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 길 Ⅰ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새해를 맞이하여 8일째 되는 이 아침에 의정부에 있는 식구들과 지원 요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만난 것도 뜻을 중심삼고 만난 인연 때문이요, 저희들이 가야 할길도 뜻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을 모시고 집회를 갖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모든 인연과 동기는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끼리 인연되어 모이는 자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분열이 벌어지는 것이지만, 하늘을 중심삼고 모이는 자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새로운 목적을 위해 전진하게 되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뜻을 아는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부디 이 의정부 지구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이 의정부 지구를 중심삼고 전체 요원들이 일치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의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분열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개개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서 사방에 흩어졌던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였사오니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사연을 털어 놓고 그 다음에 아버지의 사연을 바꾸어 가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런 목적을 위하여 모인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임이 저희들 끼리끼리의 모임, 저희들 끼리끼리의 인연으로써만 끝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고, 개개인의 심령 심령을 친히 살피시옵소서. 스스로가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모색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개개인을 찾아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사옵니다. 이제 진정 그러한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앎으로써 저희들이 이 땅 위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 앞에는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충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렇게 모였사오니 말씀을 나누는 시간도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어둠의 세력이 침범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모든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한 날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연이 되게 하시어 이 민족과 세계 앞에 필요 적절한 하나의 자아를 발견하고, 하늘 앞에 도움을 가해 드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첫시간서부터 끝시간까지 당신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은 어디 한번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지 않다가 오늘 처음으로 통일교회에 온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오늘은 `인생의 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해 보겠습니다.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인간의 마음과 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보나, 혹은 사회를 보나 선한 세계와 사회가 되지 못한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두고 보더라도 역시 선한 가정이 되어 있지 못합니다. 누구나 다 사회의 영향과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더 들어가서 우리 개인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해야 할 텐데 선하기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악한 환경에 사로잡혀 가지고 선이 요구하는 그런 자리를 벗어나서 살려고 하는 자신인 것을 생활 가운데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인간을 두고 보면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즉 몸과 마음이 합해서 `나'라는 개체, 즉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과 몸이 진정으로 하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에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가기를 원하는데 몸은 그와 반대로 가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이런 싸움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후세의 우리 자손들도 역시 그런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는 가운데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싸움의 노정을 거쳐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외적인 싸움보다도 대내적인 자기 몸과 마음의 싸움도 해결하지 못하고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 자신인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인간들은 세계가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고 평화의 세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체가 하나되지 못한 개인들로서 묶어진 사회요 나라인데, 어떻게 하나될 수 있는 평화의 세계를 모색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동기가 되고 근원이 될 수 있는 내 개인이 하나되지 못한 입장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 목적의 세계, 즉 결과의 세계도 하나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데 이 싸움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철이 들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을 두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몸이 마음을 굴복시킬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마음이 몸을 굴복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뒤넘이치면서 10년, 20년, 30년, 혹은 50년의 생애를 거쳐 가지고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볼 때, 오늘날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는 사회악이나 세계악을 제거하는 것보다도 나 자신에게 미쳐져 있는, 혹은 나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악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그 악에서부터 사회악도 출발하는 것이요, 세계악도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물론 세계에까지 그 결과가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악의 기원이 각자에게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

역사과정에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싸운 목적은 무엇이냐? 먼저 참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중심삼고 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사회악을 대하여 싸우기 전에 먼저 모순된 자아를 타파하기 위한 싸움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싸움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매정하고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싸워 가지고 선한 입장에 섰다고 마음이 주장할 수 있음과 동시에 몸이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고, 마음이 지향하는 선의 목적 앞에 몸이 언제나 절대 순종하는 그 자리에서부터 역사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현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대외적으로 선을 주장해 봤자 그 밑바닥이 흐려 있기 때문에 선의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과정에서는 좋은 결과가 날 것 같지만 나중에 나타나는 열매는 악의 열매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나 자신입니다.

내가 완전한 선을 갖추기 전에는 가정의 선을 가져 올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이 완전한 선의 기반을 닦기 전에는 친척이면 친척, 종족이면 종족의 선의 기반을 닦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김씨면 김씨의 한 종족권을 중심삼고 선한 권내에 서지 못하면 선한 민족이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민족이 형성되지 않고는 선한 국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요, 선한 국가가 형성되지 않고는 선한 세계가 형성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세계를 이상으로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라는 목적은 될지 모르지만 성사될 수 있는 목적으로는 우리가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 있느냐?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개체를 보게 되면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다릅니다. 서로 싸우는 두 사람이 내 개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를 중심삼고 보면 이건 네 사람이 싸우는 입장입니다. 열 식구가 있다면 스무 사람이 싸우는 입장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로서 구성된 삼천만 민족, 혹은 세계 인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세계 가운데 과연 행복의 터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문제를 중심삼고 고심하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싸우는 데 있어서도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기 전에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는 `선을 행하라' 하거나 `좋은 일을 행하라'할 때도 남을 위해서 선을 행하기 전에, 남을 위해서 좋은 것을 행하기 전에 자기 자신 앞에 선을 행할 수 있는 자리, 좋은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올바른 씨를 심어야 올바른 싹이 나오는 것이요, 올바른 싹이 나와야만 올바른 가지와 잎이 생기고 꽃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다운 인간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인가

어느 한 동네를 두고 볼 때,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 있어서 `누구는 착한 사람이야. 선한 사람이야. 그래도 저분만은 우리 동네에서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게 될 때, 신임한다고 하는 그 신임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측정하느냐?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가지고 합니다. 틀림없는 것 가지고 합니다. 틀림없다는 것은 시종여일 하다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좋아지면 더 좋아졌지 나빠지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사람은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은 무엇이냐? 변하지 않고 틀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물이라 할 때 색깔이나 질에 있어서 변하는 것은 보물이 될 수 없습니다. 색깔이나 질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시종여일해야 됩니다. 십년 후에도 백년 후에도 천년 만년 후에도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심입니다. 그런데 이 양심이 절대적으로 선하냐 하면, 양심도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양심은 악을 싫어합니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악이 나타날 때에는 `이놈'하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제재를 가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악을 대해서는 투쟁하려고 합니다. 이 작용에 있어서는 여러분의 양심이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에 동생의 먹을 것이라든가 입을 것을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하면 양심은 `야 이놈아, 그건 동생 것이 아니냐. 동생에게 물어 보고 해야지' 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양심은 원리원칙에 어긋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언제나 제재하는 작용을 합니다. 이 작용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밤에 혼자 있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이 악한 입장에 설 때는 양심은 그것은 좋지 않다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이 작용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다음 또 한 가지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몇천년 전 사람이나 몇천년 후 사람이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마찬가지입니다. 못난 사람이 못난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잘난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차이 있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못나고 비참한 자리일수록 긍휼의 마음, 불쌍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마음은 천년 전 사람이나 천년 후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런 사랑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심 작용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사랑합니까?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 아기를 낳아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어디에 사랑을 가르치는 소학교가 있어요, 중학교가 있어요? 무슨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어요? 거기에 무슨 학박사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만 누구나 그 기준은 만점입니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 완전하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완전한 것은 손댈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가감이 필요하지 않을수록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은 변치 않는 것이요, 변치 않는 것은 영원히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조금만 잘못하면 양심은 야단입니다. 잘못하는 것도 야단이지만 잘하지 않으면 이것도 야단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양심은 `너는 옷을 두둑히 입고 배도 부르고 부러운 것이 없으니 저 길가에 있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건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정직한 사람, 선량한 사람 , 좋은 사람일수록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렇게 하라'고 하는데 몸은 `난 싫어'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대관절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마음이 하자는 대로 `예' 하고 거기에 이의가 없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한 60대 되는 소매치기 왕초가 있다고 합시다. 그 왕초가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데 스크린에 소매치기 소년이 어떤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려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걸 보는 소매치기 왕초는 `요놈의 자식아' 하면서 그 영화 속의 소매치기 소년의 손목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때는 자기가 소매치기 왕초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겁니다.(웃음) 그 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소매치기 소년을 잡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벌써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소매치기의 왕초이니 소매치기 소년쯤이야 용서해 주고도 남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심각하게 봅니다. 그 녀석을 나꿔채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적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리를 지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누가 교육합니까? `나는 마음 소학교 다녔소. 나는 마음 중학교 다녔소' 하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이것은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법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마음 이상의 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요? 양심은 바른 것입니다. 대개 관념이 그렇습니다. 양심이 꼬부라졌느냐 반듯하냐 할 때, 양심이 꼬부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양심은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바르면 얼마나 바르냐? 똑바르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려가는 바름이냐, 올라가는 바름이냐, 혹은 수평선을 중심삼은 바름이냐? 이렇듯 바른 것도 다릅니다. 양심은 올라가는 바름입니다.

