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의 날 대향연 서울 집회 말씀 ―

​이 저녁에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본인이 목이 쉬어 죄송합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아도 소요스러운 이 서울 도심에 난데없는 외국의 젊은 청년들을 몰려들게 해 소요하게 만든 장본인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장본인 되는 문선명이라는 사람이 이 단상에 나타 났습니다. (박수) 그렇게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여러분들이 넓고 크신 마음으로 환영해 주시어 잘 평가해 주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박수)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인류의 새로운 장래'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혼란상에 처한 인류의 제문제 해결은 확실한 신관의 설정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혼란된 세계인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중세 이후에 몰락하기 시작한 불분명한 신본주의시대(神本主義時代)를 거쳐 지금에 와서는 불확실한 인본주의시대 (人本主義時代)에 처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물본주의(物本主義)라고 할 수 있는 유물주의 시대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혼란상에 처한 상태에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한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탈 이데올로기라는 수습할 수 없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제 문제 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요, 물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확실한 관이 나타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확실한 신관(紳觀)이 설정되면 그 신관을 통하여 바라보는 인생관, 그 신관을 통하여 바라보는 유심사관(唯心史觀)을 새로이 설정하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인류 세계의 새로운 장래가 나타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여기에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확실히 하나님을 안다면 중세에 몰락하기 시작한 불분명한 신관, 현세의 인본주의 사조, 유물주의 사조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도대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모인 여러분 앞에 한 가지 잊을수 없는 인상을 어떻게 남겨 주느냐 하는 것을 본인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디서부터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이제부터 말해 봅시다.

인체를 통한 하나님의 실재 증명

여러분 자신, 우리 인간 자신을 가만히 보게 된다면 제일 중요한 곳이 얼굴입니다. 그 얼굴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곳이 우리의 눈입니다. 이 눈을 중심삼고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본다면, 이 눈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서 이 눈이 어디서부터 왔느냐고 묻는다면, 부모로부터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의 눈은 어디서 왔느냐? 이것은 조상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인간까지, 거기에 눈의 역사의 근본은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 자체가 태어날 때에 하늘에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그 눈자체는 태양이 있는것을 알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눈이 왜 깜박깜박하느냐? 이 지구상에는 태양과 복사열로 말미암아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눈에 살눈썹(속눈썹)이 있는데, 그 살눈썹이 있게 된것은 이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기 때문인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면 최초의 그 눈이 공중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느냐?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았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 눈 자체가 복사열에 의해서 그 수분이 증발될 수 있는 이 지구성이라는 것을 알았느냐? 묻게 된다면, 우리는 알았다고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눈썹 자체가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느냐?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어 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을 알았느냐고 묻게 된다면, 그 살눈썹이 공기 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습니다.

물질로 된 우리 사람의 눈 자체를 두고 볼 때에, 그 자체가 갖춘 내용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천문학적 지식 기반 위에 나타난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눈이 생겨나기 전에 태양이 있었고, 눈이 생겨나기 전에 공기가 있었고, 눈이 생겨나기 전에 증발작용이 있었다는 것을 그눈 자체는 몰랐지만, 그 누구인가가 이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박물학적인 지식 기반 위에서 눈 자체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물질로 구성된 그 눈자체는 몰랐지만, 그 눈 자체가 존재하기 전에 태양이 있고, 공기 중에 먼지가 있으며, 이 지구성에 수증기가 증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사람 자체가 탄생하기 전에 그 누구인가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여기에 대비할 수 있게끔 눈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수만 명이 넘는 아이 닥터(eye doctor: 안과 의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과 의사들도 아직까지 신비스런 눈의 미지의 세계를 확실히 다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눈은 무궁무진한 신비의 궁(宮)이 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눈 자체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이와 같은 것을 확실히 알고 여기에 맞게끔 탄생시킨 존재가 있었고, 그렇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인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 어떠한 물질이나 존재 자체보다도, 인간을 앞서 생각한 기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그 생각한 주체가 누구냐? 우리는 이를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이미 서서 다닐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눈썹을 두고 보면 알수 있습니다. 눈썹은 이미 이마 위에서 땀이 흘러내려 눈 속으로 들어갈 것을 미리 알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하여 여러분의 코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고, 그 다음에는 여기에 왜 이렇게 양 옆으로 도랑처럼 되어 있느냐? 땀이 흘러 내려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부터 이와 같이 다 알고 되어 있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누군가가 모든 것을 알고 우리 인간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안 존재가 누구냐? 이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결정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상·행복·평화는 대상인 인간을 통해 가능

우리 인간들은 지금까지 참되고 영원하며 불변한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고대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변하는 인간을 통하여서는 이와 같은 이상적 요건을 성사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현시점에 처해 있는 세계 상황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실히 증거되는 사실입니다.

