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소개받은 문선명입니다.

대한민국의 중진들을 이 자리에 모시고 이와 같은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제 자신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사람은 잠깐 손님으로 지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할 말씀은 많지만…. 여러분들이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국내외로 문제의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여기 나타난 이 사람이 문 아무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오늘의 지성인과 종교' 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인 것이니만큼 제 소견의 일단을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욕망을 통해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

통일교회의 주장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게 궁금할 거예요. 여러분 단체면 단체의 주장이 있는 것이고, 국가면 국가도 국책을 중심삼고 그나름대로의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 주장을 따라 가지고 그 휘하에 있는 모든 행정 혹은 조직기관이 움직여서 그 목적하는 것을 향해서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 주장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참석한 고명하신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사람의 욕망은 지극히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의 욕망, 또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의 욕망, 사회면 사회,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대로의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우리들이 그 욕망을 통해서 무엇을 얻겠느냐 하는 가정을 해본다면, 그 욕망을 통해서 보다 차원 높은 목적이나 가치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 더 나아가서는 종교적으로 볼 때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할진대, 나는 어디를 종착점으로 하여 진전하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철학 혹은 인생문제를 다루는 모든 종교가 중대시하는 점입니다. 어디를 향해 가느냐? 사람마다 각각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적은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자기 전문 분야에 있어서 유명한 학자, 세계에서 제일가는 학자를 표준하고 움직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우주 가운데 우리의 목적이 되시는 주체인 위대한 분이 계시다면, 그분을 표준하고 모든 것은 움직여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세계에 있어서는 성인이라는 문제, 더 나아가서 종교적으로 보면 하나님이라는 문제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모든 욕망은 하나님이라는 분에게 목적하는 바의 종착점을 두고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 그때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을 향하여 전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신이 바라는 욕망이 무엇이겠느냐? 그 신에게 있어서의 욕망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세계에서 말하는 물질도 아니요, 돈도 아닌 것입니다. 여기에 고명하신 학자님들이 참석했지만, 그것은 지식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지식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권력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에게 욕망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조금 생각해 볼 문제예요.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분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제2차원적인 입장에서 다시 추구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종합해서 결론을 짓게 될 때, 그 결론은 생명력이냐? 그것도 아니라구요.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두 마디에 결착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한 분에게 무슨 사랑이 필요하냐?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느냐? 역시 하나님에게도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거 왜? 사랑이라는 것은 개체 자체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자체에서 자발적으로 출발할 수 있느냐? 아무리 자기가 사랑을 지녔다 하더라도 자체에서 자발적으로 출발할 수 없다 이거예요. 반드시 상대를 대하는 데 있어서…. 상대를 통해서 사랑을 추구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도대체 신의 창조가 무엇을 목적한 것이냐? 신이 있다면 신이 창조한 그 목적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목적과 같을 것이냐, 신이 독단적인 면에서 일방적인 목적의 추구를 위해서 이 피조세계를 지었겠느냐? 하나님께서도 기쁘시기 위해서 지으셨던 것입니다. 기쁘고 좋기 위해서 말이예요. 기쁘고 좋은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뭐 돈을 놓고? 이 우주의 모든 만상을 놓고? 인간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놓고 기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놓고 기쁘시기 위해서 만물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들을 그런 목적하에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들이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며 최고의 종착점이 무엇이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사랑을 통해 기쁨을 목적으로 만물을 지었다 할진대는, 피조세계의 만물은 사랑을 통해 가지고 연결될 수 있는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만물은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상적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기 유명하신 과학자 되시는 분들, 여기 윤박사도 계시지만, 오늘날 수많은 과학자들은 이 우주에 대해서 '우주는 힘으로 말미암아 되었다' 하는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그거 간단하지요. 힘이 있으므로 우주 형성이 벌어졌다 이거예요.

