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며칠 동안의 수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여러분들은 내일이면 하나님과 약속된 자기의 책임 장소를 향하여 각자가 산지사방하여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일면으로 새롭고 벅찬 마음도 가지고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무사히 이 집회를 마치게 된 데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여러분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 한 때밖에 있을 수 없는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이 중대한 사명을 여러분이 감당해 내느냐, 못 해내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연약한 아낙네들로서 가는 길 앞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으로 그 누구도 고대하지 않는 마을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밤과 낮으로 사람들을 상대할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처자, 혹은 젊은 청년, 여러분이 대하는 그 마을이 크면 클수록 여러 군상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둥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쭉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잘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난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외지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하루 세 끼를 먹는 데도 곤란을 느끼는, 못먹고 못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형태의 사람이 여러분 앞에 나타나서 비록 한 때의 환경에서 만나고 인연을 맺는 입장이지만, 그렇게 만나게 될 때까지는 숱한 인류의 역사적인 한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항시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못생기고 못나고 형편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형편없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생애의 가름길이 될 수 있을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상상하던 외의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혹은 자기가 바라던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너무 반겨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어떠한 인연이 있는 이상, 그 사람을 믿든가 그 사람을 의지 하든가 하면 손해를 보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에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인연과 사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하려고 합니다.

잘못된 인연과 현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하늘과 땅은 하늘도 별개의 것이요, 땅도 별개의 것 같지만 언제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내용도 전연 다르고 모양도 다른 것이지만, 언제나 뗄 수 없는 하나의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하늘과 땅, 그 가운데 사람, 이것을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도 역시 하늘이 있고 땅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을 중심삼고 하늘과 연결되며 사람을 중심삼고 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을 전체로 보면 세계 인류가 되는 것이요, 좀더 작은 분야로 놓고 보면 한 나라가 되는 것이며, 더 작게 쪼개어 놓으면 하나의 종족이 되는 것이며, 더 작게는 하나의 가정이 되고, 더더욱 작게 쪼개어 보면 남자와 여자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이 두사람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든 내용도 서로 다르고, 성격도 서로 다르고, 소질도 서로 다르지만,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인연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 인연에 의해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는데,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비사(比辭)로말하면 상대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는 하늘을 대신하고, 어머니는 땅을 대신합니다. 이와 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하나님과 이 피조세계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것입니다.

그 인연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그 인연을 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뗄 수 있는 악도 있을수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 자신도 피조세계와 인연지어진 이 모든 것을 떼어 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자리에서 인연이 맺어지고 정상적인 자리에서 목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는 잘못 인연된 한을 풀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본래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불의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불의의 인연으로 말미암은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와 여자 가운데에서 남자가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여자가 주역을 하는 입장에서 남자를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올바른 인연이 아닌 엇갈린 인연이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세계는 순리적인 인연권내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역리적인 인연의 결과를 빛어낸 권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이 순리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고 복리적인 내용을 거쳐서 전개되었고, 그런 역리적인 환경으로 엉클어져 있기 때문에 이 원치않는 인연 가운데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는 타락한 인생이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의 인연, 우리 인간이 원래 허락받지 못한 불의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엇갈려졌으니 이 사실을 어떻게 다시 새로운 인연으로 교체해 놓느냐?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사람들이 양심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사람들이요, 양심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의 인연을 맺어 하늘을 통하고 땅에 정성을 다하여 도의 길을 찾아오면서 하늘과 땅의 인연을 대신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인연을 다시 바로잡기 위한 사명을 짊어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요,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게 될 때, 이 타락한 세상에서 바라보는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를 올바른 창조주로 해득할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불의의 인연, 혹은 역리적인 인연 가운데에 있는 우리 인간이 순리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에 있는 절대자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원리적이고 비인연적인 입장에서 태어난 인간들이 인간 세계의 끝날에 와 가지고는 '하나님은 죽었다' 하는 결론까지 짓게 된 것도 모두 비인연적인 관계로 말미암아 빚어진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올바른 나, 올바른 본래의 인연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지만, 오늘날의 여러분은 타락한 부모의 혈육을 받아 인연을 맺고 태어났기에 부모를 두고 볼 때도 우리가 본래의 인연으로 맞이해야 할 부모는 어떠한 부모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의 인연에 의해서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에 불의의 결과인 그 자리에서 아무리 본연의 인연을 따라서 모셔야 할 부모를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형제를 보더라도 전부 다 불의의 인연을 따라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고 있는 형제 끼리끼리 아무리 본연의 형제의 인연을 상고해 봐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서로 사랑하라고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참다운 형제의 인연인지를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 나왔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가정을 볼 때도 그 가정이 불의의 인연에 따라서 존속된 가정이기에 그런 가정 자체에서 보게 될 때, 본연의 참된 인연을 따라 난 가정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의의 가정에서 태어난 우리 인간이요, 불의의 가정들이 합해져 불의의 종족을 이루고, 불의의 민족을 이루고, 불의의 인연에 따른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나왔습니다. 그러니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아무리 생각해도 본연의 인연에 따른 종족이 어떠하며. 그 민족이 어떠하며, 그 국가가 어떠하냐 하는 것을 알래야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인류가 지금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지만, 본래 하나의 세계의 내용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인연을 따라 엮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인류는 본연의 인연을 따라 이루어질 세계를 알래야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우리는 환영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가진 것이 아니라, 환영을 받아서는 안 될,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역설적인 노정을 거슬러 가야 할 운명권에 섰다는 사실이 비참한 것이요, 이것이 타락한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본래 사람이 맺어야 할 사랑의 인연

그러면, 이러한 나, 이러한 나는 어디서부터 이 인연의 줄을 바로잡겠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본래 인연은 어떤 절대자가 계시면 그 절대자로부터,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으로부터 인연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인연이 없어 가지고는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존속의 기틀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이상, 존재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주체를 추구하여 볼때 그 주체는 두말할 것이 없이 하나님께 귀결됩니다. 즉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연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땅이 생겨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 사랑의 소유자시라면 최고의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 인간은 그분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연줄을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최고의 하나님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연줄을 찾고 찾아 더듬어 가게 되면 맨 나중의 귀결점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아버지이니 우리 인간에게는 자식 이외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이상의 자리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라는 결정적인 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참사랑을 할 때, 참사랑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고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자기 생명을 바꾸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부자의 관계가 아니겠느냐? 이러한 부자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이루었더라면 인간은 불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들만 되어도 삼천만 민족에게 자기가 행복하다고 얼마든지 자랑하더라도 그 누가 참소할 수 없을진대,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아들딸로 태어나고, 그러한 인연 가운데서 모순과 상충이 없는 순리적이요 자연적인 연줄을 따라가서 모든 환경의 요건을 넘어서 부자지정(父子之情)이 맺어지는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있다면, 그 아들딸이 동으로 가면 아버지도 동으로 따라가고 싶을 것이요, 아들딸이 서로 가면 아버지도 서로 따라가고 싶을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동으로 가면 그 아들딸도 동으로 따라가고 싶을 것이며, 아버지가 서로 가면 그 아들딸도 서로 따라가고 싶을 것입니다. 가면 같이 가고, 오면 같이 오고, 살아도 같이 살고, 일을 하더라도 같이 하니 그 인연은 일시적 인연이 아니라 영원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좋은 일이 있으면 '아이 좋아. 영원히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때에만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랑의 자리는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인연이라는 것은 가다가 일시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참되지 못한 인연은 가다가 어느 한 때에 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

