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아버님! 이 아침은 1976년 3월 7일, 이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의 아침이옵니다. 당신의 영광과 자비와 은사가 온 천지에 충만하시옵소서.

흘러가는 역사과정의 한 생명으로 태어난 자기들의 모습을 존중시하는 인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오늘의 승리를 다짐하지만 거듭되는 실패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한숨을 계속하는 생애를 끌고 사는 모든 중생들을 긍휼히 생각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느 점에서 출발하였는지, 어느 과정을 거쳐가는지, 어떠한 종착점을 향하여 자기 스스로가 향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이 인류의 미래의 방향, 현재의 방향, 과거의 방향을 아시는 아버지여, 긍휼하신 당신의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는 이 모든 처참상을 정지시키고 당신의 존귀하심과 희망에 찬 승리의 한 세계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인간 스스로의 어떠한 교제나 관계나 그러한 모든 문제는 인간의 이상을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이미 보고 실험이 다 끝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초월하여, 절대자로서의 당신을 알고 신봉하는 그곳에서만 현실을 초월하고 미래의 개척적인 봉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단 하나의 인류에게 남아진 소망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아버지! 이와 같이 혼란된 세상 위에 아버지께서 통일교회를 세우셨사오니 가는 길이 험하다 하더라도 당신의 소원의 그 한 정상을 향하여 숨가쁘게 달리는 걸음을 멈추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핍박도, 그 누구의 가로막음도, 그 어떠한 나라와 어떤 권세자의 방해도 극복해 갈 수 있는 참다운 역사적인 하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의 정세를 염려하시옵소서. 세계 인류의 갈 방향을, 아버지, 지켜보아 주시옵소서. 망해서는 안 될 민족들이요, 망해서는 안 될 인류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의 지도 밑에서만이 가능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 끼리끼리의 모든 결과는 절망과 슬픔 만이 남아질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을 중심삼은 새로운 연결적인 인연의 사명을 그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가 바라는 하나의 사명으로 남아진, 하나의 분담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명과 분담을 오늘날 전세계 종교인들이 맡아 가지고 초민족적인 심정적 인연을 결탁하여 최후의 승리의 세계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인류 앞에 맡겨진 숙원의 한을 짊어지고 이 한계점을 해결해야 할 사명이 종교인들에게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모든 종교는 하나의 귀결점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마음과 몸과 모든 것을 바쳐, 신앙의 대상 앞에 그 모든 것을 굴복시키고 미래의 가치적인 스스로의 모습을 찾겠다는 불쌍한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고 환경을 극복하여 시련과 극복의 생활을 다짐하고 미래의 소망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따라 나가고, 개척해 나가는 무리가 신앙의 길을 가는 무리인 것을 알고 있사 오니, 그들 위에 긍휼의 마음을 가지시사 부디부디 망할 수 있는 처참한 인류상을 가로막을 수 있는 종교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닌 바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느끼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내가 누구를 향하여서 여기에 모였으며, 무엇을 찾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으며, 스스로 무엇을 발견해 가지고 내 일생에 가치적인 무엇을 심중에 남길 것이냐 하는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오니, 아버지여, 이 아침에 긍휼한 마음을 베푸시어 하늘로부터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년, 이제 오래지 않은 1976년 6월 1일을 중심삼고 저 미국 뉴욕 땅에서 양키 스타디움 대회를 계획하고 있사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그 한 곳을 향하여 집중적인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그 모든 성원의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으시옵고 부디부디 승리의 한 날을 기억하시사 당신이 찬양할 수 있는 기억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이달의 첫번째 맞는 안식일이오니 당신의 이름을 가지고 모이는 모든 모임 모임 위에, 모든 종교집단 위에, 모든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무한한 축복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계 해방의 기수로서 부끄럽지 않는 종교인의 남아진 책임을 다짐짓고 남을 수 있게끔 격려하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 무한하신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무엇인가 발전을 바라고, 그 무엇인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보다도 차원 높은 미래의 가치의 존재를 추구해 나가고 있고, 또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 인간은 보다 가치적인 존재를 추구하느냐

이와 같은 인류의 움직임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계속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렇게 나왔지만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들이 찾는 희망적인 그 이상세계는 언제 도래할 것이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던 당대의 환경이라든가 사회라든가 국가라든가 혹은 세계가 자기들이 흡족할만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세계상이 못 되었던 것을 볼 때, 마음으로는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미래의 보다 차원 높은 희망의 세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수많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역사시대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인간이 됐느냐? 왜 이렇게 미래의 이상을 추구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본래 인간 자체가 이상적인 출발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상적인 자리에서 출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상에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서 이상적인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했느냐? 본래 보다 가치적인 인간이 됐더라면 이상적인 자리에서 출발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상적인 출발을 하지 못하였던가?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떠한 인간이든지 마음속으로는 그렸는데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출발을 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때, 만일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고 인간을 지었다면 사랑하는 그 인류를 대해 가지고 이상적인 출발점에서 보다 차원 높은 행복의 곳으로 갈 수 있게끔 해줘야 할 텐데 그렇게 못한 연유가 어디에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서 상충상(相衝狀)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절대적인 이상의 중심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간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과정을 거쳐 가지고 반드시 출발의 한때를 바라고 있었던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이런 자리에 처하게 됐다면 그 하나님을 선한 하나님이라고 용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출발과 동시에 영원히 인간이 이와 같이 이상을 바라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이상적인 중심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이와 같이 선이라든가 이상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하는 것을 바랄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 과정을 지나는 가운데 있어서 이것을 아직까지 탈피하지 못한 결과에 떨어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종교에서 말하는 타락이라는 그런 용어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했다는 말을 적용하게 되면 이 모든 일이 전부 다 해결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타락권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기간을 넘어 가지고 이상적 출발을 할 수 있는, 이상의 한때를 맞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어떠한 인간이든지 그 기준을 극복하고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어가야 할 미래의 희망적인 본연의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 본양심적인 작용, 즉 본성의 작용은 수시로 그곳을 향해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남석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나의 플러스의 자력을 지닌 강력한 지남석이 있고, 하나의 또 다른 마이너스의 자력을 지닌 지남석이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그곳을 향하여 방향을 맞추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의 작용을 수시로 우리 마음속을 통해서, 혹은 본성의 바탕을 통해서 그런 작용을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일치된 우주적 전환기를 맞지 않고는 이상세계를 맞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잘못된 인간, 미완성에 머문 인간, 아직까지 완성을 바라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적인 존재를 바라고 있는 이런 우리 인류의 역사성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때,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의 전환시기를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어떠한 환경을 거치든지 개인적인 전환점이 필요한 것이고, 가정적인 전환점이 필요한 것이고, 혹은 민족, 국가, 세계적인 전환점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땅이 있으면 천지가 전환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상향을 아무리 추구했댔자 우리 인간은 그것을 맞을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전환점을 생각하게 될 때, 전환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전환할 수 없다, 반드시 중심존재를 통해서 전환해 나간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인간이 찾는 것은 무엇이냐? 가정이 있다면 가정의 중심 존재예요. 가정이 지금까지 곤궁에 빠져 있고, 혹은 불행에 처해 있게 될때, 그 가정의 중심존재가 일대 전환하는 방향을 취해 가지고 그곳에서 꾸준히 어떠한 목적을 달성해 나간다면, 거기에 새로운 가정으로서의 희망을 가져올 수 있는 기준이 생겨난다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가정이 그러하듯이 김씨면 김씨 문중,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백의민족(白衣民族)이면 백의민족,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민족이 전체에 있어서, 이 역사과정에 아직까지 전환해야 할 그런 타락권 내의 운명에 있다면 반드시 민족적인 전환시대가 있어야 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아시아면 아시아의 전지역을 두고 볼 때, 아시아에는 여러 혼합민족이 살고 있지만, 그 민족 민족이 공통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전환시대를 맞아야 이런 저개발적인 아시아 제국이 결국은 새로운 선진적 이상국가로 넘어갈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아시아적 전환시기가 있어야 돼요. 더 나아가서는 세계….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 이 혼란한 세계상을 여러분은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지금은 가치관의 몰락이니 탈이데올로기시대니 합니다. 이러한 현시대를 우리가 직시하게 될 때, 그야말로 절망이라는 표제를 걸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세계를 극복하든가 혹은 초월하든가 비약하든가 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사적인 전환시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민족뿐만이 아니고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미국 국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를 지도하는 소련이면 소련 자체도 역시 내적인 면에서 그러한 모든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그 자체에 있어서 비약적인 내일을 바라고 있는 것은 어떤 개인은 물론이요, 민족,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그러한 운명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전환시기가 도래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문제는 뭐냐? 개인의 전환점은 북을 향하고 있고, 민족의 전환점은 남을 향하고 있고, 세계의 전환점은 동을 향하고 있고, 천지의 전환점은 서를 향하고 있고, 그렇게 자기 멋대로 방향을 중심삼고 전환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개인적 전환, 민족적 전환, 혹은 세계적 전환, 천지의 전환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 속에도 나라는 개인이 있는 것이요, 우리 대한민국에도 개인을 확대시킨 수에 의해 가지고 이루어지고, 인류라는 것도 역시 개인이 연결된, 종합적인 민족들이 합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개인적 방향이라든가, 가정적 방향이라든가, 국가, 세계의 방향을 언제나 공통된 방향으로 귀결짓는 하나의 전환시기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그것이 맞춰져 있느냐? 그 방향이 맞춰져 가지고 가려질 수 있는 그런 길이 인류역사 과정에 나타났느냐?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혼란상을 품은 채로 개인적 시대를 거치고 가정적 시대, 종족, 민족, 국가적 시대를 거쳐 세계적 시대에 왔다 이거예요. 이 세계적 시대에 와 가지고 전환하는 데 있어서 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중심삼고 전환돼 가지고 이상세계로 그냥 그대로 비약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개인을 기반으로 하고 가정을 기초로 한 터전 위에 있어서의 세계, 거기에는 물론 민족 국가가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연결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아무리 세계시대라 하더라도 어느 한때에 종합해 가지고 전환시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개인이 연결되고, 가정이 연결되고, 민족이 연결되고, 국가,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 일치된 우주적인 전환시대가 어느 한때에 이 지구성에 나타나지 않고는 만민이 공동으로 바라는 이상적 세계는 우리가 맞이할 수 없다, 이렇게 결론지어지는 거예요. 그러한 가운데서 '중심존재와 역사적 전환시대'라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전체의 중심도 되는 중심존재가 있어야

