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일은 지방에서 수고하는 식구들을 불러다가 간증하게 하는 동시에 외국 소식, 해외선교 소식을 전달해야 되겠으나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들은 이야기를 다 못 하더라도 편지 몇 통만 읽어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시길 바랍니다. 편지 읽어 줄까요? 「예」
서울에 있는 분네들, 지방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가만 들어 보면 코가 점점 길어질 것이고 눈은 점점 땅을 향하여 경배할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리고 금번 부모의 날을 기해서 전국적으로 일대 동원할 때가 또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외부 사람들이 핍박했습니다. 그저 뭐 사방에서 가는 길을 요리 막고 조리 막고, 갈래야 갈 수 없게끔 주위 환경이 막았지만 이제 그러한 때는 지나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뜻을 대하여 핍박 도중에도 가야 할 것을 결심했고, 어떤 장애와 핍박이 있더라도 이것을 무찌르고 간다는 신념을 길러 왔고, 또 그런 시련도상에서 투쟁해 왔습니다. 이제 외부의 핍박이 없어지면 그것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제 앞으로는 영계에서 여러분들을 핍박할 때가 올지 몰라요. 또 그다음에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여러분을 핍박할지 몰라요. '진짜 따라갈래? 진짜 갈래?' '갑니다', '진짜 갈래?' '갑니다' 하고 맹세하게 할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것을 제자들 앞에 말했을 때 '선생님, 당치 않은 말씀 그만두시오' 한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만일에 죽는 곳에 가면 너희들이 죽을 곳에 따라가겠느냐?' 이렇게 반문하게 될 때, '가고 말고요' 하고 말하던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을 여러분들도 넘어가야 할 때가 있을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겠다고 맹세하고, 여러분이 틀림없이 간다고 맹세한 자신인 것을 시인했을 때는 한번 가봐라 이거예요. 가는 길이 평탄치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외부의 사탄세계에서 사탄이 핍박했지만, 앞으로 하늘 복귀의 도상에 있어서 승리의 왕자로서 피조만물세계 앞에 내세워 축복할 수 있는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이 내는 시험에 패스해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도 역시 그런 노정을 거쳐왔다는 거예요. 딱 최후의 곳에 가 가지고 걸고 치는 거예요. 이때는 일면 작전이 아니예요. 삼면 작전을 하여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복귀의 운명이 남아 있는 연고로, 여러분들이 앞으로의 뜻을 알고 이제 모든 생사를 결단지어 최후에 넘어가야 할 싸움터가 반드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터라는 것이 있는데, 개인적인 복귀시대에 개인을 중심삼고 그런 싸움을 하여야 되겠고, 가정이면 가정, 혹은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반드시 책임지고 넘어가는 그 때에는 그런 싸움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만 완전한 해결을 짓는다는 거예요. 하늘과 땅 앞에 있어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온 만물세계 앞에 비로소 완전한 기반을 닦은 승리자로서 설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천리의 원칙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외부의 핍박이 심했지만 앞으로는 여러분을 지도하는 스승이,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스승이 채찍을 들고 모는 거예요. '이런 길을 돌아와라!' 할 때가 올지 몰라요.
우리의 이념이 세계를 위하고 흑은 하늘땅의 전체적인 뜻을 완결짓기 위한 큰 섭리의 뜻이면 뜻일수록 여러분이 무대로 하는 곳은 한국만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무대로 하고 있는 요 삼천리 반도만이 아니에요. 우리가 바라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지금 위하고 있는 무대는 우리가 현재 움직이는 그 무대뿐만이 아닙니다. 이 수많은 인류 앞에 지구상을 우리의 무대로 삼고, 더 나아가서는 영계의 전체 무대까지 우리가 관여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전체 분야를 총합한 기대 위에서 여러분을 몰아쳐 승리했다는 가치의 어떤 존재를 하늘은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한 민족을 대신하여 한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는 반면 혹은 각 세계, 각 국가를 대표하여 국가적으로 승리한 모습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땅을 대신하여 전체 앞에 승리했다는 승리적인 자격자를 찾고 있는 연고로, 그런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사탄의 시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이 즉각 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핍박도중에 있어서 여러분이나 선생님이나 같은 운명에 놓여 있어요. 같이 맞는 자리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안팎으로 완전히 산 사람을 만들고, 안팎으로 승리의 결정권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면 외적인 주관 권한을 가질 수 있으나 내적인 주관 권한은 갖지 못해요. 그런 연고로 내적인 시련도상에 서 가지고 승리의 결정을 갖고 나타나야만, 안팎으로 승리한 자로서 천상천하 앞에 모든 만유의 주관 권한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본성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인 고로 여러분이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고 나오는 데 있어서 편안치 않을 겁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서 지금까지 시련도상에서 개척의 길을 걸어왔으나, 이제는 개척해 놓은 이 길을 여러분이 가야 할 때입니다. 나에게는 여러분을 모진 길로 몰아넣는 명령을 하든가 책임을 져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둬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더우기나 축복받은 패들은 축복이 얼마나 귀하며, 축복의 가치가 얼마나 크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을 떠나서, 혹은 좋을 수 있는 인연을 떠나서 그 반대의 도상에서 축복의 가치를 하늘이 요구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패들은 제일 일선에 서야 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사정을 봐줬으나 앞으로는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세계를 한 고비 넘겨 놓기 위해서는 넘어가야 하는 책임을 짊어겼다는 사람들이 단호한 결의 밑에서 스스로 하늘땅 앞에 결정지어 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책임이 있는 연고로, 이 결정이라는 것은 외적인 결정만이 아니예요. 내적인 결정까지 해야 될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 앞에 하지 못할 일을 명령할 지도 몰라요. 사리에 당치 않는, 어느 누가 생각할 때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환경에다 몰아넣을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뜻을 따라 나오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알기를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 있어서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예요. 책임을 완성할 때까지는 사랑의 하나님이 못 된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을 완성해 놓고 만민 앞에 가치를 돌려줄 때에 비로소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날 수 있지, 책임을 완수해 나가는 도상에 있어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가지고는 뜻의 성취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정하고 무정하신 하나님으로서 역사해 나왔던 것을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구요.
맨 처음에는 평탄하게 닦아 준 그 길을 간다고 했지만, 최후의 고비에 가 가지고는 하나님이 수고한 가치를 자기 개체의 일신 앞에 전부 다 걸어 놓고 사탄과 하나님의 수고의 탕감까지 겸하여 가지고 부딪치게 됩니다. 이때에 그 환경에서 위치를 양보하게 되면 거기서 그 사람은 거꾸러지는 거예요. 이것이 하늘 섭리의 기반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앞으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뜻을 대신해 맹세했고 오늘 실적을 남긴 사람들은 이제 외적인 핍박보다도 하늘이 지도하는 책임자로부터 자기들이 상상치 않았던 명령이 내려지게 될 때, 엄숙히 그 일로를 향하여 전심전력으로 자기 일신의 외적인 환경을 정리하고 자기의 모든 체면과 위신을 잃어버리더라도 그 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이 하늘 앞에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야만 여러분을 지도하는 스승이 아버지 앞에 가서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고, 축복의 혜택을 이들로 말미암아 만민 앞에 나누어 달라고 할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은 게 뭐예요?
예수님은 지금까지 애절한 십자가의 도상에서 승리의 한날을 세워 놓고는 영계에 가서 뭘하시느냐? 내적인 투쟁의 지도자가 되어 지금까지 기독교 신자들을 죽음의 자리로 나가게 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늘이 섭리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죽음의 고개를 향해 나가라. 주저하지 말고 가라'고 하는 그 명령을 받고, 즉 외적인 핍박에서 승리한 신자들이 내적으로 명령하는 하늘의 명령을 받고 투쟁의 길, 생사의 길을 가야 하는 거예요.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한 승리의 기반이 벌어져야만 그 기반 위에 내적인 주인 예수, 내적인 주인 성신이 임재할 수 있는 거예요. 성신과 예수가 임재한 그 기반 위에 실체를 이룬 외적인 자리를 세워야만이 비로소 하늘과 땅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어느 기간만 지난 후에는 여러분과 사정을 통하던 선생님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될 때가 온다는 거예요. 때를 맞기 위해서는 굶주리는 입장에 있더라도 더 굶주리는 자리에 내몰아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의 길은 가기 힘들다는 거예요. 그런 기간이 길는지 짧을는지 단언해서 말할 수 없어요. 단언해서 말할 수 없어요. 왜 그래야 되느냐? 지금까지 복귀노상에서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나왔던 우리의 선지선열들이 하나님이 가라고 한 명령의 길을 얼마나 배반했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명령하면 또 배반하였고, 가기로 맹세했다가 거꾸러지는 사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의 이념이라는 것은…. 이 시대적인 평면도상에 있어서, 현실적인 무대 위에 있어서 종적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의해 탕감적인 역사를 총결산하여야 할 사명이 있는 한 그 개체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예요. 역사적인 개체를 대신하여 사명적인 인연이 연관되어 있는 연고로, 그런 입장에 선 자신으로서는 기필코 한 개체의 사정에 지배받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천적인 전체 사정을 기반으로 하여 자체의 존재를 세워 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전체 섭리의 뜻을 한 뜻 앞에 모아 놓고, 한 무대 앞에 끌어들여 가지고 총결산지을 수 있는 탕감의 실체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늘이 지금까지 성취하지 못한 모든 권한까지도 전부 다 이루라는 거예요. 만일 여러분들이 싫다고 한다면 어느누구를 잡아다가라도 그런 일을 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을 대하는 선생님이 3년 기간을 지나서…. 섭리시대에 개인의 가정을 치는 데 하늘의 허락을 받았고, 그것을 연결시켜 가정의 복귀시대에 들어와 가정을 치는 데 하늘의 허락을 받았고, 종족과 민족과 세계를 쳐 나오는 데 있어서 하늘의 허락을 받았지만 핍박합니다. 왜 그러느냐? 인간이 인간 노릇을 못 했기 때문에 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허락했지만 오늘날 이것을 전체 축소시켜야 할, 오늘날 총탕감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진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선생님 자신이 그런 각오 밑에서 지금까지 나온 거예요. 그런 각오 밑에서 투쟁하여 어느 기반만큼 닦아 놨으니, 여러분들을 하나의 인격자로서 완전히 시련무대에 세워 놓고 잘라 놔야 된다는 거예요. 잘라 놔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과거 우리가 개인으로서의 뜻을 대해 나올 때는 거기에 동지자가 없었어요. 아무리 통곡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자기의 심정을 알아 가지고 동지의 입장에 서서 위로한 사람이 없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난 후에 위로의 상대자인 성신을, 천상천하를 대신하여 슬플 때 슬퍼해 줄 수 있는 대상의 실체를 고통의 고개를 넘고 나서 취한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는 안 된다는 말이예요.
이제 여러분이 여기서 시련무대를, 골고다의 고비를 넘게끔 길을 개척한 후에는 반드시 여러분 자신들이 그런 길을 책임지고 예수와 성신 역사를 실체로 대신하여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와 성신이 명령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섭리를 대신한, 혹은 책임진 선생님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을 제일 어려운 곳으로 내몰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이런 부모의 날에는 아무나 참석하지 못할 거예요. 하늘 앞에 거룩한 예물을 가진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거예요. 다시 한 번 하늘의 경륜이 있어서 명령하게 될 때 전체 뜻을 대신하여 생사를 개의치 않고 출동할 수 있는 사람만 오라고 이번에 지시했다구요.
무엇을 할 것이냐?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한 번씩 들이쳐 볼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40평생 시련도상에서 참아 왔고, 억울함과 분함을 제재해 왔고, 한 많은 심정을 억눌러 하늘의 길을 따라 나오던 그 원한을 누구에게 풀 것이냐? 먼저 통일 신도들 앞에 풀어 놓고…. 이것을 여러분 앞에 풀어 놓게 될 때 고이고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만 여러분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복의 인연이 연결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심판도상에 있어서 가정에서부터….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심판도상에 나가는 데 있어서 지금 때는 복된 새벽 때와 같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심판도상에 나갈 때 혼자밖에 못 나갔다는 거예요. 섭리시대가 개인적인 시대면 개인적인 섭리권 내에서 거기에 충성하면 개인적인 축복을 받았고, 가정적인 섭리시대에 있어서는 가정을 중심삼고 승리하면 가정적으로 축복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6천년의 오랜 역사를 거쳐 세계적인 축복권을 닦아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충성을 해도, 아무리 죽음의 고비를 간다 하더라도 과거 사람들은 한 단계 축복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시대라든가 가정적인 시대라든가 종족적인 시대의 제한된, 국한된 역사적인 인연을 따라 나왔어요. 시대적인 사명 앞에 충성을 했다 하더라도 그 시대적인 사명권을 중심삼고 축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까지 전체의 섭리를 오늘날 우리 생전에 대해 가지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전체적인 섭리의 원한을 중심삼고 심판 무대에 서 가지고 내 일대에 총탕감할 수 있는 시대적인 권한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 한 사실만 해도 얼마나 복되는 것이냐 이거예요.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가 전체를 대신하여 맞고 전체를 대신하여 제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체를 대신하여 피어린 눈물과 땀을 중심삼고 전체를 끌어내려야 됩니다. 전체를 끌어내리지 않더라도 그 뿌리만은 땅 위에 박혀질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이므로, 이것을 감당하는 데는 정상적인 지도 방법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신중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들이 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축복받은 사람들도 재정비해야 될 것입니다. 1차 정비, 2차 정비, 3차 정비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여러분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구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실천하지 못할 때에는 외국 사람들을 불러들일 거예요. 여러분이 실천하지 못한 자리에 외국 사람을 세워서 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야 되는 거예요. 최후의 고비에 가 가지고는.
그렇잖아요? 만약에 이 땅 위에 어떤 부호가 있어 가지고, 부자가 있어 가지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자기의 모든 위업을 상속시키려 할 때에, 반드시 거기에 있어서 뜻을 품은 부모라 할진대는 배경 무대가 큰가 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내가 되겠다, 앞으로 지금 역사를 위한 내가 되겠다고 하고, 시대를 염려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부모라 할진대는 반드시 그런 조건을 걸어 가지고 테스트할 거예요. 네가 나라를 얼마나 생각했으며, 역사를 얼마나 위했으며, 시대를 얼마나 염려하고, 미래를 얼마나 염려했느냐 하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은연히 어느 기간을 두고 시험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그런 시험 조건에 패스해야만 그 축복의 인연도 달려 넘어가려고 하고, 시대적인 인연도 그 사랑 앞에 축복의 위업과 더불어 달려 넘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만약에 그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을 세워 가지고 축복을 해주면 그 인연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과거의 역사적 인연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해야하는 거예요.
이런 한의 조건을 완전히 탕감하기 위해서는 그런 자리에 내세워 가지고 들이치는 거예요. 내가 상속받을 것이 많고, 축복받을 수 있는 위업이 크면 큰 보따리만큼 들이치는 거예요. 들이쳐서 그 보따리를 냉큼 받아 가지고 굴릴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위업을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위업을 받아서 망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하늘은 최후에 남아질 한 시련 고비를 남겨 놓고 여러분을 대하려고 하는 때가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떤 사람들이 '아이구! 아이구!'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3년노정만 넘으면 선생님으로부터 일대 정비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진짜 뜻 앞에 있어서 이제 민족적인 사명 시기를 지나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넘어가게 될 때입니다. 그러므로 민족 앞에 오는 시련무대에, 3천만 민족 어느누구도 견뎌내지 못하는 시련 무대에 내세워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남겨 놔야 된다는 거예요. 이래야만 자녀를 사랑하고 식구를 사랑할 수 있는, 식구를 자랑할 수 있는, 자녀를 자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자랑을 하려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보다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이 아버지 앞에는 더 자극이 된단 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겠나요, 무슨 말인지? 누가 뭐 어떻고, 뭘하고, 뭐 뜻을 위해 충성하고, 매를 맞고, 뭐 어떻고 하면서 지금까지 참아 남아져 가지고 뭐 이런이런 일을 했다고 여러분들 앞에 간증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 공의의 법도로 치리하는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선생님이 자랑하고 싶을 때, 과거에 내가 지내 나온 것과 그 사람이 지내 온 것과 비교할 때, 나를 떠나 즉, 사(私)를 떠나 공적인 입장에서 그 사람들을 자랑하는 것보다 선생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버지 앞에는 자극이 많이 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 '아버지 앞에 응당히 자랑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사람,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든 바람이 들이 휘몰아쳐도 거기서 늠름해 가지고 선생님이 머리 숙이고, 선생님이 '그래, 오냐 오냐' 이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늘도 선생님에게 많은 시련을 겪게 했어요. 내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지요. 큰 축복을 가졌으니만큼 큰 축복을 찾아 나오는 그 앞에 하나님이 크게 무정한 때가 많았다는 거예요. 무정한 때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줄 때예요. 나누어 주었으니 한번 해봐라 이거예요. 나누어 준 때였지만 이제부터는 거두어들일 때 입니다. 거두어들여 가지고 전부 다 까부리고 갈고 해서 진짜 곡간에 넣어야 할 때가 오기 때문에 그런 시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예」 곡식이 자랄 때에는 온갖 비료도 주고, 천지에 화창한 일기라든가 모든 것들이 거기에 화합하여 배양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협조해야 되고 흡수되어 들어가야 하지만, 일단 가을이 되어 추수하게 되면 주인의 손길을 거쳐 주인의 문전에 들어오게 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타작을 하게 되는 거예요. 까풀을 벗기는 놀음이 있어 가지고 주인이 원하는 알곡의 모양을 완전히 갖추어 주인의 식탁에 오르게끔 하는 과정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는 정비하고 깎고 또 깎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누가 하느냐? 곡식 자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인이 하는 거예요. 반드시 주인이 시키는 거예요. 그러니만큼 그런 때가 온다는 것을 아시고, 여러분 이제는 선생님 앞에서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 매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이 고개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40일간 하늘 앞에 영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방망이에 쫓겨나는 놀음을 했어요. 싸움하는 놀음을 했어요,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해서, 누가 붙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그저 모진 바람에 쓸어 넣는 거예요. 여기에서 누가 어떻게 남아지느냐가 문제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 도상에 있어서 남아질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예수가 되었던 거예요. 알겠나요? 「예」 거 아줌마들도 알겠어요? 아주머니들, 알겠어요? 「예」 아주머니들 단단히 정신차려야 돼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아주머니들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러니 누구든지 곱배기로 퍼부을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는 인정이 많았어요. 사정을 볼 때는 봐 줬지만 원리밖에는 몰라요. 원리원칙밖에는 몰라요. 이 원리원칙을 어떻게 해야 이 삼천리 반도에 전통으로 세우며, 여러분의 등골에 승리의 촛불로서 옮겨지게 하느냐?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내가 뽑을래야 뽑을 수 없는 뿌리를 박게 해주겠다는 거예요. 내가 뽑을래야 뽑을 수 없다는 거예요. 내가 터치할 수 없는 뿌리가 박히도록 하겠다 이거예요. 그러면 영생하는 거예요. 사탄이 와서 뽑아도 마음대로 안 뽑히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선생님을 뽑을래야 뽑을 수 없는 자리에 세워 놓고 모든 것을 맡기는 거예요. 기도해 봐요, 그런 가 안 그런 가? 그래야 사탄도 꼼짝 못해요. 그래야 절대적인 권한과 천상천하의 승리의 패권을 가지고 복귀노정의 역사를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남편에 의해 뽑혀요? 뭐 아들딸에 의해 뽑혀요? 무슨 뭐 생활고에 의해 뽑혀요? 아니예요. 이제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뽑을래야 뽑을 수 없는,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런 것을 가져야만 되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부인들, 알겠어요? 「예」 이제부터는 부인하고 나하고 원수예요.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역시 그렇고.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매요. 이래 가지고 여러분이 각오하고 결의 한 후에 뭘할 거예요.
이건 수련생들한테 읽어 주는 건데, 이건 미국에 있는 박중령(박보희) 한테서 온 편지인데 읽어 줄께요. 요 두어 장만, 한두 장만 읽어 주면 여러분들 대개 알 거예요. (편지를 읽으심)
"사랑하는 나의 아버님, 나의 어머님! 그리운 참부모님의 성탄을 슬하에서 모시고 영화롭게 못 하였사오나, 한없는 아름다운 추억과 감격과 결의로 이곳 몇몇 식구들과 경축하였사옵니다. 그 뒤로는 아버님의 역사하심과 권능이 발동하심이 배가하여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이 자식들을 새롭고 흐뭇한 싸움터로 인도하셨나이다.
바로 한국에서는 온 누리에서 모인 식구들이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천국 잔치가 벌어졌을 1월 29일 화요일 밤 8시에 저는 이곳에서 약2백명의 미국 기독교인을 앞에 놓고 단 위에 서 있었나이다. 이곳 버어지니아주의 여러 교회 부인 연합회 주체로 매년 한 번씩 모이는 회합에 소자는 연사로 초청받았었나이다. 단 위에 서 있었던 그 순간에 이 순간이 천상천하에 얼마나 귀한 순간인가를 생각했나이다.
지금 모시고 즐기실 장면, 그리고 너무도 역력히 떠오르는 부모님의 모습을 그려 볼 때, 그 엄청난 기쁨을 그 자리에서 마음것 폭발시키지 못하는 분한 마음이 있었나이다. 또한 가슴을 찔러 첫 마디가 떨어지기 전에 이 자식은 목메여 울고 있었나이다. 하염없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나이다"
여러분들은 그런 걸 못 느끼지요? 이런 걸 다 느껴 봐야 된다구요, 본부가 얼마나 그립다는 걸. 여기서는 여러분들 모일 때 예배시간에도 다 안 나오고 무슨 뭐 이렇지만…. 그런 것들은 전부 잡아다가 아프리카 같은 데에…. 오늘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그런 지방에 갖 다 놔 가지고 한국이 그리워 벌렁벌렁 기어서라도 오겠다는 결의를 할 수 있도록 한번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때 되어야 정신을 차리지요.
여러분들을 못살게 해야, 선생님이 그래야 되는 거예요. 연단은 안팎으로 해야지요? 외적인 일은 그래요. 외적으로 강(剛)하게 될 때는 선생님이 유(柔)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전부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이 유했어요. 그다음에 외적으로 유할 때는 내적으로 강해야 파괴가 안 됩니다. 그래 강유(剛柔)를 겸해야 된다고 그랬지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세상 사람들의 말도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이제 그런 때가 왔다는 거예요. 이제는 선생님을 만나 보기도 힘들 거예요. 그러니 무슨 말이나 무슨 사정을…. 옛날에는 밤을 새워 가면서 한 사람이 간증하는 걸 두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일곱 시간 이상 선생님이 들어 줄 때가 많았다구요. 어서 더 하라고 그랬어요. 한 방에 같이 앉아 있는 식구들은 저거 저거 입을 그저 획 까 놨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툴툴하더라도 '어서 해라, 해라' 그랬다구요. 그런 때도 있었다구요.
그 반면에 천년 만년 공들여 암만 며칠 동안 찾아와 이야기하더라도 나는 듣지 않는다구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귀에 들리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주인을 누구로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그러는 거예요. 주인이 선생님인데 자기를 주인으로 만들려고 하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쓴맛 단맛 다 갖추어 가지고 거기서 자기 실존체를 남겨 줄 수 있어야만 쓸 만한 사람이예요. 그렇지 않고는 아무데 도 못 쓰는 거예요. 바람이 불면 넘어가는 거예요.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넘어져 가지고 일으키지 않으면 죽은 나무가 되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패들은 그런 걸 다 모른다구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나이다. 드디어 입을 열고 이 기쁨과 원통함이 교차한 불덩이를 사정없이 토해 내니, 아버님의 역사 배경하에 결과는 엄청난 승리였소이다.
불과 말씀 시간은 전부 17분이었사오나, 이 17분은 관객 하나 하나의 가슴을 쥐어 짜고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너무도 역력한 시간이었나이다.
말씀은 신비의 어머니로소이다. 이 말씀을 가지면 온통 미국을 순식간에 불사를 수 있다는 신념이 이처럼 강한 때가 일찌기 없었나이다"
여러분들이 그런 말씀을 배우고 있단 말이예요. 이 녀석들! 사탄의 사촌들을 전부 다 잡아다가…. 그런 거야! 수련생들. 뒤에 계신 분들은 오해하지 마세요. 이 수련생들이 그랬단 말이예요. 사탄의 누더기를 쓴 것들을 잡아다가 이 귀한 말씀을 가르쳐 주는데 끄덕끄덕 졸고 있어. 알겠나, 수련생들? 「예!」 그렇지. 단단히 알아야지. 밸이 끊어지도록 알아야 돼. 등골이 녹아나도록 알아야 된다구.
"그것은 이 자식이 말씀함이 아니라 곧 아버님의 말씀함이로소이다. 저들이 이구동성으로 많은 웅변, 많은 설교, 많은 강연을 들어왔건만 이같이 감동하기는 처음이라 하오니, 이는 아버님의 그 심정을 처음 맛보는 자의 너무도 당연한 고백이 아니오리까? 아버님의 심정의 행렬 앞에 아니 무너질 자 그 누가 있겠나이까?
저희들은 이렇게 색다른 승리로서 승리의 해 1963년의 성스러운 날을 맞았나이다. 그 모임에서 이곳, 저곳의 예배와 기도회를 인도해 달라는 청을 즉석에서 받은 데다, 2월 6일부터는 더욱 놀라우신 역사로 이 자식을 경악케 하였나이다.
2월 7일이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의 날인 것은 이미 말씀드렸나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생일에 중요 각료들이 모여 가지고 기도회를 합니다. 미국 정부를 위하여, 미국 국민을 위하여 하늘에 복을 비는 기도회를 갖는데,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는 동시에 미국 국민들에게 축복을 하는 날이예요. 그런 기도회예요.
"조찬회 날인 것은 이미 말씀드렸나이다. 2월 7일 이 행사를 중심삼고 인터내셔날 크리스찬 리더십에서는 매년 약 4일간의 전국 총회를 갖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국제기독교인지도자헙회'라는 이런 이름이예요. 통칭 대문자를 딴 아이 씨 엘(ICL), ICL이라는 것은 '국제기독교인지도자협회' 이런 말이예요.
"저는 이 전기간에 정식 회원으로 등록을 하였던 것입니다. 먼저, ICL의 부흥운동은 지금부터 약 27년 전 1935년 씨애틀에서 아브라함 벨레이디 박사의 제창으로 창시된 것으로, 그 중요 목표는 이 나라 지도 계급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라를 영도하지 아니하면 국가의 장래가 비참 할 것이라는 데서 동기를 얻어 평신도들이 주동이 되어…. 금년이 제11차 되는 해였사옵나이다.
2월 7일 아침 7시 50분, 워싱턴의 유서 깊은 메이 플라워 호텔의 대식당에는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지도자들의 부처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나이다. 남자 여자 따로따로 별실로 자리잡고 각 방에 약 800명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은 정부 각료, 대법원 판사, 국회 상·하의원, 각국 대사, 저명한 실업인, 이런 분들과 그 부인이었으며, 저와 기숙(박보희씨 부인)도 각각 자리잡고, 바로 케네디 대통령 곁에는 두 하원 의원이 같이 앉았었습니다. 단 위에는 방송시설이 설치되어 전광경을 미국에 방송하도록 마련되어 있었나이다.
이윽고 행사는 시작되고, 드디어 대통령의 입장이 있었고, 기도와 찬송과 연설로 관중들, 아니 전 미국인의 감동은 고조되어 이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그리스도 앞에 맡기는 기도회는 빌리 그레함 목사의 설교로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드디어 대통령의 연설로 끝을 맺고 다 같이 일어서서 찬미하고 기도할 때 저의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이 기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단 한 분께 목메여 달리고 있었나이다.
그리고 단 하나뿐이었소이다. 이 800명 군중 안에 알고 기도하는 자는 오직 소자 하나였소이다. 그리하여 소자의 기도는 달랐나이다. 아버님의 심정을 알고 보니 무엇을 기도하여야 되올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나이다. 대제의 밀사, 이는 미 대통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나이다. 빌리 그레함 목사의 연설을 의미심장하게 들었나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그들을 위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지었나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늘을 우러러 기어코 맹세키를 '머지않아 이 제전을 참부모의 복귀의 심정으로 진동케 할 날을 반드시 쟁취하겠나이다' 하였나이다.
이와 동시에 각 주의 주지사들은 주청 소재지에서 같은 기도회를 열고 있다고 하오며, 이 순간에 기도회에 총합된 수효와 전국에 300만, 이들은 명실공히 미국의 등뼈요, 세계의 지붕이로소이다.
이어 ICL연맹 총회에 참석하는 동안 아버님께서는 이 자식이 하늘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주셨나이다. 한 번은 대통령 조찬이 있기 전날 개막하는 때였고, 한 번은 마지막 폐하는 날이었나이다. 이 모임의 알파와 오메가를 하늘이 보내신 사자가 장식하였으니, 결국 전체 회의를 아버님께 드리는 조건을 형성할 수 있었나이다.
첫날에 너무 뜻밖에 당년 75세의 창시자 벨레이디 박사의 제의로 신앙의 간증을 하게 되었으며, 그 순간은 소요스럽던 장내를 쥐죽은 듯하게 만들고, 약 15분 동안 한국 기독교의 세계적 사명에 대하여 심중에서 토로할 때, 말 못 할 찬동과 감동이 장내를 충만케 하였나이다.
'오늘 이 미국의 융성, 물론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한국의 시련과 고통, 이것도 귀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는 이 시련 속에서 신앙을 배웠고, 그리고 그 신앙은 뜨거운 불에 쇠가 강철로 될 때의 무서운 시련 속에 죽음도 불사하는 크고 담대한 믿음으로 자랐다. 이보다 귀한 축복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이 크고 담대한 신앙을 기둥 삼고 천국을 이루신다. 나는 한국의 이 신앙심을 자랑한다"
이건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만이 할 수 있는 말이예요.
"이제 한국은 세계에 할 말이 있다. 나는 미국 사람이 못 할 말을 할 수 있다. 진흙 속에 피어난 꽃을 보여 주고 싶다. 세계를 여는 열쇠는 한국에 있다. 구주 예수는 궁전에서 찾아서는 못 만난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구주가 오심같이 오늘 20세기의 말구유가 한국이 아니라고 장담할 자 누구냐?' 했나이다.
얼마나 엄청난 선언, 얼마나 담대한 선언, 상징과 비유 속에 참뜻을 감추고 열렬히 결론지을 때 저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더이다. 심장에서 뛰는 말임은 누구에게도 명백하기 때문이로소이다. 어느 한국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으며, 어느 한국 사람이 '이젠 한국이 할말이 있다' 하고 외쳤사오리까? 아버님을 아는 자랑, 아버님을 믿는 자랑, 아버님을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특권, 너무 너무 골수에 사무치게 기쁘고 감사하였나이다.
두고두고 이런 간증에 감명받았다는 회원의 인사를 받으면서 드디어 저는 마지막 희열을 만났나이다. 저는 기도 가운데 아버님께서 기회를 한 번 더 주실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아니하였나이다"
이건 믿어야 돼요.
"드디어 한 번 더 기회가 왔을 때, ICL을 대폭 지지하는 간증으로 이들을 흥분케 하였나이다. ICL을 전폭 지지하는 연설을 하게 된 이유는 4일간의 회의를 통하여 이 조직단체야말로 아버님의 한 날을 위하여 예비하신 피흘린 자업이라는 신념에서이옵니다.
첫째,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ICL은 겨우 이제 와서 개화 번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즉각 그 번성의 이유가 이를 통하여 원리를 선포케 하시려는 하늘의 섭리임을 읽었나이다.
ICL은 원리가 타고 다닐 백마, 천리마임에 틀림없다는 신념이 굳어져 가고 있사옵니다. ICL은 강력한 평신도의 단체라는 것, 평신도의 교회를 건지는 유일한 길이라 하니, 여기서는 목사가 명함을 내밀지 못하며, 목사가 있긴 있으되 한번 목사가 간증하면 '아직 목사 냄새가 나지만 그저 두고 쓸 만하다'고 야유할 정도이오니, 아버님께서 명시하시던 평신도의 전성기임을 보았고, 이는 원리 앞에 비난 아닌 비난을 늘어 놓을 수 있는 목사 진영을 이미 거세하고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둘째, 이 모임은 사회 상류층의 모임이요, 정치·경제·사회면에 가장 유력한 인물들의 단체라는 것이옵니다.
세째, 이는 이미 교파의 테두리를 벗어나 초교파적 모임이니 얼마나 다루기가 좋겠습니까? ICL을 부흥케 하는 것은 교파의 존재 가치를 무시하고 들어가는 자동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옵나이다.
넷째, 이들은 말씀에 굶주린 자들, 갈급함을 느끼면서 참 말씀이 오면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뽑아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옵니다.
다섯째, 이 운동이 국제적으로 파급됨에 따라 말씀도 같이 파급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워싱턴 부근에도 40여 개의 모임이 있는데, 그 한 곳에 가서 미리 말씀을 주었고, 그로부터 연쇄 반응적으로 앞으로 무수한 초청을 받을 듯 하옵니다.
일전에 상공회의소 만찬석상에서는 미 국회의원이 와서 제 말씀을 들었는데 국회의원 조찬 기도회에 한번 오도록 초청을 하겠다고 제안하니, 이것은 어디까지가 오묘하고 놀라우신 섭리인지 도무지 상상할 길이 없나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국회의 공격을 앞두고 기도하는 중이로소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당분간 전적으로 ICL의 중진으로 일할 것을 결심하고, 마지막 조찬 때에는 전적으로 ICL의 부흥을 위하여 간증하니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 한 부인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듣게 하려고 하나님이 당신을 이 모임에 보내셨다 하더이다.
아버님, 어머님! 이제부터 1주일은 좀더 작전계획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기간이로소이다. 한없이 한없이 죄송하옵고, 선물은 크고 그릇은 너무 적소이다.
뭐 이런 내용의 편지예요.
그리고 영운씨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백번 당부하기를…. 제발 식구들한테 공개하지 말라는 밀서가 왔어요. 그러니 그런 부탁대로 그렇게 해줘야 되겠다구요.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해줘야 되겠어요.
그리고 영운씨한테서 온 편지는 그만두고 입정교성회(立正校成會)에서 온 편지를 읽어 줄께요. 일본 말을 대개 알지요? 모르는 사람들은 귀를 좀 빌리라구요. (일본에서 일본어로 온 편지를 읽으심)
"천부의 성은에 감사합니다. 조국의 그후의 활동은 어떠하십니까? 여기 일본에는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40일의 수련을 받은 수련생은 각각 지정한 장소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성회 편에서도 구체적인 운동을 성안(成案) 중에 있습니다. 성안 중에 있지만 지금 교성회 를 중심으로 세계청년회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었으며, 그 회장으로는 교성회의 회장인 니와노 회장을 두기로 했고, 세계적인 청년 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원리를 중심으로 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지도 운영은 제가 고문의 입장에 있으면서 하게끔 되었고, 입정교성회 뿐만이 아니라 일본에 있어서의 종교혁명, 종교통일을 이와 같이 실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1회 세계청년회 수련회 40일간을 3월 1일부터 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우수자를 선발하게끔 되어 최고의 교육을 원리 밑에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국책으로서 인간 개조를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다음 단계에는 정부와 일체가 되어 전일본 청년을 수련하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입정교성회라는 이 단체가 아까 박씨도 얘기했지만 일본에 있어서 유력한 단체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종교적인 기반 배경을 가진 이런 사상적인 단체라는 걸 알게 될 때는…. 일본에서는 대개 불교 사상이 농후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단체를 대신하여 앞으로 그런 방향에 있어서의 정부의 시책에 관여할 단계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편, 저편에 다 연락되는 거예요. 그런 내용이 있어요.
"이 세계청년회 사무소와 수련 장소는 우리들의 동경교회입니다. 기쁨으로 꽉차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신년이 되었기 때문에 결의도 새롭게 하여, 부모님 탄신일을 맞이하여 마음으로 추구하면서 그리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용진 중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도 지금부터 하늘의 반격의 때인 것을 각 지방 하늘의 용사들에게 보내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편지 내용은 뭐냐?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일본 식구들한테 지지 않게끔 분투해 달라고 매번 부탁의 말이 오곤 했어요. 틀림없이 눈들이 멍해 가지고, 졌지 별수 있어요? 꼴 좋겠다구요.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체면 안 서면 보따리 싸 가지고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이 될 거예요.
그다음엔 요건 그다음에 온 것인데, 요건 누가 오면서 가져온 거예요. 그 편지를 내가 한번 읽어 주지요. 요건 뭐냐 하면, 그러니까 입정교성회의 회장께서 사태가 이미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념 아니면 종교를 수습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자기 동경본부에 있는 국장급들, 직속 부하들을, 전국에서 자기 교단을 지도하는 최고 간부 다섯 명을 먼저 수련시킨 거예요. 수련시켜 놓고 그다음에 이제 청년들을 떡 빼돌려 가지고 수련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교회에 신앙적인 면에서 어떤 반응이 없겠나 해서 이 회장이 순회하는 거예요. 순회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 입정교성회에서는 통일교회에 유학생을 보내 가지고 공부시킨다고 하면서 쭈욱 유세하면서 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요 첫부분은 "부모님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었어요. (일본에서 일본어로 온 편지를 읽으심) "어쨌든 일본복귀와 세계복귀는 우리들한테 위임해 주십시오.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번역해 줘요? 「예」
"요즈음은 기쁨뿐이옵니다. 전도는 순조로이 진행되어 내 3월 1일부터는 교성회의 청년 훈련을 준비하기에 대단히 바쁜 상태에 있습니다. 금번 교성회 회장이 지방 순회하였을 때에 신자들한테 이제부터 교성회의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유학시킨다고 말씀함으로써 기관 신문에까지 발표되어 있습니다. 이 교성회만 움직이게 되면 문제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큰 거예요. 그다음엔 요거예요. 요것은 아까 말한 박목사한테 온 거예요. 그러니 최후에는 세계복귀도 문제없다구요. 벌써 열 시 반이구만요.
그러니까 들은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해주라요. 「예」 그리고 내 요전에도 수련생에게 이야기했지만, 이제 선생님이 제일 걱정하는 게 뭐냐 하면 본부가 바쁘겠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끌고 세계무대로 나가야 되겠느냐, 일본 사람들을 끌고 나가야 되겠느냐? 요즈음 제일 궁금한 게 이것에 관한 거예요.
그리고 이런 실정으로 봐서 앞으로 국내 실정과 해외 실정을 비교해 보면, 까딱 잘못하다가는 보따리를 바꿔 쥡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국 사람들, 돼지 같은 사람들, 뭐 볼 게 있나요? 우리에게 뭐 아무것도 없다구요.
일본에서는 지금 앞으로 한국의 모든 경제도 전부 다 움직이려고 하는데, 돈을 가지고 오는 것도 걱정이예요. 그렇게 말하고 있다구요. 자기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아주 큰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러니만큼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그런 신세를 져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신세를 지게 안 되어 있거든요. 신세져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무엇으로 한몫 메우게 하느냐 이거예요. 다른 것 없어요. 죽도록 고생하는 거예요. 재산이 그것밖에는 없거든요. 재간이 또 그것밖에 없어요, 재간이. (웃음) 뭐 있나요? 빈손 들고 고생이라도 해 놓으면 없기는 없지만서도 이것이 무한한 보화라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이렇게만 움직여 나오면 앞으로 선생님이 일본 가서 꼭대기 쥐고 흔드는 거예요. 그때 가서는 이 본부에 있는 껄렁패들, 껄렁패들이예요, 본부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겠다 싶으면, 눈치를 봐 가지고 선생님의 어디에 구름끼가 낀 것 같으면 슬쩍 양지로 싹 돌아가지요. (웃음) 아주 뭐 이중작전에는 능숙한 사람들이예요. (웃음) 전법으로는 최고의 전법을 배운 사람들이예요, 가만 보면.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몰아 가지고 한 곳에 몰아넣고 위에서 냅다 밀어 가지고 국수처럼…. (웃음) 여러분 국수는 잘 먹지요? 요런 통에다가 이래 가지고 냅다 이기면 그게 찢길 건 찢기고, 째질 건 째지고 다 갈라진다구요. 그래 가지고 다른 구멍으로 밀면 그 구멍으로 나가야지 별수 있나요? 그러니 딱 갖다 놓고 냅다 밀 거예요. 뭐가 되나 보자는 거예요. 그저 쓸데도 없는 찌끄러기를 이겨 가지고 한번 멋지게 밀어 넣으면 그것도 전부다 국수로 된다구요. (웃음) 그놈을 멋지게 늘려 가지고 끊어지지 않게 되면 진짜 더 질길지 모르지요. (웃음)
여러분, 국수 먹을 때 이렇게 생각하라구요, '선생님이 나를 국수발로 만들었지' 하고 말이예요. (웃음) 이놈의 국수발을 한국 사람의 입에다 떡 물리고, 일본 사람의 입에다 떡 물리고, 미국 사람의 입에다 떡 물려서 잡아채면 제일 악착같은 사람이 안 놓는 다구요. 한국 사람에게 물려 놓으면 제일 악착같을 거예요. 미국 놈들도 이걸 잡아당기다가 늘어져서 못 끊고 끌려 내려가요.
그렇게 생각하면 고무줄이나 국수발을 물고 있는 데는 이빨이 제일이예요. 굶주렸다가 먹을 게 입에 들어가는 데 놓겠나요? (웃음) 악물고는…. (웃음) 그래 가지고 전부 다 10년 싸워도 안 놓는다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이런 국수발을 만들어 놓으면 세계 사람들은 여러분의 입 안으로 전부 다 들어올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게 우스운 얘기가 아니예요. 일리가 있는 얘기란 말이예요.
우리는 재산이 없어요. 재산이 없고, 또 뭐 암만 먹으려고 해도 먹을 게 있나요? 지금 보라구요. 암만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또 점점 먹을 게 없어지는 나라가 한국이예요. 암만 입을 것을 찾아다녀도 입을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나라가 한국이예요. 암만 잘살고 싶어도 잘살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예요.
이왕에 최고의 백점짜리 기준에서 못살 바에 50점짜리에서 살면 뭘하겠어요. 50점짜리나 0점짜리나 마찬가지지요. 도리어 거리의 걸인들이 더 나은지 모르지요. 집 걱정을 안 하거든요. 먹을 걱정을 안 하거든요. 그래 가지고 민족을 위하고, 그래 가지고 나라를 위하고, 그래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봉사했다는 위인이 있다면, 그는 성현의 명패를 달아 가지고 세계일주를 시켜 주고도 남을 만하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예요. 그러니 이왕지사, 하늘이 그런 환경으로 때려 모는 것은 틀림없는 거예요. 뻔하잖아요? 뭐니 뭐니 할 것 없이 다 보따리를 집어 둘러메고 나서는 거예요. 나서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고생하라는 거예요. 그저 죽도록 고생하는 거예요.
여자들 말이지요, 어떤 아주머니들을 떡 보면 꼭대기에 털이 허옇게 빠진 아주머니들이 있대요. 서울 아주머니들 중에 그런 아줌마들이 있단 말이예요. 그런 아주머니를 가만 보면 얼마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그랬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구요. 사실 그래요. 서울 여자들이 왜 저 머리 꼭대기가 빠져야 하는지 생각해 봤어요. 그저 먹고 앉아 가지고 입을 보태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소질이 많을 거예요. 아 저 여자는 끄덩이-끄덩이란 좋은 말이 아니지요-가 빠지도록 지금까지 뭘해 먹었노? 끄데기가 빠지도록 하늘을 위했다면 하나님이 면류관을 씌워서 그 흠집을 매워 줄 터인데 말이예요. (웃음)
그거 보고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그런 아주머니들은 잡아다가 전부 다…. 그런 사람들은 국가의 수치예요. 그런 여자들을 전부 다 고생을 시켜 가지고 고생 면류관을 하나씩 씌워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고생 면류관을 값으로 치면 말이예요, 영광의 면류관이예요, 영광의 면류관이예요. 무슨 뭐 주님이 올 때는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무슨 면류관 해서 면류관이 한 20개 되지요? 그 중에 제일 사기 어려운, 제일 귀한, 제일 받기 어려운 면류관이 뭐냐 하면 고생 면류관이예요.
고생 면류관만 하나 쓰고 나서면 천하 어디든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요. 영광 면류관을 쓰고 나서면 일방적이예요. 마음대로 통하지를 않아요. 그렇지만 고생 면류관을 쓰고 나서면, 암만 강한 녀석도 그 면류관을 한번 갖다 씌워 놓고 걸쳐 주면 눈물이 썸뻑썸뻑하고 지갑에 있는 돈이 들락날락한다는 거예요.
이걸 만들어 놔야 선생님이 이다음에 이웃나라에 가서도 사람들을 모아 놓고도 무안하지 않아요. 그리고 '여러분, 고생 면류관 쓰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구경시키고 싶다'고 말을 할 거예요. 지금은 상징시대요 형상시대로 실체시대를 찾아들어가는 때예요. 말만 할 때가 아니라 실체 통과할 시대예요. 말과 더불어 실체를 같이 결정 기준까지 이루어 놓아야 할 때인 연고로, 그때는 선생님이 가게 되면 혼자 안 갈 거예요. 그런 고생 면류관을 제일 잘 쓴 사람을 데리고 가는 거예요. 가서 선생님이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식구들을 자랑해요, 식구들을 이런 자료를 많이 만들어 놓아야 돼요. 만들어 놓아야 된다 말이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엊그제도 이야기했어요. 역사를 꾸미는 사람과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을 볼 때, 역사를 꾸미는 사람들은 눈이 말긋말긋하고, 아주 사리에 밝고, 이치와 모든 생활적인 방편에 있어서 어느누구에게 주름잡히지 않는 패들이예요. 그건 그저 종살이밖에 못 하는 거예요. 그러나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우둔한 패예요. 미욱한 거예요.
보라구요. 옛날에 한국으로 말하면, 그래도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다 우둔한 패들 아니예요? 안중근 의사 같은 양반도 전부 다 우리보다 미욱쟁이예요. 미욱한 패예요. 땅곰이예요, 땅곰. 안중근 의사 같은 사람을 볼 때 원만한 성격이 아니예요. 미욱한 거예요. 김구 선생 같은 분도 얼마나 미욱한가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그다음에 또 누구? 여자 가운데 누구? 「유관순」 유관순이, 그거 멧깨비(맹꽁이)예요. 그 시대에서는 멧깨비예요. 미욱한 거예요. 이건 하나밖에 모르는 거예요. 사람을 모르는 거예요. 어두운 데 주먹을 내놓게 되면 아가리, 턱주가리가 떨어져도 모른다구요. 모르면서 내미는 게 목적이지? (웃음) 내미는 게 목적이지, 나중에 죽든 살든 뭐 시아버지 감투가 날아가거나 뭐 아버지 팔이 떨어지든 그거 생각지 않는다구요. 그러니 우둔한 사람이 예요.
오늘날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미욱하고 우둔하고 어리석고 천치 바보 같은 사람들이예요. 그렇지만 역사를 꾸민 사람들은 아주 학자들,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예요. 안다고 기름 때 끼여 가지고 살랑살랑 곁길 노름으로 걸을 줄 아는 사람들은 역사를 창조할 수 없어요. 조정하여 역사를 꾸미는 종노릇이나 했지요. 그것 가지고 좋거니 나쁘거니 이래 가지고 뭘해요? 그저 잘 닦아 바르게 해 놓는다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어때요? 역사를 꾸미는 교회가 아니예요. 통일교회는 역사를 창조하는 교회입니다. 창조하려니 무지해요. 모가지가 떨어지도록 무지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혁명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이해할 수 없을이만큼 무지해야 됩니다. 이건 한 번만 명령해 놓으면 나중에 하나님이 곤란하게 해야 된다구.
여러분 그래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이거 해라!' 하고 명령할 때, '이거 취소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명령을 했는데 보니까 무지하기가 짝이 없어요. 그렇지만 나가라고 했으니까 그저 가랑이가 찢어지건 뭐가 찢어지건 뭐 열흘 동안에 갈 것을 하루만에 가려고 해요. 팔다리가 떨어질 정도로 가게 되면 선생님도 항복하는 거예요. '야, 야, 그거 관둬라. 내가 다 하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각 지구면 지구에 그런 패들이 점점…. 이제는 사방을 보니까 자기 혼자 남은 것 같거든요. 돌아다 보고 '아이구, 내가 어디쯤 와 있나?' 하고 돌아볼 때가 되었어요. 그래 가지고 무지하고 탱크 부대와 같은 사람들이 없어지려고 하는 때에 왔으니, 이제는 제2차 수습을 해서, 다시 정비해서 무장하여 내몰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검부러기 다리를 놓으려고 야단했지만 이제는 쇠다리를 놓아야 되겠단 말이예요. 쇠다리를 놓으려고 야단하고, 그다음에는 금다리를 놔야 돼요. 금다리를 놓을 때에는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와서 구경하고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때를 향해서 여러분이 재차 무장해 가지고 이제 다 나가야 되겠습니다.
달구지 하게 되면 황소에게 메는 것이 정상적인 시대에 하는 일이지만, 전시에는 암소라도 달구지를 메게 해야 되는 거예요. 평화시대에서는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은 전부 다 남자들이 하고 여자들은 일을 안 했지만, 지금은 통일교회에 있어서 최대 비상시기이니만큼, 전시이니만큼 남자들이 부족할 때에는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일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여자들을 그저 전부 다 때려모는 거예요.
어디 그렇게 해도 좋다는 여자들은 약속하자구요. 손들어 봐요. 다 내리라고. 싫다는 사람도 손들어 봐요. 싫다는 사람 손들어요. 싫다는 사람 손들란 말이예요. 그래도 생각이 있는 모양이구만.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고생시켜 가지고 여러분 등쳐 먹겠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욕심이 많아요. 사실 선생님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앉아서 요술하는 도적놈이예요. (웃음)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낚시줄은 지금 세계에 늘어 놓고 낚시대는 하나만 떡 내놓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낚시줄은 천 리나 되는 거, 십리나 되는 거, 한치 거리가 되는 거 등 수많은 것이 있어요. 걸려 있다는 거예요. 수많은 낚시줄이 걸려 있다구요. 그런데 요 한 치쯤 되는 것이 물에 들어가자마자 걸리는 고기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이걸 당기기 시작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줄이 길고 멀면 멀수록 깊은 대양일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낚시꾼이라면 조그만 것이 톡톡 물어도 그것에 대해서 신경써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너는 무는구나. 너희들 떼거리 자꾸 모여라' 이렇게 해야…. 그 뒤에 제일 큰 놈이 몇백, 몇천 리 밖에서 오는 겁니다. 그 몇천 리 밖에 있는 한 마리를 잡아야 된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여러분들 데리고 이렇게 하는 목적이 뭐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낚시질을 곧잘 합니다. 40일 이상 밤낮으로 해봤습니다. 내가 낚시질해서 잡으려고 하는 고기는 첫번에 데꺽 무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거 물어라. 송사리 떼야, 모여라' 해 가지고 맨 나중에 지긋한 놈이 물 수 있게끔 떡 기다리고 있어 가지고…. 송사리떼들은 그저 왔다 가는 놈이 많습니다. '아이고 맛있다. 낚시질하는 주인이 돌았군 그래' 그러면서 먹고 돌아가는 거야. 목적이 그건 줄 알지만…. 그런 생각 많이 한다구요.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들이 전도하는 것을 보라구요. 지금 끈이 달렸는지 모르고 나가 전도하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잡아당길 한때가 올 것이다 이겁니다. 그때는 큰 사건이 나서 먼저 걸려 가지고 야단치는 것들은 다 죽어서 살은 썩어져 없어지고 뼈다귀 같은 것이 걸릴지 모른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끈기 있게, 이 낚시줄이 얼마만큼 큰가 알고 기다렸다가 물 줄 아는 고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니 얼마든지 기다려라 이겁니다. 송사리떼들은 기다리다가는 죽어 버린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마음을 크게 먹어라 이거예요. 내가 한번 해 가지고 제일 굵은 놈을…. 내가 한번 물면, 선생님이 낚시꾼이라면 잡아당기겠지 하는 패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그런 표준을 가지고 나가느니만큼 여러분은 대번에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라구요. 떡 놓고 10년씩 기다려도 바쁘지 않다고 하면서 기다린다 이거예요. 왜 시일이 빨리 가나 하는 시시한 생각 하지 말라구요. 비가 오나 춘하추동 변하더라도 꾸준히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필시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는 고생이 막심하다 하게끔 시켜야 된다구요. 지금 당장에 없어 가지고 움직이는 데 어떻게 참느냐? 참으려니 죽을 지경이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그때까지 참아 가지고 나가야, 낚시에 걸린 큰 선물을 가져 가지고 주인이 좋아할 때 여러분들도 거기에 좋아할 수 있는 낚시꾼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뭐냐? 낚시꾼이라는 거라구요. 낚시꾼이 돼야 돼요. 여러분들은 세계 앞에 줄을 늘어 놓고 낚시질하는 사람이 되려면 오래 참고, 오랜 준비가 필요하고, 오래 기다리면서 꾸준히 계속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얼마나 고생해야 되느냐 말입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세월도 갈 거예요. 그런 거 하등의 관계 없다구요. 일을 성취하느냐가 문제라구요. 여러분이 그때까지 참아 가지고 해 나오면 여러분들은 많은 사람들을 건질 수 있다구요. 그러면 잡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선생님이 뭐 요즘 그러잖아요? 여러분에게 좋은 때가 오면 선생님이 뒷방살이 가서 설교 안 한다구요. 얘기도 안 한다구요. 어디 교회의 사람으로서 척 꽁무니에서 하는 것 보고…. 때가 좋은 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다 넘겨 주고 선생님은 뭐 돌아다니지요. 이번에도 또 전국적으로….
그리고 이번에 전국에 배치한 모든 식구들에게 전반적인 이야기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떠한 책임으로 배치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교육했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선생님이 이제 여러분들에게 삼천리반도의 책임을 분담해서 맡겼으니 하고 안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거예요. 선생님은 결과만을…. 지금은 결과주관권 내가 지나가는 때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맡은 지역의 결과만 주관하는 거예요. 결과가 잘 됐나 안 됐나 보는 거라구요. 결과가 잘못 됐을 때는 시정해 놓아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는 고로, 그 사람이 책임 못 할 때는 그 사람을 빼놓고 딴 사람을 얼마든지 배치할 수 있다 이거예요.
따라서 축복받은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과거보다 더…. 먼저 자기들이 하는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가치문제, 결과문제예요.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걸어 놓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바쁘게 됐습니다. 알겠어요, 박봉숙양이랑, 또 누군가 황회장! 그렇게 부처끼리 앉아 가지고 이마 맞대고 여관방에서 재미있게 살게 안 되어 있다구. 그렇게 살아 가지고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구요.
남방 나라 검둥이가 있는 아프리카에 한번 보냈으면 좋겠다구. 보내주면, 뭐 전표를 떼어 놓으면 가야지 별수 있어요? 안 가면 선생님을 모르는 거예요. 그런 놀음도 해야 되겠다구요. 그리고 금년에는 어떻게든 선생님이 외국 가는 길을 터서 배치해 놓아야 되겠다군요. 적어도 몇 개 국은 해 놔야 되겠습니다. 공관과 어떻게 교섭해서라도 여러분을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이 죽기 전까지는 어느 기준까지 해 놓고 가야 저나라에 가서 선생님이 위신을 세우고, 여러분의 명예를 가지고 가야 저나라 앞에 있어서 혜택도 베풀어 줄 수 있지 여러분들이 못하게 되면…. 아벨이 못 하게 되면 가인은 형편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야 할 책임적인 임무라는 것은 자기의 일신에 달려 있지 않고 전체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에 있던 부처들은 전부 다 내일부터…. 오늘이 며칠인가요? 선생님이 이번에 어디 갔다 올 터인데, 갔다 올 때까지 교회에 있지 말고 보따리 싸 가지고 다 나가라구요, 이번에 축복받은 사람들 말이예요. 그리고 축복받은 패들은 자기 아들딸들을 고아원 같은 데 놔두고 가지 데리고 가는 게 아니예요. 부처끼리 다니라구요. 자기 아들딸 데리고 가는 게 아니예요. 하늘의 아들딸 세워 놓고, 그다음에 그들이 아들딸을 긍휼히 여겨서 '부디 당신의 아들딸들도 데려와야지요' 하는 권고의 말을 듣고 데려오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예요. 선생님도 그렇게 했다구요. 선생님도 그렇게 했나요, 안 했나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가려면…. 아들딸 전부 다 갖다 놔도 반대없다 이거예요. 어떻게든 그렇게 해 가지고 전도해서 기반 닦아 가지고, 자기가 세워 수고한 사람들이 형제를 수습하고 그 아들딸들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데려와야 하늘이 공인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이야기했으니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구요. 알겠어요, 아주머니들? 「예」 원칙이 그렇다구요. 선생님 말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힘든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괜히 고생했나요? 여러분만큼 뭐 생각이 없어서예요? 여러분들 생각대로 안 갈 수 있었으면 벌써 다 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 다 지나가 가지고 여러분들은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한 곳에 가서 볼장 다보고 할 짓 다 하고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 해줄 게 뭐냐 말이예요. 이럴 줄 모르는 가운데 한국 백성들이 반대하고 다 이래서 이런 결과가 됐지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패들은 교회에 있지 말라구요. 그리고 현재 교회에 남아 있는…. 전부 다 내쫓는 거예요. 전부 다 내쫓고, 이번에 선생님이 지방 순회하게 되면, 교역에서 일하는 사람들 내가 봐 가지고 눈 코가 잘 붙어 있고 심통이 옳게 생긴 사람이 있으면 본부에 데려다가 이제부터 전부 다 개조해 놓고 선생님은 본부에 안 있을지 모르는 거예요. 조그만 오막살이집이라도 지어 집을 옮기든가, 그렇지 않으면 지팡이 들고 삼천리 강산을 유람하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을 자주 만나지 못할 겁니다. 이러한 모든 책임을 맡겼으니만큼 한국에 대한 책임 전체를 여러분이 져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러분, 알겠어요? 「예」 그리고 이번 부모의 날에는 일단 3년 기간에 있어서 선생님이 계획한 모든 것을….
60세 이상의 나이로 '이제 나이가 이렇게 많기 때문에 시집갈래야 갈 수 없고 장가갈래야 갈 수 없다'고 자인하는 사람들은 이번 부모의 날에 모이라고 했어요.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모여 가지고…. 죽은 다음에 가정적인 낙원형을 저나라에 가서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낙원은 가정적인 낙원이 아닙니다. 상대 인연이 결정 안 됐습니다. 천사 세계와 마찬가지로 전부 다 상대가 없다구요.
그렇지만 이 시대에 있어서 선생님이 해야 할 것은, 그런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상대이념을 갖추게 해 가지고 저나라에 예약된 낙원적인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천국은 본래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 처자를 전부 다 거느리고 들어가는 곳인데, 그걸 못 했으니 낙원적인 천국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거기에 보호해 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갈 때에, 약속을 해 놨으니 선생님이 가게 되면 지금까지 선지선열들을 전부 다 불러 가지고…. 할머니로 죽었지만 영계에서는 아가씨예요. '야 이 아가씨, 누가 얻어 갈래' 이렇게 해 가지고 맺어 준다 이겁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뭐 무슨 할아버지 그런 패들 많다구요. 그런 패들 전부 다 불러다가 짝을 맺어야 할 책임이 있을는지 몰라요. 그거 싫다면 기도를 안 해줄 거예요.
지상인들과 상대를 못 맺고 죽어 영계에 가게 되면 영인들과 상대할 수 있는 기준의 약속이라도 하고 가야 돼요. 그렇게 가게 되면 저나라에서 신청이 참 많을 거라구요. 저나라에서는 어서 왔으면 하고 그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 거라구요. 그렇게 해 놓고 가야지 못 하고 가게 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통일교회 믿다 왔기 때문에 혜택권 내에 있는 줄 알고 너도 나도 덮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리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왕에 이런 책임까지…. 6년 이상 고생한 사람들을 선생님이 그렇게 해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같이 욕먹고 그랬기 때문에 그런 기도라도 해주고 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전부 다 모이라고 한 거예요. 그러나 6년 이하 된 사람들은 난 몰라요. 그리고 60이 넘었더라도 '원리를 배웠는데 이왕이면 지상에 육체를 쓰고 있는 인간이 얼마나 귀하냐? 이 실체를 가진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우냐? 내 얼굴 가죽은 이렇게 늙었을망정 내 마음이야 늙을소냐? 나에게도 여자 남자가 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얻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을 안 해줘도 괜찮습니다. 기도를 안 해줘도 괜찮다구요. 영감 데리고 와서 하나님 앞에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가지고 축복을 받으면 더 좋을지 모른다구요. 검부러기 같은 사람이라도 상대를 결정지어 놓고 저나라에 가는 게 그냥 혼자 기도받고 가는 것보다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괜찮다 이 말이예요. 그런 얘기까지 해주니만큼 그렇게 알기를 바랍니다. 영감이 없는 할머니가 '아, 이거 아들딸 체면이 있는데 어디 시집을 가겠나'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 같으면 시집 열번도 가겠다구요. (웃음) 아들딸이 뭐예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이번에 모아 가지고 전부 다 한꺼번에 선생님이 기도해 줄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 책임이 다 끝나는 거예요.
이전에도 원래 21가정 축복해 줘야 되는 것인데 26가정 축복해 줬습니다. 이걸 이루어 놓아야 그 사람들을 타 가지고 세계에 널려 있는 많은 그런 패들이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런 패들이 세계에 얼마나 많이 널려있나 말이예요. 그런 패들이 그 줄을 타고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러려면 3년 되는 자녀의 날에 세계적인 대표로 옛날 누더기판으로 살던 그 여자 남자에게 상을 줘야 된다구요. 그 놀음하기 위해서 상을….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운세가 전부 다 타고 들어올 수 있는 길은 닦아 놨다 이거예요. 그 사람들이 다리 노릇을 해야 할 텐데 판데기가 썩었으니 그런 다리는 잘라 버리고 다시 한다구요.
원래는 이번에 축복해 준 패들에게 고생을 무지무지하게 시켜야 된다구요. 가정적인 제물을 삼아 가지고 고생을 무지무지하게 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자녀들은, 상받은 자녀들을 가정적으로 고생을 무지무지하게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노는 꼴 가만 보면 틀려먹었거든요. 알겠어요, 가정들? 「예」 박봉숙이도 알겠어? 「예」 저거 뚱뚱한 거 시켜 먹으면 얼마나 좋겠노? 기름이 빠져 그저 살이 뼈다귀에 붙고 등골이 꼬부라지도록 한번 고생해 봐야 이다음에 저나라에 가서 축복을 해준 체면이 설 거라구요. 황서방, 알겠나? 「예」 대답했지? 「예」 수많은 관중이 있다구요.
그러면 더 이상 이야기를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알라구요. 이제부터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시련시켜야 할 때가 왔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길 닦는 때입니다. 길을 닦았으니 이제는 가라 이거예요. 어디까지 길을 닦았느냐? 이만큼 길을 닦았으니 가라 이겁니다. 못 가면 차서라도 목적지까지 가게 해야 된다구요. 쓰러지는 것은 모른다구요. 쓰러지면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니만큼 그렇게 알고, 총단결해서 해외에 혹은 수많은 민족들 앞에 여러분들이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위업의 기반을 닦아 주기를 선생님은 간절히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어요? 「예」 열한 시가 됐습니다. 잠깐 기도하고 이제 뛰어야 되겠다구요. 통일교회는 잘 뛰잖아요? (웃음)
무수한 나라 가운데,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무수한 지역의 역사를 거쳐오신 아버지시여! 그 가운데 한 나라와 한 백성을 세우시어 한 사람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역사를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많은 민족 가운데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셨사옵고, 많은 민족 가운데 오늘날 저희 개체를 기억하여 주셨사옵고, 개체들 가운데 각별히 또 다시 하늘은 기억코자 하시는, 각별한 심정의 뜻을 펼치고자 하시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지금까지 그 뜻 앞에 있어서 기쁨의 실체가 되지 못 하였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이 한 기준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할 수 있는 실체로서 드릴 수 있는 하늘의 승리의 아들딸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오하고, 다시 한 번 하늘 앞에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이 삼천리 반도를 무대로 삼고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을 자기의 장중에 놓는 것을 소망의 목표로 삼고 힘차게 출발할 줄 아는 아들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국가의 정세가 혼란된 이때에 오늘날 저희들만이라도 단결하여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심정을 폭로하여 갈 바의 길을 명시해 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겠사옵나이다. 남아진 이 민족 앞에 지켜야 할 이 제단과 남아진 이 민족 앞에 바쳐야 할 제물 된 가치를 저희들이 거두어 아버지 앞에 실체로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전체 한 날을 지켜 주셨사옵고, 뜻하신 섭리 가운데 저희들을 남겨 주시기 위하여 무한히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감사하옵니다. 저희들을 이끌어 오신 뜻을 저희들이 배반하지 않는 한, 뜻이 이루어져 남겨질 수 있는 무리의 자리에 기쁨 가운데 동참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의 두터운 사랑의 품에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제3회 성화학생 수료식과 제7회 성화학생 졸업장 수여식을 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 앞에 부탁하고 싶은 몇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제7회와 제3회는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 끊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 더우기나 3년 마지막 고비를 향하는 이때에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식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은 일면 복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학교를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나가서 일하다가 지금까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투쟁하다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졸업하는 목적이나 싸우는 목적이나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좋을 때, 슬플 때 혹은 어려울 때도 우리들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이 가고 있는 일생의 노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연령의 차이가 있고 사정의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생애에 바라고 있는 목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가 있어야만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자, 혹은 민족 앞에 있어서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자가 되어 있다 할진대 그는 민족을 지배할 자요, 세계를 대신해서 전세계 인류 앞에 단 하나의 인격자가 될 수 있다 하면 그는 전세계를 지배할 자입니다. 더 나아가서 천주를 대신하여 천주가 전부 다 바라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기준을 갖추었다 하면 그는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가정에서부터 혹은 학교, 여러분이 활동하는 활동무대, 넓혀 나가면 전세계까지, 더 나아가 천주세계까지 연결시켜야 할 목적의 세계에서 우리들은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사회, 국가, 세계까지 연결시켜야 할 인연이면 인연, 혹은 각자의 책임이면 책임, 스스로 생의 목적을 대신하여 어떤 관계면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전후 좌우 상하 어떤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으로라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이상, 땅 위에 있는 모든 인류는 그 책임을 달성하기 위하여 내가 그 무엇 하나에 기여하여 가지고 하나의 완전한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은연중 자기 마음에 고대하며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수많은 가정이 있고, 수많은 사회단체가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있어서 과연 삼천만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의 단 한 사람이 있느냐? 여러분 이번 성화 7회면 7회, 혹은 3회면 3회 졸업생들 가운데 그런 단 한 사람이 있느냐? 졸업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기준을 중심삼고 그런 가치를 지닌 단 한 사람이 문제 될 것입니다. 개인으로 봐도 그러하고, 가정으로 봐도 역시 그러합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보게 될 때, 하나님에겐 단 한 사람이 어느때나 문제가 돼 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세우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살았고, 수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승리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야곱 자체가 문제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의 기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새운 야곱은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전체를 대신하여 승리한, 사탄세계를 대하여 승리한 만민을 대신한 개인입니다. 만민 가운데서 출중한 단 하나의 인격적인 내용을 갖춘 그런 기준에 서 있는 야곱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적인 축복권 이후의 사람들은 전부 다 이스라엘의 정신을 받아 가지고 단합하고, 이스라엘의 목적을 자기의 생활과 생애의 목표로 삼아 가지고 달성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역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존재를 찾고 있는 하늘이란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기준의 완성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수고의 노정을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개인은 찾았지만 단 하나의 가정이 문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야곱을 수십 년 동안 고난의 노정과 역경의 노정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를 대신할 수 있고, 누구나 거기서 다 자기의 죄를 후회할 수 있고, 자기의 현재의 입장을 망각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내몰지라도…. (녹음이 잠시 끊김)
그 당시 야곱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수많은 인류가 전부 다 야곱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기준까지 떨어뜨려도 야곱 자신에게 그 자리에서 당당코 그런 환경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남아질 수 있는 가지적인 내용이 갖춰지게 될 때 하늘은 이를 세워서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축복의 인연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도 역시 단 하나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단 하나의 야곱 가정이 있었으면 그다음에는 그것을 인연지어 가지고 민족을 중심삼은 단 하나의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찾아 나선 하늘은 야곱 이후4백 년간 수많은 노고의 노정을 거쳐 오면서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 나온 거예요.
