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지>

1960년에 3년노정을 약속하고 출발했는데, 벌써 2년이 경과하고 이제 1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나는 자나 깨나 잊지 않고 금년 이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뜻 앞에 승리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 아낌없이 바칠 각오로 움직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 뜻은 스승만의 뜻도 아니요 현재의 식구만의 뜻도 아닙니다. 스승과 통일식구뿐만 아니라 이 땅과 하늘,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이처럼 크고 놀라운 뜻인 것입니다. 2년 동안 많은 핍박의 길과 여러 가지 사정을 헤치고 나왔습니다.

오늘에 자아의 가치를 걸어 놓고 오늘과 내일의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 뜻을 걸고 싸워 나온 것은 잘 싸웠다고 할지 모릅니다. 물론 남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늘이 동역한 과거를 생각할 때, 하늘땅이 숭배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느냐, 같이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종결되는 뜻이 아니라 앞에서 쓰러지면 밟고 넘어가서라도 이루어야 할 뜻인 것입니다. 쓰러지더라도 ‘내 대신 부디 이 뜻을 이루어다오.’ 하면서 스스로의 역사를 상속할 수 있는 유언이라도 하고 쓰러져야 합니다.

과거보다도 현재가, 현재보다도 미래가 문제입니다. 현실을 밟고 서서 목적의 세계를 향해 행진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과거의 협조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천적인 탄식을 하게 됩니다. 내 일대뿐만 아니라 선조와 후손까지 배후가 다 걸려들게 됩니다. 과거가 거룩하면 가는 발걸음도 훌륭하게 됩니다.

승리자냐 패자냐고 묻게 될 때, 지금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까? 다시 한번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 문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부르는 아버지란 이름이 그렇게 쉽사리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요, 여기서 부르는 식구라는 명사가 그렇게 쉽사리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천만 성도가 피땀 흘린 터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거룩한 자리에 나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 듣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인습적인 신앙 관념이나 습관적인 생활이 다시 계속되는 경향이 없지 않은가 스스로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도 선포하고 태어난 것이 아니요, 사는 것도 산다고 선포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치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그런 생활을 하다가 저 세상에 가야 합니다. 또 그런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엄숙한 곳에서 내가 왔으니 엄숙한 곳에서 내가 살고 엄숙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인연에서 출발하여 자연적인 인연의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연스럽게 출생하였고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살고 있고 부자연스러운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살다 가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부자연스럽게 태어났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하고, 부자연스럽게 살고 있으니 이것도 청산해야 하고, 부자연스럽게 가고 있으니 이것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스스로는 청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청산해서 재공인하려 하니,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곧 죽고 사는 것을 간섭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하나님에게 6천년에 걸쳐 부끄러운 책임을 지워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 책임을 벗지 못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이렇게 원치 않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바라보는 선조의 슬픔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늘의 요구는 얼마나 컸고, 하늘의 수고는 얼마나 컸겠어요.

여러분 하나가 잘되면 천지가 잘되고 여러분 하나가 잘못되면 천지가 잘못되는 것은 배후의 역사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대 승리적인 깃발을 들고 자기 이름과 더불어 후대에 상속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교한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식구라고 불려지는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가족적으로 민족적으로 하늘적으로 청산해야 할 것을 청산치 못했으니, 그것을 가정 이전에 개체 개체로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느 누구의 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배반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

내가 본래 태어날 때 사랑의 인연이 있는 하늘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사랑의 원수가 없는 가운데서 태어나지 못한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을 청산하는 데는 개인 문제부터 완전히 청산짓고 난 다음이라야 하늘과 땅의 문제가 청산되어집니다. 미래에 조건이라도 남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후의 원통한 인연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을 살펴볼 때 만신창이가 된 내 자신의 문제를 청산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내 과거요 현실이요 미래인 것입니다. 소위 자랑하는 바 내 자체요, 오늘의 내 입장인 것입니다.

과거도 수치스럽고 현실도 수치스럽습니다. 이 모든 하늘 땅 앞에서의 수치를 어떻게 내 일대에서 해결할 것인가? 과거를 걸어 놓고 현실을 걸어 놓고 하늘땅이 공인하는 가운데서 청산해서, 이 시간부터 그러한 자체를 한 시간이라도 내 일대에서 갖고야 말겠다고 재차 각오해야 합니다.

뜻을 위한 내 생활에서 하늘 앞에 요것만은 과거에서 아직까지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것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누구도 그러한 한 시간을 가졌다고 자처할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는 얼굴을 못 듭니다.

구세주가 다시 오는 목적은 청산된 후에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고서는 우리와 메시아 사상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우리가 사탄 대하여 승리한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루를 가져야 합니다. 섭리의 뜻을 대하여 나오신 하늘과 같이 살았다고 하는 그런 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늘땅, 과거의 어느 누구도 흠모할 수 있는 한 날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엄숙한 과제와 회개해야 할 일을 앞에 놓고, 오늘날 여기 들어왔으니 이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직시해야만 합니다. 과거로 현재를 세웁니다. 즉 현재는 미래의 터전이 됩니다. 이 순간이 내일을 개척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엄숙한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뜻을 대해 나가는 길에는 방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 놓을 사이가 없습니다. 요즈음 보건대, 재차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칭찬하기를 원하실 진대, 그런 자리로 내몰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현실의 생활을 밟고 올라서서 새로운 미래의 터전으로 나아가라고, 하나님은 쉬지 않고 강조하십니다. 여러분이 무책임한 중에도 하나님은 책임지시고 일을 해오셨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밥을 먹고 배부른 것도 미안해하고, 건강한 모습도 미안해해야 합니다.

몸이 병들었어도 한 시간을 아까워해야 할 식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는 자리에서도 더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가라고 하시는 하늘이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며 맹세하던 사람, 세상이 다 못 가도 너만은 가겠지 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다 가 버렸습니다. 그 눈물도 그 맹세도 아랑곳없이 다 자기 갈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떠난 그들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통회하며 맹세한 하늘과의 인연을 수치스럽게 한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 때문에 어떠한 손상을 입으셨느냐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나’라는 사람을 세워서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려고 하셨는데 기도라니 말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로 오셨다가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어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질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호소하셨습니다. 죽는 그때까지 운명하는 그때까지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려 하신 것입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부르짖은 예수였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늘을 배반하는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사망으로 출발했으니 사망을 걸어 놓고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야 합니다. 가자! 사람은 누구나 피로한 것도 마찬가지고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자! 우리는 사상 기준이 다릅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사망의 물결이 흘러오는 자리에도 갑시다. 일기가 나쁘고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에도 갑시다. 과거에 백운대 등산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세요. 과거에는 애기를 업고도 백운대 등산한 사람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3년 기간은 정성을 다하라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길은 외적인 핍박이 많았습니다. 40평생 하루도 마음 놓고 못 살았습니다. 영계로부터 외부로부터 안팎으로 핍박이 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언제 40고개를 넘나? 세월아 빨리 가거라.’ 하면서 나왔습니다. 40고개를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불쌍한 것으로 연결하여 40평생을 걸어온 것이 복귀의 노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단축시켜 줍니다. 탕감복귀입니다. 3년 기간에 단축됩니다. 3년 기간은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개인, 가정, 민족을 걸어 놓고 싸워야 할 생사의 판가리 노정입니다.

이 3년 기간 행사를 해놓고 좀 안심했습니다. 이 길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어렵게 지내왔는지, 초대에는 영계로부터 시작하여 핍박이 많았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면 사탄이 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늘이 명령하면 사탄 앞에 반격을 받아야 합니다.

핍박하는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영계와 지상간의 삼각적인 반응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극장도 한번 못 가고 종아리도 팔도 못 내놓고 다니고, 세수를 하는 데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했습니다. 그렇게 사탄세계와 격리하여 살았습니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신앙생활을 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어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작년 성혼식 때만 해도 반격이 심했습니다. 승리적인 기반을 얻고 난 다음에는 됩니다. 하늘이 이렇게 했으니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이 3년 동안에 남길 것은, 이 기간은 내 기간이니 조금이라도 보탬 되게 하기 바랍니다. 이 기간을 통과함으로 하늘의 공인받은 여러분을 세워 과거를 중심삼은 현실, 현재를 중심삼은 미래를 세워야 합니다. 미래의 사람도 걸어야 합니다.

금년까지는 내적으로 핍박을 받습니다. 요거 넘으면, 들어오기 힘들 것입니다. 들어오려면 어찌나 시끄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일 모레(7월 4일) 순회 떠납니다. 그 날이 뜻있는 날입니다.

3년 기간의 공적인 순회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릅니다. 이번만이라도 같이 순회하는 심정을 가지도록 하기 바랍니다. 전체를 대신할 때는 특별히 정신 차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간을 정성 다 들이면 여러분 자신이 삽니다. 8일 동안 다녀 올 테니 협회장과 단결하여 기도하면서 지내기를 바랍니다.

<말씀 요지>

이 곳, 부산 범일동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며 뜻길을 출발하였던 곳이기에 한스럽게 생각하면 한스러울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마음을 다 털어 버리고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인내와 신념과 책임감

그런 길을 걸을 때 선생님이 슬퍼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슬퍼하신 것을 아는 고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역대의 충신들이 그들의 부모가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고귀한 피를 흘리며 간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 땅 위에 피와 땀과 눈물을 뿌려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문화의 세계를 이룩해야 할 우리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전통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오늘도 이 뜻을 위해 싸우고 있는 지방 식구들이 부디 쓰러지지만 말았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우리는 민족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나서는 무리가 되어야 하며, 또한 어려움에 처한 현세를 책임지고 나서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선진 문화국이라고 자랑하는 미국도 최하의 자리에 서게 될 수도 있으며, 최하의 권에 있는 우리 민족도 최고의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민족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소망을 품고 현세의 어려움을 견디며 꿋꿋이 나가는 자가 있다면, 비록 외모는 초라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자를 불러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크나큰 하나님의 위업을 인계 받아 나서야 할 자신임을 알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초라한 자리에 있지만, 언젠가는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는 민족이 있다면 이들은 새 문화의 창조자가 될 것입니다.

개인의 일생에 있어서도 어떠한 어려움을 당해도 끝까지 결심을 버리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이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민족적, 종교적, 사상적인 문제에 부딪쳐도 이겨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종교적 혼란과 영적인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도의 길이란, 인생의 종말기에 찾아올 그 무엇을 알고, 현재의 고통을 무시하고 나서는 길입니다. 통일교회에 발을 디딘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1시련 도상인 외적 조건에 수많은 선지들은 쓰러져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넘어 제2시련 도상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날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세상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도의 길을 가는 자들은 외적으로 보아서는 형편없을지라도 외적인 것 가지고 큰소리치는 무리들에게 끝날에 보자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들이 오늘날 세계 사조의 뒷받침이 되어 왔던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런 무리가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 승리할 때, 만민이 추앙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과 나와 세계가 인연을 맺도록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도인들은 하루 이틀이 아닌 일생 동안을 고생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인들은 죽을 때도 그 고생한 길을 탄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손들도 그와 같은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종교의 사명

참이란 무엇이뇨? 시작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 원리라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하여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천주(天宙)의 원수인 사탄을 용납하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를 바라며 나가는 사람이 도인입니다.

그러면 도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도인은 일국(一國)의 주권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천주의 원수를 갚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악의 세계를 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메시아요, 구세주입니다. 이 분은 종말기 이후의 세계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이념은 이 세상의 충, 효, 열 등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내용의 사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독교는 역사적인 모든 비극을 해결하고 6천년간 하나님이 바라셨던 소망의 세계를 이루어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참되도다. 영원히 영원히 영광되리로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싸워야 할 상대는 누구뇨? 일개 국한된 나라의 원수, 한 가정의 원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천주의 원수, 곧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모든 것이 지날 때까지 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기 위해서는 내적인 무장과 외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세계를 확연히 비춰 주는 푯대가 되어야 합니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끊이지 않는 한 우리는 새 세계의 터전과 소망했던 동산과 새로운 나를 그리워하며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어디서부터 부딪쳐 나가야 할 것인가? 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천주 앞에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천주의 원수, 대원수를 처단하기 위해 한 덩어리가 되어 묵묵히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뭉쳤다가 흩어질 때에는 경남 일대를 흔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처음 부산에서 뜻길을 출발할 때, 다른 사람들과 그 모습은 같았으나 내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읍, 면을 맡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해 드린다는 심정을 가지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부딪쳐 이겨야 합니다. 하늘과 땅,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책임져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우리는 힘차게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이 3년 전도기간은 하나님의 뜻이 있어 세운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은 외적으로는 보잘것없고 수많은 사람의 비웃음을 사고 있지만, 앞으로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머리를 숙이는 그런 자리에 여러분을 세워 놓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며 40평생을 살아나온 선생님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였으니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선한 목적을 향해 선한 일을 해 나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시고 선한 입장에 서서 호령할 수 있는 그날까지 입술을 깨물며 참아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도 이제까지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때까지 참고 또 참읍시다. 때가 이를 때까지 고생과 억울함을 참고 나갑시다.

우리는 이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까지 찾아 세워야 할 무리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니 어떠한 곳으로 보낸다 할지라도 끝까지 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의 고비에서 누가 끝까지 남아지느냐가 문제입니다. 끝까지 남는 자가 귀한 자입니다.

여러분은 세 국가 정도는 휘어잡을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배치된다면 여러분은 그 지방의 초병(哨兵)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쓰러지면 전체가 넘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임지에 나가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하의 자리에서 흔들어 최고의 자리에까지 전달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적어도 3년 이상 10년은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상에서 큰 일을 한 사람은 지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국가와 민족을 더 사랑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겉모습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뜻을 위해 충성하는 마음만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밝히는 초가 되라

통일이란 말은 거느려서 하나가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있는 것을 깨뜨려서 깎고 다듬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이 공식 과정은 거쳐야 하는 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을 거치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신념이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임지에 나가서 고생을 하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신념 가운데서 생활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아슬아슬한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일을 할 때에도 그런 아슬아슬한 고비를 잘 넘겨 승리하기를 하늘과 땅과 온 만물은 바라고 있습니다.

투망으로 고기를 잡을 때, 추가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야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추와 같은 입장이니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늘 편으로 이끌어 오고 싶은 마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도의 길을 찾아가는 우리는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소홀할 때 하나님은 슬퍼할 것이고, 우리가 실수할 때 하나님은 비통해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하여 원수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사탄을 굴복시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겠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심정적으로 하나가 되어 결사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렇게 움직일 때 적진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신념 밑에서 움직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은 불이 켜진 초와 같습니다. 폭풍이 부는 이 때, 여러분으로 초를 만들어 불을 켜야 합니다. 하나로 안 되면 두 개, 두 개로 안 되면 세 개, 그 이상을 켜서라도 이 어둠의 세계를 밝혀야 합니다. 사탄은 이 촛불을 끄려고 합니다. 불만 끄려는 것이 아니라 초 자체까지 무너뜨리려 합니다. 여러분은 무너지는 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원한의 사탄세계를 전복시키려고 합니다.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뒤를 따르는 여러분들도 스승 앞에 빚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안심하고 개척지로 내보낼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경남 일대를 뜻 앞에 세우고, 더 나아가 오대양 육대주를 뜻 앞에 세울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수백리 길을 걸어서 이곳에 참석했습니다.

이 민족이 망했던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남루한 옷차림에다 무일푼의 모습일지라도 신념에 있어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뼈가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형편 없으나 내적으로는 무한히 풍성한 우리가 됩시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무리가 아님을 알고, 1대에 뜻을 이루지 못하면 2대, 3대를 세워서라도 이루어야 합니다. 즉 혈통을 세워서라도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신념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요지>

몸의 원수는 일시적인 원수이나 마음의 원수는 영원한 원수입니다. 예수님은 몸의 세계를 물리치고 마음의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심판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종교의 목적은 몸을 정복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에는 몸의 무기는 많으나 마음의 무기는 없습니다. 마음의 무기를 갖추게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 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사람과 땅을 사랑하십니다. 구원의 목적은 사랑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에다 하나님과 온 우주와 사랑을 몽땅 주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몸에 대하여 군왕이고, 마음의 명령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중심하고 땅을 사랑하려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알고, 안 자리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정과 심정을 알려고 했으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것을 가르쳐 주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천번 만번 버릴지라도 하나님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소망의 대상이기에, 그들은 곧 하나님의 최고의 사정과 심정과 소망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그 이상의 사정과 심정과 소망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자유를 줘야 하는데, 자유를 주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위협하면서 인류를 이끌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을 종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만일 종 취급을 하게 되면 달아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협박 공갈로 이끌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도 원수요, 사탄 앞에서도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종으로 세워 나오셨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악해도 자기의 혈통은 사랑하지만 사탄은 자기의 혈통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종도 못 되는 인간을 당신의 종으로 세워 주시려 하신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종의 판도를 넓혀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양자 될 수 있는 구원섭리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낙원밖에 못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심정의 말씀을 하시지 못했던 것은(요 16:12) 그들이 하나님의 양자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을 종의 입장에 세워 축복한 모든 것을 거두어서 양자의 자리에서 출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있을 곳, 먹을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종살이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기간이 3년 공생애 기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직계의 자리까지 끌어올리려 했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양자의 도리만을 세워 나오며 낙원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과 성신이 직계의 자녀를 세우기 위한 터를 닦은 것이 2천 년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양자의 구원섭리권 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재림 예수는 십자가에 죽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가 책임을 못하면 재림주는 또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혼인잔치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양자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직계의 자리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녀를 낳아 세울 때, 그 자녀(기독교 신자)들은 신부의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어 참부부를 이루어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최종 목적은 참부모를 찾아 양자의 자리를 거쳐 직계 자녀의 자리로 나아가 신랑 신부를 이루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목적도 인간을 이런 자리로 이끌어 자기의 대신자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인간을 종에서 양자로, 양자에서 자녀로 끌어올려 그 자리에서 축복받는 기준까지 끌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종으로 세우려면 자신은 종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내준 하나님은 예수보다 더 원통한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심정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영계에서 인간을 찾아올 때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섭리해도 인간이 양자밖에 안 되었는데(4천년 동안 종, 2천년 동안 양자) 단시일에 신부의 입장에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께서 상징과 비유로 가르쳐 주신 것은 인간이 종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정을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역대의 모든 선열로부터 예수까지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뜻을 내 자신이 이루어야 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등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드리고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원래는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남아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대신 그들이 실수한 연유를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돼야 참부모의 대신자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의 대속 없이도 천국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사람을 3년 안에 만들려고 합니다.

선생님도 종의 길에서부터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를 면할 수 있으려면 종의 자리에서 선의 자녀를 낳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양자가 되려면 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종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자녀가 되려면 양자가 있어야 합니다.

선의 부모가 되려면 선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양자 셋을 세워 놓은 후에야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순회가 3년 기간의 공적 순회로는 마지막입니다. 다음에는 순회를 직접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문책하지 않으십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신 본연의 목적은 기쁨과 영광을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원치 않은 슬픔과 곡절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창조의 목적을 이루지 못 하시고 소원으로 남기신 채 수고해 나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가 슬퍼하신 이유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기쁨을 느끼시기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특히 여섯째 날에 지으신 인간은 보다 큰 기쁨을 느끼시기 위해 지으신 실체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역사적인 한으로 남게 되었는가? 누구나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해와의 실수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의 모든 슬픔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간 어느 한때도 기쁨과 영광의 모습으로 계셔 보지 못하시고 사탄과 싸워 오셨습니다. 그렇게 4천년간이나 수고해 오신 하나님께서 소망하던 실체로 오시고 기쁨과 영광을 돌리기 위한 실체로 오신 메시아 예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4천년 역사의 결실체로, 영광과 소망의 실체로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해서는 기쁨과 영광의 실체였으나, 땅에서는 슬픔의 실체가 되어 30여년의 생애를 슬픔으로 보냈습니다.

영광과 기쁨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는 그의 생애에서 즐거움을 드러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예수와 하나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타락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세계가 된 후 4천년을 경과하여 예수를 보냈으나, 그가 다시 슬픈 죽음의 길을 갔으니 하나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제2차로 큰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이 땅 위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가는 예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면목을 세우지 못하는 슬픔보다 영광과 기쁨 속에 계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고 가야 하는 슬픔이 더 컸습니다. 그 말못할 슬픔의 창끝이 예수의 심정을 찔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예수는 실제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느끼기 전에 이미 내적인 십자가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꿈결같이 사라지고 난 뒤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가 간구해야 하는 서글픈 사정을 제자들에게조차 알릴 수 없었던 슬픔, 뒷날 아버지 앞에 슬픔을 남길 것을 염려하는 예수의 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의 발걸음은 최대의 고통스러운 발걸음이었습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고통을, 외적으로는 성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겟세마네 동산까지 가서 엎드려 기도하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가 아버지! 하고 부른 음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책임 못한 자신의 심정과, 미래를 염려하며 애타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부르짖은 호소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한 것은 자기의 고통을 면키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성취 여부가 자기 일신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제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이 난관을 피하여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였습니다.

사정이 있다면 이 이상의 사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적인 수고의 노정을 알면서 아바 아버지여…. 하던 예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처참했고 비통한 심정에 사무쳤음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 투쟁의 노정이 남아지고 구원섭리가 남아지겠기에 그토록 간구하였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생애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도 기쁨은 못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소망과 영광의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예수 앞에 기쁨과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뜻을 남겨 주고 싶었으나 남겨 주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아도 예수는 기쁨과 영광 중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픔과 고난 가운데 태어나서 슬픔과 고난 가운데 살다가 슬픔과 고난 가운데 갔습니다. 올 때에는 슬픔으로 왔을지라도 기쁨과 영광 중에 갔으면 영광의 결실체가 될 것이었는데, 소망과 기쁨으로 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슬픔으로 갔기 때문에 그 뜻이 아직까지 소망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자세

오늘날 우리는 고난의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요셉가정에서 보낸 30년 사생애도 고난의 생활이었으니, 예수는 안팎으로 고난의 생애를 보냈던 것입니다.

12사도와 수많은 무리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를 따라다녔던가? 그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서, 즉 땅에서의 영광을 바라보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니 최후에 가서는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제자들이 예수가 당하는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고통을 알 정도만 되었어도 예수는 자신의 고통을 그들에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도 예수의 고난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영광은 더더욱 모를 수밖에 없지요.

예수에게 있어서 눈 앞에 보이는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예수는 그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대했습니다. 식탁도, 눕는 자리도 소원의 한 날을 고대하며 대했던 것입니다.

끝날에는 여러분들이 과연 예수가 바라는 신부, 혹은 제자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격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2천년 전 예수는 소망의 심정을 말 못한 채 안팎으로 고통을 품고 골고다의 길을 갔습니다. 기쁨과 만족을 품고 간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품고 갔습니다. 예수는 심중의 고통을 이 땅 위에 풀어 놓지 못하고 갔습니다. 영광도 남겨 놓지 못했지만 그 심중의 고통도 남기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래도 성도들은 예수께서 가실 때에 당한 슬픔과 고통을 인계 받기 위해 골고다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바로 그런 길입니다.

아직도 육적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기에 성신이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을 중심삼고 죄악의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한 시기가 와서, 제자들에게 말 못하고 안팎으로 당하셨던 예수의 고통을 끝날의 성도들에게 알리는 것이 예수와 성신의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지 못한 예수를 부르셨다면 한을 품고 부르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는 오늘날까지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신도 역시 이 땅에 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성신 두 분이 인간의 죄를 책임지고 청산하여 기쁨과 영광의 세계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낙원에서 기도하는 예수는 결코 편하지 못합니다. 영광의 아들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는 30여년의 생애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이래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한결같이 십자가의 생활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시여!’ 하는 기도도, 당시뿐만 아니라 낙원에 가 있는 2천년 동안에도 계속해 오셨습니다. 예수가 그러니 성신 또한 그렇지요.

기독교인들은 믿는 날부터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간구합니다. 그것도 땅에서의 기쁨과 영광이 아니라 저나라에서의 기쁨과 영광을 바랍니다. 이렇게 그들은 기쁨과 영광을 누리려고만 할 뿐, 그 배후에 십자가의 노정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오늘 여기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분도 그들처럼 기쁨과 행복과 영광을 요구하지 그 반대의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과 영광은 하나님도 예수도 성신도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명사는 있으나 아직까지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쁨과 영광을 나에게 주시고 슬픔과 고통은 아버지가 가지시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창조 이래 가져 보지 못한 기쁨과 영광을 땅에 있는 인간이 먼저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가질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삼위신이 가져 보지 못한 기쁨과 영광을 우리 인간이 먼저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영광을 상속 받기 전에 십자가를 상속 받아야 하며, 축복된 삶을 상속 받기 전에 죽음을 상속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상속 받아야 할 유업입니다.

천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기쁜 것이고, 예수가 기뻐해야 기쁜 것입니다. 예수가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가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는 기도하시는 예수를 고통 가운데에서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예수가 기도로써 싸워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예수도 성신도 끝날이 어서 오기를 간구하고 계십니다. 십자가를 청산하고 기쁨과 영광의 날을 맞기 위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위치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살이에 있어서 고통이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예수와 성신의 고통이 지나가기 전에는 안 지나갑니다. 아직도 예수 앞에 기쁨의 문은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개인이 고통 가운데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싸우지만, 예수와 성신은 전세계와 영계와 육계를 위하여 싸우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어느 날에나 그칠 것인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예수의 심정입니다. 하지만 책임을 느끼는 예수는 울 수도 없습니다. 따르는 제자와 이스라엘을 뒤에 두고 죽음 길을 가야 했던, 울래야 울 수 없었던 예수의 심정을 누가 알았을고? 고통 가운데 있는 예수를 해방시켜 드리기 전에는 우리에게 영광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믿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자리에서 믿어야 합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믿어도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이나 예수가 왜 아직까지 이러한 자리에 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당시의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처럼 믿을 것입니까?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하며 최후의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으려면 십자가와 생사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자가 많다고 해서 그 전통이 상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전통은,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가 대표하였듯이 소수지만 세계의 기독교인을 대표하여 싸우고 죽고 한 무리들을 통하여 상속되어 왔습니다.

끝까지 견디면 사망 권세와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될 때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기도하지 말고 내 보좌에서 영원무궁토록 살자.’ 하실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첫째는 참부모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참자녀가 있어야 하고, 셋째는 참형제가 있어야 하고, 네째는 참부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 이래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어화둥둥 내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말구유에 누인 예수의 모습을 보고 천군천사가 기뻐서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4천년간 고대하던 하늘의 왕자가 말구유에 눕혀지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자식은 자기 부모의 재산권이 있는 곳에서는 마음대로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아버지께서 지으신 땅 위를 마음대로 걸어 다녔습니까?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뉘어지는 일이 왜 벌어졌겠습니까?

인간시조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모든 인간은 참부모, 참자녀, 참형제, 참부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탄의 부모, 사탄의 자녀, 사탄의 형제가 되고 사탄의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그렇습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면 나침반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타락은 했을망정 나침반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는 모양처럼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도 못 되어 있고 사탄의 자식도 못 되어 있습니다. 천지간에 대원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간부(姦夫)입니다.

아담이 완성했으면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어 하나님의 실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부가 되어 하나가 되었으면 해와는 하나님의 실체를 쓴 부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집 딸을 종 녀석이 겁탈한 것처럼 사탄이 하나님의 딸인 해와를 빼앗아 간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모로 계셔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사탄이 인간과 혈통적인 관계를 맺어 먼저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사탄도 ‘내 새끼다.’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이에는 양심이 있어서 하나님께로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에 대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사탄은 인간에게 늘 공갈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과 혈통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인간에게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자유만 주면 하나님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언제나 인간의 몸뚱이를 붙잡고 ‘가면 죽인다.’라고 협박하며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종도 못 됩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참부모의 참자녀로서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었더라면, 그 인연은 누구도 끊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비록 사탄과 인연맺어졌지만 마음만은 하나님께로 가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연을 맺으면 누구도 끊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탄과 인연맺었으니 그 인연만 끊어 버리면 됩니다.

사탄은 한편으로 인간을 원수같이 취급합니다. 인간은 사탄의 종도 못 됩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역사를 한 때가 구약시대입니다. 여기서 다시 종을 양자로, 양자를 직계 자녀로, 자녀를 형제로, 형제를 신랑 신부로 축복하여 참부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참가정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찾는 것이 복귀입니다. 예수를 참부모의 자리에 등장시키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낙원에 가서도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

사탄의 종도 못 된 존재들을 하나님께서 종으로 삼으셨으니, 타락인간은 그냥 하나님의 종으로 죽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끌어올려 참부모와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하려 하십니다. 이 인연을 맺는 날이 바로 끝날입니다. 혹세무민이 뭔지 압니까? 말세에 천지가 없어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혹세무민하는 자들입니다.

어디에 참자녀, 참형제, 참부부가 있고 또 어디에 참부모의 자리에까지 나아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가정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직계가 됩니다.

예수가 땅에서 뜻을 이루었다면 육적인 골고다도 영적인 골고다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기에 영계에는 영적인 골고다가 있고 지상에는 육적인 골고다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으면 영계에 가서 또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시험을 거쳐야 해요. 영계에서는 낙원이 최일선이고, 땅에서는 여러분의 몸뚱이가 최일선입니다.

복귀의 길은 평탄할 수가 없습니다. 1대, 2대, 3대를 거치면 더욱 가중 됩니다. 여러분은 6천년 역사의 혈통적 죄의 총합실체입니다. 6천년 죄악사의 전시품입니다. 여러분의 세포 하나 하나에는 6천년의 죄가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풀기 위해서 역사적인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30년간의 준비생활에서 무엇을 했는가? 역사적인 죄를 회개했습니다. 역사적인 실수, 역사적인 암이 되었던 모든 것들을 회개하고 풀어야 역사적인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성전의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예수의 회개의 공으로 성도들이 들리워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시대적인 죄를 회개했습니다. 유대교 성전을 중심삼고 이루어 놓은 제단이 이스라엘이라 할 때 시대적인 죄의 회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을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여 그들의 죄를 책임졌습니다. 그 다음은 미래적인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야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적이며 시대적인 죄를 청산하기 위해 회개했고, 미래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가 어디로 갔는가? 죽음을 당함으로 그의 역사적인 회개의 공적과, 시대적인 회개의 공적과, 미래를 위한 싸움의 공적까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부활 후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낙원에 가서 다시 역사적, 시대적, 미래적인 죄까지 청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 기도하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십자가를 지고 간 예수는 영적인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당신께서 쫓아내고 싶어하시는 사탄과 죄를 제가 쫓아내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인의 죄, 노아 가정의 죄, 모세의 실수 등, 이 모든 역사적인 죄를 예수가 30년 생애에 걸쳐 회개했는데, 그것이 다시 저끄러졌으니 그것을 회개해야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선조들을 대하여 ‘이놈들이….’ 해도 그들이 ‘예, 옳습니다.’ 할 수 있어야 아담 대신, 노아 대신, 모세 대신 살아남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흘린 땀과 눈물과 피는 그 시간이나 그 일대뿐만 아니라 4천년 역사와 온 세계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어찌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어린 기도를 하고 낙원에 가서까지도 기도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심정까지 알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광과 기쁨의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천국은 날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의 길을 거쳐서 가는 것입니다. 세계사를 보십시오. 종교사는 밑창에서부터 올라가고 세계사는 상류계급에서 하류계급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서로 올라가고 내려오다가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 땅의 사람들에겐 역사적인 십자가의 역사가 벌어지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역사적인 회개를 하려면 창조 당시의 영광의 세계에서부터 출발하여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부활체, 실수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간 노아의 부활체, 승리한 아브라함의 가치, 목적을 완성한 모세의 실체, 이상적 완성 실체인 예수를 기준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끝날의 성도가 거쳐야 할 3일 3년 30년 노정

예수는 4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 역사적인 고통과 시대적인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적인 고통까지 제거하여 행복의 문을 개방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심정을 알려주어서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심정을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어 보아야 예수의 심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든 제자들과 이별한 입장에 섰었던 예수와 똑같이 어려운 자리에서, 그와 같은 어려운 고비를 극복함으로써 그것들을 모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모든 십자가를 거쳐 참부모의 가치를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죄악과 관계없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만일에 12제자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는 제자들 대신 졸지 않고 예수와 함께 통곡하고 함께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가 부활할 때 함께 부활하였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성신 강림도 필요 없지요. 땅 위에서 그런 기준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끝날의 심판은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와 십자가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졸지 말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겟세마네 동산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필코 가야 할 길이 있으니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천당 가는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현재는 하나님도 마음껏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천당입니다.

여러분은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상에서 아버지를 부르던 예수의 대신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십자가로 갔으니 십자가로 오게 됩니다. 부활을 거치기 전에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죽지 않고 살아서 가야만 합니다.

선생님은 예수가 십자가를 질 때 함께 지지 못한 제자들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에게 그 길을 가게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의 3년 공생애와 같은 길을 걷고, 30년 준비생활과 같은 길을 걸어 예수가 탄생했던 위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모세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을 수습했듯이, 예수를 중심삼고 전세계를 수습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끝날에는 예수가 다시 와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수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3년 전도 기간에 그러한 입장을 대신해야 합니다.

예수는 30년 준비의 생애를 지내고, 3년 공생애를 거치고, 무덤 속에서 3일을 거쳤습니다. 여러분은 반대의 경로로 3일, 3년, 30년을 거쳐야 비로소 ‘재생된 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3년노정에는 3일노정도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길을 모두 지나 승리를 거두어야 영광과 기쁨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요지> 여러분은 그동안 원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는 122명이 모였는데, 수는 적어도 여러분 각 개인은 모두가 역사적인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원리에서 피조만상과 잘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선을 바라보고 살아왔다는 과거의 생활 가운데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습니까? 혹 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교회에 들어온 연수에 따라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주 앞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나타날 수 있느냐를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의 ‘나’는 잊어버려야 할 모습임에 분명합니다.

자기와 자기의 위치를 돌아봐야 할 때

40일 수련에 들어와서 여러분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곳, 본부의 스승들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또는 ‘오늘 이 자리를 떠나면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많은 탕감의 운명 길을 가는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를. 기쁨이나 영광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와 현세를 바라볼 때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하며,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살아 나가야 할 것인가?

과거의 선열들이나 또 오늘날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더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두가 무엇을 위하여 생을 살았으며 또 살고 있는가? 죄악의 세상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가오는 세계를 위해서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의 대가로 오늘 이 세계의 어떤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자 할 것인가? 목적도 모르고 허덕이다 쓰러지는 사람과 인연맺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뜻을 세워 형제와 인류를 위해, 그리고 창조주의 뜻을 위해 희생하는 무리와 인연맺으려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인류는 결과적으로 악을 남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일신은 망하더라도 새로운 무리들 앞에 상속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조들이 남기고 간 역사적인 죄를 탕감하고, 순교한 선열들이 핏자국을 남기고 간 데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악의 역사를 등지고 새로운 선의 이념을 갖는 것은 하나님과 모든 선조들과 인류 모두가 바라 온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죽음의 역사를 이을 것이 아니라, 선을 위해 억울하고 분한 역사를 걸어 나온 선조들의 희생의 터전을 상속 받아야 하는 엄숙한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자를 박차고 후자를 택하겠다는 맹세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가인과 아벨, 하늘 편과 사탄 편이 대결하여 왔습니다. 인류역사는 결과적으로 선과 악이 대결하며 엮어 내려온 것입니다. 악은 자기를 감추거나 드러내놓고 항상 선을 쳤고, 선은 맞으며 내려왔던 것입니다. 우리 삼천만 민족을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 가운데에도 남이 모르는 희생의 길을 걷고 있는 무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악의 조건을 남기는 무리가 되지 말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후대에 남아질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리(天理)에 입각한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오관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눈은 투쟁의 역사에 있어서 원수 사탄을 바라보고 나오시던 하나님의 공분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손은 역사적인 선열들, 즉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와 예수와 같은 감각을 가진 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역사노정과는 달리 새로운 것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앞길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계를 하는 데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말이나 몸으로 인계하기는 쉬우나 심정으로 인계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말을 분담한 사람도 있고, 그보다 더 어려운 몸을 분담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어떠한 희생도 무릅쓰고 역사에 남을 심정의 노정을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죽으면서도 후손들에게 이 심정을 인계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을 실감치 못하면 여러분의 갈 길은 막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상속받고 인계해 주어야 할 것

여러분, 단단히 명심하십시오. ‘나는 역사의 인연을 상속 받았노라.’ 하며 역사적인 인연을 대신한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행동해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눕는 것, 이 모든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처량한 것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건설의 길을 가는 무리임을 자부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투쟁의 노정을 걸어 나오는 동안 영어(囹圄)살이도 해보았습니다. 인생길을 열어 주는 스승과 지도자를 가진 여러분은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무리 처량하고 어려운 자리에 처하더라도 여러분은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어려운 고비를 넘어갈 때면 ‘선열들이여! 나의 이 어려움이 당신들의 어려움에 비해 어느 정도입니까? 어느 정도 남길 수 있는 것입니까?’ 하며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선조들은 흔들렸어도 하나님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조들은 배반하고 돌아섰지만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에서 전통을 세우셨습니다.

한편 우리의 선열들은 악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사탄과 대결하여 선의 역사를 이어 나왔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느 한때 총공격 총진군의 명령이 내려질 것입니다. 여러분 일대에 이 악한 세계를 무찌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는 때때로 동요되었지만 우리의 선열들이 닦은 천륜의 실적은 오늘 이 시대에까지 섭리의 역사를 이어 나왔습니다.

육신을 중심한 이 세상은 가면 갈수록 불안과 공포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 풍조를 거슬러 올라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역사를 남겨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잊어야 할 역사였으나 이제부터의 역사는 새로운 역사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개인의 역사, 가정의 역사, 사회의 역사, 종족의 역사, 민족의 역사, 세계의 역사와 하늘땅의 역사를 다 내포한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세계는 여러분이 죽고 난 다음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때에 다 이루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초대교회 시대에 그 기반이 닦여졌습니다. 새로운 역사도 우리가 가고 난 몇만 년 후에 이루어지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천추만대 후손들에게 남길 이상세계의 재료입니다.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선생님의 계획은 몇 대 후에 가서가 아니라 우리 1대에, 죽기 전에 초석을 바로 놓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고 새 역사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야말로 천추만대에 추모하고 따를 수 있는 본보기로서 새 세계의 역사를 전개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비참한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이 새로운 사명은 누가 짊어져야 할 것인가? 우리가 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이 끝나면 일단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출발에서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생활과 말과 느끼는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후손들이 본받고 추모할 수 있는 역사를 남겨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새 세계를 창조함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손, 발, 이목구비 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입는 것, 일하는 것도 전부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천지를 위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정으로 돌아가서 반대하는 부모를 보면 동정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동정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한이 얼마나 크게 서려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싸우다 쓰러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이는 사탄은 물론이고 저 영계까지 진격하여 보이지 않는 사탄까지 무찌르겠다는 목표 아래 총진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나는 이러했고 오늘의 나는 이러하니 이제부터는 이러한 내가 되어야겠다는 확실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20대에는 무엇을 남기고, 죽을 때에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남기는 데는 얼마만큼 가치 있는 것을 남길 것인가?

주기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오직 소망 하나를 중심삼고 처참한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내려오셨습니다. 눈물어린 슬픔의 노정, 땀 흘리는 슬픔의 노정, 피흘리는 슬픔의 노정을 거쳐오셨습니다. 물론 역사상에는 인격자들도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가치를 무한히 나타내실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처참한 길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왔다 간 인격자들보다 못할지도 모르고, 또한 하나님을 영원히 따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오직 한 가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는 슬펐지만 이제부터는 슬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무엇을 찾기 위하여 희생의 길과 슬픔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무엇을 주기 위해 희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나를 중심삼고 살아왔으나 이제부터는 나를 무한한 가치 앞에 흡수시키고 또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슬픈 역사를 상속 받았습니다. 죽은 제물에서부터 시작하여 산 제물이 되기까지 나아왔습니다. 하나님도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슬픈 역사의 패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소망의 때를 찾았으니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 눈물 흘리고, 산 제물이 되었으니 만물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되 역사상에 왔다간 선조들처럼 비참한 눈물을 흘려선 안 됩니다. 차지하기 위한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됩니다. 주기 위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참부모, 참부부, 참실체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신의 실체, 자신의 혈통, 자신의 심정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찾아 세우기 위한 기도를 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다릅니다. 주기 위한 기도와 주기 위한 생활을 할 것입니다. 과거에 차지하기 위해 흘린 눈물과 피와 땀은 이제 모두 주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의 한 때를 바라면서 주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새 역사 노정은 주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눈은 통일교인 전체를 대신한 눈이 되어야 하고 선생님을 대신한 눈이 되어야 합니다. 입도 전체를 대신하고 천지를 대신한 공적인 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역사적인 슬픔을 안고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어선 안 됩니다.

여러분의 눈물은 예수 때의 눈물과 달라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말고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또한 감사의 땀과 감사의 피를 흘려야 합니다.

오늘은 아무도 이 길을 가는 여러분을 높여 주지 않더라도 후손들은 반드시 손을 들어 여러분을 추모할 것입니다. 예수가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고 통곡했더라도 때가 되면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최고의 공적인 마음을 갖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이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 사망선상에서 울부짖는 저들을 누가 건질 것이냐? 많은 지식을 갖추고 훌륭한 학문을 갖춘 자라고 해서 저들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을 위해 참다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참다운 심정을 심어 주며 참다운 실체를 갖다 줄 자가 바로 저들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고 난 후에도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힐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참다운 실체로서, 선봉자로서 살아야 하고,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후대 자손들이 슬픔의 통곡을 하지 않고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이 세계가 이상세계가 되고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요지>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더 큰 소망과 욕망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고, 또 그것이 만인이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에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가진 소망에는 만족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 이상의 것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족할 수 있는 곳, 이상 하는 곳, 소망하는 곳, 목적하는 곳, 행복한 곳은 어디 있을 것인가? 인간의 양심은 모두 다 최고의 이상향(理想鄕)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한 인간입니다. 이 천지간에 그러한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행복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인류는 그러한 세계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흠모하는 최고의 이상향을 동경하며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향은 몇천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 철학자들, 문인들이 동경하던 곳입니다. 역사상 모든 인간들은 그 곳을 향하여 가는 데 있어 직접 간접으로 보탬이 되기 위해 왔다 간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항시 그러한 곳을 찾고 있으되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인간은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 대답은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여기는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인가 찾기 위하여 왔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상향에서의 사람들의 인격은 영원불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격은 오늘날까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사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옛날의 사람들이나 오늘날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찾고 있는 인격자, 흑인도 백인도 다함께 찾고 있는 인격자, 오늘날의 지도자요, 천년 만년 후에도 지도자일 수 있는 인격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만일 그런 인격자가 있다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붙들고 ‘나는 너를 놓고는 못 살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이러한 인격자를 찾아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인류는 이러한 인격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한 인격자와 나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겠느냐? 그러한 분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찾아가는 길이 도(道)의 길입니다.

종교에는 개인을 위하는 관도 있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하는 관도 있고, 하나님과 하나 되자는 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설 수 없다는 그런 인격자가 나와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한 분을 찾아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주의시대가 아니라 사상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는 어떠한 세계가 될 것이냐? 앞으로의 시대는 하나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 세계의 주인공이 메시아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그러한 중심이 나와야만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와 세계가 올 텐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세계관과 이념에 따라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한 주인, 한 인격자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인격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 한 분은 개인만을, 가족만을, 국가만을 위하는 분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하나님을 위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과 천주를 중심삼고 사는 생활관, 즉 우리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준을 위하여 사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분을 찾은 곳이 인간의 종착지입니다.

우리는 이제 전체에 이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다 할진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류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인 것입니다. 몸은 가정에서 생활을 하되 심정은 하나님을 위하고 하늘과 땅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하나님과 하늘땅, 인류를 위하여 살라고 하는 종교라야 끝날에 남을 수 있는 종교입니다. 현세계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중심존재, 하늘땅 인류를 위하여 싸우는 중심존재가 요구되는 세계이니, 지금이 바로 끝날인 것입니다.

중심존재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출발하는 분이 아니라 절대자의 본질을 중심으로 출발하는 분입니다. 오늘과 같은 종말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떤 주의나 사상이 아니라 절대자를 통하여 나온 참인간입니다.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은 이 땅 위에 있는 주의나 사상에서 나온 인물이 아니라 절대자와 인연을 맺고 나온 분입니다.

끝날에는 공포의 시기, 즉 심판기가 닥칠 것입니다. 절대자의 인격을 중심하여 하나의 민족과 세계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민족이, 그리고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할 주인공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이 현현하시는 때가 말세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그때가 오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런 세계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보다 큰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은혜로운 삶입니다. 역사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개인, 가정, 민족, 국가를 위하는 것은 다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세계적인 표준 존재에게 접붙여 주십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기준을 바라보고 사는 여러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기를 버려야 됩니다. 가정과 종족과 민족을 위해서, 나아가 세계를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행복을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위해 주고도 또 위해 주고 싶고, 말을 하고 또 해도 또 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10년이 걸려야 갈 수 있는 길은 5년 걸려 갈 수 있는 길이 나오면 없어져야 합니다. 1년, 몇 달, 며칠이 걸리는 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그러한 세계를 원합니다. 그런데 몸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그 세계를 찾아 이루기 위하여 너 몸은 지금껏 무엇을 하였으며 어디에 있었느냐 하고 재촉을 합니다. 몸은 마음에 대하여 위선자와 반역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이 땅 위에 심판이 있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구나 양심은 더 빨리 그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우리를 몰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하나님이 보내실 인격자는 어떠한 분이며, 그분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보내신 중심존재가 이 땅에 나타나야 기쁨의 날이 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분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슬픔의 역사가 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그 중심인물을, 하나님을 중심한 하늘땅과 세계를, 그리고 인류를 모두 상실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 중심존재는 전체의 중심으로 오시기 때문에, 그분만 찾아 모시게 되면 역사적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됩니다.

<말씀 요지> 대원들끼리는 삼위기대를 이루어 서로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도록 하기 바랍니다. 대원들이 상봉하는 곳은 성별하고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부근을 지나는 식구들이 왕래시에 들러서 기도하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별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성지를 편답(遍踏)하는 관습을 기르도록 하기 바랍니다.

만물의 가치에 대한 자극으로 인하여 자기의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쓰러진 것은 축복받은 것에 대한 애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음력 8월 이내에 성지 성별을 완료해야 합니다. 대원이 없는 곳도 성별해 두고 성별한 곳을 사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사방 8자 이상의 땅을 오전 0시 30분에 성별합니다. 음력 9월 10일(일자를 변경하심) 이내로 각 지방의 성지를 결정하고 성별하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시체를 성별한 땅에 묻어 주기를 원한 것같이, 과거에는 성염을 외부에 뿌릴 수 없었습니다.

3년노정은 선생님이 민족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천적인 기반을 닦는 기간입니다.

식구들은 이것을 위해 협조해야 됩니다. 이 3년 기간은 고충이 많은 기간입니다. 이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식구들에게는 가정복귀의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이 조건으로 인하여 종족복귀의 혜택권 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축복받은 식구들은 선생님이 세계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후원을 해야 합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지역장, 지구장이 세계적 개척자로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세계적인 사명을 하고 나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식구들은 민족적인 복귀의 길을 걷는 동시에 선생님이 세계적인 복귀의 기준을 세우는 데 협조해야 합니다.

3년 기간이 끝난 후에 여러분은 각자가 자기의 종족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런 시대가 옵니다. 이렇게 해서 복귀된 종족이 합하면 민족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 3년 기간에 신앙의 자녀를 가진 자는 세계적인 기준을 갖게 됩니다.

선생님을 후원하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선생님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축복 받으려면 자기 3대가 소유한 것을 바쳐 가지고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혼도 이러한 3대의 후원을 받은 터 위에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후원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린 제물은 곰팡이가 슬어도 성물(聖物)입니다. 축복받은 가정은 제물입니다. 그러므로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이삭이 불평을 했더라면 제물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상속할 수 있는 자녀를 만들어 놓아야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우리의 선조들은 심정적인 인연이 3분의 1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혈통적인 인연도 맺어져 있기 때문에 실체를 세우기가 용이합니다.

축복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36가정 한 가정에 가인형과 아벨형을 세우면 72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표시하면 형선(型線)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에 있어서도 심령이 낮은 사람은 단번에 A에서 B로 올라갈 수 없으므로 A에서 A’, A”, A’’’…로 연(沿)하여 B’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A, A’, A"…의 단계를 거쳐서 올라가야 합니다. 아벨을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은 심정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심정 통일은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일부러라도 고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고생의 길은 하나님도 사탄도 참소하지 못합니다.

불쌍한 사람들의 동정을 받는 자라야 공고한 지도자가 됩니다. 공산주의 세계도 죽도록 고생하는 세계이기에 하나님이 벌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든가, 식구들이 동정하는 사람이 되든가, 만물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든가, 세 가지 중 하나는 되어야 합니다.

집회를 인도할 때 가장 비참한 사람의 입장에서 말씀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순회할 때도 제일 안 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순회사를 강화하여 면은 물론 리까지 하루씩이라도 돌아가며 순회해야 합니다. 3년 안에는 선생님이 선포한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축복에 대한 식구들의 심정이 부족합니다. 선생님이 종족(宗族)을 택한 것은 그들에게 민족적인 사명을 맡기고 선생님은 세계 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함입니다.

3년 기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의 기준을 넘어야 합니다. 금년에 72쌍을 결혼시킨 것은 무리였습니다. 몇 쌍밖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하나님 편의 자녀로 메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골짜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식구들로 메워야 하니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두 죽여서 메울 수 없으니 팔다리 하나씩이라도 잘라서 메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희생해야 합니다.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먼저 희생되어 나갔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말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낮잠을 자 본 일이 없습니다. 종일 정좌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천적인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서라도 세워야 합니다. 자신이 세우지 못하면 자식을 세워서라도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종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일해 주고 가는 것이 종입니다. 나를 증거만 하는 사람은 종의 입장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고약하다는 입장에서 일하게 되면 깨지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도 깨지고, 그런 민족도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했기 때문에 그 민족이 책임 못 할 때 치셨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전후로는 이념을, 좌우로는 축복받은 형제를, 위로는 민족을, 아래로는 개인을 찾는 종족(宗族)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추궁당할 때가 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선서한 후에 축복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축복했으니 이제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축복받은 자 중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뜻을 받드는 사람이 있으면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사명을 맡긴 할머니들에게는 직접 간섭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생활을 그대로 밟으면 안 됩니다. 극장도 마음대로 못 가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신령한 시대가 옵니다.

타락 전과 후는 무엇이 다른가? 심정이 다릅니다. 심정을 동반한 이념, 심정을 동반한 몸이 있어야 합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재정비기가 옵니다. 아이들도 다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눈과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말을 남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선생님을 중심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상징적인 축복과 형상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은 변하지 않지만 여러분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문 씨를 동정하지 않아요. 잘못되면 선조까지 걸려들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하룻밤에도 삼천리를 돌아다닙니다. 선생님은 할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탄들이 무엇을 보고 두려워할 것인가? 전에는 천사를 대동하고 다닌 때도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명령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다. 하늘의 혈통을 유린할 자는 없다. 하늘 대한 심정을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우리는 꼭 지켜야 합니다.

이제부터 셋이 합하여야 합니다. 자식이 없으면 양자라도 세워야 합니다. 앞으로는 집단생활을 해야 합니다.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회를 떠나 공적인 입장에 서면 아기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새 역사의 창조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형무소 안에서 입던 옷을 잃은 것이 분합니다.

여러분은 자식을 붙들고 유언할 수 있는 무슨 재료가 있습니까? 자식에겐 거짓말을 못하니 내적 생활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각자가 못하면 내가 하려 합니다.

선생님은 어느 한 순간에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면 심각해집니다. 제한된 기간에 남은 사명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

<말씀 요지>

마음으로는 찾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찾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 현재의 인간의 입장입니다. 우리는 무한히 잃어버린 사람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찾기를 원하는가’라고 자문해 보면 막연할 것입니다. 양심이 동경하는 인격은 시대에 따라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메시아 사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이러한 인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격을 갖추게 될 때 스스로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 인격자가 나와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인격자를 보내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이 만들어서라도 그러한 인격자를 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온다면 하나님도 기뻐할 것이요, 편히 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목적도 그러한 사람일 것입니다.

인류는 본래의 이상의 나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는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 이것을 알고 나서 ‘본래의 나’를 찾아야 합니다. 종교는 이것을 찾기 위한 방편입니다.

누구든지 이 인격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분(메시아)과 비교하여 미달되면 그만큼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의 세계가 온다면 이를 통치할 수 있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이십니다.

여러분은 표준형의 인물이 섬기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주체와 인연을 맺고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참다운 인격자는 자기의 가정, 사회, 국가만을 위해 사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늘과 땅을 위해서 사는 분입니다. 이 인류와 땅을 지배하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활은 가정생활을 하되 심정은 천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고자 하는 생각의 단계를 지나 하나님을 위해 사는 실천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인격자는 절대자를 통하여 나옵니다. 양심이 절대적인 주체와 상대기준을 세워 주고 받을 때 행복해집니다.

심판 때는 하나의 세계가 새로이 나타나며 모든 민족이 그 세계를 위해 필요한 때입니다. 그때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끝날에는 세계를 지배할 주인공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 이 주인공을 세운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끝날인 이때에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하여 여러분은 여기에 온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선한 가정이 굶주리고, 선한 국가가 굶주리는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나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위하고도 또 위하고 싶고, 섬기고도 또 섬기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10년 걸려 갈 길을 5년 걸려 갈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합니다. 양심은 몸을 쳐서라도 10년에 갈 길을 10시간에 가도록 몰아냅니다. 양심은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은 나보다도 선을 행하는 사람 앞에 머리를 숙이게 합니다.

<말씀 요지>

축복받은 자는 세계 앞에 아벨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바칠 때에는 누구보다 더 정성을 들여 바쳐야 합니다.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도피처를 구해 주기 위함입니다. 죽지 말고 고생해야 합니다.

장 권사 말을 들으면 부끄럽습니다. 그보다 더한 식구를 축복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72가정을 축복해 준 것은 뜻 위해 욕먹은 기준이라도 있기 때문에 해준 것입니다. 뜻을 위하는 것은 서러워도 기쁘지만, 자기를 중심한 것은 기뻐도 서러운 것입니다.

선생님이 유언하고 싶은 것은 고생하라는 것뿐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탐 보낼 때는 제일 우수한 대표자를 보냈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똑똑한 자를 이북에 보내려 합니다.

다섯을 맞을 사람이 열을 맞으면 그 다섯은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희생하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받은 가정 때문에 다른 식구가 할 말을 못 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가정들은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민족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심정적인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6백만이 죽었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 길은 선생님이 생사를 각오하고 찾아 세운 길입니다. 인간을 중심한 욕망에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는 한 민족에 세 쌍 이상 세워야 할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심정적인 족장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연히 죽은 줄 압니까! 선생님은 아픈 몸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플러스될 사람은 절대 안 죽습니다, 탕감조건에 걸린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축복받은 사람이 말씀을 들을 때는 사탄에 대한 분한 마음이 치밀어 올라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무 데나 앉으려 합니다. 선생님이 깨끗한 곳에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습니까?

예진이를 사랑하지만 예진이를 버리고 떠나야 할 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 이삭은 반항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훌륭한 것입니다. 효자에게 두 번 세 번 권고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도 노아에게 한 번만 말했습니다.

사건을 많이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감당하지 못할 것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다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서울에 있는 식구들은 선생님이 지방에서 한 말씀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여러분은 이제 각자 자신의 고향 산천을 향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내보내는 교회측이나 하늘 편이 떠나는 여러분보다 더 걱정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여러분이 실수하면, 여러분 개인의 실수가 민족과 천주 앞에 범죄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처음에 결심한 대로 역사적인 공적 앞에 보람된 여러분이 되어 주기 바랍니다.

수고와 완성과 가치

금년의 표어가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지금까지 들은 말씀이나 확고한 결심이 차차 희박해질지 모릅니다. 뜻 대한 심정이 희미해질 때는 언제나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고 결심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것은 다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참다운 세계, 참다운 국가, 참다운 가정을 잃어버렸으니 다시 찾아야 합니다.

봄철이 되면 동천에 떠오르는 햇볕도 더욱 따사로움을 더해주고, 만물도 땅 속 깊이에서 각기 자기 존재의 가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준비하고, 새로운 천지에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자기의 완성된 모습은 완성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느냐에 따라서 노력하고 수고한 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년이 지나면 일년 치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도, 혹은 아카시아나무, 싸리나무, 소나무 등의 나무들도 어느 기간이 지나면 그만큼 성장하여 각각 창조주의 요구에 보답을 합니다.

이 수련회에서 여러분은 수련생활을 통해 여러분이 얼마나 가치적인 존재인가 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을 얼마만큼 흡수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심중에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봄철같이 생생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에 여러분은 봄의 진액을 얼마만큼 흡수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은 무엇을 얼마만큼 흡수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발은 추수철에 무엇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습니까? 오장육부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지는 어떠한 책임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여러분은 배후의 영원한 세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으며 자랑할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과 여러분의 발은 무엇을 자랑하기 위하여 이러한 인연 가운데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인연을 피하여 멀리 떠난다 하더라도 이 인연은 여러분을 선하다 혹은 악하다 할 것입니다. 어떠한 인연 가운데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총동원되어 있고, 우리의 생명과 심장 또한 그러한 인연 가운데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가 쉬더라도 우주의 모든 것은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이러한 인연 가운데 세우시고 이 인연을 중심한 하나의 가치적인 결실체가 되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언제까지 이 인연 가운데 있어야 하느냐? 지금까지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해 왔습니까? 여러분의 가치는 얼마나 시시합니까? 나 하나의 배부름을 위하여 살던 여러분! 인간은 본래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그렇듯 껄렁껄렁한 자신을 자랑하려 했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하여 지음받았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가치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표 밑에서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겠노라 결심하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손은 과거에 무엇을 했던고? 그리고 발이며 몸뚱이는 무엇을 했던고? 생각하면 이 몸뚱이 어느것 하나 내놓기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모두 매장해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났든 못났든 그것이 다 나의 모습입니다. 이 고깃덩어리를 위해서 사탄의 새끼를 낳고 사탄세계의 생활을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하여 몰가치한 나로서 살아온 것입니다.

무엇을 보여 주고 자랑할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여러분의 손과 발, 그리고 입과 눈, 코는 이제 다 옛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멋진 투사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 자기 마을에 돌아가 멋진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제 끝날인 이 시대에는 선한 이념의 세계와 악한 이념의 세계가 부딪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나타내지 않은 생명력을 나타내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선을 위해서는 맞아도 좋습니다. 그러니 우선 남이 나쁘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짊어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는 투사가 됩시다.

여러분은 옛날의 썩은 나를 버리고 자유로운 천지에 가서 반석 같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먼저 자기의 환경을 정비하고 난 다음 부락을 선도하고 면을 선도하여 나가면서 진짜 활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하나의 뜻을 위해 투쟁하려면 기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봄빛을 나타내어 새로이 자랑할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죽은 나를 버리고 새로운 투사로서 출발해야 합니다. 세계 인류 앞에 노력과 투쟁의 실적을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나로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늘과 땅, 사람이 어떠한 역사를 거쳐왔는지 압니까? 하늘도 땅도 무한한 슬픔 가운데에서 허덕여 나왔고, 또한 인류도 사망의 골짜기에서 허덕여 나왔습니다.

