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오늘은 1971년 7월 1일, 많은 날과 많은 달, 많은 해를 보내고 나서 맞이한 날입니다. 금년의 이 달과 이 날이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이 백성에게 기억될 수 있는 달과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안팎으로 경륜하시는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내적인 면이 외적으로 일치 되고, 외적으로 일치된 그 모든 사실이 내적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기쁨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복귀도상에 있어서 예수의 한을 풀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길을 걸어왔사옵고, 그 최종적인 결정을 지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오늘날 이곳까지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수고가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예수를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수난의 행각노정에서 그 슬픔을 대신 탕감하기 위하여, 혹은 인류의 선조로 말미암아 남아진 죄악상을 탕감하기 위하여 숱한 피의 대가를 치러 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뜻을 놓고 하늘의 슬픔과 땅의 슬픔이 엉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해원성사의 한 날이 이 땅 위에 오기를 아버지께서 얼마나 바라셨으며, 예수와 성신과 성도들이 얼마나 바랐는가를 생각하여 볼 때, 아버지, 1971년 7월, 이 한 달이 생사의 한 표준을 정하는 데 있어서 한계점을 넘을 수 있는 거룩한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안팎의 세계적 정세와 뜻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굽어살피시옵소서. 국가와 세계의 인연이 당신이 경륜하시는 섭리의 뜻과 일치되는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시는 아버지여, 이제 7월 이 한 달을 기쁨의 달로 세우시옵소서.

오늘은 이 해에 있어서 남은 6개월을 새로이 출발하는 달의 첫날인 동시에 7수를 시작하는 새로운 달이오니, 아버지여, 영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은 71년의 71과 7월 1일의 71이 맞서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있어서는 7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로서 복귀섭리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날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 각 나라에서 대표들이 이 땅에 왔사오니, 아버지께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도의 길 앞에서 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오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며 뜻을 따라온 성인 현철들을 동원하시어서, 영광의 새로운 나라를 개문(開門)하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특별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성지는 세계 각국에 널려 있는 120개 성지의 중앙지로서 하늘이 축복하고 하늘의 이름으로 묶은 장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로 말미암아 인연되어 있는 수많은 성지에도 당신의 인연의 터전을 세우시어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표적으로 삼아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 나온 수십여 년 가운데에 있어서 이 해와 이 달과 이 날이 복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도가 역사상에 있어서 가장 귀한 해임을 저희들은 선포했습니다. 그런 해이오니 이 7월이야말로 안식을 향한 한의 한 고비를 넘지 못하였던 당신의 섭리의 날들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발전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성지를 지키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수고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영광의 손길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달이 남아진 복귀세계에 있어서 자랑이 될 수 있는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하여야 할 여러 가지 일을 앞에 놓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7월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벌이는 모든 행사를 당신이 직접 주도하여 주시옵고, 승리의 결정을 가지시어 만방에 자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후손까지도 당신의 이름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조건을 세우고 넘어갈 수 있는 거룩한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염려하고, 당신이 섭리하시는 복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수난의 노정도 개의치 않고 달리고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일선에 나가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이 나가 싸우고 활동하는 것은 자기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앞날을 위해서이며, 당신의 슬픈 역사적인 한의 심정을 해원성사해 드리기 위한 것이옵니다. 선의 승리를 다짐하고 선을 받들 수 있는 하늘의 가정을 세우기 위하여 싸우는 이 거룩한 무리들 위에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도와 1972년도에 민족적으로 모든 탕감을 치르는 한 날을 가지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야 할 수난의 복귀의 행각도 뜻을 위한 길이요, 당신과 상봉할 수 있는 길이기에,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모든 귀한 것을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소원이지만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오직 당신의 섭리노정을 따르고, 당신과 관계맺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있는 줄 아옵니다. 이러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해와 달과 날이 금년 이 해와 이 달과 이날로부터 출발 되어야 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대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고, 이해를 주관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며, 후반기 6개월의 첫날을 출발하는 이날부터 남은 6개월간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시어서 영광의 세계에 찬양의 조건을 세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방과 만천주 위에 당신의 이름을 높이고 기뻐할 수 있는 반년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도 많사오니, 그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복귀의 권내에 당신의 거룩함과 승리의 한 날을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땅위에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다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의 나라와 승리의 세계로 진군하는 새로운 의지의 해와 달과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7월 1일입니다. 이 나라에서 7대 대통령 취임식을 하는 날입니다. 금년 71년도가 섭리도상에서 초석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를 갖고 있는 해인 것은 모두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1971년 7월을 맞는 우리의 바람

