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부족한 자녀들이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굽어살피시옵소서. 항상 당신의 은사 가운데, 당신의 보호하심 가운데 지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을 갖추지 못한 저희들인 것을 생각할 때, 죄송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또다시 긍휼하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은사를 고대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다시 찾아오셔서 저희들과 의논하시옵소서. 저희들에게 명령하시고 저희들에게 맡기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땅 위의 인간을 구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생각하오나 사악한 이 땅 위에는 당신의 참을 고대하며 당신의 거룩한 인격을 본받아서, 흠이 없고 선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참된 자녀가 많지 않사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 가운데에 당신이 찾고자 하시고 만나고자 하시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주고 싶어서 가지고 오시는 선물을 기다렸다가 만나서 받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시옵고, 당신께서 심히 기쁘신 마음으로 영광의 권한을 가지고 축복과 더불어 은사를 베풀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선조들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당신이 남기신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늘만 우러러보면서 믿고 따라왔던 것을 아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뜻의 귀결점이 어디이며 뜻의 방향이 어떻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내에 세워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부족한 몸을 굽혀 당신의 거룩함을 찬양하고, 당신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에 사무치는 이 한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고요히 저희의 마음 마음을 일깨우셔서 당신이 찾으시는 거룩한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고, 부족한 것을 제거시켜 완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은히 저희 자체를 일깨우시어서, 영광의 자리에 속할 수 있는 은사의 아들딸임을 자각하고 뜻을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결의하고 맹세하는,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들이 늘 당신 앞에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빚을 지고 있는 줄 모르는 불쌍한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역사를 통하여 빚을 졌고, 이 시대를 통하여 넘치는 은사를 받고 있는 이 빚을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부족한 저희들인 것을 생각할 때, 언제나 손해를 보는 입장에서 저희를 이로운 자리에 세워 주시는 아버지의 은사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거기에 가하여 생명을 다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소수의 무리들이 여기에 참석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품이 그립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립고,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그리워서 모인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일면을 충당시키기 위해서 모일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소망 가운데 기뻐하실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충당시키고, 아버지의 책임 분야를 인계받아 가지고 그 책임을 다하여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부끄러움이 없는 참된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개개인을 부르시어서 '너는 역사시대에 어떤 과정을 거쳐 왔으며 현재는 어떠한 입장에 있다. 앞으로 너를 통하여 어떠한 인연을 남기고 싶다'는 바라심을 낱낱이 통고하시옵소서.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고 아들딸이 기뻐할 수 있는, 당신의 소망과 아들딸의 소망이 일치될 수 있는, 당신의 영광의 뜻을 대하여 승리의 가치의 실체 터전을 바쳐 드릴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을 맺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온 세계에 내리는 하늘의 은사는 저희들을 통하여 수습되고, 온 영계는 저희들을 통하여 하늘의 은사에 연결되고자 하는 엄청난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여 가지고 이 소원에 일치되고, 이 소원의 뜻 앞에 승리적 제물의 모습을 갖추어 아버지께서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의 모습이 되고 딸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이곳을 그리워하며 생명의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축수를 드리는 수많은 자녀들을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통하여 고아와 같은 자리에서 슬퍼해 나왔던 인연을 따라 새로운 가정의 인연을 가지고 새로운 종족권과 새로운 민족권을 바라보고 있는 이 무리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이 깃드시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거기에 나타내시옵소서. 당신의 권위가 그들과 더불어 같이하시옵소서. 싸움의 역로(歷路)에서 외로움을 당하며 고독한 자리에서 당신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거든,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은사로,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고, 아버지 앞에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지 않고는 자기 스스로의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어서, 마음으로 고대하고 몸으로 몸부림치면서 아버지를 위한 영광의 실적을 자체의 생활권내에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이 한국이 가야 할 행로를 아버지께서 가려 주셔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남북한이 갈려 있는 서러움과 비운을 탄식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개체 개체가 갈라졌던 모든 원한의 터전을 세계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거두어야 되겠사옵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를 대표한 입장에 선 이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저희의 마음과 몸이 갈라져 가지고 싸움의 행로를 가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비운의 역사도 남북으로 통하지 못하고 갈라져 가지고 그 가운데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강산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거룩한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밤낮 정성들여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여야 할 사명이 각자에게 있는 것을 망각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삼팔선을 바라보면서 남북한으로 갈라진 인연을 갖고 있는, 혹은 서로 통할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고 있는 이 민족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북한과 남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피흘린 투쟁의 결과를 엮어 왔던 역사적인 사실을 회고해 보게 될 때, 모두가 이 민족이 하늘 앞에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해진 탕감의 노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아버지의 뜻의 행로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어느 한때라도 탕감의 노정을 거쳐야만 아버지 앞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아버지, 지극히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민족을 대신한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교단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각자의 종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울 때가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하나되는 길을 모색해야 되겠습니다. 이 남한이 힘에 힘을 가중시켜서 북녘 땅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할 때, 먼저 하늘을 따라 나가는 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하나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당신이 통일교단을 세우시어 남모르는 수고의 행로를 거쳐 나가게 해주시는 은사를 저희들은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자기 소견을 갖추고 정색한 모습으로 나라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시대적 운세권내에 있는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빚어 온 것을 슬프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이 나라의 체면과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인연의 자리에 남겨 주셨다고 생각하고 민족에 대한 책임을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각자가 그런 심정을 다짐하게 하기 위한 사무친 은사의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의 저희들은 내 스스로의 생활을 하는 자리가 복된 자리가 아니라, 하늘의 나라를 세워서 하늘의 주권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자리가 복된 자리인 것을 알고 그 자리를 위해 일체를 투입하여 전진에 전진을 다짐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가 하나되는 때가 오늘날 복귀도상에서 저희들이 국가를 중심삼고 바라는 정상의 때인 것을 생각하고,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쉬지 말고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에게 힘이 부족하거든, 아버지여, 힘을 보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개척자의 사명을 그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 할 때, 아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알지 못하는 것보다도 알고 행치 못하게 될 때에는 그 탕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역사시대에 아버지 앞에 비운을 심어 놓았던 그 민족은, 이 시대에까지 그 결과의 권을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서 내일에 희망을 두고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민족을 이끌고 가야 할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스스로의 모습은 아버지와 더불어 일치해야 되겠고, 모든 생활은 아버지의 지도하에서, 아버지의 보호하에서 하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문의하고 실천하는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신도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은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들려 오는 소식을 저희들이 듣게 될 때,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신자들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그러한 모습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안 될 것이지만, 오늘의 저희 자체의 모습을 가지고도 안 될 것이옵니다. 주체적인 사명이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쓰러질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는 주체가 쓰러지는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주체가 쓰러지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전체가 쓰러진다면, 전체의 발전 역시 주체가 발전할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을 갖추게 될 때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오니, 아버님이여, 이 자리에 부복한, 갖추어지지 못한 부족한 무리를 더더욱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이곳을 통하여 숱한 역사를 엮어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숱한 수난과 역경을 참아 오면서 눈물도 짓고 몸부림도 치면서 이 한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엮어진 인연들이 흘러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주류 사상과 더불어, 당신이 거쳐가시는 행보의 실적과 더불어 길이 남아져서 만민의 정신계에 생명의 여운을 줄 수 있고, 신령세계에 생명의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이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참석할 적마다 당신의 거룩함을 본받고, 지금까지 쉬지 않으시는 당신의 노력을 본받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그 선조들의 비운이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을 통하여 해원성사되어야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시대의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는 일만이 아니라 3시대 복귀의 해원성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늘 하늘편이 되고, 하늘을 대신한 대역자가 되고, 내일의 개척자가 되며, 희망의 봉화가 되어 영광의 세계의 빛으로 길이길이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인 자녀들을 수습하여 당신의 영광의 품에 품으시사 이날을 기쁠 수 있는 한 날로 받아들이게 하시옵고, 이달에도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시옵소서. 이해에도 저희들이 거쳐가야 할 모든 일들을 남기고 있사오니, 경륜하시는 뜻대로 모든 것을 가리시사 당신 것으로 세우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세계는 참된 선의 세계가 되지 못하고, 반대로 악의 세계가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타락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천국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기쁨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 반대의 권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고통을 당해야 되고, 투쟁의 행로를 가려 가서 내일의 소망과 더불어 승리의 한 날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비운에 싸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에도 그렇게 엮어져 왔고, 현재에도 그렇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참의 승리의 기준을 설정하여 이 악한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이런 역사는 미래에도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과거에 뜻을 품고 이러한 슬픈 세상을 바라보면서 일생 동안 슬퍼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뜻을 품은 종족이 있었으면 그 뜻을 중심삼고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슬퍼한 종족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 악한 세계에서 선민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무한히 싸웠고, 내일의 희망을 품고 갖은 고역을 극복하면서 오랜 역사시대를 거쳐온 것입니다.
