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71년 11월 1일입니다. 이해의 만 10개월을 보내고, 새로운 이 달 이 아침에 저희들이 이 거룩한 성지에 모였습니다. 이 성지는 세계의 모든 땅을 연결하는 120개 성지와 더불어 하늘의 축복을 받은 땅이요, 그 중의 중심 성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이 땅을, 이 거룩한 성지를 찾고 싶어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곳에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같이 하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이 당신이 거하실 수 있는 거처가 되고, 그들의 몸이 당신이 활동하실 수 있는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생활환경이 당신이 주관하고 통치할 수 있는 생활적 환경과 국가적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하늘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이 한국을 그리워하며 정성들이는 무리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원래 당신께서 바라시던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가정을 얼마나 얼마나 고대해 오셨는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혈통이 다르고, 역사의 배후가 다르고 혹은 문화가 다르고 모든 풍습이 다르다 하더라도 당신의 섭리의 심정을 이어받은 정성스런 마음은 다 같은 방향에서 있고, 같은 뿌리에 연결돼 있고, 같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것은 그들 개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들이 정성들이는 것은 어떤 일개 민족이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옵니다. 오로지 아버지가 원하시는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무리들이오니, 그들이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온전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정성들이는 무리를 대표하고 있는 이 한국의 사명과 한국 식구들의 사명이 얼마나 중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정성의 터전 위에서 오늘 저희들도 이 성지에 모여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섰사오니, 아버지, 찾아와 주시옵소서.
저희 각자의 마음은 아버지 앞에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로서의 확고한 약속과 인연을 갖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가치가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되는 거기에서부터 원수의 세계를 초월하고, 승리의 터전 위에 당신이 등극하실 수 있는 모습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둘러 서 있는 당신의 자녀 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복잡다단한 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격동하는 한국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같은 파문 가운데에 휘몰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방향을 갖추지 못하는 이런 세계상 앞에서 저희 들만이라도 아버지가 원하시는 나라를 향하여, 아버지가 원하시는 심정의 터전을 저희 생활 터전에서부터 세계에까지 개척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것은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지중하고도 엄청난 사명감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나 그것은 인간의 힘 가지고는 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같이 동행하시지 않고는 모든 일이 성취되는 한날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 앞에 흰옷을 입고 정성들이는 무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루를 편안히 쉬는 것보다도 하루를 고달프게 하늘과 더불어 정성들이는 생활을 갖는 것이 영원에 접근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생활을 통하여 수난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자기를 위한 수난길이 아니라 민족과 뜻을 위한 수난길을 가는 것이 영생으로 통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이 아침에 당신의 새로운 분부와 후덕하신 사랑의 손길을 의지 하여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저희들을 찾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남산을 중심삼고 둘러 있는 서울 도성을 당신이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도성은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도성인 줄 아옵니다. 생명의 인연을 가누기 위하여 당신의 심정을 부여잡고 고고한 뜻의 노정을 붙안고 가는 무리가 이 도성에 많지 않은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만이 캄캄한 밤중에 촛불을 켜고 아버지를 향하여 정성들이는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불이 꺼질 까봐 그 촛불을 품에 품고 아버지를 향하여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이 언제나 지켜 주시옵고,당신이 언제나 보호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언제나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 갈 길에 있어서 소망의 표준은 그 누구도 아닌 하늘이요, 아버지 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의 해결점도 그 누구의 손으로, 그 누구의 능력으로, 그 누구의 수완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당신의 긍휼하심과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능력의 손길이 아니고는 이 나라의 갈 길도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이 나라를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북이 갈라져 가지고 수십 년 동안 애달픈 사연을 남기고 있는 역사적인 인연을 아버지께서, 불쌍한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불쌍한 이 무리를 아버지께서 다시 한 번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이 갈라졌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저희와 기성교단이 갈라져 있습니다. 이 담을 부수기 전에는 이 민족의 담을 부수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이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정성이 부족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세계를 잃어버리고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것이요, 나라를 잃어버리고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것이요, 종족과 가정을 잃어버리고. 내 몸을 잃어버리고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나를 통하여 가정을 거치고,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치고, 국가와 세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당신이 이상하는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그 길은 원수들과 싸워야 할 길임을 아옵니다. 지금까지 홀로 싸워 나오신 아버지이신 것을 앎과 동시에, 원수를 대하여 방어진이 되고 울타리가 돼 가지고 모든 힘을 모아 원수세계에 위압을 가하면서 전진할 수 있는 승리의 권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였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내 가정이 아버지께서 안심하고 가실 수 있는 가정이 되지 못할 때에, 아버지께서 또다시 가시밭길을 헤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아버지께서 안심하고 가실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을 볼 때,저희들은 수난길에 있어서 혹은 가정을 대한 싸움에 있어서 선봉에 서야 되겠습니다.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대한 싸움 앞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선두에 서서 원수 사탄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결의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골리앗 대장 앞의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을 넘어설 수 있는 충절의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를 믿고 나서는 마음을 가지고서, 아버님이 가실 수난길을 가로막고 슬픔과 고독의 길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싸움길을 감수하고 수난길을 감수 하면서, 고독한 길을 스스로 개척하기를 필생의 운명으로 알고 가는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어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일구 월심 한 순간이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무리가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이는 정성이 결코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찾은 저희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저희들은 많은 조롱과 비소를 받는 자리에서도 죽지 않고,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졌습니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앞으로 싸워야 할 싸움은 쉬운 싸움이 아닙니다. 