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임과 동시에 안식일이옵니다. 한 달을 보내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해야 할 이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나가는 날들이 뜻과 저희 일생의 노정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는 날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당신과 저희와의 사이에 있어서 생명의 인연이 다시 맺어지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나라 앞에 당신으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땅 위에 살고 있는 저희들은 늘쌍 하늘 앞에 빚진 자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본래는 당신을 경외하는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할 자신들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버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된다는 거룩한 자리를 그리워할 적마다 지극히 낮고, 지극히 천하고, 지극히 악한 후손임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이 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치 아니한 악의 터전 위에 뿌리를 박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무한하신 당신의 긍휼이 저희들과 같이하지 않고는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들을 찾아오시어 같이하시옵소서. 개개인의 사정 사정은 다를지라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같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싶어하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이자 저희의 소원의 한 표준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의 태어남도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사는 것도 이것을 위해 사는 것이요, 일생을 가려 가는 것도 이것을 위한 것인 줄 아오니, 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생애를 바쳐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지의 존전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이 자리의 주인은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희의 생명의 인연을 맺을 분도 아버지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하늘 앞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이 솟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립고 그리워 당신이 흠모하시는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점을 더듬어 갈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을 느끼오며, 현재의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내놓기에 얼마나 미급한 모습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전체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당신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당신이 바라시는 소원에 일치될 수 있는 그 무엇으로써 붙들어 주시옵고, 그 자리에 도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를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저희 일체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 앞에 기억되고 싶은 마음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일생을 가려 가는 생활노정에 있어서는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 것이 저희의 생활이요 저희의 생애노정인데도 불구하고. 사악한 이 땅 위에 살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원치 않는 생활을 번번이 하고 있는 저희 자신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자비와 긍휼의 손길을 펴시어서 최후의 승리를 결(結)할 수 있는 생애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활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아버지여, 10월을 지내고 마지막 날을 맞은 이 시간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은 또 새달, 새날을 맞아야 할 입장에 섰습니다. 지나가는 세월을 덧없이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환란을 당하든가, 혹은 선두에 서서 싸우든가 하는 과정에 있어서 아버지와 인연 맺어지고, 아버지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오니, 지금까지 당신과 더불어 나왔던 생애가 있사오면, 아버지여, 다시 한 번 찾아오시어 저희들을 격려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 앞에 필요한 아들로 서게 하여 주시옵고, 딸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1971년도는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맹세한 해였습니다. 이해야 말로 역사상 중요한 해로 만들겠다고 저희들이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이 10월을 보내게 되었사옵니다. 나머지 두 달을 통하여 아버지께서는 저희들 앞에 무엇을 제시하시겠습니까?

아버지여, 서울교회를 비롯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가고 오는 모든 섭리의 노정 앞에 필요한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싸움터를 지킬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가정에 있어서의 당신의 심정을 모아 아버지의 기쁨을 상징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저희들을 지켜 주신 아버지, 후덕하신 손길을 길이길이 펴시어서 최후까지 상처를 입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딸로서 고이 남아지고 책임을 다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부족한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나와 연약한 손길을 아버지를 향하여 벌리고 있사오니,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부족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 아버 지의 긍휼을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찾아오시어서 저희의 마음과 몸에 친히 군림하시옵고, 새로운 창조의 손길을 펴시사 아버지의 뜻 앞에 여의치 아니한 일체를 제거시켜 당신과 더불어 화합하고, 당신과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온전히 아버지의 장중(掌中)에 쥐시어서 원하시는 뜻 앞에 당신이 맡기고 싶어하시던 사명을 맡게 허락 하여 주시옵고,최후의 일선을 사수하여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나라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우러러보고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친히 동참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원하고, 그들이 정성들이는 모든 것을 긍휼히 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위하여 그와 같은 자리에 섰는가를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함은 물론이요, 이 시대의 불쌍한 인류를 위해 선두에 선 걸음걸이이오니, 힘차고 가치 있는 걸음걸이를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역사시대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선조들의 참소와, 인류의 참소와, 후손의 참소를 받는 비참하고도 불쌍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한 자들이 되지 않게끔, 아버지, 현재 입장을 지키시고, 현재의 승리를 다짐하고, 한 순간 한 순간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온갖 충성을 다하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을 통하여 이 민족 앞에 세워져야 할 기성교회를,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갈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기성교단과 하나되어야 될 것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옵니다. 이것이 하나 안 되고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없기에 하나되기 위해서 가는 길이 원리가 가는 길이요, 당신의 섭리가 이런 원칙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자신들 앞에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해 내기 위해 각자가 책임을 다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교단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불쌍한 민족을 아버지 뜻 가운데 품고 갈 수 있도록 금후에도 아버지께서 이 교단을 보호 육성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상이 바라는 소원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남북한이 통일된 한국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나날을 조는 자리에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깨어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저희 생활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생활이 되려면 싸움이 되풀이되는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각자의 심중에 보다 깊이, 보다 크게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의 이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 한국이 갈 수 있는 길, 아시아가 갈 수 있는 길, 세계가 갈 수 있는 길을, 아버지여, 인류와 더불어 의논하시어 갈 바를 개척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 하늘의 기수가 되어야 할 무리들은 딴 곳에 있는 무리들이 아니옵니다. 보기에는 미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여기에 모여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통하여, 외로이 널려 있는 통일교단을 통하여 이 중차대한 사명을 가리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당신이 선두에 서시어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 앞에 책임을 진 이 종단이 책임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당신 앞에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겨진 민족적 사명을 감당하여 후대 후손 앞에 참소를 받는 저희들이 돼서는 절대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있는 정성과 있는 마음을 다할 수 있게끔 저희의 몸 마음을 채찍질해서라도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을 감당해 내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당신 앞에 속해 있는 수많은 권속들을 살피시옵소서. 최후의 시기에 있어서 한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한 시민이 되는 데 있어서 당신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늘 권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족한 모습들이 모여 앉은 이 자리를 당신이 살피시옵소서. 그 누구를 바라보고 나온 자리가 아니옵니다. 당신이 그립고, 당신의 사정이 간절하여 나온 자리이옵니다. 이제 털어놓고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저희들 앞에 전달하고 저희들의 소원의 일념을 당신 앞에 통고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저희들이 화합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겨진 시간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영광과 승리와 권위가 이 땅 위에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어떠한 표준을 정해 놓고 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은연 중에 자기 스스로의 목적을 바라보고 살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도 그러하고, 한 단체면 단체, 한 나라면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세계면 세계도 역시 그러한 것을 향해서 바라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바라고 있는 자리,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갑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을이라는 사람, 각양의 사람의 사정이 다르니만큼 각기 다른 사정에서 자기 스스로의 목적을 바라고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땅을 대표하는 중심존재

역사과정을 두고 보면, 특정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의 뜻이라든가, 혹은 목적을 구사해서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이라 든가 생애가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역사는 한 곳으로 수습되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잘난 사람, 혹은 크나큰 사상을 품은 사람, 혹은 천운이 있으면 천운을 따라가는 사람, 혹은 보다 높은 이념을 가진 사람이 살아간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은연 중에 표준으로 바라보면서 따라 나오는 것이 역사의 노정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 바라보고 나오는 역사의 노정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역사적인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에 내적인 인연이라든가, 혹은 외적인 사정이 일치 되게 될 때에는, 그 역사노정에 세워진 인물이 바라는 소원은 몇 세기 또는 몇천 년의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인류의 하나의 표준상으로 남아 나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정한 사람들로서 우리가 흠모 하는 사람들이 성인들인 것입니다.

그 성인들을 중심삼고 보면, 반드시 하늘을 소개하지 않고, 하늘을 중심삼고 세계를 생각지 않은 사람들은 성인이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인 하면 모두 종교를 대표하는 종주(宗主)들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만을 대표한 입장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과의 인연을 가지고 그것이 그 일대에 한할 수 있는 목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시대까지 최후의 인간으로서 참된 전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나온 것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그 목적에 일치화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생애를 투입했고, 자기가 세워 놓은 종교를 통해서 지금까지 인류를 그 길로 이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개인 개인의 소원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게 될 때는 그 개인은 가다가 중단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 하더라도 역사의 목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세계적인 하나의 국가, 세계적인 사상의 체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의 방향을 갖추지 못하는 그 한계선에 도달하게 될 때는,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는 사실도 우리는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인으로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성인 자체라는 것은 인간을 대표해서 역사적인 인간의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세계사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즉, 인간을 대표해서 역사적 중심이 되는 동시에 세계사적인 목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대표한 자리에서 그래야 되고,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소원 일체를 이어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 전체를 이어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역사를 대표하고, 역사적 목적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땅 위에 그러한 소망과 그러한 책임감을 느낀 성인 중의 성인이 누구냐? 그 성인은 인류를 대표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륜을 중심삼고 인류를 움직여 나가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인정인 것입니다. 인륜과 인정을 갖추어 완전히 하나의 세계사적인 중심의 자리에서 세계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인간 대표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륜이 있으면, 하늘이 찾아 나가는 길이 있으면 그 하늘을 대신해서, 하늘이 인간세상에서 심정적 내연을 찾아 나오는 그런 길이 있으면 천정을 대신해서, 천륜과 천정을 대신한 섭리노정에 있어서 개인을 대표한 천륜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의 국가와 세계를 대표한 천륜의 자리를 대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동시에 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륜과 인정을 대표할 수 있고, 천륜과 천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하늘을 대표함과 동시에 인간을 대표한 그러한 한 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나라의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의 제일 중심존재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의 제일 중심존재가 되어야 될 것이고, 하늘나라의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의 제일 중심존재가 되어야 될 것은 물론이지만,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도 가정에 있어서 세계적인 대표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이요. 나라에 있어서 세계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전세계를 대표해 가지고도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 따로 하늘 세계 따로 분립된 자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륜과 천륜이 하나된 자리에서, 인정과 천정이 교차되어 하나된 자리에서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에 선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개인이 바라는 세계적 중심의 표준을 가려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 중심존재를 가려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존재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개인적인 중심은 전체 하늘나라의 개인을 대표하고, 나라의 중심은 하늘나라의 중심을 대표하고, 세계의 중심은 천국 전체를 대표한 중심으로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됩니다.