그러면 올라가는 바름은 뭐냐? 올라가는 각도가 작으면 하는 일도 작습니다. 좋은 일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하는 식으로 작용 자체도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도가 크면 클수록 그 작용도 커집니다. 양심이 올라가면서 바른 각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강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심은 올라가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한두 번 작용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하려고 합니다. 양심은 명령할 때 오늘만 잘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잘하라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마음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어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양심은 `이제 이만했으면 남들을 도와 줘야 될 게 아니냐'고 하는 겁니다. 즉 양심은 혼자 갖고 살지 말고 좋은 것은 전부다 나눠 주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나누어 주는 데에는 어떻게 나눠 주고 싶으냐? 집안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좋으면 좋을수록 넓고 높고 멀고 깊게 나눠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은 넓고 높고 깊게 주고자 하는 양심을 중심삼은 인격 내용과 결부된 기준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선한 일을 얼마만큼 하라고 하느냐? 선한 것을 전부다 이룰 때까지 하라고 합니다. 여기 의정부 시민이 얼마나 됩니까? 「8만 명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8만 명 전부를 잘살게 만들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마음은 그렇습니다. 자기의 모양은 초라하더라도 마음만은 자기보다 남을 더 잘살게 해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백만장자가 되어 가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대로 모든 의정부 시민들을 외적으로 풍부하게 해주었다고 할 때, 양심은 `야,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 자, 너도 같이 잘살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정부 시민 8만 명뿐만 아니라 삼천만 민족을 다 잘살게 해줘야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응당 그럴 것 같지 않아요? 8만 명밖에 안 되는 이 조그만 의정부시를 위해서 마음이 하자는 대로 했다고 해서 거기에서 보따리 풀고 잠이나 자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정부시를 도와줬으면 그 다음에는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족을 도와줘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삼천만 민중이 전부다 나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고 잘살게 됐다면 양심은 이 이상 행복이 없다 하면서 `이젠 낮잠 자고 쉬어도 돼'이렇게 명령하겠어요? 절대 안 한다는 거예요. 쉬려고 하면 `어허 세계를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더 해' 하고 명령을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합니다」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양심은 나하고 원수입니다. 폭군이라면 최고의 폭군입니다. 그만했으면 됐지, 여기에서 더 하려면 얼마나 뼛골이 빠지겠느냐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정성을 들이느라 잠 못자고 피땀 흘리며 수고를 했는데도 그 수고를 한꺼번에 집어던지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동네를 위하고 나면 그 동네뿐만 아니라 `삼천리 반도를 위하라'하고, 삼천리 반도를 위하고 나면 또 `세계를 위해서 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30억 인류를 전부 잘살게 했다 하더라도 양심은 `야, 이제 됐다'고 하지 않습니다. 또 옛날에 왔다 갔던 사람들을 위하라고 합니다. 죽었더라도 그 사람들을 잘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또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잘살고 있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수천만대의 선조로부터 왔다간 수천 억 되는 인류들,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도 잘살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못살고 죽으면 한이 맺힌다고 하잖아요. 그러한 맺힌 한까지 풀 수 있으면 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이 못 살면 되겠느냐, 그 기반까지 닦아 놓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양심이라는 것은 종자가 어디서 생겨났고, 뿌리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길래 이러는지 이게 문제입니다.

인간이 귀한 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

그러면 이 양심은 어디까지 갈 것이냐? 마음은 어떻게 생겼느냐? 둥글둥글한 거예요, 넓적한 거예요? 마음은 어떤 모양을 닮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납작하다면 지극히 납작하고, 좁다면 지극히 좁습니다. 또 길다면 무한히 길고, 넓다면 무한히 넓고, 높다면 무한히 높은 것입니다. 또 빠르다면 비행기보다도 더 빠릅니다. 빛이 빠른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인공위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 여하에 따라서 천하가 놀아나면 놀아났지 마음이 놀아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보따리가 얼마나 큰지 이 세계의 모든 대통령을 자기 배 안에 집어넣고 운전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안 그래요?

이 마음이 사고뭉치라면 지극히 큰 사고뭉치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같은데 빼 버리려 해도 빼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게 보기에는 시시한 것 같은데 잘났다고 들고 나오면 천하가 이것을 당할 수 없을이만큼 엄청난 존재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못났다면 지극히 못났고, 잘났다면 지극히 잘난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잘났으면 좋겠어요, 못났으면 좋겠어요? 잘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자, 마음의 지시에 따라 수고를 해 가지고 세계 사람들을 전부 다 잘살게 해준 사람이 있다면, 세계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반기를 들고 데모를 하겠어요, 고맙다고 머리를 숙이고 따라가겠어요? 「따라갑니다」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온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잘살게 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살라고 내쫓아도 따라온다는 겁니다. 관계를 안 맺겠다고 해도 맺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왜 이렇게 작용하느냐?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고 나면 내가 손해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준 것도 내 것으로 화할 수 있음과 동시에 받은 것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마음은 이러한 비법을 배우지 않고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명령을 따른 사람은 주인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萬物之衆唯人最貴)'라는 말도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물과 다르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귀합니까, 귀하지 않습니까? 「귀합니다」 무엇이 있어서 귀합니까? 몸뚱이가 있어서 귀합니까, 마음이 있어서 귀합니까? 「마음이 있어서 귀합니다」 사람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몸뚱이가 있어서 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살라

나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외적인 대외관계에 있어서 마음은 선한 일을 하도록 폭군처럼 명령을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실천하고 보면 폭군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선군의 권한을 가지고 천하 앞에 영광을 발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과연 싸우지 않고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공산주의자들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공산당식입니다. 여기에 공산당 사촌되는 아저씨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공산당 사촌인가 친척인가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없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 것은 내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고 하는 사람은 공산당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산당 사촌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온 아저씨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부락에 욕심장이 아저씨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배도 좀 나오고 신수도 멀끔하게 잘 생겼는데, 그 생김새와는 반대로 마음이 아주 욕심꾸러기라는 겁니다. 동네에 지나가다가 무슨 좋은 것이 있으면 `내 것' 하면서 잡아채려고 한다는 거예요. 어린 아이들이 빵 조각을 들고 있는 것을 봐도 `내 빵 조각'하면서 잡아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간에 체면불구하고 자기 배에 넣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을 동네 사람들이 환영하겠어요, 쫓아내려고 하겠어요?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도 그렇습니다. 분석할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지만 의분에 사무친 사나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땅이 옳다고 할때는 대한민국이 반대해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 교인들을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들이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통일교회 다니더니 부모도 몰라 보니, 무슨 교회가 그러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좋고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그들도 배워야 됩니다. 아무리 여든 살이 되었거나 늙어 죽을 나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인생행로에 있어서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라든가 해결해야 할 내용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아들딸들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탐구하려고 하는데 그 길을 막는다는 것은 틀려 먹은 것입니다. 진정한 부모라면 어서 가서 참다운 인생의 가치를 찾으라고 격려해 주고 그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네방네에서 쫓겨나고, 혹은 나라에서 규탄을 받지만 그것으로 흘러가 버리고 망하게 되면 그건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봤을 때에 안 된다고 때리던 사람들이 여러분이 제재도 가하지 않았는데 자연히 그 결과에 따라 머리 숙일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 앞에 완전히 항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고 해서 여러분과 뭐 다른 것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은 조금 뚱뚱할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가 좋은 몸뚱이로 태어나게 해줬으니 뚱뚱한 겁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닙니다. 몸뚱이는 여러분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추울 때는 춥고, 바늘로 찌르면 아프고, 섭섭한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해합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르냐? 양심을 중심삼고 보는 관이 다르다는 겁니다. 행동하는 그 결과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아들 딸을 낳아 키우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늙어서 잘살기 위하여 공부시키는 부모와, 자기 동네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공부시키는 부모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부모가 더 선한 부모이겠습니까? 「동네를 위하여 공부시키는 부모입니다」 그건 다 아는 것이니 교육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동네를 위해서 공부를 시키는 부모와 나라를 위해 공부시키는 부모 중 어느 부모가 선한 부모입니까? 다시 말해 `네가 공부하는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후대 만민의 복귀의 터전을 개척하기 위한 하나의 선각자로 서기 위한 것이다' 하면서 정성들여 아들딸의 장래를 추구하는 부모와 동네를 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아들딸의 장래를 추구하는 부모 중 어느 부모가 훌륭한 부모입니까? 어디 대답해 보세요. 얘기는 주고 받아야 재미있는 것이지 혼자서만 얘기하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 어느 부모가 훌륭한 부모예요? 저쪽에 앉아 있는 아저씨 한번 대답해 보세요. 「나라를 위하여 공부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나라보다도 세계를 위해 살라

