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아버님, 저희들 아버지 앞에서 저희 자신들을 회고해 보면서, 뜻을 안 자체로서 기도하는 한 때와 한 일을 결정짓기 위하여 모인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부족한 저희를 거느려 나오신 아버지, 아직까지 저희의 주위에는 안팎으로 어둠의 요소와 타락의 인연이 둘러싸고 저희들을 결박하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고 계신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갈 것이 아니라 하늘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하늘과 더불어 일하고, 하늘과 더불어 살고, 하늘과 더불어 싸우고, 하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태어나 그렇게 살다 가야 할 자신들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습관적인 생활을 그냥 그대로 하다가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역사 속에 매장되는, 혹은 이 시대의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리에서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세파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무리이옵니다. 악한 세계와 대결하고 선한 실적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날 통일교단의 사명이요. 통일교회에 속한 개개인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이 자리에 현현하시어서 저희들 개개인에게 묻고 요구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깨닫지 못하거든 아버지께서 격려하시어서, 저희가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깨닫고 느껴 오늘을 빛나게 하고 내일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은 6월 들어 두번째 맞는 성일 아침이오니, 아버지여,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와 같이 모인 것은 인간적인 그 무엇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이 요구하고 인류가 요구하는,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참된 나라를 찾기 위함이옵니다. 나라가 없는 백성으로서 역사시대에 수난의 길을 면치 못하였던 저희들, 참된 나라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하늘로 모실 수 없었던 불쌍한 저희들이, 아버지여, 이제 나라를 찾아서 그 나라 앞에 엄숙히 자세를 갖추고 하늘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되었다고 온 천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것을 느낄 적마다 저희들이 넘어가야 할 고비와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개개인의 마음 마음을 아버지께서 일깨워 주시옵소서. 오늘 나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스스로 응시하면서, 하늘의 목적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매일매일 적응해 나가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원하는 그 길을 향하여 달려갈 때 저희들은 늘 하늘의 짐이 되었고 하늘의 십자가가 되었사오나, 이제는 그러한 무리가 아니라 하늘에 힘을 가하여 주고 하늘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스스로 가겠다고 결심을 하고, 남이 극복하지 못하는 수난길을 스스로 극복해 가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이요,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바라 보며 하늘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하늘의 인연으로 엮어진 무리이오니 이 시간에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생명의 인연을 갖춘 무리이오니 하늘을 향한 갈급한 심령과 간절한 사랑과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 모인 무리들은 초초하고 초췌하고 보잘것없는 무리로되, 한 생명도 빠짐없이 당신의 마음에 깃들지 않을 수 없는 진실되고 참된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이 나라의 해방과 이 세계의 해방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들이는 통일성도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러한 통일교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나라를 아버지 앞에 세우는 것은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누구의 힘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추궁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따질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 사정을 따져 가지고 아버지 앞에 요구하는 무리가 아니라 하늘과 미래의 사정을 따져 가지고 내 자신 앞에 책임을 추궁하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로운 길과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기 위하여 복귀도상에서 몇천만 번 수난의 길을 극복하신 아버지, 어느 한 날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그때와 그날이 오기를 고대해 나오신 아버지 앞에 부름을 받은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아무리 처참하고 역사의 물결이 아무리 험난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임을 자각해야 되겠고, 당신 앞에 헌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남겨진 십자가와 수난의 그 모든 내용들을 생각할 때에, 체면을 세울 수 없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조상의 후손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슬픔을 가중시켰던 선조를 가진 저희들이, 선조들로 말미암마 막혔던 담을 헐기 위하여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될 자신들임을 발견함과 동시에 현재에 가로막힌 이 세계의 모든 장벽들을 터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역군이 되고, 하늘의 기수가 되어 소망의 뜻을 향하여 달려가는 데 있어서 수 많은 민족이 우러러보고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올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지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지친 모습으로 부족한 자신을 끌고 나왔지만 하늘을 저버리지 않은 자리에 있음을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에게 바라는 당신의 소원 앞에, 좀더 강하고, 좀더 담대하고 좀더 진실된 자신을 봉헌해 드릴 수 있는 귀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끊임없는 당신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그들의 서신 보고를 들을 적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실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이 그들과 같이하시어서 내일의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의 기쁨이 되고 하늘의 자랑이 되게 하시옵소서. 늘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어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감당해 내지 못하는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부디 개개인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여 민족 앞에 자랑의 조건을 남기고, 수많은 인류 앞에 자랑의 조건을 남길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모의 심정이 충천해야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그 자리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의 입장에서 부모를 찾는 갈급한 마음이 저희의 마음 몸에 어려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기쁨으로 자기 자신의 환경을 잊어버리고 뛰놀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당신이 역사적으로 소망하시며 찾고 싶어하신 무리가 저희들이거든, 이 시간, 당신께서 저희의 손과 목을 끌어안고 통사정할 수 있는 실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찾아 나오신 아버지시여, 당신이 찾아 나오신 남자와 여자가 어떤 모습인가를 저희들은 모르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찾아 나오신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를 저희들은 모르옵니다. 당신이 찾고 싶어하시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이며 세계가 어떠한 세계인가를 저희들은 확실히 모르오니 확실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반응하며 당신과 더불어 하나된 모습을 대할 수 있는,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세계에 널린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정성을 들이고 온 영계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사오니, 이 자리에 선 저희들이 부끄럽지 않은 당신의 자녀가 되고, 땅 위의 책임을 짊어진 자녀들로서 그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은사의 분위기로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기하여 새로운 부활권을 찬양하고 생애의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직접적인 주도와 권위로써 당신 앞에 엎드린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곳을 바라보며 생명길을 고대하고 있는 무리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이름들을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리오니 기쁘신 가운데 일일이 간섭하시고 지도하시고 일깨워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이 세상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습니다. 민족을 달리하고 역사적 배경을 달리한 수많은 국가들이 이 땅 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들은 민족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만큼 국가관이라든가 세계관도 다른 입장에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각 나라가 그러하듯이 각 나라에 살고 있는 개개인도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

한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의 가는 길이 있습니다. 개인이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문제를 안고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면 나라도 그 시대 앞에 어떠한 목적을 이루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두고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떠한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떠한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중심삼고 사람의 마음은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기를 바라는데, 자기에게 국한된, 자기의 행복의 요인을 해결해 주는데 그치는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망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자기의 종족이 있으면 종족의 소망 앞에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이요, 민족이 있으면 민족이, 국가가 있으면 국가가 자기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어 같은 목적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소원하는 바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어느누구든지 국가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자기가 가는 길과 더불어 하나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목적과 일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전체까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나와 같은 동기를 갖추어 가지고 환경을 수습하여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난 사람이고 못난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아침에 바라는 것도 낮에 바라는 것도 저녁에 바라는 것도 꿈 가운데 바라는 것도 온 세계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란 무엇이냐? 선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나만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가정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국가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이 땅 위에 나타나면 나만이 알 뿐만 아니라 민족이 알아야 되는 것이요, 민족이 알 뿐만 아니라 국가가 알고, 국가가 알고 난 후에는 세계가 알고, 세계가 알고 난 후에는 하늘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만이 알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을 나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나를 넘어 온 세계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터전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터전이 형성되게 될 때 그 터전이야말로 선한터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선의 터전으로 남아진 예수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시대에 있어서 선하지 못한 입장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선하다면 선한 실체로 죽어 간 그는 역사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현현해야 되고, 세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의 선하였던 기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땅에 선한 결과로서 나타나야만,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인생으로서, 선한 하나의 인격자로서 선한 세계의 터전을 중심삼고 살았다는 결정적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길이 아무리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선의 자체로서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선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환경을 새로이 정비하고 수습하여 전진적인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짧은 30여 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남겨 놓고, 그가 바라고, 그가 실천한 것은 역사적인 선의 터전으로 남아진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터전이 악한 세계에서 닦아졌기 때문에 그 시대에서는 환영을 못 받았지만, 그 길이 인류가 가야 할 길이요 인류가 남겨야 할 선의 터전이요 하나님이 세워야 할 선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가셨지만 그가 간 길과 그가 소망하던 것은 세계 인류의 마음 마음에 상속되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바입니다.