큰 원과 작은 원의 둘레를 맞추게 될 때 어느만큼까지는 맞출 수 있지만 그 이상 가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만큼은 인연이 있어 맞출수 있지만 나중에는 갈라진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둘이 완전히 하나되는 데에 있어서는 어디를 가나 갈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한 십년쯤 살다가 갈라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 백년쯤 살다가 갈라지고 싶은 사람 있어요? 영원, 영원, 영원히….

영원히 가더라도 갈라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되는 그 자리에서 바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되기를 왜 우리가 바라느냐? 두 가치가 하나로 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은 갈라 놓을래야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창조주와 완전히 하나로 맺어져야 하는 인연이 인간에게 있어야할 것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남자와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여자가 완전히 하나되었다고 하면,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가 하나된 그 기틀 위에 남자 여자가 부부로 하나되었다고 하면 그 부부가 갈라지고 싶을 것이냐? 갈라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고 싶은 것은 물론이지만 본래의 인연을 중심삼아 이루어진 부부라면 잠깐 살고 그만두고 싶겠어요? 영원히, 영원히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권내에 있는 생명이라든가 그러한 사랑권내에 있는 물건, 혹은 그러한 사랑권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 상대가 갖고 있는 전부도 그냥 그대로 영원히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이 아무리 누더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길로 툭 차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렇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완전히 하나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하나되고, 남자는 남자끼리 하나되고, 여자는 여자끼리 하나되고, 그 다음에 부부끼리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그 중의 어떤 것은 싫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하나되게 되면 신랑의 머리카락도 신부의 것이요, 신부의 머리카락도 신랑의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하나 떨어져도 그걸 주어서 '이게 그분 것이로구만' 이렇게 하지 '에이, 이게 뭐야' 하면서 함부로 짓밟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두고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생명은 얼마나 남겨 두고 싶을까요? 백년쯤 남겨 두고 싶을까요, 영원히 남겨 두고 싶을까요?「영원히요」 영원히 남겨 두고 싶을 것입니다. 사람도 그러한데 하나님은 어떨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 하게 되면, 백년쯤 살다가 죽게 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같이 데리고 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일하고 싶고, 같이 볼 수 있는 자리에 두고 싶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는 몽땅 영생을 원할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만이 영생이 필요한 것이지, 그 외의 세계에서는 영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참된 인연

그러면 참된 인연은 무엇이어야 되겠느냐? 대우주의 모든 희망의 중심이요. 모든 생명의 원천이요, 힘의 모체가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그런 인연이 있을진대 그 인연이 무슨 인연이겠느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의 인연입니다. 그 인연을 붙잡고 그 인연과 하나되면 즉, 모든 것이 하나님과 하나되게 되면 그 인연에 달려 있는 것 전부가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이퀄 사랑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도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 노릇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노릇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아버지 마음이 반석처럼 냉랭하고 겨울의 돌처럼 차다 할 때는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어요, 못 해요?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머니 노릇 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라고요.

그렇지만, 보기에는 덥수룩하여 제삼자가 그 얼굴을 보게 되면 기절하게 생겼더라도 그 텁석부리 아버지의 마음 속에 두툼한 사랑보따리가 깃들어 있다면 아들딸들은 그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몇 시간만 봐도 질색할지라도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와 모든 도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부부끼리 사랑이 없는데 색시 노릇 할 수 있어요? 사랑이 없으면서 남편 노릇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들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때려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때려죽이려고 해도 죽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색시 노릇 하겠다는 것은 여자가 아닙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서도 남편 노릇 하겠다는 사람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남자는 남편 노릇을 할 수 있고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자는 사랑을 가진 남편의 색시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젊은 사람에게는 아내보다는 색시라는 말이 더 맛이 있지요? 색시라는 말은 뭐냐? 새로운 씨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색시라는 거예요.

또, 아들 노릇을 완전히 하려면 사랑이 없어 가지고 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딸 노릇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 가지고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럼 형님 노릇 하기 위해서는 사랑 없이도 되지요? 「안 됩니다」동생 노릇 완전히 하기 위해서 사랑 없이도 되지요?「안 됩니다」 전부 안 된다는 거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척 앞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진짜 친척이 될 수 있다?「없다」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왜 없어요? 있지요?「없습니다」 없다구요, (웃음)

여러분이 웃는 것을 보면 선생님이 아무리 옳다고 큰소리 했댔자 '집어 치우고 물러가소' 그 말이거든, 배포가 두둑하다는 거예요. 말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이 실례요, 유례요? 실례지만 실례하고도 뻐길 수 있는 것은 당당하니까, 왜 당당해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친척 중의 진짜 친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또, 사돈끼리도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그 사돈이 있으나 마나라는 거야. 그렇지요?「예」

