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목은…. 각 분야에서 보면 다를 것입니다.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 과정에 있어서 그건 뭐 전부 다르겠지만 우리들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지금 현재 처하고 있는 위치, 이런 문제를 놓고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든가, 혹은 경제적인 시점에서 보든가, 혹은 복귀섭리적인 입장에서 보든가 여러 가지가 있을 거라구요.

아버지와 심정적 일체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제일 문제가 '하나님과 나'입니다. 그런 관점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안식을 원한다! 누구나 안식을 원합니다. 안식을 원하면 어떠한 위치에서 안식을 원할 것이냐? 그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또, 사람이 어떠한 목적을 바란다! 어떠한 입장에서 목적을 바라느냐?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과 나' 이런 문제를 두고 본다면, 여기에서는 부자의 인연과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처하고 있는 위치와 내가 처하고 있는 위치는 어떠하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노정에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데 하늘이 어떠한 위치에 처해 있었느냐? 아버지가 되신 그 입장은 지금까지…. 입장은 그런 입장에 있었지만 처해 나온 위치는 정반대의 위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느냐? 하늘을 알고, 아버지를 알고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처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바라는 자리와 우리가 바라는 자리가 어느 한 때에 가서는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일치되는 시점은 무엇이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뜻에 대한 사정이라든가 소원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하늘과 나와의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 위치가 같은 위치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의 요건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관계는 자고로 우리가 부자일신이라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일신이라는 말은 어떠한 관점에서 일신이 될 수 있느냐 할 때, 이것은 무슨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일신이 아니다 이겁니다. 이것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심정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일체된 관점에서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진정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하늘과 심정적 위치에서 일체가 됐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 식구들은 생활 가운데서 분석하면서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개 막연하게 '아버지'라고 하고, 막연하게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을 떠나야 되겠다 이거예요. '나는 어떠 어떠한 입장의 아들 되겠다'고 내 스스로 제시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또, '아버지는 나 때문에,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제시 요건과 내가 하늘 대해 인정할 수 있는 요건, 그 요건이 이렇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관념적인 것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면에서, 생활권 내에서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확실히 서지 않고는, 이것이 확실히 기준이 되어 있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대한 우리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행사라든가 이런 대집회 때에도 역시 이게 막연하게 해결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문제가 뭐냐 하면, 우리와 아버지의 사이에 심정적으로 일체된 그 자리, 그 위치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겁니다. 하늘이 바라는 기준과 내가 바라는 기준이 어떻게 일치가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언제든지 생각해야 됩니다.

아버지와 심정일체를 이루려면 중심 (다리) 이 필요해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위치를 지금까지 도저히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심이 반드시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 중심이 어디로부터 나타나느냐? 이런 문제를 끄집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기에서 직접적인 입장에 못 서고 간접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직접적인 입장에 누가 섰느냐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올 때는,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을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여러분이 직접적인 심정관계에 있어서 과연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갔느냐 이거예요.

아버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녀의 입장에서 심정의 일치점을 취해야 할 텐데, 그 일치점을 취할 수 없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반드시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환경에서 그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다리가 있는 곳을 거치지 않으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리를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는 여러분 자의에 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다리가 제시하는 목적과 방향에 일치되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 다리를 건너는 데 이어서 필요한 사항은 무엇이냐? 방향을 제시해 주고 그 길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바로 원리 말씀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원리 말씀을 공부하게 될 때는, 그냥 그때, 혹은 문장 그대로만 외우는 것보다 그 배후에 연결된 내정적인 심정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 책장을 보면서 심정을 파고 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심정을 파고들어갈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거기에는 선생님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문제가 된다구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이 원리를 배우고, 혹은 원리의 뜻을 알고, 선생님을 다리 놓아가는 데 있어서 막연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여기에서 다리를 놓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느냐? 어찌하여 그래야 되느냐 하는 확실한 근거점을 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근거점을 받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받아야 되느냐? 심정문제를 꼭 받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필코 무슨 문제가 벌어지느냐? 역사와 하나님이 느끼는 복귀섭리의 심정과 선생님이 걸어온 복귀섭리를 통해서 탕감해 나온 탕감적인 심정을 여러분이 체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일체화할 수 있는 기점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앞으로 원리강의를 한다, 많은 사람 앞에 감명을 주었다고 하면, 그것이 여러분 자체로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감명된 동기는 반드시 하늘로부터 관계를 지어 가지고, 그것이 여러분을 통해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반드시 3단계를 거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언제나 여러분들이 중간적 입장에서 심정적인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기준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원리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여러분이 앞으로 일해 나가는 데 있어서, 요즈음 가만히 보게 된다면 뜻에 대해서 불충하다, 뜻에 대해서 희미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무엇이냐 이거예요. 그것은 선생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원리는 배우고 있지만 원리를 통해서 가야 할 그 다리면 다리,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결적인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필요하면 얼마만큼 필요하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얼마만큼 필요하냐 이거예요.

그것이 연결될 수 있는 기준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앞으로 여러분이 가는 데에 지장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큰 책임을 지고 하늘이 바라는 목적에 부합될 수 있는 책임자로서나, 혹은 그 환경을 수습해 가지고 목적달성을 이루기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움직여야 하고, 우리들이 다리를 건너가야 할 입장에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상하를 일체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점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철두철미하게 느끼는 사람은 앞으로 본부에서 제시하는 문제라든가, 혹은 선생님이 지시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명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구요. 그것이 안 생기는 사람은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원리면 원리지 선생님은 또 뭐야?' 한다는 거예요. 강의하는 것 보게 되면 원리를 배우라고 강의하지만 그 원리강의는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사실은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해야 된다구요.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복귀원리다! 역사과정에 나타난 복귀를 배운다! 복귀원리를 배워 가지고 복귀라는 그 자체를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복귀원리를 움직여 가지고 섭리해 나온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슬픔을 품고 이러 이렇게 나를 위해서 수고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나와 비교할 때 그 차이가 큰 분이 나를 위해 이렇게 수고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이렇게 수고한 그 차이가 크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힘의 모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크게 느끼고 귀하게 느끼는 것에 비해 가지고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는 거기에서 하늘에 대한 감사의 심정이나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결의가 폭발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지금 그렇다는 거예요. 원리 자체에 대해서, 원리 책을 볼 때는 이 책 가운데 숨어 있는 선생님의 생활, 선생님의 투쟁역사는 모르는 거라구요. 원리과정의 역사….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래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예수님 시대까지, 복귀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한 학설은 나왔지만 선생님에 대해서는 안 나왔습니다. 이게 안 나와 있다구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것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찾지 않으면 안 돼요.

타락인간은 자기 스스로 갈 수 없어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위치에 있느냐? 하나님과 선생님과 삼각관계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문제가 그거예요. 이것이 직선상에 있든가…. 하나님과 선생님과 여러분이 삼각관계에 놓여 있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어떻게 되어 있느냐? 여러분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 실제적으로 생명의 모체가 되고 활동의 모체가 되는 것이 누구냐? '나지 나' 하면서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왕왕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뜻을 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다가 낙오되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낙오가 되는 것도 이상하게 낙오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그래요. 여러분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말이예요, 별의별 단체가 다 나오고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옵니다. 거 무슨 세례 요한이니 무엇이니 해 가지고….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이만큼 발전해 나온 과정에서 별의별 사람이 다 나타났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왔다가 전부 다 심판받고 간 거예요. 자기들이 쌓아 놓은 모든 공적을 전부 다 여기에 펴 놓고 간다 이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 딴에는 잘한다고 나갔지만 전부 다 하는 말이 그래요. '오, 통일교회 선생님은 뭐 세례 요한이고 자기는 뭐 주님이다' 하는 작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거 좋다는 겁니다. 세례 요한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과 싸울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또, 주님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의 전권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주님이라는 명칭, 말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축복을 받아야 된다구요.

예수님이 요단강 가에 가 가지고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성신이 그 머리 위에 비둘기와 같이 강림했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상속하는 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선생님에게 어떤 사람은 말이예요,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데 좋다 이거예요. 세례 요한을 한번 보자구요. 세례 요한이라고 하려면 너희들이 선생님으로부터 모든 안팎의 생활적인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축복을 받고 가야 돼요. 그런 식을 갖추지 않으면 세례 요한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숙명적이라구요.

요전에도 무슨 뭐 어떤 사람이 별의별 놀음 다 하고 있는데 거 가만히 두고 보자 이거예요, 어떻게 되는가. 난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말도 안 합니다. 가만히 두고 보는 거예요. 가만히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많은데 두고 봐라 이거예요. 그것이 물론 부작용이 벌어지면 앞으로 좋은 본보기요, 또한 후대에 그런 집단이 나올 때는 그걸 후려갈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자료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 길을 나오는 데 있어서 그런 사람이 많았어요. 우리 원리를 이용해 가지고, 원리를 사기하는 겁니다. 그것은 진짜 도의 사기꾼들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선생님의 이름을 빙자해 가지고 자기를 모셔야 된다고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결국은 전부 다 망해요.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요즘에 들어와 가지고 선생님을 보게 되면 울고 불고 야단합니다. 따라다니던 그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가지고 울고 불고 '잘못했습니다' 하는 거예요.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에 가서 자기들이 뭐 이렇게 해 가지고 팔려다니는 작자들은 뜻이고 무엇이고 몰라요. 전부 다 자기 욕심 가운데서 자기 욕심 때문에 나간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기 위치가 없다구요. 자기가 어떻게 가야 된다는, 타락한 인간이 복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나가야 된다는 것을 망각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갈 수 없다구요. 자기 자체가 무얼 해 가지고 가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장이나 지역장이나 앞에서 조금 더 나가면 이런 관점에서 철두철미한 사상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이건 뭐 선생님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필요해서 그런 거라구요.

선생님 자신도 그래요. 선생님 자신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시련도 많고 풍파도 많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물론 여러 가지 고충도 많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이 고충을 무찌르고 가는 것은 하늘의 내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내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걸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해결해야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있어요? 말뿐이지요. '하나님의 심정, 심정' 하지만 심정은 멀고 멀다 이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사정을 잘 알고 선생님과 가까우면 생활 기준을 그런 관점에서 보고, 원리를 그런 관점에서 보면서 원리를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후에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뜻을 대해 탕감적인 것을 어떻게 잘 풀고 나가느냐 하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기도와 더불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원리와 더불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기도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예요. 원리 책에는 없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정성을 들이고, 그런 문제에 대해 알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일생 동안 세밀한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갈는지 모른다구요. 여기에 지구장이라든가, 혹은 협회장이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 된다구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뜻을 대해서 따라나간다고 하지만, 선생님이 지금 내심적으로는 어떤 것을 느끼고 있으며, 시대적인 것이 교차되는 전환시기에 있어서 어떤 고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백방으로 그것을 전부 다 증거하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을 처리해서 넘겨야 할 사명이 선생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건 원리에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방편에 대해서는 원리원칙을 세워 놓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없더라도 영계에서 움직이는 조정권은 여러분 앞에 반드시 접해 온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나가다가 얼마든지 곁길로 갈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곁길로 갈 수 있는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까딱 잘못하면, 세상에서 할 수만 있으면 유혹한다는 말이 통일교회 교인도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전도사라든가 통일교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선생님이 가르쳐 주게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다구요.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구요. 그런 기준을 갖고 나가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생각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에게 통고해 가지고 하늘의 결재에 의해서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마음 놓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완성기준에서는 모든 일을 자기가 판단해서 결정해야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런 길을 개척해 나오는 데 있어서는 참 애로가 많았다는 거예요. 영계에서 명령해서는 안 될 때가 많다 이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완성기준이라는 것은 어떠한 기준이냐? 이것은 아담하고 하나님만 가야 할 길입니다. 완성기준이라는 것은 아담하고 하나님, 하나님과 아담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다 이거예요. 그런데 아담이 완성기준을 배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기준을 올라갈 때는 하나님이 대할 수 없다 이겁니다.