선민권에 선 그 민족뿐만이 아니라 방계적인 국가의 입장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도 그 나름대로 하나의 선한 세계를 모색하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정경을 오늘 현실 사회에서, 현재의 국가들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역사는 그렇게 엮어져 온 것이 틀림없고 여기에서 새로운 무엇이 나오지 않는 한 미래에도 그러한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렇게 흘러온 역사과정에서 아무리 참을 고대해 왔고, 아무리 선을 찾아왔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서 참을 찾은 사람이 있었느냐,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의 자리에서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생애를 거쳐간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복귀의 노정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을 아는 우리는 그러한 기준 위에 선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참의 사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참의 가정이 나오지 않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요, 참의 가정이 안 나왔기 때문에 참의 종족과 참의 민족과 참의 국가도 이 땅 위에 형성되지 않았고, 참의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그 그리움 자체도 참의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참다운 사람을 역사는 그려 나온 것이요, 오늘 현재를 중심삼고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 참다운 사람이란 전체를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 전체권내에는 온 천주(天資)가 들어갑니다. 거기에는 하늘도 들어가는 것이요, 땅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 참다운 사람은 현재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요, 거기서부터 참의 인연이 전진의 도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참의 권(圈),즉 참의 환경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사람을 인류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참된 사람, 인류가 찾아 나오는 참의 인간과 상봉할 수 있는 한 날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많은 수고의 노정을 거치셔야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가야 된다면, 사랑할 수 있는 주체적 입장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보다도 더 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면서 참을 찾아 나왔고 하나님은 참을 세우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래의 표준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바라보는 기준과 하나님이 바라보는 그 기준 안에 일치되는 참의 기준이 결정될 수 있는 그때가 나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개인의 가치를 논위(論調)하되 개인만을 중심삼고 그 가치를 논위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개인의 가치를 논위하되 세계를 대표한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인간이 추구해 나온 참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고대해 나온 참의 기준이라는 것은 국가를 넘지 못했고, 어떤 종족을 넘지 못했고, 자기의 특정한 환경권내에 있는 가정이면 가정, 자기 사정이면 사정을 넘지 못하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은 세계적인 표준 밑에서, 그런 가치적인 기준에 있는 대표적인 참의 인간을 찾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금까지 세계는 커녕 국가적인 한계선도 넘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을 그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세계의 인간들을 세계적인 참의 기준까지 끌고 나오기 위해, 개인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가정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종족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민족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하는 세계의 인간들을 세계적인 참의 기준에까지 도달시키기 위해 수고하신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인간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보다 개척자의 사명을 더 하시는 입장에서지 않고는 인간을 그 기준에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또 책임을 진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땅 위에서 참을 찾기 위해 걸어야 하는 인간의 수고의 길보다 더 엄청난 수고의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이 세계적 참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어떠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떠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떠한 비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떠한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참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개척의 행로에서 당하신 그 비참함과 고독과 억울함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참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보급받기를 바라고 '하나님이여, 저희의 부족한 것을 전부 다 제거시키고 저희를 완전한 참의 자리로 이끌어 주소서'라고 언제나 기도하고 바라고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을 초월하지 못한 자리에서 구하고 있는 인간들이 현실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참의 기준에까지 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가 얼마나 클 것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됩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국가의 운명이 평탄하지 않을 때 그 국가의 어려운 상황이나 비상시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해 가지고 희생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희생의 대가로 나라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엄청난 수고를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수고한 것만 가지고는 그 참의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갑이라는 사람을 믿고 헙조하셨는데 그 사람의 기준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표준과 일치되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지게 될 때에는, 그것을 을이라는 사람에게 계승시켜서 다시 연결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세워 나가던 기준을 다음 사람 앞에 계승시키는 일은 순순하게, 순리적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탕감의 내용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탕감의 내용을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물론 그것을 계승받는 사람이 책임져야 하지만 그 사람만으로는 그 책임을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에 벅찰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자극시켜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현실적 과정을 초월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이 세계적인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우리 인간을 이만한 자리까지 끌어 나오기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겠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세계적인 운세를 바라보는 현재에 있는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때, 여러분 개인이 우연하게 이런 자리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되기까지는, 여러분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배후에서 시대 시대의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선조들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수난과 수고의 길을 거치셨던 것입니다.
그런 수고의 결정이 연결되어 여러분이 현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현재의 입장이란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현재의 입장이 하나님의 수고로 말미암아 엮어졌다면, 그 자리에 서있는 인간들이 하나님이 바라는 참의 세계적인 가치의 인간 앞에 얼마만큼 접근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기준이 각자에게 설정되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게 될 때에는 오늘날 우리 개체를 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러움이 남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현재 이와 같이 세계적인 시대를 맞이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책임지고 있는 사명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사명만이 아닙니다. 그 개인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를 맞을 수 있는 개인의 터를 개척할 길이 열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운세도 열려질 수 있고 세계에 연결될 수 있는 길도 열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럴 수 있는 인연을 연결지어야 할 우리 개체는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되느냐? 세계적인 참된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참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자기 개인 보다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속한 가정보다도 인류가 거하고 있는 다른 수많은 가정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특정한 종족보다도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족을 더 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하나의 특정한 민족보다도 세계국가권 내에 속해 있는 수많은 민족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을 대신하는 내용도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참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참의 인격과 가치가 되는 기준이 있다 할 때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든 입장을 극복하고 초월해야 됩니다. 초월하려면 현재의 입장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 고차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참의 인간에게 흡수되고자 하는 욕망이라든가 흠모의 심정이 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참된 사람이 나왔다면 그 참된 사람이 하나님의 소망적 터전이 될 것이요,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찾고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비로소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는 터전이 생겨날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참된 인간은 어디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참된 인간이 오늘날 타락권내에 있는 지상의 부모를 통해 태어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부모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백 퍼센트 환영할 수 있고 그 몸과 마음은 틀림없는 내 아들딸이라고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그런 참된 사람이 타락한 지상권내에 있는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태어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인간만으로는, 어떤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부모가 있다면,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먼저 그 부모와 인연을 맺어야 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참을 고대하는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부모와 인연을 맺어서 그 하나님의 소원을 책임지고 이룰 수 있는 아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제한된 자리가 아닌 미래의 선한 천국, 세계적인 천국을 고대하는 마음 바탕을 가진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모가 땅 위에 없어 가지고는 세계를 움직일 참된 자녀를 이 땅 위에 보낼 수 있는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세계를 염려하고 세계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생각을 하는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역사과정에 하나님이 엮어 오시던 노정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도 하나님이 이렇게 세계적 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찾아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역사과정의 인연과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그 입장을 계승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역사적 보조를 맞춘, 그러한 인연을 이어받은 부모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또, 현재에도 이 세계 인류 앞에 참의 기준을 결정짓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의 섭리 앞에, 세계적 섭리의 운세를 직접적으로 맞을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의 준비를 한 부모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자기를 통하여 미래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는 데도 어느 미래에 가서 중단될 수 있는 소망을 갖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하듯이 하나님이 갖고 있는 영원한 미래와 일치될 수 있는 미래를 그리는 부모라야 합니다. 그런 부모가 있어야 비로소 참된 사람이 인간세계의 한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시대를 하나님과 더불어, 이 시대를 하나님과 더불어, 미래를 하나님과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사람, 즉 하나님이 수고하면 같이 수고하고, 싸우면 같이 싸울 수 있는 인연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그런 혈육을 통해 가지고 참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참의 기준의 자리에서 태어난 그 사람이 역사의 일치점을 결실시킬 수 있고, 현재의 일치점을 결정지어 가지고 미래의 일치된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참된 사람이 태어나는 동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란다고 해서 인간이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동기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참된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를 가려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일치된 자리에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리는 그 점은 어떨 것이냐? 이 세상 역사와 병행할 것이냐? 병행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과거 사람들이 살던 환경에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냐?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현시대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가 그냥 그대로의 입장에서 좋아할 수 있고, 그냥 그대로의 입장에서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태어날 것이냐? 그럴 수 없습니다. 현재의 입장과 보조를 맞추는 환경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도 악한 세계가 연결되어 있었고, 현재에도 악한 세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론에서도 말하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고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인데 무슨 원수냐 하면, 어떤 외적인 조건에 의한 원수가 아니라 사랑의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많은 하나님도 사탄을 용서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랑을 주장하는 기독교나, 혹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표한 섭리노정에 심판이라는 명사가 왜 있느냐? 이것은 원수를 원수로서 처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의 주체인 사탄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인간들이 오랜 역사시대를 통해 잘못한 것도 용서해 주시려는 하나님이 사탄만은 용서하지 못하느냐? 사탄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태어났어야 할 인간이 원수의 핏줄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은 이 세상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과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환경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 태어 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하면서 몽땅 품고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단계를 가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가려야 되고, 내적으로 가려야 되고, 몸적으로 가려야 되고, 마음적으로 가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몇 단계를 가리고 난 후에 비로소 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역사과정에 난 참의 사람이라고 해서 거기에서 그냥 몽땅 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리는 데에는 어떻게 가려야 되느냐? 깨끗이 가려야 됩니다. 인간 타락의 슬픔을 느낀 하나님의 한은 인간이 백만한 가치의 내용을 중심삼고 타락했다면 백만한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가려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백 이상의 내용을 가지고 타락한 인간을 가려 버릴 수 있는 이런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타락으로 인한 슬픔과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더 좋아야 돼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성경에는 타락한 우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양자밖에 못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양자라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인간이라는 거예요.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내용이 달라요. 그러면 이 양자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만약에 양부모의 혈육이 있으면 그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가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보통 사람과 같이, 보통 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모를 위해서, 부모 대신 피를 흘릴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책임지고 가면서 거기에 무슨 조건을 내세워 가지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지 않으며 어떤 조건이라도 극복하고 희생하고 순응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선다면 그 양자를 맞은 양부모는 그에게 소망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모든 것이 그르쳐질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인간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진짜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나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위인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4대 성인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진짜 하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동양에서는 유교사상을 심어 준 공자라고 할 것입니다. 또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라고 할 것이고 회회교에서는 마호메트라고 할 것입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예수라고 하겠지요.
이들을 4대 성인이라고 하는데, 이 4대 성인 가운데서 누가 표준이냐?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 제일이냐? 누가 참이냐? 기준이 될 수 있는 참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참이 못 된다면 참의 기준에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성인이 누구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가려 놓아야 참의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의 방향도 설정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거기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우리 개인의 인생관도 설정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까지의 인간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될 수 있기 위해서는 순탄한 노정을 거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이 땅 위에서는 순탄한 과정에서 참의 결과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의 인격체로 태어나는 데는 역사시대에서 순탄한 자정을 거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환경 가운데 있는 모든 악과의 싸움을 극복하고 그 투쟁한 실적의 기반 위에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새로운 승리의 터전 위에서 참의 한 실체, 세계를 대표한 참의 주인공이 나올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참이라고 보시는, 우리 인간 앞에 참이라고 제시하시는 그 제일 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물질적인 것도 아닙니다. 권위적인 것도 아니요, 인간이 가진 어떤 재질적 조건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이 됐다. 이제부터 참사람이 된다. 참사람의 고개를 넘는다'고 제시할 수 있는 참의 기준의 내용이 무엇일 것이냐? 잘난 인격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효도 아닙니다. 충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게 뭐냐?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기준이 뭐냐? 참이 된다, 참사람이 된다 할 때에 넘어야 할 최고의 경계선이 무엇이냐? 그것은 민족도 아닙니다. 핏줄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핏줄이 다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사탄의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혈통을 재차 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결정될 수 있는 하나님이 제시한 최후의 선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 역사시대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보세요. 그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소망의 역사가 탄생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소망의 역사가 탄생되지 않으면 소망의 세계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예수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역사를 가만히 보게 되면 어떻게 됐느냐면…. (판서하심) 어차피 한번은 엇갈려야 됩니다. 악이 바른쪽에서 출발했고 선이 왼쪽에서 출발했습니다. 악이 먼저 출발했지 선이 먼저 출발한 것이 아니라구요.
오늘날 여러분이 생애를 통해서 보게 될 때, 일생을 사는 데 있어 기쁜 일이 많더냐, 슬픈 일이 많더냐 하고 묻게 되면 슬픈 일이 많다고 할 것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슬픈 일이 많다고 할 거예요. 혹은 여기에 나이 많은 분들 7,80에 가까운 분들에게 일생 동안에 기쁜 일이 많았소, 슬픈 일이 많았소 하고 묻게 되면 슬픈 일이 많았다고 할 것입니다. 슬픈 것은 악에 가까운 것입니다. 슬픈 것은 제거해 버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악에 가까운 거예요. 그러나 기쁜 것은 환영해 들이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선에 가깝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게 된다면 우리 인생 살이는 기쁜 생애의 삶이 아닙니다. 슬픈 생활이 태반입니다.