또 그 나라의 백성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젠 결론이 다 나왔습니다. 세계 인류가 하나되기 위해서 사랑이 없어도 돼요?「안 됩니다」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 아니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결국은 사랑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의 의미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다 들어간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양반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자, 그만하면 근사하지요?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기에, 인간이 그 사랑을 몰랐을 때는 어쩔수 없었지만 그 사랑을 맛보게 되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십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더벅머리 총각이 그 동네에 미녀가 있어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장가들려고 할 때에는, 마음으로만 끙끙 해서는 장가를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삼십이 되도록 끙끙 앓았다고 사랑을 알수 있어요, 몰라요?「모르는 것입니다」 왜 몰라요, 왜? 혼자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웃음) 만약에 둘이 사랑을 했다면 알 수 있어요, 없어요?「알 수 있습니다」 거 아는구만요. 사랑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혼자 사랑을 받겠다는 거예요?「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사랑을 받게 되면 전부 다 혼자 받는 것을 좋아하지요? 하나님은 몽땅 사랑이니까 몽땅 사랑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몽땅 사랑받는 것을 좋아할까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몽땅 사랑받는 것을 좋아했다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받기만 한다면 여러분에게 줄 사랑이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몽땅 사랑인데 그 몽땅 사랑을 창고에 가두어 두고 무슨 깍쟁이 장사꾼처럼 하나하나 주는 것이 아니라. 퍼붓게 되면 와르륵 꽝 퍼부어 주십니다. 몽땅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몽땅 퍼부으신 그 사랑을 받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몽땅 퍼부어 줄 그 사랑이 얼마나 커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는 하늘도 몽땅 빠져 들어가고, 땅도 몽땅 빠져 들어가고, 지금까지 왔다가 간 수많은 선조들도 몽땅 빠져 들어가고, 현재에 살고 있는 인류도 몽땅 빠져 들어가며, 앞으로 올 후손들도 몽땅 빠져 들어가야 되니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슴통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웃음)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자면 여러분의 가슴이 커요, 작아요? 「큽니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웃음) 여러분의 가슴이 크면 사랑을 몽땅 받는다는 것이고 여러분의 가슴이 작으면 그 사랑을 몽땅 못받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나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몽땅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 주지도 않고 몽땅 사랑이라고 한다면 기분 좋겠어요? 여러분의 가슴이 사랑보다 작아서 그 사랑을 몽땅 다 받지 못한다고 해서 여러분은 그 사랑을 절반쯤만 받고 싶어해요, 아니면 넘치도록 거기에 이자까지 곱쳐서 받고 싶어해요? 여러분의 배포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다 받아 가지고도 감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게 생각해요?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랑이 있으면 그것을 누구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는데,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최고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간다는 거야. 여러분도 그래요?「예」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여러분 여자들도 그래요?(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우리는 몽땅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생각해 봐요. 그만하면 쓸만하지요 ? 그만하면 쓸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조금만 남겨 놓아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됩니다.

몽땅 사랑은 하나님 사랑인데, 여러분, 하나님 사랑 좋아해요, 싫어해요?「좋아합니다」 몽땅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이 아닌 것은 싫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부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요, 부부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형제지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사랑 아니면 안 되는 것이요, 동포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모두 동포애가 아니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는 세계 인류 박애사상. 박애라는 그것도 역시 넓은 사랑이 아니고는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보편화되고 이 사랑이 생활권내의 환경이 될 수 있는 인연과 터전을 마련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몽땅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환경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몽땅 사랑이시냐? 사랑이 아니고는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같은 양반은 사랑을 말했고, 석가 같은 양반은 자비를 말했습니다. 자비도 사랑의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본연의 사랑과 인연을 맺으려면 세상과 반대의 길을 가야

이제 하나님은 사랑이 아닌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만을 좋아하시는데, 대관절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은사람이 이 땅위에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왜? 불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어진 씨가 번식하여 망쳐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종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보십시오.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人心朝夕國. 山川 古今間)이라고 하는데 산만도 못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지요? 여자들은 요랬다 조랬다 하고, 남자들은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요랬다 저랬다 하지요? 여자 들은 조금만 졸아도 헤헤 한다는 거예요. 정말 좋아서 그러기도 하고, 속여 먹기 위해서도 헤헤헤 한다 이겁니다. 두 가지입니다.

자신이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그 결과가 좋을 수 있고 나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부 다 두 가지, 안팎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수련받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좋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밥을 먹었는데도 한 사람은 괜찮고, 다른 한 사람은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나쁠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례적으로 볼 때, 좋을 수 있는 것보다도 나쁠 수 있는 것이 태반입니다. 나쁠 수 있는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타난 것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씨와 같은 것입니다. 악의 동기로 말미암아 시작된 결과이니 악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인연 가운데 출발했기 때문에 참의 결과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나타나지 않은 것, 불의의 인연으로 출발하기 전의 것이 나타난 거예요. 안 나타난 거예요?「안 나타난 것입니다」 나타나기 전의 것. 나타나지 않은 것에만 참이 있을 수 있지. 나타난 세계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道)의 세계는 나타나는 세계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보이는 것을 믿고 보이는 것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보이지 않는 모체. 보이지 않는 근원, 보이지 않는 중심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神)을 중심삼아 가지고 신과 하나될수 있는 사람, 보이지 않는 그분과 하나된 사람이 도주(道主)종교의 교주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부 다 그렇잖아요? 세상의 사람들이 뭘 좋아해요? 술 먹고 트위스트 춤추는 행락의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지요? 유행이라는 것이 나타내는 놀음이예요, 나타내지 않는 놀음이예요?「나타내는 것입니다」 먼저 나타내는 놀음입니다. 유행이라는 것은 첨단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첨단에 나타나는 그곳에 우리가 찾고 있는 본연의 인연된 사랑의 터전이 있겠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사랑과 인연을 맺으려면 보이는 것과 짝짜꿍해야 되겠어요. 부딪쳐야 되겠어요? 그래서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세상과 반대라는 것입니다. 반대여야 한다는 말이 세상 사람이 앉아서 먹으면 우리는 누워서 먹으라는 말이예요?「아닙니다」 앉아 먹으면 누워 먹는 것이 반댄가요? 세상 사람들이 입고 살면, 우리는 벗고 살라는 말이예요? 어떤 것이 반대입니까? 좋은 걸 먹으려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본질입니다.

세상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고, 좋은 것을 입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은 나쁜 것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입니다. 좋은 것을 못 먹고 좋은 것을 못 입고 못살더라도 본연의 인연을 찾아 영원히 나를 품어 줄수 있는 그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도인들의 생활목적이요, 생활방편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다르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그걸 똑똑히 알아야합니다.

