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을 실천하는 데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불가피한 원리원칙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이 나와 있으면 이 원리원칙을 통해서 생활할 수 있는 조건, 그 이념과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이 내포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숱한 주의가 있었지만 이런 이론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바라는 이념이 서 있습니다. 이 이념 가운데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조직이요, 이 조직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생활입니다.

​생활적인 인연을 맺으려면 이념과 조직이 필요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우리 교리를, 하나님이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복귀섭리하신다는 복귀의 이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념을 배우고 보니 거기에선 무엇이 나오느냐?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편성해야 할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오는 것입니다.

원리를 공부해 보게 될 때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들이 갖고 있는 삼위기대와 같은 조직이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념을 갖고 삼위기대를 편성해 가지고 반과 조와 같은 기능적, 조직적인 움직임을 우리들이 판단해서 개척해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나간 후에는 생활속으로 들어간다 이거예요. 이념을 알았고 조직을 알았으면 이제는 실천해야 할 생활적인 단계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을 볼 때 개인에게 있어서는 개인 생활이 있고, 가정에서는 가정 생활이 있고, 사회에 있어서는 사회 생활이 있고, 교회면 교회, 국가면 국가, 혹은 세계면 세계, 하늘나라면 하늘나라에서의 생활이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그 의미를 중심삼고 생활적인 인연을 벗어나는 일들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산다는 삶이 나 하나에 미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개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반드시 가정과 인연이 되어야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산다는 것은 사회나 교회, 혹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와 인연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념도 조직도 무엇을 하나 만들기 위한 것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생활적인 인연을 우리에게 맺어 주어 하나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의 생활이념이 개인적으로 전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고, 창조이념을 세우신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인연을 통해 내가 살 수 있다 하는 사람이 된다면 이들은 영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세 이후에 이런 생활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살되 지금까지 각 민족이면 민족의 습관과 민족의 풍습, 혹은 한 국가면 국가의 이념에 의지하여 살았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산 민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륜 앞에 세워진 이념이나 조직 밑에서 생활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념을 통한 조직과 생활적인 승리의 발판을 하나 만들어야

​그러면 오늘 우리가 남달리 이렇게 모인 목적이 무엇이냐? 또, 모인 인연은 어찌하여 이런 인연이 되었느냐? 여기에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조직과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생활의 목적을 빼 버린다면 여러분들은 하등의 관계가 없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 하나를 빼놓아 버리면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오늘날 서로서로 뗄 수 없는 인연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엉클어져 있고, 우리의 생활이 인연의 법도에서 서로가 염려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 함은 오로지 하나님이 바라는 이념을 통한 조직과 생활적인 승리의 발판을 하나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위해 이렇게 모여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즉, 뜻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내 손발을 움직여야 됩니다. 그렇지요? 또,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내가 밥을 먹어야 돼요. 밥을 먹고, 손발을 움직이고, 보고 듣는 오관의 감각을 통해 내 생활 목적을 개척할 수 있는 책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가 산다 해도, 그가 움직인다 해도 그는 전체 천륜의 생활이념과 생활적인 원칙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손도, 몸도, 내 느끼는 오관도 아버지의 생활을 대신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 년의 기나긴 생활을 해 나왔는데, 6천 년 생활이념으로, 복귀의 서러움으로 사무친 생활의 일편을 붙들고 그 서러움을 대신해서 살아 본 적이 있느냐?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세워졌는데 내가 그 아버지 앞에 자신 있게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생활 이념을 찾아 가지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는 데 아버지가 같이하여 주셔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 나와 같이 즐겨 살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은 이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생활하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해 온 것이 무엇이냐? 이 땅을 붙들고 나왔습니다. 삼천리 반도면 삼천리 반도, 여기 김포면 김포 이 땅, 또 집이면 집, 그 환경의 어느 조그마한 부분이나 할 것 없이 조그만 데서부터 큰 세계 이 땅덩어리,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이 우주세계, 더 나아가서는 영계의 전체 분야까지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서 복귀의 생활을 해오신 것입니다.

생활하는 데는 사정이 있고, 생활하는 데는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인연을 통한 각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있는 데는 반드시 일이 있습니다. 이 일과 내 생활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정이 있고 일이 있는 데는 내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내 심정과 내 사정과 내 일을 합해 가지고 천륜을 대신해서 산다 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모인 여러분들을 바라보게 될 때 이렇게 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물다 이거예요.

​삼위기대를 편성하는 목적

하나님은 땅을 대해서,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해서, 그다음에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을 대해서 지금까지 생활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생활해 나오는 데는 혼자 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신이 합해 가지고 이 생활의 목적을 추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대신 하나님이 하시는 생활을 맡기 위한 끝날의 자녀가 되어야 할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여기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참뜻, 참뜻 말입니다.

이 삼위기대를 통하여 이제 반이 통일될 것이고, 이 반을 통하여 조가 통일되어 가지고 전체적인 분야가 배후에서 조직적인 이런…. 하늘이 맺어 준 삼위기대, 이 삼위기대의 가치를 느낄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이념을 느끼는 거예요. 삼위기대의 가치를 느낄 줄 알아야 하나님의 생활을 대신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런 말을 들었겠지요? 삼위기대를 편성하는 목적은 행동통일과 생활통일, 그다음엔 뭐라구요? 이념통일이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조직을 하는 것입니다. 생활통일과 행동통일과 이념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념이 있는 행동이라는 것은 조직적이고 원리원칙적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삼위신이 서러워하는 것은…. 오늘날 이 땅 위에 한 사람을 세워 놓고 아버지께서 6천 년 동안 땅을 대하여, 혹은 만민을 대하여 수고하시던 복귀의 수고의 책임을 맡아 할 수 있는 , 더 나아가서는 영계를 아버님 대신 염려해 줄 수 있고, 또 사탄을 대해서는 단호한 장비를 갖추어 용서할 수 있고 이를 격퇴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사는 데에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있게 책임을 지고 살고, 사는 것이 모든 환경의 가치로써 영향을 끼쳐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할 때,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삼위신을 합해서 천적인 생활을 해 나오는 목적은 이 땅 위에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건설하자, 이 우주에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족을 남기지 않게끔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사탄을 추방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이 평화에 잠기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한날을 깊은 생각 가운데 마음으로 염려하며 섭리하시는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의 선조, 맨 처음 아담 해와를 붙들고 부르짖었던 아버지요, 우리, 혹은 천추만대의 우리의 후손에게 복귀의 서러움이 남아있는 날까지 그 슬픔의 마음을 빼놓지 못할 아버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 그 아버지의 심정, 그 아버지의 사정과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오늘날 하늘이 바라는 천적인 생활을 개척할 하늘의 자녀가 되지 못합니다.

천적인 생활을 경륜하시는 아버지께서 하나의 뜻을 세워 놓고 엉클어진 사정과 심정을 중심삼고 곡절의 노정을 걸어 나왔다는 것을 회상하게 될 때, 지금 여러분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 보고 여러분은 천륜의 뜻 앞에 피할래야 피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나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 내 생명의 힘보다 더 강하게 흐르는 사정의 밑바닥을 헤어 나오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사정이 내 사정이요, 그 심정이 내 심정인 것을 알진대는 그 창조한 만물이 내 것이요, 타락한 인류가 내 형제인 것을, 내 혈족인 것을 느끼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여러분들이 느끼면서 이제 하늘이 주장하는 소망의 생활을 통해 지옥생활을 천국생활로 돌려놓아야 할 우리들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의 나는 그걸 무엇으로 건설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으로 그걸 건설할 것인고? 우리에게는 사탄세계와 같이 갖추어진 무리가 없습니다. 사탄세계와 같이 갖추어진 권력이 없고, 사탄세계와 같이 갖추어진 물질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 한 몸뚱이를 가지고 이루어 드려야 할 곡절의 이 운명을 어떻게 해결지을 것이냐 이거예요.

이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먼저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간절한 내 마음이 있어야 되겠고, 지금까지 세상에 살고 있는 나의 생활적인 사정이 하늘과 인연된 사정을 피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을 느낄 수 있는 폭발적인 심정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솟구쳐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는다 할 때는 여러분은 하늘이 영원히 이 땅 위에 남길 수 있는 기쁨의 소망의 상대로 찾고 있는 아들딸로서 살 수 있는 생활의 기준을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수십 평생을 어떠한 소망을 갖고 살았으나 그 소망의 출발서부터 아버지의 사정을 통하지 못하였던 것을 상기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삶의 사정을 통하여 욕망을 걸고 허덕이었던 내 심정을, 하늘과 하등의 인연이 없게 살았던 과거를 후회할 줄 아는 마음이 없다 할진대, 오늘의 여러분은 현재 이 환경을 개척하여 새로운 분야에서 정상적인 생활 기준을 영위할래야 영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손길이 얼마나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붙들어 보았으며, 여러분의 심정이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해서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분한 심정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느끼지 않을래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온 몸이 고스러지면서 `나의 아버지!' 하고 아니 부를래야 아니 부를 수 없는, 누가 끊고 누가 변형시킬래야 변형시킬 수 없는 천륜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그와 같은 한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내 생명의 본체가 내게서 떠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는 광야시대

오늘날까지 산 것이 그 생명을 의지하여 산 것이 아니었고 빈자(貧者)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이런 생활 속에서 하늘의 심정과 하늘의 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은 무엇이었던고? 이 땅이면 이땅, 김포면 김포 이 지역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여기 이 지역에 사는 백성들도 하나님이 부르면 응할 수 있는 백성이 되었겠지만, 그렇게 못 된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이 김포 지역에 대해서 무한정 슬프게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체휼하면서 이 김포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 대신 눈물을 지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우러난다 할진대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고통을 느끼고, 하나님 대신 분함을 느끼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이는 사탄 앞에 명백히 나서서 싸울 수 있는 하늘의 용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여러분에게 없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기쁨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김포면 김포 이 지역은 하나님이 마음 놓고 친히 발걸음을 옮겨 사랑하는 자녀들을 찾아갈 수 있는 땅이 돼 있느냐?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다 할지라도 김포 땅을 밟을 수 없는 연고로 그 아들딸을 이 시대에 찾아와 볼 수 없고 그 아들딸과 같이 생활할 수 없는 환경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적인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장막 성전을 건설하였고, 그다음에는 가나안을 복귀하여 실체 성전을 대신한 성전을 건설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복귀노정에 있어서 우리들이 하늘을 찾아 나가는 전체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김포 땅에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광야에 있는 장막 성전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이때는 애급 궁중에서 바로를 몇 번이나 강퍅하게 하여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박차고 나와 홍해를 건너던 과정의 체험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소식, 소망의 한날, 희망의 고국을 그려 마음과 몸이 그곳을 향하고 있으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의 무리가 있으니, 이것을 제쳐 놓고 새로운 복된 날의 소식을 맞을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의 애급 땅과 같은 생활 환경을 박차고 나올 때의 결의와 결심이 각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결심이 있은 후에는 여러분 앞에 무슨 생활이 시작되느냐 하면 광야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돌고 도는 40년 광야노정을 걸어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거예요. 광야노정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12지파와 70장로를 세워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어서, 장막 성전시대를 지나 실체성전을 건설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지고 가나안 7족을 격멸시킨 후에, 그 땅을 유업으로 상속받아야 할 상속자로서의 훈련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이것이 있는 것입니다.

​법도적인 조건을 갖고 삼위기대가 하나돼야

삼위기대는 왜 필요하느냐? 광야에 있어서 아멜렉 족속의 공격이 시작될 때 그것에 대비하여 방비할 수 있는 하늘의 무기는 그 어떠한 세력도 아니었습니다. 그 어떠한 권력이나 어떠한 자기의 위력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늘이 허락한 최후에 남아질 법도적인 조건을 갖고 모세를 중심으로 아론과 훌이 하나되는 거기에 있어서 소수의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아멜렉 대군을 물리치고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복귀노정에 필연적인 증거물로 나타나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광야노정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필요한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돌고 돌면서 맨 처음 결심하여 나오던 마음이 간데없이 점점 식어 들어간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싸우던 모세는 우리의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민족의 선구자요, 하나님이 택한 사랑하는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믿고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의 무릎 아래서 탈출해 나올 때는 기쁨으로 나왔으나, 민족 민족끼리 광야노정에서 허덕이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바람에 모세를 중심삼고 좋아하던 마음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원수로부터 빠져 나가기 위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있었고, 자기네 끼리끼리는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가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땅을 향하여 기필코 가려는 용기가 다들 있었는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그 노정에 있어서 그 힘과 정신은 점점 쇠해 간 것입니다. 쇠해 가기 시작하는 거기에 다시 바로 궁중에서와 같은 경고의 채찍을 세워서라도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잡으려는 하늘의 진동이 있는 연고로 아멜렉 족속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60만 대군이 원수 앞에 내놓여졌을 때 전부가 흩어지더라도 단 세 사람만 하늘 앞에 단결할 수 있으면 안 망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멜렉 족속을 무찌른 그 동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라는 단 세 사람이 동기가 되어 이겼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런 사명감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주로 해서 나올 때는 , 원리의 말씀을 의지해 나오게 될 때는 생명을 바쳐 나왔습니다. 이 말씀이 지향하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바로 궁중과 같은 모든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늠름하게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나서고 보니, 식구식구끼리 모여 보니, 하루를 대하면 하루요, 일년을 대하면 일년, 천 사람을 대하면 천 사람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나선 서로서로가 자극적인 생명의 중보자가 되지 못하고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바라보는 결심과 용맹을 감소시키는 소모적인 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약속한 땅을 언제 들어가겠노?' 하고 자기들 자신이 바쁜 것보다도 모세가 더 바쁘고, 모세가 바쁜 것보다도 하나님이 더 바쁘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통일교인들은 자기 일 개인의 생활적인 환경이라든가 자기 일개인의 사정에 의해 가지고, 바라보던 가나안 땅이 당장에 나타나지 않고 소망하였던 그 뜻이 당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쑥덕거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쑥덕거린 사실들이 이스라엘을 삼켜 버리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도 그런 길을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보다도 더 급한 것이 선생님의 심정이고, 선생님보다 더 급한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것을 모르고 입을 열어 논의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갈 길을 엉클고 걸고 뭉그러뜨리는 적이 얼마나 많으냐?

그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하늘이 어떻게 하시느냐? 아멜렉 족속의 공격과 같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애급 나라가 삼켜 버린 이런 입장에까지도 처해 있는 것입니다. 또, 앞에는 가나안 7족이 남아 있습니다. 전후좌우에 머무르는 환경이라는 것은 촌보도 움직일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 환경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늘을 믿을 수 없게끔 포기 상태에 놓아두는 광야시대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를 중심한 광야시대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이스라엘 민족들을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연단시켰고, 모세를 통하여 40년 동안 훈련시켜 가지고,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애급에서 광야로 인도해 냈으나 인도해 낸 본의의 그 목적과 다르게 하늘과 멀어지게 될 때 어떻게 되었느냐? 재탕감 기간인 광야 애급 기간이 습격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연고로 사탄이 침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뱀이 물어 이스라엘 민족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모세의 말을 요만큼도 안 믿으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이 녀석, 무슨 요술을 부려 우리를 끌어내 가지고 전부 다 광야에서 쓰러뜨리느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그랬어요? 당장 현실을 보니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10년도 아니고 30년 40년을 돌고 돌아 나중에는 광야에 있어서 독수리 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그 민족들이 모세를 때려죽이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은 선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애급에 있어서나 광야에 있어서나 애달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느냐? 소망의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바라보면서 바로 궁중에서 기도하던 모세는, 민족을 사랑한다는 피 끓는 심정을 참지 못하여 몇몇 사람을 때려 죽이고 미디안 광야의 처량한 목자 생활을 40년동안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팡이를 들고 양을 몰던 그 마음은 어떠했느냐? 양떼를 이스라엘 60만 민족 대신으로 알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모세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하고 호소하던 그 마음, 그 심정이 애급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어느 누구보다도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었기에 하늘은 그를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과거를 가졌던 모세는 몸은 이미 80여 세를 지난 노구의 몸이로되 마음은 뜻에 대한 사명을 책임진 일심이었습니다. 민족의 생사 결단을 책임진 모세였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올 때는 기쁨으로 나왔으나 광야에 나와 가지고 흩어지는, 하늘을 배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세에게 있어서는 광야 기간이 어떠한 기간이냐 하면, 과거 80평생을 회고하는 기간이요, 80여 년 동안 숨은 눈물을 흘렸던 것을 실제로 눈물 흘리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연이 있었던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80여 평생의 숨은 눈물을, 그 일신이 실체의 눈물을 짓던 숨은 이면을 알지 못하였어요.

그러나 `애급에서 하나님의 원수인 바로를 대해서 싸워 나오던 모세는 우리의 지도자니, 죽더라도 그를 사수하여 그의 신념을 따라 그의 길을 받들어야 한다' 하는 것을 쓰러지면서도 생각하고, 쓰러지는 입장에서도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모세는 쓰러지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늘에 대하여 하나님 대신 슬픔의 마음을 갖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하나님은 모세를 조건으로 쓰러지는 이스라엘에 생명을 붙들어 주기 위해, 뱀한테 물린 것을 살려주기 위해 구리뱀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때에 모세를 대해 원망하던 녀석들은 모세가 또 허위 수작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속여 나오고 지금까지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모세가 뭘 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대부분이 그 말을 듣고 넘어갔어요. 그러나 애급 땅에서 바로를 대해 싸워 나오던 모세에게 같이 협력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나온 사람, 홍해를 지나 광야에 나와 입을 것 입지 못하고 먹을 것 먹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그 마음에 있어서는 모세가 자신들의 지도자라는 마음을 잊지 않고 모세를 마음으로 그리면서, 반대하는 무리 가운데서 마음 아파하면서 혼자 숨은 마음을 품고 모세를 위로하는 그 마음이 있던 사람은 모세의 외치는 소리에 마음이 안 움직일래야 안 움직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사람만이 살아 남은 것입니다.

​광야시대에 있어서의 우리의 자세

​오늘날 우리 교회가 그런 위치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입장이 그런 입장이예요. 여러분들은 애급 생활과 같은 생활을 박차고 나와 광야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 나온 우리 앞에는 아멜렉 족속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멜렉 족속이 공격해 들어오는 거예요. 이제 사탄과 실체를 쓴 뱀들이 우리 앞길을 선동하여 여러분들을 물어 제끼는 때가 왔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어느 부분을 물렸느냐 하는 건 자기 자신들이 알 것입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물질로 자녀로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활해 나온 모든 조건들이 나를 물어 제끼는 하나의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옛날의 나의 친구, 나의 부모, 나의 동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애급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따라 나와야 할 처지에 있는데 `아! 바로가 잘살게 해주고 있는데 뭐' 그런 사람이 있었다구요. 그건 사탄이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와 같이 사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그거 뭐…. 우리는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 우리는 여기에 살겠다' 라고 하며 아니 나오겠다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사랑하는 부모, 자기 사랑하는 처자, 자기가 사랑하는 무엇일지라도 끊어 버리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처지에 처해졌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도 외로운 길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울타리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힘없이 밀려가는 처참한 입장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있어서 오직 내가 가져야 할 하나의 잃어버리면 안 될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처음 바로 궁중을 박차고 나올 때 그의 마음에서 끓어오르던 간절한 그 심정에 내가 들어가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심정 위에 내 사정을 박차고 나섰던 그 사정이 있었던 것을 알아야 돼요.

이런 광야시대에 있는 연고로 지금 선생님의 말은 이제 한국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몰리고 있던 모세의 일면을 걷고 있는 때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환경에 있어서 믿어야 할 심정을 가진 사람이 모세가 찾고 있는 사람이요, 하늘이 찾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 처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기로에서 4백 년 조건의 제단을 쌓아 가지고 첫 고개를 넘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 나가 가지고 둘째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데 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그런 시대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만 망하면 몰라도, 망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곁에서 모세를 옹호하는 사람까지도 물어 넘기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실들을 여러분이 실제 느껴야 됩니다.

그때에 조건이 된 것이 모세의 구리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을 들기 전에 모세가 주장하고 부르짖는 음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대신한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원리고, 그 사명을 대신하여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길을 걸어 나가는 우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역사적인 길을 가려고 합니다. 이러이러하여 우리 선조들이 망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문을 가로막고 있는 원한을 박차고 장벽을 무너뜨려 가지고 승리적인 민족의 문을 해방시켜야 할 각자의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은 옛날 모세의 명령에 움직이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원한을 넘고 새로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행군할 수 있는 하늘의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어떤가.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12지파를 대신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 할 때 어찌하여 열두 명이 들어갔느뇨? 하늘은 거기에서 서러워한 거예요. 1천 2백이 못 되고, 1만2천이 못 되고, 1백 2십만이 못 되었던 것을 서러워하신 것입니다. 어때요? 정탐하고 돌아온 모든 사람들은 다 반대하는데 거기에 있어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요, 애급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하나님은 가나안 칠족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 같이하시므로 어떤 원수도 우리 손으로 굴복시키고 남을 수 있다' 라고 첫번 각오의 심정을 잃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지만, 정탐하고 돌아올 때는 낙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60만 대중을 바라볼 때 소망에 지치고 지쳐 어떠한 하나의 조건도 붙들 수 없는, 이런 기준도 안 가진 마당에 있어서 가나안 7족을 공격한다는 것은 꿈에도 당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미미한 이스라엘을 바로의 마수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를 약속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신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찾을 수 있는 주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반대하던 모든 무리는 다 쓰러지고 충성하고 따르던 무리만이 남아진 것입니다.

​조직을 통하여 생활적인 자유 환경을 개척해야 할 우리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스라엘 대중이 광야에 나와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거기에서 12지파를 중심삼고 반열 편성을 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그렇게 반열을 편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열을 편성하기 전에 삼위기대를 편성해 가지고 아론과 훌과 모세를 대신하여, 아멜렉 족속과 같은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하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부ㆍ성자ㆍ성신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셋이 단결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12지파를 대신하여 가나안 정탐을 들여 보내려 할 때 `아버지, 내가 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원수의 땅을 정탐 들어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또, 그 땅을 점령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너는 어느 지역을 점령하고, 너는 어느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 라고 딱 점령해야 할 분배 지역을 맡아 가지고 공격의 호령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그러한 공격을 해야 하기 전 순간의 단계에 처해 있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념을 알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어가는 데는 지파적인 단계를 거쳐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제 생활적인 자유 환경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걸 못 하면 다 망해 버리는 거예요. 이념이 섰다 할지라도, 조직이 있다 할지라도 다 망해 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의 전체 심혈을 기울여 이를 악물고 이것을 생활해 내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80여 세의 노구의 몸으로써 하나의 실천적인 생활면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가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러한 기간에 있어서 생활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가나안 땅을 향해 나온 우리이기 때문에 삼위기대를 편성하고 반을 편성해 가지고 토지 분배를 해야 됩니다. 어느 지역을 맡아 책임지고 반열을 인도하여 하나님이 자유의 정든 터로 인정할 수 있는 거룩한 땅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한을 다 잊어버리고, 사탄의 모든 두려움을 다 잊어버리고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행복 가운데서 사랑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영원히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사탄의 시험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조건을 전부 제거시키는 환경이 벌어진 곳에서 비로소 하늘땅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바라고 있던 개인완성으로부터 천국생활의 이상세계의 첫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나이가 젊다고 자랑할 것 없고, 나이가 많다고 낙심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내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는 간절한 마음이 모세의 마음과 같고, 애급 땅을 대하여 바로와 싸우던 때의 모세의 마음과 같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급을 박차고 나올 때의 모세의 마음과 같고, 광야에 있었던 모세의 마음과 같다 하는 무리가 되었다 할 때는 영락없이 가나안 복지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체 성전을 복귀하려면 삼위기대가 하나돼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지금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정을 알아야 할 때고, 심정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심정이 통하고 같은 사정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광야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동거할 사람입니다. 광야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이요, 광야 생활에 있어서 모세를 울타리삼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 있어서 장막 성전은 무엇이냐? 광야에 있어서 둘이 싸우며 서로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앞으로 삼위기대가 하나 못 된 사람은 입을 벌려서 말도 할 수 없어요. 머리를 들고 하늘 앞에 설 수가 없어요. 죽어서도 안 돼요. 유구무언(有口無言)이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내가 어떠한 상하라든가 좌우라든가 전후의 방향을 갖추어야만 하나의 비중적인 가치가 좋다든가 됐다든가 어떻게 해결지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원리를 배우고 통일교회 내용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런 내용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통일교회에서 나오는 진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보다도 이제 선생님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이요, 선생님의 심정이 여러분의 심정이 되고, 아버지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이 되고, 아버지의 심정이 여러분의 심정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면 쓰러져요. 가나안 땅에서 망해 버린 이스라엘 패와 같이 되는 거예요.

그 시대가 지나 여러분이 주위를 다 닦고 난 후에는 후대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 가나안 복지 동산에서…. 그러니 첫번 결심한 절개를 잃지 않고 충절을 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루도 쉴 틈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가 40년 광야노정을 나서니 오늘부터 그날까지 쓰러지는 한이 있고 어떠한 날이 있더라도 내 각오한 이 마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하는 그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다 할진대 그 어려움은 6천 년 수고하신 아버지의 어려움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서러움과 슬픔이 있다 할진대 6천 년 아버지의 서러움과 슬픔에 비할 바가 아니예요. 그런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전념을 해서 마땅히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동해야 되는 거예요.

그와 동시에 뭘해야 되느냐? 이스라엘 민족은 끼리끼리 하나 못 되어서 망했습니다. 끼리끼리 전부 다 민족의 원수가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 끼리끼리 하나될 수 있는, 끼리끼리 사랑할 수 있는, 끼리끼리 놓을 수 있는, 끼리끼리 서로의 제단을 연하여 가지고 내 제단 가운데 아버지가 임재하시고, 내 삼위기대가 맡은 분야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 환경은 사탄세계 역사를 대신한 것이니 사탄세계의 깨끗한 것보다도 더 깨끗하고, 사탄세계의 어떠한 아름다운 것 보다도 더 아름답게 단장해서 아버지가 임재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를 자기 앉을 자리만한 크기로라도 우리끼리 만들어서 비로소 아버지가 우리를 믿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해 보여 준 것이 장막입니다. 장막 성전이예요.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장막 성전의 건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삼위기대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실체성전 복귀를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기반을 갖추어야 돼요. 삼위기대는 뭐냐 하면 성부ㆍ성자ㆍ성신을 대신하고, 종족인 복귀섭리를 보게 될 때 아담과 예수와 재림주를 상징하고, 또 시대적인 면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세 아들로부터, 노아의 세 아들, 세 믿음의 조상, 또 세 민족의 조상, 또 세 세계의 믿음의 제자까지 전부가 상징적으로 아담가정을 상징한 실체적인 제물입니다.

그러니 그 지역을 셋이 맡아 가지고 그 지역을 위해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포면 김포도 여러 사람이 맡는 게 아닙니다. 세 사람이 맡아 가지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 이 김포에는 내가 있사오니, 우리 셋이 하늘의 모든 책임을 지겠사오니 안심하시옵소서' 하고 손을 치켜들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적진을 바라볼 때 사기가 충천하여 바라보는 스승과 같은 입장에서 아침 저녁 밥 먹기 전에 하늘을 대하고 땅을 대하여 매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적인 심정에 눈을 떠야 민족을 거느리던 모세의 뒷걸음을 따르는 자요, 세계를 거느리려던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요, 2천 년 역사과정에 희망의 전통을 세워 나가기 위해 싸워 나가던 우리 선조들의 길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걸 못 하면 안 됩니다. 이걸 못 하면 여러분은….

​제단을 갖추어 그 지역의 백성을 위해 성심을 다해야

이제 부활적인 무대, 생활적인 무대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삼천리반도 어느 한 바위틈까지도 내가 모르는 분야가 없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포면 김포의 산 성부 성자 성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다하면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선생님도 그들 앞에 가서 머리 숙이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산 하나님이예요, 그 지역에 있어서는. 그 땅에 대해 산 하나님의 사명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일생을 걸어서 자기가 죽을 때까지 살면서 꾸며야 할 환경적인 제단인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에게는 태어난 고향이 있듯이 고향적인 제단입니다. 자기가 분깃 맡은 고향적인 제단입니다. 고향적인 제단을 갖춘 이런 기반을 통해 가지고 민족적인 기반을 갖추어 놓아야 되고, 그다음에는 민족적인 기반을 통해 가지고 내가 고향에 대한 책임을 다한 연후에는 삼천리반도의 어떤 한 지역을 통해 가지고 고향 제단의 상대적인 제단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적, 외적 기반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닦은 연후에야 삼천리반도를 뒤넘이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 고향적인 거기에는 내 아들딸과 내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로 말미암아 신앙적으로 키워진 아들딸들이 `이것을 해라!' 하면 `예' 할 수 있고, 국가적인, 민족적인 가나안 복지의 미비한 복귀노정에 있어서 우리의 한 선 앞에 떨어진 부분을 향하여 책임지고 싸워 줄 줄 알아야 돼요. 이런 책임이 우리를 중심삼고…. 그리하여 그 지역에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사탄의 침범을 받을 우려가 없는, 안심 지역이라는 이 지역이 되어야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실체로 나타나 영광의 한 날로서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면 삼위기대는 무엇이냐? 그 지역은 제단이요, 삼위기대 이 세사람은 3대 제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3대 제물이 있었고, 노아에 있어서도 3층짜리 방주가 있었지요? 전부 다 3대 제물입니다. 이렇듯 제단을 쌓아 놓고 세 사람이 제물을 드리며 그 지역의 백성을 위해 충성과 성심을 다하고, 자기 아들딸을 대하여 복을 비는 심정을 갖고 그 지역을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런 지역을 맡아 3년 동안만 움직이면….

이런 이념이 서 있고, 이런 이념 가운데 조직이 있고, 이런 조직 가운데 생활이 있어야 됩니다. 조직이자 생활이요, 생활이자 이념이예요. 이념은 먼 것이었고 조직은 우리에게 상대적이었으나 생활 수준에 있어서 이것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심중의 소망, 심중의 목표, 심중의 생활 기점이 하나되어 가지고 그 생활 중심을 대신하여 전체 가치에 비할 수 있는 자기가 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6천 년 동안 찾고 있던 아들딸로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지금까지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제일 귀한 것입니다. 이걸 못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선생님을 알고 아무리 선생님을 따르더라도 이것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심정을 통해서, 사정을 통해서 하늘 제단을 아버지 앞에 기어코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하늘 천국 심정을 대신한, 사정을 대신한 생활을 가진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탕감복귀는 맞고 빼앗아 오는 것

지금까지는 나와 가지고 개인이 좋아 가지고 세월을 보냈지요? 무얼 할 줄 몰랐다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은 갈 목적을 알았습니다. 때가 안됐기 때문에 안 가르쳐 줬어요.

그러면 이제 이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각오를 가져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6천 년 복귀섭리 과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어떠한 각오를 가져야 되느냐? 사탄을 쳐부수고 사탄편에 있는 악한 무리를 심판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몇천 년 전에 세상의 사탄자식을 치기 전에 하늘의 아들딸을 먼저 치는 것입니다. 애급 백성을 치기전에 4백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쳤습니다. 아브라함을 복 주기 전에 아브라함을 쳤고, 모세를 복 주기 전에 모세를 쳤고, 예수를 복 주기 전에 예수를 쳤던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역사는 그렇게 나온 거예요.

왜 그러느냐? 어떤 두 아이가 싸움을 했다면 한 아이의 부모가 볼 때 자기 아들이 잘했다 이거예요. 다른 부모가 볼 때도 그 아이가 잘한 것을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와 가지고 자기 아들을 때려 봐요. 여기에도 조건이 있는 거예요. 두 아이의 부모가 서로 바라보고 있을 때 이쪽 아이의 부모는 자기 자식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 데 그쪽 부모가 자기 자식의 뺨을 먼저 갈기면 이쪽 아이의 부모도 그걸 아는 거예요. `음, 우리 아들이 잘못했는데' 하고 안다는 거예요. 그런 후에는 그쪽 부모가 와서 자기 아들 뺨을 때려도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이것이 탕감이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은 탕감적인 노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방향은 이럴 수 있으나 앞으로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하는 데 있어서 공평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왜? 어떠한 한 사람이 그런 상태에 처해 있는 세계의 하나의 사람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제물의 입장에 서게 될 때, 무자비하게, 아브라함이 자식을 잡아 가지고 칼로 찌르던 것같이 마음은 아프고 안됐지만, 할 수 없는 사정이기에 안 할 수 없는 곡절이 있는 놀이를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은 세계에 있어서 그런 급에 있는 영계와 미래의 하나의 산 제물로서, 죽어서는 안 돼요, 산 제물로서 하늘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돼요. 그런 하늘의 제물이 각 분야 분야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맡은 분야에서 `아버지! 내가 여기에서 이 분야와 세계를 대신해서 제물 되기를 원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책임을 지시고 인도하시옵소서' 하면 하나님은 못 치는 것입니다. 사탄이 치지 못하는 거예요. 하늘이 배척한다 해도 당연히 받아야 돼요. 하늘에 먼저 배척받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그 책임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도 이 길을 나오면서 아버지 앞에 많이 맞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얼마나 목숨을 걸고 사랑했나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에게 열 번씩이나 강퍅하게 하던 것과 같은 시대적 배경도 내게 있어야 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유리고객하면서 당하던 서글픈 심정을 당해야 될 것도 안다 이거예요. 또, 가나안 복귀를 하기 위해 민족을 거느려 들어가던 여호수아 갈렙의 심정을 대신해야 할 것도 아는 것입니다. 또, 4백 년 사사시대 이후에 벌어진 서러움의 심정 노정을 가야 되는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우리의 선조들이 이렇게 걸으면서 하나의 때를 가는 사무친 심정을 알거늘, 아버지여, 깨깨(충분히 또는 심히) 버리고, 깨깨 수고하고, 깨깨 죽게 하소서. 인간을 위하여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깊은 무엇이 있다 할진대 어서 속히 제물로 쓰시옵소서'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성을 탕감하게 되면, 하늘이 치고 나설 때는 애급 바로 궁중에 있는 장자를 쳐 나오던 그런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도리예요. 편안하기를 바라겠어요? 제물은 피 흘리며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거예요. 제물은 주인이 지극히 사랑하는 양떼요, 지극히 사랑하는 물건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하는 것을 극단의 자리에 내세워 칼로 베고 찔러야 할 하나의 장면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복귀시대는 쳐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 중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도 죽이지 않고 복귀시켜야 할 원한의 세계예요. 이 세계는 누가 넘어뜨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느끼면서 여러분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내가 그것을 하고 싶다 하고, 가나안 복귀를 책임진 긍지를 가지고 이것을 사수하여 이 가나안 땅이 곧 지옥의 세계적 제물의 기반인 것을 그 누가 몰라주는 입장에 있더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가지고 인간을 대하라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모세가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때냐? 말씀과 인격과 정을 통해 인간을 대해야 합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 말씀의 때는 구약시대였고, 믿음의 시대는 신약시대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때가 신약시대였어요. 그다음에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이상세계는 정적인 시대인 것입니다. 이것이 한꺼번에 움직여 말씀을 통해 가지고 인격이 나오니 인격을 대신해서 여러분은 정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이 동하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가나안 복귀는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가나안 복지가 그리워 가지고 어떤 길이라도 가겠다는 결심을 갖고 형극의 마음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때가 그런 때인 것입니다. 이 국면이 그런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능히 강하고 끊어질 수 없는 마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생활적인 무대에서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결심을 갖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무엇이 가로놓였던고? 가다 보니 여리고성이 가로놓였다는 것입니다. 60만 대군이 이 성을 함락해야 할 텐데, 이 성이 이스라엘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도성인 연고로 이것을 함락시키기 위해 어떻게 했느냐? 일곱 바퀴를 돌라는 명령을 주셨던 것입니다.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무얼 뜻하느냐? 일곱 바퀴 도는 데는 맹목적으로 도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도는 것은 뭐냐? 여리고성 철벽을 향하여….

하늘은 이런 조건을 바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이란 수는 복귀의 수예요. 창조는 7일이 걸렸어요. 그것이 뭐냐? 사람에게 있어서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사회가 있고, 교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고, 천주가 있습니다. 7단계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역사과정에 복귀의 7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렇게 모였는데, 뜻 깊은 이날 이런 말씀을 하면 하늘 역사의 전반적인 사실은 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개인으로 하늘 앞에 옮겨 서는 방법, 가정적으로 하늘 앞에 옮겨 서는 방법, 민족적으로 옮겨 서는 방법은 못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가야 할 통일교인

​여러분들이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진리를 중심삼고 사탄과 대결할 수 있는 내적 기준에 있어서는 우리 원리를 믿고 선생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런 원칙적 기준에 입각하여 심정이 귀일된다면 사탄은 머리 숙이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라구요. 원리 말씀한테 사탄이 혼난다는 거예요. 여기 노이로제병에 걸린 사람들은 원리책을 석달만 가만히 이고 다니면 병이 떨어질 거예요. 떨어진다 그말이예요.

이런 내용을 갖고서도 지금까지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면서 말하고 싶은 것도 말하지 못하고 나오는 선생님의 40평생은 뜬생활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뼈살에 사무치게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죽더라도 오늘 결심한 것을, 느낀 것을 잊지 말고 앞날에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서 사탄을 굴복시키는 승리자가 되기를 마음으로 빌고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제 선생님은 40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나라에 대한 사명은 다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 넘겨 주기 위한 것입니다. 다 넘겨 주었어요. 넘겨 주노니 여러분은 부디 뜻을 받들어 가지고 선생님이 없더라도 승리하는 자격자가 되어서, 내가 다시 이 나라에 찾아올 때가 있다면 승리의 모습을 갖춘 여러분과 만나는 한 날이 있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의지했어요. 본부에 있는 선생님, 우리 선생님, 마음으로 그렸고 생각으로 그렸고 가나 오나 마음속, 뼈 속에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선생님으로 사모해 왔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모하는 것은 좋아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선생님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선생님 위에는 아버지가 있고, 선생님을 통하여 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요, 인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생님은 백번 천번 망하고 고통을 받고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은 밟히고 고통당해서는 안 될 것이요, 인류도 고통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류가 사탄 앞에 밟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하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인류를 사랑해야 됩니다. 하늘과 땅, 한 손에는 하늘, 한 손에는 이 땅, 인류를 붙들어야 돼요. 이것을 붙드는데 있어서 모르겠으면 붙들고 나서 `선생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해야 돼요. 이럴 때 필요한 사람으로서 여러분 앞에 나타나는 것이 선생님입니다. 그런 사명을 하여야 여러분이 하늘 앞에 축복받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영장의 위치를 고스란히 대신 축복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단단히 명심하시고 여러분이 각자 노력하여 남겨진 복귀의 노정을 돌파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을 위해 고생을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어느 애국자에 지지 않는 눈물도 흘렸을 거예요. 또, 있는 정성을 다 기울였어요. 여러분을 대해서도 선생님은 있는 정성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아실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어떤 손해를 본다 할진대는, 내 무엇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을 붙들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선생님의 천품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요, 선생님이 뭐 잘나서, 마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큰 뜻을 알고 보니 안 그럴 수 없기에, 안 그러면 하늘땅이 녹아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야 할 뜻길

오늘날 지금까지 선생님이 살아 나온 생활은 여러분의 생활적인 본이 될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살아야 돼요. `우리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살지' 그렇게 알았다가는 여러분이 사탄 대한 싸움 노정에서 절대 승리 못 할 것입니다. 먹으나 자나깨나…. 한스러운 자기 가정을 눈앞에서 보면 서러운 것은 사실일 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복됩니다. 내가 40세를 넘어서고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어머니 생각이 나고 가정 생각이 납니다. 우리 성진이 생각도…. 그 녀석은 내가 친히 손목을 붙들고 눈물 한번 못 흘려주었습니다. 심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왜 그러느냐? 천적으로 하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되 부모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의 축복을 받은 그날부터 하늘이 먼저 사랑한 후에, `오, 너는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로구나, 오냐' 이렇게 하늘이 먼저 품고 난 후에야 선생님이 품어 주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원칙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천리원칙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공중에 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살든 관심을 안 갖고 내버려 두는 것 같지만 다 원칙이 있다구요, 원칙이.

그래도 여러분들은 세상에 살면서 지금까지 한스러운 것이 없을 거예요. 하고픈 것 다 해봤고 세상에서 다 살다 남은 찌꺼기인데 무슨 한이 있느냐 말이예요. 백번 밟고 천대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발길로 들이 차고 짓밟아도 여러분은 항의할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밟혀야 할 사탄 앞에 밟혔고 사탄 앞에 차였고 사탄 앞에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사탄 앞에 안 맞을 거예요. 선생님 앞에 맞으니 복되다고 생각해야 되고, 선생님을 만나 고충을 받으니 복되다고 생각해야 되고, 선생님 만나 가지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탄을 통하여 이랬다면 뼈다귀도 없어요. 국물도 없다는 거예요, 국물도.

지금 내가 40세를 넘고 나서 가정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때가 왔으니만큼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앞에 있는 식구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안팎이, 여러분의 식구나 혹은 세상 사람하고 같은 입장에서 전도할 수 있는 환경을 가졌어요. 선생님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 있으니 내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지금까지 외적인 환경의 터를 잡아 가지고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종족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때가 되니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쓱 고향 생각도 나고 부모 생각도 납니다. 수십 년 이 길을 나오지만 어머니가 뭘하고 있는 지 아버지가 뭘하고 있는 지 기도 한번 안 해봤습니다. 불효자이지요. 그렇지만 하늘은 절대 무심치 않습니다. 인정을 모르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벌써 다 아십니다. 알아주면 사탄의 조건에 걸리겠으니 못 알아주는 거예요. 그것을 넘고 나면 몇백 배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 가정의 식구들이 수고하지는 않았지만 하늘이 세워 주는 그날에는 공짜로 혜택받고 넘어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아시고 40년까지는 이 나라를 위해서…. 참 세상적으로 보면 한이 많습니다. 내가 일대일로, 일대일의 삼천만의 한 분자로 돌아가면 이 민족 앞에 저주가 막 나가요, 저주가. 그렇지만 하늘이란 걸 생각하게 될 때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제는 선생님이 이 나라, 한국을 위해서 일할 때가 아니고 세계를 위해서 일할 때입니다. 선생님 일생에 있어서 못해도 한 70개 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느 한 지역에 내가 안 가면 죽기 전에 우리 식구라도 대신 가서 발을 밟게끔 해 놓고 가야 저나라 천상에 가서 할 말이 있다는 거예요. 복잡한 게 많습니다. 여러분은 알기를 단순하게 알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여기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식구들 중에서 선생님 움직이는 데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하는 사람을 볼 때, 그들은 태평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뭣 갖고 움직이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러저러한 원칙과 원인의 연결성에 의해 모든 해결점을 짓기 위해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해야

더우기 앞으로 여러분이 명심해야 될 것은, 앞으로 선생님이 나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 몸에 손을 댔던 사람들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세계 사람들이 앞으로 가만히 안 둘 거예요. 혹은 직접 공격하여 뜻 앞에 방해를 일으킨 모든 사실들은 절대 그냥 못 넘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는 여러분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들어왔다가 나가더라도, 제발 원하건대 나가서 욕하지 말고 반대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싫으면 그만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잘못했다가는 자기만이 아니라 3대, 7대가 걸릴지 몰라요. 이러한 것을 아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아무리 반대를 해도 내 마음에 악심을 품고 `벌 받았으면….' 이런 생각을 못 하는 거예요.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하늘 앞에 기도만 해봐요. 그들은 솟아날 도리가 없습니다. 금 그어 놓으면 솟아날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저 중간적인 입장에 놓아 놓고 대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이 그렇다는 것을 아시고 앞으로 여러분이 이 뜻을 책임지고 나가 싸워야 됩니다. 선생님을 대하던 하늘은 선생님 대신 여러분에게 책임을 맡겼으니 여러분들을 대해서도 선생님을 대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하늘의 심정을 갖고 대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대해 주면 대해 줄수록….

여러분은 선생님한테 인사를 합니다. 지금도 그래요. 응당히 인사를 받을 만한 입장에 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인사를 안 하면 안돼요. 안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거예요. 인사 안 하고 그냥 가 보라구요, 집안에 가서 편안한가. 그냥 가 보라는 겁니다. 왔다가 선생님을 봤으면 먼 데서라도 바라보고 인사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사를 하더라도 자기 최고의 인사를…. 그런 인사를 안 하고 가 보라구요, 어떤가, 마음이 어떤가. 안 할 수 없습니다. 이건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다 자진해서 하는 거지요. 인사를 할 때 선생님은 인사받기를 참 꺼려합니다. 꺼려해요.

여러분이 100의 정성을 갖고 대한다면 나는 30 기준의 심정을 갖고 대하려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진정으로 100의 기준을 갖고 대했는데도 불구하고 100의 기준으로 못 대해 주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30의 기준으로 딱 정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여러분도 편하고 선생님도 편한 거예요. 그거 다 그렇게 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이 인사를 해도 안 받을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조금도 섭섭해하지 말라구요. 이렇게 여러분이 모르는 미지의 내용이 복잡합니다. 그러니 복잡한 이런 중간 입장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좌우로 은신할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 중의 죄인 같은 거예요. 지금까지 하늘이 허락한 한때를 보지 못하고 무슨 일이 생길까봐 참 두려워했습니다. 하늘이 싸워나가는 그 한날을 바라보지 못하고 쓰러질까봐 심히 두려워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못난이 노릇을 했습니다. 욕을 해도 그저 못난이처럼, 누가 뭐래도 그저 못난이처럼…. 이게 제일 안전해요. 이랬으니 조금만 더 나가면 우리가 공격전을 해야 되겠어요. `우리의 원수는 누구다' 하고 내걸고 공격전을 해야 되겠다구요.

공격전 할 때 내 아버지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아버지를 원수로 알고 들이 쳐야 되겠다 이거예요. 내 아들이 그런 입장에 있으면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 해 가지고 직격탄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돼요. 내 딸이, 내 일가에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원수로서 지적하여 정의의 칼을 들고 칠 수 있는 결의를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각오를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이 길 나설 때 `아버지, 나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하고 나섰습니다. 왜? 이런 것을 알았기에. 그러나 그런 한 날을 갖지 못했으니 하늘은 한스럽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천적인 곡절의 사정을 아셔야 됩니다. 오늘 의의 깊은 이날에 있어서 여러분이 이것을 심각하게 느껴야 되겠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본래는 이런 얘기를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들었으니 책임이 중요합니다. 만약에 책임을 못 할 사람이 있거든 결심을 하지 말라구요. 결심하지 않았거든 어느 한 때 선생님을 다시 만나거든 `나는 결심했나이다'라고 하라는 거예요. 그 한 날을 갖기 전에는 선생님이 여러분 대해서 프로를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만 이해하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맹세와 각오와 결심을 하지 못하겠거든 이다음에 선생님을 다시 만나가지고 `그 때 그 날 그 시간에 하시던 그 말씀을 내가 이제 알았으니 이날부터 결심하겠나이다' 하며 자진하여 맹세하고 약속을 세워 가지고 결심을 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 결심했다가는 통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이 시간이 얼마만큼 중요한 시간인가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복된 여러분은 이날 이 시간서부터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해 버리고 혁신된 새로운 마음을 갖고, 옮겨서는 새로운 마음을 갖고 철석같은 심정 위에서 맹세적인 각오를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뜻을 하늘은 대하려고 하는 순간인지도 몰라요. 그렇게 아시고 명심해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을 백골난망, 백골이 되어서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말한 것이 여러분이 영원한 세계에 갔을 때 선생님의 제시조건이 될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년간 말씀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말씀하니까 그렇게 아시고 단단히 여러분 각자가 뜻대로 정하시라구요. 아시겠어요? 「예」 (녹음이 잠시 끊김)

이제 원리문제라든가…. 그 경지에 안 들어가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전체 역사적인 면을 전부 다 귀결지어 가지고 하나의 법도를 이 원칙 앞에 갖다 맞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심정에서 무한히 눈물 흘리고 무한히 몸부림쳤지만, 참 고맙고 황공해서 명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일체적인 감정을 통하는 경지에서만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돼야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한 토막에는 여러분의 생사가, 생각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의 눈물이 엉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기쁘다면 기쁨이요, 슬프다면 슬픈 희비의 곡절이 엉클어져 가지고 여러분이 이만큼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게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의 가치를 모르더라도 저나라에 가면 이 말씀이 선생님 대신자가 되어 말할 거예요. 그렇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이념의 세계를 이루려는 책임을 지고 그 뜻을 위해 그 나라를 향해서 나가는 데 뭐 아까울 게 있어요? 뭐 못 할 것이 있느냐 말이예요. 뭘 못 하겠어요? 한이 될 게 없다는 거예요, 한.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더 좋은 것, 최대의 이익을 위해서 고난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하루 수고해 가지고 몇억천만 년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걸 누가 안 하겠어요?

선생님이 우리 식구들을 그런 심정에서 척 바라보면 한탄할 때가 많아요. 하늘이 그렇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고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싶고 여러분에게 표현해 주고 싶지만, 그런 내용으로 감지해 헤아릴 수 있는 하늘이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 천적인 가치의 기준과 여러분들을 비교하면 말이예요, 이렇게 대하는 데 있어서 하늘적으로 볼 때는 어떻게 보겠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심정에서 전체를 대신할 수 있다면 27억을 줘도 안 바꾼다는 거예요. 하늘땅을 줘도 안 바꿔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원리를 가르쳐 주고 언제든지 만나면 설교하는 것이 심정문제입니다. 참 논리가 정연하다구요. 그건 벌써 척 보면 들어와요. 보면, 슬프면 슬픈 감정이…. 지금은 선생님이 괴로워서 그렇게 안 해요. 그냥 나가고 있는 거지요. 지금은 때도 가까워오고 있으니 그렇게 나가서는 안 되겠기에 할 수 없이…. 그런 세계가 오니 동떨어진 자리에서라도 누구라도 나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니 때로는 외로워요. 말할 수 없이 외로운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럴수록 우리편 되는 식구들은 위안이 필요합니다.

하늘이 가까이 있다면 아무리 고통이 있더라도 한마디 위로면 다 녹아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다 끊고 나가지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순진한 인간이 되어 사탄 앞에 부딪쳐 인간적인 면에서 투쟁하는 이런 환경에서, 물질적인 것은 다 끊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하나님도 자기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그 경지의 심정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눈만 딱 감으면 그 심정은 살아 있고 영원히…. 어떤 역경의 노정도 순식간에 옵니다. 슬픔의 길도 순식간에 오고 암만 고통의 길도 순식간에 오는 거예요. 눈만 감고 그 심정을 생각하면…. 거리나 어떤 무엇에, 공간성에 시간성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고 그 감정은 영원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약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눈을 감으면 그런 심정이…. 이런 심정이 연속만 되면 기도가 필요 없어요.

여러분이 지금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경지에 있으니 선생님이 한마디만 하면 통곡할 거예요. 그러니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런 아들딸이 있어서 한마디만 얘기하면 천년 만년 도울 수 있는 아버지가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감정의 세계는 모를 거예요.

그런 경지를 향해서 지금 하늘은 여러분을 끌어내려고 하고 그 길로 여러분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인격을 보고 찬양해 나오는 사람이 되는 것이예요.

최후에 말씀을 통과한 후에는 실체시대가 오는 데 여러분은 실체 되신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선생님을 조건으로 하여 상대적인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낸 생활이라든가 원리 말씀이라든가 모든 미지의 감동의 사실을 알고 느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자연적인 환경에서 상대적인 조건을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건을 전부 다 살려 가지고 최후에는 선생님이 없더라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원리 말씀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심정이 자연적 심정, 대우주의 심정이 있으면 그 대우주의 심정과 화해 가지고 그 심정이 동하면 내 심정도 동할 수 있는 자연적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경지까지…. 거기에는 스승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무슨 계급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 되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끔 얘기하지만 부디 이 3년 동안 협력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그런 심정과 통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아들딸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를 통일할 것도 심정이요, 이 세계를 품을 것도 심정이요, 이 세계를 움직일 것도 심정인 것입니다. 최후에는 심정입니다. 그래서 작년 일년 동안 쭉 여러분 앞에 심정문제에 대해 많이 설교했어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심정에 파묻혀 살아야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가를 알았으니 아버지의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예요. 아버지는 이런 아버지였으니 그 아버지가 나를 찾았다는 것과 나는 아들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눈물이 많습니다. 그런 심정이기 때문에 건드리면 통곡을 합니다. 억제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설교할 때도 그런 심경에 입각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안 되었기 때문에 내려가는 거예요. 여러분을 찾아 내려가야 된다구요. 다 그걸 기준하고 노력하는 거란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 경지의 심정만 느끼면 기도가 필요 없어요. 순식간이면 수십 년 기도하는 것 이상이 되는 거예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 기준만 되면 기도 안 하고 살 수 있는 거예요. 이해할 만해요? 이거 참 상헌씨가 귀한 것을 느꼈다고 봅니다. 그런 것이 연결될 수 있는 세계가 우리의 이상세계, 본연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슬픔의 파동이 아니고 기쁨의 파동으로서 내 생활감정 전체 분야까지 파묻히게끔 파급되고 자극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이상 천국, 무형세계, 영원한 세계란 말입니다.

이런 것 생각하면 선생님도 지상에 있고 싶지 않아요. 사실입니다. 복귀의 한의 노정의 책임자로서 이 땅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맡겨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생각 안합니다. 생각하면 머리가 돌아 버려요. 붕붕 떠 버린단 말이예요. 할 일을 못 하거든요. 그럴 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도 지금 될 수 있으면 순전히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또, 알게 되면 고통입니다. 누가 어떻고 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책임을 져야 돼요. 그렇지 않소? 이 책임을 실책하지 않고 말씀으로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 하늘의 책임입니다. 말씀으로 책임져 가지고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통하면 실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말씀을 통해서 실체적인 감정과 심정적인 감정까지 접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천국입니다. 후에 지상천국이 되는 거예요.

그때 한마디를 말하면 뼛골이 녹아나고 심정이 통할 수 있는 말씀으로 들려온다 그 말이예요. 그런 감정이 동할 수 있는 자유천지가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많은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고 지상천국이 되는 게 아니예요. 그런 아들딸만 만들어 놓으면 지상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아들딸 사랑했다는 기준을 잡고 그 후손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그 기준이 안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걸 모르면 모르지만 알고 보니 하늘 앞에 참 미안한 점이 많다구요. 영계에 가서 앞으로 이제…. 선생님도 상대를 취해야 되겠는데, 이런 견지에서 볼 때 하늘 앞에 미안한 점이 많아요. 내가 아는 아버지는 이러하시고, 아버지가 바라는 표준 앞에 창조이념으로 세우려 했던 그 대상은 이러해야 된다는 것을 아는데 오늘 이 땅 위에서는 그러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하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부모로서 그런 심정을 같이 느끼고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것을 아버지는 보고 싶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이 하늘의 한입니다. 하늘의 소원은 그것밖에 없어요. 그런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참부모를 세워 놓고 아들딸들을 품고 사랑하고, 하나님이 손에 손을 연하여서 축복해 줄 수 있고…. 그런 것이 하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를 우리가 바라보게 될 때, 그래도 여러분들은 낫습니다. 이 기성교인들이나 세상은 천리만리 먼데…. 그러니까 영계에 가도 그만큼 먼 거리에 있게 되는 거예요. 여기의 부인 식구들, 선생님이 지금 말하는 걸 잘 들어야 돼요. 더욱이나 아씨들은 말이지요, 생각해야 된다구요. 인간적으로 볼 때 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걸 보면 선생님이 미안해요.

여러분은 마음으로 선생님이 보고 싶지요? 남자나 여자나 선생님 때문에 많이 울어야 됩니다. 통일교인 중에 선생님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지 못한 사람은 절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이예요. 보고 생각하면 뼛골이 으스러지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와야 돼요. 여러분이 정상적인 궤도를 밟아서 어느 기간이 지나가면 그건 자연적입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기에 앞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 어린 선생님이지만 70, 80난 할아버지들도 대하면 자기도 모르게 어린애와 같이 된다는 거예요. 무엇인지 모르지만 뭐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세상 부모 대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 깊어 가지고 그 궤도가 점점 지나가게 되면 언제나 품어 주는 이런 느낌이 떠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심정에 파묻혀서 살아야만 통일교회의 신자라고 할 수 있어요.

남자가 남자가 그리워서 운다는 세상 법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이면 모르지만 동생이면 모르지만 하등의 관계도 없던 스승을 내 부모보다도 내 동생보다도 내 누구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알고, 세상이 먼저 아는 그런 분을 여러분이 만나지 않으면 이 지상이 바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거듭나야 될 통일교인

새로운 심정을 여러분 앞에 심어 주기 위해서 하늘은 최후의 역사를 하십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심정은 타락한 심정이예요. 기껏해야 세상의 부모나 사랑할 줄 알고 자식이나 사랑할 줄 알았지, 이 지상을 넘어서 천상을 사랑할 수 있었느냐 말이예요. 없었습니다. 천상을 사랑할 수 있는 분이 오셔서 내 마음이 그를 대할 수 있게 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세상의 모든 것을 넘어 그쪽으로 기울어져서 심정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을 만나게 되면 그가 여러분과 영원히 저세계에 있어서 같이 있을 수 있는 분이라는 거예요.

여기 통일교회는 이상한 곳입니다. 그런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제일 문제점으로 생각했던 것이 뭐냐? 만인간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심정의 길을 어떻게 개척하느냐 하는 거예요. 예수님도 말했어요.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어요. 더 사랑하라는 거 어느 기준에서 사랑하라는 것이냐? 이런 거 생각해 봤어요? 더 사랑하라면 어느 한도까지냐? 하나님의 마음속을 넘어 들어갔다 나와 가지고 사랑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하나님의 속 깊이 심정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와 가지고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께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듣고 보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한바탕 해 놓으면 또 눈물을 줄줄 흘려야 되겠기 때문에…. 그런 심각한 얘기를 하면 선생님이 눈물이 복받쳐 얘기 못해요. 그런 것을 얘기하면, 그런 세계를 조금만 건드리면 선생님은 통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의 심정이 그렇다는 거예요.

`아버지 마음이 이렇지 않습니까?' 하면 하늘은 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노정에서 가르쳐 주지 못했던 그런 심정의 입장을 인간이 파헤쳐 가지고 나오게 될 때 하늘은 통곡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하나님이 약한 하나님이예요. 크시지만 무한히 약한 분이십니다. 심정에 들어가서는 무한히 약하고 무한히 적으신 분이예요. 여러분 그걸 이해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종자가 달라요, 종자가. 그러니 선생님의 정신을 받아서 선생님의 피살이 엉켜진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는 날에는 반드시 그런 심정적인 변혁이 이루어지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이치이기에 세계 만민을 움직여 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명사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 중에는 선생님이 말한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통일교회만 척 믿고 나면 보고 싶고, 봐도 또 보고 싶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이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형용할 수 없는 심정이 나를 이끌고 간다는 거예요. 본래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심정적인 대상이 되었다면 뭐 그저 무엇을 갖다 끌어 당겨도 이건 뭐….

여러분이 그런 인연만 맺게 되면 선생님이 하나님에 대해서 느낀 거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이런 느낌을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나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는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이런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것이 선생님의 것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거예요. 딴 게 아닙니다. 선생님 것이 여러분 것이요, 선생님의 아버지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간단합니다. 이 길이 제일 직단거리예요. 그런 것을 오늘날 원리 말씀으로 가려 나왔기에 그것이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옛날에는 종적으로 했다는 거예요. 하늘과 땅에 있어서 하늘을 찾아 올라갔다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도인들은 전부 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했어요. 땅에 그런 기준의 상대가 없고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늘은 찾아 내려와야 되고 인간은 찾아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는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가 들어와 삽니다. 사탄의 흑막을 슬기로 투쟁하는 입장에 있어서 이것을 뚫었다 하면 또 메우고, 뚫었다 하면 또 메우는 거예요. 한 번 뚫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몇 세기씩 걸린다는 거예요. 2천 년 걸려서 한 번 뚫었다는 거라구요. 4천 년 걸려서 예수 앞에 한 번 뚫렸다는 거예요. 이렇게 힘든 놀음입니다. 뚫었다 하면 메워 버리고 뚫었다 하면 메워 버리고…. 그거라구요. 상징적으로, 상징적으로 형성된다는 말 배웠지요? 비유의 말씀, 그림자 모양으로 형이 잡혔다가는 말고 형이 잡혔다가는 말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인들은 모든 걸 버리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내려오고 땅은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 심정적인 인연을 오늘날 도의 길에 있어서 결탁 못 시켰다는 거예요. 결탁 못 시켰으니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이것을 결탁시켜 가지고 평면적인 기준을 이루었다 이겁니다. 이게 복된 소식입니다. 사랑의 복된 소식.

여러분이 평면적으로 선생님의 말을 듣고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면, 옛날에 도인들이 수십 년 도를 닦아 가지고 느낄 수 있었던 신비의 경지를 순식간에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6천 년을 공짜로 한꺼번에 타고 넘는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중에 그런 심정을 느끼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절대 못 빼앗아 갑니다. 이건 절대 영원이예요. 영원인 동시에 절대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취할 수 없어요. 사랑에는 어떤 관이 없습니다. 비교되는 기준이 없습니다. 어떠한 대상적인 조건이 필요치 않아요. 그렇잖아요? 사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전체예요, 전체. 그렇잖아요? 거기에서 움직여 가지고 내 살도 전부 다 반영되어 존재적인 인식을 느끼게 되더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관이니 무슨 주의니 상대적인 어떤 논리적인 조건 앞에 사로잡힐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관이 없어요. 우주관보다 더 크다는 거예요. 우주관을 말하고 세계관을 말하는 데 그것은 논리적인 형태에 있어서 목적적인 가치, 비교적인 무엇을 가지고 재 나갈 수 있는 것이로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그것을 느끼려면 하나님의 심정적인 내면에 들어가 가지고….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그려 가게 되면 그런 뭣이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여러분들이 근본적으로 이 사탄세계를 녹여 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는 무엇으로? 말씀으로 거듭나는 거 나는 원치않아요. 어떠한 인격적인 것으로, 내 마음이 조금 달라져서 거듭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심정적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견지에서 여러분을 지금 지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그러한 인격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예요. 여러분에게 심정문제를 설교하는 데 그 심정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관념의 인식 혹은 의식에서 느껴지는 그런 것이 아니예요. 이 심정이라는 명사는 한계적인 감정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걸 말하고 있지 않아요. 우린 다 들어갑니다. 27억이 다 들어가고도 남아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바라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심정은 어느 누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알 만해요? 말로 듣고도 알겠지요?

지금은 자동적으로 말씀이 퍼져 나가는 때

여러분,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세계 인류는 앞으로 우리의 이념을 알고 선생님이 그리워 통곡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그런 과정에 안 나갔다면…. 도인들이라든가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 어느 기준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면 그들도 통곡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건 말하지 않아도 벌써 안다구요. 말하지 않아도 벌써 끌려온다구요, 쭉쭉. 인력이 있다구요. 하나님까지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인력이 있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끌려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다리 놓을 수 있는 거지요.

그걸 밀어 주면, 우리 말씀을 통해 벗겨지면 역사적인 모든 허물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직선적으로…. 옛날에는 상대적이었는데 지금은 평면적으로 되었으니 얼마나 편해요. 그래, 옛날에는 기도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기도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이제는 찾을 때입니다. 기도할 때가 아니란 말이예요. 평면적으로 찾을 때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영계를 통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클클해 온다는 말입니다. 심정적인 기준이 안 되면 하늘은 허락치 않습니다. 그런 이중 공사로는 하늘에 안 통해요.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안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기성교회는 점점 메말라 갈 것입니다. 그들이 메말라 가면 여러분의 심정은 점점점 커 간다구요. 그러니까 떨어지지 말고 덜렁덜렁 천천히 구르더라도 굴러가란 말이예요.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는 원수들이 많습니다. 억울한 자리에 하나님이 일부러 처넣습니다. 왜? 억울한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는 심정을 갖게 하기 위해서…. 억울한 자리를 걸어가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길을 하루 걸어간 사람의 그 심정의 경지하고 10년 평탄한 길을 걸어간 심정의 경지하고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곡절에 부딪치게 한다구요. 핍박받게 해요. 그거 왜? 깊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 거기서 찾아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맞게 될 때 아버지 맞는 것을 생각하고 눈물지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거라구요. 그런 길을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 불쌍한 사람을 붙들고 우는 것이 도의 시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불쌍하고 어려운 자리에서 친구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내가 선한 자가 되어 선한 길을 가겠다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도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누굴 도와주면 그 사람의 친구가 된다는 겁니다.

어려운 자리에 내가 같이 서겠다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어려움당하지 않을 입장에 서게 될 때 거기에 고충이 크니만큼 나는 반비례적으로 심정적인 분야에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상이 아니예요. 사실입니다.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래요. 암만 졸던 사람이라도 그런 선생님의 심정을 통해서 이야기하면 정신이 맑아진다구요. 그런 위력이 있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만 들어가서 말씀하게 되면 뭐 꼬박 며칠 밤을 새워도…. 여러분도 지금 선생님이 계속해서 말씀하면, 이틀, 사흘, 나흘 꼬박 그런 경지에서 얘기하면 여러분은 안 자요. 잠이 주관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소모만 되기 때문에 그런 놀음은 안 한다구요. 과거에는 그런 놀음 많이 했지만 말이예요. 그런 놀음 하고 나면 사탄의 시험이 많아요. 되지 않을 사람을 갖다 세웠으니 때려치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은혜를 준 후에는 반드시 시험이 있다는 것이 이 원칙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거 다 과학적입니다.

