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목적을 완성한 것이 하나의 세계인데,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를 투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있어서 민주주의 세계와 기독교 자체가 세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세계 앞에 자기 투입을 해야 했던 거예요. 그런데 세계 앞에 투입을 못 했다는 겁니다. 투입해 가지고 재창조적 입장을 갖추어 사랑의 실현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대상권의 입장에 못 나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또 분립된다는 겁니다.
공산주의는 계몽사조로부터 쭉 해 가지고…. 이것은 뭐냐 하면 민주세계, 즉 자본주의 타도하자는 것이거든요, 자본주의 타도.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데 있어서는 계급적인 투쟁개념을 중심삼고 자기들 주의만 남기고 민주주의세계, 자본주의는 완전히 전멸시키기 위한 작전을 해요. 그게 다르다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적 기준만 잡으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때려치우는 거예요. 자기 투입이 없다 이겁니다. 반대되는 것은 전부 다 제거한다는 것, 그것이 다르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역사 발전의 내용이 다르다는 거예요. 사탄의 역사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은 중심만 잡으면 반드시 독재자가 되고 전부 다 착취놀음을 언제나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다르다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분열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쳐 가지고는 종말에서 수습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민주세계권 내에서는 사랑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자체를 투입하고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개인의 이익 중심이 아닌 이타주의를 통함으로 말미암아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아무리 가만히 있더라도 여기서 더 움직이니까, 더 위해 주니까 상대가 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준다는 것은 상대 편에게 플러스가 되게 해준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양심은 자기에게 플러스되는 데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표시를 안 할 수 없는데, 좋다고 표시하게 돼 있지 나쁘다고 표시하게 안 돼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타주의로 말미암아 통일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것을 확실히 잡아 줘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신본주의, 유신론에 의하여 세계 통일이 가능하지 무신론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딱 그것을 제시해 놓아야 된다구요. 그러한 관을 딱 집어넣고 유물사관에 대한 비판을 해야 돼요.
유물사관이 그렇지 않아요? 투쟁개념을 집어넣은 거거든요. 정반합 작용(臺反合作用)을 중심삼고 투쟁개념을 전개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상실현이라는 것은, 이상세계는 그냥 안 나온다 이거예요. 사람들은 그러거든, 이상실현을 하겠다고 하면서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방의 좋은 것을 모두 끌어다 붙이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자기 좋을 수 있는 이상권을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쪽은 이상권이 아니예요, 끌어 붙이겠다는 것이. 작은 분야가 더 크고 좋은 것을 끌어 붙이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저쪽의 모든 좋은 것은 전부 다 내가 빼앗아 오는 입장에 선다는 거예요. 그러니 근본적으로 이상실현이 절대 불가능하다 이겁니다.
그러나 하늘편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상실현을 위해서는 자기를 위주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주한다는 것입니다. 사랑 대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가치 있는 상대를 만들어야 된다구요. 남자나 여자나 자기 보다 잘난 사랑의 대상을 왜 필요로 하느냐 이거예요. 다 그렇게 생각하거든, 안 그래요?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자기 상대방은 자기보다도 더 귀하고 더 훌륭한 사람을 얻으려고 생각한다구요. 그것은 자기 자체를 더 투입할 수 있는 이러한 목표를 그리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를 위하는 데 있어서 자기까지 플러스시켜야 해요. 그러면 저쪽에서는 자연히 자기 위치, 자기 자리를 양보해 준다는 거예요. 내가 가는 데 있어서 대항하지 않고 비켜 준다는 거예요. 비켜 줘서 한바퀴 돌다 보면 먼저 투입한 사람이 주체가 된다는 겁니다, 무거우니까. 가벼운 것은 겉으로 가고 무거운 것은 가운데로 온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래서 이게 자연현상세계의 운동법칙을 통하는 겁니다. 사람들한테 그러한 관을 딱 집어넣어 줘야 된다 이거예요.
무신론이 뭐냐 이거예요. 신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물질을 중심삼은 유물론과 인본주의는 이런데 그걸 비판하면 되는 거예요. 무신론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밖에는 없다구요. 로마 같은 나라가 왜 망했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창조원칙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상의 원칙, 원인과 결과의 원칙에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무엇이냐? 자기 투입입니다. 자기 투입을 해 가지고 하나님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사랑, 사랑을 찾겠다는 거라구요. 하나님 전체를 투입하더라도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거든요. 더 큰 것을 위해서 자기를 투입했다 이거예요. 이게 근본 이라구요. 로마 같은 나라가 세계를 중심삼고 이상적 세계를 바라는 데 있어서 로마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이상 투입을 안 했다는 거라구요. 대상적인 세계를 대해서 자체를 희생시키고 자기 나라 이상 투입을 안 했다 이거예요. 로마가 희생하고 투입했다면 어떻게 됐겠느냐? 전부 로마와 같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신관, 유신론이나 유물론의 대결에 차해 가지고는 근본을 딱 심어 놓고 맞춰 나가면 다 끝나는 거예요. 유물사관이라든가 모든 것이, 정반합 논리도 틀렸다는 거예요. 전부 다 깨져 나간다구요. 이기주의는 사탄편에 반드시 귀결되는 거예요. 그런 결론이 나오거든요. 이기주의는 반드시, 이기주의에 강한 입장에 서다 보면 그것이 최고의 독재자가 되고, 독재자는 좋은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이기주의자는 전부 다 독재자의 새끼다 이거예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이기주의, 이기적인 것은 사탄편이예요, 사탄편.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반드시 악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왜 이기주의가 세계적으로 됐느냐 이거예요. 사탄은 하나님이 이타주의적인 세계적 노선으로 나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먼저 이기주의를 이루어 놓고는 전부 자기에게 결부시켜 가지고 대항하게끔 해 놓았구요. 왜? 세계를 먼저 자기권에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면 가정의 주권자, 주인이 사탄편이 되어 있고, 사회면 사회의 주인이 사탄편이 먼저 되어 있고, 국가의 위정자가 전부 다 사탄편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세계의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이 사탄편이 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결국 이들이 체제를 갖추어 놓고 이기주의적 입장에 들어가 있다구요. 영국 사람은 영국 편으로 돌아가고 미국 사람은 미국 편으로 기울어진다 이거예요. 그거 안 된다는 거지.