이런 때에 변치 아니하고,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신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인생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물질관,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에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수)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여도 그 하나님 혼자서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느냐 하게 될 때에, 하나님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거예요. 사랑이니 이상이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말은 혼자 성립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 요건 밑에서 형성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그 하나님 앞에 상대가 없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바라는 절대적 사랑, 절대적 이상, 혹은 절대적 행복, 절대적 평화도 성사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이 피조세계에 있어서, 그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대상적인 존재로 등장할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이냐? 인간 외에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인간만이 하나님의 이상을 성사시킬 수 있는 대상이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는 대상이요.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평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대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은 주체요 우리 인간은 대상입니다. 참된 사랑의 왕이 될 수 있는 하나님, 참된 이상의 왕이 될 수 있는 하나님, 참된 평화의 왕이 될 수 있는 그 하나님 앞에 대상인 우리 인간 자체를 두고 볼때에, 우리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인 것을 여기에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상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인간과 하나님

주체와 대상적인 관계에 있어서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청춘시대에 어떤 남자면 남자가 자기 상대를 취하게 될때에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취하고 싶었느냐, 더 나아가서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취하고 싶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묻는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취하고 싶다하는 대답은 자연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태어날 때, 자기보다 못난 자식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느냐 하면 그런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잘난 자식, 자기보다 훌륭한 자식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서 첫 아기를 낳았다고 합시다. 그 아이의 얼굴을 부모의 얼굴과 비교하면 제멋대로 생겼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며 '당신의 아들이 당신보다도 잘생겼다'고 말하게 될 때, 그 부모는 입이 귀 밑까지 돌아가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박수)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자기의 상대나 자기의 자식이 잘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의 욕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누구를 닮아서 이와 같은 요구를 하느냐? 인간은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원인은 반드시 하나의 내용을 통해서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자기의 대상이나 자기의 아들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런 요구를 하느냐?

원인 되시는 하나님을 닳았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박수)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질문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돌려서 '하나님, 당신도 대상의 존재가 당신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까? 또 당신의 아들이 당신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까? 하고 반문해 본다면, 하나님도 역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의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거예요. (박수)

오늘날 우리 인간은 자기의 가치를 형편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하나야 이거 무가치한 것이다' 동물과 같이 자기를 취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여서 한 가지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돌아간다면 이는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박수)

이러한 당당한 인간의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에서만이 참다운 사랑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요. 참다운 이상과 참다운 행복과 참다운 평화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자들은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박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사랑을 해서 뭘 하자는 거예요?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이상적 하나님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이상적이면 뭘해요?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요? 혼자서 무슨 평화니 자유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 인간은 본연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그렇지, 본연의 가치를 지녔더라면 하나님이 높일 수 있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수) 이러한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인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고의 대상이 되든가 최고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욕구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들 중에 사랑하는 대상의 존재가 1년이나 혹은 10년쯤 있다가 사라져 바뀌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사랑을 중삼삼고 대상은 영원이예요. 영원, 영원 불변이예요. 보다 차원 높고 절대적이고 유일적인 자리에서 불변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우리 인간들도 그런 것을 요구하는데, 영원하고 불변하며 유일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그 대상의 존재가 잠깐 있다가 없어지기를 바라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니 그 대상적인 사랑의 존재인 사람도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론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수)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여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에는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오늘 저녁에 한 가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인생은 영원해야만 된다는 결정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박수) 그 정도가 되어야 인생이 만물지중 (萬物地中)에 최귀(最貴)니 하는 그런 말이 성립되지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영원해야 됩니다. 인생은 불변해야 됩니다. 인생은 절대적 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유일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주체이니 그 사랑과 이상과 행복의 대상인 인간도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이제 여러분들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 실현이 가능하고, 사랑의 세계가 가능하며, 또 행복의 세계가 가능하며, 평화의 세계가 가능하며, 참된 자유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체와 대상적인 관념을 여러분이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 천지창조의 원칙을 따라가게 될 때에, 과연 참된 사랑이니, 참된 이상이니, 참된 평화니 하는 것을 어디에 근거점을 두느냐 하는 것을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천지창조의 이상적 기원과 타락의 기원

