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을 대해 가지고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원수의 종자 되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바라시는 역사적인 어떤 완성기준, 즉 구원섭리의 목적기준을 넘을 수 있는 그 한 곳에 도달하게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의 방향을 밀고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사가랴 가정, 예수 가정 등이 나타났고, 제2이스라엘권을 창설하기 위해 기독교를 중심삼은 섭리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제1이스라엘권에서부터 남겨진 섭리역사를 재탕감하려면 그 섭리사에 나타났던 내용보다 나아야 됩니다. 그보다 못해 가지고는 탕감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 쓰여진 글씨를 지워 버리려면 그것이 쓰여질 때 들인 힘보다 더 가중된 힘으로 지우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이스라엘권이 성취하지 못하고 실패한 그 기준을 영적으로나마 승리의 기준으로 마련하기 위해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이 동원되었고, 가정이 동원되었고, 종족이 동원되었고, 민족이 동원되었고, 국가와 세계가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중심삼고 보면, 그 당시 전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어떠한 나라보다도 강한 세력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로마제국 앞에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 식민지와 같은 이스라엘권에서 기독교가 출발하여 로마를 대해 싸워 나가는데, 로마는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세계적이요, 가정적인 면에 있어서도 세계적이요, 혹은 민족적인 면, 국가적인 면, 모든 것을 보더라도 세계적인 권위를 갖춘 단 하나의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로마에 대해서 나라도 없고, 일족도 없고, 종족도 없고, 가정도 없는 상태에서 기독교가 분립된 개개인의 생명을 이끌어 가고 개개인이 일신을 투신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4백년 동안 투쟁하여 로마를 꺾어 놓은 것입니다. 그 기간에 기독교인들이 치른 탕감적인 희생이라는 것은 역사상에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사실로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국가적인 터전을 닦은 기독교는 그 기반 위에서 비로소 서광을 볼 수 있게 되어 세계적인 발전의 터전을 갖추어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하나의 기반을 닦았지만 로마 한 국가와 국민만을 중심삼고는 섭리의 전체를 이룰 수 없겠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핍박을 받고, 가정적으로 핍박을 받고, 국가적으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엮어 온 비참한 운명임과 동시에 비참한 역사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승리한 터전, 기반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사탄권을 침식시키기 위해 많은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듯 기독교가 수난을 당하고 희생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 거대했던 로마보다도 더 거대하고 더 빛나는 하늘편의 외적인 기반이 될 수 있는 민주세계를 창건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 즉 제2이스라엘권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는 민주세계를 창건할 때까지 역사과정에 없었던,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보다 더 많은 제물로서의 피를 홀려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상반되는 공산세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복귀섭리노정을 두고 볼 때 '완성'이라는 것은 혼자 되는 법이 없습니다. 완성은 반드시 가인 아벨이 완전히 일치되는 기준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이 그래야 되고,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이 그래야 되고, 민족에 있어서는 민족, 국가에 있어서는 국가, 세계에 있어서는 세계가 그러해야 됩니다. 이것은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은 민주세계권 앞에 그 반대적인 공산주의권이 세계적 형태를 갖추고 나타났다고 하는 사실은, 세계를 중심삼고 외적으로 가인과 아벨의 형태로 분립되었다는 입장이 됩니다. 그런데 이 민주세계 안에서 새로이 기독교를 통합하고 새로이 기독교 이념을 세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상의 핵심, 즉 하늘의 약속 아래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온 사상의 모체가 뭐냐? 이것이 재림사상입니다.
그 재림사상이라는 것은 이 거대한 민주세계의 개인권을, 가정권을, 종족권을, 민족권을, 세계권을 인도할 수 있는 한 분을 기다리는 사상, 즉 메시아 사상입니다. 메시아로 오시는 그 개인은 민주주의권내에 있는 전세계의 개인을 대표한 형이요, 오늘날 인간들이 민주세계의 핵심적인 중심으로 바라고 있고, 소망의 기점으로 바라고 있는 중심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분을 기다리는 사상이기 때문에 메시아 한 분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민주세계의 이념이 차원이 다른 새로운 민주세계의 기반을 통해 천국이념으로 연결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념은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느냐? 다시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오시는 그 존재는 민주세계의 개인 전체를 총합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오시는 것이요, 민주세계권내의 가정 전체를 총합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오시는 것이며, 민족과 국가를 총합하고 민주세계 전체를 총합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지니고 오시지 않고는 중심적 입장에서 외적인 민주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적인 입장에 서려면 상대적 입장 보다 내적인 면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메시아는 민주세계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내용을 지닌 분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섭리적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바라는 개인, 개인으로서 세계를 대표해서 완성적 기준 위에 등장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메시아는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요, 역사적 소망을 중심삼고 섭리노정을 이끌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일치되는 사람이요, 또 인간들이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일치점을 안팎으로 갖추어 가지고 와야지 그렇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소망 이하의 가치를 가지고 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메시아가 개인으로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역사과정을 놓고 볼 때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어떻게 엮어져 나왔느냐? 물론 개인을 통하여 종족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엮어져 나왔지만, 그 역사는 메시아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메시아에게 필요한 역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타락권내에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복귀해야 할 운명권내에 있는 역사라는 것은 사탄을 중심삼은 혈통적 내연의 기원을 아직 청산짓지 못한 입장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권의 역사이지 이것을 청산지은 입장에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권의 역사가 아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사탄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적인 내용에 있어서나 외적인 형태에 있어서 하나님과 순리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리적으로 부합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반드시 탕감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탕감이 제시된다는 거예요. 순리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한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을 닦기 위해서는, 사탄의 혈통을 받은 세계를 대표한 사람이 있어 가지고 개인 개인이 순리로 통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는 탕감의 제물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성을 드러낸 것이 뭐냐 하면 가인이 아벨을 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이 아벨에게 맞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 때문에 희생하는 가인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법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요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편에 가까이 서 있는 아벨을 대신하여 외적인 동물이면 동물, 물건이면 물건이 맞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표자, 오시는 메시아를 순순히 맞을 수 있는. 전체적인 면에서 안팎으로 갖춘 인격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메시아가 어떠한 수난길로 보내더라도, 아무리 죽을 사지사판에 보낸다 하더라도 거기에 이의를 갖지 않는 사람, 자진해서 희생당하는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세계적인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대표자를 맞이해야 메시아는 비로소 메시아로서의 개인적 승리의 터전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의 기준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 기준을 세계 무대에서 결정지어 가지고 일치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개인기준에서 승리한 것을 발전시켜서 가정기준에서 승리한 것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세계적, 역사적 표준형이 될 수 있는 완성 기준형은 무엇이냐? 그것은 가인이 굴복한 발판 위에서 메시아가 세계의 개인들을 대해 어떠한 무대에서든지 자유롭게 명령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메시아가 자유롭게 명령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할 권이 민주세계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 문명권내에 있는 민주세계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개인들도 제한된 권내에서 세계적 승리를 대표한 조건적 권에만 서는 것이지 세계를 자의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기준은 못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세례 요한이 만약 예수와 일체가 되었다면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아벨 앞에 탕감한 가인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세례 요한이 개인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종족과 연결되고, 교회와 연결되고, 이스라엘 민족과 연결되어 하나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일치권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상반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세례 요한은 국가적 기준에서 교회적 기준으로, 교회적 기준에서 종족적 기준으로, 종족적 기준에서 가정적 기준으로, 가정적 기준에서 개인적 기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역사적 완성기준을 두고 볼 때, 이 완성기준을 개인을 중심삼고 결정짓는 데 있어서나 개인이 민주세계면 민주세계를 대표하는 개인적 완성기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민주세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가인적 입장에 선 사람이 나와서 아벨 앞에 복종하고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즉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 나와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 앞에 절대 복종하고 그와 일체가 되면, 민주세계권에서 개인의 승리권이 갖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민주세계권내의 어떤 특정한 국가에 있어서 개인이 굴복할 수 있는 입장으로밖에 서지 못하면 세계적인 완성기준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민족을 대표한 가인적 승리의 기반을 얻어 국가적 완성기준이나 종족적 완성기준, 혹은 가정적, 개인적 완성 기준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 완성기준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개인이 개인적 기준에서 국가를 대표한 승리자로서 세례 요한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키게 되면 이 둘은 하나되어 가지고 가정적 기준에서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게 하나된 기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개인이 국가나 종족 가정이 환영하는 터전 위에서, 즉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배경으로 한 환영의 터전 위에서 그것들을 대표하여 개인적으로 세례 요한 입장에 있는 자를 굴복시켰다면 그 사람은 국가를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이지만 그러지 못하여 그 배후의 연결체가 국가가 되지 못하고, 종족이 되지 못하고, 가정이 되지 못한 채 개인의 입장에서 그쳤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국가내에서의 개인적 승리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적 승리밖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삼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수고는 무엇을 위한 것이냐? 개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기독교를 중심삼고 수난의 길을 가게 하여 가지고 전세계 기독교인이나 기독교권 전체가 국가를 초월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에 한마음 한 뜻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국가가 하나되고, 세계의 민족들이 하나되고, 세계의 종족이 모두 하나되고, 세계의 가정이 모두 하나되고, 세계의 개인이 하나된 자리에서 세계를 대표한 가인적 입장에 선 사람이 메시아 앞에 굴복하게 되면, 그 굴복은 개인적 굴복은 물론이요,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굴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지 않고 개인의 입장에서 굴복하는 데서 끝난다면, 그 굴복은 개인에 한한 굴복이요, 가정의 입장에서 굴복한다면 그것은 가정에 한한 굴복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 국가를 대표한 굴복조건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종족을 대표하거나, 국가를 대표하거나,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에는 절대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교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세계가 좋다하고 동원될 수 있는 환경을 역사과정을 통해 마련하여 통합적인 한 세계 무대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세계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떠한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배후, 혹은 여러분 개인 개인의 배후에는 가정이 있고 교회가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탕감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다면,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나라를 대표한 가인적인 입장을 완전히 탕감하겠다고 하며 생사를 개의치 않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자기가 대표적으로 희생할 각오를 하고 나선다면, 그리하여 여러분 개인이 나라를 대표한 가인의 입장에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대표하여 굴복했다는 터전이 갖추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배후의 환경을 갖추지 못하면 개인적인 굴복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왜 전도를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왜 기성교회를 대신하여 전도를 해야 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내가 연결시켜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믿어 가지고는 개인적으로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적 가정에서 끝나는 것이지 배후의 종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인 아벨 복귀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은 가인적인 복귀의 터전도 갖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과 선생님의 입장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입장과 선생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민주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의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가정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종족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교회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렇게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세계권을 중심삼고 개인을 연결시키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터전 위에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개인적으로 완전히 하나되면, 세계적인 대표자로서 가인의 입장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러한 터전을 갖지 못하면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밖에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뜻을 중심삼고 축복해 가지고 종족을 이룬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아벨적인 종족만 된 것입니다. 이 아벨 종족 앞에 굴복해 가지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가인적인 종족이 있어야 되는데, 그 종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어요, 없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종족 기준에서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면, 즉 종족 기준에서 통일교회가 아벨적 종족이라면, 여러분이 아벨적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여러분의 배후에는 민족이 달려 있어야 됩니다. 민족이 달려 있는 입장에서 종족을 대표한 사명을 하게 되면 한번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 국가가 달려 있더라도 종족 기준에서 승리하면 국가는 딸려 들어오는 것이며 세계가 달려 있더라도 세계를 전부 다 흡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체의 종족 기준을 중심삼고 보면 민족이나 국가 그리고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종족 기준에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적 가인 아벨이 어디 있느냐?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가정적 가인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아벨 가정이 비로소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를 중심삼고 평면적인 기준에서 상대적인 권을 이루어야 합니다. 즉, 아벨권 앞에, 아벨 중심형 앞에 가인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은 가인 입장입니다. 그러니 축복가정들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 가정과 축복가정들이 하나되지 않고는 가인 아벨권 복귀가 안 되는 거예요. 아벨적 종족권이 못 나와요. 그러니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하나되어서 민족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민족이 탕감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쳐지는 제물과 그것을 바치는 제사장이 하나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요? 둘이 하나되어야 하는데 하나 안 되는 거와 마찬가지니 종족적 기준에서 승리한 아벨권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겠지요?「예」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왜 전도해야 되는가를 알아야 돼요.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벨 가정인 중심적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이 타락이냐?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갈라졌고, 가정적으로 갈라졌고, 종족적으로 갈라졌고, 민족적으로 갈라졌고, 국가적으로 갈라졌고, 세계적으로 갈라져 가지고 하늘과 땅이 갈라진 것이 타락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되고, 가정적으로 하나되고, 종족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위주로 하여 하나되어야 하느냐? 상대를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주체를 위주로 해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주체의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아벨의 자리입니다.