영계가 있으면, 지금까지 천사장과 예수님의 영계는 어떤 형이며 어떤 기준이냐? 장성기 완성급에 해당하는 권내에 처해 있습니다. 완성권 내에 처하게 안 되어 있다 이거예요. 그러나 어떻게 되느냐 하면, 가인 아벨 탕감법과 탕감원칙에 있어서 바꿔칠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길을 개척해 나올 때 정상적으로 따라와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따라오지 않은 사람에 한에서는 여러분들도 영계에서 시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가리를 내젓고 딴 생각 하다가는 전부 다 시험당한다는 거예요. 이용당한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선생님은 지금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완성기준이라는 그 기준은 그야말로…. 영계의 조종을 받아 가지고 타개해 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급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이 가야 할 길을 탕감복귀해야 할 기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계의 지도 밑에서 이것을 해결해 나가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도 직접 명령 못 하기 때문입니다. 왜? 완성 기준에서 하늘을 배반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전에는 하늘이 인간을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기준에서 모든 사항을 헤아려 가지고 판단지어 나가는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충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거기에 사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가 무슨 주장을 하든가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잘못 결정했다가는 하늘땅이 망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럴 때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무엇이냐? 3수, 소생, 장성, 완성. 완성급에도 소생, 장성, 완성, 3시대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3시대를 거쳐 나오기 때문에 3단계 과정을 언제나 앞에 모시고 나가자 이거예요, 제물과 같이. 제물과 같이 모시고 증거자를 세워 나가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하는 사람들은 때가 되면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거할 때는 정상적으로 한 방향에서 증거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좌우 셋, 좌우 셋 이렇게 횡적으로 7수를 갖춰 가지고 증거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느냐 이겁니다. 이것도 그것 같고 그것도 저것 같고….

분수령이라는 것은, 여러분들 분수령이라는 것은 말이예요, 이걸 넘어설 때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몰라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있기는 있다 이거예요. 그와 같은 경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럴 때가 많다구요. 선생님이 지금 그런 찬스권 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외적인 문제도 문제이겠지만 내적인 문제, 전체적으로 영계와 육계에 관계된 문제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땅 위에서 조정 안 해주고 절충 안 해주면 억천만세의 한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서 걸린다는 거예요.

원리적으로 볼 때 여러분은 누구와 제일 가까이 있어야 하겠는가

현재 선생님이 이런 과정에서 싸우고 있는 싸움과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싸움과 비교하게 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문제가 되지 않는다구요. 내가 어디 가더라도 이런 중요한 문제를 중심삼고 해결하지 않으면 당장…. 가나 오나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거기에 자기 스스로 특권적인 뭘 가지고 잘못하다가는 신세를 망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절대 높여 주지 않아요. 높여 주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높여 줄 때는 여기에 다 위해서 받들어 주고 환경에서 지도해 줄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갖지 않고 올라갔다가는 큰일난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지금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누구하고 제일 가까이 있어야 되느냐? 문제가 그거예요. 누구하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어야 되느냐, 어떤 위치에 있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하고 제일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가까워야 되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의 마음보다 더 가까워야 된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사실은. 여러분의 마음보다 더 가까워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나깨나 선생님의 기준 내에서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곳은 어차피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복닥거리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으나 슬프나 기쁘나 쉬우나 어려우나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사전에 의논하면서 가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단계에 갈 때까지는 절대적으로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내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 배반할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자기 위치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가다가 좋은 뜻을 중심삼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위치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거예요. '아직까지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마음이 그래요, 마음이. 뜻을 위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진짜 심정을 파고들어가 가지고 '내가 진정으로 그럴 수 있느냐?' 할 때, 마음과 몸이 답할 수 있는 기준에서 여러분이 일치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관점에서 위치를 잘 결정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반드시 하나되어야 한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 안 되어 가지고는 안 돼요. 주체와 대상, 이게 가인 아벨이지요? 가인과 아벨의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없습니다.

심정적 일치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서 일치하는 것도 중요해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그것을 알았다고 할진대, 선생님이 걸어온 모든 탕감적인 과정을 크게는 못 가더라도 조그맣게라도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7년노정이라는 것이 나온 거예요, 7년노정. 그 노정에서 뭘하느냐? 선생님이 증거하고, 선생님이 사랑하고, 선생님이 위하던 그 기준을 내 개인으로서 한다 이거예요.

그것을 왜 하느냐? 그런 활동을 할 때 하늘이 상대를 해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조건적인 활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상대를 해 줘야 합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심정의 일치가 벌어지는 겁니다. 어디서 심정일치가 벌어지느냐? 내가 원리를 알고 가는 곳입니다. 반드시 원리를 알았으면 행동적인 면에서 탕감복귀해 나오는 소생·장성·완성 과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여러분이 체험하느냐? 그 기준과 일치가 될 수 있는 기준을 묶어 놓아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원리를 알아 가지고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피눈물나는 투쟁과정이라든가, 자기의 환경이 어렵더라도 일부러 그런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정성들일 수 있는 생활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하늘이 탕감노정에서 역사를 두고 복귀노정을 탕감해 나오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알아 가지고 심각한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통곡을 해야 된다구요.

아담가정을 말하게 될 때는 아담가정의 아담이 아니예요. 그것은 선생님인 동시에 나입니다. 내가 해와를 두고 보면 해와가 거 무슨 해와가 아니예요.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나예요. 노아면 노아 자신이 노아가 아니요, 노아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선생님이라면 선생님이고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입니다. 그런 과정 이상, 그 이상의 신념적인 과정에서 하늘을 부여안고 사탄의 억센 참소의 조건도 억눌러 가지고 그런 환경을 눌러 나갈 수 있는, 노아 이상으로 심정적으로 하늘을 위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것이 노아가 아니예요. 노아가 아니라는 거예요. 또, 아브라함도 아브라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제일 어려운 기준에서 몸부림치던 것이 재현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된다구요. 탕감복귀가 안 된다 이거예요.

모세면 모세를 중심삼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 예수면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내적 기준에서 그것을 재현시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과 일대일의 참소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이것을 해결지을 수 있는 자리에서 탕감적 위치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해요.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로서 여러분과 관계를 어디서 맺느냐 이겁니다. 관계를 어디서 맺느냐? 여러분 자신에서 못 맺어요. 절대 못 맺는다 이겁니다. 지금 탕감복귀가 쉽다는 것은 선생님이 실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쉽다는 거예요. 그러면 실체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기준을 따라 여러분이 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실체적인 조건이 되었던 모든 것을 재현하여 작지만, 짧지만, 폭이 좁지만 그런 것을 느꼈다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수정체면 수정체와 같은 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런 수정체가 있잖아요?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이 뜻 앞에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가다가 옆길로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막연하다 이겁니다. '선생님은 뭐…. 원리적으로 보게 되면 선생님은 뭐야, 뭐?' 그럴 수 있어요. 요즘에 본부 식구들도 그래요. '선생님이 축복가정들에게 축복 다 해주고 선생님도 자리잡았기 때문에 이젠 선생님대로 살고 우린 우리끼리 살자.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그렇게 나온다는 거예요. 요즈음 본부의 오래된 사람들은 '우리는 뭐고 선생님은 뭐야. 우린 고생해야 되고, 선생님은 지금 자리를 잡아 가지고 이렇게 되었는데 우리하고 무슨 관계 있나?' 그런다구요. 그게 안됐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상을 갖고 있으면 그는 탕감노정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일치가 되지 않고는 여러분의 위치라는 것은 막연합니다. 막연하니까 언제든지 자기가 몰리고, 언제든지 그 사람들을 신임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무슨 짓이든지 다 한다 이거예요. 자기가 만약 불리하게 되면 교회의 모든 것을 이용해 먹고 떨어질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늘을 몰랐다는 겁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느냐 하면, 선생님이 지금 본부면 본부에 있다고 합시다. 있을 때도 이 본부 식구들이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매일같이 가까이 대하고 있는 본부 식구들이 선생님을 점점 몰라요. 선생님의 내적 생활은 굉장하거든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걸 아나요? 밥 먹고 같이 있지만 그걸 뭐 얘기를 해주나요. 자기들과 뭐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뜻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것은 모르니까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무관심한 사람들은 완성되더라도, 뜻이 이루어지더라도 하등 필요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무관심한 자기 자체들은 망각해 버리고 뜻이 이루어지면 그때 자기는 제일 두드러질 것을 생각한다 이거예요. 그러한 모호한 자리에 서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여러분이…. 선생님도 지금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늘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하고 매일같이 문답해 나가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나는 뭘할 것이냐? 지금 이런 입장에서 나에게 이러이러한 사실을 하늘이 명령할 때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 이상의 자리가 아니예요? 크면 클수록 그 반대되는 비참한 자리까지도 뜻을 위해서 언제든지 다짐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책임이 많이 벌어진다고 해도 선생님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평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책임에 대한 것은, 지금도 이 책임에 대해서는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르는 모험도 한다는 거예요. 이러지 않고는 안 된다구요.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도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수습하지 않으면 천운이 막혀 버리는 겁니다.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앞에 나가니 앞에 나가는 선생님을 반드시 따라 나와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따라 나오려면 어떻게 따라 나와야 되느냐? 물론 원리를 배워 가지고 심정적인 내정도 통해야 되겠지만, 실제문제에 있어서 생활에 어떻게 접근해 들어가고, 그 심정문제를 중심삼고 일치가 될 수 있는 길을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상할 거라구요.

원리강사가 취해야 할 입장

여러분이 강의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해야 됩니다. 내가 강의를 하는 데 있어서도 내가 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가 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강의할 때 아무개면 아무개의 입장에서 강의하게 되지 하나님 대신이나 선생님 대신 하지 않아요. 그러니 실감이 나요? 실감이 나냐 말이예요? '이런 투쟁을 할 때 이런 고통이 있고 이런 무엇이 있을 것이다' 하는 그런 실감이 들어오느냐 말이예요. 어때요, 실감이 나나요, 안 나나요? '뭐 나겠으면 나고 말겠으면 말고…' 하지요. 거기서는 하나님이 역사를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맨 처음에는 말이지요, 원리 말씀보다도 선생님이 가까워요. 그렇지요? 맨 처음에 들어오면 원리 말씀보다도 선생님이 가깝다 이거예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가정을 벗어나거나 교회를 벗어나서 대사회활동을 할 때는 그것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사실을 요구하고 실증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는 데 있어서는 거기에 뭐가 있어야 되느냐? 반드시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조건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할 수 있는 활동의 조건을 제시해야 된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제시 안 되거든요.