여러분에게 그저 특별히 불 줘 가지고 이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연적인 심정을 개척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 안 하고도 우리 원리말씀을 듣고 자연적으로 심정을 개척할 수 있는 이 기준을 어떻게 단시일 내에 개척할 수 있겠느냐? 이게 지금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선생님이 붙들어 가지고 기도해 주고 이러지 말고…. 그래야 만인이 빠른 시일내에 하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그래서 내가 지금 시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해서. 내가 기도해 줄 때의 그 심정의 반응과 기도 안 해주는 지금 이때의 심정의 반응을 비교해 보고 싶은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 때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때는 여러분 앞으로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여러분들이 안 하면 그저….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건달꾼이예요. 건달꾼이지만 심정적인 분야에서는 내가 옛날에 시련을 이기고 이 길을 출발할 때 이상의 발전을 했습니다. 출발할 때 기도를 많이 해서 끌어 주던 그 심정과 지금 누가 간섭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서 인연되어 우러난 그 심정을 보게 될 때, 지금이 오히려 더 높은 기준입니다. 요걸 조금 넘겨만 놓으면 자동적으로 퍼져 나가는 거예요. 뭐 전도할 필요 없어요. 이 우주가 다 이렇게…. 말씀만 듣고 나면 너나할 것 없이 공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주─욱 확대됩니다.

그런 무엇을 느끼기 때문에 지금 선생님이 안심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언제 뜻이 이루어질까 걱정하겠지만 이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선생님이 죽더라도 이젠 때가 그런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가만히 보라구요. 세계가 지금 우리의 시야권내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거예요. 더욱이나 영적으로 자꾸 협조해 줍니다. 탕감 해원을 받아야 되겠기 때문에 협조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예수 믿고 전도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십 년 전도해도 한사람 못 했어요. 이런 고난의 길을 거쳐 가지고 한 교회를 세운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나를 증거해 주는 편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늘이 수고하시는 지 몰라요.

복귀역사에서 진 것 같지만 승리해 나오신 하나님

여러분은 이제 통일교회를 박차고 나가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옛날에 이 길을 찾아 나올 때 무엇을 기도했느냐? `아버지여, 나에게 물질을 주시옵소서' 그런 식의 시시한 기도 안 했어요. `나에게 무슨 축복을 주시옵소서', 축복은 무슨 축복? `십자가 선상의 고통을 받게 해서라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은사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고통권 내에서 지배받는 그런 사랑은 원치 않아요. 거기에는 인간적인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천상의 사랑은 그것이 아닙니다. 고통권 내에서 지배받는 그런 사랑이 아니예요. 인식권 내에서 제거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예요. 사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들어가면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도 모른다는 거예요. 사실 그렇소? 그런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놀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 말처럼, 설익은 것들이 영 시시하다는 거예요. 설익었더라도 줄기가 뻗어 있으면 익을 텐데 줄기까지 말라 버리니 사고라는 겁니다. 참외가 설익었는데 줄기라도 살아 있으면 가을 절기가 되어 익을 텐데 이건 설익어 가지고 뿌리까지 다 말라 버렸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그런 사람이 참 많아요. 가만히 선생님 말과 맞는 사람이 내가 아닌가 한번 비교해 보라구요. 참외는 설익었을망정 줄기는 말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무리 조그만 참외가 설익었더라도 줄기가 살아 있으면 그것은 주인에게 반드시 거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런 줄기 될 수 있는…. 줄기의 원천이란 것은 생명력입니다. 생명의 발동력인데 생명의 발동력이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적인 세계의….

이런 걸 얘기하면 선생님이 훌륭해 보이지요? 한장로님 그렇지요? 「예」 돈도 한푼 없고 형편없이 있을 때는 따라지 같지만, 그러니까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래 좋다는 겁니다. 따라지 신세에 처해 가지고도 걱정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주니 고맙지요. 야, 애들아! 다 자니? 애들은 자꾸 기도를 하고 있어.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런 사랑의 경지를 찾아 나선 걸음인 것을 생각할 때 숭고한…. 그런 목적지를 향해서 찾아 나가는 걸음이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목적지에는 못 갔을망정 가는 숭고한 걸음이 있을 때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잘 대해 줬으면 좋겠지만 사명적인 때가 이러니만큼 넘어가야 됩니다. 넘어갈 때는 또 사고가 있어요. 고개 너머까지 넘어갔는데 다시 넘어오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한 때가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여러분을 앞섰으면 여러분보다 먼저 넘어갈 거란 말이예요. 먼저 넘어갔다가 또 넘어오면 안된다는 거예요.

세상 이치는 반드시 음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번 싸웠으면 반드시 쉬어야 되는 거예요. 원래 선생님은 한 3년 동안 전도도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편안히 그저 세상 구경이나 다니고 바람이나 쏘이면서 좀 쉬어야 된다는 말이예요. 올라가면 또 이러면서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은퇴라는 거 있잖아요? 바울 선생도 아라비아 3년의 은퇴가 있었고 예수님도 40일 금식하고…. 어느 누구든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돼요. 슬픔에 잠기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런 원리적인 이치를 딱 파악해 가지고 움직여 나가면…. 거 다 공식입니다. `이렇게 되어 나가기 때문에 심정이 이렇게 쓸쓸하고 외롭고 그랬으면 몇월 며칠쯤은 하늘의 어떤 인연의 때가 올 것이고, 나와 인연될 수 있는 어떤 때가 올 것이다' 하고 딱 준비하고 있으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준비해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때가 올 때는 어느 누구, 무엇을 다 집어치우더라도 그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자기들이 십 년 움직임의 궤도를 만들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년 도표를 만들면 몇 해 만에 온다는 것을 딱 아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어떤 형이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것은 주기적으로 옵니다. 3년이 큰 주기예요. 한 달에도 그런 게 있고, 1년에도 그런 게 있고, 3년, 7년이 될 때도 있는 거예요. 요게 다릅니다, 주기적으로. 이게 하루의 일과 한 달의 일과 1년의 일과 몇해의 일이 한꺼번에 부딪쳐 올지도 모르지요. 상식적인 견지에서 딱 해보면 다 알 수 있다구요. 이젠 뭐 선생님이 그런 거 알려고 안 해요.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사는 거예요. 내가 사탄하고 싸울 때는 그런 작전해야 됩니다. 첫 번 째 대했어도 척 그런 경지에 가 있으면 벌써 사탄이 왼쪽으로 가는 게 빤히 보여요. 척 대하면 압니다. 어떤 것이 하늘 것이고 사탄 것인지 그것만 분명해지면….

그래 여러분들, 재미있는 것이 말이예요, 대하면 대개 안 알려고 해도 자꾸 반응이 들어와요. 직감적으로 들어올 때가 있어요. 될 수 있으면 안 알려고 해요. 알면 책임져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본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할머니들을 앞에 내세우고 나가려고 그럽니다. 그게 작전상 좋거든요. 그들에게 아무리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다 하더라도 영계 말씀보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시정된다는 거예요. 실패했더라도 복귀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중 작전을 하는 거예요. 그래, 할머니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선생님과 의논하는 거라구요. 물어 봐야 뻔한 거거든요.

그렇게 하면 나는 조건에 안 걸려요. 미래의 말을 했댔자 그가 말한 것을 들었으니 그가 걸리지, 나는 안 걸린다는 거예요. 걸려도 배후에 자기 조건 걸릴 수 있는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에 못 건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런 작전을 하기 때문에 사탄이가 움츠려 있는 거예요. 이건 움직이는 대로 손해 나니까. 한번 걸었다가는 결국 손해거든요. 그러니 손대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선생님입니다.

앞으로 선생님도 사탄세계에 대해서 몰아칠 한때가 올 거예요. 그러면 문제는 심각해진다구요. 기준이 안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저 명령에 순종만 해보라는 거예요. 안 될 것 같지만, 우리가 고꾸라져 박히는 것 같지만 결국 누가 고꾸라져 박히느냐? 사탄이예요. 하나님은 그런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모험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무지한 모험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손해 안 본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는 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패할 것 같지만 절대 손해 안 봅니다. 사탄세계에서 조건을 끌어들일 수 있는 어떤 무엇을 갖다가 한꺼번에 탕감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몇천만 원 몇억 원 손해나더라도 선생님은 눈 하나 까딱도 안 합니다. 심정적인 기준 앞에서 내가 하늘 앞에 한 것은 절대 안 잃어요. 못 빼앗아 간다는 거예요. 마음에 연결된 그 물건이 절대자의 주관권 내에 있는데 누가 빼앗아 가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절대 못 빼앗아 갑니다. 그걸 건드렸다가는 몇 배 손해배상을 해야 돼요. 심정적인 인연으로 연결된 모든 사업들에 실패가 어디 있어요? 사탄 앞에 죽을 내가 아닙니다. 반드시 한 때에 가서, 십 년 후에라도 이것을 발전시켜 몇십배 가해 가지고, 플러스해서 찾아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귀역사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져 나온 것 같지만 승리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심정을 갖고 역사하시면 못 빼앗아 가요. 빼앗기는 것 같지만 심정 가지고 그 가정 대해서 움직이던 그 사람 이상 민족 앞에 나서면 또 빼앗아 온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빼앗아 가는 것 같지만 민족보다 세계의 심정권으로 하면…. 민족보다 세계의 심정은 한 단계 높다는 거예요. 높이는데 조금만 움직여 주면 세계를 뚫고 오를 수 있어요. 빼앗고도 남을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이 하늘 대신 입장에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개인ㆍ가정ㆍ종족시대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옛날에 개인적으로 열의 심정을 대하는 것과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심정을 대하는 것이 맞먹는 거라구요. 점점 키워 간다는 거예요. 그런 작전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시대를 넘어 천주시대를 향해 넘어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천주적인 심정을 갖고 나가면 오늘 세계적인 이 시대에 있어서 아무리 실패하더라도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손해를 봐도 좋다는 거예요. 지금은 손해보지만 앞으로 천주적인 시대에서 사탄세계의 것을 전부 다 빼앗아 올 수 있는 조건을 걸어 놓는 것입니다.

심정으로 하나되어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야

맞아라, 손해봐라, 이용당해라! 때가 되면 한 사람에게 하던 것을 이 세계 27억에 대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좋아요? 우리가 나가는 판국은 그런 놀음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나가는 데 있어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을지 몰라요.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이 놀음 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6천 년을 살펴 가지고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저 일대일로 바들바들 떨어 가지고 요것이면 그만이라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먹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래요. 지금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는 동정을 합니다. 그렇지만 때가 지나 그 심정 내가 갖고 기도하면 그 몇 배의 사람이 찾아오는 거예요. 심정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 대하던 심정만은 잃어버리지 않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가서 반대를 하지만 선생님을 못 잊습니다. 왜? 심정만은 내가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때 써 먹는다는 말이예요.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한 때만 되면 그 기준을 갖고 한꺼번에 세계 사람을 빼앗아 올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거 알고 보면 야단났다는 거예요. 그저 무용지물하고 무력한 선생님 같지만 그런 남 모르는 작전 내용을 갖고 있다구요. 거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황환채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응? 아는 사람만 알라구요. 여러분도 그런 작전을 해야 됩니다. 콤파스 중심이 그런 작전 하지 콤파스 곁다리가 그런 작전 하나요? 중심만 될 자신 있거든 그런 작전 하라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이 잘못하다가는 손해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통일교인들은 몰라도 선생님 말에는 무조건 절대 순종, 복종해야 됩니다. 그게 그저 제일 좋아요. 주먹구구식으로 장사판에서 뭐 이러고저러고하는 것보다도 돈 갖다 놓고 헤는 게 제일 좋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럴래요? 「예」 뭐 말들이야 잘하지, 실천을….

여러분들도 미쳤습니다. 오늘 전국적으로 다 하루종일 밥도 안 먹고 와 가지고…. (웃으심) 딴 나라 사람은 그렇게 못 합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홀리고 있어요, 지금.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아닌 힘에 의해 다 엉클어져 있다구요. 그거 다 누구 재간인지 알아요? 하나님 재간입니다, 하나님 재간. 하나님 바람이 휩쓸고 있단 말이예요. 이왕에 불 바람 잘불어라, 하나님 바람에 놀아나면 좋지요, 뭐.

그 바람에 놀아나면 분할 게 없습니다. 암만 이용당해 먹어도 분하지 않다는 거예요. 하늘 바람에 이용당해 먹혀 가지고 망한 녀석이 없더라 말이예요. 손해본 녀석이 없다구요. 그래서 하늘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거예요. 이용당하지 않아서 그렇고, 시켜 먹지 않아서 그렇지요. 여러분에게 뭘 하나 시키려면 짐보따리가 이게…. 나같으면, 내가 통일교인 같으면 그렇게 안 했을 겁니다. 선생님이 깜짝놀랄 일을 여러번 했을 거예요. 해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청년이 없다는 거예요, 암만 찾아봐도. 눈들 들어 봐요, 눈들.

큰소리하는 선생님, 본부에 가니 선생님이 무섭게 꽥꽥한다고? 꽥꽥 할 만하다구요. 듣기 싫으면 나가라구요. 내가 아무리 꽥꽥해도 마음으로는 싫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이상하다구요. 그래서 죽든지 살든지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아니 갈 수 없어요. 마지막 고빗길입니다. 틀림없는 마지막 고빗길이예요.

으음─(콧노래 부르심) 아! 그 노래 운율이 참, 아주 영적인 파동에 가까운 박자예요. 노래 참 좋은 거예요. 어디 갔나? 그거 한번 해보자, 애향가. (녹음이 잠시 끊김)

죽기 전에 다 닦아 놓아야 됩니다. 그냥 죽으면 큰 사고예요. 거 무슨 말인지 정신이 안 들거든 한번 죽어 보라는 거예요. 오래지 않아, 한 100년만 지나 보면 다 구경 잘 할 테니까…. 백년 살래요? 이다음에 선생님을 보면 무슨 얘기 안 들었다는 말은 하나도 못 할 거예요. `왜 안 가르쳐 줬소?' 이런 얘기 할 것 있어요? 할 것 있느냐 말이예요.

6천 년 동안 영인들이 벅찬 심정으로 그리워했지만 자기의 원을 해원할 수 없고 자기 회포를 풀 수 없는 그런 심정의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래도 이렇게 보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지요. 여러분은 이 자리에서 고맙고 감사한 은혜가 내려지면 그것을 은사로 느끼는 그 사실이 생명이 장성이 되고 영원한 세계의 인연에 보탬이 되지만, 저나라에서는 이런 말을 암만 듣고 좋아했댔자 생명의 장성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거 알아요? 인연적인 조건이 성립 안 되니 생명의 장성에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때가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배가 고프다, 먹을 것 좀 먹으면 좋겠네. (웃음) 한번 웃었지. 또 좋잖아요? 또 얘기해요, 또? 「예」 (녹음이 잠시 끊김)

신앙인은 처음과 나중이 변하지 않고 같아야

지혜, 믿음, 사랑! 믿으면 어느 정도까지 믿겠느냐?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얼마만큼 믿겠느냐 말예요. 믿으면 얼마만큼 믿겠나 말이예요.

이걸 잡아 넣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했으니 믿음과 지혜와 사랑, 이 세가지를 가지고 6년 동안 하루에 세 번 기도해 봐요. 그러면 주나요, 안 주나요? 안 주면 안 됩니다. 안 주면 안 될 비결을 딱 쥐고 있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그래, 주는 줄 모르게 다 줬습니다. 지금에 와서 아는 거예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에 와 가지고 우리 아버지는 진짜 우리 아버지구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걸 내가 알았고, 천적인 지혜가 어떻다는 걸 알았고, 하늘의 믿음이란 것이 어떻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 다 안 거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별것 있어요? 천적인 지혜를 빼앗고 천적인 사랑을 빼앗고 천적인 믿음을 빼앗아 도망치는 녀석이 있으면 하나님이 따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해봤어요?

그저 요만한 마음속으로 헤아리니 `못 믿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거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요. 하루도 편안치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되어 가지고 쳐 버리면 그저 개 죽은 듯이 할 그런 각자의 마음 갖고 있으니 편안하겠어요? 불편한 마음 갖고 있는 거예요. 그 꼴이니 헤아리고 있는 심정, 혹은 마음의 터를 통하지 못하고 `나 못믿겠다' 그러는 거라구요. 에이, 망할 자식!

그런 믿음에는 하나님이 절대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싸구려 하나님인 줄 알아요? 아예 관계를 맺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 오소' 하면 `오냐' 해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신앙관이 있으면 그 신앙관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안식할 수 있는 기준이 돼야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찾아 나올 때 신령한 사람 찾아가면 `여보, 당신이 오는 걸 벌써 척 알았습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벌써 몇마디 하면 어느 정도의 신앙성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당신이 지금까지 믿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할 말을 계속하고….' 하면서 말을 하는 거예요. 아예 표준을 그렇게 정하고 대들어야 흥해도 크게 흥하고 망해도 크게 망한다는 거예요. 지옥에 가더라도 지옥 주인 노릇을 한번 해봐야 될 거 아니예요? 하늘의 주인 노릇 못 하면 지옥 주인 노릇이라도 한번 해봐야 될 거 아니냐구요?

그래서 만일 사탄이 있다면 사탄 타고 앉아 가지고 사탄의 꼭대기를 집어 내 봐야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꼬이고 하나님까지 몽땅 잡아서 꼬이려고 놀음했던 그게 얼마나 놀라워요? 그런 생각들 해봤어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야 이 원리 같은 걸 찾아내지요. 여러분이 허허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무한한 공상가입니다. 망상가 중에도 최고의 망상가지만 그래도 실속 없는 망상은 안 합니다. 실속 없는 망상은 안 하게끔 벌써 심지가 되어 있어요. 심적 기준이 되어 있단 말이예요. 벌써 척 얼마만큼 올라가 보면 아닌지 그런지 알아요. 마음이 향하는 , 천륜이 움직이는 방향만 딱 갖춰 놓으면 그 방향의 궤도를 딱 알아 가지고 조금만 각도가 넓어지면 내려온다구요. 그걸 아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그런 잼대를 딱 쥐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 원리를 찾게 될 때 제일 비결이 뭐냐 하면,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요. 처음과 나중이 같은데 나중에 플러스 하나를 더한 것이 선입니다. 플러스 하나를 더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변하는 사람은 다 악의 제물이 되는 거예요. 그게 철칙입니다. 변하는 사람은 악의 제물이 돼요. 아무리 좋았더라도 그 좋은 모습이 변해 나가면 악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밥이예요. 사탄은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처음과 나중이 딱 같아야 돼요. 통쾌한 것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하는 거예요. 됐다 이거예요. 이 한마디가 만나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하나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한, 그 말씀에 기록된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 하나님이 아닌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처음과 나중이 같이 되었으니, 처음에 하던 일이 나중까지 연결되어야 그게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겁니다. 처음 대가리와 나중, 성경 첫 페이지와 묵시록을 보면 알 것입니다. 어떤 경서도 첫자와 나중이 안 맞으면 거짓인 거예요, 아무리 좋은 것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원리도 그래요. 아무리 원리가 좋더라도 선생님과 맞지 않으면 다 거짓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결이 그거예요. 선과 악의 기준이 뭐냐?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묵시록을 보니 생명나무가 딱 들어맞더라 이거예요. 그러니 이건 진리라는 것입니다. 다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적인 것이 복잡한 사정으로 엉클어져 있으니 복귀의 노정에 의해서 구원섭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도 오늘 좋다고 약속했다가 내일 변하면 이놈은 밟아 죽여도 된다구요. 그건 원수예요. 앞으로 밟아 죽여도 좋다 할 때가 올지 모릅니다. 어서 그런 때가 오면 좋겠어요.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어서 그런 때가 오소! 그런 녀석들은 그저 대번에 피를 토하고 죽게끔 밟아 죽여도 하나님이 좋다 할 수 있는, 인정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무자비한 데가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약속한 것은 자기가 편하기 위해서 한 게 절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활 기준을 어디서 세우느냐? 오늘과 내일이 다르면 이건 벌써 사탄편이 되는 거예요.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길 나올 때 어렸을 적에 결심한 것을 일생 동안 붙들고 가려 하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죽을 때까지 붙들고 가는 그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 선한 사람, 하늘이 모른다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의 주인이요,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주인이더라 이겁니다. 어때요, 그 말이 틀려요? 간단한 얘기입니다.

그런 원칙적인 기준을 딱 잡고 생활 잼대를 세워 놓아야 돼요. 몇 개만 딱 잡아 놓으면, 평행선과 수직선만 딱 잡아 놓고 좌우 조정하면 얼마인지 환히 알 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90각도만 딱 대 보면 몇 도가 되는 지 알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 일은 처음보다 높아져야 됩니다. 처음보다 커야지 내려가면 죽게 돼요. 하늘 일은 점점 올라가지요? 이 천지의 법과 기준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처음과 나중이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지혜·믿음·사랑은 신앙의 3대요소

탕감복귀 원칙에서 어떤 내용을 하나님이 찾는지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잴 줄 알면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못 잊어요. 못 잊는단 말이예요. 잊으면 하늘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잘못하면 하나님은 어느 한때가 되면 괜히 분한 마음을 먹어요. 그 녀석! 자다가도 문득 몇 번 생각하게 되면 오래 못 가거든요. 두고 봐요. 점을 쳐 봐도 틀림없고 그건 수학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통일이념을 통해 하나의 완결 완성점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앞과 뒤가 거리가 멀 뿐이지 달려 있더라 이거예요. 이것이 직선을 향해 움직이면 틀림없습니다. 절대 내려가지 않아요. 수평선 이상으로 움직여 나오니, 직선 끝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출발할 때 끝보다 대가리가 올라가면 내려올 수가 있지요. 끝까지 출발기준을 잡으면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이 원칙을 여러분은 잘 알고 생활에 적용해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얼마나 믿어봤느냐 이거예요. 네 심통을 그 젬대를 가지고 하늘이…. 그거 생각해 봤어요? 아무리 못났으면 하나님이 네 마음대로 하기를 바랐겠느냐? 아무리 못난 하나님이라도 그런 하나님 믿으면 뭣에 쓰겠어?

다 그런 조건을 세워 놓고 내가 실체적으로 그러겠다고 하면 몰라도. 뭐 `믿는다….' 그런 껄렁껄렁한 믿음을 갖지 말라는 거예요. 그걸 확실히 정해야 돼요. 이게 신앙의 3대 요소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교육을 할 때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3대 조건을 걸어왔습니다. 소망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아요. 지혜! 믿음! 사랑! 사랑을 말할 때는 예수의 사랑을 밟게 해주소서! 지혜를 말할 때는 솔로몬의 지혜를 밟게 해주소서! 믿음을 말할 때는 베드로의 믿음의 밟게 해 주소서, 이런 기도 했겠어요? 예수 배반한 그따위 베드로의 믿음? 솔로몬의 지혜가 있었으면 뭘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어요? 사랑, 예수가 사랑을 다 했어요? 막달라 마리아를 붙들고 사랑했어요? 그따위 사랑? 따지고 보면 문제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원칙적인 문제를 해명해 놓고 여러분이 출발을 해야 돼도 크게 되고 안 돼도 크게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여기 온 사람들은 어떤 정성을 들이고 있어요, 어떤 정성? 여러분이 믿지 못할 어마어마한 얘기 하면 믿을래요?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돌아갈 거예요. 거꾸로 되어 버려요, 거꾸로. 거꾸로 되는 얘기 하는데 거꾸로 못 되겠다면 나가야지, 별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배짱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껄렁껄렁해 가지고…. 그러니까 여러분을 무시하지요? `어이구, 혼자 뭐 대단하게…. ' 하겠지만 무시할 만하단 말이예요. 여러분이 무시 안 받을 정도가 됐다면 이런 말 안 하지요. 하늘땅 전부를 무시할 만하다는 거예요.

그런, 뭐라 할까, 지금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조그만 통일교회밖에…. 허리 부러진 호랑이 격이예요. 좀 사내답게 그러지 말이예요. 여기 여편네들도 좀 여편네답게, 하늘 신부로서 부인답게 배포를 가지라는 겁니다. 그저 뭐 내 돈, 내 돈 어떻고 어떻고 그냥 안달해 가지고…. (웃음. 녹음이 잠시끊김)

바늘 방석에 앉은 것보다도 더 하게…. 옥살이 중에도 그런 옥살이가 어디 있겠어요? 감옥 중에 그런 감옥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예요. 그런 생각 하면 끔찍해요. 아이쿠, 내 자신이 끔찍한 생각을 해요. 저 사람의 복을 빌어 줄 필요 없어요. 3천만을 위해 기도를 하다가도 나를 빙자해 기도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기도 못 하겠단 말이예요. 하나님을 종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또 지옥가게 만들라고?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 끔찍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아버님 내게 들어오시옵소서. 내게 복 주십시요. 뭐 어떻고 어떻고' 이따위가 많다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잘 믿어 왔어요. 그래서 망하는 겁니다. 헛공사 많이 했어요.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날 몰라주고….' 한다구요. 여러분 대해 가지고 여러분 맘 알아주면 선생님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은 그게 다르다는 겁니다. 선생님 생각대로 다 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선생님이 못 하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다 해주는 것 같지만 마음대로 못 할 부분이 마음대로 해준 부분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여러분을 절대 지도 못 합니다. 여러분의 내심에서 그럴 수 없는 무엇이, 흐름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생님을 좋아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내가 되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라

사람은 주인을 따라 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위하는 것보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가정에서 축복을 받아요. 가정과 가정을 맞붙잡아 살려주고 또 가정을 희생시키고 사회를 위하여, 더 큰 것을 위하여 희생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선의 앞잡이가 됩니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은 천번 만번 희생을 해야 됩니다. 부모한테 불효해도 괜찮아요. 그래, 국난을 당해 있는 국가를 책임진 어떤 충신이 있다 할진대 그 길을 막는 여편네가 있고 사내가 있으면 칼을 뽑아 모가지를 쳐 갈겨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서는 희생하는 것이 원칙이예요.

선에는 선의 방향이 있습니다. 더 큰 선을 향하는 데에 하늘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나는 가정의 주인이 되겠다,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 세계의 주인이 되겠다, 어떤 거예요? 거기에 선의 기대를 닦았으면 선의 인연을 맺겠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자연적인 모든 것이 심적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세계 동향이 그렇게 돼 있고, 천지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고, 천리의 선의 궤도가 그렇게 돼 있더라 이거예요. 그게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할 거예요?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서겠다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거예요. 거기에는 뭐 자유당 민주당을 놓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뭘 놓고 싸우느냐? 하나님을 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 나가는 방향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을 놓고 싸우는 거예요. 하늘을 대해 보니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어차피 하늘과 지상에는 선의 주권이나 악의 주권 둘 중에 하나만 있게 되는 겁니다. 둘이 있을 수 없으니 싸우는 거예요. 그러니 악의 주권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싸워라, 싸워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 것이냐? 싸우는 시대에 있어서는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 나오는 세계적인 그 시대에 가면 어떨 것이냐? 세계가 하나의 통일세계라면 어떨 것이냐? 그때 가 가지고 하나님을 연구한다구요. 세계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연구하면 하나님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나 안 되나 보라구요. 공산주의자까지도 하나님을 연구해야 됩니다.

왜? 하나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의 세계를 놓고 하나님을 모시게 되어 있더라 이겁니다. 이미 그때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계는 하나의 형태를 갖추고 하나님을 연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연구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을 연구해야 돼요. 이제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어때요? 그 말이 거짓말 같아요? 지금은 욕을 먹더라도 사나이다운 배포를 갖고 나와야 됩니다. 그거 이해하겠어요?

가만히 두고 보라구요, 세계 형편이 어떻게 되나? 지금 세계가 뒤넘이치고 있다구요. 나는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압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인들은 절대 나라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세계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나 자신이 변하지 않도록 마음 걱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 심정을 복귀하라는 거예요. 내 심정, 내 마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마음이 됐느냐? 그러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어요. 우리 때에도 접선될 때…. 그러니 접선시키기 위한 책임과 소망과 배포를 갖고 출발하는 것이 왈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음악 콩쿨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 대한 시상과, 그다음에 웅변대회에서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 대한 시상과, 그 이외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번 기간을 통한 중등부 학생들의 시험결과에 대한 시상 등등의 시상식을 하였습니다.

상을 받는 그 배후에는 숨은 노력과 꿋꿋한 정신력이 있어

오늘 이러한 식을 가졌는데, 그런 결과는 한 날에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이 보는 식은 어저께 말씀을 듣고 그저께 말씀을 들은 바와 같이 단순한 시일 내에 되어지지 않았다 하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못해도 몇 해라는 기간을 통하여 뜻을 알고 뜻 앞에 자기가 내적으로 결심한 바가 한두 번이 아닌 노정을 거쳐와 가지고 이런 결과가 보여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상식을 대하는 여러분들이 그런 아이들을 칭찬하는 반면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이 컸다는 것과, 어떠한 고통의 환경이 있더라도 굴하지 않는 꾸준한 정신력을 갖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본받아 주기를 본인은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웅변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혹은 우표수집이 한갓 우리 교회의 한 행사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것을 움직여 가지고 우리가 전통적인 새로운 무엇을 세워 이것이 역사성을 띠게 하고, 앞으로 우리의 뜻이 확대되어 나가는 곳곳마다 여러분도 이렇게 싸워 나왔다는 전통적인 한 재료로서 후대에 남겨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금년보다도 명년, 명년보다도 그다음 해에는 더욱더 좋은 결과를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후대 사람들이 오는 데에 있어서 많은 자극과 도움이 되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번도 이날을 기해 시상식을 했는데 여러분이 오늘 받은 상품도 큰 의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나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한 번밖에 없는 날이요, 섭리적인 뜻으로 볼 때 중대한 날입니다. 이날 상으로 받은 그 물품은 여러분이 자손 만대에, 혹은 그 종족을 중심삼고 후대에 자랑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이념이 확대되어 가고, 우리 뜻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이러한 사람들이 앞으로 전세계 앞에 이런 상품을 갖고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번에 상품을 받은 여러분들은 더욱이나 뜻 깊게 생각하고 귀히 보관해야 되겠습니다. 몇 해 후에라도 오늘의 이런 상품들의 진열식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 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이것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하늘 앞에, 혹은 수많은 군중 앞에, 수많은 인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있기를 선생님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비록 작은 것이로되 이것을 통하여 후대 사람들 앞에 우리의 노력에 의한 자랑의 조건으로 길이길이 보관한다는 전통적인 정신도 기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명심하시고 상을 받은 여러분들은 귀히 보관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매해 이러한 대회를 가지려고 하는데 좀더 성황리에, 좀더 열렬하게 하여, 물론 금년에도 있는 성의로써 열렬한 모습을 보였지만, 과연 통일용사 아니고는 이런 사람이 없다고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을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금번 웅변대회는 그랬지만 앞으로 음악 콩쿨대회 같은 것은 좀더 질적으로 향상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도에 막대한 공헌을 한 우표수집 운동

그리고 우표수집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낱 작은 우표 한 장을 떼는 데는 불과 몇 푼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관심을 갖고 한 장의 우표를 뗀다는 사실은 숭고한 노력입니다. 숭고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나 이런 우표수집으로 상을 탄 사람들을 보면 대개 젊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중고등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건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앞으로 장년부도….

선생님이 한때 말하기를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구든지 한 달에 세번씩은 식구끼리 편지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편지할 때 40원짜리 우표를 붙이지 않고 1원짜리 우표를 붙인다 하게 되면 우리가 사업부에 배로 후원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세번씩이면 120원을…. 이렇게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휴지로 돌아갈 우표를 사용한 것이 이런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걸 보게 될 때에 우리의 움직임이 사소한 것 같지만 이것을 전체 국가적으로 볼 때 막대한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둔다는 사실을 우리 통일 신도에게 있어서 앞으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하나의 관습으로 남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 장년들도 그런 면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작년에 백만 장을 돌파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금년에 총 매수가 얼마예요? 「사업부장! 지금 안 가지고 나온 것 같습니다」 대략 얼마나되나? [한 30만 장] 한 30만 장. 작년보다 많이 줄었어요. 지금까지 이 우표수집을 해 가지고 전도하는 데 막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금액이 얼마예요? 80만 원, 근 100만 원 가까이 됐지요? 「작년에 근100만 원입니다」 여러분이 한 장 한 장 이렇게 모아 준 우표로 말미암아 작년에 얻어진 금액이 100만 원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백만 장을 표준 해 가지고, 200만 장을 표준해서 이런 것을 하자고 선생님이 말씀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금년에 그런 결과에 미치지 못한 것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작은 일에 마음을 놓지 마시고 세심한 관심을 가지시고 가나 오나…. 여기 중고등 학생들이 지금 우표수집에 노력했다는 말씀을 들었으니 어느 한 때라도 그런 정신을 잊지 마시고, 생활면에 있어서도 우표수집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한 풍습이 되면 우리 통일신도의 움직임에 정신적인 단결을…. 이것을 수집해서 물론 이익을 보는 것도 한 일면이겠지만, 이런 행사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통일이 되어 서로서로가 한 공동목표에 있어서 같은 심정으로 생활 감정을 같이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사실은 누구나 칭송할 수 있는 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명심하시고 이번에 내려가시면 금년부터 작년에 목표했던 그 양을 돌파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박수)

<말씀 요지>

생명문제와 영생의 노정은 원리원칙적이고 또 매우 복잡합니다. 은행에 예금해 둔 돈을 다시 찾는 데도 수속이 있고 절차가 까다로운데, 하물며 이미 죽은 생명을 다시 찾는 영생노정은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절차를 다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어려우니 순종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제일 귀하고 현명한 방법입니다.

자연의 이치도 봄에는 새잎이 무성하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잎이 아니라 그 잎을 나오게 하는 줄기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에 있어서도 생명과 같은 줄기를 자르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참부모를 세우기 위한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 아벨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내적으로 참부모를 복귀하기 위해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근본섭리(중심줄기)에 대적(對敵)하거나 방해하면 그는 천도(天道) 앞에 버림받게 되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여건이 조성된 환경에서 자신을 갖고 일을 추진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천적인 일을 하는데 어찌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막연히 천당 간다고 하는 신앙, 무조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을 하는 신앙, 생각이 깊지 않은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 1분 1초도 방심하지 말고 험하고 어렵고 좁은 생명길을 아버지와 인연 맺으면서 가야 하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사람에게는 심문(心門 마음의 문)이 있는 것같이 천성(天城)에도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천적인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때를 놓치지 말고 그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때는 어느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가, 어떤 마음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 나가야 하는가, 아버지의 어떤 마음부터 상속받아야 되겠는가를 연구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시며 공평하십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세 번 이상 그 마음을 통해서 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감화로 생명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일생 동안 최소한 세 번 이상 하늘이 찾아오게 되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하늘과 인연을 맺을 길이 끊어져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나큰 유업을 상속받을 우리는 젖 먹을 때와 자랄 때와 자란 후의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언제까지나 키워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고 자라서 아버지의 일을 분담해야 합니다. 빨리 자라서 아버지의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충효열(忠孝烈)은 가르쳐 주어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이 우러나서 자동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또한 남으로부터 듣거나 배우거나 끌려서 하늘 앞에 지성(至誠)을 들이는 것보다 심정이 우러나서 스스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오늘 이와 같은 한 시간을 맞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오늘 여기에 참석한 우리들은 이제부터 각자가 사명감을 느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나서는 그 어떠한 곳에서든지 자기가 일단 천주를 대신해서 섰다는 것을 인식할 때는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실감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됩니다. 뜻을 대해서나 혹은 자기의 생애노정 생활을 대해서, 혹은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어떠한 면에서든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책임질 수 없는 일 일진대 여기에는 간섭을 말고, 또 거기에 행동적인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단 자기가 움직이는 데 있어서 하늘땅 앞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이런 생활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남 모르는 이념을 품고 남 모르는 심정적인 이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우리의 활동무대가 된다는 걸 우리들이 자부하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이 일을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비장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 각오는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거, 지난날 맹세와 각오를 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각오를 해서는 안 될 것이며, 맹세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책임지는 데 있어서 내 일대에 책임을 못지겠거든 내 후손을 통해서라도 책임을 지어야겠다는 이런, 하늘땅 앞에 맹세적인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이념을 대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 이념을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많은 고난이 있다고 봅니다. 어려움도 있다고 보고 있어요. 이 일을 우리들이 책임진 이상 우리는 개척자예요, 개척자. 또, 선구자예요. 선구자와 개척자가 항시 가져야 할 것은 용단심(勇斷心)입니다. 용단심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는 용단을 지어야 된다는 거예요. 용단을 짓는 데는 자기 생명을 걸고 용단을 내려야 돼요. 자기 생명을 걸어 놓고 용단을 내리기 전에는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없고 인류를 살릴 수 있는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용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사리가 통할 수 있는 면에서 용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정당한 것이지만 사리가 통하지 않고 신념만을 통해서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신념을 앞세워 놓고, 자기 생명을 발판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자기가 밟고 올라서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리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역경적인 환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고비에 봉착할 때가 많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자기가 일단 책임진 문제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이 협조해 주는 것을 꺼려해야 합니다. 이런 신념을 갖추어 가지고 용단을 내려 행진하는 그 사람은 틀림없이 개척자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 통일신도들은 앞으로 편안하고 행복스럽고 좋은 생활을 바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활 상태보다도 안락한 그런 요소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건 있으면 좋은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각자가 있는 힘을 다하여 이 땅 위에 남아진 슬픔의 짐을 어느 정도까지 짊어질 수 있으며, 고통의 짐을 어느 정도까지 짊어질 수 있으며, 그다음에는 모든 싸움의 분야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이걸 다 한 후에, 이것을 자기가 책임 있게 해결한 후에 거기에 대비되는 보상이라고 할까, 상금이라고 하는 것이 부대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 일도 그렇거늘 하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념은 높게 갖고 생활은 낮게 해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각자가 높은 이념을 갖고 실천에 있어서는 낮은 생활에서 채찍질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옥 밑창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 있어서도 높은 이념은 잃지 않아야 돼요. 그 관념 앞에 내가 서 가지고 생활적인 깊은 안식처를 이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심중에 안식의 기반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괴롭다고 해서 밀려 나가고 낙망하고 탄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은 지옥 가서도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 마음에 하늘을 위하고 하늘 앞에 심정적으로 체휼되는 모든 것은 누가 침범할 도리가 없어요. 어떠한 슬픔이나 어떠한 고통이나 어떠한 역경이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는 거예요. 빼앗길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후퇴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이런 큰 싸움을 싸워 나가기 위해서는 높은 이념을 갖는 반면 낮은 생활을 영위해 나가야 합니다. 낮은 생활에서 높은 이념의 감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생활환경, 슬픈 생활환경, 고통스러운 생활환경, 싸움의 생활환경에 있어서 채찍질하며 여러분이 생활을 영위해 나가면 이는 반드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이 있다면 자기 몸이 움직이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안 돼요. 앞에 말한 대로 나가면 틀림없이 오래지 않은 시일 내에 이 세계를 우리 손아귀에 넣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차 얘기하는 거예요.

오늘 이와 같이 의의 있는 날에 선생님이 이런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 그런 면을 책임져 줘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슬픔, 하늘의 고통, 하늘의 싸움, 하늘의 분함과 억울함을 하늘 앞에 돌릴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우리가 힘 닿는 대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가, 우리가, 슬픔이 있으면 우리가 하겠다는, 고통이 있으면 우리가, 역경이 있으면 우리가, 싸움이 있으면 우리가, 이래 가지고 하늘에 안식을 드릴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편안하지 않아야 돼요.

그렇게 나가면, 여러분이 앞서 나가서 일선에 진을 치고 있으면 그 후방은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평화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이제 언제 여러분에게 심정적인 기준까지 가르쳐 줘 가지고 할 사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선에 서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때는 바쁩니다. 촌음을 다투는 이때에 있어서 언제 길러 가지고 가겠어요? 그러니 우리는 세계무대를 향해서, 더욱이나 청년 남녀들은 각자가 그런 책임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집은 못 지으나마 토대라도 닦아 놓아야 되겠다, 내가 갖춘 인격은 부족하더라도 성의와 눈물어린 실적을 후대 사람에게 남겨 놓겠다 하는 정신을 갖고 나가면 기필코 우리가 행군하고 나간 그 뒤에는 평화의 함성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선생님이 지금까지도 그렇게 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가려고 하는 걸 아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예」

통일교인들에게는 원리무장, 조직훈련, 생활훈련이 중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수련도 많이 시키겠고, 조금만 거슬리면 군대 훈련 이상의 훈련을 전부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다방면의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통일교회 선생님의 방침이 제1차는 원리무장, 제2차는 조직훈련, 제3차는 단체생활 훈련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식구가 된 여러분들은 앞으로 큰 아파트에 갖다 입주시켜 가지고 열 식구면 열 식구 전부 다 몽땅 몇 개월 생활 훈련을 시켜서 내보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어요.

또, 사탄세계에 젖어진 습관 그냥 그대로 물이 들어 있을 가망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여러분을 대해서 원리무장을 하라고 했지만 이제부터는 조직훈련입니다. 조직 안 가지고는 싸울 수 없어요. 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심정적 기반 위에 조직적인 이런 무대를 갖추어서 그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승리적인 발판이 벌어진 그 기대 위에서 앞으로 여러분들의 가정적인 모든 기준이 벌어지니 그 가정들은 또다시 단체적으로 훈련을 시켜 가지고 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시고,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절대 생각을 높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불을 내려서 한꺼번에 다 해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버님, 안 해줘도 좋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이 진리 갖고도, 우리가 심정적으로 체휼한 이 사실을 갖고도 세계를 움직일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틀림없다구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더욱이나 대학을 나온 여자분들은 앞으로 전부 다 구루마를 좀 끌게 하려고 합니다. 계획이 그렇다구요. 지금 당장은 안 하겠지만 어느 한때 그런 코스를 거쳐 나갈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뒤집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에서 바라보는 소망의 기준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몽땅 뒤집어 가지고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더욱이나 여자, 처녀 학생들, 지금까지는 베니칠하고 분칠하고 노란 것 빨간 것 빤질빤질하게 칠하는 것을 가만뒀지만 앞으로는 그런 거 못 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겠지만, 그렇게 알고 단단한 각오를 해야 되겠어요. 약속해요? 「예」

그러면 내가 노래 또 하나 할께요. 그런 노래를 할 거라구요, 그런 노래. 이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노래를 잘 배우라구요. 무슨 자유천지? 「마음의 자유천지」 `마음의 자유천지'라는 노래예요. 내가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이 실감을 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르기 좋아서 부르는 것보다도 청년 남녀들에게 그러한 심정의 체휼적인 감정을 체휼시키기 위해서 부른다는 것입니다.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흉볼는지는 몰라요. 그건 이해 못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흉봐도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노래 부르는 걸 듣고 과연 그런 실감이 나는 지 한번…. 농촌 노래를 부르면 여러분 마음이 농촌으로 간다는 거예요. 실감이 나는지 한번 느껴 보라는 말입니다. (노래하심) 기분이 잘 안 났다구. 다시 할께요. 이젠 농촌에 가는 거예요! 지금 호화찬란하게 살던 것을 연상하란 말이예요. (다시 노래하심. 박수)

뭘 좀 먹고 하자구요. 그다음엔 `돌밭에….' 할께요. 우리 삼천리반도 강산이 좋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꼼짝달싹하지 않게끔 이 땅을 딱 붙들고, 딱 밟고 서 가지고 이 반도 강산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해서 진군해야 되겠다구요. (`방아타령' 노래하심) 그다음에는 `고려인의 산천' 하자구요. (`고려인의 산천' 함께 부르심)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자녀들의 결혼식에는 반드시 부모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복귀섭리하신 목적도 반드시 중심의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서부터 자녀들에 대해서 축복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때가 오기를 심히 고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왜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결혼식을 하게 됐느냐? 노아의 가정에 있어서나, 혹은 아담의 가정에 있어서나, 여러분이 원리에서 배운 거와 마찬가지로, 세 아들을 대신한 세 자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섯 사람하고 부모를 더하여 여덟 사람이 완결되면 복귀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대는 조성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담이나, 혹은 노아 할아버지는 자기들이 하늘 앞에 사명을 맡고 책임을 다했을망정 그 자녀들과는 어떤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또다시 실패할 수 있는 동기를 빚어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때에 와서는 부모의 입장과 자녀의 입장에서도 한 조건을 세워 가지고 아무리 자녀들이 실수했다 할지라도 부모에게는 그 실수함이 원인이 되지 않게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와 같은 식을 하는 것입니다. 또, 성례식을 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녀로서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식이 있어야 됩니다. 부모 앞에 자녀가 된다는 식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먼저는 자녀로서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식이 있을 거예요. 부모의 축복을 받고 하늘 앞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의 선서식이 있고, 그다음에 문답이 있고, 그다음에는 축복함으로 말미암아 제 1차식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난 후에 신랑 신부들이 예복을 입고 여기에 입장할 것입니다. 지금 저기서 세 자녀들이 나올 거예요. 나와 가지고 여기 한꺼번에 설 것입니다. 한꺼번에 서면 선서가 있는데 어떤 내용의 선서가 있느냐면 `우리들은 본성, 본연의….' 거 어떻게 되던가? 그거 읽어 줘요. (녹음이 잠시 끊김)

지금까지 복귀노정에서 하늘은 세 아들을 찾기 위한 수고의 역사를 해 왔습니다. 즉, 말하자면 세 아들은 어려운 길을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니 영원한 행복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세웠던 영원한 행복,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갑니다. 그런 영원한 행복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축복을 해 달라는 이런 선서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있은 후에는 선생님이 물을 것입니다. 묻는데 무엇을 묻느냐? 그 세 아들도 악한 세상에서 삶으로 말미암아 또 실수할지 모른다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세 아들에 대해서 딱 조건을 세워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만약 복귀노정의 뜻 앞에 있어서 실수할 때는 그 책임은 하늘이 처리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약속하는가?'라고 물으면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축복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과 땅 앞에 있어서 자녀로 허락하는 축복의 기도와 더불어 선포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일단락 끝나는 거예요.

그다음엔 돌아 나와 가지고 예복을 입고 행진하는 것입니다. 제2의 순서에 들어가서는 맨 처음에 노래가 있을 거예요. 노래가 있지요? 행진가가 있는데…. [아닙니다] 노래가 없어요? 「`오너라 동무야'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거 노래하지 말고…. (녹음이 잠시 끊김)

흑판이 있으면 좀 설명하자구요. 삼배 한 후 그다음에는 문답선서가 있습니다. 그 문답선서가 뭐냐 하면, 내가 신랑 신부 대해서 물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누구 누구를 영원한 아내로, 혹은 남편으로 천주와 함께 배필로 맞을 것을 삼위신과 참부모 앞에 맹세하는고?' 하고 물으면 `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기도해 주고 일배가 끝나고 삼배가 끝나면 일단 식이 끝나는 거예요.

삼배 하고 문답선서 하고 선포, 축도한 후에 한걸음 나와 가지고 일배 할 때 여러분이 전부 다 경배하는 거예요. 경배보다도 반배로 해야 되겠구만.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여기 앉아있어야 됩니까?」 서 있어야지. 전부 서야 된다구요. 그다음에 한걸음 나와서 삼배 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두 걸음 나오면 선생님이 예물을 갖고 있다가 줄 거예요. 신랑을 통해 예물을 주면 나눠 가지고 자기들끼리 예물교환 하고 끝나면 바른쪽으로 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둘이 나와 가지고 이제 와 마찬가지로 반배 하고 문답선서 한 후에 선포의 축도가 있고, 그다음에 일배 하고 삼배 하고 예물교환 하고 여기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번 다 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지요?

「신랑 신부가 반배 해야 됩니까?」 원래는 경배해야 되는데…. 「삼배 할 때 우리도 해야 됩니까?」 신랑 신부가 삼배 하고 나서 일배 할 때 하는 거예요. 일배가 뭐냐 하면, 일배가 왜 필요하냐 하면 하늘과 땅의 3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람의 수를 합하면 7수가 되는데 이것은 인간을 대표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부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번 하는 것을 반드시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쭉 세 번 하면 끝난다구요. 끝난 뒤에는 이 세 사람 놓고 전체 축복을 해 줄 거예요. 전체 축복을 한 후에는 코러스 있지요? 「예」 잘 들으란 말이예요. 전체 축복한 후에 코러스가 있고, 코러스가 끝난 다음에 여러분이 축시를 할 거예요. 여기 이렇게 서 있을 것이기 때문에 뒤에서 할 수 없으니까 요쪽으로 나와서 하는 거예요. 여자 분은 이쪽에서 하고 남자 분은 이쪽에 와서 축시나 축사를 한단 말이예요. (손으로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심)

축사가 끝난 다음에는 선생님이 예물을 줄 거예요. 예물을 주는 데는 식이 끝나는 대로 입을 옷도 있을 것이고 신을 신발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물을 하사한다는 거예요. 예물을 준 후에는 원복씨네 삼위기대가 줄 예물도 있어요. 원복씨는 원필씨에게 주고, 정옥씨는 효원씨한테 주고, 득삼씨는 영휘씨한테 주고, 또 부처끼리도 이렇게 주는 거예요.

3자녀가 예물을 받았으니 그다음에는 예물을 드리는 게 있습니다. 3자녀가 예물을 봉정한다는 거예요. 이걸 갖고 이것이 끝나면 교회 대표 예물증정이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남자는 이쪽으로 나와서 주는데 송도욱 장로는 원필이에게 주고, 안창성이는 효원씨에게 주고, 서명진이는 영휘씨에게 주는 겁니다.

거 주는데 신랑에게만 주는 게 아니고 신랑 신부에게 주는 예물이니까 둘이 같이 받는 마음으로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축전이 있습니다. 이걸 낭독해 주면 식은 끝나는 거예요. 알겠어요, 대개? 이제 그런 내용의 식을 할 거예요. 알겠어요, 이 신랑들? 나중에 틀리면 안 되겠다구요. (코러스 '오너라 동무들아'를 부름)

선 서

「우리들은 본성 본연의 참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복귀노정을 승리하여 찾아왔사오니 오늘 자녀로서 기뻐 받으시옵고 창조이념으로 허락하시려던 영원한 행복의 축복을 하여 주시옵소서. (세 가정)」

문 답

그대들은 실수하거나 혹은 잘못하였을 때는 하늘이 자유로 처리할 것을 약속하는가? 「예」

그대들은 창조 본연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참부모 앞에 효자 효녀와 충신 열녀가 되기를 약속하는가? 「예」

그대들은 본성의 자녀로서 피조만물을 주관하는 동시에 그의 화동의 주체가 되기를 약속하는가? 「예」

그대들은 선의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제3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선의 아들딸을 양육하기를 약속하는가? 「예」

축도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세 아들을 찾기 위한 슬픔의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아버지의 소원의 환경을 이루지 못한 채 나온 것을 아는 저희들은 이 시간 슬픔으로 아버지를 대하는 바입니다. 복귀노정을 세우기 위하여 하루 한날같이 참아 오시면서 백성을 세우시고 자녀를 세우시기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먼저 저희들은 황공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최후의 완결을 짓기 위해서는 세 아들이 문제였던 것을 알고 있사오며, 세 아들을 중심삼은 축복의 허락은 만 우주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중심의 요점으로 돼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아담가정도 그러하였고, 노아가정도 그러하였고, 노아가 실수한 것을 찾기 위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그러하였고, 야곱을 중심삼은 열두 아들도 그러하였고, 열두 아들을 중심삼은 70가족도 그러하였습니다. 이것이 연장을 보아 모세시대에 있어서 열두 지파, 70장로, 예수시대를 거쳐 세 제자와 열두 사도 그리고 70문도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한스러웠던 복귀의 원한은 세 아들이 없으면 해원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이는 창조원칙으로 3수의 조건을 넘어야 할 축복의 은사였던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수고하신 아버지의 뜻을 찾아 복귀의 한스러운 노정을 따라오던 인류들은 오늘날 지극히 적은 동반구에 있는 조그만 한반도를 중심삼고 하늘의 한을 풀 수 있는 세 아들 세 딸을 여기에 세울 수 있는 축복의 은사의 터전을 갖게 된 것을, 아버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지 않을 수 없사오며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이 시간 마음과 몸을 다 바치옵니다.

이제 여기의 세 아들 세 딸을 축복받을 수 있는 본연의 아들딸 대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아버지를 진정한 우리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참다운 효자가 될 것을 맹세하였사옵고, 참다운 효녀가 될 것을 맹세하였사옵고, 참다운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만물주관권을 세울 것을 약속하였사옵고, 선의 세계에 있어서 참다운 선의 조상이 될 것을 약속하였사옵니다. 이 약속이 길이길이 아버지의 심정과 더불어 하나되어 영광의 동산을 이루어 선의 이념권에 있어서 뭇 피조물들이 이들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영광의 날을 어서 속히 보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들딸의 약속을 받았사오니 오늘 당신이 허락하시옵고 축복하신 터전 위에 새로운 선의 한날을 세우고자 원하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만천지에 선포하시옵고, 기쁘심의 약속을 허락하시어서 이들로 하여금 승리의 표적으로 삼으시옵고, 자랑의 표적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제 세 아들딸은 머리 숙여 아버지 앞에 드린 몸들이오니, 저희들은 백 번 죽고 천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 앞에 약속한 충절이 변치 않을 것을 맹세하는 이 시간이오니, 아버지, 받아 주시옵소서. 땅 위에 있는 참부모가 대신하여 이들을 받고자 원하오니 하늘땅이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고, 만천주가 이 시간 머리 숙이는 가운데 이 지구 위에 아버지가 동반할 것을 요구하고 원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쁨의 축복이 여기 나타나게 하시옵고, 영광의 은사가 여기 같이하여 주시옵고, 승리의 행복이 저희들 머리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에 있는 성부 성자 성신과 땅 위에 있는 참부모, 이들을 중심삼은 만천하, 혹은 만천주에 있는,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천군 천사, 또한 땅 위에 선을 바라고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이 이 시간 약속과 더불어 기쁨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삼위신의 영광이 땅 위에 있는 저희들 위에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시기를 이 시간 반포하오며, 보내신 아들딸 이름으로써 축복하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코러스 '오너라 동무들아'를 부름)

말 씀

이와 같은 성례식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부터 이상하셨던 소망의 한 일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어 놓고 우리 시조 아담 해와를 만물의 주인으로 세워 아담 해와가 성숙한 후에 성례식을 이루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연고로 창조이념의 심정으로 품고 나오시던 이 목적은 오늘날까지 한 번도 이루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성례라는 일은 창조이상의 심정 가운데 있었던 일이요, 또 아담해와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소망에도 있었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역사적인 일인 것이며 이 시간 우리가 전부 합하여 축하하는 마음을 갖고 대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식전에 참석한 신랑 신부들이 이 한 순간에 있는 것은 창세 이후 처음 벌어지는 것임을 절감해야 될 것입니다.

더욱이나 세 아들이라는 입장은 복귀노정에 있어서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어서도 세 제자가 뜻을 받들어 예수님과 생사를 같이했다면 오늘날 2천 년이라는 복귀노정의 연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세 신랑과 세 신부는 이제부터 복귀의 운명을 책임진 이 마당에 있어서 자기들의 일신 일신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자기들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 하늘땅이 좌우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더욱이나 앞날의 소망의 터전을 닦아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책임을 짊어지고 하늘을 대하나 땅을 대하나, 혹은 만민을 대하나 우리는 제물의 입장에서 맡은 바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심정을 이 한 시간 더욱 굳건히 가져야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오를 가진 후에, 이제부터 우리들은 이 결혼에 대해서, 이 성례식에 대한 의의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래 일남 일녀를 지어 놓았다는 것은, 여러분이 원리를 다 배워서 알고 있지만, 그 일남 일녀라는 것은 무형의 하나님의 실체대상으로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내적 성상의 남성격, 즉 플러스 성품을 대신하고, 여자는 내적 성상의 여성격, 즉 마이너스 성품을 대신한 실체대상으로 지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조이념이라는 것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것이 하나의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같이 합성일체화하여 그 본체를 닮기 위한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잘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두 부부라는 것은, 신랑 신부라는 것은 개인 개인이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는 하나님의 일성(一性) 일성(一性)을 분배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더욱이나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부부가 성례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이냐? 천지 창조물의 어떤 물건이나 하나님의 양적 성품과 음적 성품을 닮게 지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양적 성품과 음적 성품을 닮게 지어진 모든 천지만물을 대신한 우리 인간 남자 여자는 전체 성상을 대신한 중심체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두 부부가 성례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전체 창조이념을 결합시키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천지만물이 들어와 있고 온 만상 전체가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또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땅 위에 실체 대상으로 나타난 동시에 참부모를 대신해서,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적인 면에서 이런 의의가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는 바이지만 더욱 이 시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양적인 성상을 대신했고 실체 아버지의 분신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동시에 여자는 내적인 하나님의 음적인 성상을 대신했고 실체 어머니의 분신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성혼을 이루어 두 부부가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다는 것은 온 천주를 품는 것임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됩니다. 더욱이나 신랑 신부 되는 분은 기억해야 돼요. 신랑 되시는 분과 신부 되시는 분이 만나는 그 순간, 생활을 통하든가 생애를 통해 서로 대한다는 그 순간은 우주 상봉이라는 관념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을 대신해서는 아버지의 일성을 대신했고, 땅을 대신해서는 참부모를 대신했고, 더 나아가서 세상의 온 천지만물을 창조한 이후 이 땅위에 왔다 갔던 수많은 남성을 대신했고, 또 앞으로 우리 후손을 통하여 올 수많은 남자를 대신한 입장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어머니로부터 이 땅 위의 수많은 여성, 앞으로 올 수많은 여자를 대신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성혼을 하여 한몸을 이룬다는 것은 천주사적인 결합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이념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결혼관이라는 것을 재차 여러분들 앞에 강조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자기 남편을 대하든가, 혹은 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남편은 자기를 세상적으로 낳아 준 아버지 대신이요, 부인은 어머니 대신입니다. 또, 남편은 오빠 대신이요, 동생 대신이요, 부인은 누나 대신이요, 누이동생 대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이 통하는 데 있어서만이 하늘이 허락할 수 있는 참부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 절실히 느껴야 될 것입니다.

이런 의의에서, 이런 각오 밑에서 오늘 이 식전을 진행코자 하니 청중 여러분들도 그렇고, 당사자 여러분도 그러한 각오 밑에서 이 식에 참여해 주신 줄 알고 이제부터 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선 서

「축복받은 참아들딸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성혼을 허락 하시옵소서. (김원필)」

문 답

김원필 정달옥, 그대들은 영원한 신랑 신부로서 천주와 함께 즐기며 참 배필이 될 것을 삼위신과 참부모 앞에 맹세하는가? 「예」

그대들은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선의 참된 신랑 신부로서 신랑은 뼈를 대신하고 신부는 살을 대신하여 두 몸이 뼈와 살이 합한 일체를 이루기를 맹세하는가?「예」

그대들은 창조이념으로 바라던 전 피조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참다운 주인들로서 생육하고 번식하여 만천주를 주관하는 동시에 선의 아들딸을 이땅 위에 번식하여 아버지 앞에 드릴 것을 맹세하는가?「예」

축 도

아담이 타락하여 이러한 한날을 보지 못함이 아버지의 슬픔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한스러운 6천 년의 역사가 지나가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새로운 때가 이 시간서부터 만민 위에 접어든다는 것을 생각하올 때 감사드리옵니다. 땅 위에 없었던 참부모를 모셔 놓고 땅 위에 찾지 못하였던 참아들딸을 찾아 이 땅 위에서 성혼의 축복을 할 수 있는 귀한 사실을 놓고 하늘과 땅은 이 시간 기뻐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니다.

오늘 맺어지는 두 신랑 신부는 아버지 앞에 맹세한 그 뜻을 중심삼고 참부모 앞에 효자 효녀가 돼야 할 것을 이 시간 더욱 느끼는 동시에 만우주를 대하여 인간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참다운 부부가 되고 다시 선의 조상들로서, 새로운 시대에 타락한 한을 벗어난 부모들로서 아버지의 영광을 영원히 받들 수 있는 축복받는 영원한 배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은 이 시간 손을 들어 축복하옵나니 만천하는 즐기어 이 축복과 화동하시옵소서. 아버지와 참부모와 이 자녀들의 이름을 높이어 이 시간한 기쁨의 날을 선포하오니 즐거움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보내신 아들딸의 이름으로써 축복의 선포를 하나이다. 아멘.

선 서

「축복받은 참아들딸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성혼을 허락하시옵소서. (유효원)」

문 답

유효원 사길자, 그대들은 영원한 신랑 신부로서 천주와 함께 즐기며 참된 배필이 될 것을 삼위신과 참부모 앞에 맹세하는가? 「예」

그대들은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선한 신랑과 신부로서 신랑은 뼈를 대신하고 신부는 살을 대신하여 둘이 한 몸 될 것을 맹세하는가? 「예」

그대들은 천지창조를 하실 때 바라시던 참다운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생육하고 번식하여 선한 세계의 참된 조상이 될 것을 맹세하는가? 「예」

축 도

예수를 땅 위에 보내시어 복귀하시려던 슬픔의 감정이 천지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예수와 성신이 2천 년 동안 수고하여 슬프심의 한을 풀기 위한 복귀의 성례의 날을 고대했던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오늘 여기에 두 아들딸을 세우심을, 아버지, 기쁘게 축복하시옵소서. 하늘과 땅이 화합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예수와 성신의 한을 풀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성도들의 한을 풀 수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 그 외에 모든 영인들과 또 선을 지향하여 수고한 지상에 있는 참다운 선의 아들딸과 그 외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간 위에도 오늘 축복의 날로 하여금 은사를 허락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와 같이 기쁜 날 하늘 은사가 있어 만천하의 새로운 혜택의 조건이 성립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이날 참다운 두 아들딸이 성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 자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하늘과 땅, 만우주의 어떤 존재도 이날 기쁘심의 성혼의 축복을 즐거움으로 맞아 주시옵고, 하늘을 위주한 전피조세계도 이 시간 기쁘심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은사의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의 조상이 되고,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축복의 기원이 될 것을, 하늘과 땅이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고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에 있는 삼위신과 땅 위에 있는 참부모와 이들의 오늘 이루어지는 성혼의 축복 위에 아버지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땅에 보내신 참 아들과 딸들은 이들 앞에 하늘을 대신하여 선포하면서 축복하오니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멘.

선 서

「축복받은 참아들딸에게 이 자리에서 성혼을 허락하시옵소서. (김영휘)」

문 답

김영휘 정대화, 그대들은 영원한 신랑 신부로서 천주와 함께 즐기며 참된 배필 될 것을 삼위신과 참부모 앞에 맹세하는가? 「예」

그대들은 영원한 이상으로 바라던 선의 신랑과 신부로서 신랑은 뼈를 대신하고 신부는 살을 대신하여 두 몸이 한 몸 될 것을 맹세하는가? 「예」

그대들은 온 천주를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들로서 만물을 주관하여 참된 세계의 조상이 되어 선한 아들딸을 하늘 앞에 드리기를 맹세하는가? 「예」

축 도

기쁘도다 승리의 날, 아버지의 영광과 더불어 새 나라의 축복을 허락하시옵고, 만민과 만물과 땅이 화합하여 하늘의 영광을 높이 찬양할지어다. 수고의 노정을 거쳐온 당신의 새로운 아들딸이 여기 있사오니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창조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신랑 신부로서, 복귀의 심정을 대신한 신랑 신부로서, 소망의 심정을 대신한 신랑 신부로서 오늘 기쁨의 예식을 올릴 수 있는 이 기쁜 성혼의 축복을 만천주에 노래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을 위시하고 하늘의 보호자를 위시하고 천주에 있는 모든 만피조물을 위시하여 아버지의 기쁨이 넘쳐 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이 두 아들딸이 영광 가운데서 이루는 성혼을, 아버지, 허락하셨사오니 두 몸이 하나되어 만피조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로서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지킬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 충신 열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참석한 뭇 무리와 더불어 기쁨의 영광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천상이나 지상 온 피조세계에서도 화동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길이길이 찬양할 수 있으며 높일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삼위신과 참부모와 아들딸들의 이름으로써 이 시간 기쁘심의 이 한 식을 하늘과 땅과 더불어 선포하오니,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들과 딸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이계순씨의 축가, 변진수씨의 축시 낭독, 황환채·박영숙·황진후·박봉애 제씨의 축가가 있었음)

기 도

6천 년의 한스러웠던 복귀의 섭리가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의 희생을 보여 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선조 선열들을 희생시켜 왔음을 저희들이 배웠습니다. 한때의 한날을 찾아서 한 중심과 더불어 한 해결점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심정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사오나 알지 못한 채 흘러왔던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보잘것없는 소수의 무리를 모아 놓으시옵고 천지의 대경륜을 결정하는 이 마당에 임하게 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 황공함을 금할 바가 없나이다.