아벨이 가인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이 책임을 못 할 때는 아벨 자신이 가인의 책임까지 해야 합니다. 가인이 그 책임을 모를 때에는 가르쳐 주어서 가인으로 하여금 그 사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은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종족복귀의 기준을 논의하는 때에 들어왔는데, 종족복귀 완성의 기준은 아벨 가정과 축복받은 가정이 하나되는 데서부터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셨고 선생님이 바랐던 것이 뭐냐? 축복받은 여러분의 가정 뒤에 민족이 달려 있고, 국가가 달려 있고, 세계가 달려 있기를 바랐습니다. 민주세계 전체가 달려 있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재탕감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 재탕감역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탕감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물질을 가지고 탕감을 했고,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가지고 탕감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가지고 탕감을 해야 되느냐? 아내와 남편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은 아들딸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가 아니라구요. 과거에는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한 줄로 서서 전후관계를 결정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횡적인 관계를 결정하는 때입니다. 때가 다르다는 거라구요. 왜 그래야 되느냐? 완성시대라는 것은 부모를 대표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가정이 아벨 가정이면 완전한 그 가정과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알겠어요?「예」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언제나 주인과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물로서 바쳐질 날을 늘 생각함과 동시에 그 마음은 자신을 제물로 바칠 주인과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주인을 생각하며 언제나 주인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인 앞에 상대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주인과 하나된 기준에 서야지 그렇지 않고는 제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물을 드릴 때 가장 사랑하는 물건을 드리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하는 물건을 제물로 드리나요, 사랑하지 않는 물건을 제물로 드리나요? 사랑하지 않는 물건은 하나님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런 것을 잘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이 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되었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느냐? 여러분은 지금 하나되어 있어요? 하나가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못 됐습니다」 지금은 재창조역사시대이니만큼 여러분이 선생님의 분신이 되고 어머니의 분신이 되어서 죽으나 사나 7년노정을 같이 나왔더라면, 축복을 받음과 동시에 여러분도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축복기준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도 아담의 자손이요, 노아도 아담의 자손이요, 아브라함도 아담의 자손이요, 모세도 아담의 자손이요, 세례 요한도 아담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모두 아담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담이 완성했다 할 때 전부 다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었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완성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섭리역사노정은 미래와 하나되기 위한 방법을 써 나온 것입니다. 과거를 중요시하는 것이 미래를 중요시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를 통해서 '예언자를 보내겠다,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선지자를 보내겠다,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하는 더 큰 약속을 하심으로써 미래에 밀착시키는 일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나오지만 예수님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재림주님, 즉 미래의 주님을 중요시해 나온 거예요. 그렇지요?「예」
그러면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 있느냐? 만약 7년노정에서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서 완성했다면 여러분은 모두 선생님 안에 있는 것이 됩니다. 역사적 섭리시대에 아담 가정이 실패한 것을 복귀하기 위해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복귀의 전통적 인연을 따라 노아와 그 이후 많은 선지자들에게까지 섭리가 아무리 연장되었더라도 그것이 전부 다 하나되어 예수에게로 연결되었다면 그것은 모두 예수 한 사람을 열매맺도록 하기 위해 지나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의 완성이자 역사상의 조상들의 완성권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여러분은 지금 통일교회 역사를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 완성기준을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 하나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안 됐습니다」 안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여러분이 재탕감해야 됩니다.
그러면 재탕감은 누가 치러야 되느냐? 제사장 자리에 있는 사람이 치러야 됩니다. 제물은 누가 잡느냐 하면 제사장이 잡는 거라구요. 그러면 누가 이 제사장의 사명을 할 것이냐? 제사장의 입장에서 아벨적인 사명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고생을 시키는 데는 어떻게 시키느냐? 우선 선생님과 하나되게 하면서 민족과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민족을 대신해서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해서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굴복하게 되면 그 제물을 하늘편에서도 받는 것이요, 하나님도 받는 것이요, 백성들도 전부 다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기뻐하는 것이요, 아버지를 잃었던 땅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물의 입장에 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기뻐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을 걸고 들어와서 대표적으로 탕감하기 때문에 민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제물과 제객(際客)들이 합해져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렇다면 제사장이 기뻐해야 되고 제객들이 기뻐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제물 때문에 기뻐해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의 종족적 가정형이 있지 않으면 민족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둘이 하나되었다면 거기서 나오는 아들딸은 자동적으로 하나되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아들딸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니 그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물의 입장에서부터 나가야 됩니다. 종족에 있어서의 제물부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민족 앞에 남아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종족적 제물과정입니다. 종족적 제물과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된 동기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족 복귀보다도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아벨의 기준을 중심삼고 종족을 복귀했다는 그런 승리의 터전을 갖추어서 민족 앞에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든가, 민족 전체가 제사장을 모실 수 있는 기준에 서든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만일에 아벨적 종족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지 못하면 민족을 대표해서 제물을 바쳐야 됩니다. 그러나 아벨적 종족이 기독교를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된다면 종족복귀가 되는 것이요, 민족복귀가 되는 것이요, 국가복귀가 되는 것이요. 그리고 기독교가 연결되어 있는 세계가 일시에 연결되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가 기준은 자동적으로 민주세계권과 만나 가지고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는 가인 기독교권, 가인 민주주의세계권으로부터 반대받다 보니 잃어버리게 된 것을 다시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족복귀 기준을 완결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내세워서 민족복귀의 기준을 세우는 동시에 민족을 대신하여 희생시키는 거라구요. 여기에서 민족이 여러분 앞에 순응하고 머리 숙여 하나되면 민족도 비로소 복귀의 혜택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속죄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야 복귀가 되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이거예요. 한꺼번에 해 버릴 것을 개인이 해야 되고, 또 가정이 해야 되고, 종족이 해야 되고, 민족이 해야 되고, 국가가 해야 되고, 세계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완성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세계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시대권에까지 넘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었더라면,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굴복하더라도 그것이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굴복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독교를 희생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독교를 희생시키면서 세계의 악한 무리들을 용서해 준 것입니다. 기독교를 제물이 되게 해 가지고 기독교에 순응하는 백성을 해방시켜 이루어 놓은 것이 민주세계권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하늘적으로 보면 지금 탕감기대는 닦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닦아진 기반 위에 메시아를 보내 가지고 전체를 총합해서, 즉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 종족…. 이렇게 해서 순리적으로 세계까지 한꺼번에 복귀하려 했는데 반대받음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개인적으로 싸워야 하고, 가정적으로 싸워야 하고, 종족적으로 싸워야 하고, 민족적으로 싸워야하고, 국가적으로까지 필사적으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만 복귀했더라면, 예를 들어 이게 어떤 자리와 같으냐 하면,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로마제국 안에 있던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로부터 분립된 자리에 서게 되는 것과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나라가 당시에 예수를 중심삼고 로마로부터 분립되었다면 어느 나라가 주체국이 되겠느냐? 그렇게 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주체국이 되는 것이지, 로마가 주체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가 이스라엘에 흡수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치든가 해 가지고 두 조각이 나고 그 두 조각이 또 네 조각으로 갈라지고 해서 깨져 나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이 선생님의 가정 기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서 종족적 가정 기준이 결정됐다 하면, 그 다음에는 민족을 중심삼고 아벨적 자리에서 민족을 대표해서 탕감노정을 걸어서 민족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종족적 아벨 기준이 없으면 민족적 복귀노정을 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종족적 아벨 기준은 어떻게 해야 세워지느냐?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는 터전이 마련되지 않으면 종족적 아벨 기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은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기독교 앞에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여러분의 입장입니다. 알겠어요? 「예」
교회가 진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 아벨권 종족 기반을 마련했느냐 못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종족 기반이 마련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가 하나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되는 데도 좋은 의미에서만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 하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에 대해 명령을 하여 사지로 나가게 되더라도 여러분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1200가정을 대표로 세워 가지고 선생님 마음대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의논도 하지 않는 거예요. 의논은 무슨 의논이예요? 의논 없이 '가라! 민족의 제물이 되라'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여기에 순순히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3년 기간입니다. 그러니 3년 동안 희생할 각오를 하고, 3년 계약을 하고 조건을 걸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서 불평 없이 3년 과정을 마치게 되면 3년 과정을 넘어선 탕감노정이 결정될 것이지만, 여기에 하나 되지 못하는 가정은 화를 당할 것입니다.