그렇게 보면 통일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나쁜 교회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 타락성이 아닌 본성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교회냐 아니냐 하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아느냐? 세상과 같이 해야 된다? 그래요? 무엇을 보고 알아요? 세상과 같아야 된다?「아닙니다」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얼마나 달라야되느냐? 백 퍼센트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말도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게 될 때는 전격 다 자기에게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남을 속이려고 하지만, 우리는 상대에게 주기 위해서, 복받게 하기 위하여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전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지요?「예」

정신적인 동양·물질적인 서양

동양과 서양을 보게 되면 동양은 사상적인 중심지대입니다. 동양은 종교 사상을 위주해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은 물질 사상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물질 사상은 지식을 통해서, 지식이 가해지면 물질은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금(金)이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벌써 보면 다 갖고 싶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은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도(道)의 세계는 정신적인 지식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물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물질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나라를 이루고, 제일 못사는 나라로서 도의 사상으로 민족성이 엮어진 그 민족에게는 앞으로 한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도의 길을 깊이 가면 갈수록 외적인 것을 점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은 잃어버려야 됩니다. 100이상의 가치를 알았기에 100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비례되는 내적인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양 제국은 왜 못사느냐 하면 도의 길을 숭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도의 길을 숭상하려면 외적인 것은 다 집어 던져 버려야 하는데, 집어 던지는 데에 영원히 집어 던져서는 안 되겠으니 서양 사람에게 보관하라고 준 것입니다. 이것을 주워 모아 놓은 것이 서양 문명입니다. 이 보따리가 두둑해서 우리의 도의 양과 비슷하게 될 때는 자리를 잡아 가지고 재차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 세계에도 끝이 오고, 많은 가짜 종교에도 끝이 오는 것입니다. 사상에 있어서도 가짜 사상의 끝이 오면 참된 사상이 오는 것이요. 종교 사상에 있어서도 가짜 사상의 끝이 오면 참된 사상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 세계의 끝이 오면 정신 세계, 본연의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양에서 못사는 것이 잘된 일이예요, 서양에서 잘사는 것이 잘된 일이예요? 동양에서 못사는 것이 잘됐지요?「예」 서양에서 잘사는 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갖다 준 종교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든 종교라는 거야. 알겠어요? 그러나 동양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숭상해 온 종교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곳에 참된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타나지 않는 곳에 비례적으로 참된 인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삼천리 반도로 가는 데 있어서 찾아 나서야 할 것은 뭐냐?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 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참된 부모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형제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부부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참된 천국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부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반대로 불의의 인연의 부모가 나타났고, 불의의 인연의 부부, 불의의 인연의 자녀, 불의의 인연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나타났습니다. 즉, 불의의 인연의 지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질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문명 제국이 되고, 문화의 세계가 놀랍다고 하지만, 질서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한 곳에서 융기하면 다른 한 곳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크리만큼 눈 앞의 세계 정세가 비틀어져 나가는 것을 우리가 볼 때, 이때가 바로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참된 인연의 길을 찾아 나가야

이런 불의의 세계를 수습할 자가 누구냐 할 때, 하나님도 그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불의의 세계를 수습하고 싶어하는 것이 누구일 것이냐 할 때, 하나님도 이 불의의 세계를 손대고 싶지도 않을 거라는 거예요. 수습하고 싶겠어요? 하나님이 수습하려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것은 그냥 그대로 수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수습하려고 할 것이냐? 불의의 인연을 따라서 수습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인연을 따라서 수습하려고 하십니다. 본연의 인연이 뭐냐 하면 천지만물을 지은 그 인연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권내에서, 사랑의 화동의 인연으로 서로서로가 완성애로서 즐길 수 있고 찬양과 존경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본연의 인연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이 몽땅 화합하여 하나로 조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고 보이는 몸뚱이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싸움을 하겠어요, 몽땅 하나 되었겠어요? 몽땅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신데, 기술이 있다면 최고의 기술이 있고 능치 못한 일이 없을 그런 하나님이 사람을 짓는 데에 있어서 마음의 목적과 몸뚱이의 목적이 달라 가지고 싸움하는 사람을 만들어 놓았겠어요 ?

여러분들을 보아도 속사람과 겉사람이 서로 싸우지요? 싸워요, 안 싸워요?「싸웁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 같아요? 한 십년쯤 지나면 끝날 것 같아요, 죽어도 안 끝날 것 같아요?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었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고 두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니, 그런 하나님은 혼돈된 하나님이라구요.

우주의 모든 법칙을 두고 볼 때, 전후좌우 엇갈림이 없이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걸 볼 때, 사람은 본래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뚱이를 집어던지고 본연의 마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윤여사도 와 있구만. 참선하면서 마음이 무엇이냐, 마음이 무엇이냐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없는 곳에 마음이 있고 법이 없는 곳에 법이 있다고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본을 찾아 들어가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의 혈육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상황에서 여러분이 태어났으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을 것인데,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싸워서 반대되고 갈라져 서로 엉키고 엇갈린 가운데에서 여러분이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싸우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인연을 따라 난 거예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본연의 인연, 즉 천지의 인연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점이 이것을 밝혔다는 데에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를 말합니다. 참된 인연을 통할 수 있는 부모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찾아야 하지요? 그렇잖아요? 그러니 찾지 않는 사람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만약에 찾았다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좋을까요? 참부모를 찾아야 되고 참된 인연의 길을 다시 찾아가야 되고 참된 부부의 인연을 다시 찾아가야 됩니다.

옛날에는 도(道)의 길에서 시집 장가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왜냐? 부모가 아직까지 잔치하지 않았는데 종 새끼가 장가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 장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종교이긴 종교인데, 믿다 보면 통일교회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뭐냐? 합동결혼식입니다. 우리끼리는 뭐라구요?「축복입니다」 축복이라 그립니다. 참된 부부의 인연을 따라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아침에 만나고 저녁에 만나도 좋을 수 있는 사랑의 인연입니다. 아침에 만나 가지고 인사할 때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숙였다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또 만나더라도 인사하며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몽땅 내 사랑이 된 다음에는 입을 헤헤 벌리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땀흘리며 얘기하는데 여러분들이 좋아하니 내가 기분이 나쁩니다. (웃음) 몽땅 뭐라구요?「내 사랑요」

금순이면 금순이, 복순이면 복순이, 간난이면 간난이를 사랑한다 하게될 때, 그 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사랑이 어떻더냐 할 때, 두루뭉실합니다. 두루뭉실이라도 가만히 있는 두루뭉실을 원해요. 춤추는 두루뭉실을 원해요? 또는 날아가는 두루뭉실을 원해요, 춤추는 두루뭉실이를 원해요?「날아가는 두루뭉실요」 알긴 아는군요. 하여튼 사랑이라는 것은 제일 좋은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도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부른 그 하나님은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아들딸을 가져야 참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죄인들을 구해 주고, 누더기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구해 주는 하나님이었으니 의사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사 팔자가 좋아요? 매일같이 만지는 것이라고는 무슨 병밖에 없습니다. 기분이 좋겠어요? 의사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나는 의사 안되려고 합니다. 의사 노릇을 하다 보면 곪아터진 것도 째야 됩니다. 그걸 보고 밥을 어떻게 먹겠어요?(웃음)