예수는 갔지만 선의 터전을 중심삼고 그가 바라던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무리는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 모인 무리가 수를 가해서 이루어 놓은 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오늘날 이 세계에 예수님이 바라던 최종의 목적을 달성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적 입장을 중심삼고 그 책임을 다했을 때에는 국가적 한계선을 넘어 세계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권내에서 그 책임을 다하고, 그 한계선을 넘어 다시 하나님이 예수를 두고 소원하지 못하고 예수를 두고 약속하지 못한 제2의 소원과 제2의 약속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소원과 그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섭리적 한계선을 넘어서 이루어야 할 선의 뜻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명과 심판의 목적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가는 길 앞에는 끝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끝날은 어떠한 날이냐? 예수님이 바라던 소망의 천국을 중심삼은 끝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소망과 상충되고 예수님의 소망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던 세계, 국가, 민족이기 때문에 이들은 반드시 민족의 끝을 봐야 되는 것이요, 국가의 끝을 봐야 되는 것이요, 세계의 끝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끝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국가들이 끝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수많은 국가들이 끝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들이 끝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수많은 민족들이 끝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이 끝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끝날이라는 때는 어떠한 때냐 하면 세계를 중심삼고 극복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바라던 나라와 상충되는 나라가 지나가는 때입니다. 지나가는 데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받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잘되었느냐, 못되었느냐 하는 것을 구별하여 잘된 것은 남겨 두고, 못된 것은 제거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잘된 것은 선한 편입니다. 이 선한 편은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런 내용이 아니고는 선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선은 가정의 선으로 연결되어야 되고, 가정의 선은 종족의 선으로 연결되어야 되고, 종족의 선은 민족의 선으로, 민족의 선은 국가의 선으로, 국가의 선은 세계의 선으로 연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사람이 선을 중심삼고 공적을 세우게 될 때 그 공적이 세계성을 띠게 되면 세계의 역사는 망하더라도 그 공적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천운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그가 세웠던 공적의 터전은 민족을 넘어 세계의 중심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역사적 과정에 남아진 성현들의 실적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이 오면 올수록, 이 세계가 현재의 사망세계 자체로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찾을 수 있는 그런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를 수습하고 청산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가 바라는 것보다 못한 선이 아니라 이 세계가 바라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선의 터전을 중심삼고, 세계는 없어지더라도 결코 없어질 수 없는 가치의 내용을 지닌 선에 의해 세계는 반드시 수습된다는 것입니다. 그 수습되는 과정에 있어서 필요요건이, 선악을 분별하기 위한 필요요건이 바로 심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해야 할 책임과 이루어야 할 목적은 무엇이냐? 어떠한 종파 자체가 바라는 소원을 중심삼은 목적보다도 전세계 기독교가 합하여 세계 인류가 바라는 이상의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세계의 한계권내에서 남아질 수 있는 소원을 갖고 움직이는 기독교가 아니라, 그 한계선을 넘어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이 바라 시는 천국이념을 이어받을 수 있는 소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선의 터전 위에 선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기독교 자체가 앞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의 터전에 설 수 없고, 심판받아야 할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가야 할 곳은 어디냐? 오늘날 장로교면 장로교 자체가 아닙니다. 감리교면 감리교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종파의 이름을 가진 그 환경권내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종파를 초월하여 오늘날 사망권내에 있는 이 세계를 극복하고 세계가 희망하는 그곳을 향해 가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중심적 내용을 결정짓지 못해 가지고는 기독교의 소망의 터전은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머물 곳은 어떤 곳이냐? 우리는 오늘날 세계가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환경권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 역사를 초월하여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역사시대에 환영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필코 사망의 세계와 결판을 지어 가지고 소망의 세계 앞에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실적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아지는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의 무리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들

오늘날 기독교의 통일을 표방하고 나온 이 통일교회가 하나의 종파로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간다 할진대 기독교 통일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이념을 갖고 나선 무리인만큼 세계의 수많은 국가를 대표한 기독교를 앞질러 나가고, 기독교가 찾는 세계가 이러이러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수의 사명을 하지 않고는 기독교의 갈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이요, 기독교의 생활 터전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교인들, 여기에 집합한 우리 자신들은 오늘날 역사권내에 국한된 사명을 짊어지고 모인 무리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타락권 내의 인연이 남아 있는, 타락한 세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아니라, 타락에 의해 맺어진 이 세계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을 동기로 새로운 이념의 세계를 출발하기 위해 새로운 소원, 새로운 사명,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모인 무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허덕이는 무리들이 '저들이 아니면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혹은, 수많은 기독교인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힘을 잃어버리고 아사상태에 있는 그들이 '저들과 같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소망의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아시아 전역을 대표해서 이 극난의 환경을 타파해 가지고 새로운 국가 이념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있는 대한민국, 부패의 일로를 걸어왔고 아직까지 부패의 요소가 남아 있는 실정에 있는 대한민국이 본받아야 할 통일교회의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결정적인 실체로 한 민족 앞에 나타나지 않고서는 앞으로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를 통합하는 것은 물론이요, 세계를 수습할 수도 없을 것이 아니냐.

오늘날 시련과 환난에 부딪친 민족 앞에 통일교회가 제시할 것은 '아무리 시련과 환난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남음이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의 무리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모인 무리임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먹고 자는 것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고,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이 목적을 감당해 내기 위해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개개인이 되지 않고는 우리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세계의 종말시대에 심판의 기준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가정 구원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기에 모인 우리 자신들은 개인의 구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나 하나를 위해서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나 하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나 하나의 편안을 도모하기 위해서 신앙길에 찾아진 무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찾아진 것은 대표적인 자리에서 선출되어 찾아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우리가 특정한 이 길을 남이 모르는 가운데 나섰습니다. 남이 환영하는 환경 가운데서 이 길을 나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환경 가운데서 이 길을 나서 가지고 오늘날까지 걸어왔다는 것은 그 환경과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 없는 것입니다.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가고, 다른 환경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출발했을 것임에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목적으로 귀결을 짓고 만다면, 세상이 망할 때는 그 세상과 더불어 망하는 무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는 길도 달라야 되고, 서 있는 환경도 달라야 되고, 목적도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과거의 신앙은 개인 구원을 목표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하나 구원받기 위해 신앙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런 신앙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내용이 달라야 됩니다. '나 하나 구원받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 하나의 구원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세계를 버리고 나서야 된다. 국가를 버리고 나서야 된다. 종족을 버리고 나서야 된다. 가정을 버리고 나서야 된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서야 된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가 추구해 나온 길입니다.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이와 다릅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렸던 것을 되찾는 것입니다. 개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가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종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국가를 찾는 것은 국가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 형성의 기본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 구원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가정 구원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과 종적인 입장에서 상대적 관계를 맺었지만, 오늘날 이 시대에는 종적인 입장에서만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한정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나에게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내가 주체가 되어 종적인 하나의 실체가 되고, 그 실체는 횡적인 하나의 상대적 터전을 결정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신앙자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오던 것과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일반 종교가 바라는 입장과 오늘날 통일교회가 바라는 입장은 판이하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는 원칙적인 심정의 터전

혼자서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남성은 한 여성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아벨은 반드시 가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람은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기 전에 형제의 상대적 기준을 갖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다'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형제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되어야 되느냐? 통일교회 들어오기 전까지의 자기 생명을 죽이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출발점입니다.