전후관계의 가인 아벨이 문제가 아니라 좌우관계, 즉 통일교회내의 가인 아벨이 문제입니다. 이 노정을 가지도 않고 넘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있어요? 싸워야만 됩니다. 이런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된다구요.
1972년도가 지나면 입적(入籍)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예」 입적은 민족을 통솔할 수 있는 주권을 갖거나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잡고서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그래요?「그렇습니다」 호적은 종족에다 올리는 것인가요, 나라에다 올리는 것인가요?「나라에다요」 호적은 나라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됐기 때문에 입적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면 입적시대가 무엇이냐? 이 기간에 지금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3년노정 기간에 완전히 일치 단결해 가지고 완전한 제물로서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제물이 불평할 수 있어요? 제물은 존재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유관념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평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거기에서 제물이 되지 않겠다고 꽁무니를 뺄 수 있어요?「없습니다」
그러면 종족적 역사의 완성기준을 세우는 전통은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이걸 알아야 돼요.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의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의 기준이 되어 가지고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 공의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역사는 앞으로 남아지지 않는 거라구요. 그런 역사는 지나고 나면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는 전부 다 슬픈 역사라고요. 그러면 역사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 가정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것만이 역사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타락한 역사는 개인의 역사로 출발했어요, 가정의 역사로 출발했어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있은 1960년도의 가정에 대한 기준에서부터 정상적인 역사적 완성기준이 시작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물론 선생님도 가정을 갖기 위해서는 개인적 완성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여러분은 개인적 완성기준을 세웠습니까?「못 세웠습니다」 못 세웠다구요. 그러면 가정적 완성기준은 세웠나요? 그것도 못 세웠다구. 그러니 종족적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는 아무런 요건도 없는 것입니다. 가인이 무슨 복귀의 운세를 맞을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가정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종족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민족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국가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세계적으로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가인 복귀의 기준은 누구로 말미암아? 아벨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것입니다. 복귀하려면 아벨과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벨이 없으면 복귀섭리의 출발, 구원섭리의 출발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다시 오시는 주님과는 가인 아벨형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예수와 하나된 입장에 선 기독교는 가인형이요, 재림주와 하나된 입장에 선 통일교회는 아벨형이 되는 거라구요. 여기에서 아벨을 중심삼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구원섭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복귀의 운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선생님이 없다면 여러분이 개인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겠어요?「없습니다」 또 가정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겠어요?「없습니다」 종족적 기준이고 뭐고 아무것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있다 하더라도 복귀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어요?「못 세웁니다」 못 세우는 거라구. 주님이 와야 되는 거예요. 아벨적인 주님이 와야만 그로 말미암아 개인적 완성기준도, 가정적 완성기준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시해야 할 존재는 누구냐면 아벨로 오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벨과 죽어도 하나되어야 하고 살아도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이 전통이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믿고 행해도 구원될 줄 알고 있지만 천만에요.
여러분이 하늘 앞에 당당히 서려면 아벨이 없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뒤에 있는 민주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와 세계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를 연결시켜서 민주세계와 국가와 종교와 민족과 종족, 그리고 가정의 기반까지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아벨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 입장인 여러분에게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있는데 아벨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도 절대적으로 아벨을 바라는 것이요, 민족도 종족도 가정도 개인도 모두 아벨을 바라는 것입니다. 세계도 아벨을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도 아벨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아벨이 누구냐 하면 메시아입니다. 세계를 대표하여 최후에 나타나는 아벨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하늘땅 전부가 고대하는 것입니다.
탕감역사과정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담보다 못한 아벨이 복귀의 사명을 할 수 있겠어요? 없지요? 또 아벨보다 노아가 못하면 아벨의 대신자로 설 수 있겠어요? 설 수 있어요, 없어요?「설 수 없습니다」 실패한 사람의 대신자를 세울 때, 그보다 못한 사람을 세우는 섭리가 있어요?「없습니다」 더 잘난 사람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보다 못한 노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노아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무엇이 노아보다 낫느냐? 아브라함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남매처럼 행동하자고 했을 때도‘예!’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마누라, 당신하고 나하고 형제처럼 행동합시다' 할 때에 그의 아내는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하나된 어머니 사라의 품에서 자란 이삭은 목이 잘리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야 옳지요?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모세는 어떠했느냐? 아브라함보다 모세가 못했느냐 아니면 나았느냐? 모세가 더 나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동네를 버리고 나왔지만 모세는 애급이라는 나라를 버리고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보다 모세가 낫다는 거예요. 더 낫지 않고는 더 큰 복귀의 사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모세보다 나았느냐? 나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방에서 모든 것을 버렸지만, 세례 요한은 자기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다니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냈던 세례 요한인데, 그런 사람을 가정을 갖고 부모나 나라를 갖고 다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갖고 다닌 사람이예요, 다 버리고 다닌 사람이예요?「버리고 다닌 사람입니다」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모세보다 못합니까, 낫습니까?「낫습니다」 모세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 시대를 두고 볼 때에, 후대의 섭리의 대표자로 선정받은 사람은 그 전시대에 선정받은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보다 못한 패들입니까, 나은 패들입니까?「나은 패들입니다」 예수보다 못해 가지고 예수가 실패한 섭리의 뜻을 이룰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똑똑히 대답해 봐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예수보다 낫다는 전통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동면이나 신앙면에 있어서, 혹은 목적을 정해 놓고 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시시한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기도는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죽게 되었는데 교회가 무엇이고 뜻이 무엇이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시시한 거라구. 여러분, 그런 사람이 뜻에 합당한 사람이예요?「아닙니다」
내 자식이 죽게 되었고 내 여편네가 죽게 되었고, 내가 죽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죽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죽게 되는데 '나는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뜻을 아는 사람이예요. 아니면 내 자식과 아내가 죽더라도, 내가 죽어 넘어진다 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위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뜻을 아는 사람이예요? 어느 쪽이 뜻을 아는 사람이예요?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만약 '하나님이 약속을 했으면 뜻을 이루어 주셔야지 약속을 해 놓고 북한 땅에는 왜 가게 해, 하나님도 돌았지' 그렇게 한다면 뜻이 이루어지겠어요? 선생님은 세계적 원수 앞에 이마를 맞대고 가슴을 헤치고 '자, 죽여라'고 하면서 나왔습니다. 벌거숭이가 되어 혼자서 원수에게 대드는 거예요. 이런 선생님이 미욱한 사람이예요,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얼마나 미욱한 사람이예요. 옥살박살이 나서 건데기도 못 건질 만큼 미욱하다구요.
종족복귀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역사적 운명시대에 있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은 탕감복귀역사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창출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역사라고요. 완성시대에 있어서 실패한 역사를 남긴다면 하나님께 서러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이 남아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역사의 운명을 밑에서부터 잘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개인이 나타나 그 개인이 완성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아담보다도 낫고 예수보다도 나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고 이 세계 사람들이 굴복할 수 있는, 그리고 심판할 수 있는 승리적인 역사의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남성으로 이땅 위에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재림주가 오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완성적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에게 참소받아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땅에 와서 마음대로 신부를 고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해 보라는 거예요. 주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될 일이 역사적인 재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담 가정을 반대하던 사탄의 세력과 부딪쳐야 하고,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민족을 대해 승리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가인권을 거쳐가야 합니다. 또한 노아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아브라함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모세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사가랴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예수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기독교 사도들이 거쳐간 과정까지 전부 거쳐가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일대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탕감함으로써 6천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간 탕감의 역사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 복귀원리입니다.