생사를 판가름 지어야 할 최후의 싸움터가 우리와 접경(接境)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원수의 본영을 향하여 전진 또 전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기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무리들, 또한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에게 하늘의 전통적 용맹심을 부여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하게 믿고 나서는 곳에 능치 못함이 없다는 신념을 갖고 그 환경을 지키고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전해 오는 소식마다 상봉의 한날을 그렇게도 고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만나기 전에 만난 것의 몇 백 배 은사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만나는 그 자리는 개인 개인의 인간적인 사정을 통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세계적 인연을 맺고, 하늘의 자유가 평화의 기치를 드높이고,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과 땅이 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상봉하기를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바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소수의 무리들에게 그날을 대신할 수 있는 본향의 한때를 갖출 수 있도록 당신이 상봉의 날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달에는 그들과 더불어 만날 수 있는 인연을 따라서 한국을 떠나야 할 입장에 있사옵니다. 이 한국을 지키시옵소서. 이제부터 가야 할이 한국 강토를, 아버지, 사랑하시옵소서. 저희들은 현재도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 누가 나라를 맡아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길로 가게 할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밥을 먹기 전에 나라를 생각하여야 되겠고, 옷을 입기 전에도 나라를 생각하여야 되겠고, 길을 가기 전에도 나라를 생각하여야 되겠으며, 잠이 들기 전에도 나라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찾아 나오시는 승리의 그날을 이루어 드리는, 당신이 품고 싶었던 승리의 자녀들이 다 되어, 승리의 백성을 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승리의 동산을 찾기 위해 얼마나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저희들로 하여금 잊어버리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나이가 어린 자나 나이가 많은 자나 생활을 통해서 일구월심 충절의 마음을 가지고 당신 앞에 있어서 당신의 마음을 부여잡고 당신의 사정과 더불어 살며, 당신의 소원을 향하여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는 자녀 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아무 말도 아뢰올 면목이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얼굴을 들고 당신을 대해서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에게 누구보다도 더한 소망을 두고 싶으신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게 될 때, 불쌍하신 아버지를 동정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체휼하면서 눈물로써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정성어린 충절로써 아버지를 받들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없어서는 안 될 모습으로서 아버지가 찾아오시지 않을 수 없고, 아버지가 기억하시지 않을 수 없고,아버지가 내세워서 부탁하시지 않을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승리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의 자리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땅 위에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선한 선조들을 동원하여 땅 위에 있는 만민의 인연을 개척할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지상을 대하여 영계가 접근해 오는 이때에 있어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지고 자기 일족 혹은 자기 씨족 앞에 민족 앞에 선한 선조들을 임재시켜 그들과 공동작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영육을 통한 합동작전을 하여 영육으로 접해 있는 이 원수세계를 몰아 내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한 영인들이여, 땅 위에 있는 수많은 후손들과 접선하시고 결집하시어 최후까지 싸움터를 지키고 원수의 본영을 몰아낼 수 있게끔,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들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제부터 찾아오는 세계적 정세를 당신께서 가로막으시옵소서. 격동하는 세계가 오면 올수록 거기에 있어서 저희들은 물 위에 떠 있는 하나의 거품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파도가 세어도 바다 가운데에 솟아 있는 하나의 바위와 같이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서, 아버지가 언제나 거기에 한 터전을 삼아 가지고 사해와 같은 이 땅을 수습하시는 데 하나의 발판이라도 만들어 드릴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고, 하나의 종족, 하나의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러한 교단과 그러한 나라를 바라보며 나가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을 기반으로 하시어서 승리의 개척, 영광의 건설을 시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이제 11월 한 달이 오늘서부터 출발하게 되옵니다. 1971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 많은 복귀의 사연들을 거치면서 이미 10개월을 지냈습니다.또한, 저희들은 금년에 있어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대학가를 중심삼고 집중적인 공세를 하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목표하시던 모든 기초작업은 끝났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북괴의 모든 전력을 밀어 넘겨야 할 대한민국 국군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이들이 사상무장 할 수 있는 길을 바랐던 것도 이제는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전체를 아버지께서 주관하시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생활의 이면에서 저희의 안팎을 보호하시고 지도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지금까지 정성들인 일체가 아버지 뜻 앞에 합당하게 인연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외적으로는 이와 같은 일들과 인연 맺고, 내적으로는 지금까지 수차례의 목사 공청회를 통해 인연된 8백여 명의 목사들의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가까워지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말과 그들의 마음을 당신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서 있는 그 자리 자리에서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가 이끌어 가시는 운세에 보조를 맞추어 자기도 모르게 전체의 환경과 한 기준을 통하여 하늘의 인연과 연결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곳을 향하여 갈수 있고, 스스로 아버지께서 격동하실 때에 마음에 자극을 받으면서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곳으로 결집할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나라를 수습하기 전에 교회를 수습하여야 할 복귀의 형극의 노정을 잘 알고 있사오니, 그 노정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해의 모든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대의 복잡한 모든 인연을 아버지께서 가려내 주시옵고, 승리의 방패를 세워 주시옵소서. 남북이 갈라져 있는 인연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삼팔선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명년까지 저희들이 정성들이는 도상에 있어서 아버지의 보호하심과 가호하심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1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우리가 금년도 표어로 세웠던 '통일기반 확보'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과연 어려운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체를 두고 보면,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두고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싸워 나온 것,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온 것도 단지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만드는 싸움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동원되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되어 가면서 이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얼마나 애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생애를 두고 그 싸움을 계속해 왔어도 아직까지 통일했다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 서지 못한 자신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임을 보게 될 때,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면 부부끼리 하나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여러분이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를 가하면 가할수록 거기에는 배가되는 수고의 길과 어려운 문제들이 가로놓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것은 하나의 사람을 찾고 하나의 가정을 찾아 가지고, 그 가정이 완전히 하나님과 안팎으로 일치될 수 있는 터전이었습니다. 