나라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만민을 위주로 태어난 세계적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성은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 있어서도 `네가 공부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하는 것이지만 앞으로의 세계를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민족을 넘어 종족과 인종을 초월한 박애사상과 형제의 심정을 가지고 네 몸과 네 일생을 고이 만민을 위해서 희생하고 만민의 복지를 위한 개척자가 되라'고 다짐시키며 공부시켜야 합니다. 그런 부모와 나라를 위한 충신의 도리를 가르치면서 공부시키는 부모 중에 어느 부모가 더 훌륭한 부모입니까? 우리 아주머니들, 이야기해 보세요. 여기 얼굴 둥글게 생긴 아주머니 대답해 보세요. 어느 부모가 더 훌륭합니까? 「세계를 위해서 공부시키는 부모입니다」 다 아시는구만.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기 나라만을 위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또 자기 가정만의 운세를 주장하는 사람은 나라의 운세가 다가올 때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일등 국가가 되겠다고 했지만 세계의 운세가 몰아치게 되니 할 수 없이 남북으로 갈라지더라 이겁니다. 그렇지요? 민족의 충신들이 죽음길을 가며 소원하던 해방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은 왔는데, 세계의 운세가 몰아치니 대한민국의 운세는 세계의 운세를 안고 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의 운세가 다가온다고 할 때에, 세계 운세에 박자를 맞춰서 준비를 하는 사람과 나라의 운세에 박자를 맞춰서 준비하는 사람과 가정의 운세에 박자를 맞춰서 준비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먼저 망하겠습니까? 대답해 보세요, 누가 먼저 망하겠느냐는 거예요. 개인의 운세는 가정의 운세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또 가정의 운세는 동네의 운세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 동네에서 잘산다고 큰소리 해봤자 동네가 망하게 될 때는 그 가정도 망하는 겁니다. 종족의 운세는 민족의 운세를 못 막아내고, 민족의 운세는 국가의 운세를 못 막아냅니다. 또한 국가의 운세는 세계의 운세를 못 막아내는 것이요, 세계의 운세는 천운을 못 막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재수가 좋기를 바라지요?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봤는데 기분 나쁘다, 또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한테 갔다 왔는데 참 재수가 좋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재수가 좋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갈 때는 아홉 냥을 가져갔는데 올 때 보니 여덟 냥이 되었을 때 그것을 보고 재수 좋다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아야 재수가 좋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 갈 때보다 올 때 더 크면 좋다고 하는 겁니다. 갈 때보다 더 나아야 좋다고 하는 것이지, 나빠졌는데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자연법도라든가 화학작용이라든가 모든 작용이라는 것은 손해 나는 데서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기 의정부까지 뭐하러 왔겠어요? 나는 아주 바쁜 사람입니다. 시골 양반들에게 몇 시간 이야기해 봤자 당장에 두드러진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바에야 서울에서 유명한 사람들 만나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있어서 그런 사람들만이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같은 한 몸뚱이라는 것입니다. 한 몸뚱이에서 이마는 번듯이 잘생겼는데 코가 못 생기거나, 또 코와 이마는 잘 생겼는데 눈이 애꾸라면 안 됩니다. 또 입이 찌그러져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기 위한 전체적인 가치를 보게 될 때는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귀하기는 같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선생님이 오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끝이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루하다면 5분 내에 결론을 맺고 끝마치겠습니다. 오늘 선생님은 의정부에서 말씀이 끝나게 되면 춘천으로 가야 합니다. 3백리 길을 앞에 놓고 지금 여기 와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빨리 끝낼까요? 조금 더 세밀하게 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할까요? 「좀더 세밀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처음 오신 분들도 그런 생각이예요? 나도 옛날에는 남의 말 듣기를 참 싫어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실례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예」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봅시다.

그러면 세계에서 잘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어느 동네에 어수룩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봄철이 되어도 발갈이할 줄 모르고, 여름이 와도 김을 맬 줄도 모른다는 거예요. 또 가을에 추수해 가지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곡식을 말리고 있는데 소낙비가 쏟아져도 눈만 꺼벅꺼벅하면서 곡식을 담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김새는 아주 잘생겼고 말도 바로 하고 행동도 바로 하더라 이겁니다. 한 십년쯤 지내면서 그 사람이 하는 짓을 보니 무용지물과 같더라 이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인민군이 쳐내려오기 전날 보따리를 싸 가지고 피난을 가버렸다면 그 사람이 잘난 사람입니까, 못난 사람입니까? 「잘난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서 형편없는 빵점이었지만, 인민군이 오기 전날 살짝 보따리를 싸 가지고 어디론가 피난을 갔다는 겁니다.(웃음)

이것을 두고 볼 때, 그 동네에서 제일 잘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소와 말을 키우며 `소야, 말아, 새끼를 한 마리만 낳지 말고 쌍동이를 낳아라' 하면서 너저분하게 닻줄을 내려 가지고 운신도 못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다가 인민군한테 죽은 사람과 `그런 것 다 뭘해. 내 생명만 붙어 있으면 되지' 하면서 섭섭한 마음 없이 살짝 보따리 싸 가지고 피난간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잘난 사람입니까? 「인민군한테 죽은 사람이요. 웃음」 죽은 사람이 잘난 사람이예요? 너 고등학생 같은데 그렇게 대답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 간 사람이 잘난 사람이지요? 「예」 틀림없지요? 도닦는 사람들이 그런 패입니다.(웃음)

기독교 예수장이들, 나도 예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것 좋아서 붙인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붙인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어수룩하게 생겼지만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수판으로 이리저리 전부다 따져보고 손해 안 나겠기에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잘살겠다고 생각 안 합니다. 예수 믿고 천당간다는 겁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간다는 말이 기분 나쁜 말이 되었지요? 왜 기분 나쁜 말이 되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거짓말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기분 나쁜 말이 된 것입니다. 원래 그 말의 뜻은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고 쉬소' 하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 그렇지요? `밥먹고 쉬소' 하는 사람은 그런 말 안 하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쉬라는 것은 벌써 배고픈 사람을 동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배고픈 줄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고 친구될 수 있는 사람이며,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밥을 먹고 쉬시오'라고 했을 때 `예, 쉬지요. 그렇지만 밥이 있어야 먹지요'하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렇지만'이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래요? 이걸로 잡수소' 하면서 돈 천 원이라도 주게 된다면 허리를 굽히며 `예, 고맙습니다'하는 거예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세상 사는 데에 재미를 붙이지 말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다 불심판을 당하여 망할 것이다. 심판하면 다 죽지만 예수 잘 믿는 사람들만 살아 남는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 봤지요? 「예」 이렇게 기분 나쁜 말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이냐? 여러분은 그러한 순간에 보따리 싸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리에 갈 자신이 있어요? 문제는 이것입니다. 말세가 오면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전부다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할 테지만, 인민군이 삼팔선을 넘어올 때에 보따리 싸 가지고 자기가 살 곳으로 찾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에 보따리 싸들고 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잘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앞날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날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은 나라가 망해도 남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 이 세계가 망하더라도 남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남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능성에서 출발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는 출발할 수조차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을 중심삼고 가능성이 있는 출발이 천지간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벌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동네에서도 보면 대학을 나와서 남을 슬쩍쓸쩍 속여 가지고 잘사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소위 잘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국제간의 외교 문제를 두고 볼 때에도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신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항시 그래 왔습니다. 한마디로 공산당식입니다. `내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는 거예요. 그러나 양심 세계의 올바른 울부짖음과 부르짖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세계의 것이고,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는 거예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양심이 원하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만민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가장 귀한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더 높고 크신 분의 것입니다. 이것이 양심이 찾아가는 정도(正道)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인생의 갈 길'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갈 길, 인생의 정도(正道)는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무엇이냐? 개인보다는 가정이 더 크지요? 더 큰 것을 위하여 희생하게 될 때 그것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에 `사람이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을 위하라는 것은 동네의 울타리가 아니라 세계 만민을 대해 형제의 정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동네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보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보다 더 큰 사람이요,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더더욱 큰 사람입니다. 이웃이라는 것은 세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계만민이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까, 아니면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까?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저 덤벙덤벙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갈 길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 대관절 무엇입니까? 자기 개인을 위해서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을 전부다 희생시키는 게 선입니까? 아니면 부모 앞에 효도하고 형제들과 화목하고 모든 식구가 잘살 수 있는 길을 가기 위해서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까? 「가정을 위해서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동네를 중심삼고 친척이면 친척, 씨족이면 씨족권의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다 자기를 위해 희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선입니까?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삼 년 아니 이틀도 못 가서 망한다는 거예요. 동네방네 사람들이 몰려와 가지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통일교회를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삼천만 민족이 반대해 왔는데 어떻게 망하지 않고 남아졌느냐? 이 법도를 적용하여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통일교회가 망한다면 문선생이란 사람이 말한 것은 전부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그마치 세계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세계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려 왔습니다.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이러한 입장에서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가지고 부르짖을 때는 대한민국을 끌고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종족을 위하여 하나의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과 가정을 위하여 종족을 희생시키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선한 것이냐? 이런 문제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가정이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선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