그는 바로 세계의 중심임과 동시에 나라의 중심이요, 나라의 중심임과 동시에 개인의 중심입니다. 그는 천륜과 천정을, 혹은 인륜과 인정을 개인으로서 결합시킨 사람이요, 혹은 국가면 국가를 대표해서 결합시킬 수있는 사람이요, 세계를 대표해서 결합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에서부터 전체를 대신해서, 인륜과 천륜, 혹은 인정과 천정이 분립되지 않고 하나의 궤도를 따라 가지고 그의 생애노정에 남기고 갈 수있고, 생활환경에 나타내 가지고 살 수 있는 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분, 그런 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는 완성을 바라볼수 있는 것입니다. 인정과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 있어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중심자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정(天情)을 유발지킬 수 있는 동기의 자리에 선 그러한 분이라야 될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

이렇게 보게 될 때, 역사상에 그러한 책임을 짊어지고 왔던 분이 누구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을 대표해서 말하게 될 때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외아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번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독생자는 하나님의 사랑 전체를 받을 수 있는 대표자인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 자리에 섰다는 입장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느누구도 발언하지 못하였던 것인데, 예수님은 천정과 인정을 대표해 가지고 발언하는 데 있어서 제일인자가 아닐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해 가지고는 신랑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신봉하던 모든 신자들은 신부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예수님과 같은 공적 생활을 거쳐갔던 것입니다. 그 신랑 신부라는 것은 인정과 인륜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천정과 천륜을 중심삼은 그런 신랑 신부를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종이 되지 않고 친구가 된다' 더나아가서는 '형제가 된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이 주장한 교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서는 것이요, 그런 아들로서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형제지권을 바라 나왔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륜과 인정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 천륜과 천정을 플러스시켜서 천주가 공인할 수 있는 세계관을 중심삼고, 하나의 섭리관을 중심삼고 일치된 노정에서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가정적으로는 가정의 주인이요, 생활적인 면에서는 형제적 인연을 갖추는 것이 또한 하나님이 예수에게 바랐던 소원이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실천해야할 사명이 아니었더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가야 했던 길

그러면 여기서 가야 할 예수의 노정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의 길을 지키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는 소년시대, 청년시대에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이 땅 위에서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세계에 가서도 영원히 하나님의 독생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서서 그 길을 다 가야 하는 것이 예수가 가야 할 노정이 아니냐.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야 되는 것이요, 자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야 되는 것이요, 철이 들어 가지고 생활하는 환경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환경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고, 장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고, 노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생애노정을 다 마치고 난 후에도 역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예수가 날 때부터 생애노정을 통해서 사랑하셨지만, 예수를 사랑했던 인간을 대표한 개인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한 개인이 누구였더뇨 할 때 요셉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물론 어머니의 입장에서 사랑한 것은 틀림없었겠지만,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사랑하기가 쉬웠지 천정을 대표한 자리에 서서 나면서부터 생애 노정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의 자리에 섰느냐? 그렇게 못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서 그 어머니를 대해서 예수가 한 말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누구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적 배경을 두고 보면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단계에서 태어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오늘날 세상적으로 보면 의붓아버지입니다. 의붓아버지 품에서 자라고 있는 예수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를 두고 보면 예수란 존재는 언제나 기쁨의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도리어 의심의 존재요, 마음을 혹은 심정세계를 엇갈리게 하는 존재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어머니를 맞았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언제나 트러블이 생기고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많이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가 천정의 인연을 대표할 수 있는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 천정을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자신에게만 멈춰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횡적으로 아버지면 아버지를 중심삼고 연결시켜야 되고, 어머니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연결시켜야 됩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사랑을 연결시킴과 동시에 형제를 중심삼고 연결시키고, 친척, 교회, 이스라엘 나라까지 그 사랑을 횡적으로 연결시켰더라면 예수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연 정면적으로 인간을 대해서 '내사랑이 이렇다' 해 가지고 그 사랑을 전부 다 퍼부었던 사람이 있었느냐할 때,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서러운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30세에 공생애노정을 나서서 제자들을 찾아다닌 예수의 입장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혹은 열두 제자를 볼 때, 그들이 과연 인간세상에서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리움의 대상들로서 모여진 제자였더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제자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상류계급으로서 어떠한 권위를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외적 환경에 있어서 존경받을 수 있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공생애노정을 거칠 때, 세리의 친구요,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죄인들과 더불어 동거하기를 즐겨하고 같이하기를 즐겨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대하던 무리는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수 있는 대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멸시받던 세리와 예수의 어부들이 친구의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 일파들은 전부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냐. 여러분이 성경을 봐서 잘 아는 바입니다.

12사도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입장에 섰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의 발전과 더불어 기독교 문화권이 발전함에 따라 그 비례적인 가치로 세워진 기준이지 예수님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지도 받지도 못한 예수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 십자가의 길을 가는 도상에 서게 될 때, 예수님이 지극히 사랑했던 모든 제자들은 예수를 저버렸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예수가 죽어가는 길을 가게 될 때 죽기를 다짐할 수 있는 참다운 제자가 있었더냐? 예수와 더불어 죽기를 맹세했던 베드로, 모든 제자들이 전부 다 선생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죽더라도 버리지 않겠다고 철석같이 맹세했던 베드로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예수가 과연 천정의 일념을 다짐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수제자 베드로 이하 열두 제자들을 사랑할수 있었겠느냐? 그런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인연 되어 있는 참아들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자리에서 인간을 진정히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저버린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얼마나 고독했을 것인가? 이 땅 위에 찾아온 것은 사랑을 받기 위함인 동시에 사랑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려니 사랑할 사람이 없고, 사랑을 받으려니 사랑해 줄 사람이 없는 입장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의 고독한 심정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그 누구도 몰랐더라 이거예요. 그 누구도 그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정을 거쳐 죽음의 자리에 임할 그때까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그 마음속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땅 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들, 예수를 위해서 애절한 심정을 가지고 당신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하나의 사랑의 대상이 있었던들. 죽음의 십자가의 길은 그렇게 고독한 길이 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고독이 극한 자리에서, 좌우의 강도들과 같이 죽음의 길을 가는 도상에 있어서 오른편 강도가 위로하는 몇 마디를 중심삼아 가지고 위로받고 '너는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가리라'고 말씀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고독한 자리에서 이 땅 위에 인간을 찾아왔다가 떠나가야 할 입장에 선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인정의 일면을 남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예수님으로서는 오른편 강도에게라도 그러한 심정적인 내연을 남겨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다시 인간세계를 찾아와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오른편 강도를 중심삼고 동정하는 자리에 섰던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비참하냐? 아무 인연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강도, 죽음의 자리에 동참한 오른편 강도를 대해서 동정의 마음을 남기고 가려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두고 볼 때, 얼마나 비참했던고?

예수님이 땅 위에 찾아온 것은, 4천년 동안 수고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던 것은 오른편 강도 하나 만나게 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보내 죽음길을 가려 가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고이 품어 키운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은, 유대교를 만드신 것은 유대교 자체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남아짐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남아지는 것이요, 예수님이 남아짐으로 말미암아 그 교단이 남게끔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것이지, 예수님 이외에 남아질 수 있는 교단이나 나라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반기를 들고, 그 교단은 죽음길로 내모는 입장에서, 혹은 자기 부모마저 가는 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동정하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 제자마저도 배척하는 심각한 죽음길에서 동정의 한마디를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냐? 오른편 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 오른편 강도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던 것이냐?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하나님의 심중의 사랑을 대표한 예수는, 그 나라 전체를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던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가 바라던 사랑의 심정이 아니었겠느냐.

자기가 받던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지금까지 수난길을 가려 나오면서 참고 남아진 무리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소원이 아니었겠느냐. 요셉의 일족과 사가랴 일족, 자기의 친척 전부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아들로서의 권위를 대신하고, 또 같은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서 그 일족을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자기 부모는 물론이요, 자기 사랑하는 형제들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내 형제라고 내 부모라고 붙안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심정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볼 때, 언제 어느때 예수가 그러한 사랑을 해봤느냐? 사랑을 못 해봤다는 거예요. 사랑을 못 해본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죽음길을 예수 앞에 맞게 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신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서 3일 후에 부활해 가지고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찾아간 예수에게는 그 길이 기쁜 길이 아니었습니다. 죽기 전에, 생전에 이 땅 위에서 심정적 인연을 맺어야 했는데, 그 누구도 하나님이 준비한 자리에서 맺지 못하고, 이 터전을 다 쓸어 버리고 난 이후에 맺었는데, 그때가 부활 직후가 아니었더냐.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자마자 사랑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부활한 예수를 만났습니다. 부활한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주님인 것을 알고 반가와 예수를 붙들려 할 때, 그리 말라고 거부한 것을 우리가 알지 않느냐. 그건 왜 그랬느냐 이거예요. 사랑하는 데는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서, 형제를 사랑하고 나서, 친척을 사랑하고 나서, 교회를 사랑하고 나서,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세계를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데는 질서가 있을 것이 아니냐.

부활한 자리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와야 할 것은 예수 앞에 지극히 가까와야 할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가 돼야 되고, 제자가 돼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 앞에 나타난 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예수는 부활 후 40일간 배반하였던 제자들을 다시 수습하는 자리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떠날 날이 가까와 오자 예수는 베드로를 대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또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게 될 때, '주여! 주께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 하고 막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첫번에는 얼굴을 들고 반겨 대답했지만, 다시 예수님이 심각한 자리에서 쏘아보며 두 번 묻게 될 때에 베드로의 마음에 자신이 있었느냐? 문제라구요.

여기에서 당당한 자신을 갖고 '그 무엇이 맞부딪쳐 오더라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꺾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가 대답한 자리였느냐? 엇갈린 입장에 서 가지고 왜 이렇게 물을까 하는 반면에, 며칠 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배반하였던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직각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자리가 아니었더냐. 세번째 물음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했을 때는 틀림없이 얼굴을 들고 대답한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겠어요? 세 번씩이나 배반했던 녀석이 그렇게 묻는 장본인 앞에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당신이 알지 않소. 그 무엇이 반대하더라도 다부숴 버리고, 다 제거시켜 버리고 이것이 이렇지 않습니까' 하고 도리어 스승에 대해서 반문할 수 있는 그런 자신 있는 자리냐? 두 번 묻고 세번 묻게 될 때, 머리를 점점 숙일 수 밖에 없는 베드로가 아니었더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왔던 예수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 그 말 속에는 지극히 고독했던 예수님의 생애를 종결짓기 위한 최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서 와 가지고 그 사랑을 인간 대해서 몽땅 부어 놓고 가야 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 위의 그 누구를 사랑했단 말이냐. 사랑했다는 자리가 오히려 사랑하느냐고 묻는 자리가 되었더라 이거예요. 이 얼마나 비참한 자리냐 이거예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안다'고 그렇게 칭찬하는 말로 부활 이후 찬양할 수 있는 사도를 못 가진 기독교는 비참한 종교다 이거예요.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를 못 가진 예수, 제자마저 사랑할 수 없었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사랑할 수 있었겠느냐?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하여 집을 떠난 예수

마리아가 책임 못 한 것을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더더구나 요셉은 의붓아버지로 예수를 못살게 굴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친척들도 예수가 사생아라는 소문을 듣고 손가락질하고 저주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서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만나 토론한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좋은 일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랬느냐?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 예수를 데리고 간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린 예수를 데리고 가는 요셉과 마리아는 어머니 아버지로서 예수를 지켜 봐야 하고 예수와 함께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동안 고향길을 돌아갔다가 와 가지고 예수를 만나게 됐어요. 사흘 동안이나 예수를 성전에 남겨 두고…. 어미 아비라는 작자 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왜 돌아갔느냐 이거예요. 좋아서 돌아간 줄 알아요? 예수 때문에 트러블이 생겼다는 거예요, 예수 때문에.

요셉이 마리아한테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게 될 때, 거기서 언제나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남자로서 그 아기의 아버지를 추궁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느냐? 물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요셉이 마리 아를 데려왔지만, 그 여편네가 자기도 모르는 아기를 배어 가지고 낳았는데 그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겠어요? 트러블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아신 예수는 집을 떠나갔다구요. 집을 버리고 나갔다구요. 3년 공생애노정은 떠벌이꾼으로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놓으면서 교회와 나라 앞에 선동분자로 몰려 가지고 죽을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도 모르게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되어 만들어 가지고 예수를 협조했더라면 뜻은 이루었을 것인데 요셉과 마리아가 책임 못 했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서로 불화했던 것이 동네에 소문나게 됐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마리아 복중에 있는 아기가 요셉의 아기가 아니라고 낳기 전에 이미 동네에 전부 소문나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친척들마저 전부 다 예수를 의붓자식으로 취급하고 사람 취급을 안 했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동네에서 예수를 태어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수없이 그 누구도 모르는 베들레헴 같은 데서 예수를 탄생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가 얼마냐 하면 시오리밖에 안 돼요, 시오리.

