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중대한 기간의 마지막 해로 접어드는 해입니다. 더욱이나 봄절기라는 이 기간은…. 지나온 해도 중요한 기간인 것은 물론이지만 금년도 역시 천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이게 했습니다. 일단 여러분이 여기 모였으면 모인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과거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여러분으로서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이런 것을 말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으로 말하자면 `나'라는 것 즉, `나는 누구였던가'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하고자 하니 새로운 각오 밑에서 들어 주기 바랍니다.
역사나 혹은 전통은 각 종교를 중심삼고 달리 거쳐왔지만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갖고 나왔습니다. 그 줄거리라는 것은 타락된 죄악사회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줄거리 밑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이념으로 보게 될 때는 무한히 큰 존재였으나 우리 선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난 후에는 지극히 천하다면 천하고 지극히 무가치하다면 무가치한 존재로 떨어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자신 한 개체를 두고 보게 될 때, 이 한 개체가 오늘날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개체가 아닙니다. 이개체에는 역사성이 깃들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 시대와 미래 전체를 중심삼고 인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비단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의 인연만이 아니라 앞으로 타락한 이 인류를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고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는 자기 한 개체가 자기 개체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개체는 지극히 엄청난 환경에 놓여진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한 자체라는 것은 타락의 후손이 된 연고로, 즉 우리 자신들은 원죄를 벗지 못한 후손이 된 연고로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죄의 인연을 상속받아 오고 있습니다. 끝날이라는 한때를 세워서, 여러분들을 대표적인 현재의 입장에 세워 놓고 그 죄에 인연이 된 것을, 모든 타락의 인연을 종결지어야 할 하늘의 섭리가 있는 동시에 인간으로서 응당히 책임져야 할 문제가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소망하고, 또 이것을 해결할 중대한 책임적인 분야에 있는 , 죄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할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자신은 오늘날의 나로되, 인연되어 내려오는 `나'라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하늘의 뜻 앞에 세워진 수많은 사람을 대신한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하늘을 서럽게 했던 모든 존재들과도 역시 내 자신이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것은 선한 입장의 일면도 접할 수 있고, 또 선과 배치되는, 반대되는 입장의 일면을 내가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기로에서 하나를 완전히 청산하고 하나의 선한 면에 내 자신을 세워 악을 청산한 아들로서, 악에서 돌아서서 선을 향하여 환희의 심정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입장에 처한 `나'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우리들에게 이 사명이 있는 연고로 결국 여기에 모인 여러분 자신들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내 자신이 이제 움직여야 할 내 행동에 있어서 이 행동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야 되겠고, 또 내가 지금까지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어떠한 목적을 향하여 싸우는 입장에 서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좀더 선하고 좀더 하늘이 기뻐할 수 있고 하늘이 믿을 수 있는 이러한 내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신이 되지 않는 한 지금까지 하늘의수고 앞에, 혹은 고대하고 있던 소망 앞에 우리들은 제 2차적인 배반자가 될 수 있으며, 도리어 하늘이 나를 대하여 소망하시는 그 기준 앞에 실망을 가져다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분별시켜서 이제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 자신의 입장으로만 세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아버지 입장의 인연과 더불어 연결시키어 나는 나만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대신하여 있고, 우리 선조들이 실패하지 아니한 입장을 지켜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배반하던 나였으나 이제 이 시간부터 여러분 자신들은 배반을 하는 자신이 아니요, 배반의 반대 입장에 서서 하늘 앞에 충성을 하고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 여러분 자신으로서 책임을 져 하늘 앞에 다시 수고의 길을 남기지 아니하는, 자신으로 하여금 청산지을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 자신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댄 여러분들이 여기에 모인 의의는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모인 이상 이제 `나는 누구였던가'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어떠한 면을 찾아보게 될 때에도 용납을 받을 수 없고, 세움을 받을 수 없고, 하늘의 축복이라는 명사 자체도 바라볼 수 없었던 부족한 자신이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운세를 대함에 있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 전체가 하나님의 마음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여기에서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더욱 내 자신을 몽땅 바쳐 드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 모든 소원이라든가 요구라든가, 혹은 사적인 감정이나 내용을 첨부시켜 가지고 여기에 나타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몽땅 바치고 `나는 공의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는, 선과 악에 있어서 이것을 분립시켜야 할 책임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돼야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이 여기에서 이 일을 감당해 달라고 솔직히 내맡길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는 한 이제부터 21일 기간을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여러 가지 지장이 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무(無)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죄로 말미암아 내 자신을 찾을 수 없던 과거의 모습이었으니 이 과거의 모습을 이제 이 시간서부터 매장해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자신이니 하늘이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 우리에게 축복의 명사를 세울 수 없었던 우리들이라는 것을 알고, 또 그러한 선조의 혈통을 받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긍휼만 바라며 맡기고, 선과 악의 분별된 입장을 하늘이 친히 책임져 주시는 가운데서 여러분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편으로 옮겨 가겠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여러분은 현재 상태에서 앞으로 하늘이 요구하는 그 뜻 앞에 해결의 어떤 조건을 세워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무(無)의 상태예요, 무의 상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아담가정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서럽게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게 될 때 가인이 순종치 않고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서러움을 남겼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노아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슬펐던 사실, 함을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모세를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세례요한 혹은 예수를 중심삼고 슬퍼했던 모든 사실, 예수 이후 2천 년 동안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의 역사를 협조해 나오던 수많은 성도들이 하늘의 뜻 앞에 있어서 슬픔의 조건을 맺었던 그 원통한 사실들을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 이제부터 어느 한 때 어느 한 순간이라도 마음에서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원통하였고 분하였던 이 한 사실을 오늘 우리 자신들이 탕감하고, 분하였던 모든 천적인 한을 우리들이 제물 됨으로 말미암아 해원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 마당에 서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존재로 바쳐야 되느냐? 아담의 슬펐던 모양으로 바쳐야 되겠고, 아벨의 슬펐던 모양으로 바쳐야 되겠고, 노아의 슬펐던 모양과 함의 슬펐던 모양,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혹은 지금까지 역대 우리의 모든 선조들이 슬펐던 모양을 대신해 여러분이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 바친 자체가 슬픔으로 보답되는 것이 아니고 슬픈 면을 탕감하여 다시 한 번 새로운 소망의 한 점이라도 내 자신을 세워서 남겨 줄 수 있으며 지닐 수 있게 세워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들이, 뜻 앞에 있어서 책임 못 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슬펐던 그 모습을 느껴 가지고…. 내 자신이 노아의 입장에서 슬픔을 절절히 느끼고, 아벨·아브라함·모세·예수, 혹은 지금까지 역대 우리 선조들이 슬퍼하였던 그 모든 슬픔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자리에 서서 하늘의 슬픔의 마음을 다시 나로 말미암아 슬프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슬픈 마음을 체휼하면서 `나는 아담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벨과 같이 되지 않고, 가인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노아나 함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혹은 세례 요한과 예수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우리 통일 신도들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뜻을 대신하여 여기에 불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저런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의 모든 슬픈 면을 비교하여 슬픈 입장에 설지라도 내 자신은 슬펐던 선조들의 그런 위업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염려를 남겼던 선조의 위치를 박차고 나로 말미암아 슬플 수 있는 환경을 돌이켜 다시 내 자신이 하늘 앞에, 선조들이 충성하지 못한 충성의 일점을 세워서 나로 하여금 새로운 면에서 하늘의 소망의 일점을 남겨 주는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그런 마음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런 입장에 내가 섰다 할진대는 여기에서 하늘 앞에 나선 우리들이 호소해야 할 것은`아버지여, 아담을 대신하여 당신이 주고 싶었던 심정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슬픈 마음으로 아버지는 돌아서서 갔지만, 아담을 대신하여 슬플 수 있는 입장에 섰던 나였으나 슬픔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아들이 되지 아니하고 슬픔의 자리에 설지라도 슬픔의 아버지를 내 자신이 환영하여 나로 하여금 그 심정의 인연을 다시 연결시키겠사오니 축복의 인연을 남겨 주고 가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마음은 아담만이 아니라 가인·아벨·노아·함, 혹은 역대 우리의 선조들이 그런 입장에서 하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으려 했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서러워하는 입장에 있는 하늘을 이해해 드리고 그런 하늘의 입장에 심정적 기준을 다시 한 번 연이어 가지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져야 할 나라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면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선조들의 모든 슬픈 면을 제거해 버리고, 심정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의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하지 못하였던 그 분야를 상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아담된 입장에 있지만 아담이 아닌 것입니다. 해와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도 타락한 해와가 아닌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아니요, 타락한 해와가 아니요, 혹은 가인과 아벨적인 입장에 섰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가인이 아니요, 가인이 죽이려고 하는 아벨이 아닌 것입니다. 노아가 아니요, 혹은 함이 아니요, 역대 여러분의 선조가 아닌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심정의 위업을 받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담가정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이것을 연결시킬 수 없고, 아벨에서부터 노아가정으로 연결시킬 수 없고, 노아가정으로부터 함, 함으로부터 아브라함,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이삭으로부터 야곱, 야곱으로부터 모세, 모세로부터 예수까지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말할 수 없이 심정적으로 갈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갈라 나왔고, 노아가정에서 갈라나왔고, 아브라함가정에서도 갈라 나왔고, 모세가정에서도 갈라 나왔고, 예수님을 중심삼고도 전부 다 갈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갈라 나온 심정적인 인연을 오늘날 우리들은 아담으로부터 연결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땅 위에 있는 , 오늘날 끝날에 있는 우리 성도들 각자가 책임을 했다 하는 조건을 반드시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받았다 할 수 있는 입장을 세워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의 책임이요, 또 이러한 책임을 전체 앞에 감당시켜야 하는 것이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 아담가정에 있어서 아담이 하늘 앞에 슬프게 했던 내용을 탕감해야 되겠고, 슬프고 애달픈 마음을 갖고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담가정만이 아니라 노아가정을 거치고 아브라함가정을 거치고 모세가정을 거치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인 모든 심정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비로소 승리했다는 , 역사적인 슬픔을 탕감하여 하늘이 심정적인 위업으로 상속해 주시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상속받았다 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들이 배우고 있는 원리적인 내용이요, 이 원리적인 말씀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땅 위에서 싸워 나오는 내용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각 시대 시대에 우리의 선조를 찾아와서 상속해 주고 싶었던 심정의 위업을 지금까지, 아담가정으로부터 역사적인 종말까지 연결시켜 하나의 승리적인 심정의 실체로서 하늘땅 앞에 내세우고자 하는 그 자체가 무엇이냐? 그것은 하늘땅 혹은 모든 인류가 바라고 있는 재림의 이상, 즉 참부모의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를 완전히 여러분들이 상속받을 수 있고, 참부모를 여러분의 부모로서 모실 수 있으며, 참부모의 해원을 여러분의 해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하늘의 축복, 혹은 상속이라는 명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누구냐?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배반자인 나였고,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나였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세움받을 수 없는 나였으나 오늘 이러한 탄식의 조건을 탕감하여 역사적이고 심정적인 위업의 실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앞에 대신 줄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을 마련해 놓고, 이 환경 위에 하늘과 땅과 온 인류를 대신하여 실체의 부모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그 실체의 부모야말로 여러분의 심정의 위업의 실체요, 탄식과 한의 모든 것을 청산할 수 있는 중심의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부모를 여러분들이 완전히 상속받아야 돼요.
단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참부모요, 인류가 바라던 참부모요, 하늘땅이 고대하던 참부모는 역사적인 해원을 하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받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참부모를 다시 상속받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이 우리라는 것, 나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부모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슬픔은 다 모를지라도 부모의 슬픔의 일면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땅을 새로 찾기 위하여 하늘이 해온 수고도 물론 알아야 되겠지만, 그건 다 모르더라도 땅 위에서 수고하신 참부모의 심정적인 인연이 어떻다는 것과 슬픈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어느 일면이라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 자신들은 그분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줄기라면 여러분들은 가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슬픔은 여러분의 슬픔이요, 그의 소원은 여러분의 소원이요, 그의 싸움은 여러분의 싸움이니 그에게 상속된 위업은 여러분의 위업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번 21일 기간에 있어서 수련을 받고 어떠한 입장에서 문답을 하더라도 모든 그 중심 문제에 있어서는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 자신이 하나된 입장에서 답을 하고, 하나된 입장에서 생활을 하고, 하나의 대신된 입장에서 이러한 기간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간을 갖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 자신들이 여기에 참석한 것은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 자신들이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자신이니 하늘땅 앞에…. 이제 우리들은 되돌아 찾아 올라가 아담가정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아벨 앞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노아가정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아브라함가정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모세가정에 있어서도 역시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예수님 앞에 있어서도 역시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 앞에 있어서 참부모를 대신한 나라는 것을 확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는 한 여러분들은 여기에 축복의 명사를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으로서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으로서 세움받아야 할 자신이니 아버지 어머니의 분신된 자신 위에는 하나님의 눈물이 젖어 있고,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이 젖어 있고, 지금까지의 선조들의 눈물이 젖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눈물이 젖어있는 이 한 자신이 하늘 앞에 불리움을 받고 택함을 받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눈물의 가치를 탕감해야 되겠고 슬픔의 가치를 탕감해야 될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일신을 세워 `내가 무엇 무엇, 혹은 내가 이러 이러한 과거를 가졌는데 어찌하여 나는 하늘이 축복을 안 해주느냐? ' 하는 아무런 내용을 가질 수 없는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몽땅 맡겨 놓고 `우리 자신의 몸 마음은 전부 다 아버지의 몸 마음으로서 완전히 접붙여 주시옵소서. 혹은 내가 부족하거든 때려서라도 그런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지금, 혹은 미래까지 전부를 걸어 놓고 참부모의 마음과 참부모의 심정과 참부모의 실체, 혹은 참부모의 모든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접붙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기간으로 여러분들이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축복받은 선조들과 가정을 대신하여 축복받은 분들이 있을진대, 참부모를 대신하여 그들도 역시 축복을 받았으니 축복받은 그들 앞에 여러분들이 어떤 면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될 것입니다. 축복받은 그들 앞에 있어서 더욱이나 내 자신을 하늘 앞에 보여줄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축복받은 형님 혹은 누나들이 책임 못 한 것이 있을진댄 여러분 자신들이 그들의 책임까지 질 수 있는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앞으로 이 사탄세계와 대결하여 싸워야 할 우리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과거의 내 자신은 부족하였으나 이제부터는 부족한 내가 절대 될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이 이 기간에 수련과정을 거쳐 주길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어떠한 여건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이 기간에 수련을 하는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대신한 자로 서야 할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수련의 목적이요, 이 21일 기간을 지내는 목적입니다. 이러한 수련과 이러한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축복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나'지만 이 기간은 하늘이 내 자신이 다시 찾아질 수 있는 , 제2 부모의 입장에 세워질 수 있는 조건적인 은사를 허락하는 기간이니, 이 허락한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은 이것을 완전히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를 결의하고 여러분 자신들이 서로서로 협력하고 서로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면서 이 21일 기간을 지내 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아버지 대신의 입장에 서야 되겠고, 여자는 어머니 대신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표 밑에서 그 기준을 갖는 것이 먼저예요. 그 기준을 갖지 못하였을 때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한 기준을 갖기 위해서, 역사적인 해원과 심정적인 상속을 받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부모의 심정을 체득하고 형제들의 심정을 체득하여 하늘이 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간으로 가져 주기를 부탁합니다.
아버님, 나라는 것은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나인 것을 알았고,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이 타락할 때 하늘의 슬픔을 남겼던 나인 것을 알았고, 그날부터 당신에게 복귀의 한을 품으시고 무한한 고통의 길을 걷게 한 나였음을 알았습니다. 타락의 한이 있는 동시에 복귀의 한이 남아졌고, 복귀의 한이 있는 동시에 부활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은 슬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슬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슬픈 인연을 내가 대신 상속하여, 슬픈 자로 서 가지고 하늘을 다시 슬픔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내 자신이 돼서는 안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상속받아 이 슬픔을 내가 책임지고 아버지의 본연의 아들로, 다시 제2소망의 실체로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않으면 하늘의 심정적인 축복의 인연을 나로 하여금 연결시킬 수 없고, 이것을 연결시키어 후대의 계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걸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저희 자신은 부족한 모습이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수 있는 저였으나, 이제 참부모의 공로로 말미암아 심판적인 기준을 세워서 말씀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을 갈라내지 않고는 축복의 인연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의 말씀 실체도 참부모요, 인격 실체도 참부모요, 심정의 실체도 참부모인 줄 알았습니다. 참부모는 모든 심판의 절대적인 기준 위에 섰습니다. 말씀도 그로 말미암고, 실체도 그로 말미암고, 심정도 그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이 하늘땅을…. (녹음이 잠시 끊김)
축복의 인연을 가져 다시 심판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없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하늘이 수고한 모든 것을 합하여 축복받기 위해 모였사오니, 하늘이여, 여기에 각별한 은사를 베푸시옵고 각별한 섭리의 심정을 가하시어서, 이날부터 당신이 염려하시던 그 마음을 푸시옵시고, 이들로 하여금 심정의 인연을 펴시어 운행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마음 가운데 새로운 결심을 하여,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고, 새로운 나로서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약속과 축복의 인연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로 연마시킬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수련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고, 혹은 명령할 수 있는 시험 기간이 되게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선의 기준, 당신이 찾고 있던 소망의 실체들로서 나타나기에는 저희들이 부족한 모습이었사오나 긍휼의 사랑으로 용납하시어서 저희들을 부르셨으니 모든 미비한 것을 굽어살피지 마시옵고, 아버지, 이들로 하여금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생명적인 인연과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승리적인 인연과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세우시옵소서. 사탄이 저희들을 엿보고 있사오니, 아버지, 엿보는 모든 참소의 조건을 막으시어서 축복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날부터 남아진 기간을 아버지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생명적인 인연을 두터이 하시어서 이 기간에 다시 성령에 성별을 가하시어 아버지의 약속된 실체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이 모임을 위해 지방에 널리어서 외로운 심정을 갖고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있사올진댄 같은 은사의 부류들로 그들을 보호하여 주옵고, 같은 은사의 손길로 그들을 연결시켜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 이후에 남아지는 모든 절차 위에 있는 당신의 전권의 행사가 이들 위에 같이하여 주옵고, 생명의 움직임이 이들과 더불어 인연 맺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재분석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실체가 되기 위한 입장에서 저희들이 마음과 몸을 다시 한 번 단속하여 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바쳐 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금년은 천적으로 의의가 깊은 3년 기간 중의 마지막 해입니다. 금년의 봄철은 더욱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난 2년이 그러했듯이 금년도 천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는 해입니다. 여러분이 일단 이 자리에 모였을진대 전체 식구를 대표하였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마치는 날까지 무사히 지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나는 누구였던가’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다르게 살아왔고, 종족은 그들의 전통을 중심삼고 다른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죄악사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원래 ‘나’라는 존재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지만 현재의 나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개체 하나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자기 한 개체는 자기 한 개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개체입니다. 원죄를 벗지 못한 후손이요, 죄의 인연을 상속 받은 ‘나’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타락의 인연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담 이후 역사를 거쳐오면서 등장하였던 수많은 섭리적 사명자들의 대신체입니다. ‘나’는 선한 입장과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죄악을 청산하고 오로지 선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죄악이 청산된 내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를 청산하여 어느 한때에 가서는 선의 기준을 세워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지 않는 한, 수고한 하나님 앞에 배반자가 되고 실망을 드리게 됩니다. ‘나’는 나만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은 선조의 입장에도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부터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께 수고를 끼치지 않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는 한 여기에 모인 의의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였던가? 축복이라는 명사를 바라볼 수 없었던 내 자신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사적인 것이 전혀 없는 순수한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곧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에서 내 자체를 온전히 아버지 앞에 내맡겨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용납받을 수 없는 모습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책임져 주시고 선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무(無)의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으로 하나님을 서럽게 한 사실,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치 않은 죄, 노아를 중심한 섭리에 있어서의 함의 실수, 아브라함을 중심한 곡절의 역사, 모세를 중심한 슬픔의 역사, 예수를 중심한 한의 역사, 이러한 원통하고 분하였던 역사와 여러분 자신의 입장까지 탕감해야 합니다. 아담의 슬펐던 일과 아벨의 슬펐던 일, 노아와 함의 슬펐던 일,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슬펐던 일을 대신 탕감하여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바라보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아담이나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또는 예수의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고 ‘아버지, 나는 그들의 입장처럼 되지 않겠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처지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무리가 되지 않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조들이 하지 못한 충성으로 하나님 앞에 소망을 돌려드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여, 아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축복의 인연을 남기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의 사명자들이 맺고 싶어했던 심정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선조들이 상속 받지 못한 심정을 상속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도 아니요, 가인 아벨도 아니고, 노아나 함도 아니며 역대 조상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심정을 연결 지어야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갈라진 역대 사명자들의 심정을 연결 지을 책임이 여러분과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담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심정을 상속 받아 승리적인 인연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역사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끝날까지 연결시켜 하늘땅 앞에 내세우고자 하는 것이 재림의 이상이요, 참부모의 뜻입니다. 참부모의 이상, 참부모의 뜻을 느끼지 못하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역사적인 배반자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탄식과 한을 풀고, 실체의 중심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놓은 자에게만 실체 부모를 인연 맺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하기 위해 참부모가 있는 것이고, 여러분은 참부모의 유업을 상속 받기 위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심정과 섭리역사의 슬픈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와 일체가 되어야 축복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 예수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을 나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 생활하며 대신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아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담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예수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하늘땅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내가 되지 않고서는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이 분신이라는 말에는 역사적인 눈물이 어려 있고 역사적인 슬픔과 곡절이 어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눈물과 슬픔과 곡절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이러이러한데 왜 축복을 해 주지 않습니까?’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참부모의 심정과 실체와 모든 말씀을 접붙임 받아야 합니다. 참부모를 대신하여 축복받은 선배들에게 지지 않고, 선배들이 책임을 못하면 그들의 책임까지 대신하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들과 같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족했으나 끝까지 부족한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목적은 허락이 안 됩니다. 참부모를 대신하지 않으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제2의 부모의 입장, 즉 특권적인 입장에서 20일 동안을 지내 주기 바랍니다. 남자는 아버지를 대신한 입장이요,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한 입장입니다. 이번 수련 기간을 통하여 부모의 심정과 형제의 심정을 체득하기를 부탁합니다.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전국에서 왔습니다. 경기도에서도 오고, 또 강원도에서도 오고, 충청도서도 오고, 그다음엔 어딘가요? 경상도에서도 오고, 전라도에서도 오고, 서울에서도 오고…. 「제주도에서도 왔습니다」제주도에서? 「예」 팔도강산에서 전부 모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모인 대다수의 사람이 젊은이들입니다. 그렇지요? 「예」 젊은이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지난날에 살았던 것을 생각하고 젊은 시절을 기억하면서 섭섭히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은 될 수 있으면 젊은이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에 대해서 말하려니 선생님도 젊은이가 되어야 되겠다구요.
선생님 나이가 몇 살이면 좋겠나 하고 물을 때, `60이 넘어서 한 70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어때요? 있어요? 그거 몇살이면 좋겠어요? `40쯤' 그건 조금 낫지요. 요만큼 들 거예요. 그 다음에 `30쯤' 하면 또 요마만큼, 조금 높아질 거예요. 한 20쯤 하면 다 들 거예요, 아마. 틀림없이 다 들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선생님 나이가 몇 살이면 좋겠어? ' 할 때, 여러분 중에 스물한 살 된 사람은, 오늘이 며칠인가요, 10월 7일이 생일인 사람은 선생님의 나이가 21세이고 생일이 같고 시간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때요?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 나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겠단 말이예요.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대개 보면 20세를 전후한 스물한 살, 17세 이상 21세 미만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젊은 소년 소녀들이 모였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 시절로 돌아가 가지고 여러분과 같은 입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도 과거에 여러분과 같은 연령시대에 이런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새로운 개척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 그 무엇을 찾기 위해 허덕이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가만 보니까 얼굴도 다 그러그러하고 모습도 다 그러하고 교복도 같고 그러니 아주 기분이 좋다 이겁니다.
여기 처음 온 어르신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젊은 녀석들 대해 얘기할 때는 좋은 말만 할 수 없습니다. 욕도 할 것이고, 조는 녀석이 있으면 선생님이 뛰어가서 `이 녀석!'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젊은 애들 세계에서는 장난할 때, `이놈아!' 그러잖아요? 인사할 때 `밥 먹었어? ' `그래' 하면서 가슴을 툭 치고 그러잖아요? (웃음) 그것이 다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달려가서 기합을 주더라도, 오늘 여기 처음 온 어르신네들은 `뭐 통일교회에 갔더니 선생이란 사람이 주먹을 쥐고 아이들에게 기압을 주고, 말하는 데도 막 잡아 먹을 것같이 하고 용서가 없더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일단 그런 건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어른들을 위주해서 말씀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어린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걸 원해요? 원해요, 안 원해요? 「원합니다」내가 노인이 되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린이의 공약을 세워야 돼요. 그 대신 어르신네들은 양해하시기를 바라고, 어린이들을 중심삼고 이야기하느니만큼 말씀 속도를 빨리 해야 되겠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게 냅다 부어야 할 때는 냅다 부을 겁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줄 알아야 젊은이입니다. 그러니만큼 그렇게 생각하시고 나이 많은 분들은 미안하지만 양해해 주길 부탁합니다.
저 뒤에 계신 양반들, 어때요? 약속해요? 「예」 오늘 처음 왔는데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끔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젊은 애들, 거 뭐 귀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들한테만 얘기한다고 섭섭히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은 다음 기회에 그런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오늘만 이어린이들에게 양보해 주기를 바랍니다. 약속하겠지요? 약속해요, 안 해요? 「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자, 우리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손을 쥐고 주목하라구요. 노래 하나 해야되겠어요. `선생님이 나와서 무슨 말씀하실까? ' 하고 궁금하지요? 노래 하나 하겠어요. 노래 하기 전에 딱 한 가지 부탁하는데, 여기 선생님 처음 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처음 보는 사람. 그러면 다 봤군요. 지방 교회에 갔기 때문에 다 봤을 것입니다. 팔도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와 같이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선생님 일생에 처음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얼굴들이 발긋발긋하고 아주 소망의 눈이 봄동산에 큰 어떤 종묘장을 만드는 것 같아요. 씨들이 뿌려져 가지고 움이 터서 파릇하니 소망이 넘치는 모습이, 봄빛을 맞아 움을 틔워 자기 모습을 단장해 가지고 `나는 이러한 나무의 종자니라. 나는 이런 무슨 씨의 종자다'라고 종족을 자랑하는 모습이 완연히 보입니다. 이것들이 자라나면 앞으로 별의별 것이 다 될 것입니다. 세계를 녹여 먹는 놈도 나올 것이고, 사탄을 근본적으로 때려잡을 놈도 나올 것이고, 또 일대(一代)에 아주 일격전을 하려는 통쾌한 사나이도 나올 것입니다. 또, 아낙네로 말하면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올 것입니다. 그걸 바라볼 때 아주 신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우리 힘차게 노래 하나 부르자구요.
노래는 무슨 노래냐 하면 `하늘의 용사'입니다, 하늘의 용사. 여러분이 먼저 부를래요, 선생님이 먼저 불러 볼까요? 「선생님이 먼저…」 그래, 한번 해보자요. 선생님이 한번 불러 볼께요. 그대신, 원리를 통해서 여러분이 주고받는 이치를 배웠어요. 주었으면, 받았으면? 「줘야 됩니다」준 사람한테 주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돼요? 돌려야 됩니다. 그러니만큼 여기서 선생님이 씩씩하게 한번 부르면 그 노래를 여러분이 `선생님 대해서 우리가 씩씩하게 불러 드립니다' 해야 돼요. 그렇지 않게 되면 돌려야 돼요. 어디로? 삼천만 민중 앞에, 여러분 같은 백만 동지를 앞에 돌려야 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1절을 한번 해보겠어요. 듣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요. 내려요. 하늘의 용사, 1절 가사를 읽을 테니 들어 봐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아닙니다」 (웃음) 뭐예요? 「하나로 묶어 주신…」 정말이예요? 「예」 세계는 둘로 묶어져 있는데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심정의 인연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는 심정에 의해….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그다음엔 영원히 주고받는 남의 본향…. 「우리의 본향」 우리의 본향. 불행의 터전에서 영원히 살리라? 행복의 터전에서 영원히 살리라예요. 알겠어요? 「예」 그럴 때는 `선생님이 가사를 외었는데…' 하고 생각해야 돼요. 다시 한번 하겠어요.
왜 그러냐? 여러분이 생각이 많다는 거예요. 늦어 가지고 밥도 못 먹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협회장이 와서 얘기하더니 또 선생님이…. 아이고 그만뒀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놈들이 있다 그 말이예요. (웃음) 복종하라는 거예요, 복종. 그러니까 선생님 얘기에 관심 갖게 하려면, 할수없이 여러분 입장에서 선생님이 이 놀음 해야 돼요. 사실 선생님이 이런 놀음 할 필요도 없어요. 이런 데에 와서 뭐 할말만 몇 마디 해주면 되는 것이지만, 그러면 의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안 그래요?
쭉 보게 되면 선생님에게 그것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여 주려면 입을 딱 벌리게 해서…. 뭘 먹여 주는 데, 입술에 뭘 묻혀 가지고 `지지이이' 하는 것 원치 않습니다. ` 입을 벌려라. 힘껏 이빨까지 목젖이 앞에까지 나오게 벌려라' 해 가지고 입술에도 안 묻게 살짝 집어 넣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소원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참고 나와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처음인 사람들은, 대중을 지도 못 해본 사람은 그렇게 못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같은 사람을 데리고 지내봤을 때 이렇게 해야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또 여러분들도 좋고.
심정의 인연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는 심정, 둘째는 인격, 세째는 진리의 실천자, 이것이 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소망의 동산에서…. 그러니 4절은 소망의 동산이예요.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는 소망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의 심판은 뭐냐?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심정으로 인격으로 말씀으로인데, 심판은 말씀심판시대 인격심판시대 심정심판시대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발전해 나옵니다. 오늘 시간이 많아서 전부 다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못 하지만,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그런 내용을 갖추어야 됩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이게 여러분의 소원이고 누구의 소원이예요? 여러분의 소원인 동시에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의 소원이요,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자, 들어 봐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이것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이라 어떤 용사? 「통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무엇을 모아? 「정을」 정을 모아, 하나님의 심정의 정을 모아 뭐하는 거예요? 「용진…」 용진하리라! 용진이라는 명사는 무엇을 앞에 놓고 쓰는 말이예요. 원수를 앞에 놓고 쓰는 말입니다. 심정적인 이런 용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2절,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니…. 본래 타락하지 않은 인간은 무한한 인격자입니다. 일시적인 인격이 아니예요. 무한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무한히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인데, 빛이라는 것은 흑암의 빛이 아닙니다. 광명한 빛을 돋구어, 온 피조만물은 그 무한한 연격의 빛권 내에 들어가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으신 만물의 그 무한한 소망의 등대로 발하기를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소망의 등대'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그 가치에는 생명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생명이 솟구쳐 나온다는 말입니다. 가서 건드리면, 가서 부딪치면 움직여 나오는 것입니다. 죽었던 사람도 생명의 동기에 접붙이면 일어서는 거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접촉만 되면 죽었던 놈도 벌떡 일어서요.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그렇다고 강제가 아닙니다. 자동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이 그렇다는 거예요.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그다음은 뭐예요? `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예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망이 뭐냐? 하나의 인격입니다. 그 하나의 인격이 향기를 풍기는 꽃봉오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인격을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한번 더 읽어 보겠어요.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바라시는 뭐예요? 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 이런 것은 누구만이 할 수 있어요?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무엇? 뜻을 세워. 사람이라면 뜻이 있어야 됩니다. 뜻이 있어야 돼요. 이건 동물에게는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뜻이 있어야 돼요. 뜻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예요. 뜻 없는 사람은 뜻 없는 날을 보내는 동시에 뜻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요, 뜻 없는 생활은 뜻 없는 인간을 만들어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구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천지의 이치는 인연과 관계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뜻 없는 사람은 그런 인연과 관계세계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를 중심삼고 무엇을 바라는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뜻의 작용입니다. 그런 뜻이 있어야 돼요. 사람에게는 뜻이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 3절,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무엇을 약속하는 ? 「영원을」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이건 뭐냐?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질서가 많고 어떤 사회적 조직이니 이런 것이 많지만 이젠 그런 것은 지나갈 때입니다. 질서의 기틀, 완전한 창조의 이념으로 바랐고 인간의 소망으로 바랐던 원칙적인 질서의 기틀이 잡혀지지 않았습니다. 내 심정적 기준을 통하여, 인격적 기반을 통하여 이루어진 질서적 기틀이 잡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서의 기틀, 우리들은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서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배척을 받고 억울하여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이 땅 위에 없는 참다운 질서의 기틀을 회복하고 질서의 기틀을 제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움직이는 하루의 생활, 한날의 모든 투쟁이라는 것은 일시에 여러분 시대에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노정에 있어서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의 날이라면, 전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선의 한 날입니다, 한 날. 선의 하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서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서 싸운 모든 투쟁의 생활, 그런 역사적인 재료들은 무엇이 될 것이냐? 양양한 선의 천국을 이루는 하루 생활을 심판하는 절대 기준이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은 누구만이 할 수 있어요?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말씀을 통하여 그러한 길을, 그러한 진리를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치면서, 무엇? 사탄세계를 향하여 용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절,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그리하여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창조역사시대에 있어서 심판적인 생애의 규범을 세우는 책임을 하기 위한 새로운 진리를 들고…. 그러니까 이런 모든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자랑이라, 무엇? 「통일의…」 통일의 용사입니다.
나 물 좀 주세요. 얘기를 많이 하려면 물 좀 먹어야지요? 괜찮지요? 「예」 여기 한 200명 되나? 150명? 한 200명 모였는 데….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무엇? 「통일의…」 통일의 용사. 힘차게, 뭐예요? 「외치면서」 외치면서? 「용진하리라」 용진하리라!
그다음 4절은 이념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 해야 심정이 통하고 인격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격적 기준의 뜻을 세워서 말씀을 외칠 수 있는 책임을 한 사람이라야 본향의 세계를 거쳐 이상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이상입니다.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동방이 어디예요? 일본? 「한국입니다」 누가 한국이라 그랬어요? 누가 한국이라 그랬어요? 누가? 하나님이 그랬다고 왜 대답 못 해요? 틀림없이 한국시대가 옵니다.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이제 동방에서부터 찬란한 태양빛이비쳐 오는 것입니다. 아침에 광명한 햇빛이 비치면 만천하를 정복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그들도 정복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태양빛입니다. 그런 찬란한 문화가 벌어집니다.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이것이 앞으로 한국에서부터 벌어진다 이겁니다. 한국에서부터 벌어집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신념이 있어야 돼요. `태풍아, 불어와라. 모진 바람아, 불어와라' 하는이 신념만 갖고 있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손에 붙들렸고 내가 결심을 했으니 못 빼 간다 이겁니다. 그러면서 임무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 했으니, `믿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별수 있어요? 미국 사람보다도 한국 사람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부탁한다면 한국 사람을 축복해야지 별수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안 오겠다 해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오겠다 해도, 하나님이 미국 하나님이라 해도 우리가 그렇게 하면 별수 있겠어요? 미국 사람보다도 우리가 더 많은데 말이예요. 더 충성하고 더 신념을 가지고 더 믿는 데…. 믿으면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성경 말씀에 떡 있는데, 딱 걸려 있는데 누가 이기겠어요? 하나님도 별수없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 그런 신념을 가지고 믿고 나가면 자연히 온다는 겁니다. 자신을 가져야 돼요. 알겠어요? 「예」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무엇이? 온─ 뭐예요? 「누리」 온 누리가 여러분 형제만이예요? 엄마 아빠 그것만이예요? 「세계 인류요」 왜 세계 인류예요? 온 누리라는 건 세계 인류만이 아닙니다. 과거에 왔다 갔던, 영계에 있는 우리 사촌들, 또 미래에 올 우리 손자들 전부입니다. 사람 종자, 사람 형태를 갖고 왔다 갔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갖고 왔다 갔던 존재는 다 속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온 누리입니다. 온─누리입니다. 오오온 누리─, 얼마나 커요? 계속하는 거예요. 끝났어요? 안 끝났습니다. 무한입니다.
온 누리, 무슨 빛 속에? 어느 빛? 여러분 눈 깜박깜박하는 그 빛이예요? 어느 빛이예요?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그러면 그 찬란한 문화라는 것은 무슨 문화냐? 전쟁해서 정복하는 문화예요? 돈많이 가지고 배를 내밀며 잘산다고 자랑하는 문화예요? 오늘날 비행기 타고 세계일주하면서 큰소리하는 문화예요? 무슨 문화예요? 아니예요. 심정의 문화입니다. 심정의 문화예요. 이거 알아야 돼요.
우리가 앞으로 이상적인 세계에 있어서 주류, 혹은 그 기틀이 될 수 있는 문화의 원천은 뭐냐? 원료가 되는 문화로서 누구나 다 필요로 하는 문화는 뭐냐? 심정문화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안 봐도 안 되고 자식에겐 부모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형제가 없어서도 안 돼요. 내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되고 내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다 그렇습니다. 내 세계가 없으면 안 되고 내 하늘땅이 없으면 안 돼요. 이게 심정의 문화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라는 것은 무슨 문화냐? 심정의 문화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심정적인 문화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여러분은 무엇이냐? 지식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는 지식의 부모라고 하지요? 「예」 기술을 가르쳐 주는 사람에겐 기술의 부모라고 해요. 우리 통일교회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입장에 있으니, 여러분이 선생님 대해 진리를 중심한 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래요? 내 고깃덩어리를 낳아 준 사람은 고깃덩어리 부모입니다. 자기의 인격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제시한 분야 분과에 있어서 가치가 크면 클수록 큰 가치를 중심삼은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건 전부 부모적인 혜택을 받은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복귀역사를 보면, 아까 협회장도 이야기했지만 종새끼 중의 종새끼가 종으로 복귀하기 위한 역사가 구약역사입니다. 종이 양자로 등장하여 복귀해 올라가는 역사가 신약역사입니다. 구약의 바톤을 붙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느냐? 신약이라면, 오늘날 2천 년의 신약역사는 뭐냐? 이 바톤을, 이 뭉치를 들고 종의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종의 고개를 넘으려니 해산의 수고를 해야 돼요. 알겠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종의 새끼로부터 양자 새끼로 돌아가려니 해산의 수고를 해야 돼요. 해산의 수고를 해서 그것을 들고 양자의 세계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계적인 종의 세계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세계적인 종의 세계를 만들어 세계적인 양자의 인연을 거쳐 세계적인 직계 자녀의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다음에 직계 자녀를 세워 형제의 인연을 거쳐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선남선녀가 되기를 바라고…. 선남선녀가 되어 타락한 조상이 되지 않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식을 낳는 멸망할 조상이 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당 갈 수 있는 ,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누구든지 자처하며 나설 수 있는 선의 참다운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여러분이 소망의 선의 부모예요.
오시는 주님은 뭐냐 하면, 온 인류의 조상으로 오신다는 거예요. 그 주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축복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선의 조상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의, 참부모의 자리를 가졌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려면 심정적인 이 문화적인 세계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뭐예요? 길이 받들어, 그다음엔 "정녕코 이루리라" 뭐예요? 「하나의 세계」 그래야만 하나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이런 뜻과 포부와 신념을 갖고 나서는 무리들은 비록 나이는 10여 세밖에 안 되었다 하더라도… .
요즘 뭐 틴에이저라 해 가지고 미국 같은 데서는 아주 다루기가 곤란합니다. 그거 뭐라고 그러든가요? 무슨 춤? 「트위스트」 엿가락 춤이예요, 엿가락 춤. (웃음) 그거 신나요? 신나요, 그거? 그것도 하나님을 모셔 놓고 춰야 신이 나지요. `내가 하나님을 한번 모셔 놓고 춤춰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 그렇게 생각하면 추고픈 마음이 동해도 괜찮지만, 사탄 패들 노는 데서 그거 춤춰서는 안 된다구요. 우리 주님을 모셔 놓고 트위스트 아니라 트위스트 조상 몇 대조, 몇 배 잘한 조상의 춤을 춰 보고 싶어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다리만 꼬여야 되겠어요? 손이 꼬이고 허리가 꼬이고 코가 꼬이가 다 꼬여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모셔 놓고 그렇게 추면 덩실덩실 추면…. 그거 얼마나 좋아요?
지금 세상은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그걸 볼 때 여러분은 뜻의 길을 보여 줘야 돼요. 그들은 트위스트니 하는 무슨 엿가락 춤을 추지만, 우리는 직선 춤을 한번 춰 보자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뻗으면, 인공위성 같은 건 잘 따라옵니다. 직선 춤이예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꼬는 춤 말고 직선 춤 한번 춰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날아가면 세계를 몇 바퀴 돌다 쓱 가서, 앉고 싶은 데에 앉을 수 있는 직선 춤을 추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포부를 갖고, 그런 희망을 갖고 나가는 우리 소년 소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거 한번 해보자 말이예요. 해봐요? 「예」 한번 해보자구요.
선생님이 노래를 참 잘하는데, 오늘은 사람이 많아서 여러분 눈이 이렇게 보니까 질려서 잘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렇지만 한번 해보자구요. 자, 척 노래를 부를 때는 `하늘이여 낮아지소서, 낮아져! 땅이여 올라오소서. 솟아! 사람이여 집합! 봐! 들어' 이런 기분 갖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신나는 거예요. 그래 노래를 불러도 혼자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조금 늦었지만, 20일 전만 해도 가을 동산 숲속에 가면 이상한 소리가 나거든요. 뺑─, 뭐 어쩌고…. 그것도 플러스 마이너스입니다. 음양을 갖춰 가지고, 박자를 맞춰 찍 하면 짹 쭉 짹짹…. 이거 자연의 오케스트라입니다. 이거 벌어지는 것 봤어요? 그것들은 꽁무니에 뭘 달고 다니면서 자동적인 음악회를 멋지게 해요. 그건 자연적인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런 걸 볼 때, 미물 곤충도 노래를 부를 땐 누가 들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천지조화의 인연을 가지고 춤추는 거예요. 그들이 노래하고 즐거워하는 걸 가만 보면 천지의 조화 인연, 자동적인 인연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든요. 인간들은 흥을 돋우려면…. 그거 얼마나 답답해요? 다리가 부러졌을망정, 날갯죽지가 떨어졌을망정 곤충들은 소리를 냅니다. 소리 내는 그것이 멋지거든요. 병신이 나가자빠져 가지고 노래한다 해도 멋지지 않나 말이예요. 그거 얼마나 멋져요? 인간세계에서는 멋지지 않지만 자연세계에서는 멋진것입니다. 자동적인 인연의 세계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라는 거예요. 노래하자면 할수없이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천지의 인연을 끌고 다니면서 `가자! 오늘은 서쪽으로 가자, 오늘은 남쪽으로 가자' 하는 기분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여러분이 생활적인 기반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한번 불러 보자구요. 「예」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됐어요? 오늘 시간도 늦었는데, 좀 늦어도 괜찮지요? 「예」 선생님이 이야기 많이 할까요? 「많이 해요」 30분만 해요? 「많이요」한 시간만? 「더 많이요」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선생님은 열 한 시간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웃음) 괜찮아요? 「예」 밥도 안 먹고? 「예」
이건 무슨 손? 「왼손」 요거는 무슨 손? 「오른 손」 이것은 젊은 소년소녀들에게 하는 얘기입니다. 뒤에 있는 양반들, 미안합니다. 상징적으로 이건 뭐예요? 「사탄」 요건? 「하나님」 사람을 갖다 붙이면 이건 「여자」 요건? 「남자」 남자가 좋아요, 여자가 좋아요? 「남자요, 여자요」 (웃음) 여자가 좋아요? 「예(여자)」 아이구, 남자가 좋아요? 「예(남자)」 (웃음)
자, 보라구요. 복귀시대에 있어서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는 여성들을 중심한 문화형태였어요. 여성문화, 그것이 70년간입니다. 여자들 복귀시대는 70년간입니다. 70년간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유린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리는 것은 통하지만 남자가 여자 뺨을 때리는 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때예요. 그때만 여자가 낫지 그다음엔 남자가 낫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때는 어떤 때예요? 「여자시대」 여자시대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여자들을 등골이 나오도록 부려먹는 것입니다. (웃음) 기분 좋지요? 「아니요(여자들)」 그래 가지고 뜻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남자 선생님들 오시옵소서' 하고…. (웃음) 그거 원치 않아요?
지금까지 여자들이 역사를 망쳤습니다. 어느 영웅 열사도 전부 곤두박질하게 한 것이 여자예요, 이 여자. 수많은 역사적인 문제거리에 있어서도 맨 암초가…. 몇 만 톤급의 기선이 태평양을 마음 놓고 항해하는 도상에 있어서도 암초에 부딪치게 되면, 제아무리 위력이 센 함정도 깨져 넘어가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인류 복귀역사, 역사발전 도상에 있어서 인간세계의 배를 운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자들은 암초였습니다, 암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가지고 큰 배들을 많이 깨서 잡아먹었습니다. 알겠어요? 그건 역사적인 사실이니 부인 못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생각하기를 `지금까지 여자들은 세계 훌륭한 사람을 다 잡아먹었지만,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까지게 벗겨지게 시켜 먹어야지' 그랬다구요. 어때요? 만일 선생님이 못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인간들이 못 그랬으면 여자들이 합동공세해서 하나님을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이 `오냐, 오냐. 여자들아, 참 훌륭하다'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줘야, 여자로서 타락한 해와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또, 남자들은 뭘해야 되느냐? 지금 때는 여자들의 말을 잘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개 집에서 가만 보면 사내 자식들이 문제예요. 집에서 제일 사탄이 남자들입니다. 부모가 있고 남자가 없이 딸만 있는 가정은 오순도순 재미있는데, 사내 녀석만 있으면 그저 누이동생을 치고 박고 어머니 속썩이고 그래요. 남자가 사탄이라구요. 남자는 그렇다구요, 언제든지. 그러니만큼 앞으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도 여자니까 어머니 말 잘들어야 됩니다. 누님도 여자니까 누님 말도 잘듣고 여동생 말도 잘들어서 여성들이 환영할 수 있는 남성이 되라는 겁니다. 그렇게 안 되면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자유당 때부터 출세하려고 여자를 앞세우고 그 치마 끝을 붙들고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남자는 어디 취직하려 해도 못 했지만, 여자들은 그저 얼마든지…. 남자는 쓸데없고 여자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개척도 여자들이 해야 됩니다. 천하통일하는 데도 여자들이 해야 됩니다. 여자 다리통이 남자보다 뚱뚱하지요? (웃음) 다리통에 땀을 그저 흘리면서 이 나라 살리겠다고 다니면서…. .
어떤 때는 선생님이 산에 가서 그런 놀음을 했습니다. 불개미 둥지 있지요? 거기서 한 마리 딱 잡아서 이게 남자 불개미인가 여자 불개미인가 하고 보면 필시 남자 불개미는 아니거든요. 가서 뭘 끌어올 때는 여자 불개미도 끌어오고 남자 불개미도 끌어오지만, 도리어 여자 불개미가 부지런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건설시대에 있어서는 삼천만에서 절반 되는 천 오백만의 여성들이 앞서서, 이놈의 남자 사내 녀석들 하면서…. (웃음)
여성이 닦아 놓은 터전을 유린하고, 여성들이 지금까지 수고하고 피땀을 흘려서 쌓아 놓은 터전을 허물어 버리는 사탄이라며 가서 주먹으로 때릴 수 있는 여성들이 한국 가정 가정에, 사회 골짝 골짝에서 나와 활동하면 남자들이 가정에서부터 시시한 놀음을 못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는데 어머니가 가슴을 타고 앉아서 `이놈 사탄아, 항복하겠나 안 하겠나? 돈 보따리 갖다 줄 거야, 안 갖다 줄거야? ' 이럴 수 있는 여성들이 되면 틀림없이 이 나라는 살아날 것입니다. 어때요? 그 말이 틀렸어요? 그렇게 안 됐다면 그렇게만들 수 있게끔 국가적인 운동으로 해야 될 일입니다. 국가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운동, 세계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하나님 운동으로 전개시켜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아요, 알고 보니.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하는 데에서 누굴 동원했느냐하면 남자들이 아니고 여자들이었습니다. 중요할 때, 복귀섭리를 할 때는 반드시 여자들을 통해서 했습니다. 그걸 볼 때 하나님은 인간세계의 인간들보다 한 단계 머리가 높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걸 설명하자면 여러분이 부인할 수 없는 설명을 쭉 할 수 있는 데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알라구요. 선생님 말 믿으면 손해는 안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성들? 「예」 알겠어요, 저 점잖은 아주머니들? 「예」미안합니다. (웃음) 말하다가 형편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겠소? (웃음)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면 물을 많이 먹게 될 텐데….
남자들, 이놈들이 뭣인 줄 알아요, 이놈들? 나이 많은 분들말고 말이예요. 너희 이놈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어느 연령에 타락했어요? 25살? 20대였어요? 30대? 10대였어요. 요즘 틴에이저라 해 가지고 사회에서 제일 문제거리가 10대 녀석들이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깡패도 나이 많은 깡패는 오록(오금)을 못 쓰거든. 10대 깡패, 이 깡패는 낮도깨비입니다. (웃음) 이건 천사장을 겸한 깡패입니다. 제일 마사꾼들이예요. 어떻게 이걸 정비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요 사내 자식들, 이 연령은 뭐냐? 옛날 아담이 타락했던 연령이거든요. 17세, 이 연령에서 타락했습니다. 알쏭달쏭하게 아직까지 이성이 비판력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 누가 속닥속닥하면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때다 이겁니다. 또, 생각은 뭐냐 하면 도깨비 생각이라는 거예요. 그저 한꺼번에 세계를 내 것 만들려고 그러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내 말 안 들으면 교장 선생님 상투끈도 잡아당기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폭발되어 오는 거예요. 이런 때에 놓여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패들입니다. 그걸 전제 조건으로 해 놓고….
이놈들을 잡아다가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골부터 까야 돼요. (웃음) 골부터 까놓고, 그다음엔 내장을 제껴 놓아야 됩니다. 그다음엔 전부 다 꺼내 가지고 뼈다귀를 휘발유로 닦고, 그다음엔 타오르지 않는 불에 슬쩍 구워야 돼요. (웃음) 왜 그러냐? 남자는 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후손들이 어떻게 퍼지느냐 하면 여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자에 의해서 나옵니다. 자녀라는 것은 남자에서부터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중요한 입장에 있는 것이 남자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누구한테 가 가지고도 대가리를 흔들흔들하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덤벙덤벙합니다. 해와가 따먹으라니 그것도 좋다고, 이러다 타락했다 이거예요. 이럴 때에 이 젊은 애들은 중심을 딱 잡게 어떤 신념을 집어넣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한 패들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몰려왔습니다. 잘못 걸렸단 말이예요. 잘못 걸렸어요.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죽지 않으면 사는 거예요. 힘이 많아서 선생님을 밀어 제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할 때에는 선생님한테 정복당합니다. 그건 뭐 알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죽어도 들어가야 돼요. 들어가면 이건 여러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젊은 녀석들, 눈을 깜박깜박하고 빤질빤질해 가지고 문제라구요. 길가에서 아가씨들 지나가면 가만있고 싶지 않지요? (웃음) 사탄이 문제예요, 사탄이. 혓바닥이 둘이예요. 뱀은 혀가 둘입니다. 본래 자기의 인격을 중심삼고 하나의 말을 해야 할 텐데, 자기가 본래 취해야 할 입장을 떠나 가지고 두 가지 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사탄 본질을 정복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먼저 부름받은 여러분에게는 무슨책임이 있느냐? 그런 놀음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겠으면 방망이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방망이로 다리를 중심삼고 치는 것입니다. 칠 때는 사탄도 칩니다. 사탄세계에 장벽이 많으면 그저 들이까고 벽을 흔들면서 대가리가 깨지든 벽이 깨지든 쳐야 할 때는 쳐야됩니다. 그런 사명을 해야 됩니다.
이 남자 녀석들은 골머리가 아직 안 되어 먹었어요. 전부 해부해서, 수술해서 우리 아가씨들한테 잘 순종하는 남자로 만들어야 됩니다. 타락한 여자들 말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도상에 있는 여자들을 사랑하고, 또 여자들이 중요시하는 절개를 존중해야 돼요. 남자들도 절개를 지켜야 돼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더우기나 여러분은 타락 전의 아담 해와 연령에 있으니만큼, 여러분이 타락론 배웠으니만큼 여자나 남자나 자기들의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자기 일신이라는 것은 천추만대의 거룩한 하나님의 생수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로부터 생명의 줄기가, 가지가 무한히 뻗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흘러가더라도, 만약에 그다음에는 어디…. 한강이 흘러가다 막혀 버리면 되겠어요? 막혀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국보다 드높은 모든 것이 막혀 버리면 한국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막혀 버리지 않고 뻗어나가 세계에 넘쳐 흐를 수 있는 후손을 남겨야 할, 심정의 핏줄기를 세워 나가기 위한 책임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만큼 남자의 위신과 남자의 인격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껄떡거리지 말라 이겁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뭐 어떻고…. 통일교회 여기 온 녀석들, 연애편지하는 녀석들 내가 손을 잘라 버릴 거라구. 잘라 버릴 거라구요. 남자의 위신이 돼먹지 않았다구요. 여자가 남자를 따르게 돼 있지 남자가 여자를 따르게 안 돼 있습니다. 첫날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주느냐 하면, 해야 할 여러분에게 위험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 공약으로 지키겠어요? 「예」 지키지 않을 녀석, 일어서라구! 내가 차버릴 테니까.
앞으로 여러분이 하늘 앞에 선 입장에 있어서는 자기 개인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혈통을 존중시해야 돼요. 내 개인을 존중하고 혈통을 존중시하며 연연히 선조로부터 거룩히 더럽히지 않은 핏줄을 받은 것을 영원히 계승하는, 혈통을 존중시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개를 지켜야 돼요. 하나님이 절개를 안 지켰다면 여러분이 믿을 수 있어요? 만약에 하나님이 본연의 해와를 다시 찾아 가지고 사탄세계에 가서 `야, 너 창조이상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나하고 상대하자' 이러면 되겠어요? 핏줄을 존중시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심정, 우리가 사랑했다는 심정, 하나님을 위하여 사랑했다는 심정, 첫심정을 깨끗히 보존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앞에 제물이 돼요. 알겠어요? 「예」 제물이란 그런 것이예요. 동네 서낭당 같은 데서 제사할 때 봤지요? 소 새끼를 제물로 드리게 될 때 암소만 낳은 소한테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암컷도 낳고 수컷도 낳는 소에게서 그 새깨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갖추어야 돼요. 그리고 흠점이 없고 순결하고 말이예요. 지방이면 그 지방성을 대표할 수 있는, 그래도 몇 년 동안 그 지방에 있으면서 먹고 자란 소라야 됩니다. 원래 그래요. 그런 역사성을 띠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갖춘 전부가, 천품이나 모든 것이 순해야 됩니다. 세상에 사탄한테 제물드릴 때 그런 것을 표준하거는, 여러분이야 하늘 앞에 승리적인 하나의 제물로서, 또 인류의 역사적인 결실로서 하늘 앞에 최후에 드려질 수 있는 하나의 산제물로 나가야 하는건…. 그런 입장에 있어서 자기 개체로부터 혈통 심정이 깨끗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런 이야기 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겠는데, 이제부터는 간단히 이야기하겠어요.
여러분이 여기에 왔습니다. 여기에 왔어요. 어디 왔어요? 대답을 해야지요? 왔지요? 「예」 여러분이 지방에 있을 때는 `가고 싶다. 본부에 한번 가 보고 싶다' 그랬을 거예요. 내가 통일교회 나온 지 몇 년 됐는데, 본부에 한번도 못 가 보고 선생님도 못 봤는데 한번 가 보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데도 요놈은 요렇게, 그놈은 고렇게, 고놈은 또 그렇게, 고놈은…. 수백 명이 전부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지요? 「예」 수백 명이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생각이라는 두 글자 위에는 천태만상으로 복잡합니다. 그 배후를 한번 쭉 잡아당겨보면, 여러분이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여러분이 비로소 본부에 왔습니다. 본부에 와서 여러분은 `우리 본부가 한국에서 제일 큰 예배당이어서 뭇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을는지 몰라요. 여기 본부에 와 보니 생각하던 거와 다를 겁니다. 그렇지요? 「예」 달라야 돼요. 또 여기 왔으니 선생님한테 좋은말씀 들을 줄 알았는 데, 좋은 말씀은 하지 않고 때로 욕도 하고 막 때리고 그런다 이거예요. 심정이 있고 믿을 만하고 높일 만하고 만질 만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할 거예요.
여러분이 여기 와 앉아 있습니다. 왔다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올라가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하늘로 올라가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오긴 왔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하고 싸우겠어요? 이 시간에는 내 말을 듣고 있어요. 또 왔으면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는 데는 어떻게 돌아가느냐? 그 방향은 천태만상입니다. 그렇지요? 또, 선생님이 말씀을 하는데, 말씀 듣는 데에 있어서도 천태만상으로 듣습니다. 여러분이 오기는 왔는데, 여러분 중에는 참 아니게 온 사람도 있고, 참 같게 하고 온 사람도 있고, 참이라 할 수있는 입장에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면 그건 둘이예요, 하나예요? 둘이예요, 하나예요? 대답해 봐요. 둘이 있을 수 있어요? 한 사람입니다. 섭섭하지요? 수백 명이 왔지만, 오기는 많은 사람이 온 것은 같은데 진짜 온 사람은 이 가운데서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섭섭하지요? 섭섭해도 할 수 없어요.
말씀을 듣는 데도 수많은 사람이 듣고 있습니다. 노랑 저고리 빨강 저고리 알록달록 제멋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모양대로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다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본의를…. 하나님이 배후에서 염려하면서 선생님을 세워 말씀하라는 명령이 있기에, 이 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선생님이 말씀하는데, 여기에 수백 사람이 모여 앉아 있지만 참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됩니다. 몇 사람? 「한 사람」 또 왔다가 돌아가야 할 여러분의 입장이요 필시 가야 할 운명이지만, 가는 데 있어서 걸음걸이가 여러 종류의 모양이 있는데, 참으로 가는 사람은 몇 사람? 「한사람」
젊은 녀석들의 마음은 욕망이 등등합니다. 백두산도 자기 주머니에 넣겠다고 자신하고, 태평양 바다물 한 잔의 물과 같이 마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젊은 사나이 혹은 젊은 아낙네가 품는 바입니다. 여러분 청소년 시대에 품어야 할 기백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할 때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의 사람이 되겠다고 합니다. 하나의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그런다는 겁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니? 하면 속으로는 다 그럴 거예요. 인간들의 욕망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까 말한 과거도 하나요, 현재도 하나요, 가야 할 입장에서도 하나입니다. 하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 그런 인연의 세계에 있어서 필시 부정할 수 없는 소망의 목표로 등장한다는 것을 시인하겠지요? 「예」
그러면 말씀을 하는 데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해야 되느냐? 문제입니다. `당신은 선생 입장에서 그런 인연의 입장의 책임을 졌다 할진대는 , 우리들을 모아 놓고 어떤 입장에서 말씀을 하시오? ' 하고 여러분이 묻게 될 때, 선생님이 '아무렇게나 말씀하지요' 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잘라 버려도 돼요. 원수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어느 곳에 가든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올 때도 이런 사람이요, 현재도 그런 사람이요, 가야 할 사람도 그런 사람, 그러한 사람을 대해 말씀해야 할 것이 지도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만약에 환경이 그렇게 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원수가 되더라도 때려서라도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가르치는 스승의 사명이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둬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범위를 넓혀서, 나 하나의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동으로 가면 내 한 개체에 있어서는 동에 서는 사람이 되지만, 뒤를 돌아 보면 거기에는 민족이 있고 더 돌아보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원서부터 세계 30억 인류가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연된 역사무대를 기반으로 하여, 이 지구성을 기반으로 하여 무한한 세계를 볼 때에, 아득한 어떤 존재세계까지 인간과의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인식되는 모든 존재세계에 있어서 그것이 무모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어떤 공의와 공전, 어떤 궤도적인 법도를 통하여 하나의 전체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적인 운세의 궤도에서 움직이는 존재라 할진대는, 그 존재와 나 하나가 동격에 선 그 자체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천갈피 만갈피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동으로 가면 동이요, 서로 가면 서요, 남으로 가면 남이요, 북으로가면 북이요, 중앙이면 중앙…. 내가 어디에 정지하게 될 때는 내 자체가 정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나 젊은 청소년시대에 있어서는 `나는 배달민족이요, 삼천리 반도에서 삼천만의 일인으로 태어났고 혹은 백만 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대표한 나다. 내가 선 곳은 피가 동하고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선 피가 약동한다. 내 살과 피는 민족의 살이요 피다. 역사적인 성현 현철이 남긴 바의 소망의 피가 끓는다'고 호소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내 손으로 들고 당기게 되면 삼천만 민족과 세계 인류가 움직여 들어갈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천주의 모든 존재들까지도 움직여 나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신념으로 어떤 목표를 향하여 가는 사나이와 그렇지 못한 사나이와 비교하게 될 때, 어떤 존재를 역사가 고대하고 시대가 고대하고 미래가 고대할 것이냐? 또 삼천만이 어떤 사람을 고대할 것인가? 30억 인류는 어떤 사람을 고대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는 어떤 사람을 고대할 것이냐? 그것은 누구에게 맡겨도 자명한 답이 나옵니다. 누구를 물론하고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고대할 것입니다. 이런 가치적 기준은 아무리 철부지한 삼척동자라도 답을 내는 데서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의 젊은이들, 여러분은 자칭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역사적인 결실이다'라고 합니다. 과연 그러냐? 문제입니다. 과연 그러냐? 갑이라는 사람을 두고 `넌 뭘하느냐?' 하면 `나는 산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면, `이렇게 살아왔다'고 할 것입니다. 개인을 두고 대다수의 사람에게 `너는 어떻게 지내왔느냐' 하면 `밥을 먹고 살아왔다'고 할 것입니다. `너는 어떻게 사느냐? 잘 사느냐, 못 사느냐? ' 할 때 대다수의 사람은 `집 칸이나 있고 밭뙈기나 있고 거느린 바의 생활환경에 있어서 지장을 느끼지 않고 산다'는 견지에서 대답을 합니다.
살기는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인간들은 어떻게 사느냐? 살기는 사는데, 생활을 통한 생활은 영위할 줄 압니다. 그러나 사는데는 그렇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보다도 한 단계 높혀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이냐? 밥도 먹기는 같이 먹고 사는데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밥만 먹고 생각은 없이 사는 사람이 있고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생각을 가지고 입을 벌려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면서, 자기의 신념을 전파하면서, 말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뼈다귀가 부러지고 자기 일신이, 사지가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신념과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의 환경도 개의치 않고 용사답게 싸우는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이예요.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런 생활적 무대에 있어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또 자기 신념을 세워서 말씀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말씀을 대신하여 실천하고 전부 통합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최고의 욕망의 괴수요, 모든 소망과 욕망의 특권적인 실체라고 할진대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어요? 밥도 먹고 살고, 생활도 하고 살고, 말도 하고 살고, 행동도 하고 살고 하는 이런 생활을 지금 하고 있지요? 「예」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사는 그 생활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물어 봅니다.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자기 개체를 위해 살았다면 이는 역사적인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생각했느냐? 개인을 위해 생각했다면 이것 역시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누구를 위해 말했느냐? 네 자신을 위해 말했느냐? 누구를 위해 실천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대답이 아까 말한 개인을 위해서였다면….
세계적인 가치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자기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사는 사람과, 자기 개인 위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는 걸 볼 때,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족이 요구하고 세계 인류가 요구하고 하늘땅이 요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여러분이 생각할 때에는 누구인지 한번 대답해 봐요. 어떤 사람이예요?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왔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왔어요? 과연 지금까지, 이 시대의 연령까지 부모 슬하에서 살아왔는데 어떻게 살아왔느냐 이겁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사느냐? 내가 말하는 말은 어떻게 돼서 하고 있는 말이냐? 내가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 되어 움직이느냐? 이것이 내 개인을 위함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내 개인을 위함이냐, 가정을 위함이냐, 민족을 위함이냐, 국가를 위함이냐, 세계를 위함이냐, 하늘땅을 위함이냐? 이걸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어때요?
가정을 위하는 사람과 민족을 위하는 사람, 둘 중에서 하나를 취하라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취하겠어요? 더 큰 것을 위해, 민족을 위해 그렇게 살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어느 민족, 어떤 사람, 사람이라는 사람 종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 크기에있어서 개인을 위하는 것보다도 가정을 위해 개일을 버리고 가정을 찾아야 되겠고, 가정을 위한 것과 사회를 위하는 데에 있어서도 가정을 버리고 사회를 찾아야 되겠고, 사회와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국가를 위해 사회를 버려야 되겠고, 세계를 위하여 국가도 버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 사람과 모든 것을 취하게 될 때 묵묵히 세계를 위하는 사람을 취하고 국가를 위하는 사람은 버려야 됩니다. 그것이 인생 본연의 욕망을 달성할 수 있는 필연적인 요건이예요.
오늘날 인류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로 끌어갈 것이냐? 인간이 소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자리에 머물고, 어떤 자리에서 살고, 어떤 사회에서 살다가 어떤 자리에서 쓰러지게 될 것이냐? 내 인생이라는 자체가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주관은 모를망정, 소망의 그 개체 목표는 모를망정 아득히나마 내 양심적인 인식을 통하여서, 혹은 자극을 통하여, 혹은 충동을 통하여 느껴지는 소망의 입장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그것이 뭐냐하면 더 큰 곳을 가까이 하고, 더 큰 곳에 내가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요? 「예」 어르신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3천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3천만분의 1, 이것을 넘어서 세계 인류, 수많은 국가를 대표하고 한 민족을 대표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30억 지상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의 일원으로 등장한 것을 볼 때, 오늘날 세계 역사는 어떤 힘이 있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의 세계, 인식적인 과정을 통하여 목적의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가 계시다고 한다면, 그 절대자는 기필코 어떤 사람을 만들고 어떤 세계를 만들고 요구할 것이냐 이거예요. 여러분 자신들도, 타락한 종족인 무리들도 세계적인 인물을, 더 나아가 하늘땅을 위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거예요. 나도 그걸 원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떤 사람을 요구할 것이냐?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를 , 천지를 자기 것, 천지를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그럴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기준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 사상가라면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하나님은 생활환경에 있어서 어떤 분이냐? 만민이 본을 받을 수 있는 생활원칙을 가진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는 인간이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그 생각까지 도달할 수 없는, 인생의 최고 이상적인 소망을 생각하고 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 그러한 생활과 그러한 양심기준을 통하여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말씀을 하시면서 사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그러한 말씀과 인격을 생활을 통하여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실천하는 무대는 어디냐? 하늘과 땅입니다. 알겠어요? 「예」 무대가 어디라구요? 「하늘과 땅」 천지가 무대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어떤 분? 생활적인 절대자요, 양심생활에 있어서 절대자요, 말씀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자요,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자입니다. 이러해야 할 분이 우리 인류가 동경하는 절대자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되었는 고? 하나님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도 인간의 것입니다. 누구의 것이 됐어요? 이거 다 인간들이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역사 발전상을 볼 때 유물사관이라는 것은 생활적인 것입니다. 경제사관이예요. 물질을 위주로 한, 물질을 중심삼은 가치적인 세계를 전개시키기 위한 작전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란 뭐냐? 사람을 위주한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것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물질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의 세계로…. 오늘날 유물론자들은 사람을 찾아 나가야 돼요. 경제적인 모든 생산력을 자랑할 수 있는 계획 경제를 세계적으로 완전히 실천했다 할진대는, 그다음에는 뭘 해야 되느냐? 그것으로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참사람을 찾아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진영이 한 단계 앞 섭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기준입니다. 물질에서 출발하여 사람으로….
여기에 있어서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물질로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물질의 영광을 중심삼고 세계를 호령하려 하면 망합니다. 오늘 이 민주진영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신의 영역을 찾아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영역에 하나의 인간 대표를 보내기 위한 것이 재림사상입니다.
민주진영의 사람권, 이런 사정권 내에서 엉클어져 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새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주진영에 있는 종교인들은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한 단계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짓기위한 것이 오늘날 지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중세로부터 역사 발전상을 헤아려 볼 때, 봉건사상을 중심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느냐? 그 시대에 있어서 교황청을 중심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교황청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파면 파, 교파를 중심삼은 하나님으로서 안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사상을 들이 때린 것입니다. 때려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나 하나님은 세계적인 종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세계 인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까지도 그 품에 둬야 한다, 이래 가지고 갈라 떼어 발전시켜 나오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16세기 이후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할 재발견 시대로서, 인간이 제아무리 허덕여도 인간의 모든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재발견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천지의 주인 되시는 어떤주체적인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가 소망하는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실천하는 , 인간세상에 어느 누가 당치 못할 최고의 우주적인 내용을 가진 주의사상시대로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봉건시대 봉건사회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교황청권, 카톨릭권 내에 머문 그런 하나님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터쳐라! 그래서 그걸 째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민주진영권 내에만 있는 하나님이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늘땅의 하나님입니다. 천지간에 지으신 모든 만물은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입장에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개인주의 시대로부터 가정주의 시대, 씨족주의 시대, 민족주의 시대, 국가주의시대를 거쳐 가지고 지금 세계주의 사상주의 시대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이냐? 세계는 두 갈래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이렇게 나와요.
그러면 어찌하여 세계는 이렇게 발전하게 되느냐? 기필코 그렇게 되어야 돼요. 왜 그렇게 되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이 세계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내 아들딸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 세계를 대신하여 세울 수 있는 한 사람, 이런 사람을 찾기 위한 섭리의 뜻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이 기필코 수고하여 6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오늘날 이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뭐냐? 여러분이 아까 말하던 세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씨족관념에 매여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탈피할 것이냐? 내 전통관념으로 대하지 말라 이거예요. 자유해방을 노래해야 됩니다. 인간의 최고 양심기준을 중심삼은 최후의 해방을 주장해야 할 때가 왔나니, 그 주장을 부르짖어야 할 하나의 해방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역사를 했는데, 가나안 7족을 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모순이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거 반문해야 돼요. 어찌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7족을 멸하라고 하나님이 했느냐 이거예요. 세계적인 하나님이라면 가나안7족을 전부 자기 수하에 몰아넣고 멸하지 않게 하고 다 품고 나와야 되는데 왜 멸하게 했느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있어서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무대를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당면한 과업이요 부과된 과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가나안 7족은 민족 자체 발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발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환영하는 가나안 7족이었다면 왜 망하겠어요? 복받지요. 그러나 민족적 발판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가는 데에 있어서 원수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원수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조의 흐름에 따라서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세워질 때에 가정을 위주하면 그 가정은 들이맞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하는 사조에 와서는 국가 위주의 혁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천적인 사조의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일개 국가, 국수적인 사상을 갖고 나가다가는 들이 맞습니다. 더 큰 것을 세우기 위하여 작은 것을 제거하면서, 사탄을 그런 입장에 세워 놓고 때리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투쟁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끝날에 있어서 이런 논법이 일리가 있다 할 때, 앞으로 인간들은 어떻게 심판의 난관을 넘어갈 수 있느냐? 이 심판의 관문을 터뜨리고 넘어갈 수 있느냐? 크나큰 사상적인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하늘도 내 것이요, 땅도 내 것이요, 인류도 내 것이요, 하나님도 내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거기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본성의 심정을 닦아야 됩니다. 그런 답변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도(道)라는 것은 무엇이냐? 도의 목적은 뭐냐? 쩨쩨한 어떤 종파의 괴수를 만들기 위한 것이 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도의 목적은 우주사적인 세계관을 통하는 것입니다. 창조사적인 이념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와 인연맺어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사실적인 평면적인 세계에 기틀을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의 세계의 목적입니다. 도의 길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반이 닦아지지 않았으니 하늘이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오는 데에 있어서 개인기준을 중심삼고 닦지 못하였고, 가정기준을 중심삼고 닦지 못하였고, 민족기준을 중심삼고도 닦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고생고생하면서 세계적인 사조에 휩쓸려 종말시대로 끌려 나오면서 세계적인 운세시대를 맞아 나오는 것입니다. 말이 어려운데 이해하겠어요? 설명하려면 시간이 없어요.
땅 위의 인간들에 있어서 지금 때는 사상주의 시대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위주한 사상주의시대, 지금 20세기에 있어서 해산의 신음을 하는, 진통을 겪는 시대에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고비 넘어 사상주의 시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을 회복한다는 문예부흥…. 현대 문명이 문예부흥을 중심삼고 발전했다 하지만, 문예부흥 그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심정부흥을 논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라는 시대가 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아 허덕이는 시대는 지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생활권 내에 들어가야 돼요.
이 천지는 우리의 것입니다. 이 국경은 원수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볼 때는 이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편으로 볼 때 이 세계는 내 것입니다. 누가 금을 그었느냐? 국경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의 원수입니다. 수많은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편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부터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종말에 남아져야 할 인류, 소망의 인류, 소망의 인간의 가치는 어떤 것이냐? 책상 위에 있는 이 컵은 오늘 선생님이 물을 먹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만, 이 컵은 누구의 것이예요? 통일교회 것이 아닙니다. 이건 천지의 것, 인류의 것입니다. 만물도 그러한 사조의 흐름에, 무한한 가치의 반열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예」 내 지갑에 있는 한푼의 돈도 누구의 것? 한국의 것, 물론 한국 것이지만 인연을 두고 볼 때 최후에 남아질 한 때에 있어서는 인류의 것입니다, 인류의 것!
이렇게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재물을 유린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이 그거예요. 이것을 유린하는 것이 악당입니다. 이것을 유린하는 것은 심판을 받아야 할 무리예요. 그럼, 산에 가서 하나의 나무떨기를 바라볼 때에, 이것이 누구의 것? 아무개 김씨 산이리고 김씨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누구의 것? 본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통일교회 젊은 청소년들에게 무슨 사상을 심어 줄 것이냐? '세계는 내 것, 우리의 것!' 이런 사상을 먼저 갖고 세계의 선두에 서게 해 가지고 내것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제적으로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말하고,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 되게 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류를 몰랐습니다. 역사를 몰랐으니 인류를 몰랐고, 인류를 몰랐으니 자기를, 즉 인생을 몰랐어요. 내가 아무개 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아들로 태어나 뭘할 것이냐? 그걸 확실히 모릅니다. 밥 조각이나 먹다 쓰러져 공동묘지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무가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거룩, 거룩, 만천하가 소망한, 피조만물이 바란 소망의 실체요, 소망의 등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예를 들면 일국의 대통령 아들이 남으로부터 '저것 저것…'하는 소리 들으면 되겠어요? 인간이 자기의 위치와 위신을 단속해야 됩니다.
나는 어떤 존재냐? 이 우주사적인 존재로서, 최후의 인생행로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맞아 천지의 만우주를, 만유의 존재물을 상속받을 수 있는 거룩한 왕자입니다. 이러한 존재들이 떨어져 가지고 밥 한 덩이에 팔려가요? 어느 무가치한 악당 무리한테 농락을 당해요? 그거 용허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복귀의 해명을 하고 복귀의 사명을 감당하여 뭘할 것이냐?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본연의 나는 어디 있느뇨? 나를 찾기 위해 헤매느라고, 본연의 내 자신을 알아 가지고 거기에 인연맺어 살려는 소망에서 허덕이느라고…. 역사적인 기원과 통하여 있고, 역사적인 기원에만 통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천지의 법도와 연결돼 있고, 현실과 연결돼 있고, 앞으로 오는 미래와 연결돼 있는 나를 찾아야 됩니다.
그 나는 어떤 나냐? 인류의 소망의 나입니다. 삼천만의 소망의 나입니다. 그 나는 어떤 나냐?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나입니다. 아닌 영계에 가 있는 수십 억의 우리 선조들이 소망하는 나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나임을 해명하여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알겠어요? 「예」 소망의 나입니다.
소망의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대한민국 이 땅에서 나서 죽을 것이 아니라 세계는 내 것, 하늘은 내 것,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은 내 아버지라는 거예요, 끝까지. 여기까지 가야 할 인생 본연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어떤 자리에 설 것이뇨? 한국을 주고도 바꿀 수없는 나, 미국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 더 나아가서 극동을 떼어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 더 나아가서는 타락한 30억 인류를 줘도 바꿀 수 없는 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올 때도 하나요, 현재도 하나요, 갈 때도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 선생님 앞에 그런 하나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앞에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나'가 돼야 합니다.
그 `나'는 어디에 가 있을 것인고? 그 '나'가 그리워요. 그 '나'가 그립습니다. 그 '나'가 바라보는 시야의 소유권이 있다 할진대는 천하는 내 것입니다. 그 '나'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이 지구입니다. 그 '나'가 간섭하고 심정을 기울여야 할 무대도 이 지구만이 아니라 천상세계까지입니다. 이 광대무변한 대우주를 인연하여 친구로 삼고 생활적인 무대로 해야 할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죄악의 골수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탄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지리 탄식해야 돼요. 배때기를 들이째야 돼요. 목을 매고 죽어야 돼요. 한강에 빠져 죽어야지.
나는 나를 찾아 헤매노라! 나는 나를 찾아가노라! 나는 어떤 나냐? 하나님이 부르는 나입니다. 그 나는 어떤 나냐? 민족이 부르는 나, 이 끝날의 역사가, 하나의 세계가 부르는 나, 그 나를 찾아서 나는 가노라! 이러한 결의와 이러한 각오를 해 가지고 하늘 앞에 쌍수를 들어 맹세할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이 이 땅 위에 십만만 되면 세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민족주의 어디 선진국가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 소망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이요, 그걸 넘어 소망의 나라의 백성을 그리워하는 것이요, 그걸 넘어 소망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지은 새로운 문화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이 되어야 됩니다.
너는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 너는 어떤 존재로서 살려고 했느냐? 김아무개는 어디서 살려고 하느냐? 우리가 사는 곳은 좁은 무대입니다. 인연의 세계는 실제와 달라요. 이 원칙에서 벗어난 사람은 깨져 나갑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는 민족감정을 초월해야 됩니다. 흑인도 형제입니다. 백인도 형제예요. 잘난 것 없어요. 하나님 앞에서는 잘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났다는 녀석들은….