이러다 보니 결국은 무엇이냐? 심정적인 모습은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게 탈입니다. 맨 처음에는 전부 다 뭐 교회에 안 오면 안 되고, 안 오면 몸이 이러고, 간절하게 오고 싶고 다 이러던 것을 왜 잃어버렸느냐 이겁니다. 그걸 잃어버려서는 안 돼요.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것이 더 높아지고 더 두터워져야 됩니다.

그걸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지방에 가서 말씀을 할 때, 말씀으로 인해 이렇게 전체에 창조력을 발휘하는 힘이 희박해져 갑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굴러가고, 자기는 자기대로 남아 있고, 식구들은 식구대로 남아 있다 이겁니다. 이것이 왜 하나로 엉클어지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원칙에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심정 기준만 갖고 여러분이 말씀한다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하늘이 역사하는 거예요. 그런 심정 기준을 갖고 나가게 되면 식구들이 절대 여러분들을 배신 안 합니다. 절대 배신 안 한다구요. 배신하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금까지 희생하고 고생하면서 전부 다 지치게 되는 것은 왜냐? 그렇게 중요한 일치점을 잃어버려 가지고 하늘이 역사할 수 있는 안식의 초점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를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말씀하는 그 말씀이 옛날과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게 느껴지지 않아요?

맨 처음에 전도 나갈 때는 전부 다 욕을 먹어도 선생님이 감옥생활하고 다 그런 것이 실감이 나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가지고 선생님 대신 나가서 싸운다는 실감이 나서 움직이곤 했다구요. 그럴 때 총각이 나가면 그 동네 아가씨들이 밤잠을 못 자고 보고 싶어서 따라오고 그랬는데, 왜 그것이 없어졌느냐?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느냐? 그것을 분석해 보면 그 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무엇을 해도 그 기준만 갖고 나가게 될 때에는 머리를 숙이게 되니까 늘 부족한 것입니다. '아버지, 부족합니다' 하는 겁니다. 오늘도 부족하고 내일도 부족하고, 하늘땅 보기에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욕먹어도 싫지 않고, 체면이고 무엇이고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늘땅 앞에 책임추궁하면 책임추궁당하는 그 감정이 내 체면보다 강하게 들어오니까 하고 나서도 부끄럽다구요.

이렇게 될 때는 자연히 그런 심정을 갖고 있으면 그걸 누가 동정해 주느냐 이겁니다. 누가 동정해 주느냐? 하늘이 동정해 주니까 사람이 동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장들이나 지구장들에게 내가 지금 염려하는 무엇이냐?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강의를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강의를 할 때는 반드시 원리 말씀 자체를 말씀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선생님의 역사를 말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 역사는 결국 무엇이냐? 내가 그 역사를 상속받고 그 역사와 일치되기 위해서 말한다 이거예요. 열 번 하면 열 번 함으로써 깊어지니 깊어진 만큼 내가 심정적으로 가까와지기 위해서 말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남을 구하는 것보다도 내가 가까와지기 위해서 말한다는 거예요. 내 일이예요.

그러므로 열 번 하면 열 번 하는 것만큼 가까와지고, 열 번 하면 열 번 하는 것만큼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면 기도하는 것만큼 그것이 깊고 폭이 넓어져요. 높아진다 이겁니다. 높아지니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심정 기준에 있어서 자기가 발전하고, 심정 일체를 중심삼은 발전의 도수를 강화할 수 있는 찬스가 생깁니다. 그런 때가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요, 식구를 거느려 가지고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에서부터 말할 때 벌써 딱 손을 잡으면 그것이 내 손이 아닙니다. 그건 뭐냐? 내 손이 아니라구요. 척하면 내가 아니예요. 내가 아니라구요. 그러면서 전체가 형용할 수 없는 내정적인 그런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몸으로 느껴 나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입을 열면 자기 말에 자기가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면 그 기도는 신비스러워요. 자, 이렇게 쓱 기도하면 그 기도에 자기가 전부 다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를 여러분이 체험해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원리가 그렇잖아요.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힘이 나옵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심정적인 감흥과 더불어 힘이 나오는 거예요. 힘이 나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심정적인 창조복귀가 이뤄집니다.

원리강의에 있어서 결론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그것을 여러분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적인 기준이 이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여기에서 심정적 교류가 벌어진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을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주체를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땅 위에서 주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무엇이냐? 아무리 어떤 산에 사냥을 가더라도 척 쉴 때는 내가 위로를 보내는 거예요. 나는 목적이 있다 이겁니다. 아무리 힘드는 일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런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그걸 맞춰 나갑니다. 또, 식구들에 대해서 내가 여러분 앞에 심정적으로 빚을 안 진다는 자신을 갖고 있는 것은 그거예요. 나는 언제든지 하늘 앞에 있어서 대상이 되는 거예요. 하늘 앞에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대상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누가 한마디만 하게 되더라도 그게 가당한 말이면 확 들어옵니다. 우연일치가 아니예요. 언제나 관심이 거기에 있다구요. 그러므로 거기에 필요한 요소, 주체적인 요소가 갖추어지고 상대적 요소만 되면 지나가는 사람이 말하더라도 그것이 가당한 말이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기준을 거쳐 나가야 된다구요. 이것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강의를 못한다고…. 물론 강의를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 분야에서 심정적인 일치점, 그 위치를 어떻게 결정짓고 있느냐? 그 위치가 내 생명보다 강하냐? 내 말씀보다 강하냐? 내 힘보다 강하냐?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동으로 뛰쳐 나가게 될 때, 그 주위의 위치가 끌려 나가느냐? 혹은, 내가 서쪽으로 끌고 나가려고 할 때 그 위치가 이동되느냐? 내가 아무리 수욕을 당하고 내가 아무리 시험을 당하고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이것만이 나를 얽어매고, 이것만이 나의 주체가 되고 나를 수습할 수 있는 모체가 되어 있다 하는 기준을 확고히 갖지 않는 한 여러분들이 가는 길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여러분 앞에는 언제나 사탄의 제단이 여러분들을 끌어당기려고 한다 이거예요.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늘과 인연맺을 수 없다구요.

그것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주체면 주체라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요. 자기가 주체면 주체로서, 남편이면 남편으로서 부인이면 부인의 자리에서 자기가 그 주체라는 입장에 서면, 심정적인 면에서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언제든지 거기에는 자기의 본연의 위치를 알아야 된다구요. 모세가 팔을 들어 반석을 두 번 쳤던 거와 마찬가지로 본연의 위치를 망각하면 안 됩니다. 민족을 대신한 입장에 선 자기의 본연의 위치, 이것을 망각하다가는 전체가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본 주체성을 이동하지 말라 이겁니다. 이동하더라도 순식간에 갔다 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은 전부 다 하늘 앞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전부 다 날아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여기서 주체가 되어 대상을 정해 가지고 이야기하면 이 대상을 믿을 수 있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이 대상을 믿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건 얼마든지 배반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주체가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믿을 수 없는데 하늘이 여기에서 일치가 되느냐 이거예요. 이런 관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원리 말씀을 하지만 이런 저런 관점에서 얘기하게 되면 서두도 안 나와요. 역사시대에서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그립다구요. 그럴 것이 아니예요. '이런 말씀을 이 암흑세상에 대해 제1탄을 던질 때 그때의 기분이 어땠을까? 또, 모든 대중을 대해서 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될 때 그 대중이 어땠을까? 그걸 보게 되면 지금 우리는 행복하구나. 뭇 사람이 환영하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내가 말씀을 전하게 되니 참 천만 번 감사하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밤새워 눈물을 금할 수 없는 좋은 찬스의 자리를 여러분들이 다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는 길 위에 하늘 같이하지 않는다구요. 주인을 잃어버리고, 심부름하러 온 사람들이 주인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 하는 대로 해 가지고 일이 되겠어요? 그 나라의 일이 되겠나요? 하늘은 그렇지 않다구요. 내가 요즘 제일 걱정돼요.

지구장이면 지구장이라든가 협회장이면 협회장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시범을 보여 줘야 됩니다. 강의하면 강의하는 그때그때마다 전부 다 처음부터 그런 감정을 준비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반드시 선생님을 강의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강의하고 하나님을 강의하는 거예요. 강의를 그렇게 해야 됩니다.

무슨 강의를 하느냐? 역사를 강의하면 하나님을 강의하는 것이요, 선생님을 강의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자기를 드러내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 자기를 드러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강의를 한다면 강의를 뭘하려고 하는 거예요? 강의는 역사적인 사실인데 지나가는 말로써 하면 안 돼요. 하나님 자체를 강의해야 됩니다. 또,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세상에 있어서 아직도 책임을 짊어진 선생님 자신을 강의하는 거예요. 나는 거기에서 그와 일체가 되어 가지고 천주의 모든 사정을, 내가 말씀을 통해서 안타까운 사정을 내 스스로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대신 보장해 주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결론에 들어가 가지고는 반드시 하늘의 심정과 일치화되어야 합니다. 시작도 일치화하고 결론도 일치화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심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은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어떻게 어떻게 되어 가지고, 이렇게 되어 가지고 제1차의 슬픔을 맞이했고, 예수를 보내 가지고 제2차의 슬픔을 맞이했고, 그리하여 제3차 시대까지 거쳐온 그 슬픔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기도하느냐? 물론 하나님의 심정을 놓고….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요. 여러분은 직접적으로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 가운데서 통회하는 거예요. '그와 같이 뜻을 대신한 이 길이 우리로 말미암아 수고의 길을 개척해서 오늘날 세계 만민 앞에 제시한 것을 생각할 때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받았으니 여기에서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크겠느냐?' 하는 관점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 줄을 타고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여야 됩니다. 그런데 이걸 떡 따놓고 말이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렇게 해 가지고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심정적인 유대가 무너진다구요.

여러분은 좋은 재료(원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이 지금 반공강의를 하고 있는데, 반공강의와 원리강의 중에서 어떤 것이 재미있느냐? 내가 묻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재미있어요? 「원리강의가 낫습니다」 원리강의를 하고 싶다구? 여러분이 진짜 그래요? 반공강의가 신나지 않아요? 「외적으로는 반공강의가 신납니다」 (웃으심) 나도 강의를 해봤지만 사람을 부활시키는 강의가 제일 신나는 것입니다. 죽을 사람을 살려주는 것이 제일 좋은 거라구요. 그게 좋지 않아요?

여기 협회장을 연단에 세워 부흥회를…. 그때 얼마나 했나? 며칠인가? 「한 20일쯤 됩니다」 20일이면 20일 동안 그때는 계속해서 하는 거예요. 밥먹기가 바쁘고 소변 보기가 바빠야 그 사람들도 구원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나는 그래요. 동기 없이 결과가 되는 법이 없거든요. 알겠어요? 밥먹기가 바쁘고, 잠자기가 바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이 바쁘고, 자는 시간이 아까워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의 심정을 불어넣어야 그 환경에서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잠을 잃어버리는 거라구요. 동기가 있어야 결과가 나타나지요. 그 동기가 완전한 플러스라면 결과는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 잠이 뭐예요, 잠이 다 뭐냐구요. 먹는 게 다 뭐예요, 먹는 것이.