배후에 그러한 서글픈 사정이 있는데 제자들이 성경을 썼으니 그걸 누가 알겠느냐 이거예요. 곡절에 묻혀 있는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서 그러한 미지의 사실들을 밝힐 수 있는 때를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가 광명한 새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예수님이 제자를 대해서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한 사실, 이게 얼마나 비참하냐 이거예요. '너는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 이럴 수 있기를 하나님은 바랐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 예수의 소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났느냐? 자기 가정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형제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일족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교회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만났습니다. 그 나라의 위정자들, 주권자들, 혹은 교회의 교법사들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습니다. 상류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다 이거예요.

할수없이 중류계층의 사람도 아닌 맨 하류계층의 지지리 못난 어부들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 있어서 어부 하게 되면 사람취급을 안 하는데 2천년 전 그때는 어떠했겠어요? 여러분, 갈릴리 해변가에 가 보면 우습다구요. 옛날 베드로가 살던 집을 가 보면 토굴이라 구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거예요. 그런 세상에서 아주 비참한 무리들, 할수없으니까. 죽기 전에 있는 정성을 다해서 땅 위에 사랑의 인연을 펴고 가야 할 텐데 불구하고 펼 수 없게 되니까, 몰리고 몰렸으니 인종지말(人種之未)들을 붙들고 최후의 소원성취의 일념을 바라 가지고 허덕이던 노정이 예수의 3년 공생애노정이더라 이겁니다.

비참했던 예수의 공생애노정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알기를 거룩한 노정…. 그래 가지고 천국 가겠다고? 예수의 공생애노정이 거룩한 노정이 아니라 비참한 노정이라구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가 뒤집히는 순간이요, 유대교의 역사가 깨져 나가는 순간이요, 요셉 가정의 축복의 터전이 폭파되는 자리라구요. 제자들과의 인연이 전부 다 갈래갈래 찢겨져 소망이 없는 순간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과 더불어 결속시켜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예수였기 때문에, 인간을 붙들고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죽고 난 후에도 원한의 터전으로 남았기 때문에, 배반했던 제자들을 찾아가 사정을 토로하자 않을 수 없었던 예수였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이거예요. 기가 막히는 장면이었다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될 때,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배반했던 무리들인 열두 제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습했던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찾아왔던 예수를 죽음길로 몰아냈기 때문에 그런 무리는 벌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남기기 위해서 가던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기 위해서 찾아가는 무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생겨난 것이 구원의 도리가 아니예요. 기독교의 수난의 도리예요.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뭐, 십자가로 구원을 받겠다구요?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수난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갔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사랑할 수 있었던 자리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기 이전의 베드로의 자리에 찾아갈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예수님이 죽기 전이 아니라 죽고 난 후의 일이기 때문에, 죽고 난 후에 사랑의 약속이라도 받겠다고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 2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신랑이요 자신들을 신부라고 믿고 나왔습니다. 사지사판에서 순교의 시련 역사를 거쳐온 선지선열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죽기 전에 예수를 만나 가지고 '내 사랑하는 신랑이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에게 퍼부어 주시옵소서' 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살아서 못 한 사랑을 죽어서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비참한 것입니다. 예수를 영적으로 한번 만나려면 7년 이상의 수난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7년 이상,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영적으로 예수를 만나 봐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죽을 힘을 다하고 나서 부활의 권한을 찾아 가지고 거기에 동참자가 돼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사랑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자리를 거쳐 가지고 오른편 강도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오른편 강도와 더불어 넘어가서 사랑을 잃어버렸던 예수를 잃어버리기 전 자리로 끌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어가서 베드로와 같은 자리에 서야만 사랑의 약속을 받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 그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기막힌 사정을 알아야 되겠다

그러면 예수의 슬픔이 무엇이었느냐? 부활 후에 예수를 만난 것이 기뻤느냐? 기쁜 반면에 배후에는 슬픔이 개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뜻은 죽고 난 후에 부활해서 제자들을 찾아가 가지고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반문을 바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구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했던고. 아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준비했던 터전은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가고…. 인종지말(人種之未) 이 일당들을 거느리고 소원을 다시 이루어 보겠다고, 수습해 보겠다고 결심했던 길 가운데서 배척받기 일쑤고, 몰려 죽은 예수가 무덤을 헤치고 다시 찾아와서 소원을 이루고자 했던 기막힌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주인 되시는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가지고 사랑의 도리를 이어받겠다는 사람이 있을진대,'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이 너머에서 따라가겠소' 하게 되면 이것은 전부 다 배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넘어가야 됩니다.

하나님도 거부했다는 거예요.'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도 예수를 버렸어요, 왜 버렸느냐?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것은 그렇게 죽으라고 보낸 것이냐?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했는데 예수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못 가지고 죽기를 바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지 않느냐, 안 그렇겠어요? 죽기를 바랐다면 4천년 동안 유대교니 이스라엘 민족이니 하는 것을 준비할 필요가 뭐 있어요? 이방 나라에 태어나게 하면 대번에 죽을 것인데….

하나님도 기가 막혔다 이거예요. '내가 너를 보낼 때는 인간 세상 앞에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망해 가지고 돌아올 줄이야…' 하나님이 그걸 보고 좋다고 바라보시겠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의 십자가는 다 잘라 버려야 돼요. 없애 버려야 됩니다. 십자가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십자가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고는, 우리가 죽지 않고는…. 그런 길이예요. 억울하고 원통한 길이예요.

억울하고 원통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슴에 품고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던 예수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권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 누가 예수를 사랑했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가 사랑한 것은 어떠한 내용으로 사랑했을 것이냐를 볼 때, 하늘나라, 혹은 전세계의 구도자의 사명을 짊어진 메시아의 심정과 일체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컸댔자 이스라엘 아무개 아무개 족속, 내 친척을 대표해서 예수를 모시고 싶다, 이 정도지, 교회를 대표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한 자리에서 예수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예수를 이렇게 사모합니다. 사랑합니다' 못 했을 거라구요.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

보라구요.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을 보라구. 고작해야 베드로 같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 보고 사랑을 얘기한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어 봤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과부고 좋지 못한 배후를 가진 사람이라구요. 그 다음에는 누구냐 하면 말이예요, 사마리아 여인, 야곱의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고 하던 그 자리에서 제자들이 의심할 정도로 다정스럽게 이야기했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누가 또 있어요?

이 땅 위에 사랑의 주인공으로 왔다가, 신랑이니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예요, 그 사랑의 주인공 되시는 분 앞에 상대로 나타났던 무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껄렁껄렁해요, 껄렁껄렁해? 그것이 예수가 바라던 소원이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이었느냐? 아닙니다.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을 요구하는데, 아무리 못난 여자라 하더라도 잘난 남자를 신랑으로 얻으려고 하잖아요? 못난 남자도 잘난 여자를 부인으로 얻으려고 한다구요. 사망권내에 살고 있는 인간들도 그렇게 반대되는 입장을 바라 보는데, 하물며 하늘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예수가 그렇게 지지리 못난 어부들을 모아 가지고 무슨 대장 노릇을 했다는 거예요? 창녀 패거리들이 뭐 사랑한다고 표시했다는 거예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돼 가지고 어쨌다구요? 성경이 그거 아니예요? 기가 막힌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의 대제사장을 중심삼고 '야! 아무개야,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했지? 할 때, '예, 주께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이런 대답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빌라도가 예수의 문도들을 찾아오기 위해서 자기의 시종들을 앞에 세워 통고해 놓고 '이제야 찾아와 뵙게 되었습니다' 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분 나빴겠어요? 그렇게도 지지리 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게 망하게 하려고 4천년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 했겠어요? 선지자들도 편안한 자리에서 선지자 되는 것 아니예요. 죽임을 당하고 별의별 희생을 다 당하면서도 앞으로 이렇게 된다고 증거한 것이 풍습화 될 수 있는 기반으로 닦기까지 얼마나 천신만고했던고. 그렇게 무가치하게, 그렇게 외롭게 죽게 하기 위해서 그 길을 닦았느냐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불쌍하신 예수님, 불쌍하신 예수예요.

예수가 그 눈으로 바라던 부모는 어떠한 표준의 부모였던고. 하나님 앞에 '내어머니 아버지는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어머니 아버지이오니, 하나님이시여, 이 부모를 나 이상 사랑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축복의 한 시간이 어디 갔던고.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대해서 '하나님이여, 내 사랑하는 형제들은 천상천하의 그 어떤 형제보다도 고귀한 형제이옵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이와 같은 형제를 가진 것은 하늘의 자랑이요, 인류의 자랑이옵니다' 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디에 있었던고. 혹은 제자들을 대해서 '나는 인간 세상의 스승 가운데 대스승으로서 사제지간을 중심삼고 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제자를 사랑했노라. 사랑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 있었던고. 자기의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사돈의 팔촌, 우리의 일족 전체는 하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족이요. 당신 앞에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족이니, 이 일족을 내놓고서는 하늘의 갈 길이 없나이다' 하며 기쁜 자리에서 맹세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소개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고.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4천년 동안 수난의 엇갈린 길을 거쳐 나오면서. 악한 무리와 악한 나라의 핍박을 받으면서 남겨 놓았던, 당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이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섰으니, 이날을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소원성취의 사랑의 날로 맞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었느냐?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천비(賤婢)가 와서 발에다 향수를 부어 머리털로 닦을 때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세상 남자 같으면 발길로 차 버렸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그 나라에서 특별한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미녀가 와서 그랬어도 귀찮았을 텐데 그 꼬락서니가 뭐냐? 그렇지만 가롯 유다가 그 행동을 보고 탓하는 자리에서 예수는 도리어 편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롯 유다 너보다 낫다. 너에겐 내 생명을 노리는 간교한 심정이 깃들어 있지만 그 여인은 너보다 낫다. 너보다 나은 사람을 어떻게 탓하느냐?'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전체를 희생하는 길에서만이 복음이 발전한다는 것을 예고하면서 '이 복음인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의 일을 전하라'고까지 다짐하였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좋은 자리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일 거기에서 가롯 유다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으면 예수는 어떻게 했을 것이냐? 그런 말을 안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는 사랑의 도리를 펴기 위해서 오셨었는데

예수는 사랑할 수 있는 나라와, 교회와, 종족과, 부모, 형제의 권을 거느려 가지고 제자들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나라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중심되는 것은 교회요, 교회의 중심은 요셉 족속입니다. 요셉 족속의 중심은 요셉 가정입니다. 요셉 가정의 대표자는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마리아 앞에 나올 수 있는 중심존재는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디서부터? 예수로부터, 마리아로부터, 요셉으로부터 …. 형제는 없어야 되는 거예요. 시시하고 껄렁껄렁한 형제는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동시에 사탄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구요. 예수를 반대하는 동생을 낳았다는 그런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장막절이 되어 모두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예수는 가지 않으니까 예수의 동생들이"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4)"하고 비소했습니다. 이런 껄렁껄렁한 동생들을 낳아 놓은 마리아가 잘못이라구요.