예를 들어 말하면 백만장자 거부의 아버지가 있는 데 아들딸 10남매를 가졌다 하자구요. 그 아들딸 중에는 잘난 놈도 있어요. 사회적인 명망도 그렇거니와 갖춘 바의 인품도 좋습니다. 안팎으로 결점을 잡을 수 없는 늠름한 존재입니다. 어디에 나가더라도 부모의 자랑이요, 가정에 있어서도 자랑이요, 사회 국가 혹은 체제를 세울 수 있는 어떤 무대에서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 반면에 천치 바보 아들이 있어요. 지지리 못났고 곰배팔이고 무슨 병신 사촌 뒤집어쓴 아들이 있다 합시다. 부모가 보게될 때 `너는 사회적인 활동을 잘하니 불쌍한 형보다 얼마나 낫느냐? 네 가치는 만점이요, 불쌍한 병신 자식은 영점이야' 이러겠어요? 심정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정으로 볼 때는 너는 만점 될 수 있고 영점 될 수 있지만, 심정으로 볼 때는 `너는 만점이요, 너는 영점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들이 해야 할 것은, 앞으로 선진국가가 정책을 세워 나가는 데에 있어서 취해야 할 길은, 민주진영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심정적인 세계가 찾아오는 종말시대가 되기 때문에, 자기의 문화적인 기틀을 다 뒤에다 놓고 아프리카의 불쌍한 민족들을 위해 가야합니다. 불쌍한 생활을 하는 처지에 떨어진 민족에게 가서 `문화의 주체야 잘 있거라, 몇 년 후에 만나자'고 하고 자기의 귀중한 보물들을 나누어 주고, 그것도 안 되거든 자기 피살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돼요. 이렇게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형님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 주권은 깨져 나갑니다. 두고 봐요, 안 그런가?
사조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미국의 평화군이니 하는 것은 말로 한 것으로 실체적으로 실천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천지운세를 사람이 받들어야지 말이 천지운세를 받드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조가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에 의해…. 공산당이 40년 기간에 이세계를 이만큼 풍미할 수 있게 된 것은 뭐냐? 하늘이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시대로 오기 때문에, 그들이 가짜지만 그런 형으로 발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이 그 이상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마리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몰던 것을 뒤로 하고 자기의 모든 정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진영에서 그런 국가가 나온다면 그 국가는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이할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찾아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문화혜택을 입고 풍류를 즐기며 고래등 같은 집에서 능라의를 입고 사는 잘 사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피눈물 어린 심정을 가진 사람…. 같은 입장에 있더라도, 잘사는 사람이 열만한 심정을 갖고 있고, 못사는 사람이 열만한 심정을 갖고 있더라도 잘사는 사람을 먼저 찾는 하나님이라면, 그건 하나님이 아닙니다. 약소민족, 후진국가를 먼저 찾습니다. 배급을 먼저 탄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물질적인 배급시대, 인간적인 배급시대, 즉 주의사상시대를 거쳐왔습니다. 물질과 인간배급시대, 그다음에는 심정적인 배급시대입니다. 우리는 심정적인 배급시대를 준비하자는 거예요. 이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와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서는 자식의 위신과 명분을 다 팔아서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됩니다. 그래야 상속을 받는 거예요. 백만장자의 아들로서 자기가 아무리 잘났고 좌우 풍신이 좋고 외모를 갖춰 당당하다 할지라도 심정을 갖지 못하면 상속의 인연을 못 가집니다. 사정의 인연을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속의 인연은 못 가집니다. 천지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은 인류 앞에 상속하고자 하는데, 먼저는 물질적인 축복시대를 거쳐 그다음엔 주의 사상의 인간적인 축복시대를…. 그래서 미국이 그거예요. 인간을 좋아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다 쓰러진 자기 형제를 찾아 나오는 놀음이 지금까지 신앙을 중심삼은 종교인들이 가는 걸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해서 뭘할 것이뇨? 나중에 심정의 상속, 모든 위업을 상속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해야 되느냐? 아무리 인기가 있고, 아무리 가진 바가 많다 하더라도 불쌍한 동생을 품고 눈물지어 줄 수 있는 부모의 심정에 통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지에서 미국도 전부 다 후진국을 후원해 줘야 합니다. 사실은 내가 다 터뜨려 버리고…. 이제 터뜨리지 못하면 어느때에 총칼 들고 터뜨린다는 거예요. 두고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먼저 잘살았던 그들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붙들고 주고 싶어하는 부모 마음을 대신하여 세계를 향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문화적인 사절, 문화적인 천사장이 되어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형제국가시대입니다. 형제시대예요. 전부가 통일이예요. 케네디 대통령도, 박 의장(박정희 대통령)도 주권을 대신한 형제예요. 네가 뭐냐 이거예요. 이건 밀어 제낄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꼼짝못한다구요. 일대일에 있어서 형제시대, 전부 형제국가시대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 나라, 약소국가가 전부 해방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분열적인 기준에 서 있었지만, 이제 때는 민족적인 관념을 초월하여 하늘적으로 볼 때 형제사회국가시대로 들어온다 이거예요, 형제사회국가.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UN기구 아래 형제입니다. 그런데 형제가 싸움을 하는 거예요. 가인과 아벨이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평화적인 형제만 되면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는 형제의 동등한 입장에 있으니 미국이 가진 재산을…. 그 재산을 자기들이 만들었어요? 부모에게서 상속받았으니 그걸 나눠 주자는 것입니다. 나눠 주는 데는 껍데기를 나눠 줘서는 안 돼요. 이걸 주면 줄수록 화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때는 하늘을 위주하는 심정의 세계가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늘은 어떤 사람을 찾을 것이냐? `과연 나는 너를 세워 주고 싶노라!' 이렇게 하늘은 말할 것입니다. `야, 아무개야 너를 통하여 주고 싶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야, 이 녀석아 너를 세워서 주고 싶노라' 할 때, 무엇을 주고 싶으시냐? 어디에 주고 싶으시냐? 먼저 누구한테 주고 싶으냐? 부자한테 주고 싶노라, 이게 아닙니다. 불쌍한 사람한테 주고 싶은 겁니다. 불쌍한 사람 가운데는 도를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도를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산비탈 토굴에 들어가 먹을 것을 못 먹으면서, 자기의 절개를 더럽힐까봐 사회에 나가 빵 한조각도 마음대로 못 사 먹습니다. 불쌍한 사람, 너를 불러서 그에게 주고 싶다 이겁니다. 그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들이 고맙다고 할 때에, `나는 이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에, 그다음은 그보다 더한 사람한테 주고 싶어합니다. 그보다 또 위에, 또 위에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 자리에서`나는 안 줘도 좋으니 딴 사람을 도와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다음에 또…. 그래 가지고 나중엔 끝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운세시대가 오는 걸 바라볼 때에, 오늘날 사방에 이런 형태로 전개될 것이요, 역사적인 사조가 그런 형태로 종결된다는 것을 우리가 예측할진대는 , 오늘날 우리 통일성도들을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야 될 것이냐?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될 것이냐? `세계는 내 세계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고,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고,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고, 새로운 세계를 계승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결론이 그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 누구와 살았느냐? 나와 더불어 살았고 기껏해야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우리 본질적인 욕구에 있어서 그 방향성을 비판하고 부정해 봤자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번 총회에 몰아넣어 어떤 사람을 만들 것이냐? 이 삼천리 반도 환경을 통해서 어떤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 다른 것 아닙니다.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대신 사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밥을 한 술 먹는 데에 있어서도 `너 밥아, 어디서 왔니? ' 하고 생각해 보라구요. 쌀 알맹이는 하나님의 손길에서부터 여기까지 왔어요.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에 의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유물이예요, 유물. 이 낮도깨비 같은 것들, 그저 벌커덕 벌커덕 마구 먹지요? `밥님 황공하옵니다. 상감마마입니다' 해야 된다구요. 만물은 해원의 여건을 가지고 탄식하고 있는 데 인간은 어때요? 몰랐다구요. 만물보다 못합니다, 이 돼먹지 못한 것들.
하나님은 부릅니다. 하나님은 부르나니, 어떤 사람이냐? 아까 말한 하나로 남아질 사람, 천지간에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나 찾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열 자식이 있다 해도 부모 앞에선 전부가 하나입니다. 그렇지요? 심정 앞에서는 열 자식도 하나입니다. 아들을 중심삼고 전부 다 내 부모예요. 그런 하나의 내가 돼야 합니다. 창조주가 있다면, 과거에도 내가 필요했고 현재도 내가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나예요. 알겠어요? 「예」 맨 처음에 말했지만, 여러분이 올 때의 인연도 복잡했고 그랬지만 그중의 한 사람, 그 한 사람은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여기서부터 끌어 올라가 가지고 삼천리 반도에서 이만큼 끌어 올라가고 삼천만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를 초월하여 천주까지 가고 하나님 앞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 온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와야 되느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와야 돼요. 또,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을 들어야 되느냐 하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을 들어야 돼요.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는 사람도 어떤 사람을 만들기 위해 말씀을 해야 되느냐 하면,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해야 합니다. 하나입니다. 무엇에 하나밖에 없느냐 ? 심정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리 부모가 천만의 아들딸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심정에 대해서는 평등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는 그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내가 부모를 사랑하듯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세계, 형제를 사랑하듯이 세계 인류를 사랑하는 세계, 부부가 사랑하듯이 자기 동년배 사람을 사랑하는 세계입니다. 가정적인 심정 기반을 중심삼은 대우주적인 인격관을 중심삼아 사는 세계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정이 전체화한 사회적 형태가 천국사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국이 뭔지? 「예」 천국이 어떤 것이라고 하면 막연하잖아요? 천국은 내 가정을 확대한 세계, 내 형제를 확대한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돈이 있어서 미국 땅에서 살더라도, 불쌍한 미국사람이 있으면 자기 민족이 불쌍한 것같이, 자기 형제가 불쌍한 것같이 여기며 그런 심정으로 도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러니까 만민의 하나님이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만민의 하나님이예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될 자신 있어요? 「예」 되겠어요? 「예」 될래요, 안 될래요? 「되겠습니다」 이래도 안 들을 거 아녜요? 없다고 안듣는 녀석은 사탄입니다. 자기에게 묻지 않는다고 대답을 안 하는 녀석은 사탄편입니다. 선생님이 말할 때는 당장에 천지를 뒤집어엎을 것 같은데 문 밖에 나가면…. 그래서 되겠어요? 될 자신 있어요? 「예」 자신 있어요? 「예」 더 크게 대답하라구요.「예!」 본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선 안 돼요. 있으나 없으나…. 천하는 내가 졸더라도 돕니다. 내가 정신차려도 돌아요. 내가 없더라도 돌아야 할 천지운세이어늘 그 운세 앞에, 있다고 변명하고 없다고 대답을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없으면 없을수록… .
부모가 없을 때 가정을 잘 지키고 더 염려하는 자식은 부모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신앙자들은 그렇게 해야 돼요. 이 자리에 선생님이 이렇게 입고 나왔지만, 앞으로 누더기 옷을 입고 뒷동산의 나뭇꾼이 되어 볼 겁니다. 나뭇꾼 모양으로 해 가지고 누구 꽁무니를 뒤따라 가 통일교회 청년이거든 돼먹지 않았다면 엎어놓고 밟아 죽일 거예요. 선생님은 곧잘 그런 놀음 합니다. 전부가 보는 거예요.
우리의 소망을 보자구요. 소망인 내가 나를 바라보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소망의 가정이 있고 소망의 종족이 있고, 소망의 민족이 있고, 소망의 국가가 있고, 소망의 민족이 있고, 소망의 국가가 있고, 소망의 세계가있고, 소망의 천주가 있고, 소망의 하나님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소망의 세계에는 억천만 천천만 성도들이, 수천 년 동안의 영인들이 속해 있습니다. 그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망합니다. 그놈의 나라는 언제나 투쟁해요. 알겠어요? 「예」 안 보일수록 책임이 더 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 나가더라도 하나도 돌봐 주지 않습니다. 돌봐 주지 않는데도 부모의 심정을 다하여 돌봐 준 이상으로 충성을 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그런 것이 있어요. 여러분 자신있어요? 「예」 내 돈 쓰면서… . 내 세계를 만드는데 누구에게 돈을 달라고 해요? 통일교회에 억천만금의 금덩이가 있다 하더라도 `난 그거 싫습니다. 저건 세계 사람에게 주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있게 되면 `난 필요 없소. 세계 불쌍한 형제들에게 어서 갖다 주시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나는 이것으로 만족하니 어서 세계를 위하는 데에 주소' 이럴 수 있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다 주고 나왔습니다. 제일 사랑하는 종 새끼도 이 땅위의 인간을 위해서 줬습니다. 하나님은 주고 나옵니다. 주는데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는 게 아닙니다. 형제끼리도 동생이 달라면 형 눈에 번개불이 붙습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면 그건 거짓입니다. 그건 큰사람이 못 돼요. 정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아이들 하는 것 보면 벌써 압니다. 좋은 것을 떡 갖다 놓으면 집어 가는데, `그거 안 된다. 형 것이야' 하면 `그래요?' 하면서 슬쩍 두는 아이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돼먹지 않는 아이는 엄마든 누구든 불러 가지고 자기 달라고 그럽니다. 여기에도 그런 것들이 많을 거라구요.
선생님도 한때 그랬던 것이 생각나요. 한번 울게 되면 사흘 나흘을 울었어요. (웃음) 정말이예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말이예요. 한대 맞으면 항복을 받아야 돼요.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왜 그랬는가 모르겠어요. 너무 울어 다리 가죽이 벗겨져서 피가 흘러 방안이 피투성이가 될 때도 있었어요. 한번 우는 날엔 어머니 아버지도 항복해야 됩니다. 집안에서 새로운 무엇을 해야 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울더라도 앉아서 엉엉 이러는 게 아니예요. 다리로 들이 차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털이 다 없어졌어요. 그런 것도 선생님은 좋아해요, 정의를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또 양보를 잘해요. 그런 뭐가 있어야 돼요. 통하지 않을 때는 무한히 안 통하지만, 통할 때는 엄청나게 통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사탄이 아무리 끌고 다녀도, 암만 얘기해도 내가 한번 성이 나면 사탄 골짜기가 시끄러워서라도 행복해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성나게 되면 입을 다물지 않으니 그저 시끄러워서 사탄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는, 한번 시작하면 그런 뭣이 있어야 됩니다. 그 동네가 시끄러워서, 사탄까지도 그 동네가 시끄러워서 도망가게 해야 돼요. 그러면 그것 점령하는 거 아녜요? (웃음) 끈기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배짱도 부릴 수 있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자기 사리에 있어서 뻔히 알게 될 때는…. 선생님이 한번은 그랬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내 손아귀에 넣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나 해 가지고 작전을 세웠어요. 1차전 ,2차전, 3차전, 작전을 세워 가지고 제1차에 실패해서 어머니한테 부지깽이로 들이 맞았어요. 맞아 가지고 대가리를 다쳤어요. 그 대가리를 딱 내밀고 어머니 앞에 서 가지고 `때려라, 때려라!' 한 것입니다. 여러분보고 그러라는 게 아니예요. (웃음) 부모의 심정에 약점이 있거든요. 약을 올리면 `이놈아' 하고 쫓아와요. 도망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도수가 차 오릅니다. 이런 얘기는 왜 하느냐? 선생님이 어머니한테 매 맞아 가지고 40분 이상 정신을 잃고 기절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지독해요. 이래서 우리 부모님이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손을 못 대거든요.
그래 놓고는 `내가 이런 일 해야 되는데 소라도 팔아 내소' 하고 부모한테 통고를 합니다. 나쁜 놀음은 안 합니다. 저기 동네 불쌍한 사람 있어서 도와줘야 하는데 부모들은 막거든요. 그러면 그저 소라도 끌고 가는 거예요. 끌고 가서 쌀이라도 사다 주는 겁니다. 그런 성격은 가만 보면 부모에게 있어서는 안됐지만 말이예요, 뜻을 세워 나오는 데 있어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도 역사적으로 이야기할까요? 나에게 한 열 시간만 주면 그저 여러분과 단번에 친해 놓고, 여러분이 내 동생이 되고 그럴 텐데 시간이 없어요.
보라구요,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의 집에 있어서 혁명적인 요소를 청구했어요. 그랬지요? 「예」 '이 아비야, 우상이 다 뭐야' 하면서 발길로 우상을 차고 그러지 않았겠어요? 집에 들어갈 적마다 `이건 언제 내 손에 의해서…' 몇 십번 속으로 결의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했겠습니다」 그런 데서 하나님은 그편이 되는 거거든요. 선생님도 지나고 보니, 과거에 그렇게 한것이 잘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그저 손 하나 안 대고, 말하지 않고도 항복시켰어요. 그건 잘한 일이예요. 나쁜 일은 아니거든요. 부모들 소견으로는 자기 아들딸 사랑하고 자기 울타리 안만 사랑하지만 난 그렇게 안 본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아브라함도 그랬지요?
또 야곱이 어떻게 했어요? 그거 혁명이라구요. 이삭에게 축복을 받는데 펄떡거리는 양새끼 죽여서 받았다구요. 안 되었다구요. 왜?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위해 경건하고 좀더 하늘을 모시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야곱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돼먹지 않았기 때문에 조상 아브라함의 축복의 인연을 에서에게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상의 유업을 상속받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혁명적인 기준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야곱의 심정의 태도에 대해서는 사탄도 항의 못 한다 이거예요. 그것은 하늘이 세워야 할 공적인 심정이니 그편에 하늘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행동에 하늘은 후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이거 용서할 수 있어요? 자기 형을 속여 가지고…. 형은 뜻을 대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천적인 기업을 상속하는 때의 계대를 받을 수 있는 내적인 태도와 생활적인 태도가 돼먹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니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라도 계대를 해서 내가 더 충성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어떠한 시련과 괴로움이 부딪쳐 오더라도, 이삭은 이런 시련에 꺾어지고, 에서는 이런 시련에 자빠지더라도 자기는 안 꺾어진다고 했던 거예요. 폭풍 같은 시련의 무대가 전개되더라도 나는 에서와 같지 않고 이삭과 같지 않고 아브라함보다 더 낫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찾아 축복해 준 하나님이 늠름히 사탄세계에 세워 놓고도 이삭의 복을 야곱에게로 돌려준 것입니다. 그런 배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혁명적인 일이예요.
또, 예수를 보라구요. 예수가 유대교 구약성경의 탈을 써 가지고 했다면 왜 죽어요?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혁명적이었다구요. 그런 걸 보면 하늘은 세계적인 혁명을 원하는 겁니다. 또, 모세를 보라구요. 40년 동안 바로의 왕자로서 길리움받을 때 얼마나 진수성찬에 잘 먹었겠어요? 배에 기름이 끼고 태평가를 노래하여 할 짓 다하고 살 수 있는 환경에 있었지만 '음― 보자!' 하며 선민사상을 잃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찬란하고 좋고 호화로우면 호화로울수록 그 속 깊이에 칼을 품었다는 거예요, `이놈들 두고 보자' 하고 문을 나섰을 때 이스라엘 민족과 애급 사람이 싸우는데 서슴지 않고 애급 사람을 때려죽였어요. 얼마나 혁명적이예요.
여기 박 의장(박정희 대통령) 같은 사람은 기분이 맞는단 말이예요, 그런 면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민족을 사랑할 때, 누구보다도 정의에 입각했을 때, 누구보다도 충성했을 때, 누구보다도 정의에 입각해서 투쟁했을 때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역사적인 비법이예요. 이런 걸 볼 때, 여러분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자기가 준비를 해야 돼요. 누가 본다고 하고 안 본다고 안 하고 그러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등에 지고 날 수 있고 용맹스럽게 뒤넘이치고 나설 수 있는, 뭔가요?
`고려인의 산천'의 3절에 뭐예요? 아침해 솟아올라서 산과 들을 비추일 때 잠들었던 범 일어나?「맑은 물… 」 흐린 물 마시고? 「맑은 물 마시고!」 여러분 맑은 물 마셔봤어요? 「예」 내가 보기엔 흐린 물 먹었는데? 맑은 물 마시고, 낮은 산?「높은 산입니다」올랐을 때?「온 세상 내 것 되리라!」 큰소리로 왜? 온 세상 내것…. 온 세상이 놀라게 크게 외치는 거예요. `아침해 솟아올라 산과 들을 비추일 때 잠들었던 범 일어나 맑은 물… '이게 얼마나 멋져요. (곡에 맞춰 노래하심. 웃음) 허허허, 여러분들이 평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구요. 듣는 거라구. 높은 산 올라선 뒤에, 그다음이 뭐예요? 큰소리 외칠 때 온 세상 내 것 되리라… . 그렇게 되지요? 한번 정식으로 해봐요? 시작! (다같이 노래함)
얼마나 기가 막혀요?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히나 이거예요. 기나긴 6천 년 동안 잠을 자던 맹호가 잠을 깨 가지고, 태평양 물을 듬뿍 마시고 백두산 천지 끝에 쓱 가 가지고 `어흥' 하고 어르릉하게 되면 세상 천지는 다 거기서….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기백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한번 여기서 쾅쾅 (탁자를 치심) 치고 나서 `저 하늘 꼭대기 하나님, 엉덩이 아팠지요' 하고 기도해 보란 말이예요. (웃음) 그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가다가 쓰러지면 `너 열두 시지, 자라!' 그런 기백이 필요하다구요. 그렇다고 또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생각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억! (큰소리치심) 놀랐을 거예요. 그런 기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이 필요해요.
선생님이 이번 여름에 고기잡이 많이 했습니다. 아주 지치도록 했다구요. 골짜기에 있었지만 `5대양 6대주, 5대양을 간다'고 했다구요. 그런 기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탕감조건이 서는 거예요. 알겠어요? 탕감조건은 세우려면 세계적인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느니만큼 여러분들이 누가 있다고 `예'대답하고, 누가 없다고 모른 척하는 사람은 안 되겠다는 말이예요.
그러므로 아까 말하던 과거ㆍ현재ㆍ미래에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결의하는 사람이 누구냐 할 때, 대답할 때는 `예!' 해야됩니다. 저 삼천리 반도나 저 영국에서 잠꼬대하는 사람들도 전부 다 깰 정도로 대답해야 돼요. 하늘땅이 전부 불안에 떨게 하고 한번 이런 기분이 나게 대답해야 그것이 맹세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크게 대답함. 웃음) 한번 대답해 봐요. 한번 대답해 봐요. 「예」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예잇!」(웃음) 자, 내리시오. 이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약속했어요? 「예」 이제는 약속했다 말이예요. 「예」 이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약속했어요? 「예」 요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의 첫대지(大旨)입니다. 알겠어요? 「예」
어떤 사람이 된다구요. `이야, 선생님 말씀이 그럴 듯합니다. 에이쿠!' 이럴 수 있는…. 이게 얼마나 근사한 거예요? 자다 생각해도 그저 기분이 나거든요. 선생님이 꿈에 나와서 이놈의 이불을 탁 차는 거예요. `저기 가서 붙어라!' 하면서 말이예요.(웃음) 세계에서 잠자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잠을 자던 이불을 차고 일어나도, 한번 차 가지고 저 몇만 미터 올라갔다 떨어지는 이불떼기를 덮겠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구요. 차더라도 그렇게 용맹스러운 기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예」
여러분들은 그런 데에 소질이 맞지요? 「예」 맞아요? 「예」 여러분들 마음에 딱 들어맞나요? 「예」 선생님의 마음속에 여러분들이 들어맞나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들어맞나요? (웃음) 여러분들 마음에 들어맞지요? 「예」 여러분들 마음에 들어맞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커요. 그러면 선생님이 참 좋아한다 말이예요. 이게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말이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등을 타고 춤을 추게 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아지면 `에잇, 이놈의 자식! 뭐야?' 하는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어서 등을 타서 나보다 더 높이 어서 날아라!'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려고 하지 않아요. 때가 됨에 따라 가지고…. 수많은 군중을 대신해서 호령할 줄 알고, 수많은 군중을 울릴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때가 오거든 나는 뒷골방으로 갈 것입니다. 그 영광은 여러분들이 받아 가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엄청난 소망의 실체들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이예요. 알겠지요? 「예」 알겠지요? 「예」 알겠지요? 「예!」 틀림없이 약속했다구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 총회에 와서 이것만 결심해 가지고 그런 관념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 이번에 올 때 천리길을 걸어오고 여러 가지 복잡한 환경을 다 거쳐왔겠지만….
본부에서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밥도 잘 못 주고 선생님이…. 그렇지만 우리들은 망하지 않아요. 죽지 않는다 말이예요. 보리밥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피와 살이 움직이는…. 알겠어요? 「예」 그런 사람이 됐다면 그 사람은 알아줘야 돼요. 응? 「예」 그러면 이제부터 한 30분 동안….
우리는 필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기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저 뒤에 있는 아저씨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나 나중 온 사람이나 오지 못한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숙원이요, 인류의 숙원입니다. 이 말은 비단 오늘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만의 말이 아니예요. 선생님이 다년간 이런 목표를 위해 투쟁해 나오던 경험담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가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을 지나서 가는 거예요, 그때까지.
그러면 여기서부터 문제입니다. 가긴 가야 할 내 자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필시 내가 가겠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필시 내 스스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들, 가 보라구요. 이제 이 문밖에만 나가면 그 결심은 간데 없어요. 알겠나요?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흘 지나고, 일 년 지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간 곳이 없어요. 맹세하던 결의는 든든하였고 그때 갖춘 모습은 자랑스러웠다면,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그 모습은 변함없어야 됩니다. 우리가 맹세했던 그 길은 천년 만년 가도 남아져야 할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가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가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보라구요. 아까 말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이거예요. 하나님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소망의 생활을 하고 싶었고, 소망의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었고, 소망의 말씀을 전하면서 인류와 더불어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소망의 심정을 통하면서 살고 싶었던 하나님입니다. 오늘 이날 이때까지 그러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찾아오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소망의 하나님이 못 되었더라 이겁니다.
우리가 보니까 하나님의 마음 깊이에는 숨겨진 인격관이 있고, 숨겨진 소망의 이념적인 터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나타나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괴로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명사뿐입니다. 실제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경영해 나온 도상에 있어서는 꿈과 같은 명사입니다. 꿈과 같은 명사라구요. 인류가 슬픈 무대에 있어서 사망의 암초에 부딪칠 위기에 당도한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 그것을 바라보고 잘한다고 축사를 올릴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됩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선봉에 서 가지고, 그 암초를 홀로 친히 먼저 부딪치면서 인류가 파손되어야 할 운명 가운데 설 때마다 하나님은 결사적인 투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핸들을 돌려 가지고 새로운 해방의 곳으로 운전을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어린 역사노정을 엮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하나를 운행하여 움직여 나온 예수도 그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때 피어린 혈투전을 거쳐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실정을 들춰 말할 시간은 없지만,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이런 소망의 아들딸들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왔느냐? 하나님은 편안한 자리에서 호령할 수 있는 역대의 영웅과 같은 자리에 못 나왔습니다.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 기세도 늠름하고 신세가 당당한 모습으로도 못 나왔어요. 하나님은 찾아왔나니, 거리의 뒷골목에서 목메인 신세로서 시대시대마다 조롱과 저주의 암담한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역사적인 와중에서 신음소리를 거두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나왔다는 겁니다. 그 신음의 함성을 인류의 고통과 더불어서 역사적인 최후의 이날까지 같이 싸워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될 때에 역사적인 칼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또, 그의 형상을 바라볼 때에 역사적인 화살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의 몸을 바라볼 때에 원수들의 형극의 자리가 있었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피의 역사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사망의 골짜기 길을 가는 역사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죽음의 고비의 제단을 연이어 나온 역사입니다.
개인적으로 망하게 될 때는 가정에 있는 어떠한 대표자를 세워 이것을 상속받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가정들이 망할 때는 민족적인 대표자를 세워서 이것을 상속받으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민족이 망하게 될 때는 세계적인 사명을 계승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와 오늘날 전세계적인 승리의 소망의 세계를 상속시키기 위하여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아버지의 그 성상 위에 주름살이 잡혔다면 6천 년 동안 신음에 쌓인 주름살이 잡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는 피어린 싸움터의 6천 년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수의 화살과 원수의 쇠사슬과 원수의 신음하던 그 처참하고 가련한 신세를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구요. 이러한 신세가 아직까지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런 신세의 입장을 모면하고 피하기 위하여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식을 찾아 나오는 충성의 도리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지조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쌍수를 들어 인류을 향해 외치나니, `악몽이 남아 있는 이 수많은 인류여! 내 고난의 상처와 고난의 형극에서 남아진 내 신세와 내 심정적인 터전 위에서, 그것을 상속하여 인류 대신, 나 대신, 인류 앞에 갈수 있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워 줄 수 있는 용사는 없느냐? '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환경 가운데에서, 원수들의 적진 가운데에서, 하늘의 법도를 따라 충성의 절개를 향하여 최후의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예수의 신세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죽지않고 원수를 물리쳐 부활의 승리권을 갖추어야 할 사명이 오늘날 인류와 하나님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어찌하여 1년도 아니요 10년도 아니요 100년도 아닌 6천 년 까지 이어져, 타락한 그날부터 소용돌이친 원한의 심정을 품고, 고생과 혈투전의 와중에서 혈혈단신(孑孑單身) 혼자만이 싸워야 할 신세가 되었던 것은 누구 때문이냐? 크게 말하면 30억 인류도 되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선조 때문이요, 이것은 나 때문이요, 우리의 후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내 일대를 위하여 충성한 어떤 친구가 있다 할 때는 그 은덕을 갚아야 할 것이 인간의 도리요 인륜입니다. 그러하거든 역대의 사명을 위하여 나 하나를 해방시키고, 나 하나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싸우는 하나님 앞에, 이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보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러면 이런 일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숙명 앞에 이런 모든 원한의 암을 우리들이 해결지어 주고, 이 암을 해소시키기는 데에 내 일생에 포탄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갚겠다고 결의하고 나선 결사대들이 이 지상에 나타나야 할 때가 되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의 청소년들은 이곳을 향해 가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다른 걸 다 몰라도 괜찮지만 하나님은 슬픈 하나님이라는 건 알아야 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져 와요.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의 고통스러웠던 사실, 1,600년을 수고하여 노아를 세워 둔 간곡한 소원의 심정 앞에 덜커덕 화살촉을 겨눠 가지고, 하나님 앞에 화살질을 하였던 함의 실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부터 역대의 우리 선조들이 잘못한 원한을 알아 가지고, 역사적인 선조의 죄를 회개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을 위로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시대적인 기준 앞에 내 홀로 책임지고 나선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세계를 우리의 무대로 삼아가지고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예」
노아도 가정을 등졌고, 아브라함도 가정을 등졌고, 야곱도 가정을 등졌고, 모세도 가정을 등졌고, 예수도 가정을 등졌습니다. 안 그래요? 이스라엘도 지금까지 세계에 유리고객하면서 자기의 민족과 국가와 이념적인 세계를 등지고 오늘날까지 허덕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어디로 갈 것이냐? 이들이 손에 손을 붙들고 하나님의 고통을 대신하여 인류 앞에 구원할 수 있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역사적인 엄숙한 과제 앞에 불리워진 우리들은 무엇을 할것이냐? 나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이거예요. 대신자가 돼야 되는데 영광을 대신하여 오신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통을 대신하여 오신 하나님을 대신한 대신자가 되자 이거예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아버지가 찾아가서 수고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 있느냐고 할 수 있는 대신자가 되자 이거예요. 또, 내가 살고 있는 면에 아버지께서 찾아오면 아버지의 손길이 거쳐야 할 곳이 여기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손길이 거칠 곳을 먼저 내가 책임지자 이거예요. 이 민족과 이 땅 위에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가 찾아오게 될 때, 이 민족과 이 땅 앞에 고통 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가 책임지자 이거예요. 이 천지간에 아버지가 찾아가시는 길 앞에 고통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도 내가 책임지자는 거예요. 이것이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책임이요, 이 길을 감당해 나가는 모든 생활적인 방편이라는 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누가 책임진다구요? 「내가 책임져야 됩니다」내가 책임져야 돼요, 내가.
불쌍한 민족을 바라볼 때 그것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나 때문이라구요. 전부 다 나 때문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여기에 선 것도 나 때문이요, 이 몸이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이요, 이 민족이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이요, 오늘날 예수가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책임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대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열 번 움직이면 열 번 승리하고, 백전백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고 빼앗아 오는 것이요, 맞고 점령해 나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고 눈물 흘리던 자리를 빼앗아 오는 거예요. 매맞는 자리에서 매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죽는 자리에서 죽고 빼앗아 오는 거라구요. 주고 빼앗아 오고, 맞고 빼앗아 오는 하나님의 기준을 알아서, 나 때문에 책임지고 나 때문에 사명을 완결짓겠다고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다면 삼천리 반도는 이제부터, 이번에 왔다 간 수백 명이 남한 각지에 흩어진다면 새로운 봉화는 들려질 것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수난은 결국 나 때문이라구요. 예수는 누구냐? 예수는 아담의 완성자입니다. 우리의 선조인 아담 때에 그 아담이 완성을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아담의 새끼입니다. 또 노아도 아담 새끼로서 더 크기 위한 것이었고, 아브라함도 아담 새끼로서 점점 커 나오는 것입니다.
아담 새끼가 뱃속에서 완성되지 못했는데, 점점 한 달 두 달 커 가지고 6천 년 동안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와 가지고, 결국은 뭐냐 하면, 본연의 한 사람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 년을 수고하여 천국 갈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국은 땅 위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천국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사명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6천 년 걸린 것을 여러분들은 엿새 동안에 할 수 있고 6개월 동안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비법만 알면 간단해요. (이후 말씀은 녹음상태 불량으로 수록하지 못함) *
<말씀 요지>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전국의 각 교회에서 모여든 젊은이 들인데, 젊은이들에게 말하려면 선생님도 젊어져야겠어요. 어느 정도까지 젊어져야겠느냐? 여러분은 나이와 생일까지도 같기를 바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정도로 젊어지길 원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나이 때가 바로 선생님이 이 뜻을 찾던 때의 나이와 비슷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아마 각자 천태만상의 생각들을 하고 왔을 것입니다. 오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참마음’으로 온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갈 때도 참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그러면 선생님은 어떠한 사람에게 말씀을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참마음’으로 온 사람에게 할 것입니다. 때려서라도 그런 참사람을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사명입니다.
무모하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전체를 위하여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삼천만 민족은, 그리고 전인류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고대하실 것인가? 삼척동자라도 답은 같습니다. 역사적인 결실체를 고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습니까? 어디 봅시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밥만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 다음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움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한다면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땅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사는 것과 말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또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과 가정이나 민족, 혹은 국가나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귀한 사람인가? 여기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더 큰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더 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이 세계를 창조하신 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못난 사람도 세계적인 인물이요, 너도 나도 모두가 세계성을 띤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을 위해야 할 것이냐? 천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는 사람을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이상을 생각하며 사는 분을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인격으로 실천하시는 분이시며 천지를 위해 온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말씀과 실천에 있어서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시고 실천해 보셨는가? 환경이 어지러울수록 하나님은 불쌍하십니다.
아직까지 그러한 생활을 하고 그런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또 그런 사람들을 영원한 이상세계에서 살게 하기 위하여 소망의 첫사람을 보내셨나니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 세계는 인간의 것입니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경제사관을 터로 하고 있고, 물질위주의 세계를 가치시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사람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합니다. 공산주의는 먼저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보다 한 단계 앞서 있습니다. 다만 이 민주주의에는 인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세계에로 한 단계 높아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한갓 교황청이나 가톨릭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 종교의 하나님이요,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이상의 세계로 수습되어 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봉건시대의 교황청이나 가톨릭에만 계실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고 또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왜 가나안 7족을 멸하셨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민족 형성의 발판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입장에서 치신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국수적인 사상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심판의 관문을 넘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정도 나의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개인과 가정과 민족을 이끌고 고통에 고통을 당하시면서 세계적인 입장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해산하려는 여인의 진통기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현대 문명을 문예부흥의 소산이라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심정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세계도 하나입니다. 국경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직 하나의 세계일 따름입니다. 국경 같은 건 다 원수입니다. 누가 금을 그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가치를 가진 사람입니까? 이 컵(책상 위에 놓인)은 누구의 것이냐? 천주의 것이요, 인류의 것입니다. 만물도 그러한 가치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며 아직까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린하는 악당들은 심판받아야 합니다. 저 산은 누구의 것이냐? 김 씨의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생활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을 소망의 실체요, 소망의 등대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지를 상속 받을 거룩한 왕자들입니다. 그런데 밥 한 덩어리에 팔려 다닙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본연의 가치를 알아 가지고 천지의 법도에 의해 모든 인연을 맺고 현실과 미래를 연결지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민족이 소망하는 사람이요,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사람이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계가 나의 것이고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도 나의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 아니 세계 30억 인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소유관념을 갖고 ‘천하는 내 것이요, 지구도 내 것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내가 어두움의 골짜기를 헤매었으니 탄식할 일입니다. 이러한 나는 죽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본연의 나를 찾아 헤매는 ‘나’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나’요, 끝날의 민족이 찾는 ‘나’라고 하는 젊은이들이 10만 명 만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소망의 ‘나’를 그리워하는 젊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어떻게 살려고 했어요?
우리는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흑인 백인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잘났다는 사람이 심판받습니다. 부자집의 잘난 아들은 만점이요, 병신 자식은 영점입니까? 아닙니다.
민주 진영은 아프리카에 가서 보물을 나누어 주고 피와 살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형이 되지 않으면 깨져 나갑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팽창하는 것도, 그들이 그래도 하나님이 불쌍한 사람을 구하려 하시는 것과 같은 형태나마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이 땅 위에서 맺기 전에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 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물질배급시대와 인간배급시대를 거쳐 심정배급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상속 받으려면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상속권을 못 갖습니다.
먼저는 물질축복시대를 거쳐 인간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인에게는 물질축복도 안 해주고 마지막의 심정을 상속해 주기 위하여 외곬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지금까지 신학을 중심삼고 내려온 종교인들의 걸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심정을 상속 받기 위한 걸음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줄 때에는 자꾸만 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심정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껍데기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형제시대입니다. 또한 형제사회국가시대입니다. 그러니 싸우고 있는 가인 아벨이 서로 화합하는 형제의 때가 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고 싶노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하나님은 먼저 불쌍한 사람에게 ‘주고 싶노라.’ 하십니다. 불쌍한 자 중에서도 도를 닦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그러니 도인들에게 먼저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도인이 고맙다고 하며 이젠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고, 이렇게 끝까지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때에 사람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이냐? ‘세계는 내 것이다.’ 하며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서 살아왔고 기껏해야 부모 형제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세계 대신, 하나님 대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만물보다 못합니다. 만물은 해원의 한 날을 바라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합니다. 천지간에 참되게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을….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에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몰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도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도 그런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천국에서는 노인을 부모로 대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한 가족으로 대하고, 모든 남녀를 형제로 대합니다. 천국은 가정을 확대한 세계로 형제애의 세계입니다.
천지는 우리가 졸고 있어도 그 궤도를 따라 돕니다. 아무도 없다고 누가 보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하면 망합니다. 안 볼수록 잘해야 합니다.
남이 내게 무엇을 줄 때도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나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세계를 위해 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시지 않습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는 사람은 큰사람이 못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데는 혁명적인 기질도 있어야 합니다. 뜻 앞에, 하나님 앞에 최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는 겁니다. 가야 합니다. 가야 할 운명입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문 밖에 나가면 맹세한 것을 잊어버려? 그러면 안 됩니다. 천년 만년이 가도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격을 지닌 실체를 바라셨지만 아직까지 땅 위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런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은 혈로(血路)를 거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십니다. 영광의 자리에는 한 번도 서 보지 못하시고 몰림받고 저주받는 암담한 자리에서 신음하면서 싸워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역사적인 화살 자국이 있습니다. 선민의 역사도 피의 자국과 죽음의 자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들이 망할 때에도 가정의 상속자가 있었고, 가정들이 망할 때에도 민족의 상속자가 있었고, 민족들이 망할 때에도 세계의 상속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처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쌍수를 들어 외치고 계십니다. 인류 대신, 하나님 대신 싸울 용사가 없느냐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죽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할 운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죽어간 선조들과 우리들 자신과 후손들을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개인의 원수를 갚는 것도 어려운데 역사의 원수, 인류의 원수를 갚는 것이 쉽겠습니까?
하나님은 슬프십니다. 120년, 아니 1,600년의 터 위에 세운 노아의 기대가 무너지고, 다시 400년을 거쳐 세운 아브라함이 실패하고, 그 후에 모세가 실수하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원수를 향해, 적진을 향해 돌격해야 할 때입니다. 알겠습니까?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도 그들의 가족이 그들을 등졌습니다. 이민족, 이 땅에 아버지가 찾아오신다면 우리가 책임집시다. 모든 것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이 사회, 이 민족, 이 세계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우리 자신들 때문입니다. 하나님 대신 눈물 흘리면 망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고 매 맞고 빼앗아 오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참한 경륜도 우리들 때문입니다. ‘너와 같이 말하고 너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나는 언제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동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생활 무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십자가의 생활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신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갑시다. 죽음의 길로 갑시다. 십자가로 뿌렸으니 눈물과 통곡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일개 부락을 위해 사는 것은 30억 인류를 대표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한 시간이라도 생활할 수 있을 때를 생각하고, 그때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 앞에 세워진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십자가까지 가는 겁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어려운 길도 더 걸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수가 많지만 하나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세계의 원수를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세계적 가나안복귀시대입니다. 모세 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각자가 자신들을 몰랐습니다. 소망의 땅인 가나안에 대한 동경도 희박했고 지도자도 몰라보았습니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상에 그러한 존재들이 있을 때 망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 죽고, 20세 이하만이 남았습니다. 60만 장정이 있어도 할 수 있을지 말진데, 그들이 할 수 있었겠어요? 다 항복해도 여러분은 항복해서는 안 됩니다. 60만 이스라엘 민족이 학살당한 것은 그들이 책임 못한 대가입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스승을 바라볼 때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봅니까? ‘선민이 되게 하소서.’ 하며 때려서라도 가게 해줄 지도자, 칼로 몰아쳐서라도 가게 해줄 지도자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모세가 칼을 들어서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몰았으면 10만쯤은 죽었어도 60만이 다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문제없습니다. 가는 길에 지장이 되는 것은 차 버리고라도 가야 합니다. 지도자가 그렇게 끌어 주기를 바라야 합니다. 안 가면 망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서라도 기필코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우리 통일교인의 어깨 위에 있습니다. 안 가면 때려서라도 가게 해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고, 시대적인 선봉자가 되고, 미래적인 개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인류도 그러하옵고, 남아진 어떤 국토나 백성이나 주권도 그러하옵니다. 그 가운데 들어 있는 우리 개개인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이것이 당신이 본래 창조의 심정을 세워 놓으시고 6일간 지어 나오시던 창조의 목적이 아니었사옵고, 그 심정으로 그리워하던 창조의 목적이 아니었음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남아져 있는 어떤 작은 한 존재라도 아버지 것이 됐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아버지의 원수의 것이 된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제 자신에게도 아버지의 것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제가 살고 있는 저희의 가정에도 아버지의 것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개인을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가정을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국가를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세계 인류를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땅만이 아니라 무한한 영계까지도 어두운 운세의 권한이 미쳐져 있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땅의 탄식이 생겨났고, 하늘의 탄식이 생겨났고, 인류의 탄식이 생겨났고, 아버지의 탄식이 생겨났다는 것을 저희는 아옵니다. 이 슬픈 탁식의 원한을 누가 책임지고 땅으로부터 하늘에까지, 인류로부터 천상의 아버지에게까지 묻혀 있는 탄식을 벗겨 드리겠습니까? 이것은 아버지께서 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요, 하고 싶지않아서 안 하시는 일이 아닌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필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가정에서 승리한 자요, 사회에서 승리한 자요, 국가에서 승리한 자요, 세계에서 승리한 자요, 인류를 대표한 자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수 사탄을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아버님을 찬양할 수 있는 영광의 모습이 되는 동시에, 아버님을 대신하여 명령하게 될 때 그 무릎 앞에 `어서 분부하시옵소서'라고 명령을 바랄 수 있는 존엄한 하늘의 사랑을 세워 놓아야만 이 엄청난 탄식의 세계를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저희 자신은 오늘 이 아침에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나 저희의 이 몸을 중심삼은 사지백체, 더 나아가서 부분 부분 세포 가운데 어느것 하나라도 당신의 것이라고 자랑할 수 있으며, 당신 것이라고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이 있사옵니까? 저희의 손을 들고 바라보게 될 때, 이 손은 악과 더불어 친하게 움직였사옵고 이 팔도 역시 그러했고 제 이목구비를 통한 오관,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끼는 모든 인식까지도 당신이 주관하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연결되지 못하였던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이 그 무엇 하나를 갖고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이렇게 처참하고도 불쌍한 모습들이 당신 앞에 왔습니다.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죽는 자리에 둬두고 바라보면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당신인 것을 저희는 잘 알았습니다. 심판의 채찍을 맞는 자들을 보고 기뻐하는 자리에 있는 당신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이기에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향하여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죄인된 자리를 거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모든 부족한 것을 잊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긍휼의 아버지! 저희가 입은 이 상처가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은 상처라면 얼마나 영광이겠읍니까만 사탄의 종이 되고 사탄에게 채찍을 맞아 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몸은 이제 주인을 잃어버린 몸, 참부모를 잃어버린 몸, 참가정, 참사회, 참국가, 참세계를 잃어버린 몸이옵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이 불쌍한 처지가 됐는가 탄식하다가 이런 몸이 된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본래 당신이 심정세계를 세우시려는 창조의 경륜 가운데 이것을 잊지 않으시고 오늘날까지 무한히도 애쓴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황공하옵니다. 이제 보잘것없는 것들이 무릎을 모아 당신을 찬양하고 모든 것을 갚겠다고 모였습니다.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이날은 자녀의 날로서, 혹은 수확하는 추수의 날로서 아버지 앞에 드리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무리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는 벌거벗은 몸, 저희는 조롱받던 몸, 저희는 쫓김의 자리에서 허덕이던 몸, 저희는 상처를 입은 몸이었사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고 싶고, 아버지를 모시고 싶고,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이것만이 외람된 영광이오니, 이 마음 하나 가지고 당신 앞에 왔사오니 품어 주시옵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고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이들을 대표하여 호소하오니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랜 역사를 두고 고난의 역경을 밟아 온 이 민족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수난 도상에 있어서 당신을 향하여 무릎을 꿇을 수 있는 , 당신을 흠모할 수 있는 민족성을 남기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헐벗어 있습니다. 이 백성도 굶주려 있습니다. 이 나라의 주권도 아버지 앞에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르는 무리들은 남아져 있사옵니다.
이 남아진 무리들의 소원은 그러한 것을 제거시키어 당신의 백성으로 만들고 잘 믿는 백성으로 만들고 싶은것이요, 당신이 축복한 땅을 대하여 옥토로 만들고 싶은 것이요, 당신에게 사랑받는 주권 국가를 만들고 싶은 것이옵니다. 이러한 마음이 간절한 무리들입니다. 저희들이 비록 힘이 없고 능력이 없사오나 그런 마음을 갖고 아버지 앞에 엎드렸습니다.
당신은 보잘것없는 어린 것을 세우시고 명령하시던 그때의 마음을 모인 이들을 통하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은 죽지 않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당신은 싸워서 실패하지 않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에는 기필코 승리의 영광이 있어 만민이 굴복하고 원수가 굴복한다는 것을 당신은 선언하였습니다. 이런 결의와 이런 각오를 한 저희들은 일편단심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부족하나마 당신의 것으로서 취해 주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이 3년노정을 정해 놓고 하늘이 분부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짊어지고 움직였다는 사실이 민족 앞에 복을 갖다 주지 못하고 화를 갖다 주는 것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인류의 살 길을 열어 주지 못하고 인류의 갈 길을 막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눈물을 뿌리며, 굶주리며, 떨면서 당신이 남기신 말씀을 붙들고 나온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시오니 이것만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나타난 성과는 크지 않을지라도 그 가운데 참다운 사람 하나를 두고 당신은 심판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열녀들이 여기에 있사오면 그들을 통하여 당신은 생각할 줄 알고 있습니다. 뜻을 위하여 제물 될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각오한 사람이 백 명, 천 명만 있어도 당신은 이들을 남겨 다시 의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적은 무리였사오나 이들 무리 가운데는 그러한 수효가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용납하여 주시옵시고 긍휼히 대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잃어버렸던 자녀들이, 혹은 잃어버렸던 형제들이 잃어버렸던 부모를 모셔 놓은 자리요, 한식구들이 모인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물 흘릴 일이 있사오면 같이 통곡하게 하여 주시옵고, 억울한 것이 있사오면 같이 한을 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끝까지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 무리요, 싸워도 같이 싸워야 할 무리요, 욕을 먹어도 같이 욕을 먹어야 할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험한 길을 친히 인도하여 주시었사옵고 핍박의 도상에서도 이끌어 주시옵고, 최후의 격전에서도 보호하여 주시어서 남아진 무리로서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이날까지 보호하여 주신 아버지는 이제부터도 보호해 주실 것을 알고 있사오며, 영원히 저희들이 움직이는 한 심정의 터전 위에는 길이길이 당신이 우거하실 것을 저희는 믿사오니 이와 같은 약속의 터전, 인연이 되어진 이 자리, 당신을 모시는 이 한 시간이 되어 당신 앞에 모든 사정을 고하고 새로운 분부를 받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한시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것이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성가 `복귀의 심정'을 식구들과 부르심)
아버님, 저희들의 사정이 달랐사옵고 환경이 달랐사옵고 소원이 달랐사오나 아버지의 소원을 알고는 하늘의 소원을 비로소 알았고,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는 하늘의 사정이 엉클어진 것을 알았사옵고, 아버지가 살아 나온 환경을 알고는 저희들도 그 환경을 피하기를 원치 않고 몸부림치며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자리가 당신께서는 얼마나 염려하시는 자리인가 하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험한 길, 외로운 길에서 당신이 걸으시던 역사적인 슬픔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아담가정에 저끄러졌던 억울하고 분통한 타락의 인연, 1600년 수고하여 간곡한 심정의 터전 위에 노아 한 사람을 세워 놓고 120년 동안이나 참아 오시던 아버지를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대해야 할 입장에 섰고 사정이 통해야 할 입장에 섰사오나 대할 수 없고 사정이 통할 수 없는 분통하고 억울한 아버지요, 노아가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까지 그와 같은 사정이 해결되지 않은 채 2천 년 이후 아브라함을 거치고, 4백 년 이후 모세를 거치고, 1600년 이후 예수를 거치고 그 이후 2천 년을 거쳐 총 6천년의 역사를 거쳤어도 당신의 사정이 어디에 있사오며, 당신의 심정의 터전이 어디에 나타났사오며, 당신의 소망의 실체가 어디에 있사옵니까? 없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세워 놓고 심정의 실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입장에서 심정의 실체를 세워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심정의 실체로서의 사정을 통하여 생활할 수 있는 자녀를 가져야 할 것었는데도 그런 자녀가 없사옵니다. 그런 자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워야 할 때는 왔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에 서 가지고, 만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참다운 자녀로 서 가지고 소원성취해 줄 것을 당신이 바라는 가운데 때는 왔사오나 그 소원을 성취해 줄 자녀가 없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몸 굽혀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당신의 사정에 일편이라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정에 한 부분이라도 접하여 그 사정을 붙들고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영원히 당신을 배반할 수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안 되거든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 가지고 그 소원의 땅을 향하여 꾸준히 달려갈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것을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은 배웠사오니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엎드리게 될 때에 눈물로 호소할 것밖에 없는 것을 잘 아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연약한 저희들을 권고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자리에서 분부하여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뜻을 대하여 충성하지 못한 미급함과 부족함을 깨달아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여 눈물짓는 자가 있거든, 다시 사랑의 손길로 이끌어 품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어찌 존엄하신 당신 앞에 완전한 자가 있사오리까? 부족한 것을 갈라 세우시고 완전을 외치면서 가는 것이 탕감의 노정이요, 복귀의 노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와 같은 인연을 세우시어서 당신의 긍휼한 심정의 품에 품어 주시옵고, 당신의 무릎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앞에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걸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하늘과 땅과 무형세계와 유형세계가 통일을 바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겠고, 참자녀가 있어야 되겠고, 참가정ㆍ참사회ㆍ참국가ㆍ참민족ㆍ참인류ㆍ참천주까지 인연이 돼야 될 것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중심이 되시옵소서.
아버님을 중심삼은 생활의 발전이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 세계에 전개 되어야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제 피살이 움직이는 생활무대는 당신의 피살이 움직이는 생활무대요, 제가 은거하는 이 나라 이 땅은 당신이 은거하는 이 나라 이 땅이 되고, 이 세계와 이 하늘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러한 엄숙한 당신의 소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맹세하고 나선 무리가 비록 보잘것없사오나 오늘 여기 모였사옵니다. 당신은 능력 있는 사람을 세워서 역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몰리고 쫓김받는 무리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역사노정을 통하여 보았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민족을 대신하여 몰리게 하여 주시옵고, 몰려도 인류를 위하여 몰리게 하여 주시옵고, 몰려도 하나님을 위하여 몰리게 하여 주옵시사, 저희들이 간 뒤에는 기필코 민족이 살아나고 인류가 살아나고 세계가 살아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의 간 길이 그러하였고, 모세가 간 길이 그러하였고, 야곱이 걸어 간 길이 그러하였음을 아옵니다.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도 역시 이 민족 앞에 그러하기를 바라옵니다. 역사 도상에 걸어 온 모든 발자취가 그렇듯이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아 섭리적인 뜻 앞에 있어서 하나의 역사적인 실체를 소망하면서 저희들은 투쟁해 나왔습니다.
이제 나아가던 저희 자체가 여기에서 주저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사옵고 싸워야 할 범위는, 원수가 있는 적진은 저기 시야에 나타나고 있사오니 이것을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한 결의를 갖추어 게으르지 않고 준비하기를 맹세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하나마 저희의 마음과 몸은 당신을 향하여 스스로 장비한 하나의 폭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장진된 하나의 무기로서 쏘아 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는 총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적진을 파괴하고 원수를 굴복시키고야 만다는 신념에 사무친 일념만은 누가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만은 죽음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하나의 신념적인 실적으로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수많은 외로운 지방 식구들이 이 시간을 흠모하면서 눈물 흘리는 자리에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기꺼이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 이 삼천리 반도를 떠나 멀리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도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과 더불어 이 한 시간을 그리워할 줄로 알고 있사오니 거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울 때 같이 울어야 할 무리옵니다.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해야 할 무리옵니다. 아파도 같이 아픔을 느껴야 할 무리옵니다. 당신 앞에 송영을 드려도 같이 드리기를 고대하는 무리옵니다. 비록 거리와 공간은 격(隔)하여 있더라도, 아버지, 거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의 세계에서는 만유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자리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모인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오고 싶은 때 걸어서도 올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와 같은 자리를 저희들이 가진 것을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30억 인류 앞에, 아버지 앞에 친히 경배드리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는 우리 식구들을 대신하여 이시간 하늘 앞에 대신 경배드리며, 대신 아들딸로서 이 날을 기념할 줄 아는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맡긴 시간으로서 아버지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말씀도 친히 당신의 말씀이 되시옵길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왔던 걸음이 헛되지 말게 당신이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날을 추수의 날 겸 자녀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녀의 날이라는 의의에는 섭리적인 깊은 내용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기념할 날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그날도 기념할 것이고 또 자기가 기쁘다고 할 수 있는 날들, 자기의 일대에 남아질 수 있는 어떤 인연의 터전 위에 남길 수 있는 이런 날들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그러한 날을 갖고 자랑하고 그런 날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있는 날을 갖고 있으되 우리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복귀섭리하시는 , 다시 구원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기뻐할 수 있는 날, 기념할 수 있는 날이란 것이 진정 없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기억할 날이 있다고 한다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기억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끔 처량한 자리에서 기억해야 할 날, 이런 날들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날이 있는 것이요,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후의 심판에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는데 함이 실수를 했던 그러한 슬픈 날이 있는 것이요, 혹은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한 날,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던 날,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던 날, 성도들이 피살당하던 날, 이러한 슬픈 날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도상을 참고하여 보게 될 때 어떤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서, 그 백성을 위해서 혹은 공적인 세계의 이념을 품고 죽어간 서러운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들을 가져 가지고 기념할 수 있는 날들은 많이 갖고 있지만 하나님이 진정 이건 영원한 나의 날이라고 만 세계 앞에, 만 존재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가졌느냐 하면, 지금까지 갖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말하는 이 자녀의 날이란 것은 어떠한 역사노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이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는 하늘이 가졌던 그 모든 슬픈 날들을 이 한 시간에 잘라버릴 수 있는, 분하고 억울했던 역사적인 그날, 추하고 기념할 수 없는 인연의 날들을 잘라버릴 수 있는 각오 밑에서 이 한날을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의의가 없다고 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이날을 맞기 위해 여기에 모여 온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추수의 날이라고 했고 자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타락한 우리 후손들은 많은 추수의 날을 가져 보았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그것이 한여름을 자라 가지고 가을을 맞이하여 결실된 그 결실을 자기의 것으로 추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추수한 그 결실을 또다시 심을 수 있는 날을 가져 보았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추수하는 기쁨과 뿌리는 기쁨을 가져 보았지만서도 하나님은 아직까지 추수의 기쁨을 가져 보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또다시 추수하여 새로운 씨를 거두어 가지고 다시 뿌릴 수 있는 기쁨을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뿌려 놓고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 뿌린 싹에서 다시 천 배, 혹은 백 배, 육십배, 삼십배 이상의 추수를 하는 소망의 날을 하나님은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때는 늦은 가을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거두어 들인 추수의 곡식단을, 추수의 열매를 대할 적마다 추수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 통일신도에게 있어서는 과거에 추수하던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추수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내 손으로 거두어 들인 한 포기의 곡식, 하나의 씨는 이 천지만물을 지어 놓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의 심정의 동산 가운데 사랑하는 자녀들의 손길을 거치어 뿌려지기를 바라실 것이니 그 바라시는 소원을 나를 통하여 실천할 수 있는 , 대신자는 입장에 서서 거두어 뿌릴 줄 아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이제부터 거둘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며, 이제부터 뿌릴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심정적인 기준을 갖추지 못해 가지고 여러분이 거둘 줄아는, 거둘 수 있는 사람의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역사적인 도상에서 인간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인간은 어떤 것이냐? 하나의 씨를 뿌렸다가 그 씨가 자라 가지고 하나의 결실을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노정을 거쳐온다는 거예요.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비로소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를 지어 가지고 뿌려 놓은 것입니다. 뿌려 놨으니 이것이 나 가지고 자라던 도상에서 있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할 텐데, 자라던 도상에서 이것이 꺽여지고 말았어요. 꺽여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타락입니다.
그런고로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씨를 뿌렸으나 거둘 수 없는 결실의 인연을 부여 안고 오늘날까지 다시 뿌릴 수 있는 소원의 한 날이 언젠가는 온다고 일구월심 잊지 않고 바라고 나온 그날이 심판날이라는 거예요, 심판날. 심판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인류의 수확의 날이예요.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이 세계의 역사적인 종말이 어떤 때냐? 인류가 지금까지 뿌리려 하였던 것이 자라다가 꺽여져 나갔으니 이것을 다시 하나님께서 살리는 역사를 하여 가지고, 다시 꺽여지지 않는 입장에까지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인류 가운데서 무엇을 거두려고 하느냐? 본래 타락하지 않은 자녀로 지어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있어서 그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자녀를 잃어버린 연고로, 이 자녀가 자라다가 꺽여져 나갔으니 이것을 다시 거꾸로 수습해야 됩니다. 다시 이것을 재현시켜야 되는 거예요.
즉, 지금까지 하나님은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류를 대신하여 그 인류 가운데서 오직 두 씨앗이 두 결실로 거두어 들여지는 소망의 한날을 세우고 역사를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의 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자신들은 신부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혼인잔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년 혼인잔치가 벌어지며 신랑 신부가 나타나 가지고 어린양 잔치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날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본래의 창조이상을 세워 놓고 씨앗을 심어 가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을 세워 놓으려 했던 날입니다. 그것이 깨졌으므로 이것을 6천 년 동안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며 끌고 나와 가지고 끝날에 한날을 세우셔서 여기에 그러한 본연의 참다운 조상, 하나의 부부를 만들어 놓고자 하는 것이 구원섭리역사요, 복귀역사요, 끝날의 심판역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느냐 말이예요? 「예」 그것만 알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주로 말하려는 것이 '인류의 결실'입니다, 인류의 결실.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 나는 사회적 지위가 이만하니 이 사회에서 내 양심을 중심삼고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코 말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좋습니다. 또 `아, 역대 우리 선조를 두고 볼 때 나는 명문 집 자손이야. 우리 부락에서는 내 문중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어. 삼천만 민족, 어떤 종족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나타낼 수 있다'고 자랑 할 수 있는 , 이런 무엇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거 좋습니다.
혹은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교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이렇게 철저한 신앙자이니 그 교파를 중심삼은 신앙관에 있어서는 그만 하면 나는 자랑할 수 있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오늘날 삼천만 민족, 보기에 초라하고 불쌍한 민족이지만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늘땅 앞에 자랑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 좋습니다.
오늘날 크나큰 세계의 사조가 흐르고 흐르다가 어떠한 곡절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것이 두 갈래로 갈라져 가지고 흐르던 것이 큰 파도를 만나 가지고 하나는 동쪽 하나는 서쪽, 하나는 오른쪽 하나는 왼쪽으로 밀려 오는 물결이 부딪쳐 가지고 한번 격동하는 이런 찰나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나가는 데는 어느 쪽이든지 하나 강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강해야 밀어내는 거예요. 하나가 강해야 부딪치다가 남아지든가 버려지든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둘이 다이거, 둘이 같이 하다가는 다 없어진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연못에 돌을 던져 볼 때, 같은 자리로 던지면 비슷비슷하지만 하나가 조금 강하면 밀려오는 한편의 물결을 휘몰아 넘어서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때 이 세계는 새로이 수습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게 되면, 여러분 가운데는 그런 사조를 맞이하는 여기에 있어서`오 나는 이런 주의 주장을 가졌으니 여기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을 가졌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개인을 두고 자랑하고, 가정을 두고 자랑하고 혹은 국가와 자기의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자랑한다 하더라도 자랑하는 그 자신과 그 무리와 그 전체의 현상은, 혹은 그런 모양들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나님의 축복의 한날을 받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환영하며 `오, 나의 아들딸들아! 오늘 나의 기쁨에 동참하고 나의 영광을 찬양할지어다. 지은 모든 만물은 너를 위해 지었다. 이것은 네 것이다. 어서 갖고 태평왕국을 건설하여 평안히 살지어다'라고 하는 축복의 음성과 더불어 출발한 역사의 출발을 가진 후손이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러한 인간인 연고로, 그러한 인연권 내에 태어난 존재들인 연고로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공적인….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랑이 된 이념적인 창조의 이상세계에서 보게 된다면 전부가 거짓 자녀예요. 전부 다 거짓 자녀들입니다. 너는 죄악의 후손이요, 너는 타락의 종족이라는 것을 아무리 변명하며 벗으려 해도 벗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그런 원칙에서 볼 때, 여기에 서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력히 말해도 `저 사람 저 거 망령된 말을한다' 이런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운명에 걸려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운명에 놓여 있느냐 하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 내 자신을 세워 자랑할 아무런 무엇을 갖지 못한 무리입니다. 이런 무리에 걸려 있으니 이것을 누가 자랑의 자리까지 이끌어 줄 것인고? 이것을 누가 해방의 자리까지 이끌어 줄 것인고? 이것을 누가 평화의 세계까지, 자유의 세계까지, 행복의 세계까지 갖다 줄 것인고? 이러한 것이 인류가 바라는 유토피아, 이상경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나는 있다고 당당코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심판을 해야 할, 세계적인 대심판주로 나타난 하나님이 만일에 이 세계에 등장한다면 오늘날 이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그 사람들 앞에 면류관을 씌워 줄 것이던가? 그 사람들이 까닥 잘못하면 천륜의 바람이 휘몰아쳐…. 이 역사적인 사조 앞에 하나의 물결로서 먼 거리의 태풍을 일으켜 가지고 찾아오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지구성은, 여기에 살고 있는, 지구성에 살고 있는 인류들은 모르고 있으되 저 머나먼 창조주가 계시는 그 어떤 세계에서부터 고기압적인 태풍권이 발동하여 지상을 습격하기 위한 한날이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물결과 부딪칠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고, 내가 세우고 싶고, 내가 아끼고 싶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런 무엇과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그것이 한번 부딪칠 때, 그때에 남아질 수 있는 그것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스스로 알고 있지 못하지만 그런 위험의 한날이 습격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게 될 때, 그것을 우리들은 헤아리게 될 때에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다시 한 번 회고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때는 어떤 때냐? 큰 물결이 부딪쳐 가지고 여기에 하나의 물결이 첨부해 들어올 수 있는 끝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어 있는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상에서 소동하고 있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사조의 공포가 문제가 아니라 이 사조의 공포를 휘몰아 넘겨 가지고 한곳으로 몰아 치울 수 있는 그런 한때, 고기압적인 태풍권이 우리의 이 지구성을 내습할 수 있는 날이 와야만 합니다.
왜 그러냐? 이는 타락한 후손이니, 옳지 못한 씨들이니 걷어치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라지가 나오고 곡식이 나온다는 가라지가 나오고 곡식이 나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생각하게 될 때, 본래는 곡식을 심었는데 사탄이가 이것을 가라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있는 모든 패들은 가라지패들입니다, 가라지패. 섭섭하지요? 그렇다고 욕은 아닙니다. 다 같은 사정이라구요.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단 말이예요. 분하고 원통해요! 그 사람이 누구예요? 이게 6천 년 동안 타락의 후손이 되어 그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혈통적인 주식회사입니다. 종합체예요. 이놈의 눈깔, 이놈의 배통.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나가야 됩니다.
내 몸 가운데 있어서는 가라지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곡식이 되지 못하는 가라지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이 눈깔을 우벼 내! 우벼 내 가지고 옳은 눈을 해 박으면 될 텐데 말이예요. 우려 내 버리고 말면 그것은 망하지만 우벼 내 가지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갖다가 박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야, 그러면 손을 잘라 버려라! 김현철이, 그놈의 눈을 빼버려라! 그런 타락의 후손 눈깔은 빼 버려라 이거예요. 사탄의 사촌 눈깔은 빼 버려야지! 안 그래요? 아주머니들, 우리 아가씨들도 그걸 생각하라구요.
이놈의 주먹, 이 핏줄로 말하면 살인 강도의 핏줄도 들어가 있어요. 여러분, 뭐 뻔뻔스럽게 다니는 사람과 감옥소에 들어간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요. 나도 형무소에 많이 다녀 봤지만 그 사람들과 같이 누워서 자게 되면 오히려 더 다정한 거예요.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한가지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도 목숨을 걸고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계에 죄가 있다면 그 모든 죄의 원천지예요, 원천지. 우리 선조가 무슨 원수 들이었겠노? 뭐 인간끼리만 원수라면 좋아요. 그까짓 거야 암만해도 좋지만 하나님을 대하여 원수가 된 것이니 얼마나 비참해요? 당장에 벼락을 맞아 죽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고마운 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나'라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내가 옥토로 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못 되어 있느냐? 이 거짓패야!
이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모가지 자르는 길이예요. 이 몸을 쳐라!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도는 출발하는 거예요. 긍정이아니라 부정, 부정 중의 부정이예요. 얼마만큼 부정이냐? 부정의 도수가 강할수록 고차적인 종교예요. 나중에는 심정문제까지…. 자식도 몰라본다구요. 뭐 처자도 없다구요. 혼자 살라는 그 경지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최고의 심정세계까지 부정하고 나서야만 최고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김인철, 그렇게 되어 있지? 「예」
그런데 보면 말이예요, 생각해 보면 본래 가라지가 안 되고 참 곡식이 되어야 할 내 한 자신의 본성, 내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 손을 보고 귀여워하고 말이예요. 여러분들도 애기를 길러 보면, 아주머니들은 잘 알 거예요. 애기를 낳아서 길러 보면 뭐 눈이 찢어지고 병신 자식이들 그저 뼈가 아파 가지고 `우우, 흥흥' 하지요? 이 손이 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생겨났느냐 이거예요. 이 몸뚱이가 어찌하여 지긋지긋한 그 심판대 앞에 나서야 되게끔 만들어 놓았느냐? 그렇게 되어야 되느냐? 이게 타락의 미궁지예요. 타락의 함정입니다. 이 함정에서 오늘날 30억 인류는 허덕이지만 이 함정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함정에서 탈출하라! 오늘날 세계의 30억 모든 인류는 경계선권 내에, 철조망권 내에 사로잡혀 있으니 조그만 애착심이라도 가져 가지고 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끊고 도주해라, 도주. 그렇기 때문에 도인들은 일반 세상생활, 인생항로에 있어서 도주자들이예요. 이렇게 말하면 쉽지요? 알아 듣지요? 딴 말은 하지 않더라도. 도인들은 무엇이냐 하면 사탄세계의 철조망 가운데 사로잡힌 포로들이예요. 포로니 지긋지긋해요. 밥 한술 먹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자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손만 까닥해도 도주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자의 태도로는…. 그것이 신앙자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생활 해 보면 잘 알 거예요. 실감이 날 것입니다. 하루 세 끼 밥은 못 먹더라도 살길이 없느냐? 어떻게 돌파하느냐고 자나깨나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도의 길이요, 도주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 하나님의 사정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떤 사정이냐? 철창을 끊어 버리고 들어가서 다 채찍으로 몰아냈으면 좋겠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인간이 이것을 타고 넘어 나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붙들어 줄 수 있는 천리의 원칙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할수없이 이 철조망을 끊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는 허덕이고 있는 거예요.
만일 이 사방 동서남북 본부를, 파수병을 전부 다 모가지 잘라 버리고 이 철조망을 다 철거시키는 날에는 인간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거시키기 위한 행사가 무엇이냐 하면, 대심판입니다. 알겠어요? 대심판.
그래서 철거해 놓고는 하나님의 족속은 하나님이 찾아가고, 그다음에는 자기 부락으로 전부 다 보내는 것입니다. 심판이라는 것은 전부 다 불살라 죽이는 것이 아니예요.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뭐 불살라 죽이는 것이 아니예요. 죽이려면 벌써 다 죽여 버렸지요. 안 죽여요! 철조망을 끊고는 가고픈 데로 가라 이거예요. 가고픈 데로 가라. 콩알이면 콩섬을 찾아가야 되고, 벼알이면 벼섬을 찾아가야 되고, 조알이면 조섬을 찾아가야 되고, 끼리끼리 찾아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종말시대에 있어서의 문화는 끼리끼리 모이는 문화입니다. 사상이 다르면 그 민족을 박차고 사상이 같은 동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문분야가 귀하면 귀할수록, 자기가 지금까지 자라난 환경적인 터전을 박차고 자기가 전문하고 있는 그 분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찾아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는 무엇이 가로막혔느냐? 철조망이 있다구요, 국경이. 철조망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나라에 가려면…. 누가 쳐 놓았어요, 이 철조망? 미국을 가려면 왜 그리 복잡해요? 본래의 하나님이 쳐 놓은 철조망이 아니예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철조망이예요. 이걸 왜 쳐 놓은 거예요? 철조망 철폐 운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 개인 대하는 날에는 전부 다 싸우는 거예요. 개인 투쟁시대에 있어서는 개인 철조망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가정을 위주로한 투쟁시대에 있어서는 가정 철조망, 종족ㆍ 민족ㆍ국가 철조망, 철조망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세계가 두 세계가 되어 가지고 국가관념 시대로 넘어간다는 말이예요. 세계적인 주의시대, 이 주의시대 철조망을 넘지 않으면 안 돼요. 이제는 하나 안 되면 싹 망한다는 말입니다. 터뜨릴 거예요. 이걸 터뜨릴 수 있는 한때가 와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사조가, 이런 두 사조가 지금 뒤넘이치는 걸 볼 때,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둘이 제일 가깝잖아요? 그러니 끝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참다운 참을 추구하는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 오늘날 세계적인 대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세계적인 전문 분야, 혹은 세계적인 역사를 찾는 거예요. 세계적인 역사를 찾는 반면, 오늘날 인간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역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더 높고 더 큰, 더욱 무한한 우리의 이념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터전으로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인연이 없을 것인가? 그것을 찾아야 돼요. 그것을 찾아야 됩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찾아 가지고, 그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나오던 다른 하나의 근원지를 찾아 가지고 '그 역사적인 배경이 어찌하여 이렇게 나왔고, 그러면 그것이 그렇게 나왔으면 이 시대와는 어떤 관계를 맺기 위하여 그렇게 나왔느냐?' 하며 그 시대에 대한 관계를 맺어 주고, 그시대에서부터 어떤 시대로 갈 것이냐 하는 것까지 관계를 맺어 줄 수 있는 이런 세계로 안내하는 거예요. 하나의 인류역사가 그러면 하나의 문화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정치, 사상, 전부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이념적인 일치점을 향하여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외적으로 지금 벌어지는 것을 보니 이거 왜 이렇게 됐느냐? 이것은 내 몸뚱이로부터 이렇게 벌어져 나온 것이 아니예요. 가만히 보면 역사는 기필코…. 우리들은 모르지만 거기에는 그 무엇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배후의 힘이 몰아 가지고 이리 가면 들이쳐서 이리로 가게 하고, 저리 가면 들이쳐서 저리로 가게 하고, 역사를 헤쳐 보면 그것이 한 방향을 향하여 뚜렷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녹음 잠시 끊김)
그러면 어떠한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수습될 것인가? 이것을 헤아려 볼 때, 그 내용과 미쳐진 인연이 넓고 큰 역사관을 가진 민족이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것을 볼 때, 오늘날 미국역사를 위주한 것도 아니요, 소련 역사를 위주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20세기 문화세계, 이 세계는 어떤 세계냐? 기독교 역사를 배경으로 한 문화 역사세계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는 사람들은 부정 못 할 거예요.
오늘날 지상에 남아 있는, 그래도 세계적인 어떤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자기 민족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 틀거리를 틀고 있는 이 배경은 전부 다 종교적인 배경이 돼 있습니다. 그것은 원리에서 여러분이 배워서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간 역사는 인간 개개인의 역사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한, 역사적인 수습 목적을 향하여 시대가 인연돼 있고, 미래도 인연을 갖고 나가야 할 운명도상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서 세계는 어떤 세계로? 하나의 세계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그러면서 주의는 어떤 주의 세계로? 하나의 주의 세계로. 하나의 주의 세계인데 무슨 주의예요? 무슨 뭐 친구 주의가 아니예요. 보라구요. 빨갱이들은 뭐라고 그러나요? 친구라고 하지요? 응? 「동무」 음, 동무. 동무라고 그러지요? 동무하고 친구하고 어떤 게 더 가까와요? 친구가 가깝지요. 올라간단 말이예요. 동지하고 식구하고 어떤 게 가까와요? 식구하고 또 형제하고는 어떤 게 가까와요?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는…. 전체 식구라고 하게 되면 할아버지도 있고 전부 다 있지요? 사촌까지도 다 들어가는 거예요. 식구 하면 다 들어가지만 식구 가운데서 또 누가 가까와요? 「형제」 그다음에 누가 제일가까와요? 「부모」 부모 다음엔 누구? (웃음)
오늘날 지상에 벌어져 있는 모든 술어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무라니. 이 녀석들, 동무? 동무보다 친구라고 부르면 좋겠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동지라고 하는데, 어 좋다 이거예요. 야, 동지보다도 한 단계 올라가면 좋겠는데…. 무엇? 식구를 갖다 붙이자 이거예요, 식구. 그래서 통일교회는 식구라고 부르는 거예요, 식구. (웃음)
올라가는 운세를 향하여 어느 자리를 중심삼고 나갈 것이냐? 제아무리 꼬리가 세계를 물고 흔들어도 대가리는 어디를 물고 흔드느냐? 이걸 알아야 돼요. 여기서 찢어지는 것은 무엇이고, 꽁지는 세계가 아니라 사방팔방을 다 흔들더라도 물고 있는 대가리의 근거지는 무엇이냐? 심정이예요, 심정. 불변이예요. 오늘날 무슨 철학 무슨 철학 뭐, 어떻고 전부 다 시시하게 수작들 하고 있지만 다 깨지는 거예요. 심정철학,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철학자가 나와야 됩니다.
또 종교는 무슨 종교가 나와야 되느냐? 심정종교, 이것이 나와야 됩니다. 무슨 사상주의가 아니라 심정사상, 심정주의를 들고 나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그 심정은 어디서부터 나와야 되느냐? 근원에서부터 근원된 거요, 근원으로 말미암아 근원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말 하면 어렵지요? 그런 말 하면 어렵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땅 위 태어난 사람들은 인간 조상의 후손이지만, 6천 년이 지났지만 6천 년 전과 대가리는 같아요. 심정은 같단 말이예요. 또 하나님과 인간과의 대가리는 같아요. 심정의 대가리는 하나예요, 하나. 꽁지들이 전부 다 복잡해서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종교로 볼 때 앞으로 종교는 어떤 종교? 교리적인 교본을 갖고 투쟁하는 종교는 지나갑니다. 종교는 어떤 종교? 심정의 종교. 종교는 심정을 위주로 한 종교가 되어야 됩니다. 종교를 들춰 보면 종교 중의 종교는 어떤 것이냐? 이론적으로 보면 종교는 여러분이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 여러분 앞에 서서 말하는 그 젊은 선생이 그렇게 얘기한다면 그런 말을 중심삼고 한번 알아 보자고 할 때, 그런 내용의 조건이 많은 종교일수록 그것은 세계적인 종교가 되고, 최후에 하나님께까지 가서 이마를 맞대가지고 싸움을 하든가 혹은 칭찬을 받든가 둘 중이 하나일 것입니다.
그걸 볼 때, 예수라는 분은 이 땅에 와서 말하기를 `나는 메시아다. 구주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제일 좋은 뜻으로 말했다 이거예요. 이렇게 허덕이는 인간들 앞에 `야, 무거운 짐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멋져요? 예수가 그런 말을 안 했으면 내가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구요. 오늘날 무슨 뭐 훌륭한 사람 되겠다는 것보다 그런 한마디를 해 놓으라는 거예요. 그런 내용을 가진 사람이면 그 얼마나 멋진 사람이예요? 역사적인 선포예요.
