 하나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점점 갈라지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자기들의 생각으로 요셉을 판 것같이 오늘날의 기독교도 새로운 교파를 때려잡으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교단이 통일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신 교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쫓기고 몰림받았던 요셉이 승리하였던 것같이 결국은 몰리고 쫓기는 교단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에 의해 죽게 되었던 요셉이 끝까지 살아 남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원수된 그 형제들을 받아들이던 때와 같은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은 통일교회에 있어서 3년노정의 마지막 자녀의 날입니다. 선생님은 이 3년노정을 처음 출발할 때 옥중 생활과 같은 입장에서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인 핍박을 생각합니다. 이 3년노정 중에 3정권을 거치며 세계적인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부모의 날을 놓고 사탄의 참소조건을 해결했기 때문에 자녀의 날을 맞게 된 것입니다.
생사의 판가리는 반드시 차자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장성기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아벨, 함, 예수 등 둘째를 중심으로 하여 판가리 해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복귀되기 위해서는 세 아들을 세워 놓고 12수를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의 실수가 없었더라도 2대를 거쳐야 했는데 실수함으로 인하여 이삭, 야곱까지의 3대가 종적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36가정을 세운 목적은 36선조를 찾아 세우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6가정을 중심으로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인 아벨형으로 벌여 놓은 것이 72가정입니다. 야곱이 72가족을 거느리고 애급으로 출발한 것과 같이 통일교회도 72가정 때 그러했습니다.
횡적인 기준을 세워 평면적인 사방수의 세계형을 찾아 세운 것이 120가정입니다. 이것은 120국가를 대표한 것입니다.
3년의 고통 기간만 지나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세계적인 운세가 하늘로부터 몰려올 것입니다.
부모나 자녀나 만물이 천법에 걸리면, 그것이 사탄의 참소조건이 되므로 그것을 막기 위하여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워 심정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인적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하늘 앞에 세워 주어야만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귀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만물은 타락한 인간 앞에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세우려면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오늘은 알파와 오메가의 날입니다.
성지를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축복받은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한 자체를 놓고 볼 때에 전후 좌우 상하가 연하여 있고, 아버님의 지음을 받은 인연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하늘이 있는 동시에 땅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님을 중심삼고 인간과 하나되어, 아버지의 심정으로부터 영원한 이념의 세계까지 연결되어 거룩한 선의 동산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러한 세계가 되어야 하였는데 뜻하지 않은 우리 선조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을 슬픔의 세계로 몰아넣고, 인류 전체를 사망의 구덩이로 몰아넣은 것을 저희들은 슬퍼하였습니다. 저희들뿐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만유의 창조주이신 아버지도 슬퍼하였고, 고통을 받아 왔다는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나이다.
이러한 땅의 슬픔과 인간들의 슬픔과 하나님의 슬픔을 누가 제거해야 되겠습니까? 하늘도 하지 못하는 것이요, 땅도 하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를 마음대로 지으신 창조주도 하지 못하는 것이요,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인간뿐이옵니다. 인간이 저끄렀음으로 인간만이 이 일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청난 책임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와 같은 책임을 짊어진 우리 앞에 있어서 하늘도 원망해야 할 입장에 있고, 땅도 원망해야 할 입장에 있고, 아버지도 그러한 입장에 있사옵니다. 하오나 아버지는 도리어 저희를 위하여 수고의 입장에 서서, 저희 편에 서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사옵니다. 이러한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은 진정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뼈살에 사무치는 감사의 심정으로 아버님을 붙들고 모든 사정을 다하여야 할 것이었사옵고, 어려운 뜻을 바라 모든 희생의 길도 감사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노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조들이 아버님을 위하고 아버님의 사정을 따라 산다고 하였사오나, 진정 하늘이 소원하시는 그곳을 향하여 책임지고 행동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이 이상 면목이 없고 이 이상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오늘 저 한 개체를 불러 갈 길을 가르쳐 주셨사옵니다. 이 길을 개척하시기 위하여 노아 이후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세를 거쳐 예수님 시대와 지금 시대까지 기나긴 역사노정을 통하여 수고하신 은사 앞에 저희들은 진정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추어 지으신 만상세계의 인연을 대하면서 그 가치를 크게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깊이 감사드려야 할 존재였사옵고, 큰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들이었사오나 이러한 입장을 망각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말도 할 수 없사옵나이다. 이제 이 엄청난 역사적인 과제를 다시 한 번 저희들이 하늘과 더불어 수습하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책임지겠다는 입장에 설 것을 저희들은 몇 번이고 맹세하였습니다. 아버님 앞에 맹세한 그 맹세가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기를 저희는 재차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과거에 했던 맹세가 오늘의 비애의 조건을 남아지게 하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오늘 내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맹세한 그 목표 앞에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하늘이여 부족한 자에게 힘을 주옵소서. 맹세하였던 그 모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혹은 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내 생명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맹세한 뜻의 목적을 실천하고야 말겠나이다, 하며 몸부림이라도 쳐야 할텐데, 그런 저희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을 통탄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힘이 없사올진대 하늘의 힘을 요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책임을 질 수 없는 미력한 자신이거든 자신을 책(責)하여 아버님이 책임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할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슬픔이 어떻다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들었습니다. 과연 아버님은 타락한 인간, 타락한 하늘과 땅 전체를 복귀하기 위한 그 심정의 출발이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분하였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믿지 않는 이 땅 위의 인간들을 대하여 믿게 하기 위하여 아버님께서는 고독한 입장에서 이 일을 추진시키기 위해 수고를 얼마나 많이하셨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노아 한 사람을 세워서 120년 동안이나 참고 이끌어 나오시던 그 역사노정을 통하여서도 아버님의 사정이 얼마나 처량하였고, 아버님의 입장이 얼마나 외로웠고, 아버님이 처한 입장이 얼마나 어려웠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노아를 불러 이 땅 위에 하늘이 원하는 하나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아버님은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흑암이 가득찬 이 천지 가운데 노아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으며, 그를 찾아 세워 목적하였던 120년 동안 참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책임적인 사명을 짊어진 노아를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슬퍼했사옵니까? 그 주위를 중심삼고 한 사람의 동조자도 없었사옵고, 가는 곳곳마다 배반자요, 부딪치는 곳곳마다 원수의 무리로 취급당하였으나 참고 참고 또 참아 예지하였던, 약속하였던 120년을 맞이하게 된 그 한 때에, 아버님은 전체의 기쁨은 아니었사오나 노아 한 사람을 중심삼고 섭리하였던 기쁨의 한 흔적을 이 천지간에 하늘로부터 부여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저희들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을 거쳐 내려왔고, 모세를 거쳐 내려왔고, 예수를 거쳐 내려와 지금까지 전세계 앞에 그 인연을 넓혀 나오시기에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가 많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아버지께서는 하루라도 이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다짐하면서, 어느 한 날이라도 인간을 배반하고 인간을 처단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고 꾸준히 역사적인 노정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저희 자신들은 너무나 경망(輕妄)하였습니다. 너무나 무책임하였습니다. 복귀의 길에 대한 책임을 질 줄 몰랐습니다. 그 심정을 더듬을 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이 불효막심한 것들을 모아 놓으시고, 역사적이요 세계적인 한 때를 매듭짓기 위하여 저희들을 불러 세우셨사오니, 저희들은 하늘 앞에 얼마나 불효하고 얼굴을 들기에 얼마나 부족한 자신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입을 열어 감히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체를 명시하여 하늘 앞에 보여 주고, 땅 앞에 보여 주고, 아버지 앞에 보여 드려야 할 자신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의 행동을 하늘이 볼까봐 부끄러워 해야 할 자신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옵고, 어느 하나의 행동이라도 땅이 본받을까봐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오며, 더우기나 아버지께서 소망하셨던 기대에 어긋날까봐 마음 졸려 몸둘 바를 알지 못하는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할 자신인 것을 저희들이 알지 못하였사오니, 하늘이 나를 지켜 보고, 땅이 나를 지켜 보고, 아버지께서 나를 지켜 보고, 내 선조가 지켜 보고, 오늘날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형제들이 지켜 보고,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이 지켜 볼 엄청난 자기 위치와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생각하면 엄청난 한 초점도상을 향하여 하늘땅과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두고 아버님과 더불어 맹세하는 하루의 생활이요, 아버님과 결단짓는 한 날의 생활인 것을 느낄줄 아는 여기에 모인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늘 이 통일교회를 만들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여기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당신의 자녀들은 아버님을 몇십 번, 몇백번, 몇천 번 슬프게 한 자들이옵니다. 하늘은 부족한 저희 자신을 몰아내시기에 쉬지 않고 때를 가리지 않고 저희들을 돌보아 주셨사오나, 저희들은 하늘을 대신하여 때를 가리지 않고 나를 잊고 하늘을 돌보기 위해 충성을 다하여 행한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그렇지 못한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오늘도 저희 자신을 다시 돌보아 줘야 되겠고, 저희 자신을 다시 지켜 주어야 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불쌍하신 아버님인 것을 저희들은 마음으로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자신인 것을 알게 될 때에,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통하여서 아버님 앞에 맹세하고,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님 앞에 제물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호소하고, 입으로부터 호소하고, 저희 이목구비 오관을 통하여 호소하고 행동할 줄아는 저희 자신이 되어도 부족할 터인데, 그렇게 할 줄 몰랐습니다. 자기 자신을 망각하면서 하늘의 슬픔을 잊어버리고 행하기가 일쑤였던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다시 빌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저희들이오니 아버님이여,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잘 알아야 되겠고, 저희 자신들이 불충한 것을 잘 알아서 다시는 그러한 자리에 서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지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가 원하시는 소원을 성취해 드리기 위하여 재기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을 찾기에 노력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동기(冬期)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희들이 이 기간에 아버지 앞에 새로운 약속을 하고, 새로운 결의를 하여 이 민족적인 새로운 사명을 다해야 될 저희 통일의 신도들은 각별한 결의와 각별한 맹세를 아버지와 더불어 해야 되겠사옵고, 다시 하늘땅과 과거 현재 미래를 두고 자기 자신이 엄숙한 자리에서 `아버님, 제가 여기 왔사오니,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며, 저를 통하여 행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다시 물어 볼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은 과거에 많이 들어 왔습니다. 아버님의 원한, 아버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이 들어 왔사오나 그 소원은 말로만 듣는 소원이었습니다.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소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뜻으로 다시 한 번 저희들이 느껴, 이제 그 소원하시는 뜻을 대하여 책임을 짊어지고 싸울 줄 아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민족이 아버지 앞에 설 길이 없사옵고 이 인류가 아버지 앞에 서는 날이 더디 온다는 것을 알고 저희들은 스스로 책임지고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간 다시 저희들에게 권고할 수 있는 말씀이 있사옵니까? 권고하여 알고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부족하거든 책망이라도 하셔서 당신의 소원의 터전까지 몰아내 최후의 소원성취의 한 기점 위에서 저희들이 낙망하고 돌아서는 자가 되지 말고 아버지 앞에 쌍수를 들어 승리의 송영을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눈물과 더불어 아버님의 손길을 붙들든가, 아버님의 몸을 닮든가, 아버님의 가슴가슴, 심정 심정이 부딪치는 자리에서 나의 아버지라 부르고, 내 아들딸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날이 와야만 될 것을 저희들은 아오니 그날을 향하여 참고, 그날을 향하여 노력하고, 그날을 향하여 싸워서, 끝까지 승리만을 남기고 가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 이 시간 다시 한 번 분부하시옵소서. 원하시는 뜻과 원하시는 소원 위에 저희가 맡고 저희가 이것을 위하여 살고, 저희가 이것을 위하여 생각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않거든 선조들의 한 이혹은 이 시대의 한이 저희 자체에서 이뤄지지 못하여 후대에 남아질 한이 될까봐 두려워 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셔서 오늘 저희의 마음을 통찰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잊을 때가 많사오며, 저희 자신의 생명과 저희 자신의 행ㆍ불행을 주관하신 다는 것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님이 불러서 된 저희 선조들의 역사를 보게 될 때에, 그들에게 아버님이 주고자 했던 행복은 역사적인 행복이요 천주사적인 행복이었는데 그들이 부름 받은 자리에서 찾은 행복은 지극히 미미하고 지극히 초라한 행복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큰 행복을 주시려던 하늘은 큰 화로서 그들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배워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끝날에 처하여서 아버님께서 저희 자신들을 불러 세우게 될 때는, 저희 자신의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저희 자신이 소망하던 어떠한 행복과 어떠한 이념을 찾아 세우기 위한 소원의 기준 한계 내에 머무른, 아버님만의 소원과 행복이 아니오라.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하여 인생들이 찾지 못한 이상으로 크나큰 행복을 갖고와서 주고자 하셔서 저희 자신들에게 찾아 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행복의 터전을 유린하고, 그 행복의 사명을 경시하게 될 때는, 이것이 자기 일대의 한만이 아니라 후대의 한이요, 후대의 한만이 아니라 선조의 한이요, 선조의 한뿐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류의 한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복귀섭리노정 위에서 나타나 있는 저희들의 선조들의 역사를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저희 자신은 비록 작은 자요, 저희 자체는 비록 미미한 자로되 저희 한 자체로 말미암아 인연되어 있는 천주적인 인연이 저희로 말미암아 뒤넘이치는 이런 엄청난 자리에 서 가지고 최후의 승패를 결하여야 할 싸움터를 앞에 놓고 있는 저희 자신들이 내적 결의와 외적 결의를 스스로 다짐한 기준이 있사옵니다. 하늘이 찾아 세우기 위하여 저희에게 명령하고, 저희에게 분부하시는 명령의 기준을 대신하지 않으면 하늘이 허락할 행복의 동산을 먼저 맞이하기에 부족한 자신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통일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아버님이 수고하였사옵니다. 저는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날 이때까지 어려운 고빗길을 아버님은 친히 당하시면서 저희의 그런 환경, 그런 고빗길마다 지켜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맞기 전에 하늘이 맞았사옵고, 저희들이 슬퍼하기 전에 하늘은 슬퍼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낙망할 적마다 하늘은 천사, 혹은 천천만 성도, 선조들을 동원하여서 지켜 주시기에 무한히 애쓴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제 손길이 아버지 앞에, 제 이목구비가 아버지 앞에 남아져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인연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음도 모두가 아버지의 은사인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민족 앞에 세워진 통일교회의 뜻은 제 뜻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민족을 넘고 인류를 넘고 천주를 넘어서 아버지 심정의 세계를 거쳐, 아버지와 일체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의 가정의 출발을 거쳐, 온 만유의 존재부터 이념의 세계까지 책임지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세웠사옵고, 저희들을 부르신 것을 생각할 때에 크나큰 사명을 앞에 놓고 저희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기에, 눈물 아니고는 갈 수 없는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책임 못 한 것을 탄식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탄식하면서, 오늘 부족하더라도 내일 다시 맹세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지켜 가면서 나아가야 할 인류들인 것을 저희들이 잘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에 생활적인 제물, 몸적인 제물, 마음적인 제물이 되어서 마음과 몸과 생활을 통하여 거룩한 아버지의 새로운 제단을 꾸며 놓고 아버님의 심정에 통사정할 수 있는 기반 위에서만이 저희 마음을 이끌고, 저희 몸을 이끌고 저희 생활을 이끌어 아버지의 심정세계 앞에 일체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기하여 저희들이 수고한 모든 날들을 감사하옵고, 이날 모인 저희들이 남아진 동기계몽(冬期啓蒙)과 전도기간을 통하여 해야 할 책임을 놓고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신도들이 준비하고 있는 그 마음마다 긍휼히 여기시어서 아버님의 슬픈 사정 앞에 가까이 설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아버님의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터 위에 선두에 설 수 있는 아들딸로서 세워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뜻의 윤곽을 대강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얼마나 중요한 시대라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 외적인 환경도 물론 그렇지만 여러분의 마음을 두고 볼 때도 이때가 얼마나 바쁜 때요, 얼마나 중대한 때라는 것을 느낄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라는 존재를 지극히 귀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 혹은 자기 자신이 어떠한 주위환경에서 억울하게 슬픔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이것을 막아낼지 모를 정도로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분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이렇게 분함을 느낄 때가 있음을 미루어 봐서 이 민족도 민족으로서 억제할 수 없는 분한 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 민족은 어떻게 할 것이냐? 더 나아가서는 이 세계, 온 세계가 합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어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환경에 서게 되면 세계는 어떻게 할 것이냐?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이 합하여서 억울한 일을 당한 입장에 서면 어떻게 할 것이냐?
내 자신이 억울함을 당했을 때를 미루어 봐 가지고, 좀더 크게 연장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온 천주 전부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 무엇으로서도 풀 수 없고, 이것을 무엇으로서도 억제할 수 없는 입장에 선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건 두말할 것 없이 그 억울한 범위가 `똑딱' 하는 순간에 끝날 것이면 그런 기간을 통하여 반드시 누군가 대신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받든가, 억울함을 끼치게 한 그 자체가 고통을 받든가,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둘이 나누어서 받든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풀 도리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몽땅 탕감한 입장에 서든가, 그렇지 않으면 억울하게 한 어떠한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 어떠한 상대가 있으면 상대가 내 분하고 억울함을 짊어지고 탕감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나와 상대 둘이 합하여서 이 일을 책임지든가 하지 않으면 이 억울한 일을 풀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생활에 있어서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체면이니 위신이니 하는 것에 대하여 곧잘 말합니다. `아, 내 위신이 이래서야, 내 체면이 이런데' 라고 말합니다. 그런 위신이 상실되고 체면이 손상을 입게 될 때에, 체면을 세우고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환경을 잃어버리더라도 세우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왕왕 봅니다. 그러면 그렇게라도 환경을 벗어날 길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벗어날래야 벗어날 길이 없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때는 꼼짝없이 당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당하고 있는 억울함, 슬픔, 혹은 고통은 내 자체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상대적인 면에서 옮겨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반분해서 책임지든가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역사적인 현상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늘땅을 두고 섭리를 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크나큰 뜻이 있고 이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 이념을 기필코 성사시키기 위해서 정성을 다 들여 성취시켜 나가는 과정에 원수가 생겨나 파탄시키고 도저히 회복할 수 없게끔 저끄러 버리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입장은 어떠했을 것이냐 하는 거예요.
만일에 그 저끄러진 일을 인간이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만이 억울한 입장에, 하나님만이 고통받는 입장에 서야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만이 고통받는 입장에 서야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하늘과 인간이 반분하여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공동적으로 책임져 나갈 것이냐?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사람 같았으면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혼자 다 책임져라' 할 것입니다. 하늘이 실수했으면 하늘이, 땅이 실수했으면 땅이 맡아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천지의 이념을 규명하시는 아버지가 뜻을 세워 놓고,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 조상을 세워 놓고 섭리하시던 입장을 생각하게 되면, 비단 한 날의 슬픔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슬픔으로 타락의 기준이 지금까지 남아져 내려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분함과 하나님의 원통함과 하나님의 억울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이 남아 있는 한, 인간과 하나님, 이 둘이 합동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해결되어 끝날 때까지는 하나님의 한이 풀리지 않는 것이요, 인간의 한이 풀리지 않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이 한을 몽땅 거두어서 원수가 있다면 원수한테 짊어지게 해야 됩니다. 이 세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하늘이 지금까지 섭리해 온 목적이 무엇이뇨? 이 한스러운 역사적인 책임을 인간에게만 맡기지 아니하고 하늘에게만 넘기지 아니하고 누구한테 넘겨 버렸느냐? 하나님의 원수, 인류의 원수, 역사적인 원수, 시대적인 원수에게…. 자칫 잘못하면 내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책임을 못하게 될 때는 나를 위주로 한 후손에게까지 원수로 남아지게 될 사탄한테 이 원통함과 분함을 전부 다 탕감시키기 위한 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한 역사요, 우리 선조들이 지금까지 하늘을 대하여 뜻을 따라 나온 역사라는 것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입장에서 미루어 보게 될 때, 이때는 외적인 세계로 보나 내적인 마음, 심정으로 보나 너나할것없이 끝날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혼자 있어도 느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내 한스러움이 있으면 그 한스러움은 역사적인 한스러움이라는 것을 알고 원수를 갚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한이 있으면 그 한을 천주적인 한으로 알고 전체 동원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합동해서 전부 다 청산짓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수 앞에 넘겨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때가 끝날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돼요.
옛날 우리 선조인 노아를 두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찾아 온 목적이 어디 있느냐? 아담 해와 타락 이후 1600년 동안 하늘이 수고하고 하늘이 원통하고 분한 그 사정을 노아를 통하여서 누구한테 넘겨 주려고 했느냐? 하나님편의 사람이 아닌 사탄편의 사람한테 넘겨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편의 사람을 사탄편의 사람과 분별하여 따로 기른 것입니다. 하늘편 사람이 당한 역사적인 고통을 탕감하고 개인이 복귀하려면, 개인적인 고통을 사탄세계의 개인한테 넘겨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늘편적인 가정복귀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서 가정복귀를 하기 위한 고통을 사탄세계 가정 앞에 나누어 줄려는 것이 노아를 찾아온 목적입니다.
선민이라는 것을 세워 놓고 섭리하게 될 때, 민족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야 할 것을 하늘 앞에 세움받은 민족을 통하여 탕감복귀하는 것이 아버지 소원이 아니고 민족의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이 탕감해야 할 것들 사탄세계에 있는 민족을 통하여 탕감시키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을 통하여 찾아 나오는 하늘의 섭리요, 하늘을 대신하여 우리 선조들이 찾아 나온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종족, 민족을 거쳐, 하늘이 택한 선민권을 위주로 한 주권을 세워 가지고 국가를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를 세워 가지고 뭘할 것이냐? 국가가 당하여야 할 시련과 고통을 사탄세계의 국가들 앞에 뒤집어씌워 가지고 하나님이 택한 국가, 하나의 주권국가를 하나님의 보호권 내에 두고 그 외에 사탄 주관권 내에 있는 국가를…. 하늘권 내에 세움받은 국가의 탕감조건을 사탄편의 국가들에게 옮겨줘 가지고 탕감하기 위한 거예요. 지금까지 이렇게 끌고 나와 가지고 세계적인 끝날을 향하여 지금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때는 어떠한 때냐? 하늘과 사탄세계에 널려 있는 제2 이스라엘인 전세계 기독교인들을 합하여 세계가 당하고 있고 만민이 당하고 있는 이 모든 고통, 민주진영에 속하여 있는 수많은 국가들이 당하는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사탄국가에 이것을 몰아쳐 가지고 탕감하게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서 민주국가와 하나되어 가지고 그 뜻을 사탄세계에 연결시키는 것이 끝날 성도가 해야 할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합하여서 역사적인 한을 풀고 넘어가야 돼요, 역사적인 한을.
지금이 끝날이예요. 지금 때가 역사적인 한을 풀 끝날입니다. 수천 년 동안 역사노정에서 이런 세계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과 인간이 합하여서 이 분한 것을 공통적으로 책임져 가지고 넘겨서 오늘날 사탄세계권 내에 남아진 것입니다. 개인적인 한을 풀지 못한 하나님이요, 가정적인 한을 풀지 못한 하나님이요, 쭉─ 이렇게 나왔단 말이예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한을 풀지 못한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또 우리의 선조와 하늘편에 선 우리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들이 아직까지 한을 풀지 못하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노정의 전체를 횡적인 무대에서 풀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억울함도 풀어야 되겠고, 가정적인 억울함과,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억울함을 풀어야 할 시대가 이때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억울함을 느낄 때에 이 억울함을 당하는 내 자신이 그 상대의 억울함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든가, 혹은 넘겨 주든가, 둘이 합동하면서 풀든가 하지 않으면 풀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에 저끄러진 이 억울한 원한의 조건들을 풀어 나가야 돼요. 하나님이 인류 앞에 넘겨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책임지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책임지든가, 그렇지 않으면 이 원수 앞에 넘겨 주든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땅 위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늘이 원한을 느끼고 있는 이 원한, 하늘이 분함을 느끼고 있는 이 분함은 누구로 말미암는 것이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예요.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분함이 남아졌으니,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여, 그 분함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제가맡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그 원한을 갖고 망하지 않고 그 원한을 빼앗아다가 사탄 앞에 돌려줘야 돼요.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하늘은 `야 이놈아,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네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오늘날 이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뼈살이 사무치게 느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이 엄청난 한스러움을 풀기 위하여 하늘의 원수요 우리 인류의 원수와 대결하여 선 사람은 이 천지간에 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로 하여 환경을 수습하고, 환경을 수습하여 하나의 단체를 수습하고, 하나의 민족을 수습해 놓고, 이 민족이 총궐기하여 하늘의 한을 우리 민족적인 한으로서 각자의 가슴에 품고, 세계에 사탄이 널려 있다 할진대는, 그 사탄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넘겨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책임을 절감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오늘 이 끝날에 책임을 완결지을 수 있는 선민이라고 혹은 제2 이스라엘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어떠한 무대에 살고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한을 폭파시키는 폭발의 무대에 살고 있어요. 우리 선조들의 한을 폭파시킬 수 있는 폭발의 무대에 살고 있어요. 원수를 폭파시킬 수 있는 폭발의 무대에 살고 있어요.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것이 통일교회 패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한을 우리 통일교회가 맡아 가지고 해원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알지 못할 때에 선생님은 그런 책임을 해야 되겠다고 하며 몸부림쳐 나왔다는 거예요. 세상은 몰라 봐도, 하늘땅은 잠들어 있어도 하늘의 한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으니 땅 위에 맺혀진 한을 풀기 전에는 후퇴할 수 없다는 신념을 하며 가지고 싸움을 하는 거예요. 제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제아무리 고통의 환경에 들어가더라도 그 충절의 마음, 효성의 마음만은 하늘이 잊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결의하고 내가 가는 그때만이 하늘이 전체의 한을 잊어버리고 도리어 나를 동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복귀섭리의 길은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렵고 어려운 환경에서 내가 슬퍼하고 내가 고통을 받아 가지고 스스로 슬픔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면서 하늘이 보게 될 때, 마음 졸이는 일면이라도 보이면 마지막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떠한 시련과 어떠한 은탄 중에서도 뚫고 간다고 하면, 현시에 당하고 있는 입장이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분한 자리요, 억울한 자리요, 원통한 자리로되 그 자리를 넘어가 가지고 다시 하늘을 위하고 그 자리를 넘어서 나갈 수 있는 마음이 남아지게 될 때에 하늘은 나를 두고 제2, 제3의 다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너를 택할 때는 가정적인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택하였지만 너의 내적인 결의와 너의 각오로 보게 될 때는 민족 앞에 세울 만하다' 이래가지고 끌어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민족적인 시련이 부딪쳐 오게 될 때에, 나를 민족 앞에 민족적인 책임을 지라고 내세웠다면, 민족적인 시련무대가 휘몰아 치게 될 때 그 무대를 밟아 치우면 또다시 세계까지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소망이 거기서 싹트게 되어 아버지께서 새로운 결의를 내적으로 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지도자의 입장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지도자의 입장에 세우는 거예요. 복귀섭리에 있어서 한꺼번에 큰 책임을 안 맡기는 거예요. 한꺼번에 큰 책임을 안 맡겨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사대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시대에 있어서는 하늘이 가정을 맡길 수 있는 소망의 일념이 그 자체의 어떠한 시련과정에서도 남아질 수 있다면 가정적인 소망의 자리에 세우는 것이요, 또 가정적인 소망의 자리에 서 몰아치는 시련과 어려움이 크다 하더라도 남아질 수 있다면 종족, 민족을 소망하는 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 가정적인 핍박의 환경에 있어서 밀고 나갈 수 있는 내적인 결의가 있게 될 때에, 비로서 가정적인 승리의 발판을 지니게 해 가지고 민족적인 지도자로 세우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늘 앞에 세움받은 사람이 분함과 억울함과 원한에 사무쳐 있으면, 하늘이 책임지든가 내가 책임지든가 상대방에게 넘겨 주든가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한을 인간 앞에 끌어내려야 돼요. 나에게 끌어내려서 그 한을 제3의 환경에 옮겨 주어야 돼요, 제3의 자리. 이것이 복귀섭리예요.
제3의 자리가 어디냐? 사탄, 원수예요. 원수 앞에 옮겨 주는 거예요. 사탄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끔 옮겨 줘야 돼요.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승리,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가정적인 승리, 종족적인 승리, 민족적인 승리를 하기전에는 역사적인 모든 한을 사탄세계로 옮겨 주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이 꼼짝달싹하지 못할 승리를 거두게 될 때는, 지금까지 하늘과 우리의 선조를 유린하고 이 시대를 유린해 나오던 사탄을 이 지구성에서 추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탕감원칙, 즉 복귀를 통한 탕감원칙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하나의 하늘의 초석을 놓고 하나의 민족적인 책임을 짊어지기 위하여서 하늘이 찾아온 섭리의 발판이 지상에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이 지상이 얼마나 위험하냐 이거예요. 그 발판이 얼마나 위험한가 염려되지 않아요? 그래 하늘이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기점이 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세우실 때는 더우기나 그렇습니다. 가정적일 때도 역시 그렇고 민족적일 때도 그렇다는 겁니다. 범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하늘이 애달퍼하는 자리라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교단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류 가운데 통일교회라는 이 소수의 무리를 모아 놓고 바라보는 하늘이 얼마나 애달프고 기대하는 그 기대가 얼마나 크겠느냐? 외적으로 널려 있는 원수의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하늘적으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아들딸에 대한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수가 작은데 원수의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를 보는 하늘은 큰 고통을 느끼는 입장에 서 가지고 우리를 지켜 주고, 우리를 염려해 주고, 우리의 전체를 보호해 주기 위해 하늘이 수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진정 그렇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늘 앞에 면목없는 입장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늘 하늘이 수고하고 우리 선조들이 수고하여서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무한히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고 복귀섭리를 할 수 없었던 1,600년 동안 노아와 같은 한 사람도 찾지 못하여서 하늘은 허덕였습니다. 1,600년 동안에 저나라에 간 선조들 노아 할아버지가 이 땅 위에 태어나기 그 전날까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선저들, 수많은 영인들은 하나님을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보라고 자유롭게 환경을 허락해 주어도 볼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의 선조가 저끄러지게 해서 하늘을 슬프게 했고, 역사적인 슬픔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슬픈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하늘을 알게 될 때, 역사적인 후손으로서 하늘과의 인연도 맺지 못하고 하늘을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더기도 갖지 못한 입장에 선 영계의 영인들이 어떻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한 마음을 가진 영인들의 입장을 말한다면, 그 영인들은 누구를 원망했느냐? 아담 해와를 원망했다는 거예요. 1,600년 기간은 무슨 기간이냐? 아담 해와의 후손들이 아담 해와를 원망하는 기간이예요. 화나는 것과 분한 것을, 천상천하에 맺혀진 원한이 남아 있으니 그 원한을 누구한테 돌리느냐? 아담 해와한테 돌려 버리는 때였어요. 그런 때라는 거예요, 때로 보아선. 분한 것을 사탄세계에 돌려 버리는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아담 해와한테 돌려 버리는 그런 기간이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복귀섭리라고 하는 고마운 시대가 들어오면서 그 화를 누구한테 돌리게 되었느냐? 사탄한테 돌리게 된 거예요. 그리하여 비로소 인간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사탄을 대하여 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기반을 닦지 못한 노아 이전 시대에는 그 한을 전부 아담에게 돌리는 거예요. 노아 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그 한을 자기 선조면 선조에게 전부 걸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 한을 선조에게 돌이키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은 누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나님은 인류와 더불어,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인간이 누구냐 하면 아담해와의 후손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그 고통과 슬픔은 간접적으로 하늘로 돌아간 거예요. 간접적으로 하늘로 돌아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택한 한 자녀를 세우고 종을 세우고 충신을 세워서, 이것을 노아 때부터 사탄편에 돌리게 된 것입니다. 노아에게서 이 한을 종결짓고 사탄편으로 돌이킨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인 것입니다. 네 개체의 한을 세계적인 사탄에게 넘겨 주고, 내 가정의 한을 사탄세계의 가정의 한으로 넘겨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예요.
그래서 노아를 세워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하늘은 사탄세계 앞에 한을 넘겨 주자는 거예요. 넘겨 주는데는 무조건 넘겨 줄 수 없어요. 택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그 환경 가운데서 핍박과 고통을 받게 하는 거예요. 일대의 고통을 그 환경으로부터 받게 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개인의 고통─ 개인적인 역사적 고통─을 사탄세계에 넘겨 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승리는 노아가정 일대의 승리가 아니라 역사적인 승리예요. 아브라함의 승리는 아브라함 일대의 승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승리입니다. 모세의 승리도 모세 일대의 승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승리이며, 예수의 승리도 예수 일대의 승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으려니, 개인이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개인시대 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을 역사적인 시련 가운데 집어 넣는 거예요. 그 시대 전체 앞에 동서남북 사방에 널려 있는 환경의 무리들에게 역사적인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모든 환경의 고통이라는 것을 갖다 몰아치는 거예요. 사방으로 들이 조이는 거예요. 모가지를 들이 조이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죽지 않아야 돼요. 망하지 않아야 돼요. 곧게 나가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면 거기에서 개인적인 자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복을 받고야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을 심판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사람은 본래 천사를 지배할 수 있어야 되고 만물을 지배할 수 있어야 돼요. 천지를 지배하고 만물을 주관해야 된단 말이예요. 자녀를 가져 가지고 주관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되려면 복받은 입장에 서야 돼요. 아담 해와는 천지의 주인이니만큼, 주인된 사람은 자녀 앞에 줘야 하는 동시에 종한테도 줘야 된단 말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개인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은 역사적인 환경에 있어서 핍박을 받아 가지고 승리를 하여 남아진 자가 되어 가지고 그 일대에 있어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복을 종들 앞에 나누어 주고 아들딸 앞에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사탄한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뜻 앞에 복의 기관으로 삼았다는 거예요. 복의 기관이예요. 역사적인 복의 기관이예요. 노아는 개인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의 기관이예요. 모세는 민족적인 복의 기관이니만큼 모세를 떠나는 민족은 망하는 무리예요. 예수님은 세계적인 복의 기관이니 만큼 예수를 떠나는 세계 인류는 망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 통일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이 시대적인 환경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지금 개인적인 책임시대로서 넘어가고 있느냐? 가정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국가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세계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천주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그리고 오늘날 선생님이 지니고 있는 책임무대와 책임사명의 한계는 어느 정도냐? 그것을 잘 알 거예요.