선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선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이나 동네의 책임자나 혹은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악한 사람을 중심자로 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을 중심자로 세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이 중심이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위하지 못하는 중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 가정의 중심의 자리에 서려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희생했다 할 때는 그 사람을 가정에서는 중심으로 세우는 겁니다. 중심에 세워져요, 안 세워져요? 중심에 안 세워지면 그 집은 망하는 겁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희생한다는 것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어디 대답해 보세요. 「좋은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인데, 어떻게 좋으냐? 희생하는 것은 주인이 되는 방법이요, 중심이 되는 방법입니다. 또 영원한 패권과 영원한 권한을 갖고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이 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희생이라는 것은 선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완용을 두고 조국을 팔아먹은 역적이라고 합니다. 팔기는 이완용 혼자서 팔았지만 이씨 전체가 걸려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 이런 것을 보더라도 종족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김씨면 김씨 문중을 위해서 나라를 움직이려 한다면 그건 망하는 겁니다. 여러분, 현정부가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세요. 흥할 정부인지 망할 정부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일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를 움직여 나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한 곳에 원수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걸 보게 될 때 씨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그리고 세계는 보다 더 큰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우주의 절대자로서 존재의 기원이요, 행복의 기원이요, 모든 것의 중심적 내용을 가진 분이 있다면 그분이 제일 큰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선의 법도를 중심삼고 모든 경서가 잘됐는지 못 됐는지 비판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생활이 잘됐는지 못됐는지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이 잘됐는지 못 됐는지 알아 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말입니까? 천하가 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내 생명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천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물건이라든가 땅덩어리인 나라를 가지면 뭘 하느냐는 거예요. 가지더라도 그 나라의 사람과 그 나라의 정신을 하나로 못 묶는다면 허탕이라는 것입니다. 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나라와 물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문제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구를 사랑하라는 말입니까? 형님도 사랑하지 말고 부모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뭐 하라고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 다 집어치우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교훈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그 이상 뭐 무엇이 있어요? 내 마음 끝이 어디겠어요.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뜻을 다하라는 것도 정성을 다하라는 것도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성의 한계점이 어디겠어요?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이라는 겁니다. 목을 내놓고, 죽을 각오를 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제일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을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 도둑 같은 분입니다. 그렇잖아요? 다 집어던지고 자기만 사랑하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가까울수록 모르는 법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냐? 우리 인간의 조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통일교 문선생도 기독교인이니까 무턱대고 하나님이 있다고 하지. 하나님 봤어? 하나님 보지도 못했는데 있긴 뭐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고 싶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 봤어요? 마음이 어디 있어요? 머리에 있어요, 심장에 있어요? 마음은 없는 것 같지만 있다는 거예요.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있다면 한 몸과 같은 인연을 가진 세계이기 때문에 없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실감나게 가르쳐 줄까요? 「예」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간단한 거예요. 여러분이 거울을 보게 되면 자신의 얼굴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입니다」 자기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예」 내가 내 얼굴을 아는데 그리려고 하면 잘 못 그립니다. 화가도 자기 얼굴은 잘 못 그린다는 거예요. 사진을 보고는 자기 얼굴을 그릴 수 있더라도 매일같이 거울에서 자기 얼굴을 보지만 보고 돌아서서 그리려면 못 그린다는 겁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릴 자신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은 자기 얼굴 알기를 아들 얼굴만큼 알아요? 더 잘 안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웃음) 매일 거울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잘 알텐데 잘 모른다는 거예요. 기분 나쁠 때보면 제일 못생긴 얼굴 같지만, 기분 좋을 때 웃는 것을 보면 `이렇게 저렇게 생겼으니까 복이 붙었구나'하면서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얼굴을 똑똑히 안다면 큰일납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못생긴 사람은 어떻게 살겠어요? 돌아다닐 때마다 그 못생긴 얼굴이 앞에 보이게 된다면 살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모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찾아 다니니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수평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화상태라는 것이 있지요? 포화상태라는 것은 경계선에서 내려가면 내려갔지 그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는 최고의 절정상태인 것입니다. 절정상태에서 내려가면 포화상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화도 아니요, 절정도 아니요, 내려가는 것도 아닌 그런 경지, 이렇다면 이렇고 저렇다면 저런 두루뭉수리한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혼자 가만히 있을 때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마음이 있는지 몸이 있는지 두루뭉수리입니다. 그것은 제일 가깝기 때문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왜냐? 같은 감정권내에서 하나되면 될수록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감정이나 감각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시각이란 자체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안 보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미인으로 맵시 있게 생겼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얼굴이 매일 똑같다면 기분 나쁜 것입니다. 남자로서 일생 동안 매일 똑같은 그 얼굴만 대하고 살겠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얼굴이란 것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웃을 때는 웃는 표정으로 장단 맞추고, 성날때는 얄궂은 표정으로 장단 맞추고, 감정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넓적해졌다 길어졌다 하는 표정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은 모른 것이 원칙입니다. 아내의 얼굴이 동네 어느 총각의 얼굴보다 더 확실하게 보인다고 말하는 남편은 아내와 재미있는 생활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권에서는 서로 하나되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취했다고 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백을 백으로 보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백을 열로, 또는 백을 천으로 보는 자리입니까? 취했다고 하는 자리는 백을 열로 볼 수도 있고 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취하게 되면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천하의 미남이요, 천하의 미인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기둥에 못을 박아 얽어매어 놓은 것처럼 얼굴에 변화가 없다면 기분 나빠서 못 사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시집가서 처음엔 신랑 못생겼다고 타박을 하지만, 살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이런 데가 있구나' 하는 인정을 하게 되면 못생길수록 더 맛이 난다는 거예요. 팥밥과 쌀밥이 있을 때 보기에는 쌀밥이 더 먹음직스럽지만 팥밥이 오히려 더 구수하고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조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오히려 다행

자, 하나님을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가르쳐 줘야겠군요. 가까울수록 모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가깝습니까, 멉니까? 하나님은 이 우주에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가깝습니까, 멉니까? 「가깝습니다」 여러분들은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까, 모릅니까? 「압니다」 알기는 뭘 알아요? 숨이 막혀야 알 수 있지 그냥 알 수있어요? 또 맥박이 1분에 칠십 번 정도 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모르고 있어요? 걸어갈 때 맥박이 뛰는 것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걸어갑니까? 그리고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감아라, 떠라, 감아라, 떠라 합니까?(웃음)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는 신경이 쇠약해져서 사흘도 못 가서 나자빠지는 것입니다. 사흘도 못 산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알기를 잘 했어요, 모르기를 잘했어요? 「모르기를 잘했습니다」 모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도 구멍을 낼 수있는 능력의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살 수 있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다는 거예요.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이 쇄약해져서 한 시간도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웃음)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모두다 내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남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 보고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 보니까 틀림없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태양빛을 받고 살지만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게 고맙다고 해서 `태양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합니까? 우리는 큰 것은 모르고 삽니다. 큰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공기를 얼마에 살 것 같아요? 하나님이 짓궂은 분이시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 없을 것입니다. 아마 5분 이내에 통일이 될 거예요.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가 가지고 `너희들 통일할래, 안 할래?' 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를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이 고맙다는 거예요.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기에 대해서 고맙다고 생각합니까? 도둑놈들같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먹어 치운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몸은 4분의 3이 물입니다. 사람의 몸은 물주머니라는 거예요. 그런 우리들이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요? 오뉴월 복더위에 순회다니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어느 산등성이를 올라가면 그 얼마나 갈증이 납니까? 산등성에는 대개 과수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냉수 한 그릇 얻어 먹는 맛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물을 먹고 나서도 물을 떠다 준 이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하지만 물한테는 고마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물님 고맙습니다'라고 합니까? 안 합니다.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태양빛이 얼마나 귀합니까? 만일 태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대번에 얼어 죽어 버릴 것입니다. 햇빛이 생명을 지탱하는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요소인데 불구하고 고맙게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제일 귀한 것을 공짜로 받고 있습니다. 물과 공기와 태양빛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밥은 일주일 동안 안 먹어도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보통 3주일 금식도 하고 40일 금식도 합니다. 그래도 안 죽습니다. 그러나 공기 없이 40일간 살 수 있어요? 물 없이 40일간 살 수 있어요? 밥 없이는 정신력으로 살 수도 있지만 물과 공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태양 없이 40일간 살 수 있어요? 모든 것이 대번에 얼어버리기 때문에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크나큰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체의 신비를 통해서 본 하나님의 실존성

내가 하나님을 보여 준다고 했지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가르쳐 준다고 했지요? 「예」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들고 눈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 우리 종지조상(宗之祖上)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눈이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왔겠어요, 모르고 나왔겠어요? 「모르고 나왔습니다」 모르고 나왔으면 눈이 뭐하러 이렇게 생겨났겠습니까? 이렇게 생긴 것은 눈은 몰랐지만 어떻든지 그렇게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대답해 보세요. 태어날 때 태양이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다는 거예요.

보기 위해서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볼 수있기 위해서는 태양이 있는 것을 벌써 알고 봐야만 될 수 있게끔 인간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태양이 있는지 나는 몰랐지만 어떻게든지간에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 한번 손들어 보세요. 당초부터 우리의 종지조상이 눈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 나가면 태양빛을 보아야만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거예요. 자신은 몰랐지만 누군가가 알게끔 조작을 했고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것은 어떤 가설 밑에서 실험을 거친 다음 그 결과에 따라 논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누가 원자라는 것을 봤어요? 누가 봤냐는 거예요? 그렇다 하는 것을 실험해 가지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결과로 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가설 밑에서 된 것입니까? 본래 눈이 볼 수 있게 태어난 것은 가설 밑에서가 아니라 태양이 있다는 것을 본래부터 알았다는 겁니다. 여기 앞에 앉은 아저씨, 눈이 이렇게 생겨난 것은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으니까 눈이 생겼죠」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것은 적응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내가 깜깜한 밤에 막 다녀도 가로막는 나무가 다 없어지고 구덩이가 다 메워진다는 말입니다. 그래,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적응이 뭐예요?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예요? 적응이라는 것은 원리원칙에 따라 거기에 부딪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요인의 바탕을 지녀 가지고 행동을 해야만 적응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귀를 한번 보세요. 귓바퀴가 이렇게 생겼는데, 그렇지 않고 반대로 생겼다면 어떻겠어요? 이 귓바퀴가 없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앞에서 오는 소리가 그냥 휙 지나가 버린다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말하는 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또 귀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나는 말 소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상대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뒤통수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를 만나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니까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귓바퀴가 이렇게 생긴 것은 앞에서 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귀가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이 귓바퀴를 뭐하러 이렇게 만들어 놨겠습니까? 그것은 공기가 가다 거기에 걸려 가지고 화음이 되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귀를 한번 잘 보세요. 큰 바퀴가 있고 작은 바퀴가 있어 가지고 소리를 잘 거릅니다. 큰 소리가 들려오면 이 큰 바퀴에서 그 소리를 슬쩍 죽여 놓는다는 거예요. 큰 소리가 그냥 그대로 귀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니 큰 바퀴에서 소리를 한번 죽였다가 작은 바퀴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자,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정면으로 전파된다는 사실을 귀가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귀는 몰랐지만 본래부터 알 수 있는 내용의 동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귀가 그런 것을 전부 알고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본인이 누구예요? 조물주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눈썹을 한번 보세요. 얼굴에 시커먼 눈썹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적마다 `왜이렇게 서커먼 게 있지' 하면서 기분나빠할지 모릅니다. 이게 없으면 얼굴이 얼마나 희멀끔하고 좋겠어요. 그런데 왜 이걸 여기에다 붙여 놨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털이 나 있으면 눈썹이 필요하겠어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안 필요합니다」 짐승들은 엎드려 기어다니니까 눈썹이 필요없습니다. 그래도 그 형태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서서 다니니까 눈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나 있는 자리는 대개 살짝 높습니다. 높지 않은 사람은 팔자가 좋지 않습니다.(웃음) 출세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관상장이는 아니지만 그렇다는 겁니다. 남자는 눈썹 부위가 조금 높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높으면 팔자가 셉니다. 여자들은 약간 낮은 것이 좋다는 거예요.