그러면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 가지고 생각할 때, 과연 내 자신이, 내가 주인이냐 이거예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각기 자기 성씨(姓氏)를 가지고 자기를 주장하고 조금만 제 3자에게 푸대접을 받게 돼도 총공격해서 반박하고 싶은, 자기를 존중시하는 그 자기 자체가 도대체 나 자신의 주인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주인을 갖고 있어요? 내가 나라고 하지만 내게 주인이 없다 이거예요. 이건 뭐 방향도 없이 젊은 청춘시대, 중년시대, 혹은 노년시대의 일생을 통해서 방향이 없이 왔다갔다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인생은 행복의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영원을 보장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절대성을 보장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는 나 자신이 돼 있느냐? 다시 말하면, 나에게 있어서 영원히 주인 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느냐 이거예요. 이게 문제라구요.

문제는 국가의 주인이 누구누구라는 것보다도, 세계의 주인이 누구누구라는 것보다도, '나라를 대표하거나 세계를 대표하거나 혹은 하늘땅을 대표하거나 나 자신의 주인으로서 그 주인의 자리는 틀림없다' 이럴 수 있는 주인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개인적 주인이요, 가정적 주인이요, 종족적 주인이요, 민족적 주인이요, 국가적 주인이요, 세계적 주인이라는 거예요. 그 주인의 자리는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주인의 자리는 하나라는 거예요. 이걸 보게 되면 연결돼 있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즉, 중심이에요. 그 중심이라는 것은 개인적 중심도 되는 동시에 가정의 중심도 되고, 그다음에는 국가적 중심도 되는 동시에 세계의 중심도 되고 하늘땅의 중심도 되는 거예요.

여러분, 시계의 저 뎀뿌(テシプ;손목시계 따위의 유사의 속도를 조절 하는 톱니바퀴)라고 하지요? 요렇게 된 축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가는 거예요. 이건 얼마든지 길게 할 수 있어요. 직선이예요. 그렇잖아요? 가늘다면 하늘 끝까지 가늘지만 결국 끄트머리는 일점이예요, 일점. (칠판에 그림을 그려 놓고 말씀하심)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는 굵지만, 개인이 이것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조금만 틀리는 날에는 전체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24시간이면 24시간 자기가 존재하는 한, 작용하는 한 그것이 수직관계를 중심삼고 그 무엇에 받침이 돼 가지고 작용을 할 수 있다 하는 그 중심이 있어야 돼요. 그 중심이 작다고 해서 중심이 아니라고 할 수 없어요. 작은 것이 큰 것의 중심이요, 큰 것의 중심이 작은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조그마한 것이 중심인데, 이것이 하나의 중심도 되는 동시에 전체의 중심도 되는 거예요. 전체가 하나의 중심에 의존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말도 결국은 뭐냐 하면 중심존재가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 인간 존재라는 것이…. 내 자신 개인 개인이 겨루고 싶으냐? 개인 개인을 상대해 가지고 겨루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나라는 것이 여기에 서 있지만 우주와 겨루고 싶다, 내가 움직이면 우주가 움직인다, 이런 생각을 다 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누가 조금만 무시해도 뭐 혈안이 되어 가지고 생명을 걸고 투쟁을 하려고 합니다. 싸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이거예요. 자기의 가치를 우주와, 보다 차원 높은 그 무슨 존재가 있다면 그 최고의 존재와 겨루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내 개인의 가치적 기준을 개인들의 가치 기준에 한할 것이 아니라 전체의 가치의 중심도 되고 주체도 될 수 있고, 또 전체를 보게 된다면 하나의 상대적인 가치를 서로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중심 자리에 세우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지금은 중심존재를 갖지 못한 종말시대

그러면 과연 개인의 중심이 가정의 중심으로, 가정의 중심이 국가의 중심으로, 국가의 중심이 세계의 중심으로, 하늘땅의 중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주인 된 자리는 어떤 자리냐? 이게 문제라구요. 도대체 여러분 자신에게 주인이 있느냐 이거예요. 주인이 있어요? 주인이 그 마음이라고 할 때 마음을 믿을 수 있어요?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말이 있지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루에도 뭐 낮도깨비와 밤도깨비 모양으로 환경에 따라 가지고 벌떡벌떡 변하는 그 마음을 중심삼고 내가 의지하고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비참해요?

이것이 왔다갔다하더라도 요 중심만 딱 잡히면 그것은 도리어 조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이게 떨어져 나가 가지고 그 자체가 받침이 없는 데서 이게 운동을 한다고 해 보라구요. 이건 위험 천만이예요. 딱 오늘날 개인으로 보면 말이예요. 시계 뎀뿌면 뎀뿌가 받침이 없이 자기 멋대로 굴러다닌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왔다갔다, 떼굴떼굴, 세계 이 지구성의 도상에서 이렇게 구르고 있다면…. 그것이 자기 혼자만 구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구르기 때문에 부딪치고 깨지고 이런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딱 그 모양이라는 거예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그렇기 때문에 이제 문제는 뭐냐? 올바른 중심과 올바른 주인을 설정해 가지고 어디를 가나 이 하나가 전체의 중심에 받침이 돼 가지고 그 방향과 작용을 공동적인 이상을 향해서 작용할 수 있고, 어떠한 목적을 향해서 전진할 수 있는 그런 가치적인 중심경(中心徑), 중심향(中心向), 중심고향(中心故鄕), 중심추(中心錘)가 어디냐 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천국은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예요? 누구를 표준한 마음이냐 이거예요. 예수를 따라가다가 언제든지 선생님은 팔아 먹을 수도 있고, 저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제자의 마음? 그런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영원 불변의 본성의 기준 앞에 화한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영원히 틀림없이 직행할 수 있는 양심작용을 가진 그러한 마음 바탕 가운데 천국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마음은 누구의 마음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삼고 설정했다고 봐야 된다구요.

천국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마음에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그런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건 말이 된다구요. 아무나 보고 천국은 마음에 있다 해도 그건 그렇지 않다구요. 그러니까 어떤 중심점을 기준으로 해서 말도 하게 되고, 모든 것을 비판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무슨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어떠한 중심을 세워 놓고, 어떤 목적이라는 표준을 세워 놓고 거기에 대해서 전진이라든가 후퇴라든가, 전후라든가 좌우라든가 이걸 가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오늘날 이 세계의 중심존재가 도대체 뭐냐 이거예요. 그게 문제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네 마음의 주인이 있느냐 이거예요. 이 주인은 '청춘시대에는 동쪽으로 가자' 하면 안 된다 이거예요. 청춘시대에나 노년시대에나 일생,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직행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가는 길이 있다면 '이것은 내가 갈 길일 뿐만이 아니라 만민이 이렇게 가야 되는 길이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만민뿐만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인간은 이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중심방향이 내려질 수 있는, 스스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준에서 비로소 자기 앞에 제시될 수 있는 주인이 되는 거예요. '나는 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양심을 기준으로 해서 간다' 이렇게 될 때는 말이 되지만, 이건 방향도 목적도 모르고 그저 다 자기 멋대로 돌아가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것이요, 어느 한 끝날로 가면 갈수록 행복보다는 파괴와 자멸의 결과를 점점점점 재촉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이와 같은 개인상을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국가상, 그와 같은 세계상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끝날이 인류 앞에 오고, 오늘날 중심적인 존재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이 인류 문화세계에 위험천만한 종말시대가 온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때가 언제냐? 바로 지금이예요. 바로 지금 이때라는 거예요. 돈 있는 사람은 돈 있어서 걱정, 돈 없는 사람은 돈 없어서 걱정, 큰 나라는 커서 걱정, 작은 나라는 작아서 걱정, 여러 가지 문제가 개재돼 있다구요. 문제가 개재되어 있는 데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문제를 소화시키는 그 자체를 취미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행복한 국가, 행복한 세계가 될는지 모르지만, 문제 앞에 골치를 앓고 있는 그 자리에서는 불행한 거예요. 다시 말하면 아무것을 먹어도 그저 서슴지 않고 소화하는 건강한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어도 행복하다구요. 아무것이나 먹어도 건강해지지만 말이예요. 배탈이 나고 병이 난 약자에 있어서는 아무것을 먹어도 소화가 안 돼요. 그건 먹는 것이 도리어 원수다 이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중심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돼

이렇게 볼 때, 이제 우리 인류 앞에 필요한 것이 뭐냐? 혹자는 돈이라고 합니다. 돈이 인류역사의 모든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어림도 없다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구요. 권력? 그것도 어림도 없다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구요. 그러면 지식? 지식 가지고도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그 중심이 뭐가 되면 좋겠느냐? 뭐가 되어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중심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어야 되겠느냐? 사람에게 있어서 몸뚱이냐, 마음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몸뚱이보다도 마음이 덜 변하면 덜 변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이거예요, 덜 변하는 것이. 알겠어요? 더 변하는 것은 외적이 되고 덜 변하는 것만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덜 변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거예요. 도대체 인간 가운데에 있어서 덜 변하는 것이 뭐냐? 덜 변하는 이런 본질을 세워 놓고 그러한 것을 추구해야지, 변하는 자체를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내 자체에서 변하지 않는 본성을 주체로 해 가지고 변하지 않는 내 자체의 어떤 가치적인 존재를 추구해야할 텐데, 그 변하지 않으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이 뭐냐? 그게 뭐예요?

