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0년도에 있어서 마지막 성일이옵니다. 이 날을 맞아 이 아침에 이렇게 모였사오니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임하시옵소서.
한 많은 복귀도상에서 당신이 얼마나 참으셨으며,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얼마나 억울하셨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타락의 후손인 저희들이 당신께서 수고하신 공로로 말미암아 오늘 은사를 받는 이와 같은 자리에 있게 되었사오니, 저희들은 당신 앞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느껴 사죄할 줄 아는 마음에 벅차야만 되겠사옵니다.
이제 1970년도도 다 기울어 가는 이 순간이요, 이해에 있어서 마지막 성일을 맞이하는 이 아침이옵니다. 당신께서는 이해에 저희들을 위해 염려하셨던 모든 것이 기쁨의 결과로 맺혀질 수 있는 한 날이 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되어 있지 못한가를 확실히 명시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살펴 주시옵소서. 당신이 보시기에 저희들에게 옳지 못한 것이 있으면 안팎을 깨끗이 분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당신께 흡수되고 당신과 일체화됨으로써 저희들의 모든 것이 가꾸어져서, 당신께서 찾아오시던 하나의 모습으로 맞아들여질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특권적인 은사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이 한 해에 바라던 모든 일들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시는 가운데 무난히 해왔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4일을 남겨둔 이해의 끝을 바라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1970년 초에 다짐하였던 `승리적 통일전선'이란 엄청난 과제를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무엇을 제시해 드렸으며 무엇을 봉헌해 드렸는가를 다시 한 번 스스로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연두에 새롭게 각오하였던 것을 저희들이 당신 앞에 바쳐 드리지 못하였을진대, 당신 앞에 면목없는 부끄러운 자신이 된 것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또다시 당신의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과 동정의 마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마음과 몸을 친히 살펴 주시는 아버님이여! 저희의 마음 가운데 있는 사악한 죄악의 쓴 뿌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해 주시옵소서. 당신이 직접 저희의 몸과 마음에 거하실 수 있는 하나의 성전을 완성하고, 당신의 목적과 당신이 현현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완비하여 바쳐 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당신을 성전에 모실 수 있는 주체가 되게끔 각별히 성별하여 주시고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 놓고 낱낱이 비판 분석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금년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이 성일을 넘기고 새해의 첫 성일을 맞이할 때까지를 중대한 성별기간으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기간이 당신이 바라는 새로운 시대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과 딸의 마음을 저희들에게서 느끼시어서 손에 손을 잡게 하시고, 마음에 마음을 연결시키시옵소서. 저희들 전체가 모두 하나의 아들과 딸의 모습을 갖추어, 에덴에서 맺혔던 당신의 한을 풀어 드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실체들로 바쳐질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날도 서울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고 친히 주도하시어서, 당신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끔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더우기 지금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신의 딸들을 지키시옵소서. 그들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버님을 사랑하기 위해 최일선에 있사오니, 그들이 정성들이는 것을 긍휼히 보시옵고 부족한 정성이라도 받아 주시옵소서. 그들이 민족을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세계 만민을 대표한 자리에서 아버지와 직접 상의하여 소원하는 길을 개척할 수 있게끔, 아버지, 안팎으로 지켜 주시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60년대와는 달리 1970년대에는 아버지의 긍휼과 아버지의 사랑을 흠모하는 무리들이 많이 나타나게 하시어서, 외로운 자리에서 싸우는 그들이 저주받는 자리에 서지 않게 각자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내적 충실을 바라보면서 내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이번 기간이 절대 헛되이 지나가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 앞에 맡겨진 사명과 세계 앞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이 민족을 통하여 해야 할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이제 1970년도를 보내고 1971년도를 새로이 맞이하는 이때에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스스로를 다짐하여, 새해에는 가일층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끔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충동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후의 시간을 당신이 친히 장중에 두시어서 주관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승리의 결과만을 가져올 수 있게끔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있을지라도 저희의 마음은 천태만상의 형상을 빚어 놓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즐겨 취할수 있는 자리가 어떠한 곳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깨끗하시고, 지극히 선하시고, 지극히 의로우시고 중심되시는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자리를 찾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저희들의 마음이 되고, 그럴 수 있는 저희들의 몸이 되고, 그럴 수 있는 이 모임이 되어야만 이 청중 가운데 아버지께서 임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 가운데 아버지의 직접적인 상대기준으로 뜻 앞에 세워 놓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몇 명이나 있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부족한 자들뿐이옵니다. 당신이 분부하신 뜻 앞에 소명을 받아 크나큰 사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없으면, 거기는 사막과 같은 흑암의 세계요 지옥의 세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은 당신의 귀여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사랑의 마음을 지닌 당신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저희를 보는 그 기준과 현재 저희들이 처한 위치와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앞서면 앞설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과거를 뉘우치고 현재의 입장이 부족함을 뉘우치는 회개의 심정이 저희 일신을 점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간절한 마음만이 저희 일체를 통찰하게 하여 당신의 소원과 더불어 당신의 긍휼하신 마음에 응할 수 있는 화동의 실체로서 전체를 바쳐 드릴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겠사오니, 그 자체에 반대 되는 요소를 부정할 수 있게 당신의 직접적인 주도와 권한이 여기에 현현하시어서 각자의 몸 마음을 통찰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스스로가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고 아버지의 긍휼하신 마음에 안길 수 있는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도를 보내야 할 마지막 주일인 이 시간에 당신의 긍휼하신 사랑을 다시 한 번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있사오면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어서 죄악의 쓴 뿌리를 뽑아 주시옵소서.
저희 각자의 마음과 몸을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좌우할 수 있는 실체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처지가 다르고 환경과 배경이 다른 것처럼 그런 마음을 가진 자체로 여기에 나왔사오니, 아버지 앞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어린아이의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아버지의 후한 사랑의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한 개인을 부르시어서 친히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그와 생명의 인연을 맺고 당신의 사랑의 줄에 매일 수 있는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추운 이때에 남한 각지에 널리어 일선에서 싸우는 당신의 딸들과 이 시간에 모여서 당신 앞에 예배드리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이 떠나지 않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개척의 노정에서 자기 생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싸워 나오는 것은 당신을 안 연고입니다.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저희가 당신을 안 연고요, 당신의 뜻 때문이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하오니 당신께서 그 처지와 환경을 알아주셔야 그들이 위로가 되고 그들이 보람있게 생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친히 그 환경을 지키시옵고 그들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풍성한 은혜로써 그 환경을 채울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이 시간 한국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 수많은 자녀들에게도 같은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당신이 바라신 소원의 뜻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민족적 제단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고로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고대하는 해원성사의 터전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늘에서 기뻐하고 땅에서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봉헌하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편과 하늘편의 경계선상에 가로놓여 있는 저희들을 언제나 하늘편에 기울어지게 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당신의 원수이므로 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체휼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새로이 성별된 실체로서 아버지께 바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저희 몸 마음을 생축의 제물로 온전히 아버지께 바치오니 친히 받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의 부족함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교계의 잘못을 저희들로 말미암은 축복의 은사로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 날에 아버지 앞에 드리는 부족한 예배로 말미암아 하늘땅이 화합할 수 있는 당신의 특별한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날을 보냄과 더불어 약속된 새로운 한 해를 의의있게 맞이하여 은혜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친히 역사하시옵소서. 저희 각자가 몸 마음을 뜻 앞에 부복하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 허락하신 이 시간에 말씀의 일면을 전하고자 원하오니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일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여기에 아버지의 마음이 감돌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사정을 직감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이 되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나라의 충신 열녀들이 될 수 있게끔 저희들의 마음을 올바로 잡아 주시옵고, 저희들이 새로운 결의와 결심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새해에는 보람있는 아들딸의 입장을 세워 나갈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나머지 시간도 친히 뜻 가운데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지낸 지 이틀째 되는 날이고, 연말중의 하루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1970년도를 넘기고 새로운 1971년도를 맞는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뜻과 나', `나와 뜻'과의 관계를 언제나 붙들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자의 생활태도입니다. 즉, 뜻은 뜻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일치된 개인, 뜻과 일치된 가정, 뜻과 일치된 교회, 더 나아가서는 뜻과 일치된 민족, 뜻과 일치된 국가, 뜻과 일치된 세계를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뜻과 연결시키고 일치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는 뜻을 위해 생겨났고 뜻을 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뜻을 위해 생겨났고 뜻을 위해 가고 있다면, 통일교회에 속한 사람들도 뜻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뜻을 위해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교회가 가는 길, 교회가 처해 있는 입장도 뜻 이외의 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뜻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 뜻으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수십 평생의 생애를 지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과거의 생애가 찬란했고 과거의 생애를 자랑할 수 있고, 혹은 그 민족 앞에 추앙받을 수 있는 애국지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뜻은 그 민족이 바라는 뜻은 될는지 모르지만 이 민족을 중심삼고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현재 나라를 위해서는 보람있는 자리에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지 못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가의 추대를 받고 수많은 민족의 추앙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입장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일치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상하고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떠한 계급을 막론하고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되는 형태를 갖추지 않고는 뜻이 요구하는 개인, 뜻이 요구하는 가정, 뜻이 요구하는 사회, 뜻이 요구하는 국가, 뜻이 요구하는 세계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3)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그의 나라는 뜻과 상충된 나라가 아닙니다. 뜻과 더불어 출발하고, 뜻과 더불어 과정을 거치고, 뜻과 더불어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일체가 뜻과 더불어 생겨나고, 뜻과 더불어 있어야 되고, 뜻과 더불어 끝을 맺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뜻 앞에 설 수 있는 하늘나라, 그 나라의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의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와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나라는 어차피 작별을 고해야 할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나라와 인연이 있다면 죄악의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나라와 뜻과 하나님의 뜻이 결부될 수 있는 선의 인연을 본래부터 맺지 못한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살고 있는 이런 환경의 인연을 혁신하여,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일체의 방향을 새로이 모색하지 않고는 뜻의 나라에 속한 개인의 생활권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요, 뜻의 나라에 속한 가정권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요, 뜻의 나라에 속한 교회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교회를 거쳐서 이루어져야 할 나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런 나라가 현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중심삼고 볼 때 먼저 우리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그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그 뜻이 이루어지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를 중심삼고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루의 생활권내에서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를 중심삼은 요셉 가정까지 4천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된 동기는 어느 한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년, 혹은 몇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온 그 나라를 팔아먹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오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뜻을 따라가지 않는 수많은 민족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의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지내고 있는 하루의 생활권내의 한 시간 한 시간도 무섭지만 한 시간권내의 똑딱 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무서운 순간인가 하는 것을 느끼며 싸워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난 순간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초의 순간이라도 시간적 관계를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금년에 못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못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못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못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못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못 가면 50대에….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일생을 거쳐서 뜻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하루의 생활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으며, 일년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에 있어서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앞서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어떻게 악을 청산짓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척만세의 한을 맺어 놓았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벽을 무너뜨려 가지고 하나의 가정의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졌던 아벨이 죽었던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년 걸려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수고의 노정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제 내 소원성취의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고 하신 명령도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내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하여 만국을 덮고 남으리라'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몇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는 시간권내였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권내였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져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못되면 그 기원이 파탄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찾아오는 시간 시간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뜻을 중심삼고 그 시간을 승리로 이끄는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중심삼고 고심하며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모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석판을 깨뜨렸던 것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억천만세 이스라엘의 형성을 근본적으로 파탄시킬 수 있는 화근이 되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순간의 일이 역사의 흥망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시대에 있어서도 마리아와 요셉 가정에서 자라던 예수가 30세가 되던 해에 공적인 생활을 하겠다고 결의를 하고 집을 떠났던 것도 순간이었습니다. 