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29년 전의 모든 사연들을 회상해 볼 때 감개무량합니다. 오늘 국가가 가는 길, 세계가 가는 길 앞에 '나'라는 한 존재가 어떠한 좋은 영향을 미친 자리에 섰느냐 하는 걸 반성하게 됩니다.
더더욱 우리 교회 창립 29회가 되는 이 기념일에, 여러 종단의 지도자 되시는 분들과 각계 각층의 여러 저명한 인사들이 이와 같이 왕림하셔서 이날을 성대히 축하해 주신 데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공식적인 모임이라는 것은 딱딱합니다. 격을 갖추어 가지고 말해야 되고, 선후가 맞아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우기나 저를 처음 보는 사람은 저 사람이 말씀하다가 곁길로 가지 않나 생각하실 것인데, 여러 지식 수준이 높은 분들이 주시하고 있어서 이 마당에 서기가 거북합니다. 그러니까 자유스러운 마음을 가지시고 마음 푹 놓으시고, 이웃동네의 한 소년과 같이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비교도 하지 말고, 판단도 하지 말고, 또 전후좌우를 가리지도 말고, 이 시간 그저 보고 웃을 수 있는 한 시간이 된다면 보람 있는 축하의 날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 준비도 없이 나왔습니다. 더더욱 본인을 칭송해 주신 여기 이회장님, 이장군님, 윤박사님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인사 말씀은 그저 천만번 감사 감사 감사일 따름입니다. 됐지요, 이만하면? (박수)
뭐 어디 가든지 지금까지 가면 잡아서…. 말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거북한지 모르겠어요. 아마 여기 선생님들도 대중 앞에 초청받아 가지고 말하거나, 공석이나 혹은 사석에서 말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 겁니다. 이 박사님도 그럽디다. 한국의 대학자이신데도 불구하고 참 힘들다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이 자리에 나선 저도 인사의 말씀을 하려고 하니까, 뭐라고 할까요, 국민학교 학생들이 학예회에 나가서 노래를 하든가 뭘하려고 할 때는 마음이 떨린다는 거와 같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용서하시고, 제 소견을 간단히 말씀드려 보고자 하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이라는 사람을 보고 여러분이 30년 전에는 뭐라고 했느냐? 구름타고 놀음하는 사람, 혹은 광대의 한 사람이 아니냐, 혹은 탈락자, 허술한 곳의 하나의 괴수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런 등들, 여러 가지의 생각을 가져올 수 있게끔 소문난 사람입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대한민국에 있어서 이화여대 사건, 또 이박사 시대에 5대 장관의 통일교회 박멸운동을 중심삼은 법정투쟁 사건 등 여러 가지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일들이 여러분의 뇌리에 스치고 지나갈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 중에는 그런 역사적인 일면을 기억하는 시선으로 본인을 대하는 분도 계시리라고 봅니다.
일본의 어떤 저명한 인사 한 친구가 '여보, 문선생! 당신 보니까 모든 면에 지혜─내가 나 칭찬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 말이 그렇지─도 있고, 전후좌우를 가려 가지고 전진적인 조직 형태를 갖추고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도 있다고 보는데 왜 세계기독교통일이라는 글자를 내놨소? 그 기독교라는 말만 빼면 무사통과일 테니 제발 빼소.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노니 빼기만 하면 잡종 종교를 믿는 일본 민족 앞에 있어서는 폭발적인 환영을 받을 수 있을 테니 제발 그 세계기독교는 빼 버리소' 이러는 거예요.