오늘에 느낀 바의 감사가 있다 할진대는 영원히 사라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에 각오한 바가 있사올진대는 아버지 앞에 가서 자랑하는 아들딸이라고 칭찬받을 때까지 변할 줄 모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에 새로운 맹세와 각오한 바가 있사올진대는 사탄세계 앞에 그 위치를 자랑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기쁜 날을 당하여 저희들이 기뻐하는 것이 한계권 내에 있는, 시간에 제한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슬퍼하고 있음을, 아버지, 아시옵고 자유로운 저나라에 가서 영원 무궁토록 오늘과 같은 날을 즐기는 식구들이 손에 손을 붙잡고 마음에 마음을 통하여 화동할 수 있는 영광의 날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날이 저희 앞에 올 것을 소망으로 하고 시간권 내에 있는 저희들이 시간성을 넘지 못한 것을 염려하면서 이 시간 끝나려고 하는 마당에 있사오니, 아버지, 고대하는 저희 심정 위에 풍부한 아버지의 은사를 가하시옵고, 어떠한 자리에 임할지라도 기뻐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떠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참고 넘을 수 있는 하늘의 힘이 저희들에게 더욱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나누어질지라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은 7일 기간을 지내는 안식의 새로운 역사적 부활의 날인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옵니다. 이 부활의 날은 6천 년만에 처음 벌어지는 날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아들딸로 하여금 새로운 이상세계에로 출발할 수 있는 부활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영광을 길이길이 아버지와 더불어 노래할 수 있는 영원의 부활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일주일 기간, 아버지, 지방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고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당신의 아들딸들도 많이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같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또 당신이 수고하시어 세우신 뭇 자녀들 가운데도 때를 알지 못하여 어둠에서 헤매는 무리도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긍휼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사탄세계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을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맡긴 바의 책임과 맡은 바의 책임이 귀중한 것을 저희들이 더욱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고, 이제 책임 다한 노정에서 먼저 제물이 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나설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의 기쁨을 통하여 천상에 있는 수많은 천천만 천군 천사들 위에, 하늘땅 위에 새로운 특사의 은사를 가하시옵고, 은사 위에 은사의 영광이 더하여지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오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이번 기간에 남한 각지 400여 곳에 나가 전도해서 이제는 많은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니만큼 이제부터 우리 통일신도들이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이제 협회장도 말씀했지만 피땀을 흘려 가면서 그 지방이면 지방을 부여안고 생명을 각오하고 싸워 준 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애착심을 끊어 버리는 섭리를 해 나오신 하나님

​여러분들 앞에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는 우리가 싸워야 할 때가 왔고, 또 하늘이 바라는 시기를 대하는 입장에 처해 있어서 우리들은 어떤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 개인적인 각오보다도 하늘땅을 대신해서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땅을 움직일 수 있는 동시에, 수많은 인류를 움직일 수 있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번 전도기간을 통해서 절절이 체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적인 기준을 우리들이 먼저 알았기 때문에 이 때가 어떤 때냐 하는 걸 잘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반드시 선한 무리들을 이끌게 될 때 평평한 길을 통해서 이끌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밟히는 자리에서도 눈물과 땀과 피의 재단을 연하여서 지금까지 역사를 붙들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역사적인 서적을 보나 섭리적인 노정을 관찰해 보더라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만한 역사의 문화를 찾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 환경에서 즐기며 안락한 자리에서 살고 있던 무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밟히고 쫓김받는 무리들을 통하여,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에 의해 이것이 이루어져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치고, 혹은 사회,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역사는 엮어져 나왔고 지금까지 인류의 문화는 발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는 어떠한 때냐? 양심을 가진 자나, 혹은 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새로운 각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때는 자기가 처하고 있는 그 사회에 있어서 애착심을 잃어버린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땅을 대해 섭리하는 데 있어서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게 될 때 그들을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끊는 길로 몰아내야 합니다. 가정으로부터 자기 육신으로부터 세상에는 어떤 욕망적인 속성이 다 있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제거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비단 종교인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종교면 종교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할진대는 최후의 종말시대에는 어떠한 세계가 올 것이냐? 거기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애착심을 잃어버리는 그런 사회환경으로 하나님은 몰아넣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은 어떤 때냐? 끝날은 어떤 때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어떠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명을 기울여 나오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애착심이 점점점점 희미해져 가지고 마침내는 잃어버리는 때입니다. 그런 종말시대가 반드시 어느 한 때에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세우려 하는 나라와 악이 이끌어 나오는 세계와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애착심을 가져 가지고는 하늘의 일은 달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필코 목적을 달성하고 뜻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할진대는 기필코 땅 위에 있어서 수많은 인류, 혹은 국가에 대한 애착심, 민족에 대한 애착심, 혹은 자기가 하고 있는 학문에 대한 애착심, 더 나아가서는 가정에 대해서, 혹은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각 분야 각 부처에 있어서 애착심을 끊어 버리는 것으로써 하늘은 섭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총괄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현재를 총괄적으로 관찰해 보게 될 때, 민주와 공산세계가 대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조가 지금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민주진영에 있는 사람 자신들도 민주진영에 대해서 애착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면 공산주의자들도 공산주의에 대해서 애착심을 잃어버리는 방향으로 반드시 세계는 움직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투쟁적인 현상을 거쳐 가지고 인류에 대한 애착심을 끊는 방향으로 지금까지 역사는 전개되면서 종말적인 노정을 이어 나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끊고 하나님의 대신자와 인연 맺어야

우리가 하늘편 입장에서 관찰해 보게 될 때, 반드시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를 넘어 세계, 천주의 사상권까지도 그런 경향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종교나 양심을 붙들고 나가는 교인, 혹은 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그런 경향으로 반드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성교회나 모든 종교들을 보게 될 때, 그 사람들이 기필코 새로운 종단을 향한 본래의 뜻을 대해야 할때가 왔기 때문에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분열이 벌어지고,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 순교를 당하고 나가던 수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종말시대는 반드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야 되느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악의 세상과 선의 세상, 악의 세상에서 한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산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하기 위한 때가 어느 때냐 하면 심판시대입니다. 그때가 심판시대예요.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에 애착심을 가지고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하늘 앞에 크나큰 심판의 자리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전부 정리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언제나 나를 믿을 수 없고, 어떤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경지의 고독한 자리까지 내몰아 가지고, 애착심을 갖고 세상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질 수 없는 자리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몰아 가지고 거기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을 표하게 해 가지고 다시 하늘을 바라봐 하늘에 대한 애착심을 일으켜야 할 섭리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이 시대에 있어서 이 시대가 심판 시기니만큼 심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씀심판인 동시에 인격심판이요, 인격심판인 동시에 심정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원리를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심판하는 게 아니예요. 불을 퍼붓고 이 땅에 천변지이가 생겨나 가지고 다 없어지는 게 아니예요. 절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판에는 말씀심판이 있고, 그다음에는 인격심판이 있고, 그다음에는 심정심판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체 역사를 대조해 보게 되면, 예수 전까지 4천 년 동안 찾아나온 것이 뭐냐? 참된 진리를 찾아 나왔어요. 나아가 진리를 중심삼은, 진리로 화한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고, 하나님께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 답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자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인격자를 세워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과 그 사람과 일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답할 수 있는 자리까지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온 이후 지금까지는 말씀을 중심삼은 심판역사라는 것입니다. `믿으면 구원 얻고 믿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 다'는 이런 표어 밑에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실체가 반드시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말씀은 반드시 실적과 실체를 남겨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천리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만물을 지을 때 참아들딸을 위하여 만물을 지었는데 참의 실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이예요. 참의 실체를 갖춰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없는 세계가 된 것이 타락한 세계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찾기 위해서는 다시 하나님이 말씀을 줘 가지고 심정과 연결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세워 가지고 말씀을 대신한 실체의 모습을 세워, 그 실체의 모습이 완결된 후에 하나님의 심정을 가하여 부자의 인연을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하늘이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는 것은 말씀을 찾아 세우기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수가 왔다 간 후에 참다운 말씀이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무슨 말씀이며 말씀의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개인과 나라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목적은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어서, 사회,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무형의 세계까지 이 천지의 이념을 소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기를 만물을 주관하라고 했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외적인 면만이 아닙니다. 내적인 면까지 주관하라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어떠한 말씀이냐? 내 개인이 믿고 천당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개인이 믿는 동시에 내 가정이 믿고, 내 가정이 믿는 동시에 사회, 국가, 온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상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 하나되어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이념과 더불어 일체의 자리까지 나가게 하기 위한 뜻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이상세계를 이룩해야

그런 면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기독교를 바라보면 아직 기독교의 세계관이 안 서 있습니다. 개인은 반드시 본연의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이념을 거쳐 가지고 국민, 혹은 세계 인류로서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구원의 목적을 찾아 세워야 할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구해 주시옵소서' 하고 피땀 흘려 기도할 때는 지나갔어요. 때가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수많은 인간들을 악한 품에 품겨 놓고 그냥 그대로 섭정해 나가면서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색다른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혹은 가정으로부터 사회, 국가 형태를 갖추어 선민이라는 민족을 여기에 내세우기 위해 역사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우주적인, 더 나아가서는 천주적인 목적 달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말씀심판시대에 요구되는 그 말씀도 역시 천주의 이념을 넘어설 수 있는 말씀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구원받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세계관으로부터, 천주관으로부터, 철두철미한 원칙적인 그 말씀을 중심삼고 내가 부딪치게 될 때, 오늘 내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흙덩이가 빛을 받아 지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생명이 생겨나고, 감정이 생겨나고, 여기에 이념적인 방향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충정의 말씀을 인간은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내용을 가진 말씀이 이 땅에 나왔느냐? 안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경 연대로 볼 때 육천 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육천 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예수님이 독신으로 살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그 이념은 전체적인 우주 앞에 세워야 할 그런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나 개인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개인구원을 지나 가정구원, 가정구원을 지나 사회구원과 국가구원까지 하늘은 반드시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소 단위로 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나라 없는 백성인 걸 알아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예요. 여기에는 국적도 없고 자기가 넘어올 수 있는 국가도 없어요. 자기가 자기의 종족이라 할 수 있는 민족도 없습니다. 그런 걸 다 알아야 돼요.

이런 현 세계에 있어서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느냐? 오늘날 이 시대 현상에 있어서 우리는 종교인들 앞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느냐? 도의 이념을 중심삼고 국적을 세울 수 있는, 도의 이념으로 국토를 확정할 수 있는, 도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백성으로서 설 수 있는 기준이 하늘이 섭리하신다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한 분야를 두고 볼 때, 백 집이 있으면 백 집의 살림살이가 하루를 사는 데도 전부 다릅니다. 다르더라도 어떤 원칙적인 심정에 일치된 귀일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귀일점을 세우기 위해서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내거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랑 앞에 누가 접붙여서 복귀되겠느냐? 그 사랑의 말 앞에는 누구든지 존경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하늘은 솎아 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교회나 성경 가운데 이것을 훈계했으나 오늘날 교회를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런 경지에 서 있지 못하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해 나오기 때문에 이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최후에 바라는 것은 심정적인 기반에 있어서 어떠한 개인이 잘 믿고 천당 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 가정을 넘어 국가, 혹은 세계 전부가 하나님의 심정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말씀을 중심삼은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서로 하나되어야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믿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모든 사리는 우리의 생활적인 감정에까지 이치와 공식적인 법도 과정을 조건삼아 가지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실생활을 부정 못 할진대는 오늘 우리들은 신앙 관념에 있어서도 역시 더 치밀해야 됩니다. 맹목적인 것과는 틀립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경에서 지시하고 성경에서 바라고 있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 심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한 개인을 심판해서 구원해 가지고 천당 보내기 위한 목적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 죽여버리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죽여 버려서는 안 될 사랑의 심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이 역사를 어떤 면으로 이끌어 나오느냐 하면 반드시 막힌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해결 안 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것을 청산해야만 새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악과 선이 한자리에서 놀 수 있어요? 한자리에서 자리를 같이할 수 없습니다. 갈라져야 돼요.

그러면 지금 악한 세상에서 선한 세계로 옮아가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진대는 여기에는 반드시 심판적인 조건을 제시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심판하는 데 있어서는 말씀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목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구원이예요. 이것은 개인의 심정에 통하고, 가정 식구들의 심정에 통하고, 국민, 혹은 국경이 다른 그런 민족의 심정세계에 통할 수 있는, 하나님편에서 볼 때 하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출 수 있는 이러한 우주적인 이념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누구인 줄 알아요?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형제요,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형제의 관념을 갖지 못한 자는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형제의 인연에 벗어난 자는 백성이 될 수 없어요. 오늘날 이 교회현상을 볼 때 서로 물어뜯고 있습니다. 형제의 인연이 다 어디로 가고….

이 때는 지금 어떠한 때를 요구하고 있느냐? 하늘나라,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때가 왔기 때문에 백성의 과정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형제의 시대를 갖추었느냐? 이것을 각자에게 반문해야 할 이런 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혹은 지금까지 내 생활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살아오던 사회의 모든 체제라든가 가정의 모든 체제라든가 신앙의 모든 신조라든가 이 모든 전부가, 나로 하여금 형제들을 하늘 앞에 찾아 세울 수 있는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못 맺게 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형제의 인연을 갖지 못한 이들이 단결되어서 백성으로 자처했댔자 그것은 반드시 깨져 나갑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형제보다 더 사랑해야 돼요. 그러한 노정으로 하늘은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 더욱이나 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수많은 인류들은 이제 마음을 같이하여 형제적 인연을 찾아 세워서 `우리의 인연을 누가 빼앗을소냐' 하는 도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런 형태가 반드시 이 땅에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기독교의 초대교회 시대에 있어서는 형제가 피를 흘려 쓰러지게 될 때 자기 생명을 바쳐 쓰러지고,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인연을 남기면서 악의 세계를 대하여 힘차게 행군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서로서로 형제의 인연을 찾지 못하고 싸우는데 여기에서는 붕괴예요, 붕괴. 붕괴의 일로를 갖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때는 다가왔습니다. 하늘이 요구하는 것은 천국 백성을 찾기 위한 것인데, 백성은 반드시 형제지인연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 위해 애착심을 가져야

오늘날 지금까지 세상에서 되어진 인연을 끊는 것은….하늘은 그것이 깨지니까 좋아합니다. 오늘날 모든 것을 깨쳐 가지고 애착심을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을 빼앗아 가지고 다른 면에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려 놓기 위해서 오늘날 역사과정을 전부 다 끊어 청산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애착심을 둘 수 없는 이런 세계적인 현상을 지금 만들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은 어떻게 귀결될 것이냐? 애착심을 전부 다 버리자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애착심을 끊어 버리는 반면 하늘을 표준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가 애착심을 갖고, 세상의 형제 이상 형제로서 세상의 부모 이상 부모의 인연을 노래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하는 거예요. 이런 형태를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멸망당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일교회가 나와 가지고 수많은 비난의 대상이 돼 나왔지만 망하지 않았어요. 이 민족이 모든 애착심을 전부 다 끊고 우리와 어깨를 겨룰래야 겨눌 수 없는 그런 한 때가 언제 오는가?

만약에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민족이 먼저 받는 거예요. 그렇지만 심판을 먼저 받는 민족 가운데서 심판을 안 받는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민족인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 천지가 넓다 하더라도 그러한 소재가 반드시 오늘날 우리 사회, 혹은 우리의 풍습권 내 전체를 휩쓸어 가지고 그런 사회 규정을 이뤄 줄 수 있는 한때가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십시요. 여러분이 생명을 각오하고 믿는 그 누가 있느냐? 내가 정성을 다하여 모시고 싶은 그 누구를 갖고 있느냐?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처자식이 서로 반발하여 참혹한 현상으로 벌어져 가는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가정을 대하여 내가 애착심을 가질 수 없어요. 자기가 전공하는 어떤 학술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러냐?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해 들어가는 그런 환경에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걸 못 갖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실사회, 더욱이나 한국 실태를 바라보게 될 때 애착심을 둘 수 없는 민족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우리가 절망 가운데 쓰러질 것이 아니라 이래야만 된다는 , 기필코 와야 할 한때가 왔다는 걸 우리들은 여기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이런 자리에 몰아내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들을 깨뜨려 지옥에 쳐넣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그런 자리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 끊어 버리고, 일편단심 하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재수습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호소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터놓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민족이 더욱이나 이때에 있어서 이제 갈 길은 종교도 아니요, 정치도 아니요, 문화도 아니요, 지금까지의 어떤 기존 종교도 아닙니다.

왜? 그들이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종교의 내용을 갖지 못하고 있는 한 이는 다 지나간다는 거예요. 이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더더욱이나 안다는 청년 남녀들에게 있어서는 예리한 시선을 갖고 비판하고 분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종교도 막혀 버렸습니다. 또, 철학도 막혀 버렸습니다. 오늘날 환경의 정치나 무엇 무엇 무엇, 믿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애착심이 있느냐 말이예요. 애착심이 있다면 하루에 먹는 빵 한 덩어리에 애착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벌어진 것이, 요것을 들고 나온 것이 오늘날 유물사관입니다. 이 유물사관이 세계적인 무대를 갖출 수 있는 때에 있습니다. 그러한 경향으로 한때를 바라보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안 돼요.

인간은 먹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아무리 내가 배부른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내 심정적인 천운이, 오늘날 내 심령을 파고들어오고 숨어 들어오는 이러한 사조의 모든 운세를 내가 막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막아낼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기쁘지 그렇지 않으면 기쁘지 않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심판 때가 다가오는 때이기 때문에 불안과 초조 공포에 떨어야 할 때요, 그 무엇 하나 내 심정을 기울여 애착심을 갖고 대할 수 없는 종말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다시 한 번 우리가 애착해야 할 것은 세계인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새로운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찾자고 외치고 나가야 됩니다. 내 부모로부터 내 모든 일체 전부를 다 잃어버렸으니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애착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이 필요한 그런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 사조에 있어서 어느 주의를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왔으니, 이것 이상의 무엇을 느껴 가지고 그것에 대해 내 생명을 기울여 죽음의 자리에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이상의 애착심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의 이념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여러분이 자아비판을 해봐요. 자아비판을 해보란 말이예요.

그러면 하늘이 전부 다 깨뜨려 버리겠느냐? 그러한 때가 왔으니 이 말씀을 통하여 내 개인이 살고, 개인이 사는 동시에 민족이 살고, 민족이사는 동시에 세계가 살고, 세계가 사는 동시에 하나님이 살고, 하나님까지도 육천 년 동안 탄식의 한을 벗어나 해방의 통치권을 갖춰 가지고 만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뜨려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있다면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맹목적인 신앙, 주먹구구식으로 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최후의 역사적인 전통으로 남을 것은 천정을 중심한 심정뿐

이제 우리들이 애착심을 가질 때는 그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의 말씀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아를 밟고 넘을 수 있는 말씀이어야 됩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내가 믿고 나가던 관념적인 종교를 타파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말씀은 오늘날 시대적인, 사회의 어떤 주의 사상의 모든 문제를 박차고 새로운 깃발을 중심삼고 천주를 향하여 내가 외치게 될 때 하늘땅이 반응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의 말씀을 갖고 나오려면 오늘날 논리적인 관에 서 있는 세계주의 갖고 안 됩니다. 이 논리를 넘어서 심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나오는 천주주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복하다 할 때는, 내가 많이 아는 게 행복이 아니요, 내가 어느 대학교 학장이 되고 총장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요, 오늘 내가 일국의 무엇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천만에요. 그 심정이 자기가 갖고 있는 환경을 넘고 넘어 그 어떠한 가치의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안정된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만이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고통을 받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고통을 받았고 수고했다는 그 명사를 하나님 앞에 붙일 수 있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뇨? 심정적인 가치를 오늘날 창조의 세계에 있어서 세울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역사를 전체적으로 수습해 가지고 최후에 남을 것이 무엇이뇨? 인류의 심정만이 남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인류의 심정이 남는데 그 심정은 어떠한 심정이냐? 타락한 세계에서 지금까지 쫓김받고 파괴받은 그런 것이 아니요, 무애착한 그런 자리에 머무르는 그 심정이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이 마음을 누가 점령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의 심정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어야 돼요. 그러면 개체와 전체는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가치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비교의 가치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높으신 하나님이라도 내 심정을 통하여 나서게 될 때, 내 자신이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있더라도 가치적인 분야에 있어서 상대성을 갖고 나오게 됩니다.

그런 자리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심정적으로 존경해 가지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어떤 인간이 되었다 할 때 그는 무한한 행복한 자일 것입니다. 종교의 이념은 그곳까지 넘어가야 됩니다. 사람이 명령을 받고 움직이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하늘은 그런 표준까지 인간을 이끌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해 나왔던 것입니다. 역사의 전통으로 최후에 남아질 것은 심정입니다. 무슨 심정이냐? 인정이 아니예요. 인정적인 심정이 아니라 천정적인 심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보게 되면 효자 충신 열녀가 많았습니다. 인륜을 통할 수 있는 심정적인 발판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되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민족과 민족의 관계를 지울 수 없다는 말이예요. 그것으로써 해결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처단함에 있어서 전부 다 뒤섞여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무애착 시기의 풍조는 반드시 세계심판 직전에 들어오는 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의 가슴을 헤쳐 놓고 보게 될 때, 아버지를 내가 부르면서 주를 믿는다고 하는 그 심정적인 내정을 살펴보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가 하나님의 심정문제를 아느냐? 개인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게 돼 있고, 민족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게 돼 있고, 또 국가를 대하고 세계를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떻게 돼 있느냐? 그걸 모르고 있다면 절대 충신 열녀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목적은 인류가 공통히 즐길 수 있는 심정의 안식처를 찾아 나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문화의 목적이나 예수의 목적이나 개개인의 목적이나, 모든 목적의 전부는 그 기준에 있어서 하나의 청산을 짓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이런 내용을 걸고 나오는 종교가 무엇이냐? 첫째로 등장한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은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라고 했던 그 심정적 기반은 오늘날 타락세계 인간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심정이 아닙니다. 천정의 인연을 찾아 나가게 하기 위해서 오늘날 무지한 백성 앞에 그런 조건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인연 맺었던 사람을 따라 죽음의 적진을 넘어 역사를 넓혀 나오면서 세계 기대상을 만들어 나오면서 역사해 나왔습니다.

숨겨진 천정의 한을 풀어 드리는 것이 참다운 진리

여러분이 신부를 알지요. 신부는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 신부 될 수 있는 자격자가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 이 땅 위에서 신부라고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 사탄세계, 악한 세상에 있어서 어떤 충신이 있다 할진대는 수많은 충신자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내용과 심정적인 절개를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하나님이 그를 하늘의 충신이라고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사탄세계의 충신자를 하늘세계의 충신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신상. 표준이 그 표준입니다.

`열녀나 혹은 효자가 있다면 그 가운데 어떤 누구누구가 있다 하더라도 육천년 동안 수많은 효자를 한꺼번에 세워 가지고 하늘 앞에 세울 수 있는 한 사람 효자와 비교하게 될 때 바꿀 수 없어요!' 그런 가치의 효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 아들이 못 됩니다. 사탄이 갖고 놀고 사탄이 깔고 놀고 그러던 그 자리에 가 가지고는 하나님이 당하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내용에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을 갖고 오늘날 인류를 찾아 나오는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슬픈가를 알아야 됩니다. 알고 보면 천년 만년 통곡을 해도 그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없는 한을 품고 나온 아버지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심판의 한 때를 찾아 이러한 한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세워서 온 만우주를 재차 축복하기 위한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문자답해 보라구요. 하늘을 위하여 눈물을 얼마나 흘려봤으며, 하늘을 위해 땀을 얼마나 흘려 봤으며, 하늘을 위해 내 생명의 피를 얼마나 흘려 봤느냐? 하늘의 어떠한 기준 앞에 인정받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자처하면 강도가 웃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거예요. 이번 전도 기간에는 수많은 식구들이 생겨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각오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것이 먼저 우리에게 있어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이 때는 어떠한 시대냐? 이 때는 심판 때이므로 하나님이 재섭리하는 말씀 심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 원칙입니다. 수학의 공식은 어떤 국경을 초월해 있습니다. 어떤 위대하다는 인물의 모든 내용을 초월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만사일통이예요.

여러분, 공식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곳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진정히 사랑하는 곳은 둘이 아니라 하나예요.

공식 법도 위에 새로운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할 천적인 심정세계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믿고 천당가자' 하는 거에요. 그러면 얼마나 쉽겠어요? 땀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말도 안 할거예요. 여기 서서 말하지요. 생애를 바쳐 핍박의 길을 가면서 오늘날 민족 앞에 이런 싸움을 안 해도 되는 거라구요.

통일의 청년들, 더욱이나 우리 통일신도들에게는 새로운 각성이 필요할 때가 왔습니다. 만일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이런 내용의 모든 것을 해결 못 해주거든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정이 숨겨진 말씀을 못 해주고, 내 눈에 불을 붙여 주지 못하는 내용의 말씀이라면 가짜예요. 적그리스도입니다. 아무리 성경 66권을 다 외워 가지고 유창한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엉크러진 죽음의 피를 갈라낼 수 있는 내용의 진리가 없다면 진리가 아닙니다.

변천의 역사를 혁명시켜 나온 것도…. 이 시궁창에서 싸우고 있는 이 피의 감정을 새로운 피의 감정으로 돌릴 때만이 역사는 새로운 혁명시대로…. 우리는 이제까지 새로운 역사의 개문을 향하여 나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정에 새로운 핏줄기가 심어지게 하고, 새로운 피살이 약동하는 새로운 이념의 목적을 향하여 그 위치에 있어서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그 모습을 찾고 있느냐? 내 위치와 내 가치와 내 목적이 방향을 갖고 있느냐를 반문해 보게 될 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의 위치요, 영원불변의 가치요, 영원불변의 목적의 주체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도 영원불변의 위치요, 영원불변의 가치요, 영원 불변의 목적의 대상체를 갖출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 거리 저 마을, 이 교회 저 교회, 이 교파 저교파, 수많은 인사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통일이라는 여기에 찾아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길까지 찾아오게 된 그 이마에는 땀이 흘렀고, 그 등에는 매자국이 남아진 것도 알고, 그 발걸음에 상처가 난 것도 알았지만 나는 역사의 일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땀과 눈물과 피가 아직까지 이 민족 앞에, 오늘 이 세계 인류 앞에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천적인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효자 열녀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를 아버지의 피로, 우리의 땀을 아버지의 땀으로, 우리의 눈물을 아버지의 눈물로 돌릴 수 있는 자신이 있거든 오고, 없으면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된다구요.

말씀의 메시아로 왔다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간 예수님

하나의 천리의 말씀을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육천 년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이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원통합니다. 원통해요. 아버지된 입장에서 자녀라는 이름을 가져온 타락한 인간, 인연으로 보면 아들인데 사정으로 보면 원수의 입장에 서 있거늘 이것을 어떻게 터쳐 나가느냐? 이렇기 때문에 뜻 있는 양심적인 사람을 움직여 이 담을 터쳐 나온 것입니다. 내 심정의 피가 끓어오르면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아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그 음성과 아버지가 아들이라 부르는 그 음성에 온 천지가 녹아지고도 남는 그런 시기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땅 위에는 심판이 끝날 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아버지를 생각할 때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의 심정이 간곡하고, 내 육신이 찢어지고 밟히는 어떠한 억울함을 게의치 아니하고 눈물의 담과 눈물의 바다를 깨쳐 목표량을 다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 있느냐? 반성할 때라는 것입니다. 나는 한때 울어 본 적도 있습니다. 한 없이 울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일개인의 어떤 욕망과 목적 때문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점을 중심삼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해결해야 할 때가 반드시 심판 때에 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되어 역사적인 곡절을 중심삼은 한의 인류의 참상을 만들어 놨느냐고 생각하게 될 때, 하나의 천정을 대신할 참다운 아들의 모습이 그리워 허덕이며 통곡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찾아 헤매는 그 음성과 화하여 들려오는 그 음성 앞에 내가 여기에 있노라고 외칠 수 있는 한 자리가 그리웠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종교생활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부르시는 그 음성 앞에, 그 심정을 염려하면서 부르시는 대답 앞에…. 아버지의 사정적인 모든 것을 이어받아 책임 감당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불쌍하고 원통한 하늘이었습니다.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이었다는 거예요. 사탄, 이것은 벌써 몇천 년 전에 심판의 제물로 지옥 불구덩이에 쓸어 넣어 유황불에 사라지게 해도 아깝지 않을 이런 한을 가진 인류역사였습니다. 그것을 참고 지금까지 나온 거예요. 나는 아버지요, 너희들은 아들이라는 인연을 남긴 것이 없다면 여러분이 자신을 가지고서 살아갈 수 없다구요.

복귀의 심정을 우리들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아버지의 음성으로 불러져 들려오는 그 음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여기 내 자신에게 있어서 그리운 것은 어떤 세상적인 그 무엇이 그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이미 다 끊기고 막힐 때가 돼 왔으니 이제 여기에 있어서 내 귀가 있고, 내 눈이 있고, 내 입이 있고, 내 감정이 있다 할진대는, 이목구비나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그 감정이 옛날의 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감정을 통할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그 감정은 천정과 더불어 인연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파악한 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넘어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무지한 인간들을, 떨어지고 밟힌 처량한 그 인간들을 손짓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구원이라는 방패입니다. 비유와 상징으로써 심정의 내정을 통과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나온 인류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왔던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어떠한 메시아냐? 심정의 메시아. 그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냐? 실체의 메시아. 그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냐? 말씀의 메시아로되 예수가 이 땅에 와서 보여 준 것은 말씀의 메시아로서의 노릇을 완결 못 한 것입니다. 말씀 기준도 완결짓지 못하고, 인격 기준도 완결짓지 못하고, 심정 기준도 완결짓지 못한 채 갔습니다. 말씀 같은 말씀을 남기고 간 것이 간 것이 성경이예요. 그게 비유와 상징이예요.

개인과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려야 할 통일교인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이뇨? 말씀과 더불어 말씀 통과 후에는 실체 통과시대가 온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기독교가 지금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연구하는 목적은 실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체의 기준을 통과 하지 않으면, 그 실체를 붙들고 이 땅 위에서 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류는 주님을 맞이해야 됩니다. 말씀을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 실체를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 심정을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가 가만히 보면 제일 좋은 것만 바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 신랑이신 주님! 사랑이신 주님! 사랑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해결해야 됩니다. 말씀을 내재했으면 말씀과 하나될 수 있는 예수를 대신한 인격자가 돼야 합니다. 이걸 다 무시해 버리고 믿으면 천당 가고 신부가 돼요? 가나 안 가나 보자구요. 우리는 성경을 연구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어떤것이 문제냐? 성경을 보면 그저 뭐 전부 다 요한복음 3장 16절같이 누구든지 다 그래요? 천만에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슬픔이 있다면 제일 슬픈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에게 십자가 고통이 있다 할 때 제일 큰 고통이 무엇이고 억울함이 무엇이냐? 성경 다 안다고 청산 못 해요. 뿌리가 없어요, 뿌리가. 오늘날 성경을 찾아볼 때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큰일이라는 거예요. 방황하고 싸우고 이단 저단하는 왕자들이 돼 버리고 만 거예요. 그러나 암만 싸웠댔자…. 가지는 가지끼리 싸우고 앞사귀는 잎사귀끼리 싸워야 되겠느냐 말이예요. 가을이 되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생명의 진액이라는 것은 뻗어 나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디를 통하여? 뿌리를 통하여. 여러분이 그것을 알려면…. 베드로가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죽으면서도 `주여!' 했듯이 죽으며서도 주와 심정적으로 통할 수 있는 뿌리의 내용을 들추어 나와 인연을 맺어야 돼요.

예수가 십자가 도상에서, 죽는 자리에 나가면서도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이 심정으로 흘러내리려던 그 사정이 무엇인가 알아야 됩니다. 그걸 모르면 죽은 거예요, 죽은 거. 성경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 주었는데 다 해결하지 못해 가지고 무얼 또 바래요. 끝날에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러니 예수는 이 땅 위에 올 때 신부를 찾아 온 것입니다.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서서 외친 목적은 예수 믿고 천당 가기 위한 개인의 목적이 아닙니다. 나를 믿고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것이 목적이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나를 믿고 이스라엘을 구하고 이스라엘을 믿고 세계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계와 땅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나만 천당 가는 게 아니예요. 천만부당한 말입니다. 어디에 그런 선의 목적이 있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민족을 위하여 믿는 것이라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세계를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러한 신자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어떨 것 같아요?

여러분,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대천주의 공업(公業)을 완성시켜야 할 책임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민족을 동원하여 양심적인 사람을 연결시켜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선의 주권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라 할진대 내 개인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을 위하기 위한 것은 깨져 나가요. 불에 빠진다 말이예요. 그건 깨져야 됩니다. 깨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망해요. 자기의 일족을, 한 나라를 위한 종교는 깨져야 됩니다. 그거 안 깨뜨리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는 혼란의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깨뜨려야 돼요. 왜? 하나님의 목적과 자기들이 갖고 있는 위치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통일의 이념을 우리들이 부르짖고 나오게 될 때, 우리가 믿는 것이 내가 믿고 천당 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끊어 놓아야 돼요. 만약에 내가 믿어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그 구한 민족이 천당 간다면 내가 천당 가지 지옥 가겠느냐 말이예요. 신앙의 방향성이 다 거꾸로 됐으니 곡절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통일신도들은 `내가 믿는 것은 이 민족을 구하고, 내가 믿는 것은 이 인류와 세계를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슬픔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의 슬픔까지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무슨 전지전능한 하나님….' 하지만 그건 다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모든 본의를 알려면 요거 공부를 해야 되겠다구요. `아, 하나님은 슬펐구나….' 여러분의 슬픔은 어디서 나왔어요? 우리의 희노애락은 하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몰림받는 데 최고로 몰림받자는 거예요. 수많은 종교인들의 반대를 받되 거기에서 우리는 사라지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대중을 위하여 나가 외치게 될 때 거기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길이 대중의 마음을 뒤집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천법 말씀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시대가. 말씀을 찾아내어 신부가 되려면 주체와 대상의 모습을 통하여야 된다는 거예요.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인격적인 기준에 있어서 예수가 거치던 모든 심정의 내용을 통한 생활적인 감정이 화할 수 있는 이런 인격자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있어요?

이 땅위에 말씀 애착 회복운동이 일어나야 인류의 살 길이 생겨

오늘날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그 심정을 찾아보게 될 때 예수님이 재림하기를 무한히 고대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2천년 동안 기다렸어요. 예수님 시대에 주님이 언제 오겠느냐 할 때 전부 다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살아서 올 줄 알았지만 재림의 이념을 대할 수 있는 심정적인 기반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한스러운 희생의 역사노정을 엮어 오면서 때와 사람을 세워 가지고 세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때를 바라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찾아 나온 것입니다.

재림하고 싶었던 하늘의 심정이 간절하였으되 오지 못한 그 사정이 어디에 있었느뇨? 여러분들이 무지하였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무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거예요. 주님은 이 땅 위에 오실 때 만국을 통치하기 위해 오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신앙관은 자기가 구원받고 천당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졸장부가 돼 가지고 신부라고 하겠어요? 상식 부족이예요, 상식 부족. 예수는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요, 하나님의 황태자예요. 하나님의 왕자예요, 왕자.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대통령 아들만 돼도 뽐내고 그러는데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주인공이요, 시대적인 주인공이요, 혹은 미래적인 주인공으로 계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주체로 계시는, 홀로 계시는 그 절대자 아들입니다. 그의 신부가 되어야 해요, 그의 신부가. 그런데 이런 엉터리가 없다는 겁니다.

예수가 믿으라는 내용은 여러분 하나를 중심삼고, 개인 천국 보내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믿으라는 것은 온 천주에 대해서 호소한 말입니다. 천주의 심정 깊이 사무친 예수의 이념의 내용을 통하여 흘러 나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 서 가지고 사망의 세계, 죄악의 세계를 대하여 싸움을 해 나서는 하늘의 정병이 그리웠다는 거예요. 이런 대표자로 로마제국을 향하여 나섰던 것이 70문도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있지요. 예수의 성경 말씀을 믿고, 그런 내용을 알아 가지고, 인격적인 내 한 자체가 돼 가지고 심정에 있어서 만민을 대하여 내 피를 흘리면서 원수까지 복을 빌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선 우리가 상식적으로 비판해도 이런 논점을 해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런 사람 봤어요? 그런 목자를 봤어요? 그러한 성도를 봤어요? 문제는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기필코 뚫고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런 무리는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것이 가설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내용으로 나가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하늘이 벌주겠어요? 사실이 그래요, 사실이.

이때는 말씀이 그리워 허덕이는, 말씀의 곤궁을 느껴 허덕이며 지치는 때입니다. 이들을 깨우칠 자는 누구뇨? 끝날이 되어 오니 끝날 앞에 지친 무리를 찾아오는 모습이 실체입니다. 주 대신 지친 그 모든 내용을 풀어 줄 줄 알고, 주 대신 지친 내 환경을 수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지도자가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오늘 전세계 기독교를 바라보게 될 때 교회당은 크고 교인들은 많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그런 사람 몇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통일신도들은 이미 거쳐야 할 걸음을 다 거쳐왔습니다. 장로교 교리가 어떻고 감리교 교리가 어떻고 신약사조가 어떻게 나오고 이런 걸 다 알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허덕여 나온 무리들입니다.

이제 여기에 무엇이 필요하느냐? 내가 지친 이 자리를 다시 한 번 용솟음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연구하고 연구하여 지쳐 쓰러질 때는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말씀의 자신을 갖출 수 있는 거예요. 말씀 애착 회복운동을 제시시키는 새로운 움직임이 지상 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갈 길이 막혀 버린 이 인류가 어디로 갈 것인고? 달려가 보니 막혀서 돌아서 가야 하는 데 어디로 갈 것이냐?

오늘날 이렇게 단말마적인 첨단에 처해 있는 우리 역시…. 말씀에 지치고, 신앙 생활에 지치고, 교회 생활에 지친 나로 하여금 지친 말씀과 지친 신앙에 감정을 새로 일으켜 지금까지의 것보다 더 좋은 가치로써 `아버지여 알았소이다' 할 수 있는, 말씀에 대한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이러한 심판의 때에 있어서 말씀심판과 인격심판과 심정 심판이 끝날에 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심정을 일으킬 수 있는, 말씀에 대해서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세워 놓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격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인격심판의 어떤 기준을 이 땅 위에 내세우고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아니예요. 심정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심정의 기준을 수습할 수 있는 그 한 기준을 세워 놓아야 해요. 안 세우고 하게 되면 다 망해 버린다 이거예요. 그렇게 때와 시기를 바라보게 될 때 이 때는 심판시대입니다. 알겠어요? 심판시대예요, 심판시대.

여러분, 이제 여러분 손에 쥔 것을 놓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던 것이 아닙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답을 받아야 할 때예요. 목을 매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죽을 각오까지 하고 해결해야 된다 말이예요. `그럴 것이다' 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기독교인의 사명은 천정적인 심정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

지금은 여러분 마음에 이제 다시 한 번 용솟음쳐 새로운 무엇으로 나가기 위해 허덕이는 자신을 반성할 때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자기가 지금까지 제일 사랑하는…. 천지운세가 도수를 맞춰 들어오는 그런 총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내 자신이 애착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들고 `하나님이여, 이것 보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갖고 있어요? `주인이여, 이것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걸 갖고 있냐 말이예요. 다 잃어버렸습니다. 가진 것 같지만 다 잃어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최후 청산시대가 옵니다. 최후 심판시대이기 때문에 말씀을 중심삼은 각도대로 180도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져야 나라가 살든가 교회가 살든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시대에 처해 있는 세계인류라는 거예요. 그대들의 마음이 어느 누구에게 자랑할 수 있는 애착의 발판을 갖고 있느냐? `어서어서 데려가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갈 때 내 아들딸이 귀하고 내 무엇이 귀하지만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사조가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러한 시대가 오게 되면 민족적으로 그런 사조에 휩쓸려 가지고 안 끊을래야 안 끊을 수 없는 그런 환경에 선 민족과 국가와 세계 사조를 대표하여 고통받는 그런 한 지역과 한 백성이 생겨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세계적으로 볼 때 한민족이예요, 한민족. 남북이 딱 갈라져 가지고 부모 처자가 다 갈라져 버렸어요. 심정적인 파탄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6. 25동란으로 경제적인 파탄이 나오고, 이론적인 파탄이 나오고, 정책적인 파탄이 나오고, 종교적인 파탄이 나오게 되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여기서 낙망하지 않습니다.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하늘의 뜻이 이 민족 앞에 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봐도 부패한 고비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는 시작돼요.

오늘날 이 정권의 12년 동안 부패정치로 말미암아 새로운 청년들의 피가 끓어올랐어요. 올랐으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로 뻗어 나가야 정상입니다. 심어 놓고 보니, 뿌려 놓고 보니 비료를 뿌린 옥토가 되지 못하고 또 마찬가지예요. 내가 여기에 뭐 어떤 욕망을 갖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젊은 청년 남녀가 있다 할진대는 4. 19혁명 당시에 뿌린 피를 어디로부터 끌고 나갈 것이냐?

그런 마음을 품고 하늘 앞에 기도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지만 수백 명의 부모는 여러분보다 더 통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 부모 이상 아버지 앞에 호소하면서 `이 피의 대가가 부디 이 민족의 생명의 피의 대가로, 천륜의 법도의 때를 위하여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기적의 절개의 한 맥박으로서 남아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눈물짓는 무리가 어디 있는 지를 찾아야 할 때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이 민족은 고개를 들고 나올 수 없다구요. 이렇게 전진을 명령하고 방향을 제시하여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을 개방해야만이 이 길을 헤치고 나갑니다.

이제 하나님의 목을 부여안고 싸우는 청년 남녀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그리워한다는 거예요. 갈 곳 없고 지치고 방황하는 무리는 기필코 어느 한 때 통일의 봉화를 반드시 볼 것이며, 봉화의 불에 새로운 충격을 받는 한 날이 있거든, 거기서 주저할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제시하여 천적인 섭리와 더불어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의 그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찾아 세울 것이냐? 그것은 인간 중심이 아닙니다. 천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요, 소위 각 교파, 혹은 종파, 혹은 도를 숭상하는 수많은 도의 권내에 머물러 있는 인사들이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곳을 알았고,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와 우리의 목적을 알았고, 우리의 가치적인 그 무엇이 하늘을 중심삼고 저울질한 것을 알았다 할진대는 여러분 자신들이…. 여기에서 우리는 땅과 하늘을 대신한 새 사람들을 찾아 가지고 심정적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씀을 발표해야 됩니다. 그 말씀이 역사적인 말씀을 심판할 수 있는 말씀으로 돼 있느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맹목적이 아니예요, 맹목적이.

오늘날 사회 인사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하면 그저 바보 천치 미급자(未及者)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이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피땀을 많이 흘렸고, 누구보다도 머리를 기울였고, 누구보다도 생사의 판가름의 싸움을 몇 고비 넘어왔습니다. 자기에 대한 각오와 자기에 대한 신념과 자기에 대한 실천적인 증거 그 무엇 갖고 인류를 대하고, 민족을 대하고, 어떠한 국가 어떠한 사상을 대해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자신을 가졌느냐? 이러한 문제를 놓고 무한히 고뇌한 사람이라는 거에요. 그래 가지고 이러한 자리에 욕먹는 간판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천적인 신념을 소유해야 축복이 내려

여러분, 여러분들! 우리는 여기에 있어서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엮어 나오고, 부여 안고 싸워 나오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과거의 피와 땀과 눈물로 엮어 나오던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며, 이 시대에 눈물과 땀과 피로 엮어 오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그 심정이 무엇이며, 미래의 심정이 무엇이냐 반문하게 될 때, 여러분이 말은 못 할지언정 내 가진 모든 모양으로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신념이 없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 못 해줍니다. 하늘은 자조자(自助者)를 돕는 것입니다.

예수는 불초한 몸으로 나타났을지라도, 초조한 모습으로 갈릴리 해변가에서 가난한 어부의 스승이 되었을지언정, 어떠한 교법사 빌라도, 그 누구한테…. 가진 천적인 신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심정까지 움직일 수 있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 신념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신념이었기 때문에 신념을 통한 말씀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그 말씀의 목적이 종단될 때까지는 그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써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민족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신념, 세계에 어떠한 반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걸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더군다나 통일 신도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대포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원자포시대입니다. 일을 하다가 피땀을 흘리며 도중에 쓰러지게 될 때 그 고을이 터져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신념을 가져야 돼요. 그런 자신과 그런 신념을 가진 여러분이 돼 있느냐?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견지에서 아버지의 말씀이 이것이요, 아버지가 찾고자 하는 진리가 이것이요, 이것이 아니면 이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말씀적인 내용을 가지고 신념을 갖추어 피조세계를 대하여 주인답게 만물을 주관하라 했으니, 주관에 대한 행사를 늠늠히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자신 있게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지고 선 위치를 어기지 않고, 그 가치에 천지가 머리 숙일 수 있는 자리에 서서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딸이 있다면 `예이, 이 녀석아, 너는 망령된 자야' 그러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볼 때 몰리고 쫓김받는 것이 고맙다는 거예요. 참된 것이 욕을 먹고 망해 본 법이 없어요. 맞고 근절된 법이 없어요. 이는 지극히 적은 것이로되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크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합니다. 자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없이 합니다. 이래야 명실공히 통일교회가….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문제 돼 왔지만 앞으로는 기독교가 문제예요. 미안하지만 말이예요. 여러분 잘 알겠지만 기독교는 문제가 커집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아무리 벽돌담을 쌓고 아무리 어떻게 하더라도 이치에 맞아야 돼요. 진리는 이치예요. 이치인데 개인생활 이치가 아니예요. 세계생활 이치요, 천주생활 이치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진리란 성경 한 귀절 해석 잘 한다고 진리가 아닙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적인 이치, 지극히 평범한 것 같은데 지극히 고상하고, 지극히 보편적인 것 같은데 지극히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 우주적인 진리입니다.

그런 진리의 기준에 서 가지고 여러분 자신들이 민족을 살리고 국가를 살려야 됩니다.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땅을 움직일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돌려 잡을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됩니다. 그런 사람만 되면 주님이 미국에 가도 주님을 끌어 올 수 있다 이거예요. 미국 같은 나라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고 싶어도 축복 못 해줘요. 왜?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아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몇 사람만 있어 보라구요. 이 세계에 크나큰 축복의 보따리가 있다 할 때는 항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다구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구요. 신부의 구비조건을 갖추어 하나님이 눈물지을 수 있고, 천상의 모든 것이 감동받을 수 있는 진리의 내용을 가진 어떠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을 통하여 주님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내 아버지라고 부르며 서슴지 않고 나가서 아버지와 자식 된 부자의 인연을 회복해서 6천 년 동안 잃었던 아들을 찾기 위한 과거의 역사적인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에 사무친 모든 것을 풀어 놓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심정적 인연을 체험한 주인공이 이민족 앞에 단 세 사람만 있어도 전세계 기독교는 이들로 말미암아 해결됩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또, 그렇게 알고 있어요.

말씀 애착운동을 일으켜 이 민족을 깨우쳐야 할 통일교인

내가 말하건대, 수많은 기독교인과 수많은 도인이 있다 할지라도 최후의 영적인 세계문제와 인간적인 최후의 심정문제에 있어서 해결 지을 수 있는 기점은, 통일교회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신하고 나서서 통일하자고 나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걸 가지고 나오기 위해서는 말씀심판 과정을 거쳐야 되겠으니 이 말씀에 있어서 내가 심판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기 위하여 피눈물 나는 그런 죽음의 고비도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기 위하여 기도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한테 지지 않는 기도를 해야 돼요. 이를 악물고, 실제로 얼굴을 들어 가지고 모든 것을…. 천리가 알아 주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는 그런 기도를….

이러한 말씀을 찾아 이 땅 위에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존경하는 형제여! 그 심정적인 기준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고 외쳐야 하고 내가 이말씀이 옳다 하여 `하나님!' 할 때 하나님이 `오냐' 하는 답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말씀의 내용을 지녀야 됩니다. 우리 민족 앞에, 여러분 앞에 믿겨지지 않는 진리라 할진대 이미 그런 진리는 지나갑니다. 그건 지나간다구요.

여러분, 오늘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뭘 느낀 바가 있을 것입니다. 느낀 바가 있으면 그걸 재감정하라는 거예요. 맹목적으로 믿지 말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달라지지 않으면 저 끝에 세계일주를 해 가지고 다시 와야 됩니다. 말하고 싶은 건 그 말이라구요. 그래야 다부지게 명령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서 말하는 자신에게 있어서 말씀심판 과정을 거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비교해 볼 때,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어서 승리의 무엇을 해결지었기 때문에 보이는 세계에 있어서 이 기준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영적 완결과 육적 완결, 무형세계 완결과 지상세계 완결을 지어야 되겠으니 여기서 수많은 원수가 전부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24억 인류가 나타나서 통일교회를 몰아치겠다고 하는 그런 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천정을 대신하여 나타난 그 모습 앞에 있어서는 누구한테 양보하지 않는, 나만이 우리만이 아버지 앞에 가겠다는 그 내용을 안고 나타나게 될 때, 그 인연을 갖지 못한 수많은 인류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움직일 수 있는 영적인 모든 내용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이라고 합니다. 기독교통일신령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신령' 하면 요술판이기 때문에 `신령' 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게 아니예요. 이치적인 내용을 통하여….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말씀과 더불어…. 그다음에는 실체통과시대예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도 지금까지 40평생을 싸워왔습니다. 내가 쓰러지는 그 순간에 있어서 아버지 앞에 내 정열을 다 기울여 무엇을 할 수 있는 미련의 감정이 남을까봐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에 어떤 수단 방법으로 자기 일개의 어떤 욕망을 가졌다면 천벌을 받아요. 만일 그렇게 됐더라면 벌써 망해 버렸어요. 왜정 때부터 수십년 역사노정에 이런 놀음을 해 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감옥생활을 해나왔어요. 가는 곳마다 조롱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원수는 내게 없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천륜의 법도가 말씀통과시대의 과정을 거치면 반드시 실체통과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고, 이 땅 위에 있어서 한을 남긴 원한의 기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아벨의 피가 호소한다고 했지만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왕자가 이 땅 위에서 눈물짓고 피흘리며 호소 만 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으냐 말이예요. 예수의 피눈물이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피눈물의 호소를 어디서 탕감할 것이냐? 오늘날 성도들이, 지금까지 이 기독교가 피의 전쟁으로 기독교의 참다운 피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호소하며 탕감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런 모든 문제를 걸고 들어갈 때 여러분은 남겨 놓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에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자리가 여러분이 바라볼 때 좋은 자리 같지만, 당장에 이 자리에서 나가 영어의 몸이 될지라도 거기에 대한 심리적인 변동은 없어야 됩니다. 그런 신념을 갖고 나가야 돼요.

오늘 우리에게는 이 현실무대에 있어서 사탄세계를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형태를 갖추어 나오기 위해서 무한한 눈물을 흘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의 사실에도 피와 땀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갖고 쓰다 남은 그러한 무엇으로써 하나님을 위하여 지금까지 움직여 나오지 않았습니다. 먹지 않고 굶고 쫓기면서, 헐벗고 떨면서 나온 거예요. 오늘날 이런 형태를 가지고, 민족의 문제의 제시 조건을 갖고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런 데서도 침묵을 지켜 나왔습니다. 언제나 이럴 수 없다구요. 때가 이런 때가 왔거든 새로운 문화에 있어서 내 진리를 통하여 오늘날 지성인들이 관심을 잃어버린 이 민족 앞에 관심을 일으켜야 되겠고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을 전개해야 됩니다. 이걸 실천해 가지고 나라에 대한 애착심, 혹은 우리의 이상세계에 대한 애착심을 잃어버린 이 무리들을 격려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안 되거든 제를 올려서라도 이들을 깨우쳐 하늘이 품어 줄 수 있는 민족으로 돌려 놓지 않으면 안 될 민족적인 사명에 불타 가지고 우리들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기성 진리를 심판할 수 있는 말씀을 지닌 자로 나타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신념을 가졌거든 그 실체적인 몸을 가지고 배신한 원수들을 대하여 정면 충돌하게 될 때,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운 환경에서 그들을 버젓이 훈시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것도 불신하거든 참과 거짓을 증명하기 위해 피를 뿌려 하늘 앞에 제물로써 보여 줄 수 있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신도들이 그걸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야

생활을 움직일 수 있는 말씀, 생활의 실체를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랑, 생활에 허덕이는 마음의 터전을 안식시킬 수 있는 심정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무리로서,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인 소망의 터전 위에서, 뚜렷한 출발에서부터 목적까지 변치 않는 원칙적 노정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무리가 됐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진리심판의 때요, 인격심판의 때요, 심정심판의 때라는 거예요. 외적인 현상으로 볼 때, 섭리적인 조건에 비춰 본다면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붙들고 나가 싸우게 될 때, 이 말씀을 외칠때 여러분들은 말씀의 심정, 여기서 말하는, 혹은 우리가 말하는 이 말씀이 나올 때까지 그 숨어 있는 곡절의 처참상을 느끼면서 하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벅찬 마음을 갖고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위해 나간다면, 나가는 곳곳마다 여러분에게는 하늘이 같이합니다. 틀림없다는 거예요. 하늘이 같이합니다. 이 말씀을 갖고 나가는 곳곳마다 묻혔던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요. 양심의 혁명으로부터 심정의 혁명을 갖출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자신하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또, 타락된 우리 후손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타락성을 갖고 있습니다. 타락성의 4대 조건이 뭐예요? 교만과 시기와 혈기와 거짓입니다. 교만, 질투, 혈기, 거짓, 이것이 타락성이예요. 여러분도 그걸 벗어야 된다 말입니다. 이걸 벗으려니 지금까지 금식을 하고 야단을 하는 거예요. 이걸 벗으려면 복귀노정의 심판시대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되느냐? 내 자신이 말씀으로 무장하고 말씀의 실체가 돼야 됩니다. 실체과정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타락성 본성을 벗어야 됩니다. 여기에는 4대 조건이 남아 있으니 이것을 벗으려면 핍박도 받고 시련도 받고 해야 된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이런 도상에서 여러분들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보게 될 때 거기에서 비로소 아버지께서 오늘날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하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그 자리에서 심정을 체휼한다는 거예요. 성경을 보고는 절대 그것을 몰라요. 기도 가운데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어요. 실체적으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생활적인 감정 가운데서 원수들 앞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심정이 거기에 파묻힐 수 있어야 됩니다. 많은 핍박을 받아 가지고 싸우는 노정에 있어서, 이 실천무대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잘 해야 돼요.

그러니 여러분이 나가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렇게 싸워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되겠어요. 이렇게 싸워 나왔으니, 하나님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6천 년 동안 수고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날 찾아진 나로서 혹은 진리를 대신한 모습으로서 심판의 기준을 넘어 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내 개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이 완전 종결된 것이 아닙니다. 나를 넘어서 민족이 남아 있고, 나를 넘어서 세계가 남아 있고, 나를 넘어서 우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으니 이제 하늘은 나를 넘어서 피땀을 흘려야 되겠고, 눈물을 흘려야 되겠고, 죽음이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적인 체휼을 하고 난 후에는 아버지 앞에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가 돼야 되고, 아버지의 자녀를 거느리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내 개인이 종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늘과 내가 내 개체에 있어서 종적인 관계에 있어서 부자의 인연을 맺었을망정, 내게 있어서는 종적 관계로 하나돼야 합니다. 형제적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통하여 지금까지 뻗어 있다고 하자구요. 그러나 이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종적인 문제를 해결했으면 횡적인 문제에 있어서 형제적인 노정, 형제를 찾기 위한 하나의 수고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 여기 우리들은 참다운 효자와 충신과 열녀가 돼야 할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유업을 상속받는 데는 무슨 상속? 형제를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유업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이 형제를 구하는 데 있어서는 하늘이 넘어가야 할 땅이 남아 있고, 하늘이 넘어가야 할 눈물의 고개가 남아 있고, 하늘이 헤치고 나가야 할 죽음의 고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외로운 자리로 나가 상속을 받아야

이번 40일간에 나가 전도하며 싸우다 돌아온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개체의 심정적인 체휼을 했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수고했고,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눈물의 길, 피땀 흘리는 길,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아니하고 6천 년 기나긴 세월을 하루와 같이 불초 이 몸을 구하기 위해 오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체휼한 기간이, 혹은 핍박받는 자리와 굶주린 자리와 무한히 서글픈 자리에서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아 풀뿌리를 붙들고 산천을 바라보면서 스쳐가는 바람결과 더불어 그러한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버지 심정 앞에 여러분이 머리 숙이면서 아버지 하며 눈물짓는 심정적인 체휼을 한 기간이 이 40일 기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느냐?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많이 알았습니다. 심정 심정 외치던 그 말이 통하여 심정이 무엇인지 알았고, 말씀 말씀, 실체 실체 외치던 그 말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은 잘 아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다시 한번 아버지의 뜻 앞에 참 아들딸로서 인정받고, 새로운 각오를 한 여기에서 뭘 할 것이냐?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내가 섰사오니 아버지여 축복을 해주시옵소서' 하고 축복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선 우리라고 본다면, 여러분 자신들이 축복으로 무엇을 받을 것이냐? 아버지의 위업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 속에 있는, 하나님 가운데 있는 기쁨과 영광을 상속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먼저 상속받아야 합니다. 효자 열녀가 어디 있느냐? 기쁠 때 효자는 어느 누구나 다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외롭고 슬플 때에 효자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려면 하나님의 슬픔 이상 아버지의 가슴 속에 있는 슬픔을 알고 피눈물을 흘려야돼요. `6천 년 수고하셨던 것을 한 1년 동안에 피를 품고 죽지 않을정도가 되어 한꺼번에 그것을 탕감할 수 있사올진대는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한 번 정의의 싸움을 위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내려 여러분을 격려하는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 순회 노정에서 어린애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마을 마을로부터 몰림을 받고, 처참한 사정에 놓여서 흐느껴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여기 스승의 마음은 아픈 것입니다.

마음으로 통곡했다구요. `하나님이여! 이 길이 만약에 거짓이요, 그릇된 길이요, 내 자의의 무엇으로 나왔다 할진대는 당장에 천벌을 받을 것을 압니다' 했어요. 천벌을 받는 거예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죽어서도 안 가면 안 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고, 민족의 처참상과 이 민족을 대한 하나님의 수고의 손길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한 가야 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비교의 어떤 시각과 지능이 있다 할진대는 이런 길을 가기를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 가면 안 되는 사정과 곡절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눈물을 머금고 쓰러질 적마다 하늘이 권고했고, 몰리고 쫓김받는 그런 자리에 있게 될 때 하늘은 품어 주는 사랑을 갖고 여기가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책임적인 신념을 갖고 다짐해 온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기억할 적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눈물을 떨어뜨릴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땀을 흘려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내면서 내 자신이 하늘 앞에 기도한 것은 `아버지여, 이들에게 참다운 하늘 뜻을 위하여 흘린 눈물이 있거든, 흘린 땀이 있거든, 아벨의 피가 천주를 대신하여 선의 목표를 세우기 위하여 탄식한다고 했고 호소한다고 했거늘, 이들의 땀과 이들의 눈물이 기필코 이 민족과 이 시대 앞에 호소할 날이 있을 것을 나는 아노라'고 마음으로 몇 번이나 각오하면서 여러분을 내보냈습니다.

성심성의를 다하고 지성을 다하여 흘려진 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정으로 애달파하며 민족을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면서 흘려진 눈물은 무심치 않습니다. 죽을 목숨이요, 최후의 절벽이요, 막힌 문이라고 탄식할 적마다 하늘은 갈 길을 열어 주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그러한 자리에 내몰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돈도 없어요. 세력도 없어요. 우리는 세상에 어느 친구도 없습니다. 부모가 반대하고, 친척이 반대하고, 형제가 반대하고, 기성교인이 가로막고 반대하여 다 잃어버린 자리입니다. 세상에 대한 인연과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전부 다 끊어 버렸거늘, 천운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이 한 시운에 대하여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될 때 과연 알맞은 모양으로 아버지께서 참작하여 내세운 것을 감사를 드리고 이런 자리에 설 적마다 쓰러져 낙망하는 자가 되지 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인류를 위하여 희생의 길을 가야 할 통일교인

산 말씀으로, 산 실체로, 산 심정으로 그 흔적을 남겨 놓은 곳곳마다 오늘날 지상이 인간들이 반대하거든 총영계를 동원하여 기필코 성취해야 할 책임감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을 조건으로 하여, 땀방울을 조건으로 하여 탕감적인 선의 투쟁 역사는 벌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반대하더라도 영적인 세계의 수많은 영혼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타난 수많은 선한 영들은 통일교회편입니다. 여러분이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눈물 흘릴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이 말을 듣고 곤경에 처한 여러분의 편을 지키시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믿을 것을 권고해 주고, 외롭고 몰리는 자리에 있어서 혼자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 주저할 적마다 하나님은 보호자를 내세워서 여러분의 환경을 지켜 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산 실질적인 체험으로 여기에 솟구쳐 오르는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회를 위하여 나섰지만 이제부터는 민족을 위해 나서고, 세계를 위하여 나설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기독교를 대신한 한 교파의 간판을 들고 교회적인 진리의 기반 밑에서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리들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구요. 이 민족의 살 길을 거쳐 나가 대번에 승리의 왕자로 등장해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이루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수많은 눈물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많은 땀이 있어야 될 것을 알았고, 수많은 희생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굶주린 몸을 터로 하여 굶주린 손길을 붙들고 새로운 각오와 맹세의 손길을 번쩍 들어 아버지 앞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가는 데는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아 형제들을 구하기 위한 천추의 원한을 풀기 위한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눈으로 똑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눈으로 똑바로 봐야 겠습니다. 얼굴을 똑바로 봐야 되고, 사무친 심정을 똑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누구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의 해결점이 여기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오뉴월 삼복 중에 전도지를 들고 방문할 적마다 땀을 흘리며 생활했습니다. 혹은 환경에 몰려 굶주리는 자리에 서서 눈물짓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게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거예요. 내게는 부모도 친구도 스승도 어떤 환경적인 내 생활도 없는 외로운 심정뿐이었습니다. 혈혈단신 하나님과 나…. 서글픈 황무지와 같은 천지 앞에 홀로 심정을 가다듬어 아버지라 부르는 그 마음과 더불어 눈물짓는 그 자리에 있어서 흘러 들어오는 바람결이 나에게는 친구였습니다.

떠올라오는 아침 동녘 햇빛이 내 심정의 친구였고, 처량하게 누워 있는 그 흙이 나의 친구였고, 바라보이는 자연이 나의 친구인 것을 여러분이 느껴 봤었다면, 여기에 있어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인연이 약동하는 결심을 재차 가지리라 보고 있습니다. 이 결심을 가지고 이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내 한 자체만 엎드려 기도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 민족을 붙들고 일족을 바치더라도 하늘을 붙들고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새로운 결심을 했으리라 보고 있어요.

이제 하늘의 총결산적인 조건이 있다 할 때는 그것이 어떤 성경 말씀의 조건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다시 형제를 대신하고 영원을 대신하여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심정의 주인이 되었느냐? 일생을 땀을 흘려도 개의치 않는다는 심정의 인격자가 되었느냐? 그것이 아니면 내 피를 흘려 제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그 심정적인 한 모습이 되었느냐? 그런 내가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은 가슴에 손을 얹게 될 때, 울려 나오는 고동소리와 뛰는 맥박 소리를 느낄 적마다 이 피는 어느 날 어느 시에 끊길 것인데, 끊기는 것이 누구를 위하여서냐 할 때 나를 위하여 이것이 된다면 천추의 한이 된다구요. 끊기는 날 이 피와 맥박이 인류와 하늘과 땅을 위한다면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이 지옥 가겠다고 발버둥쳐도 자연적으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생애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생애의 목표는 이것이예요!

언제 내가 호미를 들든가 망치를 들든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며 일할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거기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려야 되겠어요. 위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천주의 위업을 성취하지 못해서 인류와 더불어 눈물짓고, 하늘과 더불어 성과가 나지 않아 애달파 눈물짓는 자리에 있거든 아버지와 더불어, 인류와 더불어, 역사와 더불어 피를 뿌려 이 일을 종결짓겠다는 결심을 가진 무리가 이 민족 앞에, 한 마을에 한 사람씩만 생겨나면 망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가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가라구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편안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러니 여러분도 그래야 돼요.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싸우고 있기에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우주의 모든 생명의 운세를 휘감아 품에 안고 손을 움켜 쥐고 놓지 맙시다. 이런 심정을 품에 품었다가 놓는 날에는 하늘땅이 망하는 것입니다. 놓지 맙시다. 내 손등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놓지 맙시다. 잃어버리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가는 심정의 주인공이 되라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여러분 자신에게 돌아와 가지고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어떤 관점에서 여러분 개체를 지도했나 반성해 보라구요. 여러분 심정으로부터 어떤 목표를 향하여 지도했던가를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1년 6개월 이상, 혹은 2년 가까이 심정문제를 외쳐왔습니다. 이때는 진리와 인격과 심정을 한꺼번에 하나님 앞에 참소의 조건으로 제시할 때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한 기준을 완전히 종결짓기 위해서는 피와 땀과 눈물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이번에 천지의 도수를 대신할 수 있는 어떤 수의 조건을 대비하여 여러분을 만민 앞에 보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가서 여러분들이 이런 신념을 붙안고, 천지의 대명분을 대신할 수 있는 본연의 한 가정의 기준을 가슴에 품고 여러분들이 나가 싸우는 데 있어서 가는 곳곳마다 섭리는 엄청나게 달라진다구요. 사람으로 안 되면 영계가 움직여 준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번에 많이 증거했을 것입니다. 희귀한 일이 많아요. 희귀한 어떤 소식을 많이 접했을 거라구요. 벌레만도 못한 가치 없는 자기 한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이론적인 심정을 붙들고 나가게 될 때, 이것이 하늘을 통하여 자기 환경을 넘어서 움직이는 것을 볼 때 얼마나 황공한 사실이냐 이거예요.