하나의 남자는 반드시 하나의 여자와 더불어 가정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세계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신앙자들은 가정을 버리고 갔지만, 버렸던 가정을 높은 차원에서 다시 찾아 가지고 새로운 터전 위에 승리의 가정으로 세우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그 가정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위기대를 형성하고서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어디서 이루어야 되느냐? 이 지상에서 이루어야 됩니다. 어느 때 이루어야 되느냐? 자기가 죽기 전에 이루어야 됩니다. 그것을 이루지 않고는 국가를 맞이할 수 있는 국민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인류가 될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천국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천민(天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사위기대의 가정은 어떻게 이루어야 되느냐? 오늘날 소용돌이치는 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 역사의 수난길에서 제거되고 그 수난의 환경에 포위되어 그 자리를 잃어버린 터전 위에 선사위기대가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을 새로운 차원에서 수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 역사의 기틀이 되고 모체가 될 수 있는 터전 위에선, 확고부동한 입장에 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이것을 중심삼지 않고는 타락한 세계관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이었습니다. 그 축복은 아담 해와가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를 넘어 역사가 지나가더라도, 수천만 년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의 결정적 기준은 아담 해와뿐만 아니라 역사의 승리의 결정적 기준으로까지 이어져 세계 국가 형성의 결정적 기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뿌리가 되어 가지고, 장본(張本)이 되어 가지고 거기서 줄기가 나오고 가지가 나오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적 기준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도 분열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가 아무리 분열시키려 해도 분열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갈라놓을 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의 인연, 부부의 인연, 혹은 형제의 인연이라는 것은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부모의 혈육을 받고 태어난 형제 끼리끼리에 있어서 동생이 형을 대해서 '너는 내 형이 아니다' 혹은 형이 동생을 대해서 '너는 내 동생이 아니다' 하고 아무리 부정적 요건을 제시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아무리 부정적 요건을 제시하더라도 천지간에 그런 요건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의 인연도 거기에 어떠한 힘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어떠한 권한이 그것을 타파한다 하더라도 깨뜨릴 수 없고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위기대의 원칙적인 심정의 터전이 아니냐. 그 심정의 터전이 침해를 받지 않는 한 심정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심정과 더불어 연결된 부모와 자녀가 하나되고 형제가 하나된 그 표준이야말로 만세의 표준이 되는 것이요, 만국 형성의 기틀이 될 것이 아니냐.

원리의 가르침

하나의 형제가 있다면 그 형제는 반드시 서로서로가 이 공동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형은 반드시 동생과 하나되어야만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있는 것입니다. 동생은 형과 반드시 하나되고 나서야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종적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대신자가 되어 횡적 기준에 종적 가치를 나타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목적과 몸의 목적, 즉 안팎의 목적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팎의 목적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되지 않고는 영존할 수 있는 전통적 기준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이걸 볼 때, 종적 관계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복귀원리를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를 맞을 수 없습니다. 사망세계에 끌려가는 운세를 박차고 돌아서려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위로 하나님을 중심삼은 삼위신의 협조를 받아서 완전히 종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예수님과 성신과 내가 종적인 관계에 있느냐 할 때, '예수님과 성신을 위해 있다. 하나님을 위해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종적인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의 삼위기대, 즉 삼위신을 중심삼고 내가 거기에 하나되었다는 것은 종적 관계에 있어서 사위기대의 내적 결정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결정만 가지고 되느냐? 그렇게 되면 나 하나만 있고 가정은 없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있고 국가는 없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있고 세계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나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반드시 횡적 기준에 있어서의 사위기대의 판도를 넓혀 놓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신이 지상에서 살던 생활을 표준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살아가며 종적인 사위기대의 중심적 기준을 결정지었던 예수님의 생애는 승리적인 사위기대의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그러한 사위기대의 모델을 횡적으로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족적 메시아라는 말은 형제적 기준을 넘어선 자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가정적 터전 위에 선 자리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인 대상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내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섰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고, 성신의 대역자가 되어 횡적인 자리에서 하나의 부활권을 만들어야 완전히 형제지간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 부부관계도 여기서 나오는 거라구요. 이것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의 기틀입니다.

삼대상 목적이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형제를 찾았다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신랑으로서 아내를 찾았다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삼대상 목적이 바로 서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고, 이것은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전체가 완결됐다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구원의 도리, 타락한 인간 가인의 갈 길과 아벨의 갈 길을 가서 형제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 형제 가운데에는 아담에게 아들딸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있는 것이요, 여자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형제로서 완전히 복귀된 자리에 서게 될 때 거기에서 새로운 부부의 인연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형제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부부의 인연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부부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자녀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부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요, 부부의 길을 거치지 않고는 부모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가인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부부의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부의 길은 왜 찾아 나가느냐? 부모의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모의 길은 왜 찾아 나가느냐? 하나님이 가는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종적인 입장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환경에서 벌어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형제의 인연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부부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요, 부부의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부모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요, 부모의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 즉 하나님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나 개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대표한 길이요, 세계를 대표한 길이요, 하늘을 대표한 길이 되어야 합니다.

복귀의 길은 일체를 부정하고 가야 하는 길

출발이 목적보다도 작아 가지고는 목적하는 곳까지 못 갑니다. 다시 말하면 동기의 내용이 결과보다도 충실하지 않고는 결과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사위기대의 원칙적 기준이 세계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나간다면 그 기준이 지닌 가치가 세계적 가치보다 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성경에 말하기를, '한 생명의 가치가 우주보다 크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도 갈 길이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비로소 소원을 성취하고, 비로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그 목적하는 세계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는 동기의 터전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집합한 우리들'인데,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은 오늘 여기에 뭣하러 모였습니까? 여러분이 이곳에 모이기까지는 많은 반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가 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것을 끊어 버리고 왔을 것입니다. 나라를 끊어 버리고, 종족을 끊어 버리고, 부모를 끊어 버리고, 형제도 다 끊어 버리고 왔을 것입니다. 다 끊어 버리고 왔다 이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외아들입니다. 단 하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나만 남은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나만 남은 자리로 왜 하나님은 몰아넣어야 되느냐? 탕감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들어가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아담 해와에게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둘이예요? 하나입니다. 해와가 둘이예요? 하나입니다. 나만 남았다는 것은 나 하나라는 자리다 이거예요. 남자로서 '나 하나다'여자로서 '나 하나다' 하는 그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타락함으로써 원치 않는 세계에 연결되었던 것을 딱 끊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은 세계고, 이것은 국가고, 이것은 민족이고, 이것은 종족이고, 이것은 가정이고, 이것은 나입니다. 이러한 세계의 '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타락세계에 물든 것입니다. 이 국가권 보따리를 가진 '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타락세계의 국가에 물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은 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타락세계의 민족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종족도 물들어 있고, 나 자신도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르려거든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일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의 부모를 안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요, 너의 형제를 안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요, 너의 군왕을 안다고 해서도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전부 부정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 자체가 타락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 처하게 되는 이유

나만 남되 나 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나 홀로 남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엘리야가 바알신을 숭배하는 아합 왕한테 몰려 피난가서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나만 남았다'고 탄식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7천의 무리가 있음을 일러 주셨습니다. 나만 남았지만 나 혼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나만 남은 자리이지만 나를 협조해 줄 수 있는 무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체를 두고 볼 때도, 나만 남아 있지만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그 세계보다 나은 하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보고 나오던 세상의 무슨 주권자면 주권자보다 나은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고, 내가 중요시하던 부모보다 나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되면, 내가 그리워하고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 이상의 것이 기다리고 있다 이겁니다.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리는 것입니다. 모르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들을 '나만 남았다' 하는 자리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아담이 둘이 아니라 하나요, 해와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세계권을 버림과 더불어 국가권, 민족권, 종족권…. 점점 버려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먼저 세계를 버려라, 요걸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라를 버려라, 민족을 버려라, 종족을 버려라, 나를 버려라…. 결국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이라면 나는 몸뚱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면 나는 종이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나는 아들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거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무엇이 되느냐? 종이 아니면 양자, 양자가 아니면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될 것이 없습니다.

나만 남은 자리에서 이 관계를 못 가지면 망하는 거라구요. 죽는 거라구요. 나만 남은 자리에서 남아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체로 한 대상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절대적인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종이 되어야 절대적인 하나님의 일에 협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가당한 말입니다. '나는 부족하니 종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하늘의 수고로운 일이 있으면 '저에게 시키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복귀의 길은 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 홀로 인연맺는 것입니다. 둘이 인연맺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생겨날 때 둘이 인연맺나요? 홀로 인연맺는 거라구요. 부모를 중심삼고 홀로 인연맺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나와는 어떠한 관계냐? 하나님이 주체면 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주인과 종의 자리입니다. 그 외에는 없는 거라구요. 그 외의 자리가 있다면 주인과 원수의 자리가 아니면 대상의 자리라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원수의 자리였지요. 원수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원수는 난 싫소' 이래서 원수의 자리에서 떠나려니 전부 다 버리고 나서는 것입니다. 전부 다 쫓겨나는 것입니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버리게끔 때려 모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나오면 괜히 때려 모는 거라구요. 그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져야만 참된 길입니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 싫어하고 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쫓아내니 좋든 싫든 그렇게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든 싫든 복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강제로 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로부터 쫓겨나 눈물 흘리는 자리에서 부모를 잊어버리고, 부모를 뒤에 두고, 하나님과 인연맺어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무리들이 가는 길인 것입니다.