힘이 있으려면 작용이 필요하다

자, 그러면 진짜 힘이 있어 가지고 우주가 형성이 됐느냐?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예요. 힘이 있기 전에 반드시 작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심장의 작용이 끝나면 우리의 모든 힘의 원동력이 되는 생명도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겠지만, 자동차에 엔진작용이 끝나면 달리는 힘이고 무엇이고 다 끊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하는 근본문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이렇게 볼 때에 작용이 없는 데는 힘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세포구조로부터 인체를 두고 볼 때, 모든 것이 작용권 내를 종합해 가지고 하나의 힘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보게 될 때,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이거 문제가 크다구요. 나는 보기를, 아무리 강한 힘이 있다 하더라도 그 힘 자체가 돌발적으로 현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포작용을 통해서만이 크는 것이지, 그냥 큰 힘이 나올 수 없어요. 반드시 여기에는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힘이 있기 전에 작용, 그 작용은 혼자 할 수 있느냐?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작용할 수 있는 요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체 대상의 관계를 절대 떠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그러면 우주형성은 어디서부터? 힘으로부터가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념이 있어 가지고, 주체와 대상의 작용이 형성됨으로써 그로부터 힘의 활동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용하면 그 힘은 이리 가는 것이요, 저렇게 작용하면 저리 가는 것이요, 종합적으로 작용하면 그것이 종합해 가지고 하나의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 모든 작용을 통일할 수 있는 그런 작용이 무엇이냐? 이게 문제예요. 통일할 수 있는 작용이 뭐냐? 우리 팔의 이런 작용이냐? 우리 심장이 도는 작용이냐? 혈관작용이냐? 신경기관이 운동하는 작용이냐? 이 모든 전체를 종합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성에 주체적 힘의 주류권을 무엇이 차지하겠느냐 하는 이 문제는 근세에 있어서 지대(至大) 한 관심사다 이겁니다. 여러분, 학자에게 있어서도 지대한 문제이고, 더더우기나 지성인들에게는 지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주류적, 통합적인 작용으로서 어떠한 대목적을 연결시키는데 주류가 되는 것은 불평불만이 아닙니다. 접하면 접할수록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좋을 수 있고 기쁠 수 있는 그러한 주류적인 힘의 종합적인 작용형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왈, 참사랑이라구요.

참사랑이라는 작용에는 모두 다 화합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냐? 하나님은 기쁘시기 위해 사랑을 추구한다 할 때, 그 사랑은 우리의 제1의 욕망과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피조세계는 참다운 사랑을 주체로 해서 박자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 어떤 부잣집이 있다면, 그 집에는 동네 개들도 거기 가서 똥을 싼다는 거예요. 지나가는 개도 거기서 머물려고 하고, 또 날아가는 참새도 거기 울타리에 와서 머물려고 합니다. 참새가 짹짹 하는 그 집은 대개 돈 많은 부잣집이요, 중심 집이라구요. 가난뱅이 집에는 참새들도 안 간다구요.

이처럼 모든, 강아지도 그렇고, 미물인 곤충도 이런 사랑의 이념에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우주의 대작용권의 방향성에 일치할 수 있는 작용을 하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것은 인간 자체에 있어서도, 여러분 자신들도 그래요. 그러면 사랑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되느냐? 반드시 이 작용도 주체와 대상적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을 두고 볼 때, 인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마음 작용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건 누구든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봤느냐? 못 봤습니다. 또 몸도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합하는 게 사랑의 작용

이 몸이 왜 작용하고 마음이 왜 작용하느냐 이거예요. 이걸 주체와 대상으로 비유한다면 하나는 남자 형이고 하나는 여자 형입니다. 플러스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나, 마이너스적인 것은 보이는 외적인 나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느냐? 작용은 달리 한다 이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들이 전부 다 한번 손잡아 보시라구요. 무심코 손잡는 것이 손잡는 것이지 할지 모르지만 아니올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올려 잡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내려 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그것은 왜 그러느냐? 모든 것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주체 대상이라는 관념권 내에 움직이기 때문에 반드시 원형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왜? 주체와 대상을 기준으로 한 작용권 내에서는 절대 불가피한 이런 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일면이든지 전부 다 원형으로 닮아 있다구요.

자,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이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여러분이 '큰사람' 하면 이렇게 받들지요. 그렇게 하면 높은 분은 이렇게 하지요? 이렇게 (손짓으로 표현하심) 작용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보면 상대적인 동시에 근본적으로 작용이 다르게 보인다구요.남자는 키가 크고 여자는 키가 작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좌우에 서는 손이 이와 같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운동을 하는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둘이 작용하는데, 맞부딪치는 여기에서부터 사랑의 작용을 성립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혼자는 안 됩니다. 이게 둘이 공동목적으로써 개체 개체가 화합할 수 있는 이런 접선에서부터 사랑의 작용이 폭발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 사랑이 폭발할 수 있는 작용이 필요하냐? 운동을 하면 반드시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역학(力學)에서 입력과 출력을 볼 때에 출력은 반드시 입력보다 작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원칙을 어떻게 이 작용 세계에 영속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인 신은 서로 다른 모든 작용이 접선될 때 폭발적인 작용을 가할 수 있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는 거예요.