하나님도 세계를 유람하면서 시를 읊고, 신선 놀음 하며 사는 사람을 원하지, 병을 고치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의사노릇 하기를 좋아할까요? 하나님도 벙실벙실 웃기도 하고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어허둥 내 사랑아…. 이렇게 살고 싶으실 게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그것을 한번 보면 좋겠지요? 그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뭐 그 이상 좋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어디 있느냐? 이 천지간의 참된 사랑의 모체는 누구며, 참된 모체로 말미암아 인연된 참된 부모는 어디 있으며, 참된 형제는 어디 있으며, 참된 가정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 '여보게 날보게. 그런 가정은 여기 있지' 하고 나서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었더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 땅 위에 통일교회가 '참된 가정은 이러이러한 가정이다' 하고 결론을 지어 보자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이러이러한 부모이며, 참된 형제는 이러이러한 형제이며, 참된 씨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는 이러한 것이다. 그것을 제시해 놓고자 하는 것이 누구의 사명이라구요?「우리의 사명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통일교인들의 사명이더라는 거야. 통일교회 교인들의 이 사명은 통일교회 문 선생으로부터 가르침받은 사명이더라. 기분 나빠요?「좋습니다」

참된 부모의 말은 곧 자식들의 말이요, 참된 부모의 교육은 그 후대 후손 앞에 가르쳐 주는 교육입니다. 부모가 아는 것이나 자식이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목적이 둘이예요, 하나예요? 하나입니다. 몸뚱이가 바라보는 목적도 하나요, 마음이 바라보는 것도 몸뚱이의 목적과 똑같이 하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목적, 어머니의 목적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목적도 하나요, 아들딸의 목적도 하나입니다. 아들딸의 목적이 엄마 아빠의 목적보다 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목적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친척, 이웃 동네의 목적도 우리집의 목적과 하나입니다. 또, 그 나라가 바라는 목적도 우리 집의 목적과 하나요, 세계가 바라는 목적도 우리 집의 목적과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되었어요, 안 되었어요?「안 되었습니다」 세계가 바라는 목적과 우리 집의 목적이 같다면서 하나 안 됐어요? 하나됐어요, 안 됐어요?「안 되었습니다」 부모의 목적과 부부의 목적과 형제의 목적이 하나되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의 목적이 하나가 되며, 그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의 목적이 하나가 되고, 그 민족의 목적을 중심삼고 국가의 목적이 하나가 되며, 그 국가의 목적을 중심삼고 세계의 목적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몽땅 하나가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몽땅 하나되었습니다」이렇게 몽땅 하나가 되지 않고는 몽땅 사랑을 받을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남자를 중심하고 여자가 하나되어야 하며, 부모를 중심삼고는 자식이 하나되어야 하고, 자식을 중심삼고는 부모와 가정 전체가 몽땅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목적이 둘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의 목적도 하나요, 현대 사람의 목적도 하나요, 몇 만 년이 가더라도 그 시대 사람의 목적도 하나입니다. 그 목적은 변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목적이 무엇이냐? 밥은 변합니다. 그렇잖아요? 먹는 것은 변합니다. 서양 요리, 동양 요리, 그 중 일본 요리도 있고 천태만상으로 있지만 모두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옛날 사람도 좋아하고, 지금 사람도 좋아하고, 미래 사람도 똑같이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뭐냐?「사랑입니다」 알기는 아누만. 사랑은 하나님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빈민굴에서 죽어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오소' 하는 것은 왜 그러겠어요? 미워하는 아들이기 때문에?「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구요. 그렇지요?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 있어서나, 부처끼리나 가정에 있어서도 전부 다 그 사랑을 원합니다. 종족도 원하고 나라도 원하고 세계도 원하고 하나님도 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된 사랑'입니다. 즉 참된 인연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목적의 세계를 우리는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타고난 사랑의 인연과 실천해야 할 사랑

여기 갑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태어날 때에 본래의 참된 인연의 바탕에서 태어났으면 거기에는 참된 인연의 도수가 있을 것입니다. 10도 인연의 사랑 바탕에서 태어났느냐, 혹은 100도 인연의 사랑 바탕에서 태어났느냐? 만 명이면 만 명의 그 인연의 도수가 전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100만한 부자로 살라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 사람이 110만한 부자로 살다가 가게 되면, 태어날 때의 인연을 중심삼고 보아 장사 밑천 다 쓰고 빚지고 가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만 100만한 부자로 살도록 태어났는데 80만큼 쓰고 20만큼을 남겨 놓고 갔다고 할 때는 그는 땅 위에 무엇을 남기고 가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연에도 한계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연이 전부 다 같지가 않아요. 사람이라는 면에는 다 같지만 태어나서 머무를 수 있는 기준이 전부 다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둥그런 인연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길쭉한 인연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잘록한 인연을 갖고 있으니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얼굴 모양이 다른 것처럼 인연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난 본성의 인연, 곧 자기가 어떤 인연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지만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나 받는가에 대해서 모릅니다. 누구나 나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아침 저녁 언제나 그 품에서 사랑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인연에 따라서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가 본래 태어날 때의 인연줄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를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하는 사랑의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백만큼 된다면 그 부모를 위해서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90만큼 사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백 이상 사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백 이상요」 백 이상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하늘을 위해서 저축하는 것이 됩니다. 또, 부부지간에 있어서도 그 인연된 사랑은 백만큼 된 사랑인데, 한 천만큼 사랑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몽땅 망해 없어지겠어요? 아내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백만큼 사랑하라고 했는데 만약에 백 이상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빚지는 것이 되겠어요? 빚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쓰던가요, 달던가요? 여러분, 쓰던가요, 달던가요?(웃음) 여러분이 단 맛을 알려면 쓴 것을 먹어 봐야 진짜 단 맛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백만끔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천만큼의 사랑을 하려면 십 배 희생을 해야 됩니다. 하루에 한 번 섬기면 될 것을 열 배로 섬겨야 하니 편안하겠어요?