'원수의 길이 싫다. 그러니까 이것을 청산지어야 된다. 얼마만큼 싫으냐? 개인에서 싫다. 가정에서는 더욱 싫다. 국가, 세계에서는 더더욱 싫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놈의 세상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게 원칙이라구요.

통일교회의 출발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어떻게 됐느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거 뭐 통일교회 따라 가면 뭘 해? 남과 같지 않게, 특별나게 그럴 필요가 뭐 있어? 그저 적당히 눈치보며 살지' 한다는 것입니다. 천만에요. 그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을 자기 식구 이상 사랑하라

여러분이 앞으로 여러분의 부모는 언제 구해야 되느냐? 그것은 복귀원리에 딱 나와 있어요. 딴 부모- 이 딴 부모는 사탄세계의 부모가 아닙니다-를 모시고 난 후에야, 하늘세계의 부모를 모시고 난 후에야 그 부모의 명령을 받고서 자기 부모를 구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기다린 것은 그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딴 부모를 모시고 딴 형제를 모셔야 하는데, 딴 부모란 타락세계의 부모가 아니요, 딴 형제란 타락세계의 형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모를 가진 우리 앞에 딴 부모가 나오지 않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딴 형제가 없어 가지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딴 부부가 없어 가지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딴 부모, 딴 형제, 딴 부부의 자리를 세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냐. 그러한 내용을 갖춘 도리를 가르치고, 그렇게 생활하는 내용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참부모, 참형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형제란 무엇이냐? 통일교인이 세상의 부모보다, 세상의 형제보다 가까와야 됩니다. 나이 많은 통일교인들은 나이 어린 사람을 자기가 낳아서 기르는 아들딸보다 가까와야 됩니다. 생활을 두고 봅시다.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버리고 나왔다는 것은 사탄세계에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은 최고의 것을 최고의 자리에서 청산짓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려면 자기 자식을 위해서 흘릴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의 비참한 사연을 들을 적마다 가슴이 아프도록 눈물을 흘리고, 염려를 하려면 자기 자식을 위해서 염려할 것이 아니라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선 이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염려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느껴야 됩니다.

부부간에 있어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버리고 나오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냐? 불의의 부부의 인연을 가지고 탄식권내에서 신음하는 부부들을 해방시켜 참된 부부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또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오는 것은 무엇이냐? 참된 부모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참된 부모를 갖지 못한 불행한 백성을 해방할 수 없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인연을 갖게 하기 위해서 부모를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불의의 부모를 갖고 사망권에 있는 백성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아의 자리에 서고, 내가 상대보다 낮은 자리에서 부정받는 것은 고아와 같은 나라와 세계를 구하고, 부정받는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나 자신이 당하는 모든 것은 전체를 구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좋은 것을, 한 번밖에 없는 좋은 찬스를 가져다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위해서 더더욱 충성하고 내게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이 때야말로 온갖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는 길이 나만 남았다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나만 남은 자리에서는 어떤 인연을 지어야 되느냐? 나만 남은 자리는 하나님을 중심 삼은 종의 자리가 아니면 원수의 자리입니다. 나만 남은 자리에서 설 때는 사탄이 원수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내 뒤에 사탄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탄도 '너밖에 없다' 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복귀되려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하면 약속한 그 시간에 반드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악이 반대하는 거라구요. 그걸 볼 때, 어떤 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판결짓느냐 하면 하나님과 나만 남은 자리에서 판결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혼자 가지 말고 옆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혼자 가지 말라 이거예요. 악한 사람은 망해도 자기 혼자 망하려고 안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옆 사람을 물고 넘어갑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혼자 가만히 떨어져 나가지 않거든요. 옆 사람에게 쑥덕쑥덕해 가지고 같이 물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심보입니다. 선한 사람은 남을 평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남을 평하지 말라.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전부 다 그에 대한 방지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가 종의 자리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는 안됩니다. 완전히 돌아서야 됩니다. 돌아서는 데는 눈이 이렇게 돼 가지고는 안 됩니다. (표정으로 설명하심) 눈알 정면이 전부 다 그 주인 앞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 생각이 주인한테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가지고 주인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 중에도 주인과 하나되는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인 기준 앞에 우리가 설 자리는 어디냐? 종의 자리와 원수의 자리, 두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여기가 종의 자리이고 여기가 원수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여기의 원수의 자리에 서 있다 이거예요.

지금 타락한 세계는 사탄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어요. 이게(사탄) 중심이라구요.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끄집어 내와야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어디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 사탄세계의 복판에서는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끄집어 내야 됩니다. 끄집어 내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만 믿으면 이 세상은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사탄)이 플러스라면 요것도 플러스지요? 그래서 반발하는 거라구요. 반발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하나님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를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적 인연을 맺지 못하고 사탄과 상대적인 인연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습니다. 사탄세계권내에서 이 세계권내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끝에 가야 됩니다. 끝에 가지 않고는 종의 자리도 못 나가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도 못 나가는 거예요.

종의 형제가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종의 동생이라 하더라도 같은 종의 자리에 세울 수 없습니다. 그 종의 동생도 형과 같이 일해서 같아져야 형과 같은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종의 동생이더라도 형과 같이 일해야만 형과 같은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옮겨 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주인의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의 세계에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중심삼고 그 아들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될 때 그 사람은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종의 형제라 하더라도 종이 소개하는 동생을 주인은 그와 같이 대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이 소개한 동생이라도 주인 앞에 서는 형과 같이 행동해야 종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들의 자리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 위에 아들이 있어 가지고 그 아들을 중심삼고 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살아가게 되면 아들과 같은 자리를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과는 다르다 이거예요. 그래야 양자의 자리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온 시각부터 양자권이 벌어지는 것이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양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양자가 되느냐? 예수님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놀음을 해야만 양자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 다음에 형제끼리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르침의 핵심

양자가 나왔으면 양자만 가지고 되느냐? 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나옴과 더불어 딸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딸이 되느냐? 아들의 상대가 되면 딸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인 터전을 찾아 나오신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느냐 하면 아들을 보내심과 동시에 딸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신랑 되시는 예수, 신부 되는 신자라고 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과 딸이 설정되었다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준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아들과 딸이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부가 된다 이거예요. 가정의 기준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갈라졌던 남자와 여자가 비로소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갈라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서로 원수가 된 거라구요. 해와는 아담을 대해서 '당신은 나를 주관해야 할 남자가 아니냐. 왜 나를 주관하지 못해 가지고 나를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놓았느냐? 왜 타락의 동기를 만들었느냐?' 하고 원망하고, 아담은 해와를 대해서 '뭐야? 해와 넌 왜 나를 꾀어서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었느냐? 하고 원망한다는 거예요. 둘 다 서로 원수라는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는 가정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양자의 가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양자의 가정과 이것이 하나되어야만 완전한 가정적 구원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천사세계에는 종적인 가정권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 복귀하려면 양자권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원리가 가르쳐 주는 키이 포인트(key point)가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종의 입장에서는 절대복종해야

그러면 개인에 있어서 종의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은 주인의 명령에 불복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절대 복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종의 자리에 못 나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들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종의 자리를 거치고야 아들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해야 양자의 특권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조건이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거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의가 있다 할 때, 그 이의는 어디서 오느냐? '세계상의 누구누구는 이렇지 않은데…, 내가 배운 것은 이렇지 않은데…' 하며 전부 다 세상의 것을 들고 나오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이렇지 않는데…'하는 것은 다 세상의 것입니다. 여기서 충돌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을 중심삼고 규합했다가는 반드시 사탄편에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뿐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종의 자리를 못 면하는 것입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하러 여기에 모여 왔느냐? 종으로서 합격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여기에 모여 온 여러분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원수의 새끼로서 종이 될 수 없는 무리인데, 원수의 세상의 인연을 다 끊고 돌아서서 나온 하나의 목적은 무엇이냐? 종으로서 공인받는 자리를 거쳐 나가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어떠한 길이냐? 절대순종, 절대복종의 길입니다. 이의가 없는 길입니다. 이의가 있는 날에는 쫓겨나는 것입니다. 항시 감시받는 것입니다. 주인의 승낙없이 종이 무엇을 간섭하거나 건드렸다가는 걸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과 아들의 다른 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집에 살며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간섭하곤 자유롭게 관리하고,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으되, 종에게는 절대 그런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주인에게 물어 보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종의 시대에는 입이 살아서 변명하는 사람은 낙방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종의 자리에 못 들어가고 사탄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가 참된 길이라면 통일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암만 있으려 해도 할 수 없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건 원리입니다. 원리가 그렇다구요. 자기가 할 말이 많다고 하는 패들은 뜻 앞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기의 요구가 있을 수 있지, 자기의 요구를 하나님이 먼저 들어주게 되었느냐 이거예요. 종은 아무리 해도 실속이 없습니다. 일을 하다 말고 나가라고 품삯을 가려주게 될 때는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가라고 하는데 '나 여기 있겠다'고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쫓아내는데 남아 있겠다고 하게 되면 지금까지 갖추었던 정성까지도 일시에 완전히 파탄되는 것입니다.

