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 : 22-23

[기 도]

오늘은 1969년 6월 15일, 음력으로는 5월 1일, 지금으로부터 만 6년 전에 선포하여 횟수로는 제7회째 맞는 만물의 날을 맞이했나이다.

아버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자연은 아버지의 영광의 상징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마음 앞에 영원한 슬픔의 대상이 되어서 지금까지 숱한 슬픔의 눈물과 억울한 피를 많이 뿌린 이 땅인 것을, 이 자연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류의 조상이 하늘이 원치 않는 원한의 터전을 밟고 넘어간 그날부터 연이어 나오면서, 하늘과 더불어 땅도 우리 인류와 더불어 비참한 역사의 운명에 부딪쳐서 이 길을 거쳐 나오고 이 고개를 넘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민족을 넘어서 불쌍한 이 한국을 찾아오신 아버지 앞에 저희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기울여도 갚을 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정성이 부족한 것을 아버지 앞에 다시 직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성의 도리를 다 세워 이 나라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하여야 할 당신의 요구와 당신의 소망이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이 나라를 잊고 자기를 생각할 때가 많았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지금까지 아시아의 한 나라로서, 극동의 한반도국가로서 오랜 역사과정을 민족 자체의 문화와 더불어 민족의 하나의 국가의 형태를 지금까지 보존해 나오는 이 배후에는 비참한 피의 대가와 피어린 역사노정의 그 틈바구니에서 눈물어린 투쟁의 역사를 지내온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슬픔과 고통과 비참한 역사를 남겨 오면서 단 한 가지 하늘을 추앙하며 하늘이 원하는 소원의 한때를 고대하던 우리 선조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의 정성과 그들이 남겨 놓은 충성의 도리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하늘이 원하는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명맥을 이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저희들이 그 결실이 되어야 되겠고, 그 전체의 사실을 수습하여 하늘 앞에 거두어 들여야 할 역군의 입장임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이 갖춘 자신을 생각해 보면 하늘이 보시기에 부족한 자요, 저희들이 갖추어진 장비를 생각해 보게 될때에 하늘 앞에 더럽힌 장비를 들고 있는 몸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저희 민족을 염려하셨기에 수많은 불쌍한 민족 가운데서 대한민국, 이 한반도를 생각하여 이끌어 주신 아버지 앞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수십년 전 왜정의 압제하에 있던 시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때에는 하늘을 신봉하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종교의 신자들이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혹은 독립을 위하여 얼마나 힘든 투쟁의 역사를 엮어 왔던가 하는 사실을 저희들은 보았고, 또 그런 역사를 지니고 왔나이다. 아버지, 그때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도하는 온 정성과 온 심정은 이 나라 이 민족이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독립의 한 날을 얼마나 고대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여, 지금 이 나라 가운데 자라고 있는 젊은 가슴가슴에 이 나라를 부여안고 자기의 생명과 바꾸더라도 이 나라를 살려야 되겠다고, 이 나라를 구하지 않고는 내가 살 수 없다고 몸부림치는 젊은 청년남녀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아버지, 과거에 우리역사의 배후에서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민족보다도 어떠한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마음 갖고 애국지애를 지녀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역사적인 과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흘러 나온 그 과정에 있어서도 그런 역사의 대가를 치른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오늘 현실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모든 소원의 일념을 완전히 거두어 가지고 승리의 민족으로 하늘 제단 앞에 단장해 드려야 할 입장에선 저희 자신들인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과연 이것을 수확의 결실로 아버지의 창고에 단장해 드리기에 합당한 우리의 자신인가를 다시한 번 반성하는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나라가 장래에 어떠한 길을 가며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가지고 아시아의 비참한 자리에 설 것인가를 생각지 않는 무리가 많은 이때에 있어서, 저희들은 한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의 승리의 깃발을 꽂고 하늘의 용사로서 방패를 들고 하늘 도성을 지키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의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의 맥박에서는 여전히 역사의 그 누구와 더불어 같은 맥박을 갖고 있고 저희의 피살도 역시 같은 피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저희 자신에게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하늘이 저희에게 심어다 준 것이 아니라 악의 대가로 말미암아 심어다 준 결과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붉은 마음이 폭발되어 나라를 사랑하고, 붉은 심정이 자기 일신을 넘어서서 하늘이 원하는 바의 소원의 뜻이 이 민족과 더불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하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늘의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것임을 아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제 자기 스스로의 자세를 갖추어 쌍수 합장하여, 하늘 아버님 앞에 간절한 마음을 다해서 이 시간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스스로의 사연을 직고해 드리는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는 이런 과거를 가져왔고 나는 현실에 있어서 오늘 이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할 그 최종적인 목적지는 이런 것이오니 그 목적지에 가기에 지쳐 있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거들어 보시옵소서. 다시 연약한 손길을, 아버지, 부축하시어서, 힘의 자체를 삼으시어서 아버지 손길 앞에 들리운 모세의 지팡이 이상의 능동적인 하늘의 실체를 요구할 수 있는 겸손한 자신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오늘 만물의 날을 기념하는 이런 기념식을 이 시간에 갖게 하여 주신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와 같이 못나고 저희와 같이 부족한 자신을 모아 놓고 천주사적인 사명을 전달하고 인류의 한의 고개를 막을 수 있는 하늘이 기념하는 이날의 식전에 불초 정성의 도리를 갖추지 못한 저희 자신들이 참석한 것을 오늘날 하늘이 보게 될 때에, 우리를 보시고 기뻐할 수 있는 하늘이 되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아 하늘이 부끄러워하는 자리에 서 있지 않는 가를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부끄러워하기 전에 내가 먼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을 아는 저희들은 긍휼의 아버지의 내정적인 심정이 이 가운데 다시 한 번 흘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겸손한 마음, 빈 마음 빈 그릇을 가져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그릇과 이 마음이 더렵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깨끗할 수 있는 모양이라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의 허락하시는 은사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아버지여, 저희의 겸손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비의 아버지여, 자비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풍부한 은사를 여기에 가하시사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권위를 갖고 나타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날을 다시 한 번 맞게 될 때, 오늘 이 시간보다도 과거를 회고하게 될 때에 멀고 먼 역사의 인연이 연결된 것을 생각하면서 이 인연 가운데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한을, 아버지,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그간에 한국 강토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십여 년 동안 당신이 수고하신 역사의 길을 닦기 위하여 왔다 갔던 수많은 애혼들이 많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인연을 수습하고 그 인연의 도리를 개척해 세워야 할 통일교회 역사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여기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눈물겹고 눈물어리고 기막힌 사정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딛고 선 오늘 저희 자신들이 하늘 앞에 자랑하기 전에 그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제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우리의 현실적인 책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될 때 하늘이 우리와 더불어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될, 우리의 입장에 서서 다시 이끌지 않으면 안 될 슬프신 하늘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자기 몸을 가꿀래야 가꿀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흠 많은 자체를 아버지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7회째를 맞는 이 만물의 날을 저희의 불충스런 마음들을 모아서 이 시간 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추앙하는 이 초점상에서,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추앙하는 초점상에서 본부의 위신을 갖추어 이날을 기념하고자 하오니 공출히 봐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중심은 아버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사연과 사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부자의 인연만이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불쌍한 아버지였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수구도 위로하지 못하였던 그 아버지를 저희들이 만났던 사실을 알게 될 때에, 그 아버지를 위로하기에는 저희들의 정성이 너무나 부족하였고 간절한 눈물이 끊어진, 정성어린 심정에 사무침이 막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아버지 앞에 자기 자신은 채찍이라도 가하시어 당신이 합당한 자리에 끌고 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달라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분부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 옛날 한때를 회상하게 되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때에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어떻다고 통고한 그 사실을 알고 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뜻의 길을 개척해 나오는 노정에 있어서…. 아버지, 바라고 나가던 그 길이, 혹은 검은 구름에, 칠흑같은 구름에, 흑암에 부딪쳐 가지고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있어서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릴 그런 찰나찰나마다 아버지는 가슴을 조이는 입장에서, 나는 아버지 목표를, 나는 목표를 향하고 섰노라고 권고하던 당신의 그 애절한 심정을, 애절한 음성을 잊을 수 없나이다.

