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가 기독교와 기성종교들을 다 버리고 통일교회를 제일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높았던 사람들은 낮아질 줄 알아야 됩니다. 언제든지 모심을 받는 사람들은 일방적이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서 좋지를 않습니다.
누구든지 올라갔다가는 내려가고, 그렇게 내려가서는 동서남북입니다. 동서에서 남북으로 가는데, 북에서 어디로 가요? 동으로 갑니다. 지금 소련이 한국하고 하나돼야 할 텐데, 소련이 한국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해 뜨는 곳을 향해서 서 가지고 팔을 벌리면 언제든지 바른쪽은 남쪽이 되고, 왼쪽은 북쪽이 됩니다. 그렇게 해 뜨는 곳을 중심 삼고 언제든지 정면으로 서면 바른쪽은 남쪽이 되고, 왼쪽은 북쪽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동서남으로 갔다가는 어디로 가요? 또 남에서 북으로 갔다가는 어디로 가요? 동으로 가는 것입니다.
세계가 물질만능의 시대, 물질주의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공산주의가 좌익 절대주의로 들어가는데 우익 절대주의로 가지 않으면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천지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앞으로 알아야 될 것은 양력과 음력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왜 없어지느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과 아홉까지는 한 자릿수입니다. 동서남북이라는 것이 한 자릿수인데, 동에서 서가 있어야지 남북이 연결됩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딱 바르게 보면 어떻게 된다고요? 언제든지 정면으로 해 뜨는 곳을 보게 되면 오른쪽이 남쪽 되고, 왼쪽은 북쪽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공식이 일정하니 공식을 푸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가감승제가 있습니다. 단에서부터 세는데 단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입니다. 만의 만 배가 억입니다. 억이라는 것은 1에 동그라미가 여덟 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자릿수인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까지입니다. 열은 못 갑니다. 한 자릿수는 영원히 상대가 없으니 하나님까지 없어집니다.
그것부터 유치원에서 가르쳐줘야 됩니다. 가감승제는 다 알고 있습니다. 단에서 십인데 열을 넘어가면서 새로운 단계의 출발을 갖다 붙이기 때문에 열하나입니다. 상⋅하라고 하게 되면, 가운데가 빠졌습니다. 물이 공중에서 천년만년 한 자리에 떨어지면, 천년만년 구멍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래요? 지구의 중력 때문입니다. 반석 위에 떨어질 때는 위에서 하나하고, 둘의 자리는 어디예요? 이리도 안 가고, 이리도 안 가고, 이리도 안 갑니다. 하나 둘인데, 이 가운데가 빠졌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중⋅하입니다. 왜 가운데 가느냐? 여기에서 우⋅중⋅좌, 전⋅중⋅후가 되기 때문입니다.
두 점을 연결시킨 것을 선이라고 하는데, 선에서는 조화가 없습니다. 선에서는 진화라는 말이니 조화라는 말이 없다고요. 남자와 여자가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하나돼요? 남자는 크고, 여자는 작습니다. 대응관계가 없으면, 큰 것과 작은 것은 연결이 안 됩니다. 그거 연결이 안 되면 없어집니다.
서양 사상가 데카르트가 어떤 사람이었어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했는데,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없었던 거예요? 자기가 제일이었어요? 하나님도 없었고, 사탄도 없었어요? ‘내가 생각하니 있다.’라는 말은 핏줄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타락한 것도 모르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가 먼저였어요? 내가 그것을 밝혀줘야 됩니다. 맹목적으로 알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갔다가는 자기 자신이 없어집니다. 암만 똑똑하더라도 없어져요.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없어지는 겁니다. 왜 없어져요? 대응 대처할 수 있는 자리와 상대를 취할 수 있는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칸트는『순수이성비판』을 말했습니다. 순수한데, 이성의 비판을 누가 해요? 순수한데, 이성을 비판해 가지고 어디로 갈 거예요? 올라갈 거예요?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내려갈 수밖에 없으니 지식세계의 오만한 사람으로 망치는 구덩이의 왕자밖에 안 됩니다. 먼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을 모르고, 핏줄을 몰랐습니다. 그걸 몰라 가지고 무슨 비판이에요?
그 다음에 『판단력비판』이 있는데, ‘판단력비판’을 어떻게 할 거예요? 판단을 다 해서 판단이성을 비판할 게 있어요? 지식에 대한 오만불손한 대가리를 휘젓던 패들입니다. 타락을 몰랐습니다. 핏줄이 달라졌기 때문에 온도와 속도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순수이성을 비판할 수 있어요?