절대 불평할 수 없는 종

주인이 가라고 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가라구요.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야지요. 자기가 좀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주인이 가라고 할 때 가야 주인의 동정을 받고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 '나 안 가겠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해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라고 할 때 감사한 마음으로, 섭섭함을 넘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간다면 후에 주인이 다른 사람을 데려다 써 보고 그런 사람이 없게 될 때 자기를 다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럴 수 있는 길이 있지, 주인이 가란다고 툴툴하고 분풀이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자라도, 아들의 이름을 가지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게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종의 신세를 가리고 나서야 됩니다.

오늘날 천사장의 피를 받은 우리 인간은, 원수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인간은 이런 부정적인 요건을 중심삼고 절대 순종, 절대 복종의 길을 거치지 않고는 종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자도 못 되는 것이요, 아들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순종해야 하느냐? 종에게 자식이 있는데, 주인이 그 자식을 팔아먹겠다고 하더라도 종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인이 종의 자식을 팔아먹더라도 종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할 수 없어요.

미국 같은 나라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 팔아먹는 것을 보면…. 복귀도상에 있어서 그렇게 분풀이하는 일면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한 민족이 왜 그렇게 세계적인 축복을 받았느냐? 하늘편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민족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종이 되어야 되느냐? 주인은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종의 아비를 팔아먹고, 종의 어미를 팔아먹고, 종의 자식새끼 다 팔아 먹더라도 종은 그 주인 앞에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종의 때가 지나고, 양자의 때가 지나고, 아들의 때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종취급하다가는 들이 얻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백인이 잘못하다간 흑인한테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미국이 그런 입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종하는 데는 얼마만큼 복종해야 되느냐? 에덴 동산에서 종이 무엇을 가졌느냐? 아무것도 안 가졌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종에게 주인이 '네 자식을 다오' 하면, 줘야 되겠어요, 안 줘야 되겠어요?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잡아먹겠으면 잡아먹고, 팔아먹겠으면 팔아먹고…'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사상을 아직도 안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뿐만 아니라 종의 자식까지도 팔아먹겠으면 팔아먹고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주인이여, 고생을 시키시려면 고생을 시키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종의 자리에서 수난을 받고 있는 종의 세계의 수많은 무리들을 당신께서 사랑하시고 동정하실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내 즐거이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 세상을 보던 입장을 떠나서 하늘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돼서 분하다'고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그들을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구해줄 수 있는 길을 열겠습니다'고 하는 종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불평불만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하라면 하고, 가라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 아들딸을 팔아먹어도 좋고, 아내를 팔아먹어도 좋고, 남편을 팔아먹어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입니다, 탕감. 알겠어요? 주인이 자기 자식을 데려다가 때리든 죽이든 분풀이를 하든 불평하지 말아야 됩니다. 또 아내를 데려다 죽이든 분풀이를 하든, 혹은 남편을 데려다 죽이든 분풀이를 하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본래 사탄이 가지고 있었어요?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와서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냐 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여러분, 자기 아들딸을 하나님께서 데려간다고 불평할 수 있겠어요? 자기 아내를 빼앗아다가 팔아먹고는 '이 녀석아, 너는 물러가라' 해도 불평할 수 있겠어요?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도 불평할 수 없는 것이 많아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 땅 위의 종을 대표하여 탕감노정을 가는 무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신앙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 놀음에서 합격자가 되면 무엇이 되느냐? 아들이 오게 되면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망치는 것이 아니라, 종의 것을 다 빼앗고 양자의 이름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게 악이 아니라는 거예요. 선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장사할 때에 원금을 잃어 버리지 않는 사람은 이익을 못 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적으로 그냥 다 빼앗아 가는 것 같지만 아들이 오게 되면 종의 자리를 떠나 양자의 상속을 받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상속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이 왔을 때 아들의 행적을 따라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해 가지고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특권을 갖추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아들 자리로 끌러올리려니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세계적인 아들, 세계적인 양자를 대해서 지금까지 사탄이 이 세상을 주관한 것은 하나님의 눈시울이 아플 수 있고 마음이 아픈 자리에서 주관한 것이지만, 비록 양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주관하더라도 '오냐' 하고 주인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주인의 아들 대신 주관해주니 세상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것은 성공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을 중심삼고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언제 종의 자리를 완전히 청산하고 넘어 갔는가. 전부 다 뒤집어 놓고, 엎어 놓고, 눌러 놓으면 '왜 이래?' 하고 반발할 것입니다. 내가 이 원칙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도, 팔이고 눈이고 코고 할 것 없이 전부 잘라 버리고 뽑아 버리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봅니다. 손가락 하나를 자르면 참을는지 모르지만 생명까지 전부 다 잘라 버리면 틀림없이 반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자세가 몇 도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종과 양자의 다른점

그 다음에 양자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옛날 종의 시대에는 명령이 없으면 행동하지 못했지만 양자시대에는 명령이 없이도 양부모를 따라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과 양자가 다른 것입니다. 양자의 특권을 받으면, 양부모가 가는 곳에 따라가려고 할 때 '야, 오지 마라'고 하더라도 '양자로서 아버지께 효도해야 할 텐데 왜 못 가요?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하면서 양부모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종은 주인이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돼요? 따라갈 수 있어요? 못 따라 가는 것입니다. 못 따라간다는 말은 반드시 못 갈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갈 길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그 갈 길이 생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갈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 구원역사입니다.

그러면 무슨 자격을 갖추어야 양자의 자리에 나가느냐? 종의 자격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양자의 자격을 갖추고 아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야 됩니다. 아들이 울면 울고, 아들이 웃으면 웃어야 되는 거라구요. 아들이 우는데 '왜 우니, 왜 울어' 해 가지고는 양자가 못 됩니다.

양자와 종이 다른 것은, 종은 일을 중심삼고 주종관계에 있지만, 양자는 생활을 중심삼고 주종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종은 일을 중심삼고 주종관계가 절대적이지만, 양자는 생활을 중심삼고 주종관계가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아들을 중심삼고 아들이 하는 대로 흉내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 복귀라 하는 것입니다.

양자가 직계 아들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가인은 아벨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고, 가라면 가고,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 복종하면 자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과 하나님 사이에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접할 수 있는 자리에 오려니 양자와 아들의 관계에서 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로 보면 잃어버린 가인 복귀의 터전입니다.