그런 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 나서게 될 때, 섭리의 시대는 민족적인 시대에 왔지만서도 옛날 이스라엘적인, 즉 야곱의 개인의 승리의 기반과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아 모세 자신이 승리하였다는 기준에서 민족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 전체 앞에서 그도 역시 개인적인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의 역사적인 노정을 지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모세도 역시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 80년 생애 가운데 40년 공생애노정을 거쳐 가지고 민족적인 기반을 닦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생활 이면을 바라보게 될 때, 그의 전생애의 행로를 비판해 보게 될 때, 과연 모세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겁니다. 누구보다도 외로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정을 통할래야 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염려하는데 있어서는 하늘이 염려하는 그 시야 앞에 모세가 민족을 대신하여 염려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 어느누구보다도 최초였기 때문에, 이런 시련도상에 세워 가지고 그 시련도상에서도 남아질 수 있는 그런 인격의 기준이 엿보이는 그때부터 하늘은 이를 민족적인 대표자로 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단 하나의 기준, 민족적인 단 하나의 기준을 넓혀 세계적인 단 하나의 기준을 세우고자 한 것이 창조이념이었습니다. 창조이상을 목전에 바라보고 소망의 심정으로, 아담 해와에 대하여 무한한 심정의 마음으로, 그리고 고대하던 그 창조의 이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에 끓어오르는 사랑의 마음, 또 그렇게 온 천주와 더불어 붙안고 사랑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을 지니고, 만우주 피조물 앞에 있어서 단 하나의 가치적인 그러한 내용을 지니게 될 때, 여기서 비로소 아담이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상속 못 받은 연고로 4천 년 수고의 결과를 통하여 메시아를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그 사명을 책임지고 와 가지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세계에 있어서 그리워하던 그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 이상세계로 지으려 하였고 목적하였던 그 이상의 동산을 이루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많은 민족, 수많은 어떤 지도자보다도 하늘을 대신하여 간곡히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뜻을 세워 실천하였고, 그 모든 내적인 생활면에 있어서 그 시대의 어느 누가 따를 수 없는 단 하나의 내적인 기준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를 세워 세계 인류를 수습하려 한 것이 구원섭리라는 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들은 원리를 배워서 알고 있듯이 6천 년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개인적인 대표자요, 가정적인 대표자요, 민족적인 대표자요, 국가적인, 혹은 세계적인 대표자가 오늘날 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고는 종적인 복귀섭리를 횡적인 기준에서 실체를 세워 탕감복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세워 개체를 대신하여 '너는 누구냐?'할 때, '나는 지상에 살고 있는 학생이면 학생, 젊은이면 젊은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다' 하고 스스로 그런 자신을 갖고 하늘땅 앞에 장담코 나설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그런 기준이 돼 있지 못하였다 할진대는, 6천 년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승리의 결실이라는 명사는 명사로서 존귀하고 귀한 것이로되 그 명사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돼 있지 않으면 그 명사와 사람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뜻은 뜻대로 귀한 것이로되, 뜻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 뜻을 품고 뜻을 대신한 실체적인 증거자가 되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귀하다고 할지라도 그 목적을 대신하여 실천적인 생활의 기반을 닦아 그것을 실제로 보여 줄 수 있고,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그 뜻과 목적과 여러분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이 자리를 떠나갈 텐데, 여러분은 20 전후의 나이 어린 젊은이들입니다. 오른손을 벌려 잡게 될 때 세상 모든 것을 잡고 싶고, 왼손을 벌려 세상 모든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은 젊은이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내 일신을 세워 세계를 향하여 호령하고, 품고 싶은 그런 기백과 기개는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용맹이요, 혹은 품어야 할 결의로되 그 품을 수 있고 용맹을 지닐 수 있는 내 자신의 환경을 마련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때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이루어지고 때가 되었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가 그러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내적인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바라고 있는 이런 단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기필코 완결지어야 할 우리의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개체로서 이것을 완결지어야 할 단 하나의 가치적인 그 자체가 되지 못하였다면 누가 이것을 대신해 줄 것이냐? 이런 미비한 내 자신이 앞으로 자라 가정을 갖는다 할 때는 그 가정이 얼마나 슬픈 가정이 될 것이냐?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우리가 하늘 앞에 피해의 곡절을 남긴 것만 해도 원통하고 분한 사실입니다. 하늘땅 앞에 자기 스스로 내적인 면에서나, 혹은 외적인 면에 있어서 이렇다 할 그 무엇을 갖지 못한 우리 자신인 것을 잘 압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하늘땅을 바라보게 될 때 부끄러운 거예요. 참이란 명사를 우리는 알고 있으되 그 참이란 명사와 인연을 갖지 못한 자신인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될 때, 산을 바라보나 들을 바라보나 지나가는 바람결에게까지도 부끄러운 겁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흐름이 최후의 판결을 가려야 할 이런 시대를 향하여 촉박해 오는 것을 우리들은 주위에 벌어지는 실상을 봐 가지고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과연 이 민족이 찾고 있는 단 하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민족을 대신한 단 하나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며, 단 하나의 형제, 단 하나의 부모, 단 하나의 사회, 혹은 단체, 더 나아가서는 단 하나의 국가, 단 하나의 세계는 어떤 것일 것이냐?
여기에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단 하나의 국가는 못 될망정, 단 하나의 민족, 혹은 단 하나의 어떤 단체, 단 하나의 가정은 못 될망정 제일 근본적인 문제가 뭐냐? 단 하나의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신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단 하나의 존재가 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만일에 그렇게 된다 할진대는 이는 삼천만이 우러러볼 것입니다. 혹은 이 역사의 흐름의 천적인 인연을 갖추었다 할진대는,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삼천만을 대신하여, 이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필코 그 앞길을 염려해 줄 것은 틀림없습니다. 보기에는 일신이요 갖춘 모습은 미비할지라도, 이 시대에 있어서 복귀섭리의 완결을 지어야 할 이 운세 앞에 민족이 요구하고, 세계가 요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이 요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실체로서 엄숙히 자기 과업을 수행하는 그런 젊은 남녀가 있다 할진대 하늘은 여기에 무한히 동정할 것입니다.
세계인은 여기에 스스로 눈을 들어 보지 못하고 실제 생활을 통하여 접하지 못할망정, 내적 심정의 흐름의 세계에 있어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이는 연고로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여러분은 보지 못하지만, 여러분은 느끼지 못하지만 먼 자리에서 추앙하고 경배할 것이라고 우리들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염려하고, 그런 입장에서 살고, 그런 입장에서 싸우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를 하늘이 보게 될 때, 혹은 인류가 바라보게 될 때, 민족이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이 바라보게 될 때 거기서 비로소 믿음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신앙, 믿는다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은 그 사람 대신입니다. 그 사람의 실천을 대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글자가 재미있잖아요?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입니다.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이런 하나의 존재, 하늘은 그런 사람을 믿고자 하고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수많은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도 역시 그래요. 민족을 중심삼고도 역시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성화 3회 수료자로서 수료증을 받는 사람들, 혹은 7회 졸업생 여러분들 가운데 과연 이 무리를 대신하여, 개체 개체를 대신하여 내 스스로 이 인연의 세계를 향하여, 생의 인연을 타고 좌우편이나 전후편이나 혹은 상하 어느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으로나 혹은 상호간에 어떤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으로 가나 북으로 가나 여러분들은 혼자 모든 것을 다 끊고 가는 것이 아니예요. 가는 곳이 멀고 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자기도 모르게 인연의 보따리를 지고 다니는 거예요. 인연의 보따리를 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자체는 한 자체만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자체라는 것은 전체의 인연을 세우기 위하여 대신한 자인 연고로, 좋은 것을 세우기를 바라서 마음이 몸을 통하여 생활적인 증거의 무대를 개척하라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러분 자신 앞에 명령하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사방으로 다 혜어질 것입니다. 만일 여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게 되면 도가 몇 도예요? 경기도로부터 충청도, 경상도, 세 도를 지나게 됩니다. 이러한 도를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먼 자리에 가면 갈수록, 그런 인연을 가진 사람일수록 하나의 인연된 중심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간절한 것입니다. 자기 고국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고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 보면 고국이 그리운 것을 알아요.
먼 곳에 간다고 해서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먼 곳에 가면 갈수록,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런 길을 떠나면 떠날수록 삼천만의 인연을 잊을 수 없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인연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스스로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사는 자신인 것을 부정하지 못할진대 여러분들은 앞으로 그렇게 살다가 가는 거라구요.
만일 여러분들이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가 먼 영원한 세계로 떠 나게 될 때는, 이 나라를 그리워하고, 이 땅을 그리워하고, 이 세계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더더욱이나 이 땅 위에 있어서, 자기 땅에 있어서 부모가 수고하고, 형제가 수고하고, 혹은 자기 민족이 선을 세우기 위하여 피를 흘려 투쟁한 그런 역사가 있으면 있을수록 거기에 대해서 자기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거예요.
국내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해외에 나가게 되면 우리의 문화, 우리 나라의 자랑거리, 우리 선조들이 세계 앞에 남겨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까 해 가지고 자료를 수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보통 하는 상식적인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 위에 살다가 저나라에 가게 될 때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문제는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단 하나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여러분들이 갖고 갈 것을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표하여 중심적인 존재로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그 개인들의 복을 같이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단 하나의 가정적인 기준에 서게 될 때 가정적인 복지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라든가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게 될 때 세계적인 복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이미 부여해 준 축복의 무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이 끝날에 있어서 이런 인연의 세계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절대 개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니예요. 우리 식구들이 지방에 가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핍박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어찌하여 그를 동정하고 원수를 대하여 그와 더불어 같이 싸울 의분심이 동하느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끊을 수 없는 인연에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교파 중에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단 하나의 사람들이 되는 동시에, 통일교회 가정들이 단 하나의 가정들이 되는 동시에, 통일교회 단체가 단 하나의 단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 단체는 개인적인 단체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적인 단 하나의 목적의 주체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창조한 단 하나의 창조주 앞에 상대적인 실체로서 우리가 인연맺기 위하여 나아가는 도상에 있는 연고로 그런 목적관을 중심삼고 인연을 세우기 위한 단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개개인이 어떤 자리에 섰더라도 여러분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슬퍼하게 될 때 그 슬퍼한 것은 여러분 개인이 슬퍼한 것이 아니요, 흑은 여러분의 가정에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가정의 슬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통일교회 교파 한 단체를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주적인 인연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데는 좋은 자리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 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로서 축복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단 하나의 가치의 기준으로 세움받았던 것을 깨뜨려 버렸던 사실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때냐? 좋은 때냐? 아닙니다. 어려울 때, 슬플 때, 더 나아가서는 죽음의 고비에 가서 아무리 단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하늘이 부여했다 하더라도 슬픔과 고통과 혹은 십자가의 죽음이 휘몰아치게 될 때는, 배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적인 노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여러분 자신이 어디 가더라도 여러분들은 그 단 하나의 가치를 전체적인 뜻 가운데 있어서 세워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더우기나 고통이 심하고 슬픔이 덧놓이고 죽음이 내 목전에 다가오게 될 때, 그런 때까지라도 여러분이 지닌 바의 단 하나의 그 위신과 가치를 세울 줄 아를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늘은 믿어 준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까지 믿어 주느냐? 슬픈 자리에서도, 죽음의 자리에 있어서도 여러분들이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세워 가지고 남아지는 자가 된다 할진대는 기쁜 것은 물론이고 슬프고 슬플 때까지도 믿어 줄 수 있는 내용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삼천만 민중이면 삼천만 민중을 개인적으로 축복하고,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인정하기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가정적인 승리의 기준을 무조건 인정하는 그런 기준을 세워 민족적인 승리의 기준을 연결시키려 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를 비판하여 보게 될 때, 개인적으로 단 하나의 그런 가치를 갖추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해요. 가정이면 가정적으로 그런 가치를 갖추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해요. 민족적이요, 혹은 세계적인 때는 찾아왔는데 내 자신이 그런 내용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는 여기에 고충과 슬픔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고충을 받으며 무엇이 그 슬픔을 받을 것이냐?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세계적인 운세 앞에 책임을 짊어겼다 할진대 그 책임을 짊어진 통일교회가 그 고충을 받는 거예요.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그 고충을 막아내지 못하면 삼천만이 그 고충을 받아야 돼요. 삼천만이 그 고충을 막아내지 못하면 30억 인류가 그 고충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우리에게 짊어지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짊어져야 할 문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책임진 그 자리에 있어서 단 하나의 실체로서 이것을 수습하고, 단 하나의 가치적인 내 모습을 거기에 세워 가지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정복하고 남을 수 있다는 이런 신념을 가진 실체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책임졌던 그 환경, 여러분들이 나가 움직이던 그 지역이면 지역이 그런 행세를, 혹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 연고로 어디로 넘어오느냐? 통일교회로 넘어오는 거예요.
기쁠 수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책임을 누구나 다 하겠다는 거예요. 쉬운 거예요. 그러나 슬픈 자리에 있어서, 어려운 자리에 있어서, 생사 지경에 있어서 죽음을 놓고 겨루는 그런 자리를 책임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학생들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런 신념과 그런 뜻을 품고 자기가 처한 그 자리에 있어서…. (녹음이 잠시 끊김) 만일에 거기에 일인자로 남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 할진대 슬픈 일도 여러분이 운용할 수 있는 겁니다. 기쁜 일은 물론이고, 슬픈 일을 지배하고 슬픈 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머무는 그 자리에 있어서 일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대주재인데, 어찌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모든 사연을 고하느냐? 하나님은 역시 천주에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어려움을 당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그렇지만 당신이 가고, 당신이 바라보고, 당신이 생각하고, 당신이 세웠던 뜻과 이념에 대해서는 추호라도 어겨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그 목적을 향하여 시대가 흘러가든 환경이 변하든 그 모습은 변치 않고 달려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그와 더불어 고통을 의논하려고 하고, 기쁨이 있으면 그를 중심삼고 기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여러분들은 이 졸업식을 끝내고 여러 가지 사정의 자리로 나누어져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핍박받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핍박받는 자리에 들어가 핍박받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혹은 굶주린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남아져 가지고 그런 자리에서, 그런 무리들 가운데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혹은 시험을 당하여 억울하고 분하여 그들을 향하여 저주하고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있어서 그런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세계에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는 거예요─을 대표하여 단 하나의 존재가 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머물고, 여러분이 움직이고, 여러분이 활동하는 그런 무대에 있어서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 여러분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움직이게 될 때는 그 뜻은 여러분의 개인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아까 말한 단 하나예요. 여러분의 뜻이나 전체의 뜻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과 세계의 뜻과, 혹은 가정의 뜻과 개인의 뜻, 전부 다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인연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움직이게 될 때, 그런 환경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게 될 때, 여러분이 슬퍼하면 여러분 홀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어려우면 여러분 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과 그 외로움, 그 고통, 그 억울한 자리에 들어가게 될 때 여러분을 중심삼고 환경이 더 많이 여러분과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물, 혹은 성인현철, 지난날의 역사에 남아진 그런 위인들을 우리가 살펴보게 될 때도 그들이 좋은 자리에서 역사적인 무엇을 남긴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그렇지만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그런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의 인연의 세계를 위해서 당했다는 겁니다. 민족이라든가 국가라든가 혹은 이념이라든가 하는 그런 분야에 있어서 배경을 중심삼고 움직였기 때문에 그 민족이 남아 있는 한, 그 이념이 남아 있는 한 그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의 뜻을 세워서 하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의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 하는 것이 본래 하늘이 인간 앞에 주고자 하였던 축복이었기 때문에 그런 기반을 중심삼고 바라고 나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슬퍼도 혼자 슬퍼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개인이 슬퍼하는 것은 통일교회 전체의 슬픔이요, 여러분 개인이 슬퍼하는 것은 여러분 선생의 슬픔이요, 하늘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인연권 내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이란 것은 삼천만의 슬픔이요, 30억 인류의 슬픔이요, 천주의 슬픔이라는 이런 신념을 중심삼아 어디에 가든지 여러분 자신들이 단 하나의 존재로 남아져 가지고 그 환경이 믿어 줄 수 있고, 통일교회가 믿어 줄 수 있고, 삼천만 민중이 믿어 줄 수 있고, 혹은 세계와 인류가 믿어 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나요? 「예」
그렇게 되어야만 하나의 하나님은 하나의 인연의 세계를 우리 앞에 상속해 놓고, 하나의 심정을 중심삼은 하나의 자녀로서 천적인 혈통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이 죽음의 자리에서도, 굶주린 자리에서도, 어떤 어려운 자리에서도 이 신념을 갖고 나간다면 여러분이 나가는 데 있어서 앞으로 뜻 앞에 있어서 과히 벗어나는 이런 자들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생님은 보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서 믿어 주는 자가 되어 축복을 상속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하는 이 내용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알겠나요? 「예」
어느 지방에 가도 지방이 가진 명사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도 거기에는 각자 지은 바의 이름이 있습니다. 머물러 있는 인간의 가치를 둘러싸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존재물들은 그 본성에 가까울 수 있는 미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역력히 엿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나타내는 그 모든 환경은 오로지 하나의 아버지의 귀하신 모습, 아버지와 인연맺어 가지고 영원한 가치적인 그 내용을 은연중, 혹은 은밀히 숨은 가운데 드러내는 사실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 가운데는 과연 그러한 존재 가치를 지녀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과 생애의 가치의 미를 본연의 아버지 앞에 드러내고 있는가 생각하게 될 때, 인간 세상에는 너무나 죄악이 많고, 인류들이 지내 온 역사적인 흐름에는 너무나 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 보기에 부끄러운 인간이요, 만상 세계 앞에 스스로를 세울 수 없는 것을 느껴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무가치한 것들을 이끌고 유구한 6천 년의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하루와 같이 참으신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하루와 같이 그리워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하루와 같이 저희들에게 복빌어 주고 싶어서 저희 뒤를 따라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분이 또 어디 있으며, 세상의 친구 이상 혹은 부모 이상으로 그 무엇이 이와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거지와 같은 자리에 있게 될 때 거지의 신세로 찾아왔사옵고, 혹은 고아의 자리에 있게 될 때 고아의 신세로서 찾아왔사옵고, 방랑과 탄식의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자리에서 내 옷깃을 붙들고 갈 길을 가라고 권고하던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저희의 눈이 있다 할진대 그 아버지를 보고 하염없이 울어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었사오나, 저희가 손길이 있어 그 옷자락을 붙들게 될 때 뼈가 녹아나도록 쥐어도 마음이 시원하지 못한 것을 느껴야 할 것이었사오나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든 당신의 아들딸이 이 땅 위 에 얼마나 있었으며, 상처를 입은 아버지의 그 성상을 바라보고 내 아버지라고 통곡한 자가 얼마나 있었사옵니까?
슬프고 또 슬픈 일, 분통하고 억울한 일,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님께서 그런 사정에 처하게 된 비운의 곡절이 누구 때문이었습니까? 당신이 지으신 결과의 인연 때문이 아니었사옵고, 인간시조의 불신의 인연 때문에 되어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불신의 원망의 이 한 후손이 된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신의 자식이 되었던 연고로, 아담 해와로서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가 되지 못한 연고로 천상에 화를 입혔사옵고, 지상에 화를 입혔사옵고,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류 혈통에 죽음의 피를 남기게 되었다는 이 원통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지난날의 한 많은 역사적인 후회를, 아버지, 풀어 주시옵소서.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성 위에, 수많은 인류들의 탄식의 눈물자국과 서러움이 어려있는 이 지구성 위에 당신의 평화의 눈물자국이 있어야 되겠사옵고, 당신의 해방의 울음소리가 이 땅 위에 퍼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평화의 눈물도, 해방의 눈물도 갖지 못하였사옵고 고통과 한숨의 눈물을 떨어뜨리는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 후회 막심한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사망의 도상에서 넘어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삼천만 민족이 이제 생사의 결판을 지어 30억 인류가 아버지 뜻 앞에 서야 할 이런 시점이 찾아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체를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는 참다운 개체가 없사옵고, 가정을 대신한 참다운 가정이 없사옵고, 사회·민족·국가를 대신한 참다운 사회·민족·국가가 없사온데 하늘이 머물러야 할 곳은 어떤 곳이겠습니까?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가 없어 가지고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오니, 오늘날 저희들은 살과 뼈를 갈아 개인이로되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 개인이로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 개인이로되 30억 인류와 천지를 대신할 수 있는 개인을 하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여기의 어린 꽃다운 청춘시기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입술은 더렵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눈은 아직까지 하늘의 슬픈 빛을 좋아하지 않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들의 심정에서 울려 나오는 고동과 그것을 통하여 뻗어 나오는 동맥과 피살은 아직까지 사탄세계와 접하지 않고 있사오니 이들을 아버지 당신의 것으로 받으시옵고, 민족을 위하여 뿌리고, 민족을 위하여 보고, 민족을 위하여 말하고, 민족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30이 지나고, 40이 지나고 보면 인생이 갈 끝날이 감축당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인간이거든, 갈 곳을 염려치 않고 소망을 그릴 수 있게끔 젊은 시절에 크나큰 소망을 담뿍 그 마음에 담아 놓고 아버지와 무한히 속삭이며, 아버지와 무한히 동거하면서 깊고 높고 넘게 살 수 있는 이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제 성화 3회 수료증을 받은 여기의 젊은이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산 제물, 3천만을 대표할 수 있는 산 제물, 30억 인류와 천하를 대신할 수 있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성화 7회를 졸업한 이 젊은이도 역시 앞으로 후대의 웃사람의 본이 될 수 있는 산 제물이 될 것을 새로이 맹세하고, 새로이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어 내일부터 다른 나로 출발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통일교단이 앞으로 아버지 앞에 승패의 채찍을 들고 최후의 방패로서 책임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이 땅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미미하오나 인간적인 사명을 대신하여서 하늘과 더불어 섰고 하늘의 인연과 더불어 섰사오니, 작은 자라도 강하고 담대한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무력한 자라도 용맹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가 되게끔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 있는 삼천만 민족, 남아 있는 30억 인류, 남아 있는 수많은 영계의 선조들을 누가 책임지겠나이까? 눈물을 뿌리면서 무릎을 꿇고 쌍수 합장하여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피살이 동할 수 있는 이런 전진의 불길과 더불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깨끗한 입으로 아버지 앞에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무리를 당신은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여기에서 호소하는 이 아들도 그것을 고대했거늘 당신은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습니까?
여기에 엎드린 당신의 아들딸들은 부디 외식된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중한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드리는 기도 소리가 훗날에 참소받을 수 있는 소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자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존귀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어린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슬픈 자리에 있어도 슬픈 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슬퍼서 눈물 흘리게 되면 3천만을 통곡하게 할 수 있는 자요, 30억 인류를 통곡하게 할 수 있는 자인 연고로 슬픈 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죽는 자리에 나간다 할지라도, 개체가 죽을지라도 3천만을 뜻을 위하여 죽게 할 수 있는 자들이요, 30억 인류를 뜻을 위하여 죽게 할 수 있는 자들인 연고로 앞으로 아무리 고통의 자리에 가더라도 이들은 불쌍한 자가 아닌 것을 깨달아 가지고, 남아진 책임과 사명무대에 있어서 하늘이 길이길이 찾고 있던 단 하나의 존재로서 믿고 자랑할 수 있고,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이 자라고 있는 이들의 두 어깨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삼천만과 이 인류 앞에 미쳐질 새로운 세계의 운세는 이들과 더불어 인연맺으시옵소서. 목적하신 아버지의 뜻의 동산 위에 고이고이 품기고 아버지의 자랑의 품에 안겨서 만우주를 대신하여 내세울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오늘 성화학생회의 제3회 수료증 수여식과 제7회 수료예정자 수료식이 겹친 것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3수와 7수는 둘 다 복귀섭리역사에 있어서 귀중한 수들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참석한 이 자리가 복되다고 한다면 지극히 복된 자리입니다. 이 가운데는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선에서 싸우다가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내용은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단 하나 뜻을 위한 것이었고, 가는 목표도 단 하나 뜻을 위하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입니다. 그 ‘나’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민족을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또 천주적인 존재라면 천주의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여러분 한 개인의 움직임을 세계와 천주에까지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전후 좌우 상하를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땅 위의 인간들은 더 좋은 인연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단체가 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7회 수료생과 3회 졸업생들 중에서도 단 한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는 항상 단 한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야곱 때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단 한 사람 야곱이 문제였습니다. 야곱을 세워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고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가 단 하나의 개인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개인, 단 하나의 가정, 단 하나의 민족, 단 하나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역사가 엮어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 한 사람을 찾아 세워 가정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을 세워 나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단 하나의 사람으로 찾아 세운 존재가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야곱가정의 기반을 그대로 이어받았느냐? 아닙니다. 단 하나의 존재로서 80년을 걸어 나온 후에 비로소 민족적인 존재로서 40년노정을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불쌍했습니다. 지극히 어려운 시련 도상에서도 단 하나의 인격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로서 40년노정을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그리셨던 창조이념은 온 천주와 더불어 아담 해와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심정으로 넘쳐 있었으나 인류 조상의 뜻하지 않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창조의 유업을 상속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숱한 곡절을 겪으며 개인의 기대를 세우고, 가정의 기대를 세우고, 민족의 기대를 세운 후 4천년 만에 비로소 메시아를 보냈던 것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세운 자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하나의 존재로서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세워 세계를 구원하는 분이 되셨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대표자와 가정적인 대표자와 민족적인 대표자와 국가적인 대표자와 세계적인 대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때는 종적인 대표자를 횡적으로 세우는 때입니다.
누군가가 ‘너는 누구냐?’고 물을 때 ‘나는 가정적인 단 하나의 존재다.’ 아니면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이 아무리 귀해도 여러분이 그것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면 그 뜻이나 목적은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각자 돌아가게 되면 젊은이의 기백과 용맹을 가지고 활동하되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또 내적인 인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내 자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인정해 주겠습니까? 이렇다 할 인격을 갖추지 못했을진대 하늘땅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산을 바라보나 들을 바라보나 벌어지는 일로 보나 지금 때는 하늘 뜻이 이루어져 오는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단 하나의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단 하나의 민족과 단 하나의 사회와 단 하나의 가정은 못 된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내 자신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이 우러러보고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일하고 싸우게 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모두 성화학생회 출신으로 7회 혹은 3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인연은 끊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이 인연의 보따리를 걸머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사방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경기도 혹은 충청도 혹은 전라도 혹은 경상도로 흩어져 갈 것입니다.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우리들에게 인연의 중심에 대한 그리움은 더 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조국을 떠나 봐야 조국에 대한 애착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 간다고 해서 인연이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심정의 인연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선을 세우기 위하여 자기가 바친 것이 있다면 그것과 조금이라도 더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기의 조국을 떠날 때에도 자기와 관계된 내용과 재료를 수집합니다. 이 땅을 떠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은 바로 가지고 갈 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가정의 복을 받고, 민족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민족의 복을 받고, 세계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세계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되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에서 홀로 싸우는 식구를 대할 때 같이 싸우고 싶은 의분심이 동하는 것은 우리가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단 하나의 개인과 단 하나의 가정과 단 하나의 창조적인 실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슬픔은 가정만의 슬픔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도 하나의 교회로서가 아니라 대우주적인 목적과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해 주려고 했던 단 하나의 존재를 인간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의 고비로 몰아넣었던 역사를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단 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전체에 대하여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슬픔의 자리와 죽음의 자리에서도 살아 남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하나님은 믿어 줄 수 있는 자로 인정하여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인의 자격을 무조건 인정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기준 위에 세우려 하시는데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때는 세계적인 운세가 닥쳐왔는데 그 기준이 안 되면 누가 고충을 받느냐? 통일교회가 그 기준을 못 갖추면 삼천만 민족이 그 고충을 받게 됩니다. 사탄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이 그 책임을 못하면 그것이 어디로 넘어가느냐?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됩니다.
기쁜 자리에서는 누구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자리와 고통의 자리에서 싸우고 이겨서 단 하나의 존재로 서야 합니다. 어떤 부락에서 일인자가 되면 그 부락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어떠한 사정이라도 가지고 와서 의논하게 되니 자연 그들을 주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주의 대주재이십니다.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자기의 사연을 전부 토로하느냐? 그것은 그분이 단 하나의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그 목적을 변치 않고 오시기 때문에, 인간들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분과 의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제 수료식을 끝내고 각자 처소에 가게 되면 핍박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기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굶주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도 멋지게 이겨 일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치욕적인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됩니다.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입니다.
뜻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위하여 받는 모든 시련은 결코 혼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그 고통과 슬픔을 같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선열들은 개인을 위해서 슬픔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체의 뜻과 목적을 위해서 슬픔을 겪으면 그것은 여러분 개인의 슬픔인 동시에 전체의 슬픔입니다. 즉 선생님의 슬픔이요, 삼천만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인 동시에 천주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천만이 믿어 줄 수 있고 세계의 전인류가 믿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심정을 중심삼은 단 하나의 사람을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사람, 믿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어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언간 40일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올 때와 지금 와 가지고 지낼 때와 갈 때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에게 어떠한 변동이 생겼는지 여러분 자신들은 잘 알 겁니다.
어젯날의 나와 지금의 나와 이제 내일의 나, 이것이 지금의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달라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이제부터 여러분이 움직이는 결과 여하에 의해서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가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결심과,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억제할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그런 신념과 각오가 이제 여러분의 좌우 혹은 전후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열매 맺힌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거예요.
또, 그와 같은 행동은 여러분 자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이 가고 난 이후에 여러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나가는 후대의 우리 후손들 앞에도 필요한 행동이 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부터, 이 폐회식이 끝나는 그 시간부터 여러분이 가는 걸음걸이는 엄숙한 걸음인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내일의 내 자신을 묵묵히 세우면서 스스로 소망의 터전 앞으로 내밀어 나가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해주기를 부탁합니다.
그간 수련생을 위하여 수고한 여러 지도위원들, 또 여러분들을 위하여 수고한 본부 식구분들 앞에 수련생을 대신해서 저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야 할 여러분들을 대해서 선생님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간다는 그 자체…. 가야 할 내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동안 선생님이 산에 많이 다녔어요. 산에 올라갈 적마다 생각나는 것이 올라갈 적에는 어렵지만서도 올라간 후에는, 어렵게 그것을 정복한 자가 아니고는…. 말 가지고는 통하지 않아요. 실제 해보지 않은 사람 외에는 모른다 이거예요. 땀을 많이 흘리고, 고충을 많이 느끼고, 숨이 막히는 이런 어려운 고비가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여 바라던 소망의 상상봉에 올라서게 되었을 때 그때의 쾌감이라는 것은…. 온 시야에 나타나는 모든 만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신한테는 그것이 자랑의 상징으로 혹은 기쁨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운 곳에서, 그러한 환경에서 여러분이 부딪쳐 보고 평하고 판단해야만 여러분 자신이 참된 평을 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가야 할 자체로서 오늘 내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판단하고 평할 입장에 있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실천이라는 두 글자를 남겨 놓고는 판단도 할 수 없고 평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 자신들은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되겠고 그동안에 되어진 사실을 다시 한 번 끊고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중심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이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그저 그럭저럭 어영부영하게 무책임한 입장에 서서 이것을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깨끗이,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로 남게 될 때에 나쁜 평을 받지 않고 과연 존귀한 가치의 것이라는 평을 남겨야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 가지 사사로운 것이라도 그 근본에 대해서 치밀한 계획과 면밀한 자기 자신의 내적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과 더불어 그 계획을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해 놓은 그 사실에 대해서 또 평을 받고 판단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선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오늘 우리들이 이 복귀섭리의 역사를 정리하여 우리로부터 흘러가던 방향을 돌이켜 놓아야 할 핸들을 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잘 돌리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요, 잘못 돌리면 상상할 수 없는 처참한 길로 간다는 걸 생각할 때에 자기가 짊어진 이 핸들 하나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거기에는 온 정력이 투입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거기에는 자기의 전체의 신념과 자기의 인격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우리들이 이 통일의 이념을 앞에 놓고 험산준령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을 버스나 자동차와 같은 이런 입장으로 우리가 대신해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거기에 탄 운전수와 마찬가지예요. 구비구비 어려운 행로를 달리는, 목적을 향하여 가야 할 시간이 결정되어 있고 어차피 그 기간 내에 가야 할 복귀적인 수리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달려가는, 제한된 기간 내에 그 거리를 돌파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운전수라 하게 될 때에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그 이상 몇 배 이상의 비장한 각오와 비상한 정신력을 거기에 투입하여 핸들을 돌려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길을 돌파할 수 없는 것이 상례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오늘날 이 국가적인 위기, 세계적인 위기, 만신창이가 되어 나온 모든 현실적인 사태를 바라보게 될 때, 이 길을 멋지게 돌리고 멋지게 꺾어 목적지까지 이끌 수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핸들맨은 어디에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해보게 될 때 이것이 염려되는 것입니다.
아까 협회장도 말했지만 우리가 아니면 이 민족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묻고 대답하면 대답할수록 우리의 두 손과 하나의 정신은 기필코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가는데 있어서 핸들을 쥔 운전수와 같은 책임을 짊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는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예요.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같이 마음놓고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예요. 꼬부라진 험산준령, 지금까지 역사 이래에 누구도 가 보지 않았던 길, 그 길을 제한된 시간 내에 가야 할 운전수와 같은 책임을 짊어졌다 하게 될 때에 현재 이 순간에 달리고 있을지라도 이제부터 달려야 할 남아진 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까지의 모든 것은 지나갔지만 이제부터 가야 할 험한 노정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그 노정 앞에 내 자신을 염려하고 내 자신을 거기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 내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며 어떻게 수습하여 이 난관을 돌파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개척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예요. 개척하면서 가야 됩니다. 개척하면서 가야 할 이런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이제 개척하는 데는…. 선생님이 지방 순회를 많이 해봤습니다. 이번에도 강원도의 험한 고개를 차를 타고 달리면서 느낀 것이 있었어요. 만일 이 길을 닦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넓게 했었으면, 단 한 자라도 더 넓었으면, 거기에 조금 더, 만약 이 길 두 배만 됐으면 하는 그런 것은 험로를 달리는, 혹은 험한 골짝길을 달리는 운전수나 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느끼는 거예요. 언제나 그 길을 달릴 적마다 누구나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 통일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이와 같은 길을 닦는 입장에 있으니 길을 닦을 바에는 개인이면 개인이 겨우 갈 수 있고, 혹은 가정이면 가정이 그저 겨우 갈 수 있는 길을 닦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닦을 때 좀더 힘이 들고, 닦을 때 희생이 있고, 닦을 때 거기에 고충이 많을지라도, 한두 사람이 희생을 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그 길을 넓게 더 닦는다면 그 위로 가는 사람이 주먹을 쥐고 마음을 졸이며 땀을 흘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길을 그만큼 닦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닦을 바에야 좀더 넓게 해서 누구든지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누구든지 갖는 소원이라고 할진대는, 우리 통일의 신도들이 가야 할 이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길을 닦아 놓을 것인가? 문제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이 문을 떠나서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혹은 세계의 이 지구성을 향하여 삼천만을 대신하여, 삼십억의 인류를 대신하여 가는 개척자입니다. 여러분의 손은 보이지 않는 곡괭이를 들고 있고, 혹은 쇠스랑, 낫을 들고 있고 여러분의 발은 맨발로 황무지를 달려 그야말로 없는 자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이상의 개척자의 사명을 한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가 달려야 할 이 길을 어떻게 닦을 것이냐? 어떻게 닦을 것이냐?
후대의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선조들이 조금 더 해서 이렇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이런 평을 받고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일대에서는 험하고 힘든 놀음이었고, 우리 일대에서는 하기 어려운 난관의 문제였지만 이것을…. 만일 1대에 안 되면 2대, 3대를 거쳐서라도 후대 사람들이 '이렇게 험한 태산준령에 어떻게 이런 길을 닦았을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후대에 그 길을 달리고 그 길을 찾아오는 자마다 선조들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환영하면서 돌이켜 찾고 싶어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이 가져야 할 소신인 것을 절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이 곡괭이를 들고 산을 파고, 혹은 정을 쥐고 망치를 들고 바위에 구멍을 뚫는 일이 있다고 할진대 이건 역사적인 사건이예요. 그러기에 이 길을 걷고 있는 여러분 한 개체는 그 전체의 길을 닦는데 있어서 미미한 존재일지 모르나 그 전체의 목적이 이루어질 그때에 있어서는 그 전체가 목적하는 가치에 해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책임진 한 분야에 있어서 엄숙하게, 철저하게 그 역사적인 길을 닦아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쭉 순회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내가 3년 전에 순회 코스 21일노정을 걸으면서 생각한 것은, 이 길이 지금은 비록 산골길이요 한국에 있어서의 험한 길로서 유명한 길이지만 앞으로 이 길에 수많은 민족, 국가들의 최고의 차들이 달리게 될 때에는 거침이 없고, 도리어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멋지고 훌륭한 그런 도로로 한번 만들어 봤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의 신도들이 기필코 만들 수 있는 이런 날이 왔으면…. 만약 안 오면 오게 해야 되겠다는 것을 선생님은 재삼 각오하면서 지나 왔어요.
또, 여러분들이 실천해 가지고 그 성과가 나타나게 될 때에 비로소….자기를 중심한 그 성과만을 고대하는 사람은 가는 길이 막혀 버리는 거예요. 여러분이 나가서 일하게 될 때에도 나만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내가 있을 때만 요것이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하나의 목적을 향한 연속적인 일이예요.
지금까지 젊은 청년 남녀들이 나가서 일하는 그런 경향을 보게 될 때에 이 일이 계속적이고 연속적인 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는 거예요. 1년 가고, 2년 가고, 3년 가고, 4년 가고, 5년 가고, 6년 가고, 7년, 10년, 100년 가게 될 때에…. 첫 번 출발할 때에는 어느누구든지 맹세가 강하였고, 철두철미한 사상과 신념 밑에서 가야 할 자기의 노정을 굳세게 활보하며 나갔던 것입니다. 그 걸음이 일시적인 걸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는 자들이 일시적으로 가는 경향이 흔히 엿보인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개인이 가야 할 때, 가정이 가야 할 때, 민족이 가야 할 때, 세계가 가야 할 때, 더 나아가서는 천주가 가야 할 때, 천주가 다 가면 하나님이 가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 만민을 대신하여 축복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할 수 있는 이런 심정을 갖고 찾아올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맞아야 할 것이 효자의 도리를 세워야 할 우리들의 책임이요, 충신 열녀의 도리를 세워야 할 우리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걸음은 개인적이로되 그 개인적 걸음이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가는 걸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연속적인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내가 간 뒤에는 반드시 우리의 가정이 가야 되겠고, 우리의 종족이 가야 되겠고, 우리의 민족이 가야 되겠고, 우리의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는 30억 인류가 가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영계와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가 이 길을 바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행차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과연 아들딸이 가기에 편했겠구나! 세계 인류가 가면서 과연 기뻐 하겠구나' 하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닦아 놓고 싶은 것이 오늘날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의 소망이요, 우리들의 욕망이요,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여러분은 이제 믿어지지 않는 그런 곳을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 오라고 하는 그런 자리, 바라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섰으니 거기에도 하나님이 행차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거기에도 우리 민족이 살고 있고, 우리와 같은 선조의 피살을 받아 가지고 하나의 가치적인 실체의 심정을 지닌 이런 인간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산인들, 산골인들, 들인들 혹은 어떠한 바다, 해상인들 못 가겠느냐? 이런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가야 합니다. 그런 길을 닦아 가야 할 우리의 책임이 남아 있는 연고로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이 일을 책임 못 하게 될 때에는 후대에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평을 받아야 입장에 서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나 혼자, 내 일대에 있어서만 그럭저럭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연속적인 길이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다가 만일에 여기에서 못 하게 될 때에는 대신자가 나와서 해야 되는 것이요, 내가 하다가 못 할 때에는 자기의 믿음의 아들딸이라도 세워서 이것을 시켜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여러분들이 이제 새로운 결의를 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고 나가는 여기에 있어서…. 맨 처음에는 다 마찬가지예요. 여기에서 분부하는 말씀을 듣고 하게 되는 내적 인 각오와 신념은 마찬가지지만 문을 나서 게 될 때에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차이가 난다는 거예요. '오직 이런 뜻을 위하여 살아야 할 길이 뚜렷하구나! 가야 할 목적지가 뚜렷하구나! 싸워야 할 내 의무가 당당하구나!' 하는 것을 여실히 느꼈지만 문 앞에 나서고 보면 사정이 천태만상으로 달라진다는 거예요. 보고 느끼는 시각, 보고 느끼는 감정마다 전부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것에 좌우되어 여러분은 사방의 흐름에 접하기 쉬운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고로 이제 단단히 결심을 하여 가는 데는 몇 해가 걸린다는 거예요. 몇해, 몇해. 내가 지나간 후에는 평을 받고 판단을 받아서는 안되겠다구요. 평을 받더라도 좋은 평을 받아야 되고, 판단을 받더라도 좋은 판단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옳소'해서 했지만 이 한 것을 후손들이 다시 뜯어 가지고 수정 해 놓아야 되는 이런 놀음은 내가 하지 않겠다' 이래야 돼요. 만일에 여러분들이 나간 다음에 후손들이 다시 이 길을 뜯어서 수정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된다면 안 갔던 것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손을 안 댔던 것보다 못해요.
지금까지 지방에 책임지고 나갔던 모든 젊은 청년 남녀들이 흔히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걸 바라보게 될 때, 자기 한 개체의 부족한 것이 전체 앞에 미쳐지는 이러한, 평이라고 할까 판단이라고 할까, 판단이 하늘땅 앞에 어떠한 치명상을 입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지금 나가는 길은…. 40일이면 40일, 혹은 3년이면 3년 그 기간만 가는 게 아니예요. 연속적이예요, 연속적. 내가 가는 동시에 이 길을 우리 후손들이 다시 따라와야 돼요. 수많은 인류가 따라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산악지대라든가 흑은 평야라든가 삼천리 반도를 편답하고 다니면서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고 오는 그 걸음걸이를 그날에 있어서의 그것으로 그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연속적인 것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행동하는 그 분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땀을 흘려도 한 방울 더 흘리고 싶고, 노력을 해도 한 걸음 더 노력하고 싶다 이거예요. 만일에 거기에 힘이 모자라거든 마음으로라도, 마음으로라도 더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싸워 왔다는 것입니다. 연속적인 싸움을 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부족하거든 이것으로 보충하여 그 앞에 악의 세계의 악인들이 평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떠한 자리에 가더라도 필요한 것이 하늘의 위신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위신, 통일신도의 위신,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움직여 왔던 우리 성도들의 위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교육을 받고 사탄세계와 대결하여 승리의 깃발을 모방하고 나선 우리의 위신, 이 위신은 세상 어떠한 장병들이 갖춘 위신이 아니예요. 현재에 있어서 선진국으로서 자랑하고 있는 미국의 어떠한 군대의 위신이 문제가 아니예요. 절대적인 위신, 이 위신을 위하여….
이 위신 가운데에는 역사적인 반응이 살아 있고, 시대적인 반응이 살아 있고, 미래적인 반응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위신을 기반으로 하고서만이 이 세계사적인 새로운 길이 영원을 향하여 직코스로 개척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마음에 잊어 버려서는 안 돼요. 그러면서 이것은 계속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못 가게 될 때에는 반드시 후계자를 여기에 대체시켜 놓고 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정신과 이런 사상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분들 앞에 부탁해 놓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평을 받게 될 때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고, 이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 싸우는 데 있어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일시적인 활동이 아니라 연속적인 활동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여러분한테 부탁을 해 놓는다 이거예요. 알겠지요? 「예」
이제부터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진짜 말하려고 하는 것인데, 말할 중심은 무엇이냐? '선을 옹호하는 자가 되자', 즉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하겠습니다.
어느누구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은 '아, 돈을 원한다' 하고 어떤 사람은 뭐 또 '무엇을 원한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늘날 상대적인 세계를 우리가 대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어떠한 좋은 조건을 갖기를 바란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또 어떤 사람을 대해서 '너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무엇을 원하느냐? '할 때 '아, 나는 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큰 실업가가 되기 위해서…' 하는 등 여러가지가 있을 거예요. 그것을 따져 보면 세상에 있어서 위대한 사업가도 있을 것이고, 혹은 위대한 정치가도 있을 것이고, 위 대한 사상가도 있을 것입니다.
대개 역사를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어느 국가에 있어서 어느 누가 부자라는, 아무개 아무개가 세상에 부자라는 것을 역사가 대서특필해서 기록한 것은 없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어느 나라의 어느 누가 제일 큰 부자라고…. 그걸 보게 될 때 그것이 그렇게 귀하지 않은 모양이지요. 또 조금 더 나아가서는 어떤 정치가면 정치가가 위대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떠한 일면에 있어서는 말이예요, 역사적인 면에 기록돼요. 또, 나아가서 역사적인 면에 흔히 기록되는 게 있는데 이것은 무엇이냐?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을 세운, 이런 새로운 뜻을 품은 사람들도 역시 기록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더 나아가서는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주의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또는 하늘을 위해라, 땅을 위해라, 혹은 사람을 위해라, 세계를 위해라. 하는 그런 크나 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역사적인 기사로서 대서특필하여 기록하는 현상을 우리들은 찾아볼 수 있는 거예요.
그걸 볼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 혹은 일대에 있어서 자기의 명망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하나의 정치가, 그것도 좋겠지요. 한 시기의 부패상을 타파해 버리고 새로운 무엇을 그 민족 앞에 제시해 주는 그런 혁명가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도 역사적인 배후와 더불어 시대 시대를 무대로 삼고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남겨 줄 수 있는 사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고 묻는다면 두말할것없이 '그거 물을 거 뭐 있어요?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이념에 잠겨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다 대답할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뭘할 것이냐? 또,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내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게 될 때, 내 자신이 거기에서 기뻐해야 돼요. 자기 자신이 기뻐하는 동시에, 나만 기뻐해서 되겠느냐? 아니예요. 전체가 다 기뻐해야 돼요. 한국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 선다면 한국 사람 삼천만이 기뻐해야 되고, 한국 사람이 이렇게 되어서 기뻐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은 삼천만뿐이 아니에요. 세계 인류가 다 기뻐하기를 바라고, 세계 인류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이 다 기뻐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런 이념과 이상을 논하는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그때의 욕망일 거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겠지요? 「예」 오늘날 역사의 흐름은 그런 역사적인 사조를 거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까지 어떤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 역사가 흘러 나왔느냐 할 때, 어느누구나를 막론하고 전부가 위대한 사상가라고…. 위대한 사상가요, 위대한 신념을 가진 자로서 하늘땅을 무대로 삼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친구로 삼고 살 수 있는 그러한 이상주의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역사의 흐름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만일에 역사가 가야 할 곳이 있다 할진대는 그러한 목적지를 향하여 기필코 가야 될 것이며, 역사를 대변하여 이 시대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위인 혹은 철인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러한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진 자들의 의무와 책임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 가 가지고 기뻐하게 될 때의 그 기쁨은 자기 일신의 개인적인 기쁨만도 아니요, 자기 가정의 기쁨만도 아니요, 혹은 자기 민족의 기쁨만도 아니요, 일개 국가의 기쁨, 혹은 세계 인류의 기쁨만도 아닙니다. 이 기쁜 자리에는 천하가 다 들어가고, 천하가 다 들어가는 동시에 창조주가 계신다면 창조주인 주님께서도 다 이 자리에 들어와 기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을 부르짖는 자의 최고의 욕망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는 결론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 결론에다가 사람을 집어넣어 보자구요. 역사적인 어떤 위인이 있다면 그 어떤 위인도 역시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면 앞으로 보충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고 봐야 됩니다. 석가 같은 양반도, 공자 같은 양반도, 예수 같은 양반도 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내용을 내적으로 외적으로 어느 누가 풍부히 가졌느냐 하는 여하에 따라 가지고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이냐,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혜아려 볼 때, 그 내용의 가치를 논하는 데 있어서 평면상으로 나타나는 것만을 가지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내적인 내용의 모든 것을 지녀 가지고 평을 해야 완전한 평이 되겠기 때문에 반드시…. 내적인 분야를 붙들고 나올 때 여기에는 내적 사정이 많을 거예요. 내적 사람이 있으면 내적 사정이 있을 거예요. 내적 사정이 있으면 내적 소원이 있을 거예요. 내적 소원이 있으면 내적 심정이 있을 거예요. 사정과 소원과 심정이 내적으로 있을 것입니다. 또, 외적인 모든 것도 역시 부합되어 있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반드시 그런 이념적인 중심 존재가 있다 할진대는 그 이념은 반드시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모두 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돼요. 내적인 소원과 외적인 소원, 내적인 심정과 외적인 심정이 통하여 그 가운데에 걸려 있는 모든 만유의 존재가 다 기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결론적인 권내에서 비로소 승리했다는 그런 사람이 이 천지간에 나온다 할진대는 그때서부터 우주가 수습될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때서부터 평화의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개인으로부터 평화의 가정, 평화의 사회, 평화의 인류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목표하는 목적지는 어떤 곳일 것이냐? 그 목적지가 바로 이제 말한 그런 곳입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위인과 혹은 역사적인 철인과 역사적인 도인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서도 그건 가외의 한 분자밖에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산을 바라볼 때 하나의 큰 상상봉이 있으면 그 상상봉을 위하여…. 산맥이 뻗쳐 있으면 뻗쳐 있는 산맥에도 봉우리가 많은 거예요. 이 봉우리만을 중심삼고 볼 때에는, 그 뒤에 딸린 원산맥을 바라볼 수 없게 될 때에는 자기가 대하고 있는 그 산봉우리가 제일인 줄 알아요.
마찬가지로, 산의 최고의 상상봉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산과 수많은 맥을 가져 가지고 이것들을 규합하고 전체를 수습해야 돼요. 그래야 최후에 하나의 구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사상도 역시 그렇다는 거예요.
개개인의 모양의 형태와 사상은 다 마찬가지의 사상과 형태를 가지고 있으되 이것이 전체적인 하나의 기준으로서의…. 거기에서 내적 외적인 모든 가치를 지녀 통할 수 있어 가지고…. 그 내적 가치가 이루어져 기뻐하게 될 때는 아무 산이면 산 권내에 있는 전체가 기쁘지 그 산봉 우리, 최고의 상상봉만 기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섭리의 역사도 그러하고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섭리하는 목적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를 향하여, 어디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냐? 어디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냐? 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사람 들이다! 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데는 어떠한 길을 따라가야 될 것이냐? 수많은 산맥 산맥, 골짜기 골짜기를 찾아가야 할 사람도 물론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정상 코스를 밟아서 가야 합니다. 상상봉에 도달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래서 그 정상 코스를 밟아 가자니 오늘날 수많은 길을 다 제쳐놓고 도(道)라는 이름의 길을 뒤 집어쓰고 그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몰려든 패들이 오늘날 통일신도란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런데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제일 좋고, 제일 안전하고, 제일 무난하고, 제일 가기에 알맞는 길은 많지 않다는 거예요. 제일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볼 때에 여기에서 제일 좋다는 길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예요.
그 길을 아는 사람에게 천 갈래 만 갈래 길이 있더라도 그 길들은 전부 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런 목적지를 향하여 걷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 알던 길들은 전부 다 포기해 버려야 돼요. 어느누구든지 그런 사람은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도 필요 없이 자인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오늘날 우리 통일이라는 명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가 보고 와 보고 다 해봐야…. 고생도 덜하고 노력도 덜하고 수고도 덜했지만 가려진 결과에 있어서 좋은 것만이 거기에 반비례하여 나타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대중 앞에 다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길만, 그런 곳만, 그런 방향만 제시하게 될 때는 반드시 시일의 차가 있을망정 통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가까운 길을 가는 것은…. 그러면 왜 그 길을 요구하느냐 이거예요. 꼬불꼬불, 전체의 산맥을 전부 다 돌아가게 된다면 수고가 많이 필요해요. 또, 여기에 고통이 많이 필요해요. 모든 것이 거기에 비례하여, 전반적으로 미쳐지는 영향이 거기에 비례하여 소모되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 것은 빨리빨리 제거해야 되겠고 그렇지 않은 것, 올바르고 한번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전체에 좋은 영향과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빨리빨리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을 왜 세우려고 하느냐? 더 좋을 수 있는 것을 세워야 되겠다! 이것은 이제 말한 말씀을 통하여서 내려진 결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데 있어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되고, 전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내가 노력하는 데 있어서는 그와 같은 기간과 그와 같은 수고를 소모시켜서 같은 기간에 있어서 맏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선한 사람이 안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고생을 덜 시키고, 수고를 덜 시키고, 거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될 때에는 환경이 그 사람을 추대하여 '우리들의 지도자, 우리들이 따라가야 할 지도자'라고 받들어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이런 길을 세우기 위해서…. 그것은 대번에 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런 길을 복귀섭리하기 위해서 수많은 산맥이 있으면 수많은 산맥을 전부 다 끊어 버리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이런 복귀섭리의 길을, 하나의 평탄한 탄탄대로를 닦기 위해서 수많은 산맥에 있는 길을 끊어 놓고 한 것이 아니라 가다가는 횡적으로 접하고, 좌로 혹은 뒤로 접할 수 있는 길을 전부 다 연결시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수고해 왔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인간들은 알기를 자기를 중심삼고 가야 할 길, 그 길만이 상상봉으로 통할 수 있는 길로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횡적인 길을 닦기 위해서 수고해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맨 꼭대기에 가게 되면 동서남북의 전부가 그러한 초점에 집중되는 거예요. 맨 꼭대기의 그 한 자리는 사방으로 왕래할 수 있는 수많은 길을 총합한 자리라는 거예요. 이와 같은 길을 닦기 위해 하나님은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얼마나 갈래갈래를 정리하면서 수고해 나오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리하여 하나의 기준이 생겨날 때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셨으면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기준이 뭐예요? 비교하기 위한 절대적인 단위예요. 이 단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방식대로 적용하면 전체의 분야에, 횡적인 세계의 무대에 전개될 수 있는 것이 원칙인 연고로 하나님이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의 한 대표자로 세운 분이 누구냐? 인간을 대표해서는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아 한 분은 내적인 소망이나 외적인 소망이나 혹은 내적인 사정이라 외적인 사정이나 내적인 심정이나 외적인 심정이나 모두 통할 수 있는, 하나님과 땅이 통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예요. 그가 주장하는 길이 있다고 할 때 그 길은 어떤 길이어야 되느냐? 참길이어야 돼요. 참길이어야 된다구요. 이 시대를 중심삼은….
오늘날 수많은 인류들이 찾아 나가는 이 참길, 참하나님의 선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그러한 수고를 해 놓고서…. 30여 생애를 걸어 놓고 수고한 예수, 즉 메시아의 수고도 컸겠지만 그 메시아로서 설 수 있는 환경을 닦기 위한 수고가 더 컸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메시아가 서기 위해서는 기반을 닦기 위한 수련 기간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예수 자신에게 그러한 기반을 닦기 위한 수련 기간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라도 그 수련 기간을 닦아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런 기반이 없게 될 때에는 이스라엘을 세워 놓은 하나님이 그런 시련과 수련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과정을 거치고 그다음에는…. 시련만 가지고는 안 돼요. 시련과정을 거친 후에는 반드시 투쟁과정을 거쳐야 돼요. 투쟁만 가지고도 안 돼요. 투쟁과정을 거쳐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목적을 위하여 수습할 수 있는 수습 대책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면 예수, 메시아 한 자체를 이 땅 위에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지고 시련당하게 했다는 거예요. 시련당하게 한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발판을 닦기 위한 거예요. 발판을 닦게 해 가지고 그것이 예수의 발판으로 서게 된 후에는 뭘할 것이냐? 투쟁하는 거예요. 투쟁한 후에는 뭘할 것이냐? 투쟁해 버리고 마느냐? 반드시 그 목적의 가치에 적합할 수 있는 수습 대책을 세워 가지고 수습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여 승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차후의 수습이 문제예요. 혁명정부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혁명 이후의 수습이 문제인 거와 마찬가지로 수습 대책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역사적인 최후의 선의 중심존재, 많은 인간들에게 더 좋을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중심존재인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서 무엇을 하였던고? 시련과 수련도상을 닦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반드시 기반을 닦아야 된다 이거예요. 시련 기반은 탄탄해야 돼요. 땅에 들어가야 돼요. 박아 처넣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시련과정을 거쳐야….
온 세계 인류가 마음으로 고대하던 최고 이념의 선의 동산을 그 기반위에 올려놓고 선의 상상봉을 그 기반 위에 닦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기반이 최고의 상상봉에 대비할 수 있는 이상의 기반이 되어야 됩니다. 그 이하의 기반이 되면 아무리 닦아 놓아도 녹아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을 택해 가지고, 야곱 이후 이스라엘을 택해 가지고 그 민족을 무수히 시련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시련시킨 목적은 왜? 그 일대에 있어서는, 1세에 있어서는 고통으로 끝났을는 지 모르지만 그 시련시킨 연속적인 최후의 종점에 가 가지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뭘할 것이냐? 그 기반 위에다 세계적인 승리의 이스라엘 탑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의 그 탑 위에 군림하셔서 만민 앞에 호령할 수 있는, 참된 길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러한 이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거기에 알맞고, 거기에 대비할 수 있고, 거기에 남아질 수 있고, 거기에 지탱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니 무한한 시련 도가니에 넣고 이스라엘 민족을 연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고충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의 소원은 무엇이냐? 더 큰 선을 세워야 할 책임을, 더 큰 선을 옹호해야 할 책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기에 있어서 대비해야 할, 상대적인 내용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시련입니다. 시련을 모면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선을 세우기 위해서는…. 선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공로 없는 자리에서 세워서는 안 돼요. 그 자리에서는 선을 세웠다 할지라도 그 선은 쓰러져요. 공로의 기반 위에, 시련의 기반 위에,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은 남아질 수 있으되 시련과 연단을 거치지 않은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고 할진대 그 선은 역사의 사조의 뒤넘이침에 따라 가지고 흘러가고 만다는 거예요.
오늘 이스라엘 민족이 그래도 민족적인 이런 전통을 인계받아 가지고 지금까지 이끌고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선민사상 때문이예요.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우리 조상은 어떠한 조상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이 사상! 어떠한 외적인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점령할 수 없다는 이러한 신념 기반 위에 섰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소수의 민족으로 남아 있으되 오늘날 세계적인 모든 문화 세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있어서는 어느 누가 침범할 수 없다는 이런 신념적인 토대가 반드시 있어야만 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는 방향이 어긋나지 아니하는 한 선은 반드시 그 기반을 통하여 시대 시대에 수습되어 나간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할진대는 큰 선을 세워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큰 선을 옹호하여 이것을 우리들이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스스로 느낀다 할진대는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첫째 조건으로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시련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의 이념이 섭리적인 전체의 이념을 대신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승리할 수 있을 때는 최고의 승리요 최고의 기쁨이 되겠지만, 그 승리할 때까지는 반드시 역사적인 탕감의 과정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최고면 최고일수록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시련적인 기반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취해 나오는 3년 기간, 이 전도 기간을 세워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나가 싸우는 것은 이 민족의 기반을 닦기 위한, 선한 하나의 뜻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거기에 상대적인 조건으로 대비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조건으로 등장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신도를 어떻게 시련시킬 것이냐? 이 시련 기반이 공고히 되어야만 그 시련 기반 위에 공고히 선 그 선을 중심삼고 판단을 내리게 될 때 비로소 공고한 판단이 될 것입니다. 그 시련이 민족적인 시련이 되게 될 때에는 민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요, 그 시련 이 세계적인 내용을 갖추게 될 때에는 세계를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준비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사랑하는 자녀들을 희생의 자리에 내놓아야 할 것이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단단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확고부동한 이 시련 기반 위에 서서 누가 갖지 못하는 이 신념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이념, 아까 말하던 메시아를 보내시던 아버지의 그 이념, 위대한 사상가가 취해서 기뻐할 수 있는 그 이념을, 그 이념은 최고의 선이니 그 선한 이념을 오늘 이 공고한 기반 위에 닦아 가지고 그 기반 위에 서 있는 자신으로서 그렇지 못한 것을 전부 다 수습하여 정리할 수 있는 책임자를 만들려니, 각 방면 혹은 각 분야에 동원시켜 가지고 여러분을 시련시키는 운동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거예요. 절대적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유대 나라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이 나라는 민족은 있으되 국가가 없었어요. 돈은 있으되 그 돈 가지고 자기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못 가졌어요. 문화적인 내용을 갖고 있으되 국가적인 모든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문화는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최고로부터 최하까지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소망과 욕망의 줄은 다 꺾어 놓고, 그들을 부딪치게 한 자리는 어떠한 곳이었느냐 하면 이념적인 자리가 아니라 시련적인 자리였다는 거예요. 이거 알아야 돼요. 시련적인 자리!
하나님은 이들을 시련시켜서 꺾어 버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시련시킨 목적은 딴 데 있나니,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하나의 이상동산을 건설하게 될 때 공고하고 이지러지지 않는 기반을 닦으려니, 그런 주권을 세우려니, 그런 문화와 그런 경제권을 세우려니 지금까지 시련도상에 처박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 민족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하나님이 그와 같이 택한 백성들을 그런 시련도상에서 이끌어 나온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이 닦아 나오던 그런 전체적인 인연을 오늘날 우리들이 상속을 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진대, 여러분 자신들은 여기에 있어서 그 민족이 당하던 이상의 시련을 당해야 되는 거예요. 민족으로서의 주권이 없는 나라의 백성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가 하는 그러한 심정까지도 오늘날에 상속받는 무리들은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과 고충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울부짖으며 '우리를 위한 주권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문화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경제력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사회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백성과 우리를 위한 국토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호소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뼛골에 사무치게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처박아 놓은 거예요.
그러한 섭리를 해 나오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의 민족을 위하고 자기의 주권과 자기의 고국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어떤 어려운 도상에서도 참고 하나의 소망의 주권을 찾고, 하나의 소망의 민족, 소망의 국토를 가져 가지고 세계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어려움을 제껴 놓고 참고, 시련도상을 참아 한 때에 그런 목적의 길이 열리게 될 때에 그것을 향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서 달려가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만이 자기의 소원이라며 움직여 갔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삼천만 민족을 대신해 나가 싸워라 이거예요. 네 자신과 네 가정을 위하여 네 종족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싸워라!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하여 나가 싸워라!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까지 우리의 배후에는 원수들이 많았어요. 우리가 가는 길에는 글자 그대로 처참한 사실이 많았어요. 비참한, 말할 수 없는 고충의 자리에 있어서 우리들은 혀를 깨물어 가면서, 혹은 복받쳐 오르는 울분심을 제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분하더라도 뼈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시련도상에 서게 될 때 그것은 거기에서 응당 받아 넘겨야 할 것으로 알지 말라는 거예요. 그 부딪치는 시련이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에서 되살아나서 살이 되어야 할 것은….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을 위한, 최고의 선을 위한 이 지향의 마음만은 자라야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채찍이 가해 오면 그 채찍은 후대에, 영원한 이념적인 그런 세계가 올 때에 그 세계를 길이 빛낼 수 있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활환경이 쪼들리면 쪼들릴수록, 내 환경이 급박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이념을 중심삼은 내적인 사람으로서 뼈다귀가 굵어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분함을 참는 것도, 억울함을 참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울분지심을 억제하는 것도 단 하나 무엇이냐? 우리가 그런 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예요.
하나님도 이스라엘 민족을 지금까지 도탄 중에 쓸어 넣었는데 왜? 그런 고통 가운데 넘겨 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때를 갖지 못하였으니 때를 마련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때를 마련할 것이냐? 칼을 가지고 때를 마련했다가는 칼로 망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은 이 때를 마련하고 이 때를 맞기 위해서 무엇으로? 시련과 고통으로 때를 개척해 나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어요.
즉, 선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요건이 무엇이냐? 선을 세울 수 있는 요건이 무엇이뇨? 그를 위하여 참소하지 못하고 긍정할 수 있 는 요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그런데 그 요건은 무엇으로만 세울 수 있느냐? 편안한 자리에 있어서? 고통의 자리에서만이. 대중을 위하여, 전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전체를 위하여 우는 자리, 전체를 위하여 우는 자리, 전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 대중이 공인할 수 있는 것이 천칙(天則)이 되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은 울면서도 이 길을 붙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길에 있어서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을 찾아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
이제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때가 오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뼈 없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산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놀음을 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있는 거예요. 40여 평생의 울분! 죽지 않았다 이거예요. 6천 년의 울분! 아버지, 우리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서 낙망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어려움을 한 때에 있어서 원수를 향하여 악을 차단할 수 있는 재료로 삼아 자연적인 환경으로 남겨질 수 있는 여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에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내용으로 세워질 것이 무엇일 것이냐? 평안한 자리와 안락의 자리에 있어서 선을 가리는 것은 반드시 지나갈 수 있으되 대중을 위하여 자기의 피살을 깎아 가면서 선을 위하여 고통받는 그런 자리는 공의로 드러나는 거예요. 그것이 드러날 그때에는 반드시 자동적으로 자기들은 악하였고 당신들은 선하였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직고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갈라서는 한때를 바라서 이런 길을 닦는 기반 위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무엇을 재료로 하였던고? 사랑하는 아들딸을 죽음의 자리에 내몰았고, 눈물의 자리에 내몰았고, 피땀 어린 자리에 내모는 것을 절대적인 재료로 하였다는 것을 이제 길을 떠나야 할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때 그 눈물은 확대된다 이거예요. 내 배를 위하여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요, 내 몸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면 그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아요. '십 년 후에 다시 이 땅을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그러면서 '내가 안 되거든 내 후손이 백년 후에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해야 되는 거예요.