이렇게 만든 철천지 원수가 있습니다. 그 원수가 국가, 가정, 아니 나의 세포까지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수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꽃다운 청춘 시절과 젊은 시절을 다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배후에는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소망의 한 자체를 만들기 위하여 길을 예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 하나를 중심삼고 상하가 있고 전후가 있고, 좌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나’가 본연의 자리에 서 있지 못한 연고로 하늘과 땅이 울어 왔던 것입니다. ‘나’는 천지의 인연을 통해 있는 존재이며 이 천지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천지를 통하여 ‘나’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이 갈라져서 된 천지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 전체를 보여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보여 주고 땅을 보여 주는 ‘나’가 됨으로써 사탄 앞에 조롱받지 않게 될 때, 자연히 존엄한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보여 주는 ‘나’, 하나님을 대신 자랑하는 ‘나’, 그렇게 가치 있는 ‘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보여 주고 싶어하고 땅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지의 심정적인 인연으로 지어진 ‘나’입니다. 하늘도 땅도 ‘오냐, 내 아들딸아!’ 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 앞에 자랑하고 싶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또한 하늘과 땅을 자랑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를 보여 주고 싶다.’고 해야 합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전후관계가 없으므로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합니다. 살 방법을 모릅니다. 말할 줄도 모릅니다. 배운 것은 모두 사탄에게 배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비관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부모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천지의 부모, 상하 전후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앞에서 이끌어 주시고 어머니는 뒤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이것은 심정적인 인연권 내에서만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슬퍼할 때 부모도 슬퍼하시게 되고, 내가 외로울 때 부모도 외로워하시게 됩니다. 내가 외로울 때, 충성과 효도를 다하기 위해 고생할 때, 부모를 부르면 천지의 부모는 동하시게 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라도 그 부락을 위해, 그 지역과 그 민족을 위해 선을 소개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참부모를 찾아 모시는 것이 목적이니, 영원한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끈기 있게 찾아 주신 전통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충성하기 위해 살면 그 사람은 곧 부모의 피 살을 대신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과 생활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는 참부모를 보여 주기 위한 존재입니다.

부모와 형제를 찾아야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 즉 형제를 찾아야 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부모가 하나되지 못하면 하늘땅이 하나되지 못합니다.

타락은 동생을 죽음의 길로 집어넣고 나는 살 길로 가겠다고 한 데서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면에서 볼 때 형제 둘 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벨적인 존재로서 가인을 감복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슬기로운 투쟁으로 좌우를 수습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가 자랑할 수 있는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를 대신 보여 줄 수 있어야 형제의 길을 출발할 수 있습니다. 나를 중심삼고 구형(球形)으로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서야 본연의 기준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하 전후 좌우를 움직여 하늘땅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오시는 주님은 참형님으로서 동생의 고생을 대신 지겠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하늘적인 가인의 입장에서 동생의 어려움과 고통을 내 것으로 하고 축복은 동생의 것으로 하겠다는 형님의 입장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또한 부부의 심정,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메시아이니 모든 것을 그분과 의논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모두가 그러한 존재가 되어 부족함이 없는 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말씀 요지>

앞으로 3년 이상 된 식구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을 줄 것입니다. 그냥 두면 선생님과 관계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시대가 끝난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시대가 끝나면 가나안 복귀를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년 광야 기간 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요, 전인류의 세계요, 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날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정자들의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려면 광야노정에서 자기의 일신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적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밀려 나가 쓰러진 것이 광야에서 당한 죽음입니다.

축복의 땅 가나안을 그리워해야 할 우리

우리는 축복의 땅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야곱도 죽거든 자기의 고향에다 묻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도 모르게 축복의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우리도 축복받을 때까지는 투쟁해야 합니다. 지금의 때는 어떠한 신념과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광야시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축복의 땅을 밟기 위하여는 세계적인 이념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적인 주권과 싸워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제1이스라엘과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가 완전히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인 기반을 닦았느냐? 그러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결정적인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대심판입니다.

오늘날 30억 인류는 사탄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모두가 한 사람에게로 다리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에게는 택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나라,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승리적인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를 당대에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고역 400년 동안에 한 사람씩 하늘 편으로 넘겼어야 했습니다. 요셉이 30세에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요셉 편이 많았으면 고역살이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총리대신 격이 되어 하늘의 모사(謀事)로 기반을 닦았어야 했던 것인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애급 고역자들을 대신하여 싸워 나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분의 지도자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40년 동안 바로 궁중에서 역사한 모세의 사명과 그리스도의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이 땅에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 것인가? 그분은 살되 개인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늘의 성도와 더불어 살고, 소망의 땅과 더불어 사실 것입니다. 이 사탄세계에서 그렇게 사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그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영적으로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이 사명을 개인, 가정, 민족을 거쳐서 국가적으로 해야 합니다. 12지파로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7족을 벌벌 떨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싸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 다음 그들을 원수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종의 자리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모세 시대와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죄로 이스라엘 민족 6백만이 죽었습니다. 이제 또 잘못하면 6천만이 죽습니다.

광야에서 2세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노인은 지쳐서 다 죽었을 것입니다. 택함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예배나 제사만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주주의적 이념을 품고 일하시는 것처럼 천주적인 이념을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도 그러한 이념 없이 교파적으로 살면 망합니다.

기어이 가야 할 길

그러면 앞으로 남아지는 민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습관적인 생활의 이념이나 상습적인 구약시대의 이념을 가지고 그대로 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혁신을 해야 합니다. 사탄세계 안에서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으로 하나님의 이념을 중심삼고 투쟁해야 합니다. 원수의 나라에 들어가서 투쟁해야 합니다.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 같은 곳에서도 마음으로는 ‘이놈들….’ 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먹고 호화로워도 그 세계 사람이 아니라 하늘 편 사람이어야 합니다.

투쟁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마음과 몸의 투쟁이 벌어집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모세도 호화로운 자리보다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민족적인 지도자로 부를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세워 그를 최고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셨고, 그 다음엔 최하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탄세계의 영광을 무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돌들이 떡덩이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나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고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세계의 최고의 자리에서도 불쌍한 자리에 있는 하늘 편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가 애급인을 쳐죽인 것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틀림없는 죄지만 심정적으로는 참소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민족적인 지도자로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과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의 영광도 죽음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투쟁에 있어서도 개인의 영광이나 가정의 화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공적인 생활기준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투쟁에서 30평생 그런 일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따랐다면 개인, 가정, 민족,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인 기준도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가정, 개인, 민족, 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투쟁에 가담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식이 쓰러져도, 국가가 버려도, 세계가 버려도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영광의 자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뜻과 배치되면 미련 없이 버리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복귀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죽더라도 이 뜻을 위해 무언가 남겨 놓고 가야 합니다. 내 머리카락 하나라도 성전 가까운 곳에 떨어뜨리고자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습니까? 이 뜻은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바꾸면 원수가 됩니다. 이렇게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여러분은 개인의 투쟁, 가정의 투쟁, 민족의 투쟁, 국가의 투쟁, 세계의 투쟁에 동참해야 합니다. 어려워서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가십시오. 그런 사람은 전통을 더럽힙니다.

안 가면 망합니다. 내몰아야 합니다. 불구덩이라도 같이 가자고 하면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가 가는 데까지 가야 했습니다. 축복도 자기들 잘살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뜻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실체적인 책임을 끝날의 성도인 우리들이 다 해야겠습니다.

전체가 한꺼번에 못 넘어가면 한 사람씩 다리를 놓아서라도 넘어가야 합니다. 광야시대에 처한 사람은 자기 인격의 존중이나 체면을 논할 수 없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어도 상관없다고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싫든 좋든 모세의 뒤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것만은 결정적인 사실입니다. 이의가 없습니다. 이의가 있으면 죽어야 합니다. 상거지가 되더라도 가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한국이 축복받았다고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됩니까? 책임을 못하면 그 축복은 외국으로 갑니다.

복귀의 길은 선생님이 가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옆에서 사람이 쓰러져도 버리고 가야 할 것입니다. 단단히 각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신념을 가져야 세상적인 어떤 지위나 영광을 줘도 차 버릴 수 있는 기준이 서는 것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이념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모세나 예수님도 남다른 사상을 가졌기에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늘 주권의 세계를 찾는데 사탄세계에 시체를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공적인 기준에는 사적인 기준이 통하지 않습니다. 자고 싶은 것 다 자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광야시대를 기준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집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시골에 가서 방 한 칸 얻으면 버젓이 간판을 달고 예배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고, 똥바가지도 뒤집어썼습니다. 민족적인 책임을 못 했으니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불을 덮고 자는 것도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지금도 들판에 나가서 돌을 베고 자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러분은 천정에 이끌릴 것이냐? 인정에 이끌릴 것이냐? 공분의 심정을 품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마음 한편으로는 칼을 품고 나가고 있습니다. 껄렁껄렁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받은 사람도 내몰 것입니다. 안 가는 자는 망합니다.

책임 못 하면 참소받는다

이 다음에 자식들에게 무덤을 밟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까짓 게 조상이야?’ 하며 참소합니다. 아담 해와의 무덤이 있었다면 내가 먼저 파버렸을 것입니다.

한국이 책임 못 하면 어떻게 되나 보십시오. 유대민족이 책임 못하자 어떻게 됐습니까? 그 사명이 이방으로 넘어갔습니다. 모세의 뒤를 흐리게 하고 민족을 분열시킨 자들은 원수입니다. 뭐 어쩌구 저쩌구…. 두고 보세요. 누가 망하는지. 선생님은 개인적인 원수는 상대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원수를 상대합니다. 그때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세계 복귀를 위해 환경적으로 평탄케 하자니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갈래요, 안 갈래요? 가려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천국은 이 세계의 영광을 주어도 싫고, 세계에 다시없는 보물을 주어도 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앞으로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사상이 나와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이면 가정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재산도, 모두가 좋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광의 자리에서 180도의 자리에 갖다 놓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사상이 나와야 합니다. 국가도 가정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국민만 갖게 되면 금방 재건이 됩니다.

우리의 이념은 가정과 국가에서 몰린 이념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가정에서부터 혁명해야 합니다. 아내고 자식이고 뜻과 배치되면 버리고 나설 수 있는 주의라야 합니다. 그러한 주의가 복귀시대의 주의요, 그러한 민족이 복귀시대의 민족입니다. 그런 주의가 나오면 그런 민족도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땅을 위하여 택함받은 백성이니 나에겐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나에게는 세계를 위하여 진리의 폭탄을 던지는 것이 전부다.’라는 신념과 충격이 없다면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런 각오와 충격과 신념이 있으면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뜻 앞에 합당치 않으면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주관하는 이상세계, 이념세계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이념과 이 지도자와 같이 죽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헤어지게 됩니다. 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뜻이 세계적으로 자리잡을 때까지는 그러한 심정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빨리빨리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을 쌓다가 중도에서 포기하면 누가 와서 쌓나요? 결국에는 다른 사람이 그 성을 쌓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종밖에 안 됩니다. 주인은 중단하지 않습니다.

사탄세계의 영광보다 하늘세계에서 같이 피땀 흘리며 사는 것이 복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뜻을 안다면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밤잠을 못 잘 것입니다. 때를 알아야 합니다. 때가 된 다음에 보면 그 때는 벌써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밤을 새워 기도하고 남을 위해 봉사도 해야 합니다.

10월이 지나서는 개인 개인이 1대 1의 약속을 해야 합니다. 천국 가기가 쉬울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을 아담 하나를 키워 나오고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를 잘라 버리고 그 자리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여야 합니다.

하늘 백성의 바른 태도

사탄세계의 최고의 영광을 다 버리고, 하늘세계의 최하의 자리인 죽음의 자리라도 가겠다는 것이 하늘 백성의 태도입니다. 자기 살림을 걱정하기 전에 교회 살림을 걱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피를 팔아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피뿐만 아니라 몸까지 팔아서 하늘의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해서 일어나야 될 때입니다. 금년 음력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7개월간이 고비입니다.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미국 사람이 전세계에 퍼져 있는 것보다 더 많이 퍼져야 하고, 생활 이념도 미국 사람들이 보여 주는 것보다 더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 여행자의 수도 그들보다 더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판에서도 일인자가 돼야 합니다. 공산당보다 강인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선교사를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전세계에서 아무런 수속 없이 받아들이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 나라의 구세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고생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축복받고 부부 사이에 말을 남기는 사람은 심정의 원수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난 자식은 영원히 가인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서로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의 문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받고 잘못된 자들을 세워 놓고 먼저 갚아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 심정, 인격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잘못하면 천사들이 참소합니다. 그리고 역대의 선조들이 참소합니다. 이것을 피하게 하려고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수고와 고생 앞에는 천사와 사탄도 머리를 숙입니다. 뜻을 위해 죽고자 하고 뜻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데 누가 참소할 것인가? 그러니 뜻을 놓고 불쌍하다고 동정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10분도 마음놓고 쉬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가지 못하는 곳에 들어가 충절을 세우면 어차피 모든 사람이 굴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세우기 위하여 가정을 세우기 위한 십자가를 첨부해서 시련을 당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한 단계 앞놓아가면서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광받아야 할 때 고생하면 참소받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감동시켜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전국의 제단에서 눈물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6년 이상 기도한 것은 믿음과 사랑과 지혜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도 못 믿을 것을 믿으려는 믿음이요, 사랑은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사랑이요,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가 문제가 아닌 지혜입니다.

나라 일을 위하여 가정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생(苦生)이라는 것은 고(苦)로써 살아난다(生)는 뜻입니다.

<말씀 요지>

한국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本)으로 하여 일본에서도 그렇게 움직입니다. 이같이 본부의 움직임이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인은 아기를 업고 고생함으로써 남편으로 하여금 충성하게 하여야 합니다. 아기를 맡기고라도 삼위기대를 중심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합니다. 만일 전도지에 나가지 못하면 마음졸이는 기도라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특권계급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권계급이 되려면 고생을 해야 됩니다.

외국 사람이 오면 그들이 여러분을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가면 선생님이 이름을 들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각 가정들은 회의를 하여 대표적인 세 사람을 뽑아 서로 도와서라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식구들이 잘못한 것이 교회 발전에 많은 지장이 됩니다.

자식들이 볼 때 수고한 부모라는 감정이 우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커서 자기의 부모를 자랑할 수 있는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효원(孝元)이는 선생님이 일단 결정한 것은 실천해야 합니다. 애기 엄마들도 동원하도록 해야 합니다. 충성하지 않으면 좋은 아들딸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언제나 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없어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없다는 기준에서 준비하고 연단해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협조를 받고 누(累)를 돌리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효(孝)가 되고 충(忠)이 됩니다.

십일조는 누구나 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 세계를 위하여 십(十)의 삼조(三條)까지 할 것을 각오해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쇠고랑을 찬 것으로 세계가 통곡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가! 선생님이 고생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는 좋은 것입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누구를 데리고 다닐 것인가? 고생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은 고생한 자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이는 자기 가문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며, 종족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아기를 사랑하는 이상 뜻을 더욱 중요시해야 됩니다. 모든 것은 뜻 하나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닌가!

어머니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일대일의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정적인 터전을 세우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의 사랑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일수록 자극이 많은 것입니다. 뜻에 대한 심정이 없으면 상대방이 자기 앞으로 지나가는 것도 싫어지게 됩니다.

남편이 누워 자고 있으면, 왜 이렇게 잠만 자느냐고 하며 일으켜 줄 수 있는 아내가 되기를 권고하고 싶습니다.

아기가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는가? 자기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같이,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형제가 뜻을 위해 싸우다 죽으면 분(憤)해할 수 있는 심경이 되어 있습니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으려면 고생을 해야 합니다.

식구들에게 사고가 나면 선생님에게 그것이 체휼되어집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체휼되면, 하늘이 ‘나 같은 것에게까지 염려하라고 가르쳐 주는가.’ 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하는 일을 체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국 사람이 책임 못한 것을 대신 탕감해야 합니다. 가정이 고생하고 국가가 고생해야 합니다. 주신 은사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이것을 아는 자가 빈 골짜기를 메워 나가야 합니다. 그 골짜기에 돌이라도 먼저 굴려 넣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때로 미욱하고 무식하게 보인다. 선생님이 몇 가정을 뽑아서 지지리 고생을 시켜 보고 싶습니다. 그 후손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려고….

하나님은 복을 분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장만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복을 줄 때는 세계의 복과 더불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복을 자기만의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에도 세계적인 축복을 주었는데 그것을 자기들만의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족들이 어떠한 혈통과 인연을 맺을 것인가? 선생님의 가족보다도 더 충성한 가정과 인연맺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며느리나 사위를 맞을 때도 하늘땅이 참소하지 않는 가정에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 눈, 코, 귀, 사지 백체 전부가 고생을 해야 합니다. 전투장에서 싸우는 장병들같이 싸우지 않으면 이 고개를 넘을 수 없습니다.

<말씀 요지>

만물을 짓기 전부터 하나님은 생각하는 아버지요, 실천하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당신 대신 세워 놓은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아버지이신 당신을 생각하고, 만물을 생각하고, 당신이 하신 것을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자신들을 생각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아담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책임 분야를 남겨 놓고 아담이 그 과정을 지나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는 그 어떠한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하시는 목적은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시는 그 하나님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나를 세워 실천하고 행동하게 하시려는 것도 우리에게 책임분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적 기반을 찾아 세우는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각은 아버지의 창조이상 실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제2의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기 자신을 찾고 창조목적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따 먹지 말라고 했듯이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흑암 가운데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좋은 데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자리에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려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울수록 사람을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제일 낮은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선 입덧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기 위해 수고하셨듯이 내외적으로 고통을 거쳐야 비로소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는 천지창조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납니다. 곧 그 생명체는 천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모든 정성과 마음을 아기에게 쏟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러하셨습니다. 태어난 아기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인데, 하나님의 심정도 그러하십니다.

이제 어려워도 어려움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복귀노정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아들딸들에게 고통의 흔적이 남아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고통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7년은 맞는 기간이며 3년은 영광을 대신하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10년 기간(원리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동(不動)의 심정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것같이 우리도 부동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부동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그 민족과 가정과 개인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부동의 심정을 갖추어 승리해야 합니다.

사탄과 천사 그리고 하나님까지도 참소할 수 없는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참소당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았는가 돌아보기 바랍니다. 사탄의 참소와 천사의 참소와 하나님의 참소를 피해야 합니다.

전도 기간처럼 중요한 기간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할 시기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나’라는 이름조차도 없는 우리입니다.

우리에게 아담 해와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는 입장은 모든 참소를 벗어난 입장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여러분은 이름을 지음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뜻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해서 죄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영광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자기 마음대로 못 삽니다.

각목 말뚝을 들어 사개를 물린 후에는 박아야 하는데, 여러분은 그때 아무데 꽂아도 불평 없는 말뚝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곳에 세우는 것은 조상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야곱이 싸우던 그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이 개인 차원의 얍복강 승리의 기준을 세워 천사의 참소를 면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민족 차원의 얍복강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승리한 야곱과 살고 싶었던 하나님이었지만 민족적 원수를 두고 개인적 기쁨을 누리는 것이 전체적인 기쁨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애급고역 기간은 하나님을 깊이 생각케 하는 기간입니다. 하란 땅에서의 기간도 그러합니다.

애급고역 기간 이후는 실천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의 생활이 애급고역보다 편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망해 버렸습니다. 광야 생활의 모든 것은 재창조역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계에서 광야노정을 걷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인간들로 하여금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나안 땅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세계적인 고난의 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적인 조건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싸움이 나의 싸움이라는 신념을 갖고 불의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축복받은 가정을 어떻게 하면 고생을 시킬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참소를 벗어나게 할까 하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삼위기대(아들딸)를 데리고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고 마리아와 요셉이 애급으로 가던 길은 복귀노정의 전체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돈과 시간은 얼마든지 남아 있지만 이런 기간은 두 번 다시 없습니다. 하늘땅에 한 번밖에 없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심정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활동하는 데에 지장이 없어야 합니다. 수고한 역사를 풀어야 합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주며 수고했지만, 원래는 모세나 아론과 훌은 수고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나 같으면 으레 손을 내렸을 것인데.󰡑하는 생각이 세 번 이상 나게 한 후에 손을 내려야 합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제발 고생시키지 말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 그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날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날이 없이 새날은 없습니다.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아니 하면 선생님이 하려 합니다. 실천의 길은 고생의 길입니다. 이 민족이 여러분을 대해 자기의 부모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의 날에 상을 준 것(남 1명, 여 3명)은 하나님이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맹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란에서나 애급에서나 지도자를 원망했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오른발을 들여놓고 왼발을 떼려 하는 때입니다. 선생님이 마음놓고 왼발을 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태중에 있는 아기를 위하여 기도해 본 일이 없습니다. 보다 큰 뜻을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하면 작은 일은 자연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돈으로 출발하다 돈이 떨어지면 아주 망해 버립니다. 권세로 출발하면 돈이 있어도 떨어지는 것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생으로 출발하면 지칠 때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고, 또 돈이 떨어지면 권세로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말씀 요지>

충청(忠淸)이란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 맑을 청(淸)이 합하여 이루어진 말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맑으면 도인입니다. 충청도란 그런 말입니다.

‘충청’이란 현실이 아니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곳을 가는 데 있어서 자력으로 가지 못하면 다른 이의 힘을 지원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대상이 주로 젊은이들이니만큼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여 말씀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바랍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 시간 선생님은 입을 가지고 싸우고, 여러분은 귀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모두들 선생님께 많은 의문과 기대를 가지고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평범한 말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청주, 즉 맑은 고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맑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단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고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는 통일교회입니다. 통일이란 거느려서 하나된다는 말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어서 가족을 거느리고 있고, 종족간에는 종손집이 그 종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를 거느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이 세계를 거느려야 됩니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인 없는 물건은 가지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과 같이 이 세계도 거느리는 사람이 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미국이 민주 진영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소련이 공산 진영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과연 미국이나 소련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양분된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의 역사가 점철되어 왔습니까? 아무리 훌륭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온 세상 만민을 하나로 거느릴 수 있는 자격자이겠습니까?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 하늘땅, 도의 세계까지 거느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선생님도 그 앞에 거느림을 받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거느릴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의 역사라면 용납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역사라면 깨 버려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에 있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절망입니다.

거느릴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으라고 양심은 명령합니다. 재촉하고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거느릴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아 그가 바라는 대로 거느림을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기준이 되어 있습니까?

목적은 하나이어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몸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그 벌어지는 각도가 고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의 주인은 누구인가? 여러분은 목적의 그 주인이 여러분을 끌고 있음을 알고 있을 텐데 그 목적의 주인은 누구이겠습니까? 만인의 양심이 거할 수 있는 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은 인간보다 더 고차원적인 존재여야 합니다. 그 목적의 중심은 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선이 아니면 거느릴 수 없고, 선이 아니면 하나될 수 없습니다.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여러분은 선한가, 악한가? 자신의 몇 퍼센트가 선이고 몇 퍼센트가 악이냐?

우리 자신은 선과 악 가운데서 싸우는 중간 존재입니다. 지금 인간 세상에서 선에 속할 수 있는 자격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모두 거느림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 선이요, 전부를 가지고 혼자 가고자 하는 것이 악입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원하고 좋아하는데 육신이 싫어합니다. 선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제일 원수가 육신입니다.

선의 창조주가 있다면,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애써야 하고 인간의 양심작용에 힘을 더하기 위하여 애쓰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작용에 힘을 더하여 내려오는 흔적이 역사상에 남아 있나니 이것이 종교입니다.

종교! 선의 하나님이 약한 인간의 양심을 움직여 섭리했다는 역사적인 흔적이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역사가 바뀌고 세계가 변해도 선의 근본 중심은 변치 않았습니다. 문화권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선의 창조주는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 이래 종교를 중심한 많은 문화권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발전해 나왔습니다.

현재에는 기독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 힌두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의 4대 문화권이 있는데 이것들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되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아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종교 중의 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천주의 창조주를 아버지라 하고 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곳까지 인도해 주는 종교가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비로소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독생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구세주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감람나무요, 너희는 돌감람나무다.’, 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접붙이는 데는 뿌리만 남겨 놓고 가지는 모두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니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고차원적인 종교는 사회를 떠나 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부모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길은 천만금보다 더 가치적인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몸인 내 몸을 네게 주겠다고 하는 종교가 종교 중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인간을 접붙이고 갔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접붙일 수 있는 준비만 갖추고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효도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효도하기 위해, 자식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는 것입니다.

이제 국가와 국가가 형제의 인연으로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가와 국가가 형제의 이념으로 하나되면 거기에 부모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천지의 부모, 즉 인류의 참조상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 요지>

본부에 있는 여러분은 한 가정의 개인이나 한 교회의 개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다한 우리 조상들을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불러 역사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같은 한 사람을 세우시려고 간곡한 마음을 가지고 2천년간이나 준비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보다 큰 것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만의 뜻이 아니고 이 뜻은 전인류의 뜻인 동시에 내 뜻인 것입니다. 뜻은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행 불행(幸不幸)을 결정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전체를 대신한 나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의 아들딸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귀원리를 통하여 이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남겨 준 것과 보태 준 것을 비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대신한 백성이었어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개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개인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은 곧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입장에서 여리고 성을 정복하여 축복의 땅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6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하나님께서 참다운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끝날에 전체를 대표한 개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지역이나 클럽의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대신한 개인입니다. 크게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큰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작게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뜻 가운데서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모두 하나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을 보고 가장 기뻐하실 것이냐?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사회, 사회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 즉 보다 큰 것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는 천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뜻을 품고 정성을 다 바치는 사람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람이 복을 받을 날은 먼 앞날로 기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뜻을 품고 살고, 후손들에게 유언으로 남겨 끝날까지 끌고 나오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큰 사람이면 큰 사람일수록 참고 나가야 어떠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 한 사람뿐이어서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한 것이지 결코 최종적으로 축복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뜻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 뜻을 품고 이어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입교 이후 맹세를 하였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에서 한 것입니까? 뜻을 대한 그 맹세가 진정한 것이었다면 그것이 외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어도 오래 참을 수 있어서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 당시에 아브라함은 몰랐지만, 영계의 성도들이 역사하고 천사세계가 협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맹세한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가 이 시대에 존재하더라도 그는 이 시대의 사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람입니다. 또한 그가 하는 일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역사적이다.’ 하는 것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예수께서 성도들을 대하실 때, 그것은 박 아무개나 김 아무개와 같은 개체를 움직이고자 해서 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개체를 대하는 이면에는 항상 전체와 연관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세우시는 것은 그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 개인을 택해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개인이 깨어져도 한 단계 올려놓았던 기준이 있으므로 축복했던 가정적 기대는 남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민족을 대신한 실체를 출발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받는 사람은 고생을 한 사람

이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기준을 발판으로 하여 세계적인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2이스라엘, 즉 오늘날 세계에 있는 기독교인의 사명입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의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 기준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시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환경적인 시련이요, 둘째는 인간적인 시련이요, 셋째는 영적인 시련입니다. 시련을 이기려면 그 시련의 기준보다 한 단계 앞서야 됩니다. 즉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면 세계를 걸고 이겨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의 수가 차고, 기독교의 고난의 수가 차고, 하나님의 고난의 수가 차면 됩니다.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이 성경에 있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때에 복받는 사람은 고생을 겪은 사람입니다. 산에서 도를 닦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민족을 위할진대, 가정을 버리고라도 나와야 그 가정이 망하더라도 민족적인 애국자의 계열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복받을 사람입니다.

가정, 종족, 민족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항상 한 단계를 더 위하면 한 번 실수해도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개인적인 섭리시대, 곧 태초부터 지금까지 개인에서 개인으로 계승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나온 무리가 있다면, 비록 아무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기껏 2천년밖에 못 했습니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제2이스라엘이 나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 번 기도하고 천년을 기다릴 수 있는, 그렇게 정성들인 민족이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좋아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하면 안 됩니다.

복은 어떤 것이냐?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잘못 받으면 망합니다. ‘원통해라. 내가 이렇게 일을 했는데!’ 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복의 세계에 있어서 파탄꾼입니다.

원수를 갚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아직 원수를 갚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원수를 갚아라.’ 하실 때 심판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는 하늘과 땅, 하나님의 사랑까지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버지, 지금 복을 주시면 원수에게 찢길 것이니 잘 간직해 두셨다가 끝날, 뜻이 이루어져 태평세계가 되면 그때 주시옵소서. 주시는 아버지도 섭섭치 않고 받는 저희들도 든든하게 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입니다. 고생은 자기 혼자 다하여 뼈만 남게 되었어도 ‘복은 모든 인류와 하나님께서 다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복을 돌리게 되며 하나님께서도 통곡을 하실 것입니다. 참고 넘어갈수록 복의 세계는 하루라도 빨리 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의 수고

예수의 수고보다 더 크게 남아진 하나의 세계가 있습니다. 예수의 수고는 2천년의 수고요, 모세의 수고는 80년의 수고입니다. 그러나 하늘땅이 굴복하고 사탄도 통곡할 수고가 있으니 하나님의 수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세계는 그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가정을 위한 수고를 하면 그 가정이 복을 받고, 민족을 위한 수고를 하면 그 민족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의 수고는 하늘땅을 잘 살게 하는 수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고도 그러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수고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들의 수고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생하여 영인들이 울고 사람들이 울게 해야 인류에게 광명이 동터오는 것입니다. 고생을 해야 합니다. 내적, 외적, 환경적인 고생을 해야 합니다.

예수를 안다고 해야 할 때 모른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곡절을 발표하는 민족이나 교파가 있다면, 그 민족이나 교파는 세계를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찾아오실 것인가? 죽음의 고비를 넘은 곳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내용을 발표하여 공산당까지 울릴 수 있으면 그 힘은 공산당을 정복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소개하고 나서 천국을 말해야 정통입니다.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교가 이단입니다. 타락은 슬픔을 하나님의 가슴에 심은 것입니다. 아직 그 슬픔의 뿌리를 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슬픔을 말해 주어서 슬픔의 길을 걷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쁨의 날을 맞이한 후 축복을 받으면 그 축복은 마지막 축복입니다.

하나의 진리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슬픈 역사를 인류 앞에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진리입니다. 심기를 하나님 앞에 심었기 때문에 거두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거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아직까지 심판하지 못하신 것은 아들딸의 입장으로 지으신 창조의 심정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고, 사탄 대해서는 당초 충신으로 지으셨던 그 기준을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의 기준을 무너뜨리기 전에는 심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심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부모의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참으로 주신 것을 참으로 받아서 참으로 심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하나님의 슬픔을 역사적으로 변증하여 시대적으로 체험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 고개를 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치려고 했을 때, 이삭이 한마디만 항거를 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받으실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축복의 가치를 알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축복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야곱에게 당장 무엇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세계에서 받을 수 있는 복의 최고 기준입니다.

모세도 궁중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벌판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쓸쓸한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도 민족을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도 그랬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순교사는 있어도 하나님의 순교사는 없습니다. 최후의 진리는 하나님의 고통을 소개하여 예수까지도 통곡하게 하고, 지옥에 간 사람들까지도 통곡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 원리의 길은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 본부의 사람들은 전체를 대신한 개체들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가는가

천국은 어떻게 가는 것이냐?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지고 나서 축복을 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가는 곳입니다. 그 자격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자식을 데리고 함께 갈 수 있어야 천국입니다.

아브라함은 종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종이었습니다. 아직까지 기독교는 양자의 입장입니다. 예수는 직계의 아들로 왔지만 양자를 세우는 역사를 하시고 가셨습니다. 피살자는 구원의 역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시켜 부활한 예수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이겼다는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영계의 낙원만 바라보고 예수를 믿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가 사탄의 손에 죽었으니 이젠 그 사탄을 우리가 죽여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몸을 쓰고 오십니다. 그리하여 실체적으로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수속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그분은 인간의 뒷골목으로부터 오십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사탄세계에서 보면 모두 낙오자들입니다. 주님은 쓰레기통에서부터 찾아오십니다. 기독교는 겟세마네의 연속이요, 골고다의 연속입니다.

천국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 오시는 주님의 어린양 잔치가 끝난 다음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영적 구원을 통한 기독교이기 때문에 구교를 통하여 신교, 신교를 통하여 더 새로운 교가 나와야 합니다. 여기에도 3수가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대, 아담은 2대, 아벨은 3대인데 그 중 망친 것은 2대인 아담입니다. 따라서 복귀섭리역사에서는 둘째 아들을 두고 생사의 결판을 짓는 것입니다. 완성의 역사를 책임지고 오시는 3수 섭리의 최종 실체이신 재림주님은 세계적인 죄악사를 총탕감해야 합니다.

오시는 주님은 먼저 노아가정의 세 아들을 찾습니다. 3대를 거치면 종족이 됩니다. 최소 단위의 세 아들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를 죽인 피값을 갚아야 합니다. 피값을 모아서 성지를 사야 합니다.

<말씀 요지>

천하가 아무리 좋아도 자기가 없으면 소용 없습니다. 사람들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용이나 가치가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중요시할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물, 국가, 가정과 여러분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존재와 인연되어 있습니다. 나 하나와도 인연되어 있습니다.

내 몸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나’의 기준을 정하는 데는 한(限)이 없습니다.

누구냐는 물음 가운데 제일 좋은 대답이 무엇입니까? ‘너는 세상의 주인이다. 하늘땅의 주인이다.’ 하는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천하를 다 가지는 것보다도, 나라를 정복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오로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부모의 아들딸입니다. 또 단 하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남편과 아내입니다. 또한 효자 중의 효자라고 할 수 있는 자를 아들로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만이 갖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나는 누구다.’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 곧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합니다.

아직껏 나는 누구라고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나 하나님의 귀한 가치는 심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는 이렇다 할 수 있는 문제의 해결점도 오로지 심정에 있습니다. 이것이 연결된 가정, 종족, 국가, 세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축복해 준 신랑 신부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주의 중심이 이것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우주 앞에, 상대적 세계 앞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라고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은 같은 것입니다.

<말씀 요지>

개인을 중심삼고 소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하나님도 귀하다 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모든 것은 주고받는 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모든 존재가 주고받음으로써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둘이 합하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나보다 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지고(至高)하신 분이지만 상대적인 존재를 창조하신 것은 그것이 혼자인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합하면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좋습니다.

서양사상은 외적이요, 분석적입니다. 반면에 동양사상은 내적이요, 종합적입니다. 우리는 동양과 서양, 어느 한 쪽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둘을 합하여서 더 높은 가치를 찾아야 하는데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눈물은 좋아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흘리는 눈물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누룩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종교가 세계 제일의 종교인데, 그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모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이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사상과 종교는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책임지는 사상과 종교입니다.

당초 고통으로 뿌렸기 때문에 끝날에도 고통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인류 조상이 뿌렸으니 인류의 조상으로 와서 뽑아야 하는데, 그분이 오시는 주님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우리가 굶는 것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속에 박혀 있는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 고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자를 맞는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고생해서 닦아 놓은 기반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돈 없이 고생하다 지칠 때 돈을 주면 더 잘 해 나갈 수 있으되, 돈 가지고 싸우다 지칠 때 권세가 있으면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생해야 합니다.

고생(苦生), 고생(固生), 고생(高生)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가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세 아들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위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상대적인 축복을 받아 가지고 자녀를 낳으면 그가 아벨적 존재입니다.

복은 가인을 통하여 상속 받아 가지고 아벨에게 주어야 합니다.

예수는 만물을 사기 위하여 몸을 팔고 갔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피값으로 산 밭을 일구고 있으니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3개월 이상의 생활비를 탕감 기금으로 바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있어서의 7년간은 대환난 기간입니다.

상징, 형상, 실체의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찾은 다음에 만물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만물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1962년 12월. 한국

<말씀 요지>

복귀섭리는 인격자를 만드는 섭리이기에 남의 좋은 점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방성을 갖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귀섭리는 복을 거두는 것이기에,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과거와 선조를 알고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선조에게 준 복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을 거두기 전에는 심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본 것 같은 사람은 심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해야 아벨적인 입장에 섭니다.

여러분은 민족과 천주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분별하는 것은 자기를 무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7개월 이상 바다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었습니다. 대양적 운세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바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대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생활의 중심이 ‘뜻’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도인들이 애달픈 심정으로 하늘의 말씀을 받기를 애원하는 것처럼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해야 합니다.

지구장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재강조해야 합니다.

첫째 심정무장을 하라. 둘째 모심의 생활을 하라. 셋째 축복받은 식구를 귀히 여겨라.

어떤 지역에 가더라도 축복받은 식구들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리고 먼저 만나고 떠날 때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던 심정만큼 축복받은 식구를 존중시해야 복을 받습니다. 축복받은 식구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출입구입니다. 그들을 통해 나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예수님이 바라던 소망의 실체입니다. 축복을 받은 것은 자기를 중심한 이스라엘을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부활체입니다.

허호빈 집단의 것까지도 거두어 온 입장이므로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고도 그 복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말씀 요지>

금년, 1963년도의 표어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입니다. 지난 3년간은 인간으로서 상속 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할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그 단계를 넘어서 만물복귀를 하는 해로 들어가니 앞으로는 계속적으로 같은 표어를 씁니다.

그래서 성지복귀도 필요한 것인데 어떻게 해서든지 성지를 사야 하고, 일단 사게 되면 절대로 팔지 못합니다. 살아도 성지 가까이에 가서 살고, 죽더라도 성지 가까이에 가서 묻히려고 해야 됩니다.

성지는 피값을 모아서 사야 합니다. 즉 인류의 부모로 오셨던 예수님을 판 피값을 내서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장사해서 모은 돈은 거룩한 돈입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또 폭리를 남겨서도 안 됩니다. 얼마를 주고 산 것인데 얼마를 받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이익을 3할 이상 남겨서는 안 됩니다.

만물의 주관주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승리해야만 됩니다. 그러면 승리는 누구를 중심한 승리냐? 하나님을 중심한 승리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승리입니다. 우리의 표준은 그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어떤 기준의 승리를 거두었는가? 우리의 울타리권 내에서, 하늘땅 앞에 있어서 우리를 공격하던 싸움이 끝났을 뿐입니다.

지금은 정지 상태와 같습니다. 즉 후방에 와 있는 입장입니다.

그동안 우리에 대해 좋은 소문도 났고 나쁜 소문도 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준비를 해서 공세를 취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승리를 위하여 나갈 기간이 앞으로의 4년 기간입니다. 지금까지는 방어적인 투쟁을 해 왔지만 앞으로 4년간은 공세적인 투쟁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영계와 육계가 우리를 향하여 공세를 취해 오던 모든 것은 스러지고, 우리는 밤과 같은 기간을 지나 아침을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모든 것이 사탄세계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합니다. 전체적인 승리를 향하여 공세를 취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사탄이 쳐도 깨지지 않을 가정적이고 종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복귀했으니 이제는 경제적인 발판을 세우고, 격심한 시련에서도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열 번을 싸운다고 할 때 반은 진다 하더라도 내용적으로 보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도처에서 악질분자의 뿌리를 뽑는 사건을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내놓고 육친의 부모에게 불효를 해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보다 높고 큰 뜻을 위한다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환경을 주관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처량한 꼴을 하고서도 ‘아직 40년이라도 나는 또 간다.’ 하는 늠름한 신념을 가져야 하고,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이 어디입니까? 교회는 법궤가 있는 곳입니다. 법궤가 있는 곳에 먼저 가야 합니다. 그곳은 아버지께서 모든 승리를 완결지어 주관하시고 기뻐하시는 곳입니다.

가야 할 곳은 모르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찾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찾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다가 쓰러집니다. 목표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즉 원수를 향하여 함께 공세를 취하는 것뿐입니다.

정복해야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땅의 사상을 가진 어느 단체보다도 강한 신념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하여 돈을 써야 합니다. 이것을 위한 기간이 경제적 기반을 닦는 4년간입니다.

앞으로는 공밥을 안 먹입니다. 하나님께 신세를 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핏값을 내야 하는 동시에, 선생님이 걸은 모든 고난의 노정에 대한 탕감기금도 바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앞으로는 말부터 조심하고 고쳐야 합니다. ‘아이구, 죽겠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말도 행동도 심정도 사탄세계와 달라야 합니다. 또한 관(觀)도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생활적인 면에서 사탄세계와 달라야 하고, 사탄세계를 주관해야 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사탄세계보다 앞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주관자가 되지 못합니다. 주관자가 되려면 조금이라도 나아야 합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참된 인간조상으로 세워 출발하면서부터 영원한 존재로 세우려 하셨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천주의 중심인 고로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천주는 영원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한 천주도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생긴 슬픔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제거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것의 재현이요 재생이었습니다. 즉 그의 탄생은 하나님의 재현이요, 하나님의 아들딸의 재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4천년간 준비시켰으나 그들은 예수님의 중차대한 탄생을 뜻맞게 맞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이와 같은 재현을 목적으로 태어나셨으나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그 목적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하지 않았더라면 예수 개인을 중심삼고 하늘이 바라는 가정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 개인 문제만이었다면 아브라함, 야곱, 모세의 기대 위에서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에게는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걸어 놓고 예수를 걸고 넘어진 것을 복귀하고, 역사적인 실체들을 대신할 자신의 실체를 수습해야 했기 때문에 예수는 홀로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쓸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민족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재탕감복귀하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요셉가정에서 일했습니다. 그 기간에 요셉가정에서 예수님을 믿고 모셔서 요셉가정과 이스라엘 민족이 연결되었더라면 그가 품고 온 뜻은 지상에서 무난히 성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가정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요셉가정을 중심하고 민족을 수습하려 했던 뜻은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며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제자들을 기르셨고, 내적으로는 사탄의 방해공작을 수습하기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재현이요, 이상세계의 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해 예수의 이름만 남아졌습니다. 또 하나님도 예수 한 분만의 하나님으로 남아졌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와 더불어 살 수 있는 백성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를 증거했던 사람도 다 가 버렸습니다. 마태와 요한은 예수를 믿고 있었으나 예수에게 천지가 임해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4천년간 준비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려던 복이 예수님만의 것으로 남아지고, 하나님만의 것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고충은 요셉과 마리아가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부활하여 재차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예수의 소망은 인류와 하늘땅의 소망이기에 깨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동방박사와 목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드리는 축하라야 참다운 축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마음을 가져야 앞으로 오실 분을 축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 사람은 극소수였으나 그들은 역사를 대신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는 가장 큰 의의는 예수의 성탄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2천년 전의 탄생을 계승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을 재현하고 사랑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법적 에덴복귀 파는 박동기 파이며, 진리 에덴복귀 파는 이용도 파입니다. 철산 새주님 파는 상대복귀 파입니다. 독신 부인은 안 됩니다. 남편을 자체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 부인의 탕감조건이 찬 후에는 남편이 꺾입니다. 그 부인의 맏아들이 충성하고 받들어야 했습니다.

허호빈은 일본의 탄압을 밟고 나서야 했습니다. 석천 씨가 잘못하여 복중교로 뺏겼습니다.

재림주님은 셋과 같은 입장입니다. 셋은 생각지 않은 데서 나왔습니다(가인 아벨이 사명을 못함으로). 그러므로 재림주님을 모시는 단체는 허호빈 파가 아니고 다른 파에서 나와야 합니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허호빈에게 연락했었습니다. 그 일이 나중에 발각되어 선생님은 이가 부러졌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그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영계의 문을 열어 놓으려 합니다.

다음으로는 사랑 에덴복귀 파가 나와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호와의 부인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 부인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3대를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27세 되던 때에 평양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반은 사탄 역사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그의 아들에게까지 시중 들었고, 결국 증거를 받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부터 증거받기 시작하여 수개월 이내에 여호와라는 증거까지 받았습니다.

법적 에덴복귀 파와 선생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진리 에덴복귀 파에 가야 했습니다. 이용도 백남주 김백문 3대가 선생님을 축복해야 했습니다. 다윗에서부터 솔로몬왕에게 했던 것과 같은 축복을 해야 합니다.

그런 축복을 받은 후에 평양에 갔습니다. 최후의 증거를 받은 후에는 주관권을 복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상속권을 복귀했습니다. 그 복을 받은 후에 개인적인 시련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수천년 기간을 일시에 탕감하는 것이 3년 기간입니다.

선생님은 신년 원단에 식구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통일 신도들도 앞으로 외국 식구들에게 다소라도 돌려주어야 앞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요지>

축하하는 사람은 축하받는 분이 어떠한 분인가를 모르면 안 됩니다. 구주는 역사성을 띤 구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해 애쓰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수고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축하를 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소망과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소망은 만민이 지녀야 할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소원과 목적은 무엇인가? 동방박사도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축하만 하고는 그냥 가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그것을 알고 진심으로 축하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증거만 하고는 가 버렸습니다. 참된 축하는 증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축하여야 합니다.

역사적인 죄악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는 시대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내적인 준비 기간으로 30년이 있었고, 외적인 공생애 기간으로 3년이 있었던 것입니다.

3대 시험은 사탄이 예수님의 전체의 목적을 걸고 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험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아들, 혹은 양자, 혹은 종이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었기에 예수님은 종의 종의 입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육적 구원은 기반만 잡으면 빨리 이루어집니다. 외적인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중심하고 단결했다면, 유대민족은 법궤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아벨의 입장이라는 것을 사탄도 증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세우려 하고 또 세워진 자기와 인연 맺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수 천만대에 세우고자 하듯이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런 것이 있으면 남겨 주고 싶어하고 보여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전체를 남겨 주고 싶어하시고 보여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와의 간격을 없애고 인류에게 전체를 남겨 주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환경을, 보여 주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남겨 주고 보여 주고 싶어하신 존재였습니다. 야곱은 가정적으로, 모세는 민족적으로, 예수님은 세계적으로 남겨 주고 보여 주고 싶어하신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지 못하시고 보여 주지 못하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이루어진 충·효·열이라야 영원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진정으로 남겨 주고 싶어하신 사람은 모두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후손이 선조를 자랑하고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조가 참소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민족적인 사명을 하게 하기 위하여 세운 자녀에게 자기를 위하라고 한다면, 그는 하늘의 길을 막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은 메시아가 자기 민족만을 위해줄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천 사람의 원수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천 사람에게 모욕을 당해야 합니다. 거기에 굴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은 999에 승리하고 남은 하나에 굴하는 사람보다 남은 하나를 이긴 사람을 세워 유업을 계승하시는 것입니다.

일하다가 중도에 가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땅을 위해 싸우신 분이기에 어느 누가 그를 아무리 친다 하더라도 쓰러지지 않으신 것입니다.

을이라는 사람은 갑이라는 사람의 10분의 1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갑보다 그 직장을 더 염려하면 을이 그 직장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요지>

본부는 척추와 같습니다. 즉 본부는 우주의 최고 중심부와 같은 것입니다.

말단에서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자기의 최선을 다하고도 오히려 부족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바로 자기를 중심하여 천운을 돌게 하는 방법이 됩니다.

일을 잡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생각하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나간 사람들을 한번씩 만나 보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맺힌 것들을 풀어야 합니다. 금년까지는 나간 식구들이 다시 들어오는 때입니다. 그들을 만나 보았는데도 들어오지 않으면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아기들이 실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즉 법을 정한 다음에라야 식구들의 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묻어 두는 것입니다.

7년 만에 한번씩은 전부 내려가야 합니다.

중심에서 멀수록 탕감은 큽니다. 중심에서 가까운 것은 탕감은 작지만 반드시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식구들이 보내는 정성들인 물건은 그것으로 인하여 생명의 인연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은 제물입니다. 제물을 잘못 먹으면 천벌을 받습니다.

본부에 있는 식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과 갈라질 수 있는 입장이고, 지방에서 고생하는 식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날 수 있는 인연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책임을 행하지 못하면 기도라도 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맡은 것을 남이 간섭하지 않게 하십시오. 간섭하는 사람한테는 쓰러진 다음에 하라고 하기 바랍니다.

하늘이 인정하기 전에 먼저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공적인 명령을 할 때는 공적인 관계와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서울 식구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지워서 활동하게 하십시오.

<말씀 요지>

예수님이 죽을 때 같이 죽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 땅 위에서 받았던 예수님의 설움은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에 성신이 오지 않고 영(靈)들이 오는 것입니다.

1960년도가 최고의 고비입니다. 여러분은 죽어도 간다고 할 수 있는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영적인 성신이 하던 일을 오늘의 성도들이 육신을 쓰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정이 돼 있지 않으면 아니 되니 심정의 인연을 맺기 위하여 고생해야 됩니다.

이 자리는 옛날의 내가 소망했던 자리인 것입니다.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이 낙원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책임 5퍼센트와 가정적인 책임 5퍼센트를 해야 할 시대에 책임을 다함으로 그 시대를 넘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에게는 세계적인 책임 5퍼센트가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이 마음이라면 여러분은 몸과 같습니다.

아기를 자녀의 날 전에 낳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전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못 했으니 미래에 연결할 수 있는 입장에라도 서라는 것입니다.

음력 4월이 지나기 전에 식구들끼리 맺힌 것을 모두 풀어야 합니다. 원수에게 복을 빌어 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간은 금년(음력으로)에 나간 사람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기간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사탄 세계를 대하여 문을 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원수를 미워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은 효진이가 탄생한 지 삼 칠이 이십일(3x7=21), 21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날은 선생님보다도 여러분이 더 기뻐해야 합니다. 원래는 함부로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허리 부러진 호랑이와 같았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가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때로 들어갑니다.

선생님은 남은 5퍼센트의 책임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어느 때 누구를 축복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탕감을 위한 고생을 해야 할 때이므로 하늘이 마음 졸이는 때였습니다. 완전복귀는 3대를 통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환영할 때는 선생님이 못살게 굴 때가 옵니다. 이때 선생님과 맺어진 인연을 생각하여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못 하겠거든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이라도 남겨야 합니다.

역사를 꾸미려면 부모, 부부, 자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역사를 꾸며 나가야 합니다. (홍순애 씨의 복중교에 대한 간증이 있은 다음 계속해서 말씀하심)

백일은 심정적 기준을 갖고 설 수 있는 초보적인 숫자입니다.

이제 셋째 아들이고, 딸이 있고, 3년도 끝났으니 역사적인 운이 따를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이 먼저 아들딸을 낳아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이 먼저 자리를 잡은 후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땅을 중심하던 운이 하늘을 중심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위정자들이 고생을 하면 세상을 빨리 수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리 잡으면 세상도 자리 잡습니다. 공산주의자들끼리 무기를 들고 싸울 때가 오면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동양은 아버지를, 서양은 어머니를 상징합니다. 또 남쪽은 아들을, 북쪽은 딸을 상징합니다.

상충면(相衝面)이 지나가면서 상응면(相應面)이 나서게 됩니다. 우리는 크게 움직여야 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4, 3, 7, 10, 8, 12, 21의 수리적 탕감을 전부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늘이 심정적인 하나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때입니다. 이날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심정적인 결실이 맺어졌기에 목적을 향해 같이 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백악관과 모스크바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섰으니 ‘원칙대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하늘에 호소할 때가 왔습니다.

<말씀 요지>

음력으로도 양력으로도 완전히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축복받은 식구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영토에 대해 관념적으로가 아니라 실체적으로 이루고 항상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책임진 입장에서 활동할 때입니다. 그러니 발걸음 하나를 옮길 때도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옮겨야 합니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에도 어떻게 하면 뜻 대한 사명을 다하는 사람으로 교육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젖먹이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도 이러한 생각을 하며 먹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실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

이렇게 살면 우리는 개인이지만 전체의 생명, 소원, 가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여기에서 하늘땅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가치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혼자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과 더불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개인을 찾아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따라왔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슬픔과 한을 품은 죽음이었습니다. 승리의 죽음이 아니라 한을 품은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르지만 하나님 가슴에는 못이 박혀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실체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슬퍼하신 것은 전체뿐만 아니라 개체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에 전체를 대신한 개체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겠는가를 생각하며 이것을 책임지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슬픔과 땅의 슬픔을 제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거기에 합당한 깊이와 넓이를 지닌 참다운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맹세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어 줄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적인 슬픔이 클수록 외적으로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전체의 슬픔을 제거하지 않고는 개인의 슬픔이 제거될 수 없습니다. 만민을 위하여 주려는 마음이 늘 우러나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맹세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동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며, 스스로 아버지를 대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민을 대신한 참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대해 왔지만 일을 얼마나 했는가? 하늘땅의 슬픔을 책임지겠다는 것이 뼈와 살에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상이 내적 외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탄을 무찌르는 심판자라는 마음이 북받쳐 올라야 합니다.

무엇이나 무심코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사랑하는 만민과 천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남모르는 곳에서 기도라도 하는 성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만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주권자의 입장에 서면 말 한마디에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고생과 슬픔을 탕감하기 위하여 쓰러지면서 연결해 오던 것을 이제는 실체로써 연결해야 합니다.

영적 사탄은 영계에서, 실체적 사탄은 실체세계에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평화의 세계까지 건설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모험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정탐을 하던 것과 같이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공격전입니다. 막 내모는 것입니다. 천적인 대명을 주어 보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수행 여부에 따라 세계가 좌우됩니다. 우리가 효자가 되어야 만민도 효자가 됩니다. 민족과 세계 만민이 이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이 큽니다.

하늘의 뜻을 위해 필요한 사람

하늘의 주권이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쓰러져 갔습니다. 과거에는 사탄이 양면작전을 하고 하늘이 일면작전을 했으나 이제는 거꾸로 됩니다. 하늘이 영육 양면작전을 합니다. 영계를 대하던 사람들처럼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역사적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받은 자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아버지를 위하여 울고 희생해야 합니다. 또 얼마나 그랬는지를 서로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원리는 하나님의 심정과 혈통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 이런 것은 성서의 아무 데도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영계가 보류 단계에 있는 것은 이 땅 위에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인격자가 되려면 하늘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슬픔의 결전장에서 원수를 대하여 싸워 이기겠다는 신념에 차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원수와 부딪치더라도 양보하지 않고 굴하지 않고 깨지지 않는 것이 인격의 표준입니다.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야 하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하늘의 아들딸이 못 됩니다. 그런 인격자에 대하여는 참소할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소원하던 것을 놓고는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격이 필요합니다. 역사가 복잡해져 가는 것은 선생님이 나가는 길과 맞추기 위함입니다. 4월까지가 중요한 기간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다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해원하기 위해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부터는 승리적 주권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선조의 한을 풀기 위한 눈물이 아니라 세계와 백성을 위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이 있어야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 장로를 세운 것은 삼천만을 위한 애국정신으로 소망 없는 가운데서 미래도 모르고 충성한 것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도 갖고 가야 합니다. 의분심에 불타 올라야 합니다. 이제부터 분한 마음을 들게 하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리는 백성이 없습니다. 이제는 실체 소망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망명한 군왕의 심정 이상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공격시대 입니다. 슬퍼하는 무리는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에 누가 그렇게 되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하라

아담에게 축복은 했지만 아담은 그것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갖고 안 갖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탄이 참소하면서 공격해 오던 것같이 우리도 참소하면서 공격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맞고 먼저 당해야 합니다. 육신을 골고다의 길을 향해 보낸 다음에는 영계를 대신하여 실체를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제2차적으로 3년 기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를 위하여 또 나아가야 합니다.

만민을 진정으로 굴복시키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이 무슨 명령을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을 축복할 때까지 얼마나 내적인 고통이 많았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투전판에서 마지막 장을 뽑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세운 것입니다.

흙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고생시킨 자들인 고로 날이 갈수록 감사히 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누가 속마음만 건드려도 폭발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정의 골짜기마다 들어가 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갖고 찾아오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찾아오신 심정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완전한 몸으로 싸워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바랍니다. 심정과 혈통이 다르기 때문에 그 심정과 혈통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인격이 필요합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못 했어도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뼈저리게 뉘우치면 속죄의 길이 열립니다.

<말씀 요지>

앞으로 7개국 이상에 전도를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중심 조상이 되어야 하고, 복귀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거꾸로 되어 여러분이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제1, 제2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제3이스라엘이 됩니다.

지금 한국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개체에 머무는 존재가 아닙니다. 영계와 후대까지 연결해야 될 존재입니다. 때문에 내가 세계적인 인연을 어떻게 맺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물이므로 성별되어야 합니다. 제물이 더러움을 타면 영원히 참소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정적인 인연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의 소망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중심하여 과거·현재·미래의 소망을 연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진 소망의 실체입니다. 여기에 표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을 중심하고 세운 표준 이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선생님을 중심하고 외적 투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곳에 가는 것은 동서남북 사방을 살리기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모시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동안의 역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3년 기간에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세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의 슬픔으로 뭇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히 제물 될 때까지 그래야 합니다. 완전히 제물이 된 그 시간부터는 성물(聖物)인 것입니다. 이 모임은 그러한 제물을 드리는 모임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되어 완전히 제물이 된 후에는, 우리가 저주하면 저주하는 대로 됩니다.

우리는 부활한 영적 실체가 아니고 영육 아우른 실체인 것입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잘못하면 그를 때림으로 제2차적인 제물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내어 줌으로 민족을 살리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제물로서 가는 제일 무난한 길은 고생하는 길입니다. 세계는 심정으로 구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생해야 합니다. 만일 3년 전에 봉춘 씨가 일본에 안 갔더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금년에 7개국으로 전도하러 나가지 못하면 미국 안에서라도 7개소를 택하여 사람을 파견해야 합니다.

한 기대(基臺)가 가면 두 기대는 그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기 바랍니다.

협회 각 부장들은 서울지구를 분담하고 식구들에게 다른 지구들을 배당 해야 합니다.

돈을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가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과 뜻과 심정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제물을 못 드려 가인 아벨이 대신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은 고생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것입니다. 제2차 3년이 있게 되니 이것은 가정적인 고난의 기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식구들이 고생하여 이룩한 모양을 보고도 불쌍히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이 고생한 이상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 요지>

본부교회를 건축해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돈으로 교회를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건축 준비위원입니다. 본부교회는 한국 사람의 손으로만 지어야 합니다.

3년 동안 식구 7만 명을 만들어야 했었습니다.

아버지는 주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에게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타락의 비밀을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발표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그 비밀을 찾아 하나님과 단판을 지어야 합니다.

앞으로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다리 밑과 물 속에 까지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시멘트도 있어야겠고 자갈과 모래도 있어야 합니다.

선이 밟히면 사탄이 쳐 놓은 담이 무너집니다.

장차 이 나라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그 가치 이하의 기준으로 대하면 그것만큼 악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섭리적으로 볼 때 고개 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청산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참소를 못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얼크러진 것들을 풀어 주려고 하시는데 자신들이 풀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 책임은 자기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양심에 부끄러운 돈으로 성전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감히 받을 수 없는 돈을 받아야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너는 아담 해와의 후손이요, 너는 예수님을 죽인 죄인의 후손이니….’ 하면서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기준을 세우고, 지역장·지구장·협회장 3인의 승인을 거친 다음 성별하고 써야 합니다.

한국은 본가입니다. 본가는 내가 단장하여야 합니다.

지구장들은 성전 신축 준비위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식구들이 이것을 못하여 외국 식구들이 담당하면 위신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선생님의 기반입니다. 언제나 각자의 마음 수첩에 기입하는 운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전 신축을 위해 전국적으로 정성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이 하늘 성전의 변소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전부 몇 명? 한 삼십 몇 명? 대다수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젊은사람입니다. 30미만의 대다수 사람인데 이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씩씩하고 용맹스럽고 혹은 옳지 못한 것을 볼 때는 참지 못합니다. 의분심이 강한 것이 청년 시대의 기질입니다.