그렇게 하여 여러분이 돌아왔으니 이제부터는 심정의 무장, 말씀의 무장, 인격의 기준을 완결지어서 해결지어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는 하늘 앞에 하나의 상속적인 권한을 갖고, 믿고 축복해 주면 축복한 대로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들딸의 심정을 대신한 이러한 기준 앞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대신해 사탄세계를 향해 나섰으니 해결하자는 거예요.

어느 마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 져서는 안 됩니다. 그 마을에 들어가서 져서는 안 돼요. 뭘 하는 데? 싸움하는 데가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 흘리는 데 있어서 져서는 안 돼요. 더 나아가서 희생하는 데 있어서 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먹지 않고 더 심한 결심을 가져야 돼요. 여러분들이 희생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3년 동안 여러분이 총단결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최후로 말할 것은, 어찌하여 피와 눈물과 땀이 필요하느냐 이거예요. 역사는 이것으로 싸워 나왔습니다. 인류역사는 선의 땀을 흘리며, 혹은 눈물을 통하여, 피를 통하여 엮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는 피를 부르짖었고 눈물을 부르짖으면서 회개하라고 외쳐 왔습니다. 예수의 피를 중심삼고 눈물을 흘려 나왔지만 여기에 플러스할 때는 땀을 가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땀을 가해야 돼요.

이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210곳에 교회를 세웠으니 이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지금 그런 발판이 되어 있어 그렇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이제 보십시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그렇고 뜻적으로 봐도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우리의 피는 무얼 할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눈물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고, 땅은 땀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수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와 가지고 악한 세계에 땀을 많이 흘려 왔습니다. 이 인류는 지금까지 악한 눈물을 많이 흘려 왔습니다. 악한 피를 많이 흘려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 원칙에 의해서 이 땅은 우리 선한 사람의 땀으로 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인류는 선한 사람의 눈물을 통하여 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피로써 갚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생활신조는 하늘을 위하여 내 피, 인류를 위하여 내 눈물, 땅을 위하여 내 땀을 흘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적인 감정으로써 그것을 부여안고 `아버지!' 하면서 `나는 아들이니 이랬고, 당신은 아버지이시니 이랬다' 하는 , 이러한 부자의 인연이 있기에 이러지 않을 수 없다는 심정적인 기지를 세워 놓음으로서 만사는 종결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눈물, 심정의 땀, 심정의 피를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세워 놓자는 것이 이제부터 싸우러 나가는 여러분의 의무요 책임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아시겠어요? 「예」

왜 그래야 되느냐? 남한 각지를 순회할 때 나는 그것을 더욱 절절히 느낍니다. 그 부락부락마다 드나드는 고을의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많이 속아 봤습니다. 외식자한테도 속아 봤고, 혹은 주먹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속아 봤고, 혹은 종교인들한테도 속아 봤고 다 속아 봤습니다. 그들은 이제 앙상한 뼈와 살만이 남고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땅 문제에 목을 걸고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갖고 나가야 될 줄 알아야 됩니다.

속아 본 무리들 앞에 진실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말보다도 실천을 해야 됩니다. 말하기 전에 사무친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붙들고 `형제여', `동포여' 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소유자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이 민족이 이렇게 처참하게 되고 이 민족이 이렇게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 걸 통곡할 줄 아는 심정의 주인공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부여잡고, 가던 길이 막혔으니 돌이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도 개방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인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고, 강조하기 어려운 말을 스승으로서 여러분 앞에 하고 있는 괴로움을 여러분께서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가진 바의 영광이 있거든 나는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이 나가싸운다 할진대는 싸우는 노정마다 그 눈물은 아버지의 눈물로서, 그 땀은 아버지의 땀으로써 배가 고플 때는 금식을 하여 피를 말려 가면서 호소할 것입니다. 그 모습 위에 하늘은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다운 동지자의 몸은 천합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물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굶주린 자를 붙들고 그와 더불어 위로할 자를 찾았고, 불쌍한 자를 붙들고 그와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찾았습니다. (이하는 녹음상태 불량으로 수록하지 못했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심정의 즐거움을 지으신 만물과 더불어 나누는 것이 그 영광의 가치였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사옵고 전인류의 시조 된 아담 해와의 한낱 실수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리하여 수천만 년 영원한 세계까지 고난의 탑을 쌓아 놓는 억울한 사실을 저희들은 가슴 아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로 이렇듯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눈물의 골짜기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었사옵고, 피를 뿌리지 않으면 안 되었사옵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어마어마한 고난의 길이 가로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나이다.

당신의 심정 가운데서, 당신의 영광된 세계에서 당신의 놀라우신 선을 찬양하며 지금껏 사랑하고 싶었던 자녀를 잃어버리신 아버님의 서러움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시조 아담 해와로부터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하루 한 날같이 눈물과 더불어 고통을 겪어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한을 품고 가시는 아버지 존전에 서 있는 저희들은 머리 들 수 없는 부족한 것들이옵니다. 하늘을 대하여 감히 자체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였으나 섭리의 뜻의 손길은 아직까지 저희 한 개체와, 저희의 주위와, 저희 민족과, 국가와 세계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불초한 것들을 찾기 위한 당신의 숨은 사랑의 손길이 저희의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앎으로, 부족한 자식들이나마 머리를 숙였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어느 누가 천성 앞에 자기의 모습을 자랑할 자가 있사옵니까? 스스로 완전하다 하여 하늘을 해방할 자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긍휼의 아버님, 인내의 아버님, 선의 아버님, 부족한 것들을 이 시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나 역사의 곡절 가운데 서서 최후의 한숨과 더불어 절망 가운데 놓여져 있는 무리가 있사오니 이것이 삼천만 민중이요, 그 가운데에서도 이들인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불쌍한 이 민족 가운데 태어난 한 때의 억울함을 하늘에밖에 호소할 수 없었던 이 민족의 서러움도 당신은 아시옵고, 이 민족 가운데에는 핍박의 길을 가기 위해 온갖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 붉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 앞에 맹세한 무리들이 이 어린 적자(赤子)들인 것을 당신은 잘 아시옵니다.

이들을 몰아 당신이 원하시는 뜻, 당신이 소망하고 원하시던 그 동산, 당신이 지으신 영광의 그 나라까지 인류를 몰아대기 위한 아버지의 심정, 아버님의 간곡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앎으로 저희가 상처를 입으나, 저희가 눈물을 지으나, 저희가 핍박의 자리에서 탄식하고 머리 숙여 엎드려 있으나 사무친 심정으로 당신께 고마움을 돌려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이 되어 있는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저희는 가진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자랑할 것은 역사적인 죄의 혈족이었다는 것밖에 없고,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하늘을 해방하겠다는 것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나 그들을 찾기 위해 당신께서는 이 시간도 사랑의 손길을 펴시고, 각자에게 일일이 손을 내시어 저희의 손을 붙잡기 위한 아버지의 음성이 이 시간도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사무침의 하늘이요, 억울하면서도 참지 않을 수 없는 인내의 하늘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당신이 원하시는 소망의 뜻 가운데는 갖은 고역의 눈물이 잠겨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더 나아가서는 몰림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같이 피를 뿌리고 사라진 한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안 저희들은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다 드리고 산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여기 모인 무리들은 당신의 인내의 심정을 본받아 아버지 앞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한 품에 품으시옵고, 누구도 사탄이 데려갈 사람이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을 세우시어 당신의 영광을 찬양해 주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들이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아버지 뜻 앞에 머리 숙여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 산 제물로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오나,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는 부족한 것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더욱이나 여기에 모인 어린 청년 학생들 위에 삼천만의 운명과 한반도의 운명이 책임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늘날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눈물짓는 형제들을 대신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땀을 흘려 형제를 대신하기 위해 저희들은 각오하고 나선 무리이오니 당신의 품에 품어 지켜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어린 당신의 아들딸을 대하고 볼 때, 여기 서 있는 저도 그 시절의 한 때가 그립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알기에 애달픈 마음으로 눈물지을 때가 그립사옵고, 남아진 한스러운 당신의 심정의 세계를 더듬어 방황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시절에 그리던 눈물은 깨끗한 눈물이었사옵고, 그 시절에 부여받은 그 책임은 깨끗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와 같은 터전 위에 하늘은 역사하시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 가운데에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당신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고, 이 땅 만민 앞에 나누어 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이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때와 시기를 망각한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편리 때문에 하늘을 파는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하늘을 밟아 치우는 것이 인간이었사오나, 오늘 여기에 머리 숙여 당신 앞에 호소하는 이 아들딸 가운데는 한 생명이라도 하늘을 배반하는 자가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변의 진리를 배웠사옵고, 불변의 역사를 알았사옵고, 불변의 심정을 알았사옵고, 불변의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아버지인 것을 안 저희들은 불변의 자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은 한 생명이라도 하늘을 배반하는 자식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에게 언제나 품겨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당신이오니 이들도 영원한 아들딸로서 당신 앞에 품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더욱이나 1960년을 지내고 1961년을 맞이했습니다. 금년부터 계획하신 당신의 뜻이 있다는 걸 알았고, 허락한 천적인 한 때를 저희들이 인계 맡았사오니, 그 기간에 있어서 하늘 앞에 역군으로 나서는 용사들에게 깊이깊이 희생적으로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눈물짓고 굶주린 자리에 가는 곳곳마다 거기서 당신의 처지와 인연맺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애달픈 심정적인 처지와 인연맺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 이 기회에 남한 각지의 8백여 명 이상의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하늘의 심정을 본받아 자기 일개인의 이익을 잊어버리고, 산 제물로 당신 앞에 드리기 위하여 눈물겨운 이 한 시간을 갖고서 수많은 사람을 대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라북도 이 지역에서 당신의 따뜻한 품에 품기어 세움받아 싸우려는 어린 적자들이 모였사오니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친구가 없습니다. 저희들의 길을 지켜 줄 자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나서야 할 것이 저희들의 길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와 같은 걸음을 다짐하여 나선 저희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눈물로써 인연되어 있사옵고, 심정으로 연결되어 있사오니 심정을 상속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에 남겨진 한스러웠던 역사적인 곡절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기에, 역사적인 그 한의 곡절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한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간 순수한 자리에서 눈물을 뿌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올진대, 아버지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내세운 하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 있사올진대,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기간이 있어야 하늘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눈물과 더불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그러한 뜻을 품고 그 지역을 책임지고 제물이 되어 나가게 허락하시옵소서. 몸소 산 제물의 자리에 있어서, 몸소 배척받는 자리에 있어서 먼저 외로운 자리에 서게 된 이들을 당신이 지켜 주실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아무리 어려운 곡절의 길을 저희들 앞에 막아 놓고 가라 할지라도 반드시 후에 책임지시기 위한 일면을 세워 놓고 역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적마다 하늘은 같이하였사옵고, 어려운 자리에서 외로울 적마다 당신이 같이하셨사옵니다. 저희들이 쓰러지게 될 때 나 여기 있다고 부르짖던 당신의 음성이 있는 걸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 있어서 한 가지 가져야 할 것은 당신의 안타까운 한스러운 심정을 다시 옮겨 받는 것이오니 그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삼천만 민족을 부여안고, 27억 세계 인류를 부여안고, 더 나아가서는 천상에 있는 우리의 선조들을 부여안고 당신의 뜻을 염려할 수 있고, 제물로 오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고 호소할 줄 아는 당신의 귀여운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저녁에 저희들의 모든 사정을 다 기억하시고 허락하실 수 있는 은사로 각자의 심정을 채우시어서, 여기 모였던 이 한 시간이 헛된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소망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시간, 심정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시간, 사정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이 한 저녁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도 저희들의 움직임에 같이 협조하게 하시어서 주위에서 엿보고 있는 수많은 억만 사탄들을 제거시키시옵고, 당신이 원하시는 뜻에 합당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제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 요구하고, 하늘이 좌정하는 자리에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기에 부활의 역사가 그 자리에 같이하고 애천자의 역사가 그 자리에 같이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어제의 마음으로 심중에 아직까지 당신과 더불어 결속하지 못한 자가 있사옵니까? 결속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맹세하지 못한 자가 있사옵니까? 맹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해서 책임지겠다고 하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까? 책임지겠다고 하는 새로운 각오와 더불어, 당신 앞에 저를 원하시는 뜻대로 보내 달라고 하늘 앞에 약속을 하고 돌아가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 민중은 졸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망의 구렁텅이를 엿보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사탄들은 이들의 심령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 민족을 아버지 품에 품기게 하기 위해서는 남 모르는 희생이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고, 남 모르는 눈물과 피와 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길을 자진해 나선 저희들 앞에서 사탄은 물러가고 아버지는 저희들을 시중하여 아버지가 기뻐하는 동산에서 영광을 노래하실 수 있고, 저희들이 본연의 아들딸의 미를 갖추어 아버지의 그런 영광의 세계를 단장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숨을 제단을 쌓고 남 모르는 가운데 때를 알아 염려하면서 하늘 앞에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사올진대는, 그들의 발걸음을 통하여 어서 속히 거두어 모으시옵고, 아버지의 권속을 많이 번식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여기 어린 자녀들이오나 이들이 마음을 하늘 앞에 두고, 아버지의 심정에 호소할 적마다 그곳에는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들이 어울릴 것을 알고 있사옵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지상의 저희들을 옹호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믿고 실천하는 자는 승리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앞에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이 나가는 곳에는 기필코 승리적인 성과를 하늘땅 앞에 거두어 드릴 줄 알고 있사오니, 이번 기간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인생의 골짜기 깊은 심정이 흐르는 것을 부여안고 아버지를 거기서 상봉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고생도 당신을 위한 것이었사옵고, 눈물도 당신을 위한 것이었사옵고, 죽음도 당신을 위한 것이었사옵니다.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이와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탕감복귀의 역사를 저희들이 배웠기에 이 길을 저희들이 탕감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의 슬픔을 하늘 앞에 돌려드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기의 어려움을 하늘의 어려움으로 돌려드리지 말고 내 일은 내가 책임질 줄 아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이들이 가는 일생의 노정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살피시옵고, 뜻하신 뜻대로 가꾸어 아버지의 영광의 존전에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축복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선생님이 말하는 아버님은 세상에 여러분을 낳아 준 그 아버님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되신 아버님이시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늘 앞에 서고 싶은 게 본연의 인간

여러분 자신들, 자기의 한 생명이 귀하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좀더 편하고, 내가 좀더 훌륭해져서 국가를 대신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신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 앞에 서고 싶은 것이 지음받은 본연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타락을 했을망정 여러분의 마음은 더 높고 높은 것을 이 시간도 추구하고 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낫기를 바라고, 내일보다는 그다음 날이, 일 년 후 십 년 후 여러분들의 생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범위에 따라 가지고 욕망은 점점 더 커져서 여러분이 세계 앞에 서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 심정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심정이 그릇된 것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왜냐? 우리 인간은 본래부터 누구를 좋아하게끔 지어졌느냐 하면, 여러분이 지금 낳아 준 부모를 대하게끔 지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를 넘어서 수많은 민족이 있으면 민족을 대표해서 서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해서 서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저 영계를 대신하여, 더 나아가서는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나타나야 할 무한한 가치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둘도 없는 가치,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가치는 하나님도 존경하는 가치요, 천상에 아무리 놀라운 천사장 혹은 수많은 영계가 있다 할지라도 그 영계도 역시 그런 한 모습이 나타난다 할진대 그 모습 앞에는 어느 누구나 머리를 숙여 찬양하고 싶은 가치인 것입니다. 가치적인 그 존재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완성된 아담이 돼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기 본연의 목적을 완성치 못하고 여지없이 떨어졌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수습할 수 없는 정도만큼 떨어졌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하루 생활권 내에 있어서 자기가 계획한 것이나 행하던 일 하나가 잘못되면 그날에 그 일을 수습할 수도 있고, 그날에 안 되면 그다음날, 그다음날에 안 되면 혹은 며칠, 며칠에 안 되면 몇 달, 몇 달에 안 되면 일 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움직임에 따라 가지고 그 일은 회복할 수 있는 기일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인간시조가 타락하고 난 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인 타락한 인간을 수습하기 위해 6천 년 동안 수고하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기준으로 수습하지 못할 만큼 타락했습니다. 최상 하늘 끝에서부터 최악 지옥 밑까지 인간은 굴러 떨어졌다는 거예요. 어디 가치를 가꿀 수 없고 거둘 수 없는 무가치한 인간으로 되어 버렸다구요. 이런 인간을 하늘은 다시 최고 가치의 존재로 이끌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는데, 그 역사노정이 무엇이냐 하면 복귀섭리요, 구원섭리요, 재창조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에서 배워 알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수많은 우리 선조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최고 인간의 가치를 향하여 우리의 제반조직이 동원되어 있습니다. 이 사회에 움직이는 어떤 조직적인 기관이나 어떤 형태를 가진 존재물이 불철주야로 그 목적달성에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움직임이 천운으로서, 천도로서 혹은 천륜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세상을 휩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휩쓸고 움직이는 힘은 여러분들이 생각지 않는 사이에 여러분의 마음이 스쳐 가는 그 방향을 향하여 끌고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무엇이냐?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그다음날, 다음날에 더 좋아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여러분 앞에 있는 것을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족한 내 한 자체라고 해서 여러분 절대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지금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오늘보다도 더 가치 있는 내일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여러분은 잘나나 못나나 이 천지 대천륜의 운세권 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에 여러분들은 서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 보더라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부르나 안 부르나, 혹은 깜깜한 곳에 있으나 광명한 곳에 있으나, 혹은 훌륭한 자리에 있으나 천한 자리에 있으나 마음 방향은 여러분을 재촉하여 `가정을 대표하라! 사회를 대표하라! 국가를 대표하라! 세계를 대표하라! 더 나아가서는 하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표하라!'고 언제나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방향을 따라가라

그래서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가까와 오면 최후에는 어떤 말이 나와야 될 것이냐? 사람 하나를 세워 놓고 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내세워 세계를 수습하고, 인간을 내세워 하늘과 땅, 유형세계와 무형세계를 수습하고, 무형세계와 유형세계를 수습한 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을 내세우기 위한 천륜이 남아 있는 한, 기필코 이 법도를 어길 수 없는 한 이 일은 한 때를 맞이하여 종결될 것입니다. 기필코 이 일은 여러분들이 살아서 보지 않으면 죽어서라도 맞이해야 할, 타락한 역사가 끝날 시대에는 여러분들이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한 때가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때를 기독교에서는 끝날이라고 합니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끝날을 대비하여 타락한 만민 앞에 하나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한 때를 맞이하여, 끝날을 대하여 한 중심을 세워 놓고, 한 분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과, 가치적인 모습으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내 만민이 많은 수고의 노정을 거치지 않고도 그로 말미암아 단시일 내에 하나님 앞에 등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하고도 놀라운 역사를 인간 앞에 부여하기 위하여 약속한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재림의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것을 추구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여 가는 도상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수습할 수 없는 미궁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일 개의 실낱 같은 하나의 개체로서 생명을 지니고 사는 여기에 있어서도 고충이 많아요. 자기의 일개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여 엉클어진 곡절을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끊는 처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수습할래야 수습할 길이 없기에 탄식을 하고 여기에 비명을 울리다가,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모든 가치적인 자기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와 같은 역사적인 도상이요, 그런 천운이 움직이는 도상권 내에 한 개체로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어떤 권내에 있는가를 잘 살펴야 됩니다. 내 마음은 스스로 천운이 움직이는 그곳을 향하여 가려고 하고 있지만, 내 몸과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거기에 극반대적인 입장에서 양심과 부딪치는 싸움을 모면할 수 없다 이겁니다. 이 싸움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생사의 결판을 지어야 할 시간이 여러분 앞에 박두해 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우리에게 소망의 어떤 생명력이 있다 할진대는, 기필코 오늘 현실에 있어서 내 양심을 통하여 부딪혀 들어오는 이 원수를 대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양심의 방향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환경이 작으면 작고, 크면 큰 그런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위치에 있든지간에 그 문제를 해결짓지 않는다 할진대는, 항해를 해 나가는 큰 배가 암초가 있는 지도 모르고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마음은 고이고이 잘 가서 목적지를 향하여 만민을 대표하고, 하늘과 땅을 대표하고, 더 나중에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온천지 운세를 움직이는 대주재의 힘에 의해 가지고 그리로 이끌리고 있지만 갈 수 없는 역경, 환경에 여러분이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환경이 그로 하여금 울려 나오게 하는 웃음소리는 자기의 내일의 생명노정에 있어서 자기 갈 길을 얽어매는 밧줄과 마찬가지요, 안일한 한 날을 즐길 수 있는 그 자리가 내일의 사망을 예고하는 자리라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처해 있는 자기의 외적인 고통을 밟아 치우고 훌훌 넘고 넘어 자유의 마음세계로 가야 됩니다. 마음세계에 있어서 인연된 어떤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와 자기 마음의 연락을 통해 느껴 들어오는 무한한 가치를 악한 세상에서 느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고, 이것을 감정해 낼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할진대 보기에 누추하고, 보기에 형편이 없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인생행로에서는 대승리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슬픔이라도, 역경이라도 오너라! 너 고난이 나로 하여금 어떤 어마어마한 고통의 자리에 서게 할 것이냐' 이렇게 부르짖고 나서는 청년 무리들이 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어떤 민족을 대신하여 한 모퉁이에서 움직여 나온다 할진대 이 무리들은 심상치 않다는 거예요. 기필코 살아 계신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들을 세우실 겁니다. 최후의 가치를 찾고 계신 하늘은 그러한 무리를 끌어 세계 인류 앞에 내세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 앞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무리를 끌어내지 않을 수 없는 하늘의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마음의 고통이 있거든 이 고통을 제거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더욱이나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마음의 세계에 구속되어 들어오는 일체의 모든 것을 용납치 않고 자기 마음속 깊은 가운데서 그 본연의 목적 대상을 향하여 시간성 공간성을 초월하여, 내 심정적인 기준에서 언제나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만 마음은 즐거워할 수 있고, 그런 자리에 처해 있어야만 그 무엇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수많은 성현현철들이 찾기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아직까지 해결을 못 지었어요.

절대자 앞에 등장해야 할 인간의 가치를 지켜야

오늘 여기에는 청년 남녀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의 그 심정은 오늘날 어느 곳을 향하여 있느냐? 이걸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바라는 그 소망의 목표는 최후의 것입니다. 최후의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한 절대자 앞에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는 여러분 자신이니, 우선 거기에 있어서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결심하지 않은 일을 여러분이 성사하더라도 그건 여러분과 나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결심을 하여 시련과 더불어 싸워 거기에 대해 어떤 목적적인 가치를 투입 분석하여, 거기에 대한 맛을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어떤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 앞에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결심, 자기의 신념도 없는 가운데 우연히 어떤 목적이 달성됐다 해서 그걸 자랑할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절대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서는 빼앗아야 돼요. 그들이 아무리 어떤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건 자기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오늘날 하늘은 인간 앞에 믿음,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워서 `믿어라! 신념을 가져라! 네 원수가 나타나서 믿음을 삼켜 버리려 해도 여기서 삼켜져서는 안 돼! 어떠한 역경, 어떠한 고충의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것만을 잃어서는 안 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이런 놀라운 권고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세워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자신이 어떠한 절대자 앞에 등장해야 할 인간으로서 그 가치를 이 시간에도 추구하고 있거든 그 마음을 고이고이 지켜야 되겠습니다. 마음에 어떠한 형태로 여러분과 같은 존재가 대신 나타났을 때는 있는 정성을 다해 땀을 흘리고,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곱게 단장시키고 곱게 먹이고 입힐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길을 가야 된다구요. 이렇게 하는 사람은 지금 타락한 세계에서의 일국의 어떤 제왕보다도 훌륭한 분이요, 역대의 충신 혹은 열사 성현보다도 더 훌륭한 분인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작용을 따라 가지고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줬고 우리의 인생의 갈 길을 지향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지향해 주는 역사 발전노정에 있어서 시대적인 혜택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성현현철들이 과거에 주창하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오늘날에 와서는 그 이상의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 자신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그 제왕이 무엇이냐? 천상이나 지상이나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 앞에 늠름히 나서 가지고 아들의 모습으로, 딸의 모습으로 부끄럼 없이 나설 수 있는 귀동자요, 귀동녀들이 그 마음속에 깊이 잠들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손길이 움직이는 그 한 시간이지만 여러분의 손길을 위한 손길만으로써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속에 이러한 귀동자 귀동녀의 손길이 움직일 수 있는 걸 그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는 데도 여러분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갈 수 있는 곳을 그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는 거예요. 누구한테? 먼저는 나 자신에게 보여 주고, 그다음에는 나를 대하여서 이 절대적인 가치의 자리까지 이끌어 준 주인 앞에 보여 준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숭고한 거예요.

만일에 이런 생각을 한다고 여러분 생각해 봐요. 하나님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런 생각 한다고 해서 벌주시겠어요? 그런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잊어버리고 다른 생각이 나올 그 길을 막기 위해 오늘날 그 이외의 모든 생각을 제거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 깊이 잠들어 있는 본연의 그 자체의 모습, 그 자체의 행동, 그 자체의 가치 앞에 정성을 다 들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을진대 여러분들은 절대자 앞에 도저히 나가지 못합니다. 이 길을 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 친구가 반대하게 될 때는 …. (녹음이 잠시 끊김)

오늘날 세상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래요. 천만 원 있는 사람이 천만 원 이상의 이익이 날 수 있는 장사가 있다 할진대 그 천만 원을 내던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 이치는 다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지향하는 바가 있는데,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어떤 가치적인 무엇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도달할래야 도달할 길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막연하고 관념적인 신의 실존과 내 실존적인 가치의 개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실체를 갖고 생활하는 생활무대 환경에 있어서 절대자와 더불어 같이 느낄 수 있는 공감의 가치를 어떻게 이루어 놓겠느냐? 관념적인 신이 아니라 생활적인 신의 체휼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철학자, 어떤 성현이 나왔어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하다구요. 만약에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할진대 그건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어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수억만 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허덕이고 있으니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단계에 있는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두 마음을 품지 마라!'고 했습니다. 눈도 둘이요, 손도 둘이요, 발도 둘이요, 입도 둘이요, 머리도 둘이요, 마음도 둘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여야 됩니다. 그 하나는 여러분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이 더 좋기를 바라고, 더 가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가치가 있는 그곳은 오늘날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니예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부족한 여러분이지만 여러분을 내세워서 `야, 아무개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만민아! 이를 환영하라! 만인아, 이를 사랑하라!' 할 수 있는 자들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

눈물과 더불어 약속한 심정이 재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가치를 반드시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달성해서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신념이 철두철미해야 됩니다. 이 신념을 빼앗아 가고자 하는 원수가 있더라도 양보할 수 없어요. 내 생명이 당장에 끊어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어요. 내 인격이 파산되고 내가 세상에서 지니고 있는 명예나 그 무엇이 일조에 낙엽과 같이 다 떨어져 내려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다 녹아나더라도 여러분이 죽어서 물이 다 되더라도 그것만은 남아져야 돼요. 그것은 어디에 남아질 것이냐? 사람의 마음, 참다운 사람의 마음에 남아질 것입니다.

여기 온 학생들 가운데는, 혹은 청년들 가운데는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가 오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 앞에 충고하고,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오늘날 내 몸이 부서지고 내 몸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신념의 가치를 감미할 수 있는 여러분의 위치를 작정하지 않는 한 여러분들은 가다가 쓰러진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외치고 있는 선생님도 세상의 명예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요, 세상의 그 무엇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 당신과 나와의 관계, 당신도 위신을 잊어버리고 나도 위신을 잊어버리고 붙들고 몸부림치면서 `아무개야!' 하던 그 모습이 그리워 찾고 있던 그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때에, 눈물과 더불어 약속하던 그때의 심정이 하나의 재산입니다.

거기에 세상의 어떤 지도자, 어떤 가까운 사람,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 것 가지고는 도달할 수 없고,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인연이 있기에 이 시간도 여러분 앞에 나서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들어오게 될 때까지에는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 자유로운 환경에서 앉아서 말씀을 듣고, 외부의 아무런 핍박의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이 오늘 당장에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는 노고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한 눈물의 길도 피땀의 길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은 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눈물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땀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내 팔 다리를 끊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바꿀 수 없는 , 그분과 나와 맺어진 인연, 그 가치는 인간이 맞아야 할 최후의 길이요, 해결지어야 할 최후의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결정을 지어 책임을 질 수 있고, 그 책임과 더불어 그 가치를 중요시하는 그 마음과 더불어 이 세상에 사는 데에는 그 고충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은 모르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웠습니다. 탕감복귀역사라는 걸 배웠다구요. 여러분들은 쉽사리 선생님이니 혹은 무엇이니 하는 명사로 부르지만 그런 명사를 존중시하는 여러분이 되지 말라구요. 어떤 한 일개인의 몸뚱이를 존중시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구요. 나는 누누이 어린 식구들에게나 혹은 식구들에게 말합니다. 자기 스승이 쓰러져 죽는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붙들고 울기 전에 스승이 사랑하던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백성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누가 대신 품어 주겠느냐고 이런 심정에 앞서 눈물지을 수 있는 그런 식구, 그런 제자들을 선생님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몸 마음 속에, 혹은 뼈와 살에 젖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의 무슨 진리의 말씀도 필요하겠지만 그 진리 골수에 흐르고 있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어느 누가 유린할래야 유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선상에서 직선을 향하여 나를 간섭해 줄 수 있는 절대자와의 인연의 가치를 여러분 자신이 깊이…. 남은 모르나 내 스스로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여러분 자신들이 갖지 않았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가다가 어느 한 때 어떻게 될지 몰라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성경을 배워서 알다시피 노아의 가정도 그러했고, 아브라함의 가정도 그러했고, 역사에 택하여져 선민권을 자랑해 오던 이스라엘 민족도 수천 년 동안 하나의 뜻, 약속의 한날을 고대하여 싸워 나왔지만 그들이 뜻을 대하지 못하고 약속의 실체를 대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 있었느냐? 그것은 외적으로 나타난 환경은 중요시할 줄 알았으나 외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자기 선조를 넘어 입체적으로 맺어져 있는 하늘의 심정을 몰랐기에 그들은 배반자의 종족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효자·충신·열녀의 마음을 가진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아

오늘 여기 여러분들 대해 내가 제일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 통일 성도들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가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질이냐? 여기서 선생님이 `그래서는 안 돼' 하더라도 선생님이 지지 못할 짐을 진다 할 때는, 더 깊은 하늘의 심정이 그와 더불어 관계 맺어지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늘 앞에 그 가치를 결정받아 나선다 할진대는 내 자신도 그를 존중시하고 머리를 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없을 때 이 모든 천적인, 어떤 가치적인 문제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후대에 상속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좋아하고, 그런 자를 존중시하고, 그런 자를 높이지 않는 어떤 대표자라면 하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길을 막는 자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들, 이제 우리는 최고의 것을 상속받아야 되겠습니다. 최후의 한점을 향하여 우리는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걸친 옷은 남루하고 처해 있는 환경은 어지러울망정, 일편단심 끓어오르는 심정 속에서 끊을 수 없는 주체인 그 절대자 앞에 내 개체로서의 최후의 가치를 향하여 가겠다는 결심만은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게 될 때 잠자고 난 그 순간이라도 내 피곤치 않다고 다시 일깨워야 됩니다. 저녁 석양에 기울어진 해를 바라보게 될 때 내 마음에 불타는 하늘을 위한 충성의 그 정열만은 서산에 기울어지는 해와 같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목표 밑에서 한 목적을 향하여 모든 것을 수습하고 나간다 할진대는 …. 이미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수천 년, 혹은 몇천 년 전에는 우리 선조들이 그런 결심을 가졌지만 자기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소망으로밖에 가질 수 없었는 데도 그것을 갖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됐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싸울 것입니다. 부딪치고 부딪쳐 가지고 내려가는 거예요. 최고의 자기 권한, 최고의 자기 영예, 자기의 권세를 자랑하던 그 모든 것이 최고의 절정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절정에 다다른 그날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런 환경, 그런 때가 왔거든 거기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에 있어서 자아도취 되어 만족하고 있는 그 무리들 앞에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고, 눈물 흘리는 자리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져 가는 몸을 부여안고 단 하나 내가 남겨야 할 유업은 무엇이며,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이며, 내가 상속시킬 수 있는 최후의 유언은 무엇이냐? 하늘을 대하여 타오르는 내 심정과 충성하고 싶은 효자의 마음, 충신의 마음, 열녀의 마음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있다 할진대 그 무리들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최고와 최고가 부딪쳐, 세상의 최고와 하늘의 최고가 부딪쳐…. 세상적으로 볼 때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하지만 하늘적으로 볼 때는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두철미한 신념과 더불어 이 세계를 생각하는 데는 하나의 이념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위한 이념이냐? 아버지를 위한 이념입니다. 아버지는 이런 이념이 여러분의 이름과 더불어 아버지와 관계맺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6천 년 동안 곡절을 겪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 일이 누구의 일이냐? 아버지의 일이예요. 아버지의 일인 동시에 여러분의 일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어느 누가 그 부모 대해서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냐?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내가 모르는 심정의 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건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힘으로써 이것을 바꿀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거예요.

타락한 종족권 내에 있는 우리의 부모들도 그러하거늘, 본연의 심정을 통해 인연맺기 위하여 역사를 부여안고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그런 심정의 인연을 앞에 세우고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는 아직까지 그런 아들딸을 만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아들딸을 세우시어 그 아들딸로 말미암아 천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천적인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과 민족을 거쳐, 국가를 거쳐, 만민이 하늘의 백성으로 설 수 있고 하늘의 아들딸로 설 수 있게 하려고 했으나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아버지는 이 세계의 끝에 가서라도 이 곡절의 세상 앞에 물들지 않은 참다운 아들딸과 상봉하여, 새로운 역사를 중심삼고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한 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 가지고 여러분은 무엇 갖고 나갈 것이냐? 옷 잘 입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의 잘난 얼굴이 아니예요. 지식이 아니예요. 학식이 아니예요. 다 아닙니다. 내 속에 숨어 있는 나만이 갖고 있는 보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따라갈 수 없는 나만이 가진 이 보화, 이 가치를 절대자와 더불어 길이길이 만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것으로 찬양할 수 있는 그 마음이예요. 여러분 각자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 할진대 그런 마음을 가진 자를 중심삼고 하늘은 말씀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요, 절대자요, 모든 존재세계의 주체로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와 같이 무슨 돈을 주고 끌어온 것이 아니예요. 어떤 수단에 의해서 끌려온 것이 아니예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내 심정이 이 자리까지 끌어온 것입니다. 그런 심정의 줄에 얽매인 사실을 여러분이 느꼈다 할진대 여러분과 아버지의 관계는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으되 여러분이 움직이는 여하에 있어서 거기에 절대적인 가치의 내용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도 고깃덩이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무리 변하든, 처지가 아무리 달라졌든 아버지로 말미암아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러면 그런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오늘의 나 한 개체만을 중심삼고 가치적인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냐? 아닙니다. 온 세계, 자기의 사랑하는 손길을 거쳐 지음받은 것이면 어떠한 존재물 하나라도 본연의 인연을 맺기 위해 지금까지 허덕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심정으로 세계를 움직여

하늘은 이 세상을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데 있어서 무슨 말씀으로 움직이려는 것이 아니예요. 심정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하더라도 설명보다 앞설 수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내가 안 그럴래야 안 그럴 수 없는 심정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불변의 심정으로…. 내 생활을 휩쓸어 가지고 환경을 급변시킬 수 있는 움직임이 반드시 역사적인 종점을 바라보는 끝날에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그런 결심, 그런 자기 스스로의 심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도록 어떤 큰 힘이, 여러분의 가야 할 길을 지향시키는 그 무엇이 없걸랑 또 가야 됩니다.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여기가 여러분이 완전히 안식할 곳이 아니예요. 또 찾아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효자의 길에 있어서 자기 생명보다도 더욱 귀한 재산이 있다면 무엇이냐? 부모라는 것입니다. 충신의 길에 있어서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가치가 무엇이냐? 군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그 정성의 마음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열녀도 역시 마음이 문제예요. 그 마음은 어떤 인간의 힘으로써 수단으로써 가치로써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스스로가 자연히 환경을 넘어 가지고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양심의 방향과 더불어 생활적인 환경을 변화시켜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느낌이 있다 할진대 다른 생각 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바라는 것이 제일 확실한 거예요. 반드시 천륜을 밝힐 수 있는, 인류가 공히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도의 중심이 되어야 할 곳은 어떤 곳이냐 하는 것을 알았기에 심각히 생각하고 통일이라는 글자를 걸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다년간 모든 사람들, 악한 사람들을 붙들어 가지고 실험을 해봤다구요. 한 사람이 아니예요.

내 마음이 향(向)하는 그 움직임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죽더라도 그것만은 남기고 가야 됩니다. 내가 죽더라도 그 움직임, 그 향심(向心)만은 남기고 가야 돼요. 이 타락한 세상에서 전멸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만은 세계를 정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시작된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만민과 더불어 엉클어지기 위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마음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혹은 동 서양을 넘어서, 어떤 민족적인 전통을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환경은 다르지만,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는 느껴지는 그 감촉과 마음의 방향은 변치 않는 작용을 절대자와 더불어 관계맺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후의 길입니다.

본연의 모습을 일으켜 절대자와 인연 맺어야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좋은 일이 있으면 누구한테 보이고 싶어요? 주인 앞에, 절대자 앞에. 슬픈 일이 있으면 누구하고 나누고 싶어요? 귀한 분하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내가 기쁘고 좋을 때에는 발길이 바빠요. 나에게 먹을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좋은 게 있으면 그분을 생각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것은 나에게만 있어야지 그분에게 있어서는 안 돼' 하는 마음이 여러분 자체에서 우러나온다 할진대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 사방에서 몰려왔습니다. 여기 서서 말하는 선생도 일대일로 보면 뭐 별거 없다구요.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이 모르는 내적 세계에 있어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어떤 수단 방법으로는 절대 안 돼요. 당장에 그 세계, 그 심정적인 인연에 내가 찾아 들어가게 될 때에는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어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사무쳐 들어오는 심정적인 그 무엇이 있기에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내가 오늘 젊은이들을 바라보게 될 때, 마음에 솟구치는 것이 무엇이냐? 꽃다운 청춘시대, 혈기 왕성한 이때에 하늘 대하여 충성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 가지고 놀랍게 숨겨져 있는 본연의 그 모습을 일으켜 절대자와 인연을 어떻게 맺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인생노정에는 곡절이 많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요, 어느 사방 주위를 바라봐도 자기 일신을 가꾸어 천성의 인연을 맺기 위해 눈물 흘릴 수 없는 환경이 많다는 거예요. 환경이 그런 동시에 내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한 분이 있다 할진대 그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어요.

6천 년 동안 역경 속에서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슬픔을 머금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처량한 눈물을 한없이 흘리는 자리에 가 있다 할지라도, 가슴을 억누르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배반하고 돌아서는 자가 있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너는 가더라도 내 사랑하는 아들은 남아 있다. 하늘의 약속을 받아 가지고 민족을 대신할 아들을 보내 주마' 하셨습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소망의 마음을 앞놓아가면서 현재의 악한 것을 잊어버리고 나온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의 억울함 가운데에서도 소망의 아들딸이 오래지 않아 찾아온다. 내가 소망하고 내가 싸우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들이 앞으로 나타난다. 내가 현세에는 비참함, 억울함, 한스러움을 당하지만 천지를 한시에 파괴해도 마땅치 않은 이런 심정에 사무쳐 있지만, 이런 억울함을 다 이해하면서 이 억울한 자리가 다시는 내 앞에 보여지지 않도록 참다운 아들딸들이, 소망의 아들딸들이 앞으로 온다' 하고 바라시는 아버지라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별의별 해괴망측한, 볼래야 볼 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다 지나가라! 이것이 지나가고 소망의 한날이 올 때에 그리운 내 아들, 그리운 내 딸…' 이러시면서, 슬픈 일을 당할 적마다 마음으로 외치시고, 곡절에 부딪칠 때마다 참는 마음으로 이렇게 읊으면서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남 모를 심정의 곡절을 많이 가져야 행복한 사람

민족을 대신하여 내세웠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도 하늘의 사정이 이렇다고 통곡하여 가르쳐 줬으나 그 사정을 다 유린해 버렸습니다. 그럴 적마다 `민족에 대한 내 사정을 모르는 이스라엘아! 너는 갈지언정 내가 너에게 사정했던 소망만은 남아 있다. 나는 이 심정을 갖고 이스라엘 너를 대했지만 너는 갔다. 그러나 너를 대하던 소망의 심정만은 남아 있다'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도 한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어디 즐거운 그 한 자리, 소망과 사정과 심정이 어우러지는 그 한 자리에서도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 자유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셔 놓고 밥을 들 수 있는 그 한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그런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대해 여기서 이 한 마음을 통해 외치지만 오늘 여기에서 외치는 그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의 마음을 갖고 외칩니다. 소망의 가정을 품고 외칩니다. 소망의 심정을 갖고 외치게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를 붙들고 소망을 가졌던 그들의 배반, 사정을 통하였던 그들의 배반, 심정을 나누었던 그들의 배반을 바라보면서도 `너는 가라, 가려면 가라! 소망의 아들딸은 찾아오나니, 소망의 사정은 남아 있나니, 소망의 심정은 남아 있나니…' 이러면서 내 아버지가 품고 나오시던 그 뜻을 따라 나도 그렇게 가야 된다는 자리에서 지금도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비록 내 마음에 품은 것은 없고 내 가슴에 담아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소망하시던 그 소망의 아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그리워하고, 심정을 나눠 주시던 아버지의 그 심정을 그리워하는 소망의 사람이라도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하시던 그 한날 내 아버지를 모실 때 어떻게 모시겠다고 여러분은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만나게 될 때 이러한 사정을 통하겠다고 하는 사정의 곡절을 많이 가져야 될 것입니다. 내 억울한 모든 심정을 이렇게 아버지 앞에 아뢰겠다고 하는 남모르는 심정의 곡절을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한스러운 역사의 사망의 고난은 소망의 사상을 유린하고, 사정과 심정을 유린하고, 하나의 도의 심정을 갈래갈래 찢어 놓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 시간도 이러한 사정들을 수수방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나 대신 이 소망을 위하여, 이 심정을 위하여, 이 사정을 위하여, 우리들을 위하여 오늘날 이 현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걸 잘 알아야 돼요. 누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그런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 전도하든가 혹은 계몽 나가게 될 때, 영적인 수준이 높은 사람이 여러분들을 증거하게 됩니다. 왜 증거하느냐? 소망의 한날을 위하여, 사정의 한날을 위하여, 심정의 한날을 위하여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은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가 동원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원과 여러분의 사정과 여러분의 심정이 하늘의 소망, 하늘의 사정, 하늘의 심정과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때를 준비하기 위하여…. 그 놓여질 수 있는 그 기준은 어떤 민족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하늘땅의 기준이라구요. 하나님도 여기에는 안식할 수 있는 그 기준을 향하여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 잊어버려도 좋다는 거예요.

오늘의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 못 되었거든, 소망을 이루는 자로 서지 못하였거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서지 못하였거든,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서지 못하였거든 소망의 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고 소망의 사정, 소망의 심정을 향하여 아버지 앞에 나서 가지고 `내 아버지여! 그대의 사정이 이것이지요? 그대의 심정이 이것이지요?' 할 수 있는 오늘의 여러분이 못 됐거든 그런 자리에라도 서지 못하면 여러분 갈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늘 저녁에 이것을 전부 다 수습하여서 가야 되겠습니다. 한 분을 위하여 내가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나 모든 것이, 내 영혼이나 모든 것이 그분을 위하여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목적입니다. 피조물이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 한 분을 위하여 내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나는 그 한 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어떡하든지 그 한 분을 대신해 있습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밤이나 낮이나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분이 소망의 심정을 갖고 왔지만 사정을 나누지 못하고, 천지의 모든 것이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심정적인 기준을 오늘날 인간들과 더불어 관계맺지 못하고 그 소망이 유린되었습니다. 소망을 갖고 그 시대적인 책임자 앞에 그 책임을 맡겨 소망의 자리에 세웠고, 그 시대적인 사정을 논했고, 그 시대적인 심정을 논했으나 다 유린되었다는 겁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세계적인 소망의 때요, 세계적인 사정의 때요, 세계적인 심정의 때입니다. 그런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그 하나의 마음만….

최후의 고비를 넘어갈 때 하나님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돼

그러면 여러분이 그분을 대신하여 있다는 걸 느낀다 할진대는 좋은 것만 그분을 대해서 내가 책임지고 내가 대신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물론이로되 나쁜 것도…. 타락을 누가 했어요? 우리 선조 아담 해와가 했던 거예요. 그래, 하나님 앞에 `6천 년 동안 소망의 실체를 갖지 못한 당신 앞에 나는 소망의 실체로서 가정을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사옵고, 가정을 대신해서 이 사정을 나누고 싶사옵고, 가정을 대신해서 이 심정을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오늘 이 땅은 어떤 땅이예요? 타락한 땅이요, 죄악의 땅이요, 원수가 준동하는 땅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갈래갈래 찢어 버리기 위한 땅이예요. 원수와 싸우는 땅이예요. 싸움은 누가 해줘요? 하늘이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되겠다 이거예요. 이 싸움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이 싸움을 맡긴 것만 해도 억울한 것입니다. 이 싸움을 하겠다고 결의와 각오를 하고 나선 무리가 누구냐 하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최후의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여 싸워야 할 최후의 싸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누구 때문에? 아버지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왜? 아버지 때문에 내가 있으니…. 아버지가 그러한 자리에서 나를 키우고, 그런 길을 가르쳐 주고, 그런 길을 소망으로 품고 나오던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의 심정을 우리와 연결시키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것을 생각만 해도 고마운데, 오늘날 그런 것을 알고 나서 또다시 그걸 맡길 수 있어요? 이제는 우리를 하늘이 후원해 주나 안 해주나 우리가 책임져야 됩니다. 하늘의 구원을 생각할 때 너무나 미안해요. 너무나 황공하다구요.

우리는 탕감복귀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이 후원해 줬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아담 해와가 생겨날 때까지는 하나님이 빚어서 만들었지만,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 `너 타락해라' 그렇게 후원해 줬어요? 후원 안 했다구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최후의 고비를 넘어가는 그때에 하나님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천상세계의 천사의 후원도 받아서는 안 돼요. `이것은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해야 돼요. `당신은 이러한 소망의 한때에 심정적인 중심을 통하여 심정적인 인연을 통하여 세우고자 하셨던 당신의 족보가 이렇다는 걸 알았으니 하나님의 후원, 천사의 후원, 영계의 어떤 성도의 후원도 받지 않고 이젠 나 혼자 하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열성을 가져야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이때에는 어느 누구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 선생님도 여러분들을 내보내서 원수의 소굴에 처넣을 것입니다. 왜? 일시에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간교한 때요, 이때는 죄의 기교가 많은 때요, 이때는 자연 유인당하기 쉬운 때요, 이때는 역사적인 전체의 결재시대입니다. 악한 것이 있다면 최고의 악입니다. 그걸 쓸어내야 돼요. 거기에서 시험치고 나서 늠름하게 자기의 용자를 하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앞으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후원해 주지 않습니다. 해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젠 알았다구요. 내 갈 길을 알았고 최후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절대적인 부자관계라는 것을 알았고, 그 부모 앞에 진 빚은 몸뚱이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을 벌려 가지고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앞으로 나가 전도할 때 환경이 어렵게 되면 `아버지! 내가 배고파 죽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런 자리에 섰음은 저들을 위한 것이었사오니 이런 것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시거든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절기에 추운 방에서 잠을 자게 됐을 때 사정없이 찬 바람이 내 일신을 몰아치고, 혀와 같이 몸을 구부리고 자는 모습으로 눈물짓는다 하더라도 `아버지여! 나를 불쌍히 보시거든…. 내가 이렇게 있음은 이 민족을 위함이요, 세계 인류를 위함이 아닙니까? '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절대 여러분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앞서 가지고 나가는 자는 절대 하늘이 같이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내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감옥에 들어가 영어의 몸이 되어서 여지없이 이런 환경에 처할 때면 하늘은 난데없는 사람을 통하여 굶주리면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옷을 구하지 않았지만 입을 것을 갖다 주더라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편안한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역사를 겪어 왔기 때문에 당당히 말할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양심적으로 가책이 안 돼요.

서울에서 내가 가까운 식구들 모아 놓고 한 말이, 네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시하거든 네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입는 표준에서는 말 못합니다. 내가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버젓이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어려운 자리에서 수고함으로 말미암아 민족 앞에 버젓이 나설 수 있고, 만민 앞에도, 하늘땅 앞에도 위신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행치 못한 기준에 있게 될 때는 양심이 입 못 벌리게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부디 마음만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족을 찾아 품고자 하는 아버지가 계신다면 그 아버지 앞에 초라한 모습이나마 삼천만 민족을 넘어서서 아버지의 심정을 염려하며 눈물지으며 내 일신의 처량한 모습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여! 나를 긍휼히 보시거든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옵소서' 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그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된 자여, 자식을 키우되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싶거든 자식을 세워 놓고 남에게 말할 때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가져라 이겁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세워 놓고 만민 앞에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하늘은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서 30평생을 살다가 죽어갔고, 그 대상인 성신도 이 땅에 와서 피눈물 나는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할말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이제 이 민족 앞에 나선 우리라 할진대, 더 나아가서는 인류 앞에 나선 우리라 할진대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민족 앞에, 이 세계 만민 앞에 말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말할 때 양심에 가책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이 나간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늘은 곡절이 많은 데로 인도하시는 것 같지만 최후에는…. 자기 태어난 천성을 잘 아시는 하늘이기 때문에, 하늘은 사랑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계기와 어떤 수단 방법을 개의치 않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보다도 내가 떨어지는 것 같고 불쌍하게 망하는 것같이 이끌려 들어가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상의 최고의 그곳까지 하늘은 책임지고 끌어당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때까지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이지요. 몇 해만 가면 다 굴러 떨어진다구요. 야곱도 21년, 노아 할아버지도 120년, 모세도 120년이었으니 못해도 10년 단위는 훌훌 넘어가야 된다구요. 삼칠은 이십 일(3×7=21), 7년 이상 넘어가야 됩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

여러분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 하늘은 여러분들을 누구 대신으로 세우려고 그러는 지 알아요?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무리들을 누구 대신 세우려고 하느냐? 앞으로 오시는 주님 대신 세우고, 지금까지 이 땅에서 역사하신 삼위신을 대신하여 세우고, 나중에는 아버지 자신을 대신해서 세우려고 하시는 겁니다. 실체의 어떤 결과적인 실적의 가치를 가져야 할 이 세계에서는, 마음의 세계에서는 나타난 가치는 지극히 작고 미미하다 하더라도 그 심적인 동기는 목적을 넘어 소망의 심정에까지 붙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비록 미미하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아버지를 대신한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나가 있는데 누굴 위해 나가 있느냐? 먼저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 나가 있고, 그다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대신자예요. 여러분이 아버지 대신자면 뭐냐? 아버지의 소망, 아버지의 사정, 아버지의 심정을 여러분은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기필코 여러분을 이 땅 위에 만민의 대표자로서, 만우주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한 창조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끝에 가 가지고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대신자예요, 대신자.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누어진 몸입니다. 창조원리에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대신한 몸입니다.

선생님이 금년 정초에 본부교회에서 강조한 것이 뭐냐? 이것이었어요. 금년에는 여러분들이 아버지 대신이니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대신이요, 사정의 대신이요, 심정의 대신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사탄을 대해서 싸우는 싸움의 대신자입니다. 이 싸움에서는 하늘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돼요. 여러분들의 자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40평생을 나오는 도상에 있어서 누구의 협조를 안 받았습니다. 내가 맡은 바의 책임은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신세 안 져요. 여러분의 갈 길을 지도해 주는 스승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지금 3년 이 기간을 조건삼아 한계를 정해 여러분들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내세운 여러분들은 누구냐? 아버지의 대신자요, 삼위신의 대신자입니다. 참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선, 참부모의 사정을 대신하여 나선, 참부모의 소원을 대신하여 나선 여러분이기 때문에 이 법을 유린하는 자는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서는 데 있어서 `아버지여, 나는 이제 아버지의 대신이로소이다!'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 사람의 증거가 있어야 돼요. 그걸 누가 해 줄 것 같으냐? 참부모가 해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모셔 놓고 삼위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땅을 대신한 나는 어쨌든 창조원칙을 통한 본연의 아버지의 분신으로서, 어머니의 분신으로서 손을 들어 삼위신을 입증하는 자리에서 맹세하고 나서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날에 있어서 무엇을 책임지느냐? 하늘의 소망의 마음입니다. 하늘이 사정을 품고, 심정을 품고 지금까지 가르쳐 주지 못하고 나오던 이 사실을 여러분 앞에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아버지의 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를 위해서는 남 모르는 비밀 길에서 고생을 해야

여러분 자신들이 남한 각지에 지금까지 8백여 곳에 계몽 나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많은 성과 내기를 원치 않아요. 나갔다 들어오게 될 때에 무엇을 남겨 놓고 들어올 것이뇨? 아버지의 정신, 참부모의 정신, 성부 성자 성신의 정신을 남겨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부락에서 철수해 오더라도 거기에서 잊지 못할 여러분의 모습, 꿈에라도 떠오르고, 생각에서도 떼낼 수 없는 여러분의 모습을 남겨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돌아오게 될 때…. 3년 기간에 우리의 생활적인 모든 것이, 눈물과 땀과 피가 흘려져 있어야 됩니다.

6천 년의 최후의 종결을 지어야 할 하나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년 도상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떤 부모된 자가 있다 할진대는 자기 자식들을 이러한 기간에 내세우지 못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 자들이 이런 때에 뜻 앞에 있어서 이런 기간에 동참하지 못할 자리에 있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그런 부모를 갖지 못한 그 후손은 한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개체의 몸에 아버지를 모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전부가 건설이예요. 에덴의 아담 해와가 집 지을 때 무슨 기구가 있었어요? 연장이 있었느냐구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앞으로 지방에 가서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서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자기가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어야 됩니다. 숙소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의 집을 지어 나가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집이예요. 여러분들의 집을 짓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하면 망해야지요.

동산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축복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축복해 주기를 그리워하던 하나님이요, 축복받기를 속사람이 그리워했던 아담 해와였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벌판에서 축복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초가삼간 지어 놓고 어찌 아버지 앞에 축복받겠다고 할 수 있어요? 사탄세계는 저렇게 어마어마한 자리에서 향락을 누리고 있는 이때에 내 무슨 자랑할 것은 없사오나 내 마음만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몸 대신이요,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던 그 이상의 가치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돈이 없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본부에서 수많은 사람을 동원할 때 돈 천 원 한 장도 없었습니다, 남들은 말하기를 통일교회 돈 많다고 하는데. 돈이 없더라도 해야 할 우리의 운명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천륜의 곡절이 있으므로 여러분 일신을 통하여 이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현세를 타파해야 할 사명을 감수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을 내 어린 시절의 한 때를 회상하면서 내몰았습니다. `자라고 있는 이 어린이들을 당신을 위하여 피눈물 뿌리며 호소하던 그 모습을 대신하여 내몰겠습니다. 그때에 당신께서 이렇게 주장했고, 이런 때 이렇게 붙들어 주시던 당신이 있는 것을 아오니…' 하며 여러분들을 내몰았던 겁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아니예요. 여러분 내보낼 때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외식자예요. 여러분의 피와 땀을 농락하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이 심정의 빚을 지지 않기를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늘 앞에 서서 아버지가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는 그날 야곱의 일가가 하늘의 축복받는 무리가 되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종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때에 하늘의 배반자가 되고 천추의 심정적인 범죄자로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등장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는 심정적인 범죄자가 됐습니다. 미완성권 내에 있어서 하늘이 허락한 심정을 기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대신자입니다. 싸워야 되겠어요. 이를 악물고 싸워야 되겠습니다. 야곱은 하란 라반의 집에 가서 싸웠습니다. 애급에 가서 싸웠습니다. 예수도 이 땅 위에, 사탄세계에 와서 싸웠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람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복귀의 노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 알 거예요.

하나님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 앞에 세 제자까지 배척한 거요, 열두 제자가 배반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탕감복귀노정은 꺼꿀잡이입니다. 여러분들도 부모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세 아들딸을 만들어 놓아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못 나가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꺼꿀잡이. 아담 해와가 부모가 되어 가지고 자식을 낳았다면 정상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백성이 될 것이었는 데 타락했기 때문에 꺼꾸로 뒤집어졌으니 하늘은 종을 시켜, 천사를 시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입니다. 아버지가 천사와 협조해서 그런 백성을 만드는 데 꺼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아들을 만들어 가지고 부모의 기준을 통해서 하늘과 인연 맺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예수가 가던 길을 이를 악물고 가야 됩니다. 탕감복귀 노정을 가기 위해 남 모르는 비밀의 길에서 얼마나 고생을…. `내가 마땅히 받을 세계가 있으나 받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을 어찌 알겠는가? '라고 탄식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 외치고 있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40평생 다리를 못 뻗어 보고 뜬구름같이…. 발과 몸뚱이를 놓아 놓고 한 날을 안심하고 살지 못했습니다. 흘러가는 구름결같이…. 탕감복귀의 길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갈 길은 아버지 앞에 제물 되는 것

그러나 여러분들은 지극히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우리의 진리를 들고 나서면 하늘이 평면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는 때입니다. 심정기준이 땅을 중심삼고 벌어질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하늘이 역사하실 수 있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와 성신의 역사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대신, 성신 대신이 되어 가지고 상대 방향을 일으킬 수 있는 평면적인 입장에 들어왔으니 사탄이 지금 벼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 고개를 넘어가야 됩니다.

이젠 선생님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걸 할 때까지는 죽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제 인간들이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필요조건이 뭐냐? 여러분에게 직접적으로 평면적으로 사탄 대해서 가르쳐 주더라도 참소할 수 없는 시대가 왔으니, 이 3년 기간이 무슨 기간인 줄 알아요? 여러분이 피와 땀과 눈물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에 가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아오는 기간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 부락에 들어가는 데는, 여러분이 배정받아 그곳에 나가는 데는 그 목적이 뚜렷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나와 있느뇨? 잃어버린 부모의 입장, 자식을 찾아 헤매는 사무친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가르쳐 줘도 모르니 부모가 이렇다는 것을 심정적인 면까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원을 오늘에 있어서, 아버지의 사정을 오늘에 있어서, 아버지의 심정을 오늘에 있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네가 소원의 실체요, 사정의 전통이요, 심정의 전통이다'라고 나타낼 수 있는 그 환경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마당에서 여러분 빚지지 말라구요. 선생님은 한푼도 도와주고 싶지 않아요. 도와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공적으로 도와주면 안 돼요. 각자 책임진 노정에 있어서 통일신도가 가야 할 길은 아버지 대신의 길입니다. `아버지의 소망, 사정, 심정이 오늘날 내 자체에 나타나는 결실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소원을 내게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 당신의 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소망의 심정, 소망의 사정, 소망의 소원으로서 여러분 자체가 주체가 되고, 여러분 자신을 통하여 하늘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부모의 대신자, 아버지의 분신 어머니의 분신으로 아버지 소원의 실체요, 아버지 사정과 아버지 심정의 실체로서 등장해야 됩니다.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6천 년 동안 지금까지 아버지의 소원적인 실체, 사정적인 실체, 심정적인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소원을 내 것으로, 그 사정을 내 것으로, 그 심정을 내 것으로 해야 됩니다. 하늘 대해서 이 땅 위의 여러분의 갈 길은 여러분이 아버지 앞에 제물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져야 돼요. 앞으로 여러분이 최소한 그런 심정을 갖고….

그렇기 때문에 신세를 지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돈이 없으니 자기 어머니 아버지한테 달라든가 뭐 어떻게 할 거예요. 배가 고프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조르면 어머니 아버지는 멋도 모르고 그저 도와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조건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아버지는 복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닦아 준다는 거예요.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때가 그런 때라구요.

또, 여러분들 지금 운세를 보라구요. 1960년은 세계 전환의 때라고 원리에 딱 나와 있습니다. 이 3년간은 예수님의 공생애노정의 3년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기간에 완전히 동참해서 승리자가 되면 예수님 대해 오빠라 할 수 있고, 형님이라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이 격전에 있어서 패자가 되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인생이 바라던 소망의 실체도 당신이었사옵고, 잃어버려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의 실체도 당신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당신이 없으면 하나에서부터 천만사가 전부 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생명도 당신을 잃어버리고는 무의미한 것이요, 내 욕망과 내 소망과 내 모든 존재의 힘의 가치도 당신을 잃어버리고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일깨워 주시어서 제 마음을 재촉하여 최고의 기준과 연락하기 위한 당신의 구원의, 소원의 뜻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은 너무나 황공한 심정으로 머리 숙였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타락한 후손으로서 어느 누가 당신 앞에 버젓이 서서 저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면 갈수록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고, 가면 갈수록 뼛골에 사무친 눈물을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모인 어린 것들, 당신의 무릎 앞에 모여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제 어떤 욕망을 이들에게 주고 싶고, 그 욕망은 당신의 욕망과 바꾸고 싶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소망하는 모든 소망도, 사정의 모든 것도, 심정의 인연의 모든 것도 당신 앞에 맡기겠사오니, 맡기고 날 적마다 맡기려는 그 입장을 굽어 지켜 봐 주시옵소서. 또, 맡길 수 있는 그 기준이 못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지 앞에 호소하면서도 눈물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하여서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야 할 것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고생 고생하여 한 생명을 붙들어 아버지 제단 앞에 세우시어 충성을 다짐하고 제단을 키우는 하나의 제사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이 섞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당신이 직접 염려하시는 아들딸들이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무리가 되기를 저는 고대합니다. 불초 이들을 이끄시는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들이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도 알았사옵고, 매맞을 때 같이 억울함을 느끼시는 것도 알았사옵고, 쓰러질 때 권고하시던 당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제 자신이 그렇게 대신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오늘 이 시대의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 앞에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하늘이 대신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뜻을 중심삼고 이 모든 천지의 움직임이 그들의 마음과 동반할 줄 알고 있사옵니다. 환경적인 희생의 조건을 아버지가 처치해 줄 수 없사온데 저희들이 탕감적 자리에 놓여 있으면서 당신에게 염려를 끼쳐 드림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하오니 끝까지 참고 이기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억센 설한풍이 저희를 휩쓸어 갈지라도 저희 몸에 타오르는 아버지를 향한 일편단심만은 남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몸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아, 땅아, 나는 충성을 다 했노라!' 할 수 있는 붉은 심정의 마음만은 남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지방 지방, 더욱이나 전라북도 이 한 지방을 대한 당신의 뜻이 컸던 것을 저는 아옵니다. 이제 만 7년을 넘는 이 한 기간에 있어서 당신의 뜻이 다시 여기에 불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어린 것들을 통하여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시옵고 심정과 심정을 연결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길은 지상의 무슨 간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궁핍한 자리에서 한 그릇 죽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눈물을 합하여 나눌 수 있는 이런 모습들인 것을, 아버지, 기억하옵소서.

세상에 남기고 갈 무엇이 있습니까? 죽으면 물로 돌아갈 몸을 다 잊고 뜻만을 길이 고이 마음에 넣으면서 높일 줄 알고 섬길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저희 식구 식구끼리는 시간을 넘고, 시간점을 초월하여 아버지를 찬양해 주기를 저는 바랐습니다. 하늘과 땅, 밤과 낮이 갈라지는 이 절기 위에 어둠의 권세가 드리워진 것이 한스러운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한 시간이라도, 밤에라도 아버지를 노래하고 아버지를 의지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통하여 밤이나 낮이나 당신이 기쁜 가운데서, 당신이 만족한 가운데서 모실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뜻을 성취하는 노정에 있어서는 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잠 못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핍박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다 지내 보니 거기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눈물 흘리는 곳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어서 수록하지 못함)

[기 도]

영원히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홀로 받으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버지시여! 갖출 바의 내용이 완비되어 있사오나 그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모든 피조물이 되지 못한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탄식하고 인식합니다. 또, 아버지 자신께서도 역시 지금까지 탄식의 인간들을 붙들고 나오시기에 무한한 노고의 역사노정을 지내 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황공한 마음 금할 바가 없습니다.

아버님! 타락한 그날부터 수고는 시작되어 오늘 이때까지 쉼 없는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신 아버지여! 어느 한날 사랑하는 자녀들을 붙들고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하시면서 당신의 심정의 사무친 소망의 예물을 주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한 모습들을 찾지 못한 우리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수고하시는 목적은 단지 심정 어린 참다운 아들딸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요, 아버지의 긍휼이요, 아버지의 사무침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오늘 여기 모인 저희들 아버지의 찾아 나오시는 발걸음 앞에 이제 쌍수를 합장하여 무릎을 꿇은 불쌍한 모습을 갖고 아버지를 만나는 입장에서 있는 것이 황공하옵니다.