여러분, 일생이 몇 시간이나 될 것 같아요? 80년을 살았다고 해도 밤을 빼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40년밖에 안 되고, 거기서 소년시대, 노년시대를 빼고 나면 얼마나 되겠어요? 장년시대, 자기가 진짜 세상을 알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에 있어서 천지가 나를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 있기나 하겠어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이렇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냐? 선이 먼저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악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엇바뀌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한때에 교차점이 나타나서 바꿔쳐져야 됩니다. 바꿔쳐야 돼요. (그림을 그리심) 바꿔치려면 두 갈래가 여기에서 맞부딪쳐야 됩니다. 요 때는 교차로에 가게 되면 네 길이 생깁니다. 이렇게 내려올 때에는 두 길이지만 이 교차점에 가면 네 길이 되는 거예요. 인간은 어차피 이 교차점을 중심삼고 바꿔쳐져야 됩니다. 바꿔치는 놀음을 이제…. 하나님이 계신다면 역사과정에서 바꿔치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바꿔치는 놀음을 안 하겠지만…. 그러면 바꿔치기는 어느때부터 해야 되는 것이냐? 타락한 시기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타락은 어디서 했느냐? 아담 가정에서 했지요? 그러니 아담 가정에서부터 바꿔치기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이미 바꿔칠 수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선한 편이 아니라 악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 자체를 두고 볼 때에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사탄이 아닙니다. 본래의 주인은 하나님이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실체가 사탄편으로 갔습니다. 사탄편으로 가 버렸어요. 그렇지만 본래의 기준은 하늘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볼 때 본래의 기준에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있고, 몸은 사탄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몸은 사탄편에 잠겨져 있고, 마음은 하늘편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과 몸은 각각 하늘편과 사탄편에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우는 데 있어서 어떻게 됐느냐? 마음이 좀 강해 가지고 몸뚱이를 굴복시켜 나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번번이 마음이 몸뚱이한테 지기가 일쑤였어요. 번번히 져 왔어요. 그러면 종교는 무엇이냐? 몸뚱이를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때려잡는 방법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강한 힘을 가해 가지고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게 하는, 다시 말하면 마음에 강한 압축공기를 집어 넣어 가지고 작동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종교는 역사시대가 출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강요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육(肉)을 쳐라, 세상을 버려라, 다 버리라고 해요. 산중 수도해라, 그리고 정성을 들여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생명을 내놓고 정성을 들여라' 그러잖아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영계를 통하게 되지요. 영계를 통하면 마음에 강한 힘이 가해져서…. 마음과 몸이 4대 5로 대하던 것이 마음에 강한 힘이 옴으로 말미암아 40대 5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몸뚱이를 사로잡아 가지고 한 몇 해 동안 끌고 넘어가게 되면 몸뚱이의 활동무대가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몸뚱이의 활동무대를 딴 데 싸매 가지고 처리해 버리고 본연의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런 것이 종교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정성들여 기도했습니다. 어느 종교든지 정성을 안 들이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리고 몸을 치지 않는 종교도 없습니다. 몸을 치지 않고 정성을 안 들이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일주일 금식을 해야 되고, 개인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고, 가정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고, 민족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고, 국가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는 전부가 닐리리 동동으로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까지 딱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 수 있는 국가가 못 되는 것입니다. 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두 패로 갈라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됩니다. 그래서 딱 갈라진 것입니다. 그게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그 모체는 예수 한 사람입니다. 삼팔선이 어디서부터 생겼느냐? 국가에서부터 생긴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서부터 생긴 거라구요. 그러므로 통일방안은 어디에 있느냐? 정치적, 군사적 그런 무엇을 가지고는 통일할 수 없습니다. 근본에 들어 가서, 사람 가운데 있는 삼팔선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청산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몸뚱이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강한 압축공기를 집어 넣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몸을 때려잡을 수 있겠느냐? 자기 스스로는 못 때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 가지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 가지고 몸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짓이겨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몸의 안식을 버리고, 정욕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도 못 자게 합니다. 제일 힘든 것이 그것입니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철야기도를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타락으로 인한 선물이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에게 비공식적인 생활을 강요하시는데 그것은 천리(天理)가 아닙니다. 천리를 찾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비천리적인 극복 노정을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특정한 민족에게 약속을 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여 그민족을 통하여 이 일을 해 나오셨습니다. 그 특정한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하면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그러면 그 이스라엘 민족의 목적이 무엇이냐? 세계 나라를 점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선민이 바라는 소망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맞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것이 무엇이냐? 구세주입니다. 구세주는 무엇이냐? 참된 인간의 원형입니다. 여러분이 공장에 가서 보면 철형(鐵型)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틀이 있어 가지고 거기에 재료만 넣어 주면 데꺽데꺽 몇천 개고 몇만 개고 찍혀 나오지요? 구세주는 그런 철형과 같은 타입의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의 모델입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하나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질(質)은 다르더라도 괜찮아요. 질은 다르더라도 모양만 하나되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사람이 다 예수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모양만 같으면 되는 것입니다. 동그란 모양이면 동그란 모양으로 똑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뿔이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뿔이 있으면 그 뿔을 잘라 버리지 않고는 합격품이 못 되는 거라구요. 인간세계에 역사상 처음 하나님이 그리던 최고의 형(型)으로 사람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그 형을 대표해 가지고 짝을 찾으러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스라엘 선민은 그 메시아가 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도 그래요. 오늘날 전세계의 종교는 메시아 사상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을 바라고 있어요.
그러면 예수가 과연 인간세상에 있어서 역사적인 참의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인 혈통적인 기준을 초월해야 됩니다. 더럽힌 몸뚱이가 생명의 기원이 된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아담과 해와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극적인 입장에 있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는 하나님편을 갈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빼앗아 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 위해서 그 대신 실체(實體)인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락론에서 들었을 테니 세밀히 얘기하지는 않겠어요.
가인과 아벨은 형제간입니다. 그들이 뭘하느냐 하면…. 제시한 최후의 경계선이 무엇이냐? 최후의 정점이 문엇이냐? 그것은 핏줄을 갈라 내는 것입니다. 더럽힌 혈통을 깨끗이 청소하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을 끌고 나와야 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참이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가인와 아벨은 형제로 태어나서 나이 들어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하면, 복귀역사이니만큼 까꿀잡이 역사를 한 거라구요. 사탄이 이렇게 갔으면 하나님은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하심) 그렇기 때문에, 사탄편에서 태어난 가인이 형인데,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하려면 누구를 잡아야 하느냐? 형을 잡고 있는 것은…. 사탄이가 칼자루를 쥐고 있으면 하나님은 칼끝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먼저 태어난 아들 가인을 사탄이 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음에 태어난 아들을 붙들고 싸우는 섭리를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역사는 차자(次子)가 축복받는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 66권이 사실 그렇게 돼 있다고요. 성경역사는 가만히 보면 차자가 복받는 역사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있을 때도 장자를 전부 죽였지요?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맏것은 전부 다 죽였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건 사탄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남아지게 되면 하나님 앞을 더럽힌 터전이 남아지기 때문에 장자를 전부 친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해야 받느냐? 하늘편에 세워진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 가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가인을 때려죽였으면 그때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거예요. 누구든지 잘못하면 심판해 버리게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이 땅에 인간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에 심판을 했으면 인간의 종자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한 하나님은 인간 종자를 남겨야 되겠기 때문에 사탄의 나라가 있으면 하나님편의 나라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남기곤 사탄의 세계가 있으면 하나님편 세계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남겨 놓고 그 반대편을 잘라 버린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을 구하지요. 가인부터 때려잡았다가는, 그때 치는 조건을 세워 놓았다가는 아벨도 잘못하게 되면 목이 잘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될 수 있으면 먼 거리를 두고 먼 훗날의 심판을 바라면서 섭리해 나오신 거예요. 그때부터 형제 중에 동생을 세워 가지고 형님을 굴복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악은 선 앞에 굴복해라'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지요? 악은 선 앞에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절대적으로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은 시종여일한 것이니 그 참 앞에 악이 굴복하는 것도 시종여일하게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굴복해야 되는 거예요.
이 사탄세상에서 역사를 엮어 온 인간상을 두고 헤아려 볼 때, 효자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끝까지 참고 가야만 효자가 됩니다. 충신도 끝까지 참고 가야만 충신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충신이 되려면 생명을 바쳐야 되는 것이요. 참된 효자가 되려면 생명을 바쳐야 되는 것이요, 또한 참된 열녀가 되려면 생명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지 않고는 참된 효자가 못 되는 거예요. 충신도 그렇습니다. 죽고 나서야 충신이 되지 살아서는 충신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참의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 앞에 끝까지 하나되라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오늘날 이 나라를 중심삼고도 이 나라의 운세를 대표한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 앞에 끝까지 하나되어야 충신이 되는 것이요, 가정을 중심삼고는 가정의 주체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와 끝까지 일치해야 효자가 되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굴복을 해도 끝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가 말하기를 끝까지 참는 자가 어쩐다고 했어요?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요? 끝까지….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뭐 가다가 적당히 중단하면 가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는 거예요. 오히려 사탄의 방해만 더 받는다고요. 믿다가 도중에 그만두면 안 믿는 것만 못해요.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을 놓고 보면,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해야 했습니다. 동생이 형이 되고 형이 동생이 되어야 한다구요. 꺼꿀잡이가 되어야 돼요.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형이 동생이 되고 동생이 형이 되는 그런 법이 있느냐 이거예요. 세상으로 보면 이게 억지라구요. 순 반대 입니다. 형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금까지 자기 동생을 마음대로 부려 먹고 마음대로 시켜 먹고 그래 가지고 말이예요. 그것이 상습적으로 되어 있고, 또 그것이 딱 정상으로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쩌자고 반대로 동생을 형으로 대하라고 하시느냐 이겁니다. 세상에 그것이 될 것 같아요? 세상에 그것이 될 것 같으냐 말이예요.
나중에는 자식이 부모가 되고, 부모가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뒤집히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천지개벽이라구요. 그런 천지개벽하는 놀음이 종에게도 있고 아들딸에게도 있고 부모에게도 있고, 다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세밀한 것은 빼놓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형이 동생한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분이냐?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메시아보다 먼저 난 전세계 사람들은 가인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아무리 많았고. 세계에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가인으로 보는 거예요. 먼저 태어났으니까 형으로 보는 거예요. 악한 가인이 먼저 형으로 태어났으니까 악한 세계가 된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전부 다 가인들입니다. 나중에 하늘편에서 보낸 사람이 오는 것인데 그가 오게 되면 그를 아벨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는 세계적 아벨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메시아가 아벨적 자리에 온 다음에 에덴 동산에서 아벨을 때려죽이던 가인과 같은 형이 되면 뜻이고 무엇이고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간무대를 만들기 위해 메시아가 온다는 사상을 가지고 발판을 닦게 한 것이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든지 재림사상은 다 있는 거예요.