그렇게 되면 그 분위기가 충천된다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있다가 그런 자리에서 나가게 되면 자동차가 다니는 것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스윽, 공중으로 다니는 것 같고 말이예요. 다리를 건너가게 되면 내가 태평양에 와 있는지, 영계에 가서 영혼이 된 기분이 든다구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그러한 신비경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동기를 만들려면 그런 동기,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주체성을 가져야 되는 거라구요. 심정은 누룩과 같은데 거기서 녹아나지 않을 사람들이 있나요? 그런 사람들, 밀가루에 누룩을 갖다 넣으면 하룻밤이 지나면 전부 다 누룩이 되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재료를 가져 가지고 활용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배운다고 해도 원리대로 살지 못했다구요. 원리원칙의 생활태도에 대해서 망각해 버린 것이 많았다 이거예요. 어때요? 그런 것이 느껴져요? 지구장들 어떤가요?

아버지를 모시고 행동하면 틀림없다

여러분이 식구들을 척 대하게 된다면, 모든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권고할 때는 자기가 권고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도 그래요, 나도.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지만, 잘못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잘못했을 때 척 보고 '백 번 용서해 주마' 하고 마음을 그렇게 먹고 대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대하는 사람들을 백 번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자기의 아들이 말이지요, 살인강도 놀음을 해 가지고 사형수가 되었다 이거예요. 그래서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찰라에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야, 너는 잘 죽는다. 자, 어서 죽어야지, 이 자식아' 그래요? 결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심정은 천번 만번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 아량을 가지고 대하는 거예요. 천 번 용서해 주마….

그렇지만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나도 그럴 수 있는 과거가 있었다, 내가 그런 입장에 섰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거 곤란할 거 아니예요. 내가 현재 그런 실수를 범했다면 하늘은 날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책임진 분야에서 이렇게 잘못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까지 충성한 기준도 있다고 보지만, 그 기준을 볼 때 요만한 것 잘못했다고 전부 다 '이녀석' 하고 때려부수려고 하겠느냐 이거예요. 하늘이 그런 입장에 서면 천 번 고려할 것이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심각한 자리에서…. 그래 가지고 권고를 받으면 매를 맞고 이래도….

지금 통일교회 나왔던 사람들 가운데 떨어져 나간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한 30분 얘기를 나눴습니다. 비밀스러운 얘기를…. 자기 자리를 잡고 안 올려고 할 때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반대의 입장에서 별의별 해괴한 벌, 야 벼락을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모르니까 그랬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편에서. 이렇게 시정해 주면 책임자도 그런 관점에서 나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심정을 연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고 아무리 강력한 얘기를 하더라도 내가 그러한 관심을 표시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아요.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지나치게 결단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먼저 대한 그 심정이 그 이상 큰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이 나에게 준 조건을 걸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 방법이 있는 거라구요.

내 자신도 그래요. 내가 지금 일본이라든가 미국에 갈 때, 혹은 지방에 순회할 때는 내가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옛날 초창기 시대에 뜻을 대했던 그 심정을 어떻게 느끼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초창기 시대의 심정을 어떻게 느끼느냐? 아버지를 모시고 큰 싸움터에 나간다고 생각할 때, 지금 그들이 나를 환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하는 무리라고 생각할 때는 어떤 심정을 갖고 가야 되겠느냐?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 하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지구를 순회하게 되면 지구에서 지구장으로부터 식구들이 전부 다 선생님이 온다고 인사하고 뭐 이러더라도 우쭐하지 않아요. 첫 번같이 대하는 거예요. 원수들과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을 대하던 그 심정을 갖고 나가니까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그러나 척 나설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거예요. 내가 유럽 같은 곳에 가더라도, 내가 독일에 가 가지고 통역을 두 사람 놓고 얘기했습니다. 통역을 두 사람 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한마디하고 간다면 잊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걸 걱정하지 않는 거예요. 잊어버리기는 왜 잊어버리겠어요? 하늘이 지금 이때에 있어서 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그것이 강력히 서 있으면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다음 말은 무슨 말을 해야 되겠다고 딱 잡아 놓았기 때문에 잊어버릴 수 없다는 거예요. 걱정이 없다 이거예요.

언제든지 우리가 나설 때는 아버지를 앞에 세워 놓고 아버지의 답에 의한 행동의 결과를 취해 나가면 틀림없다 이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그건.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것을 배워야 됩니다. 반드시 하루하루를 보고하고, 시간시간의 생활에서 보고하는 겁니다. 그게 시의생활 (侍義生活), 모심의 생활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시의라는 것은 무엇이예요? 모심이라는 것이 무엇이예요.

원리강의의 목적

내가 그런 관점에서 지금 지구장이라든가 지역장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예요, 내가 지금 서울에서 가만히 전국을 생각하면 그런 관점에서 다 이탈되었다고 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본연의 여러분의 위치를 회복해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강의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뜻이니, 선생님이 이 뜻을 위해서 나온 기준이 있고 우리는 그 뜻을 위해야 하는 자녀의 입장에 있으니 하늘을 붙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지을 때나 기도할 때는 반드시 여러분 혼자 기도하지 말라는 거예요. 무엇을 위해서 이 놀음 하느냐? 무엇을 목적으로? 하늘의 인격을 대신 소생시켜 주고, 그 인격을 본래대로 재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심정 기준이 없어 가지고 어떻게 되나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강의하는 끝에는 여러분이 무엇을 강의하느냐? 반드시 현재의 선생님의 입장을 한마디 해야 됩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과거와 현재의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언제나 한마디 해서 결론을 내려야 된다구요. 그래서 하늘 앞에 심정적인 시작도 거기서부터, 결말도 거기서부터…. 하늘과 여러분이 하나되는 입장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정성들여 가지고 해보라구요, 결과가 어떻게 움직이나. 알겠나요? 「예」

여러분들의 입장은 직접적 입장이 아닙니다. 간접적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간접적 입장은 직접적 입장을 언제나 망각해선 안 된다 이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심정문제의 일치점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순회할 때도 그것은 내 자신이 가는 게 아니예요. 자기가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선생님 대신 가야 된다구요. 그리고 보는 것도…. 이런 강을 건너가면 '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면 그 시간이 얼마나 은혜의 시간이겠어요?

더우기나 석양의 황혼 길을 걷든가 달밤을 걷든가 이럴 때는…. 그 심정이 귀한 거예요. 기도를 하는 것도, 옛날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감람산 뒷골목을 헤매면서 기도하던 그 사정을 가지고 하는 겁니다. 전부 다 그런 역사를 반영시켜 가지고, 그 시대, 그 당시의 그 사람의 입장을 대신하여 '하늘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면 그 걸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은혜가 내리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혼자 이렇게 걷고, 혼자 이렇게 명상하고, 혼자 이렇게 기도하고, 혼자 말씀을 보는 그 시간이 얼마나 깊은 은사의 시간이겠느냐? 지금 지역장들이 그런 생활을 못 하고 있다는 거예요. 공인의 입장에 서지 못했다구요. 공인의 입장에 서지 못했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생각이 크면 클수록 과거를 불러일으켜서 현재의 감정과 더불어…. 태양을 보면 옛날에 태양을 예수님도 봤고, 성인현철도 다 봤을 텐데 어떻게 봤을 것이냐? 물이면 물도 마찬가지고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부한 시적 경지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고 역사적인 시대의 인물이지만 현실적인 내용을 이 시대에 재현시켜 가지고 나와 더불어 직접적으로 심정적인 면에서 감정이 통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출 수 있어야 돼요.

그런 데에 있어서 자기들이 흥미를 느껴야 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 가 가지고 하늘 앞에 호소하고, 하늘의 사연을 통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연결되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자, 그러니 이 심정의 일치, 문제는 그거예요. 그것을 다시 한 번 재현시키자 이거예요.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이제 내일부터는 원리강의를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과 달리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입장에 서지 말라 이겁니다. 앞으로 원리강의를 하더라도…. 그 원리강의는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실체를 전하고, 하나님의 실체이상, 선생님이 지금까지 탕감복귀해 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전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직접 내가 상속받을 수 있는 문제이니만큼 심각하다 이거예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 발전하게 되어 있는 우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는 딴 기도 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원리를 기도해야 된다구요. 아담 해와를 놓고 아담 해와의 입장에서 기도해야 됩니다. 노아면 노아 자신이 되어서 기도해야 된다구요. 노아가정에 있어서는 내가 노아가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 가정에 있어서는 내가 아브라함이 되는 거예요. 모세 시대에는 모세가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해서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종적인 심정 역사를 재현시켜 놓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그런 관점에서…. (녹음이 잠시 끊김)

거기에서는 주체와 대상성을 인정하지 않아요. 반드시 모순 대립물이 투쟁을 해야 통일된다 이겁니다. 그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핵심입니다. 반드시 대립적인 물건이 투쟁하여 합해 가지고 발전한다! 이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작용을 해야 됩니다. 작용을 하는 데는 목적 없이 작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플러스가 있으면 반드시 마이너스가 있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원리로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떤 관점으로 봐야 되느냐?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목적관입니다. 우주는 목적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적 요건이 있어야 됩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심) 상대적 요건이 있으면 그것을 연결시켜 주는 힘이 있어야 된다구요. 힘을 통하지 않으면 존재가 나올 수 없다구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면 힘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하게 되면 무엇이 필요하냐? 상대적 요건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상대적 요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나님은 계시지만 혼자 계실 수 없다 이겁니다. 주체와 대상, 이성성상이 나온다 이거예요.

창조목적을 세우기 전에 반드시 창조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목적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 창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나오기 위해서는, 즉 존재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 상대적 요건이 필요합니다. 상대적 요건이 필요한 이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체에 있어서 이성성상이라는 말을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여러분, 우리 원리에 이성성상이 어떻게 나오느냐? 이성성상이 왜 필요하냐? 작용하려니까 필요합니다. 작용하면 존재합니다. 존재하면 반드시 목적을 이룹니다.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이거예요. 이렇게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이 반드시 있어야 돼요. 이성성상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작용을 합니다. 수수작용이 벌어진다구요. 수수작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주고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목적이 나오는 거예요,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 수수작용, 창조목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창조목적이 나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3단계 과정을 거쳐야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거쳐 가지고 그것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이면 아담, 해와면 해와가 주고받으면 여기에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3단계라구요. 이런 3단계가 나온다 이거예요. 이걸 갈라놓으면 이것은 내적이요, 외적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이 내적 세계, 외적 세계가 나온다구요. 육신을 중심삼고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여기서 갈라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내적 세계요, 외적 세계가 나옵니다. 이걸 합해 놓으면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물의 주관적인 관계에 있어서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를 총합하는 연결적인 기준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그거라구요. 이성성상, 수수작용, 창조목적, 3단계, 그다음이 이 관계라구요. 가치로 보면 삼대상목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요것 중심삼아 가지고, 요것 중심삼아 가지고, 요것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면 삼대상목적이 다 이루어진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절대적 기준에서 필요로 한다 이거예요. 이럴 때 원리적인 가치가 나오는 것입니다. 요거라구요, 요거. 그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작용할 때는 존재한다구요. 존재하는 데 있어서는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존재는 주고받는 결합체다 이거예요.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용을 해야 하고, 작용을 하려면 힘을 가져야 됩니다. 힘은 무엇이냐? 작용입니다. 작용을 하면 반드시 목적이 개재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다 하는 것 자체가 벌써 목적 성사를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기준에 있어서 오늘날 역사발전을 공산당들이 말하는 변증법에서 보는 것과는 출발 기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걸 안 보거든요. '서로 대립물이 있어 가지고 이 모순은 대립 투쟁해 가지고 가려 나간다' 이렇게 보거든요. 대립되는 여건 개념이 둘이다 이거예요. 이쪽이 상대적 개념인데, 이쪽은 플러스는 플러스, 마이너스는 마이너스의 관계에 있어서 대립한다는 겁니다. 대립한다는 자체는 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된, 모순된 기준은 합할 수 없다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것은 영계와 육계요, 인간은 주관적 입장에 선다 이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창조원리에 다 나온다구요. 창조원리에서 첫째가 이성성상이지요? 「예」 둘째는 수수작용이지요? 「예」 세째는 창조목적이 되어 있지요? 「예」 네째는 가치론이 되어 있지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예」 다섯째는 무형세계와 유형세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여섯째는 무엇인가요? 육신과의 관계, 요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거예요. 그게 전부 다 나오는 겁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려면 벌써 힘이 있어야 됩니다. 꺼꾸로 찾아들어가야 돼요. 존재하기 위해서는, 존재하려면 반드시 작용을 해야 된다, 작용하지 않으면 해체되니까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차이가 크면 클수록 빨리….