일본은 지금 특정 종교가 없습니다. 잡종 종교예요. 야호요로즈, 일본 말로 하면 야호요로즈노 가미라고 하는, 이건 뭐 8백만 이상 되는 신을 섬기는 잡종 종교입니다. 이런 일본 민족 앞에 있어서 세계기독교라는 말만 빼면 폭발적인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니 제발 그 세계 기독교라는 말은 빼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충고를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예요. 매번, 만날 적마다 그러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라는 건 자기의 간판, 자기의 본 주류사상을 정당하게 내놓지 않고는 인사가 안 되는 겁니다. 역사적인 전후를 가릴 수 있는 하나의 와중에 설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기독교의 핍박을 지금까지 받아 나온 거예요. 해방 후 37년이 됐지만 37년 동안 기독교 목사님들은 그저 문 아무개는 이단의 괴수라고 두들겨 팼고,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야, 문 아무개 너 지금 너를 죽으라고 아무개 목사가 기도하는 소리 한번 들어볼래?' 하신다구요. 하나님도 유머를 잘하시는 분입니다. 그래 나팔소리와 같이 들려오는데 '문 아무개는 당장에 벼락을 맞아서 죽어야 된다'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등등 참 걷잡을 수 없을이만큼 핍박을 퍼부어 나왔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우리의 갈 길이 바쁘기에 그걸 반대해서 싸우지 않았어요. 싸울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었어요.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길가에 서 가지고 의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어요. 그렇게 달리다 보니 결국 오늘의 통일교회가 되었고, 오늘의 세계적인 기반을 닦은 것같이 생각됩니다. 이러한 모든 과거지사를 회상하게 될 때….
그러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과 이목구비가 마찬가지이고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보면 좀 뚱뚱하고, 힘에 있어서는 여기에 모이신 분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은 내가 능가할 수 있다고 보고, 체격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체격을 가졌다고 보지만, 얼굴은 그리 잘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에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는 이와 같은 장본인이 어떻게 되어서 지금에 와서는 세계적으로, 나쁜 의미에서든 좋은 의미에서든 레버런 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이만큼 유명하다면 유명하게 됐습니다.
자,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됐느냐? 여기서부터 말씀을 해보겠습니다. 이런 말 하면 속되다고 하겠지만, 운이라는 게 있잖아요? '에이! 저거 뭐 무당 푼수와 같은 게…' 이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터놓고. 속된 말로 '오늘 운이 좋았다!'라고 하지요? 아마 학자님들도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데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좋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겁니다. 좋을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터전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공자님은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라' 했습니다. 또, 예수님 같은 양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으니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 석가 같은 이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했습니다. 그런 주장이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한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또 다른 주체를 두고, 주체와 상관관계에 있어서 그런 경지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천의(天意)라는 게 있습니다. 또 천도(天道)가 있습니다. 천도는 천운(天運)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천도를 움직이는 그런 주인 되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가 막연하게 이름을 붙이더라도 철학적 술어로 절대자라든가 종교적 술어로 하나님이라든가 하는 그분이 있다 하는 문제, 이것이 지금까지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본인도 그런 문제에 부딪혀 심각히 몸부림쳐 가지고 그것을 탐구하고 모색한 역사시대의 한 사람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천도를 세워 천운을 행사하면서 세계를 끌고 나가는 주인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하나님으로서 보는 인류가 복을 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이상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그 길, 하나님이 끌고 가는 운의 길이 어떤 것일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개인이 운을 잘 타고났다 하더라도 가정에 화가 부딪히게 될 때는, 개인이 속한 가정 전체에 화가 닥치게 될 때는 개인의 운 가지고는 막을 수 없습니다. 가정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사회에 악운이 몰아치게 될 때는 거기에 피해를 입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사회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국가가 존망지추(存亡之秋)에 서 가지고 비운에 부딪치게 될 때는 그 사회의 운도 거기에 휩쓸리고 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국가의 운을 올바른 길로 지금 이끌고 나간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운보다 더 큰 세계적인 비참한 운세가 몰아치게 될 때는, 아무리 좋은 운을 가지고 행복한 자리에 섰더라도 그 비운의 역사에 휘말려 감길 수 있는 것이 역사적 실정이 아니겠느냐. 아무리 세계의 운이 크다 하더라도 천운이 몰아닥치게 될 때는, 천운 앞에 세계의 운세도 자세를 가리지 못하고 자리를 양보해야 할 입장에 설 것이 아니냐, 이렇게 봅니다.