우리는 지금까지 천지창조의 이상적 기원을 어디에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창조라는 그 말 자체는 무엇을 뜻하느냐? 모든 것의 투입을 말합니다. 생각하는 그 자체가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자기 자체의 힘을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하는 데서부터 존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를 놓고 하나님이 생각하니 길은 두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길과,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 자신이 그 대상인 인간을 지어 놓고 인간을 위하는 길의 두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이상적 근원지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주체가 되는 하나님 앞에 대상적인 모든 존재들은 절대 복종하라, 주체만을 위하라 하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이 남성격 주체로 계시듯이 인간 가운데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남자가 주체이고 여자가 대상이라면, 그 남자도 여자에게 '주체를 위하라' 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여기에는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 대상을 중심삼고 '위하라' 할 수있는 그 자리를 설정하게 될 매에는 모든 것이 하나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의 이상적 기원을 어디에 뒀느냐? 결론을 짓는다면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자리에 둘 수 없고, 상대를 위하라고 하는 자리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도대체 타락한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서로 위하여 존재할 수 있는 원칙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벗어나서 인간 자체가 자주적 자아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타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위하라고 하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타락의 기원이 생겼다는 거예요. 천리원칙이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모든 이상적 존재물은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에서만 성립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듯이, 하나님의 본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아 인간도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했더라면 여기에서 이상세계의 실현이 가능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사람 자체를 중심삼고 주체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타락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의 공식적 결론을 내린 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 모든 이상적 창조물, 모든 이상적 존재물은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에서만 성립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박수)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보자구요. 어떤 부모가 태어나길 자식을 위해 태어나, 살기를 자식을 위해서 살다가, 죽기를 자식을 위해서 죽은 부모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들에게 있어서 참된 사랑의 부모요. 참된 이상의 부모요. 참된 행복의 부모이며, 참된 평화의 주체적인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효자가 어디에 있느냐?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 태어나고, 살기를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 살며, 죽기를 자기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죽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효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해서 태어나, 위해서 살다가, 위해서 죽는 아들딸을 대해 효자 효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박수)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두고 볼 때…. 여기에는 서울에서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참석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만, 먼저 남자를 두고 볼 때, 도대체 왜 태어났느냐 이거예요. '왜 태어나기는 왜 태어나, 남자인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지,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 났지' 이것은 원칙에 어긋납니다. 도대체 남자가 생겨나게 된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남자 자신을 위하는 것이 기원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여자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기분 나쁘더라도 할수없다 이거예요. 여자가 기원이 되어 가지고 남자가 생겨났다 하는 것을 오늘날 훌륭한 남자들은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청중 가운데 여자들은 입이 헤벌어져 가지고 좋아합니다. '아이구' 기분 좋아하지만 여자들 거 기분 좋아하지 말라구요. 얼굴이 얌전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좋은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은 누구 때문에 그래요? 자기 때문에 하는 여자가 있어요? 여자가 아무리 화장을 잘했더라도 여자가 밀릴 정도로 한 100명쯤 있는 자리에서 그 여자에게 '아이구 당신 화장한 거 참 좋소!' 하면서 두 사람, 세 사람 계속해서 그렇게 칭찬하게 되면 기분 나쁠 거라구요.

그러나 훌륭한 남자들이 '하, 참 아름답다'고 하게 되면 입이 벌어져 가지고 마음이 들뜹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 거 그렇다구요. 이 여자라는 분들은 태어나기를 여자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 때문입니다. 여자가 태어난 존재의 기원은 남자를 위하여, 그래서 태어난 여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서로 위하여 존재하는데도 불구 하고 자기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발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그러면 이상적인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이냐 묻게 될 때, 언제나 자기만을 위하라는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이예요? 아니예요. 아니라구요. 태어나기를 '아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당신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할 때 여자가 만족해요. 안 해요? 흐뭇해 가지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거예요. 또, 사는 데도 '나는 당신을 위해서 삽니다' 이래야지 '5퍼센트는 나를 위해 살고 95퍼센트는 당신을 위해 산다'고 하면 안 돼요. 그런 사람보다 100퍼센트 이상을 당신을 위해 산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박수) 그건 그렇다구요.