우리 인간에게서 찾아보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어요. 하나는 뭐냐? 생명입니다. 그다음에는 귀한 게 뭐예요? 무엇일 것 같아요?「사랑」사랑. 사랑 좋아해요? 생명은 자기의 직접적인 문제요, 사랑이라는 것은 대상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기라는 것을 존중시한다는 거예요. 자기 생명을 존중시한다구요.

그 생명이라는 존재를 두고 볼 때, 생명은 도대체 어떠한 생명이냐? 여러분의 선조를 두고 보면, 백(百) 성(姓)이 있으면 백 성이 다 다르다 이거예요, 선조가 전부 다 선하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혹은 악당도 있을 것이고, 얼룩덜룩하다는 거예요. 수천 수만의 조상들이 거쳐온 그 길을 보게 된다면, 나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혹은 부계 (父系)의 입장에서 보면 선할는지 모르지만 모계(母系)의 입장은…. 세계에서 긁어 가지고 동서 사방으로 마음대로 섞어진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조상의 역사적 선의 판도를 분석해 보게 될 때는 같지 않다는 거예요. 천태만상이라는 거예요. 이 지구성의 산과 마찬가지로, 산맥과 같이, 어떤 산맥은 곧추 뻗어서 세계의 명봉(名峰)을 이룰 수 있지만, 어떤 산은 가다가 뚝 끊어져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잘려지고, 구덩이가 되고, 별의별 모양이 다 돼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거기에서 제일 골짜기 안에 틀어박힌 웅덩이와 같은 입장에 선 그 인간이 '아이고! 나는 산봉우리가 되면 좋겠다' 하고 암만 희구(希求)했댔자 그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의 줄에 매여 있다는 거예요. 무엇인지 모르는 운명의 줄에 매여 있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자체도 그렇다는 거예요. 무엇인지 모르게 운명의 줄에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운명의 줄이 오르내리고 춤을 추고 좌우로 움직인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구요.

이 우주 가운데에 어떠한 표준선이 있다면 나라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그 표준선을 바른쪽으로 넘어가면 좋다든가, 위쪽으로 넘어가면 좋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왼쪽은 나쁘다든가, 아래로 내려가면 나쁘다든가 그런 게 있다는 거예요. 둘 다 좋을 수는 없어요.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고 그럴 수 없다구요. 오른쪽은 운 좋다, 왼쪽은 운 나쁘다, 올라갔을 때는 운 좋다, 내려갔을 때는 나쁘다 하는 이런 것이 있어요. 그러면 이것이 바른쪽인데 그 바른쪽이 직선상으로 이렇게 같이 비례적으로 다섯이면 다섯, 5대 5로 이렇게 돼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게 이렇게도 될 수 있다구요. 직선으로 말이예요. 그러면 좋은 것은 이 거리밖에 안 돼요. 요기서부터 이건 전부 다 나쁜 거예요. 또, 반대로 좋은 것이 이렇게 될 수 있다구요. 좋은 것이 많고 나쁜 것이 적을 수도 있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서 있느냐 이거예요. 어디에 서 있느냐? 이것도 모르고 다 '인류는 평등이다' 하는데, 평등이 돼 있지 않아요. '나뭇가지는 다 평등이다' 평등 같지요. 그렇지만 가는 진액은 전부 다 달라요. 그렇지요? 진액을 보급받는 것은 같은 입장에서 보급받지만 그 가는 양이라는 것은 천 가지 만 가지 다르다 이거예요. 거기에 상대적 요건이 잘돼 있으면, 그 줄기를 통해서 진액이 많이 가면 그것은 굵어지는 거라구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뿌리의 진액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입장이면, 그 가지가 강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종대가 다 꼬부라져 나가더라도 종대가 남아진다는 거예요. 나무가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런 등등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러면 도대체 어디다 이 기준을 삼느냐?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행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은 마음이 곧다' 하는 말을 하지요? 그 사람의 마음이 곧다, 그건 도대체 어디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거예요. 곧다 하게 되면 하나의 수평의 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곧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수직이면 수직을 중심삼아 가지고 90도 각도를 표준한 거기에 있어서 과연 곧다 하지,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이것이 없고 이것이 없다면 말이예요, 이 수직과 평형이 없다면 곧기는 무엇이 곧아요? 이렇게 됐는데 곧아요? 이럴 때는 틀렸다 이거예요. 곧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도대체 곧다는 것은 어디를 표준하고 있느냐? 이러한 등등의 문제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그저 '곧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곧은 데는 반드시 평형선이 있든가, 수직적인 관계가 있든가, 그런 90도 각도를 중심삼은 기준을 중심삼고 수평선에 있어서 곧다든가, 수직선에 있어서 곧다든가 이러한 결론이 벌어지는 거예요. 막연하게 '곧다' 하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은 거예요. 자기가 우주의 수직선이 됐어요? 본래 어떠한 이상적 수평기준 앞에 자기 마음이 이상적 수직선 90각도의 입장에 선 스스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내가 없어서도 안 되고, 내가 침범당해도 안 되고…. 그거 다 우습다는 거라구요.

이 기준이라는 것은, 이 수평선이라는 것은 시대성을 초월해야 돼요.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초월해야 됩니다. 오늘은 수평이었지만 내일은 변하면 안 되는 거예요. 수평선이라는 것은 어디에 가든지…. 바닷물이라는 것은 그렇지요? 미국 수평선이나 한국 수평선이 틀려요? 물이 수평인 것은 공통적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집을 지어도 찌그러지지 않게끔 수평으로 잡아서 짓지요? 거기에 맞추어 가지고 짓는 거예요. 높든 낮든 그 기준에 있어서는, 높고 낮은 도수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 형태의 수평형은 절대적으로 통일이예요.

이렇게 볼 때에 우리가 근본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사람을 보게 된다면,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보면 그래요. 이것이 90도 각도로 완전히 하나됐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90도 각도 수평의 장애도 안 느끼고 수직의 장애도 안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상대도 나도 좋을 수 있는 가치의 존재가 중심이 되어야

예를 들어 말하면 이렇게 돌아가는 물이 있어요. 즉 순환하는 물이 있어요. 이 물 가운데 있어서 이걸 그냥 그대로 들여 놓으면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데는 일정하게 돌아갑니다. 이것이 찌그러지면 굴곡이 벌어져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런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운동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각도만 맞으면 돌더라도 도는 자체가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이 조금만 틀어지게 될 때는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고속 선반 같은 것도 딱 각도만 맞으면 돌아갈수록? 속도가 가해져 가지고 더 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조금만 틀어지면 돌아가는 즉시 사고라구요. 우당탕! 그렇게 볼 때 사람도 종횡의 도수를 맞춰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이 90각도와 같이 수평형과 수직형….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 자체에 있어서의 또 다른 변질, 변질이라고 하면 뭐하지만, 이상한, 다른 하나의 작용체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다르거든요. 다르지요? 이것이 완전히 90도가 돼 가지고 180도 기준에 서면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아무 충격이라든가 아무 지장을 느끼지 않을 텐데 이게 도수가 하나는 5도이고 하나는 90도 되면 이 차이에 의해서 떨꺼덕떨꺼덕 부딪치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우리가 중심점을 어디다 세우느냐 하는 문제, 중심점을 어디에 세워야 할 텐데…. 늙은 사람도 좋아하고, 젊은 사람도 좋아하고, 동서양 사람도 좋아하고, 고금을 막론하고 좋아하고, 빨갱이들까지도 좋아하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까지도 좋아하는…. 그것이 무엇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내가 보게 될 때, 내가 보는 것이 누구를 위해 보느냐? 그게 문제라구요. 여러분의 눈이 깜빡깜빡 하며 보고 있어요. 이것은 뭘 보느냐? 뭘 보기는 뭘 봐요. 상대를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눈이라는 것이 나를 위해 있느냐, 상대를 보기 위해 있느냐? 그게 누구를 위해 있어요? 상대를 보기 위해 있느냐, 나를 보기 위해 있느냐? 나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나를 볼 필요가 없다구요. 그 눈이 누구를 위해 있어요? 나를 위해 있지 않다! 상대를 위해 있다! 이게 얼마나 섭섭한 말이예요. (웃음) 그렇다구.

귀는 누구를 위해 있느냐? 귀가 내 말을 듣기 위해 있어요? 누구의 말을 듣기 위해 있어요?「상대…」전부 다 상대를 위해서 있는 거예요. 손이 이거 누구를 만지고, 누구를 위해서 있어요? 자기 손을 만져 주기 위해서 있나요? 누구를 위해서? 힘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왜? 뭘하려고 이런 작용을 하느냐? 날 위해서 작용해요? 나를 중심삼은 것은 소모라구요. 10분만 해보면 싫다는 거예요. 그러면 누구를 위해 움직이려고 그러느냐? 상대를 위해. 그렇게 볼 때 인간의 가치를 상대적 기준으로 해야 될 것이냐, 나를 기준으로 해야 될 것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그러면 상대도 좋고 나도 좋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둘이 갈라져도 좋고 둘이 합해도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가치의 존재가 무엇이냐? 이런 문제가 나와요.