헤겔은 정반합논리를 말했는데, 정에서 반대가 어떻게 나와요? 정을 모르고 반대가 나왔으면 모를 텐데, 정을 알고 반대했으니 하나가 돼요? 3단계의 고개를 넘을 때 통일이 벌어져요? 핏줄을 모르고, 핏줄의 속도를 모르고, 온도의 높고 낮음을 몰랐습니다. 타락을 몰라 가지고 무슨 정반합의 논리예요?
이병도 박사도 문 총재의 논리가 맞다고 했습니다. 정분합은 맞지만, 정반합은 암만 이해하려고 하더라도 못했기 때문에 “나도 통일교회의 존경할 수 있는 역사의 대표자로서 죽어야 되겠습니다.” 한 것입니다. 문 총재의 정분합의 논리는 꿈에 생각해도 희망이 있고, 절망한 자리에 있더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또 나눠졌으니까 합해야 됩니다.
정분합의 논리는 밤에 봐도, 낮에 봐도, 저녁때 봐도, 자다가 갑자기 도망가서 앉아서 보더라도 어때요? 자기가 반대되는 입장에서 쫓겨났지만 분립된 곳을 찾아가야 하니까 정분합의 논리가 맞다는 겁니다.
통일교회에 입회하기 위해서 50 몇 세가 된 선생님한테 겸손히 인사하던 이병도 박사, 그 아들딸은 어디로 갔어요? 아버지한테 합을 못 했습니다. 내가 한꺼번에 다 합해 줄 수 있는 때가 오면 그 치다꺼리를 해줘야 될 것입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한 분밖에 없는 왕을 모시는 곳에서 왜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사형장의 단두대에서 목을 잘라버리느냐 이겁니다. 손을 매 가지고 거동도 못 하게 하고 옥중에서 죽게 놔주느냐 그겁니다. 니체가 하나님을 죽었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살아 있습니다.
니체가 말한 대로 하나님이 죽었다면, 교육이라는 게 필요 없습니다. 인사도 필요 없지요.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타락을 몰랐고, 핏줄의 온도와 속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 같은 입장에 들어가니 그런 망령된 사상이 인류를 지옥으로 다 데리고 간 것입니다.
내가 말할 때 이것을 벗겨줄 수 있는 내용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이거 읽어보자고요. 그 사람들이 영계에서 사는 실상을 내가 조사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똑똑히 가르쳐줘야 되겠다는 겁니다.
저걸 만들어 놓았지만, 꿈에도 내가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찾아도 안 갑니다. 그 내용을 읽어줘요. 니체가 얼마나 나쁜가 보라고요. ( ‘천상세계에서 보내온 철학사상가 메시지’ 니체 부분 훈독)
여러분이 신앙하던 그대로 천상에서 나타납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요. 나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여러분을 속여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 번을 속여먹기 전에 백 번을 내가 희생해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은 거기에 머뭅니다. 거기에 천국 출발의 기원이 있는데, 그것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사랑이 아니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연결시켜야 하는데 영연세협회입니다. 그런 말을 선생님이 가르쳤습니다. 영적인 세계와 세상을 얽어매는 협회입니다. 선생님이 모험을 무릅쓰고 혼자 개척했습니다. 내 친구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내 친구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두고 봐요. 그런 것을 아는데, 감옥에 들어가서 죽지 않고 살아나온 게 몇 번이에요?
우리 형진이는 아버지가 일곱 번 죽었다가 부활하고 8단계를 완성했다고 천번 만번 경배했습니다. 자기가 내 손을 붙들며 부들부들 떨면서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러더라고요. “왜 죄송하냐?” “아버지를 몰랐어요.” 그렇게 몰랐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경배를 1만 2천 배까지 했습니다. 그 고개를 넘어가 가지고 천상에 올라가서 지옥문, 하늘 문을 열어젖히고 왕이 돼 보겠다고 하는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냐 그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칠사부활(七死復活)입니다. 형진이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고생하다니…….’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고단하게 되면 문전에서 울고 눈물을 흘리곤 하더라고요. “왜 그래?” 할 때 “아버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하는 그 자리가 귀한 것입니다.