어느 단계를 향하여 넘어가고 있느냐? 개인적인 입장에서 개인이 서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환경이 없어서는 못 서는 거예요. 노아가 가정적인 여덟 식구의 환경을 갖추어야만 개인이 설 것이었는데, 서지 못해서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가정이 서기 위하여서는 열두 가정의 기반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도 그랬고, 예수도 그러려고 하다가 망했다는 거예요. 열두 지파가 서기 위해서는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개인을 소생이라고 보면, 예수 가정이 서기 위한 열두 제자의 가정─사도의 가정이 장성이요─과 120문도─120문도는 완성입니다.─가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민족적인 기반을 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열두 지파는 모세를 중심삼고 민족 대표로 섰으나, 예수시대에 있어서는 그 한 단계를 넘어서서 한 단계 높은 120문도를 위주로 하여 세계적인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120문도와 같은 종족적인, 혹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이 기준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다음에 내적인 이 기준을 세계의 탕감조건으로 딱 예수 일대에 세워 놓고는 외적으로 맞추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리고 `우리의 가정을 본받아라' 이렇게 나가야 되는 거예요. 예수를 위주로 한 사도들이 가정을 가졌으면 이렇게 말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사도들의 가정을 본받아라. 우리 사도들의 이념을 본받아라. 우리 사도들의 생활을 본받아라. 우리 사도들의 충성심을 본받아라'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사도를 거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거쳐 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내적인 환경을, 내적인 조건을 완결해 놓으면 외적으로 동서남북을 통하여 전부 다 본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기독교가 이것을 하려고 싸워 나오는 거예요.
사도의 정신을 본받고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데,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전통, 정신을 본받아야 할 텐데 이스라엘 나라가 없었다 이거예요. 공중에 떠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어요? 예수의 정신을 본받고, 사도들의 정신을 본받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을 본받아야 된다 이거예요. 민족 없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래 다 깨져 나갔으니 그 나라의 정신을 어떻게 본받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을 잘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새로운 이념을 붙들고 가는데, 그 길이 어떠한 길이냐? 개인적인 시대가 다 지나갔습니다. 가정적인 시대로, 종족적인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입장에 있더라도 가야 한다 이거예요.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어디까지? 여러분은 안 가더라도…. 만일에 이것이 몇십 년 동안에 되지 않거든 원리적인 대수를 연장시켜서 내적인 방비를 해 놓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때가 어떠한 때인가를 잘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민족적인 길 앞에서 통일교회가 얼마나 비참해요. 얼마나 비참한가 말이예요. 그것은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자기 일신이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한 것을 못 느꼈을 거예요.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만큼 자기 인격이 천적인 인격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나는 이러한 사람이요, 이러한 책임을 지고 이러한 역사적인 탕감을 위하여, 시대적인 책임과, 미래적인 책임을 위하여 천주 앞에 사명감을 짊어지고 왔는데 그렇지 못하다'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됩니다. 임자네들이 그런 것을 못 느낀다면 그런 자기의 위치의 사명감, 책임감이 얼마만큼인지 모르기 때문에 못 느끼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지가 않아요.
여러분, 밥을 굶는 자리에서도 무골충이 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어찌하여 밥을 굶느냐? 어찌하여 고생을 하느냐? 원한이 얼마나 있느냐? 그 자리는 원수 앞에 역사적인 한을 남겨 주기 위한 엄숙한 자리라는 거예요. 일대일 입장에 있어서 사탄을 격퇴시키는 엄숙한 자리예요. 사탄 충신과 하늘 충신이 대결하여 '네 절개가 강하냐, 내 절개가 강하냐? 내 절개 앞에 너는 굴복할 것이다' 하는 그러한 놀음이라구요. 일선이 무엇인 줄 알아요? 사탄의 아들딸, 사탄의 부모를 위주로 한 효자 효녀와 하늘 부모를 위주로 한 효자 효녀를 보면 다르다는 거예요. 방향이 전부 다르다구요. 이러한 배경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지금 어느때를 향하여 가느냐? 어느때를 향하여 간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때를 모르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이건 그저 밥을 먹어도 조밥이면 조밥, 보리밥이면 보리밥, 매일 마찬가지 밥을 먹으니까 마찬가지 때인 줄 알지만 때는 지나가고 있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전체의 한으로 내 일대를 걸어서 사탄 앞에 넘겨 주기 위해서는, 일대를 걸어 놓고 사탄세계의 한과 하늘의 한을 대표하여서 전체가 한 자리에 서 있는데 여기서 꺾여 나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인 기반을 닦게 될 때에 개인적인 승리는 결정되는 거예요. 종족적인 기반을 닦게 될 때에 가정적인 승리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은 민족적인 가정을 접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못 대하는 거예요. 뜻을 따라가려면 가정을 전부 다 버리고 가야 돼요. 어미 아미를 데리고 못 다니게 되어 있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섭리의 뜻을 대하여서, 이 민족을 대해 가지고, 민족 앞에 나설 수 있는 이러한 한때를 얼만 하늘이 추구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뜻 앞에 있게 된 것, 우리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일대의 생애노정에서 천적인 시대와 천적인 때를 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복이라면 복이고, 화라면 화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탕감조건 없이 하나님이 이 민족을 찾아올 수 있는 거룩한 때를 우리가 맞이하였으니, 오늘날 민족적인 시련도상에 있어서 민족이 당할 수 있는 환란, 민족이 받을 수 있는 핍박을 우리가 고스란히 받아 가지고 꺾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꺾여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꺾이지 않고 남 아지게 될 때 기필코 이 민족은 굴복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세계적인 하나의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게 될때에 이 민족 앞에 대표적인 운동이 남아져 있고 역사적인 운동이 남아있으면….
만약 책임을 못한 민족이 되었을 때는 그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제사지내는 제사장과 제물이 탕감해 가지고 비로소 다 갚았다는 조건을 세우게 될 때 거기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늘은 민족적인 복을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복을 준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복을 주게될 때에, 그 복을 받고서 세계를 향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여러분들에게 복을 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지금 때가 그래요.
여러분들을 보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천번 만번 죽어 마땅해요. 그렇다구요. `어느때에 내 개인적인 복귀시대가 지나갔으며, 어느때에 우리 선조 아브라함과 같은, 야곱과 같은 가정복귀시대가 지나갔던가? 난 왜 몰랐던가?' 하며 한스러워해야 된단 말이예요. 어느때에 70가정이 애급을 떠나 국가적인 가나안 땅을 찾을 수 있는 때를 맞이했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때를 맞이한 것이 분하고 원통하다'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같은 시대, 같은 환경, 같은 문제에 있어서 같은 이목구비를 갖춘 하나의 사람으로서 남과 같은 힘을 가져 가지고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나는 그런 때를 갖지 못 하였던고' 하며 한스러워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복귀시대라는 민족이 대할 수 있는 때가 왔다. 그러면 섭리역사를 볼 때, `개인적인 섭리는 어느 시대에 했던고?'라는 의문을 갖고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정적인 복귀를 위하여 고통받던 시대는 어느 시대였던고? 종족적인 복귀시대는 어느 시대였던고? 어떻게 다 지나 보내고 오늘날 내가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체면과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적인 부끄러움, 시대적인 부끄러움, 하나님을 대한 자녀된 입장에 선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막을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돼요. 직접 느껴야 돼요. 모르는 사람은 복일지도 모르지요, 편안하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돼요.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이 무가치한 자기 개체를 두고 볼 때, '내 자신이 민족적인 사명시대에 있어서 무슨 민족적인 책임을 하겠는가 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러분을 중심삼고 지도하는 스승과 이 스승을 위주로 한 하늘은 그렇게 무가치한 스승과 무가치한 하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엄숙하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리하여 민족을 불러 일으켜, 승리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어 제사장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민족이 짊어진 죄상, 민족이 탕감하여야 할 역사적인 탕감조건, 시대적인 탕감조건, 미래적인 탕감조건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가 탕감해야 돼요. 그리하여 한 민족이 세계를 향하여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세계를 향한 탕감의 사명길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 때는 다가오고 시일은 촉박한데 얼마나 바빠요. 여러분들은 그것을 느껴야 돼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가만히 보면서 `저 사람, 저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저 사람이 생각이 있는가? 지금 이때에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뭐냐? 오늘날 여러분들이 3정권을 거쳐오면서 이 민족이 처참한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누구하고 만나야 하느냐 하면 통일의 무리와 만나야 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만날 것이냐? 무엇으로 만날 것이냐? 주권과 이 땅과 민족과 더불어 만나야 돼요.
그런데 어디서 만날 것이냐? 편안히 안식하는 자리에서 만났다가는 망해요. 안식하는 자리에서 만났다가는 또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거예요. 십자가의 길에 들어가 가지고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에 찾아 닦아 가지고, 승리해 들어와 가지고 만나는 거예요. 자식들이 갈 때 고통 없이 가게 하자는 거예요. 이런 작전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과 무슨 원수가 졌다고 만날 적마다 이러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무슨 원수가 되고, 무슨 선조의 원수가 되는 사람이라고 만날 적마다 이러겠어요. 책임을 지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더 해야 돼요! 안 들으면 망하는 거예요. 나에게는 명령하여 때려 몰아야할 책임이 있고, 여러분에게는 해야할 책임이 있어요.
민족을 살리려면 아들딸을 죽음의 자리에라도 서슴지 않고 내몰아야 돼요. 아들딸을 희생하는 자리로 내몰아야 돼요. 하나의 가정이 희생되더라도, 눈을 감고 내몰아야 돼요. 역사적인 하나의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서 사탄세계에서도 그렇거든, 우리는 사탄세계 이상의 내적 결의와 실천적인 결의를 표방하여 사탄 앞에 승리시위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이 통일의 무리 그런 일을 해야 할 것이 통일교인의 사명이예요. 그런데 통일교회에 껄렁 패들만 다 모였단 말이예요. 칼을 갈고 갈아 잘드는 칼날을 목에다 베고 자야 할 것이 통일의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지금 건드렁 건드렁 할 그런 때가 아니라구요.
지금 유엔총회에서 한국문제를 중심삼고 있는데, 동정받는 민족이 얼마나 부끄럽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원조받는 민족이라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돼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은 절대 신세지지 말아요. 어떻게 할 것이냐? 세계 앞에 삼천만 민족이 한때를 위하여 그런 사상과 전통을 가지고 세계에 줄 수 있는 민족을 만들어야 됩니다.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천지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지극히 귀한 보화를…. 이것을 완결짓고 완전히 갖는 날에는 세계를 갖는 거예요. 미국이 딴 나라예요? 하나님 앞에 미국이 딴 나라예요? 무슨 세계 각국, 선진 국가가 하늘 앞에 전부 딴 나라예요? 딴 아들딸이예요? 마찬가지예요!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민족이 남이 정성을 다하여 주었던 것을 부끄러움으로 알아 가지고 다시 돌려줄 생각을 해야 돼요. 그러지 않고 뜯어먹는다면 도둑놈들이 돼요. 망해야 돼여, 망해.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전부 다 민족을 망쳤어요. 미족의 정기를 망치고 사회를 망쳐 버리는 요소였어요. 잘못 받다가는 망한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알아야 된단 말이예요. 그건 역사가 증명하는 거예요. 하늘이 찾아오는 복귀섭리 앞에서, 무한한 복을 주고자 하는 하늘 앞에서 잘못 받다가는 망해요! 그래서 선생님이 축복하게 될때에 조건 축복을 하느 것은 여러분의 길을 남기기 위해서, 망하는 길을 막게끔 하기 위해서예요.
십자가의 길을 거쳐 민족을 찾아 들어와 가지고 맨 끝에 환란무대에서 갖은 천대와 고생을 다 겪으면서…. 오늘날 통일교화가 그렇잖아요? 제일 추악한 무리, 세상이 입을 열어 말할 수 없는 무리로 알고 있었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제일 무서운 무리로 알게 되었어요, 제일 무서운 무리. 제일 나빴던 입장에서 제일 무서운 입장, 제일 좋은 입장까지 3단계를 지나가야 돼요. 제일 나쁜 것이 변하여 제일 좋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제일 무서운 곳이예요. 틀림없이 그렇게 돼요.
하늘의 복귀섭리의 전체를 보게 될 때에, 하늘은 지금까지 그 원한을 인간과 뿔개질해 가지고 지금까지 붙들고 나오는 거예요. 이것을 인간이 저끄렀으니 인간이 책임져 가지고 사탄 앞에 남겨 줘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넘겨 주면 창조주 입장에 설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한민족은 한민족으로서의 책임이 지중하고, 이 한민족을 올바른 길로 가게 깨우쳐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 지대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밥을 먹고 극장 다니듯이 하면 되는 줄 알아요? 옛날 노아가 120년 동안 배를 만들기 위해 연장을 메고 아라랏산 꼭대기를 올라가는 시대와 같은 것이요, 아브라함으로 말하면 3일노정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을 찾아가는 시대와 같은 것이요, 모세로 말하면 40년노정을 통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가던 노정과, 이것을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광야에서 바로궁전을 찾아가던 그런 노정과 맞먹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예수로 말하면 최후의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의 산정을 향하여 올라가던 기간과 맞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노정에 있어서 우리의 선조들이 전부 다 혈투전을 전개하여 승패를 결하기 위한 개인적인 섭리시대, 가정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섭리시대, 최후의 전쟁 마당이 여러분의 선조로부터 여러분의 므릎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최후의 결정을 짓기 위한 역사적인 한의 보따리가 우리 앞에 굴러떨어졌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화다닌다는 녀석들이 뭐 길가에서 꺼덕꺼덕 거리고 있으면 사탄한테 잡혀 가는 거예요, 전부 다. 그런 것들은 그저 잡아먹어라' 하는 때가 올는지 모르지요.
책임을 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욕되게 하고 하늘의 길을 망치는 자는 벌받아야 돼요. 하늘이 죽었나 살았나 보라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지방으로 나가는 것은 모세로 말하면 시내산에서의 40일 금식 기간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담판짓기 위해 떠나는 길입니다. 그러니 무서운 길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와서 졸고 뭐 뒤에 앉아 가지고 정신없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예요. 자꾸 칼을 닦고 무기를 정비하고 또 정비해야 돼요. 천만 번 준비하여 원수를 한날에, 일시에 세계를 거쳐 가지고 다시 재기 못 하게 해야 돼요.
앞으로 통일 무리가 닦아 놓은 기반을 다시 수습하겠다고 하는 무리가 세계 역사상에 나와서는 안 돼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 기반을 닦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이예요. 사탄도 못 하고, 하나님도 못 하고, 딴 어떤 것도 못 해요. 우리의 전통과 우리의 방법을 따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외에는 딴 방법이 없어요. 딴 방법이 없으니 그들도 살려면, 이념을 따라오려면 굴복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통일교회 역사 앞에 굴복해야돼요. 통일교회 뜻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 역사 앞에 굴복하고, 그다음에 그 역사를 대신하여 살아 나온 통일교인 앞에 굴복해야 돼요. 그다음에 통일교회 자녀 앞에 굴복해야 돼요. 3시대에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우리의 고통은 과거 현재 미래의 고통입니다. 우리의 탕감은 과거 현재 미래의 탕감입니다. 이런 마당인데 전부 다 정신이 나갔어요. 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껄렁껄렁하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껄렁 패예요? 얼마나 심각해요? 생각해 보란 말이예요. 우리 교회, 기관마다 이거…. 어찌하여 40연령을 중심삼고 요 모양 요 꼴이 됐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하늘 앞에 면목이 없어요. 내가 하늘 앞에 기도를 할 수 없어요. `복을 주소, 복을 주소' 할 수 없다구요. 복은 무슨 복? 고생 해야지, 이 민족 앞에 복을 주기 위해서는 천적인 가치를 두고 보게 되면, 여러분들이 여기에 마음대로 들어와 가지고 앉아서 졸게 되어 있지도 않아요. 앉게 되어 있지 않아요. 머리를 돌에다 대고 기도를 해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누구나 와서 있게 돼 있지 않아요.
민족을 망하게 할 것이냐, 통일교회를 망하게 할 것이냐? 나는 통일교회는 망하게 하더라도 민족을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생각이예요. 그게 지도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자기의 병사를 희생시켜서 나라를 구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부하들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구하는 거예요. 수제자들을 내모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희생시키고 민족, 나라를 구하자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이라는 거예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희생시켜야 돼요. 그런데 뭐 이야기는 많이 하고, 입들은 커 가지고 나 그거 좋아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대각성을 해야 된다구요.
이번 7개월 동안에 여러분들에게 재차 재기하라는 말을 왜 자꾸 하는 줄 알아요? 우리는 지금 비상한 입장에 있습니다. 아까운 것이 없어요.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이 안 되겠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이 때에 대한 것은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내가 갈 길은 잘 알고 있는 거예요. 내가 망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교회 교인을 대하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전부 책임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적진의 일선에 있어서 첩보대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서 최후의 통첩을 받아 가지고 행동하기 위한 놀라운 순간과 맞먹는 시대가 지금 시대라는 거예요.
옛날 어떤 때에는 말이예요, 누가 오면 이상한 마음이 들어요. 이상하게 생각돼요, 마음이. 그거 내 마음이 아니라는 말이예요. 어떤 때는 인사하면 인사를 받기 싫을 때가 있어요. 내가 머리 숙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에 와서 내가 하늘 앞에 `아버지여, 통일교회를 위하여 민족적인 책임을 할 수 있는 내 책임을….'이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게 될 때 민족에게 다짐시켜서 밤을 새워 가면서 통곡이라도 할 수 있게끔 왜 못 만들었느냐? 방법이 없었느냐? 많았다는 것입니다. 망한 이스라엘 민족을 볼 때 왜 그렇게 되었느냐? 60만 대중이 어찌하여 그렇게 됐느냐? 하늘이 소원하시고, 하늘이 유대 민족을 끌고 나오는 심정적인 기준만큼 모세 자신이 못 되었던 탕감조건 기준이 남아 있었던가? 모세가정이 잘못했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을 품에 안게 될 때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거예요. 만약 먹을 것이 없고, 요즘 신문지상에 났던 거와 같이 처참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심각한 입장에서 생각해 봤느냐? 그건 모르지요, 몰라요. 세상이 어떤지 모르지요? 하늘을 대한 책임을 진 제사장이라면 제사장은 하늘이 바라보는 심정 앞에, 심정적인 십자가를 책임진 이 시대 앞에 혹은 사명 앞에 십자가를 남겨 줘가지고는 발전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요즈음에는 생애를 수습하여 민족적인 싸움터로 나가야 할 시대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40평생 걸어온 것도 재수습 기간입니다. 아무 때는 어떠했고 아무 때는 어떠했다, 그래 가지고 나라는 것이…. 여러분들을 보면 '통일교회 누구누구는 이 길을 걸어 나왔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할 것이고, 이런 사람은 어떠할 것이고, 이 사람은 배반할 것이고, 이 사람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 사람은 가는 데도 불구하고 옆길에서 구경할 것이다, 이렇게 아는 거예요. 이상하다는 거예요. 내가 하는 게 아니예요. 척 보면 벌써 나는 이렇게 살았고, 나는 이렇게 나왔다 하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돼야 될 게 아니예요? 탕감복귀라면 그렇게 돼야 돼요.
모세가 간 길은 예수가 가야 돼요. 이스라엘 성도들은 예수의 인격관을 반영하여 그것을 후대의 자녀들이 수습할 수 있도록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복귀섭리이기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 섭리했다면 그 전체적인 생활과 지금까지 하늘 앞에 세워진 공적을 전부 다 세워 놓고 또다시 생각하게 되면 이건 다 하늘이 해주 것입니다. 하늘이 안 알려 준 것이 없어요. 그래서 밤에 어떤 때는 잠을 못 잔다는 거예요.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할 수 없이 회개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심상치 않다구요. 지금 때가 그런 때라구요.
생사의 결정은 전투할 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행ㆍ불행의 기원은 어디서 생겨나느냐? 전부가 쓰러지고 망하는 자리에서 생겨납니다. 오늘 통일교회도 그런 입장에 섰다는 걸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이런 놀음을 안 해주면 여러분은 끝났다는 걸 알아야 돼요. 수습할 도리가 없다구요. 틀림없이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요즈음 선생님이 차를 타고 돌아다녀요. 그래서 본부를 떠나 몇 해 만에 돌아오더라도, 4년이면 4년 동안 있다가 본부에 돌아오더라도 `수고했다, 너희들. 잘싸웠구나' 할 수 있게끔 돼 있어야 돼요. 그렇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한을 하나님이 책임져서는 안 될 것이요, 우리들이 이 시대에 역사적인 원한으로써 책임져 가지고 세계적인 사탄에게 전부 다 넘겨 줘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까지도 우리는 하늘편으로 끌고 와야 됩니다. 사탄 앞에 이 원한을 남겨줘 가지고 영원히 이 지구성에서 추방해야 됩니다. 이게 복귀섭리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민족을 찾기 위해서 공산국가에 대해서도 지도해야 됩니다. 민족을 지도해야 됩니다. 지도해 줘야 돼요. 원한을 넘겨 주는 데 있어서는 가인을 때리는 것이 아니예요. 요셉과 마찬가지로 죽으라고 팔아먹은 형제들이 전부 다 원수의 나라에 와 가지고, 뒤바꿔져 가지고 전부 다 굶어 죽게 되었고 헐벗게 되었을 때 요셉의 은덕을 입은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렇게 돼야 돼요. 민족이 원수라고 하고 교법자들이 사탄이라고 해 가지고 잡아먹으려 하던, 잡아죽이려고 하던 통일교회예요. 그렇지만 망하지 않는다구요. 사탄세계에 와 가지고 요셉과 같은, 모세와 같은, 예수와 같은 기반을 닦아 나가야 돼요.
모세를 누가 인도했느냐? 애급에 있던 모세가 괜히 뛰쳐 나왔겠어요? 총리 대신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나오는 게 무엇이 힘들겠어요? 애급 호위병을 이스라엘 민족 앞에 세우고 블레셋 땅을 지나 간안으로 직행했더라면 뭐가 40년 걸렸겠느냐 말이예요. 모세가 지혜가 없었다는 거예요. 바로궁중 40년을 뭘하려고 들어갔겠느냐 이거예요. 또 그렇게 되어 있었겠느냐 이거예요.
요셉이 거기에서 기반을 닦은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 위에 민족적인 기반을 닦기 위하여 하늘은 천신만고하여 기반을 닦아 놓았는데, 보세가 실패했다는 거예요. 이거 까놓고 이야기를 못 하지만서도, 원리강론에는 간단하게 적은 거라구요. 세례 요한도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세례 요한도. 민족이 그만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면 전부 다 움직여 가지고 예수를 중심삼고 민족적인 승리의 대제사장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되어 나갔어야 되었어요.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이런 걸 생각할 줄 알아야 돼요.
내가 이제 여러분들을 애급에 팔아먹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원래 외국 선교사로 전부 다 쫓아내 버리는 거예요. `안 갈래, 이 자식아!'하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앞으로 세계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는 요셉과 같은 사명, 모세와 같은 사명을 빨리 해야 돼요. 전부 다 이 놀음을 해야 돼요. 하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 형제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갈라세우는 게 원칙이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인간은 응해야 돼요. 그럼으로 여러분들은 지금 때가 어느때인지를 알고….
오늘날 하나님의 한을, 천주의 한을 우리가 상속받아 가지고 이것을 민족 앞에 남기지 말고 민족을 넘어 사탄한테 넘겨 줘야 돼요. 그리하여 사탄에게 넘겨 우리가 고생한 길을 따라오게 해야 됩니다. 아벨 제단을 따라와 가지고 가인이 아벨 과정을 거치게 될 때는 사탄은 없어져요. 이것이 복귀섭리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한을 푸는 놀음입니다.
'역사적인 노아의 분했던 한을 풀지 못하였고, 아브라함의 분했던 한을 풀지 못하였고, 야곱과 모세, 예수가 분하였던 한, 하나님이 분하였던 한을 풀지 못하였으니 오늘 우리 시대 일대에 있어서 나 혼자서 이걸 풀어야 돼겠다' 해야 돼. 민족을 걸고, 혹은 인류, 천주를 걸어 놓고, 하나님을 걸어 놓고 한을 풀 수 있는 역사적인 과정 앞에 엄숙히 내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게 복이라면 복이예요. 그 대신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그 일대가 화를 받는다는 걸 알라 이거예요. 책임 못 하게 되면 여러분 선조로부터 여러분과 여러분 후손까지 벌을 받는다는 걸 알아야 돼요.
선생님은 고향에 부모 처자 친척이 없는 줄 알아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주는 형제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어디에 갔는지 그들을 생각할 여지가 없어요. 죽였는지 어디 가든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이건 알아보려면 간단한 거예요. `아버지….' 하고 기도해 보면 아는 거예요.
민족적인 사명,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그 책임을 다 안 해 놓고 부모가 어떻고, 형제가 어떻고 할 수 없어요. 선생님 거정도 그래요. 어머니를 대해서 하는 말이 `나를 사랑하지 마시오. 나를. 나보다도 하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한 다음에 나를 사랑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교훈하는 게 그거예요. '그러기 전에는 나는 당신과 하나 안 되는 거야' 하고 끌고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어머니의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를 복귀해야 돼요. 그러니까 얼마나 서글퍼요? 그러니까 이런 길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다 알아 가지고 이 탕감역사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으면 하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나 자신, 혹은 통일이념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섭리를 남겨 놓고 뜻을 품고 나가는 젊은 사내 간나들이 말이예요,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너하고 나하고 살자 하는데, 이런 사람은 아가리를 째 버려야 돼요. 혀를 뽑아 버려야 돼요. 지금 때는 여유가 있는 때이니 그렇지…. 생각해 봐요. 그런 마음이 안 나겠나요, 나겠나요? 왜 욕을 먹고 내가 지금까지 이 놀음 해 나와요? 누구 때문에? 선생님이 무골충이예요? 선생님 말을 듣고 따라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거예요. 여자들도 공장에 나가 일하라는 거예요. 새벽같이 일어나가지고…. 기성교인들은 밤을 새워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하는 게 힘들어요?
오늘날 역사적인 한을 어떻게 할 것이냐? 보고만 있을 것이냐? 누가 해결해 줄 것이냐? 지금 때는 여러분은 보고 있더라도 하늘은 이 해결방법을 강구해 놓고 있다는 거예요. 민족적인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민족을 세워 가지고 국가를 수습해야 되겠기 때문에 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많은 국가를 세울 수 없다 말이예요. 한 국가가 필요하니 한 세례 요한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지금 때는 세계적인 때입니다. 한 국가는 세계적인 국가인 동시에 세계적인 세례 요한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 말이예요. 세례 요한이 세계적인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렇다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과 더불어 통일교회 문선생이 망할 것이냐? 나는 안 망해요, 여러분은 망하더라도. 나는 안 망한다 이거예요. 망하면 대책을 세워요. 망해 떨어지는 이 무리들 위해서 천적인 입장에서 대책을 세워 주려고 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킨다는 하늘의 통고를 받을때 몇 번이나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정성을 다 들여 가지고 붙들려 한다는 거예요.
이래서 섭리의 무대는 점점점 우리 눈앞에 다가온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때를 기다리고 알 패만이 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모이기에 힘쓰라 했던 것같이 모이기에 힘쓰라는 거예요. 성경에 말한 것이 뭐 기성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통일교회 신도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걸 알아야 돼요.
하늘의 원한을 이 민족이 맡아 가지고, 가인적인 세계의 원한을 사탄한테 넘겨줘서 이것을 완전히 지구성에서부터 해결을 짓고 전세계 인류를 역사적인 아담 해와로서 하나님의 후손권 내로 몰아 내세워야 할 기반을 여러분들이 닦아야 돼요. 민족적인 기반을 닦아야 돼요. 민족적인 책임을 하루라도 하라는 말이예요. 세계전쟁이 일어났으면 싸움터에 나가서 총을 한 방 못 쏘더라도 따라라도 다니라는 말이예요. 들러리라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전쟁이 승리로 끝나게 될 때는 참전하였던 사람은 전부 다 승전병이 되는 거예요.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무슨 놀음에라도 가담하여 따라다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전도해 보라는 거예요. 전도를 얼마나 하겠느냐는 거예요. 하루에 백 명씩 해봐야 일년에 3만 6천 명밖에 더 돼요? 3년 동안 해도 10만 8천 명밖에 더 되나 말이예요. 이것은 지금 기반만 있으면 하루면 돼요. 순식간에 할 수 있어요. 언론기관 하나면 그 정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여러분을 거기에 가담시키기 위해서. 통일교회 전통이 그래요. 내적인 전통은 못 남기더라도 외적인 전통의 조건이라도 세워 놓고 가자는 거예요. 내가 뭐 어떻게 하든지 신문사 하나를 못 만들것 같아요 이까짓 신문사 하나 만드는 거야 하루아침에도 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그런 재료가 얼마나 많으냐 이거예요. 재료가 얼마나 많이 있어요? 문제는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다구요.
여러분, 세계적인 사건이 벌어져 가지고 세계가 전부 다 어려울 때 수습할 거예요? 뭘 갖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고생부터 해야 돼요. 팔이 부러지고 병신이 되어도….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이 병신 얼굴 보게 될때 머리를 숙이게끔 만들어 놓아야 될 것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돼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기반을 닦은 사람들은 시대를 치리하던 사람들이 아니예요. 시대 앞에 고난받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역사적인 성인현철들은 전부 다 그 시대적인 인간 앞에 몰림받은 사람입니다. 창끝을 밟고 넘어간 사람입니다. 창끝을 피해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총탄을 피해 넘어간 사람들이 아니예요. 많은 원수 무리 가운데 살아 남은 무리들이 역사적인 위인이 되어 가지고 오늘날 이 세계를 지배해 온 거예요. 잘 알지 않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한 될 것이 없어요. 결정을 해놓고 사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든 결정해 놓고 죽어도 좋다고 맹세해야 된다구요.
좋은 양옥집 사 놓고…. 아이고 난 그거 싫어요. 그게 선생님의 소원이 아니예요. 옷 같은 것을 해 입어도 내 생각에 사탄세계 사람들이하는 그대로 하기 싫어요. 이런 누더기를 입는다구요, 흉보겠으면 보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철도 기관사다. 통일교회 기관사다. 하나님이 원하는 최후의 종착점을 향하자' 이래야 되는데, 이게 안 되어 있어요. 내가 조밥을 먹어도 뜻을 위해 충성한 사람이 나서면 그저 울고 있는 입장에 서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러면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편안히 해 가지고 잠자는 것보다도 그런 자리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서로서로 목을 놓아 통곡하면서 눈물과 콧물과 입물─다 나오지요, 울게 되면─을 합해 가지고…. 여러분은 삼합수(三合水)를 한번 흘려 봤어요?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그거 못 하는 사람은 전부 다 하늘의 충신이 될 수 없고 효자 효녀가 될 수 없다고 나는 단정해서 말했다 말이예요. 눈물과 콧물과 입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심정과 자기의 감정을 참을 수 없어 가지고 통곡해 보지 않은 사람은 통일교회 사람이라고 보지 않아요. 그런 자리에 하나님은 임재한다는 겁니다. 잃어버린 6천 년 전의 부모를 만나 가지고, 고아의 신세로 살다가 부모를 만나 가지고 `햐! 좋다. 춤추자'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요? 눈물로 헤어졌으니 눈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통일교회가 망하겠느냐? 이 민족이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세계가 망하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아요 사탄세계가 망하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고 본다구요. 제일 불쌍한 패들이 누구일까?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불쌍했고, 우리 인류가 얼마나 불쌍했어요? 이런 하늘땅의 이 비통한 원한을 여러분 각자가 풀게 될 때…. 그것을 먼저 해결해 놓아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 자신의 체면이 서지, 체면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아이구…. 그건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데 개똥쇠만도 못한 자기의 그체면을 위하는 것은…. 여러분이 볼 때 자기 자신의 체면이 어때요? 20세기 인공위성 속도 이상으로 달리는 차를 사 가지고 `아이구 나 대통령보다 좋다' 그러겠나 말이예요. 체면 차리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못해서 체면…. 내가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있을 때 얼마나 체면을 상실했겠어요?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단 말이예요. 매를 맞고 피를 토하는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이래 가지고 나온 거예요. 앞으로 때가 되게 되면 축복받은 가정─그때는 공산당이 남아 있을 거예요─들을 완충지대에 전부 다 데려다가 굴을 뚫어라 할 거예요. `모가지를 잘라 죽이는 데로 가라!'이렇게 내몰 거예요.
우리는 생명을 버릴 각오 하고, 생명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실체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살아서 천국을 지상에서 맞이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된단 말이예요. 죽음길을 갔다가 와야 돼요. 선생님이 뭐가 안타까와서 이남에서 살다가 뭘하러 이북에 벌렁벌렁 찾아갔겠어요? 이북에 찾아갈 때는 벌써 각오한 거예요. 감옥살이, 까딱 잘못하면 생사의 결판까지 하고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런 각오를 하고 찾아 갔던 길이 오죽이나 비장했겠어요? 얼마나 심정이 심각했겠나 말이예요. 지금까지도 그래요, 지금까지도. 1960년도에는 아주 최고의 결판을 짓는 해이기 때문에 얼마나 심각했겠나 말이예요. 사탄들은 전부가 동원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느 기간 내에 비장한 내적 대책을 딱 세워 놓고…. 네가 후퇴하나 내가 후퇴하나 보자 이겁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암만 통일교회를 뭐 한꺼번에 갖다가 불살라 없앤다 해도 가슴이 철렁 안 한다 말이예요. 이제는 그래요, 선생님 가슴이. 태산이 무너진다 해도 마음이 철렁하지 않아요. 왜? 이제는 죽더라도 사탄세계는 벌써…. 3년 기간이 지나기 전에는 선생님이 큰 싸움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준비하는 것은 뭐냐 하면 여러분들로 하여금 준비해서 싸움 하는 거예요. 안 나서는 녀석은 나하고 원수예요. 그런 때가 이제 불원간에 올 거라구요. 보라구요. 세계까지 가야 돼요, 저 아프리카 끝까지. 어느 기준만, 민족적인 기반만 닦으면 몇 년 이내에 전부 다 세계 끝까지 갈 수 있다구요. 안 갈 수 없거든요. 여러분들이 안 가면 일본 놈들을 동원하든가 미국 놈들을 동원하든가 해서 할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제부터는, 조금 더 나아가 한 4년이 지나면 선생님이 직접 지휘하는 거라구요.
