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아버지, 당신의 인연을 따라 형제들이 모인 곳에는 당신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자녀들이 당신의 사랑의 상징이요, 당신의 승리의 상징이요, 당신의 영광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인연이라는 것은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영원히 남아지는 것이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요, 끊을 수 없는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 인연의 주추가 되는 것은 사랑이옵고, 그 사랑은 당신과 자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 홀로는 사랑의 인연을 세울 수 없는 것이요, 자녀들도 홀로는 사랑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바라는 소원의 실체로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녀의 몸으로서 아버지를 대하고 모인 이 자리가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인연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자의 인연이라는 이 관계는 무한한 자랑의 관계요, 이 관계로 말미암아 횡적 세계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관계는 세상의 어떠한 관계보다도 가까운 관계요 큰 관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인연을 따른 관계야말로, 자랑할 일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 이상 자랑할 일이 없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 이상 기뻐할 일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자기가 있어서 기쁜 것보다도 부모가 있어서 기쁜 것이요, 자기가 잘나서 좋아하는 것보다도 부모가 보아 줄 수 있기에 좋아하는 것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으로 말미암아, 자식은 부모로 말미암아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 보다 높은 이상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이상,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이상은 진정한 사랑으로 엮어진 어버이와 자식 간의 도리에서만 빚어지는 것임을 아옵니다.

여기는 숭고한 미를 갖추어야 할 자리요, 그 자리가 보기에는 무미건조한 자리 같으나 깊은 마음의 흐름이 엇갈리는 인연을 서로서로 드러내고자 하는 터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터전이오나 세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연이요, 하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연이요, 절대자의 권한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리인 것을 아옵니다. 그 자리는 사랑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고, 사랑만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고, 사랑만을 가지고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기에 부모의 사랑이 고귀한 것이요,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 고귀한 것임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하늘 높이 계시는 아버님이여! 지극히 천한 자리에 있는 만민을 자녀로 삼으려 하시는 아버지의 소심(素心)을 더듬어 봅니다. 당신이 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랑을 그 누구로 말미암아 시작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 당신이 잊을 수 없는 아들로 말미암아 시작하실 것이고 딸로 말미암아 시작하실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역사시대를 통하여 바라보게 될 때, 당신은 순결하고 고귀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자체의 모든 것을 잊어 가면서 사랑하고 싶었던 진정한 아들딸, 뼛골이 우러나오고 심정이 녹아 흐르는 당신의 전체 가치의 인연을 대신한 그리움의 아들딸. 당신의 즐거움으로 상징할 수 있는 중심 적인 아들딸,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말하면서도 영원히 말하고 싶고 함께 있어도 영원히 데리고 있고 싶은 당신의 고귀한 아들딸, 천지에 무한한 것보다도 제한된 하나의 몸으로 나타나는, 대중보다도 고독한 한 몸으로 나타나는, 전체의 모습을 대신하지 못하더라도 한 존재로 나타나는 진정한 아들딸을 아버지께서는 바라셨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 번 회고해 볼 때, 당신은 그리움에 사무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품고 사랑하는 입장에 서기를 얼마나 바라셨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지 못하셨다면, 아버지께서 심정과 사랑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서글픔을 느껴야 되고 누구보다도 서운함을 느껴야 되고 누구보다도 애달픔을 느껴야 될 분이 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역사시대에 있어서 저희의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저희들은 여실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그런 소원을 갖고 찾아오신 아버지의 마음 앞에 저희의 조상은 원치도 않았던 타락의 길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음성으로 부르는 당신 앞에 얼굴을 나타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 되고,인자하신 당신의 말씀이 그렇게도 무섭고 당신을 대하기가 그렇게도 초조한 자리에 선 저희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타락의 그 원한의 한 시간, 한날이 얼마나 엄청나게 지긋지긋하고 싫은 시간이었고 날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도 꿈에도 원치 않으셨고 아들도 원치 않았던 타락의 결과의 사연들을 가져 온 그날인 것을 저희들은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욕을 몸에 지니고 고독한 추방의 행로를 더듬기를 수천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철의 때가 변함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에 앞서 자기의 부족함을 책임지고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인연을 구하여야 할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자기 자신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느끼옵니다. 나를 찾아 달라고 당신 앞에 호소하는 아들딸들이 있거들랑, 그들이 호소하기 전에 당신 앞에 대면할 수 없는 역사적 인연을 저희들이 대신하여 속죄하고 따라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뜻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30억 인류가 있는 이 땅 위에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성상을 그리워하면서, 당신이 기쁘지 않을 요인을 이 세상에서 제거시키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하늘의 족속이 얼마나 되느냐를 생각해 볼 때에, 진정한 의미의 아들이요 진정한 의미의 딸이 있느냐를 생각해 볼 때에, 여기 부복한 저희 인간의 살림살이가 어떻고, 저희의 마음을 중심삼은 생애의 노정을 더듬고 있는 저희 자체들이 어떻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에, 완전한 참의 기준을 바라시는 당신은 과연 불쌍한 아버지인 것을 만사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고, 그러한 처지에 저희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원통한 것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의 이 손이, 이 사지백체가 혹은 저희의 감각과 감정 전체가 아버지와 인연되어 있는 것이 아니옵고, 원수 사탄과 인연되어, 아버지 앞에 슬픔의 노정을 가중시킨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그러한 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 아버지 앞에 앞모습, 뒷모습도 보이기에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저희들은 하늘의 종보다도 더 낮은 자리로 하늘나라에서 추방을 받아 가지고 하늘나라에 있어서 영어의 몸이 되어 수의를 입고 천년 한을 품고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당신의 후대하신 덕을 바라는 입장에 서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옵니다. 아버지, 그러나 철창을 넘고 넘어 더듬는 본성의 인연의 길은 당신이 존재하는 이상 없어질 수 없는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탕자의 인연의 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 고독할 때는 부모를 찾는 것이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처량할 때는 부모와의 사연이, 부모의 품이 그리운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아옵니다. 저희는 아무리 천지가 넓다 하여도 자기가 설 수 있는 한치의 땅이 없는 것을 느끼고, 바라 보이는 만상이 아름다울수록 그 미물을 대하여 부끄러운 자신임을 자각하고, 인간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많은 인간들이 자신보다 높고 훌륭한 것을 느끼는 고독한 자리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흐르고 있는 본성의 마음은 본연의 하늘 부모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 사무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런 자리에서 허덕였던 과거의 수많은 종교인들도 있었을 줄 알고 있사옵고, 참을 추구하는 무리들도 많이 있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진정 자기를 놓고 그와 같이 생각해 주고 그와 같은 인연을 지니고 배후에서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당신이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아버지, 그러나 통일가의 저희만은, 통일교회 식구라는 이름을 가진 저희만은 이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실만은 알고 있사옵니다.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위해 일신의 고통과 더불어 사망선상에서 투쟁 해야 하는 기로에 서 가지고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순간을 놓고 참된 생명의 승리의 길을 다짐하는 무리가 있고, 참된 생명을 찾고 있는 무리가 있더라도, 승리한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 자신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이 자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때, 너무나 무력한 인간이요 주체의 자리에서 전체를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인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길은 골짜기에 떨어져서 높은 산정을 바라보면서 한과 더불어 그 산정을 향해 올라가야 할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한다면, 올라가야 할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비참한 운명인 것을 깨닫고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서 바랄 것은 자기의 힘만이 아니라, 다른 힘의 주체가 있거든 그 힘의 주체를 바라야 되겠습니다. 소원하고 바라야 할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그 자리를 대신해서 나타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는...정상을 바라보면서 그 과정에 있는 모든 험산 준령을 넘고 계곡을 건널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출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정상을 제패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그 길을 찾는 데 있어서 길이 없을 때에도 당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앞에 보이는 험산 준령을 넘겠다는 신념보다도 더 강한 신념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하늘을 붙들 수 없는 인생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부모를 불러 보고,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형제를 불러 보고,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친척을 불러 보고, 사랑 하는 남편을 불러 보고, 사랑하는 주권자를 불러 보고, 사랑하는 세계의 책임자를 불러 볼 수 있는 자신들이 되지 못한다면 당신이 저희들을 찾아올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어린 자녀들이 모인 이 자리가 고요하고 깊은 밤을 지나 새로운 인연을 빚어낼 수 있는 창조의 아침을 맞는 자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사옵니까? 여기에 새로운 힘의 움직임이 있거들랑 당신으로 말미암은 힘이요, 새로운 인연이 태동하걸랑 당신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는 태동의 기점인 줄 알고, 그 기점에 나 자신이 휘감기고 나 자신이 움직여질 수 있고 나 자신이 상대적 실체가 될 수 있다 할진대는 그 얼마나 얼마나 복되고 그 얼마나 바라던 자리인가를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당신 앞에 천년사의 한을 품고 부끄러움을 가릴 길이 없어 회개의 심정을 더듬으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마음으로 천번 만번 외다가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라는 말을 하고 나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어떤 때는 당신이 분부하시던 그 말씀이 기억되옵니다. 외로운 아들을 찾아오는 부모는 더 외롭다는 것. 아버지, 옳습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독자를 잃어버린 부모는 자기가 땅 위에서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추앙하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의 위신과 체면은 생각지 않고 자식을 찾기 위해서 눈물짓고 몸부림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자식을 잃어버리는 부모는 일시에 아들딸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소원하던 전체를 일시에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천년 만년의 한과 더불어, 억천만세를 수난길과 더불어 죽음의 장벽에 부대끼고 홀로 해결할 수 없는 역사의 복귀의 길을 앞에 놓고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기준 앞에, 아버지의 소원 앞에 칠흑 같은 흑암이 가리워졌다면 그 이상의 캄캄함이 없었을 것이고, 절벽이 가리워졌다면 그 이상의 절벽이 없었을 아버지의 그 사정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지, 이러한 몸을 이끌고 그래도 현재의 입장에서 살기를 바라고, 현재의 입장에서 가증된 행복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이 사망길을 다짐하고 있는 인생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그런 길을 피해 가지고 당신의 품과 당신의 사랑의 동산이 그리워서 홀연히 찾아 나온 고독한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외적으로 단장하기 전에 내적으로 단장해야 되겠사옵니다. 내적으로 단장하는 데는 기쁨과 더불어 단장할 수 없는 인연을 가진 타락의 후손이오니 눈물과 더불어 단장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을 슬프게 하였고 당신을 몰아댄 역사적인 사연들을 중심삼고 무한한 눈물의 인생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인연이 억울한 인연이요, 비참한 인생길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지, 이러한 개인을 수습하기 위해서 6천년이 걸렸다 할진대, 가정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를 하셨사옵니까? 그 가정들을 규합하여 이상적인 종족을 찾으려는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초조하였사옵니까?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긴박감에 사로잡혔사옵니까? 원수로부터 조롱을 받고. 원수의 무리 앞에 참소의 인연을 남기면서 가셔야 할 당신의 입장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그리워하시는 그 나라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당신이 주관하실 수 있는 주권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아버지, 선의 주권을 위하여 저희들은 악의 주권을 타도하는 방망이가 되어야 되겠고, 총탄이 되어야 되겠고. 포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포탄은 그 존재 자체를 가지고서는 일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거리를 측정해 가지고 가야 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제자리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생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비약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부딪혀서 자기 존재를 상실하는 데에서 포탄은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오늘날 저희는 빠르고 빠른 포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이 함정, 이 계곡에서 일시에 산정을 넘을 수 있는 포가 있기를 바라는데, 그런 포가 있으면 얼마나 고맙겠사옵니까? 일시에 산을 넘어서 원수의 본영을 폭파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할진대는, 타락한 인간으로서 소원이 있다면 그 이상의 소원은 없는 것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살고자 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하였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였사옵니다. 옳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던 추한 모습을 폭파시켜야 되겠고, 자폭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저희의 인생행로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깨닫고, 추한 몸을 가다듬고 옷깃을 여며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은사가 있다면 그 자리는 필생을 다하여 감사드려야 할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오늘까지 당신이 수난길을 걸어 이 자리를 찾아 나오신 역사적 사연 사연이 얼마나 괴로왔사옵니까? 그 역사적 인연은 오늘 이 순간과, 저희가 당면한 이 자리에 연결되어 있사옵니다. 이제 당신과 저, 저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맞는 이순간이라는 것은 저희들만의 순간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연이어 나온 6천년의 역사적 인연을 계승하는 순간이요, 더 나아가서는 역사적 슬픔의 결정적인 결실을 다짐하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심정을 갖고, 저희의 마음속에 저희 자체가 결실되어 있는 구성된 소성 혹은 질 가운데에 있어서 당신이 전폭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을 갈래갈래 찢고 뽑아 버리고 싶은 불타는 마음이 폭발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당신은 저희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때가 가까왔나니 지금이 그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렇게 절박한 자리에서 이 시간이 그때요, 이 시간이 승패의 결정적 찬스라는 것을 저희 생애에서 얼마나 느껴 보았느냐고 묻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런 것을 생각도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자를 벌할 줄 모르시는 아버지의 인연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뜻길은 자녀를 찾기 위한 길이요, 자녀를 만나기 위한 길이었사옵고, 그 길은 슬픔의 길이었다는 결론이 지어집니다.