순서가 그래요.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 나라요,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은 유대교요, 유대교의 중심이 뭐냐? 제사장이 아니라구요. 요셉지파라구요, 요셉지파. 하늘의 족속을 대표할 수 있는 지파. 지파 가운데 요셉 가정이라구요. 가정 가운데 마리아라구요, 마리아. 마리아 가운데 예수라구요. 예수 가운데 사랑이라구요. 예수의 몸뚱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왜 왔느냐? 사랑의 도리를 펴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인간세계 만민 앞에 횡적으로 적응시킬 수 있는 사랑의 진액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의 길을 헤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예수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예수가 남길 수 있는 사랑이 문제라구요. 그 사랑을 예수가 그냥 가져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가져 가게 되면 예수는 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을 남기고 가야 할 사명을 갖고 이 땅 위에 왔다가 못 남기고 갔으니 다시 와서 남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 위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뭐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구요? 구름 타고 다니면서 반대를 받았나요? 한을 풀려면 그냥 그대로 그 원수들 앞에 실체로서 다 풀어 놓아야 원한이 풀리지, 뭐 구름 타고 와요? 그런 허황된 무리들이 세상에 꽉 찼다는 것입니다. 구름 타고 온다고?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얼마나? 구름 타고 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반대받기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참이니까, 반대가 문제 아니라구요. 반대하는 사람은 두고 보라는 거예요, 누가 깨져 나가나.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은 예수님의 상대가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신부가 뭐예요? 신부가 무슨 허깨비예요? 그 무슨 작대기예요? 지팡이 같은 거예요? 신부가 뭐예요? 어디, 아줌마들, 신부가 뭐예요? 예수님 앞에 신부가 뭐예요?「예수님의 부인입니다」 예수님의 부인보다도 상대지. 상대가 되어 가지고 부인이 되는 거라구요. 보라구요. 예수님의 부인이 있게 되면 예수님이 신랑이라는 말이, 성경이 틀려요? '저 예수님은 아무개 신랑이야' 하는 말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신랑이라고 하는데 신부도 없이 아무개 신랑이라고 그래요? 남자 가지고 '예수님은 김 아무개 저 남자의 신랑이야' 그런 말 있어요? '아무개 아가씨의 신랑이 예수다' 이 말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자, 예수의 신부가 아주머니가 될 수 있어요? 예수의 신부가 남편 있고 자식 낳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할머니가 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부의 종밖에 안 되는 거예요, 종 종. 섭섭한 말이지만…. 뭐 여기에 또 남자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주님은 뭐….

성경에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 중에 칠 형제가 다 형의 아내를 취하였으니, 일곱 형제가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뉘 아내가 되리이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부활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시집 장가를 가지 않는 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장가가게 되면 예수님 혼자 살림하겠어요? 예수가 장가간 다음에는 그의 족속 일파를 시집 장가 보내는 거라구요. 종지 조상이 돼 가지고 그 놀음 못 했으니 지금까지 금지령이 내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독신생활을 하는 거라구요. 지금 기독교에서는 남자가 신부가 되겠다고 하지요? 그것은 도둑놈들이라구요. 남자가 신부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예요?

예수님의 신부를 준비하지 못한 유대교

여러분,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무슨 종교냐 하면 여자종교입니다. 신부종교라구요. 남자들은 곁다리라구요, 곁다리. 잔칫날을 준비 하기 위한, 떡도감 되고 고기도감 되기 위해서 모인 패들이라구요. 잔칫날을 준비하기 위한 대표적인 종들이라구요. 천사세계의 패들이라는 거예요.

보라구요. 역사는 어떻게 발전했느냐? 여러분, 타락할 때 천사세계의 천사장이 있었어요.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그 다음엔 아담 해와가 있었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천사를 잃어버렸고,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어요. 요걸 잃어버린 거라구요. 복귀, 구원하려면 고것을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구원하려면 아담 해와만 구원해서는 안 됩니다. 천사를 구원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안 그래요?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세계도 타락했다구요. 둘이 꽝 하고 나가자빠졌다구요. 이것이 정상적인 자리에 가려면 둘이 나가자빠진 것을 전부 다 일으켜 놔야 된다구요. 그렇잖아 요? 그것이 복귀라구요, 복귀. 구원이라구요. 구원이라는 것은 병이 나기전 원상태로 돌이켜 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하면 아담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천사세계를 통해서 천사장이 아담을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의 도리를 찾아 세워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기 전에 천사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뭐냐 하면 천사세계권을 지상에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세계입니다. 그 종교세계권내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을 만들어 내는 놀음을 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러면 종교 중에 세계적 중심은 뭐냐? 그것이 유대교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종교 가운데 세계적 중심이 유대교입니다. 그 유대교는 무엇을 하는 종교냐? 신랑을 소개하는 종교라는 거예요. 그것이 메시아 사상이요, 구주사상입니다.

구주 사상이란 무엇이냐 하면 타락하기 전 아담을 다시 만들어 놓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종교가…. 그 가외의 종교들은 3천사장권 종교형을 대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종교는 3대 종교예요, 기독교는 빼놓고, 유교, 불교, 회회교, 3천사장을 대표한 3대 종교로 남아진 것입니다. 거기에서 무엇이 나와야 되느냐? 메시아가 나와야 됩니다. 요것이 뭐냐 하면 구세주라구요, 구세주.

그러면 세계적인 종교를 대표한 유대교는 어떤 종교냐? 타락할 때, 누구하고 타락했느냐 하면 해와하고 천사장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이 땅 위에 어떤 종교권이 나와야 되느냐 하면 천사장격 종교가 나와야 되는 동시에 빼앗긴 해와를 찾아서 신랑 앞에 바치기 위해 준비하는 교단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유대교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유대교 가운데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사탄세계에 빼앗겼던 해와를 찾아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바칠 수 있는 신부 한 사람이 준비되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것을 준비시키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마리아를 택했고, 마리아를 통해 세례 요한의 가정인 사가랴 가정을 택했습니다. 이 두 가정을 통해서 신부를 빼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수작해 가지고 쓸데없이 헤롯 왕의 연애 사건에 끼어들어 이러고저러고하다가 목베여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시하게 죽을 세례 요한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예수 때문에 죽어야 된다구요.

지금까지 종교는 천사권 사명의 터전을 닦기 위한 종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인연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 일수록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주인이 아직까지 사랑의 길을 가지 못했는데, 그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느냐? 못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부, 수녀, 비구승, 대처승 문제라든가…. 이제부터는 천주교도 독신생활을 했다가는 지옥간다는 겁니다. 앞으로 로마 교황청이 결혼을 반대했다가는 신부들이 전부 다 보따리 싸가지고 노동판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들 어디 가서 취직할 데 없습니다. 예수가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지말의 세계에서 노동판 외로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몰랐다간 전부 다 밥바가지를 찾아서, 예수는 하늘을 찾아서 노동판에 갔지만, 목사들은 밥바가지를 찾아서 노동판에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기 목사들도 왔구만. 목사들이뭐 할 게 있어요? 늙어서 어디 갈 거예요? 새끼들이 줄줄 달려 있으면 별수 있어요? 역사는 그렇게 엇바꿔 돌아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고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성교회 목사들도 지지리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늘을 위해서 배고픈 자리에 나갔지만, 이것은 자기, 사탄세 계를 위해 밥바가지를 찾아 가지고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유대교는 신부를 마련해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 앞에 신부를 중심삼은 신부 족속, 신부 민족, 신부 교회, 신부 나라가 돼 있어요? 그 자리를 마련해 놓아야 되는 것이 유대교라구요, 유대교. 예수 앞에 신부의 가정, 신부의 족속, 신부의 교회, 신부의 나라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부를 위한 나라요, 신부를 위한 교회요, 신부를 위한 족속이요. 신부를 위한 가정이기 때문에 신부가 시집가는 날 모두 함께 신랑 앞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나라의 중심은 교회요, 교회의 중심은 요셉의 씨족이요. 요셉 씨족의 중심은 요셉 가정이요, 요셉 가정의 중심은 마리아요, 마리아의 중심은 예수이기 때문에 예수 앞에 신부를 중심 삼고 관계되어 있는 그 나라와 그 교회와 그 종족과 그 가정은 전부 다 신부가 시집가는 날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아야 할 기독교

시집가는 날 같이 가야 할 운명에 서 있는 신부가 '아이고 우리집은 이렇게 부자집이고, 우리집은 이러이러한 법을 갖고 살았는데, 신랑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하고 불평하다가는 쫓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던 법은 이런데 이 집 법은 왜 이래' 하고 반대했다간 쫓겨나는 것입니다.

신랑이 세우려 하는 도(道),신랑이 생활 무대를 갖추려는 환경을 부정하다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망한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위에 다시 오기 전, 재봉춘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나라는 망할 나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를 죽인 죄로 2천년 동안 나라없이 유리고객하는 민족으로 수많은 민족의 발굽아래 희생 당하는 민족이 안 될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1948년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이 자주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은 때가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느냐? 종교로 말하면 천사장권 종교내에 해와권 종교가 생겨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귀니까….요게 뭐냐 하면 기독교예요. 그리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를 만들어 놓은 것이 민주세계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는 국가적 이스라엘권이었지만 지금은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권이예요.

옛날에는 이스라엘 나라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지금 기독교는 나라가 있어요? 하나님이 '이 나라는 내 나라다'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공중에 떠 있다는 거예요, 뜬구름과 같이. 기독교는 나라가 없다구요. 나라가 없다는 거예요. 나라를 잃어버린 비참한 기독교가 지상에 실제로 없는 영적 나라, 예수가 나라의 기반, 땅의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을 대신한 몸이 십자가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제2이스라엘권을 개척하여 세계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죽더라도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아야 됩니다. 뭐, 공중잔치를 해요? 공포 쏘지 말라는 거예요. 죽어 보라는 거예요, 누구 말이 맞나. 그야말로 사교(邪敎)라구요, 사교. 그 패들이 통일교회를 대해서 사교라고? 두고 보라구요, 누가 사교인가. 땅에서 잃어버렸으면 땅에서 찾아야지 공중에서 찾을 수 있어요?

지금 세계의 종교를 두고 보면 천사장격 종교와 해와격 종교가 있습니 다. 이래 가지고 해와 앞에 아담이 와야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라구요, 재림주.

재림주가 뭐냐 하면, 1차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2차 아담으로 오신 분이 예수요, 3차 아담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아담이 누구냐?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참된 조상이 돼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와 가지고 희미한 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희미한 조상이 뭐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알겠어요? 한꺼번에 확실한 조상이 못 나왔기 때문에, 확실한 조상이 되려고 예수가 왔다가 신랑 신부의 인연을 못 맺었기 때문에 부모가 안 나왔다구요. 부모가 안 나왔는데 조상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모 노릇을 한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 대신이요, 여자는 땅을 대신한 입장입니다. 영적인 입장에서 하늘을 대표한 남자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고, 성신은 땅을 대표했기 때문에 어머니 신 되는 성신은 땅에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신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그랬지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야 중생하는 거예요. 다시 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성신이 뭐냐 하면 어머니 신이라구요, 어머니 신.