인간의 이상향은 사랑을 빼 놓고는 성립 안 돼

생명 자체를 중심삼고 남자 생명을 제일로 하자 하면 여자 생명도 제일로 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먼저냐? 여자는 여자가 먼저이지, 남자는 남자가 먼저이지, 그럴 거예요. 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닭이 더 먼저건 알이 먼저건 그건 아무래도 좋다, 물라도 좋지만 둘이 다 죽고 못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둘다 그것만 내세우면 뒤 되어도 좋고 먼저 되어도 좋고, 주체가 돼도 좋고 상대가 돼도 좋다 할 수 있는, 공동적으로 다 좋아할 수 있는 영원하고 불변한 그 무엇이 인간세계에 있다면 그건 이상적인 그 무엇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찾아보면 그것은 생명도 아니라구요, 생명도. 그게 뭐예요?「사랑」사랑이다! 안방 사랑인지 곁방 사랑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사랑 좋아하오? 죽을 사(死)자하고 서방 랑(郞)자…. (웃음) 그런 사랑 아니예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모든 인간의 이상향을 그리는 데 있어서는 사랑을 빼 놓고는 성립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도대체 사랑을 빼 놓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상경을 향하여 직행궤도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게 무슨 길일 것이냐? 공산주의와 같은 투쟁의 길이 아니예요.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오늘날 철학이 추구하는 것이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그 존재를 알아서는 뭘해요? 원인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이유가 뭐냐, 이유가? 왜 존재하느냐? 원인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왜 존재하느냐? 내가 눈을 이렇게 갖고 입을 갖고 있는 것은 왜냐? 왜 이렇게 됐느냐 이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돼요. 우주를 위해서,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결론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안착점(安着点)을 가지고 스스로 영원히 공동적인 이상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철학 같은 것은 사랑을 모른다구요, 사랑.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존재론이 큰 문제가 돼 가지고 사유(思惟)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논리학은 어떻게 인간이 가치를 느끼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차원이 멀다구요.

그렇지만 그와는 달리 종교라는 것은 사랑을 논하는 거예요.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하면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예요. 그래서 오늘날 문학소설 같은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빼 놓으면 그게 뭐예요? 그것은 거짓말 중에도 미친놈들이 하는 거짓말이라구요. 시가 뭐예요? 시인이 뭐예요? 전부 다 공론에 취한, 망상에 취한 뭐랄까, 사랑 공론가다 이거예요. 그리고 종교생활도 그렇다는 거예요. 종교생활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심정적 유대를 빼 버리면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심존재라는 것은 물론 사람이어야 되지만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치시(價値視)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중심삼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개인도 이 중심점은 반드시 생명에 두는 것보다도 사랑에 둬야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우주창조의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이냐? 생명에 두느냐, 사랑에 두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자체 생명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체 생명은 자체만으로서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자체만으로서 자체를 자각할 수 없다는 거예요. 어떠한 비준적(比準的)인 대상이라는 존재를 중심삼아 가지고 공동적으로 주고 받는 데 있어서 거기에 차이가 있다든가, 같다든가, 혹은 많다든가 하는 기준을 거기서 찾을 수 있겠기 때문에, 반드시 생명 자체보다도 그 상대적 관계의 어떤 중심적인 그 무엇을 세워야 된다는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자신도 사랑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인류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은 영원불변한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뿐

사랑을 중심삼는데 그러면 어떤 사랑이냐? 어떤 생명이냐?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이예요. 사탄적 사랑? 아니예요. 인간적인 속된 '나'적, 김 아무개적 사랑? 아니라구요. 그것이 기준이 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이 기준될 수 있어요? 우리 집에는 아들딸이 대학을 나오고, 학박사가 몇이나 되고, 우리 아들딸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대한민국 어디를 행차하게 되면 전부가 머리 숙이고 '아무개 박사님 아버지' 하게 되면 '에헴'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자리에서의 사랑이예요? 일대(一代) 일족(一族)에 있어서는, 한때에 있어서는 그것이 중심이 될는지 모르지만 영원히 중심은 못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그 사랑은 영원불변적이요, 유일적인 이상적 사랑이예요. 이상적인 사랑! 없더라도, 가상적 논리로라도 이걸 세워야만 오늘날 인류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없더라도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없더라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 세계에서는 신이 없더라도 신이 있다는 가상적인 존재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이 인류의 새로운 무엇을 수습할 수 있는 한때의 사명을 완결짓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 있느냐 없느냐 증거될 때까지는 그래도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럴 때가 왔다구요.

그러면 만일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공산주의가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 더 기쁠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봤는데 진짜 있는 것이 더 기쁠까요? 어떤 게 더 기쁘겠어요?「후자(後者)」후자지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설정할 수 있어요.

그러면 사랑만 가지고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은 사람에 의해 가지고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람 하면 뭐냐? 남자요, 여자예요. 남자 여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합하게 되면, 그건 불행할까요. 행복할까요? 우리 타락한 인간들도 말이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우주를 가만 보게 될 때 어떠해요? 남자나 여자가 왜 생겨났느냐 이거예요. 그거 왜 여자가 생겨났어요? 남자만 하나 생겨나지, 그거 여자가 생겨나고 말이예요. 우주가 어떻게 그렇게 돼 가지고…. 자연발생 법도에 의해서 그렇게 됐다 하지만, 새도 숫놈 암놈, 물고기도 숫놈 암놈, 말새끼를 봐도, 고양이를 봐도, 날아가는 잠자리를 봐도 숫놈 암놈, 개미새끼를 봐도 숫놈 암놈, 이 세균에도 숫놈 암놈이 있다구요. 자, 이거 왜 이렇게 됐느냐? 그거 저절로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미친 녀석이예요. 원인없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

그러면 숫놈 암놈의 그 원인이 뭐냐? 원인은 모르지만 그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구요. 그 숫놈 암놈이 왜 생겨났어요? 뭘하기 위해서? 싸움하기 위해서? 뭐 인간역사를 보면 투쟁이다, 인간은 투쟁의 본질을 통하여 존속한다 합니다. 진화론에서 보게 되면 말이예요.

그래, 숫놈 암놈이 투쟁하기 위해서 있어요? 투쟁하기 위해서 있어요, 하나되기 위해 있어요?「하나되기 위해서…」 무엇에 의해서?「사랑에 의해서」그 숫놈 사랑 암놈 사랑에 의해서. 그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돼요? 그건 뭐 누구보다도 투쟁했을 거라구요. 사랑이 없으면 여자하고 남자하고 싸움이 치열했을 거예요. 왜? 자기 같지 않고 종자가 다르거든요. 남자로 말하면 여자는 남자와 종자가 다른데 그것 둬서 뭘해요? 벌써 다 쓸어 버리고 없애 버렸지요. 그 여자가 없어지면 남자는 살아 남나요? 따라서 없어지지요. 그거 왜? 왜? 뭘하기 위해서 그렇게 돼 있느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 고등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을 위해서는 동물과 다르다구요. 차원이 다르다 이거예요. 어저께 이상헌(李相憲)이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인류를 위해서 죽겠다, 그게 문제라구요. 인류를 위해서 죽겠다, 국가를 위해서 죽겠다 하는데,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왜? 동물세계가 그래요? 말이 '아! 나는 말세계를 위해서 죽는다' 그런 것 봤어요? 나는 고양이 세계를 위해서 죽는다, 돼지세계를 위해서 죽는다, 그러는 것 봤어요? 인간 자체라는 동물은 어떤 동물인지 계수가 좀 다르다구요. 뭐 동포를 위해서 희생하라, 인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자, 그것은 말뿐만 아니라 사실 그렇게 한다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요?

여기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미국에 가 가지고 말이지요, 한푼이라도 왜 써요? 왜? 그것 다 피땀 흘려 번 돈인데 말이예요. 또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각 기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돈도 많이 썼다구요. 그거 왜 쓰느냐? 내 얼마나 아깝게 벌었게. 내가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번, 피눈물 나는 가치가 있는 돈을 왜 쓰느냐? 왜? 나는 뭐 푼푼이 안 먹고, 다방에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는것도 싫어하고, 국수집에 들어가 가지고 국수 한 그릇 사먹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건 뭐 천만 원, 몇 억까지도 수표로 떼어서 좋은 일이라면 준다구요. 그거 왜 그래요? 왜? 그렇다고 또 엉뚱하게 '아, 선생님이 몇 억까지 준다고 했으니 나도 돈 좀 주겠구나…' 그건 안 된다구요. (웃음) 그건 다 인연이 닿고, 사정이 다 통하고, 목적의 가치가 빛날 수 있어야지요. 자기를 위해서는 안 된다구요. 자기를 위해서 암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좀 다르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잘 먹고 나서도 '더 좋은 것, 이러는 거예요. 동물들은 잘 먹고 나면 '아이쿠! 천하의 나다' 하고 쿨쿨 잠자고 뒹굴고 그럽니다. 솔포기 밑에 있는 꿩새끼를 보더라도 햇볕 가운데 그냥 뒹굴고 자면서 그것으로 만족해요. 그것으로 다예요. 여러분들은 배 부르면 그게 다예요?「아닙니다」'아이구! 나는 서울대학교 졸업장을 타는 것이 희망인데…´ 해 가지고 졸업장을 타면 '아이고! 행복이다, 행복' 그게 다예요? 학박사가 되면 그것으로 다예요? 또 꿀돼지 같은 욕심이 있다구요. 그게 달라요. 동물에게는 없는 특수성이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의 진화 발전체라고 말하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교수들을 만나면 '나 네 할아버지 어디서 봤지´ `어디서?' '창경원 동물원에 가니까 원숭이가 있던데 원숭이가 할아버지 아니요?´ 하면 기분 좋아해요? (웃음) `야야 네가 나를 그렇게 존경하는구나. 나는 진화론자인데 나의 가치를 증거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원숭이라고 하니 고맙다. 이 녀석 내 교육 잘 받았구나' 그래요? 당신 할아버지를 봤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 나빠하는지 몰라요. 먼저 기분 나빠한다구요.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남자 여자가 인류가 바라는 소원의 표준

자,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이예요.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인간과 달라 가지고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인간이 올라가려고 하면 하나님은 내려오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야 하나되지, 인간은 올라가려고 하는데 하나님도 올라가려고 하면, 그거 만날 수 있나요? 그러므로 인간은 올라가려고 하는 패요, 하나님은 내려오려고 하는 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강림하느니, 메시아가 강림하느니 하지요? 강상(降山)이라고 하지 않고 왜 강림(降臨)이라고 해요? 내려오겠다는 거예요. 내려오는 데는 하나님이니까 위신상 공(空)된 걸음을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내려오는 데는 딱 맞추어 내려온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때가 있어요. 맞춰 내려오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위신상 함부로 올 수 없다 이거예요.