그런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새로운 횡적인 세계 무대를 향하여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더더욱 부정할 수 없는 어려운 점인 것을 우리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자기의 친척이라든가 종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중심이 없어 가지고는 완전한 상대적 여건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옳다는 중심의 핵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그 중심은 일시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초월해야 됩니다. 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지고 어느 때든지 그 모습이 변치 않는 자리, 절대적인 자리에 있어서, 전후좌우 사방에 있어서 그 모습은 표준임에 틀림없다는 결정적인 요인을 갖추지 않고는 중심으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표준으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 국가에도 그런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이요, 하나의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종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정 입니다. 가정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원리 용어로 말하면 사위기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위기대는 동서남북을 대신합니다. 따라서 동서남북이 이지러지지 않고 완전히 수평이 되어야 됩니다. 중심을 중심삼고 볼 때, 중앙에서 동쪽 끝이나 서쪽 끝, 남쪽 끝이나 북쪽 끝, 혹은 남서쪽 끝이나 북동쪽 끝, 남동쪽 끝이나 북서쪽 끝, 어느 쪽의 끝을 보더라도 그 간격이 같아야 되고 길이도 같아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결한 통일적인 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가 결정되면 그 중앙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이 임재하려면 완전한 주체와 완전한 대상이라는 조건이 첨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주체와 대상보다도 완전한 주체와 완전한 대상이 주고받는 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중심이 결정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동서남북, 즉 동에서부터 남으로 서로 북으로 돌아 가지고 다시 동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길이가 같아야 되고, 또 각 사방에서 중심을 대하는 그 길이가 전부 다 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치우치지 않는 하나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의 가정, 수평과 수직의 중심으로서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는 가정이 있겠는가? 그렇게 결집된 중심, 그 핵은 평면세계의 종합적인 기점이요, 혹은, 입체세계의 지상의 중심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중심입니다. 그 중심은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수평선과 수직선이 결집된, 이것이 안팎이 되어 가지고 90도 각도로 집약된 하나의 핵을 이를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그래야만 완성을 결할 수 있는 주체와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 반드시 임재하신다는 것을 원리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이 하나의 수직선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이 그 수직선을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이 평형을 이룬 수평선을 갖추어 가지고 사방의 비중이 통일된 형태를 갖출 수 있겠느냐? 그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한 점을 바라보고 지상섭리를 해 나오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성립되지 않고는 그러한 하늘 수직선을 중심삼은 종족권, 민족권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은,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볼 때,중심이나 말단에 있는 개개인이 마음 기준에 있어서 수평선을 이루어 수직선과 접할 수 있는, 즉 90도 각도의 직각선에 처할 수 있는 국민의 자세, 국민사상이 갖추어져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태만상의 요인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올라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내려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여러분들도 마음 자세가 전부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이 전부 다른 개체들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뜻을 알고 뜻길을 간다는 우리 자신들마저도 그러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삼천만 민족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범위를 더 넓혀 가지고 주권이나 전통,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습관과 풍습이 다른 역사성을 지닌 수많은 나라, 세계 인류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수직선과 이 수평선을 그려 가지고 완전한 중심과 일체적인 이상권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창조이상이란 무엇이냐? 중심으로부터 끝에까지 힘의 작용이 있게 될 때에 도는 힘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이 끝이 저 끝과 접하고, 저 끝이 이 끝과 연락될 수 있는 힘의 배열이라는 것은 같아야 될 것이요, 그 방향도 중앙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여야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지금 지상의 한 중심의 핵점에 현현하셔서 세계 만민에 힘의 수수작용을 요구하고 계시다면, 과연 저 땅 끝에서 그것을 받아 가지고 평면상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다' 하고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상세계의 실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오늘날 인간 자체들로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된다 하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볼 때에, 지금 세계에 중심이 있느냐?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중심이 아니요, 공산세계도 중심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새로이 논하고, 미래의 세계를 추구하는 어떠한 정치 사상, 정치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세계를 우리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파동과 같이 움직여 나가고, 혼란상태, 혹은 격동하는 와중을 거쳐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이 세계의 운명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과연 이 세계의 중심이 있느냐? 막연한 중심이나마 있느냐 할 때, 우리는 막연한 중심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금후의 세계 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미국 자체가 '이렇게 간다'고 확실치 않지만 막연한 방향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러한 입장에 서 있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혹은, 공산주의 자체가 그럴 수 있겠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된다. 하나의 세계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는 틀림없이 이렇게 가야 된다' 해 가지고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국가가 망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 자주적인 국가가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3일인가, 자유중국이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에서 축출 당했습니다. 20년 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공을 침략자로 규탄할 때에 자유중국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결의하던 나라들이 20년만에 자유중국을 축출하는 이런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자신할 수 없는 세계 정세권내에 몰려 있는 것입니다. 세계 정세를 따라 가지고 우리의 감정과 사회의 풍조는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과연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변하지 않는 방향을 갖추어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섰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느냐? 이것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국가 가운데 막연하나마 '세계의 방향은 이래야 된다'고 하면서 모든 생명을 투입하고, 국권을 동원해 가지고 죽음길을 가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되겠다고 하는 어떤 주권자. 어떤 국민이 있느냐?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민주세계보다는 공산세계가 좀 낫습니다. 