인간은 왜 영생을 바라는가

이 우주는, 우주의 존재 공법은 완전히 주고받는 데 있어서 영원이 벌어집니다. 완전히 주고받으면 영원한 거라구요. 세상의 힘의 관계도 그렇잖아요? 전기로 말하면 입력이라는 것이 있다구요, 입력. 들어오는 힘.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다음에 출력이 있다 이거예요. 들어오는 힘이 이퀄만 되면 영원히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돌아가는 거라구요. 작용의 원칙에 있어서 말이지요. 그런데 들어오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점점점점 이것이 감소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존재하려면 완전히 주고받아야 된다 이겁니다.

주고받는 데 있어서 차이가 하나도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오래 간다는 거예요. 돌 같은 것도 오래가는 돌이 어떤 것이냐? 완전히 주고받은 것은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불순물이 끼어 있을 때는 완전히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빨리 붕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천법이 무엇이냐? 존재의 법칙이 무엇이냐? 그것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오래 존재하는 것이요, 잘못 주고받으면 붕괴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영원할 수 있다! 영생을 바란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사랑이다!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아 있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관찰하면 전부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손해보는 데에는 작용이 벌어지지 않아

선생님이 창조원리를 쓰게 될 때 어떻게 썼느냐? 존재를 인정한다! 존재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어야 된다! 힘이 무엇이냐? 힘이 무엇이냐 하게 되면 작용입니다. 힘은 작용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용은 어떻게 해야 되는냐? 작용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상대적인 여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존재를 이루는 것도 수수작용의, 작용의 힘이 있어야 존재를 이루고, 존재하기 위해서도 역시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작용하려면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을 전부 다 겨루어서 이것이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는 맹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갑이면 갑, 을이면 을이 주고받을 때는 이중목적, 같이 주고받을 수 있는 목적권 내에 들어가서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어떻게 작용되느냐? 손해보는 데는 작용을 안 합니다. 나쁜 데는 작용을 안 합니다. 그럼 왜 존재하는가? 나빠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창조법칙, 창조하신 하나님편에서 보게 될 때 창조를 왜 했느냐? 그것은 좋으시기 위해서 지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용은 절대 나빠지게는 작용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화학작용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상대되어야 됩니다. 둘이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두 목적이 결합할 수 있어서 서로 플러스가 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작용을 시작하지 손해된다 하면 절대 작용 안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작용이나 모든 존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도 그렇잖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인가 된다. 더 좋다' 하는 더 좋을 수 있는 목적이 있어야 주고받지, '아이고 나는 싫다' 하는데 주고받아요? 싫은데도 주고받으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존재물은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은 작용을 해야 되고, 작용하려면 반드시 상대적 여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상대라는 것은 왜 나오느냐? 혼자 있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목적을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주의 공법에 일치되지 않으면 병이 나거나 고통스러워

그러면 하나님이 천지를 왜 만들었느냐? 좋으시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하나님과 사람의 공동목적을 위해서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영생하려고 하느냐? 하나님, 주체가 영생이므로 그분 앞에 완전히 상대적 일치와 완전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영생을 바라고 이상적인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이한 권한인 것입니다. 다른 동물에게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내에 인간들이 들어가고 그 관계내에 영계도 들어가고 지상도 전부 다 관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존재하려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주고받아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관계돼 가지고 여기서 종적인 관계와 횡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 길이 막혀 버리면 병이 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상충을 일으키면 병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체내의 기관에 결함이 있어서 병이 나기도 하지만, 여러분의 정신상태와 육적인 관계가 상충되게 되면 역시 병이 난다는 것입니다.

병이라는 자체는 무엇이냐? 우주의 공법에 일치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치화되지 않은 만큼…. 우주의 공법은 일치한 물건을 흡수해서 그것을 보호하고 육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법에 대치되면 대치된 기준만큼 우주의 힘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병이 나면 아픔니다. 왜 아프냐 이겁니다. 왜 아파요? 주고받는 것이 그만큼 막혀 버렸으니, 우주의 천법은 서로가 잘 주고받는 것을 보호하고 육성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막혀 버렸으니 막힌 부분만큼 우주의 공법 앞에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힘이 몰아내기 때문에 밀어내는 그 작용이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 요건은 목적 때문에 필요해

‘내 양심이 고통스럽다’할 때, 왜 고통스러우냐? 우주의 공법에 의해 몸과 마음이 이념을 중심삼고 일치화되어서 잘 주고받으면 기쁜데, 몸과 마음이 어떠한 목적관을 중심삼고 잘 주고 잘 받지 못하니까 그 목적관 이념을 완성하기 위한 우주의 힘에 배치된 만큼 내 마음에 고통이 온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상대적 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필요해요? 상대적 여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리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적 요건은 왜 필요하냐? 그것은 목적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 목적은 주고받는 상대적 목적인 것입니다. 그 목적은 나 하나만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목적을 요하는 것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몸과 마음의 이중목적…. 그러므로 전부 다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전부 다 이중목적권 내에 귀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 여건이 이성성상이고 수수작용이구나! 그런데 이것은 왜 이러느냐?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는 왜 하느냐?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성성상, 다음이 수수작용, 다음이 창조목적입니다. 이렇게 되면 존재로부터 목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게 될 때, 순서로 보게 되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녀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수작용하는 것입니다. 수수작용하면 창조목적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3단계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됩니다. 그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게 되면 안팎으로 쭉 갈라보면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 무형세계와 유형세계, 이렇게 상대적 관계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인간은 영육을 중심한 인간관계, 생심과 육신관계가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어려울 것이 뭐 있어요?

이런 것을 중심삼고 선이 무엇이냐 하는 것도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위기대 목적도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도 역시 사위기대, 삼대상목적이 이루어질 때 그 절대적인 가치도 인정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여기서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척 보면 저것 오래갈 수 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구요. 이렇게 되려면 주종관계가 확실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평을 잘 해야 되고, 수직을 잘 세워야 됩니다. 건축물도 그렇습니다. 십자를 그려 가지고 완전히 원형권, 구형권을 이룰 수 있는 자리에 형태를 갖추느냐? 여기서 오래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집을 지으려면 완전히 수평을 이루고 수직을 이루어야 됩니다. 조금만 찌그러져도 안 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완전 원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세계는 전부 다 원형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수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원형을 그리는 겁니다. 잘 주고 잘 받을수록 원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잘 못 주고 잘 못 받을수록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상대적 여건이 잘 안 될수록 이 주고받는 거리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완전히 잘 주고 잘 받으면 반드시 완전 원형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구형을 이룬다 이겁니다.

그러면 영생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느냐? 수직관계, 수평관계가 구형관계로 볼 때 완전한 구형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보면 몸과 마음이 수평과 수직이 되어 가지고 이것이 사방으로 완전히 주고받느냐? 세상적으로도 그렇고 영계와, 즉 입체적으로도 완전히 주고받느냐? 이것이 완전히 주고받을 때 구형이 완전하게 되므로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상적이라는 겁니다. 이상적이라는 것은 힘의 작용이 계속 백방으로 평균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만 틀어지면 거기서 파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수수작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목적적인 내용을 가지고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여러분이 머리에 그려 두어야 합니다.

지(知)와 정(情)의 관계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어야 됩니다. 힘이 있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왜 필요하냐? 목적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중목적, 공동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가 이중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고 보면 이러한 데서 주고받는 것이 목적인데, 물건들을 보면 요것을 중심삼는 거예요. 전부 다 이렇게 벌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관과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하면 반드시 파괴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역사도 이런 면에서, 섭리도 이것을 위해서 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지향성은 무엇인가? 역사는 무엇을 중심삼고 가느냐? 목적을 중심삼고 가는데, 그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왜? 사랑은 원형을 그릴 수 있는 모든 핵심적인 위치, 이상적인 기준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주로 해 가지고 전부 다 이념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존재물이 나왔다 하면 벌써 힘이 작용한 것입니다. 힘이 작용했다 하면 상대적 여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전에 힘, 힘이 있기 전에 상대적 여건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이성성상의 주체예요. 상대적 여건으로 수수작용을 해야 되고, 그렇게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창조목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에는 목적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이 말하는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다 틀리다는 것입니다. 대립물이 투쟁하여 통합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목적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투쟁발전을 인정하는 데 변증법을 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이것을 사방으로 벌여 놓으면 여기에서 전부 다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원리를 이렇게 추구해 들어가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도 그래요. 하나님 자체가 존재한다,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 힘이 생겨나려면? 「작용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고, 여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잡하지만 하나의 목적권 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은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권 내에 만우주는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주체라면, 진리가 먼저면 진리로 말미암아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런 원인적인 내용이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의 원인적인 문제는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지적인 문제, 진리는 중간에 있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방법 자체가 정을 유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게 근본문제입니다. 방법 자체가 어떻게 정을 유발하느냐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정의 (知情意) 에 의해서…. 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방법과 관계를 일으켜 가지고…. 방법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면 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지 정을 유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새로운 세계관에 있어서 해석이 다르게 되면 딴 세계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학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이 먼저냐, 지가 먼저냐? 「먼저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볼 것 같으면 전지전능하신 겁니다. '전지전능하시다. 전지(全知)하다. 완전히 안다'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쁘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에서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으로 되어 있고, 개성진리체 속에도 주체와 대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진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원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은 무엇이냐? 기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려면 기쁘기 위한 동기,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정의를 말하게 될 때 지가 먼저냐 정이 먼저냐 할 때, 본래는 정이 기준입니다. 그런데 방법적인 과정에 있어서 정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타락한 인간에게 재인식시키고 그것을 재현시키기 위해서는 지를 먼저 들고 나올 수 있으되 원칙적으로는 정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타락한 인간에게는 정적인 관계가 아직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는 성립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타락한 인간에게 재현시키기 위한 수단 방법으로 지를 먼저 들고 나왔지만, 본래는 지가 먼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이 먼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정의가 아닌 정지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지의가 되어 가지고 정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의 목적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지가 원인이고 기쁨이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쁨이란 것은 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이 먼저 있어 가지고 지의 과정을 거쳐 기쁨의 세계를 연결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예」 이러한 문제를 가려 주지 않으면 앞으로 상당한 어려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지었느냐 할 때 정을 느끼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정을 느끼지 않으면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기뻐 가지고 정을 느껴요? 정을 느껴 가지고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이 동기가 되어 방법을 거쳐 가지고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을 느끼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정을 느끼지 않고는 기뻐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뻐 가지고 정이 느껴져요? 어때요? 기뻐 가지고 정이 느껴져요? 「정을 느끼기 위해서 모든 것을 지었으니까…」(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먼저 정이 가야 기쁨이 생기고, 모든 것에 대한 의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안다고 하더라도 정이 안 가면 의지가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정이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정을 통해서, 정의 이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품어 주고 연결시키려니…. 원리라는 것은 중간 과정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것을 재현시켜야 되는데 정을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귀납적으로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귀납적으로 분석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 가지고 이렇게 되어서 정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영통인들을 대하는 방법