오늘 이 시간도 또 그와 같은 자리가 저희 앞에 당도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사방을 둘러보게 될 때에 누구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늘의 진정한 내정을 연결시키어서 이것은 기필코 하여야 할 일이니 이것을 천년 만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통탄할 사실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내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서 하늘이여 영원 영원토록 믿기에 부족한 내 자신이 되었다고, 누구는 변하고 누구누구는 망할지라도 나는 하늘의 도리를 두고 변할 줄 모르는 나라고, 아버지, 깊은 심정의 사연을 나에게 맡겨 달라고 몸부림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당신의 아들과 딸이 여기 있습니까? 있사오면 천배 만배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 마음 앞에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갖지 못할 능력의 힘을 여기에 투입시켜 주시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라고 저희들은 수십만 번 불렀습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을 얼마나 비열한 자리에서 불렸던가를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온 우주가 우러러보는 가운데, 온 만상이 거기에 마음 졸이면서, 조심을 다하여서 불러야 할 그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 무릎 앞에 나을 때 저희들은 상처받은 자리에 있어서 지나가는 행로의 그 무엇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보다도 부족한 모습을 가져 가지고 나올 때가 많은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에 아버님이여, 저희 마음 문을 여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당신의 사연을 통고시키시옵소서, 이날에 슬펐던 아버지의 사연을 통고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목을 놓고라도 울고 울고 울고, 울음을 그칠 수 없는 사연을 여기에 통고시키시어서, 흠뻑 아버지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실을 생각하면서 미래의 날을 염려하면서 통곡이라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의 흐름과 방향이라도 갖출 줄 아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약한 손길을 가누어 아버지 앞에, 상처를 입은 손길을 아버지 앞에 펴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에 아버지는 서슴지 않고 붙들어 주었고 서슴지 않고 같이 대해 주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외롭고 슬프게 될 때, '야 아무개야' 부르게 될 때에 저희들은 몇만 번 몇천만번 뿌리치기를 일삼아 왔던 이런 역사적인 죄악의 뿌리를 박고 있는 불쌍한 것들인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은혜를 내려 주신 아버지의 수고의 공로를 저희들은 잃어버렸습니다. 하늘의 그 무엇보다도 천년 만년 역사를 찾아 나오면서 소원의 한 때를 고대하여서 감추어 두었던 만나를 저희 앞에 주었사오나, 귀하고 귀한 그 사실을 천하고 천한 것만큼도 느끼지 못하였던 자식들이었던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은 이곳을 조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자기의 본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나라, 동방의 해가 돋는 한반도, 자기들이 죽기 전에 기필코 이 땅을 밟고 이 나라이 땅에서 눈물을 흘리고 여기에 피땀을 흘리러 오겠다고 바라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 저희들은 걸어야 되겠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저희들은 그런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간절한 마음, 그들 보기에 자기 자세를 갖추어 이래야 된다고 가르쳐 줄 수 있고 권고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그런 자세를 갖추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의 부끄러움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또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청파동 이곳을 향하여 얼마나 바라고,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고, 얼마나 얼마나 이곳을 추앙하면서 눈물의 길, 혹은 쓰라린 개척의 길, 싸움의 길을 향하였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저희들의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중한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알지 못하는 것보다도 더 화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지극히 높고 귀한 자리가 귀한 것임을 알지만 그 반면에 두려움과 저주의 인연이 거기에는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부터 맺어진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만물의 날을 저희들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날이 있기까지에 하늘의 수고와 이날을 개척하기에 하늘이 지금까지 독려하면서 같이 역사하신 그것을 내심으로 축하하면서, 추앙하면서 짧은 시간 위에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만물의 날입니다. (판서하심)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어떠한 세계에서도 지키지 않는 이런 축제의 날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1968년에 책정한 하나님의 날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날을, 하나님의 날이니 혹은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는 이런 날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날을 책정하게 된 배경