공적인 3년노정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비운의 자리에선 예수는 집을 뒤로 하고 믿을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는 황막한 광야와 같은 길을 향해 나섰습니다. 예수가 그러한 곳을 향하여 나서기로 다짐하던 시간은 순간이었고, 집에서 나가는 발걸음은 한 걸음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이 비운의 6천년 역사로 연장시켰고 기독교를 2천년의 수난의 길로 가게 할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수가 그 집을 나가기 전에 마리아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맺어져 있고, 요셉이 자기 일가 친척을 모아 공동회의를 하여 예수님이 자기 사연을 털어 놓고 토로라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는 무지몽매한 어부들인 베드로·요한·야고보와 같은, 그 시대에 있어서 맨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 애달픈 3년 공생애노정을 가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먼 세계에서 이루어질 뜻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서 이루어질 뜻이요, 나를 중심삼은 가정에서 뜻이 이루어져야만 먼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복귀의 순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요셉 가정이 예수를 중심삼고 울타리가 되었던들 예수에게 십자가의 길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못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규탄을 받아 왔고, 대한민국의 규탄을 받아 왔고, 민족의 반역자라고 비난을 받아 왔지만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뜻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 망하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은 남겨 주어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속해 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천번 만번 죽음의 길이나 어려운 고빗길에 부딪쳤지만, 응당히 망할 수밖에 없는 면이 안팎으로 갖추어진 환경을 거쳐왔지만 망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냐? 뜻의 한 때를 기약하고 그 기약된 날과 더불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한 초점을 바라고 나오시는 하나님의 내심적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남아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섭리해 오셨지만,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통일교회의 종착점이 어디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시할 때 그것은 몇 년을 기준삼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통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지극히 우연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고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연하고 상식적인 그 순간에 천지가 뒤넘이칠 수 있는 것이요, 동서의 모든 나라가 운명을 걸고 뒤넘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간들의 생사를 판결지을 수 있는 한 초점이 될 것이요,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역사가 상봉할 수 있는 한 초점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순간은 비애의 인류역사를 타고 넘어가서 새로운 희열을 맛보는 천지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한 곳과 한 분을 통하여 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한 때라는 것은 길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누가 맞이할 것이냐, 그러한 때를 누가 포착할 것이냐 하는 것이 귀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 가지고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라는 말은 잘합니다. 말하기는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복귀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그 내용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종교를 세워 찾아 나오신 길에서, 수억천만 세를 거쳐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에게 피를 뿌리는 죽음길을 가라고 다짐시키면서 하나를 만들고자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한 아들을 찾기 위한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6천년의 기나긴 역사를 무엇 때문에 소모시켜 오셨느냐? 그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아들 하나를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하나의 출발은 똑딱 하는 순간과 더불어 일치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의 종주들은 전부 다 남자들입니다. 여자는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여자는 밟히어 오고 남자는 마음대로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여자 중에서는 성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비로소 여성해방운동이 벌어졌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여성으로서 갖출 수 있는 한 때가 마련되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두고 볼 때, 70년은 짧은 것입니다. 70년이란 역사가 결정되는 데에는 7년이 필요한 것이요, 7년이 결정되는 데에는 7개월이 필요한 것이요, 뿐만 아니라 7일, 7시간, 나아가 7초까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넘어가는 것을 그 누가 알 것이냐? 7년을 바라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또 70년을 바라는 사람은 그것을 상관할 수도 없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한 순간도 빼지 말고 한 푼도 빼지 말고 한 초도 빼지 말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시간도 잠을 자는 시간도 어젯날에 살던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녁에는 `나는 이렇게 잡니다' 아침에는 `곧 계속 합니다'라고 하며 살아야 될게 아니겠습니까?
탄식이란 한꺼번에 세계와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가 한꺼번에 세계와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탄식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밤을 새워 공부합니다. 그들은 눈을 감아도 훤히 내용을 알고 있지만 시험을 치르는 그 순간 한 장의 시험지가 그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10년 공부한 모든 노력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한 장의 종이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짧은 자기 생애에 있어서 출세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고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아닙니다. 시험치는 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링 위에서 세계 레슬링 챔피언 쟁탈전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자기 나라를 대표하고 동서의 거리를 초월하여 겨루게 되기까지 그 시간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승패가 결정되는 때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동참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동참하여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동참한 내용을 철저히 수행할 수 있는 필요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는 일을 볼 때, 거국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전체가 한꺼번에 일을 하는데, 그런 일을 할 때는 한 순간과 관계가 없습니다. 멀고 먼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강의 기원은 태백산맥의 어떤 한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 흘러 나오는 물방울은 천번 만번 곡절의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그 물방울은 여러 계통을 통해 나오지만 주류는 하나입니다. 아무리 한강이 길고 수많은 지류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의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의 출발이 나무 뿌리가 될지 풀포기가 될지 모르지만 주류는 하나입니다.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강의 주류는 풀뿌리에 맺힌 물방울이라든가 혹은 한 방울도 못 되는 한점의 습기로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습기가 모여 한 방울의 물을 이루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은 역사시대의 진리와 같고 주체와 같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큰 한강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근원이 희미한 것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강도 시작과 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물방울이지만 주류를 이루어 대해로 나갈 때 그것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 물방울이 서해바다로 들어가게 될 때 주류를 이루어 가지고 선두로 들어가면 한강의 골수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가 올 때 조그만 회초리로 마당 바닥을 싹 긁어 놓으면 조그만 물줄기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물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물방울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어 주류의 행로를 거쳐서 바다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했다면 그 물방울은 그 강을 창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흐름에 있어서 미미하고 가치가 없고 자격이 없게 보이겠지만, 그 물의 흐름이 역사적인 대강(大江)의 운명을 판결하는 사명을 짊어질지 누가 압니까?
내가 2월 말경에 대관령 고개를 올라가는데 정상도 아닌 고개가 왜 그리 높은지, 차를 타고 달리는데 자꾸자꾸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대관령 고개에 막상 올라가 보니 이것이 높은 고개인지 저것이 높은 고개인지, 높은 고개가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이쪽이 높은 고개라고 가 보면 저쪽이 더 높은 고개 같고, 저쪽이 높은 고개라고 가 보면 이 쪽이 더 높은 고개 같았습니다. 이것이 높은 고개 같고 저것이 높은 고개 같아서 어느 것이 높은 고개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높은 고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개는 있습니다.
고개 가운데 제일 높은 곳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어디냐? 잘 모르겠어요. 높은 고개라고 그 고개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평평합니다. 그런데 산봉우리에 얼어붙었던 눈이 녹아 가지고 물이 되어 술술 내려오는 것을 보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갈라져 흘러갑니다. 산봉우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니까 동쪽이 이렇고 서쪽이 이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줄기를 이루는 물 자체는 모르지만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까 동쪽과 서쪽의 경계선이 확실히 드러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관령 꼭대기에 서 있어도 그 경계선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 곳인지 저 곳인지 왔다갔다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물을 붓지 않고 이쪽이 서쪽이고 저쪽이 동쪽이다 하고 경계선을 구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고 제3의 여건을 통해 그것을 찾는 것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경계선을 찾는 것이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경계선을 찾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서울대학교인가 고려대학교인가의 정경대학 학장이란 사람이 와서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감격해 가지고 은혜받은 소감을 얘기하겠다고 했는데, 그의 결론이 뭐냐 하면 `통일교회 원리는 새로운 기독교의 발견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통일원리는 새로운 기독교의 발견을 제시했다는 아주 멋진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뭘 모르고 제멋대로였지만, 통일교회는 틀림없이 안팎을 갖춘 논리적 체계 아래서 새로운 기독교를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원리에는 기독교의 내용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내용도 새로이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으로서 불교의 골수를 보게 될 때 애매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통일원리에는 불교에서 갖추지 못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더 확실하게 완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유교 사상은 물론, 정치적인 내용이라든가 그밖의 모든 내용이 전부다 통일원리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노자의 도교에 있어서 꽃의 향기와 같은 내용도 통일원리에 들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내용이 갖추어진 것이 통일원리입니다. 이처럼 통일원리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종교를 규합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가 하는 말이, `종교라면 반드시 자기의 고집스런 특정한 주장을 갖고 있는데,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로서 새로이 주장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기독교를 재현하는 데 불과한 교회라고 하는 편이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통일교회는 전부 다 성경의 새로운 분야를 제시했지만 제시한 많은 내용이 통일교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절대시할 수 있는 내용이 자체 내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결론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현재의 과학시대에 있어서 이렇게 과학적인 논리체계를 가진 원리는 아직 없다는 겁니다. 그런 칭찬을 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그는 한국에 있어서 정치사에 관한 한 권위자입니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에서 통일원리를 바라볼 때, 통일원리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아니고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학자들도 통일원리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적극적인 입장에서 주장했습니다. 선생님은 이에 대해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좋았겠습니다.」 (웃음)
이런 날이 빨리 오지 않고 어쩌다 1970년도 마지막이 되어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꼬부라지게 못살고 헐벗고 지쳐서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 데 대해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웃음) 석양에 장단을 맞춰 춤추니 기분 좋을 게 뭐예요? 아침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대낮까지 진탕 먹고 낮잠을 잘 수 있을 텐데 그것이 밤에 이루어졌으니 낮잠을 잘 수 있겠어요? 이래 가지고 밤잠 자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낮잠을 자지 못한 채 행복을 노래해야 할 통일교회를 생각하면서 서글픈 감을 느껴 보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학문적인 면에서 자기들이 연구했기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의 문전에 와 있습니다. 문전에 와 있는데 경계선이 어디인가를 모른다는 겁니다. 즉, 대관령 고개는 누구나 올라갈 수 있지만 경계선이 어디인지 모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물을 부어 흐르게 해서 경계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게 되면 경계선이 여기다 하면서 어느 누구나 앞에 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 일렬로 서겠어요, 안서겠어요? 서지 말래도 서는 것입니다. 서지 않는 사람은 대관령 고개의 꼭대기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올라올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올라오게 되면 내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에서도 통일교회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습니다. 많은 물의를 일으킨 통일교회에 괴수(?) 같은 문선생이 있어요. (웃음) 그래 어쩌라는 것입니까? 어쩌란 말이에요? 여러분들의 입장 같아서는 손목을 자르더라도 지상천국을 빨리 이뤄 버리지 왜 이렇게 질질 끌면서 사람을 죽이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는 겁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화병에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하기야 나도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말이 빠르거든요. 그러나 선생님은 성질이 가장 누그러운 왕초입니다. 만약 이런 일에 참지 못하고 화를 한번 잘못 냈다가는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 순간으로 말미암아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자리에 가게 되면 오히려 느긋하게 후퇴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사람들은 선생님이 좀 몰라주게 되면 `내가 누구만큼 일을 못하나, 원리강의를 못하나, 얼굴이 못생겼나. 저 사람은 저렇게 대해 주면서 난 왜 이렇게 대해 주나?' 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개척 당시에 중차대한 책임을 감당할 때 어떻게 하면 성공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느냐로 고민했던 것입니다. 잘못 날뛰다가는 먼저 고래한테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못났으면 바위 틈에 가만히 들어가 숨어 있어야 죽지 않을 텐데 바위 틈에 숨어 있지 않고 꼬리를 젓고 다니다가는 후딱 잡혀 먹힌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올 때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그때 틀림없이 사태가 불리할 것을 예감했는데, 넘어가야 할 때가 언제가 될지 몰랐습니다. 그때가 새벽이 될는지 낮이 될는지 밤이 될는지 혹은 안개낀 아침이 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북한땅에서 고생한 것도 원통한데, 더 남아 있으면 큰일난다는 생각이 들어 삼팔선 접경까지 갔습니다. 거기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발짝만 가면 이남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별의별 냄새가 났지만 그곳이 복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위급한 때 한 걸음만 옮겨 놓으면 선생님은 이남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 누가 먼저 이남에 가게 되느냐 하면 선생님이 제일 먼저 간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따리를 싸는 데 거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민군들이 몰려오게 되면 모가지가 잘릴 것이니 삼팔선에서 도망가야 빨리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거기서 머물다가 용매도로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선생님에게 있었습니다.