이 둘이 합할 수 있는 차원에서 작용 결착점으로부터 인연되는 것이 사랑의 작용이다 이거예요. 그거 재미있는 말이예요. 그러므로 만일에 둘이 맞부딪치면 팍 밀어 친다는 것입니다. 왔다가는 돌아가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밀어친다는 거예요. 이러므로 연속작용의 확대를 위한 주류적인 작용권의 행각을 계속한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의 플러스가 있으면 하나의 마이너스가 있어요. 이 플러스 마이너스가 어떻게 합하느냐? 합하는 것은 주체와 대상의 작용입니다. 마이너스는 작용하되 절대 손해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이너스가 플러스에 대해 작용할 때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공동작용하여 자기보다 클 수 있는 힘의 보급을 생각하는 처지에서만 작용하지, 아무리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사람이 힘을 가해 '야, 이 원소야, 너 작용해' 하고 아무리 작용시키려 해도 작용을 안 한다 이겁니다. 그러나 그 마이너스 원소 앞에 플러스 원소를 갖다 놓으면 작용하지 말래도 하게 되는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이것은 자기에게 플러스 될 수 있는 기준을 찾기 때문입니다. 플러스를 찾아서 무엇하느냐? 더 큰 플러스권 내로 발전해 가지고 더 큰 최고의 욕망의 목적, 최고의 가치의 종착점을 향해서 달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자는 거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더 높은 차원에 있는 사랑의 자리에 나가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사랑하는 데 무한한 가치가 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이제는 간단히 알 줄 알아요. 오늘날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것은 전부 다 파당적 입니다. 경제학자는 경제, 지식인은 학문,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 혹은 세상의 자기 욕망, 혹은 집안 문중, 혹은 역사적 배경, 환경적 요건 등등 아주 다양한 환경에 끌려 가지고 전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욕망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서 근본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주체다 이거예요. 내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너도 나한테 들어와 붙어라'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의 병폐가 무엇이냐 하면 돈이 없어서 병폐가 아니요, 지식이 없어서 병폐가 아니요, 무슨 사회조직의 주권이 없어서 병폐가 아닙니다. 병폐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끌어 붙이려고 하는 것이 병폐입니다.

보라구요. 개인 개인을 주장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이상형성 기반이 한꺼번에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작용은 작용대로 하고 자체 완성을 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주체 대상의 관계로 연결될 수 있는 이런 길로 가야 된다 이거예요.

모든 존재물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자고 하면 스톱해 버리게 됩니다. 이 안에 들어가자면 스톱해 버린다구요. 맞서 버리고 만다구요, 전부가. 여기에선 대우주 형성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있단다면 신은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느냐?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위하는 행로를 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전기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기는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 들어가느냐?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흘러 나오느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흘러 들어가느냐 할 때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흘러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어, 그거 아니야.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흘러 나오지' 하면서 암만 그러더라도, 이 원칙을 그 어떠한 주장과 폭력으로서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원칙의 순도를 순행하는 데서만이 그 효과적인 결과를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플러스,플러스, 플러스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 때문이냐 하면 더 큰 목적을 위해서예요. 개인은 더 큰 목적을 위해서…. 개인은 가정목적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목적을 위하여, 종족은 국가목적을 위하여, 국가는 세계의 목적을 위하여, 세계는 영계가 있으면 하늘땅의 목적을 위하여, 하늘땅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그 자체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인 것입니다.

전부 다 사랑의 진로가 있습니다.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미생물이면 미생물에서부터 전부가 하나의 지류와 같이 되어 가지고 골수로 흘러가 대강(大江)을 이루고 대해(大海)로 연결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흐름이 있나니, 이 흐름의 원칙과 내용을 공인하지 않고는 대해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것을 여기 선 사람은 일찌기 알았기 때문에 우주를 새로이 혁명해야 되겠다 한 겁니다. 대혁명이 벌어지나니 그 혁명을 하더라도….