오늘날 통일교회가 한국 땅에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 것은 수십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 역사과정에 어떠한 사람의 제창에 의해 가지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이날들은 이미 통일교회가 이날을 제창하기 전에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 도의 길을 따라간 순교열사들, 이런 사람들이 그날을 지적하여서 이름은 붙이지 못하였을망정 그 내심으로는 이런 때가 와야 되겠다고 그런 때에 있어서 그런 날을 맞기 위하여 얼마나 얼마나 준비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생각하면서 이날을 맞이 해야 되겠습니다.

얼핏 듣게 되면, 원리가 없다면 여러분들이 이날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것이요, 이날을 축하할래야 축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 원리를 근거로 하여 이런 날을 책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만물의 날이란 이 역사를…. 만물의 날이라 하게 되면 말은 간단합니다. 이 만물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오늘날 이 자연계라든가 혹은 지으신 이 피조세계에 그 자체가 태어날 수 있는 그날들을 갖고 있지만서도 그날들이 전부 다 부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날로부터 여섯째날까지 지으신 모든 피조만물이 부정을 당한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다시 만물로서는 새로이 긍정을 받을 수 있는 날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하면 만물 자체의 실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동기는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만물도 다시 새로운 날을 맞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 하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인간의 잘못이 만물의 세계에 잘못의 결과를 가져 왔는데 그것으로 끝나면 모르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는 물론이고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창조의 위업을 상속시키려는, 주체되시는 하늘까지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서러움을 중심삼아 가지고 침범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로써는 간단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내용으로부터 흘러 내려와 되어 가지고 역사과정에 엮어진 그 사연이란 것은 우리가 이루 혜아릴 수 없는 사연이 배후에 숨어 있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사연을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나라는 이 사연의 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나라가 동원되었고, 또 이 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특정한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졌던 하늘의 선지자들이 이 사명을 책임지고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현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 세계 자체가 이런 사연에 어떠한 부분을 책임지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등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어느 역사과정에서 개인으로부터 혹은 나라로부터 세계까지 인연된 비참한 역사의 인연이 이 배후에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상기하면서 오늘 우리가 제창하고 있는 이 만물의 날이 있기까지 얼마만한 수고의 길을 거쳐왔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로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 타락으로 빚어진 결과와 선악의 투쟁역사