참부모를 중심한 통일문화권인 하나님의 이상

오늘날 기독교에서 성부(聖父)는 뭐예요? 하나님. 성자는 뭐예요? 예수님. 성신은 뭐예요? 성신은 성신이지. 비둘기 같은 성신, 물 같은 성신, 기름 같은 성신…. 수작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 무슨 신이냐? 어머니 신이라구, 어머니 신, 이 어머니 신이 영적으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실체의 몸을 쓰고 오시는 주님과 실체로 상봉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어린양잔치를 하는 때라구요. 그래서 6천년 동안 선한 부모의 출발을 보지 못하였던 것을 6천년 역사적 종말시대에 까꿀잡이로….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건 거짓 부모가 됐다구, 이것 안 되겠으니 여기서 다시 와 가지고 요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서 요 모양을 다시 만들어 가지고, 세계가 이렇게 됐으니. 이게 세계라구. 36억이 살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해? 다시 낳아야 된다구요. 다시 낳는 데는 어떻게 낳느냐? 이미 낳아져 있는 것을 다시 낳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 접붙이는 방법 밖에 없다구요, 접붙이는 방법밖에. 전부 다 돌감람나무가 되었으니 참감람나무의 가지라든가 눈을 접붙이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전부 다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그림 1]참조)

그러면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신랑 되시는 주님이 와서 신부를 만나 가지고 신랑 신부 종교권 시대가 온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건 종교가 아니지요. 종교가 아니라구요. 종교라는 것은 그때는 없어지는 거라구요. 참부모를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시의(侍義)의 구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하는 말은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의 근본이 되어야 되고, 참부모의 생리적 모든 감정은 자기의 모든 생리적 감정이 돼야 되고, 참부모의 생활은 자기 가정의 전통적인 문화기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를 중심삼은 문화형태가 어디 있으며, 참부모를 중심삼은 역사적 전통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어요? 전부 다 사탄의 인연을 통하여 타락한 후예로 태어나 갖추어진 세계요, 문화권이요, 나라요, 교회가 되었지요? 이것을 전부 다 한번 소제해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가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복귀라구요.

끝날에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요것이 내려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 천사장, 이것이 에덴 동산의 본연의 기준이라구요. 요 세 사람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요것이 전부다 하나되어야 됩니다. 천사장도 하나되고, 해와도 하나되고, 아담도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림 2] 참조)

타락이 무엇이냐? 전부 다 갈라진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는 그렇게 돼 있어요. 기독교 문화권시대, 천사장 문화권 시대에서 기독교 문화권 시대로 흡수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권 문화가 공산권이라구요. 여기에 있어서 참부모를 중심삼은, 재림주를 중심삼은, 참부모를 이상으로 하는 세계가 세계의 종말시대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주장하던 세계적인 사조도 지나가 버리고,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하면, 재림주로 오시는 신랑을 중심삼고 신부들이 만나는, 그런 새로운 세계적 문화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언어도 통일이요, 생활도 통일이요, 행동도 통일이요, 소원도 통일이요, 심정도 통일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통일문화세계를 통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수습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바라봐 가지고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구원받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는 절대 구원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개인으로서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혼자 못 간다구요. 원칙이 그래요.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가 둘이 같이 천국가게 되어 있지, 남편만 천국가게 돼 있어요? 아내도 천국가게 돼 있지요? 부부가 합하고, 가정이 합하지 않고는 천국 못 가는 거라구요. 그것이 이상(理想)이지, 아버지는 지옥가고 어머니는 천국가면 좋겠구만? 어머니 아버지는 천국에 가고, 아들딸은 지옥에 가면 좋겠구만? 그것이 무슨 천국이예요?

천국은 부부가 가야 되는 것이요, 가정이 가야 되는 것이요, 가정뿐만이 아니라 가정의 팔촌 일족이 가야 되는 것이요, 그 국가 전체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갈 수 있는 그 세계가 천국이더라 이거예요.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통일교회는 개인 구원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동결혼식도 이 원리원칙에 일치시키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합동결혼식이 조롱의 대상이요, 구경거리로 알고 있지만, 내용을 알고 보니까 기가 막힌 놀음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

요 종교시대(천사장권 종교시대)에는 장가가야 돼요, 안 가야 돼요? 못 가지요?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두 패로 갈라졌다구요. 여기서 갈라져 나온 거예요. 이게 기독교예요. ([그림 3] 참조)

여기에 신랑이 와 가지고, 아담이 와 가지고 해와하고 하나되고, 이 부부는 천사장을 사랑해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림 4] 참조) 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두고 보라구요. 그런가, 안그런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천국에서도 결혼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비구승이 승리하느냐 대처승이 승리하느냐 할 때, 대처승이 승리할 때가 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구교의 신부 수녀가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천주교도 그냥 그대로 가다가는 전부 다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천지운세가 신랑 신부의 인연을 찾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도 시집 장가를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시집 장가가는 것을 반대했다가는 그냥 그대로 몽땅 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겠다고 신랑 신부를 찾아 축복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가 구름을 타고 와서 되겠어요? 허깨비로 와서 되겠어요, 허깨비 ! 그까짓 것은 오나마나인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마리아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가야 할 예수의 노정, 예수가 갈 길은 뭐냐? 예수의 갈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위의 사람들에게 옮겨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갈 길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움켜쥐고 어릴 때부터 그대로 옮겨 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어머니의 품에 품겨 젖을 먹을 때, 철모를 때 어머니의 가슴에 파고들어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자리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데는 세상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좋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좋아하지 못하게 될 때는 원수가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마리아가 진정한 의미에서 이 땅 위의 어떠한 사탄세계의 어머니보다도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되면 천리 법도에 어긋난다는 게 맞아요, 안 맞아요?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선택된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로서 예수를 잉태해서 낳았으면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세상에 어떠한 어머니보다도 더 높고 높은 자리에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 자기가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엇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흐지부지하면 발길로 차 버리고서라도, 예수 때문에 대판 싸움을 하고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를 사랑하는 데에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뭐 요셉하고 살아요? 예수를 사랑했다는 자리에서 키워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장가 보내어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내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 떡 갔어요. 예수는 할수없이 자기 친척이 잔치를 하게 되면 얻어먹으러 가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겠어요? '아 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배고플 때는 이적을 행해서 무엇을 만들어 먹지' 그래요? 그것은 천법에 위배되는 행동입니다. 집을 나간 예수는 친척집에서 혼인잔치를 한다 할 때는 다 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차 타고 네 시간이면 다 돕니다. 그 동네가 그 동네라구요. 성경 66권을 보게 되면 말이요, 전부 20리 안팎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 아는 거라구요. 거기에 가 보게 되면 절망이라구요. 목청 좋은 사람이 이 동네에서 소리를 지르게 되면 저 동네에 들릴 만한 그런 안팎의 동네에서 성경 66권이 전부 다 이루어졌다구요. 성경은 굉장한 줄로 알고 있지?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사돈 사는 동네 거리만큼도 안 된다구요.

그러니 그 바닥에서 예수가 집을 나갔댔자 빤히 알지요. 자기 친척이 무엇을 하는지 다 알거 아니예요? 그래 자기 친척이 잔치를 하니까 궁한 예수 별수 있어요? 잔칫집에 가면 얻어먹게 돼 있으니 얻어먹으러 안갈 수 없다구요. 그래서 슬슬 친척집에 갔다구요. 갔더니 거기에 자기 어머니도 왔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예수한테 와 가지고는 포도주가 떨어졌다구 이러고 저러고 부산스럽게 염려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는 거예요. 내가 장가가야 할 날을 염려해야 할 마리아를 대해 '여인이여. 언제 그것을 염려했느냐. 나를 위해서 이 이상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그런 꼴을 보고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잔칫날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 그 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곡절의 사연이 얽혀 있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이 땅에 와서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했다. 그 불이 붙지 않는 것을 볼 때, 예수의 마음의 답답함이 어떠했겠느냐?' 이런 탄식의 말을 했지요? 그거 편안해서 그런 말 했어요? 그 불이 뭐예요, 불이? 사랑의 불을 붙이려 했다구요.

예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우리 어머니는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어머니입니다. 단 한 분밖에 없는 어머니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어머니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어머니오니 당신의 나라에 나의 어머니로 입적해 주시옵소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결정해야 마리아도 하늘나라에 입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적 못한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성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모는 무슨 성모예요? 하늘나라에 입적 못 했다는 거예요.

세례 요한 그 녀석, 예수를 위해서 생애를 바쳐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동네 안팎으로 소문을 내며 돌아다니다가 예수님 만났으면 그만이지, 뭐, 나는 망해야 되겠고 예수는 흥해야 돼? 예수를 따라가면 예수가 흥하는데 자기가 왜 망하느냐 이거예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는데 그 힘쓰는 자는 베드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보다도 세례 요한이 힘을 썼다면 수제자가 되는 거예요. 수제자 중의 왕수제자가 되는 거예요. 세례 요한은 나면서부터 예수님의 수제자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작정해 가지고 보낸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을 제자들이 유대교 전체의 판국을 중심삼고 선지자로 모시고, 환경을 가려 가지고 예수를 모실 수 있게끔 되었더라면 유대교는 슬렁슬렁 소리도 없이 전부 다 예수 앞에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 나라도 할수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만 딱 잡게 되면 그 당시 로마 나라는 말단 조직이 전부 다 마비상태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아랍권 12지파의 족속을 한꺼번에 동원되게 해 가지고 로마를 쳐부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좋은 천지운세를 놓쳐 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걸 생각할 때, 어머니가 예수를 사랑했어요? 남편도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다 하는 자리에서 예수만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됩니다. 세계사에 없는 어머니로서 외적인 환경이야 어떻든간에 예수 앞에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예수를 위해서 일생의 정성을 다 바쳐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했습니다. 일등 어머니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랬어요?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로부터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는 말을 들어도 싸다는 거예요. 싸도 깨깨 싸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예수가 조금 철들 만할 때 형제들이 태어나 가지고 자라는 가운데 동생들이 예수를 천대했다구요. 가만히 보니까 예수는 의붓아들이고 그 형제들은 진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하고 요셉하고 예수 때문에 번번이 트러블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생겼겠어요, 안 생겼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는 기가 막혔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들과 싸우게 되면 동생들이 번번이 누구한테 가느냐 하면 어머니한테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한테 가서 형이 어떻고어떻고하게 되니 본래부터 마음이 편안치 않은 입장에서 좋은 말을 했겠느냐 이거예요.

전부 다 화근이 됐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그렇고, 동생들도 그렇고, 그 환경이라는 것이 기가 막힌…. 여러분. 그렇잖아요? 의붓아버지 밑에 들어가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 예수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봤어요? 동생들 사랑을 받아 봤어요? 그랬으면 왜 집을 나왔겠어요? 집을 나올 필요가 없다구요. 뭐,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12제자가 뭐 필요해요? 자기 친척들을 중심삼고 이끌어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요셉 족속은 깨깨 망했지요. 그들이 예수를 옹호하고 예수를 중심삼고 나갔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대교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식구라는 말의 뜻

그러면 예수 할아버지 있었어요? 예수의 할아버지라는 말 들어 봤어요? 이 땅 위의 누구보다도 손자로서의 사랑을 받아 봐야 돼요. 그래야 이땅 위에 사랑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할아버지 할머니 있었어요? 삼촌 아저씨 있었어요? 있긴 있었지. 있었지만 그들이 마리아하고 요셉이 자꾸 싸우는 것을 보고 그랬을 것 아니예요? 요셉 저 총각이 악혼한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까 동네 아이들까지 전부 다 손에 침 발라 가지고 문구멍을 뚫고 다 구경하지 않았겠느냐 말입니다. 그 속닥속닥하고 싸움하는데 그 배안에 있는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싸우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낳기 전에 벌써 소문이 퍼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이 예수가 사생아라는 소문을 듣고 요셉을 불러다가 공갈 협박을 하면서 사실을 대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때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면 처녀가 애기를 배면 당장에 때려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을 어긴 그런 사람이 자기의 가문에 있다는 것은 하늘의 법도에 어긋나는 수치라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삼촌으로서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어요? 그런 아주머니가 있었겠어요? 그런 예수의 누이 동생은 있었겠어요? 뭐 직계의 동생은 없어도 사촌 누이동생은 있었을 것이 아니냐? 아버지는 어디 갔고, 동생들은 어디 갔고, 친척들은 어디에 갔느냐! 다 원수라는 거예요. 이놈의 일당패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안 그랬을 것 같아요?

