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의장, 전직 대통령, 정부수반, 내각수상, 왕족, 귀족, 내외귀빈 및 신사숙녀 여러분! 평화추구의 일념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세계의 지도자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본인은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인간은 항상 평화를 갈망하여 왔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여 왔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얻기 위해 남을 정복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평화를 위해 항복을 하기도 했습니다. 금세기에 이르러서는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국제간의 대립을 해결하고자 시도한 두 가지 귀중한 실례가 있는데, 그것이 곧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입니다.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평화를 이룩하지 못하였고 역사는 분쟁을 반복하고 있으며 파괴적인 폭력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평화를 성취한다는 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개개인 내부에서의 내적인 투쟁이 해결되지 않은 채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분쟁은 이러한 개인의 내면투쟁의 발로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모순이 있으며, 이러한 모순의 초점은 바로 개인의 영육간 투쟁에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높은 이상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곧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육신은 우리의 이상을 구현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는 노력과 연단과 자기희생을 요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추구하는 것과 육신이 추구하는 것 사이에는 긴장이 생깁니다. 정신은 신앙의 영을 찾고 육신은 이성의 세계를 찾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는 두 가지 평행되는 사조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이성적이며 외면적이어서 육신의 우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육체적인 만족, 육체적인 미, 과학에 치중하는 것으로, 모두가 신체적 감각에 바탕을 두는 실증을 중시합니다. 또 하나의 사조는 종교적 전통인 바, 이는 인간의 육신을 초월하는 가치를 중시합니다. 정신적 법칙이나 가치,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는 과학의 실증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이들 두가지 사조가 바로 오늘의 세계에서 보는 두 개의 대립된 이데올로기의 근원인 것입니다.
민주세계, 즉 자유세계는 종교적 전통에서 출발하여 발전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현대적 개념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 모습대로 지으셨다'는 성경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민주세계에서는 인간을 존중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선택의 이유를 최대한 허용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유없이는 인간의 행동이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공산주의는 인간역사에 있어서 보다 외면적이고 세속적인 사조의 결실입니다. 계몽사조와 프랑스혁명을 거쳐온 후 마르크스는 폭력과 사회공학적 기법을 응용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축출하고 폭력에 의한 사회질서 구축을 주장하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공학적 기법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인간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비록 마르크스의 견해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되 마르크스 이론을 실험하고 실천해 온 역사가 70년을 헤아리는 소련 등지에서의 결과는 한마디로 비극적인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1억 5천만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으나 마르크스가 약속했던 정의와 번영의 세계는 그 어디에서도 실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들 양대 이데올로기와 이를 신봉하는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서로 정면대결하고 있으며, 일찌기 상상조차 못하였던 거대한 파괴력을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평화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으로서 원천적인 세 가지 단계를 엄숙하게 천명하고자 합니다. 이 제안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어서 아주 이상주의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건물이라도 그 허술한 기초를 바로잡지 않는 한 구실을 할 수 없듯이 본인의 평화를 위한 제안은 원천적인 기초에서 출발합니다. 먼저 궁극의 세계평화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평화, 다음으로 인간 상호간의 평화, 그러고 세계의 평화라는 3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인은 온 생애를 바쳐 수도의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근본과 하나님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고민한 사람입니다.