이 지상에 살려면 종합적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갑(甲)자, 을(乙)자, 병(丙)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옳고 이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틀렸으면 다시 찾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멍텅구리 같애요. 여러분은 멍텅구리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웃음) 이것은 평안도 말인데 구수한 말이에요. 바보 천치란 말입니다. 그러나 바보 천치에도 안 바보, 안 천치가 있습니다. (웃음)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모두 같아요? 천만에요. 절대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 수백 명이 모여 있더라도 수백 명이 절대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 2백 명이 있으면 2백 명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2백 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길을 가면서 둘이 한꺼번에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어요? 「없습니다」 한꺼번에 설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녀석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거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여러분이 경쟁하는 장소요, 분석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될 곳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 주류입니까? 주류를 알겠어요? 술 주(酒)자가 아닙니다. 공화당에서도 주류라는 말을 하지요? 주류는 골수를 말합니다. 그러면 주류의 중심이 누구입니까?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 힘든 것은 다 남에게 주고 좋은 것은 다 자기의 것으로 하면서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주류이겠습니까? 교회건 무엇이건 자기만 좋겠다면 주류가 될 수 있겠어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골수분자가 아닙니다.
골수분자는 비가 온다고 해서 흘러가는 물과 같은 사람이겠어요, 흘러가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물과 같은 사람이겠어요, 아니면 담겨 있는 물과 같은 사람이겠어요? 골수가 흘러가는 물입니까, 담겨 있는 물입니까? 골수는 담겨 있는 물입니다. 담겨 있는데 어떻게 주류가 될 수 있겠어요? 담겨 있지만 가는 데도 담겨서 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류는 뼈 가운데 있는 골수와 같은 것입니다. 뼈 속에 담겨져 있는 이 골수를 누가 뚫고 마실 수 있겠습니까? 마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아니고는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과 더불어 골수를 지닌 사람, 그 사람이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은 어디냐? 주류 사상이 있는 곳이요, 주류의 방향과 일치되는 곳입니다. 공화당의 주류가 부패될 때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손발이 잘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망하는 이상의 고통을 느끼면서 밤낮없이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천만인과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박대통령이 있다 하더라도 통일교인이 잠을 자지 않고 이 나라를 위해 있으면, 틀림없이 박대통령보다 주류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대통령이 물러갈 때 그 사람한테 상속을 안 해 주었다가는 큰일납니다.
금년 한 해도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1970년도 연초에 선생님이 말씀한 것은 승리적 통일전선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도 모릅니다. 승리적 통일전선이 여러분과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이것은 국가의 운명과 천운이 결해야 형성됩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3국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안팎으로 짜 가지고 강경권내에 몰아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무슨 관계가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통일교회 책임자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시켰고, 대만을 갔다 올 때에는 장개석 총통에게 그 문제를 주입시키는 일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대한민국은 물론 여러분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남이 생각지 않을 때 생각해야 되고, 남이 고생하지 않을 때 고생하면서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이 가야 할 입장과 방향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미워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일본의 우에노 공원에 있는 사이고오 다까모리(西鄕降盛)동상을 허물고 문선생 동상을 세워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게 소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선생님을 원수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기만 하면 일본을 말아먹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출입국관리국 사람들을 생각할 때 기분이 나쁩니다. 그들은 문아무개가 일본에 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을 말아먹는 괴수라고 합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미국도 미스터 문이 미국을 말아먹는 괴수라는 것입니다. 좋든 나쁘든 한국의 한 사나이를 일본이 무서워하고 있고, 미국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되긴 됐구만요.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돌아올 때 홍콩에까지 정보원을 딸려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그걸 알았습니다. 뭘 먹겠다고 그렇게 선생님을 따라다녀요? 여러분은 왜 따라다니는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로 가는 주류를 찾아가려니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주류의 정상을 향하여 넘어갈 때는 고개를 완전히 넘어가야 됩니다. 골짜기에 있을 때는 주류를 돌파시키기 위한 운명의 길로서 그 골짜기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이 길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어려운 수난의 길도 기쁨으로 소화하면서 가야만 최후의 정상에 있는 분기점을 자기가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하다 기성교회가 망했고, 이박사 정권도 망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장면정부는 통일교회를 보호했습니까? 없애기 위해 특명을 내리고 별의별 오명을 뒤집어 씌우는 등 별의별 일을 다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고 자기들이 미안하니까 우리에게 보따리를 펴놓고 사정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주권이 바뀌게 되고, 나라가 흘러가고, 재능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석양길의 나그네가 되어 흑암권내에서 살아야 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쫓기고 몰리는 신세가 된다면 대낮과 같은 새로운 역사시대에 중심요원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망하는 길을 가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다른 게 뭐냐 하면, 만민을 통일하자는 주류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주류는 무엇이냐? 아무리 개인의 힘이 세다 하더라도 국가의 운세를 마음대로 막아낼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국가적인 운세가 세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운세, 또는 다가오는 세계의 운세를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이나 미국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 하더라도 세계의 운세를 막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세계의 주류를 따라야 하고, 민주 세계의 정상을 주장해 나오던 미국도 세계 운세를 막을 수 없게 되면 낙오자가 됩니다. 후대 앞에 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실패자의 참피언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극대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소원하는 독재적 입장에 선 공산주의는 넘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정상에 설 수 있는 선수가 되려면 모험을 자기의 생활무대에서 소화시킬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이 가고 와도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면, 다른 사람과 그 어려운 고비에서 일등을 겨루는 때가 될 때 그는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년 동안 도를 닦고, 연속 백승을 한 기록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다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약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도 통일교회 원리가 얼마나 방대합니까? 이것은 종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성교회 목사들은 통일교회에서 춤을 추고, 무슨 피가름을 한다더라고 하며 떠들고 야단입니다. 또, 통일교회에 문 예수가 나왔다고 야단입니다. 많은 나라 가운데 한국에서 문 예수가 나오면 나쁠 게 뭐예요? 그 사람들은 문 예수가 못 될까봐 걱정하지 않고 문 예수가 될까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한국인이 문 예수가 되면 대한민국을 팔아먹을까봐 그러는 거예요? 도적질을 해서라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것입니다. 내가 언제 문 예수라고 광고를 했어요? 자기들이 이름 붙여 가지고 찍고 헐뜯고 별의별 수작을 다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누더기 보따리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겨울이 되었으니까 누더기 보따리를 다 갖다 씌우라고 했습니다. 동삼삭 시베리아 북한풍이 몰아치는 때이니, 폭탄의 폭격이 빈번한 전쟁시대이니 누더기 보따리를 갖도 씌우라고 했더니 이제는 더 씌울 것이 없는가 봅니다. 나쁜 보따리는 선생님에게 다 짊어지웠습니다.
몇십 년 전에 철산에서 감사패들이 기뻐서 춤추었는데 그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른 곳에서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을 나에게 전부 다 뒤집어 씌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추울 때는 덮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누더기라도 씌워서 덮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선생님이 그 격이 되었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욕먹기를 잘했습니다. 이제 봄철이 되면 빙빙 돌려서 싸매었던 것들을 한 꺼풀씩 벗어서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렇게 한 겹씩 얻어 가지고 물러가라 할 판국입니다. 죽을지 살지 모르고 집어 던진 수십 년 전의 자기들 보따리를 보면 그것을 붙들고 통곡할 겁니다. 그때는 동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볼장을 다 보고, 갈 길을 다 간 후이기 때문입니다. 행차 후에는 나발꾼이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려운 일을 누가 시켜서 했습니까?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기 때문에 참새가 우는 소리도 짹짹! 짹짹! 바쁜 것입니다. 봄날이 되면 참새는 째액 째액 하면서 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그렇게 울라고 해서 우는 것입니까? 자연의 이치가 그런 것입니다.