하나님 대신 예수와 천사장 대신 가인이 형제가 되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느냐? 아담을 중심삼고 천사장이, 아담이 하자는 대로, 아담이 좋아하는 대로, 아담이 기뻐하는 대로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양자의 자리에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양자는 생활을 중심삼고는 절대적 위치입니다. 생활을 중심삼고는 그렇지만, 양자의 입장은 직계 아들의 입장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이 양자가 직계의 아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자끼리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은 아들이요 우리는 양자인데, 양자와 아들이 생활환경에 있어서는 하나되었지만 최후에는 어디에서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남자끼리는 안 된다 이거예요. 돼요, 안 돼요? 안 되지요? 이 때에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때 쓰이기 위해서 여자는 6천년간 고생한 것입니다. 요때까지는 여자가 고생하는 거라구요. 지지리 고생하는 거라구요. 요즘 미스 코리아니, 미스 유니버스니 하고 미스라는 말이 대단히 법석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런 때가 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가 직계의 아들권으로 들어가려면 어떠한 길을 통해야 되느냐? 그 길은 여자를 앞에 내세우고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결혼을 하는 데는 누구의 딸하고 결혼하느냐? 하나님의 딸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신부를 찾아오는 데는 어떤 신부를 찾아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딸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의 딸이냐 하면 사탄세계의 종의 딸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충성을 한 종으로서 양자의 자격을 갖춰 생활적인 면에서 오시는 아들을 완전히 모셔서 죽음의 자리에서, 혹은 어려운 자리에서 먼저 희생하고 제물될 수 있는 종이자 양자와 같은 입장에 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딸과 심정적 유대를 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탄세계에 종의 입장에 있던 사람은 하나님과 사돈이 되는 것입니다. 사돈이 되는 거라구요. 사돈이 되면 그 권한이 하나님과 대등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돈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결혼하여 태어난 아들딸은 양자세계의 외손자 외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보게 되면 손자 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손자 손녀라는 입장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가 된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의 할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도 손자 손녀를 중심삼고 안팎으로 같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부부관계를 보게 되면, 사탄편 딸과 하늘편 아들의 결합이니 이 두 집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편 가정도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상대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딸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데 결혼했다는 것은 벌써 딸의 입장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딸의 입장을 인정받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자는 딸의 입장, 아내의 입장, 어머니의 입장입니다. 남자는 아들의 입장, 신랑의 입장, 아버지의 입장입니다. 결국 무엇이 하나되어야 되느냐? 여자와 남자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늘편에는 남자뿐이고, 사탄편에는 여자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이 연결되어야 하느냐? 남자와 여자가 연결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신부가 이와 같은 입장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늘이 터닦아 놓은 여자는 없는 것입니다. 찾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종은 2대를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이 2대를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됩니다. 종의 시대에 있어서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양자시대에 있어서 생활면에서 절대적인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2대의 환경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자녀와 일체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땅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일을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처음 한민족이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결국 무엇이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본다면 하나님을 주체로 하고 나는 종의 자리에 있는데, 나는 이렇게 돌아서서 사탄세계와 하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사탄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 되어 있으면 안 되기에 완전히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서 가지고 하나님과 주종관계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리 뼛골이 녹아지는 일을 시키더라도 힘들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주인으로부터 참으로 훌륭한 종이라는 인정을 받아 가지고 주인이 자기의 가정을 전부 다 맡기고 가더라도 이의가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관리 주관하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주인이 종을 종으로서만 취급하지 않습니다. 양자의 기준권내에 인정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는 주인하고만 하나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중심 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활적인 권내에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그가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그가 어려워하면 그 어려움을 같이하면서 일체감을 갖고 공동적인 생활권에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된 충신이면 충신, 가인이면 가인된 그 사람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섭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그 가정이 어느 가정이냐? 틀림없이 요셉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요셉이 책임을 다 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책임자를 평하는 사람은 사탄편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볼 때, 오늘 집합한 우리들, 통일교회 식구들은 왜 모였느냐? 여러분이 여기에 모여 왔을 때는 그렇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여기에는 아들도 있고 양자도 있고 종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의 법도가 있는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것을 망각해 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엄연히 소생권, 장성권, 완성권이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오게 되면 어떤 자리냐 하면 종의 자리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가르쳐 주는데 종보다는 참부모가 좋거든요. 그래서 '너는 누구냐' 할 때, '나는 참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종의 자리를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통일교회 신도들에게는 이런 전통의 자리가 안 잡혔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를 넘어서 양자의 자리에 나가려면, 즉 가인의 권한을 가지고 아들을 모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려면 그냥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제물도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구요. 법도에 치리받아 절대 순응하는 입장에서 드려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거쳐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종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 이거예요. 종의 입장에서는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의가 없다구요.

이것이 확실하게 결정이 안 났기 때문에, 이것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의 책임자들에 대해서 불평이 많았습니다. 책임자들이 자기를 못살게 명령을 한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못살게 하면 못살게 할수록,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개척해 주기 위해 하늘이 보낸 사자라고 믿는다면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관을 가지고 나가면 누구도 그런 사람을 평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평할 자신이 있으려면 세계를 대해서 이겨야 됩니다. 세계를 대해 본이 되었느냐? 하나님의 입증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하고 평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장의 후손된 인간은 평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평하는 사람은 사탄편입니다. 사탄의 산 실체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원리가 그래요, 원리가. 만약 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원칙적인 과정을 다 통과했느냐? 통과하지 않고 '난 싫어. 종은 싫어. 양자도 싫어. 아들의 자리로 직접 가야지' 한다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으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왜 고생을 했겠어요? 그럴 수 없으니까 지긋지긋한 감옥살이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왜? 종들이 해야 할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생님은 지긋지긋한 고생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고생할 것을 대신하는 거라구요.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현정권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천운이 감돌아 들어오기 때문에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그 누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못하면 천운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다 버렸다 할 수 있는 한 때를 남겨 주자 이겁니다. 우리가 지금 남편을 버리고, 아들딸을 버리고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라 때문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버렸다 하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한다구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라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다시 세계를 중심삼고 버려야 할 때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세계를 잃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찾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은 어렵다고 불평할 수 없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간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슨 책임을 졌으니까 본부에서 전부 해결해 주겠지' 하는 퇴폐적인 사상을 갖지 말라는 거예요. 본부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 본부에서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는 것이지, 도와주게 되어 있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집을 가지고 있는 패들은 도와줘서는 안 됩니다. 이런 원칙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아직까지 선생님이 명령도 안 해봤고, 실천도 안 해봤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니만큼 그런 견지에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넘겨 주려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걸고 한번 들이치는 시험을 해야 할 고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축복가정은 일체의 생활을 뜻을 위해 해야

여러분은 왜 여기에 모여 왔느냐? 종의 도리를 완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종의 도리를 완결하기 위한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무자비하게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타락한 후손으로서, 양자의 특권의 혜택을 주어 하나님의 아들과 인연맺게 함으로써 하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 일신의 어떠한 희생으로도 얻을 수 없는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며 이 길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개인이 종으로서 모든 것을 버리고 양자로서 죽을 놀음을 다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 목적은 뭐냐? 그 목적은 가정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가정을 가질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언제 천사장에게 상대의 필요성을 부여했더랬느냐 이거예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의 사랑도 그런 거라구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씨를 바꿔 버려 사탄세계의 흔적도 없게끔 청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거예요.