피눈물나는 수도의 과정을 통하여 본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그 살아 계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체험까지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과의 평화를 얻지 아니하고 이 지구상에서 참평화를 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제일원인이시며 삼라만상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 목적은 바로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이시지만,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실지라도 혼자서는 결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며 그 대상으로부터 자발적인 사랑을 돌려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대상으로서 최고의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숙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참사랑의 관계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근본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평화관계를 수립하고 나면 우리는 인간 상호간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인간 상호간의 평화를 위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도 역시 사랑의 관계일 따름입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타 모든 세계 종교는 우리가 전능하신 창조주, 곧 하나님의 자녀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는 바로 우리가 모두 형제요, 자매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이해함으로써 서로가 형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최선의 길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인간 상호간의 참평화 관계를 설정하는 근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평화의 달성이야말로 인류의 오랜 염원입니다. 그런데 이의 달성 역시 본질적으로는 위에 말한 인간 개개인의 평화를 이룩하는 방법과 같은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현실적으로 양대세계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자유세계와 공산세계만의 갈등은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대립되는 가치관의 갈등인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긍정하는 가치체계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가치체계입니다. 공산주의의 출현은 어찌 보면 사람이 원래 하나님의 도덕률을 실천하지 못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일면 비난의 이데올로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구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인 것입니다. 그들이 비난 받아 마땅할 내용도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팽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상세계가 실제로 구현될 때는 공산주의는 설 땅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세계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 해결은 하나님의 실존을 긍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날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차원 높은 정신적 각성입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고 유신론적 원리에 바탕을 두는 세계관으로 재무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중심 세계관이 오늘의 가치 혼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정신적 가치관 운동은 외적으로는 정치, 경제, 군사면에서 결과적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정신적 각성의 근본은 종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횡적으로는 인간 상호간의 참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고차적인 가치로 각성된 터 위에서 국가간의 관계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경제발전의 배후 원동력은 이윤에 대한 욕구였습니다. 이로써 인간의 잠재능력이 크게 발휘되어 거대한 세계발전과 선진 경제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진국들은 이윤추구 동기를 넘어서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타적 사랑이 국제관계 차원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오히려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목적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세계의 후진국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참한 그들의 참상을 해소하는 데 선진국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여러분, 부유한 나라가 이런 태도를 가진다면 위축되거나 급격히 쇠퇴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만일 선진국들이 이윤추구 이상의 고귀한 이념을 갖지 못하면, 그들이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번영은 걷잡을 수 없이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이웃 사람이 기아, 질병, 또는 무지의 희생이 되어 죽어갈 때, 어찌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모든 선진국들이 결속하기만 한다면 기아, 질병, 그리고 무지, 이 3대악을 물리치는 세계평화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국가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을 모신 세계공동체가 실제로 출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선 오늘 우리는 세계가 날로 침체되어 가는 실상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이제는 외딴 섬이 아닙니다. 어느누구도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 없이 번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기 위하여 국가들이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건설되어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 지구촌이라고 불릴 만큼 급속히 좁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존과 번영이 바로 협동정신에 달려 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대가족임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협동을 통하여서만 우리는 환경을 보호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의 문화 수준의 향상과 자유, 정의 및 존엄성의 확보를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협동정신의 바탕은 무엇이겠습니까? 세계 공동체의 모든 나라는 오직 하나님에게 근원을 두는 공통된 가치체계와 영원불변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공통된 꿈을 갖고 있으니, 이는 이상세계 실현의 염원인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를 지상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요원한 듯한 목표입니다만, 실현될 수 있고 반드시 성취되어야만 할 목표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창조주의 원래의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정상회의의 중요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내일을 전망할 때 어찌 보면 암담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리의 이상을 땅 위에 실현하겠다고 하신 성경 말씀, 곧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 46:11)" 하신 언약 속에서 하나님의 결단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세계의 평화가 기필코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세계평화를 위한 정상회의는 세계평화를 논의하는 가장 차원 높은 모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 회의가 소집되었다고 본인은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평화를 위한 신성하고도 장엄한 소명을 받고 이 자리에 회동하였습니다. 우리가 달성하는 과업은 우리 자손과 모든 인류에게 주는 귀중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세계평화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여러분께서 먼 여로를 거쳐 지구 한 귀퉁이에 있는 한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축하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경험과 지혜와 탁월한 정치적 지도역량을 크게 신뢰하며 우리의 이 과업을 통하여 21세기에는 새로운 평화시대가 이 땅에 도래할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진중하고도 사려 깊게 시작하시는 세계평화를 위한 정상회의 위에 하나님의 영감과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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