요즘에는 편지도 하나 안 해요. 미국에 가 있는 영운씨가 매주 한 번씩 편지를 하는데 내가 지금 딱 한 번 했어요. `아, 이런 저런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하는데 안 해줘도 하늘이 잘 가르쳐 준다구요. 정성을 다해 가지고 목욕재계하고 3일만 금식기도하게 되면 답해 주게 돼 있단 말이예요. 그런데 내가 뭐 필요하냐구요. 한 4년만 있으면 직접 지도하는거예요. 직접 지도한 후에 명령하게 될 때는 마지막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가 좋은 때인 것을 알라구요. 그러니 내가 말한 거와 같이 민족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세계적인 원한을 해원하기 위한 그 책임을 해야 돼요. 이걸 중심삼고 여러분이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 나왔으니 여러분 몸을 통해서 그런 세계까지 다리를 놓아야만 세계가 굴러 들어오고 이 민족을 세계 앞에 연결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조화의 역할을 여러분들이 해야 돼요. 또한, 시대를 분멸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집에 가 가지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거예요. 김씨면 김씨로 태어났으면 그 삼촌, 사촌, 사돈, 외가집까지 전부 동원하는 거예요. 지금 때는 옛날 일제시대 때 독립군 모양으로 종족적인 독립운동을 거예요, 전부 다. 여러분들에게 전도하라는 것은 여러분 가정을 구하라는 거예요. 밤낮없이 정성을 다해 그렇게 하게 되면…. 옛날에 여러분들이 선생님 보고 싶어서 달려오고 그랬지요? 그 기간에 선생님 보고 싶다는 말이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게 되면 그 사람 말이 왜 그런지 듣기 좋거든요. 옛날에는 통일교회 간다고 반대했지만 지금은 말을 듣고 싶어서 궁금증이 난다 말이예요. 자기 선조들을 보라구요. 자기 가정의 선조들이 있을 것 아니예요? 자기 선조 가운데 나라에 충성한 충신이 있으면, 그 충신이 정성들이고 공헌한 기준만큼 여러분이 뜻을 위해 정성들이고 자기 종족을 위해서 정성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자기 선조들이 와서 가르쳐 준다는 말이예요. 이제는 예수님이 안 가르쳐 줘요.이스라엘 민족적인, 옛날 유대 나라 민족시대에 있어서 섭리를 대해 나오던 선조들이 전부 다 여러분한테 안 가르쳐 준단 말이예요. 여러분의 직계조상이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여기 현재 그런 사람이 더러 있을 거라구요. 옛날 누가 나타나게 될때는 부모들 조상들이 나타나고, 몇 대조 할아버지가 나타나는 거예요. 조상들이 나타나요. 그 조상은 선한 조상이예요. 그 조상의 말은 하나님이 가르쳐 준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까지 교육을 해줘야 할 때가 왔다구요. 한국이 복받을 때가 왔다는 겁니다. 이 민족이 지금 그런 때에 왔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사에 민족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섭리를 담당해 나오던 과거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양반들이 지금까지 섭리시대에 협조한 것입니다. 이 민족이 이스라엘 섭리권 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러분 선조들까지도 이스라엘 민족 섭리시대에 있어서 하늘 앞에 공신이 된 거와 마찬가지의 시대적 혜택권 내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잘 협조하면 그들이 옛날 아브라함보다 먼저 부활합니다. 여러분디 조상들이 그렇게 된다구요. 그런 때가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바르게 된다구요. 보라구요. 바르게 된다는 거예요, 이 4년간에 박대통령인가요, 공화당의 책임자가? 책임 잘해야 할 때가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을 전부 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책임자로 세운 게 아니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요전에 전부 다 연령을 보니까 40대가 많아요. 3분의 2예요. 그렇게 알고 때를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게 되면 부모 되는 사람들은 자식들을 거느려서 이다음에 부끄럽지 않아야 돼요. 이때는 전부 다 동원해야 돼요. 여편네도 동원해야 되고, 자녀도 동원해야 돼요. 3대가 동원해야 돼요, 3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가 동원해야 된단 말이예요. 통일교회 가정을 동원하는데 말이예요, 선생님 중심삼고는 다 동원하는 거예요. 36가정 동원, 72가정 동원, 120가정도 동원하는 거예요. 사위기대 중심삼고, 가정적인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동원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3대를 동원해야 돼요. 3대를 동원해야 돼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하나님과 아담과 아벨, 3대지요? 언제나 3대라구요. 하나님과 노아와 함입니다. 이것이 열매맺은 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곱을 중심삼아 가지고 쭉 해 나오는 거예요. 야곱 때 와 가지고도 그렇다구요. 야곱과 그다음에는 요셉과 그아들들…. 이것이 하나되어 가지고야 복귀 기반을 닦아 나가는 거예요. 반드시 3단계로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중심삼고 아들딸 있는 사람은…. 저기 누군가, 이 녀석은 아들 딸 잘못 낳았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야. 자기보다 선두에, 자기보다 먼저 제물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그렇다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원리의 코스를 반드시 통과해야 돼요. 원리적으로 지금까지 해나온 것은 1대, 2대가 문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1대는 아들 딸 가운데 반드시…. 통일교회에 나오는 가정의 자녀들이 전부 다 함과 같이 둘째 고개에 걸린다 말이예요. 요놈들이 책임을 잘해야 할 텐데 책임 못 하기가 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목사 아들들 중에 잘되는 녀석이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해야 돼요. 내가 복받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말이예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나온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마음만은….
선생님의 의향을 말하지 않아요. 우리 성진이 대해 가지고 이런 얘기 안했어요. 지금까지 가만 놔 두는 거예요. 가만 보면 껄렁껄렁…. 여러분이 책임해야 된다구요. 이 둘째가 문제예요. 이 종대의 둘째가 문제예요. 선생님은 고대지요. 자기를 중심삼고 보면 둘째가 문제예요. 선생님도 집을 떠나 얼마나 골탕을 먹었어요? 그렇게 되게끔, 그렇게 해 놓고 넘어가는 거예요, 전부 다. 사탄세계에 있으면 사탄세계 끝까지 찾아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넘어가는 거예요. 데리고 있을 때는 내버려두지 않고 끌고 나간다 그 말이예요. 시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끌고 나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민족을 중심삼고…. 선생님과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둘째지요? 그렇지요? 통일교회가 그렇지요? 이제 반대 안 한다는 말이예요. 고생을 시켜야 돼요. 고생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가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아벨과 아담이 일체가 되면 가인은 자동적으로 굴복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자동적으로 굴복하는 거예요.
아벨을 통해서 아담이 서 나가야 되는데 아담이 서지 못했기 때문에 깨져 나갔지요. 아벨하고 아담하고 하나되면 가인은 자동적으로 굴복하는 거예요. 복귀하는 데는 아벨제단 가인제단을 통해 제물을 드리는데 아벨제단이 하늘 앞에 가까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제물복귀와 더불어 아들딸 복귀해 가지고 같은 입장에 세워야 아담가정이 복귀되는 거예요. 만일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이지 않았더라면 굴복한다는 거예요. 가인에게 있어서 첫 번이 안 되게 되면 세 번까지 연장된다는 거예요. 죽이지만 않았더라도 지금까지 이렇게 안 되었습니다. 그거 보면 참 이상하지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복귀사명시대에서, 어머니 찾는 복귀노정에 있어서 세번째예요. 그럴 때는 반드시 대원수를 놓고 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역사적인 대원수를 직접 놓고 하려니 참 힘든 것이다 이거예요. 제일 악한 자리에서 제일 대원수를 놓고 하는 것이니 탕감조건이 되는 거예요. 최고의 자리에서 하니 힘들다는 거예요. 까딱 잘못하면, 자기 자신이 잘못하면 가인과 아벨이 잘못했다는 것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에 그런 일이 많지요.
이제 선생님 일대에 있어서 완성이예요. 일대에서는 선생님이 완성이라는 거예요. 이제 내가 안타까와하는 것은 뭐냐? 민족을 걸어 놓고 한 2백 년 동안 딱 조건만 세워 놓고 선생님이 영계에 가서 기다리면 돼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후손들이 불쌍하게 돼요. 여러분의 후손들이 여러분을 얼마나 참소할지 알아요?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지금 안타까와하는 거예요. 후손들이 어떻게 복귀하겠느냐 이거예요. 지상에서 어떻게 선의 혈족을 이루겠느냐 이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지금 내가 이야기해도 임자네들이 듣기 싫어하면…. 듣기 싫으면 관둬야지요. 이만큼 전했으면 그거 생각해야지요. 두고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상에서 풀지 못한 한을 그때 가서 다 퍼부으면 어떻게 할 테예요? 선생님을 따라 나오던 여러분들이 전부 다 배반하고 명령대로 못하게 될 때는 세계적인 한을 전부 다 탕감해야 돼요. 정성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못 하게 될 때는 세계적인 한을 탕감하기 위해서 사탄과 더불어 송별식해야 됩니다. 그렇게 알고 가정의 부모들의 한을 풀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여기 아들딸 중에 청년, 혹은 중ㆍ고등학생이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일어서 보라구요. 가정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두고 볼 때, 아예 가망이 없거든 제물적인 가인 자리에 세우지 말라구요. 가망이 없거든 아벨 자리를 떼어 버리고 가인 자리에도 세우지 말라구요. 그거 무슨 말이냐? 왜 선생님이 이렇게 무지한 말을 하느냐? 밥도 먹이지 말라는 거예요, 밥도. 미리 해결을 지어 놓으라 이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 종족이 망해요. 밥도 먹이지 말라는 거예요. 왜? 아벨 기반, 가인 기반 이렇게 해 가지고 여러분이 하늘 앞에 나와야 할 결정적인 시대가 올 것인데, 그때에 있어서 자기 아들딸이라고 같은 자리에 세웠다가 하늘 앞에 안 나오면 전부 다 망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설까봐 여러분에게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대답해 보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게 사랑이예요, 사랑. 사명을 못 하면 천추에 한이 된다구요.
내가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 지금 축복가정 2세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누구를 대하나 원칙을 따라 가지고, 원리를 배웠으니 원리의 법도에 어긋나면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질서를 통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가 뭐냐? 가정적인 복귀시대에 있어서 예수를 업고 요셉과 마리아가 애급땅에 들어가던 거와 마찬가지예요. 민족의 환경을 갖지 못했으니 전부 다 그 놀음을 해야 된다 말이예요. 복귀노정을 지나가야 됩니다. 원래는 여러분들이 애급 땅 같은 데 가 가지고 살아야 돼요.
요전에 대전에 갔을 때 누가 와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들 아주불쌍하다' 고 하던데, 불쌍하다구요. 불쌍하지만 망하지 않는다구요. 이거 불쌍하다고 비웃던 너희들, `아이고 저거 못난 것들. 저렇게 안 가면 될 것 아니냐?' 그러던 놈들과 그렇게 비웃음을 받던 여러분들을 비교해 볼 때 누가 올바른 길을 가나요? 누가 올바른 길을 가나 두고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도하는 방법이 옳으냐 안 옳으냐 두고 보라는 거예요. 지금 형편을 보면 망하는 거예요. 망하는 것 같다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가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선생님은 밑지는 장사는 절대 안 합니다, 밑지는 장사는. 밑지는 놀음은 안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탄이 꼼짝못하지요. 밑지는 놀음은 안 해요. 여러분을 지도하지만 절대 지는 작전은 안 합니다. 상황을 파악하면서 절대 지는 전투는 안 한다는 말이예요.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는 이것이 외부로 나타나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망성이 있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안 되겠느냐? 엄청난 환경이 그렇게 돌아가느냐? 요전에 김영운한테서 편지 온 것을 보면 미국의 문화는 저물었다는 거예요. 우리 뜻이 참 무섭다는 거예요. 한 3년 전에 자기가 갈 때는 미국은 진짜 여리고성이었다는 거예요. 어디 가 가지고 말씀 한마디 할래야 할 수 없었는데,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이건 뭐 휙 돌아갔다는 거예요. 별 수 없는 거예요. 우리 갈 길을 전부 다 뚫어 놓는 거예요.
공산당들을 두고 보라구요. 지금 청년들, 젊은이들은 살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필요해요. 내가 필요로 하는 2세들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죽어 나가자빠지는 이스라엘 60만 민족 가운데 그 후손은 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누구한테 죽어도 죽는다는 자신을 갖고 나가는 거예요. 되나 안 되나 보라구요. 뭐 우리가 손댈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때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바쁘다는 거예요.지금 때는 젊은이 시대로서…. 선생님이 계획한 권내의 연령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 가도 남아요. 제1선에 못 나갔으면 제2선에 가는 거예요. 제2선이 어디인지 알아요, 제2선? 기독교예요. 제3선은 어디인지 알아요? 직장에 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걸 중심삼고 사업대원, 무슨 대원 이래 가지고 후원해라 이거예요. 하나로 딱 갈라 놓고 가야 돼요.
그러면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 하나님의 제1선에 있는 장병들이…. 통일교회는 이제부터 2세들 세워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 간판을 떼버리고 우리는 전부 다 하나예요, 하나. 통일교회 교인이 한 몇만 명만되면, 지금 기성교회 한 교회─시내에 교회 많잖아요?─에 한 삼백 명씩 가서 석달 동안 봉사하라고 파송하는 거예요. 자기들은 지금 한 오십 명 되는데 삼백 명 가게 되면 그거 다 어떻게 소화할까요? 그렇게 되면 목사가 장로한테 가서 연보는 든든하게 가져오거든요. 갈까봐 큰일난다는거예요. 밥목사가. 그때 선생님이 돈이 좀 많이 생기면 목사한테 집이나 하나 사 주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뻔한 내용이예요. 그들이 암만 통일교회 반대해 보라는 거예요.
또, 주일날 예배 보러 가는데 누가 반대해요? `이단 패들 삼백 명 못 들어온다!'고 해요? 그건 말이 안 돼요. 주일날 예배 보러 가는데 살인강도도 와서 회개하면 받아들여야 할 텐데 `통일교회 교인들, 이단 패 안 돼' 이러다가는 들이 맞는 거예요.
이번에 대구에서 한번 멋지게 했거든요. 우리 전도대원들이 전도 갔는데 들어오지 말라는데 들어갔다고 불법침입이다 한 거예요. 그래서 법대로 한 거예요. 불법침입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침입하는 것이지, 상대를 위해 눈물 흘려 주고 너를 위해 복받으라고, 좋게 되라고 하는데 무슨 불법이예요. 특별 공판을 해 가지고 제까닥 판결이 나왔는데 무죄석방이라서 소문이 다 났어요. 불법침입이라는 것은 무슨 피해가 가야 되는데 너 복받고 잘살라고 하는데 불법침입이예요? 그런 싸움이 벌어졌어요.
선생님이 30대 마음 같으면 대구 가서 할지 몰라요.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의 지구장, 지역장, 그다음에 구역장 전체 참석하라 하면 안 올 수 있어요? 선생님의 말을 또 잘 듣거든요. 여러분들 돈이 없으면 전부 다 총을 들고 나가 가지고 한 일주일 동안 참새를 몇만 마리 잡아 모아 가지고 장에 가서 파는 거예요. (웃음) 그래 싸움이 벌어지면 싸움을 한번 해야지 별수 있나 말이예요.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는 공화당 패, 기성교회 자기들은 무슨 패? 자기들이 그렇게 말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공화당은 통일교회 패 만들어야 돼요. (웃음) 내가 뭐 공화당은 무슨 공화당이예요? 통일교회 뭐 천 갈래 만 갈래 구멍을 다 뒤져 보지요, 뭐 공화당 냄새 나나? 공화당 냄새가 아니라 천국당 냄새 나지요. (웃음)
요즘 선생님이 걱정하는 것은 돈 없다는 게 아니예요. 돈 없어서 걱정 안 한다 말이예요.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예요. 여기 협회장보고도 `돈이야 얼마든지 있어? 사람이 문제야' 한 거예요. 그게 문제라구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여러분이 책임 못할 때는 보내 주려고 생각해요. 가만히 보면 본국의 통일교회 교인들은 시시한데 외국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그런 아들딸이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건 내가 자신하는 거예요.
내가 복귀섭리에서 2차는 실패해서 3차만에 밀고 나오는데,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눈물 흘리며 세 번 이상 하늘 앞에 몸부림쳐 기도했는데, 배반하여 나간 사람을 지금 때에 와서 볼 때 지식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수완으로 보나 무슨 면으로 보더라도 백방으로서 우리가 조금도 뒤지지 않아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비슷한 사람인데, 과거에 먼저 들어와 고생했던 사람과 형도 같은 사람인데 그보다 우수한 사람이 들어와요. 그걸 볼 때 정성은 점령당하지 않는 것, 딱 아주 뭐 실험적인 결정을 지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성들이고 여러분이 고생하면 어떤 일이고 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서 잘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고 말하는 거예요. 망하겠으면 망하고 말겠으면 말고. 지금은 여러분들을 동원한 특별 기간입니다. `나는 이렇게 갑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실수했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 아버지여, 나는 갑니다. 모세와 같은 운명에서도 나는 갑니다' 해야 돼요. 여러분을 축복해 줬는데, 그 일족에 있어서 여러분이 실수했던 것을 책임지느냐 안 지느냐에 따라서….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원리적인 세계에서 치리받게 하기 위한거예요. 지혜가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말한 것을 보라구요. 작년과 금년이 얼마나 달라졌어요?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아는데 세상은 몰라요. 통일교회는 뭐 어떻다고 시시덕거릴 수 있지만, 열 사람, 백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 때가 온다 이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외적으로 보면 발전 안 한 것 같은데 때는 발전했다 이거예요. 이 혁명정부는 몇 사람에 의한 혁명이예요? 전부 다 몇 사람이예요? 때를 찾는 데 있어서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게 알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지금 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만 해 두고 단단히 책임지고 때에 대해서 사명을 파악해 가지고 여러분의 위치와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 개인을 수습하여서 이 환경에서 전체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역사적인 원한을 사탄한테 넘겨주고 복받는 여러분들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예」 알겠습니까? 「예」
섭리적 고난의 노정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 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비참한 민족상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민족을 위주로 하여 널려 있는 이 모든 세계의 인류를 바라보게 될 때, 전체적으로 비참한 사망의 환경에 허덕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환경에 있어서 저희 개체를 주시하여 하늘땅 앞에 면식시켜 놓고, 그 모습이 어떠한 사명적인 결과의 노정을 갈 것이냐고 스스로 다짐지을 수 있는 자신을 세워 놓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와 세계 천주적인 시대를 거쳐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까지 연결시켜야 할 이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을 저희들이 책임지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 가는 길에 있어서 낙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뜻을 대해서는 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가는 것만이 타고난 생명의 목적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것이 다 끝나기 전에는 안식의 날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 다짐지어 갈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일하는 것도 이것을 위하는 것이요, 배우는 것도 이것을 위하는 것이요, 싸우는 것도 이것을 위하는 것이옵니다. 좀더 효과적이요 좀더 능률적인 면을 찾하려니 저희가 남보다 이렇게 수고한다, 활동한다, 더욱 노력한다는 것을 마음에다가 다짐하게 하옵소서. 스스로 하늘 앞에 성별된 개체가 되어 가정을 수습하고 그 가정으로 하여금 교회 전체를 수습시키어 민족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제 멀지 않아 저희들이 전체 동원하기 위한 사명적인 책임을 앞에 놓고 있사오니,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신도들 그 마음 마음을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때는 과연 어려운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저희 앞에 올 것을 염려하면서, 그때에 있어서 저희들이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시련과정에서 이것을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결의와 마음의 다짐을 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게끔 같이하여 주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 위에 샅이하여 주옵소서.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지상의 만민이 흐느끼고 있는 가운데, 저희들로 말미암아 때와 시간을 단축시키시어, 이것을 탕감해 원수 앞에 옮겨 주고 갈 수 있는 아들딸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만만세의 생애노정이, 아버지, 거룩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싸워 나가는 생활무대에 있어서 하늘의 가호가 더더욱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노아 이전의 선조들은 저지른 죄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여 주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 때부터 노아 때까지의 1600년 동안은 하나님의 한이 아담 해와에게만 돌려졌으나 노아 이후에는 그 한을 사탄에게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충신 효자를 세워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한을 사탄에게 넘겨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을 무조건 넘겨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충신 효자를 세워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고통의 길을 걷게 함으로써 그 한을 사탄에게 넘겨주려는 것입니다.
개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 후에야 그 한을 사탄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개인의 책임을 진 사람은 그에 해당되는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을 복으로 만들어 그 복을 종 또는 자녀에게 나누어 준 후에야 그 한을 사탄에게 넘겨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서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환경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12가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내적인 환경을 만든 후에는 그것을 본받게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을 12제자가 본받게 해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본받게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개인적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간은 천적(天的)인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에 대하여 분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하여 무한히 줄 수 있는 민족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조건적으로라도 축복해 주시는 것은 인류가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7개월 이내에 재기하라고 한 것은 선생님이 비장한 각오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선생님이 40평생 걸어온 길을 수습하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은 할 수 없이 회개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행, 불행은 고생의 자리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민족을 찾은 후에는 공산세계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모세는 애급의 총리대신이 된 후 애급인들을 호위병으로 세워 애급을 나왔어야 했습니다.
만일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죽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배반하는 통탄의 역사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참으시사 좀더 늦게 민족적인 기반을 닦더라도 때를 기다렸다가 보내셨던들 당신의 슬픔도 더하지 아니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적인 때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십자가를 각오하고 보내셨던 메시아였음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깨달았습니다.
수리적인 복귀의 도상에서 걸어오시는 아버님의 슬픔이 얼마나 크셨던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땅을 위하여 보내시는 주인을 마련하기 전에 땅 위에 백성을 마련하기 위해 수고하셨던 것을 아옵니다. 백성을 마련하여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버님께서는 미리 아브라함 때부터 축복하여 주셨사옵고, 백성과 땅을 마련해 놓고는 만민 앞에, 원수 앞에 자랑하기 위한 하나의 주권을 세우시사 만왕의 왕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존재로 보내신 메시아가 그처럼 땅을 찾지 못하고 백성을 찾지 못하고 한없는 슬픔의 역사적인 비탄을 가슴에 품고 시대적인 원한을 그 몸에 지니고 죽음길을 갔습니다. 그런 예수의 원통한 사정을 아는 사람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사옵니까?
여기에 모인 통일의 무리들은 세상 것을 갖지 못하였을 지라도, 세상 것은 알지 못할지라도, 세상에 자랑할 그 무엇은 없다 할지라도 예수와 더불어 슬픔을 당할 수 있고, 예수와 더불어 모이고, 예수와 더불어 갈보리산상에 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귀한 자리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자리에, 사람으로서 대신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환경도 없었사옵고,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없었사옵니다. 왕으로 오셨던 메시아가 그처럼 슬픔 속에 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그 억울함과 슬픔을 풀 아무런 것도 갖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들은 역사적인 수고의 노정을 통한 복귀의 내용을 통하여 그 사정을 알았사오니, 사정을 안 저희들은 다시 하늘을 배신하는, 배반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시옵고, 기필코 죽음으로라도 아버지 앞에 대신 제물로 드리고 남음이 있어야만 될 것을 깨닫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슬펐던 예수님의 과거를 저희들이 알아 가지고 슬픈 심정으로 소망하였던, 원수를 대하여, 그 소망 반면의 적개심을 가졌던 그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면서 이 날을 축하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부족한 자체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사오니, 여기에 충성드리지 못한 사실이 있을지라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뜻이 무엇인가를 알았사옵고 안 자리에서 맹세하였사오니, 맹세의 그 기준을 통하여 친히 이날의 거룩한 자리에 참석한 동역자들로 취급하시어서, 역사적인 슬픔을 해원성사하는 소원의 무리가 되든가 실체적인 제물의 무리가 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대할 줄 아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추구하는 이 심정을 통하여 하늘에 미쳐져 있는 모든 슬픔을 푸시옵고, 예수의 생애노정에 맺힌 간곡한 고통의 멍에도 해원성사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움직이는 모든 것을 통하여 새로운 한날을 축하할 수 있는 이 날로, 영원히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로 세우기를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예수 앞에 새로이 약속하오니, 이날을 축하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민의 축하를 대신하시옵고, 만민이 하지 못하는 모든 축하를 저희들이 대신할 수 있는 축하의 날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땅, 아버지, 땅 위의 참부모, 참아들딸을 중심삼은 만민 전부가 합하여 아버지의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하시는, 뜻을 대신하여 오셨던 메시아의 전체적인 소원을 저희들이 염려하면서, 슬픔으로 용서를 구하면서, 소망의 일념을 세워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시간 축하의 한날을 지내고자 하오니, 이 시간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남아진 시간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탄생한 잘입니다. 여러분들이 축하의 한날로 하늘 앞에 세우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축하하려는 사람이 먼저 축하받는 그분이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고 축하하면, 축하한 것 자체가 축하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인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라는 분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야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구주라는 관념…. 지금까지 모든 신도들이 믿고 있듯이 예수님이 탄생한 크리스마스는 죄악 가운데 있는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구주로 오신 그분이 태어난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축하한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보다도 좀더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구주는 역사적인 구주, 시대적인 구주, 미래적인 구주, 이렇게 역사성을 띤 구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주를 보낼 것을 예언하시고, 이 구주를 보낼 때까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하여 수고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지 않고는 하늘편에 선 자로서 참다운 메시아의 탄생일을 축하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고 축하한다면 인간세계의 축하는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여 보내신 예수님의 가치에 해당하는 축하로 하나님이 알아줄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하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구세주라고 아는 자리에서 축하하는 것은 물론이로되, 이 배후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메시아를 보낼 때까지 수고한 내용을 알고 축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축하한다면 완전한 축하를 하는 입장에 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하늘과 땅, 하나님과 메시아….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통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를 통하여 수습하기 위한 섭리를 해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당연히 그래야 됩니다. 만일 몰랐다면 예수의 사명과 구원의 한계, 구원하시는 목적에 대해서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신앙자들이 믿고 있던 구원의 한계라든가 구원의 목적 이상의 것을 하늘이 요구하셨고, 그 이상의 것을 우리 참다운 신앙자들이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지금까지 축하하던 축하의 방식보다 진정 예수님이 탄생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메시아를 알아야 됩니다.
그 메시아를 앎과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목적을 갖고 메시아를 보낼 때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예수의 마음으로 나타나 있는 이 예수의 소원을 인류의 마음의 터전 위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이 책임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메시아의 마음 혹은 메시아의 목적을 완전히 우리가 해독함으로 말미암아 내적인 하늘과 외적인 예수가 이 땅 위에서 구원섭리할 그 섭리를 대신해야 될 자리에서 축하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축하하되 일변 위에 선 입장에서 축하하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시간에 참된 축하를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예수님의 사연이 무엇이며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뜻은 비단 예수님 자신의 소원만이 아니요 예수님 자신의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을 대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메시아로서의, 구주로서의 목적을 완성한 후에는 반드시 만민이 공히 지녀야 할 소원이 요 목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실 때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로서, 신앙하는 자로서 예수를 구주로, 신앙의 중심된 분으로 모시는 우리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이 달라지고, 예수의 소원과 목적이 달라지고, 믿는 성도들의 소원과 목적이 달라지면, 여기에서는 완전한 뜻의 완성이란 것을 볼 수 없고, 뜻의 귀일점이란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시고 바라보는 그 앞에 태어난 메시아를 놓고 볼 때, 이 땅 위에서 메시아를 고대하는 만민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그 자리에 참석하여 축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의 소원, 하나님의 목적과 예수의 목적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 목적은 단지 축하하고 거기에서 남아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축하와 더불어 내 생활과 내 생애의 목적과 연결되어 들어가는 결정적인 조건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축하하러 왔다 갔던 동방박사에게도 원래 축하하게 한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목적에, 섭리의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인간적인 대표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그걸 요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동방박사를 예수 앞에 보냈던 것입니다. 또, 목자를 보내 축하하게 하고 그 외에 안나 등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축하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의 소원이 인류의 소원과 일치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런데 예수의 소원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지 못하고, 예수가 오신 목적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축하하고는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축하하고는 가 버렸으니 지금까지 역사도상에 있어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사람 가운데 하늘이 보시는 견지에서, 만민을 대표하는 견지에서 예수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이 있었느냐 할 때에, 지금까지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 또 목자, 안나, 그외 여러 사람들이 메시아가 탄생한 것을 증거하고는 전부 다 가 버렸다는 거예요. 증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증거한 것과 나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지 않은 입장에 서 가지고는 메시아로서 행사할 수 있는 터전이 세워질 수 없다는 겁니다. 축하하고 가면 가는 것으로 끝나지, 거기에는 구원을 받을 자와 구할 자와의 인연을 세울 수 없어요.
구함을 받되 일시적인 시간권 내의 구함을 받게 하는 구주가 아니예요. 온 생활을 통할 수 있는 구주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이 구주는 내 개인의 구주가 아니라 과거를 대신할 수 있는 구주가 되어야 되고, 나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시대 전인류를 대신할 수 있는 구주가 되어야 되고, 앞으로 올 후손의 구주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주를 축하하는 데 있어서는 내적인 간곡한 소원과 간곡한 목적을 기준삼고 `이분은 필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신다' 하는 것을 알고 축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섭리의 목적을 세워서 간곡히 쉬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 있는 인간들도 하나님과 같이 그 소원의 목적을 위하여 끊임없이 바라면서 메시아의 심정을,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심정을 준비해 가지고 그분을 만나면 축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더불어 같이 살고 그분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결의를 가지고 축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비록 로마의 압정하에 있는 유대 나라요, 비록 로마법권의 치리를 받고 있는 유대 백성이라 할지라도 동방박사, 그외에 모든 증거한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죽더라도 우리는 이분이 탄생한 자리에서 죽어야 되겠고, 우리가 고생을 하더라도 이분을 위해서 고생을 하고,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분이 고생을 당해서는 안 된다. 죽음의 길이 웬말이냐?'라고 하며 나아가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충신 중의 충신이요 효자 중의 효자가 되었던들,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친히 대신할 수 있는 이 땅 위의 실체적인 인간, 예수가 소원할 수 있는 실체적인 인간, 하늘을 대신하여 충신이 되고, 예수를 대신하여 효자 효녀가 될 수 있는 동방박사와 양치는 목자와 그외의 사람들이 되었던들, 예수님은 30여 생애에 아무런 고난의 길이나 고통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비록 마구간에서 태어났지만 이분이 누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단결해서 한때를 맞이할 때까지, 예수가 만민을 구원할 수 있는 터전을 밟아 나설 때까지 그분의 울타리가 되고 뒷받침이 되었던들, 예수는 출발 당시의 기쁨을 점점 발전시켜 가지고 그것을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인 단계까지 키워 나갔을 것인데, 동방박사도 간 데 없이 가 버리고, 목자도 간 데 없이 가 버리고 예수를 낳은 어머니까지도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물론이구요. 요셉은 의붓 아버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의 소원과 목적과, 메시아를 축하하는 사람의 소원과 목적이 일치되어야만, 완전한 축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내용이 다르고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하늘이 불러 모았던 모든 사람들, 축하하기 위해서 보냈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축하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에서 예수를 보내신 목적은 무엇이냐? 간단하다는 거예요. 예수를 보내신 목적은 잃어버린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요, 잃어버린 아담을 찾아서 잃어버린 해와를 재창조하기 위해서예요. 그리하여 예수 자신이 아담으로서 지음받은 기준에서 해와를…. 아담이 해와를 잃어버렸으니, 아담 대신 사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는 해와를 이 땅 위에서 다시 찾아 가지고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런 자리에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소원과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참부모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이것을 위주로 하여 참다운 부모가 생겨났으니 참다운 자녀를 번성시켜 가지고, 이 자녀들로 하여금 참다운 부모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참된 가정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가정들을 점점점 발전시켜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이뤄야 합니다. 하나의 참부모의 혈연을 통한 백성을 세워 가지고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은 무엇이냐? 자기가 아담 입장이면 아담이 타락하여서 실수하였던 모든 내용을 탕감해야 됩니다. 아담의 자리에 서서 하나의 가정을 찾아 가지고, 여기에 자녀를 세워서 가인적인 자녀를 아벨적인 자녀로 복귀시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세계를 가인적인 세계에 세움으로서 찾아진 메시아의 후손은 아벨적인 세계형으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극적인 입장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의 주체를 대해 대상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를 아벨적인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 대표자로 모시고 그 앞에 굴복했더라면, 거기서부터 하늘나라의 부모가 생겨나고 하늘 나라의 가정이 생겨나고 하늘나라의 족속과 민족과 나라가 생겨나니,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왕궁을 위주한 천지의 중심을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목적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냐? 살아생전에 이것을 완결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서 만들어야 돼요. 죽어서가 아닙니다. 살아생전에 완결시키는 것이 예수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바라고 섭리의 뜻을 세워 나가던 목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고대하고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즉 인간을 대표해서는…. 인간인 우리도 타락한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후손이니 혈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다른 혈통을 받았으니, 즉 거짓 부모로부터 태어난 거짓 자식이 되었으니, 오늘날 우리들은 종의 관문을 통과하여 양자의 관문을 통과해 가지고 자녀의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자녀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알고 있듯이.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을 해야만 아담이 완전한 아담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우리들은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과 땅을 대신하고 아버지의 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 즉 아버지의 본성상 본형상을 대표할 수 있는 실체로 빚어 만든 것이 아담이었는데, 그 아담이 깨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가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소원하시던 아버님 대신의 실체, 그 실체를 위주로 하여 오늘날 인간과 하늘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후손이 되었기 때문에 그때 예수를 메시아로 모셔야 됩니다. 메시아로 모시는 데 있어서는 세계적인 아벨적 대표로서 그 가치를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알고, 그 앞에 굴복하여 내 본질을 잘라 가지고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나도 그와 같은 가치의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알고 굴복 했더라면 거기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세계를 복귀하여 종에서 양자의 과정을 거쳐가지고 직계의 자리까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직계 자리까지 나가서는 뭘할 것이냐? 인간이 소원하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 직계 자리까지 나가서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부모를 찾아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이 천지간에 사탄이가 나라를 만들어 놓고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니, 이 사탄세계를 대신한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서 사탄세계를 호령하여 선의 국가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해야 할 책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예수를 대신하여 잃어버린 부모를 참된 부모로 모셔 가지고 예수의 소원을 우리들의 소원으로 하여 원수세계를…. 전부가 예수를 모시고 예수 대신 우리 실체들이 이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울타리가 되고, 심부름꾼이 되고, 싸움의 용사가 되는 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써 예수를 바라는 목적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돼요.