고통과 시련을 덧없이 흘려 버리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악한 사람한테서 매를 맞는 반면 선한 사람을 눈물로써 옹호해 주고, 선한 사람을 대신하여 내 생명을 각오하고 담벽이 되겠다는 신념이 폭발되면 억울한 자리에 살더라도 그 억울함을 대신하여 선을 세울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걸어 나오는 길은 처참한 노정인 것 같지만 최후에 있어서는 완전 정복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을 세우는 절대적인 여건을 알아야 돼요. 고통의 자리에 몰아넣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렇게 했느냐? 우리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어느 누가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고생시키고 싶고, 어느 누가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하겠다고 맹세하는 자들을 몰아서 고난의 자리에 집어넣고 싶은 사람이 천지간에 어디에 있겠느냐?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려운 자리에 내놓고 싶은 부모가 없거늘, 그런 사람이 없거늘, 천지를 창조하신 사랑의 중심인 대주재께서 어찌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런 자리에 내몰았던고? 말없이 전부가, 사탄까지도 공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승리의 기반을, 절대적인 심판의 기준을 세우려니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으로부터 아들로부터 자기 자신까지 들이 내몰아서 맞고 빼앗아 나오고, 시련당하며 기반을 닦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정신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고 보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니까 응당히…. 우리 통일의 이념이 세계적인 이념이요, 천주의 이념이라 할진대는 이 무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결론은 간단해요. 결론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내모는 길의 목적지는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인 곳이예요. 최고의 이상적인 목적지이기 때문에 그곳을 향하여 가는 데에는 올바른 길을 향하여 가게끔 내몰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에 있어서는 반대적인 현상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것은 왜? 전체를 정복하여서 전체를 굴복시키려니 하나님은…. 그래야 후환이 없다는 거예요, 후환이,
만일에 혁명정부가 우리와 같이 민족이 전부 다 '아, 그대들이여 고생을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눈물을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가지고 혁명을 일으켰던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네가 이 민족을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증거를 대라. 이 땅을 사랑한다면 이 땅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대라'고 사탄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삼천만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을 위했다면 그 증거를 대라' 하는 거예요. 좋은 자리에서 잘 먹고 흥청거리게 산 것은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증거라는 것은 원수들을 대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되어야 돼요. 내가 선을 위하여 시련도상에서 대중을 붙들고 홀로 책임지고 싸워 나가는 그 자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을 그러한 자리로 내몰고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 시련도상이라는 것은 연속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전부 다 하나의 세계가 될 때까지 인연과 관계가 연결된 연속적인 시련의 역사의 인연을 짊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 통일의 이념이 일본과 미국 등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뻗어 나가는데, 이 한국의 본부를 위주로 하여 삼천리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신도가 얼마나 불쌍하냐 말이예요. 불쌍하다구요.
내가 어저께도 얘기했지만 산골에 있는 그 불쌍한 아주머니들이 우리 식구였다는 것을 알고는 선생님이 통곡을 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생각할 때, 저 식구가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났어요. 통곡을 했습니다.
세계, 혹은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통일의 이념이라고 할진대는 이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비참한 자리에 있지만서도 여러분들을 시련시켜야 할 하나님의 고충이 있는 것을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외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우리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서로가 나가려고 할 거예요. 일본 같은 나라는 한국이 염려하지 않아도 세계 전도를 자기들이 책임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들은 머리가 빨라요. 미국 같은 나라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거기의 시민권을 갖고 미국의 백성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의 이념을 안 뒤에는 미국서도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전부 다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런 수많은 민족이 자기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 자기 민족을 위하여 고통을 받겠다고 나설 거라구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느 단계에 나가야 되느냐? 민족을 위한 그 고통을 지내고 세계를 위하여 고통을 당했다는 그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이 나라가 조국이 될 수 있고 이 민족이 중심 민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우리들이 움직이는 이상의 고통을 받으면서 굶주림과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있더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나가려고 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색 민족을 대신하여 시련과 연단과 고통을 받았다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그 사람들이 와서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거예요.
언제나 선생님이 여러분을 모아 앉혀 놓고 말하는 것이 개인적인 사상을 초월하여 천주적인 사상을, 일개 국가적인 소망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소망을 위해서 싸운다는 신념을 가지라는 거예요. 밥을 먹으나, 자나깨나, 오나 가나. 그런 말을 항시 하는 것도 역시 그러한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래요. 이 뜻이 크면 클수록 여러분에게 시련을 더 시키려고….
선생님이 지방에 가면 젊은 사람들을 대해서 외국 사람들한테 시집 장가 보내겠다고 가끔 얘기해요.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예요, 좋아서. 지금 미국 사람들이 각국 나라의 여성들과 혹은 남성들과 많이 결혼하는 걸 볼 때, 우리들은 그 이상 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그 이상 될 수 있어야 됩니다.
맨 처음에 그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분야에서의 제물이 될지라도 세계가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런 길이 있다 할진대는 시련의 길로 응당히 나설 줄 아는, 나 하나 시련당하여 전체가 살 수 있고 전체가 거기에서 해방받을 수 있다 할진대는 그 길을 자진하여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하나님의 식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식구들은 뜻이 크면 클수록 앞으로 기쁨보다도 시련의 무대를 멋지게 맞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기쁨을 다 잊어버려요. 그 시련무대에 있어서 여러분은 낙오자가 되지 말고 탄식하는 자들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시련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서 내적으로 키워야 할 것은 이상적인 뼈살이예요. 이 뼈살을 키우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소망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고통 가운데 둬둔 것은 국가 없는 나라의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가, 자기가 머무를 수 있는 국토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가 하는 것을 느끼고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이루어 놓아야 되겠다는 이러한 신념과 각오가 마음에 벅차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런 신념과 각오가 벅차서 여러분의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그 시련무대를 늠름히 넘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은 시련 가운데서도 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자란다는 거예요. 자라는 이 무기가, 자라는 이 인격이 악을 심판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거예요. 목적은 그것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시련시킨다는 거예요. 여러분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뭘할 것이냐? 여러분들이 이래 가지고 죽게 될 때 심정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 앞에 통곡하지 않을 수 없어요. 통곡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거예요. 이 자리에서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어요. 통곡하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어요. 통곡하고 머리 숙이고 그다음에는 직고하지 않을 수 없어요. 죽든 살든 뜻대로 하시옵소서! 직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이런 시련도상을 하나님은 거두어 가지고 그냥 그대로, 그 방식 그대로 심판한다는 거예요.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으니, 끝까지 반대하고 끝까지 불신한 자에게는 그 방식 그대로 심판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맞던 그 방식 그대로 사탄을 쳐도 사탄은 거기에 항의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복잡하고 이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 분야 분야에 있어서 핍박과 시련을 안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역사를 수습해 나온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각계 각층, 나쁜 곳이나 좋은 곳이나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시련을 겪고 비참한 길을 걸어 나오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것을 다 거치고 난 후에 그들에게 비로소 그런 환경을 수습할 때 칠 수 있는 재료가 남아진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기반을 닦고 환경을 닦는 곳에는 반드시 시련이 필요하다! 알겠어요? 「예!」 그게 첫째 요건이예요. 알겠어요? 「예!」 알지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해라!' 했습니다. 선생님에게서 고생하지 말라는 말 들어 봤어요? 응? 「못 들어 봤습니다」 고생해라, 고생!
고생해서는 뭘할 것이냐? 고생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고생하지 말라는 거예요. 분하고 원통하던 하나님을 알려면 분하고 원통해 봐야지요. 그래야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나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뼈 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골충이 되지 말라 이거예요. 뼈가 있어야 돼요.
'내가 욕을 먹는 것은 이 뜻을 위해서다. 이것을 완성하기 전에는 원수를 갚지 못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아버지의 나라와 내 아버지의 주권과 내 아버지의 지성으로서 이 세계가 한품에 품길 때까지…. 만일 이 한을 풀지 못하고 내가 가면 죽은 애혼이 되어서라도 복수하고 말겠다는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시련도상에 있어서 내적인 이념을 공고히하여 지내 나가는 용사들이 되기를 부탁해요. 알겠어요? 「예!」
그다음에 둘째는 선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반만 닦아 놓아 가지고는 안 돼요. 기반을 닦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은 '끝날이 되면 반드시 메시아를 보내서 심판한다'고 했는데 그 심판이 뭐예요? 심판은 살펴서 판단한다는 거예요.
기반을 닦아 놓고 그다음에 뭘할 것이냐 하면 투쟁이예요. 옳지 않은 것은 정죄하는 거예요. 들이치는 거예요. 들이치는 거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고생 가운데 뿌리를 박는 거예요. 여기에 뿌리를 박아 누구도 갖지 못하는 힘과 강인성을 지녀 가지고 자라는 나무가 되게 될 때는 뿌리가 든든하니 태풍이 불어와도, 세상에 제아무리 원수의 방어선이 강하다 할지라도 나를 넘길 수 없습니다. 원수의 포진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나를 꺾어 넘길 수 없어요. 불어 봐라! 정체를 드러 내는 그날부터는 뭘할 것이냐? 투쟁이예요.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을 400년 동안 애급에서 고역을 시켜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가게 한 그 노정이 무엇이냐? 싸움의 길! 그렇지요? 「예」 야곱을 수십 년 동안 고생시켜 가지고 에서를 찾아 나가게 하는 길은 무슨 길이냐? 양복강가에서 천사와 더불어 싸움의 길, 에서와 더불어 싸움의 길, 자기 동족과 더불어 싸움의 길…. 그린다는 거예요. 야곱이 자기 아버지를 속여먹고 축복받았으니 그 친척들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저 자식, 저거 저거 저거…… !' 했다구요.
야곱이 축복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기반 닦는 21년 과정을 거쳐 가지고 싸움의 길에 나가야 했던 겁니다. 나서는 그날부터 내적인 싸움 외적인 싸움에 있어서 부모도 역시, 형도 역시, 자기의 친척도 역시 전부가 '저거 저, 배신자!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자'라고 평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어요? 싸움의 길! 싸움의 길에 부딪쳤지만 거기에 있어서 시련과 연단을 받은 그 신념의 길이 있었던 연고로 야곱은 물러 나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10년 동안 닦아 놓은 이 신념을 누가 뺏을 수 없어! 이 이상 뺏을 수 없어! 여기에 눈물과 피땀으로써 키워진 내 자신의 이 굵어진 뼈살을 환경적으로 밀어치는 그런 시시한 조건을 가지고는 나를 점령할 수 없어!' 했다구요.
선생님도 이런 걸 지금까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무정한 것 같지만 고마운 하나님이라고 생각돼요. 연단이 컸고 시련이 컸기 때문에 큰 싸움터 앞에 있어서 지치지 않고 떨어져 나가지 않고 거기에 대비하여 투쟁할 수 있는 이런 신념이 자랐다는 걸 생각할 때, 고맙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을 연단시키고 여러분을 시련받게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우리의 기반이 공고해지고 우리의 터전이 이 삼천만 민족의 기반을 더욱 포용하게 될 때는 싸우기 위하여…. 싸우는 데는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예요. 세계를 위하여. 지금은 우리의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공격전을 해왔느냐? 지금까지는 수비전이예요.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는 거예요. 얼마나 못났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못났느냐 ! 이건 그저 거지까지, 제일 최고라고 하는 녀석들로부터 최하의 녀석까지도 전부 다 하나님을 공격 안 하는 녀석이 없어요. 하나님의 심정 역사를 들춰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전부가 원수예요. 전부가 하나님한테는 침략자예요. 침공자란 말이예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여러분들도 그러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뭐 어디 있느냐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거 잘 알았지요? 「예」 최고로부터 최하까지의 공격을 받아 왔다는 거예요.
공격을 받아 왔지만 하나님은 나라를 버리지 않았어요. 후퇴하지 않았어요. 3년에 한발짝을 가더라도 전진이예요. 백 날에 한발짝을 가더라도 전진이예요. 알겠어요? 「예」 좀 뜨게 갈 뿐이지 전진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한 작전을 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해봐라!' 하는 거예요.
이래서 약한 무리들을…. 종교는 약한 무리들을 수습해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 사람들을 수습해서 편 되어 가지고 점점 주위에 무리를 많이 만들어 가지고는 때리는 거예요. 그거 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예요. 때린다고 해서 전부 다 뭐 스탈린 모양으로 모가지를 잘라 죽이는 것이 아니예요. 그때부터는 공세를 취해 보자는 거예요. 공세를 취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을 대하여 지금까지 역사상의 수많은 불의의 사람들이 공격했던 것을 일시에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일시에. 일시에 몽땅 항복입니다. 무엇에? 이념에 있어서도 항복이요, 백성에 있어서도 항복이요, 그다음에는 주권에 있어서도 항복이요, 영토에 있어서도 항복입니다. 그럼 다한 거예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돈이 필요하고, 권세가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이상이 필요하지요? 그걸 대표한 것이 주권이예요. 그래 가지고 완전 점령을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작전이예요.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우리의 지금 때는 어떤 때냐? 요때는 어떤 때냐 하면 애급고역시대가 끝나 가지고 모세의 지도를 받아 홍해를 건너 광야 40년 과정을 지나가는 기간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때, 이 기간은 역사적인 재현 기간이예요. 이 40년 기간은 어떠한 기간이냐? 여러분들, 광야 40년 기간이 어떠한 기간이냐 하면 모세 이전 시대서부터 모세 당시까지의 하나님의 섭리도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역사적인 비참사가 재현되는 기간이예요. 알겠어요, 40년 기간? 알겠느냐 말이예요? 「예」
그 기간에 있어서 완전히 승리하는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망해요. 그 40년 기간이 역사적인 고통의 재현 기간이기 때문에 그 40년 기간의 역사적인 고통을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살아서 받는 거예요. 살아서 받을 때에 후퇴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것을 고맙게 받고 그것을 생활화하여 '이것은 우리의 역사적인 유업이니 영원히 변할 수 없고 누가 상속받아 갈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선조로부터 유전된 최후의 기간이요, 최후의 시련 기대니 이 기대를 우리가 고이 받들어 가지고 우리 것으로 삼아 이 광야노정을 넘겨야 되겠다'는 신념을 이스라엘 민족이 가졌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이러한 기간의 역사적인 광야노정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기간은 뭐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나가서 편안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예요. 역사적으로 제일 비참했어요. 자기 새끼까지 잡아먹게 된다 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배가 고파서. 성경에는 그런 말 없지요? 응? 「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정도까지 가야 된다 말이예요, 사실. 내 새끼, 사랑하는 자식까지 다 잡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찾는 나라와 내가 찾는 주권과 내가 세워야 할 이 백성만은 죽일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신념이 남아져야 이 길을 간다는 거예요. 광야 40년 기간이 그런 기간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 길이 남아 있는 연고로 오늘 이 한민족이 세계사적 책임을 다시 한 번 재현시켜 우리 시대에 이것을 맞을 수 있다 할진대 우리들은 한 민족의 고통을 전체를 대표하여 받자 이거예요.
지금 한민족은 서로가 잘되려고 싸움하고 야단하지요. 아, 누가 뭐 어떻고, 대통령이 되고, 젊은 녀석들은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 다니면서 야단하지요. 그들이 영광을 바라며 날뛰는 이 시간에도 우리는 비참과 처참한 길을 따라 역사적인 산 시련적인 발판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 있어서는 떨어진 옷이 문제가 아니에요. 욕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추운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내가 죽지 않고 오늘 살아서 이런 운명에 처하여 광야노정을 거칠 수 있는 이 인연이 너무나 고맙다는 것입니다. '내 몸을 고이 받고 이 민족이 나를 기반으로 하여 넘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내가 못 들어가게 되면 나는 그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흑은 그들의 발이라도 붙들고 들어가겠다는 마음, 기력이 부족하거든 내 등을 타고 가라고 자기의 등을 내놓으면서 주위에서 어서 가라고 서로 권고하고 서로서로가 밀어주는 이런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노정을 거치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인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느냐? 평을 했어요. 판단의 때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했다는 거예요. 모세는 무엇이며 너희 지도자들은 무엇이냐? 혹은 열두 지파내의 70장로 너희들은 무엇이냐? 전부가 다….
오늘날 이 세계사적인 책임이 우리 한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놓여져있는 이런 실정 가운데 있어서, 전체적인 이런 고통의 재판을 전개시켜 놓고 이 풀무와 같은 도상에 우리를 몰아넣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이 낙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풀무와 같은 가운데 남아 질 것은 뭐냐? 정금, 순금,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의 나라, 우리의 주권, 우리의 백성, 우리의 땅, 이것만이…. 죽더라도, 고통을 받더라도, 찢기더라도 그것만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걸 다 빼앗아간다 할지라도 그것만은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 여러분이 서 있다 할진대는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시련이 부딪쳐 오더라도 늠름히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기준에 못 선다고 할진대는 여러분들은 도리어 폐품꼴이요, 방해꾼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 시련도상을 지나 가지고 그것이 시련으로만 끝나면 좋겠는데 여기에다 하나님이 또 뭘 접붙이느냐? 역사적인,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싸움하던 싸움의 재판을 이 도상에서 전개시켜 놓는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아브라함을 참소하던 사탄아 가라, 야곱과 싸우던 천사장은 가라, 모세를 참소하던 모든 것은 가라,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고통스럽게 하던 모든 것은 가라,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고통스럽게 하라, 하나님을 배반한 수많은 민족아 동원되라!' 이렇게 민족적인 섭리를 재촉하니 주권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넘어가지 아니하고 그 주권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반을 세우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 시련도상에 있어서 반대하는 한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많은 무리가 총칼을 들고 찔러 죽인다는 거예요. 그럴 때 '아이고!' 원망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돼요. 그런 무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우리 통일교회로 보게 되면 지금 때가 어떤 때냐? 선생님은 그런 과정을 거쳐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때가 되니 망하는 거에요. 싸우는 자의 심정을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 잘 안다구요. 1초도 안심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역시 이 기간에 있어서 복귀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시대적인 이 기간이 지나간 후에는…. 그런 때가 지나가요. 지금 가만히 봐요. 우리의 움직임과 이 세상의 움직임이 맞아 들어가요, 안 맞아 들어가요? 「맞아 들어갑니다」 그거 우연의 일치가 아니예요.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돌리면 돌아간다는 거예요. 돌리기 위해서는 발판이 있어야 돼요. 그렇잖아요? 뭐든지 놓으려면, 그래 유도탄을 놓으려면 그 기반을 들여 놓아야 되잖아요? 포도 쏘려면 반동력이 있어 야지요, 반작용이? 거 튼튼해야 된다 말이예요. 마찬가지로 크게 하려면 그 기반이 서야 돼요.
이래 가지고 금년 4월달을 지내고 나서는 이제, 금년 하반기서부터는 투쟁시기로 들어가는 거예요. 정계 누구 누구는 믿을 수 없다 이거예요. 공개적으로 공박할지 몰라요. 싸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려니 우리는 거기에서 기반을 닦고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싸워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싸우는 데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자신이 있어야 돼요. 자신 안 가지고 싸워서 되겠어요? 자신, 자신이 있어야 돼요. 응? 「예」 자신이 있으려면 기반이 있어야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해 오신 역사도 그 역사라구요. 하나님이 싸우는 데 있어서는 뭐 껄렁껄렁 해 가지고 싸우지 않아요. 한번 싸움하는 동시에 마지막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싸우려면 자신이 있어야 돼요. 자신이 있으려면 거기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아야 돼요.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이 통일용사인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이제 나가서 싸울 자신이 생길 때가 왔어요. 지금까지는 통일교인들이 나가서 싸울 자신이 없었어요. 자신이 없었어요. 자신 없는 싸움을 해 왔어요. 그러니 이중 삼중의 고충이 있었어요.
시대적으로 볼 때 이제는 우리 앞에 여리고성이 들여다보이는 때예요, 여리고성이. 40년 고역을 다 지내 가지고 3일노정 동안 고생하여 여리고성으로 총돌진할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이 다 눈앞에, 목전에 다가왔어요.
이제는 요단강을 건너 가지고 이념의 동산을 향하여, 내 고향, 내 땅을 향하여 복받치는 심정으로 죽더라도 그 땅에 들어가 죽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달리면 될 때라는 것입니다. 광야에 쓰러져 독수리 밥이 되지 않고 그 땅에서 죽고 그 땅에 묻히겠다는 그런 생각 할 때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거 생각해야 돼요. 이 나라 이 백성이, 이 나라 이 땅이 하나님의 주권이 못 되고 하나님의 땅이 못 되어 가지고 여러분이 죽으면 사탄의 참소 세계, 그 땅에 묻힐 거 아니예요? 그거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러한 기간에 당면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는 뭘 가져야 될 때가 왔다구요?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져야 될 때가 왔어요, 자신을 알겠어요? 「예!」 자신이 있어야 돼요. 자신이 있고 그다음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의분심이 있어야 돼요. 자신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예요. 불의를 볼 때는 참을 수 없어야 돼요. 의분심이 있어야 돼요. 옳은 것은 옳은 것으로 세우고 악한 것은 나가서 치고…. 의분심이 있어야 된 다구요, 싸우는 마당에 있어서는. 알겠어요? 「예」 싸우는데 있어서는 자신이 있어야 돼요. 이제 여러분들이 자신을 가질 때가 왔어요. 또, 의분심을 품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역사를 가만히 듣고 볼 때, 여러분들의 피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놈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이렇게 가증스럽구나. 선을 대표해 나온 이 무리가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다니, 이 뜻과 이러한 이념을 품고 나온 이들을 대하여 우리 아버지로부터 우리 친척 누구누구 전부 다 반대했다. 이걸 굴복시키고 말 때가, 말하지 않고 자연 굴복시킬 날이 온다. 이제 우리가 출동하면 이 배후의 사탄을 정복하고야 만다. 용서할 수 없다' 하는 의분심에 불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다음에는 용맹이 있어야 돼요. 의분심만 있어 가지고도 안 돼요. 실천해야 돼요. 실천하려면 용맹이 있어야 돼요. 용맹이라는 말이 순순하고 평탄한 그런 행동이예요? 「아닙니다」 비상하고 비장한 행동이예요. 그것은 평시에 작용되는 말이 아니예요. 비상시에 적용되는 말이예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무대에 나가는 것이 아니예요.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그때에 수십만의 생명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내가 나서겠다는 비장하고 비상한 행동이 용맹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용맹스러워야 돼요.
너, 어느 지방을 책임지라고 할 때 '어이구, 난 뭐 어떻게 되어서…' 하면 그거 되겠어요? '저 어떠한 지역에는 원수의 악당들이 우리를 향하여 계획을 꾸미고 있다. 우리의 역사적인 원수가 저기에 남아 있으니 가면 소탕하라!' 그럴 때 '예!' 해야 됩니다. 이것이 용맹스러운 거예요. 의분심이 격동하는 그 마음이 충천되어 있는 동시에 그 마음이 불 길이 되어 가지고 내 생명이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해치운다는 용맹성이 있어야 돼요.
싸우는 데는 이 세 가지의 요건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첫째는 뭐요? 「자신을 갖는 것」 자신을 가져라. 둘째는 뭐요? 「의분심을 가져야 된다」 또, 셋째는 뭐요? 「용맹스러워야 된다」
여리고성을 향하여 이제 행군의 날이 가까워 여호수아 갈렙을 세워 놓고 하나님은 '강하고 당대하라!'라고 했습니다. 그게 뭐예요? 용맹한 자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첫번 권고였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해서는 뭘할 것이냐? 가나안 칠족을 한 손으로 들이 쳐서 정복할 수 있는 정복자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 용맹스러운 자를 만들기 위해서 미리 경고한 말씀이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들 앞에 말하거니와 이제 싸워야 할 때가 왔으니 자신을 가져라 이겁니다. 자신을 가지라는 거예요. 우리의 이념 앞에는 천하에 적이 없습니다. 어느때든지 굴복하는 거예요. 오늘날 이때에 있어서 굴복시킬 수 있는 이념이 있다 할진대 이 이념을 위하여 먼저 싸우다가 쓰러지는 자는 그 나라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영웅이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일대에 있어서 그것이 성취 못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이념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 틀림없다고 할진대는, 그 이념을 위해 싸우다가 먼저 쓰러지는 자는 그 나라와 그 세계에 있어서의 역사적인 영웅이 된다는 것입니다. 위인이 된다는 거예요. 알아듣겠어요? 「예」
자신을 가지고, 그다음에는 의분심을 품어 가지고, 용맹성을 가져야 돼요. 그래야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어요. 일렬로 행군을 하라구요, 일렬로. 통일적인 행동을 해 나가는 거예요.
이번에 선생님이 강원도도 가 보고 경상도도 가 보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왔다고 해 가지고 각 곳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왔어요. 다 봐도 다 마찬가지예요. 경상도에서도 그렇고 강원도에서도 전부 다…. 도가 다르고 생활환경이 다 다르지만 우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가만 보면 말이예요, 다 마찬가지거든요.
하나님이 그러할 때 우리의 저기 말단 식구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싸워야 할 때는 모두 싸울 수 있는, 통일적인 싸움을 할 수 있는 이런 여러분이 되어야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선을 판단해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선을 위하여 잘 싸움으로 말미암아 악은 물러가고 선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다음에 세째로는…. 하나님이 수련을 시켜 나왔고 그다음에는 투쟁을 하게 해서, 그다음에는 뭐예요? 승리한 후에는, 승리해 가지고는 그냥 내버리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문제예요. 알겠어요? 「예」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수습을? 선생님이 지금 생각하는 게 그 문제예요. 싸우는 것은 쉽다,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알겠어요? 「예」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원수 악당의 최고 간부로부터 쭈─욱 해 가지고 제일 악한 영의 끄트머리에 서게 되면 다시 선한 영의 끄트머리에서부터 제일 큰 영, 이렇게 엑스(X)자로 되어 있다 이 말이예요. 그렇지요?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이 수습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수습은 누가 해야 돼요? 사람이 해야지요? 「예」 수습하는 건 사람이 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수습하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오늘날까지…. 혁명을 못 해서 이 나라가 안 되는 게 아니에요. 수습을 못 해서 그래요. 수습을 하려면 뭣이 있어야 돼요?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돼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 말이예요. 그래야 이 나라가 세계적인 문화를 먼저 창설하지요. 그러니까 사람이 있어야 돼요. 수습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은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인격이 갖추어져야 돼요. 인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이 갖추어져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이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인격과 이념과 심정이 끝날에 인간을 수습할 수 있는 3대 비결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판할 때에 있어서 심판에 걸리지 않고 수습되어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거기에서 인격 심판, 말씀 심판, 심정 심판이라는 명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기준은 무엇이냐? 어떤 도주의 기준이 아니에요. 인류역사를 움직여 나오던 창조주, 최고의 승리의 한 세계를 계획해 나오던 창조주, 절대자인 그분의 인격이 기준이요, 그분의 이념이 기준이요, 그분의 심정이 기준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이념과 그분의 심정이 기준인데 이 기준이 세워졌다 할 수 있는 이런 내적인 보충을 무엇으로 해야 될 것이냐? 이 이념을 위하여 연단을 받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야 돼요. 이 이념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였다는, 싸웠다는 내용이 여실히 드러나야만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이 이념이 '옳다' 하게 될 때는 반드시 세상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수습할 수 있는 비법은 딴 거 없어요. 어떠한 조직력을 가지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말씀과 인격과 심정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 여러분들이 지금 연단받는 것도 인격을 양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싸우는 것도 무엇을 위한 것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연단하기 위한 거예요.
결국 이러한 싸움을 전부 다 완결시켜 가지고 여러분 개인들이 승리한 자가 될 때 하나님은 만우주를 수습할 수 있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이런 역사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분이 실천에 익숙해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의 말로써, 여러분의 행동으로써, 여러분의 생활적인 내용으로써…. 말은 이념을 대신할 수 있고, 또 생활은 인격을 대신할 수 있고, 심정은 내용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것이 제일 귀하다 하는 것을 보여 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시련받아 싸워 가지고 승리하게 된다면 전부가 여러분들을 존경을 하고, 전부가 여러분들을 보고 좋아하고, 전부가 그와 같이 되겠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이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 나타나면 그런 환경이 필시 될 것이므로 앞으로 그런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민을 수습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할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이러한 일을 통일교회가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지금 통일교회의 뜻을 대신하여 선 선봉자로서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연단을 받고 투쟁을 하면서 그런 수습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
<말씀 요지> 벌써 40일 수련기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마음과 지금 돌아갈 때의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이제부터의 움직임에 따라 과거의 여러분과 현재의 여러분이 달라지고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이 수료식이 끝난 다음부터 여러분의 걸음은 엄숙해야 합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엄숙한 걸음을 걷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15회 수련생들을 위하여 수고한 책임자들과 모든 식구들에게 수련생을 대신하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가는 여러분은 어떠한 자체인가? 여러분은 그동안 산에 많이 올라가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에는 힘이 들지만 일단 올라간 후에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맛보게 됩니다. 실제로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가야 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판단해야 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서만 기준이 세워집니다. 과거의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 중 끊을 것은 끊고 수습할 것은 수습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냥 어영부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가치적인 평판을 남기려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의 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역사의 핸들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돌리면 살고, 잘못 돌리면 죽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통일의 이념을 싣고 달리는 버스나 자동차와 같다면 여러분은 운전수와 같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의 길이요, 또 복귀의 수리상(數理上) 제한된 시간 내에 달려가야 한다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핸들을 잡아야 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국가의 현실을 바라볼 때 바로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의 정신적인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들임을 더욱 절감할 것입니다. 이 길은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같이 호화롭고 안락한 길이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냥 지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닥칠 험한 길을 어떻게 수습하고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길은 개척된 길이 아니라 개척하며 가야 하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방 순회를 많이 합니다. 이번에도 강원도의 험로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느낀 것은 길을 조금만, 한 자만 더 넓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운전수와 승객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이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닦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닦을 적에 조금 더 고생하고 희생하더라도 조금 더 넓고 크게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떠한 길을 닦아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삼천만 민족과 30억 인류를 위한 개척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곡괭이와 쇠스랑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후손들로부터 이것은 조금 더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하는 평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러한 길을 걸었을까?’ 하고 머리를 들고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닦아야 할 개척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힘은 비록 미미하나 전체의 힘을 합하여 뜻을 이루게 될 때에 여러분 개체는 전체와 맞먹는 가치적인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3년 전 21일간 지방을 순회할 당시에 생각했던 것은 이 길이 지금은 험한 산골길이지만 장차 수많은 사람들이 차로 달리게 될 때 ‘최고의 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길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손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길은 나 한 개인만의 길이 아닙니다. 계속적이고 연속적인 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길이 일시적인 길인 줄 알고 활보하며 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길은 일시적인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민족과 인류와 영인들과 아버지가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영인들과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께서 행차할 때에 그 길을 보고서 ‘아들딸이 가기에 편하겠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누가 가려고 하지 않는 개척의 길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후세에 비평받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은 내 한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가야 되는 것이니 내 대신자로서 믿음의 아들딸을 세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마음은 모두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문을 나선 후 각자가 걷는 걸음은 다 다릅니다. 사정이 천태만상입니다. 그 사정에 좌우되어 사방으로 흐트러지기 쉬우니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나가고 난 후에 좋은 평을 받으면 괜찮지만 옳지 못하다고 뜯어고치게 되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지금까지 젊은 남녀의 길이 그랬던 것을 볼 때 나는 전체 앞에 어떤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내가 간 다음에 수많은 인류가 따라와야 하니 선생님은 삼천리를 편답할 때에도 가고 오는 것을 그날에 그치지 않고 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땀을 흘려도 남보다 더 흘리고, 손길 하나도 남보다 더 움직이고, 일도 남보다 더 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속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평을 받는 조건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통일성도로서 위신을 세우고 원리인으로서의 위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승리의 깃발을 표방하고 나서서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 위신은 선진국가의 위신이나 강한 군대의 위신 따위가 아닙니다. 역사와 시대를 반영하는 위신과 영원을 향하는 위신입니다. 내가 못 가면 후계자라도 세워 놓고 가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입니 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물어 보면, 어떤 사람은 돈이라고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다른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너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실업가가 되겠다는 사람, 정치가가 되겠다는 사람 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사업가도 있고 정치가도 있고 사상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부자(富者)에 대해서 대서특필하지 않습니다. 정치가에 대해서는 기록합니다. 혁명을 일으켜 역사적인 전환점을 세운 사람이나 어떠한 주의 사상을 세워 하늘땅을 위한 역사적인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대서특필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거나 당대에 명성을 떨치는 정치가, 혹은 한 시대에 무엇을 터치고 나서는 혁명가도 좋겠지만 위대한 이념을 주장하는 위대한 사상가가 있다면 그 사상가를 사람들은 더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사상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자기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기뻐하고 세계 인류가 기뻐하고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이상과 욕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사조를 거쳐 흘러 나왔습니다.
하늘땅을 무대로 삼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위대한 사상을 가진 자들의 사명이요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 기쁨은 개인, 가정, 민족, 인류의 기쁨만이 아니라 천주의 기쁨도 들어가고, 나아가 창조주의 기쁨까지도 포함되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석가나 예수나 공자와 같은 분들도 누가 내적 외적으로 그러한 가치를 더 가졌느냐 하는 데서 그 가치가 좌우됩니다. 평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사정과 소원과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념이 있다 할진대 그 이념에 외적 내적으로 사정과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승리해야 그때부터 사회와 인류의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구세주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맥이 뻗쳐 있으면 거기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 있는 봉우리를 보지 못하면 자기가 보는 봉우리가 최고봉인 줄 압니다.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쁘게 되면 그 산봉우리만 기쁜 것이 아니라 산맥 전체가 기쁜 것입니다.
산을 가는 데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정상입니다. 그 정상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모인 무리가 통일신도들입니다. 제일 알맞은 길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가던 길을 포기하고 전부 이 길로 가게 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더 좋은 길로 인정되면 어느 누구나 자동적으로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꼬불꼬불한 산길은 힘이 드니 빨리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한번 해봐서 좋은 것이면 빨리빨리 세우고, 힘든 것이면 빨리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입니다.
전체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고를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지도자라고 받들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은 대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산맥을 한꺼번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우선 횡적으로 길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 산 상봉을 가기 위하여 수고하십니다.
어느 지점에 가면 하나님은 사방에 그런 사람을 찾아 세웁니다. 그 기준을 세우면 그 기준을 전체에, 온 세계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세운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하늘땅의 대표자입니다.
이 길은 참길이어야 합니다. 하늘은 메시아 한 분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시련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시련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반드시 투쟁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목적을 이룬 다음엔 수습대책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목적하는 바의 가치를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는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쟁에 있어서도 수습이 문제이고 혁명에 있어서도 수습이 문제입니다.
전체 역사와 하늘땅의 중심이 되시는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 하늘은 무한한 수고와 시련 과정을 주셨습니다. 튼튼한 기대를 닦기 위해서는 온 세계가 바라던 최고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을 세워 무수한 시련 과정을 거치게 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탑을 세워야 됩니다. 이것이 만민이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뜻하는 선은 무엇이뇨?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입니다. 공적인 시련과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면, 그 선이 사정상 일시적으로 침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선의 기대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 간직해 온 것은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은 그러한 기반을 중심삼고 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첫째 조건은 신념입니다.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세운 3년이 중요한 시련 조건이라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시련이 세계적인 것이라면 세계를 판단할 수 있고, 그 시련이 하늘땅을 대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을 대신한 것이라면 세계의 복을 다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입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시련도상에 놓고 이끌어 온 것과 그들을 이끌어 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애급고역 4백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한때 그런 고생이 있을 것을 알고 삼천 만을 대신하여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고, 분한 마음을 하늘 앞에 호소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만을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는 가운데 그 생활 환경이 쪼들리고 급박해진다 할지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그러한 때를 갖지 못했기에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도 아버지의 길에 함께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피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울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통스러운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내 40여 평생의 울분심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버지의 6천년간 쌓인 울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 수록 이 어려움이 한때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재료로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미래적으로 세워질 것은 무엇이뇨? 세상의 모든 찬란한 것은 지나가지만 선을 위해 고생하면, 결국은 자기들이 악하였고 당신들은 선하였다고 직고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 오늘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과 피와 땀이 이것을 입증하는 절대적인 재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10년 후에 이 땅에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내가 못하면 내 후손을 통해서 백년 후에라도 다시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하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저 무턱대고 고생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선을 세운다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하늘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처참한 것 같지만 결국은 완전 정복하십니다. 시련을 주시는 것도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부모도 그러한 부모가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 사탄이 천지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의 이념이 천국의 이념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최고의 이상주의일수록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대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것은 뜻하시는 바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혁명정부도 이렇게 했더라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땅을 사랑했다면, 사랑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할 적에 증거를 댈 수 있어야 됩니다. 증거를 못 대면 안 됩니다. 시련은 역사를 통하여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통일의 이념은 이방에도 번져 일본 미국 등 전세계로 뻗치고 있습니다. 어저께 고생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하늘의 뜻을 위하여 고생하는 우리 통일식구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식구들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분을 고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고충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세계 전도를 서로 앞장서서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안 해도 그 나라 사람들이 제 나라 제 민족을 맡아 하려고 자원하고 있습니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복귀를 위해 고통의 길을 자처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를 위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이 나라가 세계의 조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더라도 개인이나 국가를 대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세계적인 사명을 띠고 전해야 됩니다. 우리 식구들은 자나 깨나, 먹으나, 길을 가나, 쉬거나, 언제 어디서나 이 일념에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에 둔 처녀 총각들에게 외국 사람과도 결혼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좋아서가 아닙니다. 미국 사람, 일본 사람 그밖의 어떤 외국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체적인 하늘의 뜻을 위해서라면 그 이상의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하나를 세워 전체가 살 수 있다면 누구나 그 길을 취할 줄 알아야 그 사람을 식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련의 무대를 맞아 쓰러지지 말고 내적으로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주권과 국토와 국민이 없는 민족이 얼마나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그 시련 무대를 늠름히 넘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시련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장하게 됩니다. 시련을 주는 것은 악을 심판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지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알진대 통곡하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식대로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탄을 쳐도 할 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당한 대로 심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아들딸은 언제나 시련의 길, 비참한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고생하라! 이것이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첫째 조건입니다. 고생을 하되 자기 목적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하나님을 위해서 고생해야 됩니다. 뼈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풀어 드리겠다.’ 하는 정신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기반을 닦은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끝날에는 심판을 합니다. 심판이라는 글자의 뜻을 따져 보면 살펴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치는 것입니다. 나무도 태풍을 받으면 뿌리를 깊이 박습니다. ‘사탄의 바람아, 불어와라!’ 해야 합니다. 정체가 드러난 다음에는 싸워야 됩니다. 야곱도 얍복강가에서 투쟁하였습니다. 때로는 동족과도 싸웠고 친척 모두에게 배신자로 배척받았지만 신념이 있었기에 야곱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뼈 살에 사무친 신념이 있었기에 수십년간 지치지 않고 싸웠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연단시키고 시련을 주는 것은 싸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족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공격만 받았습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모든 공격을 다 받았지만 하나님은 후퇴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백년에 한 발짝이라도 전진했습니다. 그리하여 악한 무리를 수습하고 악을 심판해 오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하늘은 기준만 세워지면 때립니다. 공세를 취합니다. 그렇다고 스탈린 모양으로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념, 둘째는 백성, 셋째는 주권, 넷째는 영토로 사탄을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과 친구와 권세와 이상이 함께 있기를 바라는데 그 네 가지는 바로 이것을 대표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는 기간과 같습니다. 이 때는 역사적인 모든 비참사가 재현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받았던 최후의 시련을 받는 때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최후의 시련을 고이 받았다면 다시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굶주림이 극도에 달하면 자기의 새끼를 잡아먹게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자기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주권과 영토와 백성만은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고통을 대신 받읍시다. 비참하고 처참한 길을 피하지 맙시다. 역사적인 시련과 고통의 길을 걸읍시다. 이것은 잘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길입니다. 좀 춥고, 떨어진 옷을 입고, 좀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귀한 때에 태어나서 살아서 이러한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사실입니까? 나를 통하여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면 내 등이라도 타고 가라고 해야 할 때입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그래야 했었습니다.
풀무질하는 가운데에서 남는 것은 순금, 즉 진짜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나님이 바라는 우리의 주권과 우리의 백성과 우리의 영토와 우리의 아들딸입니다. 그것만은 절대적입니다. 그러한 기준에 못 선다면 여러분은 도리어 방해꾼입니다.
오늘 이때는 6천년 역사 속에 있었던 싸움의 실태를 재현시키는 때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때에 괴롭히던 사람도, 모세 때에 역사하던 사람도, 예수 때에 방해하던 사람도, 그밖에 수많은 선지선열을 괴롭히던 사탄도 물러가라!’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싸우는 자의 심정을 잘 압니다. 우리는 1초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시대적인 사명을 알아서 잘 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뜻과 시대적인 사조가 잘 맞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잘 돌려야 됩니다. 유도탄도 발판이 넓어야 됩니다. 멀지 않아 악한 사회와 공개적으로 싸울 날이 올 것입니다. 싸우려면 먼저 자신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대비하는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모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이 다 들여다보입니다. 세계적인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니 죽더라도 그 땅에 들어가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사탄세계에 묻힐 게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그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적을 대하여 싸우자면 자신이 있어야 하고, 의분심이 있어야 하고, 용맹이 있어야 합니다.
용맹이란 순탄해서는 안 됩니다. 비장하고 비상해야 됩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너는 어느 지방을 책임져라.’ 할 때에 ‘아니오.’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데 원수가 있으니 가서 소탕하라.’ 하면 ‘예!’ 할 수 있는 용맹심이 있어야 합니다. 싸우는 데는 자신, 의분, 용맹, 이 세 가지 요건이 꼭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용맹하게 싸워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 앞에는 천하에 적이 없습니다. 용감하게 싸우십시오. 일대에 용감하게 싸우다 쓰러진 자는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나라와 그 시대의 영웅이 됩니다. 위인이 됩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여러분은 이제부터 자신과 용맹심과 의분심을 가지고 통일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강원도와 경상도에 가 보았는데 선생님을 중심삼고 모두 하나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요, 말단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 투쟁해서 승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가? 수습을 합니다. 수습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원수 사탄세계의 각 분야에서 최고와 최하의 선을 긋고, 또 선한 세계의 최고와 최하의 선을 그어 대각선, 즉 엑스(X)자를 그어서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합니다. 혁명을 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수습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수습하기 위해서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즉 수습하는 데는 인격과 말씀과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준은 창조주, 곧 절대자의 인격과 심정이 기준입니다. 이것이 세워졌다고 할 수 있는 내적인 보증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이 이념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그 앞에 온 세계가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늘은 사람으로 하여금 만우주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말은 이념을 대신하고, 생활은 인격을 대신하고, 내용은 심정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춘 자가 나타나게 되면 모두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통일식구들은 만민을 수습하기 위하여 남이 알지 못하는 자리의 선봉에서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했던 선의 주권, 선의 국토, 선의 백성, 선의 이념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삼천리 강토를 향해 일제히 나아가서 힘차게 싸워 주기를 바랍니다.
보기에는 초라한 장소이오나 아버님의 심정이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만민의 가슴 가슴에까지 미치려는 아버지의 엄숙한 성업이 여기에 깃들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제 이 한 단상으로부터 아버지의 영광이 움직이시사 만민의 해방의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이 민족의 해방의 날이 어서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땅의 탄식이 제거될 수 있는 사명과 책임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맹세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 몸 아버지 앞에 드리옵고 저희 마음도 아버지 존전에 맡기오니 당신 것으로서 취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당신의 아들이 되고 당신의 딸이 된다고 하였사온데 아들이면 어느 정도의 아들이며 딸이면 어느 정도의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역사적인 새로운 일이 벌어진 이 순간이기에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느끼옵나이다.
참부모의 성호를 저희들이 부를 수 있는 이 거룩한 한날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였사옵니까? 참이라는 명사를 갖춘 부모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던 타락의 후손 된 저희들은 울고 울고 또 울어도 그 한을 풀 수 없는 인간들이었사옵니다. 참부모를 갖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참다운 자녀도 되지 못한 저희들 위에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 진정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이제 이 몸 아버지 앞에 다 드리고 이 마음 아버지 앞에 다 바치어 산 제물로 드린다 하더라도 부족함을 금할 길 없는 저희 심정을 아버지는 아시오니, 나는 아버지의 것 아버지는 나의 것, 아버지와 내가 화하여 하나의 일체이상을 이루어 그 중심은 심정의 일체를 완결지어 만물의 탄식의 조건을 해소시키고 남을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그것으로부터 싹트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을 대하여 심판의 권한이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배웠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감각을 갖고 있사옵니다.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땅을 대하여 어머니라 부를 수 있고, 천지를 대신한 참부모라 할 수 있는 이런 은사의 자리에 저희가 머물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의 마음과 몸은, 아버지여, 하늘의 심정에 동(動)하여야 할 것이고, 하늘의 심정에 정(靜)해야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죄악의 세상에서 물든 이 몸들, 사탄의 타락의 쓴 뿌리가 아직까지 이 몸에서 제거되지 못한 저희 자체로서는 아버지의 심정의 애달픔을 알지 못하였사옵고, 거기에서 내 자신을 세우시어 아버지께서 얼마나 충효의 모습을 고대하고 있는가를 저희들은 몰랐사옵나이다.
아버지여,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때는 길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체를 갖추어 이 땅 위에 정성을 들일 수 있는 때도 제한되어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때를 가질 수 있는 저희의 이 한 시기가 얼마나 귀하고, 이와 같은 시대와 세계권 내에 내 자신이 생을 받고 태어난 것이 얼마나 영광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영인들이 탄식의 한 날로서 저희들을 바라보는 이 시간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뜻을 알지 못하여 사망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수많은 민족들, 수많은 백성들은 이 날과 이 시간을 알지 못하여 탄식권 내에서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보다 먼저 왔다 간 수많은 인간들이 이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이날을 얼마나 고대할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고, 역사적인 기쁨과 역사적인 감사와 역사적인 책임과 역사적인 사정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더더욱…. 지금 맹세하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내가 살아생전 죽기 전에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이 몸 위에 효자라는 명패를 갖고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지 못할까봐 탄식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삼천리 반도에 외로운 이 한 자식을 세우시기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 많이 하셨습니까?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아버지께서 이끄시기에 얼마나 노심초사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외로울 적 마다 당신은 권고하였사옵고, 슬플 때 다시 하늘이 권고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야 할 복귀의 길, 슬프나 외로우나 고통스러우나 가야 할, 필시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길임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이제 가야 할 이 운명을 저희들이 개척하여야 할 것인데 이 시간까지 하늘이 앞장서서 싸워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옵고, 오늘 저희들에게 황공한 부모의 날의 자리를 맞게 해주신 것을 진실로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아버지, 과거의 부족한 점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저희들의 미비함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크나큰 사명 앞에 염려하는 마음을, 아버지, 붙드시사 다시 힘을 주시옵고 다시 저희를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망 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는 수많은 민족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고, 더우기 삼천리 반도 위에 삼천만 민족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사오니, 힘없고 굶주리고 지쳐 있는 이들 위에 아버님의 각별한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고통을 향하여 달음질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사옵고, 굶주림의 자리에 있어서도 저희들이 차마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더더욱 알았사오니, 이 뜻과 이 사명을 안 저희들이 후대에 한을 남기게 될까봐 두렵사옵나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가다 가다 쓰러져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이요 땅이라고 부르고 쓰러질 수 있는 그런 자가 되면 얼마나 복된가 하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 갖고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러한 입장에서 필연코 이 길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사정을 저희들은 더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 앞에 저희들이 불충하였고 그 뜻 앞에 저희들이 있는 정성을 못다 하였사오니, 과거 3년 기간에 지낸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남한 각지 전체를 대신한 중심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저희들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아버지 앞에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다를 건너 외로운 이역 땅, 만리 이역 땅에서 이 시간에도 이곳을 향하여 눈물을 뿌리면서 이 한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사오니, 심정으로 연결시키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그들을 품으시어서, 이 한 날을 허락하신 뜻권 내에 있어서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으며 영광권 내에 있어서 하늘 앞에 고이 엎드려 경배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아버지, 세워 주시옵고 인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많이 참석해야 하나 참석하지 못한 아들딸들이 많사옵니다. 이 모든 곡절의 사정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고 아버님께서도 이것을 바라볼 때에 슬픔으로 바라보는 줄 알았사오니, 어떻게 하든지간에 이 뜻 앞에 있어서의 저희들의 한날을 승리의 날로 세우시어서, 만민이 다 모여 아버지의 승리를 찬양하며 참부모의 이날을 기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저희 앞에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노정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오늘을 기점으로 하여 3일 기간까지 저희들이 움직이는 전체에 아버지 뜻 외의 다른 것이 나타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을 공고히 하시어서, 이해부터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던 뜻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버지, 승리의 방패를 세우셔서 사탄세계를 심판하여 최후에 정복하고 승리의 패권을 가져 아버지의 축복을 자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만만세의 은사가 아버지의 뜻과 길이길이 저희들의 움직임 전체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시기를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은 부모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생활을 통해서 자기의 생애노정을 거쳐오고 있습니다. 그 날들은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어요. 연속되는 날, 즉 시간권 내에서 우리들은 살아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부모의 날이라고 제정한 이 3월 초하룻날이란 것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우리 인생이 바라던 제일 귀하다면 제일 귀한 날입니다. 이 이상 귀한 날이 없는 가장 중요한 그런 부모의 날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고, 또 지금 현재 살고 있으되 자기를 낳아 준 부모라고 하는 부모는 모시고 살았지만 부모의 날을 세워 가지고 축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부모라는 것은 오늘날 섭리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에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었고 땅이 축하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 자녀들도 부모를 대해서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없는 자녀요, 또 부모들도 자녀를 세워서 자녀의 날을 세워 나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자녀로 대할 수 없는 이러한 슬픈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보게 될 때에 슬픔이 여기에 엉켜 있고, 자식도 부모를 바라보게 될 때에 부모를 바라보는 그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역시 슬픔이 엮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부모로서, 자식이 자식으로서 대할 수 있는 그 대함에 있어서 슬픔과 혹은 한숨이 지어지는 이런 고통의 상정이 없어야 할 것이 본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인간의 인연인데, 그렇지 못한 인연을 가져온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 타락의 보응은 부자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이 형제의 인연으로서 연결되었고,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척에 전개되어 이것이 오늘날 세계 인류에까지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이 있고, 혹은 근심이 인류 앞에 있고, 혹은 고통이 인류 앞에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사망이 전세계에 덮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할진대 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이냐 하면 우리가 태어난 그날서부터, 역사적인 출발서부터 그런 동기와 내용을 지녀 가지고 있기에 그 결과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필시 슬픈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고, 탄식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탄식의 세계, 이런 슬픔의 세계, 이런 고통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각자는 우리 동족끼리의 슬픔을 제거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고, 형제지간에 있어서의 슬픈 인연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끼리의 슬픔과 고통이 있다 하면 그것을 제거하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제일 문제는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슬픔이 깃들어 있고, 고통이 깃들 수 있는 이런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한 부자의 인연권 내에 어려 있는 이 슬픔의 장벽을 어떻게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이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을 겪어야 할 중대한 기준이요, 하늘이 인간세계에 세워 놓아야 할 사명적인 중대한 기준이 되어 있는 동시에, 오늘날 참을 추구해 나아가는 양심적인 마음을 가진 자녀면 자녀일수록 그 부모를 대하는 심정에 있어서 이 담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누구나 고대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타난 외부의 담을 허는 것보다도 이제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맺어진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슬픔을 제거하고, 완전히 고통을 초월할 수 있고, 완전히 행복의 기반이라고 만천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의 인연을 세우지 않는 한 오늘날의 이 지상의 슬픈 기준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귀섭리의 기준은 어디로 전부 다 집중시켜 나왔느냐? 참다운 부모, 참다운 자녀,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나왔습니다. 고통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슬픔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혹은 싸움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섭리의 뜻을 세우면서 하늘과 하늘의 뜻을 대하는 수많은 선조들, 섭리의 뜻을 대해 우리의 선조들은 투쟁해 나왔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더더욱 이 시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과연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혹은 창조주께서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참다운 부모, 그 참다운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 부모로부터 흘러 나오는 참다운 사랑, 그 참다운 사랑에 품길 수 있는 참다운 자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이것을 갖지 못한 것이 인생의 슬픔이요,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 못 해준것이 부모의 슬픔인 동시에 이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자녀의 슬픔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슬픔이 역사적인 인연을 통하면서 혈통적인 역사를 뛰어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슬픔의 기반이 부자의 인연 가운데 서려 있는 것입니다. 이 깊은 자리에서부터 그런 인연을 맺고 내려왔기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늘은 지금까지 모진 투쟁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를 창조할 당시의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요? 참다운 부모가 있으면 참다운 자녀가 있어야 되겠고,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가 있게 될 때 거기에는 참다운 사랑만이 깃들어야 되겠고,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에 있어서는 참다운 인연을 통하여 참다운 선만이 깃들어야 할 것이고, 참다운 사랑과 선이 깃드는 동시에 참다운 환경이요, 참다운 우주요, 참다운 천주로서, 더 나아가서는 참다운 이러한 기준에 설 수 있는 입장을 바라보는 것이 본래의 하나님의 창조 당시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하여야 할 아담 해와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전체적인 소원이 여기에서 저끄러졌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우리들은 뼈에 사무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은 어디서부터? 아담 해와로부터, 우리의 슬픔은 역대 우리 선조를 거쳐 엮어져 왔나니 이렇게 엮어져 온 슬픔을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제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개체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들 앞에 하늘이 추구하는 목적으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서부터 이것을 제거해야 되겠느냐? 내 자신에서 물론 인연을 세워 놓고 여기에 참다운 부모의 기준을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갈라졌던 심정이 다시 창조적인 본성의 심정으로 연결되어 '이는 내 참의 부모요, 이는 내 참의 아들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어느 세상 그 무엇이, 제아무리 고통이 크다 할지라도 고통 가지고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슬픔이 크다 하더라도 이 인연을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사망의 고난이 크다 할지라도 이것을 끊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자의 심정이 재연결될 수 있는 이런 순간이 지상에 나타나야만 이걸 수습할 수 있고 이걸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보내는 데 있어서 '나는 진정 너를 사랑하는 부모의 입장에 섰다'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서지 못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게 될 때에 '너는 내 아들 중의 아들이요 내 독생자 중의 독생자다' 하였지만 과연 그를 품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는 입장에 세웠느냐? 못 세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연이라는 것은 태초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맺어진 것이 연결되어 세계적 무대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라는 이름은 종적인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차이를 갖고 있으되, 그 명사에는 지난날의 역사를 대신한 현실의 자체들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그 부모라는 명사는 아담 해와에게 한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에게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계적인 무대에 이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해결해야 할 중심 사명이기 때문에 예수를 세계적인 메시아로 세운 거예요.
이리하여 예수는 먼저 택한, 선민을 대표한 전체의 자녀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나타났고, 더 나아가서는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전세계 인류의 전체의 자식을 대신하고 이 세계를 대신하여 나타났으니, 탄식권 내의 모든 탄식을 제거 시켜놓고, 이 탄식이 예수의 길 앞에 넘어오지 못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본연의 세계의 창조이념의 아버지라, 혹은 부모라 하고 자식이라 할 수 있는 인연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한 때를 뚝 잘라 가지고 특별히 '나는 네 아버지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니 나는 네 아버지다'라고 이렇게 훈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생자로서 사랑하셔야 할 하나님이었으나 사랑할 수 없는 독생자의 입장에 세워 놓고 만민을 대 신하여 수많은 불신의 자녀들 앞에, 불의의 부모들 앞에 책임을 다하고 거기에 엉클어진 원한의 이 보따리를 제거하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탄식과 슬픔의 보따리를 제거시킨 후에야 비로소…. 인간들 앞에 엉클어진 것을, 원한의 부자의 인연이 엉클어진 것을 예수가 전부 제거해야지, 그 원한의 슬픔이 예수 앞에 탄식의 조건으로 남아져서는 참다운 아들이라 참다운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찾아오게 될 때에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하고 진정 아버지를 불러야 할 예수였으나 부를 수 없는 입장이었어요. 충성을 다하고, 효성을 다하고, 자기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아버지를 한번 모시고 싶고 아버지를 붙안고 '내 아버지!' 할 수 있고, 또 아버지는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마음이었으나, 타락의 한이 이렇게 부모의 인연과 역사적인 세계관을 중심삼 아 가지고 엉클어져 있는 연고로 이것을 제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메시아 예수는 단상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스러웠던 예수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는 이 땅 위에 찾아오게 될 때에 승리한 이스라엘의 왕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요, 뭇 백성이 환호하면서 기쁨의 왕자라고 해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예요. 슬픔의 왕자로서 등장을 하였고, 이 이가 가는 길은 고통의 행로로서의 길이요, 이 이가 가는 데는 죽음의 담벼락이 직면하여 부딪힐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 메시아의 사정을 그 때 사람이 누가 알았겠느냐. 이런 사정을 바라보시는, 예수도 슬프거니와 이런 길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는 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의 날을 기념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와 같은 입장에 선 예수가 아버지를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고, 자신 이 이런 길을 가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할 것을 염려하면서 죽더라도 아버지의 염려를 덜어 드리고 싶어 '내가 죽더라도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라고 하면서 안타까워 했던 그 심정 앞에는 무한한 슬픔이 어려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고통과 슬픔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죽음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있어 가지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하여 심정을 털어놓고, 손을 붙들고 기쁨의 심금을 털어놓으며 '아버지여, 역사적인 한의 길에 있어서 슬펐던 것을 푸시옵소서' 할 수 있는 이런 한날의 기쁨을 세우지 못하고 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그런 부모를 대해서 축하하고, 모시고 싶고, 부모 앞에 효도하고 싶어도 땅 위에서 부모 앞에 효도의 길을 승리적인 기반 위에 닦고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왔다 갔지만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부모의 날은 어떤 날이냐? 이 만민의 부모, 수많은 인류의 부모들이 고통권 내에 있는 이 전체를 수습하고 이걸 전부 다 가로채 가지고, 천적인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민족 민족에 걸린 원수의 그물들을 모두 끊어 버리고, 섭리의 이스라엘 역사 앞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유린한 역사적 모든 것을 타파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개체로서, 수많은 자녀들을 대표할 수 있는 개체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가정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종족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민족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 천지가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이런 길을 닦아 놓아야 할 그런 심정적인 기반을 연결시켜 놓고, 사정에 있어서는 이런 내용의 사정을 걸고 투쟁하여 사탄세계 앞에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단 말이예요.
이 놀랍고 황공한 부모의 날, 여기에는 피어린 역사적 한이 어려 있고, 여기에는 슬픈 메시아의 고통이 남아져 있고, 여기에는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장벽을 거쳐 손을 내밀어야만 자식의 손을 붙들 수 있고, 자식은 이 장벽을 타고 넘어야 아버지의 손을 붙들 수 있는 이런 한스러운 역사가 남아 있으니 이 담을 헐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투쟁 역사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오늘날 우리를 찾아와서 '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부를 지라도 여러분은 귀가 먹었어요. 여기 우리 눈앞에 나타나 가지고 여러 가지로 갖은 형용을 다 하여 나를 보라고 하고 우리를 보고 뭐라고 손짓해도 여러분들은 눈이 덮혀 있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심정이나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아무리 뒤흔들어도 마음이 방향을 잡지 못하였던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내 감각은 무디어 있어서 스스로 찾아갈 길을 잃어버린 방황자입니다. 방황하는 고아와 같고, 혹은 방랑아와 같은 신세인 이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하늘은 이런 나를 붙들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눈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귀를 열고 내 감정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들어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기에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들을 줄 몰랐던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줄 몰랐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줄 몰랐던 것을 느낄 줄 아는 이런 자리에 서 가지고, 과연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참의 부모라는 그분의 심정을 동경하면서 그 자리에 머리 숙여 눈물지을 수 있는 이런 환경을 보여 주는 것만 해도 여러분에게는 한이 안 될 것입니다. 어느 면에 있어서는 무한히 행복하다는 거예요.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날을 맞이하여 축하할 수 있는 한 무리로서 하늘 앞에 엄숙한 이런 식전에 참석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기에 참석할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어서 느꼈느냐 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여기에 답을 해야 될 거예요.
이런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안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소원이 어떠어떠하고, 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나가 가지고…. 이것이 우리와 최후에 맞부딪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여러분들은 아들이요, 하늘은 반드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데, 이것을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있나니 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지금까지 갈라졌던 이 부모와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해 하늘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먼저 선두에서 투쟁하여 수습하여 왔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형태를 거쳐왔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의 도리를 중심삼아 아담으로부터 여기에서 이 기준에 올라올 때까지 하늘은 투쟁역사로 돌고비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고통의 상징으로, 이게 크면 클수록 큰만큼 거기에 대비되는 고통의 상징으로 역사를 지내 왔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이 심정기준을 재현시켜야 하는 것이 하늘의 소원인 연고로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시는 주님은 역사적인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슬픈 자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자신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아로 이 땅 위에 보내어 그런 책임을 맡은 하늘 앞에 아들이 될 수 있는 자가 있다 할 때 그를 대하여, 그분을 대하여 하늘은 '너는 역사적인 고통을 맛볼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나서라' 하고 예고한다는 거예요.
'너는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세계사적인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라. 인간 세상에 있어서 고통의 상징권 내의 모든 여건을 품고 사는 인류가 많기에, 그 인류 전체를 대신하여 심정 기반에 있어서 그의 어버이가 되고 그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런 심정을 가져라' 하는 것이 끝날에 오실 메시아가 하늘로부터 분부를 받고 부탁받은 중요한 내용인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뜻을 알면서부터 슬픔의 부모의 자리에 찾아 나가야 되고, 슬픈 자를 붙들고 통곡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고통을 받는 사람을 바라보게 될 때에 통곡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통곡은 그 개체의 통곡이 아니라 역사적인 통곡이요, 역사적인 슬픔이라는 거예요.
이 통곡 가운데는 하늘의 통곡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아들딸을 대해서 그 고통을 제거시킬 수 있는 울음으로써 이들을 품고 연결시켜 나오는 싸움의 노정을 거쳐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그런 길을 닦아 왔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이런 길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에 직접 부딪혀 가지고, 여기에 하늘의 심정을 세워 놓고 사탄세계의 어느 누가 짓밟을 수 없고 이용할 수 없는 기반을 남긴 이 터전을 세워 놓고, 이것을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기준까지, 혹은 천주의 기준까지 연결시켜 놓아야 됩니다. 이런 싸움터 위에 쓰러지지 않고 싸워서 승리해야 할 것이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분이 나타나면 그분은 개체로되 개체가 아니예요. 그분을 붙드는 자는 역사적인 슬픔을 붙드는 자요, 그분과 같이 싸우는 자는 역사적인 싸움을 하는 데 같이 동참하는 자요, 그와 같이 행동하는 입장에 선 사람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분이 싸워 나오는 전체의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부모로서 등장하는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싸우는 그 부모와 같이 행동하게 될 때 그는 거기에 있어서 자녀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눈물 흘려 아들이라 할 수 있고, 내가 눈물지으며 부모라 할 수 있는 이런 인연만 맺어지게 된다면, 여기에서 비로소 부자의 인연이, 종적으로 연결된 것이 횡적인 기준을 닦아 가지고 이 지상에 연결될 수 있게끔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부모의 날, 이날 가운데는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무한한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어느 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 혹은 어느 주의 사상을 가지고 그 주의를 위하여 투쟁한 어떤 위대한 열사보다 더 고통 가운데서, 더 슬픔 가운데서 이 길을 닦기 위해 투쟁해 나온 하늘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 입으로 부모의 날이라고, 부모라고 불러 볼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고의 노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통일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 하나 세우기 위해서 무한히 노심초사했다는 것입니다.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지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선생님이 나오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데려갔어요. 내가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다 데려갔단 말이예요. 가정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데려간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길을 다 끊어 놓고 나를 이 길로 내몰았는데, 이런 시련을 거치게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남아질 수 있어서 오늘날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3년 전부터 이 부모의 날을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기념하게 될 때는 피살이 떨리는 자세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두려운 이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떻게 되느냐? 아까 말한 대로 하늘 앞에 맺혀졌던 슬픔의 전부가 참부모와 참자식의 심정을 세우고 나오게 될 때는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를 낳아 줄 수 있는 혈연적인 인연을 세워 놓았으니 그 부모의 유업은,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모든 유산은 자식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규합할 수 있는 모든 인연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던 하늘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했으면 그 아들딸도 아버지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야만 타락한 인간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부모의 심정과 일체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와서 싸우던 생활적인 목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래야 됩니다. 참부모를 만났더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먼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로서 사랑하는 단 하나의 아들이로되 그 예수가 뜻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하늘 뜻을 대신하여 나서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예수가 못 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부모를 알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할지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목적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저 끝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서 사랑받아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참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만민 앞에 부모와 자식지간에 맺혀진 원한의 담을 타개해 놓고, 길을 닦아 놓고, 만민이 갈수 있게끔 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야 비로소 아버지 품에 품기어 자녀의 입장에서,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때 해야 할 예수의 사명인 것을 알았을진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를 알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 할 지라도 부모의 무릎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 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탄식권에서 부모님이 친히 이런 부모의 길을 닦기 위하여 수고한 기준을 세워서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수시로 이 평면적인 기준─종적인 기준이 아니예요─에서, 즉 횡적인 기준에서 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효자 효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예수는 독생자로되 그 자신은 내적 심정에 있어서는 효자의 자리에 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만민을 대표할 수 있는 효자의 표준으로는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 심정의 기준을 세워 놓고 이 기준을 외적 실체의 기준과 부합시켜야 합니다. 이 외적 실체의 기준에 부합시키기 위해서는 원수의 세계의 고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시는 데 있어서 인생의 제일 끝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내신 이유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일이 크면 클수록, 죽음의 고통이 그 일신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참부모, 혹은 하나님이 보게 될 때에, 누구보다도, 누구보다도 그 자식에게 고통을 제시하는 사탄 대해서 분개를 할 수 있고, 그 자식을 슬프게 하는 그런 원수 대해서…. 여기에서 하나님은 원수를 대해 제일 최고라 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세우면 세울수록 이 땅─마음 세계가 아니예요, 종적인 세계가 아니에요─에서, 횡적인 세상에서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닦아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원수들 앞에 고통을 받고 모함을 받는 비참한 환경에 들어가게 될 때에, 개인을 대할 때에 있어서의 비참함이 개인적인 비참함보다도 더 큰 가정적인 비참에 해당하게 될 때는 그 개인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정적인 환경에서 예수가 고통을 당하게 될 때, 그 가정적인 환경에서 예수가 그런 고통을 당하는 비참상이 그 가정이 당할 수 있는 비참상보다도 크게 될 때에는 가정을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이 사랑하는 아들을 세워서 복귀 섭리를 하는 데는, 개인으로부터 천주까지 복귀하기 위한 섭리를 하기 위해서 예수를 세웠다 할진대는, 예수는 개인의 시대에 있어서 고통을 받게 될 때에는 개인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가정 시대에 있어서 고통을 받게 될 때는 그 가정이 당하는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종족을 구할 수 있는 때가 왔다 하면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족들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대하고 있는 때와 대하고 있는 사명 기준에 부딪쳐 들어오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하게 될 때는 그 고통당한 것을 조건으로 세워 가지고 현재에 당하고 있는 가정이면 가정, 혹은 종족이면 종족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빼앗아 올 수 있느냐? 어찌하여 빼앗아 올 수 있느냐? 사탄은 개인을 대하게 될 때는 개인적인 원수로 나타나야 됩니다. 사탄이 원수로 나타날 때, 개인을 대하게 될 때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원수로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과 헝제지 인연권 이상을 벗어날 수 없기에 같은 입장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개인이면 사탄도 개인, 하늘이 가정이면 사탄도 가정, 하늘이 종족이면 사탄도 종족,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복귀섭리는 그와 같은 이치가 거꾸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개인을 세울 때에는 하늘세계도 개인을 세우고, 사탄세계의 가정들을 세우게 될 때에는 하나님 세계도 가정을 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섭리와 더불어 가정 섭리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야곱을 세운 동시에 이스라엘 가정을 찾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는 그것이 기준입니다. 이리하여 민족과 혹은 국가를 거쳐 나옴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를 대비하여 급속한 시일 내에…. 개인이 결정되고, 가정이 결정되고, 종족이 결정되었으면 급속한 시일 내에 민족을 세울 수 있고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런 천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사탄세계에 개인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가정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종족을 세웠어요. 사탄세계에 국가적 기준만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세우면 급속도로…. 이것이 사탄세계의 국가 주권이면 주권을 대신하여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면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뜻을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한때에 가서는 이익이 될 수 있는 면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어느 정도만큼 고통을 주느냐? 사탄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줄 수 있겠느냐?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6천 년 역사를 이끌어 나온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이 6천 년 역사도상에 하늘을 대표하여 어떤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진 이런 대표자가 나왔다 할진대는 그 대표자를 찾아와 가지고 시련을 주게 될 때에 그 시련의 기준이 어느 정도냐? 역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메시아로서 책임하다가 죽게 되었는데 민족적인 기준으로서의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투쟁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국가기준만 넘어서면, 국가기준만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기준만 벌어지면 사탄세계는 급속도로 무너집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시험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있어서 선을 대항하여 지금까지 투쟁하던 그 역사적인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심) 역사적인 인연이 이만큼 되었으면 이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키기 위해 이 개체를 대할 때, 개체를 대하는 때가 와서 개체에 연결시키려고 할 때는 이 역사적인 기준에 해당할 수 있는 시련무대를 갖고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약 가정적 기준을 연결시킬 때는 여기에 가정적 기준을 첨부하여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소생, 장성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타락할 때에도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한 거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 할 수 없어요.