또 `구주다' 했으니 `인류 가운데는 나밖에 없다' 그 말 아니예요? 그말은,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너희는 뭘하는 사람이냐? `인류의 소망의 본체이고 인류의 생명의 본체이고 인류의 근원의 근원체다' 이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필요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지옥 갈 사람이 없다'고 그랬지요? (웃음) 마찬가지 아니예요?
이런 말, 선생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사람이 많고 자꾸 졸려고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처음 온 사람들은 양해하라구요. 사실은 이렇게 문답식으로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환경이 이렇게, 처음오고 다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 놓아야 선생님이 계획한 그런 말씀을 들어 놓겠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알겠어요?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 그래 놓아야 그게 좋지요. 생각해 보면 틀리지 않거든요. 그래, 예수는 당당코…. 내가 참, 오늘날 그것 하나도 뭐…. 선생님은 그렇습니다.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예수 자격 있고, 구주 자격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적기사 필요없다는 거예요. 진짜 근원이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 해서 이것만 틀림없다면 메시아예요. 그건 구주다 이겁니다. 안 그렇소? 당당코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의 총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배포를 갖고 손을 들고 외쳤더라 이거예요.
이분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예요, 왜 유대 나라에서 태어났을까요? (웃음) 나는 `야곱이 우리 조상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왜 예수의 조상으로 태어났을까, 문 아무개의 조상으로 내어나지'이런 생각도 해봤다는 거예요. 또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게 나쁜 게 아니예요. 자, 그만 하면 메시아 자격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그다음에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할말 다 했어요. 독생자다! 너희들은 아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전부 다 부정이다, 절대 부정이다 이거예요. 어디 조금 긍정적인 부정이 아니예요. 절대 부정이예요. 어디 대상적인 부정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부정이 아니예요. 절대적인 부정이예요. 다 해 놓았거든요.
또 그다음에 한 말이 인간들에 대해서 `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니 죽도록 모셔라' 했습니다. 죽도록 모시라는 거예요. 뼈다귀가 부러지도록 모셔라 이거예요. 열녀가 되라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말이예요, 예수가, 신랑이 모시겠다는 말이 없거든요. 그저 자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부 다 이렇게 정성들이라고 했지 어느 신랑이 와 가지고 전부 다 해주겠다는 말이 없어요. 전부 신부들이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또 하는 말이 `너희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고 나중에 형제라 하겠다. 또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으니 너도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할 말 다 해 놓았다는 거예요. 그런 걸 볼 때, 심정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될 때 어떤 사명을 갖고 왔느냐? 우주적인 대가족의 하나의 기준위에 이것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메시아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결하고, 메시아가 메시아로서 인류 앞에 필요로 하게 되려면 이 심정적인 기반 위에 모든 여건을 구비하여 소망적인 심정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내용의 인격자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우리의 소망의 심정 세계를 풍부히도, 넉넉히도, 남게도 마련하여 가지고 올 수 있었고 왔다고 신임할 수 있는 재료가 충분합니다. 그러니 그분이 메시아가 안 될 수 없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래요. 만일 이런 사람을 메시아라고 아니 하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해서 메시아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구요!
여기에서 볼 때 무슨 뭐 불교니 유교니 무엇이니 그러면서 졸장부처럼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어서 하나의 무엇, 자기 일가 종족을 중심삼고 기뻐하겠다는 게 아니예요. `만민은 내 아들딸이다' 이거예요. 그랬지요? 그다음에는 죽으면서도 `원수까지 용서하여 주마.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려주지 마시옵고 내게 짊어지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했던 거예요. 이게 메시아지요. 죄를 지우려 했다가는 그건 거짓 선지자예요.
이것은 무엇을 통해 말한 것이냐? 진리를 선포한 자기 시대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의 일념을 세워 천주의 인연을 맺기 위하여 생활관을 세워 나왔고, 생애적인 투쟁노정을 쌓아 오던 그 최후의 결말 도상에서 마음도 바라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냐. 이런 연고로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기독교가 이방 종교와 연결될 수 있는 제일의 인연이…. 죽을 때에`이스라엘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안 했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아,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안 했어요.
그러면 누구를 위해 기도했느냐? 이스라엘은 반역자였어요. 예수 앞에는 차라리….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여 터닦아 나왔고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이끌고 양육하여 나왔던 이스라엘이 예수를 잡아 죽이는 걸 볼 때에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한 것입니다. 비난을 퍼부은 거예요.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라고 했어요. 그러나 로마 이름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에게 창질하고 매를 몰아친 그들을 향해서는 용서해 줬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이방적인 민족을 통해서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오는 인연도 거기서 부터예요.
그것을 볼 때, 그런 역사적인 기원을 헤쳐 이것을 볼 때 과연 예수가 말한 것은 세계적인 인연을 거쳐간 말씀이고, 오늘날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하게 된 원인도 그러한 내용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파헤쳐 볼 때 그런 내용이 구비되어 있으니, 필시 이것은 심정을 위주로 해서 종교세계를 찾아 나가는 그러한 역사적인 종말을 향하여 나갔으니, 나타난 오늘날 수많은 종교 가운데 최고로 남아질 수 있는 종교가 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이 돈이 많더라도 심정을 중심삼고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게 되면 돈이 다 필요치 않아요. 돈 몇천억을 지금 줄 테니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줄래? 그래도, 천지를 주고 바꾸자고 해도 그거 바꿀 거예요? 예수는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고 했는데 오늘날 이 사탄세계는 죄악이 가득 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거 틀렸다는 겁니다. 말하기를 `아, 하나님은 한 생명이 우주보다…' 하는데.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그런 말을 잘 하지요? `한 생명이 우주보다…' 천만에. 그 한 생명이라는 그 가치는 어디를 중심삼고? 예수가 그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고 가치를 설정한 그 기준은 이 심정세계에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위에 세워진 그 한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즉 자신을 빙자해서 한 말입니다.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 심정적인 그런 인간을 가지고 있는 자기 부모를 천지를 받고 팔 수 있나요? 자기 자식을 천지를 받고 팔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천하보다 귀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설명을 해 나가야 됩니다. 이 인간들이, 이 개자식 같은 사람들이 뭐, 천하보다 귀하긴 뭐 귀해요? 아까 말하던 것과 같이 부정의 일념, 부정의 도리에 있어서 가정에서부터 세계무대까지 전부 다 부정의 투쟁노정을 거쳐서 부정했다는 인정을 받아 가지고, 부정한 것을 다시 찾았다는 결정을 받고서야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운명에서 지금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이 무엇, 무엇…. 그게 세계보다 커요? 천만에! 절대 크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을 볼 때, 거기에 필시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종교도 심정적인 것이어야 됩니다. 이거 말하자면 심정적인 종교예요. 앞으로 정치적인 이념도 역시 심정적인 정치 이념이 되어야 돼요. 우리 나라 그 한문이 재미있잖아요? `정(政)' 하게 되면 바른 아버지거든요? 바른 아버지가 다스리는 게 정치예요. 또 종교도 그러하거늘 오늘날 국가 주권의 이념도 그러해야 됩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떠한 주의 사상도 전부 다 그 기준에 가서는 `아이고, 이제는 됐다. 야, 내 집이 제일이다'라고 합니다. 나그네들이 여행이 암만 좋다고 해도, 뭐 미국을 갔다 온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라구요. 거기가 암만 좋다고 해도 고달프게 돌아다니게 되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자기 집만큼 편하지 않거든요, 사실. `내 집이 제일이다. 어머니 아버지 다 있고, 아들딸 다 있고, 아내가 있고 그저 된장찌게 해 놓고 보리밥을 달랑 먹더라도 그게 제일이다' 이거예요. 사실이 그렇거든요.
여러분이 거기에서 말이예요, 내 집에서 달랑달랑하게 아주 보리밥을 해먹고 살더라도, 거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꼬라지는 뭐 거지 할애비같고 사촌 뭐 몇 촌 애비쯤 되지만서도, 먹는 걸 가만히 보니 형편 없지만서도 사탄세계 사람들보다 다른 게 있다 이거예요. `야, 저것들은 좀 다르다' 한다구요. 달라야 된다 말이예요. 달라야 돼요. 세상에서 인정해야 돼요, 세상에서. 달라야 돼요.
오늘날 기독교가 이단이니 뭣이니 꼬리를 젓고 나왔지만 개인 모가지를 걸려 가지고 지금까지 행세를 하게 된 거예요. 이래 가지고 개인 부정에서부터 가정핍박, 국가핍박, 세계핍박까지 나왔지만 아직까지….
그래서 아무리 된장찌개를 먹더라도 `아, 오늘날 대한민국의 어떠한 사람, 이 나라 주권자 혹은 박정희 장군이 여기 와서 나하고 같이 먹으면 거기에 진수성찬을 벌여 놓은 것보다 더 맛있게 먹는다' 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더 좋아해야 될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또 오늘날 민주 진영에 있는 하나의 백성, 제일 노동자―아주 제일 진짜노동자예요―이런 노동자 가정에서 뭐 콩 하나 중심삼아 가지고 쫄쫄 빨고, 그렇게 초라한 살림살이를 하더라도 케네디 대통령이 떡들여다보면서 `야, 너를 놓고 못 살겠다' 이러면 백악관보다 나은 거예요, 이게. 안 그렇겠느냐 말이예요. 한 단계 더 높혀서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에게 `오늘 저녁 쌀도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렇지만 물이 있지 않나, 물이. 물이라도 한사발 먹자꾸나' (웃음) 이래 가지고 물 한사발 벌커덕벌커덕 먹고 있다면 어느 것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나는 너 놔두고는 못 살겠다 하는 사람이예요. 세계에서 최고의 행복한 자리는 물 놓고 나누는 그러한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예」
도인들이 제일 도둑놈 심보가 많아요. 도둑놈 심보가 많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놈의 것을 좀 도둑질하겠다는 거예요. 도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게 오시옵소서. 당신만 오시면 됩니다' 이거예요. (웃음) 그게 도인들의 배짱이다 이겁니다. 그거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또 그걸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투기자, 투기업자예요. 최고의 모험가라구요, 모험가. 인간이 뭐 아무리 투기 사업이 어떻고 모험가라고 해도 하나님을 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참 그런 멋진 부분이 많거든요? 요건 그저 안고 앉아 귀여운 점도 있지요. 그렇다고 `아이고, 우리 하나님 왜 이렇게 만들었어…'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또 귀한 점도 있다는 말이예요. 있지만서도 멋진 투기심이 많아요. 그런 하나님한테 `어떻게 하겠소? 나 형편이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없으면 안 됩니다' 할 때 하나님이 `오냐' 할 수만 있게 만들어 놓는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승리자예요. `네가 죽는 데는 내가 보호해 주고, 네가 싸우는 데는 내가 싸워 주고, 네가 사는 데는 내가 같이 살겠다. 네가 울면 내가 울고 네가 처량할 때는 나도 처량한 자리에 같이 가겠다. 나는 너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 할 수 있는 , 보리밥을 먹고 된장찌게를 못 먹어도 물을 마시겠다고 할 수 있는 환경에 살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 오늘날 세상은 이 꼴이 안 됐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나가 고생합니다. 나는 `아버지여, 원칙적인 기준을 헤아려 볼 때 감사하옵니다. 이런 자리에서 당신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통일의 아들딸들이 많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는 거예요. 좋은 자리에서 배를 치고 트림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나님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그 자리가 아버지를 꽁꽁 결박하는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몸뚱이만 결박하는 자리가 아니라 죽어서 그 자리를 갈래야 갈 수 없는 , 지나갈 수 없는 , 심정까지 결박할 수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끝날에 도인의 갈 길은 7년 대환난이 온다는 것을 몇천 년 전부터 예고해 놓고….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7년 대환난이 휩쓸어 오나니 여기에는 죽음의 경계선에서 앞치락뒤치락해야 할,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생사의 결단을 지어야 할 고비가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예고하였나니 그 예고는 왜….
하나님은 무한히 우신 하나님이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분하고 통곡에 사무친 하나님이예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영광의 하나님인 줄 알았는데, 이제 그 하나님은 가면의 하나님이예요. 우리가 믿는, 우리를 이끌어 나온 역사적인 하나님은 슬픔의 하나님이요 고통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배웠다는 거예요. '아버지!' 할 때에는 가슴이 저려 오고, 그런 생각을 할 때 복통이 앞 길을 가로막는다는 겁니다. 눈물이 눈시울을 적셔 앞을 막는 이런 처량한 길을 찾아온 하나님예요. 그러면서 어떠한 자리에서…. 이 지구성이라는 이 별, 이 땅에는 하나님이 발붙일 한 구석도 없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우거하고 아들딸을 낳아 흥흥하고 `좋구나, 오늘 추우니 불을 더 때라! 이불을 덮고 뭐 어떻고' 하는 그러한 자리는 하나님이 같이할 자리가 못 돼요!
내 집이 그러하고 내 몸이 그러하고 내 사회가 그러하고 내 국가가 그러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러하고 천지가 그러하거늘, 하나님은 제일 불쌍한 하나님예요. 이것들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자기만 영원히 갈라져 살게끔 본래의 창조원리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너와 내가 굶어도 같이 굶고, 추워도 같이 춥고, 기뻐도 같이 기뻐해야 할 내용을 갖고 지었다는 인간들이 이렇게 사는 걸 볼 때, 이렇게 사는 것은 인간도 잘못했지만 그 원인은 원수에게…. 이래서 심판은 원수 하나 잡자는 것입니다, 원수. 사람을 잡자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얼마나 원수 앞에 시달렸느냐? 원수 앞에 얼마나 피를 빼앗꼈느냐? 원수 앞에 얼마나 억울했느냐? 얼마나 통곡했느냐? 내 살에는 원수의 채찍 자국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내 등에는 원수의 창 자국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내 가슴에는 원수의 화살 자국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찾아 오나니, 심정의 도리를 세워야 할 하나님은 최후에 남겨질 종교의 주인이예요.
천주의 이념적인 기준이 심령의 세계를 세워 놓아야 할 그런 이념적인 중심이 오게 되면 그분은 누구부터 찾느냐 하면 불쌍한 자부터 찾는 것입니다. `당신을 찾기 위해 밤잠을 헤아리지 않고 손이 찢어지든, 다리가 찢어지든, 욕을 먹든, 몸이야 어디에 가 처박혀 죽든 난 모르겠습니다. 죽을 때 당신앞에 찾지 못하면, 내 인생의 도리를 다하여, 충성을 다하여, 찾지 못하거든 아버지라는 것을 유언하고라도 죽겠다고 할 수 있는 , 허덕이는 무리를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이 제일 슬픈 분이예요.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야 돼요. 제일 슬픈 분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슬픈 분입니다. 당신이, 죽어가는 우리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우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더 슬픈 분입니다. 선을 주장하다가 만민이 공인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 민족 반역자로 몰려 가지고 원통하게 죽는 사람보다도 더 분한 분입니다. 분한, 제일 불쌍한 그런 명사를 가진 그 주인공이 누구뇨? 하나님이예요. 이걸 알아야됩니다. 그것을 실감나게끔, 실감나게끔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종교라구요.
아버님의 옷자락은 영광에 맞추어 입은 그런 옷자락이 아니예요. 피땀에 절은 옷자락이예요. 그 옷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손으로 붙들겠다 했다가 못 붙든, 피어린 손가락으로 만든 옷자락이예요. 그의 발은, 가시밭을 헤쳐 나온 수많은 투쟁 역사에서 상처를 입은 그런 발이예요. 그의 위신은, 한 개인이 죽어 개인의 한을 찾다 쓰러질 때에 대신 맞아 나오는 것입니다. 한 민족을 세워서 여러 민족이 쓰러지게 될 때, 민족이 배반하게 될 때 대신 맞기 위해 투쟁하시는 분이예요.
원통하다! 우리들이 믿고 나오는 이 하나님이 이렇게 불쌍한 하나님이예요. 그러니 인류 해방 주창 말고 하나님 해방하자 이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하나님 해방하자. 이런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가 조그만 섬이라도 하나 있어서 그러한 자리에 도망을 가서 하나님을 안심시켜 놓고 거기에서 돌 감자를 심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서 물을 떠 놓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아버지를 붙들고 한없이 울 수 있는 길이라도 찾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헤매는 사람들이 참다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주인공이 큰 웃음을 하고 춤을 추지 않는 한 천하는 기쁠 리가 만무한 거예요.
보라 말이예요, 어떤 주권자가 있는 데 그 주권자가 수심에 사무쳐 있으면 그 주권자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무리는 전부가 슬픈 거예요. 그것이 세상 이치라구요. 하나님이 슬퍼하는 데 인간이 기뻐할 리 만무해요. 그러니 도인들은 `고생해라. 울라. 통곡해라. 죽어라. 죽는 자리에 있어서 참아라' 하는 거예요.
개인을 살리기 위해서 개인적인 투쟁 노정에 있어서의 개인의 죽음의 고개를 넘었고,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가정적인 투쟁 노정에 있어서 가정의 죽음의 고개를 거쳐왔고, 가정으로부터 민족, 국가, 세계를 거쳐 인류, 앞으로 천주 도상까지 걸어 나가는 하나님을 봐라 이거예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계적인 투쟁의 선봉에서 나가면서 모진 사탄의 수억, 수천만의 화살을 홀로 맞아 나가면서, 맞고는 또 가고 지치면 또 가는 거예요. 왜, 누구를 찾기 위해? 잃어버린 자식 찾기 위해. 이게 원수예요, 이게 원수예요. 이놈의 사탄 새끼들, 이것들이….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낳고 보니 아, 글쎄 하나님의 아들딸이었어요, 낳고 보니. 어머니 뱃속에서 낳기는 하나님 아들 낳았는데 가기는 원수의 세계로 간 것이 타락입니다. 이 원수의 철망을 끊어야 돼요. 이놈의 포로 수용소. 바로 지상지옥이예요, 지상 지옥.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을 주장해 나온 사람, 양심을 세워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막론하고 이 세상을 탈피하자 이거예요. 부정하고 나가는 거예요. 부정 가운데 진실을 찾아 오고, 지금도 그렇게 나오고 있잖아요? 이걸 바라볼 때….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밭 한 뙈기 없어요. 집 한 채가 없어요. 양복을 입은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서 말하기를…. 난 이런 얘기를 해요, 돌짝밭에 쓰러진 곡식 이야기, 무슨 가시밭에 떨어진 비유니, 길가에 쓰러진 비유니, 이거 다 아버지께서 거쳐온 거예요.
길가를 갈기 위해서는 길가를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고, 돌짝밭을 갈기 위해서는 돌짝밭을 지키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고, 혹은 가시밭길에 있어서 씨를 심어서 자라게 하려면 가시밭을 지키는 하나님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길가로부터 혹은 돌짝밭으로부터 가시밭길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옥토를 찾을 수 없어요. 이게 다 뭐냐 하면 심정세계입니다. 하늘의 곡절을 이야기한 거라구요.
그러한 길가에서 찾아 헤메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돌짝밭 가운데서 찾아 헤메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수확의 땅, 백 배의 수확을 하는 옥토를 찾아 헤메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되고, 가시밭 가운데서 옥토를 찾아오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맨 끝날에 와 가지고 하나의 옥토를 마련하여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혹은 천 배를 거두시려는 거예요. 이런 수확의 땅, 그런 결실의 땅을 향하여 하나님은 걸어오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복귀원리를 배웠지요? 이러한 아버지를 우리들이 알아 가지고 그 아버지를 모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모실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종교다 이거예요, 종교.
앞으로 여러분들의 종교가 최후의 심정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교라면 하나님이 제일 불쌍하다 하는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훌륭하다는 거 아니예요. 불쌍하고 억울한 하나님, 분통하고 한이 넘치는 하나님이예요. 이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부모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쇠고기를 갖다 재어서 먹인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아버지는 울고 지금 뭐 어머니를 붙들고 통곡하는 환경인데 `그러지 말고 고기 반찬 먹으소' 하면 먹겠느냐 말이예요. 고기 반찬 먹게 하려면 그 사정을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 아는 아들이…. 알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보다 그 사정을 잘 아는 아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쳐서 `어머니 아버지 그래서 어이 하겠읍니까? 제발 나를 봐서도 그래선 안 됩니다' 이러면 `오냐, 그러자' 그럴 수 있지만 이것은 속도, 아무것도 모르고 `이것 먹고 울지 마소' 하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안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슬픈 하나님을 모를 때에는 해방시켜 주는 하나님을 모르고 심판하는 하나님 몰라요. 그러므로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역사적인 종교의 사명을 다하는 거요,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시대적인 종교의 사명을 다할 것이며,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고 그런 심정을 통할 수 있게 해 가지고 그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위로할 줄 아는 종교를 만들어야만 그 종교가 끝날에 남아질 종교일 것입니다. 이러면 대개 알 거예요. 요 정도 얘기하면 알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외적으로 사람을 창조할 때에 엿세 동안에 창조한 모든 만물들은 사람하나 찾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온 천하를 주관하게 하기 위한 그 사람 하나의 자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지은 것이어늘 오늘날 하나님이 만든 것은 참다운 아들딸 즉, 아까 말한 인류의 수확의 결실로서 거두어질 수 있는 참부모였습니다.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여러분 참부모 잃어버렸지요? 전부 다 거짓 부모의 자식이예요, 전부 다. 이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난 자식들이예요.
여기서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 하나님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실체,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실체가…. 알겠어요? 그런 실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인 하나님과 동반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가진사람이요, 시대적인 심정과 하나님의 하늘 심정과 동반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 혹은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동반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분이예요.
그러므로 온 인류가 전부 다 고아입니다, 고아. 고아예요, 고아. 저 할아버지도 고아고 이 아가씨도 고아예요, 고아. 어머니 아버지는 갖고 있지만 사탄 세계의 어머니 아버지예요. 혈통적인 인연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종 새끼예요. 종 새끼도 못 되는 거예요, 종 새끼도. 그래서 양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복귀 역사가.
원수의 종 새끼로 취급 받지 못하던 그것을 종으로 취급해 가지고, 종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양자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래서 기독교가 지금 양자 되겠다는 거예요. `양자의 이름을 받아 아버지라 부른다'고 로마서 8장에 있지요? 양자되기 위해서 허덕이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양자 돼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양자에서부터 직계의자리를 상속 받아야 돼요. 이 직계의 자녀 자리를 상속 받으려면 직계의 부모가 나와야 돼요.
이래서 타락한 인간이, 부모를 잃어버린 인간이 거꾸로 떨어졌기 때문에 거꾸로 찾아 올라가는 거예요. 종 새끼에서부터, 양자로부터, 그다음엔 형제를 세워 가지고 자녀의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자녀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부모까지.
그러면, 앞으로 끝날에 인류의 결실로서 나타나는 그런 메시아가 계시나니 그 메시아는 무엇이냐? 인류의 총 전체의 결실의 실체입니다. 외로운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눈물 흘려 찾아 나오던 하나의 실체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투쟁해 나오며, 모진 상처를 입으면서 투쟁해 나오며 찾아 나오던 하나의 실체입니다. 그를 세워 자기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소망의 실체요, 그를 세워 생활하기 위한 생활의 실체요, 그를 세워 영원무궁토록 안식하기 위한 심정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인 동시에 누구냐? 하나님이 떼어놓을 수 없는 그분인 동시에 누구냐? 그분은 인류가 잃어버렸던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이 인연을 앎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하나님도….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이 인류, 부모를 잃어버린 이 고아와 같은 것들이 참부모를 찾아 하나님을 위주로 한 본래의 원천적인 발판을 이 지구성에 비로소 자리를 잡고 출발하게 되면 그것이 새시대예요. 에덴 동산. 새하늘과 새 땅이라는 거예요, 성경에 말하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봐라 이거예요, 이것이 거짓말인가. 그래! 그럴 것이 아니라 그래! 가정이 아니라 사실 그렇다 말이예요.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볼 때에 이 세계는 사탄 수중에 놓여 있기 때문에 외적인 형이 있지만 사람을 짓지 않은 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6천 년 문화세계를 발전시켜 가지고 외형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태어나면 생활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닦아 들어오는 것이고, 이 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아담 새끼를 길러 나오는 것입니다.
가인 때에, 아벨 때에부터 노아 때에도 그거 아담 새끼예요. 그래 6천 년 바라 가지고 아담 하나 키워 놓은 거예요. 아담 하나. 아담 하나 키워 놓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예요, 이게. 그러나 오늘날 지상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세웠던 참의 참 될 수 있는 부부를 , 하나의 자녀를 못 세워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기독교의 종교관은 제일 좋은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으로 보면 메시아를 축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념을 가지고…. 그러니 앞으로 민주주의를 지나 앞으로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 주의는 무슨 주의뇨? 참부모를 위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대가족이상주의 사회가 지상천국이예요. 그런 세계로 가는 거예요, 지금.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그러한 세계를 향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문화도 그런 면으로 움직이고, 모든 것이 그렇기 때문에 심정에서 심판받는 거예요, 심정에서. 그러면 오늘날 어떤 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 사상이 있으면 그 주의 사상을 얼마만큼 잘 표현했느냐? 그렇게 표현한 모든 것은 문화재냐?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런 심정의 하나의 세계가 반드시 나오면, 이런 우주적인 결실체로 말미암아 우주적인 결실의 가정이 나올 것이고, 이 역사적인 가정의 기준이 나오는 동시에 종족이 벌어지고, 종족 기준이 나오고, 민족과 하나의 국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천하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느냐? 하나의 결실을 세워서 뭘할 것이냐? 이 세계적인 결실을 거두자는 것입니다. 백 배, 천 배를 번식해 가지고 뭘할것이냐? 이 세계를 몽땅 품자는 거예요. 그런 아버지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나가는 길에 있어서는 뭘하려고 여기로 모여 왔느냐? 뭘하려고 모여 왔느냐 이거예요.
찬란히 꽃 피어 결실할 수 있는 가을 절기는 다가왔어요. 왔으니 여러분들은 다 죽은 돌감람나무를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어서어서 가을 되기전에 접붙여 가지고 다시 번식하자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입니다. 그래서 모가지를 자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모가지를 자르는 거예요.
세상에 뭐 내 새끼가 귀엽고…. 이것도 다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힘을 일으킬 수 있는 종교라야 마지막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라야 됩니다. 예수님도 말하기를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어요, 누구보다도. 무슨 여편네나 자식이나 무엇보다도 전부 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어요.
괜히 그랬나요? 전부 부정하라 이거예요. 그렇다고 영원히 부정하라는 게 아니예요. 이것을 자르고 접붙이려면 자른 그 가지를 옮겨 놓지요. 그렇지만 뿌레기는 딴 가지로 해서 접붙이는 거예요. 조금만 참으면 그 가치 이상의 나무에 접붙이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밑지는 장사 안 한다는 거예요. 접붙인 뒤에는 한 3년 돼야 열매가 맺히지요? 그렇잖아요?
그러면,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앞으로 우리들은 어떤 것을 찾아야 되겠느냐? 이런 역사 도상에서의 하나의 실체, 하나의 실체를 …. 우리는 어떤 문화 세계를 바라보고 나가야 되느냐? 이러한 이념적인 견지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소개하고 메시아의 심정을 소개하고 기독교 중심삼고 하나님이 섭리하던 역사적인 심정을 통하여서 소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역사관을 지녀 가지고 이 시대적인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사명이 이 천하세계에 널려져 있는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것이 기독교 이외의 수많은 종교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을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의 사정을 알아 주고 또 모든 그 소망과 일치될 수 있는 한 점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그걸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들은 비록 참석한 내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여기서 전하는 말씀은 이제….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하늘을 위하고자 하는 그 소망과 그 사정이있으면 그건 위대해요! 자기를 세워 변명할 수 없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고 보면. 일을 죽도록 하고도, 등골이 꾸부러져도, `아이고 선생님, 무슨 뭐 전도고 무엇이고 이렇게 다 기간을 정해 가지고 하게 해서 우리 젊은 녀석들 왜 등골이 나오도록 이렇게 만들어 줬어요? '라고 항의 못 해요.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버지, 뼛골이 더 부러지도록 하옵소서!'하게 돼요. 파고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꼬부라져야 돼요. 알고 보니, 내가 우는 자리에 들어가 보니 우는 나 자신 보다도 더했던 아버지가, 그 아버지가 나를 위로해 주어야 할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얼마나 분해요?
나보다 더 억울하고, 나보다도 더 불쌍하고, 나보다도 더 처량한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이 보따리를 전부 다 맡고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오' 전부 기도 그렇게 하지요? `복은 전부 다 내게 주고 어려운 것은 당신 가지소' 그런 불효자가 어디 있어요? (웃음) 그건 도적놈이지. 도적놈이예요, 도적놈. 효자가 그럴 법 있어요?
효자가 `아버지, 술을 먹든, 어떻게 되든, 죽든 모르겠습니다. 죽어 자빠지더라도 당신이…' 그러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통일교회는 이런 운명이예요. 벌거숭이가 되자 이거예요. 아버지를 위하여 벌거숭이가 되자 이거예요. 그리하여 벌거벗은 몸으로서 멍든 저 하나님을 찾아 나가 아버지를 찾아서 충성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어느 시대의 기독교인들보다 간절하다 이거예요. 이러면 하나님이 우리한테 끌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민족이라면 한국에 재림주는 온다, 오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결론도 지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충성심이 일생 동안, 몇 대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 있으면 끌어올 수 있는 거라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런 세계를 향하여서 찾아 나오나니 외적인 세계를 수습하고 환경적인 생활 무대를 , 사탄 세계일망정 하나님을 위주하여야 합니다. 민주진영인 기독교 이념권 내에서 외적인 장비를 해 나가고, 여기에 심정적인 내적인 직계 아들딸을 세워서 이것을 상속시키기 위한 날이 심판날입니다. 없다고 낙망하지 말자는 거예요. 벌거벗었다고 낙망하지 말자는 거예요.
망할 수 있는 운세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 사람은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하더라도 침뱉어야 됩니다. 그 진수성찬에 침뱉어야 됩니다. 그거 먹다가는 죽어요, 죽어요. 6. 25 동란 때에 전부 다 점령당할 때가 되었는데, 아이고 저거 보물 단지를 가지고 가야 되고, 아이고 저거 뭐 우리 옷가지가 얼마고, 저거 뭐 어떻고 뭐 어떻고 하다가는 다 죽었지 별 수 있어요? 단단히 각오해야 됩니다. 우리는 광야의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입니다. 도망가기 쉬운 자리에 있어야 돼요. 도망가기 쉽게 만들어야 돼요. 그런 과정을 거쳐가야 돼요.
이리하여 아버지를 만나게 될 때는 어디서 만날 것이냐? `아이고, 나는 아버지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리잡고 큰 호령할 때 만나겠다' 그건 불효자입니다. 통일교회 신자들은 아버지를 어디서 만나느냐? 겟세마네 동산 위에 나타나던 아버지를 만나야 되겠고, 십자가의 산상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우시던 그 아버지를 붙들고, 십자가의 도상에 찾아와 눈물 흘리는 그 아버지를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효자입니다, 진짜 효자. 이런 사람들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 사회의 어떤 사회제도, 어떤 사회풍습, 어떤 사회상황이 휩쓸어 가지 못해요. 남루한 옷을 입더라도 천만금을 장식하여 잘 입은 부잣집 아들이 부럽지 않아요. 아무리 굶고 앉아 있는, 밤을 새워 눈물을 흘리는 자리라 해도 어느 왕궁에서 풍류를 갖추어 가지고 처량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무슨 시를 감상하는 것보다도 더 귀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 세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세계가 싹터 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아침 새벽이 찾아오게 될 때는 더 캄캄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아가씨들, 여러분들을 대해 내가 뭘할 것이냐? 여러분들을 세워서 뭘할 것이냐? 내가 바라건대는 역사적인 수확의 결실체입니다. 수확의 결실체예요. 이를 헤아려 볼 때에 하나님이 울 수 있는 수확의 결실체입니다. `야 네가 얼마나 자라느라고 수고했느냐? 네가 얼마나…'
내가 요즈음 길가에 가다가도 돌짝밭 틈에 자라는 소나무 같은 것을 보며 `야 통일교회가 저 나무와 같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나무 꼴은 안됐지만 세계의 최고의 명승지에, 최고의 참 잘난 바위 절정 위에, 우뚝 솟은 그 최고 꼭대기에 멋지게 자란 소나무 한 그루에 무엇을 비하겠느냐? 그것 돼라 이거예요. 그것만 되게 되면 이 천지에 있는 소나무 다 주고도 안 바꾼다 이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입장에서 효성을 하고 어떤 입장에서 충성을 해야 되느냐? 웃고 춤추는 자리에서 효도의 명분, 효자의 명사를 받는 사람은 잘못 되어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는 자리 춥고 처량한 자리에서부터, 거기서부터….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하나님의 진액을 받는 자가 아니예요.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역사적인 진액을 받지 못하는 자녀예요. 하나님의 역사적인 진액의 결실을 거두려 하는 이 수확의 가을 절기, 끝날에 있어서 완전한 수확의 결실체로 등장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그러한 소질을 가지고, 우리가 가을 절기에 태어난 하나의 꽃봉오리가 되고 하나의 씨를 맺을 수 있는 인연이 돼 가지고 있는 모든 진액을 끌어당겨야 됩니다. 그 뿌리를 통해 끌어당겨라 이거예요. 우리는 6천 년 뿌리로부터 끌어당기는 거예요. 당기는 거예요. 당길 수 있는 자력의 힘을 가진 이런 자가 되어야만이 자기 스스로 하나의 결실을 완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태풍이 불어 올 시기에 있어서 결실할 수 있는 나무면 나무, 대면 대, 줄기면 줄기에 있어서 불어오는 태풍의 고난을 거친 후에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어느 날은 침수의 원통한 사정에 부딪치게 될 때에 하나의 결실로 나타난 그런 씨라 할진대, 그도 역시 침수의 고난을 겪은 가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피해 가지고는 그 나무때기에서 결실을 요할 수 없거늘, 복귀 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뿌리로 하여 하나의 복귀섭리의 줄기를 중심삼고 가지와 잎에 있어서 하나의 결실을 세우고자 하는 그 한 마당에 있어서 결실될 수 있는 그 자체는 모든 요소를 흡수해서, 여기에 원수 될 수 있는 요소를 즉석에서 제거해 놓고, 남이 끌어당기지 않는 본질적인 요소를 백 퍼센트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라야 됩니다. 그래야만 완전한 6천 년 심정의 결실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들은 지나간 날의 역사를 알고, 오늘날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알고, 다가오는 미래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이 가는 길을 가고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가려니 죽어라, 죽어라 이거예요. 울라 이거예요. 울라는 거예요. 뉘시깔을 땅에 대고 울라는 거예요.
예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 흘리고 땀을 흘렸어요. 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거예요. 피를 흘려 가면서 싸우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사탄이 제거돼요. 그것이 최일선입니다. 하나님의 일선이자 사탄의 일선이니 이 사탄을 제거해야겠다구요. 이것이 현재 통일의 무리들이 각오하고 나선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이래야만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거두어질 수 있는 하나의 결실체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역사적인 비판을 좀 해주면 좋겠지만 시간이 많이 갔어요.
그런 실체가 되면, 지난날의 역사의 모든 인연이 그때를 맞기 위해서는 와서 의논하고야 인연맺는 거예요. 가지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 그 곁가지가 되려면 말이예요, 그 본가지한테 인연맺고 완전히 모든 요소가 접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개인을 대신하고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여 그런 형태가 나타날 수 있는 이 땅 위의 어떤 모임이 벌어지면 그 모임을 통하여 세계는 전부 다 굴복할 것입니다.
시집오는 아가씨가 아무리 학박사라 해도, 아무리 잘나고 그 나라의 여성을 대표하고 뭐 세상의 훌륭한 명사를 다 갖다 붙였다 하더라도 시집오는 데 있어서 병신 동생을 얻어 왔다 하면, 자기의 병신 시동생을 얻어 왔다 하면 훌륭한 학박사 아주머니도…. 또 그 맏동서 되는 사람도 병신 맏동서라면 꺼꿀잡이 되지요? 그렇지만 병신 맏동서에 대해서 '형님/ 해야지 별수 있나요? 그러니, 심정을 통하여서는….
이 심정을 어겨 가지고 `이까짓 게 뭐야? ' 이랬다가는 그건 가정법에 걸리는 거예요. 종중을 무시하는 것이요, 종족을 무시하는 것이요, 문중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가정법이 용납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원칙적으로 효성을 다하는 하나의 며느리가 되려면 아무리 곰배팔이요, 봉사고 뭐 그런 사람이라도 그를 대해서 전부 다 `형님' 해야지 별수 있나요? 안 그래요? `형님' 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세계에 있어서 아버지와 딸의 인연을 맺자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지금 앞으로 찾아오는 하나님의 심정 말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가 자랄 적부터의 것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그때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시집은 오늘 왔을망정 알기는 옛날 몇 대조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집올 적보다 그 이상 더 알면 그 색시가 그 집의 혈대를 살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사상 위에 있어서의 뭐 전통, 무슨 통, 기름 통, 망통 다 주장하고 있지만, (웃음) 그 가운데 있어서도 시집온 며느리가 되어 가지고 다 모르지만 케케묵은 옛날 조상의 인연을 다 캐서 그걸 알아 가지고 선조들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우리 선조도 이렇게 거룩했다' 하면서 자녀를 위해서 가르쳐 줄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뜻있는 부모라면 그 며느리를 택해서 자기의 후대의 상속자로 하는 것이 천리 원칙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좋다, 학박사가 못 되어도 좋다 이겁니다. 모두 그런 면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병신 며느리라도 그런 심정만 갖추어 가지고 학박사의 며느리보다도 훌륭하게 되면 그 병신 며느리가 상속받는 거예요, 심정의 세계에서는 .
통일교회가 이단시되는 데, 이단이라는 말을 우리 많이 듣고 있지요? 여러분, 이단들이지요? 이단이예요? 「예」 이단입니다. 진짜 이단이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도둑질하겠다는 게 이단이지요. (웃음) 그거 좋다는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심정을 도둑질하자 이거예요. 심정을 전부 다 자기들은 안 주고 우리만 가지겠다는 그게 도둑놈 이단이지요, 뭐. 그렇게 알고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말이예요, 좀 더 고차적인 면에 있어서 이런 심정적인 상속자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완전히 접붙이라구요. 완전히 울어 보라구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저 몸부림쳐 보라구요. 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저 아, 교회에 가고파서 몸부림쳐 보라구요. 그러다 보면 어미가 새끼를 닮는다구요. 새끼가 어미 닮는다고 그러나? 어미가 새끼 닮는다고 그러나, 새끼가 어미 닮는다고 그러나? 「새끼가 어미를 닮습니다」 그렇군 그래. 어미가 새끼 안 닮고? 「예」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어미가 새끼를 닮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다 말이예요. 더 잘나라는 거예요. 자식이 잘나 가지고 부모가 따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게 통하는 거예요. 사정이…. 오늘날 사탄세계에서는 자기보다 잘나면 모가지 자르지요? 원수의 세계에서는 그러는 거예요. 도적놈들, 강도들이거든요. 심정의 세계에서는 새끼가 어미를 닮는 것이 아니고 어미가 새끼를 닮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뜻을 대해서 통곡을 하고 뜻을 대해서 그저 감사해야 됩니다. 내가 그걸 보고 `아, 네가 용하구나. 같이 울어 주고 싶고, 아주 같이 있고 싶고, 같이 따라가고 싶다' 이러고 싶으면 좋을 텐데 꺼꿀잡이 되어 있다 이거예요. 까꾸로 돼 있지요? 까꾸로 되어 있어요. 그 집안은 잘 안 된다 이거예요.
어미만 닮겠다면 그 집안 안 됩니다. 그런 못난 어미만 되어 가지고는 안 돼요. 하나님은 자기보다도 더 훌륭해지기를 바란다구요. 하나님이 제일 욕심장이예요. 제일 능력과 권능과 수완이 있으신 그분이 자기보다 훌륭한 아들딸이 나오면 좋겠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어떤 큰 예술가가 조각품을 떡 만들었는데 쓱 만들어 놓은 손가락이 뭘 쓱 갖다 주고 말이예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말도 한다 이거예요. 그거 얼마나 좋아요. 아들 낳아 기르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야, 이건 내 손이 저렇게 만들었구나…' 그러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도 그렇거든.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렇고. 뭐, 미안합니다만 선생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늙은이든 뭐 할애비든 누구든 할것없이, 아가씨든 뭣이든 총각이든 할것없이. 전부 다 어미가 새끼를 닮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이 통일교회 패들 닮겠다 이거예요. `야, 잘 싸운다. 어서 가 봐야지' 하며 사과라도 사 가고 뭐라도 사 가야지…. 여러분들이 본부에 와서 `사과 주소' 그럴 때 `야, 내가 너희들에게 사다 주고 싶고 그렇게 됐음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안 됐지요, 이게? 미안합니다.
죽으라는 거예요. 그러한 자리에 서면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나오는 데는 파란 곡절이 많았어요. 신기록, 역사적인 최고의 신기록을 내는 아들딸을 한번 내봤으면…. 선생님이 도둑놈 같은 그런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예요. 필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터전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심정을 닦아야 합니다, 거기서.
그리하여 하나의 결실을 거두어 가지고 거둔 그것을 갖다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에덴에서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씨를 심어 가지고 거기에서 거둔 씨를 또 갖다 천하에 뿌려 가지고 번식시키려 하던 그 이념적인 기준이 성취 안 됐어요. 그러니 그 씨들을 거두어 가지고, 이 아들딸들을 거느려 가지고 세계를 전부 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정복할 수 있는 일을 선생님이 하겠다 이거예요. 우리는 그런 결의 밑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 얘기했습니다.
그런 결실체가 됐다는 인정을 해주기 위한 날이 자녀의 날이예요. 그런 결실적인 가치를 갖고 여기 와서 축하해야 이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지 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영원한 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울기를 같이 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싸움도 같이 싸운 아버지, 그 아버지는 나와 영원히 같이 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역사에도 나와 같이, 시대에도 나와 같이, 미래에도 나와 같이 남아질 아버지이옵니다. 그런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소개해 주는 도의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를 알 수 있다 하면 저희에게 무엇이 또 아까운 것이 있사옵니까? 무엇 또다시 주저할 것이 있사오리까? 그 아버지를 상봉할 수 있는 길을 알고 나선 저희는 발이 째지고 발이 끊겨도 염려될 문제가 아니요, 이 몸이 상처를 입어도 염려될 문제가 아니요, 잃어버린 부모를 찾을 수 있는 이 도상을 알았다 할진대는 그 이상 소망이 어디 있으며, 그 이상 행복된 한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그 부모를 중심삼은 국가, 세계를 통하여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 그 세계를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날의 영광을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저희가 못 갈 길이 어디 있으며 못 싸울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모든 것 희생시켜 이 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나깨나 먹으나 오나가나 이 일만을 일편단심 잊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여든 당신의 아들딸들은 어려운 자리에서 싸웠습니다. 굶주리는 자리에서, 떠는 자리에서, 욕먹는 자리에서, 매맞는 자리에서도 혹시나 자기로 말미암아 피해가 될까봐 참기를 혀를 물고 참아온 당신의 아들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통스럽고 분한 사정이 많사오나 저희 사정보다 더 원통한 아버지 사정이 있는 것을 알기에 백 번 참아야 되고 천 번 참아야 할 자신을 발견하였나이다.
이러한 길에서 참아온 당신의 아들딸들, 오늘 이 본부의 이 한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온 이들을, 아버지, 세상과 같이 대접 못 한 것이 민망하옵니다. 세상의 어떤 모임과 같이 즐기며 이들이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모일 적마다 말해야 하는, 고생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되고 수고의 고개를 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원통하고 분하옵나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아옵니다. 우리는 세계를 앞에 놓고 다시 살릴 수 있는 책임자로서 이렇게 가야 할 역사적인 책임이 여기에서 솟아난 것을 알았기에, 내 쓰라림을 참고 내 슬픔을 억누르고 아버지를 따라가다가 밤이면 별빛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불렀고, 밤이면 강가의 강물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밤이면 강가의 바윗돌을 붙들고 아버지를 불렀고, 또는 나무허리를 붙들고 아버지를 부르던 당신의 초라한 아들딸이 여기 왔습니다.
이들이 당신이 허락하던 아들딸이면 당신의 모습을 대신한 상속의 인연을 받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아들딸들로서, 아버지, 인정하시옵소서. 역사적인 수고의 담을 이들 앞에 맡기시옵고 역사적인 한의 어려움을 이들 앞에 맡기시어서 이들을 통하여 원수를 심판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 되게 하옵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10월 초하룻날, 자녀의 날인 이 날, 이 역사적인 인연을 말하게 될 때에 목이 메일 날, 천번 만번 꿈에 불러도 만날 수 없었던 날, 저희들이 생각을 해도 생각할 수 없는 날이 오늘입니다. 오늘을 저희들이 맞이하여 이날이 아버님의 은사권 내에서 세워진 것을 저희들은 진정 머리 숙여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자식도 이 길을 나오게 될 때에, 눈물 뿌리는 자리에는 내가 있다고 아버지께서는 권고하였사옵고, 매맞는 자리에서도 조금만 참으라고 명령하였사옵고, 암담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소망의 동산을 아버지께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이런 곳이요, 네가 죽더라도 갈 곳은 이런 곳이라고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의 인연이 그립소이다.
그와 같은 길로 인도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나온 길을 이들이 상속받아 그런 자리에 설 때에 아버지는 옛날에 나를 대하던 아버지로 나타날 것을 약속을 받고 이들을 내몰았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런 인연을 맺고 이런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를 줄 아는 ,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영원히 울고 싶을 수 있는 간절한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죽어서라도 영원히 묻히고 싶을 수 있는 , 떠나고 싶지 아니한 하나의 보금자리, 거룩한 성소를 자기들이 만들고자 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런 성지를 만드는 동시에 성소를 만들고, 성소를 만드는 동시에 실체의 성전을 건설하여 승리의 왕자로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만들 때까지 저희들은 남은 투쟁 노정에서 망하고 쓰러져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는 가겠나이다. 앞으로 몰아치는 세계적인 환난의 고비가 있다 하더라도 가겠나이다. 어떠한 죽음의 첩첩한 거리라도 허락한 길이 있다면 가겠나이다. 이런 결의와 맹세는 이미 하였사오니 그런 길을 향하여 따라 나선 이들도 강하고 담대하고 게으리지 말아서 적진을 향하여, 남아진 투쟁을 향하여 승리의 결정을 짓기 위한 주도적인, 하늘의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늘의 장병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땅과 인류와 그 가운데 복귀 할 수 있는 참부모와 참자녀와 참인류와 첨천지…. 그리하여 아버지를 모셔 놓고 영원무궁토록 찬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오늘날 저희들이 싸우는 투쟁의 발판을 그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시어, 이 일만은 이루어서 영광받아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그 세계를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뜻을 생각하면서 시작! (식구들과 함께 부르심) (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들이 와서 말씀을 들려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러니 갈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잘 느꼈지요? 그래, 안 그래요? 응? 「그렇습니다」 때는 되었습니다.
이걸 생각할 때에 젊은 피가 어느때에 꺼지겠느냐? 젊은 피가 어느 곳에서 없어지겠느냐? 한스러운 시대는 지나가고 이때를 맞이하여 최후의 일격전을 가해야 할 민족 앞에 하늘편으로 끌어 넘겨야 할 사명과 책임을 짊어진 이런 투쟁 마당에 있어서 있는 정력과 있는 기백을 다 갖추어 승리의 왕자가 되어 돌아오기를 하늘은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놀음을 우리들은 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거예요. 그런 결의를 재무장하기 위해서 모인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에 이번 모인 무리들이 나가서 삼천리 반도를 잡아 쥐게 될 때는 전부 다 종이장같이 말려 들어오는 느낌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이걸 펼치게 될 때는 들어왔던 것이 쭉 펴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야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기가 죽어 가지고는….
바위에 허리가 부러졌어요? 눈깔이 없어요, 팔다리가 없어요? 생각이 없느냐 말이예요. 피가 끓지 않아요? 정신이 없느냐 말이예요. 우리의 원수가 지금까지 남아 왔다는 거예요. 6천 년이라는 이 더러운 때가 우리 시대까지 찾아왔다는 것, 분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조를 원망하고 나서는 무리예요. 그렇지요? 영계의 영인들을 원망하고 나서는 무리들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를 원망하고 나서는 무리입니다. 그러니 이단 취급받지요.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개체가 잘 되자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살려 놓고 우리는 죽자는 거예요. 세계가 살 때 우리 살자, 이것이 하늘이 남기고 간 하나의 새로운 역사의 전통이요, 새로운 역사 시대에 있어서의 국민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여러분이 바라보는 시선 무대, 여러분이 발을 옮겨 딛고 있는 터전, 바로 그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찬 방에서 새우잠을 자면 선생님도 그런 잠을 잡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시키기 전에 하고 시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원망을 못 하는 것입니다. 어느 녀석이라도 그런 말 하면, 당장에 앉아 가지고 몇 마디만 이야기하면 통곡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래도 빚지지 않아요. 빚지지않아요. 여러분에게 한푼이라도 보태 주려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 한을 품고….
선생님이 이 길 걸어 나오면서 감옥살이도 많이 했어요. 들락날락하기를 한 십여 차례 가까이 했단 말이예요. 그만 했으면 많이 했어요. 왜정 때부터 투쟁해 나온 거예요. 그러니만큼 이번에 왔다가 갈 때는 그런 결의를 가지고 삼천만의 모든 얼을 잡아 움켜 쥘 수 있는 기백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천하가, 하늘이 떨어져도 또 간다는 이런 마음가지고…. 전부 기들이 죽어 가지고, 배가 고파 가지고…. 여러분들 일주일씩 다 금식했지요? 일주일 굶는 게 문제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예」
이래 가지고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이 민족이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예요. 그래야 이 민족이 살아남는 거예요. 세계가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입니다. 자신 있나요? 「예」 자신 있어요? 「예」 정말? 「예」
우린 죽어도 다 한 구덩이에 가 죽자구요. 괜히 뭐 이렇게 싸우다 나이 많아 가지고 편한 자리에서 죽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런 용사답게 멋지게 세계를 안고 한번 싸우다가 쓰러지고 싶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말을 들어 보라구요,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라구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제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씨들이 돼야 되겠다구요, 씨들. 씨가 되는 데는 거짓 씨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거예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에 있어서 일체가 돼 가지고 참씨가 돼야 됩니다. 쭉정이가 되어선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려면 자기 몸도 썩어져야 돼요. 밀알이 하나 썩어지지 않으면 생명체가 살게 되질 않아요.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 선생님이 고생한 터전에서 지금까지 뿌리박고 살아났어요. 그런 거 아니예요? 또 여러분들이 그런 가지에 오게 된 것도 이 우주가 허락한 공식적인 천칙이예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부모의 사명을 다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 그러한 책임을 짊어지고 앞으로의 남아진 우리의 계획 기간을 힘차게, 어깨로 밀고 몸으로 밀고 배로 밀고 발로 밀고 이빨로 물어뜯고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최대의 결의를 하고 여러분이 왔다가 돌아가 주기를 부탁한다구요. 알겠지요? 「예」 알겠지요? 「예」 부인들은 공손히 대답해야지요.
여기 있는 대개 대중을 보게 된다면 한 80퍼센트가 젊은, 전부 다 아주 선생님의 동생 같기 때문에 반말해도 괜찮아요. 나이 많은 사람은 이다음에 공대해 줄께요. 그러나 아주머니들은, 훌륭한 아주머니들은 나이 어리지만서도 훌륭한 사람 있으면 그건 공대해 줘야 된다구요.
그러한 결의 밑에서 나가 보자구요. 알겠어요? 「예」 아주머니들, 예? 「예」 해와가 죄가 많지요? (웃음) 어때요? 그거 몰랐어요? 죄가 많지요? 「많아요」 그렇지. 죄 많은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만하고 묵도로써 폐회를…. (`나의 맹세'로 선서를 함)
오늘 이것이 아버지 앞에 여러분들이 새로운 각오를 맹세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승리의 영광이 이들과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들딸이 아버지의 머리 앞에 모였사오니 자녀의 명분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인연맺을 수 있는 자녀의 날로서 아버지 받아 주시옵소서. 맹세한 이 모든 조건 조건이 하늘 앞에 불의한 심판의 조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영원히 칭찬의 조건을 남길 수 있어서 승리의 선조들이 되시사 후대의 후손들 앞에 찬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조상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로 말미암아 민족과 세계와 인류와 천주가 해방을 받으며, 영원한 영광 가운데 잠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오니, 이것을 아버지를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완결하여 아버지를 위주로 한 하나의 식구의 이념 세계를 이루시옵소서. 그때까지 저희는 원수가 남아 있는 연고로 원수를 대신하여 싸울 것을 맹세하였사옵니다.
이 모든 것을 길이 받으시옵고 축복받고 자랑받을 수 있는 그때까지 한 생명이라도 떨어지지 말고 이 대열 가운데서도 길이길이 아버지 보호하는 뜻 가운데서 승리의 한날을 가지고 아버지의 자녀의 명분을 허락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존귀와 영광과 찬송과 기쁨이 이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길 주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자녀의 날은 섭리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을 아니할래야 아니 할 수 없는 비참한 날-아담이 타락하던 날, 노아가 실수하던 날 등-들은 많았으나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한 날은 없었습니다. 이 슬픈 날들을 전부 없애 버리겠다는 각오 밑에서 오늘을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은 추수의 날이요 자녀의 날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둘 수 있으나 하나님은 추수의 날을 못 가졌습니다. 또 추수한 것을 뿌리는 날을 못 가졌습니다.
부모의 손으로 거둔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손길을 통하여 뿌려지고 거두어져야 합니다. 인간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고는 씨를 뿌리려 하였으나 자라던 도중에 꺾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뿌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하였으니, 이 날이 심판의 날입니다.
인류 가운데 두 결실을 거두어야 할 소망의 날을 바라 나왔으니 이 날이 재림의 날이다. 어린양 잔치날은 본연의 참다운 부부를 만드는 날인데 이것이 곧 끝날의 심판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인류의 결실’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 가운데는 여러 가지로 자랑할 무엇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주의 혹은 가정 등 자랑할 것을 가진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과 더불어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 거짓된 것이기에 타락의 탈을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가라지밭입니다. 내 몸에는 가라지의 요소가 얼마나 있는가! 이것을 버리고 더 좋은 것을 넣어야 됩니다.
이 핏줄에는 살인강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죄의 원천입니다. 우리 조상에게 무슨 죄가 없겠는가! 내가 옥토의 입장에 설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입니다.
도(道)는 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심정까지 부정하고 나서는 종교가 최고의 종교입니다. 도인들은 때로는 포로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한 개의 주먹밥을 먹으며 어떻게 하면 타락한 세계로부터 도주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철조망을 끊고 나서는 날이 대심판의 날입니다. 철조망을 끊어야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철조망을 끊어야 합니다.
주의는 심정주의, 종교는 심정종교, 철학은 심정철학이라야 합니다. 6천년 전이나 후나 심정은 같습니다.
예수님이 독생자라는 말은 다른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주라는 말은 자기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대가족의 주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말씀은 심정을 중심하고 하신 말씀이요,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정치도 심정적인 정치여야 합니다. 국가의 주권 이념도, 세계의 어떤 주의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찾아오실 때 먹을 것이 없어 물을 마시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이 땅은 망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는 하나님이 발들여 놓을 틈도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느끼도록 가르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해방합시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니 도인들이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도인은 고생을 해야 합니다.
심정의 종교라면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풀어 주는 자가 되어야 역사를 해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영원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접붙일 때까지입니다.
나는 보잘것없으나 말씀은 위대합니다. 나보다도 더 불쌍하고 고생하시는 하나님을 더 고생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심정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찾아오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통곡하는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는 자라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슬프고 처량한 자리에서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든 갈 각오를 하고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피눈물나게 돈도 모아야 합니다.
부부를 이룬 사람에게는 이제부터 7개월간이 특별한 기간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의 상속은 골고다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상속 받을 사람을 세워 놓고 상속하는 것입니다. 이 상속을 받는 자는 역사적인 상속자인 것입니다.
이 7개월간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상속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사람 이상 전도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두 번 다시 없는 기간입니다. 자나깨나 전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축복해 주면 해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영원히 부끄럽게 됩니다. 이 기간에 책임을 못하면 음력 4월까지 또 연장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많은 줄 알고 있는데, 이번 하계 전도 기간에 들어온 식구들이 몇 명이 되나 손들어 보자구요. 하계 전도 기간에 들어온 사람들, 금년 7월 21일 이후에 들어오신 분들 손들어 봐요. 18명? 「28명입니다」 28명? 「예」 아, 6개월 이상 된 사람들 손들어 보자구요, 6개월 이상. 통일교회 들어온 지 6개월 이상 되는 사람. 몇 명? 「33명입니다」 33명. 그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3년 이상 된 사람은? 내리세요.
여러분들이 여기 본부에 찾아왔습니다. 지방에서 있을 때는 본부가 가 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제 여기 찾아왔다구요. 여러분이 맨 처음 올 때에는 이 서울에서 본부가 상당히 크고…. 제일 큰 집이었으면 좋았을 거예요. 물론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이 좁은 집에서 크나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고마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이 집에서 수련을 받아야 되겠고 이 집에서 먹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이 집을 무심코 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 집에는 한 장의 가라스(유리)에도 하늘의 피눈물이 섞여져 있다는 거예요. 지극히 작은 문짝 하나에도 하늘이 주시해 싸워 나오던 노력의 수고가 거기 들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마루바닥, 혹은 여러분들이 자야 할 마루바닥도 마찬가지라구요. 이것은 지금까지 세상에 있는 어떤 집의 마루바닥과는 다르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초라하지만 거기에 깊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세상의 어떤 큰 집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본부를 바라보면서 믿고 있고 의지하고 있던 마음은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훈련시키고 연단시켜 가지고, 재차 본부에 대한 어떤 면이 귀하다든가, 또 어떤 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지금까지 갖고 있는 생각을 전부 다 꺼내 연단시켜 가지고 다시 집어넣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일단 들어온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과거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제부터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바라던 본부가 왜 이런고? ' 이런 생각을 당장에 버려야 된다구요. `수련회 가면 좋을 줄 알았더니 왜 이런고? ' 하는 그런 관념과 생각을 전부 다 취소해 버리고, 이제부터 느껴지고 이제부터 체험되는 모든 것이 본부에 대한 여러분의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관념으로 세워지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그리고 이제부터 출발하는 이 수련에 참석해 있는데 한 일주일 동안은 시련 과정이라구요. 일주일 가운데도 사흘 동안은 싸움 과정이다 이거예요. 사흘 동안은 복잡하다 말이예요. 잠자리가 편치 않지, 환경이 갑자기 달라졌지, 좌우를 바라보면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아주 색다른 사람들끼리 살을 대야 되고, 이마를 맞대고 밥을 먹어야 되고…. 좋든 나쁘든 그와 같은 인연이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생리가 맞지 않아요.
더우기나 또 3일 기간은 고향 생각이니 뭣이니 복잡하다구요. 집에서 뭐 어떻게 왔고 내가 이렇게 왔는데 하는 여러 가지 세상 관념에 아주 복잡해져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요 3일 동안은 여러분들이 중심을 잘 잡고, 기어이 단단한 중심을 세워 가지고 3일을 넘어서면 그다음에 일주일 동안은 복잡한 일이 점점 심해 간다 말이예요.
이것이 일주일 지나가고 2주일 지나가고 3주일 지나가야 본 코스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2주일 지내 가지고 보면, 그 사람이 금번 14회 수련회 참석한 자로서 하늘 앞에 설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서 갈라져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기간에 여러분들을 같이 둬 가지고 연단시켜 가면서, 여러분들의 내적 싸움과 환경에 이 모든 것을 맞춰 나가면서 한 3주일쯤 지내 봐야 쓸 만한 사람, 못 쓸 만한 사람으로 갈라진다는 거예요. 3주일 지나갔어도 소망 없는 사람은 이번 수련회에 참석했더라도 다시 수련받아야 돼요.
그러니만큼 제일 짧은 3일 기간을 잘 지켜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3일 기간. 3일 기간에는 원래는 여러분을 세워 놓고 그저 이 방망이로 들이 갈겨야 되는 거예요. 이 복잡한 환경이, 이렇게 지지한 것이 일주일이고 2주일이고 싫다 이거예요. 그저 한 3일 동안 뚝 잡아떼 가지고 넘겨서 다리를 퍽 잡고 수련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 골통에서부터 들이 죄겨야 되는 거예요. 아예 세상에 없었던 매, 세계 최고의 매를 가지고 들이 죄겨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시시한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그저 한 대 맞고 그래도 이를 악물고 어떠한 매라도 참고 견디겠다 해 가지고 남아지면 그 사람은 수련받을 수 있는 자격자다 이거예요. 그러나 `아이쿠' 해가지고 돌아선 녀석은 수련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예요. 그렇게 하면 무난히 한 3일부터 여러분이 정식 수련을 받을수 있는 코스로 들어갈 수 있는 데, 그렇지 못할 때는 이게 한 3주일 동안 걸린다구요, 3주일 동안.
그러면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요? 응? 한 3주일 걸리는 게 좋아요? 원래 하늘은 바라기를 , 들이 볶아 가지고 그저 어떤 기합을 줘서라도 한 3일 동안에 넘겨 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늘의 소원이예요. 그렇지만 몽둥이 들고 어떻게 팰 수 있나? 팰 수 있어? 패는 데는 눈물은 물론 나오겠고, 콧물도 물론 나와야 되고, 물 나오는 데는 다 물이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눈에서 눈물 나오고, 코에서 콧물 나오고, 입에서 침이 나오고, 그다음에 얼굴에서는 땀이 나온다 말이예요. 물이 나올 수 있는 그러한 구멍에서는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아주 뭐 방출 훈련을 받아야 돼요. 방출 훈련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렇게 하면 제일 빠른데 그렇게 할 수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지 않으면 안 돼요.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 주위에는 전국에 있는 사탄들이 꽁지를 달고 있다 이거예요. 여기 허리띠에는 갈고리가 하나 있어 가지고 사탄이가 사방에서 줄을 떡 걸어 가지고 `요 녀석아' 하면서 잡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 팔도강산에서 다 모여 왔으니 만큼 팔도강산의 사탄 후계자들이라구요. 여러분은 아직까지 상속적인 인연을 완전히 취소 못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사탄이 그 어떤 끈을 잡고 당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나를 중심삼고 당기고, 가정을 중심삼고 당기고, 그 부락, 혹은 뭐 어떻고 어떻고, 과거를 중심삼고 그러고 있다구요. 그걸 끊어 놓으려니 사정을 봐서는 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한 여러분에게 시련 기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흘 동안 이것을 잘 넘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관점에서 그런 관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구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구요. `아, 3일을 넘었으니 일주일을 잘 넘자'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을 잘 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오늘 잘 때도 시간을 딱 정해 가지고 `기상' 하면 그 기상하는 시간이 되기 전에 기상하는 준비를 해 가지고 `기상 소리만 나라' 하며 선착으로 일어나야 되겠다구요. 밥을 먹어도 그와 같은 훈련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밥을 먹어야 된다구요. 밥을 먹어도 이 원수와 더불어 싸우기 위해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해도 자기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수와 더불어 싸우기 위해 공부하라는 거예요.
전부 다 그런 관점에서 자기 중심을 딱 잡고 이 기간을 지내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면 그 기간을 빨리 지낼 수 있다는 거예요. 1주일 걸려서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2주일 걸리는 사람도 있고, 3주일 걸리는 사람도 있다구요. 3주일 안 되면 40일 동안에 뻐드러져 나가는 , 수련받은 것보다 더 못한 녀석들도 생겨날지 모른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 어떠한 기간에 통과해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말씀을 얻고, 이 수련을 잘 받을 수 있는 내가 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란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13회 때도 선생님이 약간 이런 얘기를 했는데, 여러분들이 여기 왔단 말이예요. 자기 스스로 왔어요. 올 때는 사방에서 몰려왔어요. 동서남북에서 다 몰려왔다 이거예요. 몰려올 때 오기는 다 같이 왔어요. `수련회 간다' 해서 여기 왔다는 말이예요. 사정을 보게 되면 천태만상의 사정이 있다구요. 그러나 요 `온다' 하는 목적지는 같은 목적지이니 나타나기는 다 같다 이거예요.
여기 본부면 본부에서 `와라' 하는 어떠한 책임을 중심삼고 명령해서 여러분이 왔다 말이예요. 오라 하는 곳의 요구와 오기를 바라서 온 여러분들의 요구가 여기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부는 `너희들 여기 수련받으러 와라' 한 그 목적에 부합되게끔 내몰아야 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왔으면 그 목적 앞에 통과 하기 위하여 애써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예」
수련생 가운데서 이번에 83명이 왔지만, 이 83명 가운데는 올 때에 여러 모양으로 왔지만, 진정히 하나님이 보게 될 때에 참으로 온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한 사람밖에 없을 거예요. 두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이 가운데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늘이 바라는 기준 가운데서 하늘이 보게 될 때 `참 너는 잘 왔다. 너는 참 심정적인 태도나 모든 면으로 보게 될 때 완전한 너로서 왔다' 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 할 때, 두사람 아니예요.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라고 치는 하나의 그 사람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의 사람일 것이냐? 여기에서 추려 가지고 그 사람 가운데서 나은 사람을 빼 가지고 또 거기서 하나를 빼놓으면 하나가 있을 거예요. 만일에 하나님이 수련하러 올라오는 입장에서 찾아왔다 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기준으로 왔을 것이냐? 그런 기준에 비교하면 여러분들은 사정이 달라요. 그럴 거 아니예요? 그만한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차이의 거리를 어떻게 메워 버릴 것이냐? 이것을 빨리 메워 버려야 돼요. `빨리 이것을 가르쳐 줘 가지고 그 방법과 방편을 세워 가지고 그런 기준을 빨리빨리 청산하자, 우리는 이런 도리에 다 따라가겠다, 이왕에 수련받을 바에는 그런 기준에 합격될 수 있는 내가 돼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수련을 받는 데 있어서 하늘이 보게 될 때 제일, 밥을 먹는 데 있어서 하늘이 보게 될 때 제일, 잠을 자는 데 있어서 하늘이 보게 될때 `내 아들아' 할 수 있게 제일, 공부를 하는 데 있어도 하늘이 보게 될때 제일, 모든 면에서 제일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회에 `야! 내가 여기 83명 앞에 있어서 제일 잘해야 되겠다, 잘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로서로 노력해야 되겠다구요.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수련회 자리에 참석해 주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응? 「예」
무엇이 돼야 된다구요? 제일, 제일이 돼야 된다구요. 그러한 여러분들이 돼서 이 수련회 기간을 충실하게 보내기를 바란다구요. 그리고 이번에 여러분을 지도하는 지도위원들과 훈련부장들이 있는데, 내가 부탁하는 것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많이 울리라는 거라구요. 때려서 울리든가 힘들게 해서 울리든가 말씀을 통해서 울리든가…. 그다음에는 울려 가지고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고, 새로운 맹세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주길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새출발을 하려면 통곡을 해야 된다구요. 통곡을 해야 돼요. 눈물을 흘리며 결의를 하는 이런 과정이 없어 가지고는 새로운 사람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훈련부장들이 그렇게 시키라구요. 훈련에 있어서 그저 눈물이 나 가지고 눈물이 쏟아지게 하는 훈련을 시켜야 돼요. 그것이 자기들 앞에 제일 되는 첩경을 세우는 데 제일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을 하늘 앞에 제일 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 들이 방망이질해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 만들어 놓으면 하늘이 쓸 만한 곳이 있을 거예요. 알겠어? 책임자들. 훈련부장! 「예」 저 지도위원들 알겠어? 「예」
그러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잠깐 동안 말씀 한마디 하고 가겠어요. 제목을 잡으라면 `삶의 길을 찾아서'입니다. 내용을 말하라면 그렇게 될거예요, 삶의 길을 찾아서. 여러분들은 싫든 좋든 부모들이 낳아 줌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말이예요. 태어나고 보니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고, 땅이 있는 것을 알았고, 또 태어나고 보니 이 세상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말이예요. 사방 어디를 가든가 나 외의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알았고, 또 바라보면 땅이 있는 것을 알았고,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 세계에는 모든 사회가 있고, 또 나라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 나라들을 중심삼고는 그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이 있고, 그 주권을 중심삼고는 개개 민족이라든가 국민이 있고, 그 국민을 위주로 해서 땅 짜박지를 갈라 가지고 땅들을 갖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세계를 보게 될 때 `아! 이놈의 세계를 요렇게 만들지 않고 전부 다 두루뭉수리하게 해 가지고 하나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미국 사람은 무엇이고, 한국 사람은 무엇이고, 뭐 어디 나라 사람은 무엇이고, 뭐 깜둥이는 무엇이고, 흰둥이는 무엇이고, 노랑둥이는 무엇이냐?
여러 가지 복잡한 인류들이 땅에 살고 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땅 자체들도 역시 복잡한 국경선을 중심삼고 엉클어져 있어요. 그러면서 그들이 좋게, 서로서로 안 보면 못 살고 안 만나면 못 산다는 입장에서 산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저쪽으로 갈 때도 `오지 말라' 하고또, 저쪽에서 올 때도 올까봐 두려워한다구요.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수 없고, 내가 가려고 할 때 거기서 나를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저 사람이 오려고 할 때 내가 `오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저 사람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가게 되면 나를 의심하는 것뿐이 아니라 걱정을 하고 바라 보고, 조금 더 나가게 되면 `아이쿠, 나를 잡아먹기 위해서 오지 않나? ' 하고 두려움으로써 그 사람들과 대항하여야 할 이런 세상이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대충 얘기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가 그런 동시에 여러분 한 자신을 두고 볼 때…, 자신을 가만히 보자 이거예요. 자, 그러면 `오, 나는 이렇게 세계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전부 다 저런 식을 만들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좋을 것 같은데… ' 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어느 한 때 누구를 대할 때마다 좋을 수 있는 내 행동을 가졌고, 어느 한 때 전부가 좋아할 수 있는 내 말씀을 가졌고, 어느 한 때 나를 좋아할 수 있는, 내가 누구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있느냐를 생각할 때 그런 과거가 있었어요?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 하는 의미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마음에 `야, 내 아들은 참 천하에 하나밖에 없구나! 하늘도 주고 땅도 주고 온 전부 내 생명까지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또 그러면서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인 동시에 온 천하에 드러내서 자랑하고 싶은 내 아들이다'라고 부모가 말할 수 있고 보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 있느냐 하면 아니예요. 걱정이예요, 걱정. `저 녀석이 언제 자라서 저렇게 될 것이냐? ' 그러고 있다구요.
사회가 악하면 악할수록 그 악한 사회에 자식을 내놓은 부모들은 그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자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편안히 잠을 자고 있지만 부모의 시선에는 슬픔이 어리며 `행여나 저들이 이 가문을 망치고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자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라구요. 사랑하는 부모라고 하지만 부모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여러분의 자는 모습도 바라보고 새로운 면에서 더 좋은 아무개가 되었으면 하며 기대하고 계시는 부모가 돼 있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보면 이 세상은 전부가 좋아하는 환경과 좋아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세상이 못 돼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위주해 살고 있는 자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런 관계에 못 놓여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뭐 큰 것은 다, 넓은 것은 다 제해 놓고 여러분을 중심삼은 가정을 두고 볼 때에 형제끼리도 그렇다 이거예요, 형제끼리도. 자기가 조금만 못하면 `이게 뭐야, 이게? ' 하며 형제끼리도 싸운다구요. 형님 동생끼리 `이 자식아' 하는 거예요. 그것도 좋다는 거예요. 싸우는 것도 좋다는 거예요.
좋은데 `이 자식, 형님 틀렸다'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이거예요. 그 기준조차 전부 다 믿을 수 없는 기준에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걱정해야 할 세상이요, 믿지 못할 세상입니다. 걱정하고 믿지 못할 세상인 동시에, 또 가만히 생각하면 무서운 세상이예요. 무서운 세상인 동시에 공포의 세상이예요. 공포의 세상인 동시에 공포의 세상에 사는 내 자신이 이것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게끔 아주 뭐 단단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디에 얽매어진 오늘날 내 자신이 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사회와 국가와 오늘날 전세계 사조가 그러하다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세계입니다. 또, 공포에 찬 세계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가서는 공포만이 아니라 사망의 물결이 나를 휩쓰는 세계예요. 나혼자 무서워하는 환경과 두려워하는 환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자식아 죽어라!' 하며 사망의 물결이 여지없이 몰아치는 이런 환경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다 이겁니다.
오늘날 현재의 세계를 바라볼 때, 공포의 세계요, 사망을 염려해야 하는 전초지에 있다 이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이것이 왜 이렇게 됐느냐? 이렇게 된 것이 타락 때문이예요, 타락. 타락의 보응은 무엇이냐? 사망이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이냐?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은 나로부터 살아가는 나로서 삶의 길을 찾아서 그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개인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야 되겠고, 가정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야 되겠고, 그다음에는 사회가 살 수 있고, 국가가 살 수 있고,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삶의 길을 닦아야 할 텐데 오늘날 이 땅 위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간 자신은 도저히 닦을 수가 없어요. 인간으로서는 닦을 수 없어요. 인간은 닦을 수 없다구요. 인간은 닦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무엇을 플러스해야 돼요. 거기에다 그 무엇을 가해 가지고야만 닦을 수 있는 길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닦을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옛날에 우리 인류시조 맨 조상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쳐다보게 될 때, 그들이 타락하지 아니 했던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여러분들은 타락한 시대에, 처음부터 끝까지 타락한 시대에 태어났고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 인류 조상이 비록 타락은 했을망정 그 역사에는 타락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우리 조상에게는 타락하지 아니 한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 조상이 타락한 그날서부터 지금까지 떨어져서 이렇게 죽음의 세상을 만들어 나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고통과 사망 가운데 떨어졌다 그 말이예요. 여러분 자신은 타락한 후손인 연고로 타락하지 아니한 시대를 못 가졌다구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우리 인류시조는 얼마나 가까왔느냐? 말할 수 없이 우리 시조 아담 해와는 사랑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타락하지 아니한 지각과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얼마나 예민했겠느냐. 모든 것을 비판할 줄 알고, 모든 느낌에 있어서 이것을 헤아릴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들 보다도 본심에 있어서는 높은 자리에 있었던 거예요.
그러한 아담 해와도 타락을 했는데 여러분들은 타락해 보지 않은 역사도 못 가지고 그런 감정도 못 가진 사람들이니 이건 형편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로서는 도저히 살아날래야 살아날 수 없는 거예요. 왜? 우리 선조가 나보다 나은 자리에서 타락해 버렸기 때문에. 역사적인 출발이 그렇게 됐으니 그만도 못한 자리에 있어서는 도저히 살아날래야 살아날 도리가 없는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신들이 살아나려면 인간의 힘으로는 안 돼요. 알겠어요? 「예」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된다 말이예요. 절대 안 돼요.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인간의 힘에, 인간의 최대 힘에 무엇을 플러스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간은 `내가 이런 고통 속에 있으니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라고 요구한다는 거예요.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으니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어떤 길, 이런 고통 가운데서 어떤 해방의 길, 이런 슬픔 가운데서 어떤 행복의 길, 이런 죽음의 도상에서 어떤 삶의 길을 찾고자 원해 나온 길이 오늘날 인류역사가 엮어 온 역사노정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애썼지만 자기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애를 쓰는 데는 누구를 불들고 애쓰느냐? 개인이 찾는 시대에서 가정이 찾는 시대, 종족이 찾는 시대, 민족이 찾는 시대, 국가가 찾는 시대, 세계가 찾는 시대, 하늘땅이 찾는 시대로 발전해 나오는 거라구요. 시대는 그런다 말이예요. 그러한 개인들이 찾는 시대에 있어서는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개인이 찾는 그 가정을 찾지 않고도 몽땅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가정을 찾는 그런 시대가 왔다 하면 가정을 찾는 그런 시대보다도 종족을 찾아 세울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런 시대적인 대표자를 만난다면, 가정적인 시대에 처해 있어도 종족을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와 하나된다면 나는 가정을 찾는 시대를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 현실에 살고 있는 그 생활보다도 더 좋은것, 더 큰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더 크고 전체적인 가치의 내용을 지닌 무엇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역사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 종족과 민족을 거쳐 국가 형태를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 나왔다는 거예요.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역사를 찾아 나온 그 배후를 살펴 보게 될 때에 인간만이 이것을 움직여 나왔느냐? 인간이 이것을 끌고 나올 수 있느냐? 만일에 인간만 있었더라면 망해 버렸어요, 벌써. 왜? 아담 해와가 우리보다 나은 자리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타락했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어요.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해 나온 역사를 두고 볼 때에 기필코 인간이 아닌 어떠한 힘이 개재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누가 개재해야 되겠느냐? 사람이 아니예요. 과연 누구일 것이냐? 나보다도 제일 악한 사람이 아니면 제일 좋은 사람일거예요. 둘 중에 하나예요. 이런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는 데 있어서 오늘날까지 이끌어 나온 기준까지의 역사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인간만이 할 수 없고 여기에 어떠한 힘이 개재되어 가지고 이끌어 나온 거예요. 그 어떠한 누가 개재돼 있다면 그 힘의 작용을 미친 자는 어떠한 존재일 것이냐? 제일 나쁜 놈 아니면 제일 좋은 놈,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만일에 제일 나쁜 놈만이 치리했더라면 인간은 뭐 해방이니 뭣이니 무슨 소망이니 이런 것은 전부 다 공상이고 망상이라구요. 인간보다도 수완이 많고, 인간보다 능력이 많은 그런 원수 마귀가 인류역사를 혼자 꼭 붙들고 나간다면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해방'이라는 명사니 `행복'이라는 명사니 무슨 뭐 이상적인 명사가 필요 없는 거예요. 그거 전부 다 망상적인 명사요, 공상적인 명사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일에 제일 악한 놈이 아니고 제일 선한 분이 우리를 끌고 나온다면, 이분만이 있다면 거기에 있어서는 `아, 좋은 것이다' 할 수 있는 자유의 날, 해방의 날, 평화의 날, 이상의 날이 있을 수 있으되, 악한 것이 거기에 등장하여 세계를 지배했더라면 이런 명사는 우리에게 아무 관계 없다 이거예요. 그렇겠지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이 세상에는 선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악만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여러분 자신으로 두고 볼 때에, 이 세계를 관두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떡 펼쳐 놓고 보게 될 때에, 내 마음이 선만이냐 악만이냐 볼 때에 악한 것도 있고 선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또 세상을 척 놓고 보게 될 때에, 아 이놈의 세상이 악한 놈이 치면 악만 많을 텐데 그렇지도 않아요. 악한 것도 있고 선한 것도 있어요. 그렇게 돼 있지요? 그걸 볼 때에 이 세상은 이 둘이 어떠한 곡절에 의해 엉크러져 있는 거예요. 내 마음에서는 선이 양심을 통하여 `이놈아, 그거 해서는 안 돼'한다구요. 그렇지만 내 이 몸이라는 것은 `악이고 뭣이고 선이고 뭣이고, 당장에 내가 배고프면 뭐 따먹어야 돼. 뭐 누가 입은 츄리닝 거 빼앗아 입어야 돼' 이런단 말이예요. 이런 것이 투쟁하는 거예요. 투쟁해요, 안 해요? 투쟁하나, 안 하나? 「투쟁합니다」 투쟁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인류들은 이러한 두 흐름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망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것이냐? 죽는 것, 사는 것은 어떠한 것이냐? 사는 것은 악한 요소의 세계에서 이것을 박차고 선의 요소의 세계로 옮겨지는 거요, 죽는 것은 선의 요소를 짓밟아 버리고 악의 요소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흥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악의 요소의 모든 본질을 다 제거해 버리고 선의 요소의 본질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선의 본질 요소를 무찌르고 악의 본질의 요소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악을 자기가 막아 치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놈의 악이 이웃집에 있으면 그 모가지를 짜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그 악이 국가적으로 남아 있다면 이 국가를 대표해서 싸우는 사람이 영웅이예요. 세계에 악이 남아 있을 때 세계를 대신해 싸우는 사람이 세계적인 영웅이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악과 대결하여 개인을 대표해서 싸울 때는 여러분의 양심이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싸울 수 있는 선의 중심자는 여러분이 따라가야 할 스승입니다. 그 자리에서부터, 혹은 민족을 대신하여 선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만민들은 깃발을 들고 땅과 시위해야 할 입장에 있다구요. 그런 사람이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각 개개의 국가가 많으면 그 역사에 있어서 역사적 인물이예요. 혹은 세계 무대에 있어서, 세계 역사노정에 있어서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선한 일을 하는 데 공헌을 많이 한 사람들을 오늘날 성현, 현철이라고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성현이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성현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이 세계를 악의 세계에서 구하기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강구하여 만민이 다 가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길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지요? 「예」
여러분 자신들을 보라구요. 여러분 자신들은 자기 힘만으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되니 내 힘에 그 무슨 힘을 가해야 돼요. 그 힘이라는 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지어 놓은 힘이 아닙니다. 성인이 된 것은 성인 자신이 된 것이 아니예요.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최고의 선할 수 있는 인연의 힘이 개재해 가지고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 선한 사람이 누구냐 하고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과거의 선한 사람이 누구며, 오늘 이 시대의 선한 사람이 누구며, 앞으로 선할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요걸 찾는 것이 인간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나가는 사회생활이요, 인생행로다 이겁니다. 아직까지 완전히 찾지 못하여 찾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만일에 이것을 완전히 찾아 가지고, 나중에는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선을 해치는 악당의 괴수가 있으면 이 악당의 괴수를 알아 가지고 들이쳐서 처치할 수 있는 , 이런 책임을 해주는 지도자와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거예요.
