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아버님, 2천년 전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했던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개개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백성이 될 수 있는 거룩하고도 놀라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어느누구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생활을 하셨고, 아버님만이 아시는 심정을 더듬으시면서 믿을 수 없는 인간은 대하여 믿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배반하는 무리들을 생명을 걸고 아버님 앞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쌍한 예수 그리스도의 한과, 그가 그러한 자리에 놓여짐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아버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탕감의 대가를 무한히도 치러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탕감노정이 저희 일신에서 빚어지지 아니하고, 역사시대 선조들의 살을 저미고 피 흘리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사오며, 그 모든 희생의 대가를 치른 공로로 말미암아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아버지 뜻 앞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만민을 품으시기 위하여 얼마나 피를 흘리셨사옵니까? 또, 이 땅에서 뜻을 따라나오던 수많은 백성들은 얼마나 숱하게 죽음의 길에서 사라져 갔사옵니까?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한스럽게 이끌어져 온 기독교 역사 위에 오늘날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 선 통일의 무리, 삼천리 반도에서 민족의 환경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하여 외로움의 길을 더듬어 오던 불쌍한 통일의 무리들을 중심삼고 이와 같이 모일 수 있게된 것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공적의 터전과 이 모든 실적의 내용은 아버지가 하신 수고요, 아들이 흘린 피요, 수많은 우리 조상들과 형제들이 치른 순교의 대가인 것을 아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그와 같은 결과적 존재인 나 자신은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을 죽이는 그러한 정경을 제삼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형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내 일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길을 막고 그 길을 대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과 같은 운명의 길을 가지 못한 한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노아는 뜻 하나를 중심삼고 그렇게도 처참했던 환경 속에서 외로움의 행보를 10년 세월도 아닌 120년간 걸으며 아버지 앞에 소망의 한날을 돌려드리기 위하여 효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한 날들이 오늘날 다시 나타나게 된다면, 저희들은 틀림없이 역사시대에 하늘을 배반했던 노아의 친척권내에 있는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노아를 환영하지 못했던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음을 저희들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하던 입장은 아버님의 심정과 인간의 심정이 맺어져야 할 엄청나고도 역사적인 정상이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자리에서 아브라함의 생명과 이삭의 생명을 하늘과 땅의 생명을 대신하여 묶으려 하는 찰나에 저희들과 같은 제삼자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것을 환영하면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자신들이 되지 못하였을 것임을 이 시간 느끼게 되옵니다.

모세 시대를 놓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가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가지고 이렇게 해야만 죽음의 고빗길에 선 모세를 살릴 수 있다고 외칠 때 어는 누가 그것을 믿고, 어느 누가 그것을 환영했사옵니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이 불신의 보고를 했지만, 그래도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아버님이 엄연히 살아 계심을 강조하고,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외치며 외로운 자리에 있던 모세의 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의 책임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60만 대군이 광야에서 다 쓰러지는 입장에 놓였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망의 권을 뚫고 올라와 생명의 인연을 수습하고 새로운 이스라엘 창건에 주도적인 역군들이 되었던 것을 아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었는데 협조하는 입장에서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입장에서 번번히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무리였던 것을 아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오늘의 저희 자신들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배반할 수 있는 일단의 무리였사오나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공로의 인연을 터로 하여 아니 따라갈래야 아니 따라갈 수 없고, 아니 믿을래야 아니 믿을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내셨음을 아옵니다. 더우기 저희 개개인 자체는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없는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과정에서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땅을 위하여 탕감의 제물로서 대가를 치른 그 공적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저희를 붙들어 주신 역사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저희들이 통일의 무리로서 남아진 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3년 이상 10년, 20년 노정을 걸어나온 식구들을 중심삼고 볼 때, 스스로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을 위해 충성하는 자신이 되지 못하고 뜻을 의심하고, 하늘을 배반하고, 하늘을 헐뜯고, 하늘을 불신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자신들이 되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듯 면목을 세울수 없는 자신이요, 얼굴을 들고 거룩하신 성상을 대할 수 없는 자신임을 스스로 발견해야만 되겠습니다.

고귀하시고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절대자이신 당신을 저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신들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저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 대가요, 억천만세 외로이 자식을 찾아 나오신 당신의 노고의 대가로 말미암은 것을 알게 될 때, 당신의 은사 앞에 저희들은 천만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하늘 앞에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은 물론이요, 뼛골이 녹아 나더라도 충효의 절개를 남기고 죽겠다고 하늘땅을 대해서 맹세하는 것은 물론이요, 온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맹세하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아들딸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이 시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암흑이 깃든 이 땅위에 광명한 천국의 길을 개방시키기 위하여,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갖고 외로운 자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2천년전 유다지파에서부터 곡절이 엇갈리는 비운의 역사를 통하여 태어나신 것을 아옵니다.

마리아 시대까지 나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수난의 고빗길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 속에 느끼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부모가 있어도 진정한 부모가 아니었고, 형제가 있어도 진정한 형제가 아니었고, 친척이 있어도 진정한 친척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교회가 아니었고, 나라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나라가 아니었고, 세계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으로 외로왔던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참아 나오신 예수님을 이 시간 저희들은 높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불쌍하신 예수님을 붙안고 형제지정을 가지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그 불쌍한 모습을 대신하여 친척의 사명을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위하여 목을 놓고 탄식하고, 이스라엘이 책임 못한 죄를 탄식하고, 문중의 장래가 이즈러진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통곡했던 친척들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여기 모인 저희들은 예수님의 친척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편이 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교회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유대 교단과 수많은 제사장들은 스스로 하늘을 받들고 하늘의 내정적 인연을 생활에 나타내어 하늘의 규범을 세운다고 하면서 나가던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중심이요, 생명의 결정체요, 사랑의 중심이요,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냉정하게 모른체했사옵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적인 책임을 진 유대 교단 중에 예수님의 편이 되었던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통한 아버지의 4천년 수난의 결과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눈물로써 아버지를 대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때 그러한 예수님 앞에 아버님의 뜻을 알고 찾아온 사람은 밤길을 더듬어 찾아온 니고데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또,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갈보리 산상을 향하여 걸어가는 예수님을 도왔던 사람은 강제로 끌려나온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저물어 가는 석양길에서 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처량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이 이렇게도 억울하고 비참하였던 사실을 회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원한에 사무친 마음으로 과거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쌓아 놓으신 이스라엘권이 무너질까봐 혀를 깨물고 죽음길을 가면서까지도 그들의 복을 빌어 주어야 했으니, 그런 예수님의 원통한 심정을 저희들은 기필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떠나는 한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생명을 걸고 울부짖으며 슬픔과 원한의 역사를 가로막고 나선 형제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마저도 예수님의 죽음길을 `내가 대신 가겠다'고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진정 불쌍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도 동정을 받지 못한 예수님은 고독한 고아의 신세요, 인생노정에 있어서 낙오자의 신세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 시간절절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친척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교단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누나, 혹은 동생이 되어야 할 입장에 선 무리가 바로 이 역사시대에 홀로 남아진 통일교단이요, 저희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탄생하신 분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말을 놓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이토록 예수님은 역사적 슬픔 가운데 고독하게 태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시간 저희들은 통곡을 하고, 그런 예수님의 슬펐던 내심의 정경을 통곡하며 위로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예수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버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날까지 싸워 나와 오늘 이 통일교단을 형성하였사옵니다. 이와 같이 슬펐던 아버지의 사연을 드러내어 가르쳐 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인연과 터전이 이 지구성에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곳은 그야말로 아버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한 곳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심정이 여기에서 다시 묶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목을 안고 눈물 흘릴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 갔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고 사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에게만은 아버지의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슬픈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고,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고 사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며 올렸던 기도는 예수님 자신이 올려서는 안 될 기도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도는 예수님의 천척과 형제들이 올려야 했고, 예수님의 신부가 올려야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도 예수님이 질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원수의 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갔던 최후의 운명길도 예수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가 가야 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가야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시대권내에서 예수님을 동정한 사람은 천지간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그러한 슬픔의 권이 이 시대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하기 위하여 모여진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통일의 기치를 들고 통일의 말씀과 통일의 노정이 나타난지 수십 년, 그 동안 아버님께서는 기쁨의 날이 아니라 슬픔의 날을 지내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한을 풀기 위해서 소망의 한때, 6천년 역사의 종말의 한때를 세우시려는 아버지의 뜻은 오늘날 한국 강토에서 슬픔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있음은 오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그를 모시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죽음의 길로 내몰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한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하면서 아들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을 붙들고, 저희 통일교단을 남아 있게 하여 주신 당신의 은사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는 통일교단이라는 이름을 갖추지 못하고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연장시키며 수난의 노정을 벗어나지 못한 채 20여 성상을 지내고 또 지냈나이다. 죽음길 가운데서도 생명줄을 이어 놓고, 몰리는 자리에 서서도 생명줄을 이어 놓고, 고아의 자리에서도 생명줄을 이어 나오면서 이 민족의 심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온갖 죽음길과 희생의 길을 거쳐왔습니다.

아버님, 제사장의 직분과 제물의 직분을 겸하여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인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곳에 모인 통일의 무리들은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찬양해야 할 일이 있을진대 먼저 아버지의 수고를 찬양해야 되겠고, 역사시대에 선지선열들이 피 흘린 대가를 찬양해야 되겠고,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거쳐 나왔지만 아직도 갈 길을 다 못갔다고 몸부림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정성을 다하는 통일의 무리들을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통일교단은 이와 같은 하나의 전통을 세워 이 땅위의 모든 인류에게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을 똑바로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서러우신 아버님이신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억울했던 예수님이신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불쌍했던 이스라엘 민족인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한을 다 풀어 드리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통일교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불쌍한 무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와 더불어 생활하며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삼고 형제지정을 맺지 못하였던 한의 이스라엘권을 오늘 저희들이 우애의 정으로써 복귀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족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고 위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스스로 자각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아버지 앞에 새로운 결의를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 역사적인 기쁜 날을 맞아 과거의 슬펐던 전체의 생애를 승리로서 거둘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 기독교 역사를 승리의 결과로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통일교회의 역사는 슬펐던 역사였지만 오늘 이 한날을 맞이함으로써 기쁨의 역사로 종결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1년도는 당신께서 허락하신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의 해입니다. 7년 대환난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해요, 예수님이 넘지 못했던 7년노정을 넘어서서 8년 수로 접어들어 가는 첫출발의 해입니다. 이제부터 기독교의 슬픈 역사는 해방과 더불어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세계 만민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하늘을 찬양할 수 있는 희망의 1970년대가 되고, 새로운 기쁨의 오늘 3일의 역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왔다 간 기독교의 순교 열사들이 사정이 다른 죽음길을 갔지만, 기독교를 믿고 나오면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느라고 고생하였던 역사시대의 교직자들이 비록 뜻과 일치된 길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이날을 기하여 이들의 행적을 뜻과 일치된 가치로서 인정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지금까지 기독교 교단이 뜻 앞에 어긋난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오늘 이 아들의 기도를 통하여 일치된 자리에 설 수 있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후 12사도를 중심삼고 로마 박해시대를 거치고, 수많은 국경을 넘으며 복음을 전파할 적마다 죽음의 교량을 연이어 나온 피의 대가를 긍휼히 보시어서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님도 환희의 표정을 지으시고 아버지께서 기쁜 날이라고 공인하는 자리에 서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사도들을 규합하여 하늘 잔치를 베푸는 이 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통일교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 자식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수난의 역사를 걷어치워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저희들이 수난의 길에 서서 그 슬픔을 탕감하였사옵고, 죽음길이 있을 때는 하늘의 혈족을 통하여 탕감하는 놀음을 했었으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통일교인들 앞에 있어서는 수난의 길이 탕감의 시대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 탕감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날을 기하여 저희 통일교인들이 슬픔의 조건들을 탕감하는 시대가 넘어가게 하시옵소서.

오늘을 그럴 수 있는 거룩한 날로 아버지 앞에 봉헌하였사옵니다. 이날을 높이 찬양하면서, 하나의 한계점을 바라보고 생애를 바쳐 지금까지 투쟁해 나온 아들딸의 한을 풀 수 있고 전인류가 천국을 개문할 수 있는 한 시점이 육계와 영계가 합동 귀일한 일치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늘 새벽에 통고하였사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도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할 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부터 그들 스스로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모아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경배드려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인연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오늘 기성교회를 대표한 한 아들이 이 통일교단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 것을 아옵니다.

