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에게 이 귀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참석한 자녀들은 일찌기 당신 앞에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맹세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자녀들이옵니다. 이제 겸손히 아버지 앞에 엎드려서 지난날에 스스로 일하겠다고 다짐했던 '나'와 오늘에 처해 있는 '나'와 금후의 뜻 앞에 보장받아야 할 '나'를 다시 한 번 직시하면서, 올바른 판정과 지도를 받기를 바라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겸손한 마음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이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으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어서 아버지와 더불어 뜻이 원하는 그곳을 향하여 보람있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것이 참다운 제물로서 아버지 앞에 봉헌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재삼 바라옵나이다.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사정과 소원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주로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생활하기 때문에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의 나는 하늘이 같이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를 위주하는 생활과 상치되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아버지를 발견할 수도 없고 상봉할 수도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타락된 세상에서 생애노정을 더듬어 가는 저희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아버지 앞에 얼마나 용서 받지 못할 생활이며 환경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저희들을 아버지께서는 천번 만번이라도 복귀해 주고 싶어하며, 이 길을 떠나기 싫어하는 저희들을 당신은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끌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갖고 나왔사옵니다. 이런 수고 앞에 인간이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당신의 서러움이 가중되어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이 시간 저희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자신의 울타리를 초월하지 못한 자신임을 발견할 적마다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부족한 모습이란 것을 알고. 그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직고할 수 있는 겸손한 소년 소녀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이 땅 위에 살고있는 중생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여기 부복한 자녀 자녀들을, 아버지여, 굽어살피시옵소서.

진정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에 마음과 마음이 부딪칠 수 있는 인연을 맺지 않고는 이 땅에서 당신을 의지하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삼천만 민중 가운데 그래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잊은 적이 없사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당신의 소원이 크면 클수록 당신은 저희들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버지께서 오늘날 인류를 대신하여 허덕여 나오셨고 인간의 무지를 극복해 주기 위하여 몸부림쳐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 앞에 효녀가 되고 효자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있사옵거든 천만배의 복을 베푸시옵고, 후대하신 당신의 은사로써 가호하여 주시옵고 옹호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하고 영광된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고, 다시는 사탄에게 몸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저희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믿던 친구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요, 생애를 맹세하고 생활을 같이하는 부부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요, 나 자신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의 생명을 어디에 귀의하고 살겠사옵니까? 내 힘과 내 의지와 내 굳센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들의 대답이지만, 허무로 출발하여 허무로 종말을 맞이하는 인생행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의 모든 것을 염려하시는 아버님을 발견하고 저희의 생명을 아버님께 귀의하고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님 앞에 바치고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모습은 불행해 보일지라도 행복한 사람인 것을 저희들 스스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소수의 자녀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저희들의 생명을 아버지의 것으로서 몽땅 바쳐야 되겠습니다. 아무개 아무개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으로서 봉헌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해방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힘차고 보람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은은한 가운데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가로막고, 아버지의 딸이 기다렸고 아들이 기다렸노라며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된 모습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생애노정을 지나왔지만 그런 한때를 갖지 못한 용납받기 어렵고 불효막심한 자리에 있는 자신 들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기쁨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영광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영광된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천만번 수난의 고빗길과 그 누구도 품지 못하였던 억천만세의 한의 심정을 품고 다짐하면서 찾아 오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찾고 있는 영광의 아버지는 슬픔의 길을 거쳐오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또, 아버님의 영광과 승리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마땅한 도리인 것을 알게 될 때에, 뜻을 알고 가는 저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려 자신의 부족한 것을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곳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진리의 집이온데 이와 같이 소수의 무리가 모여서 당신을 부르고 있사옵니다. 비록 소수의 무리일지라도 이들 중에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고, 당신이 여기를 넘어갈 수 없고 당신이 여기를 지나갈 수 없는 기준에 사무친 한 사람의 충신이 나오기를 원한 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사람이 이들 중에 없게 될 때는 이 서울을 바라보시는 당신의 시선 앞에 슬픔의 안개가 가로막힌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스스로 아버지를 대하여 광명의 빛이 되고,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런 하나의 생명의 등불이 되어야 할 자신인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아버지 앞에 빛내기 위하여 모진 수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충효의 도리를 찾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에 이곳 서울을 향하여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아버지, 크신 은사를 베푸시옵소서. 저희들은 죽더라도 한 곳에서 죽고 가더라도 한 목적의 일치점을 향하여 가야 할 운명길에 섰사오니 당신의 슬픔을 저희의 슬픔으로, 당신의 기름을 저희의 기쁨으로, 당신의 싸움터를 저희의 싸움터로 인계받아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어 잊혀지지 않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오랜만에 만난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온전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말을 믿고 그 누구의 모양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깊고 높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그의 음성과 그의 가르침과 그의 마음의 터전을 그리워하면서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사는 자녀들이 되게 크신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에도 당신의 거룩하심과 긍휼과 자비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혹시 처음 온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면 오로지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생명의 젖을 먹이시어 아니 생각할래야 아니 생각할 수 없고,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마음의 솟구침과 마음의 그리움이 그 일신을 점령하게 하시어서, 당신의 거룩한 동산에 같이 참여할 수 있게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금년도에 저희들 개개인에게 맡겨진 책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거룩히 이 시간을, 아버지여, 은혜로써 받아 주시옵소서.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우리의 책임'이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치와 관계와 책임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소속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혹은 어머니면 어머니, 아버지면 아버지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맡겨진 바의 책임을 우리는 다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부모의 아들로서 장래를 바라보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에게는 학생으로서의 위치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위치가 없다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치가 없고, 그러한 관계와 인연 가운데에서 어떠한 책임을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 모든 위치가 뚜렷하고 그 위치를 중심 삼아 가지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질서 있게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될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위치가 결정되어 있고, 그 환경이 구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관계되고 인연되어진 모든 주위의 환경이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동행하지 못하고 반대될 수 있는 엇갈린 환경이 될 때에는,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행로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한 사회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어떠한 단체면 단체에서도 자기가 처하여 있는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직장에 있어서도 과면 과의 과장이라든가 계장, 그 밖의 과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위치에 있어서 자기가 전체 목적과 관계되어 있는 인연과 내용 면에서 자기의 책임이 결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 인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분야가 높아지고 그 범위가 넓어질 것입니다. 그 분야가 높아짐에 따라서 그 위치도 높아질 것이며 그 책임 사항의 범위도 넓어질 것입니다.