그러면 예수가 왜 대번에 와 가지고 그런 일을 못 했느냐? 여기에는 역사적인 곡절이 남아 있었던 거라구요.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 우리 선조들이 실수한, 더럽힌 흔적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역사적인 흔적을 청산하기 전에는 시대적인 발판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구요. 그래서 예수가 30년 동안 준비한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내적으로 섭리한 내적 세계에 저끄러진 모든 곡절을 전부 다 풀어 놓고, 이것을 외적인 세계에 그냥 그대로 횡적으로 전개시켜서 탕감복귀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어요. 30년 준비기간은 내적이요 3년 공생애노정은 외적기간으로서, 33년 기간을 통하여 완전한 아담복귀, 개체완성을 완결짓기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겁니다.
메시아로 태어난 그날부터 메시아의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잘못했으면 잘못한 모든 것을 완전히 사탄 앞에 탕감하여 분별된 승리적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서 메시아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그런 출발을 할 수 있는 발판이 있었더라면 예수는 고난의 길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동방박사들 혹은 목자 등이 예수가 준비시대로서 내적인 투쟁을 하는 30년 준비기간에 예수의 울타리가 되어 외적인 투쟁의 기반을 닦아 놓았던들, 예수는 외적 3년 공생애노정에서 내적인 그 모든 천적인 한을 지상에 횡적으로 전개시켜 탕감하는 데 있어서 고난의 길, 핍박의 길, 수고의 길을 가지 않고도 터전을 닦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닦아진 그 터전을 중심삼고 이것을 움직여 나가서 고난을 당하되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이들과 연락할 수 있는 세례요한을 중심한 사람들이 책임을 했더라면, 예수는 외적인 고난에 부딪치지 않고서도 뜻을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발판이 전부 다 깨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동방박사들, 목자들이 추구하였던 인간 대표로서의 사명을 다시 수습하고, 세례 요한을 세우시어 모든 준비의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까지 전부 다 수습하여 가지고야 시대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길게 보게 되면 4천 년 역사를 수습해야 되었고, 자기생애를 두고 보면 30여 생애 수정에 있어서 하늘이 준비했던 횡적인 지상의 역사적 조건까지도 탕감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기간이 30년 생애와 3년 공생애노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 3년 공생애노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슬픈 노정이예요. 인간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갔고, 십자가의 길을 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33년 동안 이 땅 위에서 하늘을 대표하여 싸운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개체완성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3대시험을 걸고 시험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를 일시적인 한 원수로 시험한 것이 아니예요. 예수의 전체 목적을 놓고 시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시험하는 데 있어서 예수의 3대시험의 내용과 같은 그런 목적의 실체가 되어서, 시험하는 사람을 대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해서 방패막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들 예수에게는 시험이 필요 없는 거예요. 3대시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하지 않고 출발과 동시에 개체 완성이 되고, 출발과 동시에 성전 이상이 완성되고, 출발과 동시에 세계의 영광을 세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출발과 동시에 일시에 벌어질 것이었는데, 그러한 외적인 환경에서 방패막이를 해줄 수 있는, 사탄과 대결하여 `이놈 사탄아, 네가 알기 전에 내가 안다. 네가 시험하는 이러이러한 조건은 나에게 해도 안 된다' 하고 방패막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예수는 고난의 길을 간 것입니다.
예수가 죽어간 것은 역사적인 수고를 통하여 세워진 증거자들이 하늘이 자기들을 불러 세워 메시아를 만나게 한 본의의 목적을 몰랐고, 예수가 왜 태어났는가 하는 전체적인 목적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몰랐기 때문에 메시아는 메시아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증거한 사람은 증거한 사람대로 전부 다…. 그러니 예수는 일시에 이 전체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메시아로 태어난 예수님께서는 오신 그날부터 하늘 법을 세워 놓고 하늘을 섬겨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섬기는 무리를 세워놓지 못했어요. 또 자기를 모실 수 있는 무리를 세워야 했습니다. 하늘 법은 제쳐놓고, 1차적으로 해야 할 사명을 2차적으로 남겨 놓고, 이 땅 위에 민족을 세워서 그 민족에게 1차적인 사명을 책임지우려고 했는데 민족이 책임못 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하늘을 모셔야 할 1차적인 사명을 2차로 돌리고 지상에서 민족 대신 원래 민족이 져야 할 1차적인 책임을 완결짓기 위해서, 인간이 예수를 모셔야 할 그 책임을 다시 하기 위해서 나섰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났느냐? 만일에 예수 앞에 아들이 될 수 있는 자들이 있었더라면, 만일에 예수 앞에 양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만일에 예수 앞에 참된 종이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예수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본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세워서 3년노정 기간에 복음의 말씀을 선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예수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모셔 놓고, 만우주의 왕의 황태자로서 하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늘의 아들로서 효도해야 할 거룩한 지성소의 분야를 지켜야 할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예수(지성서) 앞에 성소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예수의 울타리가 될 수 있는 내적인 모든 조건들이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4천 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의 소원과 일치가 되어 마련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치의 기준과 통하여서 예수 앞에 선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던들 예수는 고난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앞에 종의 책임도 못하고 양자의 책임을 못하고 아들의 책임, 즉 가인적인 아들의 책임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4천 년간 민족적인 기반으로 닦아진 선민권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예수 자신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1차적인 사명, 하나님 앞에 효도하고 하나님 앞에 만국을 치리하여 영광을 돌려야 할 사명을 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책임을 대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천지를 호령할 수 있는 만왕의 왕의 권세를 갖고 간 것이 아니라 종의 종의 길을 간 것입니다, 종의 종의 몸으로. 이 땅 위에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인간들 앞에 나타날 때 부모의 자격을 못 가지고 왔어요. 어떤 주인의 자격도 못 가지고 왔어요. 종의 종의 몸으로서 나타나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슬픈 사람들의 동지가 되고, 비참한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최하의 자리에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그들을 위하여 피땀 흘려 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리하여 종의 종 가운데 종을 만들고, 종 가운데 양자를 만들고, 양자 가운데 가인적인 아들을 만들어 가지고 복귀의 조건을 세워서, 즉 타락성 근성을 근절하고 탕감복귀 했다는 조건을 세워서, 참된 아벨적인 아들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자들을 가인의 위치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의 위치를 설정해서, 예수를 중심삼고 일체가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책임을 완결지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완결짓고야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맞는 그 단계는 종의 종의 시대를 지내고 종의 시대를 지내 가지고 양자의 혜택권입니다. 그 권내에 예수가 옴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것이 전부 다 깨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다시금 종의 종에서, 종으로서, 양자로서 가인적인 아들을 세워 가지고 직계의 자리를 아벨의 자리에서 완결지어 가지고 가인 아벨의 승리적인 조건을 세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완결지어야 했던 것입니다. 비로소 형제적인 인연을 세워 놓고 이것을 종결지음으로써 부모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축하하는 우리는 예수가 그런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할 분이요,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분인데 그러한 자리에 태어났다는 것이 원통하고 분하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수고하시고, 수많은 우리 선조들을 희생의 자리에 내세워 가지고 원수들 앞에 조롱받고 짓밟히는 자리에 내세우면서, 4천 년 동안 수고한 결과가 이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느냐? 이게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할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어 가지고 마굿간에서 밤을 지내야 할 입장에 세우는 것이,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섭리의 뜻이냐 이거예요. 아니예요.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에 오게 될 때 하나님의 모든 소원과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대하여 만민 앞에…. 그 구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천 년 수만 년 걸려야 될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슬픔이 그냥 연속되는 것을 잘라 가지고 막아 버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예요. 또, 시대적 권내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일생을 잘라 가지고, 고통의 연속적인 생활을 잘라 가지고 행복의 연속적인 생활을 우리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요, 더 나아가서는 과거의 선조들의 원한까지도 해원성사해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예요.
예수가 오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자리보다도 더 좋게 되고, 천하를 전부 다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의 소원성취가 잎시에 큰것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에서부터 이루어 나가는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 수많은 왕들을 만들어 놓고 되는 것이 아니예요. 참된 왕을 세워놓고 그 왕을 모실 수 있는 무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왕의 왕의 모델이예요. 많은 왕을 만들어 가지고 그 왕들 가운데 하나를 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을 완전한 왕으로, 완전히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왕으로 세워 나가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모든 실력적인 기준 앞에 안팎으로 빈틈이 없는, 모든 인격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냈던 분이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이예요.
예수는 메시아라는 이름, 구주로서의 이름은 남기고 갔지만 만왕의 왕으로서의 이름은 성사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만민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간 예수는 구주로 죽어 갔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구주로서 죽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만왕의 왕으로 영광의 자리에 등극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을 영광의 자리에 해방시킬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동참시킬 수 있는 왕의 권위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는 성사를 하지 못했어요. 그 목적은 성사시키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되는 겁니다. 구하다가 잘못되었다 그 말이예요. 힘이 부족하여서 지쳐서 죽어 갔어요.
영과 육을 합하여 구원하려 했는데,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적인 분야만 구하고 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주로서의 책임은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만왕의 왕으로서의 책임은 못 했다 이겁니다. 따라서 이것이 연장되어 내려와서 앞으로 재림시대에 와 가지고 만왕의 왕으로서, 성사해야만 이루어 놓아야만 하늘의 뜻이, 예수의 뜻이, 인류의 뜻이 완결되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온 목적을 우린 단단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과 예수가 온 목적은 무엇이냐? 또, 우리 인간의 목적이 무엇이냐? 아무리 우리 인간이 크나큰 소원성사를 바라고 있으되, 우리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예수가 없어서는 안 돼요. 즉 메시아가 없어서는 안 돼요. 이것을 철두철미하게 아는 자리에서 예수는 그런 사명과 그런 책임을 갖고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이 그 사명 앞에 협조자가 못 되었어요.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동방박사가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이 예수 앞에 영광의 예물이 못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런 예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목자가 천사와 더불어 예수 앞에 송영하는 그 송영이 문제가 아니라 송영하는 사람이 문제예요. 세례 요한이 증거하는 그 증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증거하는 실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 자신들이 이 예수님의 탄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노래가 문제가 아니고 기도가 문제가 아니예요. 축하하는 여러분 자체가 문제예요. 즉 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축하하느냐, 직접적인 입장에서 축하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를…. 예수가 온 목적을 알아요. 그는 하늘을 대해서는 황태자요, 만민을 대해서는 참부모요, 법을 중심삼고 하늘의 가정이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보좌가 이 땅에 임재하여 하나님은 지성소가 될 것이요, 예수는 성전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가정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과 일치된 예수, 예수의 혈통을 중심삼은 직계, 직계를 위하는 충성하는 모든 만민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요 예수가 이 땅에 와서해야 할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혼자 가다가…. 아들딸들도 못 보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 성탄 축하일,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슬픈 날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날을 생각할 때마다 여러분은 뼈에 어린, 이런 간곡한 심정과, 형용할 수 없는 비장한 내적 결의와 더불어 역사를 후회하고 시대를 원망하고 예수를 따르던 세 제자를 중심한 열두 제자에게 책임추궁 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돼요. 그다음에 십자가 도상에서 조롱하던 로마병정을 창을 들어 예수의 가슴을 찌르게 하던 이 사탄을…. 우리는 이런 입장에서 분통한 심정을 가지고 역사적인 선조들의 부족했던 것을 오늘 이 시대에 완결짓고, 선조들이 하지 못했던 모든 사명과 책임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실체로서 어렸을 적부터 머리 숙이고 예물을 드리던 그 대신 실체로서 30 평생을 지나서 증거하던 세례 요한의 실체가 되어 가지고, 이 원수 세계 앞에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점점 울타리를 넓혀 가지고, 세상의 어떠한 대원수 사탄도 침범할래야 침범할 수 없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이 소개해 보여 주던 평화의 왕궁을 만들어 평화의 왕자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는 생활이념을 세울 수 있게끔 해 드리지 못함에 대해 분하고 원통함을 느끼며 축하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축하하는 자가 완전히 주의 탄신을 축하하는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이 역사상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와서 축하한다면, 그 축하하는 사람은 예수의 탄신으로부터 예수의 생애, 예수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2천 년의 한을 전부 다 책임지고 축하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어요. 그러한 자리에서 축하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지고,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하기 위해서 원수와 싸우는데 있어서 후퇴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만 축하하는 자로서, 하늘의 아들딸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개성완성, 그다음에 상대완성, 그다음에 세계완성…. 사탄이 3시대험을 할 때에 돌을 갖고 시험하고,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험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개체완성을 하면 반드시 상대이상을 완성해야 돼요. 신부를 택해야 돼요. 신부성을 복귀해야 된다 이겁니다. 신부성을 복귀하여 그다음에 자녀를 세워 가지고 그 자녀를 전개시켜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복귀해야 돼요. 내용은 간단해요. 이것이 예수께서 싸워 원수들과, 이겼어야 할 내용이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반대로 `나는 이러한 존재이고 너는 이러한 존재가 아니냐? 예수가 너를 이끌어다가 시험을 하고, 너를 끌고 다니면서 명령을 해야 할 입장이 아니냐? 그런데 내가 너한테 시험을 받아?' 라고 하면서 반대로…. 이 분한 것을 반대로 돌려줘야돼요. 사탄 앞에 시험받게끔 내놓여겼던 우리 선조들의 분함을 우리들은 탕감복귀해야 돼요. 원수 사탄이 예수를 시험할 수 있는 아무런 천적인 자격이 없어요. 그는 본래 이러한 자였고 근본이 이러이러한 모든 인류 앞에 전부가 원수적인 입장에서 우리 선조를 유린했고, 역사적인 전통을 유린했고, 혈통을 유린한 존재예요. 그런자가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시험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당당하게 항의를 해 가지고 답변이 없게 되면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책임자로 부터….
그러나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왔다가 슬픔을 남겨 놓고 갔기 때문에 다시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면서 수많은 선조들이 2천 년 동안 수고하면서 죽음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십자가 도상에 내놓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종의 몸으로서 양자, 혹은 직계 자녀의 자리에까지 나가기 위해서 찾았던 모든 것을 전부 다 다시 인류에게 나누어 주게 됐어요. 그러나 이것을 영적인 기준에서만 닦고 갔으니 지상세계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 거예요. 어떠한 조건, 종의 권한을 갖더라도, 종의 입장에 있는 존재가 희생을 당하더라도 영적인 기준이니, 육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그 고통을 받고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간섭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죽고 난 후에나 간섭하지. 구원이 영적만인 겁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고통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이가 '따라와라' `따라와라' '따라와라' 할 때 `따라가마. 네가 가는 데는 어디든지 가겠다'라고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죽어 나가자빠지는 그 이상의 고통의 자리에 가서야 비로소 하늘로부터 간섭을 받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예요.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이렇게 구원섭리해 나온 거예요.
우리 인간들이 하늘편과 사탄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왜? 영적 구원만 세웠기 때문에. 그렇지만 하늘은 사탄에게 '백 번 죽고 천 번 죽더라도 하늘을 따라 나를 믿는 자녀들을, 믿는 신자들을 내가 자랑하고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해라. 그렇지만 이런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도 나를 믿고 나를 배반하지 않으니 이 고난의 자리까지 들어와서 같이 맞을래?'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이요, 시대가 흐르면 그에 따라 핍박의 범위가 점점 커 간다는 겁니다. 핍박도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가면 갈수록 기독교 역사는 세계사적인 비참한 역사로 종결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위가 점점 큰 죽음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휩쓰는 죽음의 세계가 오더라도 그 세계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고, `천 번 만 번 죽더라도 나는 간다' 하게 될때, 세계를 지배하는 그 세계적인 이념권 내를 향하여 믿고 나가는 그 신앙 자, 그런 자리에 무난히 열번 백 번 죽더라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에게서 사탄이 떠난다는 거예요. 예수가 영적 구원의 이념을 세워 놓고 지금까지 지상에서 섭리해 나오는 애통하고 원통스러운 사실이…. `주여, 구해 주시옵소서. 이 억울한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하면서 피 흘리는 자리에서도 사탄이 붙들고 있어요. 죽기 전까지 붙들고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피 흘리고 난 후에야 하늘이 채 가는 거예요. `이 대가를 치러라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기독교 역사를 보면, 대부분 순교의 피를 통하여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 가지고 세워 나온 거예요.
더우기 오늘날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세계적인 이념이요 천주적인 이념을 갖고 나오지만서도, 천주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더라도, 오늘날 이 책임을 지고 이 길을 가야 할 인간들이 백 번 죽고 천 번 죽더라도 하늘편에서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거예요. 개인적인 핍박, 개인적인 환난이 오려면 와라 이거예요. 가정적인 핍박, 가정적인 환난이 오려면 와라 이거예요.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핍박과 환난이 오려면 오라 이거예요. 이 길에서 사탄이가 나를 참소해서 따라올 수 있는 조건을 남겨 가지고는 거기에서 가지 못하고 돌고비를 도는 거예요. 돌고비를 세 고비만 돌다가 못 넘어가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복귀의 길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가 얼마나 슬펐겠나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지상에 육적 구원섭리가 벌어지면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때가 옵니다.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이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죽음을 각오하고 실체를 갖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간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반만 잡히면, 실체 구원섭리가, 영적 구원섭리보다 빠르게 섭리의 뜻으로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2천 년 역사노정에서 예수를 중심삼고 민주진영을 이루어 나왔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육적 구원섭리의 기반을 닦아 나오면 빨리…. 하늘 가정이 서게 되면 사탄 종족이 망합니다. 그 종족을 친다구요. 개인이 서게 될 때는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서게 될 때는 종족을 친다구요. 또, 종족이 설 때는 민족을 치는 거예요. 그렇게 앞놓아 가며 치는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우리 실정을 가만히 보게 되면 이상도 하다는 거예요.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큰 행사를 시작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역사가 나타난다구요.
과거에는 개인도 치고 가정도 치고 마음대로 쳤어요. 개인이 해방을 못해요. 개인이 맞고 가정이 사는 데 있어서 개인시대에서 가정시대까지 같이 겸하여 끌려 나갔어요. 가정시대 종족시대도 겸하여 끌려 나가는 거예요. 종족시대와 민족시대, 민족시대 국가시대, 국가시대와 세계시대도 한꺼번에 끌려 나가는 겁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재림시대에 와서는, 해결지은 분야에 대해서는 보호를 해야 되는 거예요. 해결된 그 앞의 단계에 있어서는 도리어 하늘이 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그건 왜? 복귀섭리에서는, 원래 외적인 분야인 몸뚱이를 짓고 영을 지었기 때문에, 가정이 생겨나면 종족적 사탄기반을 가질 수 있어요. 사탄세계의 기반을 닦게 되니 그걸…. 이런 섭리를 하늘이 해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때가 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런 시대를 대하여 준비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 나와야 할 텐데, 오늘 여러분이 그런 생활을 못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 역사를 해 나오는 2천 년 기간에 있어서 예수와 성신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보라구요. 정성을 다하고 주의 올 날을 고대하고 천국의 이념을 그리워하면서 죽음의 길을 달려 이슬같이 자기의 목숨이 떨어지는 자리에서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그런 고통의 자리에 있어서…. 사탄이 붙들고 따라 나오겠다고 할 수 있는 한계적 권내까지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그걸 넘어선 뒤에, 죽고 난 후에 처리하는 것이 영적 구원이예요. 안 그래요?
지금까지 세계에 널려 있는 만민은 재림의 한날을 고대해 가지고 말하기를 `말세다'라고 합니다. 전부가 그래요. 이 말세를 구할 사람이 천지간에 빨리 와야 돼요. 그러한 사조는 민주주의도 아니요, 공산주의도 아니예요. 하늘과 땅,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통할 수 있는,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갖고 세계를 하나로 수습할 수 있는 권한의 주인공이 나타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를 않았어요.
보라구요.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주권국가를 이루어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세계적인 로마를 아벨 국가인 이스라엘 민족 앞에 굴복시켰더라면, 로마는 천사장 대표형으로서 예수 앞에 굴복하므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이거예요. 로마가 세계를 제패한 그때에 있어서 실체적인 실체의 대 사탄은 무엇이냐? 실체기준에서 이 땅 위에 등장한 것이 원수 천사장이예요. 이것과 대결하는 자리에 있어서 예수가 국가적인 기반만 닦았더라면 로마는 넘어가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단결해 가지고, 유대 나라가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외적인 이스라엘 민족과 내적인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가 여기에 중심이 되었으면, 여기에서 하늘이 예수를 성전 삼고, 이게 하나님의 집이 되어 가지고, 하나의 성소가 되어 가지고, 성전이 되어 가지고 세계를 대신하여 법궤행사로써 세계를 정복하는 거예요. 원수 사탄의 화신체로 나타난 로마의 지도이념 전부를 대신한 것이 빌라도면 빌라도인데 그때 당시의 빌라도가 정복당한다는 거라구요.
그때 지리적으로 볼 때 로마와 유대 나라 사이에는 지중해가 있어요. 지중해를 거쳐가게 돼 있어요. 무슨 수단으로든지 벗어나려 했으면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또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4백 년 동안 수많은 나라 앞에 압박을 당했기 때문에, 전부가 민족 정신으로 단결할 수 있는 때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때를 포착하여 로마 나라를 대하여 반기를 들고 나설 수 있는 그런 때였어요. 그때는 로마의 모든 정치체제가 유대 나라를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을 넘어 가지고 퇴폐의 길을 향하는 그런 때였어요. 역사적인 배경이 그랬기 때문에 예수를 위주로 하여 단결만 했더라면, 그때에 유대 나라를 중심삼고 반드시 문제가 벌어졌을 거예요.
그리하여 예수가 주장하는 신앙이념을 로마까지 반영시켜 가지고 문제를 제시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되었으면 로마에게 점령되어 있는 부근의 약소국가는 반드시 유대 나라를 기준으로 하여서 움직일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되어 있던 시대였어요. 그러니 실체적인 천사장 국가로서, 원수를 굴복시키기 원한 실체적인 천사장 국가로서 로마를 세워서 예수가 원하시는 세계적인 이념을 세워 나갔던들, 세계는 벌써 그 나라를 이루었을 겁니다. 뜻을 제대로 세워 나왔으면 예수와 같은 그런 작전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 한이 되는 겁니다. 이게 문제예요.
이제 우리 통일교 신자들은 이 삼천만 민중을 앞에 놓고 이스라엘 선민권을 대신하고, 전국의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있고 유대교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혁신적인 새로운 사상을, 신앙이념을 세워 나가야 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를 대신하여 나가는 동시에 우리 교회를 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팎을 넓혀 나가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 처해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떠한 나라냐? 미국은 천사장 국가입니다. 이는 하늘 뜻 앞에 반기를 드는 천사장이 아니라 하늘 뜻 앞에 사명을 할 수 있는 천사장이예요. 형로 보면 천사장은 무엇이냐? 가인이예요. 형으로 보면 가인적인 입장인데 아벨적인 존재 앞에 굴복해야 돼요. 그런 입장에 세워 가지고 비로소 사상적인 기준에서부터 이념적인 기준, 생활적인 기준, 환경적인 기준 앞에 가인이 `아, 못 견디겠다!' 할 수 있는 기준을 아벨이 세워 놓아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드리는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가인보다 더 충성을 해야 돼요. 양을 치되 일년 사시절을 중심삼아 가지고 매일같이 정성을 들인 양을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농사도 그래요? 농사짓는 것은 그때 한때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세우는 그때에도 춘하추동 사시절, 일년 전부를 통하여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가인보다 앞서야 되고, 그다음에 아담 앞에 효성을 다하는 데 있어서 가인보다 앞서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하늘의 뜻을 대하여 아담가정에 선의 뜻이 있다는 걸 알고 축복의 은사를, 하늘의 섭리의 뜻을, 즉 자기를 통하여 미래에 소원하는 혈족을 염려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까지 수습하는 입장에 선 아벨적인 존재로서 그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돼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이 아벨 국가로서, 온 세계를 중심삼고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이스라엘권 내에 서기 위해서는, 한국이 그들을 못 당하겠다 해야 돼요. 유대교권을 중심삼은 레위족속과 같은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을 위하여 충성하고 모시는 데 있어서 세계 모든 민족으로부터 '당하지 못하겠다' 는 말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또한, 그 생활에 있어서 그들을 못 당하겠다 해야 돼요.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아, 우리는 못 당한다' 하고,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아, 우리는 못 따라가겠다' 해야 돼요. 영적인 사탄이가 실체로서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후퇴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간섭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가인 아들이 아벨적인 아들의 행동 앞에 `아, 나는 못 따라가겠다. 아, 머리 숙인다' 할 수 있어야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생각은 이것들을 잡아서 하늘편 보금자리에 있어서의 참다운 아들의 실체로서 참다운 제단을 쌓고 참다운 제물을 드리는 동시에, 이들이 행하는 행동이나 이들이 모으는 정성 등 안팎에 있어서 세계 어느 국가, 어느 교회, 어느 교직자도 못 따라간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개인적으로 가정을 대하고, 가정적 입장에서 종족을 대하고, 종족적 입장에서 민족을 대하고, 민족적 입장에서 국가를 대하고, 국가적 입장에서 세계를 대할 수 있다는 입장에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민족이 만일 뜻 앞에 선 민족이 되게 될 때,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 수많은 주권들 앞에 참다운 아벨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중심삼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나 가정에 효도하는 것이나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나 어느 국가도 따라갈 수 없는 그러한 민족이요, 그러한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 놓아야 세계는 몽땅…. 그리하여 `저분들과 우리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어 간 이후 영적 구원섭리를 해오던 2천 년 동안 얼마나 슬픔의 역사를 거쳐왔는가 하는 사실을 잘 알아야 돼요. 영적 구원섭리를 하기 위해서는 죽음권 내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 가지고 하는 거예요. 죽기 전까지는 변할 수 있으니까. 그전까지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사탄권 내예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재림시대인 육적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고통, 세계사적인 고통길을 맞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고통, 가정적인 고통, 사회적인 고통, 국가적인 고통, 세계적인 고통입니다. 일시에 부딪치게 되는데 무난히 넘어가야 돼요.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혼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말이예요. 가정을 끌고 넘어가야 됩니다. 최소 단계인 가정을 끌고 넘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늘날 1960년도를 기준삼고 제일 핍박이 심할 때에 가정을 세운 거예요. 제일 핍박이 심할 때, 최고의 핍박의 자리에서 가정을 짊어지고 간 거예요. 어려운 그 고개를 넘어가야 돼요.
인간세계에서 무엇을 바라는 대다수의 사람은 전부 다 떨어질 수 있는, 돌아설 수 있는 거예요, 국가가 반대하지 사회가 반대하지 료회가 반대하지 가정이 반대하지 동지가 반대하지 아들딸까지 전부 다 반대하는 거예요. 사탄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전부 반대하는 상황에서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의 백성에게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는 4백 5십인이나 여로와의 서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다' 하던 거와 같은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민족적인 기준에 있어서 국가적인 관념을 택해 나가는 거예요. 통일민족이예요, 통일민족. 이래 가지고 하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누가 아벨이냐? 천하가 바라볼 때 누가 아벨이냐?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주권자들이 아벨이냐, 통일교회가 아벨이냐 하는 것을 사탄도 증거하게끔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방침입니다.
누가 아벨이냐? 그거 사탄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영적 사탄이 구원섭리를 하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따라갔지만, 오늘날 실체 사탄들은 통일교회 사람들을 못 따라갑니다. 남편이 부인 가는 데 못 따라갑니다. `너 가는 데 내가 못 가겠으니 갈라지자' 해 가지고 갈라지는 거예요. 못 따라가요. 지금까지 그 놀음 해 나오는 거예요. 암만 해도 못 간다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원망스럽겠어요? 그러니 `통일교회 선생님, 나 못 갑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죽지만 말라' 해 가지고 이만큼 올라왔어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세상의 향락을 바라고 세상의 출세를 바라는 사람, 세상에서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못배겨납니다. 때가 지나면, 안 가면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실체적인 주체를 세워서…. 오늘날 우리의 가는 길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이 민족이 그런 길을 가야만 구원받을 것인데, 살아날 것인데 이들이 분별해 갈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아벨은 아벨로서 하늘을 대하고 가인은 아벨에게 굴복해야 될 것입니다. 굴복하지 않을 때는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치는 거예요. 과거에는 가인한테 아벨이 맞았지만, 이제는 하늘이 아벨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뀌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망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망하지 않아요.
예수는 지금까지 영적 구원섭리로부터의 재림의 한날을 세워 가지고, 맨처음 오셨던 소기의 소원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온 세계에 종주들을 만들어 놓고, 이걸 재차 수습하는 길로써 영적 구원섭리의 기준을 실체 기준과 연결시켜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았으니, 배후의 모든 역사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고, 오늘날 나를 중심삼은 시대적인 해결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고, 과거 현재를 해결지은 그 기반 위에 미래의 내가 승리적인 터전을 갖고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만큼 되어 있으면 그 알고 난 입장에서 역사적인 가치와 시대적인 가치를 지닌, 그 모든 것을 갖춘 하늘의 실체로서 과거 현재를 심판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미래의 주인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수양이니 혹은 모든 윤리는 과거의 기준과 현재의 기준을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현사회 법도에 어긋나느냐, 과거의 역사적인 전통에 어긋나느냐 하는 이걸 봐 가지고 현실의 모든 것을 심판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과거적인 가치와 현재적인 가치, 즉 예수가 이 땅 위에 오기까지의 과거적인 가치와 당시 예수를 중심삼은 현재적인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소원하던 것이 영적 복귀 실체로서 현재까지 연장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6천 년의 과거 역사적인 가치와 이 시대적인 현실의 가치를 종합한 기대 위에 선 실체가 되지 않고서 아니고는 역사적인 사탄과 시대적인 사탄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하늘이 바라는 참된 축하를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을 찾는다 할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만을 존중시하는 신앙자들은 필요 없습니다. 과거의 종교에서는 믿는 사람이 전부 다 옛날의 석가모니 찾아가고 예수 찾아가는 종교였습니다. 그 기독교는 세계로 뻗어 나왔고, 과거의 모든 세계적인 종교의 현실의 무대를 크게 벌여 가지고 나오니만큼 현실을 포섭하고 현실을 융합시키고 그것을 포괄해 가지고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녀야 돼요. 그런 기준을 세우고 나와야만 영적 완성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영적 복귀를 해 나오는 종교인 것입니다. 주님만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찾아가 가지고 다시 나와야 수가 납니다.
그러한 과거 현세를 통합할 수 있는 가치적인 실체는 미래의 세계, 미래의 터전과 현실적인 생활적 시대권의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는 현실적 생활의 가치로 말미암아 터전이 조성된다는 것을 확신해 가지고, 여기에 반대되고 부합되지 않는 것은 분별시켜 가지고 처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세의 우리의 입장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수의 탄일을 축하할 때, 비로소 그들이 하늘이 소원하시던 새로운 실체,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목적의 실체요, 하늘이 소원하시던 만민을 대표한 축하의 한 실체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오늘 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론 지나간 과거를 축하할 것입니다. 축하한 과거의 내용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에 축하한 것이 본의에 어긋난 것임을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그 본의를 알지 못하고 축하하는 것을 슬퍼하고, 과거의 슬픔과 현재의 슬픔을 느끼면서 과거의 슬픔과 현재의 슬픔을 청산해서 미래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기원이 되어서, 영과 육이 합한 메시아의 탄생의 한날을 축하하고 고대하던 나요, 그것을 바라던 나요, 그것을 대하던 나요, 그것을 세우기 위한 나로서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세로서 축하해야만 비로소 이 탄신일을 완전히 축하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고, 예수가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고, 우리 인간 대표로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 앞으로 우리 후손들 앞에 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개체는 어떠해야 되느냐? 동방 박사, 세례 요한을 심판해야 돼요. 내 한 개체는 역사적인 선조들이 수난길을 가면서도 성취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실체로서 해원성사할 수 있는, 슬픔을 당하며 죽음길을 가면서 쓰러졌던 실체의 몸뚱이를 대신하여 섰노라 할 수 있는 자로서 축하하는 축하의 한날을 가져야만 정상적인 성탄절을 축하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주장하는 기준과 우리들이 주장하고 있는 기준에 있어서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에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축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만, 통일교회 이념을 가지고 민족과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여기에 대한 슬픔을 느끼면서, 우리가 하늘이 바라는 소원 앞에서 아직까지 책임완결을 못 지었으므로, 하늘이 바라는 소원 앞에 슬픔이 남아 있으니, 내가 그 슬픔을 더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 앞에 위로의 조건을 무엇으로 세울 것인가 하는 충성의 마음과 효성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참다운 탄일을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지난날에 하늘이 보호하신 터전이 있었다는 것을 잊는 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을 바라보면 내 자신의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스스로 조심하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 지난날의 하늘의 가호보다 더 큰 가호가 있어야 할 것을 느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을 수습하고 생명의 노정의 방향을 수습하여, 하늘이 고이 바라시던 소원의 동산까지 지체함이 없이 가야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와서 그런 길을 가기 위해 얼마나 애썼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그 가야 할 길을 남기고 슬픈 복귀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오늘 저희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의 과거와 현재의 세계와 현재를 통한 미래까지 저희 자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하늘의 기쁨이 되고, 예수와 성신의 기쁨이 되고, 미래의 후손들 앞에 조상으로서 영원히 축하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다져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는 오늘날 하늘이 세워 놓은 통일교회의 사명을 책임진 자로서 아버지 앞에 세움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이 축하의 제단에 참석한 자로 취급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벨적인 존재가 얼마나 힘든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먹어도 가인보다 더 조심스러운 음식을 먹어야 되겠고, 입어도 가인보다 더 조심스러운 의복을 입어야 되겠고, 살아도 가인보다 더 조심스런 입장에서 하늘을 모시며 살고, 또 가인을 지도해야 할 것이 아벨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가인보다 사방을 중심삼은 몇 배의 노력과 충성을 더해야 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하늘을 모실 수 있는 세계적인 아벨로 와 가지고 세계적인 가인 대해서 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책임을 진 것과 마찬가지로, 6천 년 역사상의 종말을 대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 통일의 신도들은 하늘적인 입장에서 이 세계 30억 인류의 가인 앞에 본이 되고, 30억 인류를 대하시는 아버지의 수고 앞에 효자의 명칭을 가질 수 있는 아벨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평화의 왕궁, 평화의 왕국, 평화의 의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 수 있는 본연의 세계를 찾아 나가기에 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것을 내 본 직업으로 알고, 이것을 내 본 생활의 목표로 알고 싸워 나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딸로 서야만 하늘이 원하시는 소원, 예수가 원하시던 소원, 만민이 고대하던 구세주를 맞는 환희의 터전을 마련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각자들로 다시 한 번 아버지께서 이 새해에 다짐하여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이 이 한 해와 이 남아진 생애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통일의 무리들이 사는 방향 위에 아버지의 영원한 가호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의 성호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집회에 대한 관심은 많이 가졌지만 그런 목적은 이미 이 시간부터 지나가는 겁니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요. 열두 시가 넘었기 때문에 이제는 7일입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뜻하였던 모든 일들은 전부 다 지나가 버리고 이제 여러분에게 남은 프로라는 것은 고향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 가지고 여러분이 활동해야 하는 과업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집에 가게 되면 또 언제 만날지 모릅니다. 지구장들은 가끔 만나지만 지역장들은 참 만나기 힘들다 이겁니다. 선생님이 특별순회하기 전에는 만나기 힘든 거예요. 그리고 금년 1964년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활동하는 데 있어서 참 중요한 해입니다. 여러분들의 활동여하에 따라 가지고 이 천지 운세를 좌우할 수 있는 이런 중요한 때입니다.