그러면 여러분이 우리 원리적으로 볼 때에 인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본래는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 가지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로 들어갔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비참한 사연의 인연은 있을래야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지 못한 연고로….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생활세계, 직접 대할 수 있는 심정의 세계를 오늘날 인간은 갖출래야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타락이 가져다 준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올라가야 할 인생의 행로를 남겨 놓고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로 말하면 무원리, 흙과 물과 공기를 통해서 짓던 거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흙과 물과 공기만도 못한 이런 무가치한 존재로 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가 없는 세계, 하나님의 손길이 깃들 수 없는 이런 결과의 세계에 처하게 된 것이 인류시조로부터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인간들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를 엮어 나오면서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든지 이 원리의 세계로 다시 갈 수 있는 길을 회상하면서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락으로 떨어져 나간 인간 자체로서는 도저히 이 길을 수습해 나갈래야 나갈 수 없는 것이요, 개척해 나갈래야 개척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떨어진 자신이 이것을 쳐 올라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늘이 이길을 쳐 올라가게끔 우리를 뒤에서 밀어 주든가 끌어 주든가 하는 그런 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떨어져 있는 이 사람들을 원리세계로 끌어올리고,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밀어 올리고, 밀어올리든가 끌어올리는 역사를 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적인 일단을 책임지고 왔다 갔던 사람들이 오늘날 인륜도덕을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인 이런 인격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또 내적인 심정세계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혹은 종교적인 인물들이 나타나 가지고 안팎으로 혹은 끌고 밀어 올리는 이런 일을 지금까지 해 나왔다 이겁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선한 것으로서 선한 것으로서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세를 두고 보면 아무리 세상이 악하다 하더라도, 지금 싸우는 시대, 싸우는 역사과정에 처해 있지만서도 이 싸움이란 것은 반드시 선과 악의 대결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싸우는 데는 조금이라도 선한 편,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끌어 주는 선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기필코 승리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동네를 두고 보더라도 선할 수 있는 사람, 또 선한 사람 어느누구가 침범을 당하면 주위에 있는 관계없는 사람들도 여기에 동역자가 되어 가지고 침범받는 것을 방지해 주는 일을 우리는 생활환경에서 흔히 접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양심생활이나 그런 체험적 사실을 두고 볼 때에도 반드시 싸움을 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편을 지지하느냐 하면, 여기에는 조금이라도 선한 편…. 둘이 아무리 같다 하더라도 조금 나은 편을 중심삼고 하늘은 섭리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러한 선악의 투쟁역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인 악에 대해서 내적인 선이 승리하려면

그렇기 때문에 큰 원수를 대비해서 내가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이런 입장에서 상대되는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원수를 굴복시키느냐? 외적인 모든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장비를 갖추는 것보다도…. 외적인 문제를, 장비를 갖추기 위하여 악한 입장에 서서 아무리 장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 기반 위에서 승리하고 자기들이 좋을 수 있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깐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장비를 갖추지 못했더라도 내적인 기준에 있어서 하늘과 더불어 하늘을 업고 오늘날 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신념을 가져 가지고 외적인 적과 대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여기에는 일시는 몰리는 일이 있을는 지 모르지만 반드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거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사탄세계, 악한 것은 외적인 것을 들고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인격이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반드시 내적인 문제를 중요시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문제와 내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문제, 이것이 언제나 부딪치게 됩니다. 언제나 부딪치게 된다면 지는 것이 내적인 입장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외적인 입장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보고 알 수 있느냐?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더라도 내적인 입장이 마음이요, 외적인 입장이 몸이라는 것입니다. 몸이라는 것은 반드시 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양심세계에서는 중요시 안 해요. 양심세계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연장을 하거나 흑은 지연작전을 허락치 않아요. 그건 여러분의 마음을 두고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양심세계는 계속적인 선을 위하여 투쟁할 수 있는 원천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뤄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즉,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외적인 악에 대해서 내적인 선이 승리할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 개체를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이와 같이 역사는 반드시 선과 악의 대립된 역사를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세계를 가만히 보면 세계는 안팎으로 갈라져 있어요. 하나는 신이 있다 하는 유심사관이요, 하나는 신이 없다 하는 유물사관입니다. 하나는 전적으로 내적 문제를 강조하고, 또 하나는 전적으로 외적인 문제만 강조합니다. 이것은 내적 문제만 강조해도 안 되고 외적 문제만 강조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합해서 하나의 문제를 강조해야 됩니다. 그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이다 할 수 있는 결론을 가져올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평화의 세계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여기에서 행복의 출발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하나의 선한 목적을 중심삼고 같이 주장하지 않으면 이 세계에는 평화의 세계가 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엮어 나오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역사과정에서 여러가지 비참스러운 전쟁역사를 연결시켜 나왔지만, 그 연결시켜 온 역사적인 비참상을 종결시키는 데는 무엇으로부터 종결되어야 되느냐? 시작하던 거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져 가지고 나중에 종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시작은 어떻게 되었느냐? 인류역사의 시작을 두고 볼 때에, 좋은 것으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악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 끝이 악으로 남아지는 날에는 인류역사는 끝장입니다. 인류의 종국은 멸망입니다. 이것은 개체도 그러하였고 가정도 그러하였고, 혹은 사회·국가·세계도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 남아질 것이 무엇이냐, 최후에 종착점에 남아질 수 있는 그 자체가 무엇이냐? 악 자체가 아니라 선 자체가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기에 희망이니 목적이니 안식이니 위안이니 행복이니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지, 만일에 출발하던 악 그 자체가 맨 끝에 남아지면 역사는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종말시대에는 판단을 잘해야

오늘날 종말세계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자타를 막론하고 지금 때는 말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세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 말세는 화와 복이 나를 감돌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화와 복이 나를 감돌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까딱 잘못하면 화가 되는 거예요. 까딱 잘못하면 화가 되는 것입니다.