여러분이 앞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고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수습하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영통한 사람들을 수습할 때는 원리를 안다고 그냥 그대로 우락부락 하다가는 큰 상처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그런 상대가 인연되어 찾아오게 될 때는 반드시 천운이 연결되기 위해서입니다. 도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와서 부딪쳐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인들이 와 가지고 증거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증거하는 사람은 대번에 와서 증거를 안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를 받들어서 증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증거하는 사람이 통일교회 찾아왔다면, 그들이 우리 교회에 왔다고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소관이 있고, 증거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사람을 고이 대해 주고, 자꾸 추켜 주면 자기가 영광으로 알고 증거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까지 증거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백 만한 도의 기준을 가지고 왔으면 처음에는 오십 만한 기준밖에 증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상대만 잘 해주면, 백 이상의 상대여건만 돼 주면 반드시 백까지 증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우리와 비준이 어떻다는 것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고 물으면, 문제만 제시해 주면 기도해 보고 '이렇다고 합니다' 하고 답이 나옵니다. 그때는 올바른 대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대답이 나오면 그 대답을 놓고 들이 치는 것입니다. 들이 치면 들이치는 여기는 꺾어지지 않고 증거한 자체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전부 다 거꾸로 빼앗기고 심판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많이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싸움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면 척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았으면 대번에 그 사람을 건드리지 말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맨 처음에 자기 중심삼고 말씀을 하게 되면 그 기준을 가지고 자꾸 대하는 것입니다. 정성껏 대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을 들인 만큼 대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꾸 증거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기가 증거할 기준까지 다 한 다음에 여기서 문제를 딱 제시해 가지고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겨루는 것입니다. '요런 답은 어떻게 해야지?', 선생님이면 '선생님과 당신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그러든가?' 하고 물어 보는 겁니다.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답이 나옵니다. 그럴 때는 답을 주고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번에 주문을 합니다. 보통 사람에게 그렇게 했더라도 그건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했더라도…. 인간이 완성하기 전에 만물을 주관하는 것은 예약적 주관입니다. 예약적 주관이기 때문에 기간이 있지만 영통한 사람은 증거하면 당장에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못 하게 되면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에게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어요. 오늘도 어떤 할머니가 자기가 어머니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어머니래요. 할머니면서 자기가 어머님이래요. 선생님이 미국에 갈 때도 자기와 같이 가야 되고, 자기를 빼놓으면 모든 것이 안 된다는 거예요. 안 되긴 뭐가 안 돼. (웃음)

그러면 그럴 수 있는 특권을 누가 갖느냐? 그거 원리 가운데 다 나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원리 아니면 앞으로 세계를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복잡한 싸움을 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싸움을 해 나오는 거예요. 싸움하는 데는 반드시 원리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워 나오는 겁니다.

보다 더 희생하는 사람이 아벨

만일에 이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확실하지 않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가인 아벨 둘을 갖다가 싸움을 붙이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인 아벨 둘을 싸움 붙여 보면 아는 거예요. 확실하지 않을 때는, 둘이 같은 문제를 중심삼고 서로가 그 사명을 졌다고 한다면―서로가 그런 사명을 졌다 한다 이거예요―그럴 때는 어떻게 이것을 분별하느냐? 그렇잖아요? 같은 말이요, 같은 사명을 졌다 하니 어떻게 분별하느냐? 누가 가인이고 누가 아벨이냐 갈라 보는 거예요.

그러면 가르는 방법이 뭐냐? 공적인 공의심이 누가 많으냐 이거예요. 자기 몸 전체를 희생해서 제물 될 수 있느냐?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그거예요. 자기 몸을 희생해서 제물 될 수 있느냐? 그런 기준을 보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벨은 가인보다 제물 돼야 됩니다. 희생해라 하는 거예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이익을 위하고 만민을 이익을 위해서 누가 먼저 희생하느냐? 즉, 누가 온유 겸손하냐? 이런 문제로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둘을 싸움을 붙여 놓고 조금 지나게 되면 그중에 누가 옳고 그른지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그른 놈은 잘라 버려야 됩니다. 잘라 버렸댔자 그건 절대 걸리지 않는다구요. 그건 천법에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작전을 해 나오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쓱 찾아오면 대번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벨적인 입장에 세우는 거예요. 그 사람을 높여 주는 거예요. 높여 주면 그 녀석은 까닭없이 올라가지. 잘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다가는 못 올라간다 이거예요. 받쳐 주면 올라가다가 못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뚝 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지금까지 정성들인 복을 전부 다 빼앗아옵니다. 이렇게 뽑아다가 여러분들, 건달패들에게 다 나눠 준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길가에 돌아다니는 건달패들.

여러분들 사실 여기 와 가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축복대상이니 뭣이니 하는 것을 원래는 못 가졌어요. 원래는 40년 역사를 가져야 돼요, 40년 역사. 3대를 거쳐서 40년 역사를 가져야 돼요. 40년에서 70년까지 3대 기간에 해당하는 그런 기간을 거쳐 나가야 되는 거예요. 나가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 못 해요. 그런 것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모든 복을 전부 다 빼앗아다가, 복을 전부 빼앗아다가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주는 거예요. 안 믿으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나가다가 길가에서 몰려와 가지고…. 이게 복받는 줄은 모르고 또 그 주제에 꼬리를 저으면서…. 그런 사람은 나가자빠지는 겁니다. 직사를 하는 겁니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 지금 오래되었다는 식구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거예요. 제일 싫어하는 게 뭐냐? 뭘 싫어하느냐? 그런 원칙적인 기준에서 두 사람이 있을 때 누가 하늘 앞에 가깝느냐? 쓱 보게 된다면 누가 뜻을 위해서, 누가 자기 몸을 희생해서 아끼지 않고 먼저 나가려고 하느냐?

어떤 사람은 그런다구요. '뭐 이래 가지고 내가 먼저 들어왔는데 나를 섬겨라' 하는 거예요. 이건 전부 다 가짜예요. 내가 그러지 않는데, 내가 아직까지 그러지 않는데…. 왜 그러냐? 하나님이 만약에 그랬다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벨 중의 아벨인데 하나님이 만약에 '너희들은 나를 섬겨라' 이랬으면 구원하겠어요? 그 섬긴다는 자체가 덜된 것들입니다. 덜된 것들에게 섬김받아 가지고 '아이고 좋다' 그러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섬김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들딸을 세워서 복귀해 가지고 섬김받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앞으로 여러분들이 나가서 전도를 하게 될 때에 도인들을 만나도 그 사람들을 수습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척 말하는 것도 원칙적인 아벨적 인격기준, 즉 공적인 기준에서 먼저 맞고 희생해야 되는 것이 아벨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맞고 희생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고 '나를 섬겨라! 너는 이것을 해라'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러한 입장에 서서 먼저 맞고, 봉사하고, 희생하여 가지고 들이치게 되면 누가 망하느냐? 섬김받던 사람들, 즉 섬기라고 하던 사람들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단에 들어가서 몽땅 배워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우리가 도와주자

선생님도 이 길을 나오기 위해서 세 집단의 모든 것을 뒤집어 박았습니다. 어떤 단체 셋을 뒤집어 박았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거기에 떡 들어가 가지고 맨 밑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단의 책임자가 공인 안 해도 좋다 이겁니다. 먼저 그 책임자가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지 않으면 영계는 다른 사람을 찾아서 증거시켜 줍니다. '저 사람 따라가지 말고 이리 가라!' 하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가만있지만 결국은 영인들한테 끌려가는 겁니다. 이렇게 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염려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통일교회의 여러분보다도 더 충성해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기뻐 가지고 그를 축복해 줄 수 있는 그런 자리, 그런 기준을 차지했다면 그 기준 만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떨어져 나가더라도 그 기준은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 기준을 넘어가게 되면 꺾여 나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갔다가는 두고 보라는 겁니다. 보따리 다 싸 짊어지고 나중에 나타나는 겁니다. 여기 저 에덴수도원 있잖아요. 거기에 누구인가? 그 녀석을 내가 얼마나 충고했어요? '너 이녀석 망한다' 그랬는데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하고 꺼떡꺼떡 하다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계의 해골골입니다. 구렁텅이라구요. 해골골과 마찬가지라구요. 영계에는 해골골이 있는데 여기에 들어갔다가는 나오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때 가서는 비상작전을 해 가지고 넘어가는 거예요.

이제 1965년부터는 기성교회에 불이 붙는다! 그런 말 들어 봤지요? 은혜가 기성교회에 재현된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성교회에 이렇게 은혜가 벌어지면 우리는 무슨 작전을 해야 되느냐? 연결시키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는 지금 초교파운동의 문제가 점점 급박한 문제가 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아벨적인 기준에 서서 에서에게 배척받던 야곱이나 열 한 형제에게 배척받던 요셉과 같은 입장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때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배척받던 기준에서 우리가 점점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야곱으로 본다면 환고향하던 때, 자기가 떠나기 전의 고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대로 돌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게 되느냐? 요셉도 자기 형님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이 원수의 입장에 있었지만 굶주리고 불쌍한 처지에 있으니 먹여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의 어려운 환경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급 것을, 즉 요셉의 관할권 내의 것을 갖다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갖고 있는 것도 전부 갖다 주어야 됩니다.

이와 같이 야곱과 요셉은 재물을 주고 무엇을 찾으려고 했느냐 하면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사랑하던 하늘의 상속을 받으려 했고,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을 형님들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받게 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은 문제가 아닙니다. 형님만 찾아오면 사탄세계의 물질은 몽땅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주었다고 해서 진짜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낚시질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굴복하여 넘어오게 된다면 사탄세계가 전부 넘어오기 때문에 사탄세계를 몽땅 점령하는 작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을 보내면서 양이니 무엇이니 자기가 가진 재물을 전부 다 에서에게 바친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도 돈만 많게 된다면 기성교회는 몽땅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기성교회 목사들이 먹겠다면 어서 먹어라 이거예요. 자꾸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돈 때문에 모가지 들고 야단하는 밥목사들이 다 되지 않았어요?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을 전부 긁어다가 그들에게 주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전부 갖더라도 우리들은 손해 안 보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몽땅 탕감복귀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지금 움직이는데, 요전에도 이야기했지만 '3년이면 3년 동안 돈 받지 말자! 도와주겠다고 해도 받지 말자'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가 도와주면 저쪽에서 먼저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는 것을 받으면 '고맙습니다' 해야 되는 겁니다. '고맙습니다' 하면 거기서 벌써 굴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초교파 운동을 하는 것도 다 이와 같은 의미에 의한 것입니다.