지난 6개월을 지내고 맞이한 오늘 7월 초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오늘은 이제 남은 반년이 새로이 출발되는 날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 교회에는 여러 가지 행사도 많았고, 여러 가지 문제도 많았습니다. 이제 그런 한 고비는 지나갔으니 새로이 발족된 체제와 더불어 새로운 섭리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섭리적인 관점에서 7수라 하게 되면 완성수입니다. 그런데 이 7수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971년과 7월은 연례적으로 오는 그런 해와 달과는 달리 섭리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해와 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국제 정세로 보나 국내 정세로 보나, 이 7월부터 남은 반년 기간에 되어지는 모든 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이 바라는 바입니다. 또 그러한 결과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물론 국가적으로도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되겠지만, 우리 교회에서도 기성교계를 중심삼고 남은 후반기 6개월에 섭리의 결정적인 한 마감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때를 대비해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해 왔습니다. 그 일들의 종합적인 결과를 볼 때이므로 이제 이 7월부터는 더 잘해 나가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또, 이 7월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7월 20일부터 시작되는 40일 전도기간입니다. 이 7월 20일은 우리의 뇌수에서 잊혀지지 않는 날인 동시에 우리 교단에서도 언제나 중요시하는 날인 것입니다.

1960년도부터 1963년도 전반기까지는 40일 전도기간을 출발할 때에 본부가 중심이 되어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러던 체제가 1963년도 후반기부터 각 지구, 혹은 지역을 중심삼고 활동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이 40일 하계전도기간을 다시 본부가 관할하고, 직접 선생님의 지도 밑에서 실시하려고 합니다. 1971년도와 1972년도 이 기간에 특별히 이런 활동을 하려는 것은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관건도 되겠지만, 우리 교회가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됩니다.