그러면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이 자리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섭리의 때가 찾아오는 데는 개인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가정이 나오고, 가정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나옵니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연이어 넓혀서 세계무대까지 나오는 것이 섭리의 역사인 연고로, 여러분들이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어 승리한 기반을 닦았다 할진대는 그 가정을 가만 놔 두면 망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가정적인 기반 위에 민족적인 시련, 혹은 종족적인 시련을 당해 나가면 이 가정은 앞으로 남아질 미래의 종족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선생은 여러분들을 축복해 놓고 왜 내보내느냐? 앞으로 우리 앞에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가 찾아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크면 클수록 더 큰 분야의 시련을 한 단계 첨부하여 넘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지금 이 시대에서는 쓰러지는 것 같지만 재기할 수 있는 원천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다하다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은 고통을 더 받고 시련을 더 받는 조건만 있으면, 그것이 가정 이상의 기준이면 가정이 쓰러지더라도 가정 이상의 기준의 때에 있어서 다시 세울 수 있는 인연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로 다 청산지어 가지고 십자가에서 부활한 후에 다시 40일 고통 시련노정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침범할 수 없는 요건을 남기게 된 겁니다. 그 요건이 새로운 세계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조건은 타락한 천지가 생겨난 이후 처음으로 그 인연이 생겨 나왔기 때문에, 천지 운세가 찾아오게 될 때는 요 절대적인 요건으로 예수가 세워 놓은 부활 기대를 통과하지 않고는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기대를 찾아오는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 인류인 연고로 인류는 그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수습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아들이요, 사랑하는 자녀라 하더라도 사랑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했느냐? 여기에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닦아 나와야 할 본연의 사명을 메시아가 짊어져야 하는 연고로 그를 보내시는 하나님은 이런 시련 무대에서 순식간에 연단시키고 짧은 기간내에 세계적인 고통을 퍼부을 수 있는 사탄을 동원한 거예요. 알겠어요? 사탄을 동원하여 일시에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기간으로 허락한 것이 3년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앞에 놓고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게 될 때에 하늘 대하여 호소한 것이 그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오늘 내가 당하는 십자가의 죽음 이상의 고통을 아버지께서 당하시거든 그 이상의 고통을 나로 말미암아 푸시옵소서. 오늘 사탄이 나를 죽임으로써 자기 소원을 성취하였다면 그 이상의 하나님이 당하던 고통으로 말미암아 복수를 하옵소서' 한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사탄은 거기서부터….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부모의 날을 기념하려고 하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될 것이냐? 사랑할래도 사랑할 수 없고, 여러분이 이렇게 올 때에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한 게 가슴이 아파요. 지방을 순회할 때 여러분의 처참한 생활을 보면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스며든다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의 원수로부터 가정의 원수, 종족·민족을 넘어서 세계 원수에게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여기에서 동정하고 흥흥 해선 안 된다 이거예요. '야, 이젠 됐다' 하고 사정을 베풀었다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정이 없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예요. 그때 당시에 섭리의 뜻을 펴시던 그 뜻보다도 더 큰 시련도상에 있어서 사탄세계에 섭리의 뜻을 남겨야 할 소원을 품고 있는 연고로 '야 사탄아, 더해라. 더해라!' 하는 거예요. 열 대 때릴 것을 열 한 대만 때려 봐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의 가정이면 가정이 살고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옛날의 위대한 선지 선열들을 모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역사적인 새로운 분담, 자기 맡은 사명적인 그 한계선을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소개했기 때문에, 그 새로운 시대의 운세가 지나가지 않았을 때에는 그 기반을 닦아 놓은 그분들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분들이 승리한 혜택권 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의 성인현철들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왜 예수의 십자가를 믿고 예수의 십자가를 동정하느냐? 그걸 동정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사명의 책임이 오늘날 우리 앞에 맡겨져 있으니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이냐?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이냐?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 가지고….
이런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큰 시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섭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영계까지 동원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을 방해했지만 앞으로는 천사세계도 여러분들을 참소합니다. 알았어요? 천사세계도, 천사세계까지도 여러분을 참소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더 나 아가서는 저나라의 우리 선지 선열, 우리 선조들까지도 합하여…. 이렇다 이거예요.
사탄하고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고,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선지 선열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또 벌어집니다. 그렇다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그게 힘들다는 겁니다.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최후의 고비는 어떤 고비냐? 사탄 시련 끝나면, 지금까지의 영계의 영인들이 참소를 한다 이거예요. '네가 통일교회 교인이냐?' 하면서 말이예요. 또 천사들이 참소해요. '네가 통일교회 교인이냐?'그런다 이거예요. 천사들만이 아니고 성도들이 참소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사탄의 시련도 있거니와 이것이 지나가면 성도와 천사들의 시련이 있습니다. 이 시련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하면서 그런 장벽을 거치고 나와야, 그것을 지나고 나와야 그 위에….
예수님이 누구만큼 못나서 낙원에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낙원에 가 가지고 기도하는 예수는 세상에 대한 섭리의 뜻을 품고 왼손은 낙원을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나님의 복장을 쥐어야 된다는 말이예요. 쥐는 데에는 이렇게 쥐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넘어서 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세계와 모든게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들은 이런 뜻을 알았으니….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부모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고 진정한 부자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느냐? 부모의 날을 몇만 번 축하하더라도 그 인연이 내 자신에게 완전히 맺어지지 않으면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맺어지느냐? 오라 하는 길을 올 줄 알고, 가라하는 길을 갈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고생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나 할 수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고 정복할 수 없으니…. 이게 최후의 작전법이예요. 이 싸움에 실패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여지없이 깨지는 거예요. 이 싸움에 이겨서 남아지는 날에는 여지없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갈래 길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날을 축하하면 축하할수록…. 아버지 앞에 내 마음 스스로가 버젓이 나서려면 모진 투쟁 무대에 있어서 승리하였다고, 그래도 내가 피땀을 흘렸고 누구보다도 노력을 했다는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하늘 앞에 '내가 왔습니다' 하고 엎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엎드리는 그 순간서부터 가슴이 욱여지는 통곡이, 울음이 복받쳐 나올 수 있는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아버지 앞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버지가 가는 길을 남이 한 걸음 가려 할 때 나는 열 걸음 가려고 하고, 남은 한 시간 싸우려고 할 때 나는 열 시간 노력하여서 그 길을 더 달려 가겠다고 수고하는 무리들이 되면 될수록 그런 마음이 간절할 거예요. 그런 심정의 세계에서 부모의 깊은 심정을 홀로 지니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 가는 데에는 친구가 필요 없어요. 내가 지내보니까 친구가 필요 없어요. 선생님은 가정을 가진 지금 입장에서 생각 할때, 어떤 때는 도리어 지장이 있다 하는 것을 실감해요. 혼자 갈 때는 언제나 그 예리한 시선이 한 곳을 향해서 가더니 환경이 벌어지니 지장을 가져오는 것을 느낀다 말이예요. 아버지라 부를 때 간곡히 솟구쳐 오르는 그 심정이 희미해 들어가는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구요. 그건 뭐 때가 그럴 때니까 그렇겠지만, 그러나 이 길을 가야 할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이 자리를 척 이렇게 보면 이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세계의 모든 심령들이 와 지키고 있어요. 와 있어 가지고, 어떤 녀석은 늦추어 잡아 가지고 꾸불꾸불하고, 어떤 녀석은 조금 희미해지고, 어떤 녀석은 뺑뺑해 가지고 끌려가는 수도 있어요.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구요. 천태만상이 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계의 수많은 인류 앞에 있어서….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끌어당기는 데는 뺑뺑합니다, 뺑뺑해. 끌어 와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가정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혹은 민족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국가에 있어서 어느 국가보다도 그저 당기고 당기고 당기고 당겨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끌려오면 사탄세계는 정복되는 것입니다. 그게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 그게 뭐예요? 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자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 놀음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여기에 인류를 앞에 놓고, 하나님을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무엇을 끌어당겼느냐?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심정입니다, 심정. 아무리 정복자인 원수들이 포진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일시에 넘고, 죽음을 넘어서 가지고 달려가는 심정만이 그것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남아진 우리들이 가야 할 이런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오늘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었다고 내 자신을 스스로 인정을 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에게 남은 최후의 정열을, 여러분에게 남은 최후의 열성을, 최후의 결의를 어디에 쏟을 것이냐? 어디에 쏟게 해야 되느냐? 하늘은 어디에 쏟게 하려고 그러느냐? 개인적인 시대에 그걸 쏟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늘이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때가 세계적인 때이니만큼 개인적인 사명을 자녀의 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가정적인 기준에서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 시대에 일시에, 물론 연결시켜 가지고 나오지만, 여러분들을 국가적인, 민족적인 시대로부터 세계적인 운세권 내에 처넣자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3년 기간입니다. 이 3년 기간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부터 가정적으로 이걸 죽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예」
이거 수습해 나오는 데는 어디서부터 수습하느냐 하면, 하늘이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복중시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름에 전도활동 시작할 때 예진 애기가 복중에서 살았지요? 그 기준에서 나온 거예요. 이래 가지고 쭉 3년 기간 나와 가지고…. 그런 기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기준. 그러면서 우리 시대는 민족적인 사명시대를 거쳐서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때가 되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고생을 시키는 데는 어디서 시키느냐? 개인적인 시대를 여러분들이 몰랐어요. 다 몰랐어요. 선생님이 뭘하는지 알았어요? 뭘하는지 다 몰랐어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적으로 진정히 모실 수 있는 때를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꾸 멀어져요. 자꾸 멀어진다 말이예요. 앞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가까이 안돼요. 그건 민족적으로 대해야 됩니다. 자꾸 멀어지는 거예요. 그런 때는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체 세계를 살려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국가적인 운세와 세계적인 운세가 넘어갈 단계까지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을 시련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련 당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지금 삼천리 반도를 무대로 하고 나가서 싸우게 될 때 '내가 여기서 제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는 거예요. 이것은 골고다예요, 골고다.
골고다지만 골고다에서 승리하여 부활의 성채로서 하늘의 인정을 받고 참아들딸로서 아버지 품에 품길 수 있는 그런 한날이 오는 날에는 세계적인 거예요. 이런 마음 가지고 멋지게 싸워야 합니다, 멋지게. 여기에 있어서의 '아버지여 내가 위협하오니, 역사적인 최고의 시련 기준과 같은 이런 기준에 섰사오니, 최고의 시련 기준에 섰사오니, 아버지여…' 해서는 안 돼요. 이건 패자가 되는 겁니다. 하늘을 위로하면서 이런 싸움을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지지리 밀려다니면서 그렇게 싸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이번 부모의 날을 맞아…. 이제 우리 앞에는 이 시련과 환란은 세계적인 무대로서 남아 있다는 거예요. 요건 잠깐이예요. 7년이 되면 이것이 조여 들어간다 말이예요. 맨 처음엔 크지만 점점점점 환란은 작아진다구요. 알겠어요? 맨 처음에 시련이 클 때는 환란이 제일 크니 통일교회 패들은 요만해요. 이 시련은 점점점점, 맨 처음엔 컸지만 점점점점 작아져요. 여기에 비례하여 이만큼 시련받을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요만합니다. 그렇지만 역사가 감에 따라서 시련이 점점점점 작아지는 거예요. 점점점점 작아짐에 따라서 점점점점 통일교회는 드러나게 돼요. 마찬가지라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들이 고통받던 기간이 과거에는 길었어요. 여기서 출발한 사람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얼마나 길어요? 그렇지만 국가적인 때에서 세계적인 때로 넘어갈 때니 때가 요만하다는 거예요. 짧다는 거예요. 짧다는 거예요. 넘어갈 기간이 짧다는 거예요. 짧은 동시에 길질 않아요. 7년이라 하는 이 기간이 몇 개월 걸릴지 몰라요. 며칠이 될는 지도 몰라요. 세계가 넘어가는 순간은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의미에서 심각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망하고 흥하는 결정은 며칠 걸려요? 며칠 걸려요? 「순간입니다」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그러니 과거에는 우리에게 시련이 많았지만, 시련이 점점점점 작아지고 우리 편은 점점점점 많아진다구요. 그래, 우리가 세계적인 무대가 줬으니 우리에게 막힌 장벽은 다 무너졌어요. 민족적인 장벽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남아진 것은 세계적 기준입니다. 하나의 주권 국가만 되면, 여기서 주권 기준만 승리해 놓으면 세계적인 기준은 대등한 기준에서 밀고 나간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갈 시련의 고빗길은 많지 않아요.
그러니 선생님이 제일 원하는 것은 뭐냐? 여러분들이 세계적인 심정을 품고, 세계적인 부모의 심정을 품고 세계적인 환란도상에 있어서 승리의 방패를 세우겠다는 결심 자들이 되어서 조금만 싸워 보자구요, 조금한 그러면 필시 우리 앞에는 광명한 날이 찾아오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오늘 여기 참석했던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았다구요. 이제 1차, 2차, 3차, 4차, 5차, 6차까지 했으니, 이번이 마지막 7차예요. 마지막 7차에 여러분을 다시 총동원시키는 거예요. 이번 일을 하는 데에는, 이번에는 절대 누구 신세지지 말하구요. 딴 사람에게 신세지지 말라구요. 누구, 자기 뭐 아는 사람한테, 친구들한테 돈 꿔 가지고 가지 말라구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 털어 가는 것은 괜찮아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자기 형제 것은 괜찮아요. 왜? 야곱이 그랬거든요, 야곱이. 그랬지요? 구체적인 내용을 내가 쭉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그걸 설명하면 지장이 있기 때문에…. 신세를 지려면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인연 맺은 사람한테 지라는 겁니다. 아버지 것이자 내 것이요, 형님 것이자 내 것일 수 있는 그런 분한테 신세지라는 겁니다. 분가 안 했을 때는 내 것 아니예요? 내 것이니 더 좋게 그들 앞에….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선한 의미에서, 더 좋게 뜻 앞에서 하게 될 때는 안 되는 것 같지만 넘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만일에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도와준 그것이 조건이 되어서 그 사람이 못 가게 된다 말이예요. 보라구요. 통일교회에서 여러분들이 나가서 전도해 가지고 수련을 받게 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 가지고 수련을 보내 봐라 이거예요. 그게 잘되나 두고 보라구요,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 여기 교회에서 대줘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 원리가 거짓말이라구요. 안 돼요. 어느때 가 가지고는 꺼떡꺼떡하거든요.
여기 김진희가 처음에…. 여기 김진희 어디 갔나? 「예」 그런 걸 알았어? 「예」 그거 안 된다 말이예요. 선생님이 본부에서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어느 교회를 후원하는데, 후원한 교회는 절대 안 돼요, 후원한 교회는. 본부에서 특별히 해 가지고 선생님이 후원해 주면 안 된다구요. 그래서 눈을 딱 감고 후원 안 해주는 거예요. 언제 후원해 주느냐? 소생급 장성급 다 지나 가지고 완성 단계 넘어설 때, 하늘이 진정으로 사랑한 아들은 그때에 가서 부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한 때에 가서는 후원해 주지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관여해 가지고 역사 안 해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런 기준으로 나가 봐라 하는 거예요. 맨 고비에 가 가지고 미끄러지지 않고 조금만 정도를 넘는 고생만 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조건으로 해 가지고 다 풀려 나간다는 말입니다. 고난을 피해 가는 길이 하늘 가는 길이 아니에요. 고난을 맞아 가는 것이 하늘 가는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알겠어요? 「예」
또,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축복받는 조상, 축복받는 자녀를 갖고 싶거들랑 오늘 현실의 때가 민족적인 때라 할진대 세계적인 때 앞에 있어서 투쟁하면 운세는, 그가 세계적인 환란과 세계적인 고통을 맞아 가지고 그것을 자가의 시련 무대로 삼고 하늘 앞에 공을 들여 놓으면, 이 때는 민족적인 때요 국가적인 시기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공을 들여 놓으면 하늘이 아들딸에게 축복을 해준다구요. 복을 주는 데에는 세계적인 복을 갖다가 첨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들이 태어날 때는 그 민족을 지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견지에서 내가 보고 있는 거예요. 이 원칙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 원칙이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이 원칙을 철저히 생각해야 됩니다. 부모 노릇 하기 힘들어요. 내가 지내고 보니 부모는 참 두려운 거예요. 선생님이 기도 한마디 잘못해 가지고 내가 애기보고 회개한 때 가 있어요. 그건 아버지 앞에 자기로서의 가치로 기도할 그런 위신이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이런 기도를 나로서 해야 할 것인데 껄렁껄렁 기도 한마디 했다 말이예요. 말을 하다 보니 그런 한마디 하게 되겠어요. 이게 아주 가슴이 찔려 가지고…. 그 기도 하고는 애기보고 회개했어요. 이거 잘못하면 일주일 이상 회개하는 거예요. 자식 앞에 최고의 순결로써 나타나지 못하면 참다운 부모가 못 돼요.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나도 몰랐어요. 기도하고 보니…. 사랑한다는 그 자식들을 남의 물건을 도둑질해다가 먹여요? 차라리, 차라리 굶겨 죽이는 것이…. 여러분들이 부모면 부모로서 부모 노릇 하기 힘든 거예요. 자식은 부모를 지도하는 말없는 스승이예요.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내가 이렇게 고생시키겠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겠어요? 여러분들 등쳐먹으려고 그러겠나 말이예요. 그건 원칙이 아니예요. 그건 원칙이 아니예요. 그건 깨지는 거예요. 어차피 깨지는 거예요. 그렇게 놔 둬도 어차피 깨지게 마련이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는 것은 '지름길 가자, 지름길 가자, 지름길 가자' 하는 거예요.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10년 가 가지고 조그마한 것을 얻는다면, 열흘 가 가지고 10년 것의 몇천 배 얻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니 비상한 각오로 그 길로 때려 모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아는 자의 책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더우기 이번 가정들을 쭉 배치하는데 염려하는 것이 그거예요. 그 가정이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느냐? 여러분이 흘리지 않을 눈물을…. 여러분이 타고난 팔자가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어느 기준에 살라는 생활기준을 하늘은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타고난 팔자…. 팔자라는 거 있지요? 운명 기준 이상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이…. 그런 운을 타고났지만서도 세상에 와 가지고 그 반대 기준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고 더 큰 운세를 향하여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하면 그 수고한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제 남아진….
이제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가야 할 여러분들에게 하늘이 선물을 준다면 무엇을 줄 것인가?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고생을 해서 그것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 민족이 지금 도탄 중에 있는 것을 바라봐도 우리 통일교회 이상 고생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제일 고생하지요? 「예」 선생님의 계획은 앞으로 돈이 많게 되면 그 돈을 통일교회 교인 줘서는 안 되겠다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잘먹고 잘입을 수 있는 즐비한 모든 배후의 경제 기반이 다 닦여 있어도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주지 말라는 거예요. 몇 년 동안? 영원히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예요. 10년이면 10년 동안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뭘할 것이냐?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미국 이상 기부하는 거예요. 각국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여행할 때에 '아, 지상의 천국의 나라, 문화의 상징 국가!' 라고 찬양하지만 반대가 되어야 돼요. 수많은 민족을 후원해 주고 수많은 민족을 도와주어서 누가 그 나라 찾아오게 될 때에 그들이 발을 옮겨 딛지 못할이만큼 그렇게 처참한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비참한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국가가 그렇게 된 것은 무엇 때문에?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 민족은 왜 이렇게 줬느냐? 세계 인류를 도와주기 위해서. 자기 민족보다 더 사랑하는 이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부모보다도 이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이런 절대적인 기준, 이걸 누가 만들겠느냐? 이걸 선생님이 제일 염려해요. 이걸 어떻게 만들어 놓겠느냐? 이것만 만들어 놓으면 공산당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이 세계를 정복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이 10년 동안에 세계를 이렇게 후원해 줬다는 걸 알면, 한국 찾아와서 먹지 않고 피를 팔아 가지고 후원해 줬다는 걸 알면 거기서부터 '이젠 한국 사람 고생하지 마십시오!' 하고 반드시 세계 인류가 손을 들어 외치는 그러한 외침의 소리가 들려 올 것입니다.
그때만 되면, 이념과 더불어 세계를 살리기 위하여 수고했고 하늘의 심정을 가진 형 중의 형이요, 동지 중의 동지요, 부모를 대신한 대신자라고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기준이 잡혀지면, 그때에 '한국에 있는 백성들은 고생하지 마십시오!' 하고 데모할 정도가 되면 순식간에 한국은 지상낙원이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우리가 암만 삼십 년, 수십 년 잘 했댔자 어떻게 이렇게 만들 거예요? 미국을 따라 가겠어요? 그렇지만 십 년이면 십 년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런 놀음 하면 십 년 후에나 몇십 년 후에는 최고의 문화 기준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 놀음 시키는 사람은 당장에는 원수지요. 모르는 것들은 망해요. 떨어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거예요. 모르면 전부 다 떨어져요. 모르면 망해 떨어지게 돼 있어요. 이스라엘이 몰랐기 때문에 다 망해 떨어지고 꺾어져 갔다 이거예요, 몰랐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거예요.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끔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가르쳐 주는 데도 못 가는 것은 자기 책임이예요. 이래서 선생님이 지금 기도하는 것이 그거예요.
비참한 얘기지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보면 얼마나 유태인을 학살했어요. 먹지 못해서 영양 부족이 되고 죽음의 길에서 생의 애착을 가지고 허덕이는 걸 바라보게 될 때, 만일에 한민족이 세계를…. 저 히틀러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원수 국가라고 해 가지고 저렇게 했지만, 원수의 국가에 대해서 옳다는 자기들이 정병이 돼 가지고 세계에 봉사를 해야 된다구요. 그랬으면 세계를 순식간에 영원히 정복했을 것인데 그런 의병이 이 역사말 시대에, 이 종말 시대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그렇게 해서 한번 가 보자구요.
수십만을 동원하여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심정적인 이런 원동력을 갖고 있느냐? 선생님이 그런 걸 많이 생각해 봤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예요. 그러니 고생은 타고났다는 거예요.
또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여러분 기도해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옥동자로 태어난 거예요. 태어날 때에 귀하게 태어났어요.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본래 하늘의 천성의 인연을 갖고 왔기 때문에 귀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고생하고 그렇게 천하게 살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안 돼 있다 이거예요. 그런 운을 가진 그런 심적 기반을, 배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생 덕에 삼천만이 바라보게 되고 그 고생 덕에 인류가 해방을 받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언제 봤다고 선생님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로 말미암아 천적인 운세는 자기들 앞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은 반드시 공이 있는 곳에는 머리 숙이고 가고 위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법도인 연고로 그 앞을 지나고 그 인연을 앞에 놓고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머리 숙이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법도예요. 이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상 야릇하거든요.
내 우리 애기들 보고도 지금 가만히…. 이 애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 내가 가르쳐 주는 도리가 이렇고 하늘이 세워서 인류를 수습해야 할 법도가 이런데 그 법도를 지도하는 내게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실험을 하는 거예요, 실험을.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오늘 부모의 날에 대해 말하게 될 때에 말이지요, 여기 모인 우리 식구들 대해서 부모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자녀에 대해서, 진정 자녀에 대해서 심정은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이걸 어떻게 다리 놓아 주느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걸 생각할 때 역시 역사적인 모든 인연이 여기서 지탱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 부를 때에, 아버지 어머니 부르려고 할 때에는 이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야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꽁꽁 동여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을 대표해서 싸우는 데 있어서 민족 앞에 홀로 서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혼자 부르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대표해서 그렇게, 그저 고통 가운데서 하늘을 염려하며 울부짖고 기도하게 되면 그 개인이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삼천만 민족 전부가 하나님을 얽어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들이 이제 지방에 나갈 거예요. 어차피 남은 멀지 않은 기간을 우리는 달려야 되겠어요. 달려야 되겠어요. 가까운 시일 내에, 멀고 빠르게 범위를 잡아서 여기에 인연을 맺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거기에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 우선 그 땅과 그 지역이 거기에 동화되어 머리 숙이게 되는 거예요. 이 길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래, 지금 삼천만 민족을 어떻게 해 가지고 머리 숙일 수 있게, '아버지!' 할 때에 '예, 옳습니다!' 할 수 있게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은 잘먹고 잘살자는 게 아니예요. 부모의 심정, 아버지가 보고 싶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그 품에 안기기 위해, 해방의 왕자가 돼 가지고 모든 것이 거침없이, 천하에 거침없이, 춤을 추나 뭘하나 만민이 다 영광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한때를 맞기 위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싶은 갈급한 마음, 이 마음에 불타 가지고 모진 시련도 나의 갈 길로 알고 응당히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싸워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필시 그런 날이 있을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 약속하는 것입니다. 또, 사실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다구요.
이제는 기도가 둘밖에 안 남았어요. 기도가 둘 남았어요. 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최후의 문제요, 하나는 세계적인 최후의 문제예요, 공산당 대해서. 그것 외에는 선생님이 소원이 없어요. 때가 이만큼 접근해 왔으니 여러분들이 현재 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단계에 왔다는 것을 아실거예요.
그렇게 알고, 선생님이 고생을 했으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참고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장벽 앞에 있어서 있는 정성을 다하라 이거예요. 예수께서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한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제시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도탄 중에서 밀려가는 사람 되지 말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붙들고 심정을 거기에 엉클어 놓는 여러분이 되라 이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의 아들딸이 될 거예요. 그러한 자리에서 그러한 각오를, 그러한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부모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우리는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되겠어요. 끝까지 가야 되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슬픈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약속하겠지요? 「예」
아버님, 저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과연 불쌍한 자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외롭다면 이 이상 외로운 자리가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구도 없고 사정도 통할 수 없는 황막한 황무지로 아버지가 내몰게 될 때에 고아와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자식을 찾기에 허덕이시는 아버지의 모양을 내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이 자리까지 쓰러지지 않고 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황공하옵니다.
세상에 그 누가 나를 몰라주더라도 저는 아버지를 갖고 있는 것이 자랑이옵니다. 슬플 때도 내 아버지였사옵고 기쁠 때도 내 아버지였사옵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슬픈 입장에 계신 아버지인 것을 알았기에 있는 힘 다하여야겠다고…. 가는 길을 돌아서 보고 내가 아직까지 여력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충성을 못 하였다는 한을 남길까봐 슬퍼하는 마음이 언제나 이 몸에서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하고, 한날의 쉬는 시간에도 자신을 채찍질하며 아버지의 심정을 붙안고 눈물지으며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을 당신은 아옵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 중에는 불쌍한 외로운 무리도 있습니다.
아버지, 이들은 젊은 청춘들이옵니다. 남보다도 더 먹고 싶고, 남보다 더 자랑하고 싶고, 남보다도 더 높임받고 싶은 것이 젊은이의 기질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춘 시대의 모든 욕망을 다 땅에 묻어 놓고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허덕이며 달려온 당신의 아들 딸이오니, 이제 손에 손을 붙들고 '내 아들딸아!'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되시옵고, 이제 직접 관여하시어서 저희의 앞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이 민족적 사명과 남아진 이 세계적 사명이 우리 앞에 있사오니, 부디 여기서 쓰러지지 말고 끝까지 남아지는 자가 되어서 아버지 존전에 해방의 자유와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를 독생자로 이 땅 위에 보내신 아버지는 예수를 품고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투쟁의 역사노정에서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요해야 할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신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분통하였습니까? 이것을 알았사옵니다.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한 자녀의 명분을 가졌사오나 이제 다시 돌아와야 할 저희들의 길이 남아 있기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사명적인 터전을 향하여 가는 이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를 그와 같은 자리에서 보호해 주시었기에 이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보호해 줄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련 가운데에 염려하신 아버지인 것을 제가 알기에 이들도 그와 같은 시련의 자리에서 보호해 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련과 그런 도탄 중에서 승리의 한 자리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드리게 될 때에, 만복의 복을 더해 주고로 부족하지 않으냐고 물어 보는 아버지인 것을 내가 알았사오니, 이들을 그런 자리에서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부모의 날을 마음 모아 축하하는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모든 사랑하는 식구들이 여기에 참석하지 못하였사오나 그들 위에 같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은 이곳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여기 참석한 이들보다도 더 간절하게 될 때는 그들이 복을 받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옵고, 해외 먼 곳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 이 날을 기념하면서 눈물짓고 있는 아들딸도 많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옵고, 승리의 한날을 약속으로 세우신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를 원하는 이날을 세웠을진대, 오늘의 이 모든 인연을 두터이 하시어서 만민 앞에, 모든 천주 앞에 인연으로 세우시옵고, 해방의 동기가 되고 승리의 방패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이런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부르고 싶었던 부모의 날, 부모의 날을 대표할 수 있는 참부모를 저희들이 맞아 이 땅 위에서 참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이 몸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효자의 이름을 가지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진정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때는 이 땅 위에서 길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가치의 시기를 맞이하였사오니, 이 가치의 길을 놓치고 천추만대에, 혹은 영원한 세계에 가서 탄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생전, 육을 쓰고 있는 이 기간에 있어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이는 효자 효녀가 되게 하시옵고, 충신 열녀가 되게 하시어서 새로운 천지의 역사적인 노정에 있어서 이들이 간 길을 효성이라 하시옵고, 이들 이 간 길을 충성이라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영광이 이들의 터전 위에 길이길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축복과 권위가 이들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온 천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위에, 그리고 앞으로 뜻 앞에 세워져야 할 수많은 인류 위에, 천상의 복귀의 해원 앞에 있어서 슬픔의 심정을 붙안고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이 있는 천상에까지 아버지의 영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고, 특권적 혜택을 나타내시어서 새로운 영광의 터전으로 저희의 무리들과 온 천지를 몰아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참다운 참부모와 참자녀와 참식구들과 참하늘땅의 중심이 되시어서 심정적인 일체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어서 속히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악을 제거하고 원수들을 이 땅 위에서 축출하여….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이 가운데에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 몇 사람인지 손들어 봐요,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 몇 사람인가? 들어요, 들어! 「26명입니다」 26명? 「예」
본부에 올라왔으니 이제부터, 이 자리에 참석했으니 싫든 좋든 여기의 지시에 의해서 일정한 기간을 훈련이라는 두 글자를 앞에다 놓고 여러분 자신들이 이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시작되는 모임이 지금 여러분이 참석한 이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여러분이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고, 마음대로 갈 수 있었고, 마음대로 잘 수 있었고, 또 자기의 환경에서 마음놓고 무엇이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한된 환경에 의해서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마음대로 말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먹고 잘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거예요.
그러니만큼 세상에서 여기에 오기 전까지, 이 문안에 들어서기 전까지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회상하는 자리에만 돌아가면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환영이라는 명사는 뒤에 가 버리고 불평이라는 명사가 여러분 앞에 뚜렷이 나타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먼저 명심해 둬야 되겠습니다.
이제 전부가 어제의 나와 다른 환경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환경에 들어와 있는 것을 한꺼번에 소화하고 한꺼번에 화해 가지고, 내가 거기에 한꺼번에 적응될 수 없는 사람인 연고로, 적응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연고로 적응하는 데에 상당한 시일이,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결심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간이 짧아지고 길어지는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간 중에서 제일 어려운 기간이 3일간입니다. 3일간이 복잡한 거라구요. 그 기간에 '아이고, 못 견디겠다. 아이고, 보따리 싸 가지고 가자!' 할 사람도 있을 거예요. 내적으로는 몇 번씩 그럴 거라구요. 그렇지만 꾹 참고 1주일만 지내 봐요, 1주일만. 1주일만 지내면 그 다음에는 대개 '어, 여기가 어떻고 어떻게 나간다' 하는 그 방향에 대해서, 수련 방향에 대해서 대개 자리잡게 됩니다.
한 1주일 지내게 되면 수련 방향에 대해서 자기가 자리를 잡고, 그다음엔 내 자신이 여기의 수련에 대해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정하고 위치를 정하게 됩니다. 한 3주일쯤 되면 위치를 정했으니, 그다음에는 나와 여기 통일교회, 나와 말씀, 나와 그 내적인 심정세계를 비교하면서 비로소 자리를 잡고 나갑니다. 지금까지 쭉─수련을 거쳐오면서 보게 될 때 그렇게 움직여 나온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가 원리적인 기간에 있어서도 필요한 기간이니만큼 그것은 방향만 잡아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위치만 알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자기가 여기에 온 보람과 가치를 결정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20일을 지내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이제는 단단히 결심하고 해보자 이거예요. 여기 남자들, 사내답게 결심했으니 '내가 깨지든가 내가 밀려나가든가, 내가 어떤 딴 사람이 되든가 해보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이 대해 주기를 지금부터 부탁합니다. 약속하겠지요? 「예」 틀림없이 약속하겠지요? 「예」 여자는? 「예」 거기는 듣고 있는 양반들이예요? 묻는 것은 남자에게 묻는 거예요? 남자에게 묻는 거예요, 전체에게 묻는 거예요? 「전체에게요」
요놈의 여자들은 여자가 타락한 것만 해도 분하고 원통해 해야 할 텐데…. 복귀적인 모든 내용을 알아 가지고 그것을 탕감복귀하겠다는 책임을 먼저 지어야할 입장에 선 여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런 것을 선생님이 물어 보게 될 때 선착으로 대답해야 된다 이거예요. 지방 전도사들이 그렇게 가르쳐 줘요? 본부에 가서 선생님이 물어 볼 때 여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늦게 대답하고, 한국의 법은 삼강오륜(三網五倫), 혹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했으니 여자들은 나타나기를 더디하고 묻는 데 더디 대답하는 것이 여자들의 예의라고 가르쳐 줬어요? 그렇게 안 가르쳐 줬을 거예요. 나이가 든 아가씨들이니까, 저 시골에서 오고 다 그래서 쑥스러워서 대답 안 하는지 모르지만 이제부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물어 보면 대답하는 거예요. 좋으면 좋다고 대답하고 아니면 '아닙니다' 하고 대답해야 되겠다구요. 수련회 첫날부터 이런 결의를 가져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그럼, 아까 선생님이 말한 그런 몇 가지의 요점을 단단히 내적으로 결심하고 나가겠다는 것을 약속하지요? 「예」
그럼 이제부터 선생님이 잠깐 동안 부탁의 말씀을 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우리들이 가야 할 이러한 내용에 있어서 중대한 요점을 살피는 의미에서 여러분 앞에 몇 가지 내용을 말씀하려고 한다구요. 말씀할 제목이라면 제목, 요지라면 요지, 그 내용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천국'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한국의 실정을 가만히 보면, 나는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고, 또 한국 나라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고, 또 한국 사람의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천태만상으로 내용을 달리 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한국 사람이요,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고, 한국 사람의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되, 그 내용으로 들어가 가지고는 가정 환경이 다른, 부모의 사정이 다르고 각각의 환경이 다른 입장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각 '도'가 달라요. 경기도가 있으면 경상도가 있고 전라도가 있고 각 '도', 팔도강산에 널려 있는 여러분들이 모였다구요. 그러니만큼 처하여 있는 지역적인 환경도 달라요. 다르다는 거예요. 다른 입장에 살면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것도, 혹은 슬퍼하는 것도, 혹은 여러분이 생활하는 내면에 있어서 고통을 당하는 것도, 혹은 소망을 품고 거기에 싸워 나가는 방식도, 혹은 목적을 세우는 것도 전부 다 다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그 내용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혹은 범위를 넓게 가지면 가질수록 거기에는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사정이 다 벌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 자기들 자신을 중심삼고 가정을 죽 돌아다 보고, 혹은 자기가 살고 있는 부락이라든가, 자기가 살고 있는 면이나 군으로부터, 자기가 살고 있는 도, 지금의 삼천리 반도를 죽─ 바라보게 될 때, 복잡한 내용을 중심삼고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이 나로 하여금 기쁨을 소개해 줄 수 있는 터전이 돼 있느냐 이거예요. 어때요? '야, 이건 내가 영원히 찾아가려던 본향 땅이로구나! 여기는 억천만 년 행복의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살 수 있는 우리의 삼천리 반도요, 그럴 가능성이 넘쳐흐르는 삼천만 민족이다'라고 여러분들이 생각해 봤느냐 할 때에 대답을 어떻게 할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예요, '노, 아닙니다'예요?
그리고 삼천리 반도가 그렇고, 삼천만 민족이 우리 앞에 소망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그런 곳인 동시에, 지금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움직이는 그러한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소망을 둘 수 없는 입장에 서 있으니 여러분들은 불행한 입장이냐, 혹은 행복한 입장이냐? 이것은 삼척 동자도 '나는 불행한 사람이요, 나만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널려 있는 삼천만이 불행한 것이요, 삼천만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삼천리 동산이 불쌍한 것이요, 삼천리 동산만이 그러한 것만이 아니라 삼천리 반도와 삼천만 민족을 지도하는 이 주권도 불행한 주권이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것은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넘어 이 땅 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수많은 주권을 가지고 자기의 국가의 위신을, 혹은 자기의 국가의 문화, 예술 등 그 어떤 정책적인 이념을 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세계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국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때에, 여기에서 그것을 내포하고 있는 모든 국가적인 형태를 바라보면, 그 국가, 국민, 혹은 그 주권이 과연 우리가 영원히 찾아 갈 수 있는 소망의 것이냐 이거예요. 지금 그런 나라가 안 줬으니, 이런 삼천만 민족이 싫고 삼천리 반도가 다 싫으니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은…. 영원히 내 생명과 더불어, 내 마음과 더불어, 내 이념과 더불어 영원한 생활의 복지로서 기반을 삼아, 거기에 뼈를 묻고, 거기에 내 만년대계의 기반을 잡겠다고 할 수 있는 국가가 있느냐 할 때, 여러분들은 어떤 대답을 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그럴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미국에 가기 위해서다. 미국 가고 싶어서 공부한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말을 할 것입니다. 혹은 외국을 유람하기 위해서, 혹은 어떠한 나라의 그 시대에 있어서 혹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자기의 인격을 자랑하기 위해,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지극히 작은 문제라는 거예요.
전체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과연 그 나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국토를 갖고 있고 주권을 갖고 있는 그 주권이 오늘날 지상에 제일 간다는 주권이요, 제일 간다는 민족이요, 제일 가는 백성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과연 우리의 본심을 중심삼고, 진정한 내 본심에서 바라는 이념적인 그런 관에서 볼 때, 과연 그것이 내가 소망하며 찾아가서 살 수 있는 나라일 것이냐? 아니예요.
왜 그러냐? 지금 민주 진영을 지도하고 있는 미국이면 미국, 즉 민주주의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선진국가 입장에 있는 미국을 두고 볼 때에도, 미국이 갈, 미국이 칭찬하고, 미국이 높이고, 미국이 자랑할 수 있 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하면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들도 아직까지 자기들 가운데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좀더 세계적인 사람을 찾고 있고, 자기들은 지금도 역시 그 국가 국민성에 있어서 좀더 만민이 우러러 바라볼 수 있는 국민성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권은 세계에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그 어떤 민족도 초월하고 혹은 전통과 역사적인 배경을 초월하여 영원을 중심삼고 숭배할 수 있는 이런 국가의 주권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들의 본심이 고대하는 본연의 나라, 본연의 동산, 본연의 주권이라는 그 기준이 오늘날 세계사상에 나타난 그런 어떤 국가의 형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그것만은 틀림없어요.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것, 인류가 소망하는 나, 오늘날 신앙자 입장에서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현시대에 문화를 자랑하는 어떤 주권 국가냐? 어떠한 선진 국민, 일등국민, 세계에서 자기의 위신을 높이고 자기의 갖춘 바의 역사적인 내용을 자랑하는 그런 국민이냐? 아니다 이거예요.
오늘날 세계를 자기 나라의 권위를 가지고 호령하게 될 때, 세계가 두려워 떨 수 있는 주권과 권한을 가진 국가냐 할 때, 그것도 아니예요. 이렇게 볼 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일 것이냐? 그런 나라도 아니요, 그런 주권도 아니요, 그런 국토도 아니니, 그런 부정적인 기반에 서 있는 개체의 국민은 어떠한 국민이며, '나'라는 개체의 그 자체는 어떠한 '나'냐 할 때 여기에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인연을 가지고, 어떠한 생활무대를 가지고, 어떠한 생애노정을 거쳐 가지고 내가 마음으로 그리면서 좋아하는 이념을 세우느냐? 그럴 수 있는 최후의 종착지, 최후의 이념적인 보금 자리는 어딜 것이냐 할 때, 막막하고 아득하고 황무지와 같은 천지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 들어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알겠어요? 인생의 문제인 인생철학을 해명하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들이요, 좀더 심각한 문제를 걸어 놓고, 그런 면에 있어서 내적인 사람과 외적인 사람 전체의 신에 대한 문제와 인간적인 문제의 관계를 걸어 놓고 고민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 나가는 사람들이, 수양과 노력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이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목적은 이 세상이냐 할 때에, 아닙니다. 그렇지요? 좀더 참다운 나, 좀더 참다운 사람, 좀더 참다운 주권…. 좀더가 아니예요. 좀더 좀더 좀더 좀더 해서 이것은 절대 이렇다 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 참다운 나라, 참다운 주권은 없을 것이냐 이거예요.
역사의 흐름은 변천하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이 모든 사회환경이 변천해 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과연 우리들이 소망으로 바라는 그 나라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마음으로 찾고 있는 이념적인 천국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것을 찾아 헤매는 무리가, 말은 하지 않고 행동은 하지 못하지만 그런 무리가 수수만만 억천만 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에 여러분들도 가담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 때문에 그렇게 헤매고 있느냐? 여러분은 싫든 좋든,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여기에서 선생님이 말씀하는 그 말씀 세계의 내용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싶고, 순식간에 거기에 내가 화하고 싶고, 순식간에 거기에 가서 내가 한 일원으로서 동참하고 싶은 그 마음이 꽉차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망정 그런 세계주의적인 관념권 내에서 행동은 하지 않지만 잠재적인 존재로서 처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도 그런 주의와 그런 사상적인 일면을 속에 품었지만 행동과 표현을 못하고, 조직적으로 활동은 하지 못할망정 그런 내용의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거예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옳지, 그렇다고 해야 말할 맛이 나는 거예요. 뭐 넓게 말하자면 한정이 없기 때문에 간단히 얘기하자구요.
여러분들은 혼자 있으면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가고 싶은 곳이 있다구요. 내가 심각한 문제 부딪혀서 나홀로 이것을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도 위대한 스승이 있으면 그 스승을 통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곳을 찾을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야 돼요. 그리고 이 모든 사연을 해결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다음에 보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됩니다. 보고 싶어야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살고 싶은 곳이 있어야 됩니다. 대충 요점을 따지면 그렇다는 말이예요.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본향 천국은 어디 있으며, 인류가 소망하며 가고 싶은 곳은 어디 있느냐? 가 가지고 보고 싶은 그 나라, 보고 싶은 그 백성, 보고 싶은 그 주권이 있을 것입니다. 크게 보면 더 큰 기준까지 있겠지만, 작게 보면 보고 싶은 그 사람이 있을 거예요. 가고 싶은 그곳, 그렇게 될 거예요. 보고 싶고, 가고 싶고, 가 가지고 본 뒤에는 어떻게 되느냐? 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살고 싶은 곳, 그러한 관점에서 이제 여러분의 마음은 스스로 여러분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 내 개체를 볼 때, 다리가 있어요? 「예」 눈 있어요? 「예」그다음에는 감정이 있어요? 「예」 없다면 큰일날 거라구요. 다 있어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그 다리로 무엇을 찾아다녔느냐? 수많은 인간들의 본심이 배후에서 이렇게 가고 싶어하는 본향의 세계, 소망의 나라를 향하여 가 주기를 바라고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데 여러분이 어느 한때에 그곳을 향하여 여러분의 다리를 움직여 봤어요? 손발을 움직여 봤어요? 「못 움직여 봤습니다」 못 움직여 봤지요?
또, 어느때에 그러한 내가 되기 위해서 '아, 보고 싶은 스승이여, 이 세계적인 지도자여!' 하고 찾아봤어요? 못 찾아봤다는 거예요. 또 그 사람들하고 살아 봤어요? 못 살아 봤다구요. 전부 불합격이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자폭해 버릴 수 있는 낙오자의 낙인을 스스로 찍고 살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것들을 모아다가 사람을 만들려니 얼마나 힘들겠나 그말이예요. 쉽겠나요, 힘들겠나요? 「힘들겠습니다」 그거 힘든 거라군요. 「쉽습니다」응, 쉽겠어요? 「예」 쉬운 것이 아니예요. 쉬울 수 있으려면 내용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지고 일시에, 하루에 그 내용의 천 가지 만 가지를 한 시간에 다 넘을 수 있는 쉬운 방법도 있게 할 수 있지요. 그 대신 가랑이가 찢어지고, 대가리가 깨지고, 아주 뭐 오징어처럼 넓적해져요.그래도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모아다가 이제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보고 싶은 그분이 누구인가를 찾아야 되고, 그다음에는 살 수 있는 곳이 어딘가를 가르쳐 줘야 할 그런 곳이 이 천지간에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가는 데는 무엇을 찾아가느냐? 금덩이를 향해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고 싶어 갈 때는 무엇을 보러 가느냐? 금덩이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살고 싶은데 무엇을 위해서 살고 싶으냐? 금덩어리를 위해서. 종류가 많아요.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지요? 「예」 그다음에는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다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 이렇게 볼 수 있어요. 크게 보면 세 부류입니다.
돈을 찾아가는 무리가 많더라. 그다음에는 성현들의 교훈을 따라 가지고 양심적인 기준에 있어서, 사회의 윤리 도덕관을 위주로 하여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더라. 그다음에는 그것을 초월하여 그것은 나에게 필요 없고 더 마음 깊은 세계에서 바라는 신의 실존을 찾아 영원한 창조주인 절대자가 있으면 절대자를 찾아가는 그런 사람도 있더라. 알겠어요? 「예」
천지에 그런 사람이 누가 있다 할진대는 돈을 찾아가겠다고, 과연 이땅 위에 돈이라는 소망의 것을 향하여 찾아가는 사람 가운데 '나는, 이 우주 가운데, 천지간에 있어서 다 찾아왔노라' 한 사람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아직까지 그것을 찾기 위해 허덕이고 있지요? 「예」 수많은 역사가 흘러가고 흘러오고 또 오겠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천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돈을 찾은 주인공이 없어요. 그러니 아직까지 가야 해요. 그렇지요? 「예」
그리고 사람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도 일리가 있어요. 사람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는 어떤 가정의 지도자가 있으면 그를 본받아 가지고 따라 나오고, 사회의 지도자가 있으면 사회의 지도자 등 사상적인 지도자, 종교적인 지도자를 거쳐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때, 주의 사상을 논하는 이때에 와 가지고는 어떠한 주의 사상을 주장하는 지도자의 그 인격을 표준하여, 그 사람의 주의와 그 사람의 생활과 그 사람의 이념과 그 사람의 심정문제까지 찾아가는 이런 무리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완전히 그 사람의 기준에 찾아간 사람들이 있느냐 할 때 이것도 문제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을 찾아가고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고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은 그 목적을 향하여 그걸 찾아가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이것도 완전히 해답을 못 내려요. 또, 어떠한 국가의 주권을 향하여 찾아가는 어떠한 민족이 있느냐 할 때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과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우리들이 하룻밤을 지내는데 촛불 한 자루의 사명을 할 수 있고, 혹은 여기에 전깃불의 사명을 할 수 있는, 일시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말한 소망의 천국이라든가 소망의 나라라든가 하는 그 전체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한 곳에 옴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찾고 있는 전체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본성의 본향 땅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곳은 아직까지 역사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가야 할, 인간들이 찾아가야 할 한 길이 남아 있고, 인간들이 가야 할 한 길이 남아 있으니 그 길을 다 돌파해서 자기가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주로 하여 여기에 주권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한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 세계적인 이념을 찾아 세우는 어떠한 인격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와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류는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를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공식적인 길을 제시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제시해 놓지 않으면 세계는 하나의 목적지를 어느 누구도 같은 입장에서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망의 나라, 소망의 천국이라는 것은 이뤄질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종교도 그러한 목적을 바라보고 있고, 혹은 윤리 도덕을 가르쳐 준 모든 성인현철들도 역시 그런 면을 바라보고 있고, 돈도 역시…. 돈을 모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돈은 그런 세계를 더 빨리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재료는 되지만 절대적인 요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가야 할 최후의 길, 그 길을 다 간 거기에는 우리가 소망하고 온 인류가 소망하는 소망의 나라요, 소망의 천지가 생겨나요. 소망의 천지다 이거예요. 하늘땅이 있다면 그 하늘땅이 전부 다 소망의 나라에 속한 영토입니다. 그 권내에 사는 수많은 인류는 그 나라의 백성이예요.
그 소망의 나라의 주권은 온 존재세계에서 소망하는 주권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작용으로 소망하는 기준을 우리가 논의해서 찾아보게 될 때, 지금 현실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소망적인 논제를 세워 가지고 그러한 기준을 세워 놓지 않을 수 없기에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것을 향하여 그렇게 역사가 흘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주권이 되고, 하나의 민족이 되고, 이 지구가 하나의 영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이런 복잡한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의 나라의 내용을 완비할 수 있는 이념을 갖고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이 나라는 개인의 나라가 아니라 역사적인 나라입니다. 역사적인 나라이니 그 역사적인 배후는 우리 나라의 역사만이 아니고 내 어떠한 민족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세계사적인 내용을 동반할 수 있는 역사적인 소망의 나라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나라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나 기독교의 종파적인 역사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문화사가 있으면 문화사요, 혹은 인류사가 있으면 인류사요, 하나님의 섭리사 가 있으면 섭리사, 전반적인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런 역사적인 소망의 나라입니다. 그다음에는 이 시대적인 소망의 나라예요.
오늘날 이 사회의 수많은 민족은 전통과 풍습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다릅니다. 이런 기준에서 이 모든 것이 합하려면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이런 간격의 거리를 두고 지금까지 장벽을 쌓아 놓은 것을 일시에 융합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혼란된 입장에서 장벽을 넘고 있는 민족 민족이 융화될 수 있는 거예요. 스스로 오랜 시간적 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조성된 장벽을 일시에 무너뜨려 가지고, 일시에 어느 민족을 초월하고, 자기 주권 이념을 초월하고, 민족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이 이념권 내에서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형태를 갖춰 낼 수 있는 이 시대적인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예요. 앞으로 올 수많은 인간들 앞에 있어 화해의 이념만이…. 우리가 인생으로서 바라던 최후의 하나의 이념의 나라를 찾아, 하나의 주권과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백성을 찾아오는 데 있어서 어느 누구나 어느 개인이나 어떤 민족이 나를 막론하고 여기에 전부 다 정착 한다 이겁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그 길은 종착점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 하나의 주권과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백성이 생겨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그러면 어느 민족이 그러한 이념을 가지고 자리를 잡느냐? 이게 문제다 이거예요. 미국이냐? 영국이냐? 불란서냐? 혹은 세계에서 어떤 문화를 자랑하는 선진국가냐? 그건 모른다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나온 것은 뭐냐? 이런 복잡한 사회환경 가운데, 내용이 복잡한 이념을 갖고 있는 이런 인연을 초월하여 무엇을 추구하고 나가느냐? 우리가 바라고 있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온 인류가 본심으로 가고 싶어하는 소망의 나라입니다. 알겠어요? 「예」
소망의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를 중심삼고 반드시 이 지구가 그 나라의 국토가 되고, 이 세계 인류가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이 세계적인 모든 주권이 그 나라의 하나의 주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주권을 다스릴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억천만금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성현들이 바라볼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나타나야 됩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바라던 소망의 전체를 내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와야 돼요.
그가 반드시 하늘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때, 하늘의 어떤 이념이 있다면 그 이념을 소개할 것이요, 이 땅 위의 인류가 소망하는 어떠한 이념이 있다 할 때는 그 이념이 바로 이런 이념이라고 하며 보여 줄 거라구요. 그 이념은 여기에 복지를 만들 수 있는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중심존재가 누구냐 하면 구세주예요, 구세주. 메시아사상, 구세주사상. 알겠어요? 「예」 구세주사상.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가 긴박해 감에 따라, 끝날이 되어 옴에 따라 민주주의 가지고도 안 되고 공산주의 가지고도 안 되겠다고 하며 자탄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세계를 수습하여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던 그 나라, 본연의 신앙노정을 찾아가던 우리들에게 소망의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그분, 우리 인류가 찾고 있는 그분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천하의 모든 것, 천지를 다 주고도 바꿀수 없는 그런 가치적인 존재요, 인류전부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가치적인 존재입니다. 혹은 하늘의 어떠한 무리에게 아무리 귀한 것이 있더라도 그것하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천지가 생겨난 후에, 어떤 수많은 주권을 합하여 하나의 세계로 통일해서 그 세계와 바꿀 수 있겠느냐 할 때에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한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나와야 되는데 그분이 왈 무엇이냐? 메시아입니다. 각 종교에서 바라는 메시아입니다.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바라고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 그 지도자는 변천하는 지도자가 아니예요.
그 이념만 나오면 거기서부터 영원을 중심삼고 나갈 수 있습니다. 안정된 주권 국가를 향해서, 우리 인류는 그걸 소망의 근거로 하여 움직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헤아려 보게 될 때, 그런 때가 와야만 되고 그런 중심존재가 나타나야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자기도 모르게 나가니 통일교회는 어디를 향해 나가느냐? 그곳을 향해서 어느 민족보다 먼저 나가자 하고 통일이라는 명사의 깃발을 내걸고, 그 과정적인 도상에서 지금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소망을 향해서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참이 아니고는 안 돼요. 참이 아니고는 안 된다구요. 내 자신이 참이 되어야 됩니다. 참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참된 사람이 되어야 된다구요. 참을 주관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되어야 돼요. 참된 것을 주관하고 참됨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참된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앞으로 그런 세계가 나타나고 이루어질 것은 틀림없을진대 오늘날 현시대에 있어서 그 세계에 대비해 가지고, 그 세계에 가 가지고 배척받지 않고 제거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참뢴 사람을 만들자 이거예요. 참된 사람을 만들자 이거예요.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내 개인이 참되려면 먼저 내 마음이 참되어야 됩니다. 나를 보면 마음과 몸뚱이로 나뉘지요? 크게 나누면 그렇지요? 「예」 '나'라는 것은 마음과 몸뚱이예요. 그렇지요? 「예」 대충 그렇게 본다구요. 참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참된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예」 참된 내 몸뚱이가 되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 참된 기준은 어디에다 세우느냐? 이 참된 기준은 앞으로 이 세계적인 주권을 대표해서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양심의 지도자로 말미암아….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그 지도자는 '오! 이런 분이다' 하고, '지도자는 이런 성격이고, 그 지도자는 이런 말했고, 그 지도자는 이런 생활한다' 할 수 있는 내용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의 양심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르니 세울 수 없는데 그것이 난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마음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던 나입니다. 그리고 내 몸을 중심삼고 생활할 수 있는 그 기준을 세울 수 없었던 내 몸뚱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기준과 몸뚱이의 기준, 온 천하를 초월하여 만인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 앞에 '이건 절대적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기준과 일치할 수 있는 내 마음의 기준을 세울 수 있고, 그 기준과 일치할 수 있는 내 몸뚱이의 기준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 이거 예요. 그렇겠지요? 「예」
그런 기준을 바라볼 때, 만일 그런 기준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런 기준만 있단다면 천하의 만인간은 어느누구나 그 기준을 따라오려고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기준만 된다면, 이것이 참이라 할진대, 이것이 세계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기준에서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라 할진대는, 하나될 수 있는 그 가운데서 통합된 자체의 가치라는 것은 세계적인 주권을 대신합니다. 그러니 거기서 오라고 하면 갈 수 있는 상대적인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내가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그분이 오면, 구세주가 오면 구세주에 의해서 내가 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힘을 열만큼 가지고 왔으면 내가 거기에 동반되어 열만한 힘에 붙들려 끌려갈 수 있고, 거기에 대해 순응하고, 거기에 대해 동하고, 거기에 대해 어떠한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만 구세주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관계를 못 맺는 것 아니냐 이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 역사노정에는 크게 보면, 역사적인 대표형의 사람인 성현들을 세워서, 사방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세워 가지고 그 시대적인 민족을 대신하여, 수많은 민족 앞에 세계적이거나 시대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요 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백성들은 요 사람을 모방하여 전부 다 규합해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합동운동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합동하는 데는 몸뚱이만이 아니예요. 여기에 마음까지 나옵니다. 마음분만이 아니예요. 어떤 욕망과 이념을 중심삼고…. 이 땅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을 기반으로 하고 마음과 몸을 기반으로 하여 규합운동을 전개시키는 그런 운동이 수많은 민족 가운데 벌러져야 할 필요성이 있게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것을 규합하는 사명을 담당해 나오는 것이 수많은 민족 앞에 제시된 종교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가 지금까지 민족과 민족을 규합하여 나오는데, 그 종교가 역사의 흐름을 따라 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사명을 가졌다면 민족을 움직이면 끝납니다. 거기에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종교가 나오면 지금까지 민족을 움직여 나오던 그 종교는 국가와 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종교 앞에 흡수돼서 통합적인 종교의 형태를 거쳐서 세계는 종교권 이념 세계로 규합되어 들어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단 말이예요. 그렇겠지요? 「예」
그렇게 되면 수많은 종교, 종교, 종교가 이렇게 합해 가지고 나중에는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 몸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가 나옵니다. 마음을 대신하여 천상천국을 논하는 종교가 나오는 동시에 지상천국을 논하는 종교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보는 거예요.
또, 세계도 내적인 하나님편, 외적인 사탄편 혹은 내적인 마음편, 물질적인 몸편, 요것이 세계적인 두 갈래의 사조로 딱 벌어진 것이 유물사관이요, 유심사관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천국이념을 갖고 나온 종교와 지상의 천국 이념을 갖고 나온 종교가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영적인 천국은 마음을 대신한 것이요, 몸적인 천국은 지상을 대신한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영육을 합하여 하나의 나에게 규합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천국 일치와 지상천국 일치가 '나'라고 하는 기준에서 통일될 수 있는 때가 이루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럼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내적 외적, 종교의 내적 외적인 세계의 사조는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의 기점을 기준으로 하여 통일의 명사를 세워 나올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그런 사명의 담당을 어느 분야라든가 혹은 전체 분야에서 할 것인가 하는 건, 여러분이 아는 정도니 그건 답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나온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예」
그러면 통일교회가 나왔으니 이제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소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을 만들려면 그 참다운 사람의 양심적 기준과 몸적 기준을 어디에 세우느냐 이거예요. 그 양심적 기준은 하나님이 '영원히 그것이다' 인류가 '영원히 그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이 '영원히 그것이다' 여러분의 몸뚱이도 '영원히 그것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적 기준을 대표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또, 몸적 기준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인류와 수많은 종교와 사조의 흐름이 '그것이다'할 수 있는 몸적 기준의 환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무대에서 이념적으로 국가관과 천국관을 내포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상세계를 향하여 가기 위해 준비하려고 모이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을 보자구요.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을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 개 돼지와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구,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할 거예요. 그건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말이예요. 그런 견지에서 보면 개 돼지보다 못 할지 모르지. 개는 '야! 욱!' 하면, '익!' 하고, '저리가!' 하면 가지요.
그걸 볼 때, 사람은 형편이 없다구요. 형편이 없어요. 여러분들 형편이 무인지경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얼굴이 이만하고, 또 내 배경이라든가 사회 기반이 이만했으면 어디 가든지…' 하면서 어깨를 들썩해 가지고 천하가 무어냐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배포를 크게 가지고 건들거리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스스로 망동하는 거예요, 망동. 경거망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거 무슨 사통을 낼지 알아요? 자기를 몰살시키는 자멸 사통을 낸다 이거예요. 자기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이러한 위험한 입장에 서 있는 거예요. 형편이 무인지경인 거예요.
자, 그러면 이러한 것들을, 이제 말하던 그런 절대적인 양심과 만인류 앞에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그 기준 앞에 부합시킬 거리가 얼마나 되겠어요? 얼마나 멀겠어요? 한 발 될 것 같아요? 간단해요? 대답해 보라구요. 될 것 같아요? 이건 세상의 어떠한 방법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겁니다.
결국 어떤 방식은 통해야 되느냐? 양심에 호소해 가지고 통곡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외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마음으로 통곡하면, 당장에 눈물 흘리고 나올 때에는, '야,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칼로 푹 찌르려고 하는 녀석을 붙들고 통곡하고 나면 어때요? 친구가 되나요, 안 되나요? 될 수 있지요?
그러한 간격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형편없는 녀석들을 잡아다가 통곡할 수 있는 방법과 비결을 가르쳐 줘 가지고 '오, 이건 내가 옛날에 이렇게 해서 나빴구나' 하게끔 시정시키든가 '아, 이젠 너한테 항복한다' 하게 해야 됩니다. 내가 항복을 당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사람을 정복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정복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피동체가 되어서 정복을 당하든가 두 가지 중의 한 가지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정복할 자신 있어요? 「예」 이 녀석 자신 있어? 「있습니다」 있긴 뭐가 있어? 여러분들은 형편없는 무인지경인데 정복이 뭐예요? 할 수 없으니 여기에 와서 정복당해야 됩니다. 정복당해야 되지요? 「아닙니다」 정복당해야 된다 말이야, 이 녀석아! 뭐가 아니야? 정복을 당해야 된다 말이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여기에서 자아주장하면 손해입니다. 이 기준에 기준을 맞추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가르쳐 주는 그 기준을 여러분들이…. 그 기준이 어떠한 기준이어야 되느냐? 양심 기준은 어떠한 기준이어야 되느냐? 본래 본성의 사람, 타락을 안 했을 때 본성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참다운 본성의 사람, 본성의 사람이 있었다면 '본성의 입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본성의 사람이 있으면 본성의 입이 있었을 거예요. '고놈의 입 봤으면 좋겠다' 또 본성의 사람이 있으면 본성의 눈깔이 있었을 것이요, 본연의 대가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뿐 말이 아니예요, 이거. 타락한 인간은 대가리들이지요, 전부 다. 타락할 가망성이 있는 것도 대가리예요. 무슨 손가락이 있고, 발이 있고 다 있었을 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본성의 입을 봤고, 본성의 눈을 봤고, 본성의 귀를 만져 봤고, 본성의 손을 만져 봤고, 본성의 몸뚱이를 봤고, 본성의 품에서 젖을 먹어 보고 다 했어요? 했어요? 한 거 같아요? 「못 했습니다」전부 다 빵점이예요, 빵점. 그러니 발만 구르면 죽는 것입니다. 전부 다 빵점이예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형편이 무인지경입니다. 사람이라는 것들이 허우적거리고, 이렇게 팔을 벌리면서 움직이기가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야단하고 사니 이거 이거 눈꼴 사나워서 견디겠어요? 이놈의 눈꼴 사나운 것들을 전부 다 해결해 치우고 눈꼴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 교회는 거기에서 심부름꾼이라도 하자고 해 가지고 통일이라는 명사를 갖고 나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니까 선생님 말에 절대복종해야 돼요. 이런 견지에서 답을 내리면 절대복종이라는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그것만 아는 날에는 절대복종이예요. 지금 그런 것을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요. 그러니 그것을 가르쳐 주자 이거예요.
그러면 역사적인 어딴 사람이 되느냐? 그걸 가르쳐 주는 데는 무엇을 똑똑히 알아야 되느냐? 가 가지고는 맨 나중에 뭘 찾겠느냐? '너, 뭘 찾겠느냐?'고 물을 때, 물론 최후에 '우리 구세주를 찾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구세주를 찾아서 뭘하겠느냐? 구세주는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이 있다면, 이 천지를 창조한 그 주인이 있다면 주인을 소개해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이게 구세주의 사명입니다. 그렇잖아요? 「예」
그러면 나중에 가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나는 가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겠다! 가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를 보고 싶어서 간다! 보고는 뭘 할 것이냐? 붙들고 살고 싶어서 간다 이거예요. 살아서는 뭘할 것이냐? 살아서는 뭘할 것이냐? 그래서 그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인생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찾아왔느냐? 세계가 하나로 이 출구를 만들어 가지고 이제는 어떻게든지 조화를 시켜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세계의 끝날이 되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런 정도면 대개 알 거라구요.
이것은 앞으로 소망의 나라에 가서 살아야 할 우리 인간들은 어느누구나 기정적으로 가야 할 숙명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 자신들이 진정으로 영원을 두고 가고 싶은 곳, 그곳이 어디냐? 천국이예요, 천국. 알겠어요? 천국에 들어가 있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고 싶을 것입니다. 생명이 움직이는 동안에 가 봐야 그 생명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 그 소망이 끝이 나지, 그곳에 가기 전에는 가고 싶은 곳이 언제나 남아져요.
가고 싶은 곳을 해원하고 이루는 곳은 어느 곳이라구요? 소망의 천국이예요. 천국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그것이 본향 땅이예요, 본향 땅. 여러분이 여기에 와서 며칠만 있으면 고향에 가고 싶을 것입니다. 가고 싶지요? 응, 가고 싶을 거 아니에요? 「안 가고 싶습니다」 가고 싶어요, 마음은. (웃음)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그 인생이 가야 할 본향 땅입니다. 그러면 본향 땅에 가서는 뭘할 것이냐?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내 본사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내 본래의 사람, 본래의 참다운 내 자신, 본래의 참다운 내 마음, 본래의 참다운 내 몸, 내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본래 살아야 할 본래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본래의 기준을 찾아서 해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6천 년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본래의 자리에 가 가지고 본래의 사람 노릇을 못 했습니다. 그러니 탄식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제 어머니 아버지도 보기 싫습니다. 찾아오는 친구도 보기 싫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좋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몇 시간만 지나면 '아이고 보기 싫어!' 주먹질을 하면서 죽는다. 산다, 뭐 어떻다 야단이예요. 한 번 보면 천 년이라도 들여다보고 싶고 그럴 수 있는….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그 얼굴을 하루 종일 보고도 싫지 않은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고 싶으면 무한히 봐도 보고 싶을 수 있는 그러한 분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런 분이 우리의 인생들이 가서 만나 봐야 할 그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만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살아야 됩니다. 만나만 보고 돌아오면 되겠어요? '당신과 나는 영원히, 당신의 마음이 있고, 당신의 사정이 있고, 당신의 심정이 있는 한, 나를 떼어놓을 수 없고, 나는 그대 앞에 관계를 안 맺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을 중심삼고 큰 이념무대에 있어서 당신과 나는 살아야 할 인연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이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대충? 「예」
살아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가서 만나 가지고 살면서는 뭘할 것이냐? 여러분이 고향 땅에 가 가지고 제일 그리운 것이 무엇이예요? 고향 땅을 찾아가는 길 가운데서 제일 보고 싶은 사람, 가까운 사람은 물론 부모도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형제가 가까운 거예요. 그렇지요? 대충 보면 고향 땅을 찾아가는 가운데 있어서 고향의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던 형제를 만나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고향을 찾아가는 그 길가에서 손목을 붙들고 서로가, '우리가 어머니를 찾아가 가지고 이렇게 기쁨으로 만나자'고 의논할 수 있는 형제들을 만나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그 길을 찾아가는 무리들이 신앙생활하는 각 종교의 신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신도끼리 싸우는 것은 벌써 틀린 것입니다.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와 생사 결단하여 이것을 막아내기 위해 단결하여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있어야 이 환란의 노정을…. 원수의 세계에서 이 길을 가는 데 서로 협조하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고향 땅에 가 가지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날을 그리워하면서 같이 찾아가는 무리가 신도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앞으로의 소망의 재림사상은 다 있다는 거예요,
찾아가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부모를 만나요, 부모. 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깜둥이 부모도 되고, 노랑이 부모도 되고, 토인 부모도 되고, 백인 부모도 되고, 뭐 오색인종의 얼룩덜룩한 사람, 영계의 알룩달룩한 새까만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부모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상을 갖춘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는 누구든지 다 가져야 할 부모라는 거예요.