봄철이 되면 개구리가 울기 마련입니다. 이때 울지 말라고 아무리 제사를 올려 봐요. 울지 않나. 개구리가 울면 동네방네에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육십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봄날이 왔으니 서로 사이좋게 인연맺기 위해 속닥거리며 사랑한다고 동경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을 못 자는 사람들에게는 원수들의 울음소리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개구리에게 울지 말라고 아무리 협박을 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끊임없이 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울 때가 되었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때가 되었으니까 서남동씨가 연결이 된 것입니다. (웃음) 서남동씨가 나왔으니까, 이제 서북동씨만 나오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제 서쪽 남쪽 동쪽이 우리 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북동아! 어디갔나. (웃음) 한문으로 볼 때 비슷하지요? 그렇지요? (웃음) 그거 일리 있는 말입니다. (웃음) 이것은 우스운 말이 아닙니다. 세상은 다 계시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시를 그냥 그대로 가르쳐 주는 법이 있어요? 서남동, 여기 서쪽의 운명이 남쪽으로 향해서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남·동, 만약 동·남·서라고 했으면 거꾸로이겠지만 서남동이라고 하니까 동쪽에서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이름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계시적인 이름을 가졌으니까 그런 사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웃음)
한국 속담에 사촌이 밭 사고 논 사고 하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선생님이 기분이 좋으면 배앓이를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기성교회에서는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빠요」 왜 나빠요? 동생이 땅을 사는데 왜 기분이 나쁘냐는 말이예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막내 동생이 아니예요? 못생겼지만 막내 동생입니다. 통일교회는 잘생겼다는 사람들이 걸러먹고 빨아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아 먹으면서 설사를 하더라도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피를 팔고 논 한 뙈기라도 팔아서 서남동씨를 맞이했는데 왜 배 아파하느냐는 말이예요? (웃음) 이게 망조예요, 흉조예요? 통일교회는 흉조가 아니라 흥조요, 기성교회는 망조요 흉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배지를 달고 학교에 들어가는데 교문 앞에서 낯선 사람이 무슨 학교에 다니냐고 물어보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물어보기 전에 간판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가 제일인 것처럼 너도 제일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데는 천양지차가 있을 것입니다. 묻는 사람이, 꼬락서니가 그래 가지고 네가 그런 학교에 다닐 자격이 있느냐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듣고 기분 나빠하게 되면 끝장입니다. 그것을 듣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인으로서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신을 차려야 되겠습니다. 반대를 하고 모른 체하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걸 볼 때 우리는 정신차려야 되겠습니다. 남들이 반대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대받는 과정에 있더라도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길, 선한 자리에서는 핍박을 받고 반대받는다 해도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망하는 꼴이 되거나 반대받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하려면 하라는 거예요. 내가 망하는 날에는 하늘나라의 역적이 될것이요, 흥하는 날에는 하늘나라의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받는 과정에는 망하는 법이 없는 것이 역사의 철리가 아니겠어요? 반대받는다고 망하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으며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가 망조입니까, 흥조입니까? 「흥조입니다」
기성교회가 지금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있지만 선생님이 나서면 오히려 그들이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학박사라 해도 문제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들만큼 못하는게 없습니다. 머리로도 지지 않고 힘으로도 지지 않습니다. 씨름을 해도 그들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씨름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못나게도 15년 20년 동안 욕을 먹고도 가만히 있느냐? 가만히 있어도 그들이 망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처음 본 사람이 있어요? 오늘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을 보고, `아 저 사람이 소위 그 유명한 문 아무개로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유명해졌습니다. 일면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양면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나쁜 데로도 유명해졌고 좋은 데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쁜 면도 있고 좋은 면도 있기 마련입니다. 생명이 되는 씨는 똥거름에 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거름을 흡수하여 생명력으로 소화시켜 크면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가 망하기를 아무리 바라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때리고 못살게 해서 잘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남을 때리면 똑똑한 사람,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유리고객이 되어 전부 다 영신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1세는 망해서 광야의 독수리밥이 될는지 모르지만 2세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 11일에 권위 있는 학박사들을 50여 명 모셔 놓고 통일원리를 듣게 했습니다. 이제는 무슨 박사라 해도 원리를 듣지 않으면 창피할 것입니다. 통일원리를 연구하는 학박사의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듣지 않으면 일본의 수십 명 수백 명의 학자들을 데려다가 통일원리를 듣게 할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안 되면 미국의 학자들을 데려다 할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입에서 냄새가 나고 코가 깨지고 귀가 찢어지고 눈알이 빠지더라도 할 것입니다.
지금 만반의 준비를 하여 이제 1차 완료권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좋기만 해서 되겠어요? (웃음) 그것 가지고는 섭섭하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선생님은 무골충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수많은 고문을 당하며 피를 토하면서도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뼈가 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때가 올 줄 알고 그 처리방법을 수십 년 전에 벌써 다 모색해 놓았습니다. 그래 놓고 이 일을 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될 것 같애요? 통일교회를 못 당하는 거라구요. 절대 누구도 못 당하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통일교회에 대해 야단이지만 한번 걸려 보라는 거예요. 방안에 앉아 가지고 협박 공갈을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해원풀이를 하려면 이런 말이라도 하고 잊어버려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래야 1971년을 새롭게 맞이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직도 기성교회 장로나 목사들이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선생님은 요셉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선생님을 팔아먹고 죽으라고 했지만 선생님이 죽어요? 차마 이런 이야기까지 내가 할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보면 동으로 보나 서로 보나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와서 뜻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자리잡은 사람도 있고, 자리를 못 잡은 사람도 있고, 보따리 싸 가지고 왔다가 보따리를 처치하지 못해서 그 보따리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들 다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누구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웃음)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기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먹어 보고 달아 보고 재 보고 전부다 나누어 줘 보고 나서 좋은 때에 거기에 뿌리를 박고 죽자 살자 하라는 거예요. 먼저 재 보지도 않고 씹어 보지도 않고 들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날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뭘 할 것이냐? 여기는 수련도장입니다. 여기서부터 경쟁을 해 나가야 합니다. 최고 챔피언전을 벌여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라고 큰소리쳐서는 안 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한계선이 어디입니까? 다하라는 한계선이 어디입니까? 그러기에 통일교회 문 선생의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개인을 걸고 마음을 다하고, 가정을 걸고 마음을 다하고, 통일교단을 걸어 놓고 마음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민족과 세계를 걸고 마음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소원성취의 길은 아직도 멀리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과거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내일을 자랑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희망찬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승리자로서 늠름한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후퇴일로에서 고난길을 더듬는 패자나 방랑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이 기질에 맞지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 개인을 걸고 싸우는 것이요, 가정을 걸고 싸우는 것이요, 교회를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민족을 걸고 싸우고, 나라를 걸고 싸우고, 세계를 걸고 싸우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세계를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 할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이라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런 입장에서 대하려면 뭐가 필요하냐? 기성교단과 통일교회가 같은 자리에서 마음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그렇게 하여 자랑할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게 될 때 우리는 절름발이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주제에 `나를 몰라준다, 나를 알아달라'고 하면서 수작하게 되어 있습니까? 이것을 원리적으로 전부다 설명해 줄 시간 없어요.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원수세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6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원수가 영광을 누리던 사탄세계를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을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믿고 나오면서 언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했습니까? 사랑해 보았습니까? 어느때가 출발점이며, 어느때가 한계점입니까? 내 일생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도수가 충만되어 포화상태와 같은 절정의 때가 있었습니다. 천상세계에 가서 수많은 영인들 앞에서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있었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개인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뜻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거느리고 나가야 되고, 교회를 거느리고 나가야 되고, 나라를 거느리고 나가야 되고, 세계를 거느리고 나가야 됩니다.
여기 미스터 문이 통일교회의 선생이란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 민족에게 도와준 것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 사랑하고 싶어했고,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한계점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어느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성심성의를 다했고, 피눈물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둘째 가지 않겠다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망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붙들고 안식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희생시켜 종족을 구하고, 종족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또, 나라의 주권을 찾기 위해서라면 민족을 제물로 바쳐야 하고, 이 국가의 4천만이면 4천만 동포를 뜻 앞에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30억 인류를 위하여 이 동포를 기꺼이 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영원한 심정세계에 깃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묻혀 있더라도 역사과정에서 추앙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역사적인 생활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선한 사람들이 행하는 전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1970년도는 더욱 바쁜 해였습니다. 새벽같이 공장에 나갔습니다. 나는 한번도 편안히 낮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기계소리가 들려오는데 활개를 펴고 누워 있는다는 것은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자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입니다. 그렇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생활을 두고 볼 때 여러분에게 빚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한 푼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빚을 졌습니다. 교회를 중심삼고도 그렇고 여러분이 살아온 생애를 중심삼고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잠을 자더라도 선생님은 잠을 못 자고 하나님과 담판해야 할 때가 많았고, 외로와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앞날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 나온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보고 느끼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입니다. 내 마음을 드러내 놓고 봐도 여러분에게 한점 빚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빚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선생님이 만든 단체에 대하여 얼마나 반대가 심했어요. 어린이 무용단만 하더라도 기성교회에서 말하기를 전에는 발가벗고 춤추더니 이제는 어린 자식들까지 모아다가 춤추게 한다고 야단입니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다시피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쌀밥을 먹을 때 보리밥을 먹으며 한 푼 한 푼 저축한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부다 나눠주었습니다. 또, 전도대원들이 임지로 가기 위해 여비도 없이 차를 타고 가다가 잡혀 감옥살이를 한다는 등 별의별 소식을 들으면서도 선생님은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고대 문명국가의 권위를 20세기의 현대 문명국가인 미국에 가서 소개해 줄 것을 생각하면서, 어린이 무용단을 만들어 빚을 져 가면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을 단계에까지 들어갔지만 말입니다.