천운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의 본연의 정도로 인도할 수 있는,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 혹은 통일교회 술어로 천주, 하나님까지 항복할 수 있는 절대 불변의 길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절대자이신 하나님이라면 이것이 없다고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절대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그러한 문제를 탐구 모색하기 위해서 노력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천운이 갈 수 있는, 천운을 이길 수 있는 개인적 운세가 천운을 따라 개인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가정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사회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국가의 운세를 세우고, 천운을 따라 세계의 운세를 세우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행복의 세계로 연결할 수 있는 그 길이 제멋대로 되어 있겠느냐? 아니면 고착된 어떤 공식노정이 있느냐?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럼 불행은 왜 있느냐? 천운이 가는 방향에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 불행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서 공자님이 하신 말씀을 두고 보더라도,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한다, 하늘이 복을 갖다 준다, 위불선자는, 위불선자라는 말은 위악자(爲惡者)라는 말입니다, 천보지이화다 이거예요. 여기서 선악의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도대체 선이 뭐고 악이 뭐예요? 이거 근본 문제예요. 선이 뭐예요? 여기 윤박사님이 계신데 선생 되시는 분은, '내가 학교에 나가 가지고, 일과에 맞춰 학과에 따라 강의하면 되지. 내가 죄 안 짓고 양심의 가책받을 게 없으니 나는 선한 사람이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선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악은 뭐냐? 선악의 경계선이 어디냐 이거예요. 이제 근본문제에 들어가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의 경계선이 어디냐? 선한 사람은 일반인들이 알기를 운의 길을 가고 있다, 복받을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다고 하고 하늘이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공자 같은 분은 높이 올라갔던 분이 아니예요? 성인의 반열에 선 그런 분들이 하늘을 위하였던 것입니다. 위선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위불선자는 지옥에 들어가고.
선이 뭐냐? 악이 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경계선이라는 것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에 선악의 분기선이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싶어도, 내 자신이 있는 그 자리가 악한 자리일 때는 선한 마음이 있더라도 악한 자리에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예요. 그러면, 선악의 기준에 있어서 선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고, 악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이란 보다 공적인 것이고, 악이란 보다 사적인 것이다 하는 결론이 나와요.
왜 오늘날 사회 도덕 관념에 있어서 공사문제를 논하느냐? 어째서 논하느냐 이겁니다. 공적인 것은 다 싫어합니다. 왜 지금까지 인간 도덕의 윤리체제에 있어서는 불가피적으로 대의를 따라가라고 강조하느냐? 그것은 대의가 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선하면 어떻게 되느냐? 복을 받는다 이겁니다. 왜 복을 받느냐? 천운에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악하면 화를 받습니다. 왜?나를 위주하는 데서는 악이 싹트는 것이요, 전체를 위주하는 데서는 선이 싹튼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 보편적으로 마음이 선합니다. '내 마음에 가책을 안 받아' 이러지요? '내 마음은 발라' 이럽니다. 마음이 바르다는 건 무엇 갖고 하는 말이예요? 그것은 대도(大道)의 기준 앞에 평행선 아니면 직선상에 선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바르다고 하는 겁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바른 길이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다 복받고 싶을 겁니다. 여기 뭐 나이 많은 분들, 이름있는 수녀님들, 유명한 박사님들도 많이 모이셨는데,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화받고 싶소, 복받고 싶소?' 이렇게 물어 본다면 거 뭐 물어 볼 거 뭐 있어, 국민학교 학생들처럼?' 하고 불평하면서 속으로 '복받고 싶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천운을 탈 수 있는 그 길이 어디 있느냐?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한 천도는 나를 받들고 천운은 나를 에워싸고 찬양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정면에서 부른다. 틀림없이 부른다. 방향이 틀렸으면 틀린 것을 가르쳐 주고, 옳았으면 옳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 확실한 하나님의 실존을 체휼하지 않고는 정의의 길을 다 갈 수 없다고 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설명할 내용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구체적인 것입니다. 막연한 관념주의적 기반이 아니예요. 현실적이요, 실증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잡한 종교문제, 종교, 철학 문제라든가 비교종교학이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걸 얘기할 시간은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오늘 통일교회가 현재 철학세계에 준 영향은 지대하다고 봅니다. 또, 지금까지 신학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에 방향을 제시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고 저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는 바입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잘사는 것, 행복한 것,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일 것이냐? 두 사람 가운데 말을 하더라도 '야! 당신 참 아름답소. 미인이요. 훌륭하오. 체격도 좋고, 야, 대통령 되고도 남겠구만' 이렇게 칭찬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 쌍것' 하면서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건 우리 생활 실제무대에 있어서, 부부끼리 사는 생활에 있어서 직접 문제가 됩니다.