저희는 갖춘 것이 없사옵니다. 아버지가 요구하시는 모든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마음으로 보나 심정으로 보나 몸으로 보나 생활로 보나 환경으로 보나 저희의 모든 조건을 들어 보게 될 때에, 아버지의 긍휼에 기억될 수 있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저희임을 자인치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을 위하여, 생명의 길을 위하여, 전체적인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한 아버지를 위하여는 부족한 정성이나마 수고하신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니, 아버지, 버리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하늘이 있는지 몰랐사옵고,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한 것도 몰랐사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아버님, 저희들이 알지 못하던 사이에 오랜 역사 노정을 거쳐오시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하여 수고해 오신 것도 그렇거니와, 최후에는 오늘날 저희 개체 개체를 위하여 수고하신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오늘 부족한 실체를 가다듬어 아버지의 거룩한 존전에 내세운 몸이오니 이제 안팎으로 성별하여야 할 때가 왔사옵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제거하고 완전한 본성의 마음을 일으켜 선에 귀의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붙들고 싸워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오늘 부족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 모였을진대 생명의 은사로서 하나로 만드시옵고, 생명의 전체의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시옵소서.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아버지 영광의 품에 품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이날을 저희들이 축복하였사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1961년 이해는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요, 새로운 역사의 출발기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여기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바는 세상의 모든 자랑할 수 있는 조건으로써가 아니라 마음으로써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아버지의 딸이요, 아버지의 효자 효녀요, 아버지의 충신 열녀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심정에 불타는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 위에, 더 나아가서는 삼천만 무지한 백성 앞에 이 심정을 토로하여서 아버지의 기억함을 받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일을 펼 수 있는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사탄의 자식들도, 사탄의 도가니에 있는 수많은 인류들도 증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자들이 될 수 있는 이 한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전라 지구의 북도 지역에 있는 여러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였사옵니다. 어려운 처지와 환경에서 이 한 시점을 찾아오기에 눈물 어린 심정을 부등켜 안고 온 당신의 어린 아들딸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 여기 왔던 걸음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날 인간적인 어떤 집회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옵고, 슬프신 우리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그 인연을 붙들기 위해서 여기 모였사오니 왔던 걸음이 헛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간곡한 마음을 다하여 이 한 시간 아버지의 영광 앞에 다시 맹세하고, 다시 결심하고, 다시 모든 전부를 새로이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격려의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채찍을 받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일터 일터에 일은 많사오나 추수하는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오니, 어린 몸들을 일으켜 불쌍한 이 민족을 깨우시옵고, 어린 무리들을 일으키시어 지역 지역에 책임의 봉화불을 일으켜서 하늘의 광명한 빛을 비침으로 말미암아, 이 전라북도 지역에 생명의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두세 사람이 합하여 모일 때마다 같이하겠다고 약속하셨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많은 수가 모였사오니 여기에 심정으로 하나되시어서 영광의 심정을 통하고, 불쌍한 이 생명들을 아버지 앞에 이끌 수 있는 중심의 책임을 다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은 새해의 첫날이옵니다. 아버지 저희들 맘과 몸 다 드려 새해 첫날 아버지 앞에 제물로서 바치며 새로운 맹세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기억되고, 아버지의 새로운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흑암 세력권 내에 나가 있어도 사탄 스스로가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이는 이 시간에 저희들이 불충했던 것을 알았사오니 여기에,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번에 모였던 이 걸음이 아버지의 영광을 개척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는 아버지의 슬픔의 심정을 흠모하는 몸으로서 드릴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내일을 위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의를 하여 사탄세계에 대하여 총진군을 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영광을 허락할 수 있는 축복의 손길이…. 아버지, 준비된 영원한 새 나라의 이념으로 이들의 마음 앞에 새로이 현현하시옵고 새로운 신념을 주시어서 새로운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의 한 시간, 증거의 한 시간, 슬픔의 한 시간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났사오니 만난 시간을 감사하오며 남아진 이 시간 아버지 영광 가운데서 지낼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전라북도 지역은 우리 통일교회로서는 많은 시련을 받은 지역입니다. 전라북도를 대표한 이 도심지 전주는 더욱 시련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본래 하늘의 뜻은 저 경상도를 중심삼고 출발했으나 거기에서 배척당하고, 거기에서 핍박받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은 크나큰 섭리의 뜻을 품고 이 전라 지역을 택하신 때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이 전주가 우리의 이념을 받들어 가지고 뜻 있는 사람들을 모이게 해 한 목표를 향하여 변함 없는 행로를 걸어갔을진대, 오늘날 전라 지역에 있어서 크나큰 섭리적인 실적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사람들이 사명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또 때를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금까지 믿고 나오던 관습적인 신앙으로, 혹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종교적인 관례를 가지고 대해 나오던 몇몇 사람들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전라도는 큰 뜻에 있어서 지장을 일으킨 곳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만큼 이 전라도 지역에 앞으로 다시 새로운 결의를 하여 재 봉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에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는 30대 미만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우기나 이 전라도 지역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움직이리라 보고 있는데, 움직여 나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책임을 못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물론 전국적으로도 역시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앞으로 전라 지역에서는 더욱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현재 학생의 몸으로 있는 사람들은 각별히 자기의 공직자, 혹은 어린이들, 혹은 자기 동료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뜻 깊이 바라보고, 저들의 살길, 저들의 가치, 저들의 일생문제를 개척하는 데 우리들이 도움이 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배움에 있어서 우리들이 반드시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든지 어떠한 곳에 있든지 본이 되어 그들이 여러분들의 뒤를 따라올 수 있게끔 길을 개척하는 데 힘써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학생들? 「예」

하나님 앞에 기쁨의 날로 기억되어야 할 정월 초하루

오늘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입니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 되기 전에는 대개 우리 한국 사람의 습성으로 보게 되면, 양력으로 `한 살 먹었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살 먹은 것 같다'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완전히 정월 초하룻날이 지나가야 군소리 없이 `한 살 먹었다' 그러는 겁니다.

오늘이 초하루인가요? 그렇지요? 「예」 1961년 초하룻날, 이날이 우리 복귀섭리의 뜻을 아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더더우기나, 지금은 정월 초하루 저녁이 되었지만 여러분들 각자가 새로운 이런 자리에 와서 만나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구요. 세상 사람 같으면 정월 초하루에는 좋은 말들을 하고, 또 좋은 예물도 주고, 마음이 아주 뭐 떡 벌어져 가지고 주고받고 희희낙락하며 삽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는 데 그렇게 못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못 되어 있느냐?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정월 초하룻날을 맞이한 사람들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수많은 도인들도 있었을 것이며, 하늘을 위하여 노력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며, 혹은 그런 선조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모셔 놓고 정월 초하루를 지낸 사람은 많지 않았다구요. 여러분, 하나님을 모셔 놓고 정월 초하루를 지내 본 사람 있어요? 또,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 가지고 `아무개야, 오늘은 네가 한 살 더 먹었으니 나한테 세배 드려라. 떡을 해 놓고 나하고 재미있게 지내자'고 해서 그렇게 지내 봤다는 사람을 만나 봤어요? 없다구요.

보란 말이예요. 옛날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때나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월 초하룻날이라고 사탄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시간 그저 먹고 지지고 마시고 야단하고 갈 지(之) 자 모양으로 왔다갔다하며 끝없이 방황하는 것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정월 초하룻날이 슬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정월 초하룻날에 크나큰 태풍이 일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정월 초하룻날이지만 기쁜 마음을 가질 입장이 못 됩니다. 하나님의 사정이 그러니까 먼저 하늘의….

오늘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좋은 말씀 해주실 테니까 아주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서 앉아야지' 하고 온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보따리를 무엇으로 먼저 채워 놓느냐? 욕으로 먼저 가득 채웠다가 쏟아 버리고 새로 담아야 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러니 내가 오늘 단단히 욕을 할 거예요. 괜찮아요? 괜찮느냐 말이예요. 「예」 이젠 서로 약속을 했으니까, 자기들이 괜찮다고 약속을 하고 욕을 먹겠다고 했으니까 죽이든, 욕을 하든, 어떻게 하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돼요, 약속을 했으니까. 이제는 선생님 마음대로 하겠다구요. 이제 욕도 좀 먹어 보라구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는 수많은 정월 초하룻날을 하늘을 슬프게 하는 날로서 맞이했었지만, 오늘 여기에 나타난 이 한 사나이는 말하기를 `오늘 이날만은 하늘이 위안을 받는 날로서 돌려드려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아침 선생님은 이 순회노정을 떠나면서 아주 큰 소망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만나니까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잠들어 있는 삼천리 반도에 선생님이 말할 수 없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만민이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고 있는 하나님은 이날을 기쁨의 날로서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심정의 줄로 얽어매어야 할 나

여러분들이 여기 참석할 때 `아,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다 모이라고 하셨으니 가야 되겠다. 혹은 지구장, 지역장들이 이렇게 연락을 했으니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무관심하게,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을 찾으려 해요? 무엇을 드리려 해요? 무엇을 보여 주려 해요? 무엇을 받으려 해요? 생각해 보라구요. 무엇을 하러 모였어요? 목적이 있을 게 아니예요? 얌전한 아가씨나 총각님들이 있으면 하나 물어 볼까?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은 얼굴을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얼굴은 아무렇게나 생겼고 태도야 어떻든지 그건 문제가 아니예요. 혹은 여기 전주의 시가지를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구요. 여기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혹은 전라북도에 널려 있는 우리 식구들과의 안면을 두터이 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오늘 모인 목적은 우두머리 인간끼리 즐겨하고 인연을 두터이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를 한 묶음으로 묶기 위한 것입니다. 1961년이라는 허리띠로서 한 묶음으로 묶기 위하여 모인 거예요.

묶는 데는 누더기 끈으로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지금까지 누가 갖지 못한 띠로서 얽어매야 된다구요. 그 띠가 뭐냐? 여러분의 몸뚱이가 되어야 되고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 되고, 여러분의 정신이 되어야 되고, 여러분의 행동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매기 위해서 온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가지를 매든 허리를 졸라 매든 손을 졸라 매든 졸라 매야 됩니다. 여러분의 손만 졸라 매서는 안 되고, 여러분 아버지의 손도 졸라 매야 되고, 아버지의 모가지도 졸라 매야 되겠다구요. 그래야 할 나입니다.

또, 금년부터는 그런 결정을 다 지어 가지고 `이제 매였으니 아버지 못 풉니다' 할 수 있는 이날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따라갈 도리가 없다구요. 여기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혹은 모이라고 해서 왔으면 이제 여러분들은 매야 되는데, 매는 데는 물론 마음과 몸으로 매겠지만, 선생님의 발에다 매든가 어디에든지 들이 매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바쁜 사람이예요. 어디로 도망갈 줄 몰라요. 여러분들이 지금처럼 전주에 찾아와서 뭐 어떻게 하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단단히 붙들어 매란 말이예요.

붙들어 매는 데 무엇으로 붙들어 맬 것이냐? 매는 데는 몽땅 맬 수 있는 줄이 있나니 그 줄이 뭐냐 하면 심정의 줄입니다. 심정의 줄로서 단단히 얽어매야 되겠다구요, 앞으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서 요구하기를 `야, 인간들아! 너희들의 참다운 심정의 줄로 내 모가지를 얽어매고, 내 다리를 얽어매고, 내 일신 전체를 네 몸뚱아리에 얽어매 주려무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벌거숭이 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그렇게 심정의 줄로서 얼굴부터 전체를 얽어매고 `아버지, 나와 당신은 하나입니다'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없었다구요.

오늘날 우리는 통일의 용사라고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 앞에, 천지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세계 앞에, 혹은 천상이나 지상에 있는 수많은 영인 앞에 우리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나와는 부자의 인연이요, 아버지와 나는 일체라고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뭐가 있어요? 뭐가 있느냐 말이예요. 있긴 뭐가 있어. 한 번 바람이 휩쓸어 치고 태풍이 장시간 들이 불어 치면, 다리는 다리대로, 대가리는 대가리대로, 사지백체가 전부 다 갈라져 가지고 제대로 설 수도 없는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이 껄렁한 자식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통일의 용사라 할진대는 얽어매라 그겁니다. 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법한테 얽어매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법 앞에 완전히 매인 사람이라야 그 법을 완전히 움직일 수 있고, 그 법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겁니다. 법한테 완전히 얽어매여 있지 않고 딴 데 가서 재간 피우는 사람은 전부 다 원수예요, 원수. 대한민국의 헌법이 있으면 그 헌법에 몽땅 사로잡혀 있어야 돼요. 몸이나 마음이나 눈이나 손발 할것없이 사지백체가 거기에 몽땅 사로잡혀 얽어매임당해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과연 헌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얽어매야 돼요. 태어난 그날부터 부모한테 얽어매여 있고, 혹은 가정에서 형제한테 얽어매여 있고, 더 나아가서는 여자는 남자한테, 남자는 여자한테 얽어매여 있고, 혹은 백성이면 백성으로 얽어매여 있고, 혹은 어떤 주의면 주의에 얽어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얽어매이는 데는 멋지고 큰 것에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안 그래요? 얽어매이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뭐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달라붙고 인연을 맺어 가지고 내 몸뚱이를 얽어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의 마음이 이런데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제일 기쁜 소식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들이 자기 몸과 마음과 정신과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상천하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 내 몸을 보다 꼼짝못하게 얽어매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더 고맙다는 거예요. 재간을 부려서 그런 놀음을 시킬 수 있고, 그런 놀음을 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하나님보다도 더 고맙다는 거예요.

이 놀음을 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분이 주님이라는 거예요. 메시아예요. 끌어다가 얽어매려고 한단 말이예요. 이놈이 때가 묻었으면 그걸 씻어 가지고 끌어다가 얽어매는 겁니다. 이렇게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청년 남녀들이 많은데, 여러분들의 마음과, 여러분들의 심정과, 여러분들의 몸과, 여러분들의 생활과, 여러분들의 이념과, 여러분들이 앞으로 소망하는 소망과,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들 가정 전체를 어디에 얽어맸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만큼 자기 자신이 거기에 잠겨 있으며, 어느 부분만큼 하나되어서 손과 손, 발과 발,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백 퍼센트 얽어매여 있느냐? `너자 나요, 나자 너!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 둘이 아니라 하나다. 뗄래야 뗄 수 없다. 동으로 가면 동이요, 서로 가면 서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내용과 분야를 갖고 있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이게 사기꾼들이라구요.

`아버지, 내 기도하고 맹세합니다' 하면서 여자들은 눈물을 쫄쫄 흘리고 그러다가도 난데없이 배척하고 이랬다저랬다, 이렇게 나오기를 6천 년 동안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자들, 여자들이 그랬다구요. 또, 남자들은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시시껄렁해 가지고 자기 멋대로 놀아났어요. 언제는 뭐 `죽겠습니다' 언제는 `맹세합니다' 언제는 `틀림없이 약속하겠습니다' 이러다가도 10년도 못 가서 건달꾼이 되는 거예요.

이런 놈들은 전부 다 지옥의 몇천 도 되는 불에다가 다 쓸어넣어야 된다구요. 차라리 안 믿는 것만 못 해요. 하나님은 인간 대해 `내가 너를 믿어 준다. 내가 너와 인연을 맺겠다'고 한 번 얽어매면 푸는 법이 없어요. 하나님이 좋다고 해서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억천만년 푸는 법이 없다구요. 그런데 인간들은 맸다가 풀었다가 맸다가 풀었다가….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 3분의 2 정도는 있다구요. 편리하면 매고 불리하면 풀고. 이따위 것들은 암만 많아도 쓸데없다 이거예요.

그러니만큼 오늘 여기 찾아온 걸음을 단단히 딛고, 찾아온 시선을 단단히 바라보고, 있는 정력을 다 쏟아서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누구와 어떠한 인연을 맺고, 어떠한 결의 밑에서 내 한 걸음의 거동을 갖추어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밝혀야 됩니다. 더우기나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는 이것을 확실히 밝혀야 됩니다. 내가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 나무의 줄기면 줄기, 가지면 가지, 잎사귀면 잎사귀, 어디 가든지 처해 있는 그 자신을 스스로 밝혀야 하는 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지 못하는 한 뜬구름과 마찬가지예요. 이것은 지나가는 새도 와서 쪼아 먹을 수 있고, 지나가는 길거리의 사람들도 전부 다 거쳐갈 수 있고, 누구나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신용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필요가 없다구요.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의 대상이 되고 절대자의 가치, 어떤 주권국가면 국가의 주권을 대신하여 그것을 전체의 소망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일수록 가치적인 것입니다.

만일 전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그런 가치로써 인정할 수 있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무한한 행복자라는 거예요. 그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가 인연맺으려고 하고 전부가 하나되려고 하고 전부가 나눠져서는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소망의 대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하나님의 심정과 이렇게 완전히 얽어매 가지고 나눌 수 없는 입장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들은 돈이 없어도 부자인 거예요. 참마음을 갖고, 참양심을 갖고, 참몸을 갖고, 참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 참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필시 그 사람을 한 번 접하면 놓을래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건 무슨 줄로 얽어매어 있는지 한 번 알고 나서는 부정할 수 없다 이거예요. 한 번 알고 나서는 자꾸 가야 되고, 한 번 알고 나면 또 만나야 되고, 또 고맙고 감사하고, 만나면 나눠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정의 줄에 얽매어 있는데 이 정의 줄은 어떠한 권세와 어떠한 세력과 어떠한 금전과 땅 위에 어떠한 사람과, 혹은 땅 위에 어떠한 수단 방법 가지고도 끊을 수 없고 제거시킬 수 없는 원리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얽어매여 가지고 `내가 그와 더불어 영원히 있다' 하는 신념을 가진 자 아니고는 언제 떨어질지 몰라요.

통일교회는 정(情)의 줄로 얽어매는 곳

통일교회가 일반교회와 다른 것이…. 지금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를 반대하지만 통일교회에는 자꾸 사람이 달라붙는 다구요. 아주 고마와요. 이렇기 때문에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예요. 고맙고 감사하다구요. (웃음) 달라만 붙어요. 달라붙게 되면 떨어지지 않고 불까지 깜박깜박하며 `아이고―' 하니까요. 달라붙기만 해서 되겠어요? 하나되어야지요. 할아버지하고 여기에 나이 어린 사람들하고 그저 밤을 지새워서라도 하나되면…. 세상 사람 같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냄새 난다고 올까봐 그저 손을 털고 옷자락을 털고 돌아서는데, 아주 꽃 같은 아가씨들, 혹은 어린 총각들이 좋다고 그저 밤을 새워 가면서 희희낙락하고 돌아가지 말라고 서로서로가 붙안는 이런 무리가 되어 봐요. 그러면 세상 천하에 모든 욕을 먹어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욕해라!.

여러분들, 통일의 역사라는 것은 무엇이냐? 올가미를 가지고 얽어매는 역사입니다. 할아버지 다리도 얽어매고, 할머니 다리도 얽어매고, 아주머니 아저씨,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다 걸리기만 하면 얽어매는 것입니다. 얽어맬 수 있는 끄나불을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거예요. 또, 내 자신이 얽어매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어떤 주체면 주체 앞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입장에 처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 되는 날에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런 정의 줄에서 한 번 만나면 한 번 매는 거예요. 두 번 만나면 두 번 매고, 세 번 만나면 세 번 매는 것입니다.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았지만 마음으로 엉클어져 있는 인연,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반가운 인연, 이것은 외식이 아니요, 가식이 아니요, 내 순결된 본연의 천성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신을 휘잡아 가지고 자기가 갖고 있는 의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버리고 그 길로 몰아치는 데, 그 내용이 인격으로부터 생활로부터 전체를 혁신할 수 있는 길로 내몬다 할진대, 그런 길에 들어선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무한한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 전주에 찾아온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냐?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 초하루부터 여러분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붙들어 매야 된다 말이예요. 어디에 붙들어 매야 되느냐? 아버지 앞에 붙들어 매야 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들을 아버지 앞에 붙들어 매이려고 하면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말씀에 붙들어 매여야 됩니다.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다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여서 책임을 져야 됩니다. 명령에도 물론 복종해야 되지만 책임을 져야 됩니다. 한 가정을 거느릴 수 있는 주인이면 주인으로서, 혹은 직장에 있는 사람은 직장의 책임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뗄래야 뗄 수 없는 철두철미한 인연을 갖고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말로부터 우리의 심정 등 모든 생활적인 면에 꽁꽁 얽어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얽어맬 힘이 있으면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동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갈 수 있게 만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주체가 못 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지만 단단히 붙들어 매 가지고 여러분들이 힘만 있으면 `나는 서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꽁꽁 붙들어 매 가지고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의 줄을 꽁꽁 얽어매 가지고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내가 동으로 가고, 네가 서로 가면 내가 서로 가겠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6천 년이라는 세월을 찾아나왔지만 못 만났습니다. 못 만났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으면 벌써 주님은 오고도 남았어요. 몇십 번, 몇천 번 오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전부 다 사람 같은 사람들이예요. 형은 있지만 사람으로 보이질 않는다구요. 하나님이 보기에는 그렇다는 거예요. 그건 그럴 수밖에 없어요. 타락한 종족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무리들을 이제 모아 가지고 하나님은 전부 다 얽어매려고 하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얽어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얽어맬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가정이면 가정, 사회환경이면 사회환경에 있어서 얽어맬 수 있는 주도적인 실력을 갖추어 어느 누구나 침범할 수 없고, 어느 누구나 옮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뜻 앞에 내가 언제나 무슨 분야든지 모든 것을 움직여 가지고 얽어매고도 남는다 하는 기준에 딱 서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생활로부터, 자기의 환경으로부터, 자기의 가정으로부터 천리 법도까지…. 만일 이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얽어맬 때는 순수한 것을 얽어매야지, 거기에 별의별 것을 다 얽어매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그러니까 하늘은 최고 순수한 것을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는 마음, 뜻을 다하는 마음, 성품을 다하는 마음을 갖고 얽어매야 됩니다.

여러분들, 정(情)의 줄이라는 것이 있어요, 정의 줄. 그것은 보면 보이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만나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문제가 된다 그겁니다. 오늘날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정의 줄과 인간의 정의 줄이 얽어매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해야 돼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무슨 교인을 많이 거느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천 사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삼천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세계 27억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진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견본이 될 수있는 진짜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런 주인을 만나면 천 사람이 만 사람 만드는 것은 문제없다 이겁니다.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참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늘이 지금까지 참을 찾고 있는 데 그 참은 둘이 있을 수 없어요. 하나예요, 하나. 하나님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 가지고 시대와 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민족을 품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시며 `네가 내 심정에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백성이 되었느냐?' 이래 가지고 택해나온 것이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워도 전부 다 믿을 수 없으니 전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한 분을 세우기 위해 수고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민족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가정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리고, 이 사탄세계를 일시에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믿을 수 없는 이 땅 위에 세우면 또 쓰러지고, 매어 놓으면 또 풀어 버리고, 인연 맺으면 또 끊어 버리기를 일삼는 이 타락의 종족들을 대하여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전체 대표, 하늘과 땅, 혹은 민족의 대표, 혹은 수많은 선지자 대표, 혹은 4천 년의 결실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의 마음에서부터 얽어매여 있고, 몸에서부터, 심정에서부터, 생활에서부터, 이념에서부터 전 하나님의 뜻을 얽어맬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보냈던 그분이 구주입니다. 구주는 무슨 구주? 우리 생활의 구주요, 우리 이념의 구주요, 우리 마음의 구주요, 우리 생명의 구주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참은 하나입니다. 이 하나를 모방하여 이 땅 위에 예수께서 와 가지고, 즉 주님이 와 가지고 참다운 사랑의 실체로서의 그 가치를 땅 위의 인간 앞에 공개시키고 가야 되었을 터인데 공개시키지 못하고 갔어요. 예수가 왔다 갔지만 그 이후에는 예수와 같은 그림자도 안 남았습니다. 믿는 녀석들은 세상 천지에 수두룩하지만 그까짓 것…. 예수가 왔던 목적은 이땅 위에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 자기와 같은 하늘의 마음을 대신하고 메시아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신부 한 사람. 거지 떼거리 같은 것들은 억천만이라도 다 쓸데없다는 거예요. 하나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도 반드시 심정을 갖고 있고 하나님도 반드시 심정을 갖고 있으니까 이 마음이 자리를 잡고 이 마음이 기쁘려면, 그 한 분을 모셔 가지고 한 분과 더불어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편안히 안식할 수 없다는 거예요. 행복을 노래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땅 위에 사람들이 그 기준을 잡았어요?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누가 아는 사람 있어요?

예를 들어 말하면, 이북에 있는 김일성 아들이 여기 왔다고 하자구요. 남한에 있는 2천만 민족 가운데 김일성 아들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북 방송에서 `아, 김일성이 죽었다' 하게 되면 2천만은 `아이쿠, 좋구나' 하고 춤을 출 것이나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누구냐? 김일성의 아들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오늘날 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도의 길을 가고, 신앙의 길을 지켜 가고 있지만, 복받겠다는 사람은 수두룩해도 하나님의 슬프고 억울하고 분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수고롭게 해서라도 자기가 편안하면 됐지 하나님이 수고하신 것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디서부터 붙들어 매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 매려면 하나님의 사랑만 받기 위해서 붙들어 맬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역사노정에서 슬픔을 당하셨으니 그 슬픔의 자리에도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돼요. 민족을 사랑하는 사랑은 편안한 자리에서의 사랑의 아니예요. 고통받고 눈물 어린 자리에서 눈물짓고 사랑할 수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뭐냐?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슬퍼하시는 자리에 나를 빼지 말고 가게 하십시오' 그래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붙들어 매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붙들어 매야 돼요. `당신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날 빼지 말고 붙들어 매 주십시오. 당신이 매맞는 자리에 있으면 나도 거기에서 매를 맞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뼈가 되고 나는 살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붙들어 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 주위에 내 몸을 얽어매 가지고 내가 맞고 당신은 맞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이래야 된다는 말이예요. 여기 그런 목적으로 온 사람 있어요? 없다구요. 그런 일이 있다면 전부 다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갈 거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제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얽어매여지는 사람이 참사람

우리의 소원은 하늘과 나를 영원히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하늘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하늘이 정하면 나도 정해야 돼요. 그러려면 하늘이 간 걸음을 나도 가야 됩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붙들어 맬 것이냐? 통일교회 주의는 춤추는 자리에서 붙들어 매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웃을 수 있는 그 자리에 가서 붙들어 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향하는 주의는 하늘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있어서, 핍박받는 자리에 있어서,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 있어서 얽어매자는 것입니다. 그것과 통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이 복받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하게 될 때 떼어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도의 길은 희희낙락 즐거운 가운데 하늘땅을 대신하여 노래하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도의 길은 먹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입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자기가 갖춘 바의 모습은 늠름하지만 머리 숙여 땅을 보면서 한숨을 짓는 길입니다. 왜? 하나님 앞에 얽어매이고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도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크나큰 이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자기 후계자를 선택할 때에는 술 먹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춤추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아요. 진정 사랑하는 애인을 택하려고 할 때는 댄스홀 같은 데 가서 택하지 않아요. 그건 껄렁패들이라구요. 반드시 낮은 자리에 가 가지고 택합니다. 자기가 높은 인격이 있다 하더라도 낮은 데로 내려가 감방 옷을 입고 땀을 흘리고 추한 모습을 한 자리에 있어서 정성을 들이는 심정의 하나의 기틀을 세워 가지고 택해야 합니다. 고통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장면에 있어서 그 심정에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붙들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참사람입니다. 네온싸인 불빛이 호화찬란한 자리에서가 아닙니다. 절대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웃고 희희낙락하고 궁둥이춤을 추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은 어디서서부터? 오늘날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데서부터 쌓인다구요. 보라구요. 생명의 기원을 가진 모든 초목 하나라도 그것이 생명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궁창 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뿌리를 박아 가지고 그것을 소화하고 그것에서 생명의 요소를 빼내어 자기의 요소로서 갖출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만 완전한 하나의 풀이면 풀의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자기의 생명선을 접수해 가지고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탄세계에서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은 `아, 그런 길은 가지도 말라' 그럽니다. `아이쿠, 가지 말라' 그럽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빠진다고 해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따위 쫄따구들은 오지도 말라구! 오면 발길로 차서 쫓아 버릴 거예요. 지지리 못난 패들이 예수 믿는 패들이라구요. 기도할 때는 `내 아들 복 주시고, 천당 가게 해주십시오' 그런다구요. 천당? 내가 아는 천당은 그렇지 않더라 이겁니다. 천당을 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길에서라도 `아버지를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길은 없느냐?' 하고 머리를 싸매 가지고 정성을 들이며 지옥 밑창에 가서도 하늘의 제단을 쌓기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예배당 가 가지고 찬송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하나님' 그따위 수작하지 말고, 저 빈민굴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판에서, 벌거벗은 허허벌판 가운데서 하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눈물로 호소하는 무리들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교회당에서부터가 아닙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최고의 사탄굴 밑창에서부터, 더 험한 곳에서부터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그것을 선의 마음으로써 붙들어 얽어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리에서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걸어 나오신 길을 걸어 하나님의 전통을 세워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아들이라면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하나님을 점령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점령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어디서부터? 타락한 인간이 대번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 붙들겠다고 하면 손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이 자식! 이놈!' 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보라구요.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아, 주님이여! 새벽부터 밤새껏 당신을 찾느라고 허덕였소. 아이고 주님!' 하고 붙들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만지라고 그랬어요? `너는 내가 가는 고난의 길을 몰랐다. 고난의 반열에 동참하지 못한 네가 영광의 자리에서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주를 찾아오려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시시한 진리라면 우주를 주관하고 악을 소화할 수 있는 진리가 못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우리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 가지고 그걸 맞출 줄 알아야 돼요. 그럴 거 아니예요? 성경을 봐서 예수가 제일 슬퍼하는 것, 하나님이 제일 슬퍼하는 것, 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걸 가려야 된다구요.

오늘날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니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된다구요. 이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하나님과 어차피 얽어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얽어맬 때는 이렇게 매어서는 안 되겠단 말이예요, 이렇게. (흉내를 내심) 딱 같아야 돼요. 딱 같아야 된다구요. 통일교인들, 오늘 저녁에 온 청년 남녀들은 이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이제 우리는 뭘 배울 것이냐? 아버지 앞에 내가 하나의 지체가 되고, 한 몸이 되기 위해 얽어매기 위해서는 내가 아버지 걸으신 그 길을 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뭇잎을 똑 따서 조금 떼어 보더라도 그 조그마한 세포는 그 나무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니예요? 나무의 토막, 중대를 잘라 놓아도 이것이 오리나무면 오리나무이고 미류나무면 미류나무인 거예요. 이파리를 요만큼 떼어 놓더라도 미류나무는 미류나무란 말이예요. 이런 본질의 자격이 있는 거라구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6천 년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아버지 앞에 여러분이 어디서부터 얽어맬 것이냐? 만일에 하나님의 몸이 있다 할진대는 6천 년 동안 지내와 가지고 이때에 와 가지고는 기형이 다 되어 가지고 세상 천지를 다 바라볼 수 있게 이 눈만 하나 갖고 있다면 되겠어요? 안 된다구요. 그건 발로 뻥 차야 돼요. 전부 하나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일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지금까지 걸어온 아버지의 슬픔의 고개를 내가 친히 가야 되고, 아버지가 당한 곡절의 기준에 내가 친히 동하여서 거기서부터 내 아들 내 딸이라 할 수 있는 인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너는 내 딸이니 나와 더불어 가자!' 할 수 있는 결정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와 반드시 얽어매야 되겠습니다. 하나되어야 되겠다구요.

그런데 이것을 어느 길로 얽어매야 되느냐? 오늘날 3천만 민족에게 아버지가 찾아오신다면 호화찬란한 곳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서울의 명동 거리와 같이 잘 입고, 잘 먹고 트림하는 곳에 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쌍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을 향하여 양심을 갖고 부딪쳐 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처량한 자리에서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눈물 어린 자리, 이 민족이 알지 못하는 불쌍한 자리에서 죽음의 길을 향해 생명을 걸어 놓고 뒤넘이치는 무리들이 많을 때, 그런 무리들에게 하나님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을 품은 청년들, 앞으로의 소망을 가진 청년들이 있거든 오늘날 현세에 있어서 어떠한 위정자들을 중심삼은 세력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등살을 대려는 사람들 두고 보라구요, 도망 안 가나. 그런 걸 잊어버리고 `내가 가진 학벌, 내가 갖춘 모든 인격을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나타나게 해주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요한 농촌에 들어가 가지고 땅을 파면서,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불쌍한 농민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고 농부들의 사정을 알아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있어서 그들을 붙들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호소하면서 그들의 생명과 그들의 전체적인 생애를 내 몸뚱이에 얽어매어 가지고 그들이 나갈 길, 그들이 소망하는 곳을 향하여 개척하며 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싸우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역사를 찾아보든지 그 나라의 애국자, 혹은 그 나라의 충신 열녀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반드시 그 시대에 있어서 줄곧 행락을 노래하는 자리에서 떨어져 가지고 비참한 자리에서 불쌍한 이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공인된 가치가 역사적인 전체에 비교해 보게 될 때 손색이 없고, 시대와 미래를 거치게 될 때 엄연하게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기준으로 남아지게 될 때 그것이 한 애국정신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민족들이 그것을 본받고 따라가게끔 기도하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역사상의 철칙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날 이 지상에는 하나님의 전통이 서 있지 않습니다. 성경 66권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많아요. 교회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그들은 다 가짜들입니다. 자기가 `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요, 너는 내 종이다'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죽음의 자리에 있어서 시체를 거두어 줄 수 있는 종, 눈물 어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목을 안고 울어 줄 수 있는 종, 또 그러한 아들딸은 없다구요.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들이 여기 모여진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외롭고 슬픈 자리에서 고통받으며 나오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눈물의 고비를 내 일신에 얽어맬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눈물 흘릴 때 동반자가 되고, 고통을 당할 때 동반자가 되고, 슬플 때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길에서부터 여러분들이 주체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여러분이 하나의 연결체가 되어야 됩니다.

오직 참사람만을 바라고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늘이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천리 만리 지옥이라도 개의치 않고 죽어서라도 가겠다는 결의를 가진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하늘나라는 건설될 것이고,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세계 만민의 축복의 기준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다년간 지내 나온 경험을 통해서 느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예요. 만일에 이 길을 이렇게 알아 가지고 실행했는데 망하게 되면 와서 호소하라구요.

더우기나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은 이제 여러분의 일생에서 `당신이 걸어간 6천 년 섭리노정에 있어서 요면만은 나와 영원히 매여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가져야 됩니다. 그런 것도 하나 없으면 전부 다 쭉정이가 되는 거예요. 27억 인류가 살고 있고, 천상의 수많은 영인들이 살고 있으되 그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와 나와의 그 문제만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그 문제만은 아버지도 나와 같이 의논해야 된다'고 할 수 있는 가치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것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늘이 축복을 안 해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지금까지 갖은 고통, 갖은 수욕을 받으면서 이만큼 자라 나온 것도 그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민족, 혹은 27억 인류가 살고 있고, 삼천만 민족이 살고 있고, 천상에 가면 수많은 영인들이 살지만 하늘땅에 사는 그런 모든 영인들을 총합해도 이 문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점령당하기 전까지는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발전 안 하면 천도가 어긋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점령할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 할진대, 그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 이상 고생을 하고, 그 이상 애절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얽어맬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을 녹여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기 전에는…. 그러한 것을 가져야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처녀가 자기가 이상하던 남자를 남편으로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그 남자가 그 여자에 대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그가 갖춘 바의 모든 면에 있어서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풍겨 주는 아름다운 모양, 아름다운 태도, 아름다운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녀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고귀한 내용을 갖춘 사람이다 할 때, 그 여자가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 남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생명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사람 다 가졌어요? 가졌느냐 말이예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왜 불행했느냐?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고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행복스럽지 못하고 안식의 자리에 서지 못한 연고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될 때에 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대신 고통받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억울하고 분하고 원한에 사무친 심정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한의 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 내가 복수하겠나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 같은 것들은 많아도 말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이 특별히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은 뭐냐?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몇만 명 모인다면 선생님 자신이 전부 다 쥐고 흔들 거라. 못 나가게 그저 갈구리를 해 놓고 전부 다 몰아칠 거예요. 참것! 참것이 필요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많은 무리가 모였다고 반가와하지 않아요. 내가 바라고 내가 찾고 있는 하나님의 인연을 그들이 갖추어 가지고 어느때, 어느 환경에 있어서도 그때 만큼은 환경을 대신하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하여 주고, 하나님의 절개를 지켜 주고, 하나님에게 기억될 수 있는 무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만드는 것이 문제지 사람이 천만이 모였다고 해도 구경꾼은 쓸데없다구요. 신앙의 기준을 여기서부터 닦아야 됩니다.

그래 지금 선생님은 양복도 척 입고, 또 많은 사람 앞에 얘기하면 얘기도 곧잘 한다구요. 하늘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남기고 간 수고의 노정을 알고, 또한 만민들에게 곡절의 인연을 품고 거쳐왔다는 것을 아는 하늘의 아들딸들이라면 못할 것이 어디 있어요? `다리가 꺾여져도, 몸뚱이가 찢어져도 응당히 내가 맡고 당신은 편안해야 된다' 하는 신념을 가질 때는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부패해 가는 이 삼천만 민족과, 복잡한 이 세계사조 앞에 있어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허덕이는 인류 앞에 우리가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고통 중에 즐거워할 수 있고, 고통 중에 콧노래를 부르면서 갈 수 있는 이 무리들을 반드시 발견하게 해 놓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 인류를 다 구원할 수 있는 거예요. 똑똑히 좀 알라구요.

이 눈깔들이 전부 다 하늘 바라보게 돼 있어요? 눈깔은 45도, 90도 이하예요. 오늘날 타락한 세상 사람들은 천사장의 피를 받아 났으니 크면서 엎어져서 이 눈깔은 전부 다 지옥에 가 있다구요. 하늘은 어디서부터?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좋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배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의 젊은 청년 남녀들을 어디로 보낼 것이냐? 어디서 공인받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 것이냐? 부흥회 도상에서 부흥강사가 외치는 그 소리에 감동을 받아 얼싸 둥둥 춤추고 `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는 무리들로 만들겠느냐? 그건 거지를 끌어다 놓고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술 주정뱅이들을 끌어다 놓고라도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어렵고 슬픈 곳, 참기 어려운 비참한 자리에 있어서 그 자리를 늠름히 자기생명과 대신 바꾸어 극복해 들어가면서 소망의 심정을 뚫고 나가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으면 하늘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올 것이다 이거예요.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핍박받는 곳으로 가야

그러면 참다운 생명을 책임지고, 참다운 이 민족, 혹은 앞으로의 젊은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있는 여러분들을 어디로 보내야 될 것이냐? 대학을 나오고 학박사가 되더라도 여기를 못 가는 사람은 불합격입니다. 제일 빠른 길이 그 길이예요. 그 길은 직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 땅 위에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이 찾아온다 할진대, 하늘은 걸어올 것입니다. 시궁창물, 돌작밭, 가시밭길을 헤치고 걸어오시는 아버지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맞이할 거예요? 곱고 호화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맞을 거예요? 아닙니다. 그 아버지를 백 퍼센트 점령하기 위해서는 같은 모양이 되어야 됩니다. 거기서 아버지를 모셔야 영광의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민족을 사랑할 수 있고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청년 남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앞으로 이 민족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은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그 민족 청년들이 앞으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불쌍한 노동자를 찾아가고 불쌍한 농민을 찾아가 가지고 울 수 있는 이런 민족운동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래야 산다는 거예요.

또, 전세계 기독교가 앞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그냥 놔 두면 전부 다 망해 버려요. 기독교가 나서 가지고 세계의 불쌍한 민족의 어려운 길을 책임지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가던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만민 앞에 제물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이런 길을 거쳐가게 되면 망하지 않아요. 사조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때를 분별해 가지고 가야 할 수난길을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는 것입니다. 핍박을 해라 이거예요.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핍박받는 아버지를 알려면 핍박을 받아 봐야 돼요. 쫓겨나야 됩니다. 쫓김받는 아버지를 알려면 쫓겨 봐야 돼요. 억울하고 이가 갈리는 자리에서 참아 봐야 됩니다. 그래야 `아, 6천 년 동안 이 길을 닦아 나오고 개척해 나오신 아버지의 참으심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처참하고 비참하고 억울하고 형용하지 못할 이런 곡절에 부딪쳐서도 참고 `그대의 본을 따라가겠다'고 충절의 마음을 받들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는 사람들은 기필코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여러분들 앞에 나서려고 말하지 않아요.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을 참 싫어했다구요. 차 타는 걸 제일 싫어했어요. 또, 무슨 원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제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사람들에게 `너 아무개 찾아가라' 하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천신만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서 남은 꿈도 안 꾸는데 새벽에 문을 두드리면서 `여기에 이런 분이 계시다고 해서 찾아왔으니 어떤 말씀이라도 좀 해주십시오' 해서 얘기하니 통일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기에서 내 자랑하기 위해서 선두에 서 가지고 선전 안 하려고 한다구요. 지금도 간판을 내걸고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부흥강사 한다' 하면 많이 몰려올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놀음 안 합니다. 선전이 문제가 아니예요. 봄 동산에 자라는 풀이 누가 선전해서 자라나요? 자기 책임 다하면 그 결과는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들이 나가는 길이 지금 그런 길이예요. 선생님은 그런 주의입니다. 세상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를 해 놓고 열을 선전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하늘은 열을 해 놓고 하나까지 덮어놓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사탄이 싫다는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데 있어서 내가 지금 굶고, 춥고, 어려운 자리에서 시련을 받는다 하더라도 시시하게 세상에 나가 가지고, 무슨 행정기관에 가 가지고 `우리 계몽 나가니 교본을 만들어 좀 후원해 주시오' 이따위 수작 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굶고 헐벗으면서라도 가야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6천 년 동안 그런 길을 걸어오셨으니 가야 된다구요.

이제 여러분들은, 더우기나 청년 남녀들을 여기에 몰아내시는 하늘의 본의는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잡아먹는 패당을 만들기 위한 것이냐? 사탄을 잡아먹는 패당을 만들려면 사탄이 싫다는 것을 몽땅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는 자리에는 전부 다 안 가려고 해요.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곳을 전부 다 점령해야 됩니다. 점령하면 꺼꿀잡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우는 자의 아버지가 되고, 우는 자의 형님이 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자의 스승이 되고, 통곡하는 자의 상대가 되고, 부모가 되라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삼천만이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반만 년 역사를 갖추어 온 이 배달민족은 지금까지 모든 면에 있어서 지처 떨어졌단 말이예요. 이제 민족성까지 다 잃어버렸어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민족성까지 다 잃어버렸다구요. 자식이 아버지를 안 죽이나 부모가 자식을 안 죽이나, 뭐 꺾일 대로 다 꺾여 버렸습니다. 구멍이 뚫어질 대로 다 뚫어졌습니다. 그들은 모르지만 이 뚫어진 밑창에 있어서 자기 가죽을 벗겨 구멍을 막고, 등골의 뼈를 갈아서 뚫어진 구멍을 막고자 하는 무리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 민족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늘이 반드시 이 민족을 위해 찾아왔고, 지금까지 수고한 실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 하늘은 반드시 어떠한 자리에 찾아온다는 거예요. 피땀 흘리는 자리에서부터 하늘을 모셔야 됩니다. 이 삼천리 반도에 발 들여놓으시면 시궁창물에 내 사체를 가지고라도 메우겠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가시밭길이 나오면 옷을 찢기고 살을 찢기더라도 이것을 꺾어 가지고 길을 닦겠다 할 수 있어야 만신창이가 된 이 민족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편안하시다는 겁니다. 안 그렇겠어요?

이것을 안 하겠다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기필코 하늘은 이 민족을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요, 그런 길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일진대 여러분들이 그런 일면을 책임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버지가 찾아오시는 거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손에 손을 얽어매고, 몸에 몸을 얽어매고, 마음과 마음을 붙들어 가지고 같은 눈물로써 같은 심정에 얽힐 수 있는 인연을 보이고 연결시켜 가지고 수에 수를 가해서 많은 무리가 될 때 이 민족은 거기서부터 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받지 못하던 새로운 고통 가운데서 승리하여 영광의 약속을 하기 위해 지상에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제일인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미국의 아버지가 되고, 혹은 전세계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편안하고 영광 가운데서 즐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이념을 바라고 있지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이념을 실천하실 때까지는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시며 죽음의 고개를 거쳐 슬픔의 역사를 지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난 다 싫어'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인 전통을 우리가 여기에 찾아 수습해야 됩니다. 이것을 새로운 시대의 전통으로 세울 수 있는 책임을 진 무리들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의 몸이 그런 실체가 되고, 여러분의 생활이 그러한 발판이 될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은 이 민족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주시고, 그런 무리를 택해 놓으시고 천상천하 만우주를 그들과 더불어 인연맺게 해서 자유의 천지, 해방의 천지, 영원한 선의 세계를 건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전라북도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은 어떠한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어야 됩니다. 거리를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되지 않는 놀음 하는 걸 보면 속이 불타 주먹을 쥐고 `때만 돼 봐라!'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분의 마음을 품고 다니는 우리 청년이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길을 가다가 미미한 여인이, 혹은 하나의 지게꾼이라도 그가 움직이는 것이 수십 사람 앞에 본이 될 수 있고, 수백 사람 앞에 본이 될 수 있다면 아버지 대신 그 사람에게 경배하고 눈물지으면서 `형제여, 아저씨여! 내 대신 그대가 해주니 감사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지갑에 있은 것이라도 털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에게 어려운 길이 있다면 내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모든 것을 염려해 줄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기도한다고 벌 줄 수 있는 하나님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예요. 그건 원형이정(元亨利貞)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 지옥 밑창을 뚫어 승리해야 할 우리

여러분들은 자기가 좋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동기와 어떠한 복잡한 내용과 어떠한 이론을 거쳐 가지고 수천만 대 자기 선조들의 공적을 통해 여기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맺혀진 결실의 모양은 비록 찌그러지고,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만은 하나님이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기 찾아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온 여러분들을 지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여러분들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영원무궁토록 온 천상이나 지상에서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실적을 갖추고 있어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자유의 심정을 걸어 놓고 하늘과 더불어 같이 행동하고, 하늘과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이런 입장을 개척하고 지도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길입니다. 그런 길로써 여러분을 이끌고 가야 돼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길은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들을 그렇게 고생시키는 자리더라 이겁니다.

그래 이번에 3년 기간을 책정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여러분들, 더우기나 본부교회에는 서울의 무슨 대학교를 다니느니 어쩌느니 해서 뺀질뺀질한 여자들이 많다구요. 인텔리라 해 가지고 마사꾼들이 다 되었어요. 이런 사람들의 정신을 돌려놓기 위해 3년 이상 선생님이 고생을 했다구요. 그들은 모르지만 그들의 사상과 그들의 모든 것을 돌려놓기 위해서 유행가를 할 때도 있었단 말이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은 `욕하지 말라! 이단이라고 때리면 조건에 걸릴 줄 알아라!' 하지만 좋다 이거예요. `너희들은 쳐도 이것은 세상과 더불어 다 쓰러질 수 있는 흔적이 되지만, 부활시대에 있어서 하늘에 남아질 수 있는 흔적은 못 된다. 내가 가는 곳,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너희들 눈에 지금 당장은 거슬리겠지만 내 목표는 세상과 더불어 썩어진 후에도 남아질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맞고 치면 몰리더라도 좋다' 하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잰다고 하는 여자들을 전부 다 꼬리표를 달아서 저 노동판에 보내서 탕감하게 하고, 호미자루를 들고 나서게 하고, 양복을 벗어 버리고 저 시궁창물, 똥거머리들이 욱실거리는 데 발을 들여놓고 잘 수 있게 하고 말이예요. 말없이 수년 간 그런 준비를 해 가지고 이 놀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 말 듣고 한 줄 알아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이런 동기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그런 각오와 신념을 갖춘 거기에 있어서 자기 마음이 자동적으로 움직여 들어감을 느꼈기 때문에 움직이게끔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고 개인은 부락을 움직이고, 부락은 민족을 움직이고, 민족은 국가를 움직이고, 국가는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는 하늘땅을 움직여서 하늘의 원을 풀어 주자는 것이 복귀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복받을 길이 어디냐 하면, 지옥 밑창을 뚫고 거기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갖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상을 받으면 천당은 가기 쉽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삼천만 민중 앞에 나선 우리들은 벌거숭이가 되고 굶주리는 일이 있더라도 가야 됩니다. `어느 곳에서라도 슬픈 심정을 품고 오시는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디로 올 것이냐? 이 도성이 사탄 도성이니만큼 오늘날 간첩 모양으로 남 모르는 비밀 장소로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전에 와서 밤을 새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알게 뭐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이 어떤 놀음을 한 줄 알아요? 하늘이 또 어떤 놀음을 한 줄 알아요? 그러니까 일구이언할 것 없이 덮어놓고 가야 됩니다. 전체를 통괄적으로 보게 될 때 그렇게 가는 것이 정상적인 거예요. 앞으로 이 3년 기간에는 여러분들이 그런 기준에서 삼천만 민중과 인연맺고, 또 여기 선생님과 더불어 하늘과 더불어 인연맺는 것이 여러분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슬픈 자리에서 내 아버지로 모신다면 그 아버지가 기쁜 자리에서 우리를 버릴 것 같아요? 오늘날 그렇잖아요? 어느 국가 어느 주권자가 한참 몰리게 될 때, 손가락질 받고 천대받는 자리에 들어갔을 때, 그의 옷자락 하나를 붙들어 준 사람이나 밥 한 그릇 대접한 사람은 그 사람이 때를 만나게 되면 전부 다 그 나라 앞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불쌍한 노정을 걸어오시는 아버지가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 흘리고, 죽음이 고비치는 그 자리에서 같이 고비치는 그런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딸 전부다 내버리고 건달꾼 모양으로 복받겠다고 나온 그런 사람들 붙들어다가 보다 중요한 자리에 놓겠느냐 말이예요. 천만부당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에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이런 신념과 이런 이념과 이런 생각을 갖고 나가는 무리가 삼천만 민중 가운데 불과 소수의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 무리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이 나라에 오시는 겁니다. 오게도 할 수 있고, 안 오게도 할 수 있습니다.

사탄도성을 헐기 위해 생명을 각오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여러분들이 앞으로 여기에 있는 선생님을 감동시키고, 꼼짝 못하게 하려면 선생님이 여러분 붙들고 울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눈물과 인정이 많아요. 길을 가다가 전도 나가 있는 식구들이 옛날에 내가 지내 오던 그런 일면으로서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가슴이 아파요. 선생님도 그런 거 많이 했거든요. 아주 훤하다구요. 여기에서 큰소리하는 것이 여러분만 고생시키고 여러분 등을 쳐먹으려고 하는 얘기이겠느냐 말이예요. 그런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원치 않았지만 하늘은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또, 기도해 보란 말입니다. 왜 충성을 하라고 그랬느냐고 기도해 보면 다 가르쳐 준다구요. 왜냐? 내가 아버지하고 무슨 뭐 세상 모양으로 사바사바가 통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사실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과거와 이런 경력과 이런 실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됩니다. 부디 여러분이 갈 길은 그런 자리에 있어서 아버지와 얽어매야 되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되는 한 여러분은 어디 가나 하나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어디 가나 하나예요. 죽을 자리에 생명을 내놓고 동반해 가지고, 그 방면에 있어서 승리적인 한 소망을 품고 가고자 하는 무리가 오죽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이념과 이 신념만 여러분의 마음에 불타 있고, 이 신념을 통하여 갈 수 있는 투렸한 목표를 향해 간다면 그 사람 앞에는 정복이라는 명사는 해소될 것입니다. 정복당하지 않는 거예요. 패배라는 말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돼 있다구요. 거 얼마나 멋지고 통쾌해요!

그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옛날 우리 선조들도 그렇고, 예수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노아도 그렇고, 전부 다 그 길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이 길을 안 가겠다고 하는 녀석들은 역사적인 전통을 무시하는 악질분자입니다. 잘나나 못나나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오늘 이 시대의 남아진 최후의 사탄 도성의 성벽을 허는 데 있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바위라도 하나 굴러뜨려야 되겠다구요. 치워 내야 되겠단 말입니다.

그러려면 양말을 벗고, 옷을 벗어 제껴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해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그런 길을 가라고 책임을 지워 놓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명령해서 내가 득 보고 좋은 거 없습니다. 여러분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우주적인 하늘의 복을 집중시켜 가지고 선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고 조금만….

여러분이 여기 찾아올 때 무엇 때문에 왔느냐? 얽어매려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마음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왔던 사람이 있으면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발길로 차 버리겠어요. 이래 가지고 똥물에라도 파묻고…. 이제부터는 봉사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못 한다는 말은 당치 않아요. 생명을 각오하고 죽기를 맹세한 무리가 못 하긴 뭘 못 해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놀음이라면 무슨 놀음이라도 해야 돼요. 당장에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결의를 갖고 움직여야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으로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의 상을 탈 수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생각도 말라는 거예요. 생각도 하지 말라 이겁니다.

그렇게 알고 오늘 전주에 모인 여러분들도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가 걸어오신 처량한 역사노정 앞에 참다운 효자 효녀로서 억울한 자리, 불쌍한 자리, 어려운 자리에 있어서 아버지를 비로소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성공을 다 해 가지고 영광의 자리에 앉았을 때 눈물 흘리면서 `아이고, 아버지 이럴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안 되겠다는 거예요.

고통 가운데 자식을 찾아오고 허덕이는 그 자리에 찾아가 가지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냐, 내 아들아. 내 딸아' 하며 아버지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몸부림치며 여러분을 맞을 거예요. 이렇게 역사적인 후회와 더불어 모든 것을 전부 다 풀어 놓고 내 아들이라고 품어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다 자리잡으신 그때에 가 가지고 `아이고, 아버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살아야 할 우리

여러분들을 그런 자리에 내보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복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표본이 되어 아버지의 동반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만천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틀림없기에 이런 길에 여러분들을 보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생각을 지금까지 못 했거든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 `지금은 얼굴이 아주 비참하니까 내 얼굴 살쪄야 되겠군' 하지요? 요 처녀들. 이건 뭐냐 하면 물바가지예요. `이놈의 손, 이놈의 주먹아, 너는 죽기 전에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할 때 `나를 위해 살았다' 하면 잘라 버려야 돼요. 그건 천법에 적용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이것들을 위해 살았다구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면 6천 년 동안 수고할 게 뭐 있어요? 전부 다 없애 버리고 다시 짓지요. 하나님도 자기를 위해서 못 살아 봤는데 이 죄악의 악당들이 자기를 위해 살아요? 그런 관념은 깨 버려야 됩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하늘을 위해 살고, 세계를 위해 살고, 인류를 위해 살고, 민족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살고, 인류는 나를 위해 살고, 삼천만은 나를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내가 살아 준 후에 수많은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살고, 이 민족도 나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도 나 때문에 해방을 받았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멋지지요. 그저 전부 다 개인주의적이예요. 오늘 민주주의의 말로가 처량하고, 고독과 더불어 탄식해 가지고 자멸적인 함정을 파는 거예요. 거기에 있어서 쓰러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전부 다 조화를 이루어 가지고 하늘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청년들이 공부하게 될 때, 혹은 총각 처녀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뇨?' 하면, 처녀들은 `시집 잘 가기 위해서…' 한다구요. 그런 것들은 망해 버려야 됩니다. 총각들은 `내가 잘살기 위해서…' 그럽니다. 그런 것들은 망해 버려야 돼요. 잘사나 보라구요. 망해요, 망해.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이 민족을 위하여, 이 인류를 위하여, 하늘과 땅을 위하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나야 지옥을 천번 만번 가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하여 믿어야 됩니다. `내가 믿는 것은 선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내가 믿는 것은 하늘과 땅을 위해 믿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천당으로 보내 주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나가면 지옥 가는 녀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오, 내 아들딸은 어떻고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소서. 내 딸은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고, 내 남편은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고, 오, 내 친척은…' 하면서 자기 일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것은 신물이 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텐데 그 패들을 붙잡아다가 복 주시겠느냐 말이예요. 기도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구요.

나는 그렇게 안 합니다.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가운데 당신이 피와 땀으로서 찾으시는 무리, 피와 땀을 흘려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려는 무리들이 있사올진대, 하늘이여 원컨대 그들 앞에 당신의 심중에 있던 복을 주시옵소서. 나는 그들의 발에 밟히는 먼지라도 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받을 수 있는 영원의 터를 찾았을 때, 나는 그 발 끝에 묻는 먼지가 되어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아들딸!' 하는 사람의 아들딸을 제일 사랑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예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위대한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삼십평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말구유에서 나 가지고 목수 요셉 가정에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처량한 삼십 평생을 거치면서 혼자 숨은 심정에는 이 민족을 위하는 마음, 남이 모르는 천륜의 비밀의 심정을 품고, 어느 한 날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오고 갈 곳이 없어서 쫓기는 무리가 되어 민족 앞에 몰렸고, 교회한테 몰렸고, 자기 친족한테 몰렸고, 나중에는 제자한테 몰려서 십자가 도상에 나가는 예수 앞에 내가 냉수 한 그릇이나 찬밥이라도 한 술 대접 못 한 것이 원통합니다. 내가 만약에 그때 정한 민족이 되었더라면, 내가 그런 책임을 질 수 있어서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늘에도 그런 뜻의 한 면이 있으시면 그런 것을 내게 보내 주고, 그런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뜻이 있거든 짊어 지워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거예요.

또, 기도할 때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인간을 지어 놓고 영원무궁한 선의 동산에서 자유의 행각을 노래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심중에 사모하면서 창조이상을 실천해 나오시던 그 도상에 있어서 꿈꾸던 그 이념을 실천 못 하고 오늘 타락의 보응으로 이루어진 이 억천만 대 곡절 가운데 혼자 뒤넘이치는 역사가 얼마나 딱하십니까? 그 아버지를 해방시키고, 아버지가 해방되는 날 아버지가 노래하시는 그 얼굴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그 손길을 붙들고 내가 춤을 못 춘다면 울 수 있는 자리에서라도 아버지를 높이, 천년 만년 영원무궁토록 노래하며 모시기에 부족한 마음으로써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그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그런 축복을 주시기에 내가 부족하거든 이 민족 가운데서 빼서라도 주시옵시고, 만일 이 민족 가운데 없거든 나를 그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희생자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은 기도를 그렇게 했습니다. 밥을 먹어도 나를 위해 먹지 않아요. 이래 가지고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 나오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이용도 당해 줬어요. 그러나 이용당하다가 두고 보면 이용하던 녀석들이 망해 버렸어요. 하나님을 이용하지 못한다구요. 억울함도 많이 당해 봤어요.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는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을 나는 많이 봤다구요. 갖은 욕설을 다 퍼부어 망하라고 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그게 뭐 살 도리가 있지. 그렇지 않아요?

전통상속을 위해 고난의 길로 내모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지내 보니 아버지께서 행차하시는 길은 그렇게 돼 있고, 아버지께서 심정의 터전을 놓기 위한 제단은 반드시 그런 길을 통하여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 대해서 좋은 자리에서 성공하여 부디부디 복받고 행복스럽게 살라는 말을 못하는 입장이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이 분하다는 거예요. 내 자신도 마음이 아파요. 그렇지만 타락한 복귀의 한을 남기고 있는 인간이라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게 제일 빠른 길이라구요. 딴 길로 가면 10년, 20년, 일생 동안 가도 못 갑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가서 망하지 않으면 사흘 동안에도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거예요.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이라면 채찍을 들고 들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서도 쳐내야 하는 길이 이 길이기에 오늘날 역사노정에서 하늘을 받들어 오던 수많은 역대 선조들을 하늘은 어디로 보냈느냐? 피 흘리는 자리, 기름 가마, 톱으로 켜는 자리, 십자가 도상의 이슬로 사라지는 자리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고 참혹한 현상을 보기 좋아하는 하나님인 줄 알아요? `그렇게 가야 너로 말미암아 민족이 살겠고, 너로 말미암아 하늘의 해원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인연이 연결된다. 하늘의 전통이 끊어지겠으니 그런 자리에 감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인류를 대신하여 섭리하는 하나님의 심정과 전통의 줄이 남아진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가슴을 여미어야 된다. 땅의 전체가 망하게 되었으니 이런 복통의 심정을 붙안고 너 한 사람을 제물삼아 연면히 계속되는 전통의 줄을 연결시켜 나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하시는 하나님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통은 피로 연결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4천 년 역사 가운데 예수가 이 땅에 와 가지고 십자가 도상에서 무엇을 연결시켰느냐? 4천 년 하나님의 공적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이 피로서 뿌린 전통이 전부 다 깨어지게 되었으니, 예수의 일신을 걸어 놓고 이것을 다시 한 번 전세계적으로, 전민족적으로, 역사적으로 수습하여 재차 세계 앞에 빛낸 것입니다. 그 기준이 십자가입니다. 구원도 구원이지만…. 과거의 승리적인 기준을 지금까지 닦아 놓지 못한 십자가가 무슨 시대적 십자가의 승리가 되겠느냐 말입니다. 역사적인 승리의 심정 기준을 갖추어 와 가지고 전통의 기준을 살려 놨기 때문에, 오늘의 시대 앞에 나서 가지고 역사의 배경을 중심삼은 시대적인 섭리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까지 연결시켜 나온 원인이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거든 지금까지 선생님이 과거라면 여러분들은 오늘의 시대이고, 여러분들의 후손은 앞으로 올 미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니 여러분들이 서 있으면 전후좌우가 있고 상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에 들어와 있을 때는 반드시….

여기서 여러분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지금까지 이 길을 닦아 나온 하나님의 길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닦아 나온 전통을 상속해 주려니 이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거 보고 좋아하자는 거 아닙니다. 고생으로 닦아 온 그 심혈에 어린 모든 복의 은사를 여러분들에게 무조건 축복해 줄 수 있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상속을 받아야만 영광이 되지요. 그렇지 않아요? 원수 앞에 상속을 받아야 영광이 되지요. 하나님은 거기에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뿌렸으니 십자가로 거두어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눈물로 뿌렸으니 눈물로 거두어야 됩니다.

끝날에 세계를 구하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남아질 수 있는 민족이 되고, 남아질 수 있는 선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쫓겨나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쫓겨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단합해 가지고 아버지를 바라보고 반기며 눈물과 더불어 간절한 신뢰에 엉킨 가슴을 부둥켜 안고 쌍수를 들어 아버지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피를 흘린 손길과 피를 토하는 모습으로서 아버지를 붙들고 간곡한 정성을 들여야만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예요. 눈물로 작별했으니 눈물로 맞이해야 돼요. 고통으로서 작별했으니 고통받는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할 수 없단 말이예요. 이것은 필시 인간이 타락한 보응으로서 남아진 탕감노정이며 해결지어야 할 운명의 길이었기 때문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지금까지 그렇게 몰았다구요.

세계는 점점 수라장이 되어 간다는 거예요. 점점 무슨 주의니 해 가지고 공산주의까지 전부 다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두고 보라구요.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못 믿는다구요. 하나 믿을 것이 있다면 죽음에 있어서 고통의 자리를 자기의 본향지로 알고 늠름한 모습으로 그곳을 향하여 가는 사나이들과 아낙네들이 있으니 그 무리들은 세계를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미 대륙이 3백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노정에 있어서 오늘날 세계 문화를 창설해 가지고 온 세계의 주도적인 선진국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거예요. 그들이 개척자의 모습을 가지고, 퓨리턴(Puritan;청교도)들이 피와 눈물과 땀으로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은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은 총을 붙들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강토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하늘을 숭배해야겠다는 마음에 고통을 주고 있는 저들을 처단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이 용서한다는 겁니다.

모세도 애급 백성을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싶고, 이스라엘 백성이 맞는 것은 자기가 맞는 것 이상이요, 하나님이 맞는 것보다도 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때려죽이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것을 알아야지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거 이해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계적인 퓨리턴들이 돼야 되고 세계적인 선각자가 돼야 되겠습니다. (이후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모심의 생활을 해야 돼요.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앞으로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어요, 모심으로. 본래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우리가 갈 길을 다 가는 것입니다. 믿기는 뭘 믿어요? 모시고 생활함으로써 다 돼요. 그래 모시는 데는 여러분의 생활과 마음으로 더불어 모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디 갈 때는 반드시 앞에는 아버지가 있는 걸 알고 뒤에는 어머니가 있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좌우에는 반드시, 또 상하에는 반드시 하늘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심으로써만 구원을 얻어

앞으로 우리 식구들이 지방교회에 나가 책임을 지든가 혹은 어떠한 공적인 책임을 지고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만약에 난관에 부딪쳐 가지고 자기 혼자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을 때에는 목욕재계하고 하늘 앞에 기도하면서 문의하면, 모시는 가운데서 문의하면 가르쳐 주게 돼 있습니다. 가르쳐 주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의 심정의 정도가 하늘이 표준하는 그 기준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안 가르쳐주지, 가르쳐 주게 돼 있다 말이예요. 틀림없이 가르쳐 주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난관에 부딪치게 되어 나로서는 해결이 안 되게 될 때는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 되느냐? 자기의 마음을 하늘땅 앞에, 천지의 그 심정 앞에 딱 세워 놓고 자기가 그 모든 문제를 하늘 앞에 의지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면 가르쳐 줍니다. 만일에 그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럴 때는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가운데서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거기에 부딪치면 직감을 통하여 자기의 갈 방향을 제시해 주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려운 싸움터를 거쳐 나갈 수 있지, 안 그러면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그러면 타락한 인간들로서 여러분이 어느 때에 부모를 모셔 봤느냐 이겁니다. 모셔 봤어요? 응?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에 어느 때에 모셔봤느냐 이거예요. 예를 들어 다섯 식구가 산다고 하면 그 다섯식구뿐만이 아니예요. 그 다섯 식구는 참부모를 모셔 보지 못한 식구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참부모를 모시고 사는 일곱 식구와 같은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탕감복귀예요.