내가 ‘머물 지(止)’ 위에 하나(一)를 한 바른(正) 궁전, 하늘땅에 하나밖에 없는 궁전에서 하나님을 해방해 줘야 됩니다. 생사지권을 중심삼고 모든 뼈가 녹아나서 물이 되더라도 내 뼈와 살은 자기 자리를 지켜 가지고 하나님을 올바른 자세로서 해방시켜야 할 책무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죽어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서전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자서전이 끝났습니다. 그래, 일곱 권입니다. 이것이 교재 교본입니다. 이걸 이번에 나눠주려고 합니다. 이대로 살라고요. 내가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이것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90생애가 어땠어요? 40세에 왕 자리에 앉았을 것인데 어떻게 90세까지 됐어요? 서양 철학자들도 있는데, 그 이상을 내가 교재로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는 조상들이 데려가게 됩니다. 조상들이 나라의 대통령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안 데려갈 수 없습니다. 그런 때가 오는 겁니다. 똑똑한 손자나 할아버지는 영계에 데려가서 망할 길을 막는 것입니다. 망할 길을 살길로서 뒤집어놓기 위해 조상들이 재림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면, 조상들이 잡아가요. 그런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기준에서 일을 맞추려니까 교본 교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얼마나 기가 찬 사정이 많았는지 알아요? 출판을 한꺼번에 세계적으로 못 하게 돼 있습니다. 누가 돈을 대줘요? 이제부터 진짜 환고향을 해야 됩니다. 표본적인 동물 종자, 고기 종자를 길러 가지고 세계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창조한 원초성지와 근본성지 그리고 승리성지가 있습니다. 탕감성지는 한국 땅입니다. 한국에서 세계 양식의 모델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니 물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곳이 판타날입니다. 판타날이라고 하게 되면 팔다 남은 땅이다 이겁니다. 거기의 담수가 파이프를 통해 7천 마일을 흘러가더라도 마르지 않으면, 세계의 사막은 문 총재로 말미암아 없어집니다. 나는 그런 꿈을 갖고 있습니다.
판타날의 물을 한데 몰아 가지고 파이프로 세계에 뻗어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담수가 자꾸 줄어들어 가니까 그걸 보충해 가지고 사막을 푸른 지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소명적인 책임을 꿈 가운데 제일의 꿈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식량문제와 생물들의 먹이 사슬에 관련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것으로 안 되게 되면, 지하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모르는 지하 백 미터나 천 미터에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의 물을 끌어내서라도 나는 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죽어서는 안 돼요. 그 준비를 다 해놓고 죽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막을 없애는 겁니다. 담수가 사막에 흐르니 유원지를 만들어 가지고 현대 최고의 문화시설을 해놓는다고요. 비행장도, 놀이터도 거기에 만드는 것입니다. 땅 구덩이를 파서 사방으로 물을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담수를 나눠주고 해수까지도 팔아먹어요. 초목도 담수의 초목이 있고, 해수의 초목이 있습니다. (이후 화동회) (강현실, 초창기의 전도생활을 간증하고 ‘방랑시인 김삿갓’을 노래함)
여러분은 노래를 듣더라도 보통으로 듣지만, 선생님은 사연과 곡절이 많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렇게 생각되고, 저렇게 해석하면 저렇게 생각되고, 요렇게 해석하면 요렇게도 생각됩니다. 좋게 보려면 좋게도 보이고, 나쁘게 보려면 무한히 나쁘게도 보이지만 그 가운데 가야 할 길은 두 길이 아닙니다. 한 길밖에 없습니다. 골라서 가기가 힘든 겁니다.
여러분의 생애 길은 단순하지만, 선생님은 방대한 천주를 두고 복잡한 사연의 한 길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청춘시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잊어버리고 살아요. 장년시대도 잊어버렸고, 이제는 노년시대도 갈래가 더 복잡하니 또 잊어버리고 가야 할 나머지의 길입니다. 이제 남아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 길을 어떻게 붙들고 마지막 이별의 고개로 넘겠느냐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그 숙제의 답을 찾기가 힘든 겁니다.