이걸 단번에 전부 다 잘라 버릴 수 있는 승리의 관을 우리 인류 앞에 갖다 줄 수 있는 이런 분이 있다 할진대, 그분은 우리 모든 인류를 구해 줄 메시아입니다. 모든 인류를 구해 줄 메시아예요. 내가 나면서부터 원통해하였던 모든 한으로부터 오늘날 내가 살면서 고통스러웠던 모든 한,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어려운 고뇌의 사정을 전부 다 일소해서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런 사명을 갖고 오신 분이 있다 하면, 하나님 대신 이 땅 위에서 만민을 대신하여 원수 사탄 마귀를 때려 굴복시킬 수있는 이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 이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그런 최고의 승리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면 그 승리자는 비로소 승리한 그 터전에서부터 개인생활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류역사를 좀먹고 인류역사를 유린하는 대원수가 남아 있으니 이 대원수를 쳐서 처단해 버리고 거기서부터 최대의 선한 하나님이면 하나님, 창조주면 창조주를 직접 중심삼아 가지고 그 창조주만을 위주한 개인적인 생활, 창조주를 위주한 가정, 창조주를 위주한 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를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우리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세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상세계가 뭔지 알겠어요? 「예」 그런 거 알겠지요? 「예」
이상세계가 무엇이냐? 선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원수를 때려부수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생활을 전부 다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만 주인이 되어서, 그분 앞에 있어서 악의 침범을 받지 않고 선만의 개인적인 생활로부터 선만의 가정, 선만의 종족 민족이 벌어지면, 민족으로부터 국가, 세계가 벌어져 그 세계와 하늘땅이 하나되어 살 수 있는 그 세계가 지상천국세계요, 이상천국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인간이 소망하는 곳이 어디냐? 바로 그곳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곳이 인간이 소망하는 곳이요, 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소망하는 곳입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곳이 인간이 찾아가는 본래의 목적지입니다. 이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나와야 되는 데 그이념을 갖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기독교로 말해서 메시아다 이거예요. 구세주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구세주.
이제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할 일이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수련받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죽은 사람이예요, 죽은 사람. 감옥에 들어가 있다구요. 여러분이 왜 죽었느냐? 양심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지요? 「예」 여러분 몸뚱이는 살아 있지요? 「예」그런데 왜 죽었어요? 죽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선이 선으로써 행사 못 하고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가치하다는 거예요. 선의 가치의 실적이 이 이념의 세계에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입장이면 죽은 거예요.
그러면 죽은 나로서 살기 위한 놀음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느냐? 이 하나를 죽여야 돼요. 이 하나를 완전히 죽여 버려야 돼요. 아직까지 고깃덩어리는 채 안 죽었거든. 여러분의 몸뚱이가 전부 다 포로가 되어 있으니 이 포로의 철장을 깨치고 나와서 무엇을 죽여야 될 것이냐? 이 포로를 만든 철장을 터뜨려 가지고 이것을 전부 다 처치해 버려야 됩니다. 그 철장이 뭐예요? 「사탄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중심삼고 철장이 뭐냐 하면 사탄의 우리인데, 사탄의 우리가 뭐냐 하면 여러분 몸뚱이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의 몸뚱이가 사탄의 울타리라구요.
보라구요. 양심은 명령하는 거예요. 얘 아무개야! 이름이 뭐인고? 「청구입니다」 청가? 「청구요, 우청구입니다」 무슨 청구? 「맑을 청(淸) 자, 아홉 구(九) 자입니다」 성은 뭐야, 성은? 「우청구예요」 우? 「예」 우청구. 우청구면 우청구로서 마음이 `야, 청구야! 너 지갑에 돈이 지금 몇백 원 있지? 길가에 불쌍한 사람 있으니 좀 줘라, 이 자식아'하고 명령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뭣인가, `난 싫어!' 하는 그런 것 있지요? 그런 뭐가 한 마리 있다 말이예요, 한 마리.
두 주인 된 사상은 평화가 없는 거예요. 둘이 끝까지 서 있으면 이 가운데 서 있는 물건은 모두 파괴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각기 찢어지는 거예요? 인간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를 주인으로 만들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죽은 자리에 서서 이제 살아나는 길, 삶의 길을 찾아서…. 제목이`삶의 길을 찾아서'인데, 삶의 길을 찾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삶의 길을 가야 할 내 자신에 있어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와 각오와 실제 행동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를 가두어 놓은 사탄의 철망이 있다 이거예요. 사탄의 철망인데 이 철망이 언제 쳐졌느냐? 여러분은 쳐진 줄 몰라요.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지만 쳐졌어요. 그것이 언제 쳐졌느냐? 6천 년 전 우리 선조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때서부터 철망은 쳐졌다 그 말이예요.
아직까지 인류가 이 철망을 뜯어내 가지고 `야! 해방이다. 인류야 해방을 노래할지어다' 할 수 있는 그날을 갖지 못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문을 터뜨리기 위해서, 이 철장을 터뜨리기 위해서 누가 여기에 가담해 들어왔느냐? 역사적인 선한 사람들이 가담하였다구요. 지금까지 선한 사람 가운데 인간의 양심의 도리를 자극시켜 가지고 이것을 개발시켜 나오는 사명을 하기 위하여 종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종교는 양심을 개발시키는 거예요. 양심에 자극을 주고 힘을 줘 가지고 양심을 개발시키는 데 있어서 공헌한 종교가 있어 가지고….
외적인 역사적인 성인과 내적인 면으로써 개발시켜 놓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신앙심을 위주로 한 역사적인 인물과 합해 가지고…. 선의 기준을 위주로 한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외적인 기준에서 선을 중심삼고 이루었던 성인들을 기준으로 하여 둘 다 몰아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성현의 역사를 배워야 돼요. 양심의 도리를 배워야 돼요. 그렇지요? 선한 사람의 본을 받아야 돼요. 양심의 변화를 가져와야 돼요. 이제는 둘이 합동작전 하는 거예요. 뭘 잡아 치우기 위해서? 고깃덩어리, 이 기반을 잡아 치우기 위해서. 이 고깃덩어리가 연결되어서 가정이 된 고깃덩어리, 사회가 된 고깃덩어리…. 여러분의 엄마 아버지도 전부 다 고깃덩어리 클럽에 들어가 있다구요. 그런 고깃덩어리 국가, 그런 고깃덩어리 세계예요.
또, 일면엔 양심적인 개인, 양심적인 부모, 양심적인 기준을 갖춘 세계, 이렇게 떡 있다구요. 그러면 양심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은 이래야 된다' 하는 것을 안다 말이예요.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안다 말이예요. 인간은 평화를 지향해야 된다는 걸 안다 말이예요. 세계는 한 형제라는 걸 양심이 알아요. 모르나요, 아나요? 조그만 소학교만 나와도 그건 안다 말이예요. 양심의 법에서는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알고 있는 이 양심을 일깨우고 들춰 가지고 여기에서 대혁명을 일으켜야 돼요, 대혁명.
양심의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울타리를 뜯어야 돼요. 누가 뜯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못 뜯어요.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왔다갔던 영웅, 혹은 지금까지 가르쳐 준 수많은 종교인들, 혹은 도주면 도주들도 못 뜯어요. 뜯으려 해도 어느누구나 못 뜯어요. 얼마나 단단히 얽어맸다구요. 이것을 터뜨려 가지고 뜯어 치워서 `인간아 나와라' 하는 그때가 끝날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어느 한 때 해방받아야 돼요. 이런 사망의 경지에서 튀쳐 나와서 세계적인 승리자가 돼야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감옥 사람이 아니어야 돼요. 그 사람은 딴 나라 사람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 사망의 세계에…. 다시 범위를 크게 해서 말하면, 그 사람은 사망의 세계에서 살지만 사망의 세계 사람이 아니라 새시대의 사람이다 이거예요. 딴 나라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역사를 두고서 하나님은 섭리해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인류 앞에 딴 나라의 세계를 구상하고, 딴 나라의 하나의 평화의 날을 세우기 위해서 구상하면서, 또 딴 나라의 하나의 이념적인 사회, 이념적인 가정, 이념적인 개인을 찾아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이 양심을 기반으로 한 종교라는 거예요. 그 종교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개재해 가지고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이 인간의 양심을 위주로 한 종교를 세워 종교를 위주로 한 하나님이 앞장 서 가지고 인간 세상 앞에 누구를 보냈느냐? `너희들이 그냥 있으면 영원히 죽겠으니 살려 줄 수 있는 길을 닦아서 너희들이 살아라'고 하늘은 인간을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보냈느냐? 하나님 앞에 하나될 수 있는 종을 보냈던 것입니다. 종을 보내 준 시대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모든 세계적인 위인 성현들은 전부 다 하늘의 종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이 종의 본을 받아가지고 종이 하는 대로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들이쳐서라도 그 종을 따라가라는 거예요. 하늘이 세워 준 종의 행동을 따라서 하늘로 가라는 것입니다.
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양심을 기반으로 한 종교의 이념으로써 하나님을 위주로 한 생활을 하고, 외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종교의 길을 대해서 희생하고 피 뿌리며 죽음의 길을 갔던 거예요. 본받게 해 가지고 끌고나왔다는 거예요.
그래, 종의 시대를 지내간 후에는, 그다음에는 아들딸을 보낸 거예요. 아들딸 보내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 역사요, 예수와 성신 역사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들딸이 하늘과 일치하고 종교와 일치된 그런 양심의 사람으로서 태어나 가지고 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 살고 있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합동작전하는 거예요, 합동작전.
여기에 인류를 끌어 넣고 믿어라, 믿어라! 내적인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 몸을 희생하고 저기 가서 붙어라' 그래서 이 몸뚱이를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될 수 있는 대신 몸이 되어라 하는 거예요. 대신 아들딸의 자리에, 나의 고깃덩어리를 부정하여 본연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교, 양심의 기준 위에서 하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절대적 기준앞에 자기 몸을 쳐서 없애 놓으니 누구 몸을 갖다 붙였느냐? 하나님의 참 아들딸 몸뚱이를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거예요, 그거.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적으로 그런 환경을 닦아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이념적인 기준의 참 아들딸로 하여금 인류를 대신해서 인류의 몸뚱이를 박차 버리고 다 잘라 버리고, 덜거덕 갖다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아들딸 만들기 위한 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종교가 무엇인지? 「예」
그러면 오늘날 우리 선조들은 어떤 투쟁을 해왔느냐? 나를 잡아죽이는 투쟁을 했습니다. 나를 잡아죽이는 투쟁을 한 사람은 또 무엇을 잡아죽이는 투쟁을 했느냐? 가정을 잡아죽이는 투쟁을 했다구요. 이놈의 가정, 가정하고 싸웠다 말이예요. 하늘 앞에 선 사람은 가정하고 싸웠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개인이 승리하여 이 몸뚱이를 박차고 내 영광과 세상의 영광을 다 박차고 나서게 될 때에는 세상의 낙오자가 되는 거예요. 세상을 등지고,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세상을 박차고 도의 길을 가는 거예요. 세상을 거부하고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고 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예」
개인을 부정하고 나서면 거기에 무엇이 나타나느냐? 가정적인 사탄이 있어요. 가정적인 몸뚱이가 있더라 이거예요. 이것이 부모 처자를 중심삼은 타락한 세계의…. 가정적인 몸뚱이가 있는데 가정적인 몸뚱이를 거부하고 나서면 사회적인 몸뚱이가 있다 이거예요. 사회적인 몸뚱이가 있는 동시에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몸뚱이가 나오고 사망의 터전의 몸뚱이가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제일 높은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이념을 품고, 세계적인 양심 기대 위에 세계적인 종교를 중심삼고 이때에 있어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와라! 오면 너희들 천국간다' 하는 거예요. 왜? 그러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투쟁하여 승리한 기준에 서고, 또 가정을 대신하여 승리한 기준에 서고, 사회 '국가' 세계를 대신하여 승리한 기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지만, 저나라에 가서는 새로운 이상적인 세계 앞에 하나님을 위주한 절대적인 양심 기준에 있어서 사망의 위협을 받지 않는 자유의 동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원이요, 천국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데 이것만으로써는 안 돼요. 이것을 지상에 실현시켜야 돼요.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뭐하는 곳이예요? 종교예요, 사회단체예요? 「종교입니다」그러면 그 종교인들이 무엇을 모시는 단체예요? 「하나님을 모시는 단체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단체.
그러면 하나님을 위주로 한 종교로서 이 종교가 세계적인 이념을 대신할수 있는 종교의 이념을 가졌느냐? 지금까지 막혀 있던 양심의 터전을 넓혀가지고 이 말씀만 들어가게 되면 순식간에 `야! 이 세계는 우리 세계로구나' 하는 이런 사상이 깊이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런 종교라야만이 세계적인 종교요, 앞으로 사망의 세계에서 비로소 넘어가게 될 때 사람들이 발로 밟고 넘어갈 수 있는 종교가 된다 말이예요.
오늘날 세상에 있는 무슨 공산주의요, 무슨 민주주의보다 더 높아야돼요. `이것까지 다 버리더라도 안 돼, 이것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가져야 돼요. 그렇다면 그 한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인류는 누구나 막론하고 전부 다 가야 됩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 온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바라기를, 부디 여러분에게 있어서 오늘 선생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양심 기준과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양심의 터전 위에 하나의 세계적인 새로운 이념을 대신할 종교의 형태를 갖춰 가지고, 거기에 있어서 아까 말한, 하나님을 모셔 승리적인 기반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생활적인 무대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생활적인 무대를 온 억천만년 계승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나!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또 선생님도 그런 길이 있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곳을 향해서 우리는 달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비로소 그런 양심의 터전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양심의 터전 위에 하나님을 정성껏 모실 수 있는 곳, 하나님이 거기에서 비로소 `오냐, 됐다 이제 비로소 너희들은 이 세계를 대표했다' 할 수 있는 종교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고 게으르지 않아! 이 세계를 대해서 나가라! 산골짜기나 도심지나 어떤 주권자의 머리 속까지 향해서 돌진해라!
또 세상만이 아니라 여기 이 땅 위의 모든 영들에게도 그렇고, 공간세계의 사탄 세계를 향하여 `이놈아! 좀 보자' 할 수 있는 길을 향하여 달려가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삶의길을 찾아가는 그런 길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겠지요? 「예」
삶의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 말한 그런 기준에 서서 비로소 세상을 전부 다 뒤바꿔 가지고, 새로운 천지의 어디든지 절대적인 말로써 참다운 선의 한 주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아들딸에게 `나는 틀림없이 됩니다, 죽어도 됩니다' 할 수 있는 이념을 소개하고, 신념을 일으키고, 그러한 심정을 북돋아 `아버지는 내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는 그런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망에서 살던 인간들이 비로소 삶의 길을 찾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길이 자연히 생겨났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가야 됩니다.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어떻게? 우리가 `아! 그것 좋다' 하려면 좋을 수 있었던 내용을 알아야 돼요. 또, 내가 `좋다' 할 때는 좋지 않았던 자기의 입장을 비교할 줄도 알아야 돼요. 삶의 기준에 있어서 내가 살았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아이구, 내가 죽었다' 하는 자리를 알아야 돼요. 배가 고파 봐야 배부르다는 것을 안다 이거예요.
그런 길이 만일에 나왔다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내가 어떤 태도로써 가야 되느냐? `그래 그것이 아직도 좋아? ' `응 좋아' 할 때 좋은 게 왜 좋으냐 이거예요. 지금까지는 왜 나빴느냐? 왜 좋았느냐 왜 나빴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모르고 살던 아담 해와를 회상해야 됩니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해와를 회상해야 된다구요.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를 회상하는 동시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그들은 지금까지 말한 그런 복잡한 세계에서 투쟁해 가지고 하나를 죽이고 가는 입장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소망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둘을 모르는 거예요. 단지 하나님만 알아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이런 입장에 서야 될 것 아니예요?
여러분들도 역시 그런 자리에 나가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야 돼요. 즉, 하나님만 알고 둘은 몰라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그래야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 해와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응? 「예」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부 다 지나가 버릴 길이다 이겁니다. 이런 길을 거쳐서 비로소 내가 섰다 할진대 나는 어떻게 되느냐? 타락하지 아니했던 아담 해와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 아담 해와는 하나님만을 알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붙들고 두려움을 몰랐던 아담 해와라구요.
여러분 자신들도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념을 알아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만을 알고, 세상 천지가 두려운 게 없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세상 천지가 언제나 두려운 게 없어야 된다구요. 아무리 수많은 원수가 있다 하더라도, 사탄이나 혹은 마귀가 있다 하더라도 두렵지않아! 이 천지 가운데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탄과 마귀가 있다 해도 그 사탄 마귀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놈들!' 하면 그들이 꼼짝 못할 그런 자신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모시고 두려움 모르는 그런 자리에 여러분들이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래야 비로소 소생할 수 있는 길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하나님만을 알고 두려워하는 것을 모르는 내가 돼야 돼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자리에서 `아이쿠…' 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서러움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아이쿠 하나님을 잃어버렸어. 하나님만을 알던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어' 하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서러움을 알아야 된다구요. 타락을 그렇게 했지요? 아담 해와가 그랬으니 아담 해와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 말이예요.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역사적인 저끄러짐을 전부 다 제거해서 길이 더럽혀진 것을 다 헤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메시아라는 분이 어떤 분이냐? 이 길을 헤치기 위해서 지금까지 대표적으로 길 닦아 놓은 분이예요. 그분이 닦아 놓은 그 길을 우리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가는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그분보다도 앞으로 뛰어가서는 안 돼요. 그 길이 열렸다면, 그분의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에 있어서는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하나님밖에 모르던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두려움을 모르는 경지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길을 찾아가 가지고 그 모든 입장을 느끼는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것을 슬퍼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되돌아가서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슬픔을 느끼는 내가 돼야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 두려움을 모르던 이 인간들이 타락함으로서 사망이 나를 덮쳤기 때문에 지긋지긋한 공포의 자리에 떨어진 나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두려움이 없었던 나와 공포에 떨어진 나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나와 하나님을 잃어버린 후의 나를 비교해 보게 될 때에 얼마나 차이가 있더냐? 얼마나 원통하고 얼마나 분하더냐? 이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느끼기 전에는 못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느껴야 되느냐? 어떻게 내가 느낄 수 있겠느냐? 그걸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느냐? 아까 말하던 거와 같이 하나의 인간이 찾아가야 할 그 길을 개척해 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어야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엔 슬픔을 몰랐는데 잃어버리고 난 후에 얼마만큼 슬퍼졌느냐?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공포를 몰랐던 것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는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느냐? 그 차이를 느껴야 됩니다. `음, 이렇게 됐구나. 그러면 그렇게 되는 데는 나 홀로 그렇게 됐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는 관심을 가져야 된다구요. `오, 이렇게 만든 것은 누가 이렇게 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했소!' 할 때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누가 그랬소? 아담 해와가 그렇게 했소?' 하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담 해와도 할 수 없이 그렇게 됐고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이렇게 만든 동기와 그 모체는 무엇이냐? 이것이 마귀다! 악한 세계의 대장 마귀예요. 알겠어요? 「예」 악한 세계의 뭐예요? 「사탄…」 대장 마귀, 일명 사탄이라구요.
그런 기쁨의 자리에서 고통을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던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타락하니 슬픔과 공포는 인간을 몰아쳐 다시는 하나님을 찾아갈 길이 없고, 다시는 평화와 행복의 길에 설 수 없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여기에서 죽었다는 거예요. 죽은 내가 됐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요, 아담 해와가 기뻐서 이렇게 했던것도 아니요, 그렇게 만든 동기의 모체가 있는데 그 모체가 뭐냐? 악의 대장 마귀요, 사탄이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마귀는 어떤 존재냐? 나에게 공포를 갖다 주고 전달해 주는 주인입니다. 양심적인 기준에서 원치 않는 모든 요소를 내게 갖다 내 앞에 쌓아 놓은것이 마귀예요. 오늘날 그 마귀는 누구냐?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한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어떤 마귀냐? 이상적인 세계에서 타락하지 않고 선한 나로서 살 수 있는 나를 죽음의 자리에 떨어지게 한 원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한 원수요, 나를 죽음의 자리에서 죽게 한 원수요, 나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전부 다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고서 타고 앉아 살을 뜯어먹고 있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이 세계를 그들이 타고 앉아 가지고 등을 벗기고, 가죽을 벗기고, 살을 베면서 지금까지 우리들을 유린하고 이용해 먹는 대원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제 알겠어요? 「예」
몰랐어요,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있는 것도 몰랐고, 아담 해와가 타락한것도 몰랐고, 원수가 있는 것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몰랐지만 결과는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 나는 여지없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지만, 해방을 맞기 위해서는 그런 길 가운데 이런 곡절의 모든 경위를 밝혀 가지고 원수가 누구였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 줘야 돼요. 알겠어요? 「예」
내가 고통스럽게 이 고통을 알고…. 이 동기는 누가 만들었느냐? 원수가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분하고 원통하고 쓰라린 모든 것의 모체인 이 원수를 때려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강한 화살을 원수의 복부를 향해 쏠 수 있는 결의와 각오가 강해질 수 있는 신념이있어야 돼요.
그 신념을 따라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종교를 세워서 가르쳐 나온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원수가 있고, 천지에도 원수가 있고, 하나님에게도 원수가 있습니다. 이 원수를 이 지구성에서부터 추방하여 전멸시켜야 합니다. 전멸시키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종교입니다. 메시아를 따라가는 사람이 완전히 승리하려면 이제 말한, 원수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나의 모든 불안의 요소를 제거시킬 수 있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원수를 대해서 밤이나 낮이나 개의치 않고 나가 투쟁할 줄 아는 용사가 돼야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역사를 거쳐왔지만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은 그 목적은 어디 있느냐? 원수와 투쟁하는 데 있습니다. 투쟁해서 뭘할 것이냐? 승리의 한 날을 가지려는 거예요. 아직까지 하나님은 승리의 한 날을 못 가졌다구요. 승리의 한 날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원수를 갚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 원수를 완전히 갚아야만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 우리들의 하나의 인생이 필시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찾아가는 길을 닦을 메시아가 온다 하더라도, 그 메시아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분한 공분의 마음에 사무쳐 가지고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죽을래야 죽을 수 없어요. 나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더라도 원수를 갚겠다는 철저한 사상을 갖기 전에는 그 메시아와 하나될 수 없습니다. 왜? 그 메시아는 지금까지 원수를 갚는 입장에서 6천 년 동안 투쟁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 대신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에 6천 년 동안 투쟁해 나왔다는 거예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알겠어요? 「예」
그런 길이 나오는 동시에 내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길을 닦으신 분이 그렇게 왔으니 그 길을 닦으신 그분을 따라서 나도 그런 심정과 그런 마음으로 원수를 갚겠다는 결의와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과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알았다 이거예요. 영원히 모시고 싶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찾은 그 기쁨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그 두려움의 자리를 우리는 피해 가지고 하나님을 다시 찾음으로 말미암아 그 기쁨을 다시 가져야 되겠다구요. 그런데 기쁨을 가지려니 내 몸뚱이가 원수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이겁니다. 이것을 끊고 벗어 나는 도리를 우리는 배워야 된다구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르쳐 주는 원수를 대해서 그냥 원수로 대할 것이 아니라 이 원수를 잡아 가지고 `이놈! 개인의 사탄이며 가정에서 우리 가정을 유린한 놈, 사회 국가를 유린한 놈, 세계를 유린한 놈' 하고 싸워야 됩니다. 영적인 동시에 실체로, 영과 육이 합한, 즉 하나는 무형의 힘으로 싸우고 하나는 유형의 실체로써 이 세계의 악을 대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이 사탄을 전부 다 제치기 위한 투사로서 나서야 됩니다. 투사로 나설 때에는 개인 전쟁시대, 가정적인 전쟁시대, 국가적인 전쟁시대, 세계적인 전쟁시대로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지금 때는 세계적인 전쟁시대에 왔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투쟁 도상에 있어서 끝날에 이것을 차 버리고 승리해 넘어갈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이 비로소 죽은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비로소 찾아갔다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인정을.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에 뭐하러 왔느냐? 그런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온거라구요.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분한 마음, 하나님을 잃어버린 슬픈 마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 추방당함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내가 느꼈던 공포, 이 모든 것을 투쟁하여 제거시키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세밀히 알아야 돼요. 여기에 대해 `이렇게 가라' 할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주어야 할 그런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가 뭘 하는 곳인지. 응? 「예」
그런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줘 가지고 여러분들이 사탄세계를 대해서 최후에 벌어지고 최후에 한 번밖에 없는 전쟁, 하나님이 가담하고, 오시는 주님이 가담하고, 선을 위해서 소망하는 전체 사람들이 가담하여 최후에 벌어지는 , 한 번밖에 없는 최후의 전쟁시대를 같이 나가 가지고 세계를 붙안고 싸울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서 원수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원수를 잡아서 하늘 앞에 굴복시키는 여러분들이 돼야 비로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거쳐가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하면, 그런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었던 여러분들은 내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사는 내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여기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만드는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사탄을 여지없이 개인으로부터 가정ㆍ사회ㆍ국가ㆍ세계에서 격멸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6천 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 모르게 싸우던 것이 오늘날 외적으로 최후에 심판하는 날이 되는 거예요. 하늘이 앞장서 가지고 싸우는 이 무대 앞에서 여러분도 하늘의 용사로서 총칼을 들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총칼은 세상 총칼이 아니예요. 참다운 말씀과 참다운 인격과 참다운 심정입니다. 즉, 하나님 대신, 오시는 주님 대신 그것을 기준삼아 가지고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그런 모든 것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을 전부 다 굴복시키고, 파괴시켜서 하늘 앞에 완전히 복귀해 드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모인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자신 있어요? 「예」 여러분들 한번 해볼래요? 「예」 한번 해볼래요? 「예」 그러려면 나를….
여러분들이 `춥다' 할 때, 양심이 `야, 내 양심이 춥다' 그래요? 양심은 추운지 몰라요. 속사람은 추운지 모른다 말이예요. 배고픈 것도 몰라요. 영인체는 먹지 않아요. 먹지 않고 천년 만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서 추운 것도 춥지 않다, 배고픈 것도 배고프지 않다, 이렇게 부정해야 됩니다. `이놈 고기야, 천대받아라' 하며 최고로 천대하라구요.
이 세계에 남아진, 이 인류를 괴롭히는 대원수는 나에게 뿌리를 딱 박고 있으니 이 뿌리를 빼기 위해서 세계 사탄이 위하는 이 몸뚱이를 부정해야 돼요. 그러니 그걸 부정할 수 있는 도리를 배워야 돼요. 부정할 수 있는 도리를 배워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을 죽여 놓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죽기는 죽었는데 아직까지 서 있잖아요? 뿌리가 자라면 뿌리를 빼 버려야 돼요. 그러므로 나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 양심이 최고의 긍정의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자의 양심 기준을 닦아 가지고 그 기준에 서서 몸뚱이를 여지없이 심판해야 됩니다. 여기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만 자기를 가누어 가지고 사탄을 대해 싸울 수 있는 무장도 짊어지지요. 그렇지요? 「예」군장 짊어질 수 있나요? 자기 하나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녀석들이 군장을 어떻게 짊어지느냐 말이예요. 인류를 위해서 어떻게 싸우느냐 말이예요. 가정을 위해서 어떻게 싸우느냐 말이예요. 세계를 위해서 어떻게 싸우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완전히 부정해야된다구요. 이런 허락한 축복의 길에 나가 새로운 내 삶의 인격을 세워 가지고 세계에 있는 사탄을 굴복시켜 총복귀시켜야 할 용사가 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기 위해 온 사람 어디 손들어 보자구요. 내리자구요.
그러한 원칙 밑에 나가면 여러분들이 복받는 거예요. 사실은 밥도 하루에 한 끼씩 먹어 봐야 된다구요. 예수님도 그랬다구요. 배가 고파 울어서 눈물이 그저 눈물 굴러 떨어져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40일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놈, 죽어봐라!' 사탄이가 `야, 너 먹어라, 먹어라' 했지만 참았다는 거예요. 그런 훈련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양심의 사람만 가는 거예요. 그래 천지에 오르락내르락 한다는 말은 금식 기도 많이 하면 영계를 통할 수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천지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상적인 감정에 사무쳐 하나님을 증거하는 아들딸 입장에서 하나님의 대신 심정을 거쳐 가지고, 거기서부터 나를 찾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공인받아 가지고, 제2의 나를 희생시켜 가지고 비로소….
그러려면 참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많이 참고, 많이 연단하고, 많은 고통을 느끼라는 겁니다. 많이 굶주리고 많이 눈물 흘리고 다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싫다 하는 것을 내가 찾아가서 다 하라는 거예요. 이런 마음 가지고 이 수련장에서 제일 가야 됩니다. 밥도 안 먹여야 할 텐데, 밥 안 먹이면 `밥도 왜 요거밖에 안 주나? 어, 김치 조각만 주네. 물도 찬 물만 주네, 찬물. 추운 겨울인데 화덕도 안 놔 주세' 그럴거라구요.
여러분들은 죽으러 왔습니다. 영인체는 추운줄 모르고…. 영인체가 춥다고 그러나? 영인체 위주하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 왔으니 불평을 허용치 않습니다. 그래 불평 안 하겠어요? 「예」 정말 불평 안 하겠어요? 「예!」 불평은 허락치 않는다구요. 추워도, 춥기는 춥지만 춥다는 말을 못 해요. 배고프지만 배고프다는 말을 못 해요. 고향에 가고싶지만 고향이 없어요. 그 고향은 어떤 고향이냐? 죽은 고향이예요. 부모가 그립지만 그 부모도 죽은 부모예요. 그렇게 돼 있단 말입니다. 그 나라 그 세계를 내가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곳에 가고 싶지 않고, 괴로워도 여기 있고 싶고, 밥을 굶더라도 여기있고 싶은 그런 느낌이 있어야만 비로소 여러분이 수련받는 자로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이런 무엇을 느낄 수 있는 심적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내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걸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지내야만 여러분들이 수련을 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약속을 하고, 한번 해보잔 말이예요. 응? 「예!」 그래서 죽었던 나로서 삶의 길을 찾아가 가지고 찾은 다음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은 내가 돼 가지고, 찾은 내가 돼야만 원수를 대해서 싸우는 거예요. 찾아가는 자는 싸울 수 없는 거예요. 찾은 자가 돼야만 사탄 대해서 싸워서 처리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한단 말이예요. 그만….
아버님, 타락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오늘날,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사망의 철장 가운데서 저희들이 죽은 자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런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 힘만으로써는 도저히 살 길을 찾을 수 없는 불쌍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철망을 터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저 세계 끝의 끝에서부터 반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세계 끝에서 지금까지 찾아와서 오늘날의 나까지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다. 길을 닦아 가지고 내가 죽어 있기 때문에 나를 찾아와서 살려주기 위하여 나를 끌고, 다시 개인으로부터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십자가의 길을 또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저희들이 얼마나 아버지 앞에 면목이없고,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사탄의 후손인가를 알았습니다.
이것을 저희들이 알았기에 이것을 대신하여 분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돼야 겠사오니, 아버지, 참으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들을 붙드신 다음에는 놓지 마시옵소서.
최후의 전쟁터를 맞이하여 아버지가 원수를 갚으라는 한 호령 앞에 저희들이 총칼을 아끼지 않고 나가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데 있어서 선봉 장군들이 되기 위해 여기 와서 수련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죽음의 자리에서 삶의 길을 찾아서 비로소 아버지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고, 원수에게 항복받을 수 있어서 아버지의 아들딸이라고 자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40일을 중심삼고 이 본부의 생활을 시작하오니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모든 행동과 모든 생활적인 면을 친히 당신이 주관하여 주옵고, 악이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여건들을 제거시키면서 당신의 품 안에 품으신 자녀로서 보호하여 주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 왔던 사람들이 한 생명이라도 다시 사탄의 제물 되어 끌려가는 자가 없게 허락하여 주옵고, 아버지 품 안에서 끝까지 남아져 승리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전체를 맡기오니 당신 것으로서 취하여 당신이 길러 주시옵시고,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이들을 수련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 맡기오니 받아 주시기를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은 싫든 좋든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고 보니 하늘과 땅이 있고 인류가 있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이 세계에는 여러 사회, 국민, 국가, 국토가 있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여러분도 복잡한 이 세계의 경계를 타파하여 모든 사람들이 서로 위하고 만나고 또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소망하는 대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은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 기쁨만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은 과거 생활을 통하여 어느 한때라도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 보고 또 보고 싶고,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 천주에 드러내어 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갖춘 적이 있습니까? 물론 가정에서 부모 형제에게나 혹은 작은 생활의 테두리 속에서 어느 누구에게 일시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기는 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런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부모까지도 여러분을 세상에 내놓고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초조해 합니다. 세상이 걱정스럽고 믿지 못할 세상이요, 공포의 세상이요, 그러면서도 무엇인지 모를 어떤 것에 얽매어 벗어날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망의 물결이 휩쓰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의 보응은 사망입니다. 인류역사는 이 사망으로부터 생명, 즉 삶의 길을 찾아 나온 역사였습니다. 이 길은 인간 스스로는 닦을 수 없는 길이기에 여기에 그 무엇이 플러스(+) 되어야 합니다.
인간조상은 타락하지 않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가졌었는데 우리는 그나마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시조는 우리들보다 심정이나 하나님을 모시는 심적 기준이 나았었는데도 타락했는데, 우리가 어찌 우리의 힘만으로 구원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의 힘에 그 무엇이 플러스 되어야 합니다.
개인이 참삶의 길을 찾으려면 가정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은 그냥 넘어갑니다. 가정이 참삶의 길을 찾으려면 종족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은 그냥 넘어갑니다. 민족이 참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국가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민족은 그냥 넘어갑니다. 국가가 참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는 그냥 넘어갑니다. 이렇듯 시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한 단계 앞서서 이끄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거기에는 분명 어떠한 존재의 힘이 작용하는데 그 존재가 누구이겠습니까? 만일 그 힘의 주인이 제일 나쁜 존재라면 인간 세상에는 구원이나 행복, 평화 등의 이상적인 명사는 아예 존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존재가 그 힘의 주인이라면, 이 세상에는 소망적인 명사만 남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을 보면 내 속에는 선과 악의 두 마음이 있고, 사회를 보더라도 선과 악의 두 조류가 있어서 항상 투쟁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곳은 어디며 삶의 곳은 어디냐? ‘사는 것’이란 악의 요소를 버리고 선의 요소의 본질에 접붙이는 것이요, ‘죽는 것’이란 선의 요소를 버리고 악의 요소의 본질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선한 사람이란 생활 속에서 악과 대결하여 싸우는 사람이요, 악한 사람이란 선과 대결하여 싸움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현이란 악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악과 대결해 이길 수 있는 대책과 길을 소개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선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을 찾는 데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그 무엇의 힘을 합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한 힘의 주인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탄의 괴수를 쳐서 멸해 버리고 승리의 권한을 우리 인간에게 주는 분이 계시다면 그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주인공이요, 메시아요, 하나님을 대신한 자로서 최고의 승리자입니다.
이 분이 악을 멸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위주로 한 선의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를 만들면 그것이 이상세계요, 지상천국입니다. 그곳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곳이요, 인간이 소망하는 곳이며, 인간의 본심이 찾아가는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 길로 가는 편과 그 반대의 길로 가는 편이 있습니다. 이 두 편이 부딪쳐 하나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두 편을 처리할 이념을 갖고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우리는 양심도 살아 있고 몸도 살아 있다고 자부하지만, 선의 인연 속에서 생활할 수 없는 사탄의 포로가 되어 있으니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철창을 부수고 나와야 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속에나 주위에는 두 주인이 있어 평화란 있을 수 없고 고통이 연속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삶의 길을 찾아가야 할 우리가 해야 할 각오와 결의는 무엇이겠는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철창은 다름 아닌 이 몸뚱이이니, 양심을 동원하여 이 철창을 헤치고 나와야 합니다. 그때가 끝날입니다.
자기가 갇혀 있는 줄도 모르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내적으로는 양심대로 살 수 있도록 종교를 세우시고, 외적으로는 선의 가르침을 주시어 이끌어 오셨습니다. 비록 사망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세대가 아닌 새 세대, 즉 평화의 세계에서 살아갈 도인이나 선열들을 세워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움직임과 함께 할 종을 세워 역사하셨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일체가 된 자녀를 보내심으로 사람들의 양심에 충격을 주어 내적 외적으로 중심과 접붙이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내적 양심을 동원하여 철창, 즉 몸뚱이를 쳐 버리게 하고 대신 그 자리에 하나님과 일체된 자녀의 몸을 접붙이게 하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도의 길이란 몸뚱이를 부정하고 나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몸뚱이를 부정하고, 가정적 몸뚱이를 부정하고, 사회적 몸뚱이까지 부정해야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선의 이념을 세우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모든 철창, 즉 몸뚱이를 다 잘라 버리고 승리하여 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회단체가 아니라 종교단체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단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이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이념은 인간 최고의 양심의 터전을 넓혀 승리적 생활 무대를 닦아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이념으로서, 세계의 모든 것을 밟고 넘을 수 있는 높고 큰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양심의 터전을 넓히고 하나님을 정성껏 모시고 살 수 있게 하는 가르침(종교)이 나와야 사람에게 삶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이념이 나와서 몸뚱이를 버리고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가는 사람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엄청난 길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느냐? 지극히 좋다 하는 것은 그것에 상대되는 것과 비교할 때 알 수 있습니다.
타락 이후 오늘까지는 없어야 할 역사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타락 전 아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아담은 하나님만을 알고 두려움이 없었으니 우리도 하나님만을 모시고 두려움을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서러움을 알아야 하고, 두려움이 없는 나와 공포 속에 있던 때의 나를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가 우리를 타락으로 이끌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 홀로 타락하였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는가?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까? 마귀 때문입니다. 악의 대장 마귀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고, 우리의 주위에 공포의 벽을 쌓아 놓은 존재, 우리를 사망의 자리로 몰아넣은 존재,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유린하고 이용한 마귀를 찾아 모든 한과 고통과 슬픔을 한 화살에 총집결시켜 그 원수 마귀의 가슴에 꽂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가 남아 있고 싸움의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싸워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공분(公憤)의 심정을 갖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해도 쉬지 않고 원수와 싸워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길을 개척하고 닦아 오신 분이 그렇게 해 나오셨으니 나도 그 길을 그렇게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심과는 무관합니다.
원수와의 인연을 끊고 원수로부터 해방받기 위하여 원수에 대한 공분의 심정을 길러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 수련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사탄과 싸워 승리할 방법과 수단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승리의 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련에 임하여 말씀을 통한 심정과 인격을 기르십시오. 그러기 위해 몸뚱이를 부정하십시오. 속 사람은 배고픔과 추위 등의 외적 조건에 변동되지 않으니, 여러분은 겉 사람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도리를 배워, 양심을 최고의 긍정적 위치에 세워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 맹세 한번 외우도록 하지요.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은 요런 것 하나씩 준비해요. 요것은 선생님의 도장인데 희귀한 도장이예요. 요런 도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축복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협회장은 갖고 있다구요.
오늘 말씀드릴 제목이 뭐냐 하면 `나의 맹세'입니다. 맹세라 이거예요. 이것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만두고, 맹세를 할 수 있나 한번 봐요.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종으로서도 맹세를 못 하고 아들딸로서도 맹세를 못 했습니다.
맹세를 하려면 심정을 통해야 돼요. 하나님 앞에 맹세한 사람들은 심정이 통하는 동시에 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맹세는 뭐냐 하면 참아들딸이 된다는 의미의 맹세입니다. 그러면 다 일어서라구요. 일어서 가지고 한번 외워 보자구요. 여러분 각자가 맹세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까 뜻 앞에 있어서 주체가 되겠다고 다 약속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맹세하는 거예요.
1. 천주의 중심존재로서 아버님의 뜻과 맡겨 주신 책임을 완수하며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선의 자녀가 되어 창조이상세계에서 영원히 아버님을 시봉하는 참효자ㆍ효녀가 되기를 나는 맹세하나이다.
2. 아버님께서는 6천 년간 제물 된 십자가 노정을 참으시며 죽은 나를 참자녀로 살리시기 위하여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주시어 일체가 되게하심으로써 천주의 상속권을 주시려는 거룩한 뜻을 나는 완전히 상속받을 것을 맹세하나이다.
3. 원수에게 잃어버린 자녀와 천주를 복귀하기 위하여 아버님께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시고 종의 몸을 쓰시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시며 나 대신 역사노정을 두시고 원수사탄을 무찌르시던 무기를 지니고 그들을 완전히 심판할 때까지 아버님의 본을 받아 나는 참아들딸이 되어 적진을 향하여 용진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4. 아버님께서는 평화와 행복과 자유와 이상의 원천이시며 아버님을 모시려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천주는 본성의 인간을 통하여서만이 심정일체 이상세계를 완결함으로 나는 참사람이 되어 심정의 세계에서 아버님의 대신자가 됨으로써 피조세계에 평화와 행복과 자유와 이상을 옮겨 주고 아버님께 기쁨과 만족을 돌려드리는 참아들딸이 될 것을 맹세하나이다.
5.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주권을 자랑하고 하나의 백성을 자랑하고 하나의 국토를 자랑하고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자랑하고 하나의 부모를 중심한 자녀됨을 자랑하고 하나의 전통을 이어받을 혈족임을 자랑하고 하나의 심정세계를 이룩하는 역군임을 자랑하고 이를 실현시킬 것을 나는 맹세하나이다.
이러한 의무와 사명을 성취하는 데 책임을 지고 생명을 바쳐 싸울 것을 나는 선서하며 맹세하나이다. 선서하며 맹세하나이다. 선서하며 맹세하나이다. (이상 선생님이 선창하시고 식구들이 따라서 함)
그만 앉자구요. 여러분들이 이런 맹세를 해서 그런 사람들이 될 때까지 모든 정열을 다해 싸워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강원도는 ? 「8명입니다」 8명. 여기 다시 손들어 보자구요. 다음에 충북! 「5명입니다」 충남! 「10명입니다」 그다음에 전북! 「8명입니다」 전남! 「6명입니다」 6명. 그다음에 경북! 「31명입니다」 경남! 「차가 7시에 도착합니다」 경남은 하나도 없나? 응? 「차가 아직 안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은 손들어 보자구요. 몇 명인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하나, 열 둘, 열셋, 열 넷, 열 다섯, 열 여섯, 열 일곱, 열 여덟, 열 아홉, 스물,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셋. 23명. 내려요.
그리고 저녁 먹었어요? 「예」 보리밥을 먹었어요, 무슨 밥 먹었어요? 「이밥 먹었습니다」 왜, 보리밥 주지. 내일부터 이제 꽁보리밥이예요. 반찬은 하나, 소금국. 그 외의 것을 받는 것은 대접받는 거예요. (웃음) 알겠어요? 「예」
선생님도 그런 생활을 했단 말이예요. 배고플 때에는 질이 문제가 아니고 양이 문제예요. 그래, 보리밥은 많이 주게 할 거예요, 보리밥은. 밥은 한 끼면 좋겠어요, 두 끼면 좋겠어요? 의논해서 하자구요. (웃음) 여러분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두끼면 좋겠어요, 한 끼면 좋겠어요, 세 끼면 좋겠어요? 「두 끼면 좋겠습니다」 몇 끼? 「두 끼요」
밥 먹는 시간이 참 아까워요. (웃음) 밥만 안 먹으면…. 여러분들 금식해 봐요, 얼마나 시간이 많은지. 한 끼? 대답을 안 하네. (웃음) 두 끼? 「예」 세 끼는 싫어? 「좋습니다」 응? 귀찮아요. (웃음) 그럼 어떻게? 두 끼로 해? 「예」 두 끼로 해? 「예!」 밥은 두 끼로 하는 거예요. (웃음) 밥은 두 끼로 하는 데 밥은 보리밥에 반찬은 소금 하나, 또 그다음에 물도 두 그릇이 아니예요. 물도 한 그릇이예요. (웃음) 삼위기대라구요. 삼위기대. (웃음) 밥, 소금, 뭐? 「물」 그리고 여러분 자신까지 하면 사위기대예요. 사위기대 복귀예요. 그렇지요? 「예」
창조원리로 가르쳐 준 것이 사위기대 복귀예요. 4수를 복귀해야 하니만큼 내 실체, 밥 한 그릇, 소금 하나, 물이예요. 요것이 4위기대 복귀예요. 그 이외의 것은 자녀 거예요, 자녀. 그건 아들딸 주는 거예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말라구요.
이번에는 14회인 만큼 이때가 원리적인 숫자에 있어서 제일 귀중한 때입니다. 단단히 그저, 내가 훈련 시키면 그저, 이 주먹으로 그저 맛을 보여야 할 이런 중요한 때예요. 요것이 뭐냐 하면, 야곱의 21년노정이 뭐냐 하면 사람 복귀해 가지고 만물복귀 시대로 넘아가는 시대예요. 그러므로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서 가지고 그 숫자를 다 맞춰 나온 거예요. 그 시대 그 수 가운데서 중요한 연대가 연결되어 나온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4수는 가장 좋은 수인 동시에 가장 치열한 수입니다. 투쟁해야 할 수예요. 가장 연단을 많이 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14회만은 단단히 훈련시킬 테니 각오하라구. 응? 「예」
요전에 훈련을 시켰는데 잘못시켰어요. 못했다 말이예요. 그런 만큼 이번에는 잘 시켜요. 그리고 주의해 둬야 하는데 일단 여기와서는 출입을 자유로 못 해요. 그리고 여기의 상점 같은 데 대가리를 들이 밀어 가지고 뭘 사 먹는 걸 허락치 않아요.
또 이 동네의 주위는 전부 다 우리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지요? 「예」 거기 가서 뭐 얼굴 통하는 사람들은 스파이예요. 안그래요? 딴 나라 사람이라구요. 딴 나라 사람하고 정을 통하는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한마디 잘못하다가 사탄한데 걸려 드는 거예요. `아! 저 놈빨갱이로구나' 하는 거예요.
이남에서는 자기 정체를 드러내면 빨갱이라고 해서 대번에 문제가 생기지요? 그런 데에 가 가지고 자기 마음에 있는 얘기도 하지 말고 우리가 훈련받고 수련받는 여기의 말도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야 될것 아니예요?
우리가 뭘하러 왔어요? 앞으로 하늘이 원치 않는 이런 사람들은 전부 다 다시 정비해 가지고, 말을 안 들으면 투쟁해서라도 그 사람들을 다시 하늘앞에 복귀시키기 위해서 왔는데, 그렇게 되기 전에 쓸데없이 이런 얘기를 하지 말라구요.
도를 닦고 수련받는 일들에 대해 다 봉하라구요. 입도 봉하고 눈도 봉하고 귀도 봉하고 다 봉하란 말이예요. 먹는 데는 보리밥ㆍ소금ㆍ물밖에 없고, 보는 데는 칠판밖에 보는 게 없고, 듣는 데는 강사가 하는 말밖에 듣는 게 없어요. 알겠나? 「예」
여러분들 다 노트 가져왔지요? 「예」 노트 사겠으면 말이예요, 노트 사겠으면 여기 대표 누가 가 가지고 누구를 대표로 세워 가지고 시내에 가서 사 오도록 하고 개인적으로 출입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말이예요. 만일에 상점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에 불러다가 선생님이 처단 할 거예요. 갈기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만일에 그런 녀석들이 있으면 이 훈련부장에서부터, 그다음에 지도위원들을 기합 줘 버릴 거예요, 여러분들 앞에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형님들이 기합받지 않게 하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대신 단체 행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반이면 반, 반원이 반장 몰래 출입해서는 안 되겠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변소를 갔다 오더라도 변소 갔다 와서 보고하고 그래야 돼요. 어느 때에 사탄이가 여러분의 꼭대기를 차 가지고 갈 지 알아요? 여러분들 따라만 주면…. 전라남도서 왔으면 전라남도 사탄이 다 따라온다 이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자유가 없어요. 약속했지요? 「예」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수련받고 간 다음에 본부에서나 이 주위에서나 이번 수련생은 어떻고 어떻다 하는 이런 말을 남기면 안 된다구요. 이번만은, 14회만은 제14회의 전통을 세워야 되겠어요.
야곱에게 있어 14년이라는 기간은 중요한 것입니다. 자리잡고 넘어가는 때인데 이때 시시한 말을 남기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련회만은 강력히 해야 되겠어요. 삼위기대를 모아 가지고…. 지금 삼위기대를 묶자구요. 거 종이 가지고 오라구요. 여러분들이 반에 속해있지만 삼위기대는 달라요. 여자 몇 명? 「20명입니다」 또 남자는 ? 「사람들이 뒤에 더 많이 왔습니다」 뭐?
8의 1, 8의 2, 8의 3, 8의…. 아, 요건 아니구만. 9의 1, 여기서 기대. 여자는 뭘로 할까? 「삼육 십팔 (3×6=18)이니까 나머니 두사람은…」 1의 1, 요대로 그냥 둘까? 그것은 따로 하지. 따로 하는 거야. `6의 1, 6의 2, 6의 3, 다지요? 삼육 십팔(3×6=18) 다지요? 몇? 몇 명? 「열 일곱 명입니다」 한 명이 남는 구나. (이후는 녹음 상태 불량으로 수록하지 못함)
여러분들이 모두 지방에서 본부에 올라와 가지고 40일 수련회를 시작하여 이제 끝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수련생 여러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가기 전에 뜻을 몰랐던 과거와 뜻을 안 지금의 자신이 어떤 차이를 가진 환경에 머무르고있는 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여기에 올 때의 여러분과 이제 돌아갈 때의 여러분을 이런 입장에서 바라보게 될 때, 이제 하늘편에 서서 세상을 대신하여 혹은 과거의 내 자신을 대신하여 과연 설 수 있는 내가 되어있느냐? 과거에 믿을 수 없던 내 자신을 돌이켜 믿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그리고 과거에 모든 환경에서 보여 줄 수 없었던 내 자신이 세상이나 혹은 하늘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여러분 자신은 이제 이러한 면에서 당당코 보여 줄 수 있다는 신념이 서 있어야 됩니다. 그걸 비교해 볼 때, 올 때의 여러분과 갈 때의 여러분과는 그 차이가 큽니다. 그것을 여러분 자신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기준 밑에서, 그 깨닫는 범위 밑에서, 혹은 깨닫는 그 도수 밑에서 여러분들의 갈 길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다시 돌아가서…. 여기 오기 전에 여러분들은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불쌍한 자였던 것을 여러분들은 몰랐습니다. 그 자신에 있어서 내 생애를 맡기고 싶고, 그 자신에 있어서 생활 가운데 남이 믿지 못하는 것을 믿고 싶고, 그 생활 가운데서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고, 또 그 생활 가운데서도 나를 통하여 남 앞에 무엇을 주고 싶었던 이런 마음을 갖고 산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뜻을 모를 때의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내가 믿고 싶었던 그 믿음 혹은 자랑하고 싶고 무엇을 남겨 주고 싶고 보여 주고 싶었던 이런 생각은 가졌을지라도 과연 그것을 달성할 수 있었느냐?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은 지금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거예요. 과거에 살았던 그 세상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세상이었어요. 내가 아무리 좋다고,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그 믿음도 때와 환경에 따라서 변해 가는 것입니다. 내가 보여 주고 싶고 내가 자랑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도 역시 때와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시대가 흐름에 따라 영원한 어떤 생명적인 인연을 남겨 주고 가는 것이 못 되기 때문에 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더 배우고 무엇을 욕망하여 거기에 정성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내 자체에 영원한 어떤 크나큰 가치적인 문제를 걸어 놓고 기쁨을 내 마음으로부터 생활환경까지 나타낼 수 있는 그 무엇으로서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불쌍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은 내가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가야 된다는 것을 쉴 새 없이 내게 명령하는 거예요. 여기보다 조금 더 좋은 곳, 더 좋은 곳…. 부락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좋다는 그 기준을 넘어서서 면(面)이면 면 가운데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마음은 명령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면 가운데 좋을 수 있는 그런 기준에 섰다 할지라도 마음은 그 기준을 넘어선 사람을 대신해야겠다고 하는 거예요.
혹은 군을 통하든가 또 군에서 역시 그런 입장에 섰다고 할지라도 나라를 대신하든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신하여 …. 자꾸 커지는 거예요. 무한히 커지는 거예요. 그러한 마음이 내 자신을 자극하고, 내 생활에 있어서 내 스스로 확정적인 사실을 모르더라도 암암리에 방향을 제시하여 나에게 솟구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거예요. 이것을 거부할 수 없고,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자신인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나, 좋을 수 있는 나, 혹은 천상천하에 빛낼 수 있는 나를 고대하는 마음의 인연을 갖고 있는 이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나타난 어느 스승보다도 더 귀한 스승입니다. 여러분들이 상대적으로 믿고 상대적으로 무엇을 요구하고, 즉 나 외에 그 어떤 존재를 통하여 무엇을 바라보고 거기서 찾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훈계하는 그 양심적인 존재가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는 무엇을 가지고 가야 되느냐? 올때의 나와 갈 때의 나의 차이를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 뜻도 좋다 이거예요. 이념도 좋다 이거예요. 물론 그런 기준에 서야 되겠지만 그 뜻과 그 이념이 내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마음 깊이 양심의 터전위에 이 뜻과 그 소망의 실현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그런 기준을 세우지 않는 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살아 명령하는 곳에는 뜻이 살아 있는 것이요, 이념이 살아 있는 거예요. 과거에는 여러분들이 그런 양심의 작용, 내가 참다운 모습의 존재로 태어나 그런 욕망 명령을 들을 줄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어떤 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쉬지 않고 나에게 명령하고 있는지를 몰랐어요.
그렇지만 이제 여러분들이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차이점을 놓고 그것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으로 채우느냐? 양심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이 양심을 중심삼고 올바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친구 삼을 수 있는 거예요. 이 양심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양심을 통하여 앞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만일 이 양심을 통하여 천지를 사랑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된다 할진댄 하나님을 움직이는 입장에 내가 설 수 있는 거예요. 즉 하나님도 양심적인 그 기준에 있어서는 친구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나요, 엄청난 그런 복된 터전이 우리 양심의 터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양심의 터전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얼마나 살아 봤느냐? 그걸 생각하게 될 때에 과거에 이 양심을 중심삼고 살았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있어서 내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하였던 과거의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던고? 양심에서 이탈하고, 이런 크나큰 선의 이념을 향하여 나를 끌어 주는 하나의 지도자 중의 지도자요, 친구와 같은 양심 앞에 나는 반역자인 것을 회상하게 됩니다. 이런 과거의 나를 여기서 무자비하게 충고하고 나선다는 이런 확고한 신념이 이제 떠나는 여러분 자신들 앞에 필요하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 차이를 발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의 나와 현격한 차이를 여기서 조성하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가는 세상은 하늘나라가 아니예요. 아무리 결심했더라도 여기서 측정한 이런 양심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과거의 나와 현격한 차이를 가졌다면 내가 이제 찾아가는 길은 천국생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잘못하면 `이 자식' 하며 주먹질하고 혹은 기합을 주는 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니예요. 사방이 뻥 뚫려 있어요. 동으로도 갈 수있고, 서로도 갈 수 있고, 남으로도 갈 수 있고, 북으로도 갈 수 있고, 동서남북 사방이 터져 있는 거예요. 자유의 문이 열려진 것과 같은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열려져 있는 환경이 내 자신을 보호해 주고, 내 양심에 친구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이런 환경이 되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열려져 있는 문마다 나를 몰아서 때려 잡기 위한 원수의 얼굴이 놓여 있는 거예요. 갈 길을 잘 닦아 놓은 것 같지만 지나가다 보면 걸려 죽는 거예요.
여러분들, 농촌에서는 그런 것을 많이 보지요? 오리를 잡으려면…. 오리 철인 요즈음 오리들이 올 거예요. 이 철에는 오리를 잡기 위해서 오리가 좋아하는 먹이를 미끼로 갖다 놓는 거예요. 길을 잘 닦아 놓는 거예요.
그런 식입니다. 보이는 환경이 자연 이상의 것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우리가 대하고 있는 현실 이상의 것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게 움직이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올가미에 치여 내 자신이 낚기움을 당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 양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양심은 무엇인가?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여기에는 나와의 인연이 두터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모든 것이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양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양심을 부르짖고 나서서 참다운 무엇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의 복잡한 인연이…. 전체가 양심과 화동할 수 있는 이런 내적인 조건이 못 되고, 양심에 고충을 가져다 주고 양심을 파괴시키는 이런 요소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을 피하고 싶은 것이 본연의 마음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이냐? 믿을 수 있고, 내가 진정히 가르쳐 줄 수 있고, 진정히 생활할 수 있는 이런 입장의 것을 찾아가라고 양심은 뒤에서 공작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알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이런 양심을 가지고 우리들이 지금까지 허덕여 왔지만 우리 양심이 고대하고 있던 참다운, 믿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았느냐? 여러분 자신이 대답해 보라구요. 지금까지 내 생활 배후에 있어서 내 양심을 재촉하여 내가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무엇을 찾아 나가기를 수만 번 명령했지만 찾지 못했던 과거의 내 자신이 이제 양심이라는 그런 존재를 세워 놓고 바라보게 될 때, 이제 양심이 소망으로서 찾고 있는, 믿을 수있는 그 무엇을 찾았느냐? 찾았어요? 「예」 그렇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양심이 들을수록 좋고, 배우면 배울수록 좋을 수 있는 그런 배움의 길을 찾는 거예요. 이것이 내가 배우고 싶던 최고의 것이다, 이것을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이것을 모르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렵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걸 배워봤나요? 그거 배워 보지 못 했으면 배워 봐야 됩니다.
이런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내 양심이 소원하는 생활이예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됩니다. 또 이렇게 한번 싸워 보고 싶은 것입니다. 싸워 볼 수 있는 이런 환경을 책임지고….
내가 믿고 내가 배울 수 있고, 내가 같이 살 수 있고, 나와 더불어 같이 싸울 수 있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그런 소망의 중심을 가졌다 할진대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예요. 외로운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혼자 있더라도 외로운 사람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 찾았나요? 「예」 무엇이야? 뭐 14회 수련생들, 각 도에서 온 사람들을 내가 만나 봤다구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생을 생각할 때에, 부모를 모시고 살지만 부모를 믿지 못했어요. 형제와 더불어 같이 살지만 형제를 믿지 못했어요. 이제 여러분이 양심으로 고대하던 믿을 수 있는 분, 진정으로 나를 가르쳐 줄 수있는 분, 진정으로 나와 영원을 걸어 놓고 같이 살 수 있는 분, 진정으로 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천하가 기뻐할 수 있는 크나큰 대이념을 향하여 같이 싸울 수 있는 분, 그런 분과 하나된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분이 누구냐? 그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예요. 역사적인 인물이나 어떤 도주들이 아니예요. 물론 도주와 부합하는 것도 있겠지만 제일 우주의 존재중심인 하나님이 그러한 분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싶었고 믿고 싶었던 최고의 중심 존재가 하나님이요, 여러분이 배우고 싶었던 최고의 중심존재가 하나님이요, 여러분이 같이 선의 이념을 세우기 위하여 악한 것을 심판하고 싶은 그런 최고의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 하나님을 우리는 발견했다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의 양심이라는 것이 이러한것 을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믿을 수 있고, 나 같은 자에게 진정 가르쳐 줄 수 있고, 나와 같이 살 수있고, 나와 같이 선한 목적을 위하여 영원히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이런 양심을 중심삼고 인연 맺었다는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악이 침범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이 하늘을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만사의 해결의 중심이 결정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하나님을 발견했는데 여러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그분과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는 거예요. 이 신념…. 알겠어요? 「예」 아버지요 자식이라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통하여 명령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명령하게 될 때 그 마음의 명령은 아버지를 통하여 자식에게 하는 명령과 같은 거예요.
또 몸과 마음의 관계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마음이 아버지로계시면 몸뚱이는 아들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 마음과 몸은 부자(父子) 같이 사는 집이예요. 알겠어요? 「예」 아버지 입장인 그 양심 앞에 아들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 몸뚱이예요. 이 인연을 잊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디 가든지 그걸 잊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내가 믿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내가 살고 싶고 선을 위하여 싸우는 것도 아버지와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아버지요, 내 마음의 중심이 아버지이니 그 아버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은 내 앞에 아버지대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이념권 내에 있어서 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명령을 받고 있으니 아들로서 명령에 순응하는 것이 천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요것만 잘하면 여러분들은 이제 누가 빼앗아 갈자가 없다고 선생님이 단언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양심을 세워 가지고 양심을 지켜 아버지의 집을 만들어 아버지와 일치된 양심이 나를 자식과 같이 사랑한다면 어디 가든지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된다는 거예요. 마음이 고대하는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과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넘어가서는 양심의 심정이 있는 거예요. 그 심정은 양심만이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그 심정은 우리 몸뚱이도 좋아하고 내 환경에 머무는 천지만물 즉, 어떤 미물까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심정이 남아져야 됩니다. 그것은 절대적 요인 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주의가 다 없어지더라도, 오늘날 현하의 그 문명체계의 모든 것이 다 없어지더라도, 아무리 좋다는 사회 체제의 그런 모든 제도가 다 없어지더라도, 오늘날 우리 혹은 우리 개체 한 자신이 없어지더라도 남아져야 할 것은 무엇이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소원이 남아져야 됩니다. 소망이 남아져야 돼요. 천지에 소망을 두신 그 하나님의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사정만은 남아져야 됩니다.
소원과 사정이 통할 수 있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기쁨의 하나님으로서 즐거이 살 수 있는 심정만이 남아져야 됩니다. 즉 3대 요건이 영원히 남아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과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양심과 내가 하나되고, 하나님과 하나된 그 양심이 하나님 대신 내 몸을 통하여 아버지 입장에 서는 거예요. 그래서 나에게 명령하면 내 몸뚱이는 자식의 입장에서 명령을 받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나가 싸우는 데에는 양심을 통해 보더라도 소원이 있고, 몸뚱이를 통해 보더라도 소원이 있고, 하나님을 통해 보더라도 소원이 있나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물건도 목적을 중심삼은 소망을 갖지 않은 게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다르고, 우리양심의 소원이 다르고, 내 생활의 소원이 다르고, 이 세상의 소원이 다르고, 만물의 소원이 다르지만 그것은 통일의 이념, 즉 창조주의 하나의 감정을 통하여 지음받은 피조물의 인연을 가졌다는 거예요.
이 세계가 하나의 우주권 내에 존재하여 이런 인연을 통하여 서로 엉클어진 걸 바라보게 될 때, 그것은 모르지만서도, 그 자신들은 모르지만서도 그 소원하는 목적은 하늘의 인연 가운데 전부 맺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과 내 양심의 소원과 내 몸뚱이의 소원과 내 생활이나 세계나 전부 다 그 소원이 일치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일치된 거기서 내 양심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소원도 성취되는 거예요. 내 양심이 기뻐하게 될 때는 몸뚱이의 소원도 달성하는 거예요. 모든 존재하는 천하 만물의 소원성취가 거기서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남아져야 할 것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의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여기에서 천하 만민을 중심삼고 사정을 통하고 싶고, 사정뿐만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그런 어떤 크나큰 창조의 이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히 남아져야 할 것은, 우리들은 가더라도 남겨 놓고 가야 할 것은 무엇? 소원. 남겨 놓고 가야 할 것은 무엇? 사정. 남겨 놓고 가야 할 것은 무엇? 심정. 이 세 가지는 영원히 있어야 됩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우리가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하나님, 당신의 소원이 성취되었사옵니까? '하면 `아니야' ,`당신의 사정이 통할 수 있게 되었사옵니까? '하면 `아니야' ,`당신의 심정을 두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까?'하면 `아니야' 한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하나님이 그런 분이예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소원성취하는 데 있어서 자기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이런 환경도 못 가졌고, 자기 심정을 통하여 참 생활적인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이런 입장에 못 서 있으니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불쌍한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말이예요.
아직까지 복귀섭리라는 , 구원섭리라는 한스러운 역사적인 인연을 남긴 채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마음대로 처리해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안고 나오니 이 얼마나 불쌍해요? 내 양심보다 내 몸뚱이보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소원, 사정, 심정이라는 그런 내용의 여건이 남아져야 할 것인데, 오늘날 양심의 소원성취가 이루어졌느냐? 아닙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원리라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원리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거예요. 이 원리를 배운 여러분들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소원을….
양심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이냐? 이 몸뚱이가, 혹은 천하 만민이 고대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정을 통하는 것, 전부가 그거예요.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최후의 답은 그거예요.
그러면 천하, 혹은 모든 존재세계 앞에 제일 귀한 사람이 누구냐?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이걸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사정과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지닐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 이상 귀한 것이 없어요. 이러한 사람을 놓고 성경에 말하기를 한 생명이 우주보다도 더 크다고 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은 위대한 거예요. 아무리 과거 역사가 훌륭하더라도 그 역사와 주고 바꿀 수 없어요. 이 천하에 나타난 모든 주의 사상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 주의 사상 전체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거예요. 그 주의와 사상이 하나님의 소원을 위하고,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내용이 못 되었으니 그것을 주고도 안 바꾼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이 찾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늘이 찾고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며, 하늘이 찾고자 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냐? 하늘이 찾고 있는 이 천하는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통할 수 있는 가정, 그런 가정을 통할 수 있는 사회, 국가, 세계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는 것이 인생으로서 가야 할 길이요, 하나님으로서 해야 할 놀음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모든 세계가 지금 어떻게 되었느냐? 타락되었다는 거예요.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런 세계가 못 된 거예요. 그렇게 되지 못한 세계를 딱 잘라 버리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세계로 판도를 돌려야 됩니다. 돌아가는 데는 이렇게 갔던 방향을 이렇게 돌려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계셔 왔느냐? 천하를 위해서 계신거예요. 천하를 위해서 계셔 온 그분이 이러한 천하를 돌이키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느냐 이거예요.
능력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예요. 조건에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법을 세워 놓았으면 법도적인 그 조건에 걸려서는 안 된다 그 말이예요.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대통령이 제정한 법이면 그 법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정상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대통령이지 그렇지 못하면 대통령도 걸려 드는 거예요. 대번에 백성들이 `네가 뭐야 이놈아!' 해도 꼼짝 못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도 그와 마찬가지로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다시 고쳐 놓기 위해서는 거꾸로 돌아갈 때 맺힌 모든 것을 언제든지 풀어 가지고 돌이킬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6천 년 동안 거꾸로 돌아 시대 시대마다 걸린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리는 그 순간적인 힘에는, 6천 년 거꾸로 돌아간 것과 비례해 볼 때 그 이상의 힘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예요. 불쌍한 하나님이지요? 「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보니 믿어야 할 분이요, 나를 진정으로 가르쳐 줘서 영원히 같이 살고 영원히 사랑의 동산에서 살게 하려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을지니, 그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냐? 이러한 소망과 이러한 사정과 이러한 심정의 곡절이 사무쳐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나오셨느냐?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이라는 이 두 글자를 빼놓고 살아 본 적이 없다! 근심하고 사시는 , 근심을 품고 사시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뜻을 품은 사나이라 할진대는 , 뜻을 바라보는 그런 소망을 가졌다 할진대는 그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까지는 근심을 품고 살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통일의 용사 여러분은 남한 각지를 향하여 행진하여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여기 스승도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도 가야 되고, 스승도 가야 되고, 여러분도 가야 되는 그 운명의 내용은 무엇이냐? 이 근심스러운 것을 해원하기 위하여 가는 거예요. 이 근심의 내용을 해원하게 될 때에 이 근심의 내용은 하나님의 근심입니다. 그 하나님의 근심이 우리 인간의 양심에 전달되어 양심이 근심하는 거예요. 양심이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몸뚱이가 그리워할 수 있는 그 양심의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양심의 기준을 대하는 이 몸뚱이도 근심하는 몸뚱이가 되지 않을 수 없어요. 이것이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국가, 세계까지 전개되어 있으니, 이런 근심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자신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예요.
어떤 사람이 애국자냐? 그 나라를 누구보다도 근심하고 나서는 사람이라야 애국자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냐? 잘먹고 잘살면, 하나님은 고생하더라도 나는 잘먹고 잘살아야 된다는 그런 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근심을 놓지 못하고, 이걸 붙들고 싸우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어떤 주의나 사상을 두고 볼 때, 그 주의나 사상의 앞날에 있어서 주도할 수 있는 책임자는 어떤 사람이냐? 그 주의나 사상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근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앞으로의 후손은 어떤 후손일 것이냐? 이 민족에 대해 누구보다도 근심할 수 있는 후손을 여러분들이 낳으면 여러분의 후손이 이 민족을 지배할 것입니다.
이 세계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천지를 어떤 이념적인 관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 관에 입각하여 누구보다도 근심할 수 있는 입장에서 그 세계를 내 것으로 처리하겠다는 사람을 많이 가진 나라는 망하지 않아요! 일시에 주권에 깨어지고 일시에 그 국토가 유린당하더라도 그 사상을 지닌 민족이 살아 있는 그 나라는 역사를 뒤집어 박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때는 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이런 신념 밑에서 이 민족을 위하여 제1보를 내디뎌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내일은 그런 곳을 향하여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여러분 자신인 것을 절감할진대는, 나는 어떤 입장에서 내 자신을 끌고 갈 것이냐? 이런 엄숙한 과제를 내가 알고 사명적인 분담 앞에 있어서 맹세한 자신인 것을 확신하면 확신할수록 이제 `나는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면서 천하를 걸어 놓고 근심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안되면 내후손을 그런 입장에서 교육하고 그런 입장에서 가르쳐 주고, 1대에서 안 되면 2대 3대, 10대에 걸쳐 이것을 유언으로 남겨 줘야겠습니다. 이것은 선조로부터 전해 온 유언이니 이 유언을 성취하라고 후세에까지 남기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신념을 남겨 줄 수 있는, 그것을 과연 그렇다 할 수 있는, 공인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의 후손은 망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세계는 여러분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근심하고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이예요. 그 하나님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붙안고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근심할 줄 아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만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제 고향에 돌아가야 됩니다. 고향에 돌아가면 하나님이 `내 몸뚱이가 안 되었으면 몸뚱이를 위해 근심할 것을 생각하라, 내 마음의 꼴이 안 되었으면 몸뚱이를 위해 근심할 것을 생각하라, 내 생활하는데 있어 그것이 안 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을 생각하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아버지여, 나를 대해 근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아버지 대신 이제부터 이 마을을 대해 근심하겠습니다. 이 마을을 대해 근심하겠습니다' 이래야합니다. 알겠어요? 「예」
내가 과거에 올 때, 40일 전에 올 때 나는 근심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이제부터 사는 내 자신은 다르다! 이런 신념을 갖고 그 부락에 가라는 거예요. '여기에도 하나님의 소원이 있지, 여기에도 하나님의 사정이 통해야 할 텐데, 여기에도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야 될 텐데…. 아버지께서 우리 마을을 찾아오게 될 때, 우리 마을을 소원의 한 마을로서 삼으시고 우리 군 가운데서 내가 간 그곳에는 하나님이 소원의 중심으로 찾아와 하나님의 사정을 느끼고 갈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깃들게 하고, 편안히 하루밤을 지내고 쉬고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이런 이념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근심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냐? 여러분을 어떻게 해야 하님의 아들딸을 만들 것이냐? 이게 근심이예요. 이 죄악 가운데에서 살고 있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끌어다가 어떻게 해야 이런 크나큰 창조주의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로 만들 것인고? 이게 근심이 아니냐 이거예요. 근심이라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하고, 그다음에 내 가정을 어떻게 하고, 내 부락과 내 면과 내 군과 내 도와 내 나라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저 하나님의 근심 무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무엇을 잊어서는 안 돼요? 「근심」
오늘 여러분에게 애기하는 선생님도 40평생 지내 왔지만 한 시간도 이것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10년을 지내고 또 20년을 지내 오는 데 수많은 원수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천도와 더불어 근심하는 사람을 하늘이 요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다시 재건하여야 할 이런 입장에 있는 이 나라를 바라보게 될 때, 이 나라를 위하여 근심할 수 있는 사람, 지도자 이상 근심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편에서 근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어떤 세계적인 지도자보다도 하나님의 근심 앞에 영원히 이 세계를 위해 참되게 근심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가정을 위하여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은 가정이 필요로 하는 것이요, 동네를 위하여 참 되게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은 동네가 필요로 하는 거예요. 거기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그런 환경에 있어서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근심하라는 것은 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어떻게 하면 더 선한 것으로…. 근심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이 동기가 되어 분하고 원통한 것을 스스로 자극받아 눈물도 흘려야 됩니다.
'아버지, 이렇게 분한데 살겠습니까? 지금은 이러한 땅이지만 몇 해 후에는' 내가 몇 해 후에는 소원하시던 땅으로서의 해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몇 해 후에는 하늘로서의 해원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내 개인을 염려하던 것을 덜어드리고 내 가정을 통하여 염려하던 것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 민족을 통하여 염려하는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드리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이 배우지 못하고, 갖지 못하고, 아무리 헐벗고 있더라도 망하는 무리가 안 됩니다. 여기서부터 분함을 허락받아 가지고 재기하여 나설 수 있는 이런 무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우리들이 보는 눈은 전부 다 달라요. 느낌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달라요. 이런 것을 믿고, 그래 가지고 풀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없느냐? 이 근심을 풀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고 할때는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가는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없게 될 때는 무슨 고생을 하더라도 이어 놓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이냐? 이것을 풀기 위하여 하늘도 지금까지 수고했으니 나도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아버지의 근심을 대신하여 분한 것을 전부 다 풀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과 이러한 사명을 땅 위의 인간들이 해주기를 하나님은 지금까지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통일의 용사들은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모양이 어떻든 다 필요 없습니다. 그건 제2차, 제3차, 제4 차, 제5차, 제6차의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벌거벗을망정 하나님을 대신하여 근심하며 `당신이여 참으시옵소서!' 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아들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로해 드리고 그다음에는 실천하는 거예요. 분함을 풀기 위한 실천이예요. 거기서부터 실천하여야 여러분들이 가는 길에 사탄의 참소가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분함을 느끼면서 하늘 앞에 통곡하고 그 부락을 붙들고 통곡하면서 `내가 대신 짐을 지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곳을 향하여 가겠사오니 여기서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냐. 네 부락을 구해라! 이런 곳을 구해라! 오냐. 네 면, 네 도, 네 나라를 구해라!' 하실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여러분들은 배웠단 말이예요.
그리하여 이런 사람을, 세계적인 근심의 동역자를 하늘은 세워 가지고 그런 사람들로 세계적인 근심을 풀어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들은 결의해야 되고, 그것을 위하여 우리들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 기준 밑에서 실천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이 근심은 어디서부터 생겨났느냐? 원수로부터 생겨났다는 거예요. 이놈의 원수! 이 원수의 제일 무대는 몸뚱이예요.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되었으니 나부터 정복해야 됩니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영계까지 널려 있는 이 원수가 6천 년 동안 하나님을 참소했다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까지 유린해 나오고 있으니, 이 하늘의 분함과 근심된 사실을 알고 일시에 사탄의 총본부를 향하여 돌격할 수 있는 각오와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치열한 투쟁 앞에 후퇴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 하늘의용사가 되겠다는 기세를 딱 갖추어 가지고, 여러분이 가는 곳에서 부터 하루하루 그런 생활적인 연마와 훈련을 통하여 한 날의 큰 싸움을 대비하기 위한 연습으로 실천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 아까 말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소원을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정을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틀림없이 될 것입니다.