하늘의 일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께서 저희들이 모르는 가운데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은 정말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 상처와 허물을 가진 서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을 상속받고 나선 불쌍한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오니 받아 주시옵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대업을 완수하여, 이 지구성이 당신의 품에 안기게 되는 날까지 생명을 다하고 사랑을 다 바쳐 나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옵니다. 과거는 탕감의 서러움과 더불어 갔지만 이제는 환희와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만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인들이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사옵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사옵고 통일교단도 그러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제 광명한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화기애애한 기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천되는 승리의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의 아들딸 된 무한한 가치를 찬양하면서, 마음 놓고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희들이 정성을 모아 오늘 이날을 기쁜 날로서 아버지 앞에 고이 묶어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통일교단으로 말미암아 뜻 앞에 원통한 자리에 선 사람도 많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잔칫날에는 지나가는 행인도 거기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요, 지나가는 걸인도 그늘 아래서 잔칫상을 받게 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는 혜택을 남한의 삼천만 민족과 북한의 천오백만 민족들에게까지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공산권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지옥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에게까지도 아버지의 특권을 부여하시는 특사의 한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모든 전체를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갖추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통일교인들은 뜻의 노정에 있어서 반드시 탕감을 하지 않고서는 전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악하고 슬픈 이 세상

아담 해와의 타락은 아담 해와만의 타락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류역사를 총합한 입장에서의 타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은 선한 부모가 되지 못하고 악한 부모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악한 부모로 말미암아 악한 자녀가 태어났고, 악한 자녀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악한 종족, 악한 국가, 악한 세계가 형성되어 이 세계권내에 30억 인류가 존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락권내에 있는 오늘의 인류역사는 기쁨의 역사가 아니라 슬픔의 역사요, 인류도 기쁨의 인류가 아니라 슬픔의 인류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개인이 이루고 있는 가정은 항상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슬픔의 내용이 깃들어 있습니다. 가정은 서로서로 화친할 수 없는 상충적인 응결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그것이 기반이 되어 가지고 그러한 모순을 내포한 환경이 되었고, 완전히 통일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또, 그러한 사회가 뭉쳐서 이루어진 국가 역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선을 중심삼은 소망스런 국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그런 국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기쁨의 세상이 아니라 슬픔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은 고해의 행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러한 나라와 세계의 환경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세계가 악하다면 그 세계를 찾아 나가는 길에 있어서 선이 있을 수 있겠느냐, 우리는 미래의 소망을 찾아 나가고 있는데 그냥 이대로 발전해 나가면 세계의 종말에 선의 세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현재의 세계는 소망을 갖고 전진할 수 있는 세계가 되지 못한다고 단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계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나갈 것이 아니라, 이 세계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려고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할 길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는 소망으로 삼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 과연 대한민국을 최고의 소망의 나라로 모실 수 있겠느냐? 소망의 나라로서 앞으로 선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겠느냐? 또한 이 나라가 선의 주권을 유지하고,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실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도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나라를 뒤로 두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이 오늘날의 우리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나라를 뒤로 두는 것은 물론이지만 친척을 중심삼고 볼 때, 이 친척을 통하여 우리 가정이 행복할 수 있고, 우리 가정으로 말미암아 전체 친척이 행복할 수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악한 기반에서 출발한 친척이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에서는 선한 친척을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부모 형제 처자를 중심삼은 가정을 두고 볼 때, 나 자신이 소망하는 이상적인 선한 가정을 현재 이 환경 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그것도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통해서도 불가능하다면 하나의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한 남자가 이 지상에서 그냥 이대로 완성하여 선한 개인으로서 등장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하나의 선한 남자로서 하나의 선한 여성을 하늘땅이 인정하는 자리에서 선한 신부로 맞아들이는 것은 악한 터전 위에서 심어졌고 악한 터전 위에서 이루어진 이 천지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모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오늘의 인류역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는 자리에서 인간들을 다시 불러 모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역사적인 종말 시대를 맞게 될것인즉, 이 세계는 선을 중심삼고 승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중심삼고 패배의 여건을 드러내고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관으로 보는 세계의 종말은 심판이라는 비참한 결론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명사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때는 망하는 것이요, 이것을 취소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때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이란 명사에 밀려 나가는 무리들은 멸망하게 되는 것이요, 심판이란 명사를 놓고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무리는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이란 명사를 놓고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무리로 말미암아 피조세계는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반 위에서 선을 찬양할 수 있는 터전을 가지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참다운 개인이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형제가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부부가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부모가 생겨나는 것이요,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생겨날래야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내용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선한 나라요, 이 세계가 선한 세계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슬픈 운명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냥 그대로 긍정하는 사람을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니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선한 사람을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지금의 세계를 붙안고 이 세계속에서 자기의 꿈을 이루겠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해야 됩니다. 세계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하고, 종족을 부정하고, 가정을 부정하고, 개인까지도 부정해야 합니다. 이토록 원통하고 슬픈 운명이 엉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현세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단 일점의 긍정도 용납할 수 없는 슬픈 운명에 사로잡혀 비탄스럽고 원망스러운 인생의 행각을 더듬어 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각성할 줄모르는 인류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니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권내에 심어진 나무가 자라서 결실되는 때가 종말시대이기 때문에 종말시대에는 악한 것은 처단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선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세계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하고, 자기의 종족을 부정하고, 자기의 가정을 부정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절대라는 것은 하나 외의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자의 생각은 둘이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절대자의 생각은 하나입니다. 그 생각은 출발에서부터 끝까지 영원히 절대적인 하나입니다. 그것은 누가 시정을 요구할 수 없으며, 가감을 요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자가 창조한 이 천지간의 창조물 자체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절대자와 떨어질 수 없는 상대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절대자를 중심삼고 `상대적인 절대'의 자리를 찾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한분밖에 없는 절대자에게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상대적 절대'형을 갖춘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 자체만으로는 기쁨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것은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혼자로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힘이 좋은 레슬링 챔피언이 있다 해도 그 챔피언이 가만히 혼자 앉아 있을 때에는 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는 있는데 없는 것 같고 없는 것 같은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상대가 없이 혼자 가만히 있을 때에는 자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천지를 지으셨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계 대통령이 되었는데 세계 인류가 전부다 없어졌다고 한다면 무슨 기쁨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춤을 출 수가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이해돼요? 사랑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세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바라고 나왔던 것이 오늘에야 이루어졌노라고 기뻐하며 그 사람과 둘이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 대통령의 족속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어화둥둥 내 사랑아 하면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맞지요? 「예」

하나님도 별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장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나님도 고독단신의 절대자는 싫기 때문에 같이 지낼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 좀 살맛 날 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뭐 좀 더듬어 보고 다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신비로운 인체

사람의 눈 코 입 귀를 보면 전부다 이상하지요? 여기 처음 나온 사람들이 있으면 하나 알아 두세요. 여러분의 눈이 태어날 때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났습니까, 모르고 태어났습니까? 눈이 태어날 때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아니면 태양이 있는 것을 모르고 태어났어요? 그래, 눈이 태어나기 전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이거예요.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몰랐으면 뭣하러 이렇게 태어났어요?(웃음) 생각을 잘 해 보고 대답을 해보세요. 「태양이 없더라도 눈은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글쎄 눈이 태어나긴 태어나야 되는데 누가 내든지 냈기 때문에 태어났을 것이 아니겠어요? 눈 자체는 몰랐지만 어느 누가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눈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만들어 놓았든지, 아니면 눈 자체가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생겨났든지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눈자체든 다른 존재든 누군가 눈이 태어날 때 태양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귀는 어떻게 해서 이처럼 멋지게 생겨났느냐? 귀가 생겨나기 전에 누군가 공기가 있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코를 보세요. 무엇 때문에 코가 이렇게 생겨났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눈, 코, 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녀석은 눈알을 빼 보고, 귀를 막아 보고, 코를 잘라 보라는 거예요.

사람의 얼굴 중에서 이 코가 제일 보기 싫은 것입니다. 세수할 때도 이 코 때문에 언제나 엎드려서 해야 됩니다. 이 코가 왜 이렇게 생겼느냐 하면 얼굴을 씻을 적마다 고맙다고 인사하라는 것입니다.(웃음) 코가 이렇게 생긴 것은 이 땅에 풍상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소낙비도 내리고 이슬도 내릴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만일 코가 거꾸로 붙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웃음) 그런 위험물을 피할 수 있도록 미리 방지를 해 놓은 것입니다.

또,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콧구멍 속에 이렇게 창살같이 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공기 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도 참 뭐라고 할까요? 평안도 말 중에는 `쌈바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도 짓궂다면 짓궂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참 짓궂다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실감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 콧구멍을 보라는 거예요. 콧구멍 안에 이렇게 털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털이 전부 한쪽으로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로 모여 있습니다. 그렇지요? 콧구멍에 먼지가 들어오면 이 털에 걸리게 되어 흘러나오는 콧물과 섞여 코딱지로 굳어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웃음) 웃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별다르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體)를 만점에 또 만점을 줄 수 있는 자연적인 체로 만드셨습니다. 머리카락을 자세히 보면 나무같이 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삭삭 비벼 보면 어느 쪽이 뿌리쪽이고 어느 쪽이 그 반대쪽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손으로 비벼 보면 반대쪽에서 뿌리쪽으로 손이 움직일 때 까끌까끌한 감촉이 있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까끌까끌하기 때문에 무엇에 걸리면 영락없이 달라붙게 되어 있습니다.

얼굴을 보면, 멀쑥한 가운데 이 시커먼 것이 무엇입니까? 눈썹이지요? 이것을 왜 붙였겠습니까? 이 눈썹이 없으면 땀이 흘러내려 그 밑에 있는 귀여운 눈은 하수도와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땀이 흘러내리면 틀림없이 눈으로 들어갈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눈썹은 눈 위에 이렇게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썹도 하나였으면 곤란했을 것입니다. 두 개가 있기 때문에 눈을 피해서 흘러내릴 수 있는 겁니다. 또 혹시 교통정리가 잘못되어 땀이 눈 쪽으로 흐른다 해도 눈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눈 가장자리를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눈은 움푹 들어갔고 가장자리는 드러나 있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그러니 예술작품으로는 그만이지요. (웃음)

또 입을 봅시다. 혀는 70년 80년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도 아무 사고도 없습니다. 참 잘 만들어져 있다는 겁니다. 밥을 먹는 것을 보아도 신비하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참 신비합니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작용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슬쩍슬쩍 박자를 맞추어서 거침없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참 신비한 거예요. 여러분은 혀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혀가 없으면 어떻게 밥을 먹고 말을 하겠어요?

신의 실존성

이렇게 모든 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이것들이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전부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물론자들은 `신이 뭐야. 물질이 전체의 중심이지' 라고 합니다. 그런 녀석들은 눈알을 빼버리라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모든 자연물은 적응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도피적인 표현으로 적응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이거에요. 그런 논리가 어디 있어요? 과학적이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아메바가 점차 진화해 가지고 고등동물인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 힘을 어디서 보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힘이 작용을 하게 되면 반드시 소모가 됩니다. 여기에 힘을 보충해 주어야 또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전기를 두고 보면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있는데 나가는 힘은 들어오는 힘보다 적습니다.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힘의 세계에 있어서 혁명입니다. 여기에 휘발유를 공급하는 것도 힘이 자꾸 소모되니까 그 힘을 보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작용을 하게 되면 소모가 벌어지는데 아메바가 작용을 해서 발전할 수 있어요? 그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아메바에서는 고등동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제삼권에서 보강해 주고 보급해 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신이 모든 것을 알고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손이 하나는 바르게 되고 하나는 거꾸로 되어 있어 가지고 따로따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 인체는 신비의 왕궁이요, 무궁무진한 지식의 원천이며, 힘의 조화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조는 전부 다 과학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이란 것은 이론과 상충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에 대한 연구를 해서 책을 쓴다고 해도 몇만 권을 써도 못 다 쓸 것입니다. 학박사라는 사람들, 지극히 시시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기 학박사님들이 왔으면 섭섭할는지 모르지만, 학박사들이 알고 있다고 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창조의 대진리 앞에 있어서는 하나의 먼지만도 못한 것입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도 상식적으로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조화라는 것은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도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 또한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자 앞에는 절대적인 상대자가 있어야 되고, 절대적인 주체 앞에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행복이니, 조화니, 기쁨이니, 춤이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있는것입니다.

상대가 없는 조화와 미와 행복은 없다

노래를 보게 되면 사랑의 노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혼자 있다고 하면 아무리 사랑의 노래라고 해도 부르면 부를수록 맥이 빠질 것입니다. 한 번 부르고 나면 다시는 사랑의 노래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웃음이 자기 혼자 웃는 것이라면 이 웃음도 역사상에서 없어져야 됩니다. 여러분 혼자 웃을 줄 알지요? 「예」 그러나 혼자 웃으면 뭐라고 합니까? 혼자 웃으면 미친놈이라고 합니다.(웃음) 또 혼자 중얼거리면 뭐라고 그래요? 미친놈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혼자 웃되 웃음에 해당할 수 있는 상대를 갖고 웃게 될 때는 멋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권을 조성하는 데는 천주의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창조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부인이 `당신과 나 둘이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다. 만 년 억만 년 우리 둘이만 있자'라고 한다면 그 부부는 망할 지니라! 자식이 없으면 1세기도 못 가서 나가 자빠집니다. 아무리 단짝인 부처(夫妻)라도 제3의 절대적인 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존재가 누구냐? 바로 아들딸입니다. 아들만 있어도 망합니다. 딸도 있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도 남자만 모였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통일교회에 갔더니 전부 다 건달 같은 남자들만 있더라…!' 그것은 오래지 않아 망할지니라!(웃음) 또 `여자들만 모였더라. 전부 다 미인들만 모였더라…!' 그것도 망할지어다! 미인이든 추남이든 섞여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권이 없는 곳에는 조화의 미와 행복의 요인과 희락의 표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웃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걸어다니고 행동을 하고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명동에 간다'할 때 `나 울기 위해서 갑니다' 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라도 상대적인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좋을 수 있는 상대, 내게 필요한 요건을 충당시켜 줄 수 있는 상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돈을 한 십만 원 벌려고 간다 할 때는 내심 기분이 좋아서 가는 것입니다.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나 가지고 이제 오늘 나가게 되면 틀림없이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억만장자가 된다고 하게 되면, 택시고 고급 승용차고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안 타고 걸어가도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내가 바라고 움직이는 상대적 가치가 나와 얼마만큼 큰 내용을 가지고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별수 없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본래부터 영광 중의 영광의 주체요, 행복 중의 행복의 주체요, 모든 사랑과 생명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절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망해 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할수없이 상대적인 존재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방안에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나는 만국의 대왕이니 이렇게 거룩하게 앉아 버티고 있는 것이 나의 업이다. 손이라도 하나 까딱하면 큰일난다' 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밥을 먹으니 좋다 할 때는 밥이 자기 전체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일에 대해서 재미있다고 한다면 그 일이 자기 전체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방으로 절대적인 상대권을 넓혀 나가는 과정속에서 행복의 기틀이 조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의 절대 대상은 인간

그러면 천지 만물 가운데 절대자 되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물은 어떤 것이냐? 생각해 보세요. 곤충일 것이냐? 아니면 우리집 뒷뜰에서 콜콜 자는 예쁘장한 강아지일 것이냐? 이러한 것들이 절대적인 상대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강아지보다 더 지혜로운 원숭이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면 원숭이일 것이냐? 오늘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요? 앞으로 내가 대학생들을 설득해서 교수들한테 전부다 `원숭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사하라고 시켜 보면 어떨까요?(웃음) `교수님은 원숭이의 머리하고 원숭이의 뼈다귀를 갖고 계시죠?' (웃음) 그랬다가는 `예끼놈!' 할 것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와 같은 뼈다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영적 존재가 아닌 원숭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의 손과 발의 모양은 사람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사람과 닮았기 때문에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숭이는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숭이 띠입니다.(웃음) 그거 생각하면 내가 원숭이 띠로 잘못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내가 원숭이를 싫어한다구요.(웃음)

인간과 원숭이를 해부학적으로 보면 48가지가 틀립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이 원숭이가 비약적인 발전, 즉 돌연변이에 의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논법은 그럴 듯하지만 여기에는 전부다 무신론자들의 마술적인 요인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승공이념을 들고 나와서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원숭이를 절대적인 창조주 앞에 절대적인 상대로 세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상대가 저게 뭐야! 대변도 가리지 못하는구만. 다니는 것이 저게 뭐야. 네 발로 다니는구만' 하면서 참소할 것입니다. 네 발로 다니는 것은 아직까지 미완성한 것입니다.