주려고 하는 사람은 아벨,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가인

우리 통일교회는 앞으로 무한히 희생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일본이나 미국이나 그런 데서 돈 가지고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아요. 물질을 가져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아요. 우리는 아벨 국가입니다. 아벨 국가는 가인 국가 앞에 먼저 주고 나서 몽땅 끌어와야 됩니다. 이러한 가인 아벨을 중심삼은 작전법은 영계에서도 증명이 되는 것이요, 외적 세계에서도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에게 주어야 됩니다.

선은 무엇이냐? 선은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은 무엇이냐? 나로 말미암아 마음이 복귀될 수 있는 인연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하늘 앞에 선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선한 입장에 서기 때문에 좋은 영계에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벨의 기준은 무엇으로 결정하느냐? 그것은 간단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받겠다고 하는 것은 가인이요, 주려고 하는 것은 아벨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사람은 가인이요, 빼앗기고도 말없이 잊고 순종하며 나가는 사람은 아벨입니다.

우리 가정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이나 식구들을 중심삼고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에 내려가서 고생하면서도 말없이 뜻을 붙들고, 전부 뺏기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 들이박혀 있는 사람은 아벨이요, 자기만 살겠다고 보따리 싸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원칙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칙은 어디에나 적용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어떠한 사람이든지 판별하면 틀림없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어도 그 사람들을 척 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작전을 해 나왔는데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주장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하는 것도 자기 분야의 한계권 내에서 해야지 한계를 벗어나서 주장하는 것은 안 됩니다. 여기에서 제물이 되어, 그것을 벗어나서 주장할 수 있는 기준을 닦기 위해서는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위해서는 실천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막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내가 주님이고 뭐 어쩌고 뭐 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세 나라를 거쳐야 됩니다. 3국을 거쳐야 되고, 3주권이면 3주권 시대의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1차는 아담을 중심삼은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2차는 예수를 중심삼은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며, 3차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은 나라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 나라를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는 무엇에서? 주권에서. 그렇기 때문에 1차 주권, 2차 주권, 3차 주권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 (道) 의 세계에 있어서도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새로운 도로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셋 이상이 증거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예수님 앞의 세 제자는 인류를 대표한 3수, 대표적인 수를 상징하기 때문에 민족으로 보면 세 민족을 대표한 것이요, 도로 보면 세 도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세 교단이 와서 증거를 됩니다. 잡교면 잡교 또는 불교나 유교 등 세 교단이 증거를 해야 해야 됩니다. 증거하는 것도 한 사람만 와서 증거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세 사람 이상 와서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두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기준을 전부 다 복귀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7년노정을 책정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원리적입니다. 1961년도에 성혼식을 할 때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어요? 거기서 12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성혼식을 했습니다. 그 명단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지요? 그 모든 것이 원리적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모의 날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을 왜 이렇게…. 여러분들이 올라올 때 왜 지구장, 지역장, 구역장까지 끌어올렸는지 생각해 봤어요? 새로운 얼굴이 많구만. 여러분은 모르지요? 「예」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말씀을 무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것을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지구장, 지역장, 구역장 그리고 본부와 더불어 사위기대가 세워졌습니다. 알겠어요? 사위기대를 갖추었다 이겁니다. 그리고 삼위를 중심삼고 보면 사위기대를 이룸으로써 7수를 채우자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는 동서남북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3수는 무엇이냐? 나무를 중심삼고 볼 때 나무가 서기 위해서는 3수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나무가 설 때는 반드시 3수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관심을 다른 데 두면 사고가 생겨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번 기간을 통하여 은사를 느끼고 새로이 결심한 그 결심은 앞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겠다고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겠기 때문에…. 또 원리강론도 새로 나왔고….

이번 부모의 날만 지나면 제2차 7년노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967년이 남아 있지만 금년이 만 7년이 넘기 때문에 이날을 넘어가면 제2차 7년노정으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연대로 넘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이런 때일수록 모여서 정성을 들이고 과거를 회복하여서 자기 자신을 재정비해 가지고 재출발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점을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데 여기 와서 뭘하느냐 하면…. 졸음이 오누만. 여러분이 지방에서 올라올 때에는 여러분 혼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뒤에는 영계의 수많은 영들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뒤에서 숱한 영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기에서 부모의 날 행사를 하게 되면 내가 기도를 해도 보통때 같으면 수많은 영인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넘어가는 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잘못하게 되면 여러분 중에서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당이 굿을 하는 집에 갔다가 급살맞는 놀음이 있다고 그러는데 진짜 그래요. 그 영은 인연이 있어서 들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쫓아내면 한을 품고 가기 때문에 반드시 치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 없이 굿하는 데 구경이나 가고, 좋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영한테 들이 맞는 것입니다. 그런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모일 때에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기의 모든 복을 빼앗깁니다. 자기도 모르게 기운이 쭉 빠져 가지고 어쩔 수 없는 입장에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하면 조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녀석들은 왔다가 들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반드시 들이 맞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런 것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그대로 됐거든요. 가지 말라고 책임지고 얘기했는데도 그냥 가는 사람은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선생님이 누구한테 말하더라도 책임진 입장에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중간적 입장에서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는 그러한 때입니다. 즉 지금은 완충기를 거치는 때이기 때문에 딱 잘라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임을 할 때 괜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간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런 기간을 지나야 돼요. 꺼떡꺼떡 졸면 안 돼요. 물론 고단하기도 하겠지요. 나도 지금 고단해. (녹음이 잠시 끊김)

통일교회의 운세시대로 들어섰다

우리의 원리 말씀은 예수님 때까지의 말씀이 다 나옵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의 지금 이때는 탕감복귀의 때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탕감복귀한 것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예」 내가 해야 할 사명은 완성 분야의 탕감조건을 맞추는 사명이요, 효원씨가 해야 할 사명은 장성기 완성급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사명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핍박받은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면 이쪽 저쪽으로 돌아다니면서 전부 다 해결해야 될 것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해야 돼요. 축복받은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원리 말씀을…. 또 그걸 내가 하게 된다면, 내가 해서 딱 금을 그어 놓으면 마지막입니다. 못하면 쫓아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시는 못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지금의 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선생님이 맞고 감옥에 들어갈 때에는 장성급까지 올라갈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단 넘어섰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길은 지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원리 같은 건 전부 다 협회장한테 맡긴 겁니다. 다 그렇게 책임의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요즘엔 선생님이 고생하고 여러분들은 영광받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요즘에 반공강의니 뭐니 해 가지고 통일교회가 지금 난리잖아요. 내가 언제 관공서 사람들한테 점심을 대접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일에는 여러분이 선생님보다도 높아요. (웃음) 뭐 짚차로 모시러 다니고, 그래서 차 타고 다니는 걸 볼 때 여러분이 나보다 높다 이겁니다. 나보다 높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누구냐? 가인입니다. 알겠습니까? 가인이니까 아벨이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해 들어가는 시대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때가 싸움없이 복귀권 내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기뻐해야 되겠어요, 슬퍼해야 되겠어요?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가인 아벨 싸움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민족을 복귀하는 데도 내가 나서면 안 됩니다. 가인 아벨의 위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내쳐서 고생시켜 가지고 여러분을 통하여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해야 한꺼번에 돌아갑니다. 천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에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원리가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때려 가지고, 여러분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사지에 내몰아서 몰리고 쫓기게 해 가지고 굴복되어 들어온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공을 들여 가지고 굴복시킨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주체성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아벨적 입장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고생하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굴복했다는 사실은 완전히 탕감조건을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이제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꺾이지 않습니다. 꺾이지 않고 오히려 굴복시킬 수 있는 시대로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는 이제 통일교회의 운세로 들어섰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통일교회의 운세시대로 왔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공산주의를 상대해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권내로 들어섰습니다. 이것이 원리인 것입니다.

아벨은 절대 교만해서는 안 돼

그러면 이제 아벨은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이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아벨은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절대 교만하지 말라는 겁니다. 절대 교만하지 말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절대 교만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누구다' 하고 주장하지 말라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어떠한 사람을 뽑아 가려면 '내가 누구다' 그런 사람은 안 돼요. 통일교회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 선생님이면 선생님이 증거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증거해야 됩니다.

나는 꿈도 안 꾸는데…. 꿈도 안 꾸고 있어요, 그까짓 녀석들은. 두고 봐라 이겁니다, 누가 날아가나. 안 날아가게 되면 내가 날려 버릴 겁니다. 조금만 지나면 그런다구요. 그런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작전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뭐…. 끌어가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이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좀 끌어가라 이겁니다. 그렇지만 만일 그런 작전을 했다가 내가 반대적인 작전하게 된다면, 사탄이 하던 작전을 하게 되면 그건 문제도 없다는 겁니다.

까짓 것 싸움 붙여 가지고 뻥하게 만들면…. 그러나 내가 그짓 안 한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내 갈 길이 바빠요. 내 갈 길이 바쁘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선생님을 따라 나가면서 바쁘다고 하지요?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따라가기도 바쁘다고 하지요? 그러나 지시하기 전에 선생님이 해야 되니 바쁘다 이겁니다. 바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보다 더 바쁘다는 겁니다. 이것을 7년 고비를 넘어가기 전에 전부 다 정리해야 할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는 겁니다.

타락 인간들을 무엇으로 연결시킬 것인가

그러면 지금 사탄세계, 타락한 세계의 인간들과 복귀된 세계의 인간들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영계문제와 지상문제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건 모르지요? 그건 모르는 거예요. 원리책에도 없어요.

지금까지 선생님을 죽으라고 얼마나 기도한 사람이 많았어요? 요즘에 내가 하는 것은 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때문에 지금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면 어머니를 중심삼아 가지고 벌어지는 모든 배후 수습에 대한 것을 지금 내가 손을 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단식투쟁을 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 상대적 요건을 세워 가지고…. 탕감조건은 뭐냐? 탕감조건은 승리의 권한을 갖는 겁니다. 주관성을 복귀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어머니면 어머니로서 그런 길을…. 어머니가 쉬운 게 아닙니다.

우선 외적인 면에서, 내적인 면에서, 심정적인 면에서 물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에 있어서는…. 어머니면 어머니에게 내가 교육하는 게 그겁니다. 외적인 문제, 내적인 문제, 심정문제…. 타락이 뭐냐 하면, 그걸 부정했다는 겁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심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전부 다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거기에 물질까지도…. 그런 입장에 선 사람들은 어떻게 돼야 되느냐? 그런 것이 문제가 돼요. 외적, 내적 심정문제인데, 나, 즉 사람하고 심정문제입니다. 그런 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다리를 놔 주느냐? 외적 물건을 접촉하기 위해서는 내적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외적 물건들을 제시하는 겁니다. 이것이 물질입니다. 물질을 갖고 들어온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관심을 버리라 이겁니다.