몇 시인가? 「25분입니다」 25분?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조금 더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양심을 세워서 그 양심을 중심삼고 아버지를 믿고 배우고 생활하고 거기에서 같이 투쟁할 수 있는 아버지를 모셔 가지고, 그 아버지와 양심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된 그 가운데서 양심이 아버지 대신 나를 명령하고, 내 몸뚱이는 아들과 같이 부자의 인연의 심정을 맺어 내가 생긴 그날부터 하나님의 근심을 품고, 이 근심을 해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투쟁하는 용사들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선생님이 가야 할 여러분 앞에 남겨 주는 말씀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남아지는 것은 다른 게 없어요. 오늘 선생님이 말씀드린 것을 잊지 말고, 여러분이 양심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한을 대신하여 싸워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지요? 「예」
아버님, 사람이 악하여진 연고로 만물을 사람 앞에 내놓고 제물 드리라는 그런 명령을 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에 얼마나 상처가 많았습니까? 아버지의 심정에 얼마나 상처가 많았습니까?
아버지의 소원이 이렇게도 서글픈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죄를 짊어진 자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 하늘을 보아도 부끄러운 자요, 땅을 보아도 부끄러운 자요, 우리를 보아도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저희들은 이제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모인 이 수련생들이 이제 40일 수련 기간을 거치고 험한 광야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여기에 미쳐져 있는 모든 전부는 원수로 인한 사망의 여건을 재촉할 수 있는 자리 밖에 안 되는 것임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런 환경을 헤치고 나가야 할 저희들이기에 내 마음을 아버지와 일체되게 하나로 만드시어 그 마음을 중심삼고 한을 풀기 위하여 많이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이 배웠사오니, 이제 가는 이들 앞에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가는 모습은 초라하오나 아버지여, 그들의 마음 깊이 결의하는 그 마음은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마음의 주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3천만 민중이 잠들어 있사오니 세계 인류가 흑암의 권세 가운데 있어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사오니 여기에 선의 채찍을 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소원과 아버지의 사정과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세워 억울한 아버지의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원수를 대하여 싸워 승리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땅에서부터 한이 풀리고 인간의 가슴에서부터 한이 풀려 천상의 한이 풀려질 수 있는 이러한 싸움의 시대가 오는 데 저희들이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은사를 감사하오며 남아진 생애를 아버지의 뜻 앞에 걸어 놓고 맹세한 실체들을 아버지여, 받아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당신이 요구하시는 영광 가운데서 생(生)하고 사(死)하고 동(動)하고 정(靜)할수 있도록 아버지, 인(印)치시사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오늘은 40일 수련회가 끝나는 날입니다. 이제 수련생 여러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만 돌아가기 전에 여기 올 때와 갈 때의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뜻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차이를 스스로 정리하고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올 때의 나와 갈 때의 나는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 스스로 설 수 없었던 내가 설 수 있게 되었고, 믿을 수 없었던 내가 믿을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당당히 스스로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의 도수에 의해서 가는 길이 좌우됩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뜻을 몰랐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자신이 불쌍하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생활 속에서 여러분은 남이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는다고,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나는 가졌다며 보여 주고 자랑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들이 이 뜻을 얼마만큼 깨달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믿을 수 있었고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영원한 것이 못 되고 변했던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며 불쌍한 세상이요, 불쌍한 자신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 더 좋은 곳을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말단 부락에 있는 사람은 부락보다 큰 면을 대신한 자체가 되고 싶어하고, 그 다음엔 군을 대신하고 싶어하고, 그 다음에는 도를, 더 나아가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 뜻과 소망을 잃지 않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더욱 양심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양심을 중심삼고 세계를 사랑하면 세계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양심을 중심삼고 얼마나 살아 보았습니까? 여러분의 과거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양심 앞에 반역자였습니다. 그러니 오늘 떠나는 여러분에게는 바로 이 양심의 기준이 확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제부터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동서남북이 터 있는 개방된 자유의 곳이나 나를 때려잡기 위한 원수의 올가미가 널려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오리를 잡을 때는 오리가 잘먹는 미끼를 갖다 놓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탄의 올가미에 까딱 잘못하면 걸립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무대는 원수의 세계입니다. 거친 광야와 같은 곳이어서 이리와 늑대와 사자가 노리고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환경을 제압하고 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가는 그 순간부터 ‘마음아! 내 가는 길에 친구가 되어 다오.’ 하며 결코 곁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마음을 붙들고 나갈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스승도 없습니다. 잘못했을 때에 마음이 기합을 주고 침을 주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3분의 2는 올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복귀도상에선 그렇습니다.
멀지 않아 ‘양심적인 인사는 나오라.’고 외쳐야 됩니다. 자신을 명령하고 지도할 수 있는 양심적인 바탕을 가져야 합니다. 양심을 기반으로 하여 배우고 실천한 것은 역사에 남고, 하늘의 용사로 싸운 것은 하늘땅 앞에 자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믿고 싶은 사람을 찾아도 없었습니다. 양심이 자꾸 배우라고 합니까? 예수, 석가, 공자 모두가 다 그렇게 많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역사를 이끈 사람들은 많이 배운 사람보다도 양심의 기반 위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의 사람이나 현재의 사람이나 모두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많은 학박사와 마음이 선한 사람 중 하나님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방금 협회장이 말한 바와 같이 심정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사람을 택할 것입니다.
함부로 믿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잘못 배우면 큰일납니다. 마음놓고 살 수도 없습니다. 빨갱이와 살다가는 큰일나지 않습니까? 싸움도 잘못 싸웠다가는 큰일납니다. 함부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모든 것을 버리며 가는 길이며 양심을 찾아 나아가는 길입니다. 양심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것을 알면 됩니다. 과거에는 양심에 반대되는 것과는 싸울 용기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양심은 무엇이뇨?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 집이요, 하나님께서 같이 사실 수 있는 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인간을 기다리십니다. 참답게 믿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싸우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사탄이 집어가고 맙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어찌하여 불행하였던가? 배우고 싶고, 믿고 싶고, 남기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나와는 관계가 먼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불행했던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에는 고충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양심은 선을 찾아가라고 뒤에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양심이 고대하던, 믿을 수 있는 무엇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좋고, 배우면 배울수록 좋은 것, 양심이 고대하던 것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 내용대로 생활하고 싶어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 내용대로 사는 사람은 싸우고 싶어도 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라 할진대, 그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홀로 있다 할지라도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와 같이 살면서도 부모를 믿을 수 없었고, 형제와 같이 살면서도 형제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영원히 믿고 같이 살 수 있는 분과 하나되었는데, 이것이 역사적인 행복입니다.
같이 믿고, 같이 배우고, 같이 살고, 같이 악을 심판하고, 같이 선을 세우고자 하시는 최고의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즉 절대적인 하나님 편에 서서 선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만사를 해결하는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요, 마음은 아버지요 몸은 아들로서 부자가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아버지의 대신, 몸은 아들의 대신이라는 입장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명령을 받는다 할진대 천하의 누구도 이것을 빼앗지 못합니다.
양심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소원은 아버지의 소원인 동시에 나의 소원이요, 몸의 소원이요, 만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한 양심은 내 몸도, 천지 만물도 모두 좋아합니다.
앞으로는 사람이나 어느 국가가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이 남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르다면 피조물과 인연을 지을 수 없습니다. 소원은 하나의 인연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 즉 양심의 소원, 몸의 소원과 만물의 소원이 하나의 인연 속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내 양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소원도, 몸의 소원도, 만물의 소원도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하를 걸어 놓고 염려하는 사람이 되고, 뜻을 이루다가 못 하면 후손에게 유언이라도 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후손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소원의 일치이니 통일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이요, 내가 남겨 놓아야 할 것도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입니다. 이것이 3대 요건입니다. 하나님은 소원과 사정이 성취되어 기쁜 심정을 가지셨습니까? 아직까지 그렇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대로 치리(治理)하시지 못하고 지금까지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하신 하나님입니까?
우리 원리는 어떻게 하여 인간과 하나님이 이렇게 되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소원과 사정과 심정은 서로 통해야 됩니다. 최후의 담은 이것입니다. 때문에 제일 귀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알아 이루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도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그렇게 못 되어 있는 것을 되도록 하려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복귀요, 복귀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보다 배 이상의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쉽지만, 양심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배 이상의 힘이 듭니다. 하물며 천지를 위하여 사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법도대로 하시기에 힘이 드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6천 년이나 거꾸로 돌아간 것을 돌이키려면, 그보다 더 힘을 들여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그러니 불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소원과 사정과 곡절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직까지 근심 가운데서 떠나시지 못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뜻을 품은 사람도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내일부터 남한 각지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여러분과, 여기 있는 스승이 해야 할 일은 이 근심스러운 것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근심, 몸뚱이의 근심이 연장되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뻗쳤으니 결국 온 천주가 근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하나님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걱정하는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이러한 민족과 사람들을 가진 나라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만이 낡은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소원과 사정과 일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야 모든 것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생활을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선 찾아가는 마음을 위하여 근심하십시오. 여기에도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을에 찾아오신다면 이 세 가지를 풀어 드려 편안하게 하룻밤이라도 쉬고 가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근심은 죄악의 아들딸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개인, 사회, 민족, 나라, 세계를 하나님께서 근심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40평생 동안 한시도 이것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나라의 재건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가정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요, 마을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마을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뜻의 곡절을 대하면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참고 사오니’ 하고 기도하게 되면 힘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통한다 할진대 여러분이 가는 길은 결코 멸망의 길이 아니라 승리의 길입니다. ‘이 땅아, 지금은 이러하지만 몇 해 후에 보자!’ 하는 기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소원하는 가정과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 할진대,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반드시 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보는 눈과 말하는 입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 드릴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하여야 합니다. 부락에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만사를 제쳐 두고 그것을 풀어 나가야 합니다. 가진 것이나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근심하고 실천해야 사탄의 참소를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할 때, ‘오냐! 네가 가서 네 부락과 면과 군과 도를 구하고, 더 나아가 나라를 구하라.’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결의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결심은 어디로부터 오느냐? 원수에 대한 의분심에서부터 옵니다. 이 원수는 나와 온 세계에 꽉 차 있고, 6천년간 악을 행해 온 원수라는 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실천하면 하나님의 사정이나 심정과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와 하나되어서, 양심은 아버지요 몸뚱이는 아들이라는 심정을 품고, 하나님을 위해서 가달라고 하는 것이 오늘 헤어져 가는 여러분에게 하는 말씀이요 부탁입니다.
또 좋고 또 좋고, 극상으로 좋은 것 중의 극상으로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렇지요? 「예」
대다수의 사람들을 볼 때 사람들은 좋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좋은 것을 바라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좋은 것을 어디서 찾으려고 하느냐?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이거예요. 나를 떠나 다른 곳에서 좋은 것을 찾고자 무수한 사람들은 애쓰고 있다는 거예요. 이 참되고 좋은 것도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 못 되게 될 때에는 , 아무리 좋은 것도 가치가 없어지는 거예요. 오늘날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최고의 것, 최고의 선, 제일 좋은 것 찾기를 고대하는데 자기 범위 밖에서부터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모든 모순과 이치에 불합리한 원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누구를 위주로 좋으려고 하느냐? 전부 다 나를 중심삼고 좋으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예」 나를 중심삼고 `내가 좋았으면, 내가 더 좋아졌으면, 내가 천하에 하나인 존재가 되었으면' 하면서 극상 것을 모든 인간들은 바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좋은 것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할 텐데 상대의 세계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 세상에는 모순과 상충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본래 인간시조 아담 해와에 있어서도 타락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좋은 것을 상대의 세계에서 혹은 상대의 위치에서 요구한 데서부터 인간세계의 근본 되시는 우리 시조가 타락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밀려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만일에 우리의 시조가 좋은 것을 자기 중심삼고 지닐 줄 알고, 자기 중심삼고 좋은 것을 빛낼 줄 알고, 자기 중심삼고 좋은 것을 세울 줄 알았던들 우리 인간시조는 타락이라는 위치에 서지 않았을 것인데, 상대적인 환경, 혹은 상대적인 위치에서 좋은 것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여기에 있어서 우리 인간시조는 타락하고 말았던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고,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천하를 통일시키는 위대한 사람 혹은 위인이 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한 호령에 천하가 전부 다 굴하고 일어서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당당한 세계적인 인물이라 해도, 그 사람이 진정한 좋은 것을 가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하늘땅을 움직이게 하더라도 좋은것이 아니예요.
좋으려면 그 자신이 좋을 수 있는 내용을 지녀 가지고 상대적인 세계에서 좋은 가치를 상대적으로 취할 수 있는 데서 좋은 것이 되지, 자기 마음에는 좋은 내용을 갖지 아니하고 상대적인 면에서 좋은 행동이나 좋은 어떤 요구를 한다 하면 이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좋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찾는 것도 좋겠고, 하늘땅을 정복하는 것도 좋겠고, 수많은 대중을 인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도 자기를 제일 귀한 가치로 갖는 것 이상 제일 귀한 것이 없고, 제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세워 나오는 수많은 도주들, 혹은 역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을 찾아보게 될 때, 그들은 외계에 나타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꿈꾼 사람들이라기보다 `나 자신의 마음속 깊은 있는 최고의 선, 인간의 근본이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가치를 갖고 있느냐? '에 대해 탐구하고 노심초사하며 자기 생애를 걸고 싸워 나간 사람들이 대부분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속단하여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외부에서, 상대적인 세계에서 그 무엇, 제일 좋은 것을 구하기 전에 나 자신이 제일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설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 보기에는 불행하고, 남 보기에는 형편없고, 남 보기에는 조롱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 자신에게는 그 이상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말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좋기를 바라는데, `내가 좋아지기를 바라느냐' 내가 제일 좋아지기를 바라느냐 이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내가 좋은 것이 있다고 하려면 좋을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돼요. 내가 제일 좋을려면 세계를 주고도 나와 안 바꾸겠다 해야 돼요. 알겠어요? 대한민국을 주고도 안 바꾸겠다, 그런 가치가 있다 이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주고도 안 바꾼다 이거예요.
내가 주먹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고 또 모든 것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내 한 몸뚱이 가운데 나만이 가지고 있는,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만일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그 사람을 갖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게 제일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생활을 하고, 혹은 참선하는 모든 내용에 들어가 회고해 보게 될 때에, 내가 무슨 가치를 지녔느냐고 나를 완전히 해결하고 나서게 될 때에 나 하나를 완전히 해결한 그 가치는 천상천하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무엇이 되겠다고, 제일 좋은 것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상대적인 세계에서 구하지 말고, 다 끊어버리고 나를 찾아 들어와서보면 내게 제일 좋은 것이 있나니, 여러분 자신이 생활할 때에 시시, 초초를 넘기지 않고 권고하는 스승이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는 거예요. 천륜을 대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이것을 가려 주는 양심이 있는 거예요. 더 나가서는 속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가치는 무엇이냐? 팔도 아니요, 눈도 아니요, 귀도 아니요, 몸뚱이도 아니요, 속사람이라는 거예요. 이 속사람의 인격의 가치를 오늘날 케네디 대통령의 몇십 배, 몇 백 배의 가치의 자리에 갖다 놓아도, 이 속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하에 최고의 높은 자리에 갖다 놓아도 이 속사람은 거기에서 선과 악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요걸 볼 때에 여러분들이 제일 좋은 것을 갖고 있나니,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제일 좋은 것을 갖고 있나니, 그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있는 속사람이라는 거예요. 즉 양심을 통하여 여러분을 권고하고 있는 그 내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내적 존재를 연마하고 연마하는 가운데에는 하나님도 들어갑니다, 하나님도. 이 양심은 보따리가 얼마나 큰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이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이거예요.
성경에는 사람이 뭐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어요. 사람은 무엇이냐? 사람은 하나님이 우거하실 수 있는 집이라고 했어요. 집인데 거기에 고기덩어리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아니예요. 선한 터전 위에 선한 자체로 계시고, 선한 환경을 수습하기 위한, 선한 그 자체 가운데 처해 있는 양심 그 근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천상천하의 만유의 존재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고이 모셔 드릴수 있는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속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속사람이 하나님을 비로소 모시고 하나가 되어서 나를 명령한다고 하면 나라는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구세주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형상을 쓰고 나오든가 하나님의 심정을 쓰고 나오든가, 하나님의 내용을 쓰고 나오신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양심에 하나님이 임재하면 여러분 자신들도 최고의 권위 있는, 어느누구보다도 높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좋은 것을 나에게서부터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에게 돌아와서 `나'라는 한 존재를 세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될 때, `내가 저것을 원한다. 저것을 가지면 좋겠다. 그것을 내가 가질 수 있을 때 정말 가질 수 있느냐? ' 하고 반문하여야 됩니다. 내가 가질 때 정말 가질 수 있느냐? 정말 저 물건의 참다운 주인이 될 수 있느냐? 내가 갖고 싶어하고 고대하고 있고, 내가 바라고 있는 그것을 어느 누가 준다면 정말 그가 바라던 가치의 주인공으로 나타날 자신이 있느냐? 여러분은 거기서 전부 다 문답을 해봐야 됩니다.
더우기나 신앙생활에 처음 나가는 사람들은 이걸 생각하여야 됩니다. 내게 무엇을 주면 좋겠다 할 때에, 그것을 받고 그것을 주는 분이 있으면 그걸 받고 자기 스스로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있느냐? 과연 그도 좋고 나도 좋을 수 있느냐? 그는 좋은데 나는 좋지 않으면 이것은 악입니다. 하나는 원하는데 하나는 원치 않으면 이것은 선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둘 다 좋아야 선이 됩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그 무엇을, 혹은 여기 지우개를 원하게 되면 이 지우개 자체도 소원합니다. 이 자체에도 소원 있는데 그 소원 자체가 소원하는 소원의 주인적 자격을 갖추었느냐 할 때, 이 자체가 요구하는 자격를 지닌 주인이 되지 못할 때에는 선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100의 가치로 바라보고 있는데, 여러분 자신의 가치는 10만큼밖에 안 된다면 이것은 90만큼 탄식이요 한입니다. 여기에 한이 맺혀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좋은 것을 찾기 위해서 나타난 이 마당에 있어서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감당할 자격이 되어 있느냐? ' 이거예요. 이것이 필요한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종교라는 명사를 알아 가지고 신앙길을 가고 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의 좋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 여러분 자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있느냐?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세계의 인연을 못 가지는 거예요.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거기에, 그 세계의 좋은 것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되고, 책임을 지고 감당해 내야 됩니다. 그런 후에 그도 좋고 나도 좋아야만 그것이 선의 결과가 되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이 길을 가도 마찬가지예요. 길을 가게 될 때, 여러분이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가게 될 때 나쁘기 위해 가는 사람은 없다 말이예요. 서울 명동 거리에 가 보게 되면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의 눈들과 그 사람들의 생각은 전부 다 좋은 것을 찾아 허덕이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결과를 보면 좋은 것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이거예요. 마음으로는 원하는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많지 않아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늘땅이 이렇게 바라보게 될 때에 좋은 것을 주면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찾아오다가도 도망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가고 오는 사람, 먹고 자는 사람, 기쁘고 나쁜 사람, 요 여섯 가지예요. 가고 오고, 먹고 자고, 그 다음에는 좋고 나쁜 것, 요 여섯 가지라는 거예요. 가고 오고, 먹고자고, 그다음에는 ? 좋고 나쁜 것. 요것이 인생생활 전체의 모양입니다. 이것만 빼 버리면, 요것만 딱 들고 나오면 세상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가고 오고, 먹고 자고, 그다음에는 좋고 나쁜 것, 여기에 다 걸려 있다는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먹는 데도 그렇다는 거예요. 먹는 데도 그렇고, 자는 데도 그렇고, 가는 데도 그렇고, 오는 데도 그렇고, 좋고 나쁘다 하는 명사도 역시….
여러분들이 감당할 자리에서 감당하고, 그것을 책임질 자리에서 여러분이 움직이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을 확정지어 거기에서 자기의 위치를 세우지 않는 한 발전했댔자 그것은 자기의 발전이 아니예요. 아무리 좋은 자리에 갔다고 하더라도 간 곳이 영원히 자기 것이 안 돼요. 어느 한 때는 남의 것으로 빼앗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은 것을 바라기 전에 내 자신에 좋을 수 있는, 환경의 존재를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고 감당해 낼수 있는 내 자신이, 즉 안팎의 사람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럼, 나 하나 물어 봅시다. 오늘 선생님이 전주에 온다고 하니까 전주의 사방에서 몰려들었어요. `선생님이 서울에서 오신다는데, 또 무슨 말을 할까? ' 하고 들어 보기 위해서, 혹은 알아보기 위해서, 또 좀 더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왔을 거예요. 그래서 뭘하기 위해서. 어떻게 되기 위해서? 좀더 좋아지기 위하여. 좋아하는 데는 선생님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내 자신이 좋아지기 위하여. 내 자신에 무엇을 보충하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그러면 이와 같은 자리나 혹은 말씀을 나누는 입장에 설 때에, 말씀을 주게 되면 받는 그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이 말씀을 감당해 낼 수 있느냐? '감당해 낼 수 있고 말고! 책임을 질 수 있고 말고!' 할때는 지금 하는 말씀 이상의 말씀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반드시 발전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은 반드시 더 큰 선의 위치를 찾아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뭐냐 하면, 여러분이 감당하고 책임을 질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저 자기 위치를 떠나 가지고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응? 「예」
타락이 무엇이뇨? 책임을 못 진 거예요. 감당해 내지 못한 거예요.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그 명령에 책임을 못 했고 감당해 내지 못한 거예요.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상대적인 선의 세계가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거예요. 결국은 내가 그것을 책임지고 감당해 낼 수 있는 내 자체의 선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 볼 때 두 가지 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받고 싶은 작용이요, 하나는 주고 싶은 작용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 거예요. `나'라는 존재를 가만히 분석해 보면, 사람에게는 받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조는 녀석은 깨우라구요. 너 어디서 왔나? 어디서 왔나? 「김제에서 왔습니다」 김제, 가까운 데서 온처녀들이 졸고 있구만.
선생님이 지금 얘기하는 것을 악을 쓰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정말이예요. 책임이 있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오라고 해서 왔는데, 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올 때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올 적보다 조금 나아져야지요. 나아지는 데는 선생님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내적인 바탕에 있어서 나을 수 있는 인연을 맺어 놓아야 그것이 자기 것으로 남아지는 거예요. 싸움이라는 거예요. 싸움하는 시간이예요. 여러분들과 나와 싸움하는 시간이예요.
나는 책임을 져야 되겠고, 나는 감당해 내는 입장에 있어야돼요. 그렇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되는 대로, 그저 가는 대로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돌려보내는 그게 아닙니다. 책임을 져야돼요. 오라고 했으면, 백리 길을 걸어오라고 했으면 백리 길 걸어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돼요.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몰려들었으면, 이 수백 명의 사람들의 노력과 이들의 마음으로 다 생각하던 천태만상의 곡절이 많을 거예요. 심선상(心線上)에 이루어졌던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내용 위에 한 점이라도 좋은 점을 첨부해 주고 가야 선생님으로서 왔다 가는 책임을 다하는 거예요.
또 여러분들로 그래요. 그런 선생님에 대해서 여러분들도 역시 그런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의 내용에 있어서 선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가져 가지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으로서 좋다는 결정을 지어 놓고 돌아가야만, 여러분이 어디 가든지 그 좋은 기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번 자리잡았던 좋은 기분을 빼앗기지 않아야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타락도 자체 내의 양심을 중심삼고 바라고 있는 그 귀한 내적 인격관을 무시한 데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반드시 양심의 작용은 높아지려고 하는 거예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원칙인데, 높아지는 데는 법도를 따라서, 자기 의무와 자기 책임과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서만이 좋은 것이 관계를 맺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데에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단 여기 왔으니, 온 만큼 온 데 대한 책임을 져야 되고, 여기 온 여러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그 자체 내에 있어서 스스로 좋은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본바탕이라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다 흘러가 버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졸음이 깼어요? 「예」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있다 할진대 그 애국자는 그 나라가 최고로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 효녀가 있다 할진대 그 효자 효녀도 역시 부모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부모로 모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 효자 효녀가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혹은 일국의 공신이면 그 공신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오늘 이 시대에 어떤 사람보다도 더 최고의 뜻을 품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 사람이 책임을 지고 감당해 나가는 그 기반 밑에서 애국자면 애국자, 나라의 충신이면 충신이라는 명사가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일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마찬가지예요. 작다고 소홀히 할 수 없어요. 크다고 중요한 것만은 아니예요. 작은 것도 선에 속하면 그것도 중요한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눈동자가 작지요? 새까만것. 눈동자가 손톱만큼도 못한 거예요. 그러나 작다고 소홀히 하고 크다고 중요시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상만사를 바라보게 될 때 좋기를 바란다면, 절대 거기서 한 가지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은 상대적으로 구하지 말라는 거예요. 좋은 것 받기를 바라고 좋은 것 갖기를 바라거든, 좋은 주인으로서 지닐 수 있는 그 책임과 감당해 낼 수 있는 자체가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자체보다 더 커야 돼요. 내적인 위치가 더 커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양심은 하늘을 받고도 남을 수 있고, 무한히 줄 수도 무한히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람의 마음은 무한히 크다는 거예요. 무한히 크므로 천하의 어떤 것을 받고도 남을 수 있는 본래의 바탕이 되어 있는 데, 책임을 못 했고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인격이 못 되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책임을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인격 기준만 해결하고 나서면 천하를 주름잡는 거예요. 세상에 최고의 것을 내 것으로 취하고 당당히 살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귀한 것이 뭐냐? 하늘도 아니요, 땅도 아니요, 인간이예요, 인간. 인간은 본연의 양심의 기준을 완전히 회복하고, 하나의 완성한 인격자가 되는 데서만이 완전한 차원의 실체요, 결실체가 된다구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면 어떻게 되느냐? 그런 사람이면 하늘이,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찾아오는 거예요.
하나님도 좋은 것을 원하겠지요? 「예」 하나님도 좋은 것을 원하겠지요? 「예」 얼마만큼 좋은 것? 제일 좋은 거예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좋은 것을 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도 좋은 것을 원해요. 그런데 그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로 좋다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 자체의 내적인 인격 전부를 갖출 수 있으며 책임을 질 수 있는 기준이 완전히 닦아져 있으되, 그것을 주고받지 않으면 좋은 가치가 못 된다구요. 가만 있어 가지고는 가치가 안 나와요. 주고받는 그 자리에서 가치가 나오는 거예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내적인 마음세계에 느끼는고 모든것을 외적인 세계에 완전한 대상의 실체를 세워 가지고 그와 더불어 주고받는 거예요. 책임을 지고 거기에 감당할 수 있는 위치에서 완전히 주고받을 수있는 대상을 만들어 놓자 해서 만들어진 것이 누구냐?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예」 사람이예요. 알겠나요? 사람은 그런 존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만물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냐? 사람이예요. 또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누구냐? 최후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길에 있고, 하나님은 사람을 찾아 나오는 길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하면서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면서, 제일 좋은 문화세계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모든 천하의 위업을 상속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아까 말한 내적인 그 기준에 있어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의 책임도 감당해 낼 수 있는 내적인 인격을 갖춘사람이면, 이는 필시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까지도 모실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많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수고한 목적이 어디있느냐? 돈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요, 권세 잡은 사람도 아니예요. 아까 말한 본성의 그 내적 인격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하나님까지도 부러워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천하의 모든 것은 하나님 것이니,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체가 되면 그 사람의 것이 천하의 것이요, 천하의 것이 그 사람의 것이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어느누구나 전부 다 제일 높아지겠다고 하는 거예요. 세계도 내 것!' 그러는 거예요. 내 마음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전부 다 해보고 싶고 그런 거예요. 그 마음이 나쁜마음이 아니예요. 본래 있는 마음인데, 그 마음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지고 감당해 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나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들이 지금 좋은 것을 바라고 있지요? 「예」 지금까지 그렇게 바라고 나왔지요? 「예」 그러면, 좋은 것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졌어요? 나면 나, 너면 너, 여러분은 여러분…. 내자신을 두고 볼 때, 제일 좋은 것을 바라는 내 자체로서 얼마만큼 책임을 지고 거기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 가지고 참 좋은 것을 원했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래, 뭘 책임을 져 봤어요? 또 제일 좋은 것은 최고의 공적 존재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은 공적 존재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최고의 선한 것은 개인적인 소유가 아니예요. 공적인 존재예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죽어 나가자빠져도 남아져야 돼요. 우리 한민족이 전부 다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남아져야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다 가고 우리도 가고 후대 사람이 전부 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선한 것은 공적인 존재로 남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침범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최고의 선은 만 기원의 것! 갑이나 을이나 동서고금은 물론이고,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세계가 바라는 것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금덩이가 이만하고 다이아몬드가 이만한 게 있으면, 아무개 집에 그런 다이아몬드와 황금덩이가 있다면 전주에 있는 사람들,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 재물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 집에 마음을 두겠나요, 안 두겠나요? 두나요, 안 두나요? 「둡니다」 만일에 그 귀한 보물이 있다면, 그 보물에 암만 마음을 준다 하더라도 그 보물의 가치에 해당할 수 있는 책임을 지지못하는 사람은 그 보물한테 치여 죽는 거예요. 책임을 감당해 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라는 것은 공적인 존재요, 최고의 것은 전부 공적인 존재예요. 공적인 존재니 혼자 이것을 가지고 쓸 수 없는 거예요. 쓰되 만민을 위해 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있어서 혼자 쓰지 못하고 혼자 마음대로 할 수없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예요. 알겠어요? 응? 「예」 하나님이어떤 분이라구요? 나 혼자 마음대로 못 해요. 아무리 하나님이 가깝더라도나 혼자 못 한다 말이예요. 공적인 존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나의 것이라 하더라도 이름은 그렇지만 이것은 전체를 대신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그리워하고 전부가 바라보는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최고의 공적인 존재를 최고의 것으로 지닐 수 있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고 그걸 받아 감당해 낼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원수가 나타나는 거예요. 하늘이 원수를 보내는 거예요. 최고의 공적인 존재가 무엇이라구?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그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면 어떻게 되느냐? 나도 최고의 공적인 존재가되는 겁니다. 그러면 최고의 공적인 존재는 뭘해야 되느냐? 모든 사람을 위해서 줘야 됩니다.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모든 피조만물에 대해서 줄 수 있는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 하나님은 어떤 분? 대답을 하라구요. 공적인 존재이니만큼 하나님이 최고의 선, 제일 좋은 분이라면 그 분은 자기를 향하여 바라고 있는 , 참다운 마음을 갖고 바라고 있는 모든 사람 앞에 같이 나눠 줄 수 있는 분입니다. 동에서 그렇고, 서에서 그렇고, 남에서 그렇고, 북에서 그렇고, 어디 가든지 같은 가치로 주고자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왜 좋아하느냐? 미국 사람에게 복을 주었으면 한국 사람에게도 복을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주느냐? 그 복을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됐느냐, 못 됐느냐? 또, 복을 주면 이걸 책임질 수 있느냐, 없느냐? 이 기준에서 하나님은 지금 세상만사를 거느리고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최고의 공적인 선의 하나님을 찾기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그 하나님을 닮아 들어가야 됩니다. 닮아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여러분들에게 명령하는 거예요. 양심이 `야! 아무개야!', `예' `너 저기 길을 가다가 불쌍한 거지가 있다. 네 지갑에 돈 100원 있지? 돈 50원만 떼어 줘라. 줘!'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명령하면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해야 됩니다」 해야 돼지요? 「예」 돈 50원을 떡 주고 가는 데 `야! 이번에는 불쌍한 여자 거지가 있으니 여자 거지한테 50원을 또 줘라! 또 줘라!' 그러면 줘야 돼요, 안 줘야돼요? 「줘야 됩니다」 줘야 된다는 말이예요.
또 한 골목에 떡 가니까, 애기 거지가 있는 데 불쌍한 자리에 놓여 있어요. `야! 너 또 줘라' 그런단 말이예요. 양심은 그래요. 또 주라는 거예요. 또 주라는 거예요. 주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줄 것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줘야 됩니다. 무엇을 주어야 되느냐? 마음으로 줘야돼요. 눈물로써 주든가 안타까움으로 줘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후에야, 공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요.
`아이구, 내가 이제는 다 줬으니 없습니다' 하지 말라구요. 그렇게 마음이 명령하면 그 사람을 볼 때 불쌍하고 측은하여서 `어찌하여 너는 그렇게 불쌍하게 되었던고? ' 하라구요. 그가 남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혈족과 같고 혹은 혈육과 같이 생각하면서, 그를 향하여 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면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가슴 아프게 느끼면서, 돈 50원이 없지마는 50원 이상의 가치로서 `내가 너에게 주고 싶다' 하면 그 사람은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주지 못했더라도 양심의 가책은 안 받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주지 않더라도 양심의 가책은 안 받아요. 그렇지만 돈 50원을 남겨 놓고 안 줬을 때에는 가서 잠을 자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요. `이놈아!' 합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선을 지향하여 움직이는 양심작용은 주고 주고 또 주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보라구요. 양심은 언제든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 하면 `예' 합니다. 이것은 언제 여러분들이 모르는 사이에 언제 양심과 조약을 맺고 있다는 거예요. 몸뚱이가 양심과 조약을 맺었다는 거예요. 마음은, 양심은 `너를 명령하여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 하고 몸뚱이는 `양심과의 조약을 지켜서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이 되겠다!' 합니다. 자신들은 모르지만 어느 한 때에 조약이 맺어졌다는 거예요. 이걸 여러분들은 모르지요. 조약이 맺어졌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선한 사람이 될 수있고, 선한 사람이 되면 지극히 선한 것까지도 내가 책임을 지고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선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선한 무엇을 상대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죄입니다. 절도와 강도야! 주인이 될 수 없어요. 책임을 질 수없어요. 그 가치에 해당할 수 있는 입장에서 감당해 내지 못 해요. 그건 절도와 강도라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이 나라가 지금 부패해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 있게 될 때, 뜻을 품은 애국자가 있다 할진대는 `야!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네 밭뙈기도 팔아라! 다 팔아라! 집이고 뭐고 다 팔아서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해라!' 해서 다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부족해서 양심은 명령하는 거예요. `야! 이놈아! 너는 아직까지 고기 덩어리가 뻔뻔하게 살아 남아있으니, 네 고기 덩어리까지 이 민족을 위해서 쓰러지게 해라'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열만큼 명령했을 때 이것을 완수하면, 또 열만큼 해야돼요. 양심은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 명령을 듣다가는 내가 옥살박살하겠거든요. 이걸 또 했는 데 또 딴 거 하라는 거예요.
양심이 왜 그러느냐?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양심이 그렇게 명령을 하는 것은, 실천하면 또 하라는 것은 왜냐? 양심이 찾아 줘야 할 조약, 몸뚱이가 맺은 조약을 실천해 주려니까, 조약을 지키려니까 너를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으로 만들겠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하는 데는 이것을 하고도 또 해라 또 해라 하는 거예요. 하루에 천하를 정복할 수 있는 선한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양심의 요구이자 희망이기 때문에, 양심은 여러분의 몸뚱이를 통하여 쉴 새 없이 명령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양심이 고마운 것이지요? 「예」 왜? 인간이 본래 타락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서 최하의 자리에 떨어졌으니, 오늘 우리의 마음, 즉 양심은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천적인 본성의 심정은 본래 타락하지 않은 선의세계, 완전한 자리에 나가야 할 것이 본래의 양심과 하나님과 결정한 법도예요. 법도인데 이 양심은 법도를 어길 줄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이 법도의 기준에서….
오늘날 인간을 이 법도의 기준에 올라간 가치의 존재로 어느때라도 만들어 주고 싶고, 되어지기를 바라고, 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양심작용입니다. 양심이 떨어진 인간을 대해서 여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치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으니, 수천년 동안 암흑세계로 떨어진 인간이 하루에도 천년 공사를 해줬으면 하고 바란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양심은 `빨리 올라가야 되겠다' 하고, 한 시간에도 십년 공사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뭐 지쳐서 못할이만큼 명령한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여러분들의 양심이 얼마나….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세계에서 제일 가는 최선의 주인공인, 최고의 공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늘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 천하 만인간이 주고받는 선한 사람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도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요? 「예」 선한 사람과 선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람은 약해요. 약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스승이 필요한 거예요. 지도자가 필요한 거예요. 지도자가 대중에게 외치면 그 양심은 `옳다! 이놈아!' 합니다. 외적인 자극을 통하여 내적인 자극을 명령해 줘도 느끼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외적으로 선한 지도자를 세워 가지고 공격하는 거예요. 공격하면 마음에서 폭발되어 `옳습니다' 해 가지고 그 사람의 생활을 따라가게 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따라가게 하고, 그 사람의 말씀을 따라가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낮은 데서 다리를 놓아 올라가게 하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도 좋은 친구를 사귀려고 하지요? 그렇지요? 「예」 사는 데도 좋은 사람하고 살려고 하고, 다 그러는 거예요. 자기보다 나은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으려고 하고,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또 올라가려고 하고,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게 뭐냐? 최고의 선의 자리에 나가서 제일 좋은 것을 찾아 나가기 위한, 인간이 본래 지녔던 그 가치를 찾아나가는 것이 오늘 우리 타락한 인간생활의 전부라는 거예요. 즉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기 위한 싸움이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기 위한 싸움이라는 거예요, 싸움.
선을 행하고 피땀 흘려 노력하고 양심의 명령대로 실천하겠다는 것은 뭐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가져올 수 있느냐? 최고의 선이예요. 하나님 자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투쟁을 벌이는 것이 오늘날 인생이예요, 인간 생애. 알겠어요? 「예」
그러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 한 분을 모신 사람은, 그분의 것이 된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으면….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으면 수수작용이라고 그러지요. 통일교회에서는 ? 최고의 그분과 더불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거기에서 비로소 쉬는 거예요. 비로소 안식하는 거예요, 안식.
오늘날 역사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투쟁해 나오는 것은 최고의 선의 주체인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쟁해 나오는 거예요. 그것이 완전히 찾아져 가지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인류역사는 전쟁사를 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은 구원섭리를 하여 이 땅 위에서 비참한 상태, 피흘리는 일, 죽이는 일, 원수 앞에 쫓기는 일, 이런 일을 전부 다 없애기 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싸워 나가면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하나님이 소원하는 목적의 실체가 사람이요 사람의 소원과 사람의 목적의 실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람과 사람이 요구하는 하나님과 둘이 합해서 완전히 그 맘과 몸이 주고받을 수 있는 그때에 가서 이 사람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결국은 결론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뺏기내기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찾기내기 하는 싸움이요, 하나님을 뺏기내기 하는 싸움이예요. 하늘을 빼앗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싸움이요,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위한 싸움이예요. 살면서 뭘할 것이냐? 사랑하기 위한 인간들이라는 거예요. 누구하고? 하나님하고 사랑하고 하나님하고 살면서 하나님과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이 자리까지 인간의 양심작용은 언제나 달려가는 거예요. 그 자리를 갖지 못하는 한 이 인간세상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 봅시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이 대번에 하나님을 찾아 나갈 수 있느냐? 아니예요. 하나님은 이런 세계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사망의 구덩이에 빠져 있는 인간 가운데서 양심으로 대신하는 거예요. `야! 아무개야! 네가 부디 선하여라! 선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양심으로 명령하면 지남석 작용과 같이 힘의 작용을 일으켜 그 어둡던 사람이 점점 깨우치게 해 가지고, 여기 이 세계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한사람을 빼앗아 나와야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을 세워 놓아야 된다구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역사노정에 있어서 구원섭리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이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야곱이예요. 야곱으로부터 비로소 승리한 사람, 즉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 한 사람을 기대로 해서 그다음에는 한 사람을 크게 해 가지고 가정으로 끌어내는 거예요. 가정을 선하게 하고, 가정이 선한 권내에 들어오면 하나의 종족을 선하게 하고, 종족이 선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민족을 선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세계까지 점점 키워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이 키워 나오는 사람을 본받아 나가는 거예요. 키워 나가는 사람을 본받아 나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잘들어요. 이 키워 나가는 사람을 따라서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 생겨나면 거기에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또 국가가 생겨나면 그 국가를 구하고 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와 백성이 있는 거예요. 그 국가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과 지도받을 수 있는 백성이 찾아지면, 그 찾아진 기대 위에서 국가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인을 보여 준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점점 올라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사람은 무엇을 찾아 나간다구요? 사람을 찾아 나가요. 여기서 한 사람, 개인을 찾고, 여기서 가정을 찾고, 여기서 종족을 찾고, 여기서 민족을 찾고, 여기서 국가를 찾고, 여기서 세계를 찾아야 된다구요.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개인을 찾아 세울 때에는 개인을 중심삼고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이요, 가정을 찾아 세울 때는 가정을 중심삼고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이요, 혹은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까지….
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뭘? 개인의 중심, 가정의 중심 혹은 종족의 중심, 민족의 중심, 세계의 중심으로 점점 커 가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쭉 사람이 커 나오는 거예요. 사람이 한꺼번에 클 수 없으니 개인적으로 장성하는 때, 가정적으로 장성하는 때, 종족적으로 장성하는 때, 민족적으로 장성하는 때, 국가적으로 장성하는 때, 세계적으로 장성하는 때, 나중에는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때까지 하나님은 인간들을 키워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전부 다 천하통일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렇게 6천년 동안 키워 나간 이 한 존재는 무엇이냐? 이것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인 동시에 이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야'사람이 제일로 요구할 수 있는 선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제일 된 사람이 합했으니 이게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거예요. 제일 가는 하나님과 제일 된 인간, 둘이 합하여 하나의 살림살이를 차려 놓자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앞으로 이상세계는 어떤 세계냐? 제일 가는 하나님과 제일 된 사람이 6천 년 동안 키워서 자라난 사람이 사는 세계예요. 그러면 여기에는, 요건 다 개인적인….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이걸 아담이라 하면, 메시아라고 하면, 여러분이 개체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은 개인적인 메시아가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은 개인적인 구주예요. 몸뚱이 대해서 구주예요. 몸뚱이 대해서 양심은 구주입니다. 개인적인 구주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양심의 명령에 잘 복종해야 이 개체가 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예요. 또 가정을 지도하는 사람은 가정적인 구주입니다. 민족을 지도하면 민족의 구주예요.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국가적인 구주예요. 그와 같이 하나님은 개인으로부터 다리를 놓아 가지고 오늘날 세계무대까지, 이 끝날 세계적인 무대까지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하나의 전체의 수고의 가치로서 비로소 한 사람의 실체로 나타난 그분이 기독교로 말하면 메시아입니다.
그분만 이 땅에 오면 그분 가운데는 하나님이 찾고 있던 개인도 살아날 수 있고, 하나님이 찾고 있던 가정도 살아날 수 있고, 하나님이 찾고 있던 민족ㆍ국가ㆍ세계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도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민족들은 `구세주여 오시옵소서!' 하고 고대한다는 거예요. 왜? 그분이 이와 같이 완성한 세계적인 참부모의 입장에 있으니, 우리는 그분만 모시게 되면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요. 또 아들딸이 되어 키움을 받게 되면 우리도 시집 장가가서 참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을 제일 귀한 자리에 있게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만물을 인간한테 주관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통하여 만물이 주관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들은 세계를 지배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라고 인간한테 명령한 동시에 또 명령을…. 성경 말씀에 없지만 `만물만 주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주관해 다오' 하신다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제일 귀하신 하나님, 제일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 세워 가지고는 , 우리 인간을 만들어 가지고는 `제일 귀한 만물도 주관하는 동시에 하나님 가운데 제일 중심인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주관해 다오!'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정까지 주관하라고.
사랑하는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주관하나요, 주관하지 못 하나요? 응? 주관할 수 있는 거예요. 자식이 슬퍼지면 부모도 슬퍼지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자식이 방실방실하면 부모도 방실방실하지요? 「예」 그 말이예요.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주관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생이라는 한 존재는 천지만물도 주관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주관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과 사람이 합동작전을 하여 새로운 세계에 가정을 이루어 살기 위한 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최고로 선하게, 제일 좋게 지었던 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이었으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깨졌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복귀해 나가야 되는 거예요. 재차 찾아 나가는 거예요. 이걸 찾기 위한 방편으로 세워 놓은 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처음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뭐라구요? 「창조목적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을 찾아 세워 나가는 방편으로, 타락한 인간이 죽어 자빠졌으니 이것을 살려 가지고 이 자리까지 끌고 나가기 위해서 민족은 민족에 해당하고, 혹은 그 국가면 국가와 국민성에 알맞는 종교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태평양 물이 여러 갈래의 물줄기를 통해서 모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지각색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이 지류를 통해서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지각색의 사상을 통해 종교를 세워 가지고 이것을 전부다 규합해서 하나의 태평양 물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수많은 민족 앞에 그 민족에 알맞을 수 있는 , 흡수될 수 있는 종교를 세워 가지고 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끌고 나오는 거예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 목적의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합동작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은내 사랑이요 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림살이를 차리고 살게 하고자 하는 것이 천지 창조한 창조주의 이상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앞으로 선한 세계가 오고,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님이 오고 천년 왕국시대가 온다는 게 뭐예요? 그 세계가 뭐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지배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주관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도 나를 놓고는 못 간다 이거예요. 자식을 놓고 부모가 어디 도망갈 수 있어요? 타락한 인간도 그렇거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 중에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선 중에 최고의 선? 하나님만 가지고도 최고의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한을 품고 있으니 사람 찾겠다고 하고 있으니 선이 아니예요. 욕망이 있는 사람도 선이 아닙니다. 사람도 사람만 가지고 암만 올라가더라도 그것이 선이 아니예요. 사람은 하나님을 갖고 하나님은 사람을 가져 가지고,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이 합하여 하나의 가정이 벌어지게 될 때 비로소 선한 거예요. 그래 동양의 음양의 이치가 거기서 벌어지는 거예요.
손 하나만 있으면 선이예요? 이거 하나 가지고는 조화가 안 나와요. 이것에는 이것만 있으면 조화가 나오거든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별의별 조화가 다 나오지요? 이것이 있으면 돼요? 이 둘이 있어야 조화가 벌어지는 거예요. 방향, 각도, 위치, 고저, 폭 여하에 따라서 조화가 벌어지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젠 알겠지요? 종교는 무엇이라고요? 그걸 찾아 나가는 방편으로 준 거예요.
그러면 세계적으로 제일가는 종교는 어떤 종교일 것이냐? 그 하나님을 대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소원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심정의 그 제일 알맹이를 가르쳐 주는 종교가 최고의 종교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라면 어떤 것이 최고일 것이냐? 껍데기 를 가르쳐 주는 그 종교가 최고의 종교가 아니예요.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을 가르쳐 주는 그것이 최고의 종교가 아니예요.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내정을 들고 나와서 가르쳐 주는 종교가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종교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 종교가 어떤 종교냐? 불교도 그렇지 않고, 유교도 그렇지않아요. 회회교도 그렇지 않아요. 4대 종교 가운데 기독교인데, 기독교가 그걸 들고 나왔다 이거예요. 내가 기독교를 믿는 다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선생님도 그런 문제를 냉정히 비판해 본 사람이예요.
제일 좋은 것 중에 무엇이 제일 좋으냐? 심정문제입니다. 심정이 엉클어질 때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런 내용을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우리 해석해 보자구요.
기독교는 어떻게 말하느냐?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한다 이거예요.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응? 「아버지입니다」 아내의 심정을 통하기전에 아버지의 심정을 통해야 돼요. 그렇지요? 「예」 그러니 제일 가까운 게 부모예요. 아버지의 심정이예요. 그다음에는 ? 아내의, 부부의 심정이예요. 그렇지요? 「예」 그다음에는 자기들끼리 형제지간의 심정이예요. 요걸 확대시켜야 되는 거예요.
종교 중에 기독교가 어찌하여 세계를 제패할 새로운 문화세계에 있어서 원천이 될 수 있었느냐? 이런 원칙 밑에서 헤아려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심정의 핵심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기독교는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거 이치에 맞지요? 「예」
앞으로 주님이 와서 할 것이 뭐냐?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예수님을 주님이라 했는데, 기독교에서 가르쳐 주기를 하나님을 대해서 예수님은 아버지라 불렀다는 거예요. `나는 독생자다. 천하 만민 가운데 나만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 태어난 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거 과연 구주라는 것입니다.그다음에 온 세계 인류에 대해서 하는 말이 `나는 너희 인류의 조상이다.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다!'고 했어요. 신랑 신부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아버지라는 말도 나왔고 신랑 신부라는 말도 나왔고, 그다음에는 ? `나는 너희들을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요 형제라고 말하겠다!' 했습니다. 다 나왔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있는 걸 볼 때에, 천지조화 합덕을 이룰 수 있는 그 원천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이 기독교라는 거예요. 그것이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기독교예요. 알겠어요? 「예」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심정 발판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예요. 최고의 선은 어디에 깃들어 있느냐?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곳에 깃들어 있는 거예요. 좋아하려면 심정이 깃들어야 돼요. 심정의 주체가 계시는 곳에는 최고가 머무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암만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권세가가 있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영웅이 있다 하더라도, 그 영웅 가운데 심정세계에 제일 중요시하는 것을 딱 빼 오면 영웅도 무능한 객이 되어 버리고 만다구요. 심정 기반을 잃게 되면 불행한 거예요.
그러면 타락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들에게 최고의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만이 아니예요. 하나님과 사람과 합하여서 죽자 살자, 놓고 못 살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판국이 벌어지는 동산이 인간이 찾아가는 최고의 지성소요, 하나님이 찾아오는 최고의 지성소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 왜 왔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에 뭣 하러 왔느냐? 통일교회에 와서 배우는 것이 그 최고의 지성소를 찾아 나가는 데 보탬이 될수 있으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다 가라는 거예요. 그걸 못 해주는 종교는 다 깨진다구요, 다 깨져. 제아무리 간판이 크고 제아무리 덩치가 크다 하더라도 다 깨지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러면 대강 알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이 되는 것이 최고의 선이예요? 타락한 입장에서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의 종의 신세로부터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도 못 됩니다. 사탄의 종도 못 된다 말이예요. 사탄의 아들딸도 아니예요. 사탄의 아들딸이라면 사탄이 여러분들을 사랑해야 돼요. 사랑하게 되면 자유를 줘야 되는데 자유만 주면 이놈의 사람들은 전부 다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탄은 여러분들의 모가지를 올무에다 매 가지고 끼고 다니는 거예요. 사탄은 부모도 못 된다는 말이예요. 사탄이 인간을 사랑해 가지고 운행하게 되면 자유를 줘야 돼요. 자유만 주면 하나님께로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엎어 버려 가지고, 겁탈해 가지고 지금까지 유린하는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지금 땅 위에 사는 타락한 인간들은 사탄의 종의 새끼도 못 되는 거예요. 섭섭하겠지만 사실 그런 것입니다. 사탄의 종의 새끼도 못 되는 거예요. 됐어요? 사탄이 심정이 있다면 오늘날 인류가 이렇게 처참하게 고생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사탄의 종 새끼도 못 되어 있기에 그러는 거예요. 사탄의 종 새끼도 못 되었고 사탄의 아들딸은 더우이나 못 되었다구요. 이것들을 세워 가지고 하늘은 종 새끼로 입적시키는 거예요. 그 종 새끼로 입적시키기 위한 수속을 수많은 종교를 통해서, 종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종 새끼들 중에도 계급이 있어요. 그 계급 계급을 분담시켜 가지고 종 새끼를 모집하는 운동이 지금까지 종교의 사명이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종의 새끼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특출한 패들을 끌어내 가지고, 우수한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그다음에 양자를 만드는 거예요. 양자를 만든다는 거예요.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해서 올라가야 될 것 아니예요? 양자를 만든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예요. 양자를 만들어 놓고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 인간을 찾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양자에서 직계아들딸로 끌어올려야 돼요.
이 직계 아들딸로서 상속적인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예요.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 아들과 우리 타락한 인간으로서 양자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과…. 하나는 돌감람나무요, 하나는 참감람나무지요? 그렇지요? 「예」 성경에 그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하나는 돌감람나무요 하나는 참감람나무라고. 그러므로 돌감람나무를 슬쩍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순을 갖다 접붙여라 이거예요. 옛날 사람은 죽여 버리고 거기에 참감람나무의 순을 갖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돌감람나무가 무슨 감람나무로 되는 거예요? 「참감람나무요」 (녹음 잠시 끊김)
이렇게는 못 올라가요. 맨 밑창에서부터 꺼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백성을 모아 종을 모으고, 종을 모아 양자를 모으고, 양자를 통해 아들을 보내 가지고 접붙여서 아들 급에 올라오게 한 후에는 인류가 본래 맞아야 할 참부모,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 되는 그 두 분을 모셔다 놓고, 그 두분에게 심정적인 인연의 공인을 받아 비로소 타락하지 아니하고 본래 태어났던 아들딸의 입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예요. 알겠어요, 저기 계신 아저씨들? 그렇게 하면 이제 알 거예요. 오늘날 도를 통해 나가는 최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잃어버린 참부모, 천지 부모를 찾는 거예요. 이렇게 땜질을 해서 올라가는 거예요. 꺼꾸로 복귀해서 올라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제일 선하신 분인데, 선하신 분이 기뻐하는 날이 어느때일 것이냐? 선한 자체라면 기뻐하여야 됩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선의 하나님이지만 기뻐하지 못하니 선의 하나님이 아니었어요. 불의와 타협하는 하나님이예요. 지금까지 그랬다는 거예요. 사탄이 참소하면 `오! 그래, 그러지 그러지' 한 거예요.
보라구요. 사탄이 `하나님이여! 저렇게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자랑하는 그 욥 자체를 보면, 당신이 모든 재산을 축복해 주었고 울타리가 되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여기 그 해준 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렇게 공경했지.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 한번 때려 보소, 그까짓 녀석도 다 마찬가지요' 했다구요. 남을 치라는 것은 악입니다. 사탄이 참소하는 그때에 하늘은 채찍을 들어 욥을 치는 거예요. 악하고 타협해 오는 하나님이예요. 조건만 걸리면 꼼짝하지 못한다구요. 그런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악은 우리의 경계 내에서는 용서할 수 없어!' 이럴 수 있는 입장의 권한을 가진 세계를 만들어야 할 하나님인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이 무엇이뇨? 아까 그 말대로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은, 맨 끄트머리의 선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뒤따라가며 사랑을 받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겠지만, 그건 한꺼번에안 되는 거예요. 단계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종 새끼를 만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종 새끼를 만나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직계의 책임을 진 종이 누구냐? 종 중에 종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종의 새끼를 만난 후에는 종이 어느 정도까지 수가 차게 되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양자 새끼를 보내 양자 새끼를 세우는 거예요. 그다음에 종이 된 녀석들은 양자 새끼를 만나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양자가 된 입장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아들을 만나야 됩니다. 그걸 찾아 나오는 거예요. 참아들을 만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참부모를 찾아 나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래야 여러분들이 최고의 선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찾고 있는 선과 제일 좋은 것은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이 누가 되는지 알아요? 알아요? 하나님의 종이 누군지 알아요?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임자네들이 알게 뭐야? 종인지 알 게 뭐야? 하나님의 종인 줄을 모르니까 덮어놓고 종교에서 가르쳐 주기를 `절대 복종, 절대 희생, 절대 항복해라'합니다. 이것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무사통과 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종을 모시는 이상으로 양자를 모시고, 양자를 모시는 데에는 아들 이상 모셔라! 아들을 모시는 데에는 참부모 이상 모셔라! 천지 부모를 모시는 이상 있는 정성을 다해 희생봉사하면서 모셔라! 이렇게 되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종을 만날 수 있는 가치의 경지로 나가고, 양자를 공경하고 모실 수 있는 가치의 자리까지 넘어가고, 직계 아들딸을 모셔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세움받을 수 있는 가치의 자리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오랜 역사를 두고 지긋지긋한 고생과 지긋지긋한 희생을 해 나온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가는 데마다 전부 다 모가지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 복종, 절대 온유겸손, 절대 겸비를 해야됩니다. 무조건 여러 세계를 참아 나가고 그렇게 모시면, 만일에 종이 나를 찾아왔을 때 종 이상으로 모시는 대우를 하고 종을 위하면 그 종이 나를 버리지 못한다구요. 그럴 것 아니예요? 「예」 양자가 나타난 때가 되어 양자를 자기 아들딸이나 하나님의 아들딸보다도 더 정성껏 모신다고 할 때에는 그 양자가 나를 버릴 수 없어요.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또 그다음에 아들이 왔을 때에 아들을 하나님과 같이 혹은 최후에 모셔야 할 참부모와 같이 모시는 사람이 있으면 아들이 박대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사통과할 수 있는 원리원칙이 무엇이냐? 절대 복종이요, 절대 희생이요, 절대 항복입니다. 이해돼요? 그래서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 하나의 아들딸을 세워서 하나의 참부모라는 이 부모의 문을 거치게 하려고, 저 옛날 옛적부터 이 법도의 기준에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 도의 길은 죽음의 길이요 희생의 길이요 봉사의 길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고마워요, 어때요? 고마워요? 알고 보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오늘날 기독교가 수천년 역사노정에서 참살을 당하고 피어린 역사적인 슬픔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슬픔의 길을 걸어온 그 자체를 보게 되면 불쌍한 것이었으나, 하나님이 의도하는 길로서…. '너희들이 가는 길을 따라서 하늘이 찾아오는…. 앞으로 최고의 부모의 문으로 직행할 수 있는 무리들은 너희들밖에 없다! 이것을 세워 놓은 공약 밑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그 법도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를 남기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하나님인 것을 내가 알 때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면 맨 처음에 출발할 때 어떻게 출발해야 되느냐?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그러한 천국의 인연을 최후에 가서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들도 종 새끼 중에 종의 종 새끼가 되자, 종 새끼 중의 종 새끼가 되자는 거예요. 종 새끼라는 것은 무슨 권위가 없는 거예요.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그렇지? 종이 자기 주장이 있어요? 「없어요」 있나요, 없나요? 「없어요」 종은 자기 주장이 없어요. 또 종이란 무가치한 거예요. 자기 주장이 없으니 자기 의견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고 무가치한 거예요. 주장이 없고 가치가 없는 자리예요. 그래서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세상과 등지고 가치 없고 주장이 없는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를 바라보면 주장이 많아요. 망하는 거예요. 불교도 보면 주장이 많아요. 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이제 최고의 것, 제일 좋은 것을 찾아가야 되는데,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그 곳이라구요. 하나님과 최고의 인간을 모실 수 있는, 최고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그 자리 이상으로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 이상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최고의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 잃어버린 참부모를 모셔 가지고 하늘의 사랑 밑에서, 그 평화의 자리에서, 영원무궁토록 그 부모의 슬하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우리 행복입니다. 거기에 들어가게 되면 천지가 다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인간들의 것입니다. 참부모의 것이니 만우주는 그 앞에 주관받는 거예요. (아이들이 많이 움)
그만둬요? 그만둘까요? 「안 됩니다」 아, 이러는데 어떻게 알아먹나요. 안 하고 안 들으면 여러분들이 손해보지 내가 손해볼 것은 없어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하고 다르단 말이예요. 그렇게 언제나 종 새끼 모양으로 이러지 않아요. 이제 그럴 때가 지나갔다구요.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류의 참부모가 상봉하여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평화의 복지로 출발할 수 있는 그곳이 우리의 최고의 소원인데, 그곳을 찾아가려면 인생들은 어떻게 따라가야 되느냐? 종의 멍에를 메고 양자를 거쳐 참아들딸의 기준을 거쳐서 참부모와 심정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참부모가 `내가 너희들을 아들로 삼는다. 딸로 삼는다' 하는 인정을 받아야만 인생의 소원성취가 끝나는 거예요. 그 이상의 무엇이 없어요.
자, 그러려면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떤 시대냐? 아까 말한 것처럼 이렇게 살아 올라가는 시대인데, 개인적인 시대에서 가정적인 시대로 이렇게 쭉 올라가는데, 옛날 구약시대나 종의 섭리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시대에 제아무리 영웅 열사였고 잘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때에 태어난 사람은 개인적인 혜택권 내밖에는 못 올라가는 거예요. 또, 가정적으로 택할 수 있는 시기에 머물렀던 사람은 아무리 세계를 호령하고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주관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보시기에 가정을 택할 수 있는 그 시대의 혜택권을 못 넘어가요.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또, 민족을 택할 때에 와서 믿은 사람은 이걸 다 업고 들어가는 거예요. 민족적인 시대를 맞이하여 여기의 한 사람이 충성을 드리는 것이 옛날 여기의 개인이 충성을 드리는 도수와 같더라도 이는 개인적인 축복밖에 못 받을 존재이지만 충성을 드리는 데 있어서 같은 기준에 섰더라도 시대를 잘 타고 났기 때문에, 시대적인 혜택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복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때에 들어왔으니 종족과 가정과 개인의 축복을 넘어설 수 있는 혜택권 내에 들어간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끝날이 오면 올수록 끝날에 태어난 사람이 복이 많아요. 이해돼요? 「예」
예를 들어 말하면 오늘날 20세기 문명은 과학의 문명이예요. 과학을 중심삼은 공식 발달의 문명이예요. 공식적인 문명이예요. 그런 문명인데, 수많은 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해서 공식으로서 가르쳐 준 그 법도를 알고자 할 때는 천년 수고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모아 놓은 한 권의 책을 우리는 하룻밤에 다 독파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천년 혜택을 하룻밤에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커 나오는 거예요. 때를 따라 커 나오니만큼 개인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가는 거예요. 오늘날 개인적인 시대에 태어났던 것보다도 이 민족적인 시대, 즉 끝날이 가까운 시대에 태어날수록 복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그러면 오늘날 이 세기말적인 시대는 어떠냐? 끝날이예요. 좌우가 부딪치는 이런 세계적인 환경에 처해 있으니, 우주에 둘밖에 안 남았거든요. 둘밖에 안 남아 있으니 둘이 싸우면 뭐가 남는 거예요? 하나가 남지요? 제일 귀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렇지요? 「예」 제일 귀한 것은 하나인데, 하나의 세계가 되는 거예요. 그런 가까운 세계에 왔구나!
그러면 지금 때는 어떤 때냐? 세계적인 때입니다. 세계적인 때는 어떤 때냐? 참부모가 올 때예요. 주님이 올 때예요. 그러면 이 세계적인 때에 있어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옛날에 가정적인 시대에 충성하던 것과 같이 충성하더라도 그 사람은 세계적인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거예요. 이때에 태어났으면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이 가정적인 축복을 받게끔 충성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만한 충성을 하더라도 여기서 세계적인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종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충성하던 사람만큼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충성하면 세계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게 복이예요? 끝날에, 말세에 태어나 이 땅 위에 사는 인간에게 무한한 복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복인동시에 어려운 것이 있다는 거예요. 시련이 많습니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세 혹은 기독교 역사라든가 서양사를 보게 되면, 옛날 구교라는 틀에 감투를 씌워 놓았기 때문에 요지부동(搖之不動)이예요. 마음대로 빠져 못 나간다구요. 그렇지만 지금은 자유의 천지가 됐어요. 이것도 그것 같고 그것도 이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찾기가 힘들어요. 알아내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알아만 내는 날에는 꿩 잡는 거예요. 수가 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선과 악이 대등할 때예요. 선과 악이 맞먹는 때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것도 그것 같고 그것도 요것 같고, 선도 악 같고 악도 선 같고 맞먹는 때예요. 맞먹는 요것을, 이빨을 맞추어 보니 틀려 나가는 것은 떨어지는 거예요.
하나님도 기아가 있다구요. 하나님은 정의의 기아가 있을 거예요. 정의의 기아가 있으니, 이 기아를 만들기 위해서 하늘은 여기에 맞춰 나오기 위한 기아를 닦아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두 세계가 되어가지고 틀고 돌아가는데, 지금 하나님의 기아가 여기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내가 제일이냐? 네가 제일이냐? ' 하며 싸우다가 맞추어보는 거예요. 요가소 맞추어지는 것은 남는 거예요. 안 맞추어지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안 맞춰지는 것은? 망할싸!
오늘 이때가 제일 좋은 때인 동시에 제일 어려운 때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때에 태어났노? 「좋은 때요」 알겠어요? 이때에 태어났는데 이 사람들이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이 사람들이 발견해야 할것이 무엇이냐? 이때에 태어난 것은 복인데, 이 사람들이 발견할 것이 무엇이냐?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돼요. 그렇지요?
사람의 진짜 소원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진짜 통할 수 있는 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되고, 또 그다음엔 사람으로서 지극히 하나밖에 없는 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된다구요.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 줄 알고, 사람으로서의 사정을 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어떤 것이 귀한 것인지 알고,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심정이 어떤 심정이라는 걸 알아야만 된다는 거예요.
또 그다음에는 사람 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알아야 됩니다. 배가 된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소원을 통하고 사정을 통하고 심정을 통하여야만, 3통을 해야만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사람까지 6통을 해야 돼요. 그래야 인간에게 있어서 욕망적인 요건을 딱 세워 보면 소망과 사정과 심정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제1은 무엇이라고? 「소원」 소원. 제2는 뭐라고? 「사정」 그다음엔? 「심정」
문제는 여기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세계에 꽉차고 남을 수 있는 경서가 많더라도 그 경서 가운데서 인간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지적하지 못하면 그 경서는 불살라야 됩니다. 세계 인류가 참다운 인간의 모습으로서 통할 수 있는 사정이 무엇이냐고 가르쳐 주지 못할 때에는 불살라야 돼요. 세계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라고 가르쳐 주는 그런 경서가 아니거든 불살라야 돼요.
거기에 더 보태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은 종교도 아니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줘야 돼요. 그다음엔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줘야 돼요.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도가 나와야됩니다. 그 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도가 될 것입니다. 결론이 나온다는 말이예요. 그럴싸한 것 같아요? 「예」 그럴 것 같아요? 「예」 사람의 소원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통하면 다지, 뭐가 더 있겠어요?
하나님도 지금까지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분이시니만큼 하나님도 소원이 있어요. 하나님도 사정이 있어요. 하나님도 심정이 있어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 인간의 사정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으로 이것만 알면 된다구요. 이것만 알면, 자연히 여기서 풀이하면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대번에 안다구요. 왜?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기 때문에 맞먹어요. 인간의 사정을 잘 알고 인간의 소원을 잘 알고 인간의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소원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거기 품에 들어와 자고 싶은 심정을 지니게 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누구든지 다 복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마련해 나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하는 교회냐? 내 욕심 같아서는 제일가는 교회라고 하고 싶어요. 하나님도 살아 있으면 `야! 지금까지 그런 교회를 못 봤으니 제일가는 교회 한번 되어 봐!' 하고 요구할 거예요. 통일교회는 뭘하는 교회냐? 통일교회에 처음 온 녀석들이 있을 거예요. 통일교회가 뭘하는 교회냐?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교회가 통일교회예요.
또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오신 분인데, 과거의 소원이 무엇이고, 과거의 사정이 무엇이고, 과거의 심정이 무엇이고,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시대에 대한 소원이 무엇이고, 이 시대에 대한 사정이 무엇이고, 시대에 대한 심정이 무엇이고, 또 이제 앞으로 올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냐? 그 내용까지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라야 만국을 포섭할 수 있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만민을 속죄할 수 있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과거의 사정과 심정과 소원이 다 있지요? 현재를 떠나서 미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이 다 있지요? 과거의 하나님, 현재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과 과거의 사람,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이 둘의 사정과 소원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정복한 사람보다도 위대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통일교회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세계를 찾아가고 가르쳐 준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내용이예요.
여러분들, 여기 부모들도 말이예요, 자식을 볼 때 부모의 소원을 지닐 수 있어야만 부모가 찾아가지요? 부모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자식이라야 가까이 오는 거예요. 부모의 심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터가 된자식이라야 부모가 꼼짝못하고, 열 아들이 있고 몇 백 아들이 있더라도`어머니 아버지, 나는 어디 갑니다' 하면 `야! 이것 다 버리더라도 널 놓고는 못 살겠다!' 하고 달려들 거예요. 안 그래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천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제일 되기를 원해요. 제일 좋아지기를 원해요. 제일 좋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제 말씀한 내용의 요건들을 갖추어 가지고 최후에는…. 제일 좋을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요 제일 좋을 수 있는 분이 천지의 부모이니, 그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서 사랑의 가정을 이뤄 우리 참조상과 하나님과 재미있게 살림살이하며 사는 곳이 최고의 곳인데, 그곳까지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시대적인 과정을 거쳐온다는 거예요.
끝날에 태어난 우리는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여기에 처해 있는 우리들이 하여야 할 과업이 무엇이고 해결하여야 할 여건이 무엇이냐? 그런 요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만 되면 하나님이 박대할 수 없어요. 천국 문을 찾아 들어가는데 환영하지 않으면 천지 법도가 어긋난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끝날 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하여야 사명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뇨?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뇨? 인류의 사정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뇨? 인간들의 심정이 무엇이냐? '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온 교회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세계를 다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가르쳐 줄 수 있고 천 사람만 사람 다 교육시킨다고 하게 되면, 이 이념권 내에로 세계는 통일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어요. 알겠어요?
뭐야, 이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통일교회」 통일이라는 것은 지배를 받는 거예요, 지배를 하는 거예요? 「지배하는 거예요」 거느릴 통(統)자 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라 할진대는 무엇을 거느려야 되느냐?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상에는 육계가 있고 영계가 있어요, 영계가.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틀림없이 있어요.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몸뚱이를 쓴 사람들이 사는 동시에 저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사람, 즉 우리 마음의 실체들이 사는 세계가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양심을 보았어요, 양심? 「못 보았습니다」 보았어요, 못 보았어요? 「못 봤습니다」 봤어, 못 봤어? 「못 봤습니다!」 왜 못 봤어? 「안 보이니까…」 그러면 있나요, 없나요? 「있습니다」 있는 걸 왜 못 봤어요? (웃음) 마음과 같은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몸 같은 사람이 있는 동시에, 정신 나간 사람도 사람이지요? 정신이 들어오면 그것도 사람이예요. 사람은 사람인데 무엇이냐? 두 사람이예요, 두 사람. 이중인격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몸뚱이는 만물세계를 대신하여 생겨났고, 이 보이지 않는 영계를 대신하여 마음 사람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두 세계에 있어서 인간은 무엇이라고? 「화동의 중심체」 화동의 중심체요, 중간? 「매개체」 원리에 딱 나와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 요 사람만 천하에서 빼다가 저 태평양 바다에 갖다 놔두면 하나님은 어디로 갈까요? 그 사람이 가는 데에는 천지가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생이요, 천지 중심과 인연맺게 되는 인간이예요. 그러니 그런 분이 있다면 태평양 바다에 있더라도, 조석을 잊고서라도 따라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명으로 오신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분이 거느리는 세계는 어떤 세계예요? 땅만이 아니예요. 사람만이 아니예요. 하늘과 영계, 천상세계와 지상과 인간세계입니다. 그것을 하나님 대신 주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천지를 주관하는 동시에 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신들이 있는데 악신까지도 치리해야 됩니다. 거느려야 된단 말이예요. `야! 이놈아!'하면 `에이-' 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하나님도 그 노릇을 못 했어요.
하나님이 그 노릇을 했으면 악신들에게 전부 다 추방명령을 대번에 했을 텐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것 못 했어요. 이 땅 위에, 천지를 통해 중심존재로 오신 분이 나와서 이런 역사적인 모든 범죄를 다 알아 가지고, `이 악마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긴 거야!' 하며 사탄의 비리를 폭로 가지고,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이 녀석은 천리 법도의 이러이러한 면에서 범죄한 자이니, 심판의 하나님께서 공의의 판단을 내려 주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를 우리가 고소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거예요. 이게 마지막에 도인들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심판하지 못해요. 왜? 진정으로 사랑하는 종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종을 심판대에 올려 모가지를 못 자른다는 거예요. 또, 인간을 심판하지 못해요. 인간은 왜? 자식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으면 전부 다 각을 찢어져 옥살박살 만들고 다시 만들어 줘야 될 텐데, 왜 지금까지 그런 노릇을 못 했느냐? 하나님이 부모로서 본래 사람을 지을 때 `나는 네 애비고 너는 내 자식이라'는 부자의 인연을 갖고 지은 천리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죄지은 자식을 벼락을 때려서 죽이지 못하는 거예요.
세상에 악한 부모라도 자기 아들딸이 사형수가 되어 교수대에 죽으러 나가는 걸 보고 어떻게 생각해요? 부모가 `하나님이여! 저 자식이 죄인이니 어서 모가지를 덜컥 잘라 주소!' 그래요? 그러겠어요, 부모가? 「아니뇨」악한 조상도, 타락한 인간들도 자기 자식이 암만 죄를 지었을 망정 죄지은 그 자리에서 천변지이(天變地異)가 벌어져서 우리 아들이 살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예요, 아니예요? 「그래요」 그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전멸시키지 못하는 거예요. 이해되지요? 「예」
그러니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찾자는 거예요. 다시 돌아오라! 다시 찾자! 내 말을 듣고 다시 찾아오라! 옳은 것을 듣지 못하는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은 지금 다시 찾는 놀음을 하나니, 하나님의 자식들이 원수의 쇠고리에 묶여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이예요.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인생이 가는 노정에 있어서 사탄이가 끌고 가는 포로대열 가운데 낙오자를 주워 모아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예요. 종교를 믿는 사람은 인생노정에 있어서 낙오자들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저기 아저씨,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패가 망신당하여 세상천지에 믿을 게 없어 갈 길을 몰라 방황하다가 할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아 들어온 거예요.
인생행로의 낙오자를 찾아서, 즉 다리 병신, 찌끄러기, 곰배팔이, 병신 중의 상병신이요, 거지 중의 상거지를 찾아서 그것을 고쳐 가지고 아들로 만들겠다는 이 하나님의 처량한 사정을 이 땅 위의 인간이 모른다는 거예요.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오히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이런 비참한 자리에 서 가지고 잃어버린 아들을 수습하면서 이렇게 나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인간 너는 내 아들이요, 나는 네 아버지다'하는 걸 지금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 된 인연과 자식 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천지 법도를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는 날에는 천지를 다 휩쓸어 버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많으시고 전지 전능한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참고 또 참으면서, 여기까지 끌어 올라오는 데는 원수와 싸워서 올라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공의의 하나님 앞에 원수를 끌어다가, 종새끼를 끌어다가 `나는 자식이고 그는 종인데 이놈의 자식이 천도를 어겼다'고 그 죄상을 폭로시켜 심판을 받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존재 원수를 잡아다가 형무소에 가두게 해주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심판을 걸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심판을 걸 수 없으니까 인간이 검사가 되어 가지고, 사탄을 끌어다가 참소하여 공판정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놈을 완전히 청산해 주소!' 하고 청산을 요구하는 한날이 있으니 그날이 무엇이냐? 주님이 오셔서 심판한다는 대심판의 날이예요. 알겠나요? 「예」
대심판이라는 명사가 있으니, 인간은 이렇게 악하게 되고 타락한 것이 틀림없다 이거예요. 그때는 어떤 분이 나오느냐? `이놈의 사탄아! 너는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렇게 유린한 철천지원수로구나!' 해야 합니다. 그 죄상을 공의의 심판주인 하나님 앞에 샅샅이 보고하여 정죄하는 판결이 내리기를 고대하는 , 이런 참소를 할 수 있는 참다운 승리의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하려면 하늘땅을 통일하고 이 원수를 통일해야 됩니다. 원수의 새끼를 전멸시켜 가지고 거기에 있던 모든 인류를 통일시켜야 돼요. 이런 사명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예요.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지요?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었지만 또 갈라져 있어요. 다 갈라져 있어요, 전부 다. 사람도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어 싸움하지요? 부처끼리 가정에서 또 싸움하지요? 형제는 형제끼리 싸움하지요? 종족이면 종족끼리 싸움하지요? 민족이면 민족끼리 싸움하지요? 세계는 세계끼리 싸움한다 이거예요. 다 갈라져 있어요. 다 갈라져 있으니 어디서부터 이것을 합하느냐? 근본부터 해야 됩니다. 맨 처음에 갈라진 것이 인간이니 인간을 타고 넘어가야 됩니다.
합하는 데는 하나님으로부터 합하기 시작해야만 이것을 다시 가를 자가 없다구요. 인간끼리 합하면 또 갈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합동의 한날을 고대하여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합할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그때가 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합했으니 누가 가르느냐 그 말이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아까 말한 노정의 사실을 찾아 나가는 관점에 있어서…. 이 천지 하늘땅의 원수를 복수하여 심판대에 세우는 한 날을 세워서, 승리한 아들딸의 가치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내용을 성취해 보자고 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예」 굉장한 거라구요. 통일교인,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책임을 질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선한 통일교회 교인이 되지 못해요.
그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교인이 되려고 왔어요, 안 되려고 왔어요? 「되려고 왔습니다」 되려니 힘들지요? 여기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는 몇 시간 혹은 한두 시간이지만, 이런 내용을 찾기 위해서는 천신만고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걸어왔다는 걸 모를 거예요. 그러면 그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다 했느냐? 주워 듣고 하는 얘기가 아니예요. 실제 경험담입니다. 실제 경험담이라구요. 그러니 틀리지 않아요. 거짓말이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라구요.
그것이 다른 교회하고 다르다는 거예요. 무엇이 다르냐? 그렇다, 즉`예스', `노'가 결정적이예요. 그러니만큼 두려운 패들입니다. 하늘 앞에는 두려워하는 패요, 세상 앞에 무서운 패들이예요. 우리는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두려운 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패예요. 세상 사탄세계의 사탄들이 무서워하는 패예요. 하나님의 공의의 법도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악한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의 심정이 아까 말한…. 하나님의 소원을 통하고 하늘의 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 가지고, 통일이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행복 가운데 되느냐? 행복,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 아니예요. 고생해야 돼요. 어느 길로 가야 되겠나요? 「고생길」 그런 길을 가려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고생길요」 행복의 길은 여기에 없어요. 고생길을 가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인간 하나를 길러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기쁨의 한날을 맞이하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하지 못했으니 기쁜 날을 못 가졌다는 거예요. 기쁜 날을 가지지 못 했다는 거예요.
여기 왜 웅성거리나요? 그만둘까요? 나도 힘들다구. 그만두자우? 그만큼 얘기했으면 알 거예요. 더 해요? 「예」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쓰러질 각오를 하고 얘기하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정신차려야 될것 아니예요. 어디 뭐 지나가던 사람이 여기 온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의 생명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싸움하는 판국이예요. 선생님은 손해 안 난단 말이예요. 그만둬요, 더 해요? 「더 해요」 자는 녀석이 있으면 볼기를 때려요. `자거든 주먹으로 한 대 들이 갈겨라!' 이럴 때는 선생님이 무섭지요? 한참 얘기할 때는 좋은 말로 얘기하고 욕을 할 때는 무섭다구요.