그 관계와 인연을 잘 맺어 가지고 자기가 바라는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후 좌우 상하가 잘 협조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면 그는 책임 수행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그가 가는 길에는 엇갈린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를 중심 삼고 볼 때, 주권자는 그 나라의 최고의 책임자입니다. 그렇지만 최고의 책임자라고 해서 홀로 그 나라의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행정 조직의 제반 부서와 전부다 인연을 맺어서 한 조직체로서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조직을 구성하는 모든 부서가 전체가 지향하는 목적을 중심 삼아 전후 좌우 상하에서 협조할 수 있다 할진대 그 나라는 발전하고, 정책수립자나 주권자가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그 결과는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관계되고 인연되어 있는 제반 부서들이 정책의 방향 앞에 상충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그 나라는 후퇴하는 것이요, 그 주권자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일상 생활을 미루어 보나 국가의 정세를 미루어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정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주권자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있어서도 민주와 공산의 양 진영을 중심 삼고 볼 때, 양 진영의 대표자 입장에 있는 주권자가 있다 할진대, 그 주권자는 비록 한 나라에 국한된 주권자이지만 그 인연이나 관계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수행하는 정책이라는 것은 그 국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적인 최고의 지도자가 계획하는 모든 정책은 자기네 한 나라에 국한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방대하고 전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기에, 여러 국가와 상충되지 않고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주권자의 국가에 있어서도 목적 달성이 가능하고, 전세계 인류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책으로 제시한 것이 제반 여건들과 서로 상충적인 입장이 될 때에는 난행을 거듭함으로 말미암아 세계 국가들이 바라는 기준 앞에서 제거되는 것이요,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국가의 입장에서 곤경에 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개 국가의 입장에서까지도 곤경에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서도 관계되어 지는 전후 좌우의 인연이, 책임을 진 사람에게 그 책임 수행여부를 좌우시키는 동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오늘날 우리와 관계되어 있는 세계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통일교회는 어떤 위치와 사명을 갖고 있는가

​인간세계도 그러하지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역사시대를 발판으로 하여 그 과정을 거쳐오면서 섭리적인 뜻을 수행하고 있다 할진대,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절대적 주권을 중심삼아 전체 세계를 섭리할 관을 세우고 그 관을 중심삼고 반드시 그 관과 더불어, 목적을 수행하는 데 관계될 수 있는 수많은 종교, 수많은 양심적인 인사들과 단체를 지상에서 협조할 수 있게끔 관계와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관계되어진 모든 기관들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하나의 목적 앞에 협조 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출 것을 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한 그 뜻 앞에 배치될 수 있는 환경이 오늘날 이 지상에 벌어지게 된다면 한 국가의 중심 존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역시 고난과 난항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있고 불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가운데서도 여러 종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종파로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 통일교회가 오늘날 섭리도상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졌다 할진대, 어떠한 위치에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통일교회 선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중심존재 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을 중심삼아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상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떠한 관계,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 통일교회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게 될 때는 그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믿고 나가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어떠한 위치에 있고, 그 위치에서 어떠한 섭리적 내용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떠한 이념과 더불어 결속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중심삼아 여러분이 어떠한 중심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그것이 오늘날 수많은 종족들이 중심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그 기준이 우위에 있느냐 그 반대의 자리에 있느냐, 또는 전진적인 자리에 있느냐 후퇴하는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쁨과 슬픔도 가려서 느껴야

사람은 누구나 '나' 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언제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피해를 받고, '나'라는 존재가 상처를 당하는 자리로 가게 된다면 얼굴을 붉히는 것입니다. 불행을 느끼고 불만을 느끼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반드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슬퍼하는 것도 '나' 중심한 것이요, 기뻐하는 것도 '나'를 중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뻐하는 그 기쁨이 어떤 자리에서의 기쁨이냐, 슬퍼하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의 슬픔이냐 하는 문제도 천태만상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을 다 버리고라도 국가와 민족의 해방, 혹은 부흥을 목적으로 삼고 그런 국가의 환경이 나타나게 될 때에 그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그렇지 않은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슬퍼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의 가정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자기 주위의 누가 자기와 관계되어 있어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나라의 슬픔을 염려하여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가지 사실을 놓고도 입장과 처지를 달리하여 여러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각 부처(部處)를 중심삼고 볼 때, 한 가지 일을 놓고 외무부면 외무부, 내무부면 내무부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부처가 있는가 하던 슬퍼할 수 있는 부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슬퍼하는 것도 슬퍼할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기의 발전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슬픔을 느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일생을 종결짓는 최후의 자리에 부딪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전부 다 슬퍼하는 것도 자기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도 자기를 중심삼고 기뻐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슬퍼하는 것이 어떤 자리에서 슬퍼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개인이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없어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부모를 여의어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데도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슬픔 중에서도 가려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쁨도 전부 다 같은 기쁨이 아닙니다. 그 기쁨 가운데는 천태만상으로 엇갈릴 수 있는 사연들이 엉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한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엉켜 있는 그 슬픔과 기쁨이 내 생사 문제를 좌우하고, 내 인격 문제를 결판지을 수 있는 기쁨이 되어 있고, 슬픔이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기쁜 길도 슬픈 길도 가려서 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는데 있어서는 지금 당장 기쁜 것만 바라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10년이 걸려서 이룰 수 있는 일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 할 때, 10년을 채워야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의 절반도 안 되어 가지고 자기가 기쁠 수 있는 어떠한 상대를 만났다고 해서 중도에서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면, 10년 수도(修道) 의 결과로써 찾아야 할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했다면 10년 동안 이룰 악물고 모든 것을 절제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결의를 다짐하여 자신이 그런 환경에 흡수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찾아지는 저급한 기쁨에 동화되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괴로움을 느껴야 할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도 목적을 뚜렷이 세워 행해야