거기에는 분열이 벌어지고 반목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통일이 있을 수 없다, 통일이라는 개념이 성립 안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균형적 통일이 성립 안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균형적 통일이 성립 안 되는 세계는 이상세계가 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높으면 높은 데 있어서 서로가 투입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높은 곳으로 발전하는 거예요. 높은 사람하고 낮은 사람하고 서로가 투입 하니 점점점 좋은 세계가 되는 거예요. 이론적으로 그런 세계가, 통일적 이상세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거라구요.
한국의 단군교라는 것은 일면이예요.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섭리를 하는 그 주체를 중심삼고 대응하기 위해서 서양에서 이렇게 나오는데, 서로 합하기 위해서 동양에도 이런 단군국조의 경천사상이나 공맹사상등이 나오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그 주장하는 상대적 가치는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그건 우리 사상하고 통해요. 그것은 우리 사상에 비해 모호하거든. 세계를 포섭할 수 없다구요. 그러니까 상대적인 기준, 하나님이 반드시 상대적인 준비를 한다는 거라구요.
우리가 지금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도 환경적 여건을 하늘이 다 창조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핵을 세워서 맞춰 나가는 거예요. 요게 가인 아벨과 딱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발전하려면 투입해야 돼요. 지금도 우리는 그렇잖아?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 뭘해야 되느냐? 우리 자체를 투입해야 돼요. 환경은 다 되어 있다 이거예요. 자체를 희생하라는 거예요. 이거 안 돼 가지고는 말이예요. 우리가 이익을 얻고자 해도 안 된다 이거예요. '투입하라, 될 때까지 투입을 하라' 그래, 요 사상이 있으면….
복귀과정이 재창조역사과정인데, 복귀과정이 남아 있는 한 투입해야 한다구요. 투입의 한계선은 복귀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복귀가 완성된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옛날에 내가 개인적인 입장에서 완성된 그 세계는 말이예요, 한국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상적인 복귀완성된 세계는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끝, 세계까지 가는 겁니다. 큰 구형이 되면 힘이 어디로 작용하느냐 하면 구형의 주변으로 먼저 작용하는 거예요. 이러면서 돌거든. 끝과 끝이 주고받으면서 끝을 위해 살려고 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세계적이예요, 세계적. 지금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이게.
그거 왜 세계적인 것을 바라느냐? 세계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세계적이 된 다음에는 또 국가적 기준이 필요하니 그냥 또 돌아와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이 좋았으면 그 좋았던 기준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좋은 것이 계속 향상되면 옛날에 좋았던 것은 없어지거든. 그러니까 옛날에 좋았던 것을 없애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의 핵을 중심삼고 돌며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최소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가지고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옛날로 돌아가야 돼요. 옛날로 돌아가려고 파고 들어온다는 거예요. 이러던 것이 점점점 까꾸로 돌아서 이렇게 들어왔다 나갔다 풀렸다 하면서 또 발전하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나선형 축이 고정적 축이냐? 축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여기서는 이렇게 작게 됐지만, 이렇게 되면 축이 점점점점 올라 간다는 거라구요. 작은 축이 외적인 큰 힘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 축이 올라오면서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늘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의 힘의 작용에 의해 하늘의 축을 중심삼고 다시 되돌아 나온다는 거예요. 이런 운동을 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개인까지 왔다가 또 올라 간다는 겁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이라든가 모든 욕망이라든가 희망은 최고를 바라고 있는 거거든. 그 최고의 중심이 뭐냐? 최고 전부가 귀착할 수 있는 점이 몇 개냐 이거예요. 하나야, 이게. 안 그래요? 그 하나가 뭐냐? 인격신인 하나님이요, 인격신을 중심삼은 이상적 사랑의 귀착점이라 이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대를 이루어 가지고 숨쉬는 거와 같이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거라구요. 내려오면 배가 부르고 길어지면 배가 들어가고, 이러면서 움직이는 거라구요. 모든 운동이 그렇잖아요? 전부 다 이 작용을 하거든, 숨쉬는 것도 그렇고 전부 다.