선생님은 조는 사람을 모아 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더구나 원리 말씀을 강의할 때는 암만 처음 온 무슨 학박사라도 졸게 되면 내쫓는 거예요. 내쫓아 버리는 거예요. 어디서 껄렁껄렁하게 자기 마음대로 그저…. 쓰면 뱉고 달면 삼키게 안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껄렁껄렁한 곳이 아니예요. 이거 세상 사람들, 아주 껄렁껄렁한 녀석들 전부 다 통일교회에 올 때 검사의 눈을 다 가지고 왔지요, 맨 처음에 올 때? 「예」 뱀의 눈, 독사의 눈으로 `어떤가 보자!' 하는 거 다 쳐버려야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통일교회 선생님의 사정을 봐주기 위해서 오는 녀석이 한 마리나 있어요? 뭐 이익 나겠으니 여기 붙어 있고, 손해 안 보겠으니까 달라붙어 있지요. 손해 날 것 같아 봐요, 다 도망가지 안 그래요? 사실 자기들이 끝까지 가더라도 손해는 안 볼 것 같으니까…. 틀림없이 손해는 안 본다구요. 자기들의 것을 천 개 만 개 주고도 못 갖는 거예요. 이렇게 또 욕을 좀 해야 시원하다구요.
자, 하나님의 소원과 뭐?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기 위해 그 길을 돌아 나가려 할 때 행복의 콧노래와 더불어, 좋은 침상에 누워서 몽상과 더불어 할 수 있느냐? 아니예요. 그러면 고생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최고의 영광 중에서 사셔야 할 하나님이예요.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선 하나님의 발걸음에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있을소냐? 이해돼요? 요 아주머니들은 실감이 날 거예요. 젖꼭지를 물려 애지중지 기른 녀석들이 지금 앓아서 당장에 죽으려고 하면, 팔뚝을 자르든지 가슴을 찌르든지 자기 배때기를 째든지 해서 피를 전부 다 먹여서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도 한단말이예요.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부모들도 그러는데 본연의 본성을 가진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은 자식들을 송두리째 생매장하는 , 송두리째 원수 앞에 빼앗긴 걸 생각할 때 어떻겠나요? 밤잠이 오겠느냐 말이예요. 밤잠이 오겠어요? 「안 옵니다」 6천년 동안….
이제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워야 할 아들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아들이예요. 봤지요, 아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아들을 찾기 위한 것이므로 세계에 있어서 종교니 혹은 기도니 하는 명사가 필요치 않는 거예요. 종교에서 기도생활에서 탈출하고 하나님과 동거생활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는데, 이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원수의 품에 가서 종이 된 거예요.
이래 가지고 천신만고하여 사탄하고 조약을 맺는 거예요. `이놈아! 네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천리의 원칙에 어긋나니, 그 어긋난 법도를 대신하여 바른 도리를 찾아서 사람이 나서게 될 때 너희는 주관하지 못 한다!' 하면 여, 그거야`응당히 천리 법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을 통하여 세웠던 법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간섭하겠습니까' 하는 거예요. 간섭하지 못하겠다는 조약 밑에서 인간 앞에 세워 놓은 원리 원칙적인 조건대로 하면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철창을 뚫고 가서 빼앗아 나온다구요. 조건대로 못 하면 그냥 포로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빼앗아 나오기 위해서는 주관을 끝까지 해야 됩니다. 참아들이라면 하늘땅을 주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송두리째 받을 수 있어야 되고, 인간 세상에 참조상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인류들이 그 조상을 천추만대에 길이 천양할 수 있는 조상이라고 모시게 할 수있는 아들로 만드려고 했는데, 그런 아들이 죽어 버렸다 이거예요.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으니 타락입니다.
잃어버린 그 아들을 찾아 나오는 하나님께서 어디 가서?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정신이 나겠나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하여 이름지어 주던 물건 혹은 장난감 같은 걸 보더라도 자식이 죽은 후에는 부모 앞에 다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을 위해 지음받았던 만물도 하나님 앞에 만물 취급을 못 받으니 만물까지 탄식한다고 했어요. 사람까지 탄식하고 하늘땅 전부가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탄식하는 입장에 섰으니, 아들딸을 못 찾는 한 그 탄식을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완전히 찾아 이 만우주에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워놓기 전에는 ,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목적을 완결지을 수 있는 하나의 자리에 세워 내놓기 전에는 , 하나님도 쉴 수 없고 인간에게도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안식이라는 두 글자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처참한 역사적인 곡절이 벌어졌던 것을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천지의 대주재시요 인류 행복의 중심 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 되시는 그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렇게 비참 중의 비참이라는 명사 가운데에서 아직까지 탈을 쓰고 있느냐?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억울하고 처참한 환경에 놓여 있게 됐느냐? 하나님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인간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죄와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하나님이 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져서는 안 될 것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대신 이 억울한 책임을 지고 원수와 대결하여 참아들딸을 찾아 세워서 길러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 새끼, 1년 자란 아담 새끼, 혹은 3년 자란 아담 새끼, 꺾어지면 또 1년도 안 되어 접붙여 가지고 나가다가 또 한 3년 지나 꺾어지면 또 다른 사람을 세워서 접붙였다구요. 이래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하나의 아담이 장성해서 죄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그때의 인간의 가치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거기서 세계적인 종말을 지어 가지고 비로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복귀 사명이예요.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느냐?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사정이 많았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 인간이 제아무리 고생하고, 신문을 보게 되면 3면 기사에 특필되는 집단자살사건이 나오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고통에 비하겠느냐? `이놈아! 하나님이 이런 고생 가운데서 인간을 구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 나왔는데 하늘 앞에 자살이 웬말이냐? '나는 그렇게 보는 거예요.
인간이 제아무리 고생하고 제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6천년 지난 세월을 통하여 나오신 하나님, 자식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이상 불쌍한 자가 어디 있었겠느냐? 그거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아버지는 불쌍한 아버지예요! 자식 된 인간을 찾아와 가지고 설명을 해줄 수 없으니 불쌍하지요. 그러니 갖은 수단을 아끼지 않고 이걸 끌어 나와 오늘날 하늘을 공경할 수 있는 , 하늘을 사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고, 민주진영을 중심삼고 이렇게 만들어 놓기까지는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오늘날 종교인들, 기독교인들을 보게 되면 처량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 배워야 할 것은 행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배우자는 게 아니예요. 그것은 그래도 좋고 안 그래도 좋아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효자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는 거예요. 효를 세울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에서 생기는 거예요. 충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완전히 편안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국태민안한 그런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나라의 형편이 최후의 고비에 부딪쳐서`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전체가 죽느냐, 사느냐? ' 하는 최후의 역경에서 있어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국운을 돌려 국난을 풀어 주는 책임과 내용을 세운 자라야만 그 나라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려울 때 충의 명사, 어려울 때 효의 명사, 어려울때 열녀라는 명사가 역사노정에 기록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세계사에 어떤 페이지를 들여다 볼 때, 어느 누가 더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 나갔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비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만고(萬苦), 일만 가지의 고통을 책임진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제일 불쌍하고 제일 원통하고 제일 서럽고 제일 불행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이 하나님이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여러분이 스스로 뼈와 살에 사무치게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예요, 내 아버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하나님도 고대했지만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오느냐? 오늘날 이 한반도 한 민족에게 기독교 사상이 들어올 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죽인 줄 알아요? 자기 종을 끝없는 바다에, 끝없는 물 구덩이에 쓸어 넣어 그것을 메우는 놀음과 마찬가지예요. 엄청나고 한없는 놀음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생하신 대왕님이예요. 세상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눈물을 흘린 자가 없고, 땀을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땀을 흘린자가 없고, 피를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피흘린 자가 없다는 거예요. 슬픔이라는 명사는 인간의 슬픔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한없는 고통을 가진 하나님의 슬픔을 나타내는 명사입니다. 이 슬픔이 하늘을 위주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땅 위에 사는 수많은 인류는 불행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어요.
행복해요? 여러분들은 행복해요? 돈이 많다고, 권세가 있다고 행복해요? 불행입니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맞아요. 그러면 어느 날에야 이 고생길이 끝나게 되느냐? 안식의 한날이 이 땅 위에, 지구성으로 찾아올 것이냐? 하나님이 쉴 수 있는 날, 하나님이 찾고 있던 아들딸을 찾아 평화의 가정을 건설하는 날, 그날서부터 하늘왕궁에서는 행복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니 대우주가 기뻐하고, 만민 만물은 전부 그것으로부터 봄날을 맞이하여 태평의 양심세계에서 비로소 발을 펴고 안식의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우리가 바라던 이상세계요, 기독교에서 말하던 천년왕국의 때인 것입니다.
복받는 민족, 즉 복받는 사람은 공의에 입각하여 밟히고 희생당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큰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정의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의 철칙입니다. 공의에 입각하여 고생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그게 틀려요? 틀린가요? 「맞습니다」
이런 원칙을 생각할 때에 오늘날 세계 역사노정에 그것이, 여기서 선생님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세계 역사노정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선을 추구하면서 고생을 많이 한 민족이 어느 민족인지 찾아보라는 거예요. 그것이 유대민족이예요. 알겠어요? 「예」 유대민족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공격받는 거예요. 그러니 이 나라 이 사람들에게는 주권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해방할 때까지는 주권이 없어요. 불쌍한 민족입니다. 세계에 유리고객하는 백성이 되었어요.
또 그다음에는 한국 민족, 우리 한국 민족을 생각해 보라구요. 근 4천 5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고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이 민족사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 어느 한 때에 자기 주권국가로서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있어요? 오랫동안 피어린 투쟁 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침략만 받았어요. 이런 민족이예요. 그러면 이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준에 서서 이렇게 나왔다면 이 민족은 희망의 민족이라는 거예요. 유대민족이 희망이 있는 민족이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편에 서서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을, 한날에 하늘의 해원이 풀리는 날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에 쓸어 넣을 것이냐? 오늘날 박 의장(박정희 대통령)이 혁명을 하는데 생사를 개의치 않고 자기 발뒷꿈치로 가까스로 따라나온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구요. 그렇지요? 「예」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사관을 중심삼고 볼 때에, 고생 많이 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나온 민족은 앞으로 특별한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그 터전 위에 가까이 설 수 있다는 것은 이치로 보아 타당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예」
나라가 그렇다면 나라를 제쳐놓고, 하나님은 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개척하여 세계를 구하기 위한 길을 열어 놨으니, 종교 가운데 종교로서 제일 많이 고생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20세기 문명의 첨단에 선 이때에 있어서 기독교 가운데 기독교 교인…. 기독교 가운데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지긋지긋하게 많이 고생하고, 지긋지긋하게 많이 핍박받고, 지긋지긋하게 외롭고, 지긋지긋하게 원통한 자리에서 복귀해 나온 사람이 기독교 중에 주권복을 상속할 자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느냐? 통일교회라는 두 글자를 가진교파는 어디로 가느냐? 영광이 울려 나오는 호화찬란한 자리를 찾아가야 되느냐? 아니면 자기의 일시적인 향락에 파묻혀 콧노래를 부르면서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느냐? `우리는 역사가 이렇게 지향하나니, 이 역사적인 방향을 향하여 정직한 자세를 갖추어 직행하자! 정직한 자세를 갖추어 직행하자! 직행하는 데는 제일 고생길, 즉 하나님이 발을 떼면 그 뒷발꿈치를 내가 딛고 따라가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중심이 그거예요. 하나님이 사해와 같은 이 세계를, 가시밭길과 같은 산곡을, 태산준령을 넘나드는 거기에 있어서 다 싫다고 손을 내저어요. 예수를 따르던 세 제자마저 예수를 비참하게 저버리고 도망갔어요? 이것이 인간 역사에 있어 되어진 사실이니 오늘날 후대의 인간이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장담하겠느냐? 그러니까 그럴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의 발꿈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배반했지만,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뒷발꿈치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그 뒷발자국을 따라가겠다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과거에 아들을 배척했던 죄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각오 밑에서 나가야 되는 거예요.
오늘날 민주진영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민주진영 가운데서 종교단체를 대표하여 제일 고생길을 가자는 거예요. 이것을 빼놓고는 통일이라는 명사가 성립되지 않아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 「예」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교회는 벌거숭이가 되자! 하나님을 위하여 굶고 일하자! 누더기 옷을 입고 일하자! 동삼삭에도 찬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일하자! 없는 가운데서 발전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역사이니…. 하나님이 돈 가지고 일했어요? 하나님이 좋은 옷을 입고 일했어요? 아니예요. 하나님은 통곡하시면서 타락한 인간들을 위해 복귀의 섭리를 해 나왔습니다. 눈물을 흘리게 만들면서 복귀섭리를 해왔습니다. 성신의 감동을 받을 때, 회개라는 두 글자의 간판 밑에서 섭리는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은 뭐냐? 이 민족 앞에, 30억 인류 앞에 원리 말씀을 통하여 외치게 될 때 통곡하는 백성을 만들자는 거예요. 아버지를 죽인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 아버지를 죽인 죄인입니다. 예수는 우리 아버지였어요. 아버지를 죽인 이 죄인이 천벌을 받지 않고 오늘날까지 모양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황공한 거예요. 죽을 날을 재촉하여 하늘 앞에`내가 어서 이 죄를 갚게 하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무리를 하늘은 용서해 주는 가운데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황공해요. 아버지를 죽인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천번 만번 죽는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고생길을 찾아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아까 말한 개인적인 때로부터, 가정적인 때로부터 새로운 하늘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하던 것 말고 앞으로의 새로운 이상세계를 상속시키기 위한 새로운 개인적인 시대로부터, 새로운 가정적인 시대로부터 새로운 민족, 새로운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주의 세계를 향하여 가려니, 일대에도 가기 어려운 길을, 수십대를 거쳐가야 할 길을 이때를 중심삼고 탕감복귀해 가자니 천신만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그 길을 헤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한스런 복귀의 길, 어이하여 우리 인류 조상은 그 비참한 역사적인 곡절을 저끄렀던고?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오늘의 이 몸뚱이에는, 이 세포 가운데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배반한 원수의 피가 섞여 있고, 하늘을 배반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피가 여기 세포 세포마다 분별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이 피를 뽑아 제물로 삼아 주십시요. 불살라 주시옵소서!'라고 할 만큼 지긋지긋한 원수의 피입니다. 나 한 자체는 세계사적인 이 죄악사의 주식회사예요. 보응은 사망이요 멸망밖에 없어야 할 것인데, 아버지 대신 죽는 자리에서 이 몸이 당해야 할 그 고통을 당하여 탕감함으로써 사탄의 참소를 벗게 해 가지고, 죄를 내 대신 벗겨 주셔서 죄 있는 우리들을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까지 아무 공로 없이 갖다 주겠다는 이 은사를 알게 될 때 통곡 안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그런 작전을 해 나왔으니, 심정에 강한 충격을 주어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여 이를 악물고 이 원수를 갚고 말겠다는 하늘을 향하여 맹세하는 무리를 거두어서, 시대 시대마다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 들어 오늘날 개인으로부터 세계무대까지 달려 나온 거예요. 그 미래의 깃발을 오늘날 미국 같은 선진 나라가 못 받게 되니 이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가 받았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 그들이 신문화를 자랑하고 세계 앞에 큰소리하고 있지만, 이런 고통의 길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위하여, 그 아버지가 쉴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복을 준 거예요. 그럴 알아야 됩니다.
미국은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찾아오는 한날에 영광의 잔치를 하기 위하여, 그걸 준비하는 천사장의 사명을 준 거라구요. 세계 모든 물질적인 축복을 해준 것은 뭐냐? 오시는 주님이 살 수있고, 모든 세계무대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오시는 주인에게 그 뜻을 상속시켜 줘 가지고 자유롭게 천하를 호령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미리 보낸 심부름꾼이예요. 이것이 심부름꾼인 줄 모르고 주인으로 온 것을 망각하다니 어떻게 되겠어요? 망하는 거예요.
오시는 주인은 호화찬란한 고른거각에서 오는 게 아니예요. 그 주인은 어디로 오느냐? 피어린 가시밭길을, 6천년 상처를 고스란히 남겨 가지고 그 손에는 가시 투성이요, 그 몸에도 가시 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보기에 남루한 옷을 입고 말로 해서는 알아보지 못할 모양으로 찾아 오는 것입니다. 주인을 몰라 봤다가는 망한다는 거예요.
이런 세계사적인 난국시대가, 비상시가 오기 때문에 천운은 그런 길을 찾아오니, 오늘날 이것을 아는 통일의 무리는 천운이 움직이는 방향을 향하여 상처 입은 아버지를 찾아 모시자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입은 자리에서 찾아가 모시자는 거예요. 슬픈 아버지로 오시니 그 슬픈 눈물을 붙안고 `그대 아픔이 내 아픔이요, 내 아픔이 그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픔이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쥔 것이 없다 할지라도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의 아픔과 그의 심정적인 쓰라림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딸을 붙들고 통사정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요, 부모의 심정입니다.
우리 통일인은 불쌍한 무리예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불쌍한 무리예요. 한국은 세계에서 불쌍한 나라예요. 불쌍한 이 나라 가운데 불쌍한 무리가 누구냐? 우리가 피땀 흘린 것을 누가 알고 누가 알아주느냐 말이예요. 우리가 교파를 확장하기 위해서 밥을 못 먹고 굶으면서 전도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욕망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 통일교회 그 아무개는 지방에 이르기까지 교인들을 파송해 가지고 앞으로 크나큰 무슨 정치적인 야욕을 가지고 궁리하고 있다'며 별의별 의심을 하는 거예요. 그들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럴 것 같으면 내가 이 한국 땅에 있지를 않아요. 오늘 그런 야망을 가졌다면 한국 땅에 있지 않다는 거예요. 벌써 외국에 나갔지요. 청년시절에 벌써 외국 무대에 나갔을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보화를 제일 찾기 힘든 골짜기나 으슥한 곳에 묻어 둔 거예요. 세계 종말시대에 하나님이 만민 앞에,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상속해 주기 위해 보화를 묻어 둔 곳은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골짜기예요. 태산준령을 넘고 인간의 기척이 없는 곳을 찾아가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예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이 몰라주는 길에서 우리들은 통곡했고,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렸으며, 우리는 이것을 위해 땀을 흘렸고, 우리는 피를 팔아 전도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선생님이 남 모르게 통곡하며 `아버지여! 내가 죄인이라면 큰 죄인입니다. 나를 안 연고로 저들이 피를 팔고, 내가 이들의 피를 농락하고 이들의 살을 농락했으니 천벌을 받아야 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되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후손이나, 혹은 현세에 사는 자기민족이나, 혹은 세계 인류 앞에 자기를 세워 가지고 어떤 인연을 맺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한 존재를 세워 놓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가, 혹은 무슨 권고를 하든가, 혹은 무엇을 호소하든가 할 때에, 그 앞에 절대 순응해 주기를 사람은 누구나 다 바라는 거예요. 사람이 그러하듯이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도 그러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하면, 오늘날 이 땅 모든 수많은 인류들을 대해서, 또 지으신 모든 만상세계를 대해서 아버지께서 친히 말씀을 하고 싶고, 권고를 하고 싶고, 충고를 하고 싶은 하나님이예요. 또, 하늘이 귀하게 여기고 하늘이 존중시 여기는 것이 있으면 그 존중시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수천만 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존재세계가 존재할 때까지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한 것을 바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하늘이요, 또 남겨 주고 싶은 하늘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여 줘야 돼요. `나는 이러한 분이니,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니 창조하신 분으로서 지음 받은 모든 만물 앞에 이러한 것을 보여 준다' 보여 줄 것이 있어야 돼요. 하늘은 지금까지 우리 인간앞에 전체를 보여 줬고, 우리 인간 앞에 전체를 보여 준 동시에 전체를 말하고 또 전체를 남겨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 하늘도 수많은 인류들 앞에 찾는 것이 무엇이냐?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완전히 내가 지으신 이상의 세계는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지도 못하였고, 그러한 세계를 맞을 수 있게끔 말하지도 못하였고, 그러한 세계를 영원히 아담 이후에 수많은 후손 앞에 남겨 주지 못하였던 것이 한이었다는 얘기예요.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오면서, 아담으로부터 타락한 이 6천 년 기나긴 세월을 지내 오면서 하늘이 우려했던 것은 참다운 심정을 터놓고 마음과 몸이 간격이 없는 동시에 몸 마음이 하나되어서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으로부터, 사회, 국가, 세계, 온 인류, 참다운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온 인류와 더불어 간격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이 참답게 말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하늘이 참답게 인류 앞에 보여 줬느냐?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또, 하늘이 참답게 남겨 주고 싶었던 모든 것을 그러한 인류들을 맞이하여 남겨 주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럼 복귀섭리라는 것은 무엇이냐? 그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연결시켜서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전개시키고, 가정을 단위로 하여 종족을 거쳐, 민족을 거쳐, 국가를 넘어서 세계, 나중에는 하늘땅까지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이 복귀섭리의 역사요, 하늘의 내적인 고충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들은 재료가 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하늘은 재료로 삼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종족을 동원해서 그 가운데서 재료를 수습해 나왔다 이거예요. 재료를 수습하는 내용은 무엇이냐? 그 내용은 무엇이냐? 그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은 딴 게 아니예요. 진정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진정히 남겨 줄수 있는 사람, 진정히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시대를 중심삼고 개인에서 보여 주고, 그런 가정을 단위로 하여 수많은 가정들 앞에 보여 주고, 한 종족을 거쳐 한 민족을 거치고 한 국가까지 내세워 가지고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온 세계 각각 널려 있는 수많은 국가 앞에 나타내고, 보여 주고, 남겨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라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명명한 그날부터 아브라함이라는 한 자체는 신앙이라는 이런 것을 중심삼아 남겨줄 수 있는 존재요, 보여 줄 수 있는 존재요, 또 그다음에 자랑하고 말하고 싶었던 그런 존재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개인을 중심삼고 이 아브라함의 혈족을 중심삼아 야곱가정을 단위로 하여서 가정적인 인연을 넓혀 나가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어 나온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뭐냐? 본래 하나님께서 말하고 싶었고 남기고 싶었고 자랑하고 싶었던 그러한 신앙 기준에 입각하여, 택함받은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그 후손들은 하늘 앞에 전체가 보여 질 수 있고 하늘앞에 전체가 남겨질 수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되고, 그러한 민족이 되어야 되고, 그러한 한 국가, 유대 나라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되지 못할 때는 도리어 축복한 것이 화로 변하여 나가는 거예요.
야곱은 가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요, 모세는 민족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요, 예수는 세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입니다. 보여 줄 뿐만이 아니라 또 하늘이 진정한 이념을 중심삼아가지고 자기 소원의 모든 회포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대표자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위업으로 지었던 모든 만물을 그냥 넘겨 주려고 하였던 그러한 존재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 그런 역사노정을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과연 이세계 앞에 예수님을 내세워 가지고 진정히 전부 다 말을 하였느냐? 성경이 그걸 증거하는 거예요. 예수님 자신도 사랑하는 제자를 대해서 '내가 일러 줄 것이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신 말씀을 보다라도 예수님 자신도 이 땅 위에 세계적인 대표자로 와 가지고 사랑하는 제자들 대해서 다 말씀 못 한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지 못한 그런 세계를 대해 하나님이 말씀할 수 있겠느냐? 말씀 못 하신다 이거예요. 예수님이 보여 줄 수 있는 이런 인류가 못 되었는데 하나님이 보여 줄 수 있겠느냐? 예수님이 너희들은 천추만대 남길 수 있는 대표자라고 축복해 주지 못한 그런 존재들을 오늘날 이 땅 세계에 제아무리 잘 믿는 신앙자가 있다 하더라도 남겨 줄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소원과 혹은 모세의 소원과 야곱의 소원과 아브라함이 바라던 소원이 완전히 달성됐느냐 하면 달성되지 못하였다는 거예요. 이들의 소원이 달성됐더라도 그 달성된 기반 위에 하나님이 권고를 하고 새로운 무엇을 명령하고 인연을 맺어야만이 이 모든 것이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섭리의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을다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제자들을 가져 가지고 축복하지 못한 이런 입장에 선 지금까지의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느냐? 없다는 겁니다. 그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소원을 성취 못 했다는 거예요.
신앙이라는 역사를 세워 나오면서 하늘이 섭리하시는 구원섭리 앞에 신앙자로서의 목적을 달성했느냐 하면, 아니예요. 또, 하나님으로서 구원섭리의 목적을 달성했느냐? 아니예요. 전부 다 미달성이예요. 미완성, 미급에 머무른 채 역사는 흘러가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하늘이나 땅이나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참다운 신앙자들이 나와서 수많은 오늘날 신앙의 세계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자는 누구뇨? 하나님이 진정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자는 누구뇨? 사람을 세우서 천추만대에 남겨 주고 싶고, 이 사람을 영원히 본받으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 것이냐? 이것이 끝날에 주께서 오실 때에 남아질 수 있는 참다운 신부의 모형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자랑할 수 있고, 남겨 줄 수 있고, 말하고 싶고, 보여 줄 수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겠느냐? 오늘날 이 땅의 누구같이 잘먹고 잘사는, 권세나 명예에 있어서 누구나 우러러볼 수있는 그런 사람이냐? 그러면 오늘날 어떤 교파를 가지고 있고 그 교파를 지도하는 책임자냐?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어떤 주권자냐? 그거 다 아니예요. 그거 다 아니예요.
왜 그러냐?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끝날에 있어서는 반드시 심판이라는 명사 앞에 청산당해야 할 것이 역사의 운명이요, 인류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들이 소망하고 있는 모든 조건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충이라면 충, 효라면 효, 열이라면 열이라는 겁니다. 효성이라면 최고의 효성을 해야 할 것이며, 또 충성이라면 최고의 충성이어야 할 것입니다. 열녀가 된다면 최고의 열녀가 되어야 할 것이예요, 신랑 앞에.
그러면 충ㆍ효ㆍ열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될 때에, 돈이 많다고 충신이 되고, 세상에서 갖춘 모든 것이 남부럽지 않은 입장에 섰다고 해서 효를 갖출 수 있으며 열을 갖출 수 있느냐? 그건 아니예요. 그건 아니예요.
그러면 참다운 효와 충은 어디서부터 벌어질 것이냐? 없는 가운데서 부르짖는 충, 없는 가운데서 나타난 충, 어려운 가운데서 이루어진 충, 없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효, 없는 자리, 어려운 가운데서 이루어진 효, 이것만이 역사에 남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게 천리의 원칙이예요.
여러분이 각 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때에, 그 나라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국가의 운명과 더불어 생사지권을 같이하여 국가의 어려움을 자기의 생명과 더불어 바꾸기 위해 나간 사람들이예요. 반드시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 가운데서 이름을 남겼고, 또 고통스런 가운데서 이름을 남겼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효와 참다운 충을 갖춘, 이제 말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고, 진정으로 남겨 주고 싶고, 진정으로 보여 주고 싶은 그러한 사람, 그러한 신앙자, 그러한 참다운 아들딸은 어디서부터 찾을 것이냐?
보라구요. 노아를 보더라도 노아도 역시 그런 길을 갔고, 아브라함을 보더라도 그런 길을 갔고, 야곱을 보더라도 그런 길을 갔고 모세를 보더라도 그런 길을 갔고, 오늘날 만민을구하기 위해서 오셨던 메시아 역시 그런 길을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왔다 간 2천 년 역사가 지나간 이후 오늘날의 기독교가 순교 역사를 상속해 나온 모든 그 인연은 무엇을 통해 연결돼 있느냐 하면, 죽음과 고통과 눈물을 통해서 연결되어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하여 오늘날 참다운 후손을 맞이하여 역사적인 모든 전체의 소망을 걸고 다시 상속하여 하늘이 남겨 준 소원, 인류가 찾아 세워야 할 소원을 해원해 주기를 지금까지 왔다간 수많은 충신, 효자, 열녀는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신앙자들의 태도는 뭐냐? 역사적인 엄숙한 전체 재료는 인류 누구나 전부 다 소망하는 재료요 하늘이 바라는 재료이니, 이런 내용의 재료를 홀로 상속받아 자기 일신을 통하여 이것을 드러낼 수 있고, 일신을 통하여 이것을 상속받아 세워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 신앙자의 바라는 소원이 되어 있고, 하늘이 바라는 소원이 되어 있다 이거예요.
오늘날 어려운 역사를 지닌 사람들은 자기 과거의 선조를 팔아먹는다 거예요, 뭐 우리의 문화는 어떻고 어떻니 어떻니 하면서 말이예요. 선조를 팔아먹으려면 선조를 팔아먹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돼요. 그 시대를 대신하여 현세면 현세에 있어서 선조를 팔아먹으려면 선조를 팔아먹는 이상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선조를 팔아먹어야 그 선조들이 좋아하지, 만일에 현세의 그 이상의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선조를 팔아먹으면 선조가 저주한다는 거예요.
일개국의 역사, 흑인 세계의 문화사적인 역사노정에 있어서 자기의 민족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역사를 가졌다는 어떠한 민족이 있다면 나는 그 민족 앞에 대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네가 현세에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을 가져 가지고 자랑하느냐? 그렇다면 응당히 옳을 것인데, 그렇지 못할 때에는 비판받아야 될 것이다' 하고 말이예요.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구원섭리역사는 면면히 어길래야 어길 수없는 그러한 역사적인 기반을 통하여, 6천 년 기나긴 역사노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찾아왔는데 오늘날 이러한 역사를 붙들고 자랑한다는 거예요. 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자랑한다는 거예요. 자랑하는 데는 선조들이 바랄 수있는 후손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 역사의 전모를 알아 가지고 자기 선조들이 소망하는 그 입장에 입각하여 그 전체의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입장에 서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조들도 고맙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하늘도 역시 그러한 후손에게는 복을 준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스라엘 역사는 참패의 역사예요. 여러분, 2차대전 당시에 히틀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6백만이 학살당한 것을 볼 때, 그들이 불쌍하지만 역사적인 모든 전부를 다시 한 번 회상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선조들이 바라는 소망의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서 있었는데에도 불구하고 책임 감당을 못 했으므로 죽음으로서 감당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님 그렇게 좋지 않게 생각해요.
그 역사는 시대가 흐르면 흐를 수록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더 큰 세계사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여기에 섭리의 내용과 하나의 인연을 맺게끔 흘러 나가는데, 그 인연맺는 데 있어서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될때는 비참하게 되는 거예요. 불러 세웠던 사람이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그 사람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거예요. 그게 복귀역사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복이라는 것은 공적이예요. 복을 받고 나서 그 책임을…. 복이라는 것은 민족을 위해 주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 주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전체의 뜻을 위하여 복이라는 것은 인연을 맺게 되어 있다 그 말이예요. 복은 자기 일대의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어떤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어진 복이 아니예요. 세상 복을 받아 가지고 큰소리 하는 사람은 오래 못 간다 이거예요. 두고 보라는 거예요. 오래 못간다는 거예요. 복을 받았으면 복받은 만큼 그 복을 준 하늘의 소원이 있을 것이고, 복을 민족을 대표해 주었으면 민족 대표한 사명적인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그 복이 크면 클수록 민족의 운명과 같이해야 돼요.
오늘날 세계적인 재벌들을 가만 보면 말인지요, 그 국가 주권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보조를 취해 나가는데 그건 불가피한 현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복이라는 것이 좋은 거예요. 좋은 것이지만 복은 전체의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하늘의 선민이예요. 이제 말한 거와 같이 이런 전체의 내용이 보여 주고, 자랑하고, 혹은 진정히 남겨 줄 수 있으며, 진정히 하늘의 전폭적인 모든 것을 하늘이 권고할 수있는 이런 전체적인 축복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나아가는 책임을 짊어졌었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축복이 인류를 위한 축복인 줄 몰랐고, 그축복이 만민을 위한 축복인 줄 몰랐고, 그 축복이 하늘땅을 위한 축복인 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망하게 되었던 거예요.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이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잘살기 위해서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관념보다도, 오시는 메시아는 하늘땅을 위해 오시는 분이니 하늘땅을 복받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진정으로 모셨던들 그 민족은 하늘땅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지기 전에는 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민족을 위주해서 메시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민족을 위주해서 나타나지 않은 메시아를 잡아죽이고 망했다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도 앞으로의 자녀들을 길러 세우게 될 때 어떤 사람으로 기를 것이냐? '너는 이 가정을 위해 태어났고, 네 아비 어미를 위해서 태어났으니 아비 어미를 위해서 살라' 하면서 기르지 말라구요. 어머니 아버지 아니예요. 만일에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공적인 입장에 있어서 복을 받은 사람이 자식에게 `너는 부모를 위하여 효성을 다하라'고 해 가지고 효성을 받는 그 아비 어미가 있다면 그 아비 어미는 자기 아들딸 가는 길을 막는 아비 어미라는 거예요.
`나에게는 이러한 복을 하늘이 주었다. 너는 나보다도 큰 이 민족뿐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소유물과 재산을 써라.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위해서 이것을 남겨라' 한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은 하늘이 옹호해 준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은 그랬기 때문에 망했다는 거예요. 자기네 민족만을 위한 메시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민족을 위해 나타난 메시아가 못 되니 잡아죽이고 망해 버린 거예요. 그렇지만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오시는 메시아는 민민을 위한 메시아라고 믿었던들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안 깨진다는 거예요.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에 선생님은 여러분들 앞에 어떤 사상을 집어넣으려고 하느냐? 통일교회라는 요 간판 밑에서 사는 여러분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하늘땅을 넘어서 인류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하고, 외적으로 위하는 입장이 아니라 심정을 넘어서 가지고 위할 수 있는 이런 이념적인 사상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때가 될 때까지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부르짖고 나온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뭐냐? 하늘땅을 위해서 말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뭐냐? 하늘땅을 위해서 보여 주자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뭐냐? 하늘땅을 위해서 남겨 주자는 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삼천리 반도에 태어나 가지고 싸워 나오는 , 투쟁해 나오는 목표라는 거라구요. 여기에 합당치 않은 자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의 원수예요. 맹목적으로 원수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예요. 최고의 복을 받으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들을 몰아 민족적인 시련시대에 있어서, 민족적인 시련시대에 있어서, 학춤을 추고 나가자빠질 사람들은 망해 버려야 된다구요.
지금이 국가와 민족의 시련시대예요. 우리는 국가를 위해 나가는데 이런 시련의 도탄중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한 세계적인 시련 도탄이 내 목전에 다가와도 남아진다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민족이 현재 당하고 있는 국가적인 위기라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 이 느끼는 위기에서 후퇴해 버리고 낙망해 가지고 나가자빠지는 그런 사람은 필요 없다이거예요.
우리는 이보다 더한 세계적인 위기, 하늘땅이 중심을 못 잡고 안팎이 바뀌어지는 이런 혼란 중에서 가더라도 나는 설 자리에 선다고 할 수 있는, 우주적인 위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대노하는 심판 도상에 있어서도 자기의 위치를 세워 심정기반을 중심삼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자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자격자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소원이예요.
하나님이 찾아오는 길은 눈물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 것이냐?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 통일교회의 소원과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소원도 그렇다는 거예요. 끝날에 7년대환란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요 7년 대환란 이 민족적인 환란이예요? 아니예요. 세계적인 대환란이예요. '그저 이 땅 위의 모든 돈 많고 잘난 사람이 꼼짝못하게 전부 다 보따리 둘러멜 수 있는, 세상이 동강나는 7년 대환란이 한번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여러분 바라야 된다구요. 잘났다는 사람 7년 대환란이 와 가지고 어떻게 되나 보자 이거예요. 선생님이 감옥 생활할 때에 사회적인 명사니 어떤 종교적인 대표자들이니 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 봤지만 그 사람들은 다 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예요.
하늘이 끝날에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는 무리는 어떤 무리며 지금까지 주고 싶었던 것을 줄 수 있는 무리, 지금까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러한 무리는 어떤 무리일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무리는 저기 '하! 내 나라 '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요즘 미국이면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자기 나라 중심삼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의 국가 예산을 3분의 2를 남을 줄 수 있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는. 그런 세계가 되어야 돼요. 그러한 정책을 세우는 민족 아니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거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면 길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그거 내용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는 아직까지 자기 위주한 세계예요. 자기 위주한 이런국가 체제예요. 자기를 위주한 사상 체제예요. 그런 사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요, 그런 국가가 하나님이 세워 준 국가라면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언제 자기들이 세운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나님이 해줬어요? 언제 국왕의 취임식을 하나님이 해줬어요? 그러기에 이런 세상은 어차피 지나가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런 세상에서 제아무리 자기 주권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하늘이 보여 줄 수 없는 주권이요, 제아무리 잘난 민족, 혹은 역사, 혹은 주의 사상의 역사를 가졌더라도 그 역사를 천추 만대에 남겨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그들을 붙들고 사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니 그건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무리를 취할 것이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힘찬 생명의 인연은 맨 깊은 가운데 박혀 있는 뿌리라는 거예요. 맨 나중에 죽어 버린 것은 깊은 가운데 박힌 뿌리라는 거예요. 죽을 때 어디서부터 죽어 나오나요? 뿌리서부터 죽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부터 죽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생각지도 않은, 이 인간들이 사망의 세계를 창조하는 깊은 곳에서, 남아진 하나의 뿌리가 그 죽을 밑창에서 인연을 맺고 따라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는 길은 무슨 길이냐? 눈물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천륜이 세워 놓은 원칙적인 섭리의 방향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방향에 입각하지 못한 사람이나 민족은 제거되는 거예요. 역사가 심판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심판하지요.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세계 국가 앞에 있어서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냐? 그런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온, 하나님이 찾아오는 섭리의 방향을 알아서 연결시켜 가지고 앞으로 세계적인 기준을 향하여 가자, 천도가 세워 머무를 수 있는 최고의 목적점을 향하여 가자 하는 민족입니다. 그 가는 데에는 주의 사상이 문제가 아니예요. 민족 관념이 문제가 아니예요. 자기 위주한 가정 관념이 문제 아니예요. 이걸 다 초월하여 하나님 중심삼은 국가 관념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의 관념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 관념, 하나님을 중심삼은 자기 관념을 갖고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태연하게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그런 무리는 앞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문화사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민족이 될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틀림없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한 무리들을 만들어 갖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런 무리를 먼저 찾아갈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무리가 있단다면 하나님이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너한테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라고 하더냐, 이놈아!' 그러겠나요? `야 이놈아, 내가 언제 그러한 이념을 세워 그러한 방향으로 가라고 하더냐? 나 몰라 이 지식아! 왜 왔어? '하고 하나님이 그러겠나 말이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그런 견지에서…. 뭐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견지에서 찾아와야 되는 거예요. 지금 보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요즘 뭐 미ㆍ소관계 때문에 복잡해요? 그건 내가, 말하지 않아요. 미ㆍ소 관계보다 이제부터 십년 후에, 삼십 년 후에, 그때에 말할 수 있는 무리들은 어떤 무리냐? 그때에 말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이것 가지고 말하자는 거예요.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콘크리트를 칠 수 있는 무리, 제일 밑창에 가서 거기에서 모든 요소를 , 모든 좋을 수 있는 요소를 전부 다 가져 가지고 말없이 실천하는 패들이 있다면 그거 무서운 패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낼 것이냐?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통일교회 가는 길 따라가기 힘드니까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돼요. 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졸라매야 되게 돼 있어요. 그래 가지고 뭐 좋은 옷 입고 못 가게 돼 있거든요. 가정이면 가정 식모 발맨 끄트머리서부터 출발이예요. 여러분 식모를 잘 부리지요? `얘, 물 가져 와!', `예이, 상감님' 그거 다 시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새로운 사상적인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저 똥 푸러 다니는 사람들 발 끄트머리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거기서부터 어디까지 나갈 것이냐? 거기서부터 자기를 닦고 어디까지? 세계 끄트머리까지 갈 수 있는 이러한 시련과정을 거쳐 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들어와서 가만 알고 보면 안 갈 수 없어요.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산다고, 젊어서 한 때인데' 한다구요. 그거 염려하는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거예요. 오지말라는 거예요, 여기.
여러분 생애는 여러분이 책임지니까 여러분이 제일 좋을 수 있는 때를 수판을 튕겨 다 따져 보고 어떤 때가 좋은가 맞춰 가지고…. 장사도 수지가 맞아야 돼요. 오늘날 신앙 노선도 말이예요, 자기 일생을 두고 `나 요런 때 간다'고 하는 데, 그때 가서 한번 맞춰 보라는 거예요. 못 맞춰요. 일생에 한번밖에 못 맞춰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이 지금 잡아다가, 들어와 걸려들기만 하면 고생 바가지가 떨어지는 거예요. 안 가겠다는 녀석들은 따로 취급한다구요.
자, 그러면 고생시켜서 뭘할 거예요? 선생님 배에 기름을 찌우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가지고 뭐…. 하늘이 슬퍼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원하지 않는 것을 그렇게 했댔자 될 것이 없다는 거예요. 될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이때에 하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천 사람의 원수가 있으면 천 사람의 원수 앞에 가 가지고, 기필코 이제 이런 한때가 오거늘 완전히 원수 갚기 위해서는 원수 앞에 시련을 당해야 돼요. 그게 하늘의 작전이예요.
원수의 것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천사람의 원수를 한때를 맞이하여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서는, 말도 못하고 얼굴도 들 수 없을 만큼 스스로 머리 숙이고 항복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천 사람 앞에 수욕을 당해야 돼요. 그저 입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수욕을 당해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늘이 내세워서 `야 아무개야!이러한 사명과 이러한 뜻과 이러한 내용을 가져 가지고 너의 집을 방문했고, 너를 위하여 너의 자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사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는데 너는 어떠한 행동을 했느냐? 이러이러한 행동을 했고, 너는 개인적이요, 너는 국가를 무시했고…' 하신다는 겁니다.그런 사람은 걸려 들어간다는 거예요.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이라고 한 것까지 전부 걸어 들어간다는 겁니다. 천 사람, 만 사람 앞에 수욕을 당하다가 한날에 가 가지고 원수를 불러 세워 놓고, 하늘이 그 모든것을 전시해 놓고 옳은 것은 어떤 것이고 그른 것은 어떤 것이냐를 따지는 거예요. 누가 대답하느냐? 하나님이 대답하는 거 아니예요. 사탄을 불러다 놓고 대답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개인을 찾아올 때에 하늘을 위하다 당한 그 수욕을 그런 내용을 들고 개인 대해서 하늘이 제시하게 될 때에, 그 제시한 내용에 대해서 사탄 원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들 앞에 있어서의 죽을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런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민족을 거쳐서 세계까지 나온 거예요. 기독교라는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제물 되어 나오는 거예요.
이 제물 되어 나온 기독교 그 자신들은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 지금 낮잠 자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지 분수를 알아야지요. 분수를 알아야지요. 뭐 예수 믿고 천당가겠어요? 그렇게 간단하면 내 통일교회를 만들지 않았어요, 간단하다면. 남은 쉽게 가는 데 왜 하필 어렵게 가려고 하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만 보는 것이 다르다 이거예요. 아는 것이 다 틀리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수많은, 천이면 천 명의 원수 앞에 수욕을 당해도 꺽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꺾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천의 원수 앞에 수욕을 당하게 할 계획이 있는데 구백 구십 구까지 갔다가 하나 못 넘기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 하나는 누가? 이 뜻을 계승하여 충성하고자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구백 구십 구 기반 위에 하나 함으로써 복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끝날에는 빼앗는 패가, 천국은 힘쓰는 자가 복받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뭐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어떤 사명을 짊어진 하나님의 뜻과 책임적인 분야에서 책임을 해야 된다는 걸 염려하게 될 때에, 만일에 하나님이 수많은 인류 앞에 오늘날 우리 민족을 대신하여 고생하는 이상의 고생을 하기를 바란다면 이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야, 이젠 됐으니 허리띠를 풀고 자, 네 활개 펴고 잠자라!' 그게 사랑 같지만 알고 보면 아니예요.
수많은 국가 앞에, 수많은 종족 앞에 하늘이 세우는 이 길을 넘고 가서도, '야, 이젠 쉬어라' 할 때 `아니요, 내가 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오기를 하늘은 말은 하지 않지만 내심적으로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앞에 책임 맡겨진 이 사명적인 분야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통일교회가 현재에 움직이는 요 상태로서 만족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 되겠느냐 이거예요. 그래 선생님은 `아, 그렇습니다' 하는 대답을 못 해요. `아닙니다' 한다구요. 만일 여러분이 가다 못 가게 되면 이들을 다 내쫓고 외국 사람을 끌어다가 이 놀음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러분 다 쌓아 놓고, 일해 놓고 가는 사람이 되면 되는데, 그냥 가는 사람은 종이예요. 사는 사람이 못 되고 가는 사람이 되면 종이 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응? 「……」
여러분들이 이제 기도할 때에 `나는 원수 앞에 강하게 나가겠습니다. 내 배후에는 부모가 있고, 내 배후에는 우리 종족이 있고, 우리 민족이 있고, 내 배후에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명을 갖고 이들을 대표하여 나는 하늘 앞에 세움 받았습니다.' 해야 돼요. 그러니 시련 도상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나의 후대 앞에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연 되어진 것을 남겨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맨 나중의 끝날에 가서 자기의 선조의 거룩하신 그 남겨진 혈통적인, 혹은 자기 공로적인 그 무엇을 가져 가지고 감사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지 않으면 선조로서의 책임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견지에서 볼 때에, 그러면 어떤 길까지 가야 되느냐?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도. 지금도 그런 생각이예요, 지금도. 환경적으로 벌어진 모든 것이 전부 옛날과 다르다 해서 거기서 `됐다'고 안식해요? 아니예요. 그거 아니예요. 그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우리 앞에 부여해 준 가야 할 길이 크니만큼 어느 기준까지 오기를 바라느냐? 어느 기준까지 이 무리들을 몰고 가기를 바라느냐? 그때는 들이쳐서라도 내모는 거예요. 과정에 있어서는 비참해 보이고, 과정에 있어서는 잔인해 보이지만 가고 나서는 선조가 살아나고 후대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희생을 각오하고 전후좌우 역사적인 존재를 살리기 위해서 개인을 무자비 하게 쳐 몰아야 할 운명의 길이 복귀의 길이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오는 행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역사를 비추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대답해 보라구요. 그래요, 안그래요? 「그렇습니다」 처음 온 사람들은 그런 말 들으면…. 처음 온 사람도 알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말이 어떻다는 것쯤은….
민족을 움직이면 민족을 움직여서 세계적인 투쟁과정에, 세계적인 무대 위에 내세워 가지고 우리는 세계에 널려 있는 원수를 빨리 맞자 이거예요. 맞는 데는 어떻게 맞아야 되느냐? 비난 조소 다 받아라, 무시당하라, 멸시 천대받아라 이거예요.
하늘이 공인하는 복을 받기 위해서 멸시 천대 받아 가지고 망한 옛날의 의인이 없어요. 역사를 들춰봐요. 그 시대에 있어서 선을 대표해서 싸우던 사람이 망한 자가 없어요. 역사적인 선을 대표해서 싸우다가 억울한 데에 쓰러졌다 하여도 그게 쓰러진 것이 아니예요. 그 뒤에서는, 하나가 죽으면 천만인이 옹호해 준다는 거예요.
그러다 억울하게 죽으면 그로 말미암아 폭동이 일어나요, 폭동이. 4. 19의거 알지요, 여러분들? 누구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어요? 3. 15선거 당시에? 「김주열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 때문이예요. 그 한 사람 때문에 전부가 꺾여 나가는 거예요. 선을 위해서 선두에서 투쟁하다가 쓰러져 죽어 제물 된 자는 까마귀 밥이 되는 법이 없어요. 독수리 밥이 되는 법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건 역사가 증거한다 이거예요.
예수도 어떻게 죽었어요? 예수가 어떻게 죽었나요? 예수님 생각해 보라구요. 그 시절에 `예수, 네까짓 게 무슨 메시아야! 메시아는 무슨 메시아야!' 그랬다구요.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가지고 인정된 가치 위에서 바라보니 예수가 메시아로서 뭐 훌륭하다고 하지. 예수가 훌륭하긴 뭐 훌륭해요? 일대일로 보면 너나 나나 마찬가지인데 뭐 가 훌륭해요? 안 그렇겠어요?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를 많이 갖다 올려놨지요? 옛날에 예수 당시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천하통일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수작들 하고 있어요. 내 그런 사람들 보면, 단단히 한 때 걸려 들기만 해라, 세뇌 공작을 단단히 근본적으로 해 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는 불쌍한 사람이예요. 민족 반역자예요, 민족 반역자. 선동분자예요. 누가 뭐, 손꼽을 무슨 뭐 조건이 있었어요? 누구를 위해서 그랬나요? 무엇 때문에? 만민을 위해서 그렇게 나온 것이요, 하늘땅을 위해서 그렇게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나 비참히 죽었지만 하늘땅은 죽지않았다 이거예요.
그들이 칠 수 있는 권한이 어느 정도까지냐? 한 개인을 쳤을망정 하늘땅은 못 치는 거예요. 그들 권세가 얼마나 클 것이냐? 하나님의 권세를 당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망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는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지게 된다는 거예요.
제아무리 원수가 무섭다 한들 하늘땅을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아무리 원수의 권세가 당당해도 하나님의 권세를 당할소냐? 그원칙에 있어서 고이 맞고 원수를 대해서 복귀하기에 얼마나 수고했느냐? 그게 헛되요? 다 쓰러지고 날려 버리고 길 가에서 껍질 벗기고 떼어간 나무와 마찬가지 된 그 터전이라구요. 그렇잖아요? 세 제자까지 도망가던 그 터전이라구요.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한마디가 `나는 다 이루었다' 이거예요. 이것이 부활의 동기가 됐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부활의, 세계적인 새로운 등대가 될수 있었다는 거예요. 새 역사의 등대불이 거기서부터 비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다 이루었다!' 했어요. 뭘 다 이루었어요? 죽는 것이 다 이룬 거예요? 예수는 죽어 가나 하나님이 소원하는 하나님의 소원이 남아 있고, 천주의 소원이 남아 있고, 오늘날 후대의 인류의 소원이 나와 더불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걸 중심삼고는 예수는 죽지 않고 남아지고 승리적인 방패를 세우고 갈 터전을 다 이루었다는 거예요. 내적인 기준에서는 다 이루었다는 말이예요. 그게 할 만한 말이다 이거예요.
이놈의 원수들 대해서 복을 빌어 주었다는 거예요. 성인으로서 와서, 구세주로서 와서할 수 있는 책임을 다했다는 거예요. 죄인도 구원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 복을 빌어 주어야지요. 그렇게 된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역사는 그러한 환경을 바라보고 논단을 짓고, 지금까지의 사회는 그런 자체를 두고 보고 평하지만, 이 섭리의 역사라는 것은 그러한 자체를 두고 평하지 않고 내용과 관계의 소망을 중심삼고 판단한다는 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면, 여자로 말하면 뭐 찍어 바르고, 뭐 하고, 뭐 빼고, 뭐 눈 주위나다듬어 가지고 아주 뭐 봄날에 잘 핀 버드나무 가지 바람에 흔들거리듯이 아주 휘젖고 돌아다니는 그런 패들 잡아다가, 거지탈을 쓰고 민족을 위해서 나가자고 울게 만들 수 있는 이 국가의 지도자가 나오길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야 이 나라를 구해요.
나는 무슨 대학을 나왔느니, 무슨 학 박사니 하는 녀석들 배통을 쥐어 박아요, 이 자식아 하면서. 자기의 양복 짜박지를 다 집어 던지고 노동자의 땀이 흘러 젖은 옷, 비를 맞아 가지고 후줄근한 옷에 시금털털한, 무슨 냄새라고 할까, 별의별 죽은 고기덩어리들, 죽은 사체들 전부 다 한꺼번에 갖다 끓인 냄새가 나는 그런 옷을 입고도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을 빨리 만들어 놓아야 세계가 살게 된다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할 수 없거든 하직하라는 거예요. 조금만 더 숙달이 되면 되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을 잡아다가 이제 한국에서 아주 뭐 똥 구루마 끄는 부대를 만들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고는 안 돼요. 그러지 않으면 세계를 한번 뒤집지 못해요. 못 뒤집는다는 말이예요.
하늘의 복귀 섭리가 뭐냐 하면 고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거예요.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슬픔이 시작된 것이요,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눈물 골짜기가 시작된 것이요,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의 함성이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예요. 이것으로 뿌렸으니 이것으로 거두어야 돼요. 그 눈물과 혹은 죽음과 그 고통은 누구로 말미암아 동기가 되었느냐? 사탄으로 말미암아. 사탄 때문에 시작됐으니 복귀 종말시대에 있어서는 누구를 향하여? 내 슬픔은 아버지를 위하여, 내 눈물은 아버지를 위하여, 내 고통은 아버지를 위하여…. 뿌리는 대로 거두는데 방향이 달라요.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 앞에, 하늘 앞에 하늘의 대신자로서, 하늘의 축복받은 자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런 견지에 있어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울어도 세계적인 대표자가 돼야 하고, 통곡을 해도 세계적인 대표자가 돼야 하고, 고통을 받아도 세계적인 대표자가 돼야 합니다. 이러면서 그 배후의 인연줄은 저 6천 년 전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신 하나님의 창조 전 심정서부터 인연 되어 곡할 심정을 다 휘어 잡고 대성통곡할 수 있어야 돼요. 그 자체의 울음은 하나님의 울음이 되는 거예요. 울긴 사람이 울지만 하나님의 울음이라는 거예요. '야, 이 녀석아! 네가 내 대신 울어 주는구나'하는 거예요.
너무나 슬퍼하면, 민족을 위해서 울 수 있는 도수가 차면 `야, 이제는 그만 울어라' 하고 하나님이 얼러 주는 거예요. 그때 여러분이 `나 이제 눈물 흘리는 거 그만두겠으니 우리 민족을 축복해 주겠습니까? ' 하고 기도해 가지고 축복해 주겠다는 조건을 딱 받아 가지고 눈물 안 흘리면 그 민족은 축복받는 거예요. 세상 사람은 그런 거 모르거든요.
하나님 대신 울게 될 때에, `이런 입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참아들딸인데…. ' 하고 하나님은 바라실 거예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늘의 수고를 대신하여 우는 효자의 울음은 이러해야 할 것인데, 그러한 입장에서 민족을 대표한 효자가 있다면 그 대표자가 울어야 할 하나님이 바라보는 한계점이 있을 거예요, 백이든 천이든. 천을 넘고 만까지….
그러한 슬픔을 가지고 울려고 할 때에 천만 넘으면 하늘과 다 통한다는 거예요. 그때에는 자기 민족을 구해요. 야곱이 그런 의미에서 지혜롭다는 거예요. `축복해 달라!'해 가지고 얍복강 가에서 천사를 붙들고 싸우다 환도뼈가 부러졌는데도 놓치 않았다는 겁니다. 병신이 되더라도 못 놓는다! 내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도 시키는 게 그거예요.
나가 가지고 부락에 가 가지고 다리가, 환도뼈가, 대가리통이 깨져도, 이거 하나 병신 되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버지, 알아주겠어요, 못 알아 주겠어요? 기억해 주겠어요, 안 해주겠어요? ' 할 때, `오냐 너 기억하마!' 해 가지고 기억해 준다면 복받는 거예요. 이것들 그러한 판가리하기 위해서 다 갔는데, 갔다 하면 그저 `이래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저. 선생님은 여러분들 끌고 나가지만 선생님도 싸우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도. 책임이 더 큰 싸움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복을 받을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인간 세상에서의 자기 부모 앞에 상속받은 사람도 어떤 아들이냐 하면 부모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갔던 사람이예요. 부모가 슬퍼하는데도 그저 `아이구, 아버지가 슬퍼하겠으면 슬퍼하고…'하며서 자기는 고기나 먹고 그저 반찬을 해 가지고 편안히 호의호식이나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있으면 뒷골목에 가 가지고 꼬리를 치면서 지내고 그런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아, 난 싫습니다. 형제들을 주시옵소서' 해 가지고 저 구석에 가 가지고 이러는 있는 사람이예요. 부모의 염려거리를 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예요. 형제들의 눈물거리를 대신 자기가 치닥거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게 세상의 이치예요, 이치.
원래 교육이라는 것은 뭐 어려운 과학 전부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니예요. 그것도 가르쳐 주어야지요.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 사람을 만들어 줘야 돼요, 사람을. '네 어미 아비가 이랬으니 너도 어미 아비 따라 이렇게 해라'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미 아비가 자식 대해서 가르쳐 주는데 `가서 도둑질해 가지고 오너라' 하는 게 아니예요. `네가 남을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해서 이렇게…'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건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부정하지 못할진대 앞으로의 통일교회를 어떤 교회로 만들어야 되느냐? 통일이라는 명사는, 통일(統一)이라는 명사가 쉬운 명사가 아니예요.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거느려 하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느려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서는 싫다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뭐 안 되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후퇴라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통일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좋은 거 입고, 좋은 데 살고, 좋은 거 먹고 하는 데에서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데리고 헤어 나오고 있지만서도 먹고 입고 사는 게 제일 문제입니다. 싸움의 80퍼센트는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뭐 `어머니가 나보다도 동생에게 먹을 것, 좋은 것을 주는 구나, 흥!' 하는 거예요. 다 그러는 거예요. `아, 우리 상관은 한 직장인데 아무개 녀석한테 잘 해주고, 아무개는 이렇게 됐는데 난 요렇게 되고, 가만 보면 뭐 비슷한데 왜 그 녀석한테는 한푼 더 주고 왜 나한테는…' 한다구요. 전부 다 싸움이 벌어져요.
그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못 가겠다 하는 곳이 없어야 돼요. 그래야 통일하지요. 못 하겠다는 것이 없어야 돼요. 죽을 사지를 찾아가야 되게 될 때는 갈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와서 내가 거느려 가지고 하나되자고, 통일하자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중심삼고 모이지 말래도 모이는 거예요.
요즘에 정당 관계를 가만 보면 말이예요, 새로운 담을 만들어 정치 활동을 시작해서 잘들 모인다구요. 응, 잘 모이는 구나! 생각한다구요. 그거 생각이 많다구요. 알겠어요?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그러려니 이 글자의 내용을 가지고 무난히 어떤 시대나 어떤 환경을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고생하라! 이게 제일 안전 작전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말이예요, 무슨 미국 같은 데에는 하이웨이 같은 진입로가 있는데 사람은 걸어서 못 다니고 차 아니면 못 다니는 그런 길에서 아주 뭐 시속 백 마일 가까이 달려 가지고 그저 무사통과하는 그것보다도 더 안전하다는 거예요. 그것을 가다가 까딱 잘못하면 옥살박살하는 거예요.
그것이 달릴 때 요즘의 인공위성보다 더 빨리, 1초에 3억 미터가는 태양 빛보다도더 빠른 속도로 달리더라도 이 길을 달리는 데는 무사통과라는 거예요. 여기에는 지장이 없다는 거예요. 방해도 없고 지장도 없다는 거예요. 방해가 있단다면 그놈이 깨져 나간다구요.
그놈의 대가리는 맨 처음에 들어갈 때는 작은 것 같은데 꽁지는 얼마나 큰지 하나님까지도 대령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척 보면 말이지요, 이거 대가리는 아주 뭐 송곳 끄트머리보다 가는데 그놈의 꽁지는 세계가 왈가닥 다 들어가고 하나님까지도 대령한다는 거예요. 그 길이 어떤 길이냐? 여기예요, 여기.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이 길은 선생님도 연구를 해보니까, 알아보니까, 또 기도를 해보니까, 들추고 들추고 해보니까…. 우주적인 발견이라면 그거예요. 그게 천지 통일 쌍화탕이예요. (웃음) 여러분 다방에 가면 쌍화탕 얘기 잘하지요? 웃을 얘기가 아니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매맞아 가지고 민족을 위해 통곡한 것은 지나가지만 지나고 난 후에 그게 벌어지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이 자식아!' 그런 동네가 많다구요, 통일교회 나갔다 들어온 다음에는 동네 싸움이 일어나요. 억울하게 쫓겨나고 억울하게 저기서 매맞고 그런 데에서는 자기들끼리 `이 자식' 하며 자기들끼리 싸움이 일어요.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이거? 대가리는 지나갔지만 몸뚱이가 생겼다 이거예요. 대가리는 지나갔지만 몸뚱이가 있고 꽁지가 있어요.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대령하게 되면 씨알머리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상속자는, 축복의 상속자는 , 더 나아가서 한 말로 말하면 복의 상속자는, 복의 상속자는 이것 안 가지고는 안 됩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결론 나왔지요? 「예」
'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말할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 몇 가지만 물어 볼께요. 눈들 가졌으면 생각들 해보라구요, 그거 거짓말인가, 진짜 말인가. 그래, 선생님이 여러분들 시켜 먹어 가지고…. 선생님이 뭐예요? 강도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 신세를 졌지요, 암만 그래야. 알고 보면 신세를 진 거라구요.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살았지.
그래 욕을 먹고도, 알고 난 다음에 잘못 생각하면 속이 편안치 않거든요. 그래 한마디라도, 생각이라도 좋지 않게 하면 편안치 않다는 말이예요. 이러니까 다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거 아니예요. 알겠어요? 결론이나오지요? 「예」
복은 어디로부터? 「고생을 하는 데부터」 복을 받은 사람도 주지 못해 고생을 해야 돼요, 더 주고 싶어서. `아이고, 내가 요 부락의 어려운 사람들 다 이렇게 도와줬는데, 아이고 이거 저 집이 또 어려운데 또 주고 싶다. 아, 저 이웃 동네에도 한 줌이라도 주고 싶어!'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자기 친척을 위해서 한몫하고, 자기 마을 위해서 한몫하고, 그다음에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한몫하고, 그 몫을 많이 가지고 나가야 그 후손 망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 복받고 살고 싶지요? 복받고 살고 싶지요?
선생님을 지금까지 핍박을 하고, 그저 전부 다 때려죽이지 못해 지금까지 남겨둔 거예요, 죽이질 못해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고와서 남겨 둔 줄 알아요? 여기에 처음 온 사람도 그럴 거라구요. 한때는 아주 귀가 솔깃한 말로 같이 가담해서 욕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대부분 욕한 사람이지요. 99퍼센트까지는 욕한 사람들이예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하면서 이것들 그저 내가 엎어놓고 한 바탕 복수를 해도 뭐 할말 없지요. 다들 뭐 통일교회 편 되기위해서 왔어요? 알아봐라 해 가지고 싸움을 하다 왔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오면서도 없어질 것 같고 망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살아 있어요. 지금까지. 이제 조금 더 나가면 세계가 또 한번 왕창, 세계가 아주 여기 통일교회 선생님 때문에 아주 골치 아플 겁니다. 뭐 저라는 하는 사람을, 한번 딱 장진만 해 가지고 한번 갈기게 될 때는 후루시초프든, 케네디든 한번…. 그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한번 오면 좋겠다구요. 6천 년 전쟁이예요. 몇 년이예요? 「6천년입니다」
지금 2차 대전 이후 17년 됐어요. 우리가 뭐 싸움한 것이 불과 10년 미만인데 지금 이러고 있다 말이예요. 거기서 `죽는다, 세계 사람이 죽는다, 아이고 큰일났구나' 하는 걸 보고내 생각할 때에 6천 년 전쟁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 그까짓 전쟁이야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까짓 백 년 전쟁은 6천 년 전쟁에 비하면…. 태평양 물이 남아 있는데 뭐 조그만한 바가지 물 가지고 싸워요? 그런 판국이란 말이예요, 이게. 하나님은 6천 년 전쟁 도상에 있어서의 선봉에서 지휘 장군이 되어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응? 「예」
우리 통일교회 목표는 7년, 6천 년 대신하여 안식 기간 7수, 7천 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7천 년 역사를 넘어가자는 거거든요, 7천 년 역사. 7천 년 역사를 넘어가야 됩니다. 8수는 재출발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8일 만에 할례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러한 수효를 맞추기 위해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6천 년 전쟁 마당에 6년 전쟁 하기 위해서 가야 됩니다. 못 하겠어요?
`아이고, 내 아들딸이 지금 뭐 죽게 됐고, 아이고 우리 남편이 다…' 그러려거든 그렇게 가서 살란 말이예요, 후방에서. 나오라는 게 아니예요. 아주 시끄러워요. 통일교회가 전부 움직일 적마다 별의별 부모들이 다 있지요. 아주 네활개를 쭉 뻗고서 `날 먹여다오! 우리 자식 공부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만들었어? 공부를 시켜 다오. 대학원을 보내려고 하는데 고등학교밖에 안 가겠다니 그 이상 책임지고 시켜라!' 별의별 부모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래, 시켜 주마….(웃음)
여기 이 통일교회 건물이 6천 년 사회생활의 전시장이예요. 좋은 자화상이예요. 울고 불고 부딪치고…. (웃음) 내 그걸 볼 때마다 `또 한 장면이 벌어지는구나, 언제 끝날지! 언제 끝날 거냐? 시작했으니 끝난다 이거예요. 저것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 거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거꾸러질 거냐, 어떻게 될 거냐? ' 가만히 궁금해서 보게 되는데 시작하면 끝난다구요. 그래, 그런 사람들은 가 쳐박혀 있으라구요. 오라는 거 아니예요, 그런 사람들은. 아, 고이 살림살이나 잘하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다 그만두고 용사들만! 그래, 용사가 필요해요, 용사가. 그래서 통일교회 용사가 되라는 거예요. 용사가 필요해요.
그래 선생님 자신도 그런 놀음하는 거예요. 내 이 길 나설 때는 부모도 없었어요. 처자, 친척도 없었어요. 혼자였다 이거예요. 혼자 이 세계를 향하여 깃발을 내가 만들고, 내가 들고, 내가 출발한다 이거예요. 누가 하나 만들어 줬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거 친구 중의 친굴 거라구요.
깃발도 자기가 만들어야 되고 깃발 드는 것도 자기가 들고 또 깃발을 주는 데도 내가 주고, 또 받겠끔 만들고 그래 나온 거예요. 그래서 이젠 깃발 갖고 오게 되면 많은 것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해 나왔어요.
고생 가운데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복을 빼앗긴 것 같지만 복을 주는 것입니다. 이 노정을 통해서 나간 사람들만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정 못 하지요? 「예」 부정 못 하지요? `뭐 그게 틀렸는데…' 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딴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예요. 딴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예요. 지금 인류 도덕의 배후 관계를 부정할 수없어요. 그래, 염려하는 부분을 복보다도 더 크게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복을 천 년 만년 지니고 가는 거예요.
앞으로 이 민족에 있어서 이런 이념권 내에서 세계적인 복을 받으려면 이민족 중심삼고 염려하는 것보다도 세계적인 것을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 불쌍한 사람들을 어서 살리자!' 할 수 있는 이러한 각오로 민족 전체가 각성하고 민족 전체가 책임지겠다면 그 민족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을, 그러한 무리들을, 그러한 종족들을, 그러한 민족들을 찾아가서 복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하나님은 이 땅위에서 추방당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면 복의 주인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려고 해도 도망가야 돼요. 뭐 축복을 해주든가 하는 그 마당에 있어서의 수라장이 되기 때문에 도망쳐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복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최고의 안전지대가 고생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월급 타게 되면, 월급을 척 타게 되면 `아아고 내 30일 동안 일한 대가기 이것뿐이야' 그럴 거예요. 요즈음 직공 여자들 한 2천 원 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2천 원 타고 그러다 보면 `아, 우리 사장님은 몇 십만 원이고, 누구는 몇 분의 일이고, 난 그 사람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돼. 아이구, 죽어야지' 그러는데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만약에 월급이 그 사람과 십대 일─회사의 주인이 누가 주인이냐? 사장님이 주인이지요─이면 `당신은 십 배를 가졌는, 당신이 회사에 대해 십 배 충성하고 십 배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의 십 분의 일만 하면 하늘땅이 공인할 수 있는 내 책임은 완수입니다' 그럴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여기에서 사장님 이상 내가 염려하고, 내가 그 이상 걱정을 하고, 그 이상 잠 못 자고 할 때에는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 복이 어디로 가느냐?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이 거짓말하면 천상세계에 가서 항의하라구요. 사장님이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는 안 쫓겨나요. 사장 하나 쫓아내는 데는 전부 `옳소!' 하고 수많은 사원들이 찬동할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안 됩니다!' 하고 전사원들이 그런다구요. 알겠어요?
돈 가지고 놀음놀이하는 세상에 복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예」 내가 바라는 것은 이 민족 앞에 이런 사상을 어떻게 빨리 집어넣을 것이냐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에 떠맡기면 반드시…. 요즈음도 눈만 감으면 분한 마음이 생겨요, 분한 마음이. 지금까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어느 누구누구 몇몇 사람이 반대했지만 밥대 안 했으면 오늘날 우리들은 세계적인 무대를 거쳐 가지고 이 민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적 발판도 통일교회를 앞장세웠으면 그렇게 됐을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책임진 사람이 뭘 모르면 모르지만 분하겠어요, 안 분하겠어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예」 우리는 사람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은 많은 눈물 흘렸습니다. 사람들이 볼까봐 산중에 가서 굴 가운데에 가서 통곡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알까 봐서. `아버님만 아시옵소서. 바위굴아 알아라. 천지만 알아라. 그렇지만 한때에 비교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재료를 가지고 모든 것을 만들어서 제시할 때는 , 거기에 한번 비교해서 진짜와 가짜가 부딪치게 될 때는 알 날이 있을것이다!' 그랬다구요. 그래서 지금 민족 앞에 우리는 부딪치는 거예요. 세계 앞에 부딪치는 거예요.
뭣 갖고? 우리는 돈 갖고 하는 것 아니예요. 육탄 갖고, 심정탄 갖고, 가치탄 갖고 부딪치는 거라구요. 그것은 돈 가지고서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자처하고 나선 무리가 통일의 무리예요. 그리고 우리는 세계적인 복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길을 선두에 서서…. 우리는 그 책임하기 위해 모였다 이겁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알았다구요. 이젠 뭐 무슨 욕을 해도…. 그러니까 결론은 복을 통하기 위해서 고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아까로 되돌아 가서, 하나님이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하나님이 말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자기와 같은 사람을 붙들고 말하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땠느냐? 6천 년 전쟁의 마당에 있어서의 총지휘를 하고 나온 거예요. 최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하여 행진 명령을 내는 것은 이미 오래였지만서도 그 달리는 하나님 뒤에 따라 나오는 병사가 없었다는 거예요. 있었어요? 이스라엘 민족 어디 갔노? 기독교 신자 어디 갔노?
오늘날 하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 신자들이 많겠지만, 뭐 천국 가겠다는 사람 많지만 하나님 사정을 하나도 몰라요. 달리고 있는 하나님 앞에 하늘을 위한 병사가 없더라 이거예요. 그 얼마나 처량하겠어요? 얼마나 처량하겠나 말이예요.
오늘날 제일 생사의 첨단에 서 가지고, 이 사선의 접경에 서 가지고 누구보담도 비장하고, 누구보다도 마음을 조이면서 나오신 분이누구냐? 하나님이예요, 하나님. 그 하나님은 기쁜 사람, 혹은 잘사는 사람, 개인주의적인 사람, 그런 사람 친구겠어요? 다 아니예요! 자기 같은 사람 찾나니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고, 세계를 위해서 고생하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붙들고 하나님은 `오냐 내 아들이구나! 오냐, 이제야 너를 만났구나!'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회포의 소원을 다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오냐, 너다 말했으니, 나한테 있는 것 다 네가 주관해라. 영원히 내것을 네 것으로 남겨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그렇게 했으니, 네가 보기에 천한 자리에 누워 있고 처량한 자리에 있지만 너를 들어 만민 앞에 보여 주겠다' 한다는 겁니다. 축복받고 잘사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고생한 그것을 보여 주겠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오는 목적이요, 인간도 지금까지 섭리를 따라 찾아가는 최후의 목적점이니 하나님과 상봉할 수있는 그 자리는 고생을 밟고 올라선 자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7년대환란이라는 명사가 기독교에 남아지게 됐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렇게 되어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이…. 개인이 그런 자리에 있으면 개인을 들어 그러한 자리에 세울 것이요, 혹은 단체면 단체, 국가 민족이면 민족, 한 민족이 그렇게 되게 되면 세계는 그 민족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거예요. 한 교파가 그러한 교파가 나오면 수많은 종교는 머리를 숙여야 됩니다. 그것이 천리의 원칙이예요.
자,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의 철학이 사실이냐 아니냐 한번 시험해 보자구요. 그 실천 과정에 있는 것이 지금 통일교회의 가는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래서 3년 전에 정초에 선생님이 3년 동안 고생하라고 얘기했는데 지옥 세상에 있어서의 우리가 사는 것은 감옥살이예요, 감옥살이. 복역하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3년 기간은 여러분들이 하늘땅 앞에 저끄러진 선조의 죄로부터 시대적인 죄, 미래의 후손에게 남겨 줄 죄까지 전부 다 탕감하기 위한 복역 기간으로 알아 가지고, 형을 받아 가지고 지상 지옥에서 자기 죄를 풀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런 기간이니 고생길 앞에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생 못한 선조의 모든 불평과 불만과 불행이란 글자를 걸어 놓고 내가 총 결실의 자리에 들어가 떨어질 터인데, 떨어질 때의 조상의 불평이 들어와 풍덩 빠지면 그게 간 데 없고, 조상의 후회 고통이 전부 다 나한테 풍덩 빠지면 간 곳 없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기간을 지내고 나 가지고 뭐 하나를 들고 나서게 될 때에, 거기서부터 소망이 생겨나요.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3년 기간을 출발하였다구요. 비단 3년뿐이 아니예요.
앞으로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으니 시련과 고통을 얼마만큼 견뎌내야 될 것이냐? 세상에 그런 견지에서,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하고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해서 뭘할 것이냐? 뭘할 것이냐? 뭘할 것이냐 이거예요.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자는 거예요. 그랬으면 됐지요. `어, 나는 고생했는데…' 그럴 녀석 오지 말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복을 받고 그래 가지고 남아지는 무리가 없어요. 그건 죽어요. 독수리 밥이나 되지요. 이스라엘 민족을 보라 이거예요. 광야에서 전부 다 늑대 밥이 되고, 독수리 밥이 되고, 까마귀 밥이 되지 않았나 이거예요. 어떤녀석들이? 자기만 생각하는 녀석들이. `민족이고 뭣이고 가나안 땅이고 난 싫다. 하나님이고 뭣이고 난 모르겠다' 했던 녀석들 다 죽었지요. 참고 참고 이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노력한 자들은…. 그래서 여러분들을 그러한 목표 밑에서 지금까지 3년 동안 활동시켰습니다. 여러분 앞에 이러한 취지의 내용을 말씀한 이후에 그런 대표적인 사람들을 선생님이 골라 온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고생 제일 많이 한 사람을, 통일교회에서 고생 제일 많이 한 사람을 선생님이 친히 상을 주기는 말이지요, 지난번 `자녀의 날'에 하늘에 기도하고 상을 주기는 처음입니다, 기도하고 주기는 . 선생님이 사인을 하고 상을 주기는 일생에 처음이예요. 축복들은 해줬지요. 상 주기는 자녀의 날이 처음입니다. 모든 조건을 하늘땅에 걸어 놓아 가지고 상을 주는 것은 지난번 자녀의 날이 처음입니다. 3년째 넘어가는 자녀의 날에 안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 그들을 세워 놓고 그들이 걸어 나옴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서의 맹세문을 선포하게 된 거예요. 역사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을 본받아야 돼요. 그렇다고 그들이 하늘을 보게 될 때에 완전히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이냐 하면 그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거기에 있어서는, 심정적인 입장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그들을 위해서 정성들인 그 정성이 있는 거예요. 문제는 그게 문제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고생한 것이 였습니다.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뜻을 대해 이런 기간을 대해 가지고 정성들였습니다. 하루하루를 한 시간도 잊지 않고 생각하는 그 정성과 더불어 거기에 그러한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적인 운세가 이제는 다가온다는 거예요.
그래 여자는 왜 셋을 택해 세워야 되느냐? 여자는 복귀역사 과정에 있어서 신부 복귀하기 위해서…. 아담부터 지금까지 여자들이 전부 다 실패했지요? 삼시대를 거쳐나왔습니다. 알아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세워 놓고 다 그런 것들을 중심삼고 다 해 나옴으로 말미암아 멋진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겠기 때문에 그렇게 해 나왔다구요.
그러니만큼 이제부터는 통일교회의 역사를 꾸며야 돼요. 역사를 꾸미는 데는 가정이 없고 종족이 없어 가지고는 역사를 못 꾸미지요?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도 없는데 무슨 뭐 그 집의 족보를 꾸며요? 족보를 꾸며요? 「못 꾸밉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역사를 못 꾸몄어요. 그렇지만 이제부터 통일교회 역사를 꾸며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통일교회 역사 기록하는 데 있어서의 중요한 기사감이예요.
여러분들도 이러한 자리에 있어서 이러한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 이거 얼마나 행복해요? 여러분이 천추만대 후손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 와서 듣고 있다는 게 말이예요.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요. 그렇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 거예요.
이제 앞으로 통일 이념을 따르는 수많은 민족들이 이들이 고생한 것을 들으면 자기의 고생과 같이 알고 눈물 지을 것입니다. 눈물지을 거예요! 이 일이 어떤 한국에 있는 우리 식구들의 일이 아니예요. 수많은 민족을 대표한 일로서의 이런 놀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를 남겨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에도 한국에 신령한 역사적이 이런 인연을 맺고 왔던 그런 사람을 세워 가지고 간증하게 한 거예요. 그거 역사에 남겨야 돼요. 효원씨 알지? 잘 기록해야 되겠구만. 그러니만큼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첫날에 이러한 자리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런 것들을 쭉 세워 가지고 앞으로 뭘할 것이냐? 하나님께서 교회로서는 통일교회에서 말하고 싶고, 또 보여 주고 싶고, 남겨 주고 싶고…. 하나님 편에 있어서의 교회적인 입장에서 그러한 기준을 남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또 민족적으로 남겨 놓을 수 있는 데까지, 그다음에는 세계까지…. 이래 놓아야 됩니다. 세계까지 그렇게 되면 사탄은 보따리 싸 가지고 `아, 이젠 난 안 되겠다!' 하고 자연 굴복하게 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이제 말하는데 내용을 결정짓는 거예요. 지금까지 자기가 지내온 얘기를 쭉 해 가지고 전부 다 역사에 다 남겨 놓는 거예요. 지금까지 지내온 가정 얘기, 가정 얘기에서 국가면 국가에 대해서 충성을 했다든가, 자기 양심적인 기준 앞에 있어서의 이 민족이 볼 때의 본이 될 수 있는 면, 남 다른 고난의 길을 거쳐오면서 뭘 세우기 위한 그런 과거의 역사적인 일이 있으면 고걸 말하고, 그다음엔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된 터 위에 자기의 결의, 우리 이념이 어떻다라든가 하는 그럼 것을…. 그것이 제1 단계입니다. 그것이 소생단계예요. 알겠어요?