하루 생활에 있어서 사랑하는 아내가 회사면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재수라는 것이 어떤 기준의 재수냐 이겁니다. 재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떠한 자리에서, 어떠한 인연을 중심삼고 재수가 있기를 바라느냐? 그 범위는 넓은 것입니다. 개인 개인끼리, 친구 친구끼리 만나서 서로서로가 서러운 것, 서로서로가 외로운 것, 서로서로가 미비한 것을 보충함으로써 기쁨을 느끼게 되어 재수있는 것이냐? 혹은 집이 곤궁하여 한 달 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데 이것이 해결됨으로써 재수있는 것이냐? 이런 것은 전부다 흘러가 버리는 재수입니다. 그것이 내 일생과 더불어, 부부가 공히 천년만년 기쁨으로서 지닐 수 있는 재수냐 하게 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내가 오늘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면 그것이 무엇을 두고 한 말이냐? 흘려 버리는 입장에서 항시 하는 투로 말하였다면 그 말한 것이 당장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앞에 있어서 도움이 못 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서, 혹은 대한민국의 한 가장으로서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 할진대 어떤 자리에서 재수가 있기를 바랄것이냐? 높은 자리, 귀한 자리, 보다 가치있는 자리, 회사면 회사 전체에서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 회사를 넘어 나라가 찬양할 수 있는 자리, 어느 자리에서 재수가 있기를 바라느냐고 묻게 될 때,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나라가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 남편이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고 대답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자기 남편이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기를 그 아내가 진심으로 바라느냐 할 때, 안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속담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생노정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목적을 뚜렷이 세워 가지고 행해야만 그 목적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다고 해서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목적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아무리 선행을 해서 기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선행을 하되 한 나라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가 가야 할 길은 이런 길이다. 나라의 백성들은 이렇게 지도해야 된다'는 철두철미한 정신에 입각해서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 그 나라의 국토면 국토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들이는 자리에서 선행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오늘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내일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낮에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밤에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특성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개개인의 됨됨이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마다 바라는 인생의 목적도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목적이 있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는 이상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려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목적하는 바의 가치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사람이 완전하기를 바라고, 최고의 가치있는 자리에서 열매맺히기를 원하시지, 어떠한 환경의 영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미급한 자리에 서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 아니냐? 완전무결한 하나의 결실을 바라는 하늘의 바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먹고, 사는 것도 그것을 위해 살고, 활동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활동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것을 중심삼고 좋아하게 된다면, 한날의 기쁨은 자기의 생활과 더불어 흘러가는 기쁨이 되지 않고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슬픔을 만일 당한다면 그것은 나로 말미암아 당하는 슬픔이 아니라 뜻이 지향하는 자리에서 상충되어 당하는 슬픔이요, 그 슬픔의 동기는 내가 아니라 나라이기 때문에, 그 슬픔으로 인하여 내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재차 결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극이 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뜻을 품고 그 목적을 위해 정성들여 가는 생활 일체를 그 목적에 귀일시키고 일치시키고자 싸워 나가는 노정, 노력해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통하여 내일의 희망과 내일의 새로운 목적을 촉진시키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그 슬픔을 내일의 희망과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터전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마음

여러분들이 사람을 대해서 '이 사람은 좋아. 저 사람은 나빠' 하고 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좋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평한 말이냐? 어떠한 위치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 한 말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땐 그 기준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그와 같이 막연한 기준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아침에도 헤헤, 저녁에도 헤헤하면서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그 좋다는 것이 일관된 목적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면 잠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쁨을 그려 간들 그 일생의 끝에 남을 것이 무엇일 것이냐 이겁니다. 허황된 결과밖에 가져올 수 없는 처량한 인생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화된 내가 되려면 어떠한 자리에서 나를 주장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개 집 딸이요, 아무개 집 아들인데 그 아무개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중심삼고 존중시하는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누가 한마디 비평만 해도 그 자체로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그 기분 나빠하는 것이 어떤 자리에서 기분 나빠하는 것이냐에 따라서 천태만상으로 가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 통일교회 선생님이 오신다는데 한번 가 보세'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아, 그래 ? 한번 가보자' 해 가지고 나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왔을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것을 좋아하지요?「예」 큰 것을 좋아하는데 큰 것이 될 때까지는 간단히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것이 그냥 그대로 자기 앞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삼천리 반도라 하는데 대한민국이 커요, 작아요? 대한민국이 한 만리만 돼도 내가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여러분 그래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제일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역적이요, 국적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 그럴 수 있겠느냐고 항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만 제일 커지고 자기는 꼴찌 되기를 바라요? 대한민국이 커지는 데는 자기가 꼭대기에 서 가지고 커지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요게 인간이라구요. 이렇게 멋들어지게 바라고 있는데 자신은 똥구덩이 같은 데 있으니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기분 나빠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제일이 되기를 바라지만 자기를 중심삼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 갖고 있는 녀석은 때려죽여도 말 못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게 이상하지 않아요? 이게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기 주제가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안 되어 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게 얄궂은 일이지요.

한국의 가을은 참 멋진 것입니다. 한국의 가을은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청청한 가을 하늘은 높고 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마음은 그보다 더 높기를 바라고 더 넓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나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여러분이 나를 닮았구만요. (웃음) 여러분이 나를 닮았는지 내가 여러분을 닮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닮긴 닮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

그런데 대관절 사람이 누구를 닮아서 이 모양이냐? 아버지를 닮았지, 그러면 네 아버지는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냐?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꾸 올라가면 인간의 종지조상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조상은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됐어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이 있어 가지고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작품은 그것을 만드는 작가가 그렇게 만들겠다고 하는 작품에 대한 구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렇잖아요? 아마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를 닮게 마련이냐? 엄마 아빠를 닮게 마련입니다. 혹 그 부모를 닮지 않았다면 몇 대조상의 성품이 숨겨져 있다가 유전법칙에 의해서 어머니 아버지의 성품과 합하여서 한 인간이 생겨난 것이지 아무 근원도 없는 무관한 자리에서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혼자에 의해 자신이 되어 가는 줄 알겠지만 이미 여러분 조상세계의 양반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 수천 대(代)의 조상들을 나쁘게 얘기하면 안 되겠으니 사장님이라고 합시다. 그 수많은 사장을 종합한 총사장으로서 남아진 것이 여러분 개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 좋지요? 이렇게 멋있는 것이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뭐와 같으냐 하면, 수천 수만 대의 조상들의 갖가지의 모양, 자격, 가치들을 모아 놓은 것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전시품들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여러분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이 세계 앞에 '우리의 후손이 이렇다' 하며 전시품으로 세워 놓은 것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봤습니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천지간에 남자와 여자는 많디 많지만, 그 개인 자체를 두고 볼 때 자기 선조들의 모양을 전체로 총합해 가지고 열매를 맺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당이나 영계가 있다면 여러분의 선조들의 영이 영계에 가서 죽지 않고 딱 버티고 앉아서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조상들이 자기의 아들딸, 손자, 손녀가 잘나기를 바라겠어요, 못나기를 바라겠어요?「잘나기를 바랍니다」 잘나기를 바라는데 얼마나 잘나기를 바라겠습니까? 세계에서 제일 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이라면 세계 대통령만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세계 대통령보다더 높은 분이 있다면 그분 앞에 제일 사랑받는 손자, 손녀, 혹은 손자 손녀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 손자 손녀를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좋아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주름살도 늘고 해서 손도 얼굴도 쭈글쭈글해지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집니다. 거기에다 할아버지들은 수염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늙은 사람들은 몸에서 냄새가 납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손자 손녀가 귀엽다고 볼을 비비고 어루만지고 하면 손자 손녀는 싫다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빵까지 사주며 손자 손녀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도 이런 감정을 느껴 왔어요. 여러분들은 못 느껴 봤어요? 손자 손녀는 싫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따라다니며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 후손들을 미워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좋아 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여러분 선조들이 여러분을 좋아하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상이 세상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살인 강도라면 여러분의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럴 때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 조상 가운데 잘난 조상이 있으면 자랑하지요? 국민학교 아이들이나 유치원 아이들도 박대통령이 자기의 선조라면 '야 ! 지금 박씨가 대통령하기 때문에 박씨가 제일이다' 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한 치의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종씨가 대통령 한다고 '우리 대통령'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 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하여튼 여러분은 누구를 닮았어요? 누구 닮기는 누구 닮아요. 종지조상을 닮았지요. 여기에 어떤 조각 작품이나 문학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은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할 때 작가의 마음속에 구상한 것을 닮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계를 자기수중에 넣고 싶어하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작품은 그런 소원을 가진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건 여러분들이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부정을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때 좋아하고 나빠하는가

