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인 오늘은 지난 저녁에 언급했던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누가 예수한테 그의 아버지에 관해서 물어 본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예수의 아버지였어요? 그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배경에 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많은 어려움을 당한 예수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와 같은 구절이 그것입니다. 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하는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예수가 지상에서 완수하지 못하고 남긴 어떤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추측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당신의 모친이 밖에 와 있다고 했을 때,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그에게 협조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래서 그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초막절 축제가 열리고 있는 동안 예수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과 이웃 사람들이 그의 사명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을 가졌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의 형제들도 그를 의심했습니다. 또한, 예수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여인이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이 있는 것을 보아서, 성경에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 봅시다. 지난 밤에 드린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가 탄생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 기대를 조성하는 사명을 수행했던 사람들 모두 예수가 올 때까지 그토록 힘들게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후에 세워진 기대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또는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기를 원하셨겠어요? 예수 이전에 그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에 왔습니다. 그들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감수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가 또다시 고통받기를 원하셨겠어요? 수천년 동안 하나님은 예수를 위한 기대를 준비해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민족으로 하여금 예수를 박해하고 반대해서 결국 십자가에 매달게까지 하기를 바라셨겠어요? 만일 예수님을 위해 좋은 환경이 준비 되었더라면, 예수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받들고 섬겼더라면,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그때부터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왕이 그를 죽이려고 했었고, 그래서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예수가 30세가 될 때까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생애 3년노정에서도 유대교와 친척들과 모든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어려운 상황을 그가 겪어야 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를 편들어 주었던 사람, 그의 편에 섰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약혼관계에 있던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보내신 이유

요셉 가정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셉은, 어제 밤에 말씀드린 대로, 천사장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타락 전의 아담과 해와는 남매관계, 혹은 약혼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있을 때 천사장이 먼저 해와를 취해갔기 때문에, 예수 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그것을 거꾸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하나님편이 타락 전 해와의 입장에 선 한 개인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리아로 하여금 임신하게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경우에 필요한 인물로 선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셉 이라고 한 번 상상해 봐요. 마리아는 여러분의 약혼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깜쪽같이 속이고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겠어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화가 난다구요! 여자인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요셉은 어땠겠어요? 요셉이 그 소식을 듣고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괴로워했겠어요?

그런 경우에, 어떤 남자도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요셉이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식구 있으면 손들어 봐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 봐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그런 배경과 더불어 보내신 이유가 무엇이었겠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환경 가운데 메시아를 보내신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속에서 자기의 아내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도록 천사를 보냈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녀에 대해 친절해야 했고, 해산 후에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누구나 잊어버릴 수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꿈속에서 들었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실천에 옮겼던 요셉은 확실히 올바른 사람, 의인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마리아를 맞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맞아들이고 나서 기뻐했겠어요? 아닙니다. 매우 기분 나빴고, 마음 내키지 않았어요. 요셉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부정한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율법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임신한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꿈속에서 들었지만, 믿을 수 있었겠어요?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마리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온 동네에 소문을 내면서 받아들였겠어요? 그랬을것 같아요? 선생님은, 요셉이 비밀리에, 그리고 마지못해서 그녀를 데려 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셉에게 어떤 형제나 부모, 또는 친척들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얘기해 주지 않습니다. 요셉의 가정적인 배경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요셉의 가족들이 마리아와 요셉을 찬성했더라면, 그들에 관한 기록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마리아나 요셉이 조부모라든가 아저씨들, 또는 다른 어떤 친척들에 대해서 예수에게 들려 주는 어떤 얘기나 경우도 보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와야 했을 때, 그의 친척이 있었더라도 그의 부모와 그 문제를 의논할 수 있었겠어요? 그럴 수 있었겠어요?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 볼 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아직 약혼 단계에 있을 동안에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엄한 모세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데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더군다나 결혼전에 임신까지 했는데….