복귀하는 데 있어서, 아담 가정이면 아담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타락한 아담보다도 더 슬픈 골짜기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 슬픈 골짜기의 끝을 돌아오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겪은 슬픔에 뒤미치는 슬픔을 겪어 가지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노아의 슬픔보다 진하지 않은 슬픔을 거치면 돌아올 수 있겠어요? 그렇게 되면 사탄권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에게 잡아 먹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통 기준, 그 끝 이상을 가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 이상의 결의와 각오를 하고 고생길을 달갑게 가지 않고는 못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가졌던 이상의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예수가 싸울 때 가졌던 지혜와 신념 이상의 지혜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못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똑똑히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마음 세계의 믿음을 중심삼고 혈투전을 해 나온 산 기록이 복귀원리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여러분의 배후에서 복귀의 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아담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시는 주님을 아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시는 주님을 아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노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아브라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이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야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모세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세례 요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예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까지 거쳐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역사를 탕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서 아담 가정의 과정을 돌아 나와야 아벨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이요, 아벨의 자리에서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그 과정을 돌아나와야 노아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노아의 자리에서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노아의 밑은 딱 잘라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노아를 중심삼고 보면 이 자리에서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다시 올라가서 탕감을 짓고서 내려와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 그러면 이것이 없어지고 이것도 없어지고 이것만 남는 거라구요. 이게 새역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아브라함 시대에 있어서도 다시 아담 가정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이 탕감역사에서 또 실패를 하게 되면 가중된 탕감조건이 남아집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러면 모세 시대를 탕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세 시대에까지 내려가 가지고는 다시 아담 가정에까지 올라갔다가 새로이 출발을 해야 모세 시대의 새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세 이후의 역사가 비로소 하나님 섭리사에 플러스될 수 있는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아도 2천년 예수님 시대에까지 탕감해 내려갔다가 아담 가정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걸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에 남을 역사는 어떤 역사냐? 아담 역사니, 가인 역사니, 아벨 역사니, 노아 역사니, 아브라함 역사니, 모세 역사니, 예수 역사니 하는 역사는 모두 실패한 역사라구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출발되는 것이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승리한 개인적 완성기준에서부터입니다. 거기에서부터 가정적 개인 완성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신부를 맞을 수 있는 기준에 서는 것이지만 선생님의 개인 역사를 논의할 때, '이래 이래서 완성했다'고 간단하게 얘기할 수는 없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역사 가운데 물론 탄식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탄식의 역사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고 기쁨의 역사로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의 가정은 다 찾아진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렇게 볼 때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디서부터 세워지는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세워져요?「메시아에서부터요」 메시아 이전에는 세워질 수 있습니까?「없습니다」 절대로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는 거라구요. 이제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았다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든 살든 선생님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세계를 대표한 남자로서 철형(鐵型)과 같습니다. 공장에서 딸각딸각하면서 같은 물건을 찍어 내는 철형을 알지요? 그 철형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틀에 넣고 찍어내면 같은 것이 계속 나오지요? 나와요, 안 나와요?「나옵니다」 재료는 달라도 같은 모양의 물건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라든가 쇠라든가 납이라든가 구리라든가 스텐레스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모양은 다 같은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뜻 때문에 죽는다, 죽든지 살든지 뜻대로 한다' 모두 그러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모양이 같아요, 안 같아요? 같아요?「예」 질(質)은 달라도 모양은 틀림없이 같지요? 전부 다 한가지로 찍어내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통일교인들은 어쩌면 문선생을 닮았어? ’합니다. 그러나 다 나를 닮는다 해도 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되는 거라구.
뜻 앞에 나오면 기분 나빠도 죽어 살아야 합니다. 뜻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돼요. 그것은 가인을 위한 제물이 되기 위한 거라구요. 여러분, 뜻 때문에 미쳤어요?「예」 개인적 가인은 물론 가정적 가인이 되고, 종족적 가인이 되고, 민족적 가인이 되고, 국가적 가인이 되고, 세계적 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선생님을 닳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닮았어요, 안 닳았어요?「닳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인적인 가인의 입장에서 탕감복귀의 책임을 지는 제물이 될래요, 세계적 가인의 입장에서 탕감복귀의 책임을 지는 제물이 될래요?「세계적인…」 그러니까 더 큰 고생을 해서, 죽을 고생을 해서 빨리 세계적인 자리로 나가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죽을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 있지요? 여기에 부가되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요, 나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요, 종족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종족을 위해 사는 것이요, 가정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요, 개인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을 위해 산다고 하는 말입니다.
종족을 위해서 이루어진 천국에는 가정을 위하고 개인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참석 못 하는 법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니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되겠습니까? 이왕지사 매를 맞을 바에는 나랏님한테 맞아야지 하졸(下卒)에게 맞아서야 되겠습니까? 한 대를 더 맞더라도 말예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맞고 싶어요? 맞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기왕 죽을 바엔 잘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잘 죽는 사람이 영웅이 되고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충신이 될 수 있는 자리에는 간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영웅이 될 수 있는 자리에는 말할 수 없는…. 영웅의 반대말이 뭡니까?「소인요, 졸장부요」 영웅에 반대되는 말은 없다고요, 없어. (웃음)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지극히 사랑하시옵소서, 우리는 6천년의 열매로 아나이다'라고 하지요? 그런 기도를 해요, 안 해요? 그 어떤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까? 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하는 거예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개인의 입장에서 하는 거예요? 어떤 거예요? 문제는 그거예요.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었지요? '하나님의 뜻' 하면 무엇입니까? 세계입니다. '뜻' 하면 세계와 후손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는 것은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뜻은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복귀하는 데는 그냥 당장에 돼요? 후손과 다리 놓아야 하지요? 자기 아들딸이 모여 씨족이 되고, 그 씨족이 국민이 되면 국민이 모두 자기 후손이지요? 또 그 국민이 세계의 백성이 되면 세계 백성이 모두 자기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손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디에 와 있느냐? 원리적으로 볼 때 우리는 종족적으로 가인 아벨 가정을 완전히 하나 만듦과 동시에 민족적 제물을 희생시켜 민족적인 탕감을 하는 시대권내에 있습니다. 이 단계를 넘어가는 날에는 민족적 해방운동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게 되면 비로소 우리 앞에 최고의 희망의 세계가 동터오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소원이 어디에 있느냐? 가정을 찾는 것만이 아니요, 종족을 찾는 것만이 아닙니다. 민족을 규합하여 하나의 주권을 세우는 것이 뜻의 목적이 아니냐? 완성 주권이란 가인적인 주권과 아벨적인 주권, 즉 남과 북이 통일되어야 세워지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만나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남조와 북조로 갈라진 것과 같은 입장에서, 남북이 가인 아벨의 형태를 거쳐서 규합되어야 합니다. 국가적 기준에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을 하나로 규합해야 비로소 아벨적 아담 국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니 이북과 싸워서 이겨야 되겠어요, 져야 되겠어요?「이겨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이겨야 됩니다. 또 기성교회와 싸워서 이겨야 되겠어요, 져야 되겠어요?「이겨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바라던 민족적 소생입니다. 그것이 소생이 되고 나아가 장성이 되고 다음에 통일이 완성되는 거라구요. 국가복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나라가 갖추어져서 아담 국가가 되기 때문에 완성한 주체가 종횡으로, 사방으로 거동할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주권국가가 형성된다는 거예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옹호하는 국가, 비로소 하나님이 맞아 주실 수 있는 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담적 국가의 입장에 서게 되면 해와적 국가는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해와는 아담을 통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므로 아담 국가가 생겨나면 해와 국가는 그 터 위에서 원칙만 따라가면 자연적으로 복귀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을 다 지어 놓고 해와를 지었겠습니까? 아니면 아담을 지으면서 해와를 지었겠어요? 아담을 지을 때에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 해와를 짓겠다는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있었을 것입니다」 아담을 지음과 동시에 마음으로 해와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해와를 짓기 위해 준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담 복귀역사와 더불어 해와 복귀역사를 준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일본을 비롯한 천사장 국가들을 준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가 되려면 앞으로 몇 고개가 남았나요? 세 고개가 남아 있지요? 그러므로 1200가정이 총동원 되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어 가지고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역사적 한을 풀어야 되겠다고,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겠다고, 우리 형님 누나의 한을 풀어야 되겠다고 칼을 빼 들고 나섰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내디뎠다가 가만 보고 '그럴 필요 없어' 하고 물러설 거예요? 그렇게 하겠어요?「아닙니다」
그렇게 사탄세계를 찌르겠다고 나섰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한다고 시들해져 버려서야 되겠어요? 처음에 뿌리치고 나섰으면 해결지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떤 목적을 세우면 욕을 먹으면서라도 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복수할 줄을 모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날을 맞이할 때까지는 반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내 갈 길이 더 바쁘기에 그냥 가는 것입니다. 내 준비하기에도 바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러고 나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이 민족이 세계로 연결될 수 있고 세계 기독교가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이 나라와 연결될 수 있는 대표적인 국가가 되면 이 국가의 기준은 세계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요, 민족적 기준이자 세계적 기준이 되는 것이요, 가정적 기준이자 세계적 기준이 되는 것이요, 개인적 기준이자 세계적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가인의 입장에서 메시아 앞에 한 개인이 굴복하고, 가정이 굴복하고, 종족이 굴복하게 되면 종족은 복귀되는 것입니다.
가인적 가정이 복귀되면 예수의 가정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안 나오는 거예요?「나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된다면 예수가 신랑이 되어 가지고 뭘 하고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이것만 해 놓으면 되는 거라구요. 종족권이 벌어지면 얼마든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 품에 있는 사람들, 기독교고 무엇이고 이런 것을 모르는 이 원수 같은 녀석들을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가 당한 희생의 대가를 타고 넘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뒤넘이쳐 가지고 세상에 없는 하늘의 운세를 여기에서부터 출발시킨 것입니다. 그러한 그 뜻을 대하는 주체 앞에 상대적으로 끌려가 심정에 불을 붙여 가지고 가정에서 반대하든 말든, 칼침을 맞고 채이고 찢기고 밟히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병신 짜박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도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나온 것입니다. 웃음으로써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그랬습니까? 여러분은 욕을 먹어도 철 모르고 먹었지요? 철 모를 때 욕을 먹은 것은 먹으나마나입니다. (웃음) 철 들었을 때 욕을 먹으면 뼈에 사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없을 때에는 억울했던 일도 다 잊어버리지요? 그렇지요?「예」 여러분에게 뼈에 사무친 원한이 없습니까?「없습니다」 그러니 철이 없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원한에 사무쳐 있습니다. 마음속에 묻혀 있는 그 한들을 어느 한때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내 성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는 거예요. 한번 행동을 잘못했다가는 천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성격을 누르고 참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할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못 하는 것이 있으므로 못 할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는 함부로 서지 않아야겠다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입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눈이 있어도 죽은 눈처럼, 귀가 있어도 죽은 사람의 귀처럼 다 죽이고 사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산 목숨을 갖고도 죽은 목숨처럼 생각하고 죽음길을 자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래요?