나도 사실은 하나님 부르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면 안 부를래야 안 부를 수 없게 돼서 부르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따져 보고, 기도해 보고, 쪼개 보고, 맛보고, 던져 보고, 들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분석해 보고 해서 그분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나라고 해서 애초 부터 종교 지도자가 되려고 마음먹고 나온 게 아니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는 성품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덮어놓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왜 하나님을 좋아하느냐?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반면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싫어하느냐? 절대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결과의 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어떨 때 좋아하느냐? 마음이 딱 맞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날 때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돼요? 백년 이내에 죽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있으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주체를 끌어 당기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역시 대상이 있으면 끌어 올 수 있는 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와 대상 관계가 없게 될 때에는 그러한 힘이 나와요?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남자면 남자로 태어날 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여기 젊은 남학생들, 그거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이런 문제를 따져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랐지만 그분은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주체와 대상의 인연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공동작용을 해서 이중의 목적이 결합하여 단일적인 주체면 주체, 대상이면 대상의 가치보다 더 높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여야 합니다. 힘을 통하여서 그 목적을 가능하게 하려니 먼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이 있게 되면 그 결과는 보다 더 큰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힘의 세계는 그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상응과 상충에 의해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상충은 상응하는 것을 파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응되는 것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우주의 근본이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되어 가지고 공산당이 변증법이니 뭐니 하면서 지금까지 세계를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어려운 말이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열이라는 진정한 사랑을 받았으면 그걸 떼어놓고 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습니까?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한 개체가 작아지면 동시에 다른 한 개체는 그와 반대로 되기 때문에 보호 육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이러한 작용을 하는 것은 보다 이상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큰 세계의 가중된 목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을 국민 각자가 갖고 있어야 되지요? 친구끼리 무슨 일을 하려면 단합된 친구애를 중심삼고야 되지요? 마찬가지로 세계가 잘되려면 세계 인류가 박애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요?「사랑요」사랑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이 없으면 힘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실감나는 얘기 할까요? 여러분이 혼자 가만히 있을때 힘이 나옵니까? 혼자 밥 먹고 배가 툭 불러 가지고 기분이 좋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때 힘이 나와요? 혼자서 힘이 나온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운동한다고 할 때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를 걸어놓고 운동하기 때문에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분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자기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내가 기분이 나쁘고 기분이 좋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내가 침범을 당할 때에는 기분이 나쁜 것이고, 내가 이익을 볼 때에는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면 기분이 나쁜 것이요, 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몸이 하자는 대로 하면 허사가 돼

여러분, 매일같이 서울 명동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오늘 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한 가지라도 자기한테 플러스되고, 이익이 되겠거니 하고 나오지 일전이라도 손해 보겠거니 하고 나오는 사람 있어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힘의 작용도 그렇습니다. 손해나는 일에는 절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원소의 이온결합 실험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플러스나 마이너스 이온이 있으면 거기에는 상대극을 띤 이온이면 무슨 이온이든지 다 결합될 것 같지만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게 되면 그 이온에 상대되는 이온만이 결합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터럭 같은 것 하나라도 이익이 되는게 있으면 싸악 가서 붙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사람도 그렇고 하나님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에 물질세계의 모든 분자 원자까지도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작용한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서로 만나 가지고 주고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양심이 작용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과학적인 논리를 뒷받침해 가지고 양심이 주체가 되느냐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양심이 작용했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말이예요, 없다는 말이예요?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주체는 누구냐?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지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남석이 북극에 가면 남극을 향해서 남극에 가면 북극을 향해서 작용을 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양심이 작용했다는 사실은 우리 양심이 주체적인 입장에 있든가 대상적인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찾아가는 데는 어떤 행복을 찾아갈 것이냐? '인간이 어떤 유형의 행복을 찾아가든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백년밖에 더 되나. 청춘시대라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데 젊을 때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놀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죽는 것이 그럴 듯한 인생이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했댔자 나중에 가면 모두가 허사예요.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몇해 안 가서 모든 것이 다 싫증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히피족이라는 말을 들어 봤죠? 선생님이 샌프란시스코에 가보니 젊디 젊은 녀석들이 미친 도깨비처럼 해 가지고 귀중한 시간을 그냥 허송세월로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녀석을 가꾸로 달아 가지고 궁둥이라도 한번 차 버리고 싶지만 미국에서는 그것도 자유라고 해서 자유를 침범하면 기분 나빠한다는 것입니다. 그 녀석들한테는 나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뚱이의 행락을 따라 좋다는 대로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게 몇 년 가느냐? 얼마 안 가서 끝장난다는 것입니다. 돌아가려니 막막하고 가자니 길이 막히고….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이 땅 위에서 나쁜 행동을 하게 되면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점점 자기를 후퇴시키고 자기의 모든 가치를 소모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중심한 주체와 대상은 언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은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찾기 어렵기 때문에 위대하고 높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주체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상이 되지 않고는 주체를 찾지 못하고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 주체를 만나는 날에는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거기에서 흘러 나오는 행복감은 무한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아마 하나님이 계신다면 딱 모셔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이예요, 마음에서 나오는 욕망이예요?「마음에서 나온 욕망입니다」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라는 것입니다. 몸뚱이에서 그런 욕망이 나올 게 뭐 있어요? 몸뚱이야 그저 남의 등을 쳐서라도 자기 좋은 것 먹으면 되고, 좋은 것 입으면 되고, 좋은 데서 살면 되는 거라구요. 그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사람의 욕심은 하나님하고 친구지간이 되고 싶고, 친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집 안방에다 모셔 놓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방에다 모셔 놓아도 안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보물 상자가 있지요? 그 보물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처녀들, 묻겠어요, 안 묻겠어요?「묻겠습니다」 처녀들이 묻겠다면 남자는 물어 볼 게 없는 거라구요. (웃음) 그렇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있긴 뭐가 있어 ? 나에게는 영원히 영원히 주고도 남을 수 있고, 영원히 영원히 받고도 남을 수 있는 인간의 생사문제가 달려 있는 사랑이 있지'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걸 갖고 싶죠? 그걸 점령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 껍데기야 뭐 미국으로 가져가든 천당에 가져가든 좋다는 것입니다. 그걸 점령한 다음에는 먹고 자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다 이루거든 그때사 실컷 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잠 한번 실컷 못 자 봤습니다. 자는 것도 그때 가서 실컷 자야 되는 것입니다. 두부를 만들 때 간수를 잘못 넣게 되면 순두부도 못 되고 풀어집니다. 그와 같이 풀어져서 실컷 한번 자 보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그때 가서 실컷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하고? 하나님하고 실컷 먹고, 하나님하고 실컷 좋아하고, 하나님하고 실컷 노래부르고, 하나님하고 실컷 춤추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도 한번 안 춰 봤는데 벌거벗고 춤춘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때 가서 하나님 앞에서 진짜 벌거벗고 춤춰 보자는 것입니다. 춤추더라도 하나님이 좋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웃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 보고 통일교회 선생님이 됐다면 벌써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을 쳤을 것입니다. 이때까지 내가 얼마나 핍박을 받았습니까? 생각해 보면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납니다. 올해 내 나이가 쉰 둘인데 어떤 사람들은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쉰 둘이 안 돼 보인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마음만은 젊습니다. 여기 양윤영 할머니도 마음은 아직까지 열 다섯 이지요? 그렇지요?「예」 그거 보라구요. 아무리 육신이 늙었어도 지금 시집간다고 하면 스무 살 총각한테 시집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요? 솔직이 얘기해 보세요. 그럴 것입니다. (웃음)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합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사랑의 상대를 찾고자 하면 오늘밤에도 어디 가든지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중심삼고 상대를 찾고자 하면 천년을 공들여도 만나기 힘든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정성을 다 들여야 됩니다.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천배 만배 가치있게 배가 시켜서 투입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내 마음이 주체와 좋아할 수 있는 인연으로 맺어진 자리가 어디냐? 그런 은혜의 자리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이마를 맞대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어 사랑을 논의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서만 대상과 상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는 천상천하에 있어서 무척 고귀한 것입니다.