우리가 시간 약속을 했다고 하면, 국제적인 신의라든가 흑은 국가적인 신의를 대표해 가지고 떡 나타날 때는 다섯 시에 약속했다면 다섯 시 땡할 때 착 도착해야 '이야! 시간을 그렇게도 잘 지키는 양반이구나' 한다는 거예요. 5분만 일찍 와도 그 5분이 헛된 것이거든요. 소모거든요. 그것은 비경제적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1분 늦어도 안 돼요. 다섯 시가 되어 땡땡땡땡땡 할 때 나타나면 틀린 거라구요. 땡땡땡, 세번째 할 때 나타나야 그게 이상적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런 때를 맞추어 가지고 온다는 거예요. 내려오는 데는 때를 맞출 것이다 하는 걸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과 인간은 무엇을 중심삼은 존재냐? 돈 중심한 존재가 아니요, 지식 중심삼은 존재가 아니요, 권력 중심삼은 존재가 아닙니다. 영원 불변의 사랑을 가진 생명체, 그걸 중심한 존재라야만 어떠한 계급도 초월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 사랑은 개인은 좋아하지만 가정은 싫어하지요? 가정은 좋아하지만 종족은 싫어하지요? 싫어해요, 좋아해요?「좋아합니다」이 녀석이 생긴 것은 멋대가리 없이 생겨 가지고, 고기로 말하면 호치라는 게 있지요. 그렇게 보기가 싫고 꿈자리가 사납게 생겼지만 그놈의 사랑맛은 멋지다 이거예요. 이렇게 될 때는 할아버지든지 누구든지, 종족이든 민족이든 국가든 세계든 하나님이든 다 '좋다' 하게 되면, 나도 그리 가겠다, 너도 그리 가겠다, 이렇게 되면 세계가 그 중심 하나를 중심삼고 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될 게 아니예요? 도는 데는 뭐 맹목적으로 도는 게 아니예요.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지구에 자력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방향이 영원불변 주고받는 작용을 해 가지고…. 지구가 죽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운동하니 살아 있는 것이요, 자력선이 작용하니 살아 있다는 거예요. 살아 있는 게 별건가요? 운동하는 물건은 살아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변의 사랑적인 그것을 기반으로 한 가치적인 인간 존재가…. 인간 하게 되면 남성과 여성인데,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남성 여성만이 우주의 중심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남성 여성을 나라에다 갖다 놓으면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되지요? 세계에 갖다 놓으면 세계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요, 천지에 갖다 놓으면 천지의 대통령이 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은 존재냐? 사랑을 중심삼은 남자 여자의 비례되는 가치의 기준이 얼마만큼 그런 사랑권내에 영향을 미치고 그 주체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권한을 갖느냐 하는 내용에 따라 가지고 중심존재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랑을 중심삼은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 이것이 인류가 공동으로 바랄 수 있는 소원의 표준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문화사는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전쟁, 투쟁사를 거쳐왔지만, 이 투쟁사는 급기야 어느 한때에 있어서 극복되어 이상세계로 전환될 수 있는 거예요. 그때는 무엇을 찾아 가지고 돌아갈 것이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라구요. 완전히 참다운 인간애(人間愛)를 중심삼은 참다운 남성과 여성을 기반으로 해 가지고 이 우주가 돌고 싶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돌고 싶어요?「예」대학 교수님 들도 돌고 싶어요? 대학교수가 무슨 사랑이 필요해요? 글벌레나 되지요, 글벌레. 우리 최교수도 사랑 좋아해?「예」(웃음) 우리 할아버지들은 어땠을까요? 우리 조상 할아버지들도 사랑 좋아했어요?「예」여러분도 좋아하고, 그 다음에 여러분 후손은?「좋아합니다」그걸 혁명할 수 있어요? 남자라는 존재가 있고 여자라는 존재가 있어 가지고 참된 사랑을 찾겠다는데 이것을 혁명할 수 있어요? 교육을 해서 이걸 취소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야 요놈의 남자! 요놈의 여자, 내가 천년 동안 그 공을 들여 가지고 네게 가르치노니 남자 여자가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교육할 수 있어요? 교육이 성립돼요? 교육이 필요하지 않고 칼로 모가지를 자르더라도 모든 것이 여기에는 승리할 수 없는 그것, 이렇게 말하게 될 때는 기분이 좋지요.

하나님도 수학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라사대 '끝날에는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남자,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여자가 찾아져야 된다' 하는 결론을 안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모든 흘러가는 역사적 미래의 세계에 대한 결론이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 하나님은 이상이고 무엇이고 다…. 황탕탕이고 맹탕 하나님이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러면 그 이상적 결론은 어디에서 내릴 것이냐? 대학교에서 교수들과 문하생이니 하는 사제관계에서 결판낼 거예요? 대학강당에서 낼 거예요? 아니라구요. 어디서 낼 것이냐? 흑은 정치하는 최고의 자리에서 낼 것이냐? 돈 많은, 세계의 일등 부자의 부처끼리 사는 안방에서 결판 낼 거예요? 그것 다 아니라구요. 우주를 품고 남을 수 있는, 우주가 필요로 하는, 우주가 위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랑을 지닌 남자 여자를 중심삼은, 불변의 사랑의 중심형을 통해서 하나님도 우주 종말의 결론을 지어야 되고, 인류문화사도…. (녹음이 잠시 끊김)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는 것이 행복

남자 여자에게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그거 알려주면 뭘해요? 남자 여자가 사랑을 알아 뭘하는 것이냐? 싸움하고 전부 다 깨져 나가지요? 아니라구요. 달라붙는 거예요. 하나되지 말래도 하나된다구요. 여러분이 장가갈 때 보면…. 우리 한국 사상에는 뭐 남존여비다 하지만…. 어떤 때는 보면 색시가 조그마한데, 우리 보희 색시같이 조그마한데 여자가 '오소' 하면 '그래 그래' 하고 잘 따라가더라 이거예요. (웃음) '이거 무겁소' 하며 바구니를 주면 턱 받아들고는 불평도 안 하고 잘 따라가더라 이거예요. 그걸 보니 참 조화무쌍한 요술이다 하고 생각했다구요. 그거 왜 그래요? 그거 이상하다구요. 이상하더라도 사랑이라면 침을 질질 흘리며 다 좋아한다 이거예요.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말했지만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볼 때, 절대 뺄수 없는 요인이라는 거예요.

자, 이밥에 고기를 먹더라도, 배가 똥똥하게 기름진 남자가 상을 차려 놓고 혼자 앉아 가지고 입 안에 넣고 맛있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먹는 것이 행복하겠어요? 행복해요? 그거야 행복하지요? 남자 장군하고 여자 장군하고 둘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나요. 거기에는 구경거리가 난다구요, 구경거리. 혼자면 그냥 한 번 보고 그만두지만 둘이 그러면 보면 볼수록 좋고, 웃는 것을 봐도 재미있고, 주고받는 것을 봐도 좋고, 다 좋지만 말이예요. 혼자 주고받고 하는 것은 봐도 재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서 나오느냐? 영원히, 영원히 어디에서나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는 자리, 언제나 어디서나 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나옵니다. 어디에나, 내 안팎이나 어디에나. 그게 뭐냐 하면 진짜 사랑, 참된 사랑에서만 그게 가능하다는 거예요.