이 밥을 먹는다고 해서 편한 것이 아니요, 좋은 자리에 눕는다고 해서 편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이웃을 희생시키는 주권자의 입장에서 그 밥이 맛있고 그 자리가 편해요? 그것은 자신의 주권을 노린, 더 유린하기 위한 제물적 주권입니다. 그것을 자신에게 제물로 부여해준 것은 그 일족과 국가를 치고 나가게 하기 위한 사탄의 간접적인 작전인 것을 알게 될 때에 분개심을 갖고 침을 뱉고 가야 할 것이 하늘나라 아들딸이 갈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의 배후에는 민족이 달려 있어요, 안 달려 있어요?「달려 있습니다」 탕감복귀한 기준에 민족이 달려 있어요, 안 달려 있어요?「안 달려 있습니다」 안 되어 있지요? 탕감시켜서 복귀해야 할 기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됩니다.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우리 책임자들, 교회장들 그래, 안 그래?「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냐? 군(郡)의 제사장이라구요. 선생님 대신 가 가지고 복수탕감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선생님 대신자로서 제물을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그러니 자기 자식들보다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야 된다고요. 알겠어요?「예」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이북에 갔었습니다. 그때 정말 그러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어요? 그리고 지금껏 혼자 싸워 나왔습니다. 그 터 위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찬스가 여러분의 전후에 걸려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성경에 '끝날에는 젖 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고 했지요?「예」 화가 있다는 말은 그것을 이기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고 했지요? 통일교회는 지금 이러한 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분의 원수예요, 아니예요?「원수입니다」'집 나간 것만도 이가 갈리는데 저희들 멋대로 시집 장가가서 어미 애비가 이 모양인데도 어린 자식들을 떡 갖다 맡겨?' 그럴 거예요. 그런 자식들의 심정을 내가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용서받을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구. 여기서 심판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심판받을 것이요, 이런 자는 남아질 것이다' 하는 선악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역사가 통일사와 더불어 새로운 천국의 역사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무섭습니다」 무서운 거라구요. 역사는 그냥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 3차의 7년노정에, 즉 21년 기간에 세계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중에서도 2차 7년노정의 4년째 되는 올해가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7년기간을 딱 꺾어 놓으면…. 고비의 한 중앙인 꼭대기를 결정할 수 있는 해가 1971년도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러니까 여기에서 최후 판결이 나는 것입니다. 이 8월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환경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넘어지는것 같기도 하고, 넘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요?
줄기에 요동이 치면 요동이 칠수록 뿌리가 깊고 든든한 놈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거리던 것은 다 뽑히는 거예요. 작은 바람에도 뿌리째 흔들흔들하는 것들은 다 뽑히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그런 역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 머리가 흔들흔들해요?「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여러분은 민족을 위해 일선에 서서 천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하늘땅의 운명을 감당해야 할 제사장으로서의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때는 한번밖에 없는 때입니다. 영영 다시없는 역사적인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기원이 되고 새 나라 창건의 전통적 사상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거룩한 시대임을 여러분이 알아서 심판을 물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나감으로써 하나님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하나님도 참을 수 없어서 '야,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어서 너희들이 원하는 그 나라를 세워야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런 자극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만세에 축복을 받을 것이요,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요, 사탄세계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영원을 걸어 놓은 승리의 방패요, 등대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가정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비운이 왜 생겨났느냐? 이 민족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를 굽이쳐, 수난과 역경을 개척하여 80년 역사의 기독교 문화를 흡수시켜 가지고 이 나라의 해방과 더불어 안팎으로 하늘의 뜻을 이 민족에 연결시켜 나왔습니다. 그런 하늘의 축복의 터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 삶의 방석을 튼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 고비, 두 고비, 세 고비를 넘어 국가적 기준을 틀고 앉아야 할 것인데도 그것이 전부 다 틀어진 것입니다. 풀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한번 풀어진 것은 다시 감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하다가 실패를 하면 그 사람을 중심삼고 다시 하는 것 봤어요? 나 혼자, 지금 그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내 앞에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린 수난길이 남아졌다는 것은 여러분이 뼈살을 갈아서 제물이 되어도 갚을 수 없는 원한과 분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와 민족을 대표해서 통탄해야 할 그런 한의 심정을 갖지 않으면 통일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선생님의 꽃다운 30대 청춘시대는 어디로 갔는가. 선생님이 그 청춘시대에 세계를 무대로 힘차게 달릴 수 있었다면, 이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아시아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또한 세계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 세계에 공산권이 아직까지 남아 있겠는가. 이 한민족이 잘못하여 한때, 한날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손해가 벌어졌고 배 이상의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것을 살아 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 탕감복귀는 엄연한 진리, 타락세계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만일 여러분의 일대에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제1진이 망하게 될 것을 대비해서 제2진을 준비하고 있는 거라구요.
민족을 걸어 놓고, 종족을 걸어 놓고, 가정을 걸어 놓고 탕감해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과 베드로와 야고보 가정들이 예수편이 되지 못했던 것을 예수가 밟고 넘어가 가지고 거느릴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야 비로소 민족이 우리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민족의 주권이 하늘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성교회와 하나되는 날에는 종교계를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겠다면서, '뭐 내 배가 고픈데 누나 시집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야, 나 밥 먹는 게 더 좋지, 형님 장가가면 뭘 해?' 하는 철부지들이 많습니다. 초교파운동을 하는 데에 돈이 어느만큼 들어가느니 목사 공청회 하는 데에 얼마를 쓰느니 하면서‘밥을 먹고 배가 불러야 일을 하지 배가 고픈데 어떻게 일을 해?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저 로마에 가 보라구요. 거기에는 카타롬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400년 동안 토굴에서 살았던 도시가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는 무덤으로 사용한 선반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을 파고 묻을래야 묻을 수 없었으므로 선반을 짜서 그 위에 시체를 놓고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해 흙을 덮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썩어서 흐르는 물을 밟으면서, 시체가 뼈다귀만 남을 때까지 그런 곳에서 생활하면서 싸워 나온 기독교의 비참한 역사를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은 뼈가 가루로 되어 있는 그것을 보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애혼이여, 당신이 죽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죽었는가. 당신 개인의 구원을 위해 죽었다면 당신은 영계에서도 슬플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오신 예수의 슬픔을 풀어 드리고 새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하늘의 기수가 되지 못한 채 죽는다는 한을 품고 죽었다면, 천상세계에 가서 내가 부활을 시켜 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의 순교자들 가운데에는 자기 하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죽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시한 겁니다.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 하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여기에 들어왔습니까?「아닙니다」 자기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들어왔다면 시시한 것입니다. 껄렁껄렁하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차라리 죽어 버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가정 하나 구원얻기 위해서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민족 앞에 필요한 아벨 종족권을 이룰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역사시대에 희생되었던 기독교인 가운데 산 무리가 이 땅 위에 있었더라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런 비참한 길을 걷지 않았을 텐데….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만나 뜻이 이루어진다고 기분 좋아하거나 마음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기독교인들과 여러분을 비교할 때 여러분이 그들보다 휠씬 나아야 선생님의 마음에 사무쳐 있는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너무도 철부지의 모습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새벽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은 못 찾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 똑똑히 정신차려야 된다구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고 싶어요?「예」 죽든 살든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 안 되면 큰일납니다. 여러분 가정이 어디에 가서 발을 붙일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지옥에 발을 붙이겠어요, 천상세계에 발을 붙이겠어요? 지옥에 가게 되면 사탄들이 여러분을 보고 '이놈의 자식아, 나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해서 여기에 왔지만 너는 완성기 완성기준에 부모의 심정을 유린하고 타락했으니 너는 나보다 더한 사탄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보고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발을 딛겠어요? 어디에 여러분이 발을 딛고 살 곳이 있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으면 선생님이 벌써 이 일을 집어치웠다구요. 천상세계에도 갈 수 없고 지옥에도 갈 수 없으니 어디 가서 발을 붙이냐는 것입니다. 발 붙일 곳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없습니다」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얼굴 좀 보게. 있어요? 선생님이 그런 것을 똑똑히 알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가야 되고, 살더라도 가야 되고, 바람이 불어도 가야 되고, 벼락을 맞아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뜻 앞에 있어서는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행복할 것입니다. 뜻을 품고 뜻을 위해 성의를 다하여 일하다가 죽는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는, '나는 내가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다 못 했다'는 한을 품게 되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렇지만 죽는 마당에 '저는 이 이상 더는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할 수 있으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홀로 살다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고,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자리에 당당히 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나깨나 민족복귀와 국가복귀의 운명을 해결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숨겨진 진리를 발굴하고 탕감 역사의 한의 노정을 가려 왔지만, 그 최후의 승리의 기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민족을 해방시키고 국가를 해방시킬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통일 사상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한을 지상에서 풀지 못하기 때문에 제1이스라엘의 한도 풀지 못하는 것이요, 제2이스라엘의 한도 풀지 못하게 되어 제3이스라엘의 완성권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소생기 완성을 못 했는데 장성기 완성이 있을 수 있으며, 장성기 완성을 못 했는데 완성기 완성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제1이스라엘 왕권의 기준과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영내의 왕권 기준을 통합시켜서 승리의 기준을 세우고 직접적으로는 영계를 다스리고,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기백을 가지고, 제사장의 대신자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만민을 굴복시켜 경배식을 하는 잔칫날을 맞이하지 않으면 통일사상으로 국가를 맞이할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이제는 '아하, 그렇게 되는 거구만' 하고 대개 짐작할 것입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이지요?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서러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약속으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잃어버린 서러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수많은 주권자들로부터 영광을 찬양받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저주와 원망 속에 피와 눈물을 흘리며 비참한 길을, 그것도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밀리고 밟히면서 네발걸음질을 하면서 기어가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했던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런 비운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여러분, 소위 교회장이라는 자들이 그런 태도 가지고 되겠는가? 민족은 어디 가고 국가의 주권은 어디 갔는가? 지금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대한민국 이 나라를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 이 나라에 하나님이 믿고 안식할 수 있는 소망적인 천국의 터전이 남아진다고 생각하면 이럴 수 없다구요. 그러니 잘났건 못났건 우리의 눈물과 피와 땀을 짜내 진하게 해서 폭주를 만들어 그들에게 마시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한을 풀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그 일을 가당한 일로 생각하고 자진해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을 맞을 수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여러분은 직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결판을 내리는 순간에, 승패를 결정하는 그 순간에 대비하여 온갖 시련과 온갖 훈련을 거치고, 어떠한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지요?「예」 남편과 아내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복귀한 사위기대 완성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지요?「예」 그래서 7년노정 기간에는 선생님과 어머니가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될래야 하나 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면서 가는 길이었어요. 여자는 여자 세계, 남자는 남자 세계의 복잡한 모든 굴을 거쳐 다시 만나 가지고, 갈 곳이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가는 그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길을 거쳐가지 않고는 완성했다는 자리에 갈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남자로서 한탄을 하되, 세계 남자들의 슬픔을 한탄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여자를 생각하면 이가 뿌득뿌득 갈리고, 여자를 보면 몇번이고 칼침을 놓고도 남을 것 같은 분한 마음이 생기고 원통한 마음이 생기는 자리까지 간 것입니다. 자기 일신을 위해, 자기 일신의 영복(榮福) 을 위해 간 것이 아닙니다. 천리의 불쌍한 사람들의 영복이 이 칼 끝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를 악물고 칼 끝을 자기 가슴에 갖다 대고 찌르면서 스스로 자극을 주는 행동을 하면서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부모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자녀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만물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선생님이 겪은 슬픔을 모를 것입니다. 어떠한 혈투전을 벌여 그날이 지상에 나타나게 됐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머니도 모릅니다.