공산당들은 세계 제패를 위해서 국가 전체가 동원해 가지고 생사를 결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목적을 위해 가겠다는 무리입니다. 그렇지만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에, 공산권은 이미 분립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다원화, 다극권을 향해서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세계 가운데에 그러한 단체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그러한 국가는 없지만 장구한 세월을 통해 막연한 방향이지만 전체의 생명을 투입해 가지고 가겠다는 하나의 무리가 있었습니다.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역사의 역경을 거쳐 나오면서 막연하나마 앞으로 자기들이 가는 그 끝날에는 이러한 하나의 세계, 이상세계가 온다고 하며 생사를 걸고 투쟁해 나온 종교가 있습니 다. 종교 중에도 어떤 종교냐?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그 기독교가 지금은 어떻게 됐느냐? 이때에 있어서 결속해 가지고 혼란된 세계상을 넘어서'이렇게 가겠다' 는 방향을 확고히 제시해 가지고 세계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독교가 됐느냐? 기독교 자체도 다원화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투쟁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독교가 막연하나마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수평선을 향하여 하나의 방향을 가리기 위해 투쟁해 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공인할 수 있는데, 이렇게 횡적으로 뻗어 나온 역사적인 첨단은 어디서 스톱당했느냐? 20세기 후반기입니다. 20세기 후반기의 문명과 보조를 맞추어 휴식단계에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걸 바라보게 될 때, 금후의 종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금후의 기독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종교계의 혁신을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될 차제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종교계를 새롭게 각성시키고 세계적인 사상계를 새롭게 각성시킬 수 있는 이 2대 사명을 결속시켜 가지고 하나의 목적관을 제시한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통일사상은 막연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직적 방향을 취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수직적 방향은 어떠한 것이냐? 심정의 터전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심정의 인연이라는 것은 역사가 변천해 나간다고, 혹은 시일이 지나고 연한이 길어진다고 해서 희미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가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이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결집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있을 때에, 아들이 있는 곳에서 부모에게 소식이 온다든가, 혹은 부모가 아들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그 소식은 지금까지의 모든 소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극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소식이 제2의 출발의 요인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자관계의 심정세계를 통해 체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녀라고 하게 될 때에, 하늘 부모와 땅의 자녀들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그것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하늘 부모를 중심삼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우리 통일가의 자녀들은 이와 같은 심정적 인연을 결속시켜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고받는 그 마음은 인간세계의 어떠한 심정의 내용보다도 국가라든가 천주를 중심삼은 방대한 심정적 인연이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주고받는 그 심정적 터전은 '만민이 통과하더라도 그 방향이 교차될 수 없다 가는 도상에 있어서, 도중에서 끊어질 수 없다' 할 수 있는 그런 확고한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과 외국의 선교본부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한국을 통한 섭리의 인연이 그 선교본부를 통하여 전달되게 될 때는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전달되면 그것을 자기 나라의 전국에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고부동한 심정의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그 다리를 통해서 역사세계에 새로운 천운을 끌어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면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중심은 한 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중심의 받침이, 혹은 터전이 기울어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이 기울어지면 도리어 파동이 일고 파탄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자기를 생각하면서 정성들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쓴 편지를 받아 보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완전한 주체 앞에 있어서 완전한 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가 어디냐? 대상으로부터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부터 대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적인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한국의 본부에 있는 책임자들이 언제나 주체성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평선상의 수직선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와 90도 각도의 인연을 사방으로 갖춰 가지고, 정성들이는 세계 사람과 국경을 초월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윌해 가지고 평행선적 세계의 무대를 갖출 수 있는 정상적인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통일사상에서 말하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세계 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와 더불어 하나되어야 되느냐?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무엇과 하나되어야 되느냐? 제물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되고 제물과 하나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 마음이 수직관계가 되어야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내 개체를 중심삼고 제물과 평면관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말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제물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제물과 하나되려면, 제물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물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영적인 존재인 동시에 육적인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가인입니다.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제물과 하나되지 못하는 거예요.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제물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제물은 무엇이냐? 희생을 말합니다. 자기의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하여 피를 흘리지 않고는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두고 보면 마음은 아벨의 입장이요, 몸은 가인의 입장입니다. 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에는 그냥 그대로는 안 됩니다.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몸도 고달파야 되고 마음도 고달파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마음이 고달프지 않고는 몸을 구원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일구월심 몸을 제압하여 마음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피를 흘려야 됩니다. 희생당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가 대상에게 그 힘을 나눠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의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대상이 조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위해서는 힘을 소모시켜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중심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재창조의 기준을 평면적으로 대신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지상에서 중심의 자리에 설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힘을 투입하고 자체를 소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체의 힘을 소모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대적인 여건을 창조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법도입니다.