내가 우리 어머니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애기를 많이 낳았습니다. 자그만치 열 고개를 넘고도 세 고개를 더 넘었으니 몇 사람 낳았어요?「열셋요」 열 세 명 낳았으니 예수의 일당파를 다 갖춘 셈입니다. 열두 제자와 예수까지 합하게 되면 열 세 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 세 명을 낳으셨는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재미재미 해도 딴 재미는 없더라. 애기 낳아서 젖먹이고 키울 때의 그 이상 재미는 없더라. 늙어서 애기 못 낳으니 매사에 재미 없어 못 살겠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수고하여 꺼칠해진 얼굴입니다. 갖은 풍상을 다 겪은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아기를 키우던 수고의 길이 좋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렵고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지만, 그 희생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하게 되면 희생이 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희생이 거름이 되고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살이 되고 뼈가 되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여보, 당신의 인연을 보게 되면 백만한 사랑의 인연을 갖고 있는데 나를 사랑할 때는 천만한 사랑을 하시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럴 때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달라고 해서 주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자 시작이다' 이것이 아니라 자연히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는지 가는지 소식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명령에 의해서, 이제부터 시작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에게 '당신은 나에게 백만한, 천만한 사랑을 해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로 사랑한다면 백만큼의 사랑을 타고 났어도 백만한 사랑을 다하지 말고 십만큼만 사랑해도 나는 족합니다' 하게 되면 백만큼의 사랑을 하고도 더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 않고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는 데에 있어서 설치고 나돌아다니는 녀석들에게는 주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잖게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남몰래 살짝살짝 번식되는 것입니다. 부처끼리 사랑하는데 남이 보는 것이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남몰래 자연스럽게 강제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백, 천, 만만큼의 사랑을 했더라도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손해 나는 법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위력

그런데 복은 사랑과 다른 것입니다. 백만한 복을 받아 가지고 살 사람이 천만큼의 복을 받고 살겠다고 하다가는 벼락을 맞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사람이 대통령 이상이 되겠다고 사기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가서 한꺼번에 바라던 자리에 섰다가는 물벼락을 맞아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지요?

복이 무엇이냐?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복이냐? 혹은 세상에 있어서 외적인 권세라든가 명예라든가 하는 그런 길을 찾아가는 것이 복이더냐? 외적인 복은 조금 잘못하여 그 도수를 넘기게 되면 모가지가 걸리지만, 사랑의 도수라는 것은 마음껏 올라가도 오케이입니다.

그러면 위대하시고도 절대적인 하나님, 몇억천만의 무한한 사랑의 도수를 가진 하나님을 내가 끌어당길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할 때,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복을 가지고는 아무리 하나님을 초대해도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천만 배의 희생을 하는 사랑을 가지고 '오 하나님' 할 때는 하나님이 척 다가와 '오냐, 내가 여기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가 있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길을 찾아 수고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심정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심정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요, 죽었던 사망의 인간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몽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중심삼고 사랑을 끝까지 하는 데에는 하나님도 정복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자기가 생각하며 큰 사랑이라고 한 것보다 몇천만 배로 더 큰 사랑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가망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복이나 권세를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복이나 권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권내에서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인연은 어떤 것인가? 대통령이라면 그 나라에서는 제일 높은 분입니다. 그 대통령이 총각 시절에 제일 먼 곳 제주도의 서귀포에 놀러 갔다가 서귀포에서도 제일 못사는 집의 딸과 슬쩍 만나 사랑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천년 만년 자기가 맺은 사랑의 인연을 잊을 수 없기에 밤이나 낮이나 정성들였습니다. 때를 맞아 그 총각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여자가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무엇을 타고 가야 되겠어요? 천천히 가는 것을 타고 가야 되겠어요? 배를 타고 가야 되겠지요? 뭘 타고 가야 되겠어요?「비 행기요」 하필이면 비행기예요? 빠른 것 중에도 세계에서 제일 빠른 것을 타고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 빠른 걸 타고 가는데 장관들 중에 누가'못 갑니다' 하고 막아 설 사람이 있어요? 사랑이 가는 길 앞에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주고받을 수 있는 줄을 갖추어 가지고 줄을 타고 가는데 막을 자가 있겠어요? 이것은 직통입니다. 직통, 인사하고 무엇이고 할 것 없이 무사통과라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사탄이가 이러고 저러고 하겠어요? 사탄이가 말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빠른지. 사탄의 말을 듣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몽땅 점령 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조화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희생봉사를 해야 됩니다. 기분 좋아요? 「예」희생봉사가 없으면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은 백, 천, 만의 인연의 길을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조가 나쁘다면 십만큼의 사랑도 못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도 백, 천, 만의 사랑의 인연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런 길을 한번 가 보고 싶지 않으냐는 거야. 가고 싶어요?「예」 통일교회 문 선생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별의별.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 죽을 고통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 나온 것입니다. 또, 그러기에 내가 민족을 위하고 사랑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희생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만큼 사랑을 했으면 됐다 하고 가다가도 나보다 희생과 사랑의 도수가 높은 사람이 있으면 나는 더한 희생과 사랑 즉, 천배 만배 희생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욕심 많지요? 그러한 내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사랑은 누구로부터? 세상 사람이 보기 싫어하는 문 선생으로부터 사랑을 몽땅 퍼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나면서부터 고생으로 태어났고, 가면서도 고생을 하며 가고, 살면서도 고생을 하며 살고, 일하면서도 고생을 하면서 일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본연의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참부모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부부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형제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가정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종족, 참민족, 참국가, 참세계의 사랑을 묶어 놓을 때까지 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 줄에 주욱 꿰어서 꼭대기에서 그것을 잡아당기면 쭉 따라오고 아래에서 잡아당겨도 주욱 끌려오고, 끌려가고 끌려올 수 있는 사랑, 고무줄과 같이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하는 사랑을 찾자는 것입니다.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긍휼히 더 사무치고 또한 만나면 만날수록 폭파될 만큼 강한 불이 붙을 것이 아니겠어요? 고무줄을 잡아당기면 잡아당길수록 더욱 팽팽해지는데 그것을 놓으면 거세게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딪치게 되면 사랑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 벼락을 맞고 죽으면 한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생애 최고의 사랑 벼락을 맞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할 때, 그게 근사한 대답입니까, 근사하지 않은 대답입니까?「근사한 대답입니다」그래요. 근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자,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된 것을 알았으면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인류를 몽땅 자기 주머니 안에 집어 넣기 위해서 희생했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관계맺어요. 안 맺어요? 몽땅 사랑이 씌워지겠어요, 안 씌워지겠어요? 씌우게 되면 그 사랑 안에 인류가 있어요, 없어요? 몽땅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해 희생의 길을 가라

여러분은 선생님을 좋아해요, 안 해요?「좋아합니다」안 좋아하는 사람은 쌍것입니다. 쌍것. (웃음) 안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들어도 가당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도 선생님을 다 좋아하지요?「예」 통일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선생님을 다 좋아하게 됩니다. 미국 사람, 독일 사람, 껌둥이, 시퍼런 사람, 알록달록한 사람. 다 좋아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그저 무미건조하게 그럭저럭 사는 것이 좋아요?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참된 인연과 우리의 사명의 멋진 골수를 알았습니다. 한번 가 볼 거예요?「예」 진짜 가 볼래요?「예」가는데는 꼭꼭 싸매고 갈래요, 간판을 붙이고 갈래요?