더우기나 이제부터 4월달까지는 국제정세도 그렇고 국내정세도 긴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본부에 있는 식구들을 전부 다 이야기해 가지고 이끌고 나왔지만서도 지금 요때가 천적으로 볼 때 중요한 시기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금번 이 기간에 있어서 4월달까지는 여러분 지역으로 돌아가 가지고 앞으로 지역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끔 계획을 세워 가지고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또, 지금까지 활동한 모든 것을 비판하고, 과거에 내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 혹은 전 지구를 대신해서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못 되어 있으면 그것을 시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자기 힘이 부족하거든 지구장이라든가 혹은 동료 지역장들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좋은 면을 세워 여러분이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면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요전에 지구장 회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앞으로 금년부터는 지역에 있어서 최소한도 2백 명 이상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수가 차지 못하는 지역이 있으면 편입하는 겁니다. 편입시켜라 이거예요. 지역들을 이렇게 많이 분담시켜 놓았기 때문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지역을 끌고 나가지 못하면 능력 있는 지역장 앞에 지역을 다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따라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될 때는 현재 머물러 있는 지역장을 취소시키고 지역을 합병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래 가지고 움직이지 못한, 혹은 실적이 없는 그런 지역장들은…. 지금 순회하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한 장소면 장소에 고정 배치해 가지고 활동을 전개시키려고 지금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가 가지고 최고의 노력과 정성을 다해서 하늘이 협조할 수 있는 심정의 터전을 마련해 가지고 획기적인 발전을 일으킬 수 있게끔 전부 다 결의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기 전에 여러분들이 먼저 알아야 될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대개 한 지역장이면 지역장 한 개체라는 것은 자기 일개인이 아닙니다. 여기는 반드시 10만 이상 혹은 20만 이하의 모든 군민이면 군민을 책임지고 그들의 생명과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재산까지도, 복귀의 터전까지도 책임을 지고 이것을 개척해야 할 책임이 오늘날 지역장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 지역장이 모든 천적인 인격을 갖추고 심정의 기반 위에 확고히 선 사람이라면 그 지역에 소속한 구역, 혹은 소속 교회의 전도사를 중심삼은 수많은 식구들은 그 지역장을 닮는 것입니다. 지역장이 충성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따라 지역원들도 다 충성하는 마음을 갖고 지역장을 대하는 것이요, 그가 하늘이 추구할 수 있는 인격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이 되었으면 그의 지도를 받는 모든 사람들도 그러한 인격적인 기준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지도자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지역을 중심삼고 책임지고 움직였다 하지만서도 진정자신이 `이 지역의 생명과 재산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내 육신에 달렸다. 생사의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으며 선한 결과를 내 일신으로부터 당연히 이루어야 한다. 그런 중요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것을 자신이 철저히 생각하고 활동하면 할수록 앞으로 하나님이 거기에 비례해서 협조해 줄 것을 나는 믿는 바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입장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전진하면 여러분을 따르고 있는 식구들도 전진하는 것이요, 여러분 자신이 침체 상태에 들어가면 식구들도 거기에 반사적인 형태로서 침체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우리가 책임지고 있으니만큼 한 개체가 지치고 한 개체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실이 있게 된다면 수많은 군중 앞에 생명의 활동을 정지시키고 혹은 거부시키는 이러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입장에 선 것이 이게 얼마나 두려운 것이냐 하는 것을 먼저 느껴야 된다는 겁니다. 뜻을 대해 선 사람은 그런 자리에 선 것이며, 그 가운데 책임을 짊어진 사람은 더욱 그런 자리에 선 것임을 여러분들이 절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오늘날 우리 개체라는 것은 지역을 중심삼고 구역이 연결되어 있고, 지구장 혹은 그 위에 협회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을 위주로 하여 하늘까지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위에는 하늘이요, 아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자기를 중심삼고 사방에는 모든 인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 지역장이면 지역장들이 얼마나 엄청난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되겠다 이겁니다.
여러분 자신이 책임 못 하게 될 때에 그 책임 못 한 것은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이 책임 못 한 그 사실은 이 시대적인 책임을 못 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방이면 지방 지역권 내에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그때에 있어서 혜택받고 준비된 영혼들이 여러분과의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 하늘은 여러분을 대표자로 세웠는데 불구하고 여러분이 인연 맺을 수 있는 활동과 실력을 갖추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연을 못 맺고 영계에 갔을 때는 영계에 간 애혼들이 여러분 대해서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날 우리 지역장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 하는 것을 더욱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지역장이라는 자리는 자기 책임을 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러분이 기뻐하면 그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만물까지도 기뻐하는 것이요, 여러분이 기뻐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기뻐하면 여러분을 지도하는 지구장, 협회장, 선생님,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간다는 것은 천지가 기뻐하는 동시에 인류가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지구장, 지역장, 혹은 구역장, 이 3수권 내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야 할 입장에 선 사람이 누구냐 하면 지역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역장이 잘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 교회는 발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의 지구장은 중간 입장에 있습니다. 최일선적인 활동을 책임진 사람이 누구냐 하면 지역장입니다. 이 지역장이 불이 붙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지역장이 서로서로 남한테 지지 않고, 서로서로가 전체 지역장 앞에 `내가 이 시대에 있어서 지역장으로 책임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지역장들 앞에 내가 힘을 보급해 주고, 내가 사랑의 조건을 그들 앞에 상속시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연구하고 찾아 그것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하늘 앞에 결실의 기반으로 닦기 위하여 모든 충성을 다하여서 금년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활동보다도 확고한, 공고한 활동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각오 밑에 여기 왔다가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현재 남한 각지의 실정을 바라보게 될 때 이 민족이 피폐 상태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경제공황이 이 민족 앞에 다가올 것이 예측되고, 더 나아가서 사상적으로는 이 민족이 삼팔선 이북의 공산당이 남한을 엿보고 있는, 공산 진영과 대치하고 있는 위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 전체의 상황을 보게 될 때에 이것을 방비할 수 있는 제일 책임자가 누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지역에 돌아가게 되면 지역 관내의 모든 수많은 사람들, 더욱이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여러분들이 권고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권내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여러분들이 지도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들은 못 먹고도 희망에 넘쳐 있고, 혹은 헐벗고도 소망에 넘쳐 있어야 됩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 있어서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는 새로운 이념을 품고 사는 여러분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지역권 내에 남아 있는 수많은 불쌍한 종족 앞에 힘의 상징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이런 기준이 된다 이겁니다.
굶주린 우리 백성이 있게 될 때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저들은 굶주리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굶주린 자리에서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면서도 새로운 한 목표를 향하여 새로운 개척정신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 준다' 하는 스스로의 갖춘 내용을 보여 줘야됩니다. 그들이 어려운 가운데 부딪치기 전에 그러한 기반을 닦아 놓아야만 어려운 때에 혹은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게 될 때에 그들을 지도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역장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이 민족 앞에 불쌍한 길을 자초해 왔습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생활을 우리는 연단삼아 해왔습니다. 그것은 한 때에 이 민족이 그런 운명에 부딪치게 될 때 이걸 이끌고 새로운 이념세계로서 진일보하여 여기에 충격적인 힘의 광명체로서 주도해야 할 책임자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런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이제 돌아가 가지고 과거에 그런 기반을 닦지 못한 자신이 되어 있을진대는 빨리 그런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런 기반을 삼천리 반도의 지역을 중심삼은 지역장, 구역장 등의 교회 책임자가 갖추고 있다 할진대는, 기필코 이 민족의 말로가 점점점 험해가면 험해 갈수록 그들이 갈 길을 찾아 반드시 헤멜 것이어늘 그때에는…. 우리가 지금까지는 몰리는 입장에 섰으나 기필코 살아남아서 어려운 입장에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어려운 그들 앞에 소망의 상징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필시 그들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런 판국의 한 때를 향하여 하늘이 이 민족을 내몰고 있고 우리는 그런 한 때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런 활동을 전개했으니 민족을 통하여 내모는 방향과 하늘 뜻을 대신하여 내모는 방향이 어느 한 때 전체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디냐 하면 지역장을 중심삼은 무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장은 오늘날 하늘의 뜻 앞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지도하는 최일선, 최전선에 있는 지도자인 것을 명심하고, 여러분이 낙망하면, 여러분이 쫓기면, 여러분이 거기서 후퇴하면 그 지방 혹은 그 지역 전체의 생명들이 여러분과 같은 운명에 처한다는 걸 알고 이 길에서 물러서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능력이 부족할 때는 하늘 앞에 호소하는 겁니다. `나는 힘이 없고 부족하오나 하늘은 연약한 자를 세워서 역사를 창조해 오는 지금까지의 섭리역사인 것을 아옵니다. 이런 섭리를 아버지께서 주장하셨고 이런 섭리의 뒷받침을 아버지께서 세워 나온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서 우리들이 알고 있고, 오늘날 이런 처참한 복귀의 무대를 앞에 놓고 내가 책임지고, 하늘 앞에 하나의 소원을 성사해 드리기 위해 책임을 지고 있사오나 여기에 힘이 부족하오니 힘을 주십시오' 하며 호소를 하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하늘은 협조해 줄 것입니다. 그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누차 말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믿고 그런 신념 밑에 서 가지고 우선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시간 여러분 앞에 권고하는 것을 잊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나'라는 위치가 이제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전체에 연관성을 띠고 있고 이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중심의 입장이 지역장이라는 것입니다. 지역장이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지역장을 위주로 한 구역장, 구역장을 위주로 한 교회 책임자, 혹은 우리 통일교회 전체 식구들이 지역장과 같은 입장을 대신하여 만일에 지역장이 이런 책임을 감당하다가, 있는 정성을 다하다가 그 책임과 사명을 달성하지 못하게 될 때는 `그 지역장의 책임을 내가 상속받겠다'하는 후계자를 반드시 선택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또, 우리 식구들은 지역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우다가 지역장이 쓰러지게 되면 `내가 지역장을 대표하여 하늘 앞에 이것을 책임지고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남 모르는 가운데 준비할 수 있는 이런 인연을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도하는 지역장과 지도받는 교인들이 서로 서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하나의 뜻을 대신한 결의의 기반을 거기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역장은 자기를 위주로 하여 움직일 수 있는, 자기의 계승자가 될 수 있는 지역원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그 지역장이 뜻을 대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느냐 못 가져오느냐 하는 여건을 결정짓는 중심 내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자기 지역 내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와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을 빨리 설정해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큰 싸움을 하게 되면 큰 싸움을 앞에 놓고 거기에 대비한 계획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계획보다도 이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장이 그 지역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우선 자기를 위주로 하여 몇 사람의 이러한 자기 대신자를 세워 가지고 생사를 같이하고 생명을 같이할 수 있는 입장에서 결의해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서로서로 맹세하여 출발한 후에는 후퇴라는 부끄러운 모양을 보이지 않겠다고 서로서로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진 사람은 끌고 나가기에 노력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지도받는 사람은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서로서로 노력하여 나는 만천하 앞에 서기를 원하고 남음이 있는 그런 조건을 세워 나가는 지역으로 만들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지역이라면 날이 가면 갈수록 자동적인 발전을 하리라고 보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책임을 짊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지역장은 빨리빨리 구역장을 통해서, 혹은 개인을 통해서 앞으로 면을 중심삼고, 혹은 군을 중심삼고 혹은 통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일 말단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연결시켜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하늘이 아무리 이것을 명령하더라도 지구장이 이걸 받들어서 강력히 지역장에 전달하고 지역장은 이것을 실천적인 활동무대에 있어서 강력히 추진시킬 수 있는 발판이 없게 될 때는 하늘은 여기에서 실천장을 잃어버리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 실천장에 서 있는 선발대가 누구냐 하면 지역장을 위주로 하여 지역장 개인 앞에 움직이는 동료들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잘못하면 그 지구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오고, 여러분들이 잘 못 하면 그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하늘 앞에 스스로 책임지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때로 봐 가지고 이때는 지구장이 책임하는 때가 아니라 지역장이 최일선에 서서 모질게 날아오는 원수의 화살을 막아내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원수의 복잡한 환경을 제거시키고 정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장들이 어떻게 하늘의 뜻을 위해 싸워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스승으로서 지극히 염려하는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명심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 대구집회를 통해서 이 도성을 한번 흔들어 보자 이거예요. 이 도성을 흔드는 주동적인 정예부대가 지역장인 연고로 이 지역장이 여기에서 체험한 그 사정, 여기에서 느낀 분함을 돼살려 가지고 여기에서 내가 원수를 갚지 못하고, 여기에서 내가 승리의 결정을 세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하는 이런 이념을 여러분들이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되어서 동하는 교단이면 교단 앞에 우리가 소기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여 그들이 완전히 굴복하고 그 료인들이 뜻 앞에 완전히 따라 나갈 수 있는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돌아가는 우리는 지극히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을 풀지 못하고 감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전국적으로 전개시키어…. 지역장들은 자기의 책임진 소기의 장소에 가 가지고 대신 그 지역권 내에 있어 실천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는 바입니다.
여려분 자신도 그와 같이 결의하여 이번 기회에 하늘 앞에 승리적인 결과를 대대적으로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을 한하는 마음을 가녀 가지고 지역에 내려가서 실천적인 결과를 거두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지금까지 우리를 찾아오기에 얼마나 수고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로마서 8장에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이 땅을 대해 하늘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탄식하는 반면 이 땅도 탄식하고 하늘땅이 탄식하니 지금까지 역사도상에 왔다 간 수많은 인류도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탄식을 해원할 자가 누구며, 땅의 탄식을 해원할 자가 누구냐? 하늘의 해원성사를 이룰 수 있는 중심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요, 땅의 해원 성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것도 땅 자신이 아닙니다. 그럼 이 해원성사를 누가 해줄 것이냐? 이 해원성사는 다만 인간밖에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인간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해원의 한날을 고대하며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지역이면 지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지역에도 하늘은 해원성사의 한 뜻을 품고 지금까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서 있는 한 조각의 땅이면 땅, 서 있는 시대면 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해원성사의 한날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해원성사의 여부와 땅의 해원성사 여부가 나를 중심삼고 결정이 됩니다.
위로는 하늘이요, 아래로는 땅의 탄식적인 해원의 여건들을 총탕감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이 모든 과제를 내 일신이 짊어졌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먼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슬픔이 크다 해도 하늘의 슬픔이 더 큰 것을 알고, 내 탄식이 크다 하더라도 하늘이 나로 하여금 탄식의 해원성사를 요구하는 그 여건을 내가 해원성사하지 못하여 아직까지 남아진 탄식이 큰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나에게 슬픔이 있다 해도 그 슬픔이 아직까지 땅에 있어서 해원성사의 여건을 고대하는 슬픔을 제거시키지 못한 그 슬픔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여러분들이 동하면 하늘의 슬픔도 동할 수 있는 것이요, 여러분이 동하면 하늘의 슬픔도 해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은 하늘의 기쁨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역사적인 한 중심으로 서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또,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시대에는 여러분이 동으로 가면 전체가 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 삼천만 민족, 세계 인류까지 여러분과 인연된 새로운 해원의 여건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나 한 개체가 얼마나 귀중한 자리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완결짓지 못한 사람은 어느 한날 기쁜 날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먹어도 십자가요, 일을 해도 십자가요, 어떤 사소한 범위에서 싸움을 해서 승리해도 십자가예요. 왜냐하면 어떤 환경, 제한적인 권내에 있어서 내가 승리했다 하더라도 이 승리의 결과를 재료로하여 더 큰 승리의 투쟁의 역사를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역사적인 인연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방향은 나를 불러일으켜 크나큰 가치의 내용을 앞에 세워 놓고 나와 일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걸 하늘도 고대하고 있고, 땅도 고대하고 있고, 인류도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 부르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 현세에 처해 있는 환경에 있어서 불만족할 것이 아니라 뜻 앞에 전개될 미래의 날들, 혹은 미래의 세계를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것을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그것의 범위가 더 크기 때문에 현실적인 환경보다도 더 큰 탄식의 조건, 더 큰 고통의 조건, 더 큰 슬픔의 조건으로서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찾아오기 위한 하늘 해원의 큰 무대, 지상 해원의 큰 무대, 앞으로 우리 인류 해원의 큰무대가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찾아오는 그 무대를 내가 배척할 것이냐 환영할 것이냐 하는 입장에서 나는 그것을 배척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때는 현실에 짊어진 십자가, 현실에서 당하는 고통이 아직까지 부족한 것을 여러분이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오늘날 이 과정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다가 지치는 것이 상례입니다.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가다가 지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한 호소가 때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호소에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될 때는 동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혹은 위로부터, 스승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정한 마음으로써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줄을 가져야 되겠고, 진정한 마음으로써 동지들과 연락할 수 있는 마음의 줄을 가져야 되겠고, 진정한 마음으로써 지도자와 연락할 수 있는 줄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동지들과의 줄이 끊어지면 지도자 앞에 줄을 연결시키고, 동지와 지도자와의 줄이 끊어지게 될 때는 하늘과 인연 맺어가지고 동지와 혹은 지도자와의 관계를 맺지 못한 불안한 것을 하늘과 더불어 가일층 연결시켜 나갈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람은 낙망도 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참된 동지, 참된 지도자, 참된 하나님과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연결을 짓지 못한 연고로 가다가 자기 혼자 있는 줄 알고 혼자 낙망하고 혼자 탄식하다가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활동 무대에서 벌어진 현상인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제 우리들이 가야 할 길엔 오늘날 한민족뿐만이 아니라, 이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성을 향하여 정복의 깃발을 들고 사탄을 항복시켜서 하늘의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영광된 지상의 보좌를 단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의 갈 길은 아직까지 요원하다는 것입니다. 요원원하다구요.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슬프다 하기 전에 나보다도 슬퍼하는 것은 하늘이요, 나보다도 슬퍼하는 것은 인류를 낳아 주기 위하여 선을 지향해 나왔던 선조들이요, 선과 악이 투쟁하는 역사적인 투쟁의 자리인 이 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내 개인이 비통한 생활의 곤고를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고,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이 수난을 당하던 순간 순간의 인간의 비참한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또, 이 땅이 탄식하던 그런 기준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크나큰 기준 앞에 내가 아직까지 미달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고 서로서로에게 있어서…. 이런 것을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참되 얼마나 참겠느냐? 참되 어느 한계 만큼 참겠느냐? 참되 십년을 참느냐, 죽기까지 참느냐? 수난을 통해서는 몇십 년을 참을 수 있으며, 반대를 통해서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겠느냐? 이것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참되 맹목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주한 만큼 참고 기다리고, 바로 자기가 바라는 만큼 참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그 환경에 있어서 모든 한적인 요건을 여러분의 일신으로써 이것을 탕감 해원하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쓰러졌다고 해서 이제는 주님 앞에 갈길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늘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참으면서 나온 연고로, 살아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다가 쓰러진 그런 무리는 또다시 일으켜 하늘 앞에 기도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요, 또 지금부터 살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요, 또 그들을 일으켜 협조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오늘의 나로서 결판지을 것이 아니라 내일의 나로서 청산짓겠다는 마음으로 꾹 참고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이제부터 절대 막힘이 없고,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는 퇴보라는 명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를 이 시간 여러분 앞에 당부합니다. 그렇게 될 때는 발전뿐입니다.
먼저 지역에 돌아가면 그 지역을 전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는 사탄세계요, 그 지역은 지금까지 원수들이 우거하는 지역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원수들이 섬길 수 있는 대표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으로서는 어떠 어떠한 사람들이요, 땅으로서는 어떠 어떠한 지역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그런 터전을 세워 가지고 `어느 누구를 굴복시킬 때까지, 어느 누구를 뜻 앞에 복귀시킬 때까지 나는 결의한다. 어느 지역을 복귀시킬 때까지 결의한다. 오늘날 복귀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복귀하고 만물을 복귀해야 되겠으니 사탄권 사람 가운데 유명한 지방 유지면 유지 누구 누구를 복귀시킨다. 어느 지역을 복귀시킨다'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이 한 땅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서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복귀시키고 말겠다는 결의를 가져 가지고 자기 힘이 부족하거든 여기에 동지를 규합하고, 자기의 능력이 부족하거든 동지들의 능력을 합해 가지고 이것을 빨리빨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활동하는데 있어서 부족하거든 하늘을 붙들고 땀을 흘려야 됩니다. 그런 기도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을 택정해 가지고 기도하는 겁니다. 싸우는 겁니다. `하나님, 나는 이런 의미에 있어서 이 지역의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현재 상태는 이러하오나 기필코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습니다'라고 여러분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건을 동이고 생사를 결단하는 이런 무대에 있어서 하늘 앞에 호소하게 될 때는 상달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정성을 들여 가지고 싸워 가지고 찾아야만 귀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중앙에서 전국에 널려 있는 지역장들을 가만히 생각하면…. 끝날에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심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식하는 만물의 해원도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인격과 심정의 인연을 거친 해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런 입장에 서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무대를 기준삼아 가지고 대번에 이것을 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좁혀 가지고 재수습하여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나로부터 먼저는 한사람, 나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사방을 갖추는 겁니다. 사방을 갖추었으면 여기에 이 사방을 중심삼아 팔방을 갖추고 팔방을 갖추었으며 십이방을 갖추어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먼저 나선 것은 이것을 수습하고 여기에 있어서 정성들인 도수가…. 지방에 돌아가게 되면 공적인 입장에서 출발해 가지고 집중 공세를 해 가지고 비로소….
그러면 전국적으로 통일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시대적인 활동이 전도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지역 전체가, 지구 전체가….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수록하지 못함)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선생님은 지금부터 수십 년 전에 이 삼천리반도를 위하여 눈물 흘리며 싸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겁니다. 젊으나 젊은 꽃다운 청춘시대에…. 그때는 왜정시대였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이 나라를 짓밟고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뿌리면서 호소하던 전통, 하늘이 세워 놓은 전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런 뜻을 알고 여러분이 과거에 선생님과 같은 청춘시대의 연령에 처해 있다 할진대 하늘의 대대적인 협조를 받으려면 과거에 선생님이 삼천리 반도를 위해 기도하던 이상으로 여러분들이 그 전통적인 정신을 본받아 가지고 지역을 중심삼고 그와 같은 간곡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게 된다면 삼천리 반도는 문제없이 뒤집어 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힘이 부족하게 되면 하늘이 먹여 살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굶게 되면 군이면 군에서 도인들, 양심적인 인사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후손들은 그런 환경 무대에서 하늘을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사람이 있게 될 때는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움직여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한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그러면 오늘날 그 큰 뜻을 대신하여 세워 나가는 이 뜻 앞에 있어서 민족을 대표하여 움직이는 때인 것을 알고, 이때를 대하여 책임을 다 해야 할 통일의 무리인 줄 알고, 이 무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여건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하늘 앞에 내가 지도자로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여기서 해야 할 것은 하늘이 바라는 이상 정성을 다해야 되겠고, 하늘이 바라는 이상 전체를 나에게 맡기고, 하늘이 나를 위해 염려하던 입장을 이 악한 세계에서 싸움으로써 부딪쳐 가지고 우리의 정신을 세우는데 연결지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늘이 나를 위해 염려하던 그런 심정의 기준을 가지고 `내가 하늘 앞에 반드시 나 홀로 책임을 지겠으니 나에 대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염려가 필요없습니다. 이 염려를 나를 중심삼고 사방의 열매로서 하늘이 세워 주시옵소서'하며 내 갈 길을 지원해 달라고 기도하면 나를 위해 염려한 그 염려가 나를 믿을 수 있는 기반이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옮겨져 가지고 내가 서 있는 사방에서 염려하는 마음을 퍼부어 가지고 나를 울타리가 돼 주는 것입니다. 그런 시점에 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뜻을 대한 천적 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늘 앞에 동정을 살 수 있는 생활입니다. 동정을 살 수 있는 생활.
오늘날 지역장이면 지역장으로서 하늘이 보는 기준이 있다 이겁니다. 열이면 열만큼 기준을 갖고 하늘이 바라보고 있는데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다섯 만큼 있다 합시다. 그럴 때는 다섯만큼 반대적인 여건이 작용하여 식구들은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갈 뿐만 아니라 내 모든 환경이 몰아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한번 책임을 못하여 쓰러지는 지역장이 되어 버리면 그는 재기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환경을 간파하여 하늘이 바라는 열만큼의 기준 앞에 내가 열 둘, 열 다섯 만큼 움직였을진대는 하늘이 찾아오는 열 만큼은 내 것으로 이루어 나로서 하늘의 책임을 다하는 입장에 서고 다섯 만큼은 그 지방에 뿌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뿌리고 나면 이것은 언제든지 나로 말미암아 그렇게 됐으니 내가 관할할 수 있는 한 터전으로 남아지고 이 뿌려진 것은 이 시대의 운세와 더불어 생명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여기에서 하늘이 움직일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터전만 남아 있으면 반드시 영계는 협조하여 사탄세계를 무찌를 수 있는 기반으로서 활동무대를 삼을 수 있는 조건이 남아지기 때문에 하늘을 대해 가는 사람 앞에 있어서는 언제나 하늘이 동정할 수 있는 입장에서 선다 것입니다. 하늘이 동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늘을 향하여 지향하는 모든 양심적인 인사들은 자동적으로 동정하는 것이 천지의 원칙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늘날 통일교회 전체 식구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지금까지 발전 현상을 전개시켜야 할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침체 일로를 가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이냐? 지역장들은 지역장 자신을 중심삼고 자기 주위에 있는 지역장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이요, 지구장의 동정을 받지 못하는 입장에 선 것이요, 혹은 본부나 선생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 오늘날 이 모든 인류가 여러분을 대하여 동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은 연고로 여러분들은 여기서 지치고,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외롭고, 여러분이 서 있는 그 기반은 황폐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은 어느때나 하늘의 동정을 남길 수 있는 터전에 서야 그를 따르고 있는 후손들도 하늘 앞에 충신이 될 수 있고 하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하고 이제 지방에 돌아가게 되면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어 가지고 하늘이 바라는 기준 앞에 어긋나지 않는 기반을 닦아 가지고 3년 간 여러분들이 최후의 역량을 다 발휘하여 활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오늘날 우리들은 나 한 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늘에서도 잃어버렸고, 땅 위에서도 잃어버렸고, 인류 가운데서도 잃어버렸습니다. 나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 하늘은 탄식의 걸음을 걸어 왔사오니, 그 탄식의 걸음이 나를 찾기 위한 걸음임을 똑똑히 알게 하여 주옵소서. 땅이 탄식하고 있는 것은 나의 자체를 찾아 주기 위한 것이요, 우리의 선조들이 탄식하는 것은 나를 확고한 자리에 세우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런 삼면적 기준 앞에 내가 하나의 결실체로 나타난 입장에 서게 될 때, 역사적인 슬픔이 나를 밀게 될 때 나는 여기에서 밀려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슬픔의 조건들이 나를 밀게 될 때 내가 여기서 밀려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상 위 탄식과 한이 나를 일시에 공격하여 민다 하더라도 나는 물러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이제부터 내가 확고하고 철저한 기반을 세워 가지고 하늘과 땅과 인류의 모든 한을 내 한 자체로서 청산하여 방긋 웃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은 아직까지 요원한 노정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민족을 향하여 갈 길이 남아 있사오니 삼천리반도 전체를 우리의 발걸음을 통하여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사옵고, 우리의 손길을 거쳐 피와 땀으로서 개척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중심삼고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있사옵고, 땅과 민족을 복귀하여서 하나의 주권을 아버지 앞에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아버지 앞에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를 하나의 도화선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여기서 폭발하여 세계 방방곡곡에 폭발의 요건을 남겨 주어야 할 책임을 우리들이 다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이것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천만 민족 앞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책임진 선생 앞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지배하는 지구장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들,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나에게 있는 것이요. 생명을 결정하는 것도 나에게 있는 것이요, 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나에게 있는 것이요, 이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도 나에게 있는 것이요,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땅을 망하게 하는 것도 나에게 있고 흥하게 하는 것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지의 슬픔의 원천도 내가 될 수 있고, 행복의 원천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은사의 중심 기점에 서 있고 행복과 슬픔의 기점에 서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망과 생명이, 선과 악이, 행복과 불행이 한 초점상에 놓여 있사옵고 이 초점을 중심한 결정체가 나인 연고로 좌로 가면 사망이요, 우로 가면 생인 것을 알고, 우로 향하여 민족을 품고 세계를 품고 인류를 품어 하늘 앞에 바쳐드려야 할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4년 1월 6일을 이제 지내 버리고 1월 7일을 맞이하였사오니 이 7수의 날이 복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날을 아버지가 창조 당시에 경륜하시던 안식의 7수를 대신할 수 있는 날로서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민 앞에 축복의 조건을 정할 수 있는 본연의 터전의 날로서 아버지께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대구 도성을 중심삼고 일주일을 싸우다가 이제 저희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옵니다. 저희는 올 때 무엇을 갖고 왔습니까? 갈 때 이제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겠습니까? 아버지 앞에 충성과 효도의 심정을 가지고 왔사오니 갈 때 이것을 아버지 앞에 보답하여 놓고 다시 아버지 앞에 보답한 그 위에 아버지 은사를 가하여 다시 가져 가는 그런 것이 있어야 되겠사오니 힘든 생활노정에서 지치고 연약한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고향 지역을 떠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인도하신 그 발걸음을 따라왔사옵니다. 돌아가 다시 아버지 앞에 나타나서 호소하게 될 때 이제 하늘이 가르쳐 준 무기가 있사오며 하늘이 보여 준 실력적인 요건이 내게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제 나로 하여금 맡겨진 지역을 불사르고도 남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곡히 호소하는 이 국가적인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책임지고 활동하는 그 지역에서 불쏘시개의 사명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래 내가 원수에 품에서 태어났으니 원수의 옷을 벗지 않고는 놀 줄 모르는 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원수의 손길을 붙들었으니 원수에게서 자기를 띄어내고, 원수를 몰아내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늘땅을 대하시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정의의 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보할 줄 모르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오매 이러한 하늘의 실체들이 필요하옵니다.