​청년시절에는 의분심에 불타는 기질을 길러 나가야

​이 의분심을 그야말로 잘 쓰면 나라를 살릴 수 있고, 더 멋지게 쓸 수있으면 세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협회장도 얘기했지만 역사노정의 투쟁시대를 거쳐 올라가 가지고, 전쟁이 나 가지고 싸우는 데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예요.

우리 나라가 세우고자 원하는 정의의 주권을 이 천지 앞에 세우기 위해 의분심에 불타 가지고 그 정의의 주권 앞에 그릇된 모든 것이 있거든 그거 참지 못하고 그것을 격파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고 제일선에 나설 수 있는 용맹하고 씩씩한 기질이 젊은이의 기질이라는 것입니다.여기는 그런 젊은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할 때 혹은 사생활에 있어서, 아까 협회장 이이야기했지만서도 그런 고충은 물론 있어야 되는 것이며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있더라도 그러한 생활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이제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그런 고충이 있더라도 우리가 여기 모인 목적은 여러분 개인적인 의분심을 기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단체적인 의분심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공동 목표를 대신하여 나가는데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의분심을…. 여러분이 가지각색의 개체의 의분심이 있다 하더라도 전부 다 띠둘러 가지고 둥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공적인 의분심에 불탈 수 있는 사나이, 혹은 아낙네로 만들어야 하는 도장이 여기여야 됩니다.

여러분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왔을 것입니다. 또 팔도 강산 수많은 곳에서 모여 왔으니만큼 사정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여러 가지 생활감정이 다른 분야가 있겠지만 이거 다 잊어 버려요. 이제 여기서 지도하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은 한때를 맞이하여 멋진 의분심을 가져 가지고 세계 앞에 호령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자기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명심해 두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부탁이예요.

​수련생이 유의해야 할 점

​그리고 대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지금까지의 전례를 봐서 대다수의 수련생들이 와 가지고 3일 기간을 넘기가 힘들어요, 3일 기간. 이 3일 기간 출발하는 때에는 환경도 달라지고 여기에 대하는 모든 사정도 달라져요. 특별히 수련생 여러분들은 본부에 대해서 신망을 갖고 왔을 거예요. '아, 우리 본부에 가게 되면 본부에 있는 분들은 전체 우리 통일교회 이념을 지도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여러분들이 바라는 기준 이상 될 줄 알고 물론 왔을 거예요. 또, 큰 포부를 갖고 왔을 거예요.

또 큰 포부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수련받기 위해서는 그런 포부가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온 포부, 본부에 대한 신앙심이라든가 혹은 믿는다는 기여심, 이러한 것,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을 다시 한번 수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수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들에 대해서 반대적인 현상으로 대할지 몰라요. 상충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꾹 참아야 됩니다. 또 어떤 때에는 누구, 선생님이 가끔 누구를 시켜서 반말도 하게 할 거예요. 할아버지 같은 사람 대해서 자기 손자 같은 사람에게 시켜 가지고 반말도 시키고 아주 성내게 하고, 그런 놀음도 가끔 할 거예요. 어느때에 어떤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시험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받는다면 입은 다물어야 됩니다. 입은 다물고 눈은 아래로 내리 뜨고 귀는 덮고….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입을 열 때는 말씀과 혹은 직접적인 지도자와 관계되어 있을 때에 열어야 됩니다. 이러면 무사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기를 더디하고, 보기를 더디하고 말하기를 더디하면서…. 나 중심삼고 살다가는, 그렇게 나가더라도 나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또 문제 생겨요. 그러니까 나를 잊어버리고 전체를 위해 산다는 관점에서 나가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본부의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많은 사람들은 수련생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 수련생이 자기를 중심삼은 수련생이 아니요, 공적인 수련생으로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입장에 서지 않게 될 때는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고할 때는 아주 뭐 서리발 같은 충고를 하고, 용서 없는 충고를 해 주어야 됩니다. 또 충고해 주는 사람이나 충고받는 사람이나 공적이라는 그 엄숙한 과제 앞에서는 머리 숙여야 됩니다. 충고할 때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충고하고, 충고를 들을 때에는 자식을 대신하여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이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젠 왔으니 환경이 다르지만, 여기 본부에 신망을 갖고왔으니 떡 눈에 쌍안경을 끼고 들춰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 풀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 풀어 놓고…. 이제부터는 전부 다 풀어 놓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다시 하나 붙여야 할 것은 공적인 기준에 선 대중을 위한 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게 나온다 말이예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나. 이러한 입장에서 나가면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공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왔으니 아무리 불편이 있더라도 공적인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려운 것이 있어야지요. 거기에 항의한다면 `이놈!'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나가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주의 주려고 하는 이런 과정을 후다닥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공적인 기준 중심삼은 나, 그런 견지에 서게 되면…. 공적인 나의 입장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이게 쉬운 것이 아니예요.

​공적인 내가 되어야

오늘날 이 대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대우주에는 완전한 공적인것이 있었느냐 할 때에 대답할 수 있어요? 완전한 공적인 그 무엇이 있었느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내 생활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시대적인 현실이 그러했으며 혹은 역사적인 과거가 그러했으며, 오늘날 시대적인 현실이 그러했으며 다시 찾아올 미래가 그러할 것이냐?

공적인 것 중에 공적인 것, 그 공은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하고 과거ㆍ현재ㆍ미래가 공인하는 존재의 수많은 실체들이 영원한 목적의 실체와 같은 그런 공적인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고 또 그 가치에 있어서는 무한한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공적인 실체라고 공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그거 없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공적인 그것이 나타나게 되면 우주는 꽉 찰거예요. 최고의 공적인 것, 만민이 고대한 것, 어느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절대적인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사람, 그 공적인 것 가운데에는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사람이나 공적인 말이나 공적인 시선이나 공적인 희망. 공적인 것에는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 공적인 세계에서 뺄 수 없다는 그런 최고의 공적 기준이 이 천지간에 벌어져야 하는 거예요. 만일에 그것을 채우는 날에는 세상은 자기한테로 다 오게 됩니다.

그러한 기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공적인 문제를 논의해 가지고 개인으로서의 교양을 하고, 가정으로서의 교양을 하고,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교양을 하고,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어떤 주권을 중심삼아 정책적인 기준에 있어서의 국민성을 개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건 다 뭐냐? 나중에는 이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공적인 것에, 그건 다 들어간다 말이예요. 이걸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대우주의 공적인 그것과 아까 말하던 공적인 누구? 나. 문제는 여기에 부딪치는 거예요. 공적인 그것과 나. 이러한 문제에 부딪친다 말이예요.

그러면 공적 기준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나를 완전히 찾지 못하는 거예요. 나를 완전히 찾아 자기의 생활 기준 앞에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공적인 세계와 공적인 역사와 공적인 이념과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그 무엇과 `나'라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준 앞에 내가 흡수되어야 할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에서, 공적인 기준에서 여러분 자신을 세우는 입장에 서고 넘어가 주길 부탁드려요.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3일날, 3일 고개를 넘기 힘들어요. 요 3일 고개만 딱 넘고 나면…. 사흘동안은 복잡하단 말이예요. 그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일주일 동안. 일주일의 고비가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일주일쯤 돼야 공부하는 기분 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 그거 지나가게 되면 2주일 동안, 한 2주일쯤 돼야…. 그다음에는 3주일, 한 20일 지나야 여러분이 본 궤도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이번에 여기 온 사람 가운데는 새로 온 사람이 한 3분의 1가량 되는 모양인데, 3분의 1, 이런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여기의 이 환경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지장을 가져오리라 봅니다. 그러니만큼 여기에서의 지도위원들과 여러분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명령함에 여러분은 응하고, 지도위원들은 이들의 모든 부족한 것을 청산하여서 옳은 면을 세워 나갈 수 있게끔 혼연일체가 되어서 이번 40일 수련을 잘 움직여 주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대강 알겠지요? 「예」 또 지도위원들 대강 알겠지요? 「예」

​생활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줄 알아야

​그러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말씀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 자신 이렇게 말하면 누구예요? 나라는 말이예요, 나.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자, 여기 생각하는 청년이 있다 하자구요, 생각하는 . 아, 요거 말하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하자구요. 여러분들 이제 내일부터 물이, 지금 물이 없다 말이예요. 물이 안 나와요. 이제 2층에서 물 걱정하다 내려왔는 데 대번에 부닥쳐야 하는 것이 생활환경이…. 내일부터는 세수도 못 한다 말이예요. 요 한마디 다시 첨부하고 넘어가자구요. 선생님은 이런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럴 생활을 한 때가있었어요.

사람이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뭐 노동하고 매맞는 것도 참아요. 그러면 뭣이 제일 어려울 것 같아요? 제일 참기 어려운 것? 한 번 얘기 해 보자구요. 「배고프고 잠오는 것입니다」 배고프고 잠 오는 것.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물론 잠 오는 것도 그래요. 제일 힘든것은, 그 중에 배고픈 것. 배고프고 그다음엔 목마를 때 물 없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것이….

여러분들은 그저 어디가든지 가다가 고개만 숙이면 그저 강물이라도 벌꺼덕벌꺼덕 마실 수 있는 환경에 사니 그 환경은 천지간 어디에도차 있기 때문에 그건 염두에도 두질 않는 거예요. 그건 응당히 내 것으로 되어 있지요. 여러분 대개, 사람들이 대개 말하기를 `빵을 위해 산다' 이렇게 말하지요? 천만에. 빵은 간단한 거예요. 빵보다도 물을 안먹으면 더 빨리 죽는 거예요. 물 안 먹는 게 문제예요. 사람이 7할, 4분의 3이 물로 되어 있다 말이예요. 목마를 때 물 안 먹으면 이거 배고픈 것 이상이예요. 그런 생활 모를 거예요.

감옥 생활 같은 거 해보면 참 거 배도 고프지만, 배고픈 가운데 목이 말라 보란 말이예요. 한 덩이밖에 없는 밥하고 물하고 바꿔 먹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배고플 때에 알아야 할 것은 `아,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이 하나 있구나. 물이 있구나' 하는 거예요. 여러분, 금식을 해도 그냥 하면 오래 못 가지만 물만 먹으면 40일도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배고플 때에 생각해야 할 것은 나에게 감사한 한 가지 소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이냐? 어디 가든지 배고플 때에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사람은 무엇이든 감사한 것을, 내 생활에 있어서의 감사한 그 무엇을 하나 가질 줄 알아야 됩니다.

또 배고프고 목마를 때, `아이구 나 죽네!' 할 때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거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배는 고프지, 목은 마르지, 그럼 난 죽느냐? 안 죽는 다 이거예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나에게 한 가지 있나니 뭐예요?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뭐예요? 「공기요」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그걸 갖고 있어요. 그거라구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 누구냐? 제일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제일 악한 사람입니다. 제일 선한 것이 무엇이냐? 제일 어려운 때에 있어서의, 그 어려운 때에 제일 좋을 수 있는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선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제일 긴박하고 제일 절박한 것이 무엇이냐? 물보다도 더, 밥보다도 더 절박한 것? 무엇이? 「공기입니다」공기. 고차적인 이런 음식을 이 우주 간에 충만하게 나를 위하여 준비한 내 무한한 양식이니 고맙다 이거예요.

나에게 이 원수들이 밥을 안 주고 물을 안 주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공기까지 안 주는 날에는 큰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에 한가지 감사의 여유를 갖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기를 들여 마셔 보라는 말이예요, 얼마나 맛있나.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련생들 대해서 밥 안 먹이고, 물 안 먹이고…. 아, 이녀석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 하면 또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나이 많은 양반도 있지만서도 그것 다 평균이예요. 평균으로 취급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건. 그러한 공적인 공약 밑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아, 뭐 밥도 안 주고…' 밥 안 먹이고, 물 안 먹이고 하는 것까지 수련입니다.

구멍을 몇 개 파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들이쉬어야 겨우 살 수 있게끔 공기 구멍을 딱 만들어 놓고 갖다 넣어 보란 거예요. 아주 한번 그렇게 만들어 훈련을 시켜 가지고 거기에서도 참고, 거기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그 무엇…. 죽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 죽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이거예요.

거기는 공기가 문제가 아니예요. 공기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 천하의 고통이 침범할 수 없는 생명력…. 그런 자리에 있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못 하는 것이 없는 거예요. 손을 들어 밀어 대면 세계가, 천하가 다 휘말려 들어가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에게 밥이 있어요? 밥 있어요? 밥 있으면 감사해라 이거예요. 여기에는 물도 있고…. 공기도 있어요. 밥이 있으면…. 물이 있어요? 또 공기가 있어요? 공기하고 밥하고 바꿔? 아니예요. 물하고 밥하고 바꿔? 아니예요.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부자다 이거예요. 그것만 있어요? 태양 빛도 갖고 있거든요.

제일 귀한 것은 싸구려야, 여러분들이 그렇게 안다 말이예요. 제일 귀한 것은 싸구려다 이거예요. 그것을 싸구려로 알았던 이 녀석들이니 이건 악한 녀석들이예요. 여러분들 물 한 모금 먹을 때 고맙게 생각했어요? 누구한테 그거 감사해 봤어요?

여기 나이 많은 아저씨들도 왔지만 40평생, 50평생, 60평생 중심삼은 동안에 내 물 한 모금 마셨다고 `물님 고맙습니다' 공기면 `공기님 고맙습니다' `태양이면 빛님 고맙습니다' 그래 봤어요? 제일 귀한 것을 무가치하게 취급하는 사람은 파괴 분자로서 이 사회에서나 어떤 공적인 세계에 있어서 존재의 가치를 지니게끔 떡 존재시킬 수 없는 거예요. 그런 물건들이라면 그 물건들은 악한 놈들이예요. 악한 놈들이예요. 그래 여러분들 그랬어요? 못 그랬으니 수련받아야지요.

제일로 귀한 것은 태양 빛입니다. 빛만 없애게 되면 이 모든 만물은 죽어 버려요. 뭐가 있든, 공기가 있든 다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태양빛을 고맙게 생각했나요,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나요, 공기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나요? 내 언젠가 한번 이렇게 얘기했지만, 이런 햇빛님이, `야 동맹 파업하자, 인간들이 악하니까. 난 아침 햇빛을 안 발하겠다' 하면 다 죽는 거예요.

또 물님이 `아 전부 다 나는 인간하고 관계없다' 하고 동맹파업 딱 할 때는 죽는 거예요. 그렇지요? 또 쌀님들이…. 그러면 빚지고 사는 거예요. 빚지고 살면서도 고맙게 못 사는 것이 이게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귀한 것을 함부로 천대하는 것은 악한 놈들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전부 다…. 지금까지 그랬으니 이제부터 그러지 않기 위해서 온 거라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응? 「예」 그렇기 때문에 내일부터 물이 없을지 몰라요. 선생님도 감옥에 살 때는 물 한 모금 주면 물 한 모금으로 세수 했습니다. 아주 귀한 멋진 것! 한번 해보라구요. 얼마나 좋은가. 아주 얼마나 좋은가.

물 한 방울을 천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데서 물 한 모금을 받아 가지고 세수한다면 금 대야에다 적당히 온도 맞추어 가지고 따뜻하게 세수하는 것보다 더 귀한 거예요. 한 모금이…. 저 부엌에서는 물이 없지요? 내일은, 이제 세수…. 그거 본부에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예요. 서울시에서 그런 사고가 생겨나서 지금 그렇게 됐으니, 나중에 물을 많이 떠 가지고 바께스로 주고, 그렇게 못 할 거예요.

그걸 볼 때 `이 녀석들 잘 되었다. 수련 첫날부터 물 한모금씩 줘 가지고…' 하는 생각도 하는 겁니다. 앞으로, 하루에 물 한 그릇도 안 줄지 모르지요. 이래 가지고 국, 찌개도 못 할지 몰라요. 그러면 이제 뭐 소금좀 달랠지 모르지. 물 안 들어가는 걸로 해야지요. 그러니 그러한 고충이 있을지 모를 테니까 여러분이 이런 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사는 생활에서는 한 가지, 자기의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감사의 그 무엇을 발견하고 갈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수련하는 거예요, 수련. 그렇기 때문에 그건 첨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자, 이제부터 얘기해 보자구요. 무엇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그랬나요? 「나에 대하여」 아, 김 서방, 박 서방? 무슨 서방? 내 서방. 자기. 김가면 김가, 박가면 박가, 이가면 이가. 여기 선 선생님처럼 문가면 문가.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얘기해 보자구요.

​상대를 위해 우주의 모든 존재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사람을 딱 바라보면 이목구비가 갖추어진 체구의 모양에 있어서는 종류는 다 같습니다. 눈 둘, 코 둘, 같지요? 입 하나, 귀 둘, 손발 열. 체구는 같은 종류란 말이예요. 눈 종류, 코 종류, 귀 종류, 입 종류, 팔종류, 다리 종류. 같은데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천태만상이예요. 요 사람도 다르고, 고 사람도 다르고.

그러니까 그렇게 천태만상이니, 가짓수는 마찬가지인데 그 내용은 천태만상으로 벌어져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의 외형이 천만 가지로 벌어지니만큼 내형도 천만 가지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러한 수많은 인간이면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기준을 잡느냐?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이 뭐하러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요? `아이구, 아담 해와고 무엇이고 다 귀찮아. 뭐 인류고 무엇이고 다 이 나라 뭣이고 다 귀찮아! 이러지요? 나의 조상이 어떻게 됐을 것이냐?'하고 말이예요. 그래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 생각 안 해봤나요?

내가 아버지든 뭣이든, 그거 다 귀찮거든요. 내가 천지간에 딱 눈을 뜨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눈 뜬 사람이다 이거예요. 입을 벌리다 보니 좋은 소리는 안 냈겠지요. `빽' 하고 우는 데에는 나쁜 소리로 울었을 거예요. 울다 보니 내가 처음이예요. 보다 보니, 움직이다 보니…. 천지간에 내가 처음으로 활동했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여러분들 그런 것 생각해 보라구요. 어떻게 됐을 것이냐? 어떻게 돼 있을 것이냐?

어디, 바닷가를 찾아갔을 것이냐, 산을 찾아갔을 것이냐? 그저 또, 물론 자연에 대해선 그렇게 대한다 하고. 이 세계를 , 이 찬란한 모든 이 천지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천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 이놈들아!' 하고 호령했을 것이냐, 무서워했을 것이냐? 이와 같이 복잡하고도 아주 진지한 사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 그러한 것 다 제쳐 놓고 나만 남았을 때에 `나'라는 것은, `나'라는 명사를 세울 때에…. 나라는 것은 벌써 상대적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나'라는 것이 상대적이예요, 아니예요? 「상대적입니다」 반드시 상대를 세워 놓고 `나'라고 합니다. 천지를 창조한 어떤 창조주가 이땅에 계시다 하면,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가 내가 하나님이다! 하려면 어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움직이는 것은 상대 때문에, 눈이 보는 것도 상대때문에, 팔이, 다리가 움직이는 것도 상대 때문에. 다 분야 분야 그 어떤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그건 부정 못할 거예요. 상대를 필요로 하여 모든 이 체구의 종류들이 지금 떡 분별되어 있는 거예요.

이 분별되어 있는 종류들이 통합하여야…. 혼자밖에 없을 때에는 `나'라는 명사는 무엇인지 모르지요. 이것이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 이런 종류들이 합해 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실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이 종류들의 어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안 그래요?

손이 하나 있으면 뭐하느냐 이거예요. 암만 있으면 뭘하느냐 말이예요. 반드시 상대적인 어떤 대상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로 하고 움직이게 될 때에 거기에서 좋으니, 나쁘니 가치를 논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나를 중심삼고 현재에 되어지는 환경적인 조건을 부정하지 못할 거예요. 나를 들고 나오기 전에 천지 가운데 내가 먼저 나왔느냐?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게 또 무궁무진 하거든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개구리 새끼서부터?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부모가 없을 거예요, 나만 있는 맨 처음엔. 나라는 명사는 존재치 않아요.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있긴 있어요. 이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다시 생각할 때는 그게 미지의 것일 것입니다. 미지의 것일 거예요. 미지의 것일 것인데 내가 나왔어요.

나왔으면 내가 원해서 나왔느냐? 목적을 둔 감정을 세워서 나왔느냐? 아무것도 없어요. 모른다 말이예요. 뭐 있나? 내가 원한 것도 아니요, 어떤 감정적인, 목적적인 무엇을 필요로 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런 걸 볼 때에 이 만유의 존재가 반드시 개체의 진리의 실체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기준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원칙을 부정 못 할진대, 내가 있기 위한 상대의 주체는 어디 갔을 것이냐? 이런 것을 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주체가 있어야 할 터인데, 내 자신이 상대의 주체가 되고 상대체가 될 수 있느냐 할 때에 그것 가지고는 만족하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견지에서 보게 될 때에 어떤 관계의 결실체로, 관계의 내용을 통하여, 어떤 관계와 혹은 어떤 인연의 내용을 통하여 현실의 목적의 결과로서, 혹은 대상체로서 있어야 할 내 입장을 긍정할진대는 여기에 있어서의 내 배후의 동기적인, 내용적인 모든 조건은 어떤 것이냐? 이것이 지금,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생명의 근본문제가 거기에 부딪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동기적인 주체인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인간

​과거, 과거. 과거 없는 현실, 과거 없는 오늘날 실존체는 존재의 가치가 없어요.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훌륭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과거가 없는 사실이 과거의 내 자신을 중심삼고 입증된 사실과 그리고 현실적인 모든 환경의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무엇을 남기지 못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무가치한 겁니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있기 위해서는 전후가 있어야 돼요. 그렇지요? 응? 「예」전후가 있어야 되고, 좌우가 있어야 되고, 상하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몰랐지만 반드시 전후가 있다는 거예요. 좌우관계가 있고 상하관계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내 주위에는 ,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과 같이 내가 대상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동기적인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동기적인 주체가 무엇이냐? 이것을 놓고 인간들이 답답한 명사로 풀이를 하다 보니, 있긴 있는데 부정할 수 없으니 그걸 갖다 붙이는 명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니 갓(God;하나님) 이니 뭐 가미사마(かみさま;하나님)니 여러가지예요. 즉,수많은 인간들이 부르짖는 대명사를 갖고 있는 그 실체가 되어 버렸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이것도 명사로 치면 명사는 명사인데, 있긴 있는 데 내용은 미지수예요.

이것을 우리 인간이 처음으로 놓고 그다음에, 그다음에 내 실체를 공인시켜 놓고, 그다음에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가 가야 할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지금 나가고 있는데,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데 지금까지 교양이나 수련이나 모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는 인간 위주로 한 목적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이 아니예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신과 인간, 이렇게 나온 거예요.

지금에 와서는 인본주의 사회로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나아가고 있지만 결국은 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주의가 뭐냐 하면, 하나는 신이 있다는 것, 하나는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형태를 거쳐 가지고 두 갈래로 이렇게 되어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오늘날 인간이 참다운 소망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세계,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과거의 어떤 본체 앞에 현실의 내 자신을 세워 놓고 미래적인 어떤 목적을 세워야 돼요. 나라는 것은 반드시 대상적인 어떤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게 될 때에 여기에서 그 목적은 인간 위주로 한, 나 위주로 한 목적은 성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역사적인 반응이 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이 중심삼고 그다음에는 인간 나를 중심삼되 '나'라는 그 `나'는 육을 중심삼은 `나'가 아니예요.

이러한 배후에 이 천적인 하늘이면 하늘,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배경으로 할 수 있는 그 상대적인 제1 기준이 몸뚱이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너 양심은 하늘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하늘은 변치 않는 이런 법도권 내의 주체입니다. 그러니 그 주체권 내에 속하여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변하는 자체가 아니예요.

인간 앞에 변하지 않는 자체를 찾아보게 될 때에 몸뚱이가 아니고, 눈이 아니고, 귀가 아니고, 코가 아니고 팔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사람 앞에 하나의 변치 않는 그 무엇이 있느냐 할 때에 그것이 있단다면 무엇이냐? 무엇이예요? 양심이예요.

그러면 하늘이 있다 한다면 하늘은 반드시 양심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과거의 우리 선조로부터 다리를 놓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세계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어떤 절대적인 이 주체의 본체가 인간에게 다리를 놓아 가지고 절대적인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그런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할 수있다는 거예요. 뜻이 무엇이냐? 신의 목적이예요. 오늘날 우리 원리로 말하면 창조목적이예요. 창조의 뜻이예요. 뜻을 세워야만 목적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렇지요? 뜻을 세워야만, 뜻을 세워서 나가야…. 뜻을 세우는 데에는 무엇으로 세우느냐? 생활적인 하루에 세워야 됩니다. 하루에 세우는 동시에 한 시간에 세워야 되고 일초, 더 작은 몇백 분의 일초 순간에 뜻을 세울 수 있는 실적을 쌓는 자 아니고는 그 목적의 세계로 갈 수 없다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 입장에 선 '나'예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입장에 섰느냐? 중간 위치에 놓여 있어요. 알겠어요? 「예」 '나'라는 것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해 혼돈 상태에 처한 현실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뺨을 `이 자식아!' 하면서 친다면`왜 그래? '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맘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아, 솔직히 이야기해요. 「있습니다」 그거 있고 말고. 어, 속이 벌렁벌렁 가슴까지도 막 홍두깨질하지요. 있고 말고요. 내 팔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그렇지만 들이치는 데 내가 잘되고 내가 훌륭하게 되기 바라서 친다면, 어떠한 치는 사람이 있는데 백 퍼센트 이 사람이 진정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친다면, 사랑하는 부모가 있어 가지고 아들을 들이 팰 때에 `이런 것은 아, 나를 잘되게 하기 위함이고, 나를 귀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세계적인 뜻을 품고 세계적인 목적을 지닐 수 있는 단계로 올리는 위함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배후에 그러한 크나큰 의미를 갖고 있는 거예요.

배후의 크나큰 복의 기관을 혹은 복의 가치의 문제를 갖다 주기 위해서 친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매맞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돼요? 그래야 되겠어요? 내가 매맞는 아픔보다도 천배, 만배 더 클 수 있는 복의 가치를 갖다 주는 것만 알게 되면 매맞고도 감사할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소질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소질 없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보따리 싸 가지고 가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옛말에 미운 자식에게는 뭘 더 준다구요? 「밥을 더 줍니다」 미운 자식에게는? 「떡입니다」 떡 한 개 더 준다 이거예요. 떡 한개. `옛다 먹어라 이놈아!' 그건 빨리 망하라는 거예요. 고운 자식에게는…. 옛말에도 그런 말 있지만 말이예요. 이게 왜 이렇게 되느냐 이거예요.

채찍을 들이 치는데는 , 불의의 부모 앞에 맞게 될 때는 항거를 해도 천법에 어긋나지 않아요. 불효해야 돼요. 오늘날 역사종말시대에 있어서는 전부 다 효자 효녀의 도리가 다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다 깨져 나가라 이거예요. 다 깨져 나가라 이거예요. 부모가 부모 같은 것이 없어요, 자식을 위해서 채찍을 들어 치더라도.

`이 자식아. 너, 내 밥을 안 벌어다 먹였지?'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건 벌써 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산산이 다 깨지고 사회의 우리 모두의 취미가 전부 다 파괴되어 나가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역사적인 환경이 그렇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는 데에는 자동적으로 될 수 없어요. 인간이 미처 이해 못할 어떤 동기의 이면의 세계에서 반응이 돼 가지고 현실에 나타난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산이 전부 다 부서져 나가는 것입니다. 다 그렇지요?

참다운 것이 무엇이냐? 옳은 것이 무엇이냐? 선이 무엇이냐? 힘이 정의지. 거 한마디면 다 되느냐 말이예요. 힘이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채찍을 들어 치더라도, 맞고 나서도 고마운 거예요. 불의라는 것은 먹이고 나서도, 먹고 나서도 분한 것입니다. 그런 거 더러 느껴 봤어요? 어떤 녀석이 나에게 뭘 사 줘서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의의 것이예요. 내가 정당한 길을 가야 하고 내 본심의 양심 생활, 이런 이론적인 자아 인격을 구성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어느 누가 살인 강도한 그것으로 아주 뭐 진수성찬 잘 베풀어서 줬다 이거예요. 그걸 먹고 `잘 먹었소!' 한다구요. 잘 먹고 대답한다 이거예요. 그 꼴이 얼마나 불의한 것이냐 이거예요. 먹고는 분함을 못 참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를 보게 될 때에 참 같은 것이 참인지, 참아닌 것이 참인지 알 수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명사는 네 어머니 아버지나 내 어머니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나 명사는 마찬가지인데 환경은 달라진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시간과 거리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달라지니 그 어머니라는 명사도 달라져 나와요. 그러니 오늘날 지금까지 모두 가정적으로 전부 다 깨져 나가요. 사회적인 명사나 모든 것. 옛날에 주권자였던 뭐든 전부 다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마음을 중심삼고 잘못된 현실을 잘라 버리는 용단을 내려야

​자, 이러한 어떤 흐름이 나를 동반하여 흘러 나가는데, 어떤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것이 필연적인 도상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실에 처해 있는 입장에서 가려고 보니, 앞을 바라보니 갈 수 있는 목적의 세계는 어디 갔는지 없다 이거예요. 뒤를 돌아보니 동기적인 실체는 어디 갔으며, 이러니, 앞이 막혀 있고 뒤가 막혀 있으니 거기에 고립된 자신을 걸어서 탄식하는 탄식의 아우성 소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리가 마을을 지나, 사회를 지나 국가를 넘어 세계에 파동 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는 최후의 종착지를 향하여 급행 열차의 달리는 속도 이상의 빠른 속력으로서 내 운명을 끌고 몰아쳐 들어가는 이 사망의 물결이 내 꼬리를 물고, 내 옷자락과 내 몸뚱이와 내 다리를 당겨 매 가지고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한 손가락에 달린, 여기에 생명줄이 걸려 전후 좌우로 피해 가면 죽는다는, 최후의 끝에 와 있다는 것을 온 세계 인류 전부 다 느낄 수 있는 시대적환경에, 시대적인 환경이라기보다 시대적인 찰나에 처해 있다 이거예요. 자, 이런 환경에서 이제는 가정이 파멸입니다. 돌아서려니 돌아설 힘이 없어요.

그러면 이 사회에서 쭉 가다가 바른쪽으로 빠지든가, 왼쪽으로 빠지든가 도피해야 할 이런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누구나 부르짓고 있고, 어느누구나 심각한 입장에서 찾고 있는데 가야 할 길, 돌아갈 수 있는 길, 혹은 좌우 길을 피할 수 있는 피난 길은 어디 있을 것이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손을 붙들고 몸으로 동댕이를 치고 있는 현상이 오늘날 세계 30억 인류의 현상이요, 여기에 모인 과거의 여러분의 현상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에도 여러분은 그런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도피하고, 전후로 피해 갈 수 있는 그런 구명을 찾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러한 입장에서의 나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는 여기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서? 하나를 잘라 버려라,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대가리가 장애가 되면 대가리를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팔이 있어 장애가 된다면 잘라버려라 이거예요. 가정에 있어 장애가 된다면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청산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여기에서 급류로서 끝내 버리자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이 떨어져야 할 이런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예요. `물이 다 없어진다. 어서 가자' 덩치 크게 해 가지고 가운데 골수부터 전부 다 자꾸 벗겨져 나야 된다 이거예요.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붙어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있어서 정성들이는 입장에서 모든 걸 갖추어가지고 흘러가는 모든 사조 앞에 다 부러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조의 입장에 서지 말 것! 뭘할 것이냐? 곁길로 살아라 이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다리를 놔라 이거예요. 용단을 내려라 그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가던 길을 돌이켜라 이거예요.

용단을 내릴래야 내릴 수 없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으니 여기에서 한 가지 비법을 찾는 최후의 방법이 있으니 곁길로 가자 이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다 말이예요, 곁길로 가자. 나는 주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곁길로 가자 이거예요, 소용돌이치면서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흘러 내려간다는 말이예요. 이러한 위치에 가 가지고….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날 이 사회적인 발전도상에, 역사적인 발전도상에 있어서 그러한 유에 속하는 무리들이 무슨 무리냐 하면 세상에서 몸뚱이를 딛고 장단 맞추어 가지고 `에라, 먹고 살자. 에라, 좋구나' 춤추는 무리들이 아니예요. `너희들이야 흘러가겠으면 흘러가라. 내, 곁길로 간다' 이런 길을 찾아오는 그러한 무리들이 있나니 그 무리들이 뭐냐 하면 인륜 도덕을 논의하고 선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숭상하는 무리들인 거예요. 이런 무리들이 반드시 역사 도상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길이 뭐냐 하면 종교 패들이예요, 종교 패들. 이건 비현실적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곁길로 보내야 되겠다 이거예요. 곁길로 가야 돼요. 가려니 용단을 내려서 이걸 쳐부수고, 이것을 전부 다 박차고 밀어 낼 수 있는 내 능력이 없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이런 비결을 모르니 할수없이, 할수없이 곁길로 가는 거예요. 곁길로 가려니 공부해야 돼요. 전부 다 두 갈래 길이니 거기서 산중 수도하고….

에미 애비도 다 몰라보는 거예요, 도의 길 가는 사람들은. 자기 처자도 다 몰라 보는 거예요. 다 잘라요. 맨 나중에는 자기 살점도 다 잘라 버리는 거예요. 이놈 팔이 그러면 팔을 잘라 버리는 거예요. 팔이 원수면 팔 잘라 버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다 껍데기 벗겨 가 가지고 무엇?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바쁘냐 이거예요. 가만 있어도 바쁘단 말이예요. 우리 6. 25동란 이후에 한국 백성이 얼마나 많이 걱정해요? 다 벌거숭이가 되고 깡그리 다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거예요. 편할 수 있는 것은 뭐냐? 그 급류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제일 행복한 거예요.

사망의 도상에서 아브라함이 말이지요, 소돔과 고모라성을 하늘이 심판하는 데에는 불벼락을 내릴 것을 알아 가지고 야단 도망가게 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곁길로 뺀 거예요.

​부패한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를 믿고 따라가야

​이런 놀음을 하라고 오늘날…. 그 어떤 주인이 있다고 하면 그 주인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그런 과정적인 도상에 있어서는 시대시대를 따라서 그러한 상충된 면에 반드시 부딪치면서 거기에서 후퇴한다는 거예요. 앞으로 도피 작전시키는 이 방법을 오늘 인간 앞에 암암리에 제시해 주는 이런 일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길이 역사를 통해서 있었느냐 할 때, 이것이 도(道) 라는 거예요. 이런 도, 이런 종교라는 명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으로 하여금 도피라는 방법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태가 있나니, 오늘날 역사과정에 있어서 필연코 우리 인간의 더불어 배후에서 섭리하여 인간을 도피시키는 하나의 방편을 세우는 어떤 나 이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분이 하나님인 거예요. `아하, 하나님이 그렇게 됐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위기에 봉착하면 봉착할수록 예언자가 오는 거예요. 시대 시대에 반드시 거기에는 지도자가 오는 거예요. 부패의 일로에 종말되는 것이 아니라 부패의 자리에서 개혁을 해야 돼요.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에서 자꾸 곁길로 나오는 거예요. 오늘날도 자유당때보다 곁길로 나오지요. 하나님도 막을 수 없어요. 주류가 얼마나 세냐 이거예요. 자꾸 끌어당기지만 나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곁길로 가 가지고 딱 붙들고, '홍수가 나더라도 못 끌어간다'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흘러가던 그 입장으로부터 사방을 수습해 가지고 이념을 잡고 나오자 하는 것이 종교 이념이예요.

그리하여 종교 이념을 중심삼고 최후의 인류들은….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오늘날 이러한 이념권 내에 분열된 입장에 있어서 자기 개체의 신념을 세워 놓고 그 환경적인 입장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거기에 침범을 받지 아니하고 그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이념적인 종교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그 이념적 입장에 있어서 만민이 흘러가는 객류의 도상에서 도피하여 내가 비로소 천주와 더불어 하나의 목적적인 대상의 실체가 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나의 가치를 세운 후 많은 실적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만우주 앞에 새로이 나타날 수 있는 존재를 반드시 하늘이 필요로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필요한 존재가 누구냐 하면 종교적인 세계적 지도자예요. 그러한 분이 뭐냐 하면 메시아요, 그러한 사상이 메시아사상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알거예요, 대개.

보라구요. 이제 그렇다면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았지요? 그런 인연이 역사도상에 있는 걸 알았지요? 그런 인연이 역사도상에 있어야, 어떤 문화 역사로서의 세계사 가운데 그러한 움직임이 있어야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으면 신이 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와야 되는데 그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하면 인간 전체가 내 대신 중심체라고 바랄 수 있는 분이어야 돼요. 내가 그분만 잡으면 과거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현실을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미래를 알 수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분만 잡으면 상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하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좌우를 알 수 있어요. 그거예요, 그거.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는 선이나 인간 출발의 동기는 악

​'나'라는 것인 상대적인 인연 가운데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벗어나게 되면 주체도, 나를 중심삼은 절대적 주체가 되어야 할 그 주체도 나로 말미암아 무가치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도 오늘날 동기와 결과의 그런 세계를 향하여 섭리하시는데, 여기에선 이건 몰락적이예요. 전부 다 이 세계는 원치 않아요. 여기는 기쁨이 아니예요. 기쁨이예요? 기쁨이 아니예요, 슬픔이예요.

인간시조가 생겨난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부부가 기쁨의 부부가 아니예요. 기쁨의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기쁨의 가정이 아니요, 기쁨의 가정이 아니니 기쁨의 사회가 아니요, 기쁨의 사회가 아니니 기쁨의 국가가 아니요, 기쁨의 국가가 아니니 기쁨의 세계가 아니예요. 기쁨의 세계가 아니니 기쁨의 하늘땅이 못 되어 있으니 하나님도 결국은 슬픔의 하나님이 된 거예요.

그러면 슬픔으로서 끝나는 것이 우주의 창조의 동기냐? 아니예요. 동기는 그렇지 않아요. 동기는 기쁨이었어요. 어머니가 뱃속에 어린애를 밸 때 `오, 이놈의 배야! 어찌하여 불러지느냐?' 해요? 어떤가요? 슬픈가요, 기쁜가요? 저 아저씨들? 아주 뭐 뜻 깊은 이런 가운데 `임자가 아니면 내가 죽고 내가 아니면 임자가 죽지' 하는 거예요. 둘이 하나요, 하나가 둘일 것인데, 당신을 봐도 나 같고 나도 당신 같은데…. 그 가운데 복중에서 애기씨가 자라 움직이고 자꾸 커지는 복중을 바라볼 때 그의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나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병신이라도….

내가 한번 이런 일이 있었어요. 보면 말이예요, 팔은 곰배팔이요, 입은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져 있고, 눈은 병신 눈인데 길을 걷는 것 보면 이건 뭐 요지경이고 그래요. 팔도강산 유람하는 가지각색 이상이예요. 아주 뭐 그거 연구하면 참 재미있는 재료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또 그런 마나님이 있거든요. 마나님이 그렇고 영감은 또 소경이고 이런 패들. 이들이 부처끼리 다니면서 복중의 애기를 대해서 `영감도 복중에 애기가 있는 거 좋아합니까? ' 하면 `허허, 그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궁금하게 좋네' 하고 그 여자도 그렇게 병신이지만 `복중에 들은 그 애기를 생각하면 기쁩니까? ' 하면 `기쁘고 말고' 합니다. `당신 같은 아들딸 낳으면 어떻게 되겠오? ' 하면 그건 생각도 안 하고 하여튼 좋다는 거예요. 그거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복중에서 태어나는 걸 가만히 볼 때 누구나 불문하고 부모의 입장에 선 사람은 다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 총각들은 모를 거예요. 한번 시집 장가 가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뭐라고 설명은 하지 못하지만 동기는 좋아서…. 그런데 낳아 놓고 보니`아이코!' 낳고 보니 슬픈 세상에 태어나게 된 그게 한이예요.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할 때 슬픔에 잠겨 `아이고, 이거 이놈의 세상! 드디어 이거…. 아이고, 가슴이야! 아이고, 큰일났구나! 아이구, 슬픔이야!' 하며 눈물 줄줄 흘리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짓는 모든 전부에는 자기 정열이…. 한 가지 짓고 두 가지 짓고 세 가지 짓고 천천 만만의 수가 앞으로 나감에 따라 가지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정이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이 흐르고, 심정이 흐를 뿐만 아니라 자기 개체가 후닥닥 사정없이…. 맛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맛인 거예요. 호랑이들이 아주 굶주린 가운데 토끼새끼 갖다 대면 확 삼키는 그 이상 굶주린 자리에 있었으니 아주 맛있는 진수성찬을 갖다 던지는 것보다 더….

그러한 기쁨이 거기에 숨어 있어야 하나님도 그 어려운 창조의 창업을 전부 다…. 그럴 거 아니예요? 만일에 하나님이 있으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지었느냐? 슬퍼서 지었느냐? 슬퍼서 짓는 하나님이라면 벼락을 맞을 하나님이예요. 그럴 거 아닌가 말이예요.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이 창조주가 있으면 창조주는 출발 당시에서부터 슬픔의 동기를 가졌다면, 그 슬픔의 동기를 가진 하나님이라면 인간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어요. 원수예요.

이걸 생각할 때 어디까지나 선, 선을 찾아야 돼요. 선을 위주로 한 이러한 원칙의 논리는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기는 선해요. 동기가 선하였으니 과정도 선하고 과정이 선하였으니 목적도 선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그런 입장에 섰더라면 인간은 고통 가운데 살 것이 아닌데…. 여기에서 동기는 선이었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동기는 선인데 인간의 생활의 출발과 생활의 동기는 선에서 출발? 악!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동기와 출발은, 생활적인 동기와 출발은 악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기쁜 날로 시작했느냐, 슬픈 날로 시작했느냐? 슬픈 날로 시작했다 이거예요. 인간의 동기가 슬픈 날로 되었으니, 슬픈 날로 시작했으니 슬픈 자신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은 가정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가정적인 슬픔은 민족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민족적인 슬픔은 국가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세계적인 슬픔으로 이렇게 갈라져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의 최후에 승리할 수 있는, 역사도상에 있어서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주권을 되찾는 그날이 와야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겠느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디서부터 출발했다구요? 「악에서 출발했습니다」 악에서 출발했고, 무엇으로부터? 슬픔으로 시작했으니 인간은 세계성을 띠고 인간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적인 인연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의 대창조의 목적과 더불어 관계의 도상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본성적인 창조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 본성을 떠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개체로부터 시작한 것은 세계성을 반드시 걸어 놓고야 해결지어 나가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과 개인적인 고통과 개인적인 죄는 가정적으로 벌어지고, 가정적인 슬픔은 종족적인 슬픔으로, 종족적인 슬픔은 민족적인 슬픔으로, 점점 커 나가는 거예요. 민족적인 슬픔은 세계적인 슬픔의 단계를 향하여….

​온 인류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메시아사상을 믿고 따라가야

​인간에게는 기쁨을 보유할 수 있는 내적인 기준과 슬픔과 접할 수 있는 외적인 기준이 있는데 몸뚱이는 슬픔과 접하려고 하고 내적인 마음은 기쁨과 접하려고 하지요. 기쁨과 접하는 데는 어떻게 되느냐? 역사적인 인연과 접하려고 해요. 지금까지 그 나라의 국법이 있었으면 국법을 중심삼고 이거 하지 말라고 했으면 말이예요, 새로운 시대가 왔어도 양심은 과거의 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식된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서는 안 돼!' 하는 거예요. 몸뚱이는 이 마음을 반대하여 상충적인 입장에서 몸과 마음의 세계가 두갈래로 딸 벌어져서 하나는 내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는 것이요, 하나는 외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물질을 중심삼은 세계요, 하나는 마음을 중심삼은 세계예요. 딱 그렇게 되어있어요. 알겠어요?

그러니 이건 뭐냐? 세계적으로 보게 될 때에는 이것이 범위가 클 뿐이지 인간 개체는 본래 세계적인 대표자예요. 세계적 대표자니, 세계적인 대표형이니 내 개체로 보면 하나는 몸뚱이 대표자요, 하나는 마음적인 대표자, 하나는 유심사관이고 하나는 유물사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딪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싸우지요?

이런 역사적인 도상에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투쟁하던 것이 세계적인 투쟁 현상으로 벌어진다 이거예요. 하나도 맞지를 않아요. 공산주의가 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전부가 원치 않아요. 민주주의가 하자는 것은 공산주의 전부가 원치 않아요. 나와 같은 이런 외적인 형상 실체상이 세계적인 대표형으로서 벌어졌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 되어서 슬픔에서 출발한 인간은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반드시 갈라져야 된다 이거예요. 갈라져야 돼요. 둘 다 갈라지는 거예요.

이제 하나의 기준이 완전히 서지 않게 되면 둘 다 갈라지는 거예요. 하나의 완전한 기준을 세우려면 합하든가 갈라지든가 해야 돼요. 갈라낼래야 갈라낼 수가 없다는 거예요. 민주주의를 놓고 볼 때, 유심 사관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마음의 기준이 무엇이냐? 없어요. 절대적인 몸적인 기준은 뭐냐? 없어요. 없으니 할수없이 여기에 있어서의 참다운 마음의 사람, 참다운 몸의 사람을 모방해야 돼요. 알겠어요?

그러한 내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관적(史觀的)인 현상을 두고 보게 될 때 하늘은 이런 역사적인 종말이 필시 온다는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에 세상 위에 거기에 비로소 지도자 구세주를 보낸다고 한거예요, 구세주.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사상이 나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구세주 사상이 나오게 되면 사람마다…. 그분의 마음으로 우러나는 말이요, 말이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생활적인 무대니, 또 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생활환경이니….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양심을 통하여 우러나오는 것은 천정과의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역사해요. 하나님은 재까닥 해 나오는 거예요. 찢어 놓은 거예요. 왼발 자국은 이미 출발해 놓았지만 오른발 걸음이 나아갈 목적에 누구를 ? 완전한 사람을 떡 딛고 넘어선다는 거예요. 사람을 지배하고 넘어서야만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주고도, 지금까지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인간이 갖고 있는 무슨 주의니 무슨 주권이니 무슨 국민이니 뭐 문화니 하는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한 분만…. 세계는 순식간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전부 다 지배받는 권내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는 악을 대신하여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처리할 수 있는 우주의 중심이 벌어져요. 완전히 우주의 중심인 나! `나'가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메시아는 인간 앞에 최후의 이상적인 견본

그 한 분의 마음을 붙들면 내 마음적인 역사적인 고통을 통하였던 그날들을 다 제껴 버리고 소망의 나의 개체로부터 소망의 가정으로부터, 소망의…. 소망의 민족으로부터, 소망의 국가로부터 소망의 세계성을 띠고 나오던 그런 기쁨의 대상의 실체로서 화하여 나타난 화신체가 구세주입니다. 몸을 통하여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나온, 지금까지 슬퍼하면서 땜을 때워 나오던, 이러한 개인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했고 가정적인 고통, 종족, 민족, 세계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했지만 피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사실이 그분 몸뚱이와 더불어 접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화신체인 그분을 찾으면 우주의 나를 발견하는 거예요. 과거의 잃어버렸던 내 개인을 찾는 것이요, 과거의 우리 선조가 개인을 잃어버렸던 그것을 내가 복구할 수 있는 것이요,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의 가정, 과거의 우리 선조들의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복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소망으로 하였던 그 소망의 실체와 접한 사람은, 그분을 가진 사람은 이 역사를 전부다 완성한 실체로서, 승리적인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그 한 분을 찾기 위해서는 전부 다 버려라! ' 하신 것입니다. 그 한 분은 수많은, 지금까지 이 악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터 위에서 온 분입니다. 그러한 나, 그러한 나….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서서 반드시, 출발이 선했으니 과정이 악했으나 목적이 선해야 돼요.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이 구상하신 실체를 세우는데 있어서 틀림없이 선의 실체로 세웠는데 선의 실체가 못 되고 악의 실체가 되었으니 악의 실체를 정비해 가지고, 이것을 다시 한 번 수정하여 재차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다시 회생할 수 없기에 이 복귀도상에서 지금까지 다시 구원이라는 고통스런 길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하려면 고통스럽지 않아요? 죄인을 구하려면 죄의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똥 묻은 사람을 구하려면 똥 묻는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더 들어가야 됩니다. 더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최고의 수고의 왕자로 군림해 온 분입니다.

그러면 그 뜻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어떻게 되느냐? 전부 다 죽음의 도상에서 허덕이면서 우리의 후손들 앞에 최후의 유언을 하기를 선은 승리한다고 하고, 하늘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부르짖고 가던 그 목적은 비로소 오늘날 최후의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열매가 맺혀지니 비로소 완전한 저울이 나왔기 때문에 가짜 저울은…. 가짜 저울이 많아요!완전한 저울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원기, 원체, 원래의 저울이 없게 될때는 가짜가 전부 진짜 놀음 했는데 원래의 완전무결한 천지가 공인하는 저울이 척 나올 때는 그것 중심삼고 가짜를 전부 다 골라내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의 이상적인 최후의 표본, 견본입니다. 가다(かた;형틀), 뭘 찍는 데 있어서의 원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오면 그분을 닮아라!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나오느냐? 그분은 어떻게 나오느냐? 하나님의 마음 상, 심상의 존재에서부터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선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인간의 생활적인 기준에 있어서 출발과 그 동기는 악이 아닙니다. 본래는 선이었기 때문에 본래 인간이 타락하기전에,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의 구상에서부터 이루어진 분이 그분입니다. 그분을 쳐들어서 의논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 상입니다. 형상, 구상의 그 바탕, 구상의 바탕 가운데 있어야 할 본래의 사람입니다.

​가짜인 나는 악의 무장고

​그러니 지금까지의 사람은 전부 다 가짜들입니다. 거기서 우주의 사람으로서 우러나와 가지고 이 천지, -천지인입니다, 천지인-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람으로서 비로소 가치를 가지고 천지 앞에 비로소 사방에 활개를 펴고 상하를 전부 다 움직일 수 있는 가치적인 이런 사명자로 오시는 분이, 그분이 누구냐 하면 아까 말한 내가 있기 위해서 필요한 이상적인 주체의 대신체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짜 나입니다. 가짜 나라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은 무슨 나예요? 「가짜 나입니다」 무슨나야? 「가짜 나입니다」 무슨나야 ! 「가짜나입니다 !」 가짜 나야, 가짜 나 ! 잘났든 못났든 전부다 가짜 나입니다. 가짜예요. 이랬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보면 눈깔에서 뿔이 나오고, 코구멍에서 갈고리가 나오고, 입에서는 별의별 게 다 나오는 것입니다. 독사 혓발같은 게 나오고 다 나온다는 거예요. 쇠고랑이고 뭐고 그저 별의별 게다 있는 거예요. 흉악한 흉기는 다 갖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무엇을 잡아먹느냐? 마음을 잡아먹고 사회를 잡아먹는 흉기는 다 갖추고 있는 거예요. 악의 무장고입니다, 무장고 ! 이 지긋지긋한 무슨나? 거짓 나지요? 「예」 악의 무장고라는 거예요. 그것이 지긋지긋한 나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이걸 깨뜨려야 돼요. 이걸 짤라버려라 ! 그러기 위해선, 마음으로써 눈을 빼버리는 데는 이 마음이 결심을 안 하면 안 돼요. 이 눈에 원수의 화살이 꽃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화살인 이것이 뽑아지지 않아요. 마음에서부터 이걸 잘라 죽인다, 이래서 그것을 청산해야 돼요. 그걸 청산해야 돼요. 그러려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냐?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요놈의 이 사지백체가 원수의 무장고가 됐으니 이걸 짤라버려야 돼요. 짤라버리는 거예요. 안 그러겠다면 들이 쳐서라도 짤라버리게 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못 자르면 여기서 의사와 마찬가지로 수술대에서 다 빼 가지고…. 그러면 뭐 '흥- 흥-'아파할 거예요. 칼을 대면….

여러분 그러지요? 해부 같은 것 할 때, 배를 쨀 때는 사정 봐주지 않지요. 그저 째는 거예요. 시간이 될 때는 그 시간에 안 째면 죽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짤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짤라버리니 '아이구-나 죽는다. 아이구 아이구, 싫어 싫어' 그래요. 이럴 때는 손이고 뭐고 딱 졸라매 가지고 떡 잘라 가지고 살려주는 거예요. 죽을 자리에서 살려주니 살고 나서야 '고맙습니다'그래요.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원수의 무장고를 , 이 지긋지긋한 무장고를…. '어-그렇게까지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심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래도 자기 몸뚱이인데 왜 그렇게 해야 돼? ' 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한번 설명해 보자구요.

'왜 그렇게 원수의 무장고라고…. 아이구, 그래도 내 손이고, 이 손가지고 아버지에게 떡도 정성껏 사다드렸는데' 할지 몰라요. 주긴 줬는데 다 그렇지 않단 말입니다, 그 내용이, 그 동기가. 왜 그런가 한번 보자구요.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 있는 거 알았어요? 하나님 있는 거 알았어요, 하나님이 있는 거? 말만 들었지, 알았나 말이예요. 세상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았어요? 동네 개는 주인의 무엇을 잃어버릴까 봐 밤낮으로 지켜나 주지. 문전에 지켜 서서, 동삼삭(冬三朔)에도 아주 쭈그리고 밤 잠을 못 자고 지키는 거예요. 개는 주인을 염려해서 밤잠을 안 자고 지키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래 봤느냐 말입니다. 전부 다 자기 멋대로 그저 되는 대로 살아온 껄렁패들 아니예요? 뭐 그렇게 얘기해도 섭섭하지 않을 거라구요. 껄렁패지요. 말하자면 전부 다 껄렁패지요.

또, 언제 이 입이, 언제 내 손이 하나님이 좋아하실 입과 손이 되었어요? 그 손이 훌륭한 손이예요? 죽은 다음에 천국 나라 갔을 때 내 손을 박물관에 표본으로 갖다 놓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해 봤어요? '야, 내눈은 황금 눈보다, 내 보기에는 천하에 제일 귀하다는 황금 눈보다도 귀한 거로구나. 내 눈이여 ! '그래 봤어요? '야, 내 몸뚱이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하냐? 천하가 다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귀한 자체로구나' 그래 봤어요? 이것들은 아무데도 쓸 수 없는 거예요, 이 전부가.

​악을 청산하는 데는 최고로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고 해야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무엇이냐? 그러한 사탄 물건을 전부 다 어떻게 해야 돼요? 짤라버리고, 내쳐버리고 수습해 가지고 필해야 돼요? 재창조해야 돼요, 재창조! 재창조해야 돼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여기서부터. 참 진리라면, 참다운 진리라면 울어도 세상에서 제일 크게 우는 것이 돼야 됩니다. 울어라, 통곡을 해라 이거예요. 아이구 분하구나 ! 아이고 분하구나! 내 어머니 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 수천명이 한꺼번에 쓰러져 죽어도 그 분함이…. 어머니 아버지 한 사람 죽었는데 뭐, 어머니 아버지 하나 죽었으면 죽었지 슬플 게 뭐야? 그런 부모 천 명, 만 명 이상 죽은 슬픈 그런….

이 나라에 애국자가 있으면 그 애국자보다 더 분해야 돼요. 세계주의자가 있어 가지고 선한 입장에서 싸우다가 학살당한 그 사람들보다 원통한 그런 마음도 품어야 돼요. 그런 분함을 느껴도 여러분이 지금까지, 혹은 뭐 늙어 죽도록 살았다 하더라도, 수십 년, 혹은 백년 가까운 이런 생애를 살았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생각하면 제일 분해야 돼요. 제일 원통해야 돼요. 원통해서 내 칼이 없으면 칼 대신 참대 꼬챙이라도 칼로 알고 나가서 싸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참대 꼬챙이가 칼 대신이니 참대 꼬챙이와 칼과 비교하여 약한 그 기준만큼 나는 성의와 열의를 가져 가지고 싸우겠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들기 전에는 패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나를 못 찾습니다. 나를 못 찾는 거예요! 깨끗이 돌려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을 대하여 죄의 옷을 다 불사르고 '나는 천하가 공인하는 아들로서 왔소이다, 아버지! '그래 봤어요? 우리 통일교인들, 그렇게 해봤어요? '당신이 찾고 싶었던 아들, 내가 왔습니다, 아버지! '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아버지의 뜻이 통하고, 아버지의 사정이 통하고, 아버지의 심정이 통하고, 통할 뿐만이 아니라 너와 나는 하나라는 공인을 받아야 돼요. 그래야만 인간으로서 태어났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천주주의자가 돼야 본연의 인간의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만 알아서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뜻만 알면 뭘하노? 오늘날 선한 뜻을 몰라서 다들 실천 못 했어요? 자유당이 정책이 나빠서 망했어요? 사정을 못 통해서 망했어요?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무슨 심정? 천리의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이 국가의 운세의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뜻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통하기만 하면 뭘하나 말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하면, 모든 주고 받는 것이 완전히 통하면 화합을 이루어야 돼요. 전기가 완전히 합하면 무엇이 되는 거예요? 전기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빛이 돼요, 빛.

완전히 통하고 나서 나중에는 뭐냐 하면,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 ! 뜻이 하나요, 사정이 하나요, 심정이 하나인데 몸과 마음을 중심삼은 하나님과 하나돼야 돼요. 이렇게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 할 것이 인간의 본의인데,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나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부모도 거짓 부모를 가졌고, 형제도 거짓형제요, 내 사촌, 혹은 사돈의 팔촌 전부 다, 친척들이라는 명사를 가진 그런 수많은 무리들도 역시 전부 다 거짓이라는 명사의 탈을 쓴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민족이나 내가 사랑하는 국가나 내가 사랑하는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이 천지간의 모든 만유의 현상은 전부 다 악의 탈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권내에 있어요. 이걸 벗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주의자가 돼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세계주의자가 돼야 되는 동시에, 그다음에는 뭐가 돼야 되느냐? 그것과 대등한 입장에 서 가지고는 만물을 주관 못 해요. 그래서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의를 첨부하여, 하늘주의를 첨부하여 천주주의라는 명사를 세워야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주의? 「천주주의요」

그러면 천주주의라는 명사를 세워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거기에 돌아가 그때의 그 자리에 가야 되는데, 본래 인간이 탄생되어서 하나님하고 제일 가까울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우리 조상의 자리, 그 자리에 나가야돼요. 그 자리가 어디냐? 천주주의 완성한, 천주주의자로서 비로소 하늘과 땅과 만물을 대신한, 창조주의 실체 앞에 내가 이 창조주의 대상체로서 섰다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의 선조가 타락하지 않고 가야 할 그 첫째 기준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거예요.

여자도 그런 여자가 안 나왔고, 남자도 그런 남자가 안 나왔으니 어서 빨리 남자가 나와야 돼요. 구세주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입니다」 여자지요. 여자지! 「남자입니다」 여자지 ! 「남자입니다!」 그래 옳은 건 옳다고 해야지. 옳은 건 모가지가 떨어져도 옳다고 해야 됩니다. 그 답에는 내가 항복입니다. 여자 아닌 남자입니다. 그러면 여자도 남자도 그 자리에 못 갔으니 그 남자, 독신으로 찾아오는 그 한 분, 그런 낭군이 있나니 그 낭군이 뭐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되시는 예수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느냐 말이예요? 「예」 부처끼리 오는 것이 아니라 독신 남자로 오는 거요, 남자로.