아버지, 이제 당신이 여기에 찾아오시겠사옵니까? 당신이 이 자리에 찾아오셨사옵니까? 오셨거든, 당신이 필시 이러셔야만 되는 것이옵니까? 아들딸이 못났으면 부모도 못난 부모의 행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니옵니까? 못난 자식 앞에 나타나는 부모에게 '아버지여, 여기에 오시면 안 됩니다, 이 자리에 오셔서는 안 됩니다' 하고 오는 길을 막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효의 심정을 지닌 자식된 도리를 잃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는 '아버지여 오시옵소서. 아버지여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하기에는 너무나 먼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 수치스러운 인연과 환경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아버지는 얼마나 얼마나 몸부림치셨사옵니까?

천지의 권한을 가진 대주재이신 당신이 어쩌다가 오늘 이렇게 슬픔의 입장에 떨어졌으며, 만물만상의 소원이요 생명의 기원이신 당신이 어쩌다가 이런 입장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하늘의 주인 되시는 아버님은 목을 놓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비참한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제가 이 자리에 섰사오니, 당신의 마음에 슬픔이 있거들랑 제 가슴이 젖도록 당신의 슬픔을 체휼시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픔이 있거들랑 당신의 아픔을 체휼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나온 모습이옵니다. 그간 얼마나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었는지...

통일가가 더듬어 온 노정 가운데에는 이 민족과 더불어 인류와 더불어 남긴 수욕의 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제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을 사랑할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당신을 가리켜 이러한 분이라고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통일가를 붙들고 지금까지 나왔사옵니다.

아버지, 영광의 한날을 그리면서 저 자신을 내세워 가지고 자랑하고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한 그날부터, 당신의 슬픈 길을 알고 그 슬픈 길을 대신해 가야 할 것을 안 그 시간부터, 당신의 자리가 고독한 자리인 것을 생각하고 헤아릴 수 있었던 그때부터, 당신이 죽음길에서 엇바뀌는 죽음을 대신해 나오는 사랑의 본체인 것을 안 그때부터 당신의 뒤를 어떻게 바로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저의 고민이었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이 사회 앞에 통일교회가 남긴 것이 무엇이오며, 저희의 마음에 가진 예물이 무엇이옵니까? 자랑할 수 있는 예물로서 이 터전 위에서 받았노라고, 생명을 에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잊을 수 없는 만민 앞에 남겨 주고 이 민족 앞에 남겨 주고 우리 후손 앞에 남겨 줘야할 예물이라고 하면서, 이것만은 내가 죽더라도 남겨 주고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책임을 다짐하는 무리가 없어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뜻을 위한다고 하였던 과거지사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뜻을 따라 나오는 저희의 입장이 얼마나 체면 없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1971년 12월 5일, 1971년의 마지막 달에 첫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외로운 딸들이 혹은 아들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모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모이는 목적이 자기들을 위해서라면, 자기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모이는 무리가 되면 망하고 마는 것이옵니다. 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당신을 위하여 모여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느끼는 모든 감각, 모든 인식이 당신에게 귀의하고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느끼는 것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오늘 모인 저희들에게 있어서 정상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 오니, 부디 이날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대한민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불쌍한 이 민족,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지 않으면 안 될 인연을 갖고 있는 철부지한 이 민족을 지키시옵소서. 그 가운데 더 불쌍한 무리는 여기에 모인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이들의 피와 살을 아버지 앞에 바칠 뿐만이 아니라 이 민족 앞에 바쳐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민(聖民)이 되지 못한 미흡한 무리들인 것을 아오니, 아버지여, 이들을 키워 주시옵소서. 당분간 아버지께서 이들을 맡아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축복가정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운데 뜻을 따라 이어 받은 어린 생명들이 많이 자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고생하고 그들이 안된 입장에 선 것은 이 민족을 위한 것이고 세계를 위한 것이오니, 아버지여, 그들을 지키시옵소서. 당신이 자랑하실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어린 아들딸이 자라길,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생활권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본부를 지키시옵소서. 제가 길을 떠나면 영계도 그 길을 같이 가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대한민국 전체의 중심적 사명을 다하여야 할 이 자리가 쓸쓸해서는 안 되겠사오니, 이때만은 통일의 역군들이 정성을 가중시켜 가지고 손에 손을 붙잡고 만나 인연된 고귀한 한때를 상실해 버리는 불쌍한 무리들이 절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합니다.

당신이 통일가를 사랑하시는 것은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이요, 아들딸들이 당신의 뜻을 자랑하는 것은 뜻을 따라가고자 하는 소망의 대상이 있기 때문인 것을 아오니, 부디 부디 이들을 당신이 맡으시옵소서. 원수들 앞에 몰리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원수들 앞에 선 저희 들은 정성을 들여 당신을 편삼아 가지고 악을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요건을 언제나 제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또 이것이 절대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요인이요, 당신을 여기에 우거하시게 할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하루가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달의 남아진 날들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2년을 저희들이 3년노정의 한계점으로 하고 있사오니, 삼팔선으로 갈라져 있는 이 원한의 터전을 당신의 주관권내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아버지의 영광이 온 천하에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저희들이 하늘 정병의 모습을 갖추어 치열한 전쟁마당을 향하여 용진할 수 있는 용사들이 될 수 있도록 안팎으로 격려하고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뜻하신 대로 이루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불쌍한 사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 등 여러 가지의 군상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개인이 있고 그러한 가정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동네가 그러하고 어떠한 지방이 그러한 것을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 망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흥하는 나라가 있는 것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또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 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웃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울고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환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슬픔의 생활을 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고독한 환경을 그리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홀로 있기를 바라지 않고 전체와 더불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기쁨을 찾고 있는 것이요, 영광의 자리를 찾아 나감과 동시에 뭇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기를 바라고 나가는 것을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나 우리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도 잘 아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사람이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는 제일 기반인 가정도 그러한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단체도 그러한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도 슬픔의 자리를 피해 영광스러운 자리를 추구하고자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세계 자체도 그런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보다도 더 높고 더 큰 어떤 것이, 이 지구성이 작다면 이 지구성보다 큰 것이 있고 거기에 사람과 같은 어떤 존재가 있다 할진대는, 그 존재도 역시 지구성에서 바라는 인간과 마찬가지의 욕망의 길을 더듬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누구든지 그렇다고 긍정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어떠한 중심 존재가 계실진대는 그분도 역시 슬픈 날을 맞아 지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분도 역시 승리와 영광이 깃든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치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자리는 위험과 더불어 고독과 더불어 슬픔과 더불어 짝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반대의 자리에서 전체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추구하신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도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유롭고 평화가 깃들고 만유의 존재가 그 사랑을 영광과 더불어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의 길을 찾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애를 미루어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유스러운 환경, 평화스러운 천국의 본원지에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되 어떠한 사랑을 하려고 할 것이냐? 최고의 사랑을 하고 싶을 것이 아니냐, 그 최고의 사랑.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 할진대는 하늘땅이 그 사랑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하고 싶을 것이 아니겠어요?

사랑의 주체자의 입장

그러한 자리에서 그러한 개인을 찾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또, 그러한 개인은 어떠한 개인일 것이냐? 이것을 우리가 은은한 가운데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사랑하고 나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에게 영광이 있으면 이것을 개인의 영광으로 끝 맺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발전적이요 보다 고차적인 영광으로 연속시키고 싶은 소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고 다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기뻐했다면, 그 기쁨은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을 높이고 환경을 넓혀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모색할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그 가정을 대해 사랑하는 데 있어서 개인보다도 못한 사랑은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정에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 개인 개인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한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던 그 이상의 깊은 사랑을 개인 개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 사랑의 주체자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을 통해서도 예상할 수 있는 바로서, 하나님도 그런 입장에 섰다 할진대 첫번 사람을 사랑하던 절대적인 사랑을 전체 앞에 절대화시킬 수 있는 그 사랑을 추구하시는 것입니다. 옛날과 다른 차원의 것, 옛날보다 차원이 더 높은 자리의 것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아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를 사랑했다 하면 그 아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에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사랑을 플라스시켜 가지고 자식이면 자식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낮을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아내와 더불어 느꼈던 그 사랑을 빼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느꼈던 사랑의 자극적인 본질을 그대로 가지고 거기에 사랑을 더 가중시켜 새로운 면의 사랑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리는 대상적인 입장에 선 아내를 사랑하던 진지한 입장보다 못한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의 욕망이 있다 할진대는, 더 진지한 자리에서, 더 깊은 자리에서 보다 가치적인 사랑의 내용을 추구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다짐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사랑하다가 두 사람을 더 사랑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의 인연을 빼 버리고 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을 사랑한 인연을 기반으로 해서 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세 사람을 사랑하던 사랑의 인연을 빼 버리고 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을 사랑하던 마음을 총합한 기반 위에서 네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합해 가지고 열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이 불행한 것이냐?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통스러운 자리이며,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 없는 자리일 것이냐? 만일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누구든지 하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보다도 열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서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을 통해서 볼 때 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있으면 이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내 가정을 이렇게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랑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이 진짜 종족을 사랑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을 통해서 체휼된 사랑의 모든 요인들을 빼 버리고가 아니라, 그것을 근거로 해서 종족을 사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종족을 사랑했다면 민족을 사랑하게 될 때에도, 종족을 사랑한 요인들을 빼 버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민족의 사랑의 크기만큼 더 플러스시켜 가지고 사랑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족과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나라요 천지 가운데 영원히 남아야 할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알고 사랑했다 할진대는, 세계를 사랑한 때도 국가를 사랑한 터전을 빼놓고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욕망

국가를 사랑한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이하의 사랑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싶다 할진 대는, 그것은 사랑의 법도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한 국가면 국가를 대해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를 사랑하려고 할진대는, 국가를 사랑하던 경험과 체휼적인 모든 요인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그 이상의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사랑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은 나라보다도 세계를 찾기를 바라고 세계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러면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간이 그 하나님을 사랑 하는 데 있어서 세계를 사랑하던 것을 떼어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세계를 사랑하던 것을 누룩으로, 터전으로 하여, 세계를 사랑하던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주체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자리를 찾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세계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실 것이냐, 그렇지 않은 자리를 찾으실 것이냐?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세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욕망이 처하는 최후의 종착점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큰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많이 길러 낸 사람은 악한 원수를 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건 왜? 그만큼 무엇인지 모르지만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의 주체자입니다.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사랑한 것을 다 빼놓고 하나님과 나만이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실 것이냐? 나 하나만을 중심삼고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냐? 하나님이 부모라면, 공평한 마음을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사랑을 분배시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부모의 입장이 아니겠어요?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를 빼놓고 나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사랑을 받겠다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사랑을 받자 하는 것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관념을 떠나 가지고 세계와 더불어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만을 사랑해 주소' 하고 나만이 사랑을 받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그것은 다 이방 사람이 구하는 것이다. 먼저 너희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먼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라는 것은 우리 개인이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가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나라에 대한 욕망이요, 그의 나라에 의를 세우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그 욕망을 충족시킨 터전 위에서 사랑을 성립시켜야 기쁨이 있는 것인데. 욕망을 다 빼 버리고 소원을 다 빼 버리고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혼자 살고자 하는 것은, 자기 혼자 잘되고자 하는 것은, 잘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상을 갖고 가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잘되었더라도 저들로 말미암아 내가 잘되었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는 저들과 더불어 망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과 더불어 흥하기를 바라 가지고 내가 흥했다 할 때는, 망하게 되더라도 저들이 망하기 전에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저들과 더불어 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은 없어진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저들과 더불어 남아 있는 한, 내가 저들과 더불어 같이 있게 된다면 나는 망하지 않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위주한 생활을 표방해 가지고 인륜도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공사(公私)라는 말을 하게 될 때에, 공(公)을 먼저 말하지 사(私)를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사공(私公)이라고 하지 않는 다구요. 부(副)가 정(正)일 수는 없다는 거예요. 공(公)이라는 것은 전체를 위하여, 그대들을 위하여 상대권을 인정하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대권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는 사(私)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상대권은 공(公)이 처하는 곳입니다. 공(公)이 처하는 곳에는 '그대들' 이 있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소원하는 것은 개인적인 소원이 아니라 전체적인 소원인 것입니다. 전체의 소원을 중심삼고 기뻐하는 자리는 개인의 슬픔을 가지고 좌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잔치가 벌어졌다면. 그 잔치를 중심삼고 환경이 전부 다 기쁨으로 싸여 있는데, 그 가운데 개인의 슬픔이 있다 하여 '나 슬프다' 하며 아무리 야단을 쳐도 그것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쁜 날을 맞이했거든 전체 사람들의 기쁨에 맞추어 움직여 가지고 자극을 줄 수 있는 주체적 자리에 서게 될 때에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자리에서 그 기쁨을 삭감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고취시키고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영속적인 주체성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공적인 분이십니다.