남자의 골격을 봐도 그렇다구요. 아 이건 덩치가, 왜 어깨가 그렇게 커요? 이건 미식축구 챔피온 모양으로 이렇게 크다구요. 그 다음에 여자는왜 이렇게 궁둥이가 커요? 여기 서울의 지하철이 만원이 되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만, 뉴욕 같은 곳에 가서 초만원된 지하철 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의자에 앉을 때 어깨가 넓은 남자가 앉은 옆에 쓱 남자가 앉으면 그 사이에 이마만한 구멍이 생깁니다. 그러나 거기에 궁둥이가 큰 여자가 앉으면 딱 들어맞는다. 이거예요. (박수) 이것을 보더라도 서로서로 위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연적 요건의 구조가 갖추어져 존재한 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남편, 참된 부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 그것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아내를 위해 태어나, 아내를 위해 살다가, 아내를 위하여 죽겠다고 하는 자리에서만이 '아! 이상적인 남편이요. 영원불변한 나의 사랑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남편을 가진 아내는 '나는 행복한 부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가정이 평화의 가정이 아닐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남편을 가진 여자는 불행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우주 창조의 기원으로 설정하신 지체의 왕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높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박수)

형제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제를 바라느냐? 형제 끼리 다투며 '아, 오빠는 나만을 위하라'고 하는 형제를 원하지 않는다구요. 서로서로 위할 수 있는 형제, 도리어 부모는 자녀들이 자기를 위해 주는 것보다도 형제끼리 더욱 위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모의 소원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형제는 자기를 중심삼고 위하라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위하려고 하는 형제 지간에 참된 형제와 사랑의 형제와 행복한 형제와 평화스러운 형제가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하나의 결론을 찾았습니다. 위하여 존재하는데서만이 참된 사랑이 시작될 수 있고, 참된 이상이 시작될 수 있고, 참된 행복이 시작될 수 있고 참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이 공식을 우리는 여기에서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이 이와 같은 우주 창조의 공식을 설정했다면, 이 공식을 통하여서만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도,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도, 하나님이 바라는 행복도, 하나님이 바라는 평화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 외에는 그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박수)

애국자·위인·성인은 모두 위하는 생활을 한 사람

이 공식을 적용하면 참된 애국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할 때에, 그는 태어나기를 나라를 위해서 태어나고, 살기를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죽기를 나라를 위해서 죽어간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위해서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간 사람이라면, 이는 애국자가 아닐 수없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은 분이 애국자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 등급을 매긴다면 더 위해서, 더 위해서 산 사람이 우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비참한 자리에서 지조를 가지고 더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는 보다 차원 높은 애국자입니다. 이 공식을 통한 결론은 자동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공식을 적용하여 범위를 넓혀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많은 위인과 성인이 왔다갔는데 도대체 역사과정에 제일 위대하고 제일 훌륭했던 그 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이 공식을 통해서 우리는 대번에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분이냐 하면, 태어나기를 인류를 위해서 태어났고, 살기를 인류를 위해서 살다가, 죽기를 인류를 위해서 죽으면서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복을 빌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이는 역사상의 어떠한 성인보다도 위대한 성인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박수)

여기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타종교 사람들도 많이 오셨을 줄 압니다. 미안합니다만 여러분에게 한 가지 결론을 내려 드려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한번 알아보자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기를 만민을 위해서 왔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만민과 하나님을 위해서 왔다구요. 또한, 살기를 자기를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죽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죽지 않았습니다.

그가 최후에 남긴 기도의 말씀 가운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이와 같은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은 죽는 것도 자기 뜻대로 죽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냐? 인류를 위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오기를 인류를 위해서 왔고, 살기를 인류를 위해서 살았고, 죽기를 인류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러한 마당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병정은 용서할 수 없는 원수 중의 원수요 적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까지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복을 빌었다는 사실을 볼 때에, 예수님은 역사 이래에 어느누구보다도 인류를 더더욱 위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수)

신구약 성경은 '위하여 존재하라'는 이 두 마디에 종결돼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의 천리의 법도를 따라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위하는 원칙에 백 퍼센트 합격한 분이 있다고 하면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보호하여 기독교를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 종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박수)