눈썹 부위가 슬쩍 높아져 가지고 산맥을 잘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명당 중에서도 왕 명당자리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겠어요? 사람이 서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꾸로 다닌다면 눈썹이 필요하겠어요? 거꾸로 다닌다면 눈 밑에 있어야 될 게 아닙니까? 정말 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썹이 한쪽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이거 왜 이럴까요? 물이 흐를 때 한 곳으로 흘려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눈썹이 한쪽 방향을 향해서 나 있고 살짝 옆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흘러내릴 때 영락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세요.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땅이나 빗물이 눈으로 다 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눈이 쓰려서 어떻게 살겠어요? 못 산다는 겁니다. 눈을 가만 보면 그것도 미덥지가 못해서 눈꺼풀로 둘러 놓았습니다. 눈꺼풀로 둘러 놨어요, 안 놨어요? 눈꺼풀로 둘러 가지고 눈을 보호하게끔 해 놨습니다. 눈물은 음푹한 곳을 통하여 옆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몇천 년 몇만 년 연구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 코가 만약 뒤집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웃음) 소낙비라도 오게 되면 큰일납니다. (웃음)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생각해 보세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냉정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코가 마도로스 파이프처럼 붙어 있다면 어떠했겠느냐는 거예요. 정말 코가 제대로 잘 붙어 있다는 겁니다. 또 코는 얼굴 중앙에 붙어 있습니다. 보기 싫다면 정말 보기 싫은 것입니다. 코가 이렇게 붙어 가지고 세수할 때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우하심에 감사하며 모든 것에 대해서 인사하라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인사하고, 일하고 나서도 인사하고, 그러니까 세수할 때도 고개를 숙여서 한다는 것입니다.

콧대는 만물 가운데서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에게는 천도가 있는 것입니다. 상하관계 질서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코는 왜 밑으로 내려오면서 넓어졌느냐?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입이 큰일 난다는 거예요.

입으로 전부 흘러 들어가게 되면 입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 못 해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못 살았다는 거예요. 재미있게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코가 밑으로 넓어진 것은 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런데 코가 이렇게 넓어진 것만 가지고 의심쩍어서 입가에 여덟 팔자 모양으로 금을 그어 놨습니다. 그 선을 따라서 흘러가도록 해놨다는 거예요. 이렇게 참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여덟 팔자 모양으로 금이 그어진 부분이 넓을수록 먹을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입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지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밥 먹을 걱정 안 해도 되겠는가, 아니면 밥 먹을 걱정을 하겠는가 하는 것을 얼굴만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관상학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의 이치를 캐보면 다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는 왜 수염이 났을까요? 여자는 수염이 안 났는데 남자는 왜 수염이 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수염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는 일을 하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립니다. 그래서 그 땀이 번지지 않도록 방어체로서 수염이 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수염 난 남편을 푸대접하는 아내는 잘 못사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 없든가, 딸이 하나 없든가 하는 거예요. 남편이 수염을 기르거든 잘 모셔야 합니다.잘 대접해야 됩니다. 우리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술을 보게 되면 그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술하고 이빨하고 잘 어울려요, 안 어울려요? 「어울립니다」 그런데 입술하고 이빨하고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불과 몇 미리미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이 위험하다면 이 이상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아차 잘못하게되면 큰일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불안을 느낍니까? 「안 느낍니다」 먹을 때는 그저 먹는 것에 바쁘지 불안을 안 느낀다는 것입니다.

혀도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속에서 끌어 당기고 밀고 하면서 작두같은 이빨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도 충돌없이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춥니까? 조화통이라는 거예요. 지금 내가 말을 참 빨리 합니다. 이렇게 빨리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처음 만난 여러분들과 정들 수 있게끔 말하게 하는지 정말 기기묘묘한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혀가 손가락과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나는 거예요.

입술도 보면, 고무 중의 최고의 고무입니다. 벌릴 때는 한껏 벌릴 수 있고, 오므릴 때는 아주 작게 오므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자유자재입니다. 가죽보다 낫고 생고무보다 낫다는 거예요. 말을 할 때나 먹을 때나 한 울안에서 입술과 이빨과 혀의 박자가 어쩌면 그렇게도 잘맞는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신비하다는 거예요.

또 콧구멍 속에도 털을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코털이 전부 가운데로 다 모여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먼지 같은 것이 콧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코가 생겨나고 귀가 생겨나고 눈이 생겨나고 입이 생겨나고 손이 생겨난 것이 그렇게 해야 할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그 자체는 몰랐었는지 모르지만 내용적으로는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렇게 해놨습니까? 주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야 통일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대답할 수 있지만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까? 안 믿으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웃는 것하고 우는 것하고 몇 촌간입니까?(웃음)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웃는 것과 우는 것을 보면 가죽살이 쭈그러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이렇게 우는 모습과 웃는 모습은 눈이 조금 다를 뿐인데 천지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천지 차이라는 것이예요.

여러분이 손가락 하나에 대해서 책을 몇만 권을 써도 이 손가락 하나를 다 모르는 것입니다. 소위 박사라는 사람들이 안다는 것은 겨우 손톱 밑의 때만큼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앉아 가지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내가 이런 이야기 한다고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공산당 패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그들을 모아 `이 녀석들아! 너희들 눈은 어떻게 생겼어? 또 눈이 왜 깜박거려? 안 깜박거리면 너희들의 눈은 쓰레기통이 되고 말거다. 이것은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또 속눈썹은 왜 눈꺼풀에 꼭 달라 붙어 있어? 속눈썹으로 창살을 만들어 방어를 얼마나 잘 하게 돼 있어. 이런 것들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단 말이야?' 하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학생시절에는 공산당 패들이 선생님을 싫어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세계를 걸고 싸울 훈련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을 잘 살펴 보세요. 눈을 보면 눈꺼풀이 하루에 수천 번씩 깜박거립니다. 이것이 하루만 깜박이는 걸 그만둔다면 눈이 어떻게 되겠어요? 눈꺼풀이 깜박거림으로 말미암아 눈을 말끔히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으로 기기묘묘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물샐틈없는 대비를 해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이렇게 태어난 결과의 기반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동기의 주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기의 주체는 무한한 지식의 주인공이요, 무한한 능력의 주인공으로 미래와 우리 인생의 전체를 완전히 알고 설계한 주인임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의 이름이 하나님이든 바위든 거북이든 두꺼비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분이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라

이제 하나님이 있다고 느껴져요? 아직도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르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없어요? 「예」 오늘 여러분이 여기서 해야 할 것은 자기를 보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가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의 목이 만일 나무처럼 되어 있다면 어떻겠어요?(웃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정말 신기하다는 거예요.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는지 알고 태어났습니까, 모르고 태어났습니까? 「자체는 몰랐지만 조물주는 알았습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근본적으로 안 분에 의해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태어날 때도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습니까, 모르고 태어났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이만큼 이야기했으면 여러분들하고 여기 서 있는 사람하고 처음 만났지만 상당히 가까와졌지요, 그렇지요? 「예」 그래서 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자세히 보십시오. 눈을 보면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원리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원리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원칙이 3단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손가락도 세 마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완전한 것은 삼합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손가락도 완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처녀 총각들에게 하나 물어 보겠어요. 여러분은 시집가고 장가가서 남매를 낳겠어요, 3남매를 낳겠어요? 어느 것을 원해요? 「3남매요」 (웃음)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번째 안 되면 세번째에는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말 잘 씁니다. 삼합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삼합이 맞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어른들께는 무엇을 드릴 때 받들어 드리지요?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할 때에도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지요. 왜 이렇게 하는지 알아요? 하나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셋이 되면 다 하나를 이루게 된다는 거예요. 서양식은 모두 가짜입니다. 내가 책을 하나 써 가지고 서양식을 고쳐 놓을 겁니다. 그거 좋겠죠?「예」

우리 몸의 구조를 보면 코, 귀, 입 이렇게 세 구멍이 한 구멍에 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臟器)도 폐장, 위장, 간장의 세 기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코는 인간을 상징하고,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입은 뭘 먹으니까 만물을 상징하는 겁니다. 옛말에도 코가 잘생기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코는 인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코가 잘 생기면 복이 있다는 겁니다. 둘이서 하나되는 인간인 것처럼 코도 두 개의 구멍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와 같이 전부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얼굴에는 구멍이 몇 개입니까? 일곱 개입니다. 이것은 7수를 상징합니다. 단계로 보면 눈, 코, 입 이렇게 3단계요, 귀까지 합치면 사방으로 통합니다. 그래서 이건 사방을 말합니다. 그렇지요? 이처럼 천지의 이치가 인간 하나를 중심삼고 전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한 겹 두 겹 세 겹을 벗겨야 보입니다.