또, 반공연맹이 승공연합을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반공연맹이 세계적인 단체니, 뭐 어떻게 된다느니 하는데, 하지만 두고 보라는 겁니다. 명실상부한 승공연합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승공연합이 발전하는 데 주먹질을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중상모략을 할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맞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사탄 앞에서 당당하고 양심에 가책이 없는 실적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 전도단입니다. 학사들이 농촌 부락에 가서 논고랑 밭고랑을 오가며 김을 매고 뙤약볕에 그을리면서 목초를 베었습니다.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나 굶는 사람이 있을 때는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고 밥을 얻어다 먹이며 그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이미 그런 일을 다 했습니다. 이에 대한 산 은덕을 갚아야 하는 것이 자기들이 가야 할 운명길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선생님이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통일교인들 가운데는 건달꾼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바람을 피우고 자기 멋대로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기성교인들처럼 습관적인 종교생활에 물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머리를 숙이고 저 말단에서부터 처분을 바라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이제 그럴 때가 곧 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 내가 어떤 자리를 향해가고 있느냐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정상의 고빗길, 즉 탕감복귀 노정에서 선두가 누구냐? 먼저는 아벨이요,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모세요, 예수님입니다. 통일교단에서는 통일교회 문 선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선생님이 갔던 그 고개를 따라 넘어가야 됩니다. 맨 처음 개척자가 피살을 깎아 산골짜기를 개척하면서 가시밭길을 전부다 치워 주고 평탄한 하이웨이를 닦아 놨으면 뒤따르는 자는 자동차로 가든가 걸어서 가든가 그 고개를 자기 자신이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고개를 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개척자는 어렵게 넘는 것이요, 그 다음 사람은 쉽게 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형제자매들이 터를 닦다가 피눈물로 얼룩진 죽음을 남겨 놓은 그 자리를 보고 차를 타고 가다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험한 절벽과 아슬아슬한 바위를 깎으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을망정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기분좋게 감상하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있으니 멋지구만. 저기에서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멋지겠나' 하는 생각은 해도 저기를 깎으면서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가는 꿈에도 생각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순식간에 통과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기분만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먼저 가는 사람이 죽고 못사는 고빗길을 걸어온 것이 나중 사람에게 좋고 흥겨운 조건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통일교회의 역사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죽고 못사는 그런 고빗길을 걸어 나왔지만 그것이 여러분들에게는 찬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고생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여러분은 등골이 오싹하고 뼛골이 으스러지는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여러분의 생명이 부활할 수 있는 터전이 거기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분립된 상태에서 규합된 인연이 싹터 나올 수 있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엄숙하고 귀중한 순간이 거기에서 교차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망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도리어 사탄세계를 잡아삼키는 폭발적인 원동력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을 7년 이상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4천만 한국 민족이 7년 동안 힘을 발휘하면 한국에 천국을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한국 사람을 빼 놓고서, 일본 국민이 1억이나 되는데 그 인구의 3분의 1인 3천만 명만 동원하게 되면 한국 땅에 천국을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미국 국민이 1억 8천이나 되는데 그 인구의 3분의 1인 6천만을 끌어온다면 한국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어요, 못 만들겠어요?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는 의도의 본론을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어떤 일을 하느냐 할 때, 선생님이 여러분을 매일 매일 따라다니면서 감정하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잠자는 데에 일등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먹는 데에 일등을 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비판하는 데에 일등을 할 것입니다. 수천만 사람들의 등수나 등급은 모양과 차이에 따라 두루두루 다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잡상점에 물건이 진열되어 있듯이 다 모양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 어느 것을 주인이 일등품이라고 하면 그것은 일등품일 것입니다. 찢어지고 못생긴 고물을 놓고도 그 주인이 그 물건 좋다고 하면 그 집 사람도 그 아들도 그 물건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도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우리가 왜 나쁘냐고 하면서 우리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도 초라한 통일교인들을 보면 다 좋다고 칭찬하고 싶어합니다. 선생님이 좋다는 것에도 천만 계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어떤 중고품, 재생품으로 등장한 것이냐, 혹은 신생품, 일등 특허품으로 나온 물건이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도의 길에서는 부잡스러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아는지 모르는지 남들을 위해 숨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천상에 고인돌을 높이 쌓고 그 자리에서 앞을 바라보고 먼저 하나님께 찬양하고 내 스스로의 기쁨을 즐겨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도의 본위에 선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은 나 때문에 있다고 하면서 `나 때문에 수고했기에 내가 하나님을 좋아하면 되지 않소? 하나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소'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에서는 일을 해놓고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남에게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고 나서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기가 막혀 울어 본 적이 있어요? 지금 이런 것을 줘서 미안하지만 주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할수없이 줘야 하는 안타까움을 느껴야 합니다.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사무친 심정을 가져야 도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부끄러움을 보게 될 때 사무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길가에서 술을 먹고 싸우는 사람을 볼 때 자기의 형님과 동생이 싸우는 것 같은 아픔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자기의 부끄러움으로 느끼면서 그들의 수치를 감싸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수치를 자기 자신도 보고 싶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그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정성들이며 부끄러움을 자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데는 하나님께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의 제단을 고이 쌓아 가지고 최후의 판결을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개인이 그 나라를 위하여, 가정이 그 나라를 위하여, 종족이 그 나라를 위하여 나가다 망하게 되면 그 나라는 민족을 못 갖는 것입니다. 민족을 못 갖게 되면 그 나라는 주권을 못 갖는 것이요, 주권을 못 가지면 세계도 못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우리의 이상과 우리의 바람은 크지만, 우리 개체는 만국이 치하할 수 있는 곳에 하나님을 모셔 놓고 기쁨의 영광과 기쁨의 찬사를 돌리고 기쁨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자리를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리는 순간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따라가는 통일교회 문 선생이 가는 길에서는 어느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어느때에 개인적으로 연락이 되어 이 길을 가면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형태를 갖추고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런 외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세계와 더불어 승리의 한 날을 맞기 위해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것이 궁금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초창기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제 기력이 다 빠져서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모습이 되고 있지만, 꽃다운 청년들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해 가는 통일교회의 운세 앞에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합니다. 통일시킬 수 있는 때가 점점 가까와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자각하는 젊은 무리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망하지 않고 정상적인 길을 가려면, 즉 주류를 따라 앞질러 가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가인 아벨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도리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법을 지키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벨이든 가인이든 나는 모른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은 천국과도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지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이제 1970년도에는 선생님이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전부다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복귀란 완전복귀를 뜻합니다. 에덴 동산에는 아담과 해와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이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고 해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셋이 문제였습니다. 아담은 이들을 대표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주체로 하여 아담과 해와 천사장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했는데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담에게 나타나고, 아담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합해 가지고 천사장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천사장은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분열의 요인을 가진 것이 사탄입니다. 세워진 법칙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분열은 무엇 때문에 나타났느냐? 불신 때문입니다. 누구에 대한 불신이냐? 중심자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 중심자는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불신한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불신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리에서 불신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지 못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자기 자신을 불신하는 자리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귀노정을 가려면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영원히 믿을 수 있습니까? `천지가 갈라지고 망할지라도 나 자신은 믿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김장로!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점점 해가 갈수록 갈 날이 가까와 오는데, 내가 나를 절대로 믿고 하나님도 나를 절대로 믿고 천사장도 나를 믿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귀해야 할 운명을 가진 인간이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다가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부동입니다. 절대부동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믿어 주고 사탄도 믿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누구예요? 천사장이지요? 그 천사장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사람이다'라고 할 만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아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보아야 됩니다. 어떻게 알아볼 것이냐? 이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그 한계점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데 돈으로 하는 것이냐? 돈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나라의 책임이 크다고 해도 내가 나를 믿게 하는 데 나라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렇지요? 사회나 친척들도 나를 믿는 데에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관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내가 나를 믿는 데에는 나 자신을 스스로 믿을 수 있어야 됩니다. 다 집어치우고 독자적으로 내가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믿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거할 것이냐? 이 나라도 아니요, 친척도 아니요, 물질도 아닙니다. 제일 귀한 내 생명을 가지고 증거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데 있어서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믿겠느냐?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길을 가리지 않고 따먹었던 것이 타락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자진해서 생명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믿는 것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없으면 그것을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할 뿐만 아니라, 내 생명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정성을 다하는 한계점에서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생명을 뜻 때문에 바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뭇사람들이 칭찬 해도 바칠 수 있고, 뭇사람들이 배척해도 바칠 수 있고, 원수의 올무에 끌려가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뭇사람의 시련을 받는 자리에서도 당당히 생명을 바치고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왕이냐 이 자식아' 하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퍼붓고 침을 뱉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루 잃어버리고 골고루 사라진 자리에서 골고루 다 바쳤습니다. 제일 억울하고 분통한 자리에서, 불신이 극에 달하는 환경에서, 일 점도 남아질 수 없는 아무런 여유가 없는 자리에서 믿음으로 불신의 환경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믿음만이 본이 되어서 섬길수 있는 자리에 깃대를 꽂고자 했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길을 필연적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까? 여러분이 임지에 돌아가게 되면 현지의 자기 입장에서 뜻을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원수들이 `뜻을 위한다면 한번 해봐라' 하고 시련을 주게 되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깊은 시련이 있더라도, 악어 떼가 입을 벌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힘을 다하여 달리는 맹수처럼 뜻을 위해 각오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원수들이 조롱하는 가운데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지키고, 수많은 인간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특권적인 권한을 중심삼고 하나님과의 신의를 세우고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사탄이 그런 절개를 시험해 보고자 할 때 원수들의 총칼에 의해 몸뚱이가 벌집이 되더라도 당당코 뚫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추호의 용서도 없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라면 비난과 비소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의 비난과 비소를 받으면서도 죽기를 각오했던 운명을 지닌 자체인데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입장이라면 하나님께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의(信義)의 법도를 생애노정 위에 공고히 닦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을 남기고 가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돌아갈래야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이 손목을 잡고 울고불고하는 데서 생명을 버릴 것이냐? 아닙니다. 원수들이 죽인다고 하더라도 감사하며 자진해서 도의 길을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저의 생명을 맡아 주십시오. 제 생명은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오니 십자가의 고빗길도 기꺼이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의 후손인 여러분은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원한을 해원하는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는 본향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늘로 가는 노정인 것을 알고 기필코 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특사로서,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씨족으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어 믿음의 절개를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칭찬해 줄는지 모르지만, 칭찬받기를 바라지 않고 가는 길이 되어야 믿음을 증거시킬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만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겠다고 하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생명을 다하며 별의별 수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지옥 같았지만 내가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고 목숨이 남아 있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느냐 하며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내 가슴에 붉은 총탄이 들어가지 않았고, 시퍼런 창끝에 찔리지 않았는데 무슨 불평입니까?