​세계적인 종교는 개인에서부터 세계적인 제물적 존재를 가진 종교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천지창조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거짓으로 출발했고 악으로 출발한 이 세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한 사람 찾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 ! 진짜 한 사람 ! 그 진짜는 어떤 사람이냐? 이제 말한 거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통해야 됩니다. 뜻을 통하려면 동기를 알아야 되고, 결과를 통하려면, 동기와 결과를 통하려면 인연을 알아야 됩니다. 인연, 이 과정적인 인연을, 과정적인 관계를 피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이 자기의 책임을 못 하니 인간의 인연을 다리 놓기 위한 이런 무리가 있나니 그런 무리들이 수많은 개체를 대신하여 다리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아브라함은 개인이요, 야곱은 가정이요, 모세는 민족이요, 예수는 세계라, 격식이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법에서 찾아보게 될 때 기필코 개인으로부터 세계적인 대표자, 지도자, 세계적인 제물적인 존재를 반드시 가진 역사적인 종교의 내용을 가져야만 세계적인 종교이지 그러지 않으면 세계적인 종교가 못 됩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기독교가 세제적 종교의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돼요? 「알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 인을 세울 때 하늘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구세주를 얼마나 그리워 했겠느냐? 본래는 내 개인을 세울 그 때에 있어서 세계적이면서 개인적인 승리자가 돼야 될 건데 그게 못 됐어요. 왜? 타락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세계성을 띨 수 없으니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로써 분담하여 이 역사노정을, 기나긴 시대를 거쳐오면서 하늘은 세계적인 인물 하나를 키워 나오기 위한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서 분담적인 구세주 사명을 대신하는 자를 보내줘 가지고 전부 다 이 땅 위에서 슬픈 자의 입장을 대신하고, 억울한 자의 입장을 대신하고, 죽음에 몰리는 자의 입장을 대신하게 한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이제 세계적인 지도자로 오시는 그분은, 그분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구세주 사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요,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민족적인 구세주 책임을 하여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한 책임자요,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민족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승리적인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에서 세계적인 대신 실체로 나타나는 분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럼 메시아 하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옛날에 한을 가져야 했던 개인적인 조상이 여기에서 소원성취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옛날에 가정적인 섭리시대에 희생하고 갔던 그런 가정적인 우리 조상들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거예요. 민족적인 섭리시대에 희생해 갔던 우리 민족적인 조상들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거예요.

그분은 과거의 하늘 개인과 하늘 가정과 하늘 사회를 대표하여 하늘국가적인 이념을 섭리해 나오신 하늘의,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배후의 이념적인 터전 위에 숨어 있는 크나큰 무한한 가치, 역사적인 가치의 실체인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 예요. 과거를 잘 알아야 현실의 자아가 그 복을 상속받고 우리 조상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의 상투끝에 올라가 춤추고 싶어할 정도로 커

​그러면 오늘 이 때가 무슨 때냐 하면, 천주주의 시대이니 천주주의 시대라면 여기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메시아로 왔던 이 메시아가 이상적인 천국, 이상천국세계까지 전부 다 알아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상주의자입니다, 전부가. 전부 다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전부 다 그 마음은 세계주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만 못났어도 여러분의 마음은 '너, 잘되면 좋으니 못되면 좋으니? ' 하면 '물어볼 게 뭐 있어? ' 그래요. '잘되면 좋으냐, 못되면 좋으냐? ' 두 우수(偶數) 말 가운데 뭐가 좋으냐고 하면 물어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 물론 잘되는 게 좋은 거지' 그럽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렇지요? 그럼 '얼마만큼 얼마만큼 잘될래? 뭐 대통령만큼 잘될래? 뭐 케네디 대통령이 제일이야? 얼마만큼 잘될래? ' 하면 어때요?

저나라에 하나님에게 충성을 많이 한 그런 공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공신도 있을 것이고 종중의 종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케네디 대통령이 저나라에 가면 천사세계의 천사장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얼마만큼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욕심이 많고 얼마만큼 내가 간절히 고대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묻고 묻고 묻고 보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 꼭대기까지 올라가요. '하나님 앞에 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할 거예요. 심부름꾼으로 만족할 것 같아요? 안 해요. 그럼 뭐 종으로써 만족하겠어요? 그것도 안해요. 종중의 종으로 만족해요? 그것도 안 해요. 그럼 뭐 사위로써 만족할 것 같아요? 그것도 안 해요. 뭐 ? 사위가 됐지만 그 장인의 유산과 모든 목적과 모든 살림살이가 엄청나고 훌륭하다면 그거 전부 다 갖고 나서야 '허허'하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크기가 안 큰가요? 다 그렇지요? 사람의 욕심은 하나님을 타고 귀를 잡고 춤추고 싶은 거예요. 욕심이 다 그래요. 여러분들 그렇지 않아요? 「그렇습니다」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 그럴려면 이제보라구요.

그러면 종새끼가 주인 타고 귓발을 붙들고 춤추어서 되겠나 말이예요. 그런 법도 있어요? 「없습니다」 무슨 법을 통하여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사랑하는 아들딸, 어허둥둥 내 사람아! 알겠어요? 둘도 없는 내 아들이요, 너는 내 꽃 중의 꽃이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내 상투 끝에 올라가 천년 만년 대공사를 해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행복의 노래를 하고 그저 잔치를 하겠으면 하고 별의별 것을 다 하겠으면 해라! 이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걸 보고 '야 이놈들아, 왜 이러나? '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이 되려면 어떠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둘도 없는 아들딸이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찾아보니 그 명사가 만사에 통치 못 함이 없는 명사거든.

인간이 무불능통할 수 있는 이런 기준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의 최고 악질적인 녀석입니다. 타락했으니 악질적인 녀석입니다. 원래는 악질이 아니고 좋은 성질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악질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 본질의 성품은, 바탕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고야 ! 하나님의 상투에 올라가 춤추고 그래도 하나님도 기뻐하는 거예요. 이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생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그러면 그 욕망을 해소하는 데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다 안 됐지만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의 아들딸의 명분을 갖추면 '너는 천지간에 너 하나요, 천지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너로구나. 어허둥둥 내 사랑 ! ' 이러며 높이고만 싶고 춤만 추고 싶은 거예요. 이런 입장에까지 인간은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기준에서 인간을 참다운 선으로 지배해 가지고 이념적인 세계에 있어서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중심된 그 인연, 내적인 철옹성 같은 이런 연결적인 쇠사슬이라 할까, 연사체라 할까, 이런 기준을 완전히 맺어 가지고 뗄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인연을 맺으면 창조주를 대하여 '내 아버지 ! ' 할 때 그분이 '야, 내 사랑하는 아들딸아, 네가 없으면 나는 천년 대공사도 쓸데없다'하는 거예요. 아무리 천지간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원수를 굴복시키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굴복시킨 후에 아들딸이 태어나야 기뻐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원수를 정복하여 승리함으로써 기뻐할 것이냐? 승리하고 나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들딸들이 그 승리의 영광에 동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냐? 아들딸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의 내용을 가져 가지고 그러한 기준에서 인간을 구한다는 명사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하니 종교의 내용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명사로 부르는 단체가 기독교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를 발판으로 해서 지금나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 일체를 이루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나로서 생명이 연결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역사적인 그런 인연을 거쳐 가지고 실천 과정을 전부 다 넘어서 가지고 목적적인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야 거기에서는 영광 중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도 하나님이 좋아하고 땅의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은 뭐냐 하면, 아들딸이란 명사 아니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은 뭐냐? 아들딸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수련받는 목적은 그것입니다. 어느 단시일 내에 아버지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그의 심정을 내가 통하며, 그의 사정을 통하며, 그의 뜻을 통하며, 그의 사정과 그의 뜻과 그의 심정을 통하여 그 대신 인격자, 심정과 사정과 그러한 뜻이 통해 가지고 영원히 풍겨날 수 있는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그 대신자인 아들딸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이 땅 위에 태어난 최고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목적?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하나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딱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가지고 춤만 춰서 되겠나요? 그다음에는 , 기뻐하고 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주는 거예요. 기쁨으로 주실 유업, 우리 아들에게 줄 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아들에게 줄 게 뭐 있어야지요. 아들딸이 좋아하고 다 기뻐하고, 너와 나와 영원히 하나된 입장에서 그다음엔 아들딸한테 뭘 줄 것이냐?

내 재롱거리로서, 내 살림살이의 재롱거리로서 준 것이 이 만물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 하나님이 아들딸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기뻤는데 아들딸 갖고 나게 되면 줄 것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천지만물을 아들딸을 위해 창조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그래서 지금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욕심이 많아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는 , 마음세계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 '세계는 내 것'그래요. 이 뚜꺼비 같은 녀석들 다 그렇다구요. 그러려고 하지요. 그거 사실 말이 맞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나님 것이 내 것 아닌가 말입니다.

​과거·현재·미래를 대신한 부모·부부 ·자녀의 삼대상 기준을 갖춰야

​이래서 내적으로는 심정일치 · 사정일치 · 소원일치가 돼 가지고, 소원성취 · 사정성취 · 심정통일한 후에는 뭘할 것이냐? '천지만물을 내가 정성껏, 정성을 다해 지었지만 이것은 네 것으로 준다' 이거예요. 부모가 정성을 다해 모은 모든, 한 푼이라도 아껴 모은 전체 귀한 것을 자식에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쁨으로 주는 거예요. 주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는 입장에서 인간 앞에 상속권을 부여하겠다는 거예요. 요것이 비로소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내이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기쁨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그 기쁨권 내에서 만물을 상속받는 그런 입장에 서는 나입니다. 그 나가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나요, 역사의 실체가 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선 실체가 돼야 돼요. 그러한 실체가 돼야만 시대를 대표해서 거느릴 수 있고, 시대를 대표해서 거느릴 수 있어야 만물이, 모든 천지운세가 그 무릎 앞에 우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다시 상속해주고 가는 사람이라야 나로서, 아까 말한 전후 좌우 상하를 갖춘 입장의 나로서 완성하고 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렇기 때문에 상(上)으로는 하나님이요, 부모입니다. 오늘날은 누구냐 하면 자기의 상대입니다, 부처끼리. 가정 하면 할아버지가 중심이 아닙니다. 그 부부가 중심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건 현실입니다. 현재예요, 현재. 그다음에는 자녀입니다. 자녀는 미래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전후관계가 인연되어 있는 이 세계의 인연을 갖고 비로소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부모가 없으면 슬픈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부부중에 한 사람이 없으면 슬픈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자식이 없으면 슬픈 거예요. 거 슬퍼하지 않는 녀석들은 천지의 법도를 어기는 녀석들입니다. 그건 죄인입니다. 자식 없다고 기뻐하는 녀석들은 그건 전부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어도 슬프고 부부 중에 누가 없어도 슬픈 거예요. 혼자 사는 것도 천지법도에 어긋난단 말입니다. 합격자가 아닙니다. 병신입니다, 병신.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갖춰야 되고, 그다음엔 부부를 갖춰야 되고, 자녀를 갖춰서 삼대상 기준을 갖춰야 돼요. 이것이 대상기준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상이지요? 「예」 이것이 자기들끼리 상대적입니다, 이게. 좌우되고, 그다음에 아버지와 아들은 상하입니다. 이렇게 된단 말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위로는 아버지요, 그다음엔 아래는 자녀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이게 전후관계입니다. 그다음엔 부부입니다, 좌우. 그다음엔 친척, 이렇게 가정이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달랑달랑 요것만으로 해결하는 게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이것 중심삼고 천하를 품는 거예요. '아버지도 우리 거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도 우리 거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내가 인생이 소원하던 나요, 하늘이 소원하시던 나요, 하나님이 사정을 통하고 싶었던 나요, 오늘날 역사적인 선한 사람이 사정을 통하고 싶은 나요, 또 하나님의 심정이 있으면 그 심정을 통하고 싶었던 나요, 역사적인 모든 위인들의 소망의 심정이 있으면 소망의 심정으로 찾고 있던 나라는 거예요. 그러한 나로 완결되어야 비로소 나는 나로서 이 땅 위에 존재의 가치를 완결시키고 비로소 책임을 다 완수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가져야만 비로소 천지를 창조한, 대상실체세계를 창조하신 그 원칙 밑에 자기의 동기도 목적도 다 이룬 그 핵심적인 축소체가 되는 거예요. 그게 이제 말한 하늘가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신랑 신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없나요? 하나님이 조상으로 있으되 제일 문제가 신랑 신부라는 거예요. 조상은 있는데 신랑 신부가 합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상서부터 하나님을 모셔놓고 아들과 하나님과 내적으로 합했던 것이 바로 상대적이니, 세상을 중심삼고 구세주로 와 가지고 상대, 외적인 기준에 있어서 상대를 찾아 나오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워 놓고 신랑 신부를 중심삼고 자녀의 명분을 남긴 것이 기독교의 이념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기에 이 선한 이상세계, 지상천국을 이루어 천하를 통치하게 되면 만왕의 왕이 돼요. 그래서 만왕의 왕이라는 명사를 남겨 놨다는 거예요. 그러면 만왕의 아들딸이 되면 만왕의 왕의 후계자들입니다. 아들딸이 만왕의 후계자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의 출발을 부정에서부터 해야 하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 전부 다 아닙니다. 어느때 내가 하나님을 부모로 모셨으며, 내 부처끼리 재미 있게 살고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고 맹세하고 별의별 놀음 다 하고 뭐 지지고 볶고 뭐 어떻고 하던 그들이 어느때 하나님이 쌍수를 들어 해주시는 축복을 받았더냐? 이 아저씨, 받았어요? 받았어요? 그런 축복을 받았어요? 「축복 못 받았습니다」그걸 못 받았지만 그렇게 줬으면 하지요? 「예」 여기에 곡절이 많아요. 아들딸도 있지요? 「예」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아이고, 내 손주 귀하구나 ! ' 하는 소리 들어봤어요? 「못 들었습니다」 (웃음) 들을 수도 없지, 몰랐으니까.

이렇기 때문에 전부 다 깨진 그릇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공인하는 이런 사회제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리가 공인하고 영원무궁한 이념을 중심삼은 그런 하나님의, 창조주의 심정을 통하고 사정을 통하고 뜻을 통할 수 있는 이런 기준에서부터 벌어진 소망의 그 틀거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입니다.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제일 가까운 데서부터 부정해라 ! 그래 내 제일 가까운 것이 원수다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예수님이 어머니 대해서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그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나온 첫번 얘기입니다. 또 제자들이 와서 모친과 동생들이 찾는다고 할 때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이 누구냐' 했어요. 무엇대로 하는 사람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사람이. 뜻이 무엇이야? 뜻이 그런 가정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말한 천륜의 심정을 통하고, 천륜의 사정을 통하고, 천륜의 소망의 뜻을 통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시끄럽다 이거예요.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형제들, 이놈의 형제들이 전부 다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도움은 못 되고 전부다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원수예요.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말 있지요? 「예」이런 견지에서 그런 게 다 풀리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는 반석 위에 설 수 있는 실체 회복 방법을 배우는 곳

​그러면 나로서 취하여야 할 목적실체는 무엇이냐?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본집(종가집)으로 오시는 맏아들인데 이 맏아들을 맞아야만 그 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시고 있던 분인데 그분이 옴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전부 다 하나님과의 인연이 없으니 그분은 맏아들 대표자로 와 가지고 동생과 같이 키워 주고 그러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 메시아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현세 인류의 현실이더라!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하나님의 딸을 취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가정을 중심삼고 우리 가정을 걸어 놓고, 세계 만물을 걸어 놓고 축복해 주시옵소서'할 수 있고, 축복을 당당히 받을 수 있는 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서 '당신은 나에게 축복을 해줘야 되고, 나는 당신한테 축복을 받아야 되겠소 !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소망을 취할 수 있고,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출발점에 서 가지고 이 천국 사회, 천국 국가 생활에 있어서의 제일보를 출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다 그렇게 못 되었거든. 할아버지든 누구든 다 그렇게 못 되었어요.

그럼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그러한 것을 소개해 주자는 거예요. 소개해 주면 뭘할 것이냐?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나의 위치, 나의 가치, 나의 출발, 나의 뜻, 나의 사명, 나의 소원, 나의 심정 전부가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이러니 나로부터 인연되어 있는 모든 피조만물은 나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하고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천지가 동해도 움직일 수 없는 이러한 완전히 반석기대 위에 선 하나의 실체를 만들 수 있는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 나타났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통일이라는 명사가 나오지 않아요. '통일' 할때 '통'은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릴 통(統)' 자지요? 통일교회가 무슨 통일교회예요? 그렇지 않아 가지고 통일하겠나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러한 내력, '과거의 인간이 이랬구나. 오늘의 나는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되겠다. 하나님의 사정이 이랬고 하나님의 뜻이 이랬고 하나님의 심정이 이랬고 아버지의 고통이 이랬던고. 슬픈 아버지 였으니 그 아버지 앞에 내가 어떻게 나가야 할 것 인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제물되어 나왔으니 제물을 받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받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슬픈 눈물로써 '아버지께서는 주기 위해서 슬퍼해 왔고, 주기 위해서 피땀흘려 왔으나 우리 인간은 받기 위해서 죽어 왔고 받기 위해서 눈물흘렸고 받기 위해서 고통받았으니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한 날이 얼마나 기쁘겠느냐? 울음으로 출발하여 기쁜 울음이 앞을 가려 가지고 내 입이 복받치던 사무친 한이 다 폭발되어나와 가지고 기쁨과 영광과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그 날을 가져야 되겠다' 이래야 돼요.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할 수 있는 , 천하만물의 모든 복을 앞에 갖다 놓고 하나님이 심정과 사정과 통할 수 있는 일체적인 이념권 내에서 '너는 내 아들이요, 나는 네 아버지다' 할 수 있는, 부자지인연을 복귀하여 인침을 받아가지고 비로소 하늘가정을 이뤄 가지고 하늘백성을 이루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주권, 하나의 천지를 만들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인 나로서 되어있는 인연의 중심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부모와 그다음엔 무엇? 부모와 부부와 자녀와 만물,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것을 아버지 중심삼고 세계가 공인한 법도, 원칙, 혹은 공식 법도에서 통과할 수 있는 내 가치 이것을 여러분들이 갖기 위해서 왔고, 그러한 나를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높고 한없는 천지는 당신의 영광을 상징하였고, 어두운 밤이면 저 창공에 빛나는 일월성신들은 당신의 숨은 내적인 신비의 세계를 상징하였사옵고, 지어진 모든 미묘한 비밀에 잠겨 있는 모든 만물의 요소와 만물의 상징인 실체들은 당신의 미묘한 천지의, 천양(天壤)의 묘미를 우리에게 은은히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 인간시조들은 알지 못하였사옵고, 이 무한한 이 우주적인 예물을 오늘날 소홀히 대했던 그 죄를 저희들은 엄숙히 자기 자신을 직고하여 아버지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현실을 청산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가운데 있어서 엄숙하신 당신의 존전 앞에 타락의 후손 된 것을 원망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자기 자체를 세워서 회개할 줄 아는 아들딸이 돼야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선을 추구하기를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도 간절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선을 위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수많은 우리 선조들보다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용맹이 필요하고, 여기에 의분심이 필요하고, 여기에 정기가 필요한 것을 저희가 알았사오며 이 엄숙한 천국건설에 내 한 자체를 세우시기 위한 아버지의 놀라우신 수고의 역사노정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이 수고의 역사를 수습하기 위해서 보내 주시는 그분이 우리의 실체를 대신한 아버지 대신의 실체요, 실체를 다시 낳기 위하여 참부모의 실체로 온다는 것도 저희 알았사오니 그 부모를 모시고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리고 부모 앞에 돌리고 온 만물 앞에 돌릴 줄 아는 참다운 아들딸들이 되기 위하여 여기 모인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이날서부터 40일수련을 출발하옵니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사오매 개개인의 실체들은 당신의 소원하시던, 실체를 짓기 원했던 그 소원대로 자기를 세워 천륜 앞에 바칠 수 있는 이런 자아를 재조성하기 위하여 연단하는 이 기간이요, 몸과 마음을 닦아 빛내어 만우주 앞에 내스스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실체를 만들기 위한 기간인 것을 알고, 스스로 선별된 입장을 취하며 스스로본이 될 수있는 기준을 취하여 노력하고 꾸준히 싸울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있사오면 쳐서라도 아버지 뜻대로 경륜하시어서 이번 참석한 기간 가운데 사탄의 참소를 받아 하늘 앞에 조소거리를 남기는 이런 아들딸들이 없게 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움의 권한이 아무리 힘차다 할지라도 생명의 권한을 대신해 나타나는 모든 환경과 개체의 신념이 강할 때는 자연히 굴복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우주를 대신하여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세우고 스스로의 깊은 골수를 찾아 심정의 인연, 심정의 사정, 심정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나'를 중심삼은 모든 인연과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사오니, 그 전부는 잃어버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잃어버린 천주를 복귀하기 위한 가운데서 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갖춰야 할 것을 저희들이 배웠사오니 이 말을 중심삼고 스스로 그런 목적의 실체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데 있어서 게을리하지 말고 꾸준히 참고 견디어 아버지의 영광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자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보내 놓고 염려하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들도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은 축복을 하여 주옵고 이를 염려하는 모든 무리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전체는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청산 돼 나가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아뢰오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4월말은 천적으로 중요한 기간이므로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각 지역의 식구가 200명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인원이 부족한 지역은 근접 지역과 결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노력해야 합니다.

지역장으로서의 여러분들은 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 군의 생명과 재산까지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역의 식구들은 지역장을 닮습니다. 지역장이 전진하면 전체가 전진하고 지역장이 후퇴하면 전체도 후퇴합니다.

지역장은 지구장, 협회장, 선생님을 통하여 하늘땅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 공황이 한국에 불어올 것인데 이것에 대한 모든 책임이 식구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이 민족이 곤경에 부딪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인도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못 먹고 헐벗더라도 희망에 차 있어야 합니다. 굶주리면서도 갖추어진 내용을 보여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장은 최일선의 지도자인 것입니다. 지역장은 자기의 대신자를 언제든지 세울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대구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못한 것을 지방에서 보충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돌아가면 흩어진 식구들을 모아 각자의 지역을 새로이 수습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 동정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구의 발전이 안 되는 이유는 인접되어 있는 지역의 지역장과 하늘땅과 선생님으로부터 동정을 살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연고입니다.

<말씀 요지>

공동 이념을 위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개인이 느끼는 고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개인만의 고충이 아닙니다.

선조로부터 심정과 인격과 실천적인 면을 상속을 받아야 역사적인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심으로 세운 것이 축복가정들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역사적인 유업으로 상속 받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불평은 아담 해와의 불평보다 더 심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축복받은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상징적인 어머니 아버지 시대, 형상적인 어머니 아버지 시대, 실체적인 어머니 아버지 시대가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받은 가정의 자식이라도 20세가 되기 전에는 부모를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도 따라서 잘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재림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종을 보내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자기 임지에 못 갈 때는 여러분의 대신자라도 보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우리의 부족함을 더욱 느낍니다. 지금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가 모두 평형선상에 서야 할 때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은 부부가 합심하여 메워야 합니다.

36가정과 72가정을 배치한 것은 지금까지 정성을 못 들이고 승리의 기반을 못 닦은 것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부부가 맡은 지역은 전체를 정결케 하여야 합니다.

여러 가지의 시련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인한 시련이 있고 영적인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은 삼천만을 대신하고 아버지를 대신한 시련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의 시련은 길이길이 남겨야 합니다. 이것을 후손에게 영원히 자랑해야 합니다.

과거의 부족은 가정시대로 넘어오기 전 개인시대에서의 부족이기에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천운도 합세하려 합니다. 행동, 심정, 이념적인 면에서 발맞추지 못하면 개체뿐 아니라 종족(宗族)에도 걸려드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족복귀시대이기 때문에 선조가 협조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종족적인 기준을 결정짓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기를 가진 부부는 아기를 가담시켜서 싸워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가담하면 더 힘이 나기 마련입니다.

평면적인 때이기에 개체는 사방성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모세 때는 제물로, 예수 때는 복음으로, 지금은 모심으로 하늘 앞에 나아갑니다. 모심의 생활은 가정을 중시하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인 참부모를 중심하고 각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30억 인류가 이에 속해 지파 편성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은 일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에 통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통일을 해야 합니다. 생활은 전시태세와 같이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맞이했으니 가정적인 부모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참부모와 그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녀를 기를 때에는 참부모의 가치를 인정하는 만큼 자기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분가, 분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빼앗아도 부모는 축복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식구를 대접할 수 있는 밥을 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 3단계로 나누어 2단계 이하는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새로운 땅에 갈 때는 여자가 문제됩니다.

[기 도]

보기에는 초라한 장소이오나 아버님의 심정이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만민의 가슴 가슴에까지 미치려는 아버지의 엄숙한 성업이 여기에 깃들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제 이 한 단상으로부터 아버지의 영광이 움직이시사 만민의 해방의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이 민족의 해방의 날이 어서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땅의 탄식이 제거될 수 있는 사명과 책임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맹세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 몸 아버지 앞에 드리옵고 저희 마음도 아버지 존전에 맡기오니 당신 것으로서 취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당신의 아들이 되고 당신의 딸이 된다고 하였사온데 아들이면 어느 정도의 아들이며 딸이면 어느 정도의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역사적인 새로운 일이 벌어진 이 순간이기에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느끼옵나이다.

참부모의 성호를 저희들이 부를 수 있는 이 거룩한 한날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였사옵니까? 참이라는 명사를 갖춘 부모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던 타락의 후손 된 저희들은 울고 울고 또 울어도 그 한을 풀 수 없는 인간들이었사옵니다. 참부모를 갖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참다운 자녀도 되지 못한 저희들 위에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 진정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이제 이 몸 아버지 앞에 다 드리고 이 마음 아버지 앞에 다 바치어 산 제물로 드린다 하더라도 부족함을 금할 길 없는 저희 심정을 아버지는 아시오니, 나는 아버지의 것 아버지는 나의 것, 아버지와 내가 화하여 하나의 일체이상을 이루어 그 중심은 심정의 일체를 완결지어 만물의 탄식의 조건을 해소시키고 남을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그것으로부터 싹트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을 대하여 심판의 권한이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배웠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감각을 갖고 있사옵니다.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땅을 대하여 어머니라 부를 수 있고, 천지를 대신한 참부모라 할 수 있는 이런 은사의 자리에 저희가 머물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의 마음과 몸은, 아버지여, 하늘의 심정에 동(動)하여야 할 것이고, 하늘의 심정에 정(靜)해야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죄악의 세상에서 물든 이 몸들, 사탄의 타락의 쓴 뿌리가 아직까지 이 몸에서 제거되지 못한 저희 자체로서는 아버지의 심정의 애달픔을 알지 못하였사옵고, 거기에서 내 자신을 세우시어 아버지께서 얼마나 충효의 모습을 고대하고 있는가를 저희들은 몰랐사옵나이다.

아버지여,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때는 길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체를 갖추어 이 땅 위에 정성을 들일 수 있는 때도 제한되어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때를 가질 수 있는 저희의 이 한 시기가 얼마나 귀하고, 이와 같은 시대와 세계권 내에 내 자신이 생을 받고 태어난 것이 얼마나 영광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영인들이 탄식의 한 날로서 저희들을 바라보는 이 시간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뜻을 알지 못하여 사망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수많은 민족들, 수많은 백성들은 이 날과 이 시간을 알지 못하여 탄식권 내에서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보다 먼저 왔다 간 수많은 인간들이 이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이날을 얼마나 고대할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고, 역사적인 기쁨과 역사적인 감사와 역사적인 책임과 역사적인 사정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더더욱…. 지금 맹세하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내가 살아생전 죽기 전에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이 몸 위에 효자라는 명패를 갖고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지 못할까봐 탄식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삼천리 반도에 외로운 이 한 자식을 세우시기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 많이 하셨습니까?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아버지께서 이끄시기에 얼마나 노심초사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외로울 적 마다 당신은 권고하였사옵고, 슬플 때 다시 하늘이 권고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야 할 복귀의 길, 슬프나 외로우나 고통스러우나 가야 할, 필시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길임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이제 가야 할 이 운명을 저희들이 개척하여야 할 것인데 이 시간까지 하늘이 앞장서서 싸워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옵고, 오늘 저희들에게 황공한 부모의 날의 자리를 맞게 해주신 것을 진실로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아버지, 과거의 부족한 점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저희들의 미비함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크나큰 사명 앞에 염려하는 마음을, 아버지, 붙드시사 다시 힘을 주시옵고 다시 저희를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망 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는 수많은 민족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고, 더우기 삼천리 반도 위에 삼천만 민족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사오니, 힘없고 굶주리고 지쳐 있는 이들 위에 아버님의 각별한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고통을 향하여 달음질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사옵고, 굶주림의 자리에 있어서도 저희들이 차마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더더욱 알았사오니, 이 뜻과 이 사명을 안 저희들이 후대에 한을 남기게 될까봐 두렵사옵나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가다 가다 쓰러져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이요 땅이라고 부르고 쓰러질 수 있는 그런 자가 되면 얼마나 복된가 하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 갖고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러한 입장에서 필연코 이 길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사정을 저희들은 더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 앞에 저희들이 불충하였고 그 뜻 앞에 저희들이 있는 정성을 못다 하였사오니, 과거 3년 기간에 지낸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남한 각지 전체를 대신한 중심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저희들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아버지 앞에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다를 건너 외로운 이역 땅, 만리 이역 땅에서 이 시간에도 이곳을 향하여 눈물을 뿌리면서 이 한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사오니, 심정으로 연결시키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그들을 품으시어서, 이 한 날을 허락하신 뜻권 내에 있어서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으며 영광권 내에 있어서 하늘 앞에 고이 엎드려 경배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아버지, 세워 주시옵고 인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많이 참석해야 하나 참석하지 못한 아들딸들이 많사옵니다. 이 모든 곡절의 사정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고 아버님께서도 이것을 바라볼 때에 슬픔으로 바라보는 줄 알았사오니, 어떻게 하든지간에 이 뜻 앞에 있어서의 저희들의 한날을 승리의 날로 세우시어서, 만민이 다 모여 아버지의 승리를 찬양하며 참부모의 이날을 기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저희 앞에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노정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오늘을 기점으로 하여 3일 기간까지 저희들이 움직이는 전체에 아버지 뜻 외의 다른 것이 나타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을 공고히 하시어서, 이해부터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던 뜻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버지, 승리의 방패를 세우셔서 사탄세계를 심판하여 최후에 정복하고 승리의 패권을 가져 아버지의 축복을 자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만만세의 은사가 아버지의 뜻과 길이길이 저희들의 움직임 전체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시기를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은 부모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생활을 통해서 자기의 생애노정을 거쳐오고 있습니다. 그 날들은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어요. 연속되는 날, 즉 시간권 내에서 우리들은 살아 나왔습니다.

부모의 날의 의의와 그 설정 배경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부모의 날이라고 제정한 이 3월 초하룻날이란 것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우리 인생이 바라던 제일 귀하다면 제일 귀한 날입니다. 이 이상 귀한 날이 없는 가장 중요한 그런 부모의 날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고, 또 지금 현재 살고 있으되 자기를 낳아 준 부모라고 하는 부모는 모시고 살았지만 부모의 날을 세워 가지고 축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부모라는 것은 오늘날 섭리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에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었고 땅이 축하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 자녀들도 부모를 대해서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없는 자녀요, 또 부모들도 자녀를 세워서 자녀의 날을 세워 나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자녀로 대할 수 없는 이러한 슬픈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보게 될 때에 슬픔이 여기에 엉켜 있고, 자식도 부모를 바라보게 될 때에 부모를 바라보는 그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역시 슬픔이 엮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부모로서, 자식이 자식으로서 대할 수 있는 그 대함에 있어서 슬픔과 혹은 한숨이 지어지는 이런 고통의 상정이 없어야 할 것이 본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인간의 인연인데, 그렇지 못한 인연을 가져온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 타락의 보응은 부자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이 형제의 인연으로서 연결되었고,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척에 전개되어 이것이 오늘날 세계 인류에까지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이 있고, 혹은 근심이 인류 앞에 있고, 혹은 고통이 인류 앞에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사망이 전세계에 덮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할진대 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이냐 하면 우리가 태어난 그날서부터, 역사적인 출발서부터 그런 동기와 내용을 지녀 가지고 있기에 그 결과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필시 슬픈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고, 탄식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탄식의 세계, 이런 슬픔의 세계, 이런 고통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각자는 우리 동족끼리의 슬픔을 제거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고, 형제지간에 있어서의 슬픈 인연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끼리의 슬픔과 고통이 있다 하면 그것을 제거하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제일 문제는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슬픔이 깃들어 있고, 고통이 깃들 수 있는 이런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한 부자의 인연권 내에 어려 있는 이 슬픔의 장벽을 어떻게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이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을 겪어야 할 중대한 기준이요, 하늘이 인간세계에 세워 놓아야 할 사명적인 중대한 기준이 되어 있는 동시에, 오늘날 참을 추구해 나아가는 양심적인 마음을 가진 자녀면 자녀일수록 그 부모를 대하는 심정에 있어서 이 담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누구나 고대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타난 외부의 담을 허는 것보다도 이제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맺어진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슬픔을 제거하고, 완전히 고통을 초월할 수 있고, 완전히 행복의 기반이라고 만천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의 인연을 세우지 않는 한 오늘날의 이 지상의 슬픈 기준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복귀섭리의 목적

​그래서 복귀섭리의 기준은 어디로 전부 다 집중시켜 나왔느냐? 참다운 부모, 참다운 자녀,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나왔습니다. 고통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슬픔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혹은 싸움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섭리의 뜻을 세우면서 하늘과 하늘의 뜻을 대하는 수많은 선조들, 섭리의 뜻을 대해 우리의 선조들은 투쟁해 나왔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더더욱 이 시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과연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혹은 창조주께서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참다운 부모, 그 참다운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 부모로부터 흘러 나오는 참다운 사랑, 그 참다운 사랑에 품길 수 있는 참다운 자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이것을 갖지 못한 것이 인생의 슬픔이요,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 못 해준것이 부모의 슬픔인 동시에 이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자녀의 슬픔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슬픔이 역사적인 인연을 통하면서 혈통적인 역사를 뛰어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슬픔의 기반이 부자의 인연 가운데 서려 있는 것입니다. 이 깊은 자리에서부터 그런 인연을 맺고 내려왔기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늘은 지금까지 모진 투쟁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를 창조할 당시의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요? 참다운 부모가 있으면 참다운 자녀가 있어야 되겠고,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가 있게 될 때 거기에는 참다운 사랑만이 깃들어야 되겠고,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에 있어서는 참다운 인연을 통하여 참다운 선만이 깃들어야 할 것이고, 참다운 사랑과 선이 깃드는 동시에 참다운 환경이요, 참다운 우주요, 참다운 천주로서, 더 나아가서는 참다운 이러한 기준에 설 수 있는 입장을 바라보는 것이 본래의 하나님의 창조 당시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하여야 할 아담 해와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전체적인 소원이 여기에서 저끄러졌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우리들은 뼈에 사무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은 어디서부터? 아담 해와로부터, 우리의 슬픔은 역대 우리 선조를 거쳐 엮어져 왔나니 이렇게 엮어져 온 슬픔을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제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개체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들 앞에 하늘이 추구하는 목적으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서부터 이것을 제거해야 되겠느냐? 내 자신에서 물론 인연을 세워 놓고 여기에 참다운 부모의 기준을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갈라졌던 심정이 다시 창조적인 본성의 심정으로 연결되어 '이는 내 참의 부모요, 이는 내 참의 아들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어느 세상 그 무엇이, 제아무리 고통이 크다 할지라도 고통 가지고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슬픔이 크다 하더라도 이 인연을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사망의 고난이 크다 할지라도 이것을 끊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자의 심정이 재연결될 수 있는 이런 순간이 지상에 나타나야만 이걸 수습할 수 있고 이걸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한을 남기고 간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보내는 데 있어서 '나는 진정 너를 사랑하는 부모의 입장에 섰다'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서지 못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게 될 때에 '너는 내 아들 중의 아들이요 내 독생자 중의 독생자다' 하였지만 과연 그를 품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는 입장에 세웠느냐? 못 세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연이라는 것은 태초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맺어진 것이 연결되어 세계적 무대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라는 이름은 종적인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차이를 갖고 있으되, 그 명사에는 지난날의 역사를 대신한 현실의 자체들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그 부모라는 명사는 아담 해와에게 한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에게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계적인 무대에 이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해결해야 할 중심 사명이기 때문에 예수를 세계적인 메시아로 세운 거예요.

이리하여 예수는 먼저 택한, 선민을 대표한 전체의 자녀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나타났고, 더 나아가서는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전세계 인류의 전체의 자식을 대신하고 이 세계를 대신하여 나타났으니, 탄식권 내의 모든 탄식을 제거 시켜놓고, 이 탄식이 예수의 길 앞에 넘어오지 못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본연의 세계의 창조이념의 아버지라, 혹은 부모라 하고 자식이라 할 수 있는 인연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한 때를 뚝 잘라 가지고 특별히 '나는 네 아버지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니 나는 네 아버지다'라고 이렇게 훈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생자로서 사랑하셔야 할 하나님이었으나 사랑할 수 없는 독생자의 입장에 세워 놓고 만민을 대신하여 수많은 불신의 자녀들 앞에, 불의의 부모들 앞에 책임을 다하고 거기에 엉클어진 원한의 이 보따리를 제거하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탄식과 슬픔의 보따리를 제거시킨 후에야 비로소…. 인간들 앞에 엉클어진 것을, 원한의 부자의 인연이 엉클어진 것을 예수가 전부 제거해야지, 그 원한의 슬픔이 예수 앞에 탄식의 조건으로 남아져서는 참다운 아들이라 참다운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찾아오게 될 때에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하고 진정 아버지를 불러야 할 예수였으나 부를 수 없는 입장이었어요. 충성을 다하고, 효성을 다하고, 자기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아버지를 한번 모시고 싶고 아버지를 붙안고 '내 아버지!' 할 수 있고, 또 아버지는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마음이었으나, 타락의 한이 이렇게 부모의 인연과 역사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엉클어져 있는 연고로 이것을 제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메시아 예수는 단상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스러웠던 예수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는 이 땅 위에 찾아오게 될 때에 승리한 이스라엘의 왕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요, 뭇 백성이 환호하면서 기쁨의 왕자라고 해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예요. 슬픔의 왕자로서 등장을 하였고, 이 이가 가는 길은 고통의 행로로서의 길이요, 이 이가 가는 데는 죽음의 담벼락이 직면하여 부딪힐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 메시아의 사정을 그 때 사람이 누가 알았겠느냐. 이런 사정을 바라보시는, 예수도 슬프거니와 이런 길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는 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의 날을 기념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와 같은 입장에 선 예수가 아버지를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고, 자신이 이런 길을 가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할 것을 염려하면서 죽더라도 아버지의 염려를 덜어 드리고 싶어 '내가 죽더라도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라고 하면서 안타까워 했던 그 심정 앞에는 무한한 슬픔이 어려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고통과 슬픔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죽음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있어 가지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하여 심정을 털어놓고, 손을 붙들고 기쁨의 심금을 털어놓으며 '아버지여, 역사적인 한의 길에 있어서 슬펐던 것을 푸시옵소서' 할 수 있는 이런 한날의 기쁨을 세우지 못하고 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그런 부모를 대해서 축하하고, 모시고 싶고, 부모 앞에 효도하고 싶어도 땅 위에서 부모 앞에 효도의 길을 승리적인 기반 위에 닦고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왔다 갔지만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을 수 있게 된 고마움을 알아야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부모의 날은 어떤 날이냐? 이 만민의 부모, 수많은 인류의 부모들이 고통권 내에 있는 이 전체를 수습하고 이걸 전부 다 가로채 가지고, 천적인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민족 민족에 걸린 원수의 그물들을 모두 끊어 버리고, 섭리의 이스라엘 역사 앞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유린한 역사적 모든 것을 타파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개체로서, 수많은 자녀들을 대표할 수 있는 개체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가정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종족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민족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 천지가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이런 길을 닦아 놓아야 할 그런 심정적인 기반을 연결시켜 놓고, 사정에 있어서는 이런 내용의 사정을 걸고 투쟁하여 사탄세계 앞에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단 말이예요.

이 놀랍고 황공한 부모의 날, 여기에는 피어린 역사적 한이 어려 있고, 여기에는 슬픈 메시아의 고통이 남아져 있고, 여기에는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장벽을 거쳐 손을 내밀어야만 자식의 손을 붙들 수 있고, 자식은 이 장벽을 타고 넘어야 아버지의 손을 붙들 수 있는 이런 한스러운 역사가 남아 있으니 이 담을 헐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투쟁 역사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오늘날 우리를 찾아와서 '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부를 지라도 여러분은 귀가 먹었어요. 여기 우리 눈앞에 나타나 가지고 여러 가지로 갖은 형용을 다 하여 나를 보라고 하고 우리를 보고 뭐라고 손짓해도 여러분들은 눈이 덮여 있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심정이나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아무리 뒤흔들어도 마음이 방향을 잡지 못하였던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내 감각은 무디어 있어서 스스로 찾아갈 길을 잃어버린 방황자입니다. 방황하는 고아와 같고, 혹은 방랑아와 같은 신세인 이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하늘은 이런 나를 붙들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눈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귀를 열고 내 감정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들어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기에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들을 줄 몰랐던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줄 몰랐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줄 몰랐던 것을 느낄 줄 아는 이런 자리에 서 가지고, 과연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참의 부모라는 그분의 심정을 동경하면서 그 자리에 머리 숙여 눈물지을 수 있는 이런 환경을 보여 주는 것만 해도 여러분에게는 한이 안 될 것입니다. 어느 면에 있어서는 무한히 행복하다는 거예요.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날을 맞이하여 축하할 수 있는 한 무리로서 하늘 앞에 엄숙한 이런 식전에 참석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기에 참석할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어서 느꼈느냐 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여기에 답을 해야 될 거예요.

이런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안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소원이 어떠어떠하고, 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나가 가지고…. 이것이 우리와 최후에 맞부딪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여러분들은 아들이요, 하늘은 반드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데, 이것을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있나니 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지금까지 갈라졌던 이 부모와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해 하늘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먼저 선두에서 투쟁하여 수습하여 왔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형태를 거쳐왔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의 도리를 중심삼아 아담으로부터 여기에서 이 기준에 올라올 때까지 하늘은 투쟁역사로 돌고비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고통의 상징으로, 이게 크면 클수록 큰만큼 거기에 대비되는 고통의 상징으로 역사를 지내 왔습니다.

​고통의 역사를 청산지어야 할 재림주님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이 심정기준을 재현시켜야 하는 것이 하늘의 소원인 연고로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시는 주님은 역사적인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슬픈 자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자신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아로 이 땅 위에 보내어 그런 책임을 맡은 하늘 앞에 아들이 될 수 있는 자가 있다 할 때 그를 대하여, 그분을 대하여 하늘은 '너는 역사적인 고통을 맛볼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나서라' 하고 예고한다는 거예요.

'너는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세계사적인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라. 인간 세상에 있어서 고통의 상징권 내의 모든 여건을 품고 사는 인류가 많기에, 그 인류 전체를 대신하여 심정 기반에 있어서 그의 어버이가 되고 그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런 심정을 가져라' 하는 것이 끝날에 오실 메시아가 하늘로부터 분부를 받고 부탁받은 중요한 내용인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뜻을 알면서부터 슬픔의 부모의 자리에 찾아 나가야 되고, 슬픈 자를 붙들고 통곡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고통을 받는 사람을 바라보게 될 때에 통곡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통곡은 그 개체의 통곡이 아니라 역사적인 통곡이요, 역사적인 슬픔이라는 거예요.

이 통곡 가운데는 하늘의 통곡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아들딸을 대해서 그 고통을 제거시킬 수 있는 울음으로써 이들을 품고 연결시켜 나오는 싸움의 노정을 거쳐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그런 길을 닦아 왔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이런 길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에 직접 부딪혀 가지고, 여기에 하늘의 심정을 세워 놓고 사탄세계의 어느 누가 짓밟을 수 없고 이용할 수 없는 기반을 남긴 이 터전을 세워 놓고, 이것을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기준까지, 혹은 천주의 기준까지 연결시켜 놓아야 됩니다. 이런 싸움터 위에 쓰러지지 않고 싸워서 승리해야 할 것이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분이 나타나면 그분은 개체로되 개체가 아니예요. 그분을 붙드는 자는 역사적인 슬픔을 붙드는 자요, 그분과 같이 싸우는 자는 역사적인 싸움을 하는 데 같이 동참하는 자요, 그와 같이 행동하는 입장에 선 사람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분이 싸워 나오는 전체의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부모로서 등장하는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싸우는 그 부모와 같이 행동하게 될 때 그는 거기에 있어서 자녀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눈물 흘려 아들이라 할 수 있고, 내가 눈물지으며 부모라 할 수 있는 이런 인연만 맺어지게 된다면, 여기에서 비로소 부자의 인연이, 종적으로 연결된 것이 횡적인 기준을 닦아 가지고 이 지상에 연결될 수 있게끔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게 된 자녀의 입장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부모의 날, 이날 가운데는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무한한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어느 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 혹은 어느 주의 사상을 가지고 그 주의를 위하여 투쟁한 어떤 위대한 열사보다 더 고통 가운데서, 더 슬픔 가운데서 이 길을 닦기 위해 투쟁해 나온 하늘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 입으로 부모의 날이라고, 부모라고 불러 볼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고의 노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통일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 하나 세우기 위해서 무한히 노심초사했다는 것입니다.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지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선생님이 나오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데려갔어요. 내가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다 데려갔단 말이예요. 가정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데려간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길을 다 끊어 놓고 나를 이 길로 내몰았는데, 이런 시련을 거치게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남아질 수 있어서 오늘날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3년 전부터 이 부모의 날을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기념하게 될 때는 피살이 떨리는 자세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두려운 이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떻게 되느냐? 아까 말한 대로 하늘 앞에 맺혀졌던 슬픔의 전부가 참부모와 참자식의 심정을 세우고 나오게 될 때는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를 낳아 줄 수 있는 혈연적인 인연을 세워 놓았으니 그 부모의 유업은,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모든 유산은 자식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규합할 수 있는 모든 인연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던 하늘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했으면 그 아들딸도 아버지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야만 타락한 인간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부모의 심정과 일체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와서 싸우던 생활적인 목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래야 됩니다. 참부모를 만났더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먼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로서 사랑하는 단 하나의 아들이로되 그 예수가 뜻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하늘 뜻을 대신하여 나서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예수가 못 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부모를 알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할지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목적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저 끝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서 사랑받아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참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만민 앞에 부모와 자식지간에 맺혀진 원한의 담을 타개해 놓고, 길을 닦아 놓고, 만민이 갈수 있게끔 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야 비로소 아버지 품에 품기어 자녀의 입장에서,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때 해야 할 예수의 사명인 것을 알았을진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를 알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 할지라도 부모의 무릎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 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탄식권에서 부모님이 친히 이런 부모의 길을 닦기 위하여 수고한 기준을 세워서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수시로 이 평면적인 기준─종적인 기준이 아니예요─에서, 즉 횡적인 기준에서 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효자 효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예수는 독생자로되 그 자신은 내적 심정에 있어서는 효자의 자리에 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만민을 대표할 수 있는 효자의 표준으로는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 배경

​그래서 내적 심정의 기준을 세워 놓고 이 기준을 외적 실체의 기준과 부합시켜야 합니다. 이 외적 실체의 기준에 부합시키기 위해서는 원수의 세계의 고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시는 데 있어서 인생의 제일 끝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내신 이유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일이 크면 클수록, 죽음의 고통이 그 일신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참부모, 혹은 하나님이 보게 될 때에, 누구보다도, 누구보다도 그 자식에게 고통을 제시하는 사탄 대해서 분개를 할 수 있고, 그 자식을 슬프게 하는 그런 원수 대해서…. 여기에서 하나님은 원수를 대해 제일 최고라 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세우면 세울수록 이 땅─마음 세계가 아니예요, 종적인 세계가 아니에요─에서, 횡적인 세상에서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닦아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원수들 앞에 고통을 받고 모함을 받는 비참한 환경에 들어가게 될 때에, 개인을 대할 때에 있어서의 비참함이 개인적인 비참함보다도 더 큰 가정적인 비참에 해당하게 될 때는 그 개인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정적인 환경에서 예수가 고통을 당하게 될 때, 그 가정적인 환경에서 예수가 그런 고통을 당하는 비참상이 그 가정이 당할 수 있는 비참상보다도 크게 될 때에는 가정을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이 사랑하는 아들을 세워서 복귀 섭리를 하는 데는, 개인으로부터 천주까지 복귀하기 위한 섭리를 하기 위해서 예수를 세웠다 할진대는, 예수는 개인의 시대에 있어서 고통을 받게 될 때에는 개인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가정 시대에 있어서 고통을 받게 될 때는 그 가정이 당하는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종족을 구할 수 있는 때가 왔다 하면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족들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대하고 있는 때와 대하고 있는 사명 기준에 부딪쳐 들어오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하게 될 때는 그 고통당한 것을 조건으로 세워 가지고 현재에 당하고 있는 가정이면 가정, 혹은 종족이면 종족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빼앗아 올 수 있느냐? 어찌하여 빼앗아 올 수 있느냐? 사탄은 개인을 대하게 될 때는 개인적인 원수로 나타나야 됩니다. 사탄이 원수로 나타날 때, 개인을 대하게 될 때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원수로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과 형제지인연권 이상을 벗어날 수 없기에 같은 입장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개인이면 사탄도 개인, 하늘이 가정이면 사탄도 가정, 하늘이 종족이면 사탄도 종족,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복귀섭리는 그와 같은 이치가 거꾸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개인을 세울 때에는 하늘세계도 개인을 세우고, 사탄세계의 가정들을 세우게 될 때에는 하나님 세계도 가정을 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섭리와 더불어 가정 섭리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야곱을 세운 동시에 이스라엘 가정을 찾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는 그것이 기준입니다. 이리하여 민족과 혹은 국가를 거쳐 나옴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를 대비하여 급속한 시일 내에…. 개인이 결정되고, 가정이 결정되고, 종족이 결정되었으면 급속한 시일 내에 민족을 세울 수 있고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런 천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사탄세계에 개인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가정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종족을 세웠어요. 사탄세계에 국가적 기준만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세우면 급속도로…. 이것이 사탄세계의 국가 주권이면 주권을 대신하여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면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뜻을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한때에 가서는 이익이 될 수 있는 면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어느 정도만큼 고통을 주느냐? 사탄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줄 수 있겠느냐?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6천 년 역사를 이끌어 나온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이 6천 년 역사도상에 하늘을 대표하여 어떤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진 이런 대표자가 나왔다 할진대는 그 대표자를 찾아와 가지고 시련을 주게 될 때에 그 시련의 기준이 어느 정도냐? 역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메시아로서 책임하다가 죽게 되었는데 민족적인 기준으로서의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투쟁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국가기준만 넘어서면, 국가기준만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기준만 벌어지면 사탄세계는 급속도로 무너집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시험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있어서 선을 대항하여 지금까지 투쟁하던 그 역사적인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심) 역사적인 인연이 이만큼 되었으면 이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키기 위해 이 개체를 대할 때, 개체를 대하는 때가 와서 개체에 연결시키려고 할 때는 이 역사적인 기준에 해당할 수 있는 시련무대를 갖고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약 가정적 기준을 연결시킬 때는 여기에 가정적 기준을 첨부하여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소생, 장성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타락할 때에도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한 거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 할 수 없어요.

​축복받은 후 3년노정이 있어야 하는 이유

​그러면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이 자리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섭리의 때가 찾아오는 데는 개인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가정이 나오고, 가정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나옵니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연이어 넓혀서 세계무대까지 나오는 것이 섭리의 역사인 연고로, 여러분들이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어 승리한 기반을 닦았다 할진대는 그 가정을 가만 놔 두면 망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가정적인 기반 위에 민족적인 시련, 혹은 종족적인 시련을 당해 나가면 이 가정은 앞으로 남아질 미래의 종족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선생은 여러분들을 축복해 놓고 왜 내보내느냐? 앞으로 우리 앞에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가 찾아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크면 클수록 더 큰 분야의 시련을 한 단계 첨부하여 넘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지금 이 시대에서는 쓰러지는 것 같지만 재기할 수 있는 원천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다하다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은 고통을 더 받고 시련을 더 받는 조건만 있으면, 그것이 가정 이상의 기준이면 가정이 쓰러지더라도 가정 이상의 기준의 때에 있어서 다시 세울 수 있는 인연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로 다 청산지어 가지고 십자가에서 부활한 후에 다시 40일 고통 시련노정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침범할 수 없는 요건을 남기게 된 겁니다. 그 요건이 새로운 세계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조건은 타락한 천지가 생겨난 이후 처음으로 그 인연이 생겨 나왔기 때문에, 천지 운세가 찾아오게 될 때는 요 절대적인 요건으로 예수가 세워 놓은 부활 기대를 통과하지 않고는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기대를 찾아오는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 인류인 연고로 인류는 그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수습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아들이요, 사랑하는 자녀라 하더라도 사랑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했느냐? 여기에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닦아 나와야 할 본연의 사명을 메시아가 짊어져야 하는 연고로 그를 보내시는 하나님은 이런 시련 무대에서 순식간에 연단시키고 짧은 기간내에 세계적인 고통을 퍼부을 수 있는 사탄을 동원한 거예요. 알겠어요? 사탄을 동원하여 일시에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기간으로 허락한 것이 3년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앞에 놓고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게 될 때에 하늘 대하여 호소한 것이 그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오늘 내가 당하는 십자가의 죽음 이상의 고통을 아버지께서 당하시거든 그 이상의 고통을 나로 말미암아 푸시옵소서. 오늘 사탄이 나를 죽임으로써 자기 소원을 성취하였다면 그 이상의 하나님이 당하던 고통으로 말미암아 복수를 하옵소서' 한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사탄은 거기서부터….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부모의 날을 기념하려고 하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될 것이냐? 사랑할래도 사랑할 수 없고, 여러분이 이렇게 올 때에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한 게 가슴이 아파요. 지방을 순회할 때 여러분의 처참한 생활을 보면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스며든다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의 원수로부터 가정의 원수, 종족·민족을 넘어서 세계 원수에게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여기에서 동정하고 흥흥 해선 안 된다 이거예요. '야, 이젠 됐다' 하고 사정을 베풀었다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정이 없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예요. 그때 당시에 섭리의 뜻을 펴시던 그 뜻보다도 더 큰 시련도상에 있어서 사탄세계에 섭리의 뜻을 남겨야 할 소원을 품고 있는 연고로 '야 사탄아, 더해라. 더해라!' 하는 거예요. 열 대 때릴 것을 열 한 대만 때려 봐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의 가정이면 가정이 살고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옛날의 위대한 선지 선열들을 모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역사적인 새로운 분담, 자기 맡은 사명적인 그 한계선을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소개했기 때문에, 그 새로운 시대의 운세가 지나가지 않았을 때에는 그 기반을 닦아 놓은 그분들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분들이 승리한 혜택권 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의 성인현철들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왜 예수의 십자가를 믿고 예수의 십자가를 동정하느냐? 그걸 동정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사명의 책임이 오늘날 우리 앞에 맡겨져 있으니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이냐?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이냐?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 가지고….

이런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큰 시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섭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영계까지 동원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을 방해했지만 앞으로는 천사세계도 여러분들을 참소합니다. 알았어요? 천사세계도, 천사세계까지도 여러분을 참소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더 나 아가서는 저나라의 우리 선지 선열, 우리 선조들까지도 합하여…. 이렇다 이거예요.

사탄하고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고,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선지 선열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또 벌어집니다. 그렇다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그게 힘들다는 겁니다.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최후의 고비는 어떤 고비냐? 사탄 시련 끝나면, 지금까지의 영계의 영인들이 참소를 한다 이거예요. '네가 통일교회 교인이냐?' 하면서 말이예요. 또 천사들이 참소해요. '네가 통일교회 교인이냐?'그런다 이거예요. 천사들만이 아니고 성도들이 참소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사탄의 시련도 있거니와 이것이 지나가면 성도와 천사들의 시련이 있습니다. 이 시련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하면서 그런 장벽을 거치고 나와야, 그것을 지나고 나와야 그 위에….

예수님이 누구만큼 못나서 낙원에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낙원에 가 가지고 기도하는 예수는 세상에 대한 섭리의 뜻을 품고 왼손은 낙원을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나님의 복장을 쥐어야 된다는 말이예요. 쥐는 데에는 이렇게 쥐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넘어서 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세계와 모든게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들은 이런 뜻을 알았으니….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려면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부모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고 진정한 부자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느냐? 부모의 날을 몇만 번 축하하더라도 그 인연이 내 자신에게 완전히 맺어지지 않으면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맺어지느냐? 오라 하는 길을 올 줄 알고, 가라하는 길을 갈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고생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나 할 수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고 정복할 수 없으니…. 이게 최후의 작전법이예요. 이 싸움에 실패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여지없이 깨지는 거예요. 이 싸움에 이겨서 남아지는 날에는 여지없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갈래 길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날을 축하하면 축하할수록…. 아버지 앞에 내 마음 스스로가 버젓이 나서려면 모진 투쟁 무대에 있어서 승리하였다고, 그래도 내가 피땀을 흘렸고 누구보다도 노력을 했다는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하늘 앞에 '내가 왔습니다' 하고 엎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엎드리는 그 순간서부터 가슴이 욱여지는 통곡이, 울음이 복받쳐 나올 수 있는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아버지 앞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버지가 가는 길을 남이 한 걸음 가려 할 때 나는 열 걸음 가려고 하고, 남은 한 시간 싸우려고 할 때 나는 열 시간 노력하여서 그 길을 더 달려 가겠다고 수고하는 무리들이 되면 될수록 그런 마음이 간절할 거예요. 그런 심정의 세계에서 부모의 깊은 심정을 홀로 지니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 가는 데에는 친구가 필요 없어요. 내가 지내보니까 친구가 필요 없어요. 선생님은 가정을 가진 지금 입장에서 생각 할때, 어떤 때는 도리어 지장이 있다 하는 것을 실감해요. 혼자 갈 때는 언제나 그 예리한 시선이 한 곳을 향해서 가더니 환경이 벌어지니 지장을 가져오는 것을 느낀다 말이예요. 아버지라 부를 때 간곡히 솟구쳐 오르는 그 심정이 희미해 들어가는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구요. 그건 뭐 때가 그럴 때니까 그렇겠지만, 그러나 이 길을 가야 할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이 자리를 척 이렇게 보면 이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세계의 모든 심령들이 와 지키고 있어요. 와 있어 가지고, 어떤 녀석은 늦추어 잡아 가지고 꾸불꾸불하고, 어떤 녀석은 조금 희미해지고, 어떤 녀석은 뺑뺑해 가지고 끌려가는 수도 있어요.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구요. 천태만상이 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계의 수많은 인류 앞에 있어서….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끌어당기는 데는 뺑뺑합니다, 뺑뺑해. 끌어 와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가정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혹은 민족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국가에 있어서 어느 국가보다도 그저 당기고 당기고 당기고 당겨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끌려오면 사탄세계는 정복되는 것입니다. 그게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 그게 뭐예요? 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자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 놀음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여기에 인류를 앞에 놓고, 하나님을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무엇을 끌어당겼느냐?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심정입니다, 심정. 아무리 정복자인 원수들이 포진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일시에 넘고, 죽음을 넘어서 가지고 달려가는 심정만이 그것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이 시대는 세계적인 시대

​그러니만큼 이제 남아진 우리들이 가야 할 이런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오늘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었다고 내 자신을 스스로 인정을 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에게 남은 최후의 정열을, 여러분에게 남은 최후의 열성을, 최후의 결의를 어디에 쏟을 것이냐? 어디에 쏟게 해야 되느냐? 하늘은 어디에 쏟게 하려고 그러느냐? 개인적인 시대에 그걸 쏟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늘이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때가 세계적인 때이니만큼 개인적인 사명을 자녀의 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가정적인 기준에서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 시대에 일시에, 물론 연결시켜 가지고 나오지만, 여러분들을 국가적인, 민족적인 시대로부터 세계적인 운세권 내에 처넣자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3년 기간입니다. 이 3년 기간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부터 가정적으로 이걸 죽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예」

이거 수습해 나오는 데는 어디서부터 수습하느냐 하면, 하늘이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복중시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름에 전도활동 시작할 때 예진 애기가 복중에서 살았지요? 그 기준에서 나온 거예요. 이래 가지고 쭉 3년 기간 나와 가지고…. 그런 기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기준. 그러면서 우리 시대는 민족적인 사명시대를 거쳐서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때가 되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고생을 시키는 데는 어디서 시키느냐? 개인적인 시대를 여러분들이 몰랐어요. 다 몰랐어요. 선생님이 뭘하는지 알았어요? 뭘하는지 다 몰랐어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적으로 진정히 모실 수 있는 때를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꾸 멀어져요. 자꾸 멀어진다 말이예요. 앞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가까이 안돼요. 그건 민족적으로 대해야 됩니다. 자꾸 멀어지는 거예요. 그런 때는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체 세계를 살려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국가적인 운세와 세계적인 운세가 넘어갈 단계까지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을 시련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련 당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지금 삼천리 반도를 무대로 하고 나가서 싸우게 될 때 '내가 여기서 제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는 거예요. 이것은 골고다예요, 골고다.