지혜로운 사람

그러면 여기에 '승패와 현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이냐? 앞에서와 같은 견해로 보게 될 때, 자기를 위주한 승(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개인을 위주하여 승리를 다짐한다는 것은 개인 자체의 울타리권내에서는, 자기 휘하에서는 필요 할는지 모르지만 전체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앞날을 헤아려 가는 것입니다.

앞날이라는 것은 어떤 날이냐? 앞날이라는 것은 희망이 깃들어 있는 날입니다. 희망이 깃들어 있는 데는 개인적인 희망이 아니라 전체적인 희망이 깃들어 있는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가진 사람은 지혜로운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생활이란 뭐냐? 현재에 살고 있지만 현재의 승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승리를 어떻게든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현재의 환경에서 제한된 개체를 중심삼은 승리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더불어 인연된 승리권을 요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승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공적이라는 것은 전체화하는 것입니다. 전체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라는 것은 사(私)적인 기준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공(公)적인 기준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善)이라는 것은 전체를 상대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를 상대하는 자리에서 주고받아야 되기 때문에, 열 사람을 대하는 입장에 있으면 내가 열 사람의 대역을 해야 됩니다. 열 사람의 상대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백 사람을 공적인 대상으로 가졌으면 백 사람의 대역을 해야 됩니다. 백 사람 앞에 상대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

하나의 국가면 국가, 국민이면 국민,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공적인 무대 앞에서 '나는 공적으로 살겠다. 애국애족하겠다. 나라를 사랑하겠다' 하고 살게 될 때는 대한민국 전체와 더불어 방향이 일치되는 것입니다.'너는 너고 나는 나가 아니라, 너는 나요 나는 너다' 하는 심정적 마음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성립되는 데에서만이 그야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인연이 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를 표방하고 나설 때에 이 승리는 내 개인의 승리다 하면... 개인이 승리했으면 개인만 좋아하는 거지요, 뭐. 개인이 바라던 목적을 중심삼고 좋아하는 것은 극히 일방적인 것입니다. 360도 쭉-확대시켜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극히 제한된 권내의 승리입니다. 그 승리로는 360도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360도 같은 도수,자 기를 중심삼은 좌우의 도수권을 넘어설 수 없는 승리입니다.

하나는 둘을 이를 수 있는 단위가 되기 때문에 하나는 둘과 접할 수 있습니다. 둘은 셋을 이를 수 있는 단위가 되기 때문에 셋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승리는 이런 입장의 단위가 아니라 제한된 단위입니다. '나'만을 중심삼은 단위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나'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인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관리하지 않고 전체 앞에 나누어 주게 되면 개인적으로 승리한 것을 공적화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희생하는 길입니다. 희생하는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는 길은 또 하나의 승리의 비결을 현실 무대에 연결시킬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혜로운 주체자이기 때문에 도(道)의 세계를 치리하시면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거 일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 것을 내 것으로 존중하는 것보다 그렇게 존중하는 내 것을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그런 희생을 해야 된다구요. 공(公)이 되려면 사(私)적 기준을 중심삼고는 안 되기 때문에, 희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공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길은 희생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만일, 무슨 도고 뭐고 그런 것은 모르지만, 나라를 위해서 정성 들이고 온갖 희생을 하면서 내가 기쁘기 전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기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삼천만 국민이 웃기 전에는 내가 웃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일생 동안 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의 얼굴은 웃어 본 적이 없다구요. 보기 싫고 추악하고 일그러져 있어요. 얼굴을 찡그리고 살았다구요. 찡그린 얼굴 가운데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냐? 아무리 추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의 전국민이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다가 얼굴이 찡그러졌다면, 그 얼굴은 보기 싫게 되어 있을수록 대한민국의 국민이 좋아할 수 있는 얼굴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타난 그 모습이 흉하면 흉할수록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흉하면 흉할수록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비참할수록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는 거예요.

사지(四肢)가 있는 건강한 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다리가 없고 팔이 없고 눈도 없는 병신이 되어 가지고, 전체로 볼 때 사람의 형상을 갖출 수 없는 입장이 되어 가지고 나라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된 모든 동기가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 모습이 비참한 절정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대한민국의 애국정신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모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은 희생을 각오하고 나서는 길입니다. 그것이 정당한 길인 것입니다.

승리의 길은, 승리를 다짐하고 나서는 데 있어서는 수단 방법을 통해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실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나서지 않고는 승리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그는 제거당할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으면 그 심각한 사람에게 계승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승리를 찬양했더라도 계승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승해 주면 슬픔에 부딪힐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것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자리의 승리를 원하느냐? 내 개인적 승리가 귀하더냐? 가정적 승리가 귀하더냐? 그것도 귀하기야 귀하지만, 그것 가지고 동네방네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네 사람들에게 혹은 동네의 가정들에게 '우리 가정의 기쁜 승리를 찬양해 주소'라고 하게 될 때, 그 승리가 동네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찬양은 커녕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정의 승리가 조금이라도 동네와 인연을 갖고 있는 승리라면, 그 동네 사람들은 '찬양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승리가 절박한 내연을 가지고 결정됐다면 상대방도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생활주변을 통해서 볼 때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승리를 표방하고 나서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공적인 입장에 서신 예수님

보라구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30여세 청년으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말했습니다. 개별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개인주의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독생자다'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이상의 개인주의자가 어디 있어. 왜 너만 독생자야. 너만?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내용의 말을 한 예수님의 입장은 인간의 입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알았고, 그 하나님이 공적인 사랑의 주체로 계심을 확실히 알았고, 그 하나님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을 찾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 아들은 이러이러한 본질과 이러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안 것을 결실하고 성사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나라를 사랑하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자기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세계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서 하나님 당신이 찾으시는 아들은 이와 같은 아들이 아니냐고...그 아들은 세계를 대표한 사랑의 하나의 표제요 하나의 표상이요 하나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상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때에 있어서 공적인 중심이요 만민이 바라는 하나의 공적인 중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느끼는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선포한 그 자리는 지극히 공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독생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독생자의 사랑의 절개를 세우기 위해 환경에 에워싸인 수난의 길도, 생명이 엇갈리는 길도 당당히 밀고 나가 그 지조를 세우기 위해 일념을 다했다는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다 공적인 입장의 자각된 자리에서 혼자 죽었지만 혼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은 그 자리가 혼자 망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늘세계로부터 인간세계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증거하는 실체로 간 자리입니다. 그러한 내연이 맺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서 나타나야 되고 인간의 사랑이 여기에서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이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하는 것이요, 인간의 사랑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결부되어 가지고 새로운 기독교를 창건하게 된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은 개인주의자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분입니다.

고차적인 소망과 고차적인 사상을 가져라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여기 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밥을 위해 사느냐, 옷을 위해 사느냐, 집을 위해 사느냐? 나는 그런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통일교회를 위해 사느냐? 통일교회를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통일교회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공적인 노정이요. 단계적인 노정입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식구들은 자기 한 개인만 사랑하는 식구를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 전체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식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시켜야 할 개인을 가정 앞에서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가정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善)이 가는 길이요, 공적인 진전 단계입니다.

선(善)은 어떻게 발전해 나가느냐? 선은 보다 개인을 사랑하는 데서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선(善)하려면, 몸을 중심삼고 몸이 하고 자대로 마음이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희생할 줄 알아야만 개인 자체가 사랑받을 수 있는 거예요. 희생이 없는 곳에는, 더구나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희생의 조건을 가중시키지 않고는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의 효자는 효자 자체로 보면 비참한 것입니다. 왜 비참한 것이냐? 먹을 것이 있어도 마음대로 못 먹는 거라구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된다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칠십 팔십이 다 되었는데, 그분들이 이 땅에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는가, 잡수시면 얼마나 잡수시겠는가, 밥상을 몇 번이나 받으시겠는가, 돌아가실 날이 나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남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래 살지 못할 부모를 자기 생애를 기울여 정성을 다해 가지고 봉양해야 됩니다.

효자는 먹을 것도 먹지 못하고 목이 메어 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다가 혼자 흐느껴 울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거라구요. 어떻게 보면 미친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먹지, 얼마나 먹고 싶은 음식이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러고 있어! 저것' 할 거라구요. 거 얼마나 비참한 것이예요? 그 울고불고 하는 꼴을 누가 좋아 하겠어요? 그렇지만 효자는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경치, 좋은 산야를 바라보게 되면 아, 우리 어버이와 더불어…. 좋은 계절이 찾아와서 그 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아, 나 혼자가 아니라 어버이와 더불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그리움으로 표상되고 눈물로 드러난 그 자리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리, 그 자체를 보게 되면 괴로운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가 불행한 자리냐 하면, 행복이 깃드는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눈물 흘리는 생활이 나쁜 생활이 아니라구요.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어도 나라와 공적인 것을 염려하면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고생하는 무리가 있다면, 보기에는 비참하겠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위로의 눈물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찬양의 송영과 노래가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희망의 천국이 선물로서 마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불쌍합니까? 불쌍한 것 같지만, 비참한 것 같지만 승리의 권한을 얻은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예수님이 생각했다는 거예요. 비록 민족의 반역자로 국민 앞에 반동분자로 몰려 가지고 규탄받는 비참한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십자가에 초라하게 사라져 가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억천만세를 중심삼고 꺾을래야 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철석같았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했다는 것은 절대적이다. 이것은 내 생명을 꺾더라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랬던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그것을 사실로 공인하셨습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공적인 길을 간 예수님을 망하게 한다면 하늘도 망하는 거예요. 뜻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참한 결과로 갔지만, 거기에서 소망이 절단된 것이 아니라 차원 높은 제 2차적인 소망의 출발기지가 그 비참한 무대로부터 싹터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하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를 위해 산다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통일교회 울타리 안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런 사람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울타리 안에서 사랑 한다고 하다가 싸움이 벌어진다면 수습방안이 없습니다. 통일교회 안에서 최고의 기준을 바라다가 싸움이 붙으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두 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힘이 2분의 1로 약화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의 목적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모인 것이라 할 때는, 싸움을 했더라도 나라를 위해 찾아가야 할 길을 또 가야 되겠기 때문에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소망을 가져라. 차원 높은 사상을 가져라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최고로 남아질 수 있는 것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최고의 희망봉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끝나고…. 그것을 최후의 이상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그것은 최후의 이상을 접할 수 있는 전단계의 이상이라구요. 그런 사상권내에 민주세계나 공산세계가 나왔더라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천주주의라는 타이틀을 가졌다는 것을 볼 때, 이 주의(主義)가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자각된 한 면을 가르쳐 주고 그것을 느낄 수 있게만 한다면, 이는 뒤넘이치더라도 발전할 것입니다.