그 사랑 가운데서 하나된 마음을 가지고 천하만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은 이미 다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서 생각 했던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 같은 분들은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진리를 터득했던 것입니다. 그런 안경을 쓰고 보게 되면 요 분필도 천년 들여다봐도 끝이 없는 희열이 사무치는 고귀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서 남긴 한 장의 손수건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것이 비록 오십 원짜리밖에 안 되지만 죽을 때까지 그것을 바라보고 생의 기쁨을 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자기 생애보다 더 귀한 거라구요. 인간의 사랑의 조건물로 제시된 한 장의 손수건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의 불변의 조건을 가진 것이야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이걸 갖게 되면 춤을 안 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잘났는지는 세월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욕을 먹고도 가만히 있으니까 통일교회가 없어진 줄 알지만 자꾸자꾸 커 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세상의 좋은 것은 전부다 우리가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적질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지 말래도 저절로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좋은 과실이 익어 가지고 냄새를 피우게 되면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냄새를 맡고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들어오면 홀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총각들도 한번 맛만 보게 되면 대번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홀린다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대상과 몸뚱이의 행복과 몸뚱이의 안식처는 바로 눈앞에 펼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대상과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나온 거예요.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세상을 붙안고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걸 다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상대적 절대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자리에서 기뻐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일생을 두고 가고 싶은 길이라면 내가 모든 정성을 다 들여 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온갖 정력을 다 들여 가지고 귀한 작품을 만들어 놓았는데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게 됐다면 그 작품을 버리고 피난 가겠습니까, 가지고 가겠습니까? 죽는 자리에서도 그것을 꼭 붙들고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이고 영원하고 능력이 많은 분이신데 그런 분이 작품을 만드는데 한 백년쯤 지나면 싫증을 느껴 '에이 싫다' 하면서 집어 던질 정도로 만들었겠습니까?

사랑은 영원하고 참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얘기할 때, '일생을 사랑할 수 있는 그대여' 그래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그대여' 그래요?「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그대여 그럽니다」 그러는 거라구요. 그런데 하나님이 한 백년쯤 살다가 집어 던져 버리려고 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자가 사랑하는 대상도 절대적입니다. 영원한 속성을 지닌 그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고 싶겠어요, 영원히 사랑하고 싶지 않겠어요?「영원히 사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그 사랑의 법도를 따라 영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암만 얘기해도 모자랍니다. 왜 그래야 된다는 걸 알겠어요? 사랑은 영원하게 마련이라구요. 사랑하는 남편하고 한 백년쯤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 있어요?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은 사랑에서만 나오는 거라구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을 보면 만물 가운데 최고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 되기를 바라고, 제일 되는 데는 자기를 제일 높은 자리에 세워 가지고 제일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서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또 내려가지도 못할 것을 뭐 하려고 그러는 거냐? 절대적인 주체 앞에 있어서의 플러스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제일 높은 자리에 혼자 계신다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도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제일 꼭대기에 떡 버티고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웃음) 어떤 부자집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그 나라의 주권자이자 세계의 대통령이 떡 되었다고 합시다. 혼자 영광과 행복과 권세를 쥐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혼자 떡 방에 버티고 앉아 가지고 '허허' 하고 웃는다면 그 사람을 보고 뭐라고 그래요? 미쳤다고 그러지요?「예」 그건 볼장 다 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독단신 독수공방하면서도 아주 조그만 종이에다가 바늘 끝으로 쓸수밖에 없는 글자를 써넣고 혼자 그걸 바라보고 있다면 그때는 미쳤어요, 안 미쳤어요?「안 미쳤어요」 아무리 작은 대상이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자 앞에 세워진 대상이라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남자로 태어나서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이 고독단신으로 살아 가며 세계적인 박사가 되어 노벨상을 한 열개씩 받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박사는 못 되고 농부가 되더라도 아내와 같이 자식을 낳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어요?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우리 총각들, 어떤 길을 택할 거예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 박사가 있는 것이지, 아내와 자식을 부정하고 박사 바라는 녀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목석같은 녀석은 죽어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공부해서 뭘 해요? 처녀들이 대학교에 왜 가요? 대학교에 가서 훌륭하게 되어 가지고 남자를 끌고 다니고 타고 다니겠어요? 대학교에 가서 학박사가 되겠다는 것은 그런 상대될 수 있는 훌륭한 남자를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결과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 안 해도 여자는 시집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독단신으로 30세가 넘어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겨 가지고 무슨 학사증, 박사증을 가지고서 좋다고 히죽 웃는 사람은 망신살이 뻗쳤다는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신수가 편하고 기쁘기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필요하겠지요?「예」 그러면 그 대상이 이 천지 간에 원숭이겠어요, 사람이겠어요? 사람이겠지요? 인간에게는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가 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인간은 상대적 절대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상대적 절대자이고 하나님은 주체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래야 조화가 벌어지고 행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새로이 인식해야 할 기독교인들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지고지존하신 분이고 죽을 죄인도 용서하신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대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러니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새로운 신앙의 혁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앞으로 공자보다 나을지 모르고 예수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 낫다는 게 아니라구요. 나을지 모른다 이겁니다. 거 기분 나빠하지 말라구요. (웃음) 그래서 기성교회에서 문 예수란 소문이 나왔는지 모르지요. 나는 예수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내가 가르치면 가르쳤지 내가 예수한테 배우려고 하지 않아요. 내가 예수 선생 되고 싶지 예수 제자 되고 싶지 않아요. 왜 그러냐? 예수가 선생이 라면 그 제자가 선생보다 나은 제자가 되어야 그 선생도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낮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자식이 그 아버지보다 잘생겨야 돼요, 못생겨야 돼요?「잘생겨야 됩니다」 잘생긴 것을 시기한다면 그 아버지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잘난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망하라고 해도 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을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이라고 야단이예요. 이단이 뭐예요? 그들은 일단이고 우리는 이단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욕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일단이니까 이단인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니까 뭐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야단입니다. 그렇지만 골목에 가서 다스리게 될 때는 찔러 놓게 되면 국물도 없지요 뭐. 세상이 아무렇든 버티면서 싸워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동안 고생 좀 했습니다. 아주머니들, 고생해 가지고 늙었지만 말이예요, 나중에는 연구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발전하고 자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가을이 됐다 하더라도 봄을 맞을 준비를 안 하는 것입니다. 봄을 맞을 준비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지면 봄맞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오고 설한풍이 불어와도 그것을 견뎌야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듯이 우리에게 아무리 큰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문제가 아니예요. 사지에 생명의 닻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스스로 부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습니까, 양자가 되고 싶습니까? 진짜 아들딸들이 되고 싶습니까?「진짜 아들 딸들이 되고 싶습니다」 얼굴은 못생겼어도 모두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물어 볼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물어 보는 사람이 유치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으면 아들딸 중에서도 맏딸 맏아들이 될 거예요, 막내딸 막내아들이 될 거예요?「맏이가 될거예요」 자 그러면 맏이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의 책임을 대신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내가 살기 전에 동생을 살려 주고 내가 죽더라도 동생을 살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상의 그누구도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는 완전한 맏딸이 되는 것이요, 맏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던 예수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그 책임을 짊어져야 되는데 '나는 싫소' 하고 책임전가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완전한 맏딸과 완전한 맏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천지간에 그러한 분이 딱 한 분 오셨는데 그분이 어떠한 분이냐 하면 30세가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잘하는 것 없이 그저 나무나 베어다가 툭툭 깎는 까뀌질이나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분은 딴 사람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야!' 하는 이런 마음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얼마만큼 했겠습니까? 한번 결심했다고 그 마음에 자리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결심이 예수의 마음에 자리 잡히기까지는 얼마나 몰두했겠느냐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악마가 그런 생각을 못 하게끔 혼란을 주고, 주위 환경이 부정하고, 잡아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붙든 그 하나님은 내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써 입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아들은 아들인데 독생자다' 한 것입니다. 아들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 말이라구요.