지금은 올바른 전통을 세워야 할 때

1960년대에는 우리가 전통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개개인의 신앙이라든가 혹은 교회의 신앙 방향이나 흐름을 보게 되면 전통과는 상치(相馳)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우리 교단이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그야말로 기성교회의 많은 신앙자들이 우리와 연결될 때, 어떻게 그들을 흡수하고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해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체의 역량이나 인적 자원, 경제적 자원 등의 활동적 체제를 강화시키는 내용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올바른 전통을 세워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렇게 가야 된다'하는 하나의 역사적인 실적을 남겨야 하고, 누구든지 그것을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을 공고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데 있어서 큰 뜻을 안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통입니다. 전통은 하루 이틀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드시 역사과정을 통해서 전통의 인연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일년만에 세워진 전통은 일년의 전통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 년이라든가 혹은 몇십 년, 그것이 길면 길수록 역사의 모든 기원을 움직일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조해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전통을 올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개인의 신앙 전통보다도 교단의 신앙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왜 바로 서지 못했느냐 하면 개인적인 전통과 가정적인 전통, 그리고 교단적인 전통을 올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움직일 수 있는 사상을 가진 유대교가 '이스라엘 민족을 책임질 수 있는 교단은 이렇게 가야 한다' 하며 한 곳을 향하여 가야 했고, 그 교단에 속해 있는 가정들도 그렇게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도 개인의 신앙의 전통이 이러이러해야 한다 하는 기준이 깨어졌던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퇴색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늘의 뜻과 방향에 일치된 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환경의 여건 앞에 오히려 하늘의 방향과 흐름을 방해하고 흐트러뜨리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하늘의 섭리는 난관에 봉착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교단이 세워야 할 신앙적 전통은 우리 교단을 중심삼고 축복받은 가정들이 세워야 되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올바른 전통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가정을 구성할 수 있는 개개인, 즉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로서의 신앙 기준이 확고부동한 공식적인 전통에 어떻게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금년 정초에 정한 표어 '통일기반 확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이 3단계의 과정에서 이것을 확고히 해 놓지 않으면 타종교나 국가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에 개인적인 신앙 자세와 가정적인 신앙 기준과 교단적인 신앙의 전통 기준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기간을 흘러가는 역사의 한 과정에 처해 있는 기간으로 생각하며 상습화하기 쉽지만, 뜻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 기간은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결정을 하고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평범한 생활권내에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런 생활 습관내에서 살기 때문에 각별하게 전통이란 것을 생각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섭리의 뜻을 두고 볼 때는 반드시 굴곡이 있어서 하나의 정상을 향하여 넘어가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있다면 그런 때 가운데 날이 있을 것이고, 달이 있을 것이고, 해가 있을 것이 아니냐. 또 해라 해도 어느 한 기간이 있을 것입니다. 복귀섭리도 3년노정이라든가 7년노정이라든가 하는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한계선을 넘기 마련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2라는 수는 3수를 거쳐가는 데 있어서 중간수가 됩니다. 1970년도부터 1973년도까지가 섭리도상에서 볼 때, 중요한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1971년은 중심이 되는 해라는 것입니다. 2차 7년노정을 두고 볼 때 68년, 69년, 70년 그 다음이 71년으로 이해가 7년노정의 중간 해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그런 해에서 6개월을 보내고, 7월에 들어서는 날이므로 꼭대기 중의 맨 꼭대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섭리가 필요로 하는 절박한 시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통일사상을 강조해 나왔고 전국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치고 나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냐?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남다르다는 그런 선을 넘어 통일교단으로서 민족적인 새로운 풍토를 조성할 수 있는 권(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 따로따로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개인은 개인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개인이자 가정이요, 가정이자 교회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앞으로 이 사상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전통적 기원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교회를 빼더라도 가정이 부정될 수 없고 가정을 빼더라도 개인이 부정될 수 없는 입장, 개인이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가정이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러한 확고부동한 전통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통기반 확보는 개인에서부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각 개개인은 하나의 개인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뜻의 실체입니다. 뜻을 대표할 수 있는 산 실체라는 것입니다. 탕감이 필요하게 될 때는 언제라도 자기 일신에서 탕감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시한 탕감의 결과로 말미암아 어떠한 승리적인 영광의 터전이 생긴다면, 그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 시대에는 중앙의 자리에 하나님이 서는 것도 아니요, 사탄이 서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제물도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이고, 영광의 실권을 대표해서 설 수 있는 존재도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적 기원을 가져야 됩니다. 그 전통적 기준에 선 사람은 하나님이 볼 때는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하고, 사탄이 볼 때는 최대의 슬픔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 세상을 분립시켜서 다른 한 세상을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세대를 보내고 다른 한 세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1971년도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중심삼고 재차 수습하고 확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년 표어를 '통일기반 확보'라고 한 것입니다. 통일기반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자의에 의해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이라는 모토를 세워 놓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뜻은 개인을 위한 뜻이요, 가정을 위한 뜻이요,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그 뜻 가운데는 전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니요, 교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통일기반 확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으로부터의 출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마음을 중심삼은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창조목적의 완성을 위한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실체로 모시는 자리가 출발의 기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자기 마음이 거기에 상대적 관계를 맺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주체인 플러스를 중심삼고 내 실체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실체라는 것은 생활권을 중심삼은 실체를 말합니다. 영적 나라와 내 마음, 육적 나라와 내 몸이 하나되도록 맺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육적 세계는 사탄의 활동무대이고, 영적 세계는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되어 언제나 엇갈려 나왔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 시대에 한의 요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때에 이것을 엇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마음권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치리받는 몸권을 마련해야 합니다. 생활권내에서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데서 통일기반의 기준이 확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일치된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면 하나의 가정적 일치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적 일치점을 가진 가정들이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12수면 12수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종족적인 경지를 넘어 민족적인 경지에 선 입장이 되면서 하나의 전통적 기원, 통일적 기원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전통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972년까지는 새로운 종족 편성을 해야 되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전통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역사를 대표해 봐서 미급하게 될 때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엮어 온 소망의 기준으로 현재 서 있는 전통적 기반 확립이라는 자체를 비판해 볼 때, 혹은 섭리시대를 대표했던 수많은 우리 선조들, 예를 들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같은 선조들이 뜻을 추진시켜 나오던 본의의 기준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세운 전통적 기준이 거기에 상충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차원에서 그 내용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원동력이 되고 모체가 되는 전통을 확립해야