인간도 아기 때에는 네 발로 다닙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형(形)으로 보아서도 미완성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네 발로 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은 두 발로 다닙니다. 그것은 벌써 원숭이보다는 입체적인 안전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하늘과 땅의 연락기관입니다.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왔다갔다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와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자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상대적 존재를 피조만물 가운데서 찾아 세우신다면 어떤 존재를 찾아 세우시겠습니까? 틀림없이 두 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원숭이가 영통해서 방언한다는 말 들어 봤어요?(웃음) 발람에게 나귀새끼를 통해 가지고 증거한 것은 돌변적인 역사를 한 것입니다. 거기에 영이 들어가서 그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책임 못하니까 할 수 없이 나귀를 통하여 역사한 것이지 본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만이 영계를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통일교회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별의별 반대와 지탄을 받은 것은 이런 초감각적인 기관이 발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발전된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이룩한 내용의 차원이 너무나 높기 때문에 앞으로 그 내용이 세계 학계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노벨상을 탄 사람이 없었지만 앞으로 틀림없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타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학계는 망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섭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라구요.(웃음) 대한민국의 위신을 세워주는 데 무슨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원리를 보게 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둑의 심보를 가진 학자가 이것을 빼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실컷 써 먹어도 좋다 이겁니다.(웃음) 그런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표창을 받았다고 좋아하고 야단들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표창 하나 받지 않아도 나라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충신의 도리를 다 갖추고 갑니다. 그까짓 상을 타서 뭘 해요. 내가 상을 주면 줬지 뭐하러 받아요!(웃음)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상을 받고 좋아해요? 상을 주고 좋아해야지. 그러나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지금까지 통일교인들이 나로부터 수천 장의 상장을 받았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앞으로는 받지 말라고 통고를 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기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문선생한테 노벨상을 준다고 할지라도 나는 받지 않겠다고 이미 결정을 했습니다.(웃음)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통일교회 문선생에게는 노벨상을 안 줄 수 없소. 하나님께서 받으실 상을 당신이 대신 받아서 하나님께 드리시오'하는 입장에서 준다면 내가 받겠지만, 그렇지 않고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준다면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의 진리는 문선생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했나요?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진리가 나온 곳은 한 곳밖에 없는 거라고요. (웃음) 그곳은 절대적인 곳이라면 절대적인 곳이요, 최고 꼭대기라면 최고 꼭대기지, 데데한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 선생님의 기질은 싸움을 해도 하루 싸워서는 직성이 안 풀려요.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싸워서 끝을 보아야 됩니다. (웃음) 이런 이야기 하면 좀 창피한 일이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어릴 적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한 번 남에게 맞고 나면 잠을 못 잤습니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때린 녀석을 굴복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그의 부모 형제까지도 와서 빌어야만 마음이 편했습니다.(웃음) 내 앞에 꼬투리잡고 껍적대는 녀석을 두고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악당이 됐으면 악당 중의 최고 악당 괴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선생님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독출파(獨出派)입니다.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이 혼자서 지금까지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없다는 말이냐? 하나님은 안 보이는 분이니 계셔도 안 계시는 것과 같은 것이요, 안 계셔도 계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다시 맺어야 할 인간

하나님께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인간을 빼놓고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지혜의 왕자이기 때문에 떡 버티고 서서 `하나님!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해도 동물이나 식물이나 어떤 것이라도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조금만 더 지혜로운 존재가 있다면 참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천사장의 타락이 개재될 수 있는 상대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타락론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萬物之中 唯人最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으냐? 필요하다면 얼마나 필요하냐? 하나님이 계시는 한, 하나님이 절대자이신 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필요하냐?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계시면 상대 되는 사람도 살아 있어야 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되면 상대 되는 사람도 좋아해야 되고, 하나님이 슬퍼하시게 되면 상대 되는 사람도 슬퍼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은 좋아하시는데 상대 되는 사람은 울고 있고, 또 하나님은 슬퍼 우시는데 상대 되는 사람은 좋아서 웃고 있다면 같이 있을수 있겠어요? 그 사람은 여지없이 추방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은 짝자꿍입니다. 이 짝자꿍이라는 말을 놓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에게는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상이 남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 좋아하시느냐? 사람이 주관하는 만물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전부 데데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손수건 한 장과 양복 한 벌을 놓고 어떤 것을 가지겠느냐고 물어보게 되면 그 대답은 뻔한 것입니다. 높고 낮고, 귀하고 천한 것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라도 좋은 것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핏줄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인연이 하나님과 분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듯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었더라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이 벌어졌겠습니까? 또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어 하나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자동적으로 받을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만일 없다면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야 된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줄을 물고 나왔던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것, 곧 우리 인간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출발할 수 있고 발원될 수 있는 초점이 어디냐? 그것은 장사를 통한 인연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생명의 인연이 연결된 곳이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에 연결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사는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생명의 인연이 틀어져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 끊겨져 나갔기 때문에 인간들의 생애 노정에서 절망이니 탄식이니 비애니 하는 것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은 자동적으로 인간과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거기에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와 관계를 맺게 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다시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게 되면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권내에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이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도 맺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타락의 내용과 구원의 방법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타락이란 뭐냐? 앞에서 말한 논리로 탐구해 보면 타락이란 혈통적인 실패를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원리의 타락론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원수인가? 하나님의 원수 중의 제일의 원수는 누구냐? 6천년 동안 수많은 인간이 죽고 수많은 성현이 죽음을 당하면서도 바라던 인류의 소망을 이룰 수 없게 한 원수는 누구냐? 이렇게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인간의 소망을 한번도 이루지 못하게 한 원수의 종자는 어떤 존재냐? 원수 중에서도 최고의 원수가 누구냐?

물건 훔쳐간 원수나, 장사하다가 자기한테 사기를 친 원수는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자기 집에 불을 놓아 파괴시킨 원수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잡아 죽인 원수나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아간 원수는 용서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원수는 용서하려고 암만 결심을 해도 저절로 이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적 조건으로 말미암은 원수는 해가 지나감에 따라서 다 잊어버립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한 20년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원수만큼은 시일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픔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있어서 크나큰 슬픔의 원흉이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마 18:22)'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만일 예수님한테 `예수님, 당신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도 용서한다면 사탄도 그렇게 용서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당신의 교리 가운데 사탄을 용서하라는 주(註)를 달아 놓은 것이 있습니까?'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아 나는 사랑의 주니 그것도 가능하다'고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기독교에서는 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고 합니다. 그 선악과에 독약이 들어 있었어요? 만일 그렇다면 그런 얄궂은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들에게 따져 묻게 되면 세 마디도 답변하지 못하고 캄캄 천지가 되어 가지고 쩔쩔매게 됩니다. 그들은 그런 질문을 피하기 위한 방비책으로 `오! 신성한 절대자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죄인된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 수염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다고 하면 `오! 그래' 하며 수염을 펴 가지고 보여 주고, 이빨을 보고자 하면 `오! 그래라' 하면서 보여 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궂은 이론을 갖다 붙여 놓고 `너 이놈 더 이상 묻지 마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내가 믿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자식이 아버지 겨드랑이의 털을 보고서 `아빠 나 요것 같고 싶어요' 하고 뽑았을때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렸다가도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다시 웃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웃음)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인간과 하나님이 무슨 원수가 되었길래 모든 것을 다 가려 놓고 `이것밖에 모른다' 하겠어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자라면 절대 안 막습니다. 비밀이 없게끔 골짜기를 전부 헐어서 평지를 만들어 놓고 `너와 나와는 서로 안팎이다. 바깥(外)이 안(內)도 될 수 있고 안(內)이 바깥(外)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만 `네 이놈. 효도해라 효도해라' 해서는 안 됩니다. 10년만 그렇게 해 봐요. 효도할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보따리로 자꾸 갖다 씌워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식이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자관계는 깨지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면 복귀도 하루 아침에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선악과 보다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좋은 것을 만들어서 먹이면 탕감이 된다는 것입니다.(웃음) 이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핏줄이 달라졌습니다. 사랑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이미 핏줄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이것을 개조하려다가는 전부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인연이 핏줄을 중심삼고 잘못 맺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탄의 역사를 거쳐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활이 엉터리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부활이라는 말이 있지만 결국 인간은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려면 핏줄을 올바로 타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얘기하자면 한이 없으니 이 정도만 얘기하도록 합시다.

우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사랑해야

기성교회 교인들이 오면 `거 통일교회 문선생이 누구야?' 그러는데 내가 문선생이요.(웃음) `그 양반 말은 그럴듯 하구만' 그러는데 어디 한번 가서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여러분만큼 생각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선생님이 종교 통일을 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치고 있지만, 종교 통일이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구요! 앞으로 기독교인들이 통일교회를 안 믿으면 내가 가만히 안 놔둘 겁니다. 그렇다고 뭐 대포를 걸어 놓고 공격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이 이념을 몰라 가지고는 말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나 천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상대관계를 통하여 인간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느냐? 사랑입니다. 이 사랑도 힘입니다. 사랑 자체도 작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작용하게 되면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것이 힘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힘의 작용은 작용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되지만, 사랑은 작용을 하면 할수록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남편의 사랑 앞에 `아이구 나는 함락됐소. 이제 나에게는 사랑이 필요없소' 이렇게 외치는 아내는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보다 더 깊은 사랑을 당신에게 드리겠노라'고 나서는 것이 아내의 사랑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어떤 사람이 진실된 사랑을 백 냥 정도 받았다고 했을 때, 구십구냥 쯤 갚아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갚을 때에는 단 한 냥이라도 더 보태서 갚아주고 싶은 것이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플러스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사랑에만 있기 때문에 사랑을 통하여 영생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사랑은 작용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힘의 모체로서 세계를 품을 수 있고 천지간의 거리를 축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도 이 사랑을 통해서만이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본질에서 사랑을 빼게 되면 하나님도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장 중심이 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데는 영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자기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는 내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꼭 갚아 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희생시켜서라도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사랑의 도리에 순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당신과 가까운 편에 있는 사람들과 종족, 나라에까지 사랑을 주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돌려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적거나 돌려드리지 않더라도 그냥 차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오냐 네가 작다면 더 많이 주마'하면서 주셨습니다. 맨 나중에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독생자까지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셔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도 맺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수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다고 받지 않을까봐 보태고 또 보태어 이스라엘의 개인과 종족과 나라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사 축복해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래도 받지 않자 그 아들의 생명까지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나서도 또 다시 사랑을 보태 주려고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돌아오게 되는 날에는 천지가 몽땅 이상적인 천국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하나님은 사랑을 받기만 하시는 독재자이냐? 사랑을 받으면 더 많이 갚아 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지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백의 사랑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천의 사랑, 만의 사랑으로 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기원으로 하지 않은 사랑은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생명의 기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 대해 사랑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을 통한 생명의 인연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으려면

생명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육신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짓 원수의 피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으니 이 원수의 피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사탄도 나가 자빠질 만큼의 수난의 길, 죽음의 경지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떨어진 후에 하나님께서 수술대에 올려 놓고 고쳐서 써먹겠다고 하시는 놀음이 구원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부정의 원칙을 설정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고 발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역사 가운데, 종교의 이름을 가진 단체 가운데 순교의 역사를 단장한 기독교만이 부정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사탄의 아들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이라고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사탄의 아들은 무엇이 다르냐? 핏줄이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핏줄이 바뀜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통일교회의 타락론을 모른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론적으로 추론해서 누구든지 대답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사람은 솔직해야 됩니다.(웃음) 좀 섭섭하지만 할 수 없잖아요? 인사를 하려면 자기의 밑바닥을 드러내 놓고 해야 인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서 있지 않는 것입니다. 타락이라는 것이 무엇이예요?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아버지와 살 텐데요 뭘.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뭐 예수 믿기가 쉬운 줄 압니까? 아마 기도하기가 제일 힘들 거라구요. (웃음) 기도하기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어디 여기 목사가 왔으면 손들어 보세요. 나도 종교 지도자이지만 정말 기도하기 힘들어요.(웃음)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알고 보니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기도를 못 하겠어요. 한바탕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나면 배가 굳어져서 허리를 펴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힘드는데 예수 믿기가 좋다는 녀석들은 전부다 죽어야 돼요. 할수없으니 믿는 것이지.(웃음) 병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병이 나는 것이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왜 올라가야 하느냐? 타락하여 사탄의 아들로 떨어졌으니 본래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누더기를 걸친 거지 같은 신세가 된 것은 핏줄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낳은 자녀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당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부모의 자녀라고 해서 예수를 안 믿고 천당갈 수 있어요? 또 믿어야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태어났으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안 했으면 예수님이 필요없습니다. 구주가 필요없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주(救主)란 `구해 주는 주인'이란 뜻이지요? 병이 났으니 의사가 필요한 것이고, 물에 빠졌으니 구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무슨 의사가 필요하고 물에 빠지지 않았는데 무슨 구해 줄 사람이 필요하겠습니까? 자동차가 고장이 나지 않았는데 전부 다 뜯어 고치는 것은 어리석은 낭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그렇지…. 그래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고 사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쥐새끼도 불이 날 것을 알면 도망가는데 인간이 그런 걸 모르겠어요?(웃음)