유물론의 변증법에는 투쟁개념이 들어가 있거든. 모순을 중심삼고 그걸 극복하는 데서 투쟁개념이 나온다는 거예요.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 결론은 뭐냐? 투쟁개념에 투입개념을…. 주체 되는 것이, 강한 것이 투입해야 된다 이거예요. 투입하면 어떻게 되느냐? 열만큼 높았던 것이 자기 투입을 하면 자기는 내려오지만 상대가 다섯으로 올라온다 이거예요. 다섯으로 올라왔다는 것은 뭐냐 하면, 이것이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창조적인 미로 볼 때는 열 이상 올라온 가치를 느낀다는 거예요.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거예요, 사랑에는.
그러니까 투입을 하면 할수록, 자기 소모가 되면 될수록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고생해 가지고 성공한 그 자리에서 사랑의 대상을 만나는 그 기쁨이라는 것은 형용할 수 없다는 거지. 그거 아니예요? 세상은 투입하게 되면 전부 다 내려와 가지고 점점 사그라지지만,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거예요. 거기서 폭발돼요. 그 힘이 있기 때문에 내려가서 또 올라오고, 내려가서 또 올라올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랑의 힘에만 그게 있지, 딴 데는 없다는 거예요.
투입하게 되면, 투입한 자체가 내려오지요? 투입받은 것은 올라오더라도 투입한 자체는 내려온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아요. 투입했으면, 투입해 가지고 가치가 나타날 때 돌려주는 자극은 투입한 이상의 힘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상실현의 가능성이 영속할 수 있는 논리적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가 이상주의는 아니라구요. 사람을 중심삼은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구요.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 다 흡수하겠다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을 절대시해 가지고 전부 다 흡수하겠다는 거예요. 사람 자체를 가만히 보게 되면 전부 다 이기주의자인 동시에 자기 소유주의자예요. 이기주의자인 동시에 자기가 전부 다 갖겠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자기에 귀착시켜 소유하겠다는 것이거든. 이기주의는 말하자면 소유주의와 통한다는 것입니다.
공산세계에의 공동소유라는 개념, 국가 공동소유개념은 틀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산주의 절대주의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소유해 버리자는 것이 아니예요? 거기서 공유개념을 어떻게 찾아 나오느냐 이거예요, 공유개념. 그러지 않으면 흘러간다 이겁니다. 그렇게 해 놓으면 전부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런 체제를 이루어서 막 끌고 나간다구요. 그러니까 탄압이 벌어지고 다 그렇지.
이타주의라는 말보다 사랑의 대상이라는 맛있는 그런 말이 있으면 좋겠다구요. 이타 하게 되면 개인 개인들이 확실하게 나오거든, 우리 개인들이 말이예요. 그걸 앞으로 설명해야 된다구요. 이타주의라는 것이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은 것인데, 개인을 중심삼고 이타주의라 하게 되면 사랑의 개념이 희박해진다는 거예요. 무조건 이것이 이타주의라고 하게 되면,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그걸 누가 좋아하느냐, 이렇게 되거든?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삼은 이타주의인데, 이 이타주의 내용이 어떻게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남을 위하면 위할수록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만큼 사랑하고 희생해서 위해 주면 스물, 백, 천으로 확장 돼 나간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이타주의가 이기주의보다 낫다고 하는 개념을 내놓아야 되거든. 알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타주의라는 말이 사실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걸 설명을 해줘야 돼요. 그런 개념이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사랑을 중심삼고 설명을 해줘야 돼요. 이타주의가 이기주의보다 낫다, 이러한 개념이 어린아이들도 들으면 쏙 들어가고 모든 개개인이 들어도 쏙 들어가야 할 텐데, 그게 그렇게 안 들어가거든. 이타주의 하게 되면, 전부 줘 버려서 없어지는 것으로 돼 있거든. 이타주의 하게 되면, 전부 줘 버려서 없어지는 것으로 돼 있거든. 그러니 고걸 설명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그것이 국가라든가 전체 국민이 전부 그 방향에 설정되게 되면 그런 명사를 다시 만들 수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일생 동안 주었는데 결국은 세계가 나에게 전부 다 주려고 한다 이거예요. 수수작용 하게 되면, 수수작용만 가지고 안 돼요. 사랑 이상을 위한 수수작용이라야 되는 거예요. 수수작용이라고 하게 되면 일반 존재세계의 운동이 전부 수수작용인데, 뭐 사랑을 위한 수수작용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세계의 법칙은, 힘의 작용이라는 것은 반드시 소모되게 돼 있다구요. 출력은 입력보다 작다는 거예요. 그게 원칙이라구요, 그게.
그런데 이렇게 운동하는 세계의 소모를 무엇이 지탱하느냐 이거예요. 사랑의 힘은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 이러한 논리를 세워야 이상적인 밸런스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이 우주의 운동을 일으켰으면 하나님 자체에서 그 힘을 배출시켰을 텐데, 그렇게 힘을 주면 하나님 자체가 소모된다는 거거든. 그런데 어떻게 이 우주가 균형을 취하느냐?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이라구요. 사랑이라는 것은 줌으로써 딴 면에서 보충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영속할 수 있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은 존재기반이 아니고는 영속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것까지는 해명해 줘야 된다구요.