애국자는 매를 맞으면서도 그 채찍 아래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채찍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애국 정기가 뼛골에 사무치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품고 매를 맞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망하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갖고 망할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망하는 땅 위에서 승리적 천국을 건설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상이요,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도 죽음길을 다짐하였던 선열들의 피의 역사를 엮어온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승리적 개인을 다짐하고 승리적 가정, 승리적 종족, 승리적 민족, 승리적 국가, 승리적 세계, 승리적 천국을 다짐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승리를 바라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에 한한 승리를 바라면 통일교회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위주한,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주한 세계를 꿈꾸지 않으십니다.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 다시 말하면 주체적인 통일교회를 인정하더라도 개체가 전체를 대신한 입장을 옹호할 수 있는 주체를 인정하지만, 전체를 옹호할 수 있는 개체적 환경을 공인시키지 않는 그 주체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집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배고플 때에 집에 들어가 보니까 조밥에 된장찌개밖에 못 먹고 산다고 해 가지고 '아이구, 밥이 이게 뭐야' 그럴 수 있어요? 자기 집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푼푼이 모아 아껴 놓은 돈이 있으면 꺼내다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지' 이러면 되겠어요? 집안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입니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까지도 먹지 않고 식구를 위해 나누어 주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주인이 되느냐? 나이가 어리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가, 아가' 하는 데는 그 사람만 바라기 때문이예요. '우리 집안에서 너만은, 너만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이 고대하는 것은 승리를 표방하게 될 때…. 통일교회가 오늘날 역사시대에 새로운 파문을 던진 것은 사실입니다. 새로운 문화세계, 새로운 역사적인 문화형태를 제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는 개인을 위주한 사상을 지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개인이 승리를 했다 할 때는 그 사상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한 것이냐, 종족을 위한 것이냐, 국가를 위한 것이냐, 세계를 위한 것이냐, 하늘땅을 위한 것이냐? 하늘땅을 위한 것이라 해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위하되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은 내용을 제시한 사상이라면 하늘땅이 깨지더라도 그 사상은 남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죽더라도 부모와 자식이 사랑했던 인연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순애와 누구예요? 이수일, 이수일. 그 뭐 소설의 인물이지만 말이예요. 그것이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의 민족감정에 자극적인 내용으로 남아졌느냐? 사랑이란 과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누구보다도 애달프고, 누구보다도 처량하고, 누구보다도 고독한 자리에 있는데 그것도 믿어 주지 아니할 때. 그렇게 바라던 소원을 못 이루고 갈라지는데, 그 갈라진 이유가 뭐냐? 가정 때문에 갈라졌다면 그것은 한이라구요. 자기보다 낮은 인연 때문에 갈라지면 한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라 때문에 갈라 졌다면 그건 자랑이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자기가 사랑하는 애인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을 자리에 찾아 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랑의 인연이 세계 때문에 깨져 나갔다면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최고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거 이상하지요? 그렇잖아요? 그것이 뭐 자랑이 되다니 이상하지요? 당장은 비참하지만, 역사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순수한 사랑의 길은, 세계를 위해 슬픔의 골짝길을 다짐하면서 나누는 석별의 정이라구요. 그것은 생활의 교훈으로 남아지고 세계 역사에 있어서 자랑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쳐야 새로운 차원의 승리가 결정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에 하나님까지도 얼굴을 돌리시어 캄캄한 어둠이 세 시간 동안 천지를 뒤덮었지만, 그 자리에서 결해지는 사랑의 인연이 비참하였더냐? 아니라구요. 사실 사랑하는 독자가 죽는 자리를 눈을 뜨고 바라보는 부모는 없는 것이 아니예요? 안 그래요? 자식이 죽기 전에 눈을 감고 통곡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죽는 데도 부모를 위해서, 부모의 소원을 위해 죽는다면 그 부모는 눈을 감았다가 뜨고 나서는 바라던 소망의 세계를 붙들고 눈물을 퍼부을 것이 아니냐. 소망의 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사랑을 갖고 죽은 아들의 시체를 사랑해 줄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 설 때는 죽어서도 미래의 사랑의 눈물과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그렇게 죽음길을 간 사람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 중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극히 비참하고 지극히 심각한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차원 높은 인연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참하였지만, 하나님은 비참한 눈물을 억제하시며 새로운 사랑의 흐름을 딴 방향에서 인연지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세 시간 동안 캄캄한 어둠이 접해졌지만, 그것이 걷히는 시간에 새로운 부활의 천국이 개문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 통일교회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가라구요. 통일교회보다 더 크고 더 높은 것을 위해 죽겠다고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삼천만 국민을 교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의 주권을 완성할 때까지 우리는 가야 되는 것이요,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의 길에 역사시대의 어떠한 치열한 전투보다도 더 치열하고 더 고독한 길이 가중되더라도 가야 되는 것이요, 죽음이 엇갈리는 길이더라도 가야 되는 것이라고 하며 생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나서서 죽었다 하는 날에는,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차원의 승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한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진짜 충신은 생명을 바치고 난후에, 진짜 효자는 생명을 바치고 난 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기 전에는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천년 세월을 다해서, 혹은 자기 생애를 다해서 효도하다가 그냥 죽은 사람하고 일년 동안 효성을 다하다가 생명을 바쳐 죽은 사람하고 누가 더 효자예요? 천년 살다 그냥 죽은 사람보다 일년이지만 생명을 바쳐 효성을 다한 사람이 효자라는 것입니다. 그거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죽음길로 내몰아라' 하는 거예요. 그거 사랑의 말이예요, 저주의 말이예요? 무슨 말이예요? '죽음길로 내몰아라! 황천길로 들이 몰아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도 역설적인 교훈이 많이 있어요. 역리적인 교훈이 많다는 거예요. 사리에 맞지 않아요. 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어요? 보라구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고 했는데, 그의 나라가 어디 있어요? 없다구요. 예수 나라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허황된 말 같다구요. 이루지 못할 소망은 허황된 거라구요. 그렇지요? 소망에는 언제나 허황이 몇 퍼센트 개재되어 싸고 도는 거예요. 허황된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소화시켜 가지고 실현시키게 될 때는, 현실화시키게 될 때는 그만큼 승리의 비율, 가치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요건이 다 갖추어진 입장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도 못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했다고 할 때는 표창을 하고... 그렇잖아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때는 현재

통일가가 가는 길이 통일가의 성공을 위해 가는 길이라면, 가지 말라는 겁니다. 가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교회만을 위해 가지고 '아, 우리 교회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 가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이럽니다. 이놈의 자식들! 그렇게 해도 꽃이 피게 되면 별 수 없다구요. 봄이 되면 꽃이 피기 마련이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히게 마련이예요. 씀바귀도 꽃이 피는 거예요. 뭐, 장미만 꽃이 펴요? 함박꽃만 끝이 피나요? 내 꽃만 꽃이고 네 꽃은 꽃이 아니예요?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내가 죽어서라도 이 길을 가야지 하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더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고 사는 무리는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보다 더 훌륭한 데 간다는 거예요. 충신의 도리는 만고 표준이예요. 효자의 도리는 만고 표준이예요. 진실은 만고 표준이라구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나가게 될 때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실되지 못한 사람은 안 믿으면서 진실된 사람에게 핀잔을 받는 거예요. '이 녀석아, 너는 믿음도 있었고 잘살 수 있었는데, 왜 이 모양 이 꼴이야. 이놈의 자식아' 하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은 통일교회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알겠지요? 「예」 통일교회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살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통일교회에서 어떤 명령을 하게 되면 누구든지 그 명령을 따라 넘어가야 합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에서 제시한 모든 것을 당장에 실천하지 않으면 낙방이예요.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들은 통일교회를 망치는 패들이요,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나라를 망치는 반역 떼거지라는 거예요. 지독한말 같지만….

이것을 실천, 수행하게 되면 승리의 신앙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밟고 넘어가지 못하는 자리에는 패자의 서러움이 꼬리를 물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슬퍼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거국적으로 거리에 나서라. 거리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 앞에 통고해 줘라. 거국적인 활동을 주도해라. 복음을 전파해라. 나가자! 교회 사정이 내 사정이고, 내 사정이 남의 사정이다, 내 사정보다 교회 사정이 더 공적이다' 할 때, '내 사정이 더 공적인데' 하는 요놈의 패들은 망해야 됩니다. 망해 버려야 해요.

뜻을 위해 산다는 공적인 입장에 서서 자신을 극복하고 일선에 있는 그들을 중요시하지 못하고 후방에 있는 자기의 아들딸을 자꾸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그런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데는 언제 결정되느냐? 10년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병이 나서 죽게 되는 사람은 '아, 나 죽는다' 하면서 갑자기 떨꺼덕 죽는 것이 아니라 벌써 오래 전부터 죽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거라구요. 대개 말라 죽지요. 말라 죽을 때 한꺼번에 싹 말라 죽어요? 마르는지 어떤지 알게? 「모르게….」 모르게 말라 죽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말라 들어갑니다. 맨 처음엔 머리카락 하나가 마를 거라구요. 그때가 있을 거라구요. 죽음의 시작은 균 하나 때문이예요, 균 하나. 균 하나가 머리카락에 붙었을 거라구요. 이것이 말려들어가 점점 살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려들게 두면 점점 마르는 거라구요. 그래서 실체 보다도 병균이 파고드는 비중이 크게 될 때는 떨꺽떨꺽하는 거라구요.그러한 요인이 정착할 수 있는 때가 현재라는 거예요. 현재를 초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냐? 예수님이 '때가 이르렀나니' 라고 말씀하셨지요? 지금이 그때입니다. 어제 그런 말 했지요? 지금이 그때라구요.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한 그 말이 뭐냐 하면, 사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이 땅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이 그 말이라구요.

승패는 언제 엇갈리느냐? 현재를 밟고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승리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를 밝고 못 넘어가는 사람은 승자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건 아는구만. 현재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래의 승리가 영영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이다?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현재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명성이 아무리 자자하더라도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찾아오는 승리를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하려면 공적인 무대에서 겸손하라

통일가가 바라는 승리는 세계적인 승리입니다. 그렇죠? 「예」 세계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을 해방시키자! 하늘땅만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신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이런 말을 하면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저 기가 막혀 도망갈 것이라구요. '하나님을 해방시켜? 하구요. 해방받지 못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봤자, 그 구원이 뭐 쓸만한 구원이예요? 구원하나마나지. 이런 결론이 난다구요.

구원받으나마나기 때문에 영계에 가던 또 전도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지옥을 찾아가 가지고 노아 때 심판받은 사람들을 전도했다고 그랬지요? 예수님도 구원해야 된다구요, 예수님도. 예수 믿는 교인도 구원받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한테 달려 있고 예수님도 우리한테 걸려 있다고요. 그럴 수 있는 아들이라면 잘났어요, 못났어요?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됐다면 하나님이 소원성취하실 수 있어요, 없어요?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못 됐으면 하나님이 소원성취 못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소원성취했어요? 이 땅 위에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면서 소원성취했어요? 기독교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나왔는데 소원성취했어요? 망하게 됐는데…. 어림도 없다구요. 예수님을 구원 하겠다고 해서, 하나님을 구원하겠다고 해서 하나님 자신이 기분 나빠하실 것 같아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시지요. 하나님한테 구원받겠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구원하겠다면, 그 사람은 충신 중에 최고의 충신의 도리를 하는 사람이요, 효자 중에 최고의 효자입니다. 부모를 교육시켜 가지고 박사 만들겠다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불효자예요? 불효자예요, 효자예요? 그런 아들이 효자라구요.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도 구해 드리고 하나님도 구해 드리고 그 다음에는? 세계도 구해 주고, 나는 그만두고 남을 구원해 줘야지 하면서 나는 구원받지 않아도 좋다고 하게 될 때에 '야 이 녀석아, 그만했으면 자랑할 것이지 그게 뭐야, 이 녀석아? 그러겠어요? 그러면서도 '아이구….' 그런 사람이라면…. 이것이 내려가면서 올라가려고 하면 멀어져요? 멀어져요, 가까와져요? 그게 다르다구요. 승리는 보다 더 높이 반비례적으로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적인 승리는 어디 가서 찾느냐? 이거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 가서 찾긴 어디 가서 찾아, 방안에서 찾지.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펴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잠자는 자리에서 찾지' 그래요?' 아들딸들 데리고 지내고 이밥에 고기 먹는 자리에서 공적인 승리를 찾지' 어림도 없는 말이라구요.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망해요. 망해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잘 알아야 돼요. 자기가 이익 보겠다고 덥석거리는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 사람이라구요. 자기 나름대로 잘났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람, 부자가 돼 가지고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뜻도 자기를 중심삼고 감정한 후에 '뜻' 하는 사람보다는 감정하기 전에 딱 보고 믿는 사람을 선생님은 좋아합니다. 죄가 있더라도,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뜻' 하면 '아이구' 하는 사람, 허리 아픈 사람보다 더 큰 한숨을 쉬면서 '아이구' 하는 그 사람에게 도리어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겸손을 가르쳐 줬지만…. 공적인 무대 앞에서 겸손해야 돼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위해 가느냐? 영광스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를 위해 하느냐? 내 처신을 다짐하고 통일교회 위신을 다짐해 가지고 어디 공석에 나서서 말을 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이러이러해 가지고 통일교회 체면, 위신을 생각해서 거룩해야지' 그러지 않습니다. 그 거룩거룩 뽑아 버려라 이거예요.