공산군이 남한을 침공했을 때 우물우물하다가 걸려 죽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회색분자들은 이러다 저러다 걸려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와 마찬가지의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비상시기입니다. 국가적인 비상시기요, 위기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하면 살고 이렇게 하면 죽는 거예요. 그것이 시간적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 내 눈앞에, 내 목 앞에, 내 생명의 촉각에 부딪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것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런 절박감이 그 나라운명이 돼 가지고 그런 위급한 입장에 있을 때가 국가의 비상시기요, 세계가 그럴 수 있는 운명에 부딪치게 될 때가 세계적인 비상시기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떠한 판단을 내릴 것이냐? 문제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어떠한 판단을 내릴 것이냐? 잘 판단내리면 복받는 것이요, 잘 판단 못 내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악으로 결과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판단하게 될 때 내가 판단하는 것이 선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고 선의 자리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그런 입장에서 판단을 내리면 그 사람은 사는 것이요, 까딱 잘못해 가지고 악의 입장에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판단을 내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가 훌륭하고 잘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그 배후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 배후와 과거는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타락은 악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악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악으로서 전체가 거들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악이 돼서는 안 되겠으니 두 줄기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두 줄기. 그래서 악과 선이 싸우는 이 거리를 제거시켜 버리고 한 고개 넘어설 때는 즉, 우주사적인 고개를 넘을 때에는 반드시 선의 출발을 봐야 됩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선의 출발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과정에서 맨 끝에 남아야 할 것은 뭣이냐? 맨 끝에 남아야 할 것은 선입니다.

세계적인 시대의 도래와 그 시대에 필요한 사상

그러면 어떠한 것이 선이냐? 내 자체가 기쁠 수 있는 것이 선이냐? 그런 선은 그 자체에만 해당할 수 있는 선이예요. 이 선할 수 있는 이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나뿐만 아니라 그 백성, 그 나라 전체가 기뻐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또 국가적인 선의 자리에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선은 세계적인 선의 자리와는 멀다는 거예요. 세계적 선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중심점과 국가를 보게 되면 세계로 가는데 있어서는 멀다 이거예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거리가 있으니만큼 거기에는 반드시, 세계적 선에 도달하려면 거리가 있는데 그 거리에 비례되는 역사적인 투쟁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면 지금까지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역사를 두고 보면 지금 어디에 와 있느냐? 세계주의적 시대에 왔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시대에 왔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을 추구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문제된 것이 사상입니다. 사상 하게 되면 그것은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 사상, 그렇잖아요? 사상 하게 되면 생각이지요. 이 생각은 나도 그러한 생각을 해서 생각이 일치됨과 동시에 우리 집안 전체도 일치된다 그거예요.

양심이 바라는 그 기준이란 것은 세계 공통입니다. 갑이란 사람은 이렇게 양심이 작용하고 을이란 사람은 이렇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목표로 해 가지고 작용하는 양심의 방향이라든가 그 목적 결과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있어서 이 사상(恩想)이란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그 사상이 무엇이냐? 양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전부 다 좋아할 수 있는 생각, 누구나 정당화시킬 수 있는 생각, 그것이 생활과정에 있어서도 그렇고, 자기가 생활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어떠한 면을 두고 보더라도 전부 다 정상화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이 들어가고 가정이 들어가고 사회가 들어가고 국가가 들어가고 세체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관입니다.