효성의 도를 세워야 할 우리의 사명

여러분들이 이 천적인 크나큰 뜻을 알고, 참부모가 인류의 모든 소망의 중심인 것을 안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자리에서 모시는 것을 지극히 분하게 여겨야 됩니다. 또는 어떤 셋방에서, 혹은 자기의 형편이 여의치 못한 자리에서 하늘 부모를 모시며 이름을 부른다는 그 자체를 지극히 민망스럽게 생각해야 된다 이거예요.

본래 하늘이 바라는 그 자리는 여러분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만민이 전부 앙모하는 자리에서 그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부모를 모시고 효성을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하며, 사탄세계의 어떠한 족속은 물론이고 후대 앞에 떳떳이 보여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모셔야 된다는 거예요, 원래는.

그런데 여러분은 그러한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내 집을 짓기 위하여, 혹은 내 집을 구하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거예요. 자기의 정성, 자기의 모든 것을 기울여 가지고 자기가 있을 곳을 찾기 위해서는 허덕여 봤지만 여러분이 하늘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허덕여 볼 때가 있느냐? 또, 여러분이 살아 생전에 그 부모 앞에 진지를 지어 가지고 정성스러운 진지상을 드려 봤느냐? 또 내가 그 부모를 모시기 위해 깨끗한 방에 부모가 누울 잠자리를 효자의 모습으로서 한 번 마련해 드려 봤느냐 말입니다. 그게 다 한입니다. 다 못 했다구요. 못 했습니다. 안 그래요? 신발로부터 내 일신에 걸치고 있는 장식이나 한 벌의 옷도 그렇습니다. 어느 때 한 번 그렇게 모시지 못한 연고로 내가 그 부모의 손길을 통하여 신발 한 짝이라도 받아 가져 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진정한 심정을 기울여 사주는 신발을 못 신어 봤으니 다 그것도 한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로는 하늘을 모시고, 아래로는 땅을 대하고, 앞으로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처해 있는 위치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입장이라는 거예요. 전후ㆍ좌우ㆍ상하를 갖추어 가지고 거기에서 효성의 도를 세워 하늘땅 앞에 우리를 자랑하여야 할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에서 우리 한국을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했습니다. 자고로 이러한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도 그만큼 이때에 섭리에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지 않았던 숨은 섭리의 손길이 가해졌기 때문에 오늘 우리 민족이 그러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예의를 지키고 효성을 하며 열녀 충성의 절개를 숭봉하는 민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를 떠나 생활하게 될 때에 늘 부모를 모시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천지 부모를 모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밥을 먹어도 혼자 먹어서는 안 돼요. 혼자 먹어서는 안 된다 말입니다. 한 벌의 옷을 내가 입더라도 거기에 감사의 표시를 해서 입고, 행동의 전체를 동거동락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혼자있더라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느 기간까지는…. 과거에 선생님이 이 길을 닦아 나오게 될 때에는 감옥에 있어서나 어느 산꼭데기에서나 아무리 더워도 이 정강이를 내보이질 않았습니다.

여기 이 다리 아래를 보이질 않았어요. 왜? 내가 하늘이 허락한 축복을 받기 전에는 이걸 사탄한테 보이기 싫었던 거예요.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렇게 했습니다. 옥중에 있을 때도 중노동을 하다가 지쳐 쓰러질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럴 수 없었고, 주일날은 노는 날이라도 정좌해 가지고 하늘을 섬기는 조건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배신할 수 있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에서 하늘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쭉….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앞으로 우리 식구들로서 가정을 가졌다 할진대는 반드시 거기에는 거룩한 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듯이,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지성소와 같은 실제적으로 모시는 곳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공적인 뜻을 위해, 아버지의 뜻을 위해 아버지 대신 움직이는 사람만이 그 집에서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한 살림을 해야 돼

우리 식구들에게서는 이제부터 삼위기대 편성이 나옵니다. 이제부터 삼위기대 편성이 나오게 되면 이들 세 집이 반드시 한집 살림살이를 해야 돼요. 지금까지는 타락한 인간이라서 전부 다 갈라져 나갔지만 그 갈라져 나갔던 것이 이제는 복귀시대로 통과되어 합해 들어간다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나 중심삼고 내 가정만이 잘돼야지' 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런 때는 다 지나갔어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기의 한 가정이 아닌 세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살림을 해야 된다구요. 삼위기대를 중심하여 한 살림을 해야 돼요. 그 셋이 합하여 못해도 최소한 열두 집이 하나 돼야 되는 겁니다. 삼사 십 이(3x4=12), 열두 가정이 한집이 되어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준을 거쳐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생활방식과 제도는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 집이 있으면, 물론 각각 자기 집에서 성의를 다해 가지고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자기 먹는 것까지도 전부 준비해 놔야 돼요. 밥을 해도 어른의 것을 맨 처음 뜨고, 그 집에 어느 식구가 찾아가면 자기의 생활기준에 따라 어느 때든지 정성 어린모습으로 대해야 되는 거예요. 누구든지 가 가지고, 만일 아버지께서 오셔서 밥을 달라 하면 어느 때든지 즉석에서 준비해 드릴 수 있는 정도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준비를 했다 할 땐 앞으로 공적인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할 겁니다. 크나큰 뜻을 하늘 아버지 대신 책임지고 나서는 식구들이 있다 할진대는 어느 마을이면 그 마을에 있어서 우리 통일식구가 있다는 것을 길가에 반드시 표시해 두어야 돼요. 이제부터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전국에 널려 있는 우리 교인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 곳곳에 대로가 있으면 그 대로에 이제부터 그것을 실천하자 말입니다. 반드시 간판 붙여라 이거예요. 간판을 붙이되 반드시 안내도를 그려야 합니다. 자기 교회위치가 얼마 전방에 있고 어느 방향이라는 등 안내도를 세밀히 그리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우리 교회관계의 내용을 전부 다 명시해 놔야 됩니다. 만약에 그걸 떼 버리면 또 만들어 놓아야 돼요. 열 번 떼 버리면 열 번 갖다 붙여야 되겠지요? 그러니 깨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을 수 있는 멋진 것으로 안내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 식구들이 공적인 뜻을 위해 왕래하다가, 뜻길을 찾아 다니다가 점심때가 되어 들어오면 언제든지 점심을 대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한 것을 공적인 뜻을 위해 수고하는 자녀들에게 아버지 대신 드리는 겁니다. 즉, 아버지 대신 와서 먹어 줄 수 있는 식구가 올 것을 그리워 하면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세 집이면 세 집, 자기 한 집이면 한 집에 있어서 준비한 것을 우리 식구에게 대접하고, 아버지를 친히 대접하기 위한 것이 준비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먼저 먹는 것을 언제나 부끄럽게 느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집에 찾아오는 것, 우리 식구로서 방문해 주는 것을 하나의 영광으로 알고 기쁨으로 알면서 맞아야 된다 이겁니다. 만일에 그런 식구들이 안 올 때는 그 부모들이 먹어야 되는 겁니다. 찬밥이라도 그 이튿날 먹어야 된다 말입니다. 그것을 함부로 거지에게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지 못하면 밥이면 밥을 풀어서라도 밥을 하는 데에 얹어 가지고 재차 밥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 그런 생활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복귀도상에서 나라·세계·하늘을 위해 십의 삼조까지 해야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 자신들이, 통일교회 우리 식구들이 어떻게 해 나가야 되겠느냐? 전국적으로 우리 식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한 달 생활이 어떻게 되느냐? 전국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평균 생활 금액이 앞으로 산출될 것입니다. 월 8천 원이면 8천 원, 5천 원이면 5천 원이라고 할 때 이 5천 원을 기준으로 전체가 통일입니다. 그 이상 살던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생활을 절약하여 내려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 이하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밤낮 쉬지 않고 노력하여 그 선을 넘어서기 위해 투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의 생활적인 그 기준선에서 살지 못하여 그 이하에서 모실 때에는 그것을 무한히 부끄러운 것으로 알아야만 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통일의 심정을 같이하고 하늘의 뜻을 동반해 나가는 식구의 입장에 있어서 전체면 전체의 생활에 있어서 한 달에 얼마라는 기준, 즉 말하자면, 평균 생활 금액이 얼마라는 금액이 나왔으면 그 금액을 중심삼아 가지고 잘사는 사람은 내려가야 됩니다. 잘사는 사람은 내려가야 되겠고 못사는 사람은 갖은 노력을 다해서 뚫고 넘어가야 돼요. 그리하여 생활 기준선을 점점점 높여 가지고 오늘날 세계의 최고 문명국가를 제패할 때까지 우리는 총단결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제 가정에 가면 그 가정에 아버지의 방이 있어야 되고, 농토에 나가면 아버지의 농토가 있어야 됩니다. 자기 가정을 중심한 아버지의 농토가 있어서 앞으로 종자는 반드시 아버지의 농토에서 수확한 종자를 거두어 아버지의 것으로써 자기 농토에 씨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 레위 족속이 십일조를 받아서 살던 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여러분들도 그러한 일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통일의 식구, 모시는 자로서의 우리들이 가는 데 있어서 생활의 십일조를 내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걸 자기 것이라고 침범하면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삼 삼은 구(3×3=9), 소생 장성 완성 단계에 있어서의 3수에 3을 가한 수요. 지상 창조과정의 수로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10수라는 것은 어떤 수냐? 하늘수입니다.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수는 9수까지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는 나쁜 수로 취급받았어요. 삼 삼은 구(3×3=9), 이것을 사탄이 지금까지 지배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사탄이 지배하는 이 땅 위에 있어서 이 9수를 하늘 앞에 맡겨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0수의 위치를 찾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9수를 끌고 들어가면 이 9수권 내의 모든 소유권을 사탄세계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이 나왔다는 거예요. 괜히 그게 나온 줄 알아요?

이제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시간까지도 십일조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무슨 물질만이 아닙니다. 전부 다 만일에 가족이 열 사람 있으면 가족 대신 한 사람을 내놓아야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나가야 돼요.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십일조 못 하면 안 돼요. 십일조 못 하는 사람은 통일교회 식구가 아닙니다. 이건 의무적이예요. 천적인 의무란 말입니다. 만약에 그런 생활권 내를 벗어나게 될 때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귀노정에 있는 우리들은 두 나라를 대하는 입장입니다. 안 그래요? 이제 하늘의 나라도 있어야 되겠고…. 사탄세계의 나라를 벗어나는 과정에 있어서는 두 나라의 입장에 있으니 우리는 이 두 세계를 벗어날 수 없어요.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으면 이 나라 앞에 세금을 바칩니다. 그렇지요? 이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그다음에는 하늘에 십일조를 냅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자기 나라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제사장, 레위 족속을 위해서, 제사장으로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수로서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복귀도상을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까지 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나라에 바치고, 하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해요. 복귀과정에는 안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나라에 바쳐야 돼요. 십의 일조라는 것은 하늘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기준까지 각오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효성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서는 안 돼요.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로서 혼자 먹기에 미안하거든, 만일에 넉넉치 못하거든 일전 한 잎도 좋아요. `동반한 아버지 앞에서 내 혼자 먹을 수 없으니 민망합니다' 하며…. 그래서 자신이 같이 참여하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반드시 부모를 먼저 대접하는 입장에 세워 놓고 여러분들이 살아 나가야 된다 이겁니다. 옷을 사 입어도 혼자 못 입어요.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성심을 다한 물건과 자기 심정을 참부모 앞에 돌려야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모든 것을 하늘 것으로 돌려야 할 입장인 우리의 행동을 개시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하늘부모를 모시는 자로서는 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춘하추동 사시가 변함에 따라 그 사시권 내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한 계절에 한 번씩 찾아와 하늘 부모를 찾아 보아야 할 인연을 가져야 돼요. 그렇지 않아요?

1년이 돌아가려면 춘하추동 사방 수를 돌아야 됩니다. 1년이 태양을 중심삼아 가지고 도는 데는 춘하추동의 절기를 넘기며 도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1년을 살기 위해서는 공적인 노정을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와 같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참부모를 중심으로 도는 입장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심정적인 인연의 궤도를 잃어버리면 안 돼요. 이것을 잃어버리면 그 인격이 파멸됩니다. 갑이라는 사람의 심정적인 궤도와 을이라는 사람의 심정적인 궤도가 다르다 이거예요. 자기 성품과 개성이 다르면 자기 위치가 다를 것입니다. 그렇게 다를 것이지만 천년 만년을 돌아도 그것이 길어지거나 짧아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일편단심이예요. 그런 기준에 의해서, 지구가 태양계를 돌듯이, 참부모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분은 자녀의 입장에서 심정적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에서 생활무대를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겨울절기에 참부모님을 찾아가야 할 입장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친히 찾아오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정성들인 모든, 성심을 대신한, 자기 생명의 대신…. 아버지를 모셔 나오던, 성심을 다해 준비한 모든 물건과 더불어 자기의 심정을 참부모 앞으로 돌려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게 모시지 못할 우리의 생활이 한이 되니 그 모심의 인연을 연결짓기 위해서는 자기 옆 사람을 반드시 연결지어 나와야 됩니다. 주고 받아야 돼요, 여기에서. 거기서 자기 궤도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물론 원심력과 구심력이 있어서 이렇게도 도는 동시에 이렇게도 돌며 주고 받아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이 이론을 하나의 자기 공도(公道)로 하여 영원불변의 길을 취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해야 될 것은? 그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정 단위로서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하게 된다면 세 집이 밥을 다 가져올 필요는 없어요. 한 집씩 쭈욱 순번제로 돌아가는 겁니다. 한 집씩 돌아가며 해주는 거예요. 그 나머지는 전부 다 정성을 다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 바치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앞으로는 어떤 놀음을 해야 하느냐? 아버지 앞에 바치는 것은 성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그걸 준비해야 돼요. 자기가 직접 모시는 거예요. 그것을 이제는 실천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 봄절기면 봄절기에 있어서 예물을 준비했다고 합시다. 예를 들면 3천 원 가치의 어떤 것을 준비했다고 할진대, 그것을 부모 앞에 드리는 데 있어서는 자기 혼자 드려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성염으로 성별한 성물은 하늘 앞에 바쳐야

그리고 앞으로 우리 식구들은 모든 것을 성별해야 됩니다. 성별하는 데 성염을 뿌려 가지고 성별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밥을 먹고 국수를 먹고 물을 먹고 그럴 때에 언제 성염을 가지고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어떻게 하느냐?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훅─ 불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했던 거와 같아요. 아담을 지어 놓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가지고 실체의 새 생명를 탄생시킨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생명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딸이 있으면 그렇게 하게 해요. 앞으로는 물을 먹든가 밥을 먹든가 할 때에는 불고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한국 풍습이 묘하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물 같은 것 먹어도 불어서 먹습니다. 또 불고 앉아요. 대개 그렇지요? 그것은 하늘이 이 민족 앞에 실천할 수 있는 자연적인 양심을 움직여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의 풍습으로 남아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언제나 그런 성별례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3시대, 소생·장성·완성, 6천 년의 기나긴 시대를 3시대로 거쳐오면서 더럽힌 것을 성별하기 위해서는 세 번 불고 먹어야 된다는 거예요. 어디를 가나, 여러분이 소변을 보더라도 그런 거 이제 다 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디를 가든지 다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하지 않는 천지가 빨리빨리 되어야 돼요.

앞으로 우리 식구네 집이 성념을 뿌려서 성별한 집이라 할진대는 표시를 해 두어야 합니다. 표시를 한 데만 들어간다 이말이예요. 성별한 땅이라 할진대, 여러분에게 그런 땅이 있으면 표시를 해야 돼요. 우리 통일신도가 그 성별한 땅을 지나가는 일이 있다 할진대는, 표지가 붙은 그 땅을 지나가게 될 때는 반드시 자기 몸을 털고 지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들이 걷고 있는 지상의 모든 땅이, 성별되어진 곳에서 우리들이 살 수 있어야 돼요.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사실은 땅이니 뭐니 할 것 없이 전부 다 불살라야 돼요. 원칙은 전부 다 불살라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로 심판한다는 것은 의의가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옛날에 더럽혀진 것은 성물로 드리기 전에 불을 피워 놓고 불을 거쳐 나가게 했습니다. 구약을 보면,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성염을 가지고 성별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천적인 조건을 세워서 이것을 메워 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그거 하고 있지요? 「예」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는 그렇습니다. 사시사철 춘하추동 언제나 그래요. 만약에 어떤 것을 하나님 앞에, 혹은 참부모 앞에 드리려 하게 될때 자기가 가인의 입장에 서나, 어느 누가 아벨의 입장에 서나 둘 중에 하나는 신앙의 동기를 구해야 됩니다. 구하는 데는 세계적인 부모 앞에 드리는 것이니, 하늘과 땅 전체를 통해서 이 상대를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동기와 함께 하나님께 드려야

여러분이 한 계절 계절을 맞이하여 성물을 하늘 앞에 드리기 위해서는 4수를 대신한 3일간 목욕재계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아버지시여, 생명 대신 이것을 아버지 앞에 드립니다. 지극히 적은 것이나마 저의 정성을 다해 만든 거룩한 물건으로서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오니...'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은 천지의 한으로 남겨졌던 성물을 침범당한 역사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 개체 앞에 반드시 상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벨과 가인이 투쟁하던 그런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사탄의 미련을 벗어날 수 있는 성물이 된다는 이거예요. 만일에 그렇지 않고 자기 혼자 있게 되면 사탄이 미련을 갖는다 이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만일 여기에 갑이라는 사람이 어떤 금액을 저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보낸다고 합시다. 갑이라는 사람한테 을이라는 사람이 동반될 수 있는 한 대상자로 선택되었을 진대는 그에게 그 금액을 직접 보내든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내용을 서신으로 연락해 가지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을이 마음으로써, 몸으로써, 행동으로써 협조해 줄 수 있는 상대적인 위치에 서는 것이, 갑 앞에 있어서는 무한한 영광이 되는 거예요.

앞으로는 하늘이 이 거룩한 물건을 취하는 데 있어서, 가인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내가 아벨적인 상대적 자리에 나가든가, 혹은 아벨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 있어서 복귀될 수 있는 가인적인 자리에 선다든가 하는 둘 중의 한 경우로 성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내가 불리움을 받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알아주는 거라구요. 앞으로 이런 성물을 바치는 데 참석하는 자는 그 자체가 무한한 영광이라는 거예요. 자기 멋대로 누구한테 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정성껏 와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교회는 대구교회면 대구교회의 번호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한 일련번호를 세계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 번호에 따라서 행사를 할 겁니다. 거기에는 각국 나라가 다 들어가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 식구를 호출하여, 그 번호에 해당하는 주소를 알아서 거기에 있는 교회 식구 명단을 찾아서 호출해 가지고 그 성물 드리는 데 동참시킬 수 있는 상대자로 부를 수 있다는 거예요.

갑이라는 존재가 그 성물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참석한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갑이라는 사람은 부모 앞에 정성을 다하고 성물을 드리는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무한히 찬양해야 돼요. 마음으로 몸으로 협조하고 자기의 정성어린 심정의 표시를 거기에 표해야 된다는 겁니다. 앞으로 본부면 본부에서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성물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찬양하는 의미에서, 식구가 정성들이는 거기에 있어서, 하늘 앞에 가인과 아벨이 투쟁하여 갈라졌던 그 인연을 통합시키기 위한 하늘 뜻을 연결시키는 의미에 있어서 성심을 다하여 협조해 주는 입장에 서야 한다구요.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투표하여 일년에 몇 명씩 참부모 대신, 오시는 주님 대신의 세계적 기본으로 세워야 되겠어요. 천하의 기본으로서 몇 년간 그 처자는 아버지의 영광을 가지고 자유로이 순회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영광의 아들딸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족속권 내에 있어서 자기 지파면 지파에 있어서도 그런 반열에 참여하여 하늘의 불리움을 받아 하늘 뜻을 대신하는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지파적으로 찬양하는 거예요. 이런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되 그런 불리움 받는 것은 힘들다는 거예요. 누구든 매해 세 번은 힘들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늘이 기억하기 전에…. 여러분이 충성에 사무쳐…. 하늘이 알기 전에는 안 되는 거예요.

성물을 규합해 천적인 경제기반을 닦아야

앞으로 여러분들이 이것을 실천하여 나아가 무엇을 할 것이뇨? 가인과 아벨로 말미암아 분립되었던 만물이 성물로 말미암아 통합의 조건으로 거두어지게 된다는 거예요. 그 인연을 거치어 살고 있는 환경은 하늘의 경재, 지역으로서 점령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나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적으로 성물을 큰 기선에 싣고서 왕래할 때가 멀지 않아온다 이겁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우리 경제기반은 이러한 성물을 통해 닦아야 돼요.

그러면 그 기금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앞으로는 공공기관을 만들어야 됩니다. 하늘 부모로서 해주어야 할 것은 자식을 교육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최소 단위의 일곱 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어야 된다구요. 시집 장가 가는 것을 전부 다 부모가 책임져 주는 거예요. 공부시키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

그 거룩한 물건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세운 기준의 성물들을 통하여 무얼 할 것이냐? 그것은 현금도 좋고 현물도 좋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물질과 금전의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물질은 물질로써, 금전은 금전으로써 대신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그 물건들로써 앞으로의 경제기반을 닦아 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의 성심어린 그 성물을 규합해 가지고 천적인 경제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움직여 앞으로 공공단체가 물론 천적인 이념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기금으로 활용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 우리 백화점 같은 것도 있게 될 거예요. 그때는 무슨 물건이든 갖다가 그 물건을 전부 다 원가대로 파는 겁니다. 원가만 딱 붙여서 팔면 그 물건을 사는 사람은 자기가 거룩한 성물을 갖다가 사용할 수 있는 데에 있어서 동참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러면 10원짜리면 10원, 원가 그대로를 내도 괜찮겠지만 거기에 전체를 위하고 앞으로 뻗어나가는 이상세계를 생각해서 자기 성심껏 10원짜리를 20원 내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큰 백화점을 할 때, 요즈음 큰 백화점에서는 수천 명이 움직인다고 하는 데 우리는 몇십 명이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그 가외의 사람들은 거기서 나오는 비용을 전부 다 배당해 가지고…. 한 사람이 벌어서 열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한 사회, 정의에 입각하고 공의의 법도를 어기지 않는 백성과 천민으로서 이상적인 사회조직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해야 된다구요.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어떠한 부정이 있다 할진대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횡으로서 세계를 이어 나갈 수 있고, 종적으로서 내 개인과 하늘을 연결 맺을 수 있다 이거예요. 안그래요?

사위기대의 삼대상 위치를 갖춰야

오늘날 모든 운동작용이라는 걸 보면 반드시 횡적운동과 종적운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세계적이며 횡적인 상대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고받고 해야 우리의 세계관을 중심삼고 나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는 삼대상 기준을 안 가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나와 하늘과, 이것이 땅 위에 있어서의 평면적인 존재와 공동 목표로 하는 목적을 대하여 주고받는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삼대상 위치를 안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가졌다고 해 보라구요. 사위기대를 가졌다구요. 사위기대. 사위기대라는 것은 위로 하나님이 있고, 그다음에 뭐예요? 「아담」 아담이있고? 「해와」 해와가 있고, 그다음에는? 「자녀」 자녀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 존재하는 것은 3대상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상대와 대상은 어떻게 다르겠어요? 상대와 대상은 다릅니다. 상대는 그냥 대하는 거예요. 무엇이든 존재의 위치를 가지게 되면 반드시 상대기준을 조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상대는 그냥 대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주고받음으로써 공동 목적의 가치적 과정을 거치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물은…. 원리원본에 이렇게 타이틀이 돼 있지요. 창조이상으로 된 아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존재물이라는 것은 반드시 3대상을 갖추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만일 여기 서 있으면 내 개체가, 존재하는 여기에 있어서는 내 마음과 몸과 하늘과는 반드시 제1 대상이예요.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이거예요. 주고받을 수 있는 제1 대상이예요.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예요. 마음과 하나님과는 제1 대상이요, 그다음에는 내 몸과 양심이 제2 대상이예요. 이것이 `나'라 할진대, 남자면 남자 앞에 제3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이 여자면 여자 앞에는 남자라구요.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한 가정을 배경으로 해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한 단위라 보게 된다면 하나님도 이성성상이요, 부부도 이성성상이요, 내 아들딸도 이성성상으로 숫자적으로 3수 과정을 거쳐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것이 전부 다 주고받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삼대상으로…. 이것을 다시 말하면 이것도 하나요, 이것도 하나요, 이것도 하나요, 이것도 하나요, 또 이것도 하나요, 그다음에 이것도 하나입니다. 이걸 따로따로 보면 하나님 앞에도 대상이 셋이예요, 하나 둘 셋. 아담 앞에도 하나 둘 셋이요, 해와 앞에도 하나 둘 셋이요, 아들딸 앞에도 하나 둘 셋입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삼대상 위치를 벗어나 가지고는 본연의 연결체를 갖춘 존재 위치를 결정지을 수 없어요. 그래 이것을 합한다는 것은 사위기대에 삼대상이니 삼 사 십이(3x4=12), 12수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12수가 이걸 전체로 볼 때 모두 몇 수냐 하면 6수입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그렇게 되지요? 또, 전체로 보면 하나 둘 셋 넷이고, 갈라 보면 하나 둘 셋이예요. 천지의 수는 여기서 벌어져 나간다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대상 위치를 갖지 않으면 안 돼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아담 해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전체적인 소원의 목적은 당장 하늘 가정으로서 창조주의 삼대상 기준을 완결짓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지은 목적은 자녀가 됩니다. 안 그래요? 따라서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있고 자기 상대만 있어서는 안 돼요. 자기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아들딸이 없으면 섭섭한 겁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딸만 있어도 안 되고 아들만 있어도 안 된다 말입니다.

여기에 하나라도 결여되면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천지의 원칙적인 발판이 이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천지의 모든 힘의 작용이 움직여 나가기 때문에 그 동력적인 힘이 나로 하여금 정상적인 법도의 과정을 거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상적인 힘의 가치로서 내 몸 마음에 작용하고 내 생활무대에 작용하게 될 때, 천지의 도수에 들어맞으니 내가 거기에 만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가 전부 다 여기에 움직이게 되는 새로운 이상적인 힘의 자극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진리에 입각하게 될 때에 소망을 가지게 되고, 소망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적인 사랑이 내 몸 마음에 체득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몸 마음에 뿌려졌던 것이 양심과 관계가 되고, 양심과 관계된 것이 몸과 마음과 관계되고, 몸과 마음에 관계된 것이 소망과 관계되게 되는 거라구요. 세상을 보게 될 때, 큰 목적으로 보면 그렇게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처한 곳에서 무엇을 대하든지 삼대상 위치를 벗어나서는 존재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그래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렇습니다. 일을 해도 그렇고, 사랑 문제에 들어가도 그렇고, 혹은 가정 문제도 그렇고, 나라 문제도 그렇습니다. 나 개인의 문제, 내 마음과 몸에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하나되어 가지고 반드시 그것이 말과 더불어 상대적 대상을 연결시키게 됩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삼대상 위치를 침범하면 반드시 존재의 기대가 무너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찌하여 인간을 지었느냐? 사위기대 원칙에 의해서 절대적인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기준이 된다면 거기에서 천지의 조화는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갈라 놓으면 하나님도 플러스 마이너스요, 전부 다 플러스 마이너스예요. 안 그래요?

원화원(圓和園)의 이념

여러분도 역시 앞으로 드릴 물건을…. 만일에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여러분이 성심을 다하여 하늘과 내 몸이 하나가 되었으면 반드시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삼대상을 거쳐서 하늘 앞에 인연을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그것이 영속할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이 되고, 여러분은 영원히 사탄의 침입을 받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갖춘 하나님의 자녀 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원칙에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우리 식구들은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이면 한국이라는 교회를 놓고 일련번호를 쭉 만드는 겁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왔다고 다 교인이 아닙니다. 축복받은 사람이라야 우리 교회 교인인 것입니다. 오늘 지금까지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말씀과 실체와 심정의 일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교인인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 하면 말씀과 실체와 심정의 인연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말씀을 알아 가지고 말씀을 실천해야 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데는 부모의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움직여 나가야 돼요. 요전에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탕감복귀의 해원을 할 수 있는 실체적인 행동을 거치고 난 자라야만 축복해 줄 수 있어요. 그게 말뿐이 아니예요. 그게 말뿐이면 안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과연 이제 하늘의 족속, 다시 말하면 이 나라의 생명체가 되는 거예요, 생명체.

오늘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영형체와 생명체와 생령체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들이 영계의 반응적인 현상이니 영형체, 생명체, 생령체와 마찬가지의 인연을….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앞으로 여러분은 뭐냐 하면 생령체와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거기에 입적해 들어가 자기의 위치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입적하는 거예요.

만일에 그게 연결되어 입적이 되는 날에는 여러분이 아무리 잘못하고 아무리 실수를 했더라도 사탄세계에서 세워 놓은 법 가지고는 처리 못 하게 됩니다. 세상이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 미국 사람들을 한국 국법 가지고 처리할 수 있어요? 국적이 다르기에 안 됩니다.

그런 권내에 들어가면 거기에서 처리하는 법을 중심삼고 그 나라 그 권내의 법을 통해서만 적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사탄세계의 법은 일단 넘어만 서면 암만 가더라도 적용이 안 된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의 법이 적용 안 되니 결국은 이 땅 위의 법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상응한 탕감적인 조건을 세웠기 때문이예요. 그러니 지옥은 안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심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괜히 말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돼요. 전도하러 나가 모시는 생활을 하는 여러분으로서 혹시 찬 방에 누웠으면, 찬 방에 모셔야 할 때가 되면 그때는 여러분들이 그래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편히 살아야 돼요, 편히. 최고로 편하게 살아야 된다구요.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려면 밤낮없이 남이 한 시간 일하면 나는 세 시간 일하여야 되고, 남이 백 원 벌면 나는 삼백 원 벌어야 됩니다. 무슨 장사를 해서라도 남의 신세를 안 져야 되는 겁니다. 부모를 모시는 가운데 효성을 드려야 할 우리 자신이 남한테 돈을 빌려다가 해서야 되겠어요? 빚을 져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자력으로 해야 돼요, 자력으로.

어제보다도, 오늘보다도, 금년보다도 명년에는 전체가 더욱 단결하여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지상천국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복귀의 대열에서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면 하늘이 직접 간섭해 줘요. 직접 간섭해 줍니다. 잘못하면 쳐 와요. 이제 그런 노릇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 기준까지 올려놓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요할 줄 압니다. 정상적인 코스까지 내디뎌 이것을 온 세계 앞에 하나의 생활적인 양상으로서 전개시킬 때까지는 우리들이 이것을 위해서 전부…. 이건 뭐 돈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정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자기 정성의 값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것 하나 가지고 과거의 모든 것을 하늘이 잊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려고 하니 이것이 무엇이냐? 주고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화(圓和)의 세계 알지요? 원화원(圓和園)의 이념…. (판서하심) 이것이 뭐예요? 원화원의 이념입니다. 여러분, 원화의 세계라고 말하지요? 이 `원'자는 동산 원(圓)자입니다. 나라 동산원이예요. 창경원이라고 말하지요? 세상 동산이 아니라 나라 동산 원자예요. 택한 동산이예요. 이건 앞으로 세계적으로 되어질 나라 동산입니다.

세계와 만민을 위해 줄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그렇기 때문에 이상이 뭐냐? 행복이 뭐냐? 그걸 내가 주고 싶을 때 땅끝에서 땅끝을 향해 줄 수 있고 저 낮은 자리에서 최고를 향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지극히 평범하지만 최고를 향하여 주고받을 수 있고 저 멀고 먼 끝을 항하여 주고받으면 뭐가 되느냐?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천지, 곧 하늘땅과 더불어 노래를 부르고 인연을 같이하는 생활권 내에서 춤을 추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적인 인간들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럼 이상이 뭐냐? 고통이 뭐냐?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것이 고통입니다. 안 그래요? 주기는 줘야 할 그런 것이 있는 줄 아는 데 줄래야 줄 수 없고 받기는 받아야 할 텐데 받을 곳이 없으니, 받을래야 받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세계를 향해서, 만민을 향해서 줄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최고의 하늘을 향하여 줄 수 있는 자리와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가 공동 목표 밑에서 하나의 뜻을 위해 삼대상 기준의 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으로 이 땅에 태어난 보람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났지만 그러한 자리에서 살고 가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할 말이 있다는 거예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고 싶을 때 줄 수 없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구요. 신랑 신부 둘이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죽으면 왜 땅을 치며 울고 여편네가 죽으면 왜 울고 야단하느냐? 자식이 죽으면 전부 다 가슴을 치며 `내 자식 살려내라!' 왜 그러느냐 이겁니다. 그 무엇이 그렇게 아프게 하느냐 말이예요. 그것은 천리의 원칙이 그런 원칙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은 이 우주의 힘이 몰아내요. `너는 불합격자'라고…. 심정적인 기반에 있어서 불합격자라는, 그 우주의 힘이 결국은 내 가슴에 스며드니 그것이 고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힘, 그 원리적인 100퍼센트의 수 앞에 부합되지 않는 것만큼 거기에 결여된 것 만큼 그 전체적인 힘이 존재 세계에서 반작용으로 나타나 그를 원만한 이상형으로 존속시킬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 그러한 인정적인 힘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를 향해 들어가는 것이 고통으로 나타난다 이거예요. 그러니 원만히 주지 못하면 불행하다 이거예요. 그 주지 못하는 차이가 크면 클수록…. 절반이상, 3분 2만 넘으면 죽는 거예요. 파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부나 홀애비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어도 천지 이치로 보아 불쌍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참부모를 모셔야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어

우리 가정에 있어서 아버지는 하늘의 대신이요, 어머니는 땅의 대신입니다. 부모는 하늘이요 땅이다 이겁니다. 가정에서 직계의 대를 이어나갈 때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잇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잇는 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은 그런 아들딸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라는 것은 전부 다 부모의 소망이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딸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 아들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해서 아담 해와의 직계적인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여기를 알고 이거와 이거와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동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반응적인 상대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비로소 하나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다 이겁니다. 3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앞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어디 두고 볼 거예요, 누가 실천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때가 왔을 때에는 금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사탄을 다 떼어 버리고 모든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그랬지만서도 앞으로는 금식을 하지 말라구요.

그렇지만 5퍼센트의 책임, 타락한 세계의 혈통을 받은 사람은 나중에 들어와도 그 법도를 거쳐 나가야 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한 고개를 넘어가 살게 될 때에는 금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하늘을 모시는 자리에서 금식을 하면 지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부모를 모시는 자리에서 금식할 수 없어요. 아직까지는 그런 자리에 못 나갔으니 금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이러한 축복의 시대로서 세우길 여러분 앞에 하늘이 약속을 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입장인 것을 알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살아생전에 시퍼런 눈 가지고 더욱이나 20대 전후 청년 남녀로서 이러한 때를 맞이 했다는 것은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 귀한 자기들의 위신을 상실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거예요, 이 고귀한 위신을.

에덴동산에 있어서 아담 해와는 마음대로 타락을 행했고 그 타락권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모심의 생활을 못 해본 아담 해와가 된 거예요. 이런 모심의 생활을 하지 못한 인간들은 천상의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은 타락의 혈통을 받아가지고 생활했을망정 복귀의 한 노정을 탕감해 놓고 지상에서 실체를 쓰고 아담 해와가 모시지 못한 참부모를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갔다는 조건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야 천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 거예요.

그 나라 백성이면 그 나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그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식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부모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처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대상은 전부 다 공동의 목표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가령 미국 사람이라면 미국 사람이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우리가 이상 시대의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같아야 돼요. 각국 나라의 모든 민족이 다를 때에도 그 국가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마찬가지일 경우에 그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이 안 될 수 없어요.

이것을 실천하고 가야만 저나라의 천국민이 되는 거예요. 내가 엊그제 이야기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천민(天民)이 되는 겁니다, 천민. 천민이 돼봤어요? 천민으로서 망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고 있지만, 그것은 천민이 축복을 못 받아서 그래요.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천민으로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백성은 반드시 가정 단위로 모실 수 있는 기준을 거친 백성이예요. 가정을 갖추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 천민이 되고자 할 때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담 해와가 이런 모심의 생활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탄권 내에 떨어진 거예요. 이 모심의 생활권 내에 들어갔으면 사탄의 불가침권에서 승리의 권한을 가지고 자기의 생활 터전에서 늠름히 활보하고 살 수 있는 세계가 벌어졌을 거라구요. 그러니 우리가 생활하는 데는 정성을 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최고의 정성을 들이며 살아야 하는 거예요. 내 심정의 반응에 엉켜 가지고 부모와 더불어, 천지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충신과 효자의 길을 가야

아버지는 하늘 대상이요, 어머니는 땅의 대상이요, 참사랑의 아들딸은 만민을 대신한 하늘의 아들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딸과 더불어 내가 가인과 아벨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 이와 같은 생활기반에 있어서 여러분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이 놀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걸 실천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책임자들은 앞으로 이런 면에 있어서 철저해야 됩니다. 그렇게 지도하지 못하면 천당에 가서 참소받아요. `이녀석, 왜 못 가르쳐 주었어' 한다 이거예요.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춘하추동 언제든지, 정월 초하룻날부터 기반을 닦든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건 축복받은 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면 돼요. 그날은 자기가 다시 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중심으로, 봄절기면 봄절기인 그날을 중심으로 잡아 나가야 됩니다.

세상에서 난 날은 하늘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건 사탄새끼로 태어났지 뭐 하늘 아들딸로 태어났나요? 그러한 대책이 있어야 까꾸로 됐던 것이 옳게 되는 등 무슨 매력이 있을 게 아니겠어요? 안 그래요? 그러한 청산을 짓는 결단의 과정을 거쳐야만 죽든지 살든지 어떤 새로운 무엇이 될 게 아니냐 말입니다. 이치가 말이예요. 안 하면 그냥 그 꼴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놀음을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 그렇게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심으로 우리의 갈 길을 가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쉬우냐? 그게 얼마나 쉬우냐 말입니다. 참부모를 멀리 대하게 될 때는 나라의 국왕이요, 가까이 대할 때는 하나의 부모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니 이와 같은 사랑의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여러분들이 멀리 대해서는 하나의 국왕으로, 가까이 대해선 부모로 대하고, 부모의 분신과 같은 자녀들은 서로서로가 하나의 부부와 같은 심정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서로 아버지 대신 사랑하고 어머니 대신 사랑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잃어버린 참사랑의 기준을 자기 자신의 생애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워 가지고 생활적인 기준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사는 생활 전부는…. 멀리 있으면 충신의 절개를 세우고, 가까이 있으면 효도를 다 바쳐야 됩니다. 또, 우리가 전체의 뜻으로 보게 될 때는 신랑 신부의 이름을 가지고 서로가 친히 사랑하는 동시에 하늘땅을 대신한 심정으로 품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사랑의 인연의 반응체로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하늘의 충성된 길을 찾아 통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는 기준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 하기 싫은 녀석은 일어나라우! 내려요. 이것을 이제부터는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새출발이예요, 이제부터.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맹세를 해야 돼요, 맹세. 맹세를 하고, 각자가 자기 약속을 세워 가지고 그 맹세의 기준을 어기지 않는 여러분이 돼 주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늘땅과 인류가 갈라진 것을 회복하는 역사가 복귀역사

지금까지 하늘과 땅이 갈라졌고 인류와 내가 갈라졌고, 다 갈라졌습니다. 이 갈라졌던 것을 어디 가 호소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어떻게 해도 통일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처참한 역사노정을 걸어온 것이 우리 인류였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 복귀역사라는 건 뭐냐? 갈라진 역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통일의 완벽을 기할 수 있는 한 기준을 세워 놓기 위해서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하늘땅이 갈라졌기 때문에 하늘땅 대신하고, 또 인류가 갈라졌기 때문에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의 축소판을 딱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연결체로 갖다 완결지으려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예요. 이것이 사위기대에 전부 들어맞는 거예요.

본래 타락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앞에 이런 시시한 인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보아도 분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이 천지에 태어나 가지고 타락한 인류의 이 추악한 추태를 이 눈으로 봤다는 사실을 지극히 서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원칙적으로 따져 말하면 그럴 게 아니예요? 본래의 우리 선조, 즉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있었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그때에 그 눈에 그런 존재를 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일이예요. 꿈에라도 오늘의 추악한 사실을 보지 못할 참으로 거룩한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 받은 승리적인 영광된 자리에 나갔던들, 그러한 그의 후손으로서 우리들이 태어났더라면 우리 눈으로 오늘 이 사탄세계의 추태상을 볼래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가 잘못하며 천도를 어김으로 말미암아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슬픔과 피의 우여곡절의 노정을 전전하면서 굴러 내려온 것이 인류역사입니다. 즉 말하자면, 그것을 수습하여, 옛날 에덴에 있어서 그 모든 추악한 모양을 보지 않던 참다운 선의 선조로서 설 수 있어야 하는 선조들의 그 역사를 우리가 대신 갖다 맞추기 위한 역사를 거쳐 나온 것이 복귀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완결지으려면 오늘 이 땅 위에 승리의 한 존재로서 이 악한 세상을 한꺼번에 삼켜 버리고 악한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 천적인 권한을 가지고 오는 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앞으로 하늘이 세우고자 원하는 중심이요, 보내 주기로 한 역사적인 소망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면 모든 추악한 사실을 보겠지만 그것을 관념에 두지 않을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있는 것으로 보지 아니한 승리적인 기준에서 어떠한 일체적인 이념을 갖추고 나아갈 거예요. 그것이 우리들이 앞으로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은 보고 사는 이 세상을 자기들이 보고 살아야 할 세상인 줄 알지만 이것은 다 우리에게 상관없는 세상입니다. 본래 우리가 죄가 없는 타락의 인연을 갖지 않은 인간이라면 상관해서는 안 될 세상이라구요.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그런 기준에 나가자는 것이 지금까지 도의 길을 세워 나온 목적입니다. 그런 생각 해봤어요? 응, 생각해 봤느냐 말이예요.

그걸 본 것만 해도 분한 것입니다. 더러움이 탈 수 있는 이런 한스러운 환경에 우리가 처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것을 전부 다 정비해 가지고, 이런 감정을 초월해 가지고 승리의 왕자로 등장을 시키기 위한 복귀의 역사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추태의 사탄 세상을 청산하는 하늘의 아들딸이 나와야

지금까지 수천 수만의 우리 선조들은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거룩한 입장에 서 가지고 어떠한 사탄세계의 죄악의 흔적도 몸에 지니지 않고, 어떠한 몸의 상처라도 눈으로 보지않고 가야 할 천적인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선조들은 이 악한 땅, 봐서는 안 될 이 땅에서 배척을 받고, 피를 뿌리고 눈물과 땀을 흘리고 갔다는 이 억울한 사실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걸 한으로 품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 땅 위에 남아진 모든 추태를 일소해 버리겠다는 움직임이 지상에 나타나기를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했겠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사탄세계가 가는 반열에 동참할 것이냐? 사탄의 선두에 서야 되느냐? 아닙니다. 그 모양만 봐도 내가 와이어 줄을 걷고…. 그러한 것을 보는 것만 해도 생각만 해도 용납하지 못할 환경에서 사는 것이 분한 거예요. 분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이 몸을 섞어야 하다니…. 섞어 살래야 살 수 없는 본래의 거룩한 몸이 아니냐 말입니다. 그러한 본래의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여기에 무슨 만족이 있고 여기에 무슨 행복이 있다고 자기 몸과 마음을 전부 제물삼아 여기에 뒹굴며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청산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늘이 소원하시는 기준 앞에 그것들을 해결짓기 위해서 분립을 통해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선조들이 죽음의 형태를 쌓아 나가면서 그 피묻은 제단을 대대로 물려 주어 그 전통의 기준을 세워서 우리에게 상속해주기 위하여 거쳐 나온 것이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보는 것만 해도 분하고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 와 가지고 보는 것만 해도 분한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영광으로써 하늘을 모시고 참으로 몸과 마음의 활기가 충만한 가운데 천지를 부여안고 영광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모셔야 할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한 한날을 갖지 못한 그 한을 우리는 또한 분하게 느껴야 된다는 거예요. 보기 싫은 이땅을 보면서, 이 땅에 살면서 보기 싫은 이 땅 앞에서 죽음의 길을 달려갔던 우리 선조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분하게 여겨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느냐? 우리 선조의 잘못이 아니요, 오늘 이 땅 위의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인류의 철천지 원수인 사탄 때문에 이렇게 됐습니다. 그것이 뼈살에 사무쳐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이 있는 도성이 있다 할진대, 오늘날 저 하늘 천계에 있는 천천만성도와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그것을 격멸시키기 위한 총행군의 날이 오기를 하늘은 얼마나 고대했겠느냐 말입니다. 안 그랬겠어요?

그러니 오늘날 불림을 받고 뜻을 알아 천적인 사명을 갖고 생명의 인연을 갖춘 것을 역사적인 노정을 통하여, 혹은 시대, 미래를 통하여 변화시킬 수 없는 내 생명의 한 기준으로서 갖추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의 한이 사무친 이 도성을 향하여 ‘사탄의 흔적, 보기 싫은 이 추태의 세상을 내가 책임지고 청산하겠으니 영계야, 동원하라'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진 하늘의 아들딸들이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이 시간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청산하고 정비하여야 할 책임을 진 통일교회 무리

오늘날 통일의 제단을 갖추어 가지고….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도의 길에서 지쳤고, 인간 세상에 있어서도 낙오자가 되었고, 이 모든 세상에 있어서 소망을 갖지 못해 허덕이는 발걸음을 옮기어 오늘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은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왔느냐? 다름 아니라 그 한을 풀기 위해서, 본심이 못 한 것을 청산하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 가운데 비추어 볼 때, 여러분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반대하는 놀음을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대원수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이렇게 몹쓸 물이 든 사실을 내가 보고 느끼는 이 한 자리에 있는 것도 분할 일인데 여기서 뜻을 알아 가지고 나가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또 용서할 수 없는 더 분한 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있어서 아담 해와의 타락적 행동보다도, 그 망발적 행동보다도 더 악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구요.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그 한을 풀기 위해 6천 년 동안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왔지만 오늘날 그러한 무리가 있다는 걸 생각할 때, 이 지상에서 실체적으로 그런 사람을 심판해 버려야 돼요. 그래 심판은 어디서부터 하느냐? 사탄세계에서부터 있는 것이 아니예요. 이런 심정적인 기준을 갖추어 가지고 해결기준을 세워 나가야 할 천적인 사명의 책임을 알고, 그런 입장에 서 있는 자들이 일을 잘못하면 더 무자비하게 다스려야 돼요. 그는 6천 년의 철천지 원수인 사탄 중의 사탄이예요. 그것을 퇴치하고 정비해야 할 책임이 이제 여러분이 가는 길에 남아졌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형제도 없어요. 부모도 없습니다. 이러한 천지의 원한이 솟구쳐지는 환경에서 부모 혹은 처자, 이걸 다 우리의 원수로서 처리하여야 할 것이 우리들이 맡은 바의 사명으로 돼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들은 `내가 보고 있는 이 땅은 보기가 싫어' 할 수 있어요.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생활을 버리고 산중 수도하여 자기의 깨끗한 모습을 드러내어 말없는 자연과 더불어 그 심정을 속삭이기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도의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전에는 왜 그런지 몰랐지요? 목적에 대해서는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해원이 어디에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천지간에 수많은 인간이 살고 있고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는 이 지상을 바라보시는 심정이 얼마나…. 당신이 눈으로 보기 싫고 봐서는 안 될 땅이기에 천지를 창조한, 최고이상의 심정으로써 만 피조물을 품고 홀로 사랑하기 위해 우리의 설 자리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이 추태의 세상을 하루라도 연장시킬 수 없고 내 후대 앞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민족 앞에,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인류 앞에 섭리가 연장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서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이 오늘날 통일의 무리라는 걸 알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명을 위하여 인연 아닌 인연을 갖추어, 즉 형제 아닌 형제의 인연을 들고 나오고 부모 아닌 부모의 인연을 들고 나와 하나님을 중심삼고 `당신이 보고 싶었던 중심이 이것입니다' 라고 제시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현재의모든 것을 부정시킬 수 있는 환경을 급속한 시일내에 해결지어 드려야 한다구요. 그것이 오늘날 이 뜻을 알고 이 뜻길을 따라가는 우리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추한 것을 내가 봐서는 안 돼요.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께서도 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거늘 본연의 참부모도…. 타락한 부모야 응당 그것을 봐야 할 것이나, 본연의 심정을 가지고 인류를 찾아오는 참부모의 눈은 그것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의 무리가 갈 길이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이런 기준에서 앞으로 일대 정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이 기뻐하는 뜻만을 바라봐야

뜻을 품은 사나이들, 뜻을 품은 아낙네들은 어디를 가나 오나 보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세상의 추태가 남아 있는 한 사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한날을 각오하여 자기 일대의 해원성사의 날을 찾아 헤매야 돼요. 그러기 위해 하늘을 붙들고 참부모의 이름을 붙들고 여러분이 싸워야 할 시대가 왔어요.

싸우는 데는 이 삼천만 민족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하는 동시에 영계를 동원하여 이 공간에 권세 잡은 억천만 사탄들을 격멸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진 우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럴 거 아니예요? 사실이 그럴 게 아니예요?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 이 손으로써 보기 싫은 행동을 하면 돼요? 그 눈으로 보고 있어도 볼 수 없는 것이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내가 느꼈을 때는 그것을 할 수 없고 대할 수 없다는 신념 밑에서 그것을 빨리빨리 정비하는 책임의 왕자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또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내 모든 감정과 오관, 내 의식적인 관념권 내에 인연 되어지는 모든 감각이라는 것은 무엇만을 바라봐야 되느냐? 하늘이 기뻐하는 우리의 소원인 뜻만을 바라봐야 돼요, 뜻만을. 뜻만을 바라봐야 됩니다. 아버지의 심정 깊이 숨겨져 있는 창조목적인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소망의 한날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나왔다면 `아이고 보기 싫어! 다 싫어!' 하며 다 싫었는데 가 보고 싶고 같이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그분입니다. 그분이 그리워 그곳에 가고 싶어 허덕여야 할 것이 오늘 이 땅위에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무리가 3천만 민중 가운데 많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찾아온 여러분들은 어떤 무리냐? 아버지께서 보고 싶었고, 내가 본연의 심정을 갖춰 가지고 보고 싶었던 그분을 모시고 그와 더불어 살고 싶은 심정, 그 본연의 창조성 그 발로에 의해 가지고 인연되어 찾아진 무리가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의 눈은 땅에 속한 무엇을 보고 원치 않아야 합니다. 땅의 무슨 인연을 두터이 하기 위하는 것을 원치 않아야 돼요. 원하는 것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 에덴에 있어서의 우리 선조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구요.

내가 타락성을 벗어나 이 추악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그분만을 보고 싶고 그분만을 위하고 싶고 그분과 더불어 100퍼센트 인연을 갖고 살고 싶다 하는 각오를 가지고 세상에 없는 귀하고 귀한 무슨 보배가 있더라도 그것을 다 일소해 버리고 일시에 스스로가 그것을 태평양 가운데 쓸어넣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감동과 충격을 느끼면서 가고 싶은 그곳에서 모시고 싶은 그분을 모셔야 할 것이 인류가 누구나 할 것 없이 찾아가야 할 운명의 길이요, 복귀의 길이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 외의 것은 보고 싶지 않아! 이 외의 것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돼 나가야 됩니다.

왜 선생님이 오늘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제부터는 그런 때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지금까지 개척해 나온 것은 그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세상 것을 보고 그런 맘이 있었지만, 그런 세상에서 지금까지 갖은 곡절의 노정을 거쳐왔지만 `내 마음만은 여기에 더럽힐소냐' 하며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들, 내가 같이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아버지가 소원한 것이 이런 것이요, 하늘이 찾는 그것이 이런 것이요, 인류의 소망의 기준이 이런 것이다' 하며 그 기준을 찾아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길이었습니다.

확고부동한 충절의 심정으로 지상천국 건설에 앞장서야

그러면 여기에 참석했다는 여러분들은 선생님 앞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가 돼야 하느냐? 나를 보고 싶어하고, 나의 행동을 안 볼 수 없고, 나의 웃음에 즐기지 않을 수 없고, 내가 느낀 모든 감각에 동반하여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단 선생님 앞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앞에 그런 존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이중의 투쟁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 세계의 투쟁을 거치면서 하나는 심판해 나가고 하나는 뜻을 세워 나가는, 하나는 파괴 하나는 건설의 노정을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우리 통일용사들의 길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개척해 나온 사람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식구 식구들끼리도 하늘이 보기 싫어하는 무리가 되지 말고, 하늘이 원치않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됩니다. 오늘날의 죄상을 보는 것만도 지긋지긋한데 여기에서 그런 무엇이 나타나며는 그건 원수예요. 원수입니다. 철두철미해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에서 폭발돼 나오는 그리운 심정, 보고 싶은 그곳, 보고 싶은 그분을 위하여 이것만을 생각하고, 이것에 의해서만 간섭받고, 이것과만 관계맺고, 이것만을 즐겨하면서 천상에 인연된 심정을 노래하며 살 수 있는 무리들이 돼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새 아침의 영광에 참여하여 천상의 인연을 그 품에 지녀 가지고 하늘의 승리의 아들딸로 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돼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말한 승리의 아들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여기 다 모인 것이 무엇 때문이겠어요? 어떤 행사가 있다고해서 모여 온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마음에 있어서 하늘이 이렇게 나왔다는 걸 알고, 보기 싫은 세상에, 이 원치 않은 인연의 세상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한 순간 한 촌시라도 이 환경을 벗어나 잊어버리고, 자기의식에서 그러한 것들을 젖혀 버리기 위해 한날의 그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찾아온 무리가 되고 여러분이 돼야 되겠다 이겁니다.

이 자리에 찾아온 이 시간에 있어서는 안 보면 될 수 없는 것이요, 안 있으면 될 수 없는 것이요, 인연을 안 맺으면 될 수 없는 입장에 서 가지고 참석한 자가 되어야만 됩니다. 여기는 세상 생각과 달라요. 우리가 된 걸 좋아하고, 우리가 된 걸 기뻐하고, 우리가 된 것을 높이 찬양하던 인연을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만 맺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에덴동산, 즉 지상천지 어디를 가든지 우리들이 대할 수 있는 기쁨의 모습과 즐거움의 모습과 영광이 체휼되는 감정을 통하여 만물을 휩쓸어 부여안고 너와 같이 동반하자고 할 수 있는 자유의 환경을 건설해 놓아야 합니다. 그러하여 건설된 그곳이 우리의 소망의 지상천국이요, 이루어질 지상천국이다 이거예요.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러니만큼 무골충이 되어서는 안 되겠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무골충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는 이래야 돼! 천지가 변해도 이것만은 나는 변할 수 없어. 내 생명이 열 개, 천 개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충절 심정만은 점령할 수 없어' 할 수 있어야 돼요. 이런 확고부동한 신념에 취해 설 수 있는 자리를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찾아나가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고려인의 산천' 합창)

본부식구들은 지방 책임자의 실력 배양에 힘써야

자, 이제 그만, 일단 자리 정리하고 들락날락하지 말아요. 여기 자주 못오니까 우리 애기 보여 주겠습니다. 볼래요? 「예」 (어머님이 아기 데리고 나와 보여 주심. 박수)

이제 앞으로 나가 전도할 지역을 쭈욱 배치할 테니까 잘 들어요. 지금까지 선생님 말씀 다 들었지요? 「예」 그러니까 뭐 멀고, 못 가고, 난 싫다 하는 사람들은 그만두라는 거예요. 멀거든, 돈이 없거든 걸어가요, 걸어가! (10여 분간 협회장과 인원 배치와 자금 지원문제를 논의하심)

앞으로 본부교인들은 지금 배치하는 데 있어서는 빼내야 되겠습니다. 본부교인들은 빼놓고 지방 식구들로써 우리가 계획하는 그 지역을 다 채워야 되겠단 말입니다. 왜 빼내야 되느냐? 지금 지방에 나가 전도해야 할 사람들이 원리 말씀이라든가 모든 면에서 본부 사람만 못합니다. 그러니 나가 전도하는 데, 혹은 원리 말씀을 하는 데 지장이 많습니다. 그래 그런 지장이 있기 때문에 균형을 취하기 위해서 본부에서….

그래도 여기 본부교회 식구는 실력이 좀 낫습니다. 이 사람들을 전체 앞에 배당하려고 해요. 그래 지역을 분할해 가지고 평균 인원을 배치하는 겁니다. 가령 한 사람이 세 면이나 네 면을 배당받아 책임지게 되면 그 면을 책임진 책임자들의 대표자가 돼 가지고 1주일씩 혹은 며칠씩 같이 먹고 전도하면서 쭈욱 원리 말씀을 해주는 겁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균형적인 전도를 실천해 나가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본부교인은 지금 가담시키지 않고 어떤 곳을 책임맡은 그 책임자들을 총괄하면서 거기서 원리 말씀에 대해 미비한 것을 보충해 줄 수 있고 또 지도하는 데에 있어서 부족한 면을 보충해 줄 수 있게끔 이동하면서 전도시키려고 그럽니다.

그러니 지금 전도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원리 말씀 할 줄 모른다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충성껏 움직여 가지고 원리 말씀 할 수 있는 사람이 오게 될 때에 거기에 따라서 말씀 들으려고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운동만 하면 된다 이겁니다. 또 그렇다고 상대가 원리 말씀을 해 달라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원리 말씀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안 돼요. 원리 말씀을 정성껏 하되, 거기에 부족한 것을 앞으로 본부 인원들을 배치해서 보충하려고 그런다 그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만큼 지방 지구장은 여기에 책임감을 느껴 가지고 각 지역에 대한 배당 인원은 지방 식구들로써 충당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될 수 있는 대로 본부 식구들을 많이 떼 가면 떼 갈수록 자기 지역에 유리한 거예요. 그래 여기 본부 식구들이 나가서 순회하는 동시에 지역장이 순회하지, 지역장이 순회하는 동시에 지구장이 순회하고, 지구장이 순회하는 동시에 본부에서도 순회하려고 한다구요. 이번에 협회장이라든가, 누가 순회할 거라구요. 그러면 지방 사람들도 달라질 겁니다. 보면 학생이 나와 전도하고 뭐 어리석은 여자들이 나와 전도하는 줄 알고 시시하게 보다가는 전부 다 인식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이러한 작전을 지금 하려고 그런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지구장은 자기네 지구에 될 수 있으면 그런 후원 안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그렇게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배당을 다 하고 남는 인원이 있으면 그 인원을 딴 지역에 돌려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번에는 전체가 다 출동입니다. 만일 출동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가만 안 둘 거예요.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어느 면이든지 어느 군이든지 책임진 그 지역에 가서 반드시 이름이라도 걸고 있어야 된다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것 발표해요. 여기에 다 오지 않았으니 누구누구 안 온 사람이 어디 간다는 것을, 어느 면 어느 군이라는 것을 적어 주라구요. 지역장이나 지구장을 통해 문서로 전달하겠지만서도 알아 가지고 가서 연락해 주라구요. 자기들이 어디에 나가려고 원해서 본부에 신청했던 것이 그대로 안 된 경우가 있는 거예요. 그대로 안 됐다고 해서 원망해서 안 되겠다구요. 거기에 대해 선생님이 설명했지요? 고맙게 생각하고 본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돼요. 응? 「예」 (배치 사항을 안창성씨가 발표함)

그만, 이거 뭐 다 불러 주려면 상당히 오래 걸리겠어요. 그만 하고, 지역장들하고 지구장들은 배정한 인원을 앞으로 내려보내 줄 테니까…. 그렇게 하자구요? 응? 「예」

그래 모자라는 지역이 얼마예요? 「모자라는 지역이 한 400개소입니다」 경상도 지구장! 「예」 경상지구는 전체 교회 수가 얼마인가? 「경상도 총교회요?」 응. 「경상지구는 현재 우리 교회 수가 55개입니다」 경상지구에 교회가 55개소인데, 다른 곳은? 「전라지구는 68, 충청지구는 59, 경원지구는 105개소입니다」 그러면 경상지구에 면이 몇 군데나 되나, 전부다? 「면 수 말입니까?」 응. 「여기 나와 있습니다. 10시 43군 26읍 447면입니다」 447개 면에 얼마나 모자라느냐 말이지…. 경상지구에서 200명밖에 신청 안 했나요? 응? 「 …… 」 200명밖에 안 나왔어요, 200명. 「교회수가 제일 적으니까 그럽니다」 55개? 「예」 전라지구하고 얼마나 차이가 있어요? 「전라지구는 68개소입니다」 68이고? 「경상도는 55입니다」 55이니까…. 그러니까 경상지구에서는 말이지, 지금 모자라는 것이 250이 모자란다면 그럴리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 면 수효가 충청지구의 배도 넘습니다」 그러니까 배치한 곳이 200밖에 안 된다 말이예요. 그래 그건 경상도 지구장이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이번에 지역장들이 전부 회의해 가지고 지역장들이 중심이 되어서 그 인원들을 경상도로 좀 집중시켜야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이번에 될 수 있는 대로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배치하는 곳에서 인원을 확보해야 되겠다 말입니다. 금번에 전부 다 전도 나갈 거 아니예요? 「경상도는 대개다 동원됐는데 그나마 200명이 넘은 겁니다」 그래 250명밖에 안 된다 말이야? 「교회가 50개니까 사오 이십, 한 교회에 네 명씩 나갑니다」 전라 지구장! 「예」 전라 지구장은 얼마 모자라? 한 50개 모자란다니 그거 문제 없지? 응? 「예」 충청도 지구장! 얼마 모자라? 「30개」 30개. 그다음 저 경원지구는 20개? 경원지역은 상당히 많이 동원했지? 그래 105, 111인가? 「백 열일곱입니다」 백 열 일곱이라, 많이 동원해 갔다구요. 그런데 모자란 곳을 염려 안 했다구요. 「경원지구는 요, 강원도에서는 경상북도로 넘겨 주고 여기에 모자라는 곳은 경기도에서 주니까 섬만 남았습니다」 섬만 남았더라도 그것은 경원지구장이 책임져야 되겠어요.

지금까지 백 열 일곱 군데나 나갔으니 경원지구엔 나갈 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말이예요. 그러니 이거 얼마 모자란다 하게 안 돼 있어요.

안창성이 경원지구장 했었지? 「예」 오래도록 했어. 이번에 총괄적으로 경원지구에서 빼 줄 인원 빼 주라구! 이번에 지역장한테 전부 다 인원 빼 줄 테니까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면서 쭉 총괄적으로 실태 파악해 가지고 빨리 이동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지역장들? 「예」

그 대신 지구장들은 여기 동원돼 가지고 이 수효를 빨리 확보해야 돼요. 그래야 본부로서 계획을 세워 가지고 전국 각 면을 중심삼고 배당할 것입니다. 모든 배당을 선생님이 있을 때 전부 다 해 놓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바쁘다 말입니다. 알겠지요? 「예」 이거 그만 하자구요.

책임자는 교회에 자랑할 수 있는 식구를 확보해야

자 그다음에, 이제 남은 것은 뭔가? 저 전라지구장, 나오라구. 잘 들으라우! 앞으로 우리 움직임은…. 왜 금번 이날을 기해서 이런 일을 하느냐? 앞으로 자기가 지도하고 있는 사람, 즉 말하자면 자기 지도권 내에 있는 사람들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앞으로 지구장은 지역장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이러한 실정 파악을 반드시 해 가지고 못해도 한 지역장이면 지역장 중심하고, 한 교회면 교회 중심삼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지역장들이 하나씩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역장들은 어느 교인들한테도, 어느 교회한테도 자랑할 수 있는, 오늘 남한 전체 우리교회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식구를 확보해야 됩니다. 또 나아가서는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식구를 확보해야 된다구요. 지역이면 지역장들은 자기가 그렇게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을 확보하라는 것입니다. 지구장이면 지구장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운동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여기 데려온 사람들을 모르고 데려왔다면 선생님이 기합을 주려고 그럽니다. 모르고 데려왔어요? 일대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 이 놀음하고 있다구요. 알겠어요, 지역장들? 지구장들? 응, 지역장들 알겠어요? 「예」 앞으로 못해도 자기 지역에서는 세계 어디에 내세워도 신앙자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할 수 있는 수효를 많이 가져라 이겁니다. 그걸 책임지고….. 괜히 자기 실정을 몰라 가지고 안 된다 이거예요.