그러면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몽땅 책임지시겠다는 말이예요, 안 지시겠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겠다는 입장이예요, 안 하겠다는 입장이예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야 이놈아 ! 네가 하나님의 독생자야.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타락된 이 세계를 어디 한번 구해 봐라.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지 한번 당해 봐라!' 하면서 갖은 시험과 핍박을 가했습니다. 죽음길이었지만 예수님은 초지일관이었습니다. '죽음아 오너라 ! 생명을 위협하는 창칼로 가로막더라도 나는 이 뜻길을 간다. 내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승리할 것이다. 나 이상 수고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한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장자다' 하는 그런 입장에서 생명을 바치고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창으로 가슴을 찌른 그 원수들에 대해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 34)"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기도냐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로서 얼마나 멋있는 일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남자가 생각을 하고 활동에 옮기려면 생사를 초월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남자들은 시시하게 계집애들을 데리고 산으로 놀러 다닙니다. 그런 녀석들은 나중에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 나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녀석들이라는 것입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죽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뜻을 품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뜻 앞에 반대적인 역사를 하면 '죽어라' 이겁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두고 볼 때 예수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를 통해서는 그 내용을 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못살게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길은 생명이 엇갈리는 길이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생명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맏아들 맏딸이 되라

그러면 맏딸 맏아들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손을 딱 떼고 '너 혼자 해라. 맏딸 맏아들이 되게 해주마' 할 때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기 중구교인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내리십시오. 이런 건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먼젓번 지구장이 선생님 앞에 와서 '선생님, 중구교회는 큰일났습니다. 선생님,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했습니다. 지구장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대답해 보십시오? 옳고 그른 것을 가리고 넘어가야지, 잘했어요, 못했어요?「못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맏딸 맏아들 되겠어요?「못 됩니다」 못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남의 신세를 지려 하고 남한테 의지하려고 손을 벌리느냐 말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맨손으로 나왔지만 남의 신세를 지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신세를 지우면 지웠지 내가 신세를 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는 통일교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젊은 녀석들 보면 정신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복을 줘도 안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이 이런 말을 듣고 기분 나빠도 할수없는 것입니다. 욕을 해도 할 수 없어요. 욕하는 사람이 나쁘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단단히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길을 가다가도 누가 싸움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가만히 못 배깁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옳고 그른 것은 판결지어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구장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언제 한번 지구장이 여자들 궁둥이를 발길로 차면서 내몰아 봤습니까? 한번도 안 그래 봤죠? 그럴 때는 여자들은 고집이 있어야 합니다. '지구장 나오소' 해 가지고 끌고 다녀야 합니다. 싫다고 해도 끌고 다녀야 교회가 발전되는 것입니다. 아들 중에 맏아들이 되고 딸 중에 맏딸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같은 입장에서 아들의 사명을 다하고 딸의 사명을 다했을 때 하나님은 상속권을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그 상속권은 맏아들 맏딸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됩니다. 야곱은 지혜로왔습니다. 어물 어물하지 않고 형보다 먼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어물어물하다 가는 손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합동결혼식 할 때 이번에는 한 2백 50명의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처녀 총각을 앞에 세워 놓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세 사람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남자는 이런 성격이고, 네 성격은 이렇기 때문에 요런 성격은 맞고 이런 성격은 안 맞는다 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짝을 바꾸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생님은 나를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서 대답을 못 합니다. 그럴 때는 사람이 용단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빨리 서둘러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판단이 늦게 되면 국물도 없이 다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선생님 눈치를 살살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선생님은 맞다고 생각하실까, 안 맞다고 생각하실까를 생각하면서 선생님한테 꼬리를 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먼저 물어 보는 것입니다. '너 저 사람이 좋으냐'고 물으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책임지고 해주십시오' 하는데 사실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기분 나빠서 그러는지 좋아서 그러는지를 분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싫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영락없이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너는 요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만나야 되고 이러한 성격이기 때문에 저런 사람을 만나야 된다고 결판을 지어 줍니다. 그러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낫게 된다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것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 무엇을 물을 것인가 하는 것을 십년 전부터 준비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리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한테 주어진 것을 처리를 못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준비를 하는 총각 처녀가 축복받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상대를 결정해 주면 당사자한테는 괜찮은 타입인데도 싫다고 꺼드럭거립니다. 그 다음에 해주는 사람은 전 사람보다 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른 사람을 해주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싫다고 하면 그때는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혼이 무슨 경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선생님은 그런 걸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일단 축복식장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결정해 주게 되면 그대로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싫다고 하다가 선생님한테 잘못 걸리면 늙은이든 젊은이든 선생님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마음은 좋을 땐 한정없이 좋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눈을 보십시오. 어떠한가? 잘못되었을 땐 추호도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러므로 이왕 되려면 하나님 맏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시집을 못 가더라도 맏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맏딸이 먼저 시집을 가 버리면 작은 딸이 시집을 갈 수 있습니까?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을 먼저 시집 장가를 다 보내 놓고 맏딸과 맏아들은 맨 나중에 시집가고 장가를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을 사더라도 동생들의 집을 먼저 사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너희들이 합동해서 내 집을 사주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그는 영영토록 그 집안의 맏아들 맏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의 원칙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게 되면 그것은 어떠한 판단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자리에서 모든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내가 되느냐? 우주의 중심적인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 앞에 있어서 맏아들의 사명을 다하고 맏딸의 사명을 다했다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고생과 시련을 각오하라