인류라는 그 인류는 누구든지 다 좋아할 형제,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형제가 한 울타리권 내에서 사는 그 울타리가, 한 주인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그 울타리가 지상천국입니다. 그 울타리권 내를 바라보니 지구성이라는 거예요, 지구성, 지구성이 크잖아요?
이렇게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천주 가운데, 이 우주 가운데, 이 먼지만한 지구성이 그 울타리권 내에 들어가 있더라 이거예요. 지구가 얼마나 큰가요? 이건 무수한 이 천체 세계에 비하면 먼지 하나 같은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만민은 그 울타리에 있어서, 그 부모 밑에 있어서 형제의 인연을 가지고 모시고 살자 이거예요.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부모를 모시고 사니 거기에서 반드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자식간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버지가 아니야, 내 부모가 아니야,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이 부정을 당하면 당했지, 아니라고 변명을 당한 입장이 부정을 당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이 여기에서 연결됩니다. 천하의 어떤 힘이나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연의 가치를 중심삼고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부모와 연결되고 형제와 연결될 수 있는 세계형 울타리 가정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진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개? 응? 「예」 그런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한번 갔다가 나오게 되면, 그곳을 한번 맛본 사람은 가고 싶은 것입니다. 만일 그런 분을 만났다면 열 번 보고도 또 보고 싶어요. 그러므로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그런 환경을 우리 인류는 찾아 나가고 있더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러한 진리와 그러한 내용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면, 거기에서는 배우는 진리를 통하여 '가고 싶은 길을 왔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겠고, '보고 싶은 그분을 볼 수 있구나' 할 수 있는 그 내용을 갖춰야 되겠고, '오! 살고 싶었던 분을 모시고 살 수 있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그런 곳이라는 것을 만민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부가 절대적으로 같이 느낄 수 있는 기반만 되면 세계는 거기서부터 통일이 시작된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부모의 복을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더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머리 숙이는 거예요. '아,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아? 이놈의 동생이 왜 더 받느냐?' 하면서 죽이고 뭐 주먹질하고 그런 것이 아니예요. 사랑을 받는 것은 세계를 대표해서 받는 것으로 알고, 그 사랑을 내 대신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의 세계가 벌어진다면, 그런 세계를 지상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런 곳을 향해서 간다고 하면, 그런 곳이 만일 이 땅 위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런 곳이 반드시 이뤄지기 시작했다면 그것이 한꺼번에 아 세상에 쫙─ 이루어지느냐? 아니에요.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서 세계까지 퍼져 나갈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한 기준으로 찾아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 그런 가정을 찾아왔다 할진대는, 만일에 그런 자리를 내가 찾았다 할진대는, 그때의 세계가 하나되는 입장에서 찾았으면 모르지만 하나되어 나가는 그런 과정에 있게 될 때는 고향을 찾아가 보니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서글프면 무엇이 얼마만큼 서글프냐? 불쌍한 길을 찾아온 자식을 만나는 부모는 통곡을 할 것입니다. 또, 자식에게 자기의 부모가 갖추어 놓은 재산을 유업으로 남겨 주기 위한 그 소유를 사탄 원수들 앞에 유린당했을 때, 이것을 빼앗아 줘야 할 입장에 부모가 서 있다면 얼마나 원통하겠느냐?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가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본향 땅을 찾아가 가지고 부모를 만났다 할 때, 찾아오는 자식을 대해서 부모가 줄 수 없고, 먹일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있어요. 그렇더라도 거기에서 낙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부모의 슬픔에 동참하고, 부모의 어려움을 대신하고, 형제의 어려움을 대신하여 서로 선두를 다투어 나가 가지고 원수의 세계를 다시 빼앗아 오는 놀음을 할 수 있는 운동을 벌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지금의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이런 운동이 한꺼번에 되지 않으니 개인운동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운동, 세계까지 이런 운동을 벌여 가지고 뒤집어박자 이거예요. 그런 운동을 하면서 와 보니, 올 곳에 왔고, 만날 곳에 왔고, 그곳이 찾아야 할 곳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알고 보니 우리들을 지금까지 이런 세계로 이끌기 위해서…. 이걸 알고 보니 눈물 없이는 못 사는 거예요.
내 사정이 아무리 슬프다 해도 그 부모가 찾아온 그 길을 알고, 그 부모를 이 땅 위에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사정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과 더불어 결의하고, 눈물과 더불어 이 세계를 우리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끌고 나가야 합니다. 원수의 세계를 정복해 가지고 여기에 새로운 천지의 국가를 만들어야 할 사명 분야가 그 부모와 더불어 남아진 거예요. 이런 역사적인 천국을 만들어야 할, 종말에 그러한 사명의 책임이 택한 민족이면 민족 앞에, 혹은 택한 인류면 인류 앞에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모아다가 수련하는 목적은 그런 사람을 틀림없이 만들자 이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이러한 목적과 이러한 이념을 가지고 전세계를 대신하여 부모의 입장에서 못살게 한 이 원수들을 대하여, 이것을 용서하지 않고 전부 다 정복시킬 수 있는…. 부모를 대신하여 투쟁할 수 있고, 형제를 대신하여 투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빨리빨리 이 원수의 품에서 빼앗아다가 형제를 만들고, 그 부모 앞에 효도할 수 있는 인연이 전부 벌어지게 해야 된다구요. 그래야 그 부모는 세계 만민과 자녀의 인연을 갖추게 되니 그 인연을 갖춰야 할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것을 할 때까지는 우리는 여기에 충성을 다하고 그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각오하고 싸워야 됩니다. 그래야만 형님들의 사명을 완결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그러한 사명과 그러한 책임을 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용사들을 만들고자 해서 몰아온 거라구요. 이제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곳, 만날 수 있는 곳,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여기에 와 가지고 보니 여기에는 찾아오는 형제들의 고통이 남아 있고, 부모들의 고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일시에 제거시켜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소망하던 전체의 환경에까지 전개시켜야 할 그런 사명적인 책임을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싸울 수 있는 때에 있다는 것이 일면으로는 불행한 것 같지만 일면으로는 행복하다는 거예요. 더구나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이 민족을 통해서 펼쳐진다고 생각할 때…. 이 민족이 먼저 싸워 가지고 세계적 기반을 닦았을 때는 세계 만민이 전부 머리 숙여 가지고 항복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자, 소망의 나라, 소망의 천국은 일시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때에서부터, 한번에서부터 한 기점을 통하여 벌어집니다. 여러분의 마음세계에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서 결의한 그 자체를 누가 이 세상에서 정복할 수 있느냐? 내가 가고 싶은 그 기준에 와 있고, 내가 만나고 싶은 그 자리에 와 있고, 내가 살고 싶은 그곳에 와 있는데 나를 여기에서 누가 끌어갈 것이냐? 어떠한 사탄이 끌어갈 수 있느냐? 못 한다 이거예요. 하나님도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부모도 못 한다. 절대적이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신념을 여러분들이 이 40일수련 기간에 갖추는 자가 되어야만 아까 말하던 소망의 천국, 우리들이 바라는 영원한 소망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세계적인 주권과 세계 만민을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어 놓게 될 때는 그때는 영원무궁토록 그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행복한 가운데서 나 가지고 행복한 생활 속에 살면서 고통이 없는, 모심으로써 영광을 돌리면서 살 순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런 기준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미비한 것을 잘라 버리고, 깎아 버리고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런 곳에 왔다는 것을 안 후에는 어느 누가 나를 따라올 수 없다 이거예요. 나를 추월할 수 없어요. 나를 넘어갈 수 있는 분은 반석, 그분밖에 없어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형제는 그 형제밖에 언어요. 세계가 전부 다 거기에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 승리의 한 중심자가 됐다 할 때까지는 여러분들은 세계무대를 중심삼아 같이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런 운명이 남아 있습니다. 싸워 가지고 세계가 전부 다 한때를 지나서 그것이 전체에 벌어지게 될 때 태평천국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 보니…. 이건 왜 그러냐? 사탄이, 원수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수의 세계 앞에 약탈당한 모든 것을 우리들이 빼앗아다가 본연의 부모를 모시고 형제와 더불어 지상천국을 이루어서 영원한 낙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의 용사가 되어야 할 여러분이 이와 같은 것을 각자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소망의 나라와 소망의 천국에 갈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진짜 그러냐? 진짜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문제는 그겁니다. 진짜 그러냐 이거예요. 안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보따리 싸 가지고 가야 됩니다. 안 그렇거든, 같이 해보다가 아니거든 또 가야 돼요, 또 찾아가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세계를 대신해서 통일이라는 명사를 가지고 나왔으니, 세계 종교 가운데서는 처음 나왔으니만큼…. 하여튼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거기에 갈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소망을 통해 가정을 통일하고, 심정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내 소망이자 구세주의 소망이요, 구세주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내 사정이자 구세주의 사정이요 하나님의 사정입니다. 내 심정이자 구세주의 심정이요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렇게 되지요? 「예」
그 세 분야만 일치시킬 수 있는 진정한 진리라면 이 진리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고 그러한 길을 개척하고, 그러한 곳을 찾아가서 그런 분을 만나기 위한 책임을 하자 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다 이거예요. 통일교회 용사들은 그런 분을 만났습니다. 그의 소망과 우리들의 소원을 성취하여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지요? 「예」
아버님, 금번 16회 수련생이 이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자유분방한 생활 가운데서 자기의 중심을 알지 못하였고, 인생이 가야 할 행로를 가리지 못한 험상스러운 자신의 생활을 하였던 것을 스스로 느껴, 이제부터 자기의 모든 모순된 것을 제거시키고 자기의 미비함과 부족함과 과거의 자기가 얼마나 본성의 나 앞에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여실히 폭로시켜, 스스로 내적인 본성의 기준과 내 스스로 처음으로 기쁜 자리에서 상봉하여 거기서부터 연결돼 들어오는 새로운 내 마음을 키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몸을 키우며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중심존재와 더불어 일치할 수 있는 이론적인 심정과 이론적인 사정과 이론적인 소망이 일치될 수 있도록,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40일 기간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수많은 사탄에게 몰리는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천천만 성현들을 동원시켜 지켜 주시옵고, 이 기간 모든 사정 전부를 아버지께서 관할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서 움직이는 개개인은 절대순종하고 절대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자아의 미개척된 분야를 제거하면서, 소망의 자아의 완성을 향하여 기쁨의 생활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가운데서 이루어 나갈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 자리를 염려해 주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지방에 널려 있사오니, 이들을 보내 놓고 기도하는 그들에게도 같은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저희들이 새로운 결의를 하고 소망의 나라,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내 자신을 완비하기 위한 시련도상에 서 있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자기 자체의 그 모든 결의에, 내적으로 부디 그런 기준에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 달라고 아버지 앞에 간곡히 맡기고 기도하는 심정을 가지게 하시옵소서.
지도함에 따라 절대복종하여 아버지께서 소망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영광의 실체를 만민 앞에 내세워서 원수들과 대결하여 소원의 나라, 소원의 천국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늘이 기쁘게 보낼 수 있는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합니다.
만만사의 영광이 길이길이 저희들에게 이날부터 끝날까지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생명적인 이날로 투입하시어서 영원한 인연적인 복지를 대신하여 영원히 아버지께 자랑의 조건을 드리고, 만천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으며, 만민을 아버지 앞에 끌어들일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동시에, 아버지의 심정적인 사랑의 인연을 깊이 받아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명칭을 받고도 남음이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이 여기 오기 전에는 마음대로 먹기도 하고 자기도 했으나 이제부터는 단체생활에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환영이라는 명사는 없어지고 불평이라는 명사가 따를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단단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제일 어려운 때는 처음의 3일간입니다. 우선 꾹 참고 일주일을 지내야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대개 자리가 잡힐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여기가 어떠한 곳이며 자기의 위치와 자기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입니다. 3주쯤 지나면 자신의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입니다. 즉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천국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각자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 내용은 천태만상입니다. 부모 형제와 생활 환경 등 여러 면에서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부락 부락과 삼천리강산을 바라볼 때 나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느냐? 또 오늘의 이 환경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마음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이냐고 묻게 될 때 어느 누구도 ‘예.’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나도 불행하고 이 나라, 이 민족도 불행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나라의 과학, 예술, 문화, 또는 그 무엇을 가지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일을 합니다. 자기 나라가 제일가는 나라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나라가 인간 본성이 소망하던 나라이고 머무를 수 있는 나라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 미국을 보더라도 미국은 미국대로 좀더 세계에 자랑할 수 있고 영원히 내세울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도 아직 만민이 이상 하는 소망의 천국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소망의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일등 국민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냐? 혹은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강한 국가냐? 더 나아가 완전한 개체란 어떠한 것이냐? 막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이 세계는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러면 좀더 참다운 사람, 좀더 참다운 나라, 좀더 참다운 민족은 없을 것인가? 우리가 소망하는 마음의 나라, 즉 이상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문제로 답답한 가운데 살아온 사람이 수억천만이었는데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그러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에는 늘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으리라 봅니다.
여러분들은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살고 싶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는 돈을 찾아가는 무리도 있고, 성현들과 같이 윤리 도덕관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으며, 신의 실존을 더듬어 절대자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돈을 다 찾았다고 한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헤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나선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정확히 소개하고 연결지어 준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찾고 있습니다. 촛불이나 전깃불과 같이 일시적인 사명을 한 사람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정확히 소개하고 연결 지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일에 그러한 곳, 그러한 분이 존재한다면 인류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런 곳, 그런 분을 찾아가야 합니다. 종교나 철학, 과학은 그러한 세계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은 되지만 절대적인 요건은 못 되었습니다. 그 소망의 나라와 사람과 주권은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것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또 이 지구는 그러한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사적인 일입니다. 문화사적인 면에서나 인류사적인 면에서, 특히 섭리사적인 면에서 볼 때 그 나라는 역사적인 소망의 나라요, 시대적인 소망의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쌓인 장벽을 일시에 허물어 융화시킬 수 있는 곳입니다. 이상적인 하나의 주권, 그러한 하나의 나라, 그러한 하나의 백성을 찾는 것이 종착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민족이 과연 그러한 사명을 할 것이냐? 미국? 영국? 프랑스?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온 것은 온 세계 인류가 바라는 그분을 찾아 모시기 위한 것이니 그분을 모실 수 있는 민족이라야 합니다.
끝날에는 민주주의도 뜻대로 안 되고 공산주의도 뜻도 안 됩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뒤섞이고 혼란스럽게 됩니다. 여기에 그러한 것을 수습할 분이 오시나니 그분이 구세주입니다.
찾아오시는 그분의 가치는 전인류와 하늘땅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그분은 천지가 생겨난 이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주권을 합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지도자이며, 세계 인류와 각 종교가 바라는 메시아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향하여 깃발을 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자면 모든 것이 참이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참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내 개인부터 참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참되어야 하고 몸이 참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참이란 어떤 것이냐? 그것은 절대자의 기준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인류가 소망하던 기준에서 ‘이것은 절대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나와야 됩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온 인류는 그분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분과 상대적인 가치를 맺어야 합니다. 그분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데는 마음만이 아니요, 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을 합하여 하나가 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움직이고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종교가 나오게 되면 전세계는 이것을 중심삼고 규합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몸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또한 영적인 천국이념을 가진 동시에 지상천국의 이념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즉 통일의 이념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을 가지고 나온 종교,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나온 종교가 통일교회입니다. 전인류가 모두 ‘그분이다.’ 우리의 몸이 ‘그분이다.’ 우리의 마음도 ‘그분이다.’ 할 수 있는 분이, 오시는 메시아입니다.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모인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은 아주 형편없는 무리들입니다. 각자가 자기 자신을 보면 안 그런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러한 세계와 얼마만큼 떨어져 있습니까? 세상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그러한 세계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도라도 이 절대적인 기준을 붙들고 통곡하면 그도 천국인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붙들어다가 통곡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그러자면 정복당해야 합니다. 정복당하자니 자기라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 본성의 입, 본성의 머리, 본성의 눈, 본성의 귀를 가지고 본성의 젖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빵점짜리 인간입니다. 이런 인간들을 보자니 눈꼴이 사납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인간들을 만들기 위해 복귀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것을 위해 심부름이라도 해야 합니다.
구세주는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 즉 천지의 주인을 소개하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보고 싶어하고, 그분에게 가고 싶어하고, 그분과 같이 살고 싶어해야 합니다. 인류의 형편을 보면 끝날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여러분들이 영원을 두고 가고 싶어하는 곳은 천국입니다.
우리의 소망으로 남아 있는 곳은 본향 땅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고향에 가고 싶을 것입니다. 본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곳에 본연의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부모와 같이 무한히 보고 싶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보기만 하면 되느냐? 아닙니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할 인연이 있습니다.
고향에서 제일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제일 그리운 것은 부모이겠지만 우선 형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 형제가 종교 세계에서의 신자들입니다. 그러니 신자들끼리 싸워서는 안 됩니다. 서로 협조하고 의지해야 됩니다. 그 부모는 검둥이의 부모도 되고, 노랑둥이의 부모도 되고, 흰둥이의 부모도 되고, 알록달록이의 부모도 됩니다. 그 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이 지구가 비록 천체 가운데서 먼지 하나와 같지만 이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천국완성의 기본 단위입니다. 천국은 한번 가보면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열번 백번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그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만민이 공통으로 그곳을 가고 싶어하고, 그분을 보고 싶어하고, 그분과 같이 살고 싶어한다면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그것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개인의 기대가 서고, 그 다음에 가정의 기대가 서고, 그 다음에 민족, 국가,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가 서지 않은 채 만난다면 서글플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도 부모도 원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슬픔, 형제의 슬픔을 대신하여 싸워서 원수의 것을 빼앗아 오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온 사탄세계를 뒤집어 놓자는 곳입니다.
이제 이곳에 와서 그 부모를 알고, 그 부모를 세운 하늘의 사정을 알고 보니 눈물이 아니고는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것을 해야 하는 택한 백성으로서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대신하고 형제들을 대신하여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형님들의 사명까지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분들을 부른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싸운다는 것이 일면으로는 불쌍하지만 일면으로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그 싸움의 중심이 한국이 되어 세계가 항복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한 곳에 와 있으니 누구도 감히 끌어갈 수 없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부모에게도 안 끌려갈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위해서 아버지를 모시고 영원히 영광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누구도 감히 나에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 명령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 원수를 굴복시키고 뜻을 이루어 소망의 천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하기 위하여 여러분은 또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다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 뜻은 나의 소망이자 구세주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이 셋의 소망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이요, 또 통일교회를 찾아온 여러분의 목적입니다. 이러한 목적이 전체적으로 이루어질 때 소망의 나라, 소망의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의 심정을 배우고 있고 하늘의 사정을 배우고 있는 우리들은 절대 앉아 가지고는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굶주리면서도 뜻 하나를 위해서 허덕이는 식구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피가 끓고, 거기에서 정성이 튀쳐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방법으로 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그러한 생활을 한 3년만 하면 진짜 사람이 됩니다. 슬픈 사람을 보면 슬픈 사정을 알고, 기쁜 사람을 보면 기쁜 사정을 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저 사람의 기쁨은 어느 정도의 기쁨이로구나' 하고 감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척 보면 감정할 수 있게 돼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심적 기반을 이런 훈련도상에서 닦아 놓으면 거기에 대응해서 영적인 세계와의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경과 그러한 환경에 부딪쳐 가지고 뒤넘이치면서 깨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지만서도 묘하게 한 목적을 향해 달라갈 수 있게 되고, 그러한 환경을 피해 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런 체험을 많이 해봐야만 자신이 생깁니다, 자신이. 아무리 태산 같은 어려움이 오더라도 내 갈길은 뚜렷하다는 거예요. 그런 자신이 생깁니다. 한 번만 느껴 가지고는 안 돼요. 생활의 감정이 그렇게 젖어야 됩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또 마지막이 아니거든요. 넘어간다 이거예요. 그래 하늘은 죽지 않고 살아서 넘어간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상상봉을 왕래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아무나 못 넘어가지만, 수많은 인간들이 가기 어려워하는 최고의 상상봉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러한 곳을 넘나들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러한 곳을 넘나드는 데는 그러한 뜻과 그러한 사명이 있다는 거예요.
큰 뜻과 큰 사명이 있으면 큰 고개도 넘어야 되겠고, 큰 환난도 거쳐야 되겠고, 큰 파도도 거쳐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은 거와 마찬가지고, 나무가 높으면 바람을 많이 받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거느린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비례 해 가지고 평면적인 면적이 넓기 때문에 거기에 부딪치는 시련도 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큰 뜻을 품으면 품을수록 그런 환난도상에 들어가 가지고 한번 쓰윽 부딪쳐 보는 것도 괜찮아요. 동풍이 불면 '동풍아!' 서풍이 불면 '서풍아!'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또,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오늘날까지 이 뜻을 모르는 그대들은, 모든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자기 배를 위해 살았고, 자기 한 개인을 위해 살았고, 자기의 조그마한 울타리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뜻을 알고 난 후에는 그대들은 먹을 밥이 없어서 굶는 것입니다. 욕을 먹고 싶어서 욕을 먹는 거예요. 고생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민족, 이 인류를 구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해원성사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혹은 잠자는 그 무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정열을 뿜는 그런 입장에서 가만 생각해 보라구요. 옛날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느냐?
만일에 정을 가진 사람이 보게 될 때에, 동정할 수 있다 할진대 정의 영원한 주인이요, 정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은 동정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정을 받는 그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절대 고독이 없습니다. 고독이 없다는 거예요. 슬프지 않아요. 가진 것 없고 어려운 환경에 부딪쳐 있더라도 그 사람은 없는 자가 아니요, 어려운 자리에 홀로 있는 자가 아닙니다. 어려움에 비례해 가지고 배후에서는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위로와 기쁨이 있고, 남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이 접해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런 체험을 여러분들이 해야 됩니다. 그런 체험을 해야 돼요.
그런 체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여러분들은 일류 원리 강사가 되고, 앞으로 세계무대에 나설 수 있는 인격을 자기 스스로 갖추어 자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격을 스스로 준비해 나가는 사나이나 아낙네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런 심정적인 체험을 많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각계 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기준이 있거든 벌써 척 상대방을 대할 때 남의 말이 아닙니다. 자기 말이예요. 자기 일이예요.
은혜의 말씀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비장한 자리에 있어서 하늘과의 그 무엇을 느꼈던 그 마음 바탕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은혜를 줄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여러 가지 분야에서 체험한 뼈저린 체험이 있으면 그 체험한 모든 전부는 여러분들을 받쳐 주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불쌍한 노동자면 노동자를 대해서 내가 뼈저린 체험을 가졌다 할진대는, 불쌍한 노동자를 척 보면 그 시간에는 노동자와 나는 친구예요. 말 한마디 할 때, 눈물 골짜기에 스며들 수 있는 말을 내 마음에서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말씀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동적으로 통하게 됩니다. 사람이 제일 감정이 예민한 존재인데 이 감정이 예민한 존재를 굴복시키는 비결이 무엇이냐 하면, 그 사람 말을 백 퍼센트 하는 것입니다. 그러게 될 때에 그 사람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되도 불쌍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그 사람과 같았었는데…'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내 말을 하지만 그 사람 말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언제나 은혜의 원천이 풍겨질 수 있는 그 원천이라는 것은 피어린 장면에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재산이예요. 그런 재산을 많이 갖는 사람일수록 심정운동을…. 더구나 이 종교운동은 심정운동이예요. 절대 거짓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돼요. 세상과 같이 수단 방법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절대 안 됩니다. 진실이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젊은 사람들, 나이 삼십 전인 여러분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인격의 도량을 넓혀 놓아야 됩니다. 지금 내가 죽─ 이런 말을 듣게 될 때에, 우리 통일교회는 가진 것이 없어요. 가진 게 없단 말이예요. 여러분의 신세는 천번 만번 동정을 받아야 할 입장이요, 또 바라보게 될 때에 선생님은 어떤 면에 동정해야 할 마음이 간절하지만, 우리는 동정을 받아도 이 이상 더 큰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재산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천하가 나를 동정해 줄 때가 올 것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자기 개체에 있어서 지금 현재는 어느누구도 동정을 안 해주지만, 때가 되어 드러나는 날에는 하나님이 동정할 것이요, 세계가 동정할 것입니다. 동정은 빈손 가지고 못 한다는 거예요. 메마른 눈 가지고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메마른 심정 가지고 하지 못한 다는 거예요. 눈물이 아니고는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통곡에 사무친 심정 아니고는 우리를 동정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이걸 생각할 때에 어찌나 통쾌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받는 젊은 여러분들은 앞으로 뭐 돈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선생님이 그래요. 선생님이 요즘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때만 되면 형무소를 만들면 좋겠어요. 이 서대문 형무소가 작아요. 아예 한 몇만 가두는 형무소를 하나 만들면 좋겠어요. 필할 것이냐? 젊은녀석 들을 전부 다 잡아다가 넣는 거예요. 잡아다 넣는 데는 강제로 잡아넣는 게 아니예요. '여기에 들어갈 사람 누구냐?' 그러면서 형무소에 대한 설명을 쭉─해주거든요, 구미가 당기게. 어떻고 어떻고 쭉 얘기해 주는 거예요. '인간세계에서의 인격도야 하는 데에 있어서 깊고 무게 있고 철두철미한 인격을 만드는 곳이 이런 자리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거 역사적으로 다 그렇단 말이예요. 세계를 움직이고, 혹은 시대를 움직였던 사람들은 다 감옥살이를 거쳐 나왔어요. 선생님도 그런 세계에서는 전문가예요. 벌써 눈치만 보게 되면 떠억 알거든요, 어떻다는 걸.
내가 지금까지 지낸 경험에 있어서는 앞으로 큰 책임을 맡아야 할 젊은 녀석들을 1년 반은 형무소 생활을 공식적으로 시켜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것이 선생님이 다년간 형무소 생활을 한 가운데에서 얻어낸 결론이예요, 미안하지만. 미안하단 말이예요. 눈들을 보게 되면 다 반듯반듯하고, 올려다만 보려고 하고 내려가기 싫어하는 젊은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하면 무시를 당할는지 모르지만, 미안하지만 나로서의 얻은 결론은 그겁니다. 못해도 1년 6개월은…. 뭐 6개월쯤은 몰라요. 6개월 7개월 되면 형무소 맛을 모르는 거예요. 1년 반이 지나야, 1년 반에서부터 3년 고비를 넘어가면 맛이 나지요. 날이 가면 갈수록 이거 기름이 빠져 나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목적이 있어야 그래도 좋지요」 에이, 목적 없으면 관두란 말이예요. 날이 가면 갈수록 빠져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제 그런 생활을 오래 해보면 말이예요, 이렇게 팔을 내리면 팔이 저려옵니다. 팔이 저려와요, 팔이. 발들은 이렇게 앉아야 저리지요? 밥을 많이 굶어 가지고, 이렇게 해 가지고 기운이 없이 쓰윽 이렇게 해 놓으면 팔이 저려요, 팔이. 발도 저리고, 머리도 저려옵니다. 아주 기분이 이상해요. 무슨 풍선 가운데에 떠억 서 가지고 모든 전신에 전기가 오는 것처럼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말이예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 많아요. '이렇게 사람이 가는구나. 이러한 고비에서 수많은 인생들이 닭춤을 추고, 혹은 거기에 항서를 써 던지면서 나는 후퇴한다고 생각했겠구나. 이런 길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 것도 다 느껴 봐야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은, 세계적으로 이 뜻을 위해서 가고자 각오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저 한 1년 6개월씩은 딱딱 밥 한 덩어리씩 주면서 해봐라 이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감사하고, 이것도 고맙고 이것도 과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야 앞으로 세계무대에 나아가 공적인 일을 맡아서 일할 수 있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이 오랫동안 옥중생활을 하면서 경첩한 결론입니다. 한번 해보는 것이 좋겠어요? 「예」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예」
왜 그러냐 하면 밥덩이 하나가 세계만큼 큽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밥덩이 하나가 세계보다 크단 말이예요. 배부를 때는 세계가 큰 줄 알았더니 배가 고파 들어갈 적에는 밥 한 알이 지구 몇 개보다 더 크더라 이거예요. (웃음) 알겠어요? 「예」 그건 말만 들어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런 자리에서 밥의 고개를 넘어서 세계를 붙든다는 것은 참 어려운 거예요. 그놈의 밥은 조그마한 밥인데 이놈의 밥 고개가 얼마나 높은지…. 알겠어요? 그놈의 밥 고개가 얼마나 높은지, 이 고개를 넘어서 저놈의 세계를 붙든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자리에서 그런 걸 많이 생각했습니다. '밥 한 덩이의 고개가 그렇게 높구나'하고 말이예요. 그 고개 앞에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아이구' 하고 전부 다….
내가 형무소 생활을 여러 번 했습니다. 빨갱이 정치하에서 감옥생활을 할 때에 거기엔 목사패들도 많았습니다. 그때엔 이북에 있는 목사패들은 전부 다 반동분자예요, 뭐 7할은 반동분자예요. 나도 감옥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런 유의 목사들과 아주 많이 감옥살이를 같이 하고 있었는데, 그걸 연구자료로 해서 선생님이 많이 연구했습니다. '어, 저 사람은 어떤 급, 목사로서 몇 급이다. 며칠만 지나가면 저 사람의 보로(ぼろ;결점)가 나올 것이다' 보고 딱 생각하면 그건 뭐 수리적인 계산과 딱 맞아요. 틀림없다구요. 그래 가지고 목사들을 그저 전부 다 혼내 왔어요. 그래 내가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 가지고 '감옥에서 이놈의 목사들을 혼냈기 때문에 그 죄를 탕감하느라고 목사들한테 욕먹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반대할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주먹으로 닦달하는 게 아니예요. 어느누구도 문제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여튼 유명한 목사인데 하는 말이 '배고픈 그 자리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항복을 했던가 거기에서 하나님이 도망을 간 것이다' 하는 거예요. 그래 감옥살이하는 가운데에서 유물론자가 돼 버린 목사가 있습니다. (웃음) 그거 보면 유물론자들이 참 세계관에 대해서 먼저 선진적인 눈을 가졌다는 거예요. '배고플 때 하나님에게 밥 달라고 하고 어려워할 때….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심정의 하나님이니 뭐 사정의 하나님이라고 지금까지 부르짖었지만 그거 거짓말이야' 하는 거예요. 그거 아주 직접적으로는 근사하거든요. 그거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이래 떡 해 놓고는 말이지요, 그다음 에는 목사들하고 싸움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나 목사들하고 싸움도 했다구요. 그걸 보면 참 재미있거든요. 그런 유의 사람들, 그런 유의 목사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지….
이걸 볼 때 현재 기독교는 너무나 허무한 기반 위에 서 있습니다, 허무한 기반 위에. 너무나 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거예요. 조금만 어려우면 뭐 주먹도 필요 없다구요. 톡 대면…. 밥 한 덩이만 딱 미끼로 놓으면 끌려오게 된다구요. 선생님도 배를 고파 봤기 때문에 느낀 거예요. '야, 밥 한 덩이의 그 고개가 히말라야 산만큼 높고 권세가 있구나' 하고 느껴 본 적이 있단 말이예요. 그말 이해돼요? 배고파 본 사람들은 실감이 날 거예요. (웃으심) 그런 거 저런 거 다 여러분들이 뜻을 품고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배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여러분 '파리 선생님'이라고 배웠어요, 파리 선생님? 파리가 주님보다 반가와요. 어떤 때는 사랑하는 식구들보다 더 반감거든요. 혼자 독방에 가만히 앉아 '하, 주님이 이런 때 와서 내 친구가 돼 주면 좋겠구나. 하나님이 요렇게 외로울 때 와서 내 사정을 통하고 내 모든 사정을 전부 다 해원해 주면 좋을 터인데…' 하고 암만 기다려도 그럴 때는 하늘이 협조해 주지 않습니다. 밀어넣는 거예요. '이 자식아' 하고 밀어 넣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밀어넣는 거기에서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거기에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 거기에서, 밀어넣는 자리에서 자기가 위신을 세우고 자기가 스스로 자리를 잡아 가지고 결정된 기준만 벌어지면 하늘이 협조하는 거예요. 고개를 넘으면, 딱 고개를 한 발 걸음만 넘어서면 협조하거든요. 그 한 발걸음만 넘어서고, 한 서너 발걸음만 넘어설 수 있어서 한 삼단계쯤만 가게 되면 그전 하나님이 보따리 싸 가지고 먼저 넘어간다구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 최고의 고비에 가 가지고는 하늘은 터치 안 해요. 왜 그러느냐?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은 그저 톡톡톡톡 하면서 가지만, 넘어가는 여기에서 선생님은 제일 머리 많이 썼습니다. 여기에서는 심정적인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늘 앞에 타협도 많이 했어요. 이래 가지고 넘어가는 때에 대책과 결정을 내린 것이 지금의 작전입니다. 이것을 잘못하면 3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예요. 다 무너진다는 말이예요. 요것을 넘어가야 돼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은 이 3년 고개를 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3년 고개를 넘은 기준에 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거기에서부터 부딪쳐 오는 십자가를 달게 받고 그 십자가를 반드시 내적으로 준비하고 대비해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면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것이 어렵지만, 어떻게 틀리게 돌아가지만, 내가 지금 현재 가 있는 자리가 거기니 나아가면, 강한 마음을 가지고 신념을 가지면 반드시 수습돼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앞으로 전도 나가더라도 반드시 이런 고개 마루를 먼저 올라갈 수 있는 신념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실제적인 생활에 있어서 부딪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부딪친 것이 평탄하지가 않아요. 멋지게 된다면 멋지게…. 여기 시련에 부딪치더라도 내가 거기에 심정적으로 넘어 가지고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넘어야 돼요.
전도 나가서 굶는 것은 자기 판단이예요, 자기 판단. 여러분들의 심정이 하늘 앞에 상대기준만 돼 가지고, 내 개체가 돼 있고 때가 돼 있으면, 때가 맞고 사람이 맞으면 그 환경은 개척할 수 있습니다. 또, 때와 환경이 들어맞으면 내가 실력이 없더라도 하늘은 나를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쓸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세 조건 가운데에 둘만 부합되면 하나는 보충할 수 있게끔 돼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정성만 가지면.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도 해결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분조씨 말을 들어 봐도 그래요. 결국은 어미 자식이 굶어 죽는 법이 없다는 거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여러분들도 그런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한번 살아 봐야 맛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맛있는 삶.
그래 영계에 가게 되면, 저나라에 가게 되면, 지금까지 천상세계, 혹은 낙원 가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편안히 살다가 간 사람들이 아니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낙원 이상에 간 모든 영인들은 어떤 류의 사람들이냐 하면, 잘먹고 잘살고 이 땅 위에서 흥청망청 살다가 간 사람들이 절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전부 다 선을 바라보면서 주름살이 잡힌 사람들이예요. 선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이 찢기고, 꺾어지고, 깨지는 이러한 수고의 길을 거쳐간 영인들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저나라에 갔을 때 그러한 사람과 접하려면, 그러한 내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체험한 도량의 준비가 돼 있어야 대번에 통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하질 않아요. 통하지 않아.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한 걸 볼 때 복귀섭리가 시대가 가면 갈수록 점점 어려워졌지 쉬워지질 않았어요. 알겠어요?
노아 때 뭐 120년 동안 그랬다지만 노아 때의 120년 동안은 뭐 그래도 쉬웠어요. 점점 어려워져 나왔다는 거예요, 점점. 노아 때보다도 아브라함 때가 더 어려웠고, 아브라함 때보다도 야곱 때가 더 어려웠고, 야곱 때보다도 모세 때가 더 어려웠고, 모세 때보다도 예수시대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렇지요? 예수시대보다도 사도시대가 더 힘들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복귀시대를 죽─ 중심삼고 보면, 끝날을 두고 보면, 이 복귀의 종말시대를 향하는 오늘 이때가 예수님 시대보다 더 어려운 때라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범위가 넓어진 만큼 세계적인 십자가의 환란을 우리가 맞아 나가야 되기 때문에 시대가 감에 따라 가지고 점점 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간 모든 영인들이 저나라에 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나라의 공신이요, 시대를 대표한 하늘의 사명을 가지고 일찌기 왔던 선지자들인데, 그 선지자들이 그 마음으로서 느끼는 세계의 감정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체득하겠느냐 이거예요. 그건 환난과 시련도상에 서서 하나님의 심정에 호소해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같은 생활적인 감정을 접하는 사람 외에는 체득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 세상에 들어가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선생님이 그런 것 저런 것 다 느껴 봤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30세 전에는 전부다…. 아무리 뭐 백만장자 부자들이라도, 앞으로 그런 자식들이 들어오게 되면 전부 다 '사탄아!' 하며 팬티만 입혀 가지고 '나가, 이 자식아!' 하며 내쫓을 거라구요. 이게 알고 보면 말이예요, 선생님이 다년간 실험해 본 결과인데 그게 사랑이예요. 몇 해 동안 그렇게 수고시킴으로 말미암아 일생 동안 자기의 인생에 대해 가치를 알고 살게 하고,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비판할 수 있게 하고, 저나라에 가 가지고 뭇사람들 앞에 자기의 인격 기준을 세울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이런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이건 뭐 무자비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렇겠나요, 안 그렇겠나요?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잡아다가 앞으로 형무소살이를 시키면 좋겠어요. 떡 밥만 먹고 앉아 가지고…. 아침에 밥 한 술 얻어먹고 저녁에 밥 한 술 얻어먹는 게 얼마나 간절한 줄 알아요? 여러분들이 전도 나가 가지고…. 나는 그래요. 형무소에서 밥을 바라는 시간만큼 간절한 마음을 갖고 교인들을 기다리는 자리에 있게 되면 절대 외로운 생활을 안 합니다. 선생님도 식구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압니다. 많이 체험해 봤다구요. 그런 맘을 느낀다면 하나도 나쁜 게 아니라구요.
여러분들이 왔다가 이제 내일이면 또 다 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수련 받는 사람 외에는 산지사방(散之四方)하여, 혹은 남으로, 혹은 북으로, 혹은 서로, 혹은 동으로 전부 다 갈 터인데 가는 데는 멋지게 가요, 멋지게 가라구요. 이런 사상이 금번에….
선생님이 한 40일 동안 지팡이 들고 남하해 가지고 김삿갓 모양으로 말이예요, 한번 쓰윽, 아주 뭐 이런 양복 다 벗어제치고 말이예요, 아주 '뭐 옷을 홀가분하게 쓰윽…. 이젠 뭐 춥지 않으니까 단벌 옷 척 입고, 지팡이 하나 들고, 모자 하나 뒤집어쓰고, 수염을 기르고 돌아다니면 선생님을 모를 거라. 절간이라도 한번 죽 시찰도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단 말이예요. 만약에 삼천리 반도가, 삼천 만 민족이 통일교회를 따라간다 할 때에는, 선생님이 이 삼천만 민족을 택해 놓기 위해서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할 생활을 어느 기간에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소득이 몇백 퍼센트가 될 때는 단연코 실행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사냥 가서도 잘 살지요? 바다에 가서도 배 띄우면…. 그게 아주 멋진 거예요. 그게 멋진 거라구요. 요즘에 선생님이 연습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뭐 한국 사람의 생활풍습에 대해서 많이 접하였지만, 앞으로 선생님이 미국 같은 데에 척 가면….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요전에 편지가 왔는데 '아, 선생님 오기 바란다'고 편지를 붙여 올 때 '아, 미국을 간다. 갔을 때 미국 땅에 나타난 선생님의 처음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야 되느냐?' 그게 연구거리예요, 그게. 어떻게 나타나야 되느냐 이거예요. 이래 놓고 1억 8천만을 한꺼번에 때려눕히는 거예요. 그게 아주 구경거리가 되는 거예요. 요즘엔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작전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작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잡아다가 형무소살이를 시키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한 1년 반 이상만 해 가지고 밥 한 술 먹고는 감사하고 그것 이상 바라보지 않는 사람만 되면, 그다음엔 나라의 공적인 일을 시켜도 사바사바 바람이 안 부는 거예요. 사바사바가 뭔지 알지요? 박의장이 뭐라 하나? 부패를 일소하자고 야단하지요? 거 되나요, 돼?
앞으로 그런 세계적인 형무소에…. 에덴 형무소지요, 에덴 형무소. 에덴 형무소가 아니고 에덴 수련 수용소예요. 이래 놓고는 그 수련 수용소에는 언제나 초만원이…. 그럴 수 있게 돼 가지고 그 수용소, 그 형무소의 운영이 언제나 몇 퍼센트만 계속돼서 나간다면 세계는 순식간에 정복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래 가지고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옛날의 격언에서도 '젊어서 고생은 금 주고라도 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나와 얘기하는 여자를 가만 보면 뭐 사실 훌륭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분조씨를 보면 뭐…. 분조씨가 소학교 나왔나? 「예」 소학교 나온 부인이거든요. 그렇지만 척 나와서 말하는 태도나 청중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분위기를 쓰윽 잡아 가지고 자기의 감정에 화하게 할 수 있는 능력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어떠한 대학교 교수들도 못 해요. 합리적인 내용을 가지고 유창한 말로써 감동을 줄 그런 놀음은 할 수 있지만, 단조로운 자기의 생활적인 토막을 가지고 이 전체의 분위기가 눈물에 잠길 수 있는 환경으로 몰아넣을 능력은 없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걸 볼 때 됐다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여기 누구를 잡아도, 통일교회의 아가씨들이라든가 통일교회의 사내 녀석을 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여기에서 몇해 동안 훈련시킨 녀석들만 척 내세우면 할말 다 하더라 이거예요. 배우지 않고 다 그렇지만 어디에 가더라도 배웠다는 사람들한테 어깨를 겨뤄 가지고 못해도 몇 달 동안은 좌우로 뒤넘이치고 동반해 싸울 수 있는 역량을 다 갖추고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 얘기 못 하는 거예요. 얘기하기를 얼마나 고대하겠어요? 사람이 없어서, 그저 사람을 만나지를 못해서 입을 열어 얘기 못 하는 거지,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어요? 없어서 그저 꼬리를 전부 다 저으면서 또 나오라고, 또 나오라 고….
몇 해 동안 쭉 훈련시켜 가지고 떡 한번 지내 보니 말이지요, 장사 중에 이런 장사는 없어요. 무슨 장사 무슨 장사 해도 장사 중에 이런 장사는 없어요. 없다는 건 아주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들도 부디 재산을 남겨 주려면 말이지요, 눈물의 재산을 남겨 주라구요. 자식들 앞에 앞으로 재산을 남겨 주려면 눈물의 재산을 남겨 주고 피땀의 재산을 남겨 주라구요. 그러면 그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 눈물의 길도 감사할 줄 알고 피땀을 흘리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진 재산을 남겨 주는 부모가 되면 역사가 망하더라도 그 혈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그 나라의 역사가 망하더라도 그 혈족은 남아진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망했지만 혈족이 남아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러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애쓴 신앙의 선조들은 그러한 눈물의 역사의 유전을 받아 가지고 남겼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반드시 섭리의 뜻이 이것을 통해서 움직여 나오는 한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그것을 붙들고 눈물의 상속을 이뤄 나올 수 있는 민족은 망하지 않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한 말씀을 듣고 그저 눈물을…. 눈물의 상속이예요. 피땀을 상속해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와 더불어 뒤넘이쳐 나왔다는 이 한 권위가 오늘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기대를 만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돈을 남겨 주려 하지 말고 그런 면에 있어서 눈물을 남겨 주고, 피땀을 남겨 줄 수 있는 상속의 주인들이 되어서 천추만대에 기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돼야겠습니다. 그러는 한 여러분들은 어떤 한 날에 가 가지고 세계무대에 있어서 존칭을 받는 인격자가 되지 않나 하는 것을 선생님이 지금 딱 생각하고 있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눈물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눈물을 흘릴 줄 모르고 그런 비통한 사실을 느끼지 않고는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자식들이 전부 다 그런 것을 느끼게끔 실제로 보고,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재료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게 없어 가지고야 되나 말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돼야겠습니다. 알겠지요, 다? 「예」
이젠 열두 시가 지나갔으니 4월 7일도 다 지나갔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오늘은 며칠인가요? 「4월 8일입니다」 오늘은 오늘이예요. 오늘은 오늘이라구요. (웃음) 4월 8일도 되지만 4월 8일이라는 것보다도 '오늘은 오늘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더 가까와요? 그렇잖아요? '나는 문 아무개다'라는 것보다도 '나는 나다'라는 게 얼마나 가까와요? 마찬가지로 오늘은 오늘이예요. 오늘은 오늘인데 어제를 대신한 오늘이예요. 어제는 4월 7일이요, 오늘은 4월 8일입니다.
여러분들 이렇게 앉아서 수고하고, 앉아서 이렇게 하고 다 그랬는데, 이틀 걸렸어요, 이틀. 그렇잖아요? 이틀 걸렸단 말이예요. 7일 지나고 이틀 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수고로왔겠어요? (웃음) 그러니까, 손님들을 푸대접하면 하늘의 벌을 받을까봐 무섭고 두려워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주인된 선생님은 이제부터 손님 대접할 수 있는 이런 조건물로써 한 봉지씩 나눠 주려고 해요. 기분이 어때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신들 드는구나. (웃음)
그래, 이 떡들을 좀 갖다 나눠 먹고 그러자구요. 알겠어요? 「예」 떡들을 나눠 줄 텐데 먹을 줄 알고 준비하라구요. 그렇지만 4월 7일을 보냈으니 이제 선생님이 한번 기도하고 선생님은 올라가겠습니다. 올라가야 여러분들도 한 개 얻어먹고 좋아서 웃지 내가 가만있으면 여러분들이 사람 많은데 이러고 밤잠 못 자고 얼마나 시달리겠어요?
그러니까 고이 잡수시고, 고이 주무시고, 그다음엔 아침밥은 먹지 말고 여기서 서울역에 가 가지고 송별회 할 것까지 겸해서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송별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하는 거예요. 서울역을 여기 문전에 갖다 들어놓은 것같이 생각해 놓고 '잘 가소' 하고, 선생님이 올라간 다음에는 내일 아침에 볼지 말지예요. 밥 안 먹고 가는 사람도 있을 거라. 밥 안 먹고 가는 사람들을 미리 다 송별회 해 놓고 선생님이 간다구요. 이제 선생님이 가서 자게 되면 이틀 잘지 사흘 잘지 모르겠어요. (웃음) 정말이예요. 며칠 동안 이렇게 모이게 되면 선생님이 아주 고생 덩어리라. 고생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송별기도겸 여러분을 보내는 문안기도겸 해서 한 번 기도하고…. 기도하자구요.
아버님, 이제는 3년 마지막 고비가 우리의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하늘이 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찾아 나오시듯 복귀의 기준도 어느 정도 찼습니다. 이제 남은 몇 가지의 일만을 아버지여 같이하시어서 기쁨의 결실로 거둬 주옵기만을,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한없이 기뻐하고, 한없이 즐거워하고, 한없이 당신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할 이런 때였사옵나이다. 하오나 땅 위에 속하여서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는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민망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어제 바로 지난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모든 날은 보냈사옵나이다. 이제 다시 저희들 앞에는 아버지 소원하시던 더 큰 사명적인 기쁜 날을 저희의 가는 생활노정, 혹은 활동노정을 통하여서 인연맺어져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고로, 그 책임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이제 저희 시선은 그곳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되겠고, 저희의 발걸음도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기로에 서 있습니다.
아버지, 다시 당신이 원하시고, 당신이 같이하고, 당신이 같이 싸워 줄 수 있는 그 터전을 향해 가야 할 저희 자신들 앞에 담대하고 강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 승리는 저희의 것, 원수는 멀지 않아 우리의 목전에 항복할 수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나가옵니다. 이 세계가 유린당하던 원한의 역사인 것을 알았사옵고, 모든 인류가 지금까지 사탄의 피살에 의해서 더럽힘을 받았다는 걸 알았사옵니다. 이 모든 역사와 이 인류의 핏줄을 끊어 가지고 당신의 역사와 당신의 아들딸의 선한 피살로 옮겨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들이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 저희들이 책임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이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을 지내고 다시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이 시간에 있어서, 저희들은 만났으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다시 헤어졌다가 또다시 만나게 되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기쁨으로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감격한 심정의 소유자가 돼서 다시 만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싸우고, 많이 단련하고, 많이 부딪치고, 그리하여 어떠한 산 실적을 남겨 가지고 산 재료를 취할 수 있는 내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러한 기준을 세울 줄 알고 있으므로 저희는 그곳을 향해서 가겠습니다. 그곳에서 싸우겠습니다. 그곳을 향해 자신을 갖고 나가고자 하오니, 아버지여, 힘을 주시옵소서.
이제 하늘은 저희의 가는 길에 같이할 것이며, 이제 땅은 저희의 가는 발부리 앞에 있어서 항복할 것을 믿고,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이들 앞에 길이길이 행복만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고, 길이길이 승리만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아무리 치열한 전투 마당을 거쳐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향한 일편단심만은 잃지 말고, 하늘의 승리의 내적 기쁨을 품고 부딪쳐 나가는 데는 기필코 승리의 결과적인 환경이 그 머무르는 곳곳마다 머물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삼천리 반도에서 이 밤에도 굶주림 가운데서 밤을 새우는 식구들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보잘것 없는 어린 것을 세워 놓으시고 염려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거기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환난도상에 있어서 망하지 않을 것을 나는 믿고 있사옵니다. 시련도상에서 지쳐 쓰러지지 않는 한 반드시 승리의 영광이 같이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입을 돌이켜 찬양하고, 비소하던 그 눈초리를 통하여서 도리어 머리를 숙이며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이러한 성과가 거두어질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던 아버지가 오늘날 망한 자리에 세워 주지 않은 것을 내가 알기에, 이렇게 인도해야 할 사명의 분야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이 도상 앞에는, 이들이 결과적인 입장에 서는 그날에 있어서는, 이것도 역시 망하는 자리에 서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부디 과정적인 노정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가야 할 길에 아무리 태산 준령이 가로막혔더라도 마다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쉬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지 말고 쉬는 자리를 채우고, 가야 할 산정을 바라보면서 다시 '아버지'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의 위치만 취해 나가면 기필코 천상의 인연을 다 버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가야 할 운명 앞에 저희들이 후퇴하는 자들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운명의 길을 개척하면서 당신과 더불어 호소하고, 당신의 동정을 받으면서 내적인 인격과 외적인 인격을 갖출 수 있는,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얼마나 아버지깨서는 고대하옵니까? 저도 바라옵는데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하시겠습니까? 자식이 바라는데 이 민족인들 얼마나 고대하겠으며, 이 민족이 바라는데 이 세계 인류인들 얼마나 고대하겠습니까? 모처럼 그들이 먼저 인류 앞에 선각자의 입장의 책임을 졌으니 맡은 바의 책임을 부디 잘해 달라고, 입을 갖고 있어도 말은 못 할망정 그 마음을 통해서라도 천번 만번 호소하고 저들 앞에 권고하고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 도상에서 끝까지, 승리의 영광을 온 세계 앞에 세울 때까지, 가고 또 가고도 가는 것밖에 모르는 이런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린 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말씀 감사하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인연이 이 삼천리 반도에만 미쳐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우리 말씀이 떨어지고 우리 심정이 움트는 곳곳마다, 세계 방방곡곡마다 이런 인연이 벌어지게 하시어서 세계를 내 세계로,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백성을 내 형제자매로서 품고 울부짖고 호소할 수 있는 뭇 무리가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노정을 아버지, 저희들이 책임지고자 하오니 힘이 부족하거든 힘을 허락하여 주옵고, 능력이 부족하거든 능력을 가하시어서 모처럼 택하신 아들딸을 세워 놓고 염려하시는 아버지가 되지 마옵기를 저희들은 부탁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왔다가 이제 돌아가야 할 자녀들의 가는 걸음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부디 선생님이 자신들을 세워 놓고 바라고 있는 그 기준 앞에, 아버지, 당신의 슬픔과 혹은 스승의 슬픔을 더해 드리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좀더 아버지의 기뻐하는 뜻을 품기 위해서, 개척하기 위해서 선두에 서길 주저하지 않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아뢰오니 길이길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와 같이 느껴지는 40일 기간에 여러분이 수고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별 지장없이 지낸 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도위원들과 이 수련회를 움직이기 위해서 배후에서 수고한 여러분들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어차피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내적으로 비장한 각오를 했으리라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제 떠나가야 할 여러분들 앞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를 닮자'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여러분들 앞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도 있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낙망하여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처참한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물론 그 자신들이 불쌍한 사람들이겠지만 하늘 뜻을 대하는 아버지와 비교하게 되면 그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을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슬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슬프신 분이예요. 왜 슬프시냐? 하나님에게는 자기에게 속한 종도 있었고, 자기가 사랑해야 할 자녀도 있었고, 자기가 영원히 참다운 부부로 세워야 할 참부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땅, 온 천주가 그의 소유권 내에 있어 가지고 당신이 계획하시던 이념의 세계를 이루어 친히 영광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주관하면서 행복에 잠겨 지내야 할 아버지였다는 겁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동시 에 지음받은 모든 피조만물들이 도리어 하나님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 앞에 십자가의 조건이 되지 아니한 것이 없게 된 이 사실, 이 이상 슬픈 것이 없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불효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혹은 아내 되는 사람 앞에 슬픔을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친구라든가 친척, 혹은 민족이면 민족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슬픈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한 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전체의 비참상과 전체의 슬픔을 일시에 체득하고 계십니다. 그런 동시에 체득되는 그 슬픔을 대신해 줘야 할 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원수의 입장에 있어서 지금까지 이런 슬픔을 남겨 나오는 사실 이상 슬픈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하는 종을 잃어버렸고, 종을 잃어버린 동시에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상하시던 본연의 가정을 잃어버렸고, 가정을 중심삼고 주관하려 하던 천주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것을 잃어버린 슬픔도 크거니와, 잃어버림을 받은 만물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 가지고 지금까지 십자가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시킬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섰다는 것이 더더욱 슬픈 사실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타락권 내에 처해 있는 자신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무한한 슬픔의 빛을 졌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자신은 내 일신을 위한 몸이 아니예요. 나는 개체로되 내 개체 가운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연루되어 있는 모든 슬픔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개체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종적인 슬픈 역사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자녀를 중심삼고, 혹은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 앞에 십자가의 조건을 제시해야 될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빚지워져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내 개체가 처해 있는 위치가, 혹은 내 개인이 비록 작은 존재라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슬픈 역사의 인연은 천주적인 발판을 가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무한한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분이예요. 이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그 하나님은 다시 슬픔을 넘어 가지고 이 슬픈 세상에 있는 만물은 물론이거니와, 만물을 위주로 하고 있는 모든 인간까지도 다시 책임을 지고 복귀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귀의 슬픔까지 갖고 계신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슬픈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그 슬픈 입장을 피하거나 혹은 슬픈 입장을 모면하기 위해서 움직여 나오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슬픈 입장에 서 가지고 또 다시 이 모든 만물을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를 대해 나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랐으나,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의 미래까지 염려하시면서 무한한 슬픔을 품은 그런 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전체 생명까지 복귀시켜야 할 책임까지 짊어지고 나오고 계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또, 그뿐만이 아니라 책임을 진 입장에사 책임을 지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앞에 나가 가지고 원한의 조건들이 남아져 있는 우리들 앞에 보이는 현상세계, 혹은 우리 앞에 전개되어 있는 모든 세계 만민, 혹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 앞에 있어서 하나님은 책임을 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여러분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참소조건을 제시해 나오는 사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입장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생활과정을 거쳐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책임을 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 또 여러분을 중심삼고 농락하는 이 원수들을 대하여 시공을 넘어서 여러분들 앞에 투쟁의 선구자로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근심하시는 아버지입니다. 나를 대하여 근심하시는 아버지예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근심하셨던 아버지요, 지금에 있어서는 근심하시는 아버지인 동시에, 내 자신을 대신해서 책임을 지고 복귀시키기 위한 입장에 선 동시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난관의 조건을 타파하시면서 한스러운 슬픔을 제거시키는 복귀의 길을 여러분 앞에 서 가지고 먼저 개척하시고 투쟁해 나가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종의 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한 날을 고대해 나왔고, 종의 시대에서 승리의 기반을 통하여 자녀시대라는 승리의 기반을 소망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신 것이 6천 년 역사라는 거예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다 간 이후에 내적으로 비로소 부모의 인연을 세워놓고 또 외적으로는 자녀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자녀의 슬픔을 제거시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섭리역사였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끝날에는 종의 슬픔을 제거시키고 자녀의 슬픔을 제거시키는 동시에 최후에는 참다운 부모의 슬픔까지 제거시키려는 것이 우리들이 소망하는 최후에 남아진 재림이상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연고로 하나님은 잃어 버릴 때의 슬픔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또다시 찾는 시대에 있어서 슬픈 역사를 거쳐오신 거예요. 그러기를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 부모의 시대까지 무한한 슬픔과 무한한 책임과 무한한 투쟁 역사를 거쳐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을 굴복시켜 아들을 모시게 하고, 아들을 굴복시켜 부모를 모시게 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이것을 기반으로 해 가지고 하나님이 소원하던, 창조이상 세계로서 소원하던 그 중심인 하나의 가정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슬픔을 제거시켜 놓고 비로소 복귀의 한 기준을 세워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 자녀를 중심삼은 종의 인연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지의 모든 슬픔을 대신 상속받아서 지금까지의 지루한 책임의 역사를…. 그런 지금 까지의 투쟁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싸우게 해서, 소망의 역사 혹은 소망의 실체로 세움을 받는 역사가 재림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이제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이 가정적인 환난의 도상에 있어서 부모로서 책임을 완결하는 데 있어서는 종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되고, 자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되고, 거짓 부모들 앞에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역사적인 전체 탕감을 그 일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종이 하나님을 배반했고, 그다음에는 아들딸이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배반한 동시에 참부모가 배반한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종의 시대, 자녀의 시대, 부모의 시대를 거쳐오던 이 역사적인 전체를 대신해서 참다운 부모를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의 인연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책임을 짊어진 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종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종이 주인을 죽이던 역사의 슬픔을 당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이 예수를 잡아 죽인 고통을 그 일대에 있어서 자녀들이 대신 하나님 앞에, 혹은 참부모 앞에 배반하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그 아내 될 해와가 이런 슬픔의 길을 저끄러지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도 그와 같은 슬픔의 환경을 거쳐 나와야 됩니다.
그와 같은 싸움터에서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슬픔을 깨닫고, 하나님의 책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싸움을 깨달아 가지고 승리라는 그 표적 밑에 비로소 영광이라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승리를 자기 일신의 승리로 돌리지 않고 종을 대하여 나오시던 하나님의 창조 이상의 승리요, 아들을 찾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승리요, 참부모를 세워 창조이상세계의 심정의 동산에 세우려던 중심의 승리라고 하면서 하늘적인 승리로 돌려드려야 됩니다. 그런 동시에 온 피조만물 의 승리의 것으로서 돌려드릴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슬픔이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책임이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 참부모의 시대를 엮어 나가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원리를 통하여 잘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슬픔의 역사과정, 책임지는 역사과정, 싸우는 역사과정에서 승리의 영광을 맞게 될 때에는 그 승리의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갖지 않고 온 피조만물의 것으로, 지음을 받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참주인의 것으로 넘겨 주기 위하여 수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이 복귀도상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승리의 한때를 마련한 그런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승리적인 영광을 내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런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우리의 가정의 영광이요, 더 나아가서는 천주의 영광이라고 자랑할 수 있고, 현재의 영광인 동시에 미래에 올 우리의 후손들의 영광이라고 하며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이런 책임을 짊어질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에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할 수 있는 참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인연을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인연을 세운 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천국 백성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한 전체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자녀의 자리를 거치게 해서 하늘의 모든 주권을 대신하여 주관의 뜻을 온 피조세계 앞에 세울 수 있는 참다운 참부모의 이름을 찾아 나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에 참부모가 되고자 하는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버지는 천지에 참부모의 입장에 서 가지고 슬픈 생활을 하였고, 자기의 책임이 아닌 전체의 책임을 짊어졌고, 자기의 싸움이 아닌 전체의 싸움을 위해 우리 대신 싸워 주었고, 자기의 승리의 한 기준을 세워 가지고 그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옮겨 주기 위하여 나오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을진대,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참부모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됨과 동시에 그런 뜻을 알았던 모든 사람도 그런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수련을 받고 나가는 여러분들, 이제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이 무엇이뇨?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부모를 중심삼은 자녀와 본연의 종을 위주로 한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으로 하여금 천지만물을 주관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았을진대, 오늘날 여러분들의 모든 생각과 여러분들의 모든 생활의 중심과 여러분들의 모든 활동이나 행동 그 전체의 내용은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근심을 하고,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런 신념을 가진 확고부동한 자신이 돼야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는 한 아버지의 뜻과는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없다는 거예요.
역사는 지나오는데, 지나오는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투쟁역사를 거쳐온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과거가 있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인류역사 하게 되면 이 역사는 과거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논하고 있지만 그 역사의 연줄이란 것은 반드시 현실을 거쳐 미래를 연결시켜 나가야 할 역사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지나간 과거를 재차 수습하여 역사적인 현실을 창조하고, 역사적인 미래를 창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보다 더 큰 책임을 우리가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느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참부모를 세울 때까지 책임을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적인 책임분담시대, 혹은 참부모적인 책임분담시대가 있고, 삼위일체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를 위주로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이 벌어진 후에는 성도의 시대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시대는 전체의 역사적인 분야를 대신할 수 있는 시 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적인 사명을 책임져야 할 것이 오늘날 성도, 즉 자녀의 사명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세워 참부모로 하여금 승리의 방패를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후손된 우리들에게는 어떤 책임이 지워져 있느냐? 그 가정을 위하여 하늘과 땅에 널려 있는 인연된 세계를 전부 다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책임이 남아 있는 연고로 여러분들의 책임분야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과거가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현실이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래의 생활적인 인연이 여러분이 앞으로의 생애노정을 가는데 남아진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 이 시대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은, 혹은 자녀시대를 향하여 넘어가는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이상으로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지상과 천상에 있는 피조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주관하는 것이 사명이요,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주관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으신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우주적이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주를 주관하는 우주적인 사람을 하나님이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타락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 혈통을 통하여 자동적으로 동일한 이념의 기준이 연결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에 벌어진 역사상의 모든 인류는 전부 다 하나님과 배치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전부가 슬픔의 총합체라는 거예요.
그런고로 이를 대하여 슬퍼해야 할 것이 남아 있고, 이를 대하여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되겠고, 이를 대신하여 싸워 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전체를 주관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져야 할 것이 오늘날 이 세계가 요구하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요구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참부모를 세워서 하나의 종적 기준의 기반을 닦으면 됩니다만, 우리는 종적 기준의 기반을 닦은 그 터전 위에서 횡적인 사방성을 세워 세계적인 무대 앞에, 혹은 전체 피조세계 앞에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재림적인 책임, 참부모의 입장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사방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대해서 자녀를 통해서 그러한 인연을 세워 놓고 이러한 요구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여러분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더더욱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기반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나아가면 된다' 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더더욱 우리는 책임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생활에 있어서나 내 행동에 있어서 느끼는 감정을 분석하여 사탄과 더불어 근심하던 것을 아버지의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서 이걸 소화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과 대결하여 아버지 대신 책임지는 입장에서 이것을 주관하고, 아버지 대신 싸우는 입장에서 이것을 정비해 가지고 하나의 승리 기반을 생활무대에 닦고 만다는 이런 신념이 투철한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종적인 역사를 밀고 나가는 데 있어서 제일 발판을 조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대에 처해 있는 우리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은 지금까지 땅을 내려다보고 근심하였고, 참부모는 하늘을 바라보고 근심하였습니다.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근심하던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땅 위에서 승리의 기반이 닦아진 후에는 우리가 세상 끝을 바라보면서 근심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책임지는 입장에서, 혹은 싸우는 입장에서 승리해야 할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이런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들이 느끼는 이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슬픔이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이러한 세계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참부모를 세우기 위해 6천 년간 수고하신 역사적인 인연을 생각하면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일대에 내 손을 거치고, 내 노력을 거치고, 내 힘을 다 거쳐서 하나님이 6천 년 수고하여 참부모를 세우시기 위한 수고의 심정 앞에 자신이 세워질 수 있는 역사적인 입장을 남길 수 있느냐?' 하는 걸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인 이상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은 누구나 다 갖고 염려해야 하고, 누구나 다 갖고 근심해야 하고, 누구나 다 갖고 걱정해야 할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연고로 여러분이 이제 가는 길은 기쁨의 길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근심하고 나왔으니 여러분도 근심을 품고 가는 길이예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대신해서 책임지고 나왔으니 책임진 모든 내용을 대신하여, 세계를 대신해서 책임져야 할 것을 각오하고 가는 길입니다. 근심해도 안 되고, 책임진 입장에서도 안 되면 싸워서라도, 종과 같이 싸워서라도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늘 아버지를 닮자고 했으니, 아버지의 자녀가 되자고 했으니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하나의 가정을 위주로 한 하나의 사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천주를 위해서. 이것을 위해서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더욱 슬퍼하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여야 할 인간을 지어 놓은 연고로 만물 주관권 내에 들어와서 역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직접 협조해 주고, 하나님이 직접 운행하여 싸워 주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시대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이것은 인간의 책임분야에 있으니,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겼으니 인간적인 책임 사명을 여러분과 우리 통일교회 전체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책임이 남아 있는 연고로 우리가 이걸 해결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삼위신이 협조하고, 과거의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이 우리를 협조할 것이고, 시대적으로 지금 도의 길에서 준비된 사람들이 협조할 것입니다. 두 세계가 협조한다는 거예요. 영계가 협조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육계, 제 1이스라엘이 협조하는 동시에 제 2이스라엘이 협조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영계가 협조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도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협조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가진 하나의 힘이라면 힘인 거예요.
과거에는 영계도 협조하지 못하였고, 성도도 협조하지 않고…. 영계가 잘못 움직이게 되었다가는 그것이 인간세상에 도리어…. 세상에서 인간이 받들지 못하고 실체적인 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도리어 사탄의 무대로서 몇십 배, 혹은 몇백 배의 손해를 가져온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도 협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예수를 통해서 협조했다 이거예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예수를 거치지 않고 직접 협조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1이스라엘이 우리 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종교를 위주로 한, 기독교를 중심삼은 이런 시대권 내에 처해 있는, 현세에 남아 있는 제 2이스라엘권이 우리의 편입니다. 오늘날 이편을 기반으로 하여 여러분들이 이념권을 끌고, 도의 세계에 있는 제 2이스라엘권에 있는 모든 세계 인류를 끌고 나설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지 고 하나님 대신 근심하고, 하나님 대신 책임을 지고, 하나님 대신 싸우겠다고 결심하고 나서게 된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으로 돌아올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근심하는 데는 제 1이스라엘, 제 2이스라엘을 대신해서 근심해야 되겠고, 책임을 지는데는 제 1, 제 2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책임을 져야 되겠고, 싸우는 데는 제 1, 제 2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아 승리하고야 만다는 이런 결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버지가 이겼고 참부모가 이겼고 그 기준을 우리 앞에 세계적인 혜택으로 부여 했으니 기필코 승리한다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면, 여러분들이 가는 길 앞에는 패배라는 슬픈 사연은 없을 것입니다.