이것은 밤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시가 있는 껍질, 밤껍질, 떫은 껍질을 벗겨야 밤 알맹이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인간의 성품을 뜻합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가 생길 때 눈알이 생깁니다. 그렇지요? 왜 그런 줄 알아요?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넘버원'할 때에 엄지 손가락을 이렇게 세우지요? 그렇지 않고 집게 손가락을 세우는 사람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엄지 손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뜻합니다. 엄지 손가락을 보면 두 마디입니다. 그것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거예요. 아기가 태어날 때 주먹을 쥐고 있을 것을 보면 엄지 손가락을 나머지 네 손가락이 밖에서 싸고 있지요? 이 네 개의 손가락은 천지를 뜻합니다. 그래서 3(세마디)곱하기 4(손가락 수) 해서 12마디입니다. 이것은 일년이 춘하추동 4계절과 열두 달로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상징인 엄지 손가락을 천지를 상징하는 네 손가락이 싸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원리에 딱 들어 맞는다는 거예요.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사람이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주조화에 박자를 맞추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맞추느냐 하면 사람이 맞추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맞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주가 맞추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좀더 할까요?「예」 지루하지 않아요? 「예」 여러분이 지루하다면 그만 하겠어요. 여러 사람이 싫다는데 하는 것은 악이예요. 더 할까요? 「예」

선이 가야 할 본연의 길이라는 것은 소수를 희생시켜서 대수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법도요, 인간이 순응해야 할 법도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의 마음은 욕심이 많습니다. 사람은 욕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욕심이 어디까지 갈 것이냐, 사람의 마음이 갈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나서 그보다 더 큰 가치의 것이 있다면 그것도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저기 앉아 계시는 할머니도 비록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그런 것이 있다면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못 하는 것이지, 할 수만 있다면 내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이 천지간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우주의 대주재이신 절대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이라는 말은 한국말로 하나밖에 없는 `님'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한분밖에 없는 주인, 그분이 최고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생겼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존속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도 그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그분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날뛰고 뒤넘이 치느냐? 최후에는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세계하고 하나님하고 어느 것이 귀합니까? 사람은 최고의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계명이 뭐예요? 법률입니다. 경계해서 절대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이 계명이라는 거예요. 규범이 아니라 계명입니다. 경계하는 절대적인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 외에는 그 이상의 뭐가 없다는 겁니다.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것은 그 이상은 없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그러면 양심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내 집안에 모시고 산다 하더라도 하나님 가슴속 깊이 숨겨져 있는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을 내것으로 만들기 전에는 하나님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찾아가서 안식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게 될 때 마음은 `아! 내 뜻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미남자가 세계적인 미녀를 사랑의 상대로 맞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미녀를 맞았을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앞에 대통령의 아들과 같은 자리에 들어가면 장관보다도 더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결국 마음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무엇이 되느냐?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절대자 앞에 상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절대적인 상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 상대로 설 수 있는,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 생활할 수 있는 상대적인 절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선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 묶기 위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과 인간은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통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지요?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으로 전부다 반대입니다. 여자들은 일방적인데 비하여 남자들은 삼방 사방적입니다. 또 여자들은 집안에만 있지만 남자들은 이리저리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이와 같이 성격이 전부다 반대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남성과 상대적인 여성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거예요.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예요. 사랑.

자녀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인간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면 어떤 자리에서 맺겠는가? 하나님도 생각하실 텐데 여러분도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종의 자리에서 맺고 싶은 사람 있어요? 그러길 원해요? 「원치 않습니다」 그럼 양자의 자리에서 맺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도 없구만. 어떤 자리에서 관계맺고 싶어요? 아들딸의 자리에서 맺고 싶은 것입니다. 틀림없다는 거예요.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은 곧 인간을 사랑하는 주인공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했다는 그 사랑은 어떤 자리에서의 사랑이냐? 그것은 종의 자리에서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시시한 사랑은 싫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종의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자리에서 모시고 싶습니까? 양자의 자리에서도 싫다는 것입니다. 양부모로 모시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나는 그분의 참다운 아들딸이 된 그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은 세상 인간들 앞에 어느 자리에 서겠다는 말이냐? 아버지의 자리에 서겠다는 말입니다. 즉, 부자의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하되 첫사랑을 하고 싶은 겁니다. 진짜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첫사랑의 출발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아들과 딸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딸들이예요? 또 남자들은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아들이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첫사랑을 못받았기 때문에 받으려고 허덕이는 아들딸들인 것입니다. 아들딸이 아니라 종의 자식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심은 태어날 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태어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종교 가운데 최고의 종교가 어떤 종교냐? 종교 가운데서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종교가 좋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가 좋습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가 좋습니다」 이 세상 천지에 종교가 많은데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종교가 아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도주들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들 중에서도 독생자다'라고 부르짖고 나온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아들도 여럿이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는 나밖에 없다. 독생녀도 필요없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한 독생자다'라고 주장하는 그런 도주가 있다면 그 사람은 도주 중에서도 왕 도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 문선생이 그런 종교를 찾아보니 기독교의 예수님이더라는 거예요. 예수님만이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기독교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말미암은 종교로서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이 세계를 지배할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 문화권이 명실공히 민주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중심 종교가 된 이유

하나님은 아들딸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가정을 만드시려는 겁니다. 또 그 가정을 만들어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의 친척을 만들고, 족속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또 우리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이 일치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전부가 하나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한 세상에서 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나 자신을 그 고귀한 최고봉까지 순식간에 끌고 올라가고 싶지만 오늘날 우리의 역사적인 환경이라든가, 타락의 성품에 인연되어 태어난 자신이기 때문에 이것을 박차고 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독재자의 입장에서 나를 때려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마음이 나를 올바른 길로 지도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인생 6, 70년에 하나님 앞에 가기에는 내가 너무도 먼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려몬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설파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또, `나는 맏형이고 너희는 동생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권위를 가지고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부모와 형제와 부부와 자녀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가르쳐 준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사랑을 안팎으로 갖춘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중심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를 믿는 분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알아 둘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위인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에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이순신 장군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위인은 될 수 있지만 성인은 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성인이예요, 위인이예요? 「성인입니다」 그러면 세계 4대 성인을 일컬을 때 소크라테스가 들어갑니까? 안들어갑니까? 「들어갑니다」 세계 4대 성인은 누구 누구에요?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마호메트는? 소크라테스예요, 마호메트예요? 마호메트를 성인으로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4대 성인은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 가운데 최고의 철인이지만 성인은 될 수 없습니다. 왜그러냐?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사문제를 좌우하지 못합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종교는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룹니다. 종교는 생사문제를 해결한다는 거예요. 종교를 믿음으로써 살겠다는 거예요, 죽겠다는 거예요? 종교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종교에는 생사의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와 지식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아요? 종교적인 내용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호메트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에도 위인이 많지요? 유관순 같은 사람도 위인이라고 합니다. 유관순 처녀가 열 여섯 살에 죽었지만 위인이라고 해도 누가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위인이라는 명사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애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위인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에서는 위인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위인입니까?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원수입니다. 따라서 일국에 있어서는 애국자 혹은 위인의 명패를 주지만 타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모든 국가를 초월하여 총망라한 입장에서 숭배하는 세계적인 인물이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일국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도(天道)와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나가야

그러면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륜도덕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중심삼고는 나라를 넘지 못합니다. 나라를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사상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명단에 들어간 사람은 전부다 종교의 교주라는 것입니다.

공자 같은 분은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라고 했는데 이것은 막연합니다. 천(天)이 뭐냐 할 때 이것은 막연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불교는 너무나 영적입니다. 너무 허황해서 근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 같으면서도 법적이고, 법이란 진리를 말하는 것인데 진리 같은데도 부정하니 아주 막연합니다. 또, 마호메트의 회회교는 종합적인 산물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한 계승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이 땅위에 왔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형제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 종교가 되는 겁니다. 이렇듯 종교의 교주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무슨 뜻이냐? 인간은 인정만 가지고는 세계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인륜만 가지고는 세계의 참된 뜻을 못 세운다는 거예요. 왜냐 하면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뜻에 따라서 가르쳐야 되느냐? 그것은 자기의 뜻을 중심삼고는 절대 못 하는 것입니다. 공의의 뜻, 세계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라는 도리를 알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를 따라서 천도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천도를 따라서 인도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즉, 인정을 따라서 천정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따라서 인정이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정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인정을 없애야 합니다. 천도(天道)를 세우기 위해서는 인도(人道)를 흡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핍박받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라를 굳건히 세운 인도가 있고, 그 인정의 도리에 따라 사회적 기반과 모든 체제가 갖추어져 있는 상황인데도 천도를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천정의 도리를 알고 그 도리를 중심삼고 인정에 들어가면 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목이 잘려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것입니다. 천정을 어기고 인정을 따를 수 없다 해서 종교인들은 죽음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의 운세는 국가의 운세를 좌우하되 국가의 운세는 세계의 운세를 좌우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세계의 운세를 타기 위해서 믿고 나가는데 그것이 종교입니다. 개인이나 국가의 운세는 몇백 년이면 다시 올 수있지만 종교의 운세는 몇천 년만에 한 번 오는 운세입니다. 그 한 때의 운세를 맞기 위하여 오랜 역사시대에 과중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정성을 들여 나온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이 흘러가도 종교는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예」

그러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인도와 인정을 따라갈 것이냐, 천도와 천정을 따라갈 것이냐? 둘 모두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정과 천정을 한꺼번에 쥘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하나는 버려야 하니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인도와 인정, 천정과 천도를 우리가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예요.