그 답이 아직까지 해결해야 될 기도의 문제로 나를 부르고 있고, 나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방의 천국과 합할 천지를 개문할 것이냐 하는 것은 숙망(宿望)으로 남아진 십자가입니다. 예수의 죽음 길이 어려웠는데, 뭇사람들이 말하는 하나의 죽음 길은 간단하고 간단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고, 이제 2010년을 맞이해 가지고 3일을 지냈는데 13수가 걸려 있습니다. 어떻게 넘어갈 거예요? 나는 내일이면 떠나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가 7일을 넘기 전에는 못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한 갈 길도 연장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3일 지난 후의 갈래 길이니, 오불꼬불한 길이니 어떤 고비가 나에게 닥쳐올 것이냐? 그것을 해결해야 될 숙제가 남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는 진짜로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고개가 한두 개밖에 안 남았습니다. 세 고개도 안 됩니다. 어두운 세계에 소리를 지르고, 자기의 모습을 사방으로 빛낼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그럴 수 없다면, 그 때는 또 내가 어떻게 가야 되느냐? 둘레를 만들어 감싸고, 옷으로서 자기의 모습을 가려야 됩니다. 전체 면을 나타내고 행동할 수 없으면, 나는 어떻게 가리고 갈 것이냐?
그런 길이 남아 있는데,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옛날에 여러분이 지났던 고개는 걱정하지 않고 넘어가자 이겁니다. 내가 선두에 서 가지고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길은 쉬운 길로서 열리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통일교회 패들에게 걱정이 없습니다.
이 자서전을 만들어 놓고는 걱정을 안 할 수 있는 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쁜 훈독회가 돼야 할 텐데, 마지막 30페이지가 남았다는 그걸 한번 듣자고요. 내가 그걸 하던 것을 잊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면이 있을 텐데 한번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분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에 청춘세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제2대의 길이 기다리고 있겠구나.’ 하는 꿈을 가지고 들어야 됩니다.
훈독사가 병이 나서 기침을 해야 되고 훈독하다가 쉬고 싶은데도 계속해서 읽어야 할 때는 도망을 가는 딱한 사정을 볼 때는 내가 뛰쳐나가고 싶은데, 여러분들 중에서 뛰쳐나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있느냐? 그것도 걱정입니다.
복귀의 길에는 걱정으로 끝내게 될 사연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그러고 있으니 내 걱정거리는 영계에 가서 부활되어 새로운 아기로 태어나 가지고 하나님의 품에 품겨서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놓고 키우던 그 세계에 가기 전에는 내가 기쁠 수 있는 시작을 만나지 못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 품에 품길 때 자장가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는데, 그때의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버지를 내 어린 손으로 만질 때 그 이상이 없어서 그것이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천지개벽의 초석이 됩니다. 그 날이 멀지 않고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그런 설교집을 낭독할 수 있는 시간인데, 많은 고비 길을 거친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이 앞날에 선생님과 같이 복잡한 환경에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교재 교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뛰라는 데는 뛰어야 되고, 내리라는 데는 내려야 됩니다.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됐으니 그 길을 준비해서 가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식에 대한 소원이요, 여러분의 후세에 대한 소원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자, 시작해요. 『문선명선생말씀선집』제2권 ‘선의 본성을 찾아 죄의 보응을 면하자’입니다. 이 말씀은 1957년 7월 21일 일요일에 하신 것입니다. 그때는 어머니도 없었을 때입니다. 1957년 7월이니까 말이에요.
선생님이 40을 넘어 가지고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나 혼자였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선생님을 잘났다고 하고, 은혜에 사무쳐 가지고 날아다니던 때입니다. 요즘에는 밉게 생겼지만, 그때는 잘났었다고요.
그 시대의 말과 기도를 들어보고, 여러분이 회상할 수 있는데 그 한 제목을 듣고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변화된 발전의 결과가 아닐 수 없게 됩니다. 선생님이 구십을 넘은 이 시대에 갈 수 있는 그 길은 비약이요, 도약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전에는 갈 길을 놓치기 쉬운 때가 왔다는 것을 예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제2권 ‘선의 본성을 찾아 죄의 보응을 면하자’, ‘타락의 고개를 넘어 본연의 동산에 들어가자’라는 제목의 말씀을 훈독)
이제 언제 만나겠어요? 일본에 맡겨진 최후의 열매를 거둬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하늘이 다 알고 있는 열매의 즙이라고 할까, 열매의 나라라고 할까, 열매의 세계를 밟고 넘어가서 새로운 집,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할 소명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시작, 차원이 1단계의 한 자릿수는 아닙니다. 두 자리, 세 자릿수까지 더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야 할 분야의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새로이 결심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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