하늘의 영광의 터전을 닦을 수 있는 승리적인 실체의 터전이 필요하오니 그리하여 여기에 폭탄으로서 폭발하여 원수의 도성을 멸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이번 왔다 가는 지역장, 여기에 참석한 전체 식구들이 이 시간 각오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이 시간 저희를 바라보고 있사오며, 오늘날 삼천만 민족은 한을 품고 구원의 손길을 바라면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땅에 대한 뜻을 해원하고 3시대를 같이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무릎을 꿇고 내내 불쌍한 개체를 품고 하늘 앞에 결의를 받들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참다운 교회를 얻기를 바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여, 지금까지 부모의 날을 세워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부모의 날을 정하였사오니 그 부모를 점령해야 되겠고, 자녀의 날이 왔사오니 그 자녀들끼리 합쳐 가야 되겠습니다. 자녀들끼리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만물의 날을 저희들이 가졌사오니 참세계를 위한 만물로서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아직까지 터전을 세우는 하나의 기점은 되었사오나 전체의 명령을 결정짓지 못한 연고로 이것을 완결지어야 할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섭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자녀의 명분을 갖춘 입장에 선 무리들이 이것을 책임해야 할 때인 연고로 하늘은 성도의 세계라고 권고하였사오니 참다운 성도의 모습을 갖추어 만물복귀의 터전을 마련하여 삼천리반도를 찾고 성도의 인연을 연결시켜 삼천만 민족과 이 땅을 찾아 주권을 회복하고 그 주권을 회복하여 아버지가 계신 자리에 드리고 이 민족이 하나님의 날을 아버지 앞에 세워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민족적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 전에는 세계적인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사오니, 이 생명 다 드려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힘이 부족할 때 동지가 필요합니다. 스승이 필요합니다. 하늘이 필요합니다. 그러하오니 이럴 적마다 하늘이 권고하든가 스승이 권고하든가 동지가 권고하든가 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옵소서. 권고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거든 내가 머리를 숙여 동지를 찾아가고, 머리를 숙여 스승을 찾아가고, 머리를 숙여 하늘을 향하여 겸손히 기도할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대적인 혼란의 역사 도상에 패배자가 되어 그런 역사의 씨, 그런 역사의 뿌리를 후손 앞에 남기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삼천리반도와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부름받은 통일의 용사들이 무릎을 꿇은 그 지역에서 참다운 심정을 대신한 아들딸로서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기도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 주시옵시고, 같은 은사로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가는 노정 위에 놓여진 민족복귀의 맡은 바 책임을 완결할 수 있게끔, 아버님이여, 힘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연약한 이들을 아버지께서 세워 놓으시고 이 역사적인 중차대한 책임을 짊어지워 주시는 아버지의 그 심정이 얼마나 간곡한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보다 더 어려운 자리에 계시는 분이 아버지요, 나보다 더 슬픈 자리에 계시는 분이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맡은 이 책임이 6천 년 동안 소망하던 한날의 한초점으로서 나를 맞이하는 순간 순간의 연속인 것을 알고, 이 순간 이 찰나를 사수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여기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 하늘이 서러워하는 입장에 서지 않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선조들이 찾아온 해원성사의 요건들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결실지어지고, 이 땅에 탄식적인 모든 해원의 요건을 완결지어 내가 서 있는 곳은 하늘과 땅, 주위 환경을 승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깃들 수 있는 터전으로서 결정지을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용사들을 축복하여 주옵시고 이 뜻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축복하시옵소서. 어서 속히 하나가 되어 이 원수의 세계를 무찔러 본연의 세계, 하나의 세계, 통일의 세계, 전체 전권의 세계를 아버지를 위주로 한 세계로서 이루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축복의 은사를 저희들이 움직이는 곳곳마다 같이하여 주옵시고, 남아져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고 가는 저희들이 되어 영광…. (녹음이 잠시 끊김)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불쌍하다는 사람 가운데는 참을 붙들고 선을 지향하여 싸우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죽음의 자리로 찾아 나가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 개인의 욕망을 위하여 불쌍한 자리에서 눈물짓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천태만상일 거라구요. 자기의 어떠한 일개 개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불쌍한 자리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 개체를 무시하고 가정을 살리기 위하여, 국가를 살리기 위하여, 세계, 인류를 살리기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살리기 위하여 불쌍한 자리에서 울부짖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지를 찾아오는 하나님이 불쌍한 자료들을 모아 가지고 온다 할진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이는 땅을 위한 것도 아니요,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요, 하늘과 땅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다는 입장에 있는─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들을 반가히 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은 불쌍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가는 길이예요. 그것은 개인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예요. 어떠한 일개 가정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예요. 일개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오늘날 이 세계를 위한 것이 아니예요. 단 한 분의 주인인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극히 불쌍한 자리에 서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 같지만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하늘의 식구가 될 수 있으며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양심적인 사람은 밟혀 나왔어요. 상류계급도 출세했고 중류계급도 출세했고 현재에 와서는 노동자 농민까지도 출세하고 있는데, 오늘 이 땅에 있어서 종교의 명사를 걸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오는 참된 봉사의 종교만은 이 세계 앞에 불쌍한 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여기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기뻐서 춤출 것이 아니라 통곡을 해야 돼요. 대성통곡할 수 있는 이런 무리가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 각 종교면 종교계에서 나와 가지고 최후로 하나님을 붙들고, 인류를 붙들고, 천상의 아버지를 붙들고 우주적인 슬픔에 사무쳐 통곡하게 될 때, 그 통곡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천상을 울리고 이 지상에 울릴 수 있는 이런 움직임이 이 땅 위에 나온다 할진대 이 세계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를 목표해서 가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그 하나님은 내가 종으로서 모시기 위한 하나님이 아니예요. 그 하나님은 우리의 친척으로 모시기 위한 하나님이 아니예요. 의붓 아버지로 모시기 위한 하나님이 아니예요. 내 피와 살은 아버지의 피와 살에 연해 있다는 심정의 일치점에서, 당신은 나를 모른다고 할 수 없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자리에서, 당신의 심정이 사무쳐 있는 한 당신의 심정은 내 심정과 연해 있고 당신의 눈물은 내 눈물이요 당신의 곡절은 내 곡절이라고 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천지의 한을 대신하여 울부짖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하나님 자신이 그런 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이 하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이예요. 한의 곡절을 많이 겪어 온 하나님이예요. 그 가슴을 헤치고 볼 때, 어떤 사람이 인생의 아무리 비참한 역사의 일면을 내놓을지라도 하나님의 가슴에 사무쳐 있는 그 비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처참한 모양의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 이상 억울하고 비참한 자가 없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하나님을 울릴 수 있고,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이 세계를 요리하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원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 가지고 그를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참다운 하늘을 위한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만이 아니라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거니와 오늘 이후에 내 아들딸과 내 후손을 거쳐올 하늘을 염려하여 이것들을 붙들고 통곡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댄, 이는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하나님을 통곡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과거 현재 미래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신도들은 눈물의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몰림의 길을 자처하여 가고 있고 매맞는 길을 친히 사수하고 있는 거예요. 억울함이 사무쳐 있고 분함이 내 마음, 가슴, 심장, 복통을 찌르고 있더라도 여기에서 `나는 참았노라!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지금까지 6천 년 수고해 나오던 하나님이 눈물 흘릴까봐 걱정된다' 하고 염려하는 효자가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그 앞에 항복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 싸움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격이 부족하다 하고, 내가 서러워할 때 아버지게서 눈물흘릴 것을 염려하면서, 내가 매맞는 자리에서 참기 어려운 비통한 자리에 설 때 하늘이 처참한 자리에 설까봐 염려하여 내 비통함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이를 악물고 내 눈물이 떨어질 때 하늘의 눈물이 떨어질까봐 염려하고 울부짖고 원수를 갚기 위한 도상에 서 가지고 선봉장으로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용자가 있다 할진대 그 용자 앞에 하나님이 백배 사례한다는 거예요. `네 이름을 충신이라 할까, 네 이름을 효자라 할까, 네 이름을 열녀라 할까? 지상의 역사상에 어떠한 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너 이상 귀한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나님 자신이 머리를 숙여….
내가 울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보고 울 수 있는, 그런 아버지를 모시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예요. 내가 참음의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참다 못하여 아버지께서 통곡을 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천추만대에 망하지 않아요. 역사는 망하고 시대는 사라져 버릴지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의 제단은 그 자리에서부터입니다. 통일의 길은 그 자리에서 부터예요.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쇠사슬에 얽매어서 모진 매에 쓰러지는 자리에 있더라도 `나는 하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 민족 앞에 몰림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아버지여, 민족을 찾아오시는 아버지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울지 않고 아버지를 울릴 수 있고 내가 움직이지 않고 아버지가 움직여 줄 수 있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댄 망하지 않아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런 엄숙한 자리…. 이 시대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아버지로서 우리를 대하여 나를 붙안고 `아무개야!' 하는 그 자리는 천지가 중복되는 자리예요. 그 자리는 사탄까지도 후퇴하는 자리예요.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셔 가지고 상처 입은 내 신세를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고 싶고 충신이 되고 싶은 것이 오늘 저녁 여러분 앞에서 말하는 선생님이요, 그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들이라는 거예요. 이런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아버지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 민족을 찾아오는 하나님의 발걸음이 민족의 복판을 뚫고 나가 이 삼천만 민족 가슴 가슴을 뚫고 가야 할 길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지여 나를 세우시어 보내 주시옵소서. 내가 가겠나이다. 밤에도 가고 낮에도 가고 어떠한 꼬부랑 길도 가겠나이다. 험난한 길도 가겠고 가시밭길도 가겠나이다'하는 거예요. 못 가겠다는 서글픈 낙인을 찍어 가지고 하나님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반역자가 안 되겠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반역자라는 비판을 받고 나온 것만 해도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이 몸뚱이를 생각해 볼 때, 이 몸뚱이는 어떠한 몸뚱이냐? 이 피와 살은 사탄이의 피와 살, 원수 사탄의 피살을 받아난 거예요. 억울하고 슬픈 일입니다. 어찌하여 인간이 이꼴이 되었던고? 내 몸이 이렇게 무가치한 몸으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어늘 왜…? 타락의 한이 무엇이었던고? 이 몸이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고 생명의 인연권 내에 있어서의 몸을 지녀 가지고 하나님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참부모를 모시고 참족속으로 세워져 영원히 승리한 민족의 조상을 가졌던들 오늘날 내 신세가 이렇게 되고, 이 민족의 신세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던고? 분하고 원통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누구의 죄인고? 천추의 철천지 원수인 사탄의 피살을 받아 가지고 난 이 몸의 피와 살은, 심장의 고통을 울려 가지고 나오는 동맥의 핏줄기는 사탄의 핏줄기와 연하여 있구나. 이놈의 살 속에는 사탄의 지긋지긋한 피 흐르고 있구나 칼이 있으면 도려내 버리고 싶고 찢어버리고 싶은 이 몸뚱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발견했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아까와요?
사탄은 누구냐? 사탄은 하나님의 간부(姦夫)예요, 간부. 어떠한 아들로 태어나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를 겁탈하여 그 집안의 주인 노릇하는 거예요. 이런 대 원수를 놔 놓고 원수를 갚지 못하는 무리가 되었다는 거예요, 세계 인류는.
이놈의 피살이 역적 괴수의 피살을 받아났다는 걸 생각할 때, 이놈을 때려잡아라 이거예요. 그래서 도의 길은 `몸을 쳐라! 쳐라!' 하는 거예요. 내 이 세포 세포는 모든 죄악의 총본영이로구나. 나에게는 살인기도 있고 별의별 게 다 있다 이거예요. 형무소에 같혀서 수많은 철창문을 바라볼 때, 죄악의 명패라는 명패는 내 이름 가운데 다 있고 내 몸 가운데, 피살 가운데 다 있다는 거예요. `그들은 나보다 한발짝 더 앞서서 나타났을 뿐이로구나' 하고 나를 부정해야 합니다. `이놈의 죄악이 결실된 몸을 잡아 치우겠다' 하며 이놈을 찢고 이놈을 끌고 다니고 이놈을 가시밭에 굴리고 이놈을 밟아 죽이기 위한 것이…. 6천 년 동안 밟아 치웠지만 아직까지 이놈이 살아 남아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고 여러분을 지금 농락하고 있고 최후까지 결판의 싸움을 끝내지 못한 채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할 때, 얼마나….
이것이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나는 불쌍한 자가 되었어요.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나는 억울한 자가 되었어요. 얼마나 억울하냐, 얼마나 불쌍하냐, 얼마나 불행하냐? 본래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요, 본래의 그 하늘은 내 하늘이요, 본래의 땅은 내 땅이요, 본래 이 인류는 내 형제요, 본래의 이 모든 만사 천하는 내 것이었는데 이것이 나에게서…. 가장 귀했던 것을 다 빼앗아 갔어요. 하나님을 빼앗아 갔고, 하늘을 빼앗아 갔고, 천지를 빼앗아 갔고, 인류를 빼앗아 갔고, 우리의 선조를 빼앗아 유린했어요.
오늘의 원수는 그것을 빼앗아 가고도 만족치를 않아요. 내 모가지를 쇠사슬로 걸고 나를 끌어서 지금 사망의 길로 몰아 가려고 하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나마저 여기에서 후퇴하고 나마저 여기에서 쓰러지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기에, 이 한스러운 최후의 십자가의 절정에서 판가리 싸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직까지 이 도상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왕자로 등장한 사람이 역사상에 없었기에 오늘날 인간들은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 봤느냐 말이예요.
이놈을 잡아…. 사탄의 쇠고랑에 채워 있으니 어디 가서…. 여러분의 몸은 이미 사탄이한테 걸려 있고 여러분의 손과 발은 쇠고랑에 걸려 있어요. 사탄이 매 놓은 말뚝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이거예요. 이것을 누가 끊어 주겠느뇨, 누가 끊어 주겠느뇨? 이것을 끊어 줄 수 있는 은인이 있다 할진대는, 내 몸을 천번 만번 불살라서라도 황공하게 모시고 싶은 그런 은인이 있다면….
최후에 이런 단발마적인 사망의 공포의 문 앞에 내 몸이 쓰러지느냐 하는 찰나에 놓여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원수의 손아귀에 붙들린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서 죽어가는 우리의 동지가 얼마나 많으며 인류가 얼마나 많으냐 이거예요. 이런 처참한 마당에 놓여 있으면 `하늘이여 나를 살리시오, 땅이여 나를 살리시오, 천지신명이여 나를 살리시오' 하는 최후의 울부짖는 소리라도 지르고 쓰러져야 됩니다. 그 소리나마 지를 생각도 않고 쓰러져 가는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인생이 어찌하여 이렇게 됐느냐? 누구의 죄냐? 눈물을 흘리며 `이놈의 아담 해와'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선조라고 할 수 없으며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하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거예요. 대번에 보면 그저 밀어치고, 대번에 보면 그저 불마다가 있으면 불바다에 집어던지고 싶은 이런 마음에 사무쳐…. 그런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붙들고 나오면서 처리 못 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떻겠느냐 이거예요. 당장에 급살맞아 죽어야 할 후손이 됐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참다운 종교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이 나에 대한 적개심, 나에게 천길 만길 닫힌 이런 철문을 터뜨릴 수 있고 육을 싸고 있는 사탄의 이 철망을 여지없이 짖밟을 수 있고, 이것을 원수삼아 생애의 위업과 더불어 싸워 나가서 이것을 터치고 자유의 해방의 한날을 위하여 나가는 사람이 있었느냐? 내 일대에 안 되거든 내 후대, 천천만 후손까지 이 원을 거듭하여 이것을 끊고 나가겠다고 하는 역사적인 선조가 어디있었으며 역사적인 종족이 어디 있었느냐? 없었다는 거예요. 없었으니 이제 이것을 알아서 내 대에서나마 하겠다 하는 무리가 이 끝날 시대에라도 나와야 하늘의 일이 본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서광의 빛이 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무리가 됐으니 얼마나 억울하냐 말이예요.
오늘날 통일교인은 뭘해야 되느냐? 나에게서 하나님을 빼앗아 가고 참부모를 빼앗아 가고 참가정을 빼앗아 가고 참형제와 참민족과 참국가와 참세계와 참인류를 농락한 이 원수 사탄이 오늘날 나를 사로잡으려고 간교하게…. 하나님을 6천 년 동안 유린해 먹던 이 사탄이는 간교하기 짝이 없어요. 이놈이 갖은 수법과 능수능란한 손길로써 나를 얽어 가지고 지금 소리없이 끌고 가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기가 막혀요.
여기에 만일 구원의 손길이 있고, 이것을 구해 주기 위한 하나님이 있다 할진댄 `아! 하나님' 하며 붙들어야 되겠다구요. `내 가랭이가 찢어지고 내 눈이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죽기 전에는 붙들어야 겠다' 하며 울부짖고 나서는 신앙자들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통한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런 무리가 나와야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점을 세워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나'를 때려 잡아야 돼요.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몸을 굴복시켜야 돼요. 여러분은 얼마나 이놈의 고깃덩이를 미워했느냐? 이것이 닫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 번 찾아왔다가 돌아갔고 만 번 찾아왔다가 돌아갔어요. 예수님도 이 지긋지긋한 고깃덩이를 무시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했고, 모세도 그런 길을 갔고 우리 선조들도 산에서 허덕이고 들에서 허덕였어요. 도의 길을 가는 데는 집 한 채가없어서 밭 한 뙈기가 없어서 방랑하며 처량하기가 말할 수 없는 유랑민이 되었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유랑민이요, 오늘날 기독교는 유랑의 백성이요, 오늘날 남아진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서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돼 있는 것을 오늘의 종교인들이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 유랑의 모습, 여기에서 쓰러지고 저기에서 쓰러지고, 원수의 칼에 쓰러지고 산채로 쓰러지는 무리가 오늘날…. 산채로 쓰러지는 것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쓰러지는 거예요.
메시아는 어떠한 분이냐? 이 고깃덩이를, 이놈의 육을 여지없이 때려 잡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오시는 분이라야 메시아라는 거예요. 앞으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진리는 어떤 것이냐? 마음을 일깨우고 거기에 힘을 가하여 육의 권세를 여지없이 짓밟아 치울 수 있는, 이 모든 조건을 일시에 청산지어 놓을 수 있는, 행동으로 이것을 청산지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진리의 말씀, 그것이 인류가 갈구하는 최후의 진리입니다.
그러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야만 구원할 수 있는 거예요. 종교는 그러한 종교라야 돼요. 그 종교에서 되어지는 말씀은 그러한 말씀, 그 종교의 본질로 나타나는 생명력은 그러한 내용을 내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하늘 것이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 다 사탄 것이예요.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근본이.
그러니 이 입은 맛있다는 길과는 반대로 가야 되는 거예요, 반대로. 전부가 반대로, 반대로 돼 가지고 나중에는 나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기준만 잡혀지면 전부가 반대하는 겁니다. 나라도 반대요, 세계도 반대요, 가정도 반대요, 사회도 반대요, 종교도 반대요, 전부 다 먹는 것까지 반대예요. 먹을 것 못 먹을 것 챙겨 달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제 그러한 시대에 접해 있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처음 여기 들어오게 되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악한 세상에 있어서 죄를 범한 사람들이 그저 어느곳에 한 번 갔다 오면 궁금증이 나서 다시 안 갈 수 없는 그런 작용을 해왔다는 거예요. 이 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작용을 해 왔습니다. 그런 작용을 하는 이 육의 작용이 강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마음은 그런 작용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한 번 갔다 온 데 또 가고 싶고 한 번 갔다온 다음에 또 가고 싶고, 갔다와 가지고 좋고 이런 거예요. 그런데 악한 곳에는 갔다와 가지고 어휴 하면서도 또 간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선한 곳이 있어 가지고 지금까지 한 번 갔다 왔는데 또 가고 싶고 갔다 나오면서도 좋고 가면서도 좋을 수 있고, 기쁘고 기쁘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의 죄악의 길에 있어서 죽음의 길을 찾아 가면서, 이 고깃덩이를 끌고 들어가면서 좋다고 입을 벌리고 날뛰다가 돌아서게 될 때는 한숨 쉬는 그런 자리를 자기도 모르게 찾아가는 무리가 많습니다. 반대로 마음을 중심삼고 한 번 갔다와 가지고는 또 가고 싶고 또 가고 싶고 또 가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갔다 와 가지고는 혼자 준비한다 이거예요. 이게 원칙이예요.
나만 갈 것이 아니라 형님도 동생도 누나도 누구든 전부 다 데려가고 싶다는 거예요.안 가면 멱살을 잡고 때려서라도 끌고 가고 싶다 하는 이런 마음이 계속적으로, 연속적으로 폭발돼 나오는 그런 종교와 상봉하지 못하는 한 인류는 새로운 천지로 돌아갈 수 없고 새로운 구원완성의 간판을 들고 하늘 앞에 갈 수 없는 거예요.
만일에 통일교회가 그런 놀음을 못 한다면 또 가야 돼요, 또 가야 돼. 그러지도 못하면 선생님이라는 말 하지 말라구요, 이제. 선생님이 아니예요. 대사기꾼일 거라구요. 그러기에 또 가야 돼요.
악한 길을 갈까봐 부모들이 말하기를 `야, 이 자식아 가지 말라, 가지말라' 하고 말리는 거예요. 고기가 썩어지는 사망의 구멍이에 들어가 가지고 여지없이, 밑천도 없이 쓰러지는 그 길을 부모가 염려하여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마음이 자꾸 자꾸 좋은데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가지 말라고 하더라도 그 길은 참인데 말이예요. 두가지 형태가 벌어져요. 그런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선 하나의 필연적인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무한한 충격의 원천에 부딪혀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일생도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는 힘의 자극으로서의 기쁨의 감격을 돋구어 가지고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은 그 자리, 그런 곳을 느낄 수 있겠느냐? 그런 곳을 찾았다면,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모가지를 잘라 가더라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말이예요. 여기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만 되게 되면 고깃덩이가 문제가 아니예요. 배 고파라, 굶어라 이거예요. 밥 하루쯤 안 먹는 거야 뭐, 밥먹는 걸 잊어버려요. 이래야 여기에서 사탄의 철망이 벗어져요. 사탄의 사슬에서 벗어난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어요? 그렇게 돼 있어요, 통일교인들? 그런 걸 느꼈냐 말이예요. 이걸 못 느꼈으면 가짜예요. 세상 사람이 안가겠다는 길을 가야 됩니다. 원수를 잡아 죽이고 내게 이익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죽음길도 바득바득 들어가는 거예요. 이런 자신들이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뭣이 있어요? 「예」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알 수 았는 그런 자리에서부터 돌아서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자기를 찾아 가지고 `야! 찾아진 나. 이 고깃덩이의 현실도 얼마나 슬프냐, 사탄의 6천 년 투쟁무대요, 사탄이 6천 년 세계 인류역사를 녹여 나오던 이런 전쟁무대 중에 이것이 총교두보요, 총토오치카였구나. 이 토치카가 나에게서는 여지없이 폭발돼 터져 나갔다' 하는 걸 느껴봤어요? 느껴봤어요, 그런 거? 그걸 느껴야 돼요.
이래 가지고 내가 가는 거예요. 해방된 나로 말미암아 가정으로부터, 종족, 민족으로부터 이것을 역습해 나와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부르짖고 나오는 길이라고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어디 그거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이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걸 느낄 거라구요. 부정할 수 없이 그걸 느낄 거예요. 거기서부터 부활의 역사가 있고, 거기서부터 희생하고, 거기서부터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함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버님 뜻을 위해서예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예요.
아버님은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이와 같은 처참한 사망의 길을 이어 사망의 골고다의 골짜기, 생명들이 쓰러져 넘어가던 이런 죽음의 자리, 이 육의 고개를 넘지 못한 채 수많은 인류는 사탄의 밥이 되었다 이거예요. 그럴 적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돌아서면서 눈물을 뿌리신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아버지께서 눈물을 뿌린 것을 알아야 돼요. 그걸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픈 거예요.
여기에서부터 `이 육의 권한이 무엇이며 세상의 욕망이 무엇이냐?' 하며 이걸 여지없이 때려잡아 가지고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 대신 울어 주고 역사적인 아버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된다 할 때, 그런 사람들이 갈 곳이 천국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돼야만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리를 위하여 우는 것이 아니예요. 민족의 죽음의 고깃덩이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이 고깃덩이를 바라보고 찾아오던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겠으니 내가 대신 그 자리에 가서 눈물흘리며 `아버지 참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그런 자리에 들어가 있어서 미안합니다. 아버지, 참으시옵소서. 이 민족이 그런 자리에 있으니 내가 그런 자리에 가 가지고 대신 가겠습니다. 나중에는 지옥문 앞까지 그런 길이 놓여 있으면 내가 가겠습니다' 하며 그것을 도맡아 가지고 나가 싸우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날 이 시대의 아버지를 생각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릴까봐 내가 대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괜찮습니다. 세계적인 일이요, 천주를 쥐어박는 이 마당에 있어서 요만한 고통이 어디 없겠으며 요만한 쓰라림이 어디 없겠습니까. 아버지, 걱정없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 아버지가 수고의 눈물을 뿌린 그 자국을 생각하며 스스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고통을 대신 당하겠으니 이 시대 앞에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를 왈(曰) 하늘의 효자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왈 하늘의 충신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효자, 충신이라는 것을? 「예」
아버지 대신, 민족을 대하여 찾아가던 아버지의 발걸음이 돌아설 때 눈물자국이…. `나는 돌아서지 않고 이것을 사로잡아서 사탄을 울여서 돌려보내야 되겠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 그럴 수 있는 충신이 있다면 하늘은 `내 아들아!'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겠나요, 안 그러겠나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알았다는 거예요, 그러한 아버지. 그러한 하나님을 만나자는 거예요.
그러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네 발을 펴고 좋은 자리에서 잠자지도 말고 편안한 자리에 앉지도 말라는 거예요. 최후의 일족을 가리어 생사를 결하고 원수와 천국에 가기 위한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하는 거예요. 이런 자리에 나가자는 것이 지금 우리의 움직임이예요. 이러한 기간에 있으니 얼마나 역사적인 일이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느냐?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에게 그 심정을 가르쳐 주려니 복귀원리가 나오는 거예요. 복귀원리 배웠지요, 복귀원리?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가정을 찾아왔다가도 눈물을 뿌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눈물 자국 위에 내 눈물을 어이 안 뿌릴 수 있겠느냐? 가인과 아벨을 찾아오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가셨어요. 철천지 한이 맺힌 자리에서 원한의 눈물을 뿌리고 가신 아버지! 그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가지고 눈물 뿌리는 그런 아들딸이 있게 되면 하나님은 간장이 녹아난다는 거예요. `내가 아담에게 찾아가서 복빌어 주고 싶었던 것을 네게 해 주겠다, 아벨을 세워 약속하던 그 승리의 선물을 네게 주겠다' 하실 것입니다. 안 그러시겠어요? 노아, 아브라함, 모세를 찾아왔다가 눈물을 뿌리고 돌아선 아버지의 그 모습 싸움터 위에서 아버지께서 눈물 흘리며 돌아서던 그 아버지의 신세를 알고 그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역사적인 노정에서 방황하는 사나이가 있다 할진대 이는 하늘의 왕자요. 하나님의 역사적인 모든 복을 갖다 주고 싶어하는 대표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발견하여 아담을 찾아가던 아버지의 입장에서 울어 주고 가인과 아벨을 거쳐서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모세, 예수,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예수와 성신과 삼위신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던 그 장면, 그 눈물, 그 심정을 알아 가지고 눈물 흘려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탄식의 눈물이 아니예요. `그 아버지를 어이하여 못 만났던고? 나는 그런 긍지를 어찌하여 갖지 못하였던고? 한하고 분합니다' 하며 마음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런 사람이 있어서…. `내 일대에 있어서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의 한이 맺혔다면 나를 보시어서 그 한을 풀으시옵소서' 그럴 때 `오냐, 오냐, 오냐, 오냐' 할 수 있는, `오늘 이 시대를 찾아오시던 6천 년의 역사가 이렇게 되었으니 아버지여, 그 심정에 사무친 한이 이러하지 않습니까?' 할 때 `오냐, 내 아들아! 오냐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그리워….
인간으로서 그런 자리에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 할진대는 무슨 희생이 있더라도 가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요,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 봤느냐?
`어이하여 아담 시대에 찾아오던 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였으며, 어이하여 가인 시대에 찾아오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였으며, 노아 시절에 찾아오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였던고?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시대에 찾아왔던 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였던고? 몇천만 번 배반하여 쫓아 버린 이 역사적인 배반자의 후손이 되었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 하며 통곡할줄 아는 무리가 이 천지 간에 나타나면 그 무리는 망하지 않는 무리가 된다는 거예요.
`아버님, 나는 원합니다. 우리는 원합니다. 아담을 찾아오던 그 한을 나를 통해서…. 아버지여, 제가 아담 대신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가인과 아벨 대신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역대 우리의 조상들이 잘못한 모든 죄악을 오늘 내가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할 때 `오냐, 오냐, 오냐, 오냐' 하며 자기의 체면을 잊어버리고 통곡하는 입장에 선 그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자가 이 천지간에 나오면, 민족을 대표하여 그런 입장에서 아버지를 모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를 대표하여 그런 분이 나온다면 인류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원리를 배우는 것은 아버지와 상봉하기 위한 여러분들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싸우는 것은 어찌하여 싸우는 것이냐? 시대적인 하나님의 눈물자국을 내가 책임지기 위하여. `당신은 오늘의 한이 이러하지요? 민족을 대한 한이 이러하였고, 이 민족을 찾아오다가 과거의 선지자들을 찾아오다가 눈물을 흘렸던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이 당대에서도 이런 입장에 선 아버지가 될까봐 두렵사오니 내가 대신 싸우겠습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싸워야 됩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 앞에 외치는 선생님도…. 여러분이 복귀원리를 배워서 알았지만 오늘날 선생님 일대에 대한 탕감원리는 모르고 있어요. `그런 시대적인 한을 품고 있는 아버지의 한을 내가 맡고 내가 밝히기 위해 내가 찢기고 내가 눌리면서 아버지의 눈물의 흔적을 내 몸에서 거두어지게 하겠다. 원수를 굴복시키어 한 생명에게서라도 아버지의 눈물자국이 없게 하겠다. 내 일대에 있어서의 시대적인 눈물을 거두어 주겠다'고하며 허덕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이 시대에 있어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래요.
그러니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한 아버지입니까? 이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를 갔고, 몰림의 자리 처참한 자리를 갔고,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눈보라 치는 날에도 아들딸들을 얼마나 찾아 헤매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에 나가 전도하게 될 때 서글픈 날도 있을 것이고, 혹은 하염없는 눈물이 자기 눈앞을 가리어 앞을 바라보기에 캄캄하고 자기의 몸을 가눌 수 없는 자리에 부딪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적마다 여러분들은 `이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 아무개가 아닙니다. 당신도 이와 같은 자리를 몇만 번 몇천만 번을 당하였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나로서 이것을 당하지 말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이런 환란을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환란을 대신하여 내가 탕감의 제물로 올라서 이런 환란도상에 서서 이러니, 나는 이렇지만 당신은 부디 그런 자리에 서지 마시오' 하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할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서 여러분 앞에 고난의 길, 핍박의 길을 가라고 하는 거예요.
이 불초한 것이 하늘의 거룩한 성지에 아버지 대신 눈물을 떨어뜨릴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 황공하다는 것입니다. 이 팔이 떨어지고 이 몸이 녹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거룩한 성지에 아버지의 눈물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대신하여 이 내 한 몸이 쓰러질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굶주린 자리에 서게 될 때 그것은 내가 굶주리는 것이 아니예요. `이 굶주림은 3천만을 대신한 것이요, 3천만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대신한 것이요. 30억에 가까운 이 인류가 그런 도탄 중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대신하여 내가 이런 자리에 섰사오니, 그를 찾아가는 아버지의 신세가 이런 것이어늘 오늘날 나로 하여금 사탄 앞에 원수의 조건을 세워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 나를 세워 주십시오 '이렇게 울부짖고 나서는 무리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인것입니다.
`몰려오는 폭풍우야 불어와라, 시베리아의 모진 원수의 바람결이 총알같이 삼천만을 쓸어나갈 수 있게 불어와라!' 이러면서 대신 눈물지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눈물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이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그가 그런 자리에 눈물 떨어뜨릴 적마다 하나님이 통곡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서면 선생님도 통곡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지방에 개척 전도 내보내고 내가 밥을 먹다가 그런 걸 느끼면서 운 적이 많아요. 하늘의 백성들이 어찌하여 이런 고난 길을 기는가? 도탄 중에서 환난 가운데서 몰아내는 무리가 어찌하여 환란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민족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개척하고, 예수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못했던 것, 예수 일대의 세례 요한의 죄까지 탕감해야 되고 다시 이제까지의 민족적인 책임을 탕감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의 길이 이렇게 겹쳐 나올걸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걸 느끼면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 이 민족 앞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자체 내에도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부디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하늘을 배신하지 말라는 거예요. 입술을 혀를 깨물면서라도 하늘을 무심타고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이것이 통일의 정신이예요. 이것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제사장의 책임을 대신하고 나선 우리의 길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어요.
그런 자리에서, 밥을 못 먹어 눈물을 흘리는 자리가 있다 할진댄 나는 울지 않더라도 하늘은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찬방서 새우잠을 자는 여러분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쉬지를 못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였거늘, 대자대비하고 무궁무진한 사랑의 주인공이라 하였거늘, 당신을 위하여 그런 눈물을 흘리고, 당신을 위하여 염려하여 우는 자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간장이 녹아 나겠나요, 안 녹아 나겠나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우는 자리는 거룩한 자리예요. 내가 싸우는 자리는 거룩한 자리예요. 내 핏방울이 떨어질 적마다 이것은 아버지의 핏방울이요, 내 눈물방울이 떨어질 적마다 이것은 아버지의 눈물이요, 내 땀방울이 떨어질 적마다 이것은 아버지의 땀방울임을 느끼라는 거예요. 이것은 사탄이 점령할 수 없는 땀이요, 피요, 눈물입니다. 아벨의 피가 하늘을 대하여 호소하거든 오늘 우리 통일교회의 성도들이 가는 길에서 떨어뜨리는 눈물도 아벨의 피 대신 호소할 줄 아는 눈물을 만들자, 땀도 호소할 줄 아는 땀을 만들자, 피도 호소할 수 있는 피를 만들자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라 내 몸이나마 산제물로서 호소하는 제물이 되자는 거예요. 이 얼마나 엄숙하고 거룩한 놀음인가?
여러분이 이런 자리에 서야 돼요. 하늘의 복은 무슨 복? 복받겠다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어요. 복은 받아 둔 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얼마나 거룩하고 얼마나 내게 고마운고? 과거를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과거의 나는 악질 분자요, 불한당의 괴수요, 죄악의 결실체로 천만 가지의 벌이 있다 하면 그 벌을 혼자 한 시간에 다 받아도 마땅한 나였다는 거예요.
이 몸이 아버지의 눈물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니 이 자리가 얼마나 거룩한 자리예요. 이 몸이 아버지 대신 나설 수 있다니 얼마나 복된 자리예요? 이런 걸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 앞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3년 간 이런 도상에 있어서, 이렇게 나가는 건 역사적인…. 선생님이 때를 모르는 것이 아니예요. 국가의 운명이, 국가의 운세가 이렇게 되어 들어가면 통일교회의 운세가 이렇게 된다,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가 3년도상에 있어서 목을 걸고 춤을 추고 넘어가고 있는 이 판국에 우리는 거룩한 이 땅에 있어서, 아까 말한 이 세계적인 역사상에 있어서 불쌍한 자리의 계신 하나님 대신 울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과거의 역사적인 하나님을 여기서 위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시대적인 여러분을 찾아오는 하나님 대신 내가 눈물을 흘릴 줄 알고 대신 맞아줄 줄 아는 사람이 돼야 돼요. 그렇게 된다면 천지는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축복은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되찾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걸 자신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20세기의 기적을 이루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돈이 한푼 있어요? 대한민국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이런 놀음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거예요. 돈 한푼없어요. 피를 팔고 살을 깎아 가지고 소수의 이 한 집단이 오늘날 이 3년 과정에 있어서, 모질고 억센 바람과, 그저 몸을 원수삼아 우리가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이 한자리를 맞이한 집단이라는 거예요. 20세기의 기적이 있다 할진대 이 이상의 기적이 없어요. 원수의 도성이 무너져 칼을 들고 왔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굴복하고 머리를 숙여 항복하는 거룩한 자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여기에서부터 역사는 벌어지는 거예요.