선과 악은 반드시 가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을 위하여 나가는 것이 천도와 천정이요, 인간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인도와 인정입니다. 이 천정과 인정이 하나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어디냐 하면, 거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하나된 자리, 즉 인정의 종착점, 천정의 발원점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면 인정의 종착점과 천정의 발원점은 어디냐?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아들로서 등극하는 그날이 천정과 인정이 개문하는 때입니다. 이때가 천지개벽의 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라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이 망하고 선한 세상이 되어 선한 사람이 부상하는 때라는 거예요. 종교는 지금까지 이 한때를 바라면서 몇천 년 만에 오는 이 운세를 타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나라들은 수천 년을 지내 오면서 망하기도 했지만 종교는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싸워 나가면 나갈수록 발전해 나왔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망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성인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

성인이란 국가적이 아니라 세계적입니다. 또한 세계적인데 인간만을 중심삼은 세계적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앞으로 아들딸을 낳을 때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고 싶어요, 그냥 그대로 역사과정에 흘러가는 인종지말(人種之末) 같은 아들딸을 낳고 싶어요? 「성인이 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고 싶습니다」 성인의 아들딸을 낳기 위해서는 천의에 의한 세계적인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천의에 의한 세계적인 사상, 이게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위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위인 앞에는 원수가 있지만 성인 앞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위인은 자기 민족만 사랑한 사람이지만 성인은 인류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위인이 하나님 앞에 나서게 될 때 `너는 네 민족은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가 찾는 세계인류를 사랑하지 못했지 않느냐'고 하면 나갈 수 없지만, 성인의 도리를 따라간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거라구요? 위인 만들자는 거예요, 성인 만들자는 거예요? 「성인이요」 성인은 이룰 `성(成)'자가 아니라 이룩할 `성(聖)'자를 씁니다. (테이프 끊김)

통일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상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더 낳아요, 못해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진짜 알게 되면 모가지가 잘려도 괜찮다고 할 겁니다. 자르는 것이 아니라 몽땅 빼 버린다고 해도 괜찮다고 할 겁니다. 사람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렇지요?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참 지독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고 살을 물어뜯는 건 아니지만 지독하긴 지독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집안 식구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에 어떻게 합니까? 솔직이 대답해 보세요.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물론 집안 식구의 생계도 걱정해야겠지만 이왕지사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하나밖에 없는 이 생명은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일생에 청춘시기는 한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식구를 위해서 살겠느냐, 자기 나라를 위해서 살겠느냐, 세계를 위해서 살겠느냐 할 때 통일교회 패들은 세계를 위해서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들은 `야 이놈의 자식아. 내가 너를 대학 공부시키기 위하여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했는데 인정 사정도 없이 도망을 가? 통일교회가 뭐냐'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야단입니다. 이렇게 하는 부모가 잘하는 부모예요, 못하는 부모예요? 어떤가 솔직이 애기해 보세요. 그런 원칙으로 볼 때 어때요? 그런 부모가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여기 처음 왔다고 하는 아저씨 잘한 거예요? 「원칙에 위반됩니다」 그 부모는 잘못한 거예요. 틀림없이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그 아들딸이 세계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데 자기 가정을 위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예요. 자식으로서 아버지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것이 도리인 줄은 알지만, 나라가 망하게 되면 가정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망할 때는 언제 나라가 망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큰 것이 살게 되면, 즉 세계가 살게 되면 나라가 사는 것이요, 민족이 사는 것이요, 종족이 사는 것이요, 가정이 사는 것이요, 부모가 사는 것이요, 형제가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것이 완전히 살게 되면 작은 것들도 자연히 완전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세계를 위하는 사상입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통일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세상으로부터 욕먹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선생님이 하는 것을 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을 보면 하는 것은 거창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 10개국의 사람들을 모아다가 합동결혼식을 했습니다. 원래는 777쌍을 한다고 약속을 했지만 실지로는 791쌍을 해주었습니다. 약속은 그렇게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약혼하고 축복행사를 치를 때 군대 간다거나 아파 가지고 참석 못하는 사람이 생겨서 수가 적게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791쌍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일본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수백 명씩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겠습니까? 일본 사람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가치를 가졌지만 세계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결혼이라는 사상만 박히면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치를 인식만 하게 되면 장소가 어디가 되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국으로 오라고 하면 일본 사람이고 미국 사람이고 다 `예'하고 오는 겁니다. 이의가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앞으로는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할 것 없이 세계 모든 사람들을 한국으로 오게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불쌍한 나라 한국에 관광호텔을 지어서 많은 달러가 들어오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대한민국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해방 직후부터 맞아 들였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내가 다 먹여 살리고 잘살게 했을 것입니다. 현재 경제개발 5개년계획 2차년도 다 하면서 야단하고 있지만 선생님만 맞아들였더라면 벌써 수십년 전에 그렇게 되었을 거예요. 선생님을 맞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지지리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뜻과 나라를 위해 자신과 가정을 희생시키라

선생님은 때가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791쌍 합동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전부다 동원시킨 것입니다.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들, 동네방네에서는 이 문선생을 욕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욕을 할 테면 해라. 나는 양심적으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어지러운 이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고 앞으로 막혀 있는 이 나라의 길을 세계로 나갈 수 있게 열기 위해서는 천리공법에 의해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 때문에 못 하겠다는 사람은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걸 분명하게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종교입니다. 이번에 축복받은 가정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세상에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또 자기 처자식을 거느리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예요. 여기 서 있는 선생님도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부모 앞에 불효자입니다.

선생님은 왜정때부터 감옥살이를 했어요. 그때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찾아와 가지고 눈물을 쏟는 어머니에게 `나는 졸장부가 아닙니다. 아녀자의 눈물은 원치 않아요. 자식을 사랑하거든 자식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자식이 나라를 위하다 죽을 고비에 있더라도 어머니로서 당당히 나타나서 힘껏 싸우라고 권고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야 어머니로서 당당하지 않겠습니까? 아들은 이렇게 하고자 하는데 하늘땅 앞에 위신이 있지요' 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나를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내 앞에 와서는 언제나 눈치만 봅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용서가 없거든요. 조여대는 거예요. 이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불효 중의 불효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는 다르다는 거예요. 아들은 천법과 천도를 아는 가치적인 어머니를 보고자 하는데 그 꼴이 뭐냐는 것입니다. 용서를 안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공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머니라 할지라도 모르는 한 아녀자로서, 한 여자로서 충고하는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까? `아이구, 어머니 나 살려줘요.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이런 사람이 효자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는 못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북 공산당 치하에서 감옥생활을 했고 이남에 내려와서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통일교회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자신의 아들딸이 감옥생활하는 것보다 더 애석한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과 눈물어린 상봉의 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별의별 놀음을 다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차원이 어디서부터 벌어졌느냐는 겁니다. 만일 선생님이 내 행복을 위하여, 내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감옥생활을 했다면 그들이 그런 일을 했겠어요? 그랬다면 그들은 벌써 떨어져 나갔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키라'고 말합니다. 선생님 가정은 완전히 희생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버렸고, 처자를 버렸고, 친척을 버렸습니다. 뜻을 위해서는 이용하자는 겁니다. 있는 재산도 다 털어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내 가정을 희생시킴으로서 나라가 주권을 찾아서 부흥하게 될 때는 그 나라는 그런 사람과 그런 가정의 역사를 밟고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만 년 미래의 행복과 더불어 그 가정을 추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의 부흥과 더불어 그 가정도 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업혀가는 가정이 아니라 나라를 업고 갈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인은 누구나 그런 길을 거쳐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을 사랑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용하려고 합니까, 사랑합니까?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매일 떡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을 통일교인들은 다 압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예」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선생님 가정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교단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유

삼천만 민중이 잠들어 있는 이 땅 위에, 주인이 없는 이 황막한 사막과 같은 삼천리 반도 위에 사막의 태풍이 불어오면 모든 옥토가 일시에 모래산으로 변해 버릴 것입니다. 이 나라가 이런 위험천만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고스란히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선입니다」 만일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가 망한다고 내 목을 잘라도 좋습니다. 오직 네 생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하라는 거예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러니 자기 생명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고, 자기 사식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러한 나라를 자르는 천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가정이 단 한 가정이라도 있다면 이 대한민국이 아무리 공산당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공산당이 오는 길을 막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일발의 국내 및 아시아 정세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일선에서 피눈물을 뿌려서라도 앞으로 이 민족에게 닥쳐올 수 있는 비참사를 막아내는 제물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통일교회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무슨 원수예요? 언제는 잘살라고 축복해 주더니 이제는 근근득생(僅僅得生)으로 살고 있는 살림살이를 발로 탁 차 버리고 가라니 이건 마적 중에서도 그런 마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황마적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선생님에게 불평하는 통일교인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거예요. 불평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불평 없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이게 무섭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의 아들딸도 문선생을 위하여 살게끔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문선생을 위하여 살도록 아들딸을 만든다면 칼로 내 옆구리를 찌르라는 거예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하는 아들딸로 만들어야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아들딸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부모가 있다면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런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며 움직이고 있지만 나라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초국가적이요, 초민족적이요, 초인종적인 입장에서 국경을 넘어서 서로가 사랑하고 생명까지도 엇바꿀 수 있는 대가정을 만들자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피가 통하고 생명이 통할 수 있고 사랑으로 엉길 수 있는 하나의 대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통일교회의 사상이요, 세계적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종교라는 명찰도 떼고 하나님도 빼 버리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빼놓고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인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정이 동해야 되는 거예요. 하늘이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러한 세계적 사상을 지녀야 합니다.