우리가 심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를 중심삼고 새로운 종족 편성과 새로운 국가 결성을 바라고 나가는 것을 볼 때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평면적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입체적인 방향을 가려 나가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바랐던 전통기반과는 판이한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전통적 기원이야말로 역사의 주인이 되고, 새로이 세우고 싶은 현 시점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혼란된 이 세상은 전후 좌우 상하 어디를 두고 봐도 자리잡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전진하더라도 그 전진은 미래의 세계에 어떠한 표준으로서 공인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갖지 못하고 있으며, 또 갈 길이 막혔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는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 또 그렇다고 좌우로 뒤넘이칠 수 있는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 정세를 바라보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우리가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틀림없이 이 세계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으며 극복하고도 남을수 있다'고 하는 그런 전통적 기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원은 '이렇다' 하는 그 자체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내용이 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를 분석하고 통계에 의해서 실질적인 결과로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만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엮어 온 수십년사(數十年史)는 지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전통의 내용을 가진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단체로 확고부동한 기반 위에 남아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수십년간 활동해 온 역사가 가려 주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개인에서 왔다갔다해서는 안 됩니다. 또 내려가서도 안 됩니다. 올라가야 됩니다. 시일이 감에 따라, 우리의 판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공인도(公認度)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조금 높아졌다고 해서 '이제는 쉬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밟고 한층더 새로운 차원을 향해 점핑해야 합니다. 이러한 터전이 되어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전통을 수립했다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통이 될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수난의 길과 개척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만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으로 남아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전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혼란된 와중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이끌어서 전체 앞에 플러스시킬 수 있는 내용이 우리의 짧은 역사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데에 있어서는 개인으로 보여 주어야 되고, 가정으로 보여 주어야 되며, 단체로서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저렇게 가고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서로의 모양이 다르기는 하지만 내용은 같은 입장에서 가야 합니다. 통일적인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얼굴과 모든 생김새는 다를지라도 방향은 일치된 입장에서 가야 합니다. 하나는 움직이는데 다른 하나가 쉬어서는 안 되며, 하나는 전진하는데 다른 하나가 후퇴해서도 안 됩니다. 전진이면 같이 전진이고 쉬면 같이 쉬는 그런 일체화되고 통일된 정책을 중심삼은 전통을 우리가 이 사회 앞에 제시할 때 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내용을 갖춘 전통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많은 종교인들과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그들 앞에 무엇을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외적인 실적을 제시해 봐야 큰 교단의 그것에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우리는 개척자의 사명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투쟁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외적인 유지권을 내적인 면에서 해부하여 새로운 차원에서 자극을 줄 수 있고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도록 촉진시킬 수 있는 촉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하나의 모체가 되고 원동력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원동력에 접하게 될 때,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신앙생활이라든가, 관습적이고 편견에 처해 있던 내용을 거기에 규합시켜 새로운 통일적인 세계로 보다 강하고, 보다 힘차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가지고 가겠다고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자극시켜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 이룬 무슨 권이나 터전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 가운데에 깃들어 있는 전통적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의 확립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통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정의 중요성