그가 비밀리에 그녀를 데리고 왔다 할지라도,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들은 한 방에서 같이 살았을 거예요. 소문과 험담은 금방 번집니다. 특히 친척집 아이들이 끼어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요셉은 그의 심정 가장 밑바닥에서 마리아를 임신시킨 남자가 누구일까 하고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는 이리저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의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에 관해서 아내에게 물어 본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매우 마음이 넓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남편을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마리아라도, '그럼요! 내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겠어요? 또 마리아가 그렇게 대답했더라도 그가 그것을 믿을 수 있었겠어요?

요셉과 마리아의 갈등 속에서 어렵게 성장한 예수

자, 선생님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 대부분이 기독교가정 출신이고, 지금까지 믿음의 생활을 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믿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말을 믿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만일 마리아가 그런 식으로 대답했었다면 요셉은 엄청난 화를 냈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그와 똑같은 말을 꿈속에서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마리아가 그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대답했다면, 요셉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화를 내고 분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마리아의 얘기는 남편인 자기를 속이고 사실을 감추는 것이라고 짐작하거나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요셉의 얼굴 표정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행복한 표정이었겠어요? 분개한 표정이었겠어요, 화난표정이었겠어요?

이때부터 둘 사이에 다툼이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와 같은 질문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런 질문에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트러블(trouble)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번만 일어나고 말았겠어요, 아니면 그때부터 계속해서 일어났겠어요? 당연히 그들간의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들 주위에는 주시하는 눈과 의심하는 귀와 손가락질이 있었습니다. 온 마을에 소문이 안 퍼졌을 것 같아요? 그 부부가 다투는 소리를 엿듣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은 그 소문을 퍼뜨렸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외로운 처지였겠어요?

이제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는 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때는 그녀가 해산할 무렵이었습니다. 만일 주위 환경이 출산을 준비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더라면, 그녀는 출산할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아기를 위해서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아기를 강보에 싸 가지고 말구유에 눕혔습니다. 만일 예수에게 마리아와 요셉과 하나된 육신의 친척이 있었더라면, 그들이 마리아가 미리 출산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지 않았겠어요? 그런 모든 것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마리아가 외롭고 외로운 처지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태어난 후에 곧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이 아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동방에서 별을 보고 인도된 세 박사가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또한 아기에게 경배하러 온 목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요셉을 위로하였고, 그가 달리 생각을 하도록 했습니다. 분만 후에 그들이 애급으로 피난가야 했을 때, 거기에 또 길을 인도하기 위해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또한 그들이 돌아갈 길도 지시하여 주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예수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린 아이였지만 그들 사이에 얽힌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셉과 예수 사이에는 혈통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완전히 남남이었습니다. 마리아 쪽에서는, 그녀가 아들을 위해 옷과 같은 그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그런 날에는 요셉의 기분이 어떤지 그 눈치부터 살펴야 했습니다.

예수는 부모가 자신 때문에 내적인 갈등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수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많은 이혼가정들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그들의 진짜 부모가 아닌 의붓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 그 의붓 자녀들은 자주 그들의 의붓 부모에 대한 어떤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이 그러한데, 2천년 전 그 당시에는 얼마나 더 심했겠어요? 그때 그는 옷을 입든지, 먹거나 잠을 자든지 할 때에도 부모의 눈치를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12살 때에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었다는 성경구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갔었습니다. 축제가 끝난 다음에 부모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3일 후에야 아이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그를 찾으려고 되돌아갔습니다.