여기 정박사님 오셨구만. 정박사님 부부도 그럴 거라. 술 잘 드시는 정박사님이 쓱 한잔 하시고 들어와 가지고 '여보 여보, 나 한잔 했수다' 할 때는, 술집에 가서 술 마시고 들어와 가지고 '나 오늘 친구를 만나 가지고 이러이러해서 한잔 했수다' 그럴 때는 정박사가 선한 사람이예요, 악한 사람이예요? 국민학교식으로 훌륭하고 뭐 대학총장이라 하더라도 악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먼저 침해하는 자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해하는 자가 망하기 마련입니다.
1차대전 때도 맞은 녀석이 망했어요, 친 녀석이 망했어요? 친 녀석이 망했지요? 독일. 2차대전도 친 녀석이 망했습니다. 지금 3차대전 운운하는 이 시대에 공산주의라는 색다른 세계주의가 나와 가지고, 세계를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 공격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는데 '내 자리 내놔, 내 자리 내놔, 이건 내가 해야 되겠다' 이래요. 그래 가지고 안 주면 총칼로 위협해 가지고 타고 앉아요. 이놈의 자식들! 천리의 대도와 천운이 그들의 모가지를 째까닥 칠 때가 올 것입니다.
보라구요. 여기 종교 지도자 되시는 여러분들이 다 오셨는데, 내가 엊그제 우리 집사람보고 한 얘기가 있습니다. '종교의 가는 길은 같다. 컵에 물을 채우는데, 종교 나름대로의 관과 내용을 가지고 큰 컵 작은 컵에 물을 채우는데, 물이 넘칠 때까지는 전부가 빨리 채워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완전히 차 가지고 넘치게 될 때는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안 그래요? 한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잘났건 못났건, 이단의 괴수라고 하든 어떻든 넘치게 될 때는 그 물은 한 길을 가는 거예요. 천지의 대도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들의 주장이 강해도, 자기 스스로의 갈 길을 정해 놓고 '나는 좌로 가겠다. 이건 절대적이다' 해도 아닌 것입니다. 물이 흐르게 되면, 가는 방향이 자기가 생각지 않던 북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겁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의 본질적인 방향은 깊은 곳입니다. 깊은 데로 깊은 데로 따라가는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인류역사의 진행에 있어서 운세를 타고 가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물이 흐르는 거와 같이 골수로 골수로 흘러가는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통일하려는 비법이 뭐냐? 문제는 간단하다고 봅니다. 나는 복잡하게 보지 않아요. 간단하게 보고 복잡하게 분석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어떻게 간단하게 보느냐? 둘이 있으면 이마를 맞대고 내 교파가 옳으니 네 교파가 옳으니 하고 싸우는데, 상대가 이단이고 사탄 마귀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찾아가자, 끊임없이 만나자 이겁니다. 1년 가고, 2년 가고, 3년 가고 그러다 가만 보니까 너무했거든요. 사람이 양심이 있지. 세 번 이상 과격하게 대한 후에는 자기 양심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야, 이놈아! 도의적인 면에서도 생각해야지, 인간이란 그런 게 아니잖아? 너무했다' 이러는 거예요. 그렇게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그 원수를 찾아가 가지고, 원수를 위해 줄 수 있는 길을 끝까지, 원수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도망갈 때까지 따라가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도 통일이 안 되면 통일권을…. (녹음이 잠시 끊김)