사람들이 자기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자기 생명이나 재산이나 모든 것을 투입하려고 그러거든. 그런 거라구요. 그러니까 진정한 사랑을 떼먹으려고 하는 존재는 없다 이거예요. 공유시켜 가지고 영원히 그것을 보존하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사람은 거기에서 받은 이상의 힘으로 우주의 공의의 것으로 남기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개인을 사랑한다면, 개인을 사랑하는 그 당대에 자기가 손해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랑은 우주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우주적으로 이익이 커 간다는 거예요. 우주 안에 그 사랑을 한 것이 커 간다는 거라구요. 복귀섭리도 그렇지 않아요?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욕을 먹고 일을 하지만 상대적 세계의 창조의 역사를 해 나가고 있다는 거예요. 사랑을 위한 투입에는 반드시 창조의 역사가, 여기서는 막더라도 딴 사방으로 벌어져 가지고 창조적 역사가 이루어져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도 '공부하기 싫다' 이러면 요것을 논리적으로 딱 집어넣어 줘야 돼요. 왜 공부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것을 말이예요. '네가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은 노력을 투입하게 되면, 상대적 세계가 창조되어 가지고 너를 더 큰 것으로 맞아들인다' 고 하는 간단한 개념을 싹 집어넣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석하면 지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보다 더 투입하면 그것이 보다 큰 가치로 내 주변에 반드시 현현한다는 겁니다.
선한 일을 하라는데, 왜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느냐 이거예요. 그게 그겁니다. 선한 일을 하려면 희생해야 되는 거예요. 자기를 투입해야 되는 거거든. 투입하면 왜 좋으냐? 천운의 근본, 원인과 결과, 모든 힘의 주체, 주류에 접속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무한한 힘의 보급을 받을 수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은 무한한 힘을 보급받기 때문에 모든 일에 만사형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적인 체제가 안 돼 있거든 무턱대고 좋은 일을 하라는 거예요. 두 아이가 싸우는데, 세상 같으면 때리고 울려야 좋고 승리하는 것이 좋을 텐데, 맞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보거든. 저쪽에서 때렸다면, 때린 것을 난 사랑으로 대하는 거예요. 사랑적 대상이 벌어지면 반드시 선한 편에 하나의 때린 거와 같은 대신 존재가 생겨난다고 보는 겁니다.
참는 자가 복받는다고 하는데, 왜 복받느냐 이거예요. 치는 자와 대적하지 않고 치는 자를 사랑으로 품으면 내 사랑의 힘이 상대적으로 돌아 지금 치는 자의 악한 자리에 선한 대상권을 세워 놓을 수 있다는 거예요. '참아라! 참아라!' 이렇게 말하잖아요? 어떻게 해서, 참는 것이 뭐가 좋고, 착하고 희생하는 것이 왜 좋으냐 이거예요.
사랑이라는 목적을 중심삼고 하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사랑의 환경을 공유화시키기 위해서는 치고 때려서는 안 되거든. 치는 자를 대해서 사랑으로 품으려고 하게 될 때는, 치는 사람은 물러가더라도 친 사람 자리에 사랑으로 위하려고 했던 그 대상자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대상자가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것이 당장은 안 보이지만 주변에 그러한 가치적 내용이 집결돼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언제나 위할 수 있는 인연을 가져 가지고 전진하는 데에서 우주력과 우주의 선한 창조, 주류, 이상(理想)의 힘을 언제든지 보급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설을 해줘야 젊은 애들에게 쏙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잖아? 왜 선한 일, 좋은 일을 해야 되느냐? 왜 참아야 되느냐? 왜 남을 위해야 되느냐? 왜 웃사람을 위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
웃사람을 위하는 것은 웃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위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미래의 모든 소망의 대상자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 얘가 이제 10년, 20년, 30년 미래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웃사람이 본다는 거예요. 사랑으로 보게 되면, 내 자신이 웃사람을 위함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다리가 묶여져 나간다, 이 다리가. 보이지 않지만 사랑의 힘의 세계에 있어서는 그 인연을 따른 다리가 엮어진다는 것입니다.
웃사람을 사방으로 위하다 보면 나는 사방으로 연결되어 웃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의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동위권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위권에 참석하고 나서는 상속권을 받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도 웃사람을 존경하면 '아, 우리 동네에서는 누가 제일 좋다' 하는 겁니다. 주변의 웃사람을 위하면 다 좋다고 하는 거예요. 자꾸. 좋다고 말하는 것은 끌어 올려 준다는 거예요, 이게. 동위권에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활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러한 내용을 설명해 줘야 돼요. 전부 다 이론적으로 관이 서 있어야 돼요. 관이 안 서 있으니 전부가 혼란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재창조 원칙을 우리 인간도 실현해야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완성한 인간은 재창조 실현을 통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재창조 실현의 생활이 뭐냐?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를 투입하여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완성한 인간이라면 사랑 이상을 위해 자기를 투입할 수 있는 제2의 하나님적 존재가 돼야 된다 그겁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의 대상권을 어디든지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된다구요. 만물에 대해서, 사회생활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우주에 대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선한 사람의 생활이다 이거예요.