그것을 볼 때에, 역사는 피를 안 흘리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벨을 때려죽인 가인과 같은 녀석이 세계적으로 쭉 움직이고 있는데 메시아가 오면 '너 이 녀석, 형님의 세계 판도권을 잡으러 와?'라고 하면서 대번에 때려죽일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 세계적인 악한 권에서 하늘편이 맞아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여기에 중간적 판도권을 세워 가지고 개인을 극복한 하늘의 사람, 가정을 극복한 하늘의 사람, 사회를 극복한 하늘의 사람, 국가를 극복한 하늘의 사람, 모두가 좋다 하는 세계적 이상세계를 극복한 하늘의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극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면 극복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메시아입니다. 그들의 귀결점은 전부 다 메시아예요. 개인을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요, 가정을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요, 나라를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요, 세계를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아를 위해서는 생명 재산 다 바쳐 희생하더라도 가자' 하는 사상을 집어 넣는 것이, 그 훈련을 시키는 곳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이 사상이 희박해져 들어가면 종교는 후퇴하는 거예요.
기독교 사상은 이 메시아 사상에 대해서는 그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온다. 신랑이 온다'라고 하는 이런 사상이 유난히도 강한 종교가 기독교라는 거예요. 이 사상이 강할 때는 그 종교는 틀림없는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상이 약해지게 될 때는 그 종교는 사탄세계화, 세속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종교가 그 사상에서 멀어지게 되면 세속화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합니다. 이 사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종교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일 온다 오늘 온다, 오늘 온다 내일 온다'고 하는…. 신앙과정에는 그런 일이 많은 거예요. 그런 것이 종교예요.
그리하여 메시아가 오게 되면 단시일내에 세계의 수많은 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개인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한 가정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한 종족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하나의 민족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되며, 예수가 찾고 있는 예수주의 세계형태를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편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들 가운데서 어떤 종교가 참종교냐? 보라구요. 역사상의 4대 성인은 인간의 힘을 중심삼고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부 다 종교의 종주(宗主)였어요. 예수도 그렇고 석가모니도 그렇고 공자도 그렇고 마호메트도 그렇습니다. 종주는 하늘의 도리를 가르친 사람들이예요.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고는 성인이 못 됩니다. 절대로 못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닙니다. 철인(哲人)이지요. 그는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도리를 가르친 사람이 역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도리를 가르친 사람들이….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면서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들이맞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세계를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딱 갈라 놓았습니다. 그 절반의 세계…. 하나님이 참을 찾는 종교를 세운 것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재림주가 온다는 사상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에는 기독교 문화권이 있습니다. 또, 예수의 사상을 이어받은 새로운 기독교 사상이 통일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내에서 재림하실 새로운 주님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하는 세력이 움트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상권내에 있는 세계에서 그런 사상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이들의 갈 곳이 어디냐? 손들고 바람벽에 이마를 맞대는 길입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민주세계는 망합니다. 민주주의는 망한다구요. 보세요. 미국도 망할 것입니다. 이제 몇 해만 더 두고 보세요. 1980년대만 넘어가면 아무리 큰소리를 해도 미국은 몰려날 것입니다.
그러면 공산권을 봅시다.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입니다. 무신론주의예요.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말하면 그것은 몸뚱이주의입니다. 그거예요. 몸뚱이주의로부터 출발한 것이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을 때 마음과 몸으로 지었는데 그중 몸뚱이가 세계적으로 열매맺은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뭐 신이고 무엇이고 몸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빵이 제일이라는 거예요. 몸뚱이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가 공산세계입니다.
반면에 민주세계는 마음주의입니다. 거기에는 그래도 동정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또 거기에서는 평화를 논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이념은 변증법에 의한 투쟁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투쟁과정이 발전의 요인이라고 말해요. 거기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념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 공산주의는 무엇이냐 하면 끝날의 사탄의 요술통입니다. 여기에 걸렸다가는…. 보세요. 공산당은 모든 일을 밤에 하지요. 밤에 해요. 비밀회의도 전부 다 밤에 합니다. 그리고 땅 구덩이를 파고 들어갑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는 낮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래도 그 둘 중에는 민주세계가 낫지요. 이렇듯, 심은 대로 거두는 때가 되었으니, 끝날이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의 세계를 대표한 아벨적 세계가 어디냐?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세계입니다. (판서하심) 아벨적 세계…. 그럼 여기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거꾸로 해야 됩니다. 거꿀잡이 놀음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느냐? 동생인 아벨을 형으로 만들고, 형인 가인을 동생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드는 데 있어서 어디까지 가야 완전히 교체했다고 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느냐 하면 핏줄을 중심삼고 바꿔쳤다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가인 아벨은 형제라구요. 이것은 준비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실패했다 이거예요. 이것이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태어나 가지고 서로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이 가능한 권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형과 동생을 바꿔치는 일이 가능하려면 서로 통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쌍태(雙給)를 보낸 것입니다. 여러분 쌍태를 알지요? 쌍동이라구요. 쌍동이.
쌍동이는 말이예요. (판서하심) 형이 있고 동생이 있으면, 형과 동생이 서로 통하는 거예요. 형이 서러워하면 동생도 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봤지요? 형님이 서러워하면 동생도 무엇인지 모르게 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형님에게 갑자기 무슨 사고가 나면 동생은 그것을 벌써 예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지고 바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꿔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꿔치면서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하면 어머니 뱃속까지, 아버지 뼛골까지 찾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이 걸린 거예요. 통일교회가 안 나왔으면 몇만 년도 더 걸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간격을 점점 좁혀 들어가는 거예요. (판서하심) 그렇게 해서 에서와 야곱이 싸움을 하게 된 거예요. 야곱은 무엇을 중요시했느냐? 하나님의 축복의 계대(繼代)를 받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에서와는 달랐어요. 에서는 계대고 뭣이고 되는 대로 살고자 한 현실주의자였지만 야곱은 미래주의자였습니다. 약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리브가의 협조가 있었지만, 아무튼 에서는 팥죽을 중심삼고 야곱에게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팔았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루 아침에 장자의 기업을 팔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맹세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실천하지 않으면 벌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물론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은, '세상에 이런 고약한 녀석이 어디 있나, 형님으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간 고약한 녀석? 이럴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고약한 녀석은 고약한 녀석이지만, 고약한 녀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왜냐? 형님의 자리를 샀으니까. 형님을 농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고 맹세했기 때문에, 그 맹세한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와야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하고 같이 아버지를 속인 것이 아버지한테는 안됐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도 공인해야 되고 사탄도 공인해야 됩니다. 속인 도리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이 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당당한 자리에 서야 돼요. 야곱은 당당했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합세해 가지고 아버지를 속인 것은 야곱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책임져야 돼요. 벌을 받으면 어머니가 받지 야곱은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브가의 공헌이 크다는 것입니다. 세세한 얘기는 관두자구요.
그렇게 되어 가지고 형제끼리 싸우는데, 축복을 빼앗긴 형 에서가 화가 나서 야곱을 때려죽이려고 할 때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21년 동안 고용살이를 했습니다. 고용살이가 다른 것이 아니예요. 신앙길은 고용살이를 거치지 않고는, 7년 이상의 고용살이를 거치지 않고는 못가는 노정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일국(一國)의 뭘 해먹는 사람이라도, 일국의 통치자라도 이 법도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사바사바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패들, 나는 여러분을 통일교회 패라고 하는데, 우리 통일교회 패들, 7년노정을 갈래요, 안 갈래요?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되겠습니다」 그래 갔어요, 안 갔어요? 가고 있어요, 갔어요? 못 가면 돌아가는 거예요. 6천년을 다 돌도록 도는 거예요. 이거 못 가면 영계에 가서…. 두고 보세요. 여러분은 '선생님은 그저 해라 해라 말씀하시는데, 그러시다가 말겠지' 할지 모르지만 그러다가 마는지 두고 보라구요. 안 들으면 내가 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가만히 있겠지만, 영계에 가서 째까닥 걸린다구요.
그런 일을 안 하고도 될 수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고생을 안 했지요. 여러분만 못해서 뭐 고생한 줄 알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피할 수 있고 슬쩍 해 가지고 넘어설 수 있으면 벌써 넘어섰다는 거예요. 지지리 고생하면서 왜 이 놀음 하겠느냐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바보 천치가 아닙니다. 비상한 사람이예요. 누구보다도 예리한 사람입니다.
자, 하란으로 간 야곱이 고용살이를 21년 동안 했다구요. 갖은…. 라반이 야곱을 잘 속여먹었지요. 거기에서 야곱이 10대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억울함을 당하지 않고는 그것을 벗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꺼꾸로 된 자루를 뒤집듯이 쭉 벗겨야 돼요.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겨야 돼요. 그것이 편안한 자리에서 되겠어요? 뱀이 허물을 벗을 때는 대가리를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틀어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옛날에 내가 그런 것을 취미삼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뱀이 대가리를 뒤로 틀어 제끼고 몸뚱이를 거꾸로 틀어대는 거라구요. 그런거예요.
그 과정에는 극복해야 할 10대 요인이 있는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열 번이나 속였지요? 여러분, 모세 때 10대 재앙을 알지요?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요? 10년 단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생을 재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 10대 환난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그것을 딱 넘으면 12단계까지 넘어갑니다. 그런 일들이 다 원리적으로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니까 주먹구구식인 줄 아는데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다 공식이 되어 있는 거라구요.
신앙인은 10대 재앙과 같은 고빗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신앙길은 극복의 길입니다. 극복하려면 모르니까 덮어 놓고…. 덮어 놓고 넘으려니 죽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희생해라, 봉사해라, 머리를 들면 큰일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쿠' 이래 가지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산다고 했으니 죽겠다고 그저 파고 들어가다 보니 10대 재앙과 같은 극복 노정이 다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무사통과 방법을 무지한 사람 앞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데도 잘못 가르쳐 줬다가는 세상을 말아 먹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가르쳐 주는 일을 지금까지 종교가 해온 것입니다.
모르고 가는 것이 좋아요, 알고 가는 것이 좋아요? 모르고 가더라도 말이예요. 저녁때가 되어 해가 다 졌으면 모르지만 아침인데도 모르고 가면 좋겠어요? 새아침이 되었다면 알고 가고 싶어지지요? 끝날이 되었는데, 우물쭈물할 새가 없는데 맨 끝날에 가서 우물쭈물하다가는 일대(一代) 안에 다 처참하게 됩니다. 3대만 걸렸다가는 망하기가 십상이라는 거예요. 3대만 연장했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런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 7년노정은 반드시 거쳐야 됩니다. 이런 것을 세밀히 설명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야곱이가 참 꾀장이였다구요. 야곱의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축복 받는 것이었습니다. 고생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자기가 고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구요. 고생이야 얼마를 하든 축복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회 패들, 고생을 암만 하더라도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통일교회 축복이라는 것이 결혼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아들로서 책정받아 세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을 수 있는 종자로서 책정받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죽어도 가야 됩니다. 여러분, 그래요? 죽어도 가야 되겠어요?