우리가 단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분석한다면 간단합니다.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어떠했다구요? '섬기러 왔노라!' 그것은 천륜의 태도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위함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위하러 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본래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물들의 이상적 기원이기 때문에, 이 기원을 설파하고 그 기원에 일치될 수 있는 생애를 걸어간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이 아무리 내용이 많다 하더라도 이 두 마디에 종결 된다는 거예요. 위하여 존재하라고 하는 여기에 다 끝난다는 거예요.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는 역설적인 논법이 천지창조의 원칙적 기원을 통해서 볼 때 진리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박수)

하늘나라라고 하는 영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본인은 하나님의 특정한 은사를 입어 가지고 영계에 대한 내용을 잘 체험한 바 있습니다. 그 세계의 구조가 도대체 어떻게 돼 있느냐? 간단하다는 거예요. 천국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가느냐?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운 자리에 가는 사람을 도대체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냐? 자기를 위해서 산 사람은 못 가는 곳입니다. (박수)

이상적 근원이고, 창조의 중심존재인 하나님 자신도 우주를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적인 중심존재로 계시는 그 천국 구조는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위하여 존재하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하는 결론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중에 교회를 이용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아무리 교회를 늙어 죽을 때까지 다녔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믿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되, 자기의 이익을 중심삼고 믿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란 어떤 종교인가

우리의 본향의 세계가, 그 본연의 세계가 하나님이 계시는,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분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그 본향의 법도에 알맞을 수 있게끔 훈련시키기 위한 장소가 무엇이냐? 왈(曰),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종교의 사명이 무엇이냐 할 때에…, 교권주의자들과 같이 자기 교파를 위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자기의 교권을 넘어서라도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사는 교파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교회를 위해서 살고 자기 교회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대해서 싸우고 인류를 위해서 가는 교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그 본향의 세계에 돌아갈 수 있도록 그 법도에 맞게끔 훈련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이래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희생 봉사하라!' 이게 왜 그런지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거예요. 왜 희생봉사를 해야 되느냐, 몰랐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본연의 세계가 위할수 있는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그곳에 갈 수 있는 훈련과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봉사를 강요한 것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역사과정을 통해 섭리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여기에서 공인할 수 있습니다. (박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공인할 수 있다구요.

그러면 참된 종교, 참된 종교가 어떤 종교냐?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은 우주를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구하는 거라구요. 기독교인들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독교 무슨 장로교의 예장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장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해야 되고, 기독교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박수)

여러분, 주일학교 학생들까지도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교파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게 아닙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고 하신 그 세상 가운데는 이 인류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여러분이 주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묻기를, '주님!' 하고 묻는다면 '오냐, 왜? '당신은 우리 예장 교회의 주님만 되고 싶지요? 할 때 어떻게 대답하겠어요?'오냐' 그러겠어요?'천주교면 천주교의 주님만 되고 싶지요? 할 때 '오냐' 하고 대답하겠어요? 천만에,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되고 싶은 데는 인류의 주님이 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박수)

기독교의 본연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류 구도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심판대 앞에 서서 갈 길을 가지 못합니다. 내가 알아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참된 종교는 어디에 있느냐?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나라는 물론이요. 자기의 교단이나 자기의 교회를 투입할 수 있는 주장을 가진 종교입니다. 이런 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는다구요. (박수) 이단이 너무 많고, 삼단이 너무 많은 믿을 수 없는 이 현실 사회에서 우리가 가려가야 할 것은…. 누가 나라를 더 위하고, 누가 세계 인류를 더 위하느냐 하는 원칙을 두고 볼 때에 참과 거짓은 확실히 갈라지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오늘 저녁 여러분들이 이 장충체육관에 오셔서 한 가지 기억해야 될것은 위해 살아야된다는 내용입니다. 위해 살때 내가 천국에 갈수 있느냐, 지옥에 갈 수 있느냐 하는 자명한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내가 일생 동안 50평생을 살았으면 그 일생을 회고해 볼 때에, 절반 이상을 나를 위해 살았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내가 알아보니까 못 간다구요. 그러나 절반 이상을 자기를 넘어 남을 위해 살고,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해, 하늘땅을 위해 산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죽어 보라구요. 죽어 보라구요. (박수)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은 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교만을 원수시하고 있습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거예요. 겸손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제일 낮은 자리에서 높이라고 가르쳐 준 것, 위하라고 가르쳐 준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의 골수 사상이 아니냐, 이것을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위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왜, 어찌하여 위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그 내용적 요건을 내가 몇 가지 말해 보겠습니다. 왜 위해서 사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보라구요.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어요? 진정으로 자기 생명을 걸고 여러분에게 신세를 입힌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들이 100퍼센트의 신세를 졌으면 그 신세를 갚는 데 한50퍼센트는 떼어서 자기 포켓트에 집어 넣고 50퍼센트만 갚고 싶어요. 아니면 100퍼센트 이상 갚고 싶어요? 여러분의 본성이 어떠합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100퍼센트 이상 갚고 싶은 본심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본심을 따라 구원받을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는 거예요. (박수)