선한 사람의 생활이 뭐냐고 할 때 논리적 뭐가 없거든. 이상적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창조를 이렇게 했으니, 그래 가지고 완성을 바라서 이상적 사랑 실천장을 추구해 나왔으니, 우리들도 역시 살아 있는 완성한 사람이라면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자기가 머무는 곳, 말하고 행동하는 곳에 재창조 상대권을 반드시 남기고 가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남기고 감으로 말미암아, 남겨진 상대권은 내가 만들었지만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내로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좋아한다 이거예요. 나만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이룬 일까지도 좋아한다구요. 그러니 내가 한 일도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분위기권 내에 포괄되어 가지고 우주의 공동화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완성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제 이렇게 묻는다구요. 앞으로 얘기를 떡 하게 되면 완성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고 묻는다구요. 보이고 안 보이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사랑상대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한 사람은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하나님 대신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천장에서 자기의 사랑 대상권을 남기면서 살아가야 한다구요. 그렇게 사는 것이 완성한 사람의 생활권이다 이겁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래요. 영계에 가서 어떻게 하느냐? 역사시대의 모든 사람, 앞으로 전세계적인 판도를 넘어 모두 만나 가지고 사는데 어떻게 사느냐? 서로 위해 주는 겁니다. 영계에 가서도 역시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이것을 재현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지. 더 놓은, 가치 있는 것에 내가 투입하는 거예요. 그것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를, 슬퍼하면서 울면서 한 것이 아니거든. 사랑 이상이 실현되어 나가는 그러한 실천장이 눈앞에 발전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극을 느꼈다는 거예요. 사랑의 대상권으로부터 자극이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투입해 가지고 지치지 않지, 그 외의 것은 전부 다 소모가 되기 때문에 점점점점 지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육계의 연장이지 뭐. 영계에 가 가지고는 재미있는, 하늘의 보다 깊은, 평면적인 면의 사랑 이상을 지장에서 추구했다면, 입체적인 외곽적인 구형만이 아니고 외곽적인 구형과 내각의 핵심까지 통해야 돼요. 그러니 결국은 깊고 얕고 높고 낮고, 모든 면에 사랑을 투입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대신 재창조하는 그러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자기도 높임을 받아요. 그렇지 않아요? 제2의 하나님과 같이 되니까 모든 영계에 있는 존재들이 높여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거 이론적이라구요. 그래 통일교회의 책임자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예요? 높은 사람은 높은 범위에 자기를 투입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재창조권, 재현 실천장을 확장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이타주의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떻게 이상적으로 실현되느냐 하는 것이 쏙 안 들어왔거든. 이런 것을 설명해 줘야 된다구요. 무신론과 유신론을 중심삼고, 그 체제가 신이 없다 하게 되면 벌써 그 자체가 파괴입니다. 자체가 소모라는 거예요. 사랑의 원동력을 보급받을 수 없는 거예요. 힘이 작용하면 작용할수록 소모되는 거예요.
공산주의자들이 저렇게 공동소유를 중심해서 나왔지만, 왜, 어째서 공유가 개인소유보다 못하냐, 이게 문제입니다. 공유의 입장의 모든 소유권을 가진 당들이 당의 이익을 중심삼고 개인을 당의 이익보다 더 중요시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알겠어요? 당이, 당 자체가 바라는 이익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도 당 자체가 개인을 당보다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당의 소유인 동시에 보다 높은 개인소유라는 거예요. 그러한 개념이 안 서 있다는 겁니다. 언제나 개인은 당을 위해야만 된다 그거지, 당이 개인을 위한다는 개념은 없다는 거예요. 그게 사탄이예요, 사탄. 독재체제라는 겁니다. 그것이 이론적인 독재체제와 무엇이 다르냐 이거예요. 무엇이 사탄편이냐? 그것은 당을 중심삼은 당 절대주의이지, 당이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하는, 작은 것을 절대 위하는 주의는 없다는 거예요. 그게 사탄이예요, 사탄,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개인을 지옥으로 끌고 가자는 거예요. 개인이 이상형적 수수작용의 상대기반을 갖지 못하니 전부 다 파괴분자,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지옥밖에 갈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공산당은 개인이 당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반면에 개인의 행복을 절대 지지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개념이 없거든, 세상에.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예요. 통일교회도 이제 어느 기반만 잡으면 '너희들이 전부 중앙을 위해야지, 중앙에서는 너희를 위하지 않아' 이게 아니라구요. 전체가 중앙을 위하는 것보다도 중앙이 더 위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중심인데, 하나님은 더 투입하려고 그런다구요. 더 투입하려고 하는 데에서부터 발전단계가 향상되는 거예요. 그러한 것이 이상적이고, 그것은 영원히 존속한다구요, 영원히.