제1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 16:26)"라는 말씀은 천하보다 귀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이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절대자는 그 생명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절대자에게 봉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조 가운데 제1조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의 수많은 사람들이 4백년간 로마제국 지배하에서 사자 밥이 되고 호랑이 밥이 되어 쓰러졌지만, 예수님을 기준하여 천대받았기 때문에 탕감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놀라우신 길을 체험하고 죽기를 각오하며 따라갈 수 있는 영광을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냐? 이것을 생각하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겠지만 생명을 바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가 보세요. 생명을 바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있나 없나. 신앙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사지에 들어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빗길의 마지막 순간에 들어설 때마다 구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결의를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적 기사가 벌어진 자리가 현세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생명을 저울질하는 마당에 물질을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뜻을 위해 몸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으면서 나왔습니까? 그런 결심을 했습니까?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영원한 주체성을 확립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불신의 터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되는 문제는 뭐냐 하면 내 마음을 다하고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이요, 둘째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는 생명이요, 둘째는 뭐라고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외아들을 제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아버지 어머니를 제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부모든 처자든 누구든 천명을 위해 제물로 바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사랑하는 전부를 한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서 바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상에서 별의별 고난을 치르더라도 그 고비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냐? 원수를 대해서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원수를 나 같은 입장에 옮겨 놓을 수 있을 때까지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천사장과 아담 해와가 거꾸로 된 것을 무엇으로 바르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정된 것을 회개하게 하고 긍정하게 하려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의 역사를 무엇으로 풀어 놓느냐? 아담과 해와의 하나 못 된 사랑을, 또 천사장과 하나 못 된 사랑을 무엇으로 풀 것이냐? 죄를 지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 애절한 사랑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을 잊어버리고 해방시켜 주고 싶고 복빌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구덩이는 사랑을 가지고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실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어디에 적용해야 하느냐?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통일을 하려면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불량하거나 방탕한 아들이 부모의 사랑의 품에 들어오면 소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불량했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새로운 결심을 할 때는 옛날에 하지 못했던 지극한 효성을 다하는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아들에게 `너는 헌법 제 몇 조에 걸렸으니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들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은 사랑이 아니면 절대로 소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어떤 입장에까지 들어가야 하느냐? 나는 천하의 죄를 조성한 장본인이며 망하는 구덩이를 판 장본인이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덩이를 메우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 하나님이 사랑할 것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려는 사람이 누구냐? 아담 해와입니다. 아담 해와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누구를 사랑해야 하느냐? 천사장입니다. 첫째는 아담이요, 둘째는 천사장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원리에서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아담 대신 아벨이요, 천사장 대신이 가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둘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어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인군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 땅 위에서 아벨과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 앞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했습니다. 이들은 타락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이 복귀의 터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들을 분립한 것입니다. 왜 분립하느냐? 창조본연의 기준을 다시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천사장 자리에 가인, 아담 자리에 아벨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느냐? 사랑의 열매란 두 종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의 주인은 하나입니다. 사랑의 주인공인 그 하나는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담에게 옮겨지고 아담의 사랑이 해와에게 연결되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제1의 손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결과가 무엇이냐면 종자가 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이 횡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뜻으로 볼 때 사랑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이 장자를 먼저 사랑해야 할 텐데 거꾸로 되었습니다. 천리에 어긋난 원칙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뒤집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역사를 보면 장자는 망하고 차자가 축복을 받아 이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종적으로 해야 됩니다. 타락은 횡적인 입장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횡적으로 벌어진 것이 발단이 되어 세계적으로도 두 세계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가인이 있고 개인 아벨이 있고, 가정 가인이 있고 가정 아벨이 있으며, 종족 가인 종족 아벨, 민족 가인 아벨, 국가 가인 국가 아벨, 세계 가인 세계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벨과 가인이 오늘날 민주와 공산입니다. 전부다 두패로 갈라져 있습니다. 각 국가도 여당 야당의 두패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몸 마음이 하나되지 않고 두 패로 갈라져 있지요? 그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먼저냐 할 때, 몸이 먼저인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먼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질서를 아직까지 세우지 못했습니다. 유심이 먼저인지 유물이 먼저인지 질서를 아직까지 세우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옳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도 싸우고 내려가도 싸우고 있습니다.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 부모의 혈육을 통한 사랑의 형제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같은 입장, 대등한 입장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횡적인 형제지간이 종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냐? 동생인 아벨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동생인 아벨이 먼저 되고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 앞에 굴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겠지만 이게 역설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 가는 데 둘이 서로 옳다고 하면 절대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둘이 서로 내가 옳다고 싸우면 절대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전후관계를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자, 즉 메시아의 뒤를 따라서 직선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른편에도 나설 수 없고 주님의 왼편에도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짊어졌으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르는 길에는 하나는 세계적이요, 하나는 국가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계와 국가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 가는 길은 직선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사랑의 순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담에게 나타나야 하고, 아담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천사장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아벨에게 나타나야 되고 아벨의 사랑은 가인에게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다시 가야 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천국 가는 비법이 뭣이냐? 예수님은 왜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왜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까지 내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전부다 못나서 그런 것입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앞에 6천년간 버티고 나왔습니까? 원리를 보면 아담은 원리결과주관권에서 천사장의 침범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아담이 복귀될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탄은 이제까지 하나님 앞에 원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를 처벌할 수 있습니까? 나를 처벌하려면 먼저 이 천지를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비록 천사장이 받는 사랑이지만 완성기준에서 사랑해 주시려고 창조하시지 않았습니까?'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도 천사장급 완성기준에서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천사장은 하나님께 언제 나를 완성단계에서 사랑해 보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기에 딱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성단계의 사랑을 천사장에게 해보았습니까, 못 해보았습니까?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유천지인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에게도 완성단계의 사랑을 다 해줘야 책임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꼼짝 못하고 걸려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 사탄은 하나님께 당신이 아들딸을 찾지만 못 데려간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먼저 사탄 자신을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대신 완성한 자리에서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서는 하나님도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후사로서 상속을 받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랑하지 못한 것을 해원성사해야만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이걸 하려다 걸려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면서도 피눈물을 흘리며 `아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4천년 동안 인류를 농락하고, 하나님께 참소하려던 최후의 고비가 완전히 막을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축복하면 하나님도 축복하여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조건, 즉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하는 조건을 들고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바쳤듯이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데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 이상 바칠 것이 없다고 할 때 생명권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자기의 사랑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것이 십자가의 노정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선 사람은 사탄의 참소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세울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제2이스라엘권은 사탄과 관계없는 해방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원리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덮어놓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하고는 주인의 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은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을 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종된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부모의 상속을 받는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를 모셔 나오던 종도 아들을 부모와 같이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야만 천도가 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면서 예수님을 보내어 믿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가 하나되지 않으면 해원성사와 구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둘이 하나되어야 부모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형제끼리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해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고 부모를 해방하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될 수 없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부모를 복귀한 후에 하나님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시에 복귀해야 됩니다. 타락이란 사탄과 비원리적인 사랑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일시에 형제를 잃어버리고 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일시에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고 넘어선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법에 걸리지 않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법에 의해 못 들어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도 천법에 걸려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다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니 생령체급 영계에 간다고 꿈꾸겠지만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는 한 가지 비법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인 여러분이 승리적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땅 위에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 땅 위에는 가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가인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오시는 주님은 부모이기 때문에, 원칙에 의해서 가인을 복귀할 것입니다. 가인을 복귀하려면 아벨이 출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전도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전도를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 나가야 하느냐? 제일 고생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이 제일 비참했기 때문에 통일교인은 생사가 교차되는 감옥과 같은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어 가면서도 원수를 용서했기에 통일교회는 감옥 중의 감옥에서 부터 출발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여러분이 아벨적 입장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라는 것이요,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받아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 심정에 그냥 그대로 접붙이라는 말입니다. 접붙이고 난 후에는 무얼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커 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가운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벨은 누구입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통일교회 교인들을 소위 아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벨의 자격이 있습니까? 그것도 시험에 합격해야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낙제하면 신입생보다 못합니다. 그게 뭐예요? 재수생이지요? 기분 나쁜 것입니다. 아벨이 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려면 먼저 아버지의 생명에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문 선생과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느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좋든 싫든 문 선생의 사상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통일사상을 강제로라도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렇게 집어넣어 접을 붙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접붙지 못한 사람은 말라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패스해야 하는 것이 절대적 요인입니다. 원리시험에 패스한 것은 말씀에만 패스한 것이기 때문에 실천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탕감해야 합니다. 어떻게 행해야 하느냐? 편안한 자리에서 먹고 누워 잠만 자는 것이 아닙니다. 일선에 가서 싸워야 합니다. 사탄이 내 형제를 빼앗아 갔고, 내 가정을 빼앗아 갔고, 내 종족을 빼앗아 갔고, 내 민족을 빼앗아 갔고, 내 나라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다시 빼앗아 와야 합니다. 빼앗아 오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외톨이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음의 세 자녀를 찾아 세우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접붙이고 나서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아벨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았으니 사랑해 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담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느냐 하면 천사장을 사랑해야 합니다. 천사장의 입장이 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가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얼마만큼 사랑해야 하느냐? 자기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시키는 데는 강제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동시켜 뼛골이 녹아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에 감동하여 굴복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자기에게 접붙여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자를 대신할 수 있는 아벨은 그와 같은 심정으로 가인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담을 위해서 종도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인 아담을 위해서 종이 희생하는 것은 천리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어떻게 했느냐? 종의 입장에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가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으면 예수가 사지사판에 있을 때 예수의 죽음길을 막고 대신 죽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들이 종으로서 책임을 다 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도라고요?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베드로는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 갔던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 이렇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이 물은 것은 베드로가 개척자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길을 감사하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길을 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비로소 이 세상에 복음의 자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 구원을 받아요?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형틀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뽑아내고 생명을 끊는 데 쓰인 십자가가 구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잃어버린 사랑의 인연을 다시 맺는 자리에서 복음이 출발되는 것이요, 생명이 부활되는 자리에서부터 복음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건달 지도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나중에 아무 알맹이도 없는 거지 팔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끝날에 망할 운명을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정통이니 하면서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해요? 상놈들이 양반을 알아본 다음에는 돌아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까지 양반 행세를 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진짜 양반이 나오니 분하고 원통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종자를 모르고 동생의 씨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망하나 한번 보세요.
지금 여러분들은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이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다음에 가인인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복귀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가인 입장인 형님된 기성교회를 찾아서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안 받아 주면 망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탕자의 비유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형이 기뻐했어요, 슬퍼했어요? 거기에서 탕자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형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면 부모가 동생에게 준 것까지도 자기 것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 나중에 나왔으니 동생인 아벨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사랑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70년도까지 입이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분한 것을 분풀이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 참아 온 것입니다.
형님들이 동생들에게 분풀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수습하여 환고향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날이 와야만 천국통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기성교회에서 나에게 욕을 하고 죽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을 위해서 정성들였고, 아무리 억울해도 일체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심판을 받고 망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러한 일을 해온 것입니다.
누가 아벨입니까? 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가인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사랑을 하며 좋아하십니다. 가인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다하면 하나님의 공법은 자연히 그를 중심삼고 벌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생명이 결부되고 아담의 자리와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원리를 알든 모르든 일선에 나가서 죽도록 가인을 위해 고생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생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의 길을 통해 가인을 사랑하는 데에 미쳐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우리는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선에 나가야 되겠어요, 안 나가야 되겠어요? 「나가야 됩니다」 저기 아주머니도 나가야 되겠어요, 안 나가야 되겠어요? 만약 나가지 않았다가 죽어 보세요. 어떻게 되는지…. 이제 선생님은 책임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다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왜 안 가르쳐 주었느냐고 하지 마세요. 가르쳐 주었어요, 안 가르쳐 주었어요? 지금이 1970년 12월 27일 오후 2시 10분 전이지요? 선생님은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은 지금까지 숨겨졌던 비밀입니다. 이것이 수천년 동안 인간이 알고 싶었던 비밀의 골자입니다. 이것을 형편없는 무리들을 모아놓고 공짜로 전부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아직도 이것이 진짜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가짜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복귀노정을 가는 사람은 개인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가정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종족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민족 가인을 사랑해야 하고, 국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남북으로 갈라지는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는 개인 개인이 갈라져 있고, 가정이 갈라져 있고, 종족이 갈라져 있고, 민족이 갈라져 있습니다. 한국의 판문점을 중심삼고 남쪽은 민주권으로 북쪽은 공산권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곳이 세계의 혈(穴)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혈로 등장한 이 한국은 숙명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중심삼고 민족과 종족이 갈라지고, 민족과 가정이 갈라지고, 가정과 개인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무리가 되어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아벨 입장인 민주세계의 남한을 중심으로 가인 입장인 공산세계의 북한이 따라오게 되면 세계평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풀고 처리하며 교육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통일원리요 통일사상이라는 것입니다, 통일사상. 이 통일사상이 지지리 못난 한국 민족 가운데에서 나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서글픈 역사와 더불어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몇 사람의 가인을 굴복시켜야 되느냐? 세 사람입니다. 아담 시대의 가인, 예수 시대의 가인, 재림주님 시대에 핍박하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천사장은 몇이 있었느냐? 3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할 때도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왔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뜻하느냐? 에덴 동산의 가브리엘 천사, 미가엘 천사, 루시엘 천사, 이 3대 천사가 아담의 탄생을 기뻐했던 것처럼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의 탄생을 세계적으로 환영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은 자기 시대에 있어서 이방 사람을 대표한 동방박사 세 사람과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를 중심삼고 민족적 기반을 구성하여 자기를 중심한 세 아들딸을 세움으로써 10수를 완성하여 천국을 개문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언제 가인을 사랑하기에 미쳐 보았습니까? 가인 하나를 찾았을 때 나라를 찾은 것보다 더 기뻐했습니까? 가인 한 사람을 찾게 되면 대한민국을 찾은 것보다 더 기뻐해야 합니다. 세계를 찾은 것보다 더 기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시집간 색시가 아기를 낳게 되면 신랑은 싫어해도 아기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아기도 그 신랑의 씨이니까 미워해야 할 텐데 아기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엄마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가인 한 사람을 찾고도 그렇게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아들딸을 하나라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 보았어요?