그 관(觀)이란 것은 이런 생각하는 것이 전부 다 하나의 형태로서 보편화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관이 형성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전세계적인 선이라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세계적 선이 이렇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세계는 이래야 된다고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당식으로 말하면 공산당은 이래야 된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으로서 이런 관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노력 했댔자 인간 자체로 이런 관을 성사시킬 수 없는 권내에 떨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여기에 필수 요건이 무엇이냐 하면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에 타락으로 인하여 악의 기원을 가져온 인간은 무원리권 내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 무원리권 내에 있던 인간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느 누가 밀어 주든가 끌어 줄 수 있는 이런 내용의 인연이 없어 가지고는 역사시대에 인류가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남아졌다는 것은 배후에서 밀어 주거나 끌어 줄 수 있는, 시대적인 역사와 더불어 그 배후에 있어서 활동하고 노력한 하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세주는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그러면 하늘이 바라고 있는 기준은 뭐냐? 좋은 것, 좋은 것입니다. 좋은데 있어서는 나 한 개체를 좋게 하기 위한 것이냐? 나 하나만 좋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도 누구나 다 좋을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계로부터 좋을 수 있는 기준, 이것이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선이라는 겁니다. 최고의 선의 목적과 더불어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기틀이 마련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하늘이 알기 때문에 이 세계 종말시대에 와 가지고는 구세주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구주가 온다! 거 이상하지요. 구주가 온다! 주인이 온다! 그 주인은 와서 뭘할 것이냐? 그 나라 그 세계를 다스린다. 세계를 다스리려면 주인이 전부 다 뭐 자기 뜻한 대로 이끌고 세계를 뭐 돌아다니면서 주관하느냐? 뭘 갖고? 그 관을 갖고. 그 주님이, 흑은 구세주면 구세주가 바라는 것은 세계는 이러한 세계다, 그 세계야말로 하나님이 원하고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세계다, 하나님이 좋아함과 동시에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된 우리 양심이 좋아하는 세계다, 여기에는 모든 인종차별국가·국경문제·역사적 배경, 혹은 전통사상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공통적이요, 선관에 있어서는 일치될 수 있고, 그 일치된 그 내용은 하늘과 더불어 공명할 수 있는 상대기준이다, 그런 자리에 임하여 이 세계를 향하여서 행차를 할 수 있는 그런 한 날이 오는 것이요, 그 한 날이 이루어진 그날이 구세주가 이 땅에 오는 날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가 오는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최후에 싸워야 할것은 선인데 그 선은 어떤 선이냐 하면 세계가 원하는 선입니다. 공산세계가 원하는 선도 아니요, 이것은 싸우는 입장에서 투쟁해 가지고, 때려눕혀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선은 어떤 선이냐? 때려눕히는 것이 아니예요. 강제굴복시키는 것이 아니예요. 자동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과거가 이랬기 때문에 현재가 이렇다, 과거는 이렇기 때문에 망했다, 망하기 때문에 이래야 된다 할 수 있는 것을 역사과정과 더불어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이상 생각하지 않는 최고의 기준을 가져 가지고 개인이 가는데 있어서의 그 기준을 가되 그 전체 목적과 부합될 수 있는 개인의 생활관, 가정이 가는데 있어서의 가정의 생활관, 흑은 그 사회가 가는데 있어서의 사회의 생활관, 국가면 국가가 가는데 있어서의 생활관, 세계면 세계가 가는데 있어서의 생활관, 그 관이 일치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사회 다르고 영국사회 다르고 흑은 각 국가 민족에 있어서의 역사적 배후가 다르고 윤리 도덕관이 다르다 해서 그 가는 길이 달라 가지고는 하나의 절대적 세계가 추구하는 선의 목적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입장에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최후에 남아져야 할, 최후에 종착점에 남아야 할 것은 선만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뭘하는 사람들이냐? 요 끝날에 남을 수 있는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는 까딱 잘못하면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에 중간 입장에서 통일방안을 모색해 가지고 싸우지 않고 편안히 접선할 수 있는 다리를 놓고 길을 닦자는 것입니다.

그 길 닦는 방식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해왔지만 반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먹고 일하려고 하는데 먹지 말고 일하라는 것이요, 남은 땀흘려서 일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땀을 흘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피는 보기만 해도 끔직하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피의 대가를 치르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피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개인을 위해서 치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 피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개인으로 망하는 겁니다. 그 피와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피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개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와 세계가 나타나기 전에는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국자니 혹은 옛날에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충신열사들은 어떤 생애를 소개했느냐? 그들은 자기 중심삼고 추구하고 자기 중심삼고 노력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수고의 터전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되 그 수고의 목표는 나라와 세계, 민족과 만민을 위하여 일한 사람들이라고 소개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 자신이, 2천 년 전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 생각하게 된다면 예수님 자신이 자기 일 한다고 했고 땀을 흘리고 십자가에 돌아갔지만, 그것이 그때 자신의 일로 했지만 그 일은 결국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에요. 세계를 위하고 혹은 인류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한 일이 나타날 때까지 하늘은 일을 계속하여 그 목적을 이를 수 있게끔 이 역사과정에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신이 그 나라를 위해서 역적도당에게 죽는 그런 입장에서 희생이 되어 간다 하더라도 그 나라에 대한 충신의 도리, 그 나라의 정기를 들고 일어나 가지고 이 나라가 자기가 구상하던 선한 목적의 세계라고 하며 죽어간 사람이 있거들랑, 그리고 그가 추구한 정신이 있다면 그 정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충신이 남긴 정신이 그 나라의 정신이 되고 이 정신을 통하여 충신이 이루려 하는 선의 목적지까지 이 나라를 끌고 가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수많은 역사과정에 선, 선, 선을 추구하던 것이 악에게 끌려가서 피의 대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왔지만 언제 결과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한 날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세계 역사상에 출세해 본 일이 없더라 이겁니다. 종교인들은 누구보다도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추구해 나왔는데 왜 세계에 있어서 출세를 그렇게 못 해봤느냐? 때가 이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종교인은 맨 나중에, 맨 끝에 가서 승리한다구요. 보기에는 어리숙하지만 세계 꼭대기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일한 것은 그 시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최종, 끝에서 그 일을 종결짓기 위해서 노력한 것입니다. 반드시 그 끝이 올 때까지는 이 사람들은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제시하여 찾아 나오는 최후의 나라, 그것은 기독교의 용어로 말하면 재림의 나라, 재림주님이 고대하던 새로운 세계입니다. 이것은 필시 타락의 인연을 갖고있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런 말이 결론적으로 안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난 걸 볼 때 타락….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최후에 남아야 할 것은 뭣이냐? 「선입니다」 얼마만한 선이냐? 아이구 내 집안 잘살아야지, 아이구 나는 3대 독자 외아들을 정성껏 키웠기 때문에 남이야 어떻게 되든 아랑곳없이 내 아들만 잘돼야 되지, 그래야 되겠어요? 아주머니들 그래야 되겠어요? 또 욕심 많은 남자들, 아이구 내가 끝까지 이렇게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돈을 모아 가지고 정성들인 것은 나 하나 출세해 가지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고, 그런 나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되라고…. 이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추구하고 바라는데 그 나라는 세계를 위한나라요, 그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는 세계, 이러한 전통적인 역사의 배후를 지녀 가지고, 오늘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라를 위함이요, 오늘 내가 활동하는 것은 세계를 위함이다 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아요. 망하더라도 그는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인류 앞에 무엇을 주려고 했느냐