골고다지만 골고다에서 승리하여 부활의 성채로서 하늘의 인정을 받고 참아들딸로서 아버지 품에 품길 수 있는 그런 한날이 오는 날에는 세계적인 거예요. 이런 마음 가지고 멋지게 싸워야 합니다, 멋지게. 여기에 있어서의 '아버지여 내가 위협하오니, 역사적인 최고의 시련 기준과 같은 이런 기준에 섰사오니, 최고의 시련 기준에 섰사오니, 아버지여…' 해서는 안 돼요. 이건 패자가 되는 겁니다. 하늘을 위로하면서 이런 싸움을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지지리 밀려다니면서 그렇게 싸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이번 부모의 날을 맞아…. 이제 우리 앞에는 이 시련과 환란은 세계적인 무대로서 남아 있다는 거예요. 요건 잠깐이예요. 7년이 되면 이것이 조여 들어간다 말이예요. 맨 처음엔 크지만 점점점점 환란은 작아진다구요. 알겠어요? 맨 처음에 시련이 클 때는 환란이 제일 크니 통일교회 패들은 요만해요. 이 시련은 점점점점, 맨 처음엔 컸지만 점점점점 작아져요. 여기에 비례하여 이만큼 시련받을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요만합니다. 그렇지만 역사가 감에 따라서 시련이 점점점점 작아지는 거예요. 점점점점 작아짐에 따라서 점점점점 통일교회는 드러나게 돼요. 마찬가지라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들이 고통받던 기간이 과거에는 길었어요. 여기서 출발한 사람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얼마나 길어요? 그렇지만 국가적인 때에서 세계적인 때로 넘어갈 때니 때가 요만하다는 거예요. 짧다는 거예요. 짧다는 거예요. 넘어갈 기간이 짧다는 거예요. 짧은 동시에 길질 않아요. 7년이라 하는 이 기간이 몇 개월 걸릴지 몰라요. 며칠이 될는 지도 몰라요. 세계가 넘어가는 순간은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의미에서 심각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망하고 흥하는 결정은 며칠 걸려요? 며칠 걸려요? 「순간입니다」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그러니 과거에는 우리에게 시련이 많았지만, 시련이 점점점점 작아지고 우리 편은 점점점점 많아진다구요. 그래, 우리가 세계적인 무대가 줬으니 우리에게 막힌 장벽은 다 무너졌어요. 민족적인 장벽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남아진 것은 세계적 기준입니다. 하나의 주권 국가만 되면, 여기서 주권 기준만 승리해 놓으면 세계적인 기준은 대등한 기준에서 밀고 나간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갈 시련의 고빗길은 많지 않아요.

그러니 선생님이 제일 원하는 것은 뭐냐? 여러분들이 세계적인 심정을 품고, 세계적인 부모의 심정을 품고 세계적인 환란도상에 있어서 승리의 방패를 세우겠다는 결심 자들이 되어서 조금만 싸워 보자구요, 조금한 그러면 필시 우리 앞에는 광명한 날이 찾아오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이때에 세계적인 부모의 심정을 품고 승리하자

​더우기나 오늘 여기 참석했던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았다구요. 이제 1차, 2차, 3차, 4차, 5차, 6차까지 했으니, 이번이 마지막 7차예요. 마지막 7차에 여러분을 다시 총동원시키는 거예요. 이번 일을 하는 데에는, 이번에는 절대 누구 신세지지 말하구요. 딴 사람에게 신세지지 말라구요. 누구, 자기 뭐 아는 사람한테, 친구들한테 돈 꿔 가지고 가지 말라구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 털어 가는 것은 괜찮아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자기 형제 것은 괜찮아요. 왜? 야곱이 그랬거든요, 야곱이. 그랬지요? 구체적인 내용을 내가 쭉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그걸 설명하면 지장이 있기 때문에…. 신세를 지려면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인연 맺은 사람한테 지라는 겁니다. 아버지 것이자 내 것이요, 형님 것이자 내 것일 수 있는 그런 분한테 신세지라는 겁니다. 분가 안 했을 때는 내 것 아니예요? 내 것이니 더 좋게 그들 앞에….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선한 의미에서, 더 좋게 뜻 앞에서 하게 될 때는 안 되는 것 같지만 넘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만일에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도와준 그것이 조건이 되어서 그 사람이 못 가게 된다 말이예요. 보라구요. 통일교회에서 여러분들이 나가서 전도해 가지고 수련을 받게 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 가지고 수련을 보내 봐라 이거예요. 그게 잘되나 두고 보라구요,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 여기 교회에서 대줘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 원리가 거짓말이라구요. 안 돼요. 어느때 가 가지고는 꺼떡꺼떡하거든요.

여기 김진희가 처음에…. 여기 김진희 어디 갔나? 「예」 그런 걸 알았어? 「예」 그거 안 된다 말이예요. 선생님이 본부에서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어느 교회를 후원하는데, 후원한 교회는 절대 안 돼요, 후원한 교회는. 본부에서 특별히 해 가지고 선생님이 후원해 주면 안 된다구요. 그래서 눈을 딱 감고 후원 안 해주는 거예요. 언제 후원해 주느냐? 소생급 장성급 다 지나 가지고 완성 단계 넘어설 때, 하늘이 진정으로 사랑한 아들은 그때에 가서 부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한 때에 가서는 후원해 주지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관여해 가지고 역사 안 해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런 기준으로 나가 봐라 하는 거예요. 맨 고비에 가 가지고 미끄러지지 않고 조금만 정도를 넘는 고생만 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조건으로 해 가지고 다 풀려 나간다는 말입니다. 고난을 피해 가는 길이 하늘 가는 길이 아니에요. 고난을 맞아 가는 것이 하늘 가는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알겠어요? 「예」

또,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축복받는 조상, 축복받는 자녀를 갖고 싶거들랑 오늘 현실의 때가 민족적인 때라 할진대 세계적인 때 앞에 있어서 투쟁하면 운세는, 그가 세계적인 환란과 세계적인 고통을 맞아 가지고 그것을 자기의 시련 무대로 삼고 하늘 앞에 공을 들여 놓으면, 이 때는 민족적인 때요 국가적인 시기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공을 들여 놓으면 하늘이 아들딸에게 축복을 해준다구요. 복을 주는 데에는 세계적인 복을 갖다가 첨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들이 태어날 때는 그 민족을 지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견지에서 내가 보고 있는 거예요. 이 원칙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 원칙이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이 원칙을 철저히 생각해야 됩니다. 부모 노릇 하기 힘들어요. 내가 지내고 보니 부모는 참 두려운 거예요. 선생님이 기도 한마디 잘못해 가지고 내가 애기보고 회개한 때가 있어요. 그건 아버지 앞에 자기로서의 가치로 기도할 그런 위신이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이런 기도를 나로서 해야 할 것인데 껄렁껄렁 기도 한마디 했다 말이예요. 말을 하다 보니 그런 한마디 하게 되겠어요. 이게 아주 가슴이 찔려 가지고…. 그 기도 하고는 애기보고 회개했어요. 이거 잘못하면 일주일 이상 회개하는 거예요. 자식 앞에 최고의 순결로써 나타나지 못하면 참다운 부모가 못 돼요.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나도 몰랐어요. 기도하고 보니…. 사랑한다는 그 자식들을 남의 물건을 도둑질해다가 먹여요? 차라리, 차라리 굶겨 죽이는 것이…. 여러분들이 부모면 부모로서 부모 노릇 하기 힘든 거예요. 자식은 부모를 지도하는 말없는 스승이예요.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내가 이렇게 고생시키겠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겠어요? 여러분들 등쳐먹으려고 그러겠나 말이예요. 그건 원칙이 아니예요. 그건 원칙이 아니예요. 그건 깨지는 거예요. 어차피 깨지는 거예요. 그렇게 놔 둬도 어차피 깨지게 마련이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는 것은 '지름길 가자, 지름길 가자, 지름길 가자' 하는 거예요.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10년 가 가지고 조그마한 것을 얻는다면, 열흘 가 가지고 10년 것의 몇천 배 얻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니 비상한 각오로 그 길로 때려 모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아는 자의 책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더우기 이번 가정들을 쭉 배치하는데 염려하는 것이 그거예요. 그 가정이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느냐? 여러분이 흘리지 않을 눈물을…. 여러분이 타고난 팔자가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어느 기준에 살라는 생활기준을 하늘은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타고난 팔자…. 팔자라는 거 있지요? 운명 기준 이상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이…. 그런 운을 타고났지만서도 세상에 와 가지고 그 반대 기준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고 더 큰 운세를 향하여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하면 그 수고한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제 남아진….

​이 민족을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민족으로 만들자

​이제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가야 할 여러분들에게 하늘이 선물을 준다면 무엇을 줄 것인가?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고생을 해서 그것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 민족이 지금 도탄 중에 있는 것을 바라봐도 우리 통일교회 이상 고생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제일 고생하지요? 「예」 선생님의 계획은 앞으로 돈이 많게 되면 그 돈을 통일교회 교인 줘서는 안 되겠다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잘먹고 잘입을 수 있는 즐비한 모든 배후의 경제 기반이 다 닦여 있어도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주지 말라는 거예요. 몇 년 동안? 영원히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예요. 10년이면 10년 동안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뭘할 것이냐?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미국 이상 기부하는 거예요. 각국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여행할 때에 '아, 지상의 천국의 나라, 문화의 상징 국가!' 라고 찬양하지만 반대가 되어야 돼요. 수많은 민족을 후원해 주고 수많은 민족을 도와주어서 누가 그 나라 찾아오게 될 때에 그들이 발을 옮겨 딛지 못할이만큼 그렇게 처참한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비참한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국가가 그렇게 된 것은 무엇 때문에?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 민족은 왜 이렇게 줬느냐? 세계 인류를 도와주기 위해서. 자기 민족보다 더 사랑하는 이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부모보다도 이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이런 절대적인 기준, 이걸 누가 만들겠느냐? 이걸 선생님이 제일 염려해요. 이걸 어떻게 만들어 놓겠느냐? 이것만 만들어 놓으면 공산당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이 세계를 정복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이 10년 동안에 세계를 이렇게 후원해 줬다는 걸 알면, 한국 찾아와서 먹지 않고 피를 팔아 가지고 후원해 줬다는 걸 알면 거기서부터 '이젠 한국 사람 고생하지 마십시오!' 하고 반드시 세계 인류가 손을 들어 외치는 그러한 외침의 소리가 들려 올 것입니다.

그때만 되면, 이념과 더불어 세계를 살리기 위하여 수고했고 하늘의 심정을 가진 형 중의 형이요, 동지 중의 동지요, 부모를 대신한 대신자라고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기준이 잡혀지면, 그때에 '한국에 있는 백성들은 고생하지 마십시오!' 하고 데모할 정도가 되면 순식간에 한국은 지상낙원이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우리가 암만 삼십 년, 수십 년 잘 했댔자 어떻게 이렇게 만들 거예요? 미국을 따라 가겠어요? 그렇지만 십 년이면 십 년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런 놀음 하면 십 년 후에나 몇십 년 후에는 최고의 문화 기준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 놀음 시키는 사람은 당장에는 원수지요. 모르는 것들은 망해요. 떨어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거예요. 모르면 전부 다 떨어져요. 모르면 망해 떨어지게 돼 있어요. 이스라엘이 몰랐기 때문에 다 망해 떨어지고 꺾어져 갔다 이거예요, 몰랐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거예요.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끔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가르쳐 주는 데도 못 가는 것은 자기 책임이예요. 이래서 선생님이 지금 기도하는 것이 그거예요.

비참한 얘기지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보면 얼마나 유태인을 학살했어요. 먹지 못해서 영양 부족이 되고 죽음의 길에서 생의 애착을 가지고 허덕이는 걸 바라보게 될 때, 만일에 한민족이 세계를…. 저 히틀러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원수 국가라고 해 가지고 저렇게 했지만, 원수의 국가에 대해서 옳다는 자기들이 정병이 돼 가지고 세계에 봉사를 해야 된다구요. 그랬으면 세계를 순식간에 영원히 정복했을 것인데 그런 의병이 이 역사말 시대에, 이 종말 시대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그렇게 해서 한번 가 보자구요.

수십만을 동원하여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심정적인 이런 원동력을 갖고 있느냐? 선생님이 그런 걸 많이 생각해 봤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예요. 그러니 고생은 타고났다는 거예요.

​부모의 심정을 붙들고 끝까지 나가자

​또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여러분 기도해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옥동자로 태어난 거예요. 태어날 때에 귀하게 태어났어요.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본래 하늘의 천성의 인연을 갖고 왔기 때문에 귀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고생하고 그렇게 천하게 살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안 돼 있다 이거예요. 그런 운을 가진 그런 심적 기반을, 배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생 덕에 삼천만이 바라보게 되고 그 고생 덕에 인류가 해방을 받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언제 봤다고 선생님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로 말미암아 천적인 운세는 자기들 앞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은 반드시 공이 있는 곳에는 머리 숙이고 가고 위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법도인 연고로 그 앞을 지나고 그 인연을 앞에 놓고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머리 숙이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법도예요. 이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상 야릇하거든요.

내 우리 애기들 보고도 지금 가만히…. 이 애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 내가 가르쳐 주는 도리가 이렇고 하늘이 세워서 인류를 수습해야 할 법도가 이런데 그 법도를 지도하는 내게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실험을 하는 거예요, 실험을.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오늘 부모의 날에 대해 말하게 될 때에 말이지요, 여기 모인 우리 식구들 대해서 부모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자녀에 대해서, 진정 자녀에 대해서 심정은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이걸 어떻게 다리 놓아 주느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걸 생각할 때 역시 역사적인 모든 인연이 여기서 지탱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 부를 때에, 아버지 어머니 부르려고 할 때에는 이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야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꽁꽁 동여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을 대표해서 싸우는 데 있어서 민족 앞에 홀로 서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혼자 부르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대표해서 그렇게, 그저 고통 가운데서 하늘을 염려하며 울부짖고 기도하게 되면 그 개인이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삼천만 민족 전부가 하나님을 얽어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들이 이제 지방에 나갈 거예요. 어차피 남은 멀지 않은 기간을 우리는 달려야 되겠어요. 달려야 되겠어요. 가까운 시일 내에, 멀고 빠르게 범위를 잡아서 여기에 인연을 맺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거기에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 우선 그 땅과 그 지역이 거기에 동화되어 머리 숙이게 되는 거예요. 이 길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래, 지금 삼천만 민족을 어떻게 해 가지고 머리 숙일 수 있게, '아버지!' 할 때에 '예, 옳습니다!' 할 수 있게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은 잘먹고 잘살자는 게 아니예요. 부모의 심정, 아버지가 보고 싶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그 품에 안기기 위해, 해방의 왕자가 돼 가지고 모든 것이 거침없이, 천하에 거침없이, 춤을 추나 뭘하나 만민이 다 영광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한때를 맞기 위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싶은 갈급한 마음, 이 마음에 불타 가지고 모진 시련도 나의 갈 길로 알고 응당히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싸워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필시 그런 날이 있을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 약속하는 것입니다. 또, 사실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다구요.

이제는 기도가 둘밖에 안 남았어요. 기도가 둘 남았어요. 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최후의 문제요, 하나는 세계적인 최후의 문제예요, 공산당 대해서. 그것 외에는 선생님이 소원이 없어요. 때가 이만큼 접근해 왔으니 여러분들이 현재 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단계에 왔다는 것을 아실거예요.

그렇게 알고, 선생님이 고생을 했으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참고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장벽 앞에 있어서 있는 정성을 다하라 이거예요. 예수께서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한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제시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도탄 중에서 밀려가는 사람 되지 말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붙들고 심정을 거기에 엉클어 놓는 여러분이 되라 이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의 아들딸이 될 거예요. 그러한 자리에서 그러한 각오를, 그러한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부모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우리는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되겠어요. 끝까지 가야 되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슬픈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약속하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저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과연 불쌍한 자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외롭다면 이 이상 외로운 자리가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구도 없고 사정도 통할 수 없는 황막한 황무지로 아버지가 내몰게 될 때에 고아와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자식을 찾기에 허덕이시는 아버지의 모양을 내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이 자리까지 쓰러지지 않고 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황공하옵니다.

세상에 그 누가 나를 몰라주더라도 저는 아버지를 갖고 있는 것이 자랑이옵니다. 슬플 때도 내 아버지였사옵고 기쁠 때도 내 아버지였사옵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슬픈 입장에 계신 아버지인 것을 알았기에 있는 힘 다하여야겠다고…. 가는 길을 돌아서 보고 내가 아직까지 여력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충성을 못 하였다는 한을 남길까봐 슬퍼하는 마음이 언제나 이 몸에서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하고, 한날의 쉬는 시간에도 자신을 채찍질하며 아버지의 심정을 붙안고 눈물지으며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을 당신은 아옵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 중에는 불쌍한 외로운 무리도 있습니다.

아버지, 이들은 젊은 청춘들이옵니다. 남보다도 더 먹고 싶고, 남보다 더 자랑하고 싶고, 남보다도 더 높임받고 싶은 것이 젊은이의 기질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춘 시대의 모든 욕망을 다 땅에 묻어 놓고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허덕이며 달려온 당신의 아들 딸이오니, 이제 손에 손을 붙들고 '내 아들딸아!'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되시옵고, 이제 직접 관여하시어서 저희의 앞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이 민족적 사명과 남아진 이 세계적 사명이 우리 앞에 있사오니, 부디 여기서 쓰러지지 말고 끝까지 남아지는 자가 되어서 아버지 존전에 해방의 자유와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를 독생자로 이 땅 위에 보내신 아버지는 예수를 품고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투쟁의 역사노정에서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요해야 할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신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분통하였습니까? 이것을 알았사옵니다.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한 자녀의 명분을 가졌사오나 이제 다시 돌아와야 할 저희들의 길이 남아 있기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사명적인 터전을 향하여 가는 이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를 그와 같은 자리에서 보호해 주시었기에 이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보호해 줄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련 가운데에 염려하신 아버지인 것을 제가 알기에 이들도 그와 같은 시련의 자리에서 보호해 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련과 그런 도탄 중에서 승리의 한 자리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드리게 될 때에, 만복의 복을 더해 주고도 부족하지 않으냐고 물어 보는 아버지인 것을 내가 알았사오니, 이들을 그런 자리에서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부모의 날을 마음 모아 축하하는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모든 사랑하는 식구들이 여기에 참석하지 못하였사오나 그들 위에 같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은 이곳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여기 참석한 이들보다도 더 간절하게 될 때는 그들이 복을 받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옵고, 해외 먼 곳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 이 날을 기념하면서 눈물짓고 있는 아들딸도 많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옵고, 승리의 한날을 약속으로 세우신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를 원하는 이날을 세웠을진대, 오늘의 이 모든 인연을 두터이 하시어서 만민 앞에, 모든 천주 앞에 인연으로 세우시옵고, 해방의 동기가 되고 승리의 방패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이런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부르고 싶었던 부모의 날, 부모의 날을 대표할 수 있는 참부모를 저희들이 맞아 이 땅 위에서 참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이 몸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효자의 이름을 가지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진정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때는 이 땅 위에서 길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가치의 시기를 맞이하였사오니, 이 가치의 길을 놓치고 천추만대에, 혹은 영원한 세계에 가서 탄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생전, 육을 쓰고 있는 이 기간에 있어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이는 효자 효녀가 되게 하시옵고, 충신 열녀가 되게 하시어서 새로운 천지의 역사적인 노정에 있어서 이들이 간 길을 효성이라 하시옵고, 이들이 간 길을 충성이라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영광이 이들의 터전 위에 길이길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축복과 권위가 이들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온 천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위에, 그리고 앞으로 뜻 앞에 세워져야 할 수많은 인류 위에, 천상의 복귀의 해원 앞에 있어서 슬픔의 심정을 붙안고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이 있는 천상에까지 아버지의 영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고, 특권적 혜택을 나타내시어서 새로운 영광의 터전으로 저희의 무리들과 온 천지를 몰아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참다운 참부모와 참자녀와 참식구들과 참하늘땅의 중심이 되시어서 심정적인 일체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어서 속히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악을 제거하고 원수들을 이 땅 위에서 축출하여….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

시련과 축복

1963년 3월 25일(월), 전 본부교회.

<말씀 요지> 예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 오신 분이었으나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은 항상 우리를 불렀어도 우리는 귀가 먹어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우리가 이날(부모의 날)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선생님이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는 근친들을 모두 데려가고 외로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먼 곳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야 합니다.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해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래야 합니다.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내적인 기준과 외적인 실체 기준이 부합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인 비참을 겪을 때는 하나님이 그 개인을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개인적인 시련을 이겼다고 해서 역사적인 기준을 다 넘은 것은 아닙니다. 섭리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세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복을 받으려면 가정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 기준을 세운 후에는 민족적인 시련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적인 기준이 무너집니다.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마음대로 사랑하지 못하셨습니다.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고통을 가하여 단련시키려는 것이 3년 기간인 것입니다.

하늘이 사랑이 없어서 수많은 선의 자녀들을 희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동정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리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참부모는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

1963년 3월 25일(음력 3월 1일, 월) 오전 6시, 한국 전 본부교회

<말씀 요지> 우리의 부족함을 더욱 느낍니다. 지금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가 모두 평형선상에 서야 할 때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은 부부가 합심하여 메워야 합니다.

36가정과 72가정을 배치한 것은 지금까지 정성을 못 들이고 승리의 기반을 못 닦은 것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부부가 맡은 지역은 전체를 정결케 하여야 합니다.

여러 가지의 시련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인한 시련이 있고 영적인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은 삼천만을 대신하고 아버지를 대신한 시련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의 시련은 길이길이 남겨야 합니다. 이것을 후손에게 영원히 자랑해야 합니다.

과거의 부족은 가정시대로 넘어오기 전 개인시대에서의 부족이기에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천운도 합세하려 합니다. 행동, 심정, 이념적인 면에서 발맞추지 못하면 개체뿐 아니라 종족(宗族)에도 걸려드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족복귀시대이기 때문에 선조가 협조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종족적인 기준을 결정짓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기를 가진 부부는 아기를 가담시켜서 싸워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가담하면 더 힘이 나기 마련입니다.

평면적인 때이기에 개체는 사방성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모세 때는 제물로, 예수 때는 복음으로, 지금은 모심으로 하늘 앞에 나아갑니다. 모심의 생활은 가정을 중시하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인 참부모를 중심하고 각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30억 인류가 이에 속해 지파 편성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은 일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에 통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통일을 해야 합니다. 생활은 전시태세와 같이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맞이했으니 가정적인 부모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참부모와 그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녀를 기를 때에는 참부모의 가치를 인정하는 만큼 자기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분가, 분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빼앗아도 부모는 축복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식구를 대접할 수 있는 밥을 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 3단계로 나누어 2단계 이하는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새로운 땅에 갈 때는 여자가 문제됩니다.

<말씀 요지>

하나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나와 상대가, 또 전세계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외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입니다. 우리는 개인으로부터 천주까지 7단계를 거쳐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었는가, 내 몸이 하나님과 하나되었는가, 내 가정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마음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몸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뜻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이념을 대신해 나가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이는 나라는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개체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소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 입장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기쁨을 천주의 기쁨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내 뜻이 우리의 뜻이요 전체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중심하고, 우리를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타락의 혈통을 물려받았으므로 이 세계에는 타락의 인연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승리의 기대를 조성해야 합니다.

가정은 전체를 대신한 최소 단위입니다. 이것의 잘못은 전체의 잘못으로 연결되므로 개인의 잘못은 용납할 수 있지만 가정의 잘못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개체의 기쁨을 전체의 기쁨이 되게 하려는 심정이 충만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과 주관과 소망을 빼 버리고 전체의 사정과 주관과 소망을 세워야 더 큰 것에 융합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송전선과 같습니다. 가정을 통하여 전체에 화하여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위기대는 한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가정을 재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선생님 앞에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땅을 찾아야 할 세계적인 투쟁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 온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중심하고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는 것이 제2의 사명이요, 성별하지 않고도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3의 사명입니다.

이 세 가지의 사명을 놓고 봉헌식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성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늘과 연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선생님은 하나님을 대신하고 예수와 성신을 대신하는 기준을 찾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봉헌식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놓고, 다음으로는 자녀를 놓고, 그 다음으로 부모를 놓고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거꾸로 이루어 나온 행렬이 ‘뒤로 돌아!’ 하면 일시에 평면적 기준에서 참부모를 중심하고 직접 하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국가적인 기준 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제는 돌아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위적인 조건, 즉 참부모의 이름 없이는 돌아설 수 없습니다. 또한 효자와 충신의 이름을 갖지 않고는 가정이 돌아설 수 없습니다. 내적인 혁신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이 식에 참여할래야 참여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생애에 있어서 가정과 개체의 생활을 중심삼고 맹세한 것은 천주 때문이니, 천주가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돌아설 수 없습니다.

돌아설 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땅이 있는가? 배가 있는가? 비행기가 있는가? 이 행사는 이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돌려야 할 책임을 선생님 혼자서 했습니다. 이런 책임을 하려면 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주권을 잃고 토굴 생활을 하는 군왕과 하나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군왕이 왕권을 되찾는 날 만민이 그 사람에게 머리 숙일 것입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몸도 무엇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설 수 있는 가정적, 세계적인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되어 봉헌식을 해야 합니다. 심정의 종적인 기준을 횡적으로 세워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대신이어야 하는가? 이 길을 누가 먼저 갔는가? 지금까지는 사업에 실패해도 무관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물을 농락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물복귀시대이기 때문에 봉헌식을 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내 것, 내 가정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 것이라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기간에 축복받은 자로서 죽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되지 않나 염려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회를 위하여 복을 빌 수 없었습니다. 또 ‘아버지여, 여기로 오시옵소서.’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신 아버지를 예수처럼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려가야 합니다. 벌거숭이가 됩시다. 억울한 입장에서 통곡할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무슨 일을 해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내가 죽더라도 영적인 파수꾼을 세웠으니 이 자리는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이 이 기준을 세워 놓아야 세계의 군왕들이 나라를 바쳐 올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자는 성전에 못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인 시험을 지난 입장에서 가정축복을 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탕감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오늘날은 모두 심판의 날들입니다. 자식을 놓고 부모의 좋은 점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적을 쌓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복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지상의 조건을 세우지 못했으나 이제부터는 그런 때가 옵니다.

여러분이 김삿갓과 같이 되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3년은 또 고생해야 합니다. 책임을 못하면 머리를 들 수 없는 기간이 3년 기간입니다. 죄인같이 머리를 숙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계가 통곡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놓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선생님이 참소를 받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는 사람 셋 이상을 세운 후에야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머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은 본부에 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을 있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2천년간 머리를 들지 못하셨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적인 상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봉헌식을 하여 선생님 것이 있어야 식구들 것이 생겨납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수는 없으니 십분의 일이라도 세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대열에 동참해야 합니다.

교회 전체가 청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실체 인간들이 나타날 때까지 선생님은 일해야 합니다.

<기도> 

아버님, 한 많은 복귀의 길이 복잡하다는 것을 저희는 아옵니다. 그러나 복잡한 길을 다 지내고 아버지의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고개를 남기고 밟아 오고 싸워 오던 저희가 이제는 소망의 날을 찬양할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은연한 가운데 느끼게 되었사옵니다. 이 모두가 저희가 수고한 바가 아니었사옵고, 남모르는 가운데 무한한 수고의 터전 위에 저희를 불러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노고의 연고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 앞에 부모의 날을 주셨사옵고, 자녀의 날을 주셨사옵고, 아버지를 중심삼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하나의 가정을 위주로 한 하나의 종족과 민족과 세계와 천주를 대신하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이 놀라운 인연권에 저희를 세우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 인연이 저희를 끌 수 있는 자리에서 한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이 인연을 수습할 수 있고 이 인연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한 책임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가 알았사옵고,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런 날들이 필요했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리하여 억천만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요, 만물의 원수요, 천상의 원수를 갚고 이 원수의 항서를 받아 아버지 앞에 돌려드려야 할 아들딸의 책임을 감당해야 될 것이 저희의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잃어버린 모든 만물권에 있어서 세워 줘야 할 전체적인 내용을 스스로 복귀시키는 데 저희가 책임 있는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안식시키고, 모든 슬픔의 역사는 저희의 시대에 있어서 횡적인 기준 위에 인간들끼리 책임지고 종적인 기준에서 영광만을 돌려드릴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3년노정의 마지막 고비를 향하여 넘어가는 이때에 있어서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이 여기에 하나가 되게 하시옵고, 심정이 있는 곳을 중심삼고 모든 승리의 결정적인 기반을 닦으시어 아버지의 영광스럽고 영원한 기준 위에 승리적인 영광으로 나타나게 허락해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위하여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오늘도 싸우고 있사옵고, 이 시간에도 당신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사오니 그 호소하는 전체적인 내용의 심정을 친히 들으시옵고 승리의 성사의 한 날을 전체 뜻 앞에 이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해외에 널려 있는 모든 당신의 아들딸들 위에도 같은 은사의 권내에서 보호해 주시옵고, 그 모진 싸움 앞에 지치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최후의 영광스러운 한 날을 같이 맞을 때까지 끝까지 참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랑의 아버지, 오늘날 이 시간까지 같이해 주심을 감사하오며, 돌아가는 저희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저희가 각기 다시 한 번 새로운 결심을 가져서 다시 새로이 수습된 기반 위에 영광을 대신하여 다시 하늘의 승리적인 용사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해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뜻대로 이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계획하신 승리의 영광만이 온 천주에 이뤄지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여러분들은 언제나 복귀역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기 모인 여러분을 불러 이 사망세계를 책임지우고 ‘이제부터 너를 통하여 이 세상을 복귀해야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복귀역사를 책임지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셨으나 아직도 종결되지 못한 복귀역사, 그러나 기필코 종결되어야 할 복귀역사, 이 복귀역사를 종결짓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합해야 합니다.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가지고도 안 되고 하나님만으로도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합해져야만 복귀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문제를….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개야! 이제부터 네가 이 큰 사명을 책임지고 복귀역사를 해 나가라.’ 하는 명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금까지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 나왔는데, 우리가 느껴야 할 최후의 입장은 어떤 것이냐? 바로 이러한 입장입니다.

온 세상은 지금 사망과 흑암 권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광명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흑암권 내에 있습니다. 이런 흑암권 내에 있는 여러분이 천신만고의 수고를 하고 정성을 들인 기반 위에서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는다면 그건 큰 복일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늘과 땅, 그리고 이 세계를 전부 너에게 맡기노라. 온 천지가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수 있게 하겠노라. 이런 무한한 혜택을 너에게 줄 것이니 너는 이 책임을 감당하라.’고 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서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나오셨는데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천주까지 찾아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 복귀섭리의 범위를 확대해 나오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만물과 인간까지 들어갈 수 있는 권(圈)의 복귀, 즉 완전복귀를 목표하고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세워 역사하시기도 하고, 가정을 세워서 혹은 종족이나 민족, 국가나 세계를 세워서 역사를 해 오셨는데, 이렇게 역사해 오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조만물 전체가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창조이상권 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피조만물은 반드시 완전한 한 사람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만물 자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중심이 되는 완전한 한 사람은 자기 홀로 책임한 입장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가 책임한 입장에 서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 천지의 모든 존재들이 같이 움직여서 일한 것과 동등한 가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가치적인 존재가 나와야만 하나님의 복귀섭리, 즉 구원섭리의 전체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 될 만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지금 여러분처럼 가정만을 위해 사는 사람? 사회를 책임졌다고 자처하는 사람? 혹은 이 세계의 2대 진영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거두들? 아닙니다. 이 하늘땅 전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맡기는 데는 모든 승리를 기반으로 잘 닦아진 영광의 터전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흑암의 세계, 원수의 떼거리가 세계적으로 널려 있는 엄청난 흑암의 세계를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명을 지고 세계를 책임지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이 세계는 위험권 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구원섭리의 뜻을 따라 나가는 신앙자들이요, 도의 길을 찾아 허덕이는 사람들이건만, 진정 그러한 자리에서 이 모든 천주적 사명을 책임지겠다 하여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가? 있었더라도 그가 그 책임을 감당했는가? 이것은 아직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지향해 온 것

그러면 통일교회가 지향해 온 것은 무엇이고, 또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 세계 앞에서 홀로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아 가지고, ‘이런 흑암권 내에서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해 내겠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버지, 해내겠습니다. 모든 것을 저에게 책임지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신도들은 모여서 움직였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면 최후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하나의 고정된 위치, 결정적인 그 위치는 어떠한 위치이냐? 이 세상이 모두 원수로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나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리신 최후의 명령을 받아 그 책임을 감당해 내겠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까지의 복귀역사란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역사입니다.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해 6천년을 거쳐 나왔어요. 6천년이 걸렸다는 거예요. 어느 한 시대가 아니요, 어느 한 세기가 아닙니다. 역사 속의 한 과정이 아니에요. 인류역사 전체가 잃어버린 조상을 찾아 나오는 복귀역사였던 것입니다. 6천년 동안이나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담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담을 완전히 찾아 가지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 인간 모두에게 승리의 전법을 가르쳐 주어 개개인이 완전한 터전 위에 서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런 터전 위에 서서 나는 천하를 다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을 가졌다 하는 신념과 그것을 실천하는 면에 있어서 자신을 갖는, 거기서부터 비로소 완성이라는 명사를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늘도 땅도 모르고 아무도 전혀 모르는 가운데에서 뜻 앞에 불리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 말고, 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깜깜한 천지 가운데에서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아 ‘이러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 내라.’ 하시는 명령을 받게 된다면, 어떠한 책임감과 어떠한 각오와 어떠한 결의를 가지고 나가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 서 보지 않는 한 선조들의 사정을 알 수 없고, 지금까지 역대의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수고한 역사적인 인연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 볼 때 ‘아, 노아는 이러했구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가정적인 단위에서 책임과 사명을 해야 했던 노아의 사정, 종족과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적인 분야에서 책임을 해야 했던 모세의 사정, 혹은 메시아의 입장에서 원수들이 수도 없이 많은 이 천지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원수의 자식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직계의 자녀로 만들어야 할 엄청난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예수의 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 볼 때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인 여러분, 선생님도 그러한 입장에 서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이며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한 분야에만 제한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시대에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하늘의 역사적인 인연을 알아서 그것을 수습하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원수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신념에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로부터의 역사를 밟고 올라서서 처참한 환난 가운데 있는 이 시대를 쳐부수고 수습하여 복지를 건설해야 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만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어야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신앙길을 갈 수 있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가려고 해도 못 갑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담가정을 중심한 원리를 배우고 있고, 노아가정을 중심한 원리를 배우고 있고, 아브라함, 야곱, 모세, 예수시대에 대한 원리를 배우고 있고,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따라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원리를 따라 쉴새없이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가정을 내가 수습해서 세우겠다, 노아가정을 내가 수습하겠다, 아브라함가정을 내가 수습하겠다, 수습할 뿐만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도 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이 흑암세계에서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아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총책임을 졌다 할진대,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할 때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 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예외가 없는 원리

예수가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서 죽기까지 어떠 어떠한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이 시대에 벌어진다면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고 지시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이념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일들을 놓고, 하늘의 불리움을 받은 자로서, 또 하늘의 사명을 진 자로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돼요. 어떤 한계권 내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뜻 앞에 있어 미숙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마음입니다.

원리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가야 할 복귀의 노정에서는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입장이나 모세의 입장이나, 예수의 입장이나 오늘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입장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어떤 특정한 사명을 짊어졌으니 그런 책임을 해야지.’ 하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만민이 모두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 예외로 취급한다.’고 하는 것이 탈입니다. ‘누구니 그랬지. 예수님이니까 그랬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외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원리에는 예외란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심정기준

선생님이 3년 기간을 넘어가는 지금 이때에 와서 제일 말하고 싶은 것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갑시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무자비한 투쟁을 거쳐서 세상의 끝까지 나왔으니 이제는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찾아 나왔으니 이젠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있어서 책임을 졌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대적인 환경과 제한된 시간권 내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권내에서 심정과 일치된 이념으로 현실적인 기반을 세워 가지고 이 이념에 반역하는 모든 원수들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세워 놓아야 할 엄청난 사명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기도할 때에는 그렇게 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뭘 알았나 말이에요? 타락이 어떻고 뭐가 어떤지 알았나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 서 있지만 그것을 찾아야 되겠고, 사탄에게서 그것들을 빼앗아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인격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 아래 역사적인 원수 사탄과 대결하여 그 사탄을 때려부수고, 시대적인 환경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을 갖고 미래의 개척자의 입장에서, 사탄세계에 남아진 모든 환난과 고통을 다 받더라도 굴함이 없이 새로운 세계, 즉 하나의 이념세계를 이루기 위해 심정의 기준을 중심삼고 태평히 서 있어야 합니다. 고난의 중앙부에 세워져도 그런 심정의 기반을 갖고 태평하게 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 아담이 타락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날 때의 슬픔을 느껴 보았습니까? 뜻을 못 이룰까봐 천신만고 억센 환경 앞에 시달리면서도 120년 동안이나 혀를 깨물며 참고 나가던 노아의 심정을 느껴봤습니까?

그 당시 노아에게 권고하시며 ‘가라’고 지시하시던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이 세계적인 사명을 갖고 노아 할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도 남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하고, 만우주 앞에 스스로를 세워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자연적인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강제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과연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까?

노아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노아가 한 일은 전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정의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도 아브라함 자신의 일이 아니라 아브라함 가정의 일이었습니다. 야곱이 한 일도 야곱의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21년 동안 수고한 그것도 자기 개체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12형제를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의 이스라엘을 위해서 수고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신자가 해야 할 일

여러분은 어느 한때 그런 입장에 서 보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부터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고 아버지고 없다 하는 입장에서 그런 사명을 짊어졌다면, 그것은 죽더라도 해야 될 책임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될 것인가? 만약 먼저 아담가정에 손을 대려고 해도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른다면 여러분은 손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스승이 있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재료를 갖다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전에 어느 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통해서 학자들은 자기 전공 분야의 재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데, 세계적인 재료, 좀더 유익한 재료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걸 구하기 위해서 자기 처신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지도 않고,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의 전문 분야를 위해서는 자기에게 있는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그 재료를 구하려 하는 것이 학자들의 마음입니다. 생명을 걸고 자기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려는 입장에 있는 사람일수록 뭐 아까운 게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서 어떻게 아담가정에 대한 재료를 수집하여 아담가정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충을 느끼고 있을 때에 좋은 재료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원리의 가치를 알고 나서 그것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왔습니다. 원리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에 맺혀 있는 이념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우주적인 재료입니다. 심정의 세계에 편편이 연결되어 있는 우주적인 재료입니다. 나는 이 세상을 수습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원리를 찾지 못하면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고, 온 인류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를 생각할 때 여러분 어떨 것 같습니까?

노아의 가정을 비롯하여 과거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것을 알았으니 이들을 수습하고 맞추어서 하나님의 대신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 사실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원리를 배워서 알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입장에 인간을 세워 놓으시고 인간이 스스로 찾아 나와 주기를 고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그 길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셨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가르쳐 주지 못하신 하나님의 신세가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타락의 동기는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떻다는 것을 누군가가 해명을 해서 사탄을 자연 굴복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바라만 보시던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느끼는 자리에서 아버지시여! 제가 책임을 진 자로 섰습니다. 당신께서 소망의 뜻을 품으시고 저를 세우신 것을 압니다. 아담가정의 고충을 해결하게 하기 위해서 저를 세우신 것을 압니다. 아담 가정의 고충이 이것 아닙니까? 하며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예수도 그런 자리에 처하게 되었을 때 원수가 인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님이여! 어찌하오리까?’하며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심정을 느껴야 됩니다. 역사는 그러한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관

여러분,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는 데 있어서 몸뚱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뭐 어디가 잘나고 어디가 어떻고 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도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습니까? 모두가 배고프고 그랬습니다. 그들도 고통을 받으면 고통을 다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것에 충격을 받았느냐? 단 하나 하나님의 명령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아 세계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개척자의 사명에 불타올라 자기 일신을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가정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종족도 민족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개인을 무시하고, 자기의 가정을 무시하고, 자기의 종족을 무시하고, 자기의 국가를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고도 나중에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흑암세계에서 하나님이 왜 자기를 불러 분부하는지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왜 자기를 불러 명령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 악의 역사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끝날에 와서 원리를 배워 가지고 역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두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알게 된 그 원리가 진정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까? 아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알고만 있는 것이 자기 것입니까? 거지들도 듣기만 하면 다 압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이 우주적인 사명감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는 데는 심정을 통하여 맺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부활된 아담의 행세를 해야 합니다. 실패하지 않은 아담으로 서야 합니다. 이렇게 했으면 타락하지 않았을 걸 하며 한탄하는 실패한 아담 말고 승리한 아담의 입장에서야 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노아 말고 승리한 노아, 실패한 아브라함 말고 승리한 아브라함, 실패한 모세 말고 승리한 모세, 죽은 예수 말고 살아서 승리한 예수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주 앞에 서서 ‘누가 나의 성전을 정복할소냐? 누가 나의 이념을 정복할소냐? 누가 뜻을 사랑하는 나의 이 마음을 심판하겠느냐?’ 하면 아무도 심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못 해요. 그렇게 되면 천지도 공인해야 하고 하나님도 공인해야 합니다. 만우주의 존재는 그를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승리의 영광을 중심삼고 세워진 실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불변의 기대 위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을 6천년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지금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선생님이 특별히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념에 불타는 철두철미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철두철미해야 됩니다. 이 세계 어디를 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믿지 마십시오. 믿긴 뭘 믿어요? 믿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선생님도 믿지 마십시오. 최후에는 오직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만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역사적인 사탄이여 오라! 흑암이여 오라!’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더라도 시시한 십자가에 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시시하게 골목의 십자가가 뭡니까? 한 가정의 십자가? 무슨 동네의 십자가? 안 됩니다. 한 나라의 십자가도 안 됩니다. 천지의 십자가, 하늘땅의 십자가를 내가 지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 원수 사탄이 농락하고 있는 이 세상을 내가 책임지고 원수의 도성을, 원수의 제단을 무너뜨리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골고다는 원수의 제단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예수는 죽음으로써 골고다를 무너뜨리고 갔지만 우리는 죽지 않고 실체로 무너뜨려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관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신앙관은 그런 사명을 감당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인 하면 그런 책임을 짊어지고 생활적인 무대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통일교인이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만 어려워도 꽁무니를 빼려고 하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무엇을 지고 가셨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지고 갔습니다. 그날의 예수는 아담을 지고 갔고, 노아를 지고 갔고, 아브라함을 지고 갔고, 모세를 지고 갔고, 수많은 선조들을 지고 갔고, 그때까지의 세계적인 모든 환난을 지고 갔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환난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세상의 환난을 완전히 소유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선지자들의 공로를 전부 소유하고 시대적인 환난을 밟고 올라섬으로 말미암아 그 시대 앞에 메시아적인 책임, 메시아적인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사를 대신 지고 간 십자가요, 시대의 환난을 지고 간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승리한 것입니다.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래서 예수는 역사적인 한을 품고 갔던 모든 선지자들을 부활시켰고 환난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해 주었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동시에 선조들의 부활도 벌어졌지요? 그래서 그들도 예수와 함께 영형체급 영계에서 생명체급 영계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환난을 밟고 올라선 사람, 세상을 대해 싸워 이긴 사람을 높은 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는 그 자리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최후는 골고다 산정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사탄 편인지 하나님 편인지는 골고다 산정에서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통일교인들이 믿고 있는 이념은 정말 멋지지요? 이건 뭐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불원간에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의 이념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이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 이념 앞에 움직임을 당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 이념 앞에 제물이 되겠습니까, 이 이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념이 종이 되느냐, 사람이 종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때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념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념 앞에 명령을 해야 됩니다. 이념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것은 뚝 잘라내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세상에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법으로는 돌로 때려죽일 수밖에 없는 사람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장에 죽어야 되고 벌받아야 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최고의 이념 앞에 지배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 최고의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이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결정권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모두 이념의 종이 되어서 서로 싸우고 있는 판국인데 이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은 어디서 결정되는가? 세계적인 골고다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인 골고다에서 이념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느냐, 못 얻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는 가정적인 골고다, 민족적인 골고다, 국가적인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 예수가 영육을 중심삼고 왔다가 영적 승리의 기반만을 닦고 갔던 그 골고다가 있었지만 끝날에는 이것을 모두 합한 세계적인 최고의 골고다가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최고의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을 밟고 넘어가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골고다 산정을 밟고 넘어가는 사명을 진 사람들이 도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심정적인 종교관이 반드시 나와야 됩니다.

최고의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온 그 자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꼭대기를 바라보시고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 꼭대기를 향해 나오시기 때문에 그 꼭대기를 우리가 넘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은 후에 사탄을 세워 놓고 사탄으로부터 공인을 받아 승리의 패권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인이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느냐 말이에요.

이 마지막 고개를 넘는 데는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이냐? 그 고개를 넘으면서 당하는 고통보다도 하늘의 책임을 진 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내적인 싸움의 고통이 더 커야 합니다. 동기가 커야 결과도 크지요. 온 천지의 사명을 내가 홀로 책임졌으니 이것을 어떻게든 죽기 전에 감당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나가야 합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몇천만 번 맹세를 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눈물 흘리고 뒤넘이치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 내적인 고통이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에서 당하는 고통보다 커야만 큰 역사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이면 열 다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인간의 필연적인 노정

최후의 십자가의 고비, 세계적인 십자가를 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가 천지의 원한의 골고다입니다. 이 천지의 원한의 골고다를 넘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인간은 못 넘었고 하나님 홀로 내적 심정의 고통을 당하시며 이 세계적 골고다를 향하여 나오셨습니다.

‘이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인간은 어디 있느냐?’ 하시며 나오신 하나님은 6천년 동안 피어린 고통에 사무치셨습니다.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내적 사무침이 있으면 천하의 어떠한 원수가 나타나도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천주적인 감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하나님은 이 세계적인 골고다도 무난히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 앞에 세계적인 골고다에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 가지고 천주적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아 내적인 사명을 책임진 그날부터 역사적인 고통과 시대적인 고통을 책임지고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갈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골고다는 내적인 고통이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에서 당하신 시련보다 몇백 배 크다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생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런 환난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인생! 그것은 타락한 인간으로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러한 우주적인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불리움받은 아들딸의 입장에 서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혼자 이런 우주적인 책임을 지고 가야 할 나’라고 하며 나가야 되겠습니다. 한 많은 과거를 거치고 한 많은 생활노정을 거쳐서 한 많은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을 일시에 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10년을 싸워도 후퇴하지 않겠다, 일생을 바쳐야 한 발자국을 전진할 수 있다고 해도 후퇴라는 명사를 남기지 않겠다, 정상에 오르겠다, 정상에 올라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후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생명을 바쳐야 할 환난이 있더라도 그 시련을 통하여 승리의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억천만 사탄도 점령할 수 없는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은 자만이 이념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오늘날 도인들이 찾아 나가는 기준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의 사명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뭐 하시는 분이냐 하면 바로 이러한 사명을 하시는 분입니다. 재림주님이 바로 그런 사명을 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알겠어요?

재림주님은 어떤 분이냐? 바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인류의 조상입니다. 세계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역사는 바로 자식의 역사입니다. 한 집안의 법도는 그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 나아가야 할 법도입니다.

통일교회가 넘어야 할 골고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시는가? 이 피조세계의 종으로 만드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천주를 손에 쥐고 만물 세계 앞에 호령하고 그들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골고다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꾸며 나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골고다는 아브라함이 책임졌고, 가정적인 골고다는 야곱이 책임졌습니다. 민족적인 골고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져야 했습니다. 세계적인 골고다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책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천주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하는데, 이것을 기독교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 우리 통일교회가 넘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은 늘 생각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의 입장에 서 있는데, 나는 선생의 입장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의 입장에 있으니 모든 것에 다 신경을 써야 됩니다. 한시라도 신경을 안 쓰면 안 됩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 벌어질 싸움에도 원래는 우리 통일교인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나는 그 작전에 통일교인들을 앞장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영계를 대신하여 움직이는 사람들을 앞장세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을 앞장세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요. 그러나 몇백 명 희생되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래도 모든 사람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 통일교회를 증거하러 온 사람들이 전부 통일교회를 증거하고는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열 가운데 아홉은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그들은 선두에 서서 영계를 개척하는 사명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제물이 된 것이지요. 보십시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했지만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럴 적마다 선생님은 참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의 보따리를 전부 다 빼앗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수고한 공적 이상의 기준으로 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다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책임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책임을 못하면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은혜 받은 사람들을 많이 심판했습니다. 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종들이 자녀를 이용해 먹었으니 이제는 자녀들이 종을 이용해 먹어야지요. 이것이 탕감복귀노정입니다. 그런 이치가 통하기 때문에 이용해야 하는데 그들이 책임 못하면 잘려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증거를 하면 다 잘 상대해 줍니다. 그랬는데도 책임을 못하여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가 쌓아 놓은 공적이 우리 것이 되지요. 이러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강한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대개 흐름을 알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거예요. 여러분에게 이러한 것을 인식시켜 놓고 오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니 잘 들으십시오. 알겠어요?

이제 여러분들 각자가 온 천지 앞에서 홀로 아버지의 불리움을 받아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라는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수습하여 가지고 승리의 기반을 세워 놓고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에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 후에 천주적인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하러 오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님의 자녀가 되려면 그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길로 내몰았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고통의 길에는 가정적인 골고다가 있고, 종족적인 골고다가 있고, 민족적인 골고다가 있습니다. 3년간에 걸쳐서 이 노정을 걸어 나가고 있는데 맨 처음에는 개인적인 핍박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가정적인 핍박, 종족적인 핍박, 민족적인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핍박시대가 와서 한꺼번에 들이칠 것입니다. 금년이 한꺼번에 들이치는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가는 해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세워야 할 믿음의 기준

그럼 지금부터 다시 한번 죽 이야기해 봅시다. 여러분! 인간은 타락했지요?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지요? 타락이 뭐예요? 타락은 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천사장은 종이지요? 대답을 하라구요. 왜 이렇게 물어보느냐 하면 여러분이 졸기 때문입니다. 졸면 안 됩니다. 졸면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없잖아요.

타락은 뭐라고 했지요? 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종 중의 종, 충복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 중에서도 제일 효자 효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만물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이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은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 면,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부모를 잃어버렸고, 만물까지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복귀하려면 이것을 모두 복귀해야 합니다.

요즘 신앙자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가자고 합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나도 통일교회 선생님 노릇 안 합니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 하나님 믿습니다. 주님도 믿습니다.’ 하는 믿음만 가지고 구원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입니다.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믿음의 내용은 피조 세계를 찾기 위한 것이요, 천주를 찾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또 참다운 사람을 찾기 위한 믿음이요, 참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믿음이요, 참다운 국가를 세우기 위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다운 천국을 찾기 위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내용이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뭐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구요? 예수를 믿는다 할 때 그 믿음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믿음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천지는 내 것이다. 온 세계 인류는 내 것이다. 영계에 있는 천사들도 내 것이고,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도 내 것이고, 예수도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한 기준을 갖고 믿어야 합니다. 그저 믿고 천당 간다구요? 가 보라구요. 갈 수 있나. 그렇게 믿어 가지고 천당 가겠어요?

믿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욕심을 내서 믿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더 크게 믿어야 되느냐? 사탄보다도 강한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밤에라도 데려다 쓰고 싶으면 쓰고, 잡아다가 때려 주고 싶으면 잡아다 때려 줄 수 있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려면 이만한 배포를 갖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알겠어요? 저기 할아버지는 왜 웃으시나요? 믿음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은 그러한 내용을 표방해서 하는 말입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오늘 통일교회 문 선생이 이렇게 고생 안 합니다. 내가 못나서 지금 이 일을 하는 줄 알아요?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제 믿음의 내용을 알았지요? 믿음의 표준이란 아까 선생님이 말한 그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만물과 천하를 잃어버렸고, 영계도 육계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아들딸, 또 하나님이 세우신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탄까지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 하나님까지도 내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내 것, 하나님의 사랑도 물론 내 것이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천하의 대왕자로 만들기 위해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신앙이라는 명사는 얼마나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까? 죄를 짓고도 ‘믿으라고 하여 믿으니 내 죄를 용서해 주고 천당 보내 주소서.’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천당 보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 신앙의 표준은 엄청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거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른 신앙관을 가져야 할 때

예수가 주장한 믿음관에는 천하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신앙 가운데서만이 성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들어가야 한다고 한 예수의 신앙이념이 완결되어야 예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예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니 결국 하나님이 예수의 몸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으니 이 성전의 뜻이 완성되는 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이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에 설 때 성전의 뜻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선생님은 오늘날까지 그러한 견지에서 신앙관을 펼쳐 왔습니다. 본래 출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신앙관을 가지고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껄렁껄렁 믿어 가지고는 안 돼요.

그렇게 쉽사리 믿고 천당 갈 수 있다면 어찌하여 세상이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천당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앙권 내에서 신앙의 승리자라면 그는 우주사적이고 천주사적인 존재입니다.

메시아 예수도 그러한 신앙관을 기반으로 하여 승리적인 개체가 못 되었기 때문에 저나라(영계)에 가서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무엇 때문에 기도하겠습니까? 소원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했으면 왜 기도를 하겠습니까? 성신이 지금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잃어버렸고 우리의 심부름꾼으로 부려야 할 천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게 누구의 잘못입니까? 다 인간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모두 다시 찾아야 합니다. 천하를 찾아야 하겠고 천사, 즉 종을 찾아야 되겠고 자녀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참부모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꿀잡이로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오늘날 신앙의 길입니다.

아까 선생님이 말한 것도 이런 우주적인 사명을 말한 것입니다. 이 흑암 세계를 홀로 책임지겠다 하는 신앙관과, 이 사탄세계, 이 흑암세계 가운데서도 내 신앙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하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방망이가 되어야 합니다. 방망이가 되어서 세계를 때리면 세계가 깨질지언정 나는 안 깨진다 하는 기준이 있어야 그 싸움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은 싸움의 노정입니다. 싸움으로 모든 것을 해결지어 나가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적 종말시대에도 반드시 싸움이 벌어질 것인데 그 싸움은 신앙적인 싸움입니다.

우주사적이고 천주사적인 신앙을 가지고 부딪치면 세계는 다 깨어져 넘어질 것입니다. 그런 신앙 이념을 가진 사람을 중심할 때 이 세계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고 이 세상은 새로운 천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이 몇천만 원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해도 그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거 찾는 것이 문제가 되겠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인데 거기에 내 생명 하나가 문제가 되겠느냐?’ 예수님도 그러한 심정권 내에서 살다 갔습니다. 세상에는 시시한 녀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책임 못하면 그들이 망하지 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와서 해야 할 일

과거에 ‘통일교회 문 선생은 어쩌고 저쩌고….’ 참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는 망하더라도, 축복받은 교인 몇 명은 망하더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뜻만은 망할 수 없다.’ 하는 기준에서 싸워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지 못한 선조들은 다 망해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는 무슨 사장인데, 나는 무슨 대학을 나왔는데, 뭐 나는 어떻고 어떤데….’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모릅니다. 그런 패들은 깨깨(충분히 또는 심히) 망해야 합니다. 망하나 안 망하나 두고 봅시다. 그들이 안 망한다면 내가 망하게 할 겁니다.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후손이지요? 타락한 후손이에요, 아니에요? 타락한 후손이지요?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타락한 후손입니다. 타락은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라고요? 천지를 잃어버리고, 종들을 잃어버리고, 참다운 아들딸들을 잃어버리고, 참다운 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타락이란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잃어버렸나요?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만일 그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자기 자식보다 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거기에 자식도 희생시켜야지요. 자기의 몸뚱이도 그것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한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신앙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역사가 복귀역사요, 구원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서 잃어버리기 전의 모양으로 세워 나오는 노정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땅의 역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복귀역사입니다. 타락한 이 땅을 복귀하기 위한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이 땅에 올 때 어떠한 사명을 짊어지고 와야 하느냐? 이건 말하지 않아도 명백합니다. 무슨 사명을 해야 하느냐? 잃어버린 하늘과 땅을 찾고 잃어버린 만물을 찾고, 잃어버린 종을 찾고,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찾아 가지고 그것을 인간의 조상으로서 후손들에게 그대로 상속해 주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가 쫓기는 메시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부모로 와서 부모로서의 사명을 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사명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했느냐? 복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복귀노정을 나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재창조의 역사를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천사를 먼저 짓고 만물을 짓고 그 다음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복귀역사는 이 노정을 되풀이해 나가야 합니다. 역(逆)으로 되풀이해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에서 역사의 전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기 한 개체가 역사적인 실체, 천주사적인 복귀의 실체이니만큼 그 자신의 실체를 중심삼고 역사적인 인연과 내용들을 전부 다 완결시켜야 했습니다. 과거의 인연을 거쳐야 했으며 현실적인 인연을 거쳐야 했고 미래적인 인연까지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 사명이 있었던 연고로,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생애를 걸어 놓고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종의 입장에서부터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을 찾아야 했었고, 만물을 찾아야 했었고, 동시에 세계를 찾아야 했었고, 동시에 자녀를 찾아야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참부모의 자리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인 창조목적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참부모의 삼위적인 기반 위에서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지 못한 것은 옛날에 아담 해와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억천만 년이 지나도 처치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가 이러한 사랑으로 한번 맺어졌다 하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타락한 세상에서도 자기 자식이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그 관계를 부모가 아무리 뗄려고 해도 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다니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이 본연의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의 기반을 완결지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전부 깨져 버렸으니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거꾸로 올라가는 데는 편안한 자리에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고 귀한 자리에서 흙덩이로 떨어져야 합니다. 맨 처음에 하나님이 지으시던 흙덩이로 다시 떨어져야 합니다. 또 종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메시아가 와도 그런 위치로 오는 것입니다. 높은 데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적인 인연을 거쳐서 낮은 땅에 올 때는 높은 자리로 오면 낮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낮은 자리로 오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났지요? 그렇지요? 내가 요전에 기차로 어디를 가는데 기찻간에서 어느 여인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기금을 모아서 주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예수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난 그렇게 알고 있어요. 버스에서나 길에서나 아기를 낳으면 전부 다 동정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런 풍속이 왜 생겼을까요? 예수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 가다가 만약 아기를 낳는 아주머니가 있으면 양복이라도 벗어 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기를 보듬어 주고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선생님이 통과할 때 그 시간에 딱 맞추어서 길거리에서 아기 한번 낳아 보십시오. (모두 웃음)

예수는 어떠한 분이냐 하면 하나님의 황태자입니다. 멋진 말이지요. 예수는 어떠한 분이라구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황태자란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천지 모든 만물의 대주재, 곧 주인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이요, 영원무궁토록 왕 중의 왕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이 형용을 하지 못할 정도로 높고 크십니다. 예수는 그렇게 크신 분의 아들로 태어난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 실감이 나지요? 메시아, 구주 하면 실감이 잘 안 나지만 하나님의 황태자라 하면 실감이 날 거예요.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로 태어난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를 인간들이 잡아죽였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하나님의 황태자,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가 하늘 보좌를 두고 땅 위에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났는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마굿간의 말구유가 메시아가 누울 자리입니까? 여러분이 태어날 때는 그래도 기저귀니 미역이니 하는 것을 준비하느라 야단법석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보다 훨씬 비참하게 태어났습니다. 방이 뭡니까? 말구유에 눕혀졌는데요. 그렇잖아요?