이런 비운의 역사과정에서 시련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시련과 핍박과 더불어 흘러가고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짓궂은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아침 햇빛처럼 희색이 만면해 가지고 승리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웃음을 웃으며 새아침을 맞을 수 있는 한날이 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런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참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날을 맞지 못하고는 죽을 수도 없는 거라구요.
절뚝발이가 되고 한 눈이 먼 병신이 되더라도 남은 한쪽 눈으로 태양을 보기 위해 얼굴을 들어 태양빛을 받으며, 눈물과 더불어 과거의 모든 슬픔은 흘려 버리고 잊어버리고, 오늘의 나는 자랑스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만민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입장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갈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종족적으로 일체가 되는 기준을 완결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이 3년노정에 아내와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끌어다가 아내와 하나되라는 거예요. 어떤 녀석은 아내한테 편지를 해가지고 너는 나와 결혼했으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언제 어디로 나오지 않으면 이혼이라고 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그런 녀석들은 종족을 복귀하려면 3대가 걸릴 것입니다. 편지질 똑똑히 해야 돼요. 자기 자식의 등골을 타다가 부인을 죽게 만들 수 있고, 부인의 등골을 빼서 자식을 죽게 만들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신을 잘해야 돼요. 여기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어요?
자식을 놓고 아브라함이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식의 배에 칼을 대고라도 가야 되겠다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복귀의 길이 이렇게 서러운 것이더냐?'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어찌하여 그런 자리에서 명령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비참한 주인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원망과 저주를 퍼붓고도 싶었지만 그런 길을 가지 않고는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원망이 변하여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고 다시 맹세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출발의 동기가 그런 자리에서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의 뜻을 가려 나오는 이 스승이 오늘날까지 남아질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어떤 때는 어떤 간부의 발을 내 손으로 찢어 가지고 새나 돼지 굽듯이 바짝바짝 구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한 입장에 처한 하나님이 참고 나오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겠기 때문에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듣고도 못 들은 체하며 분해도 안 분한 체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스쳐간 그 아픔은 하나님과 더불어 느낀 아픔이기 때문에 빼어 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때가 무서운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좋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요. 정의와 공의의 법도를 중심삼은 원리 원칙에 있어서는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종족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가는 데 있어서, 민족복귀를 위해 나가는 기수의 행렬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냐? 혹은 도피자가 될 것이냐? 도피하게 되면 즉각 처분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자기의 흔적을 남겨야 할 여러분은 낙오하는 아내가 있으면 남편이 아내의 목을 잘라야 합니다. 알겠어요? 또 남편이 그러거든 아내가 남편의 목을 잘라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고 가지 않으면 남편도 아내도 살 수 없습니다. 둘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길이 오늘 현재 우리가 처한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알겠지요?「예」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 완성기준이 결정됨과 동시에 불완성 기준을 심판할 수 있는 결정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두 세계로 갈라지는 거라구요. 갈라지는 데는 어디서부터 갈라지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부터 두 패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참과 거짓으로 말이예요. 거짓은 참 앞에 나가야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참과 먼 자리에 있을 때는 거짓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참된 것도 진짜 참 앞에 가까이 가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과 거짓이 교차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의 이마로 스쳐가고, 가슴 사이로 스쳐가고, 손 사이로 스쳐가고, 발가락 사이로 스쳐가고, 눈 사이로 스쳐가고, 코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느껴 봤느냐는 말예요. 여러분이 까딱하는 사이에 스쳐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가 막힌 놀음이 여러분에게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숨을 쉬더라도 뜻을 품고 쉬어야 되고, 길을 갈 때도 뜻을 품고 가야 되고, 잠을 잘 때도 '아버지,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이 시대에 있어 저는 언제 거쳐갈는지 모를 그 순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깨닫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자야 합니다. 그 교차점에서 잘만 교차되어 나가면 공을 안 들이고도 죽을 자리를 천국으로 교차되는 교차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오른편 강도가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그랬습니다」 잘 붙들었지요? 그 사람이 교법사나 알았을까요?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선생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의 가정보다 선생님의 가정을 더 생각하면 종족적으로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민족을 위해 제물을 바쳐야 됩니다. 자식을 희생시키고 아내를 희생시켜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하나님이 그런 자리에서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희생시키고 해와를 희생시킨 것 아닙니까? 그것은 복귀 역사를 이끌어오시는 하나님에게는 지극히 비참한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해와는 하나님의 아내격입니다. 해와의 아들딸이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그렇지요? 「예」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민족을 위해서 그런 제물을 바칠 각오를 하고 수난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 교회를 짓는 데 조금씩 협조해 주었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전부 다 가정을 제물로 드렸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제물로 드려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종족적 표준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여러분의 집이 아니고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들은 앞으로 기성교회와 통하는 기점이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내가 지방교회에 얼마씩 도와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도와줍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언제나 도와줄 줄 알고 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여러분은 민족을 붙들고 민족이 머리 숙일 수 있도록 제물의 과정을 말 없이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감당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교회 역사는 통일교회의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엮어질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이 과거 구약시대 역사나 신약시대 역사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소생시대이므로 구약시대와 같은 때이지요?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가 기독교와 합하는 때가 구약시대가 되고, 대한민국과 합하는 때가 신약시대가 될 것이며, 북한과 합하는 때가 성약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틀림없을 거예요.
그러니 구약시대를 이룰 제물의 과정을 통과할래요, 안 할래요?「하겠습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 구약시대가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신약시대가 되고, 여러분은 신약시대로 들어가면 예수님의 재림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를 중심삼고 신약을 완성하게 되면 우리는 통일국가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예」 마찬가지입니다. 반대하는 나라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에 있습니다. 심각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세계적인 전통 역사, 즉 역사적 완성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 가정의 역사에 가인 가정의 역사를 중심삼고 여러분의 가정이 역사에 연결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 가정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역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었다 하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해방되는 것이라구요. 그 다음엔 가정이 하나되어 가지고 종족적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종족적 아벨로서 기독교와 맞서서 종족적 가인을 굴복시키면 민족적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민족적 아벨이 되어 가지고 국가를 중심삼고 몇 사람만 굴복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른손으로는 선생님을 붙잡고, 왼손으로는 민족을 붙잡고, 가슴으로 품고 옹호하면서 72년도까지 싸워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과 같이 뛰어 보자구요. 여러분이 하나되지 못하면 여러분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우리가 이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어머니를 만나러 왔습니까? 형제끼리 재미있게 살러 왔어요?
어머니 아버지 버리고, 형제 다 버리고, 친척 다 버리고 나와서 나라로부터 쫓겨다니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부모를 버리고 나왔으니 부모보다 더 잘살아야지요?「예」 형제를 버리고 친척들을 버리고 나왔으니 우리가 하나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되지 못하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는 거라구요. 세상에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느냐는 거예요. 다시 집으로 가서 '아이고 엄마 아빠! 배고파 죽겠소. 철몰라서 나갔으니 이제는 안 그럴께요' 이럴 거예요? 목을 빼서 개를 주었으면 줬지 그렇게는 못 하겠지요? 죽어도 못 그러는 거예요.