`하나님이 네 아버지냐'할 때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그때 옆에서 누가 `야 이녀석아. 뭐가 하나님 아버지야'라고 한다면 거기에 여러분은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럴 자신 있습니까? 또 `야 이 녀석아, 하나님이 보여?' 할 때 `글쎄,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것이지 뭐' 해서는 안 됩니다.(웃음) 그렇게 하는 녀석이 하나님의 아들이예요? 그게 하나님의 아들의 꼴이 됐습니까? 아들과 부모와의 관계는 원자탄을 퍼붓고, 천하의 모든 힘을 일시에 투입시킨다 해도 부정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가지를 자르려 하면서 `이 녀석아, 그래도 네 아버지야?' 할 때 `아 잠깐' 하는 사람이 아들이예요?(웃음) 아들이 그래요? 모가지를 잘라서 열 동강이를 낸다 하더라도 내 아버지가 틀림없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그 잘 모르겠는데….' 그래 가지고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면 그거 잘 불렀어요, 못 불렀어요? 그렇게 대하는 아버지는 사촌의 아버지, 의붓 아버지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지어 놓은 행복의 동산인 천국에는 먼저 가서 살겠다고 야단하고 있으니 이들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거기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핏줄이 틀려졌습니다. 아버지가 둘이 생겼으니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틀림없이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사탄이는 뭐냐?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세밀히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은 뭘 하려고 사람을 만드셨느냐? 영원히 같이 살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좋은 것 중에는 봐서 좋은 것이 있고, 먹어서 좋은 것이 있고, 만져서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먹어서 좋고, 보아서 좋고, 만져서 좋은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짜좋은 것은 영원히 가지고 살면서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점포 앞에 가게 되면 좋은 것이 참 많지요? 그것을 볼 때는 기분이 참 좋지요? 그러나 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가지고 살면서 좋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나를 닮았기 때문에, 좋은 것을 가지고 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일 좋은 것이 있으면 안방에 갖다 놓고 싶어요, 창고에 갖다 놓고 싶어요? 「안방에요」 제일 좋은 것은 틀림없이 안방에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제일 좋은 분이니 누구나 자기 집 안방에 갖다 놓으려 할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형제들이 훔쳐갈 것 같아 안심이 안 되면 어디에다 숨겨요? 허리춤에 숨기는 것입니다. 보물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에 도둑들이 득실거리면 장롱에 자물쇠를 열 개씩이나 채워 놓고도 안심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것을 허리춤에 달고 다녀야 안심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훔쳐갈까봐 걱정이 되면 그 보물을 뱃속에 집어 넣을 수 있으면 집어 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도둑놈의 왕국에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길까 봐 뼈속에라도 집어 넣고 싶어하는 것은 제일 귀한 것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어디에 갖다 두려고 하시겠습니까? 「품속요」 그렇지요, 품속입니다. 품속 중에서도 어느 품속이예요? 마음의 품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네 마음에 있고 하나님은 네 마음에 있나니라' 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보물 중의 보물이니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내 마음에 갖다 놓으면 내 마음을 누가 주관하느냐? 뭐, 내 마음이 나를 주관하지…. 그래요? 우리가 생활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마음이 좋더라. 혹은 나쁘더라'고 말을 하지요? 본래 사람은 마음이 몸을 지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때요? 하나님이 내 마음보다 못해요, 나아요? 「낫습니다」 그 나은 가치를 장식하고 싶고, 그 나은 가치를 나타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 내 육신을 당신의 소원대로 써 가지고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놀음을 하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내 육신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그 주인의 명령을 듣는 몸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자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자 나요, 내 육신이자 내 마음의 상대요, 내 마음이자 하나님의 절대적인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천지 통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는 것을 꿈꾸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했느냐? 아담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고, 해와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너와 나와는 싸워 가며 패권다툼할 것이 아니라 천정으로 하나되자' 해 가지고 하나됐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됐어야 한다고요? 「하나님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힘을 지배할 상대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태어났더라면 천하는 태평왕국이 아니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에 무형의 하나님이 완전히 보물 주인으로 강림하시어 아담이 표시하고 싶고 나타내고 싶은 무한한 가치권을 형성하게 되면, 몸은 마음의 상대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담의 소원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3장을 보게 되면 타락한 죄인 떼거리, 용서받을 수 없는 부정의 요인으로 화한 인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저 3:16)'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집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그렇다 할진대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땠겠습니까? 본래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체를 쓴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위한 존재가 인류의 선한 시조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몸과 하나된 가운데서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니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동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돌고 또 돌아 완전히 통일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자를 뿌렸더라면 그러한 종자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므로, 그 씨는 아무리 쪼개어 보아도 그러한 내용을 갖춘 종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뜯어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시 모셔들여 가지고 종자를 개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이렇게 얘기하다간 종일 해야 끝나겠구먼. 오늘 제목이 해원성사인데….

자 좀 건너뛰자요. 여러분, 이것은 확실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천지를 무엇하기 위해서 창조하셨느냐? 생명을 같이 나누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요, 사랑을 같이하기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무형의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의 실체로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이 인류의 선한 참조상,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교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는 참부모가 없으니 참다운 형제가 없고, 참다운 형제가 없으니 참다운 가정이 없습니다. 또한 참다운 가정이 없으니 참다운 종족이 없고, 참다운 종족이 없으니 참다운 민족이 없고, 참다운 민족이 없으니 참다운 국가가 없고, 참다운 국가가 없으니 참다운 세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아들이 되겠어요, 종이 되겠어요?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종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참감람나무 되어야 할 것이 돌감람나무가 되었으니 접붙여서 참감람나무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잡스러운 사상을 일소해 버리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접붙인다는 것은 곧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접붙이려면 죽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걸지 않고 예수 믿는 패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북한 인민군들이 남한에 내려와 목사에게 총을 대고 `이놈의 목사, 네가 하나님을 믿을래?' 라고 했을 때 `예, 잠시 생각 좀 해보고….' 했던 자들은 전부 가짜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예수님을 참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준 교리는 어떻게 보면 엉터리 중에도 그런 엉터리가 없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으니 이게 엉터리가 아니예요? 세상에 이런 교육이 어디 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것은 죽으라는 교훈입니다. 그렇지요? 이 말씀은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을 놀음을 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살 놀음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전부 반대라는 거예요.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남편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 집안 식구가 원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고질통이 심정적 인연을 맺고 있는 부모요, 처자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질통이 바로 여러분이 살아 나가고 있는 생활 밑창에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무엇을 해도 성취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실체가 되어야 했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던 아담 해와가 사춘기도 되기 전에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봄에 씨앗을 뿌렸는데 이것이 가을까지 가지 못하고 여름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바로 이렇게 중도에서 탈락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러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속의 아버지입니다. 즉 마음을 중심삼은 보배로운 아버지인 것입니다. 또, 인류 조상인 아담 해와는 몸뚱이를 중심삼은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마음의 아버지와 몸뚱이의 아버지 두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되어야 할 그들 부부는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되지 못하게 브레이크를 건 것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그것은 제3의 불법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제3의 불법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탈락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상충이 벌어지는 이유

그러면 사탄은 대관절 어떤 존재냐?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사탄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이 뭐예요? 간부, 간부(姦夫)라는 것입니다. 요놈의 자식이…. 그 사탄이 아버지를 때려 죽이고 어머니를 겁탈해 가지고 낳은 자녀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정 믿을 수 없다면 선생님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생명을 걸고서 하나님 앞에 담판 기도를 한번 해보세요.

그래, 여러분은 누구의 자식이라구요? 통일교회 간부(幹部)의 자식이예요?(웃음) 여러분들은 바로 불법적인 사랑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소리입니까? 그러한 요소를 뽑아 버리고 그러한 입장을 부정하려니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아버지권과 몸뚱이의 아버지권의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둘 다 플러스만 되었으니 상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주체가 되는 마음은 플러스가 되고 대상이 되는 몸뚱이는 마이너스가 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억천만년 뗄 수 없는 철두철미한 통일의 기원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사탄이 우거하는 집이 되고, 마음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되어 서로가 주인이라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심신이 편할 리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앞에서도 말했지만 절대적인 하나님은 생각이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이 둘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구상으로 지은 인간이라면 생각도 하나요, 방향도 하나요, 목적도 하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자체는 마음의 목적과 몸뚱이의 목적이 상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렇게 두 주인이 싸우는 싸움은 선조에서부터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싸움의 고빗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탐지하고 수색하여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방법은 발견하지 못한 채 역사의 운명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두 목적권내에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한 목적권으로 통합된 하나의 사랑의 세계가 되어야만 천국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의 진수요 골자가 무엇이냐 하면, 두 목적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들이 그중의 하나를 공격하여 처치할 수 있도록 충동하고 격려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구도의 경서(經書)에 있어서 필요한 교훈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는 몸뚱이를 때려 잡아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말고, 받고 싶은 것을 받지 말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말고, 자고 싶은 것을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몸뚱이가 좋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부정의 도리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마음에 대하여 강하게 또는 대등하게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몸뚱이를 약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뚱이를 끌고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식하는 것이 좋아요? 통일교인이 되려면 일주일 금식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니예요.

선을 중심삼고 악착같이 활동하라

우리 나라를 두고 볼 때도 이북과 이남이 두 목적을 지향하며 나누어져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진 씨가 되지 못하고 두 목적을 가진 씨가 되어 뿌려졌기 때문에 열매인 가정도 둘이요, 사회도 둘이요, 국가도 둘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당과 야당이 있는 것이 좋은 줄로 알고 있지요? 그것이 하나의 절대당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둘로 갈라져 있는 것이 좋은 줄 알아요? 좋지 않다는 겁니다. 둘로 갈라진 사람이 과정을 거쳐 맨 마지막에 민주와 공산 양대 진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그 자체의 기력이 쇠해진 것은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가 껍데기가 시들고 그 빛이 약해져 쇠퇴권내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새로운 역사시대를 출발하기 위한 천운이 가까와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산당도 통일교회를 없애지 못하고, 민주세계도 통일교회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통일교회는 공산당을 때려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 세계에서 제일 악착같은 무리가 통일교회 패요, 공산세계에서 제일 악착같은 무리가 북한의 김일성 패입니다. 통일교회 패는 김일성 패보다 더 악착같아야 됩니다. 나쁜 의미에서 악착같으라는 것이 아니예요. 좋은 의미에서 악착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당을 중심한 악착이 아니라 선당을 중심한 악착이 되어 악의 기력을 완전히 상실시킬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악착의 도수를 가지고 악당을 지배할 수 있는 권이 이루어지게 되면 세계는 하나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 통일은 종교적인 바탕을 벗어나서는 불가능합니다.

요사이 폴리티컬 파워(politica power)니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니 하며 야단들이지만 청소년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규합해 가지고 초민족적, 초국가적인 단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계 만민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들은 동원할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노동자 농민을 해방할지어다'라고 하는 공산당식이 아닙니다. `나라를 팔아먹는 패들, 부패한 악당 공무원들을 다 때려잡아라. 계급을 초월하여 양심적인 세계 만민을 동원할지어다'하면서 태초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던 참된 종교의 기치를 세계에 드높여 행군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망하라고 한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역사적인 종말은 반드시 이러한 운세를 거쳐 가야 천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독교 통일을 표방하고 종교 통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입니다. 가게 될지 못 가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생각만큼은 거룩한 생각이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이런 주장을 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두고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을 것을 시작했다면 그것은 천지 바보입니다. 미욱한 사람이요, 욕심장이입니다. 반드시 분석 비판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때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바보 천지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자유당 정권, 민주당 정권, 혁명정부가 나를 때려 잡으려고 쇠고랑을 채워 가며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또한 기성교회에서는 목사가 신령한 단 위에서 통일교회는 이단이요, 문 아무개 따라가면 망한다고 야단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망한다고 야단하던 그들이 망했습니다. 죽어라 하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죽지 않고 죽지 말라는 그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망하기를 바랐던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큰소리칠 수 있는 때가 되었고, 큰소리로 `세계여! 나좀 봐라'하던 그들은 이제 작은집 살림살이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인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기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좋아만 하다가는 기성교인들 다 죽어 버리게?(웃음)

통일교회가 그만큼이나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패들은, 통일교회 영신들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들은 철석 같은 신념을 가지고 한 발로는 악을 밟고 한 발로는 선을 넘으며 하늘의 용사로서, 하늘의 투사로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소원이 뭐냐?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원수를 처단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있는 사탄의 핏줄을 전부다 끊어 버리자는 것입니다. 소탕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 소탕 작전은 내가 코치할 것이고, 그 방법도 내가 제시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원리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은 통일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판서하시면서) 이게 사과가 되었구먼. 여러분, 사과 같습니까? 이게 가지라구요. 그런데 지금 천지가 깜깜해 가지고 적막강산이 되었어요. 자, 여기에 큰 사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과 가운데 무슨 사과가 제일이예요? 「대구사과요」 대구사과는 `대구 먹으라'고 대구사과가 됐나요? (웃음) 그래 내 몸뚱이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세계의 싸움이 없어지겠어요? 아무리 정객들이 나와 가지고 세계 통일이 어떻고 저떻고 하지만 그런 것은 다 꿈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은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배워 가라는 거예요.

이제는 선생님도 간판을 내붙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다고 선전할 때가 됐습니다. 또 수천 명의 기성교회 목사들을 모아 놓고 한번 나서서 `이녀석들 잘 만났다'고 하면서 죄기려고 합니다. 혹시 기성교회 목사들이 이 자리에 왔으면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죄긴다고 해도 좋은 의미에서 죄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허리 부러진 호랑이처럼 안방에서나 큰소리쳤지요.(웃음) 그렇지만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요? 이 불쌍한 사나이도 동정 좀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웃음) 떡을 먹다가 배 부르면 그대로 남겨 놓고 갈 일이지 남은 떡을 땅에 묻어 놓고 가면 되겠어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기성교인들이 한 25년쯤 그렇게 선생님을 반대하고 욕을 하며 못살게 굴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신문에 변명 한마디 실은 적이 있습니까? 선생님이 말을 하려고 한다면 어느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졸장부가 되어 가지고 시시하게 안방에서 귀신 놀음을 하고 있느냐?(웃음)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땅의 운세를 잘못 움직였다가는 큰일납니다. 한 번 잘못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된다' 한 것이 한 번 틀어져 나가고, 두 번 거짓말 되고, 세 번만 거듭 된다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따라오라고 해도 안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신이 행치 않았던 일은 절대로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게 다릅니다.