통일교회 문 선생은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알아요? 보고 싶어서 눈이 붉어지도록 운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운 것처럼 사람들이 그리웠습니다. 선생님이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를 그리워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 때문에 통일교회 문 선생이 욕을 먹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종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대해 좀 더 세밀히 얘기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다 하면 그 사람들에게 지장이 있을 것 같으니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발표할 것이 많고 많지만 조금 더 있다가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건달과 같은 멍청이들입니다. 먼저 간 유협회장도 그래요. 원리책만 써 놓았다구요. 그게 다예요? 선생님이 어디에서 무슨 말씀을 했는지 먼저 알아서 행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슨 부장이니 무슨 지역장이니 하는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원리 가운데 나타나는 선생님이예요? 원리에는 예수님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말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도 원리만 중요시하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마음으로 따르고 동고동조하면서, 그 생활에 감격하여 내일의 역사 창조의 기수로서 책임 다할 수 있는 통일교회 신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심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계속 가진다면 여러분 가정에는 삭풍(朔風)이 불어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북으로 가게 될 때 남아서 낄낄거리고 딴 짓 하는 그런 사람은 다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라고요! 눈만 뜨면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이 몇 시에 나가고 몇 시에 들어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단체를 책임진 사람들은 선생님과 호흡을 같이하고 맥박을 같이 느끼고 행보를 같이해야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소위 오래 되었다는 통일교회 교인들, 지금의 선생님은 여러분이 옛날에 알던 선생님과는 다릅니다. 천양지판입니다. 지금은 옛날 그대로 대할수 있는 때도 아니거니와 앞으로는 선생님이 언제나 한국에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1974년 제2차 7년노정까지는 통일교회가 적어도 수십이 아니라 백이 넘는 선교지를 택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에 선교지를 70곳만 만들어 놓고 선생님이 한 곳에 석 달씩만 가 있게 되더라도 한번 떠나면 17년이 지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17년이 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제 나이가 50을 넘었습니다. 얼른 보면 50을 넘은 사람 같지 않지요. 선생님은 불의를 보면 용서하지 못합니다. 또한 지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뼈 없는 사람처럼, 허리가 부러진 호랑이 새끼같이 지지리도 못나게 이러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한번 잘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구들이 잘못하면 부모가 처리할 수 있지만, 부모가 잘못하면 아들딸까지 전부다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잘못할 때는 부모가 수습작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선에 서지 않고 작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조심 조심하면서 이 일을 해 나왔지만 낭패입니다, 낭패. 맹탕, 맹탕이라지만 이런 맹탕이 또 어디 있어요?
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들이 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려요. 다 되고 싶다고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뭘 하셨느냐 하면 사랑할 수 있는 아들 한 사람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자협조를 위한 섭리를 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모자협조에 승리하게 하여 하늘의 길을 안내하는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마리아격 존재를 세운 후 이 땅 위에 주님을 탄생시키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모자협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모자협조을 이루려면 부녀협조, 그리고 부부협조가 이루어진 다음에 모자협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꾸로 섭리해 오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관계가 없는데 모자관계가 있어요? 부부협조가 있기도 전에 모자협조가 있을 수 있어요? 성경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모자협조만 해 나왔습니다. 비정상적이지요? 거꾸로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부부협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자(母子)관계가 아버지가 없이 나타날 수 있어요? 모자협조가 있기 전에 부부협조의 기반이 어디에 있었느냐? 부부협조가 있기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녀협조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녀협조, 부부협조의 과정을 거치고 모자협조가 나와야 할 텐데 지금은 모자협조가 한 사람밖에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부녀협조, 부부협조는 통일교회 가정부인들을 내세워서 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주머니들을 왜 사지에 내보내야 되느냐? 이제까지의 모자협조의 기준을 탕감하려면 그 길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자협조의 기준을 다시 얽어매고, 부부협조 기준을 얽어매고, 부모협조 기준을 얽어매야 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전도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가지지요? 통일교회 문 선생도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져요, 안가져요? 갖지요? 어머님이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갖지요? 여러분의 아내도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또, 여러분의 아들딸이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모두 관심을 가지니까 비로소 6천년 전에 해와가 일시에 파탄시켰던 환경을 지상에 있는 하늘편의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이제부터 가정이 책임지고 넘어가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어간 후에야 입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내를 내보내지 않는 사람은 걸립니다. 만약 걸리게 될 때 아무리 선생님께 사정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소망의 한 기점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녀가 되어 어떠한 역사노정을 거쳐서라도 하나님께서 이상하셨던 창조본연의 가치를 그냥 그대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을 이러한 모습으로 유지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내적인 고통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입장에서 한 단계 올라왔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여자를 일선에 출동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자를 중심한 가정적 탕감복귀시대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 3차적으로 삼팔선을 중심삼고 여자가 해야 할 국가적 탕감복귀시대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남한에 있는 여자들을 여군으로 만들어서 인민군들을 때려잡아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의 남자들은 시시합니다.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이북 공산당들이 무서워서 야단입니다. 여자들을 중심삼고 공산당을 때려잡아야만 여자가 유인했던 사탄세계를 추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을 여자가 때려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우리가 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의 뒤를 따라올 것입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의 가정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쉬고 다시 그들을 남한 땅에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 전체가 통일사상으로 일원화되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축복가정들의 여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킬 것입니다. 30세 이상 33세 미만까지 전부 다 동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축복가정들은 40세까지 이러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는 40세를 중심삼고 볼 때 7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40세까지 전체가 동원되어 일선에서 공산당들을 전부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자가 언제 나라를 해방하는 데 동참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세상은 남자들이 전부 다 꾸며 놓았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여자가 이런 일을 하여 세계적으로 통일의 한 때를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찾아진 나라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이 삼팔선의 파수병으로 선두에 설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부인들이 그런 자리에 설 때 여러분은 후방에서 탄알을 날라야 됩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죽으면 되겠어요? 먹을 것을 날라 주고 탄알을 밤새도록 날라다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겠으면 아내 대신 나가 싸우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나가서 싸우겠다고 전후방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든 선생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꺼번에 동원하여 공산당을 무찌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나라를 위해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가정을 위해 싸우고 있지요? 통일교회 축복을 받으면 가정을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아벨의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대한 민국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소생여자작전시대, 장성여자작전시대 그리고 완성여자작전시대, 이렇게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복귀 완성과 상대이념을 완성하여 선을 번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의 번식은 국가기준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의 자녀를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세계를 통과하는 국가가 없으면 3대 여자복귀를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남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왜 여군을 만들고 있는지 압니까? 이것은 앞으로 여자들이 공산 세력을 무찔러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통일교회 부인들, 여군에 동참하겠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할래요, 흥할래요? 망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다 흥하겠다는 거예요? 어디에서? 치마밑에서? 그것은 안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이 일을 여자들이 해야 되는 거예요. 여자들은 어차피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전부다 천사장 패들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내가 여자들을 한번 싸우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내가 전도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이 녀석들 남을 볼 게 뭐야? (웃음) 지금까지 얘기했는데, 자기가 갈 길은 자기가 가야지 남을 보면서 갈 거예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정들을 동원할 때, `설마 선생님이 그럴 수 있나? 40일 전도기간에도 가만히 두셨는데 이번에도 그러겠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40일 전도기간에는 어물어물 지나갔지만 이 3년기간은 안 가면 안 됩니다. 빠져 나갈 데가 없다는 거에요. 남들은 다 나가는데 혼자 남아서 사업하겠다는 사람은 죽었으면 죽었지 못 산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나간 사람들은 햇수 날수를 다 채우고 들어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림없습니다. 그 길은 어차피 가야 될 길입니다. 가지 않은 사람은 선생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거꾸로 출동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뜻을 이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뜻을 위해야 선의 조상이 되고 선의 가정이 되어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천도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가야지 자기 개인의 욕망과 사적인 행복을 꿈꾸며 가서는 안 됩니다. 공산당이 말하는 것처럼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식은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아버지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누구의 것이라구요? 결론은 아버지 것이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식은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것인데, 통일교회식은 나 대신 아버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산당식은 자기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자기 개인의 이익에 결부시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문 선생님의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귀한 것을 행하고, 그 귀한 것이 얼마나 큰지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곳은 혼자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인을 찾아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의 세상을 누가 지배하고 있습니까? 천사장인 사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천사장형이지요? 그러니 이 세상을 누가 하나님 앞에 돌려주어야 하나요? 가인이 기쁨으로 회개하고 돌려주어야 합니다. 아벨의 자리에 선 나의 것은 가인을 통하여 복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으면 망하는 것이요, 남을 중심삼으면 흥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망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남아지고 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것은 하늘편을 위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공적인 결혼을 했습니까, 사적인 결혼을 했습니까? 「공적인 결혼식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40세에 18세 소녀와 결혼을 했는데 여자에게 반해서 그런 결혼을 한 줄 알아요? 선생님이 40세가 될 때 대학을 나온 30세 되는 여자들이 결혼하겠다고 줄을 섰고, 밤이든 낮이든 선생님이 받아주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 저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를 데려다가 재교육을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내를 위해서 7년 동안 피눈물나는 정성을 들였습니다. 지금까지 열녀는 있었지만 열남은 없었습니다. 역사에 대표적인 열남을 남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얘기할 때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다 해보고 틀림없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데 눈알이 뒤집혀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공적으로 믿습니까, 사적으로 믿습니까? 「공적으로 믿습니다」 그래요. 나라 때문에 믿고 세계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 나라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라가 없는데 천국에 가서 뭘해요? 천국이라고 해서 견디어 낼 것 같아요? 대한민국이 나라를 잃었을 때 일본이 어떻게 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한테 꼼짝도 못했습니다. 아들딸을 마음대로 사랑하며 살 수 있었습니까?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끌고 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온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의를 세우려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마실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일체 그 나라에 적응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를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이제 후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후퇴하더라도 선생님은 후퇴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갈 길을 한 단계 앞서서 개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불원한 장래에 한국을 떠나겠다는 것도 여러분이 닦아야 할 세계적인 기반을 미리 앞서서 마련해야 되겠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에게 한국에 오시라고 울고불고 기도를 하고 별의별 일을 다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그럴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성교회 목사들도 몰라서 통일교회를 반대했으니까 이제는 선생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고 사정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갈 길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즘도 철없는 여자들은 소식도 없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때가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상당히 바쁘다는 겁니다. 지금도 다섯 사람만 만나면 하루가 지나갑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세월 가는 줄 모릅니다. 아침에 와서는 점심 저녁까지 얻어먹고 쭉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하루에도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말이예요. 그렇다고 쫓아내면 기분 나빠하고 입을 삐쭉거립니다. 선생님이 어디를 나가면 곧 들어오겠거니 하고, 저녁 때가 지나고 밤 열두 시가 될 때까지 선생님을 보고 나서 가야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에게는 그럴 수 있는 개인적인 때가 다 지나갔습니다. 전부 달라졌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렇게 전진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전진하기 위해 개인적인 복귀시대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하더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개인적 시대의 일을 하면 여러분도 여기에 협조하여 같이 정성들이면 하나님께서 같은 가치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정적시대, 종족적 시대, 민족적 시대, 국가적 시대의 일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 시대에 따라 충성해 나가며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기에 여러분을 여기에 동참시키기 위해서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기분 나빠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콧대를 세워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때 한 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때가 지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한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싫든 좋든 선생님이 하라는 일을 영광으로 알고 선생님을 좇아야 됩니다. 뜻은 싫든 좋든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 뜻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법도를 세워 조직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입장이라면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자는 시간에, 내가 길가는 시간에, 내가 놀거나 쉬는 시간에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비운이 깃드는지 행복이 깃드는지 그 시운을 몰라 가지고 어떻게 그 나라의 충신이요 백성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있는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뜻의 때를 상속받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뜻을 대한 때, 가정이 뜻을 대한 때, 민족이 국가 세계가 뜻을 대한 때가 일직선상에 서게 되어 가지고 그 자리에서 세계 만민의 평등권이 이루어지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고, 가정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고, 종족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고 민족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습니다. 통일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자랑할 전통을 다 짜 가지고 나왔는데 그것을 상속받아야 할 여러분을 보니까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합격될 수 있는 가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가정이 될 수 있게끔 훈련과 시련을 거치게 하고 연단시켜 준비해야 할 책임을 선생님이 짊어졌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개인구원의 목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구원의 목적을 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그 말에 담긴 의미뿐만이 아니라 기나긴 시대를 거쳐오면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기독교인을 학살할 사람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 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때가 역사적인 초점을 바라보고 넘어가는 정상에 서서 좌우를 판가름해야 할 시점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으며, 그 나라에서 자랑할 수 있는 전통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아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사랑하는 아버님!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원리를 따라 안팎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이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부족한 저희들을 거느리고 무지한 백성들을 치리하면서 당신이 원하는 소망의 나라에까지 갈 수 있는 그때를 바라시며 마음 졸이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뜻은 기필코 성사될 수 있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나이다. 나라가 바뀌어 가고 세계가 바뀌어 가더라도 이 뜻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생애노정을 다 바쳐 이 뜻을 받들어 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충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사옵니다.