안 되면 미국 사람, 독일 사람들을 들이 까는 거예요, 공석에서. 내가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들어왔던 천 명 가운데 구백 구십 구 명이 돌아가고 거기에 한 사람만 남게 되더라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면 승리라구요. 사고방식이 다르다구요. 안 되면 들이까는 거라구요. 내가 일선에 나가 가지고 가만히 보니까 이거 안 됐다구요. 책임자가 있는데 어떤 영계를 통한 아주머니가 있어 가지고 전부 다 안 된다고 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뭐 자기 상상내의 선생님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태어나 가지고 보지도 못했던만큼 무자비하게 들이친 것입니다.

나는 정치가가 아닙니다. 목적성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이 모르는 가운데 슬쩍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이면 참, 근본이면 근본, 실체면 실체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나가지만 현재의 통일교회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바빠요. 바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안 망한다구요.

최후의 승리의 결정점은 천국을 이루는 것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대한민국을 거치고 세계를 거치고 하늘나라 까지 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세계적인 대표 단체가 되어야 됩니다. 이 단체는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하는 자리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먹고 좋아 하더라도 그 좋아하는 것이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채다 좋아하지 못했어요. 기뻐해도 채 기뻐하지 못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서 진짜 기쁜 날이 있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불행 하냐? 불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맞아야 할 것은 지금 현재의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맞이할 것은 기성교회만이 아닙니다. 기성교회를 맞겠다고 하다가 싸우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를 넘어서 기성교회가 바라고 있는 천국을 맞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혹은 종교의 길을 가는 것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을 위해 믿는 것입니다. 목적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재료가 되어야 됩니다. 내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 믿는 게 아니예요. 천국은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되어 있다면 다 편안히 갈 수 있지만, 천국이 되어 있나요? 인간이 타락한 후에 천국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천국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왔어요? 그런 부모를 찾았어요? 못 찾은 입장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천국을 이 땅 위에서 이루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후의 승리의 결정점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이루어졌어요?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말이예요. 단체가 이만하면 단체로서의 규약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되고, 개인적인 생활에서부터 공적인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하는 규약이 있어 가지고 그 규약에 따라 움직여야 할 텐데 아직까지 규약이 없어요.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헌법이 있어 가지고 그 법에 의해서 각 부처면 부처가 움직이지요? 그렇죠? 우리들에게는 아직까지 법이 없어요. 우리들에게는 헌법이 없어요. 헌법이 있어요? 무슨 국제법이 있어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밥을 먹고 살더라도 다 갖추어져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라구요.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라구요.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지만 대한민국이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대한민국이 아니라구요. 다 지나가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어디에 세울 것이냐? 공중에 세우는 것이 아니고 이 땅 위에 세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천국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어려운 환경은 선조들과 더불어 소화시켜라

천국이 안 되려고 하는 대한민국을 천국 만들려고 하니…. 그래 천국 만들겠다는 패보다 안 만들겠다는 패가 많게 되면 누가 먼저 지치겠어요? 누가 먼저 지칠 것 같아요? 통일교회가 먼저 지치게 마련이예요. 세상 사람들은 지친다는 말도 않거니와 생각도 안 해요. 그 지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이 생각지도 않는 그들보다 못하냐, 나으냐? 우리의 자리가 있느냐? 만약 우리들이 지쳐 쓰러졌다 할 때는, 못 살지 별 수 있느냐. 그들이 '저 자식, 언제는 어떻더니 이제는 뭐 자기 아들딸 중심삼고 살자구, 수작 좋구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축에도 못 들어가고 처지는 것입니다. 머무는 거예요. 그래. 누더기 보따리 소굴로 찾아가겠어요? 찾아가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반대를 받을 동안에는 기성교회를 찾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교회 당회장, 총회장을 찾아가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누구 위정자들을 찾아가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는 거라구요. 원하기 전에는 안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고자세가 아닙니다. 내가 아직까지 내 할 일을 다 못 했다는 거예요. 내 갈 길이 바쁜 사람입니다. 시간만 있으면…. 내 갈 길에 바빠요.

자, 여기 지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요즘에는 축복받는다고 하다가 축복에 지친 사람도 있다구요. 전도한다고 하다가 전도에 지친 사람도 있어요. 그래, 감옥에 가서 감옥살이하다가 지친 사람은 없지요? 통일교회를 믿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통일교회를 만들다가 감옥에 여러 번 들락날락했지만, 통일교회를 믿다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감옥에 간 사람은 없다구요. 자기가 잘못해서 감옥에 가는 것이야, 뭐….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청춘시대에 지칠 수 있는 때도 많았지만, 지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달했는지 알아요? 그것이 그냥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의 몸이 되어 영육으로 바쳐지는 자리일수록, '하나님이여. 나를 동정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렵게 될 때는 절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되면 기도를 안 한 사람이라구요. 심각하다구요.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이야기를 안 해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의 최고의 지혜를 다하고 최고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어떻게 이 어려운 환경을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녹여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느냐? 한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받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어려운 심정적 동기를 관련 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통곡하게 하고 분함과 원통함에 사무쳐 이것을 들이치실 수 있게 하는 놀음을 어떻게 하느냐? 다시 말하면 원수의 적진을 격파시킬 수 있는 심정의 폭발력을 어떻게 자극하느냐? 그런 면을 생각 했다는 거예요. '아이구, 내가 어서 빨리 나가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배가 고프면 '이놈의 배야 고파 봐라' 이거예요. 배고픈 자리에서 심각한 제목을 걸어 놓고, 앞으로 세계가 가야 할 탕감복귀노정을 걸어 놓고, 배고픈 것 이상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여안고 눈물 흘린 때는 있었지만,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구요. 감옥에 들어가서도 누구보다도, 평상시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서 기도하는 놀음은 했지만, 매맞고 들어와서 '아이고 다리 아파 죽겠다. 허리 아파 죽겠다' 하고 흥얼거리지 않았습니다.

아픔이 느껴져 올 때 '이 아픔을 누구와 더불어 소화시킬 것이냐? 역사상의 우리의 선조들과 더불어 소화시켜야 되고, 미래에 우리 민족이 가는 수난길을 내가 가로막기 위해서, 심정적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소화시켜야 할 아픔이 아니냐. 아파라! 아픈 것이 정상이다' 하며, 아픈 몸으로 자리에 누워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민족을 품고, 나보다 더 불쌍하게 죽어 간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선조들을 위로하고 해원해 주기 위해서, 민족의 수난길을 다짐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때는 많았지만, '아이구, 못 살겠다' 그러질 않았습니다.

보리밥을 대할 때에도 선조들이 배 고팠던 걸 생각하면서, 이 밥은 우리 선열, 선조들의 피가 연이어 맺어진 결실인데, 내가 그것을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젓가락은 부러진 젓가락이요. 밥은 찌꺼기 밥이지만…. 그 도시락이 나무통이라구요. 그 밥을 먹으려고 나무 꼬챙이로 쑥 이러면 말이예요. 찌꺼기가 이렇게 묻어 나와요. 그럴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아는 나지만, 그렇다고 그걸 긁어내고 먹지 않았어요. 그냥 그대로 다 먹는 것입니다. 심각하다구요. 보리 한 알이 우리 선열들의 피의 결정체라고 하게 될 때 심각한 것입니다.

거기에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아요. 입을 다물고 있어도 하나님이 영계를 통해서 전도를 해주시는 거라구요. 그런 입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만약에 그런 사람들이 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망해야 됩니다. 나를 치려고 하던 무리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 꺾여 나갔는지…. 내가 평양에 가 있을 때 나를 잡아 넣으려고 하던 사람들, 하나님이 그들의 자식들까지 전부다 쓸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선을 치는 사람은 지극히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벌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승리는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를 거쳐야 얻어져

그러면 승리는 어디에서 오느냐?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는 영영 승리는 없는 것입니다. 김인주! 옛날에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문살 사이로 바라보고 울 때가 좋았지? 통일교회 선생님 만나러 다닌다고 붙들려서 쇠고랑을 차고 반대를 받으면서, 몸뚱이가 퉁퉁 붓고 다리도 붓고 목덜미가 부어 가지고도 있는 힘을 다해 벌벌 기어 문틈으로 내다보면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문 앞으로 지나갈 것이 아니냐 하고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기다리던 그때가 더 좋았을 거라구요. 그때가 좋은 때야? 김인주! 좋은 때였어? 여러분 요즘엔 뭐 그래요?

내가 지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더라도 부러운 것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처결할 시간이 없어요. 무슨 뭐 돈 짜박지, 땅 짜박지, 집 짜박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구요. '방 한 칸이든 뭐든, 죽더라도 내 나라에서 죽어야 되겠다. 하나님이 보호할 수 있는 그 나라에서 죽어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렇게 살다 가지 못하면 그 생애는 비참한 생애가 아니냐? 그러니 죽기 전에 하루라도 그 나라를 찾아가야 되겠다' 이것이 선생님 일생의 소원입니다. 그 한날을 위해서는 수천 날의 희생을 투입하자는 마음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쉬더라도 나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 하면 외국인을 움직여서라도 해야 되고, 대한민국이 못 하면 외국을 통해 포위작전을 해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승자는 기쁜 것이요. 패자는 서러운 것입니다. 왜 기쁜 것이냐? 승리의 기쁨은 누구와 더불어 기쁜 것이냐? 가족과 더불어 싸웠으면 가족과 더불어, 동역자와 더불어 그 승리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반면에 같이 싸우다 망하게 되면 같이 싸운 그 무리 전체가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누구와 더불어 싸우느냐? 나 홀로 싸우지 않습니다. 다르다구요. 아버지와 더불어 싸우고, 천상세계에 가 있는 모든 선지선열들과 더불어 싸우고,기독교를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다 순교한 선열들과 더불어 싸웁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도의 세계에 있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바라고 나오는 사람들이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대표한 자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들이 여기에 참전해 싸우지 않지만, 영계를 통하는 그들은 나와 더불어 싸우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나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를 초월해서 내가 움직이고 내가 가는 길을 영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러한 사람들과 더불어 입체적인 입장을 대표해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움의 대상은 무엇이냐? 먼저는 개인이요, 그 다음은 가정이요, 그 다음은 종족이요, 그 다음은 민족이요, 그 다음은 국가입니다. 지금은 어느 단계까지 왔느냐? 종족을 제물삼아 민족과 국가의 해방을 위해 싸워 나가는 때입니다. 여기에 동참한 참전자들은 영계와 육계의 보호를 받으면서 같이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패하는 날에는 지상에서의 아무개라는 이름과 관계되어 있는 통일교회가 패하는 서러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세계와 도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전체가 슬픈 비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냐? 아담 해와의 비참보다도 몇 백 배 비참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아담 해와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 하였기 때문에, 완성기라는 한계선이 남아 있으므로 하나님이 손을 대셔서 소망을 줄 수 있었지만, 우리 때는 완성기에서 종결을 바라보는 때이기 때문에 만약 패자의 서러움을 맞게 될 때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 이상 비참한 역사를 다짐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없는 거라구요. 심각한 자리라구요. 한번 헛디디는 날에는 억천만사가 수포로 돌아가는 심각한 자리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뜻을 대해 가지고 심각한 기점에 나서게 되면 부들부들 떨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이 바라시던 자리인가, 역사시대에 있어서 최고로 심각한 숨막히는 정상의 자리를 거쳐 나가는 순간인가, 생각해 보라구요. 전무후무한 역사적 인연을 하나님의 소원의 일점과 더불어 전체 앞에 긍할 수 있는 기초작업이 여기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내 한 숨결은 억천만의 생명을 죽음의 자리에서 살려 주는 부활의 호흡을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자리를 거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타락의 경계선을 첫번째로 넘어가는 사람

보라구요.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판서하심) 이게 타락이예요. 타락의 부모가 나왔다구요. 그래 가지고 선과 같은 자리에서 개인이 전부 다 이렇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종족, 민족. 전부 다 갈라진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전부 다 여기서 이렇게 되어 갈라진 거라구요. 역사에 도인들이나 성현들도 전부 다 갈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면 갈라지는 거예요. 수많은 국가가 쭉 세워졌어요. 여기서 국경선이 시작된 거라군요. 이것이 끝날입니다.

