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지>

제2차 7년노정은 식구들이 가야 할 노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초창기의 뜻대로 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번 지방의 지역장 이동의 의의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전국을 순회한 결과는 대체적으로 안심될 정도였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70년으로 잡고 여기에서 밤을 빼면 35년밖에 안 됩니다. 또 여기에서 의식주에 할애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진짜 생활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매일 평균 30분씩이라도 천지가 부러워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하루에 단 10분도 편할 수 없고 기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마음과 몸의 싸움이 씨 뿌려져서 오늘에 거두어진 것이 마음적 세계인 민주세계와 몸적 세계인 공산세계입니다.

아무리 미미한 피조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정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되는 대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은 것은 기뻐하시기 위함이었고 함께 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오묘한 인체 구조를 보아서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잘못 지어진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은 미완성품입니다. 그래서 완성되고 싶어합니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었으면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어떻게 하셨겠는가? 최고의 자리에 놓고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자(父子)의 관계가 맺어진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해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주체가 되어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데는,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주체가 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공적(公的)인 것은 영원과 전체를 위주로 하고 사적(私的)인 것은 임시적이고 자아 위주입니다.

주고서 대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구하는 일을 수만년 후에라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의 이념은 수만년 계속됩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남을 도와주고서 그것을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를 위해서 말없이 생명까지 바쳐야 합니다. 형제를 위해서도 그래야 합니다.

선생님은 수십년 이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지칠 사이가 없습니다. 내가 춘천에 가 있는데, 윤청정심(尹淸淨心)이 춘천으로 전보를 보냈습니다. 원세(怨世)는 지나가고 영세(榮世)는 돌아왔다고.

선은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나는 최고의 저기압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기 때문에 그 자녀인 인간도 영생해야 합니다. 선하고 영생하려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심은 지치지 않고 더 예민해집니다.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은 악인(惡人)이요,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선인(善人)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종교를 만드셨습니다. 싸움을 말린 뒤에는 재생을 시켜야 합니다. 그 재생 공장이 종교입니다. 누구나 다 재생 공장을 거쳐야 합니다. 선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종교가 필요합니다.

지옥은 고장난 영혼의 창고입니다. 죽더라도 지옥은 안 가야 합니다. 죽지 않으려면 재생 공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재생 공장의 기술부장입니다.

천국은 완성품의 납고(納庫)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생사권을 좌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는 부품 공장이 널려 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종합하는 공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 주인은 재림주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병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병이나 다 고쳐야 합니다.

양쪽 세력이 비숫비슷하면 싸웁니다. 세력 대비의 차가 크면 싸움이 안 됩니다.

정성들여야 합니다. 정성들이는 부모는 외지에 가 있는 자식의 불상사를 압니다. 정성들이면 도통(道通)합니다. 고행을 해야 합니다.

6천년 묵은 돌감람나무를 자르고 참감람나무의 씨눈을 갖다가 접붙여야 합니다. 즉 고목의 목을 잘라내고 새로운 씨눈을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실체를 쓴 남성적 하나님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여성적 하나님입니다.

악한 존재는 선을 영원히 지배하지 못합니다.

예수는 후(後)아담이기 때문에 후(後)해와를 만나 가지고 성혼식(聖婚式)을 해야 했는데, 못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한 개 더 박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재림주는 제3아담입니다. 재림주는 두 차례에 걸친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아담과 예수의 실패로 조성된 모든 한을 풀고 이루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뜻을 못이룬 것은 요셉가정에 그 첫 번째의 책임이 있고, 세례 요한에게 그 두 번째의 책임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리로 기독교가 성립된 것이 아니고, 부활의 도리로 기독교가 성립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빛을 보고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눈의 목적을 갖게 한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물을 잘못 받으면 천법에 걸립니다.

1960년도는 장성기 완성급에 해당합니다. 완성기는 7년입니다.

1960년 장성기 완성급에 세 자녀를 세웠습니다. 세 자녀는 베드로․요한․야고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아담가정을 찾음으로써 사탄세계에서 결혼한 영육 세계의 복귀가 가능합니다.

36가정은 인류의 조상 복귀형입니다. 72가정은 가인 아벨 복귀(자녀복귀)형입니다. 124가정은 세계 국가를 대표합니다. (그 중에는 기성가정 4가정도 포함) 그 기반 위에서 성지 택정을 하였으니, 그것이 세계 40개국의 120개 성지입니다.

1968년 1월 1일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함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입장을 복귀했습니다. 이로써 사탄은 완전 제거되고 사람은 완전 복귀됩니다. 금년에 비로소 전면적 진격이 있게 되었습니다.

금년 1월에서 7월까지는 7천년의 역사에 해당합니다.

제1차 7년노정은 가인 아벨 형제복귀시대지만, 제2차 7년노정은 자녀복귀시대입니다. 오늘의 제2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해방 직후 7년노정을 출발하던 때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처럼 핍박받지 않고 환영받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동생쯤은 두들겨 패서라도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가인(형)이 그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것을 복귀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녀 총각들은 믿음의 세 자녀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부모인 자신들을 합해 여덟 식구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자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세 자녀는 세 천사장 복귀형입니다. 세 천사가 아담 해와 창조시부터 받들고 협조한 것같이, 믿음의 자녀는 믿음의 부모의 축복 실체 자녀를 복중에서부터 모셔 가지고 키워서 장가까지 들여야 비로소 자신들이 복귀 될 수 있는 기준까지 세울 수 있습니다.

축복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보지 않고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 전도된 믿음의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식을 낳아서 거리에 버린 것과 같은 입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7년 동안 끌고 나가야 합니다.

탕감복귀

① 아담 대신 존재 …… 7년노정

② 조건물 …… 3자녀

③ 기간 …… 선생님의 40년(1960)을 40일로 탕감복귀

7년노정 가지 말고, 40일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통일교인으로서는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제2차 7년노정과 자녀의 책임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