만일에 여기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이씨면 이씨, 김씨면 김씨에게 진정으로 생명을 다하여 은혜를 입혔다고 할 때, 그 이씨나 김씨가 나에게 갚을 때는 100퍼센트 이상 갚는다 이거예요. 그러니 플러스되고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본심으로 100퍼센트 이상을 나에게 갚으면 나는 또 거기에 플러스하여 120퍼센트를 갚아 주고 싶다는 거예요. (박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고 받으면 받을수록 감퇴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가중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는 거예요. 영원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귀결되는 것입니다. (박수)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서 백 퍼센트를 갚았다고 하면, 주고받으면 받을수록 70퍼센트, 40퍼센트 내려가서 나중에는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위해 사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아야 됩니다. 위해서 살때는 영생할 뿐만이 아니라 거기에서 번창이 벌어집니다. 거기에서 발전한다 이거예요. (박수) 여기 젊은 청년들이 알고 보면 간단한데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렇지요? 신세를 졌으면 신세를 갚는데 적당히 갚을 리가 만무해요. 진정으로 생명을 걸고 그 이상 갚고 싶은 본심을 가지고 있다구요.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두번째 요인이 무엇이냐?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 가정에 한 여덟 식구가 있다고 합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심삼고 형님, 누나, 동생이 합하여 여덟 식구가 살고 있는데, 그 여덟 식구 가운데 맨 나이 어린 동생이 가정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형님이나 누나보다도 그 가정을 더더욱 위하게 될 때에는 어떠한 자리에 나가느냐? 점점 높임을 받아 가지고 중심적 존재로 등장한다구요. (박수)

오늘날 종교에서 가르쳐 준 모든 논리가 역설적인 논리 같지만, 위해서 존재하는 이 원칙을 따라가 보게 될 때에, 보다 위할 수 있는 존재일수록 보다 차원 높은 중심존재가 된다 이거예요 (박수) 오늘날 이기주의적인 청년남녀들이 이것을 안다면 전부 다 이렇게 될 거라구요. 간단하다는 거예요. 성경이 역설적 논리를 세워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와 같은 천륜의 기원을 따라가라고 가르쳐 준 참 진리의 길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을 이러한 결론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박수)

어떻게 돼서 중심존재가 되느냐? 하나님은 만우주를 위해서 존재하므로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와 같이 닮은 존재를 하나님을 대신한 중심존재로 세우는 것은 타당한 결론 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진정으로 위하는 주체 앞에 진정으로 위하는 대상이 될 때, 자연히 중심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정치철학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고심거리입니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거예요. 보다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그 중심존재 앞에 지배를 받고 주관을 받는 것이 오늘날 인간들은 부끄러운 줄 알았다구요. '남에게 지배받고는 못 살아? 했지만 천만에요. 진정으로 자기를 위하는 사람 앞에 완전히 주관받고 지배받을수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예요(박수)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된다면 하나님은 천지의 중심존재로 계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 천년 만년 지배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만일에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당장에 죽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진정으로 지배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러한 분이 있다면 거기에 참다운 평화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위하는 존재는 중심존재가 되고, 중심존재가 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통일적인 환경을 여기에서 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그 다음에 세번째 요인은 뭐냐?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랑' 하면 '그건 내 사랑이다'라고 생각하기 쉬웠다는 거예요. '사랑' 하면 그것을 여러분들은 자기 사랑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도대체 사랑은 어디서 오느냐? '사랑은 내게서 오지…' 천만에요. '이상' 하면 '그 이상도 내게서 오지…' 천만에요.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사랑과 이상은 나로부터 올 수 없다 하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이 고귀한 깃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상대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박수)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혼자서 '아이구, 사랑, 사랑, 사랑….' 할 수 있어요? '아이구 난 이상이 있다. 이상이 있을 수 있어' 할수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내가 만약에 여기 이 컵 뚜껑을 상대로 하여 시를 읖고, 바라보면서 히죽히죽 웃는다면 여러분들이 볼 때 이것을 따라보고 웃으니까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만일에 이 컵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눈을 뜨고 치근덕거리면서 웃고 시를 읊는다면 그건 뭐예요? 미친 사람이지요.