지금까지는 생활 환경의 문제라든가 가정적인 문제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엇갈린 문제들을 중심삼고 나왔지만, 금년에는 이런 모든 환경적인 차원을 극복해 가지고 새로운 터전을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넘어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0년대와 '70년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로 보게 된다면, 60년대에는 개인이 교회라는 목표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지만, 70년대는 가정이라는 기반을 터로 교회의 목표를 중심삼고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단계가 달라지는 때이므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에게는 개인이 바라는 것을 가정적인 기반에 전수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교회가 바라는 것을 나라나 전체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통적 기반으로 전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71년도부터는 가정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활동해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개인완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요, 교회완성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무리 뜻 앞에 잘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못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종교와 우리 통일교회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구원을 위한 도의 길을 닦아 나오는 일을 해 왔지만, 우리 교회는 가정을 중심삼고 일해 나온 것입니다. 가정을 보게 되면 여기에는 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면이 있습니다.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남성 여성을 중심삼고 자녀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방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사방성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인간의 뜻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아닙니다. 즉, 가정은 인간의 뜻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종적인 관계를 맺어서 사방성이 갖추어져야만 입체적인 내용을 결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창조원리를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이야말로 뜻을 중심삼고 개인을 완성할 수 있는 곳이요 교회의 출발점입니다. 만약 잘못되면 교회내에서 수습할 것이 아니라 가정 자체내에서 수습할 수 있는 기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기원을 못 가진 사람은 교회에서도 수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천국은 개인을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중심삼고 사방성과 입체성을 갖춘 터전에서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은 이론이라는 것은 어느 일방적인 입장에서 반박을 받거나 사방적인 면에서 부정을 받는 이론이 아닙니다. 사방적인 면에서 긍정을 받아야 되고 일방적인 면에서도 찬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방적인 면에서 찬양을 못 받더라도 일방적인 면에서만은 부정을 넘어 가지고 찬양받을 수 있는 가정의 형태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가정의 형태를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 신부의 이름을 중심삼고 찾아 나오는 우리 뜻의 노정이 그러한 결정적인 입장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의 전통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통을 어디서부터 세워야 하느냐? 물론 남자부터 세워야 되겠지만, 부인들이 더 문제이기에 부인들부터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거기에 일치되어야 되겠고 자녀들도 일치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부인들이 선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일선입니다. 그러니 그 일선을 중심삼고 가정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된 가정은 승리의 기반을 가지고 결정적 기원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 승리의 가치를 표준으로 삼게 될 때, 그 곳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할 수 있는 곳은 전쟁하는 곳이 아니며 일선이 아닙니다. 사방을 중심삼고 치리하고 관리하고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백방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안식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권내의 중심이 기뻐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쁨만이 아니라 전체가 부응할 수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안식권은 일선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선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 안식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새로운 전통 확립

그러면 가정이 일선에 설 때가 어느때냐? 70년, 71년, 72년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교회가 일선에 설 때가 어느때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때가 되면 국가적인 시대가 됩니다. 예수의 시대를 중심삼고 보면, 종족적 기반을 넘어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일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국가가 뜻 앞에 귀결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정을 중심삼은 전통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게 되면 부인들은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뜻길을 가는지 오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박차를 가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 7월 20일을 중심삼고 전국에 동원하는 데 있어서 전체 동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는 말뿐만이 아니라 실지로 새로운 전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싸웠다고 하며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으로 볼 때, 섭리 역사 과정에 있어서 이렇게 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가정체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가정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이 가정의 이념이 혼란된 이 세계의 사상계를 혁신시키는 혁명이념이 될 수 있고, 하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을 우리가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만들려면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 기반으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기반은 하늘이 바라는 전통적 가정의 기반이 확립되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그 기반이 그냥 그대로 확립된다 하게 되면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차원을 달리해야 합니다. 현재의 체제를 급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는 데는 양면이 있습니다. 섭리적으로나, 뜻적으로나, 개인적인 이상실현을 중심삼고 보나 고개를 넘을 때 제일 가는 대상이 누구냐? 그것은 상대입니다. 상대문제에 결부되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으로 볼 때는 심정문제가 결부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반이 가정을 중심삼은 활동으로 벌어지는 때이므로 이때야말로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72년도까지 새로운 차원에서 정성을 더욱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표준해 나가던 때와는 다릅니다. 이제는 교회를 중심삼고 올바른 전통을 세워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차원이 다른 입체적인 면에서 새로운 전통적인 내용이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신이 얼마나 책임을 지고, 얼마나 정성을 투입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정성을 투입하려면 가정의 기반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70년도를 중심삼고 그 한계점을 넘어섰다고 보기 때문에 71년도에 여러분 가정의 주부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건에서 이 고개를 넘어서는 데는 혼자 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도 혼자 갔기 때문에 다시 찾아 나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같이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누가 앞서 가야 되느냐?