그래, 여기서 들어와 가지고 그다음에 여기까지…. . 여기 들어와 가지고 이것은 장성 기준이니까 투쟁이예요, 투쟁이란 말이예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무슨 투쟁이예요? 밥을 굶었으면 밥 굶은 것에 대해 세밀히 얘기하는 거예요. `아, 뭐식구들한테 자랑될 게…' 하겠지만 자랑이 아니예요. 그건 하늘 앞에 직고하는 시간입니다. 알겠어요, 자기의 역사를 ? 혹은 배가 고파서 죽게 되어서 견디지 못해 가지고 남의 집에 가 가지고 밥 도둑질했으면 거 도둑질한 이야기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웃음)
밥을 훔쳐다 먹고 참외 한 개 그저 수백 번 쥐었다 놨다 했다, 이것을 따 먹었으면 따먹었다, 못 따먹었으면 못 따먹었다,그것까지 얘기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웃음) 그 대신 이것이 지루한 사람들은 지금 가요. 몇 시간 될지 몰라요. 오늘 저녁 예배도 안 볼 지 몰라요. 그러니까 지루한 사람들은 가라구요.
그다음에 자기의 결의를 말하라구요, 자기의 견의를. 이러한 뜻 앞에 있어서의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가겠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한 그런 말씀을 듣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것을 얘기하라는 것입니다. 왜 지금 얘기해 주느냐 하면 말이예요, 자기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 결의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걸 결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알겠지요?
요건 자기가 지금 돌아올 때까지를 얘기하고, 그다음에는 들어와 가지고 이제부터의 결의를…. 자 그럼 누구부터? 그리고 이제 말한 것들을 추려 가지고 영문으로도 다 번역하라구요. 이 골자를 추려 가지고, 이거 전부 다 하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요런 것을 딱 짜 가지고 앞으로의 역사 펴내는 데 있어서 준비를 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 대신 여러분 통일교회를 같이 다녔으면서도 허송 세월 한 사람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자, 여자들부터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여기 모인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의 민족이면 민족의 슬픔, 국가의 슬픔이면 국가의 슬픔, 수많은 슬픔이 있는데 그 슬픔을 제거하고 기쁠 수 있는 무엇을 남기려는 데 있습니다. 남기는 데는 어디서부터 남기느냐? 좋은 자리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반드시 남기는 데는 좋은 자리에서부터는 안 되게 돼 있어요. 어려운 자리에서부터 남겨 가지고 좋은 자리로 올라가야 돼요.
여러분, 대통령 선거 같은 것을 하게 되면 전부 다 지방으로 내려가지요? 선거운동 하러 전부 다 내려간다구요. 지방에서부터 추어 올라와야 된다 이거예요. 백성이 위주예요. 그거 다 하늘의 법도를 세우기 위한 인연을 찾아가는 역사와 마찬가지지요. 그렇게 되면 전부 다 자기가 전체를 대신해서 줘야 된다는 거예요.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좋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길 수 있든가, 혹은 줄 수 있든가 하는 그런 입장에서야만 전체 인연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면 통일교회가 이 슬픈 세상에 있어서 기쁠 수 있는 내용을 직접 주든가 , 줄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만 앞으로 이 민족 앞에 남아지고 이 민족 앞에 필요한 종교가 되지, 그렇지 않고 이 슬픈 세상의 슬픔을 극복해 주지 못하는 통일교회라면 반드시 물러가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 인연의 세계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인연을 알아 가지고 그렇게 가야 돼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민족을 위해서 수고하고 책임해야 된다구요. 책임하는 데는 전후ㆍ좌우ㆍ상하, 천지 전부 해야 돼요. 전후ㆍ좌우ㆍ상하에는 천지 전부가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상하는 천지요, 전후는 부모요, 좌우는 형제라구요. 전부 다 그렇게 끈을 갖추어 가지고 거기에서 치우지지 않는 내 자신의 위치를 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위치만 세워 놓으면 완성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언제 뭐….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여러분 나이 많은 분들 가만히 보면 말이예요, 언제 잠 잘 사이가 없다고 본다구요. 여러분들 가만 보라구요? 자식들을 낳아 가지고 가정을 갖춘, 상하를 갖춘 가정이라야 그 동네면 동네에 있어서 참 모범 되는 가정이라 하고, 그러한 모든 내용을 갖춘 사람이라고 본단 말이예요. 세상도 그렇지만, 하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으면 외롭고, 자기 슬하에 자녀가 없으면 외로운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인간 본심의 작용인데, 복귀도상에 있어서도 그런 길을 찾아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우리 통일교회는 심정적인 인연의 세계를 찾아 나간다는 거예요. 인연의 세계를 찾아 나가는데,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나' 하면 나에게 아버지가 있고 그다음에는 오빠가 있다구요. 그렇지요? 여자를 상대적 관계인 남성 기준으로는 아버지가 있고 오빠가 있고 동생이 있어요. 그리고 남편이 있는 거예요. 여자들에게 있어서 상대적 기준, 심정적 제일 직접 기준이 그거예요. 아버지 있고 오빠가 있고 남편이 있고 동생이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또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들 대신한 어머니가 있고 누나가 있고 자기 아내가 있고 동생이 있다구요. 그렇지요? 「예」
요거 합한 것이 심정적 기준이예요. 요거 사위기대예요. 4수예요. 여기에 상충을 일으키는 사람은 저나라에 못 간다는 거예요. 또 그러한 기준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의 맛을 알아 가지고 그 평화스러운 품김, 심정적인 품김을 모르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 가지고 박자가, 호흡이 안 맞아요. 눈이 병신이든가 뭐가 부자연한 거예요. 환경에 어울리지 못하면 부자연하지요? 응?
복귀역사가 그거예요, 복귀역사가.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복귀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남자의 대표로 와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어머니를 진정히 사랑할 줄 알고 누나를 사랑할 줄 알고 아내를 사랑할 줄 알고 딸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물론이고. 그러면 …. (녹음이 잠시 끊김) 완성해야 돼요. 그다음엔 형님 대할 수 있는 심정 기준을 다 통과해야 돼요. 그리고 동생 대해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하늘 보기에 치우침이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 신랑 되신 주님이라고 오신 그분은 어떤 분이냐? 아버지의 심정과 형님의 심정등 세상편에 있어서 남자로서 사랑이라는 조건을 갖고 체험할 수 있는 내적인 모든 체험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의 신랑적인 기준에서 전부 다 갖다 묶어 놨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랑 되신 주님을 맞기 위해서는 신부가 돼야 되는데, 신부의 자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사랑할 줄 알고 오빠를 사랑할 줄 알고 남편을 사랑할 줄 알고 동생을 사랑할 줄 알아야 돼요. 물론 상대적으로 그래야 되고, 또 자기 편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사랑할 줄 알고, 어머니가 `사랑하는 내 딸아, 내 심정적인 사랑을 전부 너에게 주노라'할 수 있게끔 어머니로부터 심정적인 모든 소유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 누나까지도 `아, 우리 집에는 아무개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게끔 그 누나의 심정을 전부 다 맡아 줄 수 있는 심정의 주인이 되어야 돼요. 그다음엔 동생의 심정까지도 전부 다 맡아 가지고 심정적으로 친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랑이 될 수 있고 신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와서 그 놀음 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 있으니 하나도 없다 이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없다는 거예요.
사탄 세계는 다 예수 앞에 굴복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옛날 타락 전 이상적인 생명나무, 완성한 아담을 형님으로 모시고,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슬픔을 느끼지 않은 본연의 완성한 남자,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본연의 아담을 형님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심정과 그런 이상적인 아담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담시대에 사랑하는 아들딸까지도, 또 사랑하는 동생들까지도…. 형제가 있으면 그런 기준에 있어서 동생들의 심정까지도, 아들딸의 심정까지도 전부 다 상속받을 수 있는 심정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야 신랑이라는 명사를 갖고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그래야 완전복귀를 하지 뭘 가지고 복귀하겠나? 신랑으로 왔으면 어떻게 완전 복귀하겠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러한 심정적 중심을 갖고 왔다면 오늘날 이 땅위에 신부 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부 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신을 어머니로 모시고, 옛날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딸이 될 수 있는 해와를,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여 본연의 딸 될 수 있는 해와를 형님으로 모시고, 그다음에는 앞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신도들을 자기의 동생과 같이 사랑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신부의 자리에 나간다는 거예요. 심정적 사위기반을 갖추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앞으로 한때가 되면 평면적으로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로 인연맺어 나갔지만 앞으로 주님이 오시면 이것이 평면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라는 이름을 갖추어 가지고…. 아까 말한 대로 남자는 아버지 대신, 형님 대신, 동생 대신, 평면적으로 그러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돼요. 그것이 이상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심정에 있어서 부모의 심정이니 부부의 심정이니 자녀의 심정이니 형제의 심정이니 하는 이런 문제를 들고 가게 될 때 이것을 침범해 가지고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신랑 신부의 원칙, 이것이 기반 닦여져야 신랑 신부의 기준이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 심정적 발판이 그런 기반을 통해서 벌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저끄리고, 그러한 원칙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 가지고 완전한 가정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동생이 없든가 형님이 없든가 어머니가 없든가 아버지가 없든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가만 보면 말이지요. 우리 교회에 나와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싶어한다구요. 그 심정이 뭔지 알아요? 아버지로서, 오빠로서, 동생으로서 그런 심정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그 심정적인 모성의 인연이 전부 다 엮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또 남자들도 그래요, 남자들도. 그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면 천하를 통일 못 해요. 통일 못 한다구요. 이 천륜의 원칙을, 천륜의 심정의 세계를 절대 상속 못 받아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까 이야기했는데, 태어난다는 것은 한 번의 제일 귀한 인연을 갖고 나오는 것인데, 그 귀한 인연의 목적지는 어디냐? 심정의 자리를 잡아 가지고 승리한 모습을 가져 가지고 태평가를 부를 수 있는 안식처에 처할 수 있어야만 거기서 심정적인 목적이 달성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그런 세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동생으로서 봉사해야 되고, 오빠로서 봉사해야 되고, 아버지로서 봉사해 주고, 남편으로서 봉사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는 역사예요, 신부들 대해서.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거예요. 내가 동생으로서도 봉사해 주고, 남편으로서도 봉사해 주고, 또 그다음엔 오빠로서도 봉사해 주고, 아버지로서도 봉사해 주는 거예요. 또, 성신은 무엇이냐? 누이 동생으로 봉사해 주고, 누나로 봉사해 주고, 어머니로 봉사해 주고, 신부로 봉사해 주는 거예요. 그러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예수와 성신의 역사예요. 그런 것을 누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심정의 인연을 붙들어야만 자녀가 될 수 있다구요. 아들딸이 되든가, 그다음엔 오빠가 되든가 누나가 되든가, 또 아버지가 되든가 어머니가 되든가 하는 인연을 갖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야 신랑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정을 두고 볼 때, 아버지보다도 신랑 신부가 상대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신랑 신부가 제일 중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에서 신랑 신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거라구요.
그게 뭐냐 하면 말이예요, 전후ㆍ좌우ㆍ상하를 갖추는 거예요. 전후ㆍ좌우ㆍ상하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슬퍼하면 사방에서 슬퍼해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좋아하면 사방에서 다 좋아해야 될 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지방에서 전도 잘하고 기뻐하면 말이지요, 통일교회 교인들 전부 다 좋아해야 된다는 거예요. 거 좋아하지 않는 녀석들은 전부 다 사탄이예요, 사탄. 형제가 좋아하는데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않으면, 그건 전체 이념세계에 속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또 속할 수 없는 자라는 거예요.
그러면 전체를 대신하여 기뻐할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해서 슬퍼할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 만드느냐? 가만있어 가지고 돼요? 그래 슬플 수 있는 길을, 기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돼요. 기뻐하고 슬퍼해 주면 인연맺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들이 고생한 것이 전부 다, 지금까지 고생한 우리들의 수고와 우리들이 좋아한 모든 전부는 앞으로의 기쁨을 남겨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기쁨을 남겨 준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인류를 위하고, 혹은 이 민족을 위해서 남겨 주기 위해 수고했기 때문에 그것을 그때에 받는다는 거예요. `아, 이분들이 수고를 했기 때문에 복귀의 뜻을 벌어졌구나'한다는 거예요.
먼저 나가 싸우는 데는 슬픔의 자리에서 기쁨을 남겨 주기 위해 소망을 갖고 싸워서 지나갔지만, 앞으로 이 뜻을 알고 따라나오는 사람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가 소망으로 바랐던 것이 그때에 가 가지고 열매맺힌다는 거예요. `뜻을 알고 보니 슬픈 길을 간 선조들의 그 모든 전통은 우리를 위해 수고한 것이구나' 이러면서 나갈 때는 일면 슬픔으로, 일면 기쁨으로 복귀되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음, 나는 이런 기쁨을 다시 이 민족 앞에 혹은 세계 앞에…' 이렇게 해야 이 세계가 연결되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가지고,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아 가지고 되겠냐 말이예요. 그런데 세상이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는 자리에 있을 수 없어요. 고통의 세상이예요, 고통의 세상.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괴로워요.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3배 이상 저나라에 가서 탕감받아야 돼요. 몸 괴로워하는 것보다도 마음 괴로워하는 것은 3수를 과하는 거예요. 몸은 1수를 과할수 있지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역사적인 면이라는 것은, 과거ㆍ현재ㆍ미래라는 것은 내적인 세계의 인연에 속해 있기 때문이예요. 오늘날 현실에 속해 있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기 때문에 내적인 인연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때를 맞이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고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서 마음에 주름살이 잡혀진 사람들은 말이지요, 어디에 암만 갖다 놓아도 날개가 부러진 새와 마찬가지예요. 날지를 못해요. 날 것 같은데 날지 못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그러한 환경에 세워 놓아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몸이 괴롭더라도 마음이 즐거우면 그는 승리자예요.
지금 우리들이 슬픈 세상에서 이 괴로워하는 인연을 남기고 가는 데 있어서 몸뚱이가 괴로운 것은 7, 80년 이내로 잠깐 지나간다구요. 알겠어요? 그러나 마음 괴로운 것은 억천만 년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 쓴 동안에 있어서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통해 나가자는 거예요. 그게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환경에 인연된 모든 것을 거쳐 나가는 데는 앞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기쁨이라든가 혹은 직접 줄 수 있는 기쁨을…. 여러분, 그런 놀음은 말이예요, 그런 놀음은 지방에 나가서 전도해야 벌어지는 거예요. 고생하고 이럼으로 말미암아 후대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굶고 뭐 이렇게 고생한 것을 다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몰랐단 말이예요.
`그 사람들이 온 날부터 우리들은 반대하고 뭐 하고 싶은 놀음을 다 하고 밥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잤는데, 그 사람들은 찬 방에서 먹지 못하고 굶으면서 다 이런 것을 했구나. 그들이 이 거룩한 뜻을 갖고 찾아 온 것은 누구의 사명으로 왔느냐? '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기의 오빠와 같이, 자기의 누나와 같이, 혹은 자기의 신랑과 같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모든 정적인 내용의 은사를 갖고 와서 고생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기 부모의 모든 것을 몽땅 빼앗아 주고 싶어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의 상투 끝부터 전부 다 잘라다가, 어머니 아버지, 자기 형제, 그 문중을 송두리째 전부 다 뽑아다가 주어도 부족감을 느낄 수 있게끔 심정 기준이 그렇게 되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편하게 지내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그래, 할수없이 고생길을 가는 거예요. 고생 가운데서 주려고 하고, 고생 가운데서 받으려고 하니 주는 사람은 거기서 그 기쁨을 받게 되는 거예요. 또, 거기서 받는 것이, 그런 고생을 하 면서 주는 한푼의 돈이 억천 만금보다 귀하다는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가치로 보면 무한한 가치라구요.
왜? 내적인 심정의 가치를 첨부해서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적은 거라도 무한한 가치와 통하기 때문이예요. 그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내적인 고충은 천주와 연결되는 비례의 가치라구요. 외적인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그건 적은 거예요. 그래서 몸적 고통은 잠깐이요, 마음적 고통은 영원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앙길에 있어서 양심을 속여 가지고 양심의 고통을 받고 신앙해 나가면 절대 못 빼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큰 그때의 자기의 심정기준 이상의 은사의 자리가 안 되면 못 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회개할 곳, 은혜받을 곳이 어디 있나 하고 찾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주름살을 펴려는 거예요. 심정으로 회개하여 마음으로 주름살 잡힌 것을 펴려면 자기가 마음으로 주름살 잡혔던 것보다도 더 큰 은사의 자리에 가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으면 펼 수 없다구요. 그래서 은혜, 은혜 찾아다니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집에서, 여기 뭐 대개 다 아주머니들인데, 아들딸을 바라볼 때 `아, 내가 죽으면 저것들이 공동묘지 묻어 주겠지' 하는 그게 다예요? 갈 길이 얼마나 바쁘냐 말이예요. 복귀의 길이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인연이예요, 한 번밖에 없는 인연.
보라구요. 여러분들, 지금은…. 이거 한 점 놓고 우주는 도는 거예요. 돌아가는 거예요. 엉클어지고 엉클어지고 돌아가는 거예요.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마찬가지로 돼 있다는 거예요, 이게. 수많은 사람의 양심은 요 한 점을 놓고…. 이 한 점을 기원으로 하여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동반하고, 시대적인 현상과 관계를 맺고, 미래적인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양심의 터전인데, 오늘날 이 터전을 잃어버려가지고 별의별 곡절이, 어디로 이렇게 지나갔지만서도 통하지 않아요. 양심 기준, 이 양심의 한 점이라는 것은 상하ㆍ전후ㆍ좌우가 통해야 돼요. 요것은 입체적이예요. 상하ㆍ전후ㆍ좌우, 요것이 통한 기준에서 딱 자리잡아야 풀려 나갈 것인데, 이렇게 가니 될 게 뭐냐 말이예요. 응?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자리는 어떻게 되느냐? 이 자리는 심정 기준이 아니면 안돼요. 심정 아니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심정? 하늘을 통할 수 있는 부모, 하늘을 통할 수 있는 참부모의 가정, 하늘을 통할 수 있는 자녀의 심정이예요.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 인연을 지금 잃어버렸으니 그걸 찾아 나가는 길이 복귀노정인 거예요.
그걸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기뻐하면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슬퍼하면서 잃어버렸지요? 어디서 잃어버렸어요?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다구요.`아이구, 좋구나' 하면서 잃어버렸어요? 크게 웃으면서 잃어버렸어요? 통곡을 하면서, 가슴을 죄면서, 떨면서, 하늘땅을 보기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두려워하면서, 뼈까지 막 조여 들어오는 그 자리에서 잃어버렸어요. 그런 자리에서 잃어버렸으니 복귀도 그 자리에 해야 돼요. 마음을 졸이면서. 슬픔으로 잃어버렸으니 슬픔으로 찾아야지요. 안 그래요? 슬픔으로 뿌렸으니 슬픔으로 거두어야 된다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과거에 이 길을 오면서…. 여러분을 만날 때는, 하늘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좋은자리,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려고 안 했어요. 예수님의 최고의 슬픈 자리는 겟세마네 동산이요, 그다음은 골고다 산정일 거예요.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 있어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 예수님과 같이 죽을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있었다면 거기에서 슬픈 눈물 흘리고 가는 것으로, 슬픈 세상에서의 남자로서 슬픈 세상에서의 여자로서 그렇게 눈물 흘리고 가는 것으로 슬픈 세상은 끝나는 거예요. 인간의 몸뚱이를 쓰고 슬퍼하며 살아 나오던 인간으로서는 거기에서 끝나는 거예요.
만일에 거기서 그런 인연 맺고 갔다면 예수는 저나라에 가서 오늘날 성신을 보낸 거 같은 역사를 하는 게 아니라구요. 성신을 보내는 것이 아니예요. 옛날 구약시대의 천사들과 같은 영인들이 역사한다는 거예요. 그런 거 생각해 봤어요? 성신이 오는 게 아니예요.
만일에 성신 대신 실체적 존재가 예수와 골고다 산정에서 하늘 앞에 같이 죽어갔더라면, 거기서 슬픔의 눈물을 흘려 같이 죽었다면 인생으로서의 슬픔은 끝나는 거예요. 저나라에 가 가지고는 해방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신이 오는 것이 아니고 누가 오느냐? 옛날 구약시대에 왔다 갔던 성인현철들이 오는 거예요. 성신이 와 있기 때문에 구약의 모세나 아브라함이 같은 이들이 이 땅에 못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뭐 문서들도 모르고 뭐 어떻고…. 그 기준이 안 잡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그 길을 위해서…. 한때에 그러한 땅 위의 한을 슬픔의 눈물을 흘리되 인간으로서 완전히 끊고 가지 못했던 것이 꼬리를 물고 영계까지 따라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인연의 책임져야 것은 예수와 성신, 어머니 아버지이니, 이 어머니 아버지는 그때를 걸어서 인간을 찾아와 가지고 겟세마네 동산, 골고다 산정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찾아와 가지고 거기에 있어서 그런 고생 가운데서라도, 죽음의 자리라도 같이 간다 할 수 있는 과정을 통과해 가지고 인생세계에 있어서 사탄이 참소하던 그 조건을 완결지어 놓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천지의 새로운 법도를 이 땅 위에 세울 수 있는 것을 바라서 재림역사를 지금까지 준비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면 1960년도에 최고로 핍박을 받았어요. 1960년도가 최고의 고비였어요. 그건 뭐 참, 모험이었어요. 죽느냐, 사느냐의 판가리였어요. 거기에서 그런 맹세하는 기준에 서 가지고 죽더라도 간다는 기준으로 버텨 가지고 넘어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전체적인 어떤 사명을 짊어졌으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는 곳에는 성신이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와서 역사하는 거와 같은 역사를 해주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는 곳곳마다 역사를 해주는 겁니다. 얼마나 좋아요? 그것이 종적이 아니라 평면적이예요. 우리가 다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편지 연락도 할 수 있고, 자기 사정도 통고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고 사탄과 싸움 없이 평면적으로 그 놀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복돼요?
그렇지만 예수와 성신이 갈라져 하늘땅 가운데서 지금까지 공중 권세를 사탄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도인들이 이것을 터뜨리려고 싸우다 죽어야 예수와 성신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나오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내용을 알아 가지고 뚫고 나가게 되면 어디 가든지….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를 대표해서 지방에 가게 되면 여러분들은 성신 실체예요. 영적으로 나타난 성신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나타난 주님과 같은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예요. 오늘날 우리들이 실체를 써 가지고 옛날에 주님이, 영적인 부모가 하던 일을 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적으로 그 소질이 무한하다는 거예요.
이제 하늘이 그런 역사를 대외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심정이 돼 있지를 않아요, 심정이. 그 심정을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슬픔의 자리에서 잃어버렸어요. 그러니 그 자리에 가서 복귀해 자리를 잡고 거기에서 부모를 모시고 효자 효녀로서의 칭호를 받아 자기 본궁에 돌아와 살림살이를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탕감복귀 아니예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생각 못 하면, 생각 안 했다면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원리를 알았다는 것은 전부 다 거짓말이예요. 여러분들 앞에는 원리가 하등의 소용이 없는 거예요.
하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길고 긴 세월 가운데 여러분들이 이런 인연으로 그런 한 점과 접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때를 맞이했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지 알아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런 날을 바라면서, 소망의 이때를 바라면서 나온 거예요.
이젠 하늘에서도 선생님 대해서 걱정 안 하거든요. 과거에 이 길을 출발할 때는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셨는지 모른다구요. '네가 이런 험한 길을 가겠느냐?' 하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이 길 가야 되겠습니다.' `네가 가는 곳에 같이 가겠다' 하며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권고하셨지, 지금과는 다르다구요. 지금까지 이 자리를…. 이 자리는 옛날에 출발할 때부터 소망의 자리예요.
여러분, 강도가 말이예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될 때 오른편 강도가 어땠어요? 낙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에 동참하는 거예요. 전부 다 부정했지만 그때 거기에서 믿었다는 그 조건이 귀한 거예요. 무슨 말을 하든지 죽는 자리는 같지만 말이지요, 그때 가 가지고 믿어 주었다는 것이 역사에 있어서 낙원에 제일 선봉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요인이 된 것입니다.
죽을 때에 인연 가진 사람은 천상에 가서도 자랑한다는 거예요. 예수가 저나라에 가 가지고 오른편 강도를 사도들 앞에 내세워야 할 책임이 있지요. 앞으로 선생님이 가게 되면 그런 것을 소개해 줄지 몰라요. 그래서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죽음의 자리에 동참했다는 것은….
선생님이 이런 복귀노정에 있어서 심정을 걸어 놓고 하늘 앞에 애통해할 수 있는, 통곡할 수 있는 한을 품고 나오는 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눈물 한 번 흘렸다는 것은 커다란 일이예요. 어려운 자리에서 눈물 한 번 흘린 것이 뭔지 알아요? 고통을 한 번 받고, 욕을 한 번 먹고, 매를 한 번 맞고, 다리가 부러지고, 혹은 대가리 깨진 것이…. 그놈의 대가리가 암만 깨지면 뭘해요? 그거 사탄세계에서 받아온 거 아니예요?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몰라요.
그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며 여러분을 지금 가만 보면, 먼저 나온 식구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선생님과 점점 멀어져요. 선생님은 멀어져도 여러분은 더 간절해야 돼요. 옛날에는 그래도 교회 오고파서, 못 오면 그저 뭐 눈이 시뻘개 가지고 와서 '아버지, 뭐 어떻고, 집에서 반대가 많아 어떻고 …'하고, 매를 맞고 와 가지고도 그저 뭐 모양새가 어떻게 됐든지' 생각지 않고 그저 통곡을 하고 이러더니….
선생님은 옛날보다도 지금 더 자리잡았어요. 심정에 있어서 선생님이 변덕 있나? 자기들이 있지. 이거 왜 그런 거예요? 간절하던 것들이 왜 다 식어 가요? 간절하던 그게 있으면, 어느 정도인가 알았으면 선생님이야 있든 없든 천륜 앞에 있어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런 책임이 남아 있는데….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낳아서 젖 먹여 길러 놓으면 말이예요, 그다음엔 자기를 중심삼은 하나의 인격자로서, 아들딸로 태어나 가지고 그 부모의 자식이면 자식의 모든 인연을 거쳐 가지고 장발한 후에는 자기로서 살아야할 인생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자기가 가야 할 인생이예요. 자기가 가야 할 살림살이를 품고 가야 된다 말이예요. 그 살림살이 해 가는 데는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세상의 생활과 마찬가지 법도를 따라 가지고 가야 되는 거예요. 복귀역사가 그래요.
앞으로 여기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닦아 놓은 그 생활법도에 따라서 살면서 그 사회적인 생활, 그 이념적인 생활에서의 천적인 가치, 소망적인 가치, 혹은 이상적인 가치를 생활에 접촉시켜 가지고 감사하고 좋아하며 살아야 돼요. 살자는 것이 우리 이상세계의 생활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버지 어머니가 부모로서 자녀를 전부 다 기르게 된다면 말이지요, 그 자기들도 다 시집 장가 가 가지고 자녀를 길러 놓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될게 아니예요?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집이예요!
그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오늘날 `나'라는 것은 공연히 뛰쳐 나온 것이 아니예요. 역사적인 나라구요. 선생님도 괜히 지금까지 고생을 했나요? 6천 년 동안 복귀적인 그 인연을 통해 나왔다 말이예요. 그 역사적인 면에 선 나, 오늘날 시대적인 면에 선 나예요. 그래서 오늘날 역사적인 면에서 자기를 세우려니 탕감역사를 해 나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다음에 시대적인 면에서 자기의 책임 하려니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책임하자 이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미래적인 사명을 하려니 자녀를 남겨야 될 것 아니예요? 아들딸이 필요해요, 아들딸이. 그것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내가 막혀 버려요. 맨 처음에 암만 포장도로를, 아스팔트 대로를 만들었더라도 가다가 산골짜기에서 끊어진다구요. 출발할 때는 전부 다 이 길만 가면 하늘 왕궁까지 직통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지만 가다 보니 끊어지게 된다는 거예요.
하늘은 어디로 찾아올 것이냐? 개인에서부터 출발하여 세계 끝까지 갈 수 있는 대로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야 할 길은 그런 책임을 해야 되는 길이예요. 선생님은 개인적인 5퍼센트 시대가 있었어요. 알겠어요? 선생님의 개인적인 5퍼센트 시대, 가정적인 5퍼센트 시대, 민족적인 5퍼센트 시대, 국가적인 5퍼센트 시대, 세계적인 5퍼센트 시대를, 각 단계를 넘어갈 때는 5퍼센트 책임을 다 거쳐가야 된단 말이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고생 안 시키겠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처박아 가지고 전도도 안 시키고 가만 내버려둔 게 왠 줄 알아요? 그 개인적인 조건의 5퍼센트를 탕감하게 하면 그거 힘들어 가겠느냐 말이예요. 우리가 한 민족이면 민족에 속해 있고, 한 민족은 하나의 종족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진 기준이니 못해도 여러분들은 종족으로부터 민족적인 시대에 세워 가지고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종족과 민족이 없어지지 않는 한, 여러분들은 저나라에 가 가지고 종족과 민족권 내의 혜택을 받게 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해야 할 것은 세계적인 탕감이예요. 세계적인 5퍼센트가 남아 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여러분의 3년 기간은 선생님이 맨 처음에 말한 그 기준에 있어서 탕감적인 조건, 조건적인 삶이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마음이라면 여러분들은 몸뚱이가 돼 가지고 진정히 몸 마음이 하나되어야 될 것 아니예요? 선생님이 이렇게 원하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행동해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 조건적인 싸움이예요, 조건적인 싸움.
선생님은 이번 3년 되는 자녀의 날 전에 우리 애기가 태어날까봐 많이 걱정했다구요. 자녀의 날 지나서 태어났으니 잘했지요. 왜 걱정했느냐 이거예요. 하늘의 전체적인 운을 갖고 오는 사명적인 무엇이 있다면 그런 기반을 외적으로 닦아 놓아야 된다 말이예요. 그래서 다 축복해 준 거예요, 다 시집 장가를 선생님이 마음대로 보낼 수 있게 된다면 이 민족에게도 좋고, 후대에 오는 사람에게도 좋은데, 현실이 그렇게 못 돼 있거든요.
그러니 역사라는 것이 다…. 여러분들도 따라 나와서 뭘할 거예요? `교회에서 뭐 또 그런 놀음 하는 군' 할 거예요. 보면 여러분들 우습지요? 아브라함이 제물 하나, 비둘기 하나 쪼개지 않은 것이 죄가 되는 게 우습잖아요? 그거 우습지 않느냐 말이예요. 제물 드리라고 할 때, 뭐 양 잡고 소 잡고 비둘기 잡는 거 볼 때 거 우습잖아요? `저 녀석들 뭐…' 할 거예요. 그걸 동네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일이예요. 제사 지내는 거 이웃 집 아무개도 하고 아브라함도 하고 아무개도 하는 거예요.
하는 건 다 마찬가지인데 보는 점에서는 다르다는 거예요. 제물이라는 그 제물 가운데는 자기의 종족을 중심삼고 볼 수 있는 제물이 있고, 또 민족을 중심삼고 볼 수 있는 제물이 있고, 하늘땅을 종합하여 바라다 보는 제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마찬가지인데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알게 뭐냐 말이예요. 아브라함도 잘 몰랐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알았다는 거예요. 사탄도 알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잘못했기 때문에 사탄 대해서도 그잘못한 것을, 그 탕감조건을 제시한 것을 취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값을 치르라는 거예요. `내 입회하에서 하늘이 명령하던 것을 받아 가지고 하려다 못 했으니 그 못 한 값을 치르라' 이거예요. 언제나 손 내밀고 탕감해 달라는데 안 해 줄 수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민족이 걸려들고, 세계가 걸려들고, 지금까지 전세계 기독교인이 전부 다 걸려들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교회에서 뭐 하면 마찬가지예요. 알게 뭐야? 좀 다르긴 다르고 이상하지요? 그렇지만 그 이상한 게 엄청난 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참석해서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과거를 위해서,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남기는 데는 무엇을 통해서 남길 것이냐? 이 나라를 통해서 남기는 것이 아니예요. 남기는 데는 자기의 사랑의 혈족을 통해서 남겨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과거, 현재에는 책임 못 했지만 미래에 남길 수 있는 책임자라도 되라는 거예요. 과거, 현재는 선생님이 전부 다 해주니 미래의 것이라도 연결시켜 자기 책임을 해 가지고 복받으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싫다고 그걸 원수와 같이 알고, 이야기만 하면 속으로 `선생님 또 저런 얘기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 가지고 모가지가 툭 걸려요. 속으로도 그런 생각 한 사람은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 가서 그걸 풀 거예요? 땅 위에서 선생님을 통해 맺었는데 누가 풀어요? 선생님이 풀어 줬나요? 하나님은 그렇게 안 보고 있는데 자기들은 그렇게 보니 그 조건이 저나라에 가서 목을 붙든다구요. 다 자기들을 위해서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개인적인 모든 관념, 자기 사정적인 환경에 붙들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돼요? 이다음에 영계 가서도 선생님이 풀어 주지 않으면 절대 못 푼다구요.
그래서 금년 정월이 되기 전에 이제…. 음력 4월이 돌아오면…. 우리는 대개 3월 4월에 행사를 주로 하지만, 하늘의 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왜? 봄절기에 걸렸기 때문이예요. 그렇지요? 그러니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요거 지나가기 전까지 여러분들은 식구들끼리 맺힌 것이 있으면 다 풀어야 돼요. 금년에 다 풀어야 돼요. 아무개, 아무개를 대하는데 있어서 내가 잘못한 것을 저 사람이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안 풀면 안 돼요. 자기가 자진해서 찾아가 풀지 않으면 못 푼다구요. 금년에 다 풀어야 돼요.
그래서 금년에는 나간 사람들, 나가서 반대한 사람들까지도…. 뭐 선생님한테는 최고의 원수지요. 원수이지만 원수를 대해서 예수님은 복 빌어 줬거든요. 그렇지요? 선생님이 얘기한 거와 마찬가지로 금년까지가 나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때예요. 그래서 지금 유효원 협회장을 통해가지고 전부 다 그런 말을 하고 있다구요. 만나 봐라. 만나 보라는 거예요. 만나 봐 가지고 안 받는 건 그럼 어떻게 하느냐? 전부 다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오는 거예요. `너희들도 이다음에 이렇게 해라. 너희들이 하늘의 아들딸이라면 들어와 봐! 문을 개방해라!' 이럼으로 말미암아 대외적으로 하늘이 역사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때가 왔기 때문에 선생님에겐 원수가 없어요. 원수가 참 많지만서도 지금까지 원수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절대 내가 아버지 앞에 기도 한마디 못 했다구요. 이놈의 원수들…' 얼마나 분해요? 분한 것으로 봐서는 뭐 모가지만 잘라? 도리탕을 해먹어도 시원치 않을 원수들이 많다구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절대 안 했다구요. 왜? 이런 한때가 있기 때문이예요. 과거에는 얼마든지 그런 짓을 했지만 용서한다는 거예요. 그런 법이 있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요거 지금 넘어가는 때이니만큼 우리가 그러한 마음 갖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궁중에 나타나서 열 번씩이나 권고하고 하는 그럴 때마다 재앙을 내리고 10재앙을 퍼부어 가지고도 듣지 않으니 장자를 치고 온 거라구요. 결국은 빼앗아 가지고 하늘이 역사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이 기간에 권고해라 이거예요, 그 편에 서서.
이 민족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는 암만 원수의 나라에서 고역을 당했지만 그래도 생명이 살아 남을 수 있게끔 이 땅 위의 곡물을, 혹은 죽을, 시래기 죽 한 사발을 먹었든, 무엇을 먹었든 이 나라 이 땅의 것을 먹었으니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천심을 대신한 인간이 해야 할 최고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 땅 위에 태어난 인연이 있으니 그런 입장에 선 거기에서, 민족을 대표해 선 사람으로서 양심적으로 보게 될 때 하늘땅 앞에 부끄러움이 없고 원수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수까지도 용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 가지고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도 듣고 안 듣는 것은 몰라요. 그다음에 가 가지고는 저주를 해도 말 못 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가 가지고는 장자를 쳐 갈기는 거와 마찬가지의 역사를 해도 하늘은 아무 조건에도 안 걸려요. 그러한 때가 가까워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원리에서 사위기대 복귀라는 말을 배웠지요, 사위기대 복귀라는 말? 지금 보면, 여러분 원리를 갖고 세밀히 이야기 안 하지만, 우리 가정을 중심삼고 되어진 전부가 복귀적인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어느 부분에 갖다 맞춰도 다 맞아떨어진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오늘은 우리 애기를 낳은 날로부터 삼칠일 되는 날이예요. 오늘은 여러분이 참 기뻐해야 되는 거예요, 사실은. 심정문제, 복귀문제, 이런 얘기도 다 이런 때를 맞춰서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사실은 선생님이 기뻐하는 것보다도 여러분이 기뻐해야 된다구요. 또, 삼칠수(3ㆍ7數)수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이건 원리적으로 지극히 귀한 기간이라구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선생님은 식구들과 어머니를 다 모아 놓고 그런 이야기를 쭉 했습니다. 원래는 여기에 함부로 참석하게 안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뭘 알기나 하나?
여러분 보라구요. 지금 국제 정세도 가만 보면, 요즘 나라의 정치문제도 가만 보면 이게…. 이게 전환되면 선생님이 아주 폭탄선언을 한번 할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 거라구요. 전도 나가게 되면 이제 선생님이 모험을 많이 하려고 그런다구요. 지금까지 영계에 있어서 무지무지한 투쟁을 해나온 선생님이니 만큼. 지금까지는 허리 부러진 호랑이 같이 살았어요. 제일 무서움이 없다면 제일 무서움이 없는데 무서움이 많다면 제일 무서움이 많은 사람이예요. 왜?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땅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름나는 것을 싫어했어요. 뒷골목으로 다녔어요, 머리 숙여서. 그렇기 때문에 빨갱이들이 와서 공작하는 마음 잘 알지요. 그거 편하거든. 그런 데로 다니는 게, 으슥한 데로 다니는 게 좋거든요. 지금까지 그런 마음으로 걸어 나온 거예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공격적이예요. 모험도 많이 할 거예요. 모험도 많이 할 거란 말이예요. 그 대신 '이런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러한 명령을 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요즈음에 선생님이 누우면 생각이 그거예요. '이런 일을 해야 할 텐데, 이런 일 해야 할 때에 있어서 일선에 서 가지고 하늘을 대표해서, 참 그야말로 하늘의 용사로 투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러는 거예요. 그래, 지금 그런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선생님이 명령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가 싸울 사람 아니면 안 된다구요. 지금은 공장에 나가서 전부 다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안 된다구요. 앞으로 3년 기간에 있어서 뜻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불러다가 공장에서 일시킬 거라구요. 여기 본부에서 밥 먹는 것도 그래요. 이제 아무나, 밥 못 먹어요. 다 그렇게 된다는 말이예요. 점점 어려워지는 거예요, 점점.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오늘도 내가 아침에 이야기했지만 법도가 많아요, 법도가. 법이 많습니다. 하나의 방향에 있으면 동서남북 있잖아요? 동서남북의 하나에 위치하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위도나 경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몇 도 몇 분 해 가지고 전부 다른 거예요. 그 위치라는 것은 자기가 절대적인 위치에 서 가지고 자기만이 절대적 가치를 갖추어야 할 위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치가 결정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위치가.
뭐 언제나 기성교회 모양으로 이렇게 예배보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생활적으로 하늘을 모셔 나가야 돼요. 그런 거 저런 거 가만 생각하면, 여기 나이 많은 여자들 가만 보면 갈 길이 바빠요. 아까 선생님도 44세가 돼 가지고 이제 50이 가까와 온다고 이야기했지만서도 말이예요, 선생님 자신이 쭉 앞으로 할 것을 생각하면 바빠요. 바쁘다구요. 바쁜데,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천년 만년 살 것 같지요?
선생님은 손을 척 바라보면서 `아, 이거 문선생의 손이구만. 이렇게 생겼는데 내 그래도 지금까지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쭉 만져 주고 하던 손길인데…' 한다구요. 이것이 한번 죽어 가면 물이 되는 거라구요, 물이 돼요. 썩는 거예요, 이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한번 죽게 되면. 그것이 언제냐? 불원하다는 거예요. 다 한 번씩 가는 거예요. 가는 거라구요.
더우기 할머니들 가만 보면 말이지요, 생각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언제 허송세월할 새가 없어요. 시집갈 날짜를 정해 가지고 준비하는 아가씨가 있다면 일거리를 남겨 놓고 낮잠 자고 안 해야 돼요? 그건 갔다 쫓겨와요. 재림역사라는 것은 갔다가 쫓겨 오는 것들이 하는 것이예요. 재림 혜택이니 그거 다 쫓겨 오는 것 아니예요? 가느라고 갔는데, 천국 가느라고 갔는데 쫓겨 오는 거예요. 그거 왜? 준비를 잘못해 가지고 갔거든요.
선생님이 책임을 많이 지면 질수록 그런 책임 분야에 있어서 갈 길이 있고,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책임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까 말한 것처럼 5퍼센트 책임이라는 것은 개인시대ㆍ가정시대ㆍ종족시대ㆍ민족시대를 다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고, 다 이런 놀음 하는 거라구요.
사실은 금년 넘어가면 여러분은 종족적인 대표가 되는 거라구요. 박씨면 박씨, 김씨면 김씨, 이런 대표를 세워서 축복해 주고, 넘어갈 때가 될는지도 몰라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姓氏)로 가진 몇 사람이라도 불러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지금까지 살던 사람들을 다리를 놓아서 축복해 주고 넘어가야 될는지 몰라요. 그런 조건을 걸어 가지고 나이 많은 사람들도 축복해 줄지 몰라요.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자기들이 어느때에 할는지, 오늘 밤에라도 할는지 누가 알 게 뭐예요? 여러분, 그 놀음 할 때 언제 예고하고 하겠어요? 불원간에 그런 날이 있을 거예요. 어느때에 누구를 불러다 축복해 줄지 모르거든요. 어느 부처를 데려다 축복해 줄는지 모르지요. 그러니 끝날에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어요. 그 말이 맞는다는 거예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아이쿠…. 어떡할 테예요? `왜 나한테는 통고하지 않았노?' 하는 거라구요. 지금때가 그런 때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넘어갈 때는…. 이런 몽둥이가 있으면 몽둥이에다 끈을 매고 돌아가는데 만약에 시계 추 같은 것이 있다면 어디에 매여 돌아갈 거예요? 여러분 생각에는 맨 꼭대기라고 대답하겠지요? 꼭대기가 아니라 맨 밑창이라는 거예요, 밑창. 밑창에 매여 있는 거라구요. 왜? 중간에 매게 되면 끊어지기 쉽다는 거예요. 밑창에 매야 땅에 딱 붙었기 때문에 감으면 그대로 돌아가지, 중간에 매 보라구요. 여기에서 딴 놈이 걸려 넘어지면 그놈까지 끌고 넘어가야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맨 밑창이라구요. 우리 교회도 지금 그래요. 자기 스스로 높다 하는 자는 전부 다 거꾸러진다는 거예요. 밑창에 있어야 돼요. 통일교회는 밑창에 왔지요? 밑창이라구요. 세상은 다 혼란되고 세상은 다 죽는다고 야단하지만, 밑창에서, 마음이 안전한 자리에서 자기 갈 길 가자는 거예요. 한바퀴 가면 한바퀴만큼 가까와지는 거예요. 두바퀴 돌리면 두바퀴만큼 가까와지는 거예요. 그렇게 가자는 겁니다.
또, 여러분들이 외적 세계를 가만 보라구요. 세상이 지금 다…. 이제 이 나라도 대가리들, 40대 이상 된 사람 가지고는 절대 수습 못해요. 청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습해야 돼요. 각 당에서 지금 뭐 요즘 야당에서 통합이니 무엇이니 하는 게 신문에 나고 있지만. 그런 건 젊은 놈들이 쫓아내야 된다구요. 이 상투장이들 쫓아내는 데모를 해야 돼요. 먼저 그 녀석들을 내쫓고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이제 그럴 때가 올 거라. 노틀들 전부 다 추방해야 돼요. 그런 기미가 다 보여요. 지금 사실은 그런 선동을 해야 돼요, 선동을.
그래 가지고 어떻게 돌아갈 것이냐? 선생님이 가만 보면 요즈음 아주 구미가 진지하단 말이예요, 구미가. 우리는 그저 말뚝을 치자 이거예요. 바닷물이 밀려 들어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왔다가 다 이렇게 나가니 그저 가재 새끼도 나오고 별의별 것들이 다 기어 나온다구요. 거기다 말뚝을 쳐라 이거예요, 말뚝을. 우린 말뚝치는 패들 이라구요.
한 번 거기에 들어온 고기가 있거든 전부 다 말뚝을 든든히 박자는 거예요. 우리 경험해 봤지요? 콘크리이트를 하여 든든히 박고 그물을 치자는 거예요. 뭐 심정의 그물로 전부 다 쳐 가지고 3천만을 한번 건져 보자는 거예요. `너희들이 못 견디나, 우리들이 못 견디나. 우리 말뚝이 든든하냐, 너희들이 내미는 힘이 세냐' 하는 싸움 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 여러분들을 배고프게 내몰고 고생시키는 지 알아요? 선생님이 이제 가족들을 전부 다 끌고 돌아다니면서 고생할 기간이 있을는지 몰라요. 왜 그래야 되느냐? 지금까지는 탕감적인 수고예요. `아이고, 아버지! 탕감적인 수고가 어느 때에 넘어가겠나? ' 하고 마음 조이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저 마음 졸이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마음 졸이는 놀음 했지만 앞으로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마음 졸이는 거예요. 땅의 성도들이 마음 졸일 수 있는 기간이 있어야 돼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마음 졸이려면 선생님이 그 놀음 해야지요. 그럴 거 아니예요? 아주 뭐 잘 먹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조여들어 올 거라. 뽀직 뽀직, 아주 지져대고 볶아대는 것처럼 타긴 타야 된다구요.
그래야 선생님도 복귀의 기준을 넘어가 가지고 한때에 가서 하나님이 염려하는 기준을 벗어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고통받던 것을 땅의 인간들이 고통으로 느낄 수 있다는 기준을 세워 놓아야만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위신을 찾아 세워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선생님이예요.
이제 어느때, 이 나라가 잘살게 될 때는 뭐 당장에 보따리 싸 가지고 오늘 저녁이라도 어디 갈는지 몰라요. 그런 선생님이예요. 뭐 2층에서 살고 그러는 게 선생님의 소원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집을 지을 생각을 안 한단 말이예요, 집 지을 생각을. 뭐 교회를 수리해? 언제 교회 수리하자는 말 들어 봤어요? 떨어지면 그저 보고…. 그런 얘기는 하지만, 교회 수리하자는 얘기는 안 해요, 효원씨는 가끔 하자고 하지만. 그건 자기가 해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 안 해요.
내 그걸 생각하면, 선생님이 그런 선생님이라면 앞으로 축복받을 패들은 고생을 시킬 거라구요. 앞으로 뭐 선생님이 축복해 주겠다고 하면 전부 다 `아이고, 난 싫습니다' 하고 손을 내저으며 도망갈 수 있게끔 고생시킬 거라구요. 아주 뭐 이빨 새에서 신물이 나는 놀음을 해야 할 패들이 축복받는 패들이예요. `아이고, 난 싫소' 하게끔 고생시키더라도, 여러분들은 그걸 기성교회 교인들이 지금까지 `아, 천국 가겠습니다. 아버지'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지긋지긋하더라도 대가리를 내몰며 고생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저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시키더라도…. 지금까지는 그저 `영광이다, 영광. 천국 간다' 그랬습니다. 그거 아주 좋거든요. 그래서 다 좋다고 그저 대가리를 내밀고 다니던 것들은 다 죽었어요. 지옥에 갈 패들이예요.
그렇지만 앞으로 통일교회 축복이라는 명사에 걸리는 녀석들은 전부 다 생활적인 고통을 겪게 해 가지고 다시 한 번 세계에 내밀어서 천덕 꾸러기를 시켜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망하나. 그렇게 지긋지긋하더라도 거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지금까지 천국 가겠다고 하던 기성교인 이상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만 하늘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있는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조금만 더 지나가게 되면 잡아다가 전부 다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시킬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생각 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는 망하지 않는단 말이예요. 망하지 않아요.
그리고 복귀시대는 3대 복귀예요, 3대 복귀. 그렇잖아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아담부터 제 1차 제 2차 제 3차, 3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축복받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선생님도 고생하고, 다 고생하는 것은 이러한 한때를 거쳐서 넘어가기 위한 거라구요. 그때 못 넘어갈까봐 고생시키는 거지요.
그래야 비로소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평화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하늘나라 천국건설을 하는 데 있어서 사탄과 하늘땅이 전부 다 머리 숙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했다고 다끝나는 게 아니예요? 그런 놀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걸 생각하면….
그게 뭐야, 그 머리가? 좀 창피한 줄 알라구. 선생님은 체면이고 뭐고 몰라요. 최재만이는 `아이고,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다' 하겠지만 망신좀 당해야 돼요. 머리가 이렇게 커 가지고 파마는 또 무슨 파마야? 내가 접때 저 문에 들어올 때 깜짝 놀랐다구. '누군가? 저거 어느 아낙이 오나?' 하고 가만 보니까 이 아주머니야. 옛날에 꼬마 매고 다닐 때는 얼굴 두둑하고 믿을 만해 보이더니, 이건 뭐 딱 그저 장마당에 가 가지고 한 판 싸움하고 들어온 사람 같은 기분이 난단 말이야. 알겠어요? 이제 한국식으로 꼬아 매라구.
명년부터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구찌베니(くちべに;입술연지) 다 철폐예요. 양단 저고리니 무엇이니 전부 다 한국식으로 바꿔 입으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선생님이 양복 끄트머리에 전부 다 불 놓을지 몰라요. 볼 놓기 전에 한복 바지 저고리 입으라구요. 선생님은 그거 좋아한다 말이예요. 한국에 있는 동안 그러고 있다가 어디 가더라도 가고 싶다구요.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우리를 못살게 했지요? 지금까지 그랬지요? 이제 세상에서도 우리를 환영할 때가 오게 되면 선생님이 못살게 할 거예요, 선생님이. (웃음)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이건 선생님 등살에 못 견디겠다, 선생님 등살에 못 살아 먹겠다' 이러며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구요. 아버지 등살에 지금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는 사람이 많거든요. 선생님 등살에, 통일교회 선생님 등살에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갈 사람 어디 얼마나 나오나 보자, 그래야 될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주 뭐 돈만 보게 되면…. 10원 밖에 없는 아주머니의 지갑의 돈을 보면 그 10원도 그저 빼앗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궁중에서, 애급에서 나올 때 어땠는 지 알아요? 딱 마지막 고개에 들어가 가지고 애급 사람들은, 금반지 낀 사람들은 전부 다 모세 말 들어야 살겠거든요. 바로 말 들으면 다 죽겠으니 사바 사바 통한다 말이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거 줄 테니 하늘이 벌줄 때 피하게 해주소' 그래서 살아났단 말이예요. 그래 가지고는 거기서 나올 때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다 애급의 보물을 빼앗아 가지고도 적질해 가지 않았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사탄세계에 한푼을 왜 줘요, 한푼을? 절대주어선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상점을 만들려고 해요, 잡화상. 그래 가지고 앞으로 쌀 한 톨이라도 마음대로 못 사는 거예요. 우리는 단결해야 돼요. 왜 사탄세계에 주느냐 이거예요, 원수들 앞에. 빼앗아 와야 된다구요. 체면이 상하지 않는 최고의 한계선…. 한푼까지도 용서가 없다는 거예요. 유대인들 알지요, 유대인들? 거 보면, 요 한때에 우리는 그런 기준에서의 최고의 수전노 같은 입장이 되어야 되겠다구요. 그 수전노는 자기를 위한 수전노가 아니예요. 천주를 위한 수전노니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앞으로 밥을 사 먹어도…. 앞으로 점심을 못 먹으면 못 먹었지, 남의 식당에 가서 밥 못 사먹을 때가 올 거라구요. 점심 못 사 먹으면 못 사 먹었지, 사탄세계에 한푼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도심지, 여기 서울이면 서울에 우리 식당을 만들려고 해요. 어느누구의 집을 팔아서라도…. `너는 하꼬(はこ)방 집에 들어가라!' 해 가지고 그 집에서 식당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익 많이 남기자는 거 아니예요. 기껏해야 2할을…. 3할 이상 남기면 안 돼요. 왜? 앞으로 여러분들이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십일조 받지요? 우리가 하나님한테 십일조 바쳤지요? 장사의 원칙은 십일조 이상 남겨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십일조를 받는데 인간이 2할을 받으면….
앞으로 복귀과정에 있어서 하늘 앞에 가까이 갈 사람들은 10의 3조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하늘을 위하여 바쳐야 되고, 하나는 나라를 위하여 바쳐야 되고, 하나는 세계를 위해서 바쳐야 돼요. 10의 3조 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사를 하더라도,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끼리 장사하는 데 있어서는 3할 이상 남기면 하늘이 노한다구요. 그것이 더러움을 탄다는 거예요. 그것이 화를 불러 들이는 거예요. 자기의 물질을 뺏겨 버릴 수 있는 조건의 때가 온다는 걸 알아야 돼요. 우리 식구들은 3할 이하, 2할 남길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거 왜? 이 민족권 내에 내가 들어가 있으니 이 민족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3할 해도 되는 거예요. 그 이상 안 되게 될 때는 1할,2할을…. 못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러나 사탄세계에서는 9할까지 남겨도 괜찮다는 거예요, 9할까지. 하나님이 1할 받아 가지고 9할 주기 때문에 장사가 되는 거예요. 빼앗아 오자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뭐 바가지 씌우려는 게 아니예요. (웃음) 우린 그러한 원칙 밑에서 앞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가다가…. 선생님도 이제 앞으로는 안 가요. 지금까지는 나가서 그저 뭐 중국 요리도 사 먹고 혹은 버스도 타고 극장도 잘 다니고 그랬지만, 앞으로는 극장에 가래도 안 갈 거라구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대접하고 싶거든, 여러분의 집에 한 번씩 초대해 대접해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한번 와 주소' 할 때, 사탄들이 없게 되면 가게 될는지도 몰라요. `가겠다' 할 때 `언제 오겠소? ' 하면 `아무 날' 이럴 거라구요. 그런 약속 하면 `아, 선생님 오신다고 했는데 고기를 사 올까, 뭘 사 올까? ' 하며 준비할 거 아니예요? 그러면 그 전날 쯤 떡 불러 가지고 `내 너희 집에 갔다 왔다. 뭘 차리려고 했어? ' 물어 보면 `뭘 뭘 차리려고 했습니다.' 하고 대답할 거라구요. 그러면 '그거 차리려면 얼마의 비용이 들어? 날 줘' 이럴 거예요. (웃음)
이제 선생님이 그렇게 된단 말이예요. 지금도 가끔 그런다구요. 뭐 어디 구경 가자고 해도 나 안 가요. 일하는 사람에게 고기 사다 주고…. 그러면 아주 싫어하지요. 그걸 참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앞으로 우리가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가다가 점심 사 먹자고 할때는 말이지요, `아, 진정 사 주고 싶으냐?' '그러면 그 돈을 날 줘' 할 때 기쁜 마음으로 줘야 된다는 거예요. 점심 값을 지불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운동 해야 돼요. 그런 운동 해서 뭘할 것이냐? 공적인 데에 써야 됩니다. 안 먹고 이런 운동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제부터 몇 해를 지내 보자구요. 우리의 피값을 긁어 모아 가지고 하늘에 바벨탑을 쌓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부터 쌓아 가지고 이것이 불어나 만민까지…. 우리가 못해도 4년 후쯤 되면 말이지요, 이 나라 이 민족에 기부도 할 수 있고, 못해도 세계 몇개 나라에 기부할 수 있는 이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일심단결하면 하늘이 축복해 줄 거예요. 가만히 보면 그런 서광이 비쳐 오거든요, 지금. 지금까지 선생님이 돈 때문에…. 사람을 찾아야 할 때에 있어서 돈을 세울 수 없다는 거예요. 재물 철폐하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이예요. '저 재물을 철폐한다' 이러한 것을 선생님이 책임졌기 때문에 그런 돈을 앞에 놓고 일하는 걸 원치 않아요. 사람을 세워 놓고 사람이 다 되면 이 사람들은 우주를 주고 산 게 되는 거예요. 하늘땅을 주고 산 거예요. 산 것이니 그 사람들이 나오게 되면 천지는 그 사람들 틈에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연적으로 복귀되는 거예요.
이제 이 나라 이 민족은 궁지에 들어 가고, 통일교회는 점점 커 가면 좋을 것같이 생각하는데, 따라와 보니까 통일교인들 안 그렇지요? 선생님이 뭐 한국의 어떤 부자보고 눈썹 하나 까딱 안 한다구요. 알겠어요? [예]
눈썹도 못 그리게 해야 겠다구요. 요전엔 눈썹 그린 것 보면 곱게 보려고 선생님이 애썼어요. `하─ 훌륭하다' 하고 말이예요. 어느 교회 다니는 그 아주머니는 아주 뭐 입체 화장을 했대나, 뭐 어떻대나? 그것을 볼 때에 `어, 우리 식구들 이러고 다니면 더 훌륭할 텐데' 이렇게 생각했겠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거 보기만 하게 되면 아주 그 눈깔 빼 버리라고 할 거예요.선생님 체면 없단 말이예요. 목적밖에 없어요. 목적 있는 데서는 뭐 공산당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체면이나 무슨 사정,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대 놓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대 놓고.
통일교회가 언제나 이 집에 있겠나 말이예요. 이제부터는 교회 짓자는 거예요, 돈을 벌어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요전에 얘기하길 통일교인들은 피값을 다 갚으라고 했지요, 피값? 무슨 피값? 아버지 팔아먹은 피값. 그 피값을 갚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네 시집갈 적, 장가갈 적 이상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네 무슨 보물이 있거나 무엇이 있거든 그거 전부 다 이번 기간에 하늘 앞에 드려서 피값을 갚아야 돼요.
원래는 여러분 몸뚱이의 3분의 1은 잘라야 되는 거예요, 사실은. 타락이 뭐예요? 완성기준에서 3분의 2라 이 말이예요. 그것 위에 부모도 나가자빠졌고, 전부 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거 선생님이 세밀히 이야기 못 했어요. 이야기라면 오죽 잘해요? 전부 이렇게 되니 이렇다는 얘기를 지금은 할수없다구요. 그러니 그걸 알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준비해요.
여러분이 친히 나서서 장사 못 할 사람은 다른 사람 내세워서 장사시킨단 말이예요. 여러분들, 3년 기간 못 간 사람들에게 이 기간에 있어서 먼저 피값이라도 모으라고 장사시키는 것은 영광이라구요. 그러면서 자기 갈 길 준비하는 거예요.
교회를 누가 지으라고 그랬어요? 응? 거 다 생각들이…. 내가 그거 보고…. 세상의 거꾸로 하라는 거예요. 뜻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하늘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해야 됩니다. 나한테 그런 이야기만 했더라면 `교회 지을 돈을 나한테 달라!' 이랬을 거예요. 그러면 또 안 줬을 거라.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태어난 인연, 이 귀한 인연, 내 육신 쓴 요 한때의 인연을 잃지 말고 과거ㆍ현재ㆍ미래에, 슬픈 세상에 기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이 시대 앞에 직접 남겨 주든가 줄 수 있는 조건으로도 남겨 놓고 가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 저나라에 가 가지고 한이 돼요. 알겠어요? 「예」 앞으로는, 요거 다 지나가면 선생님이 명령을 안 하려고 그래요. 웬만하면 자기네들끼리 다 해야 돼요. 선생님이 언제 붙들어 가지고 그 놀음만 하겠어요? 그럴 거 아니예요?
홍순애씨가 오늘 여기 나와서 이야기할 텐데, 무슨 이야기냐 하면 말이예요…. 복중교 사정 선생님만큼이나 아나? 나만큼 몰랐다가는 내가 아주 기합을 줄 거예요. 지금까지 여기서 살면서 먹고 지내 왔다는 패들이 선생님이 듣고 아는 거 이상 몰랐다간 어떻게 할 거예요? 한번 들어봐요? 「예」
왜 선생님이 이 놀음 하는 줄 알아요? 역사를 꾸며야 돼요, 역사를. 요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역사를 꾸미려면, 자기 가문의 족보를 꾸미려면 반드시 무엇이 있어야 돼요? 부모가 있고, 부부가 돼 가지고 자식을 가져야 족보에 올리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통일교회 역사를 지금까지 꾸미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교회 역사를 꾸며야 돼요. 역사적인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역사를 남겨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천추만대에, 우리 뜻이 벌어지는 통일가의 전통적인 역사로 삼아 가지고 수많은 후대 사람들이 앞으로 이 문을 찾아 들어갈 때에 전부 다 이 법도로 처리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에 닦았던 그 역사적인 인연의 감정을, 시대를 초월해서 세기를 초월해서 우리들이 인연맺고 지내 나오던 심정적인 인연을 그때도 재현시킬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 놓아야 심정적인 세계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 걸 남기려면 고생해야 돼요. 고생을 해야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여기서 고생한 기록을 남겨 놓아야 그 시대에 가 가지고, 역사를 초월해 평면적인 그 시대에 가 가지고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빨리 재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과 그러한 인연만 갖고 나오면 하늘이 지금과 마찬가지의 역사적 인연을 배경삼아 가지고 역사해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럼 나와서 얘기하라구. 이야기하는 데는 자기 개인을 소개하라구. 나는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고, 남편은 어떤 몹쓸 사람을 만났었고…. 그래야 돼. 반대해야 돼. 잘 믿으려면 반대해야 된다구. 쫓겨난 이야기가 있으면 쫓겨난 이야기도 하고…. 자기 소개하려면 어디서 태어났고 무얼 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돼. 자기 가정 배경으로부터, 자기가 태어나 가지고 지금까지 신앙길 찾아 나오면서 환경적으로 겪었던 것을 이야기하라구.
오늘은 속회날인데도 다 한자리에 모였구만요. 여러분들이 다 알다시피 오늘은 효진이 삼칠일 되는 날입니다.
한국 풍속이 삼칠일을 대개 다 지키지요? 「예」 그거 보면 참 우리 민족이 유대 백성들과 많이 같아요. 구약성경을 읽어 보면 제사지내는 방법이라든가 예식 같은 것, 혹은 제기 같은 것 등 그 내용과 풍습이 많이 통한다 이거예요.
그리고 또 애기를 낳아 가지고 보통 3일만에 태를 묻든가 그래요. 그런데 우리도 옛날부터 그런 풍습이 있었지요? 애기를 낳으면 태를 3일후에 갖다 묻어요. 요새도 그래요? 「예」 또, 사후의 삼일장이라든가, 혹은 결혼 때에 3일 만에 자리를 걷는 것이라든가,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여기에는 전부 다 복귀시대에 있어서의 한때를 위해서 준비한 참 깊은 섭리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어요.
더우기나 이 애기들 대해서 삼칠일을 지킨다든가, 혹은 백날을 지킨다든가 이거 다…. 백날이라는 것은 즉 말하자면 귀일수인데, 다시 인간으로서 이 땅 위에 새로운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 그 심정적인 기준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제일 중요한 기간입니다. 어린애들도 한 백날이지나야 마음을 통할 수 있고 다 그렇다구요. 그런 걸 다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천적으로 큰 뜻이 있어요.
더우기나 오늘은 우리 이 아기를 낳은지 삼칠일인데 이 날은 1963년도를 맞이한 날이고, 또 3년 고비를 넘어가는 기간도 되고, 이것이 전부 다 박자가 들어맞는단 말이예요. 또, 이 애기는 우리 애기들 가운데서 세째로도 태어났고, 또 딸도 하나 있고, 복귀역사에 전면적인 모든 것도 전부 다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거 설명을 이제 내가 할 거예요.
그런 걸 보면 금년이 참 좋은 해입니다. 금년이 좋은 해고, 또 이런 날을 우리들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작은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크나큰운이 바뀌어지는 해입니다. 그리고 또 복귀원리를 보면, 여러분이 사위기대 복귀라는 말도 쭉 배워 왔지만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도 역시 큰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까지 다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었지만서도, 아들을 먼저 낳으면 안 되는 거예요. 딸을 먼저 나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 원필이가 지금 딸이 셋인데, 그거 보면 다 하늘이 프로를 맞추기 위해서 그랬다고 봅니다. 그래 놓아야 이제…. 이러한 축복을 다 해주고 나서 선생님으로 부터 자리를 잡아야 사위기대의 원칙인 기준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잡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견지에서 `아들을 낳으면 안 될 텐데'했더니 딸을 낳았었지요. 그리고 원필이도 다…. 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원칙적인 기준이 자리를 잡아야 모든 것이 풀려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교회도 이제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알겠지만 통일교회는 대운이 트였다고 할 거예요. 또, 이제부터 통하는 사람들은 이젠 다 때가 끝났다고 할 거예요. 이젠 때가 다 끝났기 때문에 선의 세계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고 할 겁니다. 여러분들이 영통하는 사람이라든가 혹은 많이 통하는 사람들한테 가서 `지금 때가 어떻게 됐습니까? ' 하고 물어 보면 `이제는 선의 세계가 가만 놔두어도 안 이루어질래야 안 이루어질 수 없는 때가 됐다'라고 증거할 거예요. 거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 가 물어 보라구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의 앞으로의 살길이 뭐냐 하면 이 민족의 살길은…. 지금까지 이 민족이 물론 과거에도 역사를 존중한다든가 혹은 뭐가정 제도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나왔지만 그런 역사를 존중하고 가정을 존중하는 것은 다 좋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이 한 단계 뛰어야 된다 이거예요. 땅을 중심삼고 나오던 것이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이제 하늘을 중심삼고, 하늘적인 새로운 이념을 갖고 이것을 수습하지 못하게 되면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누가 나오 더라도 수습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거 수습 안 되게 돼 있어요.
그걸 수습하는 한 가지의 방법은 위정자들이 고생을 해야 됩니다. 고생 외에는 수습할 방법이 없어요. 고생하면 이 천운을 연결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나가는 것도다 그러한 것을 천운 앞에 상속짓기 위해서인데, 우리는 이제 3년 과정을 지내 나가면서 새로운 세계적인 무대를 닦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요전에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자리잡으면서 세계정세는 이제 수습 방면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들도 싸우지요? 저 공산당들이 이제 붙들고 피흘리는 놀음이 되면 세상 끝이예요. 공산당원들끼리 쏴 죽이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럴 가망성이 많거든요. 중공과 소련이 지금 부딪쳐 나가는데, 여기에 있어서 뭐 수정주의니 교조주의니 해가지고 투쟁해 나가고 있는 데 제일 먼저 내부 숙청을 지금까지 강조해 나오던 그들이,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숙청의 칼을…. 민주주의는 언제나 멀어요.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 지금 머리를 쓰고 있단 말이예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터인데' 하고 말이예요.
복귀 역사가 뭐냐 하면 부모하고 자녀가 만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보면 세계적인 모든 사조도 그런 역사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동양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서양은 어머니를 상징하는데, 복귀시대를 거쳐오기 때문에 어머니 혜택을 먼저 세워 나오는 거예요.
땅의 운세를 찾아 나오기 때문에 성신 혜택과 더불어 서양문명이 발전해서 아버지를 찾아 나오는 거예요, 동양문명으로.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지금까지 동양은 동양대로…. 동쪽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서쪽은 어머니를 상징하는 겁니다. 남쪽은 아들을 상징하고, 북쪽은 딸을 상징하고 말이예요.
그래, 여자를 재수없다고 그러지요? 북쪽이 재수없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것이, 가만히…. 세밀한 설명은 내가 안 하는 거예요. 설명하려면 전부를 다 해야 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 상충적으로 돼 나가는 것 같지만서도 상충면이 지나감에 따라서 여기에 상응적인 면이 딱 갖다 맞춰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세계는 수습됩니다. 여러분들 원리를 중심삼고 쭉 연결하면 재미있는 일이 참 많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세계적인 전망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우리 교회가 역사적인 책임을 졌다 하면 앞으로는 우리들은 크게 움직여야 됩니다. 요즈음에 있어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 있어 백악관을 어떻게 들춰내고, 모스크바를 어떻게 들춰내느냐 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해야 된다 말이예요. 그리고 종교적인 면을 보게 된다면 불교를 어떻게 들춰내고, 혹은 회회교를 어떻게 들춰내고, 기독교를 어떻게 들춰내느냐 이거예요. 이것들을 어떻게 들춰내야 되느냐 이거예요. 앞으로 우리들은 그러한 면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된다 이거예요.
자, 그러한 모든 것을 들춰내려면 하늘의 원칙적인 원동력이 발동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세계적인 사조는 금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쁜 결과, 나쁜 세계보다도, 물론 약간은 고충이 있겠지만 수습되는 방면으로서 새로운 이념을 세워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운세가 찾아오리라고 보고 있는데, 한국도 역시 그럴 거예요. 더우기나 이 젊은 층들, 한국의 30대 청년들이 그런 면을 많이 가져 가지고 이 나라를 염려하고 세계를 염려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이 있어야 되겠다고 찾을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저 밑창에서 닦아 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런 청년들이 있으면 기반을 닦아 놓으라는 겁니다. 기반만 닦아 놓으면 이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반드시 불원한 장래에 오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요 사람들을 불만 붙여 놓으면 그다음엔 우리는 세계적으로 휙 올라가는 거예요. 요건 지금 우리 민족에 대한 무대가 아니예요. 그다음부터는 세계적인 무대가 확 열리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위해서 선생님이 지금 기도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만큼 우리들은 이제부터 많이 공격전을 해야 되겠어요.
여자들도 이제부터는 다 여기 교회에 둬 둘지 혹은 딴 데 내보낼지 몰라요. 주일날 예배도 안 보고 여러분을 다 분산시켜 가지고 `1년 후 에다시 한 번 어디서 만나자. 저 한라산 꼭대기에서 만나자' 그렇게 할 지도 모르는 거예요. 떡 와 가지고 또 `어디 가서 만나자' 하고 약속하는 그런 사람도 있을 거란 말이예요. 우리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별의별 놀음을 다해야 한단 말이예요.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언제나 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선생님 말씀하는 이런 가운데서 은혜받고 뭐 이렇게 기도하고 그럴 때가 많지 않을 거예요. 혹은 우리가 산 꼭대기에 가 만났어도 기도하는 이상의 자리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 대해서 무슨 놀음을 시킬지 모르는 거예요.
또, 그러한 때가 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많은 사람 가운데서호칭을 당해 가지고 선생님의 직접 명령을 받든가 혹은 이 협회장을 통해서라든가 누가 할 줄 모르지요. 또, 혹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할는 지 모르는 거예요. 이렇게 움직이게 될 때 그러한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된다 말이예요.
혹은 남편을 불러 가지고 `너 사랑하는 가족을 내놓고 이 놀음 해라!'하면 가정이고 뭣이고 돌보지 않고 전부 다 나서야 된단 말이예요. 나서야 된다는 거예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뭐 생명을 바치고 뭐 뜻을 위해 죽고 산다는 말이 적어도 말뿐이 아니란 말이예요. 이제는 진짜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못 하면 여러분들이 후대 사람 앞에 보따리 바꿔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오늘과 같은 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4수도 있어야 되고, 그다음엔? 응?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4수도 있어야 되고, 3수도 있어야 되고, 7수도 있어야 되고, 8수도 있어야 되고, 12수도 있어야 되고, 21수도 있어야 됩니다. 이런 수리적인 탕감을 전부 다 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애기 삼칠일 같은 이날은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알고 보면 참 좋은 날이라는 거예요. 하늘이 심정적인 기준으로서의 말이지요, 이러한 새로운 약속의 한 선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원수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이러한 하나의 조건도 세울 수 있는 때예요. 그런 때에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오늘 일찍 오라고 한 거예요. 사실은 이거 다 진짜 춤추고 그래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사십 평생 싸워 나온 것은 딴 거 아니예요. 사위기대 복귀입니다, 사위기대 복귀. 사십 평생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은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를 거예요. 오늘날 이와 같은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 얼마나 고충이 많았는지 알아요? 그건 말할 수없었어요.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을 보내고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복잡한 내용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기도하는 할머니들은 가르쳐 줄 거라구요, 얼마나 기뻐하고 얼마나 자랑인가를 .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현재 우리가 싸우는 마당에 있으니까. 그러니만큼 우리가 잘하지 못했지만 여러분의 마음만은 간절한 마음을 갖고 하늘땅을 대해서, 하늘 앞에 있어서 땅 위에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두려운 마음 갖고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에 모여 가지고 축하하는 거예요. 또, 여러분들이 이 애기를 축하하는 동시에 심정적인 하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어야 되겠어요. 우리 복귀원리를 배우는 데 있어서의 심정적인 결실 말입니다. 선생님도 이 애기를 다리 놔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거지요. 이래 가지고 이제 방향의 길이, 이제는 목적을 향해서 직행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잡혀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세계적인 운세라든가 국가적인 운세도 우리와 같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길을 갖고 나가면 그러한 면으로서 수습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틀림없이 그렇게 될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앞으로 평화운동을 이것을 더 강조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거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우리들과도 만나지 그렇지 않으면 못 만나요. 우리가 어떻게든지 들어 넘길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인들은 이제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지나갔어요. 선생님이 지금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 안 해요. 여러분들도 기도할 때는 이젠 모스크바하고 백악관을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는 오바른발이요, 하나는 왼발이예요. 하나는 오른손이요, 하나는 왼손입니다. 이렇게 짚고 힘내기 해 가지고 밀어 넘길 수 있는….
이래 가지고 전부 천운, 하늘의 법도, 천도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 이러이러한 원칙이 있었으니 이 원칙을 중심삼고 역사하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믿고 기도하면 앞으로 많은 역사를 해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나가다가는 앞으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질 거예요. 금년까지도 일선에 나간 사람들이 할 책임다하고 나서 원수들 대해 저주하면 저주대로 될는지 모를 거예요. 그럴때가 오는데 그러한 것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내용이 전부다 결정되어 가지고 다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오늘 여기에 참석한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자랑으로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이제 열 시만 되면 기도 한번 하려고 그래요. 애기 한번 보고 싶어요? 「예」 기다리라구요.
자, 애기야! 자, 보여요? 「이쪽은 안 보입니다」 (박수) 「이쪽에 좀보여 주세요」 아이 춥다! 「이쪽에 좀 보여 주세요」 사진 찍었어? 「예」자, 우리 기도 한번 하자구. 열 시 됐지요? 2분 전이구만. 기도하자구요. 자, 기도 한번 하고. 요렇게 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애기를 향해 말씀하심)
한많은 복귀역사 위에 아버지의 슬픔과 아버지의 억울 하심과 아버지의 분통하심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당신의 수고의 공적을 통하여서 알게 된 저희들이 지금까지 당신의 곡절을 모른 그 사실을 지금분별하고, 분함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6천 년 기나긴 세월 동안 한때를 바라보면서 복귀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으시며 처량한 역사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이와 같은 죄상이 저끄러진 것은 만민의 슬픔의 사실이요, 온 천주가 복통할 사실인 것을 저희들은 잘 압니다.
저희들은 오늘의 이 한날을 위해서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내시어서 복귀의 왕조를 표준하여 역사하였사오나 예수께서 실패하고 돌아가신 이후에 지금까지 수많은 곡절의 희생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시어 오늘의 이 한반도를 중심삼은 저희들을 통하여 새로운 획기적인 역사를 세우시어서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암암리에 하늘의 역사를 엮어 오시기에 수고하시는 아버님이신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말할 수 없이 황공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한 아들을 다시 한 번 또 세우시어서 영광의 은사의 한 날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오늘 이날은 하늘이 기뻐할 날이요, 땅 위의 만민과 이 민족과 모든 전체의 존재의 세계가 기뻐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 애기로 말미암아 한 많았던 과거의 애급과 같고 하렘과 같은 슬픔의 역사를 걷어차고, 새로운 광명의 새 아침을 맞이하여 영원하신 아버지의 승리의 동산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한 획기점이 되시어서 영광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애기를 사랑하시는 심정으로 만민을 대신 사랑하시옵고, 애기를 대한 아버지의 기쁨이 만민 가운데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까지 저희들이 교회를 중심삼고 싸워 오던 모든 것도 이 한때로 말미암아 기쁨과 더불어 사탄 세계의 참소의 조건을 제거하여 승리의 방패를 세워 나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기쁘게 받으시옵시고, 여기 아버지 앞에 드리는 이 `효진'을 친히 받으시어서 전체 앞에 축복의 승리의 기준으로서 세우시옵고, 아들딸을 품으시사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으며 자랑할 수있는 새로운 출발의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온 만민 위에 축복하여 주옵고, 하늘과 땅, 탄식의 한 가운데 처져 있는 수많은 존재 세계의 모든 전부를 해원성사하시어서 영광의 은사로서 자랑하시옵고 기뻐할 수 있는 이러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 머물러 이 애기를 위하여 축하하는 모든 자녀들은 만민을 대표해서 축하한 자녀였사오니, 아버지, 손길을 펴시어서 은사와 축복의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에게 친히 역사하시옵고 만만사의 승리의 영광만을 저희들 앞에 남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것을 드렸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전부 몇 명? 한 삼십 몇 명? 대다수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젊은사람입니다. 30미만의 대다수 사람인데 이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씩씩하고 용맹스럽고 혹은 옳지 못한 것을 볼 때는 참지 못합니다. 의분심이 강한 것이 청년 시대의 기질입니다.
이 의분심을 그야말로 잘 쓰면 나라를 살릴 수 있고, 더 멋지게 쓸 수있으면 세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협회장도 얘기했지만 역사노정의 투쟁시대를 거쳐 올라가 가지고, 전쟁이 나 가지고 싸우는 데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예요.