만일에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말이야, 예수가 집을 나갈 때에 따라가야 되겠어요, 안 따라가야 되겠어요? 따라가야지요. 그런데 친척들이 예수를 잡으러 다녔지요? 전부 다 예수가 바알신이 들렸다고 잡으러 다녔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아 가지고, 그 사랑이 고마와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선물로 돌려줘야 할 예수의 가정적 터전이 이렇게 종결될 줄이야 하나님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가정이 종결되니 교회, 교회가 종결되니 나라, 나라가 종결되니 세계가 종결 되어 사망세계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기독교는 덮어놓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었다'고 하는데, 영계에 가 보라는 거예요. 그런 목사 떼거리들은 영계에 가서 재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영계에 가서 재교육을 받을래요, 재교육을 안 받을래요? 재교육을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안 받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말은 거기서 나온 거예요.

예수를 중심삼고 삼촌의 연령이 된 사람은 어린 예수와 같은 연령의 소년이 있으면 옛날에 사랑하지 못했던 예수의 삼촌 입장에서 오늘 이때의 현실에서 그 소년을 예수와 같이 사랑해라, 누님의 연령이 된 사람은 예수와 같은 연령의 동생이 있으면 그 동생을 예수와 같이 사랑해라 이거예요. 또 어린 예수와 같은 소년 연령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의 입장에서 누나를 사랑하고, 아줌마 아저씨를 사랑해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연령이 된 사람은 자기 손자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예수와 같이 생각하고 사랑해라, 손자와 같은 사람은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라 이거예요. 이래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원한을 사랑을 중심삼고 풀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식구관(食口觀)입니다.

예수가 백성을 사랑하지 못했고 예수가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그 백성이면 백성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와 같이 백성과 같이 사랑해라…. 그 나라와 그 백성은 예수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한 소년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백성이 되어라…. 그리하여 예수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사랑의 교류권이 세계화되면 그 세계가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지상천국. 알겠어요?

이게 식구라는 말이예요, 통일교회의 식구. 식구라는 게 부모 형제를 말하지요? 싸움을 하는 형제가 아니라구요. 천도를 배반하는 형제가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보다 나아야 됩니다. 마리아보다 나아야 됩니다. 요셉보다 나아야 되고, 예수의 형제보다 나아야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보다 낫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훌륭했던 오른편 강도

저기 목사님, 어때요? 마리아보다 나아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돼요.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디냐?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머니 아버지와 더불어 가야 돼요.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가지고 올라가고, 그 다음에는 친척을 통하고, 교회를 통하고, 나라를 통해서 세계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가족과, 친척과, 교회와, 나라가 왕창 떨어져 나갔으니 어디로 가요? 갈 길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 제자한테로? 제자도 믿을 수 없는 자리로 왕창 내려갔으니 앞에는 사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사탄 앞에 아무런 승리의 조건도 못 가졌기 때문에 사탄이 잡아다가 죽이게 되어 있지, 별수 있어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이고 싶어서 죽였나? 아니라는 거예요. 안 내놓을 수 없는 사정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했던 그 이스라엘 나라는 어디 갔으며, 교회는 어디 갔으며, 요셉 씨족은 어디 갔으며, 동방박사 세 사람은 어디 갔으며, 베드로와 야고보 그 일당은 다 어디로 갔느냐? 외로운 황천길에 있어서 홀로 가는 예수의 신세를 그 누가 지켰던고! 오른편 강도가 인간 세상에 있어서 예수의 심정을 휘어잡지 못했던들, 예수는 이 땅 위에 소망을 두고 다시 부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거예요.

강도가 낙원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강도가 오늘날 예수를 배반한 후예들 앞에 제2의 구세주 입장에 섰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죄인이 예수를 동정한 것이 남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예수는 천도를 중심삼고 사탄 앞에 조건을 제시하여 물러나야 했던 이 땅을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자기 죽는 것을 잊어버리고 예수의 편이 되고, 예수를 옹호하는 자리에 선 오른편 강도가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보다 낫지요? 못해요, 나아요? 왼편 강도는 예수를 비난 비소하는데…. 이것이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진리를 심었기 때문에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수확기의 가을절기가 오게 되면 오른편 강도는 우익으로, 왼편 강도는 좌익으로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익인 공산세계가 오른편 강도 민주세계를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딱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민주세계가 끝까지, 죽을 때까지 우익에 서서 하늘을 옹호하고 오시는 주님의 이름을 따라 정성껏 가게 되면, 그때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상 낙원의 출현을 보는 조국광복의 날을 맞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불신하던 때와 비슷한 현실

그 다음에 그 당시의 바라바는 뭐냐 하면 회회교권입니다. 예수를 팔아 가지고 출세한 패라구요. 알겠어요, 바라바는? 회회교는 신구약 성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교를 빙자해서 기반을 닦은 거라구요. 그러면서 총칼을 가지고 도를 닦은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사탄입니다, 종교적 사탄, 외적 종교형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공산당자 직결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지 않아요, 아랍권하고 공산당하고는?

외적 세계의 종교형이 아랍권의 회회교요, 내적 세계의 종교형이 기독교입니다. 또 내적 세계의 외적형이 민주세계요, 외적 세계의 외적형이 공산세계인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민주세계가 책임 못 하게 되면, 공산세계가 아랍권(國)과 합해 가지고 쳐 나오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끝날이라구요. 그렇잖아요?

지금 세계는 민주와 공산권으로 좌우가 벌어져 있고, 바라바권과 예수권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벌어진 것입니다. 타락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 천사장이 사위기대를 중심한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해와권의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의 민주세계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보면 유대교권인 것입니다.

해와를 품을 수 있는 국가권이 아담권의 국가권이예요. 이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권내에서 바라바권인 회회교권과 공산세계가 연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회교권과 공산세계를 서로 연락하게 만든 낫세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 중공이나 자유중국이 진정되었다고 그만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금후에 소련과 중공사이에 있어서 볼 만한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미국도 새로이 반성하여 세계를 결속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중심삼고 세계 앞에 후원받을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통일교회가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다 예수를 거부하던 종말시대의 입장과 같지 않으냐. 예수를 유대교가 거부했고, 이스라엘 나라가 거부했지요? 그렇지요? 지금이 그와 같은 때입니다. 지금 유엔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뜻이고 의리고 도리고 다 필요없다'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미국 자체가 어디로 가느냐, 기독교가 어디로 가느냐? 공산권한테 휘말린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기 직전에 누구한테 맞았어요? 죽기 직전에 왼편 강도가 참소했지요? 그 권능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권위를 당당히 주장해 가지고 좌익을 눌러야 됩니다. 말로 세상을 눌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해야 할 텐데 닉슨 대통령이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정치가 중에 제 2급도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는지 몰라도 할수없습니다. 내가 미국에 가서도 당당히 그런 얘기를 할 거라구요.

끝날에 남아질 사람

그러면 앞으로 남아진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 죽을 일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죽으니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도 죽을 일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도 마지막이요, 민주세계도 마지막이요, 공산세계도 마지막이다, 다 이렇게 되지요? 그렇지요? 회회교권도 다 마지막입니다. 천지의 주인이 없어 졌기 때문에 전부 비참한 운명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운세에 지금 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부활의 권한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재림사조가 올 것이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관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가정이 갈라지걸랑 하늘의 가정이 규합될 수 있는 때가 온 줄 알아라,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서로 칼침을 놓거들랑 사탄세계가 서로 싸워 가지고 망할 때가 온 줄 알아라, 교단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칼부림을 하거들랑 그 교단에는 이미 하나님이 떠난 줄 알아라, 교인이 목사에게 칼질을 하고, 목사가 교인에게 칼질을 하는 그때가 되면 마지막인 줄 알아라…. 앞으로 세계에 그런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제일 복닥불나고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저끄러진 자리가 예수가 피흘리던 자리요, 그 자리가 예수가 부활할 수 있었던 자리가 아니냐?

그런 자리에 처해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으로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좌우가 부딪치는 경계선인 남북을 중심삼고 공산권과 민주권의 교차로가 생긴 것입니다. 거기에서 민족적으로 가정이 산산조각으로 뻐개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게 되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한국은 이렇게 안 되고, 기독교도 이렇게 안 된다구요. 여기에 서서 말하는 이 사나이가 이만한 연령이면 세계정세는 내가 움직여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일본에서 모모한 사람들이 '앞으로 일본의 정세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는 문의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어요. 대한민국에서는 꿈도 안 꾸는데 딴 나라에서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아지는 무리는 어떻게 해야 남아질 것이냐? 예수를 위해 미친 사람, 예수를 위해 미친 가정, 예수를 위해 미친 교회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는 예수를 사랑하기에 미쳐라 이거예요. 통일 교회에 오면 다 미친다고 하지요? 잘됐다 이거예요.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고 아내가 나가자빠지게 되었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지 뭐 다른 소원이 있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는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신랑이 오는 길을 따라가야 되겠어요. 안 따라가야 되겠어요?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처녀가 치마가 벗겨지면 속바지 바람으로라도 따라가야 되겠어요, 안 따라가야 되겠어요? '어허 ! 치마가 벗겨져 흉한데 어떻게 가겠노? 또 바지가 벗겨지면? 보라구요. 주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치마가 벗겨지고, 바지가 벗겨지고, 발가숭이가 되고, 피투성이 되어 가지고 주님 앞으로 가다가 쓰러져 죽게 되면, 그때 주님이 그것을 보고 '어허 잘 죽어라! 네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너는 그것으로 마지막이다' 그럴 것 같아요?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심정에 묻힌 사랑의 폭탄을 폭발 시킬 수 있고, 유발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어려우면 주님의 몸으로써 그 어려움을 도맡고 싶어하고, 상처를 입었으면 자기의 십자가의 시련 고비를 대신 짊어졌다고 동정해 줄 수 있는 자리라고 축복해 주지 않겠느냐? 내 몸이야 찢기건, 내 위신이야 땅에 떨어져 밟히건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처신과 위신을 가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정신을 발휘해서 어머니, 형제, 친척들이 예수의 죽음 앞에서 빌라도면 빌라도, 바로면 바로, 그때의 교법사면 교법사들을 대해 가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길을 막고 나섰더라면 폭동이 벌어졌을 것이 아니냐? 폭동이 벌어졌으면 예수는 안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미쳐라. 미치는 길을 가는 데는 누구를 위해서냐?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 일체의 모든 전부를 거부하고 나서야 됩니다. 나서는 데는 자기를 위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그분의 소원과 그분의 갈 길을 닦기 위해서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요. '내가 요렇게 해야 주님을 만나 가지고 잘살지' 하는 사람은 천국 못 갑니다.