죽든 살든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절대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예요. 우리는 어차피 공동운명권에 있습니다. 너와 나는 공동운명으로 서로가 허리띠처럼 얽어매어져 있는 것입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하나가 죽게 되면 둘이 죽게 되고, 둘이 죽게 되면 셋이 죽게 되고, 더 수가 많아지면 전체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운명권에 우리가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기에서 하나되지 못하면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없지만 우리가 하나된다면 우리같이 행복한 사람이?「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번 만번 불러 봐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 꿈에도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나니, 그 이름이 참부모라는 이름이요, 천번 만번 불러 봐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나니 그 이름이 참부모의 아들딸의 이름인 것입니다. 또한 천번 만번 부르고 싶고 사모하고 싶은 가정이 참부모의 가정이요, 참부모가 있는 민족과 더불어 참부모의 가정을 모시고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국가와 더불어 주권과 더불어 모시고 싶다는 거라고요. 이것은 선생님 중심삼은 말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됐습니다」 됐지요?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60년대는 어떤 시대였느냐 하면 탕감시대로서 눈물과 고통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거쳐온 사람이 오늘날 하늘의 완성기준인 새로운 섭리역사가 탄생하는 이 마당에 부부가 같이 이 길을 못 간다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식을 품고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러면 통일교회 자식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식을 얽어매어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자리에, 사지판에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희진이도….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았다는 거라구요. 부모가 그걸 몰랐겠어요? 희진이가 죽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넘어야 할 고비라고 생각한 거예요. 철모르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보내고 가슴 아파하던 나 자신은, 철을 알고 뜻의 길을 안다고 만민을 위해 가겠다고 하며 죽음길을 가다가 죽어 쓰러진 자식을 보며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내가 가야 할 죽음길을 대신 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독하다면 참으로 지독한 사람이라구.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여러분은 새로운 의미에서, 그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섭리의 터전을 중심삼은 현재의 입장이 어떤 자리인지 확실히 알았으리라고 봅니다. 알았어요?「예」
역사적인 입장에서 우리 가정은 어떤 자리에 있고, 우리 가정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으며, 이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예요.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오점은 천년 만년의 오점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하루의 오점이 천년 만년의 오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21년 기간에 오점을 남기면 그것은 천년 만년의 오점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1차, 2차, 3차 7년노정은 이제는 영영 없는 것입니다. 이런 노정이 또 있을 것 같아요?「없습니다」 다시는 없다는 거라구요.
이 시대에 개인적 완성기준이 탄생하여 비로소 역사상에 개인적 완성의 역사가 머리를 들고 나타날 것이요, 가정적 완성기준의 역사, 모든 가정의 형을 대표할 수 있는 철형(틀)과 같은 역사가 비로소 얼굴을 들고 나타날 것이요, 가정을 중심삼은 사위기대의 전통적 기준, 철형과 같은 기준이 하나님이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섭리역사의 목적체로서 비로소 역사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이때인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적 모델형이 나타나야 그 모델형을 중심삼고 세계적 종족편성이 가능한 것이요, 그것을 중삼삼고 세계복귀가 가능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잘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세계복귀의 기간이 연장되느냐 단축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세계복귀의 운명이 여러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종족적 전통의 역사를 세우지 않고는 세계 종족을 교육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세계적 종족권을 편성하여 빛나는 역사를 창조하고 찬란한 문화의 기원을 만들려니 여러분은 등골에 땀을 흘려야 되고, 손끝에 땀을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려도 안 되거든, 남이 먼저 죽기 전에 우리들이 일시에 배를 째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겠다는 각오를 하자는 겁니다. 자식과 아내를 전부 죽이고 나까지 칼침을 놓고 죽더라도 원수에게 죽을 수는 없다는 한을 품고 우리는 언제든 한꺼번에 죽을 무리라는 각오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앞에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어 해방국가, 통일국가를 갖지 못할 때에는 거기에서 종결짓겠다고 결의하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요, 통일의 가정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주류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디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아이구, 거룩하도다! 정말 그렇게 하겠어요?「예」 나는 지금까지 많이 속았습니다. 이번엔 틀림없어요?「예」 어디 한번 해보라구요.
이 나라, 이 민족을 누가 제물이 되어서 지킬 것이냐? 여러분은 그 나라를 그리워하며 그 나라를 찾기 위해 꼬인 다리를 끌고, 절름발이 걸음을 걸어 나왔기에 이 나라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목전에 두고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비운의 사나이들이 아니냐 이겁니다. 내 발을 잘라 제물로 드려서 그 나라를 찾을 수만 있다면 아깝지 않게 당당히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할 것이 현재 우리의 입장이 아닙니까? 죽더라도 찬란한 역사를 빛내고, 역사시대의 사망의 골짜기에 새로운 부활체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전통의 샘을 터놓고야 죽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 섭리를 책임진 우리의 입장이 아닙니까?
이러한 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거예요. 21년이라는 세월은 꿈같이 지나가는 거예요. '10년 세월이 언제 다 지나갔는가? 그런 역사가 있었던가' 하는 것같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이 50이 넘었지만…. 오늘도 여기에 오기 전에 여섯 시간 가까이 말씀을 했는데 얘기를 끝내고 내려오려고 하니 다리가 굳어져 가지고 휘청휘청하잖아요. 그래서 책상을 짚고 내려섰습니다. 그러면서도 '청평으로 가자. 이놈의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또 가야지' 해 가지고 여기에 온 것입니다. 80대까지는 이렇게 버티고 나갈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칼을 꽂고 결의했던 것을 이루고, 소원을 성취해 가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꽂았던 칼을 도로 뽑아서 원수를 쳐 달라고 하며 드릴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한 후에 눈을 감고 죽겠다는 것이 여러분이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 사나이의 소원입니다. 자식들이 배가 고파 잠을 못 이루고 누워 있는 처량한 모습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뜻을 품고 싸워 나온 행각의 노정이 여러분이 모시는 스승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만 그렇게 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애국자의 전통적 사상은 그런 자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곱게, 아름답게, 그리고 순순하게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 우리로 말미암아 탄생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기에서 우리시대, 이 시대의 잼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잼대를 가지고 금을 그으려면 한금 한금을 정확하게 그어서 누가 봐도 틀림없다고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 번 '전통을 세워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여러분은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전통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전통을 못 세우면 망하는 거예요. 전통이란 그 나라의 애국사상을 연결시켜서 세우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사상적 전통을 세울 시기는 이 시대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아내와 더불어 이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세계가 통일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예요. 세계 통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느 시대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이니만큼 거기에는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슬픔과 기쁨을 다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통일신도, 특히 지방교회를 책임진 여러분들의 사명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장 시절에 하늘나라의 전통적 노정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만민에게 보여 주고 틀림없는 길,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깔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천년 만년 그들의 피 속에, 살 속에, 정신 속에 살아 남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쁜 일이 있어도 비석이 서 있는 여러분의 무덤을 바라볼 것이고, 여러분이 넘나들던 산이 있으면 그 산을 넘나들면서 역사를 읊으며 '이 기쁨을 당신이 받으소서' 하고 찬양으로 여러분에게 기쁨을 돌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보람있는 인생입니다. 알겠어요?「예」
일생 동안 대로에서 진탕 먹고 웃고 춤추며 살다가 무덤에 가면 복이 될게 뭐 있어요? 그런 사람의 무덤에는 풀이 날 뿐이겠지만,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그 나라가 살아 있는 한 꽃이 필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으면 여러분들 선생님의 무덤에 와 볼래요?「예」 어떤 모습으로 올래요? 와도 걱정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 무덤엔 와서'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아무개가 왔습니다' 할 때 '오냐, 그렇게 오기를 바라던 그대가 왔느뇨' 하고 죽은 영혼이 반길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할 텐데…. 그래야 되겠지요?「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름다운 씨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어 가지고 영광의 터전을 넓혀서 귀한 사람으로서, 칭찬받는 사람으로서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또 선생님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때 찾아오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아올래요, 안 찾아올래요?「찾아가겠습니다」 어떻게 찾아올래요? 선생님을 찾아와 가지고 '아이구, 선생님 제가 죽게 됐습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 하겠어요? 선생님은 죽어도 그런 일은 못 합니다. 선생님은 한 7,8천만 원 있던 돈이 일주일 새에 한푼도 없이 돼 버렸다고 해서 '아버지! 내가 따라지 신세가 되었으니 도와주시오. 큰일났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런 기도는 죽어도 못 해요. 내가 책임을 졌으면 내가 있는 정성을 다하고 그 고통을 홀로 감당하는 거예요.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럽니까?
잠잘 것 다 자고 비굴한 모습이 되어 가지고 비렁뱅이 노릇을 하지는 않아요. 잠을 안 자고 일을 할 것입니다. 젊은 시대에 잠 안 자고 일을 해서도 안 되면 늙더라도 잠을 안 자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 저런 것을 알고 가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올 새나라의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느 시대에 남아지느냐? 구약시대도 아니요, 신약시대도 아니요, 성약시대입니다. 새나라의 역사는 이 성약시대에서부터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싹이 튼다는 것입니다. 교훈의 원본도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요, 사상의 원줄기도 여기서부터 생기는 것이요, 사탄세계를 판결할 공의의 법도도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요, 악을 제거시키는 방법도 여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 태어났어요, 못 태어났어요?「잘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는 잘 태어났지만 여기서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제일 못 태어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하나만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망하게 하는 불쌍한 괴수가 되는 거예요. 그래도 잘 태어났어요? 잘 태어났어요. 못 태어났어요?「잘 태어났습니다」 잘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가려면 살아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어가야 합니다. 아들딸이 생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서슴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가기 위해 죽음 길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수 있어요?「예」 그러지 않으면 예수보다 못하게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보다 못나게 되는 것입니다. 최후에 완성의 책임을 진 사람은 역사상에 충성했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종이나 물건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었지만, 지금 여러분은 아들딸과 아내와 자신까지도 제물삼겠다고 해야 됩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예수보다 못해요, 나아요?「낫습니다」 하나님이 대할 때 예수 때보다도 지금 여러분이 낫겠어요, 못 하겠어요?「나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말 같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실상입니다. 예수가 자기 아내를 전도하러 보내 봤습니까? 보내 봤어요, 못 보내 봤어요?「못 보내 봤습니다」 또 예수가 자기 아들딸에게 엄마 아빠랑 같이 전도 나가자고 해봤습니까?「못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예수보다 낫잖아요. 낫지요?「예 」
그러니 여러분은 멋진 시대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대강 알겠어요?「예」‘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은 아무 때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나가겠어요, 남아지겠어요?「지나갑니다」 때는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거예요?「남아지겠습니다」 남아지니 어떻게 할 거예요?「대신 그 일을…」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의 골수에 사무치게끔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하는 일을 확실히 알고, 또 그것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다음 단계에서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을 이어받아 완성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겠지요?「예」
옛날 기성교인들은 가인 시대의 탕감을 위해 열성을 다한 것입니다. 가인이 되기 위해서 열성을 다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가인의 입장을 탕감하기 위해서 열심으로 일한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아벨이 되기 위해서…」 부끄러운 아벨이 되기 위해서예요, 승리한 아벨이 되기 위해서예요. 아벨은 아벨인데 예수보다 나은 아벨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민족복귀의 책임을 진 아벨의 입장에 서서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같은 정성을 들이더라도 우리는 차원이 높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정성을 들이고 같은 자리에서 길을 가더라도 영계에 가면 그들은 우리의 지배를 받아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러니 우리가 기성교회 목사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되겠어요, 덜 들여야 되겠어요?「더 들여야 됩니다」 이런 것은 뭐 물어 보나마나 뻔한 것이지요.