그러려면 그가 가는 길에 핍박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눈물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중상모략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원수의 화살이 안 날아올소냐? 그가 가는 앞길에 함정이 없을소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해 있는 어떤 한 나라가 망할 즈음 비운의 천사 가운데 나타난 그 어려운 고비 이상의 길이 내 앞길에 첩첩 태산준령처럼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기의 팔자소관으로 알고 '나는 할수없이 이 길을 안 가면 안 된다' 하며 맞이해야 합니다. 팔자타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팔자를 울면서 맞지 말고 기쁨으로 맞이하여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불평불만에는 행복이 없는 것이요, 만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동네에 이북에서 피난 온 부부가 동네의 한 모퉁이에 한 칸의 방을 마련하여 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은 두 사람이 누우면 딱 맞는 그런 방에서 살면서도, 그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복으로 알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대상이 되고, 또 할아버지를 보면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면 내일도 편안하십시오' 이러면서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산다면 그 동네의 화제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지내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못사는 사람, 불행한 사람이 와서 의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네 부부는 무엇이 그렇게 좋길래 매일 싱글벙글 웃고 사느냐고 물어 볼 것입니다. 그때 '불평과 불만 가운데는 행복과 만족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천국이 벌어지고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모든 것이 성사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웃으며 살기로 한 것입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도 맞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길이 내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감사하게 맞아야 합니다. 내가 열 번 죽어야 하는데 이 한번으로서 넘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열번 죽을 길을 이 한번으로써 탕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감옥에 참 많이 갔다 왔습니다. 일본놈의 감옥으로부터 공산당의 감옥에까지 구경을 안한 데가 없습니다. 감옥에 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웃음)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 내가 기합도 줄 줄 아는 것입니다. 일본놈들에게는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하여 다시 못 오게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잡으면 반드시 기합을 줄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전진하는 데 있어서 기성교회가 아무리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해도 낙심이나 후퇴할 우리 통일교인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참 재미있었고 극적인 장면과 스릴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지간에도 장난을 해야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점잔빼고 앉아서 고리타분한 얘기나 하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간간이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30세 전에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내 손에 걸리는 날에는 죽도록 고생만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으면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가방이나 들어 주는 시시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 처음 왔지만 선생님은 잔칫집에서 초대하는 것을 제일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남에게 신세를 지우는 잔치를 해서 오라고 초대하면 했지 잔칫집에서 초대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충신과 효자가 가는 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길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오셨는데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두고두고 해 오셨는데 우리 인생은 몇십 배 몇백 배의 수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신이 가는 길은 무서운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충신의 이름을 갖고 나서는 사람은 하늘을 위해 살아야 충신이란 칭호를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효자의 가는 길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먹고, 내가 보는 것도 그것을 위해 보고, 내가 말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말하고, 내가 행동하는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슬픔과 눈물의 길일지라도 천상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가야 할 그 길을 대신 맡아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의 길을 가로 막고서 나는 땅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또 다시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어떤 사람이 비웃고, 어떤 나라가 배반하고, 어떤 무리가 공격한다 하더라도 그 길을 향해서 내가 가지 못한 것이 문제요, 찾지 못한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오직 그 문제만이 남아진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가지고 나아가게 되면, 그는 천상세계의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갈 것이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 교주란 사람의 주장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종교의 길

여러분들이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조상들을 전부 불러 가지고, 그중에 선한 조상이 있으면 선한 조상들을 불러 가지고 물어 보세요. '당신은 내 앞에 있어서 둘도 없는 선한 조상이요, 영광된 자리에 있는 선한 조상이라고 하기 전에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있었고,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주권이 있었으며.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백성이 있었습니까? 여러분들이 태어난 그 나라가 아니요, 그 주권이 아니요, 그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장해 주고 하나님이 입증해 줄 수 있는 그 나라와 그 주권과 그 백성을 사랑해 보았습니까? 그런 자리에 서 봤소? 또,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선의 부모를 만나 봤습니까? 하고 물어 보게 될 때, 그 조상들은 대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이 세울 수 있는 이상적인 선의 부모를 만나 봤고,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로서 칭찬을 받아 보았느냐' 할 때….