그것는 단순한 하나의 기록에 지나지 않지만, 그 배후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율법사들과 성경구절을 놓고 토론할 정도로 현명하고 영리한 소년이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작 12살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를 데리고 오려고 찾지 않았겠어요? 그런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역시 요셉과 마리아도 그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에 관해서 마음을 쓰지 않았고 말도 안 했습니다. 마리아도, 비록 마음은 몹시 아팠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야 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녀는 돌아와서 3일 동안의 괴로운 날을 보냈습니다. 3일후 요셉은 그 아이에 대해 너무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예를 많이 열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홀로 자기의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불행한 생활을 했다

그러한 것을 마음속에 감추고, 이 아이는 성년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형제들이 왔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예수를 중심하여 어떤 알려지지 않은, 얽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제들조차도 예수가 하고 있던 일을 신뢰하거나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요셉뿐만 아니라 모든 예수의 친척들도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내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목수인 아버지의 조수로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앞으로 큰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때로 예수는 어머니에게 '나는 왜 이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되나요? 누가 내 아버지예요? 어머니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예요?'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결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자간에는 일종의 감정적인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예수는 결국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어떤 것들에 관해 가르침 받았음에 틀림없지만 스스로 자기가 다른 소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명을 행함에 있어서, 그는 준비 기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즉, 그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런 기반이 없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는 항상 자기의 부모, 형제, 그리고 친척들이 자기의 사명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를 도울 수 없었다면, 다른 누가 도우려고 했겠어요?

예수는 중심 인물, 하나님이 4천년 동안을 준비하신 끝에 보내신 거룩한 사명을 지닌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를 영접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가정에 바로 천국을 세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하늘 가정의 천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의 가정이 그 법 아래 서야 했습니다.

그 천법에 따라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요셉은 예수를 사랑하고 섬겨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의 부모와 형제 자매들까지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느누구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해야 했고, 예수가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그를 받들고 도와야 했습니다. 예수는 하늘 왕국의 왕자였습니다. 그는 지상의 보통 왕자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 즉 하나님의 유일한 왕자였습니다. 그는 이 사명을 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가정은 그의 법을, 천법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그가 자기들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그 아이를 섬김으로써 전통을 세우고 그 본보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 하고, 그를 위해 그 무엇을 해주는 데 있어서 그들은 매우 진실하고 충실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다른 자녀들도 예수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와 같지 않았고, 오히려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가정에서 자기의 사명과 하늘나라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환경 가운데서, 그는 서른 살이 되기까지 홀로 자기의 사명을 위해서 준비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가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어머니한테는 자기의 사명에 관해서 몇 번 얘기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하였고, 모자간의 사이가 다소 가까왔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사명을 알고 자기에게 협력할 수 있는 협조자를 찾았습니다. 그가 어머니한테도 말 안 하려고 했겠어요? 주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사명을 털어놓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어요?

그는 적어도 자기의 어머니만은 자기에게 순종하고 협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요셉보다도 다른 형제들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어머니가 다른 어느누구보다도 더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편이 자기를 그만큼 사랑할 수 있게 만들고 형제 자매들이 자기를 사랑하도록 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인으로, 사랑의 왕자로, 그리고 사랑의 중심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어느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그리고 친척들과 이웃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어느누구로부터도 그런 사랑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편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부모를 부모의 유일한 본보기로서 사랑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보다도 더 자기의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슬퍼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예수의 마음이 슬펐겠어요!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사랑의 중심으로 왔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그러한 가정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는 그때 서른 살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적당한 신부를 구해 주지 못한 마리아

예수의 부모는 예수의 결혼에 대해서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 마음이 곱고, 순수한 혈통을 지녔고, 가문이 좋은 집안의 신부를 구해 주는 것에 관해서 예수와 의논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에서 그의 신부를 구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기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마리아에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야 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요셉이 천사장의 입장에 있고 마리아가 해와의 입장에 있는 것을 자각했다면, 요셉이 예수를 낳은 후에 마리아를 취했겠으며 부부로서 살았겠어요? 그들은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 그것을 어머니한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마리아가 그 사명을 완수할 것을 각오했더라면, 그녀는 아들과 함께, 비록 그들이 집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주의깊게 생각해 본다면, 여러분은 마리아가 그녀의 사명을 정확하게 수행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신부는, 마리아말고는 아무도 선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나 세상 이치로 보나 그녀가 예수에게 가장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가 예수의 탄생시부터 사명을 완수하도록 협조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에게 마리아는 중요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신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겠어요? 그들은 어느 가정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적당한 여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태어난, 특정한 가정, 그리고 특정한 배경을 가진 여자가 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의 신부는 친척들 중에서 선택되어야 한다는, 같은 혈통이어야 한다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책임 다하지 못한 친척들