야곱이 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1년 동안 뼛골이 녹아나도록 갖은 천대를 받으면서 모은 재산을 전부 다 가지고 가서, 아, 우리 에서 임금님 것이라고, 에서를 임금님이라고 했다고요. 그러면서 에서에게 바쳤습니다. 세상에서 미욱한 녀석들은 추켜주어야 잡히는 겁니다. 욕심 많은 녀석들은 다 갖다 주고 '아, 우리 주인님, 주인님'하고 떠받들면서 이 재산은 모두 당신의 것이라고 야곱이 몽땅 바치고 나서 쓱 눈치 봐 가지고 자기는 맨 꼴찌로 갔던 것입니다. 불리하면 도망가려고 말입니다.
축복의 계대를 받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더라도 씨를 남겨 놓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또 싸움을 하지요. 죽으면 큰일 납니다. 살아야 되는 거라고요. 예수 같은 양반은 작전을 잘못 썼습니다. 죽기는 왜 죽어요? 넓고 넓은 세상에서 왜요. (웃음)
에서가 '야곱 이녀석, 어쩌나 보자' 하고 쓱 보니까, 하, 야곱이 '이것은 전부 다 형님 것이요, 나는 형님의 종이요' 하면서 야곱이 떠받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죽이려고 했던 원수를 환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해결되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외적인 해결점은 여기에서 보았지만, 내적인 입장에서는 ….에서는 외적인 몸뚱이의 입장입니다. 사탄의 몸뚱이와 같은 가인의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곱이 내적인 면의 해결을 보기 위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웠던 것입니다. 사탄은 뭐냐? 천사가 타락해서 잘못된 것이 사탄입니다. 선생님도 사탄이를 굴복시킨 권(圈)에 서기 위해서 사탄과도 싸웠지만 천사와 싸워서도 이겨야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영계를 지배해야 됩니다. 인간으로서 영계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영계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땅 위에 있을 때 영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못 되어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못 가는 거예요. 엄청난 내용이 거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천사와 허리를 붙들고 밤새껏 싸웠던 것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져 가지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이놈의 자식' 하며 버텼습니다. 그 모습이 어땠을까요? 입을 꽉 물고 눈을 부릅뜨고 피땀을 흘렸겠어요, 안 흘렸겠어요? 어떠했을까요? 다리가 부러지고 모습이 될 대로 다 됐으니 거기서 얼마나 붙들었겠어요? 손으로 아마 이렇게 붙들었을 것입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이렇게 붙들고 '이놈의 손아, 여기서 펴지면 큰일난다' 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천사에게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기 싫거든 내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하며 밤새껏 들볶았을 거예요. 천사가 참 기가 막혔을 거라구요. 그래서 환도뼈를 때렸는데 야곱이 둘이 죽자고 붙드는 거예요. 그거라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야 된다구요.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이기려면 천사보다도 더 씨름을 좋아해야 된다구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구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아들딸이고 무엇이고 뭐 어때요. 자기 주제고 체면이고…. 체면? '통일교회 원리 말씀은 좋지만. 통일교회에 가면 위신이 떨어져서…. 그러는 놈의 위신은 망할 놈의 위신입니다. 이놈의 자식들을 내가 한번 만나 보려고 그럽니다. 꼭 만나 보려고 합니다. 내가 인사를 톡톡히 할거라구요. 내가 임자네들만 못해서 이런 일을 하는 줄 알아요? 이놈들이 통일교회에는 똥개들만 모인 줄 알고 있단 말이예요, 기분 나쁘게. 작전상 그게 좋긴 좋았어요. 그 바람에 우리는 모이기에 더 힘썼다고요.
야곱이 약았다구요. 결국 에서가 '헤' 하고 환영을 하게 된 거예요. 거기서 볼장 다 본거예요. 칠 수 있는 자리에서 맞아 주는 자리로 천지가 뒤넘이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에서가 환영하고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장자의 기업을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코스를 뒤집은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돌아온 거예요. 거기에서 비로소 동생이 형의 자리에 나가고, 형이 동생의 자리에 서게 된 거예요.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서도 복을 받았지요. 싸우지 않고 복을 받았어요
그런데 야곱이 싸워서 이긴 때가 40이 넘어서였어요. 싸워서 이겼는데 40대에 이긴 거예요. 사탄이 얼마나 지독한가 보세요. 여러분, 여당과 야당의 선거전을 보게 되면, 여당에게 조금만 약점이 있으면 야당이 물고 늘어지지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가 물고늘어진 거예요. '에서가 야곱에게 굴복은 했지만, 그때 야곱의 나이가 40을 넘었지 않소? 그러니 40세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요? 40세 전까지의 사람은 내가 관리할 사람이요' 하고 물고늘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의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싸움을 했는데 40세 전까지는 내가 지배하던 기준이 있으니 그것까지는 못 빼앗아 가요. 40세 이후에는 내가 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양보하지만 40세 이전은 양보 못 해요' 이러고 나서니 하나님도 할 수 없이 또다시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쌍동이를 보내는 거예요. 이번에는 쌍동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디서부터 섭리하느냐? 형제로 낳아 가지고 했다가는 큰일나는 거예요. 태어나서 하게 된다면, 세 살이 되었다면, 사탄이'두 살까지 내 것이다' 하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복중(腹中)에서 했습니다. 한 살이고 몇 살이고, 복중에서 싸워 가지고 이겨야 했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유다 집안을 중심한 섭리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왜 유다 지파에서 왔는지 알아요? 이 싸움에서 하늘의 기준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예수는 가짜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예수는 메시아가 못 돼요.
여러분, 다말 알지요? 다말이 누구냐 하면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그 다말이 창녀와 같은 모습으로 길가에 서 있다가 시아버지를 유인해 가지고 사랑관계를 가졌습니다. 거기서 태어난 아들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제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왜 그랬느냐? 인간 조상이 음란으로 타락한 연고로 그것을 헤쳐 버리고 하늘이 거기서 정의의 도리를 닦아 가지고 기수로서 나오지 않고는 이 세상을 심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을 다스려 나오던 반대의 요건, 싸움의 모든 여건을 들어 심판할 수 있는 깨끗이 된 핏줄을 가려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경계선은 원수의 경계선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전부 다 하늘편을 가려 나온 것입니다. 예수의 조상이 기가 막히지요? 예수가 그 유다 지파의 베레스의 후손이라구요.
다말이 해산하게 될 때에, 산파가 떡 기다리고 있는데 쌍동이가 복중에서 싸우다가 세라의 손이 먼저 불쑥 나왔어요. 손이 나오니까 거기에 빨간 줄을 달았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시기 전에 공산당이 먼저 나온다는 것을 예시한 것입니다. 공산당이 먼저 나왔다가 최후에 오시는 재림주님 앞에 일시에 추방을 당해 쫓겨나고, 이 세계가 비로소 정당한 세계가 된다는 것을 미리 다 보여 준 거예요.
그래서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대표자요, 세계의 심판주이기 때문에 그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 우익은 하늘 편이요, 좌익은 사탄편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 있을 때 오른편 강도는 하늘편을 인정했지만, 왼편 강도는 하늘편을 반대했지요? 그리하여 세상에 경계선을 크게 세웠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것을 구별하여 오른편 강도는 우익이요, 왼편 강도는 좌익이라고 보는 거예요. 우익 좌익의 역사는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 가지고, 다말의 뱃속에서 형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하는데 동생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놈의 형님아. 네가 먼저 나갈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가야 된다'고 하면서 발로 밀치고 나온 거예요.
'베레스'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복귀는 이미 태어난 형제로도 안되고, 양자로도 안 되겠기에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가리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가려 가지고 승리한 터전을 갖고 태어난 베레스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요건을 넘어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길을 닦지 않고 배에 배기만 하면 그것은 벌써 사탄의 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레스가 복중에서부터 혈통적으로 뒤넘이쳐 가지고 거꾸로 밟고 나왔기 때문에 사탄이 베레스와 베레스의 후손은 점령을 못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말을 중심삼고, 베레스의 혈통을 중심삼고 이스라엘권이 남아졌습니다. 그리하여 한 날 한 때를 맞이해서 세계적인 메시아가 탄생할 수 있는 복중혈통기대를 닦아 놓았습니다. 이 전통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대의 여인이 있어야 됩니다. 왜? 하나님도 개인을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사탄이 나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빨리 나라의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나라를 가진 사탄과 대등한 입장에 설 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때에 가서 다말의 전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후대의 여인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말이 어떻게 했느냐? 다말은 시아버지와 혈연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기의 체면과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생명을 내놓았어요. 그것은 당장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놀음이었습니다. 두 가문이 전부 옥살박살될 수 있는 놀음이었어요. 다말은 그런 상황 속에서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버렸던 것입니다. 자기 남편이 죽자 남편의 동생을 맞았으나 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세째는 어려서 그를 중심삼고는 하늘의 축복받은 혈통의 대(代)를 이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다말은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버리고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하늘의 축복받은 계대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다말의 그 마음! 그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를 유혹하는 놀음을 해 가지고 축복받은 혈통의 대를 잇게 되었습니다. 다말이 길가에 서 있다가 유다를 쓱 유혹하여 관계를 맺고는 도장을 받아 놓았습니다. 다음에 문제가 되면 증거물로 보이려고 말입니다. 그후 사람들이 다말을 처형하려 하자 다말은 '내게 이 아기의 아버지가 준 물건이 있습니다' 하며 도장을 내보였던 거예요. 그것을 유다가 보니까, 자기가 준 것이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쿠머니하며 용서했지요. 그래 가지고 다말이 쌍동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천도(天道)를 책임져 가지고 생명과 재산과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하나의 여인이 나와야 했는데, 그 여인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알겠어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하니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모르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다시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나니'라고 하니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벌써…. 만약 처녀가 잉태한 것이 탄로나면 국물도 없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마리아의 가족은 어떻게 되고 그 문중은 어떻게 되겠어요? 망신살이 뻗치는 거지요. 이건 뭐 형편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의 장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메시아가 언제 오실 것인가? 그분이 이 부족한 처녀의 몸을 통해서라도 태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며 일구월심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열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을 세울 수 있다면 위신이고 체면이고 다 버려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하는 입장에서 예수를 잉태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예수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모르지요. 이 다음에 내가 가르쳐 주지요. 우리 원리의 입장에서…. 그것이 원리적으로 증명이 안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딱 증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예수는 사생아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이 태어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했지'라고들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해 가지고 올 게 뭐 있어요? 그럴 바에는 벼락 천둥을 한판 내리고 공중에서 쿵 떨어져 오지요. 시시하게 그렇게 올게 뭐냐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예수의 아버지를 찾아 주려고 합니다. 예수는 영계에 가서 자기 아버지를 알았지만 말예요. 나에게는 세계의 기독교인들한테 예수의 아버지를 찾아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의 한이 풀리는 거예요. 아버지가 있는데 없다고 했으니 그런 억울한 일이 어딨어요? 있는데도 없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하나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산당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있는데도 없다니 그거 얼마나 불효예요? 아버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도 '우리 아버지는 없어. 이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라고 하면 그 사람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때려죽일 자식이지요. 불한당 같은 녀석입니다.