옛날에 통일교인들이 전도를 나갔다가 어디서 왔소? 하고 물으면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요? 지나가다가 물 좀 얻어 먹으러 왔지요'(웃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나쁩니다」 이제는 가슴을 헤치고 가자는 겁니다.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얼굴은 처녀 같은데 시집을 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시집 갔는지 안 갔는지 물을 겁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들, 처녀가 좋아요, 색시가 좋아요?「처녀요」(웃음) 그러면 편리한 대로 하세요. (웃음) 아직까지 처녀들이 많으니까요. 그렇지요? 777쌍이 더 많으니까 처녀들이 더 많지요?

그러니까 모두 처녀라 해도 사탄한테 참소 안 받습니다. 777가정을 중심으로 대답한 거니까 말이예요. (웃음)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슴을 펴고 얼굴을 펴고 갈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을 목사보다 더 사랑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망하지 않고 그들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남길까요? 하나님을 몽땅 사랑하겠다는 사람을 남기겠어요, 덜 사랑하겠다는 사람을 남기겠어요? 두 사람 중에서 한사람을 남긴다면 누굴 남기겠어요? 남기는 데는 몽땅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기 때문에 목사가 우리보다 먼저 죽는다는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기 때문입니다.

동네방네에 쓰윽 가 보면 반장이 있습니다. 그 반장을 찾아가서 '당신이 반장이오? 하고 물어 보면 '예, 내가 반장이오' 할 것입니다. 자기가 반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진짜반장이냐고 몇 번 더 묻게 되면 벌써 한대 맞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짜 반장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데' 하면‘왜 진짜 반장이 없소. 사람을 세워 놓고 그렇게 무시해도 돼요?’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럼 내 말 좀 들어봐요. 진짜 반장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했오?' 하고 물어 보십시오. 듣느니 처음 듣는 말일 것입니다. 진짜 반장이라면 자기 아들딸보다 동네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이고 밤이고 쫓아다니게 되면 그 동네에서 쫓아내겠어요, 좋아하겠어요?「좋아합니다」

밤낮없이 미친 듯이 동네방네를 다니면서 동네에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소리친다고 법에 걸려요? 무사통과라는 것입니다. 걸릴 법이 없다는 거예요. 이 불의의 인연을 따라서 엉키어진 세상의 법에 걸릴 것이냐? 안걸린다는 것입니다. 자연 해방권을 가질 수 있는 자유스러운 천국의 무대는 그러한 자리에서 벌어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친 듯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미치는 데에는 대낮에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이든지 언제든지, 동네를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자보다도 더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울면서 그 동네를 자기의 소원무대로 생각하고 땀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도 고맙고, 욕을 먹는 것도 고맙고, 놀림을 받는 것도 고마운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사랑의 도수를 입체적으로 갖추기 위한 하나의 조화법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년이 지나고 삼 년만 지나게 되면 그 동네는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법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년 동안 그런 놀음을 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미욱하고 무식하고 철부지하고 잠만 쿨쿨 자는 제자들이 못먹었다고 투덜거리면 '배고프지?' 하고, 찬방에 누웠으면 '춥지?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던 것입니다. 나는 춥더라도 추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으로부터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의 세계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주어 이 동네의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불을 붙여 놓을 수 있는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길은 사랑하고 싶어서 허덕이며 희생하고 가는 길입니다. 피눈물이 떨어지는 그 발자국 뒤에는 반드시 희망의 꽃이 필 것이요, 행복의 콧노래가 울려 나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필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따라서 삼천만 민족을 위해 가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한입니다. 혈기 방장한 꽃다운 청춘 시대에, 내 인생의 최고의 정상시대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천상천하의 그 무엇이 점령한다 해도 내 사랑을 막을 수 없으리만큼 사랑했다 하는 입장에 섰으면 행복한 청년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 시대에 나라를 붙안고, 세계를 붙안고 자기 생명을 거기에 투입하고 희생하며 그 길을 기꺼이 달려가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 뒤에는 사망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양손 양팔을 벌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장가도 가 보지 못한 30세의 더벅머리 총각이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까지 부정당하고, 자기의 교회와 종족과 민족과 나라에게까지 반대받는 고독단신으로 그 길을 갔지만 그들이 쏘는 화살에 맞은 것이 아니며, 그들이 원망하는 시련에 감겨들어 가지고 탄식하는 사나이로 갔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원망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내가 하고 싶었던 사랑을 하지 못한 한을 땅 위의 후손 앞에 남기고 가니, 후손이나 기독교 신도들이 이 사랑을 해달라'고 하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심정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어요? 몽땅 그 수중에 점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인연을 통할 수 있고, 거기에서 비로소 우리가 찾고 있는 인연 중에 우리의 사명의 닻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가 하나님의 터전이 될 것이고, 참부모의 소원의 터전이될 것이고, 참부부의 소원의 터전이 될 것이고, 참민족의 소원의 터전이 될 것이고, 참세계의 소원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여러분의 행동적인 면에. 행동하는 면에 나타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최고의 사랑을 갖고 실천해 나가는 자가 되자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사람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평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랑을 받아 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받아 온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해주게 되면 그 사람은 여러분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혹은 아낙네를 보게 될 때, 남편에게 받아 온 사랑 이상의 사랑을 여러분이 할 때는 그 아낙네는 자기의 남편을 버리고 여러분을 따라오게 됩니다. 또 부모나 형제간에 있어서 사랑을 얼마나 받았느냐 할 때, 부모 형제 앞에 사랑받던 그 이상의 사랑을 여러분이 할때는 그들은 여러분과 몽땅 하나가 됩니다. 알겠어요? 마을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나 그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칭찬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보다 몇 배 이상으로 여러분이 마을을 사랑할 때는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칭찬하던 사람을 집어던지고 여러분의 품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과거에 민족을 사랑하던 선지선열이나 애국자들 중에 이순신 장군이 민족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삼천만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게 될 때는 삼천만 민족은 이순신 장군을 뒤에 두고 그 사람을 따라갈 것입니다. 또. 세계의 성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을 위해 복을 빌고 원수를 위해 복을 비는 크나큰 사랑을 가졌지만, 그 사랑 이상의 사랑을 했다는 어떤 한 분이 나오면 기독교 신자들도 예수의 사랑을 버리고 이제 최후에 나타난 그 한 사람의 사랑을 찾아서 총동원되어 이동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 선생에 대해서 왜 윤 보살이 증거하고 불교인들이 증거하게 되느냐? 석가모니가 자신이 이 땅 위에 와서 억조창생을 사랑했던 그 몇백 배의 사랑을 했다고 할 때는 석가모니 자신도 따라가야 되고 무릎을 꿇는 것이 천리 원칙이기에 영계에 있는 석가모니도 통일교회의 문 선생에 대해서 윤 보살과 같은 사람을 안 보내면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윤 보살뿐만 아니라, 세계 영통인들 모두 선생님에게 걸렸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걸어 넣느냐? 몽땅 사랑으로 걸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아요」