팔려가 가지고 더 좋을 수 있으면, 복받을 수 있으면 팔려가도 괜찮지요. 용감하게, 싫다고 해도 찾아가고, 욕을 해도 찾아가고, 계속 찾아가는 겁니다. 밤 열두 시고 뭐고 점점점 더 찾아가는 겁니다. 옛날에는 자전거 타고 찾아가다 이제는 자동차 타고 찾아가고, 앞으로는 비행기 타고 찾아갈 것이다, 어때요? 그래 가지고 '이놈아! 너는 나를 반대했는데 너는 이렇게 망하고, 나는 복받았다' 하고 자랑하느냐? 아닙니다. 위하는 데서만이 번식한다는 천리원칙을 나는 알았다 이거예요. 내가 망할 수 있는 운명에 섰다고 다 결정하고 판결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고 오늘날 세계적인 하나의 문제의 사나이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 비결이 뭐냐? 위하여 사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개인이 가정을 위하는데 진정히 위하고 자기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위하게 될 때, 그 부모는 말하기를 그를 효자라고 하고, 형제는 말하기를 그가 우리집의 효자라고 하는 겁니다. 또,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재산과 생명까지 다 바치고도 더 바치려고 하게 될 때 그를 애국자라고 합니다.
성인이란 것도 별거 아니예요. 성인은 뭐냐? 인류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속한 나라와 자기에게 속한 판도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판도를 전부 다 인류와 하나님을 위해서 소모시키고 희생시켜 간다 할 때 그 사람은 세계적 위인이 될 수 있고, 세계적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자 성녀는 어떻게 되느냐? 별거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모든 것, 세계 전체를 다 통틀어 바치면서 세계를 위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겠다고 끝까지 계속 가는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됩니다. 간단하지요?
여기 윤박사님도 학교 교직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을 텐데, 가만히 보게 되면 이거 자기 출세나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학장들도 문리대학장, 법대학장, 무슨 대학장 다 있을 텐데 윤박사 눈으로 가만히 보게 될 때에 '야, 이 녀석 봐라. 자기를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느껴지기도 하고, 같은 사람인데도 '야, 저 양반은 그래도 학교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이 느껴질 거라구요. 윤박사가 옳은 판단을 가지고 정의에 입각한 천도를 받을 수 있는 분이라면 공적인 입장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거 틀립니까, 안 틀립니까?
여러분이 보는 시선이 자기보다 큰 것을 위해 민족적인 시선을 대신해 가지고 볼 수 있고, 세계적인 시선을 가지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해 나오는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해서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졌다면 천도와 천운은 도망가래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내가 화를 받고 죽을 자리에 가더라도, 꼼짝못할 사지에 가더라도 하늘은 이미 나를 해방의 자리에 옮겨 놓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걸 나는 무수히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교회는 오늘 세계 정상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와 같은 뜻 깊은 축하의 한 날에 여러분이 참석하셨는데, 본인과 우리 통일교회에 대해서 축하하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부디 여러분 자신들이 여러분의 후손 앞에 혹은 여러분의 단체 앞에 누구보다도 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다면 여러분의 휘하에는 나라가 찾아올 것이고, 세계가 찾아올 것이고, 하늘이 찾아올 것입니다. 천운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워싱턴 타임즈 같은 것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거였어요. 이미 판정선이 그어진 것입니다. 나는 이 자유세계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멸망 도성으로 급진하는 이 자유세계에 브레이크를 걸고, 내 모든 것을 투입하고, 통일교회를 희생시키고, 세계 통일교회 전체 요원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세계를 위해서 전진한다 이거예요. 간단한 것입니다.