여러분, 예수 아버지를 만나면 인사 한번 할래요? (웃음) 밥이나 한끼 해줄래요? 대우해 줄 수 있어야 가르쳐 주지요. 어떻게 대우해야 될 줄이나 알아요? 대우를 못 하겠으면 입을 벌려 가지고 예수 아버지를 알겠다고 하지 말라구요.
마리아가 잉태를 했는데, 마리아는 누구의 혈통을 받았느냐 하면 하나님의 혈통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혈통적으로 복중 터전을 깨끗이 한 기준 위에서 예수를 잉태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가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예수가 잉태된 때부터 사탄이 '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참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암만 뭐라고 해도 사탄의 자식이라구요.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수 없고, 사탄과 관계 없는, 하나님만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예수밖에 없습니다. 이거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뭐 문선생이 입담이 좋아서 지어 내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역사가 그렇게 돼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하느냐? 이때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입체적인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는 재료를 좀더 남겨 놓고 죽어야지요. 이렇게 말하면 좀 가당하지요? 그러니까 예수가 땅을 대해서 아함! 하고 큰소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독생자 아니예요? 그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예수는 혈통적인 터전을 가려 가지고 역사의 한을 넘고 사탄의 터전을 취해 가지고 하늘의 보호권내에 선 신랑격으로 온 사람이라 이겁니다. 복중에서부터 하늘의 보호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종들이라구요. 여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걸 알아야 돼요.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다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싸움을 거쳐 나온 역사적 투쟁기준 위에 하늘의 섭리가 바라는 표준의 실체로서 등장했던 인물은 역사상에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소? 알겠어요. 모르 겠어요?「알겠습니다」 통일교인들이 안다고 하지만 모릅니다. 이름과 모양은 아는 것 같지만 몰라요. 그러니 그것을 다 설명해야 합니다.
예수같이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어요? 그 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4천년 공적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비로소 지상에 하나의 혈족을 세울 수 있었던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말이예요. 세상사람들은 돌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란 고욤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주인은 참감람나무를 심었는데 고욤이 되었다면,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기가 막히겠지요? 이 돌감람나무로는 천국에 못 들어갈 것 아니예요? 그러니 돌감람나무는 어떻게 하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참감람나무가 하나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참감람나무가 있어야 되겠지요?「예」 참감람나무가 누구냐 하면 예수라구요, 예수. 예수는 어떻게 왔느냐?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 혈통적 내용을 가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감람나무라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의 종자는 예수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예수가 와 가지고 돌감람나무 패들을 어떻게 한다구요? 몽창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자르는 데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다리를 잘라야 돼요? 목을 잘라야 됩니다. 모가지를 잘라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게 그 말이 예요. 모가지를 자르면 죽겠어요, 안 죽겠어요?「죽습니다」 진짜 죽어 버리면 큰일나겠으니 '너의 사상을 빼 버려라. 너의 감정을 빼 버려라, 네사정을 빼 버려라. 너의 심정을 빼 버려라. 네 가정의 살림살이니 무슨 살이니 나라살이니 하는 것까지도 다 버려라'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4천년 묵은 돌감람나무의 열매를 따게 되면 얼마나 많겠어요? 또 그 나무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런 돌감람나무에 접을 붙이려면 참감람나무 눈은 하나인데 돌감람나무 눈은 몇억 개 되겠어요? 그걸 접붙여야 될 테니 어떻게 되겠어요? 이걸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볼 때에'이 미친 녀석들, 쳐죽일 놈들아, 누구를 망치려고 이 짓이냐? 할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를 갖다 놓고 입을 쩝쩝 다시면서 심각하게 히죽벌 히죽벌하면서 큰 돌감람나무를 쓱쓱 자르고 있다 이거예요. 자, 이런 돌감람나무 패들 얘기를 했지만 이거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아이구, 집안 망했구나. 아이구, 나라 망했구나' 이러면서 달라붙어 야단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어서 다 자르자. 이놈의 나라, 이놈의 세계, 이놈의 가정, 이놈의 여편네, 이놈의 자식들, 어서 다 자르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다고 통일교회는 뭐 가정을 파탄시킨다고들 하는데, 내가 가정파탄을 시켰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는 걸요. 올바로 가르쳐 주면, 그렇게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걸, 뭐. 배가 곪았으면 그 자리를 째는 것이 원칙인데 째지 말고 낫게 해 달라구요.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할 수 없이 배를 째야지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잘라 버리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연애도 못 하게 되어 있지요? 연애를 했다가는 코통이, 눈퉁이 다 걸리는 거예요. 그러니 다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눈을 접붙임받겠다고 온갖 정성을 들여야 돼요. 그러면 주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라, 종족, 친척, 형제, 혹은 자기 아내면 아내, 자식이면 자식이 '저 주제 보라. 저 주제' 하면서 야단이 날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눈 같은 것 하나를 가지고 좋아서 춤을 추거든요. 그러니 세상에서는 망조(亡兆)가 들었다고 야단이지요.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접붙이는 예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부 다 새눈을 갖다가 접붙여야 돼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전부 다 접붙여야 됩니다.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접을 붙여야 돼요. 그러면 무얼 갖다가 접붙이느냐? 예수의 목을 갖다 접붙여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예수의 목을 갖다 붙여야 돼요. 목 위에는 보는 것, 듣는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촉감의 감각기관이 다 있습니다. 육감까지 전부 다 모가지 위에서 느낀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보는 것을 예수 대신 보고, 듣는 것을 예수 대신 듣고, 모든 것을 예수 대신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모가지를 자르고 예수의 목을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여러분의 모가지를 자르겠어요, 안 자르겠어요?「자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자르겠다고 하지요. 틀림없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장삿속으로 생각해도 아주 수지가 맞거든요. (웃음) 그래 예수의 목이 싫어요? 예수의 머리가 싫어요?「좋습니다」
예수같이 보고, 예수같이 듣고, 예수같이 냄새 맡고, 예수같이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같이 되지 별수 있어요? 이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돌감람나무에서 참감람나무의 씨를 거두어 가지고 세계에 심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골탕을 먹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뭐뭐뭐…. 이런 놈의 자식들은 내가 한번 만나 가지고…. 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사들을 만나 가지고 몇 마디 하면 이 녀석들이 걸려 가지고 허우적거리는데, 내가 '어때? 이 자식아' 하면 결국 '엉엉…, 몰랐습니다' 하게 됩니다. 이 자식들이 울기는 왜 그렇게 우는지. (웃음) 그럴 수 있는 소지가 안 되어 있으면 내가 만나질 않는다구요.
요전에 청평에 교수들을 모아 놓고 세미나를 하는데 내가 안 나타나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은 왜 안 나타나? 우리가 대학교 총장, 학장을 해본 사람들인데, 이만한 간판을 가졌으니 우리 앞에 나타나서 인사를 해야지. 우리가 체면 불구하고 몇 번씩 이렇게 하는데 이게 뭐야. 기분 나빠 죽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타나면 어떻게 말해요? 바른말을 하라고 한 방씩 들이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대해서 바른말을 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들에게 '여러분들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책임 못한 것을 죄는 거예요. 그들이 따라 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서워서 못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나를 따를 때까지, 내 판도가 넓어질 때까지 너와 나를 비교해 볼 때 내가 크면 컸지 작아 가지고는 안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더 할까요, 그만둘까요? 일곱 시가 되었는데 좀더 하자요, 말자요?「하자요」 하자구?「예」 여러분이 하자고 했기 때문에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요전까지는 내가 하자고 해서 여러분이 모인 것이고,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하자고 했으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험 문제로 낼 거라구요.
보세요. 사탄이 얼마나 짓궂은지 보라구요. 하나님을 6천년 동안 골탕 먹인 사탄이니 얼마나 교활할 것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탄이 있는 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길을 갈 때 골목에서 도끼자루를 들고 이마를 까려고 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 길을 가다가 맞아서 넘어지겠어요, 안 넘어지겠어요? 넘어지지요. 사탄이 있는지를 몰라요. 우리 통일교회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지요. 그것은 전도해 보면 압니다. 어떤 사람을 놓고 정성을 들여 가지고 '아무날 몇 시에 교회에 갑시다' 하고 약속해 놓으면 아 요놈의 사탄이 물어 가는 거예요. 딱 사고가 생겨요. 그런 것을 많이 봤지요? 사탄이 언제인지 모르게 나타나 가지고 채갑니다. 이런 경험 많이 했지요? 이런 경험을 못 해본 사람은 통일교회패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예요. 통일교회는 사탄과 이마를 맞대고 주먹을 쥐고 싸우는 곳입니다.
이놈의 사탄이가 얼마나 짓궂은지, 지금도 예수님에 대해서 미련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가 완전복귀를 못 했거든요. 장성기 완성급의 대표자는 되었어도 완성기 완성급의 대표자는 못 되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기라는 것은 아버지 뼈 속에서부터 어머니를 통해 나오는데 예수가 아버지가 됐어요? 예수는 아버지가 되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 지요? 그럼 예수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하나님편에서 볼 때에, 예수의 아버지가 예수보다 높겠어요, 낮겠어요? 또,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보다 높겠어요, 낮겠어요?「낮습니다」 왜 낮아요? 아들이 어머니한테 가서 인사해야 되지 않아요? 왜 낮은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혈통적으로 가름을 하지 않은 패들은 다 사탄편이 아니냐? 그러니 요셉이나 마리아는 천사장세계의 복귀형입니다. 천사장 세계 복귀형이라구요. 원리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복귀는 재창조원칙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짓기 전에 천사를먼저 지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들은 지상에서 천사장을 복귀하는 사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시집 장가를 못 가요.