우리 통일교회 축복가정들, 내가 말은 안 하겠지만 우리 축복가정 중에 이런 가정이 하나는 나와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저 산꼭대기에 아기를 낳아 놓고 내려와 보십시오. 독수리가 그 주위를 빙빙 돈다고 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멋진 일이지요.

말구유 속의 아기 예수를 누가 지켜 주었습니까? 누가 지켜 주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이 지켜 주셨고 천사가 지켜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목자들이 그 자리를 지켜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태어나기는 그렇게 태어났지만 갖춘 바의 내용은 모두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영계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의 딱한 사정

그러면 예수는 왜 그렇게 태어났는가? 맨 밑바닥으로 떨어진 세계를 구하려니 맨 끝에서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맨 꼭대기라면 예수님은 맨 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 즉 이념세계란 둥근 세계입니다. 원의 세계예요. 그러니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야 영원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돌아가는 세계를 만들자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워 역사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돌지 않는 세계, 망해 버린 세계, 타락한 이 세계를 돌게 하려니 하나님은 맨 꼭대기에서 예수님은 맨 밑창에서 역사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돌고 돌아서 하나님이 땅에 내려오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자리에 못 올라가고 낙원에 딱 걸려 있습니다. 낙원에서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 이 천지에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시옵소서.’ 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 뭐 했나?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죠? 망신 잘 주고 일으켜 세워서 뺨도 갈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들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언제나 이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말씀 들으면 대개 신앙노정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거 그만 둘까요? 그만둬요?「아뇨.」여러분에게도 연대적인 책임이 있어요. 자려면 집에 가서 자야지요. 그렇게 자고 싶어요? 자요. 자! 앞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역사에 남을 겁니다. 통일교회의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는 거예요.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른편으로 내려오고 예수는 왼편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노정은 전부 다 역로(逆路)입니다. 정상적인 노정이 아니에요. 반대의 노정이에요, 세상과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면 예수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어디까지 갔느냐? 천국문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낙원에 떡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가 있다고 했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했다는 말이지요.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며 천당 가겠다고 하는 목사, 장로, 박사들, 두고 봅시다. 세상에서 신뢰받는 자들은 최후에 가서는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당코 뜻을 이루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반대하려면 해라. 몇 해나 갈 것이냐?’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몸으로는 땅을 바라보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불쌍하신 예수님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길인데 예수님은, 영계에 가 계시는 예수님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몸으로는 땅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못 알아들을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을 설명하려면 며칠 동안 해도 다 못 할 것입니다. 불쌍한 예수님이십니다. 이 땅의 가장 비참한 자리로 오셨지만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예수님의 본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남기고 가신 후 꿈으로만 바라보고 계십니다. 재림이라는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시며 신랑 신부의 이름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런 내용을 잘 알지요?

이렇게 불쌍하신 분을 신랑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패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입니다. 욕심들은 많아서 ‘좋은 것은 다 나 주시고 나쁜 것은 예수님이 맡아 주소서. 내 고통을 예수님이 전부 가져가셔서 나를 편안히 해주소서.’ 합니다. 기도를 해도 전부 복을 달라, 세계 제일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수고를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져가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본래의 정상적인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 같습니까? 죄지은 후손들이 되어 가지고 책임은 못 해 놓고 복만 달라고요? 이런 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깨뜨려야 돼요. 근본적으로 깨뜨려서 산산조각을 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불쌍한 예수! 이렇게 불쌍한 예수를 어느 누가 진정 신랑으로 모시기를 원하는가? 이 땅 위에 와서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아가려 했던 예수의 소망을 붙들고 이 땅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신념을 갖지 않은 자는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남기신 십자가의 길이 아직도 남아 있고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을 무너뜨려 탄탄대로를 만들기 전에는 내가 그분을 만날 수 없다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예수와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복받자고요? 천만에요. 예수는 복 주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다가는 예수 믿고 세계적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은 인간 때문도 아니고 세계 때문도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흥하게 되면 흥하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을 해도 올바른 신앙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믿고 복받겠다는 사람은 전부 강도들입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타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거늘 종교의 중심의 도리를 세운 교회가 기독교라 할진대 기독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그저 복만 받겠다고요? 그런 자들은 이단입니다. 이단이 뭡니까? 그들이 이단이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 기성교회 목사들을 대해 ‘우리 선생님이 그러던데 당신들이 이단이다.’ 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만 알고 있고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할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통일교회 선생님은 무엇하려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한이 엉켜 있으니 풀어야 합니다. 신랑이 오시는 길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것을 잘라 버려야 되겠고, 태산준령이 있으면 그것을 깎아 탄탄대로를 닦아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사도들이 신부인데, 신부 되겠다는 자들이 신랑의 살과 피를 뜯어 먹으려고만 하니 되겠습니까?

신랑은 신부 앞에 무엇이냐? 열남입니다. 열남! 세계적인 열남이에요. 열녀라는 말은 들었어도 열남이라는 말은 못 들었지요? 예수님은 신부된 만민에 대하여 열남이었습니다. 하늘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하고, 시대가 공인하고, 현재와 미래가 공인하는 남자 중의 남자였습니다. 그런 예수 앞에 신부 되겠다는 사람들이 열녀라는 명사도 못 세워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열녀도 못 되어 가지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강도식입니다. 거지들의 토굴에서 사는 여자가 세계적인 대통령을 자기 남편이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오! 케네디 대통령이 내 남편이다.’ 한다면 다들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왕자에게 ‘오, 신랑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를 뒤집어 쓰고 예수님께 ‘여기 와서 나와 같이 삽시다’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많은 예수님은 아직까지 해원성사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해원을 못했으니 예수를 보냈던 하나님의 한이 해원되었겠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해원 못하고 예수도 해원 못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천지 만물도 해원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천지의 한을 해원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원해야 할 것인가? 이 타락의 한을 해원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해원을 하는 데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되고, 하나님의 참아들딸들이 못 된 인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성신이 이 땅에서 수고의 역사를 해 나오며 탄식하였으니 성신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됩니다. 그 다음엔 메시아 스스로의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그런 다음 비로소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메시아의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그러한 역사적인 한을 해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의 실체로 하나님의 대신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실 때 4천년 역사의 소망의 결실체로 보내셨으니, 예수님 한 분은 세계적인 복귀의 중심이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중심삼은 인류, 예수를 중심삼은 만물, 예수를 중심삼은 천사들, 예수를 중심삼은 영계, 즉 모든 것이 예수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날, 하나님은 비로소 인간과 함께 사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 하나를 붙들고 사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조본연의 세계 전체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승리적인 기반을 닦은 후 본연의 세계를 찾는 주체로 예수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땅에 온 예수는 만물의 한과 인류의 한과 역사적인 한, 시대적인 한, 미래적인 한까지 모두 해원하고 예수님 자신의 한까지 완전히 해원하여 세상을 수습한 다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최고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수습하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러니 원칙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예수는 이 땅에 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땅에 와서 세계를 수습했는가? 인류를 수습했는가? 못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주권자들을 수습했는가? 못 했습니다. 수습하지 못한 채 심판이라는 명사를 남겨 놓고 갔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와서 모든 것을 수습하여 승리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역사적인 한을 청산짓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 ‘이 세계를 전부 아버지께 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는 때가 끝날입니다. 그러니 그 끝날에는 예수님도 부활해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0-23)라고 성경에 나와 있지요?

예수님도 부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성경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맨 처음 익은 열매 되시는 예수님도 부활해야 한다는 거예요. 부활은 무슨 부활? 낙원에 있었던 한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를 통치하는 왕으로, 하나님 대신 천상 천하를 통치하는 왕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몸으로 땅을 내려다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으로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이러한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는 부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 곧 성도들이 부활해야 합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전 15:24) 했지요? 그때가 끝날입니다. 사탄 세상의 모든 것을 멸할 때가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끝날이 어떤 때라구요? 여러분, 똑똑히 알란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사탄의 세계, 사탄의 나라를 멸망시켜 버리고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그 주관을 세워 가지고 아담의 후손들이 한 분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서 ‘하나님이시여, 받으시옵소서.’ 하는 때가 끝날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는 물론 내적인 기준에서 만물을 대신할 수 있고, 만민을 대신할 수도 있었으며, 모든 아들딸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딸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느냐? 아닙니다. 지으신 피조세계의 탄식을 해원해 주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만물을 탄식권 내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만민을 탄식권내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하며, 천상천하 영계에 있는 탄식권까지 완전히 해방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 나라를 하나님 앞에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당신이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나라가 이 나라이오니 받으시어서 이 나라에 당신이 세우고 싶어하셨던 만왕의 왕을 주권자로 세우소서.’ 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나라를 바치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대표적인 존재가 그 나라의 주권자로 세움을 받게 될 때에 천하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독교의 신앙관입니다.

기독교의 사명

그런데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와서 되겠습니까? 세상을 수습해야 하는데 구름 타고 와서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눈 뜨고 똑바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오늘날 신부 된 우리들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 그러한 분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신부인 성도들의 책임인데 지금 성도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지금 요한 23세가 범세계적으로 기독교의 대화를 선언하고 있지요?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기독교를 합해 하나로 만들어 보겠다고 하지 않아요? 그런 내적 운동이 벌어지는 이때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종교인들은 단합하여 어떠한 민족이나 주권이 이겨낼 수 없는 세계적인 주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유엔을 정신 차리게 해야 됩니다. 지금은 공산주의가 반대하면 유엔은 꼼짝 못하지요? 그러니 종교의 유엔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좌우 편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신부 된 우리들이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 기독교인들 뭐 하고 있습니까? ‘오! 예수는 내 예수, 나에게 다 주소서.’ 합니다. 이거 다 도적들입니다. 도적이 따로 있습니까?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하면 도적이지요.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도둑 아닙니까? 강도가 별건가요? 남의 사정 보지도 않고 훔쳐내는 사람이 강도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는 일을 사탄의 자식들이 하고 있으니 도적 아닙니까? 틀림없이 도적들입니다. 내가 한 가지 물어 볼 테니까 아니라는 사람 있으면 일어서 보십시오.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다 도둑들인 모양이지요? 그래. 생긴 것도 꼭 도적같이 생겼어. (모두 웃음)

끝날에 처한 성도는 신부의 내용을 갖추어야

여러분! 사실 선생님은 지금 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나깨나 이런 생각만 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정상적인 신앙자의 자세라고 보고, 선생님 역시 그런 자세로 일관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신랑 되신 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런 소망을 갖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부 된 자들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야 해요.

세상에서도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은 여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자가 독살이 뻗치고, 혓바닥이 둘이 되어 가지고 나가서 나불거리게 되면 그 집 망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신부 된 자들이 두 패로 갈라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를 보세요. 교단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갈라지면 갈라질수록 하나님은 떠나시는 것입니다. 장로교도 처음엔 두 파로 갈라지고 거기서 다시 한 파가 갈라졌지요? 세 번만 갈라지면 하나님은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 가서 은혜 받겠다고요? 암만 은혜 받으려 해도 졸음만 올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신부 중의 신부를 세워서 이 세상을 맡기고자 하실 텐데 그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교회에는 주님의 신부 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의 교회에는 있습니까? 우리 함께 그런 신부를 찾읍시다.’ 하면서 목청을 높여 가지고 세계사적인 신부를 찾아 세워야 할 것이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신부 될 사람 찾을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이단이다, 사교다, 뿔난 교회다, 뭐다 하며 욕설만 하고들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쪘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나는 남들이 걸려 넘어지는 가시를 먹고도 살찔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짜 건강한 사람 아닙니까? 그렇지요? (모두 웃음) 여러분! 이런 것 생각해 보았습니까? 끝날이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은 어떻게 계실 것인가 하는 것 말입니다. 입을 벌리고 웃을 것 같습니까? ‘아! 이제 끝날이 가까워지니 천하를 한꺼번에 호령하고 심판해서, 자를 것 있으면 쓱쓱 다 잘라 버리고 이거나 저거나 후다닥 해치워 버릴 수 있으니 기분 좋다.’ 할 것 같습니까? 이런 것 생각해 봤어요? 예수님은 끝날이 되면 입이 귀밑까지 돌아갈 만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날뛰고만 있지요?

끝날이 되면 될수록 예수님은 최고의 십자가의 자리로 내려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신부가 당하여야 할 세계적 환난의 고개, 최고의 골고다의 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랑의 입장에서 신부들이 당해야 할 환난까지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들은 모르지만 그런 고개를 넘어야만 하기에 천국 문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끝날을 준비하고 그 한 때에 승리한 신부를 맞기를 고대하면서 2천년 동안 고통을 당해 나오셨습니다. 끝날이 오면 올수록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걸 생각할 때에 형제끼리 서로 물어뜯고 칼을 들고 싸우는 현상을 바라보면 잠이 안 와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시기를 바란다면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그러하고 교회가 그러하고 나라가 그러하고 세계까지 그러하니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돼요. 끝날에는 나라와 나라가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끝날의 징조가 다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런 이념권 내에 있으니 우리는 됐다고 태평하게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거늘, 우리도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생각하고, 심정적인 입장에서만 민을 대신하여 신랑의 심정에 도달할 수 있는 신부의 내용을 갖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끝날에 주님의 신부로서 하나님 앞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뜻을 펴시기 전에 하셨던 생활

다시 한번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두고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의 비참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온 예수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그에게는 만물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고, 만민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며, 종(천사)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며, 또한 자녀를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모 중에서도 세계적인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했고, 형제 가운데에서도 큰형의 마음, 형 중에서도 형의 마음을 가져야 했으며, 세계적인 효자의 마음을 가져야 했고, 세계적인 충신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제사장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하여 선의 실적을 쌓은 선조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충성스런 마음까지 가져야 했습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밥을 먹을 때도 ‘하나님이시여, 제가 밥을 먹사오니 아브라함의 제단에 올리어졌던 3제물로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식의 생활을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알아요? 성경을 볼 줄 알아요? 알고 보니 예수의 심정이 그랬었다는 것입니다. 왜? 세계적인 책임을 져야 할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탄식권 내에 있는 만물과 인간의 모든 탄식의 조건을 내적으로 탕감해야 할 사명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모르는 가운데 그런 역사적인 생활의 기반을 닦아 나가야 했습니다. 그는 인간 세상에서 뜻을 펴기 전에 남모르는 가운데 내적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역사의 배후를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30년 동안 세상에서 웃고 아무렇게 생활한 것 같지만 그의 생활은 전부가 제사였습니다. 그가 보고 듣고 하는 전부가 아버지께서 받아 주실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우는 것은 아버지의 고통과 인연 맺고자 함이요, 내가 움직이는 것은 이 땅, 이 악한 세상을 아버지의 것으로 드리기 위함이다.’ 하는 기준에서 생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온 만물과 관계를 맺겠다는 것을 절대적인 목적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나깨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만민의 죄가 속죄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잠을 잘 때도 만민의 죄가 속죄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남모르는 고요한 밤에 깨어 일어나 잠자고 있는 만민을 대신하여 홀로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적 사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천주적인 한의 조건을 탕감하기 위한 하나의 실체로서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숨은 기도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종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만물을 잃어버렸고,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앞에 만물 대신 선한 것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준비 기간이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 봉사하는 기간이 있어야 했고, 아들로서 효도하는 기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효자라는 명사는 남겼으나 충신이라는 명사는 못 남겼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천사장 입장에 서서 세상을 수습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 땅 앞에 천사장의 입장에서 충성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효성을 해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단 하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단 하나의 충신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땅에 신부 되겠다는 무리들이 있다면 먼저 땅 위에 남아 있는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종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들의 사명을 한 예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보면 그는 만물의 가치를 무한에 두고 만물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힘썼습니다. 또 종의 입장에서 종 중의 종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사명을 가지고 아들 중의 아들의 사명을 했습니다. 이렇듯 30여 년이란 짧은 생애노정을 살다 갔지만 그는 그 생애 동안 복귀의 한 전체를 일신에 걸고 탕감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골고다 산정까지 감으로써 사탄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실체세계는 예수의 이념권 내로 복귀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복귀의 이념만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재림이라는 명사를 남기고 간 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그 실체세계를 찾아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3년 공생애 기간

예수는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했느냐? 종의 입장에서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또 자녀의 입장에서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또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세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생전 뭘 했느냐? 종의 몸을 쓰고 아들을 대신하여 부모를 찾아가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3년 공생애노정, 3년 준비 기간에는 종으로 뛰었습니다. 종으로서 사탄과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하늘의 법, 즉 천법을 어겼으니 천사를 굴복시켜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천사장이 종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으니 배반한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3년 공생애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3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쳐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한 실체로 서 가지고 아들의 책임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승리한 천사장의 입장에서 하늘 편 해와, 즉 신부를 세워 가지고 복귀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의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면, 딸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남자, 즉 아담격 신랑인 예수는 여자인 해와격 신부를 바라보며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대에 다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종적인 천사장의 사명을 3년 준비 기간 동안에 완결짓고 자녀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했습니다. 자녀의 사명을 완결짓는 데는 형제와 인연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형제의 발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발판을 중심으로 부모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데는 신랑과 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신랑 신부는 타락하지 않은 인간조상으로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참아버지 격이 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땅에서 인류의 참아버지로 서려면 참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을 완결지었으나 참어머니가 될 신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만 부모의 인연을 남기고 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는 신랑으로 하늘을 대신하고 성신은 신부로 땅을 대신하여 영적 부모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본래 부부란 실체를 쓰고 평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예수가 본래 이루어야 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고 신부 되신 성신은 땅에 내려와서 다시 영계와 육계를 하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인류는 영계와 육계권 내에서 뒤넘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 인류는 이에 대한 동기도 모르고 목적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머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눈을 깜짝깜짝하며, 별의별 놀음을 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참부모의 뱃속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와 같은 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몰라요.

중생해야 할 인간

이제 앞으로 인류를 다시 낳아 줄 날이 올 것이어늘, 그때가 세계적인 끝날입니다. 해산과 동시에 아들딸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늘땅의 만물이 하나님권내에 들어와 있어야 됩니다.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참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외적인 천지가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반드시 하나님이 지배할 수 있는 외적인 세계를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하 세계의 모든 사조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세계, 천국 이념을 중심삼은 세계,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고 행복과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세계로 지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세계, 그 가운데에서도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많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지요? 그것은 아담 해와가 10대 권에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제 참자녀를 해산하실 것인가? 어떠한 인간으로 해산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인간으로 해산할 것입니다. 과거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타락했지만, 오늘날 복귀의 역사를 거쳐 끝날 세계적인 아들딸을 해산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아들딸로 해산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아들딸이 태어나면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세계는 곧 그 아들딸의 세계로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아까 하나님의 사랑을 말했지만, 여러분은 지금 뱃속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젖을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얼굴을 못 보았으니 뱃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런 사정에 오늘 인간들은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생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영적인 구원섭리는 완결지었지만, 영적으로는 중생되어 영적인 젖은 먹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영육이 동시에 중생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오시는데, 그 주님은 참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실체를 쓴 인류의 아버지로 오시는 것이요, 실체를 쓴 신랑으로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실체를 쓴 인간 가운데에서 신부를 찾아 어머니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아야 할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를 잃어버렸기에 오늘날 인간들은 타락한 부모는 가졌지만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는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거쳐 가지고 실체를 쓰고 참부모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알겠어요? 역사적인 진리를 가지고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사명을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영적 구원의 기반을 닦으셨으니 그것을 기반으로, 영육 완전한 아들딸을 해산하지 못한 것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이 땅에 온 예수는 골고다 산정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러니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오시느냐? 골고다에서 출발하십니다. 수억만 인류가 반대하는 골고다를 넘어 죽음의 길로 가신 예수님은 부활의 성체(聖體)로 다시 오십니다. 죽음으로써 골고다를 넘어갔지만 영원히 승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활해서 다시 찾아오시지요? 골고다 산정을 넘어가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 가신 대로 오십니다. 십자가로 가셨으니 십자가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끝날에 통일교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

이와 같은 십자가를 지고 나선 단체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보다 더 큰 단체가 나올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어떤 단체든지 그러한 사명을 하고자 하는 단체는 반드시 배척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 길을 가는 데 집안 식구들이 반대하지요? 성경에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때려죽이기 전에 가지 말라.’고 반대하고 부모도 ‘가지 말라.’ 형제도 ‘가지 말라.’고 합니다. 전부가 반대합니다. 극심한 반대를 합니다. 칼로 찔러 죽인다고도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가 창에 찔려 돌아가셨으니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민족적인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까지 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길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만물 복귀, 종 복귀, 자녀 복귀, 부모 복귀를 위해 천주를 대표한 심정을 가지고 골고다를 넘어간 것같이 골고다를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품고 온 소망이 골고다에서 깨졌으니 골고다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의 소망이 깨져 나갈 때 만물이 깨져 나가고, 가정이 깨져 나가고, 종족, 민족, 천주가 깨져 나갔습니다.

맞는 것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해요. 한꺼번에 국가적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골고다의 도상은 개인적인 골고다, 가정적인 골고다, 종족적인 골고다, 민족적인 골고다, 국가적인 골고다, 세계적인 골고다까지 있습니다. 우선 종족적인 골고다의 기준까지라도 반드시 넘어 가야 됩니다. 소생·장성·완성의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 이 골고다를 넘어가야 할 것이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담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것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하는 기간이 이 3년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이 골고다 산정에서 싸워 나가게 될 때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나 깨나 먹을 때나, 모든 전부를 그것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흘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때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서 이 잔을 피하게 하옵소서.’ 하시며 눈물을 흘렸지요? 왜 그랬나요? 자신이 그런 길을 가게 되면 자기를 따르는 성도들도 모두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놓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시는 주님은 현실을 놓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현실을 놓고 뼈에 사무치게 기도한다는 거예요.

주님이 당하신 분함과 원통함을 당해 봐야 합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식들까지도 이런 고통과 원한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까지도 그런 고통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자기의 종족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느껴 봐야 합니다. 민족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느껴 보게 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오시는 주님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해 보세요. 사실인가 아닌가.

그러면 누가 더 불쌍합니까?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염려해 눈물지으면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시는 주님은 현실에서 십자가 노정에서 고통당하고 신음하고 있는 자녀들을 놓고 ‘할 수만 있으면 이들에게서 십자가의 잔을 피하게 하시옵소서.’라는 애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

자녀들이 책임 못하면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괴로움과 고통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에게는 그런 입장에서 개인에서부터 민족, 국가,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십자가 노정, 가정적인 십자가 노정, 종족적인 십자가 노정, 국가적인 십자가 노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할 적마다 어떤 결심을 해야 하느냐? ‘나는 이렇게 싸워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종으로서 간 길도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아들로서 못다 가고 남기고 간 그 길도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풀지 못한 한을 저에게 와서 푸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 앞에 신부로서 해야 할 책임을 완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자기 개체만이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하나님까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갖고 나가는 자라야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3년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고생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나 고생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소망을 두고 기도하였지만 오늘 통일교인들은 현실을 두고서 기도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눈물 흘린 기준을 세우고 가정을 대표하여 생활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이니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 세계인의 죄를 속죄시켜 주는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가정적인 환난 기간에 동참하게 하고, 민족적인 환난 기간에 동참하게 하고, 세계적인 환난 기간에 동참하게 하여 고통당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통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져 나갑니다. 알겠어요?

<기 도>

아버님, 지으신 모든 피조만물은 당신의 사랑권내에서 어떠한 한 존재도 완전한 미의 본성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이, 당신의 높고 거룩하고 지존하신 가치를 영원무궁토록 찬양하기에 합당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나이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기쁘신 가운데 바라보시던 만물은 당신의 사랑의 상징체였사옵고, 영광의 상징체였사옵고, 당신의 심정을 상속하여 길이길이 만우주의 중심으로 세우려 하셨던 아담의 상징적인 실체였음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회상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당신의 거룩하신 창조본연의 세계를 그리워해야 할 이 자리가 슬픈 자리가 되었사옵고, 또한 당신 앞에 면모를 나타낼 수 없는 부족한 자아임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가 된 것을 지극히 통탄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역사의 배후에 있는 모든 흔적을 헤아려볼 때에 저희들은 슬픔의 실체들이었고, 하나님 앞에 멋대로 하던 불쌍한 존재들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어느 한때 당신의 심정 앞에 영광의 대상체로서 나타나, 만우주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선조의 후손이 되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슬픈 사실이 있다면 이 이상 슬픈 사실이 없다는 것을 뼈 살에 사무치게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부족한 자식이 돌아왔사옵니다. 저희들, 수고하신 당신의 성상 앞에 보람된 자식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가 반성해 볼 때, 반성하면 할수록 부족한 것뿐이옵니다. 불고염치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에게는 타락한 인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실적과 긍휼의 심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저희들 당신 앞에 부복하는 마음을 갖고 나왔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버리실 수 없는 마음, 저희를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될 간곡한 심정을 갖고 계심을 알고 이렇게 저희들, 오늘 당신 앞에 나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사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영원한 아들딸을 소원하시던 아버지의 그 심정 앞에 부족하오나, 마음만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성상을 대하고 싶은 간곡한 본연의 심정이 저희들 마음에 있는 것을 보시사 긍휼히 여겨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당신이 아니었으면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존속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아옵나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자아를 다시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탄의 권한이 이 땅에 남아 있고, 불의의 환경이 이 땅에 남아 있고, 악의 주권이 온 천주를 주관하여 하늘의 슬픔을 재촉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이 때에 하늘을 찾아가는 저희들, 아버지의 소원을 찬양하여 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있는 저희들, 자신의 부족함을 체휼하여 당신 앞에 하소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저희들을 더더욱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힘이 아니고 아버님의 보호가 아니면, 오늘 이 악한 지상에 자기의 실체를 남길 수 없으며, 섭리의 뜻 앞에 아무것도 남길 수 없는 부족한 자신들입니다. 이러한 자신들임을 나타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저희들 자신도 여실히 알고 있사오니, 다시 한번 긍휼의 마음을 더하시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불신을 책하시어 충효의 길을 대할 수 있게 권고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미비함을 채워 주시어 완전에 가까울 수 있는 힘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3년 오늘, 3년노정의 마지막 날, 한 많은 역사노정을 회고하고, 한 많은 시대적인 현상을 바라보며, 미래의 역사적인 재창조의 기반을 닦아야 할 사명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한 날을 맞이하게 되었사오니,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선조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현재 인류의 불상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후손들 앞에 영원한 복지의 기반을 닦아 주어야 할 사명을 알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러한 모습이었사오나 당신이 끊임없이 내 한 개체를 세우기 위해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을 아옵나이다. ‘나’ 하나가 부족하여 오늘날 세상이 이런 입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사옵니다. 어떤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요, 이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요, 현재의 ‘나’ 하나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이렇게 심하고 억세고 불쌍한 길을 걸어 나오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걸으신 섭리노정에 슬픈 흔적이 남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3년노정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3년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 앞에 선서하고 맹세하던 그날을 다시 회고해 볼 때에, 불충했던 모습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알았사옵고, 아버지의 소원을 알았사옵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저희들의 입으로 수천만 번을 불렀사옵니다. 그러나 진정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사오며, 진정 이것이 내 뜻이라고 하면서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질 때가 있었사오며, 진정 세상의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겠다고 아버지 앞에 몸부림친 때가 있었사옵니까? 부족하고 부족한 저희들이었사옵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저희들을 용납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마지막 40일을 맞는 이 은사의 한 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남한 각지에서 아버님의 뜻을 대신하여 싸우던 아들딸들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 선다 할지라도 낙망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의 역사노정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부족한 이들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게 아버지의 힘의 내적인 요소를 채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우리의 아버지는 슬픈 아버지요, 우리의 뜻은 슬픈 뜻이요, 우리의 역사는 억울한 역사요, 우리의 생활은 사탄의 침범을 받는 생활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듯 아직까지 한 많은 생활 환경 속에서 몸부림치는 저희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설 면목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자리에 선 저희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선 저희들은 쓰러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 자리에 선 저희들은 후퇴하기도 원치 않습니다. 내일을 기약하면서, 새로운 날을 기약하면서 나가기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앞으로 저희의 힘과 생명과 실력을 다하여 원수 사탄을 향하여 전진할 것을 맹세하려 하오니, 아버지 앞에 더욱더 굳은 결의를 하게 하여 주시옵고, 더욱더 깊은 심정을 통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시대적인 전환기를 맞이하는 이 때의 이 순간이 얼마나 엄숙하고 귀중한 시간인가 하는 것을 알고, 이 한 순간에 하늘과 깊은 심정의 인연을 맺는 자신의 실체를 아버지 앞에 뚜렷이 드러내고, 온갖 충성과 정성을 다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무리들이 이곳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사옵나이다. 부모를 찾아 헤매던 아버지였사옵고, 자녀를 찾아 헤매던 아버지였사옵고, 만물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였음을 생각해 볼 때에, 그 누가 이런 섭리의 깊은 내용 앞에 심정적으로 당신을 위로한 자가 있었사옵나이까?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생활적인 기반을 가진 자가 있었사옵나이까? 어떠한 주권적인 터전이 있었사옵나이까? 어떠한 세계적인 기관이 있었사옵나이까? 없었사옵나이다. 없고 또 없으니 분하고 원통하옵나이다.

역사적인 흰 두루마리를 풀어 내려오신 아버지의 걸음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아버님이 세우신 참부모라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참다운 형제라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아버지의 가정을 중심삼고 만유가 하나의 기준점을 찾아 아버지의 그 거룩한 이름과 더불어 영원한 승리의 때를 맞이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아무리 감사한다 하더라도 부족하고, 마음과 몸을 숙이고 숙여도 부족한 자신들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상의 천천만 성도들도 이것을 알고 있고, 과거에 왔다 갔던 우리의 선조들도 이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 위에 실체를 가지고 살고 있으며 존귀한 가치의 결실체가 되어야 할 저희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러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사랑하는 자녀를 세워 놓고 일을 이루시고, 항구적인 실체를 세워 놓고 해명해 나오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아는 자만이 슬픈 길을 걸었사옵니다. 아는 일을 말로 표명하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내적인 심정이 얼마나 슬픈가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무리들이 이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번 기간에 당신의 거룩하신 승리의 영광의 터전이 마련되시옵고, 이제 당신이 3년 기간을 계획하여 섭리의 프로에 승리적인 조건으로 세워 놓고 넘어가야 할 이 분한 사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어찌하여 저희들은 부족한 자리에서 살았으며, 어찌하여 저희들은 무력한 자리에서 살았사옵니까? 어찌하여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보여 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을 갖지 못하였사옵니까? 이것을 탄식하는 무리들이오니 그 거룩한 마음 하나를 보시고, 그 심정을 아시고 이들의 마음의 터전 위에 안식의 보금자리를 정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40일 기간을 중심삼고 외로운 사정 속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역만리 슬픈 땅, 사정이 통하지 않는 외로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오직 뜻 하나만을 품고, 그 억센 환경에도 지치지 않고 수고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음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부디 그들이 갈 길을 개척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 있는 식구들보다 그들에게 당신의 크신 은사를 더더욱 가하여 주시옵고, 함께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만나고 싶은 간곡한 마음에 사무칠 적마다 당신 앞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이요, 보고 싶을 적마다 고향을 그리듯 마음으로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인 것을 당신은 잘 아실 줄 믿사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옵고, 그들의 직접적인 지도자가 되어 주시옵고, 그들의 지팡이가 되어 주시옵고,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옵소서. 모처럼 작정한 그들이 그 민족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들로 남아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슬픈 역사를 종결짓고 환희에 찬 한 날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아버님께 피조세계 전체를 복귀해 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사명과 책임을 느끼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더욱 맹세하고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수많은 민족을 대표하여 택하신 이 한민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고, 이 민족은 자기들이 처해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이 민족을 위한 저희들의 사명이 더더욱 큰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사명감에 불타서 지칠 줄 모르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복귀의 터전 위에 아버지의 영광만이 길이길이 드러나게 해주시 옵고, 한 많았던 섭리를 해원성사하시어서 당신의 자녀들이 천하 앞에 자랑할 수 있고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의 터전을 마련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 모든 것을 당신께 맡겼사오니 승리의 터전이 마련될 때까지 보호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통일교회란 명사가 생겨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복잡하게 수많은 종교가 생긴 것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요,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 환경에서, 여러분의 감정의 세계에서 슬픈 곡절이 생기는 것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든 슬픔의 근원은 타락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출현한 이유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인해 세상은 하나가 못 되고 갈라졌습니다. 세계도 갈라지고, 하늘과 땅도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부터 갈라졌습니다. 존재하는 것 중에 갈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보면 모두 갈라져 있습니다. 사랑의 명사나 신앙의 명사나 어떠한 명사라도 갈라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갈라졌다면 좋겠는데 사탄을 중심삼고 모두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 땅을 중심삼고 타락한 인간들을 대하여 작전하는 전반적인 모양을 총합적으로 비판하여 본다면, 사탄의 작전은 갈라지게 하는 작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타락이란? 갈라지게 하는 놀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의 장본인인 사탄은 어떠한 주인공이냐? 모든 것을 갈라지게 하는 주인공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산산히 갈라지게 하고 산산히 분산시켜서 하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사탄의 작전인데, 이러한 사탄의 작전에 대하여 하늘은 어떠한 역사를 해 나오느냐? 하늘은 갈라지는 역사를 붙들고 나오면서 통합운동을 전개해 오셨습니다. 무수히 갈라진 천지를 대신하여 남모르는 가운데 합하는 운동을 해 나오셨습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갈라진 수많은 종족들을 갈라지지 않은 하나의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수고와 지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갈라진 것을 한꺼번에 하나로 만들 수 없기에 하늘은 무수한 지도자와 이념과 종교를 세워 다시 수습하며 통합운동을 제시해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작전입니다. 여기에 대항하여 사탄은 시시각각 분열의 행동으로써, 파괴적인 요인을 가지고 합하게 하는 운동을 공격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하늘이 갈라진 개인들을 수습하여 합하게 하는 섭리를 하실 때 사탄은 개인을 동원하여 분열시키는 역사를 했습니다. 개인을 동원하여 분열시키지 못할 때에는 가정을 동원하여 분열시켰고, 나아가 단체와 국가와 세계까지 동원하여 합하게 하는 하늘의 작전에 대해 공격을 가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깊이 사무치는 원수가 있다면 어떤 원수일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 인류를 품고 움직이는 주인공 앞에 파괴시키고 분열시키는 원수일 것입니다. 그 원수는 개인적인 원수인 동시에 단체적인 원수요, 국가적인 원수요, 세계적인 원수요, 천주적인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원수의 소망과 생활과 행동하는 모든 것은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의 바른 생활

그러면 여러분이 통일교회 식구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타락으로 인하여 분열된 이 역사를, 혹은 이 세계를, 혹은 이 천지를 무엇으로 합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되는 것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 그리움에 사무칠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억천만 사탄들이 공격할 때에, 이 공격을 하나의 심정의 방패가 되어 막아낼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만 통일식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의 식구는 개인이요, 통일교회는 전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개인이 우주적인 분열 역사를 하는 사탄, 이 세계를 하나로 규합하려는 하늘 앞에 반대하는 원수를 무찌를 수 있는 신념과 원한과 분한 마음에 사무쳐 살아가는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무리들은 이러한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한 개인도 아닌 수많은 종족들과 이 세계의 인류를 수습하려 하시는데, 우리가 하늘 편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면 참혹한 것입니다. 한 시대에서 형성된 종교들도 아니요,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고 수많은 주권을 움직여 나오면서 전통적이고 공고한 기반을 닦은 수많은 종교들…. 앞으로 기필코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하늘 편에서 보면 이것은 참혹한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의 종교를 만들 것이냐? 이것의 뿌리를 빼서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는 것이요, 하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할 때에는 하나의 천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 섭리사를 대신하여 나가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통일이라는 명사를 존중시하고, 통일의 가치를 생활에서 주장하여 여러분의 생애노정에서 세계가 하나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꿈속에서라도 그것을 환영하는 무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되자는 운동 앞에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우리의 적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여러분을 죽이는 화살로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개인적인 화살도 받았고, 가정적인 화살도 받았고, 교회적인 화살, 사회적인 화살, 국가적인 화살, 종교적인 사탄의 화살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남아졌습니다. 통일교회라는 이름을 중심 삼고 규합점과 더불어 선의 기준을 갖추어 나왔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종착점

오늘날 내 자체가 가야 할 최종적인 목표점은 어디일 것이냐? 통일교회의 이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일시적인 소원은 될지언정 궁극적인 소원은 아닙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단계적인 소원은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소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목적도 어떠한 교회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요, 나라를 아버지 앞에 드리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요, 천주를 아버지 앞에 드리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통일된 교회를 넘어서 통일된 국가를 이루어야 하고, 통일된 국가를 넘어서 통일된 천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통일된 천지를 통괄할 수 있는 참다운 주인을 교회로부터 맞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주도적인 책임자가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상에서 제일 통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여러 교파로 갈라져 싸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작은 분야의 진리를 놓고 이쪽으로 휩쓸렸다가 저쪽으로 몰려가는 사람입니다. 머리도 꽁지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일 수습하기가 곤란한 사람은 종교인입니다. 섭리나 도를 믿는 종교인들입니다. 여러분이 수많은 종교를 통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는 종교는 어떤 주권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때는 수많은 위정자가 칼을 들고 창을 들고 호령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반드시 그런 자기의 선조들을 생각하며 탄식하고, 항서를 써서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게 종교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종교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그냥 그대로는 절대로 통일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보여 주어야 됩니다. 첫째는 나 자신의 인격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둘째는 참된 종교적인 생활과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어떤 주의나 사상이나 이념을 대표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고, 온 천하가 공인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됩니다. 외식이나 가장으로가 아니라 진실하게, 마음 먹은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생활의 기틀을 갖지 않는 한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희망이 떠난 현대, 여러 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늘날, 좌우로 갈라져 대결하고 있는 판국에 서 있는 여러분은 이러한 인격과 생활과 행동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요, 인간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도 필요로 하는 것이요, 만물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내용을 갖춘 대표자는 어떤 존재냐? 인간의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인격자입니다. 어떠한 한계권 내의 사정만 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어떠한 곡절과 시대적인 어떠한 고충과 미래에 어떠한 낭패가 있다 하더라도, 하늘 앞에 시대적인 사정을 대신할 수 있고, 인류의 사정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안팎으로 갖춘 인격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보내는 만왕의 왕 혹은 메시아는 어떠한 분이어야 될 것이뇨? 역사적인 사정과 시대적인 사정까지 전부 통할 수 있는 인격자이어야 합니다.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6천년 복귀역사를 종결짓고 이 세계를 통일해 나가는 분인데, 그러는 과정에서 원수들 앞에 모진 곤경을 받으며 투쟁하고 역사적인 심정을 체휼하고 또 모든 사람에게 체휼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이러한 인격자가 되지 않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진 분이 나를 붙들고 위로하게 될 때에 그 위로는 나를 붙들고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한과 더불어 한 날의 위로의 실체로서 무한한 가치 기준을 갖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여러분들이 느낄 수 있어야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세계를 통일하려면

자기의 생활 무대를 중심삼고 나를 위하고 나에게 행복을 전해 주십시오 하는 감정을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맹세하고 결의할 때는 오늘날의 이 생명의 한계권 내에서, 시대적인 순간권 내에서 결의하고 맹세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인 곡절을 거쳐 하늘의 사정을 체휼하고, 새로운 결의를 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한계권 내에서 움직이는 존재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에게도 사정과 심정과 인격이 있고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실체로서, 인간과 통할 수 있는 대표자로서 이 땅 위에 현현하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주님과 심정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일치라는 것은 과거지사에 대해서도 일치하고, 현재 처하여 있는 입장에서도 일치해야 되고, 미래를 놓고도 일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치하지 않고는 통일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통일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통일이 아닙니다. 영원한 통일입니다. 생활통일로부터 행동통일과 이념통일과 심정통일까지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기간을 통해서 여러분은 새로운 무엇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 앞에 새로운 결의를 하고 통일의 한 날을 위해서 전국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통일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움직이고 있는데,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통일의 이념권 내에 서서 행동하느냐 할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볼 때 완전히 귀일된 입장에서 행동을 하고, 귀일된 입장에서 정성을 들이고, 귀일된 입장에서 어떤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느냐? 혹은 환경이 억세면 이것을 극복하고 있느냐?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과연 자신은 천주의 운세 앞에 불변의 실체요, 또 부동의 실체로서 아버지와 나와 천하를 통합한 기준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이 느끼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오늘 우리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손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영계와 같은 배후가 필요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자체를 우주적인 통일의 이념권내에 설 수 있다고 입증해 줄 수 있는 배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필요한 것을 충당해 주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 필요한 것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이나 메시아와 인연맺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원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침범받지 않겠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것만은 침범받지 않겠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야 통일교회의 기반을 넘고 통일나라, 통일세계, 통일 천지의 운세를 끌고 가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될 수 있다면, 여러분을 세워서 인연을 맺으려 합니다. 그래서 하늘은 여러분을 얻어맞게 하십니다. 또 여러분을 욕을 먹게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인연을 빨리 맺게 하려니 여러분이 하지 못할 일도 시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십리길 천리길을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두 가지 해서 사방을 얽어매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까, 하늘은 이렇게 역사합니다.

선생님의 지도 목적

하늘은 천하가 다 부러워하고 천지가 다 우러러볼 수 있는 곳에 들어가게 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서 좋다고 날뛰다가는 큰일납니다. 그곳까지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천태만상의 사정을 통하게 하고 인류 세계 전부와 인연맺고 나아가야 할 복귀노정이기에 별의별 모양의 탕감을 시키는 것입니다. 억울한 보따리, 슬픈 보따리를 짊어지워 주고, 별의별 곡절의 내용을 전부 얽어매는 거예요. 그런 보따리를 짊어지고, 그런 곡절에 얽어매인 그가 쓰러지면 민족이 망하고 천지가 망하는 겁니다.

가정복귀 도상에서 21년 기간을 중심삼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선 야곱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방의 백성과 이방 사람들의 사정까지 봐 줘야 할 생활이었으니 처량한 것입니다. 그를 그런 환경 속에 있게 한 것은 불변의 기반을 닦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하늘의 내적 심정이 있었던 것을 몰랐지만, 야곱은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릴 것이고 봄이 오면 새로운 것이 온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지내다 보니 결국은 어려운 환경의 고비를 넘고 새로운 약속의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모세가 민족을 거느리게 하기 위해서 하늘은 민족의 모든 곡절을 찾아서 얽어매 주십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미디안광야 40년 노정에 있어서 이방 민족까지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양치는 목자생활을 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그리워한 것은 물론이지만, 하나님의 뜻 앞에 하등의 인연이 없는 이방 사람들까지 그리워했습니다. 이방의 사정까지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행군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작전하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방 민족을 생각해 주고 난 후에 하늘의 작전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역사가 전개되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교회를 통일하기 위하여 이 고생 저 고생을 했고, 이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것은 다 뒤집어썼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마다하는 사람은 통일의 역군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3년 기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선생님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민족의 최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서부터 최고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누가 책임지겠습니가? 통일교회가 해야 합니다. 교회만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통일하기 위하여, 교회의 복잡한 모든 내용을 책임지는 동시에, 이 나라의 모든 억울한 사정을 책임지고, 나아가 천하의 모든 어려움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운명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런 연고로 여러분들에게 나가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런 환경에 설 적마다 하늘 앞에 승리를 맹세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분열시키는 역사를 해왔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습격해 왔고, 단체적으로 습격해 왔고, 국가적으로 습격해 왔고, 세계적으로 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쉬지 않고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뜻을 대하는 통일식구들은 발전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후퇴하지는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보탬이 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염려하게 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신도들이 취해야 할 바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아가려고 하는 노력이 끊어지면 갈 길이 막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을 접붙여 주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면, 그는 여러분을 접붙여 주기 위해서 꼭꼭 동여맬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접붙여 주기 위해서 하늘이 얽어매었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을 복잡한 환경에 얽어맨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것은 그 환경을 전부 다 소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매어진 것이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늘이 친다는 거예요. 하늘이 그 이상의 힘으로 잡아채도 떨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이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의 실체, 소망의 가지, 앞으로 결실할 수 있는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시련 가운데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기에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다음 무엇을 할 것이냐?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라고 교회만 통일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이념으로 된 하나의 세계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천주의 대주재자로, 주인공으로 모실 때까지 이 통일의 운세를 움직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인 시련과 역사적인 어떠한 고충과 어떠한 무엇이 온다고 해도 통일을 향한 그 신념, 그 인격, 그 행동, 그 생활, 이것만은 침범당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침범당하게 될 때는 여러분의 앞길이 막혀 버립니다.

모든 종교를 통일하려면

세계를 통일하는 데 있어서 교회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수많은 주권자들도 손을 댔다가 항복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무엇으로 통일할 것이냐?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서 불교인들을 통일하려면 석가모니를 만나서 얘기하게 될 때 석가모니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되는 것이요, 유교인들을 통일하려면 공자를 만나서 얘기하게 될 때, 공자가 과거의 부족함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뉘우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되는 것이요, 기독교인을 통일하려면 예수님께서 눈물 흘릴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할 것인가? 진리 가지고는 안 됩니다. 충신과 효자는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천번 만번 그냥 충성한 사람보다 단 한 번이지만 진심으로 심정에 사무쳐 행동하는 사람이 충신 중의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의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만고의 도주들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심정을 중심삼은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를 해명해 줄 때에, 그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을 직고하게 할 수 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도주들이 자기들의 과거의 부족함을 느끼고 눈물지으며 하늘과 천국세계 앞에 다시 호소하여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한다면 만유의 통일은 가능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그럴 수 있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만유의 통일은 하나님과 여러분의 심정을 걸어 놓고 해결지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그런 심정을 걸어 놓고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이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정적인 문제를 총책임지고 인간을 대표해서 수많은 교주들을 대하고,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메시아인 것을 알고 그러한 분을 여러분이 만났다 할진대 여러분은 역사적인 어느 누구보다도 나아야 되겠습니다. 불교를 믿고 충성하는 어떤 불자보다도 앞서야 되겠고, 기독교를 믿는 어떤 교인보다도 나아야 되겠습니다. 유대교라든가 회회교라든가 어떠한 종교를 믿고 충성을 다하였던 열렬한 신앙자보다도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우러러볼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교회 이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빛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한 책임을 짊어진 분이 계시다면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석가모니를 믿던 불교인이 석가모니를 사랑한 것보다 더 낫구나 할 수 있는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자기들이 석가모니를 믿은 것보다 낫다는 것을 제시하고, 지금까지 믿어 나오던 것을 후회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되겠습니다. 유교를 믿던 사람들에게도 ‘내가 유교를 믿은 것보다 낫구나! 나는 과거에 왜 그랬던고!’ 하고 후회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되겠습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에게도 ‘과거에 내가 왜 안 믿었던고. 지금이라도 믿어야겠구나!’ 하고 후회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되겠습니다. 도주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심정 기준을 세워야 하고, 신자들이 자기들이 믿던 것을 후회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종교의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아시겠어요?

그렇다면 통일교회가 그런 것을 가졌느냐? 그러한 것을 못 가졌다면 보따리 싸들고 찾아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가야 되고 여러분도 가야 됩니다. 미국에 있다면 미국으로 가야 될 것이고, 땅 끝 어느 나라에 있다면 그 나라까지 가야 됩니다. 한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을 작별하고 보따리 싸 들고 그런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요즈음 도보로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놀음을 해서라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를 통일하려면 도주들을 굴복시켜 눈물 흘릴 수 있게 하고, 하늘 앞에 자기의 부족함을 직고할 수 있게 하고, 신도들에게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후회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던 것보다 더 가치가 있고, 더 이익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종교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활은 불교 믿는 사람보다 나아야 되겠고, 기성교회 교인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심정적인 면에서 나아야 합니다. 옛날에 왔다 갔던 수많은 도주들이 땅에 있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아! 놀랍구나.’ 하며 칭찬할 수 있어야 되겠고, ‘그대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구나.’ 하며 자기 이상의 상을 받기를 바라고, 자기보다 더 복된 자리에 나가기를 바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돼야 통일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겠어요?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내려요. 그렇게 되었다 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내려요. 여러분은 명목상의 통일교인입니다. 쭉정이 통일교인…. 여러분, 한 그루의 꽃 나무에도 활짝 핀 꽃이 있는 반면에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꽃을 보는 사람에게 둘 중 하나를 꺾어 가라면 방실방실 맺혀 있는 꽃봉오리를 꺾어 갈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이 활짝 핀 꽃이 못 되었다면 수많은 도인들이 꺾어 갈 수 있는 꽃봉오리라도 되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피지 못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피지 못한 꽃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른 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자신들이 다른 도를 믿는 사람들을 볼 때 눈물이 앞서야 됩니다. 무한히 그립고, 무한히 위하고 싶고, 무한히 관계맺고 싶고, 무한히 같이 살고 싶어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활짝 필 수 있는 꽃봉오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갖고 오신 분이 죽어서 되겠어요?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가 소망해 온 것과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생각해 볼 때에, 하늘은 어떠했겠습니까? 하늘은 지금까지 인간들을 대하여 자기의 모든 서러움을 토로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한을 갖고 눈물지어 나왔습니다. 수많은 도주들을 불러 놓고 역사는 이러 이러했다고 말하지 못하셨습니다.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되어 있는 연고로 눈물지어 나오신 것입니다.

하늘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도인들이 가야 할 길임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전부 통일되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내려갈 것입니다. 또한 민주주의도 내려 갈 것입니다. 요전 신문에 아주 좋은 예가 나왔습니다.

앞으로 통일교인이 되지 않으면 하나의 세계의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전부 우리의 꽁무니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 시대를 거쳐 하나의 세계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종교의 도주들을 규합할 때입니다. 내가 창건하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세계적인 종교 연합 단체입니다. 지금 미국의 케네디가 해야 할 것은 세계의 모든 종교를 규합하여서 세계적인 종교인 단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번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종교의 교주들이 규합하여 후원해 주면 세계 여러 나라의 대통령이나 집권자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때가 옵니다. 두고 보세요. 틀림없이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하는 것의 동기와 내용은 좋은데 하는 사람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하는 사람이 통일교회를 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우리 통일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소생 통일교회인지도 모릅니다. 통일교회도 소생 장성 완성 통일교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통일이념을 거쳐 가지고 인격을 완성하여, 누구를 붙들고도 천하를 대신하여 울어 줄 수 있는 심정의 주인공이 되어야 되고, 천하의 모든 어려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 만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세계를 통일하는 데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만민의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만민이 그의 생활을 본받고 싶어해야 합니다. 즉 그가 부모를 모시는 것을 본받고 싶어하고, 그가 형제를 대하는 것을 본받고 싶어하고, 그가 가정을 중심해서 종족적인 사위기대를 이루어 하나되는 것을 본받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의 생활의 기준이 만민이 우러러볼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세계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의 생활 기준이 만민이 우러러볼 수 있는 기준이 되려면, 그 당대에만 해당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이념을 통할 수 있어 가지고 이 시대를 초월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생활적인 기준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준을 세우라

선생님은 종교적인 이념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여러분에게 생활적인 면에서 본이 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세계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생활관을 가져야 하고, 우리들은 어차피 그러한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시련 가운데 몰아넣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여러분들이 생활에 있어서 종교적인 기반을 구축해 나가려면 수많은 도인들을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거예요. 도의 길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에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생활적인 면에서 보여 주어야만 만민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러한 생활적인 목표를 세워 가지고 여러분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천국의 역군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나는 누구의 것이냐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없으면 땅이 없고, 내가 없으면 하늘이 없고, 내가 없으면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위해서는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복의 천국 동산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도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하늘땅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주의 중심존재가 되어야 하겠다는 신념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에 나타내야 하고,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깊은 심정의 내용을 갖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기도를 못 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막 14:36)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주를 통할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영계에 수많은 영인들이 있지만 이 시대에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신념을 가진 스승과 하나되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분과 나와는 어떤 관계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천지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돼야 합니다.

우리는 자아 관념을 중심삼고 천주적인 자아의 위치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도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의 맨 밑에서부터 영적 세계에까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고서야 사탄 대해 ‘이놈!’ 하고 호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 하셨던 그 주관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때를 알고 있지요? 지금 때는 부모의 날을 찾아야 되고, 자녀의 날을 찾아야 되고, 만물의 날을 찾아야 합니다. 즉 말하자면 통일이념을 완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주적인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처한 통일교회의 책임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제 이걸 알았으니까 오늘날 온 세계 인류를 내가 아니면 살릴 수 없다, 인류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합하여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단체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소원은 하늘을 중심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것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뇨? 하늘을 위주로 하여 모든 것을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도 그런 입장에 있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있고, 사회도 그런 입장에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가 되었느냐? 내 가정은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가 되었느냐? 내 형제는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가 되었느냐? 이 사회가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가 되었느냐?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가시밭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오늘 타락한 이 세상은 가는 길이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자기 분야가 다르니 그 길이 전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야 할 길을 딴 데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각자가 따로따로 가려면 한없는 고생을 하겠으니 여러분들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나를 넘고, 형제를 넘고, 부모를 넘고, 가정을 넘고, 민족, 국가, 세계까지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까지 넘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뒤에서 밀어 주셨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지 만물을 지어 주신 하나님께 탕감기금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별해서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제물을 드릴 때에 비둘기 하나를 쪼개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실패했습니다. 천지가 다 돌아갔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3제물을 잘못 드림으로 인해 모든 것이 떨어졌다는 거예요.

이번에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에는 별의별 역사가 다 있을 것입니다. 피를 팔아서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그러한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볼 적마다 눈물을 흘리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이념을 중심삼은 뜻이라 할진대 그 이념권 내에 선 부모를 위주로 한 형제, 그런 형제를 위주로 한 가정, 그런 가정을 기반으로 한 천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만물복귀의 한 날을 제정한 것입니다.

부모의 날이 제정되어야 되고, 자녀의 날이 제정되어야 되고, 만물의 날이 제정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겠지요? 이러한 날을 맞은 후에 하나님의 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기쁨의 한 날을 못 가졌고, 승리의 한 날을 못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날이 와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아버지의 날이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천주를 통일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이 나와 민족을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수 명의 주권자들이 하늘 뜻을 모른 것을 통회하고, 자기의 민족사를 통회하고, 자기의 부족한 것을 통회하여 자기의 나라를 하늘 앞에 드릴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놓아야만 아버지의 날을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항상 바빴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무리들도 바쁘고 바빠야 되겠습니다. 열심히 활동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활동하여 참부모의 날을 찾아 세우고 참자녀의 날을 찾아 세우고 만물의 날을 찾아 세워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거꾸로 찾아가야 하는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역사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날을 먼저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찾아 나가는 탕감역사에 있어서, 옛날에는 만물을 세워 놓고 제사를 드렸고, 아들딸을 세워 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재림시대에는 부모가 십자가를 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서 아들과 만물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워야 비로소 부모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우고 맨 나중에 만물의 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거꾸로 해야 합니다.

찾아 세워야 할 하나님의 날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였으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천지가 그 승리를 찬양하는 날이 있었을 터인데, 그 날이 본래 창조이상 세계에서 인간 앞에 부여할, 타락하지 않은 인간조상 앞에 부여할,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하나님의 영광의 날이요, 부모의 영광의 날이요, 자녀의 영광의 날이요, 만물의 영광의 날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복귀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날을 맞을 때까지 죽지 말고 가야 합니다. 죽더라도 후손들에게 그날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너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하나님의 날을 쟁취하라고 유언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이 통일신도들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역사상에 나타나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한국이 문제가 아니요,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아버지의 날이 나타나야 합니다. 아버지의 날이 찾아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목적 아래 완성이라는 명사를 남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을 상속받기 위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밟고 넘어야 하겠고, 말없는 가운데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하고 관계가 되어 있다고 할 때는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이념적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애국자보다 더 사랑합니다. 나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이요, 하나님을 위하고 천주를 위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이제 통일교회 식구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날이 오도록 기도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날이 오게 하도록 앉아 있는 여러분을 들이치는 것입니다. 종은 암만 아버지를 위해도 종으로 남는 것입니다. 암만 종노릇을 잘해도 종으로 남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진정으로 아버지를 위하는 기준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천주를 직접적으로 관할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왜? 천리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 먼저 기뻐해야 되느냐? 아들딸이 먼저 기뻐해야 되느냐? 아버지가 먼저 기뻐해야 되느냐? 아버지가 먼저 기뻐하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때까지 선생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할 때까지 싸우는 거예요. 이렇게 넘어가는 거예요. 이러한 길이 남아 있는데 뭐 지치고, 힘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한다면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은 원수입니다, 원수.

하나님은 누구뇨?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쓰셨는지 아십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애쓰셨는지. 우리를 찾기 위하여 세계를 헤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되겠습니다. 어떤 자격자가 되어 모셔 드려야 하느냐 하면, 교회를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하고, 천주를 대표한 아들딸로서 모셔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통일이념을 완결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의 때가 열리니 복도 무지무지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까딱 잘 못하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날을 맞이한 후에야 비로소 천주에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떤 때냐?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러한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이를 악물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세워졌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것은 여러분이 기도해 보면 알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맞은 후에야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에서 내 아들딸이요, 내 가정이요, 내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원칙이기 때문에 그날에 가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가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 그러지요? 식구는 무슨 식구예요? 양자입니다, 양자. 통일교회의 축복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하늘땅 앞에 축복이란 명사를 걸고 여러분에게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축복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은 세상적인 가정과 다릅니다. 우리의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 알겠지요?