선생님의 생활 자체가 그래요. 여러분들이 와 앉아 있으면 내가 공적인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버리고 안 가려고 그런다구요. 자기 자체를 희생시키면서….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세상 같으면 '아이구! 너희들 다 가라, 이제. 나 바쁘다' 할 텐데 선생님은 그러지 않거든. 그러한 것이, 전부 다, 생활적인 내용이 다 다른 것입니다.
공산당은 모순이예요. 모순이라는 거지. 노동자, 농민을 중심삼고 독재정권을 이루어야 된다는 그것이 논리적 모순입니다. 그런 논리는 이상적인 논리가 될 수 없다 이거예요. 이상은 반드시 주고받아야지, 혼자 이상을 실현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최고의 이상적 주체이니 그 자체로만 있어도 좋았을건데 그 자신이 피조세계를 만든 것은 상대 이상권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의 논리를 이러한 창조의 기원에서부터 세워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것이 언제든지 뺄 수 없게끔 말이예요. 관(觀)하게 되면, 개인적인 관이나 가정적 관이나 그 뼈다귀가 연결돼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의 심정권을 중심삼고 전부 다 연결돼야 한다구요. 그 방향은 틀림없지, 동에서 사나 서에서 사나.
물질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당이 가지려고 하지, 개인을 안 주려고 한다구요. 물질을 가지고, 소유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부모가 주체로 되어 있으면, 사랑을 통해서 좋은 것을 자기는 갖지 않고 자식을 위해서 주려고 하고, 자기를 소모해서 주려고 하지, 세상에 그러한 사랑이 없이 소유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자기 것을 제2인자에게 주려고 생각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 자식을 몰라보고, 전부 다 그렇잖아요? 개인주의를 중심삼고 사탄편에 전부 걸려든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한 세계는 사랑의 실현장이 이미 다 파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나 소유욕은 사탄에 속한다는 겁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소유욕은 물질이 아닙니다. 이상이예요. 그 이상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구요. 우리 인간이 필요한 생활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생명까지 희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차원이 다르다구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이하의 인간생활은 문제가 안 된다 이거예요,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그러나 개인을 중심삼은 개인주의 소유관념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거든. 그 차원 높은 단계에 올라갈 수가 없어요. 이중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적이다 이거예요. 이중구조를 언제든지 완성할 수 있는, 벌써 그러한 체제형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세상에서 소유욕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희생한다 이거예요. 사랑의 본질이 그렇게 움직이는 거예요. 인간들이 자기 아내나 아들을 위해서는 재산을 팔고 다 이러면서 거 왜 그래야 되는지를 모른다구요. 거 왜 그래야 돼요? 어째서 그래야 돼요?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죽게 되면 다 없어지는데, 없어지더라도 한다 이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거기에는 논리적인 해설방법이 없다 이거예요.
우리 생활권 내에 있어서 우리가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요인들끼리의 관계에서 그런 문제가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이루어져 나가는데, 그게 왜 그래야 되느냐? 그 해설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답답하지. 개인주의를 강행하다 보니 그러한 모든 공적인 일이나 사랑을 중심삼고 희생하려는 모든 것의 담이 다 막혀 버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같은 나라는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현실문제를 중심삼고 이상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예요. 전부 다 그것을 있으나 없으나로 취급을 하고 있으니 소유욕을 중심삼고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거예요. 싸우고 말이예요.
가치관 하게 될 때, 가치관의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 손이면 손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구요. 좋은 것을 만지고, 좋은 것을 만들고, 좋은 것을 하기 위해 움직인다구요. 손 은 손대로 손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구요. 손은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 나쁜 가치 관은 안 가지려고 한다 이거예요. 손 자체도 감촉이 나쁘면 싫어한다는 거예요.