인간이 가야 할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 다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총수습하여 결론을 짓겠습니다. `나'를 두고 봅시다. 여러분이 세계적 사상을 가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워요, 안 싸워요? 싸우지요? 「예」 그러면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생각이 둘이 될 수 있어요?

하나겠어요, 둘이겠어요? 절대자의 생각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자의 생각은 법도를 따라서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세워집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인격자일수록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갑니다. 그것은 천년이 가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격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천(山川)은 고금동(古今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조석으로 변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폐품으로도 이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목적하는 바도 하나입니다.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목적을 두고 사람을 지었다면 그 지음받은 사람이 어찌해서 두 목적의 사람이 되었느냐는 거예요. 마음이 목적하는 것과 몸이 목적하는 것이 왜 다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는 타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목적이 하나일 텐데 그런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목적은 몸의 몸적과 마음의 목적, 둘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목적의 길을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절대적인 목적의 자리에 가야 할 텐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그 길을 가려면 먼저 몸과 마음 중에서 어느 것에 치중해야 되는가가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 가운데 어느 것이 선한 것입니까? 마음이 선합니까, 몸이 선합니까? 「마음이 선합니다」 마음이 선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마음을 위주로 해 가지고 몸뚱이를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뭐냐?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갖추어서 하나님을 숭상하고 천도를 숭상하면서 천정을 따르라, 천도를 중심삼고 천정을 따라 마음의 방향을 일치시켜 가지고 거기에 배치되는 일체의 몸의 욕망을 끊어 버리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절대적인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도를 숭상하면서 천정을 따라간 분들이 예수 같은 성인들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므로 종교가 치리하는 것은 마음을 제거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즉 육정(肉情)을 제거시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난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두 주인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복잡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교리입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갖게 되었는데 어떻게 갖게 되었느냐? 혈통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시키느냐? 천의를 중심삼고 천정을 따라 마음이 하나된 기반 위에서 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종교는 몸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몸을 주관할 수 있는 첫번째 방안

그러면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기 위한 첫째 방안은 무엇이냐? 몸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몸을 치라는 거예요. 몸이 하자는 것 일체를 완전히 부정하라는 거예요. 어느 정도 부정해야 되느냐? 완전 부정하라는 겁니다.

죽었다 하는 자리까지 부정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이런 역설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완전히 죽어서 마음화되어 마음이 완전히 살아 있는 형태의 입장에 서지 못하면 하나로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을 완전히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완전히 사는 것이요, 마음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몸은 살아 있지만 완전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처자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천정의 대표자로서 오셨기에 천정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에게 천정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육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는 육(肉)을 중심삼은 관계입니다. 이 육정을 끊지 않으면 천정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천정을 따라가려면 육정을 부정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모보다도, 처자식보다도, 형제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천국에 갈 수 있는 공식적인 표를 어디서 받느냐?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데에서 받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육정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첫째 목적은 강제로라도 때려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몸뚱이가 온유겸손할까요? 몸뚱이는 자꾸 올라가려하고 교만하려고 합니다. 먹여 주면 자꾸 더 먹으려 하고, 쉬게 해주면 자꾸 더 쉬려 하고, 위해 주면 자꾸 더 위해 달라고 합니다. 따라서 몸뚱이는 악의 바탕이요, 악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악과 선의 뿌리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되고, 악한 데는 가지도 말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는 천도와 천정의 도리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정과 인도는 모든 일에서 사탄과 악을 중심삼고 출발시키기 쉽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부정할 수 있는 첫째 방안은 육신을 구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정성들이면 몸뚱이가 기운이 쭉 빠져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희생봉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전부 육신이 싫어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육신과의 모든 관계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모든 종교의 경서를 보십시오. 잘먹고 잘살라는 내용이 있는 경서가 있습니까? 그런 경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는 희생봉사,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서도 남을 위해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뚱이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육체를 때려 잡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대등하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몸뚱이를 약하게 함으로써 마음이 득세해 가지고 약하게 된 몸뚱이를 몇 달 동안 끌고 넘어가게 되면 몸뚱이를 다시 올려 놓아도 올라올 수 없게끔 습관화 되어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하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잘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냥 놔두어도 돌아 갈래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을 위주로 한 절대적인 자리에서 생애를 엮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생활의 목적입니다.

몸을 주관할 수 있는 두번째 방안

그 다음에 몸을 주관할 수 있는 두번째 방안이 무엇이냐? 마음과 몸이 비슷비슷하니까 싸움을 한다는 거예요. 레슬링 세계 챔피언하고 유치원 어린이하고 상대가 됩니까? 그것은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서로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방안은 마음에다 힘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쌓아 올리면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 마음 문이 열리기만 하면 아주 강력한 힘이 나오기 때문에 몸뚱이 같은 건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그걸 모를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비슷비슷한데 마음의 힘이 몸의 3배만 되어도 몸뚱이는 문제가 안 됩니다. 몸을 그냥 그대로 두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힘을 압축시켜 가지고 몸을 일시에 끌고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통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도를 통하게 되면 마음에서 강력한 힘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 할수록 메슥메슥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도를 통한 사람은 마음에 강력한 힘이 옴으로 말미암아 그냥 그대로 놓아 두더라도 몸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방법 이외에는 몸뚱이를 조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몸의 지배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러한 작전을 펴 나오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도 지금 그러한 공식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자연히 인간으로서 가야 할 고차적인 자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스스로 자각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의 권위에 미칠 사람이 없습니다. 홀로 스스로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홀로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 하나님이 지은 피조세계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되니 홀로 높다고 자각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까지 가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존의 바탕

여기에서 한 가지 첨부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영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면 할수록 힘이 소모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힘은 작용하게 되면 소모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작용을 했는데 오히려 힘이 솟아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현상세계, 자연세계의 공식입니다. 그런데 이 공식에 어긋나고 상충되는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힘이라는 것이 뭐예요? 전기 모터나 발전기를 중심삼고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을 보면 들어오는 힘이 나가는 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는 힘은 언제나 작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운동을 하는 가운데 힘의 소모가 벌어지기 때문에 나가는 힘은 들어오는 힘보다 언제나 작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힘의 원칙입니다. 들어가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작기 때문에 그 힘을 같게 해주기 위해서 휘발유를 태우고 하는 것입니다. 작용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보충을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는 영속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나 단 한가지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해 주었다 할 때는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보다 적게 마이너스시켜 가지고 돌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진정한 사랑을 열만큼 받았으면 돌려줄 때는 더 보태서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부모는 천번 만번 희생하면서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되돌려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은 아들딸은 더 보태서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순전한, 완전한 사랑은 주면 줄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면 줄수록 플러스가 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용하면 할수록 들어오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작용하고 나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지 않고서는 영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태 주는 힘의 작용이 없으면 영존할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영존할 수 있는 바탕이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큰 힘이 내재할 수 있으므로, 그런 입장에 선 존재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고 사랑 가운데서 죽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을 이상의 요소로 삼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민족과 인종을 넘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보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사랑하게 되면 끝날에는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알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중심사상이요, 우리가 바라는 목적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이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갈 길'입니다. 거기에 비로소 소망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인생의 갈 길에는 이렇게 고차적인 내용이 앞놓아져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망권내에 있는 저희들의 모습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던 과거를 뉘우쳐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인생이 추구해야 할 본연의 기준을 잃어버린 자체를 스스로 탄식하고 내일의 소망의 실체를 계발하기 위하여 온갖 충성과 정성을 다하여 그 길을 타개해 갈 수 있게끔 역사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인연된 의정부 지구권내의 식구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시옵소서. 이렇게 만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배후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세월 동안 섭리적인 내연을 통해 엮어진 사연을 현실적인 결과를 통하여 열매로 거두게 하시려는 아버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만남의 은사를 내려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들이 마음 마음을 묶으시어서 천정의 인연을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만나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또다시 가야 하라 길이 있사오니 갈 길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이들과 다시 만날 때까지 이들의 생활과 환경을 아버지께서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큰 소망과 즐거움을 가지고 민족의 해방과 세계의 해방을 맞이하여 당신 앞에 영광을 돌릴 때까지 저희들은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고 새로운 맹세와 결의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주관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생의 갈 길Ⅰ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