근심을 하되, 개인을 위하여 근심하는 때를 위해 싸워서 이기게 되면 개인적인 근심시대는 나와 영원히 이별이예요. 그럴 수 있는 시대로 왔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근심하는 때에 가정을 대신하여 싸워 이기면 그 가정적 기준은 영원히 나에게서 지나가는 거예요. 사회에 대하여 근심하는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서 싸워 승리하게 된다면 그 사회를 대하여 근심할 때는 나에게 있어서 지나가는 거예요. 국가를 대해서 근심할 수 있는 싸움에서 싸워 이기게 되면 국가를 대해서 염려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개인을 대신해서 싸워 가지고 이기게 되었더라도 그 기준이 평면적인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기준이예요. 사람이 세계사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지 못하였던 연고로 책임을 잘못하면, 이건 어디에 가든지 발판이 조그만 자리를 잘못 잡으면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어느때나 개인을 위해서 닦아 놓은 승리의 기반도 사라지고, 혹은 가정을 위하여 닦아 놓은 승리의 기반도 사라지고, 민족을 위하여 닦아 놓은 승리의 기반도 다 사라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구요. 세계의 뜻을 대신하여 나가는 승리의 기반 밑에 전체적인 조건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개인을 대신해서 근심하는, 혹은 가정을 대신하여 근심하는 자리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투쟁하여 승리의 결정을 지어 놓은 후에는 그 자리를 지나가 가지고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개인으로부터 혹은 세계, 혹은 천주 무대까지 여러분 일대에 넉넉히 가고도 남을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복이냐 이거예요.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은 근심하는 데 있어서 슬픈 근심이 아니라 소망에 불타는 근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거예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위하여, 우리의 하늘을 위하여, 우리의 천주를 위하여, 우리의 참아버지를 위하여, 우리의 참부모를 위하여, 참부모를 위주로 한 참가정을 위하여 싸움을 하여 종족을 거쳐 나가야 되겠고, 민족을 거쳐 나가야 되겠고, 세계를 거쳐 천주까지 거쳐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뜻을 알고 내 심정이 하나님 앞에 인연된 것을 알았으니, 내 뼈살은 그의 품에서 자라고 그의 품에서 살다가 그의 품에서 사라져야 할 것임을 알았으니 그런 내가 그의 품에서 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그의 품에서 살지 못한 과거가 한스럽거든 이제 남은 시대에 있어서 그와 같이 살 수 있는 인연이 있고, 자랄 수 있는 인연이 있으니 남아진 여러분 생애노정에 있어서 이러한 생활의 인연을 맺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잘 배웠으리라고 봅니다.
이제 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인연이 돼 있고, 나는 어디로부터 생활과정을 거쳐 어디로 향하여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가는 나는 무엇을 지니고 가느냐? 하나님의 근심을 품고 가는 거예요. 내 개성이 복귀돼 있으면 이 가정만으로 내가 안식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이 있고,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이 있고,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와 세계 인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 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이 세계 끝까지 나가서 수많은 민족을 아버지 앞에 내몰아 넣고, 그 뒤에서 만민을 축복하고 갈 수 있는 한날이 나에게 오기를 고대하며 매일같이 싸워 나갈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빠요. 바쁘고 바쁘다구요.
과거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가정이 어떻고, 우리의 참부모가 어떻게 되고, 참형제가 어떻게 되고, 참미래가 어떻게 되고, 참다운 나라의 이념이 어떻게 돼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들이었어요. 무가치할 뿐만이 아니라 무가치한 내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염려와 근심과 고통을 남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할 때에 지긋지긋하고 분하다구요.
그러나 그러한 과거의 나를 무자비하게 때려치우고 오늘 재생된 자아의 가치를 드높이 내세워 하나님이 바라볼 때 하나님의 근심을 맡겨 주려고 하고, 하나님의 책임을 맡겨 주려고 하고, 하나님의 전쟁터에서 청룡도를 들고 원수를 대하여 행군하라고 하는 명령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통쾌하냐 이거예요.
과거에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은 제아무리 충성을 한다 하더라도 종의 시대에서 사라져 갔고, 제아무리 충성을 한다 하더라도 양자의 길, 혹은 참다운 자녀의 접촉점까지 올라갔다가 다 쓰러져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종의 시대를 지나고 자녀의 시대를 지나서, 나아가 참부모의 혈통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우리가 자동적인 원칙 밑에서 참부모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평면적인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기반 위에서 우리들이 싸워 가지고 승리하는 날에는 이 싸움과 영원히 이별하고 갈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냐 이거예요.
예수님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고, 과거의 아브라함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고, 모세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하나님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이 슬픔을 품는다 하더라도 행복된 자리에서 슬픔을 품는 것입니다. 이 슬픔은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자탄하는 슬픔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슬픔이예요. 그러니 얼마나 위대해요. 책임지는 입장도 자기 일신을 위한 책임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책임지는 입장이니 얼마나 귀해요.
평면적인 이런 도상에서 보더라도 이 세계 인류가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엄숙한 책임을 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도 역시 하늘의 아들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가야 합니다. 누구를 닮아서?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께서는 6천 년 동안 이러한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종에게 유린을 당하고 종한테 죽음을 당한 거예요. 아담이 종한테 죽음을 당하지 않았어요? 그다음에 예수시대에는 아들딸한테 죽음을 당했어요. 오늘날 재림시대에는 여자들한테 죽임을 당하고 있다구요. 여자 때문에 고통을 당해요. 이렇게 종과 자녀와 혹은 신부로 인연된 권내에서 고통을 받아 가지고서 하늘의 고통을 일단락 짓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기반 위에서 이렇게 싸워 나온 승리의 기반을 일대에 여러분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상속해 주는 데는 완전한 승리의 방패를 세워 가지고 패를 달아 가지고 여러분 앞에 내세우는 거예요. 그것은 종으로 승리할 수 있는 내용과 자녀로서 승리할 수 있는 내용과 참부모로서 승리할 수 있는 내용을 사방으로 거쳐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3시대의 내용을 대신해 가지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시대적인 혜택의 은사로 말미암아 이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출발하여 나가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면,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 제일 충성하던 그 자리를 내가 받들어야 되겠고, 자녀로서 제일 충성하던 그 골고다의 산정을 내가 찾아가야 되겠고, 부부로서 제일 충성하던 고통의 자리를 내가 점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인연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기간을 단시일 내에….
그렇기 때문에 이 시험은 한 번에 끝나는 거예요, 한 번에. 종의 골고다의 길에서 싸움을 하되 이것을 몇천 년, 몇만 년 걸어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번입니다. 한 번에 하는 거라구요. 알겠지요? 그다음에 아들의 자리에서의 십자가도 한 번만이예요. 왜 그러냐? 시대가 자꾸 지나간다구요. 종의 시대가 지나가면 종의 시대는 잘라 버리고 자녀의 시대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종교도 그렇다는 거예요. 소생·장성·완성을 잃어버렸으니 기독교가 중심인 소생형의 자리에서 장성 자리를 차지하면 장성 자리에서 완성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이 찾아온 다는 거예요. 소생 단계가 장성 자리로 올라가고…. 이 세계의 시대적인 운세는 여러분들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소생시대를 지나 장성시대로 옮겨지고, 장성시대가 오게 되면 소생시대는 전부 다 잘라 버리는 거예요. 그 고비는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도 이런 과정에 있어서 종의 시대, 혹은 자녀의 시대, 혹은 부모의 시대를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십자가의 고통의 길이 있다 해도 맨 처음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수고로울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점점 쉬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때는 어떤 때냐?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복된 것이 무엇이냐? 이때는 3년 고비를 거쳐 가지고 새로운 시대로 전개되는 때입니다. 부모의 시대가 지나가 버리고 자녀의 시대로 옮겨지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모든 책임과 모든 싸움을 삼위신이 책임지고 하던 것을 오늘날 평면적인 세계에 널려 있는 참다운 사람 앞에, 사탄 앞에 있어서 마음놓고 인계해 줘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혜택권 내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이 시대적 혜택권이, 오늘날 우리들이 움직이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들이 가는 십자가의 고개는 점점점 평지로 화해 들어갈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처음으로 출발하는 이때에 널려 있는 전체 통일교회 교인들은 총단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환난, 어떤 고통, 어떤 어려움이, 삼시대의 십자가의 고통이 나에게 일시에 다가오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너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 하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승리의 방패를 마음에 결정지어 놓고 여러분들은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하여 근심하고, 이것을 위하여 책임지고, 이것을 위하여 싸워 가지고 승리한다면 내가 수고한 그 영광의 가치를 내가 갖는 게 아니예요. 위로는 하나님 앞에 효도해야 되겠으니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되겠고, 아래로는 하늘땅을 대신한 부모의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되겠으니 천추만대의 후손 앞에 남겨 주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찾으려 하시는 것이 오늘날 우리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의 형제이거든 형제를 받으시옵소서, 우리 가정의 종족이거든 종족을 받으시옵소서' 이래야 됩니다. '우리 가정을 위주로 세계를 갖기 원하였으니 받으시옵소서' 이래야 된다구요. 다 이겨 가지고 돌려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승리의 실적을 근심하는 아버지의 대신자 된 마음을 품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책임진 입장에서 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체로 돌려드리고, 종으로 돌려드릴 때가 있을 것이고, 자녀로 돌려드릴 때가 있을 것이고, 참부모로 돌려드리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된 책임을 하여 전체 문중을, 김씨면 김씨 문중을 자기 이름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종족적 부모의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족은 전부 다 자기의 울타리에 들어오는 거예요. 이런 책임을 하게 되면 앞으로 여러분의 천적인 가치는 점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는 길은 여러분들을 위해 가는 게 아닙니다. 관념이 그래요. 여러분을 위해 가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이렇게 갔으니 아버지를 닮아야 되겠고, 아버지를 따르는 내 자신이 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종적인 수고의 역사를 마련하여 횡적인 역사의 기준을 닦아 나오기 위해 수고하신 그와 마찬가지예요. 아버지 깨서 우리 가정을 위주로 하여 세계를 주관하기를 바라던 그 뜻을 우리 자체로 회복해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선조가 실수한 것을 우리 시대에 탕감하여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근심하는 마음과 책임지는 마음과 실천하는 마음을 갖고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민 전부가 이것은 아버지의 것이요, 참부모님 것이라고 하며 돌려드려야 됩니다.
아버지 것으로 돌려드리고 참부모님 것으로 돌려드린 후에 참부모가 '이것은 너희들의 것이다'라고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든 섭리는 완결되고, 최후의 영광의 승리는 이 천상천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 대신 근심하고, 그다음에는 책임을 짊어지고, 그다음에는 싸우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근심을 하지 않을 때에는 뜻을 대신해서 책임을 져야 되고, 책임을 지지 않거든 싸우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느 때든지 그런 환경에서 살아나가야만 아버지를 닮은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나요? 「예」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먹을까? 내가 뭐 어떻게 되나?' 이런 걸 지지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당연한 거예요. 그렇지만 이제는 과거 현재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이냐 하는 걸 생각해야 되겠다구요.
대개 역사의 흐름을 보면, 역사를 상속하려면 전통에 순응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날 이 사회는 역사의 결실로서 나타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있어서 역사상의 모든 인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역사상의 인연이나 현실적인 조직에 있어서, 혹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충실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그 전통에 충실해야 됩니다. 전통에 충실해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서는 책임을 져야 돼요, 책임을 져야 된다구요. 책임을 진 다음에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 이 전통이 아버지 앞에 옳지 못하다 할 때는, 그 전통을 전체 앞에 상속시키기 위해서는 사회환경의 모순된 모든 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거예요.
그런 연고로 여러분은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아 시대적인 개척자의 책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한 역사적인 순수한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현재의 생활적인 환경에 있어서 그런 책임을 짊어지고 미래의 새로운 이념 터전을 건설하기 위해서 투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더욱 명심해야 되겠어요. 알겠지요? 「예」
아버님, 아버님을 닮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과 하나돼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은 무한히 슬픈 아버님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종한테 죽음을 당하였고, 자녀한테 죽음을 당하였고, 혹은 아내와 남편 앞에 추방을 당하신 아버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서글픈 심정 앞에 있어서 오늘날 저희들은 타락의 후손이 되어 모든 내적인 고충을 제시하고 남아진 것이 저희 자신인 것을 알았사오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지금까지의 내 자신은 슬픈 자신이었사오나, 이제부터의 내 자신은 기쁜 소망의 아들딸로서 아버지 앞에 부름을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참다운 소망의 뜻을 알았사옵고, 당신이 찾고 있던, 당신이 원하고 소망하시던 중심된 가정을 알았사옵고, 그 세계를 알았사오니 그 세계와 가정 앞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될 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돌아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의 마음에 더더욱 깊이, 절실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이 왔다가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것이오니, 가고 나면 슬픔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인간이 되지 말고 갈 때에 영광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 세상 만민이 환희하는 가운데서 아버지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갈 수 있어야 될 것을 저희들은 이번 기간에 배웠으므로 더욱 잘 알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내가 가는 길은 어디메뇨?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메뇨? 내가 머물 수 있는 안식의 보금자리는 어디메뇨? 지금까지 자라던 부모의 품이 아니었사옵고, 지금까지 자라던 고향 땅이 아니었사옵고, 지금까지 거하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염려하던 생활적인 무대가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내가 바라봐야 할 것은 본연의 동산이요, 이제 내가 찾아서 그 품에 품겨할 것은 참부모요, 그 부모를 위주한 참다운 가정이요, 참다운 가정 가운데 머문 참다운 형제자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형제자매와 더불어 심정이 연결된 아버지의 터전 위에서 아버지의 자랑,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영광이 될 수 있는 가정을 위주로 한 참다운 자녀로서 자녀를 위주로 한 종족을 거쳐, 종족을 위주로 한 민족, 민족을 위주로 한 세계, 세계를 위주로 한 하늘땅이 되어 아버지의 것으로서 귀결될 때까지 그 놀라운 인연 분야에 연결시킬 수 있는, 심정에 일치된 이상을 갖추어 가지고 사탄을, 즉 종을 굴복시키고, 아들 딸을 굴복시키고, 최후에는 자기의 이상 상대자를 굴복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이런 고난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런 것을 종적인 역사를 중심삼고 하던 것이 오늘날은 평면적인 환경을 거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 자리에서 실패하면 내일 다른 자리로 옮겨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저희들은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한 자리에서 실패하면 다시 옮길 수 없는 종적인 역사를 거쳐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수고로우셨으며, 얼마나 근심하였으며, 얼마나 책임지기 어려웠으며, 얼마나 싸우기에 노심초사하였던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복된 종적인 기준을 완결시켜 승리의 방패를 온 천주적 기준으로 세운 그날부터 평면 도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의 시기, 자녀의 시기, 형제의 시기를 맞이한 때인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나가는 도상에 있어서 한 방향에서 실패하면 그 방향을 피해서 다른 위치에서 싸울 수 있는, 제2의 환경을 가질 수 있는 이런 시대를 가진 것을 저희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나가는 환경에 있어서, 개체를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가정을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종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민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세계를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온 천주를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위신을 세우는 자가 되겠으니 그러한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손길로써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참부모의 실천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에 연결된 자녀의 인연과 형제의 손길 손길을 붙들어 가지고, 내 힘이 부족하거든 형제의 힘의 원조를 받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는 하늘을 중심삼고 제1의 이스라엘 영계가 남아 있사옵고, 제2이스라엘 도의 세계의 우리 형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의 신도들은 삼위의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기준을 닦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제 저희들은 비할 바 없이 강하고 담대하여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공격할 수 있는 참다운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한을 우리가 박차 버리고 승리의 깃발을 저희들 손길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 번 아버지 앞에 맹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민족의 책임을 내 책임으로, 민족의 싸움을 내 싸움으로, 세계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세계의 책임을 내 책임으로, 세계의 싸움을 내 싸움으로, 천상천하에 널려 있는 모든 근심을 우리의 것으로, 그 책임과 그 싸움을 우리의 것으로 맡아 여기에 굴하지 않고 승리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 일로의 영광의 실적을 가져 역사를 장식하고 시대에 남겨질 수 있어 가지고 후대에 승리적인 발판을 남기면서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인 40일 기간을 아직 마치지 않은 중요한 기간에 머물러 있사오니 이 기간에 하나님의 각별한 은사의 역사를 일으키시옵소서, 통일신도들의 입을 통하여서 전한 그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었사옵니다. 말씀이 연결되는 곳에서는 죄된 생애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하늘의 말씀인 것을 아옵니다.
다시 소생하는 역사로서 재생할 수 있는 하늘의 특권적인 역사를 이루는 동시에,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이 상대의 기준이 되시어서 부활의 은사를 남겨 줄 수 있는 승리의 발판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리하여 민족적인 한을 저희들이 박차고, 세계적인 한을 가다듬고, 영원히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받들어 책임지고 승리로써 길이길이 아버지 품에 남겨 드릴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충신 열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염려하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염려하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을 위하여 바라보고 다시 돌아올 자녀들을 고대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옵소서.
남아진 싸움터 위에서 부디 낙오자가 되지 말고, 패자가 되지 말고, 승리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의 깃발 앞에 쌍수를 들어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렐루야 만세를 부르고 남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참부모의 소원이요, 천지, 온 피조만물, 창조주 이름 전체의 소원인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이 소원을 품고 살고 싸워 승리하고 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광의 은사와 승리의 방패가 저희 일신에서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그동안 수련생들을 지도한 여러분과 불비된 여건하에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낸 수련생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수련을 받는 가운데 내적으로 비장한 각오를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아버지를 닮자’입니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 고통을 당하는 사람, 낙망을 하는 사람, 심지어는 목숨을 끊는 사람 등 별의별 불쌍하고 처참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위하여 사는 사람에 비하면 그들의 어려움은 하잘것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프신 분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는 종도 있었고 세우실 참부모도 있었고 만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주관하시며 무한한 행복에 잠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셨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고, 슬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세계도 다 슬프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체의 비참상을 일시에 체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과 자녀와 이상으로 품으셨던 가정과 천국을 잃어버리신 채 지금까지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들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그런 것들을 잃고서 십자가 앞에까지 서게 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한 개체 속에는 종적인 슬픔과 온 천주적인 슬픔이 연관지어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주적인 발판을 지니신 분임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지니고 나오셨습니다. 거기에다가 복귀의 책임까지도 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를 대해 나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슬픔 가운데에서도 인간 복귀의 책임까지 지고 나오셨습니다. 현상세계와 영계, 그리고 세계 만민에 대한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사탄과의 투쟁도 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책임을 지시는 것만도 어려운데 사탄 대하여 투쟁까지 해 나오신 하나님입니다. 근심하시는 아버지, 난관을 타파하시며 복귀하고자 하시는 투쟁의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종의 시대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자녀시대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입니다.
종의 슬픔을 제거하고, 자녀의 슬픔을 제거하고, 부모의 슬픔까지 제거하자는 것이 재림이상입니다.
종을 굴복시키고 아들을 세워 부모를 모시게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이것은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복귀 기준을 세워 슬픔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망의 실체를 중심삼고 세운 뜻이 재림이상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역사를 책임지기 위해서 오십니다. 주님은 종의 핍박을 받고 자녀의 핍박과 가정적인 핍박을 거쳐 거짓 부모의 핍박까지 받아야 합니다. 당초에 종이 배신하였고, 자녀가 배신하였고, 부모가 배신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슬픔을 지니고 승리하여, 그 승리를 자기 일신의 승리로 돌리지 않고 자녀의 승리로 돌리고, 한 중심의 승리로 돌리고, 하늘땅의 승리로 돌리고, 온 피조만물의 승리로 돌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천주의 모든 슬픔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리의 영광을 당신의 것으로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신 것같이, 우리도 자신의 승리의 영광을 내 것으로 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으로, 민족의 영광으로, 가정의 영광으로, 후손의 영광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주권을 가지시고도 슬픔을 책임지고 주인의 입장이 아닌 종의 입장에서 싸워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시는 참부모도 그런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수련을 받고 나가는 여러분의 생활과 활동하는 모든 것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책임지고 싸워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고로 여러분은 이것을 인계 받아 과거와 현재를 책임지고, 또한 미래를 책임져 나가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더 큰 책임을 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창조의 책임이 있지만 성도의 책임분담시대에 있는 우리에게는 현재와 미래의 뜻을 완성하여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시대로 넘어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 이상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은 지으신 만물들을 주관하고, 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주관하는 우리 인간들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의 슬픔을 책임지고 싸우는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대하여 참부모의 책임을 해야 하니 여러분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반 위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나가도 되겠지.’ 하면 안 됩니다. 사탄에 대하여 싸워 이기겠다는 투철한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탄이 주관하고 있는 세계에서 싸워 승리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여러분입니다. 나에게는 이런 세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해 나오신 6천년의 인연이 나에게 있는데 과연 나는 이러한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 앞에 세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근심하며 책임해도 되지 않으면 싸워서라도 정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닮겠다고 하였고 아버지를 배우겠다고 하였으니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근심을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대하여, 국가를 대하여, 세계를 대하여 인간의 책임을 다하자고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우리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계와 육계, 그리고 지금까지 도의 세계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습니다. 과거에는 영계에서 협조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 협조를 하면 오히려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예수를 통해서 협조했습니다.
지금은 제1이스라엘과 제2이스라엘이 협조하고 있으므로 뜻을 위해 근심하며 책임지고 싸우면 됩니다. 또한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을 위해서 근심하며 책임지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을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내게는 개인시대가 지나가고, 가정을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가정시대가 내게서 지나가고, 사회를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사회시대가 내게서 지나가고, 국가를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국가시대가 내게서 지나갑니다.
과거에는 평면적인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자리가 없어지곤 했습니다. 즉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기반이 없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보다 높은 데로 나아갈 수 있는 혜택권 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근심으로 끝나지 않는 소망적인 근심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하늘과의 인연을 알았으니 이제 남은 생애를 사는 동안 확실한 인연을 맺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개인은 하늘의 근심을 품고 가정을 위하여, 또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살아야 할 개인입니다. 하늘 백성은 만물을 사랑하기 위해서 수고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몹시 바쁩니다.
과거에 무가치하게 지낸 것을 분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전쟁터를 맡기시고, 뜻을 맡기시고 명령을 하려 하시니 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과거에는 기껏해야 종의 기준이나 양자의 기준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직접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가 근심을 하고 책임을 하면 가정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되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우리가 아버지를 닮고자 할진대, 아버지께서 6천년 동안 어떻게 싸워 나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때에는 아들 때문에 죽는 것 이상 가는 고통까지 당하셨습니다.
오늘날 재림시대에 있는 여러분은 참부모를 위하여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3시대의 내용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종의 시대를 거치시고, 40고개를 넘으시고, 골고다를 거쳐 3일노정을 걷는 입장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종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자녀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고 골고다를 넘는 부모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시대적인 운세는 소생시대를 지나고 장성시대를 지나 완성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완성시대가 되면 그 전의 것은 잘라 버립니다. 앞으로의 뜻길은 점점 쉬워집니다.
부모의 시대를 지나 자녀의 시대로 넘어가면, 삼위신(三位神)이 책임지고 하던 일을 여러분들이 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사탄 앞에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넘겨 주실 수 있게 됩니다. 이 때에는 총 단결하여 3시대의 고충과 십자가가 닥쳐와도 지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승리의 영광을 위로는 하늘에 돌리고 아래로는 부모에게 돌려야 합니다. 이겨서 ‘원하시던 가정, 원하시던 민족, 원하시던 세계를 받으시옵소서.’ 하며 돌려드려야 합니다. 개인을 돌려드리는 동시에 가정과 민족을 돌려드리고 세계를 돌려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개인으로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근심하고 책임해야 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받으신 아버지께서 다시 너희 것이라고 돌려주실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고 그 때까지는 근심하고 책임지고 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닮는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시시한 것에 마음을 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좀더 중한 것을 생각해야 하고, 역사적인 것을 상속받기 위해 전통을 세우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책임지고 복귀섭리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세상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날뛰고 아무리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이제 승리적인 때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고생을 안 해요. 암만 고생을 갖다 뒤집어 씌우더라도 안 쓰는 거예요. 안 쓰는 거라구요, 이젠.
이제부터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다 지나갑니다. 여러분은 다 지나가요. 이제 당하는 고통은, 이제 큰 싸움이 벌어져 가지고 고통을 당한다면 그 고통은 마지막이예요. 연결되고 다시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운세는 하늘로부터 뻗쳐지는 운세요,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한 인간을 전부 다 다시 찾아 나와서 세계적으로 벌려 놓는 역사요, 수많은 도인들을 세워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해 온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주기 위한 역사예요. 봄절기, 여름절기의 역사입니다.
끝날인 지금은 가을절기의 추수의 역사니만큼 끌어당기는 역사입니다. 줄어 들어가는 역사예요. 그래서 요것이 뿌리예요. 씨예요, 씨. 하나님이 모든 피조만물의 씨니만큼 그 종자의 근원이 여기에 와서 열매 맺히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가는 때입니다, 지금 때가.
현재의 문명권은 온대권 문명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온대권 문명이냐? 봄절기 온대권 문명이 아니라 가을절기 온대권 문명입니다. 이제 공산주의가 있는 북쪽, 한대문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때가 옵니다. 잠깐 기간이라구요.
얼마만큼 뻗쳐 나오던 운세가, 뻗쳐 나올 때에는 과거에 예를 들어서 요만큼 나왔던 것이 그 싹은 이만큼 나왔어요, 이만큼. 이만큼 나왔으면 여기에 비해 가지고 이것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만큼 나왔으면 이것이 남아 있는 거예요. 이렇게 나왔으면 이것이 남아 있고, 이렇게 나왔으면 요것이 남아 있고, 이렇게 해 가지고 끝날에 그 선이 한도를 찾아요. 요 한도의 전체의 탕감복귀를 찾아가야 할 사명이 없으면 죽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세계를 당겨 가지고 벌려 나왔던 것을 끌어, 뻗어 나가던 것을 돌려 놓으면 그건 꼬부라지는 역사라구요. 이렇게 꺾여 들어 가느니만큼.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기에 해당하는 고통이라는 것이 이제는 이렇게…. 고통은 뻗어 나가는 고통이 아니라 이렇게 줄어들어 갑니다. 그러니만큼 요만큼 되면 요만큼 고통이 있고, 요만큼 들어가게 되면 요만큼 없어진다는 거예요.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이젠 없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세상에 고통이 남아 있는 것을 전부 다 거꾸로 깎아 먹는다 이거예요. 과거에는 전부 다 여기에 남아진 것이 뻗어가기 때문에 고생하면 할수록 더 해야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여기서는 이렇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힘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이 힘이 여기서부터 이렇게 흘러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아니에요.
이것은 이렇게 쭉 나오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걸 중심삼고 나가게 되면 상충이 되기 때문에 고통이 됐지만,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운세에 접하기 때문에 쉽다는 거예요. 고통은 우리들에게 작용을 안 한다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사람들은 세계적인 고통을 전승하자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늘땅에 나타나는 세계적인 고통과 환난을 전승하자 이겁니다. 전승하자 이거예요.
그래서 개인적인 시대로부터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까지 넘어서면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가 그때와 맞먹는 거예요. 알겠어요? 3년 기간에 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민족적인 사명 분야에 있어서 국가적인 기준 앞에…. 이스라엘 땅에 예수를 내보내지 않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사상과 같은 사상을 따르지 않고는 이 나라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 때가 될 만큼 됐다는 거예요, 지금의 때가.
여러분이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 알 것입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보라구요. 이 3년 기간에 세계가 참 잘 돌아가지요. 흐루시초프가 유엔총회에 나가서 큰소리한 지가 언젠가요? 몇 년인가요? 몇 년이예요? 그때부터 공산당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3년 기간에 전부 다 벌어져요. 자녀의 날이 나오기 전에 카리브 해협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공산당한테 한 대 들이맞았지요? 그게 우연히 된 게 아니예요. 선생님이 그것 때문에 담판기도를 했습니다. '이 자식들, 쳐라 이 자식들아!' 하고 말이예요.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복귀역사를 해 나온다구요.
지금 열 시가 됐구만요. 세밀히 얘기하려면 시간이 없어요. 이래 가지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개인으로부터 이 복잡한 내용을 수습하여 나오는 데 있어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이 3년 기간은 선생님이 넘어가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의 개인 복귀시대, 즉, 선생님을 중심삼고 개인사명을 해야 될 때이고, 선생님이 가정을 중심삼고 사명을 해야 할 때이고, 선생님이 종족을 중심삼고 사명을 해야 될 때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종족 패들입니다. 이 종족을 중심삼고, 이들 민족적인 기반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사명을 대표해서 심정적인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것을 이 3년 기간에 행하는 때였습니다. 이번에 축복받은 패들을 왜 전부 다 지금까지는 갈라놓았다가 이번에야 갖다 붙인 줄 알아요? 그걸 쭉 설명하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구요. 여러분은 뭘 모르고 그저 밤잠 자면서 세상이 언제 가는지 모르고 있지만, 선생님은 그러한 놀음을 지금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런 놀음 할 때 여러분들이 언제 동정해 줬어요? 동정 언제 해 줬나요? 동정 한번 해줘 봤어요? 저기 효원씨도 있지만 동정 못 해줬어요. 알아야지요. 이것은 얘기하고 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가르쳐 놓고 하게 안 돼 있어요. 왜 놓고 설명하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거라구요. 전부 다 가르쳐 주고 할 것 같으면 왜 못 하겠어요? 뭣 때문에 6천 년이 걸렸겠어요? 해놓고 설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알기를, 이런 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복귀역사는 지금까지 제물시대로부터 종의 시대, 자녀의 시대, 부모의 시대의 3단계로 쭉 거쳐 넘어오는데, 이렇게 넘어올 때까지…. 선생님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선생님 일대에서 그런 놀음 하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도 이제 앞으로 그렇게 쭉 세밀한 역사를 다 꾸밀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기 전에 역사를 꾸미게 될는지 모른다구요. 역사를 다 꾸며야 된다 그거예요. 이런 복귀적인 프로를 맞춰 나가려면 얼마나 복잡하냐 이거예요. 이걸 다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적인 기준을 완결짓는 동시에 외적인 기준을 완결해야 됩니다. 외적 기준을 먼저 완결지어 놓고야 비로소 내적 기준을 행동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자녀의 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전에 성지를 만들었지요? 성지를 만들었지요? 그리고 성지를 만들기 전에 성염을 만들었지요? 만물을 성별할 수 있는 성염을 만들고 성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성지를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뭘했느냐?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고한 자녀들에게 상을 준 것입니다. 그렇지요? 상을 준 것은 개인들에게가 아니예요. 그것은 역사적인 대표라구요.
여기에 한 남자를 중심삼고 세 여자에게 상을 줬습니다. 복귀역사노정에서 아담 하나를 찾기 위해서, 3시대에 남긴 해와의 한을 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운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전부 다 역사적인 프로를 맞추기 위한 놀음을 한 거예요, 전부 다. 책임을 끝까지…. 그러면 몇 개예요? 삼구 이십 칠(3×9=27) 이지요? 거기에 3수를 합해야 된단 말이예요. 전부 다 이 프로를 맞춘 거예요, 프로를.
지금까지 자녀들에게 상을 주는데 있어서 참부모의 이름을 가지고 상을 줘 봤어요? 참부모의 이름을 가지고 땅 위에 성지를 만들어 봤어요? 못 만들어 봤다구요. 성지가 없으니 자녀를 세울 수 없어요. 그렇지요? 그렇게 외적인 조건을 세워 가지고 전부 다 넘어와야 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기도하여 쭉 해 가지고 성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성지가 있으니 참다운 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이 자녀를 중심삼고 죽 연결되는 거라구요. 자녀를 중심삼고 죽 연결되게 될 때에…. 이 사람들은 전부 다 세상적으로 타락한 세상에서 자기 멋대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내적 기준이 완결될 수 있을 때는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됩니다. 자녀들을 세울 때까지는 어떻게 되느냐? 내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노년시대로부터,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중년시대, 청소년시대, 유년시대를 거쳐 가지고 유아시대까지 전부 내적으로 연결된 심정적 인연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 만민들이 지금까지 가정을 갖고 있으면서, 그 권내에 있는 자녀들이 모두 타락권내에 있었던 것이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이것을 했기 때문에, 이런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축복받은 자녀들이라도 비로소 나가서 쌍쌍이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내 세계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한 길을 가는 3년 기간인 것입니다.
이 3년 기간에 있어서 중요한 행사가 무엇이냐? 물론 행사 가운데 여러 행사가 있었겠지만 제일 기쁜 소식은 부모의 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의 날이 나올 때까지의 그 역사노정은 다 빼놓는 거예요, 응? 시간이 없어요. 첫째는 부모의 날을 가졌고, 둘째는 뭐예요? 「자녀의 날」 세째는 뭐예요? 세째는 뭐예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이 날을 결정짓고 넘어가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세계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물의 날이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알겠나요? 무슨 날? 「만물의 날」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을 거꾸로 올라와 가지고, 올라갈 때는 수습해 올라가 가지고 내려가는 겁니다. 반대로 올라왔지요, 이렇게? 반대로 올라왔지요, 복귀역사는? 반대로 올라왔지요? 「예」 땅 위에 실현시키는 데는 거꾸로 내려가는 겁니다. 부모가 있어야 자녀가 있지요. 자녀가 있어야 만물을 주관하지요. 본연의 세계가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복잡한 것은 얘기하지 않겠어요. 이것 하기 위해서…. 간단한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라는 것, 부모의 기준, 우리 인간 앞에 있어서 하늘과 땅,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부모라는 말이 얼마나 거룩한 말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것 알아요? 내가 아는 것만큼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여러분들이 사는 것들을 가만히 보면 형편이 무인지경이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나가다가는 앞으로 반드시 선생님하고 갈라질 때가 올 겁니다. 나는 그러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지금 소신은,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자체를 만들기 위해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자체를 위해서 대하기를 원하고 나온 것이 내 소원이요 아버지의 소원인데,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선 것을 볼 때 엉망진창이 아니냐? 한번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것이 뭐냐?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아버지여, 복귀역사가 소생 역사를 거쳐 장성, 완성 역사를 거쳐 나오지 않았습니까? 오늘 통일교회 식구들이 부족할지라도 부족타 마시옵소서. 첫째 번에 안 되면 둘째 번에 세울 수 있는 조건을 남겨 놓았습니다. 둘째 번에 안 되면 세째 번까지 세워 놓을 수 있는 조건을 남겨 놓았습니다. 세째 번까지 세워서 안 되면 주먹으로라도 만들어 놓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그런 기도를 한다구요. '말을 안 듣게 되면 무지무지한 법을 세워서라도 만들어 놓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을 안 들을 수 있어요? 어디 안 가겠으면 그만두라구. 가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인들,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등을 처먹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선생님이 다 행하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걸 시키기 전에 전부 다 이런 놀음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생애노정은 전부 다 거부하는 것입니다. 태어난 날도 거부하고, 잔칫날도 거부하고, 좋은 날은 다 거부하는 거예요. 남들은 생일잔치하고 그럴 때 선생님은 생일날 3년 동안 금식했지요? 「예」 좋은 것 갖다 주면 그걸 다 내놓고 나쁜 것 먹는 생활을 해왔다는 거예요. 전부 다 행하고 한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도 입을 벌리고 항의를 못 할 것입니다. 걸려서 허덕거리게 되어 있지. '세계적인 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민족적인 조건 못 세우겠어?' 하고 기합을 주고, 주먹을 쥐고 때려도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는 거거든요, 그건.
이제 우리가 부모의 날을 가졌고 자녀의 날을 가졌으니 만물의 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만물까지도 탄식권 내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자녀의 날 이전에 종의 날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겠어요? 머리 좋은 사람은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자, 그러면 종의 날은 어디에 있느냐? 종의 날은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그건 선생님이 영계에 가면…. 그걸 여기서 만들어 놓으면 지금 복귀하는 도상에 있어서 종의 계급이 생기니까 자녀의 자리가 막혀 버린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렇다면 만물의 날이 있는 데 왜 종의 날이 없습니까? 하고 항의할 자가 있어요? 그것을 만들어 놓으면 막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상에 자녀복귀 완성을 못 이루겠기 때문에 그것을 영계에 가서 처리할 문제로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다 이거예요. 머리 좋은 사람들은 그걸 물어 볼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날을 빼놓는 것은 그래서 빼놓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버지여, 나는 이제 이러한 사람입니다' 하고 여러분이 변명할 수 있는 특권이 어디서 생겨났느냐? '나는 부모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만물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부모와 자녀와 만물을 잃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 하나님을 나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럴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자기를 반성해야 됩니다.
내가 부모를 모시는 날을 위주로 하여, 모시는 부모를 대신하여 부모의 날을 기준삼은 생활적인 기준을 360날을 통하여 연속시켜야 되겠습니다. 자녀의 날을 대신한 자녀로서는 형제인 우리들이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자녀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그날의 기쁨을 나는 사시장철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만물을 주관해야 할 주관적인 3대 축복권 내에 들어와 있으니 만물을 주관하는 데 있어서 심정으로 주관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사랑으로 주관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날을 가질 수 있으니 이제 이 새 날을 마음으로,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가 될진대 틀림없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는 특권을 부여해 주는 시대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이런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3년 동안에 해야 할 것은 역사적인 전반적인 내용을 완결지어 넘어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두 가지 남았다고 그랬지요? 요것이 그런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3년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만물의 날이라는 것을 책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똑똑히 들으라구요, 여러분들.
그러면 이 만물의 날은 어떻게 되느냐? 이날을 아버지 앞에 드릴 때가 됐으니 여러분이 이 만물을 아버지 앞에 드리는 겁니다. 알겠나요? 「예」 '아버지여,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없습니다. 돈은 없어 일전 한푼을 갖다 놓았지만 이 일전 한푼은 천지의 대신이오니, 아버지여, 이것과 내 실체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고 드리는 날이 언제냐 이거예요. 누구한테? 자식이 되었으니 부모를 통하여 아버지 앞에. 알겠나요? 이것이 세계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때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세 나라가 회담해 가지고 일본과 미국의 식구들이 여기에 가담하려고 하고 있단 말이예요. 이런 역사를 지금 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나가던 세상의 모든 것을, 이러한 거룩한 뜻 앞에 만물을 앞에 놓고 아버지 앞에 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끝날이 되었으니 내 생애, 일생에 탕감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선의 역사와 죄악의 역사가 교체되는 하나의 교차로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중심삼고 부모의 실체와 자녀의 실체와 만물의 실체를 부여안고 '나는 여기와 더불어 생사를 결정 지었으니 사탄세계가 제아무리 그래도 떼어 갈 수 없다'는 신념을 기반으로 하여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것을 하고 난 후에 통일교회에 만물축복시대가 오리라고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깨깨 고생해야 돼요. 깨깨 고생해야 된다구요. 그래 지금까지 선생님이 사업 같은 것을 하더라도 돈벌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예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해도, 망하더라도 다…. 우리가 속임도 당했거든요. 속기도 했거든요. 그 방식대로 사탄세계를 녹여야 된다 이거예요, 이제. 때만 되라 이겁니다. 전부 다 그런 재료, 탕감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매도 맞고, 구박도 당하고 했는데, 당한 대로 갚아 줄 것입니다. 당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이거예요. 두고 보자 이거예요.
여러분이 생전에 이런 나를 눈을 가지고 볼 수 있고, 이런 설명을 귀를 가지고 들을 수 있고, 마음으로 느껴 가지고 하늘땅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은 사탄도 못한 놀음입니다. 오늘날 인간 세계에 있어서 우리 선조가 제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못한 놀음이예요. 예수가 이 놀음을 하고 싶었지만 못한 놀음이예요. 설명하고 싶어도 못한 놀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실체를 가지고 이 혜택권 내에서 이걸 듣고, 이걸 알고, 그래야 되겠다는 정당한 사실로서 의심없이, 필연적인 사실이요, 원칙적인 사실로서 내 몸과 마음에 긍정할 수 있는 자신이 돼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이냐 이거예요.
그렇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이 '나' 가지고 되겠나요? 곡절이 많아야 됩니다. 이런 말을 해도 안 그럴 수 없다는, 인정을 하고 긍정할 수 있는 재료가 엄청나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보면 눈들이 전부 다 깍정이처럼 생겼어요, 통일교 패들은. 욕을 들어도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집에 가 가지고 자기 남편이 '요 간나!' 한마디만 해도 '야, 이놈' 해 가지고 싸움들을 잘할 패들예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그런 게 아니예요. 형편없이 가만히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되는 거라구요. '이거 뒈져라' 하면 '예. 뒈져야지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웃음) '망해라' 하면 '예. 망해야지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절대 순종, 절대 복종, 간단한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갈 길은 간단합니다. 원리를 알아 가지고 부모의 날을 존중하고…. 부모의 날은 역사적인 날이예요. 이걸 중심삼고, 이러한 기반 위에 서 가지고 천주적인 사명을 완결할 수 있는 승리적인 발판을 찾았다는 자신을 가지고 저나라에 가게 되면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심) 죽어 보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틀림없이 천당에 가 가지고 대환영을 받게 돼 있다 이거예요. 기도해 보라구요, 거짓말인가. 선생님 말이 거짓말인가 기도했다가 전부 다 깡패라면 어떻게 되겠나요? 자신없이 그런 말 하겠어요? 기도해 보라구요. 그래서 우리 앞에 복된 새날을 맞이할 수 있게끔…. 알겠어요? 「예」
세상에서 제일 기념할 날은 부모의 날입니다. 그다음에는 자녀의 날이고, 그다음에는 만물의 날입니다. 이때는 여러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해야 돼요. 요건 지금 대번에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죽 만물의 기념의 날에는 정성을 다 들여 가지고 복귀적인 심정을 날마다 더 두터이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부터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전부가…. 선생님도 이 교회가 무슨 통일교회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것이예요, 아버지 것. 명부를 써 가지고 소속을 하나님 앞에 전부 다 보고해야 된 단 말이예요.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 이게 누구의 나라예요? 3천만 민족의 나라예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땅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예요. 미국이 무슨 뭐 케네디 대통령이 주관하는 나라예요? 하나님이 주관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 앞에, 만물도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주관권 내에, 그 분의 심정권 내에 들어가는 것이 만물의 소원이요, 인류의 소원이요,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그 소원성사를 해야만이 해원성사를 합니다. 그 해원성사를 완결하려니 이런 승리적인 싸움터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해원할 수 있는 기준을, 한 중심을 통해서 세계적인 흑암세계에 닦아 놓은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그냥 그대로 그것을 인계받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승리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까 맨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서, 흑암세계와 하늘 앞에 사명을 맡아 가지고 책임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준을 붙들고 나가면 나는 힘이 없지만 이것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걸 하기 위해서는 사위기대 복귀가 전부 다 나오지요? 요 심정적 일치, 이러한 외적인 나와 전부 다 맞춰 가지고 이렇게 딱 끌어 놓은 것을 3년 기간에 뒤넘이치는 것을 다 설명해야 되는 건데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만큼 이런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이 이번에 그런…. 그런 거 알죠, 여러분들? 알죠? 「예」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이는데는 돈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비록 한푼일지라도 수많은 선지자들이 드리던 제물보다 더 귀한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마음과 정성을 가지고 드려야 된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여러분이 모든 것을 드리는 대신…. 사실 앞으로는 전부 다 드리는 거예요, 전부 다. 자,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지금 조건 세우고 넘어가는 때란 말이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것을 알고 기도 많이 하고 이런 날에 참석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대략 알 거라구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우리 세계가 내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기준에 서서 '나는 주님 대신이요, 아버지 대신이요, 내 앞에는 사탄이 절대 침범 못 한다. 아무리 큰 핍박과 시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늘 앞에 있어서 다시 돌아서는 일이 없다. 아무리 역설적인 반대의 생활무대가 벌어지고 내 앞에 무엇이 벌어져도 나는 동하지 않는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이 심정을 통하여 골고다의 산정을 넘어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는 확신을 갖고, 그 결정적인 기준으로 행동을 하면서 움직여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선생님이 명령하는 그 선생님 명령권 내에서 선생님의 혜택을 그냥 그대로 상속받아 가지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 이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지요? 이날이 없으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망하는 거예요. 복귀시대에 있어서, 여러분들 이번 3년 전도기간에 있어서는 복중에 있는 애기들과 연결시켜 가지고 더불어 고생을 하는 거예요.
이 3년 간은 여자의 시대지요? 이제부터는 통일교회에 여자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요. 사탄세계에 가서 빼앗아 와야 돼요. '야, 통일교회에 잘난 남자 있다'는 걸 알면 예수를 안 믿거든요. 조금만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에 잘난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 여자들이 입을 벌리고 '허어, 통일교회 총각들하고 결혼하면 좋겠다' 하게 된다구요. 그럴 때 '야, 너 시집 보내 주마' 하면 입이 커져 가지고 이렇게 됩니다. 통일교회 남자들을 얻으면 좋거든요. 한번 결혼하면 그만이거든요. 마지막이란 말이예요. 그다음에 결혼 명사는 영원히 몰라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상에는 결혼 역사가 많지요? (웃으심) 이 통일교회 남자들 앞에 색씨들 많이 생겨날 거예요. 그 대신 여러분은 거룩한 남자가 되란 말이예요. 응? 「예」
이제 통일교회에 늙은이들은 못 들어와요.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는 과부가 많다고 소문났어요.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이제부터는 과부, 늙은이들은 들어오지 말지어다. (웃음) 제일 곤란한 사람입니다. 골치예요, 골치. 또, 들어와서 일을 해요? 못 합니다.
지금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 보란 말이예요. '이제는 2세시대다'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지방에 내려가도 24세 이하가 85퍼센트에서 90퍼센트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아주 싱싱한, 생선으로 말하면 펄펄 뛰는 생선들이거든요. 그걸 볼 때, 욕을 먹고 있는 통일교회 선생님이지만, 기분이 좋다구요. '음, 욕하던 것들 입이 그저 넓어져 가지고 너불거리기를 잘하는구나. 그 입이 항복이라는 두 글자 앞에 얼마나 너불거리나 좀 보자' 하고 있다구요.
앞으로는 선생님이 모험을 많이 할 거예요. 선생님이 사실 모험하기를 좋아하거든요. 지금까지 영계와 얼마나 투쟁을 많이 했는지 알아요? 이 땅 위에서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제일 졸장부가 됐어요.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앉아서만 일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가게 되면 아주 모험을 많이 할 때가 옵니다. 싸움을 하게 될 때가 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렇게 알고, 젊은이들이 그런 배포를 가지고 가슴을 활짝 열어 놓고 마음의 포대를 동원해야 돼요. 무슨 포대? 원자탄? 오늘 밤에 뭘 쏘나요, 뭘? 인공위성을 쏘나요, 뭘 쏘나요? (웃음) 오늘밤에 쏜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모르지만, 포와 같이 한번 터뜨려 놓으면 세계 대우주를 자기 무대로 삼아 가지고 날아갈 수 있는 기지를 만들어야 됩니다, 이 포대 가지고서.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심)
그런 배포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젊은 녀석들, 그저 잘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교 다니는 사람들, 가만 보면 정신들이 희미해요. 내가 척 보면 희미하다구요. 이 녀석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 놓나, 안 만들어 놓나 보라구요. 조금만 지나 보라구요. 이제 돈만 생기면…. 축복시대가 오게 되면 돈이 많을 거라구요, 통일교회 패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고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 선생님이 암만 거짓말을 해도 거짓말이라고 할래야 할 수 없는 사실을 여러분이 많이 알 거예요. 슬쩍슬쩍 한 얘기가 슬쩍슬쩍 다 들어맞거든요. (웃음) 그저 책임 없이 한 말 같지만 그거 왜 그런지 선생님이 말하는 걸 세상천지가 책임을 지고 그렇게 맞춰 주거든요. 그렇게 된 거예요. 두고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들이 그렇게 알고 멋지게, 힘있게, 놀랍게 싸워야 하고 승리해야 할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여자들,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웃음) 뭘해요? 그래 가지고 할 게 뭐예요? 이게 할 게 뭐냐구요. (웃음)
여기 통일교회 할머니의 입들은 주름살이 잡히면 안 됩니다. 보면 나이가 많아 주름살이 잡혀 가지고…. 석온씨 할머니를 보더라도 그래요. 이봐요! 입이 딱 벌어져 가지고 여러분들 보기에…. (흉내를 내시면서 말씀하심) 정말이예요. 입이 늙어서…. 아마 여자들은 아기 낳느라고 힘을 써서 그런지 이렇게 앉아서 대답도 안 해요. (웃으심) 그거 왜 대답이 없어요? 멋지고 힘차게 담대히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될래요, 안 될래요? 「될래요」 될래요, 안 될래요? 「되렵니다」 어디 되나 보자구요. (웃음) 해봐라 이거예요, 여러분의 집부터.
조금만 지나가면, 이제는 여러분 남편이 안 믿으면 그 남편 뿌리를 빼라구요. 그렇다고 깔고 앉아 가지고 뭐 하라는 게 아닙니다. (웃음) 수단으로 안 되거든 정성으로 하고, 정성으로 안 되거든 투쟁방법을 따라 금식투쟁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자가 남편 하나쯤 굴복시키는 것은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지금까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하나님은 미약하다면 최고로 미약하신 분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예요. (웃으심) 시험을 하는 데도 얼마나 하는지 몰라요. 내가 무슨 기도를 하게 된다면 맨 처음에는 그것을 줄 것같이 귀뜸을 띄워 놓고는 척 달라붙어 기도하게 된다면 본체만체 하세요.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 하는 하나님이예요. 그런 놀음이 많다구요. 그렇지만 별수 있어요? 딱 삼각작전을 하거든요. 여기 가도 걸리고 저기 가도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하겠다 이거예요. 걸려드는 거거든요, 그거.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통일교회 원리를 하나님이 전부 다 보자기 풀어다가 준 것 같아요? 그건 6천 년 만에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세계의 꼭대기를 딛고 보니 다 걸리거든요. 이걸 걸어 놓고 뒤넘이치는 거예요. '당신이 이런 아들딸 찾지요? 옛날에 이러한 선조를 만들었었죠?' 하고 물으면 '그렇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러니까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걸 갖다 이렇게 하면 되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한다구요. 그러면 대답해야지 별수 있어요? 그래 가지고 이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보면 '아, 선생님은 누구만 알아주고, 뭐 어떻고 어떻고. 저 유효원이만 알아주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한다구요. 저 효원씨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연구하란 말이예요. '아, 선생님이 뭘 좋아하나. 음, 이런 말을 했고, 이런 원리를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 선생님이 주장하는 원리의 제일 대목은 이거로구나' 해 가지고 딱 붙들고 '이렇소, 안 이렇소?' 하라는 거예요. 대답은 벌써 다 나와 있는데, '그렇다' 하면 줬지 뭐,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하겠습니다' 하라구요. 그러면 되는게 아니냔 말이예요. 죽고 사는 게 문제예요? 그것이 마지막 길이고, 그것이 정말 인생으로서 역사를 걸어 놓고 한 번밖에 없는 최후의 싸움을 통해서 욕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는, 거 배포가 그만하면 한번 해볼 만한 놀음이거든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선생님이 그래요. 지금부터는 선생님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려고 그래요. 그런 사람들이 나올까봐. 그건 왜 그러려고 하느냐? 그건 여러분들에게 설명 안 해줄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만날래야 만날 수 없는 때가 올지 모릅니다. 전혀 안 만나 주려고 그래요. 뜻을 대신해서 반드시 실적을 가지고 와라 이거예요.
그래서 이제 삼천만 민족이 다 통일교회로 가자고 소리칠 때는 선생님이 여기 통일교회에 없을지 모릅니다. 또, 미국 사람이 미국에서 야단하게 되면 선생님이 미국에 없을지 몰라요. 세계를 어떻게 해야 빨리 우려먹겠느냐? 그걸 선생님이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이 세계를 해방해야 되겠습니다.
보라구요. 우리의 이 이념을 갖다 먹이면 되느냐, 안 되느냐? 틀림없이 된단 말이예요. 일본에서도 지금 나무아미타불하던 녀석들이 사흘 나흘 이내에 전부 다 하나님이니 무슨 참부모니 해 가지고 '아─멘─'하고 있다구요. (웃으심) 틀림없거든요.
그걸 생각할 때 여러분들도 얼마나 참…. 밤잠이 뭐예요? 잠자기가 아깝다고 뛰쳐나가서 막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그저 가슴에 불붙듯 부풀어 오르고 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힘있게, 멋지게, 담대하게, 굳세게, 용맹하게 싸워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싸울 만해요, 안 해요? 「합니다」 해요, 안 해요? 「합니다」 싸울 만하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내리자구요.
이게 뭐예요, 이게. (시늉을 하시며 말씀하심)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사탄 사촌쯤 될 것입니다. (웃음) 영문도 모르고 눈을 껌벅껌벅하는 패들도 있구만. 그런 패는 사탄 직계 아들쯤 되고 또 이러고 있는 사람은 사탄 아내쯤 되는 거지요. (웃음)
이럴 때 선생님이 왜 여러분에게 다짐시키느냐 하면 말이지요, 선생님이 책임 안 지려고 그런다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언제든지 다짐하거든요. 그럼 왜 이렇게 말하고 다짐을 하느냐? 다짐을 안 하면 선생님이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다짐을 받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 책임을 졌으니까 여러분도 다 맡으라구요. 약속했어요? 「예」
그러면 그만하고 노래 하나 하고 끝마치자구요. 여러분 저 하늘의 용사가 있지요, 하늘의 용사? 첫째 번은? 심정. 둘째 번은? 「인격」 세째 번은? 「진리」 네째 번은? 「인연」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걸 생각 하면서….
첫째는 뭐냐?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그 우리의 본향 땅이 벌어져야만 그다음에는 '행복의 터전 위에서 길이 살리라'예요.
여러분들이 심정을 묶어 가지고 뭘할 것이냐? 본향 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본향 땅에 찾아 들어가면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자기가 안식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본향 땅을 잃어 버렸어요. 심정의 본향 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찾아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심정이 없이는 안 돼요. 이 심정은 민족을 위한 심정이요, 세계를 위한 심정이요, 천주를 위한 심정입니다. 전부 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 둘째 번은?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본래 타락한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무한한 인격을 갖춰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빛을 만물세계 앞에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어야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모든 피조만물에 있어서 빛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빛의 상징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는 생명이? 「솟구치는」 여기에서 우리가 움직이면 생명의 원천이 되는 거예요. 모든 피조만물의 생명의 원천이예요. 생명이 솟구치는 무엇? 「본연의 모습」 본연의 모습.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모습이예요. 그다음에는? '소망의 가치로서 꽃피우리라'
그럼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세계에서, 창조목적으로서 하나님이 소망하고 지었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만물세계의 소망의 가치를 가진, 소망의 전체적인 가치를 갖춘 그 자체로서 향기를 품은 자가 되면, 이게 하나님이 바라는 인격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다음에 세째는? 「질서의 기틀 위에…」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오늘날 이 땅 위에 진리적인 질서가 있나요? 원리적인 질서가 없어요. 질서가 있어요? 다 심판받을 질서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주장하는 것은 진리를 위주로 한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질서의 기틀이 잡히면 거기에 참이 새워지고, 비로소 조직을 중심삼고 그 터전 위에 참이 형성되는 거예요.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그다음에는? 영원을 자랑하는 뭐예요?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이러한 진리적인 기틀 위에 세워진 기준이 벌어져야만 영원을 약속할 수 있는 불변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그런 데에 세워진 그것은 아무리 작더라도 영원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적인 하루와 생활이라도 이 하루의 생활이 영원과 관계를 맺는 거예요. 그런 질서의 기틀 위에 우리의 한 조각 한 조각의 행동이라는 것은 전체, 혹은 영원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전도하는 그 하루의 피땀 흘리며 수고한 모든 것은 영원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그다음에는, 여러분들이 한 사람씩 전부 다 삼천리 반도에 나가 전도하고 그럴 때, 그 가치가 비로소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는 거예요? '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 이렇게 된 참된 그 기준이, 이렇게 인간이 가야 된다는 그 참된 기준이 점점점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드러나고, 가정적으로 드러나고, 국가적으로 드러나 가지고 통일교회가 나가는 이 진리의 푯대. 이것이 비로소 인간이 가야 할 푯대가 되어 가지고, 어떻게 된다구요? 「양양한…」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비로소 길이길이 계속되는 선한 날, 하루하루의 생활을 맞는 것입니다. 선한 날을 맞는 데는 전체를 맞는 것이 아니라 한날, 하루하루를 맞아야 돼요. 선한 날을 비로소 단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활을 거룩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돼 있지요? 그다음에는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입니다. 용사이니까, 이러한 진리를 가졌으니 우리는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4절은 인연이예요. 동방의 무엇? 「찬란한 문화」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무엇이 찬란한 문화예요? 통일교회는 고통의 문화요 비참한 문화인데 찬란하긴 뭣이 찬란한 거예요?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 그거 참 매우 찬란하다. (웃음) 뭣이 찬란한 거예요? 동방에 밝아 오긴 뭣이 밝아 와요? 깜깜해 왔지요. (웃으심) 통일교회 성가보다도 동방이 얼마나 깜깜해요? '아 동방이 망하려고 통일교회가 나왔다'고 그러잖아요?
세상은 그렇지만 하늘은 밝아 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동방이 깜깜한 것 같지만 하늘적으로 보면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요, 새로운 문화입니다. 이 문화는 무슨 문화냐하면 심정문화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골동품 문화가 아니예요. 하나님 가운데 남아져 있는 영원한 골동품 심정문화, 그런 것입니다. 그런 심정문화라구요. 동방에 밝아 오는 무슨 문화? 「찬란한 문화」 이 찬란한 문화는 심정의 세계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심정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심정의 세계가 되어야만 사랑의 세계, 행복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뭣하는 것이냐? 온 누리, 온 누리가 뭐예요? 여러분 집안, 가정들 많지요? 온 누리, 전부예요, 전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생활관이 돈을 벌어도 가정을 위해 번다는 것들은 벼락맞아야 돼요, 벼락, 벼락맞아라 이거예요. 나라를 위해 버는 거예요. 세계를 버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버는 거예요. 사탄을 잡기 위해 버는 거라구요. 먹는 것도 자기의 배를 위해 먹는 게 아니예요. 이걸 다 하기 위해서 먹어야 됩니다.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생각해 봐요. 굶고 앉아 있어도 왜 굶느냐? 세 끼 네 끼, 사흘 나흘이 되도록 배를 곯고 앉아 있어도 왜 이렇게 굶느냐? '오, 거룩한.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 굶는다. 만민은 내 배고픈 곳에 다 들어와 있구나' 아주 그거 멋지거든요. (웃으심) 그렇게 사는 거예요, 우리들은. 없는 것 같지만 있고, 망한 것 같지만 흥하고, 벌거벗은 것 같지만 입었습니다. 벌거벗었지만 하늘땅의 옷을 입었지 않으냐 이거예요. 없는 것 같지만 있고, 불쌍한 것 같지만 아주 행복하고 그렇다는 거예요. 없는 게 없잖아요, 들춰 보면. 화신 백화점이 없겠나요, 뉴욕 도시가 없겠나요? 다 있어요.
그렇잖아요? 아까 말한 그것이 얼마나 많느냐 말이예요. 그만하면 부자입니다. 밑천은, 문서는 다 갖고 있거든요. (웃으심) 문서는, 장부는 다 되어 있단 말이예요. 사실 수습하는 일수가 좀 걸려서 그렇지. 이제 결산을 볼 때 그 기간이 몇 년 걸릴지 모른다구요. 하도 큰 문제니 결산 보는 데 몇 년 걸릴까봐 그렇지. 다 줬어요. 사실 그렇다구요. 부자란 말이예요. 요것만 하면 된다구요.
여러분, 이북에서 올 때 말이지요, 땅 문서장을 하나 갖고 온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이북에 있는 것은 내 땅!'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문서장은 가지고 있다구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부자예요? 그렇다구요. 통일교회가 지금 너무 훌륭해요, 지금은. 통일교회가 빛이 나려면 앉으면 요만큼…. (행동을 하시면서 말씀하심) 들어올 때는 벌렁벌렁 기어들어와 가지고 '아이고 좋아라' 하고 그저 춤을 추는 거예요. 춤을 출 때는 뭐 종적인 춤이면 어떻고 횡적인 춤이면 어때요? (웃음)
그래 가지고 살신성인해서 춤추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더 기뻐하게 되면 얼마나 좋아하겠나 말이예요. 그건 세계 제일일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런 걸 고대한다 이 말입니다. 사실은 전부 다 이런 것을…. 이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 교회가 좀더 처량하고 좀더 비참했더라면 잘났다는 녀석들은 하나도 안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데 다 찾아 기어들어오는 것을 보면 고맙지 않지만 고마운 것 같아요. (웃음)
찬란한 문화, 그 문화는 온 누리에 뭐예요? 「그 빛 속에…」 이 찬란한 빛 속에 뭣이 되는 거예요? 「형제가 되어…」 깜둥이도 내 형님, 깜둥이도 내 남편, 깜둥이도 내 아내, 깜둥이도 내 어머니. (웃음) 전부 다 좋은 것만 갖다 대지 말라구요. 그건 사탄이가 되는 거예요, 사탄이. 좋은 것을 바라고 욕심을 품게 되면 사탄이가 들어옵니다. 여자들한테 그런 욕심이 많아요. 좋은 것을 먼저 갖다 대면 사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쁜 것부터 내 것이라고 해야 됩니다.
부자가 되려면 한꺼번에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맨 처음에는 무엇부터 들고 들어가야 되느냐 하면 말이지요, 맨 처음에는 장독부터 들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제일 나쁜 것부터. '세상에서, 한국에서 제일 나쁜 것의 영원한 주인은 통일교도다' 하면 사탄까지도 '그렇습니다' 하고, 과거의 선조들도 그러고, 앞으로 오는 사람도 '자고 이래 역사가 생겨난 이후에 한국에서 제일 나쁜 주인공은 통일교회패다' 할 때, 그 나쁜것의 주인공이 주인 노릇을 잘하게 된다면 좋은 주인이 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올라가 가지고 좋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좋은 것까지도 통일교회가 주인이다' 할 때는, 그때는 딴 사람이 주인으로 생겨나지 않아요. 알겠어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 일단은 제일 나쁜 것을 영원히 내 것 만들고 싶어한다구요.
눈물은 무엇을 위하여? 눈물은 무엇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땀은 무엇을 위하여? 「땅을 위하여」 피는 무엇을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아주 근사하고도 멋지지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멋진가. 이래 가지고 이것이 전부 다 얼크러져 가지고 그렇게 될 때는, 이걸 한꺼번에 이리 갖다 놓으면 세계가 왔지 별수 있어요? 얼마나 멋지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만 말고 나쁜 것까지도 비춰 줘야 됩니다.
온 누리 그 빛 속에 원수가 되어? 「형제가 되어」 무엇? 「형제가 되어」 뭣이? 「형제가 되어」 형제가 되었어요? 대답할 줄 몰라요? 왜 대답을 못 하는 거예요. 「대답할 참입니다」 (웃음) 대답할 참이라고 했으니 참 만큼 대접해야 되겠구만. 형제가 되어야 돼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교회에 가 가지고, 지금 지방에 나가서 고생하고 다 그러고 있다구요.
이번에는 선생님이 지구장을 모이라고 해 가지고 '야, 이놈들아! 너희들 축복받은 패들 좀 고생 시켜라! 애기들을 때어 놓고 나가게 해라. 굶겨라. 고생을 가르쳐라' 했어요. 그렇지만 어디 제일 귀한 것을 팔아 먹는 녀석이 생겨나나 두고 보자 이거예요. 축복해 줄 때, 성혼식 때 반지들 해준 것 끼고 앉아서도 굶어야 됩니다. 세상 같으면 이것을 어디 전당포에 갖다 팔아서 뭘할 거예요. 어디 그런 녀석들 나오나 보자. (웃으심)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굶고 죽으라고 해도 전부 다 성경책 팔아먹을 수 없습니다. 성경책 팔아서 밥 사먹을래요? 그게 승리자예요? 오늘 날 축복받은 그 조건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런 녀석들이 나오나 보자 하고 지금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잘 걸렸다 이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만민의 본이 될 수 있는,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결실 기준을 맞이해야 됩니다. 한두 사람 망해서 지옥 아니라 영원한 무저갱에 들어가도 모른단 말이예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새롭게 될 수 있다면 그 놀음을 해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전부 다 제물이예요. 제물로 선생님이 축복을 해줬으면 그렇게 해라 이거예요. 책임 못 하면 제물로 미흡하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을 다 쳐 버리고 만민을 속죄해 주는 데에 쓰겠다 이거예요. 한 구덩이에 갖다 전부 다 쓸어 넣더라도 선생님은 뭐 눈 깜짝도 안 해요. 슬퍼하긴 뭘 슬퍼해요. 울지도 않아요. 선생님은 그렇단 말이예요, 사실. 이제 두고 보라구요. 뜻 가운데서 참으로 충성 다하던 사람들이 죽더라도 그가 공적인 면에서 죽었다면 모르지만 사적인 면에서는 눈물 하나도 안 흘린다구요.
그러니까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복귀도상에서 형제가 안 되면 부모를 못 찾는 것입니다, 형제가. 그렇게 돼 있지요? 형제가 되어야만,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야만 비로소 바라신 선의 부모, 참부모를 모실 수 있고 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겁니다. '선의 부모 길이 모시어' 그다음에는? 「정녕코 이루리라」 '정녕코 이루리라'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그다음에? 힘차게 그 세계로 뭐라구요? 「용진하리라」 용진한다는 것은 편안히 앉아 가는 길이예요? 어떤 길이예요? 인류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참부모를 모시고 참형제를 맞는데 있어서의 싸움이예요, 싸움. 요걸 무찌르기 위해 사탄과 대결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때려부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용진하는 것입니다. 용진은 뭐예요? 반격을 해 가지고 적진을 향하여 진격하는 거예요. 진격하는데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다리야' 해서 돼요? 다리가 부러지든 어떻든 모르는 것입니다. 다리가 다 뼈다귀 몽치가 되어도 모르는 거예요. 가는 거라구요. 용진이예요. 이것을 해야만 하늘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자, 그러니까 한번 불러 보자구요. 불러 볼까요? 「예」 불러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그만두고. 이왕에 부를 바에는 하나님이 감동하게끔 부르자구요. 그렇지 않게 부를 사람들은 그만두라구요. ('하늘의 용사' 부름)
아버님, 한많은 복귀의 길이 이렇듯 복잡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러나 복잡한 길을 다 지내고 아버지의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고개를 남기고 밟아 오고 싸워 오던 저희들이 이제는 소망의 날을 찬양할 수 있는 때가 가까워 온다는 것을 은연한 가운데 느끼게 되었사옵니다.