주님이 나를 만나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가정을 거느리고, 종족을 거느리고, 민족을 거느리고, 국가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리고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동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축복해 준 가정까지도 일선으로 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만일에 축복받은 가정들이 일선에 나가지 않고 들어와 있다면 그런 가정은 앞으로 샅샅이 선생님이 법대로 치리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아이쿠! 나는 몰랐습니다' 하게 되면 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통일교회에서 지시한 말에 대해서 누가 가장 철저했느냐 하는 것을 전부 다 밝혀 놓고 넘어갈 것입니다. 어떤 녀석이 이런 모진 말을 했고, 어떤 녀석이 이런 모략질을 했는지 전부 밝혀 놓고 넘어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민족이 규탄할 것이고, 세계 인류가 돌무더기로 묻어 버릴 때가 올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나 장로들도 그냥 그대로 나가다가는 앞으로 그 아들딸들이 그들의 무덤을 파 버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이 했던 말이 지당한 말이 아니라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사실을 밝혀 놓게 되면 그렇게 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일하게 살 때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무얼 논할 경황이 아닙니다. 어영부영 적당히 바람이나 쏘이러 다니기 위해 온 패들이 아닙니다. 사생결단하기 위해서 온 패들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예수편에서 죽을래요, 여러분 남편, 여러분 아들딸편에서 죽을래요? 여기 아줌마들, 어느 편에서 죽겠소? 「예수편요」 너희들도? 예수 오빠편에서 죽을래요? 어때요?'아이구, 시집도 한번 못 가보고 죽으면 되나?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시집은 무슨 시집이예요? 장가는 무슨 장가예요? 다 집어치우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되지 않고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을 바쳐 수난길을 가면서 핍박받은 것도 그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아 불어라. 그 부는 바람이 꺾여져 나가면 나갔지 내가 꺾어질 수 없다. 모진 광풍아 휘몰아쳐라. 나는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직행한다' 그런 모진 풍파에 시달렸지만 아직까지 기력과 여력은 당당합니다. 이 길을 가다가 지쳐서 떨어져 나간 사람 있지만, 쓰러져가는 것을 내 눈으로 직시하면서도 쓰러지는 것을 동정 안 하고 나는 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만큼 걸어왔습니다. 여기서도 앞으로 많은 탈락자가 생겨날 거라구요.

그 누구를 위해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은 떨어지는 거예요. '나는 세계를 위해서 살고, 나는 나라를 위해서 산다. 그 나라가 살기 전에는 나는 살 수 없고, 그 세계가 뜻을 이룬 나라를 갖지 못하고는 나는 살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죽더라도 하루바삐 그 나라와 그 세계의 뜻을 펴기 위해서 나는 간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되는 거라구요. 편안한 잠자리나 찾고, 좋은 음식이나 찾고, 편히 쉴 곳만을 찾아다녀 보라구요. 일년 방초가 따뜻한 봄을 맞아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기까지는 사시장철 다른 것과 같이 같은 기간 안에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진액이 있으면 그 진액을 흡수하고, 결실하기에 충분한 모든 환경적 요건을 흡수해서 소화시켜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잎이 무성하고 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말이예요, 어떤 아주머니 무슨 아주머니 슬슬…. 아주 편안하더구만. 그렇게 안 되어 있다구요.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당대에 있어서 가야 할 길이 아니었더냐?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예수의 친척과 예수의 족속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지 않고는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이교회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을 전도 보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전도를 보내는 거라구요. 나라가 하나님의 뜻 앞에 서면 그때는 나라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가야 되는 거라구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나라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면 나라 때문에 산다

예수가 언제 사랑할 수 있었던고. 예수가 언제 부모의 품에서 잠들어 안식할 수 있는 때가 있었던고. 그런 것을 갖추지 못한 예수를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자리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목을 놓고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예수의 남기신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한 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주권,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백성,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국토가 어디에 있었느뇨? 없었다는 거예요. 찾아왔던 이스라엘 주권, 민족, 그 국토 위에서 피를 흘려 갔고, 죽음이라는 서글픈 낙인을 남기고 갔던 것이 아니냐? 그러면 여기에서 이 땅 위에 부활하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 있어야 되고, 하나의 주권이 있어야 되고, 하나의 땅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그 나라가 어떠한 나라가 될 것이냐? 그 나라는 영광의 나라가 아닙니다. 십자가로 갔기 때문에 십자가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때에 좌우편 강도와 같은 기로를 중심삼고 거기서 갈라졌던 민족이 금후에 다시 상봉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가지고 와야 되는데, 세계적으로 그런 곳은 한국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판문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탄과 하나님이 참소하는 초소입니다. 금문점이 못 되어 가지고 판문점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임시라구요, 임시. 사탄과 하나님이 딱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 판문점에 가 보라구요. 아이들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병아리새끼가 싸우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그런 곳은 지상에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사탄하고 하나님이 참소하는 막사입니다. 성전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이 언제나 먼저 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1차, 2차, 3차까지 거쳐야 합니다. 2차까지 쳐내려 왔지요? 이제 3차를 두고 국가적 운명을 가려야 됩니다. 세계적 운세와 더불어 맞부딪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대한민국은 하늘이 가는 노선을 중심삼고 조야가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뭐 야당 여당 찾다가는 둘 다 망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 다. 위정자들이 바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바쁘게 되어 있다구요. 승공, 반공전선의 일선에 섰기 때문에 같은 운명이 된 거라구 요. 같은 운명에 자진해서 나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죽자' 나라를 위해서 죽으려면 나라를 더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나라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들은 다 도망가더라도 이 나라를 지키고 공산당의 최후의 뿌리를 뽑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결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총공장도 만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총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기성교회 목사들이 지금도 정부에다 투서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총 만드는 것을 보고는 '통일교회는 사상적으로 강력한 단체이며 더구나 세계적인 기반을 가졌으니까 앞으로 정당을 만들어 가지고 혁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드는데 정부는 왜 가만 놔 두느냐? 수작들은 좋다는 거라구요.

한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땅이 왔다갔다하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라구요. 대통령 해먹기 전에 이민족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무슨 대통령이고, 정당은 무슨 정당이예요? 정당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인 아벨이 참소하는 권내에 있어서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도 민주주의가 있어요? 민주주의가 영원히 남을 것 같아요? 대답해 보라구요. 하나님 앞에도 민주주의가 있어요? 절대자 앞에 민주주의가 있다면 절대자라는 명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세계는 민주주의세계가 아닙니다. 민주세계는 돈을 가지고 사고 팔고, 악당들이 별의별 놀음을 해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서로가 주권을 빼앗기 위해 약탈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뜻이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예수가 가야 할 노정을 생각해 볼 때, 예수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갔느뇨? 형제는 어디 갔느뇨? 우리가 그들을 대신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고, 형제를 대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 껄렁껄렁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시시한 껍데기들은 그만 두고, 사도고 무엇이고 다 그만 두고, 우리는 사도의 머리가 되자, 사두(使頭)가 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남편이 통일교회의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여보, 뜻도 뜻이지만 왜 나를 버리고 가오? 하는 이런 시시한 아내가 있으면 발길로 차고서라도 뜻길을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또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이구, 뜻도 뜻이지만 남편이 그래도 제일 가깝지 않아? 하겠지만 가깝긴 뭐가 가까와? 남자는 다 도둑놈이라구요. 물건을 빼 가는 데 있어서 제일 가까운 데서 빼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늘길 가는 데 있어서는 그 남편이 도둑놈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뜻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무엇이냐? 요전에 어떤 신학박사라는 사람이 왔을 때, 우리 식구가 '하나님의 뜻이 뭐요?' 하고 물으니까,'쉽고도 어려운 문제인데…' (웃음) 신학박사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도 몰라 가지고는 할수없는 일이요, 알 수 없는 일로써 결론짓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뜻을 간단하게 결론짓습니다. 뜻이 뭐냐? 세계를 복귀하는 것이다. 세계를 복귀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창조이상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완성이다. 딱 나와 있다구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1차, 2차, 3차의 딱 단계적으로 거쳐가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나면 바쁘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라 앞에 반대받고, 교단 앞에 반대받고, 교인들 앞에 반대받고, 친척들한테 반대받고, 선생들한테 반대받고, 친구들한테 반대받고, 아들딸한테 반대받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결국은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제 반대받았던 자리에서 거꾸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반대받았던 자리에서 좋다고 하는 가정패, 좋다고 하는 패…. 점점 넓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이 반대하게 되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뜻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반대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반대받으면서 발전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일입니다. 반대가 없게 되면 발전을 못 하는 것입니다. 왜? 탕감법이라는 것은 사탄하고 하나님하고 삼인 대조해 가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대가 없어 가지고는 발전의 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역자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해도 절대 한푼도 안 도와주는 것입니다. 딴 데에는 별의별 놀음 하면서 돈을 많이 쓰지만…. 배고픈 사정을 알아 가지고 배고픈 이상 나라를 사랑하라 이거예요. 거기에서 틀어지게 되면 너는 망하는 것이다, 어려운 이상 나라를 사랑하라, 하늘나라가 어렵고 하늘나라가 더 긴박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환경을 감수하라, 그 자리를 거쳐 나가면 너는 나라를 위해 충을 다한 충신의 반열에 동참할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더우기 교역자들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나도 그 길을 갔습니다.

내가 쇠고랑을 차고 원수들에게 몰리고 그랬지만, 원수들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목사들 대해서 '하나님, 통일교회 문선생을 감옥에 잡아넣은 원수들에게 불벼락을 내려서 전부 다 몰살박살시켜 버리소서' 그런 기도를 세 번만 하게 되면 다 걸려들어간다구요. 그런 무서운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는 다 손을 들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일반 사회 사람들이 기독교의 목사들 대해서 규탄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 눈 '목(目-)'에 죽을 '사(死)'자…. 별의별 소리를 다 하고 돌아 다닌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다고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망하는 것을 보고 히히히히 웃다가는, 잘되었다고 박수를 보내다가는 화살이 내게로 날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놈, 하늘이 좋아서 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치지만 인간이라면 정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동정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신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총살시켜 놓고서도 돌아설 때는 '이놈의 자식' 할 것이 아니라 인사를 하고 돌아서야 할 것이 법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쳐부수고도 거기에다 예를 갖추고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자기가 바라는 길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엄숙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장과 바라는 기준은 다르지만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악한 자리에 서더라도 그것만은 귀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지금도 목사들 공청회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이들을 가만히 보면 참 불쌍해요. 불쌍하다는 거예요. 내가 쭉 보고 듣고 있지만, 불쌍하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그러면 여러분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지요? 「예」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를 못 가진 것을 해원성사해 주라는 거예요. 예수가 사랑하지 못했던 그 일족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라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있으면 예수의 할머니와 같이 사랑하고, 어머니가 있으면 예수의 어머니와 같이 사랑하고, 형제가 있으면 예수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형제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가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족속,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민족,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나가야 합니다. 그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가신 예수의 길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사랑의 인연을 따라 '나는 사랑했노라'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 다시 와야 되겠다는 미련을 갖고 죽게 되면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가 다시 와야 되는 것은 낙원밖에 못 가고 천국 못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낙원은 어떠한 곳이냐? 천국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상으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는 예수의 한을 해원성사시킬 수 없는 것이요, 예수의 한을 해원성사 못 시키면 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남자들은 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되고, 그 다음엔 예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를 길러 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있거들랑 딸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전통을 이어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예수를 사위로 삼든가 예수와 사돈을 맺을 수 있는 일족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권속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가 하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다 못 해…. 그래서 '식구'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누렁이고 흰둥이고 검둥이고 없어요. 세계는 하나입니다. 일본 사람이 과거에는 원수였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하나예요.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도 하는 거라구요. 독일 사람과 영국 사람이 원수지만 결혼도 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들이 원해 가지고 통역하는 사람을 세워 놓고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통역을 하는 사람을 세워 놓고 사랑하는 부처(夫妻)끼리 재미 좋겠어요? 그런 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원해 가지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할 수 있는 때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 끼리끼리 하는 것은 얼씨구나 좋구나지. 그렇기 때문에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 같으면 되는 거고, 여자 같으면 되는 것입니다. (웃음)