앞으로 대하는 환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당신을 대한 정열에 불타고 의에 불타는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하고 용기백배하여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젊은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못 당신 앞에 민망함을 느끼고 이 민족이 책임하지 못한 과거지사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후회하면서 용서를 빌지 않을 수 없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이 해방될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대한민국 자체로서는 해방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을 움직이고 중국을 움직여서 하나의 연방체제를 갖추어야 하겠사옵니다. 중국 민족 앞에 이 뜻을 제시하기 위해서 8억에 가까운 중공 백성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체내의 중심을 마련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저 북쪽에 소련이 저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김일성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옵니다. 배후에 소련과 중공이 배수진을 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뜻을 따라 나오는 통일의 무리들이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문제임을 아옵니다. 아시아의 안보문제는 정치가들이 염려하는 것보다 뜻을 따르는 저희들이 직접 일선에 서서 염려해야 되겠사옵고, 저희들이 아시아의 전역에 걸쳐 반공태세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의 이러한 시급한 사연을 당신께서 아시옵소서.
아버지시여, 명년을 중심삼고 일본에서 계획하는 작전을 당신의 장중에 넣으셔서 살피시옵소서. 수많은 민족을 규합하고자 동경에서 계획하였사옵니다. 제가 이런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하니 하였사오나 당신의 경륜 가운데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일을 위해 피눈물나는 골고다의 자리를 거쳐 나가야 할 일본 식구들을 위해 저희들은 몸과 마음으로 협조해 줘야 되겠사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원수가 되었던 한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를 방어할 수 있는 방파제가 되고, 태평양 문화권 시대에 있어서 한국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파제로서 거룩한 문화적인 터전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것은 미래의 한국에 천국을 보장하고 공적인 터전을 넓히기 위한 아버님의 후하신 사랑의 은덕임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통일교회의 기치를 드높여서 일억의 일본 국민을 아버지 품에 품으시옵소서. 해와의 국민성을 대신한 일본 땅에서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을 빛낼 수 있는 한 무리로 택하여 주신 그들이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중국은 이분된 운명에서 신음하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중공의 유엔 가입 문제를 목전에 놓고 중공을 시인하는 체제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최후의 접경선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당신은 올라가고 사탄은 굴복되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대립 상태로 나아가는 이 때에 있어서 세계적인 시운을 붙안고 당신께 겸손히 제물드려야 할 무리가 오늘날 핍박받고 쫓기는 저희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생애과정을 바쳐 나왔던 길도 서러운 길이었지만 앞으로 가야 할 행로가 더 심각하고 긴장된 행로라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이 저희들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눈물 흘리는 길을 가야 되고 슬픈 사정을 안고 몸부림쳐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자식을 많이 가진 부모의 괴로움과 서글픔을 알려면 자식을 가져 봐야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의 자녀들은 아직 당신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이제 일선에서 당신을 대신하여 싸워 본 후에는 당신의 심정을 느끼고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새로 조성되는 통일교단의 빛이 만방에 빛날 수 있는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생명보다 더 귀한 아내를 바치고 자식을 바치는 운동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1200가정을 대표한 아낙네들을 일선에 파송하였사오니, 아버지,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민족애에 사무친 뜨거운 눈물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리거리를 헤매는 그들의 모습이 처량했던 예수님의 행각의 노정을 대신하게 하시옵고, 그들이 그렇게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희망의 천국이 약속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서글픈 자리를 동정하시어서 당신을 모시는 그 자리가 보금자리의 터전이 될 수 있게 하시고, 그 자리에 새로운 역사적 창조의 인연이 벌어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일찌기 감옥에서 서글픈 골짜기의 길을 개척할 당시에 당신이 분부하신 명령을 아직 잊지 않고 있사옵니다. 수십 년의 역사를 지내 왔지만 그때의 그 심정적 인연은 아직까지 시간과 공간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를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으면 저를 대신하여 그들을 사랑하여 주시옵고, 제가 세운 공적의 터전이 있어서 당신이 자랑하고 칭찬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 민족과 세계에 나누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해방의 은사를 받아 내일의 희망의 기수가 되어 아버지의 존전에 영광과 기쁨을 돌려 드리는 무리로 남아질 수 있게 하시옵고, 그 수를 더욱 가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 정월 초하루, 새로운 아침을 맞게 되었을 때 1970년도에 이루겠다던 소원을 넘치도록 이루어 놓았사옵니다. 아버님,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 아니옵니다. 슬펐던 아버지이옵고, 외로왔던 아버지이옵고, 불쌍한 아버지이옵니다. 상처받은 핏자국을 아직까지 씻지 못한 서글픈 심정을 가지고 계시지만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뜻에 미쳐서 망할 수밖에 없는 아들딸을 찾아 나오신 당신의 발걸음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얼마 남지 않은 1970년도를 거룩하게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 동안 국제적인 행사가 많았습니다. 염려하던 그 기간을 당신이 보호하여 주셨고, 그런 일들을 통하여 민족의 자세를 올바로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목표점에 결합시켜 주신 은사에 감사하옵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새로운 시운을 천운과 더불어 짝할 수 있는 가운데 맞이한 사실들을 생각하게 될 때 모두가 아버지의 은덕임을 알고 감사드립니다.
보기에는 복이 없는 통일교단이요 외롭고 처량한 통일교단이지만, 은은한 가운데 미래의 약속과 장래의 소망이 그 배후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오니, 낙오자의 서러움에 부딪치는 불쌍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낙오자의 서러움과 패배자의 슬픔을 당할까봐 이를 악물고 눈을 똑바로 뜨고 이 길을 갔듯이, 이들도 이를 악물고 눈을 똑바로 뜨고 내일의 소망의 기준을 자기의 것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후사들이 되게끔, 아버지, 채찍으로 몰아치시옵소서. 사랑하는 것보다 냉정하고 매정하게 몰아치시옵소서.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적 권한을 갖추어 가지고 2차적 해방, 3차적 해방을 맞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품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단과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을 붙들고 나오신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큰 은덕을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이제 1970년을 넘기고 1971년부터는 분망한 자리에서 기쁨의 천지를 바라보며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당신께 효할 수 있는 한 때를 가져야 되겠기 때문에, 저희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어려움을 헤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성전을 마련해야 되겠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집들도 마련해야 되겠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교육기관이나 수련소도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1970년도를 중심삼고 온갖 노력을 다하게 하신 아버지의 후하신 사랑에 감사하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당신의 축복의 은사를 받고 보니 무한히 감사하옵니다.
제가 사람을 의지하고 이 일을 경륜하지 않았사옵니다. 당신을 의지하여 일을 시작하였고 당신을 의지하여 결과를 맺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거기에 통일의 무리들이 가담하여 당신과 더불어 감사할 수 있는 동참의 조건을 세우지 못한 책임을 서럽게 생각하오나, 조건이라도 남기기 위해 약속을 세워 놓았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환희에 벅찬 1970년대에는 저희들의 깃발이 천지를 뒤덮고 아시아의 전지역을 진동시킬 수 있으며, 세계 전인류의 가슴에 새로운 소식과 새로운 경종이 될 자극을 남겨 주기 위한 승리의 행렬이 갖추어져 당신이 명령하신 목적에 따라 직행할 수 있고 의에 불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선을 옹호하는 데에 선의 용장들이 되고 정병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도를 보내는 마당에 기성교회의 수많은 무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사옵니까? 암담한 미래의 암초를 향해 진군하는 그들의 방향을 돌려야 할텐데, 아버지, 방향을 모르는 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망한다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저희들에게는 기쁨이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 피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한 때가 남아져 있음을 느끼옵니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찾아 거룩한 아버지의 제단에 바치지 않고는,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만민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권을 세우지 않고는 해원성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만약 저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역사적인 제단의 터전이 부끄러워 당신 앞에서 통회와 탄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통일교단이 소원하는 것은 저희들의 소원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감정이 앞서고 가슴이 막히고 목이 메이고 안타까움과 분함과 원통함이 사무치오나, 당신께서는 분하거나 원망스럽더라도 참으시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들도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아가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몸부림쳐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세상의 교계를 긍휼히 보시옵고, 기독교권내에 있는 민주세계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만민이 하늘의 승리를 찬양하고 그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의 무리들을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일선에 서 있는 딸들을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가서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오나 그럴 수 없는 환경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싸우는 길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싸우게 하시어서 당신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딸로서 남아지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이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기원이 당신을 모시는 내심의 결정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이번 기간에 부디 후덕하신 당신의 뜻이 그들과 연결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세계의 수많은 국가권에 파송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원하신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재삼 바라옵니다.
오늘 이 시간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제 새롭게 느끼고 결심한 바를 통하여 1971년도를 환희의 해로 맞이하여 뜻 앞에 졸장부가 되지 않고 용장이 되게 하시옵고, 불효와 불충의 모습이 되지 않고 효성과 충성의 길을 다 가게 하시옵소서. 만백성을 위해 추억과 전통으로 고이 물려 받을 수 있는 날을 설정하기 위해 온갖 정성과 생명과 사랑을 다 기울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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