오늘 내가 장엄하고 거창한 말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서 듣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부다 체험을 통하여 느끼고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점이 선생님과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모를 때에는 `나는 모른다. 네가 연구해서 알아보아라'고 가르쳐 줘야 하는 것입니다. 종한테야 거짓말을 해도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말입니다.(잠시 녹음이 중단됨)

참된 한 남자를 찾아온 복귀역사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아들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종 자리에서 종의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참된 아들이 되어서 책임을 다해야 참된 부모가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참된 부모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신랑 신부를 편성해 가지고 인류 조상의 기원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참된 부모의 혈통적 기반을 만세 만민들에게 새로이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나라를 형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놀음을 계속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남자 한 사람을 찾아 나왔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해와보다 아담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남자에게 수염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없는 것이 좋습니까? 여자들 얘기해 봐요. 「있는 게 좋아요」 또 남자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있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왜 수염을 안 길러요?(웃음) 수염이 있는 것이 좋은 때도 있습니다. 지금 때는 바쁜 때이기 때문에 없는 것이 좋지만. 자연스럽게 놀 때에는 수염을 기르고 노는 것이 멋지다는 거예요.(웃음)

일본 사람들은 정원을 만들어 놓고 깍고 다듬고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자연적인 정원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연적인 것을 좋아합니까, 가공적인 것을 좋아합니까? 「자연적인 겁니다」 이렇게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염을 기르게 되면 백불씩 봉급을 받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법을 그렇게 만드는 세계가 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겁니다. 앞으로 수염을 길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자는 왜 수염이 없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시고 기분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해와를 만드실 때는 수염이 없게 만드셨다는 거예요.(웃음)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걸작품은 누구냐? 여자들입니다. 여자들 기분 좋아요? 이 여자들이 걸작품은 걸작품인데 누구를 위한 걸작품이냐? 바로 남자를 위한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기분이 나쁘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걸작품을 만드셨느냐? 남자를 중심삼고 멋진 자극을 받으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같은 살결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죽을지어다. 또 남자같이 억세고 멋대가리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죽을지어다.(웃음)

남자와 여자는 상대적입니다. 여자는 보들보들하고 남자는 억세기 때문에 억센 놈들은 보들보들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또 보들보들한 아가씨들은 억센 남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악돌이만 사는 악한 세상을 해부하여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처단할 것이냐? 우선 하나님은 사탄에게 전부 빼앗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찾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찾아오기 전에 제1단계 계획을 얼마만큼 세워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제1단계 계획은 절반 조금 넘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 계획이 완성될 때까지는 못난 체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나돌다가 야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작전을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목적을 위해서 이미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사탄권내에서 이런 점령 작전을 펴시고 있는 것입니다.

악당 무리가 세계를 전부다 망하게 만드니 이 세계를 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권내에 어느 곳엔가 하나님의 기점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하나의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있어야 여자를 찾을 수 있고, 여자를 교육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자를 먼저 찾아 세운다면 어떻게 여자가 남자를 교육시킬 수 있겠습니까? 도망을 가더라도 여자는 남자를 업고 도망 못 가지만, 남자는 여자를 업고 도망을 갈 수 있다는 거예요.(웃음)

지금까지는 어느 종교이건 종주(宗主)가 여자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종교의 종주는 전부 다 남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억센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억센 남자를 세워서 일을 시켜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또 창조원칙에 의해서도 남자를 먼저 찾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를 찾아 세우기 위한 챔피언 경기가 이 지구성에 벌어졌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챔피언을 선발하기 위해 동쪽에 챔피언 훈련장, 서쪽에 챔피언 훈련장, 남쪽에 챔피언 훈련장, 그리고 중앙에 챔피언 훈련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 힌두교 문화권이 세계의 사상적인 지주가 된 것입니다.

종교라는 말은 사람만을 위주로 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 즉 신을 모체로 한 가르침이 종교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발원이요, 본원이기 때문에 신을 빼놓은 종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종교를 중심삼은 권내에서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의를 받들어야 되고 천정을 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일컫는 4대 성인들은 전부다 종주(宗主)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느냐?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사람이 만들었다면 사람을 위주로 할 텐데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빚어진 것이 종교 문화권 세계인 것입니다.

야곱의 승리

이처럼 악한 세상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권내에 하나님의 기지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계에서 사탄과 싸워서 이겼다 하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세계의 판정관 앞에서 사탄과 힘 내기를 하든가 무슨 내기를 하든가 싸워서 `내가 이겼다'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갈라 세워 두 패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기점을 마련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하여 이겼습니다. 이 천사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 앞에 졌던 사람이 사탄과 다시 싸워 이길 수 있는 기준을 갖추지 않고는 승리라는 명사는 인간 세상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에서 밤새껏 천사하고 환도뼈가 불거지도록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지독해요, 안 지독해요? 밤새껏 싸웠으니 손이 굳어졌겠습니까, 안 굳어졌겠습니까? 여러분 손 같으면 몇 시간 정도 견딜것 같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야곱은 지독하고 악착같았다는 것입니다. 지독하고, 그 다음엔 악착같았다는 것입니다. 밤을 새워 씨름을 했으니 눈엔들 무엇이 안 들어갔겠으며, 몸뚱이는 또 어디든 안 다쳤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했는데 져서야 되겠습니까? 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됩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인간을 세워 놓고 판가리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응원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합니다」 사탄은 응원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응원하다가 만약 지게 되면 절대자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기 때문에 응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 편이 잘 하라고 응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은 고독단신이고 천사는 응원을 받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야곱은 홀로 자신의 힘으로 싸워 천사를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놈, 네가 졌으면 승리의 권은 나에게 축복해 주어야 돼. 천사세계의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나에게 축복해 주어야 돼'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세계의 축복권을 이어받은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곧 승리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희소식이예요, 비희소식이에요? 「희소식입니다」 여러분도 희소식이요? 기뻐요? 「예」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눈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웃음) 심각하니까 그렇겠지요.

야곱과 천사장의 싸움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있었던, 영계와 육계가 최후의 결판을 내야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거기에 야곱이 한 남자로 등장하여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 판가리 싸움이니, 만일 이 광경을 야곱의 부모나 친척들이 지켜봤다면 얼마나 마음 졸였겠습니까?

얼만 전 아시아 경기대회가 태국 방콕에서 열렸었는데 한국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곳 교포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죽기 살기로 응원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 여러분 같으면 야곱에게 응원을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침에만 할래요, 낮에만 할래요? 「온종일 하겠습니다」 이 싸움은 24시간 계속되는데 응원하다가 졸면 이기겠어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새벽이 가까와질수록 승패의 결정적 찬스가 가까이 오는 것이니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어쩌면 야곱이 넘어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 가슴이 우그러지겠어요, 안 우그러지겠어요? 여러분도 `내가 그 당시에 있었다면 야곱을 도와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야곱은 `비록 허리가 끊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눈알이 빠져도 네가 나를 축복하는 것만이 내 생명을 대신할 것이다'라는 각오로서 밤새껏 천사와 싸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야곱이 얼마나 힘이 들고, 진땀을 흘렸겠습니까? 천사도 밤새껏 싸우다 보니 야곱이 보통이 아니거든. `이러다간 천륜대사를 다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수없이 축복해 준 것입니다. 천사가 좋아서 축복해 주었겠어요? 세계 챔피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때 기분이 좋아서 넘겨주나요, 할 수 없이 넘겨 주나요? 「할 수 없이 넘겨줍니다」 할 수 없이 넘겨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사도 할 수 없이 야곱에게 져 가지고 자신의 권한을 야곱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 천사의 권한을 지상 위에 옮겨놓은 챔피언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 야곱이란 이름의 `곱'이라고 하는 것은 곱배기로 씨름을 했다는 거예요.(웃음) 그렇게 생각해야 실감이 나지요? 야─곱! 그것은 왜냐? 사람들끼리의 씨름도 힘든 것인데 천사와 씨름을 했으니 곱배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을 받을 만해요, 안 해요? 「받을 만합니다」 이래서 이스라엘이란 말은 곧 승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메시아는 세계적 챔피언

이렇게 인류 역사에 있어서 비로소 이러한 하나의 남성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무한한 기쁨입니다. 그리고 하늘땅이 환영할 수 있는 복음의 터가 그로 인하여 찾아 세워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야곱을 중심삼고 그의 아내가 그의 말에 순종굴복하게 될 때는 그녀는 이스라엘권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요, 그의 아들딸도 그의 말에 순종굴복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할 때는 그들 또한 이스라엘권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벌어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나라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누구를 중심삼고 이겼다구요? 「하나님요」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을 붙잡고 한덩어리가 되어 이겼으니,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입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라입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이스라엘 나라로 인하여 이 땅위에는 비로소 선민권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선민권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에 뜻을 세워 가지고 살림살이를 해결 방법을 실현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유대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특출한 민족입니다. 지금까지 미국과 소련을 배후에서 움직여 나온 사람들이 유대민족이요, 미국 경제력의 5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유대 민족입니다. 선생님은 그 유대 민족과 한국 민족을 친구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 친구로 만들자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떠한 위치에 있느냐? 수많은 사탄 나라 가운데에 있습니다. 사탄권에 둘러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보기에 좋고, 생각하기에 좋고, 같이 살고 싶고, 같이 의논하고 싶은 나라가 되어 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또 멋지게 훈련시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 놓고 싶어하신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하십니다」 이왕에 시작했으면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 놓아야 하나님의 위신이 서지 않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계 챔피언 지도자를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는 사탄의 괴수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챔피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탄의 괴수들이 때리고 찢고 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계 챔피언을 보내 가지고 이놈들을 때려부수려는 것입니다. 세계적 이스라엘 챔피언, 천지의 챔피언, 심정 챔피언, 통일 챔피언, 평화 챔피언, 행복 챔피언, 사랑 챔피언을 세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 원치 않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살아 있어 봤자 비료 공장밖에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원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아무리 전술전략을 세워 가지고 챔피언 자리에 서려고 싸워도 챔피언 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악당 무리 가운에 챔피언을 보내 주마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그러한 챔피언으로 오신 메시아입니다. 지금 모두 위신이 졸병 신세가 돼 가지고 허리띠를 풀어 제치고 기운이 다 빠져 죽을 지경에 놓여 있으니 이들을 구해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 사탄세계권내에 천상의 왕권, 즉 챔피언의 권위를 가진 메시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모셔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를 보내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메시아가 오기를 바랐겠습니까, 안 바랐겠습니까? 얼마나 바랐겠습니까? 야곱이 천사와 싸워 이스라엘권을 빼앗을 때에 들였던 그 악착같은 정성과 이스라엘 왕권을 가지고 천지의 악당을 전부 때려잡을 수 있는 세계 챔피언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성을 비교할 때 어떤 것이 더 크겠습니까?

이스라엘한테 메시아가 끌려가야 되겠어요, 메시아한테 이스라엘이 끌려가야 되겠어요? 또 야곱보다 메시아가 못해야 되겠어요, 나아야 되겠어요? 「나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메시아를 맞이하려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정성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할 때 노력하고 피땀흘린 정성보다 컸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가 왔는지 갔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메시아는 왔다가 갔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가 올 수 있는 터전을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있는 힘 다 모아서, 죽을 힘을 다해서 마련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터전은 누구를 위해서 만든 것이었겠습니까? 메시아를 위해 만들었지요?「예」

메시아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세계의 사탄국가를 전부 다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 「하나되어야 됩니다」

레슬링 선수가 링 위에서 자기 나라를 위해 경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수가 자기를 바라는 국민이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국민이 있다면 때려 죽여야 합니다. 이기기를 바라고 그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라면, 열심히 응원하다가 일생에 처음 해 입은 양복이 의자에 걸려 찢어지더라도 `이까짓 양복이야 찢어지면 찢어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또 `내 아버지야 죽겠으면 죽고, 까짓것 내 집안이야 어떻게 되든간에 이 싸움에서 우리 선수가 승리하면 된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체면, 내 위신, 내 경험, 내 발판 등 이런 것을 다 집어 던지고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흥분하여 정열적이요, 모험적이요, 데모적으로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좋았겠습니다」 그런데 헤롯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놓고 `유대인들의 왕이 어디서 나겠느뇨' 하고 물었을 때 유대 나라의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가 베들레헴 성안에 왔든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당신의 교법사 대제사장이었던 녀석들은 모두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들이 앉아 가지고 하는 수작들이 꼴 좋다는 거예요.

그 교법사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한테 적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소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적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소극적이어야 되겠어요? 「적극적이어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적극적으로 자기 남편을 모시고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남편이 안 가겠다고 하면? 「끌고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렇게 끌어서도 안 가겠다고 하면? 「혼자 가야지요」 버리고 가야 합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도 자기 부인이 끝까지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 부인을 차버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주의(主義)입니다. 통일교회 믿으면 가정 파괴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자연적인 법도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는 아내는 아내가 아닙니다. 남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아내가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면 남편도 가서 알아 봐야지. 알아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반대하는 남편은 남편이 아니라 악당입니다. 와보지도 않고 반대를 해요? 그런 것들은 사람 축에도 못 끼는 것들입니다. 그런 사람하고 같이 살아서 뭐 합니까? 그래도 살아야 되겠다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웃음)

김구 선생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처자식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는 자기 아내보다, 자기 자식보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 원칙은 대한민국의 어떤 주권자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요, 어떤 국가도 제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배되면 망합니다. 만일 이것을 쳤다가는 자신이 꺾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몰리는 자리에서도 그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들이 통일교회에 나간다고 그렇게도 반대하던 부모들이 그 아들딸들에게 선생님이 축복을 해줬더니 `통일교 문선생이 나쁘긴 나쁜데 우리 아들딸들의 배필을 저토록 잘 맺어 줬으니 조금 낫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낫다고 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좋으면 됐지요. 그런데도 나쁘다고 생각했으니 회개하라는 거예요. 이래서 부모들이 통일교인 많이 되려고 해요.