새까만 것도 흰 곳에 들어가면 까만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한 도가니 속에 들어가면 새까만 것도 시퍼렇고, 노란 것도 시퍼래지고, 빨간 것도 시퍼래지며, 하얀 것도 시퍼래지는 것입니다. 도가니, 펄펄 끓는 사랑의 도가니에 들어가게 되면 다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몽땅 사랑을 퍼부어 주어야 합니다. 서슴지 말고 퍼부어야 합니다. 자신 혼자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이것을 위해 희생시키고, 자녀 색시, 전체 친척들까지도 희생시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세계를 사랑하는 데 희생시킨다면 그 나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데 하나님도 지금까지의 복귀섭리 노정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제일 가까운 사람을 전부 다 희생시키고 죽이지 않았어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 나가면 인류 역사상에 없는 최대 사랑의 등대불을 들고 나갈 것입니다. 만인이 그 등대불을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불이 반짝하게 되면 그들은 눈을 감았다가도 뜨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는 한 곳으로 안 모일래야 안 모일 수가 없습니다. 세계의 역사 상에 없는 기원을 만들어 놓게 되면 세계의 인류는 이 사랑의 인연의 곳을 향하여 찾아 넘어가게 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려고 남자를 고르는 데에 있어서 두 남자 가운데 한사람은 얼굴이 잘나고 한 남자는 얼굴이 못났다고 할 때, 그 여자는 얼굴이 반반하게 잘 생긴 사람도 좋긴 하지만 얼굴이 좀 못나고 무뚝뚝하더라도 불 같은 사랑이 펄펄 끓는다면 '이쁜 남자 그만두고 이 남자를 맞이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어디 여러분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안 그런 여자는 죽어요, 죽어. 이렇게 사랑이 좋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좋은 것이냐? 남편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뭐가 좋은 거야? 「사랑요」부모가 좋아요? 어머니 아버지 간판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뭐가 좋아요?「사랑요」 부모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형제가 좋으냐? 아닙니다. 형제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백성이 좋으냐? 아닙니다. 백성의 사랑이 좋습니다. 주권자가 좋은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가 좋아요? 하나님이 좋은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몽땅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을 따라 태어나 가지고 그 사랑권내에서 세계를 위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품 속에 한꺼번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곳이 지옥이예요, 천국이예요?「천국입니다」 천국가지 말라고 해도 천국으로 갑니다. 아무리 자기가 안 가겠다고 해도 하나님이 버티고 천국 보냅니다. 자기가 가겠다고 해서 천국갈 수 있어요? 못 갑니다. 여러분은 이제 천국 가는 길을 알았지요?「예」 이것을 알고 그 길을 위해서 가자구요. 갔다고 할 때는 대한민국도 머리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변명을 안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보고 '이놈의 자식들아, 너희들이 뚱뚱이 돼지같이 자란 것은 내가 젖을 잘 먹이고 그저 밤낮없이 잘 품어 주고 길러 주었기 때문이다. 이놈들아 그것을 아느냐?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어요? 부모라면 그저 말없이더 해주고 싶어하고, 또 자기가 수고했더라도 기억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인은 변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 신자들은 '내가 찾아왔는데 선생님은 왜 나를 몰라 줘요? 라고 하는데 그런 수작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몰라 주더라도 하나님은 알아 줍니다. 불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평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할 것을 다해야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퍼부어야 할 몽땅 사랑의 끝이 어디더냐? 한번 바라보라는 거예요.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하겠어요. 알겠어요?「예」

이 모든 은혜를 한꺼번에 받아서 내가 이 길을 가게 되면 전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한 참된 사랑,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을 가고 나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는 길이 비록 험하더라도 험하면 험할수록 수고와 비례적인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행복의 문은 널리 열릴 것이요, 탄식의 구름은 사리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고 이번에 가게 되면, 부디 이 팔도강산을 자기의 활동무대로 삼길 바랍니다. 한 곳에만 있어서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빨리빨리 거쳐서 한 도(道), 두 도(道) 서너 도(道)쯤은, 내가 거쳐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몽땅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몽땅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은 성공하지 말라고 해도 틀림없이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참부모의 인연을 알았으며, 우리 앞에 있는 참된 하나님, 그리고 참된 부모, 참된 가정, 참된 남편과 자식,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을 찾아 나선 참된 환경을 여러분은 가졌습니다. 그 환경을 바라보게 될 때,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더 멋진 터전을 가진 무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가를 덧붙여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희망에 벅찬 걸음으로 여러분이 나아가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몽땅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주기를 부탁하면서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서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당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분부하신 말씀을 통하여 맡은 소임을 다하기 위해 내일이면 헤어지게 되겠사오니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지방의 어떤 한 마을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 가닥에 당신의 하소연이 흘러들게 하시옵고, 이들이 흘리는 피땀 위에 당신의 수고의 길이 뻗쳐지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해방의 기수가 되어 당신이 해방을 받으시고 당신을 평탄한 자리에 모시어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싶은 마음 간절 하오니,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가나 오나 언제든지 당신을 모실 수 있고 하늘의 인연을 따라 세울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을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을 진실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그간 며칠 동안 당신이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길러 주신 당신의 모든 말씀들을 뼛골에 깊이 새겨 영원히 영원히 잊지 않기를 저희는 마음으로 다짐하옵니다. 저희는 이제 그 말씀들을 되살려 저희들이 갈길을 확실히 알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직행하겠다고 결심을 하는 이 자리오니 아버지께서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내일의 나라와 내일의 세계와 내일의 천국을 참된 인연을 통하여 성사시키는 사랑의 길을 개척하는 사랑의 군대요, 사랑의 정병인 것을 자인해야 되겠사옵니다.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맹세의 실체가 되어서 아버지의 완전한 제물로 몽땅 바쳐지기를 바라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금년을 맡으시옵고 내년도 맡으시어서 저희들과 연결된 당신의 아들딸들을 지켜 주시옵고, 그 자녀들도 지켜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이 고이고이 품어 길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연과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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