그런데 우리는 요셉이 의로운 혈통 출신이라고 봅니다만, 다른 누구를 더 들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을 들 수 있습니다. 가정적으로, 한 가정은 가인의 자리에 있었고, 다른 한 가정은 아벨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가리아의 부인인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들의 두 아이들 세례 요한과 예수에 관해서 서로 의논을 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같은 것들을 서로 얘기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두 아이 모두에게 관심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자매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세례 요한은 사촌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범상치 않은 아이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도 아주 신기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가리아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사가리아가 지성소에서 제물을 드리고 있었을 때,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아이가 태어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미 늙었는데도…. 그래서 그가 그 말을 믿지 않자 그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난 후에, 그가 주의 천사에게서 들은 그대로 그 아이의 이름을 가르쳐 준 후에야 말하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도 또한 똑같은 경로로,그와 같은 이상한 방법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둘은 서로 사촌간이 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오직 한 번밖에 엘리사벳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또다른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만일 그들이 가까운 자매였다면, 그들은 여러 가지 의논을 하려고 서로 왔다갔다하였을 것입니다. 사가리아와 엘리사벳도 성스러운 아기인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네 사람들의 쑥덕공론 때문에 마리아가 자주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을 더 이상 방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둘, 즉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하나가 되어서 예수의 사명에 관해서 서로 오가며 상의할 수 있었더라면, 일은 매우 쉬워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온 세례 요한을 놓고 볼 때, 만일 그가 참으로 주 예수를 증거할 수 있었더라면, 그를 높이 받들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를 더욱 쉽게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두 어머니도 하나가 되었더라면, 일은 훨씬 쉽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명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은 엘리사벳의 무지 때문

세례 요한은 영계가 역사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진짜로 주님 또는 구세주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30년 동안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바쳐 주를 위한 길을 준비해 나오면서, 그는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듯 주는 굉장해 보이는 사람이요, 외적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사람은 실제의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야 했고, 훨씬 숭고해야 했고, 훨씬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촌이 주가 되고, 세계의 구세주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여러 면에서 요한과 비교도 안 됐습니다. 세례 요한은 믿음의 길을 걸었고, 높은 교육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많은 놀라운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수의 조수인 예수에게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미국에서는 목수가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예수가 세례를 받으려고 세례 요한에게 왔을 때, 세례 요한은 영적으로 감동되어서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 위에 내리는 것을 보고, '이는 내가 기뻐하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달랐습니다. 성령이 자기에게서 가버리고 나자, 그것은 꿈만 같았습니다. 여기에 영적으로 계시받는 식구가 있으면, 여러분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가 올 때까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증거한 후에는 기쁘게 자기의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를 따라야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증거하고 난 후에, 무엇이 요한이 예수를 따르지 못하게 했겠어요? 거기에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서자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사촌으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 사이에는 어떤 감정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고등 교육을 받아 존경을 받았고, 위대한 예언자로 인정받았는데, 예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무식하고, 충분히 교육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여러분은 그런 모든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 있을 때, 예수에게 제자를 보내어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는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실족한 세례 요한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마 11:7-8)'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세례 요한이 나를 주로 증거하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벌써 잊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예수를 증거하고 난 후에 바로 그를 따랐더라면, 그는 수제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제자의 영예는 베드로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인생 마지막 순간에 세례 요한이 비참해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혔고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대신하여 목이 잘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것이 예수가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한 까닭입니다. 과거의 성인들과 예언자들은 주를 오직 먼 거리에서 증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직접적으로 육신을 쓰고 그를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모든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어떤 영인도 예수를 주로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 사명을 위해서 준비되었던 세례 요한이었으나, 주를 따르지 않았고, 주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를 가장 작은 자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장과 그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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