오늘 예수님을 보게 되면 그 일생은 패자의 왕이었습니다. 그 일생을 보게 되면 목수 애비 요셉가정에 있어서 목수 조수 노릇을 하면서 별의별 생활을 다 했습니다. 그가 무슨 소학교를 나왔어요, 무슨 대학교를 나왔어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이 무슨 부탁하게 되면, 남이 변소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면 변소는 안 지어 주었겠어요? 뭐 한다는 것 다 해주었을 것입니다. 문짝은 안 지었겠어요? 겉보기에는 무가치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들고 깎는 까뀌는 세계를 위하는 것이요, 그가 만지는 손길에 부딪치는 나무조각은 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고 그가 쓸고 그가 깎아내는 모든 것은 앞으로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를 구상해 가지고 하나의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 것입니다. 그 꿈과 더불어 그생활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생각, 만민의 심중과 혹은 사연과 통할 수 있는 기점이 되었기 때문에 그 기점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는 발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예요. 받겠다는 것은 누가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받겠다는 것은,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누가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주겠다는 것은 누가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하면 내가 중심이 되어 있지않고 상대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는 데 있어서는 참 것을 주어라, 거짓 것은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 주어라, 함부로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 앞에 무엇을 주려고 했느냐? 무슨 돈 보따리가 아니에요, 생명을 주려고 했습니다. 사망권에 있는 인류 앞에 생명을 주려고 했습니다.

생명을 주는 데는 어떻게 주려고 했느냐? 생명을 주는 데는 자기 생명에 하나님의 생명을 플러스해서 주려고 했습니다. 주는 데는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의 힘에 하나님의 생명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것까지 주었습니다. 또 주는 데는 뭐 헌신짝 집어 던지듯이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하여 주었습니다. 자기의 온 사상과 자기의 모든 정성이 한 골수로 흘러가고, 천 태만상의 자연은 변할지라도 일편단심 이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런 마음을 가져 가지고 어떠한 원수의 진영을 거치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의 총칼 앞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철석같은 이 신념, 철석같이 맹세한 그 맹세는 천지가 변하기 전에는 변할 수 없다, 하늘이 자기의 위치를 옮기기 전에는 변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생명을 첨부시켜서 그것을 심어됐기 때문에 활동하는데 있어서는 예수의 생명 이상 부활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역사요, 주는 역사의 내용을 두고 볼 때 세계사를 움직일 수 있는 위대한 하나의 모체가 되어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의미가 큰 만물의 날

이런 얘기 하다가는 오늘 만물의 날로 가려다가 상당히 멀리 가겠구만.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뭣이냐? 주라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부르짖고 있는 만물의 날은…. 지금까지는 세상에 만물의 날이 없었어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아침에 해가 동녘에서 척 떠오르게 되면, 동편 산에서 매일같이 떠올라오는 아침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날들을 가지면 됐지 뭐 만물의 날은 또 뭐야, 만물의 날이…. 그러나 이 만물의 날은 의미가 크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근본문제, 근본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과의 세계가 아니예요. 오늘날 인류가 지금까지 수고한 인연으로 민주와 공산 이 두 세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것으로서 인간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과의 세계이니 결과의 세계만 가져 가지고는 둘로 나눠집니다. 돌기 위해서는 결과와 동기가 맞부딪쳐 가지고 서로 바꿔칠 수 있는 그 자리를 연속하지 않으면 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 우리가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자연을 대할 수 있는 그날이 없어서 한이 아니예요. 이 근본된 날이 없어서 한이었어요. 만물이 그리워하고…. 만물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목적이 있다 이겁니다. 어떤 물건이든 그 존재목적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코면 코가 코로서 생겨난 것은 그 존재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 안에 털이 있는 것은 공기에 먼지가 많기 때문에 거르기 위한 목적을 갖춘 것입니다. 눈이 또 그렇게 된 것은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눈이면 눈, 귀면 귀, 전부가 목적을 대비해 가지고 태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을 보면 개체가 태어날 때에 그 개체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는 물과 공기가 있어서 내가 먹고, 보고, 듣고, 살아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알고 태어났어요, 미리 알고. 알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내 몸의 물질적인 구성이 되기 전에 이런 내용을 알고 그렇게 구성될 수 있는 그 요인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우주의 근본은 물질이라고 합니다. 그 물질이 어떻게, 그 물질 자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발전해 가지고 이렇게 인간이 되었다면 어떻게 태양이 있는 줄 알고 눈이 생겨났느냐는 거예요. 나면서부터 나왔느냐 이거예요. 태어나기 전에 알고 태어났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런 것을 볼 때에 반드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 목적이 지금까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권이면 주권자, 위정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의 모든 법도가 달라지면 윤리도덕관이 달라지고 사회 구성까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엄연한 절대적인 결과의….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이렇기 때문에 그 원인과 결과를….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영원히 주고받으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이것을 연결시켜야 도는 것입니다.