이렇게 상대가 고귀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보다 귀한 사랑과 생명보다 귀한 이상은 어디로부터 오느냐?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것을 봐서라도 겸손히 머리 숙여야 되며, 위하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교회를 통일하기 위한 하늘의 작전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그럴 거라구요.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재림주라는 이름 갖고 제일 피해를 많이 입은 대표자가 여기에 선 사나이다 이거예요. 뭐 어떻구, 어떻구, 뭐 어떻구…. 어떤 사나이냐 이거예요. 통일교회가 도대체 무엇이냐 이거예요.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이름 그대로 교회를 통일해 보겠어요? 교회를 통일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생각해 볼 때, 로만 가톨릭을 중심삼고 희랍 정교가 950년의 역사를 지나왔지만 아직까지 하나가 되지 못하였고, 신교도 4백여 교파로 분립되어 서로서로 물고 뜯고 수백 년 동안 싸워 나왔는데 이것을 통일한다니, 통일교회의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정신이 조금 돌지 않았나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문제는 간단하다고 나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는 거예요. 무엇을 통하여서 가능하냐? 위해 존재하는 이 원칙을 통하여서 ….

만일 천주교회 신부들이 자기 교회를 위하는 것보다도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혹은 문 아무개가 그 이상 위할 수 있게 될 때는 그들은 이쪽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박수) 천주교 교인들이 자기 주교를 위하는 것보다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천주교 주교를 위해 살 수 있다면 통일이 가능하다 이거예요. (박수) 보다 위할 수 있는 길, 보다 위할 수 있는 길에는 영원히 번창이 벌어지고, 그 길을 가는 존재는 중심존재가 되어서 사람들은 그로부터 주관받기를 바라며 열기에 사랑과 이상이 찾아오기 때문에, 불가피적으로 통일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박수)

이러한 논법에 의해 가지고 통일교회의 나라고 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30년 동안 기성교회로부터 별의별 모략중상을 다 받았지만 가만히 있다구요. 못나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예요. 천리법도는 너무나 엄연하고 냉혹한 원칙을 가려 가는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묵묵부답으로 나왔습니다. 마치 하나님같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가야 된다는 거라구요. 보라구요. 참된 자리에 선 사람을 참되지 못한 사람이 쳤다가는 손해배상을 물지요? 그렇지요? 몇 배? 3배, 7배, 12배, 70배, 120배, 그러한 배수에 의해 가지고 갚아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다 차원 높고 선한 기독교의 한 사람을 죽여 놓으면 몇백 배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맞고 빼앗아 나오는 하늘의 작전이 있다는 걸 나는 알았습니다. (박수) 기성교회가 모두 합해 가지고 통일교회뭐 어떻구 어떻구 하며 반대해 보라는 거예요. 그대들보다도 통일교회가 선하게 될 때에는, 그대들이 아무리 싸워 나온 선의 터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일교회에 손해배상으로 옮겨 줘야 된다는 거예요. 이론적이라구요. (박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요즈음에도 상당한 반대를 받으면서도 히죽 히죽 웃고 있습니다. 그 반대받는 것이 뭐냐? 복 빼앗기 내기라구요. 손질 잘못 했다가는 나라가 왔다갔다하고, 자기의 선조가 쌓아 놓은 공적의 터전이 왔다갔다한다는 걸 우리는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부디 그걸 알고 이제부터 기독교가 정신차려야 됩니다. (박수)

이상실현이 가능한 단계적 법칙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 결론을 짓자구요. 이 세계 도상에, 이 지구성에 있어서 그 누구인가가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이 우주를 넘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위한다고 하는 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러한 하나의 단체가 나타나기를, 그러한 하나의 민족이 나타나기를, 그러한 하나의 국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과 소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박수)