이 모두가 저희들이 수고한 바가 아니었사옵고, 남 모르는 가운데 무한한 수고의 터전 위에 저희들을 불러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노고의 연고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들 앞에 부모의 날을 주셨사옵고, 자녀의 날을 주셨사옵고, 만물을 지을 수 있는, 아버지를 중심삼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하나의 가정을 위주로 한 하나의 종족과 민족과 세계와 천주를 대신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이 놀라우신 인연권 내에 저희들을 세우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이 인연이 나를 끌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한탄하는 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가 이 인연을 수습할 수 있고, 이 인연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책임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러한 날들이 필요했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리하여 억천만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요, 만물의 원수요, 천상의 원수를 갚고 이 원수의 항서를 받아 아버지 앞에 돌려드려야 할 아들딸의 책임을 감당해야 될 것이 저희들의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잃어버린 모든 만물권 내에 있어서 세워 줘야 할 전체적인 내용을 스스로 복귀시키는 데 있어서 저희들이 책임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안식시키고, 모든 슬픔의 역사는 우리들 시대에 있어서 횡적인 기준 위에 인간들끼리 책임지고 종적인 기준에서 영광만을 돌려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3년노정의 마지막 고비를 향하여 넘어가는 이때에 있어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이 여기에 하나가 되게 하시옵고, 심정이 있는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승리의 결정적인 기반을 닦으시어 아버지의 영광의 영원한 기준 위에 승리적인 영광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위하여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오늘도 싸우고 있사옵고, 이 시간에도 당신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사오니, 이 호소하는 전체적인 내용의 심정을 친히 들으시옵고 승리의 성사의 한날을 전체 뜻 앞에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해외에 널려 있는 모든 당신의 아들딸 위에도 같은 은사의 권내에서 보호하여 주옵고, 그 모진 싸움 앞에 지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최후의 영광의 한날을 같이 맞을 때까지 끝까지 참아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이 시간까지 같이하여 주심을 감사하오며, 돌아가는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저희들이 각기 다시 한 번 새로운 결심을 가져, 다시 새로이 수습된 기반 위에 영광을 대신하여 다시 하늘의 승리적인 용사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계획하신 승리의 영광만이 온 천주간에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 중에 이 3년 기간에 고생한 사람도 있고, 혹은 고생하려고 해도 고생의 자리를 찾지 못해서 애쓴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 여러 가지 사정의 내용을 가지고 거쳐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는 미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특별히 지성을 다하고 요 3년 기간을 마치기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만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특별수련회라는 과정에 참석했는데, 이번에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런 모임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천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크나큰 의의가 있지만서도, 이제부터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여러분들을 대해서 하늘이 축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금년에 3년의 마지막으로서 이런 모임을 갖는 것도 물론 일면의 뜻이 있지만, 앞으로 전체 앞에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허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축복받은 식구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식구들은 특정한 하나의 어떤 프로에 의해 제정된 그 코스를 결정짓기 위해서 한다는 것보다도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한다는 것을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36가정과 72가정은 프로에 의해서 장성기준까지의 어떠한 사명적인 책임을 완결지어야 할 천적인 내용이 있지만, 이 완성시대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전체를 대표해 평면적인 기준에서 넓혀 나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들은 앞으로 특정한 무슨 책임적인 분야에 서지 않은 입장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만일에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 중에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건 어차피 뜻 앞에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비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있게 되면 이제부터 축복받는 특별한 사람들을 보충할 수 있는 입장에도 세워 놓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알고, 특별히 천적인 어떠한 프로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다는 생각은 갖지 않아도 좋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이러한 것을 전체적으로 해서….
앞으로 사람이 많아지면 일년에 몇 번이라도 할지 모릅니다. 이래 가지고 천적인 기반을, 즉 민족이라든가 종족적인 기반을 넓혀야 할 하늘의 사명이 있는 연고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축복해 주는 것임을 먼저 선생님과 여러분이 약속을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은, 여기에 '제17회 전국 전도사 특별 수련회'라고 돼 있지만, 여러분이 온 목적은 전도사 수련회가 아닙니다. 목적은 뭐냐? 남자 여자가 이제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남자가 어떠하고 여자가 어떠한가의 내적인 세계를 분석하기 위한 내용을 여기에서 약속짓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패들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신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들에게 여기에서의 21일 기간은 하나의 씨름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씨름하는 기간이예요. 옛날에 야곱은 얍복강에서 천사를 중심삼고 씨름했지만, 여러분들은 가냘픈 여자지만 여자로서 이제 남자를 대해서도 씨름해야 합니다. 또 남자는 제아무리 굳세다 하더라도 심정을 걸어 놓고 여자와 씨름해서 승패를 겨뤄야 할 운명권 내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 복귀역사를 한번 쭉 회고해 보면 모든 전부가 싸움입니다.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승패를 결해 나오는 싸움입니다. 구약시대를 보게 되면 제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해 나왔습니다. 그 싸움이 내용에 있어서 다를 뿐이지 그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놓고 하나님과 사탄이 싸웠던 동시에 인간과 제물이 싸웠습니다. 또, 인간과 제물이 합해져서 하나님과 싸웠습니다. 그렇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달랐지만 같은 모양을 거쳐서 제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해 나왔고, 또 예수님시대에 있어서는 복음이면 복음, 말씀이면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쭉 나오면서, 서로 싸우면서 승패를 결해 가지고…. 최종적 싸움 문제가 어디에 가서 종착이 되느냐? 예수님도 그 종착점을 어디로 두었느냐 하면 신랑 신부라는 거룩한 명사에 두었습니다. 이 명사를 걸어 놓고 그 종착점을 지어 놓았습니다. 또, 예수님도 물론 그러하지만 지금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 지금까지 복귀의 혜택을 지상을 통해 받아야 할 운명에 있는 그들도 역시 자기들이 최후의 승패를 결해야 할 싸움의 종착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면 그들도 역시 상대이념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성적인 성을 지니고 태어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으로서 상대적인 목적을 완결지어 하늘, 즉 주체의 성상체를 대신할 수 있는 지상의 기대를 완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창조원리를 봐도 그렇고 창조이상의 목적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 기반을 달성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준이 완결되기 전에 이상적인 출발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창조목적의 기준이 심정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인연이 돼 있는 걸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는 쭉 흘러 나간다는 거예요.
오늘날 복귀역사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망라해 볼 때, 그런 내용으로 된 목적의 기준이, 혹은 목적의 장소와 목적의 대상들이 한 곳에 한 날을 중심삼고 한 인연 가운데에 임하는 사실은…. 여러분 자신들은 여기 들어온 지 1년 혹은 2년, 3년 넘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귀하게 보게 된다면 자기에게는 기나긴 세월이라고 볼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기나긴 역사노정에 비교해 보게 될 때 지극히 짧은 거예요. 그러나 이 지극히 짧은 내 과거의 생애를 통하여 오늘날 이와 같은 장소에 여러분들이 참석했다는 그 내용은 엄청나고 두려운 내용이란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코스를 정당히 역사 앞에 있어서 내가 순응해서 잘 계승하여 넘어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에 혹은 창조의 이념에 반하여 넘어가느냐? 넘어가는 데는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넘어가느냐, 패자의 억울한 모습을 갖고 넘어가느냐? 이러한 중대한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되, 이 자리는 중대하고 엄청난 자리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불리움을 받았는데, 불리움받은 자체는 개인으로 불리움받고, 혹은 지역을 대표하고 혹은 교회를 대표해서 보내심을 받아 가지고 왔지만서도, 온 여러분 개체라는 것은 개체에 속한 개체가 아니라 역사적인 개체라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를 더듬어 보면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역사를 거치고, 양자의 역사를 거치고, 자녀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자녀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 가지고 비로소 심정적인 세계에 연결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 이 원리를 통해서 배운 복귀의 정상적인 코스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지금 이전까지의 역사세계에 있어서는 꿈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종의 역사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구약역사요, 종의 역사로부터 양자의 역사를 계승받아 직계의 인연을 세워 나오기 위해서 허덕여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신약역사입니다. 직계 자녀의 몸을 가지고 참부모의 인연을 거쳐 비로소 가정의 한 식구의 이름을 지녀 가지고, 거기에서 자라고 거기에서 길리움을 받아 거기에서 반드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내적인 면에 결부시켜 가지고야 비로소 이 피조세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본래 아담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셔 가지고 해와와 남매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아담 해와가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가정을 대표한 아들딸로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원칙인데, 그것을 잃어버린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소망의 표준으로 하여 지금까지 걸어 나오고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기준이 오늘날…. 예수도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성신도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바라고 나왔지만, 그것이 영육을 합한 실체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지상에 섰던 것이 아닙니다. 영과 육이 갈라진 입장에서 남성은 하늘을 대표하고 여성은 땅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으니, 미래의 소망의 한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영과 육이 합할 수 있는 한날을 고대해 나오던 장소가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모여있는 이런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어떠해야 되느냐? 어떤 내가 돼야 되느냐? 남자는 사탄세계를 대하여 예수의 사명을 능히 대신할 수 있고, 여자는 사탄세계를 대하여 성신의 사명을 능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거룩한 분들이 모여야 할 곳이 이 장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이 한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하를 대하여, 불의의 주인공인 사탄을 대하여 항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도, 남자 여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의 인연을 결속하느냐 못 하느냐로 결정됩니다. 여기에서 사탄으로부터 이어받은 혈통적인 문제를 파괴시키느냐 못 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자리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노심초사하여 싸워 나오는 목적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적인 자리,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심각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예수가 세우고 싶었던 제자들, 예수가 찾고 싶었던 소원의 아들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갖고 싶었던 후대의 후손들을 세워야 합니다. 또, 그 후손들을 세워 가지고 민족으로부터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고, 소원의 민족을 고대하고 소원의 백성을 고대하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하고 또 갖고 있어야 할 입장이 오늘날의 여러분의 입장입니다. 또, 오실 성신 이 그러한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고대하는 사명과 책임을 완수했다 하는 자리에서야 할 것이 오늘날의 여자들인 것입니다 .
남자 여자를 합해 가지고 도(道)의 문을 통하여 이런 축복의 명사를 세워 가지고 결혼을 시킨 그런 도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부 다 분별역사예요. 갈라져라 이거예요. 전부 다 갈라진 이 역사를 심정을 걸어 놓고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이 사실이 오늘날 무엇보다도 복되다면 이 이상 복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황공하다면 이 이상 황공한 게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남자는 남자 자체, 그 개체를 위주로 한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 그 개체를 중심삼은 여자가 아니예요. 남자는 남성을 대표한 남자요, 여자는 여성을 대표한 여자라는 거예요. 대표하는 데는 어떠한 입장에서 대표하느냐?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입장에서 이 부끄러움을 막고 하늘 앞에 사죄를 고하는 입장에 선 남자 여자가 아니라, 부끄러움의 세계를 밟고 승리적인 영광의 개가를 부르면서 월계관을 쓰고 하늘 앞에 자랑하는 입장에 선 남자 여자라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여기에 참석하긴 했지만 그러한 복귀적인 내적인 심정의 세계와 인연되어진 관계로 비판해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여기에서는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먼저 회개하는 기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진리의 뜻을 알고 살아 나온 내 생애를 다시 한 번 분석하고 전개해 가지고, 그러한 목적관 앞에 있어서 과연 내가 심정적인 생활에 있어서나 행동적인 생활에 있어서나 혹은 마음이 통하는 모든 인연의 세계에 있어서나 내가 과연 그러한 내 생애를 가졌느냐 하고 비교해 보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 갖고 회개하는 기간이 있어야 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회개의 기간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당당히 '아, 나는 회개 안 해'라고 말할 자가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원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을 전부 다 알고 참석했더라면,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그 한발짝 한발짝은 어떠한 제왕이 취임식을 하는, 대관식을 하는 이상으로 엄숙했을 겁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머무는 이 기간에 있어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서로서로가 앞으로 문제 될 수 있는 상대를 대하게 될 때에 그저 한마디 말뿐으로써 좋다 나쁘다 하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자기의 숙명적인 모든 내용이 해석되느냐 안 되느냐, 이 해석을 기본으로 해서 역사적인 인연을 통한 내 자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 이런 문제가 달린 중대한 시기요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회개를 거치고…. 회개를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사실은.
반드시 이 축복이란 것은 우리의 복귀원리로 볼 때, 반드시 종의 시대를 거쳐야 돼요. 종의 시대에 있어서는 종으로서 충성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천사장을 세워서 충신을 만들고자 했으나 충신을 못 가진 것입니다. 충신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예요. 오늘날 여러분은 천사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니, 타락한 혈통을 받고 태어났으니, 하나님 앞에 공인받기 위해서는 천사장한테 받은 피를 무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충성의 기대를 가지고 종으로서 충성한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종의 시대를 거치게 될 때에는 반드시 거기에는 예식이 있는 거예요. 예식이 있어요. 식이 있어요. 종에서 양자로 넘어가는 식을 거쳐야 종새끼를 양자로 입적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무슨 수속절차가 있듯이, 여러분들도 종의 시대를 거쳐 양자의 시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의 충신이라는 이름을 갖출 수 있는 식을 거쳐야 되는 거예요.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아들딸이라고 이름 불리울 수 있는 그 자리에까지 나오는 것도 역시 엄청난 식을 거쳐 가지고 나오는 겁니다. 양자에서 직계 아들딸로 되어서 아들딸 개체 개체가,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하나의 식구라고, 오빠라고 누나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되는 데에도 반드시 하늘의 엄격한 시험과 비판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야 연결돼 나가는 것입니다.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자라 가지고, 자라는 데도 천적인 가정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랐다는 기준을 통과해 가지고, 그 부모에 있어서 심정을 통해 보나 생활을 통해 보나, 지금까지 자기 아들딸을 길러 나오는 부모의 마음에 있어서나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나 혹은 내적인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과연 내 모든 전체를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안팎의 내용을 다 갖춘 후에야 여러분들을 그의 아들딸로서 혈통적인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부모라는 인연을 맺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느 한때에 종으로서 하늘 앞에 충성했다는 인정을 받았느냐? 어느 한때에 있어서 내가 양자로서 충성했다는 인정을 받았느냐? 어느 한때에 아들딸로서 충성을 다했다는 인정을 받았느냐? 아들딸로서의 이 인정을 받고 난 후에 나는 어느 한때에 가정적인 가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적인 규범 밑에서 살았다는 내용과, 혹은 실제적인 사실, 실적을 가진 그 무엇, 공인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어느 분야에도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어느 지방에서 이런 모임이 있게 될 때 '어, 누군 보내 주고 누군 안 보내 준다' 하는 이런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렇게 취급해도 서운치 않을거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모든 내용과 전례와 절차를 거치지 못했으니 종으로 취급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요, 양자로 취급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작자이니 이러이러한 결과에 서라고 하늘이 분부해도 여기에 반항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내용을 갖지 못한 자신인 것을 생각할 때, 불러 주고 여러분을 위해 수고해 주는 것만도 황공한 마음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나요, 안 그렇나요?
이런 기준을 모르고 왔다가 전부 다 그냥 돌아가 가지고 울고불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 운명의 결정은 자기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반드시 인연의 세계를 갖고 있는 거예요. 내가 있는 데는 사방을 갖추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와 인연의 세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의 위치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이러한 천적인 내용과 이러한 역사적인 배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러한 입장에 서 가지고 내가 이런 입장에 서기 위해서 갔다 할 수 있는, 과거와는 다른 이런 원칙을 제시해야 할 것인데, 여러분에게는 제시할 아무런 것이 없는 걸 선생님이 미리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고생길에 내세운 것입니다. 밥을 얻어먹어라, 욕을 먹어라 이거예요.
그러므로 배후의 하늘이 프로를 맞춰 나가는 시대적인 혜택과 더불어 종의 시대에 동참하고, 혹은 양자의 시대에 동참을 하고, 자녀의 시대에 동참해 나가는 역사과정의 인연을 거쳐 시대적인 한계를 세워 놓고 거기에 여러분들이 동참했다는 인연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 가지고 이 자리에까지 참석할 수 있었던 여기에는 그 인연을 붙들고 온 그것뿐입니다, 인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자신의 무슨 내용을 붙들고 온 것이 아니예요. 그러한 복귀적인 인연이 돼 있으니, 시대적인 혜택과 하늘이 세워 준 내용의 인연이 있으니, 그 인연줄을 여러분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하늘은 명령을 했고, 그 인연줄을 여러분에게 관계맺히기 위해 하늘이 분부하셨으니 그 분부한 기간에 종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양자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직계 시대까지 거쳐 가지고 거기에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편단심….
여러분의 마음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예요. 가정이 핍박해도 가정에있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 부모가 갈 길을 막아도 부모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내가 아니예요. 나도 모르게 한 곳에 마음이 집중되는 거예요, 한 곳에. 그 인연을 중심삼은 거기에 내 모든 마음과 내 모든 생명의 중심은 거기에 기여해 가지고, 거기에 기점을 두고 어떠한 환경에서 나를 끌어내려고 해도 끌어낼 수 없는 심정적인 인연을 세워 놓고, 그 인연과 더불어 행동적인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걸어 나오는 데에 있어서 핍박을 받아도 그 핍박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의 3년이면 3년 기간에 있어서 움직이는 식구들 앞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게 고통이예요. 무엇 때문에 고통받느냐? 여러분들도 모르게 하나님이 내적 인연을 가지고 찾아온 그 인연이 여러분과 인연이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지을 수 있는 하늘이니, 이 고통을 느끼면서 그래도 하루 한때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고, 혹은 슬퍼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고, 혹은 고통을 받는 자리에서 있더라도 '아버지여! 당신이 가는 곳을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러한 조건적인 실적을 가지고 이러한 자리를 혜택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뭐 이러고저러고 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다시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으로부터 양자, 직계 자녀를 거쳐, 그다음엔 하늘의 직접 지배권 내에 있어서 자녀로서 길리움을 받아 가지고, 여기에서 하늘가정을 중심삼아 생활적인 법도를 거쳐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뭐 하늘의 생활적인 내용이, 하늘의 식구들이 생활하는 내용이 어떤지를 아느냐 말이예요. 가법을 아느냐 말이예요. 안 나와 있단 말이예요. 그건 지금까지 선생님이 혼자 걸어 나온 거예요.
아무리 복잡한 생활을 하지만 그 생활 가운데에서 남 모르는 가운데에 그러한 발판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런 내적 세계의 생활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외적 세계의 생활로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의 세계의 역사를 외적인 실체의 심정세계의 역사로 전개시켜 나오는 것이 복귀역사예요. 그러니만큼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역사는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나를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그러한 나인데, 복귀역사로 보면 여러분이 지금 그런 입장에 서 있는데, 그러면 이제 나와 아버지를 생각해 보자 이거예요. 이제는 문제가 뭐냐 하면, 오늘 이 기간에 있어서 아버지를 진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제 만약에 여러분이 불리워 가지고 누가 물어 보더라도, 여러분 중에 남자 여자를 불러 얘기하더라 도 그때 얘기하는 그 순간은 자기를 위해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얘기하는 게 아니예요. 반드시 그건 지금까지의 역사를 대표해서 역사적인 남성이 얘기하는 거예요. 여자면 역사적인 여성이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갑(甲)이라는 아주 멋진 남성이 있고 을(乙)이라는 지지리 못난 여성이 있다고 하자구요. '이 사람과 너와 인연이 있으니 뜻을 중심삼고 인연되겠나?'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물론 그럴 수는 있지요. 그렇지만 그를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요' 하는 마음은 갖더라도 '그가 어떻고 뭐 어떻다고…'라고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말이라도 그런 걸리는 말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마음으로만 비판하는 건 괜찮아요. 그리고 제삼자에게 '누구 뭐 어떻고 어떻고, 그 사람이 어떻다는 데…' 하면서 물어 보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갈 길을 못 간다는 거예요.
작년 재작년에 있었던 예를 보게 된다면 말이지요, '옆 사람이 뭐 어떻고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하던데 절대 물어 보는 게 아니예요. 전부 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사탄들이예요, 사탄들. 물어 보는 것은 내 마음 보고 물어 보고, 하늘보고 물어 보고 정성을 들여 가지고 이렇게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때는 3수의 기준을 여러분이 완결짓는 거예요. 3수의 기준을 완결짓지 않으면 4수의 기준이 안 나가는 것입니다.알겠어요? 「예」 3수의 기준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먼저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여기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가 있으면 상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가 문의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직접적인 다른 무엇 가지고는, 누가 뭐 권고하고 뭐 그런다고…. 그건 오히려 방해하는 거예요, 방해.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 모임 가운데에 일반 식구들은 전부 다 참석 못 하게 할지 모릅니다. 괜히 쓸데없이 곁들여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자기들이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예요. 결정은 누가 하느냐? 선생님도 안 해요. 결정은 누가 하느냐? 하나님도 안 해요. 누가 하느냐? 내가 하는 거예요. 어디에서 하느냐? 이 자리예요. 이 결정은 누구 딴 사람이 하는 게 아니예요.
복귀역사를 쭉 이야기해 본다면 말이지요, 원래 남자는 해와를 창조해야 되고 여자는 아담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남자들은 해와를 만들어야 되고, 또 해와가 먼저 믿었으면 남자를 만들어야 된다 이거예요. 본래는 그래 가지고 서로 둘이 뒤넘이쳐 가지고 뜻 하나를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이 하는 것이 그 놀음이거든요? 예수와 성신이 지금까지 나오는 데에 있어서 예수와 성신은 부처(夫妻)인데, 이건 뭐냐? 아버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된 것이 아니예요. 종의 부모 역사부터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양자의 부모의 역사로부터, 그다음엔 직계 자녀의 부모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그다음에 본연의 아들딸을 중심삼은 하늘이 세울 수 있는 참부모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입장에 있으니 여자들은 전부 다 자기 남편은 자기가 길러내고 전부 다 해 가지고야 축복받는 겁니다. 그것이 안 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되거든 복귀역사이니, 그다음에 자기의 종의 시대를 거쳐 가지고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야 여러분은 축복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지요? 「예」 원리를 알지요? 「예」 그거 안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안 돼 있으니 여러분들을 내쫓아서 고생시키는 거예요. 지금 보라구요. 축복받은 사람들을 전부 다 선생님이 죽도록 고생하라고 내모는 거예요. 지금 고생들 많이 하지요? 왜 고생시키는 줄 알아요? 고생을 해야 돼요. 여러분들도 이번에 여기에서 결정하게 되면, 결정하는 데는 거룩한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에서는 벗어나지만 하늘과 선생님 앞에는, 아직까지 원칙적인 기준 앞에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남아 있는 미비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지금 축복해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미비한 내가 미비한 것들과 의논할 수 없다는 말이예요. 내 자신이 결정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사람이 그래요. 태어날 때도 둘이 못 태어납니다. 자기가 둘로 나올 수 있나요? 뭐 쌍둥이로 나오는 것도 형제예요. 날 때에도 혼자 태어나는 거라구요. 시집 장가 갈 때에도 혼자 가는 것입니다. 대신 가나요? 자기가 시집가고 자기가 장가가지요? 그렇게 돼 있단 말이예요. 죽을 때도 자기가 죽지 남이 죽을 수 없단 말이예요. 그건 누가 해야 되느냐? 자기가 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결정하는 것도 상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부모가 하는 것도 아니예요. 물론 부모는 소개를 해 주지요. 다 봐 가지고 소개를 해주지만 결정은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또, 이번에는 하는 시간을 많이 안 들이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작년까지만 해도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예스'인지 '노'인지 물어 봐 가지고 싫다는 사람은 자꾸 밀려 나가게 해 가지고, 어느 수효까지 딱 하고는 그다음에는 전부 다 끝내지 않고 내려보낼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는 뭐 여러분들을 많이 시집 장가 보내려고 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아마 3분의 1이상은 돌아가야 되지 않나 보고 있단 말이예요. 괜히 지구장 지역장들은 자기 책임 안 지겠다고 그저 아무개도 해주고 아무개도 해주고…. 지역장 지구장들은 선생님 편이 아니고 여러분들 편이예요, 가만히 보면. 그거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 편이 되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에는 여기에 참석하지 못할 사람도 참석해 있는 경우도 있다 이거예요. 대개 남자들도 그렇지만 지금은 여자가 넘어갈 때이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줘서 1년 이상 된 사람들도 여기에 참석할 수 있게 했으니만큼 눈을 높이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냐 말이예요. 「예」 여러분들이 결정해야 된다 말이예요.
자, 그러면 결정해야 할 나…. 여기서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시간이 어떻게 됐나요? 「아홉 시 십오 분입니다」 아홉 시 십오 분. 한 십 분이나 이십 분만 더 얘기할까요?
자, 나 자신을 가만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의 마음에 지금 이제 가만히…. 여기에 오면 내 자신이 어떻게 되느냐? 이 기간에는 우리 복귀 원리에 나와 있듯이 재부활이 돼야 됩니다, 재부활. 예수님도 부활해 가지고 상대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이지요? 알겠어요? 예수님도 성신 강림이라는 것을 오순절에 했어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영적 구원을 완결짓기 위한, 혹은 출발하기 위한 신약 역사에 있어서, 예수님 께 있어서도 상대이념이란 것은 부활한 후에 이뤄진 거예요. 그렇지요?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안 돌아갔으면…. 3년 기간이라는 것은 부활과정입니다. 부활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까지 부활하기 위한 기간을 뜻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한 번 재부활 역사로서 인간과 더불어 복귀의 역사를 쭉 다시 되풀이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여기에 있어서 이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활해야 합니다. 부활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해산의 수고를 해야 돼요. 선생님 생각 같아서는, 사실은 우선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21일이면 21일간 전부 다 금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21일금식, 21일금식을 전부 다 시켜도 배고픈 줄을 모르고 '가야 할 곳을 가야지' 이럴 수 있는 마음이 남아진 자라야만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 천국이라는 곳은 혼자는 못 갑니다, 천국이라는 곳은. 그렇지요? 천국은 혼자 못 가게 돼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곳은 반드시 상대이상을 결정짓고야 천국문을 통해 들어가게 돼 있기 때문에, 천국 들어가기 위해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복귀의 역사, 혹은 부활의 역사를, 재창조의 역사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은 천국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입니다. 가고 안 가고는 몰라요. 여러분들을 축복해 준다는 것은 뭐냐? 축복이란 그 명사는 뭐냐? 여러분 앞에 천국문이 닫혀 있었던 것을 이 축복이란 명사를 세워서 열어 주는 거예요.
문을 열어 놓고 들어가는 데는 혼자 못 들어갑니다. 가정이 들어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들딸을 갖추어 가지고 들어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가정이니만큼 역사적인 열매의 그 모든 실적을 갖추었으니, 하나님의 6천 년 복귀역사라는 것은 1차 아담, 2차 아담, 3차 아담 시대를 거쳤으니 세 아들을 거치고 그 세 아들까지 상대이념을 세워 놓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들어가려면 자기 어머니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3대가 들어가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야 돼요. 3대를 모시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3대를 모시고 들어가고, 자기로부터, 아들로부터 3대의 인연을 거쳐 관계를 맺어야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70가정을 거느린 것이 요 3대권 내에 그 기준을 닦아 가지고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이 축복의 연대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보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관계를 전부 다 갖추어 가지고야 앞으로 가정적인 시대에서부터 종족적인 시대를 넘어 가지고 세계적 무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부활해야 될 터인데, 먼저 부활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개체 부활입니다, 개체 부활. 개체 부활 하기 위해서는 뭐냐하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순간의 자리가 여기예요. 여기에서 기도해 가지고 내가 승리해야지 승리 못 하게 되면 골고다로 가는 거예요. 골고다로 가야 되는 거예요, 사실은.
여러분, 사실은 여기에 이번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이번 케이스에 못 들어가게 되면 원래는 선생님이 책임 안 져야 되는 거예요. 뭐 두 번씩 절대 그렇게 할 일이…. 그렇게 뭐 여러분들을 시집 보내기 위해서 사는게 선생님의 사명이예요? 한 번에 만나서 딱 끝나면 되는데, 그들을 간섭 해 가지고 시집 보내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이거예요. 그건 여러분 자신들이 이해할 것입니다. 인정하게 된다면 선생님의 사명은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시집 못 가게 된다면 10년이고 그것 붙들고 선생님이 뭐 그 놀음 하겠나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1차에 안 될 때에는,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3차까지 했으니 3년까지는 봐 준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에 함부로 참석하지 말라는 거예요. 두 번, 세 번까지 해서 못 가는 사람들은 그다음에는 홀아비로 살겠으면 살고 말겠으면 말고…. 그렇게 살다 죽으면 저나라 영계 사람들하고…. 3수 권내의 것은 천사장 세계에 해당되어서 영계에 가서 천사장들하고 상대 맺으면 좋아할 거라. 본래는 그러는 거예요. 이 1차에 있어서 어떻게 하든지 넘어가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라는 거예요. 부활하는 데는 내 개체가 부활하라 이거예요. 개체가 부활하는 데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체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지금까지 여러분 자신들이 완성되어 있지 않다면 회개한 나로서 올라가서 부모의 자리에까지 나가려면 어떻게 돼야 되겠느냐? 자기가 대번에 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종으로서 일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종과 같이, 소새끼 같이 일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거지와 같이 일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거 고생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구요, 3년 동안에. 그런 사람들을 전부 다 연결해 가지고 그 인연을 타고 가야 된다는 거예요, 전부가.
금년에 넘어오는 이 전체 식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서 뽑혀 가려면 이 인연을 전부 다 밟고 가야 되지, 그 인연을 무시하게 되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 지금 몇백 명, 수가 좀 많으리라 보고 있는데 많이 온 사람들을 중심삼고 개인주의적인 사상을 버려야 되는 거예요. 부활할 때에는 물론 개체가 부활하는 이 사명을 완결짓되, 개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인연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알겠어요? 「예」
부활하는 데에 있어서는 물론 환경적인 인연을 책임지고 부활해야 되고, 부활해 가지고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활한 후에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디냐? 예수님도 부활해 가지고는 어디로 갔나요? 성신 찾아갔어요? 「아니요」 제자들 찾아갔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어서 나를 위해서 지방의 식구들이 기도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넘어가는 그 고비를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돼요.
나에게 있어서 믿음의 아들딸이 있다면 그 믿음의 아들딸이 앞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전도한 내가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전에는 못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기에서 축복받을 수 있는 내용을 딱 결정짓고 와서, 또 여러분들의 믿음의 아들딸도 앞으로 시집 장가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책임을 졌다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와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부활할 때 개체 부활과 더불어 환경 부활의 인연을 거치는데, 예수님이 부활해 가지고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느냐? 제자들을 생각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지만서도 그 식구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나를 위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그들 앞에 연대적인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수습해 놓고야 비로소 성신을 맞게 된다 이거예요. 상대이념이 생긴다 이거예요. 거 그렇게 돼 있지요, 예수님에게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이제 여러분들이 상대를 결정한다 하게 될 때에는, 절대 여러분이 기뻐서 하는 게 아니예요. 여기서는 무한한 고충을 느껴야 돼요. 무한한 고충을 느껴야 돼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걸 느껴야 돼요. 얼마나 어렵고도 얼마나 힘들다는 걸 여러분이 느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일부터 심사하더라도 사실은 그날부터 전부 다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발표는 사실, 그 20일날 마지막에 발표해야 돼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게끔.
그러면 얼마나 많이 쪼그라들고 얼마나 고충이 심할까요? 맨 처음에는 한 일주일 동안 밥을 못 먹어야 돼요. 밥을 못 먹어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작년에 보니까 그렇대요. 맨 처음에는 밥을 해주면 밥덩이가 남아나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21일이 되면 될수록 더 못 먹어야 될텐데, 한 10여 일 지나면 그다음에는 또 잘 먹어요, 자포자기해 가지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예요. 끝날 때까지는 여러분이 전부 지금 출발하는 마음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나가는 데는 뭐냐 하면 고통을 느껴야 돼요.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고통을 느껴야 돼요. 그 기간에 있어서는 반성해야 됩니다, 전부 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그 일이 좋은 줄 알았더니 지옥이예요, 지옥. 요전에 축복받은 패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지옥이라고. 이 기간은 지옥 기간이예요. 요 21일 기간은 6천 년 역사를 전부 다 풀어 맞추는 역사입니다. 그렇지요? 삼 칠은 이십일. 만 이십 년, 이천 년 역사와 마찬가지예요.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시대까지 그 7단계를 거쳐 나오는 순서를 전부 다 탕감해 복귀하는 기간이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여기에 있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입장에 있기는 해도 그래도 현실에 오늘날 실체를 가지고 이러한 무대를 바라볼 수나 있지만, 바라볼 수 없는 저 영계에 간 영인들이 지상의 인간들과 연락을 해 가지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 것이냐 이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여러분은 여기에서 무한한 고통을 느껴야 된다 이거예요.
이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예요. 고통의 자리입니다. 고통의 자리인 동시에 슬픈 자리예요. 요 순간엔 지극히 고통을 받고, 지극히 슬퍼하고, 그다음에 죽음을 각오하고 이 문제를 결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최고로 심각한 자리에서, 최고의 고통을 받는 자리에서, 최고의 슬픔을 느끼는 자리에서, 죽음을 결정하는 최고의 자리에서 반성하고 결의하면서 여러분들이 이 기간을 넘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을 넘어간 후에는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이구, 저 여편네가 얼굴이 못생겨 가지고 호박덩이처럼 생겼으니 저걸 어떻게 데리고 사노?'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이예요. '아이구, 저 사나이를 보니 저거 뭐 생전 처음 만났는데, 이거 뭐 상대니 뭐니 하지만 어떻게 사노?' 그런 생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이만큼 여러분들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재부활해야 됩니다.
부활하려면, 고통 이상의 고통을 뚫고 나오려면 고통 속에 스스로 들어가 가지고 밑창으로 삐져 나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기간에 있어서는 고통으로 부활하고, 슬픔으로 부할하고, 죽음에서 삶으로 부활할 수 있는 장면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해야 느낄 수 있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고통을 받아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문을 통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어요? 다 나오지 요? 그런 얘기는 안 할 거예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또, 예수님은 이 문을 통하기 위해서 얼마나 슬퍼했겠느냐? 수많은 우리 선조로부터 예수님도 이 문을 통하기 위해서 죽음길을 갔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죽음에 밀려남이 없이 죽음을 밟고 슬픔을 밟고 고통을 밟고 나가야 된다 이거예요. 여기에서는 자기를 이겨야 해요. 최고의 고비로서 부딪쳐야 할 자기예요. 그러한 입장에서 승리적인 부활체가 돼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과거에 뭐가 없었지만 그러한 각오 밑에서 제일 어려운 환경에 섰다는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정상적인 새로운 길이 전개돼 나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고통의 문을 닫는 게 아니예요. 슬픔의 문을 닫는 게 아니예요. 사망의 문을 닫는 게 아니예요. 슬픔을 끊으려면 그 이상의 슬픔으로 탕감해야 되고, 고통을 끊으려면 고통으로 탕감해야 되고, 죽음을 끊으려면 죽음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혹은 사탄세계의 심정을 끊으려면 사탄세계 이상의 심정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사랑하는 남편을 맞이할 생각이 있거든, 전부 다 그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우리 부모를, 혹은 친척을 사랑했던 그 이상의 마음을 세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런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는 걸 알라 이거예요. 재생하는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축복의 명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알고 이번에 여러분들이 잘 이겨 나가야 되겠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절대 이건 뭐….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이 추방해 버리라구요. 그건 사탄이예요. 그렇잖아요? 시집 장가 가는 데 누구 심부름 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이예요, 사실은. 선생님도 다 여러분의 심부름 해주는 거예요, 사실. 이 심부름을 앞으로는 안 해준단 말이예요. 영계의 여러분의 조상들이 앞으로 해주지요. 원래는 여러분의 직계 조상들이 해줘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그렇게 알고 여러분 자신들이 결정해서, 그러한 고통에서 부활하고, 슬픔에서 부활하고, 죽음에서 부활하는 이러한 새로운 성체가 돼 가지고 여러분의 실체,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알겠어요? 「예」
부부 상봉이 무엇이냐 하면 6천 년의 꽃이예요, 꽃. 이걸 붙들고야 아버지 앞에 나가는 거예요. 이걸 붙들고야 타락한, 사랑으로 엉클어진 곡절을 사랑의 인연으로 푼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거 혼자 사랑해서 혼자 풀 수 있나요? 그래서 부처끼리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에는 말이지요, 앞으로 혼자 오는 사람들은 여기 본부의 선생님 앞에 직접 못 와요. 선생님이 직접 지도하는 장소에는 못 와요. 앞으로는 이제 부처끼리 오면 좋겠어요.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 해서 착착 부처끼리 앉았으면 좋겠어요. 그렇잖아요? 얼마나 하늘도 그걸 좋아하겠어요? 지금까지는 남자 여자 전부 다 이렇게 떡 갈라 가지고 앉았었지만…. 부처끼리 앉아야 뭐 한 줄은 남자이고 한 줄은 여자고 그렇지요? 그런 예배, 세계에 없는 그런 예배를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래 가지고 여기 본부는 부처끼리가 아니면 못 가는 교회라고…. 사실 그래야 돼요. 천국은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것 조금 지나 가지고 아들딸을 낳으면 가정적으로 모이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모여 가지고 뭐 예배보고 그러는 줄 알아요? 노래하고 춤추고 잘 해먹고 다 이렇게 살고, 힘껏 일하고 다 이래 가지고…. 그러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출발기준이니만큼, 여러분들이 고통에서 부활하고 슬픔에서 부활하고 사망에서 부활한 승리적인 부활체가 되어서, 지상에 모처럼 허락한 이 터전 위에서 축복받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님, 까마득히 멀고 한없이 험한 복귀의 길 앞에 그 누가 슬픔의 보호자가 되었으며, 그 누가 고통의 보호자가 되었으며, 그 누가 사망의 보호자가 되었나이까? 내가 자라고 있는, 지금의 나를 중심삼은 가정은 하늘의 혈통적인 가정이 아니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내 어머니 내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것이 알고 보니 슬픈 명사였다는 이 한 사실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 것입니까?
부모를 바라볼 때 고통스러운 자기 자신으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슬픔의 자신으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생명적인 인연을 각오하고라도 그의 정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곡절에 사무친 것이 오늘날 인류의 심정의 역사였음을 알았습니다. 이 심정의 역사를 더럽혔기에, 당신은 이것을 찾아올 때까지 무한한 곡절의 노정을 거쳐 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황공하옵나이다.
고통의 왕자가 메시아였으며, 슬픔의 왕자가 메시아였으며, 사망의 왕자가 메시아였음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남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낙망하지 아니하였고, 남 모르는 슬픔 가운데에서도 주저하지 아니하였고, 남 모르는 죽음의 고비에 있어서도 하늘 앞에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잃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너무나 경거망동했던 자식들이었습니다. 자기 일신을 살펴 놓고 당신을 배반할 때가 많았사옵고, 자기 개인적인 고통을 제껴 놓고 하늘의 고통을 위해야 할 것이었사오나 하늘의 고통을 제껴 놓고 내 고통을 염려하던 저희였사옵니다. 하늘의 슬픔을, 하늘의 죽음길을 제껴 놓기 일삼던 저희들을 이제 불러 놓았사오나, 이 부족한 것들을 모아 놓고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겠사옵니까?
그러나, 하늘이 세우시옵고 하늘이 찾아오시옵고 하늘이 닦으신 거룩하신 승리적인 터전 위에,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 불리워서 당신의 시대적인 혜택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은사의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하게 할 때, 저희는 여기에 저희의 부족함을 중심삼고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저희의 부족한 자체를 지극히 서러워해야 되겠고, 저희의 부족한 자체와 더불어 사활을 결해 싸워야 할 자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여기에 승리적인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아버지가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한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다시 여기에 하늘의 복귀적인 내용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안팎의 모든 조건을 염려하는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긍휼을 바라옵니다. 저희 스스로 갈 수 없사오나 식구들이 닦아 놓은 터전 위에서, 스스로 서로서로가 협조하는 자리에서 인연을 타고 올라가 하늘이 세워 주신 참다운 가정의 중심에까지 심정적인 인연을 연결시켰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자기 스스로가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런 자리에서 하늘의 약속과 하늘의 승리적인 재출발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으로 맺혀 있던 모든 사실이 오늘날 저희들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풀릴 수 있는 이러한 시대적인 새로운 출발의 기준을 허락하여 준 것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제부터 시작되는 삼칠일 이 기간을 친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고 안 가는 것은 저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이러한 기간이 되게 하시어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누구의 권고를 받지 않고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이 거룩한 사랑, 거룩한 상대적인 문제를 전부 직접적으로 해결하게 하시옵소서 하늘을 입증하고, 땅을 입증하고, 혹은 만민을 입증한 자리에 서서 해결한 후에는 누가 뭐라 해도 이것을 귀하게 볼 수 있고, 이것을 가치 있는 자리에서 결정지어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부는 뜻하신 경륜 가운데에서 승리의 한 날로서 거둬지게 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은 그동안 이 길을 찾기 위하여 고생한 모습, 이 뜻을 위하여 고생한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하고 이 자리에 모인 줄 압니다.
이번부터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련을 진행할 것입니다. 이번 수련은 어떤 특정한 숫자를 맞추기 위한 수련회가 아닙니다. 소생과 장성 기준이 지나갔으므로 이제부터는 완성적인 기준입니다. 따라서 천적 기반을 넓히기 위한 것일 뿐 어떠한 특별한 천적인 프로그램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종족 형성을 위해서 자유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싸움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싸움입니다. 인간과 제물이 싸웠고, 인간과 제물이 합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면 최종적인 문제는 무엇이며 인생의 종착점은 어디냐? 예수님도 신랑 신부를 인생의 종착점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사람들도 상대를 찾아 목적을 이루는 것을 최대의 소망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되기 전에는 이상적인 출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모였다는 것은 엄청나게 귀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 앞에 잘 순응하고 넘어가느냐 못 넘어가느냐, 또 넘어가더라도 승리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넘어가느냐 패자의 모습으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각 지구에서 불림을 받았기에 그 지구 전체를 대표한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종의 역사를 거치고 양자의 역사를 거쳐 직계 자녀의 명분을 얻기 위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거쳐야만 만물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도 성신도 이것을 소망하고 나왔지만, 영과 육이 떨어져 있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영과 육이 함께 있습니다.
남자는 예수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하고, 여자는 성신을 대신해서 사탄세계를 정복해야 합니다. 그런 거룩한 존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예수의 사명을 다했다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고, 여자는 성신의 사명을 다했다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을 알고 보면 무엇보다도 복될 수도 있고 두려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남자는 모든 남성을 대표한 존재이고, 여자는 모든 여성을 대표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안다면 먼저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 나는!’ 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원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들어올 때에는 어떤 제왕이 식장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엄숙해야 합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았으니 종으로서의 기준을 통과하여 양자로 넘어가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또한 이 양자의 위치에서 직계의 아들딸로 나아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엄청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식구의 한 사람으로 서는 데도 엄청난 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느 한때에 종으로서 충성을 다했고, 양자로서 충성을 다했고, 직계의 아들딸로서 충성을 다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까?
지방에서 왔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불러 주는 것만도 황공한 것입니다. 이번에 그냥 돌아가서 울고불고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참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어떠한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인연의 줄을 붙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심정의 한 점을 중심삼아 나오다가 이 자리까지 나온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따라겠다고 한 그 인연으로 인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종으로부터 양자로, 양자로부터 직계의 아들의 자리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자리로 나오기 위한 필요한 법을 압니까? 선생님이 그런 것을 모르는 가운데 해 나왔겠습니까?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 자신과 아버지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남자, 혹은 여자에게 말을 할 때 개인으로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남성을 대표한, 또는 여성을 대표한 존재로서 얘기해야 합니다.
수련기간에는 누구에 대해서 비평도 하지 말고, 남에게 물어 보지도 마십시오. 물어 보려면 자기 마음에게 물어 보고 하나님께 물어 보십시오.
3수의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은 선생님도 하나님도 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본래 남자는 여자를 창조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창조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종과 양자와 직계의 자녀를 거쳐 참부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사람을 죽도록 고생시킬 생각입니다. 사람은 날 때도 혼자이고, 시집 장가 갈 때에도 혼자 가고, 죽을 때도 혼자 죽습니다. 부모도 소개만 하지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수고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갈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기간은 부활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상대, 즉 성신도 예수님이 부활한 후 오순절에 강림했습니다.
선생님 생각 같아서는 전원이 20일 금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배고파하지 않고 남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혼자서 갈 수 없습니다. 축복은 천국 문을 훌쩍 넘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3대의 인연을 가지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야곱의 70가족도 3대가 합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애급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축복받기 위해서는 개체의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3차의 섭리를 하셨으니 3년간은 봐주십니다. 개체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과거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전체의 인연을 따라가야 합니다. 개체가 부활하려면 환경적인 인연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부활한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여러분을 위하여 뒤에서 기도해 주고 있는 지방 식구에게로 가야 합니다. 사실은 자기가 기른 믿음의 아들딸이 자라서 축복을 받을 만하게 된 후에 자기의 상대에게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후에 성신 앞으로 갔습니다.
상대를 결정하는 데는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고통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끝이 날 때까지 출발할 때와 같이 조심스럽게 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번 20일 기간은 6천년 역사와 때를 맞추는 중요한 기간입니다.
무한한 고통의 자리에서, 동시에 지극히 슬픈 자리에서, 또한 죽음을 각오한 자리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최고의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맛보는 자리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고, 불평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얼마나 슬퍼하셨으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죽음의 고비를 거쳤습니까? 여러분도 제일 어려운 환경에서 그러한 고통을 받아야 새로운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자리는 고통의 문을 닫게 하고, 슬픔의 문을 닫게 하고, 죽음의 문을 닫게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최고의 고통, 최고의 슬픔, 최고의 죽음을 느끼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재생의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 자신이 걱정에서 부활하고, 고통에서 부활하고, 슬픔에서 부활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상대를 결정해야 합니다.
창조의 그날은 영광의 날이었고, 창조의 그 심정은 무한한 이상의 심정이었사옵니다. 창조된 세계는 아버님의 기쁨을 상징하는 세계였사온데 이 전부가 우리 인간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렇듯 무한한 하늘의 슬픔과 땅의 슬픔과 인류의 슬픔을 남겨 주고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 하늘의 슬픈 그 심정을 누가 알았사옵니까? 아담이 타락하던 그때의 슬픔을 안고 복귀의 사명을 위해 4천 년 동안 수고하신 그 터전 위에 매시아를 보내시어서, 다시 한 번 재창조의 이상을 실현시키려던 아버지의 그 계획과 뜻을 택함받은 선민된 이스라엘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많은 2천 년의 역사를 연장해 나온 아버지의 그 심정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대하는 그 아버지는 과연 우리의 아버지였사옵고, 그 아버지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들은 우리의 것이었사옵고, 그 아버지가 품고 싶었던 이 온 천지의 동산은 당신이 당신의 자녀들과 같이 품기 위한 창조의 심정의 표상체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두시고 천년을 하루와 같이 바라 나오신 아버지 앞에 지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류는 면목이 없사옵니다. 이 인류의 선조들이 저끄러뜨림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맞게 되었으니 후손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속죄의 위로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와 같은 한많은 역사의 전부를 당신은 어느 한때 풀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사명을 홀로 짊어지시고 이 나라 저 민족을 찾아 헤매시기에 수천 년 역사의 노정을 걸어왔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많은 민족 가운데 불쌍한 이 한민족을 당신이 기억하시었사옵고, 누구보다 외로운 이 민족을 당신은 이미 택하시었습니다. 이 민족의 역사노정 위에 처참한 역사의 현상을 나타내심도 세계적인 탕감역사를 아버지께서 꾸며 나오기 위함인 것을 저희들은 배웠사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현실의 혼란과 도탄 중에 서 있음도, 이 세계적인 제물노정의 와중에서 하늘 향한 거룩된 모든 것을 수습하여 바쳐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제물을 보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얼마나 황공한 은사요, 고마운 은사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엄청난 뜻을 받들고 저희들은 통일이라는 두 글자를 갖고 나섰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창조 당시에 품으셨던 이념의 일념을 품으시사 이 땅 위에서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슬픔을 더 해 오신 것을 생각하올 때,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슬픔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슬픔만이 아니었사옵고, 이 민족의 슬픔이었사옵고, 이 민족의 슬픔만이 아닌 세계의 슬픔인 것을 저희들은 알면서 참고 또 참으면서 이날까지 왔습니다.
저희들이 막막하게 될 때 하늘이 막막할 것을 알았사옵고, 저희들이 외로워할 때 하늘이 외로워할 것을 알았사옵고, 저희들이 눈물을 흘릴 때 하늘이 눈물 흘릴 것을 알았기에 우는 자리에서도 참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었던 것을 아버님께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엇갈린 저희의 슬픔보다, 저희보다도 더 딱한 것이 아버지의 사정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그날과 같이 하나님의 소망의 한 때를 바라면서 참아 나오며 민족 앞의 시련도상에 있어서도 저희들은 쓰러지지 않았사옵고, 종족을 위주로 한 수많은 가정들 앞에 있어서의 핍박도상에 있어서도 저희들은 쓰러지지 않았사옵고, 이리저리 외로운 자리의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도 저희들은 오늘날까지….
이와 같이 남겨 주시어 오늘의 이 한날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날은 만세에 자랑할 날이었사옵고, 천주에 자랑할 날이었사옵고, 역사에 길이길이 빛날 날이었사옵고, 온 인류가 길에 엎드려 하늘 앞에 경배드려야 할 날이었사옵니다. 자기의 정체를 감춘 사탄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게 하시어 이 지상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늘과 땅의 모든 만민은 이날 엄숙히 아버지 앞에 온전히 머리 숙여 경배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1963년 윤4월 13일 이날을 아버지, 자랑의 날로 받으시옵소서. 6월 4일은 저희들이 기념해야 할 한날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한 것을 영원히 만민 앞에 축하하시옵고, 온 천주 앞에 드러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울고 울어도 한이 없을,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이날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찬양의 날이요,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심판이 내려져야 할 민족적인 승리의 날, 세계적인 개척의 날이 되게 허락한 것을 감사하옵니다.
이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신도들은 이날을 맞이하여서 기쁨으로 축하하오니 아버지 가슴속에 맺혀 있는 한을 전체 주시옵소서. 자녀들을 모으시어 축복하시는 이날 이 자녀들을 당신의 아들딸로 부르시어서 하늘 주권을 세워 하늘 가정, 하늘 백성, 하늘 국토를 찾아서 아버지의 영광을 이제부터 누리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한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날을 새로운 각성의 날로 세우시옵고, 하늘 앞에 저희들이 분하고 원통한 이 마음을 사탄에 대해서 슬퍼하고 동정하는 자신으로 다시 한 번 재정비하는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3년 기간을 작정하고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을 중심삼고 이제 이날도 끝나 가는 이때에 하늘이 계획한 모든 것은 끝내야겠사옵고, 승리의 깃발을 천주 앞에 드높이 들어 영원히 자랑의 일로만이 남아질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날서부터 저희들이 맞이하는 날들을 기쁨의 날로 아버지 품에 품으시옵고 맞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아버지의 보좌로부터 심정으로 지으신 만물과 찾으신 자녀들이 전체 위에 같이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 이 등록을 중심삼고 허락된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 지상의 참부모를 중심삼고, 사위기대의 기준을 중심삼고 축복받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기쁨의 이날을 전부 맡기오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승리의 날로 정하시사 사탄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하늘의 역사가 온 천지에 미쳐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것을 기쁨으로 아버지께서 받아 주신 것을 감사하옵고,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이 나라에 대해서 국가적인 기준을 뚫고 올라온 것이 최고의 목표였지만 이제부터는 한 단계 높여서 세계적인 기준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제 여러분들과 같이 하늘이 협조하는 가운데서 담당해 나가야 할 사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3년 기간, 3년이라는 이 기간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교회로서는 복귀적인 모든 내용을 완전히 탕감시키는 기간입니다. 즉, 뜻 앞에 있어서 하늘의 사명을 책임지고 이 땅 위에 왔다 갔던 모든 선지자들도 그랬지만, 예수님도 역시 그러했지만, 선생님도 역시 이 책임을 짊어지고…. 이 땅 위에서 이 사명을 택하게 될 때에는 자기 자신은 자신이지만 자신이 없는 자신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가정이 있어도 가정이 가정이 아니예요. 또, 친척이 있어도 그 친척이 친척이 되지 못한다 이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배달의 민족으로 태어난 자신이 이 나라 민족의 한 사람이지만 이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있지 못하였다는 거예요. 또, 자기가 사랑해야 할 자기 나라이지만 자기 나라로서 사랑할 수 없는, 진정으로 뼛골에 사무치게 정성을 다해서 사랑할 수 없는 이런 입장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담당해서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이 그와 같은 생애노정을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그러했기 때문에 이 땅에 섭리의 뜻을 펴시려했던 하나님 역시 그랬다는 거에요. 하나님 자신이 이 땅 위에 머물래야 머물 수 없고, 어떠한 가정적 기준을 세울래야 세울 수 없고, 민족이라든가 혹은 국가적인 기준이라든가 혹은 하나의 주권이라든가 흑은 하나의 백성이라든가 하는 것을 세워 마음놓고 한번 결정적인 입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이런 역사적 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는 길도 그런 자리에 선 복귀노정이다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의 혈육을 받아 가지고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자식된 내가 부모에 대해서 부모라 할 수 없는 처량한 입장이다 이거예요.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그 나라의 백성으로 행세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자기가 지금의 환경 가운데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 무대에서 자기가 마음놓고 즐길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하여 왔다 갔던 선지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뜬구름과 같은, 하루살이와 같은 생활을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생님도 그와 같은 사명을 맡고, 책임지고 나선 그날부터 목표가 어떤 목표냐 하면 국가적인 기준을 어떻게 뚫고 올라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표다 이거예요.
이때까지는 반드시 복귀적인 한계를, 연한을 중심삼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책임인 동시에 섭리의 전체를 대신한 전체적인 책임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자기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연결돼 있는 이런 중대한 입장에 있어서 이것을 끌고 그러한 어느 한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투쟁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역사적인 노정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복귀원리에 나타나는 40고개입니다. 40수, 40년을 중심삼고 이것을 완결 짓지 않으면 안 될 크나큰 책임이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기간에 있어서는 영계와 육계, 영적인 세계의 승리의 기반을 닦고 육적인 세계의 승리를 결정지을 때까지는 개인이 개인으로 태어났으되 개인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개인들 앞에 무시를 당해야 됩니다. 또, 가정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가정들에게 무시를 당해야 되고, 수많은 종족들에게 무시를 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1960년을 기준으로 해서 선생님이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모진 환경에서 비로소 이 땅 위에서 자기라는 것을 세우고 가정이라는 걸 세워 놓을 그때까지는 수많은 개인들 앞에, 수많은 가정들한테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가정을 세워 놓고는 그다음에 종족이 벌어지고, 종족을 세워 놓고는 민족이 벌어지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 가정을 기준으로 해서 반드시 종족으로 전개시켜야 되는데 종족을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족들에게 혹은 수많은 씨족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사방으로 헤쳐 가지고 핍박받는 길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핍박 가운데서 종족이 없는 하늘의 백성이 슬프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여기에서 하늘이 원하는 가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하늘이 세우려는 종족적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에 이건 불가피하다는 거예요.
종족적인, 혹은 씨족적인 이 기준에서 여러분이 핍박을 받고 시련을 받아 가지고 거기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에게 기억될 수 있는 이런…. 이렇게 되면 세상의 땅 위에 있는 어떤 민족, 사탄세계의 어떤 민족, 어떤 종족이 행치 못한, 혹은 이겨내지 못한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심정을 다해서 이겨낸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하나님은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종족으로서 세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이 종족적인 기준을 넘어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전개시키려니 우리가 전국적인 이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모험을 해서라도 하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3년간은 우리가 크나큰 모험을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삼천만 민족 앞에, 혹은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여러분들의 눈물과 피땀이 흐르지 않는 곳이 없게 하자 이거예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민족, 삼천만 우리 민족이 여러분의 목표가 되고 대상이 되고, 여러분은 거기에 주목의 대상이 돼 가지고 매일 같이 끊임없이 조롱도 받고 비소도 받으면서 나왔지만 결국은 그들이 여러분들을 우러러 볼 수 있는, 자연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굴복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온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되어야만 국가적인 승리, 민족적 승리의 기반이 벌어진다는 것을 선생님이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 3년 기간을 통해서 선생님이 계획했던 모든 것이 전부 들어맞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수고한 공로로 말미암아,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오늘날 이와 같은 날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을 무한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싸우고, 가정적으로 싸우고, 종족적으로 싸우고, 혹은 민족적으로 싸우고, 국가적으로 싸워 가지고 공인받았으니, 이럼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한 종교적인 입장에서 국가에서 공인하는 이런 종교가 되었다는 거예요. 종교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망하기를 바랐지만 그 자리에 있어서 망하지 않았고, 없어지기를 바라던 수많은 사람들이 공인해 주는 이런 입장에 섰으니 우리는 제1차적인 승리를 했다는 거예요. 즉, 한국에 있는 종교로서, 종교적인 명사인 통일교회의 교인으로서 1차적인 승리를 했다는 거예요.
이제 제2차적인 승리는 무엇이냐? 이제부터는 한국으로서 승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보면 유엔에 우리 한국이 아직까지 가입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것을 누구의 손으로 가입시키느냐? 우리의 손으로 가입시켜야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그러니 통일교회는 세계에 있어서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고 모든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세계를 뚫고 나가고 세계를 제압하기 위해서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앞으로 국제성을 띠고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민족적 기원이 생겨나느냐 안 생겨나느냐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종교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국가적인 입장에서 공인을 받아 이런 종교의 간판을 가졌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 종교라는 명사가 나와 가지고 삼천만 민족을 움직이고 이 대한민국을 움직여 가지고 세계 앞에 공인시켜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수많은 나라가 비웃고 수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던 이 한국을 영원할 수 있는 한국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제2차적인 승리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보라구요. 통일교회 개인이면 개인, 선생님이면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전부 다 좋지 않게 평을 받았습니다. 가정이면 가정적으로 그랬고, 종족이면 종족, 우리 통일교회의 신자들 전부가 모든 것이 원칙에 틀어진 것과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그렇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민주세계에 있어서 한국이 비참한 모양, 세계가 비웃는, 세계가 조롱하는 입장에 섰지만 여기에 있어서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이 단결하여서 이 민족의 마음을, 혹은 3천만 민족의 마음을 다시 재창조시켜 가지고, 고쳐 가지고 하나의 이념적인 세계로 방향을 잡아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한국의 유엔 가입도 문제없이 되리라고 봅니다. 공인뿐이 아니라 주도적인 어떠한 이념적인 기준 위에서, 민주와 공산세계 앞에 새로운 이념적인 승리의 표준을 세울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겠나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민족적인 운동을 제시하여 삼천만 민중이 통일의 이념권 내에서 전세계를 향해서 행군할 수 있는 이런 운동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그때서부터 우리와 같이 대등한 입장에서 벌어져 가지고, 승리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날에는 민주와 공산까지도…. 제3차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야만 우리의 사명이 완결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요원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그러면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국가적인 기준에서 이 판도를 어떻게 탕감하느냐 하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한 것과 같이 제 1차적인 계획입니다. 그러니 제1차적인 계획은 승리했다는 것으로 끝났다 이거예요.
그리고 이 3년 기간에는 내적인 모든 프로, 혹은 섭리적인 과거 역사적인 프로, 혹은 앞으로 미래로 나갈 수 있는 모든 기준을 이 3년 기간에 완전히 닦아 놓아야 돼요. 여러분이 원리에서 배운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원리가…. 모든 것이 끝나리라고 봅니다. 전부가 이 7년 전도 끝나 가지고…. 이번에 윤사월이 있었다는 것은 하늘이 다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5월 달이라는 새 달을 잡지 않고 4월이라는 명사권 내에서 우리가 이 3년 끝내면서…. 이 모든 전부가 안팎으로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배후에서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다시 한 번 여기에서 재기해야 됩니다. 이제 민족 앞에 서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 민족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위주로 해 가지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축복받은 가정들을 선두에 세워 가지고 욕먹는 가정으로 만들고 조롱받는 가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이렇게 한 3년만 나가서 움직이게 된다면, 그때가 오면 여러분은 반드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해서 만 21년이 되는 날이 이제 3년 6개월 남았습니다. 3년 6개월, 이것을 성경으로 말하면 전 3년 후 3년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21년만 되는 날에는 앞으로 우리의 발판이 상당히 넓어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선교하는 방법이 있어서 우리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는 거예요. 이제는 누가 문제시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문제는 뭐냐 하면, 움직이는 세계를 한번 돌려놓으면…. 수습을 못하더라도 십년 백년을 돌아 가지고 가만있을 수 있게끔 만들어 놓으라 이거예요. 수습할 사람이 없더라도 한번 돌아가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 그런 동기를 어떻게 만들어 놓겠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고생시키는 것은 그런 재료와 그런 동기를 만들어 놓기 위해서 이렇게 나가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 4년…. 4년 같지만 3년 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말이예요.
이 4년간에 우리 표어와 마찬가지로 승리적인 주관자가 되자 이거예요. 그걸 설명하면 내용이 복잡한데 하여튼 그런 목표로서 승리적인 주관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기준,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는 기준을 닦아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을 반드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을 사회에 내보내 가지고 앞으로는 여러분들에게 사업도 시키고 취직도 시킬 것이고 관공서에도 취직을 시킬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면서 여러분은 가정적인 기준에서 이 민족 앞에 본이 돼야 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맨 처음에는 모두 틀림없이 비난할 것이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계획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끝까지 나가면 앞으로 기필코 세계적인 기준 앞에서 크나큰 경이로운 사건을 제시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은 참고 이번 기간에 있어서 이와 같은 동기로 말미암아 더더욱 결의를 해 가지고 앞으로 힘있게 우리의 계획대로 실천해 주기를 부탁해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전부 일어서자구요. 오늘은 통일교회 만세 삼창하고 앉자구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온 천지를 생각하라구요, 온 천지. 하늘 땅 모두 온 천지를 생각하고, 통일교회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넓고 넓은 이 온 천지 중에 존엄하신 아버지의 승리의 이념만이 당신의 뜻이 되시옵고, 당신의 영광이 되시옵고, 당신의 자랑이 되시옵고, 당신의 전체적인 주권이 되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것이 존재하는 모든 만상과 더불어 아버님의 심정의 일면을 바라보는 모든 전체의 목적이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와 같이 크나큰 섭리의 뜻을 안 저희들, 이제 저희들은 본연의 동산을 그리워할 줄 알고 본연의 심정세계를, 험악한 죄악 세상의 모진 고난중에서도, 환란도중에서도 아버지의 심정의 동산을 그리워하며 수많은 날을 하루와 같이 역사와 더불어 더듬어 나왔사옵니다.
이 역사적인 전체의 결실을 책임져야 할 저희들이 아버지의 심정의 동산을 더듬어 나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의 한날이 아버지의 자랑의 날임을 저희들이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당신이 얼마나 수고하였사옵고, 불초한 인류를 거느려 나오는 아버지의 고초가, 노고가 얼마나 컸었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지난날을 지난날로서 청산하고, 오는 새로운 약속의 세계의 이념 앞에 저희들이 엄숙히 엎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으로부터 머나먼 6천 년 전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셨던 아버지의 기쁨을 저희가 어느 한때 체휼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사옵고, 저희 선조들이 어느 한 시기에 그와 같은 기쁨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누기를 고대했던 것이었사오나, 죄악의 혈통의 인연을 받아 이 인연을 벗어나지 못 하던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한숨과 더불어 그날을 고대하였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의 역사가 슬픔의 역사였고, 탄식의 역사였고, 눈물의 역사였고, 곡절 많은 원한의 역사였던 것도, 당신과 더불어 기쁨의 한날을 맞이하여 기쁨의 천주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오늘 이 놀라운 섭리의 뜻 앞에 보잘것없는 이 민족을 세우시고, 불쌍한 이 동산을 아버지께서는 기억하시어, 많은 민족 가운데 이 민족을 일깨우시고, 수많은 나라 가운데 이 나라를, 수많은 명승지, 명산을 제쳐놓고 이 나라 이 삼천리 반도를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사 이 기쁨의 날 최후의 마감 날을 이 동산과 더불어, 이 민족과 더불어 가질 수 있게 하신 크나큰 섭리의 뜻 앞에, 당신이 고대하시던 기쁨의 날이 이 동산과 더불어 나타날 것을 아는 저희들은 이제 기쁜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의 기쁨의 일체가 되고, 그 기쁨의 소망과 더불어 영광을 길이길이 찬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옵니다. 그러나 저희의 사정이 아직까지 그러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기쁨의 한날을 마음으로 더듬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63년 6월 20일, 음력으로는 4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이 날을 저희들이 맞이하였사옵니다. 지금부터 만 3년 전 아버지의 뜻 앞에 저희들이 맹세하고, 아버지 앞에 크나큰 섭리의 날을 고대하던 것도 이 날이었음을 저희들이 알고, 역사적인 한의 심정을 풀어 달라고 아버지가 인간의 배후에서 수고하신 것도 이와 같은 날을 맞기 위함이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살아생전 이와 같은 날을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날에 살 수 있는 이 영광 앞에 모든 것 다 드려 감사해도 부족한 것임을 깨닫게 될 때, 아버지, 저희들은 가진 것 없사옵고, 갖춘 바 없사옵고, 아버지 앞에 쌓은 실적이 없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밖에 아버지 앞에 드릴 것 없사옵고, 초조한 한숨에 어린 그 사정밖에 드릴 수 없음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이와 같은 초조한 심정을 갖고 오신 아버지였기에, 우리의 아버지가 이와 같은 슬픈 심정을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계신 아버지였기에, 그 아버지를 모시는 저희들이 그와 같은 사실이 아직까지 전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가 첵임진 사명에 있어서의 불충함을 생각하게 되옵나니, 아버지, 이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맡기신 전체적인 사명을 저희들이 약속한 대로 실천하여 승리의 발판을, 온 천주적인 승리의 기반을 가졌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 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분하고 원통한 이 사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한 많은 역사적 인연을 밟고 올라서야 할 것이 아버지의 복귀의 뜻이었사옵고, 복귀의 뜻을 따라 나오는 성도들의 싸움터였음을 생각하게 될 때, 어느 한날 그와 같은 날이 오기를, 아버지, 고대했사옵니다. 수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같이 자기의 생명을 던지는 그러한 자리에서 소망하던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저희들은 승리의 부활체가 못 되었사옵고, 아버지 앞에 영광을 찬양해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성체가 못 되었음을 다시 한 번 하늘 땅 앞에, 온 천상 앞에 회개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용납하여 주옵소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할 수 있는 천적 인연 앞에 저희들의 부족한 것을 다시 한 번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이 부족한 저를 세우시어 지금까지 수고하신 인연을 통하여 저희들을 붙들었사옵기에 이 붙드신 크나큰 자비의 심정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은 그 심정을 더듬어 아버지 앞에 이 시간도 모였사옵니다. 하오니 거룩하신 당신의 심정을 여시옵고, 생명의 인연을 저희들에게 가하시어 부족한 저희 자체를 채워 주시옵고, 죽음에서 생명의 뜻을, 생명의 전체적 가치를 갖추지 못한 것을 갖추게 하여 아버지 존전에 거룩한 생명을 갖춘 성체로서 인정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 참석하였다는 인정이라도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보잘것없는 어린 것을 불러 세우던 아버지의 애달픈 마음을 저는 아옵니다. 그리고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앞에 놓고 이와 같은 어려운 길을 가라고, 당신이 슬퍼하시면서 명령하신 사정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고비가 지나면 또 고비가 있을 것이고, 그 고비를 지나면 또 험난한 고비가 있나니 역사적인 인연을 되풀이하여 가야 하는 운명의 길이라고 재촉하시던 당신의 그 심정을 아옵니다. 한 고비를 넘고 나가게 될 때 또 한 고비가 있다고, 하늘이 죽지 않았으니 죽지 않은 하늘을 믿는 그 길 앞에 있어서 너도 죽지 않을 것을 믿고 가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사정도 잘 아옵니다.