요전에 777쌍 축복식을 거행할 때, 어떤 부모들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통일교회 문교주님, 우리 딸의 이름이 아무개인데 좋은 사윗감을 골라 주시기를 진실로 바랍니다' 하더라구요. 나 이것 참 수작은…. 언제 그렇게 됐노?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느 사이에 이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왔어요?(웃음) 세상도 변하기는 변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봄이라는 거예요. 살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재미도 없다면 어떻게 선생님이 살아가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한 장본인

여러분들은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일등으로 빼앗겠다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모시려고 하면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를 모실수 있는 일등을 미리 뽑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준비를 해 놓아야 되겠어요, 안 해 놓아야 되겠어요? 「해 놓아야 됩니다」 그러니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챔피언을 뽑기 위한 챔피언 후보전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유대교는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인데 그러한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줄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동방의 박사들이 먼저 알고 황금, 유향, 몰약을 낙타에 싣고 국경을 넘어와 예수님이 탄생한 곳을 헤롯왕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예수님 태어난 것이 헤롯왕에게 알려졌고, 헤롯왕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제사장, 교법사,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난다고 헤롯왕에게 알려줬는데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여기 혹시 기성교회 목사가 있으면 대답해 봐요.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잘했다고 대답한다면 내가 가만 안 놔둘 겁니다.

통일교인들의 생각은 어때요? 「잘못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가 이 자리에 있다면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할수없습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빠서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하더라도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오면 살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 국가를 중심삼고 챔피언 후보까지 만들어 놨으면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했을 때 달려가야 되겠어요, 안 달려가야 되겠어요?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달려갔어요? 「안 달려갔습니다」 또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몇 천 년만에 한번 오는 귀한 손님, 즉 메시아를 맞기 위한 일등 호텔을 준비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그런데 준비했어요? 「안 했습니다」 예수님을 말구유에서 탄생하게 해 놓고 뭐 `거룩한 메시아 탄생, 이러고 있어요? 거 시시하다는 거라구. 그런 시시한 수작들은 그만두라는 거에요. 이런 사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알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왕자요, 만세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왕자님이 군림하시는데 말구유라니 말이나 됩니까?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준비하고 수고해서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어디 갔느냐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그들은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떠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에 와 가지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치니 이웃에 있는 예루살렘에도 소문이 난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시오리도 못 됩니다. 십리 조금 넘지. 그런 이웃동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인들은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쌓아온 챔피언 후보로서의 선민이란 명사가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게 한 것은 잘한 일이예요, 못한 일이예요? 「못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기가 막혔다는 것에 대해서 상세히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을 당함으로써 구원이 된다면 선민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악당 소굴에 집어넣으며 당장 때려 죽일 텐데…. 그렇게 안타깝게 십자가에 매달아 피를 흘려 죽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 입니까? 하나님이 왜 그렇게 잔인해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런 모든 문제를 분석 비판해 가지고 믿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주먹구구 시대는 지나간 것입니다. 엽전을 가지고 천하를 사고 팔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도 안 되는 패들이 우리가 학사모 석사모를 높이 쓰고 차림새와 거동을 달리 하니 우리를 가짜로 보고 이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아이고, 저 옷이 뭐야? 가짜다. 저 모자가 저게 뭐야? 이단이다. 행차하는 것도 거룩하게 해야지 저게 뭐야? 양반의 걸음걸이가 아니다'라고 하며 별의별 수작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는 어느 것이 진짜입니까?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 중에 누가 챔피언인지 실력대결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대답해 봐요. 누구예요? 「유대 민족입니다」 이런 사실도 모르면서 목사들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려 대고 있으니, 목사들은 섭리적인 뜻을 잘 알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죽으러 왔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4천년 역사를 준비했겠습니까? 예언자들의 예언이 다 거짓말이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예언했어요? 생각도 안 해보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헤롯왕을 중심삼은 이스라엘의 최고 간부들과 가야바를 비롯한 제사장들이 한패가 되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요놈의 예수는 우리들의 모든 생활기반을 빼앗아 갈 위험분자다'라고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예수 그냥 놔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한 것입니다.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예수님을 모시는 챔피언이 되었어야 할 텐데 도리어 에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과 그들이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간이 사탄의 재간보다 못하겠습니까? 나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왔지만 결국 그들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녹음이 잠시 중단되었음)

예수님의 딱한 사정

예수님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발판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틀어 버리고, 가는 곳곳마다 쫓아 버리니 최고의 자리에서 소원을 이루려 했던 것이 다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위 계급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중위계급으로 내려왔고, 중위 계급에서도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천한 계급인 어부 베드로를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미욱한 사람입니다. 요즘에야 기독교인들이 베드로를 사도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맨 말단 계급의 어부로서 고기 잡는 일밖에 몰랐습니다. 고기 잡는다 하는 정신만은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그렇게 우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택한 것입니다.

처녀들에게 남자를 소개할 때 얼굴도 미남이고 괜찮은데 직업이 뱃놈이라고 할 때는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하는 여자가 있어요? 뱃놈이라면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에서도 이러한데 2천년 전의 뱃놈의 형편이야 어떠했겠습니까? 갈릴리 해변가는 황막한 사막지대라 발을 붙이고 앉아 있을 곳도 없는 곳입니다. 더우기 베드로와 그의 장모가 살았던 집은 형편없는 토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을 차지해 가지고 만국의 악한 왕권을 전부 점령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할 주인공이 이런 빈민굴까지 쫓김을 당하여 신세타령을 하게되었으니 잘된 일입니까, 잘못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가 믿는 예수님의 신세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몇시나 됐습니까? 이제 겨우 3분의 1밖에 못 했으니까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가시오. 안 가겠다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라구요. 말은 듣는 사람보다도 하는 사람이 더 힘든 것입니다. 아직 3분의 2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말을 하지 못 하겠어요? 이 이야기를 들어 두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들을래요, 안 들을래요? 「듣겠습니다」 듣기 싫다면 5분 안에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웃음) 그러나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가지겠습니까? 선생님이 언제나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한번 들어 보겠습니까? 「예」 그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번 해봅시다.

자, 예수님의 신세가 잘됐습니까, 못 됐습니까? 「못됐습니다.」 그런데 소위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여 가지고 나온 통일교회가 비록 예수님이 잘못됐다 할지라도 덮어줄 일이지 왜 자꾸 들추어내느냐? 그것은 역사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를 확실히 알아야 새로운 전통을 올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밝혀내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도 이 비통한 사실을 밝혀 주기를 바라시니, 그 뜻을 세워 드려야 할 사명을 짊어진 내가 불가피한 입장에서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성혼시켜 드리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

자, 예수님이 죽기 위해 왔습니까, 살기 위해 왔습니까? 살기 위해 왔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총각이예요, 아저씨예요?「총각입니다」 또 예수님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다」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은 중성이다'라고 큰소리쳐도 여러분의 마음속으로는 전부다 예수님은 남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예수님은 분명히 남자입니다.

그럼 남자인데 감각이나 감정이 모두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무감각적인 남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감각적입니다. 안테나로 말하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 챔피언입니다. 그러니까 안테나가 예민하여 원거리 소식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이니만큼 남자의 감정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있었습니다」 그러면 장가도 가고 싶었겠어요, 안 가고 싶었겠어요? 「가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장가가야 한다고 말하면 기절하여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에게 `당신은 천년 만년 독신으로 살다 죽을지어다'라고 축복하겠다고 해보십시오. 그랬다가는 예수님이 `야 이녀석아' 하며 주먹으로 칠 것입니다. 한번 물어 보자구요. 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치겠습니다」 치게 마련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장가가고 싶었을까요, 안 가고 싶었을까요? 「가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되어 봤어요? 그저 `가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거예요.(웃음)

예수님이 장가를 간다고 한다면 어떤 색시를 얻겠어요? 이제부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미인을 얻겠습니까, 추녀를 얻겠습니까? 「미인을 얻을 겁니다」 미인 중에서도 왕족 미인이겠어요, 노동자 미인이겠어요? 「왕족 미인일 겁니다」 그 나라 주권자의 천하일색인 외딸을 색시로 얻겠다고 한다면 죄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그러면 헤롯왕이나 대제사장 가야바의 맏딸이 예수님과 혼인잔치를 벌였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가야바가 예수님을 잡아 죽이자고 선동했겠어요, 살리자고 했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살라자고 했을 겁니다」 햐, 내가 그때 있었으면 예수 장가 보낼거라.

그런데 예수님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으면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낙망이요, 절망이요, 탄식이요, 하소연이요? 그것은 낙망이요, 절망이요, 탄식이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노총각이신 예수님 장가가라고 권했다면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좋았겠습니까? 「좋았을 것입니다」

자, 솔직히 얘기해 보자구요. 베드로, 야고보와 같은 12제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보리개떡만 먹는다며 배고픈 타령만 했지, 예수님 장가 보내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연구하고, 결사적으로 중매하는 놀음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런 놀음을 했었다면 예수님이 그들을 미워했겠어요, 사랑했겠어요? 「사랑했겠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또 예수님의 중신아비가 됐으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중신아비는 누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장가 갈 수 있는 상대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신아비를 원할 때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종이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형님이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정적인 면으로 보게 되면 이왕지사 될 바에야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됐으면 예수님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노총각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자식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해야 됩니다. 자식의 허리띠를 붙들고 장가가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한번이라도 그렇게 해봤습니까? 해봤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부모의 책임을 다했습니까?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더벅머리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목수의 조수 노릇을 하던 예수님은 자신이 처량했겠어요, 신이 났겠어요? 처량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게 되면 참 재미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왜 갔습니까?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갔느냐는 것입니다. 병이 나서 나갔습니까? 기성교회에서는 여기에 얽혀 있는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은 거룩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하는 수작들은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으로 세운 것이 유대교요, 유대교를 믿는 씨족 가운데 선민을 대표할 수 있는 씨족으로 세운 것이 요셉과 사가랴 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모시고,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택해 놓은 대표적 씨족이 요셉 일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모셨습니까? 해원성사라는, 천륜에 의한 사명과 뜻을 펼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예수님의 가슴에서 끌어내어 협조하기 위해 노력했느냐 할 때,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하나의 남성으로 왔기 때문에 역사적인 하나의 여성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일천 남자 중에서는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 7:28)"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여인을 찾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뇨?'라고 결론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열매인 예수님이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서는 엉클어져 누더기 판이 된 역사시대의 모든 실패의 요인들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그 실패의 요인으로 생겨난 천사세계의 비운의 감옥인 지옥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구세주의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예수님의 역사적인 사정을 꿈에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예수님이 그릇된 역사적인 허물을 바로잡아 가지고, 그 기대 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했던 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믿고 마리아를 맞아들인 요셉

4천년 공적의 터전 위에 세워진 요셉의 씨족 중에 `당신의 뜻이 무엇이며 당신의 숨은 내정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요셉과 마리아가 누구보다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입장에서 사정 중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느냐는 거예요. 요셉은 의붓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통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잘 들어 보세요.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을 했는데 마리아가 아기를 배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아이고 잘했구만' 이럴 남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덮어 놓고 믿지 말고 족보를 파헤쳐 가지고 확실히 알고 믿자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의 뱃속에는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셉이 용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칼날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 요셉이 이 소문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철렁했겠습니다」 얼마만큼 철렁했을까요? 천지가 아득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고민이 생긴 거예요. 율법에 아이 밴 처녀는 돌로 때려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요셉이 발을 빼면 마리아는 옥살박살될 것이고, 그냥 모른 체하자니 남자인 자기의 마음이 죽을 지경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요셉의 심정이 죽을 지경이었겠어요, 살 지경이었겠어요?

여러분이 한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의 아내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죽을 지경이겠습니까?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을 겁니다. 그 지경이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겠다고 세수할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세수가 다 뭡니까?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며 축 늘어졌을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서…. 천사가 나타나더라도 대낮에 나처럼 이렇게 눈을 뜨고 물을 쭈욱 마시고 있을 때(물을 마심) 나타나서 `문선생, 당신 마누라가 지금 아이를 뱄는데 안 데려오면 즉살맞을 것이오' 이렇게 말했다면 알아들을 만도 하고 그렇게 할 만도 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하고 반문하면 `그것은 이 다음에 아이를 낳은 후에 잘 설명해 줄 것이오. 그렇지만 이 일은 당신의 가문에 천세만세에 걸쳐서 하늘땅의 그 누구보다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시오. 그때 가서 결혼식 안 올리면 될 것 아니오' 라고 말했더라면 그거 멋진 일이라고 하며 한번 기다릴 만하지요. 걱정거리 다 잊고 한번 기다릴 만하지 않아요? 나 같아도 기다리겠습니다. 그거 가능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했더라면 요셉도 의인이기 때문에 `얼싸 좋구나'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사는 이렇게 물 마시고 있을 때, 이런 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꿈 가운데 나타나서 `요셉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너라'고 슬쩍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누가 믿겠어요? 누가 해명해 주느냐 말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경지에서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요셉은 의인이었습니다.

꿈 중에는 개꿈이 있고 사된 꿈이 있고 그럴 듯한 꿈이 있고 빙자꿈이 있고 진짜 꿈이 있는데, 진짜 꿈은 수십 번의 꿈 가운데 한번 있을 둥 말둥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남자들 같으면 가슴이 터질 판인데 그런 꿈을 믿고 정혼한 처녀의 집에 가려고 생각하겠어요? 가려고 하면 발이 꼬여 죽을 지경일 거라구요. 그렇지만 요셉은 꿈을 믿고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그걸 보면, 요셉이 내심으로 이스라엘 나라에 하나님께서 보내 주마고 약속하신 메시아가 올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검부러기만 바람에 날려도 그것을 통하여 하늘의 소식이 있기를 기다릴 만큼 내면적 심정이 두둑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요셉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를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여러 모로 곤란했던 마리아

요셉은 그것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고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데려오긴 했지만 기왕이면 또 한 번 가르쳐 주고 두 번 세 번 꿈속에서 매일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요셉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는 거예요. `남아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일언은 몇억천금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지 시시하게 솔개 새끼처럼 자꾸 다짐해서야 되겠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한번 가르쳐 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은 마리아의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가 사내애인지 계집애인지 몰라도 대관절 누구의 아이일까 하고 궁금했겠어요, 안 궁금했겠어요? 여기 목사 양반들 있다면 대답해 보세요. 만약 목사의 부인이 그렇게 됐다고 할때, 거룩한 하늘나라에 가겠다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부인에게 묻겠어요, 안 묻겠어요? 안 묻겠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묻겠습니다. 물어도 직격탄으로 물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때요? 대답해 봐요. 「묻기 마련입니다」 남자들은 어때요? 「묻겠습니다」 묻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가슴속에 궁금증이 일고 염려대상이 되는 이 사건이 멍울져 남아 있는데 마리아에게 물어봤겠어요, 안 물어봤겠어요? 「물어봤겠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순하고 사랑스런 표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어조로 `하나님은 이렇게 가르쳐 주었고, 또 뜻이 있는 줄 알고 있지만 대관절 아기를 배게 한 사람이 누구요?'라고 물어봤겠지요?