같이 가야 되겠지만 복귀 과정에는 누가 기준이 되느냐? 여자입니다. 여자가 기준이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상에 없던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은 이 뜻,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사상적인 면에서 이런 것을 제시했다는 것은 역사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에 있어서 개척적인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계기권, 여기에 여러분 가정이 나섰다는 사실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이 기쁨은 어떠한 국가를 중심삼고 나라를 잃어버린 망명객의 입장에서 복권(復權)을 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영광의 한 날을 차지한 그런 기쁨보다도 큰 것입니다. 세계뿐만이 아니라 천주를 중심삼고 영원한 역사를 중심삼고 한 번밖에 없는 그러한 때에 여러분 가정이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통 중에 가장 귀한 전통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찾아 세워야 할 3단계 기반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일치되어 가지고 단결해야 됩니다. 가정이 단결되고 결속될 때는 개인이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단체가 비판할 수 없습니다. 나라로서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확고한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개개인이 그런 전통을 세워 넘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단계로 볼 때, 개인은 반드시 가정을 찾아 나가야 하고, 가정은 반드시 교회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걸어온 길입니다.

마리아 가정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개인완성을 표방하면서 찾으려 한 것은 무엇이더냐? 가정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무엇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교회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교회는 나라를 찾아 나가야 되며, 나라는 세계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세계는 무엇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하면 천주,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는 세계나 나라는 지금의 이러한 세계와 나라가 아닙니다. 이러한 교회, 가정,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의 개인은 완전히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어야 합니다. 확정된 기반 위에서 개인의 관을 갖지 못했던 역사시대 앞에 확정시킬 수 있는 개인의 관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관은 개인을 완성할 수 있는 관이자 가정관을 보충하여 완성시킬 수 있는 제1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제1표준을 중심삼고 가정이 완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반이 없어서는 가정도 완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통해서 가야하며 가정은 교회를 통해서, 교회는 나라를 통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 가지고 가야 할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느냐? 개인이 이 땅 위에 머리를 들고 나설 수 있는 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이 머리를 들고 나서려면 가정에서 가정적 상대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가정적 상대기준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섭리는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민족 형성을 위해 교회를 중심삼고 벌어져 나왔기 때문에 교회 단위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 앞에 가정, 가정 앞에 교회, 이렇게 3단계가 연결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단계 완성을 이루면 그러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복귀역사는 개인완성을 위한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기독교보다 특출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가정완성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개인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적 기준의 결실을 맺고자 하는 것이 재림사상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새로운 종족 편성을 위한 세계적인 행로를 개척하는 데에 있어서는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교단을 중심한 교회를 찾아가야 됩니다. 그 교회는 역사적 결실체로서 유업을 상속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중심삼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시에 전체가 그런 인연을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 앞에 전체가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불가피하게 비운의 역사를 넘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개인은 가정에 부응해야 되고 가정은 교회, 교회는 나라에 부응해야 됩니다.

이것을 구분하자면 개인, 가정, 교회, 나라, 이렇게 넷이지만 단계로 보면 3단계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이 가는 길은 나로부터 가정으로 가는 것이며, 가정으로부터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하나되기만 하면, 개인은 이미 완성 단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나라가 하나되었다 할 때는, 가정은 이미 완성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와 세계가 하나되게 될 때는, 나라로서는 이미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확립해야 했던 것입니다. 가정 기반을 확립하고, 교회 기반을 확립하고, 나라 기반을 확립해야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환경적으로 갖추지 못한 그런 자리에서 개인이 설 수 있는 자리, 가정이 설수 있는 자리, 교회가 설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나라를 대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