끝날이 있는데, 이 끝날에 국경선을 처음 넘는 사람이 누구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처음으로 국경선을 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있을 거라구요. 타락했으니 말이예요. 타락하지 않은 선을 첫번째로 넘어갈 사람이 누구냐?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완성시대는 오지 않습니다. 그 선을 첫번 째로 넘는 사람이 재림주라는 거예요. 그 선을 첫번째로 넘으려면, 요 자리를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타락의 인연을 가지고는 절대 넘어 간다, 못 넘어간다? 「못 넘어갑니다」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와 가지고는 더 나가려니 나갈 수 있어요, 없어요? 지금 세계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갈라져 있습니다. 요걸 중심삼아 가지고 위쪽은 민주세계요, 아래쪽은 공산세계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갈라져 있어요. 위쪽은 하늘편이요, 아래쪽은 사탄편입니다. 하나는 마음적이요, 하나는 몸적입니다. 사상적으로 볼 때, 민주세계는 마음적이기 때문에 유심사관이요, 공산세계는 몸적이기 때문에 유물사관입니다.

이 두 세계가 딱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딪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딪쳤다구요. 공산세계도 부딪쳤고, 민주세계도 부딪쳤습니다. 어떻게 될 것이냐? 공산당 그 자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정해야 합니다. 부정해도 갈 길이 없습니다. 민주세계도 부정해라 이겁니다. 거기서 헤어날 길이 없다 이겁니다. 갈 길이 없는 거라구요. 못 간다 이거예요.만일 넘어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민주세계 사람들이 나라를 가지고 있으니 먼저 넘어갈 수 있잖아요. 그렇잖아요?나라를 갖춰야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라를 갖춘 민족이 먼저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세계에서 머리 좋은 민족이 넘어갈 수 있다면, 어느 민족보다 유대민족이 먼저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넘어가는 데는 어떤 사람들이 넘어 가느냐? 세계의 주도적인 권한을 가진 나라도 못 넘어갑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되었지만 못 넘어갑니다, 넘어가면 하나님이 없는 거라구요. 세계가 못 넘어가는 거라구요.

세계가 넘어가기 전에 무엇이 넘어가야 되느냐? 세계가 넘어가려면 그전에 어떤 나라가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가 넘어갑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어떠한 나라가 넘어가려면, 나라가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어요? 어떠한 종족이 먼저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따져 볼 때, 어떠한 종족이 넘어가려면, 종족이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어요? 어떠한 대표적인 가정이 넘어가야 됩니다. 어떠한 가정이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개인이 먼저 넘어갔다가 와서 가정을 이뤄 가지고 그 가정을 인도해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경계선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결국 한 사람이 넘어가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 사람은 이 민주세계권내의 한 사람이요, 어떤 특정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한 사람이요, 특정한 씨족에 속한 한 사람이요, 특정한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한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예요. 그 가정이 속해 있는 씨족은 세계적인 씨족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개인은 자신이 그러한 책임,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만이 아느냐?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주께서 오실 날은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누구만이 안다구요? 「아버지요」 아버지밖에 모릅니다. 아버지만이 알 수 있는 데서, 아버지가 아는 그 뜻과 더불어 하나의 가정이 일치된 자리에 서 가지고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정상에 서 가지고, 공동운명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잘 아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포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소위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재림주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사탄을 이겨야 한다

재림주는 세계를 이기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 세계와 싸워서 이기고 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남들은 쉬지만 달려가는 것입니다. 안달복달 안달복달 안달복달 하면서 빨리빨리 경계선으로 가는 것입니다. 경계선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사망선이 어떠한가, 생명선이 어떠한가 부딪쳐야 됩니다.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홀로 부딪쳐 가야 되는 것입니다.

홀로 부딪치는 데에는 전체를 대표한 선한 신이 있는 것이요, 전체를 대표한 악한 신이 있는 것입니다. 악 중의 악이요, 선 중의 선이라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한 선신이 세계를 버리고라도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악신이 자기의 세계를 버리고라도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넘어가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탄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탄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의 비밀도 알고 있고, 사탄나라의 비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하늘나라의 주권자라도 그 주권자가 여기에서 틀고 돌아가기 전에 그 사람이 사탄과 짜 가지고 틀고 돌아가게 되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 그가 하나님과 하나되어 틀고 돌아가게 되면 반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누가 믿느냐? 하나님이 믿는 것이 아니요, 사탄이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싸울 데가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비결이 뭐냐? 사탄한테 승리해야 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비결은 뭐냐? 사탄 앞에 승리한 것, 사탄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해서 이겼어요. 그것은 악한 사탄의 공격을 대신해서 하늘편이 먼저 친 것입니다. 왜? 사탄이 치게 되어 있는데 하늘이 먼저 쳤다면 야곱은 기회만 있으면 또다시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지더라도 '하나님이 협조를 안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협조를 못 받았기 때문에 내가 졌다. 이제 내가 기도를 하고 협조를 받으면 나는 안 진다' 하고 또 씨름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과의 인연, 하나님이 사지 사판에 내몰아 들이쳤다는 것은 또다시 인연지어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조건을…. 하나님이 쳤기 때문에 지고 나서도 '하나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반대했기 때문에 내가 졌소. 하나님이 내 편이 된다면 난 안 져요' 하게 되면, 하나님이 '오냐. 그럼 다시 한 번 해봐라' 해서 또다시 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반대의 자리에 처넣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보통 책임을 안 지고 따라가는 입장에 있는, 사랑에게는 그런 놀음을 안 시킵니다. 책임진 사람에게 그런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모세도 죽을 자리에 내몬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가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노아도 죽을 자리에 내몰았습니다.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짓게 했어요. 아라랏산의 높이가 몇 미터예요? 5천 몇 미터나 된다는 거예요. 정신 없으면 죽을 수 있는 놀음이라구요. 이렇게 죽을 자리에 내몬 것입니다.

야곱이 21년간 도를 닦아 가지고 한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세일 땅 형님이 있는 고향산천을 찾아가는데, 21년 동안 그 한날을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쁨으로 '잘 가라. 잘 가라'고 해야 할 텐데 천사를 보내 얍복강가에서 '야, 이놈의 자식아' 하고 씨름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사한테 지는 날에는 21년 동안의 고생이 나무아미타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천사를 악착같이 붙잡고 내 손이 빠지기 전에는 놓지 못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팔이 꺾어지더라도 못 놓겠다고 한 거예요. 이거 얼마나 지독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래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한번 잡는 날에는 팔이 뽑아지고 뼈가 한꺼번에 쑥 뽑아지는 한이 있어도 '오냐! 내가 못 놓는다' 하는 싸움 해봤어요? 생명을 내놓고 대들어야 된다구요. 천사가 씨름하자고 할 때, 야곱이 '좋소. 그러지' 그랬겠어요? 야곱이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천사는 심각하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야곱은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하고 골리앗 대장이 싸울 때 누가 더 심각했겠어요? 골리앗 대장이 심각했겠습니까, 다윗이 심각했겠습니까?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뭐야 돌팔매로 블레셋 장군인 나를 때려잡겠다고?' 하면서…. 그거 기가 막힌 놀음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골리앗은 싸움을 농거리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농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세계의 복싱 챔피언 누구예요? 클레이하고 싸운 사람 누구예요? 「프레이저입니다」 그 둘이 싸움을 하는데 '뭐야 이놈의 자식' 하면서 '클레이 시대라고 자랑하던 클레이 이 녀석, 교만이 하늘땅에 찼어, 이 자식아. 꺾여져라, 이놈의 자식…'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조그마한 프레이저가 통일교회라면 클레이는 공산당이라구요. (웃음) '잘 싸워라' 하면서 나도 같이 쳤어요. '쳐라, 쳐라' 하면서 내가 신이 났었다구요. 그래, 그 큰 녀석이 나가 자빠져서 다리를 뻗을 때 '잘 넘어졌다, 이 녀석아' 하면서…. (웃음) 그런 것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도 악착같은 데가 있고 지독한 데가 있다구요. 시간이 많이 갔구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한테 이겼다는 영수증을 받아 와야 합니다. 그 영수증을 사탄한테서 받아 오기 전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 말 들어 보았어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어요? 사탄한테 영수증을 받아 와? 하나님한테 영수증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은 누가 주느냐?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주는 거예요. 사탄이 '나는 할 수 없어. 이 이상 난 할 수 없다. 만일 저 녀석한테 손을 대었다가는, 저 녀석이 입만 벌리게 된다면 내가 옥살박살난다, 다리만 잘리는 것이 아니라 모가지까지 잘릴 판이구나. 국물도 없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려고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탄이 제일 좋아하지 않을 거라구요. 좋아하지 않지 않지요? 어떻겠어요? 좋아한다고 그래요? 그런가 보라구요.

통일교인이 가야 할 길

민주세계에 원할 수 있는 것이 여럿 있지만, 그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하나님이 안 좋아하실 수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길 수 있게 하는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특권을 갖고 있는 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구요. 하나님이 대접을 잘 해주시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러면, 사탄은? 사탄이 대접을 해주겠어요? 사탄은 극성맞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극성맞게 반대하는 사탄은 세계를 갖고 있고 하나님은 한 사람을 가진 것입니다. 세계는 사탄편이고 하나님편은 혼자인 것입니다. 혼자 있는 하나님편에 세계는 반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길을 가는 사람은 심각한 사명을 놓고 엘리야처럼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거예요.

제물이 없으면 여편네라도 잡고 자식이라도 잡으라는 말이 실감나요? 그런 것 알아요? '이놈의 자식이 원수로구나. 이놈의 여편네가 원수로구나'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을 다 느껴 본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아브라함이 칼로 자식을 잡아 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식과 처와 어미 아비까지 한칼에 잡아 제물드려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 서 있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무서운 곳이라구요. 잘못 따라가다가는…. 이것이 불발탄이 된다면 더 이상 무서울 수 없는 원자탄 불발탄이 된다구요.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것이….

지금 때로 보면 다 부딪혔다구요. 민주세계도 후퇴해야 되고 공산세계도 후퇴해야 되는데, 어디로 갈 것이냐?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후퇴하려고 해요? 민주세계 꼭대기를 밟고 올라가겠다고 생각하지요? 공산세계 꼭대기를 밟고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그저 올라가 가지고 어떡할 것이냐? 두 발자국 밟고 올라서서 쳐 버려야 된다구요. 올라서면 그 놈들이 가만 있겠어요? 밟고 올라선다고 싫다고 하는 거예요.

밟고 올라서 가지고 무엇을 잡으려고?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잠깐 밟고 올라서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구요.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을 붙들게 되면 죽더라도 안 놓는 거예요. 안 놓는다구요. 6천년 동안 그렇게 기가 막히게 찾아와서 겨우 만난 분인데, 놓겠어요?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 것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나라와 더불어 붙잡은 것입니다. 그렇게 붙잡아야만 하나님이 할 수 없이 '야야, 내려가자 내려가자' 하게 되어 비로소 땅 위에 군림해서 자리를 잡게 되면 하나의 선의 주권국가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럴것 아니예요? 하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살림살이를 한번 해보고 싶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민주세계의 기독교를 대해 가지고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통일교회 앞에 굴복할 거예요. 통일교회 발길에 밟힐 거라구요.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신념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여기에 왔으면 아주 배꼽이 들락날락할 거라구요. 들락날락해도 할 수 없어요. 배꼽이 터지고 튀어 나와도 할 수 없다구요. 사실이니까. 그리고 공산당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이 두 놈들을 산채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을 수 없다구요. 그게 안 망하면 내가 죽을 수 없어요. 악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죽어야 돼요. 그렇게 반대하던 악한 나라, 그렇게 못 살게 굴던 공산당이 망하는 것을 보고 죽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억천만세에 한을 남기게 된다구요. 그러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이 이 한과 더불어 또다시 비참한 운명길에서 투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통일가가,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이어받으려면