아버지의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모든 날들을 하늘권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360일 전부 승리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탄을 무저갱(無底坑)에 가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이요, 예수가 이루었어야 할 목적이요, 재림주가 와서 이루어야 할 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이라는 관념

이제 여러분들은 이 40일 기간을 어떠한 관념을 갖고 넘어가야 되겠느냐? ‘우리의 가정’이란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축복받은 뜻을 알겠어요? ‘우리의 가정’ 알지요?

그러면 통일교회의 가정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두가 ‘우리의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있어요? 저기 박 군, 가정이 있었어요? 새로 온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아는 모양이지요? 도인들은 독신을 주장해 왔지만 지금은 독신의 운세가 넘어갈 때입니다.

선생님은 섭리도상에 있어서 한 단계 넘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때에 우리는 무슨 가정을 찾아야 되느냐? ‘우리의 가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빨갱이들은 동무라고 하고 민주주의는 동지라고 하는 데, 여러분은 동무가 좋아 동지가 좋아? 동무는 노는 것을 중심삼고 쓰는 말이고, 동지는 생각하는 것을 중심삼고 쓰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식구라고 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식구라고 하느냐? 단체를 중심삼고 식구라고 합니까? 가정을 중심삼고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통일교회는 우리의 가정을 중심삼고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먹이기 위하여 일해 보았습니까? 했으면 했다고 대답하십시오.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셔 보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언제 내가 아버지를 모셔 봤으며, 참부모를 모셔 봤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으며, 아버지의 품에 고이 안겨 잠들 수 있는 한 날을 가져 봤으며, 그러한 자리에서 재롱을 피워 본 때가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품속에서 자라서 천지의 대도를 세운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 축복을 받고 하늘의 대도를 기쁨으로써, 쌍수를 들어 맞아 봤느냐? 그 한 날을 맞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통일교회 식구들은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 가정이 어떤 가정인 줄 알지요? 역사적인 통일의 이념을 통하여 복귀의 영광의 한 날을 찾아 세우고, 천주적인 기반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기반 위에서 부모를 찾고 형제를 찾고 우리의 가정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식구라는 명사를 씁니다.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전부 형제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그렇게 나오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책임을 지고 지금까지 나오면서 무엇을 했느냐? 종을 깊이 사랑했고 형제를 깊이 사랑했고 자녀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의 시대를 거쳐 형제의 시대를 거쳐 자녀의 시대로 올라온 것입니다. 우리는 종을 거느리고 형제를 거느리고 자녀를 거느리고 난 후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모시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는 데는 어떻게 살 것인가?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고 아름답게…. 이것이 지금 선생님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의 생활은 전혀 달라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모셔 봤어요. 시부모를 모셔 봤어요? 이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창조목적은 실체를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시고 효성의 법도를 천주 앞에 세우며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원칙이었으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다 잃어버린 연고로 인간은 무한한 탄식권 내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목적이 그것입니다. 요즈음은 애기들한테 아버지로서 아기자기 한 사랑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기도를 해줍니다.

우주의 근본-부자의 관계

오늘날의 우리는 염치와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매달릴 수 있는 자녀의 입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고아와 같은 입장에서 부모를 찾아가는 서글픈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가정의 생활을 해야 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효자, 충신, 열녀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딴 거 아닙니다. 천도를 다 알고 보면 별거 없습니다. 우주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부모와 자식입니다. 선생님이 기도해 보니 그래요. 부모와 나, 부자의 관계가 우주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들딸입니다. 최후의 근본이 부자의 관계요, 최고의 목표도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찾아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찾으려고 고난의 길도 마다 않고 걸어왔습니다. 사탄의 시험에 들어도 순식간에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부자의 관계입니다. 사탄세계에 들어가 잠을 자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런 것을 잃어버렸으므로 원통하고 분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행복을 노래하고, 자유와 이상을 노래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이상세계입니다. 만족한 세계입니다.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부모와 형제를 찾았으니 행복하지요? 가정을 찾아 심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만족을 누리고 감사와 영광을 하늘 앞에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게 결론입니다.

천국은 어떤 사람이 들어가느뇨? 가정에서 부모를 모시고 형제와 더불어 행복과 자유와 이상과 만족을 느끼고 천하를 붙들고 호령할 수 있는 기쁨의 자리에서 영광을 돌리는 승리자가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틀리면 저나라에 가서 항의하십시오. 그러나 만일에 선생님의 말이 옳다고 할진대, 여러분이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하면 참소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것을 찾아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때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통일식구들은 협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생활을 통해서 복귀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부모가 되려면 부모를 모시는 생활에서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기들끼리 아들딸 낳아 가지고 사는 것은 범칙(犯則)입니다, 범칙.

선생님은 그러한 원칙에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것을 위해 40평생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부모가 될 수 있어요? 집에서 애기 보니까 애기가 귀엽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금년에 들어와서 부부가 합하게 해 줬습니다. 왜?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부 갈라 놓았던 것을 3년이 지난 요즘에야 합하게 한 것입니다.

내가 껄렁껄렁한 것들을 전부 축복시켜 주었는데, 이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주고 인연을 맺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념을 중심삼고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이 있건 없건 문제가 아닙니다.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세워 가지고 안팎으로 연결시켜서 3대에 걸쳐 뜻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도 할머니들을 중심삼고 일한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면 안 되겠습니다. 형제끼리 의좋게 지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편지를 주고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주면서 살아야 됩니다. 본격적으로 부모를 모실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낳은 아들딸이 있지요? 자기 아들딸에게 주는 것은 아까워하고, 믿음의 식구들은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그런 말이 어디에 있느냐 할지 모르지만 전부 그래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이건 전부 선생님이 해보고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며 사무친 심정으로 인사하면 선생님은 인사를 받지 못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선생님을 참 도도하고 교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는데 보지도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인사를 받았는데 내가 그의 정신보다 못하면 내가 심판을 받습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시의시대(侍義時代)의 할 일

하늘은 정성의 도수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에 입각한 어떠한 일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정성을 옹호해야 됩니다. 자기가 그 기준에 서지 못했을 때에는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사오니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생각이 참 많습니다. 이런 심각한 한 때를 맞이하면 기도를 많이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이런 것을 내가 압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탕감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복귀 도상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탕감조건을 세우는 과정에서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나는 그 실패의 조건을 탕감하겠다고 하면서 나왔습니다. 나는 그런 실패한 입장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해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과거의 선조들과 다른 차원에서 정성들여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에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평면적인 실수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알기에 사탄이 참소하려고 하면 ‘이 자식아! 나는 이렇게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 올라서기 위해 얼마만큼 고생의 길을 걸어왔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압니까? 여러분은 건달들입니다. 선생님이 정성을 들이고 머리 숙여 찾아오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어 그것을 못 받았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정성 들여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세상의 전문가가 되려고 정성을 들이고 있어요. 그것은 다 한때의 것입니다. 하늘을 위한 기준을 여러분들이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할진대 영계에 가지를 못합니다. 문이 쭉 열려 있는데 가지를 못합니다. 시집은 가야 할 텐데, 누더기를 입고 가겠어요? 신랑은 좋은 예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더기를 입고 가겠어요? 축복의 문은 열려 있는데 가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을 통과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언제 주님을 모셔 보았습니까?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먹여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느냐?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처럼 언제 그렇게 해 보았습니까?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한을 풀 길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 서든지 사탄에게 져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사탄에게 지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들딸 낳은 것도 전부 사탄에게 걸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대신하여 조소와 비난과 원통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시의(侍義)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개인구원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가정을 중심삼은 가정 구원시대입니다. 과거에는 영계와 육계가 갈라져 가지고 구원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하늘에서, 성신은 땅에서 구원의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적인 기반을 닦아 나가고 있습니다. 가정적인 기반을 닦는 데 있어서 남편에게 부인이 마음을 맞춰 주면 복을 받는 것이요, 부인에게 남편이 마음을 맞춰 주면 복을 받는 것이요, 자녀들이 하나되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정구원시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느냐? 하나님의 슬픔은 노아가 하나님을 못 믿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아의 가정이 하나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못 믿은 것이 슬픔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가정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슬픔이요, 야곱의 가정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슬픔인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한이 맺혀 있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의 기준을 완결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알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손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선생님은 책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내가 없더라도 이 뜻을 계승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물어 보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좋은 명사는 다 갖다 붙였으니 하여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감사합니다. 이러니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뜻과 내용을 알고 생활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자신이 된다면 그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말씀 요지>

복귀역사를 경륜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때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제일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3년의 생애 동안 종, 즉 천사장의 입장에서 사명을 다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사명을 다해야 아들의 입장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실체를 쓰고 천사장적 사명을 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영적으로만 천사장적 사명을 하여 영적인 아들의 자리까지 나아갔으니 재림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재림주는 이 지상, 즉 천사장의 세계를 수습해야 합니다. 지상에서 영적, 실체적 사탄을 정리하지 않으면 재림주도 아들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40년 투쟁 기간은 영적 육적으로 찾아 나오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3년노정의 마지막 해에는 아들의 위치에 서서 3대(아담, 예수, 재림주)에 걸친 서러움을 탕감복귀해 드려야 합니다. 영적 세계의 반영체인 지상에서 6천년의 역사를 3년노정 기간에 복귀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 자녀 복귀에서 만물 복귀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사탄에게 참소받지 않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승리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만물 앞에까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6천년의 수고와 재림주의 고난을 우리 축복가정들이 책임지고 이 땅과 만민과 하늘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창조이상을 실현하려는 데에 축복의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고통을 책임져야 합니다.

세상을 대해서 내적으로는 충격을 느끼며 외적으로는 고기압처럼 뻗어 나가야 합니다. 책임을 못 했으면 마음으로라도 아버지의 심정이 머물러 있는 최고의 목적지까지 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감동시키고 움직이기 위한 재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을 고생시키는 것은 가정을 찾기 위함이요, 가정을 고생시키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 3년노정을 넘으면 그 다음에는 어떤 시대로 연결될 것인가? 선생님은 민족을 넘어 세계를 위해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민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재료를 갖지 못하면 넘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3년 반만 고생하기 바랍니다. 전 3년, 후 3년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금년에 윤 4월이 들어 있는 것도 뜻이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더불어 하나님의 고통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만물을 할례한 것같이 헌공식을 하고 나서부터는 자기의 소유관념을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 요지>

지구장 부인들이 총무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구장 부인들에게도 지구 부흥의 책임이 있습니다. 지구장 부인들은 따라오는 식구들의 심정 기반을 닦기 위해 고생했다는 실적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축복받은 부부는 예수와 성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받들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러니 축복가정을 고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축복가정을 고생시키면 벌받는다는 인식을 주어야 합니다.

가정적인 기반을 세우지 않고는 세계적인 기반을 세울 수 없습니다. 성도의 시대는 가정적인 시대를 말합니다.

해와는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사랑하는 딸 노릇을 못했고, 아담 앞에 동생 노릇을 못 했고, 아내 노릇을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어머니를 딸같이 키우고, 오빠의 입장에서 사랑해 주고, 신부로 맞아야 했습니다. 타락으로 거짓 부모, 거짓 오빠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어머니 될 사람은 거짓 부모, 거짓 오빠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4월(음, 윤) 말일에 어머니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어머니는 동생과 같고 아내와 같고 딸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자기 부모나 오빠 등, 찾아가서 호소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방 부흥운동은 자기 가정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줍시다. 만민이 응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없을 때 어머니는 더 훌륭해야 하고, 남편이 없을 때 부인이 더 훌륭해야 합니다.

강의록을 중심한 계몽운동을 전개하기 바랍니다. 추첨에 의한 지방 배치는 지방색을 배제하자는 데 뜻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민족적인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런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경기도에서, 가정으로 인하여 잘된 곳은 장영진 부부 외에는 없습니다.

전도대원은 중졸 이상으로 결정하고, 국졸자 중에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대원으로 내보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중간 단체의 도움이 있어야 하므로 유지 중에 후원자가 될 만한 사람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들은 유사시에 우리의 배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3년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식구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식구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축복이 귀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결혼비 미납자는 일년에 백원이라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세워야 합니다. 전도를 하는 것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전통은 선생님이 계시는 동안에 세워야 합니다.

<말씀 요지>

인간이 소망하는 창조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는 일이 선해야 합니다. 선은 공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관계 있는 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한정된 것은 하나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선을 남기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공적인 것에 대한 관념을 철저히 가져야 합니다. 모든 생활이 공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 신도들은 이 공적 관념이 희박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공적인 법도에 의하여 되어져야 합니다.

양심은 좋은 곳, 선한 곳을 지향합니다. 개인보다 공적인 것은 가정이요, 가정보다 공적인 것은 종족이요, 그보다 공적인 것은 국가요, 세계요, 우주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비록 개체이나 마음과 정열만은 자신에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더불어 계시는 최고의 공적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적인 사랑과 하나님적인 실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주권도 백성도 모두 공적인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공인을 받은 후에야 국가적인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 공인을 받은 후에야 종족적인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여기서 책임 못하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책임을 절감하여 공적인 것을 위하여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민족적, 세계적인 기준을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고 모험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를 대하는 내게 내적 고충이 많습니다. 부인들은 자기 남편이 자기만을 위한 사적인 남편이 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3년이 지나고 또 반 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모든 중요한 일이 7월 중에 끝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치고는 가정을 축복하시고, 가정을 치고는 종족을 축복하시고, 종족을 치고는 국가를 축복하시며, 국가를 치고는 세계를 축복하십니다. 자식 가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할 때는 하늘을 위하는, 민족을 위하는 아들딸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앞으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을 고생시키지 못하면 우리의 길은 막힙니다.

<기도>

하늘이 세워 주신 참부모의 인연을 통하여 사망의 세계가 새로 복귀된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이 모두가 아버지 수고의 연고인 것을 저희는 아옵니다. 아버님, 황공하옵니다. 무엇이라고 아뢰올 수 없는 슬픈 마음, 아버지를 알기에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을 아버지께서 받으시옵소서. 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아버지를 알고 있사오니 이 몸도 받으시옵소서. 한 몸을 위주로 하여 맺어 주신 부부도 알고 있사오니 이들도 받으시옵소서. 부부를 통하여 선물로 주신 아들딸들도 알고 있사오니 받으시옵소서.

여기에 제1 이스라엘과 제2 이스라엘 그리고 제3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모든 것, 피와 눈물과 땀으로 아버지께서 쌓아 나오신 그 전통적인 위업을 본받아 불초 저희는 그 뜻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뒤따라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가정,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세계, 아버지의 땅, 아버지의 주권, 아버지의 백성을 복귀하라는 엄숙한 뜻 앞에 저희는 부족한 것들이오나 원수 앞에 승리적인 발판을 닦아서 이와 같은 조건을 복귀할 수 있는 승리의 기반 위에 서게 된 것을 대견히 보아주옵소서.

이 모든 여건들이 시간적인 거리는 있을망정 저희로 말미암아 필시 이뤄질 것을 가르침을 받아서 이미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책임적인 생활에 있어서 저희는 누구보다도 굳세게 서 있사오니, 아버지, 안심하시옵고 저희의 모든 것을 받아 주옵소서. 이날 헌공식전에 둘러선 당신의 제3시대 아들딸들을 울타리로 삼아서 참부모의 혈육들과 더불어 하늘가정의 중심을 세우신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오니, 이 식전에 미비하거나 부족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탄의 참소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버지 앞에 예고하옵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의 긍휼 가운데 되어지는 것이오니 옛날 노아의 실수, 아브라함의 실수, 모세의 실수와 같이 조건을 세워야 할 책임적인 장소를 피하는 자리가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지만이 주관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룩한 이날은 1963년 7월 26일이오나 오는 4월의 마지막 날까지 연장하는 사실을 아버지 앞에 통고했사옵고, 통고한 날의 다음날인 5월 초하루를 만물을 봉헌하는 날로 선포하고자 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날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날이 있어야 되고, 이날이 있기 위해서는 자녀의 날이 있어야 되는 연고로 부모의 날을 3월 초하룻날로 아버지 앞에 세워 놓았사옵고, 자녀의 날을 10월 초하룻날로 아버지 앞에 세워 놓았사옵고, 이제 만물의 날을 5월 초하룻날로 아버지 앞에 세워 놓았사옵니다. 지으시던 창조의 세계에서 복귀의 한 날을 찾아오기 위한 땅 위의 평면적인 제 조건은 구비됐사오나 이제 이 모든 날들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워야 할 날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날이 제창되는 날은 온 천주와 더불어 선포하는 날이오니 그날의 완전한 승리적인 조건의 날로서 이 모든 날들을 세웠사오니, 아버지, 그날을 연장하여 하나님의 날을 완결지을 때까지 저희는 싸울 것이며, 저희는 참을 것이며, 저희는 행진할 것이오니 저희 대열에 아버지의 직접적인 가호로 이제 같이해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이 일체가 되시옵고, 하늘과 백성이 일체가 되시옵고, 하늘을 위주로 한 참부모와 자녀가 일체가 되시옵소서.

이리하여 혈육을 중심삼은 심정적인 인연의 역사를 중심삼고 인류를 하나의 족속으로 묶을 때까지 저희는 이 발판으로부터 구만 리 지구상을 점령하고자 하오니 모든 것이 이날부터 시작되오나 이미 이루신 기반으로 받아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그러기에 저희의 마음으로 가진 아버지의 주권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 생활로 자랑할 수 있는 주권을 위하여 저희는 싸우겠습니다. 아버지의 백성을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아버지를 맞이한 만물의 모든 전부를 마음으로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남아진 백성과 만물을 생활을 통하여 드릴 것을 맹세하오니, 아버지, 시간적인 기간을 용납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식전 위에 아버지의 영광이 같이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정성어린 통일의 신도, 자녀들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만물복귀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피눈물어린 성금을 모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옵니다. 여기에 드리는 이 봉투를 중심삼고 천승호를 지었사옵고, 그 외에 운영하는 공장과 모든 것을 하늘 것으로서 이름 지어질 제 만물의 기반 위에서 미리 아뢰옵고 소비한 것도 기쁨으로 받아 주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친히 아버지의 것으로서 받아 주옵소서. 존귀와 영광과 찬송이 우리 아버지께 길이길이 같이하옵길 비옵고,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이날을 드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하나님께서는 천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이상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그 창세 전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창조위업을 펴시사 거룩한 하늘과 거룩한 땅,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창조의 목적을 세우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 기반 위에 창조의 목적을 이룬 심정의 세계를 세우시고 그 터전 위에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어 그 뜻을 중심삼고 축복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한 하나님의 이상

이 축복은 비단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 하늘땅만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내적인 심정의 기반으로부터 전부를 투입하여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이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졌으면 이 세계, 이 천지에는 승리의 영광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 가운데 하나님의 심정적인 모든 내용을 완비한 표시체인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적인 기반을 꾸며 놓고 거기에서 천적인 성업을 인간적 성업으로 받아들여 영원무궁한 행복의 복지를 건설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이며 소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인간조상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한스런 일이 벌어져 인류 세계에는 타락으로 인한 고통이 생겨났고, 모든 인류는 복지의 본향을 잃어버리고 고통의 세계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천지 만물도 슬퍼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인간들은 탕감의 역사를 거듭해 나오는 사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고로 이러한 인간들을 사망세계에 그냥 둘 수 없어서 그 깊고 넓으신 사랑으로 본연의 뜻을 다시 세우시려고 복귀해 나오셨습니다. 이렇게 잃은 자식을 찾아오시는 데 6천년이라는 기나긴 피눈물의 역사가 흐른 것입니다. 이 6천년 동안 역사적으로 슬픔이 맺히게 되었고, 사망의 터전이 더욱 공고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곡절과 인간의 곡절이 말 할 수 없이 엉키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망의 노선에서 원수들의 농락을 받아 죽음의 길을 헤매며 신음하는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수와 대결하시면서 섭리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이 섭리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인간들이 가시밭길에서 고통받고 있으면 그 가시밭길을 헤쳐 주어야 하고, 눈물의 길에서 허덕이면 그 눈물의 길을 헤쳐 주어야 하며, 피흘리는 길에 있으면 그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하고, 죽음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무리가 있으면 그 길을 개척해 주어야 했던 길이었습니다.

전체를 대하시는 하나님은 개체 개체의 슬픈 사정을 만세계의 고통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인생에 있어서 제아무리 큰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슬픔과는 비할 수도 없는 미미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억울함과 하나님의 분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슬픔과 백성이 망하고 주권이 망하는 슬픔 등, 이 땅의 슬픔이라는 명사를 전부 합해도 하나님의 역사적인 슬픔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내 한 자체는 어떤 존재냐? 하나님께 슬픔을 더해 주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바꾼 존재예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찾아온 존재라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 선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사 온 존재요, 하나님의 슬픔과 바꾼 존재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찾아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잊어버린다면 역사적인 사망의 물결을 밟고 올라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일으켜 보살피시사 승리의 한 자리를 찾아 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나로 인해 빚어지는 슬픔은 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위로는 부모가 있고, 앞뒤로는 형제가 있고, 좌우로는 부부가 있고, 밑으로는 자녀가 있음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나를 넘어서 나를 반대하고 있는 부모, 처자, 형제, 혹은 이웃, 동포, 만민, 땅끝까지 연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슬픔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려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설 면목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어려운 길을 참아 나왔습니다. 참아 나오는 데는 내가 이래야만 산다는 목적을 갖고 참아 왔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도 아버지의 슬픔 때문에 나는 참는다, 아버지의 슬픔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참는다 하며 참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고통과 투쟁하고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때가 눈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는 것을 잊어버리고 생활의 기쁨을 잊어버릴 정도로 열심히 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자녀의 책임

오늘 헌공일(獻供日)을 맞이하여 여러분이 참석한 이 자리를 생각하면, 이곳은 눈물의 자리요, 피의 자리입니다. 울고 또 울어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의 자리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통곡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무엇을 가지고 참석할 수 있겠는가? 마음 가운데 남이 모르는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외적인 물건을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사무친 원한과 분노를 가져야 합니다.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확인할 줄도 알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짊어질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여러분의 심정에서부터 우러나오게 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6천년의 슬픔을 여러분에게 상속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나님의 슬픔 전부를 엄숙하게 상속 받는 자리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세우시려던 본연의 부모와 본연의 자녀와 본연의 만물을 세워서 아버지 것으로 바쳐 드리며 ‘기쁨으로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여기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자라고 하겠습니다. 재삼 명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찾아 만물을 찾아 창조본성의 세계를 이루시고자 싸워 나오시며 이상세계의 주인에게 영원하고 거룩한 위업을 상속시켜 만세 무궁토록 기쁨을 누리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슬픈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하여 더욱 축복해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뜻 앞에 새로운 아들딸이오니 참된 가정으로 세우시사 참된 부부로서 참된 자녀를 갖춘 기반 위에서 만물을 주관하는 크나큰 영광의 실체들이 되게 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신 만세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참다운 자녀가 되어, 오시는 참부모를 받들어 드리는 사명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안식시켜 드려야 하고 다시 참부모와 여러분이 합하여 하나님을 안식시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선하신 하나님이 만천하의 군왕으로서, 우리의 아버지로서 군림하시게 되고 선의 천국이 지상 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천국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선의 왕이신 천부 앞에 선의 백성이 되어야 하고 천부이신 하나님 앞에 선한 만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을 잃어버렸으니, 복귀의 사명을 완결지어 아버지 앞에 천국을 이루어 드리고, 천국의 백성이 되어 만물을 드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가 비로소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중심 앞에 주관받는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모든 조건을 상징적, 형상적으로라도 완결지어 그 기반 위에서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참부모를 중심 삼은 참자녀를 세워야 합니다. 그 기반 위에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설정하여 이것을 평면적으로 연결시켜 세계로 나아가게 될 때 세계는 하나가 되어 인류는 한 백성이요, 한 형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에 이상 하신 선의 실체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하나님은 만물을 빚으시고 그 만물의 주관자로 인간을 세워, 인간으로 하여금 이 크나큰 뜻을 이루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시조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곡절의 노정을 거쳐 복귀섭리를 완결지어야만 창조본연의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적 생활의 가치와 중요성

그러한 단계를 오늘 우리 세대에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비단 여러분만이 아니라 3천만 민족은 물론 이 땅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 천상에 가 있는 수천억의 영인들, 그리고 만세 이후에 찾아올 후손들까지도 축하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헌공일을 맞이한 여러분들은 이제 모든 조건들을 세워서 나라가 없고 백성이 없고 영토가 없어 슬퍼하시는 아버지 앞에, ‘이제부터 천국의 백성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생겨날 것이고 그 아들딸이 승리하여 가정을 만들고, 가정을 합하여 민족을 만들고, 국가를 움직여 세계적 기반을 닦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니 기뻐하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종교적으로 1차적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고 이제 성혼식을 통하여 2차적인 출발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나라에 선포한 중심 내용이 무엇이냐? 우리의 진리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어요. 성혼 가정을 통해 그러한 것을 선언해 온 것입니다. 이렇듯 1차, 2차, 3차를 거쳐오면서 이번에 국가적인 대 행사로 선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국가와 인연을 맺게 되는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이 헌공식의 의의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이것을 여러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도 여러분의 것이 아니요, 여러분이 먹는 밥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에 인연된 공적인 물건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물건이에요.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 한 가지도 그렇거니와 생활도구는 물론 여러분의 몸뚱이도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란 무엇이냐? 이 공적인 물건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신도들은 이러한 사상 밑에서 철두철미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거룩한 것입니다. 만물이 거룩한 것이니 만물을 먹고 사는 우리도 거룩한 것입니다. 또한 만물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만물을 소유하며 생활하는 우리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무한히 가치적이고 공적인 존재인 우리는 공적인 가치를 지닌 공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전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작은 것이 큰 것을 위하여 흡수되고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나 깨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나라고, 하나님의 백성이 우리 백성이며, 하나님의 물건이 내 물건이라는 관념을 갖고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심정의 기반 위에서 생활하고 존재하기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지음받은 만물은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정이 없이 대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세계 인류를 형제로 대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을 입회시켜 놓고 하나님의 심정을 연결시켜 놓고 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생활을 표본으로 삼아 물질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을 입회시켜 놓고 심정으로 대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항상 전체를 대하십니다. 따라서 공적인 것을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에서 우리의 시조가 하나님의 공적인 심정을 유린하였고, 천사장도 그러했다는 것이 우리 앞에 엄연한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우리들은 심정을 중심으로 엉클어진 만물과 만민, 모든 국가의 주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심정을 통하여 존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의 움직임 위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생활 기반 위에 서게 될 때 사탄은 소멸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원수 사탄을 정비하고 심판할 수 있는 제1 무기는 심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슬픔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슬픔이 크면 클수록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복귀 과정에 있는 여러분들은 먼저 참부모를 모시고, 그 다음에 다시 그 인연을 연결시켜 천상세계까지 수습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에게 하늘땅을 상속해 주고 우주를 상속해 주고 만백성을 상속해 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하나님 대신 참부모 대신 참아들딸의 사명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세움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의 영광의 터전을 마련하고 하나님이 충신이라고 하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크나큰 대우주적 위업을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천상세계에 가서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아 여러분의 일생을 걸고 이 사명을 성취해 주기를, 오늘 헌공식을 맞이하여 간절히 부탁합니다.

<말씀 요지>

여러분과 같은 연령 때에는 꿈도 많고 소망도 클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과 욕망이 불타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접붙이면 잘 적응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때에 있는 여러분은 또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고통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제목은 ‘나는 누구냐’입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의 아들이며, 또 어느 도(道)의 사람이며, 어느 나라의 사람이냐? 내 개체는 상대성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같은 소망적인 청년들도 상대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보다 좋은 것이 있었을 것이거늘, 이 더 좋은 것을 나의 환경에 두고 싶고 가정에 두고 싶고 민족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더 좋은 가치를 바라는데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찾는 여러분에게 그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자들이요,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자들입니다. 그것, 즉 더 좋은 것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발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으로 무엇을 만질 때나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더 좋은 것을 만지려 하고 더 좋은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더 좋은 것과 인연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을 때는 자연히 반항하게 되고 불평이 앞서게 됩니다. 그러니 내 손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더 좋은 것을 창조하겠다는 신념을 불붙여 줘야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더 좋은 가치의 것이 없다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더 가치적인 것을 창조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해 나갈 때 제2의 소망을 품게 되고, 또 그 소망을 향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썩어 가는 나뭇가지와 같은 젊은이들을 다시 창조하여 환경을 정리해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 온 사람 중에는 반대하는 환경을 극복하고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올 때는 여러 환경을 거쳐 흘러왔지만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가지고 보다 좋은, 보다 가치적인 환경을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타락한 후손들은 탄식권 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탄식권 내에서 선의 터전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갖고 투쟁해 나가야겠습니다. 더 큰 선을 창조하려면 신념을 갖고 그릇된 환경을 짓밟고 투쟁해야 합니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 악한 환경도 선의 환경으로 흡수될 것입니다. 제2의 창조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도, 어떤 파도가 휘몰아쳐도 이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이러한 신념을 갖고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재창조를 하려면 상대적인 위치가 아니고 주체적인 위치에 서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재창조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다가 도중에 쓰러지면 결국 망합니다. 여러분은 재창조의 목표를 세워 놓고 행진해 나왔습니까? 어디서부터? 나 자신부터 재창조해야 합니다. 선을 창조하는 나, 선을 대변하는 나로 재창조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재창조된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자신들이 없군요. 그러면 재창조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

‘나’는 누구냐? 나는 선을 세울 수도 있고 선을 깨뜨릴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두 갈래 길에 선 모체인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욕망을 채우려면 하나님 앞에 대상의 위치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선을 옹호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악을 미워하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무엇부터 선하게 되기를 원하시느냐? 여러분 자신의 마음부터 선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선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이냐? 정이 많아 누구든 품어 주려 하는 마음입니다. 남의 어려움을 볼 때 동정하는 마음이 선입니다. 의협심이 폭발되어 정으로 덮어 주려 하는 마음이 선입니다. 흘러가는 물결도 정으로 품어 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의 바탕이 선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이러한 마음이 모두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온 천지를 업어 줄 수 있는 마음 바탕 위에 몸이 호응할 수 있는 ‘나’가 되면 됩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만천하에 외치고, 어떤 것이 좋은 것임에 틀림없을 때 그것을 민족화, 세계화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선의 생활입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전보다 몇백 배 더 강해야 선으로 한 발자국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나는 누구의 아들이 될 것이며, 누구를 아버지로 삼을 것이냐? 누구나 그 시대의 최고 이념을 가진 사람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거든 인간이 최고로 소망하는 분, 즉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을 아버지라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최하의 자리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길가에 있는 풀포기 하나도 창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천하가 반대해도 나는 간다고 하는 신념을 갖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하가 굴복할 것입니다.

그동안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수속을 밟아 왔지만 모두 그 과정에서 낙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에는 모두 낙제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시험을 칠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의 시험지에 명답을 써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수속 절차를 밟아 그러한 답을 써 주실 분이 메시아입니다. 답을 쓰기는 자기가 쓰되 연필 꼭대기는 메시아가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딸로 축복받을 수 있는 답을 백 퍼센트 가르쳐 주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여기에 왔지요? 그렇지요?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최후의 고비(결승전)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비결은 명령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당신의 아들딸로 만들고자 하시고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자 하나, 그렇게 되는 데는 필연적으로 해산의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수고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들어지는 편이니 만들려고 하는 편에 무조건 져야 됩니다.

그런 후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딸이다.’라고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효자 효녀, 하나님의 열남 열녀, 하나님의 충신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데 한 면을 담당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길을 가셨습니다.

과거에는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였으나 이제부터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아 드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말씀 요지>

하나님은 종의 종에서부터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 종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고, 또 어느 정도 벗어나는 기쁨을 느꼈습니까?

종 중에서도 가장 충성하는 종이 되어야겠고, 자녀 중에서도 가장 효도하는 참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은 무엇으로 알아야 하느냐? 맘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합니다.

과거에 종의 입장에 있던 때를 연상하여 감사의 심정이 폭발되어야 합니다. 이념을 중심하고 부름받은 여러분이기 때문에 개체는 물러가더라도 이념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터에 남겨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심정입니다. 우리는 선두에 서야 합니다. 또 하늘의 6천년의 서러움과 슬픔을 우리가 상속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싸우신 하늘은 이 땅을 찾아오사 선의 세계를 목표로 하여 뜻 앞에 참된 가정을 세우셨으므로, 우리는 허락하신 참부모를 모시는 사명을 해야 하고, 참부모를 안식시켜 드려야 합니다.

선의 천국을 받들어 드려야 합니다. 선의 백성, 선의 만물을 복귀해 드려야 합니다. 이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임을 다할 때 하나의 주권세계가 이루어집니다.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을 설정한 터 위에 만물의 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와 백성이 없던 아버지께서 이제부터는 개인에서부터 세계를 복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선포한 것은 진리와 아울러 심정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집과 밭과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전부는 아버지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공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공적인 것을 유린한 것입니다.

공적인 것으로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우고, 세계로 전진해 가야 합니다. 이에 있어서 작은 것은 흡수되어야 합니다.

심정을 벗어나 대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심정을 두고 대해야 합니다. 심정은 공적인 것이기에 누가 주관할 수 없습니다. 심정을 통하여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 시간에 하늘의 슬픔을 크게 느끼면 느낄수록 축복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우주가 기뻐하는 입장에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이제라도 이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책임을 못 할 때는 물러가야 합니다. 책임 못하면 죽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심의 생활에 있어서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망세계의 모든 인류가 눈물을 흘리며 모시려 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도리어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늘을 원망해 본 일이 없습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탄식해서는 죄악의 자녀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축복한 가정들을 헤쳐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가야 합니다.

뜻을 생각할 때 가슴이 폭발되는 의분심을 여러분은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식구는 매일 아침 교회에 왔다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의 첫 것은 다 하늘 것으로 돌려야 합니다.

하늘이 명령하여 복귀섭리를 하라고 하면 여러분이 할 수 있습니까? 이 뜻을 알았으니 감격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담의 입장에서 통곡해 본 일이 있습니까? 노아의 입장에서 통분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래 본 일이 없는 자신들이 아닙니까!

빚진 자 중에서도 빚진 자인데도 불구하고 빚진 자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곳은 교회가 아니라 여러분의 집입니다. 교회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은 천지를 유린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환난시대에는 환난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줄 것이 없으면 눈물이라도 흘려줍시다. 이러한 사람을 좋은 시대가 올 때 배척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저들이(정부가)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입장에만 서면 됩니다.

나는 한마디 말만 하면 세상이 통곡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재료를 갖고 있습니다.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3년은 자녀를 찾는 기간이요, 4년은 땅을 찾는 기간입니다. 이것을 합한 기간이 7년 대환난 기간입니다.

창세기 1:27-31

<기 도(Ⅰ)>

지존하신 하늘의 주인 되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이 지으신 만상은 당신의 이념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의 이념 앞에 모여 아버님을 모셔 놓고 환희에 넘쳐서 영광과 더불어, 그 지으신 천주가 기쁨의 대상으로서 드리는 찬양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아버님의 참아들딸이 되어 그 영광 가운데 잠겨 사는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 지극히 큰 한임을 저희들은 오래 전에 깨달았사옵고 오랫동안 후회하여 왔사옵니다.

당신께서 고대하셨던 영광의 세계, 지존하신 아버지께서 환희와 기쁨에 넘치시고, 그 기쁨은 지음받은 만물의 기쁨이요, 그 영광은 지음받은 만물의 영광으로서 둘이 아닌 하나의 환희와 영광이 되어야 할 것이었사오나 그러한 이상적인 기준은 간 데 없고 도리어 슬픔으로 저끄러 놓았사옵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잘못이옵고, 이 모두가 죄악 인간의 후손인 저희의 책임인 것 또한 잘 아옵나이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슬퍼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아버지의 성상을 우러러볼 적마다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없는, 죄악의 봉화불을 들고 하늘을 배반하여 왔던 후손임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음이 무한히 원통스럽고 통탄스럽사옵나이다.

이와 같이 죄악 된 저희들을 붙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영광의 심정을 소망으로 남겨 놓으시고 기나긴 6천년 동안 참고 고대하셨사옵니다. 하루도 아닌 한 많은 6천년을 저희들 때문에, 저희의 선조들 때문에,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때문에, 그리고 천상세계의 탄식권 내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영인들 때문에 수고해 오신 아버지의 그 거룩한 은사를 생각할 때에 아버지 앞에 황공하오며 불초한 죄인인 것을 다시 한번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크고 크신 아버지의 사랑 앞에, 수고로우신 아버지의 손길 안에, 상처 입고 찾아오신 아버지의 발자국 앞에 머리 들 수 없는 불초한 모습들이옵니다. 당신은 이토록 피눈물의 길을 걸어오셨사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길에 인간들이 동참해 주기를 고대하셨사오나 인간들은 그 길을 피해 왔사옵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사정을 함께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심정이었사오나 자식 되어야 할 인간들은 소망의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그 심정에 못을 박기가 일쑤였사옵니다.

이렇듯 불효막심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다시 나와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라 부르고 있사옵니다. 그 아버지의 음성에는 무한한 슬픔이 스며 있사옵고, 아버지의 심정에는 통탄하고 가슴이 막히는 억울한 사정이 맺혀 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붙들어야 되고, 그러한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옵고 또한 아버지는 이러한 사정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아버지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남아 있사옵고, 아버지께서 그 뜻을 버리지 않는 한 저희들도 이 길을 가면서 아버지를 다시 붙들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모든 슬픈 사정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슬픔을 통고했던 것을, 아버지 앞에 용납을 구해야 했는데 구하지 아니했음을 아버지,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망의 물결은 오늘도 쉴 새 없이 저희의 생활 환경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사옵고, 저희의 주위를 점령하여 하늘의 영광을 가리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으며, 그 자리가 어떠한 위치인가를 다시 명심하여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이와 같이 크나큰 섭리의 뜻 앞에 불리움을 받았사옵니다. 아무런 공적도 없이 불리움을 받았사옵니다. 아무런 수고의 행적도 없이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드릴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부족함을 눈물로써, 저희들의 악함을 회개로써 직고하여 아버지를 다시 붙들고자 하는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왔사옵니다.

탕자의 사정을 긍휼히 여기시던 아버지의 역사적인 수고의 인연을 아는 저희들, 그 인연을 바라고 긍휼의 심정을 고대하면서 찾아 나왔사오니 다시 한번 아버지의 깊은 심정으로 저희들을 얽어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 나아가 싸울 수 있는 저희들로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은 1963년, 역사적인 한때를 남겨 놓고 있사옵니다. 이때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세계사적인 역할과 사명을 인계 받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입장에서 책임과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수고로운 지난날의 모든 역사를 이 세상의 죄악과 더불어 탕감하여 버리고,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바라보면서 마음과 몸을 다시 가다듬어 심판의 깃발을 들고 원수 세계를 향하여 정비된 하늘의 정병으로서 행렬을 이루어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이 저희의 두 어깨에 젊어지워져 있음을 명심하여 하루 한 시간을 아껴 싸우기에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참다운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효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 이 세상, 죄악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끝날이 가까운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이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 나가 있는 힘을 다해 싸워야 되겠사옵니다.

비장한 결의와 싸움의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의 한을 풀기 위한 최후의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정병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한번 비장한 결의와 맹세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고로우신 아버지의 섭리의 뜻 앞에 불리움받아 염려를 끼쳐 드린 지난날의 모든 과오를 다시 한번 회개하면서 저희의 남아진 생을 아버지만을 위해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는 새로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세계에 심판의 주인공으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만민이 우러러 아버지를 찬양해야 할 날이옵고, 정성을 다 모아 아버지를 섬겨야 할 날이오니, 아버지의 성호를 부르며 찬양하는 곳곳마다,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이 삼천리 반도의 방방곡곡에서 하늘의 뜻을 품고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이 염천하에 외로운 음성으로 외치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최후의 섭리의 뜻을 품은 그들 앞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의 사랑의 힘과 권고하심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후의 모든 절차를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한 생명이라도 헛되이 아버지의 뜻을 참소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아버님! 저희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저희들은 한없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 앞에 제물 될 것을 각오하였사옵니다. 통일의 이념이 이 땅 위에 나타난지도 어언 십여 성상이 지났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동안 환난 도상에서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오늘까지 생명을 유지하여 아버지의 뜻 앞에서 1963년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오늘날 이때가 얼마나 중요하고, 이 시기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가 저끄러진 그날부터 아버지께서는 다시 우리의 선조들을 세우시어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나오셨사옵니다. 그 한 많은 역사 위에 불쌍한 저희들을 세우시어 섭리의 인연을 세우셨고, 그 세우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완결지을 수 있는 참된 기간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이 기간을 위하여 아담 이후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수많은 선지들과 이 땅에 나타나셨던 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사도와 성도들이 피의 제단을 쌓아 나왔으며,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거쳐서 오늘날 이 불쌍하고 한 많은 한반도를 택하셨사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저희들을 택하시어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쓰러지지 않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한 터전을 마련하여 주신 것은 모두가 아버지의 은사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은사 가운데에는 무한한 역사적인 수고가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날의 환희와 기쁨은 수많은 선령들이 원하던 소망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기간은 하늘과 땅이 진정으로 고대하던 최후의 싸움 기간이며, 최후의 고개를 넘는 결정적인 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무지한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기간을 거치게 하여 주신 아버지의 거룩한 은사 앞에 감사드릴 따름이옵니다. 이런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몸 마음을 움직이는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슬퍼하시는 아버지로 모셔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고, 지금까지 수고로운 길에서 싸움의 전체를 책임지고 지휘하시며 명령하시던 아버지로 모셔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완성 실체가 되어 영광의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어서, 아버지께서 이는 진정 사랑하는 내 아들이요 내 딸이라 하실 수 있고, 이 천지간에 진정한 효자 효녀가 여기 있고, 진정한 충신 열녀가 여기 있다고 하실 수 있게 해드리는 이러한 대표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러한 대표적인 사명을 감당하여 아버지의 자랑이요, 아버지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심정의 깃발로서 나타나야 할 저희들이 이렇듯 보잘것없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 황공하옵나이다.

수고로우신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저희들은 그 아버지 앞에 다시 효도하고 싶사옵니다. 상처 입으신 아버님의 전신을 부여안고 눈물로 씻어 드리고, 당신의 모든 고통을 덮어 드리고 당신께 기쁨을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에 십자가의 길이 있거들랑 저희들이 앞장서서 그 모든 전체를 책임지겠사옵니다.

악이 아직까지 저희들의 환경에서 떠나지 않고 이 땅을 움직이고 주관하고 있는 연고로 저희들이 가는 길에는 수고의 노정이 남아 있음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분한 마음을 품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자신들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이 시간 아버지 앞에 회개하며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환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픔이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 환경을 벗어나야 되겠사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어지러운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자유로운 천지에 아버님을 모셔 놓고 해방의 심정으로 활개치며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이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악과 싸워 승리의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저희의 책임이요, 저희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시간 더더욱 아버지 앞에 결의하고 맹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의 마음을 수습하여 바로 세워 주시옵고, 흩어진 저희의 사정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자신을 위주로 하거나 자신의 사정에 얽매여 있거들랑 무자비하게 끊으시옵고, 자기 개체의 욕망에 얽매여 있거들랑 용서없이 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사정과 아버님의 심정과 아버님의 소원만이 저희의 마음 중심에 싹터 오르고 싹터 오른 그 힘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실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 뜻 앞에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불쌍한 민족이 된 것을 알았사옵고, 큰 뜻을 대하던 노아가정이 뜻 앞에 충성하는 아들딸을 갖지 못하게 될 때 슬픈 역사의 인연을 상속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지 못한 한낱 보잘것없는 행동의 실수가 천지에 화근을 불러일으켰던 것 또한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렇듯 엄청난 섭리의 뜻 앞에 오늘날 저희들은 불리움을 받았사오나 연약하고 초조한 모습들이옵니다. 다시 가겠다고 결의를 하고 나서는 저희들은 아직까지 타락세계에 살고 있는 부족한 모습들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이 저희들의 사정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역사적인 인연으로 그와 같은 사정에 저희들을 몰아넣으신 것을 생각할 때, 마음으로 맹세하고 몸으로 다짐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걷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하기 위하여 맹세하고 결의하면서 가고 있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임을 아옵니다.

아버지, 특별히 시대적인 곤궁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시대적인 굶주림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시대적인 절망과 탄식이 저희 앞에 다가올지라도 이것을 무난히 넘고 나서는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고, 사망세계에서 제물로 사라지지 않고 부활의 권세를 갖추어 승리의 깃발을 세울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가운데 부족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가 있사오면 쳐서라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망의 땅 위에 세워 주시옵소서. 죽음으로라도 승리의 자체를 세워 놓고야 말겠다는 것이 하늘의 뜻인 것을 아오니, 저희도 거기에 발맞추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가겠다는 신념만은 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할 때에 모세가 쓰러지는 자들에게 채찍을 들어 때려 쳐서라도 광야노정을 거치게 했던들, 이스라엘 60만 대중은 광야에서 독수리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이 민족 전체가 마음으로 믿고 생활로 하나되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에서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나를 이끌어 달라는 결의와 맹세를 할 수 있는 민족적인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의 무리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무리들이오니, 아버지,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옵소서. 죽더라도 그 자리에 가서 죽겠다고 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광야에서 쓰러져 독수리 밥이 되어 천추에 한을 남기고 역사적인 오점을 남긴 선조들의 전철을 밟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소망과 하늘의 뜻 앞에 택함받은 선민의 그 귀중한 가치를 역사를 두고 추구해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노정의 이스라엘이 증거하고 있고, 수많은 유대 백성과 유대교인들이 증거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역사를 통하여 피어린 투쟁의 노정과 제물의 과정을 아직까지 다 거쳐 나가지 못하였으면서도 선민권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그들이 가지 못한 십자가의 고비를 책임지고 갈 줄 아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상습적인 신앙관념 속에 사로잡히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날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를 위한 충성심과 효성심이 마음속 깊이 흐르게 하시옵소서. 험난한 환경일수록 더욱 간절할 수 있는 참다운 심정만이 저희 자체를 주관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옵니다. 1963년도 벌써 반이 지났사옵니다. 저희들이 작정하고 약속한 3년 기간, 그동안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남은 기간 동안 더더욱 충성을 다하여 지난날의 부족함과 불충함을 보충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 속에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할 수 있도록, 아버지, 힘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려는 제목은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슬픔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벌어진 그날부터 역사가 슬픔으로 점철되어 나왔음은 물론이요,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 인간도 이 슬픈 현실을 넘지 못한 채 아직까지 슬픈 환경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가 그러하고 현실이 그러하니, 역사를 지배하고 현실을 움직여 나오는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 하늘 역시 이 슬픈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오늘날의 이 슬픔을 수습할 수 없고, 지난날의 슬픔을 수습할 수 없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실의 슬픔을 수습할 사람도 없고 내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있다 할진대 이 일은 필시 하늘을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이 천지간에 슬픔을 제거해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타락의 후손 된 인류는 오늘날까지 역사 노정을 거쳐오면서 탄식을 하였고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입장에서 생의 그 무엇을 찾기 위하여 허덕여 나왔지만 전부 다 소망의 한 날을 남겨 놓고 갔습니다. 그들은 목적이 이루어지고 때가 되기를 바라며 미래를 걸어 놓고 무언 중 혹은 은연 중에 마음 깊이 호소를, 혹은 절규를, 혹은 부탁을, 혹은 간곡한 기도를, 혹은 간곡한 염원을, 혹은 간곡한 소망을 하였으며, 한 때와 한 목표를 세워 놓고 지금까지 왔다 간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류의 불행을 수습할 참다운 주인공을 보내셔야 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참다운 주인공이 계신다 할진대, 또 그분이 인류를 위하고 역사를 위하고 천주를 위하는 분이라 할진대, 그분은 필시 어느 한때에 가서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 왔다 간 모든 선조들이 고대하고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현세의 모든 인류가 요구하는 것을 수습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탄식과 슬픔을 수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 참다운 주인이 나와서 참다운 역사와 참다운 시대를 만들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이 그분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섭리해 나오신 것을 인정하는 한, 그분은 소망의 한 때를 기점으로 하여 과거 역사노정에서 탄식권 내에 살다가 쓰러져 갔고, 현재 탄식권 내에서 생활하고 있고, 또한 미래의 수많은 인류에게 소망할 수 있는 참다운 주인, 곧 참다운 인간을 보내어 참다운 생활을 하게 하고, 그런 참다운 생활을 통해 참다운 시대를 만들고, 그런 참다운 시대가 계속되는 참다운 역사를 이룩하기 위하여 섭리하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자체는 슬픈 세계를 거쳐 나가는 과정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고 있는 이념이니 행복이니 자유니 평화니 평등이니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소망의 터전 위에서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르짖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적인 것들은 어차피 거쳐 지나가야 할 것들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애착심을 갖고 있다 할진대 그것은 어느 한때 여지없이 파괴될 것이요, 또 이 현세를 중심삼고 자기의 어떠한 목표를 세운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역시 지나가는 시대의 비참상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고대하고, 인류가 고대하고, 역사가 고대하고, 시대가 고대하는 하나의 기점, 그 기점 위에 만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주인의 자격을 갖춘 참다운 소망의 사람, 참다이 구원된 사람, 참다이 부활된 사람, 참다이 섭리의 뜻을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슬픔과 고통과 역경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시대적이요 역사적인 요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이 세계는 넓은 세계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동반구 서반구의 이념을 서로 접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살았으나 오늘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동서는 나를 중심삼고 좌우로 좁혀져 들어오고 있고, 전후로 압박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수습해야 할 엄청난 문제가 우리의 주위에 엉클어져 있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수습하려는 신념을 가졌다 할진대 이런 환경에 얽매여 살지라도 우리는 사망의 물결을 넘어서 소망의 곳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는 보다 높고, 보다 행복스럽고, 보다 소망적인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흐름이 있어서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재촉하고 전진의 명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하늘이 바라시는 어떤 목표가 있다 할진대 하늘과 인연을 갖고 있는 인간은 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연고로 인간의 본성의 흐름은 자동적으로 하늘이 바라시는 목표를 향하여 이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그러한 목적을 향해 흘러 나왔고, 예수님의 소원도 그러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과 예수님의 소원은 기필코 하나의 이상적인 기점, 승리의 기점, 성공의 기점, 천하가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목적점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소망이요 뜻이요 욕구이기 때문에, 이 욕구의 달성을 위해 역사는 흘러왔고 시대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지 운세가 나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그러한 곳을 향하여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간절하고 그런 모든 사정은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자극해 들어오는데, 과연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주관하여 그런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느냐 할 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렇듯 불쌍한 우리들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우선 과제는 자기 확립

역사는 슬픔으로 시작되어 아직까지 슬픔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들을 슬픔의 과정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어떠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대책을 세웠다면 그것은 슬픔의 과정을 박차고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어떠한 힘을 가지고도 되는 것이 아니요, 경제적인 힘을 가지고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행복의 여건으로 세우고 그것을 생명시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해결해야 합니다. 외적인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해결하지 못하면 내적인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해결해야 됩니다. 환경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어려움이 더하고 모순된 사정이 부딪쳐 들어옴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것은 세계적인 어떠한 이념을 갖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자신의 몸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뜻을 부르짖고, 하나님의 이념을 찾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먼저는 자신이 확고부동해지는 데 있습니다. 역사적인 슬픔이 나를 점령할 수 없고 시대적인 역경이 내 마음과 몸에 확고히 서 있는 기반을 점령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신념이 없는 한, 그러한 위치를 갖추어 놓지 않는 한 제아무리 역사적으로 충성을 하였고, 시대적으로 자신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하늘은 그를 믿고 섭리할 수 없고, 그를 세워 시대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승리의 때, 역사적인 소망의 때, 오늘날 이 시대가 소망하는 때는 틀림없이 와야 할 것인데, 그때는 막연한 관념 가운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몸과 마음에 사무쳐 자극되고 긍정되는 가운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세워 생활적으로 밀려드는 슬픔과 대결하여 그것을 쳐 넘길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체의 역량을 갖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진 역사의 슬픈 흐름에 휩쓸리고 말 것은 정한 일입니다.

복귀섭리는 잃어버린 주인을 찾는 섭리

오늘날 이 천지는 주인이 없는 천지가 되었습니다. 아담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천지는 있으되 천지의 주인은 없었습니다. 이 천지의 주인은 본래 인간입니다. 천지의 주인은 본래 여러분이요, 나입니다. 우리들이에요. 주인이 있어야 목적이 있고 사명과 책임이 있고 생활의 목표가 있을 텐데 주인이 없습니다. 주인을 모시고 살고, 주인을 모셔 놓고 천지가 하나되어야 할 것인데 오늘날 이 땅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하늘이 있어도 하늘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르고, 땅이 있어도 땅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내가 존재해도 내 자체의 주인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그 주인을 찾을 것이냐? 막연하게 세계적인 환경이 그 주인을 찾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대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충성하는 사람들이 그 주인을 찾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들이 주인을 찾아 준다 하더라도 그 주인과 하등의 관계맺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그 주인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러한 흑암에 묻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천지의 주인을 찾아 주기 위해서 섭리하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소원은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무엇이냐? 이 천지의 참된 주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신앙이라는 것에 의해 섭리와 경륜하시는 뜻 앞에 충성하겠다고 외치며 나가는 것도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 자신이 참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리에 나가면 많은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좌우로 널려 있는 수많은 건물에도 각각 주인이 있습니다. 달리는 택시 하나에도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이 모든 만상에는 모두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죄악된 세상에 널려 있는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 아닙니다. 그 주인은 참된 주인이 아닙니다.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하고, 이 시대가 공인하고, 미래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을 찾아서 그의 뜻을 받아 가지고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든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방법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을 알고 인류가 지금까지 고대하던 것을 알아서 역사의 모든 흐름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필시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요 이 천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현세의 인간도, 과거의 인간도, 천지도 그런 주인을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인을 못 찾게 될 때는 역사가 동원되어 찾아야 합니다. 왜? 그는 역사적인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소망하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역사가 고대하던 주인이니 역사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시대가 고대하는 주인이니 시대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천지가 고대하는 주인이니 천지가 동원되고, 그 주인은 하나님이 고대하는 주인이니 하나님이 동원되어 찾아야 합니다. 만일 그 주인을 찾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인간의 소원성취와 참주인

인류역사노정에서 지금까지 인간들이 소망해 오던 모든 짐들을 어디에 가서 풀 것이냐? 어디에 가서 그 소망의 짐을 풀어 놓을 것이냐? 그 곳은 한 분의 주인을 모셔 놓고 그분과 하나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주인과 하나되어 그 주인의 아들이 되든가 딸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 주인이 바로 내 아버지요, 우리의 부모입니다. 그분은 역사적인 부모요, 시대적인 부모요, 천지의 부모요, 하나님이 고대하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가 기뻐할 때 천지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딴 조건은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니 뭐니 하는 그 무엇보다도 그분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주인은 어떤 분이냐? 그 주인은 역사의 전부를 쥐고 있는 주인이요, 시대적인 모든 전체의 가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주인이요, 천지를 대표하는 주인이요, 하나님의 섭리를 대신하는 주인이요, 하나님의 심정으로 고대하는 소망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을 가진 사람은 천하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은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여러분들은 자신의 마음이 불의를 제거하고 선을 추구하여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가고, 시대적인 역경의 물결을 넘어 나가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의 목표는 어디인가? 주인을 만나 그 주인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하여 우리 인생은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만 움직인다면, 마음의 명령대로만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만일 내 마음의 흐름의 목표가 겨우 친구로서 끝나고 하루 생활의 기쁨이나 만족을 얻는 정도로 끝난다면 나는 그런 기쁨 싫습니다.

자식이 없어지기 전에는 부모는 없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식이 없어져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역사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시대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천지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그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바로 내 부모요, 나는 이분의 아들이요 딸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역경과 곡절과 슬픔과 비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비애의 참상이 우리를 지배해 나왔고, 지금도 지배하며 우리의 환경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힘을 얻든가, 부모를 가진 기쁨의 마음을 폭발시키든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종교의 사명

양심의 도리를 주장하는 종교, 양심을 움직여 가지고 선을 지향해 나가는 종교가 소개해야 할 최고의 목적은 무엇인가? 주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역사 이래 왔다간 성인 현철 위인들의 모든 사상을 인계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 가운데서도 더 좋은 종, 양자 가운데서도 더 좋은 양자가 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좀더 좋은 것, 좀더 좋은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목적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주인이란 참된 부모를 말합니다. 그래서 참된 주인을 위주한 사상이란 참된 부모를 위주한 사상입니다. 참된 부모의 내용을 증거하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생활관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회가 역사적인 소망이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그곳은 역사적인 슬픔과 시대적인 슬픔이 남김없이 해소된 곳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이 있지만 그런 이념의 세계 말고 심정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참주인을 찾으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참주인을 찾아 돌아가야 됩니다. 그 주인을 찾는 것은 간단합니다.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 역사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 시대가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인간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자식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부모를 중심삼고 살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흘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그 부모는 타락한 부모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내 몸 마음에 심어 주고, 내 피 살에 상속시켜 준 부모입니다. 영원한 이념세계와 하늘의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천주의 인연을 거치고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친 승리적인 기반 위에서 인연된 피 살로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연고로 어차피 참된 부모 앞에 정비를 당해야 합니다. 그 부모는 우리의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부모의 혈통을 받은 타락의 후손입니다.

이 천지는 점점 수습되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관문에 서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고대하고 어떠한 사상이나 주의가 고대하는 것은 일단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천지는 역사적인 호소와 역사적인 목적과 시대적인 욕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주의를 향하여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의는 하나의 세계주의입니다. 그러한 주의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에게도 필요하고 민주주의자에게도 필요하며, 인종과 관념을 초월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세계에 있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일등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그런 것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리게 할 수 있는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만가지의 물건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진 기쁨이 잃어버린 부모를 찾은 기쁨과 환희의 마음에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주인을 만나는 기쁨은 그 순간적인 기쁨과 바꿀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인간들도 그 주인을 만나기를 소망했고, 이 시대의 인간들도 그 주인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알았을진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먹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먹고, 싸우는 것도 그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분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분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양심을 근본으로 하여 출발한 것이 종교입니다.

종말 시기에 기필코 참다운 주인이 오시거늘,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다 이루어지면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전부 다 없어져야 됩니다.

천주의 주인을 맞으려면

세계가 문제가 아니고,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사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자신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문제예요. 역사적인 위인들은 참다운 승리의 세계를 고대하며 죽어갔습니다. ‘하늘이여 그 주인을 이 땅에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고, 혹은 피를 흘리며 호소하지는 못했을망정 누구든지 죽어갈 적에는 마음속으로 ‘소원성취의 한 날을 세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갔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주인을 모셔야 합니다. 나는 아무개의 자식으로, 일개 종족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크나큰 섭리의 흐름을 대하고 있는 자신임을 인식하고, 역사노정에서 선을 위하여 무참히 쓰러져간 선조들이 호소하던 정신을 이어받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목적을 실체로 대하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역사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자 하는 욕망은 역사노정에 왔다간 수천 수만의 인물들보다 간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인 위인들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역사의 전통을 상속받은 역사적인 열매로서 시대적인 모든 곡절이 청산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 시대, 이 사회의 내적인 흐름입니다.