불철주야, '너희들이 자거든 나는 자지 않고, 너희들이 쉬거든 나는 일을 할 것이다. 너희들이 먹고 춤추거든 나는 연구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고, 조직 편성에 노력할 것이다' 이러고 나왔어요. 그런 날들이 가해서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니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백인이라 해도 그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아 가지고 미국의 그 전통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에 책임수행을 하지 못하는 미국 자체를 비판하게 되었을 때, 심각한 자리에서 본인이 원하는 길을 지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결속의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적의 역사를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간단한 겁니다.
대한민국 위정자들에게 내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뭐냐?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를 대신해서, 3천만 민족을 대신해서 위하는 대통령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세가 대한민국을 차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맞아 가지고 품고 갈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오늘날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국가지만 미국만으로는 안 됩니다. 미국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하늘이 미국을 기독교문화권의 총수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직후에 이 지구상의 온 세계 국가를 그 품에 품고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축복받은 좋은 찬스를 왜 잃어버렸느냐 이거예요. 이것은 세계를 위하는 미국 국민성이 안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남에서 퇴폐적인 탈을 쓰고 왜 후퇴해 버렸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세계를 위하는 사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사상이 없었기 때문에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 레버런 문은 미국에 건너가서 그런 미국을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고 미국 국민, 젊은이 앞에 미국을 위하고 미국 자체가 세계를 위하는 길과 하나님을 위하는 길을 가야 된다고 설파한 것입니다. 이걸 치는 날에는 친 자가 손해배상을 첨부해서 물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자에게는 맞고 빼앗아 오는…. 여러분이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타락했기 때문에. 뭐 교리를 이야기하자면…. 막대한 논리적인 체제를 통해 가지고, 역사적인 이 변증논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인데, 간단히 말하면 그겁니다. 아무리 내가 비운의 한날을 가졌더라도 천운을 가지고 나가면…. 사적인 자리를 피하고 싶거든 공적인 생각을 가지고 뛰어라 이거예요. 그러면 공적인 힘이 온다 이거예요.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대한민국 백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주고받아야 돼요, 나라를 위해서. 나, 여기 있는 사람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정권의 핍박을 받은 사람이요, 민주당의 핍박을 받은 사람이요, 공화당의 핍박을 받은 사람이요, 민정당의 핍박을 받은 사람입니다. 별의별 핍박을 다 받은 사람이예요. 그렇지만 '내가 나라 사랑하는 데는, 나라를 위하는 데는 너희들이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고 나왔어요. 이런 얘기를 하자면 무궁무진해요.
그렇지만 분함이 있거든 민족을 위하는 길을, 대한민국 해방의 길 앞에 내 한 삽의 흙이라도 높이 쌓아 가지고 방어선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하며 조용히 갈 뿐이예요. 이러다 보니 요즘에는 뭐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래요.
자, 그러면 여러분, 고명하신 여러분, 저명하신 여러분, 만장하신 여러분들이 여기에 결의해 가지고 여러분 자신이 이 시간부터 보다 큰 이상을 지니고, 이 전통적 과정에 천운 논리에 입각해 가지고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세계는 천주를 위하여 희생하고, 천주는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면 이 대도가 가는 본연의 코스에 접할 수 있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여러분이 자식을 위하는 데 있어서 할머니를 위하는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위하자 이거예요. 부모의 입장에서 부부끼리 사랑하는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위하자 이거예요. 위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회복하는 날에는 복잡한 가정문제가 다 해결되고, 나라의 복잡한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격파하는 것은 문제없다 이겁니다.
공산주의는 공산당을 위할 뿐이지 세계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산당이라는 것은 자기 당을 중심삼고 세계를 농락하기 위한 당이지, 세계를 위하는 당이 못 돼 있다 이겁니다.