우리 나라가 세우고자 원하는 정의의 주권을 이 천지 앞에 세우기 위해 의분심에 불타 가지고 그 정의의 주권 앞에 그릇된 모든 것이 있거든 그거 참지 못하고 그것을 격파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고 제일선에 나설 수 있는 용맹하고 씩씩한 기질이 젊은이의 기질이라는 것입니다.여기는 그런 젊은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할 때 혹은 사생활에 있어서, 아까 협회장 이이야기했지만서도 그런 고충은 물론 있어야 되는 것이며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있더라도 그러한 생활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이제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그런 고충이 있더라도 우리가 여기 모인 목적은 여러분 개인적인 의분심을 기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단체적인 의분심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공동 목표를 대신하여 나가는데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의분심을…. 여러분이 가지각색의 개체의 의분심이 있다 하더라도 전부 다 띠둘러 가지고 둥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공적인 의분심에 불탈 수 있는 사나이, 혹은 아낙네로 만들어야 하는 도장이 여기여야 됩니다.
여러분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왔을 것입니다. 또 팔도 강산 수많은 곳에서 모여 왔으니만큼 사정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여러 가지 생활감정이 다른 분야가 있겠지만 이거 다 잊어 버려요. 이제 여기서 지도하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은 한때를 맞이하여 멋진 의분심을 가져 가지고 세계 앞에 호령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자기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명심해 두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부탁이예요.
그리고 대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지금까지의 전례를 봐서 대다수의 수련생들이 와 가지고 3일 기간을 넘기가 힘들어요, 3일 기간. 이 3일 기간 출발하는 때에는 환경도 달라지고 여기에 대하는 모든 사정도 달라져요. 특별히 수련생 여러분들은 본부에 대해서 신망을 갖고 왔을 거예요. '아, 우리 본부에 가게 되면 본부에 있는 분들은 전체 우리 통일교회 이념을 지도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여러분들이 바라는 기준 이상 될 줄 알고 물론 왔을 거예요. 또, 큰 포부를 갖고 왔을 거예요.
또 큰 포부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수련받기 위해서는 그런 포부가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온 포부, 본부에 대한 신앙심이라든가 혹은 믿는다는 기여심, 이러한 것,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을 다시 한번 수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수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들에 대해서 반대적인 현상으로 대할지 몰라요. 상충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꾹 참아야 됩니다. 또 어떤 때에는 누구, 선생님이 가끔 누구를 시켜서 반말도 하게 할 거예요. 할아버지 같은 사람 대해서 자기 손자 같은 사람에게 시켜 가지고 반말도 시키고 아주 성내게 하고, 그런 놀음도 가끔 할 거예요. 어느때에 어떤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시험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받는다면 입은 다물어야 됩니다. 입은 다물고 눈은 아래로 내리 뜨고 귀는 덮고….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입을 열 때는 말씀과 혹은 직접적인 지도자와 관계되어 있을 때에 열어야 됩니다. 이러면 무사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기를 더디하고, 보기를 더디하고 말하기를 더디하면서…. 나 중심삼고 살다가는, 그렇게 나가더라도 나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또 문제 생겨요. 그러니까 나를 잊어버리고 전체를 위해 산다는 관점에서 나가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본부의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많은 사람들은 수련생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 수련생이 자기를 중심삼은 수련생이 아니요, 공적인 수련생으로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입장에 서지 않게 될 때는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고할 될 때는 아주 뭐 서리발 같은 충고를 하고, 용서 없는 충고를 해 주어야 됩니다. 또 충고해 주는 사람이나 충고받는 사람이나 공적이라는 그 엄숙한 과제 앞에서는 머리 숙여야 됩니다. 충고할 때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충고하고, 충고를 들을 때에는 자식을 대신하여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이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젠 왔으니 환경이 다르지만, 여기 본부에 신망을 갖고왔으니 떡 눈에 쌍안경을 끼고 들춰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 풀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 풀어 놓고…. 이제부터는 전부 다 풀어 놓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다시 하나 붙여야 할 것은 공적인 기준에 선대중을 위한 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게 나온다 말이예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나. 이러한 입장에서 나가면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공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왔으니 아무리 불편이 있더라도 공적인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려운 것이 있어야지요. 거기에 항의한다면 `이놈!'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나가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주의 주려고 하는 이런 과정을 후다닥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공적인 기준 중심삼은 나, 그런 견지에 서게 되면…. 공적인 나의 입장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이게 쉬운 것이 아니예요.
오늘날 이 대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대우주에는 완전한 공적인것이 있었느냐 할 때에 대답할 수 있어요? 완전한 공적인 그 무엇이 있었느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내 생활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시대적인 현실이 그러했으며 혹은 역사적인 과거가 그러했으며, 오늘날 시대적인 현실이 그러했으며 다시 찾아올 미래가 그러할 것이냐?
공적인 것 중에 공적인 것, 그 공은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하고 과거ㆍ현재ㆍ미래가 공인하는 존재의 수많은 실체들이 영원한 목적의 실체와 같은 그런 공적인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고 또 그 가치에 있어서는 무한한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공적인 실체라고 공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그거 없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공적인 그것이 나타나게 되면 우주는 꽉 찰거예요. 최고의 공적인 것, 만민이 고대한 것, 어느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절대적인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사람, 그 공적인 것 가운데에는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사람이나 공적인 말이나 공적인 시선이나 공적인 희망. 공적인 것에는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 공적인 세계에서 뺄 수 없다는 그런 최고의 공적 기준이 이 천지간에 벌어져야 하는 거예요. 만일에 그것을 채우는 날에는 세상은 자기한테로다 오게 됩니다.
그러한 기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공적인 문제를 논의해 가지고 개인으로서의 교양을 하고, 가정으로서의 교양을 하고,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교양을 하고,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어떤 주권을 중심삼아 정책적인 기준에 있어서의 국민성을 개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건 다 뭐냐? 나중에는 이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공적인 것에, 그건 다 들어간다 말이예요. 이걸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대우주의 공적인 그것과 아까 말하던 공적인 누구? 나. 문제는 여기에 부딪치는 거예요. 공적인 그것과 나. 이러한 문제에 부딪친다 말이예요.
그러면 공적 기준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나를 완전히 찾지 못하는 거예요. 나를 완전히 찾아 자기의 생활 기준 앞에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공적인 세계와 공적인 역사와 공적인 이념과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그 무엇과 `나'라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준 앞에 내가 흡수되어야 할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에서, 공적인 기준에서 여러분 자신을 세우는 입장에 서고 넘어가 주길 부탁드려요.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3일날, 3일 고개를 넘기 힘들어요. 요 3일 고개만 딱 넘고 나면…. 사흘동안은 복잡하단 말이예요. 그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일주일 동안. 일주일의 고비가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일주일쯤 돼야 공부하는 기분 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 그거 지나가게 되면 2주일 동안, 한 2주일쯤 돼야…. 그다음에는 3주일, 한 20일 지나야 여러분이 본 궤도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이번에 여기 온 사람 가운데는 새로 온 사람이 한 3분의 1가량 되는 모양인데, 3분의 1, 이런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여기의 이 환경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지장을 가져오리라 봅니다. 그러니만큼 여기에서의 지도위원들과 여러분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명령함에 여러분은 응하고, 지도위원들은 이들의 모든 부족한 것을 청산하여서 옳은 면을 세워 나갈 수 있게끔 혼연일체가 되어서 이번 40일 수련을 잘 움직여 주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대강 알겠지요? 「예」 또 지도위원들 대강 알겠지요? 「예」
그러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말씀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 자신 이렇게 말하면 누구예요? 나라는 말이예요, 나.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자, 여기 생각하는 청년이 있다 하자구요, 생각하는 . 아, 요거 말하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하자구요. 여러분들 이제 내일부터 물이, 지금 물이 없다 말이예요. 물이 안 나와요. 이제 2층에서 물 걱정하다 내려왔는 데 대번에 부닥쳐야 하는 것이 생활환경이…. 내일부터는 세수도 못 한다 말이예요. 요 한마디 다시 첨부하고 넘어가자구요. 선생님은 이런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럴 생활을 한 때가있었어요.
사람이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뭐 노동하고 매맞는 것도 참아요. 그러면 뭣이 제일 어려울 것 같아요? 제일 참기 어려운 것? 한 번 얘기 해 보자구요. 「배고프고 잠오는 것입니다」 배고프고 잠 오는 것.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물론 잠 오는 것도 그래요. 제일 힘든것은, 그 중에 배고픈 것. 배고프고 그다음엔 목마를 때 물 없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것이….
여러분들은 그저 어디가든지 가다가 고개만 숙이면 그저 강물이라도 벌꺼덕벌꺼덕 마실 수 있는 환경에 사니 그 환경은 천지간 어디에도차 있기 때문에 그건 염두에도 두질 않는 거예요. 그건 응당히 내 것으로 되어 있지요. 여러분 대개, 사람들이 대개 말하기를 `빵을 위해 산다' 이렇게 말하지요? 천만에. 빵은 간단한 거예요. 빵보다도 물을 안먹으면 더 빨리 죽는 거예요. 물 안 먹는 게 문제예요. 사람이 7할, 4분의 3이 물로 되어 있다 말이예요. 목마를 때 물 안 먹으면 이거 배고픈 것 이상이예요. 그런 생활 모를 거예요.
감옥 생활 같은 거 해보면 참 거 배도 고프지만, 배고픈 가운데 목이 말라 보란 말이예요. 한 덩이밖에 없는 밥하고 물하고 바꿔 먹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배고플 때에 알아야 할 것은 `아,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이 하나 있구나. 물이 있구나' 하는 거예요. 여러분, 금식을 해도 그냥 하면 오래 못 가지만 물만 먹으면 40일도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배고플 때에 생각해야 할 것은 나에게 감사한 한 가지 소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이냐? 어디 가든지 배고플 때에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사람은 무엇이든 감사한 것을, 내 생활에 있어서의 감사한 그 무엇을 하나 가질 줄 알아야 됩니다.
또 배고프고 목마를 때, `아이구 나 죽네!' 할 때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거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배는 고프지, 목은 마르지, 그럼 난 죽느냐? 안 죽는 다 이거예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나에게 한 가지 있나니 뭐예요?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뭐예요? 「공기요」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그걸 갖고 있어요. 그거라구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 누구냐? 제일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제일 악한 사람입니다. 제일 선한 것이 무엇이냐? 제일 어려운 때에 있어서의, 그 어려운 때에 제일 좋을 수 있는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선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제일 긴박하고 제일 절박한 것이 무엇이냐? 물보다도 더, 밥보다도 더 절박한 것? 무엇이? 「공기입니다」공기. 고차적인 이런 음식을 이 우주 간에 충만하게 나를 위하여 준비한 내 무한한 양식이니 고맙다 이거예요.
나에게 이 원수들이 밥을 안 주고 물을 안 주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공기까지 안 주는 날에는 큰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에 한가지 감사의 여유를 갖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기를 들여 마셔 보라는 말이예요, 얼마나 맛있나.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련생들 대해서 밥 안 먹이고, 물 안 먹이고…. 아, 이녀석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 하면 또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나이 많은 양반도 있지만서도 그것 다 평균이예요. 평균으로 취급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건. 그러한 공적인 공약 밑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아, 뭐 밥도 안 주고…' 밥 안 먹이고, 물 안 먹이고 하는 것까지 수련입니다.
구멍을 몇 개 파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들이쉬어야 겨우 살 수 있게끔 공기 구멍을 딱 만들어 놓고 갖다 넣어 보란 이거예요. 아주 한번 그렇게 만들어 훈련을 시켜 가지고 거기에서도 참고, 거기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그 무엇…. 죽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 죽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이거예요.
거기는 공기가 문제가 아니예요. 공기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 천하의 고통이 침범할 수 없는 생명력…. 그런 자리에 있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못 하는 것이 없는 거예요. 손을 들어 밀어 대면 세계가, 천하가 다 휘말려 들어가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에게 밥이 있어요? 밥 있어요? 밥 있으면 감사해라 이거예요. 여기에는 물도 있고…. 공기도 있어요. 밥이 있으면…. 물이 있어요? 또 공기가 있어요? 공기하고 밥하고 바꿔? 아니예요. 물하고 밥하고 바꿔? 아니예요.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부자다 이거예요. 그것만 있어요? 태양 빛도 갖고 있거든요.
제일 귀한 것은 싸구려야, 여러분들이 그렇게 안다 말이예요. 제일 귀한 것은 싸구려다 이거예요. 그것을 싸구려 알았던 이 녀석들이니 이건 악한 녀석들이예요. 여러분들 물 한 모금 먹을 때 고맙게 생각했어요? 누구한테 그거 감사해 봤어요?
여기 나이 많은 아저씨들도 왔지만 40평생, 50평생, 60평생 중심삼은 동안에 내 물 한 모금 마셨다고 `물님 고맙습니다' 공기면 `공기님 고맙습니다' `태양이면 빛님 고맙습니다' 그래 봤어요? 제일 귀한 것을 무가치하게 취급하는 사람은 파괴 분자로서 이 사회에서나 어떤 공적인 세계에 있어서 존재의 가치를 지니게끔 떡 존재시킬 수 없는 거예요. 그런 물건들이라면 그 물건들은 악한 놈들이예요. 악한 놈들이예요. 그래 여러분들 그랬어요? 못 그랬으니 수련받아야지요.
제일로 귀한 것은 태양 빛입니다. 빛만 없애게 되면 이 모든 만물은 죽어 버려요. 뭐가 있든, 공기가 있든 다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태양빛을 고맙게 생각했나요,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나요, 공기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나요? 내 언젠가 한번 이렇게 얘기했지만, 이런 햇빛님이, `야 동맹 파업하자, 인간들이 악하니까. 난 아침 햇빛을 안 발하겠다' 하면 다 죽는 거예요.
또 물님이 `아 전부 다 나는 인간하고 관계없다' 하고 동맹파업 딱 할 때는 죽는 거예요. 그렇지요? 또 쌀님들이…. 그러면 빚지고 사는 거예요. 빚지고 살면서도 고맙게 못 사는 것이 이게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귀한 것을 함부로 천대하는 것은 악한 놈들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전부 다…. 지금까지 그랬으니 이제부터 그러지 않기 위해서 온 거라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응? 「예」 그렇기 때문에 내일부터 물이 없을지 몰라요. 선생님도 감옥에 살 때는 물 한 모금 주면 물 한 모금으로 세수 했습니다. 아주 귀한 멋진 것! 한번 해보라구요. 얼마나 좋은가. 아주 얼마나 좋은가.
물 한 방울을 천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데서 물 한 모금을 받아 가지고 세수한다면 금 대야에다 적당히 온도 맞추어 가지고 따뜻하게 세수하는 것보다 더 귀한 거예요. 한 모금이…. 저 부엌에서는 물이 없지요? 내일은, 이제 세수…. 그거 본부에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예요. 서울시에서 그런 사고가 생겨나서 지금 그렇게 됐으니, 나중에 물을 많이 떠 가지고 바께스로 주고, 그렇게 못 할 거예요.
그걸 볼 때 `이 녀석들 잘 되었다. 수련 첫날부터 물 한모금씩 줘 가지고…' 하는 생각도 하는 겁니다. 앞으로, 내일을 하루에 물 한 그릇도 안 줄지 모르지요. 이래 가지고 국, 찌개도 못 할지 몰라요. 그러면 이제 뭐 소금좀 달랠지 모르지. 물 안 들어가는 걸로 해야지요. 그러니 그러한 고충이 있을지 모를 테니까 여러분이 이런 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사는 생활에서는 한 가지, 자기의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감사의 그 무엇을 발견하고 갈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수련하는 거예요, 수련. 그렇기 때문에 그건 첨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자, 이제부터 얘기해 보자구요. 무엇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그랬나요? 「나에 대하여」아, 김 서방, 박 서방? 무슨 서방? 내 서방. 자기. 김가면 김가, 박가면 박가, 이가면 이가. 여기 선 선생님처럼 문가면 문가.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얘기해 보자구요.
사람을 딱 바라보면 이목구비가 갖추어진 체구의 모양에 있어서는 종류는 다 같습니다. 눈 둘, 코 둘, 같지요? 입 하나, 귀 둘, 손발 열. 체구는 같은 종류란 말이예요. 눈 종류, 코 종류, 귀 종류, 입 종류, 팔종류, 다리 종류. 같은데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천태만상이예요. 요 사람도 다르고, 고 사람도 다르고.
그러니까 그렇게 천태만상이니, 가짓수는 마찬가지인데 그 내용은 천태만상으로 벌어져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의 외형이 천만 가지로 벌어지니만큼 내형도 천만 가지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러한 수많은 인간이면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기준을 잡느냐?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이 뭐하러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요? `아이구, 아담 해와고 무엇이고 다 귀찮아. 뭐 인류고 무엇이고 다 이 나라 뭣이고 다 귀찮아! 이러지요? 나의 조상이 어떻게 됐을 것이냐?'하고 말이예요. 그래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 생각 안 해봤나요?
내가 아버지든 뭣이든, 그거 다 귀찮거든요. 내가 천지간에 딱 눈을 뜨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눈 뜬 사람이다 이거예요. 입을 벌리다 보니 좋은 소리는 안 냈겠지요. `빽' 하고 우는 데에는 나쁜 소리 울었을 거예요. 울다 보니 내가 처음이예요. 보다 보니, 움직이다 보니…. 천지간에 내가 처음으로 활동했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여러분들 그런 것 생각해 보라구요. 어떻게 됐을 것이냐? 어떻게 돼 있을 것이냐?
어디, 바닷가를 찾아갔을 것이냐, 산을 찾아갔을 것이냐? 그저 또, 물론 자연에 대해선 그렇게 대한다 하고. 이 세계를 , 이 찬란한 모든 이 천지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천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 이놈들아!' 하고 호령했을 것이냐, 무서워했을 것이냐? 이와 같이 복잡하고도 아주 진지한 사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 그러한 것 다 제쳐 놓고 나만 남았을 때에 `나'라는 것은, `나'라는 명사를 세울 때에…. 나라는 것은 벌써 상대적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나'라는 것이 상대적이예요, 아니예요? 「상대적입니다」 반드시 상대를 세워 놓고 `나'라고 합니다. 천지를 창조한 어떤 창조주가 이땅에 계시다 하면,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가 내가 하나님이다! 하려면 어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움직이는 것은 상대 때문에, 눈이 보는 것도 상대때문에, 팔이, 다리가 움직이는 것도 상대 때문에. 다 분야 분야 그 어떤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그건 부정 못할 거예요. 상대를 필요로 하여 모든 이 체구의 종류들이 지금 떡 분별되어 있는 거예요.
이 분별되어 있는 종류들이 통합하여야…. 혼자밖에 없을 때에는 `나'라는 명사는 무엇인지 모르지요. 이것이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 이런 종류들이 합해 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실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이 종류들의 어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안 그래요?
손이 하나 있으면 뭐하느냐 이거예요. 암만 있으면 뭘하느냐 말이예요. 반드시 상대적인 어떤 대상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로 하고 움직이게 될 때에 거기에서 좋으니, 나쁘니 가치를 논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나를 중심삼고 현재에 되어지는 환경적인 조건을 부정하지 못할 거예요. 나를 들고 나오기 전에 천지 가운데 내가 먼저 나왔느냐?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게 또 무궁무진 하거든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개구리 새끼서부터?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부모가 없을 거예요, 나만 있는 맨 처음엔. 나라는 명사는 존재치 않아요.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있긴 있어요. 이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다시 생각할 때는 그게 미지의 것일 것입니다. 미지의 것일 거예요. 미지의 것일 것인데 내가 나왔어요.
나왔으면 내가 원해서 나왔느냐? 목적을 둔 감정을 세워서 나왔느냐? 아무것도 없어요. 모른다 말이예요. 뭐 있나? 내가 원한 것도 아니요, 어떤 감정적인, 목적적인 무엇을 필요로 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런 걸 볼 때에 이 만유의 존재가 반드시 개체의 진리의 실체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기준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원칙을 부정 못 할진대, 내가 있기 위한 상대의 주체는 어디 갔을 것이냐? 이런 것을 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주체가 있어야 할 터인데, 내 자신이 상대의 주체가 되고 상대체가 될 수 있느냐 할 때에 그것 가지고는 만족하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견지에서 보게 될 때에 어떤 관계의 결실체로, 관계의 내용을 통하여, 어떤 관계와 혹은 어떤 인연의 내용을 통하여 현실의 목적의 결과로서, 혹은 대상체로서 있어야 할 내 입장을 긍정할진대는 여기에 있어서의 내 배후의 동기적인, 내용적인 모든 조건은 어떤 것이냐? 이것이 지금,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생명의 근본문제가 거기에 부딪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과거, 과거. 과거 없는 현실, 과거 없는 오늘날 실존체는 존재의 가치가 없어요.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훌륭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과거가 없는 사실이 과거의 내 자신을 중심삼고 입증된 사실과 그리고 현실적인 모든 환경의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무엇을 남기지 못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무가치한 겁니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있기 위해서는 전후가 있어야 돼요. 그렇지요? 응? 「예」전후가 있어야 되고, 좌우가 있어야 되고, 상하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몰랐지만 반드시 전후가 있다는 거예요. 좌우관계가 있고 상하관계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내 주위에는 ,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과 같이 내가 대상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동기적인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동기적인 주체가 무엇이냐? 이것을 놓고 인간들이 답답한 명사로 풀이를 하다 보니, 있긴 있는데 부정할 수 없으니 그걸 갖다 붙이는 명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니 갓(God;하나님) 이니 뭐 가미사마(かみさま;하나님)니 여러가지예요. 즉,수많은 인간들이 부르짖는 대명사를 갖고 있는 그 실체가 되어 버렸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이것도 명사로 치면 명사는 명사인데, 있긴 있는 데 내용은 미지수예요.
이것을 우리 인간이 처음으로 놓고 그다음에, 그다음에 내 실체를 공인시켜 놓고, 그다음에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가 가야 할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지금 나가고 있는데,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데 지금까지 교양이나 수련이나 모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는 인간 위주로 한 목적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이 아니예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신과 인간, 이렇게 나온 거예요.
지금에 와서는 인본주의 사회로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나아가고 있지만 결국은 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주의가 뭐냐 하면, 하나는 신이 있다는 것, 하나는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형태를 거쳐 가지고 두 갈래로 이렇게 되어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오늘날 인간이 참다운 소망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세계,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과거의 어떤 본체 앞에 현실의 내 자신을 세워 놓고 미래적인 어떤 목적을 세워야 돼요. 나라는 것은 반드시 대상적인 어떤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게 될 때에 여기에서 그 목적은 인간 위주로 한, 나 위주로 한 목적은 성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역사적인 반응이 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이 중심삼고 그다음에는 인간 나를 중심삼되 나'라는 그 `나'는 육을 중심삼은 `나'가 아니예요.
이러한 배후에 이 천적인 하늘이면 하늘,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배경으로 할 수 있는 그 상대적인 제1 기준이 몸뚱이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너 양심은 하늘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하늘은 변치 않는 이런 법도권 내의 주체입니다. 그러니 그 주체권 내에 속하여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변하는 자체가 아니예요.
인간 앞에 변하지 않는 자체를 찾아보게 될 때에 몸뚱이가 아니고, 눈이 아니고, 귀가 아니고, 코가 아니고 팔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사람 앞에 하나의 변치 않는 그 무엇이 있느냐 할 때에 그것이 있단다면 무엇이냐? 무엇이예요? 양심이예요.
그러면 하늘이 있다 한다면 하늘은 반드시 양심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과거의 우리 선조로부터 다리를 놓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세계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어떤 절대적인 이 주체의 본체가 인간에게 다리를 놓아 가지고 절대적인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그런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할 수있다는 거예요. 뜻이 무엇이냐? 신의 목적이예요. 오늘날 우리 원리로 말하면 창조목적이예요. 창조의 뜻이예요. 뜻을 세워야만 목적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렇지요? 뜻을 세워야만, 뜻을 세워서 나가야…. 뜻을 세우는 데에는 무엇으로 세우느냐? 생활적인 하루에 세워야 됩니다. 하루에 세우는 동시에 한 시간에 세워야 되고 일초, 더 작은 몇백 분의 일초 순간에 뜻을 세울 수 있는 실적을 쌓는 자 아니고는 그 목적의 세계로 갈 수 없다 하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런 입장에 선 나예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입장에 섰느냐? 중간 위치에 놓여 있어요. 알겠어요? 「예」 나라는 것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뺨을 `이 자식아!' 하면서 친다면`왜 그래? '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맘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아, 솔직히 이야기해요. 「있습니다」 그거 있고 말고. 어, 속이 벌렁벌렁 가슴까지도 막 홍두깨질하지요. 있고 말고요. 내 팔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그렇지만 들이치는 데 내가 잘되고 내가 훌륭하게 되기 바라서 친다면, 어떠한 치는 사람이 있는데 백 퍼센트 이 사람이 진정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친다면, 사랑하는 부모가 있어 가지고 아들을 들이 팰 때에 `이런 것은 아, 나를 잘되게 하기 위함이고, 나를 귀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세계적인 뜻을 품고 세계적인 목적을 지닐 수 있는 단계로 올리는 위함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배후에 그러한 크나큰 의미를 갖고 있는 거예요.
배후의 크나큰 복의 기관을 혹은 복의 가치의 문제를 갖다 주기 위해서 친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매맞으면서도 어떻해야 돼요? 그래야 되겠어요? 내가 매맞는 아픔보다도 천배, 만배 더 클 수 있는 복의 가치를 갖다 주는 것만 알게 되면 매맞고도 감사할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소질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소질 없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보따리 싸 가지고 가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옛말에 미운 자식에게는 뭘 더 준다구요? 「밥을 더 줍니다」 미운 자식에게는? 「떡입니다」 떡 한 개 더 준다 이거예요. 떡 한개. `옛다 먹어라 이놈아!' 그건 빨리 망하라는 거예요. 고운 자식에게는…. 옛말에도 그런 말 있지만 말이예요. 이게 왜 이렇게 되느냐 이거예요.
채찍을 들이 치는데는 , 불의의 부모 앞에 맞게 될 때는 항거를 해도 천법에 어긋나지 않아요. 불효해야 돼요. 오늘날 역사종말시대에 있어서는 전부 다 효자 효녀의 도리가 다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 그렇게 생각해요. 다 깨져 나가라 이거예요. 다 깨져 나가라 이거예요. 부모가 부모 같은 것이 없어요, 자식을 위해서 채찍을 들어 치더라도.
`이 자식아. 너, 내 밥을 안 벌어다 먹였지? '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건 벌써 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산산이 다 깨지고 사회의 우리 모두의 취미가 전부 다 파괴되어 나가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역사적인 환경이 그렇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는 데에는 자동적으로 될 수 없어요. 인간이 미처 이해 못할 어떤 동기의 이면의 세계에서 반응이 돼 가지고 현실에 나타난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산이 전부 다 부서져 나가는 것입니다. 다 그렇지요?
참다운 것이 무엇이냐? 옳은 것이 무엇이냐? 선이 무엇이냐? 힘이 정의지. 거 한마디면 다 되느냐 말이예요. 힘이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채찍을 들어 치더라도, 맞고 나서도 고마운 거예요. 불의라는 것은 먹이고 나서도, 먹고 나서도 분한 것입니다. 그런 거 더러 느껴 봤어요? 어떤 녀석이 나에게 뭘 사 줘서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의의 것이예요. 내가 정당한 길을 가야 하고 내 본심의 양심 생활, 이런 이론적인 자아 인격을 구성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어느 누가 살인 강도한 그것으로 아주 뭐 진수성찬 잘 베풀어서 줬다 이거예요. 그걸 먹고 `잘 먹었소!' 한다구요. 잘 먹고 대답한다 이거예요. 그 꼴이 얼마나 불의한 것이냐 이거예요. 먹고는 분함을 못 참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를 보게 될 때에 참 같은 것이 참인지, 참아닌 것이 참인지 알 수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명사는 네 어머니 아버지나 내 어머니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나 명사는 마찬가지인데 환경은 달라진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시간과 거리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달라지니 그 어머니라는 명사도 달라져 나와요. 그러니 오늘날 지금까지 모두 가정적으로 전부 다 깨져 나가요. 사회적인 명사나 모든 것. 옛날에 주권자였던 뭐든 전부 다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 이러한 어떤 흐름이 나를 동반하여 흘러 나가는데, 어떤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것이 필연적인 도상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실에 처해 있는 입장에서 가려고 보니, 앞을 바라보니 갈 수 있는 목적의 세계는 어디 갔는지 없다 이거예요. 뒤를 돌아보니 동기적인 실체는 어디 갔으며, 이러니, 앞이 막혀 있고 뒤가 막혀 있으니 거기에 고립된 자신을 걸어서 탄식하는 탄식의 아우성 소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리가 마을을 지나, 사회를 지나 국가를 넘어 세계에 파동 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는 최후의 종착지를 향하여 급행 열차의 달리는 속도 이상의 빠른 속력으로서 내 운명을 끌고 몰아쳐 들어가는 이 사망의 물결이 내 꼬리를 물고, 내 옷자락과 내 몸뚱이와 내 다리를 당겨 매 가지고 뜰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한 손가락에 달린, 여기에 생명줄이 걸려 전후 좌우로 피해 가면 죽는다는, 최후의 끝에 와 있다는 것을 온 세계 인류 전부 다 느낄 수 있는 시대적환경에, 시대적인 환경이라기보다 시대적인 찰나에 처해 있다 이거예요. 자, 이런 환경에서 이제는 가정이 파멸입니다. 돌아서려니 돌아설 힘이 없어요.
그러면 이 사회에서 쭉 가다가 바른쪽으로 빠지든가, 왼쪽으로 빠지든가 도피해야 할 이런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누구나 부르짓고 있고, 어느누구나 심각한 입장에서 찾고 있는데 가야 할 길, 돌아갈 수 있는 길, 혹은 좌우 길을 피할 수 있는 피난 길은 어디 있을 것이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손을 붙들고 몸으로 동댕이를 치고 있는 현상이 오늘날 세계 30억 인류의 현상이요, 여기에 모인 과거의 여러분의 현상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에도 여러분은 그런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도피하고, 전후로 피해 갈 수 있는 그런 구명을 찾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러한 입장에서의 나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는 여기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서? 하나를 잘라 버려라, 잘라 버려라는 것입니다. 대가리가 장애가 되면 대가리를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팔이 있어 장애가 된다면 잘라버려라 이거예요. 가정에 있어 장애가 된다면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청산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여기에서 급류로서 끝내 버리자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목포와 같이 떨어져야 할 이런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예요. `물이 다 없어진다. 어서 가자' 덩치 크게 해 가지고 가운데 골수부터 전부 다 자꾸 벗겨져 나야 된다 이거예요.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붙어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있어서 정성들이는 입장에서 모든 걸 갖추어가지고 흘러가는 모든 사조 앞에 다 부러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조의 입장에 서지 말 것! 뭘할 것이냐? 곁길로 살아라 이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다리를 놔라 이거예요. 용단을 내려라 그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가던 길을 돌이켜라 이거예요.
용단을 내릴래야 내릴 수 없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으니 여기에서 한 가지 비법을 찾는 최후의 방법이 있으니 곁길로 가자 이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다 말이예요, 곁길로 가자. 나는 주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곁길로 가자 이거예요, 소용돌이치면서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흘러 내려간다는 말이예요. 이러한 위치에 가 가지고….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날 이 사회적인 발전도상에, 역사적인 발전도상에 있어서 그러한 유에 속하는 무리들이 무슨 무리냐 하면 세상에서 몸뚱이를 딛고 장단 맞추어 가지고 `에라, 먹고 살자. 에라, 좋구나' 춤추는 무리들이 아니예요. `너희들이야 흘러가겠으면 흘러가라. 내, 곁길로 간다' 이런 길을 찾아오는 그러한 무리들이 있나니 그 무리들이 뭐냐 하면 인륜 도덕을 논의하고 선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숭상하는 무리들인 거예요. 이런 무리들이 반드시 역사 도상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길이 뭐냐 하면 종교 패들이예요, 종교 패들. 이건 비현실적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곁길로 보내야 되겠다 이거예요. 곁길로 가야 돼요. 가려니 용단을 내려서 이걸 쳐부수고, 이것을 전부 다 박차고 밀어 낼 수 있는 내 능력이 없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이런 비결을 모르니 할수없이, 할수없이 곁길로 가는 거예요. 곁길로 가려니 공부해야 돼요. 전부 다 두 갈래 길이니 거기서 산중 수도하고….
에미 애비도 다 몰라보는 거예요, 도의 길 가는 사람들은. 자기 처자도 다 몰라 보는 거예요. 다 잘라요. 맨 나중에는 자기 살점도 다 잘라 버리는 거예요. 이놈 팔이 그러면 팔을 잘라 버리는 거예요. 팔이 원수면 팔 잘라 버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다 껍데기 벗겨 가 가지고 무엇?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바쁘냐 이거예요. 가만 있어도 바쁘단 말이예요. 우리 6. 25동란 이후에 한국 백성이 얼마나 많이 걱정해요? 다 벌거숭이가 되고 깡그리 다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거예요. 편할 수 있는 것은 뭐냐? 그 급류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제일 행복한 거예요.
사망의 도상에서 아브라함이 말이지요, 소돔과 고모라성을 하늘이 심판하는 데에는 불벼락을 내릴 것을 알아 가지고 야단 도망가게 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곁길로 뺀 거예요.
이런 놀음을 하라고 오늘날…. 그 어떤 주인이 있다고 하면 그 주인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그런 과정적인 도상에 있어서는 시대시대를 따라서 그러한 상충된 면에 반드시 부딪치면서 거기에서 후퇴한다는 거예요. 앞으로 도피 작전시키는 이 방법을 오늘 인간 앞에 암암리에 제시해 주는 이런 일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길이 역사를 통해서 있었느냐 할 때, 이것이 도(道) 라는 거예요. 이런 도, 이런 종교라는 명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으로 하여금 도피라는 방법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태가 있나니, 오늘날 역사과정에 있어서 필연코 우리 인간의 더불어 배후에서 섭리하여 인간을 도피시키는 하나의 방편을 세우는 어떤 나 이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분이 하나님인 거예요. `아하, 하나님이 그렇게 됐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위기에 봉착하면 봉착할수록 예언자가 오는 거예요. 시대 시대에 반드시 거기에는 지도자가 오는 거예요. 부패의 일로에 종말되는 것이 아니라 부패의 자리에서 개혁을 해야 돼요.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에서 자꾸 곁길로 나오는 거예요. 오늘날도 자유당때보다 곁길로 나오지요. 하나님도 막을 수 없어요. 주류가 얼마나 세냐 이거예요. 자꾸 끌어당기지만 나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곁길로 가 가지고 딱 붙들고, '홍수가 나더라도 못 끌어간다'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흘러가던 그 입장으로부터 사방을 수습해 가지고 이념을 잡고 나오자 하는 것이 종교 이념이예요.
그리하여 종교 이념을 중심삼고 최후의 인류들은….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오늘날 이러한 이념권 내에 분열된 입장에 있어서 자기 개체의 신념을 세워 놓고 그 환경적인 입장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거기에 침범을 받지 아니하고 그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이념적인 종교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그 이념적 입장에 있어서 만민이 흘러가는 객류의 도상에서 도피하여 내가 비로소 천주와 더불어 하나의 목적적인 대상의 실체가 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나의 가치를 세운 후 많은 실적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만우주 앞에 새로이 나타날 수 있는 존재를 반드시 하늘이 필요로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필요한 존재가 누구냐 하면 종교적인 세계적 지도자예요. 그러한 분이 뭐냐 하면 메시아요, 그러한 사상이 메시아사상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알거예요, 대개.
보라구요. 이제 그렇다면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았지요? 그런 인연이 역사도상에 있는 걸 알았지요? 그런 인연이 역사도상에 있어야, 어떤 문화 역사로서의 세계사 가운데 그러한 움직임이 있어야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으면 신이 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와야 되는데 그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하면 인간 전체가 내 대신 중심체라고 바랄 수 있는 분이어야 돼요. 내가 그분만 잡으면 과거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현실을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미래를 알 수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분만 잡으면 상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하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좌우를 알 수 있어요. 그거예요, 그거.
'나'라는 것인 상대적인 인연 가운데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벗어나게 되면 주체도, 나를 중심삼은 절대적 주체가 되어야 할 그 주체도 나로 말미암아 무가치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도 오늘날 동기와 결과의 그런 세계를 향하여 섭리하시는데, 여기에선 이건 몰락적이예요. 전부 다 이 세계는 원치 않아요. 여기는 기쁨이 아니예요. 기쁨이예요? 기쁨이 아니예요, 슬픔이예요.
인간시조가 생겨난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부부가 기쁨의 부부가 아니예요. 기쁨의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기쁨의 가정이 아니요, 기쁨의 가정이 아니니 기쁨의 사회가 아니요, 기쁨의 사회가 아니니 기쁨의 국가가 아니요, 기쁨의 국가가 아니니 기쁨의 세계가 아니예요. 기쁨의 세계가 아니니 기쁨의 하늘땅이 못 되어 있으니 하나님도 결국은 슬픔의 하나님이 된 거예요.
그러면 슬픔으로서 끝나는 것이 우주의 창조의 동기냐? 아니예요. 동기는 그렇지 않아요. 동기는 기쁨이었어요. 어머니가 뱃속에 어린애를 밸 때 `오, 이놈의 배야! 어찌하여 불러지느냐?' 해요? 어떤가요? 슬픈가요, 기쁜가요? 저 아저씨들? 아주 뭐 뜻 깊은 이런 가운데 `임자가 아니면 내가 죽고 내가 아니면 임자가 죽지' 하는 거예요. 둘이 하나요, 하나가 둘일 것인데, 당신을 봐도 나 같고 나도 당신 같은데…. 그 가운데 복중에서 애기씨가 자라 움직이고 자꾸 커지는 복중을 바라볼 때 그의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나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병신이라도….
내가 한번 이런 일이 있었어요. 보면 말이예요, 팔은 곰배팔이요, 입은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져 있고, 눈은 병신 눈인데 길을 걷는 것 보면 이건 뭐 요지경이고 그래요. 팔도강산 유람하는 가지각색 이상이예요. 아주 뭐 그거 연구하면 참 재미있는 재료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또 그런 마나님이 있거든요. 마나님이 그렇고 영감은 또 소경이고 이런 패들. 이들이 부처끼리 다니면서 복중의 애기를 대해서 `영감도 복중에 애기가 있는 거 좋아합니까? ' 하면 `허허, 그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궁금하게 좋네' 하고 그 여자도 그렇게 병신이지만 `복중에 들은 그 애기를 생각하면 기쁩니까? ' 하면 `기쁘고 말고' 합니다. `당신 같은 아들딸 낳으면 어떻게 되겠오? ' 하면 그건 생각도 안 하고 하여튼 좋다는 거예요. 그거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복중에서 태어나는 걸 가만히 볼 때 누구나 불문하고 부모의 입장에 선 사람은 다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 총각들은 모를 거예요. 한번 시집 장가 가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뭐라고 설명은 하지 못하지만 동기는 좋아서…. 그런데 낳아 놓고 보니`아이코!' 낳고 보니 슬픈 세상에 태어나게 된 그게 한이예요.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할 때 슬픔에 잠겨 `아이고, 이거 이놈의 세상! 드디어 이거…. 아이고, 가슴이야! 아이고, 큰일났구나! 아이구, 슬픔이야!' 하며 눈물 줄줄 흘리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짓는 모든 전부에는 자기 정열이…. 한 가지 짓고 두 가지 짓고 세 가지 짓고 천천 만만의 수가 앞으로 나감에 따라 가지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정이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이 흐르고, 심정이 흐를 뿐만 아니라 자기 개체가 후닥닥 사정없이…. 맛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맛인 거예요. 호랑이들이 아주 굶주린 가운데 토끼새끼 갖다 대면 확 삼키는 그 이상 굶주린 자리에 있었으니 아주 맛있는 진수성찬을 갖다 던지는 것보다더….
그러한 기쁨이 거기에 숨어 있어야 하나님도 그 어려운 창조의 창업을 전부 다…. 그럴 거 아니예요? 만일에 하나님이 있으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지었느냐? 슬퍼서 지었느냐? 슬퍼서 짓는 하나님이라면 벼락을 맞을 하나님이예요. 그럴 거 아닌가 말이예요.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이 창조주가 있으면 창조주는 출발 당시에서부터 슬픔의 동기을 가졌다면, 그 슬픔의 동기를 가진 하나님이라면 인간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어요. 원수예요.
이걸 생각할 때 어디까지나 선, 선을 찾아야 돼요. 선을 위주로 한 이러한 원칙의 논리는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기는 선해요. 동기가 선하였으니 과정도 선하고 과정이 선하였으니 목적도 선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그런 입장에 섰더라면 인간은 고통 가운데 살 것이 아닌데…. 여기에서 동기는 선이었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동기는 선인데 인간의 생활의 출발과 생활의 동기는 선에서 출은? 악!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동기와 출발은, 생활적인 동기와 출발은 악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기쁜 날로 시작했느냐, 슬픈 날로 시작했느냐? 슬픈 날로 시작했다 이거예요. 인간의 동기가 슬픈 날로 되었으니, 슬픈 날로 시작했으니 슬픈 자신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은 가정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가정적인 슬픔은 민족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민족적인 슬픔은 국가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세계적인 슬픔으로 이렇게 갈라져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의 최후에 승리할 수 있는, 역사도상에 있어서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주권을 되찾는 그날이 와야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겠느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디서부터 출발했다구요? 「악에서 출발했습니다」 악에서 출발했고, 무엇으로부터? 슬픔으로 시작했으니 인간은 세계성을 띠고 인간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적인 인연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의 대창조의 목적과 더불어 관계의 도상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본성적인 창조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 본성을 떠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개체로부터 시작한 것은 세계성을 반드시 걸어 놓고야 해결지어 나가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과 개인적인 고통과 개인적인 죄는 가정적으로 벌어지고, 가정적인 슬픔은 종족적인 슬픔으로, 종족적인 슬픔은 민족적인 슬픔으로, 점점 커 나가는 거예요. 민족적인 슬픔은 세계적인 슬픔의 단계를 향하여….
인간에게는 기쁨을 보유할 수 있는 내적인 기준과 슬픔과 접할 수 있는 외적인 기준이 있는데 몸뚱이는 슬픔과 접하려고 하고 내적인 마음은 기쁨과 접하려고 하지요. 기쁨과 접하는 데는 어떻게 되느냐? 역사적인 인연과 접하려고 해요. 지금까지 그 나라의 국법이 있었으면 국법을 중심삼고 이거 하지 말라고 했으면 말이예요, 새로운 시대가 왔어도 양심은 과거의 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식된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서는 안 돼!' 하는 거예요. 몸뚱이는 이 마음을 반대하여 상충적인 입장에서 몸과 마음의 세계가 두갈래로 딸 벌어져서 하나는 내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는 것이요, 하나는 외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물질을 중심삼은 세계요, 하나는 마음을 중심삼은 세계예요. 딱 그렇게 되어있어요. 알겠어요?
그러니 이건 뭐냐? 세계적으로 보게 될 때에는 이것이 범위가 클 뿐이지 인간 개체는 본래 세계적인 대표자예요. 세계적 대표자니, 세계적인 대표형이니 내 개체로 보면 하나는 몸뚱이 대표자요, 하나는 마음적인 대표자, 하나는 유심사관이고 하나는 유물사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딪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싸우지요?
이런 역사적인 도상에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투쟁하던 것이 세계적인 투쟁 현상으로 벌어진다 이거예요. 하나도 맞지를 않아요. 공산주의가 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전부가 원치 않아요. 민주주의가 하자는 것은 공산주의 전부가 원치 않아요. 나와 같은 이런 외적인 형상 실체상이 세계적인 대표형으로서 벌어졌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 되어서 슬픔에서 출발한 인간은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반드시 갈라져야 된다 이거예요. 갈라져야 돼요. 둘 다 갈라지는 거예요.
이제 하나의 기준이 완전히 서지 않게 되면 둘 다 갈라지는 거예요. 하나의 완전한 기준을 세우려면 합하든가 갈라지든가 해야 돼요. 갈라낼래야 갈라낼 수가 없다는 거예요. 민주주의를 놓고 볼 때, 유심 사관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마음의 기준이 무엇이냐? 없어요. 절대적인 몸적인 기준은 뭐냐? 없어요. 없으니 할수없이 여기에 있어서의 참다운 마음의 사람, 참다운 몸의 사람을 모방해야 돼요. 알겠어요?
그러한 내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관적(史觀的)인 현상을 두고 보게 될 때 하늘은 이런 역사적인 종말이 필시 온다는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에 세상 위에 거기에 비로소 지도자 구세주를 보낸다고 한거예요, 구세주.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사상이 나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구세주 사상이 나오게 되면 사람마다…. 그분의 마음으로 우러나는 말이요, 말이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생활적인 무대니, 또 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생활환경이니….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양심을 통하여 우러나오는 것은 천정과의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역사해요. 하나님은 재까닥 해 나오는 거예요. 찢어 놓은 거예요. 왼발 자국은 이미 출발해 놓았지만 오른발 걸음이 나아갈 목적에 누구를 ? 완전한 사람을 떡 딛고 넘어선다는 거예요. 사람을 지배하고 넘어서야만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주고도, 지금까지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인간이 갖고 있는 무슨 주의니 무슨 주권이니 무슨 국민이니 뭐 문화니 하는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한 분만…. 세계는 순식간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전부 다 지배받는 권내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는 악을 대신하여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처리할 수 있는 우주의 중심이 벌어져요. 완전히 우주의 중심인 나! `나'가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 한 분의 마음을 붙들면 내 마음적인 역사적인 고통을 통하였던 그날들을 다 제껴 버리고 소망의 나의 개체로부터 소망의 가정으로부터, 소망의…. 소망의 민족으로부터, 소망의 국가로부터 소망의 세계성을 띠고 나오던 그런 기쁨의 대상의 실체로서 화하여 나타난 화신체가 구세주입니다. 몸을 통하여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나온, 지금까지 슬퍼하면서 땜을 때워 나오던, 이러한 개인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했고 가정적인 고통, 종족, 민족, 세계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했지만 피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사실이 그분 몸뚱이와 더불어 접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화신체인 그분을 찾으면 우주의 나를 발견하는 거예요. 과거의 잃어버렸던 내 개인을 찾는 것이요, 과거의 우리 선조가 개인을 잃어버렸던 그것을 내가 복구할 수 있는 것이요,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의 가정, 과거의 우리 선조들의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복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소망으로 하였던 그 소망의 실체와 접한 사람은, 그분을 가진 사람은 이 역사를 전부다 완성한 실체로서, 승리적인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그 한 분을 찾기 위해서는 전부 다 버려라! ' 하신 것입니다. 그 한 분은 수많은, 지금까지 이 악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터 위에서 온 분입니다. 그러한 나, 그러한 나….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서서 반드시, 출발이 선했으니 과정이 악했으나 목적이 선해야 돼요.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이 구상하신 실체를 세우는데 있어서 틀림없이 선의 실체로 세웠는데 선의 실체가 못 되고 악의 실체가 되었으니 악의 실체를 정비해 가지고, 이것을 다시 한 번 수정하여 재차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다시 회생할 수 없기에 이 복귀도상에서 지금까지 다시 구원이라는 고통스런 길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하려면 고통스럽지 않아요? 죄인을 구하려면 죄의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똥 묻은 사람을 구하려 면 똥 묻는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더 들어가야 됩니다. 더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최고의 수고의 왕자로 군림해 온 분입니다.
그러면 그 뜻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어떻게 되느냐? 전부 다 죽음의 도상에서 허덕이면서 우리의 후손들 앞에 최후의 유언을 하기를 선은 승리한다고 하고, 하늘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부르짖고 가던 그 목적은 비로소 오늘날 최후의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열매가 맺혀지니 비로소 완전한 저울이 나왔기 때문에 가짜 저울은…. 가짜 저울이 많아요!완전한 저울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원기, 원체, 원래의 저울이 없게 될때는 가짜가 전부 진짜 놀음 했는데 원래의 완전무결한 천지가 공인하는 저울이 척 나올 때는 그것 중심삼고 가짜를 전부 다 골라내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의 이상적인 최후의 표본, 견본입니다. 가다(かた;형틀), 뭘 찍는 데 있어서의 원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오면 그분을 닮아라!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나오느냐? 그분은 어떻게 나오느냐? 하나님의 마음 상, 심상의 존재에서부터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선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인간의 생활적인 기준에 있어서 출발과 그 동기는 악이 아닙니다. 본래는 선이었기 때문에 본래 인간이 타락하기전에,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의 구상에서부터 이루어진 분이 그분입니다. 그분을 쳐들어서 의논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 상입니다. 형상, 구상의 그 바탕, 구상의 바탕 가운데 있어야 할 본래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사람은 전부 다 가짜들입니다. 거기서 우주의 사람으로서 우러나와 가지고 이 천지, -천지인입니다, 천지인-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람으로서 비로소 가치를 가지고 천지 앞에 비로소 사방에 활개를 펴고 상하를 전부 다 움직일 수 있는 가치적인 이런 사명자로 오시는 분이, 그분이 누구냐 하면 아까 말한 내가 있기 위해서 필요한 이상적인 주체의 대신체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짜 나입니다. 가짜 나라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은 무슨 나예요? 「가짜 나입니다」 무슨나야? 「가짜 나입니다」 무슨나야 ! 「가짜나입니다 !」 가짜 나야, 가짜 나 ! 잘났든 못났든 전부다 가짜 나입니다. 가짜예요. 이랬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보면 눈깔에서 뿔이 나오고, 코구멍에서 갈고리가 나오고, 입에서는 별의별 게 다 나오는 것입니다. 독사 혓발같은 게 나오고 다 나온다는 거예요. 쇠고랑이고 뭐고 그저 별의별 게다 있는 거예요. 흉악한 흉기는 다 갖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무엇을 잡아먹느냐? 마음을 잡아먹고 사회를 잡아먹는 흉기는 다 갖추고 있는 거예요. 악의 무장고입니다, 무장고 ! 이 지긋지긋한 무슨나? 거짓 나지요? 「예」 악의 무장고라는 거예요. 그것이 지긋지긋한 나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이걸 깨뜨려야 돼요. 이걸 짤라버려라 ! 그러기 위해선, 마음으로써 눈을 빼버리는 데는 이 마음이 결심을 안 하면 안 돼요. 이 눈에 원수의 화살이 꽃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화살인 이것이 뽑아지지 않아요. 마음에서부터 이걸 잘라 죽인다, 이래서 그것을 청산해야 돼요. 그걸 청산해야 돼요. 그러려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냐?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요놈의 이 사지백체가 원수의 무장고가 됐으니 이걸 짤라버려야 돼요. 짤라버리는 거예요. 안 그러겠다면 들이 쳐서라도 짤라버리게 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못 자르면 여기서 의사와 마찬가지로 수술대에서 다 빼 가지고…. 그러면 뭐 '흥- 흥-'아파할 거예요. 칼을 대면….
여러분 그러지요? 해부 같은 것 할 때, 배를 쨀 때는 사정 봐주지 않지요. 그저 째는 거예요. 시간이 될 때는 그 시간에 안 째면 죽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짤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짤라버리니 '아이구-나 죽는다. 아이구 아이구, 싫어 싫어' 그래요. 이럴 때는 손이고 뭐고 딱 졸라매 가지고 떡 잘라 가지고 살려주는 거예요. 죽을 자리에서 살려주니 살고 나서야 '고맙습니다'그래요.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원수의 무장고를 , 이 지긋지긋한 무장고를…. '어-그렇게까지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심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래도 자기 몸뚱이인데 왜 그렇게 해야 돼? ' 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한번 설명해 보자구요.
'왜 그렇게 원수의 무장고라고…. 아이구, 그래도 내 손이고, 이 손가지고 아버지에게 떡도 정성껏 사다드렸는데' 할지 몰라요. 주긴 줬는데 다 그렇지 않단 말입니다, 그 내용이, 그 동기가. 왜 그런가 한번 보자구요.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 있는 거 알았어요? 하나님 있는 거 알았어요, 하나님이 있는 거? 말만 들었지, 알았나 말이예요. 세상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았어요? 동네 개는 주인의 무엇을 잃어버릴까 봐 밤낮으로 지켜나 주지. 문전에 지켜 서서, 동삼삭에도 아주 쭈그리고 밤 잠을 못 자고 지키는 거예요. 개는 주인을 염려해서 밤잠을 안 자고 지키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래 봤느냐 말입니다. 전부 다 자기 멋대로 그저 되는 대로 살아온 껄렁패들 아니예요? 뭐 그렇게 얘기해도 섭섭하지 않을 거라구요. 껄렁패지요. 말하자면 전부 다 껄렁패지요.
또, 언제 이 입이, 언제 내 손이 하나님이 좋아하실 입과 손이 되었어요? 그 손이 훌륭한 손이예요? 죽은 다음에 천국 나라 갔을 때 내 손을 박물관에 표본으로 갖다 놓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해 봤어요? '야, 내눈은 황금 눈보다, 내 보기에는 천하에 제일 귀하다는 황금 눈보다도 귀한 거로구나. 내 눈이여 ! '그래 봤어요? '야, 내 몸뚱이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하냐? 천하가 다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귀한 자체로구나' 그래 봤어요? 이것들은 아무데도 쓸 수 없는 거예요, 이 전부가.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무엇이냐? 그러한 사탄 물건을 전부 다 어떻게 해야 돼요? 짤라버리고, 내쳐버리고 수습해 가지고 필해야 돼요? 재창조해야 돼요, 재창조! 재창조해야 돼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여기서부터. 참 진리라면, 참다운 진리라면 울어도 세상에서 제일 크게 우는 것이 돼야 됩니다. 울어라, 통곡을 해라 이거예요. 아이구 분하구나 ! 아이고 분하구나! 내 어머니 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 수천명이 한꺼번에 쓰러져 죽어도 그 분함이…. 어머니 아버지 한 사람 죽었는데 뭐, 어머니 아버지 하나 죽었으면 죽었지 슬플 게 뭐야? 그런 부모 천 명, 만 명 이상 죽은 슬픈 그런….
이 나라에 애국자가 있으면 그 애국자보다 더 분해야 돼요. 세계주의자가 있어 가지고 선한 입장에서 싸우다가 학살당한 그 사람들보다 원통한 그런 마음도 품어야 돼요. 그런 분함을 느껴도 여러분이 지금까지, 혹은 뭐 늙어 죽도록 살았다 하더라도, 수십 년, 혹은 백년 가까운 이런 생애를 살았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생각하면 제일 분해야 돼요. 제일 원통해야 돼요. 원통해서 내 칼이 없으면 칼 대신 참대 꼬챙이라도 칼로 알고 나가서 싸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참대 꼬챙이가 칼 대신이니 참대 꼬챙이와 칼과 비교하여 약한 그 기준만큼 나는 성의와 열의를 가져 가지고 싸우겠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들기 전에는 패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나를 못 찾습니다. 나를 못 찾는 거예요! 깨끗이 돌려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을 대하여 죄의 옷을 다 불사르고 '나는 천하가 공인하는 아들로서 왔소이다, 아버지! '그래 봤어요? 우리 통일교인들, 그렇게 해봤어요? '당신이 찾고 싶었던 아들, 내가 왔습니다, 아버지! '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아버지의 뜻이 통하고, 아버지의 사정이 통하고, 아버지의 심정이 통하고, 통할 뿐만이 아니라 너와 나는 하나라는 공인을 받아야 돼요. 그래야만 인간으로서 태어났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만 알아서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뜻만 알면 뭘하노? 오늘날 선한 뜻을 몰라서 다들 실천 못 했어요? 자유당이 정책이 나빠서 망했어요? 사정을 못 통해서 망했어요?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무슨 심정? 천리의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이 국가의 운세의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뜻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통하기만 하면 뭘하나 말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하면, 모든 주고 받는 것이 완전히 통하면 화합을 이루어야 돼요. 전기가 완전히 합하면 무엇이 되는 거예요? 전기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빛이 돼지요, 빛.
완전히 통하고 나서 나중에는 뭐냐 하면,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 ! 뜻이 하나요, 사정이 하나요, 심정이 하나인데 몸과 마음을 중심삼은 하나님과 하나돼야 돼요. 이렇게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 할 것이 인간의 본의인데,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나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부모도 거짓 부모를 가졌고, 형제도 거짓형제요, 내 사촌, 혹은 사돈의 팔촌 전부 다, 친척들이라는 명사를 가진 그런 수많은 무리들도 역시 전부 다 거짓이라는 명사의 탈을 쓴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민족이나 내가 사랑하는 국가나 내가 사랑하는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이 천지간의 모든 만유의 현상은 전부 다 악의 탈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권내에 있어요. 이걸 벗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주의자가 돼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세계주의자가 돼야 되는 동시에, 그다음에는 뭐가 돼야 되느냐? 그것과 대등한 입장에 서 가지고는 만물을 주관 못 해요. 그래서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의를 첨부하여, 하늘주의를 첨부하여 천주주의라는 명사를 세워야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주의? 「천주주의요」
그러면 천주주의라는 명사를 세워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거기에 돌아가 그때의 그 자리에 가야 되는데, 본래 인간이 탄생되어서 하나님하고 제일 가까울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우리 조상의 자리, 그 자리에 나가야돼요. 그 자리가 어디냐? 천주주의 완성한, 천주주의자로서 비로소 하늘과 땅과 만물을 대신한, 창조주의 실체 앞에 내가 이 창조주의 대상체로서 섰다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의 선조가 타락하지 않고 가야 할 그 첫째 기준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거예요.
여자도 그런 여자가 안 나왔고, 남자도 그런 남자가 안 나왔으니 어서 빨리 남자가 나와야 돼요. 구세주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입니다」여자지요. 여자지 ! 「남자입니다」 여자지 ! 「남자입니다 !」 그래 옳은 건 옳다고 해야지. 옳은 건 모가지가 떨어져도 옳다고 해야 됩니다. 그 답에는 내가 항복입니다. 여자 아닌 남자입니다. 그러면 여자도 남자도 그 자리에 못 갔으니 그 남자, 독신으로 찾아오는 그 한 분, 그런 낭군이 있나니 그 낭군이 뭐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되시는 예수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부처끼리 오는 것이 아니라 독신 남자로 오는 거요, 남자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천지창조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거짓으로 출발했고 악으로 출발한 이 세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한 사람 찾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 ! 진짜 한 사람 ! 그 진짜는 어떤 사람이냐? 이제 말한 거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통해야 됩니다. 뜻을 통하려면 동기를 알아야 되고, 결과를 통하려면, 동기와 결과를 통하려면 인연을 알아야 됩니다. 인연, 이 과정적인 인연을, 과정적인 관계를 피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이 자기의 책임을 못 하니 인간의 인연을 다리 놓기 위한 이런 무리가 있나니 그런 무리들이 수많은 개체를 대신하여 다리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아브라함은 개인이요, 야곱은 가정이요, 모세는 민족이요, 예수는 세계라, 격식이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법에서 찾아보게 될 때 기필코 개인으로부터 세계적인 대표자, 지도자, 세계적인 제물적인 존재를 반드시 가진 역사적인 종교의 내용을 가져야만 세계적인 종교이지 그러지 않으면 세계적인 종교가 못 됩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기독교가 세제적 종교의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돼요? 「알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 인을 세울 때 하늘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구세주를 얼마나 그리워 했겠느냐? 본래는 내 개인을 세울 그 때에 있어서 세계적이면서 개인적인 승리자가 돼야 될 건데 그게 못 됐어요. 왜? 타락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세계성을 띨 수 없으니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로써 분담하여 이 역사노정을, 기나긴 시대를 거쳐오면서 하늘은 세계적인 인물 하나를 키워 나오기 위한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서 분담적인 구세주 사명을 대신하는 자를 보내줘 가지고 전부 다 이 땅 위에서 슬픈 자의 입장을 대신하고, 억울한 자의 입장을 대신하고, 죽음에 몰리는 자의 입장을 대신하게 한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이제 세계적인 지도자로 오시는 그분은, 그분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구세주 사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요,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민족적인 구세주 책임을 하여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한 책임자요,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민족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승리적인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에서 세계적인 대신 실체로 나타나는 분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럼 메시아 하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옛날에 한을 가져야 했던 개인적인 조상이 여기에서 소원성취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옛날에 가정적인 섭리시대에 희생하고 갔던 그런 가정적인 우리 조상들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거예요. 민족적인 섭리시대에 희생해 갔던 우리 민족적인 조상들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거예요.
그분은 과거의 하늘 개인과 하늘 가정과 하늘 사회를 대표하여 하늘국가적인 이념을 섭리해 나오신 하늘의,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배후의 이념적인 터전 위에 숨어 있는 크나큰 무한한 가치, 역사적인 가치의 실체인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 예요. 과거를 잘 알아야 현실의 자아가 그 복을 상속받고 우리 조상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때가 무슨 때냐 하면, 천주주의 시대이니 천주주의 시대라면 여기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메시아로 왔던 이 메시아가 이상적인 천국, 이상천국세계까지 전부 다 알아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상주의자입니다, 전부가. 전부 다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전부 다 그 마음은 세계주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만 못났어도 여러분의 마음은 '너, 잘되면 좋으니 못되면 좋으니? ' 하면 '물어볼 게 뭐 있어? ' 그래요. '잘되면 좋으냐, 못되면 좋으냐? ' 두 우수(偶數) 말 가운데 뭐가 좋으냐고 하면 물어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 물론 잘되는 게 좋은 거지' 그럽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렇지요? 그럼 '얼마만큼 얼마만큼 잘될래? 뭐 대통령만큼 잘될래? 뭐 케네디 대통령이 제일이야? 얼마만큼 잘될래? ' 하면 어때요?
저나라에 하나님에게 충성을 많이 한 그런 공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공신도 있을 것이고 종중의 종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케네디 대통령이 저나라에 가면 천사세계의 천사장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얼마만큼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욕심이 많고 얼마만큼 내가 간절히 고대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묻고 묻고 묻고 보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 꼭대기까지 올라가요. '하나님 앞에 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할 거예요. 심부름꾼으로 만족할 것 같아요? 안 해요. 그럼 뭐 종으로써 만족하겠어요? 그것도 안해요. 종중의 종으로 만족해요? 그것도 안 해요. 그럼 뭐 사위로써 만족할 것 같아요? 그것도 안 해요. 뭐 ? 사위가 됐지만 그 장인의 유산과 모든 목적과 모든 살림살이가 엄청나고 훌륭하다면 그거 전부 다 갖고 나서야 '허허'하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크기가 안 큰가요? 다 그렇지요? 사람의 욕심은 하나님을 타고 귀를 잡고 춤추고 싶은 거예요. 욕심이 다 그래요. 여러분들 그렇지 않아요? 「그렇습니다」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 그럴려면 이제보라구요.
그러면 종새끼가 주인 타고 귓발을 붙들고 춤추어서 되겠나 말이예요. 그런 법도 있어요? 「없습니다」 무슨 법을 통하여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사랑하는 아들딸, 어허둥둥 내 사람아! 알겠어요? 둘도 없는 내 아들이요, 너는 내 꽃 중의 꽃이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내 상투 끝에 올라가 천년 만년 대공사를 해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행복의 노래를 하고 그저 잔치를 하겠으면 하고 별의별 것을 다 하겠으면 해라! 이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걸 보고 '야 이놈들아, 왜 이러나? '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이 되려면 어떠해야 되느냐? 하나님 이 둘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딸이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찾아보니 그 명사가 만사에 통치 못 함이 없는 명사거든.
인간이 무불능통할 수 있는 이런 기준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의 최고 악질적인 녀석입니다. 타락했으니 악질적인 녀석입니다. 원래는 악질이 아니고 좋은 성질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악질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 본질의 성품은, 바탕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고야 ! 하나님의 상투에 올라가 춤추고 그래도 하나님도 기뻐하는 거예요. 이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러면 그 욕망을 해소하는 데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다 안 됐지만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의 아들딸의 명분을 갖추면 '너는 천지간에 너 하나요, 천지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너로구나. 어허둥둥 내 사랑 ! ' 이러며 높이고만 싶고 춤만 추고 싶은 거예요. 이런 입장에까지 인간은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기준에서 인간을 참다운 선으로 지배해 가지고 이념적인 세계에 있어서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중심된 그 인연, 내적인 철옹성 같은 이런 연결적인 쇠사슬이라 할까, 연사체라 할까, 이런 기준을 완전히 맺어 가지고 뗄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인연을 맺으면 창조주를 대하여 '내 아버지 ! ' 할 때 그분이 '야, 내 사랑하는 아들딸아, 네가 없으면 나는 천년 대공사도 쓸데없다'하는 거예요. 아무리 천지간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원수를 굴복시키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굴복시킨 후에 아들딸이 태어나야 기뻐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원수를 정복하여 승리함으로써 기뻐할 것이냐? 승리하고 나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들딸들이 그 승리의 영광에 동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냐? 아들딸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의 내용을 가져 가지고 그러한 기준에서 인간을 구한다는 명사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하니 종교의 내용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명사로 부르는 단체가 기독교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를 발판으로 해서 지금나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 일체를 이루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나로서 생명이 연결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역사적인 그런 인연을 거쳐 가지고 실천 과정을 전부 다 넘어서 가지고 목적적인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야 거기 에서는 영광 중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도 하나님이 좋아하고 땅의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은 뭐냐 하면, 아들딸이란 명사 아니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은 뭐냐? 아들딸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수련받는 목적은 그것입니다. 어느 단시일 내에 아버지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그의 심정을 내가 통하며, 그의 사정을 통하며, 그의 뜻을 통하며, 그의 사정과 그의 뜻과 그의 심정을 통하여 그 대신 인격자, 심정과 사정과 그러한 뜻이 통해 가지고 영원히 풍겨날 수 있는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그 대신자인 아들딸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이 땅 위에 태어난 최고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목적?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하나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딱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가지고 춤만 춰서 되겠나요? 그다음에는 , 기뻐하고 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주는 거예요. 기쁨으로 주실 유업, 우리 아들에게 줄 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아들에게 줄 게 뭐 있어야지요. 아들딸이 좋아하고 다 기뻐하고, 너와 나와 영원히 하나된 입장에서 그다음엔 아들딸한테 뭘 줄 것이냐?
내 재롱거리로서, 내 살림살이의 재롱거리로서 준 것이 이 만물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 하나님이 아들딸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기뻤는데 아들딸 갖고 나게 되면 줄 것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천지만물을 아들딸을 위해 창조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그래서 지금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욕심이 많아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는 , 마음세계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 '세계는 내 것'그래요. 이 뚜꺼비 같은 녀석들 다 그렇다구요. 그러려고 하지요. 그거 사실 말이 맞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나님 것이 내 것 아닌가 말입니다.
이래서 내적으로는 심정일치 · 사정일치 · 소원일치가 돼 가지고, 소원성취 · 사정성취 · 심정통일한 후에는 뭘할 것이냐? '천지만물을 내가 정성껏, 정성을 다해 지었지만 이것은 네 것으로 준다' 이거예요. 부모가 정성을 다해 모은 모든, 한 푼이라도 아껴 모은 전체 귀한 것을 자식에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쁨으로 주는 거예요. 주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는 입장에서 인간 앞에 상속권을 부여하겠다는 거예요. 요것이 비로소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내이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기쁨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그 기쁨권 내에서 만물을 상속받는 그런 입장에서는 나입니다. 그 나가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나요, 역사의 실체가 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선 실체가 돼야 돼요. 그러한 실체가 돼야만 시대를 대표해서 거느릴 수 있고, 시대를 대표해서 거느릴 수 있어 야 만물이, 모든 천지운세가 그 무릎 앞에 우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다시 상속해주고 가는 사람이라야 나로서, 아까 말한 전후 좌우 상하를 갖춘 입장의 나로서 완성하고 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렇기 때문에 상(上)으로는 하나님이요, 부모입니다. 오늘날은 누구냐 하면 자기의 상대입니다, 부처끼리. 가정 하면 할아버지가 중심이 아닙니다. 그 부부가 중심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건 현실입니다. 현재예요, 현재. 그다음에는 자녀입니다. 자녀는 미래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전후관계가 인연되어 있는 이 세계의 인연을 갖고 비로소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부모가 없으면 슬픈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부부중에 한 사람이 없으면 슬픈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자식이 없으면 슬픈 거예요. 거 슬퍼하지 않는 녀석들은 천지의 법도를 어기는 녀석들입니다. 그건 죄인입니다. 자식 없다고 기뻐하는 녀석들은 그건 전부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어도 슬프고 부부 중에 누가 없어도 슬픈 거예요. 혼자 사는 것도 천지법도에 어긋난단 말입니다. 합격자가 아닙니다. 병신입니다, 병신.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갖춰야 되고, 그다음엔 부부를 갖춰야 되고, 자녀를 갖춰서 삼대상 기준을 갖춰야 돼요. 이것이 대상기준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상이지요? 「예」 이것이 자기들끼리 상대적입니다, 이게. 좌우되고, 그다음에 아버지와 아들은 상하입니다. 이렇게 된단 말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위로는 아버지요, 그다음엔 아래는 자녀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이게 전후관계입니다. 그다음엔 부부입니다, 좌우. 그다음엔 친척, 이렇게 가정이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달랑달랑 요것만으로 해결하는 게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이것 중심삼고 천하를 품는 거예요. '아버지도 우리 거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도 우리 거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내가 인생이 소원하던 나요, 하늘이 소원하시던 나요, 하나님이 사정을 통하고 싶었던 나요, 오늘날 역사적인 선한 사람이 사정을 통하고 싶은 나요, 또 하나님의 심정이 있으면 그 심정을 통하고 싶었던 나요, 역사적인 모든 위인들의 소망의 심정이 있으면 소망의 심정으로 찾고 있던 나라는 거예요. 그러한 나로 완결되어야 비로소 나는 나로서 이 땅 위에 존재의 가치를 완결시키고 비로소 책임을 다 완수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가져야만 비로소 천지를 창조한, 대상실체세계를 창조하신 그 원칙 밑에 자기의 동기도 목적도 다 이룬 그 핵심적인 축소체가 되는 거예요. 그게 이제 말한 하늘가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신랑 신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없나요? 하나님이 조상으로 있으되 제일 문제가 신랑 신부라는 거예요. 조상은 있는데 신랑 신부가 합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상서부터 하나님을 모셔놓고 아들과 하나님과 내적으로 합했던 것이 바로 상대적이니, 세상을 중심삼고 구세주로 와 가지고 상대, 외적인 기준에 있어서 상대를 찾아 나오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워 놓고 신랑 신부를 중심삼고 자녀의 명분을 남긴 것이요 기독교의 이념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기에 이 선한 이상세계, 지상천국을 이루어 천하를 통치하게 되면 만왕의 왕이 돼요. 그래서 만왕의 왕이라는 명사를 남겨 놨다는 거예요. 그러면 만왕의 아들딸이 되면 만왕의 왕의 후계자들입니다. 아들딸이 만왕의 후계자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 전부 다 아닙니다. 어느때 내가 하나님을 부모로 모셨으며, 내 부처끼리 재미 있게 살고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고 맹세하고 별의별 놀음 다 하고 뭐 지지고 볶고 뭐 어떻고 하던 그들이 어느때 하나님이 쌍수를 들어 해주시는 축복을 받았더냐? 이 아저씨, 받았어요? 받았어요? 그런 축복을 받았어요? 「축복 못 받았습니다」그걸 못 받았지만 그렇게 줬으면 하지요? 「예」 여기에 곡절이 많아요. 아들딸도 있지요? 「예」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아이고, 내 손주 귀하구나 ! ' 하는 소리 들어봤어요? 「못 들었습니다」 (웃음) 들을 수도 없지, 몰랐으니까.
이렇기 때문에 전부 다 깨진 그릇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공인하는 이런 사회제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리가 공인하고 영원무궁한 이념을 중심삼은 그런 하나님의, 창조주의 심정을 통하고 사정을 통하고 뜻을 통할 수 있는 이런 기준에서부터 벌어진 소망의 그틀거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입니다.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제일 가까운 데서부터 부정해라 ! 그래 내 제일 가까운 것이 원수다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예수님이 어머니 대해서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그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나온 첫번 얘기입니다. 또 제자들이 와서 모친과 동생들이 찾는다고 할 때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이 누구냐' 했어요. 무엇대로 하는 사람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사람이. 뜻이 무엇이야? 뜻이 그런 가정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말한 천륜의 심정을 통하고, 천륜의 사정을 통하고, 천륜의 소망의 뜻을 통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시끄럽다 이거예요.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형제들, 이놈의 형제들이 전부 다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도움은 못 되고 전부다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원수예요.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말 있지요? 「예」이런 견지에서 그런 게 다 풀리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나로서 취하여야 할 목적실체는 무엇이냐?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본집(종가집)으로 오시는 맏아들인데 이 맏아들을 맞아야만 그 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시고 있던 분인데 그분이 옴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전부 다 하나님과의 인연이 없으니 그분은 맏아들 대표자로 와 가지고 동생과 같이 키워 주고 그러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 메시아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현세 인류의 현실이더라!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하나님의 딸을 취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가정을 중심삼고 우리 가정을 걸어 놓고, 세계 만물을 걸어 놓고 축복해 주시옵소서'할 수 있고, 축복을 당당히 받을 수 있는 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서 '당신은 나에게 축복을 해줘야 되고, 나는 당신한테 축복을 받아야 되겠소 !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소망을 취할 수 있고,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출발점에 서 가지고 이 천국 사회, 천국 국가 생활에 있어서의 제일보를 출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다 그렇게 못 되었거든. 할아버지든 누구든 다 그렇게 못 되었어요.
그럼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그러한 것을 소개해 주자는 거예요. 소개해 주면 뭘할 것이냐?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나의 위치, 나의 가치, 나의 출발, 나의 뜻, 나의 사명, 나의 소원, 나의 심정 전부가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이러니 나로부터 인연되어 있는 모든 피조만물은 나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하고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천지가 동해도 움직일 수 없는 이러한 완전히 반석기대 위에 선 하나의 실체를 만들 수 있는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 나타났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통일이라는 명사가 나오지 않아요. '통일' 할때 '통'은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릴 통(統)' 자지요? 통일교회가 무슨 통일교회예요? 그렇지 않아 가지고 통일하겠나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러한 내력, '과거의 인간이 이랬구나. 오늘의 나는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되겠다. 하나님의 사정이 이랬고 하나님의 뜻이 이랬고 하나님의 심정이 이랬고 아버지의 고통이 이랬던고. 슬픈 아버지 였으니 그 아버지 앞에 내가 어떻게 나가야 할 것 인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제물되어 나왔으니 제물을 받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받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슬픈 눈물로써 '아버지께서는 주기 위해서 슬퍼해 왔고, 주기 위해서 피땀흘려 왔으나 우리 인간은 받기 위해서 죽어 왔고 받기 위해서 눈물흘렸고 받기 위해서 고통받았으니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한 날이 얼마나 기쁘겠느냐? 울음으로 출발하여 기쁜 울음이 앞을 가려 가지고 내 입이 복받치던 사무친 한이 다 폭발되어나와 가지고 기쁨과 영광과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그 날을 가져야 되겠다' 이래야 돼요.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할 수 있는 , 천하만물의 모든 복을 앞에 갖다 놓고 하나님이 심정과 사정과 통할 수 있는 일체적인 이념권 내에서 '너는 내 아들이요, 나는 네 아버지다' 할 수 있는, 부자지인연을 복귀하여 인침을 받아가지고 비로소 하늘가정을 이뤄 가지고 하늘백성을 이루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주권, 하나의 천지를 만들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인 나로서 되어있는 인연의 중심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부모와 그다음엔 무엇? 부모와 부부와 자녀와 만물,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것을 아버지 중심삼고 세계가 공인한 법도, 원칙, 혹은 공식 법도에서 통과할 수 있는 내 가치 이것을 여러분들이 갖기 위해서 왔고, 그러한 나를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높고 한없는 천지는 당신의 영광을 상징하였고, 어두운 밤이면 저 창공에 빛나는 일월성신들은 당신의 숨은 내적인 신비의 세계를 상징하였사옵고, 지어진 모든 미묘한 비밀에 잠겨 있는 모든 만물의 요소와 만물의 상징인 실체들은 당신의 미묘한 천지의, 천양(天壤)의 묘미를 우리에게 은은히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 인간시조들은 알지 못하였사옵고, 이 무한한 이 우주적인 예물을 오늘날 소홀히 대했던 그 죄를 저희들은 엄숙히 자기 자신을 직고하여 아버지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현실을 청산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가운데 있어서 엄숙하신 당신의 존전 앞에 타락의 후손 된 것을 원망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자기 자체를 세워서 회개할 줄 아는 아들딸이 돼야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선을 추구하기를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도 간절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선을 위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수많은 우리 선조들보다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용맹이 필요하고, 여기에 의분심이 필요하고, 여기에 정기가 필요한 것을 저희가 알았사오며 이 엄숙한 천국건설에 내 한 자체를 세우시기 위한 아버지의 놀라우신 수고의 역사노정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이 수고의 역사를 수습하기 위해서 보내 주시는 그분이 우리의 실체를 대신한 아버지 대신의 실체요, 실체를 다시 낳기 위하여 참부모의 실체로 온다는 것도 저희 알았사오니 그 부모를 모시고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리고 부모 앞에 돌리고 온 만물 앞에 돌릴 줄 아는 참다운 아들딸들이 되기 위하여 여기 모인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이날서부터 40일수련을 출발하옵니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사오매 개개인의 실체들은 당신의 소원하시던, 실체를 짓기 원했던 그 소원대로 자기를 세워 천륜 앞에 바칠 수 있는 이런 자아를 재조성하기 위하여 연단하는 이 기간이요, 몸과 마음을 닦아 빛내어 만우주 앞에 내스스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실체를 만들기 위한 기간인 것을 알고, 스스로 선별된 입장을 취하며 스스로본이 될 수있는 기준을 취하여 노력하고 꾸준히 싸울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있사오면 쳐서라도 아버지 뜻대로 경륜하시어서 이번 참석한 기간 가운데 사탄의 참소를 받아 하늘 앞에 조소거리를 남기는 이런 아들딸들이 없게 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움의 권한이 아무리 힘차다 할지라도 생명의 권한을 대신해 나타나는 모든 환경과 개체의 신념이 강할 때는 자연히 굴복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우주를 대신하여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세우고 스스로의 깊은 골수를 찾아 심정의 인연, 심정의 사정, 심정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나를 중심삼은 모든 인연과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사오니, 그 전부는 잃어버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잃어버린 천주를 복귀하기 위한 가운데서 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갖춰야 할 것을 저희들이 배웠사오니 이 말을 중심삼고 스스로 그런 목적의 실체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데 있어서 게을리하지 말고 꾸준히 참고 견디어 아버지의 영광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자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보내 놓고 염려하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들도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은 축복을 하여 주옵고 이를 염려하는 모든 무리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전체는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청산 돼 나가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아뢰오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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