우리가 현재에 있는 것은 이 자리에 있기 위한 현재가 아닙니다. 미래를 이어받기 위한 현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미래의 모든 영광과 권한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을 격파해야 됩니다. 격파작전은 어떻게 시작해야 되느냐? 사탄을 격파하는 데는 포위작전이 아니면 격파할 수 없습니다. 그 길밖에 없다구요. 사탄을 때려서 굴복시키는 전법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탄에게 맞고 굴복시키는 전법이니까 포위 작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포위작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그러니 희생이 많은 것입니다. 적국이 부국이요 강국일수록 그 나라를 포위하려면 거기에 해당되는 희생을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전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치열한 전투를 여러분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척해 나와 가지고 이만한 한계선에 왔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숨가쁜 최후의 대결을 해야 될 때입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 아시아 전부가, 여러분에게 얘기할 수 없지만, 최후의 판결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되는 것은, 밤잠을 제대로 다 자고 승자가 된 사람은 그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덟 시간 자야 할 것을 한 시간만 자고 일곱 시간을 전선을 위하여 장비를 준비한 장병이라면, 그러한 수고를 투입시켜서 승리했다면, 그러한 수고를 투입시키지 않은 사람과 비교할 때에 승리의 환희의 심정이 팔 배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선에서 편안한 가운데 싸움을 하는 사람들은 그 전선에 있어서의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주체적인 병사의 사명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자기 일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생사지권을 넘어서 적군을 대해 투쟁해 가지고 승리를 하게 될 때에는, 그 치열 하고 비참한 입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가지고 승리를 가져 온 그 장병의 승리의 영광을 따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 이 세상에서 제일 기뻐할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제일 기뻐할 것입니다. 거기에 이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보다 더 기뻐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제일 기뻐할 수 있으려면 제일 심각한 책임을 지고 심각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의 판가리 지점에 서서 사령관의 책임을 해 가지고 승리를 하게 될 때, 제일 기뻐할 사람은 그 사령관입니다. 병사들이 죽음을 치러 가지고 승리했지만, 병사들이 전체적인 승리를 가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령관이 승리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령관은 누구보다도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병사는 낮에 피 흘리는 싸움을 하더라도 밤에는 마음 놓고 잠잘 수 있지만, 사령관은 밤잠도 못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누구보다도 고생했다는 거예요. 심신을 통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정성을 들이며 전체의 운명을 책임진 자리에서, 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수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승리의 영광은 사령관에게 돌아가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패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싸우는 것은 자기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죽을 때도 안 죽겠다고 하면서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최후의 패전이 벌어지게 될 때, 사령관은 병사들을 대표해서 고이 죽어 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대표로서 자기 하나가 죽음으로 전체를 사지에서 구하고 용서를 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비록 패자일망정 역사에 이어질 수 있는 미래의 소망을 남겨 놓고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패했다고 서러운 것이 아니라구요. 패한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도 있어요.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패한 자리에서도 살아 있게 된다면 그 목숨은 환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패자가 됐지만, 패자로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 뭐냐? 자신이 만민을 대신해서,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만민의 죄를 품고 자기 하나가 죽는 것입니다. 만민의 죄를 용서받기를 바라며 죽음길을 간 사람은, 패한 장군이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남기는 거와 마찬가지로, 패자일지라도 미래에 승리할 수 있는 소망의 자리를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희생의 도리를 강조하고 이 희생정신을 뿌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을 이룬다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 민족이 하늘 뜻 앞에 서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은 천년의 한을 품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심정에 사무치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수난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그 배후에는 언제나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과 선생님이 기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과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세계적인 전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예민한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아시아의 문제를 중심삼고 대한민국내에 어떤 주권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의 그 누구를 내세운 데에는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의 말이 영향을 미친 것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는 사람도 그 누구보다 책임을 졌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 승리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그 누구보다도 책임을 졌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패자는 될 수 없습니다. 내 일가를 망치는 놀음이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가정들이 망하는 놀음이 있더라도 통일교회가 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통일교회의 뜻을 망하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요, 몰라요? 그런 줄 알아요? 「예」 내가 현재에 있어서 삼천만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통일교회의 무리를 어떤 의미에서는 무자비하게 서슴지 않고 죽음의 함정에 처넣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이미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실천과정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거예요. 난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그러지 못하는 거라구요. 이 뜻 앞에서는…. 이미 출전 명령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사정을 중심삼고 못 가겠다고 하는 말은…. 그런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패하는 운명의 전선에 선 도피자의 심정이요, 후퇴자의 심정입니다. 이런 사람은 즉결 처분하는 거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노정에서 그럴 수 없는 것이 기가 막히고 비참하다는 것을 내가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내 후손이 할 것입니다. 이게 더 무섭다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승패는 현재가 문제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역사적 유물인 흥운권을 인계받으려면

오늘 이 시간까지 나온 우리가 망할 수 있는 운세에 섰느냐 흥할 수 있는 운세에 섰느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에, 망할 운세에 섰을 때에 끝까지 지키고 설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이냐 흥할 운세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고 위해 나설 책임자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망운에 처했다면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흥할 운세권내에서는 일시에 원수를 공격하여 역사적인 한을 타파해 버리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한 최후의 결의를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가 망운에 섰어요, 흥운에 섰어요? 어때요? 「흥운에 섰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흥운에 섰어요. 망운에 섰어요? 통일교회는 흥운에 서 있는데, 여러분들은? 「흥운에 서 있습니다」 흥운에 섰어요? 「예」 그럼 여러분한테 당장에 북괴 김일성이 모가지를' 잘라 오라고 하면 따 오겠구만? 「그러겠습니다」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서라구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 도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나서면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뭐 살겠다고, 시시하게 살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아직까지 최후의 모험을 못 해본 사람입니다. 내가 있는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맹세한 기준인, 이제야말로 때를 맞이했다고 하면서 내게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가지고 선두에 서서 총공격의 명령을 하면서 달리는 그런 날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내 일생에 군대생활을 못 해본 것이 한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 최후의 전선이 전개될 때 그래야 되겠다, 내 나이 50이 넘었지만 선두에 서서 싸워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이미 흥운권에 서 있는데 누구로 말미암아 흥운권에 서게 됐는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흥운의 자리까지 왔는데, 이것이 여러분이 가져 왔느냐 역사가 가져다 주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 여러분이 가져 왔어요? 이 운세권을 여러 분이 가져 왔느냐. 역사가 갖다 주었느냐? 「역사가….」역사가 갖다 준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유물이지,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억 천 만세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의 대가로 말미암아 우리 시대까지 고이고이 연이어져 온 전통적 제단으로서,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인 유물로서, 우리는 이것을 보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유물로 맞아진 것이지 여러분의 소유로 맞아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소유하려면 역사를 이겨야 됩니다. 그렇지요? 역사를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선지선열들이 이 길을 위해 죽음길을 다짐하고 죽어 갔던 피눈물의 억울함을 우리가 대신 전부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념과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가 맡겠으니 맡기러 어서 오소서' 해 가지고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현재 통일교회의 운세의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것이 되게 하려면 역사적인 유물을 중심삼고 현재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도 역사적인 동참자로서 주체가 되든가 상대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서 있는 것입니다.

자, 동참하지 않고 인계받을 수 있어요? 여러분은 동참했지요? 그런데 동참해 가지고 '아이구, 좋아. 바라던 것을 다 찾았으니 이젠 됐어. 안방에 들어가 쉬면서 편안히 살자. 하나님도 나 위해 있지' 이렇게만 살아 보라구요.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외는 어떤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원수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세계에도 없는 골동품이 있다고 합시다. 요전에 뭐라고 그러던가요? 다이아몬든가 그게 뭐, 희망의 반지라고 해 가지고…. 그게 돌고 돌다가 이리로 왔다구요. 그 골동품이 어떻게 인연이 되어 가지고 이 시대에 여기에 왔는데, 여러분이 지금 관리하고 있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뜻을 관리하고 있지요? 소유자는 아니라구요. 역사적인,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된다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리자가 여기에 흠을 냈다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은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영원을 두고 그 사람을 참소할 것입니다. '그 놈의 자식, 그 따위 녀석이 다 있었구만!' 그럴 거라구요. 그러겠지요?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뜻을 세계에 없는 역사적인 골동품이나 유물단지에 비할 수 있어요? 이것은 역사 이래에 전무후무한,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의 관리권이 문선생이란 사람의 일생을 중심삼고 여기에 인연된 사람들에 한해서만 특권적으로 부여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이때는 역사의 기원도 되는 때요. 인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소원은 참부모를 맞는 것

지금까지 역사적인 소원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맞기 위한 것이라구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세우신 것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또한 기독교와 기독교 문화권을 만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재림주는 누구냐 하면 제 3차 아담으로 오시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오실 때가 되면 세계의 모든 국가가 형제의 인연을 가지기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전승국가가 패전국가를 전부 다 해방시키는 놀음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형님된 입장에서 동생을 때려잡았으니, 동생에게 복을 빌어 주지 않으면 오시는 부모에게 벌을 받겠기 때문에, 그런 비정상적인 역사적 현상이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역사가 바라면서 찾아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종교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 나라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참부모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둘이 있을 수 있어요? 오늘날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고, 통일교회에서도 문선생을 뭐 '아버님' 라고 하고 있지만 말이예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아버님하고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둘이 맞섰다구요. 귀한 것이 나왔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귀하다구요. 세계가 귀하다구요. 이 둘이 서로 자기가 부모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도 그 부모는 내 것이라고 하고, 사탄도 그 부모를 내 것이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적으로 누가 공판지어야 되느냐? 인간이 지어 주는 거예요. 인간이 '우리의 부모는 이런 분이라야 됩니다'라고 해 가지고 부모를 선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타락한 부모는 이래서 악한 부모요, 선한 부모는 이래서 선한 부모입니다. 선한 부모를 찾아 나오는 것은 사탄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한 부모의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들고 나서서 결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참부모를 만나는 데입니다.

그래, 부모가 둘이 있을 수 있어요? 한번 죽은 부모가 천년 후에도 다시 벌떡 나타나요? 인류의 부모가 한 번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국가의 소원이요, 사상의 소원이요, 섭리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 부모가 나타나는 때는 전무후무한 때요,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뭐라고 할까? 꼭대기라구요. 좁다면 얼마나 좁을까요? 영원한 세계를 두고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숨 한 번 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렇지요?

여러분들이 재수가 있어 그런 건지, 복이 있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 이 시대에 생을 지녀 가지고 이 한때를 만나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통일교회에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러분을 이 자리에 들어오게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선조들이 정성을 들이고 또 들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하고 선이 밟히는 자리에서 죽어 갔지만. 그 천 사람 만 사람의 인연을 거쳐서 돌고 돌아 그 인연이 하늘에 이어져 가지고 해가 떠오르는 높은 산과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거기에서 햇빛을 바라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이때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인연이 나온다면, 그건 처음 나오는 때라구요.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때가 있다면 이때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의 주권을 보다 가치 있는 내용으로 긍정시킬 수 있는 때도 이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때는 역사의 기원이요, 희망의 초점이요, 만복의 출발이요, 영원한 생명의 발원지라구요. 그럴 수 있는 때입니다.

타락한 세계는 미래의 소망을 찾아 나왔지만, 미래에는 이때가 영원한 소망의 기준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이렇게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이때의 심정을 체득해 가지고 나가 세계를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그러한 때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팔자가 드세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상의 실체로 온 참부모는 참부모의 심정의 자리에 속할 수 있는 규범을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모를 거예요.