위하는 길에 천운은 따른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역사노정에 갖은 풍상이 다 불어치더라도, 태풍이 불어도…. 일생 동안 그래요. 왜정 때는 일본 천황과 이마를 맞대고 싸우고, 해방 후에는 북한 김일성이 때문에 싸우고, 남한의 이박사와 싸우고, 전부 다 위정자가 문제예요.
미국에 가서는 뭐냐 하면 저 닉슨, 그다음에는 카터와 싸우고, 지금은 또 레이건 문제, 세계 제일 문제인 공산주의 방어문제, 그다음에는 종교 몰락문제, 청소년 윤락문제 등을 중심삼고…. 이런 문제는 다 자기를 위하는 사상에서 발원한 겁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데서.
청소년들이 가정을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고,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고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종교가 몰락 안 합니다. 단체 구성이 간단한 거예요.
참된 스승이 뭐냐 하면 보다 위하는 사람이요, 참된 제자가 뭐냐 하면 스승의 말을 보다 위해 가지고 거기에 적응하려고 하는 사람이예요. 간단하다 이겁니다.
이런 것을 알고, 지금까지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시대적인 천운이 가는 도리적 한계 차원을 접해 가지고….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기 위한 종교예요. 가는 길이 그래요.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의 하나의 단체라면 그 단체가 가는 길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어야 되는 거예요. 그 길이 천운과 통할 수 있는 길이예요. 이것은 만국의 어떠한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너희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라 이거예요.
통일교회는 세계주의인데, 세계주의라 하면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이고 편파적인 주의를 파괴시키고 부정하는 것인데, 통일교회는 그것을 흡수하자는 거예요.
어떤 학자는 '야! 통일교회 주의는 세계주의이다, 멋지다. 가정에도 통하고, 사회에도 통한다. 사회발전논리, 국가발전논리에 통하는 그런 내용을 지녀 가지고 사랑의 도리를 주장하는 것을 볼 때 멋지다'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나를 그런 의미에서 존경해요. 세상이 아무리 삿되고 부정하더라도 스승이 가르치고 행하는 데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한 원칙에서 재작년에 내가 오자마자 통일교회의 수천 가정을 전부 다 회사고 뭣이고 올스톱시켜 가지고 '나라에 위급한 때가 왔으니 너희들은 가정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구도의 길을 찾아가야 된다' 고 했어요. 여기에 이의가 없어요. 국권은 세계의 운세권 내에 치리받아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세계에 망운이 깃들게 될 때는, 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전체 미래의 천주적인 운세가 통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이 길을 자처해 나서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골수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를 알고 싶지요? 부모들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가 수고했는데 네가 효도해야지. 효도 안 하는 자식은 불효야' 이러지요? 더 위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돼요. 눈물을 머금고 더 위할 수 있는 길을 나서게 될 때는, 목석 같은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인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흡수 소화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선악의 경계선을 확대시켜 가지고, 가정의 경계선으로 전진할지어다! 가정의 경계선…. 부부들이 파탄상을 이루어 가지고 미국 같은 데서는 50퍼센트 이상─50퍼센트가 뭐예요? 이제는 70퍼센트도 넘지요─이 갈라지지요. 왜 파탄이 벌어지느냐? 위하는 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여편네는 '남편, 당신은 내 말을 들어야 돼요' 이러고, 남편도 '당신, 여편네는 내 말 들어야 돼' 한다구요. 그러니 가정이 파탄되지요. 위하는 사상이 넘쳐 나면, 생활무대에서, 사회환경에서 남편의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면 아무리 악한 여인도 흡수되는 거예요. 간단한 거예요.