그다음에는 자기 중심삼는 데, 혹은 어머니면 어머니가 '나다' 하다가는 걸린다는 겁니다. 자기를 망각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심정문제에 들어가서 '아 내가 더 사랑받아야겠다' 해서는 안 됩니다. 타락의 내용이 거기서 나온 겁니다. '내가 더 높아져서 더 사랑받겠다' 한 것입니다. 타락이니 사탄이니 어디에서? 이런 문제에 있어서…. 이걸 전부 다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관념을 초월하라 이겁니다. 자기 인격에 대한 것, 자기의 무슨 위신 문제 같은 것은 다 망각해 버리라 이겁니다. 그다음에 심정문제에 들어가 가지고는 전부 다 하늘 앞에 돌리고 만민 앞에 돌려 버리라 이겁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전부 다 알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넘어가는 겁니다. 최고의 꼭대기에서 딱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게 오는 겁니다. 올 때는 순식간에 넘어서는 거예요.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은 힘들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리하는 단계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뭐냐 하면, '물질적 기준을 초월하라. 네 몸을 버려라. 위신을 전부 다 버려라' 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 심정을 찾아야만 하늘의 몸을 찾는 것이요, 하늘의 몸을 찾아야만 물질을 찾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거꾸로입니다.

복귀해 나오는 데는 제물, 물질, 그다음에는 예수님 실체, 그다음에는 심정문제,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세워지면, 탕감기준을 세우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심정을 찾아야만, 심정을 찾아 가지고야 위신을 세우는 사람이 되고, 위신을 세우는 사람이 돼 가지고야 만물을 주관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째서 작년서부터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 만물복귀 기준을 세웠느냐? 문제예요. 작년부터 선생님의 관심이 뭐냐? 6년에서 7년 단계를 거쳐 나오기 때문에 그걸 안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돈이 필요하다,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건 왜? 선생님이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심정문제, 가꾸로 나온다는 거야. 심정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만물을 복귀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게 다 원칙적인 요건에 들어맞는 겁니다. 욕심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고충이 뭐냐 하면 이런 것을 전체 국가면 국가 대해 가지고 연결시킬 수 있는 탕감적인 놀음을 하기 위해서 지금 공장을 확대하고 시설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것을 또 연결시켜 줘야 돼요. 다른 사람들이 연결시켜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떡 보게 되면 전부 다 하늘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제사날이 가까와 오는데 제물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밥 걱정하는 패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제삿날이 돼서 제물을 준비해 가지고 제사상 차려 가지고 제사해야 할 것인데, '아이구 내가 지금 배가 고프니 젯밥이고 뭐고 나 밥 먼저 먹어야지. 제사상에 놓을 고기니 무엇이니 하는 건 관두고 내가 고기 먼저 먹어야지' 이런 입장이라는 겁니다. 그러다가는 여러분이 가는 길은 완전히 막혀 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있지요? 설명을 하고 보면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제사를 드리려면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정성들인 물건을 한 곳에 모아서 정성들여 가지고 하늘의 프로에 맞춰 나가야 하는데, 그 놀음을 못 하니 상당히 고충이 많다는 겁니다. 이러다가는 앞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들이 맞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책임 못 하면, 하나 못 하고, 둘 못 하고, 셋 못 하고 그러다가는 진짜 걸려 넘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잘 못하게 되면 기성교인들이 들어와 가지고 여러분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수의 자식을 사랑해야

지금은 여러분들이 아벨적 입장이지만 아벨이 아벨 책임 못 해 가지고 하늘이 책임 추궁하게 될 때는 가인을 세워 놓고 책임 추궁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알아요, 무슨 말인지? 효자가 잘못하게 될 때는 동네사람들까지 데려다 친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담을 이렇게 많이 했구만. 이때에 와 가지고는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하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나가서 반대한 사람을, 도리어 원수를….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형제의 관계에 있어서…. 반대할 때는 형제의 입장입니다. 그렇지요? 부모의 입장이 아닙니다. 형제의 입장에 있어서 형제들이 못을 박는데 못을 박는 것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자의 관계입니다.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옛날 형제의 관계에서도 예수님은 못을 박는 사람들을 대해서 '저들의 죄를 용납하소서' 하고 기도했어요. 그런 것이 하늘 심정이거늘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이 자식 죽어라' 그래서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지금 그런 무리 때문에 고충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살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진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원수의 자식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러려면 자기 자식보다 더 고차적인 사랑을 가지고 대하지 않고는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더 고차적인 사랑을 가져 가지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반대한 사람을 살려 줄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그것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아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평면적으로 봐서는 선생님을 이해 못 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해석을 들으면…. 그렇기 때문에 협회장이면 협회장하고 의논 못 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의논 못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일이 많아요.

그러면 이제 잔치가 벌어졌으면 말이예요. 죽었던 아들이 돌아와 가지고 그 동네에 자랑할 수 있는 잔치가 벌어졌으면 말이지요, 떡을 했는데 '아이구 저 원수 자식들'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이제 떡도 해야 되지만, 이거 먹는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편 되는 사람보다도 동네 사람들을 같이 대해야 되는 겁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더라도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같이 내리지 않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권고해 주고 원수에게 자리를 넘겨 주는 겁니다. 그래서 빨리 탕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사람들이 만약 들어오게 된다면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심정적으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완성세계의 심정을 논하며 나가는 겁니다. 부모의 심정을 논하는 그 심정은 무엇이냐 하면, 장성급 세계의 심정이 아니라 완성급 세계의 심정을 논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정권에서 하늘 앞에 배반했을 때는 다시는 용서할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사탄이 '이 자식아, 나는 장성급에서 하늘의 심정을 유린하고 하늘을 배반했지만, 너희는 완성급에서 하늘을 배반했으니 나보다 더 나쁜 녀석이다. 너는 나를 섬겨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그런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들, 통일교회 때문에 그런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내가 좋아하겠어요? 사탄이 참소하고 사탄이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기분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복수하기 위해서는 용서할 길이 어디 있느냐를 찾는 겁니다. 이런 입장이라구요. 이게 진짜 골치라구요. 만약 이것을 용서해 주면 어떻게 되느냐? 역사시대에 상당히 시끄러운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이 배후에 미쳐져 있는 역사시대의 영향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 만약 그런 법을…. 그들을 용인 안 해주면 악한 세상에서 선생님의 아들딸과 앞으로 축복받은 가정의 자녀들이…. 자녀들이 태어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지은 아담 해와도 타락했지요? 하나님이 지어 놓은 아담 해와도 타락하지 않았어요? 「예」 그러면 복귀시대에 있어서 이런 단계에, 사탄이 우굴우굴하는 이 와중에 있어서,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방으로 갖추어진 환경에 있어서 만일에 축복받은 자식들이 그 법에 걸려도 모가지 잘라야 된다구요. 먼저 잘라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녹음이 잠시 끊김)

한국 강토를 중심삼아 가지고 오늘 우리 기반을 이렇게 넓혀 나왔다는 것은 우주사적인 혁명이예요. 우주사적인 혁명인 동시에 우주사적인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 엄숙한 과제 앞에 만민은 무조건 복종하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눈물이 많다면 누구보다 많은 것입니다. 내가 심정적인 사연과 곡절이 많다면 누구보다 많은 것입니다. 땅을 대해서 한한다면 누구보다도 한할 수 있는 심정입니다. 저주를 한다면 누구에게 못지않은 저주를 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위신을 생각지 않아요. 당장에 이제라도 무얼 하라고 하면 하는 겁니다. 이미 각오한 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함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저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뜻 때문에, 뜻 때문에 망할 길을 찾아간다구요. 아예 망하려고 내가…. 내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해요. 내가 충성 다하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죽으면 하늘이 후계자를 세우든가 해서라도…. 최후의 길을 다짐하면서 지금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이남으로 나올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길을 떠날 때, 이 길을 거쳐 나올 때 이것이 평지를 걸어온 것이 아닙니다. 감옥 울타리 속에서부터 뚫고 나오는 겁니다. 그 감옥 울타리에서부터 남자면 남자로서 남자의 사정을 알아줘야 되고, 감옥이면 감옥의 여자들의 사정을 알아줘야 됩니다. 거기서 제물을 쌓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모를 겁니다. 이제 영계에 가 보면,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찾아 진다면 부끄러운 구원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아직까지 넘어야 할 세 고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한테도 의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나오나 자나깨나 하늘땅을 연결시키고 이 세계를 연결시키는 복잡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는 자식이 필요 없어요, 그 자리에서는 효도가 성립 안 되는 거야. 아무리 충신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는 충성이 성립 안 되는 것입니다. 충신이 필요 없고 효자가 필요 없습니다. 다만 홀로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인류의 부모가 저끄러 놓은 죄악상을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뜻으로 보면 나는 백일청천하에 드러나 가지고 안심하고 만국을 호령해야 할 입장인 것을 알지만 이 사탄세계의 최고의 그늘진 시궁창에서, 그늘 밑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에서 나로서 하늘이 백일청천하에 호령할 수 있는 그런 내적 기준이라도 어떻게 세워 놓고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내가 잘살고 못살고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 직계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세계적인 사명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 가기가 바쁜 것이지 반대받고, 핍박받고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알았고…. 여러분들은 바보 천치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수단과 방법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나가는 이 문제는 개인으로 나가지만 세계사적인 내용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탕감노정을 가고 계심을 알아야

그러면, 이러한 부모의 날을 맞이할 적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 6천 년 동안 찾아 나오시던 그 부모가 지닐 수 있는 위치, 또 그 부모가 탕감해야 할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세우기 위한 부모의 위치와 그 부모로서 탕감해 나오던 내적 기준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걸 중심삼게 되면 심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말할 수 없는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 자신이 갖춘 것이 아닙니다. 하늘 뜻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을 갚겠다고 노력하고 이것을 땅 위에서 자기가 보답하겠다고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앞에는 하나님의 운세가 엉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옛날에 세상에서 살 때나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사연을 알고, 이 7년 고비를 넘어감에 있어서 여러분이 이러한 사연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하나님이 이날을 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고대했고, 또한 이날을 세워 가지고 부모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지금도 탕감노정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하면 아벨이면 아벨의 사명을 해야 되고,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가정이 가인적인 입장에 있지만 선생님의 가정이 자리를 잡으면 여러분들이 아벨적인 입장에서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다리를 놓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지 선생님 하나로 전부 다 돼요?

그리고 이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영계하고 육계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조로 볼 때는 연결시켰지만, 즉 종적으로는 연결시킨 조건이 되어 있지만 횡적으로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선생님이 지금 상당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이러한 부모의 날을 가질 적마다 여러분들이 그런 면에서…. 이러한 전체적인 혜택의 역사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이 민족이 이러한 제물 과정을 가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선두에 서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만민이 해방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우리의 최고 지상목표를 세워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나갈 수 있는 이러한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이러한 날을 맞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몇 말씀 드렸습니다. 알겠지요? 「예」 자 일어서라구요. 통일교회 만세를 부릅시다. 통일교회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하나님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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