요즘에 제주도에 가게 되면 색시들이 시집갈 때, 자기 부모가 논밭을 주게 되면 가지고 가 가지고 그날부터 전부 색시 이름으로 수속을 한다나요? 그건 색시가 언제 남편과 갈라지더라도 자기 주장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그것 참 이상적 부부지요? 돈도 '이것은 남편 돈…' 여자들은 그럴 거라구요. 돈을 가져도 매끈매끈한 것, 빠닥빠닥한 것, 고걸 딱 싸 가지고 '요건 내 돈! 구겨진 돈은 남편 돈!' (웃음) 그거 그래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구요. 돈을 전부 다 비밀 보따리를 툭 터뜨려 놓고 '어떻게 됐소' 할 때 '내가 썼지' 하면 '그래. 좋은 데 썼구만. 그거 썼어도 좋고' 이래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에이구! 또 썼군. 또 썼' (웃음) 언제나 줄 수 있고 또 언제나 내가 그 보따리를 풀고…. 요즘으로 말하면 만 원짜리 은행 돈 한 보따리를 갖다 주고는 잊어버렸어요. '아이구! 여편네한테 내가 예금했기 때문에 이자를 가산해 가지고 얼마 받아야 되겠다' 하면 그건 낙제꾼입니다. 낙제꾼.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무한히 줄 수 있고, 깊은 데나 낮은 데나, 밤이나 낮이나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될 때 행복한 거라구요. 줄래야 줄 수 없게 될 때는 불행한 것이요, 받을래야 받을 수 없게 될 때는 불행한 것입니다. 내 눈짓을 주게 되면 눈짓을 슬쩍 받는 거라구요. 내 말을 주게 되면 그걸 슬쩍 받는 거예요. 척 주면 백 퍼센트를 받을 줄 알아야 돼요. 그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내가 자면서 잠꼬대로 울면서 '낑낑' 할 때 '왜 그래?´ 하며 그것까지 받는다구요, 깨우면서. 이래 가지고 '당신 꿈을 꿨소?´ 하는 거예요. 잠꼬대를 하면서 그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도 왜 그러느냐고, 들어 보자고 그러지요? 그러지 않고 '저놈의 영감! 또 노망했구만' 그러면…. (웃음)

서로 주고받으면 하나님이 임재해

행복은 뭐냐? 뭐라구요? 무한히 주고 싶을 때에 주고, 그다음에는? 줄수만 있으면 그거 행복이지! 아니라는 거예요. 받고 싶을 때 받는 것이 행복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인간도 이 세계를 위해서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고, 그러면 그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줄 수 있어요? 여기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세계의 젊은 청년들, 통일교회를 절대적으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야! 너희들에게 주겠다' 하게 되면 '예! 주소' 하고 손을 내민다구요. '야! 가져와라' 하면 '예!´ 하고 털어서 가져온다구요. 그러면 문선생은 불행하지 않다구요. 알겠어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주고받으면 소모가 되는 게 아니예요. 주고받으면 플러스가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사실이 그렇다면 그거 얼마나 멋지겠나 이거예요. 사실 플러스가 된다는 거예요. 왜 플러스가 되느냐? 주고받는 작용을 할 때는 하나님이 임재하기 때문에. 제 3자가 가입한다는 천리 원칙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게 통일교회 원리예요.

둘이 주고받고 할 때는 옆에 있는 사람도 좋아요, 나빠요? 재미있게 속닥속닥 서로 주고받고 밤을 새워가면서 이럴 때는…. 여러분, 뭐 결혼해 가지고 신접살림을 하는 데는 3개월 이내에 그 옆방에도 가 살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말이예요. 밤새 속닥속닥 속닥속닥…. '여보! 잠 못 자겠다' 그거 다 낙제감이라는 거예요. '야! 그 말을 나도 한번 들어 봤으면 좋겠다' 그거 얼마나 재미나겠나?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좋은 일에 있어서는 소곤소곤하고 말이예요, 자기들이 흥미진진한 것보다도 주인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거라구요.

내가 중매장이 할머니를 한번 봤어요. 중매장이 할머니가 말이예요, 결혼을 시켜 놓고는 한 일주일 만에 한 번씩 와 가지고 남편 눈치를 보고 여편네 눈치를 봐 가지고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벌써 안다구요. 남편이 뚱하면 벌써 병이 났거든요. 내 이모 뻘이 되는 사람이 있는데 중매로는 아주 뭐 평안북도에서 이름난 사람이라구요. 한 5백쌍, 나보다는 조금 못했지만 말이예요. (웃음)

그 비결을 들어 보면, 그 집이 잘사느냐, 어떠냐를 슬쩍 시험을 한다는 거예요. 그 부인한테 쓱 가서 '잘 있소?' 하면 그저 반색을 하는데 그러면 벌써 다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또, 그다음에는 사내 녀석을 논두렁에서 만나게 되면 '잘 있나?´ 하면 그저 성큼성큼 논바닥에서 뛰쳐 나오고 말이예요. 그 자기 어머니 만나는 것보다 더 좋아하거든요. 또, 색시를 보고 방긋하며 '왔어요?' 하는 거예요. 그냥 가지 말라는 거예요. (웃음) 그리고는 중매한 이 아주머니가 쓱 나한데 와서는 '야! 중매가 참 멋진 거라구' 한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어떤 때는 팔도강산 어디를 가더라도 돈이 없게 되면 중매한 집에 쓱 가 가지고…. 그거 등수가 다 있거든요. 1등, 2등, 3등…. 쭉 이렇게…. 그 집에 쓱 가서 하룻밤 자고 '나 어디 가고 싶은데' 하면 척 차표도 끊어 주고 한다는 거예요. '세상에 암만 효자라 해도 누가 평안남도, 무슨 도에 따라다니면서 차표를 사 줄 수 있나? 나는 이렇게 행복하다' 하는 거라구요. 이 아주머니가 혼자 사는 아주머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으면 행복하다는 거라구요. 그를소, 옳소?「맞습니다」

또, 행복한데 어떤 대상 어떤 주체가 더 행복하냐? 주체성이 차원 높을수록 덜 행복하다?「더 행복하다」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대한민국에서 살 때에, 리(里)에 살면 이장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거기서 행복감을 느끼거든요. 그다음에 군수하고 친하게 되면 그 군에서 행복감을 느끼거든요. 또, 도의 도지사하고 친하게 되면 도에서 행복감을 느끼거든요. 대한민국 대통령을 중심삼고 친하게 되면 보다 대한민국적 행복감을 느끼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미국 대통령 하게 되면 세계적인, 민주세계적인 기쁨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 높을수록 좋아요, 낮을수록 좋아요?「높을수록」높을수록 좋아요. 그러면 최고의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하고 주고받으면 어때요? 어때요?「좋습니다」얼마나 좋을까요? 삼백 예순 날 오줌을 싸면서도 좋을거라구요. (웃음)

여러분, 좋게 될 때는 눈 뜨고 좋아하오, 눈 감고 좋아하오?「눈 감고 좋아합니다」눈 뜨고 좋아하는 것은 가짜예요. (웃음) 좋을 때는 '아이고, 감사' 이게 아니라 '아이고, 감사해라' 이러는 거예요. (행동을 해 보이심) (웃음) 그거 왜 눈을 감는지 알아요? 누구도 보지 말고 나만이 완전히 하나된다 그 말이라구요. 전부 다 통일을 말하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면 재미있는 것 같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재미있게 얘기 하면 기분이 좋다구요. 사실이예요.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사랑이…」뭐가 사랑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일 게 뭐예요? 그게 문제예요. 우주에는 힘이 있다, 힘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명력과 마찬가지인데 힘에 의해서 이 우주가 발생했다, 이것이 현대 과학자들이 보는 우주관인데, 그러면 그것이 틀리게요? 사랑이 먼저예요, 생명이 먼저예요?「사랑이 먼저입니다」왜?「하나님의…」지구가 하나님의 생명의 본체에서부터, 생명으로부터 나왔고, 생명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생명이 제일이다, 생명이 먼저다, 이런가요?「아니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동기는 사랑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를 어디서부터 했느냐?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이 발원하는 그런 이유가, 동기가 뭐냐? 사랑이라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생명이 생겨난 이유가 사랑이예요. 남자가 생겨난 이유가 뭐라구요?「사랑」남자가 뭘하러 태어났어요? 여자라는 괴물을 만나 가지고 사랑하기 위해서. (웃음) 그것도 괴물이지, 뭐. 여자를 보라구요. 눈을 깜짝깜짝하면서 깜빡깜빡하면서…. 그걸 보게 되면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 같지 않는데 깜짝하고 '이놈의 남자! 너 나한테 감겨 들어간다. 한바퀴 돌렸다. 그다음에는 발이 묶인다' 이러면서 좋아하는 게 아니예요? 그 괴물이지, 별거예요. 남자가 사랑해 주면 '나 좋다!' 하는 게 괴물이지, 별거예요?

결국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왜 했느냐? '나 같은 남자, 나같은 여자를 보이지 않는 성상(性相)에서 실체적 형상(形狀)으로 전개시켰기 때문에 그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기 좋아해서 지었지' 그게 맛이 있어요, '꿈틀거리는 것도 좋기는 좋지만 이것이 둘이 하나가 되어 늘어져 가지고 둥글둥글 구르는 것을 보고 싶었다' 어떤 게 좋겠나요? 결국은 사랑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지었다 이거예요. 어떤 게 멋져요? 꿈틀거리는 생명체는 서로가 겨루는…. 생명 하게 되면 운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가 겨루는 그런 남자 여자 보고 싶어하겠어요, 서로가 사랑하는 남자 여자 보고 싶어하겠어요? 어떤 것이겠어요?「사랑」사랑. 창조의 출발 동기로부터…. 이 우주 역시 전부 다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의 존재세계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사랑의 본질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은 가장 이론적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보게 될 때, 이 우주 종말시대에 하나님이 무엇을 제시할 것이냐? 하나님이 아무리 요술을 부리고 아무리 재간을 피우더라도 무엇을 찾을 것이냐?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만나서 그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만나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사를 총합한 이상적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새로운 전환시기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종교가 있어야

그것을 어떤 자리에서 할 것이냐? 이것은 학문세계가 아닌 종교세계에서 할 것입니다. 종교계에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끝날에는 그런 결론을 내려 가지고 새로운 전환시기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종교가 무엇이냐? 바로 기독교다 이거예요.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뭐라고 해요?「신랑」신랑. 신랑이 뭐예요? 신랑은 신라 나라 말 타고 가는 서방님이 신랑이지요? 그래요? 신랑이 뭐라구요? 새서방. 왜 새서방이라고 그래요? 말 타고 가는 날하고 말 타기 전하고 뭐가 달라서 새서방이예요. 서방은 마찬가지 서방인데 뭐가 새서방이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새색시? 뭐가 새색시예요? 어제 색시는 사랑을 암만 꿈꾸었댔자 몽상적인 사랑은 꿈꿀 수 있지만 사실적인 사랑은 못 가지는 거예요. 그러한 의미에서 사랑을 가치적인 기준으로 표준해 놓고 새 뭐? 깍시 깍시. '깍깍 깨무는 씨알' 같다고 각시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새신랑이 오고 새로운 신부를 맞이하는 새로운 시대가 와야 됩니다. 그 새로운 시대는 무엇을 중심삼은 새로운 시대냐? 지식과 모든 과학이 발달되어 인간 맛이 없는 그런 새세계예요? 새세계라는 말도 하지요? 도대체 새세계 새것이라는 것이 무엇이 중심이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이게 문제라구요. 뭐라구요?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여자가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사랑의 출발을 볼 수 있는 이런 때가 새로운 세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타락한 부모는 간곳없고 타락하지 아니한 선한 부모가 탄생하는 거예요.