조상이 찾지 못하였던 그 나라를 어디서 찾을 것이며, 조상이 사랑하지 못한 그 백성을 어디서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겠으며, 조상이 찾지 못한 그 주권을 어디 가서 되찾을 수 있겠느냐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인류가 한 목적을 위해 공히 찾아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공동적으로 성사시켜야 할 책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돌리고 그런데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정성들여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나라가 아니요, 미국도 그 나라가 아니요, 소련도 그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역사과정에 있어서 전생애를 거쳐 나오면서 하나의 이상세계를 모색해 나왔지만, 마음이 그리워할 수 있는 본향땅을 중심삼고 선의 부모, 선의 가정, 선의 국가, 선의 나라, 선의 세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조상들이 역사 이래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책임을 지고 그런 자리로 나왔지만 그것을 책임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약30억 인간들이 살고있는 이 땅 위에서,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본향의 형제와 본향의 친척과 본향의 종족을 사랑할 수 있는 배경을 가졌느냐 하면, 아무도 그 배경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향땅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본향의 나라를 갖지 못한 것이요, 그 나라를 못 가졌기에 본향의 세계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기 때문에 그 앞에는 천신만고의 수난의 길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어려움을 타파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하여 우리 인류가 바라고 하늘이 바랄 수 있는 참다운 선의 모체가 되고, 부모 중의 부모가 되고, 인류의 본이 되는 사랑의 도리를 해원하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하고, 서러움과 분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 더러운 피를 다 뽑아 버리고 새롭게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수난길과 핍박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참다운 나의 모습을 갖추어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백번 천번 죽음의 자리도 기쁨으로 맞이하여 가야 할 것이 우리 인생의 갈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타락된 세상에서 부정의 도리를 거치지 않고는 이 길을 찾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종교의 길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본향땅이 어디냐? 여러분이 태어난 이 땅은 본향땅이 아니라 원수의 땅이요, 원한의 땅이요, 슬픔의 땅이요, 사탄의 땅이요, 망국의 땅이기 때문에 그 땅 위에 세워진 민족도 원한의 민족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얽매인 쇠사슬을 벗어 던지고 나와서 내 개체적인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내 가정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찾아야 하고, 내 종족이, 내 민족이, 내 국가가, 그리고 온 세계가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된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철옹성과 같은 감옥에 갇힌 우리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헤치고 나가려고 애쓰지만 몸이 이것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 망하여 떨어져 나가는 것이 인생 행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그 길을 헤쳐 나가야 될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향땅을 찾고, 본연의 내 개체를 찾고 본연의 부모를 찾고, 본연의 내 형제를 찾고. 본연의 종족을 찾고, 본연의 민족을 찾고, 본연의 국가를 찾고 본연의 세계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엇이냐? 그 책임을 다했느냐?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장자 장녀가 되어서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순결한 사랑과 순결한 대상과 순결한 일체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상을 지녀 가지고 본향땅에서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친척을 거느리지 못했으니 친척을 거느려야 되고, 그 부모님과 더불어 그 나라에서 살지 못하였으니 그 나라를 거느려야 되고, 그 부모님과 더불어 그 세계에서 살지 못하였으니 그 세계를 거느려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일선 장병으로써 책임을 짊어지고 최선을 다하여서 다가오는 시련과 어려움 그리고 환란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제1해방, 제2해방, 제3, 제4, 제5, 제6, 제7, 제8의 해방 기준까지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책임을 지고 세상이 망하더라도 나는 망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해방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갈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장남 장녀의 위치입니다. 그런 위치에 처한 우리는 선의 본향땅과 선의 종족과 선의 나라와 선의 주권과 선의 세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전통을 세울때 주체가 없으면 내가 대신 주체가 되어야 하고, 대상이 없으면 내가 대상이 되어서 주체와 대상의 두 가지 일을 다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이루어 놓고 본연의 세계인 복귀된 천국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복귀되는 과정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만약 죽더라도 다시 부활해서 한을 풀 수 있도록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갖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가는 길은 싸움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싸움의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선 장병은 항상 적군과 총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자기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맡은 바 책임을 다짐해 가면서 개인으로서, 가정으로서, 종족으로서 국민으로서, 세계인으로서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의 맏아들 맏딸로서 손색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상천하에 고이 잠겨 있던 하늘의 모든 위업을 상속받기에 부끄럽지 않는 아들딸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만민의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짊어지고 모든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수난길도 내가 대신 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자기의 본분으로 알고 나로 하여금 만민이 탕감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그 역사적인 도의 길을 천상천하에 빛내면서 갈 수 있는 사람만이 통일신도로서 책임을 다 하고 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조건은 여기서부터 새로이 출발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루어 놓은 그 인연은 인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천상과 그리고 영원한 역사시대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가지고 개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해방의 표본으로서 만민이 충성할 수 있고 만민이 존경할 수 있는 기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당히 이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의 책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우리의 책임'이란 말이 이렇게 엄청난 역사와 더불어 상속되어졌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말씀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거기에는 아직도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탕감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한 자체의 남은 여생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 청춘 시절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남겨져 있는 십자가까지 지고 가겠다고, 지고 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 행하고 죽는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세 사람을 거두어들인다는 천리원칙을 따라 선한 세계의 판도를 넓혀 나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먼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하였고, 죽어서 번식시켜 나오는 작전을 하였고, 자기를 잃어버리고 전체를 찾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하겠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살리기 위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겠고, 세계는 세계를 위한 세계가 아니라 고귀한 생명의 기원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는 세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만우주의 생명길이 거기에 결부되게 될 때에 인간은 기쁨을 맞이할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비록 낮고 천한 몸이지만 높고 귀한 마음이 지향하는 그 배후에는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가로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마음의 고독함과 저희들이 하나의 친구가 되어서 마음이 지향하는 것에 행보를 맞추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외적인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 편이 되어서 가야 할 것이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마음의 주체와 대상의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으로 대상의 자리에 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밤을 지새워 가면서 아버지를 향하여 목놓아 호소할 수 있는 딸의 모습, 아들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는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의 눈물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중구지구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부디 허무한 욕망을 갖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허무한 모든 욕망은 일시에 지나가 버리는 구름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한한 본연의 가치를 그리워하면서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는 사모의 심정을 갖고 부모를 잃어 버린 고아의 신세를 면케 해주시기 위해 찾아 나선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 하신가를 마음속으로 깊이 느끼면서 아버지를 향하여 외치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아버지께서는 기필코 그를 버리지 않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그런 고귀한 인생을 자각하고 나선 승리의 아들딸이 되어야겠고, 지상 천상세계의 지도자이신 그분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영원한 자리로 찾아가야겠고, 모진 수난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길을 거슬러 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제 서야 할 위치는 하나님의 맏아들. 맏딸의 자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 개체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품에 안고 세계를 살리고 죽겠다는 마음으로 아들의 책임을 다하고 딸의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것은 세계적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넘고 비상하는 것이 아들딸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수난의 길이 저희의 앞 길을 가로막더라도 서로 앞을 다투어 나아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편안한 길을 찾아가는 무리들의 앞길은 언제 어디서나 막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가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 :33)"하는 역설적인 논리를 제시한 것은 천리의 원천이 현실과 상반되는 입장에 있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이 공적 노정에 있는 저희 통일교회 신도들은 이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을 가다가 우리의 힘이 부족하게 되면 아버지가 이끌어 주신다는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사정을 당신의 따사로운 손길로 보살펴 주시옵소서. 인생 길에 있어서 지친자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더욱더 보살펴 주시옵소서. 내일을 맞이해야 할 새로운 광명의 거룩한 햇빛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생 설계를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새 아침을 맞이하여 차고 넘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무한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개체로서 아버지를 숭배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이 세계가 저희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부르는 그 음성을 듣고 달려올 수 있는 저희들이 되고, 그 행로가 피곤할지라도 참고 극복하면서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허락하신 가운데 전한 모든 말씀을 통하여 한 걸음 더 아버지 앞에 다가설 수 있고. 아버지 심정에 품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이 세계의 인연 가운데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재삼 부탁드리오니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우리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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