복귀역사는 재창조역사이기 때문에 제물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벨이면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에, 아벨이 얼마만큼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 그것은 비유를 들자면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이란 자신이 없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차라리 뺨을 한대 맞는 것이 쉽지, 책임 있는 말을 하기란 힘든 것입니다.
반드시 삼각관계를 중심삼고 상대적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사각관계 이상을 표준해 가는 것이 사위기대의 이상권입니다. 더욱이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중심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체 되는 사람이 창조력을 소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는 이것이 하나의 공식인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전부 다 이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영적 사탄세계의 가인과 실체세계의 가인형이 개인적 가인, 가정적 가인, 종족적 가인, 민족적 가인, 국가적 가인, 세계적 가인까지 널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중심삼고 본다면 개인적 아벨, 가정적 아벨, 종족적 아벨, 민족적 아벨, 국가적 아벨, 세계적 아벨이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나'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기반의 모체가 어디냐 하면 '나'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는 내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나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수직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수직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으로 내 몸과 하나되어 횡적 선을 그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하나되었다 하는 자리는 종적으로도 결집되고 횡적으로도 결집된 자체로서 안팎이 하나되었기 때문에, 안은 안만으로의 안이 아니요, 밖은 밖만으로의 밖이 아닙니다. 둘이 합해 가지고 너와 내가 상응되는 자리에서, 서로가 자체를 공인할 수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제3의 목적점을 중심삼은 '나' 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 있어서 대상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나'라는 자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를 자각하고 나선 후에는 나 혼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몸 마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상대를 중심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창조원칙은 그렇게 발전되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전에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자세로 마음과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중심 핵에 설 수 있는 개체를 확보하느냐 못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적인 핵, 통일 자체를 중심삼은 통일기반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통일기반이 확보되게 되면 나는 찌그러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된 '나'인 것입니다.
사랑은 중심이요, 뜻은 상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은 뜻은 없는 것을 알아야 돼요. 사랑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둘을 하나 만드는 데는 말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물질 가지고 하나되었다면 물질이 떠나게 되면 도망가는 거라구요. 제삼자의 소개로 말미암아 무슨 사연을 통해서 하나됐다면 그 사람이 없어지면 떠나 버리는 거라구요.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 아니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둘째 되는 계명이 아니고 첫째 되는 계명인 것입니다. 모든 가르침의 첫번째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종적 기준의 중심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핵의 내연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것은 왜냐? 통일기반을 생활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것이요, '뜻' 하면 나로부터 세계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뜻이 머물 수 있는 곳은 가정만이 아니라 세계라구요, 세계.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 뜻을 위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뜻을 위해서 섭리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희생되더라도 세계를 위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만민을 중심삼고 희생하면서 뜻의 권을 다시 한번 개척하기 위해서 제2 개척의 수난길을 당해 나온 것이 하나님이 걸어 나오신 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에 있어서 남북이 떡 갈라져 나갔다는 것은 중심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심은 어디서부터 잡아야 되느냐? 중심을 잡으려면 맨 처음에 어떠한 한 지점에 대어 가지고 중심을 잡아 나와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땅에 중심을 잡으려 할 때, 경사지에서는 대번에 못 잡으니 어느 곳에다 닻을 대 놓아 가지고 중심권을 찾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촛점이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남한이 먼저냐, 북한이 먼저냐? 대한민국 전체가 한꺼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 곳은 한 점인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한 개인을 통해서 그 중심점을 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가진 개인을 발전시켜 가지고 하나의 가정이 되어야 된다구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서 삼천만 민중 가운데 어느 개인 대표를 통해서, 삼천만 민중 가운데 어느 가정 대표를 통해서, 삼천만 민중 가운데 어느 종족 대표를 통해서, 삼천만 민중 전체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도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 종족…. 이렇게 점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핵은 하나지만 그것을 중심삼고 가정이요, 종족이요, 민족이요, 국가요,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점점 커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이렇게 해 가지고 결국은 개인 중심, 가정 중심, 종족 중심, 민족 중심, 국가 중심, 세계 중심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자리를 어느 기점을 통해서 잡아 갈 것이냐? 그것은 우리 교단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그 중심 기점을 중심삼고 이것이 정지될 수 있는 그날까지 전진해야 됩니다. 그렇게 가다가 정지되는 날 그것은 개인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이요, 가정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이요, 민족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이요. 국가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 전체가 수직선 앞에 90도 각도를 이룬 사방성을 갖추어 가지고 동서의 거리가 같고, 혹은 동과 중앙, 서와 중앙의 거리가 같을 수 있는 기준만 되면, 이것을 똑 떼어 놓았다가 어느 때라도 다시 갖다 맞추면 수직 각도의 중앙과 맞아떨어지는 기준이 됩니다. 그것이 하나의 민족이 되고, 하나의 국가가 되어 그러한 사방 120개 국가들이 합해 가지고 세계가 됐다 하면, 그렇게 합해진 세계의 권은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가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여러분들이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중심점을 결정하려는 힘이 여러분 자신에게 없다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어요? 가다 말겠어요? 가다 말게 된다면 이 세계의 중심, 혹은 대한민국의 중심은 어느 때에 나타나겠어요? 영영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에 중심이 결정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다 방향을 갖추어 따라가야 됩니다. 따라가야 되는 거라구요. 중심을 따라가서 중심이 자리를 잡게 되면 둘레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중심이 자리잡았다 할 때는 중심을 따라오던 것이 이북이면 이북, 삼팔선을 넘어서, 아무리 강한 힘이 있어도 전부 다 제거시켜 가지고, 그 중심을 중심삼고 방위수가 같은 거리에, 도수가 같은 거리에 서게끔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그 중심권은 세계의 중심권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북을 흡수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은 통일의 원칙이 '나'로부터임을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하나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대로 받을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세계를 위해서 마음대로 일할 수 있어요? 그것은 모순입니다. 내 자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의 사랑을 받는 대상은 주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이런 말 처음 듣지요?