여러분 그렇잖아요.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대해 가지고 진짜 사랑할 때는 말이요, 꼬집어도 그거 싫지 않다는 거예요. 그거 잘 모르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사랑의 매는 때려도 이거 맛있다는 거예요, 사랑을 위하여 고생하는 것은 진짜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는 거예요.

효자다 할 때 무엇 갖고 효자라해요? 돈 갖고?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늙어서 소고기 백반 좋아하시니 매일 소고기 백반 사다 주는 것이 효자다 할 수 있어요? 그에 앞서 사랑,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많으나 적으나 소고기를 사다 드렸다면 사랑의 흐름이 그 안에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사랑이 주체가 되어 가지고 그의 부체로 사랑과 하나된 그 고기를 부모 앞에 드리면 부모는 '음, 내 아들 참….'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구요.

효자라는 것은 반드시 고생의 길을 통합니다. 수난의 길을 통하는 데는 그 수난과 고생을 초월하여 가치적 내용으로 소화시켜 어떤 자극적인 힘의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부과시킬 수 있는 그 주체가 무엇이냐? 사랑이다 이거예요. 부모를 위하는 사랑, 이 원칙을 부정할수 없을 거예요. 암만 훌륭하신 학자님들도 이것을 부정할수 없을 것입니다.

애국자는 무엇이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국민을 사랑하고 주권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이 우주 원칙의 사랑의 요소와 일치화할 수 있는 화합된 실체로서 국민을 품는 것입니다. 그 백성을 품더라도 사랑하는 데서는 두드리면 두드려도 좋고, 머리를 때려도 좋다는 거예요. 손이 와 닿아도 싫지 않다는 겁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종교의 길을 가야

여러분들 중에 아마 나이 많은 분들은 그럴 거예요. 80, 90세쯤 된 부모님이 있어서 환갑-나도 환갑이 지났지만 말이예요-된 아들을 놓고 '얘, 아가야' 할 때 반대해요? '얘, 아가야' 할 때 '예, 엄마' 해야 좋은 것입니다. '예, 어머니' 하는 것 보다도 '예, 엄마' 해야 더 좋다는 거예요. 이러한 멋진 길이 있더라구요.

수난길도 소화시킬 수 있는 힘, 불행한 길도 사랑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 파탄적인 자리를 메워 나갈 수 있는 위대한 힘, 혼란한 세상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갖추어 갈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나니 그힘이 무엇이냐? 우주의 힘이예요.

여러분, 성인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나라마다 애국자가 많습니다. 나라마다 위인이 많아요. 그럼 성인과 애국자와 위인이 무엇이 달라요? 다릅니다. 성인이라는 것은 하늘을 모시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을 말합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천지의 대도와 일치하는 길을 접근시킬 수 있는 기수의 입장에 선 것이 성인인 것입니다.

그럼 성인으로 끝나는 것이냐? 그다음엔 천자(天子)가 되어야 됩니다, 천자. 천자의 길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류의 수난길을 수습해 가지고 사랑의 목적을 결착시킬 수 있는 자라야 천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는 무엇을 주장하는 것이냐? 나를 중심삼고 강제로 이것을 하는 게 아니라 우주의 사랑의 본연의 길에 순응할 수 있는 길로 들어가 가지고, 내가 있는 것은 부모를 위하고, 자녀를 위하고,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하여…. 더 높은 사랑의 단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무엇이 되느냐? 나중에는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를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서만이 통일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 자리에 나가면 하나되게 됩니다. 여러분의 몸 마음이 폭발될 수 있는 것인데, 이 작용이 안 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이 고장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극한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사랑으로!

자, 오늘의 주제를 누가 택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잘 택했습니다. 오늘의 지성인과 종교 …. 현재의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리 잘난 학박사, 세계 정치가, 혹은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이 딱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필요치 않거들랑 종교의 길,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을 무시해도 좋아요.

그래서 여러분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셨으니, 미치지 못한 이 사람의 말이라도 한번 참고해 주셔서 여러분 생활에 있어서 혹은 사회에 있어서 인륜 도덕, 각 분야에 이러한 내용을 적용할 때 대한민국과 세계는 새로운 차원의 발전 기준, 이상과 행복의 기준이 확산될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 (박수)

오늘의 지성인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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