세계통일은 어디서부터? 보다 위하는 자리에서부터. 평화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선악의 분기점을 전부 다 악의 분기점으로 몰아 가지고 세계 저편 경계선으로 몰아넘길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그것은 뭐냐? 보다 위하는 사상을 가지고 국가적 사상을 넘고, 세계적 사상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서는 천적 사상으로, 하나님의 천도에, 대도에 접할 수 있는, 천운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사상으로 변했을 때는 세계는 자동적으로 평화롭게 됩니다. 간단하지요?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이제는 기성교회 노회장님들을 내가 발을 벗고 찾아갈 거예요. 뭐 찾아가려면, 요즘 문 아무개가 만나자면 개인적으로는 다 된 것이지요. 만나자면 '아! 만나고 말고. 개인적으로야 장소만 정하면 얼마든지 만나지요' 하게 돼 있다구요. 그러면 됐다 이겁니다. 만나서 이용하려고 하는 게 아니예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뭐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이러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30년 전에 출발할 때는 따라지 같은 신세였습니다. 아, 세상에…. 그때는 보리밥도 못 먹었어요. 거지라도 보리밥을 주면 나가다가 쓰레기통에 넣고 가요. 그런 사실을 볼 때…. '이 길이 확대 발전할 것이어늘, 천운의 도리의 길을 따라 전진적인 차원으로 향상하여 진보적인 결과를 너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혹은 국가, 세계에 보여 줄 날이 올 것이다' 하고 참고 가는 거예요. 불평해서는 안 돼요. 변명이 필요 없어요.
훌륭한 학자님들 눈물을 보면 그 훌륭한 명예, 아이구우…. 여기 선생님들에게 송구스러운 말인 줄 알지만, 난 솔직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권위보다, 사상적인 고충 가운데서 몸을 뒤척이며 밤을 지새워 가며 통곡하고 있는, 죽음이냐 생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학생을 붙안고 눈물이라도 흘려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교만해 가지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것보다 낫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권고는 아닙니다. 난 이러한 길을 걸어 나왔기 때문에 언제나 기적이…. 내 일생에는 기적 같은 것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꿈에도 안 해요. 그렇기 때문에 남이 하지 못하는 것도 떡 보고 '어! 이것은 틀림없다' 할 때는 하는 것입니다. 참고 나가면 그 길이 나오는 거예요. 달리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달리는 거예요. 달리다 보면 그 길이 자연히 나오는 거예요. 천운이 협조하는 그런 환경권을 벗어날 수 없는, 생애의 길을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있더라 하는 걸 아시고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나이 많은 분들이나 젊은이들은 아내에게 보여 주고, 부인 되는 분은 남편에게 보여 주고, 자식에게 전수해서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 희생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희생하고, 세계는 저 영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전통을 보여 줘야 되겠습니다. 영계 모르지요? 여기 선 사람은 영계의 전문가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영통인들도 내 앞에서는 꼼짝못해요. 그것이 망상이 아닙니다. 과학적인 논리에 의해 공식으로 타진된 결론이예요.
하나님을 해방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해방해야 돼요. 무엇을 갖고? 하늘땅이 하나님을 위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해방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늘땅이 하나님을 위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은 언제나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해방될 수 있는 사연들의 기도를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해방권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무한 확대의 근본, 제일 원인적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전진적 과정에 보다 높은 것을 위하는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감사하면서 이것을 진실로….
여러분 그렇잖아요? 지금도 전대통령께서 얼마나 어려운 자리에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물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지요. 못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를 평하기 전에 평하는 이상의 마음을 갖고, 사랑을 갖고 위해 주고 나서 평하라 이겁니다. 마, 이런 말을 하면 뭐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만, 하나님 앞에 기도해 가지고 복받겠다기보다 하나님 앞에 내가 위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야 돼요. 그 복을 받기 원한다면 그것은 나를 위함이예요. '나라와 세계를 위해 복을 주소' 하고 기도하라구요. 그런 기도는 얼마든지 해도 돼요. 그것은 공의예요.
이런 것을 알고 그것을 마음의 지침으로 삼아 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오늘 이런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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