그 감촉이 좋을 수 있고, 보다 높고, 또 이 팔이 보다 높은 힘을 낼 수 있는 그러한 힘의 자극이 될 수 있는 그것이 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거든. 그러한 관이 딱 서 있다 이거예요. 모든 것은 좋은 면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는 관이 다 있다구요. 그 가치관이라는 것이 나쁜 것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이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보다 좋을 수 있는 것을 바라보는 데에서 가치관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손이 보는 가치나, 발이 보는 가치나, 눈이 보는 가치나, 코나 귀나 우리 기관 전부가 마찬가지로 선을 중심삼고 향진할 수 있는 기준에서 가치관을 세우려고 하지, 내려간다면 다 싫어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냄새도 나쁘면 코를 막잖아요? 보기 싫으면 전부 다 얼굴을 돌리지 않아요? 그것은 무가치하다는 거예요. 가치관이 설정될 수 있는 기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은 보다 선할 수 있는 기준에 연결된다, 그러한 정의를 내려야 된다구요.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통일되느냐? 가치관의 통일은 어떻게 되느냐? 모든 존재들이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이냐? 생명이냐? 생명이 아니예요. 생명 가지고는 안 돼요. 그 공통분모가 사랑이었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을 할 수 있다, 이런 논리의 결과는 타당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안 그래요? 생명의 힘 자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생명의 힘은 쓰면 쓸수록 소모되고 피곤해지지만, 사랑은 하면 할수록 피곤하지 않아요. 밤을 세우더라도 피곤을 초월해서 움직이려고 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절대적인 힘, 우리 생명력으로 미칠 수 없는 내용의 힘을 가진 게 뭐냐? 그게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분모로 해 가지고 비로소 모든 가치관의 통일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사회의 가치관이라고 할 때 종교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불교면 불교 가치관, 기독교면 기독교 가치관, 유교면 유교대로 가치관이 다 있다구요. 안 그래요?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통일되느냐 이거예요. 불교면 불교 모체 이상의 힘, 불교에서 바라는 목적 이상의 힘이 있어야 돼요. 기독교면 기독교가 출발하던 당시의 모체의 힘 이상, 또 기독교의 이상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때의 힘보다 더 큰 힘이 있다면 기독교 자체가 동기나 결과가 기뻐서 하나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논리가 성립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나 기뻐서 하나될 수 있는 그게 뭐냐? 우주 애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렇게 결론을 지어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우주애라는 것이 뭐냐 하면 작용해 가지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고, 작용을 하면 할수록 확대되어 나가는 힘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선을 추구해 나가는 가치관 설정기반 위에 섰던 모든 존재들은 보다 도약을 바라고 보다 확장을 바라는데 그 힘이 사랑에 있다, 사랑을 분모로 해 가지고 통일을 할 수 있다 이거예요. 사랑은 공유로 자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만이 상충이 없이 통일을 할 수 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막연하게 가치관을 통일하자 하면 불교면 불교대로 통일하려고 하고, 유교는 유교대로 '우리가 중심이 되는 거야. 우리 중심삼고 하나되자' 고 하게 돼요. 오늘날 천주교식으로 말이예요, 초교파운동하자고 이러구….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투입해라! 보다 투입해라, 창조력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원칙에 돌아가는 겁니다. 보다 투입해라! 사랑으로 투입하라 이거예요. 만교(萬敎)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갖고 그 종단이 출발하던 이상, 그 종단의 목적이 현재 이루어졌다면 이루어진 그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투입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한 움직임을 가진 단체, 그러한 사상만이 통일을 가져 올 수 있지, 그 외에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딱 결론이 난다구요. 안그래요? 그렇게 확실히 한계를 지어 줘야 된다구요.
가치관 통일이 뭐냐 하면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지. 가치라는 것은 선의 기준상에서부터 선을 중심삼고 부르짖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향진하려는 보다 큰 가치가 있어요. 종교를 통해서 보다 큰 가치의 세계를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동서남북 4대 종교를 통해 가지고 세계를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적인 선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이상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종교형이 나타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 종교는 모든 종단이 사회에 투입한 이상, 그 종단이 이 세계인류 앞에 투입한 이상, 그리고 신이 있다면 신에게 대해 투입한 이상 투입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한 내용을 가진 종교는 세계의 종교를 통일함과 동시에 하나님까지도 결부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러면 하나님을 믿고 뭐 도와 달라고 할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딱 이루어 가지고 대상권에 서면, 하나님이 찾아와서 사랑하게 되어 있는 건데 뭐. 이런 결론을 딱 지어 줘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존재세계의 모든 것은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찾아서 그것과 합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세계도 그렇잖아요?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와 공통분모가 일치될 수 있는 데에서 자연세계의 원소면 원소들이 합하지, 공통분모에 위배되면 절대, 아무리 하나님이 합하라고 해도 안 합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절대적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다 선한 기준을 중심삼고 가치관 설정이라는 논리적 정의를 딱 세워 놓아야 돼요. 싫은 데는 절대 안 합한다구요, 안 합해요. 그렇지 않아요? 싫은 냄새가 나게 되면 코를 막는 거예요. 보기 싫은 것이 보이게 되면 머리가 돌아가는 거예요. 내 기분이, 마음이 싫으면 돌아서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보다 차원 높고 가치 있는 선을 기준으로 해서 출발했다는 정의를 딱 세워 놓고 논고를 해 나가면 다 풀려 나가지요. 이러한 원칙 때문에 종교들도 자기 종교보다 더 한 사랑을 가지고 보다 희생하는 그러한 단체가 있다면 전부 다 거기에 부합해야 돼요. 통일논리를 어디든 적용시켜도 딱 들어 맞거든.