그러한 입장에서 양자의 계대권(繼代權)을 받아 가지고 직계의 아들을 받을 수 있으려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둘이 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받긴 받았지만 같이 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한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의 입장에서 직계 아들을 받들어야 할 대표자가 요셉과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그때 예수와 같이 살면서 예수를 중심삼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살았으면 예수는 절대 안 죽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조직을 짜서 뜻을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즉 식민지와 마찬가지 입장이었기 때문에 드러났다가는 예수가 죽는 거예요. 그러니 감쪽같이 지하조직을 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이 예수와 딱 일당이 되었더라면… 그때 로마는 피폐시대였습니다. 또 로마가 지배하던 아랍권 전체의 나라가 로마를 싫어했기 때문에 거기에 불만 붙이면 옛날 12지파가 축복받던 그 권내에 있는 모든 나라가 동원될 수 있는 역사적인 환경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되기만 했으면 로마와 일시에 딱 갈라 가지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떤 입장이냐? 양자의 입장에서 직계의 계대를 선물로 받을 수 있도록 중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천사장편의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천사장의 실체 입장이요, 마리아는 복귀시대에 있어서 여자의 대표, 즉 에덴 동산의 해와와 마찬가지 입장이었습니다. 천사장과 해와가 짝짜꿍해서 타락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같이 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 뭐 복잡한 문제가 많다구요.
좌우간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예수가 결혼을 했어요, 안 했어요?「안 했습니다」 타락한 인류의 소원이 뭐냐?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소원이 뭐냐? 중생하려면 뿌리까지 돌아 나와야 돼요. 한 나무의 가지가 진액을 받아 정상적으로 자라려면 뿌리끝 까지도 왕래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잎도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비로소 자랄 수 있는 것이지 저 밑창 곧은 뿌리까지는 못 간다 하게 되면 자라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죠? 이치가 그렇지요?「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복귀는 어떻게 돼요? 하나님은 완전한 복귀를 바랍니다, 완전 복귀. 그런데 타락한 인류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총각 처녀 때에 씨를 잘못 뿌렸습니다. 그렇죠? 그러니 이제 복귀하려면 씨를 잘 뿌려야 됩니다. 그래서 씨 되는 예수가 온 것입니다. 그는 누구냐? 에덴 동산의 아담으로 재창조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가 만들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와를 만들 때 아담을 통해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아담이 해와를 만드는 데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이 신부를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명입니다. 예수가 신부를 찾아내야 되는데 협조자가 없었기 때문에 못 찾았습니다. 마리아,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이 나이 많은 노총각 예수를 장가 보낼 생각을 안 한 것입니다.
예수에게 친척이 있었어요? 마리아가 예수를 복중에 밴 지 3개월도 못되어 소문이 다 났어요. 요셉과 마리아가 툭탁거리며 싸움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싸움을 했다는 거예요. 천사가 요셉에게 와서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으니 데려오라고 해서 그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오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애비가 누구인지 궁금하거든요. 여기 아저씨들, 자기 아내가 그렇게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하면 그 애비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었겠어요, 안 알고 싶었겠어요? 성신으로 잉태했다는게 뭐냐 말이예요. 성신으로 잉태했다고는 하지만 아버지 없이 애기가 잉태될 수 있느냐 말이예요.
요셉이 마리아에게 '내가 당신을 죽을 자리에서 구해 데려오지 않았느냐. 돌맞아 죽게 된 것을 살려주었으니 은인이 아니냐' 하면서 '자, 뱃속에 있는 애기의 아버지가 누군가 나한테만 말해 주시오'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남자들, 여기 아저씨들 대답해 봐요. 그것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못 물어 보는 녀석은 천치 바보라는 거예요. 못 물어 보는 남자는 고자든가 그런 패입니다. 자,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볼 자신이 있다는 사나이, 어디 손들어 보자구요, 내가 하나 물어 보게. 물어 보는 것이 정상이지요?「예」 그럴 때에 마리아가 '당신이 그렇게 물어 보지 않아도 됩니다. 성신으로 잉태했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잉태했지요'라고 대답했다면 요셉이 '오냐 그래, 네 말이 거룩하다. 그랬구만' 했겠어요?'요년아, 사지에서 구해 준 은덕을 모르고 나를 속여 넘기려고 해'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 가지고 내가 목사, 장로, 세계 신학박사들을 전부 다 솔솔 꾀어 가지고 때려잡을 거예요. 자기 부인이 그렇게 되었을 때에 애기 아버지가 누구냐고 안 물어 볼 자신이 있거든 마리아의 성신잉태를 우기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3개월 이내에 전부 다 소문이 났다는 겁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요셉이 밤낮 나돌아다니다가 무슨 꿍꿍이 속으로 며칠 동안 안 나오나'해 가지고, 또 요셉의 친구들도 '요셉이 왜 안 보이나' 해 가지고 찾아가 보니까 어떤 처녀를 데려다 놓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아저씨들이 쑥덕공론하고 아주머니들이나 아이들이 쑥덕거리고 귓속말한 것이 소문이 안 났겠어요? 동네에 소문이 다 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사렛 동네에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에게 친척이 있었어요? 사생아로 태어난 사람에게 누가 신부감을 줄 것 같아요? 생각해 봐요. 친척은 다 알고 있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사가랴니, 세례 요한이니, 예수의 아비인 요셉 같은 사람들이 전부 다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를 장가 보내 주어야 할 텐데 딴 짓거리들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다 덮어놓고…. 덮어놓고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요? 천만에요. 그렇게 갈 수 있는 천국이라면 내가 뒷짐을 지고 가지 이런 놀음을 안 해요. 기가 막힙니다.
예수가 장가를 못 가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한이 얼마나 크겠어요? 사생아로 태어났으니 누가 환영을 해야지요.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갈릴리 가나 잔치집에 가서 처음으로 이적 기사를 행할 때에, 어머니가 포도주가 없다고 하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 그랬겠어요. '내가 이렇게 집을 나와 가지고 방랑아가 되어 이런 행각을 하는 것이 누구 때문인데…' 이랬던 거예요. 마리아가 어떤가 저나라에가 보라구요.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믿고 있지요? 예수를 죽게 한 제일의 장본인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예요. 그 다음에 세례 요한입니다. 유대법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느냐고요? 법이 그래요?
또, 예수가 세례를 주고 돌아다닐 때에 많은 무리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의 동생과 마리아가 찾아왔었는데 그때, 제자들이 '아, 선생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나이다'라고 하니까 예수가 뭐라고 했습니까?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이요, 동생이니라(눅 8:19-21)'고 했습니다. 마리아나 예수의 동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어요, 안 했어요? 그 말이 뜻대로 했다는 말이예요, 안 했다는 말이예요?「안 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다 뒤집어 지는 거라구요.
십자가를 세우고 그러게 안 되어 있다구요. 한꺼번에, 일시에 세계의 십자가를 잘라 치워야 돼요. 그것이 비운의 망틀이라는 거예요. 십자가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부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부활로. 부활로 구원을 얻었다는 거예요. 십자가는 사탄의 뜻을 이루어 준 형틀입니다. 예수가 부활을 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생겨났지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생겨났어요? 부활한 예수님을 믿어야지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믿어요? 근본이 틀렸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사탄이 또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딸로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장가가지 않은 남자의 뼛골 속에 들어가서 그 남자가 사춘기가 되어 처녀를 사모하는 그 사랑의 길을 통해서 사람이 태어납니다.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이 태어나요? 그렇기 때문에 뼛골을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뼛골을 찾아 들어가야 돼요. 장가가기 전 총각 속에 있는 애기씨 자리까지 들어갔다 나오지 않으면 완전 재생(再生)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찾아와서 천국에 대해 물었을 때에, 예수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습니까? 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거듭나려면 어머니 뱃속까지만 들어갔다 옵니까? 아버지의 뼛골을 거쳐 가지고 나와야지요. 이런 것을 세밀히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그런 섭리를 하려니 하나님은 신랑 된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으로 하나되게 만드시느냐? 사랑으로. 사랑으로 하나 만드십니다. 부부는 일신이라고 하지요? 부부가 일신이라면 무엇으로 일신이라는 것이예요? 몸뚱이로 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되는 것입니다. 또, 부자 일신(父子一身)이라고 하는데 무엇으로 일신이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이 도리가 천도의 원칙입니다.
신랑은 총각을 말하는 거라구요. 장가가기 전 총각을 말합니다. 신부를 맞겠다고 허덕이는 신랑이 됐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총각이 사춘기에 접어든 총각이 이제 때를 맞아 가지고 미래에 자기의 천국의 보금자리를 갖기 위한 제일보를 내딛는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지요. 여자도 신랑이라 하고, 남자도 신랑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의 뼛골속의 사랑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장가가기 전 총각의 뼛골속에 들어간 애기씨가 되지 않고는 절대 하늘나라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이라는 명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신랑이 신부를 맞게 될 때에 비로소 예수의 몸 가운데 잠겨 있던 애기씨가 신부의 사랑길을 통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거예요. 여기에는 복잡한 수속을 거쳐야 합니다.
그건 여러분이 몰라요. 통일교회 문선생밖에는 모릅니다. 세상에 아무리 영통을 하고, 세계를 주름잡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렇게 태어나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 수속을 모르죠? 그 수속을 알면 대번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건 억천만 원을 줘도 다 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서는 값없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가르쳐 주지만 몇 가지는 안 가르쳐 줍니다. 잘못 가르쳐 주면 그것이 천기누설(天機漏泄)이 되어 세상을 다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가 못 돼요. 도둑이지요. 세상을 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신랑 신부의 의미를 알겠어요? 이렇게 해서 만민은 거듭나야 됩니다. 민주세계권은 '주여, 오시옵소서' 하면서 신랑되시는 주님이 오시기를 눈물로 그리워해야 돼요. 얼마만큼 그리워해야 되느냐? 남자가 첫사랑 여인을 그저 안 보면 죽겠다고 하는 그 이상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천국에 절대 못 가요.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렇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자든 여자든 문선생을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하지요? 남자들도 문선생을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혹은 사랑하는 애인 이상으로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와 문선생도 가짜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다는 거라구요. 어느 기준에 올라가면 그것을 대번에 절실히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누구도 그 인연을 못 끊습니다. 부처(夫妻)끼리의 인연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끊을 수 있어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 양말 한 짝도 없는 것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인연을 끊을 수 있어요? 칼 갖고 끊을 수 있어요? 생명 갖고도 그것은 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무엇이 통일 교회에 있다는 거예요. 이번에 일본 식구들한테도 내가 얘기했지만, 그들도 내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누가 가르쳐 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심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웃을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 처음 온 젊은이들, 나는 20대의 여러분이 염려스럽습니다. 정신을 바싹 차리라는 거예요.
이래서 장가가지 않은 총각 예수의 몸을 거쳐서 어머니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려고 하는 애기씨와 같은 입장에 들어가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총각 예수의 아들이 되어 가지고 아담의 사명을 다하고…. 아담이 못한 사명을 다하고,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모시고, 자기 이상 인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기 전에는 인류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사탄이가 전부 다 빼앗아 가고도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고, 완성한 자리에서 만민을 사랑하여야 할 것이 창조원칙이니 내가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을망정 하나님은 사랑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될 것 아니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또 '나는 타락하여 이렇게 죄인이 되었지만, 당신이야 이 죄인된 모습을 누구보다도 불쌍히 여기고 가슴 아파하고, 슬퍼해야 할 것이 아니요?' 나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당신은 완성한 피조세계를, 완성한 천국이념을 주도할 수 있는 주인공이 못 됩니다'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것 당연한 말이예요.