근본된 그날을 복귀해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로 돌아가자

그러면 최후에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판서하심) 이러한 선을 오늘날 이 만물이 맞아야 됩니다. 이러한 선을 만물 자체도 맞아야 됩니다. 만물 자체도 맞아야 되고, 이러한 선을 사람 자체도 맞아야 되고, 하나님 자신도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을 지금까지 만물도 못 맞았고, 사람도 못 맞았고, 또 하나님 자신도 못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참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람 자신이 맞고, 만물 자신이 맞고, 하나님 자신이 맞자' 이런 입장에서 근본된 그날을 맞이하는 입장에 서야 했는데, 그렇게 못 됐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인류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곳에 떨어졌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류 앞에 참된 부모가 못 되었습니다. (판서하신것을 가리키시며) 그것은 당연한 이론입니다. 인류 앞에 참된 자녀가 못 되었기 때문에 참된 자녀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어 놓은 만물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참된 부모, 참된 자녀, 참된 만물, 이것을 그 자리에 올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복귀다 하는 것입니다, 복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인간이 첫번에 잃어 버렸느냐 하면 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여기까지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 둘 셋 넷이 되는데,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일시에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서 될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서 하나님 앞에 아담 해와가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다시 말하면 선의 기준을 이루어 놓은 그 순간서부터 하나님의 기쁜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과 같은 시간에 기쁜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기쁘고 또 인류의 우리 시조들도 하나님과 더불어 같은 입장에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기뻐하고 인류시조 앞에 하나되어 만물도 같은 날에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우리 통일교회에서 자랑하는 것은 참부모의 날을 가졌고, 참자녀의 날을 가졌고, 참만물의 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순서로 볼 때에 부모가 없으면 자녀가 나올 수 없고, 자녀가 없으면 세계 만민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우고 만물의 날을 세워, 3단계를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일을 해 나왔다는 거예요.

이런 날을 책정했다는 것은…. 참부모의 날을, 이 역사상에 없었던 날을…. 이 역사과정에서 비로소 만민이 공동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선의 중심, 가정을 대해서 부모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하나님의 선한 목적과 일치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를 결정했기 때문에 이 천지간에 부모의 날을 세운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녀의 날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녀와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만물의 날을 책정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통일교회 마루바닥에서 말한 것이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만 이것이 움직일 것이 아니라 이것은 앞으로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날이 될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요것이 여기까지 올라간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7년노정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공식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접주관권 내에 있기 때문에 본래 인간은 하나님에게 간섭받지 않고 원리의 자율성에 의해서 살아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기준을 새로 세워야 할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과정의 역사를 엮어 나오면서 직접 간섭하지 못하고 능력의 하나님이 무능한 입장에 서서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를 가려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번 7년노정이 끝나 가지고 이 과정에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날이 책정되었다는 것은, 인류의 시조가 비로소 이 천지 만물과 더불어 큰 웃음으로 크게 기뻐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겁니다. 슬퍼할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비로소 창세 이후에, 즉 역사가 생겨난 이후에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부여안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것은 부모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관계 내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 생명을 지닌 그들의 행복의 모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타락한 인간들이 그럴 수 있는 자리를 기필코 찾아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선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세계 자체가 선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구 자체가 선해야 됩니다. 이 지구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퍼를 흘려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 땅이란 것은 그 무엇을 갖다 두어도 망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폭군들이 나와 가지고 이 땅을 천대했고 유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청산짓기 위해서 선한 피를 흘려야 하고, 선한 땀을 흘려야 되고, 선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원칙입니다. 많은 대가를 치른 이 땅 앞에 이것을 해원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이 땅도 선한 사람의 눈물과 선한 사람의 피땀을 홀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남이 흘리지 않는 많은 눈물을 홀려야 된다는 거예요.

남이 좋아하지 않는 그런 입장에서 남에게 핍박을 받을망정, 남에게 쫓기고 몰리는 입장에 설망정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목적지는 이 세상 사람이 바라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들이 활동해서 흘리는 피땀은 망하기 위한 세상에 이런 퍼의 대가를 보태 주는 것이 아니라 이걸 제거시킬 수 있는 퍼의 대가를 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게 탕감입니다. 많은 대가, 혹은 작은 대가를 합하여 갚아 나오는 역사를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이 기준을 넘기 전에는 예수의 해원성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해원성사를 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의 창건역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곳을 향하여서 총진군하자는 명령을 걸고 나오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가 움직이는 시점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이후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

제7회 만물의 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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