선생님도 앞으로는 이것을 위해서는 여기 본부에 특별 명령을 해서 순회를 보낼 것입니다. `어느 지역장한테 가서 파악해 봐' 그렇게 지방을 순회하게 할 거예요. 그 실정을 파악해 가지고 보고하게 하면 교회 실정을 모를 수 없다 말입니다. 샅샅이 드러내 가지고 전부 다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래가지고 어느 지역에 우리 교회가 있으면 그 교회는 어느 집 어떤 문패며, 집이 어떻게 돼 있다는 것, 그다음에 살림살이까지 전부 다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뭘 하고 있는 지, 그걸 전부 다 알아야 되겠다 말입니다.

여러분은 거기 아무 마을에 이장이면 `그 이장 중심삼고 친척 할아버지가 몇 촌이고 어떻게 되고, 어떤 집에 살고 있는 데 그 집의 환경이 어떻고 어떠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고 질은 어떻다는 것을 전부 다 알아야 된다구요. 샅샅이 그걸 알아야 돼요. 몰라 가지고 어떻게 하겠어요? 교회 책임자는 그렇게 움직여야 됩니다. 그렇게 움직여 가지고 거기에 책임진 식구들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구요. 세상 부모들도 자기 자식 자랑하려고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걸 절대 하나님이 미워 안 한다 이겁니다. 자랑하라 이겁니다. 사탄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많이 가져라, 사탄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식구들을 많이 가져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운동을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가만 내버려 뒀지만 이제 그런 운동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운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의 이 운동에 있어서는 점점점 실적을 가지고 단결되고 점점점 질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오늘 이런 일을 하는 겁니다. 알겠지요? 「예」

앞으로 교회 책임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자기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자기가 교회를 책임지고 있다가 그 지역을 이동하게 되어 딴 사람이 책임자로 올 때에 `이 교회는 누구누구가 있습니다. 내 이름을 걸어서 인정하니 부디 이들의 자랑거리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더욱 강화시켜 하늘 앞에 더욱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 수 있는 것이요, 그렇게 부탁하고 부탁하며 인계하고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역자들에게 어떤 폐단이 있었느냐? 어느 지역에 책임자로 있다가 갈 때에는 깨끗하게 가야 됩니다. 일단 넘겨 준 후에는 심정의 모든 것까지 처리하고 딱 넘겨주고 가야 된다구요. 그런데 가만 보면 어떤 전도사 지금까지 있다 가게 되면 그 전도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전도사를 이렇게 바라보고 비교하는 거예요. 비교, 비교가 뭐예요! 본부로부터 명령이 있어 딱 파견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곳을 책임진 전도사를 위해 충성하던 그 마음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갖다 접붙여야 돼요. 싫다, 어떻다 했다가는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책임자가 잘 몰랐든 자격이 없든 자기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책임자는 그 교회에 있어서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못났다고 내 어머니 아버지 아니다 할 수 있어요? 일단 거기서 천적인 인연을 가지고 갈 때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 대신 가니만큼 그에 대해서 싫다 않다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전도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움직이는 데 있어서 교역자 이동문제가 있게 될때는 교회에 내적인 고충이 참 많았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그걸 일소해야 됩니다, 그걸. 알겠어요? 응? 「예」 교인들은 뜻 앞에 있어서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줘야 되겠습니다. 또 교회를 책임진 책임자들은 자기가 딴 곳에 이동하게 될 때는 반드시 후임자 앞에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고충이 있었다면 그것까지 깨끗이 털어 주어야 된다구요. 일단 그곳을 떠나면 연락하지 말라구요. 연락은 무슨 연락? 자기가 가서 일할 것이 바쁜데 언제 뭐 연락하겠어요? 그래 끌고 들어가지 말라 이겁니다. 그렇게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와 같은 운동을 많이 제시해 가지고 각 교회 책임자는 자기 교회에 자랑할 수 있는 식구를 원리 숫자에 해당하는 만큼 확보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알겠지요? 「예」 지구장, 지역장, 교회 책임자들은 그런 각오 밑에서 그런 사람들을 길러서 하늘 앞에 내새워야 합니다. 그러니 말씀을 전하고 실천을 하는 데 있어서나 심정문제에 있어서나 다 그런 면에서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을 갖고 있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중고등학교 과정 통신학교를 만들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야

그럼 하나씩 세워서 불러 주라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제 사람들을 많이 끌어다가 우리 교회가 있으면 교회에 칠판을 걸고 공부시켜려고 그럽니다. 공부시키려고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계획이 잘되면 우리가 통신학교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통신학교 강의록을 만들어 우리는 무보수로 하는 거예요. 후대에 그래 가지고 우리 국가 민족을 책임지고 갈 수 있고 우리들이 갈 길을 책임질 수 있는 청년 남녀들을 많이 길러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대개 강의록을 보면 중학교 과정은 세 권 아니면 네 권으로 돼 있지요? 열두 권이니 1년에 세 권씩 하면 되지요? 「네 권입니다」 1년에 네 권, 1년에 네 권이면 삼사 십이(3×4=12), 1년에 네 권이 됩니다. 안 그래요? 1년에 네 권이니까 3년 기간에 그 강의록을 떼는 겁니다. 삼사 십이(3×4=12), 열두 권을 3년 기간에 이수하는 건 문제 없습니다. 우리 이념만 들어가면 문제 없어요.

또, 고등학교도 전부 다 그렇게 통신 강의록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걸 만드는 데는 아주 우수한 것을 만들어서…. 앞으로 그런 계획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육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지금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 그 지방에 있어서 배우지 못한 청소년들을 모아다가 밤마다 열심히 가르치자 이겁니다. 그들 부모보다도, 그들을 가르치는 어떤 스승보다도 그야말로 진정하게 후대 우리 민족정신을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철저한 사상을 전해 줘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 교회 믿으라. 우리 교회 나가라'는 말 안 해요. 말없이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시키는 데에 있어서 자기가 신념을 가질 수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놓는 거예요. 앞으로 고등학교라든가 중학교가 있으면 그 학교를 통해서 전국의 우수한 사람들이 시험을 치게 해 가지고 선발할 것입니다. 봉사적인 기숙사를 만들어서 살게 하며 그 우수한 사람들을 몇 개월 이상 집중 교육을 해 가지고 대표적으로 자유롭게 학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학교 졸업장까지 줘서 내보낼 계획입니다.

그렇게 해서 졸업시켜 내보내면 그건 딴 사람 안 된다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계획을 하는 데, 지금 우리에게는 시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딴 곳의 통신학교 교과서를 요청한다든가 하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되겠습니다, 전도사들은. 그렇게 해놓으면 상당한 실적을 가져온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래 가지고 우리 손으로 우리 교회를 통하여 1년에 졸업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수만 명씩만 내게 되면 이 나라는 대번 안다구요. 아직 우리의 일꾼이 없잖아요? 천기를 대동해서 그렇게 하려고 계획하니 그런 면을 책임지고 지금부터 거기에 대한 기초 계몽을 병행해서 나가 주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이번에도 여러분들이 나가서 계몽을 해봤으니 계몽에 대한 성과를 여러분이 다 알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서 전도하게 되면 그 성과가 대단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구태여 믿으라, 말라 할 게 없다 이겁니다.

그러한 움직임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은 앞으로 전부 다 책임을 줄 겁니다. 뭐 고등학교 정도면 자기도 3년 동안 공부하는 거예요. 자기 동생과 같이…. 그래, 같이 공부하는 거예요. 3년 동안 공부해 놓으면 자기 공부라구요. 자, 그렇게 하려고 하니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 잘 움직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그 이념과 더불어 당신의 마음이 화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려야 할 본연의 동산에서, 당신이 사랑의 품에서 길러 놓으시던 아담 해와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렇게 한스러우신 역사를 보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타락의 후손 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아버지 뜻 앞에 부름을 받을 수 없는 부족한 종족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광의 그 나라, 자랑의 그 동산에서 선의 기쁨과 더불어 길이길이 당신의 사랑을 노래해야 할 저희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무한히 탄식하였습니다. 저희들을 통하여 모두 주관받아야 할 만물도 탄식하였습니다. 사람도 탄식하고 만물도 탄식하니,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당신이 친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연적인 섭리를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오늘 당신의 복귀노정에 있어서 수고한 것을 생각하시사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우리 선조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시고, 이 시대 우리들의 종족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 같이 살고 있는 인류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직까지 죄의 모든 근원을 청산하지 못한,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의 죄까지 용납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일이 끝나게 될 때까지 당신의 구원의 섭리의 손길은 그쳐지지 않을 것을 알았사옵고, 사랑의 손길을 펴셨사오나 거둘 수 없는 당신의 애절한 심정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한스러운 아버지의 심정 앞에 다시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데에는 이것들이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한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뜻을 알면서도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가 되었고, 불충한 자식들이 되었다 하여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아는 데 있어서 저희들이 완전히 알지 못하였사옵고, 하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완전히 따르지 못하였사옵니다. 나를 중심하여 따랐사옵고, 내 일체를 중심삼아 따랐사옵고, 자기 개인이 속한 전체의 영광만을 위해 따랐사오니, 이와 같은 환경을 벗어나 당신의 뜻과 당신의 영광만을 위해 살든지 죽든지 싸워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녁 전라지구에 널려 있는 외로운 식구들이 무릎을 같이 하여 부복하게 된 것을 감사드리며, 마음으로 그리던 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모든 사정 사정이 달라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흠모하고 사모하며 하늘의 소망의 한날을 꿈꾸면서 고대하던 식구들이 모였사옵니다.

이제 지금까지 이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그와 같은 자리에서 뜻을 따라 염려하는 마음을 품었기에 저희들은 핍박의 도상에서도 참았사옵고, 환난과 고통의 도상에서도 끝까지 참아 나왔사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지나 끝까지 생명을 각오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리에까지 따라 나오기에 수고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들 위에 분부하여 주시옵고, 각자의 이름을 명명하시어 당신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의 영광의 존전에 승리의 축배를 드려 아버지의 영광을 친히 노래하고, 아버지의 영광 앞에 친히 자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전라지구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백성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들의 생명의 인연이 어디로부터 찾아와 어디에서 종결되는가를 알지 못하고 오늘의 생명 한 자체가 멎는 곳, 혹은 죽을 그 길을 닦기 위해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가슴 아픈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러하올진대 당신께서는 얼마나 이 민족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시겠습니까? 이제 저희 마음에 아버지의 심정을 더욱 가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체휼을 넘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미래까지 아버지의 심정을 갖고 나오는 그 심정을 대신하여 이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어린애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손길을 붙들 때에는 저희가 진정한 마음으로 붙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품기게 될 때는 순결한 몸으로 품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에 취하게 될 때는 저희가 깨끗한 마음으로 취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러 지방에서 이 한 곳에 찾아왔사옵니다. 이들의 사정이 각각 다를 줄 알고 있사옵고, 소망의 표준하는 바가 다를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아버지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수습하시사 당신이 친히 빛으시어, 당신의 영광의 자리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본연의 아들딸로 재차 빛으시어 창조의 영광의 가치를 가하여 주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당신의 모든 뜻을 알았을진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심정을 알았을진대 그 심정을 내 심정으로, 당신의 사정을 알았을진대 그 사정을 내 사정으로, 당신의 싸움을 알았을진대 그 싸움을 내 싸움으로 책임지고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최후의 심판의 한날을 고하는 미명에 있어서, 저희들이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새 아침의 광명한 빛을 바라보면서 때가 어떤 때인 것을 알아 저희들이 각성시켜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이제 40일 도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준비 과정에 있사오니, 이들이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각오를 갖고 이번 기간에 있어서 아버지 앞에 친히 인정받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모든 시간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분부하시고자하는 마음의 모든 것을 분부하시옵시고, 당신과 친히 한 묶음으로 인연을 더 가하여 영광의 자리에 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저녁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도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아들딸들도 같은 심정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같은 인연의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승리적인 그 기준을 저희 생애노정 위에 바꿔 가질 수 있게끔 역사하시어 그들도 오늘의 기쁨을 다시 나눌 수 있는 당신의 은사의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아진 전체 위에 아버지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은 전라지구의 각 지방에서 모여 왔습니다. 전부 지방에서 왔지요? 「예」 전부 몇 군데나 되나요? 동에서 오고, 서에서도 오고, 남에서도 오고, 북에서도 오고, 사정도 각각 다른 환경에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통일의 신념을 갖추고 실력을 갖춰야

부모가 반대하는 데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제일 가까운 형제들, 인근 친척이나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경을 뿌리치고 찾아온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환경을 뿌리치고 오늘의 한 시간을 찾아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고맙게 생각하면서 일면 자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부모들한테 매를 맞아 가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진 사람이 있으면 더욱이나 그럴 거예요. 간절히 아버지 앞에 원하기를, 그런 사람 복받게 해달라고 선생님은 기도할 수 있는 거예요.

우선, 갑자기 모이라는 명령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이 이렇게 부랴부랴 모여 준 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본부에 계시는 선생님이 오신다니 한번 가 봐야 되겠다' 그래서 왔겠지요? '내가 처음보는 데 어떤가 가 보자' 하고 왔을 겁니다. 본부에 있는 선생님은 젊습니다. 젊고, 잘못할 때는 닦아 세울 줄도 알고, 말을 안 들을 때는 멱살을 잡아서 곤두박질칠 줄도 압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의 기성교회 목사나 기성교회의 지도자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 통일의 신도들은 목표를 향하여 작정한 뜻을 품고 계획을 세워 가지고 명령할 때는 움직여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결의 밑에서 오늘 이 시간에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래요? 「예」 그래야 선생님이 말하지, 그렇지 않으면 구경꾼들한테 괜히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통일의 이념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주와 수많은 종교가들 앞에, 혹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 교직자들 앞에 서게 될 때 '나는 통일의 신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 무기는 우리만이 가진 것입니다. 이 무기의 비밀은 그들이 아무리 개인으로 노력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그 무기를 알려면 우리한테 복종해야 됩니다.

아무리 잘났다는 학박사나 어쩌고어쩌고하는 대학의 학장이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대학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우리가 갖고 있으니, 그들이 이런 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설계자의 모든 교훈을 따라 지성을 들여 가지고, 자기의 노력을 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절대 복종하여 설계도의 프로그램에 따라 자기들의 모든 행동도 일치시켜야 되고, 걸음걸이나 모든 생각도 일치시켜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통일의 신념은 천지가 움직여도 꼼짝 안 한다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통일을 하려면…. 혼자만 있는 곳에서는 통일이라는 말이 성립 안 됩니다. 통일이라 하면 상태가 다른 것을…. 사정이 다르고, 입장이 달라요. 거기에는 자기들이 주장하는 입장이 다르고, 자기들이 지금까지 전통으로 부르짖어 나오던 고질된 환경이 고착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청산해 버리고, 그 사정을 다 제거시키고, 어제까지 방향이 다르던 것을 전부 다 거꿀잡이로 박아 가지고 하나 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정이 다른 두 사람보다 힘이 세야 됩니다. 열 사람을 하나 만들려면 그 열 사람보다 힘이 세야 됩니다. 열 교파를 하나 만들기 위한 입장에 서려면 열 교파보다도 힘이 세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통일! 말은 쉽지요.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왔다면 잘못 들어온 거예요. 수많은 영계를 통일하고 수많은 사상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 오늘날 전 세계적인 사조를 보게 될 때 민주와 공산이 대결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이것도 하나는 왼발로 하나는 바른발로 밟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굳센 사상과 아무리 굳센 신념을 가진 신앙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전부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여유만만한 신념을 갖춰서 사방으로 뻗쳐 가지고 후려치면 휘감겨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통일한다는 거예요. 비실비실해 가지고 통일하자는 이따위 사람들이 아니에요. 바람에 밀려 가는 허수아비 같은 그따위 사람들은 통일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신도라 할진대는 그 정신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고, 과거·현재·미래를 대신하는 데 있어서 지금의 어떤 사조와 부딪쳐도 그걸 깨뜨리고도 남음이 있어야 됩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수소폭탄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포를 쏘고 소총을 쏘고 하더라도 원자탄이 터지는 거에 비하면 이까짓 것들은 터지나마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위력을 가진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 전라지구에 그런 사람이 몇 사람 있습니까? 어디 '나 그런 사람되고 싶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나 그런 사람 되고 싶소' 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똑똑히 손들어 봐요. 이건 뭐 5분의 1도 안 되는구만. 말도 안 됩니다. 뭐하러 다 왔어요? 이거 허수아비들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느냐 말입니다. 허수아비들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느냐구요. 구경꾼들이라구요. 그러면 다시 손들어 봐요. '나 그런 사람 되고 싶습니다' 하는 사람 다시 손들어 보라구요. 내리세요.

조그만 동네에 있어서도 왕초 노릇을 하려면 무엇이 세야 되지요? 주먹이 세야 돼요. 주먹이 세든가, 주먹이 약하면 머리가 좋든가, 머리가 안 좋으면 발이 세든가, 무슨 재간이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통일이라는 것을 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는 장비를 갖춘 무력을 가지고 나폴레옹 같은 양반들이 모든 구라파 천지를 점령했었습니다. 그렇게 늠름하게 갖춘 군대를 가지고 밀어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로써 통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수십 년은 걸려야 됩니다. 지극히 어려운 거라구요. 지극히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을 알고 보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를 통일하여 살고 싶으면 하나님하고 뿔개질해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늘과 땅을 통일하고' 그런 노래를 부르지요? 하늘땅을 통일하고 그 다음은 뭘 통일합니까? 우리는 통일을 부르짖고 나섰습니다. 통일을 하는 데는 대우주를 통일하기 전에 무엇부터 통일해야 되느냐? 보통 어떤 사람이 뜻을 품고 공부해 나갈진대는 '아, 내가 공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 가지고 한번 대통령이 될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을 통일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 원칙이 그래요. 절대 안 돼요. 아무리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대통령이 영원불변한 대통령이 아닙니다.

역사는 변천하면서 혁명 과정을 거쳐 더 큰 세계로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선의 시대로부터 가정적인 선의 시대, 사회적인 선의 시대, 국가적인 선의 시대, 세계적인 선의 시대, 그다음에는 천주적 하늘땅의 선의 시대, 그리고 하나님적 선의 시대로 진행해 나간다 이겁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흔히 부르짖기를 '아, 나는 양심적인 선한 사람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선한 사람이냐 이겁니다. 자기 개인 입장에서 입증할 수 있는 선한 사람이라면 시시하니까 그만둬라 이거예요. 하늘은 개인에서 인정할 수 있는 선한 사람을 요구치 않는다는 거예요, 왜? 이 시대가 세계주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선을 입증하여야 할 인간의 가치를 찾고 있는데, 개인을 중심 삼고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뻔뻔스럽게 하나님 앞에 뭐…. 이런 덜 떨어진 녀석들이 있단 말이예요. 그래서 옛날에는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엔 안 하지만 말이예요.

그러니 대우주의 선을 지향하여 하나의 통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야망을 품은 사나이들이 그런 꿈을 꾸거든….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오늘날 이 입장에 있어서 후르시초프니 뭐 케네디니 하면서 뿔개질하고 있잖아요? 자기들 장중(掌中)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구요. 이 땅에 일시에 한 시대를 대표해서, 지나가는 이 세계를 대신하여 자기 장중에 넣어 가지고 한번 행사를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의 세계에서랴! 마음의 세계에서는 그것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놈의 마음 보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들이밀면 밀수록 늘어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이 마음 보따리가 하나님까지도 그 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지한 마음 보따리예요.

이런 마음 보따리를 중심삼은, 마음 보따리가 만족하는 그 기준에 있는, 마음 보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통일의 세계라는 것은 어느 정도냐? 대우주에 비하면 이 땅덩어리는 먼지 하나만도 못하다 이겁니다. 형편없이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대우주의 뒤통수에 가서 툭툭 두드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의 머리 밑창까지, 세포 밑창까지, 뭐 숨겨진 주머니 보따리까지 전부 다 들춰 가지고 다 알고 싶어한단 말입니다. 안 그래요?

외적으로 나타난 세력을 가지고 지상 통일의 욕망을 갖고 싸워 나가는 사람들이 있지만서도, 만일에 대우주의 목적을 세워 크나큰 소망을 찾아 나가는 마음의 왕자가 있다 할진대, 마음의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왕자가 있다 할진대 그 왕자는 누구하고 뿔개질해야 되느냐? 사람하고 뿔개질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람하고 티격태격 암만 뿔개질했댔자 사람 자식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몸뚱이 세상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에 있어서 지금 문화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지식적인 배경은 자기의 외적인 생애노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몸뚱이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적인 생애노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내적인 생애, 영원한 마음의 세계를 꿈꾸는 생애노정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마음의 세계에서 대우주를 통일하여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데리고 살고, 가지고 놀고 싶은 이런 왕자가 있다면 그 왕자는 사람하고 뿔개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후퇴합니다. 그럼 누구하고 뿔개질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하고 뿔개질해야 됩니다. 말을 알아듣겠어요? '이놈의 하나님, 있니, 없니?' 하고 말입니다. 이 길을 걸어 나선 것이 무슨 길이냐 하면 종교의 길입니다. 이 길을 걸어 나선 길이 종교의 길이다 이겁니다.

수수작용하는 하나님의 마음세계는 끝이 없다

종교라는 것을 오늘날 지식적인 분야에서는 해명을 못 합니다. 마음의 세계는 신비적인 내용과 미묘한 세계의 법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원리원칙적인 법도에 의해 움직이는 고차적인 것입니다. 수리학의 몇 차원을 넘을 수 있는 고차적인 수리법을 통하여서 움직이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인간적인 수리적 조건에, 혹은 공리나 어떤 공식에 적용되지 않는 세계입니다. 척도가 다르다 이거예요.

따라서 그런 마음의 세계의 활동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영원히 승리적인 대통일의 목적을 달성하여 거기의 왕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뿔개질하는 데 있어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인간세상에서 성현이라는 이름을 갖고 나온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나온 사람은 천법을 기반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 뭐 시시한 것, 하나님도 모르는 그따위 주장은 다 제껴 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뭐 아침에 다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어떠한 성현이 있다 할진대 성현으로서 하나님을 절대 숭배하고, 숭배하는 그분 밑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비상한 놀음, 기묘와 묘사 혹은 이적과 기사…. 우리의 상식적인 입장에서 그 무대를 달리하는 내용을 가진, 하늘을 위주한 생활적인 기대를 가진 도인, 성자 혹은 성현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제일 첫번째 출발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서든지 찾아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인간이 꾸민 진리적인 내용만으로 쓰여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경서를 보게 되면 반드시 신비적인 내용이 갖추어져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미묘한, 우리 마음세계에서 도달할 수 없는 무궁한 세계의 일면이 거기에 반영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경서라야 비로소 이 대우주를 통일할 수 있는 인연의 한 부분에 쓰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거 그럴 거 아니에요?

만일에 창조주가 있다고 하면, 가상적으로 창조주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창조주는 어떠한 분일 것이냐? 사랑의 보따리에 수천만의 마음 보따리를 한꺼번에 몰아넣고, 이걸 가지고 자기 몸뚱이의 세포와 같이 지녀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하나님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세계에 있어서 아무리 크게 생각하고, 아무리 여러분의 마음세계의 각도를 사방으로 뻗치게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잇고잇고 하여 최고로 이어 가지고 한 곳으로 움직이는 작용을 시켜 본다하더라도 그 마음의 끝을 알 수 없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진짜 그런 분이 있단다면 얼마나 좋겠나 말이예요. 진짜 그런 분만 있다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게 마음의 세계예요.

여러분이 원자세계를 들여다보게 될 때, 그 원자는 전자와 양자로 되어 있어서 전자 양자가 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해명된 그 전자와 양자의 기준이 아닙니다. 더 들어가면 무궁무진한 세계의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는 겁니다. 반응적인 현상이 연결되고 연결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플러스 마이너스가 작용하려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작용하기 전에 그 배후에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이 연결돼 가지고…. 전기면 전기에 있어서 자장의 한 분야를 딱 잘라 보면, 거기에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 밑창은 다 뚫어졌는데 여기의 한 면만 잘라 보아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자체를 보더라도, 우주의 모든 내용은 신비를 기반으로 하여 작용적인 현상의 세계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현대 과학에서 입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미묘한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는 끝이 없다는 거예요. 직경이 몇천 리, 몇만 리예요. 그러니까 이 대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했지요. 이 조화의 보따리를 풀어 나가는데, 그 작용권 내에서 우리들은 놀아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이념을 갖고 나오는 어떤 왕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보다도 지으시기 전의 그 마음의 보따리에 들어가 가지고 해결짓기 위한 싸움을 해야만, 거기서 비로소 완전한 이 모든 천지의 이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땅의 인간 가운데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 천주를 통일할 주인공으로 맡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통일용사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그러한 주인공에게 맡기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어떠한 아들딸을 바랄 것이냐 이거예요. 어떠한 아들딸을 선택할 것이냐? 오늘날 이 조그만 세계를 뭐 통일하겠다고 무슨 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지만 그거 틀렸다구요. 이걸 발판으로 하여 무한대로 나갈 수 있는 마음에 대천지의 이념을 품어 가지고 그것을 주먹에도 넣을 수 있고, 그것을 하나의 내 생활적인 장난감으로 취급할 수 있는 늠름한 모습으로서, 그런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그 마음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망을 품고 달려 나오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내가 하나님이라도 '오냐, 와라!'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욕망이 있을것 같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조그만 바늘끝 같이….

본래 종교인이 쩨쩨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뭐 주일날 전차 한 번만 타고 와도 죄다 하고, 주일날 콩 꼬투리 하나만 까도 죄다 하니 그 녀석들이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것밖에 모르니 죄 아니예요? 아는 법이라는 건 죄 법밖에는 모른다 그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전기를 모르고 스위치를 잘못 만지는 사람들은 그거 몇만 볼트가 와 있는지, 몇백 볼트가 와 있는지 모르니 전부가 죽는다 이겁니다. 모르니까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누구를 맞이하려고 나오고 있느냐? 이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내가 달려 나오는데 누구를 맞기 위해 나오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 이마에 땀이 나 가지고…. 나는 시시하게 여러분을 맞기 위해 달려 나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밟고 밟아 세계 27, 28억의 꼭대기를 다 밟아 치우고 무엇을? 하나님을 맞기 위해서 나온 거예요. 목적이 다르다구요. 그런 사람이예요.

그러면 과거로부터 어떠한 역사적인 사조가 흘러 나와 그 사상적인 모든 형태가 오늘날의 사회를 풍미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해놓고, 거기에서 싹싹 다 해 놓고 '하나님, 악수합시다' 이럴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그런 신념 밑에서, 오늘의 복잡한 이 모든 사회적 환경 가운데서 생사의 기로에 부딪쳐 가지고 말할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이 마당에 여러분들이 발을 밟고 돌아가고 있다 이겁니다. 이 마당에서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 뭐 자꾸 들이 깐단 말입니다. 어디로? 한없이 깊은 데로 몇 천 리 몰아내어 나갈 거란 말입니다. 죽음의 길 가더라도. 오늘날 현대문명에 있어서 지금까지 신을 부정하여 왔지만, 불원하여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에 승리한다면 민주주의 세계의 3분의 2를 모가지 자를 것입니다. 종교이념을 가진 10억 가까운 인간의 모가지를 자를 것입니다. 앞으로는 정치가들이 정책을 세운다 할 때 공산주의 이념보다도 신이 있다고 하는 이런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안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이치가 뻔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의 정부 세계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런 환경에 처해서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먹고 자빠져 가지고 박혀 있어 봐라 이겁니다. 이건 어느 시대에 밥이 되고 어느 시대에 그렇게 거름이 되지…. 시대를 위하여, 새로운 세계를 위하여 창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부패해지고 혼돈해지고 환경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와 같은 환경에 몰아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물리치고 새로운 무엇을 붙드는 데서부터…. 그러면 좌우가 세계를 밀어대지만, 내 한 자체를 밀어대는 겁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계적인…. 미·소의 투쟁이 단지 미·소만의 투쟁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투쟁이요, 또한 대한민국만의 투쟁이 아니라 이것은 내 몸 마음의 투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내 몸을 무시할 수 있고 내 마음을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오늘날 이 민족을 무시하고 이 국가적인 모든 이념을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오늘날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를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그렇기 때문에 종교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종교로는 안 될 것이요, 정치로 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정치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은 지금까지의 권력 가지고도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성 세력 가지고는 해결 방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무엇을 요구해요. 인간의 두뇌와 인간의 어떤 기반 밑에서 나온 조직적인 사회형태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니 차원이 다른 세계의 종교를…. 따라서 가상적인 신의 실존을 세워 가지고 통일의 명사라도 꾸며내야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체휼하고 하나님과 생활적인 가치를 인연맺어야

그 절대자는 검둥이도 '아이고! 좋아' 하고, 노랑둥이도 '아이고! 좋아' 하고, 흰둥이도 '아이고! 좋아' 하고, 여러분들도 '아이고! 좋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천만인이 과거도 좋았고, 오늘도 좋고, 미래도 좋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절대자를 세워 놓고 '사실 그렇습니다'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거기서부터 요리 방침이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럴 거 아니에요? 남자나 여자나 다 그렇다구요. 안그렇겠어요? 누구나 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과거도 좋았고,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을 것이다 해야 된다구요. 선한 사람은 물론이요, 악한사람들도 '그거 좋다' 해야 됩니다.

악한 녀석이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면 좋은데 자기 의견에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어 주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그러는 겁니다. 좋긴 다 좋다는 겁니다. 악한 괴수까지도 좋아하는데, 그는 '나의 왼손에 주소' 하고 하나님은 '바른 손에 주겠다' 하는 겁니다. 주는 방법이 다르다는 거예요. 악한 사탄이는 왼손으로 받겠다 하는 거요, 하나님은 사탄에게까지도 주는 데 주는 데는 '바른 손으로 받아라' 하게 되어 있다 그겁니다. 그러니 악한 것도 좋아하는 분이요, 선한 것도 좋아하는 그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실이 그래요. 그런 하나님이라구요.

따라서 이제 이 땅 위에 귀한 것이 있다 할진대, 돈 많은 것이 귀한 것이 아니요, 자식 많은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또, 자기 가정에서 호화찬란하게 살아 가지고 당대에 있어서 자기의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 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에 살았느냐 이거예요. 밤에 생각해도 좋고, 그저 죽는 자리에서 생각해도 좋고, 굶어 죽어도 좋고, 좋은 데 살면 더 좋고, 이럴 수 있는 보화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 것이냐? 하나님은 그런 분이어야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믿고 알았던 하나님은 일방적인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에 있어서 모든 내정적인 것을 분석해 놓게 된다면, 나쁠 때도 좋고, 좋을 때는 더 좋고, 밤이나 낮이나 언제라도 좋다는 거예요. 과거에 죄가 있는 우리 할아버지도 그분 앞에서는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의 긍휼을 바라는 그런 분, 벌을 받으면서도 당신의 은사를 바라는 그런 분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만일에 이런 하나님을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뚜렷이 해명지어줄 수 있는 주의가 나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을 친히 체휼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적인 가치를 인연맺을 수 있다 하는 진리가 나오면, 그때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망성이 있다 이겁니다. 이런 가망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종교였지만, 오늘날 이 시대적인 종교는 전부 다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적인 종교를 무시해 놓고 새로운 관, 새로운 미명의 문을 헤쳐 가지고 새로운 천지의 모든 내용을 살펴, 하나님의 실존성으로부터 그 무한한 심정의 세계에 가서 부딪쳐 가지고, 더불어 동반하고 그와 더불어 접하여 그 이념의 감정에 접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할진대, 이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자요, 이 천지간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자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 하나님을 찾아가자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도 뭐 누구만큼 못나서 이 놀음 하고 욕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나 말입니다. 내가 동네에 가면 동네에서 나를 때려죽이려고 하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한다 이거예요. 욕먹은 것을 쌓아 놓으면-여기 무슨 산이예요, 저거? -좁쌀을 쌓아 놓아도 저 산만큼 될까 말까 하다구요. 왜 그러는 거예요? 내게는 욕이 문제가 아니예요. 그걸 넘어서 그런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인간

그러면 그런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오늘날 여러분들이 당장에 '아, 하나님, 내가 이제….' 하면서 입을 벌리고, 혹은 팔을 벌리고 '나에게 먹여 주고, 나에게 안겨 주소'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수학을 푸는 거와 같이 하나에서부터…. 그건 공식도 아니예요. 하나, 둘, 셋…. 이건 하등의 관계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 전기면 전기라는 것을 수학으로 풀어서 답이 딱 나오면, 답을 중심삼아 가지고 와트를 계산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전기와 수학은 전연…. 전기가 수학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수학을 통해서 전기를….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라는 분과 우리들이 타진하는 진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방편을 통해서 풀게 될 때에 그 답이 내 이목(耳目)의 감정에 들어맞고, 생활감정에 들어맞고, 이념적인 속성을 통하여 영원한 자극적인 힘의 충격을 가해 줄 수 있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으로 나타나야 돼요.

그런 하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 할진대 그런 구상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이렇게 말하려 하면 그 이상의 구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을 대하여 찾아오는 데는 어떻게 찾아올 것이냐? 좋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겁니다.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나도 좋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니, 하나님도 당신이 좋아하실 수 있는 복을 주기 위해서 좋아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배워야 되느냐? 말부터 배워야 됩니다. 그 나라의 백성을 지배하려면 그 나라의 말을 알아야 됩니다. 안 그래요? 빨리 지배하려면 그 나라의 말을 배워야 된다 이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말도 할 줄 알고, 하나님이 먹기 좋아하시는 것도 먹을 줄 알고, 하나님이 살아가시는 생활도 할 줄 알고, 하나님이 놀기 좋아하시는 놀음 방법도 알고, 하나님이 춤을 추시면 춤추는 방법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책임지실 겁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우리 인간도 춤출 땐 춤추고, 놀 땐 놀고, 먹을 땐 먹고, 쉴 땐 쉬고, 좋다 하는 모든 생활감정에 몸 마음을 기울여 움직이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그 이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게 뭐냐? 하나님이 잡수시기 좋아하시는 게 뭐냐?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좋아하시는 것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천지간에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찾아보자 이거예요. 여러분 중에 '틀림없이 하나님은 나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자신 있는 사람들 어디 손들어 봐요. 좀 보자구요. 자신 있어요? 틀림없이 찾아올 겁니다. 찾아오는 데는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온다 이거예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인간이 본래 선하였다면 하나님이 찾아오고 찾아가고 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본래에 그 마음과 뼈와 살이 함께 화하여서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찾아오시는 입장에 선 분이 하나님이 되었고, 찾아가는 입장에 선 우리 인간이 불쌍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동거동락, 하나님이 기뻐할 때 인간도 기뻐할 수 있는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어 놓고 기쁨으로 춤을 덩실 추면서 '모든 천지는 하늘의 영광을 노래할지어다. 기쁨에 동참하여 행복을 노래할지어다' 할 수 있게끔….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의 음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에 화하여, 그 마음에 반응적인 상대가 되어 가지고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게 못 되었다 이거예요. 인간이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잃어버렸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한 날을 잃어버렸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 인간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중심은 하나님

우리 인간시조가 그런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인생은 기쁨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쁨의 문을 열어가지고 그 미묘한 세계의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기쁨의 감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얼마나 잘 지어 놨어요?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천지만물을 얼마나 기묘하게…. 사시 춘하추동이 있고, 일월성신이 있고, 지구는 또 멋지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거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말입니다. 누구예요?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연의 애비는 누구냐? 뭐 힘이라구요? 힘의 애비는 누구예요? 그 힘 자체가 자기 이상 창조의 능력을 내재하고 있는, 그런 원동력을 갖고 있는 힘이라면 모르거니와, 자기 이상의 원동력을 내포해 가지고 자기 이상의 실존성을 빛어 낼 수 있는 존재물이 있느냐 이거예요. 전기도 그래요. 발전기에서 나오는 힘 가지고 또 다른 발전기를 돌리게 될 때 거기서 나오는 전기의 힘이 처음 발전기에서 나온 힘보다 더 클 수 있느냐? 불가능입니다. 어떠한 작용이나 현상, 실존의 모든 문제를 해명해 보게 될때, 그 작용하는 자체가 그 작용 이상의 힘을 하나도 플러스할 수 없습니다. 마이너스예요. 따라서 존재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그 기원이 힘이라면 힘의 애비가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런 문제를 다 있는 것으로 모셔 놓고….

한걸음 더 타진해서 그 가치문제를 추궁하여 들어가 볼 때, 그것이 절대적인 인연의 궁극적인 동기가 되느냐? 결국 원인이 되느냐 하고 타진하게 될 때는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의 원천에, 하나의 존재에 다시 플러스될 수 있는 그 점이 될 수 있는 그런 작용의 현상이……거기에 플러스하여 붙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는 못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밥을 먹고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들어올 때 더 힘이 납니까? 그런 이치가 있어요? 없는 거예요. 그런 논리적인 뭐가 없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이거예요.

틀림없이 이 모든 존재의 중심은 있어야 돼요. 오늘날 우주를 봐도 하늘이 핵심이 되어 있고, 원자세계를 두고 보더라도 핵심이 있고, 우리의 마음세계를 봐도 나를 기반으로 하여 천지를 움직이고 하는 모든 핵심적인 기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 대우주의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그 중심은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대목적을 중심삼아 사방을 갖춘 동시에 입체적인 내용을 가져 가지고, 그 모든 움직임에 있어서 원형으로 움직여 가지고 어디에도 부딪힘이 없는 힘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상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을 자랑하고 기뻐하시는 마음의 소유자

그러니만큼 하나님이 있단다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냐? 최고의….그러면 그런 하나님이 이 천지만물을…. 여러분, 우리는 옷을 입지요? 몸에다 뭘 하나 갖다 붙인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갖다 붙인 거와 마찬가지예요. 벌거숭이 몸에 옷을 갖다 붙였다 이겁니다. 사람이 자기 몸에 무얼 갖다 붙이는데 왜 갖다 붙이는 거예요? 또, 좋으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자랑하고 싶어한다구요. 그렇지요? 아낙네들을 보면 입에다 서양식으로 아주 뭐 뭣도 바르고 뭣도 바르고 차려 입고 나간다구요. '내가 좋으니, 좋은 거 여러분들에게 조금 나눠주마' 하는 게 아니예요? 그거 다 그렇다구요.

여러분 마음은 안 그래요? 암만 얌전한 색시들이 뭐 자기는 안 그런다고 하지만 거짓말이예요. 거짓말이라구요. 좋은 옷만 입으면 그저 자는 할머니한테도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이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게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본래의 하나님이 그렇다 이거예요. 무엇이든 덧 붙였으면 그건 더 나쁘기 위해서 붙인 게 아닙니다. 더욱 좋으라고 하는 거예요. 좋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천하에 자랑하고 싶다 이거예요.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잘하든 못하든 자랑하려고 하지요?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제일 자랑하기 좋아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자랑해요? 좋은 것.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천지에서 제일 좋은 사람을 따라가는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저 미국에 어떤 좋은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좋은 사람을 온 세계가 들어 찬양하는 그 세계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다 하면 만민도 '하-좋다' 할 수 있는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어 놓고 인간을 지어놓았는데, 사랑의 정력을 다 들여 지었는데 사람을 들어 자랑 한 번 못해봤다 이겁니다. 오늘날 역사노정에서 사랑을 받아 가지고 천지 앞에 자랑한 사나이가 나타났느냐 이거예요, 아낙네가 나타났느냐? 없습니다. 자랑해 보지 못하였고 그를 보고 기뻐해 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지금까지의 말할 수 없고 지금까지 이것을 해원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예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런 인연, 기쁠 수 있는 환경에서 떨어져 가지고 슬픔으로 출발한 인간들을, 이 슬픔의 줄을 전부 다 끊어 버리고 기쁨의 길로 찾아 올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 앞에 있어서 메시아 사상이니 구주니 하는 것은 무엇이냐? 슬픔의 자리를 피하여 기쁠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 주는 것이요, 기쁠 수 있는 자체가 된 후에는 하늘에서 자랑하고 땅에서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인된 자랑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어느 길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슬플 수 있는 자리를 박차 버리고 기쁠 수 있는 한날을 향하여…. 내 마음이 좋아하고, 만민이 화하여 좋아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의 가치가 온 천상천하에 뻗칠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마음은 무한히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데는, 지극히 선한 하나님이 기쁘신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찾아오는 데는 어떠한 사람을 찾아올 것이냐 이거예요.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를 찾아오신다 이겁니다. 문제는 그거라구요.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 또, 하나님께서 붙들어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사람을 찾아온다 이겁니다.

인간을 기쁨의 조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메시아 사상

그러면 자랑을 하고 기뻐하는 데는 어떤 존재로 기뻐할 것이냐? 자기집에서 똥을 치우는 종으로서 기뻐할 것이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귀중한 일을 하는 심부름꾼으로서 기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모양이 있을 겁니다. 이웃 동네 아들로서 기뻐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몇 촌 동생, 혹은 몇 촌 조카, 몇 촌 손자뻘 되는 입장에서 기뻐할 것이냐? 나는 그런 거 다 원치 않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여러 면이 있단다면, 그 모든 여러 면이 나에게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찾고 있는 것은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을 거예요. 그럼 무엇을 찾겠어요? 단 하나의 아들딸로서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려면 둘도 없는 아들로서, 둘도 없는 딸로서 기뻐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겁니다. 그걸 찾기 위해서 전세계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심부름도 시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일도 시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뭐 아주 형형색색의 세계에 별의별 판국을 다 이루어 놓고 찾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온다 하면 '옛다, 이런 나라가 되어야 되고, 이런 나라의 왕도 되어 봐라. 옛다, 이런 나라에서 영광을 누려라. 다 되어 봐라' 이런다구요. 종 중의 종으로부터 별의별 환경에 다 놓여 가지고 기쁨의 조건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최후에 반드시 찾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딸일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로서 기뻐하는…. 그거 그럴 거 아니예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그러한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런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갖고 나오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기쁨의 마음과 감정을 아직까지 한번도 표시해 보지 못하신 하나님입니다. 안 그렇겠나 말이예요.

그러면 메시아 사상이 무엇이냐? 앞으로 만우주의 인간을 구해 주기 위한 구주로 오시는 그분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남자를 대표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기쁨의 한날을 보지 못하였던 그 하나님이 역사적인 한을 품고, 역사적인 소망의 실체가 될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놓고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그 아들 앞에 주기 위한 상속의 모든 권한을 축복해 주자는 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그 아들을 축복해 줌으로 말미암아 천지에 그를 환영하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그 아들이 기뻐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등장시켜 주마하는 거예요. 구경을 다 시켜 준다 이거예요. 혹은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등장시켜 주마, 혹은 사촌 팔촌 전부 다 인연되어 가지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어 가지고 몇천 몇백의 인연이 될 수 있는 국가적인 하나의 심부름꾼으로 세워 주마 하는 거예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 기독교에서 말하는 다시 오신다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하나님이 6천 년 이래 제일 좋다 하고 큰 웃음을 웃으면서, 천상세계에 모든 존재를 데려다 놓고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을 찾아오시는 데 그 한날을 이루는 것은 누구로서…. 기뻐할 수 있는 아들을 찾게 될 때 기쁘게 그날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 기쁨의 대상자가 아니예요.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골수를 통해 나타난 아들딸을 찾을 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 봤어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해봤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떠한 복이냐? '나는 종의 복은 싫습니다', '종은 왜?', '나 아니고도 종 할 사람 많지 않소?' 그런 자신이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아버지, 나 아니고도 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 빼놓고도 종을 시킬 나라가 많습니다. 우리 집을 빼놓고도 종을 시킬 수 있는 집이 많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특하게 여기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럴 게 아니에요?

그러면 통일의 신도들은, 식구들은 어떠한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기를 원합니까? 사촌 아버지? 팔촌 아버지? 아버지도 많다구요. 의붓아버지예요? 어떤 아버지예요? 단 한 번밖에 부를 수 없는 아버지예요. 이것을 요구한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아니예요? 여러분이 그래요? 만일에 그런 일이 있다면 죽더라도 힘을 다해서, 내 후손이 천대 만대 죽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그런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오면, 그런 아들딸을 세워 놓고 무엇을 만들 것이냐? 기쁨의 왕자요, 기쁨의 조상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비로소 인간 가운데 기쁨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기쁨의 조상이 되고 선의 조상이 되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선 그분이….

우리의 인류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한 조상이, 하나님을 눈물 흘리게 한 악한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고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못 되었습니다. 본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로서 등장할 것이었는데, 슬픔의 조상이 되고 타락한 조상이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타락한 후손입니다.

인간은 부모로서의 구주를 원해

본래 소원과 더불어 즐거워할 수 있고, 우리를 이상적으로 창조해 줄 수 있는 참조상은 어디 갔는고? 참조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고 자랑하고 싶으셨던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분이 인류의 조상입니다. 나에게 구주가 오는데, 어떤 구주를 원하느냐? 내가 물에 빠져 죽을망정 원수의 종새끼한테…. 여러분 그런 마음이 있을 거예요. 양반집 자식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난 원수의 종새끼한테는 죽어도 도움을 안받아' 그러나요? 구해 주면 구주지 별수 있어요?

그렇지만 인간은 어떠한 구주를 요구하느냐? 어떤 구주를 요구하느냐 하면, 원수의 종새끼로서 구해 주는 그런 구주는 필요 없습니다. 또, 자기 아들로서 구해 주는 구주는 필요 없습니다. 자기 딸이나 자기 삼촌은 다 필요 없어요. 만일에 인간이 구주로서 구주를 요구한다면 어떤 구주냐? 나를 중심삼고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멜래야 멜 수 없는 참부모로서의 구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어떠한 구주를 원할 것이냐? 신랑도 필요 없어요, 신랑만으로 안 된다 말입니다. 신랑보다 더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아버지인 거예요. 영원한 부모로서의 구주를 요구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오늘날 예수가 구주라면, 어느 정도의 구주인지 그것을 해명해야 됩니다. 무슨 구주냐? 신랑으로서의 구주냐, 내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구주냐? 예수가 아버지이고 성신이 어머니라면 그거 됐다는 것입니다. 근본문제에 들어가면 그렇다는 거예요. 기독교를 중심삼아 하늘이 섭리하고, 이 종교를 중심삼고 오늘날 구원섭리하는 데 있어서 구주의 이념과 더불어 성신을 들고 나오는 데, 이 성신의 역사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적인 원칙에 있어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거기에는 기필코 아버지로서의 구주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아버지로서의 구주가 필요한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구주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그러면 예수와 성신은 무엇이냐? 예수는 인류의 참조상 되는 아버지요, 성신은 인류의 참조상 되시는 어머니입니다. 이렇게 나와야 그게 멋지다 이거예요. 그게 멋질 게 아니예요? 이게 근본문제라구요. 그래야 인간의 최고 소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준대가 되지요. 무슨 신랑으로서의 구주? 그거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타나는 데는…. 무엇 때문에 기쁠 것이냐? 하나님의 상속권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로서….

우리가 이 땅 위의 구주를 요구하는 데는 완전한 구주를 요구하는데 어느 정도의 구주를 요구할 것이냐? 내 모든 전체 뼛골까지 상속시켜줄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로서의 구주를 요구하더라 이거예요. 그게 제일 좋을 거 아니에요? 기독교 역사는 그런 내용입니다. 알고 보니 기독교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으니, 구주의 명사를 걸어 가지고 신랑 신부 부자의 인연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너는 내 신부요, 나는 네 아버지요'라고 하신 말씀을 보게 될 때, 종교 중에서 기독교가 왕이다 이거예요. 여기서 뭐 기독교를 선전하는 게 아니예요. 이치로 설명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도의 길에서 도주를 모시는 데 있어서 하늘나라 천사장의 어떠한 도주인지 아닌지 그걸 구별해야 됩니다. '아, 네 녀석은 몇천 년 전에 왔더랬구나! 너는 그 시대에 왔는데, 어떠한 내용을 갖고 왔느냐? 이런 심정적인 인연을 갖고 있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을 가졌느냐? 그 구주의 가치로서 사명을 하는 데는 종으로서 사명을 했느냐, 부모로서 사명을 했느냐?' 하는 걸 구별해야 됩니다. 종으로서 사명을 하는 종교들은 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도의 세계에 있어서 통일의 내용을 갖고 오는 도가 있다 할진대, 그 도는 무엇이냐? 하나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아들, 둘도 없는 아들이요 딸을 세워서,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위업을 상속시켜 놓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부모로서 구주의 영광 가운데 나타난 도의 내용을 가지고 오는 그 도가 만국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도일 것입니다. 결론은 그렇게 나간단 말입니다. 거기에 모순 있어요?

하나님은 심정을 가지고 붙들어야

오늘날 막연히 말하기를 천지 부모를 말합니다. '천지 부모를 반겨 맞자. 효자 충신이 되어야 돼' 이러잖아요? 충신이 나라애 충성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 다음에 나라의 충신으로서 세계적인 부모로 오시는 그분 앞에 충신이 될 수 있게 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효도하는 것도 훈련입니다. 그거 다 훈련이예요. 훈련을 위해 가르쳐 주는 것이지, 그 자체들이 훈련받아 가지고 자기의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어떠한 도가 있다 하면 이런 도를 찾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데는 소매 끄트머리는 암만 붙들어도 쓸데없어요.머리카락을 잡아도 쓸데없습니다. 코를 잡아도 쓸데없어요. 팔을 잡고 발을 잡아도 쓸데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잡아야 되느냐? 모가지를 끌어안고 몸뚱이를 들이 잡아야 됩니다. 잡는 데는 무얼로? 손으로? 아니예요. 심정으로 잡아야 됩니다. '아버지, 못 갑니다. 나를 두고 못갑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니 이 줄을 끊을 자가 없습니다' 이러고 잡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잡은 아들딸 있어요? 여기 아주머니, 그렇게 잡아 봤소? 통일교회 무엇 하러 나오는 거예요?

여기서 땀을 흘리면서 말하고 있는 이 젊은 선생은 무엇 때문에 이 놀음 하고 있느냐?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잡는 데는 어떤 입장에서 잡을 것이냐?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하는 데는 어떤 입장에서 좋아하게 할 것이냐? 하나님이 나를 들어 자랑하시는 데는 어떤 입장에서 자랑받을 것이냐? 그런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하고 하늘 앞에 달라붙어 가지고 '하나님! 당신의 뜻이 이러하오니, 이런 아들딸을 한민족에 보내 주시옵소서' 하면서 결판짓기 위해 붙들고 안 놓아 주면….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를 붙들고 싸움할 때 어땠어요? '너는 하나님을 이겼다' 하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었다구요. 주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그와 같이 찾아가 만나고 싶어서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어 준다고 했으니,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으니 얼마나 좋나요? 꼼짝 못하게 때릴 수 있는 재료가 많단 말입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사기꾼이요 거짓말쟁이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런 싸움을 해봤어요?

오늘날 통일을 부르짖게 되는데 무엇을? 아버지까지도 잡아넣어야 됩니다. 무엇으로 잡을 수 있느냐? 능력으로 못 잡아요. 수단으로 못 잡아요. 지혜 지식으로 못 잡아요, 자기의 어떤 재간으로도 못 잡아요. 사랑으로만 잡을 수 있다 이거예요, 어떤 힘이나 수단으로 못 잡는 다구요. 사랑으로만 잡는다 이거예요. 세상의 대통령 아들도 말이예요, 기저귀에 똥을 싸 가지고 '아버지!' 이러면 어때요? 아버지가 발길로 찹니까? 똥이야 손에 묻든 말든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무엇으로 잡느냐? 모든 기쁨의 심정을 알아 가지고 '당신이 본연의 심정으로 이런 아들딸 갖고 이런 아들딸을 만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었습니까?' 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교육을 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가 교육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을 믿을 수 있는 아들딸로 만들자는 이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 당신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은 이러한 것이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딸은 이러한 것이외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아들딸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나오느냐? 이 아들을 세워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일대일로 한 사람 앞에 대항하고 싶어한다 이겁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들어서, 내 사랑하는 딸을 세워서 한 사람 앞에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겁니다. 자랑하는 데는 하늘땅 앞에 자랑하고 싶다 이겁니다. 또, 어떠한 가정을 들어서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민족을 들어 가지고 자랑하고 싶고, 세계를 들어 자랑하고 싶고, 하늘땅을 들어 가지고 자랑하고 싶다 이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곡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축복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입니다, 죄지은 자를 영원히 용서해 주고 싶은 하나님이라구요.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

요걸 찾아 가지고 그다음에 참자녀를 찾아야 돼요, 이분(참부모)을 만나야만, 이분의 명령을 받고 이분의 도리의 치리함을 받아야만, 이분의 수술을 받고, 접붙임을 받고, 멕기공장을 거쳐 나와야만 도금이 되어 가지고, 대용품의 이름을 가져 가지고 참자녀의 인연을 맺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거룩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처음 온 사람들, 알겠어요? 「예」

참부모의 인연에 접붙이는 자가 돼야 할 통일교인

이런 부모가 되고 이런 자녀가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는 하늘 대신이요, 어머니는 땅 대신이 되는 것이요, 이 자리에는 요것이 합함으로 말미암아 천지에 비로소 산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가정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포장하여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일컫는 말이 있나니 그 말이 무슨 말? 식구라 합니다. 식구라는 건 엄청난 말이예요. 식구가 되려면 형제가 있어야 되고….(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들도, 잘라 놓은 사람도 자르고 나서는 고쳐 가야 돼요. 접붙이려니. 잘리는 것만 해도 죽겠는 데 잘리고 나서 접붙이려니 고생이예요, 이게.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천리의 원칙이 그러니 그렇게 해야 됩니다. 요것 접붙이면 한 3년 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적인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접붙이는, 거 접붙이는 기사를 뭐라고 하나요? 뭐라고 할까? 「기술자입니다.」 기술자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술자를 만드는 데 원칙을 떠나서는 접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 공의의 법도와 공의의 원칙, 때와 원칙을 어기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과 그 원칙을 세워 나가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면 열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열 사람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열 사람의 훈련이 같아야 됩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 첫아기 낳는 거하고, 물론 여러 번 낳아 보면 뒤에 낳는 건 좀…. 그렇지만 첫째 아기를 낳으나 둘째 아기를 낳으나 세째 아기를 낳으나 열을 낳으나, 혹은 스무 명까지 낳는 사람은 없겠지만 스물을 낳는 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스물을 낳는다 해도 복중으로부터 나오는 그 과정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물론 어머니에 따라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접붙이는 책임을 짊어지고 그런 일을 하여야 할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고통의 사람입니다. 불쌍한 사람이예요. 만약에 가을이나 여름, 혹은 겨울에 잘라 놓았다면 `어느 때에 봄이 오겠나?' 하여 때를 맞게 해 가지고, 환경을 맞게 해 가지고 접붙여 줘야 됩니다. 잘린 녀석들이야 주인만 잘 만나면 때를 맞을 수 있겠지만 책임자 입장에 서서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은 고통이예요.

선생님이 여기 온 것은 모가지를 자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구요. 여기 처음 온 사람이나 지금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왜 하느냐 이거예요. 만약에 오해한 사람이 있거든 설명을 들으라구요. 설명해 주라구요! 응? 「예」 모가지 자르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 나온 역사적인 배경, 모든 사정, 혈통적인 모든 것, 자기 인식까지 시시껄렁한 모든 전부를 잘라 버려야 된다는 거요. 그러지 않으면 망합니다. 다 버려요. 문제는 거기 있어요.

정의의 칼로 원수들을 잘라 버려야

오늘날 한국 백성의 실정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들, 정신 차려야 된다 이 말입니다. 북쪽에는 괴뢰 정부가 있고, 서쪽에는 중공이 있고, 동남쪽에는 누가 있어요? 40년간 우리의 원수였던 일본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그들은 말하기를 `독도는 우리 것'이라고 합니다. 공산당은 말하기를 `남한은 우리 것' 이라고 합니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에서는 말하기를 `민주주의 세계는 우리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자르려고 합니까? 누가 자르려고 하느냐 이거예요.

두 사조가 있고 두 흐름이 있으니 어차피 하나 자르기는 잘라야 되고, 잘려야 할 사람이 한 사람 있어야 할 텐데 누가 자르고 누가 잘려야 되겠느냐? 지금 보게 될 때 이것은 반드시 해야 됩니다. 칼을 들고 잘라야 할 쪽이 이남이요,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칼에 잘려야 할 것들이 지금 대들고 있습니다. 잘라야 할 입장에 선 이들은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거예요.

이러한 세계 앞에 통일교회는, 어떠한 이념을 갖고 왔느냐? 자르는 이념입니다. 잘라야 돼요. 옳지 못한 칼을 든, 접을 붙여 줘도 또 죽일 수 있는 사기꾼들, 첩자들이 있다 할진대는 내가 정의에 입각하여 `너 해봐라' 하고 그냥 안 둔다는 겁니다. 잘라 놓으면….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끝날에 정의의 심판이란 명사를 걸고 해부할 수 있는 칼을 들어야 합니다. 비록 삼천리 반도가 좁고 삼천만 민족은 불쌍하지만 우리 통일의 무리는 작은 무리가 아닙니다. 불쌍한 모양을 했지만 불쌍한 자가 아닙니다. 약한 자와 같은 모양을 했지만 약한 자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비수를 갖고 있나니 용납할 수 없는 불의는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정의에 접붙일 수 있게 잘라 버리는 것만이 아니예요. 잘라 놓고는 책임지고 접붙일 수 있는 용사가 되라고 나선 것이 통일의 신도들입니다.

우리는 사방에 널려 있는 모든 원수의 무리를 쳐부숴야 됩니다. 옳지 않은 자들도 칼은 들고 있습니다. 저들도 같이 대항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갖고 나오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여기에 비장한 내적인 실력과 훈련을 갖추어 가지고 스스로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륜이 요구하고 온 하늘땅이 고대하고 있는, 그리고 정의에 입각해 가지고 잘라 가지고 종지에 접붙일 수 있는….

천지가 고대하고 있고, 선의 목적을 위하여 역사노정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과 도의 세계를 대신하여 따라나왔던 수많은 선지 성현들이 고대했던 것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랑의 책임을 짊어지고 나타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시대적인 존재가 아니고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존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책임을 부정하는 환경이 있다 할 때는 용서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은 그렇게 단호한, 접붙이기 위한 하나의 자르는 실체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하늘땅을 위해 살아가는 청년이 되어야

여러분은 발전하기를 바랍니까? 오늘날 세계 어느 민족한테도 뒤지지 않는 문화민족이 되기를 바랍니까? 후진국가의 국민이 돼 있고 퇴폐적인 전통과 퇴폐적인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서 고질적인 자아, 처량한 처지를 느끼고 있습니까? 만약에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이고, 난 좋다' 하는 자리에 부모가 가지 말라 할지라도 박차고 가야돼요. 형제가 막고 있더라도 박차고 가야 됩니다. 이 사회가 막고 있더라도 박차고 가야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 일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살려 주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실정, 한국의 환경에 있어서는 이러한 무리의 움직임이 나와야 됩니다. 더욱이나 오늘날 혁명 정부가 나와 가지고 인간 개조를 부르짖고 있고 새로운 건설을 주장하고 있는 이 마당에서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뛰쳐 나왔다가 들어가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무리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뭘 말하느냐? 환경적으로 보나 모든 사조적으로 보나 세계 정신사적으로 보게 될 때도 부정할 수 없는 이런 절박한 입장에서 뭔가를 보여 줘야 할 것이 우리의 입장이요, 3천만의 입장이요, 더더욱이나 청년 남녀들이 당연히 부딪쳐야 할 입장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봉착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내가 수십 년 전부터 기도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시여!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시여! 살아 계시거든 내가 바라는 그 한때에 있어서 젊은이들과 인연맺게 해 주십시오'라는 거였어요. 30세 전 젊은이, 허기져도 30대 청년으로서 그때를 마련하고, 그때를 맞겠다고 지금까지 바라고 준비해 나왔습니다. 환경에 몰리고 사정이 여의치 않는 곡절의 노정을 걷다 보니 혈기 왕성한 젊은 청춘, 삼십, 혹은 이팔 청춘, 그런 시절을 끝없이 영위해 갈 수 있는 모토가 될 그런…. 그런 순간을 지내다 보니, 물론 곡절의 성상, 눈물과 피어린 노정을 거쳐왔으나 오늘날 이 민족 앞에 몰리며 외로운 고아의 입장에서 거쳐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고아 된 무리들을 모아 가지고 오늘날 이런 움직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앞으로 국가적으로 문제될 때가 올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문제될 때가 온다는 겁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나는 이미 사십의 고개를 넘어가는 입장에 있지만 이 이념과 정신은 젊은이의 이념이요, 정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념과 정신을 따라나오는 무리들은 젊은이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고이 품에 품고 젖먹이던 그 시절부터, 비록 나는 듣지 못했고 보지 못했을망정 부디 뜻 있는 아기가 돼 달라고 기도한 어머니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 뜻은 어떠한 뜻이겠느냐?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도 그 뜻이겠지마는 멀리 종족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아기가 되고, 더 나아가 민족을 위하여 자랑할 수 있는 아기가 돼 달라는 것입니다.

따라오는 자식들이 많을지라도 지금이라도 그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식이라면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될래야 될 수 없습니다. 이 민족 앞에 배신자가 될래야 될 수 없고, 이 사회에 강한 자가 될래야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비참한 생활일망정 저녁이면 고요히 심성을 찾아들어 `너는 무엇을 향하여 가느냐?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어떠한 초점상에 있어 가지고 오늘 하루동안 움직였고 책임했느냐?' 라는 천주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여기에 모여든 청년들은 무위도식하는 청년들이 아닙니다. 형제들을 위하여 남모르게 눈물 흘리는 청년, 처참한 환경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청년, `하늘이 있느냐? 땅이 살았느냐? 나와 부딪쳐서 정의의 그 무엇이 있는지 보여 달라' 라고 호소하는, 불타는 그 무엇을 지니고 애써 나오는 청년이 모였다고 믿어 주고 싶은 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입니다. 내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기에, 또 여러분을 그렇게 보고 있기에 여러분에 대해서 말하는 데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 여러분이 참석했다 할진대는 과거를 걸어놓고 후회해야 됩니다. 내 나이 삼십, 혹은 이십이 된 과거의 생활은 무엇이었던고? 나의 생활을 들어 건데기를 건져 볼 때에 내 손에 남아질, 내 일생에 자랑할 수 있는 건데기는 무엇이 있느냐? 없다 하게 될진대는 하늘 보기 두렵고 땅 보기 두려운 겁니다. 여기에서 피땀을 흘리고 외쳐야 됩니다.

선생님은 남모르는 눈물도 많이 흘렸고, 지금도 복통(腹痛)할…. 3천만을 전부 한꺼번에 모아다 놓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입은 하나요, 몸뚱이도 하나니 천추에 한이 됩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지만 갈 수 없는 하나의 몸, 제한된 몸인 것이 한스럽습니다.

`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느뇨? 내 손끝이 무엇을 잡으려 하느뇨? 내 머리는 무엇을 원하느뇨? 민족과 세계 인류를 넘어서 이 대천지는 어디로 가느뇨?' 라고 염려할 줄 아는 청년들이 돼야 됩니다.

공의의 법도대로 살아가야 할 나

만일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편에서 쓰러지기를 바라고, 고아와 같이 이 세계 앞에,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3천만 이 민족 가운데 그런 청년 남녀들의 수가 날이 가면 갈수록 불어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탄생될 수 있기를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민족의 절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청년 남녀들, 해원의 조건을 선포할 수 있는 용맹스런 정의의 종교는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통곡하고 싶어해야 됩니다. 외치다 보니 힘이 부족하고….

이러한 논법에서 보게 될 때, 동방의 고아와 같이 홀로 자라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벌거숭이 삼천리 반도, 너는 누구한테 뜯겼던고! 자리를 잡지못하고 왔다가 방황하는 3천만, 너는 누구한테 이렇게 당하였던고! 자기 부모가 있다면 더운 방에 눕히고 싶은 것이요, 자기 처자가 있다면 역시 그러한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수하를 막론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은 천리의 인연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기 옆에 누운 부모를 굶겨야 하고, 자기 옆에 있는 자식들을 굶겨야 하고, 때로는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처참한 이런 인연을 누가 만들었느냐 이겁니다. 본래 우리 선조들이 잘못한 죄악의 보답으로 그런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할 수 있는 데도 하지 않아서 이런 보응을 받는다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이것이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과제입니다.

죽어가는 민족 앞에 우리는 죽은 무리가 되지 말아야 됩니다. 헐벗고 있는 이 민족 앞에 헐벗은 무리가 될망정, 몰리고 있는 민족 앞에 몰리는 무리가 될망정 우리는 죽은 무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벗고 있어도 또 줄 수 있고 몰리는 자리에서도 구해줄 수 있는 이런 무리여야 됩니다. 이것이 당장 이 민족에게 필요하고 절박한 과제라는 것을 우리 청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구호가 있다면 `나는 내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명제를 내세워야 할진데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이 나라는 이 나라의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세계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닙니다. 곱게 단장시켜 나보다 더 거룩한 존재 앞으로 내가 끌고 가 보여 주어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보여 주는 동시에 자랑해 드려야 할 또 하나의 주인이 있단다면 그 주인 앞에 그러한 책임분담을 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직시해야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여러분 앞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내 자신을 위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가야하고 여러분들도 가야합니다. 가야 할 그 길이 평탄한 길이라면 좋으려니와 평탄한 길이 못됩니다. 가시밭길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험산준령, 피 흘려야 할 이런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은 이 길을 단연코 가야 할 때가 왔고,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할 시대가 왔는데 이 민족은 잠자고 있고, 깊은 몽상에 잠겨 있으니 이제는 어떡해야 되겠느냐? `야, 아무개야 깨라!'라고 부르짖을 때는 지나갔습니다. 집에 불이 붙어 당장 쓰러질 운명에 놓여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저들의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발길로 걷어차 가지고 유리문 밖으로 던질 수 있는 이런 절박한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사정 볼 때는 지나갔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런 때에 있단 말입니다. 지금 그런 때에 있어요!