축복? 통일교회의 축복은 선생님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런 걸 얘기해서 뭘 해요. 사탄세계의 흔적이 선생님에게 오면 올수록 폐단이 벌어집니다. 원칙에 이탈되는 심각한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싹둑싹둑 썰어서 독수리 밥을 만들어도 하늘은 아깝지 않다는 거예요. 그걸 생각해 보세요.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걸어 놓고 판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축복받은 사람들은 일체의 생활이 뜻을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하늘의 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런 가정을 보기 위한 하늘의 뜻이 아니지 않느냐 이거예요.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억천만세의 하나님의 내심에 근심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운 천국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천사장이 앞에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이 이것을 감당하지 못할 때는 고생을 해야 될 것입니다. 고생을 달갑게 받지 않을 때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본 관입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피곤이 어디 있어요? 피로해도 가야 되는 거라구요. 싫어도 웃으면서 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하면, 원수의 딸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두 나라가 싸우고 있는데 한 나라의 공주가 적대국 왕자에게 붙들려 가 있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처한 공주의 눈에는 전부가 원수로 보이는 것입니다. 왕자를 보게 되면, 그는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다 죽이고 자기 나라 백성들까지 다 잡아 죽인 나라의 괴수인 셈인데, 그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윤리적인 면에서 여자의 절개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떻게 될 것이냐? 원수라는 생각이 없이 아버지 어머니의 원수인 왕자와 정을 맺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이 불효자식이예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에 있어서는 그것이 열녀가 되는 것입니다. 공주가 원수세계에 와서 열녀가 됐다 할 때는, 원수세계의 어머니 아버지, 그 일가 친척이 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책임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그런 남편을 위해서 사랑할 수 있겠느냐? 그런 자리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의 가정을 모두 빼앗아다가 다 파산시켜 버렸다는 거예요. 물질이니 자식이니 전부 다 망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걸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세례 요한과 같이 '그는 흥해야 되겠고 나는 망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것을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보관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다가는 모두 빼앗기고 탕진하겠기에 하나님 앞에 보관시켜 놓았다가 때가 이르게 되면 이자를 몇십 배 몇백 배 계산해서 받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번에 축복가정을 동원한 데에 대해서 뭐 이러고 저러고 불평하는 사람은 전부 다 걸립니다. 그것은 종으로서의 책임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동원하는 데 있어서 동원 안 한 사람은 축복가정이 아니라고 썩 금을 그어 버릴 것입니다. 확실히 내가 이야기가요. 금을 그어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땅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 합니다. 양자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직계 아들과 생활적인 면에서 일치점을 가져야 되는데, 선생님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할 때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면 원리가 틀린 것이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 명령이 무엇이냐에 따라 목적점을 두고 자기의 일체 생애를 걸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짐하고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길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게 되면 어떠한 폐단이 있느냐? 선생님 앞에 조건을 내세워 '내가 이렇게 했으니 이렇게 해주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질서를 여러분이 세워야 합니다. 지금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뭘 해야 될 것이냐? 종으로서 합격하고 양자로서 합격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심정적 인연을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한 도수가 극에 달하게 될 때, 삼위기대의 가정기반을 중심삼고 충성을 다했다 할 때는 축복가정을 하늘을 대신한 아들과 딸로 여기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겠다 하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 길을 진정한 의미에서 갔느냐? 가지 못했을 때는 사랑도 못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더라도 자식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새로운 전통으로 삼고, 우리의 문화의 기원으로 삼고, 우리의 생활의 밑천으로 삼아서 우리 나라와 세계에 길이길이 남길 수 있게 될 때, 하늘나라는 건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전통적 사상을 세우는 데 있어서 우리가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그러한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씨족을 대신하여 씨족의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체 누구나 다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 외에는 생각도 하지 말고,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현재의 입장입니다. 더욱이나 축복받은 가정은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여자 동원한 다음에는 남자를 동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를 동원한 다음에는 아들딸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자들이 동원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걸 알고 일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생활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심정문제에 들어가서도 절대 복종하여 하늘 법도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자기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남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자기 아들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어머니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러고저러고 하시기 전에는 자기 아들딸을 위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주라고 말도 못 합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했으니 우리 아들딸은…'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은 질색입니다. 이번 축복 때도 그렇습니다. 어머니들은 절대 얼씬하지 말라구요. 얼씬하는 날에는 조건에 더 걸리는 것입니다. 눈 밖에 나는 거라구요. 도리어 그것이 화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느냐구요. 축복의 동기가 누구예요? 그런 것은 엄격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러한 전통적 기원을 생활적인 면에서 청산짓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모범적인 실체가 되라

여기 있는 축복가정들은 아들딸을 키우면서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나오셨다는 거라구요. 언제 어머니에게 맡겨서 키워 봤어요? 여러분도 그 놀음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 길이 원칙적으로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에 충성을 더하고, 말없는 가운데서 종의 도리, 양자의 도리를 거쳐가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그렇습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이 대할 수 있는 길이 점점 멀어집니다. 이번에도 지구장을 모두 철폐해 버렸어요. 지구장을 빼버렸다 이거예요. 앞으로 본부에도 부장을 없애고, 공장에도 부장 과장을 없애 버리려고 합니다. 그건 왜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열번 지구장을 만나는 것보다 한 번 선생님 만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백번 지구장을 만나는 것보다 한 번 본부의 소식을 직접 듣는 것이 낫다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부패했다고 공인하고 있는 이런 때에 좀더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가 가만 안 있겠다 이거예요. 이런 것들하고 싸워야 되겠다 이거예요.

지금 내가 언론기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74년까지는 만들 것입니다. 그때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다운 여당과 참다운 야당을 규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거 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천대받고 참아 나온 것은 그때를 거룩하게 맞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나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을 때까지 수난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수난으로 출발한 것이 영광으로 열매가 맺히게 될 때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세워야 할 여러분이 데데하게 살아서 되겠어요? 그런 녀석들은 선생님이 안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라구요.

지금까지 본부에서는 할 수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썼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본부에서는 부장이든 뭣이든 경력 없는 사람들이 맡아서 일을 했지만 앞으로는 경력 없는 사람은 인사이동을 시킬 것입니다.

언젠가 그런 때가 반드시 올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협조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로서 여러분을 여기에 불러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모범적인 실체가 되어 나라를 대해서, 친척을 대해서, 가정을 대해서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실체가 되지 않고는 여러분이 여기에 모였다 해도 책임을 못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본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 서 있는 아들은 아직까지 때가 되기 전의 어떠한 권한이라든가 어떠한 가치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종의 탈을 벗지 못한 인류를 바라볼 적마다 아직까지 한국가도 양자의 권을 대하지 못한 사실을 보게 될 때, 아들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 불쌍한 자인 것을 잘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통일교회 신자들은 이 길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놓고 결판지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이 사실이 아닐 경우는 무자비하게 이 길을 끊고 돌아서야 되겠사옵고, 천성을 통하여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안 후에는 사지백체가 갈래갈래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고 남을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어려운 일을 서로가 피하고자 하는 무리를 하늘이 찾아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일만 찾아 맡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 나온다는 것을 아옵니다. 금번 인사조치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엿보았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바라는 사람, 자기가 더 편할 수 있는 자리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큰 책임을 맡게 될 때는 더 수고하고 눈물을 흘리며, 남 앞에 빚진 것을 갚아야 할 책임이 있고, 남이 모르는 가운데 수고의 대가를 치르면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책임이 큰 자리가 오면 올수록 머리를 숙이고 당신 앞에 스스로 겸손한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그런 자리를 자진해서 원하는 사람은 하늘이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주기 전에 원할 것이 아니라 원하기 전에 주는 그 자리를 찾아 나오신 하늘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자기가 무엇이라고 하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두어도 하늘이 청산지어 나오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그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때가 되기 전에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특성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백성과 세계 앞에 남겨 주고, 멋모르는 가운데 수난의 길을 홀로 책임지고 하늘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자신들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내가 뜻을 위해서 했다 하는 자리에 섰다면, 내 스스로가 가야할 종의 자리와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가정의 인연을 갖추고 지낼 수 있는 자리에서 했다 한다면, 그것이 자랑의 요건이 될 수 있으되, 그런 자리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입을 열어 자랑하거나 행동으로서 자기 자체를 나타내고자 하면 자기의 가정이 갈 수 있는 길을 막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하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드러날까봐 마음졸이며 가야 할 길이 복귀의 행각인 것을 저희들이 이제라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가정을 이루어 사위기대의 삼대상 목적을 중심삼은 천운을 따라 심정의 본연의 궤도를 갖추는 것이 우리의 타락한 인생으로서 최대의 소망이요, 목적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보다도, 세계보다도 이것을 먼저 갖추어야 하는 것이 타락한 저희 개인으로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점이요, 이것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 자기 자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원수의 참소의 조건과 사탄의 침범 요건이 남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나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 각자가 신앙 생활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임을 미처 몰랐사오니, 아버지, 이 아침에 이런 내용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안팎의 내용을 가리지 못한 채 저희들은 아내를 사랑하려 했고, 자식을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아버님, 60년대부터 67년도까지 7년노정이 있었습니다. 축복가정이면 누구나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었던 노정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아내와 남편이 하나되어야 하고,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이 원통스러운 역사적인 슬픔이 저희들이 가는 길 앞에 가로놓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능력과 힘을 가중시키시어 이 때에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아들딸이 되어 소망의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정성에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동정하는 터전을 남기고, 하늘의 인연을 따라 봉헌할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을 넓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저희 자신들이 스스로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개척해야 하는 것임을 미처 몰랐습니다.