참된 주인을 고대하는 무리라 할진대 역사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간곡한 마음과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간곡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지니고 이 시대를 손아귀에 넣고 못된 것은 때려부수고 정비하고 수습하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주인과 여러분이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천지가 고대하고, 천지가 요구하는 그 기준 앞에 가치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 있게 나가야 합니다. 천지가 고대하고 갈망하는 마음보다도 천지를 주관해야 할 인간의 마음이 더 간절해야 됩니다.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시고 유일하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루 한 시간을 보내도 오직 그 마음이었습니다. 오직 참다운 주인, 참다운 아들딸을 고대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주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참다운 아들딸이 못 돼요.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이 악한 세상을 수습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해 오셨고, 곡절의 환경에서도 그 일념을 버리지 않고 싸워 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주인을 세워 가지고 이 천지를 수습하시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를! 역사노정에 있어서 전투가 벌어지고 세계 대전의 참상이 벌어진 것은 하나님 마음속에 목표하시는 참다운 주인의 사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그 주인과 인연을 맺고 그 주인을 모시기를 고대한다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본래의 위치를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철석 같이 불변인 것처럼 나도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시대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천륜 앞에 있어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심정적인 세계관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그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하는 두 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세계는 그 주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가 될 터인데 그 세계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그냥 막연하게 그 세계를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림사상, 메시아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든지 재림사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구세주가 온다’,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온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이 없으면 올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사이비입니다. 그야말로 사이비예요.

참주인을 중심한 세계

온다, 온다, 온다 하는데 무엇이 옵니까? 무엇이 오느냐 말입니다. 참다운 주인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주인을 중심삼은 참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생활을 통하여 참다운 생애를 살 수 있게 되고, 참다운 세계관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주인을 모시고 기쁨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 세상의 악은 주인을 모시고 기뻐하는 그 기쁨에 밀려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천지에 있는 악과 천지에 있는 고통이 전부 밀려 나가 자빠지게 할 수 있는 주인을 만났을 때 기뻐하고 부풀어 오르고 끓어 오르고 격동될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습니까? 물어 봅시다. 어때요? 신앙의 길은 가면 갈수록 험한 길입니다. 알고 보면 그렇습니다.

역경으로부터 출발한 역사이기에 역경의 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흐름으로 엮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웠던 주인을 만나면 그분의 손을 붙들고 억천만년이라도 놓고 싶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억천만년의 고통과 모든 슬픔을 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초월하여 감격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냐?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너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이 옛날부터 고대하고 갈망하던 그 마음의 기준에 동참하였느냐고. 그래도 지금까지 전통의 길을 닦아 나온 역사적인 위인들과 선지자들은 그 누구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못 되게 하면 역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의 귀일점은 마음이 영원히 기뻐할 수 있고, 마음이 영원한 생활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기반 위에서는 주인도 그러한 주인이어야 하고, 그 주인이 주장하는 세계도 그런 세계라야 하니, 세계는 하나의 주인을 위한 영원한 평화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과 사상을 이 인류 앞에, 역사 앞에, 천주 앞에, 하나님의 섭리 앞에 세우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요, 구원 섭리입니다.

참주인의 발판이 되는 참종교

여러분은 종의 자리에 있으니 종의 자리를 지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부모의 이름을 통해 참다운 혈통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참다운 아들딸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은 원리(原理)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망할지라도 그렇게 됩니다. 아무리 사회가 떠들며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선생님의 이 철석같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몰아치는 환경에서도 하늘은 선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점령당하지 않고 침범당하지 않는 신념과 생활태도를 갖춘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 세계가 이루어져도 그 세계와 여러분은 화합할래야 화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을 찾아야 됩니다. 주인의 사명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해야 됩니다.

그를 중심삼은 것은 모든 것이 참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된 주인, 참된 부모와 인연을 맺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역사는 종교인들을 수습하고, 양심적인 인사들을 수습하고, 심정적인 인사들을 수습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교 문제가 상당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오늘날 한국의 어느 종교도 이 문제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갈래갈래 갈라지고 편편이 파편이 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공산주의도 그렇습니다.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주권이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시대가 팔리고 망할 재물로 말미암아 역사가 팔리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자기의 신용을 팔아먹고, 인격을 팔아먹고, 자유를 팔아먹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돈으로 처리하는 때가 되면 그 때가 끝날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 대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아들딸에 대해서도 돈으로써 처리하고 돈으로써 팔아먹고 돈으로 왔다갔다 하는 세계,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것에서부터 제일 나쁘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돈 때문에 팔려 다니고 이동되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세계가 될 때는 끝날이 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자신이 되든가, 아니면 주인이 되든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종족과 민족마다 종교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의 목적 세계를 지향하도록 하기 위해 그 지역과 환경에 적응될 수 있는 종교를 세워서 역사를 수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민주주의를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는데 기독교가 민주주의를 수습하지 못하면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삼켜 버릴 수 있고, 공산주의를 삼켜버릴 수 있는 종교, 공산주의 이론 이상의 내용을 가진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을 찾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있느냐? 그런 종교를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 지성인들과 종교인들과 종교를 지배하는 제사장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교리를 붙들고 싸우고만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교회냐? 그러한 사상의 기반을 닦기 위해 나온 교회입니다.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이념을 확립해 가지고 나가자고 모인 무리가 여러분들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어떠한 주의나 종교적인 무엇에 팔려 다닌다면 여러분은 다 깨집니다. 지금까지의 기성종교나 기성주의에 팔려 다니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을 정립할 수 없고, 역사적인 종교의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나 시대적인 주의에 팔려 다니는 통일교회가 된다면 통일교회는 깨집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것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 입각해 계시는 주인, 이러한 관점에서 행차하시는 하나님, 이러한 관점에서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오늘날 시대적인 지성인들, 그리고 이념적인 혹은 사상적인 그 무엇을 찾아 나아가는 선각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반성해야 할 통일교인들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들, 역사적인 어떤 종교나 주의 앞에 휩쓸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어떤 어려운 폭풍우가 부딪쳐 오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신이 있습니까? 목이 짤려도 자신이 있습니까?

항복문서를 쓰고 후퇴하는 패들은 망해 쓰러집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목적 밑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투쟁역사입니다. 나는 일편단심입니다. 일편단심! 내가 그 길을 닦지 못하면 그 길을 닦아 줄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주인을 맞이할 이념적인 기반과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적 사명을 하자고 선포하고 나선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보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힘찬 경종(警鐘)을 해야 할 상태입니다. 채찍을 들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상태예요.

과거의 생활 관념에 사로잡힌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성 종교 관념, 기성 신앙관념에 사로잡히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성 신앙관념을 밟아 치우고 기성 신앙관념을 넘어서야 됩니다. 전통적인 사조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 사조를 넘어서야 됩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뜻을 위한 행동을 해야 됩니다. 뜻을 위한 명령이 우리 앞에 떨어질 때에는 언제나 예스(Yes)여야 합니다. ‘노오(No)’가 없어야 됩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주인을 세계적인 주인으로 모셔 놓고서야 여러분의 갈 길이 생겨납니다.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선생님의 작전 가운데 제1차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원수들이 아우성치는 와중에서도, 수많은 화살을 받아 가면서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는 죽지 않았습니다.

보여 주어야 할 우리

우리를 핍박하던 그들이 우리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1차적으로는 종교인들을 무색하게 했으니 제2차적으로는 모든 주권자들이 ‘저런 사상과 이념이 있는 것을 몰랐구나.’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여 줍시다. 개인적으로 보여 주고, 가정적으로 보여 주고, 종족적으로 보여 주고, 민족적으로 보여 주고, 전체적으로 보여 줍시다. 그래서 가정을 굴복시키고, 종족을 굴복시키고, 그 민족을 굴복시키고, 모든 주권을 굴복시켜야 되겠습니다. 세계의 어떤 사조나 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도 ‘저들과는 상대가 될 수 없다. 못 당한다. 지독하고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뭔가 됩니다.

나라를 생각하고 이 시대를 염려하는 마음이 있거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멱살을 잡고 갈겨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해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인생의 가치가 떨어지는 낙엽만도 못한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고대하고 역사와 시대가 고대하는 하나의 중심으로서 찬양받고 영광의 가치를 지녀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 통일 신도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느냐? 시대적인 사망권 내에서 아우성치고 갈구하며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느냐? 하늘 땅 앞에 부끄럽지 않느냐? 내 마음을 재촉하는 천지의 대운세 앞에 부끄럽지 않느냐?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자는 외식하는 자입니다. 나 자신도 부끄럽습니다.

길을 가다가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얼굴을 못 들겠어요. 부끄러운 남편을 둔 부인은 인격을 갖춘 신랑을 모시고 나오는 부인들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렇잖아요? 못된 자식을 둔 부모는 그 자식을 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어 얼굴을 못 듭니다. 우리는 심정세계의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정경을 바라볼 때 여러분들은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많이 느껴야 됩니다.

저들이 누구냐? 우리 한국 사람들이 누구냐? 형제입니다, 형제. 역사의 곡절과 비운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만 심정의 세계에서 볼 때에 그들은 동기요, 형제입니다. 그들이 죽을 자리에 있고 비참한 입장에 놓여 있으니 내가 숨을 쉬고 살 기력이 있는 한 그들을 살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먹고 나서도 부끄러워하고, 입고 나서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없어지는 날이면 이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처참한 이 사회 환경에서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고 버텨야 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뜻을 위해 외쳐야 되겠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그 진의라도 알려주고 죽겠다는 사명에 불타는 통일신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체가 되어 있습니까?

선생님이 알고 찾아 나오는 신앙세계는 여러분이 찾아 나온 신앙세계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재정비하고 재수습하여야 되겠습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나니 역사적인 선조들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시대가 부르고 있고, 천륜이 부르고 있는데 그 앞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선조들은 참다운 주인이 이 땅에 찾아오기를 얼마나 바라왔습니까? 그 때가 오지 않아서 얼마나 한스러워했습니까? 10년 걸릴 공사를 1년에 마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쁩니다. 한없이 바쁜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심정을 생각하며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어도 숟가락을 들고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주인이 되든가 주인이 올 수 있는 준비를 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됩니다. 이것은 지도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몽둥이로 패서라도 하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과는 달라요.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여기 오면 전부 다 평등입니다. 사회적인 명사 같은 것 나는 모릅니다. 원리 앞에서는 모두 평등입니다. 말을 안 들으면 패서라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망합니다. 망하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둘 수는 없습니다.

주인이 되려면

그러면 그렇게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잃어버린 주인을 찾게 해서, 그 주인으로부터 상속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천주의 주인을 모시어 그분의 상속을 받기 전에는 천지의 대주재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천지의 주인을 모셔 가지고 천지의 부모의 사명을 하기 위해 오시는 분한테 혈통을 상속받아 축복을 받으면, 아까 봉독한 성경 말씀과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천지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참부모, 참된 주인의 자리를 경유하여 참된 부모의 자리로 올라간 그분과 내적인 인연을 맺고, 혈통을 상속받아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은 직계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이 있으면 그 부잣집의 영감도 주인이지만 그 아들도 주인입니다. 그렇지만 종은 주인이 아닙니다. 직계가 되어야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제나 심중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딸이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주인의 행사를 대신하고, 주인을 대신한 기준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주인의 권한을 상속받기 전에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했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낸 목적은 예수 한 분과 우리의 관계를 맺는 데 있습니다. 그 관계가 맺어져야만 우리가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소원의 실체대상이 될 수 있고, 역사적인 모든 소원의 실체대상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모든 인간들이 이상 하는 소망의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 있느냐?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저 건너편의 크고 좋은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 집이 자기 집이라면 주인 된 입장에서 ‘거 참 잘 탄다.’ 하고 구경만 하겠습니까? 어떠한 농토나 땅이 자기 것이라면 그것을 주관하고 관리해야 할 터인데 악질분자나 불한당들이 뺏으려 하는데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한 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보다 몇십 배 악착같이 해서라도 때려부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천지가 주인이라고 공인한 사람 앞에 어떤 악질 불한당이 나타나 위협한다면 그 주인은 그 악질들보다 몇십 배 악착같이 해서라도 그 악질을 처치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인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할 때

이러한 문제들을 천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때가 바로 심판의 때입니다. 그때에는 주인의 가치를 지녀 가지고 불의를 대하여 주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인의 행사를 못하면 물러가야 됩니다. 악한 사람보다 몇십 배 악한 행동을 해서라도, 목을 베고 갈기갈기 찢어서 독수리밥을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됩니다. 그런 시대가 옵니다.

어떻게 종교의 이념을 가지고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심판이라는 명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한당들은 전부 때려부숴야 됩니다. 이것은 한 사람 개인의 분풀이가 아니라 역사적인 화풀이, 시대적인 화풀이입니다. 그들은 정의를 위하여 선을 추구해 온 수많은 역사적인 위인들을 유린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나온 원수들이요, 선을 지향해 나가는 모든 선한 사람들 앞에 말할 수 없는 방해 공작을 해 온 악당들이니, 모든 역사적인 한을 통합하여 치는 것입니다. 칠 때는 천 배 만 배로 무자비하게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래요.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이 삼천리반도와 세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온 백성이 ‘하나님은 내 주인이요, 나 또한 주인이다.’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주인의 권한을 상속 받았습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백성이 그런 자리로 나가도록 권고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또 ‘권고해도 물러서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없거든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성취와 당신의 해원성사가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의 소원성취를 위해 내 손으로 싸우겠습니다. 원수와 부딪치더라도 안 깨지겠습니다. 내 몸은 찢어지고 깨어져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정신만은 깨지지 않겠습니다. 천지의 어떤 것이 부딪쳐 오더라도 깨지지 않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세상 풍파가 들이치고 또 칠지라도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두고 보자! 10년이라도 두고 보자! 20년이고 30년이고 두고 보자! 40년이라도 두고 보자.’라고 해야 합니다. 40고비를 넘고 나면 고개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정신 차려야 됩니다. 알겠어요?

몸은 하나인데 마음은 바쁩니다. 할 수 없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책임인 줄 알고 가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 손이 모자라고 발이 모자라서 안타까운 내 심정을 아버지는 아십니다. ‘주인의 길을 닦는 내 자체가 하늘이 볼 때 거슬리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천지 앞에 거슬리는 나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념에 사무친 마음만 있다면 돈 한푼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세상의 무지한 이들과 악한 사람들을 몽땅 모아 가지고 선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복귀섭리입니다. 여러분은 악한 사람들에게 먹혀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과 세파에 사로잡혀 쓰러지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쓰러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주인이 될 것이냐? 한국의 주인이 될 것이냐?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냐? 천지의 주인이 될 것이냐? 천지의 주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눈만 감으면 한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해서 세계 일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말입니다. 마음세계에서 수천만 번 움직이고 나서야 실제세계에서 성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복귀섭리를 하는 6천년 동안 하루 24시간 중 단 한 시간도 그것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6천년 동안 마음속에서 고대하고, 마음속에서 염려하고, 마음속에서 그리워했던 것이 한 때를 맞이하여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역사입니다.

구세주와 제사장

여러분의 마음은 천지의 주인과 더불어 주인이 되고, 주인 대신 책임을 져야 되겠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친다 할지라도 안 쓰러진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쯤은 돼야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런 신념을 갖지 않으면 먹혀 버립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통일교회에 와서 선생님 노릇 할 수 없습니다. 30억 인류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세워도 선생님만큼 할 수 없습니다. 천지의 누구도 안 됩니다. 그들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용서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남이 도와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나를 도와주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해 놓고 난 후에 남에게 주고 싶지 손을 벌리고 도와 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손만 벌리는 거지 패들은 망합니다, 망해요. 그러면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없는데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없으면 없는 고비를 넘고 넘어가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넘고 가자 이겁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그런 길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에게 월급을 줘요, 뭘 줘요? 예? 밥을 굶는지 어떤지 알고 있어요? 여기 본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굶어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세 안 져도 굶어 죽지 않아요. 그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애를 두고 자신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무지무지한 일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저런 일을 하다니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심정으로 간곡하게, 세상의 어떠한 무엇이 참소할 수 없는 기준에 서서, 그러한 마음 기반이 되어 가지고 한다면 성사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안 되면 눈물을 흘리세요. 안 되면 몸뚱이라도 폭발시키세요. 부딪치면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폭동을 일으키자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불을 붙이자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이고이 단장하여 제사장의 옷을 입고 무릎을 끓고 분향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통일신도들은 그것을 알았기에 피눈물의 꼭대기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 눈물 흘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땀 흘리는 사람 앞에 땀 흘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피 흘려 쓰러지는 사람 앞에 피로써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속죄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만민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만민의 죄를 대표해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생사를 걸어 놓고 호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우리의 것, 세상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하느냐? 제일 나쁜 것의 주인부터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비롯해서 별의별 곳에 다 가 보았지만, 어디 가든지 말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불한당, 살인 강도라도 며칠만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선생님 앞에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이 됩시다. 무엇부터? 영광은 수고의 터전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귀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륜의 발전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지의 대주인,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근심이 있으면 그 근심을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마음 가운데 십자가가 있으면 그 십자가를 맡을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되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환난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주인 된 책임을 못 하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할 수 없는 환경에 있으니,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으니, 통곡으로 주어야 합니다. 눈물로 주어야 합니다. 피와 살로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피와 살을 주신 것입니다. 피로 주고 살로 주자는 것이 도의 길을 가는 자의 생활철학입니다.

주인의 바른 마음자세와 생활태도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최일선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수와 싸우고, 시대적인 불한당과 싸워야 합니다. 총칼을 들고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를 쓰러뜨려야 합니다. 총칼을 들더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쓰러뜨리면 정의가 됩니다. 그런 사상과 그런 결의에 불탈 수 있는 청년 남녀를 빨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을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쁜 것을 수습하여 좋은 것으로 만드는 작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시대가 올 때 배척하지 못합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상의 나쁜 자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모든 위인들은 그 시대 시대마다 나쁜 자리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서는 제일 나쁜 죄목을 지고 제일 나쁜 보자기를 쓰고 갔지만 그 시대가 지나간 후에는 그 사람을 선의 주인공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환난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면 여러분의 후손들이 처참하게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시대적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 앞에 나아가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를 주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는 주인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인을 모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한국에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는 도의 기준을, 세계의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그 주인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주인을 위해 준비하는 자가 되고 주인이 되기 위한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서 악이 사라질 때까지 주인의 책임을 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주인이 되고 잃어버린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늘 말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세계를 수습해야 할 통일교회

다시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행차하신다 할진대 이런 사명과 책임을 중심삼고 준비하는 곳과 준비하는 모임과 준비하는 민족에게 와야 됩니다.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오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이제 두고 보란 말입니다. 선생님의 말이 맞나 안 맞나? 때가 되면 세계가 굴러 들어옵니다. 이 굴러 들어오는 세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혁명 정부도 이 민족 앞에 수습할 방법을 몰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그 사람들이 잘못을 하고 아무리 핍박을 하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아무리 지지고 볶고 망하게 하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이 세상을 대신하여 걱정하는 한, 세계가 아무리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결국은 통일교회한테 흡수될 것입니다. 흡수되게 되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차근차근 흡수할 수 있는 재료가 있습니다. 그들이 불평할래야 불평할 수 없습니다. 무어라 항서를 써서 나에게 항의할 수 있는 재료가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이 예수님으로서 이 만민 앞에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냐? 그것은 만민을 위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런 기준에 항서를 써서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천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뜨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굴복하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우리는 사망의 구덩이에서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하늘이 있음을 알고 세계를 책임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많은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어차피 많아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걸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료가 필요합니다. 역사를 두고 때릴 수 있는 재료, 미래를 두고 때릴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가 무엇이냐? 피와 눈물과 땀입니다.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 하나님이 눈물 흘릴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 온 인류가 눈물 흘릴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입니다. 그 피와 땀과 눈물 위에 쌓은 승리의 공적은 역사상의 인간들이 숭배할 수 있는 재료요, 역사상의 인간들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이러한 재료를 만들게 되면 죄악의 세계는 깨져 나가게 됩니다. 깨져 나가요.

통일교인들을 고생시킨 이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년 동안 고생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망하지 않습니다. 축복받은 가정을 산지사방에 흩어 놓고 고생하는 것을 보는 선생님 마음은 아픕니다. 통곡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억제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비한 스승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재료를 준비하고 역사를 수습하는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기에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내모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몇 해 후에 많은 곳에 우리 교회가 들어가야 합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입장에서 축복이라는 명사를 받아 가지고 하늘의 위신도 잊고 체면도 잊으며 살아왔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개인을 그러한 자리에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개인이 없고, 가정을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가정이 없고, 민족을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민족이 없고, 국가를 세워서 항의할 수 있는 국가가 없으면 전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석같은 원칙입니다.

이런 철석같은 원칙으로 만들어 놓은 그 세계는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이상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길을 나설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고개 이상의 고통이 올지라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와야 할 한의 소원을 남겨 놓고 갔으니 내가 그 소원을 이루겠다고 하는 결의를 하며 심각히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걸 생각할 때에 오늘 통일교제단을 지도하는 선생님과 예수님과는 아무런 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방향은 세상과는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생활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30억 인류 앞에 정성이 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후손을 위해야 합니다. 이런 무리가 하늘의 아들딸입니다. 이런 무리를 찾아 세계사적인 사상의 기반을 한반도를 중심삼고 이루어 놓자는 것이 통일교회요, 통일사상입니다.

선생님은 누가 한마디만 하면 대성통곡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선생님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통일교회란 명사를 중심삼고 투쟁해 왔습니다. 비참하고 비참한 노정을 거치면서 꼬부랑길 벼랑길과 같은 길을 걸어 나왔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해 주셨습니다. 썩어 들어가고 부패해 들어가는 이 민족을 바라볼 때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밤낮없이 돌아다니고 싶은 것이 선생님 마음입니다. 어디에 가 앉아 있더라도 금방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버지! 지금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한 시간이 바쁘고, 한 날이 바쁜 것을 내가 아니 한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세계 인류가 지금 이 시간도 도탄 중에 있고 지옥행 열차를 타고 달리고 있는데 정지시킬 수 있는 방책은 없겠습니까?’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고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는 주인이 되든가 아니면 주인을 모시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이 이념이 옳다고 생각되고 여러분이 먼저 이 이념을 알았다 할진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어느 직장에서도 그 책임을 못하면 그 직장에서 참소를 받게 됩니다. 선생님은 3년 기간 동안 탕감받으며 통일교회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주인이 되든가 주인을 모실 준비를 하든가 해야

이제부터는 한국을 위주로 하여 세계적인 길로 뛰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내 것을 전부 내놓아도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이 교회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건 하루에 불이 열 번 나도 아무 미련이 없습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역사적인 재료입니다. 이 인류 앞에 영원히 내세울 수 있고, 세계 앞에 영원히 내세울 수 있고, 복귀섭리 앞에 영원히 내세울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재료는 한끼의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데서, 잠을 못 자고 하늘 앞에 호소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역사를 살릴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하는 것이 통일신도의 세계사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교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심정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세계적인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잃어버린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든가 주인이 되든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말입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할래요 안 할래요? 안 하려면 나가란 말입니다. 다 나가요. 내가 맨발 벗고 다시 할 겁니다. 그거 못 하겠으면 다 나가란 말입니다. 나가서 몇 해 후에 찾아 들어와요.

여러분을 믿어야 할 환경이 되고 때가 왔는데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여러분을 믿고 일을 못 하겠습니다. 안심이 안 돼요. 안심이 안 된단 말입니다. 책임을 할래요, 안 할래요? 담판을 짓자구요. 책임을 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내리세요. 웃을 게 아닙니다. 웃을 게 아니에요.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이렇게 큰소리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내 갈 길이 바빠요! 여러분들이 갈 길이 바쁘면 나도 갈 길이 바쁩니다.

선생님에게 가정이 있지만 가정엔 관심이 없습니다. 일단 문 닫아 놓으면 자식이든 무엇이든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한계를 딱 갈라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유사시엔 일단 보따리 싸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직계를 위해 눈물 흘릴 때가 아닙니다. 내 가정을 재료삼아 그보다 더 큰 세계를 살려야 하고, 세계를 위해 눈물 흘려야 합니다.

그런 심적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밤에라도 천명이 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상권 내에선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의 길을 선생님은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가는 게 아닙니다. 무목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연과 곡절이 어려 있는 본부

여러분, 통일교회 본부는 서울이죠? 여기 통일교회 본부에 사는 여러분들은 과연 자격이 있습니까? 말은 안 하지만 선생님은 하루에도 몇십번 눈물을 흘립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측근에서는 다 알 겁니다. 선생님은 한마디만 하면 그저 통곡합니다. 대단히 예민한 사람입니다. 삼천리 반도에 널려서 이 시간에도 굶주린 자리에서 애절한 기도를 올리는 식구가 있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그런 식구들에게 심정의 인연을 전달해야 할 중간 영이요 매개체들이 여러분들인데, 여러분 자신들이 그래 가지고서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되겠어요?

본부에 있는 사람은 벌을 받아도 더 크게 받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새로운 말을 할 적마다 본부에서 먼저 하지 않습니다. 지방에 가서 먼저 하고 나중에 본부에서 합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는 무슨 기도를 해요?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늘땅 앞에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내 자신이,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자신이 가르치기가 부끄럽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 들어올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 들어올 때 여러분 마음대로 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여기는 피어린 눈물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 수련생들도 있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이 와서 사는 이 집을 농락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하늘과 더불어, 땅과 더불어 천지 인류들이 마음과 심정을 털어놓고 통곡하는 제단입니다. 제단은 비참한 것이에요. 역사적인 제단인 이 집에 들어올 때 문 밖에서부터 눈물 흘리며 들어와야 할 집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자는 식구들의 행동이 그래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집이 아깝습니다. 내게는 호화찬란한 집보다도 이 집이 더 귀합니다. 비록 금은 갔지만 금이 간 것은 역사적인 풍상이요, 역사적인 흔적입니다. 여러분은 이 집의 흠집을 보면서 너의 상처는 아직까지 가시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겁니다.

앞으로 이 집에 모든 세계 인류가 찾아오게 될 겁니다. 찾아오게 돼요. 꿈같은 얘기인 줄 알아요? 내가 여기에 살았고, 여기에서 뜻을 찾아 나왔기에 내가 지도하는 이념을 따라 국경을 넘어 찾아올 것입니다. 집을 새로 지으려면 지금이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역사적인 행사를 한 곳이고, 하늘땅이 통곡을 한 곳입니다. 뭇 사람들이 통곡한 자리입니다. 피를 뿌려 몸부림치며 호소하던 자리입니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곡절로 인연된 눈물 자국이 어려 있는 곳입니다. 눈물로 얼룩진 거룩한 제단입니다. 함부로 들어오고 함부로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온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될 겁니다. 선생님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본부의 사진만 보고도, 아니 본부를 기억만 하고도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통곡하며 찾아오는 그들을 마음으로 반겨 기뻐하며 간곡한 마음으로 대해 주고 마음의 친구가 되어 위로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면 선생님이 일단 정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본부에 모이지 말란 말입니다. 왜 선생님이 자주 돌아다니는지 알아요? 할 일은 천 가지 만 가지이고 정리할 것은 많은데, 외적인 환경이 못 돼 있습니다.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어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지금 지방의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은 본부에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같이해 왔고, 같이 풍상을 겪어 왔으므로 고이고이 하늘 앞에 축복받고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멋지게 돌파해야 할 4년 기간

오늘 저녁 ‘과연 나는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죽어도 좋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고 직장에 있으면 직장에서, 어디에 가든지 뜻을 위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주인을 모시든지 주인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주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여러분들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통일교회 교인들이 썩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책임을 지고 이루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으니 그 맹세한 기준을 가지고 재수습하여 이제 남은 4년 기간을 멋지게 돌파해야 합니다. 이제 3년노정이 지났지요? 선생님이 가야 할 3년노정은 지났습니다. 이제는 4년 기간이 남았습니다. 이 4년 기간을 마치게 되면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선 지 21년째입니다. 여러분이 21수 과정에 동참하게 되면 야곱의 70가정 수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40년 역사적인 한을 해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한 기간입니다. 3년 기간의 3수라는 것은 아들딸, 즉 가정을 세우기 위한 기간입니다. 아들딸을 찾는 기간입니다. 복귀섭리에 있어서 3수라는 것은 자녀를 분별하기 위한 수입니다. 4수는 땅을 복귀하기 위한 수입니다. 그래서 4년 기간을 지내는 겁니다.

40수는 4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4년을 여러분은 멋지게 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 교인들은 3년 기간에 못했으면 새로이 각오하고 4년 기간을 출발해야 합니다. 영광의 출발을 못 하겠거든 고통의 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 교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7년노정을 넘어가야 합니다. 성경에 7년 대환난이 있지요? 개인적인 7년 대환난, 가정적인 7년 대환난, 민족적인 7년 대환난, 국가적인 7년 대환난을 거쳐야 합니다. 이 7년 대환난을 한꺼번에 수습해서 개인적,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넘어가는 기간이 바로 이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십시오. 머리를 싸매고 기도해 보란 말입니다. 이 다음에 죽어 가지고도 ‘왜 땅에 살아 있을 때 안 가르쳐 주었습니까?’ 하고 선생님에 대해 참소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 말은 기성교회 목사의 말과 다르단 말입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다른지 안 다른지. 부부가 아들딸을 두고 일대에서 책임 못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죽어 보면 어떤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생시키시는 이유

앞으로 선생님은 세계적인 민족 대이동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선생님 일대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흑인은 한국에 살고, 한국 사람은 흑인 세계에서 가서 살아야 합니다. 민족적인 관념, 주권적인 관념, 국가적인 관념 등을 모두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대이동의 역사가 벌어져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금의 때는 그런 세계적인 대이동을 시작해 나가는 때입니다. 각도로 보면 15도 정도의 각도가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각이 처음에는 거의 같지만 이것이 계속해서 돌아가면 아주 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지정된 땅에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급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찾아가는 것이 복귀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애급 땅을 박차고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 것이 복귀역사인 연고로, 애급 땅에 처해 있는 오늘날 통일신도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광야노정은 각자에게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가라! 집이 문제가 아니고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가야 합니다. 두고 보세요. 가야 합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하겠어요.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 내에서는 국가적인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즉 도(道)적인 이동이고 면(面)적인 이동이지만 이것이 앞으로 세계적인 전통이 되어 역사적인 세계의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사탄세계의 흔적조차 보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것이라면 모두 하나님이 보기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탄을 무찔러 버리자니 무지무지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급에서 고통당한 것 이상의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고생을 할 때에 애급고역 시대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뜻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생각으로 돌이키기 위해 들이치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신도들은 세상에서 했던 것보다도 하나님의 뜻 앞에서 더 간곡하고 더 심각한 고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생이나마 하나님 것으로 돌려 달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중심 자녀들을 들이치십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복귀하기 위해 치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쓰라리고 못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나는 모릅니다.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난 지 두 달도 못 된 성진(聖進)이를 그냥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처자를 내버리고 가는 그 사내 녀석이 사람입니까?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성진이는 천지에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 얼마나 처량해요? 그러나 가는 겁니다. 사망의 땅을 박차고 하늘이 바라는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겁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국경선을 넘어서 가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출발한 것이 이 길입니다, 이 길! 선생님은 이렇게 환경적인 모든 시련을 겪었습니다.

역사적인 기반이 되었던 모든 것이 전부 십자가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돈을 탐하지 않고, 명예에 굴복하지 않고, 내 위신과 처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나안을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이념에만 사무쳐 있습니다.

책임 못하면 후손들로부터 참소받는다

축복받을 수 있는 민족, 축복받을 수 있는 땅이 어디뇨? 그것을 찾아 헤매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감옥도 가는 것이요, 처참한 길도 가고, 죽음의 길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원수의 땅은 망망대해입니다. 바라보면 하늘밖에 없습니다. 친구도 없고 동기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부모까지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쓰러졌던 역사적인 길, 노아가 탄식하며 고생했던 길,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면서까지 하늘을 위하여 갔던 역사적인 비참한 길을 왜 내가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가는 것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앞으로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니면 이 세계를 책임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모험의 길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대이동을 해야 합니다. 몇년 후에는 세계의 통일교회 사람들을 데려다가 한국 땅에서 결혼식을 할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결혼시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세계 방방곡곡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고, 또 우리만이 그런 것을 할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명령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한 길을 안 가면 수많은 후손들 앞에 참소를 받게 됩니다. 수많은 후손들이 왜 복귀하지 못했느냐고 참소합니다.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이 길을 안 가면 후손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그런 한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때가 필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던 애급 땅, 애급의 혈족이 지긋지긋하다는 겁니다. 원수의 땅에서 웃고 잘 먹는 것보다도 축복받은 땅에서 땀을 흘리면서 노동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의 땅에서 잘 먹는 것보다도 못 먹고 고생하더라도 축복받은 땅에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호화찬란한 원수의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축복받은 땅 길가에서 객사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 무덤 그 자리에 흔적이라도 남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민족 관념이나 전통 관념 등을 전부 떼어 버릴 수 있는 신념의 왕자들만 모인 곳이 통일교회요, 통일이념입니다. 그렇게 할 결의가 다 돼 있습니까?

땅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행하여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뭐합니까? 하늘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신앙인이면 응당히 해야 됩니다. 깨깨(충분히 또는 심히) 행해야 합니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정도 안 하고 권고도 안 하는 겁니다. 권고도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겁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중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엄청난 사명과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 안 해도 다 잘 알고 있지요? 알아요, 몰라요? 알지요?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요? 이왕지사 가려면 한창 때에 가야 해요. 늙으면 못 갑니다. 내 나이 40이 되니까 20대와는 달라요. 많이 달라졌습니다. 꽃다운 청춘시대에 하늘이 고대하던 인연을 중심삼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제 나이 40이 넘고 보니까 한이 맺힌 게 많아요.

나 대신 민족을 사랑하라

여러분들이 지금까지는 가정을 섬기고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뜻 앞에 ‘아버지여! 나는 자식 사랑하던 이상 아버지 앞에 충성을 했고, 남편 섬기는 이상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일을 했고, 내 몸 생각하는 이상 했습니다. 그런 조건을 걸어 놓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조건 앞에는 나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여러분이 가는 길이 평탄하게 됩니다. 저나라에 가도 갈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만 못해서 지금까지 허덕여 나온 줄 알아요? 여러분보다 수완이 없어서 이러구 있는 줄 알아요?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갈 길이 이 길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걸어야 할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고생을 더 많이 해서라도 후대 사람들의 갈 길을 개척해 줘야 할 책임과 사명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잘 모르겠만 여기 식구들은 다 알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신세를 지고 있고, 여러분은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신세를 갚아야 됩니다. 신세를 갚으려면 선생님한테 갚지 말고 민족 앞에, 세계 인류 앞에, 하나님한테 갚아야 합니다. 선생님한테 갚는 것을 선생님은 원치 않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여러분들이 선생님께 집을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집은 무슨 집? 집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이 있거든 민족을 위해 일하십시오. 집은 열심히 일해 가지고 거지한테나 사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을 지고 있으면 빚을 갚아야 합니다. 내게 갚지 말고 인류와 하나님한테 갚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하늘땅, 민족과 인류를 다 사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관입니다.

여러분은 빚을 갚아야 합니다. 갚는 데는 언제 갚아야 되느냐? 지금부터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을 수 있는 존재를 세워 놓아야 이 세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전부 망하는 겁니다. 이 박사도 자기만 위하다가 망했습니다. 망한 거예요. 선생님 생각해 준다고 뭐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돈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을 닦아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도 해야 할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고, 여러분에게도 해야 할 각자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7년 대환난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갈 길입니다. 그 길은 아득한 천리 길입니다. ‘아득한 천리 길 고향은 먼데….’ 이런 노래도 있지만 그거 다 실감이 나는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하나님에게 황공한 생각이 듭니다. 이 못난 것을 붙들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시고 그래도 믿어 줘야 하는 하늘의 사정이 얼마나 슬프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해요. 하나님 앞에 뜻을 대신 하겠다고 나선 여러분들이지만 나 같은 것을 믿고 이런 사명을 맡기신 하늘이 얼마나 안타까우시며, 사명을 다하라고 권고하시는 선생님의 사정이 얼마나 처량하시겠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알고 남아진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금년에는 어디 갈지도 모릅니다. 사실 지금 미국으로부터 초청장이 와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미국 갈 수 있는 패스포트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도 아직까지 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못 갔겠어요? 여러분 때문입니다. 그거 다 알고 있지요? 내가 떠나면 여러분들은 불쌍해집니다. 이 땅에서 해야 할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3년 기간을 걸어 놓고 결사적으로 해 나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다 졸면서 나왔지요?

하늘이 절대적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여러분들은 이제 알 만큼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인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주인을 찾기를 고대하고 계시니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닦든가 여러분이 주인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을 다하길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그런 책임 하겠지요? 믿어요, 믿지 말아요? 예? 결론을 지읍시다. 믿어 주기를 바랍니까, 믿지 말기를 바랍니까? 대답해요! 예? 이상헌 씨! 「믿어 주기를 바랍니다.」믿어 주기를 바라요? 선생님이 믿어 주다가 얼마나 배척받은 줄 알아요? 지긋지긋해요. 선생님이 믿어 주는 것은 여러분이 믿어 주는 것과 다릅니다. 한번 믿어 주면 요동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한번 약속하면 요동이 없습니다. 내 가정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믿고 약속한 것은 어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믿어 준다고 하지만 난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지내온 결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싸구려입니다, 싸구려!

선생님이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못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서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렸을 겁니다. 선생님은 일생 동안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못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이제 앞으로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큰 일을 하기 위해 감옥까지도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철창에 들어가 10년 20년 있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통일교회는 부흥되게 돼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것입니다. 감옥이 무슨 문제입니까? 감옥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파리가 제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나님도 무심해라. 약속은 그렇게 하시고 큰 소망을 주시더니 감옥이 다 뭐야?’ 하고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고 절망하자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도 약속과 더불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망한다고 해서 자기 전체를 팔아 버리는 사람은 인간이 아닙니다. 망하더라도 약속했으면 고이 망하라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저나라에 가서 귀한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꿈에라도 ‘아, 아버지 이제는 못 가겠습니다.’ 하고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처리해 나왔습니다. 얼마든지 복귀해 나왔습니다. 효원 씨도 잘 알지만 말입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구나.’ 하고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입술이,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각오하고 나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믿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제부터 그런 신념을 갖겠으니 믿어 달라고 하는 겁니까? 여러분은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하늘 앞에 충과 효를 세우는 사람이 되라

이제는 나도 40이 넘었습니다. 내가 요즘 ‘이 손을 보면서 이 손이 참 많이 고생했다. 그런데 이 손이 곧 물이 되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해골이 되어 누울 때가 되면 몇 푼짜리나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이 나이가 점점 많아지니 갈 길이 바쁩니다. 내 갈 준비가 바쁩니다.

종교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생활 속에서 시간 시간 처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명을 책임진 입장에서 나오다가 최종적인 결론에 이를 때 어떻게 남아질 것인가? 천상 장부에 무엇으로 남아질 것이냐? 상이냐 중이냐 혹은 하냐…. 나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늘 앞에 무슨 말을 할 것이냐? 그런 일이 곧 닥칠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생각 하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도 지금보다 더 철저한 법도에 의해서 하늘을 모셨습니다. 그렇게 개척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제단입니다. 여기는 여러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무가치한 곳이 아닙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단단히 정신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선생님이 믿어 주기를 바라니 믿어 주겠습니다. 1963년은 이제 지나가고 1964년으로 넘어가는 입장에서 여러분을 다시 믿어 주겠습니다. 믿어 줄까요? 대답이 왜 시원치 않아요? 믿어 줄 테니 여러분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발바닥이 전부 다 벗겨졌겠어요, 안 벗겨졌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습니까? 선생님도 짐을 많이 져 봤습니다. 지금도 그거 잘 합니다. 그럴 때에 내가 그것을 생각 안 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어떠했는지 말입니다. 몸이 지칩니다. 지치고 지치게 될 때에 하늘의 심정이 녹아드는 겁니다. 하늘의 심정이 녹아들어요. 남들 다 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이 울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을 붙들고 울어야 하고 남이 한탄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늘의 한을 붙들고 한탄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과 효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기 도>

아버님! 한 많았던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하니, 부족한 이 모습, 아버지! 보잘것없는 모습을 놓고 염려하고 계시고, 이 모습을 세워 놓고 약속해 주셨던 때와 시기를 그대로 이루어 주기만을 고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될 때 황공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어떠한 환난이 있고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감사하며 하늘을 위하고 싶사옵니다.

이러한 간곡한 마음을 나에게 두지 마시옵고, 사망의 길에서 허덕이며 나를 따르고 통일의 이념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에게 상속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이들이 싸움터에서 승리의 기준을 얻지 못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이들을 다시 한번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민족이 사망의 최정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실상을 바라볼 때 저희들은 눈물 흘리지 않고는 바라볼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였사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늘의 섭리의 한 때를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면서도 스스로 준비하지 못하고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황공하옵나이다.

하늘은 완전한 자를 세우시어서 완전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 같고 부족한 자, 부끄러운 자를 세우시어서 지혜롭고 당당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섭리가 종말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아오니, 이들 앞에 당신의 긍휼의 심정과 사랑의 심정을 가하시어서 이들이 가는 길에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가는 길에 눈물을 더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가는 길에 당신의 사랑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남아진 역사의 도상에서 탄식과 더불어 사라지는 민족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과 더불어 호소하여 아버지의 섭리에 발판이 되고 민족이 바라볼 수 있는 용맹의 깃발을 골고다 산정에 달 수 있는 당당한 생명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복귀의 사명이 지중한 것을 알았사옵고, 세계적인 사명이 저희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길을 가야 할 저희의 발걸음이 바쁘고, 저희 마음 또한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를 따르고 있는 이 무리들, 마음이 변하지 말게 하시옵고 눈물로써 호소하며 생활적인 모든 고통을 해결해 나갈 수 있고 참다운 주인의 사명을 완결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그러한 사명을 못할진대 주인을 모시고 부축하며 갈 수 있는 재료라도 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용사들과 세계 각지에서 눈물을 흘리며 본부를 그리워하고 보잘것없는 스승을 그리워하고 있는 통일의 용사들이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의 마음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충성하는 것이 있으면 당신이 그 이상 갚아 주시옵고, 당신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옵고, 당신이 직접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내 마음을 아시오니 지도하여 주시옵고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모의 심정의 인연을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무리 참다운 가정을 잃어버린 불쌍한 무리가 된 이 세계 인류를 당신이 풀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복지를 건설하는 데에 재료가 되고 승리의 기반이 될 수 있게 저희들을 특별히 세워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말미암아 한 많고 슬픔 많은 역사를 청산 짓고 아버지의 안식의 터전과 복지를 마련하고 하늘과 땅에 자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앞에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섭리의 뜻 앞에 온 세계의 인류가 화동해야 할 것을 아오니, 그 때까지 역사해 주시옵고, 그때까지 지쳐 쓰러지거나 하늘 앞에 배반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승리를 계획하시는 아버님 뜻 앞에 만만사의 영광만이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 저녁에 말씀을 들었사오니 섭리의 뜻 앞에 주인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제1지구장, 제2지구장, 제3지구장, 지구장들 있지요? 여기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광복절을 중심으로 약 40일 간 부흥회를 개최하도록 하세요. 알겠지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40일 기간을 특별히 명령하니만큼, 여러분들은 서울을 위주로 하여 활동하세요. 이제는 기관장들을 전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재료와 내용이 갖추어졌습니다. 이제는 가정복귀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친지를 구하고 가정을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종족복귀시대라는 것을 알지요? 그러니만큼 가정을 위하여 전도하고 친지를 위하여 전도해야 합니다. 8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40일 기간을 설정했으니만큼, 이번 기간에는 있는 힘을 다해서 새로운 결의로, 그동안 선생님을 따라오던 신앙을 총결실한다는 각오 밑에서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만물복귀의 기반을 닦아야 할 4년 기간

앞으로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금년에 전국에서 모인 지구장들한테 선생님이 지시하기를, 앞으로는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까지 수습할 수 있는 방침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 보내는 것도 아무나 내보내지 말고 통일교회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현재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봉사단의 이름으로 지구면 지구, 지역이면 지역, 교회면 교회를 중심삼고 만물복귀의 기반을 닦기 위해 4년 동안 헌신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만물복귀의 기반은 닦아야 합니다. 이 4년 동안 한국 사회의 어떤 사업단체에게도 지지 않을 경제 기반을 우리가 닦아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는 못 벌더라도 하루에 얼마씩 전부 동원해서 벌어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전도를 못 하겠거든 장사를 하든가 품팔이를 하든가 해서 만물복귀의 책임을 하도록 하세요.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무책임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모두 자기 정도에 따라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원래는 이 기간이 예수님의 피와 참부모의 피의 값을 갚는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선생님은 지금 할 말을 다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는 돈을 무시했습니다. 굶고 살고, 헐벗고 살고, 곯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럴 때가 왔단 말입니다. 남들이 양단치마 저고리 입으면 우리는 그 이상이 되어야 되겠다 말입니다. 그러려면 그들에게 지지 말아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내적 심정의 기반을 닦고 인격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처참한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 4년이 지난 후에는 지금까지 고생한 축복가정을 중심삼은 식구들에게 남들처럼 살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책임을 느낍니다. 언제나 고생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을 다한 후에는 갈 길을 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모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면 자기 가정을 위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공동보조를 취해야 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뜻을 같이하는 가정이거든 그것을 전부 선생님에게 드려 놓고 선생님으로부터 생활비를 타서 써야 하겠습니다. 한달에 생활비를 많이 쓰던 사람들은 그 기준을 내리고, 부족한 사람들은 땀 흘리며 노동을 하든 뭘 하든 그 기준에 올라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여자들 때문에 욕을 많이 먹습니다. 뭐 그렇다고 처음 온 여자들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은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구나.’ 하고 겁낼지 모르지만, 사실 선생님을 욕먹게 한 여자들이 많았어요. 선생님은 여자들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선생님이 지도하는 대로 따르면

이제는 자기 아들딸을 먹여 살리던 정성으로 하늘의 아들딸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못 갑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했잖아요? 아들딸을 전부 다 버리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수고했단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누가 말을 못 할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아주머니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 놀음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끌어다 고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하면 틀림없어요. 그렇게 해봐서 망하면 선생님한테 와서 멱살을 잡고 ‘야! 이 녀석아!’ 하면서 갖은 모욕을 주더라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못하고 책임을 못한 사람에게는 내가 갖은 모욕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무슨 모욕을 주더라도 항의하지 못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다 공갈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 처음 온 사람들은 선생님이 공갈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공갈협박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 그 사실은 시간이 없어서 다 설명할 수는 없으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꿈에라도 공갈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있어요? 항의할 무엇이 있어요?

선생님이 지도하는 대로 그저 못난이가 돼 가지고 몇 해만 지내보세요. 약속해 보란 말입니다. 그때 가서 여러분들이 장사하고 품팔이한 것이 얼마나 빛나는가. 여러분이 3년 동안 장사해서 통일교회 하나를 샀습니다. 그렇지요? 그 돈으로 통일교회를 샀단 말입니다. 세상이 다 팔아먹고 세상이 다 발길로 차버렸던 것을 선생님과 여러분이 3년 동안 수고해서 나라를 대표해서 설 수 있는 통일교회를 샀다 이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나라를 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어떤 사람은 ‘문 선생이 무슨 야망이 있어서 정당 조직을 해 가지고 대통령을 하려고 꿈꾸는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대통령 같은 거 꿈에도 생각 안 합니다. 시시하게 대통령을 해 먹어요? 케네디 대통령도 우습게 알고 있는데. 난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하려는 것은 내용이 다릅니다. 그건 여러분이 잘 알겠지만 마음과 심정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을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다니는 부인한테 남편이 ‘야, 이 간나야. 통일교회에 가지 말아라.’ 해도 ‘아니야. 갈거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렇게 배운 것입니다. 원리를 통해서 배웠다 그 말이에요. 내가 안 가르쳐 주니 영계에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런 남편들이 ‘통일교회 망해라. 망해라. 망해라….’ 하고 수없이 저주했으나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하는 것도 별의별 요지경입니다. 선생님은 반대 받으면서 별의별 구경 다 했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안 망하는 겁니다. 세계 30억 인류가 야밤중에 봉화불을 들고 ‘통일교회 망해라. 망해라’ 해도 안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통일교회 홍보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40살이 넘었지만 청년들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힘을 내서 남아진 싸움터를 향해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선생님 것을 전부 여러분에게 맡길 테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이건 고마우신 말입니다. 또 사실이 그렇습니다.

통일교회만 갖고 있는 특권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서 하늘의 위신을 세우고, 자기 아들딸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안 했어요?「했습니다.」했어요, 안 했어요?「했습니다.」했어요, 안 했어요?「했습니다.」약속했으니까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여 목적을 이뤄야 합니다. 상투를 튼 남자들은 끄덩이를 붙들고, 저 김 장로같이 잡을 데가 없는 대머리는 목이라도 잡고 끌고와야 합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 잘 들으시라고요. 일본에 있는 식구들은 지금 선생님 특명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합니다. 일본 식구들은 선생님이 특명을 내려서 이런 일을 해라 하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 한국 사람에게 시집올래?’ 하면 ‘예.’ 하고 백이면 백이 승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식구도 그렇단 말입니다. ‘너 한국 남자 중에 노동하는 사람한테 시집올래?’ 하면 ‘예.’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싫든 좋든 ‘예.’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싫지만 만나 보면 싫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태평양 건너에 남편을 놓고 태평양 이쪽에 부인을 놓아 가지고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념입니다. 하나는 일본 동경에서 하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념입니다. 얼마나 멋져요? 얼마나 멋져. 나도 그렇게 한번 결혼해 봤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에게 ‘야, 넌 나보다 훌륭하다. 네 남편이 나보다 낫다. 내가 못하는 걸 했으니, 바다 건너에 남편을 두고 결혼을 했으니 나보다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보지도 않고 사진만 보고 결혼을 했으니 그 얼마나 멋있어요? 언제 한번 만나 보기를 했나, 눈 한번 맞춰 보기를 했나, 말 한번 나눠 보기를 했나. 그저 사진만 보고서도 남편으로 모실 수 있는 그 마음, 얼마나 부자입니까? 얼마나 부자예요? 한국 남자들 전부 다 싫다 하고 사진으로만 본 일본 남자를 찾아가니 그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냐 말입니다. 얼마나 사랑했다고 사진을 보고 결혼하느냐 말입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부부입니다.

이럴 수 있는 일을 통일교회 선생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못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120쌍을 시민회관에 모아 가지고 결혼시킬 때도 그 부모들한테 ‘당신의 아들딸 결혼시켜 주겠소.’ 하는 공문을 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들딸을 합동결혼시켜 줄테니 제발 승낙해 주십시오.’ 하고 머리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남의 아들딸을 데려다가 마음대로 결혼시켰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만나 봤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이걸 볼 때에, 생각 있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느 단체, 어느 국가의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나라 대통령이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건 통일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의 부모들은 지금도 선생님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겁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할 때 그런 무례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들딸을 데려다가 부모의 승낙 없이 마음대로 결혼시켰으니 말이에요. 축복받은 사람들의 부모들이 선생님에게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사할 사이가 없어요. 바쁘니까 인사는 못하고 식장에서 선생님 얼굴만 보고, ‘아,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 선생이로구나.’ 하는 것으로 만사 오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으니 다 된 거지 뭡니까?

앞으로 미국 대통령의 아들도 우리 교회에 들어오면 그 대통령을 제쳐 놓고 선생님이 마음대로 결혼시켜 줄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아들이 선생님의 뜻대로 하게 되면 그 대통령도 하객이 되어서 찾아와야지 별수 있나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멋진 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생각하면 신나지 않습니까? 세상은 잠자고 있지만 이 세상을 깨우쳐서 역사를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이제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서서 주례하는 것이 예가 되어 가지고 앞으로는 주례를 그런 식으로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렇게 하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인도해야 할 우리

이번 합동결혼식은 굉장했습니다. 택시 150대가 달리니까 ‘이게 다 어디서 생긴 거야?’ 하고 놀랐습니다. 세상에서의 결혼식은 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아장아장 걷는 것처럼 처량합니다. 그 얼마나 처량해 보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것보다도 서울 장안이 뒤집어지고 삼천리반도가 흔들흔들하는 자리에서 올리는 호화찬란한 결혼식이 남자든 여자든 한번쯤 해 볼만 한 결혼 아닙니까?

앞으로 세상이 우리를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보자 이겁니다. 두고 보자! 명년쯤에는 외국 사람들도 데려다가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 대사도 오고, 독일 대사도 와야지 별 수 있습니까? 대통령도 축하하게 돼 있어요. 두고 보세요. 이러한 멋진 일을 우리가 하려니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 선생님이 일본 동경에서 살 때 ‘일본 녀석들 몇십 년 후에 두고 보자.’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놈들도 어디 두고 보자 이거야. 이들이 나에게 ‘어이구! 잘한다. 잘한다.’ 했습니다. 이건 아주 극적입니다. 연예인 같이 실감이 나요. 그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 통일교인은 여유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먹을 쌀이 없어서 죽겠다고 야단들인데 우리 통일교인들은 ‘아이구, 죽는다.’ 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라곤 물밖에 없는데도 그 물만 꿀꺽꿀꺽 삼키고선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만물을 통하는 통과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게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안 굶어 죽습니다. 없으면 바다에 나가 고기라도 잡아먹는 것입니다. 없으면 산에 가서 멧돼지 새끼라도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고기를 잡고 사냥을 가는 것입니다. 없으면 풀이라도 뜯어먹는 거예요. 왜 죽습니까? 멧돼지도 굶어 죽지 않고 바다의 고기도 굶어 죽지 않는데 왜 죽어요? 다 살게 마련이고 사는 것이 철칙인데 죽기는 왜 죽어요? 우리는 그러한 무대를 헤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어려운 때에 여러분에게 ‘전도 나가라.’ 해 놓고도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오고 나서 하라는데, 여러분이 안 할 수 있습니까? 안 하면 때려서라도 내몰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세상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을 등쳐먹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지요? 통일교 문 선생은 수단이 좋아서 무엇이 어떻고 저떻고 한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멋진 놀음을 하자는 것을 알고 이제 멋지게 서울 장안을 한번 쭉 돌아야 되겠습니다. 처음엔 좀 어렵겠지만 그것이 시일이 지나면 힘이 가중되는 대로 움직여 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힘을 조금 가하고 또 조금 힘을 가하다 보면 틀림없이 움직여 나가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이번 40일 동안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합니다. 치마가 걸리적거려 힘들면 원피스를 입어도 괜찮습니다. 세상에서는 원피스 입지 말라는 얘기도 있지만 우리 전도 대원은 그런 데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그것도 정 걸리적거리면 팬티만 입고 돌아다녀도 좋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괜찮아요. 그렇게 해서라도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면 말입니다.

한 4,5년 전에 야목에 가서 수련회를 할 때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전부 팬티만 입히고서 그물을 메고 고기를 잡게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세상 사람들이 쌍간나라고 욕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쌍간나인가 두고 보자’ 하면서 잘 교육시켜 놓았더니 나중엔 전부 다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들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단 말입니다. 선생님이 하자면 다 하게 되어 있지요? 하게 돼 있어요, 안 하게 돼 있어요? 「하게 돼 있습니다.」

야유회는 서로 주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하라

다음 주일날에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선물을 준다니까 좋지요? 오늘이 며칠인가? 11일이라구? 그러면 다음 주일은 18일이겠구먼. 그날은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야외에 데리고 나가려고 합니다. 한번 가 봐요?「예.」원래는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해 잔치를 벌일 생각을 해야 됩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돈을 내서 선생님에게 잔치를 해줘야 하는 겁니다. 내가 여러분 같았으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겁니다. 이 사람들 머리가 왜…. 그렇다고 내가 섭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에 올 때는 과자 한 봉지라도 사 가지고 와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야 되겠습니다. 맛이 있는 것이 정 없으면 맹물이라도 정성껏 담아 가지고 오란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다음 주일날 어디로 모이는가 하면 태릉에서 모입니다. 거기서 노래하고 춤이라도 추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벌거벗고 춤춘다고 소문났으니 벌거벗지는 말고. 벌거벗고 춤춰서 하나님 뜻이 이루어진다면야 그까짓 거 몇백 명 벌거벗고 춤추는 것 못 해요? 이 나라가 살 수 있다면 하겠단 말입니다. 세계가 살 수 있다면 벌거벗고 춤추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한 것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억제하고 세계에서 잘 먹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입장에 들어가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까?

원하지 않으면 다음에 선생님이 고기잡이 배 들어왔다가 나갈 때 같이 나가서 어부가 되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나가서 선장에게 코치를 하고 왔습니다. 우리 배가 서해에서 제일 빠릅니다. 내가 알기에는 지금 고기를 못 잡아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집을 파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그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위신이 있는 겁니다. 일년에 몇 십만 원이 손해 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고기 못 잡아서 일년에 몇십만 원 손해나면 나가 자빠지지 별 수 있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몇 십만 원 손해나도 통일교회의 배는 절대 스톱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작전대로만 하면 많이 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 녀석들은…. 같은 시간 일을 한다고 해도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작전을 잘 세우면 많이 잡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기잡이에서도 일등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 이것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음 주에 야유회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바다에 나가야 되겠습니다. 원해요 안 원해요? 여러분이 꼭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싫습니다. 그날 올 때에는 특기를 하나씩 준비해 가지고 오십시오. 알았어요? 먹을 것을 준비해 오든가 아니면 자기의 재간을 준비해 오든가 하십시오. 알았어요? 그러면 그렇게 결정합니다. 그날은 한번 놀아 봅시다. 작년엔 야유회도 못 가봤는데, 이번에 한 번 가봅시다. 그렇게 알고 연락들 하세요.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겠어요. 지금부터 한 일주일 동안 우리 식구들은 정성의 손길로 서로 주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합시다. 그렇다고 없는 것을 강제로 해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야외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 주로 부인들이 먹을 것을 싸옵니다. 남자들은 건달꾼들입니다. 먹을 때는 남자들이 더 많이 먹어요. 입이 더 크고 배도 더 크거든요. 그래서 되겠어요? 이번엔 남자들이 싸와야 되겠습니다. 요즈음 시대는 남자복귀시대입니다. 한동안은 여자 복귀시대였지만 이제는 남자복귀시대이니까 남자들이 체면을 세워야 됩니다. 여자들한테 신세지지 말란 말입니다. 그래서 나도 준비해 가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 마음 알겠어요? 정 없으면 잉어라도 몇 마리 잡아 가지고 와요.

그렇게 알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남 못지 않게 재미있게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처음에는 삼각산으로 사냥을 많이 다녔지요? 명년쯤에는 사냥 다니는 것 전부 다 집어치우고 고기잡이 배가 나갈 때 여러분을 데리고 나가서 전부 어부로 만들어 놓겠어요. 여기 대학교 나온 학사님들이나 여학생들도 데려다가 팔다리가 시퍼렇게 타게 만들어 주고, 얼굴도 거무튀튀하게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도 좋은 겁니다. 등산 가고 싶어요? 어쨌든 멋지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멋지게.

그렇기 때문에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책임자들은 이제 남은 40일간을 작전을 잘 세워야 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전도활동하러 나왔으니 교회가 비었겠지요? 이제부터 여러분은 물러나고 새 사람을 전도해서 그 사람들로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해서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그렇게 알고, 마지막으로 힘차게 노래하고 마칩시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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