우리는 지금까지 나라 없는 백성과 같은 입장에서 몰려왔습니다. 3정권을 거쳐오면서 나라 없는 백성과 같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지금 보게 되면 우리 교회의 지구장들이 중요한 장소에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이제는 대 사회면으로 보나 대 교회면으로 보나 피장 파장이라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 뒤넘이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교단적인 입장에서 볼 때 가인 아벨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적 형태가 갖추어지면 어디가 형의 입장이냐? 지금까지는 가인이 형의 입장에 섰지만 그것이 이제 전환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면 역사는 새로운 역사적인 제물시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리적으로 볼 때, 지금 이 시대상이 평면적으로 우리와 대등한 자리에 있으므로 우리는 당당히 상대적 권을 넘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이번에 목사 공청회 7차를 끝냈으니 8차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월 12일 쯤에는 8차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기성교회가 우리 교회를 대하는 것이 안팎으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8차 공청회 때에는 우리가 강제로 그 사람들을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자원해서 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는 데 있어서 '여기 사람들이 불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해서 오는 것입니다'라고 하게 되면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새로운 면에 있어서 우리가 섭리적인 면에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점이 마련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7월 1일, 이날에 어떻게 하여 7대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었겠습니까? 7대 대통령이 7월 1일에 취임한다는 것은 8수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시아 정세라든가 국가 정세라든가 우리 교회 문제라든가 그밖에 안팎의 모든 면에 있어서 일점을 획득할 수 있는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두고 볼 때, 이제야말로 그런 세계가 멀지 않았음을 여러분이 알고, 비약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비약하려면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고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국가적이면 국가적인 기준만큼 비약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적이면 세계적인 기준만큼 비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약하는 목적이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면 망합니다.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 비약해야 하고, 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비약해야 하며,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비약해야 됩니다. 점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적인 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전통적으로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 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라고 할 때에는 개인, 가정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 나라라고 할 때도 개인, 가정, 교회가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복귀섭리의 단계를 전진시켜야 하는 전통적인 과정을 어떻게 거쳐가며, 그 과정에서 변치 않는 기준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이야말로 그 기준을 확립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기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60년대는 개인을 중심삼은 교회였지만, 이제는 가정을 중심삼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가정은 이래야 한다는 전통이 여러분 가정에게 있습니까?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개인생활을 중심삼고 교회생활을 비판하려고 했느냐, 아니면 교회생활을 중심삼고 개인생활을 비판하려고 했느냐?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개인생활을 중심삼고 교회생활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차원이 틀린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중심삼고 개인생활을 비판해야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예수가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비판하려고 했어요?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뜻을 저버리려고 했지, 개인적인 뜻을 중심삼고 가정을 저버리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가정을 찾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가정을 찾는 데는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나라를 통해서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원칙이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자체가 가정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자체가 여러분을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 앞에 피동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체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하나의 모체를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 앞에 주관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교회 앞에 주관받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중심삼고 일치될 때는 소생, 장성,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가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섭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의 역사는 개인적 시대, 그리고 재림 시대는 가정적 시대, 앞으로의 시대는 세계적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를 중심삼고 사상적 기원이 마련되어야 개인, 가정에 있어서 평면적인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원칙적인 전통의 확립으로 누가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또한 가감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이 아직까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제멋대로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원칙에 의해 시정해 나가야 됩니다.

전통을 세워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가 되어야

앞으로 3년노정이 끝나게 되면 반드시 지파 편성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파 편성을 하려면 교회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회를 중심삼은 모세 오경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삼아서 12지파 편성이 벌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파를 편성하는 것은 교회와 가정에 개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교회가 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교회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교회에 영향을 못 주게 되면 그 가정도 망합니다. 개인도 가정에 영향을 주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못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60년대와 70년대의 선생님의 입장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보다 전통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가는 길은 가정을 통해서, 가정이 가는 길은 교회를 통해서, 교회가 가는 길은 나라를 통해서, 또한 나라는 세계를 중심삼고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그렇게 가는 사람이 있으면, 비로소 그는 사방성을 갖추어 가지고 동서 사방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지 않고는 일방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서 사방을 갖추려 하면 사탄세계가 전면적인, 공세를 취하고, 부정적인 요건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요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실적을 쌓아야 합니다. 그 전통이 짧더라도 국가적 이상이 되어야 하고, 세계적인 하나의 표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때가 되면 외적인 세계에 혼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높은 데에서부터, 꼭대기에서부터 혼란이 생긴다는 거예요. 나무도 죽을 때는 밑에서부터 먼저 죽는 것이 아니라 맨 꼭대기에서부터 죽지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 세계를 움직여 나오는 사람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높은 데에 앉아 있지만 더 높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낮은 데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새로이 수습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높은 데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낮은 데를 내려다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섭리적 시대를 중심삼고 보아 서도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때가 접근해 오는 것을 우리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종족적인 연관을 거쳐 민족적인 인연에 어떻게 연결을 시키느냐? 연결시키는 데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인격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심정의 길 사랑의 길

그래서 진리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라는 말을 하지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이 문제라는 거예요.

말씀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심판의 규정이 되는 것입니다. 법은 심판의 기준으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라는 것은 선악의 기원을 결정할 수 있고, 그 선악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 표준이 우리 교회의 '원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절대시할 수 있느냐?