또, '당신의 기업을 상속받을 당신의 독생자 되는 예수도, 당신의 아들이니만큼 당신과 같이…. 아담 가정의 아담도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여, 천사장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사랑했다는 기준에 서야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아들의 권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원칙이 아니요? 따라서 당신의 아들 되는 예수도, 나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는 나를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그것은 원칙에 어긋나요' 이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건을 딱 걸고 늘어지는 거예요.
예수가 이 조건을 극복하려고 십자가상에서 '아바 아버지여, 저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소서' 하고 축복을 해준 거예요. 알겠어요? 그 과정을 넘었기에 비로소 사탄을 대하여 '하나님도 너 사탄을 사랑했고, 예수도 너 사탄을 대해 복을 빌어 주는 입장에 섰으니 너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운 것 아니냐. 그러니 너는 이제 굴복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런 복잡한 사연들이 엉클어져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덮어 놓고, 덮어놓고 믿자구요?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배후까지 가려 가지고,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투쟁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서 혈전을 거듭해 가지고, 앞에 대드는 사탄을 지상에서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자꾸만 하늘편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이러한 때에 여러분이, 편안히 잠잘 수 있어요? 편안히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면 여러분 대신 하나님이 편안히 잠을 못 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잠자는 대신 싸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예수의 몸 속에 들어가야 되는데 예수는 어떤 존재냐? 사람이 다시 태어나려면 몸이 있는 예수 속으로 들어가야 될 텐데 예수에게 몸이 있느냐?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예수는 영적으로만 살아 있는 허깨비라구요, 허깨비. 그런 예수를 믿다가는 허깨비의 아들딸이 되는 것 아니예요? 예수만 믿다가는 허깨비가 되는 거예요. 낙원밖에 못 가요. 천국은 못 들어갑니다. 낙원은 뭐냐 하면 천국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예수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의 사명을 책임했는데, 그는 이 땅위에 아무런 실체적 터전을 남기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후에 이 땅 위에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를 가지고 오셔서 인류가 애기씨와 같은 입장에서 그 몸을 통해 새로운 아들딸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기준을 연결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야 합니다. 또, 그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을 통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복귀는 어떻게 하느냐? 아버지를 중심삼고 어머니를 통해서 합니다. 그럼 복귀하기 위해 어디로 들어가느냐?(판서하심) 곧바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번에 여기에 들어가게 되면…. 여기에 들어갈 때에는 가인 아벨이 싸워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이리로 나옵니다. 가인 아벨이 싸워 가지고 들어갈 때에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들어가 가지고 나올 때는, 이것은 사탄의 소굴, 사탄의 참소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싸우는 입장에서 참소를 안 받습니다.
그렇지만 싸우지 않고…. 에덴 동산에서 참소받지 않을 수 있는 아벨과 가인의 자리를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리를 가졌어요? 가졌나요, 못 가졌나요? 못 가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뱃속을 통해 태어난 아벨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가인이 아니라 이쪽에 있는 (판서하심) 아벨이 되어 가지고, 아벨로서 직계권내의 가인적 입장에서, 천사장의 입장에서, 어머니 뱃속을 통해 태어난 아벨과 하나되어 가지고야 완전 탕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세상이 어느때에 왔는지 모릅니다. 말씀은 선생님이 다해 주었지요. 그래야 사위기대 복귀가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거쳐야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거치고 그 아들을 거쳐 가지고 만물을 복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천사장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종과 같이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부터 3대를 거쳐 하늘의 특권적인 섭리의 기대를, 땅 위에 축복의 조건을 세워 주고 가야만 후대의 후손이 앞으로…. 그것은 어디를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나라를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밤잠을 못 잔다는 것입니다. 밥먹고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한테 전부 다 반하게 된 거라구요.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라구요.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 죽는다면 자기가 대신 죽고 싶어하고, 선생님이 망한다면 자기가 먼저 망하고 싶어했었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가정을 갖기 전에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콧물 눈물을 죽죽 흘리면서 엉엉 우는 것을 내가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때가 지나갔습니다. 또, 내가 그러기를 원치 않아요. 그런 때는 다 지나갔어요. 내가 부산스럽고 바빠요, 다 지나갔기 때문에. 참사람이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예수는 그렇게 왔습니다. 예수는 참사람으로 왔는데, 참사람으로 와서 식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 식구는 부모를 맞아야 됩니다. 그렇죠? 「예」 부모와 자녀의 인연을 갖추어야만 식구라는 이름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사람 하나를 내놓기도 어려운데, 참부모를 중심삼고 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식구의 자리에 들어간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것은 세계를 주고도,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입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끼리는 횡적인 입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 있지만, 타락 전 아담과 천사장의 입장으로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기 질투 하는 날에는 망합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맺은 식구의 인연은 세상의 어떠한 부부의 인연보다도, 어떠한 충신의 인연보다도, 어떠한 형제의 인연보다도 더 강하고 고귀한 자리에서 묶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왔고, 지금까지 선이 꺾이고 희생하면서 이어 나온 피의 제단을 통일교단까지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단 자체도 이런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가려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것을 하기 위해서 부모를 버렸고, 형제를 버렸고, 처자를 버렸고, 나라를 버렸습니다. 나라를 버렸기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구요. 대한민국이 내 나라일 것 같으면 왜 나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겠어요? 색다른 민족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다 잃어버리고 우리끼리 모이고 우리끼리 만났는데 여기에서 세상의 그 어떤 인연보다 하나되지 못하면 하늘의 참된 백성이 못 됩니다.
참된 식구의 인연을 존중시해야만 참된 민족의 기준이 세워집니다. 참된 민족의 기준도 참된 식구의 인연으로부터 벌어집니다. 그 인연은 나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존중시 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어요? 우리가 뭣하러 여기에 모였어요? 장사하려고 모였어요, 뭘하려고 모였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모였지요?「예」 뜻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소원해 온 것이 뭐냐 하면 하나의 식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의 해원성사를 한다는 내용도 식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빛될 수 있는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식구를 위하여 정성들이고 한 식구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참아들딸로서 하나님께 품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의 입장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래 식구를 사랑해 봤어요?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그러다가는 망합니다. 식구 사랑하기를 자기 형제보다도 못하면 가짜입니다. 여러분 식구란 말은…. 여러분 그것 알지요?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 대신, 예수의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예수의 누나 동생 대신, 예수의 삼촌 대신, 예수의 일족 대신, 그들 이상의 사랑의 기준을 대표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 식구라는 말입니다. 그 식구란 예수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예수는 나라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고,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 보지 못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보지도 못했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그러니 그 한을 전부 다 식구라는 울타리를 중심삼고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묶어진 식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전부 다 예수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의 형이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동생이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누나가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삼촌이 되어 가지고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할아버지가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식구를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자기 손자를 사랑할 수 있고, 또 자기를 사랑할 손자를 맞을 수 있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간 것이 한입니다. 예수가 할아버지가 되었으면 망했겠어요? 예수가 아저씨 되어 봤어요? 예수는 총각으로 죽었지요? 총각으로서 반동분자로 몰려 죽은 거라구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의 한을 풀기 위한 것이 우리 식구라는 것입니다.
이 식구라는 것은 참된 것입니다. 이 참된 식구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나다 하는 것을 알고, 식구가 그리워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은 천국으로 달려가는 것이요, 식구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는 것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피땀 흘리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이 가치는 하늘땅을 대표한 이상의 가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여기가 천지의 모든 한이 해원되고, 소원하는 뜻이 성사될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라는 것을 알고, 식구를 사랑하는 데 서로 앞서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교회에서 누구보다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보다도 중심인물이 될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식구들이 여러분을 천국으로 가게 하느냐 못 가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영수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의 이 악한 운세를 막을 자가 그 누구뇨. 오늘 비운이 감돌고 있는 이 세계를 아버지 앞에 해방시킬 자가 그 누구뇨' 하고 묻게 될 때에 하늘이 동기가 되고 하늘과 더불어 일치된 참된 사람이 나와야 되는데, 그 참된 사람이 나오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내연과 더불어 짝해 가지고는, 엇갈린 혈통을 깨 버리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이와 같이 만나게 된 것은 저희가 잘나서가 아니라 배후에서 선한 선조들이 엄청나고도 놀라운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임을 아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 시대적인 인연 가운데 상봉할 수 있는 은사를 받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진실로 진실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시대를 얼마나 고대했고, 당신이 그리워하는 가정을 얼마나 고대했으며, 식구를 품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좀더 빛나고 좀더 가치 있고 좀더 영광스러운 식구를 당신 앞에 드리지 못한 것이 일대의 한(恨)뿐만 아니라 천추의 한이 될까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철부지한 이것들을 여기 이렇게 모아 놓은 것은 그 자체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들이 역사적인 인연을 귀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오니, 선조들을 동원하시어 시대적 사명을 촉구하는 데 있어서 쉬지 말고 이들을 협조하게 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종족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여 천운이 바라는 엄숙한 사명을 각자의 어깨에 짊어진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젊은이는 젊은이로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의 한과 더불어 인류의 한, 그리고 하늘의 한, 이 3대 한을 해원 성사하는 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참된 식구의 이름을 자랑하는 저희들이 죽더라도 해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요, 책임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가치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무한한 세계도 그 가치내에 포괄되려고 움직여 나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르기 전에 아버지라는 이름조차 생각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껴야 되겠고 황공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부르기 어려운 아버지요, 모시기 어려운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벌을 주는 엄한 분이 아니라, 저희를 대해 후의하신 마음, 넓고 크신 사랑의 마음과 용서의 심정을 가지고 천만 번 자체의 희생을 한하지 않으시고, 저희의 부족을 염려하시는 당신의 은사 앞에 미칠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을 발견할 적마다 죄송한 마음과 황공한 마음에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여 아들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딸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그 이상의 소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인류역사를 대신한 그 어떤 가치보다도 더 귀한 가치의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은 당신이 그리는 진정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인연을 통하고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배고픔을 느끼고 있더라도 어서 가자고 촉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불충하고 부족한 자신들을 거두어서 당신의 존전에 생축의 제물로 바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역사적이고 엄숙한 참된 식구의 가치 있는 인연을 저희가 오늘 한 줄기의 생명의 빛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은사인가를 알고, 그것이 감사하고 감사해도 보답할 길이 없는 은사임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또, 그렇게 살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천상에 있는 수많은 선조들의 뜻과 예수와 열두지파에 속한 모든 무리가 이때에 이 땅을 대하여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저희들이 이어받아 해원성사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국이 하늘 앞에 하나의 나라를 찬양하고, 한 민족의 가치를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변하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정열에 불타는 사랑의 실체들이 되어서, 아버지의 칭찬은 물론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이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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