그렇게 물어볼 때 마리아의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사실 그런 질문은 응당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난 몰라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어요? 요셉은 마리아의 생명의 은인인데 그럴 수 있었겠어요? 아니면 `예, 애기하지요' 그랬겠어요? 마리아의 신세를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떠했겠나. 틀림없이 낑낑거리며 안절부절 못했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심정이 통할 텐데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랬겠습니다」 여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면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래, 그것이 대답할 수 있는 내용입니까, 아닙니까? 만일 대답하는 날에는 천지가 요동을 치고 세계가 뒤집히고 일족이 망한다면 아무리 요셉이 물어 본다고 하더라도 대답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그만큼 할 자신이 있어요? 「예」 그러면 입을 어떻게 다물어야 되겠어요? 입술 선이 안 보이게끔 꽉 다물어야 하겠지요?

옆에서 입을 꽉 다무는 마리아를 보고 있던 요셉의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참 좋은 아내를 맞았구만' 그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리고 물어 보는 말에 대답을 안 하고 있는 마리아를 보고 요셉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여보, 누구 애기요?'하고 또 물어 봤겠지요. 그래도 대답을 안 하니 세 번째 물어 볼 때는 노기를 띠어 가지고 `당신 정말 말 못하겠어?' 하고 물어 봤겠지요. 그러니 가정불화가 일어났겠어요, 안 일어났겠어요? 사나이가 한번 물었다가 대답을 못 들으면 기분 나쁜거라구요.

그렇기 되니 방안에 들어가서도 요셉이 버티고 앉아 있으면 마리아가 똑바로 앉을 수 있었겠어요? 요셉이 마리아를 쳐다보는 시선이 옛날같이 다정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러한 판국이나 요셉과 마리아가 수많은 언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볼 때, 혼사날이 지났는데 요셉이 혼인잔치도 안하고 처녀를 데려와 사는 것도 수상한데 매일 싸움을 하니, 요셉이 순한 사람인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구만 해 가지고 쑥덕공론을 벌였을 겁니다. 그렇게 십개월을 보내는 동안 마리아가 예수님을 낙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저기 저 아저씨 같으면 가만 놔뒀겠어요? 때리겠어요, 안 때리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대답을 못하는 것 보니까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뜻이군요.(웃음) 그럼 요셉에게 매맞고 산 마리아가 분했겠어요, 안 분했겠어요? 분했겠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면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누가 썼습니까?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썼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썼습니까? 제자들이 썼지요? 그러니 그들이 `우리 선생님은 이런 나쁜 흠을 가지고 있었다'하고 쓰겠어요? 좋은 것만을 죽 쓰다가 나쁜 흠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게 될 때 할 수 없이 아주 조금만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안팎으로 엇그러진 곡절들이 기록이 안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한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조상중에 강도가 있으면 그 조상의 이름도 족보에 기록해 놓아야 올바른 족보가 되는 것입니다. 족보가 틀렸기 때문에 이 틀어진 족보를 바로잡기 위한 챔피언이 통일교회 문선생인 것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이치가 통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안 통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자, 요셉이 마리아의 뺨을 때렸겠어요, 안 때렸겠어요? 왼뺨 오른뺨을 다 갈겼을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왁자지껄한 판국인데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하며 싸우는 소리가 동네에 소문이 났다는 거예요. 그러니 요셉의 친구들이 `요셉아, 네 안 사람이 이렇게 됐다는데 어떻게 된 사실이냐'고 물어볼 때 요셉이 부끄러워했겠습니까, 안 부끄러워했겠습니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열 달씩이나 끌고 나간 걸 보면 요셉은 배짱이 있는 사나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일을 저질러 놓고 결과를 기다려야지 열 달 동안 망신을 당했으니 요셉이 결단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니 그 사회에서 못난이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친구들이 `야, 요셉아. 들리는 말에 의하면 네 마누라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데 사실이냐?'할 때 요셉이 어땠겠어요? 얼굴이 빨개졌겠어요, 안 빨개졌겠어요? 우물쭈물하며 뭐라고 변명을 하더라도 표정에 다 나타냈고 행동으로 다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소문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그러면 요셉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 소문을 안 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야 요셉아 이런 소문이 들리는데 어떻게 된거야?'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글쎄 어머니, 모르는 소리 마세요. 소문이란 믿을 것이 못 되잖아요?' 하면서 당당히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또, 동생들이 `형님 이런 소문이 들리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하고 물어 봐도 `형님이 하는 일에 무슨 상관이야'하고 대답하고, 형님이 물어 봐도 `왜 나를 자꾸 못 살게 굴어요' 하면서 버텨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배짱으로 버텨 나가기에는 너무나 자신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어오니 답변을 우물쭈물했을 것입니다. 배짱이 있는 사람도 우물우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문이 쫙 퍼졌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이 가당한 말입니까, 부당한 말입니까? 「가당한 말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것없이 가당한 말이라고 결론을 안 내린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심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런 상태에서 7개월쯤 되어 불룩해진 배를 내놓고 바깥에 나갈 위신이 서겠습니까, 안 섰겠습니까? 사생아를 밴 마리아의 신세가 처량합니까, 당당합니까? 「처량합니다」 그렇게 처량한 마리아가 철면피 같은 마음을 가져 가지고 문을 활짝 열고 나가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 하였으니 나에게 와서 인사할지어다'라고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끄러워서 방을 나갈래야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화장실까지도 방안에 있으면 했을 것입니다. 구들장을 파고 살 수 있었으면, 이불을 쓰고 잊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늘로 날아 올라가 도망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 마리아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마리아는 예수님과 요셉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다

아기를 낳자니 뭇사람들이 쳐다볼 것이고, 명문의 딸이 사생아를 배어 배가 불룩해 가지고 뒤뚱뒤뚱 걷는 것을 그 부모들이 볼 수 있었겠습니까? 체면과 위신을 모를 리 없는 마리아는 그렇다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다고 했으니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연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고독한 심정을 홀로 부등켜 안고 여자로서의 최고의 사지권(死地圈)에서 허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이 군중 앞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정이 못 됩니다. 내가 아기를 낳아야 한다면 나그네 신세도 좋고, 짚시의 신세도 놓으니 국경을 넘는 일이 있을지라도 이 지역을 벗어나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했을 겁니다. 일구월심 이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호적하러 가는 길에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뜻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후대하신 사랑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이래서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으면 부모는 손주를 보았으니 기뻐하고, 형제와 친척들은 모두 기쁨으로 환영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입장이 안 되어 있으니 예수님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헤롯왕이 예수님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려주어 애급으로 피신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등지고 애급에 가서 3년 동안 지내다가 헤롯왕이 죽은 후 다시 갈릴리 해변가로 돌아와 살면서 예수님은 남모르는 성장과정을 거쳐 왔던 것입니다. 의붓자식의 몸으로 태어난 예수님이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편안한 생활을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정이 틀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정을 하나에서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알아줄 수 있는 가정이 못 됐던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사정권내에 살면서 남편 요셉을 바라볼 적마다 과거의 모든 일들을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품고 요셉 앞에서 자랑스럽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입장이 못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엇갈리는 심정을 예수님이 자라면서 체득하게 될 때에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가서 앉으려 해도 요셉의 눈치를 봐야 되었던 것입니다. 의붓자식은 의붓부모를 안 따르는 법입니다. 또한 동생들한테까지도 환영받지 못하는 판국이 벌어지게 되니 예수님이 얼마나 고독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서 세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누구를 위해서 세운 것이냐? 예수님 하나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하여 유대 지파의 요셉 족속을 택한 이유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를 택해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고,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진정한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깊은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가 금후의 할 일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과 의논하면서 요셉과 예수님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 가정에서 예수님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주도적인 역할은 예수님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과거로부터 요셉과 엇갈린 심정이 누적되어 있는 사정에 몰린 마리아는 알면서도 요셉의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보셨습니다.

예수를 모시고 하늘의 법도를 세워야 했던 요셉 가정

본래 요셉 가정은 예수님을 모시고 하늘의 법도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왕자를 모시는 마리아는 어떠한 사람이냐?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지만 하나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딸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해와 자체가 완성하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결과 밑에서 딸로 결정되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종의 몸을 빌려서라도 아들의 씨를 남겨야 했습니다. 그런 운명에서 종의 입장인 마리아를 통하여 비로소 하늘의 왕자가 나왔던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가 나왔으면 그 다음에 하늘의 왕녀가 있어야 할 텐데 왕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리아가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이냐? 종에서 딸로, 딸에서 어머니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본따 가지고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마리아도 창조원칙에 의하여 예수님을 따라 복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소원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형과 누나가 있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쌍하게도 세상에서 믿을 수 없는 종의 몸을 빌어서 나왔기 때문에, 그래도 예수님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마리아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가지고 천만사의 죽음길을 가더라도 하늘의 왕자인 그 아들이 거동할 수 있게 가정이면 가정, 사회면 사회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천도를 세울 수 있는 생활의 법도가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에서 벌어져야 되고, 그 사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리아는 요셉을 끌고 들어와 예수님의 뜻에 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책임이었지만, 마리아의 입장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입장이 아니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환경에 몰려 있었습니다. 요셉을 버리고 뜻만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요, 자기의 아들딸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라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가운데에서 예수님 홀로 때와 사명을 다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마리아는 하늘의 생활적인 규범을 중심삼고 종의 몸으로서 아들이 갈수 있는 하늘의 규범을 세워야 되고, 딸이 갈 수 있는 하늘의 규범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왕자 앞에 있어서 왕녀로서 계대를 이을 수 있는 접붙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접붙임을 받는 것은 아담의 몸을 통해서 해와가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과 예수님의 사상과 예수님의 소원에 마리아가 일치되어 복귀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이런 일을 심고 거두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신부를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마리아의 정성의 터전 위에 결정해 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리아를 붙들고 눈물 흘리면서 당신은 천륜에 의해서 나와 인연 맺어졌기 때문에 하늘 뜻을 세워야 한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받아 들여 가지고 협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를 갖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땅 위의 어머니로서 누구보다도 하늘의 은총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종의 몸이지만 종 중에서 최고의 사랑을 하늘 왕자로부터 받아야 할 어머니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입장에 마리아가 서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30세에 집을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년 생애를 살아오면서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다하기를 기다렸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허송세월을 할 수 없어 30세 때에 공적인 노정을 출발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재차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종족 편성에 나선 것입니다.

누가 나의 모친이요 동생이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생명을 내던지고 죽음길을 향하여 어떤 일이든지 주저하지 않는 무리를 형성하여, 그 권내에서 마리아가 책임하지 못한 모든 실수의 내용을 다시 수습하기 위한 노정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마리아는 이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집을 떠난 뒤 처음 어머니를 만난 곳이 물로 포도주를 만든 역사를 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집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와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남의 잔치에 와 가지고 잔치 준비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없느냐? 아들이 서른이 넘었는데 천륜에 따라 가정을 갖도록 상대를 정해 주어야 할 본연의 책임을 상실해 버리고 남의 잔치집에 와서 포도주타령만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이요 한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역사가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한테 와 가지고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찾나이다 할 때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이 누구뇨?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나의 모친이요 동생이다(마 12:48-50)'고 했습니다. 마리아와 동생들이 하나님 뜻대로 했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못 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요셉과 마리아는 열두살된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는 수모와 역경 가운데서 천대를 받으며 자라나온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남겨 놓고 갔다가 사흘 후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거리는 삼백리가 넘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가 역사적인 한을 품고 길러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예루살렘에 남겨 놓고 사흘길을 그냥 따라가겠습니까? 그런 어머니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돌아가려는 순간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자기 집안에 문제가 벌어지고 예수님이 불화의 화근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서 데려가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요셉의 눈치를 보며 모르는 체 떨어뜨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따라가는 마리아의 에이는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집에 가는 도중에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동네에 소문이 날 것 같아 할수없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찾아 성전에 가보니 예수는 제사장, 교법사들과 성경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보고 여기서 뭘 하느냐 할 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말했습니다. 반발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의 안개 속에 흘러간 예수님의 슬픈 사정을 그 누가 알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의 품에 안길 수 없었고, 아버지가 있어도 품에 안길 수 없는 의붓 아버지요, 형제가 있어도 의붓 형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늘 왕자로 와 가지고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는데 요셉 가정에서 이렇게 엇갈리는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소문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의 강원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니 소문이 안 퍼지겠습니까? 그렇게 소문이 퍼지게 되니 예수님은 어디를 가나 유대교의 반대를 받고 이스라엘 나라의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적인 혈족으로 요셉 가정을 세워 그 터전 위에 예수님을 중심적인 존재로 보냈지만 그들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잃어버린 예수, 민족을 잃어버린 예수, 교회를 잃어버린 예수, 친척을 잃어버린 예수, 부모를 잃어버린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이루어 드려야 할 기반까지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디 가서 그 기반을 닦을 것이뇨? 그 기반을 닦기 위해 무지몽매한 사람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삼고 수고했던 예수님의 내적 고심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밀밭 사이로 가다가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할수없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은 이러한 것들이 선동적인 요인이 되어 가지고 국가의 반역자, 민족의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비운의 십자가노정을 걸으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뜻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다 이루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형제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친척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교회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나라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본래 나라의 사랑, 종족의 사랑, 교회의 사랑, 친척의 사랑, 부모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한 그 말이 뜻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기가 막힌 일입니다.