낙망과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류상을 초월해 가지고 희망과 행복에 잠겨 가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는 행복된 자녀로서 등장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부모가 등장하고, 새로운 자녀가 등장해 가지고 뭘하는 것이냐? 새로운 부모를 맞았으니 얼굴 만져 보고, 코 만져 보고, 귀 만져 보고 '아이구! 잘생겼구만' 다 그런 놀음하자는 거예요? 새로운 부모가 나오고, 새로운 자녀가 나와서 뭘하는 것이냐? 밥 한 그릇 먹던 것 두 그릇 먹고 말이예요. 또 옛날 구시대에는 조밥을 먹었는데…. 조밥 가운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황좁쌀 메좁쌀 무슨 좁쌀 많을 거라구요. 그때는 그래 하얀 쌀밥 먹었다고 새시대인가요? 이밥을 먹는 데는 말이예요, 옛날에는 이밥 먹을 때 하얗게 먹었는데 그게 기분 나쁘니 황금 물색을 들여 가지고 황금 이밥을 먹으니 그게 새시대예요? 그건 다 필요 없어요. 새로운 사랑이 엮어지는 시대가 되니 새시대예요. 거 귓맛 좋아요, 나빠요? 거 귓맛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장가도 안 간 사람은 모르겠지, 뭐. 우리 할아버지들 귓맛 좋아요? 할아버지 없어요? 할아버지가 없구만요. 내가 제일 할아버지인 모양이구만요. (웃음) 나도 귓맛 좋다구요. 우리 할머니들, 귓맛 좋아요? 할머니들? 여기 이 할머니, 그게 뭐예요? 이가 다 빠지고 입술이 보기 싫구만. 그 입으로 사랑해서 뭘해요? (웃음) '선생님이 암만 욕을 하고 그래 보소. 난 좋습니다' 하는 거예요. (웃음)

새로운 부모로부터 새로운 사랑의 자녀가 벌어질 것이고, 그다음에는 새로운 뭐가 되느냐? 새로운 혈족이 생겨나는 거예요, 새로운 혈족. 새로운 혈족이 뭐냐? 지금까지 이 땅 위의 혈족, 한민족은 한민족끼리 싸우고, 이웃 친척 형제끼리 전부 다 싸우고, 떡을 해 먹어도 형제들이 못 보게 3층 방에 싹 숨겨 두고 저만 먹는 그런 혈족말고, 굶어도 같이 굶고, 살아도 같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혈족입니다. 그렇게 되면 좋을 거예요.

그다음에 새로운 민족, 그것은 대한민국의 백의민족만이 우리 민족이 아니라구요. 세계에 널려 있는 오색인종이 전부 다 초민족적 감정으로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시꺼매도 좋고, 하얘도 좋고, 알록달록해도 좋다. 이리 보아도 좋고, 두리두리 돌이켜 봐도 좋고, 돌려 봐도 좋고….' 이럴수 있는 사랑의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인종적인 가치를 볼 수 있는 이런 세계가 이상적인 세계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랑을 빼면 다 없어지는 거예요.

암만 형제가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붕붕 흘러가고 다 깨져 가지고…. 깨진 독 짜박지 같아서 누구 하나 뒤적거리는 녀석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사랑의 짜박지가 깨지는 날에는 뒤적뒤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선생님이 죽으면 그럴 거라구요. 내가 미국을 돌아다니고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쓰던 그 무엇이 남아 있으면 서로가 뒤적뒤적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런 것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왜? 깨진 사기 짜박지 같은 것도 필요하거든요. 왜? 사랑의 표적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이 필요하다구요. 그건 할 수 없다구요. 하나님도 조건이 필요하다구요.

그래서 여러분, 편지도 필요하지요, 편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그저 편지만 해도 되겠지만, 정성을 들여 가지고 거기에 새빨간 꿩털 하나를 편지 가운데 딱 붙여서 보내는 것하고, 그냥 무늬도 없는 백지에 편지하는 것하고 어떤 게 귀해요? 그 하나라도 뭐 붙은 게 좋거든요. (웃음) 그거 필요하다구요. 예술이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사랑 없으면 예술 뭘해요? 예술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우리 병풍 같은 것도 볼 때, 숫학만 전부 다 수두룩하게 그려 놓으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학새끼를 전부 다 수놈만 그려 놓고 말이예요. 서로가 물어 뜯으려고 하고, 서로가 다리를 긁으려고 하고 하면 그거 재미있겠지요? 뭐, 원앙새? 원앙새면 뭘해요? 그게 다 뭔지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그렇게 하다 보니 그거 뭐냐? 좋은 것인데, 좋은 게 뭐냐? 사랑 빼 놓으면 안된다는 거예요.

'중심적 존재와 전환시대'라고 했는데 중심적 존재가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삼은 사람,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가 될 때는 반드시 전환시기가 벌어집니다. 전환시기가 벌어지는데 여기에 중심존재라는 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주인이 없다구요. 사랑이 다 흩어졌으니 사랑을 다 모아 가지고 사랑의 본질적 형태를 갖추어 다시 배급하는 놀음이 벌어져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 오게 되면 그런 것이 조금 다르다구요. 통일교회 오면 다르다는 거예요.

지옥이 천국으로 화하는 건 사랑에서만 가능해

요전에 강전도사 말이 기성교회 전도사들끼리 만나서 얘기하는데 '아이구 이상하다. 통일교회 말만 듣게 되면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좋아지는지 모르고, 밤새껏 얘기해도 재미나고, 자다가 생각해도 좋아. 요술이야, 요술. 그게 왜 그런지 몰라. 기성교회는 목사가 조금만 얘기해도 지루하고 죽겠는데, 아 이건 얘기할수록 참 좋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게 뭐 있다구요. 통일교회 요술한다고 소문났지요? 나를 요술장이의 마왕님의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요술에 걸린 녀석들이 잘못이지. 그게 전라도식이라구요.

여기에 전라도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내가 들은 말 한번 해보겠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철학이 있다는 거예요. 무슨 철학이냐 하면, 남을 속이는 데도 멋지게 속이자 하는 철학이 있다는 거예요. (웃음) 왜 그러냐? 네가 오죽 못났으면 속아, 이 녀석아! (웃음) 그것 참 좋은 철학이지. 속지 말지 왜 속느냐 이거예요. '속을 수 있기 때문에 속은 것인데, 나보고 탓할 것은 없다. 네가 속은 것은 앞으로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의미에서 가르쳐 준 걸 고맙게 생각해라' 그렇게 말한다나요? 자, 이거 그 식으로 생각하면 또 맞다구요. (웃음) 그렇지만 사랑을 가지고 그럴 때는 통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속였다면 그것 싫어요? 사랑해 주기 위해서 속였다면 항의할 수 있어요?

자, 도둑질을 했다 이거예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 가지고 다이아 반지고 무엇이고 죄다 보따리에 집어넣어 가지고 와서 세어 보니 열 개다 이거예요. 거기에다 자기가 열다섯 개까지 쓱 만들어서 '당신네 집에 어젯밤에 뭘 잃어버렸지요?' '예' '누가 가져갔는지 모르지요? 내가 찾아줄까요?' '그래 찾아줘요' ' 그걸 찾아주면 당장에 가서 고발하고 나를 족치려구요?´'안 족치겠다'고 암만 그러더라도 분하다구요. 분하지요?「예」

그런데 그 사람이 '사실은 내가 훔쳐갔소. 어떡하겠어요? 할수없어서 쓸 데가 있어서 그랬는데…. 자, 여기 가져 왔소. 받아 가. 내가 몇 개 더 집어 넣었지. 그거 어떡하겠노, 친구지간에. 용서해' 그러면 맨 처음에는 찾는다는 생각에 좋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분해서…. (웃음) 그러던 얼굴이 세어 보니 있는 게 있고 거기에다 더 있을 때는 어때요? 입이 해죽해져요, 안 해져요? (웃음) 해죽해져요, 안 해져요? 지옥이 천국으로 화하더라 이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지옥이 천국으로 화하는 게 뭐냐? 사랑에서만 가능해요. 도둑질하러 갔던 녀석이 보태 주기 위해서 간 녀석이 지금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건 도둑놈이 아니지만 말이예요. 그건 사랑의 희극인지 비극인지…. 비희극이다 말할 수 있다구요.