부부를 두고 보면, 아내는 남편 앞에 대상적인 입장이지만 완전히 하나된 입장에 서게 되면 아내도 남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공동적인 노정을 위한 것이라면 응당히 응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히 하나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내가 상대적 자리에서 사랑 받았다 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그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자리에 서면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이 지금 북쪽으로 가고 있어도 '남쪽으로 가라' 하면 남쪽으로 가는 것이요, '동쪽으로 가라' 하면 동쪽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우리 일신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 삼고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체는 모순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식구들에게는 그런 폐단이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 상대적 결정을 한 자리에서는 자기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되 마음대로 한 그것이 원리원칙에서 이탈되는 것이 아니요, 둘이 공동목적을 지향할 수 있는 제3의 지침을 대하는 데 있어서 상충의 요인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내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이요, 내 몸은 뜻의 무대입니다. 내 몸은 뜻과 더불어 상대적 관계에서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내 몸이 가는 곳에는 뜻 아닌 것은 있을 수 없다, 보는 것도 뜻을 위해서 보는 것이요, 느끼는 것도 뜻을 위해 느끼는 것이요, 자고 먹고 입고 행하는 모든 것도 뜻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게 될 때, 여기서부터 비로소 통일의 요인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뜻을 품고 가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면,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바라던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은 지상의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임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무엇인지 모르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희망의 모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만나게 되면 희망이 깃들고, 대하게 되면 세계의 인연이 발로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남자 여자가 합해 가지고 인간 '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결합하게 될 때에 세계적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요, 또한 남자나 여자나 몸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의 무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뜻의 무대니 뜻의 결과를 그 생활무대에 나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는 것은 자기 개인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도 개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뜻을 나타내고, 뜻을 사랑 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되고, 그러한 가정은 그러한 종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 종족도 전부 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의 누룩으로 삼아 사랑하고, 그 몸들은 뜻으로 화해 가지고 하나될 때, 하나의 결집된 새로운 주체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뜻과 사랑이 합한 가운데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에서 느끼기 때문에 기쁜 것이요. 뜻을 품었기 때문에 소망스러운 것이 아니냐. 그렇잖아요? 기쁜 소망은 사랑을 떠나서는 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가는 통일종족입니다. 따라서 통일종족권내에 그 어떠한 종족도 떼어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기쁨권내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의 출발점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먹고 사는 일생노정은 전부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가 하나의 주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남북이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하나되어야 됩니다. 기성교회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에 화합할 수 있는 권을 이루게 되면 하나의 새로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도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에는 내성(內性)이 있고 외성(外形)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몸에도 내성이 있고 외형이 있습니다. 이렇듯 안팎이 있습니다. 그 안이 무엇이냐면 사랑의 보금자리요, 밖은 희망의 터전입니다. 그 안팎이 합한 곳이 이상동산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빼놓고는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고는 통일방안이 성립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기반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반이 이렇다면 가정적 기반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평면으로 넓어지는 거예요. (행동으로 설명하심) 사방으로 넘어지는 거라구요. 개인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과 뜻의 화합체가 된다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이요,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이요,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되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세계를 사랑과 뜻의 권으로 화합할 수 있게 될 때에, 통일세계는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기에 미터자가 있다고 합시다. 실제 1미터는 이만한데 자기 멋대로 자를 만들어 가지고 '이만큼이 1미터다' 하고 재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멋대로 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터자는 반드시 미터의 원기(原器)를 중심삼고 제작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재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을 놓고 비교된 자리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이와 같이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중심삼고 재 가지고 해야 됩니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에 맞추어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평화의 터전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통일의 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에는 가짜 미터자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면서 자기 멋대로 자를 만들어 가지고 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루에 몇번씩이라도 중앙에 와 가지고 틀리지 않았나 비교해 봐야 합니다. 한 번 재 보고 감정하고, 두 번 재 보고 감정해야 됩니다. 재는 상대가 점점 달라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될수록 '모이기를 힘쓰라`, '합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모여서 뭘 하는 거예요? 먹고 노는 거예요? 그 중심과 얼마만큼 기준이 맞아 들어가느냐, 평면적만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일체되어 가느냐 하는 것을 재 보아야 됩니다. 언제나 중심과의 수직관계를 중심삼고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그 기준을 여러분의 생활무대라든가 활동의 터전 위에서 하나의 중심 모델로 세워 가지고 거기에 기준하여 일체를 결정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사를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벗어난 생각은 틀렸다 이겁니다. 뜻을 벗어난 행동은 틀렸다 이겁니다. 대개 인간세계에 있어서 자고, 깨고, 오고, 가고, 좋고, 나쁘고, 이 여섯 가지에 세상 만사가 다 들어갑니다, 그런 일체의 움직임을 이것을 모체로 하여 해야 합니다. 자기 멋대로 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이 그러한 핵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체화된 입장에 서서 세계 어디에서나 혹은 높든지 낮든지, 나쁘든지 좋든지간에 그 심정을 적응할 수 있는 불변체가 되게 될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었을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가정이요, 그러한 종족이 되었을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종족이요, 그러한 나라가 되었을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에, 앞으로 여러분이 '통일교회' 라 하면 언제나 아벨이 남길 수 있는 주체적 사상을 이어받기 위한 교회라는 것을 생각 해야 합니다. 