예수님은 민족 해원의 길이 먼 역사적 거리를 두고 연장될지라도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노정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십자가의 노정을 통해서 이스라엘권을 중심삼고 소망의 출발을 하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소원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와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4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원이 왕창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다음엔 누구의 한이 맺혔느냐? 예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또 그 다음엔 메시아를 맞이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한이 맺혔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철천지 한이 맺혔고, 하나님의 가슴에 못이 박혔기 때문에, 낙원에 가서 때를 기다리며 2천년을 보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한을 풀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면서 기독교는 2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의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죽음의 피를 뿌리며 나온 것입니다. 피로 물들이지 않고는 구원의 도리를 남길 수 없는 역사적인 인연을 연이어 가지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이룬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님편에서 볼 때는 예수님의 한이요, 이스라엘 나라로 볼 때는 이스라엘 나라의 한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예수님의 한, 이스라엘의 한

땅 위에 하나님의 주권국가의 발판으로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주권국가의 발판을 잃어버렸고, 이스라엘 민족도 산산조각이 나서 2천년 동안 세계를 유리고객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2차대전 당시에 히틀러에 의해 6백만 유태인이 학살된 것도 예수님을 죽인 죄로 말미암은 민족적인 탕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 벌어졌지만, 하나님의 환영과 천사세계의 환영과 만민의 환영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앞에 햇불의 권한을 자랑해야 할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몰아내고 예수님을 죽인 죄로 말미암아, 옛날의 원수 나라인 아랍권에 둘러싸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자기 나라보다 모든 면에서 몇십배가 넘는 아랍권을 누르지 않고는 이스라엘권을 찾을 수 없는 비운의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의 뜻과 세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평화의 때를 맞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하나님의 한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까지도 하나님의 한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는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과 세계 인류의 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이 뭐냐?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유대교가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요셉족속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되어 가지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이 예수님을 사랑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 중심삼고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재현시켜 가지고 다시 이루지 않고는 이 한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한이 뭐냐? 그것은 예수님이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족속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유대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이것들도 한이지만 가장 큰 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어 진실된 심정을 가지고 사랑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은 예수가 사랑받지 못한 것이요, 예수님의 한은 사랑받지 못한 것보다도 진정으로 사랑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의 한은 무엇이냐? 교회를 잃어버린 것이요,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요, 갈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는 예수님의 아들딸을 못 모신 것이요, 예수님의 손자를 못 모신 것이요, 예수님의 씨족을 왕족 중의 왕족으로 모셔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예수님의 혈족을 남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한입니다.

예수님도 할아버지가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 사랑의 인연을 땅 위에 남겨 놓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한은 세계 인류의 한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혈족을 지상에 맞아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뜻을 중심삼고 전부 수습해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갈 길

오늘날 유대교회를 대표한 입장에 선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한을 풀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또 대한민국은 옛날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 미국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독립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는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였지만 미국은 원수의 나라가 아니라 천사장 국가입니다. 천사장이 아담을 반대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기독교 문화권에 있는 미국이 아담 국가인 한국과 하나되는 주권회복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주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천사장에게는 복귀하여 아담의 주권을 찾아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유엔군이 진주함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주권의 기원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을 풀어야 하고, 유대교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임을 짊어진 것이 기독교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기독교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유로이 출발했더라면, 해방 이후의 25년 수난기간이 없었을 것이고, 북한 공산당의 마수가 남침을 노릴 수 있는 역사적인 결과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이기만 했더라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40대에 미국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50살이 넘어 가지고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반대를 받은 예수님이 이방인 애급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대한민국의 반대를 받은 선생님도 예수님이 걸었던 길을 되풀이하여 원수국가인 이북 공산당의 소굴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이북에는 세계적인 원수인 공산당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북에 들어간 것은 세계적인 원수권내에 들어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남한 땅을 복귀하기 위해서 맨 밑바닥 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민족의 거지떼거리 같은 것들한테 핍박받고 밟히면서 처량한 역사의 운명을 거쳐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반대를 받으면서 이방 종교로서 원수의 무리들을 수습하여 가지고 기독교권을 형성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말단 종교로서 출발하여 민족과 기독교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서 거슬러 올라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비운의 행각을 거쳐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아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밟히면서도, 또 죽음길에 몰리면서도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없었다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자유당 정권, 민주당 정권, 공화당 정권 이렇게 3정권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 3국의 핍박을 받고 세계의 수많은 무리 앞에 핍박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한 그늘 아래서 반대받는 터전을 통하여 가지고 개척의 일로는 물론, 발전의 일로를 거듭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70년대에 들어와서는 통일교회가 기성교회와 동등할 정도로 기반이 갖추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챔피언이 될 수 있나 실력대결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망해 없어질 줄 알았던 통일교회 문선생이었지만 이렇게 서울 도성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대한민국이 우리 통일교회를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기독교가 통일교회 문선생은 나쁘고 통일교회는 분명히 사탄이지만 통일교회가 하는 행동과 신념과 적극적인 전도 방법은 배워야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니게 될때 비로소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점심때와 같은 때입니다. 시계를 보기 전에는 점심때가 언제 넘어가는 줄 모르게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도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고 마는 시대인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까 넘어가 버렸다고 하는 이런 후회의 행각을 거듭하는 때가 역사적인 교차점인 1970년대인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는 세계를 위해서 모인 제단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요, 천운을 맞이해 가지고 기성교단과 역사의 뒤안길에서 종교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권한을 갖고 나온 제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이스라엘의 한을 해원해야 되고, 인류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이것들을 해원하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갈 길이 막혀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려면

오늘 1971년도를 맞이한 연두에 있어서 우리들이 반드시 다짐해야 할 것은 뭐냐?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의 핵심이요,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주님의 사상을 하루 빨리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10개 국을 중심삼은 터전 위에서 우리는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권을 연하는데 책임 다하고,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표방하기 위한 것이 이번 777쌍 결혼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이스라엘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 나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요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식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식구가 되어서 요셉 종족권을 만들어 이 민족의 친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끼리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전부다 한 족속, 한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입니다.

요셉 가정에 있어서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 못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 종족의 기원이 파탄되어 버렸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차 종족을 편성하여 하나님의 억천만세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내 생명을 바치고 내 가정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를 위하여 민족 해방의 기수의 사명을 하여 세계 만방의 인류 앞에 새로운 천국 이론을 제시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요, 그것이 통일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한을 해원할 수 없는 것이요, 이스라엘의 한을 해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위해서 이런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은 나라를 대표한 축소체요, 종족을 대표한 축소체요, 교회를 대표한 축소체입니다. 즉, 가정을 대표한 축소체, 부모 형제를 대표한 식구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식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보다 못해 가지고는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여러분들은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엇이 나아야 하느냐? 식구끼리 하나되는 것이 예수님보다 나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종족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중심삼고 종족이 하나되었습니까? 못 되었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되어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럼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중심 존재라면 선생님이 이렇게 하자 할 때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예수님 대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가 나라로부터 사랑을 받아 봤습니까? 기성교회로부터 사랑을 받아 봤어요? 「못 받아 봤습니다」 못 받아 봤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외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기성교회보다 못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기성교회는 뜻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유대교보다 못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들보다 못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 나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 나은가?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부인들을 전도 일선에 내보내고 기분 좋아하는 패들입니까, 나빠하는 패들입니까? 「좋아하는 패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이 갖지 못했던 식구를 가졌고, 예수님이 갖지 못했던 친척을 가졌고, 예수님이 갖지 못했던 통일교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뭘 해야 되느냐?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한을 해원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종족을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정을 대표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예수님을 미칠듯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친척으로서 서로 미칠듯이 사랑하자

통일교회를 알게 되면 미칠듯이 반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말들어 보았어요? 통일교회에 가면 전기장치를 해서 사람을 홀린다는 말은 들어 봤지요? 그거 홀려야 돼요. 예수님한테 홀렸으면 망할 징조예요, 흥할 징조예요? 「흥할 징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좋아합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체하는 것인지, 진짜 좋아하는 것인지 선생님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을 좋아합니까? 「예」 얼마나 좋아합니까? 자기 목을 내놓고 가라고 해도 선생님을 따를 수 있어요? 「예」 여러분의 목을 잘라 버려도 좋아요? 그래도 선생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그럴 수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손을 드니 내가 이렇게 땀을 흘려도 괜찮습니다.(웃음)

이제 우리에게 기쁜 것이 뭐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식구가 생겨났으니 천상천하에 슬픔의 본원지가 되었던 탄식의 기원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나이가 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형이 되는 것이요, 아저씨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저씨가 되는 것이요, 아주머니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주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할머니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요, 할아버지의 연령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요, 동생 나이가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동생이 되는 것이요, 누이 나이가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누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통일의 사랑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민족 대신, 종족 대신, 교회 대신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종족과 교회와 부모를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것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통해서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친척입니다. 예수님의 친척이기 때문에 예수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동생으로서 미칠 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생명을 다 투입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령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전체가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북한 사람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나라와 교회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세계적인 친척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미국 식구도 있지만 이들이 우리집에 가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식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좋습니다」 국경을 넘고, 민족을 넘어 한 식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자기 스스로 예수님 이상 식구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요, 하늘나라 교회의 교인이 될 수 없는 것이요, 통일가의 식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체휼하여 `어허둥둥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산하(山河)여 머리를 들어 나를 봐라. 천상의 모든 뭇영인들이여 나의 기쁨을 본받을지어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고 이렇게 유복하고 이렇게 행복스런 환경에서 나는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내 사랑은 참이니라!'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식구를 높이 들고, 교회를 높이 들고, 나라를 높이 들어 하나님 앞에 열매로서 바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 할아버지를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아저씨나 형님이 있거든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미칠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한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천정과 인정이 하나되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교단을 만들자

예수님은 부모 협조의 인연을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가진 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오늘날 이 한을 풀기 위해서 통일교회에서 여러분들이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가지기 위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아내는 예수가 갖고 싶었던 아내요, 그 축복을 받아 낳은 아들딸은 예수님이 갖고 싶었던 아들딸이요, 가정은 예수님이 갖고 싶었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가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본받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을 총합하여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적으로 패배한 이스라엘을 다시 찾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류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승리의 주체를 중심삼은 부부와 가족과 일족과 교회와 나라의 성사를 바랄 수 있는 승리권이 통일교회에서 확정됐다는 사실은 천륜의 운세가 우리 통일교회에 같이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오늘 어머니가 말하기를 이상한 일이래요. 뭐냐하면 선생님의 성혼식이 60년도 음력3월 16일, 양력으로는 4월 11일에 거행되었는데 금년에도 음력3월 16일, 양력으로는 4월 11일이라는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들어맞는 것이 신기합니다.

금년에 가정적 운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비운의 독신 행각의 노정을 넘어서 가정의 평화와 왕국을 향하여 진출할 수 있는 70년대를 향했다는 사실은, 7단계의 안식 기간을 넘어 가지고 8단계로 넘어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막연하였던 지상천국을 과연 우리 통일교회 통일관, 실천관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겠느냐?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다면 무엇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 인류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이웃끼리 사랑하던 입장에서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미국을 가나 영국을 가나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져서 세계화된 것이 지상천국입니다. 오늘날 지상천국이 어떠한 것인지 잘 몰랐지요? 이렇게 된 것이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자는 예수님 대신이 되어야 하고, 여자는 예수님 신부 대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연령을 넘은 남자들은 예수님의 형님이 되고, 예수님의 아저씨가 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할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여자들도 예수님의 연령보다 많으면 예수님의 누나가 되고, 예수님의 아줌마가 되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할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일가 친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디에 가든지 한자리에서 떨어질 수 없는 천륜 천애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정과 인정이 통일되고 영원히 여기에서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 교단이 된다면 그 교단은 날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은사가 가중되어 가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것이 천지의 기원이요, 영생의 기원이요, 영세토록 흥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기원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무리가 되라

이 나라 이 민족은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재봉춘(再逢春)되어 나타난 민족입니다. 그러한 민족이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님들인 것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피눈물을 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런 진실된 사랑을 받게 되면 거기에 더 플러스시켜 가지고 우리에게 복을 옮겨 주는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먼저 맞고, 위해 주고, 사랑해 주고 나서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하십니다. 사탄세계에서 강제로 빼앗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고 맞고 희생하며 죽음을 당해 가지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하지 않고는 세계 평화의 기원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국 강토에서 횡적인 세계를 향하여 이미 진군하고 있고, 출동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중심과 연결되어 있는, 기쁘고 행복스러운 이때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때는 한번 가면 억천만세가 지나더라도 다시 오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 때에 복귀의 국가적 한계권내에서 벌어지는 이것이 새 세대와 새 천국시대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고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보탬이 되고 사랑의 요건을 남기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고생해야 하고, 누구보다도 희생해야 하고, 누구보다도 죽음의 경계선에서 앞장서서 하늘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잘사는 사람이 복받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못살고 망하고 쫓기고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 복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 앞에 어려운 환경이 닥치더라도 도망가지 말고 부딪쳐 나아가야 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이 나오는 것이요, 집안이 어려울 때 효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전통은 하늘세계나 사탄세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좀더 어려운 길을 자청해서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세계를 대신해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게 되고, 모든 한이 풀리고 하늘의 왕권과 승리의 영광을 우리 통일교회가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틀리면 선생님 목을 자르세요. 이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수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죽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 죽으면 죽었지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하여 진군하고 용진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며 그가 남기고 간 서글픔의 한을 풀어 주려는 의미 있는 무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 대신 모든 여건을 승리의 결과로서 나타내 주길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게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할 사람들은 손 들자구.

기 도

아버님!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의 한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한이 무엇인지, 이스라엘의 한이 무엇인지, 인류의 한이 무엇인지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예수 가정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졌던 모든 것을 식구의 사연 가운데 재현시켜 탕감하기 위한 충효의 도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 목적도 이것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죽은 것도 이것을 성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필코 죽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세계적인 판도를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평면적으로 진군할 수 있고 총출동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사옵고 부끄러운 전투가 아니라 영광의 전투를 할 수 있는 때가 왔사옵니다. 힘과 기력을 다하여서 71년도에는 아버지 앞에 더더욱 충성하고 효도하는 모습이 될 것을 약속하였사오니 이 약속을 받아 주시옵소서. 부디 그 마음과 몸을 친히 당신의 장중에 두시어서 최후의 승리를 결할 수 있는 아들딸의 인연을 고이 남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1년 들어 첫번째 맞는 이 거룩한 성일을 저희들이 찬양하고,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같은 은사로서 품어 주시옵고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해원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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