선생님은 염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혁명 정부에서도 대공문제에 대해서 염려해 왔지만 선생님은 그런 문제에 더욱더 염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통일교회에 들어와 보니 3년 기간이라는 혈투전을 전개할 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 기간은 굶으면서도 가야 되겠고, 떨면서도 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나서서 외치는 사람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를 가진 자요, 누구보다도 더 사랑받는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얽매어 살 것이 아니라…. 그들도 민족을 위함이요, 그들도 공의의 법도를 빛내기 위한 것임을 알기에 오늘날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

많은 기간 가운데 어찌하여 3년을 잡아 가지고 일을 하느냐?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설명하려면 역사를 풀어 헤쳐야 됩니다. 이 3년이라는 기간에 되어진 국내적인 사정과 국제적인 사정을 바라보라는 거예요. 엊그제 한국일보의 기사를 여러분도 봤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2월 3일부터 4일, 5일까지 3일 동안 벌어진 것이 무슨 일이냐? 오늘부터 내일 초하룻날 초이튿날까지 넘어가는 때입니다. 세상에서는 웃을는지 모르지만 성좌를 보고 미래의 때를 염려하는 점성술사들은 이런 기간을 중요시하는 겁니다.

나는 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지상에 저끄러져 있는 일보다도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이라는 거예요. 하늘과 땅에 있어서 방향이 새롭게 달라진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있다면, 악한 신과 선한 신이 있다면 악한 신과 선한 신이 회합을 하여 방향을 바꾸어 가는 때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시대는 밤절기였습니다. 밤절기였어요. 밤은 악을 상징하니 밤절기의 시대에는 악한 사람이 잘살던 시대예요. 이것이 교체하여 낮절기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어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는 기간을 세워야 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 때가 왔어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이렇게 될 때는, 지금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자기들을 주장하고 있고, 또 하늘을 배반한 무리들이 득세하여 자기들의 위심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제 밤이 지나간다는 겁니다.

이 때가 다 지나가거든 민주주의도 3분파가 되고 공산주의 3분파가 될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되어 있지만. 소련과 중공과 그다음에 불란서─이건 중립주의 공산국가입니다. 수정주의예요. 현재 그들이 나와서 서로 싸우고 있어요. 요렇게만 되라 이거예요.

지금 세계는 공산주의자들도 교체할 때가 왔고, 민주주의도 다시 교체할 때가 왔습니다. 세계 사조가 스톱하여 다시 수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수많은 도인들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오늘날 철학이니 윤리도덕이니 사회 조직 전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겁니다.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놓고 생각해야 되느냐? 무엇을 걸어놓고 다시 생각해야 되겠느냐? 이제 시대는 개인주의 시대도 아니요, 민족주의 시대도 아니요, 어떠한 국가주의 시대도 아닙니다. 세계주의 시대도 넘고 우주시대도 넘은 입체적인 시대, 인공위성이 날고 있는 이런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종교면 종교, 마음의 세계면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도 입체적인 관계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까지 전통적인, 역사적인 모든 인연을 세워 놓고서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적인 기반을 그대로 세워 놓고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예요. 현재 갖고 있는 신앙 관념을 그대로 세워 놓고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주의나 체제를 그냥 그대로 세워 놓고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예요. 전부 제쳐 놓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전부 다, 무슨 종파니, 설교니 무엇이니 전부 다 평면에 세워 놓고 다시 골라야 되는 것입니다. 요건 쓸 것, 요건 못 쓸 것…. 이런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누가 쓸 만한 것을 고를 것이냐 이것입니다. 어떤 것은 쓸만한 것이고 어떤 것은 못쓸 것이라고 판명할 수 있는 그는 누구뇨? 만일에 그런 분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메시아로 모실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는, 이 세계를 전부 다 벌려 놓고 그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전체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정부(正否)를 판결지어 옳은 것은 옳은 것으로서 수습하여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생활력을 가진 이 생활환경에 있어서의 생활적인 그 가치가 전체 가치의 비준을 대신하여 자기 가치를 내세워 가지고 당당히 나서서 주장하는 그 모습은 전체의 가치 앞에 있어서 같은 비준으로 설 수 있는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그런 뭐가 있다면 그것은 우주사적인 견지라든가 세계사적인 견지에 있어서의 메시아사상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도(道)를 보고, 어느 종교를 더듬어 보더라도 거기에는 끝날에 대한, 말세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거 없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그건 종교가 아닙니다. 악한 세계, 선악이 투쟁하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과정적인 현상에만 머물 이 시대가 아닌 만큼 목적 시대, 목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적인 현상을 청산지어야만 됩니다. 결산을 봐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실을 헤아려 논고를 세워 보자'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보는 관도 그렇거든….

그러니 끝날에는 반드시 최후에 청산을 지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의 실정을 바라보면 혁명정부가 브레이크를 걸고 있습니다. 이런 난국을 수습하여 이 수습된 것이…. 앞으로 이 우주사적인 대사조의 변혁이 벌어지는 때에 수습된 것은 그냥 그대로 가게 되는 거예요. 마이너스, 혹은 가려 가지고 내버릴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수습되어 딱 백퍼센트의 점수로서 현재 수습된 것이 냅다 자리를 잡고 들어서게 되는 겁니다. 선진국가면 선진국가, 미국이면 미국 어느 국가든지 전부 한 군데에 펼쳐 놓고 수습할 수 있는 때에 그 퍼센트의 정도는 어느 국가가 많을 것이냐? 이런 문제가 나올 겁니다.

그러면, 전통이면 어떤 전통이 옳을 것이냐? 종교면 어떤 종교가 옳을 것이냐? 종교 중에도 제일 좋은 종교가….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인류는 좋은 것, 더 좋은 것이란 가치문제에 들어와 가지고는 생의 노정까지 무시하면서 허덕이며 그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별되어 있는 현세계

여러분들, 여기에 왜 왔어요?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이러한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어느 한 때에 이것을 거두어서 가려야 합니다. 안 가리면 안 되겠다 이겁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계시면 하늘 앞에 호소를 해서라도 가려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이렇게 해서 한번 추려 가지고 못쓸 것은 잘라 버리든가 해야 됩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해야 돼요. 그러한 책임을 짊어진 우주사적인 인격자, 인물이 와야 되는 겁니다. 그러한 사람이 못 나오거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자신이 해라 이거예요.

오늘날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종교적인 한 면에 있어서의 서광을 남길 수 있는 것, 우리들이 고통당하고 있고 안타깝고 애절한 입장에 있는데서 하나의 이념의 길을 엿보게 해주고 있는 것이 종교에 있어서의 메시아 사상인 것입니다. 이걸 볼 때에 역사적인 종교는 필시 그렇게 되어야 되겠으니, 우리가 종교를 떠나서 논리적인 조건을 세워 가지고 비판해 보더라도 그런 때가 와야 할 것은 틀림없으니 반드시 그러한 한 때에 있어서 세계적인 모든 진영을 총수습하여, 이것을 헤아릴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정치, 문화, 경제뿐만이 아니라 종교라든가…. 나중에는 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수습하고, 여러분의 심정문제까지도 수습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있는 세계에서는 의식혁명에도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강압적으로 `이놈아!' 하고 총끝을 대가리에다 대고….

그러나 춥던 겨울이 지나가고 남에서 북으로 찾아 올라오는 태양빛을 받게 될 때는 그 모든 동산에 얼었던 눈이 녹고 얼음이 녹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이 순리법도에 있어서의 우리 사람 자체도 자기의 길, 방향을 찾아 한 곳을 향해 가게 돼 있습니다.

보라구요. 태양빛이 비춰 오면 방안에 있는 화초들 순의 꼭대기가 먼저 태양 쪽으로 돌아갑니다. 꼭대기가 먼저 돌아가요. 그와 동시에 다말라 빠진 잎사귀라면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진액이 있어 가지고 몇 퍼센트의 생기라도 가진 이파리는 죽어갈망정 그 햇빛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의 시대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에 있어서는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천운이 돌아갑니다. 이 천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요, 역사를 근본적으로 파괴시키기 위한 것이 하늘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을 수습하여 그냥 그대로 연결시키는 겁니다. 가치문제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는 시간적인 가치가 제한성, 시간성을 넘어서 무한한 가치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 할진대…. 거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의 얘기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다시 생각해 봐야됩니다. 이제 여기에 서 가지고 내가 `좋다 나쁘다' 하는 걸 다시 봐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이 손을 한번 들었다 내리는 것도 결과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이것을 가치문제로 논란을 세워보면 들었다 내리는데 좋은 것을 위해서 들었던 것, 나쁜 것을 위해서 들었던 것 둘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이의 있느냐 말이예요. 응? 「없습니다」 한번 벌어진 작용이나 현상이나 행동의 결과는 반드시 선의 결과를 가져오든가 악을 결과를 가져오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사실인 동시에 진리입니다. 이건 삼척동자도 부정 못 합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자구요. `좋다' 할 때, 제일 좋은 게 뭐예요? 청년들, 제일 좋은 게 뭐예요? 응? 「…….」 그것도 생각 않고 있어요? 안 되겠구만.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면 말이예요. 이 마음을 가만 보면 좋은 것을 찾고 있는데 말이예요. 제일 좋은 게 뭐냐 할 때, 밤이나 낮이나 좋다 할 수 있는, 천하의 어떠한 존재물을 갖다 주더라도 내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은 세계로. 믿는 사람들은 나쁜 것을 좋다고 하는 생각을 가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 같은 동료끼리인데도 누가 가 가지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주먹으로라도 한번 때리면 가만 있겠어요? 기분 나쁘잖아요. 기분 나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들이 쳐갈기든가 자기 스스로 대치를 하게끔 돼 있다 이겁니다. 개인적인 위치를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 권한을 우리는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컨트롤하는 것, 그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그런 자유 권한을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양심을 찾기 위한 것은 또 뭐냐? 내 양심이 좋고 그다음엔 내가 좋은 동시에 우리 부모도 좋고, 부모가 좋은 동시에 우리 가정이 좋고, 가정이 좋은 동시에 사회도 좋고, 사회가 좋은 동시에 세계도 좋은 그런 뭐가 있어야 될 거 아니예요? 좋기는 좋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면 좋을 수 있는, 제일 좋은 것의 한정을 알겠어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거예요. 좋은 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무엇이 있어야 되겠어요? 이젠 거의 다 올라갔지요, 꼭대기까지? 뭐지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좋고, 하늘이 좋고, 땅이 좋고, 그다음엔 세계에서 높은 사람도 좋고 그다음엔 내려가서 백성도 좋고, 그다음엔 상ㆍ중ㆍ하 중에 거지, 그것도 거의 죽어 가지고 `아이고, 나 죽는다' 하고 넘어지는 그 거지도 좋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요?

그 좋은 것에다 입을 대고, 베개도 베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단다면 그 사람은 지금 죽어도 좋을 겁니다. 그런 공상을 한번도 안 해봤어요? 안 해 봤어요? 「…….」 이건 멋진 사나이들이 아니예요. 여자들도 그런 공상도 안 해 봤어요? 안 해 봤어요? […….] 그러니까 지지리 하는 게 여자들이예요.

자,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생각해 보자 말이예요. 생각을 하는 데도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있어요. 행동을 하는 데도 좋은 행동 나쁜 행동이 있고, 먹는 데도 좋은 것 나쁜 것이 있습니다. 가는 데도 좋은 곳 나쁜 곳이 있습니다. 내 오감이나 직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감각에도 좋은 것 나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내 개인이 그러니 이웃집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좋은 집 나쁜 집이 있습니다. 단체를 볼 때도 좋은 단체 나쁜 단체가 있고, 사회를 볼 때도 좋은 사회 나쁜 사회가 있습니다. 국가도 좋은 나라 나쁜 나라가 있고, 주의 사상에도 좋은 주의 나쁜 주의가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도 그렇습니다. 하늘편 사탄편.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현상으로 봐 가지고 제아무리 종교를 부정하려고 무슨 요술을 부리고 입을 벌려 가지고 큰소리 했댔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인간이 결과적인 가치를 표준하여 선악의 좋고 나쁜 결과의 입장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모든 사람은 종교생활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그러면 한번 쭉 생각해 보자 이겁니다. 한번 해부를 해보자 이거예요. 오늘날 세계에는 얼마나 살고 있다고? 몇 억? [30억입니다] 자, 30억이 살고 있는데 좋고 나쁜 것으로 보게 되면 좋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을 게 아녜요?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절반 잘라 봅시다. 자르면 얼마예요? 「15억」 그래도 땅 위에 사랑할 곳이 있지요. 이렇게 보면 틀림없는 말이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그런 걸 많이…. 30억이라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는 지상 위에 생활적인 결과를 타진하여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누어 보게 될 때, 좋은 사람이 15억쯤 된다면 그래도 가망성이 많다 이겁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 꼴이니까 세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한 사람만 잡아도 가망성이 있는 거거든요. 그렇지요? 「예」 그래도 그럴 수 있는….

그렇다 해도 좀 가까운 무엇, 좋을 수 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되는데, 어디 그럴 수 있는 사람 있어요? 붙들고 `아, 후련하다. 아 좋다' 할 수 있게 돼 있나 말이예요. 어느 집, 어느 위정자, 어느 종교인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보라구. 찾았나, 못찾았나? 대답해 보라구요. 아직까지 답을 못 하고 있는 거 보면 아직은 만나지도 못한 거 아니예요? 「찾았습니다」 찾긴 뭘 찾아? 「선생님」 선생님, 내가 알 게 뭐요?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 말은 믿지도 말라는 거라구요. 알게 뭐요? 두고 봐야지. 그 때까지 두고 보려면…. 그때 가서는 때가 늦게 돼요. 여러분들은 모른다구요. 지금은 몰라요.

생각해 보라구요. 젊은 녀석들이 어떻게 하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들여다 보면 그저 그 녀석들에게 기합을 주고 모가지에서부터 뼈다귀까지 짓이겨대고 싶단 말이예요. 이 자식들아! 천지가 어떻게 돼 있는지, 네 생명이라는 것이 어떻게 돼 있는 지, 제한된 생애 노정을 걸어가다 언제 어느 때인지는 거꾸러질지 자동차 타고 가다 부딪혀 죽게 될 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 말이예요.

자기가 제일 귀하다고 미친 말들을 하는 거예요. `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건 개 같은 것들이예요. 가치로 보게 되면 개 중에는 팔면 몇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 개가 있어요. 그렇지만 이까짓 건 죽으면 단돈 1원을 주고도 안 사갑니다. 그걸 부모들이 알면서도 `아이고, 우리 아들 죽었네' 하고 통곡합니다. 그거 왜 그럴까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웃을 게 아니라 심각한 문제란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해 보게 될 때 문제는 크게 벌어진 거예요. 높고 넓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수많은 역사노정을 장식했다고 자랑하고, 수많은 문화를 창설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 권내에 있어서 내 생명이 좋아할 수 있고 내 생애를 걸고서 생활적인 모든 것을 기쁨으로 포괄할 수 있는 지도 이념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그런 생명을 가지고서 그 환경을 벗어나지 못 하게끔 해 가지고 행복을 노래하고 최대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권내로 나를 잡아매 준 사람이 있느냐? 잡아매 줄 수 있는 기성교회 사람이 어디 있느냐? 앞으로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없다면 절망입니다. 과거에 있었다면 모르거니와, 그리고 이제라도 있을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앞으로도 없다면 절망입니다. 차라리 약을 먹고 죽는 것이 나아요.

이러한 가치문제를 가지고 허덕이면서 `나를 붙들어 다오. 나를 끌어다오. 나를 치료해 다오. 나를 살려다오'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느냐? 마음으로는 전부 그렇게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외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이것이 문제예요. 여러분, 외쳐 봤어요? `나를 살려다오. 나를 치료해 다오' 하고 외쳐 봤느냐 말이예요. 외칠래야 외칠 수 없는 사정에서 그냥 그대로 혼자 뒤넘이치다가 말 한마디도 세상에 남기지도 못하고 독약을 먹고 죽는 인간들과 같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움의 절벽이 인간에게 가로막혀 있기에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겁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그러한 것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하고 호소하고 애원하는 겁니다. 그 소리가 종교인들이 말하고 있는 기도라는 겁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기도하는 종교인 만나봤어요? `우리 아들딸 복주소!' 하고 기도하고 있다구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면 하나님이 밑지는 장사를 하신다는 겁니다. 밑진다는 거예요. 그런 기도를 하는 종교인을 만나 봤어요?

그저 `지금보다도 돈이나 많이 있어야 복이라고 알고 기도를 했는데 이거 유치장이 웬말이냐? 벌받았구나! 하나님 없다!' 그렇게 된 세상판국이예요. 만일에 인간을 믿을 수 없고 인간 세계에 살 수 없거든 이 인간을 창조하고 우주의 근본을 조성한 어떠한 원동력의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는…. 모든 자연이라든가 인간내에 조성되어 있는 세포적인 모든 것을 분석해 보더라도 이것이 있게 된 목적성이 형태 내에서라든가, 그 의식적인 면이라든가, 우리 양심적인 작용인 지ㆍ정ㆍ의의 활동적인 모든 현상을 사회에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라든가, 혹은 이상적인 감정으로 이걸 헤아리는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그런 동기적인 내용을 갖춘 절대적인 힘의 원천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 분이 있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이 나와야 됩니다. 인연이 돼 있기 때문에 내가 그런 내용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존재는 하나님도 이것을 존재라 합니다. 그런 분 앞에 애달픈 모든 것을 맡기는 게 종교생활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인간인 것을 알기 때문에 답을 내줘요, 답을. `야, 너희들 소망을 가져라'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답을 내주시는 걸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답을 내주며 `너희들, 소망을 가져라. 끝날이 온다. 끝날에는 메시아가 온다. 메시아가 오면 곧 좋은 세상이 된다' 하시는 거예요.

이런 모든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판해 보더라도 하나님 입장에서는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왜? 어떠한 종교일지라도 그런 결과에 봉착해 가지고 바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종교인들은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그게 종교 생활이예요. 이 사람을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나쁜 사람일지라도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돼요.

종교를 통해 좋은 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자, 그럼 그런 기도 해봤어요? 해봤어요? 어느 정도냐구요? 힘이 지나칠 정도로. 만일 그런 하나님이 없다면 허사지만 그런 하나님만 있단다면 이런 환경이….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하나님이 있다면, 막연하지만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일까요? 나쁜 것을 요구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요구하는 하나님이예요.

무엇에 대해서 좋은 것을 요구할 것이냐? 하나님 자기를 위해서? 절대자인 주체가 무엇 대해서 요구할 것이냐?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 개, 돼지가 아니고 온 우주일 것입니다. 우주인 동시에 우주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슬프면 슬픈 것을 알고,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기뻐하면 기뻐하는 것을 아는 심정적인 존재일 것입니다. 심정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반응을 받아 가지고 거기에 화동할 수 있고 상대가 될 수 있는 이런 존재여야 될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무엇일 것이냐? 거기에 아무리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게끔 되어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사람이라면 사람 가운데도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어떠한 사람일까요? 만약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았다면 자기 주머니에 쓸어 넣고 `너만 붙들고 있겠다, 너 하나면 되겠다'고 하시겠어요? 그런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찾았다 할 때는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세계를 다 모아놓고서 `햐! 내가 좋은 사람을 찾았으니 이 좋은 사람을 좀 봐라' 하는 그런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어때요? 있겠어요, 없겠어요? 대답을 하라구.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습니다」 있습니다. 정말 있어요? 「예」 그러면 내가 모든 세상에…. 그런 일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습니다」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그래서 비난이 많고….

아, 내가 무슨 말을 했나? 내가 무슨 말을 했나요? '있겠어' 했는 데 무슨 말을 했어요? 혼자 말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지 뭐. 들을 사람이 있어야 말하는 거 아니예요? 무슨 말을 했어요? 잊어버렸네. 무슨 말을 했지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혼자 가지겠다는 이야기 했나요? 여기 아주머니!

자, 만일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이 온 우주를 위하여 복지를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라면 복지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를 말하느냐? 같은 시대에서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복지일 거예요. 그런데 복지가 못 됐으니 하나님이 제 아무리 잘났다 해도 하나님….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가졌다면 틀림없이 우리 조상한테 보여 주든가, 내 아버지한테 보여 주든가, 동생에게 보여 주든가 보여 줘야 되는데 아직까지 보여 준 것이 없으니 그런 사람을 못 가진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기쁜 일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는 하나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나,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좀 낫단다면, 그럴 수 있는 가망성의 자리에 섰더라면 그것은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말은 하지 말자구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낙망하지 말고 조금 기다려 봐야지요.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한 때 보게 되면 속임수같이 나가는 거요. 그 시대환경에 있어서 어떠한 주류가 있으면 그 주류에서 맨 위에 위대한 사람이…. 주류는 이렇게 높이 그리고 있는 데 이게 나가려면 역사적인 고충이 여기에 대번에 따르게 돼요.

그러니까 여기에 그런 운세를 잘라 가지고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요 말단에 양심적인 사람으로 다리를 놔 가지고서 시대적인 책임량을 점점 넓혀 여기 세계를 책임지게 하는 거예요. 최고의 지점까지, 여기 하나님까지 찾아올라간다 이겁니다. 그런 기준에 찾아할 수 있는 이런 양심적인 도를 세워 가지고 종교를 세워 나가는 겁니다.

그 종교의 내용을 분석하면 말이예요,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돼 있지 않은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래 가지고…. (칠판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림없이 이러한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고 계신다는 겁니다.

거, 조그만 것들이 와 가지고 무슨 불편을 그렇게 끼치니. 응? 오줌이 마려우면 싸라구! 여기 서서 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오줌 싸라구, 내 치워 줄께. 여러분들이 선생님 말씀에 취해 가지고 오줌이 출출 나오는 것도 잊어버리고 들을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만큼은 돼야 뭣이라도 하나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사실입니다. 내가 미쳐 가지고 길가에 가다가 서서 오줌을 싸면서도 `세계복귀' 그럴 때는 `야, 너 됐다' 한다는 거예요. (웃음) 그만큼 됐으면 됐다는 거지. 그래도 좋아하거든. `그 면에 있어서는 내가 왕이다' 한다는 거예요. 다른 오줌싸는 건 안됐지만 말이예요. (웃음) 이렇게 다리를 놔 가지고….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은 각 시대에 따라 가지고 변천해 나오는 거예요. 변천해 나오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낫다는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하나님과 같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지금은 그렇게 주욱 수습해 나오는 과정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 앞에 `야, 너희들 좀 기다려라' 하는 말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어떻게 말씀을 하셨느냐? `끝날이 온다' 혹은 `말세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걸 약속하신 거예요. `말세가 온다. 끝날이 온다' 하셨어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조금 기다려라. 조금 기다려라'하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속임수 모양으로 종교를 걸어 놓고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이 여기 꼭대기까지 올라갔댔지만 꼭대기는 없어지거든요. 여기를 믿던 사람들은 `아이고, 이건 천지 최후의 종교요, 우리를 살려줄 줄 알았는데….' 한다구요. 그걸 믿더라도 믿던 사람들이 이걸 옮길 때는 그걸 내 버리고 따라갈 줄을 모른다 이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 때문에 시대적으로 종교의 발전을 방해하는 면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요 가운데의 요것들은 이렇게 됐지만 새로운 면에 있어서의 더 큰종교, 이게 흡수해 가지고 옮겨지고, 또 흡수해 가지고 옮겨지고 해서 점점점 올라간다 이겁니다. 역사적으로 문화권사를 보게 되면 큰 문화권을 이룬 종교가 약소 문화권을 다 흡수합니다. 그러니 제일이라고 주장한 녀석들이 움직이지 못하면 망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져 주고 보장해 주는 종교를 믿어야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을 다시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나라의 혼란 시대가 오고, 어떤 종교가 부패하는 것이 전성기가 아니고 어느 한계에 도달할 때 지혜있는 사람들은 다시 볼 줄 알아라 이겁니다. 이해돼요? 거 이해돼요? 「예」 이런 논법에서 개인의 가정이 망해 들어가게 되면 다시 세워라 이겁니다. 또, 여러분이 결실할 것이 파죽지세로 이 세계를 정복할 것 같지만 가다가는 재차 정복당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예요. 아직까지 이런 종말의 예고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라! 그렇다고 망할 때만 다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흥해 있지만 그 흥한 것이 원인적으로 하나님이 끝날이라고 선포한 그 찰나의 기준에 접촉될 수 있는 도상에 서 있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거든 다시 생각해라 이겁니다. 망하는 녀석도 생각하라. 흥하는 녀석들도 생각하라. 그러니까 전부가 생각해 봐라. 결론은 그렇게 됩니다. 그렇지요? 다시 생각해 봐라 이거예요.

우리가 새로운 문화세계를 꿈꾸고 있고, 새로운 역사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21세기의 비약적인 문화를 바라보는 교차 도상에 있어서 `다시 생각해 봐라' 하는 이 말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가 늘어진 사람이나 배가 들어간 사람이나,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전부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종교고 뭐고 전부 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라. 세계 저 골짝마다, 그리고 아무리 고대광실 높은 용상에 앉았더라도 다시 생각해 봐라. 왜? 인간이 제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하나님이 좋다 하는 결론을 받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는….

`너희들 두고 봐라. 두고 봐라! 그냥 그대로 인계해 가지고 거기에다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인연을 접붙여 가지고 가라. 더 받아라' 이러면 모르거니와 행여 백 번 가운데 한 수가 있을둥말둥 해요. 하늘은 그걸 바랍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이면 기독교 각 종파는 물론 무슨 도를 물론하고라도 다 다시 생각해라 이겁니다. 이 결론을 내리면 여기에 다 들어간다 그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좀 쉬어서 하자나, 그만 두자나? 그만 두자고? 이 결론에는 반드시 천하의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다 들어갑니다. 다 들어간다 이거요.

천하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근성을 분석해 보게 될 때, 전부 다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좋지 못한 환경에 있다는 거예요. 좋지 못한 환경에서 좋아지기를 바라고 허덕이며 울부짖고 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고통이요, 비애요, 곡절입니다. 이러한 판국의 세상이 되었으니 결국 하나님이 이런 판국의 세상을 책임지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세상을 책임지고 나가야 할 하나님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 앞의 나쁜세상-좋던 녀석도 나빠지고 나쁜 녀석도 좋아져 바꾸어지는, 믿을 수 없는 세상, 이런 세상 앞에 하나님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말세라는 한계점을 세워 놓고 `조금 참아라. 참고 나가라' 하시는 겁니다.

참고 나가는 데는 그냥 참고 나가지 말라는 거예요. 신앙이라는 믿음을 중심삼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저버리더라도 하나님만은 믿어라 이거예요. 하나님만은 믿으라는 막연한 주제를 내걸어 놨습니다. 하나님만은 믿어라. 이건 모호하기 짝이 없단 말이예요. 하나님만은 믿어라. 죽을 때도 믿고, 기쁠 때도 믿고, 쫓겨다닐 때도 믿어라. 사정이나 환경이 천태만상으로 변하고 모양은 천태만상으로 달라지더라도 하늘을 믿는 것만은 변치 말아라 이겁니다. 그러면서 어떡하라고? 정성을 들여라! 정성을 들이라 이거예요. 여기에 곡절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여, 당신은 믿으라 할이만큼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믿겠다고 하는 사람을 믿어 주십니까?' 하고 물어 봐야 돼요. `내가 믿는 데는 믿는 만큼 믿어 줍니까?' 하고 물어 봐야 돼요. 또, `충성을 해라!' 하면 `하겠습니다. 그런데 충성을 한만큼 충성으로 알아줍니까?' 하고 물어봐야 됩니다.

맹목적인 말이요, 모호한 내용으로 우리 앞에 권고했지만 그것으로 모가지를 자르고 끌어 내릴 것이 아니라, 믿으라면 믿는 데 대해서 답을 가져야 되겠고, 충성을 하라면 충성을 하는 데 있어서 답을 가져야 됩니다. 왜? 까딱 잘못하면 믿는 데서도 나쁜 패거리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긴 믿는 데 좋을 수 있는 것에 부딪치게 되면 괜찮겠지만서도, 저 사람이 믿는 것, 내가 잘 안 믿는 것 용서받는…. (녹음이 잠시 끊김)

꼬불랑 꼬불랑 가긴 가는데, 여기서부터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꼬불랑 꼬불랑. 그러면서 `슛! 골인' 하는 그 믿음이…. 수많은 민족도 전부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이러한 복잡다단한 신앙이면 신앙, 믿음이면 믿음, 복잡다단한 환경과 단체이면 그 환경과 단체에 있어서 가져야 할 신앙, 대상을 향하는 신앙 관점에 있어서 전부 자기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내용에 있어서 말세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신앙이냐? 믿는 데는 내가 천당가겠다고 믿지 말라는 거요. 천당은 저 문만 통과하면 가는 거예요. 그게 목적이 아니예요. 자기가 가진 관념이 벌써 틀리다 그 말입니다.

그저 믿고 천당 가겠다는 건 막연하다는 거예요. 믿는 데는 이 말세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야, 믿어라!' 했던 것이 좋다고 보장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맨끝에 가서는 이렇게 변천해 나오는 거요.

끝에 가서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경지에 선 믿음으로. 하나님적 믿음입니다. 하나님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적 믿음이예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예요, 그건. 또, 내가 충성하는 데는 이 권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충성을 해야 돼요. 거기다 맞춰야 됩니다. 거기 있다는 거예요.

교회에 그저 보따리 싸 들고 다니면서 찬송이나 하고…. (탁자를 두드리시며 찬송하는 흉내를 내심. 웃음) 이래 가지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안 돼 있다 이거요. 자기들도 그래가지고 또 찾아 해결하겠지요. 그거 틀렸다는 것이 아니요. 모르니까 내가 가르쳐 주려고 그래요. 이것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님 다음 사람 있으면 나와! 만일에 이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나온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겠나 이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을 진다 이겁니다. 어때요, 책임을 져 줘야 되겠어요, 안 져 줘야 되겠어요? 「책임을 져 줘야 됩니다」 천당 가겠다고 해서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천당 보내줘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책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책임을 져 줄 수 있는 신앙을 해야 돼요.

책임을 져 주는 입장에 서게 되면 무엇이 되느냐? 어떻게 되느냐? 책임을 져 주겠다고 하면…. 말세라는 종말이라는 원리적 관점을 세워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하나님으로서는 무엇을 주기 위한 것이냐? 하나님이 아까 말한…. 하나님도 지금까지 말하기를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랑할 사람을 갖지 못했다 이겁니다. 그래서 끝날에 가서는 하나님이 전부 다…. 그저 복잡다단한 것을 다 거쳐 가지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별의별 사정을 다 거쳐가지고 한 곳으로 넘어서야 됩니다.

종말적인 끝날에 있어서, 인간 도상에, 역사 도상에 있어서, 인류사적인, 혹은 천주적인 내용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비로소 `이야!' 하고 기뻐하며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녜요? 그래야 하나님도 구원하신 보람이 있지요.

하나님과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은 메시아의 날

만약에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을 가졌다면, 그 하나님이 자비로운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제일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할진대 그 기뻐하는 것을 혼자 주머니에 넣어 버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예요. 이것을 돌려줘야 할 하나님이니 `내가 좋으니 너희들도 좋아라' 하십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가치적인 입장에서 아까 말한 신앙자들에게도 데려다가 보여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나 땅이나, 하나님이나 이 모든 인간이나 기쁜 날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대우주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기쁜 날을 봤다면 그 기쁨은 인간 세상에도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쁠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을 세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그 날은 인간이나 하나님이나 같은 소망의 곳이요, 같은 목적의 곳이요, 같은 목적의 날입니다. 그 날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요, 그와 동시에 비로소 인류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알겠어요? 그 때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날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러한 한 존재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동시에 만 천하 자기 손아귀에 들어 있는 모든 천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명패를 그의 즐거움과 더불어 같이 느낄 수 있는 때가 인간 역사 노정에 있어서 바라는 소망의 때요, 오늘날 이 사회주의 사상이 바라는 이상세계라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런 게 있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못하는데 인간이 기뻐하겠다는 것은 천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상은 전부 허사라는 것입니다. 허사예요. 세상은 지나가 버립니다. 허무하다 이거예요. 믿지 못할 세상입니다. 믿지 못할 세상이지만 믿어야 하는 곡절의 운명은 나를 재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운명의 과정에 휩쓸려서 자기도 모르게 죽을 사지를 도피하여 가는 길이 종교의 길입니다. 이 길을 더듬어 가 가지고, 이런 막연한 목적지를 향하여 신앙길을 가 가지고 이것이 주도적인 역사적 사조를 이끌어 나오는 모양을 갖추어 왔다는 거예요.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고, 방법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방향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방향에 있어서는 저 세계를 향하는 달려가는 방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 지대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반드시 관계를 맺기 위한 최후의 기준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2천 년 전부터 계속되어져 온 그런 말씀이 있었던 거예요. 그 말씀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거예요.

오늘날 인간적인, 역사적인 사조를 헤아려 볼 때에 이 세계사적인 사상은 반드시 동양의 한 면에 있어서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가 왔다 이겁니다. 아까 말하던 선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다시 가꾸어야 할 때가 왔나니 가꾸어서 전부 선한 편으로, 좋아할 수 있는 편으로 모아 놓은 곳은 온 세계 인류가 `너도 나도 좋아!' 하고, 하나님도 `아이고 좋구나!' 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런 권내로 들어가야 그 권내에 들어온 사람들이 비로소 `아, 천상천하 모든 존재 위에 서 있구나. 누구든 우리를 본받아라. 이것 봐라!' 한다는 것입니다. `오냐! 오냐! 보자. 보자' 전부가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돈 많이 있는 사람들 보면 옷 한 가지 가지고 자랑하지요? 그때 가서 그런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이 자리는 한 면에서는 부러운 것이요, 한 면으로는 복된 자리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에 대해서 실제적인 무엇이, 가치적인 반응의 실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수긍하나…. 우리의 직접적인 감정으로는 느낄 수 없던 하나님이 이런 기쁨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걸어 놓고, 그것이 딴 물건도 아닌 사람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이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동시에 온 천하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어떠한 일개 국가의 주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 지금까지의 기성 존재가 기쁨을 드릴 수 없었던 이런 가치의 존재로서 인간이 등장하는 그런 최고의 권위의 자리라는 것을 갖고, 그렇게 좋은 입장에 서고 비로소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늘땅의 누구보다도 훨씬 높다 할 수 있는 이러한 입장에 선 사람이어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좋아하신다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안 좋아할 수 있나요?

종교는 거짓 것을 참 것으로 만드는 멕기공장

그래 여러분들, 만물의 영장이예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은 획기적인 것입니다. 영장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가짜란 말이예요. 이 역사노정에서 아직까지 진짜가 나오지 않았어요. 진짜 나왔어요? 좋고 나쁜건데 좋은 것이, 아직까지 진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가 나오지 않았어요? 「진짜」 뭣이? 「진짜」 뭣이? 「진짜」 대답을 크게 하라구요. 뭐가 안 나왔어요? 「진짜입니다!」 아, 이젠 큰데. 뭣이? 「진짜!」 오늘 왔다가 요거 잊고 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진짜 부모 만나 봤어요? 하나님이 진짜라 할 수 있고, 온 피조만물이 진짜라 할 수 있고, 아는 사람이 진짜라 할 수 있는 부모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겁니다. 그러니 가짜의 탈을 쓰고 나오는 인간, 어이 슬프지 않겠습니까? 가짜의 명패를 달고 나오는 인생이니 진짜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공의의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어이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인생행로는 고해(苦海)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가짜로 취급받아야 돼요. 공의의 법을 추구하는 천도가 있다 할진대 그 법도 앞에 가짜들이니, 가짜 취급 받아야 할 인간이 되었으니 이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 보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응? 「예」 알겠어요? 「예」

가짜를 진짜로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질이 전부 다 사탄세계의 핏줄을 받았어요. 그러니 내가 어저께도 부산에서 얘기했지만 멕기(めっき)를 올려야 돼요. 멕기가 뭔지 알아요? 도금, 물을 올린다는 거예요. 진짜 물을 올린다는 거예요. 섭섭하지요? 배꼽까지 가짜예요. 이놈은 가짜지만서도 금물 도가니에 넣어 가지고 금물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멕기한다는 거예요. 멕기해 주겠다는 겁니다, 멕기. 그냥은 안 돼요, 그냥은. 그래 멕기 공장에 들어가는 것이 낙원입니다. 아직까지 그 멕기가 끝나지 않았어요.

이 지상도 그거예요. 이 도라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이름 밑에서 그런 내용의 진짜 도가니에 몰아 넣어 가지고 멕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되다가 말아 가지고 합격품이 못 되었다는 거예요. 요만큼만 되도 그건 불합격품이라구요.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저 학생, 알겠어요? 복귀섭리예요.

그러니 얼마나,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겠어요?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순금으로 태어날 것인데 이것이 전부 놋으로 태어난 거예요. 구리로 태어났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본성의 본질은 그것을 한하면서 순금의 그 자리를 그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 본성의 뜻, 본질의 고걸 반영하여 외적인 멕기를 씌워 가지고 중간 것은 인정하지 않고 요걸 딱 맞추는 거예요. 가짜지만 멕기를 들여 가지고 진짜 대신 갖다 놓자, 진짜 대용품하자 그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진짜 대용품이예요. 그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손질을 잘해도 흠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한번 골통에다 박아 써서 빼낸 흠이 있다는 거라구요. 이런 것을 다시 순금의 겉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 교회는 뭐냐? 참교회는 뭐냐? 참종교와 참교회는 뭐냐? 뭐예요? 멕기공장입니다. 감투를 씌우는 겁니다. 껍데기를 씌우는 거예요. 너는 가짜니까 들이대라 이거예요. 처음 온 사람 중에는 `야 저 사람 저 말하려고 하루 종일 저렇게 말했구나. 교묘하게 꼬여 들어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기도해 보라구요, 거짓말인가.

종교는 어떤 곳이라구요? 「멕기공장」 멕기공장인데, 무엇을 씌운다구요? 「감투입니다」 감투, 세상에서 올라가는 그런 감투가 아니예요. 무슨 감투? 나라는 것을 없애기 위한 감투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들어오면 칠통이 있어요. 칠통. 무슨 칠통? 악질통, 권력통. 응? 상질, 중질. 악질통. 뭐 선질이 아니예요. 선에 못 가요. 상질, 중질, 하질. 섭섭하지요? 그렇지만 할 수 없지 뭐. 어떡하겠나요? 오늘 저녁에도 밤예배를 할 수 없이 맡았다구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말들 참 잘 지어낸다고 하겠지만, 사실이 그래요.

그럼 멕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어떤 녀석들은 말이예요, 편안히 앉아서…. 이렇게 나오면서 멕기 할 수 있어요? 잘라 버려야됩니다. 뿔이 난다구요, 뿔이 나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가만 둬 두어야 돼요? 잘라 버리든가, 망치 가지고 때려 눕히든가 해야 돼요. 그렇게 해야 될 거 아니예요? 해야 되겠나요, 안 해야 되겠나요? 해야 되겠지요? 「예」

그렇지만 그걸 자기는 못 하거든요. 자기가 할 수 있었다면 다 했지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깡패 오야붕이 돼 가지고 남을 하루에 백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이구, 안 그래야 할 텐데' 한다구요.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거예요. 칼을 빼고 나면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는 거 볼 때 좋을 게 있겠느냐 말이예요. 그거 좋다는 건 사람이 아니예요.

자기는 못 하는 거예요. 어떤 스승이 있던가 어떤 의사가 있던가 해 가지고 해부를 해서 까 내든가, 도끼 자루로 들이 패서 잘라 주든가, 뽑아내든가, 들이박든가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뿔을 강제로 끊으려고 하면 근본이 깨져 나가거든요. 밑창이 상처가 난다구요. 굴려야 됩니다. 그래서 이 역사도 굴려 나온 거예요. 가려 나온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과 비애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기에는 통일교회는 멕기공장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아직까지 멕기공장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멕기공장을 만들어야 되겠단 말이예요. 그러려면 젊은 녀석 누구누구를 전부 잡아다가…. (녹음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거 나쁜 마음예요, 좋은 마음이예요? 「좋은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겁니다. 그저 몽땅몽땅 뽑아 가지고 한꺼번에 몽땅 붙여 놓고 싶은 것이 여기 이 사람의 바램입니다.

사람도 선을 지향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하나의 시대적인 입장에 그런 맘을 품거든, 하물며 천지를 사랑하고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창조주의 마음이 그렇지 않겠느냐.

30억이라는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30억이라는 인류가. 30억이라는 인류가 살고 있어요. 이 30억이라는 인류 가운데서 사망률을 평균 잡자면 백 명 중에 한 사람만 죽는 다 해도 일년에 죽어 나가자빠지는 게 얼마예요? 3천만입니다. 원수의 사탄세계에서 지옥을 향하여 급행열차를 매 10초에 한 대 꼴로 달리는 거예요. 무지몽매한 하나님이라면 모르거니와 심정으로 이끌어 이것을 살려 주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하나님으로서 그걸 바라볼 때에 괴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세상 부모도 자식이 하나 죽어 가게 되면 그 자식이 살인강도요, 이 나라에서의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자라도 그가 최후로 사라지는 교수대를 향하여 걸어 나가게 될 때, `하나님, 능력이 있사오면 저 아들을 살려주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부모의 마음이거늘, 이런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의 원천되는 것이 창조주라 할진대 그 원천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이 1년에 3천만이라는 수효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는 것을 볼 때에 `어, 너 잘간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겠느냐 이거예요. 어떻겠어요? 한갓 몇 척밖에 되지 않는 사람도 그런 욕망에 있어서 자신의 것을 좋은 것으로 인정할진대 하늘이 이런 처참한 환경을 바라보고….

우리 한국을 두고 보더라도 3천만 가운데 3십만의 사람이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고 가고 있고, 또 연속적인 운행을 하고 있는 마당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이런 인간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이 이런 경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밥 먹는 이 시간에도 죽음의 고함성을 치면서 죽음의 지옥을 향해 달려드는 이 민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많다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못난 사람들이 아니예요. 지식계급의 사람들, 이 나라를 지배하고 혹은 세계를 움직여 나온 자칭 똑똑한 인텔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억울하고 억울하구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걸 생각할 때 통곡할 줄 아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들이 믿고 우리들이 만나려 하는 그 아버지는 슬픔의 아버지입니다. 천상, 지상 어떠한 존재물을 대하더라도 고생을 하고 고통을 당했다는 어떠한 왕자가 있다 할지라도 그 고통이라는 명사는 인간 앞에 해당되지 않아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더라 이거예요.

고생이라면 하나님 이상 고생한 사람이 없고, 고통이라는 명사를 가질자는 하나님밖에 없고, 슬픔이라는 명사를 가질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억울하고 분하고 세상만사 곡절의 모든 비운의 실체로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오늘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 억울하고 분한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분인 것을 알고 보니 매를 맞고 엎드려 엉엉 울면서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할 수 있고, 쫓김을 받아 있을 곳이 없어 바위틈에 가 가지고 찬 바람을 맞는 그 자리에 들어가서도 `나는 괜찮습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누구냐? 그분은 누구냐? 그분은 본래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본래의 우리 아버지가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던고? 본래의 우리 아버지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던고?

여러분, 이 땅 위에 그런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입장에 서야 하나님의 실체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다는 사정을 말할 수 있고,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한 자리에 있으니 죽더라도 한이 없다고 나는 말하고 싶어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매를 맞아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그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내 아버지, 내가 죽습니다' 하는 죽는 자리에서도 `당신을 위하고 당신의 서러움의 핏자국을 메울 수 없는 불효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안타깝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도 이런 심정을 지녔기 때문에, 아들딸을 찾고 있는 아버지의 버릴 수 없는 소망은 자기가 죽어가더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을 박는 무리를 보고도 `피야 떨어져라. 몸이야 찢어져라!'했다는 거예요. `슬픈 고통의 실체는 당신이였사오니 내 아무리 슬프고 내 아무리 곡절이 많다 하더라도 이것은 한계적인 고통이로되, 죽음의 고개는 몇 분 몇 초 안 되는 한계적인 고통이로되, 당신은 내가 죽어간 후에도 고통의 생활을 면치 못하는 억울한 당신인 것을 나는 압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향하여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흐르는 눈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민족을 향하여 아직까지 피와 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직까지는 죽음의 비통한 길을 걸어야 하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주는 무리가 되자는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내게 재산이 없고 내게 자랑할 아무것이 없더라도 불쌍한 아버지의 효자가 되어 보겠다는 이 정성, 이것이 통일교회가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재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 수십 평생 곡절의 길을 갈 적마다 그 아버지는 살아 계시거늘 내가 고통을 받고 있는 여기에 있어서 편될 수 없는 아버지라는 걸 생각할 때에 억울하고 분통했습니다. 그런 곡절의 사정을 지금까지 말 못하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고생하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고생길로 나가야

그러면 그 아버지는 어디를 더듬어 찾아가느냐? 당장에 죽을 사람의 운명의 좌석에서 눈물 흘리는 아버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살피시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가자니 나는 여러분에게 고생의 길을 가라고 하늘을 대신하여 맹세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부디 고생하는 길을 가라!

고생하는 길을 가서 뭘할 것이냐? 전도를 해서 사람 만드려는 것이 아니예요. 내 목적은 전도해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예요. 뭘할 것이냐? 그 자리에 가서 슬픈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슬픈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슬픈 아버지의 눈물과 더불어 여러분도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가 피땀을 흘리면 여러분도 피땀을 흘릴 수 있는 동반자가 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몸은 본부에 있고 침대에 누워 있지만 마음은 괴로워요. 찬바람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이런 밤에 어린 아들딸들이 산지 사방 죽음의 첨단에서 하늘 대신하여 눈물 뿌리고 있는 데 그런 입장으로 몰아넣는 내가…. 이 스승만은 거짓된 자가 안 되기를 지금까지 기도해 왔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그 목적은 어디 있느뇨? 좋은 자리에 있느뇨? 예수는 어떤 사람이냐? 천지에 지극히 슬픈 하나님의 왕자였습니다. 예수는 어떤 아들이냐? 천상천하에 없는 고통의 왕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슬프고 곡절 있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한스럽고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운 것이 무엇이냐? 좋을 수 있는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이 고통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고통 뒤에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좋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이런 고통을 책임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책임지고 이것을 위해서 싸워 승리적인 깃발을 들기 전에는 기쁨이라는 명사는 이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을 우리들은 몰랐거니와 역사적인 고통 전체를 짊어지고 이 세상의 해방의 한날을 가져와 `고통은 내 것, 기쁨은 너희들의 것' 이라고 약속하여 오늘날 소망의 일념을 기원한 황공한 하늘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느냐 말이예요. 아느냐 말이예요. 꿈도 못 꾸고 있어요.

이번에 전라북도에 널려 있던 여러분들, 40일간이라는 한때를 통하여 고생을 했다고 우리들은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나마 두려운 자리, 이 자리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아버지와 더불어 인연맺어 가지고 아버지가 눈물 뿌린 자국에 여러분이 눈물 뿌리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이 민족은 비록 잠이 들어 있고, 이 나라는 비록 아버지를 모르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갈 길은 꺾이지 말아야 됩니다. 최후의 곡절의 마당에 있어서 갈 길이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러한 입장에 선 친구의 주인이 됐기 때문에 그 길에서 싸워도 하나님이 꺾여 나가지 않는 한 우리들은 이 시대와 더불어 종말의 한계선과 더불어 겨루어 이 고개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최후의 승리의 터전으로….

끝날에 처한 성도는 인류의 부모 되시는 참부모를 찾아야

이 나라를 개척하고, 이 나라를 책임지고, 이 세계를 개척하고, 하늘을 책임져야 할 무리들은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내가 말하던 이런 입장에 선 하나님이라면 그런 경각에서 고통을 느끼며 바라보는 아버지 앞에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멕기 공장에서는 이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종의 처신을 찾아서 양자의 처신을 갖추어 그다음에 아들이다 하는 이름, 혈통이 다르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 아들이다 하는 이름까지 우리가 거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은 이 땅 위의 인간으로서 비로소 본연의 참부모를 갖추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후손이니 참부모를 갖지 못했다는 거예요. 앞날에 있어서 하늘이 찾고, 아까 말하였던 하나님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그 중심존재, 끝날에 우리 인간 앞에 비로소 보여 줄 수 있고, 너와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중심 존재는 누구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본래 창조 당시에 지었던 창조이념으로서 고대하던 분이 있다면 그분이 누구냐? 이는 타락한 인류를 번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고 참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참다운 부모로서, 인류의 타락하의 인연을 벗어난 참부모인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부모로서 세워지면 뭘 할 것이뇨? 하나님이 비로소 천지만물을 다 지어 놓고 기쁘다면 최고로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감정을 그 부모의 감정과 접촉시켜 가지고 오늘날 이 지상 위에 그런 후손을 번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것이 하늘의 창조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보여 주고 싶은 것,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던고? 그는 참부모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기쁨의 왕궁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생각해 봐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천상 천하를 대신하여 그를 가리키면서 쌍수를 들어 `너는 내 아들딸이다' 해 가지고 둘을 세워 놓고 성혼의 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상의 마음으로 그리고 이상의 심정으로 품고 싶었던 사랑의 마음을 그냥 그대로 몽땅 위업으로서 상속해 주고 싶었던 그분이 있나니 그분이 누구냐 하면 인류의 뭐? 「참부모입니다」

그럼 인류의 참부모를 만났느냐? 여러분을 낳았던 부모들은 타락한 혈통에서 맺어진 부모입니다. 천륜을 배도하고 인륜을 어긴 우리의 선조들과 여태까지….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나님이 있는 지 없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돼 버렸다구요.

온 천상에 가 있는 영인들이나 지상에 있는 육체를 가진 모든 인류들이 바라는 존재는 누구냐? 끝날에 그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종말시대의 약속의 한 소망의 존재요, 우리들이 그리워하던 아예 없어서는 안 될 분, 천상과 지상 인간과 하나님에게 최후의 심지적인 중보가 되어야할 그런 분이 있나니…. 그를 만나게 될 때에 하늘의 기쁨이요, 그를 만나게 될 때에 인간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환희의 노래를 하늘에서부터 땅으로부터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중심존재가 있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탄식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고아예요, 고아, 고아, 고아, 고아.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회의 진리는 신랑 신부라는 이름으로서 막음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소원을 단정하고 이걸 해결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이뇨? 신랑 신부입니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처음 온 사람이 있기 때문이예요. 신랑 신부라는 말이 왜 나오느냐? 이 말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마운 말입니다. 참 고맙고 감사한 말이예요. 한많은 가슴에 새로운 하나의 답을 주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명사야말로 인간 세상에 있어서 복된 말씀 중에 복된 말씀이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종결적인 하나의 실체를 만나지 못하였기에 오늘날 뜻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나오는 기독교에 있어서 신랑 신부라는 명사는 이제 종말의 관문을 향하여 허덕이는 말세시대를 통찰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끝날에 처한 성도들은 누구를 찾아야 되느냐? 예배당에 가 가지고 예수를 찾아야 되겠지만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쁨의 대상으로 세워 줄 수 있는 우주의 보화, 온 천주의 기쁨의 왕자, 기쁨의 왕궁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참부모의 모습을 찾아야 됩니다. 이게 누구냐? 새로운 신랑 신부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심판할 수 있는 신랑 신부예요. 인간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아니예요.

여기 이 아주머니가 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아니예요. 이 명사는 누구의 입으로 할 말이냐? 감히 우리 타락한 인간의 입으로 할 말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입으로 말할 말입니다. 거룩한 신랑 신부, 이 거룩한 신랑 신부는 뭐냐? 타락과 인연이 없었던 자유 천지에 있어서 하늘의 심정적인 것을 몽땅 옮겨 가지고 태어난 신랑 신부입니다. 그 신랑 신부가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신랑 신부로 세워서 축복을 해 주시면 좋겠는데 천지는 다….

최고의 진리는 참부모를 중심한 하나의 대가족을 이루게 하는 것

그래 여러분들은 고아예요, 고아. 고아예요, 고아, 고아! 한국 동란후에 고아원에 관한 기사가 나온 신문 봤지요? 애기들을 다 모아 놓고는 귀한 것은 다 빼앗아 먹고 껍데기만 먹이니 뼈만 남아 가지고 엉엉 우는 것이 신문에 나온 걸 봤지요? 그것을 볼 때 나는 `세계 인류가 이 꼴이 됐으니 고아원 원장이 누구냐?' 하는 걸 생각했어요. 가랑이를 째 놓아야 돼요. 인간을 농락하고 고아의 피를 빨아 먹고 뼈를 깍아 먹던 이 고아원 원장이 누구냐? 이것이 사탄이라는 거에요, 사탄. 이것이 천륜을 배반한 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자는 것이 통일교회 이론입니다.

이것을 익히 알리는 것이 이 시간 외치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느끼는 날에는 `용서없다 이놈! 악한 놈들아 이래서는 안 된다. 역사상 지금까지 우리 선조의 피를 빨아 먹고 최후의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이놈!'하고 복수하는 거예요. 원수들에 대해서 이런 결사대로 나선 무리들이 통일교회 신자들입니다.

`사실이야. 사실이야. 원통하고 분하구나!' 이 맘을 느끼는 사람만 만들어 놓으면 이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자리가 어려운 자리입니다. 진리 중에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뇨? 이것입니다. 인간 앞에 있어서 무슨 학설도 필요 없어요. 교육도 필요 없어요. `과연 이거로구나!' 하고 참부모라는 것을 백 퍼센트 인정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는 진리가 있다면 이것은 만고불변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운이 돌아가는 거예요.

참부모 앞에 있어서 참자식 될 수 있는 부자지 인연. 참부모가 있으면 그분이 나와 비로소 고아원 각지에 있던 이들을 샅샅이 찾아 `내 아들아. 내 딸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너희들이 고아가 됐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를 못 알아보는구나' 하고 낳아 준 어머니요, 낳아 준 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몰라보니 설명해야 할 서글픈 입장에 서야 할 부모가 오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고아원 부모가 온다는 거예요.

그 부모를 기독교에서는 신랑이라 했고, 딴 종교에서는 미륵불이니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 아버지다. 내가 네 어머니이다'라고 할 수 있는 부모가 와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부모가 이렇게 설명하기 전에 이런 놀음을 증거해 주는 사람이 이걸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증거를 책임져야 할 종교가 기독교요, 딴 이방 종교들입니다.

진리의 최고가 무엇이냐? 참부모를 섬기고 참자녀와 더불어 살고, 참부모, 참자녀를 중심한 참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가정은 이러한 가정이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종족, 참민족, 참국가, 참세계와 참하늘땅 이런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참이라는 인연이 비로소 생겨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한 많은 세상아 어서 가라!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사십 고개야 어서가라. 꽃다운 청춘시절아 어서 가라!'라고 했습니다. 봄동산에서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청춘시절부터 눈물로써 걸어오기를 지금까지…. `어서 가라! 나는 천지의 대도를 밝힐 참부모 앞에 효성지도의 길을 개척하고, 그분 앞에 종의 일신이라도 맡을 수 있는 그날을 그리며 가겠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주의 진리의 근본이 뭐냐? 딴 거 아닙니다. 이 악한 무리들이 부모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가슴 터지는 심정이 오갈 수 있는 대성통곡을 하는 아들딸이 되는 겁니다. 부모를 배반한 자식들이니 회개하지 않을 수 있느냐? 부모를 잃어버린 인간이니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것을 알게 되면 눈물로서 기도하게 됩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이 죄인들을 찾아오는 아버지는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아담가정에서 쫓겨난 우리 아버지, 노아의 가정에서 쫓겨난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방당한 아버지였어요. 또, 그런 인연을 갖고 왔던 예수를 우리 손으로 잡아 죽였어요. 그리하여 부활하여다시 온다는 한의 일념을 남기고, 재림이라는 명사를 남겨 인류의 부모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 지금까지 수천 년을 거쳐 오는 것입니다. 곡절 많은 사망의 이 세상을 허덕이던 하늘의 역사가 이렇게 비참했다는 것을 알고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어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냐 말이예요.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아버지, 그런 부모를 만나는 날에는 한번 쥐었으면 손이 끊어져도 못 놓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립고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워해야 됩니다.

여러분, 로마의 압정시대에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가 가지고 4백 년 고역의 길을 거치는 동안 그들은 화형에 처해지고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주님이여, 오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용을 몰랐어요. `구주라고 할 수 있는 주님 오시옵소서!' 했지만 내용을 몰랐어요. 그들의 한을 풀어야 할 사람들이 오늘날 기독교인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앞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이 몰렸어요. 모든 위정자들 혹은 모든 기독교 교주들한테 여기서 말하는 이단이라는 명패가 박힌 사람이 지금도 몰리고 있어요. 만일 오늘날 통일교회가 몰리지 않았더라면 공산당과 싸웠을 겁니다. 이런 얘기는 뭐 안 할 말이지만. 통일교회는 한을 품은 교회입니다. 그렇다고 민족의 한을 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한을 풀겠다는 교회입니다.

그런 한을 푸실 아버지께서는 이 부락도 가야 되겠고, 저 마을도 가야되겠고, 이 면도 가야 되겠고 방방곡곡을 다 가야 된다는 거예요.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서는 부모님의 길을 우리가 대신 책임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진리는 무엇이냐? 부모를 알고, 나는 아들이요 당신은 부모라고 비로소 핏줄끼리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그 소망의 심정에 통할 수 있는, 눈물로서 상봉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는 진리가 최고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냐 말이예요? 「예」

사탄을 처치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워 나가자

통일교회에서 그 길을 못 가르쳐 주면, 선생님이 솔직히 얘기하는 거예요, 이것을 못 가르쳐 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또 찾아가야 돼요. 만일 그것을 못 가르쳐 주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사기꾼이예요. 이 민족이 추방해야 돼요. 추방만 해요? 각을 떠서 죽여야지요. 여기에서 이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생명을 각오하고 옹호해줘야 합니다. 생명을 보루삼고 깨지고 부딪치는 치열한 전투가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막아 내야 됩니다.

여기에 왔다는 것은, 통일교회를 따라온다는 것은 이 세계 앞에 있어서 아까 말한 고아원 원장 같은 이 원수 사탄을 우리 손아귀로서 처치하자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해야 돼요. 오시는 참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됩니다. 부모님의 원수를 누가 갚아야 돼요? 자식이 갚아야 돼요. 자식의 원수를 부모가 갚는 것은 역리예요, 역리. 자식의 원수를 부모가 갚는다면 천리에 어긋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탄이는 무엇이냐? 자식들의 원수예요. 자식들의 원수인 동시에 부모의 원수예요. 아직까지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자식들의 원수와 같은 입장인 사탄이를 쳐 죽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부모의 원수가 올 때는 자식들을 동원해서 친단 말이예요.

여러분은 여기서 뭘 할 것이냐? 이 억울하고 분한 곡절에 있어서 여러분이 나서 가지고 천주 앞에 용납될 수 없는 원수, 피를 빨아먹던 이 원수, 이런 인연 가운데 엉클어진 부모를 뺏어 나와야 돼요. 그러니 밤잠을 잘 수 있느냐 말이예요. 이 부락에 그 원수가 있거든 샅샅이 뒤져라. 저 마을에 가서도 샅샅이 뒤져 나가라. 이 사명의 책임감을 가지고 나선 무리가 누구라구요? 「저희들입니다」 누구라구요? 「저희들입니다」 그래 그거 할래요? 할 자신 있어요? 「예」 어때요. 자신있어요? 「예」 자신있어요? 「예」

이것은 어떻게 대답해야 되느냐면 하나님의 가슴으로부터, 참부모의 가슴으로부터, 참아들딸의 가슴으로부터, 참형제의 가슴으로부터, 참가족의 가슴으로부터 참종족ㆍ참국가ㆍ참세계ㆍ참하늘땅 앞에 통할 수 있는 심정을 걸어 가지고 대답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대답한 것이 삼천만을 뚫고 나가는 그런 무엇을 느꼈어요? 세계를 위해 가지고 가정을 뚫고 나가는 그런 느낌을 느꼈어요? 하나님의 보좌 밑에서 하나님이 깜짝 놀라 `오냐, 장하다!' 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을 느끼며 대답했어요? 그렇게 대답해야 됩니다. 지금 대답은 그렇게 해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만일에 가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이런 일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크게 해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래 하겠다고 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 보자구요. 내려요. 이것을 해주어야 우리 후손들이 평화를 노래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여러분들이 지금 하겠다고 손들은 것은 여기 있는 선생님도 확인한 사항이예요. 알겠어요? 「예」 삼천만을 뚫고, 인류를 뚫고, 하늘을 뚫고 올라가면 이런 입장에서 설명하는 그 기준을 찾아간다고 했지요? 「예」 이것은 맹세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남한 각지에 공산당들이 들어와 가지고 공작한다면 이 공작하는 공산당을 내 손으로 처치하겠다는 그 이상 더 치열해야 되겠다구요. 뭐 설명하려면 한정이 없어요. 그런 걸 여러분이 명심해서 결정했으니 이 시간 이후부터 용맹스럽게 싸워 나가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기 도

아버님, 당신께서는 외치고 싶은 간곡한 마음이 있으시되 6천 년 동안 한 많은 그 가슴을 눌러 오기에 얼마나 슬프셨습니까? 오늘날 끝날을 대하여 하늘이 보여 주고 싶었던 한날을 고대했던 내용이 무엇이며, 인간이 찾고 싶었던 한날을 바라던 내용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던 참부모요, 참자식이요, 참가정이요, 참종족ㆍ참민족ㆍ참세계ㆍ참천주였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오늘날 거짓된 세상에서 토해 낸 그 자체를 이제 근본적으로 타파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내가 처하여 살고 있던 생의 근거가 이렇게 억울하고 이렇게 분통하였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역사적인 해원의 기점이 어디에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을진대 오늘 저희의 입장과 처지를 성별하시어서 이것을 갈라내시어서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곳으로 가도록 저희들을 명령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 엄청난 사실을 앞에 놓고 이 민족 앞에, 혹은 세계 인류 앞에, 천주 앞에,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각오하였사옵니다. 과연 힘든 역사노정이었습니다. 아버지, 이날 이 시간 외로운 무리들이 사방에 흩어졌다가 수백 리 길을 걸어와야 할 입장이 억울합니다. 굶주린 자리에 세워 놓은 것이 억울합니다.

아버지,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에,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안 연고요, 당신의 기뻐할 수 있는 인연을 찾아 나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사정을 저희가 알므로 이런 길을 거쳐 왔사오니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그 모든 사정과 내용이 아버지와 더불어 움직이는 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삼천리 반도 동산 가운데의 제단에는 통일교회 식구들의 피와 눈물이 떨어진 인연이 연결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3천만 민중에게 통일교회 눈물의 인연이 연락되어, 삼천리 방방곡곡 집집마다, 사람 사는 가정 가정마다 이 피눈물 뿌린 것을 연결시키어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인연을 향하여 통곡할 줄 아는 무리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리하여 새로운 복귀의 동산을 건설할 책임성이 있사오니, 부디 죽지 않고 끝까지 아버지의 효자 효녀의 이름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끝까지 싸워 아버지의 영광의 식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어느 기간 동안 그리워하다가 만나게 하신 것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정 사정이 달라진 것을 당신은 알았습니다. 눈물로써 인연 되어진 우리의 노정, 당신이 여기에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여기의 외로운 무리들이 흘리는 모든 눈물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참석했던 이 걸음이 헛된 결과를 거져오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처음 참석한 무리가 있을지라도 그들이 마음에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가지고 이 민족 앞에 나는 어떤 자요, 우리의 인류를 농락하던 자가 누구였으니 그들 대해서 정히 하늘과 천주 앞에 책임을 감당하여 정의를 대신해 나가 싸울 수 있는 생명적인 기반을 이루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하여 내일의 새로운 모습을 천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인연을 갖기를 맹세하고 결의하였사오니, 그 마음 변치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신 걸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에 되어지는 일체를 친히 당신께서 홀로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제 내일을 기해 다시 황무지와 같은 벌판을 지나 가시밭길을 가야 할 무리들이 있사옵니다. 생각하면 분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사오나 당신의 수고의 노정을 맞기 위함이요, 사탄의 화살 앞에 있어서 하늘을 보호하기 위해 쌓여지는 도성이 되기 위하여 나가는 것이오니 강하고 담대하도록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과중에서 쓰러져 낙오자가 되는 패들이 없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러한 사정을 당신은 너무나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외치는 자도 외로운 자였습니다. 그런 외로운 저를 이끌기 위해 외로울 적마다 위로하고 분부하시던 당신이 저희들을 품어 주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고 지켜 주시어서 최후의 승리의 개가를 올릴 때까지 부디부디 떨어지지 말고 아버지의 기쁨의 동산에 동참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이날의 축복의 은사로써 저희들 단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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