아벨이 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은 뭐냐? 뜻의 소망인 아들딸, 세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과 뜻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복귀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뜻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심하고 나서면 언제나 사랑만 하겠다고 이마를 맞대고 가만 있어요? 그 다음에는 뜻을 위해 가는 거라구요. '야! 우리 아들딸을 위해 가자' 그러잖아요? 뜻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하면 섭리인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뜻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결집되어야 되느냐? 내 마음과 몸에 결집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은 사랑의 터전이 되고 내 몸은 뜻의 터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고, 그 사랑에 비례된 뜻을 품고, 그 뜻을 사랑받은 만큼 행하여 뜻을 세워 놓는 사람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의 뜻을 가리기 위해서는 희생하면서라도 가야 됩니다. 뜻의 터전만큼 사랑받을 수 있는 상대적 권을 죽어서라도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계는 상응적 세계가 아니라 타락권내의 상충적 세계입니다. 그 상충적 세계를 제거시켜 버리고 상응적 세계권을 바라 나오기 때문에 그 세계는 지금의 이 세계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세계의 정세에 있어서 새로운 주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여기에서 점프해 가지고 세계 끝에 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체에서부터 정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방안은 내 자체에서부터 정립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된 나, 뜻과 사랑이 결집되어 자체에 화한 나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 타락권내에서 그냥 그대로 죽어 자빠지면 개도 안 뜯어 먹을 거라구요. 그렇게 망할 자체를 두고 말하는 '나'가 아니라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식구들이 말하는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개재되고, 하나님의 뜻을 결집시킨 주체의 입장에 서 있는 '나'입니다. 얼마나 통쾌 합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할 필요도 없다는 거라구요. 이미 받고 있다구요. 뜻의 길을 가겠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가고 있다구요. 그럴 수 있는 나…. 그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으면 아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겠다고 해요? '엄마, 나 사랑해 줘' 그래요? 이미 사랑받고 있는 거라구요. 부모의 뜻이 아들한테 있는 거라구요. 또 부모는 자식들의 뜻의 주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뜻을 받들어 나가게 되면 아들의 뜻도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의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괄한 '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움직이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발로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이 발로되어야 됩니다.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감정에는 그것이 인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땅 위에 살더라도 하늘나라의 백성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나로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뜻을 품은 가정입니다. 너와 나 둘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자체들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뜻을 중심 삼고 사랑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럴 수 있는 가정, 그럴 수 있는 씨족, 그럴 수 있는 민족, 그럴 수 있는 국가,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아닙니까?
그런 권내에 내가 포괄되어 살고 있는 입장, 즉 환영하고 호흡하고 주고받는 권내에서 내가 주체적 입장에서 거동하며 산다는 입장에 설 때에 그야말로 통쾌한 일이 아니겠어요?
무한한 세계가 뻗어갈 수 있고, 무한한 세계가 축소될 수 있는 주체로 서의 조화의 인연을 제시할 수 있는 나요, 맥박의 기원을 파동시킬 수 있는 나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통쾌한 자리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어디를 가게 되면 하나님도 따라오십니다. 내가 숨어 버리면 하나님도 곤란하다구요. 그럴 수 있는 자각된 자리에서부터 통일의 요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무엇으로 통일할 것이냐? 뜻 가지고 통일하겠다고 하지요, 뜻! 그렇죠? 「예」 뜻 가지고 통일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빼 버리고 통일할래요?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뜻길을 간다고 하면서 전부 다 자기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구요. 뜻의 주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뜻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세상을 창조한 주체성이라든가 동기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날 인간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식 때문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구요? 지정의(知情意)가 아닙니다. 정(情)이 먼저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벨이 바로 그런 거라구요.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은 혼자 천국에 못 갑니다. 타락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 세계를 수습해 놓고 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냥 수습이 됩니까? 수습하려니 거꾸로 꽂아야 됩니다. 재창조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맞고 희생하여 가지고 가인을 수습해서 하나되지 않고는 한걸음도 못 나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도 그렇다구. 종족이 민족을 하나 만들지 못하고는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지 않고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둘이 하나되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니 여러분은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여러분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 선생님과 여러분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남자끼리도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어야 되고, 그 다음엔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위기대가 안 되면 안 된다구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렇죠?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사탄과 가인이 하나된 것이 사위기대라구요. 형태가 같습니다. 사탄세계의 국가면 국가라든가, 모든 것이 반드시 하나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되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럼 어디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느냐? 세상이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세상적인 머리가 높아 가지고는 망하는 거라구요. 선생님과 더불어 하나된 것은 높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권력, 명예 혹은 어떤 물질도 다 그 아래에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원칙이 그래요.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은 전부 다 통일교회의 반역자입니다. 사탄의 초소와 같습니다. 사탄의 초소는 사탄의 미끼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지만 사탄의 미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좀 곤란한 것이 있습니다. 뜻을 절대시하다 보니 가정도 무시하게 됩니다. 따라오지 않으면 무시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싸움이 벌어져서 갈라지든가 깨지든가 그렇지 않으면 합하든가 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런 것을 알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물을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깨지면 안 되겠으니…. 그렇잖아요? 상충되면 갈라져서 나중에는 부딪히든가 싸우든가 깨지든가 돌아오든가 하는 거예요.