돌고 도는 복귀의 길, 한 많은 고난이 앞을 막는 그런 길에 있어서도 당신은 저버리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감사하옵니다. 보잘것없는 이 어린 것을 이끄시어 이와 같은 자리에 세우시어,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옵니다. 이런 모임을 가져 당신 앞에 역사적 인연을 두터이 하여 생명의 기준을 새로이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여 주신 것은 모두가 아버지의 은사였고, 아버지의 사랑이었고, 아버지의 지극한 보호였음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불쌍한 이 민족을 기억하시기 위하여 불쌍한 자들을 택하시고 참아 나오신 인연이 있는 것을 보시사, 이 민족의 불쌍한 것을 용납하여 주옵고, 만민의 불쌍한 처참상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43년이라는 기간에 하늘의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할 책임 앞에 하늘땅 앞에 있어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만민이 하늘 앞에 쌍수를 들어 찬양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할 것인데 민족이 받들지 못하고, 수많은 교단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연되는 역사적 인연 가운데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역사 가운데서 쓰러지지 아니하였사옵고, 싸움터에 있어서, 아버지, 승리의 깃발을 들고 오늘까지 나와 이 자리에 참 석하게 해주신 것만 생각해도 감사하옵니다.
3년이라는 기약을 세워 모진 풍진 가운데서도 저희들은 지치지 아니하고, 낙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저희들은 낙망하지 않고, 오늘의 이와 같은 승리적 기반을 갖추어 민족적 기반을 토대로 하여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이러한 날을 갖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도 아버지의 수고의 역사였사오매 이에 감사드립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아버지를 세워 놓고 자랑할 것밖에 없사옵고, 자랑할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수고의 인연밖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년 마지막 고개를 넘는 이 순간, 아버지,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3년 마지막을 연결하는 이날 하늘과 땅은 다시 한 번 결합하시옵소서. 3년 마지막을 보내는 이 시간 하늘과 땅은 역사의 슬픔과 더불어 이 부부를 지켜 봐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의 깃발을 들고, 영광의 깃발을 들고 새 아침,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하늘이 앞에 서고 땅은 뒤에 따라 하늘땅을 중심삼고 승리의 한날을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위치를 세워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터전을, 아버지, 이날을 보내면서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탄식권 내에 있는 이 민족의 탄식을 제거시키시어 아버지의 영광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승리의 인연을 세워 주시옵고, 당신을 배반하는 자리에, 당신을 모르는 그런 자리에 있는 수많은 인류를, 당신을 알고 당신을 기억할 수 있는 자리로 돌이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분단되었던 인연을 하늘을 중심삼고 새로이 하나를 이루시옵소서. 아버지의 영광을 중심삼은 승리의 동산을 어서 속히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에 참석하지 못하고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식구들이 많사오니, 같은 심정의 인연으로써 그들을 보호하시옵고 품으시사, 영화의 존전에 새로운 기억 가운데서 그들을 세우시옵고, 새로운 심정으로 묶으시어, 아버지, 새로운 세계의 역군으로서 다시 한 번 기억하시어 내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새로운 심정을 품고 나아갈 저희 식구들에게 일률적인 사랑의 보호가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아버지 뜻 가운데서 기억하여 주시옵고, 만민과 더불어 새로운 약속의 시간으로서 보내는 동시에, 새로운 날로서 맞을 수 있는 복귀의 주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망과 생명의 분수령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세계와 하늘세계에 있어서 서로서로 승리가 교차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상에 있는 천천만 천군은 지상을 대신하여 자기의 숭리의 발판으로서 역사할 수 있는, 아버지의 발판으로 삼아 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승리의 하나의 초점이 되게 하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이, 아버지, 승리의 날을 맞이함과 더불어 당신의 자랑과 존귀와 영광이, 길이길이 온 천지간에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길이길이 아버지의 깊은 심정의 인연 가운데서, 아버지, 기억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사랑하는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새로운 약속의 기간을 세워 놓고 황무지와 같은 이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출발하던 날로부터 어언 3년이 지나 오늘 그 마지막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간 어린 식구들로부터 연로한 식구들이 이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남과 같이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모든 환경에 있어서 자유스럽지도 못했던 그런 생활환경에서 거듭되는 시련이 여러분 앞길을 막았으나, 여러분들의 하늘을 생각하고 뜻을 염려하는 일편단심, 하늘을 더 기억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과 지성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여러분이 흘린 땀, 혹은 눈물, 혹은 피로 이 강산을 물들인 그 인연의 터전 위에서 하늘은 승리적인 발판을 닦아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3년 기간을 출발하게 될 때에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우리는 이 3년 기간을 하늘을 위하여 죄없는 죄인으로서 복역하는 기간으로 삼아 참고 싸워 나가자며 권고했던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가는 길은 말없는, 혹은 지켜 주는 사람 없는 환경이로되, 여러분 자신은 하늘을 위한 입장에 서서, 자유롭지 못한 그야말로 죄없는 죄인과 같은 사정에서 싸워 왔던 것입니다.
눈물 어린 환경에 부딪치게 될 때는 거기에서 재삼 내적으로 결의하고, 자기의 몸을 원수들 앞에 굴하지 않기 위하여 하늘 앞에 눈물 어린 맹세를 하고, 혹은 자기가 책임 맡은 지역을 사탄세계 앞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후퇴하지 않고 버티고 싸워 나온 식구들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는 자기 스스로 생활환경을 가눌 수 없는 입장이 되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타개할 수 없게 되어서 그 어려운 며칠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때는 피를 팔아 가지고 싸워 나온 식구들도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전부가 여러분 개인이 움직인 것이로되 그것은 여러분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3년 기간의 운세라는 것은 오늘 여러분들이 책임진 어느 한계 내의, 제재를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역사는 흐르고 있고, 이 역사적인 운세는 앞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고 있는 연고로, 여러분들이 제한된 환경에서 수고했지만 여러분 배후에서 움직이는 천운은 이 우주, 새로운 역사세계를 향하여 발전해 나왔기 때문에 그 발전하는 속도가 여러분을 중심삼고 새로운 자리를 잡고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 나갈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할 때, 여러분 개인이 고통 가운데 흘린 눈물이라도 그 눈물은 역사적인 고통과 더불어 흘린 눈물이요, 여러분 개인이 시련 가운데서 당한 처참상은 개인이 당한 것이로되 개인이 당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전체의 처참상을 대신하여 당한 것입니다. 그런 인연과 더불어 우리는, 혹은 하늘은 여기에 새로운 기반을 두터이 하고 역사적인 승리의 발판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배후에 서 영원히 움직이는 수고의 노정을 통해 수습한 하늘이 있었던 연고로 이와 같은 승리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3년 기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새로이 인상되는 바가 큰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 3년 기간을 지내 놓고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개척해 나갈 것이냐? 이 3년 동안은 민족적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이 우리들이 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에서 생활이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이 민족을 구할 수 없고, 이 삼천리 반도에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시련과 투쟁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은 한국을 위주로 하여서 세계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더 큰 사명의 새로운 길이 열려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일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만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 지나고 나면 새로이 더 큰 할 일이 우리에게 부딪쳐 오나니, 새로이 부딪쳐 오는 할 일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 민족을 위해 한 일보다 더 큰 분야의 할 일로서 찾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복귀섭리의 노정을 통하여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개인을 위주로 하여 가정을 바라보고, 가정을 위주로 하여 민족을 바라보고, 민족을 위주로 하여 국가를 바라보고, 국가를 위주로 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를 위주로 하여 하늘땅을 바라보는 이런 섭리역사 노정을 거쳐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날의 일을 지나갔다고 하여 여기에서 일단락 짓는 것이 아니라 일단락 지은 그 기반 위에 새로운, 더 큰 할 일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고역을 당한 그 고역 기간이 끝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은 일시적으로는 해방의 기준을 갖춘 것 같았지만, 그 해방이 자유스러운 해방이 아니라 그날부터 그 자유를 중심삼은 더 큰 시련의 노정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몰랐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그들이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고역당 하던 그 고역노정에 있었던들 60만 대군은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쁨의 한날을 맞이하여 새로이 출발하는 그 도상에 있어서 그 민족이 망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느냐? 애급 고역의 시련의 고비가 끝나면, 가나안 7족을 멸하고 가나안 복귀를 한 후에 그 민족 앞에 세계적인 환란의 무대를 수습해야 할 더 큰 시련의 노정이 찾아온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 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져 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은 3년 기간을 통하여 제1차 승리적 기준을 가졌다고 해서 여기에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제1차 승리를 방패로 하여 제2차 승리적 기반을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몸으로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민족 앞에 허락할 세계적인 운세를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민족 앞에 허락할 천주적인 은사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민족을 넘어 국가적인 인연 가운데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나서는 우리들 앞에는 민족을 끌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고, 세계를 끌고 천주적인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과거에 민족을 위하여 싸웠던 충성스러운 한 날이 있었으면 이것을 회상하면서 '아, 나는 옛날에 이러한 싸움을 싸웠기에 하늘 앞에 어떠한 면목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거기에 하늘은 나를 재촉하여 더 큰 자리에서 충성하기를, 1차, 2차를 넘어 3차, 4차까지 더 큰 목표를 향하여 나가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의 터전 위에서 여러분들이 지난날 충성하였던 그 한날을 기억하면서 즐거워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더 큰 터전 위에서 충성을 하여 더 큰 승리의 날을 맞아 회고하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재삼 여러분들이 마음 깊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문 밖에 나서게 될 때 고개를 들지 못하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친지를 대하게 될 때,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면서도 환경적인 억압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숙이고, 자기의 마음 가운데는 자기의 당당한 위신을 세우지 못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운 자리를 모면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억울한 환경 가운데에서 살아온 여러분들이지만 이제 문을 나서게 될 때에 그러한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이 부끄러움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이런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환경적인 인연에 있어서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 핍박의 길이 해소되었고, 여러분이 자유롭게 활발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성과가 어떠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환경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여기에 분함이 있고, 과거를 기억하면서 자기가 주저하였던 그 사실과 현실을 비교하게 될 때, 자유스러운 현실의 환경에서 내 자신이 또다시 주저하는 자체가 되었다 할진대는 여러분의 갈 길은 막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재기하여, 다시 한 번 분발하여 과거의 원수들을, 과거에 우리의 환경을 억압하고 제지하던 원수들을 대하여 우리들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싸우고, 하나님 앞에 말없이 충성하여,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터전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자연굴복 할 수 있는 숙명적인 자기와 자기의 환경을 가진 이 자체가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끄러움을 느꼈던 환경에서 당당한 승리의 기준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들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환경의 기준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재기하여 환경적인 인연을 청산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제2차적인 큰 터전 앞으로 여러분들은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어느때에 실패하느냐? 어느때에 망하느냐? 흥하고 망하는 것은, 새로운 한 고비가 뒤넘이치게 될 때 벌어지는 것입니다. 한 면에서 흥하는 사람이 생겨나는가 하면 한 면에서는 망하는 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3년 기간 동안에 3정권이 교차하는 역사적인 변동기를 잘 주시해 봤을 것입니다. 한 주권이 넘어가면 새로운 주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한 면이 무너지면 한 면은 희생되는 것입니다. 한 면이 망하면 한 면은 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교차되는 이런 환경, 시대적 찰나에 벌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3년의 마지막 날을 맞아서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느냐? 내가 넘어가는 이 하나의 분수령에 있어서 제거당하는, 역사적인 한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고 망하는 자가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아침의 햇빛을 맞기 위하여 그 준령을 넘어서서 새로운 천지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소망 가운데 흥하여 최상의 영광을 노래 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냐? 이러한 찰나, 이러한 순간이 이 기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이 고개를 넘고 나서는 이 세계를 향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개인으로부터 천주까지 복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을 위한 싸움을 하였고, 가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을 하였고, 민족을 세우기 위한 싸움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세계를 위한, 세계를 복귀시키기 위한 싸움은 누가 할 것이냐? 개인이 싸워 승리한 터전 위에 가정의 자리에까지 나가 싸워 승리하지 못하면, 개인적인 기반을 닦은 사람이 가정의 자리에 못 나가게 될 때는, 그 개인적 기반 위에 새로운 사람이 나와 가정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래요.
가정을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사람이 그 기준 위에 새로이 종족이나 민족을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거기에 서지 못하면, 가정 기반을 닦은 그는 쓰러지고 그 터전 위에 민족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새워서 민족을 수습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섭리의 역사적인 발전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신도들이 3년 기간을 중심삼고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닦은 터전 위에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못 나가게 되면, 여기에 있어서 세계적인 무대는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이 못 하니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이 닦아 놓은 터전 위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끔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역사예요, 복귀역사.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날을 맞아 다시 한 번 마음과 몸을 아버지 제단 앞에 놓고 '과거에 나는 이랬으나 오늘의 나는 이렇다'라고, 내 자신이 여기에 재기하여 하늘 앞에 새로운 나로서 재출발한다는 이런 결의를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민족을 위하여 투쟁하던 우리였으나 이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투쟁하겠다는 신념에 불타 가지고 여러분들이, 한국에 있는 우리가 세계에 나가 세계를 위하여 보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내 주는 데는 물질이 없거든 땀을 보내고, 눈물을 보내고, 피를 보내라! 이것이 통일 신도들이 지니고 나가야 할 이제부터의 생활 목표인 것입니다. 정성을 보내라! 내 아들을 위하여 정성들이던 이상의 정성, 내 가정을 위하여 정성들이던 이상의 정성, 오늘의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들이던 이상의 정성을 보내라 이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복귀하는 도상에 있어서의 시련보다도 종족을 복귀시키는 시련이 더 큰 것이요, 종족을 복귀시키는 시련보다도 민족을 구하기 위한 시련이 큰 것이요, 민족보다도 세계를 구하기 위한 시련이 더 큰 것입니다. 분야가 크면 클수록 범위가 넓어짐에 비례하여 거기에 부대되는 시련이 가중되어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분이 원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개인의 민족주의적인 관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민사상에 고착하여 세계적인 사조의 일념을 망각해 버렸기 때문에 그 담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민족을 대하여 싸워 나오던 그 싸움의 터전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주적인 종말점에 가 가지고 끝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1차적인 싸움은 끝났지만 2차적인 싸움으로부터 이제 연속되는 투쟁도상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여기에 지치지 않고, 여기에 쓰러지지 않고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조그만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바라볼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그런 생활적인 감정을 가지고 하늘 앞에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세계에 널려 있는 어떤 민족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요즈음 외국에서 온 편지를 보면 외국 식구들이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들의 수가 한국보다 많아 가지고, 지금까지 수년 동안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던 사람들보다도 많은 수가 하늘 앞에 정성을 다하게 되면 하늘의 운세는 그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거예요. 그건 불가피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각국에서 들려 오는 소식을 통하여 어떠한 시련 가운데서도 이들이 참고 나간다는 말을 듣게 될 때, 마음이라도 그 사람 앞에 가 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움직여? 오, 그럼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나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의 스승이 돼야 되겠다. 그런 자리에 있어서의 그들 앞에 빚지지 않을 수 있는 민족이 돼야 되겠다' 그런 일념 가운데서 내가 역사적인 이념과 역사적인 사명의 가치를 지니고 가기에 그들 앞에 지지 않겠다고 현실적인 생활무대에 있어서 그들 앞에 대비해 가지고 내적 결의로써 '나는 승리한다. 승리' 하고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래도 그 운세를 지니고 그들 앞에 나설 수 있다는 거예요.
과거의 3년 기간은 개인적으로 싸우는 기간입니다. 개인적으로 싸우는 기간이예요. 개인을 중심삼고 개인복귀 기준을 완결지어 가정적 기반을 연결시키고,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종족적 기반을 연결시켜 가지고 종족을 동원하고, 종족과 종족을 합하면 민족이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이제는 여러분들이 가정을 단위로 해 나갈….
그렇기 때문에 금년부터 축복받은 가정들은 고생시키는 거예요, 고생. 여러분이 3년 동안 고생한다는 이 기준 밑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남아났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역사할 수 있어요. 만일 통일교회가 이러한 작전을 안 하였던들 오늘 여러분들이 승리의 감사의 기도나 혹은 찬양을 하늘 앞에 돌려드릴 수 없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거기서 고생했기 때문에, 이 고생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나타나서…. 그 고생, 피어린 수고의 고난의 노정을 친히 겪고 나선 사람이 만민 앞에 진정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만민을 대하여 눈물진 그런 길을 간 것을 토로하게 된다면 여기에 최고로부터 최하까지 눈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소할 수 없는 거라구요. 아무리 학자, 아무리 권세를 잡은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서는 눈물을 짓는 거라구요. 세상적으로 볼 때는 아무리 갖추지 못한 그런 미미한 존재라도 그 미미한 존재가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한, 나라를 위하여 수고를 한 그 마음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남겨 놓자는 거예요. 이랬기에 여러분들이 지금 이와 같은 기준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이런 가정을 기준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고생을 해야 합니다. 고생을 하는 데는 민족을 대표한 고생이 아니예요. 이제는 자기가 김씨면 김씨를 대표한 고생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끌고 나와서 민족적인 수고의 터전 위에 승리의 기반을 다 닦았기 때문에 이제 고생하는 것은 종족을 위해 고생하고, 자기의 선조를 살리고, 현재 자기의 종족을 살리고, 자기의 씨족을 살리고, 앞으로 자기의 씨족을 중심삼은 후손들을 살린다. 이런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가정복귀를 우리가 논하게 되고, 가정복귀를 논한 그 기반 위에 종족복귀를 논하는 거예요. 점점 퍼져 가는 거예요. 개인으로부터 가정, 가정으로부터 종족, 종족으로부터 민족…. 하늘이 여러분 앞에 '민족을 복귀하라' 할 때는 반드시 세계적인 복귀의 기반을 닦고야 명령한다는 거예요. 한 단계 앞서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잘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그러면 이걸 넘어가는 이 찰나, 순간에 있어서 재교육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전체가 새로운 면에서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과거에는 혼자 나가서 전도했지만 이제 앞으로는 이동이 벌어져야 되겠습니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은 지방도 가야 돼요, 집을 팔고. 대이동이 벌어져야 돼요. 아브라함에게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 할 때 보따리 싸 가지고 가는 거예요. 안 가는 사람은 망하는 겁니다. 망해요.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거예요.
앞으로 통일신도들이 이걸 단행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건 명령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다 알아야 될 거 아니예요?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지방으로도 가고, 때에 따라서는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도 올라오고, 자동적인 대이동을 해야 됩니다.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이런 놀음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면서 부처끼리 가정적으로 수고한 그 수고는 무엇을 위해? 천상의 도리를 그 가정에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천상의 법도를 그 가정에 세움으로 말미암아, 각 가정 가정이 그런 법도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중심삼고 민족적인 운동을 제시하여 민족이 거기에 공인을 하고 민족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게 될 때는 민족 기반을 위한 승리적인 발판을 거기서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고, 투쟁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환경과 자연적인 투쟁 방법을 통하여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한날을 보장하고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런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올 수 있는 길은 알았습니다. 내가 오는 길은 알지만, 왔다가는 가야 할 인간이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은 알았어요. 들어와 보니 여기가 올 곳인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와 가지고 어떡할 것인가, 여기서? 와 가지고는 여기서 그냥 살 수 없습니다. 사는 데는 갔다가 다시 와야 산다는 겁니다. 낙원에 왔지만서도 낙원에서 살 수 없는 거예요. 낙원에서 다시 갔다가 와야 돼요. 지상에서 완결짓고 와야 돼요. 우주적인 승리의 결정을 갖고 돌아오기 전에는 살 수 없는 거예요. 행복을 중심삼고, 중심존재를 모시고 하늘의 평화와 하늘의 자유 세계의 그 모든 사랑을 중심삼고 살 수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오기는 왔지만 여기서 살 수 없는 겁니다. 살아 봐요, 마음이 편한가. 살아도 지옥이예요. 오기는 벌써 왔지만 여기에 와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곳이예요. 와야 할 곳인 줄을 알고 와 보니, 여기에서 만사가 끝난 줄 알았는데 영계의 낙원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적인 입장이요, 여러분이 움직이는 통일교회의 모임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행복을 노래할 수 있겠느냐? 아니예요.
세상을 복귀시켜야 할 하나님의 섭리, 영계의 한을 지상에서 풀어야 할 복귀섭리가 남아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배후에는 복귀섭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섭리적인 한과 탄식이 여러분이 머물고 있는 그 행복의 터전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여러분이 평화를 느낄 리가 만무하다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다시 갔다 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럼 통일교회는 지금 어떻게 나가느냐? 이 전체가 오기는 왔다 이거예요. 왔지만서도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 자체는 개인적으로 머무는 통일교회의 시대를 지나, 가정적으로 머무는 통일교회의 시대를 지나, 민족적이요 국가적으로 머물 수 있는 통일교회 시대를 지나 세계적으로 머물 수 있는 통일교회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오긴 왔는데 이 자리 자체에, 여기 고정된 위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통일교회 시대로부터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통일교회 시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일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일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조상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지도자라는 것은 조상이예요.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일 조상이라는 거예요. 조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시간적인, 역사적인 인연을 많이 가진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시대를 두고 볼 때에, 개인적인 시대로부터 세계적인 시대까지 긴 역사를 가진 사람은 자연히 많은 복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만큼 그는 긴 역사에 있어서 공을 많이 세운 조상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한 번 개인을 택했으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하늘이 바라는 것은 뭐냐? 개인적인 삶의 시대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가정적인 시대에서 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지나 세계적인 승리의 자리에까지 나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소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힘이 없고 기력이 부족하여 가지 못하게 될 때는 마음으로 하늘 앞에 맹세를 하고라도, 자기가 못 하거든 후손에게 그곳을 향하여 가라고 유언이라도 하고 갈 수 있는 이런 각오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복귀의 인연의 세계에 처해 있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처해 있는 입장이 어떤 입장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지금 선생님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선생님이 가고 있는 이 시대 과정을 두고 볼 때에, 어떠한 시대 과정에 처해 싸우고 있느냐? 이 3년 기간은 어떠한 기간이냐?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소원성취를 못 하고, 종교라는 그런 명사를 세워 놓고 국가 민족을 구하기 위한 사명의 기반을 닦기 위해 죽어갔습니다. 그러니 이 예수의 한을 해원해 줘야 할 실체적인 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 3년 기간은 실체적인 노정을 구축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기간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종족기준까지, 종족을 넘어 민족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승리의 발판을 세우고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그 기반까지, 백 번 죽고 천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언제나 연장적인 연한을 자유롭게 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딱 짜여 있는 한계와 기간 내에 이것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기간이 오늘의 3년 기간이예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만 43세는 애급고역 430년과 맞먹는 것입니다. 모세를 중심삼고 볼 때,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나와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게 될 때 40년 기반 위에, 40년 승리의 기반 위에 3일노정을 세운 거와 마찬가지의 기간입니다. 40수에다 3수를 합한 이것이 역사적인 원한의 고비로 남아 있는 연고로 이 역사적인 한의 기간을, 장벽의 기간을 하늘 앞에 승리의 기간으로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40세를 위주로 하여 진짜 하늘 앞에 결판을 짓는, 완전히 분별한 민족을 거느려 나와 3일 기간에 분별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사탄이 참소하거나 따라나올 수 있는 3년 기간을 중심삼은 민족 자유의 환경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노정까지 합하여 43년 기간을 두고 싸워 나가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럼 이 3년 기간에 있어서 첫해는 뭘하는 것이냐? 자리가 없어요. 아무리 여기에 통일교회가 있다 하더라도 통일교회 자체가 자리를 못 잡았어요. 자리가 없다 말이예요. 자리가 없어요. 아무리 우리의 진리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진리라 하더라도 진리를 주장하고 있는 그 사람 자체가 자리가 없어요. 4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뜬 구름과 같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런 과정에 있어서 투쟁을 해 나오는 거예요.
이러면서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에 있어서 절충을 시켜 가지고, 육계와 영계가 합하여 비로소 하나의 결단을 지어 놓고, 이걸 깔고 앉아 하늘의 하나의 승리적인 기반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이런 고비가 40년을 중심삼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때가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생사의 결정이 좌우되는 기간이예요. 그런 찰나에 있어서 선생님은 모험도 해야 되었고…. 그런 곡절의 역사를 여러분이 다 모를 거예요.
이리하여 1천9백 6십 몇 년인가? 1년인가? 60년도지?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성혼식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비로소 자리를 잡았어요. 사탄세계 앞에서는 개인이 초점이 없었어요, 뜬 구름과 같이. 아직 발판을 다 찾지 못했다는 말이예요. 이래 가지고 하나의 기점을 세워 가지고 타고 들어가는 거예요.
기점을 세우는 데는 어느 기준이냐? 3년 과정의 시련을 남기고 기점을 세웠기 때문에 3년 시련을 당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 기간은 사탄 분별 기간이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숱한 조건을 앞에 놓고 세워 나온다는 거예요. 요단강을 건너기 전, 혹은 홍해를 건너기 전에 하늘이 행장을 갖추어 건너게 하기 위해 3일 기간을 남겨 놓았던 거와 마찬가지 기간이예요. 따라서 이 3년 기간에 있어서 우리가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느냐, 못 가져오느냐에 따라 하늘의 뜻이 좌우되는 거예요.
그래서 땅 위에 자리를 잡게 되니 하늘의 자리가 잡히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하늘의 자리가 잡히니 하늘의 백성의 인연이 벌어지고, 땅의 백성의 인연을 맺기 위한 조상복귀라는 기준을 전부 다 거쳐 가지고 금년까지 나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제 종적 기반 위에 횡적인 세계적인 기준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이런 역사를 3년 동안에 전부 다 완결지어 여러분들이 사위기대 복귀를….
가만 보라구요. 원리가 전부 다 연결되는 거예요. 복귀원리의 전 프로를 오늘 전까지 전부 다 맞춰 가지고 넘겨야 된다 이거예요. 맨 중심인 사위기대 복귀문제로부터…. 사위기대 복귀는 반드시 종족적인 기준과 민족적인 기준이 없으면 행세를 못 하는 거예요. 이 사위기대 복귀의 기준과 더불어 민족의 운세와 인연되어 가지고 승리라는 그 기준 위에서 세계를 향하여 넘어갈 수 있는 천적인 인연이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걸 설명하려면 한이 없는 거예요.
이래서 3년 계획하였던 모든 것은 이 한국에 있어서 우리가…. 어디 종교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어요? 통일교회 인정 받았나? 어느 하나도 인정 안 하는 그 자리에서 타고 들어와 가지고 전부 다…. 이래서 국가적인 인연을 닦아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4월 13일에 우리가 선포식을 했지요? 양력이든 음력이든, 윤4월이든 관계없어요. 앞으로 그날을 전부 다 4월 13일로 쇠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역사적인 인연이 다 있다는 거예요.
이래서 금년 이 3년 고비를 중심삼고, 여러분 7차 전도 기간과 더불어 이 3년 고비를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 지금 계획하던 모든 계획은 일단락 짓는 거예요. 원래는 여러분이 아는 이번 성혼식과 헌공식은 4월에 하는 거예요. 4월에 다 끝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모인 이 모임은 무엇이냐 하면, 이것을 다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 앞에 연장시키는 식을 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연장시키는 식을 해야 돼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하늘의 전체적인 조건을 대표한 가정들이, 이 가정 가운데는 하늘땅을 조상적인 면에서 묶어 인연을 세워 가지고 실질적인 기준에 있어서 연장시킨다는 이 기준을 세워 놓고 넘어가야지, 안 넘어가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그래 선생님이 사흘 전부터 거기에 대해서 기도했어요. 사흘 전부터 기도하는 거예요. 무슨 기도? 사흘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아요, 사흘 동안에? 사흘 동안에 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아느냐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사흘 동안에 무슨 일이 생겨 가지고 여기에 착오가 생겨 마지막 날 이 자리에 참석 못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흘 전에 상징적인 조건을 세워 놓는 거예요. '아버지 만일에 이런 일이 있더라도 세우는 이 조건을 조건삼아…' 하고 기도를 하고 나오는 거예요. 사흘 동안 선생님이 이 준비 다 한 거예요. 만일 그러한 기준을 맺고 넘어가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가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아무 날로 연장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연장할 수 있는…. 성혼식을 원래는 4월까지 전부 다 하려고 했다구요. 전달에 헌공식까지 전부 다 끝냈더라면, 그 식구들을 중심삼고 이번에 전부 다 넘길 것이었는데 그것 이 연장돼 나옴으로써 전부 다 연장되어 나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이번도 다 하늘의 역사라구요, 이번 40일도 왜 하필 윤4월이 있어 가지고…. 그거 다 역사란 말이예요. 예수님의 부활 40일과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4월권 내에 있어서 통일교회 반대하던 것을 전부 다 용서해 주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용서하는 거예요. 다시 수습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부활해 가지고 역사를 한 것처럼 전부 다 용서를 해 주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 넘어가는 거예요. 이런 걸 보게 되면 때가 어떻게 됐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 거예요. 이리하여 지금 넘어 올 수 있는 찰나, 순간이예요.
원래 여러분들이 여기에 참석하여 이 길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개인은 못 넘어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개인은 못 넘어가는 거예요. 축복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가정적인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못 넘어갑니다. 그래서 금년에 들어와서는 선생님이 기성가정들도 축복해 주고, 그다음에 할머니들까지, 외짝들까지 축복해 주고, 처녀 총각들도 축복해 줄 것이고, 전부 다 축복해 주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영계와 육계를 접촉시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중간에 있는 홀아비들도 전부 다 결혼시켜 주는 거예요. 전부의 대표자를 총합시켜서 전부 다 넘어갈 수 있는 길을 완결시켜 놓아야 된다 이겁니다. 이거 안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전부 다 해 놓았다 그 말이예요. 이번에 홀아비 과부들도 전부 다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도 이제 해주는 거라구요. 그러한 조건을 전부 다 완결지어 가지고 넘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길을 전부 다 준비해 놓아야만 그러한 사람들이 넘어올 수 있는 길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설명을 쭉 하게 되면….
이런 것을 하기 위해서는 성지를 결정하고 성지를 결정한 후에는 아들딸, 수고한 아들딸을 표창을 하는 거예요. 그 표창받은 아들딸들은 거룩한 사람들이예요. 사탄세계에 있어서 대표적인 형을 뽑아 가지고 그들의 공로의 터전 위에 축복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넘어오는 거예요.
그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성지를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며 야단하지요? 성지에 가서 눈물을 흘리지 못한 사람들은 식구가 아니예요. 성지를 찾아가서 정성을 들여야 돼요. 예루살렘 성전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 성전을 도로 찾으러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이 되는 게 아니라 이 지구가 성전이 되어야 돼요. 이 지구성이 성전이 돼야 돼요. 이 땅이 성전이 되지 못할 때는 이 땅을 붙들고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돼요. 성전 실체 기반을 대신한 성지를 대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인연을 갖춰야만 여러분이 이 땅의 주인이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전부 우리의….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헌공식이 벌어지는 거예요, 헌공식. 눈물과 더불어 싸워 가지고 거기에 성별된 그 지역의 모든 가치가, 아무리 한 처소지만 그 처소에 나타난 성지의 가치가 사탄세계의 모든 지역의 가치보다도 높이 하늘에 기억될 수 있는 인연으로 쌓아지지 않고는 이 헌공식을 할 수 없어요.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헌공식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고, 거기에 가서 슬픔을 하소연하고, 원수를 대하여 하늘의 승리의 날을 호소한 그 기준을 하늘이 기억한다 하게 될 때는 그 땅이 사탄세계에서 높이 들려진다는 거예요. 영계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예문에 잡령(雜靈)을 통하는 사람들이 우리 성지에 와서 기도 한다구요, 성지에서. 그런 소문 알아요? 잡령을 통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성지로 선택한 거기에 와서 기도한다 이거예요. 그곳이 하늘땅이 접하는 땅이라고, 하늘땅이 접하는 초점이라 해 가지고 거기에 와서 기도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벌써부터 그거 안다는 겁니다. 그만큼 높이 들려져 있다는 거예요. 높이 들린 이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감아 가지고 전부 다 낚아채게 될 때에, 이 강산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거룩한 승리의 제물로서 바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를 마련해 놓고야 헌공식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 하늘의 사람이 없어 가지고, 하늘의 가정이 없어 가지고, 하늘의 아들딸이 없어 가지고는 만물을 주관할 수 없어요. 우리 통일교회가 민족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는 이런 때가 됐기 때문에 이 식만 완결지어 놓으면 이제 우리들의 길은 대대적으로 열리리라 보고 있어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협조를 하려고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러한 식을 오늘 하고, 그러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모인 이 자리예요. 알겠어요? 「예」 지금 열 시가 됐어요. 그럼….
아버님, 저희의 뒤에는 사랑하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이 식구들의 뒤에는 환란도상에서 아직까지 눈물의 생활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민족이 있습니다. 민족의 뒤에는 영원히 영원히 사탄이 즐거워 할 수 있는 혈통적인 기반이 아직까지 공고히 준동하고 있는 세계 인류가 남아 있습니다. 이 인류, 이 백성, 이 식구들 전부가 한 피의 인연으로써 연결되어야 할 아버지의 인연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의 원칙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인연을 잃어버린 것이 탄식이요, 이 인연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인연을 찾는 것이 기쁨이요, 이 인연을 복귀시키는 것이 아버지의 섭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참다운 조상을 잃어버렸사오니 참다운 조상이 다시 한 번 재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당신이 이 뜻을 위하여 섭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불쌍한 세계도상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승리의 깃발을 드시사 참부모라는 명명을 이 땅 위에 세워 놓고, 승리의 한날을 재촉하여 참다운 부모를 중심삼은 참다운 가정을 찾아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세우시어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의 기준을 갖추게 하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니다.
참의 아들딸이 흘린 눈물은 당신의 눈물을 대신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참의 아들딸이 고통을 당한 것은 당신의 역사적인 고통의 총결실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의 아들딸들이 피를 흘려 아버지 앞에 승리의 한날을 호소한 것은 아버지 자체의 실체를 세우시어 호소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기반 위에 민족 앞에 세워진 승리의 한날, 이 세워진 교단 위에 아버지의 영광의 깃발을 들었사오니 이 깃발이 만천주에 빛나게 하여 주옵고, 만민족에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은 참부모의 심정적인 인연이요, 혈통적인 인연이요, 승리적인 인연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은 이 인연의 전체가 길이길이 승리의 인연으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고,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회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인연을 통하여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희생시키게 하여 주옵고, 이 자녀의 인연을 가하 여 민족을 희생시키게 하여 주옵고, 민족을 희생시켜 세계 인류를 희생 시킬 수 있게 하여 주옵고, 세계 인류를 희생시켜 하늘과 땅을 희생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가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천주가 되고,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품을 수 있는 천주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한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연고로 하늘이 탄식하고 있사옵고, 땅이 탄식하고 있사오니 이 탄식의 장벽을, 아버지, 가르시어서 아버지의 자유로운 활동무대로 삼으시옵고, 하늘 선민들이 자유로이 주관할 수 있는 주관의 터전으로 삼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1963년 음력4월 마지막 날을 보내는 이 열 시, 아버지, 이날에 역사적인 3년 기간에 있어서 약속한 전체를 아버지 앞에 승리의 깃발로서 다 갖추어 드려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오나 다 갖추지 못한 저희들이 옵니다. 그러나 내적 외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완전히 갖춘 날로써 아버지 앞에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날을 연장하여 아버지의 승리의 날을 세울 때까지, 아버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기간으로서 허락하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인정한 날로서 세우시옵소서. 그날까지 저희들이 자유의 행사를 할 수 있고 자유의 뜻을 세움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섭리의 뜻 앞에 군살이 잡히는 일이 없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20쌍 성례식과 헌공식이 남아 있사오니, 이것들을 4월에 아버지 앞에 완결지은 것으로써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자유의 권한을 갖추어 내적인 심정의 터전 위에 명령을 받아야 할 마음이요, 마음을 기준으로 하여 명을 받아야 할 몸이옵니다. 아버지, 심정적인 결탁을 기준으로 하여 마음을 통하여 몸을 통하고, 몸을 통하여 실체를 주관하는 것이 창조의 법도인 것을 아오니 아버지의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호소의 심정을 대신하여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삼위일체를 이루어 결정하는 이 결정권에는 참소의 조건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기간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모든 전부를 자유의 기간으로 연장할 수 있는 것으로서, 아버지,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이 기간에 모든 전부를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것을 약속하였고, 아버지 앞에 호소한 것을 달가이 받아 주신 것도 알고 있사오니 자유로이 움직이는 전체 위에 아버지의 승리의 깃발이 길이길이 날리어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약속한 기간 내에 이루어야 할 전체적인 뜻은 조금이라도 지장 없이 섭리의 뜻과 더불어 길이길이 만천주를 움직여 낼 수 있게,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성도들이 이날을 기하여 이 땅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로 허락하여 주시옵고, 땅 위에 있는 만민의 양심을 중심삼고 하늘과 전체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약속의 조건을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제 모든 탄식의 해원의 조건을 완결시키어 자유의 나라로 향할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을 위주로 한 하늘의 가정이 되게 하시옵고, 가정을 위주로 한 참다운 백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다운 형제의 인연이 연결되어질 것을 저희들이 믿사오니, 그 뜻을 실체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가정을 위주로 한 그 기준 위에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의 날로서 이날을 세우셨사오니, 이날을 기준으로 하여 새로운 날이 되게 될 때에는, 아버지, 새로운 천지에 역사적인 전환점이 하늘땅 앞에 새로이 전개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세계는 무너지고 이 혼란된 세계는 수습될 수 있는 광명한 햇빛이 이곳으로부터 온 천주에 빛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미비하고, 혹은 어떤 부족한 것이 있고, 여기에 아버지의 마음 앞에 거리끼는 것이 있을지라도, 아버지, 약속과 더불어 다 용납할 줄 믿사옵니다. 모든 거리끼는 조건에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는,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조건으로 세워 놓았사오니, 아버지, 이 모든 것을 받으시옵고 친히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머무른 당신의 아들딸들을 이 인연과 더불어 굳게 품으시옵고 한 생명이라도 사탄세계에 나가는 자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그 나라, 승리의 그 세계, 승리의 그 주권이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 위에 세워질 때까지 저희들은 가고 또 가고, 싸우고 또 싸우고, 달리고 또 달려서 감사하는 생활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이날을 아버지 앞에 바치옵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모든 슬픔과 고통과 원한을 제거시키시어 자유와 해방과 기쁨의 날로서, 아버지, 상속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만만세의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승리와 존귀의 가치만이 저희들의 생활과 저희들의 실체적 생애노정에 깃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참부모의 인연으로, 참부모의 이름으로,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다운 아들딸, 축복받은 참다운 가정들을 통하여서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새로운 약속을 세우게 해서 황무지와 같은 삼천리강산을 개척한 지 어언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나 어린 사람들 할 것 없이 그동안 피어린 투쟁을 해 나왔습니다. 온갖 시련이 앞길을 막았으나 오직 뜻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이겨 왔습니다.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며 눈물과 피와 땀을 뿌려 발판을 닦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처음 3년노정을 출발할 때, 죄인같이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걸어 나왔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고 후퇴하지 않기 위하여 싸워 나온 것을 압니다. 임지를 지키기 위해 피를 팔면서까지 싸워 나온 식구가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한된 환경에서 수고하였지만 그 수고에는 엄청난 배후가 있었습니다. 또 그 수고는 앞길을 예비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 나갈 터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인 것은 개인에 국한된 움직임인 것 같지만, 그 모든 움직임은 역사적인 처참상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3년 기간을 끝낸 우리는 이제부터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나온 목표는 민족적인 기반을 닦은 것이었습니다. 또 이 길이 아니고는 3천만 민족이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중심으로 가정을 섭리하시고, 가정을 중심으로 민족을, 민족을 중심으로 국가를,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우주, 천주를 섭리해 나가십니다. 오늘은 섭리를 마무리짓는 날이 아니라 더 큰 시련의 길로 가야 하는 출발의 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애급 고역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의 길로 나섰을 때, 실제로 더 큰 시련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몰랐던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즉 가나안 7족을 멸한 후에는 세계적인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망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 식구들은 지난 3년 기간에 승리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민족을 이끌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고, 세계를 이끌고 하늘땅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충성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 터전 위에 더 큰 것을 위해 새로운 충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에는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면 환경적인 억압 때문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3년간의 투쟁에서 승리한 지금의 여러분은 더 이상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터전, 승리의 터전을 갖추어 나섰다 할진대 여러분은 다시 한번 일어나 환경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시련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망하게 됩니다. 전환기에는 한 편은 망하고 한 편은 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전환기에서 어떤 입장에 서야 할 것이냐? 제거당하는 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빛을 받아 재생하는 자가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복귀의 노정은 개인에서부터 시작하여 천국을 이룰 때까지 가야할 노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개인이 가정의 자리로 나가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람을 세워서 가정의 기반을 세우게 하시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법도입니다. 가정이 민족 단계에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상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여기서 세계로 나가지 못하면 여러분이 닦은 터전 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민족을 위하여 투쟁했으나 이제부터는 세계를 위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기의 아들을 위해 들이던 그 이상, 가정을 위해 들이던 그 이상, 민족을 위해 바치던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나깨나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에 외국 식구들이 한국 식구들보다 숫자도 많고 정성도 더 많이 들이면 운세는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외국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계속 승리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늘의 운세를 계속 지닐 수 있고 그들 앞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3년 동안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위하여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특별히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 동안에 여러분이 고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여러분이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저들이 머리를 숙이고 굽힐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자기의 씨족과 종족이 아닌 세계를 위하여 고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민족적인 기반을 닦을 때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놓으십니다. 언제나 한 단계 앞서 나갑니다. 이제부터는 서울 사람들도 보따리를 싸들고 지방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할 때 아무 변명도 없이 떠난 것처럼 떠나야 합니다. 자연적인 대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니 자진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민족적인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 여기까지 찾아오기는 왔지만 여기에서 머물러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시대를 지나 세계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제일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조상입니다.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그 방면에 공헌한 사람은 그 방면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세울 때 그 개인이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적인 기반까지 세우기를 바라십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처하고 있는 입장은 어떤 입장이냐? 어떤 시대적인 과정에 놓여 있느냐? 이 3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예수는 3년노정 끝에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발판을 닦는 기간이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연장되었는데 언제까지나 연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일합방 40년과 3년의 군정기간은 원리적으로 애급고역 430년 기간에 해당되는 기간입니다.
그러면 3년 중의 첫해는 어떠한 해인가? 첫해는 설 자리가 없어서 육계와 영계가 합하여 자리를 마련하는 해였습니다. 통일교회로서는 생사의 결정을 짓는 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1960년도에 성혼을 함으로써 비로소 개인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기점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기점이냐? 모세가 홍해를 건너기 전의 3일 기간에 세운 것과 같은 기점인 것입니다. 복귀역사의 모든 것이 오늘까지의 3년 기간에 전부 들어 있습니다. 이 기간을 마침으로 이루어진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음력 4월 13일에 협회 등록의 선포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의 성혼식과 헌공식은 4월 내에 모두 끝냈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다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연장시키는 식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선생님은 3일 전부터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맺고 넘어가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본래 이 길,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는 개인으로는 못 넘어갑니다. 축복 받은 가정이라는 기준을 중심삼고서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의 축복을 해주어야 합니다. 전부 다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축복해 준 기준을 넘어선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하기 위해서 성지를 결정하고 하늘땅을 대표한 사람들을 세워 표창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대 위에서 축복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잡령을 통하는 사람들도 우리의 성지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지가 하늘과 땅이 접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성지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헌공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식만 끝나면 앞길이 대대적으로 열리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뒤에는 사랑하는 식구들이 있고 민족이 있사옵니다. 민족의 뒤에는 사탄이 준동하는 세계가 있사오나 모두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할 것들이옵니다. 이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과 인연을 맺도록 복귀해야 하겠습니다.
참부모를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세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참부모를 세워 참아들딸을 세워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들리워진 깃발을 만우주에 자랑하게 하옵시고, 길이길이 승리의 것으로 남아져 인류와 하늘땅을 회생시키게 하옵소서. 1963년 음력 4월로 3년노정을 승리로 마무리짓게 해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120쌍과 헌공식을 4월 내에 세운 것으로 해주시고, 이 기간이 연장될 지라도 사탄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옵소서. 아멘.
하늘이 세워 주신 참부모의 인연을 통하여 사망의 세계가 새로 복귀된 한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이 모두가 아버지의 수고의 연고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 황공하옵나이다. 무엇이라고 아뢰올 수 없는 슬픈 마음을, 아버지를 알기에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을 아버지 받으시옵소서. 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아버지를 알고 있사오니 이 몸을 받으시옵소서.
한 몸을 위주로 하여 찾아 세우신 부부로서 아버지가 맺어 주신 그 부부도 알고 있사오니 받으시옵소서. 부부를 통하여 선물로 주신 아들딸도 이것을 알고 있사오니 받으시옵소서.
여기에 제1 이스라엘, 제2 이스라엘, 제3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모든 것, 피와 눈물과 땀으로 아버지가 쌓아 나오신 그 전통적인 위업을 본받아 불초 저희들은 그 뜻을 염려하는 마음 가지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왔습니다.
이리하여 아버지의 가정을, 아버지의 나라를,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땅을, 아버지의 주권을, 아버지의 백성을 복귀하라는 엄숙한 아버지의 뜻 앞에 저희들은 부족한 것들이오나 원수 앞에 승리적인 발판을 닦아서 이와 같은 모든 조건을 복귀할 수 있는 승리의 기반 위에 서게 된 것을 대견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모든 여건들이 필시 저희들로 말미암아 시간적인 거리는 있을망정 이루어질 것을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이미 가르침받아서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책임적인 생활에 있어서 저희들은 누구보다도 굳세게 서 있사오니, 아버지, 안심하시옵고 저희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시옵소서.
이날 헌공식전에 둘러선 당신의 제3시대의 아들딸들을 울타리삼아 참부모의 혈육들과 더불어 하늘가정의 중심을 세우신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오니, 드리는 이 식전 앞에 미비하고 혹은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사탄의 어떤 참소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버지 앞에 예고하옵나이다.
모든 것은 아버지의 긍휼 가운데 되어지는 것이었사오니 옛날 노아의 실수와 같이, 아브라함의 실수와 같이, 모세의 실수와 같이 그런 조건을 세워야 할 책임적 장소를 피하는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만이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 거룩한 이날, 1963년 7월 26일이오나 오는 4월 마지막 날까지 연장하는 사실을 아버지 앞에 통고하였사옵고, 통고한 날의 그다음날인 5월 초하루, 이날을 만물을 봉헌하는 날로 선포하고자 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날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날이 있어야 되고, 이날이 있기 위해서는 자녀의 날이 있어야 되는 연고로 부모의 날을 3월 초하룻날로 아버지 앞에 세워 놓았사옵고, 자녀의 날을 10월 초하룻날로 아버지 앞에 세워 놓았사옵고, 이제 만물의 날을 5월 초하룻날로 아버지 앞에 세워 놓았사옵니다. 지으시던 창조의 세계에서 복귀의 한날을 찾아오기 위한 땅 위에 평면적인 제조건은 구비되었사오나, 이제 이 모든 날들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워야 할 한날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날이 제창되는 날은 온 천주와 더불어 선포하는 날이오니, 그날의 완전한 승리적인 조건의 날로서 이 모든 날을 세웠사오니 그날을 연장하여, 아버님, 하나님의 날을 완결지을 때까지 저희들은 싸울 것이며, 저희들은 참을 것이며, 저희들은 행진할 것이오니, 저희 대열에 아버지의 직접적인 가호로 이제 같이하여 주옵소서.
하늘과 땅이 일체가 되시옵고, 하늘과 백성이 일체가 되시옵고, 하늘을 위주한 참부모와 자녀가 일체가 되시옵소서. 이리하여 혈육을 중심삼은 심정의 인연의 역사를 중심삼고 인류를 하나의 족속으로 묶을 때까지 저희들은 이 발판으로부터 구만리 지구상을 점령하고자 하오니, 모든 것이 이날부터 시작이오나 이루신 기반으로 받아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의 마음으로 가진 아버지의 주권을 이제 아버지 앞에 드리고 생활로 자랑할 수 있는 주권을 위하여 저희들은 싸우겠습니다. 아버지의 백성을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아버지를 맞이한 만물의 모든 전부를 마음으로부터 바치오니 이것을 받아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남아진 백성과 만물을 생활을 통하여 드릴 것을 맹세하오니, 아버지, 시간적인 기간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식전 위에 아버지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정성어린 통일의 신도, 자녀들은 있는 몸 마음 다하여 여기에 만물복귀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피눈물어린 모든 성금을 모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옵니다.
여기에 드리는 이 봉투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승호를 지었사옵고, 그 외에 운영하는 공장과 모든 것을 하늘 것으로서 이름지어질 제만물 기반 위에, 미리 아뢰옵고 소비한 것도 기쁨으로 받아 주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친히 아버지 것으로서 받아 주시옵소서. 존귀와 영광과 찬송이 우리 아버지께 길이길이 같이하옵길 비옵고,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이 날을 드리옵나이다. 아멘.
송가를 선생님 혼자 읽을 테니 여러분들이 한다는 마음 가지고 이것을 잘 들어주기 바랍니다. 송가. 「송가」 듣기만 하라구요. 송가.
존귀 영광 찬양하세 만세전 이상이여. 아버님의 심정 위에 거룩하게 터를 닦아 창조 위업 펴시오니 성천 성지 시작하네. 뜻을 이어 축복하고 성자 천주 보시려고 승리 영광 충만하사 행복 가정 꾸미려던 천부 성업 못 받들어 인간 타락 웬말인가.
복지 본향 잃은 인간 고통 세계 보고 나니 천주 슬픔 웬말인가. 천부마저 탄식하니 우리 인생 본을 받아 사망세계 이루었네. 천부 사랑 지극하여 크신 뜻을 세우시니 복귀 천지 보시려고 잃은 자식 찾아오신 길고 긴 6천 년 길 피눈물이 웬말인가. 자녀 찾아 만물 찾아 영광 세계 재현코자 창조본성 선의 세계 주인 되길 바라옵신 불변이신 그의 위업 억조창세 누리소서.
세워 주신 그 뜻 앞에 가정 찾아 세우시사 만물주관 큰 영광을 허락하여 주옵시니 만세토록 승리 영광 참부모님께 드립니다. 선의 군왕 천부시여 선의 천국 받으소서. 선의 부모 천부시여 선의 백성 받으소서. 선의 주인 천부시여 선의 만물 받으소서.
아버님, 이 헌공금은 만물을 온통 아버지 앞에 드리는 조건의 제물이옵나이다. 이것을 끝맺기 위하여 참부모를 세우시었사옵고, 참가정을 세우시었사옵고, 참성지를 세우셨습니다. 이 성지를 기반으로 하여 정성어린 마음 터전 위에 조건을 세우시사 수많은 자녀들이 모은 이 헌공금을 아버지 앞에 드렸습니다.
이는 이 나라의 전체를 상징함이요, 이는 온 천주를 상징함이요, 이는 아버지께서 6천 년 걸어오시던 슬픔을 해원해 달라는 지극히 미미한 조건물이옵니다. 물질 그 자체를 보시지 아니하시옵고 그 배후에 연결된 심정을 보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기에 이 조건을 아버지 앞에 드리옵니다.
여기에는 피눈물이 섞어져 있습니다. 통일 신도들이 성지를 찾아 눈물 흘리며 아버지 앞에 호소한 인연이 연결되어 있사오니, 에덴의 땅 위에, 한국 반도 위에 있는 만물을 아버지 것으로서 이제 장악하시옵고, 아버지의 백성으로서 장악하시옵고, 아버지의 나라로 장악하시옵고, 온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으로서 받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3년 음력 5월 초하룻날 이것을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과 참부모와 만민과 참자녀를 중심삼은 이 거룩한 식전을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봉헌하오니 이것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창조의 권한을 세우시옵기를 저희들은 바라옵니다.
여기에서 움직이는 당신의 자녀들의 모든 주위를 아버지가 보호하시옵소서. 이제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의 터전을 선포한 3일째 되는 날이오니 이 모든 것이 영광적으로 세계의 문을 개방하여 아버지의 아들딸이 제3 이스라엘 세계를 향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여 승리의 환희가 천상천하에 미쳐지게 허락하여 주옵고, 실질적인 생활 터전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을 개방하는 책임을 저희들이 하기를 맹세하면서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참부모의 영광과 참자녀의 영광과 참만물의 영광을 아버지의 영광으로 드리옵나이다. 영원무궁토록 다시는 원수에게 더럽히는 일이 없게하기를 약속하여 주시옵고, 이 모든 것을 받아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만민을 대표하고, 만주권을 대표하고, 이 온 땅을 대표하고, 천주를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봉헌하였사옵니다. 아멘.
아버지께서는 천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상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 창세전의 이상이 아버지의 심정과 같이 있었습니다. 이 심정의 기반 위에 어려있는 이 창세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창조의 위업을 펴시사 비로소 그 기반 위에 이 성천, 거룩한 하늘과 거룩한 땅,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창조의 목적을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기반 위에 창조의 목적을 위주로 한 심정의 세계관을 세우시사 그 터전 위에 변할 수 없는 아버지의 뜻을 세우시고, 그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축복하시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 축복을 비단 인간만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었고, 하늘땅뿐만이 아니라 아버님의 내재적인 심정의 기반 전부를 여기에 가담시켜 놓고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축복대로 이루어졌으면 축복이 이루어진 그 세계, 그 천지는 승리의 영광이 충만한 세계였을 것입니다.
승리의 영광이 충만한 그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은 승리적인 하나님의 심정의 모든 내용을 완비한 표시체로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적인 기반을 꾸며 놓고 싶으셨습니다. 거기에 비로소, 천적인 성업을 인간적인 성업으로서 받아들여 영원무궁토록 행복의 복지를 건설하려 하던 것이 아버지의 요구였고 소원이었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 있었으나 생각지 아니한 우리 조상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한스러운 일이 일어난 연고로 우리 인류세계에 원망스러운 타락의 고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복지의 본향을 잃어버리고 고통의 세계에서 살게 되니, 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님이 슬퍼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이 슬퍼하니 지음받은 모든 천지만물도 슬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슬픔과 더불어 인생은 탕감이라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벌이라는 명사의 기준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탕감의 역사를 거듭해 나오는 사망의 세계에서 살아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들을 그냥 둬둘 수 없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연고로 크고 높으신 그 사랑을 가지사, 크신 본연의 뜻을 세우시려고 다시 복귀의 천지라는 것을 바라보면서 잃은 자식을 찾아오기를 기나긴 피눈물의 6천 년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 길에 있어서 역사의 슬픔은 맺혀졌고, 이 길에 있어서 사망의 결실은 더더욱 터전을 공고히 하게 되었고, 이 길에 있어서 하나님의 곡절과 인간의 곡절은 비로소 맞부딪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망의 노선에서 죽음길을 헤매고 있는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원수라는 한 적을 앞에 세워 놓고 그 원수의 농락을 당하여 신음하며 사망의 노선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비로소 원수와 대결하여 우리의 인생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선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가시밭길에서 고통을 받으면 가시밭길을 헤치고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눈물길에서 허덕이면 이 눈물길을 헤쳐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피 흘리는 길에 서 있다 할진대는 피 흘리는 길을 개척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죽음의 자리에서 신음한다 할진대는 그 죽음의 자리를 개척해야 할 책임을 져야 했던 것입니다. 전체를 대하고 있는 하나님이 개체의 사정, 일대일의 사정을 만세계 앞에, 혹은 온 피조세계 앞에 대하는 고통이라는 것은 만만사의 곡절의 내용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헤아려 보게 볼 때, 오늘날 인간세계에 있어서 제아무리 슬픈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슬픔 앞에는 말할 아무런 조건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티끌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 하나님의 억울함과 하나님의 분함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한 나라의 망하는 백성이 되어서 주권이 망하는 것을 바라보는 슬픔 보다도, 하나의 자녀를 잃어버리고 부모가 슬퍼하는 것보다도, 또 부모를 잃어버리고 자녀가 슬퍼하는 것보다도, 혹은 사랑하는 부부가 상대를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것보다, 이 땅 위의 슬픈 명사 전체를 합한다 해도 하나님이 슬퍼해 내려왔던 역사적인 슬픔 앞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내 한 개체라는 것은 어떠한 존재냐? 이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사 온 존재였다는 것, 슬픔을 주고 사 왔다는 것, 슬픔을 주고 바꿔 왔다는 것, 슬픔을 주고 찾아왔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자리에 세워 준 나라는 것은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사 온 것이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바꿔 온 것이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잊어버리게 될 때는 역사적인 사망의 물결을 밟고 올라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러한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나를 일으켜서 보살피시사 승리의 한 자리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만으로 빚어지는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뒤를 돌아보게 될 때 거기에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게 될 때 부모가 있습니다. 또, 좌우를 바라보게 될 때 부부와 자녀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슬픔의 길은 나를 넘어서 나와 관계하고 있는 부모에게, 처자에게, 혹은 이웃 동포와 온 만민 앞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슬픔을 또다시 하나님에게 돌려보낼소냐. 이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겠다' 하는 심정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우리가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면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려운 길을 참아 왔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을 표준해 가지고 '내가 이래야만 산다'는 관념을 갖고 참아 왔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아버지의 슬픔 때문에 내가 참는다. 아버지의 슬픔을 제거시키기 위해 참는다'는 이런 일념, 이런 고통 속에서 희생하는 마음이 날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우리의 때가 눈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더욱 간절함을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과 사명을 완결할 때…. 잘 것을 잊어버리고, 먹을 것을 잊어버리고, 사회생활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허덕일 줄 아는 그런 상대적인 모양이라도 취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헌공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이 참석한 여기의 이 한 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 이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이 자리는 눈물의 자리입니다. 울고 울어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의 자리요, 통곡하여도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단지 내 마음 가운데 깊이 남이 모르는 비밀의 포부를 가졌다고 할진대는, 어떤 외적인 물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이 원한과 이 분함을 억천만금을 주더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것으로 느껴야 됩니다. 이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이것을 완결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질 줄 아는 마음만이…. 이것이 여러분 전체의 중심 심정으로 우러 오르게 될 때 하나님은 여기에서 비로소 6천 년 슬퍼하셨던 슬픔을 우리에게 상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의 슬픔의 전부를 엄숙한 자체로서 상속받은 자리입니다. 그것을 상속해 놓고 아버지깨서 세우시려 본연의 부모와 본연의 자녀와 본연의 만물을 이제 우리 세계에, 만 우주 세계 위에 아버지 것으로서, 아버지의 기쁨의 것으로서 찾아드릴 수 있는 이런 기반을 닦겠다는 신념만이 여러분 자체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기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슬픈 역사의 하늘의 곡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재삼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싸워 나오신 하나님은 자녀를 찾아, 만물을 찾아 영광의 세계를 재현하시어서 참소가 없는 창조 본연의 선의 세계를…. 이 선의 세제의 주인을 목표로 해놓고 우리 인간들이 참다운 주인이 되기를 바라시며 거룩하신 위업을 만세에 무궁토록 누리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슬픈 반면에 그 마음으로 더 축복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는 것을 우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그 가운데 새로운 아들딸로 세워지는 그 뜻 앞에 비로소 참된 가정을 세우시사, 부부의 인연과 가정을 가지고 자녀의 인연을 갖춘 기반 위에 만물을 주관하여 크나큰 영광의 실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셨으니, 만세에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참다운 자녀가 되어 오시는 참부모 앞에 이것을 다시 받들어 드리는 사명을 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오신 참부모와 여러분이 합하여 하나님을 안식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오신 참부모를 안식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게 될 때 비로소 선하신 하나님이 군왕으로 군림하시는 거예요.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로서 군림하시게 될 때, 선의 천국이 비로소 지상에 재현된다는 것입니다.
이 재현된 천국을 우리는 받들어서 비로소 아버지 앞에 드려야 됩니다. 선의 군왕이신 천부 앞에 우리 만민이 합하여 이 천지를 선의 천국으로 받들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의 천국을 받들어 드리는 동시에, 선의 부모이자 천부이신 그 앞에 선의 백성을 우리들은 받들어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선의 주인이신 천부인 아버지 앞에 선의 만물을 받들어 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천국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 백성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 만물을 아버지 앞에 드려야 됩니다. 이것이 드려지게 될 때 비로소 하나의 주권, 하나의 세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주인 앞에 주관받는 하나의 주관세계가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런 모든 내용의 인연을 우리들은 완결해야 합니다. 상징적인 것이나 형상적인 것이라도 반드시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기반을 세워 놓고, 여기에 참부모를 위주로 한 아버지와 자녀를 세워 놓고 그 기반 위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설정하여야 됩니다. 여기서 평면적으로 세계를 뒤덮게 될 때 비로소 그 세계가 하나의 나라요, 하나의 백성이요, 하나의 영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 당시에 이상하였던 선의 창조이념을 중심삼고 실체적 대상의 목적으로 만물을 빚어 놓고, 그 만물의 주인이요 그 주관자로서 인간시조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 시조로 말미암아 크나큰 그 뜻을 이루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모든 곡절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비로소 복귀의 운명을 완결지어 창조본연의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를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여러분만이 축하할 날이 아닙니다. 삼천만은 물론이요,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는 물론이요, 천상에 가 있는….
그러기에 오늘 이 헌공일을 맞이하여 이제 모든 조건을 세우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아버지께서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백성이 없었습니다. 영토가 없었어요. 이러던 아버지께 이제부터 백성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생겨나게 되고, 아버지께서 이 아들딸을 합하여 가정을 만들고, 가정을 합하여 민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어 가지고 국가를 움직이고, 이 국가를 움직여 가지고 세계의 기반을 내적으로 닦아 나오는 역사를 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종교적인 기반 위에서 1차 승리를 거두어 나왔고, 제2차적인 출발도상을 우리들은 오늘날 우리의 성혼식을 통하여 선포해 나왔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나라 앞에 선포한 중심 내용이 무엇이냐? 딴것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의 진리의 말씀과 더불어 축복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은 성혼가정을 통해서 선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차, 제2차, 제3차를 거쳐오면서 이번에 국가적인 대행사를 선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평면도상에 있어서 국가적인 인연과 연결지을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오늘 이 헌공식의 의의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마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이 내 것 이 아니요, 내가 먹고 있는 밥이 내 것이 아니요, 내가 사용하고 있는 사소한 일상의 가정집물 전부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무궁토록 계승할 수 있는 공적인 아버지를 중심삼은 세계 앞에 길이길이 인연을 맺고 있는 공적인 물건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공적인 물건입니다. 공적인 물건이라구요. 내가 입고 있는 하나의 옷도 그러하거니와 내가 지니고 있는 생활 기반도 물론이요, 내가 지니고 있는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닙니다.
죄는 무엇이냐? 공적인 물건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우리 통일 식구들은 앞으로 이러한 시점(視點)에 있어서 철두철미해야 된다구요. 아버지 것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만물이 거룩해야 그만물을 먹고 사는 내 몸뚱이가 거룩한 거예요. 그 만물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게 될 때 그 만물을 생활 요소로 하고 사는 내 몸뚱이가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무한한 가치의 공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내가 그 공적인 가치를 지녀 가지고 가정을 통일해야 됩니다.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전진해 나가야 됩니다. 더 큰 분야에 적은 것이 흡수되고, 적은 것이 제물 되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이 우리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나깨나 아버지의 나라는 우리의 나라요, 아버지의 백성은 우리의 백성이요, 아버지의 것, 아버지의 물건은 내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내 일신을 통해 심정적인 두 상대적 기반 위에서 놀아나고, 생활하고,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음받은 피조만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을 제거해 놓고 대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심정을 벗어나 가지고는 죄가 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형제 형제를 대하게 될 때, 우리 세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입회시켜 놓고 하나님의 심정을 연결시켜서 대할 수 있는 생활의 표본을 장식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물질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입회시켜 놓고 대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주관할 자가 천지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침범하는 것은 하늘과 반대가 되는 거예요. 에덴에서 우리 시조도 그러했고 천사장도 그랬다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교훈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한 이 심정 역사에 얼크러진 모든 만유의 존재, 여기에는 모든 국가와 주권이 다 들어 가지만, 그런 존재들을 존중시하는 데 있어서 심정을 통하여 존중시할 수 있는 입장에 여러분이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은 여러분이 움직이는 곳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 기반 위에 서게 될 때, 사탄은 거기에서 정비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정비하는, 원수를 심판하는 제일 무대가 여기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슬픔을 명심하고, 그 슬픔 가운데서 슬픔이 크면 클수록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인연이 오늘날 복귀 세계에 있어서 참부모의 배후를 거쳐왔고, 참다운 자녀의 배후를 거쳐왔고, 축복받은 자녀의 배후를 거쳐왔습니다. 이 배후의 인연을 다시 연결시켜야 천상세계의 것이 여기에 머리 숙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오늘날 이와 같은 입장에 선 여러분들에게 하늘땅을 상속해 주고, 우주를 상속해 주고, 이 천지간의 모든 만물을 상속해 주고, 이 천지에 널려 있는 만백성을 상속해 주셨으니 여러분들이 하나님 대신, 참부모 대신, 참아들딸의 사명을 대신하여 앞으로 하늘 앞에 세움받을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의 영광의 터전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있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워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반을 여러분 일대에 이 크나큰 대우주의 이념을 중심삼고 닦아 놓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상세계에 가서 여러분이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여러분 생활에서부터 여러분의 일생노정을 걸어 가지고 이 일을 성취해 주기를 이 헌공식날 여러분 앞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축도하자구요. 다 일어서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축복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의 참되신 부모님께서 여러분들 앞에 대신 축복해 줄 텐데 진심으로…. 축복할 때는 참부모를 축복해 주고 참자녀를 축복해 주고 만물을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참세계 앞에 참복귀섭리, 이런 내용으로 축도해 줄 테니 여러분들이 그것을 상속하여 오늘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내적 맹세를 해주기 바랍니다.
천지의 만물은 화동할지어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기쁨이로소이다! 내 아버지의 한이 풀려 나갈 것이며 원수의 슬픔은 이제부터 시작할 것이로다!
이리하여 만민의 환희의 소리가 천상에 드높이 들려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기쁨의 역사를 창조하셨사오니, 여기에 주인은 나의 아버지요 참부모였음을 알았사옵나이다.
아버님 기뻐하시옵소서! 6천 년 슬픔은 이제부터 사라질 것이요, 6천 년 한은 이제부터 제거될 것이어늘, 아버지 기쁨의 한날을 맞으시어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사 만천하를 장악하여 그 기쁨의 세계에서 이들과 더불어 기뻐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는 아버지 것이며 천주는 아버지 것이옵니다. 이 땅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도 아버지 것이요, 하늘세계에 있는 것도 아버지 것이옵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탄까지도 아버지 것으로 돌이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 아버지 것 아닌 것이 없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제 참부모도 우리 것이요, 참 아들딸도 우리 것이요, 축복받은 아들딸과 제1, 제2, 제3 이스라엘도 우리들 것이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모든 인류도 우리의 것이요, 이 땅과 이 모든 천지도 우리의 것이요, 널려 있는 세계의 주권도 우리의 것입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알았사오니, 아버지 것임을 영원히 인치고 봉하시사 아들딸의 것으로서 주셨사오니 영원히 지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다시는 아버지 앞에 배도하는 일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길 바라옵니다.
부모의 날을 이 시간 이들 앞에 허락하오며, 자녀의 날을 이 시간 이들 앞에 허락하오며, 만물의 날도 이 시간 이들 앞에 허락하오니 만세토록 허락하시옵소서.
존귀와 영광과 승리와 기쁨과 충만하심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심정으로부터 인연되어 있는 지음받은 모든 피조세계에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기쁨이 그 위에 영원무궁토록 함께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주관하시는 그 자리에서 찬양받으시고 영광받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자, 이것으로써 역사적인 헌공식을 끝내겠습니다. 만세삼창합시다. 세계 만물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