눈물어린 마음으로 저희가 배고플 때 서러운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았사옵고, 저희가 어려울 때 혹은 억울하게 매를 맞을 때 거기서 아픈 것을 느끼고 눈물 흘릴 줄은 알았지만, 앞으로 닥칠 가정의 서러움과 가정의 매맞음이 있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자기 자체의 고통을 넘고 미래의 마음을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당신의 위로의 터전을 갖추어 당신 앞에 진정한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사위기대의 가정을 갖게 해 달라고, 현재의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하여 지니고, 현재의 모든 가치의 기준은 보다 높은 가치의 그때를 위하여 뿌리고 희생하고 희사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몰랐던 미욱한 자신임을 깨우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날 통일교단이 남아진 것은 그 누구의 공적의 터전으로 남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리가 가르쳐 주고 천운이 같이하여 준 인연을 따라서 남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위기대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삼대상 목적의 기원이 탄식의 한계선인 모든 한을 탕감할 수 있는 가정적 터전을 가려 나왔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되고,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됨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가정을 붙들고 당신 앞에서 애걸복걸 호소하게 되옵니다. 세계가 상처입을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현재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하늘세계를 건국하는 저희들이 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언제 저희가 이삭을 제단 위에 놓고 심각한 자리에서 칼을 뽑던 아브라함처럼 미래의 후손이 축복받을 수 있는 터전을 남기기 위해 자식을 제물로 바쳐 드림으로써 참된 실체로서 한스러운 것을 벗겠다고 몸부림친 때가 있었느냐고 자문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아내가 있으면, 부부끼리는 찢기고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위할 수 있는 길을 구축해 달라고 그 딸을 하늘 앞에 민족의 제단 앞에 바칠 수 있는 아들이 되었고, 그 남편을 그와 같은 자리에 세워 달라고 하는 딸이 되었는가 생각하게 될 때, 통일가에 그런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없다면 하늘의 서러움이 남아질 수 있는 통일가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은 그런 슬픔의 터전 위에 서는 가정이 되지 않기를 바라 왔습니다.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당신 앞에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개척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가정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명하신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지게 하신 당신의 은사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마음 졸이고 걸어온 길 앞에 당신의 저주의 한이 머물지 않은 것을 생각할수록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 금후에 가야 할 노정 앞에 가중된 시련과 복잡다단한 아시아의 정세가 한국에 와서 충돌하는 이 세계의 사조 가운데 헤쳐가야 할 복귀의 행각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게 되옵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와도 통일교회의 그 누구에게 그것을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이 이 자식의 마음이요, 이 자식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그러하거니와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따르는 무리들이 이대로 가는 길이 전통이고, 자기들이 가야 할 길인 줄 알까봐 이것이 제일 염려되옵니다. 책임을 못 하는 가정, 부부, 아들딸이 있으면 당신의 부끄러운 자신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땅을 걸고 그를 원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자신을 남겨 놓고는 원망도 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저희들은 당신 앞에 겸손해야 되겠고, 날이 가면 갈 수록 당신 앞에 말이 없어야 되겠고, 날이 가면 갈수록 부끄러운 얼굴로 당신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가중된 채찍이 있거든 나에게 가해 달라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그늘 아래 생애의 노정을 모두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후대에 광명한 후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가지고 죽어 가는 조상이 되겠다고 한다면, 이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사랑하시옵니까? 사랑하시거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사랑하시거든 통일교회 교인들이 당신 앞에 가야 할 종의 도리와 양자의 도리를 다하는 어려운 길에서 절대 순종할 수 있고 기꺼이 제물을 바칠 수 있게끔 감동감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는 아버님의 수천년 슬픈 역사와 더불어 인연을 갖고 있지만, 당신께서는 저희들에게 언제 변명을 해보셨습니까? 언제 당당히 공판정에 서 가지고 저희들을 판단해 보셨사옵니까? 이러한 아들딸들의 선악을 분별하여 판단하지 못하신 당신이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너무나 뻔뻔한 것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스스로 잘라 버려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남을 판단하는 데 눈이 밝아졌고 남을 비판하는 데 입이 빠른 것을 보게 되옵니다. 이런 무리에게는 하늘의 운세가 떠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무리는 때가 되면 다 떨어질 것이고, 다 흘러가 버릴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수고한 터전 위에서 참다운 하나의 열매를 거두시옵소서. 평화로운 세계의 봄날을 맞이하여 옥토 위에 마음놓고 참다운 씨를 뿌리고 거둘 수 있는 행복의 세계가 오기를 당신은 바라고 계신 것을 알고 있사오며, 부디부디 통일가를 움직이고 지도하는 이 자식만이라도 그 누가 뭐라 하든 쓰러질 수 없고, 그 말에 움직일 수 없는 자식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환경을 따라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되겠고, 환경을 거쳐 당신의 수고함을 보여 줘야 할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도, 내일도, 금년도, 내년도, 남아 있는 생애의 후반기도 당신을 위해 갈 것을 이미 각오했사오니, 당신의 동정하는 마음이 이 통일교회에 남아지기를 바라옵니다. 동정하는 마음이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에게 남아지지 말고 통일교회에 남아지고, 그 동정의 마음이 이 나라에 남아지고, 통일교회 미래의 뜻 앞에 남아지기를 바라옵니다.

수고로우신 아버지, 언제 기쁠 수 있는 한 날을 아버지와 더불어 맞이할 수 있고, 언제 아버지와 더불어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을 채찍질하여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이 당신께 있는 것을 느낄 적마다 고통스러운 당신을 따라가는 사람은 고독단신임을 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멀지 않은 시대에 아버지의 나라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망의 절정이 파동치는 물결이 높아지고, 태풍이 불어오거든 말없이 자기 정체를 감추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그치고 밝은 햇빛이 비치거든 자기 정체를 갖추고 망망대해를 힘차게 저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자랑은 묻혀 가는 것이요, 내일의 자랑은 희망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내일의 소망과 내일의 자랑을 위하여 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그것을 위하여 모인 무리들인 것을 스스로 알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남이야 가든 말든 스스로의 갈 길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무엇을 결정짓기 위하여 걷는 걸음걸이는 살 길이 없는 것이요, 남을 위하여 희생의 길을 가고자 다짐하고 걸어가는 걸음걸이에는 동이 터 온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꺾어지고 스스로 막히는 것이요, 남을 드러내고 남을 위해서 희생할 때는 스스로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사옵고,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고 했사오니, 지금 통일교회에 그럴 수 있는 운세가 저희들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수십 평생의 노정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보게 될 때, 제가 맹세했던 것 중에 아직까지 해결짓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알고 있사옵고, 당신 앞에 중요한 문제를 해결지어야 할 심각한 시기가 1971년도와 1972년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분단된 남북의 운명을 해결지어야 할 때도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을 중심삼고 해야 할 사명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목을 붙안고 밤을 새워 통곡하면서 당신의 심정적 인연만을 붙들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불쌍한 한국을 생각하시거든 불쌍한 한국에서 이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통일교회의 이 아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아버지가 불쌍한 이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시고 불쌍한 이 아들의 운명을 염려하시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요, 이 세계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무리들, 남모르는 한 순간, 남모르는 수난길 가운데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고, 남모르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도 당신편에 서기 위한 것이요, 당신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었사오니, 잘 알고 가는 외로운 이 무리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그럴 때 당신이 위로하던 손길이 그들에게도 같이하여 주실 줄 알고 있사오니, 복받기를 바라거든 화받기를 바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고, 편안하기를 바라거든 수난길을 극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되이 자기 각자를 밝히고 진정한 의미에서 종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고 아들딸의 복을 받겠다고 하는 자들은 도둑놈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려는 것은 강도와 절도이오며, 이러한 패들은 통일교회에 플러스되는 패들이 아니라 통일교회를 뜯어 가는 패요,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뜻을 몰랐으면 모르거니와 이왕지사 뜻을 알고 있는 이상 말없이 하늘의 축복이라는 은사를 가지고 당신의 슬픔이나 걱정을 염려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겠다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소망을 남기는 자리에서 말없이 지키고 가겠다고 할 줄 아는 무리로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거룩한 날을 당신이 지키시옵고, 이날을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내일의 허락하신 천국 앞에 부름받은 아들딸로서 충성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고, 당신과 더불어 스스로 내일의 결의를 다시한 번 자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말씀 거룩하신 참부모님의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집합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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