번번히 깨지고 나서 돌아오기 때문에 복귀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깨뜨린 제물을 드리게 해 가지고 깨지지 않은 조건을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도 나온 거예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 주체입니다. 통일교회 뜻을 중심삼고 주체적인 뜻 앞에 배치되는 것은 전부 다 없애야 됩니다. 가정을 출동시키는 데 자기가 좋으면 가고 안 좋으면 말고,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뭐 누구는 좋아서 시키는 줄 알아요? 여러분과 내가 원수지간이예요? 안 그러면 안 되겠기 때문에, 안 그러면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원도에 있는 높은 산을 올라가게 되면, 높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더 험해집니다. 왜 험하겠어요? 평지 같으면 사람이라도 다니지만 높이 몰라가면 개 한 마리 안 보이고, 새 한 마리도 안 보인다구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험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이쿠…. 걱정이 태산 같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산을 오를 때 꼭대기를 올려다보면서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나? 하다가는 못 가는 거라구요. 발부리를 보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도 '내가 천당에 가겠다' 해 가지고는 못 간다구요. 올라갈 생각을 해보세요. 못 간다는 거예요. 발부리를 보고 그저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꼭대기를 바라보고 가지 않습니다. 꼭대기 바라보고 가다가는 지쳐 나가자빠집니다. '이게 얼마나 높아? 암만 높다 하더라도, 이거 한 발짝 높아 봐야 이만큼도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대기를 쳐다보면 '아이쿠 저렇게 높은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발부리만 보면서 걸어가는 겁니다. '여기 내 눈 아래 보이는데…` 하면서 말이예요. 올려다보고 가다가는 나가자빠진다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럼 무슨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이웃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저 사람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가는 길이예요. '나는 저 사람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하는 것이 천국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내려가는 것 같지만 내려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올라 가는 거예요.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거꾸로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좋은 법이 어디 있어요?
올라갈수록 올라가면 모르겠는데 내려갈수록 올라가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길 있으면 내려가겠어요, 안 내려가겠어요? 여러분, 산을 한번 타 보십시오.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공기야 고개 넘어 공기나 이쪽 공기나 한걸음 차이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요. 그렇지만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하고 올라가기 전의 기분하고는 다릅니다. 꼭대기에 척 올라서서 숨을 들이쉬면 별천지의 공기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려갈수록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내려가겠어요, 안 내려가겠어요? 내려가지 말래도 내려갑니다. 내려가면서 올라갈 수 있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안갈 사람이 있겠어요? 안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는 올라가기를 바라거든 깊이 내려가라는 거예요. 이거 좋은 일이지요? 그건 꼭 고무줄과 같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떤 나무의 큰 가지에 다 고무줄을 매고 잡아당기면 늘어나서 자꾸 내려갑니다. 내려 가기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내려갔다가 늘렸던 힘만 빼면 휙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갈 때에는 고무줄을 매어 놓은 곳보다 낮게 올라가겠어요. 높게 올라가겠어요? 높이 올라갑니다. 자동적으로 매어 있는 위치보다 높이 올라가는 겁니다. 복귀역사는 그 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희생이 좋다는 거예요. 내가 통일 교회 교인들을 전부 다 죽도록 고생시키려고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여러분이 희생하려면 내려가야 됩니다. 깨깨 망하도록 내려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붙들고 내려가느냐? 뜻을 붙들고 내려가야 됩니다. 마치 고무줄과 같다구요.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에도 개인이 하나되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또 가정이 하나되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나 자신으로는 그렇게 못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품고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더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난 다음에는 통일방안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떻더냐?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면 통일방안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좋고 좋고 좋더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내건 '통일기반 확보' 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볼 때에, 기반을 확보하라는 것은 수평선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으로서 수직선을 중심삼고 수평선을 그어 가지고 가정으로, 교회로 점점 확대시켜야 됩니다. 거기에 보조를 안 맞춰 가지고 수평선에 구멍이 하나 뺑 뚫어져 떨어져 내려갔다면, 그 내려간 것은 상대로 하지 말라구요. 그건 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 가지고 1971년도 마지막 2개월을 남겨 놓은 이때에 '통일기반 확보'라는 금년 표어를 중심삼아 가지고 심정적 일치점 이라도 갖추어 놓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11월 초하루 오늘을 맞기를 바라서 몇 말씀드렸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우리, 통일의 노래 한번 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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