그 말씀에 반항하거나 상치될 때는 그 말씀에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말씀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을 때, 비로소 인격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모든 것을 말씀대로 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자신에게 맺혀지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늘 앞에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을 것이 아니라 전체를 중심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관점이 달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문제에 있어서도 상대적 요인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심정은 정서적인 것입니다.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냐 할 때, 여러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사랑'하게 되면, 사랑은 상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그 사랑의 근거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사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주체이시지만, 하나님 자체가 출발 기점이 되고 하나님 자체만 사랑을 갖게 되면 사랑의 대상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필요로 하는 근거지가 어디냐 하면 자체 같지만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실이 없는 출발이라는 것은 아예 출발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물론 그 자체가 동기는 되겠지만 그 결과는 상대에게 맺혀지는 것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열매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의 결정적 근거지는 자기 자체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가치를 백 퍼센트 인정하는 데서만이 백 퍼센트 사랑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에서는 왜 희생해야 되느냐? 그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상대라는 근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근거지에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여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사랑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을 하려면 완전한 희생을 해야 됩니다, 완전한 희생을 넘어서 가는 사랑의 길에는 완전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심정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이냐?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발전하는 시대 시대에 둘 수 없기 때문에, 천주의 주체이신 하나님에게 두는 것입니다. 뜻은 상대적 관계에 있습니다. 그 뜻이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의 뜻이 가야 할 길은 가정이요, 가정의 뜻이 가야 할 길은 교회요, 교회의 뜻이 가야 할 길은 나라요, 나라의 뜻이 가야 할 길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뜻의 동기와 결과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니 동기를 사랑하는 만큼 결과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동기를 사랑하는 만큼 결과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동기와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결과가 같아야 됩니다. 가정적으로 볼 때도 그것이 같아야 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심정적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 인격, 심정의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상대적 권의 세계에서 상대 이상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하나님을 사랑하듯 세계를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 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람을 내 몸같이 할 수 있는 거기서부터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첫 출발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서부터 벌어집니다. 이런 사람이 뜻의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과 가정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교회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 나라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이 서로 엇갈려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종합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가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때가 71년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운 전통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가야

71년과 7월 1일이 만나는 때는 오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에 있어서 대통령 취임식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섭리적 입장에서 생각할 때, 섭리사적인 의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세계 각국에서 대표들이 경축하러 몰려왔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도 무엇인가 뜻적인 내용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환경의 여건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 하면 뜻의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혁명정부를 다른 나라의 정부가 볼 때, 혁명적인 이단정부의 출현으로 보았습니다. 혁명과정을 거친 정부를 공인하고 환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벌써 같은 입장에서 본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도 기성교회 앞에 그러한 입장에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가 섭리적으로 얼마나 귀중한 때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알고 축복가정들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뿌리가 되는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나무의 뿌리가 뻗어 나가는 데 있어서 중심 뿌리가 옆으로 가게 되면 그 나무는 구부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은 곧게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중심 뿌리가 제일 힘든 것입니다. 들어가는 데에는 반드시 직선으로 뻗어야 됩니다. 옆으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갔을 때는 수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직선으로 가야 됩니다. 이런 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그러면 직선으로 반듯이 못 가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옆으로 뻗어가더라도 직선 이상 뻗어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신앙의 기준이나 가정적인 신앙의 기준이나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확립에 대하여 바로 알고 전통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 전통을 잘못 세우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중심인 선생님이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있는 통일교회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없을 때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될 것이냐를 언제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후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지금 아들딸들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후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뜻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마음대로 못 하니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마나입니다. 뜻의 세계를 여러분 자신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뜻을 위해 살고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기에 후손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가정들이 수고하는데, 그것은 교회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나라의 전통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유대교 사상이 잘못되었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그렇듯 기독교 사상이 잘못되게 되면 세계를 망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망할 수 있는 세계권내의 경계선에 접해 있으므로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성교회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통적 환경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쪼개 보면 개인이 중심이 되고, 가정이 중심이 되고, 단체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가는 단체로 구성되어 있고 단체는 가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정은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이제 우리 교회 자체가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중심삼고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후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전통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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