자, 그러면 신랑으로 온 예수가 이 땅 위에서 각시를 맞아 소원성취할 수 있는 한날을 갖지 못했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대신 해원해 줘 가지고 깃발을 들고 예수의 혼인잔치에 들러리로 설 수 있다면, 행복이 아니겠어요? 본래는 처녀 총각들이 들러리 서는 법이 없습니다. 요즘엔 그런 패들이 더러 생겨나지만 본래 들러리라는 것은 결혼해서 재미있게 사는 모범적인 부처가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신랑으로서 각시를 맞아 혼인잔치할 때, 들러리 설 수 있는 신랑 각시가 되면 불행하겠어요, 행복하겠어요? 그런 들러리감을 만들기 위해서 찾아 세운 것이 열두 제자였습니다. 예수가 혼인잔치하게 되면 들러리들도 전부 다 잔치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앞으로 딴 얘기 없다구요. 축복, 축복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얘기하게 되면 커다란 화제거리가 될 거예요. 오늘 저녁에 축복행사 기록 영화를 한번 보자구요. 문화부장, 어떻게 되었나?「예, 문제없습니다」 그 일본말로 된 부분은 잘 안 됐더구만?「혹 한두 군데…」 노래할때 그렇게 소리는 안 나오고 입만 벌떡벌떡해서는 안 된다고. 그게 전부다 노래할 때 노래가 나오고 그래야 할 텐데 다 잘라 버린 상태가 되었더라고. 「입을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을 해야 되는 것이지 힘들다고 해서…. 밥 먹는다 할 때 입은 닫혔는데 밥 숟가락만 가면 돼요? (웃음) 한국어하고 일본어가 서로서로 바꿔 곳이 많던데….「오늘 밤에 여러분들 오시면….」나는 오늘 저녁에 회의가 있기 때문에 못 온다고. 「예, 알겠습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자

자,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예수가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그 모든 애달픈 심정의 사연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독생자의 애달픈 심정을, 오늘날 여러분이 그와 같은 심정의 자리에 올라가서 이 땅 위에서 그것을 해원성사해 줘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무당들이 원풀이한 다는 말이 있지요? 세상에 악한 신(神)도 그러는데 선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그 원풀이를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그럴 수 있는 부모를 모시고, 그럴 수 있는 일족을 거느리고, 그럴 수 있는 식구를 거느려 가지고 '하나님이여 우리 종족을, 우리 교단을, 우리 나라를 사랑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예수가 이루지 못한 이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예수가 하지 못한 것을 가름하지 않고는 천국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구요, 믿음으로.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했지요? 그것은 바울이 잘 몰랐다는 거예요. 사랑으로 구원을 얻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수님도 사랑으로 구원해 주고 싶겠어요, 믿음으로 구원해 주고 싶겠어요? 예수가 믿음을 좋아하는 예수예요, 사랑을 좋아하는 예수예요? 믿음 좋아하는 예수지요? 기독교로 말하면 사랑을 좋아하는 예수가 아니고 믿음을 좋아하는 예수지요.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 얻지 사랑으로는 구원 못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있겠어요? 그 신부가 나를 잘 믿어 준다 하면, 사랑은 안 하지만, 그거 좋아요?(웃음) 그렇게 살래요? 밤이나 낮이나 믿어 준다고 해서 사랑도 없이 그렇게 살래요? 사랑으로 살래요, 믿음으로 살래요?「사랑으로요」 유치원 애들 보고 물어 봐도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 사랑으로 살지' 틀림없이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으로 구원받는다

예수를 미치도록, 눈이 빠지도록 사랑해야 됩니다. 눈이 물커지도록 사랑해야 돼요. 오늘날 세상에 있어서 처녀 총각들이 첫사랑을 중심삼고 사모한다고 하지만 그까짓 것은 곁에도 올 수 없고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지고 콧물, 눈물을 쑥쑥 흘리고 머리야 어떻게 되든, 신세야 어떻게 되든 그걸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처지가 돼야 합니다. 눈물 흘리는 처지가 나쁜 처지예요, 좋은 처지예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못 만나서 그러니까 만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 눈이 반들반들한 사람들은 아예 만나지도 못한다는 거예요. 만나더라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주님이 오시는 데는 고생을 해 가지고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어 형편없는 모습이 될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고운 옷을 입고 방긋방긋 웃으며 '아하하 오시나이까, 오시나이까' 해 보라구. 눈물을 흘리고 오시는 판인데 그거 재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남자들, 만일 그런 신부가 있으면 기분 좋겠어요?'이거 무슨 요사스러운 요런 간나가 있어? 할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편안하게 오게 안 돼 있다구요. 편안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사랑의 뜻을 이루지 못한 그 예수가 수천년 동안 고생하다가 온 그 주제가, 그 모양이 어떻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까 주님이 와 가지고는 도리어 '야야, 울지마라. 네 주제가 이게 뭐냐. 네 머리가 왜 이렇게 됐노. 옷이 왜 이렇게 됐노.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하도록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되었구나' 하시며 머리를 가눠 주고, 옷을 가눠 주면 그것이 영광이예요, 슬픔이예요?「영광입니다」 도리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자리에서 가눌 것이 무엇이고, 자기 주제를 가눌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되면 도리어 힘들게 오시던 주님이 서 가지고 나를 대하여 위로해 줄 수 있는 그 시간이라는 것은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로받는 것보다 위로해 줄 수 있는 자리가 도리어 행복한 자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끝가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고? 믿음을 갖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어요? 무엇을 갖고? 「사랑요」알긴 아누만. 사랑을 갖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예요. 믿음이란 길잡이 역할을 해줄 뿐입니다. 요 문턱까치 길잡이라는 거라구요. 신부를 신방까지 데리고 가서 '저 남자가 네 신랑이다' 하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믿음이라구요. 그 다음에 살림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뭘로 하는 거예요?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시대는 지나가고, 사랑화한 신부 단장하여 그 절개 지조를 모든 생활환경 가운데에서 빛낼 수 있는 때가 된 것입니다. 그때를 우리가 맞아 가지고 세계적인 기독교 앞에, 오시는 주님 앞에 새로운 꽃다발을 드려 보자, 꽃다발을 못 가졌거든 우리의 몸이 향기를 풍기는 꽃다발이 되고, 우리 단체가 몽땅 꽃다발로 드려지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 자체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꽃이 되자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서 동정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자는 말입니다. 그 자리는 웃고 춤추는 자리가 아니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지키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된다면 예수가 가야 할 노정에 동반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상속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통일교단이 이 자리까지 나올 때에 당신이 싫어 하는 자리를 걸어 나왔걸랑 당신의 마음에 사무친 원한을 가지고 경책 (警責)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당신이 분부하신 최후의 정상을 넘기 위한 싸움의 길을 지금까지 가려 가면서 나왔습니다. 이제 7부 능선, 8부 능선, 9부 능선, 정상을 향하여 전진하는 세계적인 사조 위에, 아버지여, 동정하여 주시옵소서.

슬픔과 낙망과 탄식과 한숨이 엇갈린 십자가의 정상으로 이어받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소망과 부활과 승리로 이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오늘날 통일교단이 가는 도상에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님, 생각하면 지루한 길이었습니다. 생각하면 기막힌 길이었습니다. 생각하면 차마 갈 수 없었던 사연들이 많았습니다만,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의 사연보다도 하늘의 사연이 더 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망할 수 있는 길일지라도 당신이 가는 길이기에 따라 나왔습니다. 그렇게 따라 나오다 보니 망할 줄 알았던 무리가 망하지 않는 자리에 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모두가 그 누구의 공(功)이 아니요, 아버님의 피눈물 나는 희생과 심혈을 기울인 결과로 얻어진 승리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몸을 굽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을 대해 나의 아버지라고 밤을 지새우며 애달피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거들랑 당신이 모른다 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 영영 같이 하시옵소서.

이 땅에 오셔서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갔던 예수의 행로에 있어서, 겟세마네 산정을 더듬으면서 밤을 지새워 기도할 적마다 미래의 사연들을 통고하시던 아버지의 내정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깊은 자리에서 하늘의 권고가 늘 떠나지 마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자리는 그 누구의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이 아들이 바라는 것은 당신이 원하는 나라를 위해 싸워 나가야 할 개척의 노정을 어떻게 보람 있는 전통의 노정으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고, 당신이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염려의 마음을 갖고 지금 이 자리를 지키려 하는 것이 옵니다. 이것을 당신은 알고 계신 줄 아옵니다.

부디 저희들이 가는 길을 당신의 뜻 앞에 합당할 수 있는 결과로 이끄시옵소서. 그렇지 못한 입장에 서거든, 아버지여, 징계를 내리시어서 당신 앞에 합당한 자리를 언제나 붙들고 나갈 수 있는, 하늘을 버리고 하늘을 떠난 우리가 안 되게끔, 거느려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의 사연을 붙들고 저희들이 얼마나 동정을 하였으며, 그 애달픈 심정을 부여안고 얼마나 하늘땅을 가려 나가기 위하여 마음을 다짐하였던 저희 스스로가 되었는가를 다시 한번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될 이 시간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가에 있어서 식구라는 이 고귀한 이름을 더럽히는 개개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여, 각 개인의 마음을 통치하시옵고 통찰하시어서, 매양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일로만을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리기 위해 온갖 정성과 지성을 다 기울이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이달의 마지막 날이오며, 이달에 있어서 다섯번째 맞는 안식일 이옵니다. 10월을 보내고 내일 11월을 맞게 되오니 10월 한달을 반성하고 이해 이후의 모든 것을 반성하면서 당신 앞에 한걸음 진일보할 수 있는, 자기의 영광의 모습을 구비하여 싸움의 길을 더디 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개인의 싸움을 이기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싸움터를 향하여 전진에 전진을 더 다짐할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예수의 한을 풀어 드리고 예수의 싸움터를 사수할 줄 아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야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남아진 세계는 사탄세계인 것을 알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세상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영광을 하늘 앞에 수습해 드리기 위한 온갖 준비의 충성을 다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고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정비하고 자기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정병으로 가꾸어 내는 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하늘의 권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나라가 망하기 전에 그 족속이 망해야 되고, 그 족속이 망하기 전에 그 가정이 망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가정이 망하기 전에 우리 개인이 망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가 찾아 나온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이 가야 할 길은 종족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종족을 찾으려면 가정은 희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민족을 찾으려면 종족은 희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국가를 찾으려면 민족은 희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국가가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국가가 없는 것을 보게 될 때, 이것은 필시 악한 세계인 것에 틀림없사오니, 이것을 걷어치우고 세계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국가 주권 민족을 편성하기 위한 싸움의 준비를 더디 하지 않는 통일신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사상적 일념을 지니고 온갖 지성을 다하는 무리가 있으면, 그 무리는 망하지 않고 역사를 지배하고, 천주사에 새로운 전통적 문화를 남길 수 있는 거룩한 국가를 지닐 수 있고 거룩한 민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을 위로하고, 그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끔 끝까지 싸워 참아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기억하시옵소서. 금년 10월까지의 모든 사연들이 당신의 흡족한 일로로 귀결되고, 남아진 두 달을 통하여 재차 정비하고 수습함으로써 이해를 승리의 해로, 찬양의 해로 민족과 하늘 앞에 바쳐 드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의 전체를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과 수많은 형제들을 중심삼은 교단들 위에, 당신의 소원을 가지고 하늘의 권속의 인연을 흠모하는 수 많은 신자들 위에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시사 승리의 날들이 빨리 그들 앞에 전개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만세의 은사와 축복이 당신의 뜻을 위하여 희생의 길을 다짐하는 그들 앞에 영원히 같이하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올 때에,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가야 할 예수의 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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