자, 이제는 대강 알겠지요?「예」 이제 여러분들은 '아하, 72년까지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선생님이 입적시대가 온다는 말씀을 하셨구나'할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아내를 가진 사내 녀석들을 입적시대에 참석 못 시켰다가는 서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자빠져서 배밀이를 하면서 스스로 죽게 되는 때가 올지 모릅니다. 왜? 자기 아들딸의 등살에 못 사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는 거라구요. 자기의 아들딸들로부터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는 뭘 했어' 하는 말을 듣는 비참한 부모가 되는 거라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왜 먼저 와서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었소? ’하면서 자기 아들딸이 눈에 번갯불이 일도록 한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오도록 만들지도 모릅니다. 농담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훌륭한 아버지요.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어머니다. 너희 부모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분밖에 없는 어머니요, 단 한 분밖에 없는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런 사상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이 사상을 이어받아서 자식들에게 자나깨나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먼저 세계 역사상에 없는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사상을 남겨야 됩니다. '우리 가정은 이 세계에 없는 가치관을 지닌 가정이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이어받는 거라구요. 알겠지요?「예」
'우리 친척들은 천년을 같이 살아도 그 수가 작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상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의 국가와 민족이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류적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오늘, 1971년 8월 17일 저녁에 한 이 말씀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역사를 길이 빛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이 말씀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라지겠어요, 안 달라지겠어요?「달라지겠습니다」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아야 돼요. 선생님의 목적과 여러분의 목적은 같습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니 고생을 해도 같이 고생하고, 울어도 같이 울고, 좋아해도 같이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에는 선후가 있기 때문에, 더 큰 것을 살리려니 작은 가정을 희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희생해야 되겠다는데 자식과 아내를 돌볼 수 있어요? 여러분은 이런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역사적 완성기준을 세울 때입니다. 개인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가정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종족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민족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국가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세워지는 전통으로써만이 세계를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누룩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강한 칼이 되어 어느 나라의 전통이든 싹뚝 잘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자고 하면 다 동원되겠어요, 안 되겠어요?「동원되겠습니다」 지금 이 한국 군인들, 소대장이고 대대장이고 이 썩은 패들은 전부 다 보따리를 싸 가지고 꽁무니 뺄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몇천 명의 소대장감, 몇천 명의 중대장감을 다시 길렀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이란 것을 알고 여러분은 역사적 완성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가야 합니다. 역사적 완성기준, 이것은 하나님도 원하시고 역사도 원하고 인류도 원하고 선생님도 원하는 것입니다. 그 철형 (鐵型)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재료나 질은 달라도 모양은 같게 만들어지는 것이 철형이예요. 알겠지요? 모양은 같아야 하는 거라구요. 우리 가정들의 모양이 그렇지요?
지금 우리 통일교인들의 생활은 비참하지요? 살림살이가 비참해요. 그러나 자기 아들딸을 죽여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다면 자기 아들딸을 죽음의 길에 선뜻 내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것이 다 전통이 되는 거예요. 그 사연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억천만년 빛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요.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역사시대에 순교자를 갖는 가정은 복이 있느니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선생님 가정에서는 1969년도에 희진이가 대표적으로 갔다구요. 그때 선생님이 명령했지요? 금년만은 전체가 동원되어야 한다고 말이예요. 1969년도는 3년노정의 2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에 전체가 동원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 희진이 이녀석이 들어오더니 '전체가 나가지 않으니 저 혼자라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김천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경기도에 김천이 있는 줄 알고 거기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경상도에 있는 김천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으면 안 보냈을 것입니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서로서로 끼고 조심해야 할 기간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깜빡한 것입니다. 그렇게 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희진이가 우리 가정의 제1대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소년으로 순교의 선혈을 흘림으로써 영광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빛나는 가치는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전통으로 남아질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랑스럽게 간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에도 그런 아들딸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있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나 여러분이나 그런 것은 같아요. 그러니 이 시대의 가치를 알고 이때의 운명적인 인연을 여러분이 고이 이어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선조들의 전통적인 공적을 연결시키는 이 시점을 부디 하늘이 찾아오실 수 있게 빛나는 결실로 맺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에서 말씀한 것이니 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아들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철부지했던 과거를 깨닫고, 이렇듯 심각한 역사의 배후를 더듬어 깨우치는 이 자리 위에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의 손길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잊을 수 없는 이번 기간이 감사하다면 감사한 기간이요, 두렵다면 두려운 기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철부지하여 아버지의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 이제 애달프게 몸부림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깨우쳐 헤아릴 수 있는 철든 아들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들이 고이고이 아버지 앞으로 가야 할 운명의 길을 돌이키려고 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 것으로 맡기었사오니 비참해도 당신 것이요, 영광스러워도 당신 것이옵니다. 가치의 비중을 생각할 때 영광이 귀한 것이 아니라 비참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한 칼에 쪼개질 수 있는 제물이 되겠다고 하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로 말미암아 천세 만세의 한을 털어 버릴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요, 또한 당신의 긍휼과 동정의 마음으로 만민의 한의 터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 저희들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거룩한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철부지했던 과거지사를 박차 버리고 장자의 모습을 갖추어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살더라도 죽은 목숨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쓰러져 가야 하는 것이 사나이의 갈 길임을 알고, 새로이 결심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들에게는 가정을 중심삼고 세상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당신의 슬픈 사연이 감돌고 있는 것을 아옵니다. 복귀의 한의 심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당한 슬픔을 살아 있는 실체의 부모의 입장에서,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할 때, 비록 나타난 모습은 비참하지만 역사에 숨겨진 당신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는 승리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창백한 자식을 바라보는 그 자리, 심정이 극에 달해 숨통이 터질 듯하는 그 자리에 당신의 심정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저희 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보리밥을 젓가락으로 끄적이며 먹는 것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자식의 모습이 비록 창백하지만 죽을 자리에 갈 자식이 아니라, 미래에 천국의 상속자로서 영광을 이어받을 수 있는 희망의 자리에 갈 자식이기에, 불쌍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을 받고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앞에 불초한 자식으로서 그런 자식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할 수 있는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억천만세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복된 것이라는 것을 이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식을 사랑해 주는 자가 있거든 정(情)의 실체로 생각하고 생애를 바쳐 보답하고 감사하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런 자식을 위해 빵 한 조각을 주는 사람이 있거든 천년 역사의 은덕을 입은 은인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만복을 받을 수 있게 축복을 돌려 드리겠다고 결의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옵니다.
이렇듯 슬픈 역사노정에 동석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빵 한 조각, 물 한 그릇을 주는 사람에게 만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사실을 느끼고 알 수 있게 된 것도, 오늘 이와 같은 자리로 말미암은 것임을 고이 고이 마음과 뼈살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 설 적마다 예수의 신세를 생각하고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 간 예수,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품기어 사랑을 받지 못한 예수의 어린 시절의 한이 풀려 나갈 수 있는 거룩한 순간이 우리 가정에 있노라고, 그런 자랑의 조건이 우리 가정에 있노라고 할 수 있어야겠사옵니다. 그런 복된 자리를 더듬어 이어받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환영해 주는 종족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종족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그런 종족이 있기를 얼마나 얼마나 바라왔습니까? 저희들이 그런 종족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그 종족을 흠뻑 사랑하고 싶어하고 그 종족 앞에 종이 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예수의 심정을 다시 회상하며, 사가랴 가정이 그랬어야 된다면 그것을 복귀한 형태의 가정으로 탕감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주권이 우리의 손가락 끝에서 오락가락할 수 있는 행운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행운의 시대를 나 혼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와 아내와 자식이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되는 평화공존의 기준이 지금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전체가 눈물을 홀리며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사랑하시고 싶었던 통일교단을 품어 흠뻑 사랑하시옵고, 책망하고 싶었던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채찍질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후한이 없는 민족으로서, 출발한 사람이 한 사람도 떨어짐이 없이, 애급땅에 남아지지 않고 홍해를 건너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더라도, 하늘의 길에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같이 동행할 수 있는 무리로서 아버지 앞에 기억되고 길이 남아지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를 대신하고, 자식을 대신하고, 후대의 후손을 대신하고, 가인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 전체를 대신하여 맹세하오니, 이를 아버지께서 받으시사 부디 다시는 아버지를 배역(背逆)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을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역사적 완성기준이 세워질 그립고 그리운 그날, 찾고 또 찾아 나온 그 자리, 바라고 또 바라고 나온 그 한계선을, 그 경계선을 이 눈으로 바라보며 이 발로 넘을 수 있는 영광의 한때를 천만 번 죽더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역사의 전통이 되고 빛나는 종족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통일교단이 승리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간 어린 아들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통고하였사오니, 뼈살이 녹아지는 한을 백골난망의 은사로 알고 감사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늘의 지성소를 맡아 지키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여 아버지로부터 무엇 하나 축복받지 못함이 없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내일 시간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바쁜 날들 가운데 엮어져 가는 당신의 뜻의 엮어짐이 아시아를 통하여 세계에 이어져 천운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승리의 노정이 힘차고 자랑스럽게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저희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과 방향에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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