부모와 자녀가 지녀야 할 심정적 자세

그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한 부모이기 때문에 악한 부모와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자식을 대해서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역사상의 어떤 부모보다도 후덕을 가지고 대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에 섰더라도, 거기에 걸리지 않고 도리어 울면서 좇아가 천만세의 한과 더불어 애원하고, 비록 서로가 잘못했지만 이별하기 싫어 통곡하는 모습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될 참부모가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다르다구요. 부모로서 지녀야 할 심정적 자세가 어떻더냐? 거 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를 맞을 수 있는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심정적인 자세와 규범은 어떠냐? 그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거지 새끼 모양으로... 만국의 효자를 대표한 모습이어야 돼요. 세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각국의 챔피언과 마찬가지로 자기 종족 앞에 선출된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을 하기 위한 챔피언이냐? 효하기 위한 챔피언이요, 충성하기 위한 챔피언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챔피언의 무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자녀는 이래야 되고 부모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는 통일교회 선생이란 사람은 종자가 다릅니다. 그때를 놓치게 되면 억 천 만세의 한을 남길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느냐, 자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 자신의 그 무엇을 가지고 맞출 수 있느냐? 절대 안 됩니다. 자기가 걸려 있는 세계, 자기가 걸려 있는 민족, 자기가 걸려 있는 종족, 자기가 걸려 있는 가정에 있는 짐을 한꺼번에 진다고 해 가지고 그 자리를 인계받을 수 있느냐? 그것도 안 됩니다. 공산세계를 망하게 하고 민주세계를 망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망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0억 인류를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이것을 침해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보실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러한 초점상에 있는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효자 되는 법이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하고 싶은 놀음을 다 하고 충신이 되는 법이 있어요? 어디 말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아버지!' 한마디를 하고 밤을 새울 때가 많았습니다. 무슨 말을 할 것이냐? 내가 아버지께 보일 것은 추태요, 기가 막힌 사연을 엮어 가지고 아버지 앞에 서러움을 재촉할 수 있는 그 무엇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눈물이 쏟아진 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뻔뻔한 데가 많다는 거라구요. 자화자찬하고 자기 선전하기에 급급한 사내 녀석들도 있다구요. 그런 사람은 효자가 아닙니다. 효자는 말에 앞서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며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땅을 바라 보며 하늘의 은덕을 나에게 더하지 말라고 비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계속 생활하지 않는 사람은 효자가 못 되는 것이요,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기 위해서 나 역시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통일교회 교인들과 통일교회 선생이란 사람이 이단자로 몰렸다구요. 이단자로 몬 녀석들은 어떻게 되느냐? 우리 통일교회 교인 이상 비참한 자리에서 얻어먹게 될 것입니다. 벌써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런 때가 되면 통일교회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밥 바가지를 들고 다니면서 동냥해 먹는 때가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동냥해 먹던 바가지는 황금 바가지가 될 것입니다. 흥부 놀부와 같은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이 한때에 있어서 여자로 태어났다면 역사를 대표한 그야말로 늠름한 용사의 부인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용사의 모습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 시선은 바라는 소원의 일국을 향하고, 충신의 거룩한 자세와 효성이 드높은 자세를 그리면서 하루의 생활을 시작하고 한날의 거동과 하루의 심정을 다짐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청춘시대의 곱던 얼굴이 뜻을 위하다 그을렸다면 그것은 영광이요,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뜻을 위해 살다가 저렇게 늙었다는 보장을 받을 수 있다면 그 흰 머리카락은 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효를 하다가 병신이 되었고 그 몸에 흠이 생겼다면 그것이 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보면 그것은 태양같이 빛나는 것이요, 별같이 자극을 주는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은 이런 때에 말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변명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올라가라면 올라가야 하는 것이요, 내려가라면 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변명이 많아요. 자기의 소신 기준이 확고한 사람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솔직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가 그런 무리를 찾아 나온 것이 아니고, 내가 교육하는 것도 그런 무리를 만들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그러한 입장에서 가려고 하고,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틀렸다면 정정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고, 나 홀로라도 통일교회가 발전할 수 있는 운명을 남기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라의 긴박한 정세에 대한 보도를 듣게 될 때, 준비하지 못한 민족은 그럴 수 있다고, 선생님이 1950년대부터 이러한 때가 온다고 예고하던 말이 여러분의 귀에 생생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어쩌자고 통일교회를 원수시해 가지고 오늘날 자기 안 다리에 힘이 없어 거리를 똑바로 걷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됐느냐?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알아봐야 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이 민족의 누더기와 같은 정신 자세를 무엇으로 꿰맬 것이냐? 바늘이 있어야 되고 실이 있어야 됩니다. 그 바늘과 실로 썩어진 모든 것을 꿰매야 되겠습니다.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나가더라도 그 정체는 변함이 없어야 됩니다. 피가 묻고 녹이 슬더라도 또다시 가야 할 그 정체는 변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꼬부라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용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기관장으로 만들게 될 때, 그가 반드시 썩어지지 않는 바늘이 되겠느냐? 이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스승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바늘이 못 되겠거든 실이 되라는 것입니다, 실. 실은 바늘이 꿰매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바늘이 못 되겠거든 내가 바늘이 되어 줄 것이니 여러분은 실이 되라는 것입니다. 흰 실이 되라는 거예요. 그 흰 실로, 즉 충신의 손이 상처를 입어 꿰매지 못하거들랑, 악한 실로 그 더럽혀지고 썩어진 것을 꿰매야 될 것입니다. 충신이 없거들랑 악한 사람들을 다시 교육시켜 가지고 충신을 만들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이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당면과제

통일교회가 아무리 승리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망하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을 중심삼고 공산당원들이 하나의 주권자를 중심삼고 규합하는 것은 위압적이요 공포적이요 제재적인, 생명에 위협을 받아 가지고 합하는 놀음이지만, 우리는 그 반대적인 입장에서 자유분방한 자리에서 자의로 다짐하고 결의한 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실천기반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우선 국가의 방어선을 옹호하고, 민족적인 방어선을 쳐 놓고…. 또 자기 교단이 있고 종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제일 처음으로 공격받을 운명체 아니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무기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벌거숭이의 몸입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은 심정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때에 있어서 누구에게 책임을 지라고 등을 치셨느냐? 기성교회냐, 통일교회냐? 내가 알기로는 통일교회가 그 지령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무엇으로 책임질 것이냐?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앞에 서시게 하고, 만군의 여호와요 승세의 주권 자요 참의 지도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나라를 대하는 이상의 간곡한 마음으로 통일교회 앞에 서실 수 있도록 어떻게 모시느냐? 만일 하나님이 여기에 군림하셔서 책임을 지고 나서게 되면 우리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다짐해 가지고 이 교단을 대표하여 원수를 대해 일격의 공격을 가하게 하느냐 못 하느냐,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가결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4년 동안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1972년도까지 복귀섭리의 연한을 두고 지내는 것입니다. 김일성이가 60세가 되는 때를 중심삼고 통일가의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섭리적 운세권이 우리의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전선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나이의 기백을 가지고, 젊은 피가 심장을 통하여 동맥을 울리는 느낌을 느끼는 사나이의 감정이 어디로 향해 있느냐? 퇴폐와 부패의 방향을 걷어차 버리고 승리의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천운의 방위에서 필승의 자리에 섰다는 소위 통일교회 용사들, 오늘날 여러분의 자세가 그러한 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못 되어 있느냐? 무자비하게, 냉정하게 비판해 봐야 됩니다. 그 눈이 무엇 때문에 깜빡거리고, 그 코를 통하여 숨을 쉬는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손가락은, 내 사지백체는 무엇 때문에 움직이느냐, 밥을 먹고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생명의 기원을 어디에 뿌리박고 있느냐? 근본적인 것을 분석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운명의 승패를 가릴 수 있는 여기에서 이 눈으로 정기를 뻗쳐 정력을 다해 가지고 응시하면서, 패자의 서러움을 당해서는 안 되는 민족적 운세와 더불어 승리의 한날을 다짐하는 내심의 결의와 신념을 각오할 수 있는 자아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 청년들이 결정지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돈 몇 푼에 눈이 끌려…. 이놈! 이놈의 망할 자식, 한날의 밥그릇을 따라서, 먹을 것을 따라서 입을 끌고 가는 이놈의 자식, 이놈의 아가씨, 그럴 수 없어요. 그럴 수 없다구! 남겨진 전통이 너무나 심각하였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구요.

현재를 극복하라

요즈음에 와 가지고는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은 애국자다'라고 합니다. 내가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나는 애국자가 아닙니다. 애국했다는 것을... 삼천만 민족이 죽음과 더불어, 슬픔과 더불어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르는 애국자는 애국자가 아니라구요. 승리권 안에서 애국자라고 찬양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군왕 앞에 책임을 다한 충신이요 애국자인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까지 못 나갔어요. 비참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이 여기 있는 선생님을 바라볼 때, 선생님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 누가 '당신의 마음은 이렇지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천년 설움을 갖고 목을 놓고 토로할 심정을 언제나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모른다구요. 그런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본부를 중심삼고 있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선생님을 위하는 마음이 있걸랑, 먼저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해 주지 않아도 좋아요. 나를 위해서 염려해 주지 않아도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이제 내 갈 길을 갈 수 있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죽더라도 여러분의 갈 길을 못 가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염려하는 것보다도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고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의 갈 길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거들랑, 그 마음을 돌려 가지고 대한민국 백성을 그리워하라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의 산을 붙들고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붙들고 선생님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리 되면 그 무리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을 고비를 몇 십 번 넘었지만 안 망했고 안 죽었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지면 안 망하고 안 죽습니다. 기가 막힌 놀음이라구요.

우리는 긴장감이 도는 이때, 얼마나 초조한지 모르는 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3년 기간을 주셨습니다, 3년. 그 기간에 내가 책임을 못한 것이 아니고 이 민족이 책임을 못한 것이요,우리 통일교단이 책임을 못 한 것입니다. 3년 전에만 이와 같은 환경이 되었다면 이렇게 안 되었을 것인데, 그 3년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그렇기 때문에 이날이 오기 전에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보다 노력하지 못한 것을, 보다 책임하지 못한 것을 이제라도 다하기 위해 배가의 노력을 다짐해야 할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후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넘어가는 데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가는 것이 책임이 아니라 넘어가 싸우는 것이 책임입니다.

현재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보고 싶은 것도 극복해야 되겠고, 먹고 싶은 것도 극복해야 되겠고, 하고 싶은 것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문제인 승리권을 위해서 가야 할 길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려운 문제를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면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죽는 거라구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전체를 투입해 가지고 결의해서 현실을 극복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돈도 필요하고, 인재도 필요합니다. 힘도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누가 갖다 주지 않을 것이니, 우리 자체내에서 보강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선생님이 금후에 여기에 없더라도 선생님 대신... 그래도 선생님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본부에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통일교 식구들이 본부를 희망의 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제 선생님이 외국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로 갈 것이냐? 선생님이 있는 곳을 향해서 몽땅 옮겨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고, 마음은 언제나 한국에 있을 것이니, 여러분은 그걸 알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의 현재를 지키는 데 있어서 선생님 대신 책임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 나라와 이 민족 전체에게 긍할 수 있도록 시대적인 사명을 완결 짓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극복해야 됩니다.현재를 극복하지 않고는 승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아시길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맡으시옵소서. 이 아침을 기하여 다시 만나는 날을 그릴 수 있는 인연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제, 이때에 세계의 정상까지 가야 할 1980년대에 있어서의 방어선이 되고 도약의 터전이 되어야 할 기지를 마련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쉴래야 쉴 수 없는 자리에 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일체가 공적인 일방으로 방향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할 때, 일면으로는 뜻의 길이 참 지루할 때도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이 길이 아니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아버님, 또 가야 되겠사옵니다. 대한민국만으로만 가서는 안 될 사명이기 때문에 세계로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보호도 원치 않습니다. 그 누구의 위로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위로를 국가와 세계에 남고 싶은 것이 저희의 절대적인 소원입니다.

저희들은 가야 되겠사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가야 되겠고, 장년은 장년대로 가야 되겠고, 노년은 노년대로 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니 가면 안 되는 운명권내에 있는 저희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역사시대에 유랑하는 피난민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통일교단이기 때문에, 원수들이 전방의 대로에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험산준령의 협곡과 외롭고 고독한 음지가 저희들이 찾아 들어야 할 유일한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생애를 비쳐 그런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과연 그것은 불쌍한 길이었습니다. 이 뜻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그런 길을 가시기 때문에 당신의 뒤를 따르는 저희들도 그런 길을 가는 공동적인 운명에 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눈물 골짜기는 저희의 눈물 골짜기가 아닐 수 없고, 당신의 비참한 자리는 저희의 비참한 자리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당신의 공격 명령이 있을 때에 저희는 생사지권을 다 털어놓고 공격해야 될 때가 왔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결속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벨이 가인을 규합 하지 않고는 부모와 상봉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국가적인 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 가인 나라와 아벨 나라로 분립하는 삼팔선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두 나라가 해방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저희들이 늘어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뜻이 승리의 깃발을 들고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웃을 수 있고, 모든 힘을 다하여 환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한날을 역사를 대신하여 맞을 수 있게 해야 할 사명을 저희들에게 맡겨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족한 저희들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은 저희들을 바라보시면서 얼마나 초조해 하시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은 가겠나이다. 저희들은 이미 각오한 몸들이요. 당신이 남기신 운명의 길을 다 밟고 넘어가기를 결의한 몸들이옵니다. 이 고개를 죽기 전에 넘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입니다.

병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오니, 상처를 입더라도, 어떠한 수욕을 당하더라도 이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의 어려움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내일의 어려운 길을 타파하기 위해 결의를 해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이러한 사명을 아시는 아버지이시여 !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지키시옵소서. 금년과 명년에 저희들이 하여야 할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 책임노선을 가리시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저희들이 패자의 운명을 맞는 것을 아버지께서 허락지 않으실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패자의 운명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공산당보다도 더 악착같아야 되겠사옵니다. 더 투지력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더 효성의 마음을 가지고 충신의 절개를 가지고 싸워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보다 단결해야 되겠사옵니다. 보다 체제를 강화시켜야 될 것이 저희의 사명이옵니다. 저희들이 그 어느 부서에라도 속하여 가지고 1970년대의 초반기를 장식하여서 당신께 기억될 수 있는 무리들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만날 수 있는 무리들을 만날 적마다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승패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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