높은 자가 낮아지고 낮은 자가 높아지고 하늘을 대신하여 눈물 흘리는 자에게 그저 여지없이 굴복을 하는 거예요. 이런 움직임이 하나에 수를 더하여 둘, 둘의 수를 배가 하여 넷, 넷이 배가하고 첨가되어 방방곡곡마다 움직이는 이 운세가 퍼져나갈때 이 민족은 다시 일어서서 나가는 거예요. 거룩 거룩한 이런….
선생님은 여러분을 지도하면서 본부에 돈 한푼 없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구요. 어느 누가, 3천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 가운데 민족을 위하여 피를 팔며 나가 싸우려 할 자가 어디 있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진하여 피를 팔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어요. 그럴 적마다 속으로는 `아버지, 걱정마십시오. 우리는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사오니 걱정 마십시오' 하며 이 민족을 향하여, 더우기나 불쌍한 이 민족, 우리들은 최고의 불쌍한 자리에서 불쌍한 자리를 염려하며….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을 놓고 탄식하여 눈물 흘리고 쓰러지는 판국에 놓여 있는데, 우리들은 세상을 등지고 하늘의 눈물을 대신하여 자탄할 수 있는 자리에서 행복의 나라를 소망하며서 만민을 위하여 축복을 빌어 주겠다는 붉은 주먹을 내밀고 버티고 있는 겁니다.그런 사나이가 있다 하면 이 사나이는….
또,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자 하면 죽을 무리들이 많아요. 죽자 하면 죽을 무리들이 많아요. `민족적으로 싸울 수 있는 곳은 우리들이 가겠습니다. 민족이 움직이는 날에는 세계를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곳은 우리들이 가겠습니다' 하며 송장 떼거리를 향하여 나서는 걸음걸이를 하려니…. 송장을 장사해 버리려니 썩어진 곳을 찾아들어가야 거예요. 맨 밑창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야만 우리는 역사적인 하나님을 모실 수 있으며 시대적인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요. 억울한고 슬픔의 눈물만 흘리던 그 아버지 앞에 나로 말미암아 억울한 눈물을 끝내 버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맞게 될 때, 여기에서부터는 새천지가 벌어지고, 그런 우리들로 말미암아 새천국이 건설도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선생님 말한 것을 새겨 가만히 보라구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진짜 그렇다면 말이예요, 그런 사람이 됐다면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모른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예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예요.
선생님이 이 길을 걸어올 때 죽을 고비를 많이 겪었어요. `이제는 마지막이니까 이것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올려놓고 올려놓고…. 이래서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문선생이예요. 세상으로 보면 한이 많아요. 원수들이 많아요. 지금도 죽으라고 기도하는 무리들이 많아요. 이놈들은 어떻게 하든지 그저 문선생을 없애 버리려고 별의별 간교한 수단을 다 쓰는 거예요. 그러나 안 없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살아 있어요.
열 번 죽을 길로 몰아넣었지만 열한 번 살 길을 하나님은 마련해 주더라 이거예요. 죽으라고 몰아넣어서 죽는 줄 알았더니, 죽어서 사라진 줄 알았더니 또 살아 나오는 거예요. 오히려 죽으라고 내몰던 사람들이 죽어 버리고 말더라 이거예요. 그래, 이북에서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을 반대하던 녀석들 지내고 보니 급살맞아 죽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여기 들어올 때 통일교회 편 돼서 들어온 녀석이 어디 있어요? 전부 다 원수의 눈을 가지고 왔단 말이예요. 한칼에 모가지를 자를 수 있는 원수의 눈을 가지고 `가 보자' 해 가지고 온 껄렁패들이예요. `뭐 어떻고 어떻다고 한대. 가 보자!' 해서 원수로 왔던 사람들이 칼을 꽂아 놓고 항복을 해 가지고 다시…. 이 칼을 돌려 꽂아 가지고 진격하자는 것이 통일교회 무리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편 되기 위해서 왔어요, 전부 다?
그런 권위가 여기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자면서도 이를 악물고 원한에 사무쳐 이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이 무리가 한을 풀 날이 있을 거예요. 이 마음의 한이 거두어지지 않는 한,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게끔 자꾸 이런 한이 생기는 한, 한때에 한을 풀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돼요. 선생님은 무골충이예요. 지금까지는 뼈없는 사람같이 맞고도 또 맞고 이렇게 몰려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점점 올라오는 거예요. 밑창에서 올라와 가지고 이제는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점점 최고의 문제가 되는 거예요. 최후의 철장을 지느냐 안 지느냐 하는 이런 입장에 있어요. 넘어가느냐 못 넘어가느냐…. 통일의 용사들이 이 민족 앞에 새 깃발을 드높이 들고 우렁차게 행진할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금년도 지금 그런 싸움을 하고 있다구요. 이러한 거룩한 싸움, 성전(聖戰)을 하고 있어요. 성전. 거룩한 싸움이란 말이지요.
이런 성스러운 전장에 여러분이 칼을 빼들고 몸을 던질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라는 걸 생각할 때 얼마나 멋져요? 여러분들이 이러한 칼을 빼든 아낙네가 됐다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거예요? 이걸 뺐으면 가차없이 잘라라 이거예요. 자르는 데는 주먹으로 자르는 것이 아니예요. 들어넘기는 거예요. 구멍을 뚫어 뒤집어라, 그 도성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성이 철문으로 되어 있거든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화약을 가지고 폭파시켜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작전을 하는 거예요. 매를 맞아도 가만히 있고 욕을 해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못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명령만 내리면 큰일날 거라구요. 그러한 무리로서 나가 싸우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이 민족을 위해서 많이 통곡하고 이 땅을 위해서 슬프게 울고…. 이제는 이러한 책임을 졌기 때문에 내가 통곡을 안 해요. 나 홀로 기도할 때는 통곡을 안 해요.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3천만은 우리의 손아귀에, 30억은 오늘날 이 시대의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없었다면 아버지께서는 또다시 찾아가시기에 얼마나….' 하고 기도한다구요. 아버지께서는 무형의 신이기에 이들을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상징적이 아니라 형상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이 원한의 세계를 역사적 노정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 우리 시대는, 이제는 악한 사람도 녹여 낼 수 있는 우리의 말씀을 가지고…. 악한 사람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재료를 가졌으니 안 들으면 멱살을 잡아서 듣게 해 가지고 `그래, 안 그래?' 할 때, `옳습니다' 할 수 있는 이런 재료를 가졌으니 얼마나 멋져요? 여지없이 무찌를 수 있는 거예요.
또 여기에서 생각할 때, 선생님이 한 12년 전에 이 길을 출발하면서 저 범일동에 선생님이 집을 지었어요. 제비둥지와 같은 집을 지었습니다. 부산에서 제일 꼬라비, 꼬라비였어요. 집을 짓는 데는 삽이 있어야지요. 삽을 빌리려 해도 빌려 줘야지요. 피난민들이 전부 다 돈만 생긴다면 다 팔아먹으니까 안 준다 말이예요, 이게. 전부 다 그런 녀석들인 줄 알고.
동네는 전부 다 집을 지었는데 선생님은 삽도 없지 돈도 없지 어떻게 해요? 삽이 있어도 안 주는 거예요, 부엌에다 갖다 숨겨 놓고. 그래, 할 수 없이 부삽으로 했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삽이 이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런데 이게 전부 이렇게 되었다구요. 이게 전부 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래서 요만한데, 여기는 이렇게 깨져나가고, 요건 떨어져 나가고, 이런 것 가지고 했다구요. 곡괭이가 있어야지요. 그런 삽 가지고 터를 닦았다구요. 또, 벽돌 만드는 기계가 있어야지요. 그걸 빌려 주지 않아요. 그래서 미군부대 가서 레이션 박스 있잖아요? 그걸 가자다가 귀퉁이를 째 가지고…. 뭐가 있어야지요. 이걸 펴 가지고 넓혀 가지고, 흙을 파다가…. 그놈의 집을 지어 보라구요. 흙이 참 많이 들어간단 말이예요. 이만한 것 가지고 가서 이겨보면 한 덩어리밖에 안 돼요. 그래 가지고 제비둥지 같은 집을 지었어요.
그때 모일 때, 저 이북에서부터 만났던 식구들이 이남에 내려와 가지고 패잔병이 되었어요. 옛날의 선생님을 잊지 못해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주일날이면 그곳에서 예배를 봤어요. 집은 조그만한데 그 집이 얼마나 유명한지 몰라요. 누가 땅을 주나요? 그러니까 산비탈을 깎아 가지고, 누가 말하지 않으니 산비탈을 가로 따 가지고…. 비가 오면 말이예요, 그 방에서 샘이 솟아요. 얼마나 멋져요, 이게. 아주 최고의 21세기의 문화주택이예요, 이게.
그러니 할 수 있나요? 이놈의 땅을 한 반자쯤 파 가지고 돌을 갖다가 수문을 내는 거예요. 수문을 내 가지고 그다음에는 그 위에다 온돌을 놨어요. 그 온돌 아래에는 샘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런 유명한 집이예요. 그렇지만 태평천국이예요. `아이고, 어찌하여 이런 신세가 되었던고! 옛날 하늘의 축복의 약속을 보게 되면 천지를 주름잡고도 남을 수 있는 약속이었는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떨어뜨렸노!'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감사합니다. 어젯날은 그랬지만 오늘은…. 나는 이 하늘과 땅을 무대로 삼아 하늘과 땅이 바라보는 거기에 있어서의 한 주연 배우가 되어서 움직인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천지와 호흡하면서 명령하고….'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부두노동 하던 때예요, 부두 노동. 옷은 미군 작업복 하나를 위에다 입고 그다음에 즈봉은 시퍼런 한복, 곁바지 같은 것을 입은 거예요. 여름에는 있을 수가 있나? 속은 곁바지 입고 겉에는 시퍼런 것 입고 그렇게 다녔어요. 아주 그거 멋져요. 고무신짝을 떡 들고 나서면 아주 근사하지요. 아주 동양식 서양식 합했다 이거예요. (웃으심) 그래도 그걸 입고 갈 데 다 가는 거예요.
내가 2월에 피난 나왔는데 피난 중에도 우리 통일교회는 감옥 끝으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피난생활 가운데도 제일 힘들지요. 그런 생활을 했어요. 이건 밤에는 잘 데가 있어야지요. 부산에 내려가니 인산인해가 돼 가지고 어디 뭐 구멍 있는 데는 다 들어가 박혔고 어디 뭐 있을 만한 데는, 처마끝까지 전부 다 만원이거든요. 그러니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거기에 가서 또 끼어 자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밤에는 밤일을 나가는 거예요, 낮에는 자고. 거 밤에 떨던 생각이 지금도 아득해요. 그러던 때라 저녁에는 아주 춥거든요. 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런 때도 선생님은 `아버지 걱정 마시옵소서, 아버지의 가신 발자국을 내가 기쁨으로써, 탄식으로 걸어가신 아버지의 발자국을 소망으로써 이을 수 있는 내가 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렇게 일해 가지고 돈을 이렇게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디를 가나 춥거든요. 그러니까 팥죽 파는 아주머니한테 가는 거예요. 초량역으로 쓱 나오면 팥죽장사 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아요. 누더기 이물을 싸 가지고 통이 식지 않게 해 가지고 와서 파는데 그 팥죽통을 끌어 안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 아주머니가 뭐라고 안해요. 팥죽도 잘 팔아 주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세계를 꿈꾸고 있는 이런 사나이가 선생님은 자기를 잘 안단 말이예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선생님은 노동자도 되어봤어요.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해요. 곡괭이를 들게 되면 광부도 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동바리도 잘 세우지요. 탄광에 가서 광부와도 전부 친구가 되는 겁니다. 거기서 교육을 다 시켰어요. 그게 얼마나 멋지냐 말이예요. 내 이 거룩한 인생행로, 남아일생의 행로에 있어서 인생들이 가지 못하던 그런 곡절의 노정을 갈 수 있는, 한 기록을 남기는 인간철학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인간철학. 인생철학이 아니예요. 인간철학이니 생활과 모든 쓰레기 구덩이도 다 파는 거예요. 자기의 마음세계에서만 허덕이는 인생철학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인간철학이예요. 생활분야의 특별한 그런 면에서 곡절의 모든 것을 풀고 나가는 이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오바를 말이지요. 이북에서 가지고 온 오바, 옛날에 중학교 시절에 입던 오바를…. 피난 나올 때야 뭐 어디 있어야지요. 그래 그걸 입고, 단추가 이렇게 쭉 달린 거예요. 그 오바를 입고 있는데, 이놈의 팔이 참 짧았으면 좋겠더라구요. 춥거든요. 그래서 소매에다가 팔을 이렇게 하고는 거리에도 다녔어요. 쓱 다니면 다들 쳐다봐요. 거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김삿갓 할아버지가 되어서…. 그런 생각도 해요.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문서방' (노래 가락으로 하심) 얼마나 멋지냐 말이예요. (웃음) 그 맛이 아주 실감이 나거든요.
거기에서, 그런 자리에 있어서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도탄중에서 하늘을 원망하고 자기 일개인의 일생을 원망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거예요.
또 감옥소에 들어간 생각을 하면…. 똥통 옆에서도 잘 잤어요. 어젯날에는 비단 저고리 입고 척 앉아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늘은 똥통 옆에 척 들어가 가지고 잠도 잘 자거든요. 밥을 주면 그걸 하나도 안 남겨요. 처음 들어오는 녀석들은 밥을 한 일주일 못 먹는 거라. 그저 숟가락으로 떳다가는 놓고 그러는 거예요. 이거 왜 그러느냐? 그런 생활이 적응이 안 되거든요. 창살을 내다 보니 이게 무슨 적막강산이냐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밥 주면 그저 부들부들 떨면서 먹는 거예요.
선생님은 감옥에 가게 되어도 아주 전문가란 말이예요. 밥이 들어오면 그저 모조리 . `아이고, 맛있다! 하면서 먹는 거예요. 잘 먹어 둬야 사탄하고 싸우지. 거기에 있어서도 `나는 살아 있습니다' 하는 겁니다. 빨갱이들한테 강제노동을 당하는 자리에 있어서, 죽으라고 다 강제노동시키는 거기에 있어서도 `나는 살아 있습니다. 다 죽어도 나는 안 죽습니다' 하는 거예요. 얼마나 멋지냐 말이예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삼천만이 전부 다 반대하는 거예요. 잡아먹어라, 먹을 수 있으면 먹어 봐라 이거예요. 그러나 가서 한 1년 만 같이 있으면 녹아난다구요. 1년까지도 안 가요. 몇 개월만 같이 있으면 녹아난다 말이예요. 내가 빨갱이라면 빨갱이를 만든다 그 말이지요. 몇 개월만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같이 살면 그저 괜히 좋아하거든요. 몇 개월만 되면 녹아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학생시절에도 그렇게…. 지금은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해서 아주 쓸만한 신사같지요? 학생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구요. 고물상 찾아가는 거예요. 왜 그때는 그랬느냐? 쪽 빼고 다니면 아주 시끄러워서 못 견딘다구요. 이건 알록달록한 각시들이 매일 따라다녀요. 골목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걸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더벅머리 총각으로 구석진 길로 다녔어요. 왜? 사나이로 태어나서 어떠한 맹세를 했으면 맹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지요. 그 기반을 못 닦아 가지고 뭐 찝적거리고 돌아다니면 무슨…. (녹음이 잠시 끊김)
그때 선생님이 7년 동안 자치생활 했어요. 돈이 없어서 한 게 아니예요. 그 여자들을 알아보려고 그런 거라구요. 절대 더운물 가지고는 안 하는 거예요. 찬물, 그저 두레박으로 찬물을 펴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손이 짝짝 붙어요. 이래 가지고 쌀도 씻고 이런 놀음을 많이 해봤어요.
그러면서 학생시절에는 첫번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고향에 안 갔어요. 방학이 되더라도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안 가는 거예요. 가고 싶은 생각이야 있지만 이미 각오하고 길 떠난 사나이의 갈 길이 있는데 자기 고향을 믿고 사는 사나이가 사나이냐 이거예요. 안 갔어요. 그래 가지고 방학 때는 뭘하느냐 하면, 자취하면서 그 놀음 하는 거예요.
떡 엎드려 가지고 있는 거예요. 동삼삭이라서 추울 때 아니예요? 추울 때는 이불을 쓰고 공부하다가 추우니까 전구를 떡 품에다 품고 자는 거예요. 끼고 자다가…. 맨 처음에는 뜨거운 줄 모르거든요. 이렇게 자다가 익어 가지고 요만큼 불이 났다구요. 그렇게 다 뜻이 없이 살았으면 그저 처량한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전부 다 자기 재산이라는 거예요.
지금도 길가에 척 가게 되면 친구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아는 친구가 아니예요. 길모퉁이에서 노동자의 신세가 되어 가지고 일거리를 찾는 그런 사나이들도 친구예요. 선생님도 그런 놀음 해봤단 말이예요. 내가 대번에 데리고 가서 너 돈을 얼마 벌고 싶은지 물어 보고 돈을 주고 싶다 이거예요.
내가 어제 저녁에도 광주에서 얘기했지만 더우기나 이 아가씨들, 이런 사람들이 전차나 버스에 타게 된다면, 땀내나고 무슨 냄새나는 이런 노동자가 옆에 와 있으면 자꾸 이렇게 밀치고…. 이 통일교인 쌍간나 자식들도 그러면 대가리를 까 버릴 거야. 왜 그래야 되느냐?
보라구요. 선생님도 그런 생활을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내가 그렇게 사는 걸 볼 때 얼마나 통곡했겠나 말이예요.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금이야 옥이야 기른 아들이 그렇게 사는 걸 볼 때 얼마나 통곡했겠느냐 말이예요. 그런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에게도 어머니가 있을 것이고 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 부모가 저렇게 처량한 노동자 신세가 돼 가지고 지게 짐을 지고 구루마를 끌면서 생계를 꾸리는 아들의 입장을 본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느냐?'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남과 같지 못하여, 왜 남과 같은 팔자를 타고나지 못하여, 남은 뭇사람의 양을 받으며 돈을 뿌려 가면서 살 수 있는 입장이 되었는데 어찌하여 내 아들은 저렇게 생겼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부모의 가슴이 편안하겠느냐 말이예요. 어때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또 그뿐만이 아니라 그 아저씨를 가만히 보면, 그 아저씨를 생명을 걸고 기다리는 그 아저씨들의 아낙네가 있어요. `애기 아버지가 왜 안 들어올까?' 하며 하루에 몇푼 벌어오는 거기에 생명을 걸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거룩히 승리하여 한푼이라도 더 벌어 들어오기를 비는 그런 아주머니가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예요. 나이 어린 아들딸들은 그들을 대하여 아버지라 할 것이며, 아버지는 그들을 대하여 아들딸이라고 하는 여기에도 무슨 차이가 있어요?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그걸 생각해야 돼요. 절대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인간을 인간 대우할 줄 알아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통일교회 여자들이 돼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요것들이 그저 입에다 뭐 알록달록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 없나? 뭐 지지고 볶고 뭐 이건 양단이니 비로드니, 그것은 고급이니 중급이니 인조니 가짜니 무슨 뭐 나이론이니 레이온이니 해 가지고…. (웃음) 입는 것이야 아무것을 입고 두른 것이야 아무것을 두르면 어때요, 마음씨에 있어서 남이 갖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아들딸은 망하지 않아요. 이 시대에는 이렇게 살지만 3대를 지나고 7대의 그 후손들은 반드시 꼬리를 치고 다닐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것을 체험해야 돼요. 인간의 맛이 나는 이런 통일교회의 아들딸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선생님도 이렇게 했기 때문이예요. 그거 다 아주 훤하지요. 훤해요. 더우기나 입동시절 찾아들 때는 제일 불편한 게 많아요. 더구나 비가 오지 바람은 불지 감기 기운은 돌지, 이래 가지고 찬방에서 콧물은 찔찔 나지 할 책임은 많지 배는 고프지 입은 것은 없지…. 옛날에는 천장을 바라보면 파리가 친구였는데 파리도 다 도망갔단 말이예요. 여름철에는 파리도 친구예요, 외로울 때는.
이걸 바라볼 때 요때가 제일 불편한 때라는 거예요. 이때 낙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길은 우리의 스승들이 간 길이요, 선생님이 뜻을 붙들고 가는 길이니 여러분들도 심정 일치점을 그런 기준에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범일동에서 그렇게 집을 짓고 세 사람이 모여서 전도하고 기도하고 그랬어요.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할 때는 선생님이 세 사람을 놓고 기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세 사람이 아니라 삼천만 명으로 생각했어요. 지금 이 사람들에게 얘기하지만 현재 수억의 기독교인과 수많은 인류를 대신하여서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얘기할 때는 세 사람을 놓고도 그저 땀을 흘리며 얘기하는 거예요, 동네가 떠나갈 것 같이. 주일날만 되면 `저 녀석 또 야단하는구나!' 그렇게 얘기했다구요. 아니, 무릎을 맞대 가지고 소근소근 귓속말로 해도 다 알 텐데 그저 저 우물까지, 한 백 오십 미터되는 우물 곁에 있는 아주머니한테까지 들리게 하는 거예요.
공문을 척 붙여 놓고 주일날이면, 그 동미 교회 다니던 아주머니가 말을 척 들어 보고는…. 주일날마다 그렇게 들으러 오는 아주머니들이 있어요. 왜 그러느냐? 총각들이 자취하는 방에 들어오기가 거북하다는 거예요. 들어와 보니까 엉망이라는 거예요. 말은 세상에 없는 말, 그저 세계가 들락날락하는 말을 하는데 앉은 모양을 보니 처량한 거라 이거예요. 얼마나 처량한지 모르는데 뭐 세계를 통일하고 뭐 어떻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고 천국이 왔다갔다하고 뭐 지옥이 무너지고….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미친놈 아니예요? 미친놈이 아니고는….
그래도 신나더라 이거예요. 내 아버지는 살아 있는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 아버지를 모시운…. 심각하다는 거예요. 또 그래도 가만히나 있었나요? `아, 범일동 꼭대기에는 사탄 괴수가 나왔으니 기성교인들은 가지 말라' 해 가지고, 이건 뭐 소리없이 가만 가만히 예배만 봐도 벌써 전부 다 알고, 그 동네 교회가 전부 다 알아 가지고 전부 다 가지 말라고 수근수근 하는 거예요. 그러나 `잘들논다. 사탄이가 냄새도 잘 맡는구나, 오뉴월 똥파리처럼' 그러고 있었다구요. (웃음) 다 알거든요.
그래도 절대 낙망하지 않았다구요. 두고 보자! 그래, 범일동에서 내가 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는데, 사탄의 멱살을 잡고 배를 칼로 찌르고 싸우는 이런 입장에 서 가지고 영적으로 많이 격투를 했어요. `이 싸움에서 너희들이 이기지 못하는 한 너희들은 한날에 굴복할 날이 있을 것이다' 하면서 싸운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출발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서울에 와 가지고…. 북학동에 가게 되면 아주 훌륭한 집이 있다구요. 거기는 세대문 집인데 아주 뭐 방이…. 여기는 아주 방이 크다구요. 거기 들어가 앉으면 아주 뭐, 이렇게 엎드리면 벽에 이마를 맞대고 있어야 돼요. 그런 방에다 간판을 붙이는데`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얼마나 멋지냔 말이예요. (웃으심) 거기에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불과 여섯 사람밖에 안 돼요. 여섯 사람 일곱 사람이예요. 열 사람 미만이예요.
이래 놓고는 모여 앉으면 또 동네가 요란하게 야단하는 거예요. 동네사람들이 `저 미친 녀석들' 하고 간판을 보고는 `허허허,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하는 거예요. 우습지요. 그런 처량한 걸음을 많이 걸었어요. 우리가 교회 간판도 제일 커야 하고 교회도 제일 큰 교회여야 하는데 간판도 제일 형편이 없었고 교회도 제일….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은 형편없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낮이건 밤이건 산에 올라가 기도 하는 거예요. 사탄의 목을 조르면 모가지가 달아나는 것이 느껴진단 말이예요. 하늘을 잡아채면 하늘이 굴러 내려오는 게 느껴진단 말이예요. 땅을 들이 차면 뚫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말이예요. 꽝 치면 휙─…. 그런 용기가 있는 거예요. 두고 봐라! 그렇게 나온 거예요. 거기에는 뭐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나는 거예요. 그저 `와와와와' 하는데 누가 죽으려고 하는 소리예요? 그렇게 가는 겁니다. 가는 곳곳마다…. 그게 뭔지 알아요? 여러분들 깨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깨라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지금 한 12년 쯤 나오고 보니 이제는 이 나라에서 무시할 수 있는 시절이 지나갔어요. 당국에 있는 관리들 대해 뿔개질을 많이 했어요. `너희들이 나라를 사랑하느냐? 우리도 나라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데는 너희들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너희들은 이렇지? 이러이러한 것이 너희들의 정체야. 그렇지만 우리들의 정체는 이러이러하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얘기를 하거든요. 지방에서는 그저 매를 맞아 뼈다귀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고 먹을 것이 없어 피를 세 번 네 번 팔아 가지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 부락민을 위해서 피를 팔아 먹으면서 일한다는 얘기를 하면, 전부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거짓말이면 당장에 전화해 봐라 이거예요. 이래서 이제는 많이 알고 있다는 거예요.
또 수천 명을 동원시켜서 전도하니 통일교회는 돈이 무진장 많다고 그러면서 빨갱이라는 거예요. 이북이 배후선이 돼 있어 가지고, 무진장한 보급로가 있어 가지고 돈을 잘쓴다는 거예요. 우리가 오토바이타고 자전거 타는 것이 큰 문제예요. 이러니 동네에서 몇 번이나 조사한지 모른다 말이예요.
알아보니 금식해서 했고, 서울에서 온 우리들의 차비를 전부 다 모아 가지고 했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지방에서는 차타고 올 것을 전부 다 투벅투벅 걸어왔지요? 응? 3백리4백리 길을 먹지 않고 걸어와서, 그 핏값을 모아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산 줄 몰랐다 이거예요. 세상에 이런 곳이 있느냐 이거예요.
이번 여름방학에도 시시한 얘기하나 하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돈이 많다고 그러니 `이 녀석들아, 돈이 많아?' 하며, 어떤 아주머니는 발을 벗고 보여 주며 `봐라!' 하면서 보여 준 거예요. 천 오백리 이상을 걸어다녔기 때문에 전부 다 부르터 가지고 가죽이 전부 다 죽어 붙었거든요. 그걸 보고 `아이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할 조건이 많다는 말이예요.
우리는 선전이 필요치 않아요. 엊그제 신문 보니 정읍에서 무슨 흰뱀이 하나 나왔다고 신문에 아주 떡, 동아일보에 크게 났대요. '아, 이거 흰뱀만도 못한 통일교회는 아닌데…. 이런 생각도 했어요. 이곳은 어떤 녀석들이 찾아와 가지고 수천 명이 대한민국을 들썩들썩 하도록 만드는데 이놈의 신문쟁이들은 다 어디갔나? 이놈들. 잘한다 이거예요. 절대 너희들이 선전하지 말라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이번 금년 동계에는 6천 명을 움직여 가지고 임지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가만히 두고 보자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기성교인들은 큰일났다구요. 이 멸종시키고 싶은 종자들이, 자기들은 망국지족이라고 그러지요? 망종지족이라고 그래요. 종교를 망하게 한다 그 말이예요. 망종지족이라고 하든 이것들이 점점점 이제는 토담 밑으로 기어 들어와 가지고 나중에는 상투 밑을 잡아 가지고 모가지를 타고 앉아 '이놈!' 하려고 하는 게 눈앞에 보이니 죽을 지경이라구요.
그저 별의별, 치안국이 아주 시끄럽다는 거예요. 그저 뭐 어떻고 어떻고, 좋은 것은 하나도 안 가지고 그저 한마디 말만 잘못하면 그것 중심삼고 그저…. 지방에 있는 기독교에 우리를 반대하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이 배치되어 있느냐 말이예요. 무슨 지서주임이 뭐 어떻고 어떻고 하여 어떻게 어떻게 하든지 탈세를…. 중앙에서는 모르나요? 하도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당국하고 뿔개질하며 싸워 나왔기 때문에 뭐 누구보다 잘 안단 말이예요.
이제 이 시대의 정부는 혁명정부가 돼 있는데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는게 들어나야 돼요. 이제 그 최후의 페이지를 넘기느냐, 안 넘기느냐 하는 이런 단계에 왔다구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싸우는 것과 같이 원수들의 모가지를 찌를 수 있는 큰 비수가 될 수 있는 거라구요. 우리가 이거 혁명 바람에 일을 했다면 또 몰라요. 자유당 때부터 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자유당 망하기 전부터. 그러니 오죽 지쳤겠느냐 말이예요.
여러분들은 생각할 때 3년 전에는 이렇게, 한 5, 6년 전에는 몇 사람 밖에 안 움직이더니 선생님이 벌써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세상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또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선생님이 이렇게 부흥강사가 돼 가지고 그저 삐라를 뿌리고 전주에 왔으면, 전주에 미리 신문 광고를 내 가지고 부흥회를 한다면 구경하러 많이 찾아올거라. 선생님은 그런 놀음 안 해요. 한 사람, 한 사람 말뚝을 박아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말뚝 박으러 나왔지요?
여러분들 지금 지방에 나가 가지고 가만히 보면 선생님이 해 나온 일은 다 해봤지요? 세 사람이 모여 가지고 형편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하니 그 동네 사람이 웃어요. (웃으심)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는 맞으면서 커 나가는 거예요. 깎이면서 커 나가요. 발전해 나간다는 말이예요.
선생님이 이 길을 나올 때는 친구가 없었어요. 독신파예요.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었어요. 독신파예요. 여러분들은 그래도 한 몇십 리만 가면 붙들고 통사정할 수 있는 식구들이 있으니 선생님보다 얼마나 행복해요? 그러니 얼마나 멋진 환경이예요?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강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있게 되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요. 지나가던 어떤 도사님이라든가 통하는 사람들은 척 찾아와서 `주인 계십니까?' 하면 문을 열고 선생님이 `나요!'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찾아온 손님 대해서 박대합니까?', `박대는 무슨 박대, 왜 여기 왔어?' 그러면, `아, 여기에 오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 한번 소리 질러 놓고는 들어오라고 해서 `왜 오셨느냐?'고 사정을 물어 보면, `다른 게 아니라 여기를 지나가려니 우리 신령님이라든가 석가모니께서 여기에 선생님이 계시니 인사하고 가라고 그래서 왔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인사하라고 하는 거예요. 전부 다 이래 가지고…. 얼마나 멋져요, 내가 욕을 먹을망정. (웃으심) 그런 재미에 사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래요. 여러분들이 지방에 가서 움직이면, 옛날에 선생님이 가던 그 노정을 그냥 상속해 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뭐 가진 것이 없지만 원리말씀을 가지고 선생님 말씀을 믿고 나가게 되면 암만 수십 년 도 닦은 도사보다도 본연의 영은…. 그렇기 때문에 영계는 통일교회편이예요.
선생님이 기도 가운데 영계에만 들어가게 되면 영계의 영인들이 선생님을 그저…. 한마디 하면 말이지요. 요즈음에 케네디 대통령이 한마디 인터뷰하면 세계의 무슨 신문고 어디고 들이 야단하는데 그 이상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러니 세상도 통할 날이 온다는 거예요.
이렇게 멋진 패들이예요. 멋진 패예요. 이렇게 가 가지고 기합을 주고 `그럴래, 안 그럴래?' 그러면…. 여기 사람들은 물론 안 그럴 거예요. 그렇게 하면 무조건 잘 믿어 주겠지. 잘 믿어 주겠지 하다가는…. 형편없는 것을 아주 백 퍼센트 믿으려 하니…. 그러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망했지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렇게 무조건 믿었다간 하나님이 골탕먹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골탕 안 먹어요. 골탕먹게 되면 여러분들이 골탕먹지요. 그러한 비법을 알아 가지고 나가야 돼요.
그러니 이러한 신세가 돼도, 여러분들은 집을 짓더라도 아주 뭐 삽도 얻어 오고 동네가 환영하는 일을 전부 다 할 수 있지요? 선생님보다 더 낫다는 거예요. 거기에서는 `고맙습니다' 하고 선생님도 머리를 숙인다구요. 그렇잖아요? 선생님은 삽도 못 얻어 가지고 그렇게 불쌍한 처지에 놓였었는데 여러분들은 삽이라도 얻어 가지고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니 얼마나 선생님보다 훌륭해요.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을 존경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선생님보다 낫다는 거예요.
뭐 인격이 낫고 하늘을 움직이는 게 낫다는 것보다도 살아 나오고 교회, 자기 집을 짓는 데 있어서 모든 입지적인 조건이라든가 하는 그런 면에서 낫다는 거예요. 낫다니까 또 이래 가지고 `내가 낫구나' 그러지 말라구요. (웃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다 스승이 걸어온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이게 야곱의 노정이 무슨 노정이예요? 「모세 노정입니다.」 이것이 모세 노정이고 이 노정이 뭐예요? 예수의 노정 이지요? 예수의 노정이 뭐예요? 재림주의 노정이지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렇지요? 간 길을 가야 할 시련이 있으니 어이할 거예요?
그래, 선생님은 43년 걸렸지만 여러분들은 3년, 선생님의 43년 수와 이 3년과 맞먹는단 말이예요. 그래요? 우리 애기의 복중에서부터의 3년과 맞먹는 거예요. 그거 다 설명하려면 오늘 밤새껏 얘기해도 못다한다구요.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가 없어요. 얼마만큼 선생님이 수고했는지 그런 얘기 하려면…. 시간이 없어요.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 체면 위해서 사는 선생님이예요? 체면에 잡혀 살아도 좋단 말이예요. 그런데 한 가지만 잘하면 돼요. 하나님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겠다면 기뻐하는 거예요. 선생님이야 천번 이용해 먹어도 좋다 이거예요. 하나님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자신 있다' 그럴 수 있으면 좋아하지요. 그럴 수 있어요?