문선생이 지금까지 구교, 신교, 모든 종교를 통해 왔던 것은 뭐냐 하면 통일교회를 통해서…. 기독교가 자체 교회를 위해서 투입하는 이상 우리는 기독교에 투입하고, 기독교가 사회에 투입하는 이상 우리는 투입한다 이거예요. 세계를 위한다 이겁니다. 기독교가 기독교 사회를 위하고 자기 일국의 사회를 위했다면,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그러니까 어디를 중심삼고 통일이 돼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건 뭐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대번에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래서 지금 내가 8개 종단을 통일하려고 돈을 대주고 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를 희생시켜 가면서, 오늘날 선생님이 일생 동안 한 일이 뭐냐?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 발전을 위했으면 교회를 뭐 영락교회 이상 훌륭하게 다 지었을 거라구요, 그렇지요? 각 도에 훌륭한 돌집을 다 지었을 거예요. 그러나 무엇을 위해? 이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그 놀음을 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가치 설정에 있어 선을 중심삼고 볼 때 보다 차원 높은 가치기반을 확대시켜 나가는 활동을 통일교회가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는 자연히 하나의 가치 평가기준에 연결돼서 사랑을 따라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세계화 기반이 닦아진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내가 미국에서 한 일이 전세계에 공통분모로서, 국가 전체를 들고 움직이는 놀음도, 이 원칙이 사실이고 이 정의가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병 같은 것이 둘이 있으면 선(善)을 중심삼고 어느 것이 보다 더 좋으냐? 가치를 비교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지능에는 비교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치적 평가를 대번에 하는 거예요. 가치가 없다고 하게 되면 물러가는 거예요. 보다 가치있는 것은 남아지는 겁니다. 절대적인 가치의 내용에 연결된 자는 영원히 남아진다 이겁니다.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에서부터 출발했던 절대적인 사랑이다 이겁니다. 하나님도 사랑 앞에서는 손을 드는 거라구요. 사랑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랑의 공통분모 앞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영원히 분립할 수 없다는 거예요. 분립 할 수도 없고 한계를 그을 수도 없다 이거예요. 그래야 사랑이 아니에요, 그게? 그러니까 우리 이념을 딱 요렇게 논법을 세워 놓으면 만사에 들어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라는 거라구요. 원리라는 말이 도대체 뭐냐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단계는 다르지만 이 논거적 기반의 정의대로 공식화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하나의 관, 통일세계관, 하나님의 창조이상관, 이상을 실현 할 수 있는 하나의 관이라구요. 어디든지 적용할 수 있어요. 관이라는 것이 그렇잖아? 그렇게 된다면 그래야 되지, 이건 그래야 되는 거예요. 선의 기준이 여기서부터 시작하고 있다구요. 그것은 뭐 이론적으로 쏙 들어 온다구요. 그래 놓고 역사를 풀어 나가는 거예요. 맞소, 안 맞소 하고 묻게 되더라도, 전부 다 맞다고 한다구요.
나무로 보게 될 때,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푸르고 모두 크기를 바라는 것은 뭐냐? 꽃을 피우기 위한 거예요.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어야 된다 이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거든? 열매를 맺지 않으면 죽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무는 몇백 년, 몇천 년 못 살거든. 그걸 연장시키려니 열매를 맺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전체는 꽃피게 하기 위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 가지도 있고 잎도 있고 줄기도 있고 뿌리도 있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씨에서 씨로 돌아가지 못하는 겁니다. 환원논리가 성립이 안 된다 이겁니다.
열매맺는 것이 뭐냐? 사랑이야, 사랑. 꽃을 피우는 것이 그거 아니예요? 그러한 입체적 작용을 하는 데는 반드시 자기 자체만이 아니고 상대적인 내용을 연결시키는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데서만이 향기가 필요한 거예요. 향기가 왜 필요하냐? 상대를 유인하기 위한 거예요.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향기를 가졌다는 것은 뭐냐 하면 자체를 투입하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개인주의와 사리사욕은 사탄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타주의와 공동소유권, 그리고 우주의 소유권은 하나님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공동소유욕망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뭐냐?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거예요, 사랑.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에 갈 때 우리는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가요. 물질은 다 버리고 가요. 가지고 가는 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창조의 열매가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이 아담 해와를 만들어 놓았거든. 아담 해와를 만든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랑의 열매를 따기 위한 거예요. 그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 버리더라도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저나라에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주체와 영원한 대상 관계로 설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는 사랑의 권으로 되어 있어야 된다구요. 전부 다 이론이 맞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 사랑의 열매 가운데는 우주를 전부 다 포괄할 수 있는 내용,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나무 씨라면 그 나무 전체의 소성, 즉 뿌리의 소성, 줄기의 소성, 가지의 소성, 잎의 소성, 꽃의 소성, 향기의 소성, 전부 다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세포분열이 벌어지잖아요? 그것이 세포에까지 다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라구.
세포분열은 씨 그 자체에 벌써 하나된 내용의 힘에서부터 분열된다고 봐야 돼요. 절대 손해나는 데서는 갈라지지 않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이라고 하는 것이 위대한 거예요. 알고 보면 간단한 내용인데, 거기에 전부 들어가 있는 겁니다. 요즘에 와 가지고 학자들이 물질에도 영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예」 그게 다 우리 원리를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 쓱 이렇게 보면 우주가 간단해요.
전부 다 하나의 분모를 중심삼고 발생했다가 그 분모 모양을 닮아 가지고…. 그 분모를 닮은 데에도 열 개, 백 개로 분열되기도 하고 그것이 종합되기도 하며 닮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조각 조각 전부 다 분리되어 있던 거와 마찬가지로, 예를 들면 보따리에 싸면 하나고 갈라지면 수많은 것과 같아요.
꽃들은 그렇다는 거예요. 땅에 저런 꽃의 색깔이 있는 게 아니거든. 씨에 다 있는 거지. 그 씨의 분자에 전부 들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복잡한 요소가 다 그 씨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