자, 열 개 가져갔는데 열다섯 개 주게 될 때 주먹을 가지고 '이놈의 도둑놈아!' 하고 펀치를 먹일 사람이 있어요? 붙들고는 '이런 친구가 어디 있나? 내가 돌아다니느라고 건사를 못 하니까 이 친구가 건사를 잘하고, 그뿐만이 아니고 그렇게 나를 사랑하다니…' 하고 모든 것이 화합하는 거라구요. 그거 이해돼요?「예」

그렇기 때문에 이 삭막한 세상 위에 앞으로 전환점, 전환시대가 되면 무엇을 중심삼고 되기를 원하느냐? 철학?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는 그것은 골칫거리예요. '철학이든 무슨 학이든 난 모르겠어. 그저 둥글든 좋아. 납작하든 좋아. 둥글든지 납작하든지 편편하든지 무엇이든지 세상이 다 좋아할 수 있는 멋진 사랑이 난 좋아' 새세계가 그러한 걸 중심삼고 전환될 때는, 그 전환이 우지끈탕탕하고 다리가 부러지고 한다 하더라도 좋아할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그게 부러지면 내 다리가 부러지나 남의 다리가 부러지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내 다리가 부러진다구요. 내가 그 피해를 입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시대, 내가 희생하더라도 좋은 새로운 시대, 그 세계가 어떤 세계냐? 그것은 1대1의 계산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수리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타진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예요. 수리를 초월해 가지고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가당하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와야 되느냐? 인간세계에서 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이 땅 위의 중심으로 오는 그를 말해서 메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서하심) 그가 새로운 가정의 질서를 중심삼은 사랑이요, 새로운 국가적이요, 새로운 세계적이요, 새로운 천주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사랑의 질서를 갖고 이 땅에 와 가지고 변천, 전환, 돌이켜 놓는다면 돌이켜 놓아도 고맙지, 만일에 그렇지 않고 힘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그 무엇을 가지고 여기서 돌이켜 놓는 날에는 문제가 남아진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중심존재를 통한 전환시기를 거쳐 이상세계로 가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두고 말할 때도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 이퀄(equal)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그 사람의 소원과, 그 사람의 목적을 중심삼고 측정하기 때문에 그 대등적 상대권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예요. 하나님과 대등적 가치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종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문화가 벌어지는 거예요. 과거는 가인 아벨이 싸우는 투쟁문화였지만, 이제부터는 뭐냐 하면, 인류가 갈라졌던 것이 전부가 서로 서로 하나되기 위한 새로운 사랑의 문화세계가…. 그게 필요하지요? 새로운 과학세계가 필요하지 않아요. 과학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그게 얼마나 문제예요. 이건 뭐 학식이 있으나, 무식한 사람이나, 계급을 막론하고, 상하를 막론하고 전부 사랑을 중심삼고 이러한 세계가 돼야만 그것이 올바른 전환시기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그러려면 그러한 중심존재가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어떠한 사명을 갖고 오느냐? 이상적 가정건설, 이상적 종족편성, 이상적 국가형성, 이상적 통일세계…. 그래 가지고 갈라졌던 하나님과 인간을 상봉하게 하는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그래 가지고 단 하나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 메시아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겨 가지고…. 그 두 분이 좋아하면 춤추겠지요? 하나님도 웃고 메시아도 웃고, 하나님도 노래하고 메시아도 노래하고, 하나님도 춤추고 메시아도 춤추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도 웃고 메시아도 웃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천지가 웃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면 천지가 다 좋아할 것이고, 하나님이 노래하게 되면…. 하나님이 한번 노래 한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세계는 흐물흐물해질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만민이 하나의 식구와 같이 살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인간이 이상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가 아닐 것이냐.

그러한 곳에 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환시기를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차원의 전환시기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새로운 차원이 뭐냐하면 이러한 전체 중심의 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은 차원입니다. 이런 새로운 역사적인 세계가 전개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의 통일세계, 이상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건 아버지도 이상이고, 할머니도 이상이고, 애기들도 이상이고, 다 갖출 수 있는 세계가 전개될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는 그곳을 향해서 가자, 하나님도 그곳을 향해서 가자, 그다음에 인류도 그곳을 향해 가자, 다 그거예요. 역사도 그곳을 위해 가자는 거예요. 섭리도 그곳을 향해, 인간도 그 자리에 가서 만나자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 자리에 가서 만나는 거예요. 모든 것을 청산짓고 새로운 사랑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붙안고 천년 만년 살고지는 그런 세계가 돼야만 이상세계가 실현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때가 되면 여러분이 보는 것도 기쁨으로 보는 거예요. 듣는 것도 기쁨으로 듣고, 사는 것도 기쁨으로 살고, 죽는 것도 기쁨으로 죽는 거예요. 죽는 걸 기쁨으로 죽는다고 하니 이상하지요?

이제 이 말은 끝났어요. 얘기할 재료가 없어졌는데…. (웃음) 다음번에 얘기하자구, 그건. 그거 알겠지요?「예」중심존재가 뭐라구요?「메시아」메시아인데, 새사랑을 가지고 오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전환되게 되면 전환될수록 기쁘다 이거예요. 죽는 줄 알고 저 바다 밑을 들어갔더니 한번 뛰쳐 나올 때는 비상천(飛上天)한다는 거예요. 이러한 행복으로 비약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라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한 많은 당신의 심정을 헤쳐 보게 될 때, 그 마음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숨은 이상적 사랑이 끓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을 왜 지었느냐고 묻게 될 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서 지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왜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내 존재의 본연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왜 존재하느냐? 남자로 태어났으면 진정한 대상인 여자를 영원한 여자로서 사랑해야 할 것이고, 가정을 세웠으면 가정을 영원한 가정으로서 하나님 대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 기준은 종족과 민족의 터전이 되고, 그 민족적인 터전은 자연적으로 국가의 터전이 되는 것이요, 국가적 터전은 자연적으로 세계적 터전이 될 뿐만이 아니라 천주적 터전이 될 수 있는 놀라운 불변의 하나의 방향이 일치된 세계가 있어야 오로지 아버지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은 새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오늘날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처받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한의 권내에서 허덕이고 있는 만인류를, 아버지여,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시대시대의 개인을 조정하고, 가정을 조정하고, 민족을 조정하고, 국가를 조정하여 동서 사방 이 세계라는 무대를 중심삼고 각각 배경이 다른 문화권을 수습하여서 통일적인 하나의 종교형태, 통일적인 하나의 새로운 사랑의 체계를 중심삼은,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은 존재의 권한을 성사시키려는 아버지의 뜻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따라서, 그것을 바라서 나가는 것이 종교의 목적인 것을 이제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런 관점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종교, 새로운 시대의 아버지의 사랑의 깊은 골수를 헤쳐 가지고 만인의 심정 심정, 사정 사정에 혹은 희망 가운데에 옮겨질 수 있는 그 길을 닦기 위해서 당신의 뜻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통일교회인 줄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자식도 아무리 핍박이 가중되더라도 그 핍박을 넘을 수 있는 것은 깊은 당신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요, 오늘날 지치지도 않고 중단되지 않은 채 내일의 희망찬 걸음을 하게 됨도 당신의 새로운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죽음길을 도피하지 않고 그것을 직시(直視)하면서 직행할 수 있는 이런 권위와 그러한 스스로의 자신을 가진 것도 당신의 사랑의 놀라움을 알았기 때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서 과거의 자기와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옵니다. 그렇지 않은 통일교회 교인은 이 통일이라는 명사에 대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통일신자라고 하게 되면 어느 곳에 머물든지 그 환경에 있어서 사랑의 주체성을 갖고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문 아무개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 하면 그 결과를 보아서 안다고 하였사오니,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늘의 진정한 새로운 또 하나의 사랑의 주체들로서, 머무는 환경 환경을 빛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자기들도 모르게 은은히 자기의 표준적인 대상으로서 혹은 주체로서 나타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가져야만이 통일교회의 신자다운 권위를 지닌 자체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지금까지 이 교회를 세워 가지고 역사하는 것은 이러한 기반을 횡적으로 세계화시키기 위한 역사 때문인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오색인종, 민족을 초월하고 국가와 국경을 초월하여서 하나의 심정권을 이루어 하나의 새로운 혈족과,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조를 향하여 전진하는 대열에 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부디 서구에 널려 있는 모든 통일교회의 무리, 아시아 혹은 오대주에 널려 있는 모든 무리들이 당신의 심정을 따라 이와 같은 촛불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대해(大海)를 대해 가지고는 등대의 사명을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한 사명들이 이들 앞에 짊어지워져 있는 것을 알고, 오늘, 내일 미래를 향해서, 단지 사랑의 화신체로서 당신의 깊은 심정을 증거할 수 있는 증거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중심적 존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연결시키고 역사적 모든 고빗길을 초월하여 가지고 인간세계의 심정세계에서부터 천정권(天情圈)까지 다리를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단계를 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적 단계까지 넘을 수 있는 심정의 대상권, 심정의 상대권을 종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체가 메시아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메시아를 통하게 될 때 하늘의 행복의 터전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국가의 행복의 터전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개인과 가정의 행복의 터전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의 중심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럴 수 있는 행복된 스스로를 다짐하여 자기가 어떠한 상대적인 입장에 서느냐 하는 문제가 이 땅 위에 태어난 스스로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을 아옵니다. 그 가치는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결실 여하에 따라 가지고 스스로의 가치 기준이 결정 되어 나가는 것이옵니다. 마치 나무에서 열매가 맺혀 그 열매가 잘 성숙하느냐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의 비례적 가치를 지니듯이 저희들도 사랑의 대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놀라운 평화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3월 들어 첫번째 맞는 주일이오니, 이날을 기념하고 이날을 축하하는 모든 무리 위에, 서구사회에서, 아시아 사회에서 머리를 숙여 이곳을 사모하는 모든 통일의 무리들의 마음 위에 흡족한 사랑의 충족을,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희망에 벅찬 가슴을 중심삼고 의기도 당당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온 천주에 자랑하면서 당당코 하늘의 공의의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직행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과 그때가 저희들을 배바삐 부르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에게 맡겨진 현실적 사업을 빨리빨리 처리해 놓고 그곳을 향하여 전진을 다짐할 수 있는 하늘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중심존재와 전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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