내가 정 어려울 때는 기도해 사지고 `아버지, 내일 돈좀 써야 할 텐데요',`어 그래, 주마' 이렇게 이용할 자신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놀음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도 큰일을 하는 데 선생님이 돈 한푼 없어요. 괜히 누가 돈 갖다 주는 것도 싫어요. 그렇다고 기도는 안 해요. 끙끙 앓거든요. 입체의 세계를 거쳐 가지고 난데없는 사람을 붙들게 하는 거예요. 기도 가운데 `네 농 안에 무엇이 있지? 선생님이 지금 돈이 얼마큼 필요해서 써야 할텐데 네가 어떻게 처리해서 선생님 얼마 돈 갖다 줘라' 하는 거예요. 어느 명이라고 안 해요? 안 해요?
세상 녀석들은 선생님이 전부 다 착취한다고 그러지요? 하나님이 그 놀음 하는데 누가 뭐라 그래요. 우리 통일교회는 이렇게 살아왔어요, 이렇게 나온 거예요. 지금 한국 식구에게는 돈 한푼 없으니 이번 기간에 미국 식구들이 전부 다…. 그거 누가 돈 달라고 했나? 선생님은 절대 미국 놈들이 돈 주는 걸 원치 않아요. 왜? 우리 한국 통일교회 교인들이 아직까지 쓰다 남은 집도 있고 밭뙈기도 다 있는데, 그거 다 팔면 쓸것이 많은데 왜 남의 신세를 져요? 부모한테도 신세를 안 지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통일교회 형편없거든요. 그래, 전도바람이 났기 때문에 그전에 연보하던 것도 전도 준비하느라고 연보도 안해요. 그래도 선생님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좋다, 해라 이거예요. 이러니 경비문제가 본부에서 상당히 곤란한 문제예요. 지금까지 이 한국 사람의 책임을, 여러분들이 진짜 책임 못 했어요.
조금만 더 가면 이제 여러분들을 대학교까지 전부 다 보낼 수 있는 돈도 이제 어디에서, 태평양 바다를 건너 오든가, 태평양 바다에서 날아올 때가 올 거예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그런 몽상과 같은 생각을 선생님은 하고 있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몽상의 실상주의자예요. 거짓말 같은 사실이예요.
미국에도 우리 식구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이놈들, 코가 높고 눈이 시퍼래 가지고 입이 이런 것들을…. 어제도 차를 타고 왔는데 후르시초프같이 키가 얼마나 큰지, 그 차문도 우리 같이 큰 사람도 안 닿는데 이러면 닿아 가지고 이렇게 들어가야 돼요. 변소 들어가는 것 보면 참…. (웃음) 그런 놈들이 눈이 새까많고 조그만 아주 뭐 형편없는 사람한테 와서 무릎을 꿇고 `가갸거겨, 아버지 진지 잡수시오' (웃음) 하고 배울 걸 생각하니까 얼마나 신나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무슨 영어를 한다고 그러다가 미국에 있어서 뭐 `진지 잡수시오' 그런 걸 배우느라고 그저 잠을 못 자 가지고 덜렁덜렁하면서도…. 지금 미국에서도 고추장 먹고 깍뚜기 먹는 것 배우고 있어요. 김치 해 가지고 먹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미국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구요. 그리고 한국말을 배우는 거예요.
전부 다, 선생님한테 편지 오는 걸 보게 되면 한국 시민되게 해달라고…. 이 사람들 앞에 `야, 너한테 한국 색시 얻어 주겠다'고 하면 `아!' 이러게 돼 있단 말이예요. (웃음) 왜 그렇게 웃어요. 이제 우리에게 국제적인 무대가 열려지고 있어요.
그래, 우리 원리 말씀이 독일어로도 번역이 되고 서반아어로도 지금 번역을 하고 있다구요. 지금 미국에 서 들어온 식구도 한 12개 국 사람들이 들어왔지요? 이놈들, 잘 공부해라 이거예요. 그러고 나면 선생님이 특명을 내려서 `너 본국으로 돌아가' 그러면 안 갈 수 있어요? 그들의 국적이 다르고 혈족이 다르지만 명령은 지상명령이예요. 그들의 대통령이 명령해도 움직이지 않는 그들을 나는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거예요. 얼마나 멋져요?
그들이 지금 여섯 사람이 사는 데 백 달러 가지고 살아요. 이것을 한국 실정으로 보면 2천 원 가지고 사는 형편이예요. 그렇거든요, 이게. 그 사람들이 다 한다하는 집의 아들딸이예요. 이 사람들이 집을 나와 가지고 벌어 가지고는 전부 다 뭘하냐 하면 전도비로 써요.
본래 출판사 하려고 한 만 달러 벌기 위해 고생했지 지금 선생님이 갈 차비, 이럭저럭 준비해서 또…. 그리고 출판사를 만들려고 그 인쇄 기계 샀지 또 원리강론 재판하려고 수만 달러의 돈을 써 가지고…. 그들이 그저 안 먹고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그 사람들이 피너츠 한통이면 매일같이, 개까지도 하루에 몇통씩 집어줄 수 있는 이런 생활하던 사람들이 피너츠 한 통 사다 놓고도 생일날 먹자고 안 먹는 거예요. 이거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요? 우리 이념이 들어가면 코가 크든 작든 눈이 파랗든 검든 걸리는 거예요.
미국이 오늘날 문화구책을 개버리고 노동자 농민의 옷을 입고 공산당 이상 근로 인민 대중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실제적인 계율을 못 갖는 한 공산당들한테 들이 맞는다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알아요. 미국이 그래야 남아지지 안 그러면 자꾸 넘어간다구요. 천천히 이렇게 넘어간다구요.
잘들 논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미국에 대해서 벌써 몇십 년 전에 예언 다 했어요. 요즘에 와서야 다 들어맞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뭘 아는 선생님같이 됐지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때에 대해서는 잘 안다구요. 선생님이 이런 큰 사명을 지고 있으니 때에 대해서는 참 잘 아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시하게 하지 않아요. 한번 그저, 숨었다 하더라도 그저 멋지게 갈겨 가지고 저 높은 벼랑 끝에서 태평양의 깊은 물 가운데로 떨어질 수 있게끔 하는 거예요. 한번만 그저 굴려 놓으면…. 그런 것을 해먹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요 3년 기간이 그런 작전 기간이예요. 선생님이 이런 기간을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40평 생 동안 기다렸겠어요?
여러분들이 이런 때를 맞이했으니 얼마나 복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신나고 통쾌하다는 거예요. 그런 것 알아요, 알아? 여기에 새로 들어온 녀석들이야 모르지요. 거 선생님이 말하면 무슨 말 하는지 그 차원이 높아서 이해 못 할 거라구요. 그러니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알 만해요? 「예」 진짜 알 만해요? 「예」
그러니까 신세는 그럴망정, 내가 자리를 못 잡은 피난 도중에 있는 왕자와 같이, 공주와 같이 귀공자와 같이 돼 가지고 아무리 삼척동자의 몸일지라도, 어디에 가 가지고 처량한 입장에서 빌어먹는 몸일지라도 그 배후의 내용은…. 자기의 자리와 자기의 본거지만은 잃지 말고 씩씩하게 싸우는 하늘의 용사들이 돼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그래 가지고 아까 말하던 과거 현재 미래, 역사적인 하나님의 눈물을 회개할 수 있는 역사적인 회개사요, 시대적인 한을 막아낼 수 있는 시대적인 투사요, 미래를 대신하여 하나님 대신 건설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역군이 돼야 되겠어요. 이 거룩한 도상, 거룩한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훈련 도중에 있는 무리요, 오늘 이와 같이 모인 이 한 장소는 훈련도장이예요. 알겠어요? 「예」 힘 있게 최후의 남은 기간을 싸워서 넘기자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기서부터 주름을 잡아 가지고 날리기만 해봐라 이거예요. 이럴 수 있는 때가 다가온 것을 알고 부디 죽지 말고, 떨어지는 낙오자가 되지 말고 단단히 붙들라구요. `어, 지역장이야 너? 지구장이야?' 하고 단단히 붙들라구요. 그저 살은 다 떨어져도 뼈다귀만이라도 안 놓는다' 이래가지고…. 지금은 기관차와 마찬가지예요. 초특급으로 달리는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꽁지에 달려 있더라도 떨어지는 무리는 되지 말란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정순이 알겠어? 「예」
더욱이나 여기 우리 젊은 학생들, 여러분들은 복받은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은 앞으로 눈물이 많지 않아요. 선생님이 여러분 같을 때는 그저 눈물을 흘려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아 가지고 얼마나 울었는지 이 잠방이가 전부 젖도록 울었단 말이예요. 얼마나 안타까우면 그랬겠어요? 여러분들에겐 그런 세월이 없는 거예요. 다 선생님이 수고한 그 공의의 터전 위에 서서 우리의 인생, 우리의 갈 길을 알고…. (녹음이 잠시 끊김)
사탄 앞에 호령하는 늠름한 기개와 천적인 위신을 잃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부탁한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약속할래요? 「예」 약속하는 사람 손들자구요.
그러면 전라북도는 선생님이 걱정 안 해도 잘할 수 있겠지요? 어때 이 사나이? 「잘 하겠습니다.」 어때요, 지역장들? 지역장들! 「예」 자신 있어? 「예」 또, 지방책임자들? 「예」
옛날에 여러분들이 다 봤겠지만 스님들이 문전에서 쭉 구걸하고 다니게 될 때는 아주 아이들까지 흉을 보고 다 그런단 말이예요. 거 그래도 좋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그 도를 믿는 사람이 백이라는 가치의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 가지고 욕을 먹는다 이거예요. 욕을 먹는 데는 개인한테 욕을 먹든가 혹은 단체한테 욕을 먹든가 그건 상관이 없어요. 그런 백의 가치의 선한 입장에 선 사람에게 어떠한 개인이 욕을 했다 하자구요. 그런데 그 욕한 사람이 열이라 하면 구십이라는 것은 월권행위 한 거예요. 월권행위한 거란 말이예요.
즉, 선은 천지 앞에 반드시 높은 위치를 취하는 거예요. 선은 하늘 앞에 가까운 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백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열이라는 위치에서 쳤으니 구십이라는 이 위치를 결국은 범한 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구십이라는 것은 반드시 탕감원칙에 있어서 그 친 사람이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배상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배상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배상을 하는 데는 개인이 쳤지만 그 개인이 배상해야 할 책임은 그 일대에서 자기 스스로, 혹은 열 입장에 있어서의 구십을 배상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건 벌써 걸렸다 이거예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자기 선조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선조까지. 법이 그렇게 돼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걸 모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후손이 이러한 도적(道的)인 세계 앞에 그러한 죄상을 저끄렸을 때는 천상에 있는 자기 선조들 가운데서 선한 영들…. 저 영계에 가 있는 영들이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은 그걸 모를 거예요, 하여튼 그렇게 돼 있어요. 그 영들이 여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대가를 치러야 되는데 구십이라는 이 대가를 치르는 데는 선조들이 공적이 있으면 그 공적은 그 사람, 십이라는 위치에 있는 이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후손까지 머물러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십이라는 그 위치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이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선조들이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쌓아 놓은 공적은 이 사람의 발판이 돼 있다는 거예요. 선조들의 공적이 많으면 이 사람이 현재에 있어서 복을 받고 살 수 있고 또 그 후손들은 앞으로 좋은 아들딸을 맞을 수 있는 기반이 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기반이 무너진다는 거예요. 구십이라는 것 만큼 무너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무너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늘은 복을 주었던 것을…. 공적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법이 없다는 거예요. 이 사람의 선조들이 세워 놓은 공적은 여기에서 범했다 해서 공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이 개체에 있어서는 무너져 나가지만 이 공적의 터전이라는 것은 반드시 선한 공적으로 남는 거예요. 축복해 줬던 것을 빼앗아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복을 주기 위해서 복귀섭리를 하니까. 복을 주기 위해서 지금 섭리해 나오는 하늘의 역사이기 때문에 주었던 것을 빼앗아 오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복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마이너스예요, 플러스예요? 플러스지요, 이렇게 됐으니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렇기 때문에 선한 입장에서 욕을 먹는 사람은 욕한 사람의 그 일대에 쌓아 둔 복을 빼앗아 오지 않으면 자기 선조, 혹은 앞으로 태어날 자기 후손의 복의 터전을 빼앗는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이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봉사요, 무조건 온유겸손이요, 무조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그렇게 나가 가지고 이걸 전부 다 빼앗아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맨 처음에 이 세상 이라는 것도 전부 다 사탄이가 점령했던 거예요. 사탄이 복받고 있다 이거예요. 사탄이가 복을 받고 있어요. 사탄이한테 업신여김을 당하면 당할수록 뒤에서는 그 복의 발판을 전부 다 빼앗아서 이쪽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이래서 오늘날의 세계 절반 이상이 지금 하늘권 내로 옮겨져 들어오고 있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이 원칙을 알겠어요? 「예」 이해돼요? 「예」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서 있는 자에게 더 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양심적으로 살고, 남을 위하여 주고 살고, 남을 높이고 살게 돼 있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아주 욕을 많이 먹었어요. 여러분 중에 지금 처음 들어온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소문은 많이 들었을 거예요. 욕먹는 걸 참 좋아한다는 거예요. 왜? 왜 좋아하겠나요? 제일 무서운 작전이예요. 여러분들도 친구들끼리 노는데 그 친구가 참 양심적이고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럴 입장에 서지 않을 친구인데 이거 돼먹지 않은 친구들에게 쥐어박히고 업신여김을 당하게 되면, 이렇게 한 번 쥐어박히고 두 번 쥐어박히고 세 번만 쥐어박히면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밸이 일어서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사람도, 타락의 종족으로 태어난 이 땅 위의 사람도 그렇거늘 선의 본체되시는 하나님은 더욱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 세상에서 내가 죄가 없고 내가 하늘땅 앞에 이건 틀림없이 옳다, 천하가 뭐라 해도 내가 옳다,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없는, 내 마음으로보나 내 자체로 보나 틀림없이 옳다는 것을 공인하고 있다 고 할땐 무서울 게 없다는 겁니다.
만일에 욕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을 빼앗아 올 수 있다 할진댄, 만일에 그런 사람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날에는 그를 죽이게 한 사람의 종족이 망해 나간다는 거예요. 갑이라는 사람이 그런 선한 입장에 서 가지고 이렇게 나가다가 어떠한 오해를 받아 가지고 억울하게 죽는지 하게 되면 이 죽인 상대방쪽, 혹은 을이라는 사람이 종족이 걸려 들어가요, 종족이. 갑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사랑하고, 그 어떠한 민족을 사랑하고, 이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그 범위가 이 사람의 부모나 이 사람의 자손까지 혹은 이 사람의 친척까지 사랑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걸 치는 날에는 이 종족이면 종족이 전부 다 걸려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쭉 보게 될 때 우리 한민족, 한국의 백성들을 가만히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고 나오면서 반항할 줄 모르고, 빼앗기고도 원수를 갚을 줄 모르는 민족이라는 거예요. 이런 걸 볼 때, 무한히 맞고 무한히 몰리고 무한히 찢겼지만서도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큰 복을 안아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국가의 운이라는 것은…. 인간의 운은 일대에 몇 번씩 오는데 사람마다 달라요. 그 고비, 때가 오는 것이 몇십 년 만에 이렇게 오고 있지만 그 국가의 운이라는 것은 몇백 년 만에 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큰 우주적인 대운일수록 몇천 년 만에 한 번씩 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때를 맞이하기 위한 그 민족은 수천 년 동안 고생하고 나온다는 거예요. 이것을 예를 들어 말하면 유대백성들이 그래요.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여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부정할 수 없는 이런 뚜렷한 민족성을 가진 이 민족이 세계의 각국 나라에서 유리고객하며 고생을 다 하고 나온 것도 이런 몇천 년 운세의 도수를 맞추기 위한 거예요. 이 기준에서 수많은 민족 앞에 들이 맞고 나온 거예요. 맞고 나오는 것은 뭐냐 하면, 이 몇천 년 운세가 그때 가서 한꺼번에 복을 몰아넣기 위한 역사적인 섭리를 하늘이 하기 때문이예요.
결국은 인간 인간끼리 보니, 요거 10년이니 1년이니 몇 달이니 이렇게 보니 네가 뭐 못살고 내가 못살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렇게 본다는 거예요. 사람 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아, 저 아무개 박씨네는 잘살고 아무개 김씨네는 못사는구나, 이래 가지고 뭐 잘났느니 못났느니 주먹질하고 뭐…. 지방에 가면 아주 뭐 그런 현상이 농후하단 말이예요. 이걸 타파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국가 국가를 보더라도 '아, 저 나라가 뭐 잘되느니 흥하느니…' 하며 자랑하고 야단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몇백 년 혹은 몇 세기의 운입니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높아지 것 같고 낮아진 것 같지만서도 크게, 몇천 년 단위로 이렇게 쭉 보게 될때는 전부 평등이예요. 알겠어요? 평등이예요, 평등. 공평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에 못사는 사람들은 자기 선조가 잘살아서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지금 잘사는 사람은 몇백 년 전에서부터 이 운, 때를 맞은 사람도 있고 혹은 몇십 년 전 자기 선조의 공로에 의해서 때를 맞은 사람도 있고 혹은 몇십 년 전 자기 선조의 공로에 의해서 때를 맞은 사람도 있고 혹은 몇천 년…. 그것의 파장이 전부 다 다르단 말이예요. 그 거리가 전부 달라요.
이것이 전부 다 사방으로 섞어져 가지고 이 평면도상의 한 기점이면 기점 위에서 나타나고 보니 잘난 것 같고 못난 것 같고, 나는 불쌍한 것 같고 너는 행복한 것 같고, 너는 좋겠구나 나는 나쁘다 하는 이런 말들이 적용되지, 크게 보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게 돼면 공평하다는 거예요. 이해돼요? 이해돼요, 그 말이? 이해돼느냐 말이예요. 「예」
그러면 오늘날 우리 한국 백성, 지금까지 이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세계에 자랑하지 못하였고, 어느때 주권을 가졌지만 만인의 종 같은 입장에 이렇게 약한 민족으로 태어난 이 민족이 이것으로 끝날것이냐? 아니예요. 이런 원칙, 이런 천리가 있다 할진댄 오늘날 이 한민족이 바라보는 그 심적 기준, 양심 기준이 어느 민족한테 지지 않게 순수하고 어느 민족에게 지지 않는 종교적인 국민성을 가진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 한국 백성은 살아 남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렇게 몰리고 억울하게 산다고 해서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 민족은 수천 년 대운의 한 목적지를 향하여 눈을 꼭 감고 밤길을 찾아온다, 이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눈을 꼭 감고 밤길을 찾아가니 어떻게 될 거예요? 이왕에 깜깜한 천지인데 눈떠 뭘해요, 까짓거? 그렇잖아요? 그런 밤인데 말이예요, 눈 뜨면 뭘해요, 눈을 떠도 마찬가지인데. 에라, 그럴 바에는 눈감고 세상도 안 보겠다 해 가지고….
내가 지금도 가만히 차를 타고 오면서 보니까 말이지요. 아, 이렇게 게딱지 같은 초가집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까 몇천 년 전에도 저렇게 살았었는데 지금 몇천 년 후에도 요렇게 살아요. 이놈들, 이 간나놈들 이놈의 선조고 뭣이고 배때기를 다 째 가지고 까마귀 밥을 해도 시원하지 않을 분한 마음이 가겠지만 그러나…. 그런 생각이 간절하다구요. 아, 이 민족은 이러한 예언적인 민족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아, 이 민족은 예언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그믐밤과 같은 밤중세계의 운세를 찾아 나오는 이때에 있어서 눈을 뜨고 들여다 보면 뭘하노? 피곤만 했지. 눈을 딱 감고 나오는 세계예요, 아직까지는.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모인 당신네들은 잘나나 못나나 지금까지는 눈뜬 소경 아들딸들이예요. 눈을 뜨기는 떴지만서도 눈을 꼭 감은, 밤중에 사는 소경보다 더한 사람들의 아들딸이다 이거예요.
분해요? 분해요, 안 분해요? 대답해 보라구요. 응? 분한가요, 어떤가요? 대답을 해보란 말이예요. 물어 보면 대답을 해야 얘기를 또하지요. 분한가요, 분하지 않은가요? 이거 모순된 물음이지요? 모순된 물음이란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이건 모순 중의 모순이요, 이해할 수 없는 물음이라는 거예요. 이 말만 딱 들어 보면 그런 녀석들이 어디 있냐 이거예요. 이거 미친 소리한다고 그럴 거예요. 그렇지만 듣고 나서 보니, 이건 응당히 분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대답을 못 하고 낑낑거리는 것을 보니까 뭐가 다른 모양이지요. (웃으심)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천리를 풀고 보면, 과연 이 창조주, 천지를 창조하던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과연 내 하나님이예요. 잘난 사람도 내 하나님이요, 못난 사람도 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왜?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일대를 보고 있었는데, 잘난 사람은 몇 대를 본단 말이예요, 몇세기. 그렇잖아요? 혹은 예언자니 선각자니 하는 사람은 수천 년을 내다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은 수천 년을 내다보니 생활은 일대를 거쳐 살고 있지만 그 생애─생활과 생애는 달라요. 생애라는 것은 일생이요, 생활은 하루예요─는 몇천 년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하나님도 지금까지 수천 년 역사와 더불어 같이 살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하늘을 따라가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 전부 다 평등해요. 마찬가지예요.
당장에 그저 한끼 먹고 좋아하고 하루 살고 좋아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아요? 거리를 두고 점점점점 좋아질 수 있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그렇게 들어선 백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백성은 그 가운데 들어섰지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사니 평면적으로 바라보면, 하루하루를 생활해 보면 거지꼴 같지요. `아이구, 난 죽는구나' 하며 야단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크게 보면 평등한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도 만일에 불평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면 자기가 선한 마음을 갖지 모르거니와 아무리 억울한 자리에 있더라도 선한 마음을 갖고 억울함을 당하게 될 때는 절대 하늘 앞에 불평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분은 어디까지나 내 편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사람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사람은 본래 선한 거예요. 본질이, 본성품이. 아무리사람이 살인을 하더라도, 환경에 몰려 칼을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그 본마음은 명령한다는 거예요. 한두 번만이 아니예요. 수십 번 일어나는 발작 발작마다 명령한다 이거예요.
그런 것은 안 해봤으니까 다 모르겠지만서도 선생님은 그런 살인 강도들하고 감옥살이도 많이 해봤어요. 그들과 생활을 해보면 그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별반 차이가 없어요. 이렇게 명령을 받고 있지만 명령을 받고도 그 가치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 명령은 누구와 더불어 하고 있느냐? 그 양심이 명령한다고 해서 자기가 명령하는 게 아니고 하늘땅, 이 온 우주의 세력이 명령한다는 것만 알았던들 죽더라도 그건 못 한다는 거예요. 만일 우주의 이 큰 공의의 법도에 따라 가지고 명령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어길 때는 그 보응이 어떻다는 것만 딱 알게 된다면 악한 일을 하라 해도 칼을 들고 가라 해도 못 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정신만 갖고, 하늘땅이 있어 가지고 공의의 법도로서 치리하는 이 우주의 주인공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만 알게 될 때는 `악한 사람 돼라 돼라' 하고 제사를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빤히 손해가 나겠는데 해요? 그 사람들 눈들 보지요. 깜박깜박하면서….
내가 금년에 서울에 가서 명동 거리를 척 나가 가지고 한참 멍해서 바라볼 때가 있었어요. 여자들 뭔가, 여기에 바르는 것? 발라 놓고, 뭐 꺼슬어 놓고, 젖혀 놓고, 앞가슴을 떡 젖혀 놓고는 궁둥이 춤을 추면서, 잘들 논다 이거예요. 또 사내 녀석들을 보게 되면, 여기에 기름을 바르고 뭐 양복을 입고 천하에 내가 제일이다 하며….
`야, 이놈들아! 네 배통과 네 눈통엔 뭐가 들어가 있니?' 하는 생각을 했어요. 눈을 가만히 보면, 어떠한 녀석이라도 땡전 한잎이라도 손해보겠다는 눈을 가지고 다니는 녀석은 하나도 없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전부 다 `이익날 구멍이 어디냐? 어떻게 해야 돈을 좀 모으고 어떻게 해야 오늘 수지 맞추냐?' 하고 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뭐?
그렇지만 세상만사는 모순으로써 엉클어져 있구나, 그걸 탄식 안 하려면 말이지요…. 어찌하여 눈은 그런 이익에 취해서 '이익 이익'하느냐? 기도중에 그런 기도가 없을 거예요, 자기 스스로. `돈아 돈아' 하겠지만 그놈의 돈이 어디로 갔는고? 가던 길에 있어서 꼬꾸라지는 수도 있고 뒤집어지는 수도 있고 생각과는 천양지판으로 반대를 받아서 결국에 가서는 '아이고, 난 죽는다'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죽는다' 하는 사람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말이지요, 전부 다 욕심부리고 다니다가 `나는 죽는다' 하는 거예요. 그렇게 욕심부리다가 죽는 녀석은 죽어도 동네에서 제일 유난을 떨어요. 그렇게 보면 그게 모순 중의 모순 같은데, 그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이익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느냐? 이것을 전부 다 자기들은 모르지만, 자기들은 모르고 춤추고 다녔지만 결국은 이런 천륜의 대도에 따라 가지고 정의의 판가리싸움 앞에 부결당하게 될 때는 꼬꾸라지고 통곡하고 `아이고, 난 죽는다' 하는 거예요. 안 그럴 수 있어요? 그렇게 돼 있다 이거예요.
지금 여기에 찾아온 여러분들도 손해보러 온 사람 없어요. 손해보러 온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이놈들 다 찾아올 때는, 찾아올 때 이런 맘 갖고 다니는 사람보고 이놈이라고 그런단 말이예요. 그건 그래야지요. 그거 이해하라구요. 듣기를 잘 들으라는 거예요. 아, 이놈들이 전부 다 그런 심보를 갖고 왔다 이거예요. 그런 놈들은 욕을 들을 만해요. 이익보려고 왔는데 나는 가장 멋진 이 일을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을 주고 싶다 이거예요. 어떻게? 욕을 갖다 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저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그저 형편이 무인지경이 되게 아주 들이 까고 그저 천대를 하고 이놈 죽어라 하는 거라구요.
여기에 딴 사람이 없고 우리 식구들이라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한테 욕을 먹고 몰리고, 억울하다면 끝까지 억울하고 분하다면 말할 수 없이 분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오늘 이리저리 몰리다가 이 땅 덩어리에서 한번 풀어봤으면 좋겠다 이거예요. 그저 누구든지 왔다가는 신을 까꾸로 신고 도망가리만큼…. (웃으심) 이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게 좋은 마음이예요, 나쁜 마음이예요? 대답해 보라구요, 여기 청년들. 이 청년, 좋은 마음이예요, 나쁜 마음이예요? 왜? 대중을 지도하겠다고, 혹은 뭇사람이 바라보고 혹은 소망을 걸고 온 그들 앞에 어찌하여 몽둥이를 들고 치겠다는, 그러한 아주 몰상식한 하고, 천륜 앞에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대다수가 그럴 거예요. 그런 설명을 듣고 보니 통해요, 안 통해요? 「통합니다」 통하나요, 안 통하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통해요, 안 통해요? 「통해요」 통하지요.
그거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욕먹던 모든 욕을 모아 가지고 거둔 그런 복이 있다면 이렇게 때려 줌으로 말미암아 이 복을 전부 다 나누어 줄 수 있는 거예요. 이 복을 그런 도리를 거쳐서 나눠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해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디에 가든지 첫번에 가 가지고는 칭찬을 하는 법이 없어요. 서울서부터 이렇게 쭉 거쳐오면 그 거쳐올 때 한 사람이 오고 있지만 내 배후에는 동원된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이 있다는 것을 안단 말이예요. 선생님이 이 길을 가시는데, 나는 가만히 있지만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이 복을 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상 위에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그런, 무엇주고도 살 수 없고 무엇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좋은 이득의 은사면 은사, 복을 주기를 고대해 가지고 복을 빌고 있다 이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부산으로부터 대구를 거치고 대전을 거쳐 오늘 나흘째 여기까지 오는데 우리 통일교회의 젊은이들, 피땀을 흘리고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고 나가 싸우겠다고 하던 용사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걸어서 오고 지금 이 시간 끝나면 걸어서 돌아갈 거예요. 그렇게 걸으면서도 `부디 오늘 이리면 이리에 가는 그 지역에 있어서도 선생님이 원하는 뜻을 따라 먼길을 찾아오는 외로운 식구들 앞에 무한한 은사, 즉 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지금 기도하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하늘과 땅과 우리의 이와 같은 모든 어려운 도상에 있어서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정성들이고 소망의 뜻을 두고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전체의 책임을 오늘 이 시간에 선생님은 가지고 왔다는 거예요.
잘 주게 해야 되겠고 잘 받게 해야 되는 데는, 잘 주고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근본적으로 청산을 해야 돼요. 무엇을 청산할 것이냐? 마음바탕을 청산해야 된다구요. 주는 데는 같이 주고 싶고 움직이는 데는 같이 움직이고 싶어요. 내 심정이 이러니 여러분의 심정도 같은 입장에서…. 잘 주기를 원하면 잘 받을 수 있는 입장이 돼야 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인상이 되어 있지 않으니 어떻게 되느냐?
좋은 얼굴로 대해 줘서 좋은 것을 주면 좋게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어야 되는 것이 이치요, 그것이 선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정상적인 태도이냐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그 가치를 설명해 놓고 거기에 필요성, 자기와 관계를 맺고 나서의 어떠한 결과가 현재 자기의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 이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이 복을 주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복을 대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되는데 못 되어 있으니 아까 말한 역리적인 방법, 역설적인 방법에 천적인 뜻이 있다는 이 비법을 여러분들에게 정리 해서…. 사실은 오자마자 문에서 들이 갈기고 해서 `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게끔 만들어 가지고 들여 놨더라면 이런 말 할 필요 없단 말이예요. 복을 빌어 주고 좋은 말,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출 수 있는 이런 분위기에서 이랬더라면 될 것인데 그렇게 못 되었으니 이런 말들 하고 큰소리들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 되겠어요, 안 먹어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먹어야 돼요」 만일에 욕을 하는 사람이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서 욕을 하고 여기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어떠한 교파를 확장시키기 위한 그런 분파적인 욕망을 가지고 욕을 한다면 천법에 걸리는 거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입장에서 해야 돼요.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다니면서도 제일 염려하는 것은 민족의 기반을 무시할 수 없고, 민족의 기반은 역사적 기반을 무시할 수 없고, 역사적 기반은 이 세계적인 천운을 무시할 수 없는 이런 마당에 서서….
그러면 선생님은 이 민족 앞에 어떠한 교단이면 교단, 교파면 교파, 어떠한 교회면 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로서 일개 교파의 책임을 위해서 나선 사람이냐,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인 책임을 위해서 나선 사람이냐? 이 모든 천지운세는 하나에서부터 전체까지 활용하여 그것이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여 나가는 것이예요. 그런 기반을 통하여 움직여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 할진댄 이러한 전체의 원칙적인 기반 위에 서서 이것을 수행하고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 거기에 대해서 심각히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여러분을 책망하고 여러분을 권고하고 여러분에 대해 명령한 일이 있다 하면 이는 어디까지나, 나로서는 이러한 내적인 설명과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어떠한 비결적인 원칙을 통과하는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을 급속한 시일 내에, 혹은 몇백 년 몇 세기가 지나도….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모르면 몇백 년 몇천 년 가더라도 접할 수 없었던 것을 설명함으로 말미암아 단시일 내에, 받을 수 없는 환경을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여기에서 가지를 따다가 접붙여 주자는 거예요. 접붙여 주자 이거예요.
어때요? 그러려면 무자비하게 모가지를 잘라야 된다는 말이예요.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 잘라야 돼요, 안 잘라야 돼요? 그거 자를 줄 모르는 사람은 거짓이예요. 모가지도 째고 배뙈기도 째고 그래야 돼요.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사과나무가 이렇게 몇 잎사귀가 나왔단 말이예요. 좋은 나무다 이거예요. 아, 요놈이 접붙이기 위해서는…. 요거 이름이 뭐냐 하면 돌배나무 가지예요.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뭐라고 할까요? 돌배라고 하자구요. 돌배나무 가지인데 여기 참배나무 가지가 있다 이거예요. 이놈의 돌배나무를 참배나무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놈을 뚝 자르고 참배나무 일년지를 뚝 잘라다가 접붙여야 된다 말이예요. 그러면 뭐가 돼요? 돌배나무가 돼요? 뭐가 돼요? 「참배나무입니다」 「돌배가 됩니다.」 이게 참배나무라구요.
하여튼 선생님 말은 뭐냐 하면, 요놈을 잘라다 접붙이면 참배나무가 된다 그 말이예요. 선생님 말은 그렇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웃으심) 그 법이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잘라야 되겠느냐, 안 잘라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어때요?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 「잘라야 됩니다」 잘라야 되겠어요? 잘리려고 여기 왔어요? 「예」
그러면 여기에 왔으니 여러분들은 잘려야 할 입장에 서 있고 나는 잘라줘야 할 입장에 있으니…. 그러니 잘라 놓고 도망가는 사람이 되게 되면, 여러분들이 큰 야단이 날 거예요. 그렇지만 잘라 가지고 도망가더라도 잘린 그 순을 짊어지고 도망가려고 한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어느 편을 원하느냐? 자르는 것을 원하느냐, 안 자르는 것을 원하느냐? 어때요? 「자르는 것을 원해요」 그거 뭐 할 수 없이 대답은 그렇게 하겠지요. 응? 만일에 여자의 모가지를 자르고 남자의 모가지를 잘라서 이렇게 바꿔 붙이면 어때요? (웃음,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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