오늘날 그 어떠한 단체인가가, 그 어떠한 사상과 이념을 가진 무리들이 어디에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위해서 살 수 있는 길을 넓혀 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위하라는 원칙을 세운 하나님은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박수) 그와 같이 찾는 하나님의 뜻 앞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그 자리에 나가 보자고 몸부림치는 모습이요. 단체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여기에서 우리가 이상적 실현이 가능한 단계적 법칙과 공식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거예요.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구요. 가정은 종족과 친척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또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국가는 자기 국가를 위주로 하여 세계 국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위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국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박수)

독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독재주의 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자기의 나라를 위주로 하여 수많은 민족과 나라를 짓밟겠다고 하는, 나를 위해서 너희들이 살아라 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원수인 독재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날 공산주의는 1957년을 한계로 해 가지고 소련과 중공이 결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슬라브 민족만을 위한 세계 공산주의를 주장하게 되니까, 거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소련을 종주국으로 한 공산주의를 꿈꿨기 때문에 그 공산주의는 갈라져야 됩니다. 그러나 소련 공산주의가 세계 공산주의를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사상을 가졌다면, 중공과 소련이 갈라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소련은 초민족적인 사상 기준의 설정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주도국가인 미국 자체도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미국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하면, 민주주의를 거느려 가지고 세계를 위하는 데에 있어서 미국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그랬더라면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세계를 버리더라도 미국을 위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미국은 오늘날 비참한 코너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이상과 사상은 어디에 있느냐?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그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고 하는 그러한 국가와 민족이 나타나거든, 그 당시에는 비참한 자리에서 희생될지 모르지만 25세기나 30세기 이내 어느 한때에, 세계가 필요로 하는 때가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가서는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오늘날 대한민국도 대한민국만을 위주한 대한민국을 설정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아를 위한 대한민국을 누가 설정하며, 세계를 위한 대한민국을 누가 설정하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한 대한민국을 그 누가 설정하느냐 하는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 비참한 가운데 놓여 있는 한국 백성이 바로 찾아가야 할 직행길인 줄 알고 있습니다. (박수)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출혈을 감수하고, 자기 교회를 희생시켜 가면서라도 공산주의와 첨단에 서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민주세계의 몰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희생을 각오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단체가 희생되더라도 이 엄숙한 사상을 남기는 그 터전 위에는 하나님이 기필코 함께 하실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가에서 민족 반역자로 몰려 30대 청년으로 무가치하게 죽은 예수님이 세계를 지도할 민주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그 국가관의 사상을 가질 줄 누가 알았어요?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묵묵히 이 길을 닦아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 세계 25개 국에서 몰려온 국제기동대원들에게도 '너는 너희 나라 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요. 참된 종교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땅까지 그들은 한민족을 자기 민족 이상 사랑하자는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하나님은 세계를 위해서 책임질 수 있는 그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그 교회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기독교회 혹은 통일교회의 하나님이 되고 싶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기독교회의 하나님이나 통일교회의 하나님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세계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구원받은 세계의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박수)

이상세계를 향한 공식적인 삶을 살자

보다 차원 높은 길을 위해 가는 무리는, 보다 차원 높은 자리에 있어서 영원하고 번창하여 그 환경에서 중심이 되어 자동적으로 주관할 수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하늘로부터 임하는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이상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또한 부부는 자녀를 위하여,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사는 것이 공식적인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이상세계라고 하는 개인적 인생관이나 국가관, 혹은 우주관 이나 신관(紳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공식이 나온다는 거예요.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는 것이 이상이라는 거예요. (박수)

여러분은 최고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있다' 하고 최고의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위해 있다' 하는 그 자리에 가야 평화니, 행복이니, 이상이니, 참다운 사랑이니 하는 안식이 이뤄진다는 거예요. (박수)

다른 말로 결론을 짓는다면, 내것은 아내의 것이요. 부모의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의 것은 종족의 것이요, 종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국가의 것이요. 국가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박수)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그 세계, 개인으로도 위하고, 가정으로도 위하고, 사회로도 위하며, 국가와 세계적으로도 위할 수 있는, 어디에 가나 위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이상경(理想境)입니다. 이상경이니까 참된 사랑이 있고, 참된 평화가 있고, 참된 행복이 있고, 참된 자유가 있는 세계, 그곳이 왈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입니다. 또한 지상에서 그런 세계가 벌어지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으니,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수)

타락한 인류는 이러한 곳을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이렇게 구현된 세계가 벌어지게 될 때에, 인류의 새로운 장래, 새로운 희망의 세계가 전개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마치려 합니다. (박수)

인류의 새로운 장래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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